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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 교육

7급 한자 능력 검정 시험 기출문제 제68회, 69회 7급, 한국 언어 정책의 변화와 한글

by Casey,Riley 2020.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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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급 한자 능력 검정 시험 기출문제 제68회, 69회 7급

 

7급 한자 능력 검정 시험 기출문제 제68회7급.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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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어 정책의 변화와 한글

·한자의 혼용*1 2 苗 春 梅 * * < 목 차 > 1. 서론 2. 한국 언어 정책의 변화 양상 2-1. 한글과 한자의 공용 시기 2-2. 한글·한자의 혼용과 한글 전용의 논쟁 2-3. 한글·한자의 혼용 시기 2-4. 한글 전용 시기 2-5. 한자의 부활 시기 2-6. 부분 한글과 한자 혼용 시기 3. 한글과 한자의 혼용 양상 3-1. 한자와 한글의 동의 중첩 혼용 양상 3-2. 한자와 한글의 固定 結合 혼용 양상 4. 결론 [국문초록] 세계 여러 나라와 달리 한국의 언어생활은 한자와 한글로 두 개의 문자체계가 구성된 특수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글이 창제되 * 310 漢字漢文硏究 제 6 호 기 전까지 한국말을 기록하는 문자가 없어서 한국사람들은 중국 한 자를 빌려 표기하였다가 1443년에 최초로 한국 고유문자 '훈민정음' 을 창제하였다. 사실은 '훈민정음'이 창제되었을 때로부터 기존의 한 자와 공존되어 왔으며 한국사람들이 두 개의 문자체계를 사용하는 언어생활을 영위해 왔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한국 문자 체계에서 한 글과 한자는 수많은 대립과 갈등, 화해와 용합으로 내려오면서 이미 하나가 되어버린 것 같아 인위적으로 분리시키려고 해도 뗄래야 뗄 수 없는 용합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글과 한자의 공존과 혼용으로 구성된 한국인의 언어생활에서 역 대 정부의 문자 정책과 언어 정책 수립에 있어서는 수많은 분쟁이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특히 개화기와 일제 시기, 광복 건국과 군 사 정권기를 거쳐 현대까지 이와 같은 논쟁이 지속되어 왔으며 한국 인의 언어 생활과 문자 생활에 큰 불편을 끼쳤다. 문자는 시각적이며 외적 수단이지만 언어 내적 구조의 음운·어 휘·문법과 많이 관련되어 있고 나름대로의 발전 규칙이 있다. 한글 과 한자의 혼용은 한글·한자 혼용이나 한글 전용의 언어정책 분쟁 과 상관 없이 한국어 어휘체계의 내적 구조 규칙에 따라 형성된 것 이다. 특히 일부 한글과 한자가 오랫동안 공존하면서 배제와 경쟁, 결합과 융합을 한 끝에 고정된 통사·의미적 호응관계 또는 공기 관 계가 형성된 혼용 양상이 있다. 이런 한글과 한자의 혼용 양상은 구 성요소 중 어느 한 부분을 바꾸면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혼용 현상 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한국어 어휘체계의 내적 구조 규칙 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본고에서는 한국 언어정책 수립과 한글전용 여부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고 다만 한국 언어정책 변화 양상을 살펴보고 한글과 한자의 혼용 양상을 파악하려고 한다. 그리고 한글과 한자의 혼용 양상을 분석하여 한국어 어휘체계의 내적 구조 규칙을 연구하려고 한다. 본문에서 한국어 언어정책 변화 양상에 대해 한글과 한자의 공용, 논쟁, 혼용, 한글전용, 한자 부활, 부분 혼용 등 양상을 살펴보고 정 리하였다. 한국 언어 정책의 변화와 한글·한자의 혼용 311 그리고 한글과 한자의 혼용양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 동의중첩혼용 과 고정결합 혼용 두 가지 유형을 분류해서 예문을 통해 분석 연구 하였고 한국어 어휘체계 속에서 한글과 한자 혼용의 내재 구조 규칙 을 파악하였다. 【주제어】 언어 정책, 변화 양상, 언어 내적 규칙, 동의 중첩 혼용, 고정 결합 혼용 1. 