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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폴임] 책속의 책_2

by Casey,Riley 2023.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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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책 2
폴임

  차례

 제 11장 
 종교 
크리스천들의 소원
대항 없는 싸움
세계의 신 그리스도 문선명
종교인들의 섹스 스캔들
출세하는 길
금지된 크리스마스
유교의 시조 공자
남자 마귀와 여자 마귀
왕비 후보 훈련
살아 있는 병동 칼뱅
전국토의 교회화
지구 최후의 날
부처님의 깨달음
여인들의 긴 머리채를...
여자를 한번도 보지 못한...
키스 세례
여자는 지옥의 문
면죄부
통곡의 벽
 제 12장 
 이단
성경과 결혼한 남자
하얀 밤의 영광스런 죽음
지구의 종말과 귀중품의 보관
기적의 밀
국제 합동 결혼식
일단 모두 죽여라
안식교의 여교주
누가
적그리스도인가?
 미신
아름다운 욕설
마녀들의 사형
미국 정부도 미신을 믿는가?
한국에서는
숫자 13을 왜 싫어하는가?
인간 도살장의 전경
점성가의 최후
 풍습
돼지고기 혐오증
소녀 성인식
머리 위에 숯불이
영국과 독일의 영세 의식
 제 13장
 법률
미국식 민주주의 
변호만 잘하면 살인도 무죄가 된다
판사의 양심
취중 운전
세계 최초의 법전
대헌장 마그나 카르타
흑인 반란군의 단식 투쟁
변호사 자격
유명한 재판
 철학
말세는 언제?
플라톤의 <공화국>
가장 위대한 영웅과 가장 위대한 철학자의 만남
결혼하지 않은 20명의 철학자
 정치 
소련 장관의 소지품
정치는 마약과 같은가
퇴학당한 스탈린
김일성이 평양 시장에 당선
적장에게 훈장을
세계에서 가장 자주 교체되는 정부
기혼자의 특권
누가 가장 많은 땅을 정복했나?
다우닝가 10번지
미국의 대통령과 부대통령은
 제 14장
 범죄
교수가 흉악 살인범
만월에 데이트 안전한가
사형장행 유람열차
고문 방법도 여러가지 
죄의 아버지
성고문
한 남성이 옷을 벗고 있는 여성을...
 악명 높은 자들
아프리카의 히틀러
나의 자궁을 쳐라
아들을 죽인 아버지
김일성이 덮었던 이불은
히틀러가 화가가 되었다면
로마의 황제 네로
살인, 살육의 대가 
호지명의 전직
악명 높은 자들의 어머니
 제 15장
 유명 인사
맥아더 원수를 울게 한...
나폴레옹이 입양한 아이들
유명한 불면증 환자들
양손잡이 천재들
불구의 몸을 극복한...
유명한 사람들의 IQ
결혼을 많이 한...
독신으로 산...
젊어서 죽은...
유명한 사람들의 전직과 현직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들은 죽어라
고등학교를 중퇴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서명
유명 인사들의 트리비아
말더듬이 웅변가
신문팔이로부터
내 책도 탔는가
 인물
대통령 특별석의 불운
저격수를 불러들이는...
아버지의 원수가 생명의 은인
주일학교 선생님과 FBI국장
백악관의 안주인
강도가 대법원장으로
철가면의 정체 
희극 작가를 살해한...
수수께끼의 인물...
왕성한 의욕으로...
매독에 걸린 사람들
광신도들에게 살해당한 여성 학자
전혜린은 왜 자살했을까?
돈에 대한 거부 반응
 천재
천재와 불행은 사촌인가
천재의 미래
잡화상 점원이 된...
천재 테스트
 인간 가족
어떤 재소자의 국회 입성 이야기
혀로 그림을 그리는...
맹인 학자
고래에게 잡아먹혔다가...
133일간 구명보트에서 생존한 사람
유한양행의 창업주인 유일한 씨는
발명 특허 사절
888명의 자녀를 둔...
147년간의 결혼 생활
위대한 발명에 기여한 도날드 덕
동물을 학대하는 인간은...
결점이 오히려
유명한 호모들
2,500권의 책을 암기한...
유명한 왼손잡이들
인디언 피가 섞인 유명한 미국 사람들
 제 16장
 역사
이사벨라 여왕이 콜럼버스를 후원한 이유
내 목을 자르시오
사람의 머리가 산을...
화폐 위조범이...
일본 무사들의 집단자살
별들의 전쟁으로 신부가...
괴테가 자살...
워털루에는 전투가 없었다
운명의 8년간
보스턴 대학살과 광주 의거
수치의 역사...
칼은 칼로...
9일 천하
돈만 있었다면
잘못 알려진 사실
목욕탕에서 생긴 일
 전쟁, 군사
731부대의 생체 실험
가장 짧은 전쟁은 
바닷물이 수도를 지켰다
미국 오리건주의 폭탄 세례
게를 전쟁에 이용한...
반란죄로 사형에...
뉴욕시를 폭격하려던...
히틀러의 거대한 실수
진주만의 첫 포성은 미국이 울렸다
박쥐 폭탄
영국 수상의 빗나간 예상
조약으로 앙금이 사라질까
 재앙, 질병
여왕의 자기 무덤 파기
대지진
금광 노동 캠프
유태인은 왜...
일요일 아침 갑자기 
정신 병원과 감옥
직업을 잘못 선택한...
조지 워싱턴은 거머리 때문에...
무암 장수족
페스트의 위력
세균의 진화
 제 17장
 기후
회오리바람 속에 어린이가
3년 동안의 가뭄
사막에 웬 폭설이
열대 아프리카 적도에서 얼어죽은...
비는 땅을 메마르게...
고층 건물이 흔들리고 있다
번개에 얻어맞고 있는 지구
번개는 여자보다 남자를 칠 가능성이
번개 때문에 우박이...
여름이 없었던 해
공기 주머니
눈송이 세계
인간이 겪는 고통은
 지리
거꾸로 떨어지는 폭포
남극의 빙산 옮기기
빙하가 없는 곳
나라 이름의 기원
평균 수명
과연 누가 처음으로...
에베레스트는 누가 먼저...
산도 자란다
사막에서도 낚시를...
뱀이 없는 섬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국가가 없다
섬나라 하와이는
금을 뿜어내는 화산
아직도 고문을 하고 있는...
NATO와 관련된 고문 사건
 도시
트롬소의 사람들
현대의 기술자들도 놀라는...
건강한 사람만이 여행할 수 있는...
파리의 지하 공간은...
낙원의 도시 꽃마을
새가 추락하는 도시
발가벗은 여인을...
스파르타시의 노예
 제 18장
 일본
피로 씌어진 책
훈도시 문화
명치 유신 때
서서 볼일 보는 여자
귀신의 종류
일본 천황은 로봇이었다
 중국
유럽인이 중국의...
여황제의 숙청 작업
생매장
공자는 식인주의자...
진시황과...
대운하
손님을 감시하는 중국인
노는 것이 자랑
가장 긴 장례식
중국의 우편 제도
만리장성과 보초
중국의 악명높은 산적
 제 19장
 동물 가족
코끼리에도 계급이...
코끼리의 언어
머리가 둘 달린 뱀
카멜레온은 뛰어난 마술사
12명의 남자와 비단뱀
도마뱀의 길눈
당신도 악어를 이길 수 있다
돌고래의 사랑...
곱사고래의 울음...
거북은 200년 이상 산다
박쥐의 레이다
날아다니는 다람쥐
나그네쥐의 가족 계획
오르가슴에 관한 쥐의 실험
낙타의 비상 식량 보급소
생후 2일의 가젤이...
암수 고양이의 성 관계 
고양이에게 캔디를...
흑색줄무늬 족제비의 치한 퇴치법
사람이 물고기보다 하등한가
말처럼 먹는다
말은 서서 잠잘 수 있다
소는 색맹이다
소의 진화
익사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인간보다 뛰어난 동물
털코트 한벌 만드는 데...
침팬지의 수학능력
쓸개빠진 사슴
동물의 임신 기간
게으름뱅이 나무늘보
 동물의 섹스
고래의 사정액으로 화장품을 
발기되었을 때의 음경의 길이
자위하는 동물
음경뼈로 만든 이쑤시개
동물이 한 번 사정할 때...
사냥 도구로 쓰이는 해마의 음경
근친상간하는 진드기
배우자를 잡아먹는 거미
뿔로 자위 행위를
동성연애하는 빈대
오랄 섹스를 즐기는 침팬지
동물들의 이상한 성행위
암컷도 성적 흥분을...
 제 20장
 식물
사랑은 6월에...
식물도 감정을...
땅 속으로 자라는 나무
쌀의 종류는
나이는 20세, 몸무게는 10톤
부활초는 물을 찾아...
귀여운 소리를 내는 식물
오렌지 나무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씨앗
1만 년 된 씨에서 싹이 
향기 없는 꽃들
콩은 회춘 작용을 
선인장과 그 친척
 제 21장
 조류
날개 다린 태양 숭배자
철새의 체력 관리
레이더로 새를 추적한다
재봉새는 실로 둥지를 꿰맨다
독수리 둥지의 무게는 1톤
기러기가 V자형으로 날아가는 이유
계속해서 2년간 날 수 있는 새
플라밍고는 왜 한쪽 다리로 서 있는가
새는 왜 노래를 부르나
새들도 노래하는 장소가 따로 있다
날지 못하는 새들
 어류
금붕어의 아름다움의 비결
빛을 내어 먹이를 유인하는 아귀
농어의 성전환
물고기도 물에 빠져 죽을 수 있다
육지에서도 살 수 있는 물고기
독을 뿜어 적을 퇴치하는 석어
 곤충
파리 장례식에 10만 달러를...
수컷 파리의 지참금
꿀벌은 1초에...
비오는 날의 나비 
가장 많이 먹는 식충
나비의 체온
바퀴벌레의 생명력
먹지 않고 살아가는 곤충
모기 천하
털로 소리를 듣는다
개미와 벌의 운반 능력
개미의 IQ는 
가장 예민한 후각
개똥벌레를 나타내는 말
 생물, 미생물
당신은 결코 고독하지 않다
진주를 만드는 고통
거미는 거미줄에...
거미의 진동 감지기
지렁이의 재생력
늑막폐염 유기체
가장 빠른 세균
물 한 방울 속의 세균의 수

 [    제 11장-종교 ]
 [  그리스천들의 소원 ]
 죽은 그리스 정교회의 성직자들의 두개골들은 아파바만의 어구에 있는 
'Jabal Musa'(원래 Mount Sinai라고 불렸다) 근처의 성카트린느의 
수도원 안에 안치되어 있다. 그리고 이 두개골들이 쌓여 있는 자리는 
예수가 불에 타들어가면서도 모세에게 얘기했었던 곳으로, 성직자들이 
성스러운 장소로 여기는 곳이다. 그리고 AD 250년경부터 크리스천 
성직자들은 성 카트린느의 수도원에서 거주하면서 죽는 날까지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의 유일한 바람은 역대 
성직자들의 두개골이 쌓여 있는 그 수도원에 자신의 두개골도 함께 
안치되는 것이라고 한다.
 
   3위 1체론
 2위 11체론을 처음으로 말한 사람은 성 어거스틴이고, 이것을 
체계화한 사람은 아벨라드이다. 그는 변증술을 처음으로 신학에 
적용해서 3위 1체설을 구체적으로 제창하였다. 기독교에 있어서 이단의 
정의는 3위 1체를 부정하는 곳에 있다고 보았다. 
 
 [  대항 없는 싸움 ]
 BC 320년경 이집트인들은 성일에 유태인들을 공격했다.
 즉, 이집트의 탈레미 1세가 이끄는 이집트군이 안식일날 예루살렘을 
쳐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1973년의 이스라엘인들과는 달리, 그 당시의 
신앙심이 아주 깊었던 유태인들은 안식일날의 싸움을 거부하였으며, 
심지어는 방어조차 하지 않았다. 따라서 지독히도 끈질기게 
느부갓네살과 세나케리브 왕에게 항거해왔던 예루살렘은 아주 쉽게 
탈레미의 손으로 넘어갔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초대 기독교가 낳은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이며 성인이다. 그는 북아프리카 누미리아 타가스테(현재 
알제리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34세가 되어 기독교로 개종할 때까지 
매우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고 한다. 17세에는 카르타고 여인과 
동침하여 아디오다티수라는 아들을 낳았으며 카르타고에 유학하면서 
사생아를 낳기도 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세례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소원대로 어머니가 56세, 
자신이 33세, 아들이 17세 되었을 때 아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종교 개혁의 빛나는 별
 위클리프는 '교황이 국왕보다 높다고 보는 것은 죄가 된다'라는 새로운 
단어 praemunire를 만들어낸 영국 종교 개혁의 선구자이다. 그는 
성직자의 독신 하체설을 부인하였고 교황이라 할지라도 정당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역그리스도라고 하였다. 그는 1384년에 사망했으나, 교황 
마틴 5세는 1428년 위클리프의 무덤을 파고 그의 몸을 꺼내어 
화형시키도록 명령을 내렸다.
 
 [  세계의 신 그리스도 문선명 ]
 1990년 8월 20일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 종교 
대회에서 통일교의 창시자 문선명은 자신이 세계의 신 그리스도임을 
선언하였다. 
 
   1858년 2월 15일
 프랑스 시골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 성모 마리아가 4일 동안 
나타났다고 한다.
 
 [  종교인들의 섹스 스캔들 ]
   (짐 베이커)
 교주 짐 베이커와 그의 아내 테이 페이는 빈손으로 시작하여 
1,300명의 정기 회원을 가진 유선 방송국과 1억 7천 2백만 달러 상당의 
2,300에이커의 부지 위에 크리스천 공원인 헤리티지 U.S.A.를 소유한 
대거부가 되었다. 또한 그들의 PTL(Praise the Lord, 일종의 교원 
협회) 조직에서만도 1986년 한 해 동안 1억 2천 9백만 달러의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1987년 짐 베이커는 서서히 패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21세의 제시카 한이라는 교회의 여비서와 6년 동안 
간통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욱이 교원들로부터 1억 5천만 
달러를 횡령했던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1989년까지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되었다.
   (지미 스와가르)
 짐 베이커가 간통으로 수감되었을 때 지미 스와가르는 그 스캔들을 
읽고 나서 '신의 몸에서 발생한 암'이라고 그를 비난했다. 또한 
스와가르는 루이지나의 교주 마빈 고만을 간통으로 고발하고 성직에서 
해직시켰다. 그러나 스와가르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고만이 사설 탐정을 고용하여 함께 있는 사진을 곧 공개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 사건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은 채 일단락되고 
스와가르는 다시 종교에 귀의하게 되었다. 그러나 1991년 스와가르가 
캘리포니아의 인디오에서 교통 위반으로 차를 세웠을 때 그의 
옆자리에는 또 다른 창녀가 앉아 있었다.
 
   타락한 교황들
 악명 높은 교황 존 7세는 세인트 존 라터란 성당을 창녀촌으로 
만들었다. 재판에서 그는 신성 모독, 성직 매매, 위증, 살인, 간통, 
근친상간의 죄목으로 고소당했다. 교황들이 아비뇽에 거주하고 있는 
동안 가장 야비한 이야기들이 교황들의 소일거리로 오르내렸다. 
그들에게 있어서 순결이란 욕이었고 방종만이 미덕이었다. 

    카놋사의 굴욕
 1076년 추운 겨울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북쪽 카놋사성에 도착한 
하인리히는, 1월 25일부터 27일까지 모자를 벗고 맨발로 교황을 
기다렸다. 마침내 눈 내리는 성문 밖에서 교황을 만난 그는 눈 위에 
무릎을 꿇고 사면을 빌었다. 이것이 바로 왕의 세속 권력이 교황의 
권력에 굴복한 '카놋사의 굴욕'이다.
 
   교황 요한 8세 
 교황 요한 8세는 교황청을 사창굴로 만든 장본인이다. 지칠줄 모르는 
성욕으로 언제나 미모의 젊은 여자들을 바꿔가며 상대했고, 교회에 
속한 땅과 재산을 좋아하는 여자들에게 주어 탕진했다. 또 그는 무장한 
갱단을 동원하여 선한 시민들을 위협하고 도박의 행운을 위해 더러운 
귀신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였다.
 교황 요한 12세 역시 세인트 존 라테라는 성당을 매춘굴로 만들어 
간음과 근친상간을 저질렀으며, 레오 8세는 간음중에 중풍으로 죽었고, 
10세에 교황이 된 베네딕트는 권력을 휘두르며 성적으로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 알렉산더 6세는 심지어 교황청에서 많은 매춘부들이 
발가벗고 춤추게 했으며, 가장 많은 창녀들을 상대한 남자를 골라내어 
상을 주기까지 하였다.
 대분열을 종식시키기 위해 선출된 교황 발사사 코사는 콘스탄트 
자문회에서 자신의 악명 높은 근친상간, 간통, 부정, 살인, 무신론을 
고백했다. 그전에 챔벌린이 보니페이스 9세가 추기경으로 승진되어 
볼로냐 지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곳에서 수천 명의 처녀와 미망인들, 
많은 수녀들이 그의 짐승 같은 정욕의 희생물이 되었다.
 
 [   출세하는 길 ]
 모하메드는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함으로써 이슬람교의 교주가 되었고, 
조지 워싱턴도 과부 마타와 결혼하여 초대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   금지된 크리스마스 ]
 당신은 당신이 크리스마스를 지킨 죄 때문에 교회에서 무장 
군인들로부터 체포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일은 올리버 
크롬웰의 의회가 1644년에 크리스마스를 금지했을 때 실제로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완고한 청교도들은 이날을 '더럽혀진 인간이 발광하는 
날'로 부르면서 카톨릭 교도가 기독교도에 포함되는 것과 크리스마스가 
세계적인 명절이 된 것을 비난했다.
 영국인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종교적인 의식을 준수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폭동이 12월 25일이 되면 자주 일어났다.
 이것은 아메리카 식민지에도 영향을 미쳐서 1659년 
매사추세츠주에서는 크리스마스 의식을 행하는 사람에게 벌금을 
부과시키는 법이 통과되었다. 그 후 뉴잉글랜드 전역에서 크리스마스가 
금지되자 영국과 마찬가지로 반항이 거세어졌다. 1681년 
매사추세츠에서는 이 법이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영국에서 폐지된지 
21년 만에) 보스턴 공립학교에서는 1870년까지 학생들을 12월 25일에 
등교하도록 하였다.
 미국에서는 또 다른 시대에 반크리스마스 정신이 일어났다. 1918년 
1차 세계 대전의 휴전 직전, 국가방위위원회에서는 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선물 교환을 금지해야 한다는 안건이 토의되고 있었다. 
그러나 Erector Set의 창설자인 A. C. 길버트(Gilbert)는 이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다. 위원회에서 허용한 15분간의 연설에서 그는 장난감이 
주는 교육적인 효과에 대해 이야기한 후 장난감 가방을 내놓고 심사를 
요구하였다. 근엄한 위원들은 즉시 장난감을 손과 무릎에 올려놓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이상한 인연
 성 패트릭은 14세 때 해적에 납치되어 아일랜드로 가서 6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가 탈출해서 고울로 가 신학 공부를 하고 신부가 되었다. 
435년에는 노예 생활을 하던 아일랜드로 다시 가서 온 섬의 그리스도 
교화에 성공했다. 아일랜드 섬사람들도 그가 죽은 지 100년 안에 거의 
모두 기독교인이 되었다.
 
    헛되고 헛되다
 인도 무굴 제국의 자한기르 황제는 길들인 사자 100마리, 물소 
500마리, 개 4,000마리, 사슴 3,000마리, 낙타 2,000마리, 황소 
10,000마리, 코끼리 12,000마리를 길렀고, 남색을 위하여 젊은 남자 
1,000명과 궁녀 5,000명, 아내 300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   유교의 시조 공자 ]
 공자는 BC 522년 70세 된 아버지 숙량흘의 11번째 자식으로 
태어났다. 만약 숙량흘과 부인 안징재가 오늘날처럼 산아 제함을 
했다면 유교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며,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지 오래였을 것이다.
 
 [   남자 마귀와 여자 마귀  ]
 암흑 시대라고 불리는 중세기에 카톨릭교는 수많은 사람들을 마귀와 
성교했다는 이유로 체포하여 화형에 처했다. 남자 마귀의 이름은 
'인큐버스(incubus)'라고 하여 잠자는 여인을 덮쳐 성교를 한다고 하고, 
'슈큐버스(succubus)'라고 하는 여자 마귀는 잠자는 남자를 유혹하여 
꿈속에서 성교를 한다고 한다.
 인큐버스와 슈큐버스의 수는 7,405,926이나 되어 밤마다 잠자는 남녀를 
성적으로 유혹한다고 한다.
 카톨릭교의 종교재판소는 8살 난 어린아이에서 80세 된 노인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체포하여 마귀와 성교했다는 이유로 화형을 
시켰다. 1609년에서 1633년까지 뱀버그에서 체포되어 화형을 당한 
사람의 수는 900명이나 되었는데 그 중에는 시장 요한나스 쥬리어스도 
포함되었다. 제네바에서는 3개월 동안에 500명이 화형을 당했고 
화츠버그에서는 900명이 화형을 당했다.
 
 [  왕비 후보 훈련 ]
 성경 에스더에 보면 페르시아에서 왕비 후보를 뽑을 때 후궁전에 
그들을 모아놓고 6개월 동안 향유와 몰약으로 준비를 시켰다고 한다.
 
   죄 없는 죄인들
 마귀를 빙자하여 제네바에서는 3개월 동안에 500명이, 화츠버그에서는 
900명이 화형을 당했다. 1404년에 카톨릭교는 적어도 3,000명 이상의 죄 
없는 사람들을 마귀와 관계했다는 이유로 처형했다. 스페인에서만도 
10,220명이 화형을 당했고 97,371명을 노예로 만들어 배를 젓게 하였다. 
이러한 카톨릭교의 횡포가 스페인의 인구를 감소시켜 200년 동안 무려 
20,000,000명에서 6,000,000명으로 줄어들었다.
 하여튼 카톨릭교가 종교 재판으로 죄 없는 사람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죽인 수는 아마도 약 9,000,000명 정도가 된다고 하면 
카톨릭교측에서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것이다. 
잔다르크가 화형을 당한 이유도 마귀와 성교를 했다는 것이다.
 
   과연 누가 마녀이고 악마일까?
 칼뱅은 모든 종류의 이단을 화형하고 루터는 모든 정신병을 귀신들린 
것으로 처리하엿다. 이단이나 마귀들렸다고 잡힌 자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발가벗겨져 여러 가지 잔인하기 짝이 없는 심문을 
당하였다. 밧줄로 왼손과 오른손을 꽉 묶어 24시간 동안 그대로 두어 
심한 통증이 생기게도 하였다. 마녀들이 악마에게 흡혈당했기 때문에 
24시간 안에 반드시 악마들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만약 거미나 기생충, 파리들이 감옥에서 발견되면 악마가 가장한 
것이라고 하며 유죄를 확신하곤 하였다. 또 마녀들은 반드시 몸의 어떤 
곳에 무감각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여 두꺼운 돗바늘로 몸 
구석구석을, 특히 은밀한 부분을 무자비하게 찔러대면서도 이것을 
고문이라고 하지 않았다.
 또한 네로는 더 큰 도시를 세우기 위하여 로마시에 불을 지른뒤(?) 
시민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하여 기독교도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 
그리하여 많은 기독교도들이 십자가에 못박히거나 개에게 물어뜯기고 
맹수들에게 던져졌으며 온몸에 기름을 발라 네로의 정원에서 
화형당하기도 하였다. 네로는 그들의 불 붙은 몸을 횃불로 삼고 
전리품으로 잡아온 여자들을 발가벗겨 병사들에게 범하게 하였다. 또 
자신도 벗은 채 수레를 타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했으며 기독교도들의 
처참한 몸부림을 흡족해하며 즐겼다고 한다. 이때 로마인들이 
기독교도들에 대한 이러한 박해를 구경한 데서 구경거리라는 뜻의 
theater(극장)가 생겨났으며, 마귀의 숫자 666은 로마 황제 네로를 
지칭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카톨릭 교회와 과학 
 1600년 종교재판소는 우주가 움직인다는 주장을 했다고 하여 지오다노 
브루노를 화형시켰다. 또 빛의 자연성에 관한 책을 쓴 안토니오 디 
도미니스도 그의 책과 함께 화형시켰다. 당시 최고의 과학자 
갈릴레이도 지동설 때문에 체포당하여 고문을 당했고, 지동설을 지지한 
캄파넬라도 일곱 번이나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다.
 
   수도사의 함흥차사
 성 캐더린 수도원은 6세기경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내산 기슭에 
세워졌는데, 한 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했다. 오늘날에도 
방문객들은 1,4000년 동안 그 안에서 살다가 죽은 수도사들의 해골을 
볼 수 있다. 1946년 한 신학자가 이곳에 들렀을 때 수도사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카톨릭 교회의 문제 
 모든 신비 종교의 시초는 바벨론 여자 세미라미스이다. 그녀는 
니므롯의 아내로서 자신은 남자 없이 영적으로 잉태하여 담무스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신학자들은 세미라미스의 이 주장이 오늘날 로마 
카톨릭과 같은 의식적 종파를 만드는 데 기초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카톨릭 교회의 성모 마리아는 세미라미스이고 아기 예수는 
담무스일까? 카톨릭 교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  살아있는 병동 칼뱅 ]
 장로교회의 창시자 칼뱅은 아버지를 때린 어떤 소년에게 교수형을 
내렸고, 자신의 교리를 비방한 쿠르트에게는 반역과 불경죄로 교수형에 
처했다. 칼뱅은 자기의 견해와 반대되는 뜻을 표시한 사람들을 
가차없이 추방하거나 교수형에 처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은 
베르테르외이다.
 쎄비투스도 칼뱅과 다른 견해를 의논하기 위하여 프랑스에서 제네바로 
왔지만 곧 체포되어 감금되었고, 결국 화형을 당하였다. 칼뱅은 자기와 
성만찬 예식에 대해 다른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모두 교수형에 
처했으며 자기의 설교를 듣고 신통치 않다고 말하는 시민들에게는 
3일간 빵을 먹지 못하게 하고, 물도 마실 수 없게 하였다.
 그 시대에는 국가와 종교가 하나로 밀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칼뱅과 
반대되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이단으로 몰렸을 뿐만 아니라 
반역죄로 몰려 사형에 처해졌다. 살아 움직이는 병동이란 별명을 가진 
칼뱅, 그는 지적 자유를 미워했고 오로지 아나님에 대한 절대적 순종에 
족쇄를 채운 사나이였다.
 
   틴데일
 틴데일은 성경을 번역한 죄(?)로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해 화형을 
당했다.
 
   메리 여왕
 "마틴 루터, 존 칼뱅, 마일스 코베르달레, 에라스무스, 틴데일 등등의 
이름으로 씌어진 책들, 원고들, 혹은 보고서들, 또한 카톨릭에서 
어긋하는 그릇된 원리들이 씌어 있는 책들을 영국을 오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지위고하, 출신을 망라하여 모두 엄벌에 처해질 것이다"라고 
메리 여왕은 명령을 하였다.
 
   이슬람교의 천국
 기독교도들이 생각하는 사후 세계는 여러 가지이지만 이슬람교에서는 
하늘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영화를 코란에 자세히 기록해두고 있다. 
지상에서 코란의 지시대로 산 남자들은 하늘나라에서 300가지가 넘는 
식사를 하고 영원한 젊음과 정력을 유지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80,000명의 하인과 젊고 아름다운 72명의 아내와 복락을 누린다고 한다. 
 
 [  전국토의 교회화 ]
 18세기 초기 포르투갈에서 교회의 부지는 전국토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영국의 신교도들을 
 퓨리탄(Puritans)이라 하고, 존 칼뱅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신교도들을 
위그노(Huguenots)라고 한다.
 
   결혼한 교황 중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로만 카톨릭교의 성직자는 독신으로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단호하게 선언하였다. 그러나 카톨릭계가 항상 
엄했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규칙이 여러 번 파기되기도 하였다.
 카톨릭 교회 초대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의 제자 성 베드로는 
결혼한 사람이었다. 4세기까지는 카톨릭 성직자들의 결혼이 금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신이라는 이상과 육욕이라는 현실 사이의 긴장과 
다툼은 그이래로 늘 존재해왔다. 교황으로 임명되기 전에 결혼을 했던 
몇몇 교황도 있었는데 그런 인물 중 클레멘트 4세(1265-1268 동안 
제위)에게는 2명의 딸도 있었다.
 암흑기에는 많은 성직자들이 결혼했는데 그 중에는 성수가 함유되어 
있는 밭 위로 캐터필러 트랙터를 모는 기술을 지녔던 마리노와 비를 
내리게 하는 은사와 치료의 은사를 지녔다고 알려지는 성 스위신도 
포함된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왕조를 창설해서 자손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도 했다. 11세기와 12세기에는 단속이 강화되어 결혼한 
성직자는 집에서 나와야 했고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은 교회로부터 
멸시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금지령이 전적인 효력을 발휘하진 
못했는데, 사생아를 뜻하는 중세 독일어 Pfaffienkind가 성직자의 
아들을 의미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1791년 프랑스 헌법은 성직자들의 결혼을 허용했고, 
그에 따라 수많은 성직자들이 그 혜택을 얻었다. 그 후 나폴레옹과 
교황 피우스 7세 사이에 맺은 협약에서는 그들에게 결혼한 평신도로서 
교회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독신으로 성직을 회복할 것인지를 택하는 
선택권을 주었다. 2,000명의 성직자가 결혼을 선택했는데 외무부 
장관이었던 톨리란드는 이 같은 특면을 거절하고 주교직을 고수하기도 
했다.
 오늘날, 만일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결혼한 성직자가 카톨릭으로 
개종해서 성직자가 된다면 그는 아마도 예외의 방법에 의해 결혼을 
유지할 것인데, 이러한 성직자의 결혼 상태는 특별하게도 개인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교황에 의해 승인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 같은 
상황에서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경우를 생각나게 할 만큼 특별하게 
위임되는 경우가 있지만, 성직자의 결혼을 허용하는 결정권은 오직 
교황에게만 있다. 해마다 약 4,000명의 성직자(전체 모라 카톨릭교 
성직자의 1%)가 성직을 떠났는데, 그들 대부분이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  지구 최후의 날 ]
 노스트라다무스는 1999년 8월 18일이 지구 최후의 날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  부처님의 깨달음 ]
 부처님께서는 어느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 밑에서 머물다가 98일째 
되던 날 아침 갑자기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가 오랜 여행중 쉬기 위하여 어느 마을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 밑에 들어서는 순간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  여인들의 긴 머리채를 밟으며 ]
 신돈은 어려서 중이 되어 전국 각지를 방랑하다가 공민왕을 만나고 난 
후 왕의 신임을 얻어 정치와 종교의 대권을 장악했으며, 그가 민가를 
지날 때 아낙네들은 머리를 조아려 긴 머리를 풀어놓아 그가 짓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또한 남편의 죄를 사면해 주겠다는 조건으로 
반나신의 여인들을 접했다고 한다.
 
   부처님, 부처님
 BC 563년에 왕자로 태어난 고타마는 궁전에서 온갖 진귀한 
진수성찬만 먹고 자랐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난 30세에 그는 종교적인 
회심을 경험하면서 독신 생활로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자 아내와 
아들, 게으르고 호사스런 궁전 생활을 과감히 버리고, 거지의 옷을 걸친 
후 인도의 황무지에 있는 굴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이 
세상은 모두 번뇌와 고통으로 일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이 후에 불교의 이름으로 정립되었다.
 굴 속으로 들어간 후 먹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그가 먹은 것은 
보리라고 불리는 이끼나 뿌리, 날 곡식 등이었으며 가끔 들에서 자라는 
열매를 먹었다. 그는 이런 보잘것 없는 것들을 먹어야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는 몹시 쇠약해져서 "빈약한 
영양 상태 때문에 내 사지는 마치 관절이 마디마디 맺혀 있는 곤충같이 
되어버렸다"라고 자신의 건강 상태를 표현했다. 어쨌든 그는 이 생활로 
인하여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입었다.
 고타마는 마침내 깨달음은 굶주림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전통적인 인도인의 식생활로 바꾼 뒤 체중은 
늘었으나, 한번 얻은 십이지장, 위궤양으로 인해, 위의 통증과 장이 
타는 듯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BC 483년 파바 마을에 있는 망고 언덕에서 설법을 마친 다음 부처를 
환영하기 위하여 베풀어준 잔치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고타마는 
이 음식을 먹고 갑자기 위경련과 타는 듯한 장의 통증을 느껴 식사를 
채 마치지도 못하였다. 현대 의학자들이 말하기를 "십이지장 궤양 
가까이에 있던 큼직한 동맥이 터져서 많은 피가 장 속으로 
들어갔다"라고 한다. 고타마는 그의 증세를 아무것도 아닌 것인 양 
숨기려 하였으나 항문 출혈이 너무 심해 그의 제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고타마는 쿠시나가라라는 지방에서 설법하기 위하여 제자들의 부축을 
받아 도보로 여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출혈에 의한 
심한 탈수 현상으로 생긴 갈증 때문에 길가에 쓰러졌다. 다행히 가까이 
있는 시냇물을 마시고 난 후 갈증은 해소되었으나 이로 인해 장이 
자극을 받아 증세가 더 심해졌다. 아마 시냇물이 음료수로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출혈과 구토로 인하여 심신이 약해진 고타마는 쿠시나가라의 외각 
지대에 도착하자마자 피로로 인하여 쓰러졌다. 그의 제자들은 그가 큰 
고통 없이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마침내 죽었다고 주장한다. 순간순간 
의식이 명료해졌을 때 그는 따르던 사람들에게 모든 생물은 결국 
죽는다는 사실과 "목적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하였다.
 오늘날 의사들이 고타마의 생애에 대한 가장 오래 된 기록을 보고서 
급성 소화불량이 동양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을 죽게 
하였다고 판명하였다. 고타마는 위궤양과 함께 결장암으로 고생하였다. 
이 철학자는 심한 항문 출혈과 구토로 인한 탈수 현상이 계속돼 산소 
부족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심장마비로 죽었다.
 고타마의 시체는 화장되었는데, 8개의 집단으로 나눠진 그의 
추돈자들은 누가 그 재를 보관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논쟁을 벌였다. 
평화를 가르치던 부처의 유물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부질없는 짓인 
것을 인식한 이 집단의 지도자들은 마침내 이 재를 8개로 똑같이 
나누었다. 8개의 금으로 만든 유골 단지는 인도 안에 있는 8개의 
왕국에 전해졌고, 이 유물 앞에 제단을 만들어서 숭배하였다. 가장 눈에 
띄게 튀어나온 부처의 복부는 그가 어떻게 해서 죽었는가를 우리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한다.
 
 [  여자를 한번도 보지 못한 사나이 ]
 1938년에 82세로 죽은 그리스의 수도승 마하일로 톨로토스는 일생 
동안 여자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태어났을 때 
돌아가셨으며, 어린 그는 그 다음날 에토스 산꼭대기에 있는 
수도원으로 보내진 후 세상에서 완전히 격리되어 수도승들과 함께 
일생을 살았다. 당시는 9세기부터 실시되어온 관습에 의하여 여자와 
동물의 암컷들마저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였으므로 그는 
아마도 이 세상에서 여자에게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은 유일한 
남자일 것이다.
 
   몰몬교의 창시자 조셉 스미스
 조셉 스미스는 일부다처제를 주장하여 스스로 49명의 아내를 가졌다. 
그는 184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  키스 세례 ]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금속으로 된 베드로 동상의 발가락은 
수세기 동안 방문한 순례자들이 키스를 했기 때문에 마디가 닳아 
없어졌다.
 
   모슬렘의 달력
 모슬렘의 달력은 서기 622년 모하메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도망한 
사건인 헤지라에 기원을 두고 있다. 모슬렘력에 의하면 지금이 
14세기인 셈이다. 모슬렘력의 한 달은 29일 또는 30일이며, 12달로 
이루어진 1년의 길이는 354일이고 윤년의 경우 355일이다. 이 때문에 
모슬렘력으로 매해의 마지막 달에 행해지는 메카로의 순례는 항상 같은 
계절에 이루어질 수 없다. 어느 해 한 겨울의 순례자는 16년 뒤 
한여름의 순례자가 된다.
 
   메카 순례자의 수난
 메카의 순례자들을 태운 DC-8 여객기가 1991년 7월 11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추락하여 261명의 순례자들이 모두 죽었다. 1990년 
7월 2일에도 메카를 여행하던 이슬람교도들이 지나고 있던 터널이 
무너져 1,426명이 죽었다.
 
 [  여자는 지옥의 문 ]
 초기 기독교 최고의 신학자인 오레곤은 기독교 교리에 대하여 
6,000권의 책을 썼다. 그는 '여자는 지옥의 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여자의 문인 음문으로 자신이 들어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거세해버렸다.
 
   낮과 밤의 이율배반
 성 어거스틴은 낮에는 자신이 완전히 욕정을 정복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밤에는 "어떻게 하면 성욕을 이겨낼 수 있습니까?"라고 기도를 
했다.
 
   미국의 여성 순교자
 청교도의 법들은 그들이 내세운는 자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퀘이커교도들을 비난학 질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주장한 여성이 
있었다. 로드 아일런드 뉴포드의 메리 다이아였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이러한 생각을 공공연히 떨들며 다니다가, 1960년 6월 1일 
보스턴 사형대에서 교수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동시에 미국내에서는 
종교적 자유를 위해 죽은 유일한 여성이 되었다. 메리는 이전에도 세 
번이나 이런 이유로 매사추세츠에서 추방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추방당하고도 다시 보스턴을 찾아올 때마다 그녀의 결심은 더욱 
확고해져 있었다. 그녀가 보스턴을 세번째 방문했을 때 메리는 동료 
퀘이커교도 2명이 교수대에 매달리는 것을 목격했고, 결국 그녀도 
붙잡혀서 사형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사형되기 직전 메리는 보스턴에 
다시는 오지 못한다는 조건 아래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다음달 5월에 메리는 다시 보스턴을 찾아왔다. 이번에도 매사추세츠주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는다면 살려주겠다는 제의를 받았지만 메리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결국 그녀는 퀘이커교도들을 추방시키려는 
청교도의 법에 대항하다 목숨을 잃은 순교자가 되고 말았다.
 
   영국의 국교회
 영국의 국교회는 헨리 8세 때부터 시작되었다. 헨리 8세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반대했지만 여섯번째 아내 캐더린과 이혼하기 위해 
카톨릭을 배격하고 신교를 받아들여 영국 국교회를 독립시켰다. 헨리 
8세는 여섯 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을 낳은 두번째 
아내 앤과 다섯번째 아내 캐더린 하워드를 교수형시켰다. 또 여섯번째 
아내 캐더린과 이혼하고자 했으나 로마 교황이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교황과 충돌하기도 했다.
 
 [  면죄부(indulgence) ]
 중세기 말엽에 카톨릭 교회에서 금전 수입을 목적으로 무식한 
신도들에게 강제로 판매하는 문서인데 이것을 사는 신도는 누구나 
어떠한 죄를 지었다고 해도 면죄되는 조건이 붙었다.
 
   자이나교
 자이나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종교로 약 2백만 명의 신도들을 가지고 
있으며 불교와 비슷한 교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자이나교에서는 
살아 있는 생명체, 심지어 개미까지도 살생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따라서 자이나교 신도들은 자동차를 타지 않으며 신발도 신지 않는다. 
자동차의 타이어가 생명체를 죽일 수 있고, 신발을 신고 다니면 맨발로 
걸어다닐 때보다 더 많은 곤충들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한 웨슬리는
 18세기 초 영국에서 태어나 감리교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는 생전에 
40,000번 설교를 하였고 종교적인 목적으로만 400,000km를 여행하였다.
 
   모세 
 모세는 60만 명의 유태인들을 이끌고 이집트 라압셋에서 출발하여 
숙곳, 에담을 거쳐서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까지 4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이 거리는 약 640km로, 
자동차로는 8시간, 도보로는 2-3개월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왜 이들은 40년이란 세월이 걸려서야 비로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까?
 
   플라통의 예언 
 구약의 이사야서 53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예언되어 있다. 
예수 탄생 500년 전에 살았던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도 절대 왕이 
태어나 죄인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또 BC 
42년경에 씌어진 "전원시(Vergil's Eclogue)"에서도 예수의 탄생과 
생애가 예언되어 있다.
 
   예수와 소크라테스
 예수와 소크라테스는 책을 한 권도 쓰지 않았다. 이들에 관한 책들은 
모두 스승 예수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을 제자들이 받아서 쓴 것이다.
 
 [  통곡의 벽 ]
 AD 70년에 베스파시아누스도 황제의 아들 티투스는 4군단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하였다.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은 모두 불탔고 굶어서 
뼈만 남은 유태인들이 지옥처럼 붉은 피의 개울속 여기저기에 죽어 
나자빠졌다. 당시에 포위 공격되어 죽은 유태인들이 1,100,000명이나 
되었고 97,000명이 포로가 되어 로마로 이송되었다. 또 AD 132년에서 
135년까지 지속된 제 2차 츄태 전쟁은 더욱 비극적 저항으로 끝났으며, 
이때 이후부터 유태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겨우 일 
년에 한 번 예루살렘 함락 기념일에만 구신전 벽에 매달려 통곡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기회가 허용되었을 뿐이다.
 
   고양이
 고양이는 약 BC 500년부터 집에서 길러지기 시작했는데, 종교의식과 
관련하여 바빌로니아, 미얀마, 샴, 일본, 중국 등에서 숭배되었다.
 
   한국의 불교
 고려 말기에는 전국에 10,000개 이상의 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조 
태종의 치세 때에는 절의 숫자가 242개로 줄었다.
 
   오늘날 서울 도심에서 
 김포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한강 쪽으로 절두산이라는 작은 언덕이 
있는데 이곳에서 흥선 대원군은 8,000명의 한국 크리스천들과 프랑스 
선교사들을 처형했다. 목을 자른 후 낭떠러지 아래의 강으로 그 목을 
떨어뜨렸다고 한다.
 
 [    제12장 이단, 미신, 풍습 ]
 [    제12장-이단 ]
 [  성경과 결혼한 남자 ]
 가장 악명 높은 거짓 메시아로 알려진 쉬바태 제비는 지독한 허풍과 
신비적인 말로 '메시아 대망 성취'라는 주장을 함으로써 유태인 
형제들을 현혹시켰다. 그의 가장 뻔뻔스러운 행동은 성경과 결혼 
의식을 행한 것이다. 율법의 신성한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에 신부의 
예복이 입혀진 후 화려하고 거룩한 의식으로 결혼식을 치렀으며, 
그리스의 살로니카 주민들은 이 결혼식의 입회인이 되었다.
 쉬바태의 이러한 행동의 목적은 그의 거짓 선교를 강화하는 
것이었는데, 결국 그도 17세기 터기의 슐탄의 손에서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마호메트교에 들어가 버렸다.
 
 [  하얀 밤의 영광스런 죽음 ]
 1978년 11월 18일 밤, 가이아나의 존스 타운에서 인민 사원을 이끄는 
짐 존슨 목사는 276명의 어린아이들을 포함하여 912명의 신도들에게 
청산가리를 탄 주스를 마시게 하였다.
 900여 명의 사람들이 다 함께 이른바 '영광스러운 죽음'을 택한 이 
끔찍한 밤을 사람들은 '하얀 밤(White Night)'이라고 불렀으며, 부패한 
사이비 종교의 대명사로 여기게 되었다.
 
 [  지구의 종말과 귀중품의 보관 ]
 1831년 과도한 신앙심을 가진 열정적인 종교인인 뉴잉글랜드의 윌리엄 
밀러는 1843년 4월 3일이 되면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그 주장을 신도들에게 전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예언은 성경 
말씀 중의 숨어 있는 진리라고 말했는데, 워낙 말주변이 좋았던지라 곧 
수천 명의 미국인들은 그의 전도를 믿게 되었다. 마침내 예언했던 날이 
가까워오자, 그를 따르는 수많은 신도들은 언덕 위에 모여 '심판의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대부분 신도들은 소지품들을 모두 태워 
버리거나, 어디론가 던져 버렸다. 그러나 아무 일 없이 4월 3일이 
지나가자, 윌리엄 밀러는 다른 날, 즉 1844년 10월 22일로 심판의 
날짜를 다시 잡았다. 이번에도 많은 신도들이 언덕 위에 모였으나 
지구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밀러의 
예언을 불신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몇 비평가들의 말에 의하면, 
밀러는 지구의 종말일이 다가오자 헛간과 광 속에 온갖 음식물과 
귀중품을 채워놓기에 바빴다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의 교주 럿셀
 럿셀은 1874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게 영적인 
재림을 하신다고 주장하다가, 1914년에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 세상 
정치는 멸망하고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신정의 시대(천년왕국)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 예언이 빗나가자 여호와의 증인들은 1975년 
10월 1일에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 세상이 끝날 것이라고 
예언하였지만 그 역시 거짓말로 판명되었다.
 
 [  기적의 밀(Miracle Wheat) ]
 럿셀은 여호와의 증인을 창설하고 돈벌이를 연구했지만 무식한 
럿셀에게는 별 뾰족한 재주가 없었다. 그러나 럿셀에게는 인간을 
설득해내는 천부적인 말재주가 있었다. 그리하여 생각해낸 것이 기적의 
밀이었다. 이들은 자기들이 파는 밀은 보통 밀보다 빨리 성장하고 
5배의 수확을 낸다고 선전하면서 453g당 1불에 판매했다. 그러나 
기적의 밀은 다른 보통의 밀보다 질이 떨어지는 불량품임이 발견되어 
럿셀은 결국 사기꾼으로 고소되었다.
 
 [  국제 합동 결혼식 ]
 1982년 10월 14일 서울에서 6,000쌍의 합동 결혼식이 한 장소에서 한 
명의 주례자에 의해 거행되었는데, 주례자는 통일교의 교주인 
문선명이었고 6,000쌍의 남녀는 세계 각국에서 온 통일교의 열성 
신도들이었다.
 1988년 10월 30일에는 6,500쌍의 합동 결혼식이 있었는데 주례자는 
역시 문선명 교주 부부였다.
 1992년 8월 25일에는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세계 
131개국에서 온 20,825쌍의 합동 결혼식이 있었다. 역시 주례는 문선명 
부부였다. 여러 사정으로 내한하지 못한 9,800쌍은 MBC 미디어텍의 
협조로 세계 최초의 위성 중계 결혼식을 올려 세계 최초의 진기록과 
함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위성 중계를 통해서 서울에서 
거행되는 결혼식에 따른 성혼 행사와 똑같은 절차에 의해서 행해졌다. 
이들은 소위 자기들의 '신앙의 조국'인 한국을 향해 경배하였다. 
그리하여 실제로 이날 결혼식을 올린 부부는 30,652쌍이었다.
 
   17세 되던 어느 날 갑자기
 통일교의 문선명 교주는 17세 되던 1936년 4월 17일 부활절 아침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자기를 선지자로 명하셨다고 
주장한다.
 여호와의 증인의 찰스 테즈 럿셀 교주는 그가 17세 되던 어느날 아침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아 새로운 교리를 터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안식교의 교주 윌리엄 밀러의 후계자 와이트 부인은 17세 되던 해 
어느 날 첫 환상을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몰몬교의 교주 조셉 스미스도 17세 되던 어느 날 기도드리고 있던 중 
하늘로부터 한 줄기 빛이 나타나더니 천사 모로나이가 내려와 계시를 
주었는데, 그 계시대로 1823년 9월 22일 모라이산에서 몰몬경을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미 세계 선교회라는 종파에서 
17세 된 소년 하방익을 이 시대의 예언자로 내세우고 있다.
 
 [  일단 모두 죽여라! ]
 십자군 원정시 Albigences에 대항하여 조직된 프랑스 군대는 지중해 
연안 근처의 베지에르 마을을 점령하였다. 그 마을은 완전히 
포위되었지만,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그 마을 사람들 중에 누가 
이단이고 누가 크리스천인지를 가려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시몬 6세(교황 이노센드 3세의 밀사)는 간단한 해결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 모두 죽여라! 신은 누가 자기 
사람인지 가려낼 수 있으니까 말야!"
 결국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모조리 개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Christain Science)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여교주 매리 베이커 에디는 세 번 결혼을 
했으며, 네 개의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메리 베이커, 매리 
베이커 크러버, 매리 베이커 패터슨, 매리 베이커 에디).
 
 [  안식교(Seventh Day Adventist Church)의 여교주 ]
 엘렌 G. 와이트는 157cm밖에 안되는 매우 조그마한 체구의 
여자였지만 카리스마적인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1863년 6월 5일 저녁 
7시경 그녀는 스스로 황홀령 속에 빠져들었고 그 상태에서 촛불 위에 
손을 올려놓았으나 아무런 화상도 입지 않았다고 한다.
 
 [  누가 666 적그리스도인가? ]
 종교 개혁 직전, 로마 카톨릭이 유럽을 지배할 때쯤 개신교인들이 
'교황은 666 적그리스도'라고 외쳤다. 이 때문에 수많은 
성도들(68,000,000명)이 종교 재판을 받아 온갖 고문을 당하고 
불태워졌다.
 
   몰몬교의 어제와 오늘
 몰몬교는 1823년 17세의 조셉 스미스가 모라이산에서 황금관(몰몬)을 
찾아내어 1827년 그것을 번역함으로써 만들어졌다. 몰몬경에서는 BC 
2250년과 BC 600년경에 유태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이주해 살았고, 
AD 34년에 그리스도가 강림하여 세례와 성찬을 베풀었다고 한다. 
신도들을 이끌고 유랑하다가 1830년 스미스는 일리노이주에서 
구속되었는데, 그를 구하고자 하던 신도들과 경찰의 총격전에서 죽었다. 
그 뒤를 이어받은 지도자 브리감 영은 남은 신도들과 함께 유타주 
솔트레이크시에 정착하였다. 몰몬교에서는 처녀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하여 일부다처제를 허락하였으며, 브리감 영은 27명의 
여자들과 결혼하여 55명의 자녀를 두었다. 또 그는 ZCMI 백화점의 
창시자이자 총수이고, 브리감 영 대학을 만들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몰몬교도의 수가 점점 늘어나 1830년 1,000명이던 것이 
오늘날에는 230만 명에 이른다. 즉 미국인 90명 중 한 명이 몰몬교도인 
셈이며 유타주 솔트레이크시에는 다섯 명 중 네 명이 몰몬교인이다.
 
 [    제 12장--미신 ]
 [  아름다운 욕설 ]
 어떤 욕설은 명예를 극도로 존중하는 사람들조차도 모욕감을 느끼지 
않게 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4라는 숫자를 사용하여 
저주하였으며, 지금은 터키의 일부가 된 고대 이오니아의 욕설은 
양배추였다. 또 프랑스의 시인 보를레르는 '성화된 성자의 머리'라는 
미화된 언어를 사용하여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돌판의 저주
 고대 로마에서는 저주하고자 하는 내용을 돌판에 새기는 풍습이 
있었다. 저주문이 새겨진 돌판이 완성되면 그 돌판을 깊은 바다에 
던지거나 땅 속에 묻음으로써 저주가 효력을 발생한다고 믿었다.
 
 [  마녀들의 사형 ]
 13--18세기 동안 독일에서는 적어도 1만 명의 양민들이 마녀라는 
죄목으로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16세기말, 헨리 3세가 통치하던 
그때에는 3만 명 이상의 마녀들이 프랑스에서 사형당했다. 이런 조치에 
반발하는 의견들도 분분했지만, 그 당시 통치자들은 절대 이에 
동요하지 않았다. 마침내 유럽에서의 마녀들의 사형 행렬은 1775년에 
끝이 났다.
 
