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니언 - 천로역정
차례
작가 소개
작품에 대한 저자의 변명
제 1 부
작가 소개
존 버니언(John Bunyan, 1628 - 1688)
영국의 유명한 목사, 설교가 이며 청교도의
종교관을 매우 독특하게 표현한 <천로역정 'The
Pilgrim's Progress'(1678)>의 저자.
그 밖의 저서로는 교리에 관한 논쟁적인 저서들을
비롯해 영적인 자서전 <넘치는 은혜 'Grace
Abounding'(1666)>, 우화집 <거룩한 전쟁 'The Holy
War',(1682)> 등이 있다
작품에 대한 저자의 변명
먼저, 글을 쓰기 위해 펜을 들면서, 이런 보잘것
없는 형식의 책을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다른 형태의 책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을 완성하고 났더니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채 이런 형식의 책이 되고 만 것이다.
사실은 이렇게 된 것이다. 나는 복음이 충만한 이
시대에 성인들의 생애와 행적에 대해 글을 쓰다가
갑자기 영광에 이르는 그들의 여행과 행적에 대한
우화를 쓰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스무 가지도 훨씬
넘는 사건들이 연상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열거해 보았다. 그러고 나자 내 머리 속에 또다시
스무 가지도 더 되는 사건들이 떠올랐고, 그것들은
다시 불꽃이 튀듯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생각들이 강렬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아 무한히
퍼져나가게 되면 거의 탈고단계에 이른 이 책마저
엉뚱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것 같아서 그런 생각들만을
모아 따로 쓰기로 하고 쓰던 원고를 탈고했다.
그렇게 해서 쓴 것이 이 책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생각은 사실 없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것을 썼는지 나 자신도 모른다.
단지 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내
이웃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쓴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이 글을
썼을 뿐이다.
한가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서 휘갈겨 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글을 씀으로써 죄를 범하게 하는
사악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펜을 종이에 대자, 나의
생각이 줄줄 글로 표현되었다. 생각이 떠오르는대로
쓰다보니까 마치 실타래에서 실이 풀리듯이 풀려나와
지금 독자 여러분들이 보시는 바와 같은 길이와
두께를 가진 책이 될 때까지 써내려간 것이다.
개별적인 사건들을 연결하여 문장을 다듬은 후 나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들이 내 글을
읽고 어떤 평가를 내리나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어떤 사람은 괜찮다고 칭찬을 했고, 어떤
사람은 형편없다고 없애버리라고 말했다. 또 어떤
이는 "존, 그 글을 출판하게나."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출판하지 말게나."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글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걸세."라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걸."하고 말하기도 했다.
난처해진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마침내 나는 어차피 사람들의 의견이 이렇게 분분한
이상 일단 책을 출판해 보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출판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다른 어떤 사람들은 출판을 하지 말라고
했으므로 누가 가장 올바른 충고를 해주었는가를
알려면 그것을 시험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가 이 책을 출판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호의를 거절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큰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이 출판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여러분들을 기분 나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형제들은 이 책이 출판되기를
바라고 있으니 책이 나와 읽을 때까지 판단을 보류해
주시오."
"만약 읽어보고 싶지 않다면 그대로 내버려두시오.
살코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갈비 뜯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나는 그들의 기분을 좀 맞춰주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할 생각이었다.
"이런 문체로 써서는 안 될까요?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면서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을 달성하고 동시에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는 없을까요? 왜 그렇게는
되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은 살코기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갈비 뜯기를 좋아합니다."
시커먼 먹구름은 비를 뿌리지만 하얀 뭉게구름은
비를 뿌리지 않는다. 그렇다. 시커먼 먹구름이든 하얀
뭉게구름이든 만약에 그들이 비를 뿌려주기만 한다면
땅은 곡식을 생산함으로써 둘 다 칭찬하고, 어느 한
쪽을 흠잡는 대신 그들이 함께 생산한 열매를 소중히
여긴다.
또한 시커먼 먹구름과 하얀 뭉게구름이 함께
작용하여 땅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열매를 보고 어느 구름의
덕택이라고 구별할 수 없는 것이다. 땅이 굶주릴 때는
그들이 필요하게 되고, 만약 땅이 풍요로울 때는 두
구름 모두 역겨워지고 그들의 은총 또한 무익한 것이
된다.
"어부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는지
살펴보십시오. 어떤 도구들을 사용합니까? 잘
살펴보십시오. 어부들은 그들의 온갖 지혜와 올가미,
낚싯줄, 낚시도구, 낚싯바늘, 그물들을 최대한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습니다. 그러나 낚싯바늘이나
낚싯줄, 올가미, 그물이나 그 밖의 도구가 모두
갖춰져 있다 할지라도 물에서 뛰어노는 물고기가
당신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고기를 더듬어
찾고 손으로 움켜쥐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무슨 짓을 해도 물고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
"새 사냥꾼들은 사냥감을 잡기 위해 또 어떤 노력을
합니까? 일일이 그 이름을 열거할 수조차 없이 많은
여러가지 도구들, 즉 엽총, 그물, 끈끈이를 바른
나뭇가지, 등불과 방울들을 사냥에 이용합니다.
게다가 살살 기어다니기도 하고 걸어가기도 하며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도 합니다. 그 누가 사냥꾼의
온갖 자세를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사냥꾼은 자신이 원하는
사냥감들을 모두 다 포획할 수는 없습니다. 그가 이쪽
새를 잡기 위해서는 피리를 불거나 휘파람을 불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저쪽에 있던 새는 날아가
버립니다."
"만일 두꺼비의 머리 속에 진주가 들어 있을 수도
있고 (서양의 전설에 보석은 두꺼비의 머리 속에서
생겨난다는 것이 있음), 조개껍데기 속에서 또한
진주를 발견할 수 있다면, 만약 금보다 더 값진 것이
어디 묻혀 있다는 보장이 따로 없다면, 그것에 대한
어렴풋한 눈치만 가지고 그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사람을 그 누가 경멸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보잘것없는 이 책도 누구나 다 즐길 수 있는 그런
화려한 묘사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화려하기는
하지만 내용이 없는 미사여구로 가득 찬 책을 능가할
만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좋소. 그러나 그 내용을 충분히 검토해 봤지만,
나는 당신의 이 책이 출판되는 것에 대해 매우
못마땅하오."
"왜요? 무엇이 문제입니까?"
"도대체 무슨 소린지 뜻을 명확히 이해할 수가
없소."
"무슨 말씀입니까?"
"상상해서 꾸며낸 이야기란 말이오."
"그것이 어떻다는 겁니까? 나는 믿습니다. 나처럼
뜻이 분명하지 않은 꾸며낸 이야기를 가지고 진리를
번쩍이게 하는 작품을 만들어서 진리를 빛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글을 읽기를
원합니다. 은유는 정신력이 약한 자들을 타락시키고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합니다."
신성한 어떤 것을 인간들에게 기록해 전달해 주려는
이에게 직설적이고 확실한 문체가 좋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은유적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내 글이 확실성이 모자란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옛날에 씌어진 하나님의 율법이나
복음서도 독특한 상징이나 암시, 은유 등으로 씌어져
있지 않은가? 가장 지고한 지혜를 무조건 공격하려
드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진지하고 맑은 정신을
지닌 사람이라면 옛 성전의 은유적인 표현들을
비난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진지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하나님께서 바늘과 고리, 송아지와 양, 어린 암소와
어린 양, 조류와 목초 그리고 어린 양의 피 등의
비유적인 표현을 통해서 자신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겸손하게 찾아 구한다.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빛과 은총을 발견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너무 성급하게 내 글이 확실성이 결핍됐고
거칠다는 결론을 내리지 말아달라. 겉으로 확실하게
보인다고 해서 모두 다 확실한 것은 아니다. 또한
비유법을 사용한 글이라고 해서 모두 멸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라면 우리에게 가장 해로운 것은
가볍게 받아들이고, 유익한 것은 우리의 영혼을
빼앗아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금고 속에 금이
들어 있듯이 나의 모호하고 비유적인 글 속에는
진리가 들어 있다.
진리를 진술하기 위해 예언자들도 많은 비유법을
사용했다. 그렇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가르침을 잘 고찰해 본 사람은 오늘날까지도 그
진리가 옛날의 옷을 입은 채 여전히 생생하게 들어
있음을 분명히 알 것이다.
그 문체나 표현 때문에 모든 현인들을 침묵시키는
바로 그 성경 자체의 구절구절이 온통 모호한
상징이나 우화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 책에서 영광의 빛이 샘물처럼 솟아나와
우리들의 가장 어두운 밤을 대낮처럼 밝혀주지
않는가?
나를 혹평하는 사람에게 지금 자신의 글을 좀
자세히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러면 그는 내 책에서
발견한 것보다 더욱 모호한 부분을 자신의 책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그는 자신이 최선을
다한 것 중에서도 비교적 나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평한 독자들
앞에 서서 글의 명확성에 대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나는 나의 글이 명확하지 않다고
비난하는 사람의 모호한 글귀 하나에 내 글에서 열
개의 글귀를 걸고 내기를 하겠다. 공평한 독자들은
그의 미사여구로 장식된 거짓말보다 비유적인 표현을
쓴 내 글 속에서 훨씬 더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진리는 그것이 비록 갓난아기의 다 떨어진 포대기에
싸여 있다 할지라도 인간의 판단력을 고취시키고,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아주며, 이해하는 것을 즐겁게
해주고 자신의 의지력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우리의 상상력을 즐겁게 해주는
것으로 우리의 기억력을 채워주며, 우리의 고통을
완화시켜 준다.
내가 알기에 디모데는 명확한 말을 사용하고자
했으며, 늙은 부인들이 이야기하는 우화를 그는 듣는
것조차 거부했다. 그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바울은
어느 곳에서도 비유의 사용을 금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 비유들 속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캐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황금과 진주 그리고 여러
가지 값진 보석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만 더 하겠다. 오, 목사님! 나의 글이
목사님의 기분을 상하게 했습니까? 당신은 내가
우화적 표현말고 다른 문체로 쓰기를 바라십니까?
혹은 좀더 직설적인 표현으로 바꾸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기 내가 발견한 우화적 표현이 적절한 세
가지 점을 밝혀 나보다 더 훌륭한 이들에게 그것이
적합한가를 비판받도록 하겠다.
첫째, 나는 내가 사용한 방법이 부당하다고 할 만한
그 어떤 이유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내가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것이 어휘나 사건, 독자들을
기만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상징이나 은유적인
표현을 적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조잡하다고 볼 수
없다. 어떤 식으로 쓰건간에 진리를 드러내는
일이라면 그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부당하다는 표현을 내가 사용했던가?
그렇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우화적 문체를 쓴
것은 결코 부당한 문체가 아니다. 나는 이런 방법으로
나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을 지극히
훌륭한 당신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고 우화적 문체로 글을
써서 오늘날 살아 숨쉬는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기쁘게 한 사람들의 예는 많이 있다.
둘째, 나는 덕망이 있는 사람들이 대화체의 글을
쓰고 있으며, 그들이 이런 문체의 글을 쓴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만약 그런 식의 글로 진리를 기만했다면,
그들은 저주받아 마땅하고 또한 그들이 진리를
조롱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한 그 문체 또한
저주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그런 문체를
사용하여 진리가 여러분이나 나의 마음속에서
용솟음치게 했다면 그것은 그 문체가 어떤 것이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인 것이다. 우리에게 맨 처음
쟁기로 밭을 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분(예수님)보다
그 누가 우리의 생각과 펜을 그의 섭리대로 이끄는
방법을 더 잘 알겠는가? 그리고 그분만이 비천한 것을
거룩한 것으로 이끌 수가 있는 것이다.
셋째, 나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이와 유사한 방법,
즉 한 가지 사건을 통해서 다른 사건을 연상케 하는
방법이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나 또한 그와
유사한 방법을 사용하려 한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진리의 찬란한 광채가 가려지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오히려 이런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진리가
대낮처럼 밝게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펜을 놓기 전에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강한 자를 끌어내리시고
약한 자를 일으켜 세우시는 주님의 손과 여러분의
독자들 앞에 이 책을 맡기고자 한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대략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은
영원한 목표를 추구하는 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
인간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그가 행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일은 무엇이며, 동시에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를 이 책은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은 그가
영광의 문 앞에 다다를 때까지 어떻게 달리고 또
달리는가를 보여준다.
이 책은 또한 영원한 왕관을 차지하려고 인생항로를
분주하게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여러분들은 어째서 그들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고, 그들은 왜 결국 바보처럼 죽게
되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러한 충고를 따르기만 한다면 이
책은 당신을 여행자로 만들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
책에 제시하는 방향을 이해하기만 한다면 이 책은
당신을 거룩한 땅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게으른 사람들을 활동적으로 만들고 눈이 먼
사람들도 또한 즐거운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당신은 어떤 희귀하고 이익이 될만한 것을 찾고
있는가? 우화 속에 들어 있는 진리를 찾아볼 생각은
없는가? 당신은 건망증이 심한가? 정월 초하루부터
섣달 마지막 날까지의 모든 일들을 기억하고 싶은가?
그러면 나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읽으라. 그
이야기들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꼭 달라붙어서
무력하고 의지할 데 없는 자에게는 큰 위안거리가 될
것이다.
이 책은 무관심한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감동시킬 수
있는 그런 대화체로 쓰어져 있다. 언뜻 볼 때 기이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것은
건전하고 정직한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이다.
당신은 당신의 우울증을 치료하고 싶은가?
어리석지는 않으면서 아주 유쾌한 상태가 되고
싶은가? 당신은 수수께끼를 읽고 그 해답을 듣고
싶은가, 아니면 당신 자신의 생각 속에만 파묻혀 있고
싶은가? 당신은 고기를 씹어먹는 것을 좋아하는가?
혹은 구름 속에 있는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하는 말을
들어 보겠는가? 당신은 잠을 자지 않으면서도 황홀한
꿈속을 거닐어보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혹은 잠시
동안 웃거나 울어보고 싶지 않은가? 마력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잠시 정신을 읽고 황홀경에 빠졌다가
아무 해를 입지 않고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와보고
싶은가? 책을 읽으면서도 무엇을 읽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러면서도 그 글을 읽음으로써 자기자신이
축복받았는가 아닌가를 알고 싶지 않은가?
오, 그렇다면 여기로 오시오. 여기로 와서 당신의
머리와 가슴으로 함께 내 책을 읽으라.
존 버니언
제 1 부
이 세상으로부터
다가올 세상으로의
순례자의 행진
그 출발과
위험한 여행과
그리고
안전하게 희망하던 나라에
도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의 꿈의
비유형식을 빌어
- 존 버니언
"내가 비유를 사용했노라."<호세아 12장 10절>
순례자의 행진 제1부
- 꿈에 비유하여 -
세상이라는 황야를 헤매이다 우연히도 나는 한
동굴에 이르렀다.
그곳에 잠시 누웠던 나는 이내 잠이 들었으며, 꿈을
꾸었다.
내 꿈속에 누더기 옷을 걸친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 남자는 자기 집을 등진 자세로 손에는 한 권의
책을 들고, 무거운 등짐을 지고 있었다.
그는 내가 보는 앞에서 그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읽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몸을
떨었다. 그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슬프게
울부짖었다.
"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그는 괴로워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아내나 자식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그럼에도 그의 괴로움은 증폭이 되어 마침내 더
이상은 침묵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오, 여보, 그리고 사랑하는 내 아이들아! 너희들이
사랑하는 이 아버지는 지금 나를 짓누르고 있는 이
무거운 짐 때문에 몹시 괴롭구나. 게다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도시가 하늘에서 내려온 불에 의해
타버려 잿더미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이 오면 나와 당신 그리고 사랑하는 내 자식
너희들은 모두 비참하게 죽어가ㄱ지. 어떤 피난길을
찾아 그곳으로 도피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런데 난
아직 그 길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그의 가족들은 슬픔에
잠겼다. 그것은 그가 한 말보다도 어떤 광기가 그의
머리를 이상하게 만들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침 날이 어두워져 그들은 그가 잠을 자고
나면 정상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 생각하고 서둘러
그를 잠자리에 들게 했다. 그러나 밤도 역시 그에게는
낮과 다름없이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잠을 자기는커녕
한숨과 눈물로 꼬박 밤을 새웠다. 그들은 밤새 그가
한 행동을 보게 되었고, 날이 밝자 그는 갈수록
이상한 말만 지껄이는 것이었다. 그가 또다시
식구들에게 말을 꺼내려고 하자 그들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에게 거칠고 무뚝뚝하게
대하면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비웃어보기도 하고, 큰 소리로 야단도 쳐보고
나중에는 거의 무시해 버렸다. 그러자 그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불쌍한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한탄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는 때로
홀로 들판을 헤매기도 하고 책도 읽고 기도도 하면서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늘 그래왔듯이 괴로운
표정으로 책을 읽으며 들판을 홀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책을 읽다가 갑자기 전에처럼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말했다.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가 마치 달아나기라도 하려는 듯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가 어느 길로 가야 할지를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그때 복음전도사(Evangelist.
이상적인 기독교 목사를 의미함)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는 것을 보았다.
"어찌하여 당신은 그렇게 울고 있소?"
그가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이 책을 읽고서 제가 죽음을
선고받았다는 사실과 죽은 뒤에는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저는 죽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심판받을 자신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러자 복음전도사가 말했다.
"어째서 죽기 싫다는 겁니까? 이 세상의 삶이란
사악한 것들로 가득차 있는데요?"
그가 대답했다.
"그것은 제 등에 얹혀 있는 이 짐이 나를
무덤보다도 더 낮은 곳으로 떨어뜨려 마침내
토페트(예루살렘 부근에 있는 쓰레기 버리는 곳.
지옥을 의미함)에까지 떨어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생님, 내가 만약 감옥살이를 견뎌낼 힘조차
없다면 나는 결국 심판과 그 심판 후의 사형집행 또한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복음전도사가 말했다.
"당신 생각이 그러하다면 왜 꼼짝않고 멍청히 서
있기만 하오?"
그가 대답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복음전도사는 그에게 양피지 두루마리 한
개를 건네주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장차 다가올 천벌을 피하라.'
그는 그 글을 읽고 나서 복음전도사를 주의깊게
쳐다보며 물었다.
"저는 어디로 도망가야 합니까?"
그러자 복음전도사는 손가락으로 드넓은 광야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 있는 좁은 문(누가복음 13장 24절에 나오는
곧은 문. 기독교로 개종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은총을 영접하는 순간)이 보입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복음전도사가 말했다.
"저쪽의 밝은 빛이 보입니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가 대답하자 복음전도사가 말했다.
"저 빛을 놓치지 말고 똑바로 바라보면서 그쪽으로
곧장 올라가시오. 문이 보이면 가서 문을 두드리시오.
그러면 그곳에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는
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
나는 꿈속에서 그가 그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그가 자기집 문에서 멀리 달아나기도
전에 그의 아내와 자식들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돌아오라고 소리쳐 불렀으나 그 사람은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는 울부짖으며 계속 달리고 있었다.
"생명을, 생명을, 영원한 생명을!"
그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황야의 한복판을
향해서 내달렸다.
이웃사람들도 그가 달려가는 것을 보기 위해
뛰어나왔다. 계속 뛰어가는 그를 보고 어떤 사람들은
비웃고, 어떤 사람들은 위협을 가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돌아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폭력을 써서라도 그를 끌어오기로 결심을
했다. 그중 한 사람의 이름은
'고집불통(Obstinate)'이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온순함(Pliable)'이었다. 그때쯤 그는 그들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고집불통과
온순함은 그를 따라잡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뛰어가 곧
그를 따라잡았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여보시오, 이웃사람들. 무슨 일로 이렇게 급히
오셨소?"
그들이 말했다.
"당신을 설득시켜서 우리와 함께 돌아가게 하려고
왔소."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건 절대로 안됩니다. 당신들은 지금 멸망의
도시에 살고 있소. 물론 나도 그곳에서 태어나
자랐지요. 나는 알고 있소. 당신들은 곧 그곳에서
죽어 무덤보다 더 낮은 곳, 불과 유황이 활활
타오르는 구렁텅이속에 빠지게 될 것이오. 착한
이웃사람들이여, 내 말을 믿고 당신들도 나와 함께
갑시다."
"뭐라고?"
고집불통이 말했다.
"우리 친구들과 함께 편안한 생활을 내버리고
떠나자고?"
"그렇소."
크리스찬(이것이 그의 이름이었다)이 말했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버려야 할 그 모든 것들은 내가
지금 향유하기 위해 찾고 있는 그것의 아주 작은
부분과 비교해 전혀 가치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들이 나와 함께 가서 그것을 차지한다면
나와 똑같이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는 그곳은 풍요롭고 부족함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오. 자! 같이 갑시다. 가서 내 말을 확인해
보시오."
고집불통 : 이 세상 모든 것을 내버리고 떠나려는
당신이 찾는 그것은 도대체 뭐란 말이오?
크리스찬 : 나는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도 않으며,
시들지도 않는 유산을 찾고 있소. 그것은 천국에
안전하게 보관돼 있는데 약속한 때가 되면 그것을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꼭 알고
싶다면 내 책에 기록돼 있으니 읽어보시오.
고집불통 : 흥! 그따위 책은 집어치우시오. 우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겠소, 안 가겠소?
크리스찬 : 안 갑니다. 나는 절대로 안 돌아갑니다.
나는 이미 내가 가야 할 길을 알았으니까요.
고집불통 :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여보시오 온순함!
우리끼리 집으로 돌아갑시다. 이렇게 머리가 돌아버린
사람들은 이치에 맞게 충고해 주는 일곱 사람의
말보다 자기 생각이 더 현명하다는 환상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니까.
그러자 온순함이 말했다.
온순함 : 그렇게 무턱대고 욕만 하지 맙시다. 만약
이 착한 크리스찬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가 찾고 있는
것들이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것들보다 더 훌륭하지
않겠소? 이 사람을 따라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고집불통 : 뭐라구요? 바보가 하나 더 생겼군! 내
말대로 집으로 돌아갑시다. 이렇게 머리가 돈 사람이
당신을 어디로 끌고 갈지 알게 뭐요! 돌아갑시다,
돌아가. 현명하게 생각하시오.
크리스찬 : 온순함 씨, 나와 함께 갑시다. 거기에
가면 내가 지금 말씀 드린대로 우리가 차지할 좋은
것들이 많이 있고, 그 밖에도 영광스런 것들이 많이
있답니다. 만약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여기 이
책을 읽어보시오. 이 책에 기록돼 있는 진리는 그
진리를 만드신 그분의 피로 모든 것이 확실하게
증명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온순함 : 그럼, 고집불통 씨, 이제 결단을
내리겠소. 나는 이 착한 분을 따라가서 그와 함께 내
운명을 던지겠소. 그런데 나의 착한 동료여, 당신은
그 원하는 곳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습니까?
크리스찬 나는 복음전도사라고 하는 분의 인도를
받았는데, 그는 우리 앞에 있는 좁은 문까지
달려가라고 내게 일러주었습니다. 거기에 가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인도받게 될 것입니다.
온순함 : 그렇다면 착한 이웃이여, 우리 계속해서
길을 갑시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함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고집불통 : 그럼 난 집으로 돌아가야지. 저따위
환상에 빠진 친구들과 한패가 될 수는 없지.
나는 꿈속에서 고집불통이 돌아가자 크리스찬과
온순함이 이야기를 나누며 평원을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크리스찬 : 온순함 씨, 지금 기분이 어떻습니까?
나와 함께 가기로 결심해 주셔서 매우 기쁩니다. 저
고집불통도 아직 닥쳐보진 않았지만 나처럼 앞으로
닥칠 권세와 공포를 느꼈더라면 그렇게 경솔하게 우리
곁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온순함 : 자, 크리스찬 씨. 이제 우리 둘밖에
없으니 우리가 찾는 그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즐길 수
있으며, 우리가 지금 가는 곳은 어디인지를 좀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십시오.
크리스찬 : 그것들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나 자신은 그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알고 싶다면 내 책에서 그것들에 관련된
부분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온순함 : 당신은 그 책에 기록된 것들이 모두
틀림없는 진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크리스찬 : 예, 절대로. 그것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그분이 만드셨으니까요.
온순함 : 옳은 말씀입니다. 그럼 어떤 것들이
기록돼 있습니까?
크리스찬 : 우리에게 유산으로 물려질 영원한
나라와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영원히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온순함 : 옳은 말씀입니다. 그밖에 또 어떤 것들이
있지요?
크리스찬 : 우리가 받아 쓸 영광의 왕관이 있으며,
창공에 떠 있는 태양처럼 우리의 몸을 눈부시게 해줄
예복이 있습니다.
온순함 : 굉장하군요. 그 밖에 또 무엇이 있지요?
크리스찬 그곳에는 눈물도 없고 슬픔도 없을
것입니다. 그곳의 주인께서 우리의 눈에서 흐르는
모든 눈물을 닦아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순함 : 그런데 그곳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됩니까?
크리스찬 : 그곳에서는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부실
천사들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보다 앞서
그곳으로 간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해를 끼치는 사람은
없으며 모두 다 사랑스럽고 거룩하게 하나님이 보는
앞에서 걸어다닐 것이며, 영원히 그의 은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그곳에서 황금왕관을
쓴 선조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금으로 장식된 하프를
뜯는 거룩한 동정녀들도 보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그곳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바친 사랑 때문에
속세에서 육신이 찢기는 능지처참을 당하고, 화형을
당하고, 사나운 맹수에 잡아먹히고, 바다에 빠뜨려
죽임을 당했던 이들이 모두 성한 몸으로 영원불멸의
옷을 입고 있는 모습도 보게 될 것입니다.
온순함 : 말만 들어도 황홀해지는군요.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정말로 즐길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가
그런 자리를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크리스찬 : 그 나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만약 우리가 진심으로 그것을 가지려고
원한다면 그분은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에게 그것을
나눠주실 것이라는 겁니다.
온순함 : 알 것 같군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대단히 기쁩니다. 자, 우리 어서 서두릅시다.
크리스찬 : 내 등에 얹혀 있는 이 무거운 짐 때문에
마음대로 빨리 걸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대화가 끝나자, 그들이 평원 한복판에 있는
진흙 수렁 가까이에 다다른 것을 나는 꿈속에서
보았다. 그들은 수렁이 있는 줄도 모르고 걷다가 그만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그 수렁의 이름은 절망의
구렁텅이였다. 그들은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된 채
한동안 수렁 속에서 뒹굴었는데 크리스찬은 등에 진
짐 때문에 수렁 속으로 점점 빨려들어갔다. 그러자
온순함이 말했다.
온순함 : 오, 크리스찬.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
겁니까?
크리스찬 : 나도 모르겠소.
이 말을 듣자 온순함은 기분이 상하여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온순함 : 그래, 이것이 당신이 여태까지 말하던 그
행복이란 말이오? 처음 시작부터 이 고생이라면
지금부터 우리 여행의 목적지에 도달하는 그때까지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이오? 내가
여기서 목숨을 다시 건질 수만 있다면 그 멋진 나라는
모두 당신에게 안겨주겠소.
이런 말을 하면서 온순함은 한두 차례 필사적으로
몸을 솟구쳐 마침내 자기집 쪽으로 면한 수렁 밖으로
나왔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집으로 돌아가버렸고
크리스찬은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다.
혼자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뒹굴고 있던
크리스찬은 자기집에서는 멀고 좁은 문 쪽 가까운
곳으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는
애썼지만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등에 진 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때 나는 꿈속에서 어떤 사람이
그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그의 이름은
도움이었는데, 그에게 거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크리스찬 : 선생님, 저는 복음전도사라는 분의
말씀대로 이 길을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는 내게
앞으로 닥쳐올 천벌을 피하려면 저기 있는 저 문으로
가야 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쪽으로 가다가
이렇게 수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도움 : 길을 좀 잘 살펴보고 걷지 그랬소?
크리스찬 : 너무 무서워서 옆길로 피하다가 그만
이렇게 수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도움 : 손을 이리 뻗으시오.
그리하여 크리스찬이 손을 내뻗자 도움은 그의 손을
잡아 단단한 땅위로 끌어내주고는 가던 길을 계속
가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크리스찬을 끌어내준 도움에게 다가가 말했다.
"여보시오. 이곳은 멸망의 도시로부터 빠져나와
저쪽에 있는 좁은 문으로 가는 길목인데 왜 연약한
여행자들이 좀더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도록 돼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가 말했다.
"이 진흙 수렁은 다져질 수 없는 그런 곳이랍니다.
이곳은 유죄판결을 받은 자들의 때와 찌꺼기들이
계속해서 흘러들어와 그 이름도 절망의 구렁텅이라
불린답니다. 지금도 죄인이 자기 죄를 깨달았을 때
그의 마음속에 생겨나는 온갖 두려움과 의심,
낙담하는 마음 등이 모두 한데 뭉쳐 이곳에
흘러들어오고 있습니다. 이곳이 매우 고약한 장소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요.
이곳이 이렇게 고약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을
왕이신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측량사들의 지도를 받아 그의 일꾼들을
시켜서 1600년 동안 이 수렁을 메워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헛수고였지요. 적어도 2만 대나 되는
수레를 동원하여 일년 내내 하나님의 영토 각처에서
모은 수백만의 훌륭한 교훈들을 실어다 이 수렁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좋은 땅으로 만드는
데 최상의 자질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자들이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만하면 땅이 굳건히 다져질 만도
한데 아직도 절망의 구렁텅이는 그대로 있고, 어느
누가 온갖 노력을 다한다 해도 역시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사실은 법을 주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 수렁의
곳곳에 아주 튼튼하고 굳건한 발판을 마련해 놓긴
했지만, 수렁 자체가 더러운 오물들을 잔뜩
뱉아내거나 날씨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때는 그
발판들이 잘 보이질 않습니다. 설령 그 발판들이
보인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어지러워 발판이 거기에
있는데도 발을 헛디뎌 끝내 수렁에 빠져 진흙투성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일단 좁은 문의
문턱에 이르기만 하면 그곳 땅은 단단합니다."
바로 그때쯤 나는 꿈속에서 온순함이 자기집에
도달하는 것을 보았다. 이웃사람들은 그를 보기 위해
그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를 본 어떤 사람들은
돌아오길 잘했다고 칭찬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크리스찬을 따라 갔다가 위험한 일을 당한 그를
바보라고 놀리기도 했다.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그의
비겁한 행동을 보고는,
"나 같으면 이왕 모험을 시작한 이상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는
않겠네."라고 비난했다.
그래서 온순함은 이웃사람들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차츰 마음이 안정되고
활기를 되찾은 그는 이웃사람들과 말을 주고받으며
그들과 함께 가엾은 크리스찬을 욕하기 시작했다.
온순함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한편 혼자서 외롭게 좁은 문을 향해 황야를
걸어가던 크리스찬은 그를 향해 멀리서 들판을
가로질러오는 어떤 사람을 보았다. 그들은 서로 길을
비켜 지나치는 순간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그
신사의 이름은 속세의 현인(Mr. Worldly
Wiseman)이었다. 그는 '세속적인 정치'라는 대단히 큰
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이 도시는 크리스찬이 살던
곳과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그 사람은 크리스찬을
그때 처음 만났지만 그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크리스찬이 멸망의 도시를 떠났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서 그가 살던 도시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떠들썩한 화젯거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속세의 현인은 크리스찬의 고단한 걸음걸이와
한숨짓고 신음하는 모습을 보고 이 사람이 바로
크리스찬이라 짐작하고 그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속세의 현인 : 여보시오, 착한 양반! 무거운 짐을
진 모양인데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크리스찬 : 무거운 짐을 졌다구요? 예, 그렇죠.
참으로 가련한 신세지요. 나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저기 좁은 문까지 가는 중입니다. 거기에 가면 이
무거운 짐을 벗어던질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속세의 현인 : 아내와 자식들이 없는 모양이죠.
크리스찬 : 있어요. 그러나 나는 등에 진 짐이
너무나 무거워서 이전처럼 그들과 함께 즐겁게 지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자식이 아주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속세의 현인 : 내가 당신에게 조언을 해드린다면
당신은 내 말을 귀담아듣겠습니까?
크리스찬 : 그것이 유익한 말씀이라면 듣겠습니다.
나는 지금 훌륭한 조언이 필요하니까요.
속세의 현인 : 그렇다면 당장에 당신 스스로 그
짐을 벗어던지라고 충고해 주고 싶군요. 당신이 그
짐을 벗어버리기 전에는 결코 마음의 안정도 얻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베푸시는 축복의 은혜도
즐겁게 누릴 수 없습니다.
크리스찬 : 이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는 것이야말로
바로 내가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는
벗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내
어깨의 짐을 벗겨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 짐을 벗어버리기
위해서 지금 이 길을 가고 있는 중입니다.
속세의 현인 : 짐을 벗으려면 이 길로 가야 한다고
누가 당신에게 일러주었던가요?
크리스찬 : 아주 훌륭하고 존경할 만한 분이
일러주셨습니다. 복음전도사라는 이름으로
기억됩니다.
속세의 현인 : 그따위 충고를 해주는 그런 사람을
나는 저주하오. 그가 당신에게 가르쳐준 길보다 더
위험하고 험한 길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오. 그의
가르침대로 한다면 그 길이 얼마나 위험하고 험난한
길인지 당신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이미 어떤 곤경을 치른 것 같군요. 당신의
몸에 묻은 절망의 구렁텅이의 진흙을 보면 알 수
있지요. 하지만 그 수렁은 그 길로 가는 이들이
겪어야 할 곤경들의 시작일 뿐이요. 내 말을
명심하시오. 나는 당신보다 나이를 더 먹었으니까!
당신이 이 길을 계속 간다면 당신은 지루함, 고통,
굶주림, 위험, 헐벗음, 칼, 사자, 용, 암흑 등 다시
말하면 죽음을 비롯한 그 밖의 온갖 재난들을 다
만나게 될 것이오. 그런 재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은
그것을 겪어본 많은 사람들이 증언한 대로 틀림없는
사실이오. 무엇 때문에 처음 보는 낯선 자의 말을
그대로 믿고 자기자신을 그렇게 함부로 내던진단
말이오?
크리스찬 : 하지만 당신이 방금 말해 준 그 모든
것들보다도 내 등의 짐이 내게는 더욱 끔찍스러운
걸요. 그래요, 내가 그 짐으로부터 해방될 수만
있다면 도중에서 무엇을 만나든 나느 두려워하지 않을
겁니다.
속세의 현인 : 어떻게 하여 그런 짐을 등에 지게
되었소?
크리스찬 :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책을 읽고부터
알게 됐습니다.
속세의 현인 : 나도 그럴 것이라고 짐작했소.
자기자신의 능력과 역량에 비해 너무 고상하고 힘든
일에 쓸데없이 열중하는 모든 약한 사람들처럼 당신도
갑자기 정신착란에 빠져들고 만 것이오. 내가 보기엔
당신이 지금 그런 처지인 것 같은데, 정신착란은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그 무엇을 획득하고자 필사적으로 모험에
뛰어들게 만들기도 하지요.
크리스찬 : 나는 내가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는 것입니다.
속세의 현인 :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이런 식으로
짐을 가볍게 하려는 것이오? 눈앞에 수많은 위험이
있다는 것을 빤히 보면서 말이오. 내 말을 명심해
들어줄 용의만 있다면, 당신이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에 놓여있는 여러 가지 위험들에 빠지지 않고서도
당신이 그렇게도 열망하는 것을 획득할 수 있도록
내가 가르쳐주겠소. 물론 아주 손쉬운 일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내가 일러주는 방향으로 가면 그 숱한
위험 대신에 당신은 안전함과 우정 그리고 만족함을
얻게 될 것이오.
크리스찬 : 그래요, 제발 그 비결을 내게
가르쳐주십시오.
속세의 현인 : 좋소. 저쪽에 '도덕(Morality)'이라
부르는 마을이 하나 있는데 그 마을에
'법률존중(Legality)'이라는 이름의 신사 한 분이
살고 있소. 그는 아주 현명한 분으로서 크게 명성을
떨치고 있는데 당신처럼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이들의 짐을 벗겨주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요. 내가
알고 있기로 그 사람은 그런 일로 대단히 많은 선행을
베풀었지요. 뿐만 아니라 그에겐 등의 짐 때문에
머리가 약간 돈 사람들을 낫게 해주는 기술도
있답니다. 그러니 내가 말한 대로 그분에게 가보시오.
금방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의 집은 여기서 채
1마일도 안 떨어져 있지요. 그리고 만약 그 사람이
집에 없으면 그의 젊은 아들을 찾으시오. 그의 이름은
'공손함'인데 그도 늙은 자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
일을 할 수 있답니다. 내가 장담하건대 거기에 가면
당신은 반드시 그 짐을 벗어버릴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나도 그러기를 바라는 바인데 만약 당신이
옛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당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데려다가 그 마을에서 살 수도 있소. 마침
그 마을에는 지금 비어 있는 집들도 있고 하니 그중
한채를 적당한 값으로 사들일 수 있을 겁니다. 그곳은
식량도 싸고 맛도 있지요. 당신은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또한 틀림없이 정직한 이웃들과 함께 서로
믿고 의지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크리스찬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그는 이 신사가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충고를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신이라고 생각하여 곧 단안을 내렸다.
그는 말을 꺼냈다.
크리스찬 : 그럼, 그 정직한 분의 집으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
속세의 현인 : 저쪽 높은 언덕이 보입니까?
크리스찬 : 네, 아주 잘 보입니다.
속세의 현인 : 저 언덕 너머까지 가야 합니다. 언덕
너머 첫집이 바로 그의 집이오.
그리하여 크리스찬은 법률존중에게 도움을 받으러
가기 위해 자신의 길을 바꾸었다. 그러나 언덕 가까이
가보니 그 언덕은 너무나도 높아 보였고 길에 접한
까마득한 절벽이 금방이라도 그의 머리 위로
무너져내릴 것만 같아 크리스찬은 감히 더 앞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그만 겁에 질려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는 동안 그의 짐은 그가 자기
길을 가고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런데다 언덕으로부터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는데, 크리스찬은 그 불에 타죽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속세의 현인의 충고를 따랐던 것에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는 복음전도사가 자기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를 보자 크리스찬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복음전도사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엄하고 무서운 얼굴로 크리스찬을
쳐다보면서 따져 묻기 시작했다.
복음전도사 : 도대체 여기서 무얼 하고 있소?
이 물음에 크리스찬은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멍하니 그냥 서 있을 뿐이었다. 복음전도사는 계속
이어서 말했다.
복음전도사 : 멸망의 도시 성밖에서 울고 있던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소?
크리스찬 : 예, 그렇습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복음전도사 : 내가 당신에게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을
알려드리지 않았던가요?
크리스찬 : 예, 알려주셨습니다.
복음전도사 : 그런데 어떻게 이다지도 쉽게 결심을
바꾸고 여기 이렇게 엉뚱한 곳에 서 있는 거요?
크리스찬 : 나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한 신사를 만났습니다. 그 신사는
언덕 너머에 있는 마을에 가면 내 짐을 벗겨줄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복음전도사 : 대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소?
크리스찬 : 그는 신사처럼 보였는데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는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나도 모르게 그만 그의 말에 넘어가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언덕 가까이 와서 저 길바닥
위로 뻗쳐나온 절벽을 보자 그만 발이
붙어버렸습니다. 금방이라도 바위가 내 머리 위로
굴러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복음전도사 : 그 신사가 당신에게 뭐라고 했소?
크리스찬 : 저, 그는 내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대답해 주었습니다.
복음전도사 : 그러니까 뭐라고 말하던가요?
크리스찬 : 내게 가족이 있느냐고 묻길래 있다고
대답했죠. 그렇지만 내 등에 진 짐이 너무 무거워서
예전처럼 가족들과 즐겁게 지낼 수가 없노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전도사 : 그랬더니 그가 뭐라고 하던가요?
크리스찬 : 그는 어서 빨리 짐을 벗어버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짐을 하루빨리 벗어버리는
길을 찾고 있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해방의 장소에 도달할 수 있는가 그 인도를 받기
위해 저쪽에 있는 문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더니
그가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내게 알려주신 길보다 좀더
쉽고, 가까우며, 어려움도 없는 길을 가르쳐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길로 가면 등에 진 짐을 벗겨주는
기술을 가진 신사가 살고 있는 집으로 곧장 가게 될
거라고 말해 나는 그의 말을 믿고 가던 길을 버리고
이쪽으로 오게 됐습니다. 좀더 빨리 내 짐을
벗어버릴까 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곳까지 와서
보니 아까 말씀드린 대로 무섭고 두려워서 발길을
멈췄습니다. 그런데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복음전도사 : 그러면 잠시 그대로 서 있으시오.
내가 그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드려주겠소.
그는 떨면서 서 있었고, 복음전도사는 이어서
계속말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시는 분을 거역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거역한 사람들이 그 형벌을 피할 수 없었다면,
하늘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할 경우
어떻게 우리가 그 형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나를 믿는 올바른 사람은 확고한 신념으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만약 그의 마음이 움츠러든다면 내
영혼이 그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또 이같은 말을 덧붙였다.
"당신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권고를 거부하고
평화의 길로부터 벗어나 불행으로 향하는 길로 달려가
당신 스스로 멸망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오."
그러자 크리스찬은 죽은 듯이 그의 발 아래에
엎드려 울부짖었다.
"나는 이제 다 틀렸구나. 저주받아 마땅하도다!"
그 모습을 본 복음전도사는 그의 오른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모든 죄와 입으로
내뱉은 모든 욕설을 다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의심을
버리고 믿으십시오."
그러자 크리스찬은 가까스로 일어나 복음전도사
앞에 떨며 서 있었다.
다시 복음전도사가 말을 계속했다.
"지금부터 내가 당신에게 일러주는 말에 좀더
주의를 기울이시오. 당신을 현혹시킨 자가 누구이며,
그자를 당신에게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내
가르쳐주리다. 당신이 만났던 그 사람은 속세의
현인이라는 자인데 그렇게 불리는 것도 당연한
인물이오. 왜냐하면 그는 다만 속세의 신조와
교훈에만 집착하기 때문이요. 그래서 그는 언제나
도덕 읍내에 있는 교회에만 나가지요. 그리고 그는
그것이 십자가 없이도 자기를 구원해 준다고 생각하여
속세의 신조를 최상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세속적인 기질 때문에 내가
당신에게 알려드린 길을 그것이 바른길임에도
불구하고 방해하려고 했던 것이오. 그자의 권고
가운데 전적으로 혐오해야 할 점이 세 가지 있소.
첫째, 당신이 옳은 길을 버리도록 만든 것.
둘째, 당신에게 십자가를 가증스런 것으로 보여주려
애쓴 것.
셋째, 죽음의 권세가 기다리고 있는 길로 당신을
인도하려고 부추긴 것.
먼저 그가 당신의 길을 버리게 한 것과 당신이 그의
권고에 동의했던 것을 혐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속세의 현인이 하는 충고를 따르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권고를 거부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험해서 그 문을
찾아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 문이 바로 내가 당신에게 말한 문입니다.
그 사악한 자가 당신을 좁은 문으로 가는 길에서
여기로 오는 길로 인도함으로써 하마터면 당신은
파멸할 뻔했소. 그러니까 그가 당신의 길을 벗어나게
한 것을 증오하고, 그의 말을 귀담아들었던 당신
자신을 혐오해야 합니다.
또한 그가 당신에게 십자가를 가증스러운 것으로
보이게 한 것을 혐오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십자가를 이집트의 보물보다도 더욱 귀하게 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영광의 왕께서는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자는 바로 그 목숨을 잃을
것이라 말씀하셨고, 그리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부모와 아내, 자식과 형제, 자매, 심지어
자기자신의 생명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고.
내 말은 죽지 않고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고
진리가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길이
죽음일 뿐이라고 당신을 설득하기 위해 애쓴 그
사악한 자의 교리를 당신은 혐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가 당신을 죽음의 권세에 이르는
길로 인도한 것을 혐오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당신은 그가 당신에게 만나보라고 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봐야만 합니다. 또한 그 사람이
어째서 당신의 짐을 가볍게 해줄 수 없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당신의 짐을 가볍게 해주리라고 믿고 당신이
찾아갔던 자는 법률존중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그는 지금도 살아 있는 여자노예의 아들이오. 그녀는
지금도 그녀의 아이들과 함께 노예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지요. 지금 당신 머리 위에 떨어질까봐 겁을 먹고
있는 이 시나이 산이 바로 신의 이적에 의해 변한 그
여자노예인 것이오. 바로 그녀와 그녀의 자식들이 다
노예의 처지인데, 어떻게 그들이 당신을 자유롭게
만들어 줄 수 있겠소? 그러니까 그 법률존중이라는
사람은 당신의 짐을 벗겨줄 수가 없단 말이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의 도움으로 짐을 벗은
사람은 없었소.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있을 수가 없을
것이오. 법대로 행동한다고 해서 사람이 의로워질 수
없는 것이오. 법률의 행위로 자신의 짐을 제거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속세의 현인은
결국 문외한이고, 법률존중이라는 자는 사기꾼이며,
그의 아들 공손함 역시 겉으로는 선웃음을 치지만
위선자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그 사람들은 당신을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내 말을 믿으시오. 당신이 그
바보 같은 사람으로부터 들은 헛소리들은 모두 허황된
것일 뿐만 아니라, 내가 당신에게 알려드린 길로부터
당신을 돌아서게 함으로서 당신의 구원을 훼방하려는
음모일 뿐이오."
말을 마치자 복음전도사는 자기가 한 말을 확인해
달라고 하늘에 대고 소리 높이 외쳤다. 그러자
크리스찬이 서 있는 바로 그 산으로부터 말소리가
들리더니 불이 솟아올랐다. 그 모습을 본 크리스찬은
머리카락이 쭈뼛해지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
말소리는 이렇게 들려왔다.
"율법을 지키는 것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성서의 율법서에 있는 모든 일들을 항상
지키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이 말을 들은 크리스찬은 자기가 바로 죽음을 찾아
헤맸음을 알고 슬프게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는
속세의 현인을 만났던 때를 저주하기도 하고, 그의
말을 귀담아들은 자기자신을 바보천치라 욕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단지 육체적 욕망에서 나온 그자의
주장에 현혹되어 바른길을 버렸던 것을 생각하니 너무
부끄러웠다. 마음이 좀 가라앉자 그는 다시
복음전도사에게 매달렸다.
크리스찬 :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직
희망이 있습니까? 다시 돌아서서 좁은 문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요? 이번 실수 때문에 버림받고 결국은
부끄럽게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그 사악한 자의 권고를 따랐던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나의 죄를 용서받길 바랍니다.
그러자 복음전도사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지은 죄는 대단히 무겁습니다. 당신은 두
가지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당신은 바른 길을 버리고
금지된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좁은 문의
문지기는 당신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에게 호의를 베푸니까요. 그렇지만 앞으로는 두번
다시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한번 더
다른 길로 들어서면 당신은 그분이 진노하셔서 그
길에서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크리스찬은 되돌아갈 준비를 했다.
복음전도사는 그에게 입을 맞춘 뒤 미소를 지으며
여행길의 안전을 빌어주었다. 그는 서둘러서 게속
걸어갔다. 가는 도중에 사람을 만나도 말을 걸지
않았고, 누가 말을 걸어와도 결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금지된 땅을 밟는 사람처럼
걸어갔다. 속세의 현인이 한 말에 현혹되어 벗어났던
바로 그 길에 이를 때까지는 결코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얼마 후 크리스찬은
좁은 문에 다다랐는데, 문 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 있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서너 번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에 들어가도 될까요?
비록 내가 자격을 잃은 반역자였지만
안에 계신 분이 나를 불쌍히 여겨
문을 열어주신다면,
그렇게 해주신다면 그를 영원히
소리 높여 찬양하리다."
마침내 근엄한 사람이 문가에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선의(Good Will)'였다. 그는 거기 온 사람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크리스찬 : 여기에 가련한 짐을 진 죄인이
왔습니다. 나는 멸망의 도시로부터 왔으며, 장차
닥쳐올 천벌로부터 구원을 받으려고 시온 산을 향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시온 산에 가려면 이 문을
거쳐야 한다고 들었는데, 선생님께서 나를 기꺼이
문안으로 들여보내 줄 수 있을는지요?
선의 :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문을 열었다.(예수
그리스도가 그를 기독교인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예수님 자신이 그 문이므로 여기서 선의는 신의
은총을 상징하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크리스찬이 문턱에 한발 들여놓자 상대편에서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왜 이러는 거죠?"
선의가 대답했다.
"이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견고한 성이 하나 서
있는데 그 성의 성주가 비엘지법이오(구약성경의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 흔히 후의
문학작품에서는 말로와와 밀턴에서처럼 사탄의
대리인으로서 그려지는데 여기서는 악마의
지도자이다). 거기에서 그와 그의 부하들이 이 문에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활을 쏘아대지요. 문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죽여버릴 수 있을까 해서 말입니다."
그러자 크리스찬이 말했다.
"기쁘기도 하지만 무섭고 떨리는군요."
그가 문안으로 완전히 들어서자 문지기가 그에게
물었다.
"누가 당신을 이리로 인도해 주었습니까?"
크리스찬 : 복음전도사가 이리로 와서 문을
두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킨 대로 했습니다.
그가 말하길 선생님께서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의 : 당신 앞에 문은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 문을 닫지는 못할 것입니다.
크리스찬 : 그럼, 이제 위험을 무릅쓰고 온 결과 그
열매를 거두기 시작한 것이군요.
선의 : 그런데 어째서 혼자 오셨습니까?
크리스찬 : 내 이웃사람들 가운데는 내가 내 위험을
본 것처럼 그렇게 자신의 위험을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선의 : 당신이 오는 것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크리스찬 : 예, 처음에는 내 아내와 자식들이 내가
떠나는 것을 보았죠. 그들은 돌아오라고 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몇몇 이웃사람들도 돌아오라고
울부짖으며 서 있었어요. 그러나 나는 손으로 귀를
막고 나의 길을 온 것입니다.
선의 : 그래, 뒤따라와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하는 사람들도 없었습니까?
크리스찬 : 있었어요. 고집불통과 온순함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고집불통은 나를 조롱하면서 돌아갔고,
온순함은 한참 동안 나를 따라왔습니다.
선의 : 그런데 온순함은 왜 여기까지 오지 않았죠?
크리스찬 : 절망의 구렁텅이에 이를 때까지는 둘이
함께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갑자기 그 수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온순함은 그만 용기를
잃고 더 이상 모험을 하려 하지 않았어요. 가까스로
자기집쪽으로 기어올라간 그는 영광의 나라는 나
혼자서나 차지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길을 갔고, 나는 내 길을 왔습니다. 그는 결국
고집불통을 쫓아갔고 나는 이 문을 향해 온 것입니다.
선의 : 참으로 가련한 사람이군요. 천국의 영광이
그 사람에겐 그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난관을
겪기 싫어 포기해야 할 만큼 그렇게 보잘것없단
말입니까?
크리스찬 : 사실 내가 온순함의 행동을 그대로
일러바친 꼴이 됐지만, 나도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그가 자기집으로 돌아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도 또한 거기에서 속세의
현인의 꾐에 넘어가서 바른길을 버리고 죽음의 길로
한참 동안 갔었습니다.
선의 : 오, 그가 당신도 유혹했군요. 그자가
당신에게 법률존중이라는 자를 찾아가 그의 힘으로
짐을 가볍게 하라고 일렀겠군요. 그들은 둘 다 대단한
사기꾼들입니다. 그래, 당신도 그의 꾐에
넘어갔었습니까?
크리스찬 : 예, 그의 꾐에 빠져서 법률존중을
찾아가는 길로 한참을 갔었죠. 그런데 그의 집 곁에
서 있는 산이 내 머리 위로 무너져내릴 것만 같아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었습니다.
선의 : 그 산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이 죽게 될 것입니다. 몸이
산산조각나기 전에 피하게 돼 다행입니다.
크리스찬 : 예, 그렇습니다. 사실 기가 질려 어쩔
줄 몰라할 때 복음전도사를 다시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 그가 내게로 다시 온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그분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결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여기 와 있습니다. 여기 이렇게
서서 나의 주님과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그 산에서
죽음을 당했어야 마땅할 내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을 들어설 수 있도록 허락받다니 이
무슨 은혜입니까?
선의 : 우리는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여기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을 했든 그것을 문제삼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세상에 던져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착한 크리스찬이여, 나와 함께 좀 가볼 데가
있습니다. 당신이 가야 할 일을 가르쳐드리겠소.
그대의 앞을 보시오. 저 좁은 길이 보입니까? 저 길이
당신이 가야 할 길이오. 그 길은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예언자들,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닦은 길인데,
자를 대고 줄을 긋듯 똑바로 나 있습니다. 이 길이
당신이 가야 할 길입니다.
크리스찬 : 그런데 처음 가는 나그네가 길을
잃어버릴 그런 샛길이나 돌아가는 길은 없는지요?
선의 : 물론 갈림길은 많이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구부러져 있고 넓습니다. 하지만 옳은 길과 그른 길은
구별할 수가 있습니다. 옳은 길은 곧고 좁습니다.
그때 내가 꿈속에서 보니까 크리스찬은 선의에게
자기의 등에 있는 무거운 짐을 벗겨줄 수 없겠느냐고
묻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그 짐을 벗어버리지 못했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는 도저히 그것을 벗어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선의가 대답했다.
"짐에 대해서라면 구원의 장소에 이를때까지 그대로
등에 진 채 견뎌내야만 합니다. 거기에 도달하면 짐은
저절로 당신의 등에서 떨어져나갈 것입니다."
그러자 크리스찬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길 떠날
채비를 차렸다. 선의가 그에게 말했다.
"여기 이 문에서 조금만 더 가면
'통역관(Interpreter)'이라는 사람의 집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 집의 문을 두드리시오. 그러면 그가
여러가지 놀라운 일들을 당신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크리스찬이 선의에게 작별인사를 하자 그도
여행길의 안전을 빌어주었다.
크리스찬은 부지런히 걸어 마침내 통역관의 집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다. 여러 차례 문을 두드리고
나서야 어떤 사람이 문앞에 나타나서는 누구냐고
물었다.
크리스찬 : 예, 나는 한 나그네이옵니다. 이 집의
주인과 잘 아는 사람이 이곳으로 오면 내게 유익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기에 찾아왔습니다. 이 댁의
주인을 만나뵈었으면 합니다.
그가 집주인을 부르러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주인이 크리스찬에게 와서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느냐고 물었다.
크리스찬 : 예, 나는 멸망의 도시를 떠나 시온 산을
향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길 어귀에 있는
문지기가 내게 일러주기를, 여기서 선생님을 만나면
선생님께서 여러 가지 놀라운 일들을 보여줄 것이며
그것들은 내가 여행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통역관이 말했다.
통역관 : 그래요, 그럼 들어오시오. 당신에게
유익한 것들이 어느 것인지 보여주겠소.
그는 자기 하인에게 촛불을 밝히라고 말한 뒤에
크리스찬에게 따라오라고 하더니 내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가 하인에게 문을 열라고 했다.
하인이 문을 열자 크리스찬은 맞은 편 벽에 매우
근엄한 인물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하늘을 향해 눈을 치켜 뜨고 손에는 가장 훌륭한 책을
들고 있었다. 그의 입술에는 진리의 법이 씌어져
있었고, 그의 뒤로는 온 세상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머리에는 황금왕관을 쓰고 무엇인가 인간에게
탄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크리스찬이 말했다.
크리스찬 : 이 그림은 무엇을 뜻합니까?
통역관 :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천 명에 한 명
있을까말까한 인물이지요. 그는 아이들을 출산할 수
있어 해산의 진통을 겪고 낳은 아이들에게 친히 젖을
먹여 기릅니다.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그의 눈은
하늘을 향해 치켜 뜨고 있고, 손에는 가장 훌륭한
책을 들고 있으며, 입술에는 진리의 법이 씌어져
있는데, 그것은 인간들의 어두운 면을 미리 알아
죄인들에게 그 진상을 밝혀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오. 보세요, 저렇게 인간들에게 무언가 탄원하는
듯 서 있지 않소? 그리고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온
세상 그의 뒤에 그려져 있고 그의 머리에는
황금왕관을 쓰고 있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가볍게 여기고 경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주님에게 봉사하겠다는
사랑을 가지고 있어서 이 다음에 올 세상에서는
주님의 보답으로 영광을 받으리라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오. 내가 당신에게 이 그림을 맨 먼저 보여준
이유는 바로 이 사람이 당신이 찾아가고 있는 곳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앞으로 당신이 길을 가다
어려움을 만나게 될 때 안내자로서 임명하신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오. 그러니 내가 보여준 것을
마음속에 꼭 간직하도록 하시오. 왜냐하면 앞으로
여행하는 도중에 당신을 바른 길로 인도하겠다고
하면서 실은 죽음으로 안내하는 자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 말이오.
그런 다음 통역관은 크리스찬의 손을 잡고 이제까지
한 번도 청소하지 않아 먼지가 가득 쌓인 넓은
대청으로 그를 데리고 들어갔다. 실내를 잠시 살펴본
통역관은 하인을 불러 청소하게 했다. 하인이 청소를
하자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 크리스찬은 질식할
지경이었다. 그러자 통역관이 곁에 서 있던 한
처녀에게 말했다.
"물을 길어다 방에 뿌려라."
처녀가 시키는 대로 방에 물을 뿌리자 방이
깨끗해졌다.
그러자 크리스찬이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겁니까?"
통역관이 대답했다.
"이 대청은 복음의 달콤한 은총으로 결코 청결해진
적이 없는 한 인간의 마음이오. 먼지는 그의 원죄이고
모든 인간을 더럽힌 내부의 부패입니다. 먼저 청소를
한 자는 율법이오. 그리고 물을 가져다 뿌린 처녀가
곧 복음이지요. 당신도 보아서 알겠지만 첫번째 사람,
즉 율법이 청소를 시작했을 때는 먼지가 방안 가득
날아다니는 바람에 방을 깨끗이 치울 수가 없었소.
그리고 당신은 그 먼지 때문에 거의 질식할 뻔했소.
이것은 율법이 사람의 마음을 그 작업을 통해서
죄로부터 깨끗하게 해주는 대신에 오히려 영혼 속의
죄를 소생시키고 기운을 북돋워주고 증가시켜 줄
따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오. 그것은 율법이
죄를 찾아내고 그것을 금지시키기는 하지만 근절시킬
힘은 없기 때문이오.
그런데 당신도 보았듯이 처녀가 방에 물을 뿌리자
방은 아주 깨끗해졌소. 이것은 복음이 인간의
마음속으로 달콤하고 귀중한 영향력을 가지고
찾아오면, 처녀가 방바닥에 물을 뿌리기만 해도
먼지가 가라앉는 것을 당신이 봤던 것처럼, 그 복음을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이 지은 죄는 정복되고 뿌리
뽑혀지며, 그리고 영혼은 깨끗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광의 왕과 함께 거주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또한 나는 꿈속에서 다음과 같은 장면도 보았다.
통역관이 크리스찬의 손을 잡고 한 작은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는데, 그 방에는 두 명의 어린아이가
각기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그들 중 나이가 많은
아이의 이름은 '정열(Passion)'이었고, 또 다른
아이의 이름은 '참을성(Patience)'이었다. 정열은
뭔가 큰 불만이 있는 것 같아 보였으나 참을성은 아주
조용히 있었다. 크리스찬이 물었다.
"정열이 왜 불만스러워하는 표정을 하고 있습니까?"
통역관이 대답했다.
"그들의 아버지가 가장 좋은 것을 선물할테니
다음해가 시작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소. 그런데
정열이는 그것을 당장 달라는 겁니다. 하지만
참을성은 기꺼이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때 나는 어떤 사람이 정열이에게 와서 가져온
보물가방을 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을 그의 발에
쏟아놓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정열이는 그것들을
집어들고 기뻐하면서 참을성을 비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보고 있는 잠시 동안 그 보물들을 모두
낭비하고는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그러자
크리스찬이 통역관에게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통역관이 그것을 설명했다.
"이 두 아이들은 상징적인 인물들이오. 정열이는 이
세상의 인간을 나타내고, 참을성은 장차 다가올
세상의 인간을 의미하지요. 당신이 본 것처럼
정열이는 지금 당장, 올해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사람들도 모든
좋은 것들은 지금 당장 갖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다음해까지, 즉 다음에 올 세상에서 받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손에 잡은 한
마리의 새가 숲에 있는 두 마리의 새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속담이 앞으로 다가올 세상의 선에 대한
모든 신성한 증거보다 더욱 권위가 있지요. 그러나
당신이 본 것처럼 정열이는 모든 보물을 순식간에
날려버렸고, 결국 누더기 외에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정열이와 같은 그런 사람들은 이 세상이
끝나는 날 모두 같은 처지가 될 것입니다."
그러자 크리스찬이 말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참을성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됐습니다.
첫째, 그는 가장 좋은 것들을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다른 사람이 단지 누더기만 걸치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영광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통역관 : 아니오. 한 가지 더 덧붙여야 합니다. 즉
앞으로 다가올 세상의 영광은 결코 닳아 없어지지
않지만 이 세상의 것들은 갑자기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을 먼저 가졌다고 정열이가 참을성을
비웃을 까닭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참을성이
가장 좋은 것을 나중에 가졌기 때문에 정열이를
비웃어야 하지요. 첫번째 사람은 마지막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사람이
언젠가 때가 되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사람은 어느 누구에게도 자리를 내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뒤따라올 다른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몫을 처음에 받는 사람은 반드시
그것을 낭비할 시간이 있게 마련이지만, 마지막에
자기의 몫을 받는 사람은 그것을 영원히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에 대해 이런 말이 있지요.
"너는 살아 있을 동안에 온갖 좋은 것을 마음껏
누렸지만 나자로는 온갖 불행을 다 겪지 않았느냐?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에서 위안을 받고 있고 너는
거기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크리스찬이 말했다.
크리스찬 : 그러니까 현세의 안락을 탐내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장차 다가올 것을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이제 알겠습니다.
통역관 : 당신 말이 옳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옳기는 하지만 현세의 안락과 우리의
육욕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반면 앞으로
다가올 것들과 세속적인 감정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은 현세적인 것과는 금방 가까워질
수 있지만 앞으로 다가올 것과는 계속 거리가 있게
됩니다.
그 때 나는 통역관이 크리스찬의 손을 잡고 다른
방으로 데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 방에는 한쪽 벽을
향해 불이 타오르고 있었는데 그 곁에 서 있는 어떤
사람이 불을 끄기 위해 계속해서 물을 퍼붓고 있었다.
그러나 불길은 더욱 세차고 뜨겁게 타올랐다.
크리스찬이 물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통역관이 대답했다.
"이 불은 인간의 마음에 작용하는 은총을
의미합니다. 그 불을 끄려고 물을 퍼붓고 있는 자는
악마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본 것처럼 불은 여전히
활활 뜨겁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이유를 곧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 통역관은 그를 데리고 벽
뒤로 돌아갔다. 벽 뒤에는 기름통을 손에 든 어떤
사람이 계속해서 은밀히 기름을 퍼붓고 있었다.
크리스찬이 물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통역관이 대답했다.
"이분은 그리스도이신데 이미 인간의 마음속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은총의 기름으로 계속
보충해 주고 계시는 겁니다. 그 때문에 악마가 아무리
그 은총을 없애버리려 애를 써도 백성들의 영혼은
여전히 자비로울 수 잇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본
대로 불을 보존해 주시는 분은 벽 뒤에 숨어 계신데,
그것은 시험받는 자는 어떻게 은총의 역사가 사람의
영혼 속에서 끊임없이 작용하는가 그 이유를 알기
힘들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이오."
나는 또한 꿈속에서 통역관이 다시 크리스찬의 손을
잡고 어떤 쾌적한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는 웅장한 궁전이 서 있었는데 보기에 매우
아름다웠다. 그 궁전을 보자 크리스찬은 아주
즐거워했다. 그는 궁전의 지붕 위에서 온통 황금으로
된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는 것을 보았다.
크리스찬이 물었다.
"우리도 저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러자 통역관이 크리스찬의 손을 잡아 궁전의
대문을 향해 이끌었다. 궁전의 문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들어가고 싶어하면서도 감히
들어가는 자가 없었다. 대문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책상이 하나 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사람이 한 명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책상위에댜 책 한 권과
잉크통을 앞에 놓고 궁전 안으로 들어갈 자의 이름을
적고 있었다. 또한 크리스찬은 무장한 병사들이
궁전을 지키기 위해서 문간에 서 있는 것도 보았다.
그들은 문안으로 들어가려는 자에게 치명상을 입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크리스찬은
당혹스러웠다. 모든 사람들이 무장한 병사들이
무서워서 뒤로 물러섰다. 그때 한 사람이 단단히
결심한 듯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내 이름을 적어주시오."
이름이 적히자 그 사람은 자신의 칼을 빼들고,
머리에 투구를 쓰고는 문간에 서 있는 무장한
병사들에게 덤벼들었다. 그러자 무장한 병사들은 죽을
힘을 다해 그를 막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용감무쌍하게 칼로 자르고 찔렀다.
마침내 그는 자신도 부상은 입었지만 자기를 못
들어가게 하려던 그들에게 많은 상처를 입힌 뒤
그들을 뚫고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궁전 안에
있던 사람들과 궁전 지붕위를 거닐고 있던 사람들이
즐거운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시오, 들어오시오.
영원한 영광을 그대 얻으리.
궁전 안으로 들어간 그는 그 안에 있는 자들이 입은
것과 똑같은 황금 옷을 입었다. 그때 크리스찬이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이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크리스찬이 덧붙여 말했다.
"나도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안 됩니다."
통역관이 말했다.
"당신에게 좀 더 보여줄 게 있으니 그때까지
기다리시오. 그러고 나서 당신을 당신의 길로
보내드리겠소."
그리하여 그는 다시 크리스찬의 손을 잡고 캄캄한
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그 방에는 쇠창살 안에 갇힌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대단히 슬퍼보였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방바닥을 내려다보면서 가슴이 터질 듯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크리스찬이 물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러자 통역관은 쇠창살 안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크리스찬이 그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죠?"
그 사람이 대답했다.
"전에는 이런 몰골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돼버린
사람이오."
크리스찬 :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소?
그 사람 : 전에는 자타가 인정하는 아주 훌륭하고
화려한 신자였소. 나는 한때 하늘나라에 이를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고 또 하늘나라에 가게 되리라는
생각에 기쁨이 충만했었소.
크리스찬 :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됐습니까?
그 사람 : 나는 지금 절망에 빠진 인간이 되어 이
쇠창살로 된 감방에 갇혀있소. 나는 나갈 수가 없소.
오, 나는 지금 나갈 수가 없단 말이오.
크리스찬 :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됐습니까?
그 사람 : 나는 경계하고 절제하는 일을
게을리했소. 욕망에 눈이 어두워 스스로 쇠사슬에
묶인 꼴이오.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말씀의 빛에
대항하는 죄를 지었소. 나는 성령을 슬프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은 내 곁을 떠났습니다. 성령이 내게서
떠나자 나는 악마를 유혹했지요. 악마가 내게로
왔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진노케 했고, 그분은 내게서
떠나셨습니다. 내 마음이 너무나도 굳어져서 이젠
회개할 수도 없게 됐습니다.
그러자 크리스찬이 통역관에게 말했다.
"그러면 이런 사람에게는 전혀 희망이 없습니까?"
"그에게 직접 물어보시오."
크리스찬이 다시 그 사람에게 물었다.
"이젠 아무 희망도 없이 당신은 그저 이 절망의
쇠창살 안에 갇혀 있어야만 합니까?"
그 사람 : 없습니다. 희망이란 전혀 없습니다.
크리스찬 : 어째서요? 하나님의 아들은 매우
자비로우신데요.
그 사람 : 나는 내 손으로 다시 한 번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나는 그분의 인격을
모독했고, 그분의 의로우심을 경멸했으며, 그분의
피를 속되게 만들었고, 그리고 성령을 모욕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언약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내게는 무서운 협박과
피할 수 없는 심판, 맹렬한 분개만이 남게 됐습니다.
그것들은 악마처럼 나를 삼켜버릴 것입니다.
크리스찬 : 도대체 무슨 일을 범했기에 자신을 이런
처지가 되게 만들었습니까?
그 사람 : 욕망과 쾌락과 이 세상의 안락함
때문이오. 그런 것들을 즐길 때는 나 자신이 대단히
즐겁다고 생각했소.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독충처럼 나를 물고 뜯고 하고 있소.
크리스찬 : 하지만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 : 하나님이 나의 회개를 거절하셨소. 나는
그분의 말씀을 믿을만한 용기도 없어졌소. 그렇소.
그분 자신이 나를 이 쇠창살 안에 가두셨소. 이
세상에 나를 꺼내줄 사람은 아무도 없소. 오,
영원함이여! 영원함이여! 영원히 맞서야 할 이
비참함과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그때 통역관이 크리스찬에게 말했다.
"이 사람의 비참한 신세를 꼭 기억하시오. 그리고
항상 조심하시오."
크리스찬 : 너무나도 무서운 일입니다. 내가 이
사람과 같은 비참한 일을 겪지 않도록 내가 항상
조심하고 깨어 있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선생님, 이젠 내가 가야 할 길을 갈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통역관 : 한 가지 더 보여드릴 게 있으니 잠깐만
기다리시오. 그리고나서 당신의 길을 가게
해드리겠소.
그리하여 통역관은 다시 크리스찬의 손을 잡고 어떤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때 어떤 사람이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입으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크리스찬이 물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떨고 있는 겁니까?"
그러자 이번에는 통역관이 그 사람에게 떠는 이유를
크리스찬에게 설명하라고 했다. 그는 말하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이
점점 시커멓게 되더니 천둥과 번개가 무섭게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자 나는 겁이 더럭 났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니 구름들이 매우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구름 위에서 요란한
나팔소리가 들리더니 수천 명의 하늘 군사들에게
호위를 받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화염 속에 휩싸여 있었고, 하늘 전체가 타오르는 불꽃
위에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일어나라 너희 죽은 자들아. 일어나서 심판을
받으라.'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바위들이 갈라지고 무덤들이
열리면서 그 안에 파묻혀 있던 죽은 자들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기뻐 날뛰며
하늘을 쳐다보는데, 어떤 이들은 산 아래로 자기 몸을
숨기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때 나는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분이 책을 펴고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무서운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그들
사이에는 마치 법정에서의 재판관과 죄수
사이만큼이나 상당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분이 시중 드는 자들에게 명령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라지와 쭉정이, 검불은 모두 거두어서 불타는
연못에 던져라.'
그 소리와 함께 내가 서 있는 바로 곁에서 밑바닥이
없는 지옥이 열리더니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무시무시한 연기와 불꽃이 치솟아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같은 무리들에게 이런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나의 곡식을 모아 창고에 쌓아라.'
그 소리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올려져 구름
속으로 사라졌는데 나는 홀로 남겨졌습니다. 몸을
숨기려고 했으나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분이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지은 죄들이 머리 속에
떠올랐고 나의 양심이 사방에서 나를 꾸짖었습니다.
그러다가 잠이 깨었습니다."
크리스찬 : 그런데 그 광경이 뭐가 그리
무섭습니까?
그 사람 : 무서웠지요. 심판의 날은 다가왔는데
나는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겁니다. 나를
더욱 무섭게 만든 것은 천사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올리면서 나만 남겨두었고, 게다가 지옥의
구덩이가 바로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열렸던 것입니다.
내 양심 또한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재판관은
내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분개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때 통역관이 크리스찬에게 말햇다.
"이 모든 것들을 신중히 생각해 보았소?"
크리스찬 : 예, 그 모든 것들은 나를 희망과 두려움
속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통역관 : 좋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시오. 그것들이 당신에게 자극제가 되어 당신이
가야 할 길을 가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크리스찬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신의 여행을
계속할 준비를 했다. 그때 통역관이 말했다.
"선한 크리스찬이여, '위안자(Comforter)'가 항상
당신과 함께 하면서 거룩한 도시에 이르는 길로
당신을 인도할 것이오."
그리하여 크리스찬은 자신의 길을 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나는 희귀하고도 유익한 것들을 많이
보았네.
그 유쾌한 것들과 두려운 것들은 나로 하여금,
내 이미 시작한 일에 든든히 서게 하였네.
내가 본 일들을 항상 생각하고
그것들이 내게 일러준 바가 무엇이었나를 이해하고,
그리고 오, 선한 통역관이여 그대에게
감사드리나이다.
나는 꿈속에서 크리스찬이 올라가고 있는 곧은 길
양쪽에 담이 둘러쳐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담의
이름은 구원이라고 했다. 등에 짐을 진 크리스찬이 이
길을 따라 달려가고 있었는데 짐의 무게 때문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는 계속 달려서 약간 언덕진 곳에 다다랐다. 그
언덕 위에는 십자가가 하나 서 있었고, 조금 아래
기슭에는 무덤이 하나 있었다. 크리스찬이 막 십자가
있는 곳에 다다랐을 때, 그의 짐이 어깨에서 스르르
벗겨지더니 그의 등에서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그 짐은 계속 무덤의 벌려진 입까지
굴러가더니 그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 짐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몸이 가벼워진 크리스찬은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그분은 자신의 고통으로 내게 휴식을 주셨고,
자신의 죽음으로 생명을 주셨도다."
그는 잠시동안 우두커니 서서 신기한 듯
두리번거렸다. 십자가를 보자마자 등에 진 짐이
저절로 벗겨진 사실이 그에게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이리저리 살펴보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려 그의 뺨을 적셨다.
그가 그러고 있을 때, 몸에서 번쩍번쩍 빛이 나는 세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서 축복해 주었다.
"그대에게 평화가 있기를!"
그 첫번째 사람이 크리스찬에게 말했다.
"그대는 그대의 죄를 용서받았소."
두번째 사람은 그가 입고 있던 누더기옷을 벗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주었다. 세번째 사람은 그의
이마에 표시를 해주면서 도장이 찍힌 두루마리 하나를
그에게 주었다. 그러고 나서 길을 가면서 그
두루마리를 들여다보고 천국의 문에 다다르면 그것을
제시해야 한다고 일러준 뒤에 세 사람은 사라졌다.
크리스찬은 너무 기뻐서 세 번을 껑충껑충 뛰더니
노래를 부르며 길을 걸었다.
지금까지 나는 죄의 짐을 지고 다녔네.
내가 이곳에 오기까지
그 고통을 덜지 못했으니
이곳이야말로 얼마나 좋은 곳이냐! :
여기서부터 내 축복이 시작되는가?
여기서부터 내 짐은 벗겨지는가?
여기서부터 날 묶었던 사슬은 풀어지는가?
복되도다 십자가여! 복되도다 무덤이여!
복되도다, 나를 위해 치욕을 당한 분이여!
크리스찬은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서 언덕 아래
골짜기에 다다랐는데, 거기에서 그는 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발목에다 족쇄를 차고 깊이 잠들어 있는
세 사람을 발견했다. 그들의 이름은 '바보(Simple:
단순한 사람)',
'게으름뱅이(Sloth)','철면피(Presumption)'였다.
그들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크리스찬은 혹시
그들을 깨울 수 있을까 해서 그들에게 다가가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은 돛대 꼭대기에서 잠자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이는군요. 죽음의 바다, 밑바닥 없는 심연이 당신들
바로 아래에 있으니 말이오. 잠에서 깨어나시오.
그리고 이리로 오시오. 원한다면 내가 그 족쇄를
풀어드리겠소."
크리스찬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말했다.
"포효하는 사자처럼 어슬렁거리는 자가 당신들 곁에
오게 되면 당신들은 틀림없이 그의 밥이 되고 말
것이오."
그 말을 듣고 세 사람은 그를 쳐다보며 제각기
한마디씩 했다.
바보가 말했다.
"난 아무런 위험도 느끼지 않고 있소."
게으름뱅이가 말했다.
"조금 더 잠을 잡시다."
철면피가 말했다.
"모든 물통은 밑바닥을 아래로 하고 서 있게
마련이오. 당신에게 그 이상 무슨 대답을 해주겠소?"
그리고 그들은 쓰러져 계속 잠을 잤고, 크리스찬은
자신의 길을 갔다.
크리스찬은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그들을 잠에서
깨워주고, 충고도 해주고, 그리고 족쇄까지
풀어주겠다는 자신의 호의를 위험에 처한 그들이
그토록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그런 생각에 심사가 뒤틀려 길을 가고
있을 때, 그는 좁은 길의 왼쪽담을 뛰어넘어 걸어오는
두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크리스찬에게 다가왔다. 한
사람의 이름은 '형식주의자(Formalist)'였고, 다른 한
사람은 '위선자(Hypocrisy)'였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크리스찬이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크리스찬 : 여보시오. 두 분은 어디서 오는 길이며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형식주의자와 위선자 : 우리는
'허영심(Vainglory)'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는데 신을
찬양하기 위해 시온 산으로 가는 길이오.
크리스찬 : 당신들은 왜 길 어귀에 있는 문을
통해서 들어오지 않았소? 당신들은 '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담을 넘어오는 자는 도둑이나 강도이니라.'라고
기록돼 있는 것도 모르시오.
형식주의자와 위선자 : 우리 마을 사람들은 문까지
가서 들어오는 것은 너무 멀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들이 했던 것처럼 보통 담을
넘어 들어오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크리스찬 : 그렇지만 그런 행동은 지금 우리가
향하고 있는 그 도시의 주인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그분이 밝히신 뜻을 거역하는 일이잖습니까?
형식주의자와 위선자 : 그런 일 때문에 당신이
골치아파할 필요는 없소. 그런 일은 벌써 일반화된
관습이니까요. 필요하다면 그런 관습이 이미 천년 그
이상 전에도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줄 수도 있소.
크리스찬 : 당신들의 그런 행동이 법정에서도 옳은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형식주의자와 위선자 : 그런 관습은 천년 이상
동안이나 있어 왔으므로 공정한 재판관이라면 어느
누구든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게다가 우리가 일단 이 길에 들어선 이상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가가 무슨 상관이 있겠소?