서론 세계 여러 나라와 달리 한국의 언어생활은 한자와 한글로 두 개의 문자체계가 구성된 특수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글이 창제되 기 전까지 한국말을 기록하는 문자가 없어서 한국사람들은 중국 한 자를 빌어 표기하였다가 1443년에 최초로 한국 고유문자 '훈민정음' 을 창제하였다. 사실은 '훈민정음'이 창제되었을 때로부터 기존의 한 자와 공존되어 왔으며 한국사람들이 두 개의 문자체계를 사용하는 언어생활을 영위해 왔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한국 문자 체계에서 한 글과 한자는 수많은 대립과 갈등, 화해와 용합으로 내려오면서 이미 하나가 되어버린 것 같아 인위적으로 분리시키려고 해도 뗄래야 뗄 수 없는 용합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 나라의 언어생활은 방향 짓는 정부의 문자 정책과 언어 정책의 수립과 집행이 그 나라 문화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뿐만 아니라 국민 개인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크다. 한국에서 한 글과 한자의 공존과 혼용으로 구성된 한국인의 언어생활에서 역대 정부의 문자 정책과 언어 정책 수립에 있어서는 수많은 분쟁이 끊임 없이 지속되어 왔다. 특히 근대에 들어오면서 개화기와 일제 시기, 광복 건국과 군사 정권기를 거쳐 현대까지 한글·한자 혼용이나 한 312 漢字漢文硏究 제 6 호 글 전용의 논쟁이 지속되어 왔으며 한국인의 언어 생활과 문자 생활 에 큰 불편을 끼쳤다. 그러나 문자는 시각적이며 외적 수단이지만 언어 내적 구조의 음 운·어휘·문법과 많이 관련되어 있고 나름대로의 발전 규칙이 있다. 한글과 한자의 혼용도 마찬가지로 한글·한자 혼용이나 한글 전용의 한국 언어정책 분쟁과 상관 없이 한국어 어휘체계의 내적 구조 규칙 에 따라 형성된 것이다. 특히 일부 한글과 한자가 오랫동안 공존하 면서 배제와 경쟁, 결합과 융합을 한 끝에 고정된 통사·의미적 호 응관계 또는 공기 관계가 형성된 혼용 양상이 있다. 이런 한글과 한 자의 혼용 양상은 구성요소 중 어느 한 부분을 바꾸면 성립하지 않 는다. 이런 혼용 현상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한국어 어휘 체계의 내적 구조 규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문화와 언어 경쟁의 21세기에는 한국어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안 정된 문자 정책과 언어 정책이 중요하고 한국어 내적 구조 규칙에 따라 공존해온 한글·한자의 혼용 양상의 연구도 중요하다고 본다. 본고에서는 한국 언어정책 수립과 한글전용 여분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고 다만 한국 언어정책 변화 양상을 살펴보고 한글과 한자의 혼용 양상을 파악하려고 한다. 그리고 한글과 한자의 혼용 양상을 분석하여 한국어 어휘체계의 내적 구조 규칙을 연구하려고 한다. 2. 한국 언어 정책의 변화 양상 2009년 초 한국 역대 총리 29명 가운데, 20명이 서명한「초등학교 의 정규 과목 교육과정에 있어서의 한자 교육을 재촉하는 건의서」가 이명박 정부에 제출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또 다시 언어 정책 과 관련된 한글·한자 혼용과 한글 전용의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 다. 한국 언어 정책의 변화와 한글·한자의 혼용 313 2-1. 한글과 한자의 공용 시기 한국 언어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 한자가 언제 한국에 전래되었는 지 명확한 기록이 없지만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교류 역사를 통하 여 서기1세기 전후1 15 세기 중엽 훈민정음의 창제와 반포는 역사상 최초로 한국 고유문 자에 의한 문자생활이 가능하게 되어 한국인의 언어생활 전반에 적 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민정음이 창제되었으 나 한국어 어휘 체계 속에 이미 굳어진 한자의 지위는 좀처럼 흔들 리지 않았다. 이는 '훈민정음'이 창제되었을 때로부터 기존의 한자와 공존해야 되고 한국사람들이 두 개의 문자체계를 사용하는 언어생활 을 영위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 후 천년이 넘는 기간동안 한자와 한 글은 한국어 언어체계에서 서로 대립과 갈등을 하면서도 화해와 용 합을 통해 공존하여 왔지만 한글·한자 혼용과 한글 전용의 논쟁도 수반해 왔다. < 훈민정음 > 을 창제했을 때부터 제2차 세계전쟁이 끝났을 때까지의 시대는 한글과 한자를 함께 쓰는 시기였다. 그 당시 한글을 언문(諺 文)이라고 한다. 