 [  미국 정부도 미신을 믿는가? ]
 13일의 금요일은 미국인들에게는 매우 불길한 날로 여겨진다. 미 
해군성에서는 지금까지 금요일이 되는 13일에 새로이 배를 진수시킨 
적이 없다.
 
   보르네오와 말레이시아 원주민들은
 죽은 자의 매장을 몇 달 동안 늦추고 죽은 자의 앞에 음식과 음료수를 
차려놓고 그와 대화를 한다.
 
 [  한국에서는 ]
 4자가 붙은 병원 입원실에나 호텔방이 없다. 일본에도 4와 9가 붙은 
호텔방이나 병원 입원실이 없다.
 
 [  숫자 13을 왜 싫어할까? ]
 가롯 유다의 이름이 'Judus Iscariot'로 13자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인간 도살장의 전경 ]
 1519년 스페인 원정대가 멕시코에 도달해서 처음 본 것은 인간을 
살육하는 인간 도살장의 전경이었다. 수많은 인간을 희생시켜 그들의 
신에게 바친 흔적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멕시코의 원주민인 
에르텍 인디언들은 그들이 신봉하는 신들의 양식으로 매일 밤 인간의 
피를 바쳤다고 한다. 이러한 야만적인 제사에 1년에 적어도 25,000명 
이상의 인간이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  점성가의 최후 ]
 위대한 수학자인 지로라모 카르다노(Girolamo Cardano:1501--1576)는 
점성술 신봉자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점성술 운세도를 만들려는 시도는 
조금 지나친 느낌이 있다. 덕분에 그는 신성 모독죄로 얼마 동안의 
감옥형을 받았다. 한편 그는 깃털 침대를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스코틀랜드 추기경의 천식을 고쳤으며 이는 오늘날 '알레르기'라고 
불리는 병의 첫 치료 사례가 되었다. 날조라고 여겨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카르다노는 점성술에 의해 자기가 죽는 날을 예언했다. 
1576년 9월 21일, 건강하게 살아 있는 자신을 발견한 그는 그만 
자살하였다고 한다.
 
 [    제12장--풍습 ]
 [  돼지고기 혐오증 ]
 비록 서로 이유가 다르기는 하지만, 서인도 제도의 카리브 토인과 
줄루족, 유태인과 모슬렘은 돼지고기를 혐오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카리브 토인은 돼지고기를 먹으면 눈이 돼지의 눈처럼 된다는 
공포심으로, 줄루 여자는 돼지고기를 먹으면 돼지를 닮은 아이를 
낳는다는 믿음에서 돼지고기를 기피하였다.
 
 [  소녀 성인식 ]
 북미의 호피 인디언에게는 소녀 성인식으로서 특별히 마련된 집에서 
4일 동안 홀로 옥수수를 가는 의식이 있었다. 격리 기간 동안 소녀는 
손으로 몸이나 머리를 긁지 못하고 막대기를 사용하였다. 의식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서 소녀는 머리 모양을 바꾸어 결혼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린다.
 
 [  머리 위에 숯불이 ]
 오스트레일리아 쿠카타족의 소년은 공포심을 없애기 위하여 불 속을 
걸어 지나가는 전통적 의식을 받았다. 다른 토착 원주민은 여인들이 
소년들을 불더미에 짓누르거나, 머리 위에 지핀 숯을 퍼붓는다고 한다.
 
   타란텔라의 유래
 14--18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타란툴라 독거미에게 물리면 광란의 
음악이 해독 작용을 한다고 믿었다. 혼수 상태에 빠지면서 피해자의 
유일한 희망은 무감각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춤을 추는 일이었다. 이 
음악은 오늘날의 타란텔라라는 민속춤으로 알려져 있다.
 
 [  영국과 독일의 영세 의식 ]
 영국 사람들은 한때 영세를 받으면서 아이가 울지 않으면 영세 의식이 
아이로부터 악마를 내쫓는 데 실패했다고 믿었다. 이와는 달리 
독일에서는 의식 도중 우는 아이는 일찍 죽는다고 생각하였다.
 
 [    제13장 법률, 철학, 정치 ]
 [    제13장--법률 ]
 [  미국식 민주주의 ]
 민주주의는 법률 앞에서 누구나가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란트 
대통령은 워싱턴 지역에서 정한 지정 속도보다 더 빨리 말을 몰았다는 
이유로 입건되어 20달러의 벌금을 냈으며, 피어스 대통령도 어떤 
사건으로 입건되었고, 닉슨 대통령도 도청 장치(워터 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  변호만 잘하면 살인도 무죄가 된다 ]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이자 시인인 벤 존슨(1572--1637)은 1598년 연극 
배우이자 희극 작가로 활동하던 시절 말다툼 끝에 어떤 배우를 죽이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자기 변호로 무죄로 
풀려났는데, 그의 변호란 바로 이것이었다. "능히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일명의 성직자의 권리."
 
 [  판사의 양심 ]
 사무엘 세월 판사는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셀럽에서 열린 마녀 
재판에서 19명에게 사형을 선도하였다. 하지만 그는 1697년, 5년 전의 
그 재판에서 오판을 하였음을 인정하고 1730년 죽을 때가지 금식하며 
회개했다고 한다.
 
   어떤 경범죄
 캘리포니아의 퍼시픽 그로브의 도시 조례 352조를 보면, 나비를 
죽이거나 상처를 입히는 것도 경범죄에 해당한다.
 
 [  취중 운전 ]
 술에 취한 채 운전하다가 적발되는 사람은 미국과 한국에서는 
구속되고, 산살바도르에서는 사형당한다.
 
   미국인들은
 실로 법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정부, 연방, 주 지역에서 만들어내는 
법조항들은 어마어마한 숫자를 기록한다. 사실상, 미국인들은 매년 
15,000개의 새로운 법과 2백만 개의 새 조항들을 지켜 나가는 법 
국민들이다.
 
 [  세계 최초의 법전 ]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왕(BC 1792--1750)에 의해 계승된 함무라비 
법전은 역사 속에서 가장 오래 된 법전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대 법전 중 가장 완벽한 법전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법전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가령 수술에 실패할 경우, 의사는 양손이 잘리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 법들이 새겨져 있는 설록암의 왼주는 지금 
파리에 소장되어 있다.
 
 [  대헌장 마그나 카르타 ]
 대헌장 마그나 카르타는 영국 헌법의 기초가 되었는데, 영국왕 존이 
거기에 기록된 몇 가지 사항을 승인한다는 일종의 칙허장이다. 하지만 
존 왕은 자신의 이름조차 쓸 수 없을 정도로 무식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대헌장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 대신 도장을 찍었다.
 
 [  흑인 반란군의 단식 투쟁 ]
 1820년경 센 도밍고에서 일어난 반란 이후, 176명의 흑인들은 
프랑스군들에 의해 붙잡혀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었다. 그 다음날 
아침부터 173명은 단식 투쟁을 하여 결국엔 모두 죽고 말았다.
 
 [  변호사 자격 ]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변호사 중 네 명, 즉 아브라함 링컨, 존 마샬, 
다니엘 웹스터, 스티븐 A. 더글라스는 사실 법률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  유명한 재판 ]
   "소크라테스"(BC 399)
 소크라테스는 70세에 두 가지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신앙심이 없다는 
것(그는 나라에서 인정한 신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과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킨다는 죄목이었다. 이 죄목들은 
아네네에서 영향력 있는 이 웅변가를 제거시키려는 날조된 음모였다. 
501명의 배심원들 앞에서, 3명의 기소자들은 다음과 같은 행위 때문에 
소크라테스를 고발했노라고 말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지속적으로 국영 기관 및 관직자들을 비난했고 아테네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그들 역시 비판적 시각으로 국가를 보게끔 부추겼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플라톤이 그의 저서 "변명"에서 
밝힌 것처럼).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 죄목들을 반박하는 대신, 자신은 
'진리의 추구자'라는 입장만 고수할 뿐이었다. 60표 차이로 
소크라테스는 유죄로 판정되고 사형이 언도되었다. 그의 친구들은 
소크라테스에게 탈출을 권유했지만 사형은 신념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기회라는 이유로 거절당하였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슬픔에 겨워하는 친구들을 위로하면서 침착하게 독약을 마셨다.
   "갈릴레오 갈릴레이"(1633)
 갈릴레오가 "위대한 두 체제에 관한 대화"라는 책을 출간했을 당시, 
그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옹호하고 
있었다. 또한 이 이론이 단순한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간주했던 
카톨릭 교회의 조항을 부정했다. 그의 이론은 곧 교회로부터 많은 
배격을 받게 되었다.
 "신이 5일 동안 지구를 창조했고 우주 안의 나머지들은 단 하루 만에 
창조했다"고 말한 성경 교리와 모순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하고 갈릴레오가 옹호했던 그 신앙 모독은 
신도들이 성경을 의심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갈릴레오의 저서는 이탈리아와 다른 모든 국가에서 금서가 되었고 
갈릴레오는 로마로 소환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 69세였다. 갈릴레오는 
종교 재판을 받았으며 고문을 당하다 결국 1633년 7월 22일 강제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거짓이라고 허위 자백하였다.
   "살렘 위치스"(1692)
 메스 살렘에 살고 있는 티투바라는 서부 인디언 노예가 어린 
소녀들에게 손금술, 점보는 방법, 그리고 블랙 마법 같은 마술을 
가르쳐주었을 때만 해도 마녀라는 말은 그다지 흉측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10명 남짓의 10대 소녀들(그들의 나이는 9살부터 
20살까지였다)이 곧 능수능란하게 마술을 부리게 되자, 사람들은 그 
소녀들이 마법에 걸렸다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다. 그리고 그 
소녀들은 누구 때문에 마법에 걸리게 되었는지 그 주범을 대라는 
압력을 받게 되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주범들로 기소되었는데 그 
소녀들은 기소된 누군가가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고 밝혀지면 그것은 
기소된 누군가의 영령을 지배하는 마녀가 교활하게 꾸며놓은 것이라고 
장담했다. 1692년 150명의 체포된 마녀들 중 31명만이 재판을 받게 
되었다. 30명 모두는(5중 6명이 남자였다) 사형을 선고받았다. 19명은 
교수형을 받았고, 2명은 옥사했으며, 1명은 돌에 깔려 죽었다. 화형으로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693년 5월까지 모든 재판은 종결되고 
재판받지 않은 마녀들은 풀려났다.
   "존 피터 젠거"(1735)
 미국 헌법이 제정되기 전 거의 반세기에 걸친 재판이 있었다. 존 피터 
젠거의 재판이었다. 그 재판에서는 언론의 자유를 위한 강한 외침이 
있었다. 젠거가 뉴욕주의 주지사인 윌리엄 S. 코스비의 혼탁한 정치 
책략을 서술한 책을 출간했는데, 그로 인해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것이다. 판사는 정부 고관을 중상 모략하는 말을 기록한 책을 
출간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날카롭다고 소문난 젠거의 변호사 윌리엄 헤밀턴은 명예훼손과는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정부관리에 대해 진실을 언급할 수 있는 
권리를 억압하는 것은 곧 시민들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12명의 배심원들에게 이 말은 
충분히 호소력이 있었다. 배심원은 10분 동안 재판을 휴정했다. 그리고 
나서 곧 무죄를 판결했다.
   "헨리 워드 비춰"(1875)
 19세기의 큰 스캔들 중의 하나는 신앙심이 깊고 교원들에게서 
존경받는 미국인 목사 헨리 워드 비춰에게 내려진 간통죄였다. 그를 
존경하는 신도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으나, 비춰는 유부녀들과의 
밀회를 일삼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제일 친한 친구인 테오도르 틸톤의 
부인 엘리자베스 틸톤을 유혹했을 때 그만 꼬리를 잡히고 말았다. 
빅토리아 우드홀 때문이었다. 설사 엘리자베스가 그녀의 남편에게 불륜 
사실을 고백했다 해도 자유 연애 옹호주의자인 빅토리아 우드홀이 그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거나, 혹은 위선자라고 비춰를 공공연히 비난하지 
않았다면 그 일은 거기서 끝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우드홀은 
기소되었고, 틸톤은 그의 부인 엘리자베스의 마음이 완전히 자신에게서 
멀어졌다는 이유로 그 원인 제공을 한 비춰에게 손해 배상으로 10만 
달러를 요구했다. 그 재판은 1875년 1월 11일에 여려 112일동안 
계속되었다. 틸톤의 요구가 합법적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투표를 
52번이나 거듭한 결과 배심원들은 9:3의 비율로 틸톤의 요구를 
기각시켰다.
 그 스캔들로 인해 비록 정계로 뻗어나가려던 비춰의 꿈은 이룰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이전에 그를 헌신적으로 추종했던 신도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1894, 1899)
 프랑스의 육군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 -유태인이었다-는 1894년 
독일과 내통한 스파이라는 혐의를 받았다. 드레퓌스는 일반 시민 및 
언론과 차단된 군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구체적인 스파이 행위인 
중요 기밀 서류 위조, 거짓 진술, 그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풍문 등에 
관한 죄목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드레퓌스는 수감되었다가 외떨어진 
데빌섬으로 추방당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 관리 메이저 에스터헤지가 
진짜 적국과의 통모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프랑스 전역에 걸쳐 
국민들의 동요가 일었다.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인 에밀 졸라는 육군 
체제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글을 기고했는데, 솔직히 그는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서 차라리 명예훼손죄로 고발되기를 원했었다. 
 졸라는 소원대로 고발되었을 뿐 아니라 유죄 판결을 받고 말았다. 
그러나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에 힘입어 드레퓌스는 1899년 다시 
심판대에 올랐으나 또다시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10일 후에 사면을 
받게 되었다. 1906년 그의 무죄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면서 장군으로 
승진했으며 프랑스 레종 드네르 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오스카 와일드"(1895)
 1895년 문학의 천재이자 동성 연애주의자 오스카 와일드가 퀸베리 
후작의 아들에게 구혼했을 때 퀸베리 남작은 너무 분한 나머지 다음과 
같은 말로써 복수해주었다. "오스카 와일드, 이 더러운 남색자야!" 
그러자 와일드는 명예훼손죄로 퀸베리 후작을 고소했다. 그러나 재판이 
열린 지 3일 후쯤 재판 분위기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감을 인식한 
와일드는 고소를 취하했다. 그 다음날, 젊은 정부를 대주던 매춘업자 
알프레드 테일러와 와일드는 남자들을 매춘 행위시키는 포주 노릇은 
수정 헌법 조항에 위반된다는 형으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첫 재판은 
와일드의 많은 매춘 행위들이 당연히 유죄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증인석에 선 와일드의 재치 있는 변명에 
배심원들의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배심원들은 어떤 판결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두번째 재판 때 와일드와 테일러는 유죄로 
판결되었고 2년 동안 중노동을 하라는 형벌을 받았다.
   "조지 아춰 쉬"(1910)
 1908년 가을, 영국 오스본에 있는 해군 사관학교 생도인 13살 조지 
아춰 쉬는 다른 소년의 사물함에 있는 5실링 우편환을 훔쳤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조지가 아무리 아니라고 변명을 해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히 아들이 무죄라고 믿었던 마틴 아춰 쉬는 아들의 유죄를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들이 우편환을 훔쳤다는 증거도 
없이 어떻게 이런 조치가 취해 질 수 있느냐고 분개하기도 했고, 
면밀하게 이 사건을 조사해보자는 애원도 해보았지만, 번번이 거만한 
관료들에게 무시만 당할 뿐이었다. 1910년 7월 26일, 마침내 아춰 쉬의 
소송 변호인이 사건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데 성공했다. 재판이 
진행되고 3일째 되던 날, 법무관은 그 소년이 유죄라는 증거가 없음을 
인정하고 조지의 무죄를 선언했다. 재판은 이렇게 끝났다. 해군 
본부에서는 법정에서 내려진 처분대로 아춰 쉬에게 7,120파운드를 
지불했고, 모든 학생의 인권을 반드시 존중하겠노라고 단언했다.
   "존 T. 스코프"(1925)
 테네시주에서는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성경 구절을 부인하고 인간은 
하등 동물의 자손이라는 학설을 가르치는 것은 위법 행위였다. 그러나 
테네시 데이톤의 생물 선생 존 T. 스코프는 이 학설을 주장하는 
클리어런스 다로우의 영향을 받아 그만 법규를 위반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빚어진 재판이 바로 유명한 원숭이 재판(Monkey Trial)이다. 
법정에서 클리어런스 다로우는 윌리엄 제닝 브라이언과 맞서게 
되었다(클리어런스 다로우는 피고인 변호사이고, 윌리엄 브라이언은 
테네시주의 법정 대리인이다). 그러나 형사 재판도 아니고 단지 위법 
사실만이 재판의 유일한 관건이었기 때문에 증거나 물증이 없었다. 
마침내 다로우는 브라이언에게 증인석에 서줄 것을 요청했다. 다로우는 
아담과 이브, 그리고 지구의 기원에 관한 질문들을 퍼부으면서, 동시에 
과학적 지식을 근거로 보면 성경 구절들은 지극히 모순적임을 증명해 
보였다. 이에 반해 원고측 대변인 브라이언은 한마디 항거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배심원들은 스코프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벌금으로 
100달러를 요구했다. 비록 스코프가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학문의 
자유가 한단계 전진했다는 점에서 이것은 의미있는 재판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    제13장--철학 ]
 [  말세는 언제? ]
 BC2000년경에 새겨진 앗시리아의 비문에 '오늘날 우리 세대는 
타락해가고 있다. 곧 말세가 올 것이다'라고 되어 있었다.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그 시대의 아이들이 제멋대로이고 
어른들이 방에 들어가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플라톤도 당시의 
젊은이들이 돼먹지 않았고 어른들을 존경할 줄 모르며, 부모에게 
맞서고 법률과 질서를 지키지 않으며 스승에게 반기를 든다고 
한탄하였다. 이렇듯 기원전부터 말세라는 말이 난무하였으니, 도대체 
진짜 말세는 언제일까?
 
 [  플라톤의 "공화국" ]
 플라톤은 그의 저서 "공화국"에서 핵가족이 없어져야 한다고 
제의하였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한 집안에서 살아야 하고 식사 때 
같이 만나야 한다. 누구도 자기 개인의 소유물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 
그들은 함께 성장해야 하며 서로 사귀어야 한다. 그리하여 본성의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서로 합하여 성관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내 생각에 필요라는 말은 그렇게 강한 표현은 아니지만... 그리고 우리 
후견인들은 아내와 아이들을 공동으로 가져야 한다. 어떤 사람도 누가 
그의 자식인지, 어떤 자식도 누가 자신의 아버지인지 알아서는 안 
된다."
 
 [  가장 위대한 영웅과 가장 위대한 철학자의 만남 ]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42세 되던 BC 342년, 그는 
마케도니아의 필립 2세에게 불려가 왕의 아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위대한 철학자는 위대한 영웅이 될 14세의 알렉산더 대왕을 
만나게 되었다.
 
 [  결혼하지 않은 20명의 철학자 ]
 1. 플라톤(BC 427?--347): 그리스
 2. 성 어거스틴(354--430): 누미디안
 3. 성 토머스 아퀴나스(1225--1274): 이탈리아
 4. 토머스 홉스(1588--1679): 영국
 5. 르네 데카르트(1596--1650): 프랑스
 6. 블래이스 파스칼(1623--1662): 프랑스
 7. 존 로크(1632--1704): 영국
 8. 베네딕 스피노자(1632--1677): 네덜란드
 9. 고트프리트 빌헬름 폰 라이브니츠(1646--1716): 독일
 10. 볼 타이러(1694--1778): 프랑스
 11. 데이브드 흄(1711--1776): 스코틀랜드
 12. 임마누엘 칸트(1724--1804): 독일
 13. 아더 쇼펜하우어(1788--1860): 독일
 14. 쇠렌 아비 키에르케고르(1813--1855): 덴마크
 15. 허버트 스펜서(1820--1903): 영국
 16.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독일
 17. 조지 산타야나(1863--1952): 스페인-독일
 18. 루드비히 조셀 존 비텐슈타인(1889--1951): 오스트리아
 19. 장-폴 사르트르(1905--1980): 프랑스
 20. 시몬 베유(1909--1943): 프랑스
 
 [    제13장--정치 ]
 [  소련 장관의 소지품 ]
 2차 세계 대전 동안 소련의 장관 V.M. 모로토프가 백악관에 초대된 
적이 있었다. 그의 방문은 공개적으로 알려진 사실이 아니었기에 
공문에는 그저 '미스터 브라운'이라고 남아 있다.
 모르토프의 가방을 뒤졌던 백악관 직원은 모로토프의 가방 안에는 
검은 빵 한 덩어리, 소시지, 그리고 권총 하나가 들어 있었다.
 
   스탈린이 한 일
 1921--1953년 동안 300만 명 이상의 소련인들을 아르행겔 강제 노동 
수용소로 보내 죽게 했다.
 
 [  정치는 마약과 같은가? ]
 마가렛 대처 장관은 1969년10월26일 런던 "선데이 텔레그래프"와 
가진 인터뷰에서 여자는 정부의 최고위직에 있어서는 결코 안 되며, 
자신은 설사 수상 자리를 준다고 해도 수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말했다.
 그러나 1975년 영국의 보수당을 이끄는 최초의 여성 당수가 되었고, 
1979년에는 대영 제국의 수상이 되어 가장 오랫동안 수상직에 있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
 아그립바는 자기의 오빠와 근친상간 관계에서 악명 높은 네로 왕을 
낳았다. 그녀는 자기의 두번째 남편인 클로디어스 황제를 음식에 
독약을 타 넣어서 독살시키고 당시에 16세 된 아들 네로를 왕위에 
오르게 했다. 그러나 아들 네로는 어머니의 계속적인 간섭에 분노하여 
어머니까지 암살하여 모친살해(matricide)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낸 
악한 아들이었다.
 
   테오도르 루스벨트의
 어머니와 그의 첫 부인은 1884년 같은 날 죽었다. 그리하여 
루스벨트는 부모와 부인을 잃은 슬픔에 거의 2년 동안 정치를 멀리 
했다.
 
   루스벨트는 스탈린에게 속았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4선 대통령에 당선된 루스텔트는 스탈린과 
처칠을 만나기 위해 소련 영토인 유명한 유흥지 얄타로 떠났다. 1945년 
2월 11일 루스텔트는 스탈린과 처칠을 만나 셋이 공동으로 크리미아 
선언을 발표했다. 그 후 1945년4월12일 루스벨트는 책상에서 
정상적으로 집무를 보고 있었고 한편에서는 여류 초상화 화가인 
엘리자베스 소마토프가 그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는데, 루스벨트가 
갑자기 의자에서 쓰러지면서 '머리가 심히 아프다'고 했다. 이것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마지막 말이었다. 몸이 몹시 허약해 
있었던 루스벨트는 건강한 몸으로 나타난 스탈린에게 속은 것임에 
틀림없는데, 그는 스탈린의 하수인이 천천히 생명을 단축시키는 중국제 
특수 한약을 섞은 음식을 먹고 귀국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얄타 회담 당시에 루스벨트와 처칠 수상 모두 건강이 좋지 
않았고 루스벨트의 보좌관 해리 홉킨스도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는데, 
단지 스탈린만이 건강했다고 한다. 루스벨트는 스탈린에게 속아서 
죽었던 것이다.
 
   엥겔스는 자본주의자
 칼 마르크스와 같이 현대 공산주의 이론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엥겔스는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속하지 않는 한마디로 말해서 
자본주의자였다. 엥겔스는 1820년 프러시아에서 대재벌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런던에 있는 아버지의 방직회사에 중역이 되어 호화로운 
주택에서 매우 사치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한 그가 왜 공산주의 이론을 
생각했을까?

 [  퇴학당한 스탈린 ]
 조셉 스탈린은 5년(1894--1899) 동안 조지아와 티프리스의 
러시아 종교 신학교에서 신부 수업을 받았었다. 그는 꽤 모범적인 
학생이었으나 그 당시 티프리스에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한 자유 정치 
사상을 깨닫게 된 후부터 신부 수업을 게을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마르크시스트(Marxist)가 되었으며 사회민주당에 입당했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신학교에서는 스탈린에게 퇴학 조치를 내렸다

 [  김일성이 평양 시장에 단선? ]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남부 11개 주를 대표했던 남부 대통령은 제퍼슨 
데이비스였다. 그는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정계에 투신하여 1866년에는 
상원에 당선되었고, 1873년에는 하원에 당선되어 9년 동안 재직하였다. 
그리고 1882년에는 조지아주 주지사로 당선되기도 하였다. 만약, 
우리나라가 통일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김일성이 평양 시장에 
출마한다면 과연 당선될 수 있을까?
 
   대를 이은 불복종
 맥아더 장군은 1951년 한국 전쟁을 놓고 트루먼 대통령과 의견이 
대립되어 해임되었다. 그의 아버지도 불복종죄로 태프트 
대통령으로부터 해임되었다. 또 그의 할아버지까지도 남북 전쟁때 명령 
불복종죄로 기소된 적이 있다.
 
 [  적장에게 훈장을 ]
 진주만의 공격 계획에 일익을 담당했던 일본인 장군 미노루 젠다는 
1959년 미국 공군 기지로부터 수훈 훈장을 받았다. 그때 젠다는 일본 
공군 기지의 사령관직을 역임하고 있었다. 그 후 젠다는 
캘리포니아에서 '록키드의 F-104 스타화이터' 비행기를 시험 
비행했는데, 일본이 이 비행기를 구입하는 데에는 젠다의 역할이 
컸었다고 한다.
 
    5공화국 때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었던 8년 동안에는 TV나 영화에서 
'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비천한 역을 할 수 없었다. 독일에서 
히틀러가 권좌에 있었을 때는 농민이나 하급 노동자들이 '아돌프'라는 
이름을 쓸 수 없었다. 옛날 이탈리아 시엔나의 법에서는 
'마리(Mary)'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은 매춘부가 될 수 없었다.
 
 [  세계에서 가장 자주 교체되는 정부 ]
 1982년 볼리비아의 대통령인 장군 켈소 토렐리오 빌라가 압력에 의해 
대통령직을 사임했을 때 이 나라는 과거 157년간 190번째로 통치자가 
바뀌는 기록을 남겼다. 이 얼마나 불안정한 나라인가? 세상의 어떤 
정부도 이토록 짧은 기간에 막을 내리는 경우는 없었다.
 1824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이래 볼리비아는 최소한 60회의 큰 폭동과 
12회의 작은 폭동의 풍랑을 겪었고, 1946년 폭도에 의해 처형된 
구알베르토 빌라로엘 대통령의 암살을 포함해서 셀 수도 억을 만큼의 
정치적인 암살이 자행되곤 하였다. 산이 많고 사면이 육지에 둘러싸여 
'남미의 티베트'라 불리는 작은 나라 볼리비아(인구 5,425,000명)의 
역사는 가난과 미개와 불법의 역사로 점철된다. 주위에 다섯 나라와 
국경이 접해 있고 그들과 국경 분쟁을 벌였으나 한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볼리비아도 몇몇 훌륭한 대통령이 있기는 했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초대 대통령 시몬 볼리바로서, 볼리비아라는 나라명도 
그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러나 1940년에 대통령이 되었던 문맹 장군 
엔리케 페나란다 같은 독재가가 훨씬 많았는데, 엔리케 페나란다가 
문맹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가 
"엔리케가 대통령이 될 줄 알았다면 그를 학교에 보냈어야 했는데"라고 
한 말로도 알 수 있다. 19세기는 특히 볼리비아의 분열기였는데, 군부 
독재자들은 국고를 횡령했고 국민들을 마치 먼지처럼 취급했다. 가장 
악명 높았던 독재자는 마리아노 멜가레조로 그는 살인자이며, 
허풍쟁이였다. 1868년에 그는 영국 대사를 당나귀 등에 거꾸로 
매달고는 수도의 중앙 광장에서 치욕스런 행진을 하게 했다. 이 복행 
소식을 전해들은 빅토리아 여왕은 지도에서 볼리비아에 x표를 긋고는 
"볼리비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1982년 
가이도 빌도소 장군이 대통령이 되어 부패와 압제로 유명한 행정부를 
이끌었다. 그러나 이전의 다른 많은 볼리비아의 통치자와 마찬가지로 
그의 통치도 단명하여 10월에 헤르난 질레주아조에 의해 자리를 
빼앗겼다. 세 번의 투표에서 주아조 정부는 빌도소 정부에게 승리를 
거둔 것이다. 주아조는 4년 동안 10번째로 자리에 오른 대통령이 
되었는데, 누구나 그의 대통령으로서의 수명 또한 그리 길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  기혼자의 특권 ]
 볼리비아에서는 미혼인 경우 21세가 되어야 투표권이 인정된다. 
그러나 기혼자인 경우 18세부터 투표할 수 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법정 투표 연령인 18세 이하라 할지라도 기혼자는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안도라 공화국의 법정 투표 연령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25세이다.
 
   2시간과 2분의 차이
 에드워드 에베레트는 열렬한 연방주의자이며 하버드 대학의 
학장이었고, 성 제임스 교회의 목사로서 당시의 최고 웅변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1863년 11월3일 게티스버그에 있는 국립묘지에서 2시간에 
걸쳐 열렬한 연설을 토했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은 에베레트가 열변을 
끝내자마자, 그의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을 2분만에 끝냈다.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 중에서 "The world will little not long remember 
what we say"라고 한 링컨의 말은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미국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누구나 이 말을 암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혼혈 민족 구상
 멕시코는 스페인인들과 멕시코 원주민들의 결혼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일본은 1945년 한국이 해방되기 전에 일본인과 한국인을 
결혼시켜 혼혈 민족으로 만들어 한국과 일본을 통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BC 324년에 이미 알렉산더 대왕은 이러한 혼혈 민족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0,000명의 마케도니아 군인들과 많은 
페르시아 여자들을 결혼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젊은 나이로 
죽었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꿈
 알렉산더 대왕은 사회를 개혁하고 뉴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자 
했다.
  1. 다른 종족, 계급, 종교인 사이의 결혼, 군인들과 노예의 결혼, 
백인과 흑인,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사이의 결혼을 통해서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고자 했다.
  2. 세계를 그리스어 하나로 통일하고자 했다. 실제로 그리스어는 문명 
국가의 공용어가 되어가고 있었다. 
  3. 도시를 개발하고자 했다. 이집트의 알렉사드리아처럼 수많은 
도시를 개발하여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다.
  4. 하나의 정부를 세워 세계를 통치하고자 했다. 이것은 지금의 UN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시저가 암살된 곳
 셰익스피어를 포함해서 백과사전 편집자들까지 거의 누구나 시저가 
원로원에서 암살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사실은 원로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가끔 원로원들이 모이는 장소인, 한때 시저의 
정적이었던 폼페이스 동상 앞에서 부루투스와 그의 일당에 의해 
암살되었다.
 
 [  누가 가장 많은 땅을 정복했나? ]
 몽고의 칭기즈칸은 4,860,000평방마일을, 알렉산더 대왕은 
2,180,000평방마일을, 히틀러는 1,370,000평방마일을, 나폴레옹은 
720,000평방마일을 정복했다.
 
 [  다우닝가 10번지 ]
 영국의 수상 관저가 있는 주소이다. 이 집의 문은 밖에서는 열리지 
않고 안에서만 열린다.
 
 [  미국의 대통령과 부대통령은 ]
 결코 같이 여행을 갈 수 없다.
 
 [    제14장 범죄, 악명 높은 자들 ]
 [    제14장-범죄 ]
 [  교수가 흉악 살인범 ]
 19세기 가장 흉악한 살인범으로 하버드 대학의 교수가 뽑혔다. 
의과대학의 존 웹스터 박사는 동료 박사인 조지 파크맨에게 상당한 
액수의 빚을 지고 있었다. 빚을 갚을 길이 없었던 웹스터는 파크맨을 
살해한 후 시체를 조각조각낸 후 우물 속에 숨겨두었다. 뭔가 
수상하다고 느꼈던 학교 수위는 마침내 우물 속에서 파크맨의 시체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웹스터는 재판을 받았고 즉각 처형되었다.
 
 [  만월에 데이트 안전한가? ]
 오하이오 친친나티의 에즈워터 대학의 교수인 두 심리학자들은 1년 
동안 헤밀턴 법정(친친나티에 소재)에서 다루어진 34,318건의 재판들을 
조사 분석한 결과, 1976년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발표했다. 만월이 떠 
있는 기간이나 그즈음에 자주 일어나는 범죄 행위들은 크게 8가지로 
분류되는데, 그 8가지 범죄들은 강간, 강탈, 살인, 절도, 강도, 무절제한 
폭행, 주취, 어린아이들과 근친 폭행들이라고 한다.
 
   1786년과 1982년
 마리 어거스틴 마퀴스 데 페리어라는 사람은 1786년 마리 앙트와네트 
여왕이 극장으로 들어갈 때 휘파람을 불었다는 죄목으로 50년 동안 
감옥 생활을 했다. 세조 때 양정이란 사람은 세조의 양위를 거론하다가 
사형을 당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의 침실에 괴한이 침입, 짝사랑을 
고백했으나 그는 재판에서 무죄가 되었다. 이 일은 1982년에 일어났다.
 
 [  사형장행 유람열차 ]
 1899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조지아 팔메토로 향하는 유람열차에 
탑승하였다. 사형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사형수의 머리를 잘게 여민 
조각들은 기념품으로 팔렸다고 한다.
 
 [  고문 방법도 가지가지 ]
 16세기의 프랑스 법정에서는 피고를 매달아 놓고 자백을 시켰고, 
17세기 영국에서는 배 위에 무거운 물건을 올려 놓아 자백을 강요했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는 엉덩이를 내놓고 볼기를 쳐서 자백을 시켰다. 
중세 카톨릭 교회 종교재판소는 죄의 유무를 가려내기 위해서 용의자를 
마구 잡아 강물 속에 집어던져 시체가 물 위로 떠오르면 죄가 있고 물 
속으로 가라앉으면 무죄였다. 옛 인도나 일본, 아프리카에서는 펄펄 
끓는 물 속에 손을 넣어 멀쩡하면 무죄라고 여겼다. 중세 유럽에서는 
붉게 달은 쇠를 잡게 하여 화상을 입으며 유죄라 여겼다. 죄를 저지른 
사람은 공포에 사로잡혀 피부가 말라 화상을 입고, 결백한 사람은 
온몸에 땀이 나서 화상을 안 입는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옛 
아라비아 사람은 재판관들 앞에서 서로 욕싸움을 벌여서 시비를 가리게 
했다. 가장 멋스러운 것은 에스키모인들이다. 그들은 전체 부족 앞에서 
노래로 상대방을 비난하도록 했다고 한다. 제비뽑기로 범죄자를 가려낸 
고대 인도인도 있다.
 
   유식무죄 무식유죄
 중세 영국에서는 만약에 범죄자가 글을 쓸 줄 알고 또 읽을 수 있다면 
형벌이 감하여졌다. 그때 글을 읽을 수 있나를 테스트하였는데 주로 
시편 51편이 사용되었다.
 
 [  죄의 아버지 ]
 프랑스 클레몽 지방의 크레텡가는 온 가문 전체가 죄의 파도를 탔다. 
이 '범죄의 대부'의 아버지는 옷을 벗은 성직자로 예전에 가졌던 
믿음을 상황의 힘에 굴복시키고 말았다. 그는 방화범 가문의 딸과 
결혼하여 장 크레티엥이라는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이 장 크레티엥과 
그(장 크레티엥)의 세 자녀들 피레, 토머스, 장 벱티스테는 모두 
강도죄와 살인죄로 길로틴에서 처형당했다. 피레는 장 프랑소와라는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그도 강도죄와 살인죄로 인해 처형당했다. 
토머스는 프랑소와와 마르탱이라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그들 또한 
길로틴에서 처형당했다. 마르탱의 아들 마르탱 주니어는 프랑스의 
카이엔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던 중 죽었다. 장 벱티스테는 장 
프랑소와라는 아들을 두었는데, 이 아들과 그의 아내 마리 탐도 
감옥에서 죽었다. 장 프랑소와와 마리의 일곱 자녀들, 장 프랑소와, 
베노이스트, 클렝, 마리 렝, 마리 로르, 빅토와 빅토렝은 모두 강도죄와 
살인죄로 길로틴에서 처형당했다.
 
 [  성고문 ]
 우루과이에서 가장 잔인한 형벌의 하나는 잘 훈련시킨 개로 강간을 
시키는 것이다. 또한 인도에서도 죄인을 고문하는 한 방법으로서 
강간을 행한다.
 
 [  한 남성이 옷을 벗고 있는 여성을 ]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는 경우 그 남성에게 '치한죄'가 적용이 되며 한 
여성이 옷을 벗고 있는 남성을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는 경우에는 그 
남성에게 '노출죄'가 적용될 수 있다.
 
 [    제14장-악명 높은 자들 ]
 [  아프리카의 히틀러 ]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히틀러라고 불리는 아민은 1951--1960년까지 
우간다의 국가 대표 권투 선수였다. 그는 군에 입대하여 일등병 
계급장을 달고 정글과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싸웠다. 그 후 1971년 
우간다의 대통령이 되어 1979년 강제로 축출될 때가지 죄없는 우간다 
백성을 30만 명이나 학살하였다. 쿠바의 카스트로도 한때 대표급 권투 
선수였다.
 
 [  나의 자궁을 쳐라! ]
 네로 황제는 첫 아내 옥타비아, 형제 브리타니커스, 아주머니 
도미티아를 죽이고 두번째 아내 포피아는 임신한 배를 발로 차서 
죽였다. 또 자신을 낳은 어머니 아그립바를 자신의 왕위를 뺏으려 
했다는 이유로 암살하려고 했다. 그러자, 아그립바는 자신의 옷을 
찢으며, "여기를 쳐라, 내가 네로를 낳은 나의 자궁을 쳐"라고 
소리쳤다.
 
   황제의 혈기
 미치광이 황제로 알려진 러시아의 차르 폴 1세(Czar Paul I)는 자제할 
줄 모르는 기질에 성급하고 줏대 없는 성격이었으며 또한 잘난 체하는 
군대 미치광이였다. 1799년 어느 날 아침, 호위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군복 단추 때문에 불만이 생겼다. 황제의 얼굴빛은 즉시 파랗게 
변하며 격노로 떨었다. 그는 갑자기 돌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어디로 
갑니까, 황제 폐하?" "시베리아로!" 400명의 사람들이 불평 한마디 없이 
군대를 이루어 식량도, 병참부도, 추위에 견딜 의복도 준비하지 못한 채 
북러시아의 길도 없는 황량한 시베리아의 3,200km나 되는 고달픈 
여행길을 출발하였다. 그 후 다시는 이들에 관한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금 구레나룻
 로마 황제 칼리굴라(34--41)는 순금으로 만든 턱수염을 붙이고 대중 
앞에 서곤 했다. 그는 가는 금실로 주피터신의 동상에 나타난 턱수염과 
같은 모양으로 만든 황금 구레나룻을 가지고 있었다. 대중 앞에 설 
때는 그것을 착용하여 자신이 최고의 신과 동일하게 보이도록 했다.
 
   유유상종
 레닌은 시베리아로 유형된 죄수였는데, 그곳에서 그는 혁명 운동을 
하다가 붙잡혀온 여자 죄수와 결혼하였다.
 
 [  아들을 죽인 아버지 ]
 스탈린의 아들 제이곱이 2차 세계 대전중에 독일군에게 잡혔는데, 
스탈린은 포로 교환에 대한 독일측의 제안을 거절하고 제이곱을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죽게 하였다. 또한 러시아 황제 이반은 홧김에 자기 
아들을 죽였다.
 
   무엇이 두렵길래
 레닌의 가명의 수는 151개나 되었다. 그의 본명은 Vladimir ILyich 
ULyanov이다.
 
   레닌의 사인
 소련의 창건자인 레닌의 공식적인 사인은 중풍에 의한 마비였다. 
그러나 최근 소련 연방제국의 붕괴와 새로운 체제의 탄생으로 레닌의 
죽음을 둘러싼 70년 동안의 베일이 하나하나 벗겨지고 있다. 레닌의 
죽음은 마비 증세에 의한 것도 아니요, 항설처럼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극소량의 독약을 장기간 복용한 결과도 아니다. 레닌은 망명중에 어떤 
매춘녀와의 사랑에서 얻은 매독으로 정신 질환이 발생하여 죽었다.
 
 [  김일성이 덮었던 이불은 ]
 참새 턱밑 잔털만으로 만든 것으로, 70만 마리분의 참새 털이 
소모되었다.
 
   만수무강 연구소
 이 연구소는 김일성과 그의 아들 김정일의 건강 관리를 위한 
연구소이다. 이 연구소의 대외 명칭은 기초과학원이라 불린다. 이 
실험실은 약 1,500명의 의사와 각계의 권위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김일성 부자의 체질에 맞고 건강에 좋은 식종(식종), 식료, 기호 식품의 
연구 및 분석, 그리고 김부자의 나이, 체질 등이 비슷한 사람들을 엄선, 
그들을 실험 대상으로 하여 김부자의 건강에 필요한 음식물의 종류, 
양질 등을 추출한다.
 
 [  히틀러가 화가가 되었다면 ]
 히틀러는 어렸을 때부터 풍경화, 초상화를 잘 그렸다. 그는 화가가 
되기 위해서 유명한 비엔나 아트 아카데미에 시험을 보았지만 자격 
미달로 불합격되었다. 만약에 히틀러가 그때 비엔나 아트 아카데미에 
합격하였다면 오늘날 세계 역사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때 
합격이 되었더라면 히틀러는 평범한 화가로 일생을 마쳤을지도 모른다. 
히틀러가 그린 약 300점의 그림 중 12점만이 소장되어 있으며, 그 중 
4점이 미국에 있다.
 
   대학살자의 변명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태인 600만 명을 죽인 자로 1962년 
5월31일11시53분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사형되었는데, 자신은 
독일인이지만 유태인같이 보여 오해받을까 두려워서 유태인을 모조리 
죽이기로 했다고 고백하였다.
 
   대통령 암살범들의 종교
 링컨 대통령의 암살범 존 윌크스 부스, 가필드 대통령의 암살범 찰스 
J. 기토, 매킨리 대통령의 암살범 리온 체코르, 루스벨트 대통령의 
저격범 존 수랭크, 프랑스 왕 헨리 4세의 암살범들은 모두 카톨릭 
신자들이었다.
 
   갱단 두목 가족의 직업
 알 카포네는 기관총으로 수백 명을 살해했지만 미국 국세청에 제출한 
수류에는 고물상 주인으로 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는 1927년 한 해 
동안 1억500백만 달러의 매상을 올렸으나, FBI가 이 악명 높은 갱단 
두목을 잡아넣을 수 있는 근거가 탈세뿐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동생은 내브라스카주의 경찰이었고, 그의 
외아들 알버트 카포네는 꽃집을 운영했다.
 
 [  로마의 황제 네로 ]
 네로는 스승 시네카를 자살하게 했고, 영국의 왕 헨리 8세는 스승 
토머스 모어를 교수형시켰다.
 
   캄보디아는
 1975년 극좌파 공산주의자 크메르 루지가 이끄는 공산군에게 
점령되었다. 크메르 주지는 자신과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마구 학살하여, 캄보디아 인구의 거의 1/4을 죽였다. 불교를 탄압하기 
위해 죽이거나 축출한 승려의 수만도 60,000명이었다.
 
 [  살인, 살육의 대가 ]
 헤롯 왕은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의 아기 수백 명을 죽였다. 그는 첫 
아내가 낳은 장남 안티파테르와 아내 마리아므네, 그녀가 낳은 두 아들, 
그리고 장모까지 죽인 살육의 대가였다.
 
   사막의 여우 롬멜
 롬멜은 1944년 10월14일 죽었다. 그는 전투중에 영국 비행기의 공격을 
받아 죽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가 히틀러 암살 기도에 
가담한 것이 드러나 히틀러가 보낸 청산가리를 먹고 죽었다. 히틀러는 
그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르게 했다.
 
   유명한 무법자의 여생
 제시와 제임스 형제는 미국 서부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들은 강도, 살인 등의 범죄 행위를 청산하고 극장의 도어맨으로 
일하면서 32년 동안 매우 평화로운 여생을 보냈다.
 
 [  호지명의 전직 ]
 호지명은 유명한 런던 칼톤 호텔에서 버스 보이로 시작, 접시 닦이 및 
요리사가 되었다가 주방장으로 승진하여 일한 적이 있다.
 
 [  악명 높은 자들의 어머니 ]
  "한나 웨터맨 아놀드"
  (미국 독립 전쟁 때의 반역자 베네딕트 아놀드의 어머니)
 좋은 집안 출생의 한나는 불행히도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그 후 첫 남편에게서 물려받은 어마어마한 유산을 
가지고 베네딕트 아놀드 3세와 정식으로 결혼을 했다. 그러나 남편 
아놀드는 게으르고 낭비벽이 심한 사람이었다. 그의 방탕한 생활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고 자연스럽게 한나는 한 가정의 가장 역할을 
해야만 했다. 평소 그녀를 신앙심 깊고 끈기 있는 사람이라 여기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불쌍하게 여겼다. 그녀의 아들 베네딕트 
아놀드 4세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한나는 아들에게 
신앙인답게 올바르게 행동하라고 가문의 편지를 써주곤 했었다. 그녀는 
7명의 자녀 중 5명을 황혈 전염병으로 잃었다. 그 이후부터는 죽음에 
대해서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들 베네딕트와 
딸에게 언제라도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대비해야 한다고 항상 이르곤 
했는데, 베네딕트가 18살 때 그녀는 생을 마쳤다.
  "아그립바 더 영거"
  (악명 높은 로마 황제 네로의 어머니)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난 아그립바는 그의 오빠 칼리굴라와 결혼했다. 
근친상간이라 비난을 많이 받은 결혼이었지만 어쨌든 그 사이에서 
루시우스 도미티우스 아에노바부스(후에 네로라고 불렸다)가 태어났다.
 두번째 남편과의 사별 이후 곧 삼촌뻘인 클로디어스 1세 황제와 
세번째 결혼을 했다. 그러나 황제와의 결혼을 위해 둘째 남편을 독살한 
혐의를 받았다. 또한 그녀는 클로디어스에게 온갖 애교를 부려 결국엔 
자신의 아들 네로를 왕위 계승자로 굳히는데 성공했다. 네로가 16세 
되던 해, 그녀는 클로디어스를 독살했다. 네로를 한시라도 빨리 황제에 
앉히려는 그녀의 간교한 술책이었다. 황제에 오른 네로는 그녀의 
끊임없는 간섭에 분개한 나머지 자객을 시켜 그녀를 암살했다.
  "메리 앤 훔즈 부스"
 (아브라함 링컨의 암살범 존 윌크스 부스의 어머니)
 런던의 꽃 파는 소녀 메리 앤은 재능은 있지만 사생활이 
지저분한 제누스 부루터스 부스를 18세 때 만났다. 이미 법적으로 
기혼남인 제누스였지만, 그는 이 상냥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메리 
앤에게 정신없이 빠져버렸다. 1821년, 그는 메리 앤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메리 앤은 10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존 윌크스는 그 중 
아홉번째로 제일 사랑받는 아들이었다. 비록 미국에서는 메리 앤이 
제누스의 법적 아내로 되어 있었지만, 영국에서는 호적상 제누스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여자였다. 그러나 그의 이중 생활이 드러나게 되자 
제누스는 전처와 이혼하고 메리 앤과 정식으로 결혼을 했다. 이때가 
1846년이었다. 존 윌크스는 어머니 한나를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그 
마음은 그가 아브라함 링컨을 암살한 이후 죽기 직전에 쓴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어머니에게 말해주시오. 어머니에게 말해주시오. 난 나의 
조국을 위해 죽노라고."
  "테레사 카포네"
 (미국 갱스타 알 카포네의 어머니)
 이탈리아 태생인 
테레사는 1893년 남편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했다. 뉴욕에서 테레사는 
봉제 공장 직공으로 일하면서 그 당시 이탈리아의 식민지였던 
브룩클린에 살고 있던 가족들의 생계를 도왔다. 그녀의 네번째 아들 
알폰소는 1920년 아버지(테레사의 남편)가 돌아가신 이후부터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해야만 했다. 이때 이미 알 카포네는 지하 조직을 만들고 
암흑의 세계에 깊게 물들어 있던 상태였다. 알 카포네가 수감되어 있을 
때 테레사는 규칙적으로 아들을 방문했으며 언제나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알 카포네, 넌 참 착한 아이야!"
  "마리 엘레노아 마이에 드 까르망"
  (이름난 난봉꾼이자 작가인 매저퀴 드 사드의 어머니)
 드 사드 가문과 관련 있는 황실 가문의 
시녀였던 마리 엘레노아는 1733년 드 사드 백작과 결혼했다. 그리고 
1740년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매저퀴 드 사드였다. 그러나 그녀와 
백작과의 사이는 너무 나빠져서 1750년 그들은 파경에까지 기르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홀로 파리에 있는 카메리트 수녀원으로 떠났다. 
그리고 1770년 그곳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한편 그녀의 아들은 소문난 
난봉꾼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수차댜 왕에게 간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저퀴 드 사드는 주색, 난봉으로 귀족의 품위를 떨어 뜨렸다는 이유로 
감옥에 수감되곤 했다. 마리 엘레노아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특별히 임종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부랴부랴 수녀원으로 떠났지만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의 어머니 
마리 엘레노아는 생을 마친 후였다. 다시 감옥에서 13년을 복역하는 
동안 매저퀴는 많은 책을 저술했는데, 그 책들로 인해 그는 매우 나쁜 
평판을 얻었다.
  "에칼텔리나 게라드제 쥬가 쉬빌리"
  (소련의 지도자 조셉 스탈린의 어머니)
 에카텔리나는 1856년 조지아라는 마을에서 노예의 딸로 
태어났다. 베조 쥬가 쉬빌리와 결혼한 후 그녀는 세탁소와 봉제 공장의 
직공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도왔다. 그녀의 아들 조셉이 태어 났을 때 
에카텔리나는 조셉이 신부가 되기를 원했었다. 따라서 조셉이 신부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에카텔리나는 러시아어를 배우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아들이 
정권을 잡은 이후에도 코사서스에서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제렐다 콜 제임스"
 (미국의 악명 높은 갱 제시 제임스의 어머니)
 17세의 나이에 결혼했던 제렐다는 1840년대초, 남편 로버트와 
서쪽으로 이주하던 중 미주리에 있는 자작 농작에 정착했다. 제시는 
그들의 두번째 아들이었다. 그러나 몇 해 지나지 않아서 남편 로버트가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 후 제렐다는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심스라는 
사람과 결혼했으나 곧 헤어지고 말았다. 곧 이어 의사 루벤 세무엘과 
세번째 결혼을 했는데, 그 결혼은 그녀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아이들의 아버지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후에 
제시와 프랭크(제시의 남동생)가 은행을 털고 금품을 빼앗는 강도짓을 
일삼을 때에도 그녀는 그 아들들이 언젠가는 올바르게 될 거라고 
믿었다. 신앙심이 강했던 그녀는 언제나 아들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몇 
년 후 어떤 신문 기자가 악명 높은 아들을 둔 그녀와의 인터뷰를 
기사화한 적이 있었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그녀의 몸가짐은 
단정했으며, 나긋나긋 말하는 언행과 자태에는 우아함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때때로 평온한 얼굴에 드리워지는 수심에 찬 표정이 엿보였다."
  "로자 마티니 무솔리니"
  (이탈리아의 지도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어머니)
  1858년 조그만 이탈리아 마을에서 태어난 로자 마티니는 
상냥하고 자비로운 여인이었다. 도비아라는 마을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중, 그녀는 알렉사드로 무솔리니라는 대장장이를 만나 결혼했다. 그들의 
첫번째 아들인 베니토 무솔리니는 언제나 말썽만 피우고 로자에게 
근심만 안겨주는 골칫거리였다. 1905년 그녀는 수막염에 걸려 죽고 
말았다.
 