들어온 건 들어온 것이니까요. 추측컨대 당신은 문을
통해서 이 길로 들어섰을 뿐이고, 우리는 담을
뛰어넘어 이 길로 들어섰을 뿐이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신의 행동이 우리보다 더 나은 게 뭐가 있소?
크리스찬 : 나는 내 주님의 법칙에 따라 행동했고,
당신들은 당신들 멋대로 행동했기 때문이오. 당신들은
이미 이 길의 주인으로부터 도둑으로 규정되었소.
그러므로 이 길의 목적지에 다다르게 되면 당신들은
진실한 사람들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오. 당신들은
그분의 인도 없이 당신들 마음대로 이 길로
들어왔으며, 또한 그분의 은총없이 당신들 마음대로
이 길을 벗어나게 될 것이오.
이 말을 들은 그들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크리스찬에게 자기 일이나 걱정하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서로 별 말이 없이 각자 자신들의 길을
갔다. 단지 그들 두 사람은 크리스찬에게 율법이나
명령에 관해서는 자기들도 크리스찬 못지않게
의심없이 따르고 있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우리가 보기에는 창피하지 않게 알몸을 가리라고
이웃사람들이 당신에게 준 것 같은 그 코트를 걸친 것
말고는 당신과 우리는 별다른 차이점이 없는 것
같소."
크리스찬 : 문을 통해 들어오지 않은 이상 당신들은
율법이나 명령에 의해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오. 내
등에 걸친 이 코트만해도 내가 지금 가고 있는 바로
그곳의 주인께서 주신 것이오. 당신들 말대로 내
알몸을 가리기 위한 것이지요. 나는 이 코트를 그분이
내게 친절을 베풀어주는 표시로서 받았소. 전에는
누더기옷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이 코트는
길을 걷는 내게 큰 위안이 되지요. 정말이지 나는
내가 그 도시의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주님께서 손수
누더기옷을 벗기고 내게 입혀주셨던 바로 그 코트를
입고 있는 나를 보시고 대번에 알아보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게다가 당신들은 알아차리지 못했을
테지만 내 이마에는 표시가 찍혀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등에서 짐이 벗겨지던 날 주님의 가장 가까운
분들 중에서 한 분이 이마에 찍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당신들에게 알려줄 것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내가 길을 가면서 읽으면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도장이 찍힌 두루마리를 하나 받았습니다.
천국의 문에 이르러, 내가 틀림없이 좁은 문을 통해
천국에 이르는 길을 따라왔다는 증거로 그것을
제시하면 문안으로 나를 들여보내 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당신들은 문을 통해서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말에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서로
쳐다보며 웃기만 했다. 그들 셋은 계속해서 길을
걸었다. 크리스찬은 두 사람보다 조금 앞서서 때로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또 때로는 위로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또한 그는 반짝이는
빛을 내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 그에게 준 두루마리를
가끔 읽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기운이 솟아났다.
그들은 계속 걸어 어느 언덕의 기슭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부터는 좁은
문으로 곧장 뻗은 길 외에도 다른 길이 두 개나 더
있었다. 하나는 언덕 밑에서부터 왼쪽으로 꺾어져
있었고, 다른 하나는 오른쪽으로 꺾어져 있었다.
그러나 좁은 길은 곧장 언덕 꼭대기로 뻗어 있었다.
그 언덕 꼭대기로 뻗은 길의 이름은
'고생길(Difficulty)'이라고 했다. 크리스찬은 우물로
가서 기운을 돋우기 위해 물을 마셨다. 그러고는 노래
부르며 고생길로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언덕에 제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나 간절한 마음으로 오른다네.
생명으로 이르는 길이 바로 여기 있음을
내가 알고 있으니,
제아무리 험하더라도 나 괴롭지 않으리.
자, 용기를 내어
나약한 마음과 두려움 모두 떨쳐버리고
아무리 험난해도 바른길 가는 것이
손쉬운 그른 길 가는 것보다 낫다네.
그런 길은 재앙으로 이른다네.
다른 두 사람도 그 언덕 아래에 도착했다. 그들이
보기에 그 언덕은 너무 높고 가파른 데다가 다른 길이
두 개나 더 있었다. 다른 두 길도 크리스찬이 올라간
길과 언덕 너머 위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그 두 길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 두 길은 하나는 '위험한 길(Danger)'이었고, 다른
하나는 '파멸의 길(Destruction)'이었다. 그래서
위험한 길로 접어든 사람은 울창한 산림을 만났고,
파멸의 길로 곧장 들어선 사람은 암흑의 산들이
겹겹이 뻗어 있는 넓은 들판을 만나 거기서
비틀거리고 쓰러지고 헤매다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때 나는 크리스찬이 언덕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기 위해 눈을 돌렸다. 그 길이 너무 가파랐기
때문에 크리스찬은 뛰어가다 걸어가기도 하고, 또
걸어가다가는 두 손과 양쪽 무릎으로 기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꼭대기에 오르는 길의 중턱쯤에 아담한
정자가 하나 있었다. 그 언덕의 주인이 피곤에 지친
여행자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크리스찬도 거기에 도착해 앉아서 쉬었다. 그는
마음의 위안을 삼기 위해 가슴에서 두루마리를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십자가 곁에 서 있을 때
얻어 입은 외투자락을 새삼스럽게 쓰다듬었다. 이렇게
잠시 스스로 위안을 하다가 졸음을 참지 못하고 곧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하여 그는 밤이 될 때까지
그곳에 머무르게 되었고, 잠을 자다가 손에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떨어뜨렸다. 잠에 빠진 크리스찬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서 그를 잠에서 깨우면서 말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이 소리에 잠이 깬 크리스찬은 벌떡 일어나 서둘러
길을 재촉하여 언덕 꼭대기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크리스찬이 언덕 꼭대기에 이르자 두 사람이 그를
향해 황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한 사람의 이름은
'겁쟁이(Timorous)'였고,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은
'불신(Distrust)'이었다. 크리스찬이 그들에게
물었다.
"선생들, 길을 거꾸로 뛰어오다니 무슨 일이
있습니까?"
겁쟁이가 대답했다.
"우리들은 시온 성으로 가려고 이 험난한 길을
올라왔었소. 그러나 가면 갈수록 더 심한 위험에
처하게 되었소. 그래서 이렇게 오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오."
불신이 덧붙였다.
"그렇소. 길을 가는데 우리들 바로 앞에 한 쌍의
사자가 누워 있었소. 그것들이 잠들어 있었는지 깨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우리가 가까이 가기만
하면 틀림없이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만
같았소."
그러자 크리스찬이 말했다.
"당신들 말을 들으니 나도 무서워지는군요. 하지만
이제 어디로 도망쳐야 안전하겠습니까? 만약 내가
고향으로 되돌아간다면 그곳은 불과 유황으로 멸망될
곳이므로 불에 타서 죽게 될 것이오. 만약 내가
천국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그곳에서는 틀림없이
안전하게 될 것이오. 나는 모험을 해봐야겠습니다.
집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단지 죽음뿐이지만, 앞으로
계속 전진하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 뿐이오.
그것을 극복하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오. 그러니 나는 앞으로 전진하겠소."
그래서 겁쟁이와 불신은 언덕을 달려 내려가고,
크리스찬은 그의 길을 계속 갔다. 그러나 크리스찬은
그들에게서 들은 말이 다시 머리 속에 떠오르자
두루마리를 읽고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고 가슴을 뒤져
찾았다. 그러나 가슴 안쪽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두루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찬은 크게 비탄에
잠겼다. 읽기만 하면 그에게 위안을 주고, 천국에
들어갈 때 그의 통행증이 되어줄 그 두루마리가
없어진 것이었다. 그는 매우 당황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때 문득 언덕 중턱에 있는 정자에서
자신이 잠이 들었던 생각이 났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빌고
난 후 그는 두루마리를 찾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크리스찬의 마음속에 넘치는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때로는 한숨 짓고, 때로는 울다가
그저 잠시 피로를 풀라고 마련된 곳에서 잠들만큼
어리석었던 자신을 꾸짖었다. 그는 여행중에 위안이
되어주었던 그 두루마리가 길 어딘가에 떨어져 있지
않나 해서 길 양쪽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면서
내려갔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앉았다가 잠들어버렸던
그 정자가 보이는 곳까지 왔다. 정자를 보자 그의
슬픔은 더욱 커졌고, 거기서 잠들었던 것은 죄를 지은
것이라는 생각이 다시 머리 속에 떠올랐다. 그는 잠잔
죄를 지은 것에 대해 몹시 슬퍼하면서 말했다.
"대낮에 잠을 자다니, 오, 가엾은 인간이여!
고행중에 낮잠을 자다니! 주님께서 순례자들의 영혼을
잠시 쉬게 하려고 지어놓은 휴식처에서 자신의 육체를
평안하게 하려고 잠을 자다니! 나는 얼마나 많은
헛걸음을 했는가(하긴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의 죄
때문에 홍해의 바닷길을 돌아가야만 했지.)! 잠자는
죄만 짓지 않았더라면 즐겁게 걸어갈 수 있었을 이
길을 나는 지금 슬픔 속에서 걷고 있구나. 이렇게
되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얼마나 멀리 갔을
것인가! 한 번만 걸어가도 될 길을 나는 세 번이나
가야 하는구나. 날은 이미 저물고 있으나 계속 길을
가야겠구나. 오, 낮잠만 자지 않았더라면!"
이윽고 정자에 다시 돌아온 그는 한동안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그는 슬픔에 젖어 나무로 만든 긴
의자 아래를 살펴보다가 거기에서 자신의 두루마리를
발견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재빨리 그 두루마리를
집어 들어 자기의 가슴에 품었다. 잃었던 두루마리를
다시 찾은 그의 기쁨을 어느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이
두루마리는 그의 생명의 보증서요, 그가 열망하던
안식처의 출입증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크리스찬은
그것을 가슴에 부둥켜안고 그것이 놓여진 곳에 자신의
눈길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후,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다시 왔던 길을 재촉했다. 그는 서둘러
나머지 언덕길을 올라갔다. 그러나 미처 꼭대기에
도착하기도 전에 해가 지고 말았다. 날이 저물자
크리스찬은 다시 낮잠을 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되살아나 자기 자신을 꾸짖기 시작했다.
"오, 너 죄가 된 잠아! 너 때문에 내가 여행 도중에
날이 저물게 됐구나! 너 죄가 된 잠아! 너 때문에
나는 해가 지고 난 후에 걸어가야만 하게 됐고,
어둠이 내 발길을 막아서게 됐으며, 그리고 무서운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야만 하게 됐구나."
그러자 겁쟁이와 불신이 그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사자를 보았을 ㄸ 그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크리스찬은 중얼거렸다.
"그런 사나운 짐승들은 밤에 먹이를 찾아나서는데
어둠 속에서 내가 그것들과 마주치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들의 발톱에
갈기갈기 찢기는 것을 어떻게 하면 모면할 수 있단
말인가?"
크리스찬은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한탄하면서
걷다가 자기 앞에 매우 웅장한 궁전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궁전의 이름은
'아름다움(Beautiful)'이었고 바로 길가에 서 있었다.
나는 꿈속에서 그가 그 궁전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을까 해서 급히 그리로 가는 것을 보았다. 얼마
가지 않아 그는 아주 좁은 길로 들어섰는데, 거기서
약 200미터쯤 떨어진 곳에 문지기가 사는 집이
있었다. 크리스찬은 앞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걷다가
두 마리의 사자가 길을 막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두
마리의 사자는 영국 국교회를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국가의 박해와 교회의 박해를 의미한다). 겁쟁이와
불신이 무서워 돌아섰던 그 위험이 바로 저것이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사자들은 묶여 있었는데
크리스찬은 그 묶은 사슬을 보지 못했다). 그는
무서웠다. 이제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다만
죽음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기도 역시 그들의 뒤를
따라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경계함(Watchful)'이라는 이름의 문지기가
크리스찬이 돌아가려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그다지도 용기가 없소? 사자들을 두려워
마시오. 저것들은 사슬에 묶여 있소. 믿음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구별하기 위해서 사자들을 거기에
누워 있게 한 것 뿐이니 길 한가운데로 계속 오시오.
당신에게 아무 상처도 입히지 않을 것이오."
나는 크리스찬이 사자들을 무서워하면서도 문지기가
가르쳐준 대로 조심해서 걷는 것을 보았다. 사자들이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았다. 그는 두 손을 꼭잡고 문지기가 서
있는 문 앞까지 계속 걸어갔다. 마침내 문 앞에
이르자 크리스찬이 문지기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이 집은 무얼 하는 집입니까? 여기서
오늘밤 묵어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문지기가 대답했다.
"이 집은 순례자들의 휴식과 안전을 위해 이 언덕의
주인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문지기는 이어서 크리스찬에게 어디에서 오는
길이며,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크리스찬 : 나는 멸망의 도시로부터 탈출해서 시온
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마침 해가 저물어서
가능하다면 오늘밤은 여기서 묵었으면 합니다.
문지기 : 당신 이름이 뭣입니까?
크리스찬 : 내 이름은 크리스찬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은총없음(Graceless)'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나는 야베트 족속의 후예로
태어났지만 하나님께서 셈 족의 장막에 가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문지기 : 그런데 어째서 이리 늦었소? 해가 졌는데.
크리스찬 : 좀더 일찍 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덕 중턱에 있는 정자에서 그만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않았어도 일찍 올 수
있었는데 그만 잠을 자다가 내 증명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왔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증명서를 찾아보니
없었습니다. 그래서 슬픈 마음으로 내가 잠을 잤던
곳까지 도로 내려가 그것을 찾아오느라 이제서야 오게
된 것입니다.
문지기 : 그랬소? 그럼 이 궁전의 처녀들 중에서 한
처녀를 불러내드리죠. 그녀가 당신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들어하면 이 궁전의 규정에 따라 당신을
나머지 가족들과 만나도록 해 줄 것입니다.
문지기 경계함이 종을 울리자 궁전의 문간에
'신중함(Discretion)'이라고 하는 얌전하고 예쁜
처녀가 나오더니 왜 불렀느냐고 물었다.
문지기가 대답했다.
"이 사람은 멸망의 도시로부터 탈출하여 시온
산으로 가는 여행자인데, 지금 몸도 피곤하고 또 날도
저물었으니 오늘밤 여기서 묵을 수 있겠느냐고 내게
청을 했소. 그래서 내가 당신을 불러내어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당신이 그를 마음에 들어 하면 이
집의 규정에 따라 대해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크리스찬에게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그녀는 또한
어떻게 이 길로 오게 됐느냐고 물었고, 그가 대답을
해주었다. 그녀는 길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만났는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자기가 보고 만난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의
이름을 물었다. 그래서 그가 대답했다.
"내 이름은 크리스찬입니다. 내가 보기에 이 집은
순례자들의 휴식과 안전을 위해 언덕의 주인께서
지으신 것 같은데, 오늘밤 여기서 묵을 수 있게
해주시길 무엇보다도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자 그녀는 미소를 지어보였는데,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녀는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말했다.
"우리 식구 두세 명을 더 불러 오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문안으로 들어가서는
'세심함(Prudence)', '경건함(Piety)' 그리고
'박애(Charity)'를 데리고 나왔다. 처녀들은 잠시 더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크리스찬을 데리고
들어갔다. 그 집의 문지방에 다다르자 많은 처녀들이
그를 맞이해 주며 말했다.
"주님의 은총을 받으신 분이여, 어서 오십시오. 이
집은 당신과 같은 순례자들을 위해서 이 언덕의
주인께서 세우신 집입니다."
크리스찬은 그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그들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크리스찬이 방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 그들은 그에게 마실 것을 갖다주었다.
그러고는 저녁이 준비될 때까지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기 위해 몇몇 처녀들과 함께 특별한 대화를 좀
나누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대화의 상대로 세심함과 경건함 그리고 박애를
지명했다. 대화가 곧 시작되었다.
경건함 : 환영합니다, 크리스찬 선생님. 오늘 밤
저희들이 선생님을 집안으로 맞아들이는 친절을
베풀었으니, 저희들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순례여행을 하는 동안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저희들에게 행여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크리스찬 : 기쁜 마음으로 말씀드리지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따뜻하게 맞아주시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경건함 : 당신은 어떤 이유로 해서 순례자의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까?
크리스찬 : 무서운 소리가 내 귓속에서 떠나지 않아
마을을 뛰쳐나왔습니다. 그 소리는 내가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면 피할 수 없는 파멸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소리였소.
경건함 :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 길을 택하게
됐어요?
크리스찬 :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파멸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때만 해도
어느 길로 가야 할지를 몰랐었죠. 그런데 우연히 어떤
사람이 내게 왔습니다.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울고
있는 내게 찾아온 그 사람은 복음전도사라고 했는데,
그가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전혀 찾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분이 가르쳐준 대로 길을 따라오다보니까 이 집까지
오게 됐습니다.
경건함 : 그런데 선생님께선 통역관의 집에는
들르지 않았습니까?
크리스찬 : 들렀지요. 거기서 많은 것들을
보았는데, 어떤 것들은 제가 죽는 날까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특히 세 가지
일이 그렇습니다. 즉 사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그 은총의 역사를 마음 속에
유지시키는 것과 인간은 어떻게 신의 은총을 바랄
수조차 없는 그런 죄를 짓고 있는가와 마지막으로
잠자다가 꿈속에서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을 본
사람의 꿈이 그것입니다.
경건함 : 그래요? 그 사람이 자신이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까?
크리스찬 : 들었죠. 그것은 대단히 무서운
이야기였습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 동안 내 마음은
아팠지만 그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경건함 : 그것이 통역관의 집에서 본 전부입니까?
크리스찬 : 아뇨, 또 있습니다. 그는 어떤 웅장한
궁전이 보이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습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황금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용맹한 사람이 그를 막기 위해 문
앞에 서 있는 무장한 병사들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
영원한 영광을 얻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 광경을
보자 내 마음이 황홀해졌습니다. 그 선한 사람의 집에
일년 열두 달 머무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내겐 가야 할 길이 더 있음을
깨달았지요.
경건함 : 그리고 도중에 또 어떤 것을 보셨습니까?
크리스찬 : 굉장한 걸 봤지요. 조금 더 길을 가자
내 생각에 나무에 매달려 피를 흘리는 것 같은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똑바로 쳐다본
순간 내 등에 지고 있던 짐이 저절로 떨어져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제까지 나는 그 무거운 짐에 눌려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지요. 그런 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번쩍이는 빛을 내면서 세 사람이
내게 다가왔습니다. 한 사람은 나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증언해 주셨고, 한 사람은 내가 입고 있던
누더기옷을 벗기더니 지금 입고 있는 이 수놓은
외투를 입혀주셨고,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내
이마에 있는 이 표시를 해주면서 도장 찍힌
두루마리를 주셨습니다.
크리스찬은 말을 하면서 가슴 속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보여주었다.
경건함 : 그것 말고도 더 보신 게 있으시죠?
크리스찬 :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이 가장 훌륭한
것들입니다. 그 밖에 다른 것들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바보, 게으름뱅이, 철면피라고 하는 세 사람이 발에
족쇄를 차고 내가 온 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잠들어 있는 것을 봤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내가
그들의 잠을 깨워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나는 또한 자기들 말로는 시온 산으로 가는
길이라면서 담을 뛰어넘어 온 형식주의자와 위선자를
만났는데 그들은 곧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이야기 해 주었는데도 그들은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언덕을 올라오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사자의 입을
피해 오는 것도 무척 어려운 일이었지요. 사실 문가에
서 있던 친절한 문지기만 없었더라면 나는 결국
되돌아갔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내가 여기에 있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또 나를 이렇게
받아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러자 세심함이 자기도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니 대답해 달라고 간청했다.
세심함 : 가끔 떠나온 고향이 생각나지는
않았습니까?
크리스찬 : 있었지요. 그렇지만 대단히 부끄럽고
혐오스럽게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만약 내가 떠나온
고향생각에 사무쳤더라면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는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더 나은
나라, 즉 천국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세심함 : 그 당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것들
중에서 아직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은 없습니까?
크리스찬 : 물론 있지요.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특히 나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희열을 느꼈던 내적이고 육체적인 향락이
그것이지요.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지금 내게는
슬픔일 뿐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들을 결코
더 이상 생각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은
것을 행하려고 마음먹을 때 내가 행하는 일이란
오히려 가장 고약한 것이 되지요.
세심함 : 때때로 당신을 당혹케 하는 그런 일들이
이제는 모두 없어진 것처럼 느껴질 때는 없으세요?
크리스찬 : 있죠.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 때는 아주
드물죠.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시간이야말로 내겐
황금 같은 시간입니다.
세심함 : 어떻게 해서 그런 문제들이 때때로 모두
극복된 것처럼 느껴지게 됐는지 기억나십니까?
크리스찬 : 예, 십자가에서 봤던 것을 생각할 때와
이 수놓은 외투를 볼 때 그렇게 되며, 내 가슴에 품고
다니는 두루마리를 볼 때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생각함으로써 마음이
따뜻해질 때 그렇게 됩니다.
세심함 : 시온 산에 가려고 그렇게 갈망하는 이유는
뭣입니까?
크리스찬 : 예, 나는 거기에 가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그분이 살아 계신 것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가면 지금 내 안에서 나를 괴롭히는 이
모든 괴로움들을 벗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요.
거기에는 죽음이 없다고들 합니다. 그곳에 가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분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분
때문에 짐을 벗게 됐으니까요. 나는 내 마음속의 병
때문에 몹시 괴롭습니다. 나는 결코 죽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하고
외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그러자 박애가 크리스찬에게 말했다.
"가족은 있습니까? 그리고 결혼은 하셨습니까?"
크리스찬 : 나는 결혼해서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들이 넷 있습니다.
박애 : 그런데 왜 그들을 데리고 함께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크리스찬이 울면서 말했다.
"내가 그들을 데리고 오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순례여행을 떠나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반대했습니다."
박애 : 하지만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면서 그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크리스찬 : 물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우리 도시의 멸망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내가
농담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내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박애 : 당신의 식구들이 당신의 권고를 듣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까?
크리스찬 : 물론입니다. 아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은 내게 매우 소중한 존재들이니까요.
박애 : 하지만 파멸에 대한 선생님 자신의 슬픔이나
두려움을 식구들에게 말해 주었습니까? 내 생각엔
당신은 그 파멸을 충분히 보신 것 같은데요.
크리스찬 : 예, 말했습니다. 거듭 되풀이해서
말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내가 우리에게 심판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고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도 그들로 하여금 나를 따라오게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박애 : 그들은 어째서 따라오지 않겠다고
말하던가요?
크리스찬 : 내 아내는 이 세상의 소유물을 잃게
되는 것이 두려웠고, 자식들은 어리석은 청년기의
쾌락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핑계 저
핑계로 나 혼자 이렇게 방랑의 길을 떠나게 한
것입니다.
박애 : 그러면 당신이 너무 허영에 뜬 생활을 해서
당신이 그들을 데려오려고 온갖 말을 해도 그들이
믿지 않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까?
크리스찬 : 물론 내가 올바른 생활만 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많은 잘못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나는 또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라고 설득하기도 하고 꾸짖기도 했지만 그 사람이
전혀 그 반대로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어요. 나의
어떤 꼴보기 사나운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순례의 길을 떠나는 것을 단념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은 내가 너무 빈틈이 없다고 흉을 보았고, 그들이
보기엔 결코 사악한 일이 아닌 어떤 것을 내가
거절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내가 그들을 방해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과
이웃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행동에 내가 너무
관대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박애 : 카인도 자기의 행실은 악하고 아우 아벨의
행실은 의로웠기 때문에 자기의 아우를 죽였지요.
당신의 아내와 자식들이 이런 이유 때문에 당신의
행동에 화를 냈다면, 그것은 그들이 선해질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영혼을 가족의
피로부터 구원한 것입니다.
나는 저녁식사가 준비될 때까지 그들이 계속
대화하면서 앉아 있는 것을 꿈속에서 보았다. 저녁
식사가 준비되자 그들은 식탁에 앉았다. 식탁 위에는
기름진 음식과 잘 익은 포도가 풍성했다. 식탁에서의
화제는 주로 이 언덕의 주인에 관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어떤 일을 했으며,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했으며, 어째서 이 집을 지었는가 하는
것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나는 이 집 주인이
위대한 전사였으며,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와 싸워
그를 살해했는데 자신도 큰 위험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때문에 그를 더욱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크리스찬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분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를 죽이면서
자신도 많은 피를 흘려 그 일을 이루셨는데, 그것은
자기 나라에 대한 순수한 사랑 때문이었으므로 그분이
하신 모든 일에 영광스러운 은총이 내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집안에는 그분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이후에도 그분을 만나고 같이 이야기했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분 자신이 자기는 가난한
순례자를 몹시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으며, 그런 분은
세상 어디를 뒤져봐도 없을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증언을 확신하는 한 가지 예를
들었다. 즉 그분은 가난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영광을 벗어버리셨으며, 그분이 자기는 시온
산에서 혼자 살기를 원치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본래
거지로 태어났고, 그 근본이 비천한 사람인 많은
순례자들을 왕자로 삼아주셨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들은 밤 늦도록 함께 이야기를 나눈 뒤에 주님께
자신들을 보호해 달라고 기도를 올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들은 그 순례자를 커다란 2층방에 눕게
했는데, 그 방 창문으로는 해 뜨는 걸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 방의 이름은 '평화(Peace)'였다.
크리스찬은 그 방에서 동이 틀 때까지 푹 자고
일어나서는 노래를 불렀다.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은 어디인가?
예수님께서 순례의 길에 나선 자들을
사랑하시고 돌보시기 위해
마련하신 은혜의 장소인가?
이렇게 준비해 주시다니!
나는 용서받았도다!
벌써부터 천국의 옆방에 머물게 되다니.
아침이 되어 사람들이 모두 일어났다. 그들은 서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는 크리스찬에게 이 집에 있는
희귀한 물건들을 보고 떠나라고 말했다. 우선 그들은
크리스찬을 서재로 데리고 가서 아주 먼 옛날 일들을
기록한 책을 보여주었다. 내가 꿈속에서 본 대로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들은 그 언덕의 주인이 태초의
아들이요 영원한 세대의 후손임을 말해 주는 족보를
보여 주었다. 이 책에는 그의 여러 가지 행적이 더욱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고, 그가 불러 일을 시킨 수백
명이 되는 사역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세월과 자연적인 부패로부터 분해 되지
않는 그런 거처에 그들을 살게 했는가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그의 종들이 쌓은 행적 가운데
훌륭한 몇 가지를 크리스찬에게 읽어 주었다. 즉
어떻게 사역자들이 왕국들을 정복했으며, 의를
세웠으며, 약속을 받았고, 사자들의 입을 막았으며,
격렬한 불길을 잡았으며, 어떻게 칼날을 피했으며,
어떻게 약한 데서 나와서 강한자가 되었으며, 어떻게
용감하게 전투에 임했으며, 그리고 어떻게 적의
군대를 패주시켰는가 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크리스찬을 다른 방으로 데려가
기록의 다른 부분들을 읽어주었다. 그 안에는 그들의
주님이 세상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 과거에 그의
인격과 행위를 심하게 모욕했던 자일지라도 아무 차별
없이 그의 은혜 안으로 영접하려고 했음이 적혀
있었다. 여기에는 또한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기록한
책들이 있었는데, 크리스찬은 그것들으 모두 다
읽어보았다. 옛날 일이든 현재의 일이든 확실하게
이루어진 예언이나 선견들이 기록돼 있었는데,
그것들은 적들에게는 두려움과 놀라움이 되고,
순례자들에게는 위안과 위로가 될 기록들이었다.
다음날 그들은 크리스찬을 병기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들은 그들의 주인이 순례자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모든 무기들, 칼, 방패, 투구, 갑옷
가슴받이, 모든 기도문 그리고 닳지 않는 구두를 보여
주었다. 창고 안에 있는 무기들은, 그들의 주인을
섬기는 자들이 하늘에 떠 있는 별만큼이나 많더라도
모두 무장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했다.
그들은 또한 크리스찬에게 몇 가지 도구를
보여주었다. 그것들은 그의 하인들이 신기한 이적을
행할 때 쓴 도구들이었다. 그들은 모세의 지팡이와
야엘이 시세라를 죽일 때 사용했던 망치와 못,
기드온이 미디안 군대를 쳐부술 때 사용한 항아리와
나팔, 등불도 보여주었다. 또한 그들은 샴가아가 6백
명이나 되는 남자들을 단숨에 해치울 때 사용한
황소몰이용 막대기도 보여주었다. 삼손이 그 위대하고
막강한 공을 세울 ㄸ 사용했던 나귀의 턱뼈도
보여주었다. 또한 다윗이 가드 사람 골리앗을 죽일 때
사용했던 새총과 돌멩이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일어나게 될 때 그 희생으로 죄지은
자들을 처형할 칼도 보여주었다. 그들은 그외에도
수많은 훌륭한 도구들을 보여주었난데, 크리스찬은
그것들을 보고 대단히 기뻐했다. 구경을 다 마친 뒤
그들은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꿈속에서 크리스찬이 길을
떠나려고 준비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크리스찬에게 하루만 더 머물러 있기를 간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일 만약 날씨만 좋다면 기쁨의 산맥을
보여주겠습니다."
그 산맥을 보면 더욱 마음의 위안을 받게 될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왜냐하면 그곳은 지금 그가
있는 곳보다 소망하는 천국에 더욱 가깝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크리스찬은 하루 더 머물기로
결심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 그들은 크리스찬을 지붕
위로 데리고 올라가서는 남쪽을 보라고 했다. 그가
보니 아름다운 산맥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숲과 포도밭, 온갖 열매가 달린
과수원, 온갖 꽃들이 피어 있었고, 여기 저기 샘과
우물들이 어울어져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크리스찬이 그곳의 이름을 묻자 그들은 '임마누엘의
땅'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은 덧붙여 말했다.
"그곳은 이 언덕과 마찬가지로 모든 순례자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천국의 문이 보일
것이며, 그 안에 살고 있는 목자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때 크리스찬은 길을 떠나야겠다고 말했다. 그들도
기꺼이 그렇게 하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떠나기 전에 다시 한 번 병기고에 가봅시다."
병기고에 다다르자 그들은 혹시 그가 길을 가는
도중에 겪을지도 모를 습격에 대비하여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갑옷을 입혀주었다. 이렇게 무장을 한
크리스찬은 친구들과 함께 문으로 가, 그곳에 있는
문지기에게 다른 순례자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문지기가 대답했다.
"예, 보았습니다."
크리스찬 : 그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문지기 : 내가 그에게 이름을 물어봤지요. 그랬더니
'믿음(Faithful)'이라고 했습니다.
크리스찬 : 아, 내가 아는 사람이군요. 그는 내
고향의 이웃사람입니다. 그는 내가 태어난 곳에서 온
것입니다. 지금쯤 얼마나 앞서 가 있을까요?
문지기 : 지금쯤 이 언덕을 다 내려갔을 것입니다.
크리스찬 : 알겠습니다. 친절한 문지기님. 주님이
함께 하셔서 더 많은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친절을 베풀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중함과
경건함, 박애, 세심함이 언덕 아래까지 함께
가주겠다고 나섰다. 그리하여 그들은 함께 걸어갔는데
언덕 아래에 도착할 때까지 하던 대화를 계속했다.
크리스찬이 말했다.
"올라갈 때 어려웠던 것만큼이나 내려갈 때도
어렵군요."
세심함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위험하지요. 누구에게든 '겸손의
계곡(the Valley of Humiliation)'을 내려가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그들이 함께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언덕 아래까지 바래다주려고
나왔습니다."
크리스찬은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갔는데 결국 몇 번
미끄러지고 말았다.
나는 크리스찬이 언덕 아래에 이르자 그들 착한
동료들이 그에게 빵 한 조각과 포도주 한 병, 그리고
포도 한 송이를 주는 것을 꿈속에서 보았다. 그들과
헤어진 크리스찬은 자기의 길을 계속 걸었다.
그런데 이 겸손의 계곡에서 가엾은 크리스찬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얼마 가지 않아 들판을 건너
그를 맞이하러 오는 한 추하게 생긴 악마와 부딪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악마는
'아폴리온(Apollyon)'이었다. 크리스찬은 겁에 질려
되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맞서볼 것인가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 채 당황하기 시작했다. 크리스찬은
자기의 등에 갑옷을 입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자칫
잘못하여 그에게 등을 보이면 그놈이 창으로 쉽게
그를 공격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맞서
싸우기로 결심을 했다. 지금 목숨을 건지겠다는 생각
이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으므로 맞대결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계속 걸어가 아폴리온과 마주섰다. 그
괴물은 보기에도 끔찍스러웠다. 아폴리온은 물고기의
비늘 같은 것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는 용 같은 날개와 곰 같은 발을
가지고 있었고, 배에서는 불꽃과 연기가
뿜어나왔는데,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았다.
크리스찬에게 다가온 아폴리온은 경멸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그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아폴리온 :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놈이냐?
크리스찬 : 나는 악마의 땅인 멸망의 도시에서
왔는데 시온 성으로 가는 길이다.
아폴리온 : 그렇다면 네 놈은 바로 내 신하 중 한
놈이구나. 그 나라는 모두 내 것이니라. 나는 그
나라의 왕자이며 신이니라. 어째서 너는 그
왕으로부터 도망쳤느냐? 네 놈이 나를 더 이상 섬길
마음이 없다면, 네 놈을 당장 한 방에 날려 버리겟다.
크리스찬 : 사실 나는 네가 권세를 부리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너를 섬기는 일은 너무 힘들고 네가
주는 월급 갖고는 살아나갈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죄를 짓는 대가를 받게 되는 것은 죽음뿐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내가 어른이 됐을 때 생각이 깊은
다른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나 자신을 개선할 길을
찾았던 것이다.
아폴리온 : 자기 신하를 그렇게 순순히 잃어버릴
왕은 없다. 나도 네 놈을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
그러나 네가 일이 힘들고 월급이 적다고 불평을
했는데, 그 점은 염려 말고 돌아가거라. 나라의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앞으로 잘 대우해 줄 것을 이
자리에서 약속하마.
크리스찬 : 그러나 나는 이미 모든 왕들의 왕께 내
자신을 바쳤다. 어떻게 내가 너와 함께 정당하게
돌아갈 수 있겠는가?
아폴리온 : 네가 한 짓이야말로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다. 하지만 내게 충성을 바치겠다고 했던 자가
잠시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오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너도 그렇게 해라. 그러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다.
크리스찬 : 나는 그분을 믿고 충성을 맹세했다.
어떻게 내가 그분을 배신할 수 있으며, 또
배신자로서의 처형을 면할 수 있겠는가?
아폴리온 : 너는 이미 날 배신했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고 돌아가기만 한다면 나는
모든 것을 용서해 주겠다.
크리스찬 : 내가 너에게 충성을 약속한 것은 아직
철모를 어렸을 적의 일이다. 게다가 내가 지금 모시고
있는 왕께서는 내 죄를 사해 주시고, 그리고 한때
내가 너에게 굴종했던 과오까지도 용서해 주실 수
있는 그런 분이다. 그뿐이 아니다. 오, 파괴자
아폴리온아,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너를 섬기는
것보다 그분을 위한 봉사와 그분이 주시는 품삯과
그분의 일꾼들과 그분의 정부, 그분의 동료들, 그분의
나라를 훨씬 더 좋아한다. 더 이상 나를 설득시키려
하지 말라. 나는 그분의 종이니 영원히 그분만
따르겠다.
아폴리온 : 흥분하지 말고 냉정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 네가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
것인가를. 그의 백성들이 대부분 비참한 종말을 맞고
있다는 걸 너는 잘 알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나와
나의 길을 배반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자들이 비참한 죽음을 당했느냐? 게다가 너는 그를
섬기는 게 나를 섬기는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자기를 섬기기 위해 우리들 손아귀로부터 탈출한
자들을 구언하기 위해 자기가 있는 장소로부터 한
번도 나와 본 적이 없단 말이다. 그러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온 천하가 다 아는 일이지만, 내 모든 권력과
속임수를 총동원하여 나를 배반하고 그를 섬기는
자들을 건져내오는 일을 얼마나 자주 했는가?
그러므로 이제 내가 널 구원해 주겠다.
크리스찬 : 그분이 당장 그들을 구원해 주시지 않는
것은, 그들이 과연 끝까지 그분께 의지할 것인가를
시험하고 그들의 사랑을 단련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네가 말한, 그들이 당하게 될 비참한 죽음도
그것은 그들이 얻은 가장 빛나는 영광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당장의 구원을 그렇게 원치 않으니까
말이다. 그들은 지금 그들의 왕이 천사들의 영광에
둘러싸여 오실 때 받게 될 영광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폴리온 : 너는 처음에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거의 질식하게 됐을 ㄸ 마음이 흔들렸었다. 너는 네
왕이 와서 등에 진 짐을 벗겨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건데, 네 힘으로 짐을 벗어 보려다가
잘못된 길로 접어들기도 했었다. 너는 또 잠자는 죄를
지음으로써 증거물을 잃어버렸고, 사자를 보았을 때는
돌아가려고까지 했으며, 그리고 네가 여행에 대해
이야기 하고, 네가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것은 네가 마음 속에 품고 있던 허영심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크리스찬 : 그것은 모두 사실이다. 그리고 네가
빠뜨린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나는 죄를 범했다.
하지만 내가 섬기고 존경하는 왕께서는 자비로우셔서
그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너의 나라에 있을 때 갖게 된 여러 가지 결점들
때문에 나는 늘 괴롭고 슬펐었는데 그런 결점까지도
나의 왕께서는 용서해 주셨다.
그러자 아폴리온은 매우 화가 나서 말했다.
"그 왕은 나의 원수다. 나는 그의 인격, 그의 율법,
그리고 그의 백성들까지도 증오한다. 그래서 나는
너와 겨루어보려고 일부러 여기에 왔다.
크리스찬 : 아폴리온, 너의 행동을 조심해라. 나는
지금 왕의 길, 거룩한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자 아폴리온은 길을 완전히 막아서며 말했다.
"나는 두려울 것이 없다. 너는 죽을 준비나 해라.
저승의 소굴에서 너를 더 이상 한 걸음도 못가게
하겠다고 맹세하고 나왔다. 여기서 네 영혼을
요절내고 말겠다."
그러면서 아폴리온은 불붙은 창 한 개를 크리스찬의
가슴을 향해 던졌다. 크리스찬은 손에 들고 있던
방패로 그것을 막아냈다. 자기도 분발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깨달은 크리스찬은 칼을 빼어들었다.
아폴리온은 여러 개의 창을 마구 퍼부어대며
결사적으로 공격해왔다. 크리스찬은 그 창들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머리와 손과 발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크리스찬이 조금 뒤로 물러서자
아폴리온은 그 뒤를 악착같이 따라왔다. 크리스찬은
다시 용기를 내어 사내답게 맹렬히 저항했다. 이
치열한 싸움은 반나절이나 계속되었다. 크리스찬은
기진맥진해 있었다. 부상으로 말미암아 힘이 점점 더
약해졌다.
그러자 아폴리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크리스찬에게 달려들어 그를 잡아채어 무섭게
넘어뜨렸다. 그 바람에 크리스찬은 손에 잡고 있던
칼을 놓치고 말았다. 아폴리온은 그를 숨이 끊어질
정도로 세차게 누르며 말했다..
"이제 네 목숨은 내 손아귀에 있다."
목숨을 건질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크리스찬은
절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때 하나님이 그를 도와 아폴리온이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크리스찬은 손을 뻗어
놓쳤던 칼을 집어들었다. 그러고는 아폴리온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면서 말했다.
"오, 나의 적이여, 나로 인해 기뻐하지 말라. 나는
넘어질지라도 일어나리니."
치명상을 입었는지 아폴리온이 뒤로 물러섰다.
크리스찬은 다시 덤벼들며 말했다.
"그렇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크리스찬이 다가서자 아폴리온은 용의 날개를
펴고는 달아나버렸고, 그후로는 두 번 다시 그를 볼
수 없었다.
이 싸움을 나처럼 직접 본 사람이 아니라면 싸우는
동안 아폴리온이 얼마나 흉악하고 소름끼치는 소리를
지르고 으르렁거렸는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는
용처럼 소리를 질렀고, 반면에 크리스찬은 가슴속에서
터져나오는 신음과 한숨을 토해 냈다. 나는 그가
양쪽에 날이 선 그의 칼로 아폴리온을 찌를 때까지
얼굴에서 기쁜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마침내
아폴리온이 달아나자 비로소 크리스찬은 미소를
띄우며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광경이었다.
전투가 끝나자 크리스찬은 말했다.
"나를 사자의 입으로부터 구해 주신 분께, 나로
하여금 아폴리온에게 대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께
감사드리나이다." 그러면서 계속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악마의 두목 비엘지법이
나를 멸망시키려고
중무장을 한 그를
여기에 보냈네. 소름끼치는 분노를 품고
맹렬히 내게 달려들었도다.
그러나 축복받은 미카엘이
나를 도와주셨고, 나는
칼의 힘을 빌려 그를 일시에 패주시켰네.
그러므로 나 그분께 영원한 칭송과 감사드리고
그 거룩한 이름 언제나 축복하리니.
이때 생명의 나뭇잎을 손에 든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다. 크리스찬은 그 잎을 받아서 싸울 때 입은
상처에 발랐다. 그러자 상처가 말끔히 나았다. 그는
그 자리에 앉아 아침에 받은 빵과 포도주를 먹었다.
그리하여 원기를 회복한 크리스찬은 또 어떤 적이
닥칠지 알 수 없는 일이므로 손에 칼을 든 채 여행을
계속했는데 계곡을 다 지나갈 때까지 다른 어떤 적도
만나지 않았다.
계곡이 다 끝나는 곳에 또 다른 계곡이 있었다.
그곳은 '죽음의 그늘' 계곡이었다. 천국에 이르는
길은 그 계곡을 통해 나 있었으므로 크리스찬은
반드시 그 계곡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 계곡은 대단히
적막한 곳이었다. 그래서 예언자 예레미야는 그
계곡을 이렇게 묘사했다.
'황야, 사막, 구덩이 패어진 땅, 가뭄의 땅, 죽음의
그늘이 드리운 땅, 어느 누구도(크리스찬을
제외하고는) 지나가지 않고 살지도 않는 땅'
이 계곡에서 크리스찬은 아폴리온과 싸우던 것보다
더 고약한 어려움에 처했는데, 나는 꿈속에서
크리스찬이 죽음의 그늘 계곡 가장자리에 이르러 두
사람과 만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살기 좋은 주님의
나라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의 후손이었다.
크리스찬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크리스찬 : 어디서 오는 길입니까?
두 사람 : 돌아가시오, 돌아가. 당신도 생명을
건지고 평화롭게 살고 싶거든 빨리 돌아가시오.
크리스찬 : 왜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두 사람 : 뭐? 무슨 일이냐고! 지금 당신이 가고
있는 길을 우리도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봤소.
정말이지 우리는 돌아오지 못할 뻔했소. 조금만 더
갔더라면 여기 이렇게 살아와서 당신에게 이야기해 줄
수도 없었을 것이오.
크리스찬 : 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기에 그러십니까?
두 사람 : 우리는 죽음의 그늘 계곡 안으로 거의
들어갔소. 그런데 다행히도 눈을 들어 앞을 보니
우리들 앞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소.
크리스찬 : 무엇을 보았는데 그러십니까?
두 사람 : 무엇을 보았느냐고? 계곡 그 자체가
칠흑같이 캄캄했소. 우리는 거기에서 도깨비와,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인 숲의 신 사티로스, 그리고 굴
속에 사는 용들이 우글거리는 것을 보았소. 그리고
고뇌와 쇠사슬에 묶여 꼼짝 못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말할 수 없이 비참하게 고함을 치고
신음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소. 그리고 그 계곡 위에는
절망이 가져다주는 혼돈의 구름이 온통 덮여 있었고,
죽음 또한 그 위에서 날개를 드리우고 있었소. 다시
말해서 질서란 도저히 찾아볼 수도 없는 아주
무시무시한 곳이었소.
크리스찬 : 난 아직 당신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바라는 안식처로
가려면 이리로 가야 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 : 갈 테면 가보시오. 우리는 절대 그쪽으로
가지 않겠소.
그래서 그들은 서로 헤어졌고, 크리스찬은 계속
자신의 길을 갔다. 그러나 언제 습격을 당할지
모르므로 그는 여전히 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나는 꿈속에서 그 계곡이 뻗어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매우 깊은 도랑이 파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오래 전부터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다가 둘 다 빠져
비참하게 죽은 바로 그 도랑이었다. 다시 보니 계곡
왼쪽에도 아주 위험한 수렁이 있었는데,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거기에 빠지면 발을 딛고 설 자리를 찾을
수 없을 그런 수렁이었다. 그 수렁에는 다윗왕도 한
번 빠졌었는데, 그를 그곳에서 건져낼 능력을 가지고
계신 그분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틀림없이 숨이 막혀
죽었을 것이다.
이 계곡의 길은 또한 너무 좁았다. 그래서
크리스찬이 길을 가는 데 더욱 더 힘이 들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쪽의 도랑을 피하려다 보면 다른
쪽에 있는 수렁에 빠지게 되고, 수렁뿐만 아니라
도랑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크리스찬은 이렇게 조심하면서 계속
걸어갔다. 나는 크리스찬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소리를 들었다. 위험들 말고도 길이 칠흑같이
어두워서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들어올린 발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무엇을 디뎌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계곡의 중간쯤 되는 곳에서 나는 지옥의 문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지옥의 문은 길가
바로 옆에 나 있었다. 지옥의 문에 이르러 크리스찬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이따금 불꽃이 튀며
괴상한 소리와 함께 화염과 연기가 쏟아져나왔다.
그것들은 전에 아폴리온이 그랬던 것처럼 크리스찬의
칼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크리스찬은 어쩔 수
없이 칼을 거두고 '부단한 기도(All Prayer)'라고
하는 새로운 무기를 잡았다. 그는 내 귀에까지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오, 주여! 당신께 구하노니 내 영혼을 구원해
주소서."
크리스찬이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해서 기도를
드렸지만 불꽃은 여전히 그를 향해 뻗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처량한 목소리와 이리저리 달리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는 자기자신도 갈기갈기 찢겨서 길 위의
진흙처럼 짓밟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당한 거리를 가는 동안 내내 그는 이런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고, 소름끼치는 소리를 들었다. 어떤 곳에
이르자 한떼의 악마가 자신을 만나러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는 발을 멈추고는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되돌아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계곡의 절반 가량 들어와 있었으며 자신이 이미
얼마나 많은 위험을 겪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되돌아가는 것이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계속 가기로 결심했다. 악마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악마들이 그에게 거의
가까이 다가왔을 때 그는 아주 격렬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주 하나님의 힘을 빌려 걸어가겠다."
그러자 악마들은 뒤로 물러서고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일이 한 가지 일어났다. 나는 가엾은
크리스찬이 너무나도 혼란에 빠져 그만 자신의
목소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알았다. 그가
불타는 구덩이 옆을 지나칠 때 악마 하나가 그의 뒤를
살금살금 따라와서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소리를
속삭였다. 그 속삭이는 소리를 크리스찬은 자기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것처럼 느꼈다. 자기가 지금까지
그렇게도 사랑하던 분을 스스로가 모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크리스찬의 마음은 이전에 겪어온 그
어떤 괴로움보다도 더 큰 고통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귀를 막을 수도 없었고, 그런 비방의 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이렇게 시름에 잠긴 채 한참 여행을 계속하던
크리스찬은 갑자기 자기 앞에 가고 있던 어느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계곡을 걸어갈지라도 해를
당하리라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당신이 나와 함께
있기 때문이오."
그 말을 들은 크리스찬은 매우 기뻤다. 그 이유는
이랬다.
첫째, 이 계곡에 자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비록 어둡고 음침한 상황
속에서도 앞서가는 그들과 함께 계심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가득 차 있는 장애물들 때문에
확실히 볼 수는 없지만, 그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자기와도 함께 계실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셋째, 그는 앞서가는 이들을 따라잡아 그들과
동행이 돼서 나란히 걸어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햇다.
그래서 그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앞에 가는 사람을
불렀다. 그러나 앞에 가는 사람 역시 자기 혼자뿐인
줄로만 알았기 때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를
몰랐다. 얼마 안 가서 날이 밝아지자 크리스찬이
말했다.
"그가 죽음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셨다."
크리스찬은 뒤를 돌아보았다. 되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암흑 속에서 어떤 위험들을
헤쳐나왔는가를 밝은 빛 아래서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그는 한쪽에 있는 수렁과 다른 한쪽에 있는
도랑 그리고 그것들 사이로 난 길이 얼마나 좁은
것이었는가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구덩이
속에 있는 도깨비들과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인
사티로스, 그리고 용들이 멀리서 보였다. 날이 밝았기
때문에 그것들은 가까이 접근해 올 수 없었다.
괴물들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크리스찬은 그것들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기록된
말씀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어둠 가운데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며
죽음의 그늘을 밝은 데로 나오게 하신다."
이제 크리스찬은 홀로 그 많은 위험들을 헤치고
나오게 된 데 대해서 크게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한
위험들을 어둠 속에서 부딪혔을 때 무서워했던 것이
이제 빛이 비쳐 그것들의 모습이 분명해지자 그는
그것들을 좀더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마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크리스찬은 또 다른
하나님의 자비를 느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죽음의
그늘 계곡은 위험했지만 이제부터 그가 가야 할 그늘
계곡은 훨씬 더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 서
있는 곳으로부터 계곡의 끝에까지 이르는 길에는
곳곳에 덫과 함정과 그물이 놓여져 있었고, 구덩이와
유혹과 깊은 구멍과 경사진 곳이 무수히 널려 있었다.
그래서 만약 그가 이제까지 지나온 계곡처럼
캄캄하다면 비록 수천 개의 목숨을 가졌다 할지라도
모두 다 잃어버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말한 대로 지금 해가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말했다.
"그의 등불이 나의 머리를 비추셨고 그 빛으로 인해
나는 어둠을 뚫고 간다."
빛이 비추는 가운데 크리스찬은 계곡의 끝에
다다랐다. 나는 꿈속에서 이 계곡이 끝나는 바로
가까이 도착한 순례자들의 것인 듯한 피와 뼈, 재,
그리고 갈갈이 찢긴 육신들이 널려 있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 동굴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옛날에 그 동굴 속에는 두 거인
'교황(Pope)'과 '이교도(Pagan)'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권력과 포학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무참히 죽였기 때문에 거기에 뼈와 피, 재들이 흩어져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옆을 크리스찬이 별
위험 없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나는 놀랍고
의아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곧 이도교가 오래 전에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교황이 아직 살아 있기는
하지만 나이도 많이 들었고 또 젊은 시절에 입은
수많은 치명적인 상처들이 그를 너무 괴롭혀서 이제는
자신의 동굴 입구에 앉아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손톱이나 물어뜯으면서 비웃기나 할 뿐 그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크리스찬이 계속 자신의 길을 가다가 그
동굴의 입구에 앉아 있는 노인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그 노인이
크리스찬을 뒤쫓아오지도 못하면서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었다.
"네놈들은 좀더 타죽어야 생각을 바꾸게 될거야."
그러나 크리스찬은 평화스럽고 온순한 얼굴로 그
앞을 지나갔는데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았다. 그는
노래를 불렀다.
오, 놀라운 세상이여!(그 이상 내 무슨 말을
하리오.)
여기에서 만난 그 혹독한 시련을
나는 극복할 수 있었네!
오, 축복 있으라, 그 시련으로부터
나를 구원해 주신 손이여!
내가 이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암흑 속의 위험과 악마, 지옥 그리고 죄악이
나를 억압했도다.
덫과 구덩이, 함정과 그물이
내 가는 길 여기저기 놓여 있었고
그리하여 미천하고 어리석은 나는
걸리고, 빠지고, 넘어졌을 것을
그러나 나는 이렇게 살아 있나니
예수님께 왕관을 씌워드리며 영광을 돌리네.
크리스찬은 계속 길을 가다가 조그만 언덕에
이르렀다. 그 언덕은 순례자들이 그 위에 올라가서
앞길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일부러 쌓아놓은 것이었다.
크리스찬도 언덕 위에 올라가 앞을 바라보았다.
믿음이 저만치 앞서가는 것이 보였다. 크리스찬은
큰소리로 외쳤다.
"어이, 어이. 나랑 같이 갑시다."
이 말을 듣고 믿음이 뒤돌아보았다. 크리스찬이
다시 외쳤다.
"잠깐만요. 내가 갈 때까지 잠깐만 기다리시오."
그러나 믿음이 대답했다.
"아니오, 나는 목숨을 걸고 가는 길이오. 피를 부를
복수자가 내 뒤를 따라오고 있소."
그러자 크리스찬은 약간 화가 났다. 온 힘을 다해
믿음을 따라잡아 그보다 조금 앞서가게 되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셈이었다. 길동무보다 앞서게 되자
크리스찬은 쓸데없는 자만심에 미소를 지었다. 그
바람에 크리스찬은 발밑을 조심하지 않아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결국 믿음이 와서 일으켜줄 때까지
그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나는 꿈속에서 그들이 매우 친근해져 순례 도중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하며 걷는 것을
보았다. 크리스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
크리스찬 : 존경하고 사랑하는 믿음이여. 나는
당신을 따라와 만나게 된 것이 기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셔서 이렇게
즐겁게 함께 여행을 할 수 있게 돼서 대단히
기쁩니다.
믿음 : 사랑하는 친구여. 나는 마을을 떠날 때부터
당신과 함께 오고 싶었는데 당신이 나보다 먼저 길을
떠나셨죠.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크리스찬 : 나의 뒤를 따라 순례의 길에 오를
때까지 당신은 얼마나 오랫동안 그 멸망의 도시에
머물러 있었습니까?
믿음 :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이 길을 떠난 후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삽시간에
온 도시를 태워버릴 거라는 소문이 쫙 퍼졌으니까요.
크리스찬 : 뭐라고요? 이웃사람들도 그렇게
말했다는 겁니까?
믿음 : 그럼요. 한동안 모두들 그
이야기뿐이었습니다.
크리스찬 : 그런데 어째서 당신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그 위험으로부터 탈출해 나오지 않았습니까?
믿음 : 그런 소문이 사방에 쫙 퍼져 있기는 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거의 없었습니다. 열에 들떠
이야기하다가도 당신과 당신의 가망 없는 여행(그들은
당신의 순례여행을 그렇게 불렀죠.)을 비웃곤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믿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결국 그 도시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과 유황에 타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그
도시로부터 탈출해 나왔습니다.
크리스찬 : 이웃사람들과 온순함으로부터 아무 말도
못 들었습니까?
믿음 : 들었습니다. 나는 그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때까지 당신을 따라갔었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도 구렁텅이에 빠졌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몸에 흙탕물이 묻어
있는 것을 보고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찬 : 이웃사람들이 그에게 뭐라고들
했습니까?
믿음 : 집으로 돌아온 후로 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심한 푸대접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비웃고 경멸했으며, 어느 누구도 그에게 일자리를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 마을을 떠났다
되돌아오기 전보다 몇 배나 더 비참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크리스찬 : 왜 마을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경멸할까요? 자기들 자신도 그가 포기한 길을
경멸하면서 말입니다.
믿음 : 그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를 죽여라.
그는 변절자다. 그는 말 다르고 행동이 다른
사람이다." 내 생각으로는 그가 길을 가다 도중에
포기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적들까지도 그를
조롱하게 만들었고, 그 사람을 하나의 교훈이 되게
하신 것 같습니다.
크리스찬 : 당신은 떠나기 전에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았습니까?
믿음 : 한번은 길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한 행동이 부끄러웠던지 길을 피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을 걸지
못했습니다.
크리스찬 : 참으로 안됐군요. 내가 처음 길을 떠날
때 나는 그에게 희망을 걸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도시가 멸망하는 날 그도 함께 죽게 되겠군요. '개는
자기가 토한 것을 도로 먹고, 돼지는 몸을 씻겨주어도
다시 더러운 진창에서 뒹군다.'는 속담처럼 됐으니
말입니다.
믿음 : 나는 그가 그렇게 될 것이 염려됩니다.
그렇지만 누가 그렇게 되는 것을 막겠습니까?
크리스찬 : 자, 믿음 씨. 이제 그 사람 이야기는
그만하고 우리들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당신이 길을 오는 도중에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말씀해 주시죠. 틀림없이 어떤 것들을
만났을텐데. 그러지 않았다면 대단히 놀라운 일로
기록될 것입니다.
믿음 : 당신은 구렁텅이에 빠졌던 것 같은데 나는
다행히 그것을 피해서 별 위험 없이 좁은 문까지
왔습니다. 단지 '음녀(Wanton)'라는 계집을 만나
큰일날 뻔했지요.
크리스찬 : 그 계집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요셉도 그 계집에게 걸려 혼이 났지요.
그도 당신처럼 용케 나오기는 했지만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뻔했지요. 그래 그 계집이 당신에게 어떤 짓을
하던가요?
믿음 : 얼마나 아양을 떨었는지 당신은 생각도 못할
겁니다. 온갖 쾌락과 만족을 주겠다고 약속하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내게 열심히 거짓말을 했습니다.
크리스찬 : 물론, 그 계집이 약속한 것은 양심에
꺼리지 않는 만족은 아니었겠죠.
믿음 : 물론이죠. 당신도 아시겠지만 그녀가 약속한
것은 모두 성적인 쾌락과 육체적인 만족뿐이었습니다.
크리스찬 : 그 계집의 유혹에서 피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시오. 주님께서 미워하는 자는 그
계집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믿음 : 하지만 내가 그 계집의 유혹을 완전히
벗어났는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크리스찬 : 모르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당신이 그 계집의 욕망에 넘어가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요.
믿음 : 물론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나는 '음녀의 발길은
지옥으로 향한다.'는 옛말씀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두 눈을 꼭 감았습니다. 그 계집의 얼굴에
반하지 않으려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계집은 내게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나는 계속 내 길을 갔습니다.
크리스찬 : 오는 길에 다른 어려움은 겪지
않았습니까?
믿음 : 고생길이라고 하는 언덕 아래로 다다랐을 때
늙은이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내게 누구며,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자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노인이
말했습니다. "보아하니 정직한 사람 같은데 내가
월급을 줄테니 나와 함께 지내지 않겠소?"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이름이 무엇이며,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이름은
'아담 1세(Adam the First)'이며,
'기만(Deceit)'이라는 마을에 살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그가 시키는 일이
무엇이며, 그가 지불하겠다는 월급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일이란 대단히 즐거운
일이며, 월급이란 내가 그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그가 어떤 집을 짓고
있으며, 어떤 하인들을 데리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자기집은 세상의 온갖 맛있는 것들로
가득하고, 자기가 데리고 있는 하인들은 모두 자기의
자식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자식들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자식들은 단지 세 딸로 '육체의
욕망(The Lust of the Flesh)', '눈의 욕망(The Lust
of the Eyes)' 그리고 '인생의 오만(The Pride of
Life)'이며, 내가 원하기만 하면 그들과 결혼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와 함께 살아야 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사는 날까지라고 대답했습니다.
크리스찬 : 그래서 결국 당신과 노인은 어떤 결론에
도달했습니까?
믿음 : 처음에는 그 노인과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당히 진지하게 이야기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나는 그와 이야기하는 동안 그의
이마에 이렇게 씌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노인의 유혹에서 벗어나라."
크리스찬 : 그러고 나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믿음 : 그러자 그가 아무리 그럴 듯하게 말을
하더라도 그 노인이 일단 나를 자기집으로 데리고
가면 노예로 팔아먹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노인에게 말을 그만두게 했죠. 그의
집 근처에도 가지 않을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랬더니
그는 욕설을 퍼부으며 내게 사람을 딸려 보내서 나를
괴롭히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내 길을 가려고 몸을
돌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내 몸을 꽉 붙잡았습니다.
어찌나 세게 잡아채는지 한쪽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외쳤습니다.
"오, 불쌍한 인간이여!"
그러고는 언덕 위로 올라가는 길로 달려갔습니다.
언덕을 반쯤 올라갔을 때 나는 바람같이 날쌔게 내
뒤를 쫓아오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나무로 만든 긴
의자가 있는 곳 근처에서 그는 나를 따라잡았습니다.
크리스찬 : 바로 거기에서 나도 좀 쉬려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잠이 들어서 가슴 속에
품고 있던 두루마리를 잃어버렸었지요.
믿음 : 잠깐, 내 말을 다 들어보시오. 그 사람은
나를 따라잡자마자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메어쳐
기절을 시켰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고 따져물었지요. 그는 내가 아담 1세의
말에 은근히 솔깃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내 가슴을 힘껏 내리쳐서 나를
뒤로 넘어뜨렸습니다. 나는 그의 발 아래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린 나는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울면서 빌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는 자비를 베풀 줄 모른다면서 또다시 나를 때려
쓰러뜨렸습니다. 나를 죽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분이 오셔서 그를 말리셨습니다.
크리스찬 : 말렸다는 그분이 누구였지요?
믿음 :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내 옆을 지나갈 때 나느 그분의 손과 옆구리에 구멍이
난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그분이 우리의 주님인 걸
알게 됐지요. 그래서 나는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크리스찬 : 당신을 뒤쫓아와 메다꽂은 사람은
모세였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의 법을 어긴 자에게 자비를 베풀 줄도
모르지요.
믿음 : 그건 나도 잘 압니다. 모세가 나를 만나준
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집에서 편안히
살고 있을 때 찾아와서 만일 계속해서 집에 머물러
있으면 우리집을 모두 태워버리겠다고 말한 사람도
그였습니다.
크리스찬 : 모세를 만났던 그 언덕 꼭대기에 집 한
채가 서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믿음 : 물론 봤죠. 그 집 바로 앞에서 사자 두
마리가 있었는데 잠들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납니다.
그때는 점심때였으니까요. 해가 지려면 아직 멀었기
때문에 나는 그 집 문지기 앞을 그냥 지나쳐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크리스찬 : 사실은 당신이 지나가는 걸 봤다고
문지기가 말해 주었습니다. 그 집에 들러보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당신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온갖 희귀한 것들을 그들이 보여주었을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말씀입니다. 겸손의 계곡에서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는지 이야기 좀 해주시죠.
믿음 : 만났지요. '불만(Discontent)'이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나보고 그와 함께 돌아가자고
설득시키려 애를 썼습니다. 계곡 어디에도 존경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지요. 무엇보다도
내가 그 길을 계속 간다는 것은 내 친구들인
'자만심(Pride)', '거만함(Arrogancy)',
'자부심(Self-conceit)', '세속적인
영광(Worldly-Glory)'등과 그 밖에 다른 자기가 알고
있는 친구들을 배신하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그 계곡을 지나가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계속한다면 친구들이 굉장히 화를 낼 것이라고도
하더군요.
크리스찬 :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믿음 : 그가 말한 모든 사람들이 나의 친척이라 할
수도 있죠. 왜냐하면 사실 육체적으로는 나와 그들은
친척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일단 내가 순례자가 되자
그들이 먼저 친척으로서의 인연을 끊었고, 나 또한
그들을 거절했기 때문에 이젠 그들이 나와 동행하지
않는 한 내 친척이 아니라고 말했지요. 그뿐만 아니라
그 계곡에 대해서 그가 주장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라고도 말해 주었습니다. '겸손함은 명예보다 더
중요하며, 오만하면 패망하기 때문'이라고 했죠.
그러므로 나는 우리의 허욕을 채우기에 가장 좋은
것이라고 그가 제시한 것을 선택하기보다는 가장
현명한 자가 평가하는 명예를 얻기 위해 이 겸손의
계곡을 계속 지나가겠노라고 말했습니다.
크리스찬 : 그 계곡에서 그 밖에 다른 건 만나지
않았습니까?
믿음 : 만났죠. '수치심(Shame)'이라는 작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나는 순례 도중 길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그가 제일 안 어울리는 이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약간의
대화라도 한 다음이면 가타부타 말할 수 있었는데 이
철면피 수치심은 막무가내였으니까요.
크리스찬 : 왜죠? 그가 당신에게 뭐라고
말하던가요?
믿음 : 뭐라고 말했느냐고요? 그는 아예 종교 그
자체를 반대했습니다. 사람이 종교에 마음을 두는
것은 가련하고 비천하고 무기력한 소행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온유한 양심이란 사내답지 못한
것이고, 어느 시대든 용감한 정신의 소유자들은
마음껏 자유를 누리기 마련인데 그런 자유를 스스로
억제하면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사람들은 그 시대의
놀림감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위대한 사람, 부유한 자 그리고 지혜로운 자들 가운데
내 생각에 동의하는 자는 거의 없을 뿐 아니라,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는
바보가 되라는 말에 설득당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누구도 장차 무엇을 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또한 그는 어느 시대건 순례의
길을 떠난 자들은 모두 비천한 신분과 낮은 지위를
가진 자들 뿐이고, 그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고,
자연과학의 지식이 필요한 그 시대에 대해 무식하다고
공격했습니다. 그래요, 그는 나를 그렇게 무식하고
비천한 자라고 했고, 지금 다 기억할 수도 없는 여러
가지 말을 내게 퍼부었습니다. 이를테면 설교를
들으면서 한숨을 짓거나 눈물을 흘리고 집에
돌아오면서 한숨 짓고 괴로워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사소한 잘못을 저지르고 이웃에게 용서를
비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며, 남의 물건을 좀 썼다고
그것을 물어주는 것도 모두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종교는 사소한 몇 가지의 악덕들
때문에 사람을 아주 이상하게 만들고, 또 같은 종교적
형제애 때문에 위대한 사람이 비천한 사람과 같이
되고 그를 존경하게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까?"하고 그는
마구 떠들어댔습니다.
크리스찬 : 그래서 당신은 그에게 뭐라고 말을
했습니까?
믿음 : 말하다니요!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그래요,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얼굴이 붉어졌으니까요. 그 부끄럽다는 것이 나를
구역질나게 만들었고 하마터면 나가떨어질
뻔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곧 '인간 사이에서 높게
평가받는 것이 하나님껜 미움을 받는다.'라는 말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리고 또한 수치심이 말한 것은 인간에 관한
것이지 하나님이란 어떤 분이며, 그 하나님의
말씀이란 어떤 것인지에 관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최후의
심판을 받는 날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것은 세상에서
잘났다고 젠체하는 정신이 아니라 가장 높으신 분의
지혜와 법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이 가장 옳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종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신다는 것, 하나님은 온유한 양심을 무엇보다도
좋아하신다는 것,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바보가 되는 자가 가장 현명한 자라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난뱅이가 그분을 미워하는 부유한
자들보다 더 부자라는 것 등을 알고서 나는
소리쳤습니다.
"수치심아 물러가라. 너는 나의 구원을 방해하는
원수로다. 내가 섬기는 주님을 버리고 내 어찌 너를
받아들이겠느냐? 만약 그렇게 하면 내 어찌 그분이
오시는 날 그분을 쳐다볼 수 있겠느냐? 지금 내가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과 그분의 일을 하는 것을
창피스러워한다면 어떻게 그분의 축복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그 수치심이란 놈은 정말로 지독한
악한이었습니다. 나는 그 수치심이란 놈을 떨쳐버리기
위해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러나 그놈은 악착같이
내게 달라붙어 나의 귀에 대고 종교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약점들을 끊임없이 속삭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그런 짓을 아무리 해도 아무 소용이 없으니
그만두라고 소리쳤습니다. 그가 경멸하는 것들 속에서
나는 가장 영광스러운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그 끈질긴 녀석을 떨쳐버렸습니다.
그를 떨쳐버리고 나서 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늘이 부르는 소리에 순종한
이들에게 닥치는 시련은 많기도 하다.
온갖 것들이 육체의 빈틈을 노려 유혹하며
오고, 또 오고, 또다시 밀려오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도 혹은 그 언젠가도
그것들에게 굴복하여 정복당하고, 넘어지는구나.
오, 그러니 순례자들이여, 순례자들이여,
모두 함께 경계하고, 사내답게 물리치자,
그 모든 시련을.
크리스찬 : 그 악한을 그렇게 용감하게 물리치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당신 말대로 그는 무엇보다도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가진 것 같군요. 그는
대담하게도 거리에서 우리를 따라다니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우리를 망신주려고 한 끈질긴 놈이었으니까요.
이를테면 그는 우리로 하여금 선한 것을 부끄러워하게
만들 작정이었군요. 그 자신이 대담하지 못하다면
그런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그에게 저항해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떠벌린다 해도 그가 권하는 것은 바보짓 외에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지혜 있는 자는 영광을
물려받고 미련한 자는 마땅히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라고 솔로몬이 말했습니다.
믿음 : 우리가 용감하게 진리를 이 세상에 펼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그분께 기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찬 :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계곡에서
또 다른 사람은 만나지 않았습니까?
믿음 : 아뇨, 못 만났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밝은
대낮에 걸었으니까요. 죽음의 그늘 계곡도 햇빛
아래서 지나왔습니다.
크리스찬 : 당신은 참 운이 좋았군요. 내가 겪은
것들과는 아주 딴판이군요. 나는 그 계곡에
들어서자마자 아폴리온이라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괴물과 한참 동안 무서운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놈에게 아주 죽는 줄 알았습니다. 특히 그놈이 나를
넘어뜨리고는 마치 찢어죽일 듯 덤벼들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놈이 나를 내동댕이쳤을 때 내
손에 잡았던 칼이 퉁겨져 나갔습니다. 나를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쳤지만 나는 하나님을 소리쳐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고 나를 그
모든 곤경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죽음의 그늘 계곡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계곡을 반쯤 지나가는데 그만 해가 지고 말았습니다.
거기에서 나는 몇 번이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날이 새고 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남은
길을 훨씬 더 쉽고 조용히 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계속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우연히 길
옆으로 눈을 돌린 믿음이 그들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서 길을 걷고 있던 '수다쟁이(Talkative)'라는
사람을 발견하는 것을 나는 꿈속에서 보았다. 그 길은
그들 모두가 함께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길이었다. 수다쟁이는 키가 컸는데 가까이서 볼
때보다 멀리서 볼 때가 풍채가 더 좋아보였다. 믿음이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다.
믿음 : 여보시오,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천국을
향해 가는 길인가요?
수다쟁이 : 예, 그리로 가는 길입니다.
믿음 : 잘됐군요. 그럼 우리 함께 동행하면
어떻겠습니까?
수다쟁이 : 기꺼이 동행이 돼 드리겠습니다.
믿음 : 그럼 이리로 오셔서 함께 갑시다. 서로
유익한 이야기나 나누기로 합시다.
수다쟁이 : 유익한 이야기를 한다면 당신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그렇게 좋은 생각을 가진
분을 만나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사실 여행중이라
하더라도 쓸데 없는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고 좀 더 유익하게 보내려는 자들은 드물거든요.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면서 걷는 것이 내게는 큰
고역이었습니다.
믿음 : 사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정말 슬픈
일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말고 이
땅에서 사람들의 혀와 입을 통해 이야기할 만한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수다쟁이 : 그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하시니 무척
반갑고 기쁘군요. 한마디 덧붙인다면 하나님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즐겁고 유익한 것이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즉 다시 말하면 사람이 훌륭한
어떤 것들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즐거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컨대 역사나
신비스러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다면, 또는 기적이나 불가사의, 어떤 징조 같은
것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다면,
성경책을 제외하고는 그 어디에서 그보다 더 즐겁고,
더 재미있는 기록들을 찾을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믿음 :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 것들을
이야기함으로써 유익함을 얻고자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것이지요.
수다쟁이 : 내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그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가장 유익한
것이지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눔으로써 우리들은 많은
것들을 알 수 있게 되지요. 이 세상의 온갖 일들은 다
허무하고 천국의 일들은 모두 유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그럼으로써 인간은 거듭 태어나는 것이
필요하며, 우리 인간들의 행위는 불충분한 것이며,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 등등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대화를 통해서 회개하고
믿고 기도하고 고통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고, 또한 자기자신의 안락을 위해서 어떤 것이
위대한 약속이며, 복음의 위로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이런 대화를 통해 우리는 잘못된
견해를 반박하는 방법, 진리를 입증하고 무지한
자들을 가르치는 방법까지 배울 수 있게 됩니다.
믿음 : 모두 옳은 말씀입니다. 당신한테서 그런
말을 듣게 돼서 기쁩니다.
수다쟁이 : 바로 이런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며, 자신의 영혼 속에 은총의 역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ㄲ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율법에 얽매여 살게
됩니다. 그렇게 살면 절대로 천국을 얻을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믿음 : 그런데 실례되는 말이지만 천국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의 선물이지요. 따라서 어느 누구도
자신의 노력이나 또는 그것에 대해 이야길 한다고
해서 천국에 대한 것을 획득할 수는 없습니다.
수다쟁이 :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천국으로부터 주어지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받을 수가
없죠. 그 모든 것은 은총에 의해 받는 것이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이 말을 증명할
만한 성경 구절을 얼마든지 예로 들 수 있지요.
믿음 : 좋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화젯거리로 어느
한 가지만 택해 이야기를 나눌까요?
수다쟁이 : 당신 좋을 대로 하시오. 나는 천국의
일이든 속세의 일이든, 도덕적인 일이든 전도하는
일이든, 성스러운 것이든 속된 것이든, 지나간 일이든
앞으로 닥쳐올 일이든, 외국의 일이든 국내의 일이든,
좀 더 본질적인 것이든 부수적인 것이든, 어떤
것이든지 이야기하고 싶소. 그것들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러자 믿음은 좀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 그동안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던 크리스찬에게 다가가서
나직이 속삭였다.
믿음 : 우리는 참 멋진 동행을 갖게 됐지 않소? 이
사람은 틀림없이 대단히 멋진 순례여행이 되게 해 줄
것이오.
이 말을 듣고 크리스찬은 조심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크리스찬 : 당신이 푹 빠져버린 그 사람은 그
혓바닥으로 그가 누군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킬 것입니다.
믿음 : 그럼 당신은 그를 알고 있습니까?
크리스찬 : 알다마다요. 그 사람 자신보다도 내가
그를 더 잘 알겁니다.
믿음 : 그가 어떤 사람인데 그러십니까?
크리스찬 : 그의 이름은 수다쟁이입니다. 그는 우리
마을에 살았었죠. 당신이 그를 모른다는 게 좀
의아스럽지만 그만큼 우리 마을이 넓기 때문이겠지요.
믿음 : 그의 아버지가 누구죠? 그리고 마을
어디쯤에서 살았습니까?
크리스찬 : 그는 '달변(Saywell)'이라는 사람의
아들인데 '재잘재잘(Prating-row)'이라는 거리에
살았습니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재잘재잘
거리의 수다쟁이라고 불렸죠. 말은 청산유수로 하지만
딱한 사람일 뿐이죠.
믿음 : 그렇지만 내게는 매우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는데요.
크리스찬 :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죠. 그는 타향에서는 잘난 사람처럼
보이지만 고향 근처에서는 추한 사람이지요. 그가
훌륭해 보인다는 당신의 말을 들으니 전에 본
그림들이 생각나는군요.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작품들은 멀리서 보면 아주 그럴듯하게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면 형편없었습니다.
믿음 : 그러나 당신이 웃는 것을 보니 지금
농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크리스찬 : 하나님께서는 내게 비록 웃으면서
말하더라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농담하지 말 것이며,
더구나 남을 거짓으로 비난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에 대해서 몇 가지 더
알려드리죠. 그는 어떤 사람하고든 무슨 이야기라도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당신과 이야기 한 것처럼 그는
술집에 앉아 있을 때도 아무하고나 떠들어댈
것입니다. 술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의 입에서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오지요. 그의 마음속이나
집안이나 대화에는 사실 종교는 없습니다. 그가
입으로 하는 말은 모두 다 거짓이고, 그의 종교란
그렇게 횡설수설하는 것이죠.
믿음 :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보기 좋게
속았군요.
크리스찬 : 분명히 속은 것이지요. '그들은 말은
하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국은 말하는 데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라는
금언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기도하는 것, 회개하는 것, 믿음이라는 것,
재생이란 무엇인가 등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단지 말만 할 줄
아는 것이죠. 나는 그의 집에 가본 적도 있고 해서
그가 집에 있을 때나 외출했을 때나 그를 제대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의
집안에는 종교가 없어 달걀의 흰자위처럼
무미건조합니다. 그의 집에는 기도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지은 죄를 회개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의 집에 있는 가축이 그보다도 훨씬 더
하나님을 잘 섬길 겁니다. 그를 잘 아는 입장에서
보면 그는 종교를 욕되게 하고 부끄럽게 만들며
더럽히는 장본인이지요. 그가 살고 있는 마을 어디를
가도 그에 대해 좋게 말하는 걸 들어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밖에서는 성자,
집에서는 악마'라고 부릅니다. 불쌍한 그의 가족들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하인들에게
매우 야비하게 굴고, 항상 꾸짖으며 부당한 대접을
하기 때문에 그의 하인들은 그 앞에서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말도 제대로 못한답니다. 그와 상거래를 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하고 거래하느니 차라리
터키인과 거래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들 합니다.
왜냐하면 터키인이 그래도 좀더 공정한 거래를
하니까요. 이 수다쟁이는 가능하기만 하면 그들보다
한 수 앞서 속이고 사기를 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 자식들도 자신의 본을 따르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약 자기 자식들 중에서 어리석은
겁쟁이(온순한 양심을 가진 자를 그렇게 부르죠.)를
발견하게 되면, 그는 그런 자식을 바보 멍청이라
부르며 일도 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결코
그런 자식에 대해 입에 올리지도 않습니다. 나는 그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즉 그는 사악한 인생을
삶으로써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고 망하게
했으며, 하나님이 막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을 파멸시킬 것이라고요.
믿음 : 그렇군요. 이젠 당신을 믿지 않을 수
없군요. 당신이 그를 안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은 크리스찬답게 사람을 정직하게 평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나쁜 마음을 가지고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고 사실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시는 건 줄
저는 압니다.