훈민정음을 창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가 한국인 의 문자생활에서 여전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1894년 전 에 계속 공식적인 문자로 사용하게 됐다. 이 시대에 한자와 한글을 함께 사용하는데 한자가 더 많이 쓰게 됐다. < 훈민정음 > 이 1446년 정식 반포된 후 양반들에게 배격하게 되지만 공문에서 계속 한자를 사용했다. 그리고 16세기에 < 훈민정음 > 을 사 용하는 것은 한때 금지 당했다. 17세기까지 서민 작가들이 언문으로 < 심청전(沈淸傳) > 을 작성하고 < 서유기(西遊記) > 를 번역해서 언문을 양반과 인텔리에게 받게 됐다. 그리고 한자와 언문을 함께 사용해서 쓰는 문체가 나타났다. 주로 한자로 어근을 적고 언문은 조사와 접 1 한자의 유입이 불교의 전래보다 빨랐을 것이라는 추정은 1세기 한(漢)나라 무제(武帝)시기에 다수의 한인(漢人)들이 한반도로 들어왔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2008), p40. 로 한자가 조선반도에 전래되었다는 추론이 있다. 314 漢字漢文硏究 제 6 호 미사를 적었다. 1894년 조선조 고종대왕은 명령을 내려서 한자를 폐 기하고자 하고 한글이 겨우 공식적인 문자로 사용했다. 그렇지만 그 때의 한글로 작성한 굴원에서도 여전히 한자를 섞어 썼다2 . 2-2. 한글·한자의 혼용과 한글 전용의 논쟁 제2차 세계전쟁이 끝났을 때로부터 지금까지 한자에 대한 한국 정 부의 언어 정책은 계속 변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 한자와 한글을 함 께 사용하는데 한글이 더 많이 쓰게 됐다. 제2 차 세계전쟁이 끝난 이후 한국에서 한자를 계속 사용하는지, 아니면 폐기하는지 하는 논 의에 대한 의견이 서로 날카롭게 맞섰다. '한글학회'를 비롯한 의견은 일상 생활에서 한자를 폐지하고 한글 만 사용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한글학회는 '한글전용 학파'라 고도 한다. '전국 한자 교육 추진 총연합회'를 비롯한 의견은 일상 생활에서 '국한문 혼용'을 쓰자고 하는 한자 부활을 주장하고 있다. 이 학파는 '국한문혼용 학파'라고도 한다. 두 학파에서 다 유명한 문 자 학자들이 있으므로 한국 정부도 명확한 문자 정책을 정하지 못했 다3 . 그때부터 50년이 넘게 진행된 한글과 한자간의 논쟁은 거의 진전 이 없었으며, 각자의 이론적 우수성만을 내세워 지금까지도 그 대결 의 끝은 보이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라고 본다. 2-3. 한글·한자의 혼용 시기 1945년부터 1964년까지 한글과 한자의 혼용 시기이다. 1945년의 광 복은 한국인 들에게 한없는 기쁨을 가져다 주었고 민족의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민족의 문자 생활을 혁신했다. 광복 이후 지금까지 2 朴点玉(1999)。 3 张光军(1999)。 한국 언어 정책의 변화와 한글·한자의 혼용 315 한국의 언어 정책은 기본적으로 한글 전용 여부와 한글·한자 혼용 이라는 정부의 비일관된 언어 정책 갈등 중이다. 1945년 이후 한글과 한자는 끊이지 않은 대결 속에서 몇 차례 논쟁을 거치게 됐지만 여 전히 결론이 나지 않고 있었다. 1948 한국'제헌 국회'에서'한글 전용법'이 통과되고 1949에 한자 를 사용하는 의안이 통과됐다. 1948년 10월 9일 한국 국회는 「한글 전 용에 관한 법률 제 6 호」4 를 제정하고 “대한민국의 공용 문서는 한글 로 쓴다. 다만 일정기간 동안 필요에 따라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 는 내용을 반포했다. 이 규정은 '공용 문서'에 대한 정의도 없고 '일 정 기간'의 정의도 없으며 시행 규칙과 위반자에 대한 벌칙 규정도 없으니 법률이 아니고 선언문이다. 그러나 이 규정은 정부로부터 한 글 문자 사용을 법조문화한 것으로 50년 동안 문자 정책에 큰 영향 을 끼쳤다. 이는 2005년 1월에 제정한 국어기본법에 흡수되면서 자연 히 폐지되었다. 현재 이는 한글 전용자의 비판 대상이 되기도 하지 만, 근본적으로 한글·한자 혼용이 지배적인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 서 한글전용을 법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그 후 1951에 선정한 문교부 제정 '常用 一千 漢字表'와 1957한국 교육부가 300자를 보강한 상용한자(常用漢字) 1,300자를 학교교육에 이용해 왔지만 1953년 4월 이승만 대통령은 국회회의에서 한글 전용 을 강조하였고 1956년~1957년간도 여러 번이나 강조했다. 그리고 뉴 스 매체를 비롯한 사회 여론도 전통과 관습을 무시한 법률이 없어져 야 된다고 주장했다. 1956,1957년의 수차례에 걸쳐 한글 전용에 대한 토론은 계속되나 한글과 한자의 혼용 문화가 뿌리 깊어 쉽게 실현되 지 못하였다. 1957년 12월 6일 한국 국무회의에서는 1958년 1월 1일 부터 '한글전용 실천 요강'을 시행하도록 발표하였다. 