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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

by Casey,Riley 2022.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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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는 현실의 MZ세대가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
시에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간 그리고 ‘회사 인간’으로서 다소 ‘회색 인간’
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완전히 본인의 색을 잃는 일은 결단코 거부하고 싶
은 직장인의 희로애락을 담았다.

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
올해 서른, 회사 생활 6년 차 대리다.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직장인의 험난한 사회 적응기가 수많은
회사원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2021년에 『연애보다, 여행』을 출간했고, 이
번에는 조금 더 현실적인 ‘회사와 꿈’ 이야기로 회사를 때려치우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나
누고자 했다.

▣ Short Summary
『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는 현실의 MZ세대가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시에 나를 잃
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간 그리고 ‘회사 인간’으로서 다소 ‘회색 인간’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완전히 본인의 색을 잃는 일은 결단코 거부하고 싶은 직장인의 희로애락을 담았다. 먹고사
니즘에 ‘적응(순응은 아니고)’하면서 나다움도 결코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많은 직장인이 공감할 만한 에
피소드가 때론 웃프게 때론 애잔하게 다가온다.
회사, 가족, 친구, 꿈과 같은 일들은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이 모든 혼돈 가운데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본모습을 찾으려 노력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가장 평범한 오 대리의 사회 적응기
가 많은 회사원에게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라며. 회사 일과 자신의 길,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은 오
대리의 성장기 속으로 떠나보자.

▣ 차례
프롤로그
PART 1. 직장인이 되는 게 이런 거였다고?
보통날
잘할 수 있습니다
돈 버는 기쁨
민달팽이의 껍질 찾기
내가 탈모라니!
부동산 주식 코인
커피 딜레마
단톡 지옥
PART 2. ‘딱 평균’의 어려움
헤게모니 대 이동의 슬픔
호모유튭엔스
숨구멍
이 부장, 그 입 다물라

-2-

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

딱 평균의 어려움
119-오 양 구조대
5%의 즐거움
잘하고 있다고 말해 줘
PART 3. 이상 : 현실 = 53 : 47
똥가방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서랍장 속 추억은 우주보다도 넓어서
내가 꾸민 유니버스
돼지국밥 예찬론자
꿈의 가챠
5수에 빛나는
우리 부장이 달라졌어요
PART 4. 회사를 취미처럼, 취미를 회사처럼?
친구들아 잘 살고 있니?
사랑, 사랑, 사랑
온갖 빛깔의 눈물을 위하여
뜨거운 냉커피
착한 놈 이상한 놈 미친놈
아버지, 내게 정답을 알려 줘
30년 만에 찾은 단 하나의 팩트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싶은 자취생을 위한 제안
PART 5. 그래서 나는
여전히 9시 착석
과거는 힘들고 미래는 두렵다
누나는 회사에서 무슨 일해?
회사가 있음에
퇴사할까, 그냥 다닐까
이. 또. 지
에필로그