크리스찬 : 만약 내가 당신처럼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더라면 나 역시 처음에 당신이 그 사람에
대해 호감을 가졌던 것처럼 그를 잘봤을 것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이 모든 평가들이 단지 종교를 적대시
하는 사람들이 내린 것이었다면 나도 역시 그런
평가를 중상모략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과 선한 사람들의 명성과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중상모략 하는 일은 세상에 흔하니까요.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그의 비행들만 가지고도 나는 그가
못된 자임을 얼마든지 증명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선한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을 수치스럽게 여겨서
그를 형제라고 부르지도 않고 친구라 여기지도
않습니다. 선한 사람들은 그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얼굴을 붉히며 싫어합니다. 그들이 그 사람에
대해 알기만 하면 말입니다.
믿음 : 네, 이제 말과 행동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는 그 구별을 좀 더 분명히
하도록 힘쓰겠습니다.
크리스찬 : 그것들은 정말로 별개의 것이지요.
육체와 영혼이 서로 다르듯이 말입니다. 영혼이 없는
육체가 시체이듯이 말도 역시 그 말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시체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정결하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봐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수다쟁이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듣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크리스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결국 자신의 영혼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듣는 것은 씨를 뿌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말하는 것만으로는 그의 마음과 생활 속에 참다운
열매가 맺혀 있음을 증명해 주지 못합니다. 최후의
심판의 날에 사람들은 자신이 맺은 열매에 따라
심판받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심판하는 사람은 "당신은 믿습니까?" 하고 묻지 않고
"당신은 말만 하는 사람이니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입니까?" 하고 물을 것입니다. 그 답변에 따라
우리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마지막 날은
농부들이 탈곡하는 날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수확을
거두는 농부는 단지 열매만을 생각합니다. 즉 믿음이
없는 자들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최후의 심판의 날에 저 수다쟁이의 행함이
없는 공허한 말들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이
되는가를 알려주기 위해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 : 당신 이야기를 들으니 깨끗한 짐승에 대해
모세가 이야기한 것이 생각나는군요. 그가 말하는
깨끗한 짐승이란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짐승이지,
굽만 갈라졌거나 새김질만 하는 짐승은 아니었습니다.
토끼는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안 갈라졌기 때문에
불결하다고 했습니다. 수다쟁이야말로 그와
비슷합니다. 그는 새김질을 하고 지식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새김질합니다. 그러나 그는 굽은
갈라져 있지 않지요. 죄인들과 행동이 갈라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토끼가 그런 것처럼 그도 역시 개나
곰 같은 통발을 가지고 있어서 깨끗하지 못한
것입니다.
크리스찬 : 성경의 말씀이 의미하는 것을 잘 말씀해
주셨는데 거기에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바울은
말만 잘 하는 사람을 가리켜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 같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다른
곳에서 설명한 '생명이 없는 것이 소리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이 없는 것, 즉 진실한 믿음과 복음의
은총이 없는 것은 결국 천국에서 생명의 아들들 틈에
결코 끼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떠드는 공허한
소리가 천사의 목소리 같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믿음 : 물론입니다. 처음에는 그 사람과 동행하는
것이 썩 마음에 내키지 않더니 이제는 그 사람과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구역질이 납니다.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을 따돌릴 수 있을까요?
크리스찬 :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한번
해보시오. 그러면 곧 그 사람도 당신과 함께 가는
것에 대해 구역질을 내게 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 비뚤어진
마음을 돌려놓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믿음 : 어떻게 해야 합니까?
크리스찬 : 그 사람에게 가서 종교의 힘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해보자고 하시오. 그는 틀림없이
토론에 응할 것이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종교라는
것이 진정으로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가,
정말로 종교라는 것이 자신의 가정에 충만해 있는가,
그리고 진심으로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를
솔직히 물어보시오.
그러자 믿음은 다시 수다쟁이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믿음 : 여보시오. 그래 지금은 기분이 좀
어떻습니까?
수다쟁이 : 좋습니다. 우리가 계속 대화를 했더라면
지금쯤은 꽤 많은 이야기를 했을텐데 아쉽군요.
믿음 : 좋습니다.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이야기를
시작하죠. 당신이 내가 먼저 제시해 보라고 했으니까
내가 화제를 제시해 보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면 그 구원의 은총은 어떻게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수다쟁이 : 요컨대 사물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는 말씀이군요. 좋습니다. 그건 매우 좋은
토론거리입니다. 기꺼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우선 인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 차 있다면 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 : 잠깐만요. 우선 한 가지씩 생각해 봅시다.
내 생각에 구원의 은총은 영혼으로 하여금 죄를
혐오하게 하는 마음이 생기게 함으로서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말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수다쟁이 : 무슨 말이죠? 죄를 비난하는 것과 죄를
혐오하는 것에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까?
믿음 : 오! 큰 차이점이 있지요. 사람은 단지
정략적으로 죄를 비난할 수 있지만, 그것을 미워하는
하나님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죄를 미워할 수가
없지요. 나는 스스로의 마음이나 그 사람의 가정, 그
사람의 대화 속에서는 죄악을 품고 있으면서도
강단에서는 죄악을 소리 높여 비난하는 사람들을
무수히 보아왔습니다. 요셉의 여주인도 자기 자신이
대단히 정숙하고 신성한 것처럼 간음하는 죄를 소리
높여 비난했지만, 실은 간음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딸자식을 보고 망할 년이니, 못된
년이니 하면서 욕을 하다가도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엄마처럼 그렇게 죄를 비난합니다.
수다쟁이 : 당신은 남의 결점만 찾아내는 취미를
가졌군요.
믿음 :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다만 사물을
올바르게 보려는 것 뿐입니다. 어쨌든 사람의 마음
속에 구원의 은총이 있음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는 그
두번째는 어떤 것입니까?
수다쟁이 : 복음의 기적들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이지요.
믿음 : 그것은 은총이 깃들여 있음을 보여주는
첫번째 징조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머지않아
허황된 것으로 판명됩니다. 복음의 기적에 대해 많은
지식을 얻을 수는 있지만 지식 그 자체가 마음속에
은총이 깃들게 해주지는 못하지요. 만약 어떤 사람이
아무리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해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지식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자식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다 알았느냐?" 하고 그리스도께서 물으셨을
때, 제자들은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그대로 행하면 복을
받을지니라." 라고 덧붙이셨습니다. 그분은 그 모든
것을 아는 자에게 축복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자들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지식도 있고,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천사처럼 잘 알면서도 결국 크리스찬이 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야기하신
징조란 옳은 것이 못됩니다. 안다는 것은 수다쟁이나
거드름피우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만족시켜주기는
하겠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주는 것은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식이
없어야 마음이 선해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지식이
없는 마음은 공허해지니까요. 그러므로 지식은
필요하며, 그 지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물들에
대해 헛되이 사색하는 데 만족하는 지식이 있고,
믿음과 사랑의 은총이 충만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속에서 우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지식이 있습니다. 수다쟁이는 전자와 같은
지식을 섬기고, 진실한 크리스찬은 후자와 같은
지식이 없다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를
깨닫게 하소서! 그러면 내가 당신의 법을 지키며
진심으로 그에 따라 살아가겠습니다.'
수다쟁이 : 또 남의 흠만 들추는군요. 그것은 남을
교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믿음 : 그렇다면 은총이 깃든 곳에서 어떻게 그
은총이 깃들였는지 알 수 있는 징조를 다른 것으로
제시해 보십시오.
수다쟁이 : 그만두겠습니다. 역시 또 내 말에
동의하지 않을테니까요.
믿음 : 그러시다면 제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시겠습니까?
수다쟁이 : 마음대로 하십시오.
믿음 : 마음 속에 은총이 깃들여 있다면 그 은총은
그 당사자 뿐만 아니라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그 모습이 드러납니다.
은총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나타납니다.
마음에 은총이 깃들여 있으면 그는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됩니다. 특히 자신의 본성을 모독한 죄를
깨닫고 불신의 죄를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하나님의 자비를 얻지 못하게
되면 저주받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을 발견하고 느끼게 되면, 그는
죄를 지은 것에 대해 애통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됩니다. 또한 그는 세상의 구세주가 자신의 마음 속에
모습을 드러내어 자신은 평생 그분을 가까이하며
살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그분을 쫓아
굶주리고 목말라 하면서, 또한 그런 갈증과 굶주림
속에서 그분의 약속이 이루어짐을 ㄲ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구세주를 믿는 믿음이 강렬하냐
약하냐에 따라서 그는 즐거움과 평화를 얻기도 하며
그렇지 못하기도 하고, 거룩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강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하고, 그분에 대해서 좀
더 알고자 하는 마음과 이 세상에서 그분을 섬기려는
마음이 강렬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은총이 그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이 은총이 깃들여 있음을
보여주는 징조라는 것을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재 너무 부패해 있고
이론을 남용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건전한
판단력을 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그는 이런
징조가 은총이 깃들여 있다는 표시라는 것을 의심없이
결론짓게 될 수 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이와같은 사실을 통해서
은총이 깃들여 있음을 알게 됩니다.
첫째,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믿음을 경험론적으로
고백함으로써. 둘째, 그런 고백에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부터, 즉 성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을 통해서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어떤 사람에게 은총이 깃들여
있는지 없는지를 알게 됩니다. 신성한 마음, 신성한
가정(만약 그가 가정을 가졌다면), 세상살이의 신성한
대화를 통해서 그는 내적으로 자신의 죄를 미워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가정생활 속에서 그 죄를 억제하고, 세상살이를 하는
가운데 신성함을 증진시키려 애쓰게 됩니다. 위선자나
수다쟁이가 그러하듯이 단지 말만을 앞세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권능에 대한 믿음과
사랑 속에서 실천적인 복종으로써 행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사람은 구원의 은총이 깃들면 어떻게
되며, 그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관해 간단히
말씀드렸는데 반대하실 게 있으면 지금 말씀해
주십시오. 만약 없다면 제가 두번째 질문을 드리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수다쟁이 : 좋아요. 지금 저로서는 반대할 입장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니 당신의 두번째 질문을
들어봅시다.
믿음 : 두번째 질문이란 이것입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를 그대로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의 생활과 말은 그것을
증거합니까? 아니면 당신의 종교는 행동이나 진실에
있지 않고 말이나 혀에만 있는 것입니까? 만약 당신이
내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동의하는 것만 말한다고 맹세하고, 또한 당신의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진실만 대답하겠다고 맹세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인정받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세워주시는 바로 그 사람'이니까요. 또한
이웃사람들이 모두다 당신이 거짓말 하고 있다고
말하는데도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은 큰 죄악인
것입니다.
그러자 수다쟁이는 처음에는 얼굴을 붉히다가 곧
냉정을 되찾고는 대답하는 것이었다.
수다쟁이 : 당신은 지금까지 경험이니 양심이니
하나님이니 하는 말들을 지껄이다가 그 말의 정당성을
하나님께 호소하는군요. 나는 이야기가 이렇게
엉뚱하게 흐를 줄은 몰랐소. 따라서 그런 질문에
대답할 마음도 없소. 왜냐하면 당신이 교리문답자가
아닌 이상 내가 반드시 대답해야 할 까닭도 없고,
설사 당신이 교리문답자라 하더라도 당신을 내
심판관으로 삼지는 않겠소. 그런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당신이 내게 그런 질문을 하는지 그 이유라도
말해 주시겠소?
믿음 :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당신은 말만 앞세우는
사람 같고, 또 당신은 관념만 있지 다른 어떤 것도
갖고 있지 못한 사람 같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실대로 말하면 당신은 말만 앞세우는 거짓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을
여러 사람에게서 들었기 때문이오. 그들은 말합니다.
당신은 크리스찬들 사이에 낀 오점이요, 당신의
경건치 못한 말 때문에 종교가 더욱 타락하게 되었고,
당신의 사악한 방법에 걸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거꾸러졌고, 그것 때문에 앞으로도 더욱 많은
사람들이 파괴될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당신의 종교는 술집과 탐욕과 부정과
비방과 거짓말과 쓸모없는 친구들 사이에서나 존립할
것입니다. 한 창녀가 전체 여성에게 수치가 된다는
속담이 당신에게도 적용됩니다. 당신은 모든 신자들의
수치입니다.
수다쟁이 : 당신이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중상모략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나를 판단하니 나도
결국 당신과 함께 대화를 나누기가 창피할 정도로
당신은 괴팍스럽고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군요. 그러니 잘 가시오.
그때 크리스찬이 믿음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크리스찬 : 내가 이렇게 되리라고 말씀드렸죠.
당신의 말과 그 사람의 욕망이 서로 일치할 수는
없지요. 그는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기 보다는 당신을
떠나는 쪽을 택한 그런 사람입니다. 하여튼 그는 내가
이야기한 대로 갔습니다. 그냥 가게 놔두십시오.
손해를 본 건 바로 그 사람이니까요. 그는 우리로
하여금 그를 떠나야 하는 난처한 상황을 면하게
해주었습니다. 왜냐라면 그는 성격상 계속해서
이야기했을 것이고 그렇게 계속 그자와 동행했더라면
우리 사이에 오점만 남게 됐을 테니까요. 예수님의
사도 중 한 사람도 그렇게 말했죠. "그런
사람으로부터 돌아서라." 라고 말입니다.
믿음 : 그렇지만 나는 우리가 그 자와 잠시
이야기하게 됐던 것을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다시 생각해 볼지도 모르니까요. 아무튼 나는
명백하게 그의 잘못을 지적해 주었으니까 설사 그가
멸망한다 해도 내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크리스찬 : 그렇게 명백하게 말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게 명백하게 사람을
대하는 일이 거의 없고, 그 때문에 종교는 무수한
사람들의 지저분한 지껄임 속에서 좋지 못한 냄새를
피우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바로 이런 수다쟁이
바보들이며, 그들의 종교는 말뿐이고, 허황된
대화로써 세상사람들을 타락시킵니다. 신성한 사람들
사이에 빈번하게 출현하여 세상을 어지럽히고
그리스도교를 더럽히며 성실한 사람들을 슬프게
만듭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했던 것처럼
그렇게 그런 사람들을 대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그들도 좀더 종교에 가까워지거나 아니면 신성한
사람들과 같이 행동하는 것을 괴로워 하게 될
테니까요.
그러자 믿음이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그다지도 날개를 활짝 펼치던 수다쟁이,
얼마나 용감히 말을 했던가!
자기 앞의 모든 것들을 굴복시키려고
얼마나 도도하게 애를 썼던가!
그러나 믿음이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자
보름달이 사위어 이지러지듯
그의 기세는 사라져버렸네.
마음속 깊이 깨달은 자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되리니.
크리스찬과 믿음은 순례 도중에 보았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계속 길을 걸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행의 무료함을 달래면서 힘든 줄도 모르고 발걸음을
쉽게 했다. 그들은 황야를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황야를 막 벗어날 무렵 믿음이 우연히 뒤를
돌아다 보았는데 어떤 사람이 그들 뒤를 따라오는
것을 보았다. 믿음이 크리스찬에게 말했다.
"아니, 저기 따라오는 사람이 누구죠?"
크리스찬이 뒤돌아보고는 대답했다.
"내 친한 친구인 복음전도사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는 나의 친한 친구이기도
하지요. 내게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준
분입니다."
이윽고 복음전도사는 그들이 있는 데까지 다가와
인사를 했다.
복음전도사 : 그대들에게 평화가 함께 하길! 그리고
당신들을 도와준 사람들도 평안하길 바랍니다.
크리스찬 :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나의
착하신 전도사님. 당신의 모습을 보니까 오래 전에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친절하고 끈기
있게 도와주시던 것이 생각납니다.
믿음 : 이렇게 오신 것 천만 번 환영합니다. 친절한
당신과 함께 길을 걷게 되다니 우리같이 가엾은
순례자들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복음전도사가 말했다.
복음전도사 : 여러분은 우리와 헤어진 뒤로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도중에 어떤 일들을 당했으며, 또
그것들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크리스찬과 믿음은 도중에서 겪었던 모든 일과,
어떻게 그런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를 그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복음전도사 : 정말 기쁩니다. 그런 시련들을
겪으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이겨냈다니 말입니다.
그리고 또한 여러 가지 약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계속 순례여행을 하셨다는 점도 기쁜
일입니다.
내가 당신들이 여기까지 오게 돼서 기쁘다고 말하는
것은 당신들뿐만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나는 씨를 뿌렸고, 당신들은
거두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씨를 뿌린 자와 열매를
거둔 자가 함께 기뻐할 날이 올 것입니다. 즉 낙담만
하지 않고 계속 일하면 반드시 거둘 날이 있을
것입니다. 왕관이 그대들 앞에 있고, 그 왕관은 썩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 달려가시오. 이 왕관을 얻기 위해
어떤 사람은 꽤 먼 길을 달려갔는데 중간에서 다른
사람이 끼여들어 그 왕관을 빼앗아 가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꼭 잡으십시오. 당신들은
아직 악마의 세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당신들은 아직 죄악에 대항하여 피 흘리는 싸움은
하지 않았으니까요. 항상 하나님의 나라를 눈앞에
두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히 믿으십시오.
이 세상 일을 마음속에 품지 말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들 자신의 마음과 거기에서 생겨나는 욕망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육욕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거짓되고 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조금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힘이 당신들과 함께 있으니까요.
그러자 크리스찬은 그의 충고에 감사하다고 하면서
앞으로 남은 순례여행에 도움이 될 만한 충고를 더
해달라고 청했다. 그것은 그가 예언자며, 앞으로 여행
도중에 그들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이야기해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어떻게 하면 그 난관들에
대항하여 극복할수 있는지 가르쳐줄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믿음 역시 같은 부탁을 했다.
그리하여 복음전도사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복음전도사 : 여러분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온갖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을 복음서에 기록된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잘 알고 있겠지요. 어느 도시를
가든지 속박과 재난은 당신들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종류는 다르더라도 그런 시련들 없이 순례의
길을 오래 계속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당신들은 이미
겪어본 사실들을 통해서 이 말이 진실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며, 곧 더 큰 시련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들도 보시다시피 이제 황야는 거의 벗어났으며,
곧 마을 하나가 눈에 보일 것이고 당신들은 그 마을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마을에서 당신들은
당신들을 죽이려는 적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당신들은 둘 모두 아니면 둘 중에 한 사람이 당신들이
갖고 있는 믿음에 대한 증거를 피로써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죽음으로써 믿음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생명의 왕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거기서 죽는 사람은 물론 비명
횡사하는 것이고, 그 고통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혹독하겠지만, 여행을 계속하게 될 다른 동료보다는
더 다행스런 일일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좀더 빨리
천국에 도달하게 될 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가 남은
여행길에서 겪게 될 여러 가지 고난을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 마을에 도착하면 지금 내가 말한
일들이 그대로 일어날 것이니 당신들의 절친한 친구인
나를 생각하면서 사내답게 처신하고 여러분의 하나님,
곧 신실하신 조물주께 여러분의 영혼을 맡기십시오.
그때 나는 꿈속에서 그들이 황야를 막 벗어나자 곧
마을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그 마을의
이름은 '무상함(Vanity)'이라고 했다. 그 마을에는
'허영의 시장(Vanity-Fair)'이라는 장이 서고 있었다.
그 장은 일년 내내 섰고, 허영의 시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 장이 계속 서고 있는 마을이 허영보다도 더
천박했고 또한 거기에서 사고 파는 모든 것이
허영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자가 말한 격언대로 '무릇
장래의 일은 모두 헛되도다.'였다.
이 시장은 지금 새로이 세워진 것이 아니라 태고
적부터 서 있었는데 그 내력은 이렇다.
약 5천 년쯤 전에도 지금의 이 가엾은 두 사람처럼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들이 많이 있었다.
순례자들이 이 마을을 통해 난 길로 지나가는 것을 본
비엘지법, 아폴리온, 레기온이라는 세 악마는 자기
동료들과 함께 이 허영의 도시에 시장을 세워서 일년
내내 온갖 헛된 것들을 팔기로 계략을 세웠다.
그리하여 이 허영의 시장에서 그들은 상품으로 가옥,
토지, 직위, 신분, 명예, 승진, 귀족의 직함, 국가,
왕국, 욕망, 쾌락, 매춘부, 뚜쟁이, 아내, 남편,
자식들, 주인, 하인, 생명, 피, 영혼, 은, 금, 진주,
보석 등 온갖 즐거움을 거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시장에서는 언제든지 요술, 사기,
도박, 노름, 광대짓, 원숭이, 악당, 장난꾼 등 온갖
악한 것들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여기서는 강도, 살인자, 간통한 자, 거짓 증언
그리고 피처럼 붉은 얼굴을 한 자들을 그야말로 돈
한푼 안 들이고 볼 수 있었다.
다른 상설시장처럼 적절한 이름이 붙은 골목과
거리가 있어서 그 이름에 어울리는 물건들이 진열돼
있었다. 그리하여 어떤 특이한 물건을 사려면 그
특이한 물건을 진열해 놓은 광장이나 골목(이를테면
지방이나 나라)을 찾아가야 그런 물건을 가장 쉽게 살
수 있었다. 여기에는 영국 골목, 프랑스 골목,
이탈리아 골목, 스페인 골목, 독일 골목이 있어
거기에서 그 나라 특유의 여러 가지 허영을 팔고
있었다. 다른 시장에서처럼 어떤 물건은 장터의
인기를 독차지하는데 로마 제품과 그것을 파는
상인들이 시장을 거의 휩쓸고 있었다. 다만
영국사람들과 몇몇 다른 나라 사람들만이 로마 제품을
싫어할 뿐이었다.
전에도 말했듯이 하늘나라로 가는 길은 이 도시를
통과해야만 하는데 바로 이 도시에 욕망의 시장이
서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시장 거리를 통과하지
않고 하늘나라로 가려는 자는 반드시 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만 하게 되어 있었다. 모든 왕들의 왕이신
예수께서도 자기 나라인 하늘나라에 가는 길에 이
마을을 통과하셨는데, 그때도 마침 장이 서 있었다.
그렇다. 내 생각에 그때 그분에게 온갖 허영을 사라고
꼬드겼던 사람이 바로 이 시장의 주인인
비엘지법이었던 것이다. 만약 이 마을을 지나가는
동안 예수님께서 그 악마의 흥정을 받아들였더라면
그분은 이 시장의 주인이 되엇을 것이다. 예수님이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비엘지법은 그분을 이 거리 저 거리 데리고 다니면서
세상의 온갖 왕국들을 순식간에 보여주고, 어떻게
하면 그 축복받으신 분을 유혹하여 허영의 물건을 좀
사게 할까 궁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그런
상품들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런 헛된 것들을
사기위해 돈 한푼 쓰지 않은 채 그 마을을 떠났다.
그러므로 이 시장은 아주 옛날에 세워져서 그동안
계속해서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굉장한 시장인 셈이다.
이제 이 두 순례자도 이 시장을 통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그러자마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도시 전체가 그들에 대해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들이 수군거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첫째, 그 순례자들은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입는 옷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시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들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바보라고 말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미친놈들이라고 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외국사람 같다고 말했다.
둘째, 순례자들은 옷뿐만 아니라 말소리도 이상해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알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순례자들은 물론 가나안 말을 썼으므로 세상 말을
그냥 쓰는 시장사람들로서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시장 이쪽으로 들어가
저쪽으로 나갈 때까지 그들은 서로 외국인같이 말이
통하지 않았다.
셋째, 상인들은 그 순례자들이 자기네 물건들을
경시하여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에 대해 몹시
불쾌했다. 상인들이 그들에게 물건을 사라고 외치면
그들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덧없는 것들을 보지
않도록 내 눈을 돌려주소서." 하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들의 거래는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하늘을 쳐다보았다.
한 사람이 용케 기회를 잡아 그 순례자들의 거동을
비웃으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무엇을 사시겠소?"
그러자 그들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우리는 진리를 사는 사람이오."
이 말 ㄸ문에 그들은 점점 더 경멸을 받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야유를 보내고, 어떤 사람들은 욕설을
퍼부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꾸짖으며 말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혼내주자고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었다. 마침내 시장바닥은 야단법석이 일어나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시장의
한 우두머리가 급히 달려왔다. 그는 자기 심복들에게
이 순례자들을 조사해서 어째서 온 시장이 그들
때문에 야단법석인가 그 원인을 찾아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순례자들은 취조실로 끌려왔다.
그들 앞에 앉아 있던 조사관들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길인지, 그리고 그런 괴상한 곳을 입고
무슨 짓을 했는지 등을 물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순례자이며 이방인이라고 밝혔고, 자기들 나라인
천국의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은 마을사람들이나 상인들로
하여금 화가 나서 자기네 순례의 길을 못 가게 막을
만큼 거슬리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만일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 있다면 어느 상인이 그들에게
무엇을 사겠느냐고 물었을 때 진리만을 사겠다고
대답한 것 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사관들은
그 순례자들이 미친놈들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시장바닥에서 그런 소란을 일으킬 수 있겠느냐고
그들이 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하여 조사관들은
그들을 붙잡아 때리고 더러운 오물을 몸에 쳐바르더니
감옥에 가두었다. 그것은 순례자들을 시장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구경거리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얼마 동안 감옥에 갇혀서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고 증오와 보복의 대상이 되었다. 시장의
우두머리는 여전히 그들이 당하는 것을 보면서 웃고만
있었다. 그러나 참을성이 많은 두 순례자는 욕설을
욕설로 되받아치지 않고 축복의 말로 받았으며, 나쁜
말에는 좋은 말로 대꾸했고 위해를 가할 때는
친절하게 대했다. 그러자 시장사람들 중에서 그래도
남들보다는 사리판단을 할 줄 알고 편견을 덜 가진
사람들이 자중해서 순례자들을 계속해서 괴롭히는
자들을 비열한 사람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화가 난 마을사람들은 그들을 옥에 갇힌 순례자들과
똑같이 나쁜 놈들이라고 말하면서 그들도 공모자인
듯하니 같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떠들어댔다. 그러자
순례자들을 동정하는 사람들은 자기네가 보기에 두
사람은 조용하고 착실해서 아무도 해치지 않을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기네와 시장에서
거래를 했던 사람들 중에는 지금 모욕을 당하는 이
두사람보다 칼을 씌워 감옥에 가둬야 마땅할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두 순례자가
조용히 앉아 있는 동안에 시장사람들은 자기네들끼리
패가 갈리어 욕설이 오가더니 서로 치고받고 피흘리며
싸우는 것이었다. 가엾은 두 순례자는 조사관들 앞에
끌려나와 방금 시장에서 벌어진 소란까지도 이들에게
죄가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그들을 흠씬 두들겨주고 칼을 씌운 다음 쇠사슬을
질질 끌며 시장바닥을 여기저기 돌게 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더 이상 그들의 언행을 입에 담거나 그들의
순례여행에 가담하지 못하도록 위협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크리스찬과 믿음은 더욱더 행실을
바르게 처신했으며, 자기들에게 가해지는 수치와
곤욕을 참을성 있고 현명하게 받아들였으므로 비록 그
수가 적지만 시장 안의 몇몇 사람들은 그들 편에 서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시장의 다른 패거리들은
더욱 화가 나서 두 사람을 죽여버리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들은 순례자들을 감옥에 가두거나 쇠사슬을
묶어두는 정도에 그칠 게 아니라 그들을 아예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시장사람들을
모욕했으며, 또 그들을 현혹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때 다른 명령이 있을 때까지 그들을 다시 감옥에
가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감옥에 갇혔고 발에는 차꼬가 단단히 채워졌다.
그들은 신실한 친구였던 복음전도사가 그들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이 기억났다. 특히 그들이 도중에
겪게 될 고난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던 것이 더욱
뚜렷하게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들은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은 가장 좋은 곳에 이르기 위해서 겪어야 할
고통이라고 서로를 위로해 주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제각기 자기가 더 심한 고초를 받기를 원했다. 그들은
자신을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전지전능한 분께 맡기고
자기들이 풀려날 때까지 현재의 상황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이자고 했다.
적당한 때가 되면 두 순례자를 재판에 회부하여
사형에 처하기로 약속한 관리자들은 때가 되자 그들을
고발한 적들 앞에 세우고 심문하기 시작했다.
재판장의 이름은 '선을 증오함 경(Lord
Hategood)'이었다. 그들의 고발내용은 형식이 약간
다르긴 했지만 하나였고 같은 것이었다. 그 내용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피고들은 고소인의 원수였고, 고소인들의 상업을
방해했다. 그대들은 읍내를 혼란케 했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을 분열시켰고, 제 나라 왕의 법을 경멸하는
가장 위험한 사상으로 당파를 만들었도다."
그러자 믿음이 자기는 가장 높은 자보다도 더
높으신 하나님께 도전하는 자에게만 항거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계속 말했다.
"소란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소. 우리 쪽에
당파가 형성된 것도 그들이 우리의 진실과 무죄함을
보고 모여든 것이므로 그들로서는 악한 것으로부터
더욱 훌륭한 곳으로 옮긴 데 불과합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말하는 왕이라는 자도 그가 우리 주님의
원수인 비엘지법이라는 걸 알고 있는 이상 나는 그와
그의 모든 패거리들을 거부하지 않을 수 없소."
그러자 그들의 왕인 비엘지법을 위해서 법정에 서서
피고들을 정죄할 증언을 할 자는 나서서 증언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곧 세 증인인 '질투(Envy)'와
'미신(Superstition)', '아첨꾼(Pickthank)'이 나와
증언을 하기 시작했다. 재판장은 그들에게 먼저
피고들을 아느냐고 묻고 그 죄인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모두 말하라고 했다.
먼저 질투심이 일어서서 말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이자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습니다. 명예로운 이 재판정에서 맹세코 바른
증언을 하겠습니다. 저자는......"
재판관 : 잠깐, 선서부터 하시오.
그들은 질투심에게 선서를 시켰다. 그러자 그가
말을 계속했다.
"재판장님, 이자는 그럴 듯한 이름을 가졌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열한 사람입니다. 그는 왕도
백성도 법률도 관습도 모두 무시하고 우습게
여깁니다. 그가 하는 일이란 오직 자기 입으로
믿음이니 신성한 것이니 하는 불충스런 사상을 모든
사람들에게 심어주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특히 나는
그가 언젠가 그리스도교와 우리 무상함 마을의 관습은
정반대로 다르기 때문에 결코 화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재판장님, 이자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우리들의 모든 건전한 행위들을
비난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행위를 하는 우리들
자신을 비난한 것입니다."
그러자 재판장이 그에게 말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있는가?"
질투심 : 존경하는 재판장님, 할 말은 얼마든지 더
있습니다만 본 재판정을 지루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분들이 증언을 한 다음에도
이자를 죽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면 그때 다시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재판관은 질투심에게 비켜서 있으라고 명령했다.
그러고 나서 미신을 불러 세워놓고 피고를 바라보게
했다. 그들은 그에게도 또한 자기네 왕을 위해 그에게
불리한 증언이 있으면 다 말해 보라고 하고서는
그에게도 선서를 하도록 했다. 미신이 말하기
시작했다.
미신 : 존경하는 재판장님, 나는 이자와 사귀어본
적도 없고 또 앞으로도 이자에 대해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를 이 마을에서 만난 후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는 가운데 나는 그가 매우
악질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우리의 종교는 무가치하며,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자의 말대로라면 재판장님께서도 미루어 알 수
있으시겠습니다만, 우리는 지금 헛것을 섬기고 있으며
여전히 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전부입니다.
그 다음엔 아첨꾼이 나서서 선서를 한 후 자기네
왕을 위해 피고에게 불리한 증언을 있는 대로
늘어놓았다.
아첨꾼 :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장내의 신사
여러분! 나는 이자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소리를 지껄이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고귀하신 비엘지법 폐하에게
욕설을 퍼부었으며, 폐하의 절친한 친구분들인 '노인
각하(the Lord Old Man)', '육체적인 쾌락 각하(the
Lord Carnal Delight)', '사치심 각하(the Lord
Luxurious)', '헛된 욕망 각하(the Lord Desire of
Vain-glory)', '호색 각하(Lord Lechery)', '탐욕
경(Sir Having Greedy)' 그리고 그 밖의 나머지
귀족들을 업신여기는 말을 했습니다. 게다가 만약 이
읍내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면 이 귀족들은 더 이상 마을에 살 수가 없을
것이라고 지껄여댔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뿐이
아닙니다. 그는 이 신성한 재판을 위해 임명받으신
각하까지도 공정치 못한 악한이라고 불렀으며, 그리고
또한 중상모략하는 말을 수없이 지껄이면서 우리
마을의 대부분의 귀족들에게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아첨꾼이 말을 마치자 재판장이 피고에게 말했다.
"너 이놈, 변절자요, 이단자에다 배반자인 이놈.
너는 이 정직한 신사들이 너에 대해 증언한 것들을
모두 들었겠지?"
믿음 : 내 자신을 변호하게 몇 마디 말하는 걸
허락해 주시겠소?
재판관 : 이놈, 너 이놈. 너는 더 이상 살 만한
가치가 없는 놈이라 당장 죽여 마땅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네게 얼마나 신사답게 대해 주었는지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모두 다 들어줄 테니
무슨 말이든 지껄여봐라.
믿음 : 우선 질투심 양반이 말한 데 대해
답변하겠소. 내가 한 말은 단 한마디 뿐이었소. 즉
규칙이나 법률이나 관습이 어떻든, 또 백성들이 어떤
사람들이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리스도교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을 뿐이오. 내가 한 말에 대해 잘못된
점 있으면 지적하시오. 그러면 여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한 말을 취소하겠소.
다음으로 미신 양반이 증언한 말에 대답하겠소.
내가 말한 것은 이런 것이었소.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신성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성스럽게 계시되지 않았다면 신성한 믿음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스런 계시에 부합되지 않는
하나님 숭배에 사람들을 억지로 동참시켜봐야 그것은
인간적인 믿음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런 믿음
가지고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가 없다고 말한
것이오.
셋째로 아첨꾼 양반의 증언에 대답하겠소. 내가
욕설을 퍼붓는다고 하니 그런 말들은 안 하겠소.
그러나 나는 이 마을의 왕이나, 아첨꾼 양반이 일일이
호명한 그의 어중이떠중이 시종들은 모두 이 마을이나
이 나라에서 살 것이 아니라 지옥에나 가서 사는 게
더 어울리겠다고 말하는 바이오. 그러니 재판관은
신중히 판단해 주시오.
그러자 재판장은 지금까지 한쪽에 서서 모든 것을
보고 들은 배심원들에게 말했다.
"배심원 여러분, 여러분들은 우리 읍내에서 큰
소란을 일으킨 장본인인 이 자를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덕망 있는 신사들의 그에 대한 증언도
들었습니다. 또한 그의 대답과 자백도 들었습니다. 이
사람을 처형하느냐 아니면 살려두느냐는 바로
여러분들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먼저
우리의 법률에 대해 여러분에게 설명해 드리는 게
타당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왕의 종이었던 파라오 대왕 시절에
우리 고유의 종교와 반대되는 이방 종교가 번식하고
강성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교도들의 사내 아이들은
모두 강에 버리라는 법령이 제정된 적이 있습니다. 또
다른 종인 느부갓네살 대왕 때에는 그의 황금조각상에
무릎 꿇고 숭배하기를 거절하는 자는 모두 불타는
화로에 던져버리라는 법령에 제정되었습니다. 또한
다리우스 시대에는 일정한 기간 동안 그 왕의 신이
아닌 다른 신을 부르는 자는 사자의 동굴에 던지라는
법령이 제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반역자는 그런 여러 가지 법령의 본질을
깨뜨려버렸습니다. 그것도 생각만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말과 행실로 어긴 것입니다. 따라서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파라오 시절에 제정된 법령의 경우에는 아직
범법행위가 분명하지는 않더라도 그 해악을 예방하기
위해 범법행위의 개연성만 있어도 처벌할 수 있도록
법령을 제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 그
범죄행위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이나 다리우스의 법령에 비춰봐도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그는 우리의 종교를 거역했습니다. 그가
자백한 것만 가지고도 그는 사형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배심원들은 퇴정했다. 그들의 이름은
'맹인(Blind-man)', '불량배(No-good)',
'호색가(Love-lust)', '백수건달(Live-loose)',
'안절부절(Heady)', '고결한 인품(High-mind)',
'증오심(Enmity)', '거짓말쟁이(Liar)',
'잔인함(Cruelty)', '빛을 증오함(Hate-light)',
'무자비한(Implacable)' 등이었다. 그들은 모두
유죄판결을 내리리라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만장일치로 유죄판결을 결론짓고 재판관에게
보고했다. 배심원장인 맹인이 먼저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이 이교도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불량배가 말했다.
"저런 녀석은 이 세상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나는 저렇게 생겨먹은 녀석을
증오하오."
악의가 말했다. 이번에는 호색가가 말했다.
"나는 더 이상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참고 볼 수가
없소."
"나도 동감이오. 그는 언제나 나의 길을 비난하기만
했소."
백수건달이 호색가의 말을 받았다. 그러자
안절부절이 성급하게 외쳤다.
"교수형에 처합시다. 교수형에 처합시다."
"불쌍한 친구 같으니......"
고결한 인품이 말했다.
"내게는 그를 향한 적개심이 끓어오르고 있습니다."
증오심이 말했다.
"그는 사기꾼입니다."
거짓말쟁이가 말했다.
"목매다는 것도 과분하지."
잔인함이 외쳤다.
"어서 빨리 그자를 처치합시다."
빛을 증오함이 소리질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무자비한이 말했다.
"이 세상을 모두 내게 준다 해도 나는 그자와
화해할 수 없소. 그러니 그에게 유죄판결을 내려
사형에 처합시다."
그래서 믿음은 법정에서 끌려나가 그가 전에 있던
곳으로 다시 가게 되었다. 거기서 그는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당하도록
선고받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법에 따라 처형하기 위해서
믿음을 밖으로 끌어냈다. 먼저 그들은 채찍질을
가하면서 믿음을 죽도록 때렸다. 그러고는 칼로
살갗을 도려내더니 무거운 돌로 짓이기고 대검으로
온몸을 난도질하더니 마지막에 화형에 처해 재로
만들어버렸다. 이렇게 믿음은 종말을 고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군중들 뒤에서 쌍두마차가 믿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꿈속에서 보았다. 그의 환난이 끝나자마자
그를 태우고 나팔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하늘나라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인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한편 크리스찬은 집행이 연기되어 다시 감옥에
갇혔다. 그는 감옥에 한동안 갇혀 있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께서 관리들의
난폭한 힘을 억제하셨으므로, 마침내 크리스찬은
감옥에서 나와 자기 길을 계속 가게 되었다. 그는
길을 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장하다 믿음이여, 그대는 그대의
주님에 대한 믿음을 신실하게 증언했도다.
믿음 없는 자들이 이승의 온갖 헛된 쾌락을 안고서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울부짖을 때,
그대는 그대의 주님과 축복을 나누리라.
찬송하라, 믿음이여, 찬송하라.
그리고 그대의 이름 영원히 남을지니.
저들이 그대를 죽였지만 그대는 영원히 살아
있도다.
나는 꿈속에서 크리스찬이 혼자서 길을 가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을 보았다. 허영의 시장에서
크리스찬과 믿음이 온갖 고난을 당하면서 보여준 말과
행동을 보고 '희망(Hopeful)'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이 나타나 형제의 언약을 맺고 동행을 요청한
것이었다. 진리를 지키다 죽은 한 사람의 재에서 다른
한 사람이 일어나 크리스찬의 동료가 된 것이다.
희망은 또한 크리스찬에게 허영의 시장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머지않아 일어나 순례의 길을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이 허영의 시장을 막 벗어나자 그들보다
앞서가던 한 사람을 따라잡는 것을 보았다. 그의
이름은 '비리(By-ends)'라고 했다. 그들이 비리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여보시오, 당신은 고향이 어디며 어디까지 가시는
길입니까?"
그는 '감언이설(Fair-speech)'이라는 마을을 떠나
지금 하늘나라를 향해 가는 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자기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크리스찬이 물엇다.
"감언이설에서 오신다고요? 그 곳에도 착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비리 : 글쎄, 있겠지요.
크리스찬 : 그런데 선생님 성함은 무엇입니까?
비리 : 당신이나 나나 서로 초면이긴 마찬가지지요.
만약 당신이 이 길로 가신다면 내 기꺼이 동행해
주겠지만 다른 길로 가신다면 나는 혼자서라도
만족합니다.
크리스찬 : 그 감언이설이라는 마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요. 그곳이 상당히 부유한
곳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비리 : 맞습니다. 사실이 그렇죠. 그곳에는 나의
부유한 친척들도 많이 있답니다.
크리스찬 : 실례입니다만, 그곳에 있는 당신의
친척들이란 누구입니까?
비리 : 마을 사람 전체가 거의 다 나의 친척이지요.
특히 '반전시키기 경(Lord Turn-about)', '기회주의자
경(Lord Time-server)', 그 조상의 이름을 따서
마을이름을 붙이게 된 '감언이설 경(Lord
Fair-speech)', 또한 '기생 오라비 씨(Mr.
Smooth-man)', '팔방미인 씨(Mr. Facing-bothways)',
'무엇이나 씨(Mr. Any-thing)', 그리고 우리 교구의
목사로 일하시는 '일구이언 씨(Mr. Two-tongues)'는
나의 외삼촌이지요. 그리고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지금은 당당한 신사가 됐지만 나의 증조부는 동쪽을
보면서 서쪽으로 배를 모는 뱃사공이었습니다. 나의
모든 유산은 그렇게 해서 번 것이지요.
크리스찬 : 결혼은 하셨습니까?
비리 : 예, 했습니다. 나의 아내는 매우 정숙한
여자입니다. 그리고 정숙한 여인의 딸이었지요. 그
여자는 '허위 부인(Lady Faining)'의 딸로 아주 지체
높은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최고의 교양과
예절을 지니고 있어서 위로는 왕자로부터 아래로
농부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아주 잘 알고 있지요. 사실 우리 마을사람들은 종교를
갖는 데 있어 지나치게 엄격한 신자들과는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요. 물론 아주 사소한 것 두 가지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첫째는, 우리는 결코
시대사조를 거스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우리는 종교가 순탄한 길을 걸어갈 때 가장 열심히
믿고, 태양이 밝게 비추고 모든 사람이 그 종교를
찬양할 때에만 함께 길을 걸어다니길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그러자 크리스찬은 길을 조금 벗어나 자기 동료인
희망에게로 가서 말했다.
"이 자는 감언이설이라는 마을의 비리라는 자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녀석과 동행하는 셈이오."
그러자 희망이 말했다.
"이름을 물어보세요. 자기 이름을 부끄러워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요."
그리하여 크리스찬은 다시 비리에게 가서 말했다.
"여보시오, 당신은 세상 모든 일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요. 내 추측이 가히
틀리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이 누군지 대충 알 것
같습니다. 당신은 감언이설 마을의 비리 씨가
아닙니까?"
비리 : 그게 내 본명은 아닙니다. 나와 관계가 좋지
못한 몇몇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지요. 하지만
이전에 살던 많은 착한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도 그
별명을 모욕으로 알면서도 그냥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죠.
크리스찬 : 하지만 사람들이 당신을 그런 이름으로
부르도록 당신이 어떤 빌미를 준 것이 아닙니까?
비리 : 아닙니다. 결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나를 그런 이름으로 부르도록 내가 무슨
빌미를 주었다면 그것은 내가 항상 현실을 앞질러
판단하고 그 때문에 남들보다 더 많은 이득을
챙겼다는 것이겠지요. 내가 더 많은 이득을 챙겼다는
것은 하나의 신의 축복이지 결코 어떤 비난이나
질책을 당할 것이 못 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크리스찬 : 당신이야말로 내가 전부터 소문으로
듣고 있던 바로 그 장본인이군요. 솔직히 내
생각으로는 당신이 좋아하든 말든 우리가 당신을 그런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아주 적절한 처사라고 봅니다.
비리 : 글쎄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죠. 만일 나하고 좀더 동행해
사귀어보면 내가 꽤 좋은 길동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크리스찬 : 만약 당신이 우리와 함께 순례여행을
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수많은 역경을 헤치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당신은 그러한
역경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한 당신은
종교가 비단옷을 입고 있을 때나 누더기를 걸치고
있을 때에도 그 종교를 간직해야 하며, 큰길에서
환영을 받을 때나 쇠사슬에 묶여 신음하고 있을
때에도 종교를 믿어야 합니다.
비리 : 내 신앙에 대해서 당신이 그것을 강요하거나
억압하지는 마십시오. 나를 자유롭게 놔두시고 당신과
함께 동행하게 해주시오.
크리스찬 : 당신이 내가 제의한 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나는 한 발자국도 당신과 함께 동행할 수
없소.
그러자 비리가 말했다.
"나도 지금까지 지켜온 내 자신의 원칙을 버릴 수는
없소. 그런 원칙은 해가 되지도 않으면서 이롭기만
하니까 말이오. 나와 동행할 수 없다면 그만두시오.
누군가 나와 동행을 원하는 이가 나를 따라올 때까지
당신이 나를 따라오기 이전처럼 나는 혼자서
걸어가겠소."
그때 나는 꿈속에서 크리스찬과 희망이 비리를
포기하고 멀리 떨어져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 중 한 사람이 뒤를 돌아다보고는 세 사람이
비리의 뒤를 쫓아가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들이
비리를 따라잡자 그는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고, 그들 역시 그에게 답례를 했다. 그
세사람의 이름은 '세상집착(Mr. Hold-the-world)',
'돈 사랑(Mr. Money-love)', 그리고
'구두쇠(Save-all)'였다. 그들은 모두 비리가
그전부터 친하게 사귀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학교 동창생들로서 '탐욕(Coveting)' 지방에 있는 한
상업도시인 '돈벌이(Love-gain)'에서 '쥐어짜기(Mr.
Gripeman)'라는 선생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이 학교
선생들은 그들에게 폭력, 사기, 아첨, 거짓말, 종교의
탈을 쓰는 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라도 돈을
벌라고 가르쳤고, 그들 넷은 선생이 가르치는
교육방법과 기술을 충분히 습득했기 때문에 각자
나가서 자기 나름대로의 학교를 세울 만한 실력자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자 돈 사랑이
먼저 비리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들 앞에 가는 저 두 사람은 누구입니까?"
크리스찬과 희망의 모습이 그때까지도 보였던
것이다.
비리 : 그들은 먼 곳에서 떠나온 자들인데 자기네
고집대로 순례의 길을 가고 있지요.
돈 사랑 : 그것 참. 그런데 왜 좀 기다렸다가
우리와 함께 가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들이나 우리나
모두 순례의 길을 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비리 : 우리 마음이야 그렇지만 저 앞서가는 자들은
너무 엄격하고 자기네 주장만 내세우며 또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자기네들 생각에 동의해 주지 않으면
같이 동행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구두쇠 : 고약한 취미로군요. 의로움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에 관한 책을 읽어보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자기들 이외의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고
정죄해 버리지요. 그렇지만 나는 당신들 사이에
견해가 달랐고, 얼마나 차이가 있었는가를 알고
싶군요.
비리 : 그들은 어떤 날씨에도 강행군을 해야 한다고
우겼고, 나는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위험을 무릅쓰고 단숨에 해야
한다고 했고, 나는 어떤 모험을 해서라도 나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려고 했지요.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들의 종교관을 반대하더라도 자신들의 주장을
고수해야 한다고 했고, 나는 시대 조류에 맞춰가면서
나의 안전이 보장될 때에만 종교를 갖겠다고
말했습니다. 종교가 누더기를 걸치고 멸시를 당할
때에도 그들은 종교를 섬겨야 한다고 했으나, 나는
종교가 비단옷을 걸치고 햇빛 아래 찬양을 받을
때에만 그 종교를 믿겠다고 했지요.
세상집착 : 비리 씨, 그 입장을 끝까지
고수하십시오. 나는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지킬
자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명하지 못하게 그것을
잃어버리는 자는 바보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뱀처럼 지혜로워집시다. 햇볕이 있을 때
건초를 말리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뱀을 생각해
봅시다. 겨우내 잠을 자다가 이익을 볼 수 있을 때가
되야 기동을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때로는 햇빛을
주시고 때로는 비로 내리게 하십니다. 만약 그들이
비가 내리는 날에도 강행군을 계속하겠다는
바보들이라면, 우리는 맑은 날만 골라 행군하는
것으로 만족합시다. 나는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내리도록 보장해 주는 그런 종교를 가장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내려주시지만 그것들을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라면 어느
누가 그런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이나 솔로몬은 모두 종교로 부자가 됐습니다.
또 욥이 말하기를 "선한 사람은 금덩이를 먼지처럼
간직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라면
그자들은 욥이 말한 선한 사람이 결코 될 수 없는
작자들입니다.
구두쇠 :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모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맙시다.
돈 사랑 : 그렇습니다. 이제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맙시다. 우리가 다 믿고 있는 성경이나
이성을 믿지 않는 자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자유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안전 또한 지키지 못하게
마련이니까요.
비리 : 형제들이여, 아시다시피 우리는 모두 순례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오. 무료함을 덜고 불쾌한 생각을
빨리 떨쳐버리기 위해 문제 하나를 내고자 합니다.
가령 어떤 목사나 상인 앞에 이승에서 훌륭한
축복을 받을 수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가
전에는 결코 관심을 두지 않았던,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적어도 외관상으로라도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욕망을 가진 것으로 보일 그런 수단을 쓰지 않으면
절대로 그런 축복을 받을 수가 없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그가 그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서 눈앞의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도 참으로 정직한 인간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까?
돈 사랑 : 무슨 질문을 하는지 알겠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내가 먼저 그 질문에 답변해
보겠습니다. 먼저 목사에 관계되는 것을 이야기해
보면, 어떤 훌륭한 목사가 있는데 그는 지금 받고
있는 보수가 너무 적어서 좀더 많은 보수를 바라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마침 그런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더 많은 보수를 받기 위해 좀더 공부하고
열성을 다해 자주 설교하고,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자기가 갖고 있던 어떤 신념들을
바꾸기까지 합니다. 만약 그 목사가 자신의 일에
사명감을 갖고 이런 일을 하고 더 나아가 더 애매한
일들을 한다 할지라도 역시 내가 생각할 때는 그도
정직한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로는,
첫째, 보수를 더 받고 싶어하는 그의 욕구는
합법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신의 섭리에 따라
생겨나는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양심
여부를 물어볼 필요도 없이 가능하다면 그 보수를
취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둘째, 또한 그 보수를 받으려는 열망은 그로 하여금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설교하도록 했기 때문에 결국
그를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셈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더욱 개발시킨다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람들의 다양한 기호에 맞추기 위해서
자신의 신념을 바꾸는 문제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그의 성격이 자기 희생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애교
있고 설득력 있게 사람을 끄는 힘을 갖고 있다는
표시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는 목회자로서 적격자임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넷째,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 목사가 적은 보수를
많은 보수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 자체를
탐욕스런 행동으로 비판할 게 아니라 오히려
찬사받아야 할 행동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이 신장되고 더욱
근면해져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하면서도 선을 행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상인에 대한 당신의 질문에 대답해
보겠습니다. 본래 가난하던 상인이 종교를 갖게
됨으로써 부유한 아내와 결혼하게 되고 자기 가게에
더 많은 손님들을 모시게 됐다고 가정해 봅시다. 나는
그런 경우 합법적인 행위를 했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덕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수단으로 종교를 갖더라도
말입니다.
둘ㅉ, 부유한 여자와 결혼하거나 혹은 자기 가게에
더 많은 손님들을 유치한다는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셋째, 또한 죵교를 가짐으로써 그런 것들을 얻게 된
사람은 착한 사람들로부터 좋은 것을 얻게 되니 좋고,
그 자신 또한 선한 사람이 되니 좋은 것입니다.
훌륭한 아내가 생기고 많은 손님들을 끌게 되니 좋은
수입을 올리고, 그런데 이 모두가 종교를 믿어
굴러들어오게 된 것이니 그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을 얻기 위해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고 권장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리의 물음에 대한 돈 사랑의 이와같은 대답은
그들 모두로부터 열광적인 박수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목적달성을 위해 종교를 믿는 것이
건전하고 유익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아무도 그 결론을 반박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마침
크리스찬과 희망이 그들 가까이 앞서가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서둘러 크리스찬과 희망을 따라가서 바로 그
물음을 가지고 공박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들이 그런 마음을 먹은 것은 조금 전에 크리스찬과
희망이 비리를 배척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그들은 앞서가는 두 사람에게 기다리라고
소리쳤다. 두 사람은 멈춰서서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가까이 다가가면서 세상집착이 그
문제를 두 사람에게 제시하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비리가 그 문제를 제기하면 조금 전에 피차 가졌던
감정 때문에 냉정하고 공정한 대답을 듣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마침내 다가가서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세상집착이 크리스찬과 희망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는 대답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크리스찬이 말했다.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린아이일지라도
그런 질문에 얼마든지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서에 빵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따르는것조차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 했는데, 하물며 세상의 쾌락을
누리기 위해 그분과 종교를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것은
그 얼마나 잘못된 일입니까? 그따위 생각을 하는
자야말로 이단자요 위선자며, 악마요 마녀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첫째로, 그런 생각을 품은 자가 이단자인 이유를
말하겠습니다. 하몰과 세겜은 야곱의 딸과 그 가축을
탐내어 그들에게 접근하는 길은 할례를 받는 길밖에
없음을 알고 자기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할례받듯이 우리 남자들도 할례를 받으면
그들의 가축과 재산 그 밖의 모든 짐승들이 모두
우리의 것이 되지 않겠는가?'
그들이 얻고자 했던 것은 야곱의 딸과 가축이었고,
종교를 그들에게 접근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삼은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를 전부 읽어보시오(창세기 34장 20-23절)
둘째, 위선적인 바리새인들 또한 이런 식으로
종교를 이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겉치레로
장기간에 걸쳐 기도를 했고, 그들의 속셈은 과부의
집을 빼앗는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훨씬
더 중한 벌을 내렸습니다(누가복음 20장 46-47절).
셋째, 악마 유다 ㄸ한 이런 식으로 종교를
악용했습니다. 그는 돈주머니에 돈을 채워넣을
생각으로 종교를 갖게 되었으나 결국 자아를 상실하고
버림받아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넷째, 마법사 시몬도 역시 똑같은
종교인이였습니다. 그는 성령을 돈주고 사려고 하다가
베드로로부터 정죄를 받았습니다.(사도행전 8장
20-21절).
다섯째, 내 마음속에서 항상 떠나지 않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쾌락을 위해 종교를
믿는 자는 결국 이 세상의 쾌락을 위해서 종교를 버릴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유다 같은 자는
분명히 이 세상의 재물을 탐내어 종교를 믿었다가
바로 그 재물 때문에 종교와 그의 스승을 팔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질문에 대해 당신들처럼 긍정적인
대답을 하거나, 또는 그런 대답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모두 다 이단자나 위선자나
악마인 것입니다. 사람은 그 사람의 행동에 따라
보상을 받는 법입니다."
그러자 크리스찬에게 뭐라고 대꾸해야 좋을지
몰라서 멍하니 서로 쳐다만 보았다. 희망까지 나서서
크리스찬의 대답이 옳다고 천명하자 그들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비리와 그의 동료들은 걸음을
천천히 하여 크리스찬과 희망 뒤로 처졌다.
크리스찬이 동료 희망에게 말했다.
"만약 이 사람들이 인간의 판결을 견뎌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판결 앞에서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질그릇밖에 안 되는 내게 꼼작 못하는 주제에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게 책망을 받게 될 때, 그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크리스찬과 희망은 다시 그들을 앞질러 가서
'안락함(Ease)'이라고 하는 아담한 평지에 이르렀다.
그들은 매우 즐겁게 그 평지를 걸었으나 좁아서
순식간에 지나치고 말았다. 그 평지의 저쪽 끝에는
'금은 보화(Lucre)'라고 불리는 작은 언덕이 있었고,
그 언덕에는 은을 캐는 광산이 있었다. 은은 아주
희귀한 것이었으므로 예전에는 그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그것을 보려고 자신의 길을 벗어나
그 광산으로 가기도 했다. 그러나 갱의 가장자리 너무
가까이 갔다가 발밑의 땅이 꺼져 거기에서 그대로
죽은 사람도 있었고, 심하게 다쳐서 남은 일생을
불구자로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ㄸ 나는 꿈속에서 은 광산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신사차림을 한 데마스가 지켜 서서
나그네를 유혹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데마스가
크리스찬과 희망에게 말을 걸었다.
"여보시오, 이쪽으로 좀 와보시오. 당신들에게
보여줄 게 있습니다."
크리스찬 : 무슨 물건이 있기에 가던 길을
돌아서서까지 가볼 가치가 있다는 겁니까?
데마스 : 여기 은광이 있습니다. 보석을 캐고 있는
사람도 몇 명 있고요. 당신들도 오기만 하면 힘들이지
않고 횡재할 수 있을 거요.
그러자 희망이 말했다.
"우리 한번 가봅시다."
크리스찬 : 난 안 가겠습니다. 나는 전에 이 은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요. 그리고 얼마나 많은
순례자들이 여기서 죽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보석이라는 것은 순례자에게는 함정입니다. 결국
순례의 길을 방해하고 마니까요.
그러고 나서 크리스찬은 데마스를 불러 말했다.
"그곳은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곳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당하지 않았던가요?"
데마스 : 조심하기만 하면 그렇게 위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데마스의 얼굴은
붉어졌다. 그러자 크리스찬이 희망에게 말했다.
"한 발짝도 벗어나지 말고 우리 길이나 곧장
갑시다."
희망 : 비리가 여기까지 와서 우리들처럼 초대를
받게 되면 그는 틀림없이 그것을 보러 저쪽으로
가겠지요?
크리스찬 : 틀림없이 그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의 신념이란 게 그런 것이니까요. 십중 팔구 그는
거기서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데마스가 다시 부르며 말했다.
"그래, 이리 와서 구경하지 않을 셈이오?"
크리스찬은 노골적으로 대답했다.
"데마스, 당신은 이 길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적이오. 당신은 이미 스스로 바른길을 벗어난 것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관들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은
몸인데 왜 우리까지 같은 잘못을 저질러 파멸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이려는 것이오? 또한 우리가 주님의
뜻을 버리고 길을 잘못 들게 되면 우리의 주님께서
분명히 아시게 될 것이오. 그러면 우리는 장차
담대하게 그분 앞에 서야 할 자리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오."
데마스는 자기도 같은 순례자 중의 한 사람이니
잠시 기다려주면 동행하겠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크리스찬이 말했다.
"당신 이름은 무엇이오? 내가 아까 부른 그 이름이
맞습니까?"
데마스 : 예, 그렇습니다. 내 이름은 데마스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올시다.
크리스찬 :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게하지가 당신의
증조부이고 유다가 당신의 아버지이며, 당신은 당신
조상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걸었지요. 당신이 하는
일은 악마 같은 장난에 불과합니다. 당신 아버지는
반역자로 처형당했고, 당신 또한 그보다 나은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오.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되면
당신의 이런 행위를 그대로 고해 바치겠소.
그리하여 크리스찬과 희망은 계속 자기의 길을
걸었다.
그때쯤 되어 다시 비리 패거리가 나타났는데,
그들은 데마스의 말 한마디에 넘어가 은광으로
몰려갔다. 그들이 거기서 구덩이를 내려다보다 갱에
떨어졌는지, 혹은 은을 캐러 구덩이 아래로
내려갔는지, 구덩이 아래에서 그칠새 없이 발산되는
유독가스에 숨이 막혀 죽었는지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길에서 그들을 다시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크리스찬이 노래를 불렀다.
비리와 데마스는 서로 뜻이 맞아
하나는 부르고 하나는 달려가,
서로 재물을 나누려 했네.
그리하여 둘은 이 세상 욕망에 빠져
하늘나라 향해 더 이상 가지 못했네.
나는 두 순례자가 그 평지의 다른 쪽 끝, 아주 오래
된 비석이 서 있는 곳에 도착하는 것을 보았다.
큰길가 바로 옆에 세워진 그 비석이 하도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그들은 그 비석을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양은 마치 한 여자가 기둥으로 변모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그
비석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마침내 희망이 그 비석 머리에
특이한 문체로 글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는 언어학자가 아니었으므로 특이한 문체의 글을
알지 못하여 크리스찬에게 그 뜻을 알아낼 수
있느나고 물었다. 그리하여 크리스찬이 가까이 다가가
한동안 글자를 들여다보고 다음과 같은 뜻을
알아냈다.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그는 그 글을 희망에게 읽어주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비석이 롯의 아내가 멸망이 닥쳐온 소돔
마을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다가 집에 두고 온
재물에 대한 미련 때문에 뒤돌아본 대가로 소금기둥이
된 바로 그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놀랍고 무서운
광경을 본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크리스찬 : 데마스가 금은보화의 언덕으로
올라오라고 우리를 유혹한 직후에 이걸 보게 됐으니
참 적절한 시기에 보게 된 것 같아요.
만약 우리가 데마스가 바라는 대로, 또는 당신이
가보고 싶어한 대로 그곳에 갔었더라면 우리는
틀림없이 후에 이 순례의 길을 올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됐을 것이오.
희망 : 내가 그렇게 어리석었다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롯의 아내 꼴이 돼 있지 않은
게 신기하군요. 사실 그 여자의 잘못과 내 잘못의
다른 점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녀는 단지
뒤돌아봤을 뿐이고 나는 가보고 싶어했습니다. 신의
은총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 생각이 내 마음속에
떠올랐다는 사실이 몹시 부끄럽습니다.
크리스찬 : 여기서 우리가 본 것을 명심해 둡시다.
장차 도움이 될 테니까요. 이 여자는 하나의 심판을
면한 셈입니다. 소돔의 파멸에서는 벗어났으니까요.
그러나 다른 형벌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대로 이렇게 소금기둥으로 변해 버렸으니까요.
희망 : 옳은 말씀입니다. 이 여자는 우리에게
경고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이 여자가 범한 것과
같은 죄를 짓지 말라는 경고이면서 동시에 그런
경고를 지키지 못했을 때는 어떤 형벌이 내릴
것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인 셈이지요. 그러므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다른 250명과 함께 죄를 짓고
몰살당한 것도 후대의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는
상징이요 본보기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여자는 단 한
발자국도 길을 벗어나지 않고 다만 한 번 재물이
탐나서 잠깐 뒤돌아보았을 뿐인데 소금기둥으로 변해
버렸는데, 어떻게 데마스와 그 패거리들은 그렇게
당당하게 서서 은광에서 보물을 찾고 있는 것일까요?
특히 그들이 고개만 들어도 이 여자가 심판을 받아
어떻게 되었는가를 볼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크리스찬 : 이상하게 생각할 만한 일이지요. 그들의
마음이 재물을 탐내는 데 혈안이 되어 감각이 둔해진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을 누구와 비교해야 적절할지
모르겠군요. 재판관 앞에서 소매치기 하는 놈이나
교수대 아래에서 남의 지갑을 째는 놈이라고나
할까요. 소돔 사람들은 악질적인 죄인들이라 했는데,
그 이유는 주님이 계신 바로 앞에서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즉 소돔을 에덴 동산처럼 만들어준 그
사랑도 팽개치고 그들은 하나님 목전에서 죄를
범했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는 말할 수 없이
커졌고, 따라서 하늘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뜨거운
불의 형벌로 재앙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눈앞에서 죄를 짓는 자들이나, 그런 범죄의
대가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경고의 표상을
보면서도 계속 죄를 짓고 있는 그런 자들은 가장
가혹한 형벌을 받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희망 : 백 번 옳은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특히
내가 이런 본보기가 되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롯의 아내를 영원히 기억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때 나는 그들이 어느 시원한 강가에 도착하는
것을 보았다. 다윗은 이 강을 '하나님의 강'이라고
불렀고, 요한은 '생명수의 강'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그 강 둑 위에 난 길을 걷고 있었다. 크리스찬과
희망은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계속했다.
그들은 강물을 마시기도 했는데 물을 마시자 피곤한
심신이 상쾌해지면서 생기가 도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강의 양쪽 둑 위에는 온갖 열매를 맺은
푸른나무들이 서 있었고, 그 나뭇잎들은 좋은
약초들이었다. 그들은 즐겁게 과일을 따먹기도 하고,
나뭇잎을 먹기도 했는데 그 나뭇잎을 먹으면
소화불량이 예방되고 오랜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걸리기 쉬운 여러 가지 질병이 낫는 것이었다. 양쪽
강변에는 풀밭이 펼쳐져 있었고 백합이 만발하여 매우
아름다웠다. 그 풀밭은 사시사철 푸르렀다. 그들은 이
풀밭에서 편히 누워 잠을 잤다. 그곳이야말로
안전하게 누울 수 있는 곳이었다. 잠에서 깨어나자
그들은 다시 과일을 따먹고 강물을 마시고는 다시
누워 잠이 들었다. 그들은 며칠 동안을 이렇게
지냈다.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보라, 순례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수정 같은 강물이 어떻게
큰길가로 흐르는가를.
풀밭은 푸르고 향기는 가득하고
순례자들을 위해 온갖 과일까지 제공한다.
그렇다, 이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과일과 열매의 맛을, 그 상쾌함을 아는 이는
주저함 없이 모든 것을 팔아서
이 들판을 사게 되리라.
그들은 아직 목적지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여행을
계속하게 되리라 결정하고 실컷 먹고 마시고는 다시
길을 떠났다.
그들이 길을 얼마 가지 않아서 한동안 길과 강이
서로 떨어지는 것을 나는 꿈속에서 보았다.
그들로서는 그것이 여간 섭섭한 게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들어설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강에서 떨어진 그 길은 거칠었고
그들의 발 또한 오랜 여행 때문에 약해져 있었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그 길 때문에 매우
의기소침해졌다. 그들은 계속 걸어가면서 좀더 걷기
좋은 평탄한 길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그때 그들 바로
앞, 길 왼쪽으로 초원이 보이고 그 초원으로 넘어갈
수 있는 층계가 보였다. 그 초원의 이름은 '샛길
초원(By-Path Meadow)'이었다. 크리스찬이 동료에게
말했다.
"만약 이 초원이 우리가 가는 길과 나란히 뻗어
있다면 우리 풀밭으로 들어가서 걸어갑시다."
그러고 나서 그는 층계로 올라가 울타리 너머로
큰길과 나란히 뻗어 있는 작은 길을 발견했다.
크리스찬이 소리질렀다.
"내가 바라던 대로입니다. 여기에 평탄한 길이
있습니다. 이리 와서 여기로 넘어갑시다."
희망 : 하지만 그 길로 갔다가 우리의 바른길을
벗어나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크리스찬 :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보십시오.
큰길과 나란히 붙어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동료에게 설득된 희망은 크리스찬을 따라
층계를 올라갔다. 울타리를 넘어 좁은 길로 들어서자
그들은 발이 매우 편해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보다 앞서서 걸어가고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그의 이름은 '헛된 자신감(Vain-confidence)'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불러 이 작은 길이 어디로 통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천국의 문으로 통합니다."
크리스찬이 말했다.
"그것 보시오.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이젠 우리가
길을 잘못 들지 않았음을 당신도 알 수 있겠지요?"
그래서 그들은 앞서가는 헛된 자신감을 따라갔다.
그러나 잠시 후 밤이 되어 어두워지자 헛된 자신감을
뒤따라가던 그들은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앞서 가던 헛된 자신감은 앞길이 안 보이자 깊은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 구덩이는 허영에
들뜬 바보들이 빠지도록 그 땅의 주인이 일부러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그곳에 빠진 헛된 자신감의
몸뚱이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때 크리스찬과 희망은 헛된 자신감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큰소리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지만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신음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희망이 말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죠?"
그러자 크리스찬은 희망을 잘못 인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침
비가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무섭게 치더니 물이
삽시간에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희망이
신음소리를 내면서 중얼거렸다.
"아! 그냥 가던 길을 걸어갔더라면 좋았을 걸."
크리스찬 : 이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에서 벗어난
길인 줄은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희망 : 난 처음부터 그점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주의하자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내가 좀더 분명히
말씀드렸어야 하는 건데...... 사실은 나보다 나이도
많고 해서......
크리스찬 : 너무 책망하지 말아주시오. 당신을 바른
길에서 벗어나 이렇게 절박한 위험에 빠지게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제발 날 용서해 주시오. 어떤
악의를 품고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희망 : 염려 마십시오.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도 모두 우리에게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크리스찬 : 당신같이 자비로운 형제와 함께 있게
돼서 기쁩니다. 하지만 이렇게 서 있을 때가
아닙니다. 다시 되돌아가도록 합시다.
희망 : 예,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앞장을
서겠습니다.
크리스찬 : 아닙니다, 내가 앞장을 서겠습니다.
그래야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내가 먼저 당하게
되지요. 나 때문에 바른길에서 벗어나게 됐으니까요.
희망 : 아닙니다. 당신이 먼저 가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산란하실텐데 그러다가 또 다시
길을 잘못 들게 될 지도 모르니까요. 그때 "너희들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게 될지라도 너희들의 마음은
바른길로 향하라."라는 소리가 들려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그러나 물이 너무 엄청나게 불어나 돌아가는 길은
아주 위험했다(그때 나는 바른길에 있다가 샛길로
빠지는 것이 샛길에 있다가 바른길로 돌아오는 것보다
훨씬 쉽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들은 되돌아가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러나 날은 너무 어두웠고 물결은
높았으므로 그들은 되돌아가는 도중 열 번도 더 물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들이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날 밤 안으로
다시 울타리 층계 있는 데까지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마침 조그만 동굴을
발견한 그들은 날이 샐 때까지 거기에 앉아서 쉬기로
했다. 그러나 몹시 지쳐 있었으므로 그들은 곧 잠이
들었는데, 그들이 누워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의혹의 성(Doubting-Castle)'이라 불리우는 성이
하나 있었다. 그 성의 주인은 '거인 절망(Giant
Despair)'이었는데, 그들이 지금 잠자고 있는 곳도
그의 땅이었다. 거인 절망은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의
들판을 이곳 저곳 살피며 다니다가 마침 잠을 자고
있는 크리스찬과 희망을 발견했다. 거인은 사납고
거친 목소리로 그들을 깨워, 어디서 온 놈들이며,
자기 영토에 무엇 때문에 왔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거인에게 자기들은 순례자인데 길을 잃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거인이 말했다.
"어젯밤 너희들은 허락도 없이 내 땅을 침범하여
짓밟고 다니다가 거기 누워서 잠까지 잤으니 이제
나와 함께 가야겠다."
그리하여 그들은 강제로 끌려갔다. 거인의 힘이
그들보다 훨씬 강했으므로 어쩔 수 없었으며, 또
자기들의 잘못을 알고 있었으므로 할 말이 없었다.
거인은 그들을 앞세워 몰고 가서는 성안으로 들어가
어둡고 냄새나는 지하실에 가두었다. 여기에서 그들은
수요일 아침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 없이 지냈다.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았고, 누구
하나 그들의 안부를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지독한 상황에 빠졌고 친구나 친척들로부터도
멀리 격리되어 있었다. 크리스찬의 슬픔은 희망보다
배나 컸다. 그것은 그들이 이런 비참한 지경에 빠지게
된 것이 결국은 자신의 경솔한 판단 때문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거인 절망에게는 아내가 있었는데 이름은
'암내(Diffidence)'라고 했다. 그는 잠자리에 들자
자기 아내에게 오늘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즉 자기의 땅을 침범한 두 포로를 잡아다가
지하감옥에 가둔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를 아내에게
물었다. 그 여자는 남편에게 그들이 무엇하는
사람들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는 자기가 아는 대로 대답했다. 그러자
여자는 아침에 일어나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마구
때려주라고 말했다. 아침이 되자 거인은 굵직한
능금나무 몽둥이를 들고 지하실로 내려가 다짜고짜
그들에게 마구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들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인은 들고 간
몽둥이로 그들을 마치 개 패듯이 때렸다. 어찌나
심하게 때렸던지 그들은 마룻바닥에 꼼짝없이 누워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으므로 서로 도와줄 수조차
없었다. 실컷 매질을 한 후에 그는 그들을 내팽개치고
나가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참한 운명을
슬퍼하면서 비탄 속에서 신음하며 한숨과 쓰라린
비통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날 밤 그의 아내는 남편과 그들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그들이 아직 살아 있음을 알고는 그들에게
자살하도록 시키라고 일러주었다. 아침이 되자 그는
다시 험상ㄱ은 얼굴로 그들에게 가서 그들이 전날
입은 상처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들에게 어차피 죽기 전에는 이 지하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므로, 차라리 칼로 자결하거나 목매달아
죽거나 아니면 극약을 먹고 죽는 것이 여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인은
말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쓰디쓴 고통 속에서도
살아 남으려 하느냐?"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을 풀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그는 그들을 사납게 노려보더니 갑자기
달려들어 그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려 했다. 그때 마침
그는 발작을 일으켜 당분간 손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때때로 햇빛이 밝은 날이면 발작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리하여 거인은 지하실을 나가면서 그들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잘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크리스찬과 희망은 거인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게
어떨지 서로 의논하기 시작했다.
크리스찬 :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비참한 일이오. 내
생각으로는 이렇게라도 생명을 부지하는 것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보다 더 나은지 어떤지 잘 모르겠소.
이렇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질식해 죽는 것을 택하고
싶소. 그리고 이 지하감옥보다는 무덤이 훨씬 더
내게는 안락할 것 같소. 이곳에서 거인의 통제를
받으며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희망 : 정말로 지금 우리의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직스럽습니다. 이렇게 영원히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향해서 가고 있는 그 나라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살해하지 말라는 말씀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거인의 협박대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은 더욱 엄하게 금지된 일입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을 죽이는 자는 다만 그의 육체만을 죽일
뿐이지만 자살하는 자는 육체는 물론 영혼까지 함께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옥의 안락함을
말씀하셨는데 저 살인자들이 반드시 가게 될 지옥의
형벌을 잊으셨습니까? 어떤 살인자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해
봅시다. 모든 법이 거인 절망의 손에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우리처럼 그에게
사로잡혀 있다가 그의 손아귀에서 탈출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거인
절망을 죽게 하실지, 혹은 언젠가 그가 우리를
가두어놓은 이 문을 잠그는 것을 잊어먹을지, 또는
아까처럼 다시 우리 앞에서 발작을 일으켜 수족을
쓰지 못하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만약 그가 다시
발작을 일으킨다면 나는 사내답게 용기를 내어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할
생각입니다. 조금 전 그가 발작을 일으킬 때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참고 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 거인의 손에서
풀려나 자유로워질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자기자신을 죽이는 살인자는 되지 맙시다.
이런 말로 희망은 일단 형제의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하여 그들은 암흑 속에서 그날 하루를 슬픔과
우울로 보냈다.
이윽고 저녁때가 되자 거인은 포로들이 자기의
권유대로 죽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지하감옥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살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말로 그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물과 빵을 먹지 못했고 얻어맞을 때
입은 상처 때문에 겨우 숨만 쉬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본 거인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거인은 그들이 자기의
권유를 따르지 않았으므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을
괴롭혀주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그들은 부들부들 떨었다. 내가 보기에
크리스찬은 기절을 했던 것 같았다. 조금 제정신이
돌아온 두 사람은 다시 거인의 협박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물리칠 것인가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크리스찬은 여전히 거인의 권유를 따르려는
것 같았고, 여기에 대해 희망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희망 : 형제여, 당신은 지금까지 당신 자신이
얼마나 용감했던가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아폴리온도
당신을 파멸시킬 수 없었으며, 죽음의 그늘 계곡에서
당신이 보고 느꼈던 그 어떤 것도 당신을 파멸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 많은 역경과 공포와 경악을 ㄸ고
극복해 오신 분이 어째서 지금은 그렇게 두려움의
노예가 되셨습니가? 천성적으로 당신보다 더 약하게
태어난 이 몸도 지금 당신과 함께 이 지하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거인은 내게도 역시 당신을 때린
것만큼이나 나를 때려서 상처를 입혔고, 나 역시 빵과
물은 입에도 못 대었으며, 그리고 당신과 함께 암흑
속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금만 더
참아봅시다. 허영의 시장에서 당신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했으며, 또한 당신은 쇠사슬도 감옥도
그리고 피흘리는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일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러니 우리 참을 수 있는 데까지는
참고 견뎌봅시다. 적어도 죽었을 때 크리스찬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판명되는 그런 치욕은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밤이 되어 거인과 그의 아내는 잠자리에
들었다. 여자는 그에게 포로들이 그의 권유를
따랐는지 어떤지 물어보았다. 그가 대답했다.
"그들은 지독한 악당들이오.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느니 차라리 모든 역경을 견뎌내겠다는 것이오."
그러자 여자가 말했다.
"그러면 내일 그들을 성의 뜰로 데리고 가서
그들에게 이미 죽은 자들의 뼈와 해골들을 보여
주세요. 그러고는 일주일이 되기 전에 그들을 서로가
보는 앞에서 찢어죽이겠다고 말하세요."
아침이 되자 거인은 아내가 시킨 대로 그들을
마당으로 데리고 가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뼈와
해골들을 구경시켰다. 거인이 말했다.
"이것들은 한때 너희들처럼 내 땅을 침범했던
순례자들이다. 적당한 때가 됐다고 생각되면 나는
그들을 마구 찢어 죽였지. 앞으로 열흘 안에 너희들도
이와 똑같은 신세로 만들어주마. 가라! 다시 감옥에
내려가 있어!"
그렇게 말하고 거인은 그들을 감옥으로 끌고가면서
계속 때리는 것이었다.
여전히 슬픔과 고통 속에서 그들은 토요일 온종일을
누워 있었다. 밤이 되자 아내 암내는 남편인 거인과
잠자리에 들면서 포로들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늙은 거인은 그들은 때려서도 협박해서도
죽여버릴 수 없으니 참 이상한 일이라고 아내에게
고백했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다.
"혹시 그들이 누군가가 와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리라는 희망을 갖고 견뎌내는지도 모르죠. 아니면
자물통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어서 기회를 보아
그것으로 문을 열고 도망치려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요."
거인이 말했다.
"그럴 듯한 말이군. 아침이 되면 그들 몸을 샅샅이
뒤져봐야겠군."