1958년 10월 1일 한국 문교부 안에 한글,한자어,외래어,학술어, 국어 순화 등 5개 지류 위원회를 포함한 '국어 심의회'가 생기며 한 4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从韩文专用论与韩汉混用论间的争执看韩国的语文政策 』. 316 漢字漢文硏究 제 6 호 글 전용이 추진됐다. 1960년에 들어 한자어 교육으로 인해 일으키는 사회와 학교간의 모순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1961년 12월초 군사정부 는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을 강화하여, 1962년 3월부터 신문·잡지 등 모든 간행물에 한글 전용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해 4월 1일, 정부 보조로'한글전용 특별심의회'가 구성되었고 1962년 5월-1963년 7 월에 심의회 40여명 위원이 14,159개 어휘를 심의해서'한글전용 특별심의회 회보'를 발행하였다. 이는 한국인에게는'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의 시작인 셈이다. 2-4. 한글 전용 시기 1964년부터 1970년까지 한글 전용시기이다. 1963년 2월 새로 공표 한 초등학교 교육과정 국어과 교육목표 4학년 읽기에서는'일상 생활 에서 쓰는 한글과 한자, 숫자, 로마자와의 구별을 알도록 한다'는 한 자 지도의 근거를 설정하여 1964년 9월 학기부터는 초등학교 600자, 중등학교 400자, 고등학교 300자의 한자 교육을 하게 되었다. 1964년 11월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한글학회'는 한자 교육을 반대한다고 발 표했고'한글전용촉진회'도'민족 영혼 회복, 한글 전용'을 발표했다.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은'한글만으로 완전히 민족 문화를 범용할 수 있고 교육을 창립할 수 있다. 애국의 새로운 사회, 한글 전용'을 원 칙으로 한다고 한 선언은 한글 전용에 대해 정부측의 결연한 입장을 충분히 드러냈다. 박정희 대통령이 내각에 지시하여 1968년 5월 「한글전용 5개년 계 획」을 국무회의에서 결의하게 하였다. 이것으로 20년간 거의 시행되 지 못했던 한글전용이 한꺼번에 집행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글 전용 정책을 근본적으로 지지하여 1968년 10월 25일에는'한글전용 촉진 7개 사항'을 발표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70년 1월 1일부터 행 정, 입법, 사법의 모든 문서뿐만 아니라 민원 서류도 한글을 전용하 며 구내에서 한자가 든 서류를 접수하지 말 것이고 1948년에 제정한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70년 1월 1일부터 전용하게 하고 한국 언어 정책의 변화와 한글·한자의 혼용 317 그 단서는 뺀다는 것이며 각급 학교 교과서에서 한자를 없애고 고전 의 한글 번역을 서두를 것이라는 것이다. 한편, 학술계와 여론은 이 방안과 시행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논쟁의 핵심은 교과서 중의 한자 부분을 전부 다 삭제하는가의 여부 였다.「서울 신문」만 한자를 전부 다 빼고 여타 신문 업계는 한자 2,000-7,000자 정도를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학교와 사회 간 접근하고 있는 한자 사용 간격을 다시 한번 넓혔다. 1969년 10월 까지,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 중의 906자 한자는 전부 다 삭제되 었고 초,중,고등학교 교과서는 100% 한글판으로 개편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개인적으로도 한글전용에 신념을 가져 위의 촉진 책에 따라 1970년부터 한글전용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여 교과서 한 자 표기를 퇴출하였다. 2-5. 한자의 부활 시기 1970년부터 1975년까지 한자의 부활 시기이다. 1970년 1월부터 정 부 공용 문서는 모두 다 한글로 썼고 학교에서 문과 학생이 아니면 한자를 배울 수 없었고 대학교에서 일상용 한자를 배우게 했다. 1970 년 11월 25일,'한국어문교육연구회'등 7개 단체는 학술원에게'한 자 교육 부활 촉구 성명서'를 제출했고, 그 내용 속에는 한글 전용 의 폐단을 열거했다. 그들은 한자가 한국어의 중요한 일부분이기 때 문에 한자 교육을 실시해야 된다고 여겼다. 