-3-

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

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
직장인이 되는 게 이런 거였다고?
보통날
06:50, 오 양은 기상 알람을 들었다. 듣기만 했다. 아니, 손가락도 움직였다. 스마트폰 알람을 손가락
두 개 까딱거려 미뤄 두고, 다시 누운 방향을 바꾸어 눈을 감았다. 07:00, 오 양은 세상에서 제일로 짜
증나는 그 소리를 다시 듣고야 말았다. 이번에는 실전 알람이다. 머릿속으로 엑셀보다 촘촘한 시간표
가 대번에 그려진다. ‘여기서 뺄 수 있는 일은?’ ‘머리 감기.’ 그렇다. 오 양은 종종 머리를 이틀에 한
번 감는 습성이 있다. 머리를 묶고 가는 날은 대개 새로운 스타일링의 목적보다는 시간 절약의 목적이
더 크다.
‘15분 더 자도 됨.’ 오 양의 행복 회로가 적당한 시간(사실은 마지노선)을 계산해 냈다. 07:20, 이즈음
에야 겨우 눈을 뜬 오 양은 잠시간 멍한 눈으로 스마트폰을 쓸데없이 들여다본다. 날씨 체크를 핑계로
시작되는 이 루틴은 오 양의 뻑뻑한 모닝 안구를 더욱 피로하게 만들 뿐이다.
07:25, 더는 안 된다는 느낌을 오감 아니, 육감으로 강하게 받은 오 양은 드디어 발을 질질 끌며 욕실
로 향한다. 구취를 지울 목적으로 양치를 벅벅 해낸 뒤, 클렌징폼을 이용하여 얼굴의 기름도 지워 낸
다. 베개 피의 오돌토돌함이 얼굴에 복제되어 닿는 감촉이 좋지는 않지만, 9시 전에는 지워지리라 믿는
다.
07:40, 스킨-로션-선크림을 바른 오 양은 갈등에 빠진다. ‘파운데이션 할까, 말까?’ 요즘, 마스크라는
강력한 방패를 앞세운 오 양. 파운데이션을 비롯한 화장이 점점 귀찮아지는 중이다. 어차피 얼굴의 반
을 가리는데 괜히 화장품을 남발하는 것은 나뿐 아니라 지구에도 좋지 못한 행동일 거라는 합리화를
하는 중이다.
번뜩! 비 올 것 같은 아침. 듬성듬성한 구름을 뚫고 갑자기 햇볕 한 줄기가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이럴
수가. 지난밤 01:30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본 오 양의 눈 밑이 무슨 나무껍질처럼 짙고 거칠게 보였다.
속이 상한 오 양은 어쩔 수 없이 파운데이션 펌프를 쭉 눌렀다. ‘옛날엔 밤을 새워도 괜찮았는데….’ 자
꾸만 옛날을 떠올려 봐야 소용은 없다. 괜히 짜증이 난 오 양.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대충 끼얹고 스펀
지로 퍽퍽 두들겨 본다. 어쩐지 같은 양을 발라도 눈 밑은 다른 부위만큼 밝아지지 않아서 더더욱 짜
증이 난다.
08:00, 오 양은 코디에 젬병이다. 회사는 매일 보는 사람이 가득하기에 ‘매일 다른 옷’을 입고 가야 한
다는 사실이 속상하다. 옷은 사도 사도 부족하고, 있는 옷을 믹스매치하는 능력은 더 부족하기 때문이
다. 대충 사람처럼 보일 만한 셔츠와 슬랙스 따위를 걸치고 출근 가방을 걸친다. 회사에는 의외로 매
일 소박한 런웨이를 선보이는 사람도 많았다. 어떻게 아침마다 저렇게 여유 있으며 패션 감각이 넘치
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오 양은 그저 어제와 똑같은 캔버스 운동화를 찍찍 끌고 현관문을 밀 뿐이다.

-4-

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야 신발 뒤축을 세워 제대로 신발을 신는, 약간의 정성을 보였다.
08:20, 출퇴근길에서 자기 계발하는 사람만큼 대단한 사람이 있을까? 오 양은 시끄러운 지하철을 타
는 동안 그저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고 인터넷 서핑을 할 뿐이다. 늘 새 글로 가득 찬 인터넷 기사 혹
은 인기 글은 손가락 하나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 소식 창구다.
08:50, 머리를 안 감을 수 있어 다행이다. 회사에 늦지 않았다. 자리에 가방을 던지고 재빨리 탕비실
로 달려가는 오 양. 계절에 따라 뜨겁게 혹은 차갑게 녹여 낸 카누는 ‘월급’과 함께 직장 생활을 이끌
어 주는 쌍두마차다. 쌀쌀해진 날씨에 뜨거운 카누를 말아 낸 오 양. ‘오늘도 세이프 해서 다행.’ 안도
가 섞인 입김을 음료 표면에 불어 가며 커피가 적당한 온도가 되도록 식혀 냈다.

