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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다문화 박사의 ‘진짜’ 다양성 이야기

by Casey,Riley 2022.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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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숙 지음 / 산지니
이 책은 다문화 사회와 교육에 관한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다문화 교육, 문
화 다양성, 인종 다양성, 언어 다양성 등을 살펴본다. 다문화-이중 언어 교육 전공자인 저자는 현재 여
러 분야에서 다문화와 다양성이 논의되고 있고 세계가 다문화 사회로 변해 가는 만큼, 우리가 다문화
사회를 맞이하기 위해 해야 할 준비가 무엇인지 다문화 가족이 된 자신의 사례를 들면서 알려 준다.

다문화 박사의 ‘진짜’ 다양성 이야기
조형숙 지음

▣ Short Summary
한국은 2020년 11월 출생아의 숫자가 사망자의 숫자보다 적어서 인구 데드크로스 현상이 발생했다.
이제부터는 인구 절벽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인구 절벽을 막기 위해 다음 두 갈래 중 선택해야
하는데, 출산율 정책과 외국인 정책이 그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도 출산율은
높아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구를 충원시킬 방법은 국제 이주를 통한 외국인 주민의 유입밖에 없다.
국제 이주를 통해 외국인 주민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중 한 가지는 한국 사
회로 유입하려는 외국인을 어떻게 스크린하여 사회적 편익을 최대화할 것인가에 관한 이민 정책과 관
련되고, 다른 한 가지는 이미 한국 사회로 유입된 외국인 주민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에 관한 다문화
정책과 관련된다. 이처럼 외국인 정책과 다문화 교육은 인구 구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책은 다문화 사회와 교육에 관한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다문화 교육, 문화
다양성, 인종 다양성, 언어 다양성 등을 살펴본다. 다문화-이중 언어 교육 전공자인 저자는 현재 여러 분
야에서 다문화와 다양성이 논의되고 있고 세계가 다문화 사회로 변해 가는 만큼, 우리가 다문화 사회를
맞이하기 위해 해야 할 준비가 무엇인지 다문화 가족이 된 자신의 사례를 들면서 알려 준다.

▣ 차례
프롤로그
1장 다문화 교육
다문화 교육과 책무성
미국 학교와 경쟁
한국과 미국의 고등학교 진학
외로운 아이들
중도 입국 학생을 위한 학교
다문화 학교는 어디로 갔을까?
모든 학생이 봉사 활동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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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박사의 ‘진짜’ 다양성 이야기

아시아계 학생은 똑똑하다고요?
2장 문화 다양성
인구 절벽과 국제 이주
‘우리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한국인
내가 몰랐던 인도
협박 편지와 문화 다양성
외국인 범죄와 편견
이주민의 정치 참여
이민자의 미나리와 가야금
냄새와 문화
3장 인종 다양성
다문화주의와 인종
백인 혈통
이병헌과 인종주의
인종 차별을 걱정한다고요?
차별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옐로 피부색
인종 문제를 바라보는 백인과 유색 인종의 관점
인종 차별 지도와 행복 지도
“너는 아시아 사람이었니?”
인종과 의료 보험
스타킹과 피부색
노예제를 통해 바라보는 역사 교육
4장 언어 다양성
인종과 언어
전쟁 같은 ‘언어 배우기’
리멤버 노마 진(Norma Jean)
언어 차별과 언어 권리
제2 언어로 소통하기
푸에르토리코와 제주도
왜 부모 나라의 말을 배워야 할까?
이민 가정 첫째 아이의 역할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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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박사의 ‘진짜’ 다양성 이야기