학술원의 회답은'초등 학교부터 단계적 한자 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찬성'한다는 것이었다. 1971년 9월 24일 '한글 학회' 등 37개 단체는 「한글 전용에 관한 원 서」 를 공동 발표했는데 사회적으로 특별한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 1972년 7월 문교부는 다시 1800자 (중학교 900자, 고등학교 900자) 상용 한자를 정하고 한문 교과를 독립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 었다. 이 1,800자를 익히면 사회의 문자생활에 대해 제약도 없는 것 이라 판단했다. 1974년 7월 문교부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한글과 한자 병용의 방침에 대해 국어, 국사 교과서에서 한글과 한자 병용 318 漢字漢文硏究 제 6 호 부터 1976년에 들어온 교과서에 확대시키는 주장을 발표했다. 그 당 시 이 한자 교육 방안에 대한 두 가지 전제 조건, 즉 첫째는 한자 교육을 실행하는 목적은 고전 읽기가 아니라 한글과 한자 혼용의 신 문, 잡지를 잘 이해시키려는 것이었고 둘째는 인명, 지명을 통해 학 습 효과를 강화하는 한자의 양은 10%로 더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을 천명하였다.'한국어문교육연구회'는 성명서 발표를 통해 이 방침을 지지했지만'한글학회'는 한자 교육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6. 부분 한글과 한자 혼용5 시기 1975년부터 현재까지 부분 한글과 한자의 혼용 시기이다. 1976년 9 월 한국 문교부는 전에 반포한 성명에'가능하면 1976년부터 초등학 교에서 한자 교육을 실행한다'는 내용을 뒤집어서 초등학교의 한자 교육을 반대하였다. 사회 각 계층은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였다. 1977년 8월 18일 박정희 대통령은 현실 생활의 상용 한자를 삭제하 는 극단적인 주장이 당연히 옳지 않지만 현재 사용량을 확대하려는 주장도 적당하지 않다고 말했다.'한글학회'는 한국 고유 민족 문화 를 발양시키는 것과 민족 문화 현대화를 위해서 문자생활에서 한글 만 사용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반대로'한국어문교육연구회'는 초등 학교부터 한자 교육을 시켜야 하고 국한문 혼용의 교과서를 편찬해 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5 년 5 월에, 김영삼 대통령 자문 위원회는 '정보화와 세계화를 맞이하기 위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한자 교 육을 강화시키는 교육 개혁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시기의 한국어순화 정책을 보면 한국 당국 은 한자에 대한 입장과 태도의 변화도 살펴볼 수 있다. 당시의 한국 5 국한문혼용(國漢文混用) 또는 한자혼용(漢字混用)은 한국어를 문자로 표기 할 때 한글과 한자를 섞어서 표기하는 방식을 말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한 문은 사용하지 않으므로 국한자혼용(國漢字混用)이라 불러야 한다는 의견 도 있다.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에서 일상 생활에서 국한문혼용을 쓰자 고 하는 한자 부활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 언어 정책의 변화와 한글·한자의 혼용 319 어순화6 다. 는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병존하였고 주요 정책은 다음과 같 ① 1976년 1월 16일 문교부는 대통령에게 국어순화를 사업계획의 하나로 발표함으로써 국어순화가 다시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② 1976년 4월 16일 대통령은 모든 간판, 방송 용어, 축구 중계 해설에서 외국어가 남용되고 또 과자 이름 등의 9할이 외래어 임을 지적, 이를 전문가의 협조를 얻어 시정하도록 문교부, 문 화공보부, 보건사회부에 지시하였다. ③ 1976년 5월 17일 문교부는 차관 회의에서, 국어순화 범국민화 추진을 위하여, 국어연구원을 상설 기구로 설치하겠다고 보고 하였다. ④ 1976년 6월 3일 대통령은 내각에 대하여 문교부가 주관하여 각 분야에 쓰고 있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는 시안을 만들도록 지시하였다. ⑤ 1976년 6월 11일 내무부는 외래어 간판을 우리말로 바꾸기 위 하여 상호 변경 신청을 했을 때 면허세를 면제하도록 각 시도 에 지시하였다. ⑥ 1976년 7월 23일 국무회의는 국어순화 운동방안에 필요한 사항, 각 부처 및 국어순화 추진회 단체가 협조할 수 있는'국어순화 운동협의회'규정을 의결, 8월 4일 공포하였다. 