‘딱 평균’의 어려움
딱 평균의 어려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뭐 대통령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는 딱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다. 어렸을 때 상상하던, ‘이 나이쯤 되었으면 이 정도는 되어 있겠구나.’ 싶은. 학창 시절에는 열심
히 앉아 공부했고, 대학 시절에는 약간만 놀고 얼른 취업 준비도 했고, 이제 성실히 회사도 다녔으니,
이때쯤이면, 적어도 평균만큼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저축도 적당히 했을 것 같았고, 국산 중형차 한 대쯤은 몰 줄 알았다. 엄마 아빠가 결혼했던 나이쯤 되
었으니, 나도 마음에 꼭 드는 배우자와 함께 살고 있을 줄 알았다. 정신머리는 또 어떠한가. 서른쯤 되
면 생각은 저절로 성숙해지고 행동은 자연스레 어른스러워지는 줄 알았건만, 여전히 세상 대부분의 일
은 어렵고 마주한 결정 앞에선 혼란스럽기만 하다.
‘오늘 회사 안 가면 어떻게 될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아침마다 한다. 그냥 안 가면 안 된다면,
오늘 회사 주변에 싱크홀이 생길 확률은? 오늘 지하철이 모두 멈추어 서 버리는 탓에 회사에 정당하게
늦을 수 있는 확률은?
가까스로 도착한 회사에서도 별다를 것은 없다. 학생 시절에 담임 선생님을 따라 했듯 만만한 동기들
앞에서 부장의 성대모사를 해 대며 분노를 삭인다. 야간 자율 학습에 튈 때 그렇게 짜릿하더니, 근무
시간에 합법적 (혹은 합법적이지 않게) 외출하는 일이 여전히 짜릿하다. 덤벙거리는 탓에 실수 연발인
성격 역시, 좀처럼 변하지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양말을 종종 그대로 벗어서 빨래 통에 던져두는 바람에 신을 때마
다 뒤집어서 신곤 한다. 옷은 옷걸이에 걸면 두 번 손이 안 가도 된다는 사실을 알지만, 지쳐서 번번이
허물 벗듯 땅에 벗어던지고 잊는다. 나도 매사에 여유로운, 멋진 어른이고 싶은데, 아직도 시간 관리에
실패해 종종 약속에 빠듯하게 도착하는 나는, 아직도 한참 먼 것 같다.
야식이 몸에 안 좋다는 사실을 안다. 밤에 라면을 하나 끓여 먹고 다음 날 후회를 한다. 퉁퉁 부은 얼
굴에 파운데이션을 퍽퍽 눌러 바르며 늦은 후회를 해 보지만, 아마 다음번 유혹 앞에서도 같은 선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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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

할 것 같다. 퇴근 시간에 앞뒤 물불 가리지 않고 정문으로 향하다가 종종 회사에 휴대전화를 두고 나
온다. 다시 씩씩대면서 회사로 되돌아가자면 이보다 억울한 일이 없다. 어째 아직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 없다. ‘더 나이 들어서도 똑같으면 어쩌지?’
무서운 생각이 든다. 주변을 돌아보면 (물론 좋은 것만 눈에 들어오니까) 이미 많이 가진 사람도 있고,
최소한 꿈을 찾아 정진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에 가깝지 못한데, 아직 난 회사 안에서조
차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것 같은데, 요즘 집값에 비하면 통장 속 잔고는 언제나 짤랑대는 수준이다.
‘서울’ ‘중심’ ‘신축’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말은 아닌데. 그냥 쾌적하게 살 만한 작은 집이라도 갖자면
도무지 계산이 서지 않는다. 일찍 결혼해서, 혹은 부모가 일찌감치 사 줘서 그 집만으로 이미 몇억 번
친구들을 보면 형용할 수 없는 서글픈 기분이 든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인생에 많다고. 남과 비교하
지 말고 너만의 길을 가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들어도 그 정도의 위안으로 안정을 되찾기에는 집값이 너무 많이 올라 버렸다. 입사
한 지 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간 회사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개인 용무로 연차 쓰기가 입사 초
기만 해도 꽤 눈치 보이는 일이었다. 연차를 써 여행이라도 다녀오자면 두 손 가득한 선물은 필수였다.
바뀌려면 이렇게도 얼른 변할 수 있나 보다. 부동산 계약, 애인과의 여행을 목적으로 당당하게 연차를
요청하는 분위기가 요 몇 년 사이 정착된 걸 보면, 나조차 얼떨떨한 기분이 든다.
동기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눠 보자면, 또 생각이 많아진다. 회사 분위기도 변했지만 우리의 마음가짐
도 크게 바뀌었다. 동기들은 승진에 그리 목매지 않는 것 같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불투명한 시대
탓일까. 대부분 승진이라는 미래 가치보다 당장 통장에 확실한 돈이 꽂히는 재테크에 우선이다.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미래의 내 가치보다는 현재 내 자산 불리는 일이 최고 과업인 분위기다. 같은 마음
이 들 때면, 이렇게 될 거 회사는 왜 그리 기를 쓰고 입사했나 싶지만, 입사를 통해 사회적 신용을 부
여받고 투자의 발판으로 삼는 친구들이 점점 더 현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할까? 회사 일? 나는 회사에서 매일 깨지기만 하는
데? 회사 일은 나랑 안 맞는 것 같다. 이제 와 새로운 일을 찾자니 너무 늦은 것 같기도 하고, 일어나
서 회사에 가고 야근하고 늦게 들어와서 집에 와서 기절하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회사에 가는,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 같다. 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보지만, 알아봐 주는 사람은 적고 작은
성과라도 퍼 가려는 사람은 많다.
승진? 아직은 멀어 보이지만 이 역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승진을 하자니 능력이 받쳐 줄지
의문이고 안 하자니 이 역시 속상할 것 같다. 위에서 가장 크게 갈굼받고 아래로부터 속 썩는 부장의
얼굴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도 않고. 개인 발전? 이렇게 일하고 모아도 서울에 있는 집 한 채는 영영
못 살 것 같은데. 열심히 하면 뭐 하나? 나도 꿈꿔 오던 평균만큼은 살고 싶은데 노력하면 평균에는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하고 싶은 일? 그런 건 더더욱 모르겠고.
회사 일이든 개인 발전을 위해서든 뭐든 열심히 하면 결국 평균만큼은 살 수 있을까? 당장 답을 알 수
없는 문제에 관해 생각이 닿으니, 아까 부장에게 까일 때 밀려오던 우울한 기운이 더욱 날뛰는 것 같
다. 새까맣고 차가운 기운이 나를 침대 밑으로 끌어당긴다. 덮은 이불은 온몸을 짓누르는 것 같다. 나
는 침대 밑으로 떨어지다 못해 3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1층으로, 1층에서 주차장으로, 주차장에서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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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

