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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당신의 일상은 무슨 맛인가요

by Casey,Riley 2022.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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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각 음식의 맛과 함께 작가의 추억을 4개의 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에 할머니
와 먹었던 냉국수부터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먹는 파스타까지, 세월과 공간을 따라
서 추억으로 기록되는 일상의 맛을 모두 담았다. 특별한 음식이 아니어도, 뛰어난 맛이 아니어도 그
시간, 그 장소만의 맛을 담은 음식과 저자의 감성이 글에 담백하게 담겨있다.

당신의 일상은 무슨 맛인가요
두 아이를 키우는 결혼 15년 차 주부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성공하는 것이 본인의 꿈이라고 생각했으
나, 수술을 위해 퇴사한 후에는 자신을 위한 꿈도 꾸기로 했다. 오래도록 꿈꿔온 글쓰기에 도전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 소박한 일상을 담은 글을 주로 쓴다. 몇 번의 도전 끝에 브런치 작가에 합격했다.
현재 함께 읽는 독서 모임 ‘가치독서’와 글쓰기 프로젝트 ‘나를 깨우는 글쓰기’를 운영하고 있다. 매년
한 권씩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초보 작가다. 누구나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이 글이 되는 순간에 감사하며 산다.

▣ Short Summary
누구나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식사를 한다. 음식은 먹을 때의 기억과 함께 추억으로 남기에 어린 시절
에 친구들과 먹은 도시락에는 행복이, 병을 진단받은 후에 먹는 집밥에는 아픔이 담길 수 있다. 즉, 우
리가 오늘도 먹는 평범한 음식이 누군가에게는 행복하거나 슬픈 음식으로 남는다.
이 책은 각 음식의 맛과 함께 이런 작가의 추억을 4개의 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에 할머
니와 먹었던 냉국수부터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먹는 파스타까지, 세월과 공간을 따라서
추억으로 기록되는 일상의 맛을 모두 담았다. 특별한 음식이 아니어도, 뛰어난 맛이 아니어도 그 시간,
그 장소만의 맛을 담은 음식과 저자의 감성이 글에 담백하게 담겨있다.
음식이란 그저 식재료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추억을 공유하는 모든 것이 음식의 재료가 된다. 일
상이 외롭고 막막할 때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리고 내 앞의 음식과 관련된 추
억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지금까지 내 일상을 바라봐주고 응원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
을 것이다. 이 책은 작가가 느낀 추억 속 어린 시절의 맛, 엄마로서 만난 맛, 아내로서 만난 맛, 작가로
서 만난 맛 등 다양한 추억의 음식과 함께 공감과 푸근한 위로를 선사한다.
책에는 총 47종의 음식이 등장한다. 콩나물, 감자볶음 등 가벼운 음식부터 삼겹살, 오므라이스 등 대중
적인 음식까지 여러 음식이 지면을 가득 채운다. 모든 음식의 한 가지 공통점은 우리 일상에서 익숙하
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음식이라는 것이다.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 이야기로 누구나 각 음식
에서 자기만의 추억을 떠올리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음식의 느낌을 감성 있게 잘 그려낸 일러스트는 우리에게 음식의 맛 너머에 있는 추억과 감성까지
전해준다. 책을 통해 한 끼 식사로 여기고 무심코 지나쳤을 음식에서 나만의 추억을 발견하고 공감하며
위로받을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일상의 맛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다. 작가는 좋아하는 음식
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먹으며 누리는 소소한 행복을 통해서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벗어나 미래를 살
아가기로 결심했다. 자신을 위한 음식을 요리하듯이 일상 이야기를 한 글자씩 적어갔다. 그렇게 쌓인 글
이 모여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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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상은 무슨 맛인가요