 *이 글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어머니들; 유명한 자식을 둔 100인의 
어머니들" (리차드 에릭, 뉴욕: Paddigton, 1976) 이란 책을 권하고 
싶다.

 [    제15장 유명 인사, 인물, 천재, 인간가족 ]
 [    제15장-유명 인사 ]
 [  맥아더 원수를 울게 한 필리핀 정부 ]
 필리핀 헌법에는 군대 사열 점호시 반드시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이름을 부르도록 명시되어 있으며, 호명을 하면 대답도 하도록 되어 
있다.
 1942년 일본군에게 밀려난 맥아더는 필리핀을 떠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그가 했던 유명한 맹세가 있었는데, 이것은 "나는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의 맹세는 결국 1944년 10월에 
실현되었는데, 맥아더는 그의 군대를 이끌고 무인도에서 
고군분투하다가 필리핀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9개월 후 필리핀 국회는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에게 존경과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하여, 필리핀 육군 보병중대 열병식 때의 점호시 그의 
이름이 호명되도록 한 것이다. 즉 그의 이름이 불려지면 고참 하사관이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맥아더는 소년 시절 이후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1961년 맥아더는 다시 한번 필리핀을 방문하였다. 81세의 노병은 
클라크 공군 기지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그를 가장 
감동시켰던 것은 마치 자기가 약속을 지켰듯이 필리핀 정부가 아직도 
그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때 맥아더는 다시 한번 감회의 
눈물을 흘렸다.
 
   3의 규칙
 비스마르크는 대학에서 3개의 학부 과정을 수학했고, 3국가의 대사로 
일했으며, 3왕을 섬겼고, 3전쟁에 참전했고, 그가 타던 말 중 3필이 
죽음을 당했고, 3평화 조약에 서명했고, 3국 동맹을 수립했으며, 3개의 
이름(Bismark, Schoenhausen, Lauenburg)과 3개의 작위(백작"Count", 
공작"Duke", 공작"Prince")를 받았고, 3번의 암살 기도를 당했고, 3번 
제위 했으며, 3자녀의 아버지였다. 그의 코트 소매에는 3잎 클로버가 
3잎 떡갈나무 잎과 함께 수놓여 있었다.
 
 [  나폴레옹이 입양한 아이들 ]
 1805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수천 명의 아이들을 입양하였다. 
그것은 1805년 12월 2일 오스테를리츠 전투 직후의 일로, 그 전투는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연합군을 완전히 바보로 만들면서 승리했던 
그의 가장 빛나는 전술의 결과였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연합군은 
90,000명 중 26,000명이라는 사상자를 냈고, 프랑스는 68,000명 중 
9,000명이라는 사상자를 기록했다.
 그 다음날 나폴레옹은 자신의 병사들을 격려하는 연설을 했다. 
"제군들, 조국의 행복과 번영을 보장할 필요한 모든 것이 성취되었을 
때, 짐은 여러분을 이끌고 우리의 조국 프랑스로 돌아갈 것이다. 
국민들은 환호하며 여러분을 맞을 것이고, 여러분이 '나는 오스테를리츠 
전투에 참가했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만 해도 국민들은 '당신은 참으로 
용감한 사람입니다'라고 답변할 것이다."
 그리고 파리로 돌아가는 그날은 휴일이 될 것이며, 오스테를리츠 
전투에서 전사한 모든 병사의 아이들을 자신이 입양하여 양육 및 
교육을 시킬 것이며, 소녀들을 위해서 장래의 남편 감까지 신경을 
써줌은 물론, 소년들의 직업까지 국가에서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이에 덧붙여 그는 자신의 새 아이들에게 그들의 이름에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덧붙이는 것도 허용하겠다고 말했다.
 
   너무도 솔직한, 인간 프로이드
 프로이드는 비록 제자이긴 하지만 언제나 빅토르 타우스크를 
부러워했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질과 그의 아름다운 애인 
때문이었다. 그러나 타우스크는 자살을 했다. 타우스크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프로이드는 이렇게 말했다. "난 정말로 타우스크의 
죽음이 슬프지 않아! 겉으로는 언제나 타우스크를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깔보는 척했지만, 사실상 그는 언젠가 내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임을 예감했었지! 그는 귀재였어!"
 
   아직도 이들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마틴 루터"
 그는 표리 부동한 이중 인격자였다. 1525년, 독일의 농부들이 기본 
권리를 요구하며 전국적으로 시위를 벌였을 때, 루터는 "떼거리 
도둑놈들, 떼거리 살인자들에게"라는 글을 통해 신랄하게 농부들을 
비판했었다. 또한 노예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불평하던 부인에게 
"파라오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룬 것처럼 터키 식으로 
길들여야 해"라고 응수했다. 그가 말한 터키 식이란 '많이 부려먹고 
많이 먹이면 된다'는, 즉 노예를 동물 취급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또한 
그는 종교개혁이 인정된 이후에도 유태인들이 종교를 개종하지 않자, 
이에 분개한 나머지 유태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추방시키고 그들의 
시나보그를 불태워야하며, 그들의 책들은 압수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조지 워싱턴"
 미국 독립 전쟁시의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은 매달 지급되는 보너스 
500달러를 거절하고 오직 수당(봉급)만 받았다. 1775년부터 1783년까지 
8년 동안 매달 보너스를 받지 않았다 해도 이미 그는 40만 달러를 
금고에 보관하고 있었다(그 당시의 40만 달러임을 주목하라). 그도 그럴 
것이 의회에서는 총사령관이 깊이 관여하는 외교적, 군사적, 사회적 
목적으로 사용할 비용에는 기꺼이 결재를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많은 군사비 및 외교비 지출로 정식 군인들에게는 연금이나 보너스를 
지불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1789년, 제 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 
때도, 워싱턴은 한사코 보너스 받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국회는 
이번에는 연봉 25,000달러의 보너스를 워싱턴에게 주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워싱턴은 그들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조지 워싱턴의 
수당급"이란 책의 저자 마빈 키트먼은 "그 당시 25,000달러는 경제를 
쥐고 흔들 수 있는 큰돈이었다"고 말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1837년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매사추세츠 콩코드에서 학교 
선생님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의 수업은 활기차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모든 학생들은 그를 좋아했다. 그러나 수업을 
시작한 2주일이 지난 어느 날, 학교 교장은 소로우에게 학생들을 
때리지 말라고 타일렀다. 본래 학생들에게 회초리조차 들지 않았던 
소로우는 이 말에 분개하여 무작위로 6명의 학생들을 불러내어 호되게 
매질한 후 사표를 제출했다. 6명 중 일부 학생들은 소로우가 단지 
분풀이로 매를 휘둘렀다는 사실에 매우 분개하였다.
  "차이코프시키"
 차이코프스키는 강렬하게 타오르는 동성애의 충동을 누르기 위해 
자신의 제자 밀유코바와 결혼하였다. 하지만 그의 동성애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그녀와 이혼하고 말았다. 
 청순하고 아름다운 처녀 밀유코바는 차이코프스키를 사랑했지만 
결혼의 파탄으로 입은 충격 때문에 자포자기하여 수많은 정사를 갖고 
많은 사생아를 낳았다. 뒤에 정신병자 수용소에 갇혔다가 거기에서 
죽은 밀유코바를 생각할 때 당신은 아직도 차이코프스키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하멜록 엘리스는 제6번 교향곡 '비창'을 'Homosexual 
Tragedy'라 부른다.
  "토머스 에디슨" 
 '윤리는 일과 무관하다'는 그의 철학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지키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에디슨은 그의 직공들에게 위험하고 
지저분한 환경 속에서 밤늦도록 일을 시켜놓고도 최저의 임금만을 
지불했다. 또한 실험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던 에디슨은 가족들의 
근황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극심한 외로움으로 
고통받았으며, 큰아들인 토머스 알바주니어는 술주정뱅이에 우울증 
환자였다. 결국 그는 자살했다.
  "마릴린 먼로"
 195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육체파 여배우 마릴린 먼로는 1954년 
야구계의 전설 조 디마지오와 그해 안에 이혼하고 말았다. 또 1956년에 
유명한 극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했지만 1년도 못 되어 이혼했다.
 그뒤 여러 유명한 인사들과 관계를 가졌는데, 영화 배우 프랭크 
시나트라뿐 아니라, 존 F. 케네디 대통령,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 
의원 등과도 관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는 
20세기 최고의 과학자 아인슈타인과도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편력에도 불구하고 참된 사랑이 없어 괴로워하다가 
36세때 텅 빈방에서 바으비투르산염을 물에 타 마시고 죽었다.
  "로버트 에드원 피어리"
 전 생애를 오로지 북극의 빙판 위에 정복 깃발만을 꽂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탐험가 피어리는 은공도 모르는 냉혹한 인간이었다. 1898년 
출간된 "북극으로"라는 책은 초기의 북극 탐험의 기행문을 엮은 
것인데 그 안에는 목욕을 하고 있는 에스키모 여인의 누드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 여인 알라까신와는 피어리의 정부로서, 책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서 피어리가 몰래 찍은 사진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피어리의 
아들까지 낳았었다. 그 당시 피어리의 아내 조세핀은 미국에서 
피어리의 딸들을 정성스럽게 키우고 있었다. 피어리의 욕망에 짓밟힌 
또 다른 희생양은 바로 메튜 A. 헨슨으로, 피어리는 평소 헨슨을 
'오른팔'이라고 불렀었다. 그러나 근 22년 동안 피어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던 헨슨은 발길에 돌이 차이듯 아주 가볍게 
해고당했다. 헨슨은 남은 생애를 비천한 생활로 근근히 이어가다가 
1955년 가난에 찌들려 죽고 말았다.
  "T. E. 로렌스"
 1917년, 로렌스는 터키 군인들에게 부당하게 구타당했고 성적으로도 
폭행 당했다. 그러나 그때 겪었던 경험들에 대해 "쾌락적이었고, 또한 
따스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결국 1923년 그는 '규칙적으로 맞고 
싶은 충동'을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를 따르던 존 
부루스를 돈을 주고 고용해서 철줄과 자작나무 가지고 자신을 
매질하도록 시켰다.
  "존 F. 케네디"
 그의 아내가 백악관을 비울 때면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은밀히 비밀 
파티를 열곤 하였다. 그의 파트너는 하녀, 비서들, 혹은 1회용(?) 
소녀들, 혹은 마릴린 먼로 같은 영화 배우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다양하였다. 그때를 회상하며 존 F. 케네디와 성관계를 가졌던 어떤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여자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어요. 그저 
성욕의 대상으로만 여겼지요. 언제나 이겨야 하고 움켜쥐어야 하듯, 
여자도 그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눈에 들어 그의 침실로 이끌렸던 많은 
여성들을 지켜보았던 대통령의 친구 조지 스메더는 "존은 내가 알던 
모든 사람들 중에 최고의 섹스광이었어"라고 말했다.
  "마리 퀴리"
 퀴리 부인과 란즈빈 교수와의 러브 스토리는 1911년 11월 파리 신문에 
헤드랑인으로 나간 기사였다. 곧 프랑스의 신문들은 미망인 마리 
퀴리가 4명의 아이가 있는 폴 란즈빈 교수와 사랑의 행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실증을 들어 그들의 관계를 폭로했다. 그녀의 아파트 
앞에 군중들이 몰려들어 "외국년! 어서 떠나라!" "남의 남편을 훔친 
여자!"라고 외치고 있을 때, 퀴리 부인은 자신이 노벨상의 2대 
수상자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녀의 많은 동료들은 그녀의 노벨상 
수상은 과학적 업적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처지에 동정을 
사서 얻어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알버트 슈바이처"
 희생적인 이미지와는 반대로, 실제로 슈바이처는 항상 자신의 건강과 
식단에는 조심하는 반면, 환자들이나 병원의 스텝들은 단백질 함량이 
적은 음식을 먹게 하고, 특히 환자들에게 오염된 물을 공급하기도 
하였다. 또한 많은 의사들과 그의 병원을 찾았던 아프리카인들은 
슈바이처는 불친절했고 흑인들을 무시했다고 말했다. 어떤 
아프리카인은 "슈바이처 박사의 병원에서 굴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거이 낫다"고까지 말했다. "단순한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치료 방법이 
어울린다"고 떠들고 다녔던 슈바이처는 세계 각국에서 보내준 엄청난 
기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으로 병원에 필요한 것들조차 
개선시키지 않았다.
  "찰스 아우구스투스 린드버그"
 1927년 정부 비행기 조종원인 윌리엄 P. 멕크렉큰은 린드버그에게 더 
이상 비행을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성격이 너무 경솔하고 무분별하여 
비행기 추락 사고를 일으켰음은 물론 낙하산 탈출만도 4번이나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린드버그의 고용주가 또다시 비행 금지를 통보하자 
멕크렉큰의 마음은 그만 누그러져, 린드버그가 단독으로 대서양을 
횡단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후에 린드버그가 나치군을 옹호했을 
때 모든 미국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2차 세계 대전 참전시 미국이 
연합군에 합류한 것은 대세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했던 그들의 교활한 
두뇌 회전 때문이었다고 린드버그는 믿고 있었다.
 
 [  유명한 불면증 환자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그는 하루에 3-4시간의 수면을 취했다.
  "여배우 카트린느"
 깊이 잠들고 싶을 때 그녀는 머리를 곱게 빗어내리고 편한 자세로 
침대에 눕곤 하였다.
  "셔리 치점"
 취침 전 긴장을 풀기 위해 그녀는 꼭 따뜻한 물로 목욕을 했다.
  "토머스 에디슨"
 수면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어려운 연구를 했거나 오랫동안 
작업실에서 일했을 경우에 에디슨은 30분-1시간 가량 꼭 낮잠을 자곤 
했다.
  "원스턴 처칠"
 그의 침실에는 2개의 침대가 있었다. 그는 둘 중 어느 한 침대에서 
잠을 이루지 못할 때는 다른 침대로 옮겨가 잠을 청했다.
  "알렉산더 뒤마 페르"
 의사의 충고대로 그는 매일 아침 7시에 파리의 개선문 아래에서 
사과를 먹었는데, 이것은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취침하는 습관을 
길러주려는 의사의 음모(?)였다. 
  "찰스 디킨스"
 잠자는 자세와 침대 위치가 불면증을 좌우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찰스 
디킨스는 침대 머리맡이 북쪽으로 향했는지 체크한 후 침대에 올라 
항상 양팔을 쭉 양옆으로 벌렸을 때 손가락 끝에서 침대 끝까지의 
거리가 양쪽이 똑같게 되는 위치에 누웠다.
  "벤자민 프랭클린"
 잠이 오지 않을 때 벤자민 프랭클린은 애써 잠을 청하지 않고, 대신 
침대에서 일어났다가 한참 후 침대 시트가 차가워졌을 때 다시 잠을 
청했다.
  "케리 그랜트"
 이 영화 배우의 수면제는 '오래 된 영화'였다.
  "프란츠 카프카"
 작품이 구상 중에 있다거나 원고가 많이 밀려 있을 때 카프카는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일기장에 그는 "잠을 푹 자기 위해 필요한 
테크닉"이라는 글을 적어놓았다. "깊이 잠들려면 가능한 한 최대 
한도로 나 자신을 무겁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난 양팔을 
교차시킨 후 각각 반대쪽 어깨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마치 등에 
꾸러미를 메고 있는 군인처럼 꾹꾹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흑인으로 유명한 사람들
  "한니발"(BC 247-183)
 위대한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은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와 턱수염, 
게다가 굉장히 검은 피부를 지녔다. 그 당시 대부분의 카르타고인들은 
샘족과 아프리카 흑인의 혼혈아였다.
  "존 제임스 오디봉"(1785-1851)
 유명한 예술가이자 조류학자인 그는 레 카이에, 아이티(전 
산토모밍고)에서 프랑스인 선장과 크레올인 소녀 노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생모는 그를 낳은 직후 죽었다. 따라서 오디봉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프랑스로 건너가 계모 아래서 성장했다.
  "알렉산더 세르게비치 푸시킨"(1799-1870)
 러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 푸시킨은 흑인 혼혈아(흑인의 피를 
1/8받았다)였다. 그의 조부인 흑인 러시아 장군 아브라함 페트로비히 
한니발은 그의 나이 8세 때 출생지인 아프리카에서 생포되어 러시아 
황제 피터 대제의 선물로 바쳐졌다.
  "알렉산더 뒤마 페르"(1802-1870)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저자인 페르는 '마르퀴 드 라파이레테리'와 
'마리에 카세트 뒤마'라고 불리는 산토 도밍고인 노예의 손자이다. 
백인과 흑인의 1대 혼혈아인 그의 아버지는 군대에 입대했을 때 
뒤마라는 이름을 받았다. 
  "알렉산더 뒤마 피스"(1824-1895)
 뒤마 페르의 아들(따라서 그도 혼혈아이다)인 그는 스스로를 
희생시키는 매춘부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카멜리아의 연인"을 
1852년에 희곡화시켰다. 그 작품은 베르디의 '라 트라비타'에 영감을 
주었고, 1937년 영화 배우 그레타 가르보는 그 작품에서 열연했다.
  "파티 우스티노프"(1921-)
 재주 많은 배우이자 프로듀서인 그에게는 50% 아프리카 흑인의 피가 
흐르는 할머니가 있었다. 우스티노프는 "친애하는 나에게"라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크리스천 세례명이 막달리나인 나의 
할머니는 영국군과 에티오피아군이 맞선 막달라 전쟁중 텐트 안에서 
태어났다... 나의 막내 이모할머니는 최근까지도 '헤일 세레세'의 
저택에서 몸종으로 일했다..."
   "페르난도 1세"(1345-1383)
 페르난도 1세는 포르투갈의 귀족 레오노라 텔레에게 반하여 당시 
애인이었던 카스틸 왕의 딸을 배신한 사건으로 인해 '디 
인콘스탄트(변덕스러운 사랑)'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는 단지 
여자 관계뿐 아니라 영국과 카스틸에 대해 정치적으로도 변덕스러운 
기질을 보였다.
  "찰스 6세"(1362-1422)
 찰스 6세는 12세에 왕위를 계승할 때까지만 해도 애정을 듬뿍 받고 
있었다. 그러나 1392년 지독한 병을 앓으면서 온몸이 불덩어리 같고, 
갑작스런 경련을 일으키는 증상을 보였다. 그때 그는 연속적으로 
44번의 발작을 일으켰었다. 이런 광기 증세는-때때로 이유 없이 옷을 
찢고 가구들을 불태우곤 했다-재임 30년 동안 간헐적으로 그를 계속 
괴롭혔다.
  "이반 4세"(1530-1584)
 젊은 지도자 이반 4세는 동물들을 태우는가 하면 지붕 위에서 개들을 
떨어뜨리는 등의 악취미를 즐겼으며, 그가 통치하던 동안 사형과 
고문은 지극히 일반적인 형벌이었다. 1570년 그는 노브고로드를 향해 
전진하던 중 5주일 연속의 술잔치에서 수천 마리의 짐승을 죽였으며, 
꽁꽁 얼어붙은 강물에 던져진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1580년 그는 
극도로 미친 상태에서 자신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하였다. 
 
   뉴턴의 국회 활동
 아이작 뉴턴이 국회의원을 지낼 때 의회에서 행한 유일한 발언은 
"창문을 열어 주세요"였다.
 
 [  양손잡이 천재들 ]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왼손으로 글을 쓸 수 
있었으며, 미국의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도 오른손으로 라틴어를, 
왼손으로 그리스어를 쓸 수 있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유기오 미시마
 그들은 둘 다 일본 최고의 소설가였다. 야스나리는 1899년, 미시마는 
1925년에 태어났다. 1968년 야스나리의 "설국"이 서정적인 
대표작으로서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 미시마는 나체 사진이 잡지에 
실려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1972년 야스나리는 미시마에게 가야 할 
노벨상을 자신이 받았다는 죄책감과 열등감으로 자살했고, 미시마는 
1970년 군국주의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 자신이 이끄는 80명의 사설 
군대에서 뽑아낸 미소년들로 하여금 자신의 배를 찌르게 하여 죽었다. 
야스나리는 평범했지만 미시마는 천재였고, 야스나리가 도덕가인 데 
비해 미시마는 동성 연애자였다. 미시마는 야스나리의 제자, 야스나리는 
미시마의 스승이었다.
 
 [  불구의 몸을 극복한 유명 인사들 ]
  "제이 J. 아메스"(1937)
 그는 12세 때 양손이 잘리는 불운을 겪었다. 후에 그는 최고의 
사격수가 되었는데, 물론 총을 쏠 때에는 특별히 그에게만 적합한 
후크를 이용했다.
  "시라 베르나드트"(1844-1923)
 1905년 사고로 절름발이가 됐던 그녀의 다리는 1914년 완전히 
절단되었다. 그대로 죽기 직전까지 무대에서 열연하는 타고난 
여배우였다. 많은 프랑스인들은 그녀를 신의 사라, 즉 프랑스 최고의 
배우라고 극찬했다.
  "조지 루이 보르쥐"(1899)
 위대한 아르헨티나의 싱니이자 소설가, 비평가였던 그는 맹인이었다. 
그의 많은 책들은 영문판으로 번역되었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1770-1827)
 32세 때는 반귀머거리였으나, 46세에는 완전히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세상에 알려진 베토벤의 위대한 작품들은 주로 중년 이후에 작곡된 
것이었다.
  "라우라 브리드즈맨"(1829-1889_
 귀머거리에다 장님이었던 그녀는 당시 퍼키슨 맹인 교육 기관장이었던 
사무엘 G. 호우 박사가 맹인들을 위해 고안했던 알파벳으로 교육받은 
첫 세대였다. 후에 라우라는 공립학교의 가정 선생님이 되었다.
  "미첼 세르반테스"(1547-1616)
 1571년 레판도 전쟁에서 왼쪽 팔을 잃은 후 농사를 지으면서 초야에 
묻혀 살았는데 "동 키호테"등의 작품들로 스페인 문학의 기수가 
되었다.
  "호머"(BC 850?)
 서사시의 거장 호머는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지은 맹인 시인이다.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는 세계 문학에 커다란 충격을 준 걸작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
 39세 때 척수성 소아마비로 양쪽 다리가 마비되었다. 후에 그는 뉴욕 
주지사가 되었으며, 4번이나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조셉 퓰리처"(1847-1911)
 저널리스트이자 저술가, 국회의원이었던 그는 40세에 맹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그 후 24년 동안 여러 활동을 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퓰리처상'도 그의 업적 중의 
하나이다.
  "찰스 스테인메츠"(1865-1923)
 태어날 때부터 곱추였던 그는 유명한 기계 발명가가 되었으며(General 
Electric Co.에만도 200개 이상의 특허권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유니온 대학의 교수였다.
  "제임스 터버"(1894-1961)
 소년 시절 불의의 사고로 한 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가, 성인이 된 후 
완전히 맹인이 되었다. 그는 "New Yorker" 잡지의 주필이었고 많은 
책을 저술했으며, 또한 만화 작가로도 유명했다.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1864-1901)
 14세 가을, 앉은뱅이가 된 후 그의 성장은 정지되었다. 선천적으로 
예술가의 기질을 타고난 그는 석판화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모린 루즈 
카바레에서 선보였던 석판화 작품들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헨리 비스카르디, JR"(1912)
 다리 없는 불구로 태어난 그는 Human Resources Center의 의장이자 
아빌리티스 기관의 창시자였다. 그는 13개의 학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9권의 책을 저술했다. 또한 신체 장애자들을 위한 정부 기관의 
의장이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조직의 멤버였다.
 
 [  유명한 사람들의 IQ ]
 이름 - 직업 - IQ
 1. 존 스튜어트 밀 - 작가, 경제학자 - 190
 2. 요한 볼프강 괴테 - 시인 - 185
 3. 토머스 모어 - 시인, 작가 - 170
 4.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작곡가 - 150
 5. 조지 로드 바이런 - 시인 - 150
 6. 토머스 제퍼슨 - 미국 대통령 - 145
 7. 나폴레옹 - 프랑스 황제 - 140
 8. 리차드 바그너 - 오페라 작곡가, 시인 - 135
 9. 찰스 다윈 - 진화론자 - 135
 10. 마노르 드 발자크 - 소설가 - 130
 11. 아이작 뉴턴 - 수학자 - 130
 12. 조지 워싱턴, 아브라함 링컨 - 미국 대통령 - 125
 13. 요한 세바스찬 바흐 - 작곡가 - 125
 14. 하이든 - 작곡가 - 120
 15. 마틴 루터 - 종교 개혁가 - 115
 16. 코페르니쿠스 - 천문학자 - 105
 
   유명한 도서관원들
 바람둥이 카사노바는 보헤미아에 있는 어느 도서관에서 13년 동안 
일했다. 모택동도 북경 대학의 도서관에서 일한 적이 있고, 피어스 11세 
역시 미란에 있는 앰브로시안 도서관과 바티칸 도서관에서 11년 동안 
근무하다가 교황이 되었다. 
 
 [  결혼을 많이 한 유명한 사람들 ]
 1. 태국의 시암 왕("왕과 나"의 실제 모델) - 9,000명의 아내와 첩들
 2. 우간다의 무테사 왕 - 7,000명의 아내
 3.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 - 700명의 아내
 4. 바버리의 카헤나 여왕 - 400명의 남편
 5. 섹스니의 아우구스투스 - 365명의 아내
 6. 카메룬의 혼 오브 비콤 - 100명의 아내
 7. 영국의 테레사 번 - 61명의 남편
 8. 미국의 조셉 스미스 - 49명의 아내
 9.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반-사우드 - 35명의 아내
 10. 미국의 브리감 영 - 27명의 아내
 11. 로마의 히에로니무스 - 21명의 아내
 12. 미국의 글린 드 모스 울프 - 19명의 아내
 13. 미국의 베버리 N. 아베리 - 16명의 아내
 14. 미국의 아이크 워드 - 16명의 아내
 15. 영국의 에드워드 티취 - 14명의 아내
 16. 미국의 마르타 제인 부르크 - 12명의 아내
 17. 미국의 토미 만빌레 - 11명의 아내
 18. 미국의 키드 멕코이 - 10명의 아내
 19. 멕시코의 판초 빌라 - 9명의 아내
 20. 미국의 마리아 맥도날드 - 8명의 남편
 21. 미국의 아티 샤우 - 8명의 아내
 
 [  독신으로 산 유명한 사람들 ]
 1. 제임 아담스: 미국인, 사회 인보 사업가 *인보사업: 빈민가에 
정주하여 그 지역의 향상을 도모하는 복지 사업.
 2. 수잔 B. 안토니: 미국의 여성 운동가
 3. 제인 오스틴: 영국의 소설가
 4. 루드비히 반 베토벤: 독일의 작곡가 
 5. 엘리자베스 블랙웰: 미국의 물리학자
 6. 제임스 뷰캐넌: 미국의 대통령
 7. 프레드릭 쇼팽: 폴란드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8. 에밀리 디킨슨: 미국의 소설가
 9. 엘리자베스 1세: 영국과 아일랜드의 여왕
 10. 에드거 후버: 미국 전 FBI 국장
 11. 헨리 제임스: 영국의 소설가
 12. 잔다르크: 백년 전쟁(1337-1453) 때 오를레앙의 영국군을 격파하여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출한 프랑스의 여걸
 13. 찰스 램: 영국의 수필가
 14. 마리아 몬테소리: 이탈리아의 정치가, 교육가
 15. 랄프 네이더: 미국의 소비자 보호 운동가
 16. 아이작 뉴턴: 영국의 물리학자, 수학자
 17.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영국의 간호사, 병원 시설 개혁자
 18. 알렉산더 포프: 영국의 풍자시인
 19. 세실 로도스: 남아프리카 통치자, 재정가
 20. 아더 쇼펜하우어: 독일의 철학가
 21. 아담 스미스: 영국의 경제학자
 22.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미국의 저술가
 23.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 프랑스의 화가
 24. 볼테르: 프랑스의 작가
 
   프랭클린의 얼굴들
 보스턴의 가난한 양초 제조자였던 프랭클린의 아버지는 슬하에 7명의 
아이들 중 벤자민이 목사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가난하여 10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인쇄공인 형 밑에서 견습공으로 일했다. 그는 틈틈이 
모은 돈으로 책을 사서 영문법과 대수학, 지질학, 철학, 항해술 등을 
독학으로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작가, 화가, 발명가, 정치가, 
철학자, 사업가, 과학자, 편집자로 활동했다.
  과학자 프랭클린
 번개가 전기임을 증명하고 피뢰침을 발명했다. 또 근, 원시 겸용 
안경과 흔들의자, 경제적이고 튼튼한 프랭클린 스토브를 발명하였다. 또 
공기가 나쁜 곳에서 병이 전염됨을 밝혀내고, 멕시코 만류가 존재함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문학자 프랭클린
 그의 "자서전"과 "푸어 리처드스 알머낵"은 미국의 문화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며, 그가 발표한 출판물인 "펜실바니아 가제트"는 뒷날 "더 
새레데이 이브닝 포스트(The Saturday Post)"가 되었다.
  인도주의자 프랭클린
 노예 제도를 반대하는 미국 최초의 단체에서 앞장서 일하고, 미국의 
최초의 화재 보험회사를 세웠으며, 미국 최초의 병원을 세우는 데 
원조했다. 또 미국 최초의 소방서, 대여 도서관을 세우고, 최초의 우편 
제도를 만들어냈다. 뒷날 펜실베이니아 대학이 된 학원을 세우기도 
했다.
 
 [  젊어서 죽은 사람들 ]
 모차르트와 존 키치는 35세에, 알렉산더 대왕은 33세에, 슈베르트와 
네로 황제, 발렌티노는 31세에, 셸리는 29세에, 제임스딘은 24세에, 
잔다르크는 19세에, 이집트의 투탄카멘 왕은 18세에, 안네 프랑크는 
16세에 죽었다.
 
   세르반테의 이력서
 정규 교육을 조금도 받지 못했고 이탈리아에서 악크와비바 추기경의 
하인으로 시중을 들었으며, 1571년 레반트 해전에서 부상당하여 
외팔이가 되었고 귀국 도중 흑인에게 잡혀 알제리에서 5년간 노예 
생활을 했다. 그는 시인이었으며 극작가였고 또 소설가였다. 57세까지 
수많은 작품을 썼다고 하지만 별로 빛을 보지 못했으나, 58세에 드디어 
"동 키호테"를 출간함으로써 일약 인기 작가가 되었다.
 
 [  유명한 사람들의 전직과 현직 ]
 이름 - 현직 - 전직
 1. 데시 아놀즈 - 밴드 리더 - 새장 청소부
 2. 조세핀 베이커 - 무용가 - 베시 스미스의 하인
 3. 캐롤 버넷 - 코미디언 - 안내원, 접수원
 4. 로버트 번즈 - 시인 - 소작인 농부
 5. 자니 카슨 - TV토크쇼 담당자 - 기계 기술자
 6. 페리 코모 - 가수 - 이발사
 7. 제임스 카그니 - 영화 배우 - 웨이터
 8. 숀 코넬리 - 영화 배우 - 벽돌 직공, 트럭 운전사
 9. 하워드 코셀 - 스포츠 중계 방송인 - 변호사
 10. 아인슈타인 - 물리학자- 특허품 발행하는 사무실 직원
 11. 윌리엄 포크너 - 작가 - 페인트공
 12. W. C. 필드 - 대통령 - 모델
 13. 게놀드 R. 포드 - 대통령 - 전기 직공
 14. 조지 포맨 - 권투 선수 - 목재 벌채인
 15. 지우세프 가리벨디 - 혁명가 - 선원
 16. 폴 고갱 - 화가 - 주식 중매인
 17. 아돌프 히틀러 - 독재자 - 극장 포스터 그리는 화가
 18. 밥 호프 - 코미디언 - 권투 선수 
 19. 보리스 칼로프 - 배우 - 부동산 세일즈맨
 20. 딘 마틴 - 오락 담당 연예인 - 광부 
 21. 마릴린 먼로 - 영화 배우 - 공장 직원
 22. 골다 메이르 - 국무총리 - 학교 선생
 23. 오 헨리 - 작가 - 카우보이
 24. 토머스 페니 - 정치 작가 - 콜셋 만드는 사람
 25. 빌리 선데이 - 부흥사, 복음 전도자 - 야구 선수
 26.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 작가 - 학교 선생, 연필 만들던 사람
 27. 해리 S. 트루먼 - 대통령 - 잡화상인
 
 [  사회에서 쓸모 없는 사람들은 죽어라 ]
 영국의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는 다윈 진화설의 신봉자였다. 그러나 
친절과 동정, 자비가 미덕이라고 여기는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다윈의 
진화설을 부정하고 나섰다. 
 다윈의 적자 생존의 법칙을 제시한 후 스펜서는 사회에 부담 적인 
존재이고 고용되지 않은 사람들은 부자들이 보내는 자비와 도움을 받는 
대상이 되느니 차라리 죽을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명 인사들의 진짜 이름
 공식 이름 - 진짜 이름
 1. 리타 헤이워드(Rita Hayworth) - 마가리타 캔지노(Margarita 
Cansino)
 2. 마크 트웨인(Mark Twain) - 사무엘 클레멘스(Samuel Clemens)
 3. 딘 마틴(Dean Martin) - 디노 크로세티(Dino Crocetti)
 4. 조셉 스탈린(Joseph Stalin) - 아이소시프 V. 즈후카시빌리(Isosif 
V. Dzhugashvili)
 5. 주디 갈랜드(Judy Garland) - 프란시스 굼(Frances Gumm)
 6.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 그레타 구스타프슨(Greta 
Gustaffson)
 7. 리차드 버튼(Richard Burton) - 리차드 젠킨스(Richard Jenkins)
 8. 에바 가드너(Ava Gardner) - 루시 존슨(Lucy Johnson)
 9.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 세실리아 S.A.M. 칼로거로 
파울러스(Cecilia S.A.M. Kalogeropoulus)
 10. 조셉 콘래드(Joesph Conrad) - 테오도르 J.K. 
코르제니오프스키(Teodor J.K. Korzeniowski)
 11. 오 헨리(O. Henry) -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idney Porter)
 12. 레드 폭스(Red Fox) - 존 엘로니 샌포드(John Elory Sanford)
 13.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 아돌프 쉬클그루버(Adolf 
Schicklgruber)
 14. 토니 커티스(Tony Curtis) - 버니 슈바르트(Bernie Schwartz)
 15. 소피아 로렌(Sophia Loren) - 소피아 시코론(Sofia Scicolone)
 16. 슈가 레이 로빈슨(Sugar Ray Robinson) - 스미스 워커(Smith 
Walker)
 17. 마를린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 막달린 본로시(Magdalene 
Vonlosch)
 
   노벨 문학상을 탄 작가들보다 더 유명한 작가들
 1.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
 2.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3. 앤톤 체흡(Anton Chekhov)
 4. 헨리 입센(Henrik Ibsen)
 5. 토머스 하디(Thomas Hardy)
 6.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
 7. 마크 트웨인(Mark Twain)
 8.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9. 조지 메레디스(George Meredith)
 10.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1. 알게론 스윈번(Algemon Swinburne)
 12. 조지 브랜드(Maksim Gorky)
 13. 어거스트 스트린드버그(August Stindberg)
 14. 막심 고리키(Maksim Gorky)
 15.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at)
 16. 폴 발레리(Paul Valery)
 17. 시앙 오카시(Sean O'casey)
 18.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9. 가브리엘 다눈치오(Gabriele D'Annunzio)
 20. 테오도르 드레이저(Theodore Dreiser)
 21. 베네디토 크로체(Benedetto Croce)
 22. 지그문드 프로이드(Sigmund Freud)
 23.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24. F. 스코트 피츠레랄드(F. Scott Fitzgerald)
 25. H.G. 웰스(H.G. Wells)
 26. 윌라 카터(Willa Cather)
 27. W. 서머셋 모옴(W. Somerset Maugham)
 28. 모택동
 
 [  고등학교를 중퇴한 유명한 사람들 ]
 1. 해리 벨라폰테: 미국 가수
 2. 서: 미국 가수, 코미디언
 3. 매리 베이커 에디: 미국 크리스천 사이언스 창시자
 4. 헨리 포드: 미국 자동차 제조자
 5. 조지 거쉬윈: 미국 작곡가
 6. D. W. 크리피스: 미국 영화의 선구자
 7. 아돌프 히틀러: 독일 독재주의자
 8. 잭 런던: 미국 작가
 9. 딘 마틴: 미국 연예인
 10. 빌 몰딘: 미국 만화가
 11. 로드 맥퀜: 미국 시인
 12. 스티브 맥퀸: 미국 배우
 13.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이탈리아 화가
 14. 알 파치노: 미국 배우
 15. 윌 로저스: 미국 희극 배우
 16. 프랭크 시나트라: 미국 가수
 17. 윌리엄 사로얀: 미국 작가 
 18. 마샬 티토: 유고슬라비아의 독재자
 19. 윌버 라이트: 미국의 비행기 발명가
 20. 오르빌 라이트: 미국의 비행기 발명가
 
 [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서명 ]
 역시 줄리어스 시저의 것으로, 2,000,000달러에 경매된 적이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것은 1,500,000달러에 팔렸다.
 
   사생아로 태어난 유명한 사람들
 1. 조세핀: 나폴레옹의 아내
 2. 지오반니 복카치오: 이탈리아 작가
 3. 세자르 볼지아: 이탈리아 추기경
 4. 윌리 브랜트: 독일 정치가
 5. 폴 세잔: 프랑스 화가
 6.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탈리아 화가
 7. 알렉산더 뒤마 피스: 프랑스 소설가, 희곡 작가
 8.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네덜란드의 학자, 작가
 9. 알렉산더 해밀턴: 미국 재무부의 비서관
 10. T. E. 로렌스: 영국인, 제 1차 세계 대전의 영웅, 작가
 11. 잭 런던: 미국 작가
 12. 소피아 로렌: 이탈리아의 영화 배우
 13. 램세이 맥도날드: 영국 수상
 14. 주앙 페론: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15. 프란시스코 피자로: 스페인인으로 페루를 정복한 자
 16. 헨리 M. 스탠리: 대영 제국의 저널리스트, 탐험가
 17. 어거스트 스트린드버그: 스웨덴의 희곡 작가 
 18. 리차드 바그너: 독일 작곡가
 19. 부커 T. 워싱턴: 미국 교육학자
 20. 정복자 윌리엄: 영국 왕
 
   예술가의 트리비아
 베르디는 음악에 소질이 없다는 이유로 음악 학교에 들어갈 수 
없었고, 사람들은 반 고흐의 그림에 침을 뱉기까지 했다. 
피아니스트이자 폴란드 수상 파드레프스키는 한때 피아노를 전혀 칠 줄 
몰랐고, 모차르트는 하루에 20시간씩이나 일해야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 렘브란트와 세르반테스는 죽을 때 완전히 무일푼이었다.
 
   이상한 버릇
 러시아의 피터 대제는 다리를 건널 때 몹시 두려워했고, 독일 작곡가 
바그너는 멘델스존을 연주할 때 꼭 장갑을 끼었다가 끝 난 뒤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쳐 사람들이 짓밟고 가게 하였다. 이탈리아 오페라 
가수 카루소는 어떤 일을 하든 꼭 점성가에게 물어보고서야 했고, 
아브라함 링컨은 글을 쓸 때 입술을 삐쭉거리곤 했다.
 
 [  유명 인사들의 트리비아 ]
 극단의 공포 정치로 '뇌제'라 불리는 이반 4세는 맏아들을 비롯하여 
수만 명의 사람들을 처형했지만, 50세 이후에는 종교에 귀의하여 온 
마음과 몸을 바쳤다. 그는 결국 수행자가 되어 '요나'라는 이름의 
승려로 세상을 떠났다.
 간디는 '음탕한 소설'을 읽다가 무저항주의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항상 진정제를 먹고 무저항주의를 실천했다.
 히틀러는 젊었을 때 카톨릭 신자였으며 신부가 되길 원했다. 그는 
콜로라도에 36,00,000m*3의 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무의식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가 환상적인 소설 "Finnegan's 
Wake"를 썼을 때는 한치 앞도 못 보는 맹인이었다. 
 노벨 문학상을 탄 최초의 여성, 펄벅은 영어보다 중국어를 먼저 
배웠다. 노벨문학상을 탄 "대지"의 원고는 14곳의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
 아리스토텔리스: 두 번 결혼하였고 말더듬이였다.
 딘 러스트(미국의 국무장관): 딸이 흑인과 결혼하도록 허락했다.
 발자크: 하루에 커피를 60잔정도 마시는 커피 중독자였다.
 윈스턴 처칠: 일생 동안 300,000대의 시거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아인슈타인: 대학 교수였지만 강의실에 양말도 신지 않고 들어갔다.
 시어즈(미국 백화점 왕): 시계 행상인이었다.
 
   고통 속에서 잉태된 주옥들
 아이러니컬하게도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은 그들이 병들어 고통받고 
있을 때 만들어졌다. 러시아 소설가 톨스토이는 젊었을 때 매독과 
임질에 걸려 고통받으며 "전쟁과 평화" 같은 대작을 완성했고, 프랑스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간질병과 우울증 속에서 인상적인 작품을 
그렸으며, 19세기 로드 바이런은 간질병에 걸려 선천적인 호르몬 불 
순환으로 고통을 받는 가운데 주옥같은 시를 썼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쇼팽은 결핵에 걸려 신음하고 있을 때 '24 preludes(전주곡)'을 
썼다. 영국의 시인 A. E. 하우스만은 병들어 침대에 누워 있을 때만 
시를 썼다. 
 
 [  말더듬이 웅변가 ]
 위대한 웅변가 데모스테네스(BC 384?-322)는 유년 시절 때는 
심하게 말을 더듬는 소년이었다. 따라서 말더듬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했다고 하는데, 이를테면 입안에다 자갈을 넣어둔 
채 큰 소리로 말하는 혹독한 연습을 했다.
 
 [  신문팔이로부터 ]
 프랭크 시나트라, 김우중 회장, 해리 S. 트루먼, 존 L. 루이스, 오마 
브래들리 장군 등은 신문팔이로 시작하여 나중에 유명해졌다.
 
 [  내 책도 탔는가? ]
 어머니의 집이 완전히 불타버렸다는 하인의 보고를 들은 토머스 
제퍼슨의 첫번째 질문은 "내 책도 탔는가?"였다.
 
   특무 상사 간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기 위해 무저항 운동의 기수가 된 간디는 
젊었을 때 영국군에 들어가 남아프리카의 보어 전쟁에 참가했다. 그는 
두 번이나 영국군으로부터 무공 훈장을 받았고 특무 상사에까지 
올랐다.
 
 [    제 15장 - 인물 ]
 [  대통령 특별석의 불운 ]
 1865년 4월 14일, 포드 극장의 대통령 특별석에는 4명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그 중 2명은 미치광이에 의해 살해되었고 다른 두 사람은 
후에 미쳐버렸다. 이들이 바로 링컨 대통령 부부와 육군 소령 헨리 
레스본과 그의 약혼녀 클라라 헤리스였다. 국방성 상무관인 레스본은 
뉴욕 상원의원 이라 헤리스의 양아들이었고, 클라라는 그 의원의 
딸이었다.
 오후 10시가 막 지난 순간 존 윌크스 부스가 대통령의 로열 박스로 
뛰어들어 링컨에게 총을 쏘았고 링컨은 그 다음날 아침에 사망하였다. 
레스본은 부스를 저지하다가 그가 휘두른 칼에 중상을 입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대통령의 미망인 메리 토드 링컨은 일리노이의 쿡 
카운티에서 '정신 이상자'로 판명되어 수년간 정신 병원에 수용되어야 
했다.
 1883년 헨리 레스본 부부는 세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유럽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즈음 헨리는 아내에 대해 점점 신경질적이고 질투심이 
늘어갔다. 본래 조용하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며 이해심 또한 많던 
그의 성격은 그 이면에 숨어 있던 격렬하고 위험한 성격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그들의 마지막 유럽 방문중에 그는 아내를 죽이려고 위협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그와 헤어지지 않기로 결심하고 독일의 
하노버로 그를 따라 다시 돌아갔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몇 발의 총성이 하노버에 있는 그 부부의 
침실로부터 들려왔다. 하인들이 문을 열었을 때 침대 위에는 레스본 
부인이 피를 흘리며 누워 있었고,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시신 곁에서 
가슴에 5군에의 상처를 낸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룻바닥에는 리볼버 권총과 피 묻은 단도가 떨어져 있었다. 
 레스본 부인은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고 독일의 
앙게소데에 묻혔다. 그 후 레스본은 신체적으로는 회복되었지만 정신은 
잃고 말았다. 그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중얼거리며 자기가 부인을 
총으로 쏘고 자신은 칼로 찔렀다는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했다. 그 후 
그는 힐데스하임에 있는 한 정신 병원에 수용되어 있다가 그곳에서 
1911년 8월 14일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은 그의 아내 옆에 묻혔다.
 
 [  저격수를 불어들이는 불길한 사나이 ]
 아브라함 링컨의 장남인 로버트 타드 링컨은 3명의 역대 미국 
대통령이 자객에 의해 총에 맞아 죽은 현장에 가까이 있었던 인물로서 
기억되는 비운의 사나이였다. 세 번째의 저격 사건이 있은 후 그는 그 
다음 최고 행정 집행인의 자리에 오를 사람과의 접촉을 조심스럽게 
회피하였다. 그는 "내가 있는 자리에는 대통령의 임무 수행을 방해하는 
어떤 재난이 따라다니는 것 같다"라고 말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백악관 재직시 그는 하버드에 떨어졌는데, 남북 전쟁이 
끝나갈 무렵의 몇 개월 동안 그랜트 장군의 참모로서 대장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남부군 총지휘관 리 장군이 애포매탁스에서 항복하는 것을 
목격한 후, 로버트는 1865년 4월 14일 워싱턴에 도착하였다. 그날은 
바로 그의 아버지의 생애 마지막 날이었다. 로버트는 아버지의 곁으로 
달려가 그 다음날 아침 운명하기까지를 지켜보았다. 장례식이 끝난 뒤, 
로버트는 어머니와 함께 시카고로 이주하였다. 
 그는 법학을 전공하였고 변호사로서 명성을 날렸으나, 아주 
내성적이며 자신의 개인 생활에 대해서는 어떤 침해도 거부하였다. 
아버지와 아들간의 유사한 면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고, 사람들은 
"로버트가 그의 어머니를 닮아 자존심이 강하고 지나치게 
섬약하였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로버트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링컨이라는 
이름이 항상 정치적 관심을 쏠리게 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정치는 
영광된 것이 아니라 희생일 뿐이었다. 1881년에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이 그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하였을 때 그는 내키지 않는 
의무감으로 그 자리를 수락하였다.
 그해의 어느 더운 7월 아침, 로버트는 워싱턴의 한 기차역에 
당도하였는데, 그때 가필드 대통령이 저격을 당하였다. 창백하고 
기진맥진해 보이는 가필드 대통령은 로버트의 손을 잡고 잠시 회생의 
빛을 보였지만 3개월도 못 되어 그만 타계하고 말았다. 
 1897년 로버트는 풀만 회사의 사장으로 백만장자가 되어 있었다. 
위대한 해방가의 아들이 이제는 돈 많은 사업가가 된 것이다.
 1901년 9월, 로버트는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을 만나기 위하여 
가족들과 함께 뉴욕의 버팔로로 갔다. 버팔로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가족들은 대통령이 저격 당했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로버트는 
그로부터 1주일 후에 죽은 매킨리 대통령을 한차례 상면할 수 있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 중 4명이 암살 당하였고, 로버트타드 링컨은 그 
중 3명이 암살 당할 때에 가까이 있었다. 네 번째로 암살 당한 
대통령은 존 F. 케네디로서, 로버트 링컨이 1926년에 죽었을 때 
케네디는 9세였다. 케네디는 지금 알링턴 국립묘지 안에 로버트 타드 
링컨의 뵤지로부터 불과 91m 떨어진 곳에 안장되어 있다.
 
 [  아버지의 원수가 생명의 은인 ]
 로버트 링컨이 하버드 대학에서 부모님이 사는 워싱턴으로 가고 
있었는데, 교통 사고로 매우 위험한 상태가 되었다. 이때 연극 배우 
에드윈 부스가 그를 구해냈는데, 공교롭게도 그는 바로 링컨 대통령을 
암살한 존 윌크스 부스의 형이었다. 그는 영국과 미국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역으로 유명한 배우였다.

 [  주일학교 선생님과 FBI 국장 ]
 1924년 29세로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된 이래 에드거 후버는 
48년 동안 여덟 명의 대통령 아래에서 소련 첩보활동의 봉쇄와 갱단의 
소탕에 큰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도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  백악관의 안주인 ]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는 31세, 줄리아 테일러는 24세, 프란시스 
클리버랜드는 21세에 백악관의 안주인이자 미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  강도가 대법원장으로 ]
 영국의 대법원장 존 포팸 경이 런던에서 법대에 다닐 때 몹시 
방탕하고 사치한 생활을 했다. 그래서 그는 돈도 필요하고 모험도 할 
겸 한때 총으로 무장하고 행인들을 털러 저녁 길거리로 나갔던 적이 
있다. 그 뒤 엘리자베스 여왕 때 그는 사법부의 최고직에 임명되었고, 
1592년 대법원장이 되었으며 1607년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작은 고추가 맵다
 이름 - 직업 - 키(cm)
 알렉산더 포프 - 영국의 시인 - 137
 엔젤버트 돌퓨스 - 오스트리아의 정치가 - 150
 올가 코르부트 - 소련의 체조 선수 - 150
 돌리 파튼 - 미국의 가수 - 152
 빅토리아 - 영국의 여왕 - 152
 존 키츠 - 영국의 시인 - 154
 데이비드 레이놀드 - 미국의 배우 - 155
 프랜시스 아시시 - 이탈리아의 성자 - 155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 - 프랑스의 화가 - 155
 마노리 드 발자크 - 프랑스의 소설가 - 157
 유리 가가린 - 소련의 우주 비행사 - 157
 마가렛 미드 - 미국의 고고학자 - 157
 강감찬 - 고려의 명장 - 157
 등소평 - 중국의 지도자 - 158
 로조메리 카잘스 - 미국의 테니스 선수 - 159
 마리퀴즈 드 세이드 - 프랑스의 군인, 작가 - 160
 프랑소와즈 마리 아루이에트(볼테르) - 프랑스의 작가 - 160
 미키 루니 - 미국의 배우 - 160
 히로히토 - 일본의 황제 - 160
 찰스 1세 - 영국의 왕 - 163
 사와오 카토 - 일본의 체조 선수 - 163
 제임스 메디슨 - 미국의 대통령 - 163
 구스타프 마흘러 -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 163
 파블로 피카소 - 스페인의 화가 - 163
 헤일 세라시에 - 에티오피아의 황제 - 163
 조지 넬슨 - 미국의 갱 - 165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 - 그리스의 선박왕 - 165
 
 [  철가면의 정체  ]
 17세기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짐은 곧 국가'라고 선언했을 때 
프랑스의 감옥은 많은 죄수들 때문에 가장 바쁜 기관이었다. 루이 
14세는 무심코 내뱉은 몇 마디로 한 사람을 그냥 죽일 수 있었다. 이 
'태양의 왕'은 희생자들을 무차별하게 선택하여 처벌했는데, 당시 
사람들은 보통 그 가엾은 희생자들이 왜 그의 비위를 거슬렸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철가면의 사나이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왜 
감금되었는지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1669년 키가 크고 품위 있는 옷과 몸가짐을 한 어떤 남자가 
피구에론성의 행정관 세인트 마르 경에게 넘겨졌다. 그는 이 죄수를 
각별한 존경심으로 대하여 책을 읽게 했으며 승려를 보내주는 등 여러 
가지 특혜를 허락하였다. 하지만 단 한가지 그는 절대로 남에게 얼굴을 
보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후 34년 동안 검정색 벨벳으로 만든 
마스크를 두르고 있었는데, 멋대로 이것을 벗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했다.
 알렉산더 뒤마는 이 이야기를 "철가면"이라는 소설로 써서 
낭만적으로 만들었지만, 이 가면은 쇠못으로 얼굴에 박혀진 게 아니라 
두려움이란 못으로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루이 14세는 왜 이 
사람에게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같은 선고를 내렸을까? 그저 정체를 
숨기는 데 왜 이렇게 끔찍한 방법을 썼을까? 그런데 왜 그를 
살려두어야만 했을까? 역사가들은 이런 질문을 수없이 해왔지만 
허사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루이 14세의 사생아로서 왕위를 이을 의붓 형제 
도핀에게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악명 높은 
독살가 브린빌러 마담이 이끌던 악마 찬양 미사에 참여한 유스타치 
도거라는 젊은이로서, 어떤 귀족 부인이 루이 14세에게 사면을 
애걸하여 사형에서 구원된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가 
루이 14세의 쌍둥이 형제로서 왕권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고자 감금된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러한 지위에 맞춰 존경되었으며 정체를 
숨기기 위하여 얼굴을 가린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매우 
흥미진진한 추측이긴 하지만 진실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다.
 