한편 그들은 토요일 자정 때부터 기도를 시작하여
거의 날이 밝을 때까지 기도를 계속했다. 날이 밝기
조금 전에 반은 정신이 나간 크리스찬이 발작적인
독백을 시작했다.
"이런 바보 같으니! 자유롭게 걸어다닐 수 있는데도
이렇게 더러운 지하감옥에 드러누워 있다니. 내
품속에 열쇠가 있는데, '약속(Promise)'이라고 하는
이 열쇠는 의혹의 성안에 있는 그 어떤 자물통도 열
수가 있단 말이야."
그러자 희망이 말했다.
"그것 참 좋은 소식입니다. 어서 그 열쇠를 꺼내
문을 열어봅시다."
크리스찬은 품에서 열쇠를 꺼내어 감옥문의 열쇠를
돌렸다. 그러자 자물통은 쉽게 따졌고 문이 열렸다.
크리스찬과 희망은 밖으로 나와 마당으로 통하는
중문으로 가서 그 문도 열었다. 그리고 마지막 철문을
열기 위해 열쇠를 끼우고 돌렸으나 너무 뻑뻑하여
힘이 들었다. 마침내 그 문도 열렸다. 그들은 재빨리
도망치기 위해서 문을 힘차게 밀어젖혔다. 그런데 그
철문이 열리면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너무 크게 나
거인 절망이 잠에서 깨고 말았다. 그는 포로들을 잡기
위해 서둘러 일어났으나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발작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거인은 그들을
뒤쫓아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계속 걸어 왕의 큰길로
다시 나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거인의 영토를
벗어나 안전하게 되었다.
층계를 내려온 그들은 곧 뒤따라 올 순례자들이
거인 절망의 손아귀에 걸리지 않도록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곳에 기둥을 하나 세우고 거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새겨넣기로 합의했다.
'이 층계를 올라가면 거인 절망이 지키는 의혹의
성으로 통한다. 그는 하늘나라의 왕을 멸시하면서
그의 거룩한 순례자들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자다.'
그래서 뒤따라오던 많은 순례자들이 그 글을 읽고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가던 바른 길에서 벗어나
금지된 땅에 발을 들여놓으면
어떻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네.
뒤에 오는 사람들이여, 조심하시오.
우리가 겪은 고난을 당하지 않도록.
절망이라는 거인이 살고 있는 의혹의 성에
잘못 들어가 그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그들은 계속 길을 걸어 '즐거운 산맥(the
Delectable Mountains)'에 이르렀다. 그 산맥은 그
언덕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소유였다. 그들이 산에
올라가보니 거기에는 정원과 과수원과 포도밭 그리고
샘물이 있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마음껏 물을 마시고
몸을 씻고 포도를 따먹었다. 그 산맥의 꼭대기에는
양을 치는 목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마침 큰길가에
서 있었다. 순례자들은 오랜 여행으로 지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고는 그들에게 가서 물었다.
"이 즐거운 산맥의 주인은 누구시죠? 그리고 이
산에서 기르고 있는 양은 누구의 것입니까?"
목자 : 이 산맥은 임마누엘의 땅이며 그분의 성은
여기서도 보입니다. 양들도 다 그분의 것이고, 그
양들을 위해 그분은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지요.
크리스찬 : 이 길을 따라가면 하늘나라로 가게
됩니까?
목자 : 예, 그렇습니다.
크리스찬 : 여기서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
목자 : 진실로 그곳에 갈 사람이 아니라면 아득하게
먼 곳입니다.
크리스찬 : 그 길은 안전합니까, 아니면
위험합니까?
목자 :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사람에게는 안전한
길이지만 '죄인들은 가다가 굴러떨어질 것입니다.'
크리스찬 : 여행길에 피곤하고 지친 순례자들을
위한 휴식처 같은 게 여기에는 없습니까?
목자 : 이 산맥의 주인께서는 우리에게 "손님
대접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당신들
앞에는 좋은 휴식처가 얼마든지 마련돼 있습니다.
나는 꿈속에서 그들이 나그네임을 알게 된 목자들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보았다. 이를테면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이 길로 들어서게 됐는가,
그리고 어떻게 여기까지 용케 올 수 있었는가 하는
물음들이었다. 왜냐하면 이 길로 들어섰더라도 이
산맥에까지 온 사람들이 극히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질문들에 대해 순례자들은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대답해 주었다. 그들의 대답을 듣고 나서
목자들은 기뻐하며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즐거운 산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 목자들의 이름은 '지식(Knowledg)',
'경험(Experience)', '신중함(Watchful)' 그리고
'성실함(Sincere)'이었다. 그들은 크리스찬과 희망의
손을 잡고는 자기들 천막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마침
준비되어 있던 음식을 함께 나눠주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했다.
"여기에 잠시 머무르면서 우리와도 좀 사귀고, 이
즐거운 산맥에 있는 여러 가지 좋은 것들로부터 좀더
위안을 받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그들도 머물러 있겠노라고 말하고는 그날
밤은 그곳에서 쉬기로 했다. 밤이 이슥했던 것이다.
아침이 되자 목자들이 크리스찬과 희망을 깨워서
산꼭대기로 산책 가자고 말하는 것을 나는 꿈속에서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목자들과 함께 잠시 산책을
하면서 여기저기 좋은 경치를 즐겼다. 목자들
자기네끼리 이야기했다.
"이 순례자들에게 놀라운 것들을 좀 보여주는 게
어떨까?"
그들은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서 우선 순례자들을
데리고 '잘못된 생각(Error)'이라는 이름의 봉우리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 봉우리는 매우 가파른
절벽이었다. 그들은 순례자들에게 아래를
내려다보라고 했다. 크리스찬과 희망이 내려다보니 그
아래바닥에는 산꼭대기에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
사람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크리스찬이
물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목자들이 대답했다.
"당신들은 육신의 부활을 믿는 것에 대해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한 그릇된 말을 듣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나요?"
그들이 대답했다.
"예, 들어봤습니다."
그러자 목자들이 말했다.
"이 산 저 아래 몸뚱이가 산산조각난 채로 뒹구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랍니다. 그들은 당신들이
보시다시피 아직까지 땅에 묻히지도 못한 채 저렇게
있는데, 그것은 이 산꼭대기에 너무 높이 올라가거나
봉우리의 가장자리에 너무 가까이 가는 자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랍니다."
그리고 나는 목자들이 그들을 또 다른 봉우리로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 봉우리의 이름은
'조심(Caution)'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멀리 앞을
내다보라고 했다. 거기에는 무덤들 사이로 몇몇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들이 무덤 위에서 뒹굴기도 하고 서로 부딪치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눈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크리스찬이 물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러자 목자들이 대답했다.
"이 산 조금 아래에 길을 벗어나 왼쪽 풀밭으로
들어가는 층계가 나 있는 것을 보지 못했나요?"
그들이 대답했다.
"봤습니다."
목자들이 다시 말했다.
"그 층계로부터 계속되는 좁은 길을 따라가면 거인
절망이 지키고 있는 의혹의 성으로 곧장 가게 되지요.
저기 저 무덤들 사이에서 뒹굴고 있는 사람들도 그
층계에 이르기까지는 당신들과 똑같이 순례에 나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바른길이 험했기
때문에 그들은 풀밭으로 가려고 길을 벗어났다가 거인
절망에게 사로잡혀 의혹의 성안에 있는 지하감옥에
한동안 갇혀 있었는데 마침내 거인이 그들의 눈알을
빼고 저 무덤들 사이에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거기에서 지금까지도 방황하고 있는 것이지요. 과연
옛날 현자의 말이 맞습니다. '깨달음의 길에서 벗어나
방황하고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들의 무리 속에
머무르리라.' "
이 말을 들은 크리스찬과 희망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목자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목자들이 다른 장소, 벼랑 쪽으로 문이
있는 산 밑으로 순례자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꿈속에서 보았다. 그들은 문을 열고 순례자들에게
안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그 안은 아주 어두운 데다
연기마저 자욱했다. 그 속에서는 무언가가 불에 타는
소리와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유황냄새도 났다. 크리스찬이 물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했다.
"여기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샛길입니다. 이곳은
위선자들이 들어가는데, 이를테면 맏아들의 권리를
팔아먹은 에서나, 자기 주님을 팔아먹은 유다, 복음을
비방한 알렉산더, 거짓과 속임수에 능한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 같은 자들이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러자 희망이 목자들에게 말했다.
"내 생각에 그런 자들도 한결같이 우리 순례자들과
똑같은 모양을 했던 걸로 아는데요. 안 그렇습니까?"
목자 : 그랬죠. 그것도 상당히 오랫동안 그런
차림으로 행세했습니다.
희망 : 저렇게 비참한 상태에 떨어지다니 참
안됐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살아 생전에 얼마나 멀리
순례여행을 갔었을까요?
목자 : 어떤 자는 이 산맥까지도 못 왔을 것이고,
또 어떤 자는 좀더 갔었겠지요.
그러자 순례자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능력 있는 분께 우리에게 힘을 달라고
빌어야겠군요."
목자 : 그렇습니다. 그리고 힘을 얻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때 순례자들은 계속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목자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산맥의 끝까지 함께 걸었다. 목자들이 서로
말했다.
"여기서 순례자들에게 천국의 문을 보여줍시다.
그들이 우리의 망원경을 사용할 재주를 가졌다면
말입니다."
그들의 제의를 순례자들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들은 '맑음(Clear)'이라는 높은 봉우리 위로
순례자들을 데리고 가서 자기네 망원경을 보라고
내주었다. 그들은 열심히 망원경으로 하늘나라를
보려고 애썼지만 조금 전에 본 지옥의 풍경이
어른거려 자꾸만 손이 떨렸기 때문에 망원경의 초점을
제대로 맞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의 문
같은 어떤 것과 그곳의 영광스런 장면을 어렴풋이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즐거운 산맥을 떠나면서
노래를 불렀다.
이와같이 목자들이 비밀을,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숨겨진 비밀을,
우리에게만 보여주었네.
그러니 목자들에게 가보시오.
깊은 어떤 것, 숨겨진 어떤 것,
신비스런 어떤 것을 그대 보고 싶다면.
그들이 막 떠나려고 하자 목자 한 명이
순례자들에게 노정표를 건네주었다. 또 다른 목자는
아첨꾼들을 조심하라고 일러주었고, 세번째 목자는
마법에 걸린 땅에서 잠들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네번째 목자는 그들의 여행길에 안전을 빌어주었다.
그때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나는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었는데, 그 두
순례자들이 산에 내려가 큰길을 따라 하늘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산 바로 아래에는
'자만심(Conceit)'이라는 나라가 왼쪽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 나라에서 순례자들이 걷고 있는 큰길로
꼬불꼬불한 작은 길이 하나 이어져 있었다. 그 좁은
길에서 무척 쾌활하게 생긴 아이 하나가 나오다가
순례자들과 마추졌다. 그 아이의 이름은
'무지(Ignorance)'였다. 크리스찬이 그 아이에게
어디서 오는 길이며,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무지 : 저는 저쪽 왼편에 있는 나라에서 태어났는데
지금 하늘나라를 향해 가고 있어요.
크리스찬 : 그런데 그 문은 어떻게 들어갈 셈이냐?
좀 어려울 텐데?
무지 : 다른 착한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하지요.
크리스찬 : 너에게 문을 열어줄 만한 무슨 증서라도
가지고 있니?
무지 : 저는 주님의 뜻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착하게 살아왔어요. 다른 사람의 빚은 다 갚았고
기도도 하고 금식도 하고 십일조도 내고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일도 했어요. 그리고 하늘나라로 가기 위해
고향을 떠났습니다.
크리스찬 : 그러나 너는 이 길의 어귀에 있는 좁은
문을 통해서 들어오지 않고, 저 꼬불꼬불한 길을
통해서 여기로 들어왔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네가 심판의 날이 왔을 때,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는 대신에 강도나 도둑의
이름으로 고발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구나.
무지 : 아저씨, 제겐 아저씨들이 낯설고 누군지도
잘 모릅니다. 아저씨들은 아저씨네 나라의 종교나 잘
따르십시오. 저는 우리나라 종교를 따르겠습니다.
저는 모두 다 잘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아저씨께서 말씀하신 그 좁은 문만 해도 그것이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을 모릅니다.
사실 그 길을 알든 모르든 우리에겐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보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이 바른길로
나오는 오솔길은 깨끗하고 상쾌하며 푸른 잔디가 깔려
있거든요.
크리스찬은 그 아이가 자만심에 도취되어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희망에게 귓속말로 이렇게 속삭였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보다는 바보에게
오히려 더 희망이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했다.
"우매한 자는 길을 걸어가면서조차도 지혜가 모자라
자기가 바보임을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다닌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저 아이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소? 우리가 조금 앞서 걸으면서 저 아이가 우리의
말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줍시다. 그러고는 다시
그를 만나 과연 우리가 해준 말이 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는가를 알아보기로 합시다."
그러자 희망이 말했다.
이제 우리가 해준 말을
곰곰이 생각할 시간적 여유를
무지 아이에게 줍시다.
좋은 충고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해줍시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깨우치도록
하나님은 그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비록 스스로의 손으로 만드셨지만
구원하지 않겠노라 말씀하셨습니다.
희망은 덧붙여 말했다.
"그 아이에게 한꺼번에 모든 걸 다 말해 주면
오히려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군요. 그러니 조금
앞서가다 그가 능히 알아들을 만하다고 생각될 때
다시 말해 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서 두 사람이 앞서 가고 무지가 그 뒤를 따르게
되었다. 상당한 거리를 앞서가던 그들은 몹시 어둡고
좁은 길로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에서 그들은 일곱
명의 악마가 어느 한 사람을 일곱 개의 밧줄로 꽁꽁
묶어서 그들이 벼랑에서 보았던 지옥문으로 끌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착한 크리스찬과 그의 동료
희망은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면서도 크리스찬은
악마가 끌고 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해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는 끌려가는 사람이 '신앙을
버림(Apostacy)'이라는 마을의 '변절자(Turn-away)'
같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마치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크리스찬은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지나간 뒤 희망은 그의 등에 '변덕스런 신앙 고백자,
신앙을 버린 저주받을 사람'이라는 글씨가 씌어진
쪽지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 크리스찬이 동료에게 말했다.
"이 근처에 살고 있던 어떤 착한 사람에게 있었던
일을 들었던 게 생각나는군요. 그 사람의 이름은
'작은 믿음(Little-faith)'이었고, 아주 착한
사람으로 '성실(Sincere)'이라는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었던 일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 길이 시작되는 부근에 '대로문(大路門,
Broad-way-gate)'과 연결되는 골목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길을 '죽은 자의 길(Dead-man's
Lane)'이라고 했는데, 거기에서 살인사건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됐답니다. 그런데
작은 믿음이 지금 우리처럼 순례의 길을 가다가 바로
거기에서 우연히 앉아서 쉬다가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대로문으로부터 세 명의 억센 건달들이
그 골목길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겁쟁이(Faint-heart)', '불신(Mistrust)' 그리고
'범죄(Guilt)'라고 하는 삼형제였습니다. 작은 믿음이
거기에서 잠들어 있는 것을 본 그들은 재빨리
줄달음쳐왔습니다. 그때 착한 순례자는 막 잠에서
깨어 여행을 계속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그에게 달려들어 협박조로 그를 불러 세웠습니다.
작은 믿음은 얼굴이 창백해지고 싸울 힘도 도망칠
힘도 없었습니다. 겁쟁이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돈지갑을 내놓아라.'
그가 돈을 빼앗기는 게 억울해 우물쭈물하자 불신이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은화가
들어 있는 지갑을 꺼냈습니다. 그래서 작은 믿음이
소리쳤습니다.
'강도요, 강도.'
그러자 범죄가 손에 들고 있던 몽둥이로 작은
믿음의 머리를 내리쳐 그는 피를 흘리며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죽을 게 뻔한데도 강도들은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강도들은 그것이 '훌륭한
믿음(Good-confidence)'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큰
은총(Great-grace)'이 아닌가 하여 겁을 먹고는 그
착한 순례자를 홀로 내버려둔 채 도망쳤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작은 믿음은 간신히 일어나
비틀거리며 자신의 길을 갔다고 합니다. 이게 내가
들은 이야기입니다.
희망 : 그럼 강도들이 작은 믿음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다 털어 갔습니까?
크리스찬 : 아닙니다. 강도들은 보석을 감춰둔 곳을
미처 뒤지지 못했기 때문에 보석은 그냥 가지고
있었죠. 그러나 내가 듣기에 그 착한 사람은 돈을
강탈당한 것 때문에 몹시 상심해 했다고 합니다.
강도들이 그의 노자를 거의 다 털어갔으니까
말입니다. 강도들이 보석과 얼마간의 잔돈을
남겨놓기는 했지만 그 돈으로 남은 여행을 다
마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답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 살아 남기 위해서 구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보석은 팔 수가
없었기 때문에 구걸도 하고 그 밖의 온갖 짓을 다
하면서도 그는 끝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나머지
길을 거의 다 갔다고 합니다.
희망 : 하지만 그 강도들에게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증명서를 빼앗기지 않은 게 참으로 신기한
일이군요.
크리스찬 : 신기한 일이죠. 어쨌든 그것은 빼앗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빼앗기지 않은 것은
그의 행동이 기민해서가 아니었지요. 그는 강도들이
달려들 때 너무 놀라서 무엇을 감추거나 어떻게 해볼
힘도 경황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므로 강도들이
증명서를 손에 넣지 못한 것은 그의 어떤 행동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선한 신의 섭리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희망 : 또한 보석을 빼앗기지 않은 것도 그에게 큰
위안이 됐을 것입니다.
크리스찬 : 보석을 유효적절하게 팔아 쓸 수만
있었다면 큰 위안이 되었을텐데 그는 그 보석을
여행이 끝날 때까지 거의 사용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돈을 강탈당한 것에 너무나 낙담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행 도중 거의 보석을 생각하지 못했을 뿐더러 간혹
생각이 나서 위안을 느끼다가도 돈을 잃어버린 생각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면 그런 생각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는 것입니다.
희망 : 참 가엾은 사람이군요. 그에게는 그것이
커다란 슬픔이 아닐 수 없었겠죠.
크리스찬 : 예, 물론 크나큰 슬픔이었겠죠. 그처럼
낯선 장소에서 강도를 만나 모두 강탈당하고 상처까지
입었다면 슬프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 불쌍한 사람이 슬픔에 묻혀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요. 나머지 여행길에서 그는 슬프고도
쓰디쓴 불평만 계속 터뜨렸다고들 하더군요. 그를
앞지르는 사람에게도, 혹은 그가 앞질러 가는
사람에게도 그는 줄곧 자기가 어디서 어떻게 어떤
놈들에게 무엇을 강탈당했으며, 어떻게 상처를 입어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가를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희망 : 그런데 여행 도중 자기의 보석을 팔거나
혹은 전당이라도 잡혀 그 어려움을 어떻게라도
덜어보려고 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군요.
크리스찬 : 마치 오늘날 머리가 텅 빈 작자들이
말하듯이 하는군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전당을
잡히며 누구에게 보석을 팔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가
강탈당한 그 나라에서는 아무도 그런 보석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그것을
팔아서까지 자신의 괴로움을 덜어볼 생각은 없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의 문에서 그 보석을
제시하지 못했더라면 그는 출입허가를 받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죠. 당신이 말한 그런 일은 작은 믿음에게는 수만
명의 강도들을 만나 봉변당하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희망 : 그렇게까지 신랄하게 말씀하실 필요는
없잖습니까? 에서는 가장 중요한 보석인 맏아들
상속권을 단지 팥죽 한 그릇에 팔았는데 작은
믿음이라고 해서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크리스찬 : 에서가 자기 상속권을 팔아먹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하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스스로 중요한
축복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저 겁쟁이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에서와 작은 믿음 사이에,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재산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에서의 상속권은 판에 박힌
것이지만 작은 믿음의 보석은 그렇지 않습니다.
에서에게는 그의 배가 하나님이었지만 작은
믿음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에서가 원한 것은
육체적인 탐욕이었지만 작은 믿음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에서는 자기 창자를 채우는 것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이제 굶어죽게 되었는데 이까짓 상속권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러나 작은 믿음은 믿음을 조금밖에 갖지 못한
것이 그의 운명이었지만, 그는 그 작은 믿음으로도
그런 허망한 일에서 자신을 지켰고, 에서가 자기
상속권을 팔아치우듯 자기 보석을 팔지 않고 그것을
간직하고 가치 있게 여겼던 것입니다. 에서가 믿음을,
아주 작은 것이라도 믿음을 갖고 있었다고 기록된
곳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이 육체만이 전부인 자에게 있어
자기의 타고난 상속권과 영혼과 그 밖의 모든 것을
지옥의 악마에게 팔아버린다는 것은 전혀 놀랄 만한
것이 못되지요. 그것은 마치 암내난 당나귀를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들의 마음이 일단
거기에 쏠리면 그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그것을
손에 넣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작은 믿음은 그런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거룩한 것에 가 있었습니다. 그의 생활 또한 위로부터
오는 정신적인 것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기질을 가진 그가 혹시 살 사람이 있었다 하더라도
무슨 목적으로 그 보석을 팔아 헛된 것으로 자기의
마음을 채우겠습니까? 사람이 자기의 굶주린 배를
건초로 채우기 위해 돈 한푼이라도 내놓겠어요?
비둘기에게 까마귀처럼 썩은 고기를 먹고 살라고
설득시킬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없는 자들은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전당포에 맡기고 전당잡히고 팔아치우고 나아가 그
자리에서 자기자신까지 내주겠지만, 구원에 대한
믿음이 있는 자는 비록 그 믿음이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을
당신은 착각한 것입니다.
희망 : 인정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그
잔인한 비난 때문에 거의 화를 낼 뻔했습니다.
크리스찬 : 그랬습니까? 나는 단지 당신이 한 말을
속이 텅 빈 머리로 활개를 치며 사람이 미처 가보지
못한 곳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어떤 새들에 빗대 본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일단 제쳐놓고 지금
우리가 논하고 있는 문제만 생각해 본다면 당신과 나
사이에는 모든 일이 잘 해결될 것입니다.
희망 : 하지만 크리스찬 씨, 그 세 녀석들은 모두
비겁한 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길에서
발소리가 들린다고 그렇게 줄행랑을 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작은 믿음은 좀더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요? 일단 한번 부딪쳐보고,
그러고 나서도 어쩔 도리가 없을 때 굴복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찬 : 그들이 비겁한 놈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직접 당해 보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작은 믿음 역시 대담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희망 씨가 바로 그 당사자였다면
한바탕 겨뤄본 뒤 굴복했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배가 부르고 그들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그렇지 지금이라도 당장 그들이 당신 눈앞에
나타난다면 당신도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 강도들은 여행자들을 우려먹는
도둑일 뿐이며, 바닥 없는 지옥의 왕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지옥의 왕은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면 울부짖는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직접
달려올 것입니다. 이 작은 믿음이 당한 것과 비슷한
일을 나도 당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세 놈의 악한이 공격해 올 때 나는
크리스찬답게 저항하기 시작했지만, 그놈들이 한번
크게 소리를 지르자 그들의 주인이 당장
달려왔습니다. 그렇게 되자 속담처럼 내 생명은
한푼어치도 안 되는 것 같더군요.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창으로도 뚫을 수 없는 튼튼한
갑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중무장을 하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사내답게 싸우는 게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직접 싸워보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그런 전투가 어떻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희망 : 그렇지만 당신도 아시다시피 그들은 '큰
은총'이 오는 듯하기만 했는데 도망을 쳤습니다.
크리스찬 : 큰 은총이 그 모습을 나타내기만 해도
그놈들 뿐 아니라 그 두목까지 도망치곤 한 것은
사실입니다. 큰 은총이 곧 하나님의 전사이니
악당들이 도망치는 일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죠.
그러나 당신은 작은 믿음과 하나님의 전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모두 그의 전사가 아니며 시험을 당해서 모두
전사처럼 공훈을 세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소년이라면 누구듯 다윗처럼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옳은 일이겠습니까? 굴뚝새가
황소와 같은 힘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강하고 어떤 사람은 약합니다. 어떤 사람은 위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조그만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믿음은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궁지에 몰렸던 것입니다.
희망 : 큰 은총이 도둑놈들보다 먼저 작은 믿음
앞에 나타났더라면 좋았을텐데.
크리스찬 : 큰 은총이라 해도 역시 벅찼을 겁니다.
비록 큰 은총이 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무기를 잘
쓰고, 그것을 활용할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적들을 잘
상대할 수 있는 건 그가 칼을 뽑아 적들을 겨누고
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만약 겁쟁이, 불신, 범죄가
한꺼번에 힘을 합쳐 덤빈다면 사태가 어렵게 되어
그들이 큰 은총을 넘어뜨릴지도 모르는 길입니다.
아시다시피 일단 쓰러진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큰 은총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거기에
무수한 상처와 칼자국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보면 내가 하는 말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은 그가 싸움하는 도중에
"우리는 생명조차도 단념했다." 하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윗왕도 이런 완강한 악당들과
그 패거리들 때문에 탄식하고 신음소리를 내다가
울부짖은 적이 있지 않습니까? 헤만과 히스기야도
당대의 용감한 전사였지만 마귀들의 공격을 받아
싸우다가 두터운 갑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상을
당했었지요. 베드로도 한동안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사도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일컬은 것이
무색하게 마귀들이 덤벼들어 결국 한 비천한 계집애를
무서워하게끔 주물러 놓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휘파람만 불어도 악당들의 왕은 곧
나타납니다. 그는 휘파람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
있다가 그들이 곤경에 처하기만 하면 재빨리 그들을
도와주러 달려옵니다. 그에 대해서 전해 오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칼로 칠지라도 소용없고, 창이나 화살이나 작살도
아무 쓸모가 없도다. 그는 쇠를 풀같이 여기며 청동을
썩은 나무같이 여긴다. 아무리 화살을 쏘아대도 그를
맞힐 수 없고 바윗돌을 날려보내도 티끌같이 여기며
창을 던지는 것을 보고 비웃는구나.'
이런 마귀와 대결해야 하는 경우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가 욥이 타던 말을 어디서나 구할
수 있고, 또 그것을 탈 용기와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그가 비상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왜냐하면 그 말의 목덜미에는 갈기가 휘날리고
메뚜기처럼 거침이 없으며, 그 위엄 있는 콧소리는
웅장하고 골짜기를 헤치고 나아가는 데 힘이 철철
넘치며, 앞으로 나아가 군사들과 대적하되 두렵고
거침이 없어 칼을 당해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창과
화살이 비오듯이 쏟아져도 땅을 삼킬 듯이 맹렬하게
날뛰며, 나팔소리를 들어도 물러설 줄을 모르고
오히려 나팔소리를 들으며 그는 우렁차게 호령하지요.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대장들의 떠드는 소리와
호령소리를 듣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나 나 같은 졸개들은 아예 적과
마주치기를 바라지도 말고, 싸우다 패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였더라면 더 잘 싸웠으리라
큰소리도 치지 말고, 스스로 대장부답고 용감한
사내라고 자처하는 허영심도 버립시다. 그런
사람일수록 막상 시련을 당하면 가장 평범한 사내가
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베드로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거드름을 피우며
활보했지요. 뽐내며 걸어다녔지요. 그는 우쭐한
마음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하고 자기
주님을 위해 더욱 헌신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마귀들과의 싸움에서 참패해 쓰러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로 가는 바른길에서 그런
강도사건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가 있다 하겠습니다. 첫째는 반드시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들고 밖에 나가라는 것입니다.
레비아단이라고 하는 거대한 바다짐승과 힘써
싸우고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한 용사의 실패 원인이
바로 갑옷과 방패를 착용하지 않은 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을 갖추지 않은 것을 보면 적은
결코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술을 아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손에는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그
방패로 여러분은 악마가 쏘는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와 함께 동행해
주길 기원하는 것 또한 좋은 일입니다. 이것이 죽음의
그늘 계곡에서 다윗을 기쁘게 해주었고, 모세는
하나님 없이 한 발짝 나가느니 차라리 선 채로 죽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형제여, 만일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해 주시기만 한다면 우리를 천만 명의
적들이 가로막는다 한들 두려울 게 뭐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분이 없이는 '제 아무리 당당한 사람이
도와준다 할지라도 죽음일 뿐인 것입니다.'
나 자신도 전에 마귀와 싸운 적이 있는데 가장
훌륭하신 이가 덕을 베풀어주셔서 여기 이렇게 당신이
보시다시피 살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나 자신이 용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더 이상 그런 공격을 받지
않는다면 정말 좋겠지만 아직도 우리는 모든 위협을
다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자와 곰이
아직까지 나를 꿀꺽 집어삼키지 못한 이상, 앞으로
만나게 될 할례받지 못한 필리스틴(옛날 팔레스타인의
남부에 살던 민족으로 유태인의 강적이었다. 우리말
성서의 블레셋) 사람으로부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면서 크리스찬은
노래를 불렀다.
가련한 작은 믿음이여!
강도들에게 둘러싸였다고! 그래서
강탈을 당했다고! 이것을 기억하라.
믿음을 가진 이가 더욱더 믿음을 다지면
수많은 적들과 싸울지라도
승리자가 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단 세 명의 적도 이기지 못하리라.
두 순례자는 계속 길을 걸었고 무지가 뒤따라왔다.
한참을 걷다보니 그들은 자기들이 오던 길과 나란히
또 하나의 길이 곧게 뻗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들은 어느 쪽으로 가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두 길
모두 똑바로 뻗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거기에 서서 한동안 망설였다. 피부색깔이 까만
사람이 흰 옷을 걸치고 나타나서는 왜 그렇게 서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지금 하늘나라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인데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 이렇게
망설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나를 따라오시오. 나도 거기로 가는 중입니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그를 따라 옆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 길은 점점 좁아지면서 꼬부라져 그들이
가고자 하는 천국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더니 결국에는
천국을 완전히 등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순례자들은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뒤를 따라 그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의 그 그물에 얽혀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그 흑인의 등에서 흰 옷자락이
벗겨졌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들은 자기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물 속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된 그들은 한동안 울부짖었다.
그때 크리스찬이 그의 동료에게 말했다.
크리스찬 : 이제야 내가 잘못한 것을 깨달았소.
목자들이 우리에게 아첨하는 자들을 조심하라고
말했었지요? 현자가 한 말이 오늘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웃사람에게 아첨하는 사람은 그의 발에 그물을
던지는 것이다.'
희망 : 목자들은 또 길을 바로 찾아가라고 우리에게
노정표까지 주었습니다. 그것을 꺼내볼 생각은 않고
결국 멸망의 길을 따라 나선 꼴이 됐습니다. 이점에서
다윗은 우리보다 더욱 현명했지요. "사람이 하는 일에
관해 나는 주의 말씀대로 행했기 때문에 멸망의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라고 그는 말했으니까요.
그물에 얽힌 몸으로 그들은 이렇게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어떤 빛을 발하는 분이 가는
노끈으로 꼰 회초리를 손에 들고 자기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들 앞에 다가서서는 그들에게
어디서 오는 길이며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자신들은 가엾은 순례자로 시온 산을
향해 가는 중인데, 흰 옷을 입은 흑인의 꾐에 빠져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회초리를
든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그자는 거짓 사도인 아첨꾼인데 스스로 빛의
천사로 변장을 하고 다니며 속이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물을 찢어 순례자들을 나오게 하고는
말했다.
"나를 따라오시오. 다시 바른길로 데려다주겠소."
그래서 그들은 아첨꾼을 만났던 길까지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다시 그들에게 물었다.
"어제 저녁은 어디에서들 주무셨소?"
순례자들이 대답했다.
"목자들과 함께 즐거운 산맥 위에서 잤습니다."
그는 그 목자들이 바른길의 방향을 표시해 놓은
노정표를 주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이 대답했다.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럼, 갈림길 머리에 도착했을 때 그것을
꺼내보았소?"
그들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꺼내보지 않았습니다."
그가 왜 꺼내보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들은 깜박
잊었노라고 대답했다. 그는 다시 목자들이 아첨하는
자를 조심하라고 하지 않더냐고 물었다. 그들이
대답했다.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언변이 좋은 사람이
아첨꾼일 줄은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때 나는 그가 두 순례자에게 땅에 엎드리라고
명령하는 것을 꿈속에서 보았다. 그들이 엎드리자
그는 회초리로 그들을 세게 때리면서 그들이 가야 할
바른길을 가르쳐주었다. 회초리를 휘두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만큼 꾸짖고 징계한다.
그러므로 열심히 노력하고 네 잘못을 뉘우쳐라."
그러고 나서 그는 그들을 떠나가게 하면서 목자들이
가르쳐준 방향을 잘 기억하라고 일러주었다.
순례자들은 그가 보여준 모든 친절에 감사하다고
인사하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바른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이리 오라, 그대 길 가는 나그네여.
길을 잃고 헤매는 순례자가
어떤 고통을 당하는가 보아라.
그들은 훌륭한 충고를 쉽게 잊었기 때문에
얽히고설키는 그물에 빠져들고 말았다.
다행히도 그들은 구조되었지만
회초리로 매를 맞았다네, 보시다시피.
이것을 교훈으로 삼아 조심하도록 하라.
한참 길을 가다가 그들은 혼자서 큰길을 마주
걸어오는 사람을 보았다. 크리스찬이 그의 동료에게
말했다.
"저기 시온 성을 등진 사람이 있군요. 우리를
만나러오는 모양이오."
희망 : 나도 보고 있습니다. 저 사람 역시
아첨꾼일지 모르니 우리 조심합시다.
그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마침내 그들과
마주쳤다. 그의 이름은 '무신론자'로 그들에게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크리스찬 : 우리는 지금 시온 성으로 가는
중입니다.
그러자 무신론자는 요란하게 웃어 대는 것이다.
크리스찬 : 왜 웃으시는 겁니까?
무신론자 : 당신들의 그 어리석음을 보고 웃는
겁니다. 아무리 지루하게 여행을 해도 여행에서 오는
고통말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테니까요.
크리스찬 : 무슨 말씀이오! 왜 우리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헛수고만 한다고 생각하시오?
무신론자 : 얻는다고요? 당신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세상에는 당신들이 꿈꾸는 그런 곳은 없다오.
크리스찬 :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는 반드시
있지요.
무신론자 : 나도 고향에 있을 때 바로 그와 똑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다음부터 고향을 떠나
그것을 찾아서 이십 년이나 헤맸지요. 그러나 처음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그런 곳은 끝내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크리스찬 : 우리는 모두 그곳에 대해 들은 일이
있고 또한 반드시 발견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무신론자 : 나도 집에 있을 때 그런 말을 믿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나서지는 않았을
겁니다.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지금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오. 아마 있었다면 나는 그것을
발견했을 것이오. 나는 당신들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찾아 헤맸으니까, 이제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있지도 않은 것을 찾겠다고 집을 나오며 팽개쳤던
모든 향락들을 다시 즐길 작정이오.
크리스찬이 자기 동료인 희망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말하는 게 정말일까요?"
희망 : 조심합시다. 이자도 아첨꾼들 가운데
하나요. 조금 전에도 이런 사람을 만나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가를 생각해 봐요. 세상에, 시온 성이 없다니
말이나 되오? 우리가 즐거운 산맥 위에서 본 것이
바로 그 성의 문이 아니었던가요? 또한 우리는 지금
믿음을 가지고 길을 가고 있는 게 아닙니까? 계속해서
바른길로 갑시다.
희망이 계속 말을 이었다.
"회초리를 든 분이 또다시 우리를 따라잡기 전에
어서 갑시다. 그 교훈을 크리스찬께서 내게
가르쳐주었어야 할텐데 오히려 내가 말씀드리게
되었군요.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내
아들아, 지식을 통해서 잘못을 저지르게 하는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라.'
그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그리고 오직 영혼의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집시다."
크리스찬 : 형제여, 내가 당신께 그런 질문을 한
이유는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를 스스로 의심해서가
아니었소. 단지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정직의 열매를
꺼내어 살펴보려는 것이었소. 이 사람에게 대해서라면
나도 잘 알고 있어요. 그는 이 세상의 신에 의해 눈이
멀어 있지요. 당신이나 나나 진리를 믿고 진리에서는
거짓이 나오지 않음을 알고 있으니 우리 계속
걸어갑시다.
희망 :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바람으로 나는 지금
무척 기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를 등지고, 그는 그들을
비웃으며 각기 자기의 길을 갔다.
나는 꿈속에서 그들이 어떤 지역에 다다르는 것을
보았는데, 그 지역은 본래 공기가 이상하여 그곳에
처음 들어서는 사람은 졸게 되는 곳이었다. 이곳에
이르자 희망은 머리가 몽롱해지고 걷잡을 수 없이
졸리기 시작했다. 그가 크리스찬에게 말했다.
"너무 졸려서 눈이 제대로 떠지지가 않습니다. 우리
여기 누워 잠깐 눈 좀 붙입시다."
크리스찬 : 절대로 안 됩니다. 여기서 잠들었다가는
다시는 못 일어나게 됩니다.
희망 : 왜 그렇죠? 지친 사람에게 잠은 달콤한
것입니다. 한숨 자고 나면 정신도 맑아질 것입니다.
크리스찬 : 목자 중 한 사람이 마법에 걸린
지역에서 조심하라고 경고해 준 일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그의 말은 여기서 잠들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이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남들처럼
여기서 잠자지 말고 정신차려 깨어 있어야 합니다.
희망 : 내가 잘못했습니다. 나 혼자 여기에
왔더라면 나는 잠에 빠져 결국 죽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둘은 하나보다 낫다.' 라는 현자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이제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당신과 함께
오게 된 것이 내게 큰 은총이었습니다. 물론 당신도
그에 대한 응분의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크리스찬 : 졸음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유익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희망 : 그것 참 좋은 생각입니다.
크리스찬 :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할까요?
희망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 곳에서부터
시작합시다. 원한다면 당신이 먼저 시작하십시오.
성도들이 졸릴 때는
여기로 와서 이 두 순례자가
어떻게 이야기하나 들어보시오.
그들로부터 배웁시다, 현명하게,
졸리운 눈이 감기지 않도록.
성도들의 친밀한 교제, 만약 그것이 잘
이루어진다면
설령 지옥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항상 그들을 깨어 있게 해줄 것이오.
그리하여 크리스찬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크리스찬 :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어떻게 해서
당신은 애당초 이런 순례여행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까?
희망 : 어떻게 해서 내 영혼의 행복을 추구할
생각을 하게 됐느냐는 이야기죠?
크리스찬 : 예, 바로 그것입니다.
희망 : 나는 오랫동안 우리 허영의 시장에서
진열되어 사고 팔리는 물건들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만약 지금까지 그것들에 계속 빠져 있었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지옥과 멸망 속으로 빠져버렸을
것입니다.
크리스찬 : 그것들이란 어떤 것이었습니까?
희망 : 이 세상이 온갖 보석과 재물을 말합니다.
게다가 나는 폭동, 반역, 음주, 사기, 불결, 안식일의
무시, 그리고 그 밖에도 영혼을 파멸로 이끌 만한
것은 무엇이나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말을 듣고, 그리고 허영의 시장에서 고결한 삶과 믿음
때문에 죽음을 당한 믿음의 말을 듣고 거룩한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모든 향락의 마지막은 죽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머리 위'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ㄲ닫게 됐습니다.
크리스찬 : 그러면 그런 걸 깨닫자 곧 확신을 갖게
됐습니까?
희망 : 아닙니다. 처음 말씀을 듣고 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사실 죄의 악함이라든가
그 죄를 지은 대가로 따라오는 형벌에 대해 애써
외면하려 했고 말씀으로부터 오는 광명한 빛을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크리스찬 : 하나님의 축복이 당신에게 처음으로
임했을 때 당신이 그토록 부정하려고 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희망 : 그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첫째, 나는
그것이 내게 임하는 하나님의 섭리인 줄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회개하게 할
때 우선 그 죄를 깨닫게 하신다는 걸 몰랐던
것입니다. 둘째, 내 육체적 삶에 있어 그때까지
죄라는 것은 아직 달콤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죄를
떠나기가 싫었던 것이지요. 셋째, 나는 차마 내
옛친구들과 절교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있고 함께 논다는 것은 매우 유쾌한 일이었으니까요.
넷째, 죄의식이 나를 사로잡던 순간은 너무나도
괴롭고 가슴아팠기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크리스찬 : 때로는 그런 괴로움을 스스로 물리친
적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희망 : 그럼요, 있었지요. 그러나 죄의식은 또다시
내 머리 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러면 나는 전보다도
훨씬 더 괴로웠습니다.
크리스찬 : 그래요? 그럼 무엇이 당신의 마음속에
그렇게 죄의식을 가져다주었습니까?
희망 : 여러 가지가 있었죠. 이를테면,
첫째, 단지 길거리에서 착한 사람을 만나거나,
둘ㅉ, 어떤 사람이 성경 말씀을 읽는 것을 듣거나,
셋째, 내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거나,
넷째, 이웃 가운데 누가 병을 앓는다는 소리를
듣거나,
다섯째, 장례식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듣거나,
여섯째, 내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하거나,
일곱째, 누가 갑자기 죽었다는 말을 듣거나,
여덟째, 특히 얼마 안 가서 내가 심판받을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랬습니다.
크리스찬 : 그런 몇 가지 일 때문에 죄의식이 덮칠
때 당신은 간혹 그 죄의식을 쉽게 떨쳐버린 적이
있었습니까?
희망 : 아닙니다. 쉽게 물리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마다 그 죄의식은 나의
양심을 더욱 단단히 붙들고 늘어졌으니까요. 그래서
마음으로는 돌아섰으면서도 다시 죄를 짓는 생활로
되돌아갈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되면 괴로움은 훨씬 더
커지곤 했습니다.
크리스찬 : 그럴 땐 어떻게 하셨습니까?
희망 : 나는 내 인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틀림없이 저주받게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크리스찬 : 그래서 인생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습니까?
희망 : 예, 그래서 나의 죄짓는 생활로부터, 죄
많은 친구들로부터 탈출했습니다. 그러고는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눈물로 지은 죄를 회개하고, 이웃에게
진리를 전파하면서 종교적인 의무를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내가 한 일은 이런 일 말고도 많은데
지금 이 자리에서 한꺼번에 다 열거할 수는 없습니다.
크리스찬 : 그래, 자신이 만족하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까?
희망 : 예, 잠시 동안은 그랬습니다. 그러나 결국
다시 괴로움이 나를 무겁게 짓눌러서 그동안
이루어놓은 모든 성과들을 압박했습니다.
크리스찬 : 인생을 바꿨는데도 어떻게 해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희망 : 내게 괴로움을 가져다준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죠. 특히 "우리의 모든 의로움은 더러운
누더기와 같다."느니, "어느 누구도 율법에 따른
행동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느니, "너희는 해야
할 일을 다 마친 후에 우리는 아무런 이익이 안 되는
종이라고 말하라." 하는 등의 말을 들을 때마다
그랬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
새작했습니다. 즉 우리의 모든 의로움이 더러운
누더기와 같고, 율법에 따르는 행동으로는 아무도
행위의 정당함을 인정받지 못하며, 모든 일을 다
마치고도 여전히 이로울 것이 없는 존재로 남는다면,
율법에 따라 살아서 천국에 갈 생각을 한다는 것은
바보짓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나는 이렇게까지 생각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상점에 백 파운드의 빚을 졌다가 그것을 다
청산했어도 상점 장부에 기록된 명세서를 없애버리지
않았다가는 그것을 증거로 상점주인이 그를 고소할
수도 있고, 그가 다시 빚을 갚을 때까지 감옥에 넣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고 말입니다.
크리스찬 : 그래요, 그래 그 이론을 자신에게는
어떻게 적용했습니까?
희망 : 나는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가 지은 죄로 하나님의 장부책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인데, 지금 개선된 삶을 산다고 해서 그것이 장부의
기록을 말소시켜주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현재의
개선된 생활 속에서라도 나는 여전히 깊이 생각해
봐야만 한다. 어떻게 하면 지난 날의 죄 때문에 받게
될 형벌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크리스찬 : 매우 훌륭한 적용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희망 : 늦게나마 인생을 개선한 후에도 나를
괴롭히는 것이 또 있었습니다. 현재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내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는 여전히 죄를,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일과 뒤엉킨 새로운 죄악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나는 내가 전에 아무리
충실했다 하더라도, 그리고 이전의 생활이 아무리
깨끗했다 하더라도 단 한 가지 의무에 소홀하여
지옥에 갈 만한 죄를 범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크리스찬 :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희망 : 어떻게 했느냐고요? 믿음에게 나의 그런
심정을 고백할 때까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와 나는 매우 친한 사이였습니다. 그는
내게 말해 주었습니다. 만약 내가 일찍이 죄를 짓지
않은 의로운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면, 나 자신의
의로움은 물론 온 세상의 의로움을 가지고도 결코
나를 구원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크리스찬 : 그래서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습니까?
희망 : 만약 내가 자신의 갱생에 만족하고 기뻐할
때 그가 그렇게 말했더라면 나는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나
자신의 약점을 알았고 내가 최선을 다해도 여전히
달라붙는 죄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크리스찬 : 그러나 그의 말을 듣고, 사실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라고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그런
인물이 정말로 어딘가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까?
희망 : 물론 처음에는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하고 좀더 대화를 나누고
교제를 하면서 나는 그것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크리스찬 : 그래서 친구에게 그 사람이 누구이며,
어떻게 그 사람으로부터 당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희망 : 물어보았죠. 그랬더니 그분은 지금 가장
높으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예수님이 육신으로
계실 때 행하신 일과 십자가에 매달리셨을 때 당하신
고통을 믿음으로써 나는 그분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분의 의로움이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이 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그런 영향을
발휘할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그는 내게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그분이 행한 모든 일과 심지어 그분의 죽음까지도
자기자신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한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만약 나 같은 죄인이
그분을 믿기만 하면 그분은 자신의 행위와 그 행위의
가치를 내게도 나누어주실 것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크리스찬 :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희망 : 나는 그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믿어도 그분은 나를 구원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크리스찬 : 그러니까 믿음이 뭐라고 말하던가요?
희망 : 그분에게 가보라고 하더군요. 나는 그것은
염치없는 짓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염치없는 짓이 아니며 그분이 나를 초대하셨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책 한 권을 내게 주면서 마음놓고 가보라고 용기를
북돋워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 관해 말하기를, 그
책에 나와 있는 한 점, 한 획이 하늘과 땅보다도 더욱
단단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께
가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온갖
마음과 정성을 모아 무릎을 꿇고 그분의 아버지인
하나님께 그분을 뵙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다시 하나님께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내게 가서 보면
일년 내내 언제나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서 찾아오는
자들을 용서해 주고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분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는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하나님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저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해주십시오.
그분의 의로우심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 의로우심을
제가 믿지 않는다면 저는 이미 버려진 인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 저는 당신께서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요, 또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구세주로 임명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신께서는 저 같은 불쌍한 죄인을
위해 그분을 기꺼이 제물로 삼으셨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러하오니 주님, 이번 기회에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제 영혼을 구원해 주시는
은총을 베풀어주소서. 아멘."
크리스찬 : 그래, 시키는 대로 했습니까?
희망 : 했죠. 거듭거듭 했습니다.
크리스찬 : 그래,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여주셨습니까?
희망 : 아닙니다. 첫번째 기도에도, 두번째
기도에도, 세번째, 네번째, 다섯번째, 여섯번째
기도에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크리스찬 :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희망 : 어떻게 했느냐고요? 물론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죠.
크리스찬 : 기도를 집어치우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습니까?
희망 : 들었지요. 수백 번도 더 기도를 집어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리스찬 : 그런데 어째서 그만두지 않았습니까?
희망 : 나는 내가 들은 이야기, 즉 그리스도의
의로움 없이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나를 구원해 줄
수 없다는 믿음의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만두고 물러서면 나는 죽는다. 죽을 바에야 차라리
은총의 보좌 앞에서 죽겠다고. 그리고 또 이런 말이
생각났습니다.
"비록 시간이 걸릴지라도 기다려라. 그것은
지체되지 않고 틀림없이 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을
보여주실 때까지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크리스찬 : 그분은 어떻게 당신에게
나타나셨습니까?
희망 : 나는 그분을 육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사실인즉 이랬습니다.
어느 날 나는 몹시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평생
그렇게 슬픈 적이 없었다고 생각될 만큼 몹시
슬펐습니다. 그 슬픔은 지은 죄가 막중하고
비열하다는 것이 환히 보였기 때문에 생긴
슬픔이었습니다. 내가 지옥을 쳐다보면서 내 영혼이
끊임없는 천벌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불현듯 하늘에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내려다보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러면 네가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여, 저는 크나큰, 아주 큰 죄인입니다."
그랬더니 그분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 은총이면 너를 위해서 충분하다."
내가 다시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주여,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로 오는 자는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믿는다는 것과 온다는 것은
하나이며, 그분께 온 자, 즉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고자 마음의 정성을 다해 달려오는 자가 곧
참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 저처럼 큰 죄인도 당신께서는
받아들이시고 구원해 주시옵니까?"
나는 그분이 대답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게 오는 자를 내가 결코 내쫓지 않으리라."
내가 다시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 어떻게 하면 주님께 좀더 가까이
가서 자세히 뵙고 제 마음을 굳건히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랬더니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들의
의로움을 위해 율법의 끝이 되셨다. 그는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를 의롭게 해주기 위해 다시
살아나셨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다. 그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개자이시다. 그는 영원히 살아 계시어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
나는 이 모든 말씀을 듣고 결국 나 자신의 의로움을
예수님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과 내 죄를 깨끗이
씻어주는 것은 그의 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분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형벌을 받으신 것은 그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받기 위해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를
위해서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걸 깨닫게 되자
나의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 찼고 눈에는 눈물이
흘러넘쳤으며, 내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과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백성을 향해서 치닫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찬 :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영혼에 그의 자태를 드러내신 계시임에 틀림없군요.
그렇지만 그 계시가 당신의 마음에 특히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말 좀 해주십시오.
희망 : 그것은 나로 하여금 모든 세상만물은 그
나름대로 온갖 의로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당할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원래
공평하시지만 자기에게 오는 죄인을 공정하게 죄를
사하여 주신다는 것을 ㄲ닫게 됐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전 생활에서 저질렀던 야비한 짓들이 몹시
부끄러워졌고, 내 자신이 너무 무지했다는 사실에
당황하게 됐습니다. 이전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아름답게 보인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로써
나는 마침내 거룩한 삶을 사랑하게 됐고,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영광되게 하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하고
싶은 생각이 절실해졌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내 몸
속에 1천 갈론의 피가 있다면 주 예수를 위해 그 1천
갈론의 피를 모두 다 흘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나는 꿈속에서 희망이 뒤돌아오다가 무지를
발견하는 것을 보았다. 무지는 그들의 뒤를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저길 봐요. 저 뒤에 그 아이가 아직도 따라오고
있어요."
희망이 크리스찬에게 말했다.
크리스찬 : 아, 그렇군요. 내게도 보입니다. 우리와
동행하고 싶지 않나보군요.
희망 : 하지만 그가 여기까지 우리와 함께 왔더라면
그에게 해로울 게 하나도 없었을 겁니다.
크리스찬 : 물론입니다. 하지만 저 녀석은 틀림없이
다르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희망 : 나도 그러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올 때까지 기다려 봅시다.
그래서 그들은 무지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크리스찬이 그에게 말했다.
"얘야, 넌 왜 그렇게 멀리 처져서 따라오는 거냐?"
무지 : 함께 걸을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라리 혼자 걸어가는 게 더 좋습니다.
크리스찬이 희망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내가 뭐랬습니까? 저 아이는 우리와 함께 동행하는
것을 싫어한다니까요. 그러니 우리끼리 이야기나
하면서 이 무료한 길을 가도록 합시다."
그러고 나서 그는 무지를 향해 말했다.
"그래, 어떠냐? 이제는 하나님과 네 영혼이 어떤
사이에 놓여 있지?"
무지 : 좋은 사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걸어가는
동안 나를 위로하기 위해 계속해서 좋은 생각들이
솟아나니까요.
크리스찬 : 좋은 생각이라고? 그게 대체 뭐지?
무지 : 하나님과 천국 생각이지 뭐겠어요?
크리스찬 : 악마나 저주받은 영혼들도 그런 생각은
한단다.
무지 : 하지만 저는 그것들을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갈망하기도 하지요.
크리스찬 :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게으른 자는 아무리 갈망해도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거든.
무지 : 하지만 저는 그것들을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크리스찬 : 그건 믿기 어려운 걸. 모든 걸 다
버린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니까. 아무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힘든 일이지. 그런데 너는
어째서 무엇 때문에 하나님과 천국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니?
무지 : 제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어요.
크리스찬 : 현자가 이렇게 말했단다. '자기자신의
마음을 믿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니라.'
무지 : 그건 악한 마음을 두고 하는 말이죠. 하지만
저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거든요.
크리스찬 : 네 마음이 선하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니?
무지 : 제 마음이 천국에 대한 희망으로 저를
위로하고 있거든요.
크리스찬 : 속아서 위안을 느낄 수도 있단다.
사람의 마음이란 도무지 바랄 수도 없는 대상을
희망하면서 자신을 위로할 수도 있거든.
무지 : 하지만 제 마음이 생활과 하나가 돼 있느니
만큼 제 희망은 상당히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찬 : 네 마음이 생활과 일치됐다고 누가
그러든?
무지 : 제 마음이 그랬죠.
크리스찬 : 내가 도둑인지 아닌지는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 하는 법이지. 따라서 자기 마음이 그렇게
말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야. 이런 일의 확실한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 말고 그 어떤 증언도 가치가
없는 법이다.
무지 : 하지만 좋은 생각을 품은 마음이 선한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에
따라 사는 생활이 좋은 생활 아닙니까?
크리스찬 : 그렇지, 좋은 생각을 품은 마음은 좋은
마음이고,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생활하는 것은 좋은
생활이지. 그러나 그런 마음과 그런 생활을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과 다만 그것을 생각만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란다.
무지 : 아저씨, 그런데 그런 좋은 생각들이나
하나님의 율법에 따르는 생활이란 어떤 것이라고
보셔요?
크리스찬 : 좋은 생각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 자기
자신에 관한 좋은 생각, 하나님에 관한 좋은 생각,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생각, 그리고 그 밖의 것들에
대한 좋은 생각 등등이 있지.
무지 : 자기 자신에 관한 좋은 생각이란 어떤
것이지요?
크리스찬 :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는 생각이지.
무지 : 언제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생각이
일치되는 거죠?
크리스찬 :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내린
심판과 똑같은 심판을 우리 자신에 대해서 내릴 때지.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하나님은 인간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정의로운 사람은 없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씀하셨단다.
"사람의 마음이 생각해 내는 모든 계획은 항상
악하다. 사람의 마음에서 상상하는 것은 어려서부터
악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스스로에 관해 생각을 할 때 위와
같이만 생각한다면 우리의 생각은 좋은 것이란
말이다. 그것이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기
때문이지.
무지 : 저는 제 마음이 그렇게 악하다고는 결코
믿을 수 없습니다.
크리스찬 : 그러니까 너는 자신에 관한 좋은 생각을
평생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거야. 좀더 들어봐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심판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심판을
하신단다. 그러니까 우리의 생각이나 행위가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가 합치될 때 그 두가지는 모두
좋은 것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리는 심판과
일치하게 되니까 말이다.
무지 :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크리스찬 : 그러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의
방식은 굽어졌고 선하지 못하며 뒤틀려 있다는 거야.
그것들은 본래의 선한 방식에서 벗어나 있는데
인간들은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단 말이야.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방식에 대해 생각할 때는, 즉
정신을 차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생각할 때는 자기
자신의 방식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지.
그의 생각이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이 내리는 심판과
일치되기 때문에 그렇단다.
무지 : 그럼, 하나님에 관한 좋은 생각이란
무엇입니까?
크리스찬 : 내가 말한 우리 자신에 관한 생각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는 것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주신 대로 우리가 그분의
존재와 속성을 생각할 때가 그때인데, 이 자리에서
그것에 관해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지.
그러나 우리와 관련시켜 하나님에 관해 이야길
한다면, 우리가 그분을 생각할 때 우리 자신이 우리를
아는 것보다 더 잘 우리를 알고 계시고, 우리들이
발견할 수 없는 사소한 죄까지도 찾아낼 수 있는
분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하나님은 우리의 속마음을 잘 알고
계시고 우리의 마음이 아무리 깊어도 그분 앞에서는
모두 공개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을
올바르게 생각하는 것이지. 또 우리가 제아무리
의롭다 할지라도 그분에 비하면 코에서 나는 악취에
불과할 뿐이고,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했다
할지라도 그분 앞에 떳떳이 설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에 대해 올바르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무지 : 아저씨는 제가 하나님은 저보다 더 멀리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바보로 생각하십니까? 혹은
자기 선행을 가지고 하나님께 자랑이나 할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십니까?
크리스찬 : 그럼, 너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무지 : 간단히 말하자면 의롭다고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찬 : 뭐라고! 너는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가
필요없는 그런 존재로 보면서 그리스도를 꼭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너는 너 자신의 타고난 약점이나
현재 가지고 있는 약점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어.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의롭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의로움은 필요가 없는 그런 사람으로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고, 또 그렇게 행동을
하는구나. 그런 네가 어떻게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한단 말이냐.
무지 : 저는 그 모든 것을 충분히 믿고 있습니다.
크리스찬 : 어떻게 믿고 있니?
무지 : 저는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고 있으며, 제가 그분의 율법에
순종하면 은총으로 저를 받아들여 하나님 앞에서
저주를 받지 않고 의롭게 되리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제게 종교적인
여러 가지 책임을 맡기셔서 제가 그것을 실행함으로써
아버지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따라서 저는
의로운 자로 인정받게 되리라는 것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크리스찬 : 너의 신앙고백에 대해서 내가 대답해
주겠다.
첫째, 너는 환상적인 신앙을 믿고 있다. 그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어디에도 기록돼 있지
않다.
둘ㅉ, 너는 거짓 신앙을 믿고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의로움으로부터 정당성을 취해서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키기 때문이다.
셋째, 그 신앙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너라는 인간을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행동을 의롭게
하는 분이 되고, 따라서 너의 행동을 위해서 너라는
인간을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그것은 옳지
않다.
넷째, 그러므로 그런 신앙은 남을 속이는 짓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진노하심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진정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은 영혼을 그리스도의 의로움 속으로 피난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의로움이란 네가
순종했노라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도록 의롭다고
인정해 주기 위해서 베푸는 은총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이 율법에 순종하시어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고통과 해야 할 일에 은총을 베푸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된 신앙은 이러한 의로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의로움을 받아들이는 영혼은 깨끗한 옷자락에
감싸여 티 없는 존재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고,
하나님이 그 영혼을 받아들이시어 형벌을 면케 되는
것이다.
무지 : 뭐라고요?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우리와는
관계없이 혼자서 마음대로 한 일을 믿으라는
말인가요? 그런 주장은 우리의 욕망을 묶었던 고삐를
풀어지게 하고 모두들 자기 멋대로 살게 묵인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의로움만으로 우리가 모든 것으로부터 의로움을
인정받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던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크리스찬 : 네 이름이 무지지? 말하는 걸 보니 아주
이름 그대로구나. 너는 무엇이 올바름을 인정받는
의로움인지도 모르고 있다. 너의 영혼이 믿음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부터 구원받게 되는지를
모르고 있단 말이다. 너는 또한 그리스도의 의로움
속에 있는 구원의 믿음이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지
그걸 모르고 있구나. 그분의 이름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길과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곧
그분의 의로움을 믿는 것이라는 사실을. 네 무지한
상상과는 다르지.
희망 : 그리스도가 하늘로부터 그에게 임한 적이
있는지 한번 물어보세요.
무지 : 뭐라고요? 아저씨는 하나님의 계시를 믿는
사람이군요. 저는 두 분을 비롯해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 사람은 모두 머리가 돌았다고
생각합니다.
희망 : 뭐라고? 그리스도는 하나님 품안에 숨어
계서서 모든 육신들이 일반적인 이해력으로는 볼 수가
없다.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육신들에게
그를 계시해 보여주지 않으면 어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단 말이다.
무지 : 그건 아저씨네 신앙이지 제 신앙은
아닙니다. 제 신앙은 아저씨네 신앙 못지않게
훌륭하다고 확신합니다. 비록 제 머리 속에는
아저씨들 만큼 많은 환상이 들어 있지는 않지만요.
크리스찬 : 내가 한마디만 더 하겠다. 너는 계시에
대해 그렇게 간단히 말해서는 안된다. 나는 내 동료가
이미 언급했듯이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 없이는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다고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말하겠다. 인간의 영혼이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은 그것이 정당한 것일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이 아니고서는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너 같은 무지한 사람은 그걸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구나. 그러니 이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비천함을 깨달아 주 예수께
달려가거라. 그분의 의로움을 통해서 너는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분 자신이 곧 하나님이므로
그분의 의로움이 곧 하나님의 의로움이니라.
무지 : 아저씨는 걸음이 너무 빠르십니다. 제가
따라갈 수가 없어요. 앞서 가십시오. 전 조금
뒤떨어져가겠습니다.
그리하여 두 순례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좋다, 무지야. 너는 아직도 어리석구나.
열 번씩이나 좋은 충고를 무시하다니.
우리의 충고 끝내 거부하면, 머지않아
그것이 잘못이었음을 깨닫게 되리라.
기억하라 어린아이야.
두려워 말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면
좋은 충고는 너를 구원하리니
그러나 끝내 무시한다면, 경고하노니
너는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니라.
크리스찬이 자기 동료에게 말을 건넸다.
크리스찬 : 이봐요, 나의 훌륭한 희망이여. 이제
다시 우리들 이야기로 돌아가야 할 것 같군요.
그리하여 그 둘이 한 발짝 앞서서 걸어가고 그 뒤를
무지가 조금 떨어져서 따라가고 있는 것을 나는
꿈속에서 보았다. 다시 크리스찬이 동료에게 말했다.
"저 아이가 가엾고 불쌍하군. 틀림없이 잘못되고
말거야."
희망 : 안됐어요. 우리 마을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온 가족, 아니 온 거리에 심지어
순례자들 가운데에도 그런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답니다. 우리 고향에도 그런 자가 많은데 하물며
그가 태어난 곳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크리스찬 : 참으로 '주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신
것은 그들이 알아 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라는
말씀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그런 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에게도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깨달음이
주어지고, 따라서 자기들의 지금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을 두려워할 그런 시간이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시오?
희망 : 글쎄요. 당신이 연장자시니 먼저 말씀해
보시지요.
크리스찬 : 그럼, 내가 말해 보지요. 내 생각에는
그들도 가끔 죄를 깨닫고 벌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래
무지하게 태어났으므로 그런 깨달음이 자기들에게
유익하리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지요. 그러므로 그들은
그런 생각들을 결사적으로 누르면서 자기들 마음대로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입니다.
희망 : 나도 그 말에 동감입니다. 두려움은 인간을
선하게 만들고 순례의 길을 떠날 때 처음부터 올바른
자리에 서게 만들지요.
크리스찬 : 그 두려움이 올바르기만 하다면
틀림없이 그렇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도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니라.'라고
기록돼 있는 게 아니오?
희망 : 올바른 두려움이란 무엇을 뜻합니까?
크리스찬 : 참된 두려움, 즉 올바른 두려움은 세
가지 점에서 발견되지요.
첫째, 죄로부터 구원을 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두려움이 생겨난다.
둘째, 두려움은 인간의 영혼으로 하여금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를 철저히 붙들게 한다.
셋째, 두려움은 인간의 영혼 속에 하나님에 대한
외경심, 그의 말씀과 그의 방식에 대한 외경심이
끊임없이 생겨나게 해준다. 그리하여 인간의 영혼을
부드럽게 해주며, 왼쪽으로든 오른쪽으로든 딴 데로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해준다. 또한 두려움은 하나님을
모욕하고, 평화를 깨뜨리며, 성령을 슬프게 하며,
원수로 하여금 하나님을 비방케 허용하는 일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희망 : 잘 말씀하셨어요. 지금 말씀하신 것이 모두
사실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이제 마법에 걸린 지역을
거의 다 지난 게 아닐까요?
크리스찬 : 글쎄요. 왜 이런 대화에 싫증이
났습니까?
희망 : 아닙니다. 절대로 그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크리스찬 : 앞으로 가야 할 길이 2마일도 채 안 될
것 같습니다. 다시 이야기를 계속합시다. 그런데
무지한 자들은 죄의식이 자신에게 유익한 것인 줄도
모르고 죄를 깨달아 두려워하는 것을 억제하려고만
애쓰고 있지요.
희망 : 그들은 어떻게 그것들을 억누르려고 할까요?
크리스찬 : 첫째, 그들은 두려움을 악마가
가져다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은 하나님이
가져다주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마치 두려움이
자신을 멸망으로 곧장 이끌기나 하듯 항거하지요.
둘째, 그들은 두려움이 자기들의 믿음을
손상시킨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들에겐 믿음이란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래서 두려움에
대항하도록 마음을 단단하게 굳히는 겁니다.
셋째, 그들은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은 두려워하면서도
억지로 아닌 체 가장하고 있지요.
넷째, 그들은 두려움이 자기들의 보잘것 없는 자아
신성함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저항하는 것입니다.
희망 : 그것에 대해서라면 나도 약간은 알고
있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제대로 알기 전에는 나도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크리스찬 : 자, 이제 무지에 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고 다른 유익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희망 :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셔야겠습니다.
크리스찬 : 좋습니다. 한 10년쯤 전에 당신의
고향에서 살았던 '일상적(Temporary)'이라는 사람을
혹시 알고 있습니까? 당시 신앙적으로 꽤 앞서 있던
사람이었는데.
희망 : 알고 있어요. 그래요, 그는 '정직함'이라는
마을에서 한 2마일쯤 떨어진 '은총을
모름(Graceless)'이라는 마을에 살고 있었지요. 그는
'돌아섬(Turn-back)'이라는 사람의 바로 옆방에
살았습니다.
크리스찬 : 맞아요. 그들은 한지붕 밑에서
살았지요. 한때는 신앙적으로 꽤 깨어 있는
사람이었지요. 그때만 해도 어느 정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따라서 그 죄의 값으로
따라오는 형벌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희망 :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집하고는 겨우
3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었는데, 그는 가끔 내게
와서 울곤 했지요. 나는 진심으로 그를 불쌍하게
여겼고, 희망이 전혀 없는 자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주여, 주여." 하고
울부짖는다고 다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요.
크리스찬 : 한번은 그가 지금 우리들처럼 순례의
길을 떠나겠노라고 내게 말한 적도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자기 구원(Save-self)'이라는 사람과 사귀게
되면서부터 그는 전혀 딴 사람이 되고 말았지요.
희망 :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그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 갑자기 달라지는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크리스찬 : 그것 참 유익한 일이겠군요. 당신부터
이야기해 보시지요.
희망 : 좋습니다. 내 생각에는 네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그런 사람들은 양심이 각성되었기는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식의 힘이 약해지면 그들을 신앙적이게 만들었던
힘마저 사라지게 되지요. 그렇게 될 때 그들은 자연히
옛날 습성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마치 토했던
음식을 도로 삼키는 개와 같다고나 할까요? 개는
먹으면 안 될 음식을 먹었을 때 뱃속이 아픈 동안에는
계속 토해 내지만, 그것도 제 마음이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고 뱃속이 아프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아픔이 가시면 그 토사물에 미처
섞여 나오지 않은 식탐에 끌려 토해 냈던 것을 다시
말끔히 삼키지 않습니까? 과연 '개는 제가 토한 것을
도로 먹는다.'는 말씀은 진리입니다. 이와 같이
지옥의 형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천당을 사모하던
자들은 그들의 지옥에 대한 인식이나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면 천당과 구원에 대한 욕망도
식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죄의식이나 두려움이 사라지면 천당과
행복에 대한 열망도 자연히 없어지고 다시 옛날의
습성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은 자신을 압도하는
두려움에 노예처럼 굴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에 대해 갖고 있는 두려움 말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가미에 걸린다.'라는 성경
말씀도 있지요.
그리하여 지옥의 화염소리가 그들의 귓전에서
타오르는 동안에는 천당을 열심히 갈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무서움이 조금 사라졌다 하면 그들은
다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즉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르는
모험을 하기 보다는 지혜로워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최소히 피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불필요한 고난에서는 스스로 발을 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다시 이 세상
물욕에 빠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 그들의 길에는 종교를 수치스런 것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장애물로 놓여 있습니다. 그들은
오만하고 건방지죠. 그래서 그들의 눈에는 종교란
것이 저속하고 유치한 것으로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과 앞으로 닥칠 하나님의 형벌에 대한
생각이 없어지게 되면 그들은 곧장 옛날의 길로
돌아가버리는 것입니다.
넷째, 죄의식이나 공포감에 사로잡히는 것이
그들에겐 죽기보다 싫은 일입니다. 그들은 불행이
닥치기 전에는 그 불행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불행이 처음으로 눈에 띄었을 때 의로운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그 불행 속으로
뛰어들기만 해도 안전하게 될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죄나 두려움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하므로 일단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기만 하면 기꺼이 마음을
굳히고는 더 나아가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 만한
일만을 골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크리스찬 : 정말로 당신 말이 맞소.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의 마음과 뜻이 별로 변하지 않는 데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들은 고작 재판장 앞에 선
흉악범 같은 신세일 뿐입니다. 그는 부들부들 떨며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범죄를 꺼리는 마음이 아니라 교수형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예컨대 그 사람에게
자유를 준다면 그는 다시 도둑이 될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악한인 것이죠. 만일에 그의 마음이 변한다면
그는 아마도 다른 사람이 될 것입니다.
희망 : 그들이 옛모습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내가
이야기했으니, 이제는 어떻게 돌아가는가 그 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크리스찬 : 그러지요.
첫째, 그들은 하나님과 죽음과 장차 닥쳐올 최후의
심판에 대한 생각들을 모두 버립니다.
둘ㅉ, 그 다음으로는 은밀한 개인적 기도, 정욕의
억제, 근신, 죄에 대한 뉘우침 같은 개인적인
의무들을 차츰차츰 등한시하고 버립니다.
셋째, 활발하고 열렬한 기독교인들과의 교제를
꺼립니다.
넷째, 그런 다음에는 설교를 듣고 성경책을 읽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 등의 공적인 의무에
냉담해집니다.
다섯째, 전에 말한 대로 신자들의 흠을 열심히
지적해 내고, 약점을 비웃고 그것으로 자기가 종교를
버리는 구실로 삼지요.
여섯째, 세속적이고 방종하며 음탕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과 결탁하기 시작합니다.
일곱째, 은밀하게 음담패설을 즐기고 혹시라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정직하다고 평을 받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 그들은 기뻐하면서 정직한 사람들의 본을
받는다는 명목으로 더욱 노골적으로 그런 것을
합니다.
여덟째, 그런 다음에는 사소한 범죄를 공공연하게
저지르게 됩니다.
아홉째, 그러고 나면 더욱 대담해져서 그들은
마침내 본색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은총의 기적이
그것을 막아주지 않는 한 그들은 고난의 구렁텅이에
다시 빠지게 되고 마침내 스스로 속이는 가운데
영원히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때 나는 꿈속에서 순례자들이 마법이 걸린 지역을
벗어나서 ㅃ라라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곳의 공기는 매우 맑고 상쾌했다. 길은 한복판으로
곧게 뻗어 있었고, 그들은 거기에서 꽤 오랫동안 쉴
수 있었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땅
위에 가득 핀 꽃들을 매일매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고장의 산비둘기 지저귀는 소리도 들려 왔다.
그곳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태양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곳은 죽음의 그늘 계곡을 벗어난 곳이었고,
거인 절망의 손길도 미치지 못했으며, 그리고 의혹의
성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거기서 그들은 자기들이
향해 가고 있는 천국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 땅에는
빛나는 사람들만이 살고 있었다. 하늘나라의
접경이었던 것이다. 이곳에서 또한 신랑과 신부의
언약은 새로 맺어졌다. '마치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과
같이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을 기뻐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였다. 거기서 그들은 식량과
물의 부족을 느끼지 못했고, 여행하는 동안 순례의
길에서 항상 부족함을 느꼈던 물자를 풍부하게 쓸 수
있었다. 여기에서 그들은 천국으로부터 크게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너희들의
구원이 이루어지도다. 보라, 그의 보상이 그와 함께
있느니라."
그리고 그곳의 주민들은 모두 서로 '거룩한 백성,
구원받은 백성, 찾으신 백성'이라고 불렀다.
그곳을 걸어가는 그들은 그들이 목적지로 삼은
하늘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에서보다 훨씬 더
큰 기쁨을 느꼈다. 천국이 가까워지자 그들은 더욱
자세히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천국은 모두 진주와
보석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길은 금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 찬란한 도성의 영광과 거기에 반사되는
빛을 보자 크리스찬은 어서 가고 싶은 마음에 그만
병이 나고 말았다. 희망도 같은 증세를 일으켰다.
그리하여 그들은 잠시 누워서 고통의 신음소리를
냈다.
"만일 내 사랑하는 이를 보거든 내가 상사병에 걸려
있더라고 전해 주시오."
그러나 잠시 후 원기를 회복하여 아픈 것을 이길
만하게 되자, 그들은 가던 길을 계속 걸어 과수원과
포도밭과 정원이 있는 곳으로 차츰차츰 가까이
다가갔다. 큰길에서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였다.
그 앞에 이르러 길에 서 있는 정원사를 만나자 그들이
정원사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느 분의 포도밭이며 정원입니까?"
그가 대답했다.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기쁘게
하고 또 순례자들에게 휴식과 위안을 주기 위해
심어놓으셨습니다."
정원사는 그들을 정원 안으로 안내하여 맛있는
열매로 기원을 회복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산책길과 편히 쉴 수 있는 정자도
보여주었다. 그들은 거기서 잠시 쉬다가 잠이 들었다.
그때 나는 꿈속에서 그들이 잠을 자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동안 여행길에서 나누었던
대화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잠자면서 나누었다.
이상해 하고 있는 내게 정원사가 말했다.
"자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이상합니까? 이
포도밭의 포도는 어찌나 단지 그것을 먹은 사람들은
잠자는 사람들의 입술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내 잠에서 깨어나 천국으로 올라가자고
서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말한 대로 천국은
순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천국에서 반사되는
태양의 빛이 너무도 찬란해서 그들은 육안으로 직접
그곳을 바라볼 수 없었고 특별히 만든 기구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계속 걸어가다가
순금같이 반짝이는 옷을 입고 광채를 발하는 얼굴을
한 두 사람을 만나는 것을 보았다.
그 두 사람은 순례자들에게 어디서 오느냐고
물었고, 그들은 대답했다. 그들은 또 순례자들에게
오는 도중에 어디서 묵었으며, 어떤 어려움과 위험을
당했으며, 또 어떤 위안과 기쁨을 얻었느냐고 물었다.
순례자들이 대답을 하자 그들은 다시 말했다.
"이제 당신들은 두 가지 난관만 더 통과하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자 크리스찬과 그의 동료는 그들에게 동행해 줄
것을 청했다. 그들은 동행할 것이 동의하며 덧붙여
말했다.
"그러나 당신들은 당신들 자신의 믿음으로 천국을
얻어야만 합니다."
나는 꿈속에서 그들이 성문이 보이는 곳까지 함께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또한 순례자들과 성문 사이에 강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강에는 건너갈
다리가 없었으며 물은 대단히 깊었다. 이 강을 본
순례자들은 크게 당황했다. 그러자 순례자들과
동행하던 사람들이 말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성문에 이를 수가 없지요."
순례자들은 성문까지 갈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있긴 있지요. 그러나 천지창조 이후로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그 길을 밟도록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 두 사람은 에녹과 엘리야였습니다.
앞으로도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릴
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그 길로 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자 순례자들은, 특히 그중에서도 크리스찬은
크게 낙담하여 이리저리 다른 길을 찾아보았으나 그
강을 피해갈 수 있는 다른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동행자들에게 강물이 한결같이
깊으냐고 물었다.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
주었으나 순례자들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대답은 이랬기 ㄸ문이었다.
"강이 깊으냐 얕으냐는 이곳의 왕이신 하나님을
당신들이 얼마나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물 속으로 들어갔다. 크리스찬은
곧 물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는
허우적거리면서 절친한 동료인 희망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깊은 물에 빠졌소. 큰 파도가 내 머리 위로
덮치고 물결이 내 몸을 삼켰소. 오, 셀라."
희망이 말했다.
"안심하시오. 강바닥이 발에 닿는 것 같소.
다행입니다."
다시 크리스찬이 말했다.
"아, 친구여! 죽음의 슬픔이 나를 감싸고 있소.
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지도 못하고 죽을 것
같소."
그 말과 함께 깜깜한 어둠과 거대한 공포가
크리스찬을 덮었다. 그리하여 그는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정신을 잃어서 그가
순례의 길에서 만났던 온갖 신선한 위안들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남에게 이야기해 줄 수도 없게
되었다. 그저 말이라고 하는 소리는 단지 그가 지금
마음에 두려움을 갖고 물에 빠져 죽을 것을, 그리고
성문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마음 깊이 불안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었다. 또한 곁에 서 있는
동행자들 눈에는 그가 순례의 길에 떠나기 전과 떠난
후에 저지른 죄에 대해 참회하는 모습이 역력해
보이는 것이었다. 때때로 중얼거리는 것을 보면 그는
지금 여러 종류의 꼬마 도깨비들과 악령들에게
시달리고 있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희망은 자기
형제의 머리를 물 위로 떠받치기 위해서 애를 써야
했다. 크리스찬은 때로 물속에 완전히 잠겼다가 또
잠시 후에는 반은 시체가 되어 떠오르곤 했다. 희망은
열심히 그를 위로해 주었다.
"저기 성문이 보입니다. 우리를 영접하려고 문 가에
사람들이 서 있어요."
그러나 크리스찬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당신이야, 당신이라구.
당신은 처음 만날 때부터 아주 희망이 넘쳤었지."
희망이 말했다.
"당신도 희망이 넘쳤었지요."