위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의'한국어 순화 정책'을 실행하고 있었는 데 외래어와 한자어가 부분적으로 사용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한국 정부 투자 연구 기관으로 '국어연구소'가 1984년에 설립된 것이었다. 이 기관은 중세의 집현전, 개화기의 '국문 연구소' 의 전통을 잇는 기관이다. 한국의 학술원은 1954년 창립된 것이었다. 노태우 대통령 시기에는 한국 어문정책 기관의 변화가 있었는데 문교부가 교육부와 문화체육부로 분리되면서 어문정책 기능을 문화 부로 이관하게 되었다. 아울러 한국어 연구소를 문화체육부 직할 국 6 한국어 순화란 한국어를 순수하고 바른 언어로 가꾸는 일이다. 저속하고 규범에 어긋나는 말을 바로잡고 외래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일 등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국어정화(國語淨化)'라 하기도 한다. 320 漢字漢文硏究 제 6 호 립 국어연구원으로 승격시켜 국어정책 기능의 위상이 강화되었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모두 선거 공약에서 한자 초등학교 교육 실시를 내세웠기 때문에 당선 후 대통령이 의지만 가지면 시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교육부는 초등학교 한자 교육은 부정하고 한문 과목은 중학교에서부터 가르치면 된다는 1970년대 이래의 정책 기조 를 그대로 두기를 원하고 있어 대통령의 초등학교 한자 교육 도입 공약은 관료들부터 설득하지 않으면 실천이 어려운 것이다. 1980년부터 그 당시 한국의 관광판과 교통 표지에서 한자는 전부 다 삭제했었으며, 그러나 최근 몇 년 전부터는 한국 정부는 외국 관 광객을 유치의 일환으로 교통 표지판에 다시 한번 한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998년 11월 한국 대학교의 교장, 국회의원, 전 정부 고관, 장군 그리 고 기업가와 문화 예술 업계의 원로 등 약 9,000여 명 유명 인사들은 '전국 한자 교육 추진7 총연합회'를 제의하고 창립했다. 1999년 한국 문화관광부는 기초 한자를 < 한문 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 > 와 < 국어생활용 한자 200자 > 로 이원화해 2,000자로 늘리는 방안을 교육부에 제출하며 공문과 교통 표지에서 한글과 한자를 동 시에 섞어서 사용한다고 규정했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747공약과 감세론 등 6개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을 뿐 사람들이 관 심을 많이 주는 한자 교육에 대해서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았고 대신 '영어 공교육'을 내세웠다. 이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의 어문 정책 역사와 한국인의 언 어생활사는 바로 한글과 한자의 혼용이나 한글 전용 여부의 논쟁사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역대 정부의 문자 정책과 언어 정책 7 국한문혼용(國漢文混用) 또는 한자혼용(漢字混用)은 한국어를 문자로 표 기할 때 한글과 한자를 섞어서 표기하는 방식을 말한다. 엄밀하게 말하 면 한문은 사용하지 않으므로 국한자혼용(國漢字混用)이라 불러야 한다 는 의견도 있다.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에서 일상 생활에서 국한문혼 용을 쓰자고 하는 한자 부활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 언어 정책의 변화와 한글·한자의 혼용 321 수립에 있어서는 수많은 분쟁이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되어 갈 것이다. 지속되는 한국 언어 정책의 변화로 인해 한국 인들의 문자 생활과 언어생활에 많은 불편을 가져왔다는 것은 분명 한 현실이다. 3. 한글과 한자의 혼용 양상 어느 나라 언어에서나 외래어의 차용과 신어의 생성은 모두 그 시대 적 발전에 따른 산물이다. 이는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새 사물이나 새 관념의 등장에 수반되는 언어 현상인 만큼 그 언어에 생기와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 한자어의 차용도 마찬가지이다. 한자어는 한국인의 언어와 문자생활, 그리고 한국어 어휘 발전에 적극 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한국 언어정책의 수립, 한글과 한자의 혼 용이나 한글 전용 여부의 논쟁과 상관 없다는 것이다. 한국어에서 한자어 차용의 어원이 오래된 만큼, 한자어는 고유어 와의 갈등과 경쟁을 거쳐 점차 고유어와 결합되어 분리하지 못할 정 도로 굳어지게 되었다. 