 [  희극 작가를 살해한 범인은 거북 ]
 그리스의 희극 작가 아에스킬로스를 살해한 범임은 거북이라고 
전해진다. 그 일화에 의하면 그때 거북은 아에스킬로스의 머리 위에서 
날고 있는 독수리의 발톱에 차였는데, 아에스킬로스의 대머리를 단단한 
바위로 착각하고, 있는 힘을 다해 머리 위로 착지했다고 한다. 결국 
거북은 자기가 살아 남기 위해 남을 죽인 셈이다.
 
   가장 가혹한 판사
 "나는 당신이 죽고 죽어 완전히 죽을 때까지 당신을 교수형에 
처한다!"
 1875년 5월의 어느 날 아침 아이작 C. 파커는 포효하듯 말했다. 
살인자가 법정을 빠져나가자 파커 판사는 잠깐 슬픈 기색을 보인 뒤 
다음 사건을 호출하였다. 이 같은 시나리오는 파커가 포트 스미스에 
소재한 서부 아칸소 지방 법원의 연방 판사로 재직하는 동안 160번이나 
반복되었다. 그의 관할 구역은 연방에서 가장 큰 구역으로 74,000평방 
마일에 이르렀지만, 가장 악질적인 범죄자들이 들끓는 문명에 뒤진 
지역이며, 후에 오클라호마에 편입된 구역까지 포함되었었다. 파커 
박사는 '가혹한 벌이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확신 하에 열정적으로 
일을 수행하였다. 그는 오전 8시에 개정하여 어두워질 때까지 한시도 
휴정하지 않았으며 종종 한밤중까지 공판을 진행시키곤 했다. 파커는 
자신이 원하는 평결을 배심원들에게 알게 했다. "여러분 배심원들이 
내려야 할 판단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 여러분이 그와 같은 판단을 
내린다면 그들은 정의에 복종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것은 바로 
사회를 지탱시킬 수 있는 지주가 될 것입니다."
 교수형 재판은 13,490건이 제기되어 9,454명의 피고가 판결을 받고 
155명의 남자와 5명의 여자가 교수형 선고를 받았다. 이 중 여자를 
포한해서 81명이 고등법원에 상소하거나 대통령의 특별감형을 받는 
등의 방법으로 교수형을 모면했다. 파커는 나머지 79명의 죄수가 
교수형 당하는 장면을 자신의 방에서 지켜보았다. 1896년 죽음 직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난 결코 단 한 사람도 교수형에 처하지 않았다. 
법이 그렇게 했을 뿐이다. 난 단지 그 도구였을 뿐이다." 
 
   남아연방의 흑인 수상
 남아연방의 첫 수상인 루이스 보다는 사실 리즈베스 반 다이감이라는 
흑인 노예의 피를 받아 태어났다. 17세기 후반, 리즈베스는 5명의 딸이 
있었는데, 3명은 인디언이면서 노예였던 루이스반 벤게일과의 사이에서 
태어났고, 2명은 독일계 이주자였던 요한 헤어포스트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들 중 4명은 백인과 결혼하였다.
 웨스트 케이프 대학 역사 연구소의 레온 해팅 교수의 연구 자료에 
의하면, 1910년에 남아연방의 첫 수상이 된 루이스 보다 장군은 
리즈베스의 후예 중 한 사람으로, 남아프리카 태생의 백인들 중 자신이 
완전한 백인이라고 믿는 20만 면 중의 하나였다. 
 해팅 교수의 연구 단원들이 밝힌 바에 의하면 남아프리카 태생의 
백인들은 흑인의 피를 7% 갖고 있다고 한다.
 
   하워드 휴즈와 일본의 '제로' 전투기
 제 2차 세계 대전중 일본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제로' 전투기는 
아마도 미국의 백만장자 항공사였던 하워드 휴즈에 의해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을 것이다.
 1934년 휴즈는 H-1이라고 이름 붙인 경량의 실험적인 비행기를 
고안해내고 제작하는 데 참여하였다. 그는 이 비행기가 세계에서 제일 
빠른 비행기라고 공표하였는데 사실 그러했다. 1937년 1월 19일, 그는 
캘리포니아주의 버뱅크에서 뉴욕주의 뉴아크까지 시속 531km로 
비행하여 대륙 횡단 비행 최단 속도 기록을 세웠다. 휴즈는 국가적인 
영웅이 되었고, H-1 비행기는 세계 항공 전문가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일본도 그 중 하나였다.
 1937년 휴즈는 미 국방성에 H-1을 전투기용으로 생산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그의 제안은 거부되었고, H-1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항공기 격납고에 예비용으로 처박혀 있게 되었다. 그때 일본 
정부에서는 미쓰비시 회사와 일본 제일의 항공 기술자인 호리코시에게 
좀더 우수한 전투기를 발명할 임무를 부여하였다. 호리코시는 결국 
보기에도 굉장하고 민첩한 비행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는데, 그 
비행기는 H-1의 모습과 비슷한 곳이 많았다. 이렇게 하여 발명된 
비행기는 '제로'라고 명명되었는데, 날씬하면서도 매우 스피디했다.
 1947년 휴즈는 전쟁시의 방위 협정권 문제로 조사위원회에서 증언하게 
되었다. 그의 진술 일부를 보면, "나는 일본 사람들이 H-1을 본따서 
'제로'를 만들었다고 들었다. 나는 나의 비행기를 군대에 팔려고 
하였지만 캔딜레버식의 날개가 하나뿐인 비행기가 전투용 추격기로는 
적합치 않다고 생각하는 군데 의해 기각 당하였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정반대의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  수수께끼의 인물 휴즈 ]
 TWA 항공기 회사, 휴즈 항공기 회사, ABC 방송사, 할리우드 영화와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를 지배했던 미국 최고의 부호 휴즈는 5억 달러를 
남기고 죽었다. 그의 장례식 때 단 8명의 조문객만이 찾아와 명복을 
빌었다. 
 
 [  왕성한 의욕으로 인생을 마무리한 사람들 ]
 1. 99세에, 테네시 프랭클린에 거주하던 데이비드 유진 레이는 글을 
깨우쳤다. 
 2. 99세에, 피아니스트 미에지스러 호르스죠스키는 새 앨범을 냈다. 
 3. 99세에, 쌍둥이 자매 귄 나리타와 진 카니는 일본에서 CD음반을 
내고 스타가 되었다.
 4. 98세에, 도예가 베아트리체 우드는 마지막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5. 97세에, 마틴 밀러는 노인들을 위한 로비스트로서 풀타임으로 
일했다.
 6. 96세에, 캐더린 로빈슨 에베레트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7. 95세에, 무용 안무가 마르타 그라함은 마지막 공연을 위한 무용 
안무를 했다.
 8. 94세에, 코미디언 조지 번즈는 뉴욕에 있는 프로텍터 극장에서 
공연했는데, 데뷔 작품을 그 극장에서 공연한 이후 63년 만이라고 한다.
 9. 93세에, 여배우 다임 쥬디스 앤더슨은 1시간 동안 무대에서 
열연했다.
 10. 92세에, 폴 스팡러는 14번째 마라톤을 성공리에 마쳤다. 91세 때는 
1,500m를 41.53초에 수영하여 90세 이상의 노인들 사이에서 최고 
기록을 세웠다.
 11. 91세에, 훌다 크로슨느 미국 대륙에서 제일 높은 위트니 산을 
정복했다.
 12. 91세에, 알만드 해머는 서양 석유계를 이끈 장본인이었다.
 13. 88세에, 도리스 이톤 트라비스는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여 마침내 졸업장 손에 넣었다.
 14. 87세에, 매리 베이커 에디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를 
설립했다.
 15. 87세에, 추리소설 작가 필리스 위트니는 71번째 작품 "노래하는 
돌"을 발표했다.
 16. 86세에, 캐더린 펠톤은 200m 접영을 3분 1.14초안에 완주했는데, 
그것은 85-89세에서의 최고 남자 신기록보다 22초 빠른 기록이었다.
 17. 84세에, 아모스 아론조 스테그는 퍼시픽 미식 축구팀의 코치였다.
 19. 83세에, 소아과 의사 벤자민 스포크는 세계 평화를 위해 
데모하다가 플로리다에서 체포되었다.
 
   가장 나이 어린 장군
 미국의 전쟁 영웅인 갈루샤 페니패커가 육군 소장으로 승진되었을 때 
그는 투표할 수 있는 나이조차 되지 않았다.
 페니패커는 1861년 16세의 나이로 펜실베이니아 지원군 제 9부대 
보급계 하사관으로 입대하여 그해 8월에 펜실베이니아 지원군 제 
97부대 대위로 임명되었다.
 1864년에 대령으로 진급한 그를 상관들은 무척이나 총애하였다. 
포트길머에서 그는 적들이 보는 가운데 군대를 이끌고 1.6km 가량 
되는 삼림을 가로질러 돌진하다 그의 말이 살해되고 그 자신도 부상을 
당했는데도 전투를 계속하였다. 20세가 되는 생일날 그는 버지니아주 
그린 플레인즈에서 세 군데에 상처를 입었으나 치료에 힘쓴 결과 곧 
회복되어 다시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1865년 1월 15일,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피셔의 전투에서 그는 1개 
여단을 지휘하여 적진을 뚫는 데 성공하여 방어용 흙벽 꼭대기에 제일 
먼저 올라가 연대의 기를 꽂았다. 그러나 적군의 시야에 노출되어 우뚝 
서 있는 그를 향하여 남부 연합군 병사 하나가 총을 쏘아 옆구리와 
둔부에 상철르 입혔다. 한 달 후, 20세의 이 청년은 명예 진급이 되어 
계급을 받은 가장 나이 어린 사람이었다.
 1865년 3월, 그는 중장으로 명예 진급되었는데 21세가 채 되기도 
전이었다.
 전후 복구 기간동안 페니패커는 군대에 남아 있었는데,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후보로 나갈 수 있었던 기회를 포기하고 1916년 10월 1일에 
죽기까지 필라델피아에서 외로운 여생을 보냈다.
 
 [  매독에 걸린 사람들  ]
 보들레르, 베토벤, 알 카포네, 처칠, 콜럼버스, 제임스 쿡, 조지 
암스트롱, 큐스터, 폴 고갱, 괴테, 헨리 8세, 빌 히콕, 존 키츠, 마젤란, 
메리 1세, 나폴레옹, 피터 대제, 마르퀴 드 사드, 로버트 슈만.
 
 [  광신도들에게 살해당한 여성 학자 ]
 아름다움과 지성, 게다가 우아함까지 갖추었다고 일컬어지는 
하이파티아(AD 400년경)는 알렉산드리아의 박물관에 마지막으로 
기록된 인물이자, 고대사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유일한 여성 
학자였다. 그녀는 신플라톤주의를 가르쳤고 유클리드의 사상을 
설명하고 전수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교도였다. 비록 그녀의 
학생들 중에는 크리스천 주교들도 더러 있었지만, 열렬한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반동 대상이었던 것이다. 결국 
하이파티아는 광적인 성직자들에 의해 죽음을 당했는데, 그들은 
알렉산드리아의 항구에서 조개 껍데기를 모은 후 빻아서, 그 가루를 
그녀의 몸에 문질러댔으며 칼로 온몸을 난도질했다고 한다.
 
 [  전혜린은 왜 자살했을까? ]
 1934년에 태어난 전혜린은 1965년 어느 날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수필집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자살함으로써 짧은 생애를 
마쳤다. 전혜린의 작품 세계는 어떤 비평으로도 분석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 깔려 있어 그의 생을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다. 그의 생애는 
글자 그대로 신비로웠다.
 
   어머니와의 약속
 정동규 박사는 어머니와 3일간의 약속을 30년이 지나서 지켰고 
카네기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52세가 될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한 결혼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  돈에 대한 거부 반응  ]
 역대 미국 부호 중의 부호인 앤드류 카네기는 나이가 들며 더욱더 
부를 누리게 됨에 따라, 점차적으로 돈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는 돈을 보거나 만지기만 해도 두드러기가 나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 수중에 돈을 절대로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번은 전차를 타려고 했는데, 전차 요금을 지불할 몇 
달러가 없어서 탑승하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

 [    제 15장-천재 ]
 [  천재와 불행은 사촌인가? ]
 천재들의 삶을 살펴보면 불행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유배생활을 
했던 갈릴레오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결국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데카르트 역시 귀양살이를 했었는데 군인으로 복역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낯선 타지에서 숨을 거두었다. 프랑스의 해부학자 
안드레아 베사리우스의 삶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도 방랑 생활을 
하였으며, 이교도로 기소를 당해 온몸을 긁히고 몰매를 맞는 등 모진 
고문을 받았다. 그리고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질 뻔하였으나 다행히 
성지 참배 순례로 억울한 죄값을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배가 난파되는 
바람에 상어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코페르니쿠스도 지동설 등 많은 
사실들을 발견했었지만, 감히 그 사실들을 입밖에 낼 수가 없었다. 
케플러는 황제에게서 약속 받은 연금을 받지 못했다.
 
 [  천재의 미래 ]
 김응룡은 현재 살아 있는 사람 중 한국에서 가장 비범한 신동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의 증언에 의하면 그가 태어났을 때 몸에 검은 
털이 덮여 있어서 마치 사슴 새끼같이 보였다고 한다. 3개월만에 털에 
빠지고 이가 다 났다. 전문가들은 그의 IQ가 200이 넘는다고 보았다. 
4세 때 한국어, 영어, 일어, 독일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고 5세가 
되기 전에 벌써 일본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미적분학을 일어로 풀 수 
있었다. 
 대학 교수였던 그의 부모들은 이상하게도 같은 날 같은 시간인 1934년 
5월 23일 오전 11시에 태어났다. 그는 한번도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었고 가정 교사와 공부하였다. 1979년 그의 아버지는 그가 물리학과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서독의 대학으로 갈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1995년 지금 그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  잡화상이 점원이 된 천재 ]
 미국의 한 심리학자의 아들 윌리엄 시디스 주니어는 1898년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의 뛰어난 생도가 되었다. 6개월이 되었을 때 
알파벳을 알았고 2세 때는 읽고 쓸 수 있었다. 9세가 되자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였다. 11세 소년의 박식함과 
수학에 대한 재능은 교수들을 놀라게 하였고 16세에 하버드를 1등으로 
졸업하여 19세에 수학과 정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수학 공부는 단순한 산수로 그치는 것이 훨씬 좋았을 
뻔하였다. 왜냐하면 26세의 시디스는 뉴욕의 한 잡화상의 계산대에서 
덧셈과 뺄셈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43년 한때의 이 천재는 
월셋방에서 쓸쓸히 죽었다.
 
 [  천재 테스트 ]
 많은 사람들이 높은 IQ를 지닌 사람들의 조직체인 멘사(Mensa)에 
대해 들어보았겠지만, 이보다 훨씬 더 배타적인 조직도 있다. 보통 사회 
구성원 50명 중 1명 정도가 멘사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지만, 
2,500명 중 1명 정도만이 국제 철학연구회에서 치르는 두 종류의 입회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87문항의 테스트 중 한 가지를 예로 
들어보겠다.
 1. 다음 글자를 적절히 배열하여 알맞은 단어를 만들어보시오.
 suousindinge 답: disingenuous
 2. 빠진 숫자를 채워 넣으시오.
 29-11-2
 73-10-? 답: 73-10-1
 3. 빠진 단어를 채워넣으시오.
 보기: Autumm (fall) Trip
 Season (Spring) Coil
 문제: Argue ( ) Partition 답: Argue (fence) Partition
 
 [    제 15장-인간 가족 ]
 [  어떤 재소자의 국회 입성 이야기 ]
 1805년 헤비급 복싱 챔피언인 헨리 피얼스는 어느 날, 재소자를 
위로하기 위하여 채무자가 있는 교도소를 방문하게 되었다. 교도소 
간수는 피얼스의 희생자로 존 굴리를 선정했다. 그러나 동료 재소자의 
열띤 응원에 힘입어 굴리는 링 도처에서 피얼스를 흠씬 두들겨줄 수 
있었다.
 곧 술집은 굴리의 승리에 대한 이야기로 들끓었다. 한 도박꾼 일당은 
토지의 채무를 변상해주었고, 교도소 측의 석방 결정에 따라 굴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1806년부터 굴리는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하였다. 그 후 헨리 피얼스와 
공식적인 챔피언 대결을 위한 계약서에 서명했으나 59회전에서 그만 
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의 패배 이후 결코 져본 적이 
없었다. 피얼스가 1807년에 은퇴했을 때, 존 굴리는 영국의 헤비급 복싱 
챔피언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다른 많은 프로 선수와는 달리 굴리는 착실하게 돈을 저축하였으며, 
은퇴해야 할 시기를 잘 알고 있었다. 굴리는 링을 떠나면서 저축한 
돈을 경마에 투자하였는데, 그의 말 중 두 마리가 유명한 영국 
더비에서 승리하였다.
 그리고 나서 굴리는 진짜 도약다운 도약을 하였다. 경마장에서 
정치계로 뛴 것이다. 1832년 굴리는 영국 하원에 선출된 후 여러 번에 
걸쳐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863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굴리는 상당한 액수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원에 많은 
부동산을 남겼다.
 굴리의 이 모든 영광은 힘차게 휘두른 라이트 한 방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인도주의자들의 모순
 세계의 역사에 뚜렷이 남은 뛰어난 인도주의자들인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제인스 메이슨, 아리스토텔레스, 마틴 루터, 토머스 
아퀴나스, 칼뱅 등은 모두 노예 소유자들이었다.
 
 [  혀로 그림을 그리는 별난 화가 ]
 1920년대 중국의 유명한 화가였던 황허난은 비단에 연꽃과 나비를 
그렸다. 그러나 황허난의 그림을 진기하게 만드는 것은 그림의 소재가 
아니라 그의 기법이었다. 황허난은 그림붓 대신 혀를 사용했으며, 입은 
검은 먹을 담아두는 용기의 역할을 하였다.
 북경의 예술가 황허난은 우선 동양의 예술가들이 대개 자신의 최고의 
작품에 선호하는 진한 먹을 입안에 넣고는 탁자 위에 펼쳐놓은 고운 
비단 헝겊 위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황허난의 그림은 특히 섬세함과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  맹인 학자 ]
 일본 무사시 지방 출신의 하나와 오키키(1722-1823)는 문명의 역사를 
통하여 가장 뛰어난 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일생 동안 자신의 
수많은 재주를 부지런히 발휘하면서 보냈다. 7에에 맹인이 된 그는 
94년 동안 어둠 속에서 놀라울 정도로 많은 책을 집필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다. 너무 방대해서 그가 일평생 수집했던 40만 권 이상의 
책 내용을 모두 기억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많은 책(그는 두 번 이상 
같은 책을 읽은 적이 없었다)을 통하여 그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권 
수의 저서 "군소 루이즈"(2,820권에 이르는 대작)를 펴냈다. 이것은 
1910년에 재편집되어 일본의 학생들과 역사 학자들에게 값을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귀한 참고 서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눈먼 학자는 
와가쿠소 스쿨이라는 학교도 건립해서 오랜 세월 동안 일본의 고전 
문학에 대해 가르쳤다. 일본의 한 유명한 그림에는 이미 수시간 전에 
해가 졌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어둠에 둘러싸인 채 숨을 죽이며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청중에게 오키키가 강의하고 있는 장면이 있다.
 
 [  고래에게 잡아먹혔다가 살아난 사나이  ]
 고래에게 잡아먹힌 성경 속의 요나 이야기는 그저 오래 된 신화 같은 
이야기에 불과할까? 너무 자신만만해하지 마시라.
 90여 년 전쯤 제임스 카틀리라는 젊은 영국인은 '동방의 별'이라는 
고래잡이배의 선원이었다. 이 배는 남대서양의 포클랜드 섬을 따라 
항해하고 있었는데, 바다의 왕자 고래를 쫓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5km 
밖에서 한 마리의 향유 고래가 목격되었는데, 나중에 확인된 바에 
따르면 그 고래의 길이가 24m, 무게가 80톤이었다고 한다. 바틀리를 
포함한 선원들과 포경 포사수를 태운 2척의 배가 고래를 죽이기 위해서 
보내졌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한 명의 포수가 바다의 괴물을 향해 2m 
길이의 작살을 쏘았다. 화살을 맞는 순간 배를 후려치고는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떨어지면서 그 배를 전복시켰다. 그러나 다른 배의 
선원들에 의해 상처임은 고래는 곧 사살되었다. 
 전복된 배가 다시 복구되었을 때 바틀리를 비롯한 선원들은 
행방불명이 되었고 곧 익사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죽은 고래는 '동방의 
별'호로 이송되었고, 선원들은 기중기를 이용하여 고래를 갑판 공중에 
매달았다. 그 현장에 있었던 한 잡지사의 편집인 데 파르비예에 의하면 
그때 고래의 배가 움직였다고 한다. 그래서 고래의 배를 가르자, 의식을 
잃은 바틀리가 그 속에 있었다. 그는 갑판 위로 내려져서 바닷물로 
씻겨졌다. 그는 소생하였으나 정신이 맑지 못해 선장실에 2주일간 
머물러야 했는데, 마치 정신 이상자처럼 행동했다. 
 4주일이 지나기 전에 바틀리는 제정신이 돌아와 고래 뱃속에서의 삶을 
회상하였다. 그는 고래의 꼬리가 배를 내리친 것까지는 기억했다. 데 
파르비예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바틀리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는데, 마치 부드러운 관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의 손은 미끌미끌했고 온도는 참기 어려울 만큼 높았는데, 아마 
화씨로 104도 정도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선장실에 있었다. 그가 
죽기까지 얼굴, 목, 손등은 고래의 위산으로 인해 탈색되어 백지 
같았다고 한다.
 
   체인을 입은 사람
 옛날 인도의 아호르시에는 270kg 이상의 무게가 나가는 무거운 
쇠사슬 꾸러미를 옷처럼 입고 다닌 탁발승이 있었다. 그는 마호메트의 
수도승으로 자신의 이름을 사히브 알라 사하라고 하였는데, 그 
이름에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펀잡 지방 사람들은 그를 '짤랑거리는 탁발승'이라고 불렀는데, 그가 
스스로 짊어진 무거운 짐을 입고 나타나면 사람들은 흥분해서 
모여들었다.
 Sankal-Walah(체인을 감은 사람)는 청년 시절부터 체인을 조금씩 
모아 고리끼리 용접해서 갑옷처럼 입고 다닌 것인데, 이 용접 작업은 
그가 그 무거운 무게를 지탱치 못하고 신음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가 
죽었을 때 그 옷의 무게는 300kg까지 나갔는데 그는 생애의 마지막 
13년간 이 옷을 입고 다닌 것이다.
 
   7세의 수석 사형 집행인
 18세기초 프랑스에서는 수석 사형 집행직이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넘겨지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1726년 찰스 장 뱁티스트 산손이 
세상을 떴을 때, 7세인 그의 아들 찰스는 자동적으로 그 직에 올랐다.
 그 당시 사형을 선고받은 죄수들은 참수형에 처해졌다. 어린 찰스는 
무거운 처형 검을 다룰 힘이 없었으므로 '프루돔'이라는 조수를 
채용하도록 허락 받았다. 실제로는 프루돔이 칼을 휘둘렀으나 어린 
찰스만이 무자비한 행위에 대한 공식 직인을 찍을 수 있도록 허가 받은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모든 처형이 이루어질 때 그 현장에 
참석해야만 했다.
 마침내 12세가 되었을 때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목을 스스로 
베어냄으로써 수석 사형 집행인으로서의 모든 임무를 떠맡았다.
 
 [  133일간 구명 보트에서 생존한 사람 ]
 1942년 11월 23일 '로몬드'라는 영국 상선이 55인의 승무원을 태운 채 
남대서양에서 침몰하였다. 이때 푼 림이라는 선원만이 유일하게 살아 
남았는데 그는 25세의 중국 사람이었다. 침몰 당시 옷마저 찢겨지는 
폭발적인 힘에 의해 그는 갑판으로부터 튕겨져나왔다.
 림은 2시간 동안 난파선 근처에서 헤엄치다가 떠 있던 구명 보트를 
타고 133일간 생존할 수 있었는데, 찢어진 옷 사이로 몸은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처음 60일간은 구명 보트 속의 물과 식량으로 살 
수 있었지만 그 후의 삶은, 물고기를 잡아먹으면서 영위하였다. 그는 
보트의 회중 전등에서 뽑아낸 용수철로 낚시바늘을 만들어 작은 
물고기를 낚고, 작은 물고기는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한 미끼로 
사용하였다. 가끔 그는 큰 물고기도 잡을 수 있었고 바다 갈매기를 
잡아 식사를 대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배고픔만이 그의 시련은 
아니었다. 림은 콜리지(1772-1834, 영국 낭만파 시인)의 노수부처럼 
한탄하였다.
 외로워라, 외로워라, 오! 모든게 외롭구나.
 넓고 넓은 바다 가운데 홀로 외로워라;
 어떤 성인도 내 영혼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하리.
 1943년 4월 5일 몇몇 어부들이 그를 발견하고 배에 실었다. 그는 
확실히 중환자였고 다리도 휘청거렸는데, 구호자들이 놀란 사실은 
160cm밖에 되지 않는 작은 체구로 어떻게 바다 위에서 좌충우돌하며 
근 4개월 이상을 버틸 수 있었는가 하는 사실이었다. 이 이야기가 
영국에 전해졌을 때 호평이 대단했다. 영국인들은 로몬드호의 함몰에 
관해 이미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 왕 조지 4세는 푼 림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고 1943년에 그에게 
대영 제국의 메달과 함께 가장 명예로운 영국 시민상을 수여했다. 이때 
푼 림은 "이 기록을 깨뜨리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그들 모두를 사랑함 위대한 연인
 그는 미인 대회에서나 봄직한 12,000명의 아름다운 부인을 
거느렸음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여인에 대한 새로운 사랑을 위해 자신의 
왕좌에 생명을 저당 잡혔다. 인도 비자야나가르의 왕 하리하라 
2세(1398)는 각기 독특한 인도의 미를 지닌 12,000명의 부인이 거주하는 
규방 궁전을 가지고 있었다. 이 왕실 가족의 서열에 대해 역사는 
흥미로운 사실을 전해준다. 4,000명의 부인은 개인의 마구간을 소유할 
수 있는 특권이 인정되었으며 다른 4,000명의 부인은 가마꾼을 고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부인들은 걸어다녔다. 부인 가운데 2,000명은 
미망인이 되는 즉시 자살하기로 서약했다. 왕의 마구간은 1,000마리의 
코끼리와 40,000마리의 말을 수용했다. 왕의 하루 수입은 400,000달러에 
달했다. 그의 일생 중 단 한 번의 실패는 이웃 왕국의 무드쿨 마을에 
사는 파탈이라는 아름다운 소녀에게 12,001번째 부인이 되어달라는 
제의를 거절당한 것이다. 결혼을 강요하기 위해 그는 강대한 이웃 왕국 
페로즈샤 투후락과 전쟁을 시작했다. 전쟁은 침략자의 생명과 행운의 
상실로 결판났다. 하리하라는 미지의 여인을 향한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그가 죽으면서도 간직한 것은 이 위대한 연인의 장례식 화장용 
장작더미에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던지며 그들의 서약을 지킨 
2,000명의 부인에 대한 특권이었다.
 
   쿨라 롱코른 왕의 가족
 사이암의 라마 5세 또는 쿨라 롱코른 왕은 1910년에 3,000명의 아내와 
370명의 자녀(아들 134명, 딸 236명)를 남기고 죽었다.
 
 [  유한양행의 창업주인 유일한 씨는 ]
 딸에게만 8억 정도의 재산을 주고, 나머지 1,000억을 사회에 
환원시켰다. 그리고 그의 딸의 전 재산 30억을 사회에 환원시키고 
자녀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  발명 특허 사절 ]
 영국의 화학자 존 월커는 성냥에 대한 발명 특허를 특허국에 제출하지 
않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X-레이를 발명한 독일의 
과학자 콘라드 뢴트겐도 X-레이 발견에 대한 특허를 거절함으로써 
모든 이익금을 사회에 환원시켰다.
 
   주기 위해 번다
 롤랑은 전 재산을 프랑스 정부에 기부했으며 존 D. 로크펠라는 일생 
동안에 531,326,842달러를 기부했다. 또한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는 3억 
3천만 달러를 연구 기관, 도서관, 세계 평화 기구에 기부했다.
 
   라 시뇨리나의 묘기
 8명의 사람들이 팽팽하게 매어 있는 줄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은 여자였다. 그 시뇨리나의 이름은 
마리아 스펠테리날 1876년 7월 8일에 데뷔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날은 신문사를 위한 야유회 날이었는데, 그 신문에서는 
마리아를 53kg의 체중, 아름다운 몸매와 미모를 지닌 23세의 여인으로 
묘사했었다.
 그녀가 딛고 서 있는 줄은 5.7cm 두께에 3,400m의 길이로 깊이가 
20m나 되는 죽음의 골짜기 위로 드리워져 있었다.
 7월 12일 그녀는 발에 복숭아 바구니를 매달고 11분 동안 묘기 행진을 
했는데, 돌아오는 데에는 10분이 걸렸다. 7월 19일 세번째 행진은 
눈가리개를 하고 행해졌고, 7월 22일 네번째 행진은 손목과 발목에 
수갑이 채워진 채 시행되었다. 7월 26일에는 또 다른 방법으로의 
보행이 예정되었으나 이루어지지 못했다.
 
 [  888명의 자녀를 둔 물라이 이스마일 ]
 샤리프 제국의 전성기를 통치했던 물라이 이스마일은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자식을 둔 아버지였다. 물라이는 타필라트에서 
자신의 자본으로 57년간 모로코를 통치했었다. 그는 모로코 왕가와 
마호메트의 풍습에 따라 많은 부인을 두었는데, 1727년 이 늙은 가장이 
죽었을 때 그에게는 548명의 아들과 340명의 딸이 남겨졌다. 또한 
이집트의 파라오인 람세스 2세는 162명의 자녀(111명의 아들과 51명의 
딸)를 두었다.
 
 [  147년간의 결혼 생활  ]
 야노스 로벤과 그의 착한 아내 사라의 길고도 행복했던 결혼 생활 
관한 이야기가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들은 147년 동안 부부로서 
세 번의 금혼식을 바라볼 때까지 함께 살았다.
 야노스와 사라는 헝가리의 테메스바 지방의 카산세버군 
스트라도바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야노스가 172세, 사라가 
164세 되던 해 같은 날에 죽었다.
 이 고령에 이른 부부의 결혼 생활의 후반기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비엔나에 주재했던 네덜란드 특명 전권공사가 그들을 
방문해서 그들의 초상을 그렸다. 이 그림은 지금 노덤버랜드(영국 
동북부의 주) 백작의 수탁 관리인인 윌리엄 보시빌이 그들 결혼에 관한 
오리지널 기록과 함께 소장하고 있다.
 야노스와 사라는 1825년 같은 날 거의 같은 시간에 죽었는데 그 침상 
곁에는 116세의 아들과 2명의 고손이 지키고 있었다.
 
 [  위대한 발명에 기여한 도날드 덕 ]
 1964년 6,000마리의 양을 실은 화물선 '알 쿠웨이트'호가 쿠웨이트 
항구에서 침몰하자 인근 주민들은 고기가 썩어서 식수가 오염될 것을 
걱정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덴마크의 제조업자였던 칼 크로이어는 1949년에 보았던 
월트 디즈니의 만화책에서도 도날드 덕과 그의 조카인 휴이, 듀이, 
루이가 물에 빠진 요트에 탁구공을 잔뜩 집어넣어 건져내던 것을 
기억해내었다. 오리의 지혜를 살려서 크로이어는 2억 7천만 개의 
폴리스티렌 공을 구입하여 알 쿠웨이트호의 선체에 집어넣었다. 그 
결과 화물선은 성공적으로 수평을 이루게 되었고 쿠웨이트의 식수 
공급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위대한 기술적 업적을 이룩하게 한 발상이 4마리의 가상적 
오리에게서 나왔고 그것을 그린 사람은 만화가 칼 발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노벨상에서 받은 상금을 사회에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로 노벨 문학상을 타면서 받은 
상금 전액을 자기가 한때 살았던 동부 쿠바의 비진이란 마을 
주민들에게 기부했다. 또한 스위스의 자선 사업가 헨리 드난트는 
1901년 노벨 평화상에서 탄 상금 전액을 가족을 위해 쓰지 않고 
적십자사에 기부하였다.
 
   어머니의 음성
 루스벨트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에게는 80이 넘은 노모가 
계셨다.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는 노모를 두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문밖을 나서려 할 때면 항상 등뒤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어머니의 음성이지요! 어머니는 제가 외출할 
때마다 늘 말씀하셨죠. '얘야! 옷은 따뜻하게 입었니?'라고요."
 
   10개의 공으로 묘기를 부리는 라스텔리
 엔리코 라스텔리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유명했던 마술사와 
곡예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멋진 연기를 연출하여 인기를 끌었던 그는 
1920년 미국의 케이트 알베 오르피엄 버라이어티 서커스에서 공연할 때 
가장 진기한 묘기를 보여주었다.
 라스텔리와 그의 아들, 손자는 러시아의 사마라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에서 그의 부모는 유명한 투루찌 서커스단의 단원으로서 
생활하였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묘기를 배웠는데 12세에는 4개의 
횃불을 가지고 마술을 부리면서 아버지 머리 위로 거꾸로 섬으로써 
능란한 곡예사로서의 명성을 얻어가기 시작하였다.
 165cm의 라스텔리는 테이블 위에 놓인 램프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면서 한 발로는 2m짜리 깃대(꼭대기에는 이탈리아 깃발이 
나부끼는)를 잡고 다른 발로는 2개의 공으로 묘기를 했다. 그는 또한 
61cm 막대 6개를 가지고 묘기를 하면서 일곱번째 막대를 머리 위에 
놓고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 동시에 8개의 접시로 묘기를 부릴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가장 유명한 곡예는 10개의 공을 동시에 빠른 
속도로 던지며 묘기를 보이는 것이었다. 이것은 양손에 5개씩의 공을 
끊임없이 던지는 동작이데, 그 이후로 그와 쌍벽을 이룰 만한 마술가는 
없었다.
 
   신이 사랑하는 자는 젊어서 죽는가?
 이름 - 사망한 나이
 1. 안나 프랑크: 독일계 유태인 소녀 - 15
 2. 토머스 체터톤: 영국 시인 - 17
 3. 투탄카멘(투트 왕): 이집트 파라오(왕) - 18
 4. 조앤 오브 아크: 프랑스 여걸, 로마 천주교 세인트 - 19
 5. 나단 헤일: 미국 영웅, 독립 전쟁 스파이 - 21
 6. 베아트리체 포티나리: 단테가 쓴 "신곡"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 
23
 7. 제임스 딘: 미국 영화 배우 - 24
 8. 조지 깁: 미국 풋볼 스타 - 25
 9. 존 키이츠: 영국 시인 - 25
 10. 마브리에 베레드스레므: 영국 예술가 - 25
 11. 루칸: 로마 시인 - 26
 12. 존 윌크스 부스: 미국 배우, 링컨 암살자 - 26
 13. 제니스 조플린: 미국 블루스, 록 가수 - 27
 14. 퍼시 비쉬 셸리: 영국 시인 - 29
 15. 크리스토퍼 말로우: 영국 시인, 희곡 작가 - 29
 16. 앤 볼렌: 영국 헨리 8세의 부인 - 29
 17. 마노레트: 스페인의 투우사 - 30
 18. 루돌프 발렌티노: 미국 영화 스타 - 31
 19. 프란츠 슈베르트: 오스트리아 작곡가 - 31
 20. 네로: 로마 황제 - 31
 
   고아로 자라 유명하게 된 사람들
 "시몬 볼리바"(1783-1830)
 볼리바는 3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볼리바가 9살이 되던 해에 
그의 어머니 또한 결핵으로 세상을 떴다. 설상가상으로 부모 잃은 손자 
볼리바를 키워주던 친할아버지마저 노환으로 곧 세상을 뜨자, 볼리바의 
숙부가 그의 후견인이 되어 그를 교육시켜주었다. 볼리바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으며 '남아메리카의 영원한 자유주의자'로 이름이 
드높았던 군인이자 유명한 정치가였다.
 "잉그리드 버그만"(1915-1982)
 잉그리드 버그만은 3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그로부터 10년 후에는 
아버지마저 잃어, 숙부 밑에서 성장하였다. 또래 친구들보다 유난히 
키가 큰 탓에,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했던 잉그리드는 본래 수줍음 많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소녀였다. 그러나 환상의 세계, 즉 연극과 영화의 
세계를 접하게 되면서 잉그리드는 과거의 이미지를 벗고 새로 태어나게 
되었다. 잉그리드는 "카사블랑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트리우스(악명 높은)" "가스등"에 출연하면서 일약 세계적인 
유명한 여우가 되었다.
 "제임스 미케너"(1907-)
 유명한 소설가 제임스 미케너는 아주 어렸을 때, 펜실베이니아의 
도일스 타운이라는 마을에 버려졌었다. 그리고 가난한 퀘이커교도인 
'마벨 미케너'라는 미망인에 의해 다른 고아들과 함께 성장하게 되었다. 
후에 잡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난 
인종 차별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어쩌면 난 유태인이거나 반흑인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아시아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 외의 
누구의 피를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왜냐고요? 난 내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하마드"(570-632)
 무하마드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의 아버지는 죽었고, 그가 6세가 
되었을 때는 어머니마저 잃게 되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지만, 할아버지도 2년 후에 돌아가시자 결국 숙부 아부 
타리브의 집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레오 톨스토이"(1828-1910)
 톨스노이가 2세가 되기도 전에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버지는 8세가 되던 해 노상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 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게 되자, 그와 4명의 남매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톨스토이, 형 드미트리, 여동생 마야는 숙모인 
토이네트와 시골에서 살게 되었다. 토이네트는 아이들을 자기 자식처럼 
맡아 기르겠다고 톨스토이의 아버지와 언약했던 적이 있었다.
 "에드가 앨런 포우"(1809-1849)
 포우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다. 포우가 태어나자마자 그의 아버지는 
가정을 버렸고, 포우가 2.5세가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결핵으로 
숨졌다. 그 후, 버지니아의 리치몬드 내외가 포우를 길렀으나 포우를 
법적으로 입양하지는 않았다.
 "하버트 후버"(1874-1964)
 10세 때 고아가 된 후버는 오레곤에서 사립 고등학교를 운영하는 
숙부의 가정에서 자라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3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때 부통령 찰스 커티스도 고아였다.
 "엘레노아 루스벨트"(1884-1962)
 루스벨트는 8세 때 어머니를 잃고 그 다음해에 아버지마저 잃었다. 
그리고 외할머니 손에서 성장한 후 1905년 사촌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결혼했다. 프랭클린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을 때, 엘레노아는 미국 
역사상 가장 활동적이고 인기 있는 영부인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  동물을 학대하는 인간은 독일 국민을 슬프게 한다. ]
 폴란드 동쪽에는 한때 유럽 전역을 뒤덮었던 원시림의 잔재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12만 에이커에 달하는 고요한 바이아로와이저 
국립공원이 야생 동물과 오래 된 떡갈나무, 가문비나무로 가득할 수 
있는 것은 자연 보호와는 거리가 먼 나치 헤르만 괴링의 보호 
덕분이었다.
 1400년대 이후 줄곧 바이아로와이저는 러시아의 차르와 폴란드 왕들의 
사냥터가 되어왔다.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는 독일 군인들이 삼림을 
망쳐놓았고 들소들을 마구 살육하였는데, 종전후 삼림을 돌보지 않게 
되어 더욱 황폐해져갔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재 침공하였을 때 바이아로와이저는 독일 
삼림학 석사인 괴링을 만나게 되었다. 괴링은 열심히 임무를 
수행하면서, 사냥감들로 살림을 가득 채워놓고는 사냥 허가증을 엄하게 
제한하였다.
 괴링은 루프트와프 공군 지휘관으로 있으면서 전 유럽에 융단 폭격을 
지시하였는데, 그는 베를린에 있는 사무실에 다음과 같은 무구를 
걸어놓았다. '동물을 학대하는 인간은 독일 국민을 매우 슬프게 한다.'
 
   교황 요한 13세는 
 제 1차 세계 대전 때 이탈리아군에서 하사로 복역했었다.
 
 [  결점이 오히려 ]
 이스라엘 민족의 대변자 모세도, 그리스의 최고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모두 말을 더듬거렸었다.
 
   나폴레옹 가문의 미국행
 나폴레옹의 동생인 제롬의 손자인 찰스 조셉 보나파르트는 테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이 재직해 있던 당시 해군 장군이었다.
 
   코모두스는 1,031번 싸워서 이겼다.
 로마의 황제 코모두스는 루키우스 아엘리우스 
아우렐리우스(161-192)와 검투 시합에서의 자신의 기록에 자만한 
나머지 자신을 헤라클레스처럼 숭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나르시소시라는 이름의 레슬링 선수의 손에 목졸려서 죽음을 당하였다.
 
   유명한 레즈비언들
 1. 사포(BC 600): 그리스의 대시인
 2. 크리스티나(1626-1689): 스웨덴 여왕
 3. 마담 스텔(1766-1817): 프랑스 작가
 4. 윌라 카더(1873-1947): 미국 작가
 5. 게투르데 스테인(1874-1946): 미국 작가
 6. 앨리스 B. 토크라스(1877-1967): 미국 요리 연구가
 7. 버지니아 울프(1882-1941): 영국 작가
 8. 빅토리아 색빌리-웨스트(1892-1962): 영국 작가
 9. 베시 스미스(1894-1937): 미국 가수
 10. 캣 밀레트(1934): 미국 작가
 11. 제니스 조플린(1943-1970): 미국 가수
 
 [  유명한 호모들 ]
 1. 제노(BC 5세기): 그리스 엘레아파의 철학자
 2. 소포클레스(BC 496?-406): 그리스 극작가
 3. 유리피데스(BC 480?-406?): 그리스 극작가
 4. 소크라테스(BC 470?-399): 그리스 철학자
 5.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 그리스 철학자
 6. 알렉산더 대왕(BC 356-323): 마케도니아의 지도자
 7. 줄리어스 시저(BC 100-44): 로마 황제
 8. 하드리안(AD 76-138): 로마 황제
 9. 사자왕 리차드(1157-1199): 영국 왕
 10. 리차드 2세(1367-1400): 영국 왕
 11. 산드로 보티첼리(1444?-1510): 이탈리아 화가
 12.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이탈리아 화가, 과학자
 13. 줄리어스 3세(1487-1555): 이탈리아 교황
 14. 벤버누토 셀리니(1500-1571): 이탈리아 금세공사
 15.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 대영 제국 철학가, 정치가
 16. 크리스토퍼 말로우(1564-1593): 대영 제국 극작가
 17. 제임스 1세(1566-1625): 대영 제국 왕
 18. 존 밀턴(1608-1674): 대영 제국 작가
 19. 장 밥티스트 룰리(1632-1687): 프랑스 작곡가
 20. 피터 황제(1672-1725): 러시아 독재자
 21. 프레드릭 왕(1712-1786): 페르시아 왕
 22. 구스타프 3세(1746-1792): 스웨덴 왕
 23. 알렉산더 폰 훔볼트(1769-1859): 독일 박물학자
 24. 조지 골든 바이런(1788-1824): 대영 제국 시인
 25. 한스 크리스틴 앤더슨(1805-1875): 덴마크 작가
 26. 워트 휘트만(1819-1892): 미국 시인
 27. 호라티오 엘거(1832-1899): 미국 작가
 28. 사무엘 버틀러(1835-1902): 대영 제국 작가
 29. 알게논 스윈번(1837-1909): 대영 제국 시인
 30. 차이코프스키(1840-1893): 러시아 작곡가
 31. 폴 벨라느(1844-1896): 프랑스 시인
 32. 아더 랭보(1854-1891): 프랑스 시인
 33. 오스카 와일드(1854-1900): 대영 제국의 극작가
 34. 프레드릭 롤프(1860-1913): 대영 제국의 작가
 35. 앙드레 지드(1869-1951): 프랑스 작가
 36.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 프랑스 작가
 37. E. M. 포스터(1879-1970): 대영 제국 작가
 38. 존 메이날드 케인즈(1883-1946): 대영 제국 경제학자
 39. 해롤드 니콜슨(1886-1968): 대영 제국 작가, 외교관
 40. 어네스트 룀(1887-1934): 독일 나치 지도자
 41. T. E. 로렌스(1888-1935): 대영 제국 군인, 작가
 42. 장 콕토(1889-1963): 프랑스 작가
 43. 바스로 나이진스키(1890-1950): 러시아 발레 댄서
 44. 빌 틸든(1893-1953): 미국 테니스 선수
 45. 크리스토퍼 이셔우드(1904): 대영 제국 작가
 46. 다그 함마스크골드(1905-1961): 스웨덴 UN 사무국장
 47. W. H. 아덴(1907-1973): 대영 제국 시인
 48. 장 게네(1910): 프랑스 극작가
 49. 테네시 윌리엄스(1911): 미국 극작가
 50. 멜레 밀러(1919): 미국 작가
 
 [  2,500권의 책을 암기한 수석 유태 목사 ]
 엘리자 벤 솔로몬(1720-1797)은 리투아니아의 수석 유태 목사였으며, 
빌나의 대규모 유태인 지역 사회의 지도자였다. 그는 독실한 
신앙심으로 존경을 받았으나, 정신력이 매우 특출하여 일반인들에게는 
엘리자 가온이라는 별명으로 더욱 알려졌다.
 엘리자의 두뇌는 도서관 그 자체였다. 한번 읽은 책은 자동적으로 
기억 속에 입력되었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이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었다. 가온은 히브리어로 씌어진 중요한 종교 작품을 
포함하여 2,500권의 책을 기억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하여 자유자재로 문구를 인용할 수 있었다.
 
 [  유명한 왼손잡이들 ]
 1. 칼 필립 임마누엘 바흐: 독일 작곡가
 2. 엘폰스 베틸리언: 프랑스 인류학, 범죄학자
 3. 토머스 칼리: 스코틀랜드 역사학자, 수필가
 4. 찰리 채플린: 영국 배우, 감독
 5. 지미 카놀스: 미국 테니스 선수
 6. 제임스 J. 코벌트: 미국 헤비급 복싱 챔피언
 7. 클리런스 데로우: 미국 피고측 변호사
 8. 레롤드 다 빅시: 이탈리아의 발명가, 예술가
 9. 올리비아 데 하빌랜드: 미국 영화 배우
 10. 마리 디큐네: 캐나다인으로 다섯 쌍둥이 중 한명
 11. 게랄드 포드: 미국 대통령
 12. 제임스 A. 가필드: 미국 대통령
 13. 쥬디 갈랜드: 미국 영화 배우, 가수
 14. 조지 2세: 영국 왕
 15. 베티 크레이블: 미국 영화 배우
 16. 렉스 해리슨: 영국 배우
 17. 잭 덜 림퍼: 영국 살인자
 18. 대니 케이: 미국 배우 코미디언
 19. 샌디 코우팩스: 미국 야구 선수
 20. 할포 막스: 코미디언, 하프 연주자
 21. 폴 매카트니: 영국 록 작곡가, 가수
 22. 미켈란젤로: 이탈리아 예술가
 23. 호라티오 넬슨: 영국 해병대 영웅
 24. 킴 노박: 미국 영화 배우
 25. 코올 포터: 미국 작곡가
 26. 맨디 라이스-데이비스: 영국 고급 콜걸
 27. 베이브 루스: 미국 야구 선수 
 28. 테렌스 스탬프: 영국 배우
 29. 테베리우스: 로마 황제
 30. 해리 S. 트루먼: 미국 대통령
 
 [  인디언 피가 섞인 유명한 미국 사람들 ]
 1. 자니 캐쉬(1932-): 컨추리 가수, 1/4의 체로키족
 2. 체어(1946-): 가수, 체로키족의 피가 조금 섞임
 3. 찰스 커티스(1860-1936): 부통령, 1/4의 칸사족
 4. 레드 폭스(1922-): 코미디언, 세미롤 인디언의 손자
 5. 제임스 카더(1928-): 배우, 체로키족의 피가 조금 섞임
 6. 지미 헥드릭스(1942-1970): 음악가, 체로키족의 피가 조금 섞임
 7. 레나 호르레(1917-): 가수, 블랙풋족의 증손녀
 8. 콜델 훌(1871-1955): 정치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 그의 어머니는 
체로키족의 피를 조금 가짐
 9. 웨이론 제인스(1937-): 컨추리 웨스턴 가수, 코맨체와 체로키족의 
피가 섞임
 10. 로버트 록센버그: 예술가, 1/4의 체로키족
 11. 자니 레이(1927-): 록 가수, 블랫풋족의 피가 섞임
 12. 버트 레이놀드(1936-): 배우, 1/4의 체로키족
 13. 렌 리그(1899-1954): 방송 작가, 희곡 작가(오클라마호의 원작가), 
1/2의 체로키족
 14. 오랠 로버트(1918-): 부흥사 복음 전도사, 어머니 쪽으로부터 
체로키족의 피를 이어받음
 15. 로이 로거스(1912-): 배우, 가수, 촉토족의 증손자
 16. 윌 로거스(1879-935): 희극 배우, 작가, 1/4의 체로키족
 17. 찰스 스티븐(1893-1964): 영화 "국가의 탄생"(1915)에서부터 
1962년 만든 영화 "이방인(The outsider)"까지 활동한 영화 배우, 
아파치 족장 게로미노의 손자
 18. 마지. 젠. 클리렌스 틴거(1887-1942): 미국의 첫번째 육군 대장으로 
진주만 공격 이후 2차 세계 대전에서 죽음, 1/8의 오사게족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의
 탐험가이며 시인이었던 윌터 라리가 반역죄로 처형되자 라리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라리는 남편의 잘려진 머리를 그녀가 죽을 때까지 29년 
동안 향료가 든 상자에 담아 가지고 다녔다.
 