"아, 형제여. 만약 내가 틀림없이 옳았다면 지금쯤
주께서 일어나서 나를 도우실텐데. 그러나 내 죄
때문에 그분은 나를 이렇게 함정에 빠뜨리시고도 그냥
내버려두시는 거요."
그러자 희망이 말했다.
"형제여, 당신은 악한 자에 대해 성경에 씌어 있는
'저희는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다른 사람들과 같이 고난이 없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재앙도 없나니.'라는 말씀을 잊으셨군요. 지금 이렇게
물 속에서 받는 고통과 시련은 하나님이 당신을
버리셨다는 표시가 아니라, 지금까지 받아온 주의
은총을 기억하면서 시련 속에서도 그분을 의지하는가
아닌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때 나는 꿈속에서 크리스찬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
것을 보았다. 희망이 다시 그에게 말했다.
"마음 푹 놓으세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완전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크리스찬은 큰소리로 외쳤다.
"아, 다시 그분이 보인다. 그분이 말씀하시는구나.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내가 함께 할 것이니라.
강을 건널 때 물이 너를 삼키지 못하리라.'라고."
그리하여 두 사람은 용기를 얻었고, 마침내 마귀는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졌다. 크리스찬은 강바닥을 밟게
되었고 거기서부터는 강물이 얕아서 쉽게 건너갈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강을 완전히 건넜다.
강둑에 오르자 그들은 거기서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는
빛나는 두 사람을 다시 보았다. 강물에서 나오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서 그들은 말했다.
"우리는 구원의 상속자가 될 분들에게 봉사하라고
주님께서 보내신 봉사의 성령입니다."
이리하여 그들은 성문을 향해 나아갔다. 천국은
장엄한 언덕 위에서 서 있었다. 그러나 빛나는 두
사람이 손을 잡아 앞에서 이끌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썩어
없어질 옷가지들을 강물에다 버리고 왔던 것이다.
그들은 물 속에 들어갈 때는 그 옷들을 입고
들어갔지만 나올 때는 벗어버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천국이 구름보다도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으나 민첩하고도 재빠르게 올라갔다. 그들은
이렇게 공중을 올라가면서도 강도 무사히 건넜고,
그들을 이끌어주는 영광스런 안내자가 있다는 데
위안을 느껴 즐거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들이 빛나는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는 천당의
영광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들은 그 아름다움이며
영광은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거기에는 시온 산이 있고 천국의 예루살렘이
있으며, 이루 다 셀 수 없이 많은 천사들이 있고
완벽하게 된 의인들의 영혼이 있습니다."
그들은 계속 말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낙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생명의 나무를 볼 것이며 그
나무에서 열리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가면 흰 옷을 입고 매일매일
왕이신 하나님과 함께 산책하며 이야기하게 되는데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거기서 당신들은 저 아래
지상에서 겪던 일, 곧 슬픔, 고통, 질병, 죽음 등을
다시는 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옛것들은 다
지나갔기 때문이죠. 당신들은 이제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예언자들과 장차 닥쳐올 악으로부터
하나님께서 구해 내시어 편히 침대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 모두 의로움
안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때 순례자들이 물었다.
"그 거룩한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빛나는 사람들이 대답했다.
"거기서 당신들은 그동안 겪은 모든 고난에 대해
위안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슬픔 대신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거기서 당신들은 뿌린 것을
거두어들여야 합니다. 여행 도중 기도 드린 것, 눈물
흘린 것,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은 것, 그 모든 것의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거기서 당신들은 황금왕관을
받아 쓰고 거룩하신 분의 모습을 항상 볼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가 계신 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죠. 지상에서는 섬기고 싶었느나 육체의
약점 때문에 잘 섬기지 못했던 그분을 당신들은
갈채와 감사로 쉬지 않고 섬기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당신들의 눈은 보는 것이 즐거울 것이고 당신들의
귀는 전능하신 분의 유쾌한 목소리를 듣는 데 즐거울
것입니다. 거기에서 당신들은 먼저 간 친구들과 다시
즐거움을 나눌 것이고 당신들 뒤에 거룩한 곳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당신들은 거기에서 영광스럽고 위엄
있는 옷을 입고 영광의 왕이신 하나님과 함께 타는 데
손색이 없는 수레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분이
바람날개를 타고 구름에 싸여 나팔소리와 함께 세상에
내리실 때 당신들도 동행할 것이고, 심판하는 보좌에
앉으실 때 당신들도 그분 곁에 앉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죄악을 저지른 자들에게 판결을 내릴
때, 당신들도 그 심판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신분이 천사건 인간이건 죄악을 저지른 자는 그분과
당신들의 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다시
천국으로 돌아오실 때 당신들도 나팔소리와 함께 같이
돌아올 것이고, 그리고 영원히 그분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성문 가까이에 이르자 천사의 무리들이
영접하러 나오는 게 보였다. 두 빛나는 사람이
천사들에게 말했다.
"이 두 순례자는 세상에 있을 때 주님을 사랑했고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이오. 주께서 우리를 보내셔서 이 사람들을
영접하게 하셨소. 이제 우리가 여기까지 데려왔으니
안으로 들어가 즐거운 마음으로 구세주의 얼굴을
뵙도록 해주시오."
그러자 천사의 무리들이 큰소리로 외쳤다.
"어린 양의 결혼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도다."
이때 하나님의 나팔수들이 또한 두 순례자를
맞이하려고 나왔는데, 희고 빛나는 옷을 입은 그들은
하늘나라가 온통 울리도록 아름답고 요란하게 나팔을
불었다. 나팔수들은 크리스찬과 그의 동료에게
세상으로부터 떠나온 것을 극구 칭송하여 노래와
나팔소리로 환영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두 순례자 주위를 빙 둘러쌌다.
어떤 자는 앞에서, 어떤 자는 뒤에서 그리고
왼쪽에서, 오른쪽에서 그들을 둘러싼 채 높은
음정으로 아름다운 나팔소리를 울리면서 나아갔다.
그것은 마치 하늘 스스로가 그들을 영접하기 위해
내려온 것같이 보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함께
걸었는데 걷는 동안 내내 즐거운 음악소리와 함께
적당히 몸짓과 표정까지 섞어가면서 크리스찬과 그의
형제에게 자신들이 그들을 얼마나 기쁘게 환영하며
얼마나 즐거운 마음으로 마중나왔는가를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은 아직 천당에 이르지도
않았으면서도 천사들의 모습에 둘러싸이고 그들의
아름다운 가락에 묻혀 마치 천당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기서 그들은 하늘나라의 모습을
보았고, 천국에 있는 모든 종들은 그들을 환영하여
울리고 있는 것같이 들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을 감격시킨 것은 이렇게 훌륭한 무리와 함께
그것도 영원히 거기에서 살게 되리라는 벅찬
생각이었다. 그들의 영광스러운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글로 적을 수 없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들은
성문에 다다랐다.
성문 앞에 이르자 문 위에는 금으로 씌어진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그의 율법을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도다. 이것은
그가 생명의 나무에 나아가며 문을 통해 천국에
들어갈 권세를 얻었음이라.'
그때 나는 빛나는 사람들이 순례자들에게 문 앞에서
큰소리로 외치라고 일러주는 것을 꿈속에서 보았다.
그들이 소리를 지르자 성문 위로 에녹, 모세, 엘리야
등의 얼굴이 나타났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말했다.
"여기 이 순례자들은 이곳의 왕을 사모하여 멸망의
도시를 떠나온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때 순례자들은 각자 여행을 시작할 때
받았던 증서들을 제시해 보여주었다. 그 증서는 곧
왕에게 전달되었고 그것을 읽은 왕이 말했다.
"그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누군가가 대답했다.
"그들은 지금 성문 밖에 서 있습니다."
그러자 왕이 문을 열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말했다.
"진리를 지킨 자여, 의로운 나라로 들어올지니라."
나는 마침내 그들이 문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꿈속에서 보았다. 그런데 그들이 문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갑지기 거룩한 모습으로 변하더니
황금처럼 번쩍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또한 어떤
이들이 하프와 왕관을 들고 나와 그들에게 주었는데,
하프는 찬양할 때 쓰기 위한 것이었고 왕관은 영광의
표시였다. 그때 나는 천국에 있는 모든 종들이 다시
기쁘게 울리는 소리를 꿈속에서 들었다. 두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들어와 네 주인의 기쁨을 나누라."
그들도 큰소리로 노래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축복과 영광과
행복과 권능이 영원 무궁하소서."
그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도시 전체가 마치 태양처럼
눈부셨고 거리 또한 황금으로 포장되어 있었으며, 그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머리에는 황금왕관을 쓰고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리고 황금 하프
소리에 맞춰 찬양의 노래를 부르면서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날개를 가진 이들이 쉴새없이
화답하면서 말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나님이시여."
이윽고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도 그 안에 들어가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 모든 것을 눈여겨보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무지가 막 강가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크리스찬과 희망이 겪었던 어려움보다 절반도 안 되는
어려움을 쉽게 극복하고 강을 건너는 것이었다.
그것은 때마침 '허망함'이라는 뱃사공이 거기 있다가
무지를 자기 배에 태워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도 내가 아까 본 두 사람처럼 천국을 향해 산을
올라갔다. 그러나 마중 나온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그는 단지 홀로 걸었다. 성문 앞에 이르자 그는
성문 위에 씌어 있는 글씨를 쳐다 보았다. 그러고는
그에게도 문이 쉽게 열리려니 생각하고는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성문 위로 모습을
내민 사람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어디서 온 사람이오? 그리고 무엇을 하러 왔소?"
그가 대답했다.
"나는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들의 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왕이신 하나님께 보여줄 증서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무지는 자기 가슴속을 뒤져
증서를 찾았으나 없었다. 그들이 물었다.
"증서가 없소?"
무지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은 왕에게
그런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왕은 그를 마중하러
내려가는 게 아니라 크리스찬과 희망을 안내했던 두
빛나는 사람에게 밖으로 나가 무지를 붙들어 손발을
묶은 다음 내다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그들은
무지를 잡아서 공중을 뚫고 내가 전에 보았던
산기슭에 있는 문으로 데리고 가더니 그를 그 안에
밀어넣었다. 그때 나는 멸망의 도시뿐만 아니라
천국의 문으로부터도 지옥에 이르는 길이 있음을
보았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이
모든 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끝맺는 말
자, 독자여! 지금까지 나는 그대들에게
내가 꾼 꿈이야기를 들려주었노라.
그 꿈을 나에게, 혹은 그대 자신에게, 아니면
다른 이웃에게 해몽해 줄 수 있겠는가?
잘못 해몽하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그것은 도움 대신에 그대에게
해를 가져다 줄 뿐이니까.
오해에서 악은 따르게 될 것이오.
또한 내 꿈의 겉모양만 가지고 장난하거나,
내가 그린 비유나 상징을 비웃거나 반박하는
그런 극단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그런 짓은 아이들이나 바보들에게 맡기고
그대는 내 이야기의 알맹이를 보아주시오.
커튼을 걷고 내 장막 안을 살펴서 내가 사용한
비유의 뜻을 알아내고 놓치지 마시오.
거기서 그대가 찾기만 한다면,
그대는 정직한 사람에게 도움이 될 그 무엇을
발견하리라, 거기에서.
거기에서 무언가 찌꺼기를 발견하거든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금덩이만 간직하라.
나의 황금이 광물 속에 쌓여 있는 줄 누가
알겠는가?
아무도 씨가 싫다고 사과를 버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일 그대가 나의 모든 이야기를
헛된 것으로 여겨버린다면
나는 알고 있다네.
다시 한 번 꿈을 꿀 수밖에 없다는 것을.
존 버니언 - 천로역정
차례
작가 소개
제 2 부
작가 소개
존 버니언(John Bunyan, 1628 - 1688)
영국의 유명한 목사, 설교가 이며 청교도의
종교관을 매우 독특하게 표현한 <천로역정 'The
Pilgrim's Progress'(1678)>의 저자.
그 밖의 저서로는 교리에 관한 논쟁적인 저서들을
비롯해 영적인 자서전 <넘치는 은혜 'Grace
Abounding'(1666)>, 우화집 <거룩한 전쟁 'The Holy
War',(1682)> 등이 있다
제 2 부
이 세상으로부터
다가올 세상으로의
순례자의 행진 제2부
크리스찬의 아내와 아이들의
위험한 여행
그리고
소망하던 나라에
도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의 꿈의
비유형식을 빌어
-존 버니언
"내가 비유를 사용했노라."<호세아 12장 10절>
<천로역정> 제 2부를 내놓으면서
가라, 나의 작은 책아, 어느 곳이든
나의 첫번째 순례자가 얼굴이라도 비쳤던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문을 두드려라.
만약 누구냐고 묻거든
너는 이렇게 대답하거라.
"크리스치아나가 왔습니다."
만약 그들이 들어오라 하거든
아이들을 모두 이끌고 들어가거라.
그래서 네가 아는 대로 이야기하라
아이들이 누구며 어디서 왔는가를.
어쩌면 아이들의 얼굴이나 이름을 보고
그들이 알아볼지도 모른다.
설령 그들이 알아보지 못하거든
그들에게 다시 물어보아라.
전에 크리스찬이란 한 순례자를 영접해 들였던 일이
있느냐고.
그런 적이 있었다고 또 그의 여행기를
재미있게 읽었다고 대답하거든
바로 그의 아내와 핏줄인 아이들이
찾아왔노라고 일러주어라, 그들에게.
그들은 집과 가정을 버리고 다가올 세상을 찾아서
순례의 길을 떠났노라고 말해 주어라.
여행을 하는 동안 온갖 어려움을 만났고
밤낮없이 고난을 겪었으며
뱀을 짓밟았고 악마와 싸웠으며
많은 악마들을 정복했노라고 말하거라.
그리고 또한 알려주어라.
순례자들을 사랑하여 그들의 여행길을 보호해 주는
용감하고 든든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지금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세상을 거부하고 있는가를.
가라, 가서 그들에게 말하라.
순례자가 여행 동안 맛보는 고상한 것들을.
또한 그들에게 알려주어라.
순례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았는가를.
그가 순례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훌륭한 저택을
제공했는가를.
비록 거친 바람과 거센 파도를 만날지라도
얼마나 용감하고 침착하게
하나님께 가기 위해 그의 길을 붙잡고
마침내 그것들을 극복했는가를 이야기해 주어라.
그리하면 그들은 진심으로 당신을
안아주리라, 내 첫번째 책을 안아주었듯이.
그리고 보여주리라,
너와 네 동료들을 격려와 다정함으로 감싸주어
그들이 순례자를 지극히 사랑하고 있음을.
이의 제기 . 1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않으면 어쩌나요?
내가 진정 그대가 쓴 진짜 책이라는 것을.
어떤 자들이 순례여행과 순례자의 이름을
위조해서 진짜처럼 만들어
그것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대답
그것은 사실이오. 내가 쓴 순례기를 위조하여
거기다 같은 제목을 붙여 팔아먹는 자들이 최근에
많다는 것을.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 책에다
내 이름과 책 제목을 붙여 팔아먹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위조를 잘했다 하더라도
그 책들은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다.
내가 쓴 책이 아님을.
만일 그런 사람을 만나거든 말하라
네 독특한 어휘와 문장으로, 그들 앞에서.
어느 누구도 사용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쉽게 꾸며낼 수 없는 그런 언어로.
만일 그런데도 여전히 너를 의심하거나
파렴치하게 돌아다니며 온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존재로 알거나,
옳지 않은 일로 선한 사람들을 속여먹는 사람으로
그대를 생각할 때는 나를 부르라.
내가 증명하리라 네가 곧 나의 순례기임을.
그렇다, 내가 증명하리라 너만이
나의 책이요 앞으로도 너 하나뿐일 것임을.
이의 제기 . 2
그러나 만일 내가 어떤 이에게
그의 목숨이 지옥에 떨어지기를
원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전했는데,
그 이야기 때문에 그가 전보다
더욱 화를 내게 된다면
나는 그의 문전에서 어찌하면 좋으리까?
대답
그런 자를 두려워 말라 나의 책아.
그들은 근거 없는 공포에 두려워하는
도깨비 외에 아무것도 아니니라.
나의 순례여행기 천로역정은
지난 번에도 바다와 육지를 다 돌아다녀봤으나
그 어떤 나라든, 어떤 부잣집이든 가난한 집이든
어느 곳에서도 푸대접을 받거나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나는 아직 들은 적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프랑스나 플란더스에서도
나의 순례기는 친구처럼 형제처럼 대접받고 있다.
내가 듣기로는 네덜란드에서도
나의 순례기가 금보다도 값진 것이라고 한다.
스코틀랜드 북부 고지대에 사는 사람들이나
거친 아일랜드 사람들도 역시
나의 순례기가 친밀하다고들 이야기하고 있다.
선진국인 뉴잉글랜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거기에서는 지극한 애정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 특징과 내용을 좀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장정을 새롭게 하거나 모양을 다듬기도 하고
보석으로 장식까지 하고 있다.
그리하여 나의 순례기는
당당하고 활기차게 활보하는 가운데
매일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순례자의 이야기를 나누며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고향 가까이 와보더라도 알게 될 것이다.
나의 순례기가 모욕을 당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음을.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기뻐하며 순례자를 환영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미소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순례기가 손에 들어오거나 얼굴만 슬쩍
비치더라도.
용감한 무사들도 나의 순례기를 껴안고 사랑하며
부피가 큰 다른 어떤 책들보다도
나의 작은 책을 더 높이 평가해 주고
나의 작은 종달새가 솔개보다 낫다고들 기쁘게
말한다.
젊은 신사와 젊은 숙녀들도
나의 순례기에 남들과 같은 친절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방에, 가슴에,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
순례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순례기가 훌륭한 수수께끼를
아주 건전한 가락으로 그들에게 전해 주어
읽는 수고의 갑절이 되는 유익함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아무렴,
어떤 이들은 나의 책을 금보다도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길거리에서 뛰노는 아이들도
나의 거룩한 순례자를 만나면
그에게 깍듯이 경례하며 행운을 빈다
나의 순례기야말로 시대의 유일한 젊은이라
말하면서.
나의 순례기를 아직 만나보지 못한 이들일지라도
그에 대해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칭송을 하며
순례기를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순례의 이야기를
직접 그에게서 듣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다, 비록 처음에는 그를 좋아하지 않고
그를 바보멍텅구리라고 흉보던 자들도
이제는 말하리라.
내가 그 책을 보았노라, 읽었노라, 그리고
칭찬하노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 책을 소개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두번째 소산인 너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대 출현을.
어느 누구도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너보다 앞서 나간 순례기에 호감을
보였으니까.
두번째로 나가는 너도 역시
젊은이에게나 늙은이에게나, 비틀거리는자에게나
안정된 자에게나,
선하고 풍요롭고 유익한 것을
함께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의제기 . 3
그러나 더러는 순례자가 너무 크게 웃는다
하더이다.
또 더러는 그의 머리가 구름에 가려 있다 하더이다.
그리고 어떤 자들은 말합디다.
그의 말과 이야기가 너무 모호하여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고.
대답
누구든 순례자의 눈물 젖은 눈을 보면
그의 웃음과 눈물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ㄷ.
어떤 일들은 그 성질에 따라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도 동시에
얼굴에는 환상적인 미소를 띄게 만든다.
야곱이 양치는 라헬을 보았을 때
그는 입을 맞추면서 울었다.
어떤 자들은 그의 머리가 구름에 가려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다만 보여줄 뿐이다
지혜가 어떻게 스스로 자신의 옷자락 속에 숨어
있는가를.
그리고 지혜를 찾고자 열망하여 그것을 뒤쫓아
마음을 움직이는 자는
모호한 글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을 찾아낼 것이다.
그것은 결국 신앙심이 두터운 이들을 더욱 더
부추겨서
그 모호한 가락으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런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깨닫게 함이라는
것을.
나는 또한 알고 있다.
모호한 비유법이 비유법을
채용하지 않은 글보다는
더욱 공상에 깊이 들어가
읽는 이의 마음과 머리에
더욱 빠르게 자리잡는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나의 책아!
그 어떤 낙담으로 여행을 주저하는 일이 없게 하라.
보라, 너는 적이 아니라 친구들에게 가고 있다.
너 자신과 네 순례기와 네 말들을 껴안아
자리를 마련해 줄 친구들에게.
뿐만 아니라 나의 첫번째 순례기가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을
나의 훌륭한 두 번째 순례기가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크리스찬이 자물쇠를 채우고 지나쳐간 것을
다정한 크리스치아나, 그녀의 열쇠로 열어라.
이의제기 . 4
하지만 어떤 이들은
당신이 첫번째 사용했던 방법을 좋아하지 않더이다.
황당한 이야기라 평하고는
먼지 털듯 던져버리더이다.
만일 그런 자들을 만나게 되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들이 나를 멸시하듯 나도
그들을 멸시할까요, 아니면?
대답
사랑하는 크리스치아나,
그대가 만일 그런 이들을 만나거든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스런 지혜로 그들을
맞이하라.
욕설에 욕설로 그들을 대하지 말라.
그들이 얼굴을 찡그리더라도 부디 미소로 대하라.
본성이 그렇든지, 아니면 어떤 나쁜 이야기를 듣고
무조건 그대를 멸시하거나 흉을 잡는 것일 테니까.
어떤 자는 치즈를 좋아하지 않고
어떤 자는 생선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리고
어떤 자는 친구나 집, 가정조차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자는 돼지고기만 보면 질색을 하고
닭고기도 싫어하고 새고기도 싫어하는가 하면
그런 자들이 도리어 뻐꾸기나 올빼미는 좋아한다.
사랑하는 크리스치아나,
그런 것들은 그들의 선택에 맡겨두고
그대에게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자들에게만
찾아가라.
어떤 일이 있든 시비하지 말고
항상 겸손한 태도로 순례자의 품격에 맞게
그들 앞에 자신을 나타내어라.
그러니 가거라, 나의 작은 책아.
너를 환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서
긴밀하게 접촉하고 모든 것을 보여주어라.
환영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침묵하라.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영원히 축복이 있기를 기원하는 것이며,
너나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순례자가 될 수 있는
길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내가 거듭 말하노니, 가라.
가서 그대가 누구인지를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어라.
내가 크리스치아나입니다라고.
나와 나의 네 아들들이 여기 온 것은
사람들에게 있어 순례자가 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이야기해 주려 함이라고,
그렇게 말하라.
모든 사람들에게.
또한 그들에게 말하라.
지금 그대와 함께 순례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들인지를.
여기 이분은 나의 이웃 '자비심'인데
나와 함께 순례의 길에 오른 지 아주 오래
되었답니다.
오셔서 이 깨끗한 동정녀의 순결한 얼굴을 보세요.
보시고 게으름뱅이와 순례자를 식별하는 법을
배우세요.
그렇다, 젊은 처녀들로 하여금 그녀를 보고
다가올 세상을 이 자비심이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를
배우게 하라.
명랑한 처녀들이 하나님을 따르려고
벌받을 늙은 죄인들을 내버리는 때가
늙은이들의 비웃음을 받으면서
젊은이들이 호산나를 외치던 그때와 같은 것이다.
다음에는 늙은 '정직함'에 대해 그들에게 말하라.
그대가 처음 만났을 때 하얀 백발을 흩날리며
터벅터벅 순례의 길을 걷던 그 정직함을
그렇다, 그들에게 말하라.
그 노인이 얼마나 솔직담백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자기의 선한 주님을 본받아
어떻게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졌는지를.
어쩌면 그 이야기를 듣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늙은이들이 사랑에 빠져
자신이 지은 죄를 몹시 슬퍼하도록
그리스도께 설복당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또한 그들에게 말하라.
'두려움'이라는 이가 어떻게 해서 순례의 길을
떠났으며
고독을 느낄 때마다 어떻게 두려움과 눈물로
보냈는지,
그리고 최후에 어떻게 기쁨에 넘치는 상을
받았는지를.
영혼은 비록 의기소침했으나
그는 선한 사람이었고
선한 사람이기에 생명을 상속받았다고.
그리고 또한 '심약한 마음'에 대해서도 말해
주어라.
남보다 앞서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뒤따르고 있는
자에 대하여도.
그가 어떻게 해서 죽을 뻔했는가,
'위대한 마음'이 어떻게 그의 생명을 구해
주었는가,
비록 은총은 약했으나 마음이 진실한 사람이었고
누구든 그의 얼굴에서 진실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아울러 '망설임'에 대해서도 말해 주어라.
목발은 짚었으되 별로 헛디디는 일이 없었던
자에 대해서도 말해 주어라.
그와 '심약한 마음'이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고
어떻게 매사에 의견이 일치했는가를 모두에게
알려라.
그리고 그렇게 여유가 없는 일정에서도 때때로
한 사람은 노래 부르고, 한 사람은 춤을 추는
마음의 여유가 그들에게는 있었음을.
'진리의 용사'도 잊지 말라.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용감한 사내였나니.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주어라
그의 정신이 얼마나 강했던지
아무도 그를 후퇴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그리고 어떻게 하여 그와 위대한 마음이 의혹의
성을 함락시키고
거인 절망을 죽였는가를.
'의기소침'과 그의 딸 '겁쟁이'도 간과하지 말라.
비록 그들이 어떤 이에게는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자처럼
초라한 옷을 걸치고 누워 있었지만,
그들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착실하게 걸어
결국에는 순례자들의 하나님이 자기들의 친구임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을 세상사람들에게 이야기한 다음에
돌아서서 이 현악기를 연주해라, 나의 책아.
단지 만지기만 해도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나니
절름발이가 춤을 추고 거인이 떨게 되네.
네 가슴속에 도사리고 있는 수수께끼를
자유롭게 제시하고 풀어보아라.
그러고도 남아 있는 신비스런 문장들은 그대로
두어라
영리한 상상력의 독자들이 스스로 풀 수 있도록.
이제 이 작은 책이 축복을 가져다주기를 기원하나니
이 책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기원하나니
이 책을 산 사람들이 공연히 돈만 버렸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기를.
기원하나니, 이 두번째 순례기가 열매 맺기를
모든 선한 순례자들의 환상을 만족시켜주는 그런
열매를.
그리고 기원하나니
옆길로 빠져 방황하는 이들을 설복하여
그 마음과 발길을 돌려 다시 바른 길로 들어서게
해주기를.
이것에 저자의 간절한 기원이다.
존 버니언
순례자의 행진 제2부
- 꿈으로 비유하여 -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얼마 전에 나는
크리스찬이라는 순례자가 하늘나라를 향해 가는
위험한 여행에 대해 내가 꾼 꿈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것이 내게는 즐거움이었고
여러분에게는 유익함을 주었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나는 크리스찬의 아내와 아이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왜 그와 함께 순례의 길에
오르려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크리스찬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남겨둔 채 혼자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멸망의 도시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가 반드시 당하게 될 그 징벌이 두려워
참고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전에 여러분에게 이야기했던 대로 그는 혼자 그들
곁을 떠났던 것이다.
그후 나는 여러 가지 잡다한 일들로 시달리다 보니
내가 늘 산책하던 장소, 즉 방황하던 크리스찬이 처음
여행을 떠나는 것을 내가 지켜보았던 그곳에 다시
가볼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가 남겨두고 간 가족들의 뒷이야기를 조사하여
여러분에게 알려줄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 그쪽으로 가볼 일이 생겨서 나는 다시
그곳으로 내려가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그곳에서
1마일쯤 떨어진 숲속에 있는 여관에서 여장을 풀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꿈속에서 한 나이 많은 신사가 내가 누워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신사는 내가 가려는 같은
방향으로 얼마간 간다기에 나는 일어나서 그와 함께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함께 걸어가게
되었는데, 여행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우리는 쉽게
대화를 나누면서 걷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대화내용이 크리스찬과 그의 여행에 관한 것으로
진전되었다. 내가 먼저 그 노인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노인 양반, 우리가 가는 길 왼쪽 저 아래에 있는
마을이 무슨 마을입니까?"
그때 '총명함'씨가 대답했는데, '총명함'은 그
노인네의 이름이었다.
"멸망의 도시라고 매우 유명한 곳이오. 그러나
주민들 대부분이 심술ㄱ거나 게으르다오."
그 말을 받아 내가 말했다.
"아,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 도시군요. 저도 언젠가
한 번 가본 적이 있는데 과연 지금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총명함 : 숨길 수 없는 사실이지. 나도 실은 그곳에
살고 있는 자들에 대해 좀더 좋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사실이 그러니 어쩔 수가 없소.
내가 말했다.
"맞는 말입니다. 말씀을 듣고보니 노인 양반은
호인인 것 같군요. 선한 것을 듣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분 말입니다. 혹시 그 마을에 살던
크리스찬이라는 사람이 더 높은 곳을 향해 고향을
떠나 순례의 길을 떠났다는데,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총명함 :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냐고요? 물론
듣다마다요. 그가 순례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와 여행
도중에 겪었던 온갖 방해공작과 역경, 전쟁, 그리고
포로로 잡혔던 일, 울었던 일, 신음했던 일, 놀라고
무서워했던 일까지 모두 다 들었소. 게다가 그에 대한
소문으로 내가 사는 마을 전체가 온통 떠들썩했었죠.
그러나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도 그의 뒤를
따른다거나, 그의 순례기록을 파헤쳐보려는 집안은
거의 없었소. 물론 내 생각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고난에 찬 여행 이야기를 듣고는 그의 여행에 행운을
빌어주었던 것 같소. 사실 그는 고향에 있는 동안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를 바보라고 놀렸지만,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여행을 떠난 후부터는 모두들 그를 상당히
존경했었소.
그는 지금 그가 있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들 하니까 더욱 그랬지요. 그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감히 그 고난의 여행을 떠날 생각은
못하면서도 크리스찬이 얻은 영화에 대해서는 군침을
삼키고 있단 말이오.
내가 말했다.
"만약 그들이 크리스찬이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옳은
생각이고 진실입니다. 그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생명의 샘이라는 곳인데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고통과 슬픔이 없이도 가질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슬픔의 씨앗이 없기 때문이지요."
총명함 : 사람들이 그에 대해 떠드는 이야길
들어보면 참 굉장하지. 어떤 사람들은 그가 지금 흰
옷을 입고 걸어다니며, 목에는 금목걸이를 걸고
머리에는 진주를 총총히 박아 넣은 황금 왕관을 쓰고
있다고들 하더군. 또 어떤 사람들은 그가 여행하는
동안 가끔 나타나곤 했던 그 번쩍이는 사람들이 그의
동료가 되어 마치 여기서 사람들이 서로 이웃해 살듯
그렇게 가까이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도 합니다.
게다가 그곳의 왕께서 이미 궁전에다 아주 호화롭고
안락한 처소를 마련해 주어서 날마다 그 안에서 왕과
함께 먹고 마시고 산책하고 담소하면서 그곳의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왕의 미소와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매우 확신있게 전해지고 있지.
무엇보다도 그 나라의 주님이신 왕자께서 머지않은
장래에 이땅에 오셔서 크리스찬이 처음 순례자가
되겠다고 나섰을 때 왜 이웃사람들이 그토록 깔보고
비웃었는지 그 이유를, 만일 주민들이 댈 수 있다면,
그 이유를 따져 물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말하자면 크리스찬은 지금 왕자와 아주
친밀한 사이이기 때문에 그가 순례자가 되려고 했을
때 받은 수모에 대해 마치 왕자 자신이 받은 모욕으로
생각하고 지대한 관심을 품고 계시다는 뜻이죠.
그런데 뭐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닙니다. 크리스찬이
그렇게 모든 위험들을 견뎌내면서 모험을 한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그 왕자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으니까요.
내가 말했다.
"그것 참 기쁜 일이군요. 그 가엾은 사람이 그토록
잘됐다니 정말 기쁩니다. 그 많은 고역 끝에 지금은
안식을 얻었고, 눈물로 심은 열매를 기쁨으로 거두고,
원수들의 총알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게 됐으며, 그를
미워하는 자들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살게
됐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에 관한 소문이 이
나라에까지 멀리 퍼졌다니 기쁜 일입니다. 그런
소문이 뒤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그런데
크리스찬에 대한 기억이 제 마음속에 선명히 남아
있는 동안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혹시 그의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게 없으십니까?
그 가엾은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총명함 : 누구요? 크리스치아나와 그 아이들
말입니까? 그들도 크리스찬과 마찬가지였소. 그들은
처음에는 바보처럼 굴면서 크리스찬의 눈물어린
호소마저 듣지 않았지요. 그러나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고는 놀랍게도 마음의 변화를 가져와서 곧장
짐을 싸고는 그의 뒤를 따랐지요.
내가 말했다.
"그것 참 잘됐군요. 아주 잘됐어요. 그런데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함께 길을 떠났다는 말씀이죠?"
총명함 : 그렇소. 나는 당신에게 그때 일을
하나에서 열까지 자세히 설명할 수도 있소. 마침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을 모두 다 지켜볼
수 있었으니까.
내가 말했다.
"그렇다면 노인 어른 말씀만 믿고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이 말을 전해도 된다는 거죠?
총명함 : 그점에 대해서는 염려마시오. 내 말은 그
착한 여인과 네 아이들이 이미 순례의 길을 떠났다는
뜻이오. 우리는 당분간 같은 길을 가게 될 것
같으니까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리다.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순례의 길을 떠난 날부터
크리스치아나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남편이 강을
건너간 후 더 이상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자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상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지요.
먼저 떠오른 생각이 자기 남편을 잃어버렸다는 것, 곧
사랑하는 부부관계가 영원히 끊어져버렸다는
생각이었지요. 당신도 아시다시피 인간인 이상
사랑하는 친족을 잃었을 때 그 추억으로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겠소? 그래서 남편 생각에 참
많이도 울었지요. 그뿐이 아니었소. 그녀는 남편에
대한 자신의 무정한 태도가 결국 남편과 영원히
헤어지게 된 원인이 아니었던가, 그 때문에 남편이
자기를 버리고 혼자 떠난 게 아니었던가 하고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지요. 게다가 자기의 사랑하는
남편에게 평소에 불친절하고 부자연스럽고 불경스럽게
대했던 일들이 생각나서 그 모든 것들이 죄의식으로
변해 양심에 무거운 짐이 되었지요. 더욱이 순례를
떠나기 전 남편이 보여주었던 그 끈질긴 호소, 쓰디쓴
눈물 그리고 스스로 한탄하던 모습이 생각나서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요. 함께 가자고 그녀와
아이들에게 애원하고 사랑으로 호소 하던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아먹던 생각이 들어
그녀는 완전히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지요. 등에
무거운 짐을 진 크리스찬이 자기 앞에서 보여준
몸짓과 언동이 불현듯 기억에서 되살아나 그녀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지는 듯했소. 무엇보다도
"어떻게 해야 나는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하던
그의 부르짖음이 그녀의 귓전에서 구슬프게 울리고
있었소. 마침내 그녀는 자기 아이들에게 말했지요.
"얘들아, 우린 이제 다 틀렸다. 나는 네 아버지를
혼자 떠나보낸 죄를 지었단다. 네 아버지는 우리를
데려가려 했지만 내가 말을 듣지 않았단다. 결국 나는
너희들의 생명까지 훼방을 논 셈이 되었구나."
이 말을 들은 사내아이들은 일제히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자고 울부짖었다.
크리스치아나가 말했다.
"아, 우리가 네 아버지를 따라가기만 했어도 지금
당하고 있는 이 고통은 덜 수 있었을텐데. 내가 비록
처음에는 어리석게도 너희 아버지가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어리석은 공상이거나 아니면 우울증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지금에 와서 보니 그 원인은 다른
데 있었구나. 아버지는 죽음의 함정으로부터 도망치는
데 도움이 될 빛을 하사받으셨던 거야."
그 말 끝에 그들은 다시 한 번 울면서 소리쳤소.
"아, 저주스런 그날이여!"
이튿날 밤 크리스치아나는 꿈을 꾸었다는군요.
꿈속에서 넓은 양피지 한 장이 자기 눈 앞에
펼쳐졌는데, 그 위에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 행실들이
그 시간과 함께 낱낱이 기록되어 있더라는 것이오.
그녀는 잠을 자면서 크게 울부짖었지요.
"주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옵소서."
어린아이들도 그 소리를 들었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그녀는 아주 못생긴 두 사람이
자기 침대 곁에 서 있는 것을 본 듯했는데 그들이
이렇게 말하더라는 거였소.
"이 여자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자나깨나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말이야.
이대로 내버려두어 계속 괴로워하게 하다가는 그녀의
남편을 잃어버렸듯이 그녀마저도 잃어버리겠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이 여자가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까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도록 막아야겠어. 그냥
두었다가는 이 여자가 순례의 길에 오르는 것을
어떻게 해서도 막을 수 없을 테니까."
그때 그녀는 땀에 흠뻑 젖어 잠에서 깨었소.
그러고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잠시 후 다시 잠이
들었지. 그녀는 자기 남편인 크리스찬이 수많은
영생자들 틈에 섞여 손에는 하프를 들고, 머리 주위에
무지개가 떠 있는 보좌에 앉아 있는 어떤 사람 앞에서
하프를 타고 있는 것을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소.
또한 자기 남편이 왕자의 발 아래로 얼굴이 닿도록
절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보았소.
"저를 이곳까지 이끌어주신 저의 주님이자 왕이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이 말이 끝나자 주위에 서 있던 무리들이 일제히
하프를 타면서 소리높여 외쳤는데, 크리스찬과 그의
동료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그들이 말한 그
소리의 뜻을 알아들을 수 없었답니다.
이튿날 아침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아이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가 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는 것이었소. 그녀는
이렇게 말했소.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거든 들어오세요."
그러자 밖에 있던 남자가 문을 열고는 인사를 했소.
"아멘, 이 집안에 평안이 있기를 바랍니다."
인사를 마치고 그는 물었소.
"크리스치아나,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아시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되고 온몸이
떨렸지요. 그러면서도 그가 어디서 왔으며 무슨
용건으로 왔는지 알고 싶은 욕망으로 흥분되는
것이었소. 그가 그녀에게 말했소.
"내 이름은 '해결의 열쇠(Secret)'입니다. 높은 데
사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요. 그곳 사람들이
말하기를 당신이 그곳에 가기를 매우 갈망하고
있다더군요. 그리고 또 당신이 전에 남편이 순례의
길을 떠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이들에게는 그 사실을 숨겨온 것을 죄악으로 깨닫고
있다는 소문도 있어요. 크리스치아나, 자비로우신
분께서 나를 당신에게 보내, 하나님이신 그분은
언제든지 죄인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많은
죄인을 용서하는 데 기쁨을 느끼는 분이라고
이야기하라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또한 당신을 자기
앞으로 초대하시어 상에 앉히고 그 집안의 기름진
음식으로 당신을 대접하고, 당신의 조상인 야곱의
유산을 분배해 주실 것임을 당신에게 알려주라
하셨습니다. 지금 높은 곳에서 당신의 남편인
크리스찬도 다른 많은 동료들과 함께 우러러보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그분을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신의 발걸음이 하나님 아버지의 집
문지방을 넘어서는 소리를 들으면 대단히 기뻐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크리스치아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소. 방문객은 계속 말했소.
"크리스치아나, 여기 당신 남편의 왕인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내가 가져왔습니다."
그녀가 편지를 받아 봉투를 열었소. 그러자
세상에서 가장 좋은 향기가 풍겼고, 그리고 그 편지는
황금의 글씨로 씌어 있었소.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씌어 있었소.
"왕께서는 그녀의 남편 크리스찬이 했던 것과 같은
일을 그녀에게도 하게 하리라. 즉 그녀를 하늘나라로
오게 하여 영원한 기쁨을 누리며 살게 하리라."
편지를 보고 그 착한 여인은 감격하여 그
방문객에게 큰소리로 외쳐 물었소.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왕이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나와 내 아이들을 데리고 가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방문객이 말했소.
"크리스치아나, 달콤한 것이 있으려면 먼저 쓰디쓴
것이 있어야 함을 명심하시오. 당신도 당신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간 크리스찬이 겪었던 것과 같은
고난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도
남편 크리스찬이 했던 그 일을 하라고 권하겠습니다.
평원 저쪽에 있는 좁은 문으로 가시오. 당신이 가야
할 길의 입구에 그 문이 서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급히 서두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당신
품속에 넣고 가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이 암송할 수 있을 때까지 항상 읽도록
하십시오. 순례자의 집에 들어가서 당신이 불러야 할
노래가 그 안에 들어 있으니까요. 또한 당신은 저쪽
문에 이르면 이 편지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때 나는 꿈속에서 노인이 내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그 스스로 이야기에 빨려들어가
감동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았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하여 크리스치아나는 아이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소. '나의 아이들아, 너희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최근에 나는 너희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그것은 너희 아버지가
행복하게 계실는지에 대해 염려해서가 아니라 지금 잘
계신 데 대해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지금 나와 너희들이 당하고 있는 처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우리의
처지는 본래가 비참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아버지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내가 취했던 태도들이
여간 양심에 무거운 짐이 되질 않는다.
나는 나 자신만이 동행하기를 거부했던 것이 아니라
내 마음과 너희들 마음을 아울러 돌처럼 단단하게
만들고는 아버지와 함께 순례의 길에 오르길 거절했단
말이다.
어젯밤에 내가 꿈을 꾸지 않고, 오늘 아침 이
손님이 용기를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런 생각들로
말미암아 틀림없이 죽고 말았을 것이다. 얘들아,
당장에 짐을 싸서 하늘나라로 인도한다는 그 좁은
문으로 가자. 가서 아버지를 만나고 그곳의 율법에
따라 평화스럽게 살고 계신 아버지와 그의 동료들
가운데서 우리도 평화스럽게 살자.'
어머니의 마음이 그렇게 기울어진 것을 보고
아이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오. 그때 방문객은
그들에게 작별을 고했고, 그들은 곧 여행을 떠날
준비를 시작했소.
그런데 그들이 막 떠나려 할 때, 크리스치아나의
이웃에 살고 있던 두 부인이 집으로 찾아와 문을
두드렸소. 그녀는 그들에게도 아까처럼 말했소.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거든 들어오세요.'
이 말을 듣고 두 여인은 어리둥절했소.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크리스치아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미처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소.
하여튼 그들은 들어왔소. 그런데 들어와보니 그 착한
여인이 집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더란 말이오. 그래서
그들이 물었소.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크리스치아나는 두 사람 가운데 연장자인 '겁쟁이'
부인에게 대답했소. '나는 여행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랍니다.'라고 말이오."
(이 겁쟁이 부인은 '고생길 언덕'에서 크리스찬을
만나 사자들이 무서우니 돌아가는 게 좋다고 말하던
바로 그 자의 딸이었다.)
겁쟁이 부인 : 무슨 여행인데요?
크리스치아나 : 착한 제 남편을 따라가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소.
겁쟁이 부인 : 부인, 그런 무모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겠군요. 아이들 생각을 해서라도 그렇게 자신을
내버려서는 안 되지요.
크리스치아나 :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도 나와 함께
갈 것입니다. 어느 아이도 남아 있지 않겠답니다.
겁쟁이 부인 : 당신의 마음속에 누가 이런 생각을
심어놨는지 정말 모르겠군요.
크리스치아나 : 오, 부인. 당신도 내가 아는
것만큼만 안다면 반드시 나와 함께 동행하려고 하실
겁니다.
겁쟁이 부인 : 친구들도 버리고 아무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그런 곳으로 떠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그 새 지식이라는 게 도대체 뭐죠?
크리스치아나는 이렇게 대답했소. '남편이 내 곁을
떠나자, 특히 그가 강을 건너간 이후로 나는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괴롭힌 것은 그이가 괴로워하고 있을 때 내가
인색하게 대해준 일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게다가
지금의 내 괴로움은 그때 그이의 괴로움과 다를 게
없어요. 순례의 길을 떠나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내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겁니다.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남편을 봤습니다. 아, 내 영혼은
그이와 더불어 함께 있었습니다. 그이는 그 나라의
왕과 함께 식탁에 마주앉아 먹고 마시며 영생자들과
어울리고 있었지요. 그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얼마나 웅장하고 화려한지 내 생각에 이 땅 위에 있는
그 어떤 훌륭한 궁전도 그집에 비하면 쓰레기통 같을
겁니다. 또한 그곳의 왕자께서 만약 나도 그곳으로
오겠다면 받아들이겠다는 약속을 전해 오셨지요. 그
심부름꾼이 조금 전만 해도 여기 있었는데 나를
초대하는 내용이 적혀 있는 편지를 주고 갔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편지를 꺼내서 그들에게
읽어주고는 말했소. '당신들은 이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겁쟁이 부인 : 오, 그런 어려운 일을 하려고
들다니, 당신 내외는 모두 정신이 나갔군요. 댁의
남편이 길을 떠난 첫발부터 어떤 곤경에 처했었는지
들어서 알고 있겠죠? 우리 이웃인 고집불통이
아직까지도 증언하고 있으니까요. 처음엔 그도
온순함과 함께 댁의 남편을 따라갔지만 무서워서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현명하게 되돌아왔지요.
우리는 댁의 남편이 어떻게 사자와 마주쳤으며,
아폴리온과 죽음의 그늘 계곡과 그 밖의 온갖
곤경들을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귀가 아프게
들어왔습니다. 그가 허영의 시장에서 당한 고난은
당신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가 남자인데도 그렇게
견디기가 어려웠는데 하물며 연약한 아녀자의 몸으로
어떻게 그런 일을 감당하겠다는 겁니까? 게다가 이
귀여운 네 아이들은 댁의 자녀, 즉 댁의 살과 뼈라는
점을 생각하셔야지요. 그러므로 댁의 몸뚱이 하나야
설혹 무모하게 내던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댁의
몸에서 나온 아이들을 위한다면 그냥 집에 머물러
있으세요.
그러나 크리스치아나는 이렇게 말했소.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세요. 나는 지금 거의 다 잡은
상을 눈앞에 두고 있어요. 이 기회에 그것을 잡지
않으면 나는 가장 어리석은 바보가 되고 말 것이빈다.
그리고 당신은 내가 길에서 만나게 될 그 모든
어려움들에 대해 말해 주고 있지만, 그것들은 나의
용기를 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가 옳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은 후에는
반드시 즐거움이 따르게 마련이고, 또 그 고난이
즐거움을 더욱 즐거운 것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물어본 대로 당신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게 아니거든 이제 그만 돌아가주시고 더 이상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 말아주세요.'
그러자 겁쟁이 부인은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같이 온 여인에게 말하는 것이었소. '갑시다, 자비심.
우리의 권고와 호의조차 무시하니 자기 멋대로 하게
내버려두고 갑시다.'
그러나 자비심은 어찌할 바를 몰라하면서 겁쟁이
부인의 생각에 동조할 수가 없었소.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지. 첫째는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연민의 정이 크리스치아나에게 쏠렸기 때문이었소.
그래서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소. '이 사람이 꼭
떠난다면 조금이라도 같이 가면서 도와줘야지.'
둘째는 같은 연민의 정이 자기자신의 영혼으로 쏠렸기
때문이오. 크리스치아나가 한 말이 어느 정도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지. 그녀는 다시 마음속으로
다짐했소. '크리스치아나와 좀더 이야길 해봐야지.
그녀가 하는 말에서 진리와 생명을 발견하게 된다면
나도 그녀와 동행해야겠다.'
그리하여 자비심은 자기 이웃인 겁쟁이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소.
자비심 : 이봐요, 부인. 사실 나는 오늘 아침
당신과 함께 크리스치아나를 만나러 왔어요. 그런데
당신도 보시다시피 지금 이분은 고향을 아주 떠나려
하고 계신데 이 맑은 날씨에 우리가 조금이라도
그녀와 동행하면서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도와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녀는 두번째 이유는 입 밖에 내지 않았소.
겁쟁이 부인 : 그런데 이제 보니 당신도 그 바보
같은 짓을 할 생각이로군요. 하지만 시기를 잘 살펴
현명하게 처신하세요. 위험을 벗어나 있을 땐
위험하지 않지요. 그러나 위험 속에 들어가면
위험해지게 마련이니까요.
그리하여 겁쟁이 부인은 집으로 돌아가고,
크리스치아나는 마침내 여행길에 올랐던 것이오.
집으로 돌아간 겁쟁이 부인은 '박쥐눈 부인(Mrs.
Bats-eyes)', '경솔함 부인(Mrs. Inconsiderate)',
'경박함 부인(Mrs. Light-mind), '무지함 부인(Mrs.
Know-nothing)' 등 자기 이웃사람들을 집으로
불러들였지요. 그들이 다 모이자 그녀는
크리스치아나가 여행 떠난 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소.
겁쟁이 부인 : 여러분,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나는
오늘 아침 좀 한가하길래 크리스치아나를
찾아갔었지요. 문밖에서 우리는 습관대로 문을
두드렸어요. 그랬더니 그녀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세요? '누군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면
들어오세요?' 아니, 이렇게 말하더라니까요. 나는 별
일 없으려니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갔죠. 그러나 막상
들어가 보니 그녀는 자기 아이들까지 데리고 이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자기도
자기 남편이 했던 것같이 순례의 길을 떠나겠노라고
아주 간단히 대답하는 것이었어요. 그러고는 자기가
꿨던 꿈이야기며, 남편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왕이
자기에게도 그 나라에 오라는 초청장을 보냈다는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었어요.
그러자 무지함 부인이 말했소. '뭐라고요? 정말로
그녀가 여행을 떠날 것 같습디까?"
겁쟁이 부인 : 예, 그녀는 떠날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이에요. 나는 그걸 확신해요. 왜냐하면 내가
어떻게든 집에 머물러 있게 하려고 여행 도중 만나게
될 여러 가지 난관들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를
해주었지요. 그랬더니 오히려 그런 이야기들이
그녀에게는 역효과를 내서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의욕을 더욱 단단히 해준 결과가 되고 말았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여자는 그저 다음과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것이었어요. '고생이 있은 후에 즐거움이
옵니다. 그리고 물론 그 고생이 쓰면 쓸수록 즐거움은
더욱더 크지요.'
박쥐눈 부인 : 원, 세상에. 눈이 멀고 대단히
어리석은 여자로군요. 자기 남편이 그렇게 쓰라린
고통을 겪었다는 이야길 듣고서도 경계하는 마음이 안
생기다니, 내 생각엔 그녀의 남편이 다시 여기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편안히 쉬면서
아무 소득도 없는 그런 모험 같은 건 결코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경솔함 부인도 한마디 했지요. '그렇게 머리가
돌아버린 여자는 마을에서 떠나게 내버려둡시다. 그게
우리 편에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여자가
그냥 마을에 머물러 살면서 계속 그따위 생각을 품고
있다면 누가 마음놓고 편히 살 수 있겠어요? 어리석은
말과 행동으로 이웃간에 정이나 끊어놓고, 현명한
사람이라면 도저히 참고 견딜 수 없는 허튼수작만
늘어놓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내 생각엔 그 여자가
떠나는 게 절대로 섭섭한 일이 아니라는 거죠. 그냥
가게 내버려두자고요. 그 여자가 살던 곳에 더 좋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게 합시다. 그런 변덕쟁이
바보가 살고 있는 한 이 세상은 결코 좋은 세상이 못
될 테니까요.'
경박함 부인도 또한 거들었소. '그따위 이야긴 이제
그만둡시다. 어제 나는 '마담 음탕한(Madam Wanton)'
집엘 갔었는데, 거기서 우리는 젊은 사람들처럼
재미있게 놀았답니다. 거기에는 나말고도 '정욕사랑
부인(Mrs. Love-the-flesh)', '호색가 씨(Mr.
Lechery)', '외설적인 부인(Mrs. Filth)', 그 밖에도
서너 명이 더 있었어요.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며 여러 가지 즐거운 놀이를 했답니다. 그 마담은
역시 교양있는 멋진 숙녀였고, 호색가 씨는 참 멋있는
분이더군요.'
그때 크리스치아나는 길을 떠났고 자비심이 그녀를
따라 나섰소. 그리하여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길을
가면서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참 자비심 양, 이렇게
잠시라도 나와 동행해 주시다니 정말 뜻밖의
호의입니다.'
아직 나이가 어린 자비심이 대답했소. '제가
아주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제
다시는 마을 근처에도 가지 않을 거예요.'
크리스치아나 : 좋아요, 자비심 양. 나와 운명을
함께 합시다. 나는 우리들의 순례여행이 어떻게
끝날는지 잘 알고 있어요. 지금 내 남편은 스페인의
금광에 있는 모든 금과도 바꿀 수 없는 곳에
계시답니다. 당신은 비록 나의 초대에 응해서 가고
있긴 하지만 결코 그곳에서 거절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와 나의 아이들을 초대하신 그 왕께서는
자비를 베푸는 걸 최상의 즐거움으로 아시는
분이랍니다. 게다가 원하신다면 내가 당신을 고용해서
하녀로 함께 갈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무슨
차별을 두자는 건 아니고 그저 같이 여행하면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쓰자는 것입니다.
자비심 : 하지만 그 나라에서 저를
받아들여주리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요? 제가
틀림없이 받아들여지리라는 확신을 줄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저는 아무리 앞길이 험난하고 지루해도
그분의 도움을 받아가며 갈 수 있을텐데요.
크리스치아나 : 사랑하는 자비심 양, 그러면 내가
일러주지요. 나와 함께 좁은문까지 갑시다. 거기서
내가 당신과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불어봐주겠어요. 그래서 당신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명쾌한 대답이 안 나오면 당신이 집으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막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우리와
함께 동행하면서 나와 내 아이들에게 보여준 친절에
대해서도 보답하겠어요.
자비심 : 그럼, 일단 좁은 문까지 가서 다음 일을
따르기로 하겠어요. 하늘의 왕께서 제게 자비를
베풀어 그 문의 주인으로 하여금 제 운명을 결정짓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자 크리스치아나의 마음은 뛸듯이 기뻤소.
그것은 동료가 하나 생겼을 뿐만 아니라, 이 가엾은
여자로 하여금 자기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진심으로
바라도록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들은 함께 계속해서 걸어가게 됐는데 갑자기
자비심이 울기 시작했소. 크리스치아나가 왜 우느냐고
물었소. 그랬더니 자비심이 대답했소. '우리 친척들이
불쌍해서 그래요.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생각하니까 울지 않을수가 없어요. 게다가 이젠
그들에게 장차 어떤 일이 닥칠지에 대해 가르쳐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더 비통하고
가슴이 아파요.'
크리스치아나 : 순례자는 연민 어린 동정심을 가진
이가 되기 마련입니다. 당신은 마치 착한 크리스찬이
나를 두고 떠날 때 나에 대해 걱정하던 것과 같이
당신 친구들을 걱정하는군요. 그때 남편은 내가 그의
말을 듣지 않아 눈물을 많이 흘렸지요. 그러나 그의
주님이자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께서는 내 남편의
눈물을 모두 병에 담아두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나와 당신 그리고 사랑스런 내 아이들이 그 눈물의
열매와 이익을 거두고 있는 것이지요. 자비심 양,
나는 지금 당신이 흘리는 눈물이 모두 헛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진리의 말씀에도 이런 말이
있으니까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뻐서
노래하며 거두리라. 울면서 소중한 씨앗을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짚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
그러자 자비심이 이렇게 말했소.
'가장 복되신 주님이 인도하시어
당신의 뜻이라면
이 몸을 당신의 문까지, 그 땅까지,
그 거룩한 언덕까지 오르도록 허락하소서.
그리고 이 몸을 지켜주옵소서,
어떠한 일이 닥치더라도
당신의 은총과 거룩한 길로부터
내가 벗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바라옵건대 주님이시여,
제가 두고온 모든 사람들을 부르시어
그들로 하여금 온 마음과 정신으로
당신의 것이 되게 하소서.'
나와 동행하던 노인이 계속 말했다.
"그러나 절망의 구렁텅이에 이르자 크리스치아나는
걸음을 멈추었소.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말ㅎ소. '여기가 바로 사랑하는 내 남편이 빠져서
질식해 죽을 뻔했던 곳이군요.'
그리고 그녀는 순례자들을 위해 이곳을 보수하라는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전보다도 더 엉망이 돼버린
현장을 발견했소."
나는 그게 정말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사실이오. 그 이유는 자칭 왕의 일꾼이라고 나서는
사람들 중에도 배반하는 이가 많아서 그들은 왕의
큰길을 보수한답시고는 돌 대신 쓰레기와 똥을
가져다가 수리는 커녕 오히려 더욱 망쳐놓기
때문이오. 그래서 크리스치아나와 그의 아이들은
여기에서 걸음을 멈추었소. 그러자 이번에는 자비심이
말했소. '자, 모험을 한번 해봅시다. 다만 조심만
하면 돼요.'
그리하여 그들은 발밑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나아가기 시작했소. 그러나 크리스치아나는 미끄러져
빠져버릴 뻔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소. 그들이
절망의 구렁텅이를 다 건너자마자 그들의 귀에는 이런
소리가 들려왔소. '복받을 지어다, 믿는 여인이여.
주님의 약속이 모두 다 이루어질지니라.'
그들은 다시 계속 걷기 시작했는데 자비심이
크리스치아나에게 이렇게 말했소. '제게도
아주머니처럼 좁은 문에서 환영받으리라는 확실한
보장이 있었더라면 절망의 구렁텅이 정도로 용기를
잃지는 않았을거예요.'
그래서 크리스치아나가 말했소. '글쎄요.
당신에게는 당신 나름대로의 걱정이 있고 내게는 나
나름대로의 걱정이 있지요. 어쨌든 우리는 앞으로 이
여행의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는 참으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훌륭한 영광을 얻으려고 길을 떠난 우리들이 행복해
하는 것을 시기하는 자들과 미워하는 자들이 그 어떤
공포와 공갈, 난관과 재난을 우리의 길을 방해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바로 그때 총명함 씨는 내 곁을 떠났고, 나는 혼자
계속해서 꿈을 꾸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크리스치아나와 자비심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좁은
문에 이르는 것을 보았다. 문 앞에 도착하자 그들은
어떻게 문을 두드릴 것이며, 문을 열어줄
문지기에게는 무슨 말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잠시
상의를 했다. 결국 가장 나이가 많은 크리스치아나가
문을 두드리고 문지기에게도 그녀가 말을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크리스치아나는 자기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그러나
대답 대신 개가 그들을 향해서 짖어대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도 아주 큰 개가 짖는 소리
같았다. 여인들과 아이들은 무서워 떨고 있었다.
그들은 사나운 개가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물어뜯을
것만 같아 문 두드리기를 멈추고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개가 무서워 더 이상 문을 두드릴 수도 없었고,
문지기가 보고는 꾸짖을 게 두려워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마침내 그들은 다시 문을 두드리기로 결심을
하고 먼저보다 더욱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그때서야 문지기가 말했다.
"거기 누구 왔소?"
그러자 개는 짖기를 멈추었고 문이 열렸다.
크리스치아나가 공손히 인사하며 말했다.
"이 고귀한 문을 함부로 두드린 계집종에게
주님께서 노여워하시지 않길 바랍니다."
문지기가 말했다.
"어디서 왔소? 그리고 무엇을 원하시오."
크리스치아나가 대답했다.
"우리는 전에 크리스찬이 떠나온 그 마을에서
왔는데, 가는 곳도 그가 가고자 한 바로 그곳입니다.
바라건대 저희들에게 이 문을 열어주시어 저
하늘나라에 이르는 길에 들어설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길 바라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저는
지금 저 높은 곳에서 살고 있는 크리스찬이 아내였던
크리스치아나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 문지기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순례자의 생활을 그토록
싫어했던 여자가 지금 순례자가 됐단 말이오?"
그러자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여 절하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스런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자 문지기는 그녀의 손을 잡아 안으로 인도하며
말했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막지 말라."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문을 닫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문 위 누각에 있는 나팔수에게 나팔소리를 크게
울려 크리스치아나의 입문을 환영하라고 일렀다.
그리하여 나팔수는 큰소리로 나팔을 불었고 그의
아름다운 곡조는 하늘 가득 울려퍼졌다.
그러는 동안 가엾은 자비심은 문 밖에 서서 자신의
입문이 거절당할까봐 두려워서 떨며 울고 있었다.
그러자 아이들과 함께 문안으로 들어온
크리스치아나는 자비심을 위해 간청하기 시작했다.
크리스치아나 : 주여, 저와 함께 온 동료가 아직 문
밖에 서 있습니다. 그 여자도 저와 같은 마음을 먹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제가 제 남편의
왕으로부터 초대를 받은 것과 달리 자기는 아무
초대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크게 낙심하고
있습니다.
한편 자비심은 더욱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1분이
그녀에겐 1시간처럼 여겨졌다. 마침내 그녀는
크리스치아나가 간청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로
요란하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크게 문을
두드렸던지 크리스치아나는 깜짝 놀랐다.
그러자 문지기가 말했다.
"거기 누구 왔소?"
크리스치아나가 말했다.
"제 친구입니다."
문지기는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그러자
자비심은 기절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는
자기에게는 문이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겁이 났던 것이었다. 문지기가
그녀를 손으로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아가씨, 일어나시오."
자비심이 말했다.
"오, 선생님. 어지러워요. 제 목숨이 그대로 붙어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러자 문지기가 대답했다.
"전에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었소."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내 영혼이 내 마음속에서 어지러울 때 내가 주님을
생각했다. 그랬더니 내 기도가 주님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두려워 하지 말고 일어나서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지 말해 보시오."
자비심 : 저는 크리스치아나처럼 초청 받은 일도
없이 이렇게 왔습니다. 그녀는 왕으로부터
초청받았지만 저는 단지 그녀의 초청을 받았답니다.
그래서 두려운 것입니다.
문지기가 말했다.
"크리스치아나가 당신과 함께 이곳까지 오기를
바랐습니까?"
자비심 : 네, 그래서 주께서 지금 보시는 것처럼
저는 이렇게 왔습니다. 그러니 제게도 은총과 죄를
용서할 여유가 있으시다면 이 가엾은 계집종에게도
베풀어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옵니다.
그러자 문지기는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아 다정하게
안으로 인도하며 말했다.
"나는 나를 믿는 모든 자들을 위해서 언제나
기도드립니다. 그들이 어떤 수단으로 내게 오던지
말이오."
그러고 나서 그는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무엇이든지 가져다가 이 여자의 원기를 회복시켜
어지럼증을 가라앉혀주어라."
그래서 그들은 몰약(沒藥: 향료, 약제로 쓰이는
아라비아, 동아프리카산의 수지) 한 줌을 가져다주어
그녀를 곧 회복시켰다.
이리하여 크리스치아나와 그녀의 아이들 그리고
자비심은 하늘나라로 가는 길목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또한 주님의 친절한 이야기까지 듣게 되었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해서 주님에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마음이 괴롭습니다.
주님,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세요."
"나는 나의 말과 행동으로 당신들의 죄를 용서해
주겠소."
그가 계속 말했다.
"용서하겠다는 약속이 바로 그 말이며, 그 약속을
실현한 것이 그 행동이오. 말의 용서는 내 입맞춤으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행동으로 용서하겠다는 것은 곧
드러나게 될 것이오."
나는 꿈속에서 그가 여러 가지 좋은 말들을 해주어
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또한 그는
그들을 성문 꼭대기로 데리고 올라가 어떤 행위로
그들이 구원을 받았는지를 보여주었고, 그들이 장차
순례 도중에 위안으로 삼을 그 광경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그들을 잠시 서늘한 방에 있게 했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자기들끼리 입을 열었다.
"오, 정말이지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자비심 : 아주머니도 기쁘시겠지만, 저는 너무
기뻐서 깡충깡충 뛰고 싶을 정도입니다.
크리스치아나 : 문밖에 서 있을 때는 아무리 문을
두드려보아도 대답이 없어서 우리의 모든 노력이
허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구나 무서운
개가 우리를 향해 마구 짖어댈 때는 더욱 그랬어요.
자비심 : 저는 아주머니네가 문안으로 들어가고 저
혼자 밖에 남아 있을 때가 더욱 두려웠어요. 저는 '두
여인이 맷돌을 갈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저는 "다 틀렸구나."하고 울부짖고
싶은 걸 참느라고 여간 애를 쓰지 않았답니다.
그러고는 더 이상 문을 두드리기가 두려웠는데
문설주에 기록돼 있는 글을 보고는 다시 용기를
얻었지요. 그래서 저는 계속 문을 두드리든가 아니면
죽든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문을
두드렸지요. 저의 영혼이 생사의 기로에 서 있었기
때문에 문을 어떻게 두드렸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크리스치아나 : 어떻게 두드렸는지 잘
모르겠다고요? 당신이 문을 두드리던 소리가 얼마나
굉장했던지 내가 다 깜짝 놀랄 정도였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요란한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혹시 당신이 폭력이라도 써서
천국을 강제로 침범하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니까요.
자비심 : 누구든 저와 같은 입장이 돼보세요.
누군들 그렇게 하지 않겠어요? 아주머니도 아시다시피
문은 제 앞에서 닫히고, 사나운 개가 짖는 소리만
계속 들려왔어요. 저처럼 그렇게 절망의 상태에 빠진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죽을 힘을 다해 문을 두드리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그런데 저의 그 무례하고 난폭한
행동에 대해 주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나요? 화를
내지나 않으셨나요?
크리스치아나 : 당신이 요란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시더니 신비스럽고도 우아한 미소를
띄우시더군요. 당신의 행위가 그분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렸던 것 같아요. 조금도 화를 내시는 표정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한 가지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은 그분이 왜 그렇게 사나운 개를 기르고 계신가
하는 거예요. 그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과연 내가
그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문을 두드렸을까 의문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지금 문 안에 들어와 있어요.
나는 그것이 가슴 벅차게 기쁠 뿐입니다.
자비심 : 괜찮으시다면 아주머니께서 다음에 그분이
내려오실 때 왜 그토록 사나운 개를 뜰에 기르고
계신지 여쭤보시겠어요? 그런 것을 물어본다고 해서
언짢아 하지는 않으시겠죠?
아이들이 말했다.
"그래요, 그렇게 해보세요."
"그리고 그놈을 목매달라고 부탁하세요. 여기서
나갈 때 우리를 물지 않을까 겁이 나요."
마침내 주께서 다시 그들에게 내려오자 자비심이
그의 발 아래에다 자기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면서 말했다.
"주님, 송아지 대신 제 입술로 드리는 찬양의
제물을 받으시옵소서."
주께서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평화가 있으리니. 일어나시오."
그러나 그녀는 계속 얼굴을 땅에 댄 채 말했다.
"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탄원할 때마다 언제나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당신의 판단에 대해 한 마디
여쭙겠나이다. 어찌하여 뜰에 그토록 사나운 개를
기르시어 저희와 같은 아녀자와 아이들이 두려워
문으로부터 도망칠 마음이 들게 하시옵니까?"
주께서 대답하여 말했다.
"그 개의 주인은 내가 아니오. 그 개는 나의 뜰과
인접한 다른 사람의 땅에 살고 있지요. 나를 찾아오는
순례자들은 그 개가 짖는 소리만 들을 뿐이지요. 그
개는 저기 보이는 성에 살고 있는데 그 성벽이 이곳과
인접해 있소. 그 개는 사나운 소리로 수많은
순례자들을 겁주었지요. 사실 그 개를 기르고 있는
자는 나와 나의 집에 어떤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기르는 게 아니라 순례자들을 내게 오지 못하게 하고,
무서워서 문을 두드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기르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가 개를 풀어놓아 내가 사랑하는
자들을 겁나게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애써 참고
있지요. 그렇지만 나는 나를 찾아오는 순례자들을
제때에 도와주어, 그 흉악한 짐승에게 순례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합니다. 그렇지, 사랑스러운
당신이 이런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개를
무서워하지는 않았겠군!
문전걸식하는 거지들도 동냥을 놓칠 우려가 있으면
개가 짖든 으르렁 거리든 상관하지 않고 문을
두드리지 않소? 그런데 개 한 마리, 그것도 남의 집
뜰에서 짖어대는 개가 어떻게 내게 오는 순례자들을
못 오게 막을 수 있겠소? 게다가 나는 그 개가 짖는
소리를 순례자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이용하고 있소.
나는 그들을 사자로부터 구해 내고 사랑하는 자들을
개의 권세로부터 구해 냅니다."
그러자 자비심이 말했다.
"제가 미처 알지도 못하는 것을 지껄였습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시는 줄
알겠습니다."
그러자 크리스치아나가 그들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어 앞으로 닥칠 여러 가지를 물었다.
그리하여 주님은 전에 그녀의 남편에게도 했듯이
그들을 먹여 주고 발을 씻겨준 다음, 그들이 길
떠나는 것을 보살펴 주었다.
나는 꿈속에서 그들이 화창한 날씨를 즐기며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크리스치아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은혜롭도다,
내가 순례의 길을 떠난 날.
은혜롭도다,
내 안에 계시어 나를 감화시켜
길 떠나게 하신 분.
영원히 살기 위해 길 떠난 지 이미 오래지만
나는 지금 있는 힘을 다해
발걸음을 빨리 하네.
안 가는 것보다는
늦게라도 가는 것이 더욱 나으리니.
우리의 눈물은 변하여 기쁨이 되고
우리의 두려움은 믿음이 되니,
이제 우리의 시작은 말씀대로
우리의 종말이 어떠하리라는 걸 보여주네.
크리스치아나와 그의 동료들이 가는 길을 끼고
성벽이 하나 있었다. 그 성벽 안마당엔 방금 전에
말했던 그 개를 소유한 자의 정원이 있었다. 담
밖으로 그 정원에서 자란 과일나무들이 열매를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매우 먹음직스러워 보였으므로
지나가던 행인들이 가끔 따먹고 병이 들곤 했다.
크리스치아나의 아이들도 가지를 휘어잡아 열매를
따먹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야단을 쳤지만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따먹었다.
그녀가 말했다.
'얘들아, 너희들은 지금 죄를 짓고 있는 거야. 그
나무의 열매는 우리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그 나무들이 원수의 소유물인
줄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만약 그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녀는 두려워 어쩔 줄 몰라 했을 것이다.
과일나무가 있는 지역을 벗어난 그들은 계속해서
여행을 했다. 그런데 그들이 떠나온 곳으로부터
화살이 닿을 거리의 두 배쯤 되는 곳에 다다랐을 때,
아주 험상ㄱ게 생긴 두 사나이가 그들을 마주보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을 본 크리스치아나와 그녀의
동료인 자비심은 가리개로 얼굴을 가리고 여행을
계속했다. 아이들은 조금 앞서가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은 서로 마주치게 되었다. 험상ㄱ은 두 사나이는
곧장 여인들 앞으로 다가가더니 두 팔로 껴안으려
했다. 크리스치아나가 소리쳤다.
"비켜요. 가던 길이나 조용히 가시지."
그러나 두 사나이는 귀머거리인 양 크리스치아나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두 여인에게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크리스치아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그들을 발로 걷어찼다. 자비심도 재치있게
그들을 피했다. 크리스치아나가 다시 소리쳤다.
"비켜요. 그냥 가라고요. 당신들도 보시다시피
우리는 친구들의 자선 덕분에 사는 순례자로서
당신네에게 빼앗길 돈도 없으니까."
두 사나이 중 한 놈이 말했다.
"우리는 돈을 빼앗으려는 게 아닐세. 다만 우리가
요구하는 아주 사소한 요구사항을 들어준다면
당신들을 영원히 당당한 여성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뿐이지."
그러자 크리스치아나가 그들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고는 다시 말했다.
"우리는 당신들이 어떤 부탁을 하든 듣지도 않고
신경쓰지도 않을 것이며 따르지도 않을 겁니다.
우리는 이렇게 멈춰 있을 시간이 없단 말예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이거든요."
그리하여 그녀와 그녀의 동료는 다시 한 번 그들을
비켜지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사나이들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을 해칠 생각은 없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다른 거란 말일세."
크리스치아나 : 물론 당신들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모두 차지하고 싶겠지요. 나는 당신들이 그 때문에
이렇게 왔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장래의 행복을 망가뜨릴 그따위 함정에 빠지느니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어버리고 말겠소.
말을 마치고 두 여인은 목소리를 맞춰 소리를
질렀다.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
그러면서 그들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율법의 그늘로 뛰어 들었다. 그러나 사나이들은
여전히 다가오며 두 여인을 욕보일 생각을 버리지
않는 것이었다. 두 여인은 다시 울부짖었다.
그런데 그들은 떠나온 문으로부터 아직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므로 그들의 비명소리가 그곳에까지
들렸다. 그리하여 그 집에서 몇 사람이 뛰쳐나오더니
소리 지르는 여자가 크리스치아나라는 것을 알고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서둘러 달려왔다. 그들이 달려와
보니 여인들은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치고 있었고
아이들은 그 곁에서 울고 있었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사람이 악한들에게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우리 주님의 백성들을 너희들이
감히 욕보이겠다는 거냐?"
그러면서 그가 두 악한을 잡으려 하자 그들은 크고
사나운 개가 있는 자의 정원 안으로 담을 넘어
도망쳤다. 그리하여 두 악한은 개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들을 구조해 준 사람이 두 여자에게 다가와
어떻게 된 사연인지를 물었다. 여인들이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저 약간 놀랐을
뿐입니다.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몇 마디 말을 더 듣고 난 후 구조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들이 저기 저 문에 들어왔을 때 연약한
아녀자의 몸으로 어째서 주님께 안내자를 딸려보내
달라고 간청드리지 않는지 이상스럽게 여겼소.
그랬으면 주께서 기꺼이 허락하셨을 게고, 따라서
이런 고난은 당하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크리스치아나가 말했다.
"우리는 그 당장의 복에 너무 취해 있어서 앞으로
닥쳐올 위험 같은 건 생각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왕궁에서 가까운 곳에 그런 악한들이
숨어 있을 줄 상상도 못했어요. 우리가 안내자를
요청했더라면 모든 것이 잘됐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안내자가 있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걸 잘 아시면서 왜
우리에게 안내자를 딸려보내지 않으셨을까요?"
구조자 : 청하지 않은 것을 언제나 줄 필요는
없지요. 그렇게 되면 받은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어떤 물건이 필요하던 차에 그것을
구하다가 얻게 되면 그는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유효적절하게 사용할 것이오. 만일 우리 주님께서
자진하여 당신들에게 안내자를 딸려보내셨더라면,
미리 요청하지 못한 실책을 지금처럼 절실히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오. 그러므로 모든 일은 다 유리하게
진행되는 거지요. 결국 당신들은 이 일을 교훈으로
좀더 신중하게 됐으니까 말입니다.
크리스치아나 : 우리가 다시 주님께 돌아가 우리의
어리석었음을 고백하고 안내자를 한 분 요청하면
어떨까요?
구조자 : 당신들이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는 그
고백을 내가 주님께 전해 드리겠소. 그러나 다시
돌아갈 필요는 없어요. 앞으론 당신들이 어느 곳을
가든지 당신들은 아무 것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오. 순례자들을 위해서 주께서 마련하신 숙소마다
그 어떤 방해물로부터도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온갖
장비가 다 갖추어져 있으니까요. 그러나 방금전에
말한대로 그분은 요청하는 자에게만 제공하실 것이오.
이 말을 마치고 그는 자기 처소로 돌아갔고,
순례자들은 그들의 여행을 계속했다. 자비심이
말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군요. 좁은 문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모든 위험이 다 사라지고 다시는
고통을 당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요."
"당신이야말로 천진난만하군요."
크리스치아나가 자비심에게 말했다.
"당신은 그래도 변명할 것이 많이 있겠지만 나는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질렀어요. 나는 문밖에 나서기
전부터 이런 위험이 있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대책도 세우지 않고 그냥 떠났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훨씬 더 책망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자 자비심이 말했다.
"그런데 집을 떠나기 전에 이런 일이 있을 줄
어떻게 아셨죠? 제발, 그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말해 주세요."
크리스치아나 : 말씀드리지요. 집을 떠나기 전 어느
날 밤에 나는 지금 당한 일을 꿈에서 당했답니다.
지금 만난 자들과 같이 생긴 두 사나이가 내 침대
곁에 서서 어떻게 하면 나의 구원을 방해할 수 있을까
상의하는 것 같았어요. 그들은 이렇게 말했어요.
"이 여자가 자나깨나 용서해 달라고 부르짖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렇게 괴로워하게
내버려두었다가는 이 여자의 남편을 잃어버렸던
것처럼 이 여자 또한 잃겠는 걸?"
그때 나는 한참 괴로워하고 있었거든요. 이런 꿈을
꾸고서도 조심을 하지 않았고, 또 준비를 했어야 하는
곳에서 그냥 지나쳤으니 이게 무슨 꼴입니까?
자비심이 말했다.
"결국, 이번에 저지른 소홀한 실책이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을 깨닫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 됐군요. 이
일을 계기로 주님께서는 그의 은총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보여주셨어요. 우리가 겪었다시피 그분은
요청받지도 않은 친절로 우리를 따라오시다가 다만
자신의 뜻을 기쁘게 이루기 위해 우리보다 강한
자들의 손으로부터 우리를 구해 주셨으니까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동안 걷던 그들은
길가에 서 있는 어떤 집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그 집은 독자들이 이 책의 제 1부에서 본대로
순례자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 지어놓은
집이엇다. 이윽고 그 집 문 앞에 당도한 그들은
집안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크리스치아나라는 이름이 들리는 것 같아서
그들은 바짝 귀를 기울였다. 크리스치아나가 자기
자식들과 함께 순례의 길을 떠났다는 소문이 그녀보다
한 발 앞서 곳곳에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문의 주인공이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순례의
길을 떠나자는 남편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크리스찬의 아내라는 사실이 그 소문을 듣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기쁘게 만들었다. 화제의 주인공이 바로
문 밖에 서 있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떠들고 있는
그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침내
크리스치아나는 전에 좁은 문에서 했던 것처럼 그 집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젊은 처녀 한 사람이
나왔다. 그녀는 문을 열고 문밖에 서 있는 두 여인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누굴 찾아오셨습니까?"
크리스치아나가 대답했다.
"우리는 이 집이 순례자들을 위해서 특별히
지어놓은 집인 줄 알고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여기서 좀 쉬어갔으면 합니다. 보시다시피 날도
저물었고 더 이상 밤길을 가기도 어려워서요."