다문화 박사의 ‘진짜’ 다양성 이야기
조형숙 지음

다문화 교육
다문화 교육과 책무성
2010년 나는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미국 플로리다로 향했다. 나는 교육학 박사 공부를 하고 아들은 미
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영어를 배우면 일석이조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의도하지 않게 아들은 현지
에서 영어를 못하는 아시아계 ‘다문화 학생’이 되었고 나는 ‘다문화 엄마’가 되면서 우리 모자는 ‘이민
다문화 가족’이 되었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다가 학교에서 ‘다문화 가족’을 위한 상담
을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상담을 받게 되었는데, 이런 경험이 학위 논문의 주제를 다문화 교육으
로 잡는 계기가 됐다. 나는 이민자 문화와 다문화 교육에 대해 공부하는 한편, 틈틈이 아들이 다니는 학
교에서 수업을 참관하고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면서 이론과 현장을 연계시킬 수 있었다.
한편 아들은 미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했지만 학년 편제가 달라, 중학교 3학년은 편입한 한국
의 중학교에서 다녔는데, 한국의 교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라.’와
‘여기는 한국이니까 외국에서 있었던 일들은 싹 잊으라.’는 것이었고, 아이는 자신의 행동 특성과 독특
한 경험을 부정하는 교사들의 동화주의(Assimilationism)에서 ‘문화적 폭력’을 느꼈다.
동화주의적 접근법의 역사는 다문화 교육이 정착한 미주 지역과 상호 문화 교육이 정착한 유럽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진다. 미국은 1965년 이민법 개정으로 유색 인종 이민자를 받아들였고, 1967년 금지되었
던 백인과 유색 인종 간 결혼도 합법화시키면서 다인종 다문화 정책은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이했다.
이에 발맞추어 이민자 문화와 흑인 문화를 존중하는 다문화 교육이 학교 현장에 서서히 정착하기 시작
했는데, 그 단적인 사례가 학교에서 사용하는 백인 영어(White English)로 진행되는 교과를 잘 배우기
위해서는 가정에서도 영어로 소통하기를 권장하던 기존의 언어 정책을 철회한 것이다. 이민을 온 가족
이 영어로 서로 의사소통할 수도 없고 본국어를 사용하여 서로 의사소통이 되는데 굳이 영어를 사용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이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정책이었으며, 본국어를 포기하고 영어를 사용하도록 유
도하던 영어 기반 단일 언어주의(Monolingualism) 정책을 포기한 것이었다.
다른 문화권에서 이주한 학생들은 문화 충격을 경험하게 되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의 교사는 이 점을 잘 이해하는 편이고 학생의 행동이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 행동 방식일 수 있음
을 고려한다. 그리고 문화 다양성을 교육 패러다임에 반영하여 다른 언어, 다른 종교 및 다른 문화를
비난하거나 동화주의적 관점으로 교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리고 또 생활 지도 측면에서는 문화적 배려
없이 다문화 학생을 섣부르게 지도하다가는 인종 차별과 아동 학대 등으로 간주되어 교직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매우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그런데 아들이 편입한 한국의 중학교에도 다문화 학생이 재학 중이었다. 물론 아들은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도 아니고 외국인 가정 자녀도 아니었기 때문에 교육부 기준의 다문화 학생 범주에 속하지는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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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박사의 ‘진짜’ 다양성 이야기

다. 하지만 “아디시(인도네시아계 외국인 학생)는 한국말을 모르니까 수업을 못 알아듣고 성적도 낮
다.” “김 앤드류(미국 태생 귀국 학생)는 한국말이 안 되니까 다시 미국으로 갔다.” 등의 말을 교사에게
듣기도 했다. 한국어 공부와 교과 학습을 도와줄 책무가 교사에게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적응
하느라 힘겨운 학생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인데, 이를 ‘희생자 비난하기’라고 한다.
문화 다양성이 다문화 교육의 근본정신이라고 한다면, 교사의 책무성(Teacher Accountability)을 강조하
는 것은 미국 교육 정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출산율이 높지 않아도 이민 정책으로 끊임없
이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민 자녀를 잘 교육시켜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인 셈이다. 또 미국은 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고 이직률이 높은 반면, 교사가 학생 위에 군림
하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느껴졌다. 교사는 학생을 처벌할 수 없고 다른 학생과 비교하는
것을 연방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또 이주 배경 청소년들에게 주류의 가치관에 맞추라고 강요하지 않고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은 교사의 책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문화 교육의 관점에서 보자면
학습 부진과 부적응은 학생의 탓이 아니라 학교의 교육 역량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교사들은 어떻게 더 많은 책임을 지고 학생을 덜 비난하는 교육 철학을 받아들이게 되
었을까? 과거의 정책적 오류를 벗어나, 동화주의 입장을 철회하고 문화 다양성을 교사 교육에 적극 반
영한 교육 과정 개혁의 결과이다. 참고로 미국의 예비 교사들은 다문화-다언어(Multicultural &
Multilingual) 교육에 관한 강의를 학부 과정에서 이수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다문화 사회
로 진입하고 있는 한국도 초등 교원을 양성하는 교육 대학부터 다문화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전 지구적인 인구 이동으로 인해 다문화 학생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고, 미국을 비롯한 OECD
회원국은 동화주의 정책보다는 문화 다양성을 인지하고 교사로서의 책무성을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문
화 인종적으로 다양한 학생에 대한 섬세한 배려는 교육의 수준을 높였고 고급 인력이 안심하고 이주하
는 계기가 된다. 참고로 아무리 부자 나라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다고 해도 자녀가 학교에서 차별받거
나 공립 학교 수준이 낮아서 학비가 비싼 국제 학교나 사립 학교에 보내야 한다면 글로벌 인재가 모여
들 수 없다. 그래서 다문화 학생을 차별하거나 시혜적 관점에서 정책을 수립하기보다는 인권과 교육
평등과 수월성(秀越性) 교육의 가치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제 한국의 초ㆍ중등 교사들도 다문화 사
회를 준비했으면 한다. 좀 더 섬세하고 좀 더 조심스럽게 말이다.