 [   제 16장 역사, 전쟁, 군사, 재앙, 질병 ]
 [   제 16장-역사 ]
 [  이사벨라 여왕이 콜럼버스를 후원한 이유 ]
 스페인의 여왕 이사벨라 1세는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콜럼버스의 탐험 사업에 후원자가 되어 그 많은 선박과 선원 및 돈을 
제공했는데, 왜 이사벨라 여왕이 이러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한번쯤 가져볼 만하다. 매우 아름다운 용모와 침착한 성격을 
가진 이사벨라 여왕은 의외로 남편 페르디난드와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외아들의 요절과 딸들의 불행한 결혼을 지며보아야 했다. 이러한 고통 
속에서 그녀는 용기 있고 남자답게 생긴 콜럼버스를 사랑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랑이 그녀로 하여금 콜럼버스를 후원한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콜럼버스의 인디언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스페인의 왕과 여왕에게 인디언들에 대해서 
극찬을 늘어놓았다. "제가 만났던 패건(pagan) 인디언들, 그들은 언제나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가장 신사적입니다. 또한 온화한 성품을 
지녔고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남의 것을 탐낼 줄도 
모르고 순종적이며, 또한 무기를 소유하지도 않았답니다... 그래서 제 
생각으로는 인디언들은 꽤 순진하므로 무엇보다도 노예로 가장 
적당하다고 여겨집니다."
 
   어떤 일기
 조지 3세는 1776년 7월 4일자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 아무 
중요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지 3세는 바로 그날, 필라델피아와 
펜실바니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  내 목을 자르시오 ]
 헨리 8세는 토머스 모어 경과 앤 볼렌에게 자신들의 사형 방법을 
선택하게 했다. 본래 대역죄에 대한 공식적인 형벌에는 목매달기, 
익사시키기, 몸을 4등분하여 죽이기 등이 있었는데, 토머스 모어는 
참수형(목 잘리기)을 받겠다고 말했다. 헨리의 두 번째 부인도-헨리의 
첫 번째 부인은 총살 대에서 사형 받았다- 목을 잘리겠다고 말했는데, 
화형대신 특별히 프랑스에서 직수입한(?) 검객이 직접 목을 
베었다고 한다.
 
   기아 인구
 총 인구 중 5억 이상의 사람들은-8명 중 1명꼴-오늘날에도 고질적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고 밝혀졌다(1994).
 
   야유 때문에 사형을 면한 사나이
 빨간 셔츠의 혁명당 원수 지우세프 가리발디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후에 유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생부가 되는 클라우디오 
토스카니니는 반란을 도모한 혐의로 다른 당원들과 함께 총살형을 
언도받았다. 드디어 그의 동료들이 차례차례 총살대 앞에서 사형을 
당했다. 그의 차례가 되어 그도 총살대 앞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지켜보고 있던 시민들의 야유 때문에 사형집행을 할 수 없었다. 마침내 
그의 형 집행은 연기되었고, 3년 징역으로 형을 다시 언도받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  사람의 머리가 산을 이루다 ]
 절름발이 티무르(유럽에서는 타무린으로 변음 되어 호칭되었음)가 
제국을 건립하기 시작한 이래 10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그는 이미 
2년에 걸친 정복 끝에 페르시아를 통치하고 있었고 자신과 같은 피가 
흐르는 몽고족에 대항하여 자국인 트란소시아 난국의 경계를 확고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그가 타고난 피에 굶주린 본성을 없애주지는 
못하였다. 그는 칭기즈칸처럼 그의 적들에게 즉각적인 항복과 대학살 
중 하나를 택할 것을 제시하는데, 조그만 저항의 낌새만 보여도 그의 
분노가 폭발하게 된다. 한 성을 정복한 후에 타무린은 그 성에 
거주하는 백성들 중 30,000명의-그들 모두가 무사는 아니었다-목을 
자르도록 명령했다. 그는 그 자른 목들을 마치 장터의 수박덩이같이 
산언덕을 쌓도록 하고 이를 보면서 즐거워했다.
 그는 몸집이 컸으며 큼직한 머리와 넓고 높직한 이마, 그리고 하얀 
살결에 턱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열렬한 종교인이었는데, 그의 
윤리는 오직 육체적 힘에 의지했다. 아마도, 그의 이러한 행위는 그 
자신이 불치의 절름발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 것 같다. 혹자는 
부상으로 절름발이가 되었다고 하는데,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말을 
탈 수 없어 가마를 타고 움직였음에 틀림없다. 그는 항상 앞장서서 
전쟁을 치르었는데, 특수한 작전 상황판 위에 태연하게 앉아서 
민첩하게 작전을 수행했다. 죽음을 즐기는 사람이 하나님을 실존 자로 
믿는 이슬람의 수피들로부터만 충고를 받은 것은 기이한 일이다.
 
   어떤 항의 방법 
 1040년 영국의 어느 마을에서 고디바 부인은 가난한 농민들에게서 
세금을 거둬들이는 데 몰두하는 남편에게 항의하고자, 옷을 모조리 
벗어버리고 긴 머리카락으로 가릴 곳만 가린 뒤 말을 타고 온 마을을 
돌았다고 한다.
 
   승리의 증거
 BC 1300년경 이집트의 왕 메네프타는 리비아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고 카낙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는 승리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리비아군 13,000명의 음경을 잘라 전리품으로 가지고 왔다.
 
 [  화폐 위조범이 민족의 영웅 ]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 7월 14일, 파리의 폭도들에 의해서 그 
유명한 바스티유 감옥이 탈취되었다. 옥중에서 나온 7명의 죄수들은 
루이 16세의 압정에 해방된 민족의 영웅으로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7명 모두 화폐 위조범이거나 기타 잡범으로 들어온 
죄수들이었다.
 
 [  일본 무사들의 집단 자살 ]
 1703년 2월 45명의 일본 무사(사무라이)가 의식을 치르고 자살을 
함으로써 영웅이 되었다. 이들은 그들의 군주를 강압적으로 자살하게 
몰아붙인 장본인으로 지목된 법정 관리인 키라 요시나카의 저택을 
침입한 후 키라의 목을 잘라 고인이 된 그들의 군주의 무덤에 바친 후, 
대장군으로부터 자결하도록 명을 받고 그들 스스로 기꺼이 목숨을 
끊었다.
 
   의문의 17세 소년
 1774년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와 왕비 앙트와네트가 대관식을 
거행하고 있을 때, 이 대관을 축하하기 위하여 어떤 미소년이 라틴어로 
시를 낭송하고 있었다. 이 17세의 의문의 소년이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와 왕비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든 프랑스 혁명의 기수 
로베스피에르였다. 그러나 그도 1794년 7월 28일 루이 16세와 왕비 
앙트와네트가 목이 잘린 그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마사다에서의 자살
 사해 서해안에 있는 엔게디의 남쪽 약 16km 거리에 있는 바위요새 
'마사다'는 난공불락이었다. 하지만 AD 73년 이곳이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당하자, 숨어 있던 960명의 유태인들은 부녀자 7명(2명의 
어른과 5명의 어린이들)만 빼고 모두 자살했다. 유명한 유태 사학자 
요셉푸스가 전하기를, 그들은 제비를 뽑아 10명 중 1명이 9명을 
죽이고..., 이런 식으로 모두 자살했다고 한다. 로마군에 항복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들의 시체와 다 타버린 폐허만이 
마사다를 정복한 로마군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대승리
 BC 222년 알렉산더 대왕이 소아시아에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과 
싸웠을 때, 페르시아군은 400,000명 중 61,000명이 죽고 나머지는 
포로가 되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은 겨우 450명을 잃었을 뿐이다.
 
   나폴레옹의 이력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1769-1821)은 16세에 프랑스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소위로 임관하였고, 24세에 툴롱 반도의 진압에 무훈을 세워 소장이 
되었다. 26세에는 이탈리아 원정군 총사령관으로 이탈리아를 
정복하였고, 33세에 종신통령에 임명되었으며, 35세에 프랑스의 황제가 
되었다.
 
   마라톤 전투 
 BC 490년 페르시아군 110,000명과 그리스군 11,000명이 마라톤 
평야에서 맞붙었다. 페르시아군은 그리스군의 10배가 넘는 막강한 
군대였지만 패배하여 64,000명이 죽고 나머지는 도망하였다. 하지만 
그리스군의 희생자는 겨우 192명에 지나지 않았다.
 
 [  별들의 전쟁으로 신부가 사형 선고를 받다 ]
 중국에서 성인으로서의 전 생애를 보낸 예수회 소속 선교사인 아담 
샬을 1664년 중국인 천문학자들의 계산이 잘못된 것을 입증하였는데, 
그를 투기한 중국인 천문학자들이 그에게 죄목을 씌워 고소함으로써 
능지처참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샬은 중국 석학의 예복을 입고 다니며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였는데, 
한때는 천문성의 장관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너무 완강하게 
황제와 그의 적대자들을 개종시키려 했기 때문에 아마도 그것이 원인이 
되어 그의 영향력이 악화된 것 같다. 그가 지나치게 친 중국 성향을 
띠고 있다고 생각한 다른 선교인들과 그를 투기하고 있던 중국 
천문학자들이 로마와 북경에서 그를 모함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인들은 그가 그리스도인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고소하였고, 이에 
유죄가 인정되었다. 그는 나이가 많고 병을 앓고 있어 실제로 그에게 
형이 집행된 것 같지는 않으나, 그의 필생의 여구가 완전히 멸실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  괴테가 자살 풍조를 불러일으키다 ]
 작가라면 누구나 사람의 심금을 움직일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어하지만, 요한 볼프강 폰 괴테처럼 경이적인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젊은 시인이었던 괴테는 그 자신의 자전적 
소설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통하여 유럽 전역에 걸쳐서 자살 
풍조를 불러일으켰다.
 사회와 담을 쌓은 소심한 어느 시인이 다른 사람의 약혼녀를 사랑하게 
되고, 그러한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은 맺는다. 친구의 약혼녀인 살로테 
버프에 대한 자신의 열애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현실에서의 
고뇌에 대한 베르테르의 거부 반응과 신비한 자연의 힘에 대한 
베르테르의 찬미가 뒤섞여서 젊은 유럽인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소설 내용에서 따온 장면을 새긴 찻잔이나, 남자들이 이따금 
베르테르처럼 푸른 외투와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행동으로 동일화 
심리를 추구하는 것은 해로운 것이 아니나, 베르테르의 자살을 
흉내내어 시도한 것은 어두운 풍조라고 할 수 있다.
 
   잉카 제국의 멸망
 한때 찬란한 잉카 문명을 이루었던 2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잉카 
제국은 1532년 11월 16일 스페인의 피사로 장군이 이끄는 180명의 
병사에 의해서, 병사 3만 명을 거느리고 있었던 아타왈파 황제가 
체포됨으로써 하루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몽고의 병역 제도 
 13세기에 전 유럽을 그들의 말발굽 아래 두었던 몽고의 징병 제도는 
매우 엄격하여, 14세에서 60세까지 병역의 의무를 졌다. 그리고 봉급은 
전무했다.
 
 [  워털루에서는 전투가 없었다. ]
 워털루의 대전투는 사실상 워털루에서 있었던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폴레옹은 '위대한 연합군'이라는 이름의 도시에서 연합군을 
맞아 싸우다가 패배하였다. 1815년 6월 18일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가 
웰링턴 군주와 프러시아의 장군 폰 불루헤어의 연합군에 의해 바로 
이곳에서 패배한 것이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의 교외에 있는 
워털루는 그 전쟁터으로부터 11km나 떨어진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비가 오는 바람에 늦어진 전투는 오전 11시 30분에 시작되었다. 
웰링턴의 군대는 몽 쌩 장이라는 읍의 산등성이에 전열을 세우고 
있었는데, 그곳은 나폴레옹 군대가 주둔한 '위대한 연합군'이라는 
읍으로부터 6.4km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는 죽음의 계곡이 
가로막고 있었는데, 나폴레옹은 울면서 자신이 죽지 않은 것을 
슬퍼하였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치른 전쟁에 대하여 쓴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훗날 이렇게 
기록하였다. "... 그리고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워털루가 명성을 
얻고 있다. '위대한 연합군'을 포함한 전쟁의 상흔으로 물든 조그만 
마을들과 같이 전쟁을 치렀다는 증거가 하나도 없는 워털루가 
애매모호하게 명예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  운명의 8년간 ]
 1595년, 터키의 모하메드 3세(1567-1603)는 19명의 형제를 죽이고, 
오토만 제국의 군주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 무라드 3세의 통치하에서는 
외척이 권력을 잡고 있었으므로 왕권이 약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가 
죽자 그는 왕권을 더욱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제일 먼저 그의 형제 
19명의 사형 집행을 명령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쿠테타를 
예방하고, 제국에서의 자신의 권리를 굳건히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잔인한 술책에도 불구하고, 모하메드 3세는 그가 살해한 19명의 
형제들처럼 죽기까지 겨우 8년밖에 통치하지 못했다.
 
   전쟁은 길고 평화는 짧다
 인류 역사 3,500년 동안 인간이 전쟁 없이 산 기간은 약 230년에 
불과하다. 인류는 약 3,270년을 전쟁 속에서 살아온 셈이다. 
 
   러시아 연방을 공격한 미국의 비행기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지만 미국의 공군 전투기가 러시아 연방을 
공격한 적이 한 번 있었다.
 한국 전쟁 발발 초기에 2대의 F-80 전투기가 블라디보스토크 근교의 
비행장을 향해 사격을 하였다. 1950년 10월 8일, 한반도와의 
국경으로부터 100km 떨어진 수크하야레치카에 있는 소련의 비행장을 
목표로 한 최저공 비행 사격이 있었으며,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수도를 
탈취하기 위한 국제연합군의 마지막 진격으로서 인천 상륙 작전이 
감행되고 있었다. 그 당시는 바야흐로 공산주의를 향한 미국의 전면 
공격이 절정에 달해 있던 시기였다. 
 소련의 외무상은 모스크바 주재 미 참사에게 이러한 도발적 공격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였는데, 이 참사는 미국은 한반도에서 국제연합의 
비호 아래 싸우고 있는 것뿐이므로 그 문제는 전적으로 국제연합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면서 외교적인 정면 대결을 
회피하였다.
 그 후 미국연합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해명할 것을 자청하였다. 
한국에서의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원수에 의해 그 
수크하야레치카에 대한 사격은 항공 기술적인 판단 오류였다고 
해명되었다. 작전 수행 당시의 공군 지휘관은 해임되었다고 조종사는 
징계되었으며, 미군은 피해를 보상하겠다고 제안하였다.
 소련의 신문 "프라우다"지에 따르면, 러시아 연방은 제 2차 세계 
대전의 유혈 참상으로부터 돌리기를 원하였던 바, 이러한 도발에는 
응하지 않기로 하였다고 한다.
 
   인권 유린의 천국
 1881년 러시아의 72개의 공장들을 조사한 결과, 노동자들의 인권이 
무자비하게 착취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령 노동자들은 하루 
18시간에서 20시간의 근무 이후 교대 시간을 가지며, 업주들은 
갖가지의 항목 및 조항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차압한다고 한다.
 
   죽음의 여러 가지 얼굴들
 세계 최초의 여류 시인 사포(BC 600)는 에로티시즘을 즐기다가 18세 
소녀의 사타구니 속에 얼굴을 파묻고 죽었으며, 알렉산더 대왕의 
부왕인 필립(339)은 승리의 순간에 경호원의 손에 암살되었다. 교황 
마틴(655)은 크리미아로 추방되어 그곳에서 굶어죽었으며, 줄리어스 
시저(BC 44)는 심복 부하였던 브루투스와 그의 일당에 의해서 
살해되었고, 브루투스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부하였던 
스트라토(BC 42)에 의해서 피리피에서 살해되었다.
 중국 당나라 현종(754)의 며느리이며 애첩이었던 양귀비는 그녀가 
38세인 안록산의 난 때에 마외파에서 배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바벨론 평원에서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알렉산더(BC 323)와 
몽고와 칭기즈칸(1227)은 모기에 몰려 말라리아에 걸려서 객사하였다.
 로마의 칼리굴라(BC 40) 황제는 닥치는 대로 주변 사람들을 죽이다가 
경호실장의 칼에 죽었다. 네로의 친모인 아그립바(45)는 남편 
클로디우스를 독살시키고 17세의 네로를 로마의 황제로 등극시켰으나, 
네로는 어머니가 정치적인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여 자객을 보내 
암살시켰다. 
 플라톤(BC 347)은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졸도해서 죽었으며, 훈의 
아틸라 왕(453)은 결혼식을 끝내고 첫날밤에 복상사하였다. 비잔티움의 
황제인 나이스포러스(968)는 자신의 오른손이자 경호실장이며, 자신의 
아내의 내연의 남편인 존 지미스케스에 의하여 왕궁에서 난폭하게 
살해되었다. 또 영국의 사자왕인 리차드 1세(1199)는 반란군이 쏜 
화살에 맞아 11일 동안 병상에 누워 있다가 죽었으며, 에피쿠로스(BC 
241)는 추하고 늙은 몸을 보이기 싫어 화산의 분화구에 몸을 던져서 
자살하였다.
 영국의 왕 에드워드 2세는 왕비인 이사벨라와 그녀와 내연의 관계에 
있던 로저 모티나에 의해서 독살 당했으며, 프랑스의 왕 헨리 
2세(1559)는 딸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마상시합에서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터키 제국의 황제인 세림 2세(1558)는 술에 취하여 목욕을 
하다가 실족하는 바람에 터키탕에 쓰러져서 뇌진탕으로 사망하였으며, 
마호메트(632)는 62세 때에 그의 신성을 시험해보기 위하여 어느 
신자가 탄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프랑스의 왕 헨리 4세(1610)는 카톨릭교의 광신적인 신부가 찌른 칼에 
의하여 살해되었으며, 석가(BC 483)는 설법을 마친 후 음식을 먹고 
급성 소화불량으로 객사하였다. 프랑스의 유명한 극작가이며 
코미디언인 모우레(1670)는 자신이 쓴 극중에서 주연으로 연기를 
하다가 무대 위에서 쓰러져 죽었다. 하와이를 발견한 제임스 쿡(1779)은 
하와이 원주민이 찌른 칼에 맞아 사망했으며, 스웨덴의 무서운 왕 
커스타브스 3세는 극장에서 오페라를 관람하다가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프랑스 혁명의 기수 잔폴 마라(1793)는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더운물로 목욕을 하다가 몰락한 귀족의 딸이 찌른 칼에 맞아 
즉사하였다.
 몰몬교의 교주인 조셉 스미스(1843)는 경찰과의 총격전에서 
사살되었으며, 부교주인 브리감 영(1877)은 급성 맹장염으로 죽었는데, 
브리감 영감이 죽으면서 남긴 말은 '조셉, 조셉'이었다고 한다. 그의 
장례식에는 아직 살아 있는 16명의 아내와 44명의 자녀들이 손에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1945)는 유격병들에게 체포되어 그의 애인 
클라라 페타시와 함께 거꾸로 매달려서 교수형을 당했다.
 
 [  보스턴 대학살과 광주 의거  ]
 보스턴 대학살은 1770년 3월 5일 영국군이 보스턴 시위대에 발포하여 
주민 다섯 명이 죽은 사건을 말한다. 보스턴 주민들은 영국군 주둔을 
싫어하여 50-60명이 영국군을 공격하였고, 이에 영국군 책임자 
프레스톤이 발포 명령을 내림으로써 다섯 명이 죽은 것이다. 죽은 사람 
수는 적지만 미국인들은 이를 '보스턴 대학살'이라 부르고 발포 명령자 
프레스톤에게 유죄 선고를 내렸는데, 2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사건은 온갖 책 속에서 언급된다.
 이것이 대학살이라면 2,000명 이상의 무모한 사상자를 낸 광주 의거는 
과연 무엇이라 부를 수 있으며, 발포 명령자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교황과 로마의 고아
 1160년 플아스 몽펠리에의 가이(Guy)가 만든 'Holy Spirit'(성령) 
규칙은 버려진 아이들을 보호하자는 데 역점을 두고 있었다. 이 규칙은 
교황의 열렬한 후원을 받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교황은 
로마의 티버강에 던져진 수많은 어린아이들에 관한 사건으로 골머리를 
썩었고,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그 사건에 염증이 났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여왕 마리
 15세에 프랑스 황태자와 결혼하였으나, 황태자가 죽자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22세 때 헨리 스튜어트와 결혼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비서 
데이비드 리지오를 사랑했는데, 남편이 그를 죽이자 남편을 미워하기 
시작하였다. 24세 때는 남편이 보스웰에게 죽자 보스웰과 다시 
결혼하였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여왕 마리는 45세에 
사촌인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단두대에서 죽었다.
 
   마스터 킬러는 누구?
 몽고의 칭기즈칸 황제는 121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할 때 6개월 동안 1,600만 명을 죽였다. 죽은 자들이 흘린 피가 큰 
강을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또 1218년에는 마호메트가 이끄는 
병사들을 16만 명이나 죽었다. 
 또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지 5년만에 스페인인들은 
150만 명의 인디언들을 죽였다.
 
 [  수치의 역사 한 페이지 ]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은 조카인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의 비행에 울분을 참지 못하여 단종의 복위를 꾀하였는데, 이 
사실이 세조에게 발각되자 뜻을 같이하였던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 등과 같이 국기감 앞에서 극형을 받았다. 이어 성삼문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삼빙, 삼고, 삼성 세 동생과 매첨, 맹년, 맹종과 
갓난아기 등 네 아들까지 모두 세조에 의해 살해되었다.
 지배자의 이기심이 불러일으킨 삼대까지의 완전 멸족! 이것은 우리 
나라의 가장 수치스러운 역사 중의 한 페이지로 기억될 것이다.
 
 [  칼은 칼로 망한다 ]
 1658-1705년 무굴 제국을 통치했던 황제 아우랑제브는 제국을 세운 
바로 그 무력 때문에 망하고 만 예를 보여준다. 그는 총명하고 
유능하며, 잔인하고 고집 센 이슬람교도로서, 자신의 병든 아버지와 
형제들을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정복 전쟁을 계속하여 그는 무굴 
제국을 지금의 인도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지방으로까지 
확장하였다. 하지만 데칸 반도의 마흐라타 지방만은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고, 그가 죽을 무렵이 되자 각 지역에서 그에게 도전하는 온갖 
세력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또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 아크바와는 
달리 힌두교도들을 몹시 박해하였고, 바로 이 때문에 이 제국의 붕괴는 
더욱 빨라져서 그가 88세로 죽은 뒤에 곧 갈라지고 말았다.
 
 [  9일 천하 ]
 헨리 7세의 증손인 16세의 제인 그레이는 영국의 여왕으로 즉위한 지 
9일 만에 퇴위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뜻과 전혀 관계없이 타의에 
의하여 왕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반역죄로 런던 탑에 6개월 동안 
갇혀 있다가 참수형을 당했다.
 
   통곡의 벽
 AD 70년 베스파시아누스도 황제의 아들 티투스는 4군단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하였다.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은 모두 불탔고 굶어서 
뼈만 남은 유태인들이 지옥처럼 붉은 피의 개울 속 여기저기에 죽어 
나자빠졌다. 당시에 포위 공격되어 죽은 유태인들이 1,100,000명이나 
되었고, 97,000명이 포로가 되어 로마로 이송되었다. 
 AD 132년부터 135년까지 지속된 제 2차 유태 전쟁은 더욱 비극적인 
저항으로 끝났으며, 이후부터 유태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겨우 1년에 한 번 예루살렘 함락 기념일에만 구신전 벽에 
매달려 통곡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기회가 허용되었을 뿐이다. 
 
 [  돈만 있었다면 ]
 워싱턴의 군대가 포쥐 계곡에서 죽게 된 이유는 펜실베이니아 
농부들이 현금을 지불하는 영국에 양식을 팔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역사의 속죄양
 1321년 프랑스에서는 유태인들이 파리의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고 하여 
엄청난 유태인 대학살이 일어났다. 1923년 일본에서 관동 대지진이 
있었을 때 한국 유학생들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고 헛소문이 퍼져 
일본인들은 엄청난 수의 한국인들을 잡아다 죽이고 고문하였다.
 
   본국인 왕이 다시는 나지 못하게 함
 구약의 선지자 에스겔은 BC 580년경에 애굽의 쇠퇴에 대해서 '애굽 
땅에서 다시는 본국인 왕이 나지 못할 것'을 예언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예언이 있은 후 이상하게도 자국인이 왕이 되지 못했다. 
클레오파트라를 위시하여 본토인으로 왕위에 오른 자가 전무하였다. 
외국인들을 증오하고 애굽인으로서의 긍지를 자부하면서 거만스러웠던 
이들에게는 엄청난 아이러니컬한 운명이었다. 이러한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이 있은 이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40년 동안 애굽 땅을 
통치하였던 것을 비롯하여 파사, 그리스, 로마, 아라비아, 터키, 프랑스 
등 여러 나라가 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재보를 약탈하였다.
 
   1812년 모스크바의 겨울
 우리는 학교에서, 1812년에 나폴레옹이 러시아의 대원정을 시도하여 
모스크바까지 침입하였으나, 화재와 한파로 실패하고 퇴각한 것으로 
배웠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1812년 모스크바의 겨울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춥지 않았고 오히려 유달리 따뜻했으며, 10월 
27일까지 서리가 내리지 않았다. 이 유난히도 따뜻했던 1812년 
러시아의 겨울이 나폴레옹의 모든 작전을 뒤엎고 말았다. 첫째로 땅이 
얼지 않아서 소형 및 대형포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바퀴가 진흙에 
빠지게 되어 포 이동에 지장을 주었고 또 브레지나강이 얼지 않았기 
때문에 건널 수가 없었다. 이러한 장애물들 때문에 나폴레옹은 
모스크바에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 원정에 
실패함으로써 군사 50만 명을 잃었다. 결국 1812년 모스크바의 겨울은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은 참담한 겨울이 되고 말았다.
 
 [  잘못 알려진 사실 ]
 로마가 불타고 있을 때 네로는 어디 있었나? 영화에서는 그때 네로가 
불타는 로마시를 내려다보며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때는 바이올린이라는 것이 없었을 뿐 
아니라 네로는 로마에서 80km 떨어진 앤티움이란 별장에서 쉬고 
있었다.
 
 [  목욕탕에서 생긴 일 ]
 "페리야스를 독살하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삼촌(테살리아의 왕 페리야스)을 죽인 범인은 
메디아라는 여인이었다. 미리 치사량의 독약을 목욕탕에 푼 뒤, 
메디아는 '잃어버린 젊음을 찾는 최고의 방법은 목욕'이라며 왕을 
목욕탕으로 유인하였다.
 "아르키메데스의 발견"
 그리스의 과학자 아르키메데스는 목욕을 하던 중 물리학의 법칙-흔히 
'아르키메데스의 법칙'이라고 한다-을 알아냈다. 그 법칙이란 물로 
중량을 측정할 수 있다는 논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 완전히 잠겨 있을 때, 목욕탕에서 넘쳐흐른 물을 양은 곧 
자신의 중량과 같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이 발견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벌거벗은 채로, 시칠리의 시라쿠스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쳤다. "Eureka!(드디어 알아냈어!)"
 "아가멘토를 죽인 사람"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리스의 영웅 아가멘토는 그의 
아내인 클라이템네스트라에 의해 살해당했다. 아가멘토가 목욕을 하고 
있을 때 그녀는 도끼를 들고 들어와 아가멘토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곧 목욕탕 안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아가멘토의 몸은 핏물 위로 
떠올랐다.
 "알렉사드리아에서 일어난 화재"
 아랍인들은 알렉산드리아를 정복한 후 곧 4,000개의 공중 목욕탕을 
불태웠다. 그때 함께 타버린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70만 권은 책들은 
목욕탕의 불길을 더욱 치솟게 하기 위한 촉매제로 쓰여졌다.
 "앤 여왕의 목욕탕"
 덴마크의 여왕 앤은 영국의 제임스 1세의 부인이었다. 1615년 목욕탕 
안의 광천수에서 유황 가스에 불이 붙어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했던 
적이 있었다.
 "프랭클린의 레저"
 벤자민 프랭클린은 처음으로 목욕탕을 수입했다고 해서 많은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신문 기사에 의하면 벤자민 프랭클린은 
목욕탕 안에서 종종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나폴레옹의 죽음"
 1803년 어느 날 나폴레옹이 목욕을 하고 있을 때 그의 형제들인 
조셉과 루시앙이 성난 얼굴로 들어왔다. 나폴레옹이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팔 것이라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나폴레옹이 의회와 어떤 상의도 없이 단독으로 결정했다는 
것이 그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루시앙은 스페인을 열심히 
설득하여 마침내 스페인의 식민지인 루이지애나를 프랑스에 
돌려주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는데 나폴레옹이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판다면 그의 노력은 허사가 되는 것이었기에 더욱 참을 수 없었다. 
조셉은 형인 나폴레옹에게 경고했다. 그대로 계획을 실행한다면 귀양을 
각오해야 한다고. 이 말에 나폴레옹은 쇼크를 받아 목욕탕 속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일종의 뇌진탕이었다. 목욕탕 옆에서 수건을 들고 서 
있던 시종은 목욕탕 속으로 뛰어 들어가 죽은 영웅 나폴레옹을 
건져내었다.
 "바그너의 영감"
 작곡가 바그너는 하루에 몇 시간씩 아이리쉬 향수향이 물씬 풍기는 
목욕탕 안에서 그의 마지막 오페라 'Parsifal'(1882)를 구상했다. 그는 
언제나 목욕탕 물은 따뜻해야 하고, 책상에 앉아 작업할 때도 몸에 
배어 있으려면 목욕탕 안에 향수향이 그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풍의 실크 옷을 입고서 이국적 향기로 가득찬 작업실에서 
작곡하기를 즐겼다.
 "모피의 죽음"
 뉴올리언스 태생의 폴 모피는 어렸을 때부터 유명한 체스 
플레이어들을 모두 이견낸 체스의 천재였다. 성장해서도 그는 눈을 
가린 채로 체스 경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여덟 게임을 내리 이겼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최고의 체스 스타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그의 나이 
22세 때부터, 1884년 7월 10일 47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그는 체스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체스 플레이어) 그를 시기한 나머지 독살시키려 
한다고 여겼던 모피가 그때부터 은둔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산책에서 돌아와 모피는 곧바로 냉수로 목욕을 했는데, 
그것이 그의 죽음을 불러왔다. 의사는 원인을 '뇌졸증', '뇌출혈'이라고 
하며, 온몸이 뜨거운 상태에서 갑자기 찬물과 접하게 될 때 생기는 
병이라고 덧붙였다.
 "라스탄드의 글"
 프랑스의 시인이자 희극 작가인 에드먼드 라스탄드는 작업하는 동안 
방해받는 것을 무척 싫어했으나, 찾아온 친구들을 그대로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그에게 묘안이 하나 떠올랐다. 피난처를 
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친구들이 찾아올 때마다 하녀를 시켜 
목욕중이라며 정중하게 돌려보냈고 덕분에 마음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때 씌어진 작품 "Cyrano de Bergerac"(1898)은 
대단한 성공작이었다.
 "스미스가 죽인 여자들"
 영국인 조지 요셉 스미스는 한마디로 여자를 이용해서 생계를 
이어가는 악한 인물이었다. 1910년, 그는 베시 먼디를 만나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결혼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베시가 잠든 틈을 
타서 돈과 옷을 훔쳐 달아났다. 20년 후 그들은 우연히 만나,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 스미스는 베시를 설득해 유서를 쓰게 한 후 베시를 
데리고 의사를 찾아갔다. 물론 그녀가 간질병으로 시달리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며칠 후 베시는 욕실에서 한 손에 비누를 쥔 채 시체로 
발견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목욕중 그녀가 간질 발작을 일으켜 불의의 
죽음을 당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 후 스미스는 2명의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엘리스 번햄과 마가렛 로프티였다-그때는 두 여자들에게 생명 
보험을 들게 했고, 그럴듯한 병명을 만들어 의사를 일부러 찾아가곤 
했었다. 그들 역시 목욕탕 속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어느 날 
엘리스 번햄의 아버지는 우연히 마가렛 로프티의 사망 기사를 읽다가, 
자신의 딸과 거의 흡사한 방법으로 마가렛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찰도 이 점을 의심했다. 마침내 스미스는 재판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법적인 아내 에디스는 재판에서 다음과 같은 증언을 
했다. "난 스미스가 목욕하는 것을 지금까지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어요! 맞아요! 딱 한 번이었어요!"
 "케롤의 주연"
 1926년 2월 22일자 기사는 미국 국민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기사의 안건은 뉴욕의 엘 케롤 극장에서 케롤의 연극 "Vanities(허무한 
것들)" 상연 이후에 열린 술잔치였다. 마지막 상연 시간인 자정 때쯤, 
연극이 절정에 다다랐을 무렵 무대 위에 설치된 욕조 안은 샴페인으로 
채워지고 누드 모델이 나와 욕조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선정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극장 안의 모든 남자들은 줄을 서서 욕조 안의 
샴페인을 유리잔에 담아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이것은 연극 
상연법에 위배되는 사항이었다. 따라서 연방 대배심원은 즉시 그 
욕조가 진짜 샴페인으로 가득 찾는지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만일 
그렇다면 누구의 소행인지도 알아내야 했다. 그 술잔치(파티)를 무대에 
벌였던 엘케롤은 대배심원에게 욕조를 채운 것은 샴페인이 아니라고 
했다. 그의 위증은 곧 밝혀져 그는 1년형과 벌금 2,000달러의 죄값을 
받게 되었다. 그 이후 아무도 그의 면전에서 욕탕이란 '욕'라도 꺼내지 
못했다. 케롤의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콘 왕은 왜 왕위를 내놓았나?"
 당대 전문가들에게 '정치적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귀재'로 혹평받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오하이오주의 상원의원으로 출마하려던 존 
글린이었다. 그러나 그는 1964년 출마를 포기해야만 했다.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74년에는 마침내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    제 16장-전쟁, 군사 ]
 [  731부대의 생체 실험 ]
 2차 세계 대전 때 만주 하얼빈 근처에 있었던 일본의 731부대는 
'세균전 실험 센터'에서 2,000일 동안 생체 실험을 했다. 이때 중국인 
포로 3,000명이 죽었는데 말뚝에 묶어놓고 세균이 들어 있는 통을 
부근에 터뜨려서 감염되어 죽어 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또 영하 
40도나 되는 곳에 발가벗겨놓고 동상에 걸리는 과정을 실험하거나, 말, 
원숭이 등의 피를 혈관에 투입하여 그 결과를 살펴보기도 했다고 한다.
 
   미국의 남북 전쟁은
 1861년 5월 9일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전쟁 후 6주가 될 때까지도 첫 
사상자는 없었다. 서로의 인명을 존중했다기보다 양쪽 모두 전쟁에 
참여했던 전투대원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된 
동안 70만 명의 인명 손실을 입었다.
 
 [  가장 짧은 전쟁은 ]
 1896년 8월 27일 영국과 지금은 탄자니아의 한 지방인 잔지바르 
사이의 전쟁이다. 회교국 군주의 도전에 직면한 영국 함대는 그의 
궁전에 함포 사격을 가하였고 38분 후 항복을 받아냈다. 
 
   외인부대 신병은
 중범에 대한 형벌로부터 구명 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확인하는 심사를 
받았으며 경범죄는 때때로 구명 운동이 허락되었다. 법적으로 
외인부대는 복무중인 누구의 존재도 부인할 수 있었다. 외인부대원의 
진짜 신분을 누설하는 자는 가차없이 프랑스 형법에 의하여 
사형되었다.
 
   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1898년, 스페인과 미국과의 전쟁이 끝날 무렵 미국은 쿠바를 점령했다. 
거리에 걸어다니는 군중들을 학살했고, 말라리아와 황달병으로 
죽어가는 쿠바인들을 가차없이 죽였다. 이때 미국은 쿠바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병력과 제임스 모스를 파견했는데, 이것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100명으로 구성된 모스의 군인들은 모두 흑인이었으며,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쿠바에서는 단 한 번도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  바닷물이 수도를 지켰다 ]
 1672년 루이 16세가 네덜란드를 침략했을 때, 네덜란드인들은 수문을 
열어 북해의 바닷물이 네덜란드로 밀려오도록 유도했다. 결국 
암스테르담은 강력한 프랑스 군대가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섬이 
되었다. 그리하여 네덜란드인들은 피의 혈전을 피할 수 있었다.
 
   이것이 성전이다
 가나안의 하솔 왕은 이스라엘의 군대와 싸우기 위해서 전군을 
거느리고 출동하였다. 그 군대는 모래알처럼 많았으며 기마와 병거 
또한 이루 셀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여호수아 장군은 하솔 
왕의 수많은 군병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죽였다. 숨쉬는 것이면 모두 
다 살려두지 않고 모조리 칼로 쳐 죽였는데, 어른도, 어린아이도, 
여자도, 노인네들도, 가난한 사람도, 임신한 여자도, 모두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이것이 성전이다.-여호수아 11장, 8, 11, 12, 14, 17, 22절.
 
   57,000명과 197,100명
 1957년에서 1975년 4월 30일까지 18년에 걸친 월남전에서 월남군은 
254,300명, 월맹군은 1,027,100명이 죽었고, 미국 군인은 57,000명이 
죽었고 303,700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이 기간(18년) 동안 
미국내에서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197,000명이 넘는다.
 
 [  미국 오리건주의 폭탄 세례 ]
 1942년 9월, 일본의 잠수함 I-25는 부주 장치가 되어 있는 전투용 
비행기를 싣고 태평양 연안을 가로질러 비행했다. 곧 그 일본 비행기는 
미국 오리건주의 하늘을 순회하다가 폭탄들을 투하시켰다. 산림 화재를 
일으키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러나 이 사실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몇 년 뒤에야 밝혀졌고 동시에 미국 본토가 처음으로 폭탄 세례를 받은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1942년에 발발했던 이 화재를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일본에서부터 오리건주로 불어오는 바람에 편승하여 날아온 
풍선 기구 안에 실린 '소이탄'이 원인이었다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일본의 대승리
 러일 전쟁 때, 러시아의 발틱 함대가 한국과 일본 사이의 쓰시마 
해협까지 이르는 30,000km를 항해하는 데에는 7개월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1905년 5월, 일본인들이 역사상 가장 완벽한 해군 승리였다고 
자부하는 러시아 ㅂ라틱 함대를 폭발시키는 데는 단 하루 반이 걸렸을 
뿐이다. 이 밖에도 쓰시마 해협에서 일본인들은 11척의 러시아 전함과 
2척의 해안 정찰 전함들, 그리고 11척의 작은 군함들을 격파시켰으켜 
9명의 순찰원들을 익사시켰다.
 
 [  게를 전쟁에 이용한 일본군 ]
 제 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군들은 게를 이용하여 밤에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지도를 볼 수 있었다. 효소 작용으로 자체내의 생리학적 
빛을 발산하는 작은 게들을 바짝 말려서 빻으면 가루가 되는데, 일본 
군인들은 이 가루를 손안에 넣고 물을 부었을 때 희미하나마 파란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맥아더와 아이젠하워
 웨스트 포인트 사관학교에서 164명 중 맥아더는 1등으로, 
아이젠하워는 61등으로 졸업했다. 또 맥아더가 육군 참모총장이었을 때 
아이젠하워는 맥아더의 부관이었다. 50세의 맥아더가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대장으로 승진했을 때 아이젠하워는 49세로 무명의 중령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2년 뒤인 1941년 아이젠하워는 대령이 되고 곧 
준장이 되었으며, 1942년에는 소장을 거쳐 중장, 1943년에는 대장이 
되었다. 맥아더는 이때 대장으로 머물러 있었는데, 1944년 아이젠하워와 
맥아더가 모두 원수로 승진했다. 하지만 1952년 아이젠하워는 미국 
3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맥아더는 1951년 트루먼 대통령과의 
불화로 UN군 총사령관 자리를 박탈당하고 1952년 퇴역 장군이 되었다.
 
 [  반란죄로 사형에 처해진 ]
 유일한 해군은 바로 육군 장관의 아들이었다. 1842년 해군 사관생도인 
필립 스펜서는 다른 공모자 2명과 더불어, 그들의 전함 U.S.S. 
Somers를 해적들에게 넘겨주려는 계획을 모의했던 협의로 구속되어 
사형에 처해졌다.
 
   영웅이 될 것인가, 총살을 당할 것인가?
 2차 세계 대전시 일본인 가미가제 파일럿들은 굉장히 많은 특혜를 
받았고 영웅 대우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가미가제 파일럿이 되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한 임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혹독한 훈련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만약 군대에 남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들은 반역자로서 총살당하게 된다.
 
 [  뉴욕시를 폭격하려던 히틀러의 계획 ]
 제 2차 세계 대전 중 히틀러는 연합국의 주요 도시들을 전격 
기습하려는 망상에 사로잡혔는데, 런던, 모스크바, 그 중에서도 
뉴욕시가 바로 그 대상이었다. 하늘로부터의 공습이 맨해튼에 가할 수 
있는 손실은 그리 크지 않겠지만, 그로 인하여 미국 국민들이 당할 
정신적 타격은 가히 가공할 만하리라고 계산한 것이다.
 독일의 3대 유수 항공회사가 장거리 폭격기를 제조해낼 의무를 
부여받았다. 포크-울프사에서는 9,980-kg의 폭탄을 적재할 수 있는 
6기통 엔진 비행기를 설계하였는데, 제도판 위에서 끝나버리고 말았다. 
메세르 슈미트의 4기통 엔진 Me 264V-1은 1,800kg의 폭탄을 싣고 
고공으로 대서양을 횡단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는데 1942년 12월에 시범 
비행을 하였다. 좀더 많은 폭탄을 적재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 
고안되었으나, 전쟁 물자 부족으로 이해 메세르 슈미트사는 더 이상의 
개발 계획을 중지하였다. 
 
 그때 융커 회사에서는 당시 독일에서 생산된 것 중 가장 큰 비행기인 
Ju 390을 발명하였다. 1944년 1월에 나치 제국은 Ju 390기가 프랑스 
보르도로부터 유욕 북부 지역 미 해안선에서 20km 떨어진 곳까지 시험 
비행하였다고 주장하였다. 6개월 후, 융커 단지는 연합국 파괴 공작대에 
의해 파괴되었다.
 
 1942년이 되자 독일은 또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였다. 수중 로켓 폭격 
계획이었다. 그들은 잠수함에 장착된 미사일을 실험하였고, 1944년 
뉴욕시 주위 약 300km 반경내의 지역을 조준한 V-2로켓을 보완할 
특별 U보트까지 설계하였는데, 이러한 모든 것들이 현실화되기 전에 
전쟁이 끝나버렸다. V-2 설계 지휘관이었던 벤헤어 폰 브라운은 
전쟁중에 수중 미사일 연구 결과룰 모두 가지고 미국으로 왔다. 그는 
후일 미군을 위한 미사일 발전에 개척자적 역할을 하였다.
 
 [  히틀러의 거대한 실수 ]
 1942년 6월 히틀러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파괴력이 강한 장갑차를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그것은 러시아 장갑차를 모두 파괴할 수 있는 
장갑차였다.
 자동차 제조업자인 페르난도 포르쉐 박사에 의해 제작된 이 나치의 
킹콩 장갑차는 9m 길이에 180톤보다 조금 더 나갔고 24cm 두께의 
철갑판으로 만들어졌다. 그 이름은 매머드였으며, 1944년초에 실험을 
거쳤다.
 시험 운전하는 날 메머드는 덜거덕거리며 마을을 통과하면서 돌로 
포장된 도로를 부수어 버렸고, 그 진동으로 해서 건물 지반을 내려앉게 
하였으며 창문을 부수기도 하였다. 부피가 거대한 만큼 쓸모가 없었다. 
포장된 도로를 지나 흙과 풀이 있는 길에 들어서자 이 장갑차는 흙 
속에 깊이 박혀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히틀러는 이러한 괴물을 2개나 
만들었는데, 1944년말 연합군에게 빼앗기게 될 것을 염려하여 
쿠머스돌프에서 파괴시켜버렸다.
 
   제 2차 세계 대전에서의 사망자 
 가장 비참했던 전쟁은 세계 대전(1939-1945)이다. 이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군인과 민간인을 합하여 54,800,000명에 이르는데, 그 
중에서 25,000,000명이 소련 사람이었고, 7,800,000명이 중국 사람, 
22%인 6,028,000명이 폴란드 사람이었다.
 
 제 1차 세계 대전의 원인
 제 1차 세계 대전은 1914년 7월말에 발발하였다. 그 직접적인 원인은 
1914년 6월 28일에 오스트리아 항제 페르디난드가 세르비아의 한 
청년에 의해서 암살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그 범행의 책임을 세르비아 정부에게 묻자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그해 7월말에 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한 사람의 우매한 청년 암살범이 제 1차 세계 대전을 발발케 하여 
37,513,886명의 사상자를 낸 것이다.
 
 [  진주만의 첫 포성은 미국이 울렸다 ]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에 있는 미국의 해군 기지를 몰래 습격하여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파괴시키고 미국으로 하여금 제 2차 세계 대전에 
참여하게 만들었지만, 진주만에서 포문을 먼저 연 것은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1941년 12월 7일 동트기 바로전, 미국 소해정이 제 1차 
세계 대전 때의 순양함 천 톤짜리 워드호에 교신을 보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잠수함이 진주만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을 탐지했다는 
것이다. 약 4시간 후, 워드호에서 초록빛 2인승 소형 잠수함의 전망탑이 
미 화물선 뒤에 따라붙는 것을 발견하였다. 워드호의 선장인 윌리엄 W. 
아우터 브리지 대위는 선원들에게 전투 태세를 준비시킨 후 발포 
명령을 내렸다. 제 3포의 포탄은 46m 떨어진 잠수함의 전망탑을 날려 
버렸다. 포탄을 맞은 잠수함은 미친 듯이 돌더니 폭발하면서 
가라앉았다. 워드호는 잠수함의 흔적을 없애버리기 위해 4개의 수중 
어뢰를 발사시켰다. 이렇게 하여 진주만에서의 포성은 새벽 6시 45분에 
미국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희생자는 미리 계획된 습격의 임무를 띠고 
침입하였던 일본 잠수함이었다. 
 1시간 10분 후 일본군 총력이 진주만으로 진격하여 폭격을 
시작하였다. 급강하 폭격기, 어뢰 발사기, 전투기, 고공 폭격기 등으로 
이루어진 353항공대가 두 줄로 전열을 갖추고 진주만을 뒤 흔들어 
놓았다. 그리하여 2,335명의 해군을 비롯한 미군이 사망하고, 19대의 
미군 함정이 가라앉거나 못쓰게 되었으며, 지상에서는 150대의 
비해기가 날아가버렸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날을 '영원히 
불명예스러운 날'이라고 불렀다.
 일본군은 정확히 3년 뒤에 워드호에게 당한 일을 만회하게 되었는데, 
1944년 12월 7일 가미가제 비행사들이 워드호를 공격하여 필리핀 군도 
옆에서 침몰시켰다.
 
   미국이 러시아를 침략하다
 냉전은 1950년대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군대가 공산주의자를 
제거할 목적으로 러시아를 침략했던 1918년에 시작되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것은 냉전이 아니라 완전히 열전이었다.
 그 해초-1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몇몇 연합국은 러시아에 
군대를 보냈는데 영국과 프랑스의 주요 목적은 모스크바에 압력을 
가해서 그때 막 독일과 개별 평화 협정을 맺었던 소비에트가 독일에 
다시금 반격을 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일본은 영토에 대한 욕심 
때문에 러시아 침략에 참여했다. 그리고 미국의 참전은 일본을 
견제하고 주요 무기와 보급 창고를 치키며 독일군으로부터 러시아 
북부의 항구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침입 작전에 일어난 내란은 러시아를 지배 세력인 볼셰비키 
또는 '적군(Reds)'과 반혁명파인 '백군(Whites)'으로 나누어지게 했다. 
백군은 모스크바 탈환에는 실패했지만 지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미국이 개입한 실제적인 이유는 바로 이 백군을 도와 공산당을 
쓰러뜨리는 데 있었다. 1918년 8월과 9월에 미국은 백해 근처의 
아크엔젤에 4,500중대의 병력을, 동부 시베리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는 
8,000중대의 병력을 투입하였다. 1918년 독일이 포위당한 이후 소련에는 
연합군이 더 이상 주둔할 명분이 없어졌지만 그들은 철수를 서두르지 
않았다. 미군은 볼셰비키 전쟁에 개입했고 백군이 완전히 진 다음에야 
철수를 시작한 것이다. 마지막 미군 병사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1920년 
4월이 되어서였다.
 
 [  박쥐 폭탄 ]
 제 2차 세계 대전 중 미군은 살아 있는 박쥐를 이용하여 일본을 
공격할 계획을 구상하였다. 이것은 펜실베이니아의 외과 의사였던 리틀 
애담즈라는 사람이 상상해낸 것으로, 달걀 담는 바구니처럼 생긴 큰 
상자에다 시계로 폭발 시간을 맞추어놓고 소이탄이 부착된 박쥐를 담은 
다음, 공격 목표가 되는 일본의 어느 지점에다 폭격기를 이용하여 
투하한다는 것이었다.
 지상에 거의 다다를 무렵, 상자가 열리면서 박쥐가 튀어나와 어둠과 
정적을 타고 집과 건물의 외진 곳으로 숨어들게 하는 것이다. 숨어드는 
데 성공하면 박쥐 몸에 부착된 수천 개의 폭탄이 동시에 폭발해 나무로 
만든 집들에 부싯돌로 불을 붙이는 격으로 아마도 지옥과 같은 
아수라장을 만들 것이었다.
 연방 정부는 1942년초에 그 제안을 채택하고 'X-레이 작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2백만 마리에 달하는 날대 달린 포유동물이 텍사스의 
동굴에서 잡혀서 거대한 냉동실에 보관되었다. 그러는 동안 
28.35kg밖에 안 되는 폭탄이 제작되었는데, 이것은 박쥐의 몸에 
부착시키기에는 매우 적당하였으며 8분 동안 지속되는 56cm 크기의 
화염을 뿜어내기에도 적당하였다. 뉴멕시코 비행장에서 이 폭탄 1개가 
실수로 발사되었는데, 커다란 격납고 한 채와 자동차 한 대가 
소각되었다.
 1943년 가을, 이 거대한 박쥐 작전이 한 마리의 박쥐도 출전시키지 
않은 채 이유가 알려지지 않고 철수될 때까지, 미군은 2백만 달러라는 
거금을 이 X-레이 작전에 투입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미군에서는 그때쯤 원자폭탄의 제작에 눈을 돌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적군을 난타하기에 훨씬 더 성능이 우수한 
무기였던 것이다.
 
   잘못된 날짜에 시작된 세계 대전
 제 2차 세계 대전은 히틀러의 군대가 폴란드를 침공한 1939년 9월 
1일에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전투는 실질적으로 6일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히틀러는 처음부터 1939년 8월 26일 공격을 개시하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16개 전투 부대가 이미 공격 포진을 하고 있었던 그 
전날 밤 갑자기 공격이 취소되었다. 무솔리니가 폴란드를 침공하려는 
독일에 대한 원조를 중지한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 정치적 여건이 
히틀러로 하여금 아직 침공의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여러 난관을 거쳐 전투 부대들은 라디오 방송을 듣고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그런데 한 부대만이 연락이 되지 않았다. 8월 26일 오전 
12시 1분 알브레히 헤르즈너가 통솔하는 부대가 전략 오충지인 
장룬쿠르프로를 점령하였고, 모스티에 있는 기차역과 더불어 소수의 
폴란드인을 포로로 잡았다. 헤르즈너는 중앙 막사로 전화를 걸었다가 
그가 성급하게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령에 따라 그는 
포로를 석방하고 귀환하였다.
 