처녀 :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에 계신 주인님께 말씀드려야
하니까요.
크리스치아나 : 제 이름은 크리스치아나입니다. 몇
년 전에 이 길을 간 순례자의 아내지요. 그리고 여기
네 아이들은 그의 자식들입니다. 그리고 이 아가씨는
내 동료인데 지금 함께 순례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그러자 '순결함'이 안으로 들려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순결함은 그 처녀이 이름이었다.
"지금 문밖에 누가 오셨는지 아시겠어요?
크리스치아나와 그녀의 네 아이들 그리고 동료 한
사람이 이리로 들어오기 위해 기다리고 서 있답니다."
그러자 집안에 있던 사람들은 기쁨에 넘쳐 자기들의
주인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알렸다. 주인이 몸소
밖으로 나와 그들을 보고는 말했다.
"당신이 바로 크리스찬이 순례의 길을 떠날 때 집에
두고 떠났던 그 크리스치아나요?"
크리스치아나 : 제가 남편의 고민을 덜어주는 데
그렇게 냉담했던 바로 그 여자입니다. 그래서 남편을
혼자 떠나게 내버려뒀었죠. 여기 네 아이들은 그의
자식들입니다. 그렇지만 저도 이렇게 오게 됐습니다.
이 길 밖에는 다른 옳은 길이 없음을 저는 확신하게
됐습니다.
통역관 :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에게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 : 고 말하니까 그의 아들은
"싫습니다."라고 대답하고는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는 밭으로 갔다."는 성경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군요.
그러자 크리스치아나가 말했다.
"그렇기를 원하나이다, 아멘.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그리하여 마지막
날에 아무런 흠과 부끄럼 없이 주님 앞에 나타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통역관 : 그런데 왜 이렇게 문간에 서 있으시오?
들어와요, 아브라함의 따님이시여! 마침 우리는
당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라오. 당신이
어떻게 해서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됐는가에 대한
소문이 당신보다 앞서서 들려왔지요. 들어오너라,
얘들아. 그리고 아가씨도 들어와요, 어서.
통역관은 그들을 집안으로 맞아들였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가자 자리에 편히 앉아 쉴 수
있었다. 자리에 앉자 순례자들에게 시중을 들도록 돼
있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그들을 맞이했다.
크리스치아나가 순례자가 된 것을 기뻐하여 한 사람이
웃자 다른 사람도 웃고, 마침내 집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기뻐서 웃었다. 그들은 또한 아이들에게 환영의
표시로 머리를 다정스레 쓰다듬어주었다. 그들은
자비심에게도 마찬가지로 따뜻하게 대해 주며 자기들
주인님의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그들에게 말했다.
잠시 후 통역관은 아직 저녁식사가 준비되지
않았으므로 자기의 방으로 그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얼마 전 크리스치아나의 남편 크리스찬에게
보여주었던 것들을 그들에게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거기에서 우리에 갇혀 있는 사람, 무서운 꿈을
꾸는 사람, 원수들을 무찌르고 자신이 갈 길을 여는
사람,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큰 자의 초상화, 기타
여러 가지 크리스찬에게 유익함을 주었던 다른 것들을
보았다.
이 일이 끝나자 통역관은 크리스치아나와 그 일행이
본 것들을 대강 되새기게 한 다음, 그들을 데리고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손에 거름을 헤치는
쇠스랑을 들고 단지 아래만 내려다볼 수 있는 어떤
사람이 서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서는 천국의 왕관을
손에 든 사람이 그에게 쇠스랑 대신 왕관을 받으라고
타이르고 있었으나, 그는 들은 척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마룻바닥 위의 짚더미와 작은 나무토막과
먼지들만 쇠스랑으로 긁어 모으고 있었다.
크리스치아나가 입을 열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느 정도 알겠습니다. 저
사람은 이 세상 인간의 모습이죠, 안 그렇습니까,
선생님?"
통역관 :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들고 있는
쇠스랑은 그의 육체적인 욕망을 뜻합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천국의 왕관을 받으라는 권유에는 들은
척도 않고 짚이나 나무토막, 먼지 같은 것들만 긁어
모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저와 같이 어떤
자들에게는 하늘나라가 한 우화에 불과하고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이 유일한 실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오. 또한 저 사람이 아래쪽만
내려다보고 다른 곳은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은
세상물질에 온 마음을 쏟으면 그 물질은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뜻이지요.
크리스치아나가 말했다.
"오, 이 쇠스랑으로부터 저를 구원하소서!"
통역관이 대답했다.
"그런 기도는 드리는 사람이 없어서 녹이 슬
지경이라오. '나를 부유하게 마소서.'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만 명 중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하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값진 것이라 생각하여 찾고 구하는
것은 단지 짚이나 나뭇조각, 먼지 따위뿐이라오.'
그 말을 듣고 자비심과 크리스치아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슬프게도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에게 이런 것들을 보여주고 나서 통역관은
그들을 그 집에서 가장 훌륭한 방으로 안내했다. 그
방은 아주 호화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방안으로
들어가자 통역관은 그들에게 방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교훈이 될 만한 것들이 있나 찾아보라고 말했다.
그들은 살펴보고 또 살펴보았으나 한 마리의 커다란
거미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
거미마저 간과해 버렸던 것이다.
그때 자비심이 말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선생님."
그러나 크리스치아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통역관 : 다시 살펴보시오.
그래서 그녀는 다시 살펴보고는 말했다.
"벽에 매달려 있는 흉칙한 거미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자 통역관이 말했다.
"이 넓은 방에 거미 한 마리밖에는 아무것도 없단
말입니까?"
그ㄸ 크리스치아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이해력이 빠른 여인이였다. 그녀가 말했다.
"선생님, 이 방안에는 한 마리 거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 거미가 내뿜는 것보다 훨씬 더 해로운
독을 품고 있는 거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자 통역관이 기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옳게 말씀하셨소."
이 말을 듣자 자비심은 얼굴이 붉어졌고, 아이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들도 결국 그 수수께끼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통역관이 다시 말했다.
"보시다시피 손에 줄을 잡고 다니는 거미조차 왕의
궁전에서 살고 있소. 이와 같은 말씀이 기록돼 있는
것은, 인간이 아무리 죄악이라는 독을 가득 품고
있어도 손에 믿음을 잡고 있기만 하면 하늘나라
궁전의 가장 훌륭한 방에까지도 들어와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오."
크리스치아나가 말했다.
"그런 비슷한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까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거미 같다는 생각, 그리고
아무리 화려한 방 속에서 산다 하더라도 흉칙한 짐승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 거미를 보고, 저
독이 많고 흉칙하게 생긴 벌레를 보고 믿음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배우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거미는 여전히 손으로 줄을 잡고 이 집의
훌륭한 방에서 살고 있군요. 하나님은 아무 것도
헛되게 만들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기쁜 표정이었다. 그러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들은 서로 마주보다가 일제히
통역관에게 절을 했다.
통역관은 다음으로 한 마리의 암탉과 병아리들이
있는 방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서 잠시 살펴보게 했다.
그런데 병아리 한 마리가 방 모퉁이로 가서 물을
마시는데 마실 때마다 번번이 고개를 쳐들고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때 통역관이 말했다. "이 작은
병아리가 어떻게 하고 있나 잘 살펴보시오. 그리고
은혜받음을 감사하는 걸 배우시오. 자, 좀 더
살펴보시오.'
그리하여 그들은 암탉이 하는 일을 유심히
살펴보고는 결국 암탉이 병아리들을 네 가지 방법으로
다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첫째, 보통 부르는 소리가 있는데 하루 종일 그
소리를 낸다.
둘째, 특별히 부르는 소리가 있는데 가끔 그 소리를
낸다.
셋째, 자애로운 음조로 소리를 낸다.
넷째, 큰 소리로 울부짖는다.
통역관이 말했다.
"자! 이 암탉을 당신들의 임금님으로, 그리고
병아리들을 그 임금의 충성스런 백성으로 비교해
보시오. 이 암탉이 하듯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이와 같은 방법으로 대하신답니다. 하루
종일 부르는 보통 소리로는 아무 것도 주시지 않고,
이따금 특별히 부르는 소리를 낼 땐 반드시 무엇인가
주시고, 백성들을 자기 날개 아래로 품으실 때는
자애로운 소리를 내며, 그리고 원수가 가까이 올 때는
크게 소리쳐 경고를 내리시지요. 내가 특별히 두 분을
이 방으로 모셔온 것은 두 분께서는 여성이므로 더욱
쉽게 이해하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치아나가 말했다.
"선생님, 다른 것들도 더 보여주세요."
그래서 통역관은 그들을 도살장으로 안내했는데,
마침 한 도살자가 양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 양은
조금도 버둥거리지 않고 묵묵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통역관이 말했다.
"어떤 부당한 박해라도 원망이나 불평없이 참고
받는 것을 이 양으로부터 배우시오. 얼마나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나, 또한 귀 뒤에서부터 가죽이
벗겨져나가는 고통을 아무 저항 없이 어떻게 견디고
있나를 잘 보십시오. 당신들의 왕께선 당신들을
자기의 양이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그 다음 그는 그들을 정원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정원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 있었다. 그가 말했다.
"이 꽃들이 보이지요?"
크리스치아나가 대답했다.
"예."
그러자 다시 그가 말했다.
"잘 보시오. 꽃들은 그 형태, 품질, 색깔, 향기,
가치가 모두 다 다릅니다. 그리고 훌륭한 꽃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꽃도 있습니다. 그러나 꽃들은
정원사가 심어놓은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으며 서로
다투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그들을 밀과 옥수수가 심어져 있는
밭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니 이삭은
모두 잘려나가고 밀짚만 남아 있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이 밭에는 거름을 주고 땅을 갈아 씨를 뿌렸지요.
그러나 이렇게 밀짚만 남아 있으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크리스치아나가 대답했다.
"일부는 태워버리고 나머지는 퇴비나 만들어야죠."
그러자 통역관이 다시 말했다.
"보시다시피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이삭인데
그것이 없으니 불에 태우거나 사람의 발에 밟혀 썩게
하는 수밖에 없지요. 당신들도 저주받지 않게
조심하시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귀여운 울새 한
마리가 입에 커다란 거미를 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통역관이 말했다.
"여기를 보시오."
그 모습을 보면서 자비심은 어리둥절해 있는데
크리스치아나가 입을 열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새가, 다른 어떤 새보다도 인간과
친밀하게 지내는 저 새가 저런 끔찍한 벌레를
잡아먹고 있다니 참 어울리지 않는군요. 저런 새들은
빵부스러기를 먹거나 아니면 다른 해롭지 않은 것을
먹으리라 생각했는데요. 저런 모습을 보니 정이 뚝
떨어집니다."
그러자 통역관이 대답했다.
"이 귀여운 울새는 어떤 신앙고백자들의 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 그들은 이
울새처럼 목소리도 예쁘고 그 색깔이나 몸짓도
곱지요. 그들은 또한 다른 진실한 신앙고백자들을
매우 사랑하고 나아가 그들과 친밀하게 사귀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마치 착한 사람이 먹는
빵부스러기를 먹고 사는 척하지요. 그들은 또한
믿음이 깊은 사람이나 주로부터 임명받은 사람들의
집을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홀로 있을
때는 울새가 거미를 잡아먹듯이 식성을 바꾸어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집어삼키며 부정한 짓을 쉽게
저지르고 물을 마시듯 쉽게 죄악을 저지릅니다."
그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직까지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크리스치아나는 다른 유익한 것들을 더 보여주든가,
아니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통역관에게 간청을 했다.
그래서 통역관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암퇘지는 살이 찔수록 진흙구덩이를 좋아하고
황소는 살이 찔수록 도살장에 먼저 끌려가게 되며
인간의 육체는 건강할수록 쉽게 악에 빠지는 법이오.
여자들에겐 곱게 꾸미고 단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욕망이 있는데 하나님 앞에 나갈 때도 그렇게
단장하고 나가는 것이 값진 일입니다.
하루 이틀 밤을 새우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일년
내내 밤을 새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오. 마찬가지로
처음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쉽지만 그 신앙을
끝까지 지킨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입니다.
선장이라면 누구든 배가 폭풍에 시달릴 때 그
배에서 가장 하찮은 물건을 먼저 바다에 던져버릴
것입니다. 그 누가 가장 값진 것을 먼저
던져버리겠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아니고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배에 구멍 하나만 나도 그 배는 가라앉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단 한 가지의 죄악만 지어도
파멸하게 될 것입니다.
친구를 잊어버리는 자는 자신의 신의를 짓밟은 데
불과하지만, 자기의 구세주를 잊어버리는 자는
자신에게 불경스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살면서 죽은 후의 행복을 바라는 자는
깜부기를 심고 나서 추수 때 자기 곳간을 밀이나
보리로 가득 채우리라고 생각하는 자와
마찬가지입니다.
선한 삶을 살려는 자는 자신의 최후의 날을
끌어다놓고는 항상 그와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쑤군거리는 것과 생각을 바꾸는 것은 이 세상에
죄가 존재한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볍게 보시는 이 세상을 살 가치가
있다고들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추천하시는 하늘나라는
얼마나 더 가치가 있겠습니까?
수많은 괴로움을 수반하는 이 삶을 포기하기 싫다면
천당의 생활은 어떻겠습니까?
누구나 사람의 선행을 추켜올리기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추앙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몇이나 있습니까?
우리는 가끔 식사를 하고 음식을 남길 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온 세상
사람들의 요구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풍부한 가치와
의로움이 있는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통역관은 다시 그들을 데리고 정원으로
나가서 속은 다 썩어서 텅 비었으나 잎이 무성한
나무를 보여주었다. 자비심이 물었다.
"이것은 무슨 뜻이죠?"
그가 대답했다.
"겉은 훌륭하지만 속이 썩은 이 나무는 하나님의
정원 안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침이 마르도록
찬양하면서도 하나님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그 잎은 무성하지만 속은 하나도 쓸모가 없어
악마의 부시통에 담을 부싯깃밖에 되지 않습니다."
마침내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식탁 위에 음식을
차려놓았다. 그들은 식탁에 앉아 한 사람이 감사의
기도를 올린 후에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통역관은
자기집에 유숙하는 사람들이 식사할 때 음악을
들려주기를 좋아했으므로 음유시인들을 불러 연주를
하게 했다. 그들 가운데에는 노래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목소리가 매우 아름다웠다.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주님만이 나의 부양자,
나를 먹여 살리시네.
나 이제 부족한 것 하나 없으니
무엇을 더 요구하리오?
노래와 음악이 끝나자 통역관은 어떤 동기로 해서
순례의 첫걸음을 떼어놓게 되었는가를 물었다.
크리스치아나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남편을 잃은 것이 생각나서 몹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그런 슬픔은 자연스런 감정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후에 남편이 겪었던 그
고통과 순례의 열정이 내 마음속에 떠오르면서 그에게
얼마나 냉혹하게 대했던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됐고,
연못에 빠져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남편이 아주 편안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을 꿈에서 보게
됐고, 남편이 살고 있는 나라의 왕께서 그에게 오라는
편지를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그 꿈과 편지가 온통 제
마음을 사로잡아 이 길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습니다."
통역관 : 길을 떠나기 전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습니까?
크리스치아나 : 방해를 받았습니다. 이웃사람
가운데 겁쟁이 부인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부인은 사자가 무서우니 되돌아가자고 제 남편을 꾀던
자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떠나려는 여행을
바보같은 모험일 뿐이라고 하면서 제 남편이 겪었던
온갖 시련과 고통을 말해 주면서 어떻게든 여행을
만류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모든 방해를
슬기롭게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제 계획을
좌절시키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듯한 두 악한을
꿈에서 보고는 매우 두려웠습니다. 아직도 그들의
모습이 마음속에 남아 있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무섭고, 그들이 혹시 나를 해치거나 엉뚱한 길로 가게
하지나 않을까 겁이 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지만 선생님께는 솔직히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이 길로 들어서는 문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너무나 무서운 습격을
당해서 사람 살리라고 소리쳤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습격해 온 두 악한은 바로 제가 꿈속에서
본 그자들 같았습니다.
그러자 통역관이 말했다.
"당신은 시작이 좋았으니 결말은 더욱더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비심에게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아가씨는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까?"
그러자 자비심은 얼굴이 붉어지며 잠시 말을 못하고
몸을 떨었다. 통역관이 다시 말했다.
"두려워 마시오. 오직 믿음을 가지고 그대 마음속에
있는 것을 이야기해 보시오."
그리하여 그녀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선생님, 사실 저는 경험이 없어서 침묵을 지키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경험 부족이 결국 나를 망치게
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저는 동료인 크리스치아나
부인이 겪은 것과 같은 계시나 꿈도 꾸지 못했어요.
그리고 선한 친척들의 권고를 뿌리친 것에 대해
슬퍼할 만한 어떤 것도 없습니다."
통역관 : 그렇다면 아가씨, 당신은 어떤 것에
설복하여 이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된 것입니까?
자비심 : 글쎄요. 여기 계시는 이분이 마을을
떠나려고 짐을 싸고 있을 때 저는 다른 한 사람과
함께 우연히 이분의 집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보니
짐을 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분 말씀이 자기 남편한테로
오라는 초청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꿈속에서 자기
남편이 왕관을 쓴 영생자들과 함께 손에 하프를 들고
왕자의 식탁에 함께 앉아 먹고 마시며 자기를
그곳으로 이끌어주신 분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말들을 듣고 있는 동안 제 마음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만약 이분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나는 부모와 고향을 버리겠다.
그리고 갈 수 있다면 크리스치아나와 함께
가겠다.'라고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분께 더 많은 진실을 가르쳐달라고
말하면서, 나도 함께 데리고 갈 수 있느냐고
여쭤보았습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이제 더 이상
파멸의 위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길을 떠나게 되자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그것은 떠나기 싫은 길을
떠나서가 아니라 뒤에 남겨둔 많은 친척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심정은 어떻게
해서든지 크리스치아나 아주머니와 함께 그분의
남편과 왕께서 계신 곳까지 따라가려는 마음뿐입니다.
통역관 : 아가씨의 출발은 잘된 것이오. 당신은
진리를 믿었으니까요. 당신은 나오미와 그녀의
하나님인 야훼를 사랑하여 부모와 고향을 등지고 낯선
곳으로 갔던 룻과 같은 여인이오.
'야훼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상하기를 원한다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보상을 해주시기를 원하노라.'
그때 저녁식사가 끝나고 잠자리가 준비되었다.
여자들은 따로 떨어져 누웠고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누웠다. 그런데 자비심은 잠자리에 들었으나 너무
기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목적지까지 다 가서
실패하지나 않을까 하는 의혹이 그 어느 때보다 멀리
사라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리에 누운 채
자기에게 그토록 큰 은총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찬양과 축복을 올리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침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난 그들은 곧 떠날
채비를 차렸다. 그러자 통역관이 잠시 더 머물러
있기를 청하며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질서를 지켜야 하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처음에 그들에게 문을 열어준
처녀에게 말했다.
"이분들을 정원의 목욕탕으로 모셔 목욕을 하게
해드려라. 여행 도중에 묻은 먼지와 때를 말끔히 씻어
깨끗하고 청결하게 하도록 말이다."
그러자 순결함이라고 불리는 그 처녀가 그들을
정원의 목욕탕으로 데리고 가서는 목욕을 하라고
말했다. 집주인은 자기집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순례의
길을 다시 떠나기 전에 꼭 몸을 깨끗이 씻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이들까지 데리고 들어가
몸을 닦았다. 목욕을 하고 나오자 몸이 깨끗해지고
상쾌해진 것은 물론 온몸이 활기 넘치고
원기왕성해졌다. 목욕하기 전보다 그들의 모습은 훨씬
더 아름다웠다.
목욕을 마치고 돌아오자 통역관이 그들을 맞이하며
말했다.
"달처럼 아름답구나."
그러고는 자기집에서 목욕을 한 이들에게 찍어주게
되어 있는 도장을 가져오도록 했다. 도장을 가져오자
그들이 앞으로 어디를 가든지 증거로 삼을 수 있도록
얼굴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 도장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먹었던 유월절 떡의
알맹이요 모든 것으로서 두 눈 사이에 찍는 것이었다.
이 도장은 얼굴에 단 장신구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더 아름답게 보였다. 그것은 또한 그들의
품위까지 높여줘서 천사들처럼 보이게 해주었다.
통역관은 두 여인을 시중드는 처녀에게 다시
말했다.
"제의방에 들어가서 이분들이 입을 옷을
가져오너라."
그녀는 제의방에서 흰 옷을 꺼내왔다. 그는
그들에게 그 옷을 입으라고 말했다. 그것은 희고
깨끗한 삼베로 만든 옷이었다. 옷을 다 입고 나자 두
여인은 서로 상대방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서로
자기자신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모습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 상대방이 자기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말했다.
"매우 아름답군요."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당신이 나보다 더 아름다워요."
아이들도 자기 어머니와 자비심의 아름다운 모습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서 있었다.
그제서야 통역관은 위대한 마음이라는 남자하인을
불러 칼과 투구와 방패로 무장하라고 지시하고는
말했다.
"나의 딸들을 데리고 아름다운 집에까지 안내해
드려라. 다음에 그 집에서 투숙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무장을 하고 그들 앞에 섰다.
통역관이 말했다.
"여행길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그와 함께 있던 다른 식구들도 모두 나와 온갖
축복의 말로 인사를 했다. 그들은 순례의 길을 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이곳은 우리 여행의 두번째 발판,
여기에서 우리는 보고 들었다네
오랜 세월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는
감춰져 왔던 훌륭한 것들을.
거름 헤치는 쇠스랑을 든 사람,
거미, 암탉 그리고 병아리들이
내게 한 가지씩 교훈을 주었으니
나 그 교훈을 따르리라.
도살자, 정원 그리고 그 들판,
울새와 그 먹이
또한 속이 썩은 나무 등이
내게 중요한 교훈을 심어주었네.
언제나 깨어 기도하게,
언제나 성실하도록 애를 쓰게,
날마다 나의 십자가를 지게
그리고 두려움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네.
나는 꿈속에서 그들이 위대한 마음을 앞세우고 그
뒤를 따라 계속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마침내
그들은 크리스찬이 지고 있던 짐이 저절로 벗겨져
무덤 속으로 굴러들어갔던 바로 그 장소에 다다랐다.
거기에서 그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쉬면서
하나님을 찬양했다. 크리스치아나가 말했다.
"좁은 문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르는군요. 즉
우리는 말과 행위로써 용서를 받아야 하는데 말로
받는다는 것은 약속에 의해 받는 것이고, 행위로
받는다는 것은 그 용서가 성취된 방법에 의한다는
말이었지요. 약속으로 용서받는다는 뜻은 언뜻 짐작이
가는데 행위에 의해 용서받는다는 것은, 즉 용서가
성취된 방법에 의해서 용서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위대한 마음 씨, 당신은 알고
계시겠지요? 그점에 대해서 좀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위대한 마음 : 행위로 용서받는다는 말은 용서받을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이
행한 행위로 용서받는다는 말입니다. 좀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당신이나 자비심이나 아이들이 받는
용서는 그들 자신의 행위로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위에 의해서, 즉 당신들을 좁은 문으로
들어오게 하신 분의 행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이중의 길을 통해 그분은 용서를
성취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들의 죄를 감싸기 위해서
의로움을 행하셨고 당신들의 죄를 씻어주기 위해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크리스치아나 : 하지만 만일 그분이 자기의
의로움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셨다면 그분 자신을 위한
의로움은 남아 있지 않을 것 아닙니까?
위대한 마음 : 그분의 의로움은 당신의 요구를
채우고도 또 그분 자신의 요구를 채우고도 남음이
있지요.
크리스치아나 :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위대한 마음 : 기꺼이 해드리죠. 그러나 우선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분은 세상에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분이라는 걸 먼저 전제로
해야만 합니다. 그분은 한 인격에 두 개의 본성을
지니고 계신데, 그 두 개의 본성은 분명하게 구분은
되지만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지요. 그 각각의
본성에는 제각기 의로움이 있으며, 그 각각의
의로움은그 본성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정의나 의로움을 그것으로부터 분리시킨다는 것은 곧
그 본성 자체를 사멸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개의 의로움이, 혹은 그 중의 하나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전수돼 우리로 하여금 정의롭게 살도록
만들어준다고 해서 우리가 그 의로움의 한 부분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분에게는 두 가지 외에
또 하나의 의로움이 있습니다. 그 두 본성이 합쳐져
하나가 됐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인성과는
구별되는 신성만의 의로움은 아니며 또한 신성과는
구별되는 인성만의 의로움은 아니지요. 오히려 두
본성의 합일 하에 존재하는 의로움, 즉 하나님께서
그분께 위촉하신 중개자로서의 사명을 다 이루게 하기
위해 따로 준비하신 의로움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할
것입니다. 만약 그분이 첫번째 외로움을 나눠주신다면
그것은 그분의 신성을 나눠주시는 것이요, 두번째
의로움을 나눠주신다면 그것은 자신의 순수한 인성을
나눠주시는 것이며, 세번째 의로움을 나눠주신다면
그것은 중개자로서의 사명을 실현케 할 그 완전성을
나눠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하나님이
나타내신 뜻을 성취하거나, 그에 복종하여 죄인들
위에 펴시고 그들의 죄를 덮어줄 또 다른 의로움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써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크리스치아나 : 그럼 다른 의로움들은 우리에게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일까요?
위대한 마음 : 그렇지는 않지요. 그 의로움들은
그분의 본성과 사명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누어가질 수 없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을 의롭게
하는 그 의로움이 바로 그 의로움들이 가진 힘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지요. 그분의 신성의 의로움은
순종의 힘이 되고, 인성의 의로움은 의롭게 하는 일에
순종할 능력을 주며, 이 두 본성의 일치위에 세워진
의로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명을 실행하는
데 권위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께는 필요하지 않은
의로움도 있지요. 그분은 그것 없이도 하나님이기
때문이지요.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께 필요하지 않은
의로움도 있지요. 그것 없이도 그분은 완전한
인간이시니까요. 또한 신이자 인간이신 그리스도께
필요하지 않은 의로움도 있습니다. 그것 없이도
그분은 완전하신 분이니까요. 그러므로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나,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
신이자 인간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자신에
관련되는 의로움은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따라서 그분은 자신에겐 필요가 없는 그 정당한
의로움을 나눠주실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것을
의로움의 선물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이 의로움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율법 아래서
이루신 것이므로 나누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그분으로 하여금 의롭게 행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남에게 분배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율법대로 한다면 두벌의 옷을
가졌을 때 한 벌은 옷이 없는 자에게 주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지금 두 벌의 옷을 가지고
계신데, 하나는 자신을 위한 옷이고 또 하나는 나누어
주기 위한 것이지요. 그래서 그분은 지금 없는
사람에게 무상으로 분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치아나, 자비심 그리고 여기 이 아이들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다른 분의 행위 또는 행적으로
용서함을 받은 것이란 말입니다. 당신들의 주
그리스도께서는 일을 하시고, 그 일에 따라 거두어진
수확을 다음에 만나는 거지들에게 나누어주시는 그런
분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분의 행위로 용서함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어떤 대가가 지불돼야만 합니다. 이를테면
우리를 감쌀 수 있는 무엇이 준비돼야만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우리는 정의로운 율법에 의해
정당한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이 저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 저지른 과오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 대가로 주님께서 우리 대신 피를
흘리며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자신의
피로 당신들의 죄의 값을 보상하셨고, 그 의로움으로
당신들의 더러워지고 추한 영혼을 감싸주셨습니다. 그
대가로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 날에 당신들을
불문에 부쳐 처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크리스치아나 : 훌륭한 말씀입니다. 말씀과 행위로
죄의 사함을 받았다는 말에 이제 조금 깨닫게
됐습니다. 착한 자비심이여, 우리 이 뜻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도록 노력합시다. 그리고 얘들아, 너희들도
이 뜻을 명심하도록 해라. 그런데 선생님, 제 남편이
등의 짐이 벗겨져 세 번이나 기쁨에 넘쳐 뛰었던 것도
바로 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위대한 마음 : 그렇습니다. 다른 어떤 수단으로도
끊을 수 없던 그 줄을 끊은 것은 바로 그 사실에 대한
믿음이었지요. 당신의 남편이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짐을 진 채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것은 그 가치를
스스로 체득케 함이었습니다.
크리스치아나 :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전에도
즐겁고 기뻤던 적은 있었지만 지금만큼 기쁘고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별로
느껴보지 못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진
자라도 이곳에 와서 내가 본 것을 보고 믿기만 한다면
그의 마음은 틀림없이 더욱 즐겁고 활기에 넘치게 될
것입니다.
위대한 마음 : 이러한 것들을 보고 생각해 봄으로써
우리는 위안을 얻고 짐을 벗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소중한 애정이 솟아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죄를
사해 주는 것이 약속만으로가 아니라 앞에서 말한
대로 그런 일들로 인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그 누가 피
흘리심으로 속죄해 주신 그분을 경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크리스치아나 : 옳은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저를
위해 피를 흘리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제 가슴에서도
피가 흐르는 것 같습니다. 오, 사랑하는 주님! 오
축복받으신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소유할 권리가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제가 가치있는 것보다 만 배도
더 되는 값을 치르고 저를 사셨습니다. 주님의 그
모든 행위가 제 남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하고
동시에 어려운 길을 서둘러가게 한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 없사옵니다. 그가 그토록 함께 떠나자
했건만 저는 끝내 천박한 존재가 되어 그를 홀로 떠나
보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 자비심이여! 당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여기 함께 계신다면! 그리고
겁쟁이 부인도. 내가 진심으로 바라건대 마담
음탕함도 여기 함께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분명히 그들의 마음도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아무리 겁이 많더라도, 아무리 강력한
욕망이 살아난다 하더라도 그들은 순례자의 길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위대한 마음 : 지금 당신은 뜨거운 감동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런 감동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그런
감동은 모든 사람에게 다 통하는 것도 아니고, 또
예수께서 피를 흘리시는 것을 본 사람이라고 다 겪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곁에 서서 그분의 가슴에서 피가 솟아 땅으로 흐르는
것을 보고도 애통해 하기는커녕 그를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의 제자가 되기는커녕 그분을 부인하는
마음을 더욱 단단히 한 사람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특별히 이런 감동을 느끼는 것은
내가 말한 모든 것을 머리 속에 남아 있도록
만들어주는 신성한 신의 섭리에 의한 것입니다. 어미
닭이 보통 소리로 꼬꼬꼬 부르는 것은 병아리들에게
모이를 주려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시오. 지금
당신들은 특별한 은총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꿈속에서 그들이 계속 걸어서 마침내
크리스찬이 순례의 길을 가다가 바보, 게으름뱅이
그리고 철면피가 잠들어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한 바로
그 장소에 도착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세 사람은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철사로
목매달려 있었다. 자비심이 안내자에게 말했다.
"저 세 사람은 누구죠? 왜 저렇게 목매달려
있습니까?"
위대한 마음 : 저 세 사람은 원래 성질이 아주 나쁜
사람들이었지요. 그들은 순례자가 될 마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마다 순례자가 되지 못하게
훼방을 놓았습니다. 그들은 게으르고 어리석었으며
남들까지 그렇게 만들려고 애를 썼고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고 가르치기까지 했지요. 크리스찬이 이곳을
지나갈 때는 잠들어 있었는데 지금은 저렇게 목매달려
있군요.
자비심 : 그래, 저 사람들의 꾐에 넘어간 사람이
있었나요?
위대한 마음 : 물론이지요. 그들은 적지 않은
사람들을 바른길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설득하여 자기들과 같은 행동을 하게 만든
사람 가운데는 '느림보'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헐떡거림'이라는 사람, '마음이 없음(No-heart)',
'호색한(Linger-after-lust)', '멍청이',
'굼벵이'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여자 등이 그의 꾐에
넘어갔지요. 게다가 그들은 당신들의 주님에 대해
악선전을 하면서, 그가 일꾼을 혹사하는 현장
감독이라고 떠들어댔습니다. 거룩한 땅에 대해서도
그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만큼 그렇게 좋은 곳은
결코 아니라고 악평을 일삼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의 사도들을 중상모략하여 사도들 중에서
훌륭한 이들을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귀찮은
존재들이라고 규정하기도 했지요.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빵을 껍데기라 부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안락을 환상에 불과하다고 했으며, 그리고
순례자들의 노력과 순례 그 자체를 아무 목적도 없는
헛된 일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크리스치아나 : 그랬었군요. 그들이 그런
자들이라면 저렇게 비참하게 죽은 것에 대해 조금도
불쌍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겠군요. 그들은 당연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들의 시체를
이처럼 길가에 매달아놓아 다른 사람들이 보고 경고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아주 못된 짓을 하던 장소에
그들의 죄상을 기록한 철판이나 동판을 새겨 두어
다른 악한 놈들에게 경고하는 것이 되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습니다.
위대한 마음 : 물론 그런 게 세워져 있지요. 좀더
담 쪽으로 가까이 가면 잘 보일 겁니다.
자비심 : 아니, 차라리 그들을 저렇게 매달려 있게
하고 그 이름은 썩게 하며 그들의 죄상은 영원히 살아
있게 하여 그들을 괴롭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도착하기 전에 저놈들이 목매달린 것은 정말
다행입니다. 안 그랬으면 우리같이 연약한 여자들에게
어떤 몹쓸 짓을 했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거기 그렇게 목매달려 있는 세 사람,
당신들은 진리를 거역하는 인간들에게
경고해 주는 본보기로다.
우리 뒤에 따라오는 자 중에
순례자의 벗이 되지 않는 자는
이처럼 될 것을 두려워하라.
그리고 그대 나의 영혼아,
마음속 깊이 새겨 조심하여라,
거룩하고 신성한 주님을 거역하는 자들은
모두 저런 모습이 되리라는 것을.
그들은 계속 길을 걸어서 고생길 언덕의 기슭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그들의 훌륭한 친구인 위대한
마음은 다시 기회를 틈타 그들에게 크리스찬이 그곳을
지날 때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는 우선
그들을 우물가로 데리고 가서 말했다.
"이것 좀 보시오. 이곳은 크리스찬이 언덕을 오르기
전에 물을 마셨던 우물입니다. 그때 이 우물은 맑고
ㄲ끗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순례자들이 물을 마셔
갈증에서 벗어나는 것을 시기하는 사람들의 발끝에
더러워져 있습니다."
그러자 자비심이 물었다.
"왜 그렇게 시기했을까요?"
안내자가 대답했다.
"더럽기는 하지만 물을 떠서 깨끗하고 좋은 그릇에
담아놓으십시오. 그러면 흙탕물이 바닥으로 가라앉아
물은 자연히 맑아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크리스치아나와 그 일행들은 위대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물을 떠서 항아리에 담아두었다가
흙이 바닥에 가라앉은 다음에 마셨다.
그 다음에 그는 그들에게 언덕의 기슭에 있는 두
갈래 길을 보여주었다. 그곳은 전에 형식주의자와
위선자가 길을 잃었던 곳이었다.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이 길은 위험합니다. 크리스찬이 이리로 지나갈 때
그들 두 사람은 길을 잘못 들어섰었지요. 보시다시피
이 길은 지금 쇠사슬과 말뚝, 도랑으로 막혀 있지만
언덕을 오르는 고생이 싫어서 이 길로 접어드는
어리석은 자들이 아직도 있답니다."
크리스치아나 : 죄를 범하는 자들의 길은
험하느니라. 그들의 목이 부러질지도 모르는 위험을
느끼지 못하고 그런 길을 갈 수 있다는 게 기이한
일이죠.
위대한 마음 : 개중에는 왕의 사도들이 그들을 보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일러주어도
무턱대고 모험을 하려는 자들도 있지요. 그럴 때마다
그들은 오히려 반발하며 이렇게 욕설을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대가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는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입으로 낸
모든 말들은 꼭 실행하리라."
자세히 보면 지금 이 길은 쇠사슬과 말뚝,
도랑으로만 막아 놓은 것이 아니라 울타리까지
쌓아놓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길을
따라가겠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치아나 : 그들은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애쓰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언덕을 똑바로
오른다는 것은 그들에게 불쾌할 뿐입니다. 그들에게서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와 같다.'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천국으로 가는 길인 이 언덕을 오르는 대신 함정이
놓여진 길을 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꼭대기에 미처 오르기도 전에 크리스치아나는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이 언덕은 정말로 숨이 막힐 정도로 가파르군요.
자신의 영혼보다 육체적인 편안함을 더 좋아하는
자들이 좀더 평탄한 길을 고르는 것도 당연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자비심이 말했다.
"좀 앉아서 쉬어야겠습니다."
마침내 아이들도 칭얼대기 시작했다. 위대한 마음이
재촉하여 말했다.
"자자, 어서 갑시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안 됩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왕자님의 정자가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막내아이의 손을 잡고 언덕을
올라갔다.
정자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버티고 서 있을
힘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지독한 더위에 지쳐
있었다. 자비심이 말했다.
"쉰다는 것이 이렇게 달콤한 걸. 순례자들의
왕자님이야말로 참으로 좋은 분이시군요. 순례자들을
위해서 이렇게 휴식처를 마련해 주셨으니 말입니다.
이 정자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잠들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전에 크리스찬께서 잠에
빠졌다가 큰 대가를 치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위대한 마음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자, 귀여운 꼬마들아. 기분이 좀 어떠냐? 이제
순례의 길을 간다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니?"
막내가 말했다.
"아저씨, 전 너무 힘들어서 죽을 뻔했어요. 그런데
그때 마침 제 손을 잡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야
전에 어머니께서 제게 해주셨던 말이 생각납니다.
어머니는 하늘나라에 가는 길은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과 같고, 지옥으로 가는 길은 언덕을 내려가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덕을 내려가
죽느니 사다리를 올라가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자비심이 말했다.
"하지만 속담에 '언덕을 내려가는 것이 쉽다.'는
말이 있지."
그 말에 막내아이인 제임스가 말했다.
"제 생각에는 언덕을 내려가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
될 그날이 올 것 같습니다."
"영리한 아이로구나."
안내자가 말했다.
"네가 자비심의 말에 옳게 대답했다."
그러자 자비심은 미소를 띄웠고 아이는 얼굴을
붉혔다. 크리스치아나가 말했다.
"자, 앉아서 쉬는 동안에 입맛이라도 돋우게 뭐 좀
먹겠니? 통역관의 집 문을 나설 때 그분이 내 손에
쥐어준 석류알 하나가 여기 있다. 그분은 또한 꿀
한줌하고 작은 병에 술도 담아주셨단다."
자비심이 말했다.
"그때 그분이 당신을 옆으로 잠깐 데리고 가는 것을
보고 나는 무엇인가 주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요. 그분이 주셨어요. 하지만 자비심 양.
우리가 처음 집을 떠날 때 내가 약속한 것을
지켜야겠군요. 당신이 기꺼이 내 동행자가 돼주셨으니
내가 모든 것을 당신과 나누겠어요."
크리스치아나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었다. 자비심과 아이들도 함께 음식을
먹었다. 크리스치아나가 위대한 마음에게 말했다.
"함께 좀 드시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들은 순례의 길을 계속 가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나는 곧 돌아갈 몸이오. 그 음식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런 음식을 집에서 매일
먹는답니다."
음식을 먹고 마신 후 조금 잡담을 나누고 나자
안내자가 그들에게 말했다.
"날이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길 떠날
준비를 합시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들을 앞세우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크리스치아나는 그만 술병을
가져오는 걸 깜빡 잊고 말았다. 그녀는 어린 아들에게
되돌아가서 그것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그러자
자비심이 말했다.
"여기는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곳인가봐요.
크리스찬께서는 여기에서 두루마리를 잃어버리셨고
크리스치아나께서는 술병을 잊어버리고 오셨으니
말입니다. 선생님, 이건 무슨 까닭이죠?"
그러자 그들의 안내자가 대답했다.
"그 원인은 잠과 건망증이지요. 어떤 사람은 깨어
있어야 할 때 잠을 자고, 어떤 사람은 기억해야 할 때
잊어버리는 일이 이따금 있지요. 바로 이 때문에
휴식처에서 순례자들이 간혹 뭔가 잃어버리곤
한답니다. 순례자들은 가장 기쁜 순간에도 전에
받았던 물건들을 잘 간수하고 기억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해서 가끔 그들의 즐거움은
눈물로 끝나고 유쾌한 마음은 우울증으로 바뀌곤
하지요. 이곳에서 크리스찬이 당했던 이야기가 바로
내 말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불신과 겁쟁이가 사자가 무서우니
되돌아가라고 크리스찬을 유혹하던 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처형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처형대
앞 길 쪽으로 널찍한 게시판이 하나 서 있었는데, 그
게시판 위 쪽에는 시가 한 수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왜 그곳에 처형대를 설치하게 되었는지
설명되어 있었다. 그 시는 다음과 같았다.
이 처형대를 보는 자,
그 마음과 혀를 삼갈 일이다.
만일 그러지 아니하면
예전에 벌받은 이들처럼 여기에서
처형을 당할 것이니.
그 시 아래쪽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이 처형대는 겁을 먹거나 불신을 하여 계속
순례여행하기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여기에 세운 것이다. 바로 이 자리에서 크리스찬의
여행을 방해하려고 했던 불신과 겁쟁이가 불에 달군
쇠막대로 혀를 지지는 형을 받았다.'
그때 자비심이 말했다.
"이 문구는 사랑하는 이의 말과 대단히 비슷하군요.
'너 사악한 혓바닥이여, 네게 무엇을 주면 네게 어떤
일을 하게 할 것인고?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노간주나무의 숯불이로다.'라는 말과 말입니다."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나 사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때까지 앞으로 나아갔다. 위대한 마음은 강한
사람이었으므로 사자를 겁내지 않았다. 그러나 사자가
있는 곳에 다가가자 앞서가던 아이들은 무서워서 뒤를
보며 서 있다가 어른들 뒤에 붙어 따라갔다. 그것을
보고 그들을 안내하던 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무 위험도 없을 때는 앞서가기 좋아하더니
사자가 나타나니까 뒤로 꽁무니를 빼는구나."
그들은 계속 나아갔다. 위대한 마음은 사자를
무찌르고서라도 순례자들에게 길을 내줄 마음으로
칼을 빼들었다. 그때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는
순례자들을 안내하고 있는 위대한 마음에게 말했다.
"여기는 무엇 때문에 왔소?"
그 사나이는 거인족 출신으로 이름은
'험상ㄱ은'이라고도 하고 '피투성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그가 순례자들을 잔인하게 죽여왔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 순례자들을 안내하던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이 여인들과 아이들은 순례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길은 그들이 꼭 가야만 하는 길이므로
당신이나 사자들이 버티고 서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이 길을 반드시 지나가게 될 것이다."
피투성이 : 이 길은 그들의 길이 아니다. 또한
절대로 이 길로는 지나가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들을
막기 위해서 여기에 왔으며 사자들 편을 들겠다.
사실 이 길목을 지키는 사자들이 너무 무섭고 또
그들을 도와주는 흉칙한 사나이가 있었기 때문에
한동안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나지 않았으므로 길
위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러자
크리스치아나가 말했다.
"비록 지금까지 이 큰길로 지나간 사람이 없었고
나그네들도 샛길로 지나가도록 강요받았다 하더라도
내가 일어선 이상 그렇게는 안 될 것이오. 나는 이제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어 이렇게 서 있단 말이오."
그러자 피투성이는 사자들을 믿고 맹세하기를, 결코
지나가는 것을 허락치 않을 테니 이 길로
지나가겠다는 생각을 단념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위대한 마음이 먼저 피투성이에게 달려들어
칼로 힘껏 내리쳤다. 그는 뒤로 물러섰다. 그러면서
사자들을 부추길 양으로 말했다.
"그래, 내 영역에서 나를 죽일 셈이냐?"
위대한 마음 :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은 임금님의
길인데 너는 바로 이 길에 사자를 풀어놓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이 여인들과 아이들이 연약하기는
하지만 사자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을 뿐더러 이 길을
가고 말 테니 그리 알아라.
이 말과 함께 그는 또다시 피투성이를 내리쳐
무릎을 꿇게 했다. 이 한방에 투구가 부숴졌고,
그리고 다음 한방에 피투성이의 팔 하나가
잘려나갔다. 그러자 거인은 소름끼치는 비명소리를
내였는데 그 소리에 여자들은 무서워 떨었다. 그러나
그들은 피투성이가 땅에 쓰러져 뒹구는 것을 보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사자들도 사슬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덤벼들지 못햇다. 마침내 사자들
편을 들려던 피투성이가 죽게 되자 위대한 마음은
순례자들에게 말했다.
"자, 나를 따라오시오. 사자들은 당신들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못할 것이오."
그리하여 그들은 계속 걸어갔다. 사자들 곁을 지날
때 여인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아이들은 죽을 상이
되어 벌벌 떨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침내 사자 곁을
무사히 지나갔다.
이윽고 그들은 문지기네 오두막이 보이는 곳까지
왔다. 밤중에 그곳을 걸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으므로 그들은 걸음을 더욱 재촉하여 문 앞에
이르렀다. 안내자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문지기의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요?"
"나요, 나."
안내자가 대답했다.
목소리를 곧 알아차린 문지기가 문루에서 내려왔다.
그 안내자는 이미 여러 번 순례자들을 보호하고
안내하여 그곳에 갔었기 ㄸ문이었다. 문루에서 내려온
그는 문을 열고 문 앞에 서 있는 안내자를 보았다.
그때까지 그는 뒤에 떨어져 있는 여인들을 미처 보지
못했다. 그가 안내자에게 말했다.
"위대한 마음, 안녕하시오? 그런데 이렇게 밤 늦게
웬일입니까?"
그가 대답했다.
"순례자 몇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따라 이곳에서 쉬어야겠습니다. 오는 길에 사자들
편을 들던 거인과 결투만 하지 않았어도 좀더 일찍 올
수 있었을 것이오. 하지만 끈질기게 싸운 끝에 그놈을
해치우고 순례자들을 안전하게 데리고 왔습니다."
문지기 : 들어오셔서 하룻밤 쉬시고 내일 아침에
떠나시지요?
위대한 마음 : 안 됩니다. 오늘 밤 안으로 주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크리스치아나 : 오, 선생님. 이렇게 헤어져야
하다니요. 우리를 그토록 믿음직스럽게 대해 주셨고,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며 우리의 안전을 위해 그토록
용감하게 싸워주시고 자상하게 권고를
해주셨는데....... 진심으로 우리를 위해 보여주신 그
모든 호의를 저는 결고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자 자비심도 말했다.
"오, 여행이 끝날 때까지 저희와 함께 가주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희들처럼 연약한 여자들이
이처럼 험난하기만 한 길을 친구나 보호자 없이
어떻게 갈 수 있겠어요?"
아이들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린 제임스도 거들었다.
"아저씨, 제발 우리와 함께 가면서 저희를
도와주세요. 우리들은 모두 약하고 더구나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보시다시피 위험하기만 하니까요."
위대한 마음 : 나는 주님의 명령대로 움직일
뿐입니다. 만일 그분께서 당신네들을 끝까지
안내하라고 하셨다면 나는 기꺼이 동행할 것입니다.
그분께서 내게 당신들을 이곳까지 안내해 주라고
명령하실 때, 당신들은 여행의 목적지 끝까지 나를
동행시켜달라고 주님께 빌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분은 당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셨을
것입니다. 어쨌든 나는 여기서 물러가야 합니다. 자,
착하신 크리스치아나, 자비심 양 그리고 나의 귀여운
아이들아, 안녕.
그러자 문지기 경계함이 크리스치아나에게 고향이
어디며 친척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저는 멸망의 도시에서 왔습니다. 남편은
돌아가셨으니 전 과부지요. 남편 이름은 순례자
크리스찬입니다."
"뭐라고요?"
문지기가 놀라 물었다.
"당신이 그의 아내란 말이오?"
그녀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그의
자식들입니다. 이 아가씨는 제 동향 사람이지요."
문지기는 그럴 때 늘 하던 대로 종을 울렸다.
그러자 처녀 한 사람이 문간에 나타났는데 그녀의
이름은 '겸손함'이었다. 문지기가 그녀에게 말했다.
"크리스찬의 아내 크리스치아나가 아이들을 데리고
순례의 길을 떠나 지금 여기 왔다고 가서 전해라."
처녀가 안으로 들어가서 그 소식을 전하자 온통
기뻐하는 소리가 떠들썩하게 들렸다.
크리스치아나가 아직 문간에 서 있었으므로 그들은
문지기에게로 급히 달려왔다 그중 예의바른 사람이
그녀에게 말했다.
"들어오세요, 착한 사람의 부인, 크리스찬의
부인이시여. 오신 분들과 함께 어서 들어오십시오."
이리하여 그녀는 안으로 들어갔는데, 아이들과
동행인도 그녀를 따라갔다. 그들은 굉장히 큰 방으로
안내되어 그곳에서 앉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그집의 주인이 손님을 영접했다. 이미 손님이
누구라는 걸 알고 있는 주인은 그들에게 입을 맞추며
인사를 나눈 다음 이렇게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담는 그릇인
당신과 당신 친구들을 모두 환영합니다."
그들은 밤도 깊은데다 긴 여행에 지쳐 있었으며,
피투성이와의 싸움과 흉악한 사자들에게 시달려서
몹시 피곤해 있었다. 그들은 어서 잠자리에 들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그 집안 사람들이 말했다.
"안 됩니다. 우선 요기를 해서 기운을 되찾고
주무셔야 합니다."
그들은 이미 양고기 요리에 쳐서 먹는 양념까지
모두 준비해 놓고 있었다. 문지기가 이미 그들이
떠났다는 소문을 듣고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
준비를 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저녁을
먹은 후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마치고는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크리스치아나가 말했다.
"당돌한 부탁입니다만, 전에 남편이 묵었던 방에서
잘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들은 위로 올라가 모두 한 방에 눕게
되었다. 잠자리에 들자 크리스치아나와 자비심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크리스치아나 : 전에 남편이 길을 떠날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뒤따라오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자비심 : 그리고 그분이 묵으셨던 방에서 그분이
누우셨던 침대에 이렇게 눕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
못하셨겠지요.
크리스치아나 : 그뿐이 아니지요. 마음놓고 그분의
얼굴을 본다거나 그분과 함께 왕이신 우리 주님을
섬기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는데 지금은 그 두
가지 일이 모두 다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자비심 : 잠깐! 저 소리가 들리세요?
크리스치아나 : 예, 들려요.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을
기뻐하는 음악소리같군요.
자비심 : 멋있어요!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을
기뻐하는 음악이 집안에서, 가슴속에서 그리고 또한
하늘나라에서 울리다니요!
그들은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깨어나자 크리스치아나가
자비심에게 말했다.
크리스치아나 : 간밤에 잠을 자면서 빙그레 웃던데
왜 무슨 꿈을 꾸었나요?
자비심 : 예, 꿈을 꾸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달콤한
꿈을요. 그런데 제가 정말로 웃었어요?
크리스치아나 : 그럼요. 아주 즐거운 듯 웃던 걸요.
자비심 양, 그 꿈 이야기 좀 한번 해봐요.
자비심 : 꿈속에서 저는 외딴 곳에 혼자 앉아 제
마음이 너무 완강하다고 탄식하며 울고 있었어요.
그곳에 앉아 있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제 주위로 몰려와서는 저를 쳐다보기도
하고, 제가 하는 말을 들으려고 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들은 귀를 기울였고 저는 계속하여 제
마음이 너무 완강함을 한탄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 더러는 저를 비웃었고, 또
더러는 저를 밀어내기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바로 그때 날개를 가진 누군가가 머리 위에서 제게로
날아서 내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곧바로
제게로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비심, 무슨 일로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제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그는 저를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그대에게 평안이 있을지라."
그리고 그는 손수건으로 제 눈물을 닦아 주고는
금과 은으로 장식한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또한
목에는 목걸이, 귀에는 귀고리, 머리에는 아름다운
왕관을 씌워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제
손을 잡더니 말했습니다.
"자비심, 나를 따라와요."
그래서 저는 그분을 따라 황금으로 된 문이 있는
곳까지 올라갔습니다. 그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문을 열어주었고, 안으로 들어간 그를 따라
나는 높은 의자에 한 분이 앉아 계신 곳까지 가게
됐습니다. 그 높은 의자에 앉아 계시던 분이 저를
보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어요.
"어서 오너라, 내 딸아."
그곳은 눈부시게 밝았고 별처럼, 아니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아주머니의 남편
되시는 분을 뵌 듯도 합니다. 그때 꿈에서
깨어났지요. 그런데 정말로 제가 웃었어요?
크리스치아나 : 웃었느냐고요? 그런 좋은 꿈을
꾸면서 웃지 않을 수 있겠어요? 당신이 꾼 꿈은
틀림없이 길몽이에요. 반쪽은 꿈에서 봤으니 나머지는
실제로 보게 될 거예요.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는
다시 말씀하시지만 인간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지요. 꿈속에서나 한밤중의 환상을 통해서나 깊은
잠에 빠졌을 때나 침상에 누워 있을 때 하나님과
이야기하기 위해 반드시 깨어 있을 필요는 없지요.
그분은 우리가 잠자고 있을 때도 찾아오실 수 있고,
또 그 음성을 들려주실 수 있으니까요. 잠이 들었을
때도 우리의 마음은 깨어 있으므로 하나님은 말씀이나
격언, 징조, 혹은 비유로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씀하실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자비심 : 어쨌든 그런 꿈을 꾼 게 대단히 기뻐요.
머지않아 그 꿈이 이루어져 다시 한 번 웃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크리스치아나 : 이젠 일어나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봐야겠습니다.
자비심 : 저, 만일 저분들이 며칠 동안 여기에 더
머무르라고 한다면 기꺼이 그 청을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잠시 머물면서 이 집에 있는
아가씨들과 좀더 사귀어보고 싶어요. '세심함'이나
'경건함', '박애' 모두 얌전하고 똑똑한 아가씨들인
것 같더군요.
크리스치아나 : 그들이 어떻게 할 지 기다려봅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시를
고치고는 아래로 내려갔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그들에게 간밤에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았는지
어떤지 물어보았다.
"아주 편안했습니다."
자비심이 대답했다.
"평생 어젯밤처럼 편안한 잠자리에서 자본 적이
없었답니다."
그러자 세심함과 경건함이 말했다.
'며칠 동안 여기에 더 머무르시겠다면 성심껏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네, 즐거운 마음으로......"
박애가 말을 이었다. 특히 세심함은 크리스치아나가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켰는지 알고 싶어 아이들에게
뭘 좀 물어봐도 되겠느냐고 그녀에게 요청했다.
크리스치아나는 쾌히 승낙했다. 그리하여 세심함은
우선 제임스라는 이름을 가진 막내에게 물었다.
세심함 : 얘, 제임스야. 누가 너를 만드셨는지 한번
말해 보렴.
제임스 :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십니다.
세심함 : 착한 아이로구나. 그런데 누가 널 구원해
주시는지 이야기할 수 있겠니?
제임스 :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십니다.
세심함 : 참 착하구나. 하지만 성부께서 널 어떻게
구원해 주시지?
제임스 : 그의 은총으로요.
세심함 : 성자께서는 널 어떻게 구원하시지?
제임스 : 그분의 의로우심과 죽으심과 피 흘리심과
생명으로요.
세심함 : 그러면 성신께서는 너를 어떻게 구원해
주시지?
제임스 : 그분이 빛을 비추심과 기력을 넣어주심과
보호하심으로서 구원해 주십니다.
세심함이 크리스치아나에게 말머리를 돌렸다.
"어쩌면 이렇게 아이들을 훌륭하게 가르치셨습니까?
제일 어린 막내가 이 정도로 대답하니 다른
아이들에겐 같은 질문을 할 것도 없겠군요. 이번에는
셋째 아드님에게 다른 걸 물어보겠습니다."
세심함이 물었다.
"자, 조세프야. 뭘 좀 물어봐도 될까?"
'조세프'는 그의 이름이었다.
조세프 : 성의껏 대답하겠습니다.
세심함 : 사람이란 무엇이지?
조세프 : 아까 동생이 말했듯이 사람이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성을 가진 피조물입니다.
세심함 : 구원이란 말을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니?
조세프 : 죄를 지어서 비참한 노예가 된 인간이
생각납니다.
세심함 : 인간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구원받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
조세프 : 죄는 너무나도 크고 힘이 센 폭군이기
때문에 하나님말고는 그 누구도 죄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을 끌어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선하시고 또한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비참한 상태에서 인간을 구원해 주시는 겁니다.
세심함 : 불쌍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일까?
조세프 : 하나님의 이름과 은총과 정의 등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분이 만드신
만물의 영원한 행복인 것입니다.
세심함 :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지?
조세프 : 자신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세심함 : 조세프야, 넌 참 착한 애로구나. 어머니가
아주 잘 가르쳐 주셨고, 너 또한 어머님 말씀을 잘
들었나보구나!
그런 다음에 세심함은 둘째 아들인 '새뮤얼'에게
말했다.
세심함 : 자, 새뮤얼, 몇 가지 물어봐도 괜찮겠니?
새뮤얼 : 예, 말씀하십시오.
세심함 : 천당이란 무엇이지?
새뮤얼 : 하나님이 살고 계신 곳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나라입니다.
세심함 : 지옥은 뭘까?
새뮤얼 : 죄와 악마와 죽음이 있는 곳이니까 가장
비참한 나라입니다.
세심함 : 너는 왜 천당으로 가려는 거지?
새뮤얼 : 먼저 하나님을 뵐 수 있을 것이고 아무런
권태나 피로를 느끼지 않고 그분을 섬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죠. 또한 그리스도를 뵙고 영원히
그분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고, 이곳에서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느낄 수 없던 성령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심함 : 너 역시 대단히 훌륭한 아이구나. 아주 잘
배웠어요.
그는 다시 '매튜'라고 불리우는 맏아들에게 말을
걸었다.
"자, 매튜, 몇 가지 물어봐도 될까?"
매튜 : 기꺼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세심함 : 그럼 물어보자. 하나님이 계시기 전에는
무엇이 존재했다고 생각하니?
매튜 :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니까요. 첫째날이 시작될 때까지도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온갖 것들을
만드셨으니까요.
세심함 : 성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니?
매튜 : 그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심함 : 그 안에는 네가 깨닫지 못하는 것도 많이
기록돼 있니?
매튜 : 예, 아주 많이 있습니다.
세심함 : 그래, 읽다가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이
나오면 어떻게 하니?
매튜 : 저는 하나님께서 저보다 지혜로우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 가운데 제가 알아서
유익할 만한 부분은 깨우쳐달라고 기도드립니다.
세심함 : 죽은 사람의 부활을 너는 어떻게 믿니?
매튜 : 저는 죽은 사람들이 땅 속에 묻힌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일어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썩은
시체로서가 아니라 산 모습으로 말입니다. 제가
부활을 믿는 데에는 두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언약하셨기 때문이고,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부활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세심함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앞으로도 계속 어머님의 말씀을 명심해서
들어야만 한다. 어머니는 너희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실 수 있으니까 말이다. 뿐만 아니라 남들이
하는 좋은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도록 해라. 모두
너희들 잘되라고 하시는 말씀이니까. 또한 하늘과
땅이 너희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특히 너희 아버지로 하여금 순례자가 되도록 해준
성경책을 명심하여 읽도록 해라. 나도 너희들이
여기에 머무르는 동안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너희들에게 가르쳐주겠다. 신앙에 깊이 들어갈 만한
질문들을 내게 해준다면 나는 더없이 기쁘겠다."
그후 그들 일행은 이곳에서 일주일간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자비심에게 한 방문객이 찾아와
사귀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이름은 '쾌활함'이었다.
교양이 있고 신앙심이 있는 척했지만 실은 매우
세속에 물든 사람이었다. 그는 자비심에게 몇 번
찾아오더니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자비심은
아름답고 매우 매혹적인 여자였던 것이다.
그녀는 또한 항상 무슨 일이든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었다. 자기자신을 위해서 할 일이 없을
때면 양말과 옷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녀가 그런 것들을 만들어 어디에
어떻게 쓰는 줄 모르는 쾌활함 씨는 다만 그녀가
게으르지 않으며 매우 부지런하다는 사실에 감복된 것
같았다.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좋은 색시가 되겠군!'
자비심은 집안 식구들에게 사실을 털어놓고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래도 그들이
자기보다 그에 대해 더 잘 알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가 매우 분주한
젊은이로서 신앙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선한 능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 같다고 말해 주었다.
"그렇다면 안 되겠군요."
자비심이 말했다.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겠어요. 내 영혼에 방해가
되는 것은 결코 가까이하지 않을 생각이니까요."
세심함이 그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일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계속 일하기만 하면 그는 쉽게 정열이 식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다시 찾아왔을 때 자비심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만드는 일에만 열중했다.
그가 말했다.
"매일 무슨 일을 그리 열심히 하오?"
그녀가 대답했다.
"네, 나를 위하는 일이면서 또 남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그래, 하루에 얼마나 벌어들입니까?"
하고 그가 물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하는 이 일은 다가올 최후의 시간에 대비하여
선행을 쌓고 좋은 터를 잡아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랍니다."
그가 물었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어떻게 처분하시오?"
"헐벗은 사람들에게 입히지요."
하고 그녀가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그의 얼굴
표정이 달라졌다. 그뒤 그는 두 번 다시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왜 발을 끊었냐는 질문에 그는
그녀가 예쁘기는 하지만 머리가 좀 돌았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가 그녀 곁을 떠나자 세심함이 말했다.
"쾌활함 씨는 쉽게 당신을 포기할 것이라고 한 내
말이 맞지요? 그리고 그는 분명히 당신에 대해 좋지
못한 소문을 퍼뜨리고 돌아다닐 겁니다. 그가
신앙심이 있고 사랑하는 척하지만, 서로 판이한 성격
때문에 결코 짝이 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해요."
자비심 : 말은 안 했지만 내게는 남편이 되고
싶어한 사람이 여럿 있었답니다. 그들은 모두 내
외모에 대해서는 흠을 잡지 않았으나 내 마음의
상태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결코
그들과 결합할 수가 없었지요.
세심함 : 요즘 세상에 자비심이란 그저 하나의
명목에 불과할 뿐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답니다.
실제로 자비를 베풀려면 당신과 같은 정신상태를
가져야 하는데, 그런 정신상태를 견뎌낼 사람은 극히
드물거든요.
자비심이 말했다.
"좋습니다. 만약 아무도 나를 아내로 맞아줄 사람이
없다면 나는 그냥 처녀로 죽든지, 아니면 내
정신상태를 남편으로 삼고 살아가겠습니다. 내 성격을
고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내 성격과 상반되는
사람을 살아있는 동안 결코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내게는 이처럼 야비한 남자와 결혼한 '관대함'이라는
언니가 있습니다. 그런데 언니는 결혼한 후에도
계속하여 가난한 이들을 보살펴주었습니다. 그래서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마침내 형부는
길거리에서 언니를 구박하더니 집밖으로
내쫓아버렸어요."
세심함 : 그러면서도 그는 역시
신앙고백자였겠지요? 맞지요?
자비심 : 예, 그랬어요. 지금 세상은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런 무리들과는
상종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때 크리스치아나의 장남인 매튜가 병에 걸렸는데,
얼마나 아픈지 때때로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다며
뒹구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거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노련함'이라는 유명한 늙은 의사가 한 명 살고
있었다. 크리스치아나가 그에게 왕진을 청하는 사람을
보내자 그가 찾아왔다. 그는 방안으로 들어가 잠시
진찰을 하고 나더니 배앓이라는 진단을 내린 뒤에
크리스치아나에게 물었다.
"최근에 매튜가 먹은 음식이 뭐죠?"
"해로운 음식은 먹지 않았는데요."
크리스치아나가 대답했다. 그러자 의사가 말했다.
'이 아이의 위 속에는 소화가 되지 않는 어떤 것이
들어 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위장을 씻어내지
않으면 이 아이는 죽게 됩니다."
그러자 새뮤얼이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 우리가 이리로 오는 길 어귀에
있는 좁은 문을 약간 벗어나 조금밖에 안 왔을 때
형이 무언가 먹은 게 있잖아요? 길 왼쪽을 낀 담장
너머에 과일나무들이 있었고 거기에 달린 열매를 형이
따먹었단 말이에요."
"그래, 맞구나."
크리스치아나가 말했다.
"맞아, 그 열매를 따먹었어. 못된 녀석, 내가
그렇게 야단을 쳤는데도 따먹었지."
노련함 : 소화가 되지 않는 음식을 무언가 먹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열매라면 무엇보다도 해로운
건데. 그것은 비엘지법이라는 악마가 소유한 과수원의
과일이거든요. 어떻게 아무도 그것을 조심하라고
일러주지 않았는지 이상하군요. 그걸 먹고 죽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러자 크리스치아나가 울면서 말했다.
"오, 이 못된 놈아! 오, 이 어미의 불찰이구나. 이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요?"
노련함 : 자자, 너무 그렇게 상심하지 마십시오.
토하고 설사를 하게 하면 아이는 괜찮아질 것이오.
크리스치아나 : 선생님, 제발 치료비는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이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노련함 : 아뇨, 저는 정당하게 받겠소.
그리하여 그는 아이에게 설사약을 주었는데 그
약효는 너무 미약했다. 그 약은 염소의 피와 암소를
태운 재에다 약간의 우슬초 즙을 섞어 만든 것이었다.
그 약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안 노련함은 그에게 다른
약을 먹였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다 한두
마디의 하나님의 언약과 적당한 양의 소금을 섞어
알약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는 약을 다 만들어
소년에게 주면서 이 약은 굶으면서 회개의 눈물을
타서 한 번에 세 개씩 먹으라고 했다. 그러나 소년은
배가 찢어지는 듯 아픈데도 이 약 먹기를 싫어했다.
의사가 구슬프게 말했다.
"자자, 너는 이 약을 먹어야만 한다."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난단 말이에요."
하고 소년이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꼭 네게 이 약을 먹여야겠다."
"먹는대로 토하고 말 거예요."
하고 소년이 말하자 크리스치아나가 노련함에게
말했다.
"저어, 선생님 약 맛이 어떻습니까?"
의사가 대답했다.
"맛이 나쁘지는 않아요."
이 말을 듣고 그녀는 약에다 자신의 혀끝을
대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녀가 말했다.
"오, 매튜야. 이 약은 꿀보다도 더 달구나. 네가
만약 이 어미를 사랑한다면, 네 동생들을 사랑한다면,
자비심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네 인생을 사랑한다면 이
약을 먹도록 해라."
이렇게 법석을 떨면서 그는 하나님께 간단히 축복의
기도를 드린 후 약을 삼켰다. 약은 즉시 효력을
발휘하여 그는 구토와 설사를 하더니 졸리운 듯 잠이
들었다. 그는 곧 정상적인 체온을 되찾고 숨을 고르게
쉬었다. 마침내 그는 더 이상 복통을 앓지 않게
되었다.
잠시 후에 그는 잠에서 깨어 지팡이에 의지한 채
이방 저방 돌아다니면서 세심함, 경건함, 박애 등에게
자기가 어떻게 병이 들었다가 치료되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들의 병이 완쾌되자 크리스치아나가 노련함에게
물었다.
"선생님, 제 아들 병을 고치기 위해 고생하신 것을
무엇으로 보답해 드려야 하죠?"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이럴 경우에 적용되는 규칙대로 의과대학 학장님께
보답하시면 됩니다."
크리스치아나 :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이
약이 다른 병에도 효험이 있나요?
노련함 : 이것은 만병통치약입니다. 순례자들이
여행 도중에 걸리는 어떤 병이라도 다 듣습니다.
간수를 잘하면 생각보다 오래 보존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치아나 : 저, 선생님. 그 약 열 두 갑만
조제해 주세요. 이 약만 가지고 다니면 다른 약은
필요없을 테니까요.
노련함 : 이 약은 병을 치료하는 데도 좋지만 병을
예방하는 데도 좋습니다. 물론 사람이 이 약을
적당하게만 복용하면 영원히 살 수도 있지요. 그러나
크리스치아나 부인, 약을 드실 때에는 반드시 내가
처방한 대로만 복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효과가 없으니까요.
그리하여 그는 크리스치아나와 그녀의 아이들
그리고 자비심에게 각각 약을 조제해 주고 나서
매튜에게는 다시는 풋과일을 따먹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들에게 입을 맞춘 뒤
돌아갔다.
세심함이 아이들에게 무엇이든 도움이 될 만한 걸
물으면 기꺼이 대답해 주겠다고 약속한 일이 있었다.
그리하여 병에 걸렸던 매튜가 그녀에게 어째서 약은
대부분 맛이 쓴가를 물었다.
세심함 :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효험이
육체적인 입에는 그리 달갑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
매튜 : 어째서 약의 효력이 나타날 때 구토와
설사를 하게 되는 걸까요?
세심함 :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효력을 낼 때
인간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란다. 약이 육체를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깨끗하게 씻어주거든.
매튜 : 불길이 위로 솟아오르는 것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태양의 광선과
따뜻한 기운이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요?
세심함 : 불길이 오르는 것을 보고는 열성과 정열을
가지고 하늘나라에 올라가는 걸 배우고, 그 빛과
따듯한 기운을 내리쬐는 태양으로부터는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세주께서 높은 자리에 계시다가도
우리들, 아래에 있는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려오신다는 걸 배우게 되지.
매튜 : 구름은 수분을 어디서 얻게 되나요?
세심함 : 바다로부터 얻게 되지.
매튜 :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뭔가요?
세심함 : 성직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의 교리를
받는다는 것이지.
매튜 : 어째서 구름은 비가 되어 땅으로 내려오는
걸까요?
세심함 : 성직자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바를
세상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지.
매튜 : 태양이 무지개를 뜨게 하는 이유는 뭔가요?
세심함 : 하나님의 은총에 관한 언약이
그리스도라는 분을 통해서 확실히 우리에게 이행되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지.
매튜 : 어째서 바닷물은 육지를 통해서 샘이 되어
우리에게 솟아나는 걸까요?
세심함 :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이 그리스도의
육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란다.
매튜 : 그럼 어째서 어떤 샘물은 높은 산꼭대기에서
솟아납니까?
세심함 : 은총의 성령은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에게 솟아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권세가들에게도 솟아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란다.
매튜 : 불꽃이 초 심지에 꼭 붙어서 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심함 : 그것은 은총이 마음에 불붙지 않고서는
우리 안에서 생명의 진실한 빛이 결코 타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란다.
매튜 : 촛불이 타기 위해서는 심지뿐만 아니라 초가
모두 타야 하는데 그것은 왜 그런가요?
세심함 :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들 속에 온전한
상태로 간직하려면 육체와 영혼을 모두 다 소모시켜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지.
매튜 : 왜 펠리컨은 자기 부리로 자신의 가슴을
쪼아대는 것일까요?
세심함 : 어린 새끼를 자신의 피로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런단다. 그것을 보고 우리는 복된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어린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피를
아낌없이 흘리기까지 하셨음을 알 수 있단다.
매튜 : 수탉이 우는 소리를 듣고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나요?
세심함 : 베드로의 죄와 그의 회개를 기억하게
되겠지. 수탉 울음소리는 또한 날이 샌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 소리를 듣게 되면 우리는
최후의 그 무서운 심판의 날을 생각하게 되는거야.
그럭저럭 한 달이 지나고 나서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나야겠다고 집안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때 조세프가
자기 어머니에게 말했다.
"통역관 씨 댁에 사람을 보내서 우리가 남은 여행을
끝까지 안전하게 할 수 있게 위대한 마음을 한 번 더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너 참 그말 잘했다. 하마터면 잊을 뻔했구나."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청원서를 한 통 작성하여 문지기인
경계함에게 주면서, 적당한 사람을 시켜서 그들의
좋은 친구인 통역관에게 그것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서신을 받은 통역관은 심부름꾼에게
말했다.
"그 사람을 보내겠다고 전하게."
크리스치아나가 머물던 집의 온 식구들은 그들이
계속 길을 가고자 하는 뜻을 알고 모두 한곳에 모여
이렇게 유익한 손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마치고 그들은
크리스치아나에게 말했다.
"저희들이 순례자들과 이별할 때 으레 하는
관습대로 몇 가지 보여드릴까 하는데
구경하시겠습니까? 그러면 남은 길을 가면서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을텐데요."
그리하여 그들은 크리스치아나와 아이들 그리고
자비심을 데리고 한 작은 방으로 들어가 과일 한 개를
보여주었다. 그 과일은 이브가 먹은 뒤 자기
남편에게도 먹게 하여 그 대가로 낙원에서 쫓겨났던
바로 그 과일이었다. 그들은 크리스치아나에게
생각나는 게 없느냐고 물었다. 크리스치아나가
대답했다.
"먹어도 좋은 건지 아니면 독인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군요."
그리하여 그들이 그 과일의 내력을 설명해 주자,
그녀는 두 손을 들면서 놀라는 것이었다.
그 다음 그들은 그녀를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서
야곱의 사다리를 보여주었다. 마침 그때 몇 명의
천사가 그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었다. 크리스치아나는
천사들이 사다리를 오르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다른 일행들도 열심히 보고 있었다. 이
집 식구들은 그들을 또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서 다른
것을 보여주려고 했으나, 그때 제임스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이곳에서 조금만 더 있자고 하세요. 정말
신기한 구경거리잖아요."
그리하여 그들은 돌아서서 그 유쾌한 광경에 넋을
잃고 서 있었다. 그들은 다시 황금으로 만든 닻 한
개가 걸려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들은
크리스치아나에게 그 닻을 내리라고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 닻을 언제나 당신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휘장 안에 언제나 간직하여 거친 풍랑을 만날
때마다 움직이지 않고 든든하게 서 있도록 해야
하니까요."
그들은 모두 기뻐했다. 그 다음 그들은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친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거기서 그들은 구경거리로 보존돼 온
제단이며 장작, 불, 칼 등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나서 그들은 두 손을 쳐들고 스스로 축복하며 말했다.
"오, 아브라함이여! 주님을 사랑하여 자기자신을
부인한 사람이여!"
이 모든 것을 보여준 다음 세심함은 그들을
인도하여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훌륭한
버지널스라는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었다. 세심함은
그것을 연주하면서 지금까지 보여준 것들을 가사를
붙여서 노래를 불렀다.
이브가 먹던 열매를 당신들에게 보여주었으니
그것들의 의미를 ㄲ닫도록 하라.
또한 야곱의 사다리르 보았네,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사다리를.
닻 한 개 선물까지 받았으나
그것으로 만족할 일이 아니네.
아브라함처럼 가장 귀한 것,
희생알 바칠 때까지는.
그때 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문지기가 문을
열고 내다보니 거기에는 위대한 마음이 서 있었다.
그가 방안으로 들어오자 방안은 온통 기쁨으로
가득찼다. 얼마 전에 그 늙은 거인 피투성이를 죽이고
그들을 사자들로부터 구해 준 일이 다시 새롭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위대한 마음이 크리스치아나와 자비심에게 말했다.
"우리 주님께서 두 분께 각각 포도주 한 병과
약간의 볶은 콩 그리고 석류알 두 개씩을 함께
보내셨습니다. 또 아이들에겐 약간의 무화과와
건포도를 보내셔서 여독을 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여행을 계속하게 되었다.
세심함과 경건함이 따라나왔다. 문간에 이르자
크리스치아나는 문지기에게 그동안 문밖을 지나간
사람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얼마 전에 단 한 사람이 지나갔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기를, 최근에 당신들이 가야 할 왕의
큰길에 강도가 나타난 일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도둑들은 체포돼 조금 있으면 재판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크리스치아나와 자비심은 무서움에
떨었다. 그러자 매튜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무서워할 것 없어요. 위대한 마음
아저씨가 우리와 함께 가면서 우리를 보호해
주실텐데요, 뭐."
크리스치아나가 문지기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희들이 이 문을 통해 들어온 후로
보여주신 호의에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 아이들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저
선생님을 존경하는 표시로 이 조그만 선물을 드리니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녀는 그의 손바닥에 천사 모양을 새긴 금화 한
닢을 놓았다. 그것을 받은 그는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말했다.
"부인의 옷이 언제나 희고 머리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비심 아가씨도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살아 많은 일 하십시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젊은 시절의 욕망을 버리고 현명한
분들의 경건함을 본받도록 해라. 그래서 어머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고 분별있는 분들의 칭찬을
들어야지."
그들은 문지기에게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헤어졌다.
나는 꿈속에서 그들이 계속 길을 걷다가 산
벼랑까지 이르는 것을 보았다. 거기서 경건함이
혼자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어머나! 크리스치아나와 그 일행께 드리려던 걸
그만 잊고 그냥 왔어요. 돌아가서 가져와야겠어요."
그녀는 그 물건을 가지러 달려갔다. 그녀가 없는
동안 크리스치아나는 오른쪽으로 조금 떨어진 수풀
속에서 아주 이상하고 유쾌한 가락이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 가락은 다음과 같은 가사를 싣고 있었다.
주님의 그 은혜 내 평생 동안
숨김없이 내게 보여주셨네.
그러므로 주님의 집이
내 평생 거처할 처소가 되리라.
그녀는 다시 귀를 기울여 다음과 같은 화답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우리의 주 하나님은 선하시니
그분의 은총 틀림없이 영원하리라.
언제나 굳건히 서 있는 그의 진리
영원토록 보존되고 입증되리라.
그리하여 크리스치아나는 누가 저 유쾌한 노래를
부르는가 세심함에게 물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그것은 이 고장의 새들이 부르짖는 소리랍니다.
새들이 노래 부르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지요.
그들이 노래를 햇살이 따뜻하고 꽃이 피어나는 봄이
아니면 잘 부르지 않는답니다. 봄날에는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죠. 나도 가끔 그 노랫소리를 들으려고
밖으로 나옵니다. 때로는 그 새를 길들여서 집안에서
기르기도 하지요. 우리가 울적할 땐 이 새들이 아주
좋은 동료가 돼주고, 또한 그들이 사는 숲과 수풀과
한적한 장소들을 인간들이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답니다."
바로 그때 경건함이 돌아와 크리스치아나에게
말했다.