문화 다양성
내가 몰랐던 인도
나는 유학 생활을 하면서 미국 학생뿐 아니라 외국 유학생과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생겼다. 내가 다
니던 학과는 중국인이 가장 많고 미국인, 한국과 아랍 유학생에 이어 인도 유학생이 섞여서 공부했는
데, 아무래도 한ㆍ중ㆍ일 친구들은 문화적으로 공감을 느낄 부분이 많다. 참고로 나보다 두 살 많은
일본 친구와는 입맛도 비슷하고 마음씨도 착해서 친하게 지냈고, 중국인들과도 이런저런 갈등도 있었
지만 문화적 친숙함이 기본으로 깔려 있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화적 갈등은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만난 인도 유학생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다음은 나보다 2년 먼저 박사 과
정에 들어온 인도 유학생 찬다니와의 이야기다. 나와 고용 계약을 한 교수의 연구 과제를 진행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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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박사의 ‘진짜’ 다양성 이야기

해서는 복사를 해야 했고, 막상 학과의 복사기를 사용하려고 하니 고장은 아닌 것 같은데 도저히 작동
이 되지 않아, 이리저리 들춰 보던 중이었다. “찬다니, 복사를 해야 하는데 이게 잘 안 돼. 혹시 너 어
떻게 사용하는 건지 아니?” “글쎄, 나 한 번도 안 써 봐서 잘 모르겠네.” “아 어쩌지….” 나는 어쩔 수
없이 복사를 포기하고 박사 조교실로 돌아갔다. 그런데 내 자리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나보다 2년이
나 먼저 입학했는데 한 번도 복사기를 사용해 보지 않았다는 게 이상했다.
그러다 잠시 후 이메일을 체크해 보니 학과의 직원이 나의 다음 학기 재계약을 위해 들러 달라는 편지
가 와 있어 다시 학과 사무실로 갔다. 그때 나와 함께 입학한 미국인 학생 스테이시에게 찬다니가 복
사기 사용법을 알려 주고 있었다. 복사기는 아무나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비밀번호가 걸려 있다고
설명하며 친절하게 포스트잇에 비밀번호를 적어서 알려 주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보는 앞에서.
이후 두 번째 학기가 되었다. 나는 지도 교수가 진행하는 이민 자녀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육 프로젝
트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인도 학생과 함께 두 명이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미팅에서 인도 학생 라만딥
이 40분 지각을 했다. 그런데 미안하다는 말도 없고 왜 늦었는지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고 씩 웃는 것
이었다.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다그치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한 번은 그냥 넘어가
자 싶었다. 그런데 그다음 미팅에서는 거의 1시간이나 지각을 했는데도 또 씩 웃으면서 태연하게 가져
온 간식을 꺼내 먹는 것이 아닌가. 나는 화가 나서 프로젝트 회의를 미루고 나와 버렸다.
며칠 후, 중국 친구 웬징에게 내가 겪은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도 학생에게는
화난 얼굴로 고함을 지르면서 이야기를 해야 해. 그러면 라만딥이 나이스하게 행동할걸. 실수를 이해
해 주면 자기가 계급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걔가 미국 학생한테는 절대 안 그러거든.” 그 말을
듣고 나니 웬징이 평소 인도 유학생에게 명령하듯 하는 말투가 이해가 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이후 라만딥이 예의 없는 행동을 했을 때 나도 인상을 쓰고 언성을 높였다. 나는 관계가 서먹서먹해질
것으로 생각했으나 놀랍게도 그녀는 나에게 다과를 권하고 자기 페이스북을 보여 주며 더 상냥해졌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인도에서 무슨 선거에 출마했고 한창 선거 유세 중인 사진으로 가득했다. 이후 한
국인 유학생 모임에서 이 어이없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실험실에서도 인도 유학
생과 한국인 유학생의 삐걱거리는 스토리는 부지기수였다.
이후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고등학교 때 이민 와 그곳에서 취직하고 있는 조카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성인이 되기 전부터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영어도 상대적으로 유창하니까 친구도 많고 그렇지?” “영어
를 잘하면 아무래도 유리하죠. 저도 대부분 듣는 입장이지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아요.” “난 언어적인 어
려움도 있고 문화적으로도 외국인과 마음을 터놓고 사귀는 게 쉽지는 않아.” “우리가 조금만 마음을 열
면 외국 사람들 정말 좋은 사람들 많아요. 한국인이 획일적인 문화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
들과 협업하고 친구를 맺는 데 어색할 수 있지만 겪어 보면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렇구나. 너는 외국 문화에 적응을 잘 하는 것 같네.” “예, 일본계 사람들은 나이스한 편이고, 중국인
이라도 문화적으로 통하는 게 많아 친하게 지내고 있고요. 제 주변에 레바논 친구가 있는데 정이 많고
똑똑하고…. 정말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인도계는 어때? 인도 문화랑 잘 통
하는 것 같아?” “아, 그건 좀…. 인도 쪽 사람들과는 좀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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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박사의 ‘진짜’ 다양성 이야기