   장교와 사병
 1941년 7월 7일 하와이 카우큐 기지에 있는 미 제 55통신대의 
레이다망에 220km 지점에서 접근해오는 비행 물체를 잡아냈다. 
근무병이 이것을 당직 장교에게 보고했지만 그는 자국 비행기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관심하게 넘겨버렸다. 당시에는 레이다가 새로운 
것이어서 전적로 믿을 게 못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본의 '사나운 독수리'라 불리는 전투기 353대는 진주만에서 18척의 
군함을 박살내고 2,403명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일이지만 북한의 특공대 소속 김신조 
일당이 남한으로 잠입해 들어올 때 주로 야산을 이용했다고 한다. 당시 
파주 미군 부대 CC#2에서 야간 경비 근무를 하고 있던 사병이 '이상한 
군인들'이 산을 타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당직 장교에게 보고했지만, 
훈련중인 한국군일 것이라 무시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가상의 공격 개시일
 1944년 6월 6일에 있었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아주 기막힌 눈가림에 
의해 성공할 수 있었다.
 공격 개시일이 점점 다가올수록 연합국은 자신들이 공격 계획이 
독일군에게 누출되지 않는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1944년 
봄, 독일의 정찰기에 의해 영국 동서방 지역에서 은밀하게 비밀 군사 
작전이 전개되는 것이 사진으로 찍혔다. 분주하게움직이는 군사 기지가 
숲속에 반즘 가려져 있고, 지프와 탱크가 이동하고 있었는데 프랑스의 
칼 라이스로부터 영국 해협을 가로지르는 도버에는 정유기가 건축 중에 
있었다. 독일군은 또한 디오 교환도 탐지할 수 있었다. 독일은 이러한 
모든 정보들을 바탕으로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였는데, 연합군이 칼 
라이스를 통해 7월 하순쯤에 유럽을 공격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치는 실수를 범하였다. 정유기는 영화 세트 제작자들이 쓰다 
남은 하수구 파이프와 천막으로 만든 것이다. 전투 차량은 팽창 고무로 
만든 것이었으며, 군 요새는 모두 위조였고 라디오 방송은 모두 
거짓이었다. 그리고 실제 공격은 7월 하순 칼 라이스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6월 초순 노르망디에서 감행되었다.
 
   한미 전쟁
 고종 3년인 1871년 5월 23일, 로저스 제독이 이끄는 미국 해군기함 
플로리도호와 순양함 2척, 전함 2척이 평양으로 쳐들어왔다. 이들은 5년 
동안의 남북 전쟁을 겪은 단련된 병사들로, 수병 700명, 해병 500명 총 
1,200명에 대포 85문까지 달고 침입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병사들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이미 겪었기 때문에 미리 방비하고 있었고 결국 
미 해군의 공격을 물리쳤다. 그러나 이 전쟁으로 조선 병사 350명의 
희생되었다.
 
   남극 기지
 미국은 남극의 얼음 위 어떤 곳에 약 3km에 달하는 공군 기지를 
만들어 놓았다.
 
 [  영국 수상의 빗나간 예상 ]
 처칠의 고학 고문이자 수상인 처웰 경은 V-2 로켓은 선전용으로 
내세운 헛소문이라고 일축하여 영국 정부를 안심시켰다. 런던이나 다른 
도시들을 파괴시키기 위하여 독일이 빛이나 소리의 속도보다 더 빨리 
날아가는 포켓으로 프로펠된 폭탄을 만들었다는 것은 근거 없는 소문일 
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수백 
개의 V-2 폭탄이 영국에 투하되었기 때문이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BC 218년 가을에 60,000명의 병사와 6,000명의 기마병을 
이끌고 알프스를 넘었다. 그는 알프스를 넘은 최초의 장군이기도 한데, 
이때 가장 장관을 이룬 것은 40마리의 코끼리의 대열이었다.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수천 마리의 코끼리가 아니었고, 그저 말보다 조금 큰 
북아프리카산 코끼리이였다. 가을에 알프스를 넘기 시작하여 봄이 
되었을 때 40마리의 코끼리 중 한 마리만이 살아 남았고, 60,000명의 
병사 중 26,000명만이 간신히 살아 남았을 정도였다. 29세의 명장 
한니발은 알프스에서 39마리의 코끼리와 34,000명의 병사를 잃은 
셈이다. 그러나 BC 216년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진격한 한니발은 단 
하루의 전투에서 50,000명의 로마 군사를 죽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한니발 장군은 아프리카 흑인이었다.
 
   한니발과 식초와 불
 BC 2세기경 한니발이 이탈리아는 침략했을 때, 식초와 불은 알프스를 
횡단하던 도중 막힌 길을 뚫어주는 해결사들이었다. 한니발이 이끄는 
군대는 이따금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암석에 
막혀 행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군인 기술자(?)들은 불붙은 
통나무를 암석 위에 얹어놓아 가열시킨 후에 식초를 암석 위에 
부어버렸다. 그러면 거대한 암석은 조각조각으로 갈라져서 탁 트인 
길을 안내해주었다.
 
 [  조약으로 앙금이 사라질까? ]
 V-J day(제 2차 세계 대전의 대일 전승 기념일, 1945년 8월 15일, 
혹은 정식 항복일인 9월 2일) 이후 33년이 되는 1978년 8월 15일, 
중국과 일본 양국은 형식적으로 볼 때 2차 세계 대전 때의 불쾌한 
감정을 종식시키자는 '평화와 우정' 조약을 맺었다.
 
   가장 혹독한 전쟁 
 수백만 명의 남자와 여자, 그리고 꽃송이 같은 아이들이 추위로 
죽었다. 그리고 5억 달러 어치의 금이 얼음 광야에 버려졌다. 이 같은 
비극은 바로 추위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것은 1919년 11월 13일 시베리아의 옴스크(Omsk)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러시아의 장군 콜착은 제정 러시아 제국의 유물을 모아 
시베리아에서 8,000km 이상 떨어져 있는 태평양 연안으로의 후퇴를 
결심했다. 
 퇴각군은 500,000명의 병사와 동행한 750,000명의 피난민으로 
구성되었다. 피난민 중에는 25명의 주교, 12,000명의 성직자, 4,000명의 
수사, 그리고 45,000명의 경찰관과 200,000명 이상의 러시아 귀족 
가문의 부녀들, 그리고 전연령에 걸친 수많은 아이들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장군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은 5억 달러어치의 값이 
나가는 500톤 가량의 금이 산적된 288대의 무장한 기차였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행렬이 8,000km의 행로를 출발할 때 시베리아의 겨울은 
그곳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들도 놀랄 만큼 혹독했다. 평균 영하 40도 
이하를 맴도는 추위는 60도 이하로까지 내려갔고 울부짖는 바람과 
눈보라는 직각으로 날이 선 톱으로 살을 에이는 듯하며 그 거대한 인간 
군단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길은 곧 얼어죽은 사람과 말의 시체와 버려진 썰매로 뒤덮여져갔고 그 
위에는 끊임없이 내리는 눈이 덮여 중국의 만리장성이 시베리아 
벌판에서 만들어지는 듯했다. 이같이 믿어지지 않는 인간의 고난은 
1920년 2월 어느 날, 군대가 많은 양의 금덩이를 버릴 것을 결정할 
때까지 3개월간이나 계속되었다. 장갑 기차의 연료가 모두 바닥이 났을 
때 보물을 말 또는 썰매에 옮겨 실으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혹독한 
추위는 시베리아의 조랑말을 하나씩 둘씩 죽여가서 마침내 남은 차르 
황제의 보물까지도 버려야 했다. 이때 세상 사람들은 1백만 파운드의 
금이 퇴각군에 의해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희생자의 무리는 늘어만 갔고 행군하는 사람들도 최면에 걸리 듯 시체 
같은 모습으로 조용히 움직였다. 눈은 계속 내려 전세계가 마치 거대한 
눈꽃이 소용돌이치는 우주로 보이게 했다. 그들이 지친 채 수천 미터의 
눈길을 걸을 때 오도독 오도독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는 자장가를 
연주하는 심포니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 소리에 굴복되어 한 순간 잠에 
빠지는 사람은 영원히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그들이 여전히 떨어지기만 하는 기압계를 가지고 혹독한 추위 속을 
터벅터벅 걷고 있을 때, 추위는 파멸에 이르러가고 있는 생존자들을 
갉아먹을 듯 스며들어왔다. 눈꺼풀에는 고드름이 달리기 시작했고 
속눈썹에 어리는 물기는 그대로 얼음 덩어리가 되었다. 그리고 눈알을 
덮고 있는 액체는 그대로 얼어서 특별 렌즈가 되었다. 눈보라는 미친 
듯이 몰아쳐서 나보 니골라예브스크(Navo Nigolayevsk)시 가까이 왔을 
때는 하룻밤에도 200,000명의 사람들이 죽어갔다.
 행렬은 2월말쯤 바이칼 호수에 도착했고 처음 떠날 때 1,250,000명이던 
인원중 살아 남은 250,000명이 23km 깊이에 80km 폭의 얼어붙은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이제 지난 3개월간의 고통을 능가할 만한 것은 없는 듯 보였지만 
바이칼 호수는 이곳을 건너지 못하고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일으켰다. 호수 표면에 얼어붙은 얼음은 마치 사교 댄스 홀의 
마룻바닥처럼 미끄럽고 반짝반짝 빛이 났다. 추쉬는 절정에 달해서 
영하 69도의 혹한이 눈보라를 동반하여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곰 
가죽이나 물개 가죽으로 몸을 감싸는 일도 추위를 녹이기에는 소용없는 
일이었다. 추위는 그들의 몸을 얼음 마스크처럼 감쌌다.
 이제 그들은 또다시 수천 명씩 죽어가기 시작했다. 상상할 수도 없는 
비극이 얼어붙은 호수 위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빙판 위에서 막 아기를 
출산키 위해 진통을 겪고 있던 한 육군 대장의 부인은,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그녀를 가려주기 위해 인간 병풍이 되어 서 있던 그녀의 
남편과 함께 얼어붙고 말았다.
 바이칼 호수에서 살아 남은 영혼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사람이 죽고 
그 위에 눈이 덮인 후 한 생존자-아마도 미친 수도사로 여겨지는-의 
목소리가 눈보라치는 공동묘지 위로 외치듯이 들려왔다. "하나님께 
인간의 심장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라." 마침내 그 
목소리도 사라졌고 그곳에는 유령의 정적만이 감돌았다. 250,000명의 
시체가 바이칼 호수 위 그들이 쓰러진 자리에 여름이 올 때까지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여름이 와서 얼음이 녹았을 때 거대한 무게의 시체 
더미들이 바닥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 엄청난 혹한에 의한 
희생자들의 몸은 오늘날까지도 그곳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    제 16장-재앙, 질병 ]
 [  여왕의 자기 무덤 파기 ]
 19세기 버마에서는 흉악한 대량 학살 사건이 일어났는데 버마의 여왕 
수파야라트도 잔인 무도한 살인범 중의 한 명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3일 동안 연회를 궁중에서 성대히 열고는 음악 소리를 
굉장히 크게 틀어놓도록 명령했다. 그녀의 돈에 매수된 살인광들의 
업무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그녀는 누구를 죽이라고 시켰을까? 티바우 왕, 즉 남편의 왕좌를 
고수하기 위해서 그녀 남편의 친척들(약 100여명)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무덤을 판 꼴이 되고 말았다. 그 당시 
버마를 통치하던 영국의 관례에 따르면, 왕가 태생의 죄수들은 
귀향형에 처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티바우 왕과 수파야라트는 
멘달레이로의 귀향길에 오르게 되었다.
 
   자경 대원의 살인 임무
 샌프란시스코의 외각 지역에 있는 바르바리 해안의 자경 대원들은 
1860년부터 1880년까지의 임기 동안 하룻밤에 한 명꼴로 약 7,300명을 
죽였다.
 
   불가리아인의 살해자
 1014년 콘스탄티노블의 바질 2세는 지난 40년 동안 계속되어 온 
전쟁을 종식시키리라 결심하였다. 증오로 격앙되어 있는 
불가리아인들을 정신적으로 패배시키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그는 
수감되어 있던 15,000명의 불가리아인 포로들 중 150명만 제외하고 
모두 장님으로 만들게 했다. 그리고 혜택받은 150명은 각각 한쪽 눈만 
불구로 만든 후, 장님 100명씩을 1명의 한쪽 눈 장님(외눈박이)이 
이끌고 가게끔 배열시켰다.
 결국 그들은 장님 꼴로 불가리아의 수도 오리드로 향하게 되었다. 
한편, 불가리아의 왕 사무엘은 그의 군인들이 귀환하고 있다는 반가운 
전갈을 받은 후 곧장 궁 앞으로 뛰어나갔다. 하지만 그가 목격한 것은 
어깨를 반드시 펴고 씩씩하게 진행하는 장정들이 아니라, 누구의 도움 
없이는 결코 움직일 수 없는 가련한 장님들의 모습이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사무엘은 그 자리에서 졸도한 후 이틀 만에 숨을 거두었다. 바질 
2세는 그 후 불가리언의 살해자라는 의미의 
불가록톤스(Bulgaroktones)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  대지진  ]
 1989년 10월 샌프란시스코의 지진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 
10,000개 정도의 힘 또는 200,000,000톤의 다이너마이트가 터질 때의 
힘으로 이 도시를 덮쳤다.
 
 [  금광 노동 캠프 ]
 300만 명의 러시아인들은 북극 시베리아에 있는 수백 개에 달하는 
금광 노동 캠프에서 죽어간다고 밝혀졌다.
 이 시베리아의 노동 캠프들은 전소련내에 있는 어느 집중 
노동조합장보다 혹독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고도 알려졌다.
 
   전쟁보다 무서운 마의 천연두
 17세기 30년 전쟁(1618-1648)이 일어났던 동안에 유럽인 6천만 명이 
천연두로 목숨을 잃었다.
 
 [  유태인은 왜 역사의 속죄양이 되어야 했나? ]
 1792년 러시아에서는 유태인을 핍박하는 새로운 법령이 만들어졌다. 
즉 유태인은 아무 장소에서나 살 수 없고 어느 일정한 장소에서만 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태인들은 농장이나 부동산을 소유할 수 
없고 자유로운 직업 선택도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수많은 유태인들이 
가난과 질병 속에 죽어갔다.
 1881년 알렉산더 2세가 암살되자 유태인들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워 
감금, 폭행하거나 집과 소유물에 불을 지르고 사형하기도 했다.
 BC 586년에는 신바빌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유태 왕국을 멸망시키고 국왕과 주민들을 바빌로니아로 끄로 왔다. 
그때 유태인들의 코와 혀는 나끼바늘로 꿰어져 있었다.
 유럽 인구의 1/3을 죽인 흑사병이 독일 쾰른을 휩쓸고 있었을 때 그 
속죄양으로 유태인들을 웅덩이에 집어넣어 불을 질러 죽였는데, 이때 
희생된 유태인의 수는 5천만명이 넘는다. 1942-1945년에는 히틀러와 
나치당이 600만명의 유태인을 죽였다.
 
   가장 끔찍했던 해양 사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역대를 통틀어 가장 끔찍했던 해양 사고를 
물어보면, 아마도 1912년 1,513명의 인명 피해를 가져온 타이타닉호의 
침몰 사건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때보다 거의 5배의 인명 피해를 가져온 해양 사고가 있었다. 
바로 1940년대말, 발틱 해안에서 독일 함대 빌헬름 구슬로프가 소련군 
잠수함 S-13이 쏜 수뢰로 격침된 적이 있었는데, 이때 8,000명이 
익사했다(사망자 대부분은 여자들과 어린아이였다).
 
 [  일요일 아침 갑자기 ]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일본 해군 특공대의 기습으로 진주만이 
불탔다. 결국 미국은 정식으로 일본에 선전 포고를 하여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아침은 북한 인민군의 
남침이 시작된 날이다.
 1666년 9월 2일 일요일 아침에 일어난 런던 대화재는 18,000채의 집과 
건물들을 파괴하고 100,000명의 이재민을 냈다.
 1965년 8월 15일 일요일 아침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나 20,000명의 연방 군인들이 투입되었고 약탈과 방화로 2,200명이 
수감되었으며 30명이 죽고 수백 채의 집이 불탔다.
 1905년 1월 22일 일요일 아침에는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에서 
100,000명의 농민과 노동자들 시위대에 대한 무차별 사살, 즉 피의 
일요일이 시작되었다. 이 일로 1,000명의 사상자와 수천 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1937년 9월 5일 일요일 아침에는 독일 느럼브도크에서 나치당 창설 뒤 
가장 큰 규모인 60만 명의 나치 당원들이 모여 히틀러에게 충성을 
약속하였다. 
 
   대기근
 1876-1879년 중국에서 일어난 대기근으로 1,300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눈 외과 의사의 수술료
 눈의 백내장 수술은 일찍이 기원전 1000년부터 인도에서 실행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바빌로니아에서는 법으로 눈 외과 의사의 수술료를 
정하였으며 무척 비싼 편이었다. 부유한 양민을 성공적으로 수수하면 
은 열 세겔을 받았으며 노예의 경우에는 두세겔을 받았다. 그러나 비록 
벌이가 괜찮았지만 외과 의사는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만일 부유한 
양민이 수술의 결과로 실명하면 외과 의사의 한쪽 팔을 잘랐으며 
노예가 장님이 되면 의사는 다른 노예를 대신 주었다.
 
   질병을 주는 병원
 미국에서는 매년 2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치료하러 갔던 병원에서 
다른 질병에 옮는다. 병원에서 감염되는 사례로 매년 15,000명의 
미국인이 사망한다.
 또한 19세기말 영국에서도 입원 환자의 50%가 병원에서 감염된 
병으로 죽었다. 병원 안에서의 사망률은 병원 밖에서보다 오히려 
높았으며 이는 기본적인 위생 수칙이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  정신 병원과 감옥 ]
 1971년 영국의 정신 병원에는 남자 한 명당 35명의 여자가 수용되어 
있었다. 그러나 감옥에서는 이 비율이 정반대가 되었다고 한다.
 
 [  직업을 잘못 선택한 해군 제독 ]
 대영 제국의 해군 제독 비스카운트 호레이쇼 넬슨은 늘 뱃멀미에 
시달렸다고 한다.
 
   당뇨병자의 소변
 당뇨병자의 소변에 포함된 당분은 포도당이다. 프랑스의 화학자 미셸 
유진 셰브렐에 의해 1815년 발견된 이 사실은 당뇨병을 설탕 신진 
대사의 질병으로 인식하는 데 한 걸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후프앤미우트 질병 바이러스
 후프앤마우트 질병 바이러스 같은 매우 작은 바이러스는 사람의 세포 
하나가 포함하고 있는 원자 수의 1/90,000에 불과한 단지 70,000개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는 사람이 살아 있는 것같이 
살아 있다.
 
 [  조지 원싱턴을 거머리 때문에 죽었다. ]
 거머리를 사용하여 발생하는 출혈이 한때 의학계에서 너무 일반화된 
나머지 거머리가 곧 의사를 지칭하던 때가 있었다. 조지 워싱턴도 이 
위험한 방법에 의해 치료받다가 죽은 여러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술 마시는 자는 운전하지 말지어다
 알코올 30cc를 마실 때마다, 정상적으로 깨어 있으면 즉시 반응할 수 
있는 운전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오후 
8시에 알코올 150cc를 마신 사람이 다시 운전하기 위해서는 다음날 
새벽 1시까지 기다려야 한다.
 
   인종에 따른 발병률
 많은 질병이 인종에 따라 다른 발병률을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서 
물레 바보 증상으로 고통받는 사람의 45%는 동유럽계 아쉬케나지 
유태인이다. 이 질병은 안면 근육 경련이나 무의식적 움직임, 또는 
음탕한 말을 쓰고자 하는 조절할 수 없는 충동 등으로 특색지어진다. 
겸상 적혈구 빈혈증은 주로 흑인들에게서 발생되는 질병이다.
 
 [  무암 장수족 ]
 지구상에서 오직 한 부류의 사람만이 모든 종류의 암으로부터 
자유스럽다. 뿐만 아니라 캐시미르 북서쪽 훈자 지방에 사는 이들은 
장수하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백의의 천사의 여생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단지 2년 동안을 간호 장교로 일했을 뿐이다. 
그러나 크리미아 전쟁에 종군하면서 얻은 열병으로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나이팅게일은 남은 여생 50여 년을 병석에서 보내야 했다.
 
 [  페스트의 위력 ]
 서기 542년에서 543년까지 페스트는 당시 문명 세계의 대부분을 
휩쓸었다. 역사가 프로코피우스가 목격한 바에 의하면 그 위세가 가장 
맹렬할 때 비잔티움에서만 하룻동안 10,000명이 죽어 나갔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도 페스트에 감염되었으나 곧 회복되었다.
 
   흑사병과 동물의 수난
 14세기에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25%인 2,500만명의 
생명을 빼앗았다. 720-1500년에 흑사병은 45번이나 돌았는데 가장 심한 
것은 1665년 6월 런던에서 시작된 것으로 1666년에 68,000명이 죽었다. 
런던 사람들은 흑사병을 전염시키다고 생각했던 쥐, 고양이, 개 등을 
모조리 태워 죽였다. 1666년 9월 2일 시작된 런던 대화재로 런던시의 
80%가 불타고 불결한 것들이 소진됨으로써 흑사병의 기세도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마리 퀴리의 방사능 오염
 라듐을 발견한 마리 퀴리는 방사능 병으로 죽은 첫번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마리 퀴리의 지병이 골수의 파괴에 원인이 있었다고 
판명되기 전까지는 방사능의 위험성은 알려지지 않았다.
 
   세균의 분해 작용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질병의 피해자들은 땅에 묻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땅은 각종 병원체들로부터 상당히 깨끗한 편이다. 
병원성 세균들은 땅에 사는 여러 다른 세균과 미생물에 의해 파괴되기 
때문이다.
 
 [  세균의 진화 ]
 동식물뿐만 아니라 세균도 진화한다. 안 예로 디프테리아는 
뉴햄프셔의 킹스톤에서 갑자기 치명적인 질병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1735년 이전까지 가벼운 병이었다. 그 이후 발병한 첫 40명은 모두 
사망했다.

 [    제17장 기후, 지리, 도시 ]
 [    제17장-기후 ]
   수백만 년 동안 계속 비가 내리는 땅 
 끊임없이 비가 내리는 땅을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곳은 남미 파라과이의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을로, 파라나강이 그 물을 
21개의 지류로 나누는 브라질 국경 근처의 땅으로 지상에서 가장 
축축한 곳이다. 비는 태고 적부터 쉬지 않고 그곳을 적시고 있다. 
 이러한 자연 현상은 과이라 폭포-아마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일지 
모르는-로부터 떨어지는 물보라가 바람에 날려 이곳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 마치 폭포의 주변에 물보라 현상이 
일어나는 것처럼 물보라를 동반한 강한 바람이 한쪽 방향으로만 불어 
비가 내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  회오리바람 속에 어린이가 ]
 1986년 5월 29일 중국 서부 지방에서의 12명의 국민학교 어린이가 
회오리바람에 말려 올라갔다. 그들은 20km 떨어진 사막의 모래 
언덕에서 전혀 다치지 않은 채로 발견되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지대는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 안의 카말라이다. 이곳에는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다.

 [  3년 동안의 가뭄 ]
 중국에서 1876--1879년의 3년 동안 비가 전혀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대기근이 온 중국 대륙을 휩쓸어 약 1,000만 명이 죽었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아이들은 시장에 내어 팔렸으며 살인, 강간, 식인, 
등이 난무했다. 한 구덩이에 10,000명의 시체를 몰아넣었을 정도로 
끔찍한 비극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  사막에 웬 폭설이 ]
 사하라 지방에 첫 폭설이 내린 때는 1979년 2월 18일이었다. 남부 
알제리 지방에 내린 30분간의 폭설은 교통을 마비시켰다. 그러나 몇 
시간 내에 모든 눈은 녹아 사라졌다.
 
 [  열대 아프리카 적도에서 얼어죽은 사람들 ]
 태양이 작렬하는 열대 아프리카 적도에서 20명이 얼어죽었다. 바론 
에곤 본 키르흐슈타인은 중앙 아프리카 루안다의 비룽가 지역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웅대한 웅대한 화산의 하나인 고도 4,420km의 
카리심비산을 정복하기 위해 40명의 대원을 이끌고 1908년 2월 
원정길에 올랐다. 며칠 동안 혹독한 추위에 떨며 해발 3,657km의 
비앙카 분화구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얼음장같은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는 정오의 열대 태양 볕에도 불구하고 
추위는 살을 에이듯 심해져갔다. 경사진 땅은 폭풍의 기세를 더했고 
이미 텐트 세우기가 불가능해졌다. 눈이 멀 것 같은 햇빛을 가리기 
위하여 선글라스를 쓴 원정 대원들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무리 
지어 끌어안았다. 영원 같은 시간이 흘렀다. 추위로 덜덜거리던 이가 
죽음으로 조용해질 때까지 바람은 더욱 매서워져갔다.
 오후 6시가 되자 바람은 잔잔해지기 생존자들은 피해 상황을 
조사하였다. 원정 대원은 꼭 절반이 석양빛을 받으며 어울리지 않는 
선글라스를 쓴 채 땅과 함께 얼어붙어 있었다. 불타오르는 열대의 태양 
아래, 1908년 2월 28일 정오에서 오후 6시까지의 6시간 동안 20명이 
얼어죽은 것이다. 
 
   동부 시베리아의 추위
 북반구내의 최저 기온은 예상외로 북극 지역이 아니라 동부 
시베리아의 오이미야콘 마을에서 측정되었다. 이마을은 북극 
지역에서부터 남쪽으로 3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1964년 
1월에는 영하 71도의 강추위를 나타냈다. 이 곳에서 오줌을 눈다면 
나오자마자 얼어서 떨어질 것이다. 
 
   동물이 말해주는 일기 예보
 양은 계절이 바뀌기 전에 땅에서 이리저리 뛰며 서로 싸우고 
장난친다. 
 소나 돼지가 밤에 깔짚에서 아무것도 덮지 않은 채 누워 있다면 
화창한 날씨가 계속될 것이다.
 염소가 귀를 앞으로 늘어뜨리거나 나무나 벽에 마구 비비면 비가 올 
징후이다. 
 고양이들이 활동하지 않고 계속 집 안에만 있으면 비나 바람 부는 
날이 예상된다. 
 평상시보다 개구리들이 더 울고 두더지들이 땅을 더 파며 두꺼비수가 
늘어나고 황소가 앞발을 핥으면 비가 올 것임을 뜻한다.
 날씨가 나쁜 동안에 올빼미가 소리내어 울면 좋은 날씨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비가 땅가까이 날고 물새가 집 가까이 오며 참새가 지저귀는 것 
등은 비나 바람을 의미한다.
 쇠새가 자취를 감추면 화창한 날씨가 기대된다.
 
   식물이 말해주는 일기 예보 
 대부분의 별꽃은 흰색의 작은 꽃인데 오므라들면 곧 비가 온다는 
뜻이다. 건조한 날에는 보통 아침 9시부터 정오까지 피어있다. 아프리카 
수레바퀴 꽃이 아침 8시 이후 또는 오후 5시 전에 꽃이 지면 비가 
예상된다. 다른 많은 꽃들도 비오기 전이나 밤이 가까워지면 꽃잎이 
지고 비가 온 후나 아침이 되면 다시 꽃잎이 피어난다.
 예를 들면 꼬리풀 식물, 동자꽃, 참소리쟁이, 꽃상치, 대부분이의 
데이지, 바위앵도, 그리고 흰물백합 등이 그러하다. 비가 예상될 때 
평상시보다 늦게 피고 일찍 지는 것을 관찰하면 다음과 같다. 백합은 
오전 7시에 피고 오후 7시에 진다. 민들레는 오전 7시에 피고 오후 
8시에 지며, 양상치꽃은 오전 8시에 피고 오후 9시에 진다. 딸기와 
도토리가 풍년이 들면 추운 겨울이 예상된다. 양파 껍질이 얇고 
섬세하면 푸근한 겨울을 기다할 수 있다.
 
   1갤런의 식초는 여름보다 겨울이 더 무겁다
 식초의 무게는 온도 변화에 따른 수축과 팽창 때문에 계절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다른 용액과 마찬가지로 식초도 여름 동안 열을 
받으면 팽창되므로(갤런들이 통에 정량보다 적게 들어가므로 당연히 
무게도 적게 나간다).
 4% 사과식초(초산) 1갤런의 무게는 화씨 80도 또는 더운 여름 날씨 
속에서 3.836kg, 또는 135.3온스이나 같은 종류의 식초를 화씨 40도나 
겨울 날씨 속에서 1갤런짜리 통에 담았을 때의 무게는 3.864kg, 또는 
136.3온스이다. 바꾸어 말하면 1갤런의 식초는 여름보다 겨울에 약 
1온스 정도 무게가 더 나간다는 것이다.
 
   피비가 내리다
 때때로 세상의 어떤 지역에서는 하늘에 나타나는 이상한 징조들로 
인해 공포를 느끼기도 하는데,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옛날에 프랑스의 
클레몽 지방 사람들은 지상의 종말이 왔다고 생각한적이 있었다. 
하늘에서 붉은 비가 내렸던 것이다. 분명 세상의 종말이 온 듯했으나 
그 소나기는 금방 그쳤고 세상은 예전과 다름없이 다시 잘 돌아갔다.
 이 같은 소나기에 대해 과학적으로 입증된 설명은 제시되지 않았다. 
비는 확실히 붉은색이었는데 이 현상에 대해 가장 납득할 만한 설명은 
그 비속에 사하라 사막으로부터 불어온 붉은 먼지가 가득 섞여서 
내렸다는 것이다. 
 붉은 비에 관한 무서운 이야기는 시대와 많이 관련되어, 최근에 
이르러서야 이것이 자연의 기적과는 무관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호머, 버질, 플루타크 등도 피 소나기등에 대해 말했는데 특히 
플루타크는 전쟁 후에 쏟아지는 피 소나기에 대해 말하면서 살육된 
사람들의 몸에서 쏟아진 피가 수증기가 되어 구름과 연합해서 결국 
다시 땅위로 내리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  비는 땅을 메마르게 한다 ]
 비는 땅을 축축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메마르게 만든다. 
왜냐하면 공기 중의 습기를 빼앗아, 이것이 구름으로 되었다가 다시 
비로 변하여 땅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비라는 것이 없다면 
공기중에 있는 습기는 항상 땅의 표면을 축축한 상태로 유지할 것이다.

 [  고층 건물이 흔들리고 있다 ]
 뉴욕에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항상 13cm 정도 흔들거리며 
파리에 있는 에펠탑은 기온에 따라 15cm 정도 흔들거린다. 또한 
한국의 63빌딩은 10cm정도 흔들거린다고 한다.
 
   왜 겨울이 여름보다 추운가
 보통 사람들은 여름에 지구가 태양에서 가장 가깝고 겨울에는 지구가 
태양에서 가장 멀기 때문에 겨울이 여름보다 춥다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실 태양은 겨울에 지구에서 가장 가깝고, 여름에는 
가장 멀다.
 천문학에서는 어떤 행성이 태양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때를 
근일점이라고 하는 대 지구의 근점은 1월 3일이다. 같은 이치로 지구가 
태양에서 가장 먼 시기는 7월 초순경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생기는 것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는 지축의 경사에 원인이 
있다. 즉 계절이란 태양에 대한 지축의 상대적인 위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겨울과 여름에 보이는 기온의 차는 여름에는 낮이 길어서 
빛을 오래 받기 때문이다. 
 지축이란 지구의 극과 극을 연결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상상의 
선인데, 이 선을 중심으로 궤도를 향해 움직일 때 북반구는 태양을 
향해서 약간 기울어 있고 그 반대 부분은 태양으로부터 반대방향으로 
기울어 있게 된다. 북반구가 태양을 향해서 기울어 있을 때 그쪽은 
여름이다. 그런데 이때가 실상은 태양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을 때이고 
단지 태양을 마주보고 있을 뿐이다. 남반구에서는 이지축이 태양에서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 있을 때 겨울이 된다. 이때 태양은 지구에 더 
가깝지만 그 빛은 여름보다 더 경사지게 지구를 쬐게 된다. 즉 이 깊은 
경사 때문에 겨울의 빛은 실제로 더 멀리서 지구를 비치는 것이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계절은 서로 반대가 된다. 북반구가 여름일 때 
남반구는 겨울이다. 왜냐하면 북반구의 지축이 태양 쪽을 향해서 
기울어 있을때 남반구의 지축은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지축이 수직이라면 아마 아무런 계절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즉 적도 지방에는 영원한 여름만이, 극지방에는 끊임없는 겨울만이 
존재할 것이다.
 
 [  번개에 얻어맞고 있는 지구 ]
 번개는 1초에 1000번 정도 지구를 강타한다. 이것은 하루에 86,400번 
정도의 번개가 도처에서 지구를 치고 있는 셈이 된다.
 
 [  번개는 여자보다 남자를 칠가능성이  ]
 6배가 더 높다고 한다. 번개는 여자보다 남자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남자라면 번개에 맞을 가능성이 200만 분의 1 이지만, 여자라면 1,200만 
분의 1밖에 안 된다.
 
   번개가 칠때 나무 밑에 숨어서는 안 된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0년 동안 68번 번개에 얻어맞았고 독일 
베를린시의 페추리 교회는 같은 날 두번이나 번개에 맞아 완전히 
타버리고 말았다. 나무의 수액은 전기의 전도체이므로 나무 밑에 서 
있는 것은 번개 치는 날 수영장 안에 있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  번개 때문에 우박이 내린다 ]
 우박은 겨울에는 내리지 않고 여름에만 내린다. 즉 우박은 번개가 
일어나야 생기는 것으로 겨울에는 번개가 발생할 만한 조건이 없고, 또 
기온이 빙점이하고 내려가 버리면 우박이 생길 수 없다. 따라서 우박은 
일반적으로 여름에만 내리게 되는 것이다. 
 
   2.54cm이 강우량은 102톤이 넘는다
 일기 예보에서 비가 2.54cm 내렸다고 할 때, 그 의미는 무엇인가? 
만약 2.54cm의 비가 1에이커의 땅에 내렸다면 1에이커는 
4,047제곱미터이므로 내린 비의 양은 102,790리터가 되는 것이다. 물의 
밀도에 따라서 무게도 달라지겠지만 대체로 1입방피트의 물은 28.3kg에 
해당한다. 따라서 1에이커에 떨어진 2.54cm의 비는 총 102톤이 넘는 
물임을 뜻한다.
 
 [  여름이 없었던 해 ]
 1816년은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정복하려다 실패한 지 4년이 되는 
해로서, 그해 여름 톰보로 화산이 폭발하여 그 먼지가 온 세계를 
뒤덮었다. 그래서 태양의 빛이 땅에 닿지 않아 세계의 기후가 바뀌었다. 
비가 내리지 않고 눈이 내렸으며 곡물은 모두 제대로 되지 않았다. 
미국, 헝가리, 이탈리아에서는 붉은 눈이 내리기도 했다.
 
   적도 지방은 언제나 더운가?
 적도란 지구의 양극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상상의 선이다. 보통 
양극에서 멀어질수록 더워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적도 지방이 가장 더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항상 그런것은 아니다. 싱가포르는 극동 
지방이 도시로 적도에 상당히 가까워 1년 내내 덥고 습기가 많으며, 
연중 약 27도를 유지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케냐는 싱가포르보다 
적도에 더 가까운데도 16도를, 남미의 에콰도르는 영하 4도를 유지한다. 
 
   따뜻한 물이 흐르는 강
 적도 근처에 근원이 있고 온대 지방으로 흘러 가는 세계에서 단 하나 
뿐인 나일강은 세계에서 가장 따뜻한 물이 흐르는 강이다. 그러나 
829년 1010년에는 꽁꽁 얼어붙었다.
 
   북극과 남극
 북극에는 모든 방향이 다 남쪽이며 육지가 없고 모든 것이 얼음 위에 
떠 있다. 
 남극 대륙은 영원히 녹지 않을 두꺼운 얼음으로 둘러싸여 있다.
 
 [  공기 주머니 ]
 사람들은 공기 주머니가 공기가 전혀 없는 빈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 공기가 전혀 없는 빈 주머니 같은 곳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공기가 전혀 없다면 비행기는 날 수 없어 
떨어져 버리고 말 것이다. 실제로 공기 주머니란 비행기가 갑자기 
상승했다가 하강하는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즉 비행기가 공중에서 
어떤 공기의 가한 흐름에 부딪혔을 때에 생기는 현상으로 상승세 또는 
하강세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비행기의 날개가 날 수 있는 힘을 
순간적으로 막아버려 비행기가 갑자기 상승했다가 또 갑자기 하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공룡의 멸종 이유
 공룡은 2억 2천 5백만 년 전에 나타났다가 6천 5백만 년 전에 갑자기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공룡이 사라진 바로 그때 목성 궤도에 흩어져 
있던 소행성들이 지구에 날아와 부딪힌 흔적이 있는데, 세계 각고의 
바위들에서 소행성만이 있는 이리듐이라는 원소를 많이 찿아볼 수 
있다. 지구와 소행성들의 충돌은 아마 지구 위의 거의 모든 생물을 
멸종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  눈송이 세계 ]
 눈의 결정은 100만 분의 1g이고 눈 한 컵 속에는 눈송이가 1,000만 
개 들어갈 수 있으며, 서울에 내리는 눈의 수는 10^45^22개나 된다. 또 
지금까지 지구 위에 내린 눈송이의 수는 10^45^34개나 되고 눈의 결정 
하나는 10^45^18개의 분자로 이루어 졌다.
 
   선풍기
 선풍기는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덥게 한다. 선풍기는 
그저 몸의 습기를 말려 시원해지는 듯이 느끼게 할 뿐, 실제로는 
모터의 열 때문에 오히려 더워진다. 
 
   영국 관상대
 영국 관상대는 1953년 6월 2일이 1년 중 가장 맑은 날이 될 것이라고 
예보했다. 그래서 그날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이 열렸는데 실제로는 
비가 내렸다.
 
   무지개
 무지개는 하루중 아침과 늦은 오후에만 보이다. 왜냐하면 무지개가 
만드는 현상은 태양이 40도 각도에 있거나 혹은 지평선 보다 낮게 떠 
있을 때만 생기기 때문이다.
 
   안개와 구름
 이 두 단어는 동의어임에 틀림이 없다. 안개는 지상에 내려와 있는 
그름이며, 구름은 하늘에 떠 있는 안개이다. 구름은 밤보다 낮에 더 
높게 떠있다.
 
 [  인간이 겪는 고통은  ]
 햇빛이 있는 곳에서보다 어두운 곳에 있을 때 더 민감하다.
   
 [    제17장-지리 ]
 [  거꾸로 떨어지는 폭포 ]
 이 폭포는 호놀룰루에서 매우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은 호놀룰루에서 
멀지 않은 누우아누 계곡에 위치하고 있는 데 근처 고속도로에서도 잘 
보인다. 이 폭포는 처음에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만, 그곳을 몰아치는 
거센 바람에 의해 물보라는 다시 거꾸로 절벽 위로 뿌려진다. 이것이 
빗물처럼 응축되어 강물을 이루고 있는 다른 길로 흘러내린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드디어 이어리 호수와 만날 것인가?
 장엄한 나이아가라 폭포는 한때 신혼 부부들과 대담한 곡예사들이 
단골로 찾는 장소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매년 5백만 명의 관광개들이 
몰려온다. 그러나 우리의 후손들은 이 폭포에서 우리가 즐기는 만큼의 
광경을 즐기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때에는 현재의 형태와 많이 달라진 
폭포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수백만 갤런의 물이 매분 빠른 속도로 떨어지면서 바닥의 바위를 
닳아 없애므로 낙차가 줄어드는 만큼 폭포는 매년 30cm에서 1m의 
비율로 줄어들게 된다. 약 12,000년 전에 생성된 이 폭포는 그 동안 
이미 11km 이상 상류로 올아갔는데,현재의 속도로 계속 줄어든다면 약 
35,000년 내에 현재의 위치로부터 30km 떨어져 있는 이어리 호수와 만 
내게 될 것이다.
 일부 지질학자들은 그때쯤이면 이 폭포는 줄어들 대로 줄어들어 
이어리 호수 입구의 작은 폭포로 존재하리라고 예측한다. 이일은 
자연적 또는 인공적으로 그 진행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사실 
감축되기 전 나이아가라 폭포의 수력 발전은 오늘날의 2--3배 였다. 더 
많은 물이 폭포 전용으로 될 경우 그 비율만큼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는 줄어들 것이다.
 
 [  남극의 빙산 옮기기 ]
 1억 톤에 달하는 남극의 빙산이 언젠가는 열기로 지글지글 끓는 사막 
지대로 보내는 주요 음료수 공급원이 될지도 모른다.
 1950년대에 나온 이러한 아이디어는 1977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 
모하메드 알 파이잘이 '빙산 운반 국제 기구'를 설립하면서 부터 
세계적인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다. 설립 목적은 얼음덩이를 목마른 
나라에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세계로 공급할 수 있는 식수의 2/3를 
남극의 얼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면 이 계획이 그리 
터무니없다는 생각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지구의 반을 돌아가는 곳까지 빙산을 운반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동의하였다.
 첫번째 방법은 기술자들이 빙산을 끄는 데 힘들이지 않도록 빙산을 
배 모양으로 깎고, 잘 녹지 않도록 플라스틱과 범포로 싼 다음 몇 개의 
강력한 예인선에 부착시켜 끌고 가는 것이다. 아라비아 반도까지 
항해하는 시간은 6--12개월로 계산되었으며, 목적지에 닿으면 빙산은 
해변에 부서져서 저수지로 끌고 가기 좋게 조각이 나는 것이다. 
저수지에는 얼음도 녹이고 발전도 시킬 수 있는 변열기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또 다른 방법은 빙산을 배 자체로 운반하는 이용하는 것이다.변열기, 
공기 풍선 또는 발전기를 주동력으로 이용하고 15m크기의 프로펠러를 
얼음 배에 부착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면 비용은 얼마나 들것인가? 
소금물에서 식수를 뽑아내는 것보다 적게 들지도 모르다. '빙산 운반 
국제 기구'는 1985년까지 시험 운반이 실행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지상의 낙원
 하와이는 카우아이, 오아후, 모로카이, 마우이, 빅 하와이 등의 섬들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지리학자들에 의하면 하와이 섬들도 북서쪽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들
 (나라이름  평방마일  인구)
 바티칸시티  0.2  800
 나우루  8.1  9,000
 투바루  10  9,000
 산마리노  24  23,000
 리히텐쓔타인  62  28,000
 모나코  0.7  30,000
 마샬아일랜드  70  42,000
 
   나우루를 아십니까?
 오스트레일리아와 하와이의 중간에 있는 나우루는 13세제곱킬로미터의 
국토와 9,000미만의 인구를 지닌 독립 국가로서 1인당 GNG가 세계에서 
제일 높다. 이것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의 경제가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2백만 톤에 이르는 인산염에 기인한다. 또한 나우루인들은 
나우루의 화석암(질)이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에서는 문고리 장치의 
원료로 쓰이고 인산 염에는 이 암질이 풍부하다는 것을 알아내고 
광산업에 박차를 가하였다. 인산염은 부패된 해양 생물체나 조류의 
지꺼기들이 진화되어 생긴 것이다.
 
   줄어드는 인구
 세계의 인구는 하루에 약 300,000명씩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호주는 
180년 전 백인들이 처음 호주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300,000명 
정도의 원주민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감소하여 약 40,000명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또한 1778년 쿡 선장이 하와이를 처음 발견했을 때, 
원주민인 폴리네시아인들이 약 300,000명이나 살았다. 그러나 
1850년에는 이상스럽게도 인구는 84,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이와 같이 
미국의 인디언들도 그 인구가 줄어 들고있어 이를 염려한 미국 정부는 
인디언과 폴리네시아인들에게 매달 1인당 500달러를 지급하면서 이들을 
보호하고 있다.
 
 [  빙하가 없는 곳 ]
 가장 더운 대륙 아프리카도 3개의 최정상 산꼭대기 위에 13세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장대한 빙하를 가지고 있다. 6대륙 중 유독 오스트레일리아에만 
빙하가 없는데, 그 이유는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산지 지형이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파나마
 태양이 태평양에서 떠올라 대서양으로 지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 
파나마이다. 이 얼마나 장관인가?
 만일 '파나마 운하를 중심으로 태평양과 대서양의 위치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서양(카리브)은 
파나마 운하의 오른쪽(동쪽) 끝에 있고 태평양(파나마만)은 반대편 서쪽 
끝에 위치해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정답일까? 
지도상으로 볼 때, 당신이 대서양 연안에서부터 운하 쪽으로 
들어간다면 당신은 서쪽으로 들어가는 셈일 것이다.

   부유함의 패러독스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과 가장 많은 낙타 대상을 가진 나라 
사우디아라비아로 외국에서 낙타와 모레를 수입한다. 사막의 모래로는 
집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모레는 스코틀랜드에서 수입한다. 또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산림이 있는 브라질에서도 목재를 수입해서 쓴다.
 
   알래스카와 그린랜드에도
 1만 2천 년 전에는 사자, 코끼리, 낙타등이 들끓었다고 한다. 또한 
2,300년 전인 최근의 빙하 시대 동안 최남단 멕시코 시티의 바다에는 
거대한 빙산이 있었다고 한다.
 
   이슬람교도 여성들은
 80%가 문맹이다.
 
   미국과 소련의 거리
 실제로 미국과 소련은 정확히 3.2km 떨어져 있다.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에 놓여 있는 베링 협곡에는 리틀 다이모메드라는 이름의 
섬이 있는데 이 섬은 미국 소유이다. 그리고 서쪽으로 3.2km 떨어져 
있는 빅 다이모메드라는 섬은 소련의 소유이다.
 
   베를린과 바르샤바는 
 알래스카 지역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다. 최남단의 알레우티언섬 
'암치카'는 북위 51.7도의 위도에 있는데 이것은 영국 런던의 위도와 
거의 일치하며, 베를린이나 바르샤바보다 훨씬 남쪽에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실제 출신 지역
 사도 바울은 지금의 터키인 다소에서, 성 패트릭은 프랑스에서, 성 
어거스틴은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나폴레옹도 프랑스인이 아니라 
코르시카섬 출신이고, 잔다르크도 로레인에서 태어났으며, 히틀러는 
독일인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인이다.
 
 [  나라 이름의 기원 ]
 볼리비아는 시몬 볼리비아에서, 콜럼비아는 콜럼버스에서, 이스라엘은 
야곱에서, 필리핀은 스페인의 필립 2세에서, 엘살바도르는 예수에서, 
중국(china)은 황제에서, 아메리카는 아메리고 베스푸치에서, 
한국(korea)은 고려에서 나온 이름이다
 
 [  평균 수명 ]
 에콰도르 빌카밤바에서 사는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120세나 된다. 
소련 서남부 코카사르 산맥에서 사는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110세이다. 
그리고 발칸반도에서 사는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105세이다. 일본은 
79세, 미국은 79세, 대만은 73세, 홍콩은 72세, 그리고 한국인은 
70세이다. 지금 미국에서 100세이상 되는 사람은 35,000명이나 되는데, 
그 중 90가 여자이다.
 
 [  과연 누가 처음으로 북극을 정복했을까? ]
 누가 맨 처음 북극을 정복했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비슷한시기에 북극을 정복했노라고 주장하는 두 사람이 있다. 미국의 
탐험가 프레드릭 쿡은 1908년 2월 19일 두 명의 에스키모와 두 대의 
썰매, 26마리의 개들을 동원하여 그린랜드를 떠나 북극으로 향했다. 
14개월 만에 돌아온 그는 덴마크에 가서 1908년 4월 21일에 자기가 
북극을 정복했노라고 선언하였다.
 미국의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도 1909년 2월 22일 캐나다의 북부를 
떠나 1909년 4월 6일 자기가 북극을 정복했노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후세의 탐험가들은 두 사람 다 북극에 도착했는지 
의심하였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다 그들이 북극을 지나쳐 버렸는지 
모른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모두 거짓말하고 있다고 하기도 
하였다.
 1926년 미국인 리차드 바이어드가 북극 위를 비행했노라고 
주장하였으나 이도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북극을 탐험한 첫번째 사람은 미국인 랄프 프레이테드인데, 그는 
1968년 스노우모빌을 타고 북극을 정복하였다.

   남극의 얼음이 녹는다면
 남극의 얼음의 두께가 4,828m나 되는데 이것이 완전히 녹아본 적은 
결코 없었다. 이 상태가 아마 2천만년도 넘게 계속되었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녹는다면 온 지구가 자유의 여신상의 코 높이까지 물이 찰 
것이다.
 
   미국이 사들인 땅
 1867년 3월 30일 미국은 국무장관 윌리엄 H. 씨워드를 내세워 
알래스카 대륙을 소련으로부터 7,200,000달러에 사들였다. 현재 
이곳에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군 사 기지가 있고 광업으로 
481,000,000달러, 농업으로 15,000,000달러, 어업으로 245,220,000달러, 
공업으로 729,200,000달러, 관광으로 50,000,000달러를 매년 벌어들이고 
있다.
 또한 나폴레옹은 1800년에 현재의 루이지에나주를 미국에 
1,500달러에 팔았으며, 1626년 맨해튼섬을 점유하고 이었던 인디언 
카나시족으로부터 그 섬을 26달러에 사들였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르스트산의 높이는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 높이를 
측정하는 데는 시간에 따라 다른 빛의 굴절, 얼음이 빛나는 구름사이의 
봉우리들, 높은 고지에서의 작업의 어려움 등 많은 곤란 때문에 정확히 
측정되지 못했다. 영국 정부에서 1846--1955에는 측정한 바로는 
8,840m였다. 1954년 인도 정부의 발표로는 8,848m였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대개 8,881m로 통한다. 그 뒤 많은 국가와 전문가들이 
측정했을 때 정확히 8,839m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에베레스트산보다 
하와이의 마우나로아산이 더 높다. 이 산은 육지에 솟아 있는 높이는 
4,170m밖에 됭지 않지만 바닷속에서부터 이어진 높이가 무려 9,656m나 
되기 때문이다.
 
 [  에베레스트는 누가 먼저 정복했나? ]
 영국이 제1차 원정대를 에베레스트산에 보낸 것은 1921년이며 그 후 
1922년, 1924년, 1933년, 1936년, 1938년, 1951년 여러 나라에서 시도를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1953년 5월 29일 존 헌트를 대장으로 
하는 영국 등산대에 뉴질랜드의 등산가 힐라리 경이 참가하여 
세계정상의 에베레스트 등정에 드디어 성공했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힐러리 경을 돕고 있었던 셀파 텐징 노르가리가 먼저 
정상에 발을 올려놓았다는 것이며, 또 힐라리 경과 등정한 사람은 셀파 
노르가리뿐만이 아니고 다른 39명의 셀파와 12명의 로우스터와 700명의 
짐꾼이었다.
 
 [  산도 자란다 ]
 100년 전에는 백두산의 높이가 오늘날보다 30cm더 낮았으며 
에베레스트산의 높이도 30cm더 낮았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BC 326년에 인도의 1/3이나 되는 북서 지역을 점령했다.
 
   인도인들은 
 영화광이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150개의 영화가 제작될 때 
인도에서는 매년 1,000개의 영화가 제작된다. 
 
 [  사막에서도 낚시를 즐긴다 ]
 사막에는 모래만 있는 것이 아니고 흐르는 냇물도 있으므로 모래를 
파면 물줄기가 흐른다. 물 속에서는 물고기가 살아서 움직이므로 
낚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면이 가장 낮은 지대
 지구상에서 인간이 직접 닿을 수 있는 수면이 제일 낮은 
지대는 -> 물론 잠수함이나 광산수갱을 이용하지 않고 ->
요르단강이 이 사해로 진입하는 곳이다. 해발 393m이다.
 
   킬리만자로의 눈
 킬리만자로는 탄자니아 북쪽 케냐 가까운 곳에 있으며 정상인 키보의 
높이는 5,896m로 60m 깊이의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다. 헤밍웨이의 
단편소설(킬리만자로의 눈)에 잘 설명되어 있다.
   
 [  뱀이 없는 섬들 ]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섬에서 모든 뱀을 쫓아냈다는 말은 분명히 
전설이다. 그러나 이 섬에는 실제로 뱀이 없다. 이렇게 본래부터 뱀이 
없는 섬들로는 크레타, 몰타, 아이슬란드, 하와이 등이 있다.
 