오늘도 밥을 먹을 당신에게 한 통의 조미료처럼 다가갈 이 책은 그간 자신의 일상이 무슨 맛인지 몰랐
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맛을 보여줄 것이다. 일상이 무료하거나 삶이 허기진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한
다.
▣ 차례
프롤로그 - 평범한 일상을 만드는 한 끼
추억 속, 나
냉국수 | 여름과 할머니의 맛
코코아 | 어린 나에게 선물이 된 할아버지의 맛
부대찌개 | 서울 나들이의 맛
카스텔라 | 처음 만난 보라색의 맛
돈가스 | 가족끼리 즐기는 외식의 맛
카레 | 새콤달콤한 노란색의 맛
김밥 | 단단한 어른의 맛
엄마인 나
돼지국밥 | 엄마가 되고 처음 만난 맛
잡채 | 두 살배기 우리 딸과 함께한 맛
수제비 | 돌아보면 자라는 아이와 즐기던 맛
감자볶음 | 사랑을 담은 엄마의 맛
김치볶음 | 서로 이해하는 사이가 된 우리만의 맛
멸치볶음 | 아이와 엄마가 함께 자라는 맛
마라탕 | 딸과 나를 한층 더 친해지게 해준 맛
미역국 | 싫어하지만 적응 중인 맛
파스타 | 자기 생각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아이로 자라나는 맛
배추김치 | 올해도 만들고 싶고 먹고 싶은 맛
떡볶이 | 서로 다른 학창 시절 추억의 맛
콩나물 | 오늘도 아이와 나를 자라게 하는 맛
부추전 | 내가 사랑하는 우리 엄마의 맛
미나리 | 각자의 자리에서 비로소 빛나는 맛
계란말이 |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맛
송편 | 처음으로 집에서 쪄본 송편의 맛
아내인 나
샌드위치 | 풋풋했던 연애 시절의 맛
동그랑땡 | 소꿉놀이하듯 사는 맛
콜라 | 마음에 위로가 되는 맛
비빔밥 | 표현할수록 더 커지는 사랑의 맛
도시락과 컵라면 | 아픔을 보듬어준 맛
닭발 | 양잿물보다 어려운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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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상은 무슨 맛인가요

돼지갈비 | 싸우고 화해하는 15년 차 부부의 맛
만두전골 | 남편과의 데이트에서 찾아낸 얼큰한 맛
꽈배기 | 남편의 사랑이 담긴 달콤한 맛
커피 | 서로 닮아가는 우리의 맛
감자탕 | 작은 행복이 하나씩 쌓이는 결혼의 맛
파김치 | 아릿한 흰 부분은 어른의 맛
시래기나물 |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 맛
꽃게 |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우리 가족의 맛
작가인 나
굴 | 사회생활에서 배운 새로운 맛
양평해장국 | 온기로 친밀도를 더해주는 맛
흰쌀밥 | 역경 속에서도 나를 키워낸 맛
삼겹살 | 오늘의 나를 위로하는 맛
초밥 |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에 감사하게 되는 맛
시금치 베이컨 볶음 |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맛
오므라이스 | 나를 도전하게 만드는 맛
호두과자 | 일상의 소박한 행복이 담긴 맛
양배추즙 | 내가 나를 살피고 응원하는 맛
손만두 | 실패를 딛고 도전하는 맛
에필로그 - 일상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바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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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상은 무슨 맛인가요