조카도 인도 동료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힘들어했다. 웃는 얼굴로 친근하게 다가와 이런
저런 업무 이야기를 한 후, 팀별 회의를 하게 되었는데 조카가 이야기한 내용을 마치 자신이 오랫동안
궁리를 하다가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처럼 연기하면서 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 앞에서 천
연덕스럽게 발표를 해서 당황했는데 그런 일이 몇 번 더 반복되었다고 한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그 모습에 감당이 안 되어 멀리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다문화-이중 언어 교육을 전공한 내가 인도 유학생과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가끔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저는 박사님이 다문화를 공부했다고 해서, 무조건 외국 사람들 편을 들
것으로 생각했어요. 한국 사람들이 외국 사람 이해해 주고 참아야 한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할 줄 알았
어요.” 그럴 때 나의 대답은 이렇다. “이해한다는 것은 덮어놓고 무례함을 참아 주는 것이 아니다. 문
화 간 차이가 있음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대응 전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포함한다.”
우리는 인도의 신분이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라는 4가지 계급이 있다고 배웠지만, 실제 직
업과 역사 등으로 세분되어 약 오천 가지쯤 된다고 한다. 참고로 한국어는 존칭이 과도하게 발달해 있
어서 상대방의 나이와 사회적 지위를 모르는 상태로는 장시간 대화가 쉽지 않듯이, 인도인은 신분제적
계급을 토대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래서 미국의 회사에서 처음 만난 인도인끼리도 상대의 신분을 캐
내려고 다양한 유도 질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인도인은 청소나 뒷정리하기와 같은 궂은일에는 소극성을 띠는데, 이는 궂은일을 하는 것이 자신
의 신분을 낮출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전시회 등을 마친 뒤 사용했던 천막이나 탁자와
쓰레기 등을 내버려 두고 떠나는 경우도 많은데, 이를 인도인의 ‘문제없음(No Problem) 정신’이라고도
한다. 육체적인 작업과 관련된 궂은일을 꺼리는 인도 문화에서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이상
‘문제없음’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안전 관리 혹은 뒷정리를 하지 않는다. 이런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가 생겼을 때 그제서야 어떻게든 뒷정리를 하면 된다는 식이다. 따라서 인도인과 계약 시 반드시
뒷정리 문제를 명시해서 계약 불이행 시 위약금 내용까지 포함해야 한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찬다니가 포스트잇에 복사기 비밀번호를 적어 주고 있을 때, 나는 어이없어하며
가만히 있었고 그것은 ‘문제없음’의 신호가 되었다. 만약 내가 그 대화에 끼어들어 미국 학생인 스테이
시가 보는 앞에서 ‘너는 거짓말쟁이’라고 항의했다면, 그것은 찬다니에게 ‘사고’가 생긴 것으로 인식되었
을 것이다. 또한 라만딥이 자신의 시아버지가 선거 유세 중인 사진을 보여 주었을 때, “난 너희 가족에
게 관심 없어. 다음부터 지각하면 지도 교수한테 리포트하고 너를 해고하라고 건의할 거야.”라고 말했다
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궁금하다. 라만딥은 더 많은 간식을 가져와 나에게 주었을까?
다문화 교육이란 덮어놓고 이주민을 도와주고 이해하라고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다. 그보다는 문화 간
차이를 이해하고 그 차이가 갈등적 요소로 폭발하기 전에 다양성이라는 유용성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대응으로서 교육을 보는 관점이다. ‘진심은 통한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문화라는 그릇에 잘 담아야
진심은 통한다.’는 접근법으로 인도와의 교류를 준비했으면 한다.