   산맥의 형성
 한 때 지층들이 서로 부딪칠 때 산들이 융기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히말라야도 오스트레일리아 지층과 아시아 지층이 강하게 
부딪쳐서 생긴 것이다. 산꼭대기에서 바다화석인 쌍각류와 바다백합 
등이 발견되어 이 산이 한때는 바다의 바닥이 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에서는 
 대부분이 언덕이고 산다운 산을 찾아보기 어렵다. 가장 높은 산은 
벤네비스로 1,343m밖에 되지 않는다.
 
 [  오스트레일리아에는 국가가 없다 ]
 따라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해도 국가가 울리지 않는다.
 
   지는 태양은 떠오르는 태양보다 더 붉다
 왜냐하면 아침보다는 저녁 공기에 먼지가 더 많이 섞이기 떼문이다.
 
   가장 큰 강
 거대한 아마존강은 미국의 미시시피강, 이집트의 나일강, 중국의 
양자강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수량을 지니고 있다. 아마존강은 
매초마다 113,400입방미터의 물을 대서양에 쏟아놓으며, 홍수 때의 
수량은 이의 2배에 이르다. 아마존강 하류 1,440km의 평균 수심은 
17--20m이며 때때로 깊이가 100m나 되는 곳도 있다.
 
 [  섬나라 하와이는  ]
 실제로 132개의 섬이 모여서 이루어진 미국의 51개 주 중 하나이다. 
필리핀은 7,000개 이상의 섬으로 이루어졌고 인도네시아는 13,600개 
이상의 섬으로 구성된 나라이다.
 
   화산폭발의 위력
 1980년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세인트헐렌스산의 대폭발은 그 위력이 
1945년의 히로시마 원폭보다 2,500배 더 컸다.
 
   1893년 오클라호마주
 석유와 농업이 주산업인 미국의 오클라호마주는 1893년까지는 전혀 
개발되지 않은 황무지였다. 이때는 깃발을 될 수있는 대로 멀리 가서 
꽂아놓기만 하면 자신의 소유로 만들 수 있었다.
 
 [  금을 뿜어내는 화산 ]
 안타르티카의 유일한 활화산인 에러버스산은 화산이 분출할 때 
투명한 순금이 뿜어져나온다. 그러나 이 가루들은 너무 미세하고 넓게 
퍼져서 채금할 수 없다.
 
   로마의 도로 
 전유럽대륙을 연결한 로마의 도로는 90,000km나 되었다. 이 도로는 
2,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용할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건설되었다. 
돌로 단단하게 포장된 이 도로는 전차가 지나가도 아무탈이 없었고 
하루 만에 300km를 달릴 수 있었다. 줄리어스 시저가 1주일 동안 
900km를 전차로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도로망 덕분이었다.
 
 [  아직도 고문을 하고 있는 나라들 ]
  (브라질)
 육군, 해군, 공군, 그리고 국민안전기획부 직원들은 정치적, 형사상 
범죄자들에게 고문을 가하고 있다. 최근 더 이상 고문하지 않는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고문 기관의 위치가 바뀐 것에 
지나지 않았다). 브라질은 1964년 이후부터 고문을 문서화시켰다.
  (칠레)
 DINA(칠레 정부의 비밀 경찰)들의 고문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잇다. 
담배와 산으로 태우기, 전기쇼크, 강간, 채찍질, 금속 막대와 고무 
호스로 매질하기 등등. 고문의 대상은 주로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노동자, 학생, 그리고 알렌드 정부의 지지자들이다. 1969년 이후부터 
고문 사례들을 문서화시켰지만, 1973년 알렌드가 정부를 전복한 이후 
더 극악무도한 고문이 시작되었다.
  (인도)
 인도 경찰들과 비밀 군사 기동대는 정치범(공산주의자들), 혹은 
현정부에 저항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차별 고문을 가했다. 몸을 
담배와 초로 지지기, 구타하기, 굶기기, 강간과 수간을 하는 고문이 
있었다. 그리고 1970년 이후로 고문 사례들을 문서화시켰다.
  (아란)
 SAVAK(이란의 비밀경찰)은 정치범들과 테러리스트들에게 전기 
쇼크, 구타, 그리고 전기열로 태우기, 성불구자로 만들기 등의 고문을 
가해왔다. 1963년 이후부터 고문 사례들을 문서화시켰다.
  (파라과이)
 내무부와 범죄 단속부는 돈을 착취하거나 국가 기밀을 알아내려던 
용의범들에게 물고문, 손가락 자르기, 그리고 성을 유린시키는 등의 
고문을 가했다. 이와 같은 고문 사실은 1966년 이후부터 문서로 남게 
하였다.
  (필리핀)
 군대, 보안대 그리고 마약 사범 단속 부는 정치범들과 마약범들에게 
전기 쇼크, 채찍질, 구타 등의 고문을 하였다. 고문 사례등은 
1972년부터 문서화되었다.
  (터키)
 육군 비밀 경찰과MIT(터키의 비밀 요원)들은 굶기기, 천장 밧줄에 
매달아놓고 구타하기, 전기 쇼크등의 고문을 가했다. 고문의 희생자들은 
정치범들과 그리스의 키프로스 사람들이다. 1971년 이후 고문 사례를 
문서화시켰다
  (우간다)
 경찰 직속 형사 조사부는 정치범들에게 장총으로 구타하기, 채찍질, 
신체 불구로 만들기 등의 고문을 가했다. 1971년 이후 고문 사실들을 
문서화시켰다.
  (우루과이)
 국가 경찰, 그리고 국가 방위 요원들을 정치범 등과 투파마로 
테러리스트들에게 고문을 가했다. 전기 쇼크, 훈련시킨 개로 
강간시키기, 구타하기 등 등의 고문 방법이 있었다. 1965년 이후 고문 
사례들을 문서화시켰다.
  (스페인)
 스페인의 비밀 경찰과 형사부는 정치범들, 노동 운동가들, 운동권 
학생들에게 음식을 주지 않고 단독 감금시킨다거나, 중앙에 세워놓고 
사방에서 공격한다든가, 구두 밑창으로 휘갈기는 식으로 
고문해왔다.1963년 이후부터 고문 사례들을 문서화시켰다. 
1973년프랑코의 죽음 이후 현재까지 고문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  NATO와 관련된 고문 사건 ]
 1971년 NATO(북대서양 조약 기구)가 가상 전시 상황을 만든 적이 
있었다. 그때 6인의 벨기에인 공격대원은 12인의 벨기에인 적군을 
생포했다.그리고 전기 쇼크, 구타와 24시간 동안 밖에 세워놓기(그때는 
추운 겨울이었다) 등의 고문을 가했다. 마침내, 그들의 장관은 이제 
그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사건으로 6명의 공격대원들은 실제로 
고문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때 그들의 항변은 
이러했다. "나토군은 우리에게 고문에 저항하는 법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고문의 테크닉도 알려주었습니다."
 
 [    제17장-도시 ]
 [  트롬소의 사람들 ]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도시 트롬소(노르웨이 소재)에 사고 
있는 사라들은 태양이 매일 환히 비치는 5월 21일부터 7월 23일까지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한다. 자려고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나비처럼 
날려고까지 한다. 그러나 북극의 암흑기인, 즉 태양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 동안에 트롬소 주민들은 생기를 잃는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모든 
병들은 이 어둠 때문에 생긴다고 덧붙였다.
 
   1,000개의 돔으로 이루어진 도시
 알제리의 엘 오우드는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의 커다란 오아시스에 
위치하고 있다 사하라 사막 전체에서 가장 메마른 지역인 그레이트 
이스턴 에데그에 둘러싸인 엘 오우드는 1년 내내 거의 비가 내리지 
않으며, 사막의 땡볕을 받아내야 한다.
 고대로부터 유목민의 무역 중심지였던 이 도시 거주민들은 타는 듯한 
태양으로 부터 지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뜨거운 진흙벽으로 단층집을 
지었다. 건물내의 열을 줄이기 위하여 도시내의 거의 모든 방은 진흙 
돔으로 지붕을 덮었다. 일부 집들은 직사각형의 돔 하나로 지붕을 한 
경우도 있지만, 어떤 집은 조그만 원형의 돔이 줄줄이 붙어 있으므로 
이 도시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엘 오우드는 마치 계란통 한 무더기를 뒤집어 
엎어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  현대 기술자들도 놀라는 잉카 제국의 도로망 ]
 잉카 제국은 콜롬비아에서 칠레까지 4023km 도로를 350년 전에 이미 
건설했다. 산악 국가이므로 각곳을 통합하고 통신과 물자, 사람의 
신속한 이동을 위하여 산, 정글, 늪 등을 뜷고 건설되었다. 어떤 도로는 
3,048m까지 올라가고 어떤 것들은 현대의 고속도로만큼이나 길다. 또 
산 절벽에 229m의 긴 터널을 뚫어 연결하기도 했다. 도로 곁에는 돌로 
만든 벽이 늘어서 있어 갑작스런 기후 변화에 대처할 수 있었고 물자나 
사람의 교대, 교환이 가능하게 했다. 또 도로 외에도 넓은 방죽길이나 
굵은 밧줄로 된 다리를 늪이나 강물 위에 건설했는데, 에퓨리 멕강의 
협곡을 가로지르는 36m높이의 다리는 길이가 45m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 된 다리였다.잉카제국의 모든 도로망들은 1911년에 
발견된 수도 쿠스코에 모이고 80km북쪽에는 마추비추가 있다. 
마추비추는 잉카제국의 가장 오래 된 도시로 강 위 610km 높이의 두 
개의 봉우리 사이에 건설되었다. 포장된 도로는 계단이 되어 산 
위에까지 이르고 계단식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농경지는 산의 
비스듬한 능선에 촘촘히 박혀 있다. 고고학자들은 잉카의 다른 도시와 
도로들이 안데스 산맥 속에 더 묻혀 있을 것으로 보지만 지금은 
쿠스코와 마추비추가 드러나 있을 뿐이다.
 
 [  건강한 사람만이 여행할 수 있는 도시 ]
 볼리비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라파스시에만 오면 이상하게도 병에 
걸린다고 한다. 그 이유는 라파스시는 해발 3,658m의 고지대에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장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나 기관지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이 도시를 떠나라는 
경고를 받고 있다. 매우 건강한 사람이라고 고지대의 기후 관계로 
생기는 병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이 도시는 고도가 너무 높아서 불이 잘 붙지 않는데, 이것은 
대기 속의 산소가 화재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E. T.의 고향 같은 도시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로 황무지 
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나무가 없다. 건축가 루시오 코스타가 이 
도시를 설계했는데, 모든 건물들이 초현실적이며 파리의 샹젤리제보다 
5배나 더 넓은 도로가 있다.
 
   캘커타의 여름
 인도의 캘커타에는 1,000만 명의 인구가 있다. 그들은 찌는 듯한 
더위와 숨이 막힐 듯한 탁한 공기 속에서 가난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10명에 1명이 길거리를 방황하며, 수십만 명의 문둥병 환자들이 
길거리에 널려있고, 수만 명이 굶주린다. 인도에는 180개의 서로 다른 
언어와 700개의 방언이 있고, 관용어인 힌두어어는 겨우 35%만이 
말할수 있을 뿐이다. 대다수인의 종교는 힌두교로서 윤회설을 믿고 
카스트에 따라 3,000개의 종파로 갈라진다. 또 소를 신성하게 여겨 
절대로 해치지 않기 때문에 인도 전체에는 소위 신성한 소가 10만 
마리나 된다. 소는 먹고 인간은 굶어 죽는 곳이 인도이다.
 
   인도에서는
 34%의 농촌 인구와 44%의 도시 인구가 방이 한 개밖에 없는 집에 
산다. 길거리에서 사는 사람을 제외하고라도 인도에서 가장 큰 네 
도시에는 이런 사람이 67%이고, 수도 캘커타에는 79%에 이른다.
 
 [  파리의 지하 공간은 특이하다 ]
 966km 길이의 긴 파이프들은 압축된 공기를 각 가정과 사무실로 
보내준다. 이 밖에도 파이프들은 다목적으로 이용되는데, 본래는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  낙원의 도시 꽃마을 ]
 1519년 코르테스에 의해 침입 당했을 당시 '테노츠티트란'이라고 
불려졌던 현 멕시코 도시는 그 당시의 런던보다 5배나 큰 
땅덩어리였다. 온 도시가 꽃으로 뒤덮였으며 건물은 깨끗하게 흰색으로 
칠해져 있는 등, 한마디로 낙원의 도시였다.
 
 [  새가 추락하는 도시 ]
 1992년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는 멕시코 시티이다. 지금 
인구는 2,000만 명이고 2000년대에는 3,100만 명이 되리라고 한다. 
시골에서 농사짓기를 포기하고 도시로 모여드는 인구와, 300만 대의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 수만 개의 크고 작은 공장굴뚝에사 내는 연기가 
이 도시를 세계 제일이 공해 도시로 만들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 
마리의 새가 하늘를 뒤덮고 있는 공해를 이겨내지 못해 추락하는 
도시가 바로 멕시코 시티이다.
 
   뉴욕시는
 917km의 해안선을 갖고 있다.
 
 [  발가벗은 여인을 그리는 발가벗은 여인 ]
 1792년 영국 항해가 밴쿠버는 최초로 밴쿠버를 여행했다. 이를 
기념하여 밴쿠버라 불리는 이곳 시민들은 세계 어느 곳보다 더 인생을 
자유롭게 즐긴다. 이 도시 근처 데크 해변은 옷을 입어도 되고 벗어도 
되는 '누드 허가'지역이다.
 
 [  스파르타시의 노예 ]
 BC 1000년경 스파르타시가 가장 강성할 때 인구 25,000명에 노예는 
250,000명이나 되었다. 이 스파르타의 노예들을 헤러트라 한다.
 
   하루가 한 지점에서
 24시간 동안 지속된다 해도 지상에선 48시간 동안 지속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월요일은 날짜 변경선상에서 일요일 자정이 지나면서 
-자오선 180도- 시작된다. 월요일 1시는 날짜 변경선의 서경, 자오선 
15도에서 일요일을 대신한다. 월요일 2시는 날짜 변경선의 서경 
30도에서 시작될 것이고 12시는 본초 자오선 또는 자오선 0도상의 
그리니치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로부터 여섯 시간 후 180도에서 오후 
6시일 때 월요일은 서경 90도 지구 주위 도로의 4분의 3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로부터 다섯 시간 후, 월요일은 165도 자오선의 태평양 
한복판-180도 자오선의 15도 또는 동경 한 시간에서 시작되고 이때 
시간은 오후 11시이며 월요일은 23시간이 지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180도 자오선에서 한 시간 후에 시작하는 새 날이 
화요일이라는 것과 동쪽으로 한 시간 가는 동안 월요일은 여전히 
25시로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화요일이 날자 변경선의 서쪽에서 
시작될 때 월요일은 그것의 동쪽에서 시작된다.
 하루가 서부 알래스카에 도달하는 데는 24시간이 걸리고 거기서 
출발한 이후 24시간 동안 존재하므로 지상에서 그것의 지속시간은 
48시간이다. 

 [  제18장 일본, 중국 ]
 [  제18장-일본 ]
 [  피로 씌어진 책 ]
  일본 천황 수토쿠(1124--1164)는 자기 자신의 피로 책을 썼다. 그는 
사누키에 유배된 3년 동안 피로 잉크를 대신하여 유명한 힌두 성전인 
란카바라 수트라를 베끼는 데 모든 시간을 바친 것이다. 이 책은 
135페이지, 1,215줄, 10,500단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부처가 일본의 
왕권을 회복시켜주기를 바라는 강건한 희망으로 씌어졌다. 수토쿠의 
왕권은 1144년 회복되었으며, 그 후 20여 동안 일본을 다스렸다.
 
 [  훈도시 문화 ]
  일본 남자은 오랜 시간 동안 훈도시를 의상의 일부로 사용해서 
훈도시 의상 문화를 만들어냈다. 훈도시는 띠로 허리를 두르고 앞과 
뒤쪽에 아랫도리의 윗부분을 가릴 정도로 천을 늘어뜨린 것이다.
 
 [  명치 유신 때 ]
  일본의 오키나와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 류큐라라는 독립 
왕국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일본 본토 침공을 위해서 1945년 
오키나와에 상륙해서 1972년까지 27년 동안 점령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물론 일본에 귀속되어 있다.
 
   시풍, 가미가제
  1274년 몽고군 함대가 일본 규슈섬 남쪽으로 침입해왔을 때 이상한 
태풍이 불어 이들의 상륙을 막았다. 1281년 또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도 
갑자기 이상한 바람이 불어 이들을 몰아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뒤 몽고군은 다시는 일본을 공격하지 않았는데, 일본인들은 이 
바람을 신이 보내준 바람, 즉 가미가제라 불렀던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때 일본 공군의 특공대들이 연합군의 큰 군함 등을 돌격하여 
기체와 함께 자폭했는데, 이들을 일컬어 '가미가제 특공대'라 한다. 
  
   페리 제독이 
  1854년 일본을 개방화시킨 후 40년이 지났을 때, 이미 일본은 
반서구화된 나라였다. 그리고 군사적, 산업적으로도 너무 막강해져 
중국과의 전쟁에서 거대한 중국을 패배시켰고 파모사를 빼앗았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부터 한국을 합병시키기에 이르렀다.
  
 [  서서볼일 보는 여자 ]
  대부분의 여자들은 모두 앉아서 오줌을 누지만, 100년 전 농촌에서 
살았던 일본 여자들은 서서 오줌을 누었다.
 
 [  귀신의 종류 ]
  일본인들은 무려 8백만 종의 귀신들을 섬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약 
2,000종을 섬겼다.
 
 [  일본 천황은 로봇이었다 ]
  17세기초에 무사 정권으로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천황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었다. 천황가의 연수입은 쌀 3만 석이었고, 도쿠가와의 
연수입은 쌀 70만 석이었다.
  
   후지산
  후지산은 시즈오카현 북동부에서 야마나시현 남부에 걸쳐 있는 
산이다. 일본인들은 이 산을 신성하게 여기는 풍습이 있어서 1년에 
10만 명의 순례자들이 찾지만, 지질학자들은 1,000년 안에 이 산이 
무너져 없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 최고의 거장인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80세에 만든 영화 (꿈)에서 후지산이 원자탄에 의해 
녹아 내리는 장면을 만들었다. 물론 이 영화는 일본에서 상영 
금지되었다.
  
   중세 일본에서는
  여자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방에 같이 있는 것이 발각되면, 그 
동기가 순수했다 하더라도 사형에 처해졌다.
  
 [    제18장-중국 ]
 [  유럽인이 중국의 시장 ]
  13세기 유럽인이 중국의 관리로 등용된 적이 있었다. 마르코폴로는 
쿠빌라이 칸(칭기스칸)이라는 중국 황제에게서 신임을 얻어서 
양차우시의 행정 돤리, 즉 시장으로 임명 받게 되었고 3년 동안 그 
시를 다스렸다.
 
 [  여황제의 숙청 작업 ]
  중국 역사상 유일의 여황제 측천무후는 황제가 되자마자 자신의 황후 
책봉을 반대했던 조정 대신들을 처형했으며 장남과 차남을 모반의 
혐의를 씌워 자결하도록 하였다. 측천무후는 이도 부족하여 맏손주를 
이유 없이 처형하였다고 한다.
 
 [  생매장 ]
  BC 221--207년 진 왕조는 많은 학자들을 산 채로 매장시켰다.
  
   검소한 제국주의자
  원 세조(1216--1294)는 일본과 고려, 베트남과 버마를 침략한 가공할 
만나 존재다. 그러나 실생활은 매우 검소해서 의복이 모두 
복면이었으며, 기운 자국이 많았다고 한다.
 
   낭만적인 죽음
  AD 701--762년에 살았던 중국 당나라의 위대한 시인 이태백은 술을 
즐겨 마시면서 시를 썼다. 그는 61세 되던 어느 달밤에, 호수에서 배를 
타고 물놀이를 하던 중 그의 시적 감정이 최고로 무르익었고, 물 위에 
비친 달이 매혹적이라고 느낀 나머지 키스를 하려다가 그만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는 당대에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이자, 술꾼이기도 
하였다.
 
   중국인이 라이프 스타일
  친구를 만나서 악수를 할 때 친구의 손을 잡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손을 잡는다. 손님에게 차를 대접할 때 접시 위에 찻잔을 놓는 것이 
아니고 찻잔 위에 접시를 놓는다. 더울 때 더운 차를 마셔서 몸을 
식힌다. 목욕을 하고 나서 마른 수건이 아닌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는다. 집을 지을 때 지붕부터 먼저 세운다. 그들의 나침반은 북쪽이 
아니라 남쪽을 가리킨다.
 
 [  공자는 식인주의자였을까? ]
  공자는 인간 고기를 절여서 만든 해를 좋아했다는 기록이 (예기) 
(동주열국지) (장자) 등의 책 속에서 나온다. 그는 밥상에 해가 나오지 
않으면 식사를 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이시이 다케오가 쓴 책 
속에서).
 
 [  진시황과 그의 아들 ]
  진시황은 10,000개의 방이 있는 아방궁을 지어 13,000명의 아내들을 
거느리고 살았다. 또한 그의 맏아들 호해는 황제가 되기 위하여 12명의 
동생들과 10명의 누이들을 참수하였다.
 
 [  대운하 ]
  중국의 동부 북경에서 향주까지 남북으로 총 길이 1,782km에 이르는 
대운하의 공사는 550만 명이 동원되었고, 250만 명이 죽었다.
 
 [  손님을 감시하는 중국인 ]
  중국 사람들이 긴 소매의 옷을 입는 이유는 시장이나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 물건을 훔치기 위해서였고, 찾아온 손님을 문밖까지 
정중히 배웅하는 이유는 손이 무엇인가를 도둑질해가지 않나를 
감시하기 위함이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이거늘 
  중국에서는 살인자와 술 취한 사람은 모두 사형시키고 간음한 자와 
강도는 음경을 잘랐다. 또 국가의 재산을 손상시킨 사람은 귀와 손을 
자르고, 좀도둑이나 여행자를 괴롭힌 사람은 코를 잘랐다. 통금 시간을 
어긴다든지, 작은 물건을 훔친다든지 하는 가벼운 범죄에 대해선 불에 
달군 인두로 이마에 표식을 새기는 벌을 내렸다.

 [  노는 것이 자랑 ]
  중국인들에게는 19세기까지만 해도 일하지 않고 가만히 놀면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게 대단한 자랑이었다. 따라서 그 증거물로 
귀족들은 손톱을 길게 길렀고, 길면 길수록 아름다운 것으로 
간주되었다.
 
   막강한 화교의 세계
  오늘날 전세계를 통해서 2,800백만에 달하는 화교가 살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화교는 전체 인구의 4%밖에 안되지만 국유 재산을 
제외한 전자산의 90%를 소유하고 있고 대기업 25개 중에 17개를 화교가 
소유하고 있다. 태국에서 화교는 태국 전체 인구의 2%밖에 되지 않지만 
이 나라 상공업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화교는 이 나라 인구의 30%밖에 안 되지만 이들이 이 
나라 경제를 좌우하고 있다.
  미국에 사는 화교는 미국 I.R.S에 의하면 미국에 사는 여러 민족 
중에서 가장 높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여튼 전세계에 퍼져 사는 화교가 소유하고 있는 달러는 증권을 뺀, 
유동 자산만도 2조 달러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조그마한 섬 대만 
사람들만 해도 800억달러 이상의 외화를 보유하고 있다.(1993년 현재)
 
 [  가장 긴 장례식 ]
  1912년 6월 1일부터 1913년 6월 1일까지 계속된 중국 이훈 장군의 
장례식이 아마 인간의 역사 속에서 가장 긴 장례일 것이다. 그 행렬은 
북경에서 시작되어 3,700km나 떨어진 심경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  중국의 우편 제도 ]
  중국은 BC 1000년경에 비둘기를 이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포함한 우편 제도를 혁신하였다.
  마르코 폴로가 13세기경에 중국을 다녀오면서 느낀 체험을 쓴 
(동방견문록)에 보면, 중국의 우편 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잘 발달된 
것이라고 적혀 있다.
  사실, 당시의 중국에는 우편물을 배달하는 300,000마리의 말이 
있었고, 10,000개에 달하는 우체국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속달물은 사람이 직접 말에 싣고 하루에 400km를 여행하면서 
전달했다고 한다.
 
 [  만리장성과 보초 ]
  중국의 진시황이 건설한 만리장성의 총 길이는 2,400km나 되며, 본래 
몽고족의 남침을 막기 위해서 건설된 세계적인 토목 공사이다. 당시 이 
거대한 성을 지키는 보초는 성에서 태어나 성에서 자라서 거기에서 
결혼하고 죽었으며, 그 성에서 장사를 지냈다.

 [  중국의 악명 높은 산적 ]
  중국의 장시정은 1643년에서 1648년 사이에 사람을 4천만 명이나 
죽였다.

   그릴 수 없는 것
  고대 중국의 화가들은 여성의 성기나 남녀의 성행위를 그릴수는 
있었지만 여성의 발은 절대로 그릴 수 없었다.
 
 [    제19장 동물 가족, 동물의 섹스 ]
 [    제19장-동물 가족 ]
 [  코끼리에도 계급이 있다 ]
  왕이나 귀족이 죽으면 코끼리나 소가 되어 다시 탄생한다는 불교의 
윤회설을 믿고 있는 인도인들은 코끼리와 소를 매우 신성시하였다. 
코끼리가 크고 건강하게 생겼으면 코끼리 중에서도 상계급에 속해서 더 
좋은 대우를 받는다. 보통 코끼리 한 마리 값이 750달러일 때, 소위 
신성한 코끼리는 10,000달러에 달하고 신성한 소는 1,000달러 정도에 
이르렀다.
 
 [  코끼리의 언어  ]
  코끼리들은 자기들끼리 통하는 언어를 가지고 있다. 거대한 코끼리 
떼들이 킬리만자로산 앞을 통과할 때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없을 만큼 
조용히 지나간다. 코끼리가 16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코끼리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초저주파음을 이용해서 소리를 
내기 때문인데, 인간의 귀로는 잘 감지할 수 없지만 멀리 고요히 울려 
퍼진다고 한다.
 
   코끼리와 콩알
  코끼리는 6,350kg의 몸무게를 지닌 동물이지만, 그 코로 콩알을 
들어올릴 수 있고 272kg이나 되는 통나무도 들어올릴 수 있다. 또한 이 
거구의 코끼리가 하루에 2시간을 자는 반면, 작은 체구의 고양이 및 
고릴라는 하루에 14시간을 자야 한다.
 
   코끼리와 쥐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큰 동물인 코끼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작고 약해보이는 생쥐이다. 코끼리는 쥐만 보면 긴장되어 뒤로 
물러난다. 그 이유는 쥐가 코끼리의 콧속으로 들어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고래는 
  냄새를 맡을 수 없다.
 
   토끼는 
  하루에 18번 낮잠을 잔다.
 
   낙지는 
  세 개의 심장을 갖고 있다
 
   원숭이는 
  동물학적으로 이야기할 때 다리가 없다.
 
   개구리는 
  이가 있고 두꺼비는 이가 없다.
 
   아프리카 코끼리
  아프리카 코끼리는 하루에 204kg의 음식을 여섯 번이나 먹으며 
50갤런의 물을 마신다. 그러나 교미를 할 때에는 30초만에 끝내고 만다.
 
   흰 코끼리
  흰 코끼리는 은색이 섞인 연한 회색을 띠고 있다. 이 코끼리는 매우 
찾아보기가 힘들고 귀하기 때문에, 불교가 지배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태국 같은 나라에서는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흰 코끼리가 잡히면 
시중드는 사람들이 달려들어 향수 섞인 물로 목욕을 시키고 비단과 
보석으로 장식을 하고 최고급 음식을 먹인다. 이 코끼리가 죽게 되면 
온 국민이 슬퍼하며 왕까지도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흰 코끼리에게 주어진 임무 중의 하나는 망나니 대신에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풍습은 19세기까지 전해졌는데, 이 
코끼리는 집행될 죄인의 목을 앞발로 짓눌러서 죽인다.
 
 [  머리가 둘 달린 뱀 ]
  머리가 2개인 동물의 종류가 많다고는 하지만, 때때로 아주 크고 
희귀한 뱀이 2개의 완전한 머리로 한 몸을 이루어 자라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뱀들은 대개 2개의 꼬리를 가지고 있다. 대체로 2개의 
머리는 끝까지 자라는데, 이러한 경우 머리 둘인 뱀은 머리가 하나인 
뱀보다 불리하다. 그 이유는 머리가 하나인 것처럼 날렵하게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날아다니는 뱀
  자바와 말레이시아에서만 발견되는 이 나무 뱀은 리본처럼 몸을 
납작하게 하여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 다닌다. 이 뱀이 날 때 
갈빗대를 쫙 펴는 모양은 코브라가 공격을 시도할 때 목을 평평하게 
펴는 모양과 유사하다. 또 높은 곳에서 하강할 때에는 나선형을 
그리면서 내려간다. 이 뱀으로 북쪽의 여러 나라들로 옮겨가기 위한 
시도가 여러 번 있었으나 항상 운송 중에 죽고 말았다. 이것의 과학 
명은 크라이소페레아 오나타이다.
 
   코알라
  코알라는 유카리나무 위에서 그 잎만 먹고 물은 전혀 마시지 않는다. 
원주민어로 코알라는 'no water'의 뜻이다. 새끼를 낳으면 6개월 동안을 
캥거루처럼 앞에 달린 주머니 속에 넣어 키우고 그 후에는 업고 
다닌다.
 
   능구렁이의 내유외강
  능구렁이는 머리끝에서 꼬리 끝까지 검은 색과 주홍색의 둥근 얼룩이 
뒤섞인 무늬가 있고, 사람을 보면 곧 공격할 것 같은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보기와는 달리 독이 없다.
 
 [  카멜레온은 뛰어난 마술사 ]
  작은 도마뱀인 카멜레온은 몸의 색깔을 바꿀 수 있다. 이 신기한 
파충류 가죽은 기분에 따라서, 또는 주변 환경에 적응함에 따라 무지개 
색의 여러 가지 색깔을 띨 수 있으며, 오른쪽과 왼쪽을 동시에 볼 수 
있고 발로 무엇이든 잡을 수 있음은 물론 꼬리로 나무를 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카멜레온의 혀의 길이와 
민첩성이다.
  카멜레온의 몸체는 16cm정도 되지만, 혀의 길이는 종종 이보다 더 
길 때가 있다. 즉 몸보다 더 긴 혀를 입안에 말아두었다가 엄청난 
속도로 갑작스럽게 혀를 내밀어 벌레를 손에 넣는다. 카멀레온은 혀를 
이용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25cm나 떨어져 있는 벌레를 잡아먹는 
것이다.
 
 [  12명의 남자와 비단뱀 ]
  비단뱀 종류 중에서 가장 커다란 뱀은 동남 아시아의 그물 
비단뱀으로, 길이가 7.6m 정도 된다. 독이 없는 이 뱀은 길이가 8.5m, 
무게가 100kg인 것까지 보고되기도 하였다. 이 뱀은 힘이 엄청나서 
사로잡혀 있을 때에도 강제로 먹이를 먹이기 위해서는 동물원 사육서 
12명의 힘을 합쳐야만 한다.
  비단뱀이 죽기 전에 무엇을 마지막으로 먹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위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중간 크기의 비단뱀 
뱃속에는 표범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사나운 표범의 발톱과 이빨도 
엄청난 힘을 가진 거대한 뱀 앞에서는 무력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채찍꼬리 도마뱀
  채찍꼬리 도마뱀은 남서부 사막에서 사는 날씬한 도마뱀인데, 이 
도마뱀에는 수컷이 없다. 그러므로 암컷이 암컷을 낳고, 또 암컷이 
암컷을 낳아 번식한게 된다.
 
 [  도마뱀의 길눈 ]
  도마뱀은 구멍을 파고 알을 까놓는데, 알 낳은 곳을 헤매지 않고 
바로 찾아 돌아온다.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속임수를 써서 
실험해보았는데, 어미 도마뱀들은 절대로 이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아무리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다 할지라도 꼭 알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일단 알이 있는 곳에 닿으면 혀끝으로 알의 껍질을 맛보고는 
자기 알인지 아닌지를 금방 알아낸다. 만약 자기 것이 아니면 얼른 
도망쳐서 절대로 관계하지 않는다.
 
   코브라와 몽구스의 싸움
  이 싸움은 종종 무승부로 끝난다. 코브라는 1g의 독액으로 150명을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몽구스는 코브라의 독액에 면역되어 
있기 때문이다.
 
 [  당신도 악어를 이길 수 있다. ]
  보통 54kg짜리 악어의 턱은 700kg의 힘을 낼 수 있을 만큼 강해서 
뼈를 으스러뜨릴 수 있으며, 위 속에는 많은 염산이 있어서 쇠붙이를 
녹여 소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강한 턱도 일단 닫히고 
나면 아무 힘도 없어서 아이들 힘으로도 지탱할 수 있다.
 
   악어의 눈물
  아프리카에서 사자보다도 악어에 물려 죽을 확률이 더 높다. 악어는 
다른 악어도 잡아먹는 잔인한 동물로서 먹이를 씹지않고 한꺼번에 
삼킨다. 또 악어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지기도 하는데 이건 눈물이 
아니라 그저 먹이에 의해 섭취된 염분을 배출하는 단순한 생리 작용일 
뿐이다. 악어는 혀를 움직일 수 없고 항상 새로운 이빨이 생겨 나와 
날카로운 상태가 유지된다. 만약 사람이 육지에서 악어에게 쫓긴다면 
설사 육상 선수라 해도 살아나기 어렵다. 하지만 악어는 갑자기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으므로 지그재그로 달린다면 위기를 넘길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
  아마도 악어의 입에 손을 넣어서 먹을 것을 찾으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악어새는 악어의 입 안에 들어가서 먹을 것을 찾는다. 
악어가 식사를 마치고 입을 벌리고 있으면 이 작은 새가 입 안에 
들어가 악어의 이빨 사이에 낀 찌꺼기를 깨끗하게 청소해주는 것이다. 
때문에 악어가 이 물새를 잡아먹는 일은 없다. 그리고 이 새는 때로 
악어의 등위에 올라앉아서 다가오는 위험을 경고해주어 악어를 
구하기도 하고 악어의 껍질에서 사는 기생충을 잡아먹기도 한다.
 
   노인과 악어
  미국산 악어들과 노인들은 적어도 청각 부분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 악어들의 청각은 둔하므로 그들이 감지할 수 있는 소리는 
고작해야 초당 4,000번의 진동수밖에 되지 않는다.
 
   나무 위의 발레리나
  킨카주는 그 진귀한 이름처럼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기괴한 포유동물 
중의 하나이다. 4kg의 몸집으로 나무타기의 선수인 이 생물은 
긴팔원숭이와 거의 같은 종류로 분류된다. 애완 동물 가게에서 
킨카주를 '벌꿀 곰'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꿀을 좋아하고 
털이 벌꿀색이며, 곰처럼 짧고 굵은 앞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물학자들은 이에 대해 반박하며 킨카주는 너구리과에 
속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너구리와 마찬가지로 킨카주도 발에 차이는 것은 거의다 먹을 수 
있는데 과일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양식이고 곤충도 그들의 주요 
먹이다. 이 동물은 나무에 오르기 전에 먼저 줄기의 냄새를 맡고 그 
종류를 구별해 내는 능력도 지니고 있는데 꼬리를 이용해서 물건을 
집을 수 있는 신세계의 유일한 식충동물이다. 그러나 그들이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점은 바로 발에 있다. 킨카주는 
뒷발과 꼬리로 나뭇가지에 매달릴 수 있고 한 발 또는 두 발로 
마음대로 180도 회전할 수 있는 데, 이러한 묘기는 가히 발레리나도 
시샘할 만한 것이리라. 때때로 이 동물은 애완용으로도 길러지지만 
이들이 지니고 있는 야행성의 습관-나무 타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때문에 때때로 소유자들이 애를 먹기도 한다.
 
   아르마딜로는 탱크보다 강하다
  아르마딜로로 알려진 묘하게 생긴 포유동물의 여러 종은 미국 
남서부에서 아르헨티나에 걸쳐 널리 퍼져 있는데, 크기는 38cm에 
340g의 핑크요정 아르마딜로에서, 152cm에 56kg이나 되는 거물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 모든 종들은 공통적인 것이 하나 있는데, 
몸이 뼈만으로 된 작은 갑의 딱딱한 껍질로 싸여 있다는 것이다. 
아르마딜로는 종종 완전히 압축된 공 속으로 지신을 감싸는데 이것은 
다른 동물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머리와 팔, 다리를 스스로 움츠려 
갑판을 제외하고는 거의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세줄무늬 아르마딜로로 알려진 한 종도 완전한 공 모양으로 몸을 말아 
올려, 뼈로 된 갑으로 몸 전체를 보호한다. 이때 탱크가 몸위로 
지나가도 아르미딜로는 별 지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이르마딜로는 
야행성 동물로 굴속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지내며, 날카롭고 단단한 
발톱으로 흙을 긁어 땅 속에 복잡한 통로를 만들기도 한다.
 
   벼룩의 부양 가족
  아르마딜로와 고슴도치의 건강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벼룩이다. 
왜냐하면 벼룩은 피부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기 때문인데, 벼룩이 
없으면 아르미딜로와 고슴도치는 오랫동안 생존할 수가 없다.
 
   고슴도치
  고슴도치는 머리, 옆구리, 등, 배를 제외한 모든 곳에 총 30.000개의 
바늘 같은 가시를 가지고 있다. 이 가시는 살 속에 한번 박히면 빼내기 
어렵고 점점 더 깊이 들어가 수술을 해야만 겨우 빼낼 수 있다.
 
   푸른고래의 몸무게
  푸른고래의 몸무게는 132톤이나 되며 6개월 동안 전혀 먹지 않아도 
몸 속에 축적된 지방만으로 견딜 수있다. 그러나 식충 포유동물인 
뒤쥐의 무게는 0.052온스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단위를 그램으로 
바꾸면 푸른 고래가 1억 3천 2백만g,뒤쥐는 1.5g 정도이다. 인간의 
무게는 이 두 동물의 중간으로 90,700g 정도이다.
  
   킬러고래
  킬러고래는 대여섯 마리에서 50마리씩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데, 
킬러고래의 소리는 곱사고래의 울음소리와 달리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한 무리에 속하는 고래들은 모두 같은 소리를 내지만, 
혈연적으로 가까운 다른 무리에 속하는 고래의 소리와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고래의 생태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두무리가 혈연적으로 얼마나 
가까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소리의 차이로부터 알 수 있다고 한다.
 
 [  돌고래의 사랑과 공격성 ]
  돌고래는 IQ가 90정도로,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짝사랑에 번민하기도 
하며 호모 섹스를 즐기기도 한다. 반면에 잔인한 면도 가지고 있어서 
고치고기를 입으로 한 번에 물어뜯어서 죽일 수도 있고, 상어를 코로 
떠받아서 죽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돌고래가 사람을 공격했다는 기록은 
없다.
 
   곱사고래의 울음소리는 
  곱사고래의 울음소리 고압 천공기의 소음에 버금가는 100데시벨에 
이르러서 근처에서 수영하는 사람이 견뎌내지 못할 정도이다. 또한 
청고래의 휘파람 소리는 188데시벨로 살아 있는 동물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이다.
 
 [  돌고래의 언어 ]
  돌고래는 한꺼번에 두 가지 대화를 수행한다고 한다. 휘파람이나 
짤깍거리는 두 가지 소리에 동시에 독립된 의미를 실어 전달하는 
것이다. 모든 돌고래는 자기만의 독특한 휘파람 소리로 구성원들에게 
스스로를 알리고, 강력한 파열음으로 사냥감을 혼미하게 만들기도 하고, 
초음파로 주변의 여러 물체를 구별하기도 한다.
 
   돌고래 보초병
  월남전 당시 캄랑만을 사보 타지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미 해군은 
돌고래를 특별 수중 보초로 두었다. 또 미 해군은 잃어버린 수뢰를 
바다 밑에서 건져 올리기 위하여 킬러고래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머리가 좋고 기동성이 뛰어난 돌고래는  수중 보조자 역을 훌륭히 
수행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돌고래가 어떤 역할을 하였으며, 어떻게 
훈련시켰는지는 특급 기밀로 남아 있다.
 
   수컷이 새끼를 키우는 동물들
  (독개구리)
  주로 남아메리카에서 기생하는 매우 요란스런 색깔을 한 이 
독개구리는 암컷이 수컷의 등뒤에 있는 섹스 주머니에다 알을 낳는다. 
그러면 수컷은 부화될 때까지 알을 걸머지고 다닌다
  (자카나스)
  '릴리 트로터'라고 불리는 로빈 정도 크기의 이 새는 암컷이 더 크며 
더 공격적이고 강해서 자기 구역을 보호한다. 수컷은 새끼를 키우며 
집에만 있으면 된다.
  (마모제트)
  중남미산의 원숭이과에 속하는 작은 원숭이이다.
  (시어맹)
  수마트라와 말레이 반도에 주로 사는 큰 긴팔원숭이들은 수컷이 
새끼를 키우며 한번 짝을 맺으면 영원히 하나의 암컷에 충실한다.
  (해마)
  말머리, 물고기 꼬리의 괴수로 해신이 수레를 끈다고 하는 해마의 
암컷은 수컷의 배에 있는 섹스 주머니에다 200개정도의 알을 낳는다. 
그러면 '임신된' 수컷은 부화될 때까지 몸을 흔들며 수축하여 매우 
고통스러운 가운데 새끼를 밖으로 내보낸다.
  
   진짜 상아
  진짜 상아는 코끼리로부터 오지 않는다. 그것은 산돼지나 해마의 
어금니로부터 온다.
 
 [  거북은 200년 이상 산다 ]
  거북은 동물의 왕국에서 가장 느린 생물이지만, 스피드이 부족은 
장수한다는 장점으로 인해 그 결함을 상쇄될 수 있다. 거북은 오늘날의 
대부분의 동물보다 훨씬 이전에 지상에 번성했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바다거북은 200년 이상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어떤 거북은 300년 
이상을 살기도 한다는 것이다.
  거북은 천천히 먹고 느리게 움직이며 서서히 자라나고 심지어는 
숨까지도 느리게 쉰다. 이 느린 파충류의 껍질이 단단해지는 데에는 
보통1년 이상 걸리는데, 어떤 거북의 알은 부화되는 데에도 거의 1년이 
걸린다고 한다. 겨울잠을 자는 동안 거북의 몸은 최소한의 기능으로 
실제로 가사 상태가 된다. 변온동물인 거북은 겨울이 되어 피가 
차가워지면 몸을 물 밑 진흙 바닥 속에 숨긴다. 이때에는 호흡이 거의 
끊기는 것처럼 보이며,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소량의 산소는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진흙 속에 함유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진흙 
속에는 몸을 얼지 않도록 해주는 열이 충분하게 포함되어 있다. 거북은 
육지와 민물, 그리고 바닷물에 사는 거북은 크기에 있어서 매우 다르다. 
바다거북은 그 길이가 2.5cm인 것에서부터 2m에 이르는 것까지 
다양하다. 대표적인 육지 거북인 갈라파고스 거북의 뭄무게는 최고 
227kg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성체인 장수거북(가장 큰 바다거북)의 
평균 키는 2m에 이르고 무게는 454kg정도 된다.
 
 [  박쥐의 레이다 ]
  아주 캄캄한 밤이라 해도 박쥐는 쉽게 날아다니고 우리가 전혀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벌레도 채어간다. 박쥐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배는 
안개나 어둠 속을 헤쳐갈 때 무선 신호를 보내 지형을 파악하는데, 
박쥐도 그 비슷한 레이다를 가지고 있다. 박쥐는 공중을 날 때 입으로 
1초에  30--60회 진동하는 빠르고 작은 소리를 낸다. 이 소리는 너무 
높아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이 소리가 물체에 부딪혀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면 박쥐는 그 소리를 듣고 그 물체의 위치를 알게 
된다. 박쥐의 귀는 1초에 100,000회 진동하는 소리도 들을 수있기 
때문에 온갖 물건이 꽉 차있는 방이라 해도 쉽게 날아다닐 수 있다. 
하지만 박쥐의 입을 막아버린다면 소리를 낼 수 없으므로 여기저기 
부딪혀서 날 수 없을 것이다.
 
 [  날아다니는 다람쥐 ]
  박쥐는 날 수있는 유일한 포유류이다. 날아다니는 다람쥐라고도 
불리는 박쥐는 사실상 주머니쥐가 할 수 있을 정도, 즉 단거리 정도 
미끄러지듯이 빠르게 움직일 뿐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
  뒤쥐는 세계에서 가장 적고, 가장 사나운 포유동물이다. 
shrewish라는 단어는 시끄럽고 바가지 긁는 여자를 표현할 때 자주 
쓰이는 적절한 단어이다. 싸움을 좋아하는 이 뒤쥐의 길이는 5cm이며, 
니켈(미국 통화 단위(5센트))동전의 무게밖에 안 되는데 뒤쥐가 
세상에서 가장 작은 포유동물이라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의 식욕과 공격성을 비교할 때, 사자가 유순해 보일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 작은 다이너마이트 덩어리는 코브라처럼 물고, 매일 자기 
몸무게의 두 배 이상의 고기를 먹으며, 자기보다 세 배나 큰 동물을 
공격한다. 만일 배가 고프면 다른 뒤쥐까지도 잡아먹을 것이다. 
비늘같이 날카로운 이빨들 외에, 이 5cm크기의 뒤쥐는 커다란 먹이를 
잡을 수있는 독을 한입 가득 지니고 있다. 이 뒤쥐의 침(타액) 속에는 
3분 이내에 쥐를 죽일 수 있는 독이 있으며, 입 속의 독 분비선은 
200마리의 쥐를 죽일 수 있는 양의 독액을 한번에 낼 수 있다고 한다.
 
   흡혈 박쥐
  흡혈 박쥐는 이름처럼 악하지 않다. 먹이의 목을 찔러서 피를 
빨아먹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피가 날 때까지 이빨로 
피부를 천천히 긁어낸다. 그러나 너무 부드럽게 긁어내기 때문에, 만일 
그 먹이가 잠자고 있는 동안이라면 흡혈 박쥐가 피를 빨아먹을 
때까지도 일어나지 않을 정도이다.
 
   주머니쥐 이야기
  동물의 세계에는 적으로부터 위협을 받았을 때 그 자리에서 맞서 
싸우는 동물이 있는가 하면, 꼬리를 감추고 줄행랑을 치는 동물도 있다. 
그러나 미국산 유대류에 속하는 주머니쥐는 위험에 처했을 때 실신해서 
죽은 척하는데, 이때 주머니쥐의 몸은 강철만큼이나 뻣뻣해진다. 당황한 
공격자는 찔러보고 들어보기도 하며, 또 이리저리 굴려보기도 하지만 
주머니쥐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 대부분의 약탈자는 스스로 
죽인 동물이 아니므로 입에 대지 않고 대개 다른 먹이를 찾아 나서게 
된다. 주머니쥐는 20분 정도 그대로 있다가 한쪽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본 후 천천히 일어나서 행동을 개시하는 것이다. 물론 주머니쥐의 
이러한 눈속임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어서, 실패했을 경우에는 
거짓의 잠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머니쥐 
집단은 결코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 이 동물은 현존 포유동물 중 출산 
능력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한 마리의 주머니쥐는 1년에 세 번 임신을 
할 수 있으며, 1회 임신에 최고 18마리까지의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아침 이슬을 먹고 사는 쥐
  호주산 쥐는 굴 앞에 작은 조약돌을 쌓아 물을 얻는다. 매일 아침 문 
앞에 배달되는 우유처럼 일용할 물이 굴 앞 조약돌 더미에 아침 이슬의 
형태로 쥐들에게 배달된다.
 
 [  나그네쥐의 가족 계획 ]
  나그네쥐들은 4년마다 한번씩 수백만 마리가 줄을 지어 노르웨이의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는다. 그렇게 하여 지나치게 늘어난 종족의 
수를 줄여 식량의 부족을 막고 안전하게 종족을 유지한다.
 
   캥거루쥐의 청각
  사막의 모든 동물들이 그러하듯이 북아메리카산 캥거루쥐는 극도로 
예민한 청각을 가지고 있다. 캥거루쥐의 커다란 고막은 올빼미의 내려 
덮치는 날개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소리를 매우 효과적으로 
증폭시킨다.
 
   가시두더지와 담비
  가시두더지는 9kg밖에 되지 않지만 90kg의 사자를 물어 죽일 수도 
있다. 선인장들 사이로 들어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밤중에 
가시두더지에 걸려 넘어지는 기분을 알 수 일을 것이다. 이 이상한 
동물은 등과 꼬리에 괴상한 가시가 수없이 많이 나 있는데, 이것은 
가장 뛰어난 방어 기능 중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가시두더지가 
가시를 마치 화살처럼 쏜다고 믿는데, 사실은 아주 느슨하게 박혀 
있어서 조금만 건드려도 빠져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보통 곰이나 늑대, 사자 등은 이 걸어다니는 바늘꽂이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배고픈 사자가 달려드는 수가 있는데, 그렇게 
공격을 받는다 해도 이 느림보 설치류는 등조차 돌리지 않는다. 한번 
물기만 하면 무모한 사자의 입에 날카로운 가시가 가득 박히는 것이다. 
이 가시들 끝에는 낚시바늘 같은 갈고리들이 달려 있어 뱉어내려고 
애를 쓸수록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 며칠 안에 사자는 굶어죽게 된다.
  꼭 하나 이 가시두더지를 이기는 영리한 동물이 있는데, 족제비 
종류인 담비이다. 담비는 조용히 다가가서 물거나 긁지 않고 그저 
가시두더지를 살짝 건드려서 뒤집어 놓는다. 그래서 배가 보이면 
날카로운 손톱으로 찢어버리는 것이다. 가시두더지의 음식은 대부분 
즙이 많은 나무껍질이다. 하지만 이 동물은 소금을 몹시 좋아해서 
사람들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사람이 맨발로 지나다닌 계단을 핥을 
정도이다. 또그저 짠맛을 얻기 위하여 사슴뿔을 씹어서 삼키기도 한다.
 
   설치류의 특징
  수달피, 쥐, 다람쥐, 토끼 등의 앞니는 계속해서 자란다. 이렇게 계속 
자라는 이의 성장을 막기 위해서 이 동물들은 끊임없이 나무껍질이나 
잎사귀 등을 갉아야만 한다.
 
   두더지의 라이프 스타일
  두더지는 하룻밤 사이에 땅꿀을 91m나 뚫는다. 또 태어날 때부터 
장님으로 앞을 전혀 보지 못한다. 그리고 한 마리의 암컷이 수 많은 
수컷을 거느린다.
 
 [  오르가슴에 관한 쥐의 실험 ]
  과학자들은 전극을 쥐의 뇌 속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부분에 
연결시켜놓았다. 곧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다. 쥐들은 음식이나 물도 
먹지 않고 심지어는 교접도 하지 않고 하룻동안 그 전주 지렛대를 
48,000번이나 눌어대었다. 그 이유는 쥐의 뇌 속으로 통하는 전극이 
쥐에게 오르가슴 같은 환희를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다람쥐
  다람쥐는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다치지 않고 떨어질 수 있다. 어떤 
다람쥐는 나무 꼭대기에서 땅까지 180m를 다치지 않고 수직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한다. 다람쥐는 몸을 쭉 펼쳐서 겨드랑이와 꼬리의 
긴 털이 추락 속도를 늦추도록 한다.
 