"이걸 보세요. 우리 집에서 여러분들이 구경하신
것을 대충 기록한 종이를 가져왔습니다. 혹시 보신 걸
잊어버리게 되면 이것을 보세요. 그럼 기억이
되살아날 것입니다. 그것들을 기억하면 마음이 정돈돼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은 언덕을 내려와 겸손한 계곡에 이르렀다.
벼랑은 가파르고 길은 미끄러웠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걸었으므로 무사히 내려갈 수가
있었다. 계곡을 다 내려가자 경건함이
크리스치아나에게 말했다.
"바로 여기가 당신의 남편인 크리스찬이 더러운
악마 아폴리온을 만나 혈투를 벌였던 곳이랍니다.
부인도 그 이야기를 들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용기를 잃지는 마세요. 위대한 마음이
안내자로 조언을 해주는 한 여러분들은 훨씬 나은
여행을 하시게 될 테니까요."
이 말과 함께 그들은 순례자들을 안내자에게
부탁하고 돌아갔다. 그러자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이 계곡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사서 고생을 하지 않는 한 어떤 것도 우리를
해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크리스찬이 여기서
아폴리온을 만나 혈투를 벌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계곡을 내려오면서 여러 번 미끄러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미끄러진 사람은 꼭 여기서
결판을 내야 하거든요. 이 계곡이 무서운 곳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어느 장소에서
누가 무서운 일을 당했다는 소문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장소에 악마나 나쁜 귀신이 출몰한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거든요. 사실 그런 일을 당한 건 그
사람이 잘못을 저지른 결과인데도 말입니다.
사실 이 겸손의 계곡은 어느 까마귀라도 날아
넘어갈 수 있는 다른 계곡과 다를 바가 없는
곳입니다. 막상 다가가서 살펴보면 우리는 틀림없이
크리스찬이 왜 여기서 그런 수난을 겪게 됐는지를
설명해 줄 만한 그 무엇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때 제임스가 자기 어머니에게 말했다.
"저기 보세요. 저쪽에 기둥이 하나 서 있는데 그
기둥 위에 뭐라고 적혀 있는 것 같아요. 어서 가서
뭐라고 적혀 있는지 읽어봐요."
그래서 가까이 가 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여기까지 오기 전에 크리스찬이 여러 번 미끄러진
일과 여기에서 악마와 싸웠던 것을 보고 후에 오는
자들은 경계로 삼으라.'
안내자가 말했다.
"보시오. 여기에서 크리스찬이 고난을 당한 이유를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내가 말했지요?"
그리고 그는 크리스치아나를 향해 다시 말했다.
"크리스찬이 여기서 미끄러지고 수난을 당했다 해서
남들보다 특별히 더 불명예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언덕은 내려가는 것보다 올라가는 게 더
쉬운데 그런 언덕은 이 세상에서 드물기 때문이오.
이제 그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합시다. 그는 지금
편안히 쉬고 있으니까요. 어찌됐든 그는 적들을
멋지게 정복했습니다. 우리도 시험을 당할 때 그보다
더 나쁜 처지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위에 계신 분께
기도나 합시다.
그러나 우리는 이 겸손의 계곡에 다시 오게 될
것입니다. 여기는 이 근방에서 보기 드문 옥토이지요.
보시다시피 기름진 땅이 대부분 초원으로 덮여
있습니다. 특히 지금 우리들처럼 풍광을 즐길만한
안목이 있고 게다가 전에 이곳에 와본 적이 없다면,
그는 굉장히 즐거운 경치를 이곳에서 만끽하게 될
것입니다. 보세요, 저 계곡을 덮은 푸른 숲과
아름다운 백합꽃들을. 나는 또한 이 겸손의 계곡에서
기름진 땅을 경작하며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더욱더 은총을 베푸시니까요. 이땅은
매우 비옥하기 때문에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 이곳으로 나
있어 산을 넘거나 언덕을 오르내리는 수고없이
하늘나라로 갈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이들도 더러
있지요. 하지만 길은 길입니다. 가다 보면 목적지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들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다가 마침 자기
부친의 양떼를 지키고 있는 한 소년을 만났다. 소년은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얼굴은 매우 청순하고
복스러워 보였다. 그는 자리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들어보세요. 저 양치기 소년이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그들은 귀를 기울여 소년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낮은 곳에 있는 자
떨어질까 두려워할 필요없네.
비천한 자,
오만하지 않으며
겸손한 자,
영원히
하나님의 보호받으리.
나는 지금 내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네
그것이 많든 적든 간에.
그리고 주님, 당신께서 나 같은 이 구원해 주오니
나 여전히 이렇게 만족하렵니다.
순례의 길을 가는 자
소유한다는 건 무거운 짐.
이승에서 가진 것이 없는 자
저 세상에서 복을 받을지니
영원토록 변치 않을 큰 복이라.
그때 안내자가 말했다.
"저 소년의 노랫소리 들었지요? 이 소년이야말로
비단옷 입은 자나 양단옷 걸친 자들보다 더 즐거운
생활을 하며, 그 가슴에는 안심초라고 하는 약초를 더
많이 간직하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던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우리 주님께서는 전에 이 계곡에 별장을 지으신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이 계곡에 계시는 걸 무척
좋아하셨고, 또 초원을 걸어다니는 것도
좋아하셨습니다. 공기가 신선하고 상쾌했으니까요.
게다가 이곳에 살면 누구나 이 세상의 소음과
분주함에서 벗어나게 되거든요. 온 세상이 소음과
혼잡으로 가득 차 있지만 유독 이 겸손의 계곡만은
한적하고 고요하답니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처럼 명상을 방해받는 일도 없지요. 이
계곡에는 순례자의 생활을 사랑하는 자 외에는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않습니다. 비록 크리스찬이 여기에서
악마 아폴리온을 만나 생사를 거는 싸움을 했지만 그
전에 여길 지나간 사람들은 찬사를 받았고, 보석과
생명의 말씀들을 이곳에서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금 전에 우리 주님께서 이곳에 별장을 지으시고
즐겨 이곳을 산책하셨다는 이야길 했는데,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그것은 이곳과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길을 보수하라고 또 순례의 길을 용기있게
가라고 해마다 연금을 지불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계속 대화를 나눌 때 새뮤얼이 위대한
마음에게 말했다.
"선생님, 이 계곡에서 저의 아버님이 아폴리온과
싸웠다는 건 알겠는데요. 하지만 이 넓은 계곡
어디에서 싸웠는지는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위대한 마음 : 네 부친이 아폴리온과 싸웠던 곳은
저쪽 너머 망각의 초원을 막 지난 좁은 길목에서였다.
그곳이 이 근처에서는 가장 위험한 곳이지. 왜냐하면
순례자들이 위험에 처하게 될 때는 언제든지 그들이
받은 은혜를 망각하고 자기들이 그 은혜받기에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가를 잊어버릴 때이거든. 이곳에서
수난을 겪은 사람들은 네 부친 말고도 많이 있단다.
그 이야기는 그곳에 도착해 더 하기로 하자. 그때
그런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만한 어떤 표시나
비석 같은 것이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러자 자비심이 말했다.
"우리가 순례여행을 하면서 지나쳐 온 다른 어떤 곳
못지않게 이곳도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소도 제 마음에 꼭 들어요. 마차 지나가는 소리나
수레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런 곳을
저는 좋아합니다. 이런 곳에 있으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자기가 누구며,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뜻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런 곳에서
인간은 생각하고, 가슴을 열며 그리고 그 마음을 녹여
마침내 두 눈에는 헤스본의 연못처럼 눈물이 고일
것입니다. 이 눈물 계곡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흘린
눈물로 우물을 만들게 될 것이며,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빗물이 또한 그 못을 채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포도밭을 주시겠다던 곳도
바로 여기입니다. 누구든지 이곳을 지나가는 자는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아폴리온을 만났을 때
크리스찬이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옳은 말이오. 나도 여러 번 이 계곡을
지나다녀봤지만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순례자들을 보호하며
지나다녔는데 그들도 똑같은 말을 고백하곤 했지요.
'마음이 가난하고 죄를 깊이 뉘우치며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을 내가 돌봐주리라.'고 왕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크리스찬이 아폴리온을 맞아 싸움을
벌였던 바로 그곳에 도착했다. 안내자가
크리스치아나와 아이들 그리고 자비심에게 말했다.
"여기가 바로 그곳이오. 크리스찬이 이 자리에 서
있었는데 아폴리온이 저쪽에서 다가왔지요. 보시오.
내가 이야기한 대로 여기에 당신의 남편이 악마와
싸울 때 흘린 피가 돌 위에 그대로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여길 보세요. 아폴리온의 부숴진
창 조각들이 아직도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싸울 때 서로 상대방을 맞아
선 자리를 든든하게 다지느라 발로 짓이긴 자국들,
발길에 채여 부숴진 돌덩어리들도 그대로 있군요.
그때 여기에서 크리스찬은 참으로 사나이답게
버텼습니다. 헤라클레스도 그렇게 용감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아폴리온은 싸움에 지자 죽음의 그림자
계곡으로 도망쳤습니다. 죽음의 그늘 계곡이라고도
불리는 그곳은 우리도 곧 가게 될 것입니다.
저것 보시오. 저기 기념비가 세워져있군요. 이
싸움과 크리스찬의 승리를 영원히 빛나게 하기 위해
새겨놨지요."
그 비석은 바로 길가에 세워져 있었다. 그들은 비석
앞으로 다가가 거기에 새겨진 글을 읽어보았다.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참으로 이상하고도 진지한
전투가 있었다.
크리스찬과 아폴리온이
서로를 복종시키려는 혈투였나니.
인간이 사나이답게 용감하게 싸워서
마침내 그 악마를 패주케 했으니
그것을 기념하여 여기에 비를 세워
사실을 사실로써 증거한다.
이곳을 지나치자 그들은 곧 죽음의 그늘 계곡
입구에 다다랐다. 이 계곡은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듯
다른 곳보다 더 길고 여러 가지 악한 것들이 들끓고
있었으나 이들 여인들과 아이들은 훨씬 편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마침 대낮인 데다 위대한 마음이 안내를
했기 때문이었다.
계곡에 들어서자 그들의 귀에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거친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또한 심한
고문을 당하는 자가 울부짖는 소리도 슬프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 소리에 아이들은 무서워 떨었고
여자들은 파랗게 질려 있었는데 안내자가 안심하라고
타일렀다.
그들이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자 이번에는 땅 속에
허공이 있는 것처럼 걸어가고 있는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또한 뱀이 쉿쉿거리는 소리 같은
것을 듣기도 했으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침내 아이들이 입을 열었다.
"이 음침한 계곡을 다 지나려면 아직 멀었습니까?"
그러자 안내자는 그들에게 용기를 갖고 발밑을
조심하라고만 일러주었다.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그때 제임스가 앓았는데 내 생각엔 공포 때문인
듯했다. 그의 어머니는 통역관의 집에서 얻은 물과
노련함에게서 얻은 알약 세 개를 주었다. 그것을 먹고
나자 아이는 곧 회복되었다. 그들은 계속 걸어서
마침내 계곡의 중간지점에 다다랐다. 거기서
크리스치아나가 말했다.
"저 앞에 뭔가 있는 것 같아요.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었어요."
그러자 조세프가 말했다.
"어머니, 그게 뭐예요?"
"흉칙한 것이었단다, 얘야. 아주 흉칙한 것이었어."
하고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 어떻게 생겼는데요?"
그가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글쎄, 어떻게 생겼는지 말로 하기가 어렵구나."
그러는 사이에 그들은 자꾸 그쪽으로 접근해 갔다.
그녀가 말했다.
"이제 가까이 왔다."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자 자, 무서운 사람은 내게 바짝 붙어요."
마침내 악마가 나타나 안내자와 마주쳤다. 그러나
막상 악마는 형체도 없이 모든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제서야 그들은 얼마 전에
들었던 '악마와 대항하여 싸워라. 그러면 악마는
달아나리라.'라는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원기를 회복한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 가지 않아서 자비심이 뒤를
돌아보았는데, 사자처럼 생긴 짐승이 빠른 걸음으로
뒤쫓아오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그 짐승은 커다란
소리로 울부짖었는데, 그럴 때마다 온 계곡이
쩌렁쩌렁 울렸고 순례자들의 마음 또한 두려워지는
것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은 그들의
안내자뿐이었다. 드디어 맹수가 다가왔다. 위대한
마음이 맨 뒤로 가고 순례자들은 그의 앞에서
걸어갔다. 사자는 돌진해 왔고 위대한 마음은
달려오는 사자를 향해 몸을 내던져 덤벼들었다.
사자는 안내자가 저항하면서 결투할 준비가 된 것을
알아차리고는 뒤로 물러서더니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안내자를 앞세우고 길 전체가 수렁으로
뒤덮인 곳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그들이 그
수렁길을 걸어갈 준비도 하기 전에 짙은 안개와
어둠이 그들을 덮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순례자들이 부르짖었다.
"아아, 이제 어쩌면 좋은가?"
그들의 안내자가 대답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그분이 이것을 통해
무엇을 말하는가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그들은 길이 막혀버렸으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원수들이 떠들며 돌진해 오는
소리가 훨씬 가까이에서 들리는 것 같았고 수렁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과 연기도 더욱 뚜렷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크리스치아나가 자비심에게 말했다.
"이제는 불쌍한 내 남편이 어떤 어려움을
견뎌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곳에 대한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직접 와본 적은 없으니까요.
불쌍한 내 남편이 여길 혼자서, 그것도 밤에
지나가다니...... 이 길을 가느라고 꼬박 밤을
새웠는데 악마들은 밤새도록 그의 몸을 산산조각 낼
것처럼 덤벼들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과연 죽음의 그늘 계곡이 어떤 곳인지는 직접
와보지 않고서는 모를 것 같군요. '마음의 고통은 그
마음이 알고 마음의 즐거움에 타인은 참견하지
못하느니라.' 이 길을 지난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에요."
위대한 마음 : 이것은 마치 큰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깊은 물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한 깊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산기슭으로 떨어져내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은 마치 대지가 그 빗장으로 우리를
영원히 가두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빛도 없이 걷는 자는 여호와의 이름을 믿고 하나님께
의지하라고 했습니다. 내 경우만 보더라도 이미 말한
대로 이 계곡을 몇 차례나 지나다녔고 또 지금보다도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지만 여기 이렇게 살아
있지 않습니까? 나는 스스로 나를 구원한 것이
아니므로 자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받으리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자, 우리의 어둠을 밝혀줄 수 있는 그분께
빛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분은 이따위 어둠뿐만
아니라 지옥에 있는 모든 악마들까지도 꾸짖어 물리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울부짖으며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빛과 구원을 보내주셨다. 더 이상 아무것도
그들의 길을 가로막지 못했고 수렁길은 간 곳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렇지만 그들이 계곡을 다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걸어가는 도중에 지독한 악취가 풍겨 그들을
괴롭혔다. 자비심이 크리스치아나에게 말했다.
"여기서는 우리가 좁은 문과 통역관 씨 댁에서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묵었던 집에서처럼 유쾌한
것들은 찾아볼 수가 없군요."
그러자 한 아이가 말했다.
"오, 하지만 이런 곳에서 계속 머물러 있는 것보다
이렇게 지나치기만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가
가서 살 그집이 얼마나 더 좋은 곳인가를 깨닫게
하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새뮤얼, 그것 참 옳은 말이구나."
하고 안내자가 말했다.
"넌 제법 어른스럽게 말하는구나."
"만약 이곳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밝고 곧은 길을 소중하게 여기게 될 것
같습니다."
하고 소년이 말했다. 그러자 안내자가 말했다.
"머지않아 이곳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계속 길을 걸었다. 이번에는 조세프가
말했다.
"아직까지도 이 계곡의 끝을 볼 수 없나요?"
안내자가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말고 네 발부리나 잘 살펴보도록
해라. 곧 함정투성이인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발부리를 조심하며 계속 걸었는데
함정이 너무 많아 몹시 고생을 했다. 함정들 사이로
빠져나가다가 온몸이 찢겨진 사람이 왼쪽 수렁에 빠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본 안내자가 말했다.
"저 사람은 이 길을 가던 '부주의'라는 사람인데
저렇게 빠진 지가 아주 오래 됐습니다. 그가 붙잡혀
죽음을 당할 때 '주의함'이라는 사람이 함께 있었는데
그는 조심했으므로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요. 여기서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생겼는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아직
어리석어서 순례의 길을 가볍게 생각하고는 안내자도
없이 이 길을 가곤 하다가 해를 당합니다. 불쌍한
크리스찬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거의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고 또한 아주 착한 마음씨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살았죠. 그렇지 않았더라면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했을 겁니다."
이윽고 그들은 그 길의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바로
거기에서 크리스찬이 길을 가다가 동굴을 하나 발견한
곳이었다. 바로 그 동굴에서 '쇠망치'라고 하는
거인이 나타났다. 이 쇠망치 거인은 궤변으로 젊은
순례자들을 망쳐놓는 자였는데, 위대한 마음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했다.
"이따위 짓을 하지 말라고 내가 몇 차례나
경고했느냐?"
그러자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뭐라고?"
"뭐라니? 몰라서 묻나? 어쨌든 오늘은 끝장내고야
말겠다."
거인이 말했다. 그 말을 받아서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하지만 싸우기 전에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지 그
이유나 알자."
이때 여자와 아이들은 무서워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다.
거인이 말했다.
"너는 우리나라를 유린했다. 가장 고약한
도둑놈들을 이끌고 강도짓을 했단 말이다."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그렇게 막연한 말은 그만두고 좀더 자세히 말해
보게."
그러자 거인이 말했다.
"너는 교활하게 사람들을 납치하고 있다. 너는
여자와 아이들을 긁어 모아 낯선 나라로 보내버려
결국 우리 주님의 왕국을 약하게 만들고 있어."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나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종이다. 죄인들을
회개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나는
남자와 여자를 그리고 아이들까지도 어둠에서
밝음으로,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일하는 것이다. 네가 시비 거는
것이 그 때문이라면 자, 어서 덤벼봐라."
그러자 거인이 다가섰다. 위대한 마음도 거인을
향해 걸었다. 그는 칼을 뽑아 들었고 거인은 철퇴를
둘러메고 있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이 그들은
싸움을 시작했다. 그런데 거인이 한 번 휘두른 철퇴에
맞아 위대한 마음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이
광경을 본 여인과 아이들이 울부짖었다. 위대한
마음은 자신을 가다듬고 다시 맹렬하게 덤벼들어
마침내 거인의 팔에 상처를 입혔다. 불을 뿜는 듯한
결투는 한 시간 가량 계속되었는데, 거인의 코에는
뜨거운 가마솥에서처럼 열기가 뿜어져나왔다.
그들은 숨을 돌리기 위해 잠시 떨어져 있었다.
그동안 위대한 마음은 줄곧 기도를 올렸고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여인들과 아이들은 계속 한숨을 쉬며
울부짖었다.
조금 휴식을 취한 그들은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마침내 위대한 마음이 온몸의 힘을 모아 내리친
일격에 거인은 쓰러지고 말았다.
거인이 소리쳤다.
"아니, 잠깐! 내가 일어날 테니 기다려라!"
그래서 위대한 마음은 정정당당하게 그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리하여 싸움은 다시
계속되었고 이번에는 거인이 휘두른 철퇴에 하마터면
위대한 마음의 머리가 부숴질 뻔했다. 위험을 느낀
위대한 마음은 정신을 가다듬어 온 힘을 모아
상대방의 다섯째 갈비뼈 아래를 찔렀다. 그러자
거인은 비틀거리며 더 이상 철퇴를 휘두르지 못하는
것이었다. 위대한 마음은 두번째로 칼을 내리쳐서
거인의 머리를 잘라 버렸다. 마침내 여인들과
아이들은 기쁨의 탄성을 질렀고, 위대한 마음도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올렸다.
하나님께 찬송 올리는 일이 끝나자 그들은 기둥을
하나 세워 거기에 거인의 목을 매달고 나중에 오게 될
나그네들이 볼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붙였다.
이 머리의 주인은
순례자들을 괴롭히던 놈이었다.
순례자들의 길을 막고는
목숨을 빼앗아가곤 했다.
나 위대한 마음이 일어나서
순례자들의 안내를 맡을 때까지.
그리하여 그들의 적인 놈을
거꾸러뜨릴 때까지
그는 순례자들의 길을 막고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었다.
그때 나는 그들이 길에서 조금 떨어져서 순례자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전망대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곳은 크리스찬이 그의 친구인 믿음을 처음으로 만난
장소였다. 그들은 거기에 앉아서 먹고 마시며 즐겁게
휴식을 취했다. 무서운 적으로부터 구원되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치아나는 안내자에게 다친 곳은
없느냐고 물었다. 위대한 마음이 대답했다.
"피부에 약간 상처를 입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우리 주님과 당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대한 증거가 되어 훗날 상을 받게 될
것을 생각하면 은혜가 될 뿐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그놈이 철퇴를 들고 덤벼들 때
무섭지 않았습니까?"
"나 자신의 능력이나 힘을 믿지 않고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하신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지요."
하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놈이 처음에 선생님을 무릎 꿇게 했을 땐
어땠어요?"
"우리 주님께서도 처음엔 쓰러지셨지만 최후에
승리하신 걸 생각했지요."
하고 말했다.
매튜 : 모두들 각자 나름대로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우리를 이렇게 그 계곡에서 무사히
이끌어내주시고 또 적의 손아귀에서 구원해 주신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놀라운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런 계곡에서
이처럼 우리를 구원하시어 우리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신 마당에 더 이상 하나님을 불신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속 걸어갔다.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참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 나무 아래에서 한 늙은 순례자가
잠들어 있었다. 그들은 그의 옷과 지팡이와 허리띠를
보고 그가 순례자임을 알 수 있었다.
안내자 위대한 마음이 그를 흔들어 깨우자 그 늙은
순례자는 눈을 뜨며 소리쳤다.
"무슨 일이오? 당신들은 누구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요?"
위대한 마음 : 여보시오, 노인 양반. 그렇게 화내지
마시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친구니까요.
그런데도 그 노인은 벌떡 일어나 몸을 사리면서
도대체 누구냐고 따져 물었다. 안내자가 대답했다.
"제 이름은 위대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여기 이
하늘나라로 가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사람입니다."
그러자 정직함이 말했다.
"용서해 주시오. 나는 또 당신네들이 얼마 전에
작은 믿음에게서 가진 돈을 몽땅 강탈해 간 강도들과
일당인 줄 알고 겁이 났었소. 이제 보아하니
당신네들은 정직한 사람들처럼 보이는군."
위대한 마음 : 만약 우리가 그 강도들이었다면
노인께서는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실 생각이었습니까?
정직함 : 어떻게 했겠느냐고? 나는 마지막 힘이
없어질 때까지 결사적으로 싸웠을 거요. 내가
죽기살기로 대항하는 한 설사 강도라 한들 나를
어쩌지는 못할 것이오.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정복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위대한 마음 : 말씀 잘하셨습니다. 바른 말씀을
하시는 걸 보니 노인께서는 정직한 분이시군요.
정직함 : 당신 말을 듣고 보니 당신도 참된
순례자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군. 보통 순례자란
가장 쉽게 정복되는 인간인 줄 알고 있거든.
위대한 마음 : 정말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이제
노인장 성함과 어디서 오셨는지 좀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정직함 : 내 이름은 말할 수 없소. 그러나 고향은
말해 주지. 나는 '우둔함'이라는 마을에서 왔는데
멸망의 도시에서 40리쯤 떨어진 곳이오.
위대한 마음 : 아, 그러면 그 마을 사람입니까?
그곳에 사시는 분이라면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알겠습니다. 정직함이시죠? 아니십니까?
그러자 노인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정직함이 내 이름 맞소. 그러나 추상적인
관념으로서 정직함이 아니라 성질 그 자체로도
정직함이길 나는 바라고 있소."
노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데 여보시오. 내가 그 마을에서 왔다고 하니까
당신은 어떻게 내 이름을 아셨소?"
위대한 마음 : 전에 주님께서 하시는 말을 통해서
노인장 이야길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 세상
일을 모두 다 알고 계시거든요. 그러면서도 설마
노인의 고향과 같은 곳에서 누가 순례의 길을 떠날 수
있을까 의아해 했었지요. 그곳은 멸망의 도시보다 더
고약한 곳이거든요.
정직함 : 그렇지. 우리들은 다른 곳보다
태양으로부터 더 먼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더
냉정하고 무감각하지요. 그러나 빙산 위에 살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의로운 태양이 그 머리 위를 비추면
얼어붙은 마음이 녹을 수도 있지요. 내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소.
위대한 마음 : 그렇군요, 정직함 선생님.
그러자 노인은 순례자들에게 일일이 애정어린 말로
인사를 하고 나서 이름이 무엇이며, 순례의 길을 떠난
이후 지금까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고 물었다.
크리스치아나가 대답했다.
"제 이름은 혹시 노인께서도 들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순례자 크리스찬이 제 남편이고 이
아이들은 그의 아들들입니다."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난 노인은 말할 수 없이
기뻐했다. 그는 펄쩍 뛰더니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온갖 축복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정직함 : 당신의 남편이 여행 도중에 겪은 모험과
전투들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소. 당신의 남편 이름은
지금 세상 곳곳에 퍼져 있지요. 그런 말을 들으면
당신에게 위안이 되겠지요. 당신의 남편은 그의 믿음,
그의 용기, 그의 인내 그리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지켜나간 성실성 때문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지요.
그는 아이들에게 이름을 물었다. 아이들은 각기
자기 이름을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노인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매튜야, 너는 세리(稅吏) 마태처럼 되되 악한
마태가 아니라 덕망있는 마태가 되거라."
그리고 노인은 새뮤얼에게 말했다.
"새뮤얼아, 너는 예언자 사무엘처럼 믿음 좋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거라. 그리고 조세프야, 너는
포티파의 요셉처럼 지조를 지키고 유혹을 물리치는
사람이 되거라. 제임스야, 너는 의로운 사람
제임스처럼 우리 주님의 아우 제임스(우리말
성서에서의 이름은 야고보)처럼 되거라."
그들은 자비심을 그에게 소개하고 그녀가 고향과
친척을 버리고 크리스치아나와 그 아이들과 동행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그 정직한 노인이
그녀에게 말했다.
"아가씨의 이름이 자비심이라고? 장차 당하게 될
여러 가지 난관 속에서도 자비심을 유지하여 마침내
자비의 샘을 기쁜 얼굴로 맞이하도록 하시오."
이러는 동안 안내자 위대한 마음은 기쁨에 넘쳐 이
사람 저 사람 번갈아 쳐다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걷기 시작했는데 안내자가 노인에게 혹시
같은 고향에서 떠난 '두려움'이라는 순례자를
아느냐고 물었다.
정직함 : 그럼, 잘 알고 있소. 그는 일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소. 그러나 그는 내가 평생
만나본 순례자들 가운데 가장 말썽이 많은
사람이었소.
위대한 마음 : 그 사람 성격을 정확히 말씀하시는
걸 보니 잘 알고 계시는 것 같군요.
정직함 : 잘 알다마다요. 나는 그와 꽤 친한
사이였소. 목적지에 거의 다 갈 때까지 함께 있었소.
이후에 저승에서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까에
관해 그가 처음에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계속 그와 동행했었소.
위대한 마음 : 저도 우리 주님의 집에서부터
하늘나라의 문 앞에까지 그를 안내했습니다.
정직함 : 그러면 그가 말썽 많은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겠군요?
위대한 마음 : 예, 알고 있었지요. 그러나 저는
다행히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까지도
안내해야 하는 것이 제 임무이니까요.
정직함 : 어쨌든 좋소. 그 사람 이야기 좀
들어봅시다. 그래, 그가 당신의 안내를 받아 여행할
때 어떻게 행동합디까?
위대한 마음 : 그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중도에서 실패하지나 않을까 줄곧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조그만 장애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도
그는 두려워했습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는 무려 한
달간이나 머뭇거리면서 숱한 사람들이 자기를
앞질러가는 것을 보면서도 안타까워하지도 않고, 많은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붙잡아주려 했지만 나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집으로는 절대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더라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그는
하늘나라에 이르지 못하면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말은 하면서도 대수롭지 않은 어려움을 만나도 기가
죽고, 어떤 사람이 앞길에 던져놓은 지푸라기에조차
걸려 넘어졌지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오랫동안 절망의 구렁텅이에 누워 있던 그는, 어떻게
해서 그리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맑은 날 아침
모험을 감행하여 수렁을 건너게 됐습니다. 그러나
막상 수렁을 건너고 나서도 그는 자신이 한 일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생각에 그는 항상 절망의
구렁텅이를 자신의 마음속에 품고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꼴이겠습니까? 마침내 그는 문 앞에 당도했습니다.
무슨 문인지는 물론 알고 계시겠지요. 그러나 그는 그
문 앞에서도 모든 것이 두려워서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그냥 서 있었습니다. 문이 열렸다
해도 그는 남에게 길을 비켜주면서 자신은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말했을 것이니다. 문까지는 그가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먼저 왔지만 들어간 것은 결국
그들이 먼저였습니다. 불쌍한 그 사람은 벌벌 떨며
그냥 거기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측은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지요.
그러면서도 그는 되돌아가지도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문에 매달려 있던 망치를 손에 잡고 가볍게 한두
번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문이 열렸는데, 그는 그
전처럼 뒤로 물러섰습니다. 문을 열어준 사람이
그에게 다가가 말했지요.
"거기 떨고 서 있는 사람, 당신은 무엇을
원하시오?"
이 말을 듣고 그는 땅에 고꾸라졌지요.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은 그가 기절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심하시고 일어나시오, 당신을 위해서 문을
열었습니다. 들어오시오. 당신은 축복받은 사람이오."
그러자 그는 벌벌 떨며 일어나 문안으로
들어갔지요. 들어가서도 그는 부끄러워 얼굴을 듣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그 안에서 잠시 머무르면서
아시는 바와 같이 융숭한 대접을 받고 그는 가던 길을
계속 가라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또 어떤 길로 가야
하는가도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집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러나 문 앞에서
그랬듯이 그는 우리 주인이신 통역관님의 문 밖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습니다. 그는 꽤 오랫동안
추위에 떨면서 서 있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사람을
불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집으로 되돌아가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밤은 참으로 길고 추웠습니다.
그런데 알 수 없게도 그는 품속에 우리 주님께 전할
서신을 한 장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서신에는 그를
따뜻하게 영접해 주고, 특별히 그가 심약한 사람이니
든든하고 용감한 안내자를 한 사람 딸려보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문
두드리기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거기에서 거의 굶어 죽을 지경이 다 되도록 일어섰다
앉았다 하고만 있었습니다. 정말로 그의 절망감이
어찌나 큰지 그는 몇 사람이 문에 와서 두드리고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감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제가 우연히 창밖을 내다보다가
어떤 사람이 문밖에서 일어섰다 앉았다 하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저는 문밖으로 나가서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엾은 사람은 눈물만
글썽거릴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저는 집안으로 들어와
식구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고 우리 주인님께도
말씀드렸습니다. 주인님께서는 제게 밖으로 나가 그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를 설득시켜 안으로 들여보내는 데 무진 애를
먹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집안으로 들어오자
주인님께서는 극진히 대접하셨지요. 식탁에는 훌륭한
음식이 많이 차려져 있었는데 거의 그의 접시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서신을 주인님께
내밀었습니다. 그 편지를 읽어보시고 주인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어라."
그는 그곳에 오래 머물면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는데, 그동안에 조금 자신이 생기고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주인님께서는
특별히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에게 매우 다정하시고
부드러우신데다가 그의 용기를 북돋아주는 데 온 힘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을 보고 난 후, 하늘나라를 향한 여행을 다시
계속하려고 채비를 차리고 있을 때 주인님께서는 전에
크리스찬에게 하신 것처럼 그에게도 술병과 맛있는
음식 몇 가지를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길을
떠났습니다. 제가 그의 앞장을 섰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큰소리로 한숨만 쉴뿐 거의 말이 없었습니다. 세
사람이 목 매달려 있는 장소에 도착하자 그는 자기도
저런 꼴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그 옆에 있는 무덤을 볼때만은 그도
기뻐하더군요. 그는 거기서 조금 더 머물며 십자가를
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약간 생기가 도는 듯
했습니다. 우리가 고생길 언덕에 도착했을 때 그는
조금도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아니었으며, 사자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행 도중에
만나는 그런 고난이나 위험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최후에 하늘나라의 문에서 자신이 받아들여질까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를 아름다운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는 거기서도 주저하며 들어서지를 못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그집의 처녀들을 그에게
소개해 주었는데, 그는 부끄러워하며 함께 어울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혼자 있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는 좋아하는지 가끔 병풍
뒤에 숨어서 아가씨들이 하는 이야기를 몰래 엿듣곤
했습니다. 그는 또한 옛날 물건들을 보는 것을 대단히
좋아했으며 그것들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해 두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내게 말했습니다. 이미 거쳐온
두 곳, 즉 좁은 문과 통역관의 집에 들어가기를 몹시
원했지만 막상 문을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집을 떠나 겸손의 계곡으로
내려갔는데 제 평생에 그렇게 잘 내려가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내려가는
것을 보니 그는 결국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로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은 그 계곡과
어떤 연민의 정 같은 것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여행 도중 그때처럼 그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까요.
거기에서 그는 땅에 뒹굴기도 하고, 땅을
끌어안기도 했으며 그리고 계곡에 피어 있는 꽃들에
입을 맞추기도 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새벽에
일어나서 계곡의 이곳저곳을 산책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그늘 계곡 입구에 들어섰을 때 저는
꼭 그를 잃어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집으로 되돌아가려고 해서가 아니라 무서움에 질려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도깨비들이 날 잡아먹을 거야. 도깨비들이 날
잡아먹어!"
이렇게 울부짖는데 어떻게 진정시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가 너무 소리를 질렀으므로 만약
도깨비들이 그 소리를 들었더라면 용기 백배하여
달려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주 이상한 일을 보게 됐습니다. 그가
계곡을 지나가는 동안에는 그 전에 다른 사람들이
통과하던 때와는 다르게 그 계곡이 조용한
것이었습니다. 그곳의 적들이 우리 주님의 특별한
조치를 당하고 있으며, 두려움 씨가 지나갈 동안에는
나타나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길게 늘어놓아서
지루하겠지만 한두 마디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허영의 시장에 도착했을 때 그는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싸우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우리 둘이 몰매를 맞아 죽지나 않을까 겁까지
났습니다. 그만큼 그는 지독하게 그들의 바보짓을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마법에 걸린 지역에서도 그는
매우 또렷또렷했습니다. 그러나 다리가 없는 강에
도착하자 그는 다시 깊은 시름에 잠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이제 나는 영원히 물 속에 빠져서 그렇게도 오랜
여정을 통과하면서 뵈오려던 주님의 얼굴은 영영 보지
못하게 되겠구나."
그런데 또 여기에서 전에 볼 수 없었던 유별난 일을
보게 됐습니다. 그 강물의 깊이가 그렇게 낮아진 것은
평생 처음 보았으니까요. 그래서 결국 그는 무릎밖에
안 차는 강을 건너게 됐습니다. 하늘나라 문을 향해
올라갈 때 저는 그에게 이별을 고하고 그가 하늘나라
문에서 환영받게 되기를 기원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염려 마세요. 저는 환영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 헤어졌습니다. 그후로 나는
더 이상 그를 보지 못했습니다.
정직함 : 결국 그 사람은 잘된 것 같군.
위대한 마음 : 물론입니다, 물론이예요. 저는 그
점에 대해 조금도 의심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는
참으로 순수한 정신의 소유자였으니까요. 다만 그는
항상 열등감에 젖어 있었고 그 열등감이
자기자신에게는 무거운 짐이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골칫거리가 됐을 뿐이지요.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죄의식이 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남에게
해끼치는 걸 너무도 두려워하여 간혹 아주 정당한
일까지도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하여
억제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정직함 : 그렇게 착한 사람이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위대한 마음 :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현명하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뜻하시는 것이죠. 어떤
사람은 피리를 불고 어떤 사람은 울게 돼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두려움 씨는 베이스를 연주하게 돼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낮은 소리의 나팔을
부는데 그 소리는 다른 어떤 악기의 음조보다도
음울하게 들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베이스야말로 음악의 기초음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지 않는 신앙고백은 절대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악사가 조율할 때 가장 먼저 켜는 것은 베이스
선이지요. 인간의 영혼을 자기의 음조에 맞추고자 할
때 하나님이 제일 먼저 튀겨보시는 것도 바로 이 선인
것입니다. 다만 두려움 씨에게 단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가 평생토록 다른 음률은 연주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제가 이렇게 음악연주를 비유해 설명하는
것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확산시키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계시록에서도 구원받은 자들을 보좌 앞에서
나팔 불고 하프를 켜며 노래하는 무리들에 비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직함 : 그는 매우 열성적인 사람이었구료.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많은 고난과 사자들
그리고 허영의 시장, 그 모든 것을 그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기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를 의심하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무서운 것은 죄, 죽음 그리고 지옥뿐이었소.
위대한 마음 : 옳은 말씀입니다. 그것들이 그를
괴롭힌 것은 사실이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그가 그런
것들을 무서워한 것은 마음이 약해서일 뿐이지 실제로
순례자의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정신이 약해서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잠언에 기록돼 있는 것처럼 그의
앞길을 불이 막는다면 그는 그 불을 던지는 자와 싸워
때려 눕힐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을 억누르고 있던 여러 가지 요소들은 어느
누구도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때 크리스치아나가 입을 열었다.
"두려움 씨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도 도움이
됐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나같이 심약한 사람은 둘도
없다고 생각해 왔죠. 그런데 그 착한 분과 저는 어떤
비슷한 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다만 두 가지
점에서 우린 서로 다를 뿐이지요. 그는 크나큰 고뇌를
밖으로 표출했고 저는 그걸 속으로 삭였습니다. 또한
그의 고뇌는 그로 하여금 기다려주고 있는 집 문을
두드리지 못하게 억눌렀는데, 저의 고뇌는 오히려
나로 하여금 더욱 세게 문을 두드리도록
만들었습니다."
자비심 : 만약 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제게도 두려움 씨가 가지고 있던 두려움이
얼마쯤 깃들여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게도 낙원의 자리를 잃고 불바다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다른 무엇보다도 컸습니다. 저는 혼자
생각했지요. '오, 천국에서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이 세상 모든 것을 포기해도
좋으련만.'
이번엔 매튜가 말했다.
'두려움은 제가 두려움을 품고 있는 한 결국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 씨처럼 훌륭한 사람도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면 결국 저도 구원받을 수 있게 되리라는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제임스가 말했다.
"두려움이 없는 곳에는 은혜도 없습니다. 물론
지옥에 대한 공포가 있는 곳에 항상 은혜가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곳에 은혜가 없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위대한 마음 : 제임스야, 너 참 말 잘했다. 네가
정곡을 찔렀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곧
지혜의 출발이지. 그리고 천릿길도 한걸음부터이니까.
어쨌든 두려움 씨에 대한 이야기는 그에게 이별의
노래나 한 곡 불러 주고 여기서 그만 그치기로
합시다.
아, 두려움 씨, 당신은
당신의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여기에 있는 동안
당신으로 하여금 배신케 할
그 어떤 행위도 그대는 두려워했다.
당신은 지옥의 불과 끝없는 구덩이를 두려워하는가?
다른 사람들도 또한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은 다만 당신과 같은 그런 지혜가 부족하여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 위대한 마음이 두려움 씨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으므로 이번에는 정직함이 다른 이야길 들려 주기
시작했다. 그가 말하는 주인공의 이름은
'방자함(Self-will)'이었다. 그가 말햇다.
"그는 자신이 순례자인 척 했지. 하지만 나는 그가
길 어귀에 있는 문을 통해 들어오지 않았음을
확인했지요."
위대한 마음 : 그것에 관해서 그와 이야기를 좀
나눠보셨습니까?
정직함 : 물론이오. 한두 번이 아니었소. 그는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였소. 자기 멋대로 방자하게
굴었지. 그는 인간이고 토론이고, 심지어는 예를
들어보는 것조차 개의치 않는 사람이었소. 그저
마음내키는 일이면 그 일을 했소. 아무것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지.
위대한 마음 : 그럼 그가 고수하던 원리란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정직함 : 그는 인간은 순례자들의 덕행뿐만 아니라
비행 또한 본받을 수 있다고 주장을 했지. 그 두
가지를 다 본받으면 틀림없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했소.
위대한 마음 : 뭐라고요? 만약 그가 한 말이
"아무리 훌륭한 자도 그가 순례의 덕행을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행 또한 저지를 수 있다."는
뜻이라면 일리 없는 말도 아니지요. 왜냐하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절대적으로 비행을 저지르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까요. 우리는 다만 경계하고 노력할
뿐이지요. 그러나 그 사람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닌 것
같군요. 제가 노인 양반의 말씀을 옳게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의 경우에는 경계하고 투쟁하지
않고서도 비행이 허락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직함 : 맞소, 바로 그런 말이었소. 그는 그렇게
믿고 또 그렇게 실행했지.
위대한 마음 : 하지만 어떤 근거에서 그는 그런
말을 하고 있었습니까?
정직함 : 성경이 곧 자신의 주장을 옹호해 준다고
말했지.
위대한 마음 : 뭐라고요? 영감님, 좀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십시오.
정직함 : 그럽시다. 그는 다른 남자의 부인과
간통하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다윗이 이미
저질러놓았으므로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었소.
또한 한 남자가 여러 여자를 거느리는 것도 솔로몬이
했으므로 그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 또 사라를
위시한 이집트의 착한 산파들도 거짓말을 하여 라합을
살렸으니 자기자신도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논리였소. 그는 또한 예수의 제자들이 주인의 명령에
따라 임자있는 나귀를 빼앗았으니 자기도 그런 짓을
할 수 있다고 말했소. 또 야곱이 얕은 꾀와 속임수로
아버지의 상속을 물려받았으니 자기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도 말했지요.
위대한 마음 : 참으로 지독하게 천한 사람이군요.
정말로 그가 그따위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입니까?
정직함 : 그가 그런 주장을 펴면서 성경을 가져다
증거로 삼으려 변론하는 것을 내가 들었소.
위대한 마음 : 도대체 용납할 수 없는 엉터리
견해군요.
정직함 : 내 말을 잘 이해해야 하겠소. 그는
누구든지 그런 짓을 할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소.
덕행을 쌓고 실행하는 사람만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소.
위대한 마음 : 하지만 그런 결론보다 더 거짓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어떤 착한 사람이 전에 죄를
지었으니까 계속해서 마음내키는 대로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또는 어떤 어린아이가 바람에 떠밀리거나 돌에 걸려
진흙탕에 넘어져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됐으니 그도
기꺼이 진흙탕에 빠져 돼지처럼 뒹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육욕에 어두워
그렇게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기록돼 있는 것은
진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말씀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며 그렇게
되기로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스스로 비행을 저지르는 상습범까지도 착한 사람의
덕행을 할 수 있다는 그의 가설 또한 터무니없는
망상입니다. 그것은 마치 개가 "나도 어린아이와 같은
자질을 가질 수 있으며 또한 갖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배설물을 핥아먹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저지르는 죄를 함께 범한다는 것이
그들의 미덕을 함께 소유하고 있다는 표시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지금
현재 신앙이나 사랑을 그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영감님께서는 그에게
강하게 반박하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정직함 : 글쎄, 그는 소신껏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생각은 다르면서도 생각과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솔직하다고 말했소.
위대한 마음 : 매우 교활한 대답입니다. 생각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육욕의 고뇌를 풀어놓는 것도
나쁘지만, 죄를 지으면서 오히려 봐달라고 하는 것은
한층 더 나쁜 것이지요. 전자는 은혜받은 자를
타락하게 하는 것이고, 후자는 그들에게 함정에
빠지도록 권유하는 것이빈다.
정직함 : 그 사람과 같은 생각을 품고 있으면서도
말로는 표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순례의 길을 가는 것이 그렇게
보잘것없는 것으로 평가받는 것이지요.
위대한 마음 : 옳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애통해 할
일입니다. 하지만 낙원의 임금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그들 곁을 떠나 올 것입니다.
크리스치아나 : 세상에는 별 이상한 생각도 다
있습니다. 저는 "죽을 때가 다 돼서 회개해도 시간은
넉넉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알고 있어요.
위대한 마음 : 그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지요.
마치 한 주일에 20마일을 가야만 하는 사람이
하루하루 미루다가 마지막 날에 20마일을 가겠다는
것과 같은 생각이지요.
정직함 : 옳은 말이오. 그런데 스스로 자신을
일컬어 순례자라 하는 자들이 일반적으로 그런 궁리를
하고 있지. 나는 당신들이 보시다시피 늙은이요.
그리고 이 길을 꽤 여러 날 걸었소. 나는 여러 가지
일을 주의 깊게 살펴봐왔소.
처음에는 온 세계를 정복할 듯이 설치다가 며칠
후에 황야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나는 보았소.
약속의 땅은 쳐다보지도 못하고서 말이오.
또한 처음에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던
사람이 별로 약속받은 것도 없이 순례의 길에
나섰으나 결국에는 훌륭한 순례자가 되는 것도
보았소.
나는 부리나케 달려가다가 잠시 후 다시 부리나케
되돌아 달려오는 사람도 보았지요.
나는 또한 초창기에는 순레의 생활에 대해 매우
좋게 이야기하다가 나중에는 그저 비난만 하는 사람도
보았지요.
나는 또 어떤 사람들이 처음으로 낙원을 향해
출발할 때에는 긍정적으로 "거기에 그런 장소가
있다."고 말하다가 그곳 가까이에서 되돌아서며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소리도 들었소.
어떤 사람들은 길에서 무엇이든 만나면
이러이러하게 대처하겠다고 큰소리치다가 거짓된
경고에 넘어가 신앙과 순교자의 길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것도 보았소.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 길을 걷다가 그들을
만나려고 달려오는 어떤 사람과 마주쳤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신사 여러분, 그리고 연약한 아녀자들이여, 목숨이
아깝거든 빨리 도망치시오. 이 앞에 강도들이
있습니다."
그러자 위대한 마음이 말햇다.
"전에 작은 믿음을 덮쳤던 그 세 놈을 이야기하는
모양이군요. 그러나 우리는 싸울 준비가 돼
있습니다."
그들은 게속 길을 걸었고, 길 모퉁이를 돌 때마다
혹시 강도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여 앞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위대한 마음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여행자들을 털러갔는지 그들은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몹시 피곤해진 크리스치아나는 자신과 아이들이 쉴
수 있는 여관이 하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자
정직함이 말했다.
"조금만 더가면 매우 존경받는 주님의 제자
가이오가 살고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그 집에 들기로 했다. 그
노인이 그 사람에 대해 매우 좋게 소개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집 문을 두드리지 않고 그냥
안으로 들어갔는데, 여관의 문은 두드리지 않는 것이
민간의 풍속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집주인을 부르자
주인이 곧 달려왔다. 그들은 하룻밤을 여기에서 묵을
수 있겠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가이오 : 예, 물론 묵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진실하신 분들이라면 말입니다. 우리집에서는
순례자가 아닌 분은 받지 않으니까요.
여관집 주인이 특별히 순례자들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알고서 크리스치아나와 자비심 그리고
아이들은 더욱더 반가웠다. 그래서 그들은 방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집주인은 크리스치아나와
자비심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방 하나와 위대한
마음과 노인을 위한 방 하나를 보여주었다.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착한 가이오여, 저녁식사는 어떻게 됐소? 이
순례자들께서는 오늘 굉장히 많이 걸어서 몹시 지쳐
있답니다."
가이오 :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밖에 나가
음식을 사올 수가 없어요. 하지만 괜찮으시다면 집에
있는 재료로 음식을 장만해 보겠습니다.
위대한 마음 : 물론 괜찮습니다. 여기서는 맛있는
재료가 떨어진 적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자 그는 아래로 내려가
'별미(Taste-that-which-is-good)'라는 이름의
요리사에게 여러 손님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시 올라와 그들에게
말했다.
"자, 어서 오십시오. 착하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당신들을 모실 방이 마침 있어서 매우
기쁘군요. 저녁 준비가 되는 동안 괜찮으시다면 서로
유익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들 모두가 좋다고 대답했다. 먼저 가이오가
말했다.
"이 나이 지긋하신 부인은 어느 분의 부인이시며 이
젊은 처녀는 어느 분의 따님이시지요?"
위대한 마음 : 저 부인은 일찍이 순례자였던
크리스찬의 부인이시고, 아이들은 그의 아들들입니다.
이 아가씨는 부인이 잘 아는 이웃이었는데 부인에게
설득돼 함께 순례의 길에 오르게 된 처녀입니다.
아이들은 지금 한결같이 부친의 뒤를 따라 그
발자취를 더듬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밟았던
발자국이나 누웠던 흔적을 발견하기만 해도 기쁨으로
설레며 같이 누워보기도 하고 발자국을 맞춰보기도
한답니다.
그러자 가이오가 말했다.
"이분이 크리스찬의 부인이시고 이 아이들이
크리스찬의 아들들이라고요? 나는 댁의 남편의
아버님을 알고 있지요.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 가문에선 훌륭한 사람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의 조상은 맨 처음 안티옥에서
살았었지요. 아마도 댁의 남편이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겠지만 크리스찬가의 선조들은 매우
훌륭한 분들이었습니다. 내가 알기로 그분들은
무엇보다도 순례자들의 주님이신 하나님과 그분의
길과 그리고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훌륭한
미덕과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남편의
친척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위해서 시련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신 남편이 가문
중에서 최초의 선조 중 한 사람인 스테반은 돌에 맞아
머리가 깨졌지요. 당신의 또 다른 선조의 한 사람인
제임스, 즉 야고보는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댁의
남편 가문에 속했던 사람으로서 바울이나 베드로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사자 우리에 던져진
이그나티우스, 육신에서 뼈가 발림당하는 형벌을 받은
로마누스, 화형을 당한 폴리캅 등이 모두 그 가문에
속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뜨거운 태양 아래서
바구니 속에 갇혀 매달려 있다가 장수말벌의 먹이가
된 사람도 있었고, 자루에 넣어 바다 속에 던져져
익사당한 사람도 있었지요. 순례자의 생활을
사랑하다가 고통을 당하여 죽어간 사람들은 일일이 셀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어쨌든 댁의 남편께서 이렇게
귀여운 네 아들을 남겨놓으신 것을 보니 저로서는
기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아이들이 아버지의
명예를 이어받아 그 발자취를 밟아 결국 그에게로 갈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위대한 마음 : 그렇습니다. 이 아이들은 참으로
믿음직스럽습니다. 진심으로 자기 아버지의 길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가이오 : 제 말이 곧 그 말입니다. 따라서
크리스찬가는 이땅에 널리 번성하고 온 세상에 무수히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치아나 부인으로
하여금 네 아들을 위한 약혼녀를 물색토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부친의 이름과 그 조상들의 가문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정직함 : 이런 가문이 몰락한다거나 대가 끊긴다는
것은 비극이지요.
가이오 : 몰락은 말이 안됩니다. 물론 감소될 수는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니까 크리스치아나 부인은 제
권고를 듣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문제해결의
길이니까요.
여관집 주인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크리스치아나 부인, 나는 부인과 부인의 벗인
자비심 양이 여기 함께 계신 것을 보고 매우
기뻤습니다. 두 분은 썩 잘 어울리는 짝이십니다.
자비심 양을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 삼으라고
권해드리고 싶군요. 그녀가 동의한다면 부인의
맏아들인 매튜와 성혼시키세요. 그것이 가문을 이땅에
존속시키는 길입니다."
그리하여 이 중매는 성취되었고, 얼마 후 그들은
결혼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자.
가이오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여자들을 대신해서 말하겠습니다.
그들이 받는 비난을 물리쳐주어야겠습니다. 이를테면
죽음과 저주가 여자들에 의해 이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생명과 건강도 여자들을 통해서 들어왔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셨으되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으니까요. 실제로 이브 다음의 여인들이
얼마나 최초의 어머니가 저지른 짓을 미워했으며,
구약에 나오는 여인들이 혹시 자기가 구세주의
어머니가 될까 하여 얼마나 자식 낳기를 갈망했던가를
보십시오. 또한 구세주가 오셨을 때도 남자나
천사보다 먼저 기뻐한 것은 여자였습ㄴ다. 나는
남자들이 그리스도께 동전 한 닢 바쳤다는 기록은
읽지 못했지만, 여자들이 그분을 따르고 자기들의
물질을 바치며 섬겼다는 기록은 많이 보았습니다.
눈물로 그분의 발을 씻어준 것도 여자요, 무덤에
묻히기 전에 시체를 기름으로 닦은 것도
여자였습니다. 그분이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울음을
터트린 것도, 십자가에서 무덤까지 따라간 것도 모두
여자들이었으며 매장할 때 무덤 곁에서 지키고 앉아
있던 것도 여자들이었습니다. 부활하신 날 아침
그분을 처음 본 것도 여자였고 다시 사셨다는 그 기쁜
소식을 제자들에게 맨 처음 전한 것도 여자였습니다.
따라서 여자들은 사랑을 많이 받은 몸들이며 은혜로운
생활을 우리와 함께 누릴 수 있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때 요리사가 저녁식사 준비가 거의 끝났음을
알려왔고, 한 사람이 와서 식탁보를 깔고 접시와
소금과 빵을 가지런히 놓았다. 매튜가 말했다.
"식탁보와 밑반찬들을 보니 그 어느 때보다 식욕이
왕성해지는 것 같습니다."
가이오 : 이 세상에서 배운 모든 교리가 천국에서
위대하신 왕의 식탁에 앉고 싶은 열망을 네게
심어주길 바란다. 이 세상에서의 모든 설교, 책
그리고 법령이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주님께서 베푸실 잔치에 비하면 식탁에 놓인 소금이나
빈 접시에 불과할 뿐이니까.
드디어 음식이 올라왔다. 먼저 치켜진 앞다리와
뒤틀린 가슴살이 식탁에 놓였다. 그것은 식사를 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을 올려야 함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치켜진 앞다리를 가지고 다윗은 자기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쳤고, 상심이 될 때는 뒤틀린
가슴으로 하프를 품고 연주했던 것이다. 그 두 음식은
매우 신선하고 맛이 있어 모두들 마음껏 먹었다.
다음으로 날라온 음식은 피처럼 붉은 포도주였다.
가이오가 그들에게 말했다.
"마음껏 드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진짜 포도원액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마시고 함께 흥겨워했다.
다음 음식은 빵가루를 적당하게 푼 우유 한
접시였다. 가이오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나 먹어라. 어서들 장성해야 할 테니까."
다음에는 버터와 꿀을 담은 접시가 들어왔다.
가이오가 다시 말했다.
"마음껏 드십시오. 이 음식은 여러분의 판단력과
이해력을 증진시키는 데 좋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어렸을 적에 드시던 음식입니다. '악을 거절하고 선을
취하려는 자는 버터와 꿀을 들라.'고 했지요."
다음에는 사과가 담긴 접시가 들어왔는데, 그
사과들은 대단히 맛이 있었다. 이번엔 매튜가 말했다.
"사과는 뱀이 우리의 첫 어머니를 유혹할 때 사용한
것인데 우리가 먹어도 될까요?"
그러자 가이오가 대답했다.
우리는 사과로 속임수에 빠졌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을 더럽힌 것은
사과가 아니라 죄악이었다.
금지된 사과를 먹으면 피를 부르나
허락된 사과를 먹으면 몸에 이로운 것.
주님의 비둘기인 그대 교회여, 포도주를 마시고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이여, 주의 사과를 먹으라.
그러자 매튜가 말했다.
"저는 얼마 전에 과일을 먹고 아팠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망설여집니다."
가이오 : 금지된 과일은 병들게 하지만 주님이
허락하신 과일은 괜찮은 것이다.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 또 다른 음식이
들어왔다. 그것은 접시에 담은 호두였다. 누군가가
말했다.
"호두는 어린 치아를 상하게 하는데, 특히
어린아이들의 치아를."
가이오가 그 말을 듣고는 한마디했다.
호두란 단단한 가르침
나는 그것을 사기꾼이라 부르지 않으리.
호두의 단단한 껍데기는
아무나 먹지 못하게 알맹이를 지킨다.
그러나 껍데기를 깨어라,
그러면 알맹이를 먹을 수 있으리라.
껍데기를 깨고 먹으라고 여기 호두를 가져왔나니.
그들은 희희낙락하며 오랫동안 식탁에 앉아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그때 노인이 말했다.
"여보 착한 주인 양반, 우리가 호두 껍데기를 깨고
있는 동안 이 수수께끼나 풀어보시오.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하지만,
많이 내버릴수록 많이 얻는 사람은."
그러자 모두들 시선을 집중하여 착한 가이오가
뭐라고 하는가 귀를 기울였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기 재산을 나눠주는 사람은
열 배도 더 되는 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러자 조세프가 말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선생님께서 그 문제를
푸시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습니다."
가이오가 말했다.
"아, 이런 방면의 훈련은 나도 많이 받았다오.
경험보다 훌륭한 교사는 없지요. 누구에게나 친절해야
한다는 걸 나는 주님께 배웠고 친절하면 얻는 것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지. 흩뿌리지만
늘어나는 것이 있고 지나치게 아껴도 가난하게 되는
수가 있어요. 스스로 부자가 돼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는 자가 있으며, 스스로 가난한 자가 돼도 커다란
부를 갖게 되는 자도 있습니다."
그때 새뮤얼이 자기 어머니인 크리스치아나에게
속삭였다.
"어머니, 이 집 주인은 매우 좋은 사람 같아요.
여기서 좀더 오래 머무르면 어떨까요? 그래서 매튜
형님이 자비심과 결혼식을 치른 후에 다시 길을
떠나도록 해요."
집주인 가이오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참 좋은 생각이구나, 얘야."
그리하여 그들은 그곳에서 한 달이 넘도록 머물렀고
자비심과 매튜는 결혼을 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자비심은 예전에 하던 대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웃옷과 외투를 만들어주었는데,
이것은 순례자들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어쨌든 다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저녁
식사가 끝나자 아이들은 긴 여행에 시달려 피곤했기
때문에 곧 잠자리에 들고 싶어했다. 가이오는
사람들을 불러 그들을 침실로 안내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자비심이 말했다.
"제가 그들을 재우겠어요."
그녀는 아이들을 침대에 뉘었다. 그들은 곧 잠에
곯아떨어졌고, 다른 사람들은 꼬박 앉아서 밤을
새웠다. 가이오와 그들은 서로 의기상통하는 점이
있어서 그만 자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 여행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주님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참 하고 있는데 조금 전에
가이오에게 수수께끼를 내주었던 늙은 정직함이 졸기
시작했다. 그러자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영감님, 졸리신 모양이군요. 자, 정신을 차리고 이
수수께끼를 풀어보세요."
"어디 들어봅시다."
하고 정직함이 말했다. 그러자 위대한 마음이
이렇게 말했다.
"죽이려는 자는 먼저 정복당해야 하고,
외국에서 살고 싶은 자는 먼저 본국에서 죽어야만
한다."
정직함이 말했다.
"음, 어려운 문제군. 풀기도 어렵지만 그대로
행하기는 더 어렵겠어. 하지만 주인양반, 수수께끼
푸는 것을 내 당신에게 양보하리다. 당신이 설명을 해
보시오. 나는 들을 테니."
가이오가 말했다.
"아닙니다, 영감님 차례입니다. 모두들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죄를 극복하려는 자는
먼저 은총에 정복당해야만 하고,
지금 살아있는 자는
스스로 죽어야만 살아 있다 하리오."
가이오가 말했다.
'옳은 말씀입니다. 훌륭한 교리와 경험을 통해서
그것을 알 수 있지요. 우선 은총이 스스로 나타나 그
영광으로 인간의 영혼을 사로잡지 못하면 마음의
죄악에 반항할 기운이 생길 리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약 죄가 사탄의 결박이라면 그 줄에 영혼이
묶여 있는데, 그 결박으로부터 먼저 자유롭지 않고
어떻게 항거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로, 이성이나
은총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부패에 노예가 돼 있는 그런 사람을 은총의 산
기념비라고 믿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생각이 나는데 여러분들이 들어둘 만한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순례의
길을 가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젊었을 때, 또 한
사람은 늙었을 때 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 젊은이는
심한 타락과 씨름을 해야 했는데 늙은이는 생리적인
쇠퇴와 함께 씨름해야 할 타락조차도 쇠퇴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젊은이는 늙은이와 마찬가지로
발걸음을 가볍게 옮겼고 매사에 어두운 점이
없었습니다. 그 둘은 서로 비슷해 보입니다만 사실
자신의 은총을 더욱 분명하게 빛낸 사람은 둘 중
누구이겠습니까?"
정직함 : 물론 젊은이이지요. 가장 큰 난관에
대항한다는 것은 그 힘이 강하다는 사실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니까 말이오. 특히 그들이 겪는 난관의
반도 되지 않는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그렇지요. 물론 노인들은 그렇지 못하지요.
게다가 나는 늙은이들이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오히려 자신을 치켜세우는 것을 보아왔소.
말하자면 나이가 들어 자연히 쇠퇴된 것을 가지고
마치 자기자신의 타락에 대한 영광스러운 승리이기나
하듯 스스로를 속이고 있더란 말이오. 늙은이들이
젊은이들에게 충고해 줄 수 있는 건 그들이 그만큼
헛된 일들을 많이 겪었기 때문인 것이오. 그러나
늙은이와 젊은이가 함께 동행한다면 자기 속에
작용하는 은총의 힘을 더욱 분명하게 발견하는 쪽은
젊은이이지. 비록 늙은이의 타락이 자연히 쇠퇴해졌다
하더라도 말이오.
이리하여 그들은 날이 샐 때까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식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크리스치아나는 아들 제임스에게 성경을 한 장
읽으라고 했다. 그는 <이사야서>의 한 장을 읽었다.
읽기를 마치자 정직함이 왜 구세주가 마른 땅에서
나왔고, 또 고운 풍채도 갖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을까를 물었다. 그러자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첫째 구절에 대해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은 당시
그리스도께서 적을 두셨던 유대교회가 종교로서의
활기와 정신을 거의 다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구절은 믿지 않는 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들에겐 우리 왕자님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는 눈이 없었기 때문에 그를 외모로 보아 단순한
사람으로 판단했던 것입니다. 마치 보석이 평범한
껍질로 싸여 있는 걸 몰라서 보석을 발견하고서도
그냥 평범한 돌멩이를 던져버리듯 버리는 그런 자들과
같은 것입니다."
가이오가 말했다.
"말씀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위대한
마음이 무기를 잘 다룬다고 합니다. 기운을 좀 차린
다음에 들판으로 나가서 어떤 좋은 일을 할 것이
없는가 찾아보면 어떻겠습니까? 여기서 1마일쯤
떨어진 곳에 '선을 죽임(Slay-good)'이라는 거인이
살고 있는데, 그놈이 이 부근의 왕의 길에 나타나
심술을 부리곤 한답니다. 그의 소굴을 내가 알고
있는데 그는 여러 도둑놈들의 두목입니다. 이 근처에
다시는 얼씬도 못하도록 할 수만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이 말에 그들은 모두 찬성하여 길을 나섰다. 위대한
마음은 칼과 투구와 방패로 무장하고 나머지는 창과
몽둥이를 들었다.
그들이 거인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심약자(Feeble-mind)'라는 사람을 손아귀에 거머쥐고
있었다. 길을 걷고 있는 그를 거인의 부하들이 잡아다
바친 것이었다. 마침 거인은 뼈를 추려내기 위해 그의
몸을 뒤지고 있는 참이었다. 그는 날고기를 먹는
자였던 것이다.
이윽고 무장을 하고 동굴 어귀에 서 있는 위대한
마음 일행을 보자 그는 무슨 까닭으로 왔느냐고
호통을 쳤다.
위대한 마음 : 우리는 네 놈을 잡으려고 왔다.
네놈이 왕의 길에서 끌어내어 살해한 숱한 순례자들의
원한을 갚아주마. 동굴 밖으로 나오너라.
거인은 무장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싸움은 한 시간
이상 계속되다가 그들은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서
있게 되었다. 그때 거인이 말했다.
"어째서 너는 내 땅을 침범했느냐?"
위대한 마음 : 순례자들의 피에 복수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싸움은 다시 계속 되었고, 위대한 마음이 뒤로
물러서다가 곧 반격하여 거인의 머리와 옆구리를
세차게 내리쳐서 무기를 떨어뜨리게 했다. 그러고는
다시 강하게 내리쳐서 그의 목을 잘라 여관으로
가지고 왔다. 위대한 마음은 또한 순례자 심약자를
동굴에서 구해 내어 자기 거처로 데리고 왔다. 집에
돌아온 그들은 거인의 머리를 식구들에게
보여주고나서 전에도 다른 머리들을 매달았던 것처럼
하늘 높이 매달았다. 그것은 이후 같은 짓을 하려는
자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그후 그들은
심약자에게 어떻게 해서 그의 손에 잡히게 되었는가를
물어보았다. 그 가련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보시다시피 저는 병든 몸입니다. 죽음이 하루에 한
번씩 내 방문을 두드렸기 때문에 더 이상 집에 머무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됐으며 나와 우리 아버지가 태어난 곳인
'불확실'이라는 마을을 떠나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나는 마음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한
푼어치의 힘도 없는 사람입니다만, 할 수만 있다면
평생 기어서라도 순례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이 길의
입구에 있는 문에 도착했을 때도 그곳의 주인께서는
나를 후하게 대접해 주셨습니다. 나의 가냘픈 몸매나
연약한 마음에 대해 탓하지도 않고 여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을 챙겨주시면서 끝까지 소망을 잃지
말라고 격려까지 해주셨습니다. 통역관 씨 댁에 갔을
때도 친절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고생길
언덕은 내게 너무 힘든 길이라 하여 하인 한 사람이
나를 업어다주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나와 동행하여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많은
순례자들로부터도 위안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앞질러가면서 내게 용기를 가지라고 하면서 나와 같은
심약한 자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도 주님의 뜻이라고
일러주고는 서둘러 자신의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내가 '습격의 거리(Assault-lane)'에 도착했을 때 이
거인이 나타나 내게 한판 겨룰 준비를 갖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처럼 연약한 놈에겐 오히려
강장제 한 알이 더 필요했지요. 그래서 그놈이
덤벼들어 나를 잡은 겁니다. 나는 그가 나를 죽이지는
못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가 나를 자기 굴 속으로
데리고 갔을 때도 내가 스스로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나오리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
어떤 순례자라도 강제로 잡혔을 때 마음만 전적으로
주님께 바치고 있으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적의
손에 죽지는 않는다는 말을 나는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강탈당한 듯이 보이고 또 강탈당한
것이 사실이지만 보시다시피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이런 일을 계획하고 꾸미신 하나님과 그 일의 수단이
돼 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른 훼방꾼이
나를 또 덮치겠지요.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이 길을 갈 것입니다. 뛸 수 있으면 뛰고, 뛸 수
없으면 걷고, 걸을 수 없으면 기어서라고 갈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나를 사랑해 주시는 그분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결심을 했습니다. 길은 내 앞에
있습니다. 비록 심약한 몸을 하고 있지만 내 마음은
다리 없는 그 갈을 건너가 있답니다."
그러자 늙은 정직함이 말했다.
"혹시 얼마 전에 순례자 두려움 씨와 알고 지내지
않았습니까?"
심약자 : 예, 그와 알고 지냈습니다. 그는 멸망의
도시 북쪽으로부터 40리 떨어져 있고, 내가 태어난
곳에서는 훨씬 더 먼 곳인 우둔함이라는 마을에서
왔습니다. 우리는 진작부터 잘 알고 있었죠. 실은
그는 내 삼촌이니까요. 그와 나는 상당히 비슷한
기질을 갖고 있습니다. 키는 나보다 약간 작지만
용모는 비슷하지요.
정직함 : 당신이 그를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와
친척지간이라는 것도 미루어 알 수 있겠소. 두 사람이
피부도 같이 하얄 뿐만 아니라 눈길도 비슷하고
말투도 서로 닮은 것 같습니다.
심약자 : 우리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말합니다. 게다가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성품을 내
안에서도 거의 다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이오 : 여보시오, 기운을 내시오. 당신을
환영합니다. 뭐든지 원하는 게 있으면 마음놓고
청하시오. 그리고 이 집에 있는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명령만 하시오. 그들은 즐거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자 심약자가 말했다.
"이건 생각도 못한 환대입니다. 밝은 태양이 어둠을
헤치고 솟아나는 것 같군요. 거인 선을 죽임이란 자가
내 앞길을 막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한 것은
바로 이런 환대를 받게 하려는 것이었군요. 내
주머니를 뒤진 다음에 이 가이오 댁으로 가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어쩐지 그렇게 생각됩니다."
이렇게 심약자와 가이오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달려와 문을 두드리고는 한 1마일
반쯤 떨어진 곳에서 '부정(Not-right)'이라는
순례자가 벼락을 맞아 쓰러져 있다고 알려주었다.
심약자가 말했다.
"저런, 그래 죽었습니까? 그는 내가 여기까지 오기
며칠 전에 나를 앞질러갔었는데 실은 나와 함께
동행하기도 했었지요. 거인 선을 죽임이 나를
붙잡았을 때도 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빨리
돌아서서 도망쳤지요. 이제 와서 보니 그는 죽으려고
도망을 쳤고, 나는 살려고 잡혔던 것 같습니다."
금방 죽음을 당하리라 생각되었던 사람이
가끔 그 비참한 위험으로부터 벗어난다.
죽음의 얼굴을 가진 바로 그 섭리가
이따금 비천한 자에게 생명을 베푼다.
나는 붙잡히고 그는 도망쳐 달아났건만,
운명은 뒤바뀌어 그에겐 죽음을
그리고 나에겐 생명을 베푼다.
이때쯤 매튜와 자비심은 결혼을 했다. 또한
가이오는 자기의 딸 푀베를 매튜의 동생인 제임스에게
시집보냈다. 그후 그들은 가이오의 집에 열흘을 더
묵으면서 다른 순례자들이 하는 대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그들이 떠날 때가 되자 가이오는 잔치를 베풀었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즐겼다. 이윽고 떠나야 할 시간이
되자 위대한 마음은 숙박비 계산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나 가이오는 이 여관에서는 순례자가 직접
숙박비를 계산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며, 순례자들의
숙박비는 일년 동안 계산해 두었다가 착한
사마리아인에게 그 돈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
사마리아인은 다음에 돌아와서 밀린 숙박비가 얼마나
되든 꼭 갚아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위대한 마음이
그에게 말했다.
위대한 마음 : 사랑하는 이여, 형제건 모르는
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나그네 된 형제에게 봉사하는
것은 충성된 일입니다. 그들은 교회 앞에서 당신의
사랑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도록 그들을 정성껏 대접해 보냈으니 당신은
잘될 것입니다.
가이오는 그들 모두에게, 아이들과 특히 심약자에게
심심한 작별의 인사를 했다. 그는 또한 그들이 도중에
마실 음료도 주었다.
그들이 문을 막 나설 때였다. 심약자가 주저하는
몸짓을 하자 위대한 마음이 그것을 바로 눈치채고
말했다.
"자, 심약자 씨, 우리 함께 가십시다. 내가 당신을
안내하겠습니다. 다른 사람과 같이 편안하게
모시겠소."
심약자 : 아, 나는 내게 어울리는 동료를 원합니다.
당신들은 모두 정력적이고 강한데 보시다시피 나는
이렇게 몸이 약합니다. 괜히 나 때문에 여행에 지장을
받아 나나 당신들에게 짐이 되느니 차라리 뒤에
처져서 가겠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몸이
약하고 또 마음까지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쉽게 견디는 어려움에도 견디지 못하고
상처를 받는답니다. 나는 남들처럼 웃지도 못하고
화려한 옷을 걸치지도 못했으며, 쓸데없는 질문을
받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너무나
나약해서 다른 사람들이 예사로이 하는 행동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답니다. 나는 아직 모든 진리를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참으로 나는 무식한 그리스도교
신자이지요. 때로 남들이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있노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내 자신이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더 괴롭기만 합니다. 나는 언제나 강한
자들속에 섞인 약한 자요, 건강한 자들 속의 병든 자
혹은 멸시받는 등불과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실족하려는 자가 평안한 자를 생각하면서 등불을
멸시하는구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위대한 마음 : 하지만 형제여, 나는 마음이 약한
자를 위로하고 약한 자를 붙들어주라는 사명을 띠고
온 사람입니다. 당신은 꼭 우리와 동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천천히 걸으면서 당신을 기다려줄 것이고,
도와드릴 것이며, 말이든 행동이든 당신을 위해
우리의 주장을 포기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
앞에서 의심스러운 반박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을 뒤에 두고 우리만 떠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가이오의 문간에 서서 열띤 논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목발을 짚은
'망설임(Ready-to-halt)'이라는 사람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도 역시 순례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자 심약자가 망설임에게 말을 건넸다.
"여보시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소? 지금 막
적당한 동행자가 없어서 한탄하고 있던 참인데 잘
됐소. 어서 오시오, 망설임 씨. 우리 서로 도와가며
같이 갑시다."
망설임 : 동행할 수 있게 돼서 기쁩니다, 심약자
씨. 서로 떨어져 가는 것보다는 함께 동행하는 것이
훨씬 낫겠지요.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만났으니 이
목발을 하나 빌려드리지요.
심약자 : 아닙니다. 성의는 고맙습니다만
절름발이도 아닌데 목발을 의지해서야 되겠습니까?
혹시 개가 덤벼들기라도 하면 도움이 되겠지만요.
망설임 : 심약자 씨, 혹시 나나 내 목발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이렇게 하여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났다. 위대한
마음과 정직함이 선두에 서고 그 다음에
크리스치아나와 아이들이 그리고 그뒤를 심약자와
목발을 짚은 망설임이 따랐다.
정직함 : 이제 다시 길을 가게 됐으니 우리보다
먼저 순례의 길을 간 사람들에 관한 유익한 이야기가
있으면 좀 들려주시지요.
위대한 마음 : 그것 참 좋은 생각입니다. 옛날
크리스찬이 겸손의 계곡에서 아폴리온을 만나 어떻게
싸웠으며, 죽음의 그늘 계곡에서는 어떤 고생을
했는지는 들으셨겠지요. 또한 믿음이 마담 음탕한과
아담 1세, 불만 그리고 수치심을 만나 어떻게
싸웠는지도 분명히 들으셨을 겁니다. 그 넷은 이 길을
가다보면 만나게 되는 악한들이지요.
정직함 : 그 이야긴 다 들었소. 하지만 무엇보다도
믿음을 괴롭힌 놈은 수치심이었지요. 그는 만만찮은
친구니까.
위대한 마음 : 예, 순례자들이 모두 그러더군요.
모든 인간들 중에서 가장 못된 이름을 가진
놈이라고요.
정직함 : 그런데 크리스찬과 믿음이 수다쟁이를
만났던 곳은 어디였지요? 그 친구 역시 주목할 만한
놈이었지요.
위대한 마음 : 그자야말로 뻔뻔스런 바보였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정직함 : 그자가 믿음을 꾀려고 했었던가?
위대한 마음 : 그랬죠. 그러나 크리스찬이 금방
그자의 본색을 알아차리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가다가 옛날
복음전도사가 크리스찬과 믿음을 만나 장차 허영의
시장에서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미리 이야기 해 주던
장소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들의 안내자가 말했다.
"바로 이 부근에서 크리스찬과 믿음이 복음전도사를
만나 장차 허영의 시장에서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미리 이야기를 들었지요."
정직함 : 아, 그렇군! 그때 그는 꽤 어려운
성경구절을 그들에게 읽어주었지.
위대한 마음 : 그랬어요. 그러나 복음전도사는
그렇게 예언함으로써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럼 그 두 사람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그들은 사자같이 용감한
분들이었고 얼굴은 조금도 창백해지지 않았지요.
그들이 그 시장 거리의 재판관 앞에 섰을 때 얼마나
당당했는지 기억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정직함 : 그래, 믿음은 대단히 용감하게 고난을
견뎌냈어.
위대한 마음 : 용감했죠. 그리고 용감한 사나이답게
죽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희망이나 다른
사람들이 그의 용감한 죽음을 보고 신자가
됐다니까요.
정직함 : 그렇지. 이야기를 계속하시오. 당신은
많은 일들을 알고 있군.
위대한 마음 : 크리스찬이 허영의 시장 거리를
통과해 나온 후에 만난 악한은 비리란 작자였죠.
정직함 : 비리? 그가 누구지?
위대한 마음 : 아주 못된 놈이었죠.
사기꾼이었습니다. 세상 풍조대로 종교생활을 했는데
어찌나 교활한지 신앙 때문에 손해를 본다거나
고통받는 것은 결코 하지 않았어요.
그는 경우에 따라 자신에 맞는 종교를 가졌고 그의
아내도 그점에서는 남편 못지 않게 능란했습니다.
그는 항상 이랬다저랬다 했고 게다가 자기의 그런
변덕을 옹호까지 했지요. 그러나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그의 종말은 비참했고, 그 자손들 가운데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여 신자들의 아낌을 받은
자는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이때쯤에 그들은 무상함의 마을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그 마을에 허영의 시장이 있었다. 마을에
가까이 이르자 그들은 그 마을을 어떻게 통과할까에
대해 서로 상의하여 이런 저런 의견을 내놓았다.
위대한 마음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나는 몇 번 순례자들을 안내하여 이 마을을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네이손(Mr. Mnason)'이라는
이 마을 사람을 사귀어놓았습니다. 그는 사이프러스
태생으로 주님의 나이 많은 제자입니다. 그집에 가서
묵도록 합시다. 여러분이 괜찮으시다면 여기서 바로
그집으로 가시지요."
"좋소."
나이 많은 정직함이 말했다.
"좋아요."
크리스치아나도 말했다.
"나도 좋습니다."
심약자도 한마디했다. 모두들 좋다고 했다. 그들이
마을의 교외에 도착했을때는 저녁 무렵이었는데,
위대한 마음이 그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내었다.