인종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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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박사의 ‘진짜’ 다양성 이야기

다문화주의와 인종
현재 한국은 다문화 교육이 정착되고 있지만, 미국 다문화주의의 기초를 다진 데릭 벨은 한국에서는
생소한 이름이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헌법학자인 그는 흑인 최초로 연방 대법관을 역임했으며,
하버드 법대에서 흑인 최초의 종신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하버드대학에 임용된 후 대학이 아시아
계 여성을 종신 교수로 임용하기를 거부하자 하버드대학을 떠났다. 또 오리건대학 재직 시절, 대학이
능력 있는 유색 인종 여성을 교수로 임명하는 것을 꺼리자 대학의 인종주의와 성차별적 임용 관행을
비판하며 데릭 벨은 1985년 학장직을 내려놓았다. 인생의 많은 굽이마다 도덕성과 사회적 성공은 자
주 충돌하는데, 그는 그때마다 바르게 살기를 선택했고 사회적으로 존경받았다.
참고로 19세기 말부터 아프리카계 흑인은 그들의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문학, 예술, 언어를 학문적 관
점에서 다루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로 흑인학(Black Studies)으로 탄생했다. 한편 법학을 전공한 데릭
벨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할 법이 사실은 흑인을 차별하고 있음을 밝혀내기 시작했는
데, 하버드 법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이 ‘비판적 법학(Critical Legal Studies)’은 흑인학의 지평을 넓
혔고 논리적 체계를 잡아 갔다. 그리고 또 비판적 법학은 흑인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소외되고 차별받
고 있는지 밝힘으로써 법 개정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었다.
이후 흑인학은 점차 아시아계 이민자, 남미계 이민자, 미국 원주민 등 다양한 인종의 학문으로 퍼져
나가며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으로 발전했고, 1960년대 미국 민권 운동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였다. 그리고 비판적 인종 이론은 기존의 인종 이론이 거짓이며 근거 없는 사이비 과학임을
입증했다. 한편 비판적 인종 이론이 교육 영역에 적용되어 인종 차별적 교육을 극복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다문화 교육이다. 참고로 워싱턴대학의 제임스 뱅크스는 ‘다문화 교육’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
하여 새로운 학문을 개척하였는데, ‘다문화 교육(Multicultural Education)’은 교육 불평등과 인종주의를
비판하고 세계 시민성(Global Citizenship)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 ‘인종’은 다문화주의와 다문화 교육이 출발하는 주요 계기가 되었다. ‘아프리카계 흑인’의
역사와 디아스포라를 탐구하고 흑인의 정체성을 연구하면서 불평등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한국인은 다
문화를 ‘외국인’과 연결 지어 생각하지만, 다문화 사회를 먼저 경험한 사회에서는 사회 내부의 주류 집
단과 소수자 사이의 불평등을 인지하고 어떻게 평등을 추구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때문에 ‘인
종’이 다문화주의의 출발선이라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즉, 한 사회 내부에서 인종이 다르면 소수자
가 되기 십상이고 그래서 삶의 경험이 달라진다. 경험이 달라지면 문화가 달라지고 그들이 사용하는 언
어가 달라지기 때문에 인종, 문화, 언어 등이 얽히고 교차되어 다문화 생태계를 형성한다.
오바마 대통령처럼 혼혈 흑인이 백인 가정에서 성장하고 백인들이 다니는 사립 학교에 다니면서 백인
영어를 배워 표준 영어를 구사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예외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오바마 대통
령도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과 문화적 정체성의 불일치에서 갈등하다가 대학원 재학 중 빈민촌에서 법
률 봉사를 하며 자신이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한 적 있다.
대개 백인은 근교(Sub-urban Area)의 백인 주거 지역에서 살면서 개인주의적 문화 속에서 자라면서
백인 교회를 다니고 백인 목사의 가르침을 따르고 백인 영어를 습득한다. 반면 흑인은 낡은 원도심 지
역(Inner-city Area)에서 살면서 흑인 문화를 배우고 흑인 교회를 다니며 재즈와 흑인 영가를 배우고 길
거리 농구를 하며 흑인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가 많다. 빈민 지역에서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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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박사의 ‘진짜’ 다양성 이야기