속까지 끌려 들어간다.

이상 : 현실 = 53 : 47
이대로 죽을 순 없다
그럴 때가 있다. 이상하게 회사에서 급한 일이 없고 퇴근 후에도 매일 피곤한 사건 하나 터지지 않는
때. 그 덕분에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편안하기만 한 때. 이대로라면 평생 ‘회사원-1’로 살아도 되겠다
는 느낌이 들 때. 멈추지 않고 변화해 나가는 것에 더 매력을 느꼈었지만, 현실에 두 발 푹 꽂고 안정
적인 오늘을 살아가는 것도 좋을 때. 완전한 자율에서 오는 불안감보다 반자발적 구속에서 오는 평안
함이 이제는 더 만족스럽다고 느껴질 때.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겨울의 한가운데에서는, 내가 두르고 있던 담요의 무게가 와닿지 않았다. 어
쨌든 겨울에는 이마저 감사하기도 했으니. 담요를 미처 풀지 못한 채로 봄이 왔을 때에야, 그것의 존
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팔다리까지 꽁꽁 싸매어 불편하다고 말만 하며, 여전히 그 속에 감겨 있는
나까지도. ‘회사원-1’로서 완벽 적응해 버린 내 모습은 이처럼 멀리 떨어져서 봐야 눈에 띄었다.
서른, 옛 표현으론 이립이랬다. 무려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이란 뜻이라는데, 과연 내게 그 칭
호가 어울리는지 아직은 의문이다. 어딘가에서 서류에 나이를 쓸 때면 칸에 신나게 2자를 쓰다가 그
위로 두 줄을 죽죽 긋는 요즘. 10년간 써 오던 2N을 버리고 이제는 3N으로 새로운 10년을 채워 나가
야 하는 지금. 익숙하지 않은 앞자리만큼이나 많은 변화가 다가오는 봄이 왔다.
한때는 세상 모든 일이 어렵게만 느껴져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떼쓰며 홀로 울던 때도 있었다.
앞자리가 변하며, 조금은 성숙해진 걸까? 어린 마음을 간직하고 싶은 건 변함이 없다만 어린아이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은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도덕과 별개로 즐기는 마음과 사랑할 줄 아는 낭만은 영원히 간직하고 싶고.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 지루해 난 하품이나 해 /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 점프를 /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 야이야이야이
야이야 / 하는 일 없이 피곤한 일상 / 나른해 난 기지개나 켜 /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 선보기 하루 전에 홀딱 삭발을 / 비 오는 겨울밤에 벗고 조깅을 / 야
이야이야이야이야
- 자우림 《일탈》, 1997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재미를 꾸준히 챙기는 사람. 어떤 면에선 날카롭고 어떤 면에선
둥글둥글한 사람. (되도록 내 게으름에는 날카롭고 남에게는 유한 사람이 되면 더 좋겠고) 남들이 편하
다고 느끼는 사람. 밖과 안에서 모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이제는 다른 사람, 회사 일
같은 외부 사건보다 내 마음에도 관심 가져 주는 사람. 남만 칭찬하지 말고 가끔은 자신도 토닥일 줄
아는 사람. 남과 나를 동시에 크게 사랑해 주는 사람. 이립의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는 중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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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