그들은 그리로 가 문밖에서 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안에 있던 그 노인은 대번에 누가 왔는지를
알아차리고 문을 열어주었다. 모두들 안으로
들어갔다. 집주인 네이손이 물었다.
"오늘 얼마나 걸어왔소?"
그들이 대답했다.
"우리의 동료인 가이오 댁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참 멀리서 오셨군요."
하고 그가 말했다.
"매우 피곤하시겠습니다. 어서 앉으시지요."
그들은 자리에 앉았다. 그때 그들의 안내자가
말했다.
'여러분, 얼마나 좋습니까? 내 친구가 당신들을
환영해 줄 것입니다."
네이손 : 진심으로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이 있거든 말씀만 하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한 힘써보겠습니다.
정직함 :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당분간 쉴 수 있는
곳과 좋은 친구를 얻는 것인데, 지금 둘 다 얻은 것
같습니다.
네이손 : 쉴 자리는 지금 보시는 대로 이렇게
마련돼 있습니다만 좋은 친구는 좀 겪어보셔야 할
것입니다.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좋습니다, 이 순례자들을 유숙할 곳으로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죠."
하고 네이손이 말했다. 그는 일행들에게 각기
유숙할 방을 보여주고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함께
식사할 잘 꾸며놓은 식당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들이 식탁에 자리잡고 앉아 한동안 여행으로 인한
피로를 풀고 난 후에 정직함이 집주인에게 그 마을에
선량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를 물었다.
네이손 : 불량한 사람들에 비교하면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몇 분은 계시지요.
정직함 : 그분들을 좀 만나볼 수 없을까요? 순례의
길을 가는사람이 선량한 사람들을 만나는 건 바다
위를 항해하는 사람이 머리 위로 달이나 별을 보는
것처럼 반가운 일이니까요.
그러자 네이손은 발을 굴렀다. 발을 구르자 그의 딸
'은혜(Grace)'가 나타났다. 그가 자기 딸에게 말했다.
"너 가서 '회개함 씨(Mr. Contrite)', '성인
씨(Holy-man)', '성자 사랑 씨(Love-saint)', '솔직함
씨(Darenot-lie)' 그리고 '참회함 씨(Penitent)'에게
뵙고 싶어하는 손님들이 몇 분 우리집에 와 계시다고
말씀드려라."
그리하여 은혜가 곧 그들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서 식탁에 함께 앉았다.
집주인인 네이손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러분, 보시다시피 손님 몇 분이 지금 제 집에
계십니다. 모두 순례자이지요. 꽤 먼 곳에서 오셨는데
지금 시온산으로 가시는 길입니다."
그는 크리스치아나를 가리키며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이분이 누군지 아십니까? 옛날 동료 믿음과
곤욕을 치른 그 유명한 순례자 크리스찬의 부인
크리스치아나입니다."
그 말을 듣고 그들은 깜짝 놀라 일어서며 말했다.
"은혜가 우리를 부르러 왔을 때만 해도
크리스치아나 부인을 만나게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즐거운 만남입니다."
그들은 크리스치아나에게 안부를 묻고는 젊은
사람들이 아들들이냐고 물었다. 그녀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들이 말했다.
"너희들이 사랑하고 섬기는 하나님께서 너희를
아버지처럼 만들어 그가 지금 평안히 있는 천국으로
데려가실 것이다."
그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정직함과 회개함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지금 이 마을의 형편이 어떠냐고
물었다.
회개함 : 장이 설 때마다 우리는 매우 분주합니다.
여러 가지로 방해받고 시달리는 상황에서 마음과
정신을 바르게 가지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지요. 이런
곳에서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이러한 난관들을 겪으며
살려면 하루 스물 네 시간 빈틈없이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직함 : 당신네 이웃들은 좀 조용해졌습니까?
회개함 : 그 전보다는 훨씬 온건해졌습니다.
크리스찬과 믿음이 우리 마을에서 어떤 일을
당했는가는 알고 계시겠지만 최근에는 매우
온건해졌습니다. 내 생각엔 믿음이 흘린 피가
지금까지도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를 화형시킨 다음부터는 더 이상의
화형을 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때에 우리도 거리에
나서는 것이 무서웠지만 지금은 나다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고백자라는 이름조차 흉칙하게 여겨졌지만
지금은 특히 우리 마을의 어떤 골목에서는 종교가
영예로운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답니다.
이번엔 회개함이 그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들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됐습니까? 그리고 도중에 어떤 일들을 겪으셨는지요?"
정직함 : 길을 가는 나그네면 누구나 당하게 되는
그런 일들을 겪었소. 어떤 때는 길이 평탄하다가도
어떤 때는 험난했고, 어떤 때는 오르막이다가도 어떤
때는 내리막이기도 했소. 어쨌든 안전한 길을 가게 된
적은 거의 없었지요. 바람이 항상 우리의 등 뒤를
밀어주지도 않았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 친절한
것도 아니었소. 벌써 여러 번 어려운 장애를
넘어왔지만 또 앞으로도 어떤 고난을 얼마나 넘어야
할 지 모르겠소.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옛말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것
말이오.
회개함 : 고난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어떤 고난들을
겪으셨습니까?
정직함 : 그것은 우리의 안내자인 위대한 마음에게
물어보시오. 가장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겁니다.
위대한 마음 : 우리는 이미 서너 차례 어려운
일들을 겪었습니다. 먼저 목숨을 노리는 두 악한에게
크리스치아나와 아이들이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거인 피투성이, 거인 쇠망치 그리고 또
거인 선을 죽임에게 수난을 당했지요. 사실대로
말한다면 마지막 놈에게는 우리가 수난을 당했다기
보다는 수난을 가한 쪽이지요. 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나를 초대한 주인이자 모든 교회의
주인인 가이오 댁에 얼마 동안 머무르고 난 후 우리는
무장을 하고 평소에 순례자들을 괴롭혀 온 적들을
찾아나서기로 작정을 했지요. 그 근처에 아주
악명높은 원수가 하나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이오는 그 근방에 살았고 그놈의 소굴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리저리 찾아다니다 마침내
동굴의 입구를 하나 찾아냈습니다. 우리는 기뻐하며
용기를 내어 동굴 가까이 다가가 보았지요. 그런데
그놈이 글쎄 불쌍한 심약자 씨를 강제로 끌어다가 막
죽이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보자
그놈은 먹을 것이 또 생겼다 싶었는지 그 가엾은
사람을 자기 굴 속에 버려두고는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우리는 곧 그에게 달려들었고 그도
맹렬하게 덤벼 싸움이 벌어졌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놈은 마침내 땅에 거꾸러졌고 목이
잘려 이 다음에 그런 악한 짓을 할 자들의 본보기가
되어 길가에 높이 걸려지게 됐습니다.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여기 이 사자의 입에서 나온 양 같은
심약자씨가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자 심약자가 말했다.
"그것은 내가 겪은 고통과 위로 두 가지 면에서
봐도 사실입니다. 고통이란 그가 나의 뼈까지
뜯어먹으려고 달려들 때마다 나는 쓰라린 경험을
했고, 위대한 마음 일행이 무장을 하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 다가왔을 때 내겐 큰 위로가 됐던 것입니다."
그러자 성인이 말했다.
"순례의 길을 가는 사람이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용기와 깨끗한 생활이지요.
만약 용기가 없다면 끝까지 길을 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생활이 깨끗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순례자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일 뿐이지요."
성자 사랑도 한마디 했다.
"이런 경고가 당신들에게는 필요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사실은 스스로 순례자라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세속적인 사람들보다는 순례라는 것에 더
문외한인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솔직함이 말했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들에겐 순례자로서의 의복도
순례자로서 필요한 용기도 없지요. 그들은 똑바로
걷지도 못하고 늘 절뚝거립니다. 한 발이 안으로
굽으면 한 발은 밖으로 굽고, 긴 양말은 아래로
흘러내린 데다 넝마처럼 구멍이 나 그들의 주인을
욕되게 하지요.
회개함 : 그런 것들이야말로 참된 순례자들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더러운 작자들이 길에서
모두 사라지기 전에는 순례자들이 은총을 받을 수도
없을 뿐더러 그들이 원하는 순탄한 여행을 계속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저녁상이 마련될 때까지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저녁식사를 하고 기운이
회복되자 그들은 잠자리에 들었다. 그들은 그곳
네이손의 집에서 상당 기간 동안 머물렀는데,
그동안에 네이손은 딸 은혜를 크리스치아나의 아들
새뮤얼에게 그리고 다른 딸 마샤를 조세프의 아내로
주었다.
그들은 이 허영의 시장 거리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곳 형편이 전과는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그들은 그 마을에 있는 많은
선량한 사람들과 사귀었고 주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만큼 봉사를 했다. 자비심은 전에도 그랬듯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많이
만들어주었는데 덕택에 그녀는 신도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리고 은혜와 푀베, 마샤 등도 모두 착한
여자들이었고 제각기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임신을 하여 전에도 말했듯이
크리스찬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오래 지속되게 했다.
그들이 이 마을에 머무는 동안 숲속에서 괴물 하나가
나와 마을사람들을 많이 죽인 일이 있었다. 괴물은
또한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가서는 자기 마누라의 젖을
빨아먹도록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
가운데에는 그 괴물을 맞상대할 만한 용기를 가진
자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괴물이 온다는 소리만
들어도 모두들 도망을 쳤다.
그 괴물은 지구상에 있는 그 어떤 짐승과도
생김새가 달랐다. 몸은 용처럼 생겼는데 일곱 개의
머리와 열 개의 뿔을 갖고 있었다. 그 괴물은 열심히
어린이들을 해치고 다녔는데, 사실은 한 여인에게
조종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괴물은
마을사람들에게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그래서
그들의 영혼보다 목숨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조건을 받아들여 그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위대한 마음은 네이손의 집에 머물고 있는
순례자들을 찾아 오는 사람들과 함께 의논하여 그
괴물과 한번 싸워보기로 약속했다. 그 흉칙한 괴물의
발톱과 아가리로부터 마을사람들을 구원해 내려는
것이었다.
위대한 마음은 회개함, 성인, 솔직함, 참회함과
함께 무장을 하고 그 괴물을 대적하러 나갔다. 괴물은
처음에는 몹시 성이 나서 경멸적으로 그들을
업신여겼다. 그러나 그들이 아주 열심히 무기를
휘두르며 대들었으므로 결국 괴물은 물러서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네이손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 괴물 마을의 어린이들을 습격하는 데는 일정한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그 용감한 전사들은 그 시기를
맞춰 그를 경계하고 있다가 덤벼들어 공격했다.
마침내 괴물은 상처를 입었고 전처럼 마을 어린이들을
해치지는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
괴물이 상처로 인해 마침내 죽은 것이 틀림없다고
믿게까지 되었다.
이 사건으로 위대한 마음과 그 일행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아직까지 허영에 빠져있는 자들조차
그들을 존경하고 우러러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이들
순례자들은 거기에서 심한 박해를 받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주민들 가운데에는 두더지만큼도 앞을
보지 못하고 짐승보다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속물들도 있었다. 그들은 아무도 순례자들을
존경하거나 그들의 용기나 모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마침내 순례자들이 다시 길을 떠날 때가 되었다.
그들은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고 친구들을 불러
작별인사를 나누고는 잠시동안 각자 서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비는 기도를 올렸다. 사람들은 여기서도
역시 약한 사람이나 강한 사람, 남자나 여자에게
적합한 물건들을 가져왔고, 그것들을 여행 필수품들과
함께 보따리에 쌌다.
이윽고 그들은 길을 떠났다. 친구들은 적당한
곳까지 그들을 바래다 주고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서로 기원하고 헤어졌다.
순례자 일행은 위대한 마음을 앞세우고 여행을
계속했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몸이 약했으므로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걸어야만 했다. 이에 따라
망설임과 심약자는 자기들의 사정에 더욱 절실하게
동감하게 되었다.
마을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지고 난 후 그들은 곧 믿음이 죽은 장소에
이르렀다. 거기서 걸음을 멈춘 그들은 믿음으로
하여금 그토록 자기의 십자가를 잘 감당할 수 있게
해주신 분께 감사를 드렸다. 그들은 이제 믿음의
사나이다운 죽음 덕택에 도움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가는 동안 내내
크리스찬과 믿음에 대해서, 그리고 믿음이 죽은 다음
어떻게 해서 희망이 크리스찬과 동행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윽고 그들은 금은보화의 언덕에 도착했다. 그곳은
은광이 있는 곳이었고 그 은광 때문에 데마스가
순례의 길을 포기했던 곳이며, 비리가 떨어져
죽었다는 곳이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데마스와 비리의
일을 회상했다. 그러나 금은보화의 언덕 꼭대기에
있는 오래 된 비석, 즉 악취가 나는 연못이 되어버린
소돔 마을이 보이는 곳에 서 있는 소금기둥을 보자,
그들은 옛날 크리스찬이 그랬듯이 어째서 그토록
지식이 풍부하고 현명한 사람들이 소금기둥이 될
정도로 재물에 맹목적이었을까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다만 그들은 인간의 본성이란 남의 허물을 보고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을
뿐이었다. 특히 사람들이 찾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들의 눈에는 매혹적인 어떤 것으로 보일 때는
더욱 그렇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마침내 그들이 즐거운 산맥의 이쪽으로 흐르고
있는 강에 도착하는 것을 보았다. 그 강 양쪽에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고 그 잎은 식중독을
낫게 해주는 약이었다. 그리고 사시사철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는 누구든지 마음놓고 편히
누울 수가 있었다.
이쪽 강변의 초원에는 양치는 우리와 외양간이 몇
개 있었고, 순례의 길을 가는 여인들이 낳은 아기들을
양육하기 위한 집도 한 채 세워져 있었다. 또한
거기에는 사랑을 품고 그 팔로 어린아이들을 가슴으로
안아 주고 아이 딸린 산모들을 친절히 보살펴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리하여 크리스치아나는 네
며느리들에게 그들이 낳은 아기들을 그 사람에게
맡기라고 권했다.
"아기들이 이 집에서 자라는 동안에는 그 사람의
보호와 도움을 받아 앞으로 조금도 모자라는 데가
없는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만약
누구든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면 그룰 찾아 집으로
데려올 것이고 또한 다치면 싸매주고 아프면 고쳐줄
것이다. 여기서는 결코 굶주리거나 목마르거나 헐벗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도둑이나 강도들에게
피해를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가 목숨을 걸고
자기에게 맡겨진 아이들을 지킬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여기에 있으면 아이들은 틀림없이 발육상태도
좋을 것이고 교육도 잘 받고 바른길을 가는 것도
배우게 될 것이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그런 것들은
적지 않은 혜택인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저렇게
달콤한 물과 기름진 풀밭, 아름다운 꽃들, 각종
나무들 그리고 잘 익은 과일들이 있지 않니? 저것들은
언젠가 매튜가 따먹었던 그 비엘지법의 정원에 있는
과일과는 달리 쇠약한 자에게는 건강을 주고, 건강한
자에게는 건강을 유지시켜 더욱 건강하게 해주는 그런
과일이란다."
그리하여 며느리들은 기꺼이 어린아이들을 그에게
맡겼다. 그들은 시어머니의 권고도 있었지만 이 모든
시설이 하나님의 주관하에 마련되어 있는 탁아소임을
알고 더욱 용기를 얻어 그렇게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들은 다시 여행을 계속했다. 그들은 전에
크리스찬이 동료 희망과 함께 샛길로 들어섰다가 거인
절망에게 잡혀 의혹의 성안에 감금당했던 바로 그
초원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들은 거기에 앉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의논했다. 말하자면 이제
자기들은 꽤 능력이 있고 게다가 위대한 마음 같은
용감한 안내자를 두었으니 차라리 그 거인을 무찌르고
성을 쳐부수어 만약 그 안에 잡혀 있는 자가 있으면
그를 해방시켜주는 것이 어떨까 하는 의논이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또 다른 사람이 저렇게 말하는
등 저마다 의견이 분분했다. 누군가가 부정한 지역에
들어가는 것이 합당한 일이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목적만 달성한다면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마침내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목적만 좋으면 수단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항상 타당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죄에
항거하고 악을 정복하며 믿음을 위한 신성한 싸움을
위해서 투쟁하라고 명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거인 절망과 같은 자와 싸우지 않으면 누구와
싸우겠습니까? 나는 그의 목숨을 끊어버리고 의혹의
성을 무너뜨리고 싶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시 말했다.
"누가 나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그러자 늙은 정직함이 말했다.
"내가 가겠소."
"우리도 가겠습니다."
하고 크리스치아나의 네 아들 매튜, 새뮤얼,
제임스와 조세프도 나섰다. 그들은 젊고 힘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자들을 길에 남겨두고,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심약자와 목발을 짚은 망설임에게
그녀들을 부탁했다. 비록 거인 절망이 길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가까운 곳에 살고 있기는 했지만
어린아이라도 그들을 안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위대한 마음과 늙은 정직함은 네 젊은이와 함께
거인 절망을 찾아 의혹의 성으로 올라갔다. 성문에
다다르자 그들은 난폭하게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늙은 거인이 나타났고, 그 뒤를 그의 아내 '암내'가
따라왔다. 늙은 거인이 소리쳤다.
"누구냐? 어떤 놈이 감히 이 절망님을 성가시게
구는 거냐?"
그러자 위대한 마음이 대꾸했다.
"나다. 위대한 마음이다. 천국의 왕께서 순례자들의
길을 안내하도록 임명한 안내자다. 어서 문을 열어라.
네 놈의 목을 자르고 의혹의 성을 무너뜨리러 왔으니
싸울 준비나 해라."
거인 절망은 어느 누구도 자신을 굴복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천사들을 굴복시켰는데
위대한 마음쯤 겁날 줄 아느냐.'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무장을 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머리에는 쇠로
만든 투구를 쓰고 가슴에는 불붙은 가슴받이를 달고
발에는 쇠로 만든 군화를 신고 손에는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여섯 명의 사나이들이 그에게
다가가서 앞뒤에서 공격했다. 여자 거인 암내가
남편을 돕기 위해 달려들자 정직함이 일격에
거꾸러뜨렸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워
마침내 거인 절망을 땅에 쓰러뜨렸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말하는
여러 개의 목숨을 가진 고양이처럼 끈지릭게
버텨냈다. 마침내 위대한 마음이 그의 목숨을 끊고는
그의 목을 어깨로부터 잘라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의혹의 성을 허물기 시작했다.
거인 절망이 죽었기 때문에 그것은 쉬운 일이었으나
완전히 무너뜨리는데는 7일이나 걸렸다. 그들은
'낙담'이라는 순례자와 그의 딸 '겁쟁이'가 거의
아사지경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 두 사람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성안의 뜰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시체들이나 지하실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의
뼈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위대한 마음과 그의 일행들은 낙담과 그의 딸
겁쟁이를 보호하여 데리고 왔다. 그들은 비록 의혹의
성안에서 폭군 거인 절망에게 갇혔던 몸이었지만
정직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거인의 목을
베어 들고 동행인들에게 돌아와서는 자기들이 한 일을
설명해 주었다. 심약자와 망설임은 그것이 정말로
거인 절망의 머리임을 확인하고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크리스치아나는 서툴기는 하지만 비올라를
켰고 며느리인 자비심은 류트를 연주했다. 그들이
저절로 신이 나서 한 곡을 연주하자 망설임은 춤을
추고 싶어졌다. 그는 겁쟁이라는 이름을 가진 낙담의
딸의 손을 잡고 춤을 추면서 길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한쪽 손에 목발을 짚고 추는 춤이었으나 제법 춤을 잘
추었다. 그리고 또한 그 소녀도 리듬에 맞춰 잘
추었다.
낙담은 음악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거의
굶어죽기 직전에 구출되었기 때문에 춤보다는 오히려
먹는 것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크리스치아나는
그에게 기운을 회복시켜주기 위해 술을 조금
따라주고는 먹을 것을 준비했다. 잠시 후 그 늙은
신사는 정신이 들고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꿈속에서 보았다. 이 모든 일들이 끝나자
위대한 마음은 전에 크리스찬이 비석을 세우고 뒤에
오는 순례자들에게 의혹의 성 영지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경고문을 써놓았던 바로 맞은편 길가에 기둥을
세우고는 거기에 거인 절망의 머리를 걸어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아래에 있는 기묘하게 생긴 돌 위에
다음과 같은 글을 새겨놓았다.
이전에 그 이름만 들어도
순례자들이 두려움에 떨던
그자의 머리가 여기 있도다.
용감한 위대한 마음이
그의 성곽을 무너뜨리고
그의 아내 암내의 숨통까지 끊었다.
낙담과 그의 딸 겁쟁이를
위대한 마음이 모두 구출했다.
의심하고 주저하는 자 있거든
눈을 들어 여길 보라.
모든 의혹이 해소되리니.
여기 걸린 이 머리를 보고
의심 많은 절름발이도
스스로 두려움에서 구원받았음을 알고
기뻐하며 춤을 추었도다.
일행은 이렇게 의혹의 성을 용감하게 무너뜨리고
거인 절망까지 죽인 다음 다시 길을 떠나 즐거운
산맥에 다다랐다. 그곳은 크리스찬과 희망이 여러
곳을 구경하며 심신을 새롭게 다듬던 곳이었다.
그들도 역시 거기에서 목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목자들은 전에 크리스찬에게 그랬듯이 그들을 잘
영접하여 즐거운 산맥 꼭대기까지 안내해 주었다.
목자들은 위대한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그가
많은 무리를 안내하여 오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
"선생님, 동행하는 분들이 꽤 많군요. 어디서 저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되었습니까?"
위대한 마음이 대답했다.
우선 여기에 크리스치아나와 그 일행,
그의 아들들과 며느리들이 있소.
북극성을 향해 도는 북두칠성처럼
나침반을 따라 방향잡는 배의 키처럼
죄악을 떠나 은총을 향하여
그들은 여기에 이르렀소.
다음엔 여기 늙은 정직함이
순례의 길을 떠나와 있고
내가 그 독실함을 보장할 수 있는 망설임 씨,
그리고 뒤에 처지지 않으려 애쓰는 심약자 씨,
착한 사람 낙담이 그 뒤를 따르고
그의 딸 겁쟁이 또한 따라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영접받을 수 있는지,
아니면 그냥 계속 가야 하는지
솔직하게 가르쳐주시오.
그러자 목자들이 말했다.
"참 훌륭한 분들이군요. 여러분들 모두 환영합니다.
우리는 강한 자나 약한 자나 구별없이 모두
환영하니까요. 우리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어떻게 대접하는가를 주시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약한
자라고 해서 접대를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순례자들을 궁궐 문 앞으로 데리고 가서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심약자 씨. 망설임 씨, 어서
들어오십시오. 낙담 씨와 그의 딸 겁쟁이 씨도 어서
들어오십시오. 위대한 마음 씨, 우리가 이분들을
일일이 호명하는 것은 그들이 중도에서 순례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나 그
나머지 분들은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니까 자유의사에
맡기겠습니다."
그러자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오늘에야 나는 당신들의 얼굴에서 은총이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들이야말로 참 주님의
목자들이십니다. 게다가 당신들은 이 병든 자들을
어깨나 옆구리로 밀쳐버리지 않고 오히려 궁궐로 가는
길 위에 꽃을 뿌려주시는군요."
그리하여 소심한 자들과 나약한 자들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그뒤를 따라 위대한 마음과 나머지 일행이
들어갔다. 그들이 자리에 앉아 목자들이 약한
자들에게 말했다.
"어떤 음식을 먹고 싶습니까? 여기서는 약한
사람들에게는 보약이 되고 식탐하는 자들에게는
경계가 되는 모든 음식물들이 준비돼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소화가 잘되는 음식과 맛 좋고 영양
많은 음식을 순례자들에게 대접했다. 식사가 끝나자
각자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이
되자 산들은 높이 솟아 있었고 날씨는 맑았다.
순례자들이 다시 길을 떠나기 전에 몇 가지 신기한
것들을 구경시키는 것이 목자들의 관례였으므로 모든
준비가 끝난 후에 목자들은 순례자들을 이끌고
들판으로 나갔다. 그들은 우선 예전에 크리스찬에게
보여주었던 것들을 구경시켜주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순례자들을 어떤 새로운 장소로
데리고 갔다. 처음에 간 곳이 경이로운 산이었다. 그
산에서 그들은 어떤 사람이 멀리서 중얼거리며 언덕
위에서 뒹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고 목자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그가
이 천로역정의 전반부에 나오는 큰 은총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그가 거기에서 뒹굴고 있는 것은 미끄러져
떨어지고, 길에서 벗어나 어떤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믿음을 잃지 않을 것인가를 순례자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그를 알고 있어요. 그는 매우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 다음 그들은 또 다른 곳, 무죄의 산이라는
곳으로 순례자들을 데리고 갔다. 거기서 그들은
온몸을 온통 흰 옷으로 두르고 있는 한 사람과
'편견'과 '악의'라는 두 사람을 보았다. 그 둘은
계속해서 흰 옷 입은 사람에게 오물을 던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오물을 던져도 오물은 곧 떨어져나가고
흰 옷은 오물이라곤 묻었던 것 같지 않게 다시
깨끗해지곤 했다. 순례자들이 물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목자들이 대답했다.
"이 사람의 이름은 경건함이라고 하는데 흰 옷은
그의 생활이 순결하고 결백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오물을 던지고 있는 자들은 그의 선행을
미워하고 있는 자들이지요. 그러나 보시다시피 아무리
오물을 던져도 그의 옷을 더럽히지는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순결하게 사는 사람들은 모두 저
사람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 결백한 사람들을
더럽히려고 별의별 짓을 다 하는 자들은 결국
헛수고만 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내 그들의
순결함을 빛나게 하시고 그들의 의로움을 대낮처럼
밝혀주시니까요."
그 다음에 그들은 순례자들을 데리고 박애의 산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어떤 사람이 옷감을 쌓아놓고 그
옷감으로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옷가지를
만들어주고 있었는데, 옷감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이 물었다.
"이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목자들이 말했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일하려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결코 부족한 점이 없으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남의 목을 축여주는 자는
자신의 목을 축이게 되는 것입니다. 예언자에게 빵을
준 과부의 밀가루통은 그 때문에 밀가루가 줄어들지
않았었지요."
그들은 또 바보라는 사람과 멍청이라는 사람이 한
에티오피아 흑인을 열심히 닦아 백인으로 만들려고
애쓰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애를 써서 닦아도 그는 더욱 까맣게 될 뿐이었다.
순례자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냐고 목자들에게
물었다. 그들이 대답했다.
"그것은 악한 사람에 대한 교훈입니다. 악한 사람은
선한 사람이라는 말을 좀 들어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선해지기는커녕 더욱 추악해질 뿐인 것입니다.
옛날 바리새인들이 그랬고 모든 사기꾼들이 다
그렇죠."
그때 매튜의 아내가 된 자비심이 시어머니인
크리스치아나에게 말했다.
"어머님, 할 수만 있다면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들 하는 저 언덕의 굴을 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그리하여 그녀는 며느리의 심정을 목자들에게
전했다. 그들은 어떤 언덕 기슭에 있는 문으로 가서
그 문을 열고는 자비심에게 잠시 귀를 기울여
들어보라고 했다. 그녀는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평화와 생명으로 가는 길에서 내 발을 잡아
되돌아가게 한 우리 아버지에게 저주가 있으라!"
또 이런 소리도 들렸다.
"아, 내가 이렇게 목숨은 건지고 영혼을 잃어버리기
전에 차라리 갈기갈기 찢겨져 죽었더라면!"
또 다른 자가 말했다.
"만약 내가 다시 살아날 수만 있다면 나는 이런
곳으로 오느니 차라리 자살을 해버렸을텐데."
그러자 그 젊은 여자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이
신음을 하는가 싶더니 두려움에 요동을 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겁에 질려 얼굴이 파랗게 된 채
떨면서 말했다.
"이런 곳에서 구원받은 자야말로 축복받은 자로다."
이 모든 것들을 보여주고 난 후에 목자들은 그들을
데리고 다시 궁궐로 돌아왔다. 거기서 그들은
자기들이 대접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들을
극진히 대접해 주었다. 그러나 뱃속에 아이를 가진
젊은 자비심은 그 집안에 있는 어떤 물건을 몹시
가지고 싶었으나 부끄러워 달라고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의 시어머니가 눈치를 채고 어디
불편한데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자비심이 말했다.
"식당에 거울이 하나 걸려 있는데 자꾸만 그게 갖고
싶어져요. 그렇지 않으면 꼭 유산할 것만 같아요."
시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목자들에게 말해 보마. 아마 거절하지는 않을
게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제 욕심을 알리는 게
부끄러워요."
"아니다, 얘야. 그런 물건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은 덕스런
일이지."
그래서 자비심이 말했다.
"그러면 어머님, 그것을 좀 팔 수 없겠느냐고
목자들에게 청해주시겠어요?"
그런데 그 거울은 희귀한 거울이었다. 한쪽으로
보면 보는 사람의 모습이 정확하게 비쳤고, 다른
쪽으로 보면 순례자들의 주님 모습이 선명하게 비치는
것이었다. 실제로 나는 그 거울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는데 그들은 그 거울
속에서 가시면류관을 쓴 주님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또한 그분의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옆구리에
구멍이 뚫린 것도 보았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그
거울은 신기해서 누구든지 주님의 모습을 보고자
원하는 사람은 그 거울을 통해서 주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분의 살아 생전의 모습이나 돌아가신
다음의 모습, 땅에 계실 때의 모습이나 하늘에
올라가셨을 때의 모습, 수치당하시는 모습이나 높이
찬양받으시는 모습, 고통을 당하러 오시는 모습이나
다스리러 오시는 모습을 사람들은 그 거울 속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크리스치아나는 목자들을 찾아갔다.
그들의 이름은 '지식', '경험', '신중함', 그리고
'성실함'이었다.
"제 며느리 가운데 임신한 애가 하나 있는데 이
집에서 본 어떤 물건 하나를 몹시 갖고 싶어합니다.
만약 그걸 갖지 못한다면 유산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는군요."
경험 : 그녀를 데리고 오세요. 가능한 한 그녀를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비심을 불러놓고 말했다.
"자비심,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식당에 걸려 있는 큰 거울입니다."
성실함이 달려가 그 거울을 떼어다가 기꺼이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머리를 숙여 그들에게
감사를 하며 말했다.
"이렇게 호의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은 또한 다른 여인들에게도 각자 그들이 원하는
물건을 주고는 그들의 남편들을 크게 칭찬해 주었다.
그들은 위대한 마음과 힘을 합쳐 거인 절망을 죽이고
의혹의 성을 함락시켰던 것이다.
목자들은 크리스치아나와 그녀의 네 며느리들에게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그리고 귀에는 귀고리를,
이마에는 보석을 달아주었다.
순례자들이 다시 길을 떠날 준비를 하자 목자들은
그들에게 평탄한 여행길이 되길 빌어주었다.
그들에게는 위대한 마음이라는 안내자가 있었으므로
전에 크리스찬과 그 동료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특별한
주의를 주지는 않았다. 그 안내자는 사정을 훤히 알아
훨씬 더 적절하게 주의를 환기시킬 수가 있었고,
위험이 닥치더라도 그들을 지킬 만한 힘이 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찬과 그의 동료는 목자들로부터 들었던
주의를 막상 그것을 활용해야 할 시간이 되자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주의를
듣지 않고 그냥 떠난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며 길을 떠났다.
보라, 얼마나 적절히 요소요소에
순례자들을 위한 휴식처가 마련되어 있는가를.
그리고 내세의 생명을 목표로 삼은 우리들을
그들이 얼마나 흔쾌히 영접해 주었는가를.
그리하여 우리는 순례 도중에도
즐거운 삶을 누리게 되었네.
그들은 우리가 어디를 가더라도
참된 순례자임을 증명해 주기 위해
여러 가지 귀중한 물건들을 주었네.
목자들과 헤어진 그들은 곧 전에 크리스찬이 신앙을
버림이란 마을의 변절자라는 사람을 만났던 곳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안내자 위대한 마음은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곳이 전에 크리스찬이 변절자라는 사람을 만난
곳입니다. 그 사람의 등에는 변절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지요. 그 사람에 대해 몇 마디 해야겠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권고를 절대로 듣지 않아 타락한
후에는 그 어떤 설득도 불가능했지요. 십자가와
무덤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어떤 사람이 그에게 그
십자가와 무덤을 보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마구 발을 구르며 다시 고향 마을로
돌아가겠노라고 큰소리 쳤지요. 그는 좁은 문에
이르기 전에 복음전도사를 만났는데, 전도사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다시 순례의 길로 돌아가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변절자는 복음전도사에게
반항하면서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고는 담을 넘어
도망을 쳤다고 합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길을 가다가 작은 믿음이 강도를
만났던 바로 그 자리에 이르렀는데, 어떤 사람이
얼굴에는 피투성이가 된 채 칼을 들고 서 있었다.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오?"
그 사람이 대답했다.
"나는 진리의 용사라는 사람인데, 순례자로 지금
천국을 향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 길을 가는 도중에
어떤 세 사람이 나타나 다음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그들의 동료가 되어줄
생각이 있는가? 또는 내 고향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인가? 였습니다. 나는
첫번째 제안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참되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도둑의 무리에
끼여들 수는 없다고 말했지요. 그러자 그들은 그럼
두번째 제안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떠나온 고향이 마땅찮은 곳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들 아예 떠나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제 그곳이 내게 적합한 곳도 아니며 유익한 곳도
아님을 안 이상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럼 세번째 제안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목숨이
그렇게 호락호락 내줄 수 있는 값싼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또한 너희들이 내게 택일을 강요할
아무런 입장이 안 되며, 더 이상 간섭하다가는 오히려
너희들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세 녀석이, 정확히 말하자면 거친 머리,
무분별함 그리고 참견이라는 세 놈이 칼을 빼들고
내게 덤벼들었습니다. 나도 칼을 빼들고 맞섰습니다.
이렇게 나는 혼자서 세 명을 상대하여 세 시간
이상을 싸웠습니다. 보시다시피 놈들은 내게 이렇게
상처를 입혔고, 나 또한 그들에게 많은 상처를 입혀
쫓아버렸습니다. 이제 방금 그놈들이 도망쳤습니다.
아마 당신들이 오는 소리를 듣고 도망친 모양입니다."
위대한 마음 : 세 놈과 대항해 싸우다니 굉장한
일이었군요.
진리의 용사 : 사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진리가
자기 편에 있는 사람에게는 적의 수가 많고 적음은
문제가 안 되지요. 어떤 사람이 말했어요.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을 칠지라도 내 마음은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오히려 자신이 있도다." 라고 말입니다.
게다가 혼자서 수많은 군대와 대항하여 싸운 사람에
대한 기록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삼손은
나귀 턱뼈 하나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까?
그러자 안내자가 말했다.
"왜 구해 달라고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까?"
"구원을 요청했지요. 반드시 들으시고 보이지 않게
도와주시는 우리 주님께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나는
그것으로 항상 만족합니다."
위대한 마음이 진리의 용사에게 말했다.
"참 잘하셨습니다. 어디 그 칼 좀 보여주십시오."
그는 칼을 보여주었다. 칼을 손에 들고 한동안
들여다보다가 위대한 마음이 말했다.
"아니, 이건 바로 예루살렘에서 만든 칼 아닙니까?"
진리의 용사 : 그렇습니다. 칼을 잡고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이 칼을 갖는다면 감히 천사들과도 겨루어볼
수 있지요. 칼 잡는 법만 안다면 이런 칼을 손에 넣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칼날은 결코
무뎌지는 법이 없습니다. 살도 뼈도 영혼도 심지어
정신까지도 벨 수가 있지요.
위대한 마음 : 그런데 그토록 오래 싸웠는데도
피곤해 하지 않으시니 이상하군요.
진리의 용사 : 나는 칼이 내 손에 달라붙게 될
때까지 싸웠습니다. 일단 칼과 내 손이 붙게 되자
마치 칼이 팔에서 솟아난 것 같았고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흐르는 것을 느낀 나는 더욱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위대한 마음 : 잘하셨습니다. 죄악에 결사적으로
대항하느라고 피까지 흘리셨군요. 우리와 함께
행동합시다. 자, 이리 오십시오. 우리는 당신과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를 맞아들여 상처를 씻어주고
자기들이 갖고 있는 것으로 기운을 회복시켜준 다음
함께 길을 떠났다. 길을 가면서 위대한 마음은 그를
만난 게 기뻤다. 그는 누구든 자기 손으로 인간답게
사는 사람들을 특히 좋아했던 것이다. 일행 중에는
마음이 약하고 몸이 허약한 자들도 있었으므로 그는
그들에게 들려줄 목적으로 그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우선 그가 물었다.
"고향이 어디십니까?"
진리의 용사 : 나는 어두운 땅 태생입니다. 아직도
부모님은 그곳에 계시지요.
위대한 마음 : 어두운 땅이라...... 멸망의
도시같이 해변에 위치한 곳 아닙니까?
진리의 용사 : 예, 맞습니다. 내가 왜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됐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루는 진담이라는
사람이 우리 마을에 와서 멸망의 도시를 떠난
크리스찬의 행적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말하자면 크리스찬이 어떻게 자기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혼자서 순례자의 삶 속으로 뛰어들었나 하는
이야기였죠. 그가 여행 도중 그를 방해하려고
뛰쳐나온 뱀을 어떻게 죽였으며, 끝내는 자신이
정했던 목적지까지 어떻게 도착했는가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또한 그가 주님의 집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으며, 특히 하늘나라에서 어떤 환영을
받았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나팔소리에 묻혀 빛나는 무리의
영접을 받았지."
하고 그가 말해 주었습니다. 또한 그의 도착을
즐거워하여 하늘나라의 모든 종들이 울렸고, 그가
황금으로 장식된 옷을 받아 입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그외에도 여러 가지를 이야기해
주었지만 여기서 그걸 길게 말할 필요는 없겠지요.
어쨌든 한마디로 말하면 크리스찬과 그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의 뒤를 어서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부모님들도 나를
붙잡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길로 부모님
곁을 떠나 이렇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위대한 마음 : 좁은 문을 통해 들어오셨겠지요?
아닙니까?
진리의 용사 : 물론입니다. 진담 씨가 만약 좁은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으니까요.
안내자가 크리스치아나에게 말했다.
위대한 마음 : 자, 보세요. 부인의 남편께서 순례의
길을 가신 것과 순례 끝에 얻으신 것에 대한 이야기가
각처에 널리 퍼져 있잖습니까?
진리의 용사 : 뭐라고요? 그럼 이분이 크리스찬의
부인되십니까?
위대한 마음 :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그의 네 아들들이지요.
진리의 용사 : 그럼 이분들도 순례의 길을 가신단
말씀입니까?
위대한 마음 : 예, 그렇습니다. 지금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의 용사 : 이거 정말 기쁜 일입니다. 처음에는
함께 떠나려 하지 않으려던 가족들이 이렇게 끝까지
따라온 것을 보면 그 착하신 분이 얼마나 기뻐할까요.
위대한 마음 : 그가 기뻐할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그의 식구들을 그곳에서 만난 기쁨이란
자기자신이 그곳에서 살게 된 것을 알고 기뻤던
다음으로 기쁜 일일 겁니다.
진리의 용사 : 가족을 만나 기뻐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으니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가 천국에 가서
서로 만나게 될 때 세상에서 알던 사람들끼리 알아볼
수 있을까에 대해 사람들은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마음 : 그들이 그곳에 가서 자기자신을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또는 그곳에서
축복받은 자기자신을 보고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자기자신을 보고 기뻐할 것이라면
왜 남을 몰라보고 그들의 행복 또한 즐거워할 줄
모르겠습니까?
또한 친척이란 우리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인데 비록
그곳에서는 친척 관계가 끊어진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친척을 보지 못하는 것보다 보는 것이 더 기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진리의 용사 : 글쎄요, 대강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된 데
대해 더 물어볼 것은 없으십니까?
위대한 마음 : 있습니다. 당신 부모님들은 당신이
순례의 길을 떠나는 것에 대해 기꺼이
허락하셨습니까?
진리의 용사 : 아, 아닙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집에 붙잡아두려고 애쓰셨습니다.
위대한 마음 : 그래, 뭐라고 반대하시던가요?
진리의 용사 : 순례자의 생활이란 게으른
생활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게으름
피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순례자가 된다는 건
걸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위대한 마음 : 그 밖에 또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진리의 용사 : 그분들은 또 순례의 길이 매우
위험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길이 바로 그 순례의 길이란다." 하고 그분들은
말씀하셨습니다.
위대한 마음 : 그 길의 어디가 위험하다고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진리의 용사 : 하셨지요, 여러 곳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위대한 마음 : 이를테면?
진리의 용사 : 크리스찬이 하마터면 거의 질식해
죽을 뻔했던 절망의 구렁텅이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또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을 쏘아 죽이기 위해
비엘지법의 성안에는 궁수들이 서서 대기하고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깊은 숲, 어두운
산맥, 고생길 언덕, 사자들, 거기다가 피투성이,
철퇴, 선을 죽임 등 세 거인들에 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겸손의 계곡에는
더러운 귀신이 숨어 있어서 크리스찬도 그에게 거의
죽을 뻔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게다가 너는 죽음의 그늘 계곡을 지나가야 하는데
거기에는 도깨비들이 우글거리고 밤낮으로 어두우며,
길바닥은 온통 올가미와 웅덩이, 함정 그리고 덫으로
가득 차 있단 말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분들은 거인 절망과 의혹의 성 그리고 거기에서
죽은 많은 순례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분들은 내가 마법에 걸린 지역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곳은 매우 위험한 곳이고, 그 모든 것을 지난
후에도 다리가 없는 강을 만나게 되는데 그 강은 나와
하늘나라 사이를 흐를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위대한 마음 : 그게 전부입니까?
진리의 용사 : 또 있습니다. 그분들은 또한 길
위에는 사기꾼들이 득실거리며 길을 지나가는 선량한
사람들을 길에서 몰아내 되돌려보내려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위대한 마음 : 그들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한다고
말씀하시던가요?
진리의 용사 : 속세의 현인 씨가 사람을 사기치려고
거기에 숨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허례허식과
위선자도 계속하여 길 위를 서성거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비리와 수다쟁이 등이 나를
붙들려고 가까이 다가올 것이며, 아첨꾼은 나를
자기의 그물에 옭아넣으려고 할 것이고, 무식쟁이라는
풋내기가 하늘나라 앞까지 동행하다가 문 앞에서
언덕의 기슭에 있는 구멍으로 떨어져 결국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위대한 마음 : 그런 이야기만으로도 당신의 용기를
꺾기엔 충분했을 것입니다. 한데 부모님들 이야기는
그 정도로 끝났습니까?
진리의 용사 : 아닙니다, 또 있지요. 많은 사람들이
때때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과연 거기에 영광스런
무엇이 있을까 하여 옛날의 길을 꽤 많이 갔다가
결국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그런 말을 듣고 길을
떠난 스스로를 바보라고 불러 세상사람들의 노리개가
됐다는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부모님들은 그런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말씀하셨습니다. 고집불통,
온순함, 불신, 겁쟁이, 변절자 그리고 늙은
무신론자들이 그들인데, 그중 더러는 꽤 멀리까지
여행을 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여행에서 털끝만큼의 이익이라도 얻은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위대한 마음 : 그 밖에도 용기를 꺾기 위해 또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진리의 용사 : 예, 두려움 씨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가 얼마나고독했으며, 길을 가면서 한
번도 편안한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또 거의 굶어 죽을 뻔한 낙심 씨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그렇지! 잊을 뻔했던 게 하나
있군요. 하늘나라의 왕관을 얻기 위해 갖은 모험으로
그토록 유명해진 크리스찬 자신도 암흑의 강에 빠져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위대한 마음 : 그래, 그런 말을 듣고도 용기가
꺾이지 않았습니까?
진리의 용사 : 예, 그런 모든 말이 내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여겨졌습니다.
위대한 마음 : 어째서 그랬습니까?
진리의 용사 : 나는 줄곧 진담 씨의 말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은 그런 모든 것들을 물리치게
해주었습니다.
위대한 마음 : 당신은 결국 이기셨군요. 믿음의
승리입니다.
진리의 용사 : 그랬습니다. 나는 믿었어요. 그래서
집에서 나와 길로 들어섰던 것이고, 나를 훼방놓는
모든 것들과 싸워 마침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참된 진리를 깨달으려는 자
그를 여기로 오게 하라.
바람이 부나 날씨가 나쁘거나
그는 이 길의 여행을 계속한다네.
순례자가 되겠다는 그의 단호한 결심
그 어떤 낙담도 꺾지 못할 것이니.
무서운 이야기들이 그를 둘러싸도
그것들은 한낱 떠도는 이야기일 뿐
그의 힘은 한층 굳건해진다.
사자도 그를 해치지 못하고
거인도 그는 두렵지 않다네.
그에게는 다만
순례자가 될 권리가 있다네.
도깨비도, 더러운 마귀도
그의 용기 꺾을 수 없고
그는 알고 있다네, 결국
생명을 물려받으리란 것을.
망상은 그 모습을 감추고
인간들이 하는 말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네.
그는 단지 밤낮 없이
순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네.
이윽고 그들은 마법에 걸린 지역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곳의 공기는 사람을 졸리게 만들었다.
마법에 걸린 정자가 한 채 서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온통 덤불로 덮여 있었다. 그 정자는, 만약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 앉는다든지 혹은 잠이라도 들게 되면
다시 이 세상에서 깨어날지조차 의심스럽다고들
이야기하는 그런 정자였다.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줄을 지어 그 수풀을 헤쳐 나갔다. 위대한 마음이
안내자로 앞장을 서고 혹시 어떤 귀신이나 용, 거인,
도둑 같은 것들이 일행의 후면을 덮칠지 모르므로
진리의 용사가 맨 뒤에서 보호자가 되어 따라왔다.
그들은 모두 그곳이 위험한 곳인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손에 칼을 뽑아 들고 전진했다. 그들은 서로를
격려해 주었다. 위대한 마음의 지시로 그의 바로 뒤에
심약자가 따랐고, 낙담은 진리의 용사가 보호해 주는
가운데 길을 걸었다.
얼마 가지 않아 짙은 안개와 어둠이 그들을 덮쳤다.
그래서 한동안 그들은 서로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서로 말을 주고받음으로써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나아갔다.
건장한 남자들도 길을 걷기가 힘들었으므로 몸과
마음이 나약한 여자와 아이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랐다. 그러나 앞서가는
안내자와 그들의 뒤에서 오는 보호자의 격려로 그들은
쉽게 걸음을 옮길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길 역시 먼지와 진흙투성이라 걷기가
몹시 힘들었다. 게다가 연약한 나그네를 쉬게 하고
그들에게 음식을 먹여 기운을 차릴 수 있게 할
여관이나 음식점이 그 지역에는 아무데도 없었다.
이곳에서는 단지 헐떡거리고 불평하고 한숨 짓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한 사람이 덤불에 걸려
쓰러지면 다른 사람은 진흙더미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아이들은 진흙 속에 신발을 빠뜨려
잃어버렸다. 한 사람이 "나 빠졌어요." 하고 소리치면
다른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고 소리 지르고,
그러면 또 다른 사람이 "덤불이 나를 꽉 얽어매서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하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한 정자에 이르렀다. 그 정자는
처마와 푸른 초목들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고, 긴
의자와 등받이가 높은 의자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
정자는 여행에 지친 순례자들에게 휴식과 상쾌한
기분을 보장해 줄 것 같았다. 또한 그 안에는 피곤한
순례자들이 기대고 앉을 수 있는 안락의자도 마련되어
있었다. 험난한 여행길에 지친 순례자들에게 그것은
틀림없는 하나의 유혹이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걸음을 멈추고 쉬고 싶어하는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안내자의 충고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고, 안내자 또한 위험이 닥칠 때마다 경고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 위험의 성질까지 일일이 설명해
주었기 때문에 그때마다 순례자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육체적인 욕망에 넘어가지 말자고 서로를
격려했다. 그 정자는 '게으름뱅이의 친구'라고 불리는
정자로서 지친 순례자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일부러
세워놓은 것이었다.
나는 꿈속에서 그들이 계속 걸어가다가 자칫
잘못하여 길을 잃어버릴 어느 곳에 다다르는 것을
보았다. 날이 밝으면 잘못된 길을 순례자들에게 쉽게
가르쳐줄 수 있으련만 워낙 날이 어두웠기 때문에
안내자 자신도 제자리에 멈춰 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주머니에는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지도가 항상 들어 있었다. 그는
부싯돌로 불을 켜 지도책을 보고는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만일 거기서 지도책을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들
모두는 수렁에 빠져 질식하고 말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면
순례자들을 파멸시키기 위해서 파놓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혼자
생각했다.
'순례의 길을 떠나는 자는 이 지도를 반드시 품속에
가지고 다녀야 하겠구나. 그래야 방향을 못잡고
망설이게 될 때 펴볼 수 있을 테니까.'
그들은 마법에 걸린 지역을 계속 걸어가다가 또
하나의 정자가 서 있는 곳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
정자는 큰길가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 안에는
부주의함과 대담함이라는 두 사람이 누워 있었따.
그들은 먼 길을 순례해 왔으므로 여행에 지친 나머지
잠깐 쉬려고 앉았다가 그만 잠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을 본 순례자들은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저었다.
잠자고 있는 그들이 측은해 보였던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서로 사의했다. 잠들어 있는
그들을 그냥 두고 계속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다가가 깨울 것인가, 그들은 할 수 있다면
그들을 깨우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들을 깨우러
들어가 주저앉거나 정자에 마련된 좋은 시설에 절대로
손을 대지 않는다는 조건에 모두 동의했다. 그래서
그들은 정자 안으로 들어가 잠자는 그들을 깨웠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안내자가 그들을 흔들어
깨우려 했다. 그제서야 둘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돈 벌면 갚아줄게."
그 소리에 안내자는 머리를 저었다.
"내 손에 칼을 들 수 있는 힘이 있는 이상 나는
끝까지 싸운다."
하고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 소리를 듣고 아이들
가운데 하나가 깔깔대며 웃었다.
크리스치아나가 말했다.
"이것은 무슨 말이죠?"
안내자가 말했다.
"잠꼬대를 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때리든
찌르든, 또는 다른 어떤 짓을 해도 같은 식으로밖에
대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파도가 뱃전을 뒤덮는데도 태연하게 잠을 자면서 '술
깨면 다시 마시겠다.'고 말했다지 않습니까? 잠꼬대로
하는 말은 그것이 무슨 말이든 신앙이나 이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순례의 길을
걷다가 여기 이 정자에 누워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이 사람들이 떠드는 잠꼬대 또한 종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모순이고 불행입니다. 조심성
없는 사람이 순례의 길을 가다가 이런 꼴을 당하는 건
십중팔구죠. 이 마법에 걸린 지역은 순례자들이
원수가 소유한 마지막 함정입니다. 보시다시피 거의
길이 끝나는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서 우리 순례자들을 노리는 것입니다.
'이곳이야말로 바보 같은 순례자 놈들이 피곤한
몸으로 앉아 쉬고 싶어하는 곳이며, 그리고 여행이
막바지에 이른 이곳말고 그 어디에서 더 피곤함을
느끼겠는가?'하고 원수들은 생각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내 생각엔 마법에 걸린 지역이 비국교도의
예배당에서 가까운 곳, 여행이 끝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순례자들은 그 누구도
깨울 수 없는 깊은 잠 속에 곯아떨어진 이 두 사람과
같은 꼴이 되지 않기 위해서 자기 반성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순례자들은 겁에 질려 떨면서 다시 길을 가기를
원했다. 다만 앞으로 남은 길은 좀더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등불을 마련해 달라고 안내자에게 간청했다.
안내자가 불을 켰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칠흙 같은
어둠 속이었지만 나머지 길을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이 지치기 시작하자 그들은
순례자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에게 길을 좀더 평탄하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바람이 불어 안개를 몰아내더니 삽시간에 공기가
맑아졌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마법에 걸린 지역을
채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서로의 모습과 길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윽고 마법에 걸린 지역을 거의 다 통과했을 즈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매우 괴로워하는 듯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그들은 앞으로
걸어가면서 살펴보았다. 그들이 생각한 대로 어떤
사람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어올려 위에 계신 분께
간절한 음성으로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가
탄원을 다 마칠 때까지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탄원이 끝나자 그는 벌떡 일어나 하늘나라를 향해
달렸다. 그때 위대한 마음이 그를 불렀다.
"여보시오. 당신도 하늘나라로 가는 모양인데 우리
함께 갑시다."
그러자 그 남자가 걸음을 멈추었다. 순례자들이
그에게 다가갔다. 정직함이 그를 보더니 말했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알겠군."
진리의 용사가 물었다.
"그래, 이 사람이 누굽니까?"
정직함이 대답했다.
"이 사람도 내가 살던 곳에서 왔지요. 그의 이름은
'똑바로 섬'이라고 하는데 틀림없는 좋은
순례자입니다."
순례자들이 모두 가까이 오자 똑바로 섬이 정직함을
보고 말했다.
"오, 정직함 영감님. 여기에 계시군요."
"그렇소.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처럼 나 또한
여기까지 왔소."
"영감님을 여기서 만나 뵙게 되다니 기쁩니다."
똑바로 섬이 말했다.
"당신이 무릎 꿇고 있는 것을 보니 나도 기쁘더군."
그러자 똑바로 섬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아니, 제가 그러고 있는 것을 보셨다구요?"
"그럼, 봤지. 그 모습을 보았을 때 내 마음은
기뻤어."
"그래,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똑바로 섬이 물었다.
"어떻게 생각했겠나? 정직한 친구 하나를 길에서
만났으니 우리와 함께 동행해야겠다고 생각했지."
"영감님 생각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저는 참으로
행복한 처지로군요. 그러나 제가 영감님과 동행할
자격이 없다면 별 수 없이 혼자서 여행해야
되겠지요."
"그건 그렇지. 그러나 당신의 그 경외심을 보니
당신의 영혼과 순례자들의 왕 사이의 관계가 제대로
돼 있음이 틀림없소. 그분도 '항상 경외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거든."
진리의 용사 : 그런데 똑바로 섬 씨, 당신은 왜
그렇게 무릎을 꿇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좀 말씀해 줄
수 있겠소? 당신에게만 무슨 특별한 자비가
베풀어졌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똑바로 섬 : 보시다시피 지금 우리는 마법에 걸린
지역을 통과하고 있는 중입니다. 혼자 걸어오면서
저는 이 지역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길고 험한 순례의 여행을 하다가
여기서 걸음을 멈추게 됐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곳에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파멸당하는가도 생각했지요. 여기서 죽는
사람은 어떤 폭행을 당해서 죽는 것도 아니고, 그
죽음이라는 것 자체도 그들에겐 괴로운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잠들어 있는 사이에 죽는 사람은 그 죽음의
여행을 즐겁게 기대하면서 떠나게 마련이니까요. 즉
그들은 죽음을 달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정직함이 그의 말을 중간에 가로챘다.
"당신도 그 정자에서 잠들어 있는 두 사람을
보았소?"
똑바로 섬 : 예, 보았습니다. 부주의와 대담함 두
사람이 거기에 있더군요. 그들은 아마도 몸이 썩을
때까지 그냥 거기에 누워 있을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제 이야길 마저 들어보십시오. 아까 말씀드린대로
그렇게 생각에 골똘해 있는데 옷을 잘 입은 노파
하나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제게 세 가지를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즉 그녀의 몸뚱이와 돈지갑 그리고
침대를 주겠다는 것이었어요.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그때 저는 몹시 피곤하기도 하고 졸립기도 했습니다.
저는 또한 올빼미 새끼처럼 가련한 신세였는데,
그녀가 그 사실을 알고 유혹했던 것입니다. 한두 번
그녀를 물리치기는 했지만 그녀는 모른 척하고 계속
미소를 지으며 접근해 왔습니다. 저는 마침내 화를
내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그녀는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계속 치근덕거리며 자기 말만
들으면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나야말로 이 세상의 여주인이지. 나는 남자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녀의 이름을 물어봤지요. 자기
이름이 마담 물거품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녀를 멀리했지만 그녀는 계속 따라오며
유혹했습니다. 저는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들어
구하면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분께 울면서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때 마침 여러분들이 오셨고 그녀는
달아나버렸지요. 저는 계속해서 이처럼 나를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해 그분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녀가 제게 하등의 좋은 일을 꾸미지는 않을 것이고
오히려 저로 하여금 여행을 중단하도록 만들려는
것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정직함 : 의심할 여지없이 그녀의 의도는 불순했어.
그런데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언젠가 그녀를
본 적이 있는 것 같군. 아니면 적어도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기도 하고.
똑바로 섬 : 둘 다 경험하셨는지도 모르죠.
정직함 : 마담 물거품이라! 키가 크고 얼굴이
반반한 데다 약간 거무스름하지 않소?
똑바로 섬 : 맞습니다. 바로 그렇게 생긴
여자였습니다.
정직함 : 말이 청산유수인 데다가 말끝마다 미소를
짓지.
똑바로 섬 : 예, 꼭 맞히셨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정직함 : 옆구리에는 커다란 돈지갑을 차고 마치 돈
만지는 게 즐거움인 듯 자주 지갑 안에 손을 넣어
만지작거렸어?
똑바로 섬 : 그랬습니다. 마치 그녀가 우리의
눈앞에 서 있는 것처럼 그녀의 모습을
그려내시는군요.
정직함 : 그렇다면 그녀의 모습을 그린 사람은
훌륭한 화가고 그녀에 대한 글을 쓴 사람은 사실대로
잘 쓴 셈이군.
위대한 마음 : 그녀는 마녀입니다. 그녀의 마술로
인해 이 지역이 마법에 걸려 있는 겁니다. 누구든지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우면 그것은 도끼가 매달린
단두대 위에 눕는 것과 같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현혹된 자는 하나님의 원수로 규정될 것입니다.
순례자들의 원수들을 계속 화려하게 꾸며주는 것도
그녀이지요. 그렇습니다. 많은 순례자들의 생명을
매수하여 파멸시킨 장본인도 바로 그녀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굉장한 험담꾼이지요. 언제나 자기 딸들과
함께 순례자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이 세상에서의
생활이 더 좋은 것이라고 찬양하곤 합니다. 그녀는
대담하고도 뻔뻔스런 창녀여서 아무 남자와도
마주서서 이야기를 나누지요. 가난한 순례자들을
비웃고 멸시하는 그녀이지만 부자들에겐
굽실거린답니다. 어떤 사람이 교활하게 돈을 좀
벌었다 싶으면 그녀는 집집마다 다니면서 그를
칭찬하곤 하지요.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잔칫자리여서
성찬이 마련된 곳이면 어디든지 빠지지 않고
나타납니다. 그리고 어떤 곳에서는 자신이 여신이라는
소문을 퍼뜨려 더러는 그녀를 숭배하기도 합니다.
그녀는 언제 어디서나 속임수를 쓰면서 그 방면에서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은 없다고 뽐내고 다닌답니다.
누구든 자기를 사랑하고 존대만 해준다면 자식의
자식과 같은 사람과도 살아준다고 떠들어대지요.
그녀는 장소와 대상에 따라 자신의 지갑 속에 있는
금화를 물쓰듯 하며 돌아다닙니다. 남이 자기를
따라다니는 걸 좋아하고 칭찬 듣기를 좋아하며 남자들
가슴에 안기는 것 또한 무척 좋아하지요. 그녀는
자기의 소유물을 자랑하는 데 입이 마르지 않고
자신을 최고라고 여겨주는 사람들만 사랑하지요.
누구든 자신의 권고를 듣기만 하면 황금왕관과 왕국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지만, 결국 사람들을 교수대로
보냈고 더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마녀입니다.
"아, 그녀의 요구를 거절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군요. 어디로 끌려갔을 지 누가 알겠습니까?"
똑바로 섬이 말했다.
위대한 마음 : 물론이에요. 어디로 끌려갔을지 그건
하나님 외엔 아무도 알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뜨려 결국
파멸시켰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압살롬으로 하여금 자기 부친에게 반역하게 하고
여로보암으로 하여금 자기 상전에게 반역하게 한 것도
그녀였습니다. 유다로 하여금 자기 스승을 팔게 하고
데마스로 하여금 성스런 순례의 길을 포기하게 한
것도 그녀였습니다. 그녀가 인류를 해롭게 한 것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부모와 자식, 이웃과 이웃, 남편과 아내, 인간과 자기
자신, 육체와 마음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도
그녀입니다.
그러니 착한 똑바로 섬 씨, 당신은 당신의 이름
그대로 모든 것을 견디고 굳게 서 계시기를 바라비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동안 순례자들은 기쁘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다. 이윽고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숱한 위험 속에 순례자가 있고
순례자의 적은 얼마나 많이 있는가.
죄를 범하기 쉬운 길 또한 얼마나 많은지
우리 인간들의 힘으로는 알 수가 없도다.
약간의 수렁은 가까스로 피했으나
여전히 진흙 구덩이에서 뒹굴게 되네.
부글부글 끓는 솥단지를 간신히 피해도
불 속에 빠지는 자들 있다네.
그후 나는 순례자들이 ㅃ라의 땅에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그곳은 밤낮으로 태양이 비치고 있었다.
그들은 거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그 지역은
순례자들이 공동으로 머무는 곳이었고, 그곳의
과수원이나 포도원들은 모두 하늘나라 왕의 소유였기
때문에 무엇이든 마음대로 따먹을 수 있었다.
그들은 곧 기운을 회복했지만 종소리가 크게 울리고
나팔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기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런데도 푹자고 난 것처럼 기분이 상쾌했다.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순례자들이 또 마을에 들어왔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늘 강을 건너 천국의
황금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입을 모아 다시 외쳤다.
"방금 빛나는 사람들 한 무리가 마을에 도착했다.
그걸 봐도 이 거리에 순례자들이 또 들어왔음을 알
수가 있지. 여기서 그 순례자들을 기다렸다가 그들을
만나보자. 그동안의 온갖 슬픔을 위로해 주게 돼
있으니까."
그때 순례자들은 일어나 거리를 거닐었다. 그들의
귀는 천국의 소리로 가득 찼고 눈은 천국의 환상으로
기쁨에 넘쳤다.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의 육체나
마음에 거슬리는 그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고, 보지도
못했으며, 느끼지도 못했고, 냄새도 맡지 못했으며
그리고 맛보지도 못했다. 다만 앞으로 자기들이
건너야 할 강물을 손으로 떠서 먹어보니 입 속에서는
약간 쓴 맛이 났으나 삼키고 나자 달콤해지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옛날의 순례자들 명단과 그들이 이룩한
여러 가지 유명한 행적들이 기록되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천국으로 건너가는 강물이 어떤 사람이 건너갈
때는 범람하고 어떤 사람이 건너갈 때는 줄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는데, 과연 어떤 사람이 건널 때는
줄어들고 또 어떤 사람이 건널 때는 둑까지 범람했던
것이다.
그곳 어린이들은 왕의 정원에 들어가 꽃을 꺾어다가
꽃다발을 만들어 순례자들에게 주는 일을 무척
좋아했다. 그곳에는 또한 장뇌(樟腦), 감송(甘松),
사프란(Saffron), 창포, 육계(肉桂) 같은 약초와
유향(乳香), 몰약(沒藥), 침향(沈香) 등의 온갖
향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순례자들이 그곳에 머무는
동안 기거하는 방은 이런 향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시간이 되어 강을 건너게 될 ㄸ 그 기름을 몸에 발라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곳에 머물면서 강을 건널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데 하늘나라로부터 순례자
크리스찬의 아내 크리스치아나에게 오는 편지를
가지고 배달부가 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배달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는 편지를 가지고 그녀가
머물고 있는 거처를 찾아왔다.
'착한 여인이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그대를
부르시는 소식을 알리니 앞으로 열흘 안에 영원히
썩지 않는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기를 고대하고
계심을 전하노라.'
배달부는 크리스치아나에게 이 내용을 읽어 주고
나서 어떤 증표를 꺼내 보여 자기가 진짜 배달부임을
증명해 보인 뒤 어서 떠날 준비를 하라고 재촉했다.
그 증표는 사랑으로 끝을 뾰족하게 한 화살이었다. 그
뾰족한 화살을 그녀의 가슴에 박아 지정된 날 꼭 떠날
수 있도록 서서히 작용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크리스치아나는 강을 건너야 할 때가, 그것도 일행
가운데 가장 먼저 자신에게 소식이 온 것을 알고
안내자인 위대한 마음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다.
위대한 마음은 기쁜 소식이라며 그 배달부가 자기에게
왔더라면 얼마나 기뻤겠느냐고 말했다. 그녀는 여행을
떠나는 데 갖추어야 할 모든 준비가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녀에게 어떻게 하면
되는가를 일러주고 나머지 일행이 강가까지 배웅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이들을 불러다놓고 축복을 해주었다.
그러고는 아직도 그들의 이마에 도장 찍힌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자랑스럽고, 하나도 낙오되지 않고
그곳에 도착해 있는 것 그리고 입고 있는 곳이 여전히
더럽혀지지 않고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보니
안심이 되고 기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기의 얼마 안 되는 물건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아들과 며느리들에게는 사자(使者)가
그들에게도 올 테니 대비하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녀는 안내자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서
진리의 용사를 불러 말했다.
"선생님, 당신은 언제 어디서나 진실한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세요.
그러면 왕께서 생명의 왕관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잘 좀 보살펴주세요. 언제라도
약해지는 것 같은 눈치를 보이거든 격려의 말씀을
들려주세요. 제 며느리들도 모두 성실했으니까 결국
그들에게 약속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정직함 노인을 불러 말했다.
"영감님이야말로 진짜 이스라엘의 후손입니다.
간사한 데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당신이 시온 산으로 떠나는 날 날씨가 쾌청했으면
좋겠소. 그리고 물에 젖지 않고 그 강을 건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몸이 젖든 어서 가게 되기만 바랄 뿐입니다.
날씨가 아무리 궂어도 일단 그곳에 가면서 쉬면서
젖은 것을 말릴 시간은 충분할 테니까요."
이번엔 착한 망설임이 들어와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까지 오시는 동안 참 고생 많으셨어요.
그렇지만 그곳에서는 그만큼 달콤하게 쉬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항상 살피고 준비하세요. 생각지도
않는 시간에 사자가 올지도 모르니까요."
그 다음엔 낙담 씨가 자기 딸인 겁쟁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녀가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의혹의 성에서 거인 절망의 손에 잡혀
있다가 구원받은 걸 영원히 감사함으로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 은혜 덕분에 이곳까지 안전하게 오신
것이니까요. 항상 깨어 있고 무서워하는 일도 없도록
하세요. 아무쪼록 끝까지 희망을 가지세요."
그 다음에 그녀는 심약자에게 말했다.
"당신이 거인 선을 죽임의 손아귀로부터 구원받은
것은 영원히 생명의 빛 아래 살며 편안한 마음으로
왕을 뵙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충고해
드릴 것은 주께서 당신을 부르시기 전에 그분의
선하심을 두려워하거나 의심함을 뉘우쳐서 막상
그분이 오셨을 때 자신의 허물 때문에 부끄러움으로
그 앞에 서지 않게 하세요."
이윽고 크리스치아나가 떠나야 할 날이 되었다.
그녀가 떠나는 것을 보기 위해 모여든 군중들이 길을
꽉 메웠다. 강 건너편 둑에는 그녀를 하늘나라의
문까지 데리고 갈 말과 마차들이 꽉 들어 차 있었다.
그녀는 강변까지 배웅나온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강물로 들어섰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러했다.
"주여, 주와 함께 거하며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
저는 지금 갑니다."
크리스치아나를 기다리고 있던 무리들이 그녀를
데리고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녀의 자식들과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 그녀는 예전에 남편
크리스찬이 그랬듯이 온갖 의식을 거쳐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떠나자 자식들은 모두 울었다. 위대한
마음과 진리의 용사가 심벌즈와 하프를 즐겁게
연주하자 그들은 울음을 멈추고 각자 헤어져 자기의
처소로 돌아갔다.
세월이 흘러 마을에 배달부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 그가 찾아온 사람은 망설임이었다. 배달부는
그를 불러 말했다.
"당신이 사랑했고 또 목발 짚은 발로 지금까지
따라온 그분의 이름으로 왔소. 그분께서 당신이
부활절 다음 날 그분의 나라에서 함께 저녁드시길
바라고 계신다는 전갈이오. 그러니 여행 떠날 준비를
하시오."
그는 역시 자기가 진짜 사자라는 표를 내보이고는
암호를 말했다.
"내가 네 금으로 된 잔을 깨뜨리고 은으로 된 끈을
풀어놓았노라."
그러자 망설임은 함께 온 순례자들을 불러 말했다.
"나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들도
반드시 부르실 것입니다."
그는 진리의 용사에게 자기의 유언장을
만들어달라고 간청했다. 그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유물로 줄 것이라곤 목발과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뒤를 따라올 내 아들에게 이 목발을 남겨준다.
그가 이 아비보다 훌륭하다는 것을 천하에 드러내게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빈다."
그는 위대한 마음에게 지금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준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길을 떠났다. 강가에 다다르자
그가 말했다.
"저 건너편에는 내가 타고 갈 마차와 말이 있으니
이제 이 목발은 필요없게 됐군."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어서 오라, 생명이여."
이 말을 남기고 그는 길을 갔다.
이 일이 있은 후 심약자가 자기 처소 앞에서 자기를
부르는 반가운 배달부의 호각소리를 들었다. 배달부는
안으로 들어와 말했다.
"주님께서 당신을 모셔오라는 전갈을 알려드리려고
왔소. 잠시 후 당신은 그분의 눈부신 얼굴을 뵙게 될
것입니다. 내가 전하는 말이 진짜라는 표적으로 여기
암호가 있소.
'창 밖으로 내다보는 자들은 어두워지리라.'"
심약자는 친구들을 모아놓고 자기가 어떤 전갈을
받았으며, 그 전갈이 진짜라는 표적으로 어떤 말을
들었는가 알려주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물려줄 유산도 없으니 유서는 남겨서 무엇
하겠습니까? 내가 가졌던 유일한 것은 나약한
마음인데 나는 이제 그것을 버리고 떠납니다. 지금
내가 가는 그곳에는 필요하지도 않을 뿐더러 아무리
가진 것이 없는 순례자라 하더라도 물려받을 만한 게
못되니까요. 그러니 진리의 용사 씨, 부탁합니다.
내가 떠나자마자 그것을 거름더미에 묻어주십시오."
이윽고 떠날 날이 되자, 그는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강물로 들어갔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믿음과 인내를 꼭 붙잡으시오."
그러고 나서 그는 강 건너 쪽으로 건너갔다.
여러 날이 지난 후 낙담이 부름을 받았다. 마을에
배달부가 와서 말을 전했다.
"떨고 있는 사람이여, 돌아오는 주일에 당신의 왕을
모실 수 있도록 준비하시오. 모든 의혹으로부터
구원받게 됐으니 소리 높여 기뻐하시오."
사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내 전갈이 사실임을 증거하는 표적으로 암호를
들으시오. '그에게는 메뚜기도 짐이 되리라.'"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 낙담의 딸 겁쟁이가
아버지와 함께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낙담은
친구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나와 내 딸이 여러분과 함께 여행하면서 얼마나
여러분을 고생시켜드렸는지 당신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나와 내 딸의 유언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낙담과 노예 같은 공포심을 우리가 여기를 떠난 후
영원토록 아무도 상속받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들이 우리가 죽자마자 다른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처음
우리가 순례의 길을 떠날 때부터 우리에게 접근한
귀신입니다. 우리는 그걸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것들은 분명히 우리에게서 떠나면
돌아다니면서 다른 순례자들을 찾을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을 본보기로 하여 절대로 그것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떠날 시간이 되자 그들은 강둑으로 나갔다. 낙담이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잘 가거라 밤이여, 어서 오라 낮이여."
그의 딸은 노래를 부르면서 강을 건넜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노래를 알아듣지 못했다.
한참 세월이 흐른 후 마을에 다시 나타난 배달부가
정직함을 찾았다. 배달부는 그가 거처하고 있는 집을
찾아가 그에게 다음과 같은 사연을 전했다.
"그대는 떠날 준비를 하시오. 오늘부터 이레 후
거룩하신 아버지의 집에서 당신의 주님을 만나뵈어야
합니다. 내 전갈의 진실성을 말로 증거하는 바입니다.
'너희 음악의 모든 딸들은 쇠하여질 것이다.'"
그러자 정직함은 자기 친구들을 불러 말했다.
"나는 죽지만 유언을 남기지는 않겠소. 내가 지닌
정직성은 나와 함께 갈 것이오. 내 뒤에 오는
자들에게 이 말을 전해 주시오."
그가 떠날 날이 되자 그는 강으로 나갔다. 그때
마침 강물이 불어 군데군데 강둑을 덮고 있었다.
그러나 정직함은 생전에 선한 양심이라는 사람과
그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적이 있었는데, 그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가와서는 손을 잡아 무사히
건네주었다. 정직함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은총이 다스린다."
그렇게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후 진리의 용사가 똑같은 배달부의 전갈을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는 전갈이
진실한 부르심이라는 표시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항아리가 우물가에서 깨졌느니라."
그는 사정을 알아차리고 곧 친구들을 불러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지금 아버지께로 갑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그동안 겪은 어떤 괴로움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 칼은 내 뒤를 따라
순례자가 될 사람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용기와 솜씨는 그것을 능히 받을 만한 사람에게
물려주겠습니다. 내 몸의 무수한 상처는 이제 내게
상을 주실 그분을 위해 싸웠다는 증거로 제시하기
위해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가 길을 떠나야 할 날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배웅하러 강변까지 나갔다. 그는 강물로 들어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죽음아, 네 고통이 어디 있느냐?"
그는 점점 깊이 들어가면서 다시 말했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그는 마침내 강을 건너갔다. 강 저쪽에서 그를 위한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똑바로 섬이 부름을 받았다. 그는 다른
순례자들이 마법에 걸린 지역에서 무릎 꿇고 있는
것을 발견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배달부가 그에게
가는 전갈을 가지고 나타났던 것이다. 그 전갈의
내용은 주님께서 더 오래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똑바로
섬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사자가 말했다.
"아니오, 내가 전하는 말의 진실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 그 진실성을 증명할 증표가 있소.
'너의 도르래가 우물가에서 깨졌다.'"
그러자 그는 그들의 안내자였던 위대한 마음을
불렀다.
"선생님, 내가 순례여행을 하는 동안 좀더 오래
당신네 순례자 일행과 함께 지내지 못한 것은 나의
불행입니다. 하지만 당신을 알고 난 이후로 나는
당신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나는 집을 떠날
때 아내와 어린 것들 다섯을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그래서 당신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더 많은 순례자들을 안내하기 위해서 다시 당신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돌아가시거든 누구라도 좋으니 우리집에
사람을 보내어 그동안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전해 주었으면
고맙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 도착한 내가 얼마나
행복해 하며, 또 어떤 축복을 받은 상태에 처해
있는가를 가족들에게 잘 좀 설명해 주십시오. 그리고
또한 크리스찬과 그의 아내 크리스치아나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녀가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남편의 뒤를
따랐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행복하게 죽었으며 죽어서 어디로
갔는가도 알려주십시오. 내게는 가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것 외에는 그들에게 남겨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들에게 이런
사정을 알려 그들이 행여나 이해해 주기만 한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똑바로 섬은 이렇게 세상일을 정리하고 나서 떠나야
할 때가 되자 서둘러 강물로 들어갔다. 그때 강가는
아주 고요했다. 강을 반쯤 건너자 똑바로 섬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쪽 강변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동료를 향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강을 두려워해 왔습니다. 사실
나도 가끔 이 강을 생각할 때마다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렇게 아무 어려움 없이 편하게 서
있습니다. 내 발은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강을
건널 때 언약의 궤를 멘 제사장들이 밟고 서 있던
바로 그 위를 든든하게 밟고 있습니다. 강물이 혀에는
쓰고 몸에 차가운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고
있는 곳을 생각하고, 건너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안내자들을 생각하니 내 심장은 타오르는 불길처럼
뜨러워집니다.
이제 내 여행은 거의 끝났고 괴로운 날들도 모두
끝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나를 위해 가시관을
쓰셨고 얼굴에 침 뱉음을 당했던 그분의 얼굴을 뵈러
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나는 남이 하는 말과 믿음에 의해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내가 기쁘게 모시고
싶은 그분을 친히 뵙고 그분을 곁에 모실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상에 있을 때 나는 주님에 대한 말씀을 듣기
좋아했고, 그분이 걸으신 발자취를 발견하면 그 위를
똑같이 걷고자 애썼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내게는 사향을 담아두는 함과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그 어떤
향기보다도 더욱 향기로웠습니다. 그분의 목소리는
내게 가장 감미로운 것이었고, 나는 그분의 얼굴을
태양을 지극히 사모하는 자들보다도 더욱
사모했습니다. 나는 그분의 말씀을 먹고 살았고, 나의
약점을 치유하는 해독제로 그분의 말씀을
사용했습니다. 주께서는 나를 붙잡으시어 죄악의 길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그의 길을 걷는 내 발에 굳센 힘을 주셨습니다."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그의 얼굴은 변해갔다.
그리고 그의 강한 모습도 사라져갔다.
이윽고 그는 이런 말을 하면서 친구들 앞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건너편의 넓은 지역에 가득 들어 찬 말과
마차들, 나팔수와 피리부는 자들 그리고 노래 부르는
자와 현악기를 타는 자들이 올라오는 순례자들을
환영하고는 모두 함께 하늘나라의 아름다운 문으로
들어가는 광경이야말로 참으로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크리스치아나가 함께 데리고 갔던 아들 넷과 그들의
아내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은 아직 강을 건너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때 나는 그곳을 떠났다.
돌아온 후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그들이 아직
그곳에 살고 있으며, 당분간 신도들을 더 증가시키기
위해 그곳에 계속 머물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만약 내가 또다시 그 길을 갈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내가 이 책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들을 듣고자 원하는
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동안
독자들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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