기력은 인생을 관통하며 끊임없이 실패로 이어지기도 한다. 동북아시아계 이민자는 캘리포니아 한인
지역이나 백인 지역에 살면서 자녀 교육을 강조하고 흑인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경우도 많아 인종
갈등의 희생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인종’에 그치지 않고 ‘인종+젠더’가 결부될 때, 유색 인종 여성은 백인 여성이나 백인 남성보다
차별에 취약해진다. 또한, ‘인종+젠더+언어’가 결부될 때, 언어 구사력이 떨어지거나 사투리를 사용하
는 유색 인종 여성은 집단 내 소수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이처럼 인종은 다른 사회문화
적 요인과 겹쳐지면 소수자를 더욱 주변화한다.
이렇듯 비판적 법학을 통해 불평등의 원인을 탐구하고 미국 다문화주의와 평등의 기초를 닦은 데릭 벨
은 미국 법학 교수들이 뽑은 최고의 교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와 한국인이 연결된 고리를 찾자면,
하버드대학의 석지영 교수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6살에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계
미국인 석지영 박사가 2010년 아시아계 여성으로는 최초로 하버드 법대의 종신 교수가 되었다.
참고로 하버드 법대가 능력 있는 아시아계 여성을 교수로 채용하기를 꺼리자 과감하게 하버드를 떠났
던 데릭 벨은 2011년 사망하기 전 석지영 박사가 종신 교수가 되는 것을 보았다. 아무튼 몸소 차별에
저항하며 사회 정의를 실천함으로써 데릭 벨은 바르게 살아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고, 그의 저
서 『바르게 살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그래서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다.
이렇듯 길게 데릭 벨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바르게 살아도 성공할 수 있다』의 한국어판을 읽
기 시작했을 무렵, 공교롭게도 다음과 같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들이 자녀의
대학 입시를 위해 논문에 자녀의 이름을 공저자로 올리며 연구 윤리를 위반했고, 이를 계기로 교육부
의 전수 조사가 시작되었으며, 점검 결과는 미성년 자녀를 논문의 공저자로 등록한 사례의 대부분은
이공계열 논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연구 계획서를 내고, 실험 기자재를 구입하고 설치하여 반복적으
로 실험을 진행하고, 데이터를 통계 처리하고 실험 설계를 수정하는 기나긴 과정을 거치면서 논문에
연구자 한 두어 명쯤 끼워 넣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여도가 미미한 경우에는 연구자로 이름을 올릴 수 없기 때문에 ‘중요한’ 기여도인지 ‘미미한’ 기여도
인지 판단하는 것도 연구 책임자의 도덕성에 의존한다. 따라서 이공계열 대학교수는 인생의 굽이마다
그의 도덕성이 시험에 들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 시험이 자식이나 친구의 자식이 대입을 앞두고 있을
때, 바르게 살기란 쉽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아무튼 입학 사정관 전형이 생긴 이후, 대학교수 부모와 그 동료 교수가 논문을 통해 자녀의 대입을 준비
해 준다는 입소문이 떠돌았다. 연구 윤리 조사 대상이 된 이들은 재수가 없었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으나,
그 소문은 사실로 확인되었고, 나의 경험치로는 학생의 기여도가 큰 것인지 아버지의 인맥이 넓은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어쨌든 인맥이 자본이 되어 그들만의 문화를 서로 공유하며 교육 불평등이 심화되어 가
고 있다. 바르게 살아도 세속적으로 성공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이들을 보고 싶다.