휴, 생각은 많다. 그렇지만 오늘도 역시, 일단은 출근이다. 우리 회사 서쪽 벽에 뚫린 창문으로는 다른
오피스텔이 보인다. 몰랐는데 이제 보니 사무실과 주거 공간이 혼합된 건물인 것 같다. 조금 과장하자
면 그 오피스텔에서 세탁물을 던지면 이 건물에 닿을 것도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굳이 계단으
로 걸을 때만 그쪽 벽을 걷게 된다. 98%의 확률로 엘리베이터를 타기 때문에, 사실 그쪽 창문을 바라
볼 일은 거의 없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사무실에 복귀할 때 괜히 6층까지 걷고 싶은 날, 운동하겠다는 핑계로 엘리
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 한 무더기를 오르면 층과 층 사이의 공간이 나오고 다음 계단이
시작된다. 층과 층 사이 평지를 걷는 찰나에, 뚫린 창밖이 눈에 들어왔다. 2층, 3층, 4층… 경계층 창밖
으로 보이는 풍경이란 역시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빛바랜 베이지 빛의 건물 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가
로보다 세로가 조금 더 긴 파란 유리창이 박혀 있을 뿐이었다. 살짝 썬팅이 된 채로 완전히 닫혀 있는
그 창문들은 그 속에 무엇들이 들어 사는지, 전혀 가늠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봄 날씨가 시작되었다. 그 공간의 몇몇 주인은 제 공간에 새 공기를 들이려는지 창을 열어 두기도 했
다. 마지막 층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예상치 못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맞은편 창가에 작고 귀여운
하얀 덩어리가 버티고 있었다. 인형보다도 더 완벽하게 귀여운 하얀 페르시안 고양이였다. 10m 떨어
진 맞은편의 내 존재를 녀석이 인식했는지 모르겠지만, 털이 보슬보슬한 그 생명체도 이쪽을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게 천천히 껌뻑이는 두 파란 구슬. 언제 봐도 신비롭다.
‘고양이 주인은 지금 사룟값을 벌러 나간 모양이지? 주인 없는 고요한 집안은 지겨우니 텔레비전 보는
심정으로 밖을 관찰하는 중일 테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친 고양이 한 마리에 상상의 나래가 발동
되었다. 우리는 츄르(고양이 간식)를 세게 던지면 닿을 만큼 가깝지만, 영원히 실제로 닿을 일은 없을
것이다. 저 고양이는 아마 내일도 자기 영역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지낼 것이고 나 역시 6시까지 이 건
물을 벗어날 수 없으니까.
한참을 10m 떨어진 곳에 사는 공중 고양이를 구경하다 자리로 돌아왔다. 영원히 닿을 수 없으면서 창
밖으로 궁금한 것을 구경만 하는 꼴이, 저 고양이와 내 처지가 다를 바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구경만
자주 하고 밖으로 나갈 각오는 별로 없는 점까지도 말이다. 애완용으로 계량된 고양이는 ‘스트릿-고양
이’와 대결하며 골목을 누비기에 너무나 유약한 생명체니까.
나도 점점 회사에서 필요에 따라 기르는 애완 고양이화 되고 있는 건 아닐까? 발톱은 회사 키보드를
누르기에 딱 적합한 만큼 손질되어 있고, 주인이 주는 맛있는 간식에 입맛이 길든. 구름처럼 푸둥푸둥
하니 살찐 몸과 털을 치장하며 오늘도 창밖만 내다보는 고양이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

회사를 취미처럼, 취미를 회사처럼?
친구들아 잘 살고 있니?
여고 시절, 같이 헛소리 대잔치를 해 대며 깔깔대던 친구들. 이제 그녀들을 한꺼번에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명절쯤이나 되어야 고향에 모일 수 있지만, 그 가운데 각자의 일정이 가득했다. 이미 누군
가의 와이프 혹은 며느리란 타이틀을 단 친구라면 명절에는 얼굴 보기가 더 힘들었다. 일찍 결혼해 이