당신의 일상은 무슨 맛인가요

추억 속, 나
냉국수 | 여름과 할머니의 맛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무더운 여름에 할머니가 삶아주시는 냉국수를 좋아했다. 할머니만의 특별한 비법
이나 육수가 담긴 국수는 아니고 그냥 보리차 국수였다. 면을 삶아서 잘 헹구고 차가운 보리차를 부어
주셨는데, 시원해서 좋았다. 어린 나는 할머니가 자극적이지 않고 살짝 단맛이 나는 보리차 국수를 만
들어주시면 꼭 한 그릇씩 다 먹곤 했다.
할머니는 내가 탄산음료나 사탕, 초콜릿을 많이 먹으면 혼내셨지만, 보리차 국수만큼은 내가 원하는
대로 달게 만들어주셨다. 날이 더울 때 먹으면 마치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는 것 같았다. 세상 어디에
도 없는 우리 할머니표 국수였다. 엄마도 이 집에 시집와서 처음으로 드셔보셨다고 했다.
지인들과 국수를 주제로 이야기해보면 보통 잔치국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나는 멸치
의 비릿한 맛을 싫어한다. 그래서 여름에 국수를 먹으면 새콤한 동치미 국물에 소면을 말아서 먹거나
콩국수를 주로 먹는다. 어른이 된 지금은 콩국수를 잘 먹지만, 어렸을 때는 고소하다는 콩국도 콩의
맛이 비려서 싫었다.
오랜만에 할머니표 국수가 생각나서 아이들과 국수를 만들기로 했다. 소면을 삶아서 찬물에 헹구고 오
이는 얇게 채를 썬다. 차가운 보리차에 설탕, 깨소금, 소금을 더해서 냉국수용 국물을 만든다. 삶아둔
면에 냉국을 붓고 오이를 올린다. 그리고 고춧가루와 참기름, 얼음을 곁들인다.
보리차 국수를 먹은 아이들은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내가 먹어봐도 어렸을 때 먹던 그 맛이
아니다. 요리법이 틀렸나 싶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불러주는 요리법도 내가 기억하던
요리법과 비슷하다. 사실 나도 국민학생-내가 졸업하고 초등학생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후로는 보리
차 국수를 먹어본 적이 없다.
오랜 시간 잊고 있던 그 맛이 왜 갑자기 생각났을까? 나이를 먹을수록 가끔 할머니가 만들어주셨던 음
식을 다시 먹고 싶다. 할머니의 음식은 이제 내 기억 속에 어렴풋하게 남은 추억의 맛이다. 아련하게
남은 나와 그녀의 추억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내가 지금의 우리 아이보다 더 작고 어렸을 때 나를 키워주셨다. 우리는 언제나 바늘과 실처
럼 같이 붙어 다녔다. 삼십 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때 먹었던 이름 모를 음식들은 이제 다시는 맛볼
수 없기에 내 마음 한편에서 그리움이 되었다.
할머니는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나이가 들면서 병원에 가는 게 곧 외출인 삶
이 되었다. 할머니는 병원을 좋아하셨다. 매일 병원에 가시는 것으로 마음의 위로를 받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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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상은 무슨 맛인가요

늘 아프다고 하시면서도 내가 대학에 입학하자 “졸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라고 하시며 나를 보
듬어주셨고, 내가 졸업하고 사회에 나갔을 때는 “결혼하는 모습은 볼 수 있을까?”라고 하시며 나를 기
다려주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결혼과 출산이 남들보다 조금 빨랐다. 할머니는 건강하시지는 않았지만,
오래 사셨다. 결국 나의 두 아이를 모두 품에 안아보셨다.
내 기억 속의 할머니는 건강하시던 모습 그대로인데, 돌이켜보면 내 곁을 떠나신 지도 벌써 십 년 정
도 되었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셨던 음식을 지금도 가끔 먹고 싶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누가 부르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날, 습도가 높아서 에어컨을 켜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더운 날에는 보리차 국수를 한 그릇 만들어서 먹는다.
이번에도 그 맛은 아니겠지만, 나는 할머니를 추억하며 국수를 삶을 것이다.
남편: “국수는 잔치국수가 맛있어. 밖에서 사 먹으면 미리 삶아둔 면을 쓰는데, 그런 면은 먹으면 꼭
체하더라고. 나는 자기가 만들어주는 비빔국수가 맛있더라!”

엄마인 나
돼지국밥 | 엄마가 되고 처음 만난 맛
“안 돼!”
어느 토요일 아침, 나 혼자 소리를 질렀다. 손에 든 임신 테스트기에는 선명한 두 줄이 떠 있었다. 결
혼 4개월 차이자 스물다섯 살인 나는 덜컥 눈물부터 났다.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고 무서웠다.
복잡한 심경을 억누르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당장 오라고? 어디 아파?” “응. 많이 아파.” 급하게 돌아온 남편에게 테스트기를 보여주며 또 한
바탕 울었다. 신혼이었던 우리는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날 동생은 외출 중이었다.
우리는 연애를 오 년 정도 하고 결혼했다. 남편은 내 첫사랑이었다. 결혼하고 가끔 ‘만약 아이가 안 생
기면 어쩌지….’라는 근거 없는 불안감이 들 때가 있었는데 아니었다. 그래도 당황스러웠다. 이제 막
결혼했고 회사에서도 겨우 신입을 벗어났는데 덜컥 임신이라니.
예전부터 막연하게 ‘아이 한 명은 있어야 좋지 않을까? 둘이서만 사는 게 과연 괜찮을까?’라는 고민을
종종 했다. 결혼할 때 남편은 아이 없이 우리 둘이서만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는데, 결혼 후 우리 부부
의 미래를 제대로 그려보기도 전에 덜컥 아이가 생겼다. 우리 부부는 2008년 7월 21일이면 부모가 될
예정이었다.
“전부터 아이 갖고 싶다고 했잖아. 좋은 일인 거지 뭐.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최근 들어서 그냥
회사 일이 힘들어서 피곤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임신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임신을 확인하고 남편과 집
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딱히 떠오르는 메뉴 없이 그냥 집으로 가다가 문득 머릿속에 어떤 음식이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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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상은 무슨 맛인가요