언어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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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박사의 ‘진짜’ 다양성 이야기

전쟁 같은 ‘언어 배우기’
한국인은 어린아이들이 미국에서 1~2년 살다 보면 물레로 실을 잣듯 영어가 술술 나올 것으로 생각하
지만 오산이다. 나도 처음 미국에 정착할 때는 아이가 꼬박꼬박 학교 다니고 영어 잘하는 미국 아이들
과 사귀면 금세 영어가 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영어가 서툰 이민 자녀와 주로 어울
리게 되어 영어 원어민과 어울릴 기회가 적었다. 그뿐만 아니라 한인 성당에서도 영어가 유창한 또래
아이들이 우리 아이와 어울리기를 꺼렸다. 영어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 아이
들뿐 아니라 어렸을 때 이민 온 한국 아이들은 한국에서 갓 건너온 아이와 섞이기 싫어하는 것이 한눈
에 보일 정도였다. 서로 의사소통이 힘드니까 당연하다 싶지만 그래도 속이 상했다.
한국에서 갓 건너온 아이들은 한국 게임, 한국 예능 프로, 한국 걸 그룹과 아이돌 스타, ‘카카오톡’으로
주로 이야기를 풀어 간다. 반면, 이민 자녀와 시민권자 아이들은 미국 게임, 미국 드라마, 인스타그램,
킥(kick, 채팅 앱)이 화젯거리였다. 이처럼 서로 관심사가 다르고 그래서 화젯거리도 다른데, 사용하는
언어마저 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는 쉽지 않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아이가 영어가
유창한 친구를 단짝으로 사귀었다면 정말 운이 좋은 셈이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원어민에게 영어 과외를 받는다고 하면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하루라
도 빨리 자녀의 영어 실력이 늘어야 학교생활이 가능하고 아이의 자존감도 높일 수 있으니 부모로서
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튼 미국에서도 영어를 배우는 것은 전쟁이다. 대부분의 이민자
가정이나 방문학자 가정의 자녀들은 보통 시간당 20달러 정도를 지불하고 영어 과외를 받곤 했다. 내
가 살았던 마을에서는 어릴 때 이민을 와서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고 로스쿨을 졸업하고
이웃 지방에서 검사로 근무하는 한국계 미국인이 가장 유명한 과외 교사였다.
‘현직 검사가 영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다니….’ 검사라고 하면 권세가 하늘처럼 높고 연봉도 꽤 높을
것으로 생각했다.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한인 자녀를 대상으로 영어 과외를 하는 것이 이상해서
로스쿨에 다니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미국 워싱턴 D.C.의 연방 검사는 사회적 신분도 낮고 보수도
낮아 아무도 원치 않는 포지션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덧붙여, 변호사 중 사건 수임이 어려워 사무실
유지가 힘든 변호사들이 어쩔 수 없이 지원하기 때문에 이직률도 높다고 한다. 그 말이 어느 정도 맞
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법조 체계가 한국과 다르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조카아이가 미국으로 온 직후, 그 미국 검사에게 의뢰했더니 한 자리가 비었다고 해서 수업을 받았는
데, 다음은 내가 조카아이와 나눈 대화다. “이모, 그 선생님은 프라이드는 하늘을 찌를 것 같은데, 같
이 있으면 정말 우울해요. 수업 안 하고 싶어요.” “그래도 엄청 유명한 선생님이니까 두 번 정도만 더
해 보고 결정하자.” “유명하다고요? 수업할 때 너무 말이 없는데요. 영어 선생님이 워크시트 주고는 작
문시키고 말없이 우울하게 앉아 있어요.”
결국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다른 선생님을 이리저리 찾아야 했다. 미국에서도 영어를 배우는 것은 쉽
지 않다. 조카아이는 중학교 1학년부터 미국 학교를 다녔는데, 영어가 서툴러도 사교성이 좋고 리더십
이 있는 편이어서 백인 친구도 잘 사귀고 흑인 친구도 잘 사귀는 편이었다. 학교 복도에 있는 사물함
에서 물건을 꺼내고 있는데 동급생 아이가 의도적으로 툭 치고 가면서 사과도 하지 않고 모른 체한 적
이 있었는데, 조카는 친한 아이들과 무리 지어 지나가면서 그 녀석을 툭 치고는 노려보면서 되갚아 주
었다고 한다. 영어로는 밀리지만 교우 관계로는 밀리지 않는 기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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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박사의 ‘진짜’ 다양성 이야기