-8-

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

미 아기가 둘인 친구도 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친구 카카오톡 프로필란은 아이 사진으로 가득했
다. 아직도 철없는 나의 프로필 사진들과 전혀 다른, 점잖은 어른의 기운이 느껴진다.
‘부부 혹은 부모 됨’이란 흘러가는 나이와 별개로 어떤 내면의 변화 혹은 성장을 가져오긴 하는 것 같
다. 각자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인생 시계가 한참 다른 사분면을 가리키고 있는 친구와는, 자연히 얼
굴 보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친구 J는 잘 다니던 S사를 때려치우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고 했다. 옛날부터 교수가 되고 싶다고 하
더니, 그냥 하는 말은 아니었나 보다. 박사까지 마칠 비용을 저축하곤 그 들어가기 어렵다는 대기업을
관뒀다고 했다. 도대체 공부에는 흥미가 없는 나로선, 믿을 수 없는 소식이다. 대학원 생활은 항간의
소문처럼 대단히 힘들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하며 투덜대는 친구 얼굴에서는 어떤 ‘살아 있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회사 시절보다도 더 늦게까지 일해야 한다며 앓는 소리를 하는데도 그 눈빛이 유리알처럼
반짝였다.
절친했던 친구 P는 인생이 목표한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아서 20대 내내 힘들어했다. 꼭 의사가 되고
싶다고 어릴 적부터 이야기했던 P. 의대는 참 콧대가 높나 보다. 성적에 맞추어 진학한 대학을 졸업하
고도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남은 P는 다시 한번 도전해 보겠다고 했다. 멀리 떨어져 사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때때로 커피 기프티콘 따위를 전송해 주는 일뿐이었다.
간호대를 졸업한 L은 친구 가운데서 가장 일찍 일을 시작했다. 휴학했던 내가 졸업도 하기 전인 24살
부터 칼-취업에 성공해, 만날 때마다 밥도 사 주던 고마운 친구다. 간호사는 취업도 잘 되고 일도 보
람차다며, 자기 일에 자부심이 대단하고 모습도 멋져 보였다. 낮과 밤 구분도 없이 일하던 것이 4년쯤
되었을까. 이 친구도 전직을 선언했다. 낮과 밤이 끊임없이 바뀌고 병원 문화도 적응할 수 없을 것 같
은 부분이 많다며. 간호사 면허를 이용해 소방 공무원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한다면 하는 성격인 L은
공무원 시험도 1년 만에 해냈다.
서른 즈음, 사실 친구들처럼 극적인 선택을 해낸 친구는 몇 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친구
는 각자 분야에서 검정도 하양도 아닌 ‘회색’쯤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대부분 제 삶을 밀고 당기는 커
다란 파도에 몸을 맡긴 채 간간이 팔 정도 저으며 살아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래전 친구들을 만나면 가장 친했던 때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말은 순식간에 거칠고 유치해져 버
린다. 20살의 모임과 30살의 대화가 다를 것이 없다. 간만에 신이 나 광대뼈 부근이 아플 때까지 웃고
떠들다가 그 자리가 깨지는 순간, 뒤집히게 웃기던 크기만큼 슬픈 기분이 든다.
타임머신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게 분명하고 다시 나는 회사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는 그런 날
것의 표현과 눈 뒤집히는 제멋대로의 웃음을 지어선 안 될 것 같다. 사회인으로서의 약간의 무게감은
있어야 하니까.
대학까지 지방에서 마치고 서울로 취업한 나는, 이곳에 친구가 많이 없다. ‘어른’이 된 뒤 새로운 ‘친구’
를 사귀는 일은 상상했던 것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때로 지인의 지인과 술자리를 갖기도 했고,
새로운 동호회에 가입하여 인간관계를 넓히려 시도하기도 했다. 외향적인 인싸이기를 희망하지만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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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