한국어 어휘체계에서 한자는 한국어의 내적 구조 규칙과 제약에 따라 한글과 서로 보완하면서 공존하여 왔다. 이는 한자어에 대한 외래요소라는 한국인의 의식을 약화시켰다. 한국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한자어와의 만남이 시작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는 한자어 속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한자어를 사용하고 듣는다. 어렸을 때는 한자어에 대해 한자어라는 인식 없이 무의식적으로 배워 사용한 후, 학교 공부를 시작하고 나 서야 한국말 속에 한자어라는 어휘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면 보통 한국 사람에게는 고유어든 한자어든 모두 자기가 태어났을 때부터 사용해온 모국어이고 한자어 가 의사소통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고 322 漢字漢文硏究 제 6 호 유어인지 한자어인지 구별할 필요도 없고 이의 구별이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만 특정 수요에 따라 의사소통에 문제가 된다면 한자어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할 뿐이다. 현재 전문가 이외에 보통 한국 사람에게는 많은 한자어가 고유어로 인식되고 한자 어란 의식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만큼 한자어가 한국어 의 일부가 되었고 고유어와 융합된 일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1. 한자와 한글의 동의 중첩 혼용 양상 인간 언어의 발전은 타 민족과 타 언어의 영향이 수반되기 마련이 어서 순수한 언어는 없을 것이다. 영어를 살펴보면 영어에 여러 가 지 외래 성분이 많이 들어있지만 서로의 배제와 경쟁, 그리고 결합 과 융합을 통해 어울려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외래 성분의 개입 과 차용이 영어를 위축시켰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 많은 외래 성분이 영어에 새로운 활력과 활기를 가져와 영어가 더 강해지고 오 늘날 세계 최강 언어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어는 한자의 경제적이고 간결한 구조로 복잡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기능을 흡수하고 한글과의 결합과 한자에 대한 제약을 통하 여 수많은 어휘나 구절을 만들어 한국어의 어휘 부족을 보완하고 언 어의 발전을 이루었다. 따라서 한자를 활용하여 한국식 한자어를 만 들거나 한자와 한글의 결합으로 단어나 구절을 구성하는 방법은 다 한국어 조어법의 하나로 본다. 한국 한자어에는 한자를 활용하여 한국어 어휘체계 내적 구조 규 칙에 따라 한글과 통사적·의미적 호응관계나 공기관계가 형성된 한 국식 한자와 한글의 혼용 양상이 있다. 먼저 의미적 측면에서 한자 와 한글의 구성요소 의미가 똑같거나 일부가 동의하는 혼용 양상을 살펴보자. ① 한자 + 고유어: 斷髮머리, 菊花꽃, 東海바다, 生日날. ② 고유어 + 한자: 푸른綠色, 꽃馬車, 손手巾. 한국 언어 정책의 변화와 한글·한자의 혼용 323 ③ 고유어 접두사 + 한자: 풋沙果, 애當初, 숫處女. 한국어에는 이처럼 한자와 고유어의 혼용 결합으로 구성된 단어나 구절이 상당히 많다. 이러한 한자와 한글의 혼용양상은 한자가 고유어에 차용될 때부터 보통 화자들이 한자의 훈을 통해 한자와 한문을 인지하고 이해하느 라 생겨난 동의중첩 언어 혼용 현상이라고 본다. 한자 의미를 파악 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명확한 제시와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같은 의미의 한자 훈과 고유어를 자주 같이 사용하게 되고 고정된 형태로 굳어져 관습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자의 의미를 파악하 지 못하거나 의미를 더 잘 이해하고 강조하기 위해 이러한 동의중첩 혼용 양상이 생긴다. 이런 경우는 한자요소의 의미는 고유어 요소의 의미와 똑같거나 일부 고유어 요소의 의미와 중첩되어 있는 동의 중 첩 혼용 양상이다. 현대 한국어에서 이러한 한자와 한글의 동의중첩 혼용 표현에 대 해 대부분 점잖치 않는 非標準語라 하기도 함에 불구하고 한국어에 서 이와 같은 혼용 동의중첩 현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어 어휘체제의 내적 구조 규칙에 따라 자연스 럽게 형성된 언어현상이고 의식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 위적으로 금지하고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해도 어려움이 많을 것 이다. 3-2. 