올랐다. “돼지국밥 먹고 싶어!” 다시 차를 돌려서 길가에 있는 작은 국밥 가게에 들어갔다.
“못 먹을 것 같으면 말해.”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는 메뉴였다. 나는 살면서 돼지국밥을 어렸을 때 아빠
랑 한 번,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한 번, 이렇게 총 두 번 먹었다. 돼지국밥은 돼지고기와 여러 가지
내장이 들어간 국밥에 부추무침을 올려서 먹는 음식이다. 임신 후에 처음으로 먹은 음식이 돼지국밥이
었다.
아무렇지 않던 속이 막상 국밥을 보니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얼른 한 숟가락을 떠서 먹으니 속이 진정
되었다. 반 정도 먹었더니 더는 못 먹을 것 같았다. ‘이런 게 입덧이구나.’ 혼자 내 마음을 다독였다.
남편은 오랜만에 먹는 국밥이라 그런지 열심히 먹었다. 그날은 남편의 어깨가 무거워진 날이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임산부처럼 심한 입덧을 할까 걱정했지만, 특별한 입덧 없이 무난하게 임신
기간을 보냈다. 한겨울에 수박이 먹고 싶거나 복숭아를 찾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임신한 사이
에 시아버님이 돌아가셨고 남편은 난치성 질병을 진단받았다. 사실 임산부라고 마음 놓고 편히 쉴 처
지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과 마음이 힘들어져서 35주 차에 가진통으로 출산하러 대학 병원에 갔다가 그냥
퇴원했다. 36주 1일 차에 또 진통이 왔다. 남편이 나를 다독여주었다.
“아기는 그렇게 빨리 나오는 게 아니야. 아직 4주나 남았어. 마음 편하게 갖자. 지금 힘들어서 그래.”
아기는 나오고 싶을 때 나온다. 남편이 퇴원한 다음 날에 아이가 태어났다. 예정보다 빨리 나온 아기
덕분에 만삭 사진을 예약한 주에 신생아 사진을 찍었다. 서산에 있는 우리 집 앞의 스튜디오에 사진
촬영을 예약했는데, 스튜디오 사장님께서 소식을 듣고 대전에 있는 대학 병원까지 와주셨다.
그렇게 나는 36주 1일에 2.4kg으로 태어난 작은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 아이가 지금은 열다섯 살이다. 어느새 순대국밥을 시키면서 “순대 없이 주세요.”라고 말하는 중학
생이 되었다. 나는 어른이 되고 한참 뒤에 순대국밥을 먹었기에 순대국밥이 맛있다는 아이가 조금은
신기하다. 국밥 속에 들어있는 내장은 아무렇지 않게 먹으면서 이상하게 순대는 못 먹는 아이지만, 늘
사랑스럽다.
아프지 말고 지금처럼 씩씩하게 자라라. 엄마의 쌍꺼풀과 아빠의 성격을 닮은 우리 첫아기. 많이 사랑
한다.
남편: “어린 시절 시골 잔칫날에 돼지를 잡던 모습이 생각나네. 지금은 식당에서 사 먹지만, 그때는 특
별한 날에만 먹는 음식이었어. 맛있는 부분은 동네 아저씨들이 다 먹고 어린아이들은 주로 퍽퍽한 수
육만 먹었지.”

아내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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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상은 무슨 맛인가요