수 없이 그렇지 못한 나는, 그 시간이 얼마나 내면의 에너지를 빼앗아 가는지 느끼고 그런 자리를 자
연스레 포기해 나갔다.
나와 생각 그리고 마음이 꼭 맞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수많은 맞지 않는 관계를 헤쳐 나가
야 했다. 그 과정에 점차 피로감을 느낀 나는 혼자만의 공간에 갇혔다가, 답답함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가 다시 내 공간에 틀어박히기를 반복했다. 한 토막의 말에도 즉각 기분을 알아주는 친구를 다시는 쉽
게 만날 수 없으리라는 ‘확신에 가까운 느낌’이 들자 한동안 우울한 기분이 가득했다.
사회에서도 진정한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다행히도 영 가능성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양과 나는
회사 입사 동기였다. 이 양과 나는 이미 20여 년을 살아오면서 만든 각자의 공고한 세계가 있었다. 이
미 친한 친구라던가 삶의 가치관 따위 말이다. 타인의 영역을 냉큼 침범하기를 꺼리는, 그렇지만 다른
사람과의 연결도 필수적인 점이 이 양과 나는 닮았다.
우리는 각자의 뿌리를 존중하는 느낌으로 살곰살곰 다가갔다. 동료로서 예의를 차리며 관계를 맺는 와
중에 성향이 비슷한 둘은 자연스레 조금씩 친해졌다. 타지에서 맞는 생일에 각자 케이크 하나 사다 줄
사람이 없을 게 뻔해서, 서로의 생일엔 꼭 시끌벅적한 곳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처음엔 출근하는
날만 연락을 했지만 점점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마치 원래 친구였던 것처럼 각자의
뿌리를 보존하며 가지가 확장되는 형태다. 다행히 회사에서도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사회에서 만나는 친구가 더 좋은 점도 있다. ‘같이 늙어 가는 처지’라는 명목으로 약간의 나이 차이는
무시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 살 한 살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학창 시절과는 다른 점이다. 회사에서
는 존재감 없이 지내는 민 과장. 처음에는 이 아저씨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기회조차 없었다. 아니,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회사에는 더 존재감이 공고해 별처럼 눈에 띄는 사
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 아저씨는 남들이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부동산, 주식, 코인’ 같은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늘 목을 쭉 내밀고 모니터를 응시하기에 사무실에 기거하는 거북이 같기도 하다. 도대체 회사 일에도,
재테크에도 크게 관심이 없는 그는 어디서 인생의 재미를 찾는지 궁금하기는 했다. 딴짓이라면 ‘자리
에 틀어박혀 뭔가 읽기’를 즐기는 듯한 민 과장. 돌이켜보니 입사 초기에 신입들에게 중고 책을 한 권
씩 나눠 줬던 것 같다. 그 낡은 책은 사실, 그대로 서랍 밑으로 들어갔었다. 연말이 되자 민 과장은 모
두에게 또 책을 한 권씩 선물했다. 이 역시 감사 인사와 동시에 서랍으로 들어가고 말았지만.
어느 날, 서랍을 정리하는 중에 그 오래된 책이 나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007년에 세상에
나와 이미 햇볕에 닳고 닳은, 표지가 시퍼렇게 변한 책을 열었다. 오래된 산문이 주는 담담함이 좋았
다. 표지는 낡아 빠졌지만 가려져 있던 내용은 생생하니 그대로였다. 거북이처럼 등이 굽은, 이발할 때
가 훨씬 지난 듯 머리가 덥수룩한 저 아저씨는 왜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할까 궁금해졌다. 용기 내어
티타임에 민 과장에게 말을 걸었다.
“과장님, 왜 사람들한테 책을 선물하시는 거예요?” “다른 것보다는 책이 좋잖아.” “책을 별로 안 좋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매번 다 사서 주시려면 그것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에이, 중
고 책이라서 얼마 하지도 않아. 누구라도 읽고 재미있으면 좋은 거지. 안 좋아하면 어쩔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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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