보통 아시아계 학생은 흑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많이 당하는 편이다. 아들도 스쿨버스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고, 흑인 영어를 구사하는 흑인과는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가까이하기를 꺼렸다. 조
카는 흑인 남학생들과 잘 지내다 못해 우정을 쌓고 상담까지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조카는 미국
중학생이 사용하는 영어 표현을 많이 알고 듣기도 빨리 향상되었다.
한편 미국에서 생활한 지 4년이 넘어가도록 아들은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 걱정을 하곤 했다. 내 전공
이 교육학인지라 어디를 가도 학령기 아이들이 어떻게 말을 주고받으며 언어로 인한 권력 구도가 어떻
게 전개되는지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매주 한인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 후 친교 시간에
중ㆍ고등학생이 모여 앉은 모습이며, 단어 게임을 하거나 휴대전화로 무언가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두어 바퀴 돌면서 유심히 보았다.
한인 성당의 중고등부 아이들도 서로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어울리는 무리가 다르다. 젠더
와 사용하는 언어로 크게 분류되는데, 여학생은 여학생끼리 서로 속삭속삭 이야기하고 남학생은 남학생
끼리 어울리고 게임을 한다. 연극과 같은 성당 행사를 준비할 때는 남녀 학생이 같이 모여 앉는다.
아들은 이민 자녀의 무리에 끼여 앉아 한국어와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았다. 영어를 사용
하여 주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미국으로 건너온 지 1~2년밖에 안 되어 한국어를 위주로 사용하는 아
이들의 숫자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넘어간다. 이렇게 한국어로 대화가 이어지면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 아이들은 흥미를 잃고 대화에서 서서히 이탈한다. 혹은 처음부터 시민권자 아이들은
영어를 사용하며 다른 테이블에 따로 떨어져서 앉는다. 대부분 한국어가 서툴거나 자신의 의사를 표현
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은 부모 옆에 껌처럼 붙어
앉거나 그런 아이들끼리 LOL 게임과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 아이, 한국 이민자 아이, 시민권자 아이들이 젠더와 언어라는 요인으로 분류되어 서로 이합집산
하듯 한국에 있는 다문화 청소년도 그렇다. 리서치를 진행하기 위해 다문화 대안 학교와 다문화 예비
학교에서 참관하다 보면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식당에 가면 이곳은 베트남계 학생이 밥 먹는 테이
블, 저곳은 러시아계 학생이 모여 앉는 테이블 이런 식으로 나뉜다. 물론 러시아계 학생 테이블에는
러시아 학생 이외에도 우즈베키스탄과 같이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독립 국가 연합 출신 학생이 포함된
다. 그런데 중국계 학생 테이블은 여학생 테이블과 남학생 테이블로 나뉜다. 숫자가 많기 때문이다. 즉,
사용하는 언어로 무리를 1차 형성하고, 집단의 구성원이 많을 경우 젠더로 다시 2차 구분된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다문화 학생도 베트남계 학생 집단과 중국계 학생 집단이 서로 소통을 할 때는 각
집단에서 한국어를 능숙하게 잘하는 아이가 서로 교신하여 각 집단의 리더 학생(보통은 나이 많은 형)
에게 보고하고 의논하는 체계를 갖춘다. 리더 격인 나이 많은 형이 새로 입국한 신입생을 돌봐 주고
학교의 규칙과 선생님의 성향 등을 알려 주고 아르바이트 구하는 방법도 공유한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대입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오면 외국인 전형과 다문화 전형을 통해 대학에 입학한 선배들이
전형 준비를 어떻게 할지 알려 준다. 아무튼 인종과 더불어 언어와 젠더가 다문화의 중요한 요인이라
는 것을 다문화 학교를 참관해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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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박사의 ‘진짜’ 다양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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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박사의 ‘진짜’ 다양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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