샌드위치 | 풋풋했던 연애 시절의 맛
요리의 시작은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깜짝 놀라게 해야지!’ 날씨가 좋은 토요일
아침, 나는 기숙사의 좁은 부엌에서 요리사라도 된 것처럼 바쁘게 움직였다. 룸메이트에게 오늘 아침
은 내가 준비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쳤다. 옆방에 있던 친한 친구도 불렀다.
넓은 볼에 삶은 감자와 계란 등 준비한 재료들을 넣고 마요네즈, 소금, 후추와 버무렸다. 샐러드를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니 맛있었다. 마요네즈와 어우러져 간도 딱 맞았다. 그렇게 만든 속 재료를 식빵
에 넣어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모닝빵도 반으로 쪼개고 사이에 속 재료를 넣었다. 도시락 하나를 뚝
딱 만들었다. 남은 샐러드와 샌드위치는 아침으로 다 함께 먹었다.
대충 방을 치운 뒤 서로 주말 잘 보내라는 인사를 나누고 친구들과 헤어졌다. 대학과 본가가 멀어서
나는 집에 자주 가지 않고 주말에도 주로 기숙사에 머문다. 그래도 오늘은 작은 도시락을 챙겨서 버스
를 탔다. 소풍 가기 좋은 날이다. 버스도 한 번에 바로 갈아탔다. 오늘은 시작부터 상쾌하다.
남자친구의 퇴근 시간 겸 점심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서 회사 앞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나
오는 사람들 사이로 남자친구가 보이지 않아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디야?” “나? 일 끝나고 집에 가는 중이지!” “지금 만나자.” “지금? 만나려면 가는 데 시간
이 좀 걸릴 텐데….” “나는 여기 ○○ 앞이야.” “혹시 우리 동네 말하는 거야?” “응.” “내가 바로 갈게.
조금만 기다려.”
어느 정도 기다렸더니 남자친구가 오는 모습이 보였다. “전화라도 하고 오지 그랬어.” “일부러 시간 맞
춰서 여기 서 있다가 놀라게 해주려고 그랬지. 타이밍이 안 맞아서 아쉽네.” “차 타고 다니니까 길에
누가 서 있는지도 몰라. 버스 타고 오느라 힘들었지?”
손을 꼭 잡고 근처 공원으로 갔다. 이제 남자친구가 도시락을 먹는 순간이 왔다. 아침부터 준비해서
친구들에게 이미 검증을 마친 샌드위치였다. 남자친구가 맛있게 먹을 거라 기대했더니 무척 설렜다.
“직접 만들었어?” “응. 얼른 먹어봐! 맛있어서 놀라지나 말아.” 그런데 샌드위치를 입에 넣으려던 남자
친구가 잠시 멈칫거리더니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냄새가 이상하지 않아?” “아니. 괜찮은데? 오빠, 샌
드위치 싫어해?” “그건 아니야. 잘 먹을게.”
우리 둘 다 동시에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아~!’ “이거 상한 것 같은데? 우리 다른 거 먹으러 가자.
이런 거 힘들게 만들지 않아도 돼.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만으로도 고마워.” 상한 것 같다는 말이 귀에
들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는 이십 년 정도 지난 나와 남편의 봄날 에피소드다. 그렇게 내가 남편을 위해 처음으로 만든 도
시락은 실패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다가 지난날의 그 사건이 기억났다. 남편은 남자친구에게 잘 보
이고 싶던 이십 대 초반의 내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 대화를 시작으로 연애하던 그 시절을 이야기하는 날이 늘어났다.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 부끄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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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상은 무슨 맛인가요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나는 지금도 샌드위치를 만든다. 물론 그때처럼 다양한 재료를 넣어서 화려하
게 만들지는 않는다. 주로 냉장고 속에 있는 재료로 간단하게 만드는 편이다. 나중에 알았는데, 사실
남편은 샌드위치를 싫어한다.
오늘은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하던 나를 본 남편이 우리가 데이트하던 이야기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왕이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썼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스스로 원래 재미없는 사
람이라고 생각하던 터라 내심 뜨끔했다.
그러나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때의 우리도 다른 연인들처럼 서로 많이 사랑했다는 생각이 든
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서로 달라진 환경 때문에 그때의 사랑이 조금은 식었다고 느낄 수
도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한다. 앞으로도 사랑하면서 살 것이다.
그동안 앞만 보느라 나도 잊고 있던 내 이십 대의 모습을 남편이 기억하고 있다. 지금보다 훨씬 어리
고 여러 면에서 미숙했던 나를 잡아주고 보듬어준 내 남편. 지난 추억을 돌아보니 우리는 부부가 되어
서 잘 살고 있다. 남편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사십 대의 나도 잘 부탁해요.”
딸: “학교 수업에서 샌드위치 만들기를 실습했던 적이 있는데, 제대로 못 해서 아쉬워. 그리고 지난번
에 소풍 갔을 때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김밥이나 주먹밥을 싸 왔는데 나는 샌드위치가 있어서 좋았어.
그날 샌드위치를 싸 온 사람은 나 혼자였거든. 친구들도 모두 맛있다고 했어. 도시락을 예쁘게 싸가면
친구들 사이에서도 은근히 인기를 끌더라?”