“매번 다 읽어 보시고 선물하셔요?” “내가 읽어 보고 그 사람한테 필요한 내용으로 주려고 하기는…
하지.”
회사에서 회사 일을 물어볼 사람은 많았다. 회사 일보다 더 어려운 건 ‘인생 일’이었다. 자주 낡아빠진
중고 책을 내미는 이상한 거북이 같은 아저씨에게는, 회사 일보다 더 어려운 문제들을 상의할 만했다.
그가 모두에게 선물하던 낡은 중고 책처럼. 껍질은 오래됐지만, 마음은 그대로인 친구를 찾았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9시 착석
내면의 시계가 어떻든, 오늘도 현실의 시계는 똑같이 돌아간다. 고민을 통해 이전보다 약간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지만 당장 현실이 달라질 리는 없다. 8시에 집에서 나가서 9시에 사무실 안 의자에 착
석. 6시까지 어찌 되었든 그 안에서 지지고 볶기. 회사원이 된 뒤로 단 한 번도 아침에 일어나며 ‘즐겁
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매일 새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랐고 간신히 맞은 주말마저 순식간에 끝나
버릴까 봐 불안했다.
일요일 저녁부터 불안하다가 얼마 뒤엔 토요일 오후부터 우울했다. 회사원으로서 느끼는 찐- 행복의
순간은 금요일 6시 회사에서 풀려날 때(?) 뿐이었다(금요일에 회사에서 튀어 나갈 때 나도 모르게 탄
성을 입 밖으로 내질러 동료들에게 비웃음을 산 적이 많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내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24시간짜리 5일이 모조리 우울했
다. 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수도 없다. 이 어려운 시기에 그럴 강단은 더더욱 없다. 대신 그 가운데
내 할 일을 끼워 넣으려 시도하는 중이다. 회사 일이 그 자체로 내게 보람이 되든, 그렇지 않다면 내게
기쁨이 되는 일을 조금이라도 시작하든. 그냥 샌드위치보다는 베이컨과 치즈가 사이에 끼워진 샌드위
치가 더 맛있듯 당장 내 인생이 샌드위치가 아닌 피자가 될 수 없다 해서 베이컨 치즈 샌드위치가 되
는 시도조차 포기할 수는 없다.
처음 느낀 감정이다. 아침에 눈 뜨는 게 즐겁다. 어릴 적, 소풍 가던 날 아침이면 알람이 울리기도 전
에 눈이 번쩍 떠졌다. 새 아침이 오면 못다 한 취미가 기다리기에, 즐겁다. 매일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
은 똑같은데. 돌아와 나를 위한 일을 이것저것 시도하며 몸은 더 지칠 텐데. 매일 허공에 반쯤 욕을 내
뱉으며 겨우 침대에서 굴러 내려오던 내가 벌떡 일어나는, 변화가 놀랍다. 주말이면 하루의 절반을 일
단 잠으로 채우던 내가 싱글벙글한 기분으로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고 커피를 내린다.
회사 생활 6년 차, 내가 드디어 미친 걸까? 아니면 내가 속해 사는 이 세상이 미친 걸까? 개똥밭에 굴
러도 이승에 살아 보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이름 없는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보낸다(물론 지옥철에
갇히면 종종 그 기도를 철회한다). 회사 선배의 말처럼 회사에서 겪는 기본 퀘스트를 얼른 깨 버려야
지. 그러곤 하고 싶은 일을 한아름 할 것이다. 회사 일도 그리 힘들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부족한 나를
내치지 않고 태워 가 주는 이 버스에 때때로 고마운 마음도 든다.
억눌러 왔던 다양한 욕구도 있는 대로 인정해 줬다. 평범한 나도 창조적인 과업을 해내고 싶단 걸. 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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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

지 않은 집이지만 집과 작업실의 역할을 병행할 수 있게 꾸려 보려 한다. 편하게 생활하는 공간보다는
작업실의 역할에 조금 더 무게를 실어 주고 싶어 책상도 더 크고 튼튼한 것으로 바꾸었다. 잘 앉지 않
는 소파를 치우고 허리에 좋다는 사무용 의자를 들였다. 집 곳곳을 편안하지만, 취향이 가득한 공간으
로 꾸미기 시작했다.
가짓수가 많지는 않지만 화장품이 잘 정돈되어 있어 언제라도 얼굴에 아트를 펼칠 수 있는 화장대를.
사무용품을 정리해 둔 오거나이저가 딱 하나 올려져 있는 하얀 책상을. 위 칸에는 상의 그리고 아래
칸에는 하의를 걸어 직관적으로 옷을 매치할 수 있는 행거를. 작은 홈 카페의 기능도 겸할 수 있게 언
제나 커피 머신이 준비된 싱크대를. 언제나 그 자리에서 구름 같은 이불과 함께 가장 편안하게 나를
맞아 줄 침대를. 방구석 아티스트가 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이 항해의 지휘자는 나고 수석 디자이너
도 나다. 시작부터 삐걱거리지 않을 수는 없지만 부드럽게 이 모든 걸 지휘하며 살아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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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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