한자와 한글의 固定 結合 혼용 양상 한자와 한글은 오랫동안 사용하는 과정에서 일정하게 고정된 통사 ㆍ의미적 호응 관계 또는 공기 관계가 형성된 혼용 양상이다. 이런 관계는 주로 한자와 고유어가 서로 필요하여 서로 이용하면서 제약 하는 현상이다. 이런 혼용 현상은 많이 존재하고 있는데, 일단 구성 요소 중의 어느 한 부분을 바꾸면 성립하지 않는다. 이러한 혼용 양 상은 아래와 같이 구성되어 있다. 324 漢字漢文硏究 제 6 호 ① 漢字 名詞 + 固有 名詞 / 固有 名詞 + 漢字 名詞 : 고추醬, 山길, 빨간色, 술盞, 色깔, 用돈, 알뜰族, 輸出바람. ② 固有 副詞 + 漢字 名詞: 가운데 命中하다, 거의 大部分, 簡單히 要約하다, 痼疾적인 病. ③ 漢字 名詞 + 固有 接尾詞: 新郞감, 精誠껏, 結合하다, 使用되다, 問題거리, 香氣롭다, 多彩롭다, 多幸히, 洋服장이. ④ 漢字 名詞 + 固有 動詞: 故障나다, 精神 있다 / 없다, 驅迫을 받다, 拍手를 치다, 注射를 맞다, 頭痛이 심하다. ⑤ 漢字 名詞 + 固有 助詞: 告別의 인사, 사회 敎育을 중시하다. ⑥ 漢字 명사 + 하다 → 動詞: 生産 + 하다, 避難 + 하다, 苦學 + 하다. ⑦ 漢字 명사 + 하다/스럽다/롭다→形容詞: 優秀 + 하다, 收錄되다. 苦痛 + 스럽다, 多情 + 스럽다, 自然스럽다. 情답다, 利롭다. 이러한 한자와 한글의 혼용 양상은 구성요소가 일정한 제한적인 호응관계나 공기관계에서 결합된 정형적인 고정결합 표현이다. 한자 와 고유어 구성요소 간의 결합이 긴밀하고 다른 요소로 쉽게 대신할 수 없다. 고유어는 접사가 발달되어 있으므로 한자와의 결합이 활발 하게 이루어지며, 구성 양상 또한 다양하게 나타난다. 한자와 한글의 고정결합 혼용 양상은 구성요소의 축자의미에서 전체의미를 파악할 수 있으니 의미의 투명성이 특징이다. 한국어가 한자를 차용하고 한 자의 왕성한 조어 기능을 활용하면서도 일정한 제약으로 고유어의 어휘 부족을 보완하고 있다. 따라서 고유어는 한자어의 발전과 동반 하여 발달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자에 대한 고유어의 통사적 제약으로 고정된 공기관계에서 구성 된 한자와 한글의 고정결합 혼용 양상은 구성요소 간에 내재적 의존 관계와 제약관계, 긴밀한 호응관계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모국어 화자들의 인지 범위와 심리적 연상 능력과 관련되어 있어 구성요소 간의 연관성을 쉽게 연상시킬 수 있는 사용 빈도가 높은 고정결합이 다. 구성요소의 결합이 긴밀하고 자유롭지 않으며 임의로 다른 요소 한국 언어 정책의 변화와 한글·한자의 혼용 325 로 대체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다. 의미적으로 구성요소의 축자 의미 에서 전체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의미의 투명성이 특징이다. 이상으로 한글과 한자의 혼용 양상을 통해서 한국어에 차용된 한 자가 한글과 하나로 용합된다는 증거 중의 하나로 보여준다. 이와 같 은 한글과 한자의 혼용 양상은 오랫동안 한자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한국어 어휘체계의 내적 구조 규칙과 제약에 따라 한글과 일정한 통 사ㆍ의미적 호응관계 또는 공기 관계로 형성된 혼용 양상이다. 4. 결론 한국 언어 정책의 변화 양상에 따른 한국에서 한자와 한글의 혼용 양상을 살펴봤다. 사실 한국의 어문 정책 역사와 한국인의 언어생활 역사는 바로 한글과 한자의 혼용이나 한글 전용 여부의 논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어에서 한자의 위상은 역사의 계승과 현실 에서의 필요성에 따라 부침을 해왔다. 하지만 한국에서 한글 전용과 한자·한글 혼용이라는 언어 정책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을 볼 때 한자가 한국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금지 했는데도 다시 사용하기 시작하는 원인은 바로 한국이 세계 추세를 잘 알고 있는 것과 자기 역사를 정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본 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언어정책 변화와 상관 없이 한국어 어휘체 계 속에 한국어의 구조 규칙과 제약에 따라 한자는 한글과의 만남에 서 일정한 통사·의미적인 호응관계나 공기관계로 형성되어 서로 보 완하는 과정에 융합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한국어 발전의 자연 적인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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