작가인 나
초밥 |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에 감사하게 되는 맛
“마그네슘 영양제 하나 주세요.” “병원에 한번 가보세요. 이거 마그네슘 부족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중풍의 전조 증상일 수도 있어요. 꼭 큰 병원에 한번 가봐요.”
약국에서 이 말을 들었던 것을 계기로, 대학 병원 신경과에 몇 년째 다닌다. 병원에서 안면 경련 진단
을 받고 지금까지 추적 관찰하는 중이다. 얼마 전부터는 보톡스 시술도 받는다. 신경과 담당 교수님은
파킨슨병과 뇌혈관 질환, 안면 경련 전문이라 그분의 진료실 앞에는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기
다리신다. 그래서 젊은 여자가 대기실에 있으면 다들 힐끗거리며 쳐다본다.
첫 진료에서 교수님은 내 증상을 보고 안면 경련을 확진하셨다. “임상 경험으로 볼 때 안면 경련이 맞
아요. 그래도 더 정확하게 알려면 영상으로 확인해봐야 합니다.”
MRI를 찍었다. 결과를 보니 혈관과 신경이 서로 눌려있었다. 다행히도 증상이 미미해서 수술하지는 않
고 지켜보기로 했다. “이 병은 수술로만 완치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수술은 환자분께 부담스러우니 일
단은 지켜보기로 하죠.”
2014년도에 이 말을 들은 이후로 나의 길고 긴 투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 주사를 맞은 건 진단을
받고 나서 사 년 정도 지난 2018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다시 직장에 다니며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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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상은 무슨 맛인가요

생활을 시작하니 전업주부로 있을 때보다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일을 시작하니 숨어있던 증
상이 눈에 띄었다.
안면 경련 증상이 나타난 이후로는 사람들과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처음 보는 사
람과는 말하기도 겁났다. 나는 조금이라도 긴장하면 얼굴에 먼저 드러난다. 상대방은 미처 알지 못한
다 해도 나 스스로 불편해지는 이 병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생명에 지장을 주는 병은 아니었지만,
삶의 질을 낮추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일그러진 얼굴과 안면의 떨림은 늘 불안과 초조한 감정을 안겨
주었다. 결국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이 따라왔다. 이 고통은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병이 더 진행될수록 주사를 맞는 간격도 짧아졌다. 한번은 3개월 만에 병원을 재방문
하기도 했다. 평생 병원에 다니며 살 수는 없었다. 주사를 평생 맞는다고 생각했더니 무섭게만 느껴졌
던 뇌 수술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략 4~5개월에 한 번씩 보톡스 주사를 맞다가 결국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자연스럽게 웃는 얼굴로 살고 싶다. 예전처럼 다시 건강해지고 싶다!’
간단한 수술이라고는 들었어도 뇌 수술이라 고민이 많았다. 담당 교수님은 대전에 있는 병원에서는 수
술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셨다. 서울에 있는 대학 병원에서 1월 19일에 입원해서 1월 28일에 퇴원
하는 일정으로 수술을 예약했다. 2020년 1월 20일. 경희의료원 신경외과의 첫 수술 환자는 나였다. 아
침에 눈을 뜨니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어제부터 금식하고 수술 대기용
침대 위에 누워있다는 점이었다.
가끔 팔에 닿는 침대 난간에서 싸늘한 냉기가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술이 끝
나면 몸이 춥다고 했는데, 나는 수술을 받기 전부터 추웠다. 담당 교수님은 한숨 자고 나면 수술이 끝
나있을 거라며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4시간 후, 머리에 붕대를 감고 회복실에서 다시 일반 병실로 돌아
왔다. 신기하게 눈이 떨리지 않았다. 수술 후 첫날은 소변 줄을 꽂은 채로 온종일 침대 위에 누워있었
다. 담당 교수님은 수술이 잘 끝났다고 말씀해주셨다.
머리와 목이 아팠다. 한참 동안 수영하다 뭍으로 방금 나온 사람처럼 귀가 멍했다. 수술받기 전에 이
수술의 부작용 중 하나로 귀의 신경을 잘못 건드려 청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들었었기에 덜컥
겁이 났다. 불안해하는 나에게 담당 교수님은 모든 예후가 좋다며 귀의 문제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말씀하셨다.
둘째 날도 계속 누워있었다. 무의식적으로 거울을 한 번씩 봤다. 더 이상 얼굴 근육이 떨리지 않아서
신기했다. 그래도 저녁쯤 되자 정신을 차리고 병원 로비를 혼자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나아졌다. 셋
째 날부터는 몸이 평소와 거의 다름없는 상태로 돌아왔다. 얼굴이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피가 왼쪽
으로 쏠리거나 얼굴이 굳는 느낌도 없었다.
몸이 회복되자 이제 살 만했다. 어제까지는 남편이 계속 물어봐도 입맛이 없었는데, 오늘은 먹고 싶은
것도 생겼다. 남편은 오늘도 살뜰하게 나를 챙기며 물었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초밥 먹고 싶은데,
집에 가서 먹을래.” 침대 위의 식탁을 정리하면서 대답했다. 병원 생활도 이제 조금 익숙해졌다. 남편
은 좀 더 자라고 말하며 병실을 나갔다. 환자도 힘들지만, 간병하는 사람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여러
생각을 하다가 까무룩 잠들었다. 남편과 나는 그렇게 따로 또 같이 오후를 보냈다. 자는 동안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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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상은 무슨 맛인가요

비웠던 남편이 한 손에 쇼핑백을 들고 들어왔다. “초밥이 원래 이렇게 비싼가? 영업 중인 초밥 가게를
찾으려고 주변을 계속 돌아다녔어. 오후 시간대는 전부 브레이크 타임이더라.”
남편은 고맙게도 병원 근처의 초밥 가게를 찾아서 초밥을 사 왔다. 스마트폰을 손에 든 채로 지도를
보면서 회기동 주변을 배회하는 남편의 모습이 머릿속에 절로 떠올랐다. 맛집이라고 해서 시간을 들여
서 어딘가를 찾아가는 것을 싫어하고 음식점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싫어하는 남편인데, 울
컥 고마운 마음이 솟구쳤다.
저녁에도 어김없이 환자식이 나왔지만, 나는 초밥을 먹고 남편은 환자식을 먹었다. 연어 초밥, 광어 초
밥, 새우 초밥 등 남편이 사다 준 초밥은 다 맛있었다. 익숙한 우동의 맛도 좋았다. 연어 초밥은 양파
와 마요네즈 소스가 더해져서 느끼하지 않고 맛있었다. 묵은지가 올려진 광어 초밥도 있었다. 나는 쫀
득한 광어에 묵은지를 올린 초밥을 좋아한다. 회를 잘 못 먹지만, 이 초밥은 생선의 비린 맛을 잡고 고
소한 맛만 전해주는 초밥이라 참 좋아한다. 연어와 광어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 딱 맞는 식사였다. 특
히 이 초밥 가게의 초밥은 양도 많아서 남편과 둘이 나눠 먹었다. 병원이지만 오랜만에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수술 후 이 년 정도 지난 지금은 안면 경련 증상이 재발하지 않고 잘 지낸다. 수술의 예후도 좋고 회
복도 빨랐다. 그래도 가끔 책을 열심히 읽거나 노트북을 많이 사용한 날은 얼굴이 살짝 떨리는 것 같
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은 대부분 병원에서 하지 말라고 권하는 것들이다. 재
발하지 않으려면 평소에 피곤하지 않도록 스스로 신경 쓰고 부정적인 마음보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이 병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 자칫 잘못 관리하면 다른 부위에서 재발할 수도 있다.
특별한 삶이 아니어도 된다. 남들처럼 평범한 하루를 사는 것이 좋다. 수술 이후로는 당연하다 생각했
던 것들에 감사하게 되었다.
딸: “초밥에는 고추냉이가 무조건 들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먹어보니까 아니었어. 회랑 밥이 잘
어울려서 맛있더라. 초밥마다 맛이 다 다른 것도 신기해. 그런데 대부분의 초밥은 다 맛있는데, 계란
초밥은 달아서 싫더라. 저번에 엄마랑 둘이서 새로 오픈한 초밥 가게에 갔던 것 기억나? 거기 진짜 맛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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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상은 무슨 맛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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