   낙타와 말
  낙타와 말이 경주를 한다면 최초 6km는 낙타가 말보다 빨리 달린다. 
그러나 그 후부터는 낙타가 기진맥진하여 말이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된다.
 
 [  낙타의 비상 식량 보급소 ]
  많은 사람들이 낙타의 등뼈가 혹의 굴곡에 따라 구부러져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낙타의 등뼈는 말이나 코키리처럼 일직선이다. 
낙타의 혹은 지방으로 차 있고 크기는 낙타의 신체 조건에 따라 
다르다. 일을 많이 하고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낙타는 혹이 줄어들고 
때로는 납작해지기도 한다. 낙타가 사막에서 먹지 않고도 먼 거리를 
여행할수 있는 것은 이 혹 속에 저장해 놓은 지방을 재 흡수하기 
때문이다. 낙타의 혹은 영양 저장소로서 낙타가 아무것도 먹을 수 없을 
때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한다. 어떤 종류의 양들은 이런 지방을 꼬리에 
저장하고 다닌다.
 
 [  생후 2일의 가젤이 성인 말을 이길 수 있다 ]
  아프리카 영양의 일종인 가젤은 모든 포유동물 중에서 가장 우아하고 
경계심이 많은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용의주도한 가젤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동물들 중의 하나로서, 시속 100km 정도로 달릴 
수 있다고 한다.
  가젤이 살아 남는 데는 속도가 매우 중요한데, 가젤은 태어난 몇 분 
후부터 뛸 수 있을 만큼 민첩하며, 생후 며칠 이내에 다 자란 성인 
말과 달려도 이길 수 있다. 가젤은 쫓길 때만 달린다. 나머지 시간에는 
나뭇잎이나 잔디를 갉아먹거나 잠복해 있을 지도 모르는  습격자를 
찾기 위하여 눈을 뜨고 경계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가젤은 
절대로 물을 마시지 않는다. 초원의 개, 캥거루쥐, 그리고 기타 몇몇 
동물과 같이 가젤은 먹은 음식물 중에서 건강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물을 빼낼 수 있는 소화 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냄새를 가장 잘 맡는 동물
  브러드 하운드(범인 수색, 추적용의 냄새를 잘 맡는 사냥개)의 피막 
조직, 후각 조직은 인간과 비교해볼 때 50배나 크며 몇천 배나 더 
민감하다. 가령 당신의 신발속에서 풍기는 땀 냄새나 발자국에 묻어 
있는 냄새만 맡아도 블러드 하운드는 실제도 당신을 뒤쫓아 추격하는 
것보다도 백만 배 정도 빨리 당신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블러드 하운드보다 후각 기능이 더 잘 발달된 생물이 바로 
누에나방이다. 수컷 누에나방은 암컷 누에나방이 풍기는 호르몬 
1/10,000mg이 12,000km 정도 떨어져 있어도 이것을 탐지하고 
뒤쫓아간다.
 
   기계 체조의 챔피언
  고양이는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살수 있다. 균형 감각이 매우 
뛰어나서 떨어질 때 항상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발바닥을 땅에 먼저 
딛고 서기 때문이다. 또 이 발바닥은 쿠션과 같은 역할을 하여 몸을 
안전하게 한다. 어떤 집 고양이는 20층의 건물 위에서 떨어졌는데도 
아주 작은 상처밖에 입지 않았다고 한다.
 
   고양이 미라
  고대 이집트인들은 고양이를 신으로 경배하면서 사육하였다. 1888년 
이집트의 한 공동묘지에서는 30만 마리의 고양이 미라가 
발견되었으며,19톤에 달하는 고양이 미라가 비료로 쓰이기 위하여 
가루로 분쇄되어 영국의 농부에게 보내지기도 하였다.

 [  암수 고양이의 성 관계 ]
  암수의 고양이가 성 관계를 맺을 때 부르짖는 소리는 쾌락에 
도취되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고통에 못 이겨 부르짖는 소리다. 
수코양이의 페니스는 암코양이의 질에서 퇴각될 때만 느껴지는 특수한 
비늘 같은 가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암코양이는 고통으로 부르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퇴각할 때 주는 이 고통이 배란을 시작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  고양이에게 캔디를 준들 ]
  고양이는 단맛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가장 부드럽고 풍부한 털을 가진 동물
  커다란 몸집의 털 복숭이 버팔로(미국산 들소)를 연상시키는 
사향소는 가장 양질의 털을 가진 동물로 손꼽힌다. 성장한 이 동물의 
털 길이는 보통 15cm 정도 되다. 이 동물은 갈색의 겉털과 큐비트라고 
불리는 가볍고 비단처럼 부드러운 속털에 싸여 있으며, 이것은 북극의 
추운 날씨에서 생활하기에 적합하도록 해준다. 이 큐비트는 양모보다 
8배나 따뜻해서 부드러우면서도 가벼운 스웨터, 그리고 모자 등을 짜는 
데 사용된다. 
  사향소의 외형은 굽은 뿔과 턱수염을 가진 물소처럼 생겼으나 성질은 
들소나 야생 염소와 유사하다. 원주민들은 사향소를 '우밍막' 또는 '수염 
있는 놈'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들이 넓은 평원이나 초원 주위의 강 
계곡을 따라 8--15마리씩 대열을 지어 달릴 때는 마치 북극의 
이리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듯 머리를 한데 모아 원을 
이루는데, 이때 어린 새끼들은 원의 중앙으로 보내져서 270--320kg 
정도 되는 큰 사향소의 보호를 받게 된다. 오늘날 그들은 북극 
왕국에서 달빛과 별빛을 등불 삼아 생활하고 있다.
 
   캥거루의 번식
  붉은 캥거루와 그 밖에 몇몇 다른 유대류는 암컷이 품은 새끼를 
잃어버려도 임신하기 위해 다시 수컷과 교미할 필요가 없다. 어미 
캥거루는 새끼 주머니에  한 번에 한 마리의 새끼를 가지지만 몸 
안에는 성장이 정지된 몇 개의 수정란을 지니고 있다. 젖을 빠는 새끼 
캥거루는 두번째 수정란을 지니고 있다. 젖을 빠는 새끼 캥거루는 
두번째 수정란의 성장을 억제하는 호르몬을 분비하도록 내분비선을 
자극한다. 그러나 첫째 새끼가 죽고 호르몬의 분 부기 멈추면 여분의 
수정란이 정상적으로 성장하여 새끼 주머니 안에 자리잡는다. 이런 
현상은 첫째 새끼가 완전히 성장하여 새끼 주머니를 떠나도 
마찬가지이다.
 
   기린
  기린은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고도 말보다 빨리 뛸 수 있다. 
BC46년에 시저가 로마에 기린을 가져옴으로써 서양에 처음으로 기린이 
알려지게 되었다.
 
   긴 목을 가진 기린
  긴 목을 가진 기린은 가른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7개의 목뼈를 
가지고 있는데, 가장 긴 목을 가진 기린만이 높은 곳에 있는 나뭇잎을 
잘 따먹고 건강해서, 많은 자손을 번식시키는 데 유리하다는 발생학적 
이론이 이 동물에게 적용된 듯하다.
  기린은 불룩한 눈과 털북숭이 입술에 46cm나 되는 긴 혀와, 
머리끝까지 피를 뿜어 올려보내는  데 적당한 11kg이나 되는 심장을 
가지고 있다. 기린은 하루에 57kg 이상의 식물을 먹는데, 그 키가 
4.5m에서 5.5m나 되는 이 동물의 머리는 심장과 폐에서 너무나 멀리, 
그리고 높이 위치해 있어서 매우 높은 혈압-평균 혈압 260/160(인간의 
평균 혈압은 120/80)-과 목을 지나 머리로까지  산소를 보내기 
위해서는 매분당 20회 이상의 깊은숨을 쉬어야 한다. 기린은 며칠 동안 
물 없이도 살 수 있는데, 물을 한 번 먹기 위해 머리를 숙이면서 
다리를 펼 때는 특수 밸브가 작용하여 머리로 거대한 양의 피가 몰리는 
것을 막아준다. 기린은 또한 조용한 동물로 작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고 외치지만, 때로 가락이 높은 목소리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펭귄의 모성애
  조류의 황제 펭귄은 남극의 심한 추위 속에서도 살 수 있다. 알을 
낳을 때에는 날개의 깃을 끌어올려 그 속에서 알을 낳고, 새끼가 
바깥의 찬 기온을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깃 속에서 키운다. 때로는 
새끼가 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또한 펭귄은 어린 새끼에게 곧바로 주지 않는다. 어미는 먼저 먹이를 
삼키고 음식이 부분적으로 소화되면 부리를 크게 벌려 새끼 펭귄이 
이미 소화된 먹이를 먹게 한다. 어미는 새끼의 먹을 것을 위해서는 
필요하다면 굶어죽어 새끼를 위한 먹이로 기꺼이 희생하기도 한다.
 
   남극의 신사 펭귄
  남극에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그곳에서 살고 있는 몇몇 
생물들은 매서운 기후에 적응하기 위하여 어떤 특별한 기관이 발달되어 
있다. 펭귄은 새이지만 날지 못하고 깃털은 모피에 더욱 가깝다. 흰색과 
검은 색으로 된 이 동물의 날개는, 펭귄이 육지보다는 바다에 더 
알맞도록 해주면서 지느러미로서의 역할을 한다. 
  펭귄의 걸음걸이는 두 발로 꼿꼿이 걷지만 어색하게 보인다. 그러나 
땅 위에서 펭귄이 빠르게 움직이고 싶을 때에는, 배를 깔고 엎드려서 
날개 지느러미로 밀면서 얼음과 눈을 배로 치며 나아간다. 펭귄의 
수컷은 일생 동안 오로지 하나의 암컷에만 의존해서 산다. 

   산족제비(ermine)와 족제비(weasel)
  족제비는 계절에 따라 털 색깔이 변한다. 겨울에는 흰색이 되는데, 
이때를 산족제비라 한다. 그러니까 산족제비(ermine)와 
족제비(weasel)는 다른 종류가 아니라 같은 동물을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다.
 
 [  흑색줄무늬 족제비의 치한 퇴치법 ]
  족제비과의 하나인 흑색줄무늬 족제비는 중앙 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의 초원 지대에 널리 자생한다. 개 등의 동물에 의해서 
몰리거나 공격을 받으면 뒤로 돌아서 뒷다리와 엉덩이를 흔들며 
하문선에서 지독한 냄새를 내뿜는다. 이것은 스컹크가 내뿜는 냄새보다 
훨씬 더 지독하며 아마도 동물이 내는 냄새 중 가장 불쾌한 냄새일 
것이다. 그러나 항문 선이 제거된 흑색줄무늬 족제비는 훌륭한 애완 
동물로 사랑 받는다.
  
   남성 하위 시대
  수여우는 일단 짝을 찾으면 영원히 지속된다. 만약 암컷이 죽으면 
다른 짝을 찾지 않고 혼자서 일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수컷이 죽으면 
암컷은 즉시 다른 수컷을 찾아 나선다. 암사자는 항상 수사자보다 
용감하고 공격적이어서, 먹이를 책임지고 구해온다. 수사자는 목숨에 
관계되는 위험한 일은 피하며 그늘에서 휴식만 취한다. 수벌은 전혀 
일을 하지 않고 오직 여왕벌과 교접할 때만 기다리다가 이 일이 끝나면 
내쫓겨 굶어죽게 된다. 검은 과부 거미는 수컷과 교접한 뒤 수컷을 
잡아먹고 과부(?)가 되어버린다. 사마귀의 암놈은 교접하는 중에 
수컷을 잡아 먹어치운다. 피를 빨아먹는 놈은 항상 모기의 암놈으로 
평상시 몸무게의 2배나 되는 피를 빨아먹고도 유유히 날아다닐 수 
있다. 늑대는 항상 떼를 지어 다니는데 리더는 항상 암컷이다. 
집파리의 수컷은 17일 사는 데 비해 암컷은 27일 정도 산다.
 
 [  사람이 물고기보다 하등한가? ]
  진화 정도가 높은 동물일수록 성숙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기관이 복잡할수록 학습을 통하여 적응이 이루어지고, 단순할수록 
행동이 본능적이다. 인간도 복잡한 사회 구조 속에서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려면 적어도 성인이 되는 22세까지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침팬치의 새끼들은 네 살이 되면 어른으로 쳐 준다. 코끼리 
새끼는 2--4살이 되면 벌써 독립 생활을 하고, 쥐나 토끼와 같은 
포유동물은 3주만에 성숙한다. 아주 작은 새들도 2주 뒤에는 자립해서 
날아다닌다. 놀랍게도 물고기는 태어나자마자 자기 힘으로 물살을 
헤치며 살아간다.
 
 [  말처럼 먹는다 ]
  사람들은 많이 먹는 것을 '말처럼 먹는다'고 하고 적게 먹는 것을 
'새처럼 먹는다'고 하지만 이 표현은 약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말 
한마리가 하루에 먹는 양은 7kg의 짚과 11kg의 풀인데, 대개 말 한 
마리의 체중이 454kg이므로 말이 하루에 먹는 사료의 무게는 몸무게의 
1/50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새 한마리가 하루에 먹는 양은 자기 
몸무게의 1.5배가 넘는다.
 
 [  말은 서서 잠잘 수 있다 ]
  나폴레옹은 전쟁을 하는 동안 잠을 자고 있는 말 위에 앉아서 잠을 
잤다고 한다.
 
   말의 키재기 
  말의 키는 바닥에서부터 머리끝까지가 아니라 어깨 높이까지이다. 
말은 등뼈가 바닥과 평행이기 때문에 머리와 몸을 한 지점에 고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네 발로 섰을 때 어깨 위의 가장 높은 등뼈는 땅에서 
항상 같은 높이에 있어서 변함없는 키가 나온다.
 
   자손을 낳지 못하는 노새
  말을 하는 노새와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노새는 자신의 
조상에 대한 자부심이 없을 뿐더러 저 손에 대해서도 전혀 희망이 
없노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노새는 수당나귀와 암말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인데, 그렇게 된 것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편리를 위해서 
우생학적 측면에서 그들을 교접시켰기 때문이다, 말이 크고 더 
잘생겼으며, 모든 일을 더욱 쉽게 배운다. 반면에 당나귀는 병에 
강하고 튼튼하며, 민감한 말이 거부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암컷 노새는 선천적으로 자손을 낳을 수 없다. 
그러나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노새는 인구 폭발과 같은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생물에는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먹이 연쇄는 생물의 생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실제로 
유카리나무가 멸종된다면 코알라 역시 지구상에서 쉽게 사라지게 될 
것이다. 코알라는 우카리나무의 잎만 먹고살기 때문이다. 또한 
얼룩말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다면 아프리카 사자들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벌들이 멸종하면, 
이화 수분을 위해 절대적으로 꿀벌에 의존하는 많은 식물들도 그대로 
죽고 말 것이다.
 
   늑대의 사라진 영광
  오늘날의 늑대는 과거에 비해 매우 슬픈 현실에서 살고 있다. 
과거에는 유럽의 산 속에서 쉽게 늑대 떼를 발견할 수 있었으며, 
1420년과 1438년에는 늑대들이 떼를 지어 파리의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고도 한다.
 
   황제의 취미
  13세기 중국 몽고 제국의 황제인 징기스칸은 투견을 즐기기 위해 
5,000마리의 맹견을 사육했다.
 
   바다에 사는 코끼리 사촌
  오랫동안 지상 생활을 했던 고래처럼 구근 모양으로 생긴 해우는 
거의 4,500만 년이라는 세월 동안 종족을 유지하며 평화롭게 수중 
생활을 해왔다. 털은 거의 없고 목에는 약간의 주름이 잡혀 있는데, 
매일 45kg 정도의 해초를 먹고산다. 몸집은 매우 큰데, 몸무게는 
360--1,600kg정도이고, 키는 3--4m에 이른다. 성격이 온순하며 인어 
같은 꼬리를 가지고 있어서, 인어의 전설이 그들에게서 나왔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 해우는 플로리다의 따뜻한 물(대양이나 강)에서 
사는데, 사회적인 계급 조직은 없는 듯 보인다. 이 해우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먹고 노는 데 보내고 때로는 보트로 다가가 입으로 보트를 
건들려보기도 한다. 남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 이 생물의 유일한 
적은, 그들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인간의 모터보트이다.
 
   고양이와 호랑이의 눈
  고양이와 호랑이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빛나지만 완전한 어둠 
속에서는 전혀 볼 수 없다. 눈이 빛나는 것은 시신경 주위에 다른 
곳에서 나오는 빛을 반사해주는 진주빛 세포층이 있기 때문이다.
 
   거세된 소
  거세된 소는 거세되지 않은 소보다 일을 더 잘 한다. 고대인들은 
아이들을 거세한 뒤 그 껍질을 신들에게 바쳤다.
 
 [  소는 색맹이다 ]
  투우를 할 때 투우사는 빨간 깃발을 흔들어서 소를 흥분시키는데, 
사실 소는 색맹이므로 빨간색을 보지 못한다. 개도 색깔을 구별하지 
못하지만, 새는 색깔을 볼 수 있다.
 
 [  소의 진화 ]
  소는 원래 아주 작은 동물로서 5개의 발가락을 가진 고양이 정도의 
크기 였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소는 몸집은 거대해지고 발가락은  
1개로 줄어들었다.
 
   공룡의 뇌와 멸종
  공룡의 몸은 거대하지만 뇌는 개의 것보다도 더 적으며, 
스테고사우러스의 뇌는 도토리알만하다. 공룡은 1억 6천만 년 동안 
번성하였으나 6천 5백만 년 전에 갑자기 멸종되었다.
 
   지구 위에서 멸종된 동물들
  dodo: 1681년에 멸종. 날지 못하는 닭 같은 큰 새.
  aurochs: 1627년에 멸종. 유럽산 들소의 일종.
  sea cow: 1768년에 멸종. 해양 포유동물로 해마의 일종.
  moa: 1670년에 멸종. 뉴질랜드산으로 큰 타조와 비슷한 날개 없는 
거대한 새.
  great auk: 1844년에 멸종. 펭귄과에 속하는 거대한 바다쇠오리, 물 
속으로 잠수할 수도 있다.
  quagga: 1883년에 멸종. 남아프리카산으로 얼룩말의 일종.
  passenger: 1914년에 멸종. 매우 매력적오로 생긴 북미산 비둘기의 
일종. 철비
  pigeon: 둘기라고도 한다. 
  heath hen: 1932년에 멸종. 북미산으로 들에 산재해 살았던 야생 
닭의 일종.

   동물의 개성
  거북이나 자라, 두꺼비는 이가 없고 말은 눈썹이 없으며, 
염소(윗니가 없다)와 같이 되새김질하는 동물은 모두 쪽찐 발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새들은 한쪽 부리만 움직이는데, 앵무새의 부리는 둘 
다 움직일 수 있다. 개구리는 입을 벌리고는 숨을 쉴 수 없으므로 
억지로 계속 입을 벌리고 있게 하면 질식하여 죽을 것이다. 돼지는 
항상 오른쪽으로 누워서 자며 두 다리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수영을 잘 하지 못하고, 물에 빠졌을 때에는 쪽찐 발끝으로 자기 
목구멍을 찔러서 죽기도 한다. 산토끼는 눈꺼풀이 없기 때문에 절대로 
눈을 감지 않으나, 아주 얇은 막이 있어서 잠잘 때나 쉴 때 눈을 
가려준다.
  
   비버의 앞니
  비버의 앞니는 매우 날카로워서 고대 유럽인과 북아메리카 인디언이 
칼로 사용하였다. 비버는 오랫동안 향수의 재료로 쓰이는 사향과 
털가죽, 그리고 식용으로 쓰이는 고기를 얻기 위하여 사냥되어왔다. 
유럽산 비버는 지역에 다시 방생되었다. 미국산 비버의 수도 
감소되었으나 유럽산보다는 훨씬 많으며, 북쪽에 많이 서식하고 있다.
 
   인슐린
  당뇨병 치료제 인슐린은 돼지와 양의 췌장에서 채취한다. 동물들에서 
생성된 이 인슐린은 인간의 몸 속에 있는 것과 똑같다.
 
 [  익사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
  거북, 물뱀, 악어, 개구리, 자라, 돌고래, 고래 등은 물 속에 오래 
있으면 익사하고 만다. 이러한 동물들은 어류가 아니기 때문에 때때로 
밖으로 나와 적당한 양의 공기를 마셔야만 한다.
 
   양서류의 식음
  두꺼비와 개구리가 음식물을 삼키는 과정에서 눈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음식물을 삼킬 때에는 눈꺼풀을 감고,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인 눈알을 힘껏 내리누르게 되는데, 이때 입천장은 낮아져서 혀와 
닿게 되고 입 안의 음식물은 꿀꺽 삼켜져서 위 속으로 내려간다.
 
   골리아트 개구리의 키와 무게
  서부 아프리카산 골리아트 개구리의 코에서부터 발끝까지의 길이는 
30cm가 넘고 무게는 3kg이다.
 
   기린, 낙타, 고양이의 걸음걸이
  생태계 안에서 기린이나 낙타와 별 관련이 없는 고양이가 사실상 
그들과 공유하는 특징이 하나 있다. 다른 동물들은 움직일 때 네 다리 
중 왼쪽의 앞다리와 오른쪽의 뒷다리, 혹은 오른쪽의 앞다리와 왼쪽의 
뒷다리가 한 쌍이 되어 움직이게 된다. 즉 대각선상으로 마주보는 
다리들이 쌍을 이루는데, 기린과 낙타와 고양이는 수직선상으로 왼쪽 
앞다리들, 혹은 오른쪽 앞뒷다리들이 한 쌍이 되어 움직인다.
 
   나의 님은 어디에
  동물은 자기들의 짝을 찾아내는 데 특수한 방법을 택하고 있다. 
개똥벌레는 발광체를 번쩍거려 짝을 찾고, 암컷을 찾기 위해서 어떤 
새들은 특수한 노래를 부른다. 또한 개구리는 특수한 음을 내어 암컷을 
찾는다. 어떤 암나방은 수컷을 찾기 위해서 향내를 공중에 발하는데, 
이때 1.6km 정도 멀리 있는 수컷은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인간보다 뛰어난 동물
  독수리의 시각은 인간의 시력보다 8배 더 뛰어나다. 인간의 후각 
세포는 5백 만개이지만 개는 무려 2억 개이다. 따라서 개가 냄새를 
맡는 능력은 인간보다 100만 배나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올빼미
  올빼미는 눈을 움직일 수 없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 머리만 거의 한바퀴 돌릴 수 있다.
 
   고릴라와 침팬지
  오후 6시만 되면 잠을 자는 고릴라는 몸무게가 204kg이나 되는 크고 
힘센 동물이지만 생식기는 몹시 작다. 그러나 50kg정도밖에 안 되는 
침팬지의 음경의 크기가 고릴라의 5배이고, 고환의 크기도 고릴라의 
수십 배나 된다.
 
 [  털코트 한 벌을 만드는 데 얼마의 동물이 필요한다? ]
  밍크 코트를 하나를 만드는 데는 65마리의 밍크가 필요하다. 해리 
코트 하나에 15마리의 해리가, 족제비 코트 하나에는 11마리의 
족제비가, 친칠라 코트 하나에는 100마리의 친칠라가, 호랑이 코트 
하나에는 세 마리의 호랑이가, 표범 코트 하나에는 다섯 마리의 
표범이, 너구리 코트 하나에는 40마리의 너구리가, 담비 코트 하나에는 
60마리의 담비가 필요하다. 우아한 털코트 하나를 입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죽어야 하는지 이제 아시겠지요?
 
 [  침팬지의 수학 능력 ]
  침팬지는 훈련을 받는다면 100--200단어까지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침팬지는 각기 다른 문법을 지닌 문장들을 
구별하기도 한다.
 
 [  쓸개빠진(없는) 사슴 ]
  사슴은 콧구멍 외에도 숨쉬는 기관이 하나 더 있어서 달리기를 할 때 
호흡에 별 지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사슴의 내장 기관에는 쓸개가 
없다. 사슴은 쓸개빠진 녀석인가?
 
   우드척
  우드척은 동면하고 있는 동안에는 한 시간에 10회밖에 숨을 쉬지 
않는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한 시간당 2,100회 호흡을 한다.
 
   강치(Sea Lion)
  강치는 9,600km를 헤엄쳐갈 수 있다. 수컷 강치는 100마리 이상의 
암컷 강치를 거느리고 살며 아무것도 먹지 않고 3개월 동안 살 수 
있다. 한때는 바닷속에 40억 마리의 강치가 살았던 적도 있다.
 
 [  동물의 임신 기간 ]
  가장 긴 임신 기간을 가진 동물은 고도 1,400m 이상의 스위스 
알프스산에 사는 산 도롱뇽으로서 그 기간이 무려 38개월에 이르며, 
낮은 고도에서는 약25개월로 조금 짧아진다. 이와 반대로 버지니다주 
주머니쥐는 임신 기간이 8일에 불과하다. 포유류 중 임신 기간이 가장 
긴 동물은 아시아산 코끼리로서 평균 20개월이 조금 넘는 609일이며, 
최장 기록은 사람의 2.5배에 해당하는 760일이다.
 
   주머니 속에서 새끼를 키우는 동물들
  개미, 베디코트(쥐의 일종), 커스커스, 두더지, 글라이더, 캥거루, 
코알라, 알스피알, 고양이, 주머니쥐(미국산), 큐오카, 해마, 
태즈메이니아, 주머니곰, 월러비(소, 중형 캥거루), 웜바트 등.
 
   북극곰은 만능 스포츠 동물
  북극곰은 놀랄 만큼 빠르고 민첩하다. 단거리는 최고 40km로 
순록보다 빠르며, 한번 뛰어서 3.7m을 나가기도 하고, 2m높이의 눈 
더미를 뛰어넘기도 한다.
 
 [  게으름뱅이 나무늘보 ]
  중남미에 사는 나무늘보는 나무 둥치에 붙어 있거나 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일생을 보내는데 꼭 필요하지 않는 한 움직이지 않는다. 둥근 
머리와 네 다리, 두 개의 발가락에 나무에 매달리기 좋은 날카롭게 
구부러진 발톱을 가지고 있다. 나무늘보는 땅에서는 겨우 몸을 끌 수 
있을 뿐 걸을 수는 없다. 그래서 거의 나무에 매달려 있고 또 소화를 
시키는 데 1주일 이상 걸리기 때문에 거의 꼼짝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은 나뭇잎 뭉치처럼 보이는 데다 우기에는 털 속에 초록빛 풀 같은 
것이 자라나 위장을 하기 때문에 거의 위험하지 않고, 목뼈가 특이하여 
머리를 270도나 돌릴 수 있어서 재빨리 침임자를 알아볼 수 있다.
 
 [   제19장-동물의 섹스 ]
 [  고래의 사정액으로 화장품을  ]
  고래가 한 번 사정하면 그 분비액이 보통 컵으로 200잔 정도 되며, 
많을 때에는 500잔 정도가 될 때도 있다. 여성의 고급 화장품을 만들 
때 고래의 사정액을 원료로 한다는 것을 알면, 화장을 즐기는 많은 
여성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교접에 걸리는 시간
  교접을 가장 오래하는 동물은 방울뱀으로 음경이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23시간 걸린다고 한다. 밍크는 2시간, 족제비와 검은담비는 
8시간, 생쥐는 20분, 산돼지는 3--4분, 고래와 코끼리는 30초, 양, 
황소, 토끼, 사슴, 침팬지 등은 5--6초, 모기와 황소, 수말은 2--3초 
걸린다.
 
   교접의 빈도 수
  교접을 가장 자주 하는 동물은  침팬지로 하루에 3--4회 정도 교접을 
한다. 그리고 고양이도 하루에 4--5회 정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발기되었을 때의 음경의 길이 ]
  고래의 음경이 발기하면 길이가 3m나 되며, 그 직경은 30cm정도 
된다고 한다.
 흑고래  3m  돼지  45--51cm
 코끼리  1.5--1.8m  인간  15cm
 황소  91cm  고릴라  15cm
 종마  0.6--1.8m  고양이  1.9cm
 코뿔소  60cm  모기  0.03cm
  
   동물의 배우자 수
  일부다처제인 동물에는 꿩, 산양, 야생마, 굴뚝새, 큰 사슴, 물개 
등이 있고, 일부일 체제인 동물에는 제비, 오리, 여우, 독수리, 늑대, 
백조 등이 있다. 조류 중 남미산 메추라기, 타스마니 안헨즈 등은 
일부다부제이며 곰, 영락새, 침팬지, 샌드파이퍼등은 바람을 피운다고 
한다.
 
 [  자위하는 동물 ]
  고슴도치, 코끼리, 사슴, 사자, 원숭이, 멧돼지, 돌고래, 노루등의 
포유동물은 자위를 한다.
 
   코끼리 음경의 무게
  코끼리 음경의 무게는 약 27kg이나 되고 발기했을 때 길이가 1.5m나 
된다. 코끼리는 보통 다른 동물들처럼 뒤로 교접하지만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등은 사람처럼 정상 체위를 갖는다.
 
 [  음경뼈로 만든 이쑤시게 ]
  너구리의 음경뼈는 길고 가늘며, 음경 끝이 갈고리로 되어 있다. 
실제로 너구리의 음경뼈는 실밥을 뜯어내는 도구로 재봉사들이 
애용하고 있으며, 금색과 미색을 박아넣어 이쑤시게로 널리 이용하고 
있다.
 
 [  동물이 한번 사정할 때 나오는 정자의 수는? ]
   동물 이름  평균 나오는 정자의 수(개)
  돼지  45,000,000,00
  수당나귀  14,500,000,00
  말  8,000,000,00
  젖소  7,000,000,00
  흑소  5,098,200,00
  소  4,000,000,00
  유라시아의 들소  3,978,000,00
  양  3,000,000,00
  염소  1,755,000,00
  개  1,500,000,00
  리서스 원숭이  1,175,900,00
  침팬지  1,157,000,00
  게  549,600,00
  인간  500,000,00
 
   개의 교접 과정
  개는 음경을 빳빳하게 해주는 뼈와 크고 부드러운 귀두가 있는 
음경을 가지고 있다. 개의 교접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일단 수컷이 암컷 
뒤로 올라서서 20--30초 동안 음경을 깊게 삽입시킨 후, 한쪽 다리를 
땅에 디딘 채로 180도 회전한다. 따라서 방향만 달라질 뿐 암컷과 
수컷은 같은 자세로 뒤엉켜서 15--30분 동안 교접한다.
 
 [  사냥 도구로 쓰이는 해마의 음경 ]
  해마는 실로 거세한 음경을 지니고 있다. 단단한 뼈를 내포한 해마의 
음경은 길이 62cm로, 현존하는 모든 포유류들 중 제일 길다. 또한 
바다표범 사냥꾼에게는 유용한 연장 역할을 하는데 표범 사냥꾼들은 
해마의 단단한 음경으로 새끼 바다표범들을 때려죽여 포획하기 
때문이다. 수컷 해마는 1년 중 1--3월에만 교접한다.
 
   정자를 만들지 못하는 잠자리
  수컷 잠자리의 생식 기관은 수컷이 암컷을 움켜잡을 때 유용하게 
쓰이는 갈고리들로 뒤덮여져 있으며, 꼬리 끝에 달려 있다. 그리고 
반대편에 제2의 생식 기관(페니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암컷의 
생식기관도 목 부위가 아니라 꼬리 끝에 붙어 있기 때문에 암컷 
잠자리와 교미할 경우 수컷 잠자리는 제2의 생식기관을 이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수컷 잠자리의 제2의 생식기관은 정자를 
생산해낼 수 없기 때문에, 교미 전에 수컷 잠자리는 몸을 둥근 고리 
모양으로 만들어야 한다. 물론 제1의 생식 기관에서 생산된 정액을 
제2의 생식 기관 내로 넣어 가득 채우기 위해서이다.
 
   거북의 교미
  자이언트 터틀이라는 거북의 꼬리는 페니스를 암컷의 총배설강 구멍 
안으로 삽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거북의 교미는 몇 시간 동안 
지속된다.
 
 [  근친상간 하는 진드기 ]
  어떤 암컷 진드기는 수정을 하지 않고도 성채로 된 알을 낳을 수 
있다. 그런 다음 알을 낳은 지 3--4일 만에 새끼들과 교접을 하는데, 
교접한 새끼들은 곧 죽어버린다.
  
 [  배우자를 잡아먹는 거미 ]
  수컷 거미는 페니스가 없으며 교미 후 불구나 죽게 되는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매우 불쌍한 동물이다. 수컷은 배꼽에서부터 짜낸 
정자를 거미줄 위에 놓은 후, 촉수들로 정자를 들고 아리따운 암컷을 
찾아 나선다. 이때 재미있는 것은 암컷들의 행동이다. 암컷은 정자 
냄새에 예민하고, 또한 정자를 건네줄 수컷들을 발견하는 즉시 
달려들어 통째로 잡아먹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컷들은 암컷들을 기습 
공격한 후 민첩하게 행동하여 정충을 전해주고 재빨리 도망쳐야 한다.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  뿔로 자위하는 행위를  ]
  사슴의 나뭇가지 모양의 뿔은 음경의 성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 뿔은 
고환에서 분비된 세크레틴 호르몬을 받아 자라기 때문에, 음경과 같은 
속도로 자라게 된다. 수컷 사슴은 뿔을 나무나 땅에 비벼댐으로써 
얼마든지 자위 행위를 할 수 있다. 이때 음경은 당연히 발기되고 
심지어 사정까지 하게 된다. 놀랍지 않은가?
 
   무법자 아귀
  수컷 아귀들은 성적으로 성숙하자마자 수심 1,900m 아래까지 
내려가서 암컷 아귀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교접할 상대 암컷 아귀를 
점찍에 되면 암컷 아귀에 몸을 부착시켜서 음경을  삽입한다. 그리고 
자신보다 훨씬 큰 암컷 아귀가 기승을 부려도 절대로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게 된다.
 
 [  동성 연애하는 빈대 ]
  수컷 빈대는 암컷의 질 안에 길고 부드러운 성기를 삽입하는 대신, 
성기로 암컷의 등위에 있는 껍질을 부수고 암컷의 몸 속에 있는 작은 
주머니에 보관한다. 그러나 여섯 마리 이상의 수컷과 교접한 암컷 
빈대는 거의 그 상처로 인해 죽게 된다. 또한 수컷 빈대들은 동성 
연애(?)를 즐겨 하는데, 일부 수컷 빈대들은 다른 수컷들의 정자를 
받아들이기 위한 특수한 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수컷 빈대들의 
다른 수컷들에게서 받아들인 정자와 자신의 정자를 한꺼번에 암컷에게 
사정하게 된다.
 
 [  오랄 섹스를 즐기는 침팬지 ]
  수컷 침팬지의 음경은 발기시 8cm정도이며, 밝은 핑크색을 띤다. 
또한 음경은 오랄 섹스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한데, 실제로 
침팬지는 오랄 섹스를 즐긴다고 한다. 음경 안에는 조그만 뼈가 
있으며, 규칙적인 교미 기간을 가진다.
 
   인디언 비단뱀에서 토끼까지
  인디안 비단뱀은 교미 기간이 180일 동안 계속되는 기록을 세웠고, 
햄스터(hamster)라는 쥐는 하루에도 75번 이상, 수사자는 두 암사자를 
교대해가면서 86번 이상 교미한다. 고래는 1년에 꼭 한 번 교미한다. 
달팽이는 일생에 꼭 한 번 오르가즘을 체험하며, 토끼는 모든 것을 1분 
안에 끝내버린다.
 
   4년에 한 번 교미
  몸의 크기와 비교해볼 때, 고릴라의 음경은 굉장히 작은 편이다. 
평균적으로, 수컷 고릴라의 무게는 약 250kg 이며, 음경의 길이와 
직경은 각각 2.5cm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고릴라의 털 속에 쉽게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고릴라의 음경은 왜 
이렇게 작은가? 수컷 고릴라는 음경을 자주 쓸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운이 좋다면 1년에 한 번 정돈나 쓸까말까! 사실 암컷 고릴라들은 
4년을 주기로 단 6일 동안만 교미 기간을 가진다.
 
   해구신
  수컷 물개 한 마리는 암컷을 20마리 정도 거느린다. 수컷은 교미할 
때 암컷을 위로 유인한다. 수컷은 정력이 강하여 3개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을 자지 않아도 살 수 있다. 이 강한 수컷 물개의 생식기 
해구신은 강장제, 음위증 등으로 쓰인다.
 
   암컷 오리의 절개
  수컷 오리들의 발정은 봄에 시작된다. 발정된 수컷 오리들은 무작정 
암컷 오리에게 덤벼들고 한 계절 동안 남편으로 지내게 된다. 그 
동안에도 암컷이 다른 수컷들과 교접하는 행위를 구태여 막지는 
않지만, 아내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남편이 있는 암컷 오리들은 결혼 기간(봄)중에 다른 수컷들과 교접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있으며, 추근대는 다른 
수컷들을 피해 풀밭으로 숨기도 한다.
 
   돼지의 성기
  screwing(성교하다)이라는 용어는 돼지들의 음경과 성교 행위에서 
파생된 것으로 생각된다. 수컷 돼지의 성기는 46cm의 길이로 끝이 마치 
와인 드릴처럼 나선형으로 꼬여 있고, 수컷 성기가 암컷의 몸 안으로 
들어갈 때 그 꼬인 성기가 나선형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수컷 돼지는 
한 번 사정시 1.5리터의 정액을 배출하는데, 한 번 교접할 때 수십 번 
사정한다고 한다.
 
   호랑이의 생식
  암호랑이는 특수한 소리로 수컷을 유혹한다. 수컷이 접근하면 암컷은 
부드럽게 몸을 비비며 성교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한다. 그러면 수컷이 
올라타서 교접하는데 절정에 도달하면 암컷의 목을 조르며 큰 고함을 
지른다. 이 교접은 3분 동안, 하루에 20번 이상 3주 동안 계속된다.
 
 [  동물들의 이상한 행위 ]
  "거위"
  수컷 거위들은 주로 수컷들끼리 교접한다. 따라서 암컷들보다 
수컷들끼리 몰려다니는 현상을 보인다. 그러나 때때로 암컷 거위들은 
수컷 거위들이 교미하는 동안, 자발적으로 끼어들어 쉽게 수태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수컷 두 마리와 암컷 한 마리는 서로 어울려 교접하게 
되고, 몇 주 후면 새 생명, 거위 새끼가 태어난다.
  "돌고래"
  돌고래들은 서로 문지르고 코를 비벼대며 깨무는 등의 방법으로도 
사랑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교접할 때에는 음경 끝만을 암컷에 
삽입시키는데, 돌고래의 음경은 깃촉에 달려 있고 회전 고리 모양으로 
자유로이 선회한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사랑에 빠진 돌고래들은 
자유로이 마스터베이션을 하며, 심지어 가까이에 암컷들이 있어도 자위 
행위를 한다. 그리고 이미 수컷이 음경이 발기된 상태로 암컷에게 
접근하면 암컷은 수컷이 마스터베이션을 할 수 있도록 몸을 열어준다.
  "펭귄"
  펭귄들은 쉽게 결합하지만, 떠돌아다니는 속성 때문에 곧 떨어지게 
된다. 그들은 교접할 때에 가슴과 가슴을 마주 대고 머리를 뒤로 돌린 
채 서서 사랑이 행위를 나눈다. 또한 펭귄의 성행위는 매우 이채로워서 
지느러미를 쫙 편 채로 달달 떨기도 하고, 큰 소리로 노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랑의 행위도 2주일이 지나면 끝나게 되다. 수컷 
펭귄이 암컷의 배 위에 머리를 대면서 곧 떠날 것이라는 신호를 주고 
또다시 이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참고로 펭귄의 실제적인 교미는 
3분밖에 걸리지 않으며, 펭귄은 1년에 단 한 번밖에 교미하지 않는다.
  "코뿔소"
  코뿔소들은 그 이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교미할 때도 무섭게 
달려든다. 암컷 코뿔소가 교미 기간에 접어들게 되면, 음문이 
자연스럽게 부풀어오르는데, 암컷들은 수컷들을 보게 되면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그 상태를 알려준다. 이에 상대편 수컷이 깊고 길게 
숨소리를 내게 되면 교접이 시작되는 것이다. 다음 단계로 수컷은 
정면으로 암컷을 공격하고, 암컷은 이 공격을 흔쾌히 수락한다. 그러면 
그들은 분노에 울부짖고 뿔로 받으면서 약 한 시간 동안 서로를 
공격하는데, 심한 경우에는 피를 흘리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암컷이 
수컷의 힘을 측정하는 단계이다. 마침내 암컷이 이 수컷이야말로 
교미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면, 몸을 뒤로 돌려 수컷에게 보여준다. 
그러면 수컷은 61cm 길이의 음경을 암컷에게 삽입시킨 채로 몸 위로 
올라가서 매 10분 간격으로 사정을 한다
  "진드기"
  암컷 진드기는 다른 동물의 피를 빨아먹은 후에 교미를 하게된다. 
수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암컷이 새나 동물의 
몸체 위에서 영양분을 섭취하는 동안, 수컷은 암컷의 배꼽 아래로 기어 
내려가 교미할 준비를 한다. 그러나 불행이도 수컷 진드기는 음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하여 일단 코로 암컷의 질을 자극시켜 질이 
열리게 되면, 몸을 돌려 뒤로 정자를 배출하여 암컷의 입안으로 
넣는다. 그리고 나서 코를 이용하여 정자들이 암컷의 질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 수 있도록 밀어 내린다.
  "스컹크"
  수컷 스컹크는 암컷을 유인한 후 암컷의 질을 핥아주고 나서 
목덜미를 꽉 누른 채로 교미를 하게 된다. 그러나 암컷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결코 수컷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면 수컷들은 
뒷다리로 암컷의 음경을 문질러 자극시킴으로써 교미를 시작하게 된다. 
연필심보다 굵지 안고 4cm정도 되는 작은 음경이 암컷 속으로 들어간 
후 암컷들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절정에 이른 후 암컷들은 더 
이상의 교미를 거부한다. 설사 수컷들이 강간하듯이 달려든다 해도 
암컷들은 이에 응하지 않고 오히려 몸을 빼내고는 잠을 잔다.
 
 [  암컷도 성적 흥분을 느끼는가? ]
  동물의 세계에서는 교접시 암컷의 성적 흥분과 오르가즘이라는 
과정이 전혀 없다. 수컷의 성적 흥분과 절정은 쉽게 관찰될수 있지만 
암컷에게서는 이러한 변화를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    제20장 식물 ]
 [  사랑은 6월에 핀 붉은 장미 ]
  장미는 아름다움과 연약함, 사랑, 창조와 비밀, 교회 또는 부활한 
예수를 상징한다. 고딕식 성당 건축물에서 많이 보이는 장미 모양의 
창문은 생명과 창조를 나타내거나 믿음과 희망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졌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듯이 rose라는 단어는 Eros라는 단어를 
뒤바꿔놓은 것이다. 로버트 번즈는 그의 사랑을 '6월에 새로 피어난 
붉은 장미'에 비유하였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신랑이 결혼 직전에 
신부에게 은색 장미를 선물하는데, 이 관습이 리처드 스트라우스의 
오페라 '데르 로젠카발리에'의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고전 시대 이후 장미는 비밀의 상징이었다. 16세기 영국에서 종들은 
귀 뒤에 장미를 꽂았는데, 이것은 이들이 모든 비밀을 들었으나 절대로 
탄로시키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독일의 경우, 식당에 있는 
장미는 손님들의 말이 새어나갈 염려가 전혀 없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sub rose(장미 아래서)'라는 표현은 비밀을 
지킨다는 뜻인데 카톨릭 성당의 고해실 문에 장미를 장식해놓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  식물도 감정을 가지고 있다 ]
  거짓말 탐지기 전문가인 백스터가 다년간 연구한 결과, 식물도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는 식물의 잎삭귀를 
바늘로 찔렀을 때와 불로 태웠을 때와 따뜻한 햇빛을 받았을 때, 
그리고 비를 맞았을 때의 반응이 각각 다르게 나타난 것을 탐지기로 
발견하였다.
 
 [  땅 속으로 자라는 나무  ]
  벵갈 보리수(banyan tree)는 땅 위로 솟아올라 땅 속으로 자란다. 

   당아욱(Mellow weed)은
  햇빛을 따라 움직인다. 해가 지면 아침에 다시 해가 떠오를 동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거목 세퀘이어는 
  무려 200년이 지나야 겨우 첫 꽃이 피고, 씨는 몹시 작아 3,000개가 
모여야 28g이 된다.
 
   모든 식물은 
  흙으로부터 영양을 10% 정도밖에 얻지 못하고 나머지 90%의 영양을 
모두 공기 속에서 얻는다.
 
   큰 떡갈나무는
  잎사귀를 통해서 하루에 7톤의 물을 배출한다.
 
 [  쌀의 종류는 ]
  약 15,000가지나 된다.
 
 [  나이는 200세, 몸무게는 10톤 ]
  사구아로 선인장을 멀리서 볼 때, 큰 중심 줄기와 두꺼운 수직의 
나뭇가지 모양은 마치 거대한 사람이 하늘을 향해 팔을 뻗치고 있는 
형상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비범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사구아로는 
식물류 중에서 성장 속도가 가장 느린 식물 중의 하나이다.
  중심 줄기는 식물의 일생 중 처음 10년 동안 2.5cm도 채 자라지 
않으며, 줄기의 길이가 5m정도 될 때까지는 단 하나의 나뭇가지도 
나오지 않는다. 그 후 가시투성이의 즙이 많은 식물은 매년 2.5cm 
정도씩 자라는데, 궁극적으로는 약 15cm 높이까지 자라는 것이다.
  식물의 나이가 50--70세 될 때까지는 꽃도 피지 않는다. 가장 커다란 
어떤 사구아로종은 약 200년이 넘었으며, 무게는 10톤이 넘는다고 
한다.
 
   다람쥐가 나무를 심는다
  수백만 그루의 나무는 다람쥐에 의해서 심어진다. 다람쥐는 자기가 
먹기 위하여 땅 속에다 숨겨놓은 나무 열매가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무는 자동적으로 자라게 된다.
 
   빛과 식물
  식물의 삶은 빛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질소는 식물에게 가장 
본질적인 영양분으로, 대기 속의 공기 중 80% 정도가 질소이지만 
사실상 용해되지도 않고, 사용 불능의 상태로 존재한다.
  질소가 물에 용해되는 질산화물로 형성되어 대지에 떨어지도록 공기 
속의 산소와 질소를 결합시켜주는 것이 바로 빛의 열이다. 빛은 이 
같은 작용을 땅 속 광천수와도 연결시켜 식물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질산염을 생성시킨다.
 
 [  부활초는 물을 찾아 움직인다 ]
  아메리카와 중동 지역과 같은 건조 지역에서 자라는 부활초는 
시들어서 말라버린 듯 보인는 상태에서 다시 살아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식물이 완전히 죽은 상태에서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움직이지 않은 휴지 상태에서 되살아나는 것은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식물은 수분이 공급되기를 기다리며 서 
있지마, 부활초는 필요한 수분을 찾아 땅위를 이동하는 것이다.
  부활초라는 이름은 유사한 소생력을 지니고 있는 성경에 나오는 
여리고의 장미를 포함해서 몇몇 종류의 식물에 명명되었다. 부화초는 
물이 있으면 양치류처럼 보이는 초록색 잎을 자랑하며 무성하게 
우거진다. 그러나 수분이 부족할 때면 마르고 시들고 움츠러들어 
초록빛을 잃은 공 모양의 덩어리가 된다. 이 덩어리는 바람에 의해 
지면을 따라 옮겨지고, 물이 발견되지 않으면 휴면 상태로 여러 해를 
견디게 된다.
  수분이 있는 땅이거나 비가 내린 후라면 이 식물은 젖은 땅에 뿌리를 
깊이  박고 또다시 생명력을 얻는다. 잎에 생겨났던 주름은 펴지고 
초록색 조직이 살아나는 것이다. 부활초는 땅의 수분이 없어질 때까지 
수분을 빨아들인 후 다시 주름이 잡혀서 공처럼 되면 물을 찾아 
떠돌아다닌다.
 
   사막에서 자라는 식물
  비가 한 방울도 안 내리는 사막에서 어떻게 식물이 자랄수 있을까? 
목초라고 불리는 식물은 그 뿌리가 땅속의 물이 있는 곳까지 뻗치고 
어떤 것은 8--9m까지 뻗친다.
 
   7,000명이 야영할 수 있는 벵갈 보리수
  인도산 무화과로도 알려진 벵갈 보리수는 일반적인 식물과는 달리 
지상에서 높이 있는 뿌리 자리에서 아래를 향해 자란다. 새가 벵갈 
보리수의 씨앗을 적당한 기주나무의 가지에 떨어뜨리면, 그곳에서 
씨앗이 발아된다. 싹이 나는 씨앗에서 밧줄과 같은 어린 가지가 내려와 
나무 밑의 흙에 뿌리를 내린다. 어린 가지들은 점차 두꺼워져서 나무의 
몸통이 되고, 싹이 난 어린 가지들은 흙으로 내려가서 무거운 수평의 
큰 가지를 지탱한다. 결국 벵갈 보리수는 나무 몸통과 가지가 엉켜 
있는 덩어리가 되어 기주나무를 완전히 덮어버리는 것이다. 벵갈 
보리수는 많게는 320개의 몸통과 3,000개 이상의 작은 가지들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총 2,000평방 피트의 면적을 차지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전체 병사 7,000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벵갈 보리수 
밑에서 야영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부레옥잠의 무게
  한 계절에 10개의 작은 부레옥잠*은 60만 개로 그 수가 불어나 서로 
엉키어 있는데, 1에이커의 면적을 차지하며 총무게는 180톤에 이른다. 
*열대산의 물옥잠과의 수초
 
   이동하는 식물
  마리모, 혹은 덕위드*(앉은 부채)는 일본의 다이세추잔 국립공원의 
아칸 호수에서 발견되는 다년 초이다. 보통 호수 바닥에서 자라는 
마리모는 신비한 식물로 불려지는데, 그 이유는 자체내에서 산소를 
방출시킬 때는 호수 표면으로 나왔다가 방출 후에는 호수 속으로 
들어가고, 또다시 산소 방출 때는 삐죽이 표면으로 나오는 방식으로 
호흡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식물은 좀 더 따뜻한 화씨 25 도가 
되면 녹아서 눈의 표면으로 나오게 된다. *열대산의 물옥잠과의 식물
 
   아욱의 해바라기성
  대부분의 다른 식물들의 경우처럼, 아욱의 잎들도 태양 빛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태양이 하늘 저편으로 넘어서면 아욱의 잎들도 그쪽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일몰 때의 아욱들의 반응이다. 
태양지 지자마자, 모든 아욱의 잎들은 태양이 아침을 다시 떠오르는 
동쪽 방향으로 일제히 돌아선다.
 
   3명을 지탱할 수 있는 수련
  언젠가 개구리가 물위에 떠 있는 큰 수련 잎에 앉아 연못의 맑은 
물위를 떠다니는 그림이나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남미의 아마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빅토리아 수련은 사람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잎이 크다고 한다. 이 정글 괴물의 잎은 둥근 
받침대 모양이며 지름이 2m 이상인 것도 있다. 이 식물을 발견하고 
이름까지 지은 영국의 탐험가들은 이 잎이 물에 잠기지 않고 3명의 
사람까지 안전하게 지탱할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 사실 빅토리아 수련 
잎의 커다란 크기는 유해한 벌레로부터의 최고의 방어책이다. 물 
속에서 식물에 접근하는 벌레를 잡아먹기 위하여 종종 새들이 잎 위로 
내려앉기도 하는데, 새들이 이 벌레들을 잡아먹지 않으면 수련은 
벌레로부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가장 작은 식물
  다이아텀은 규조식물이라고도 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작은 식물로서, 
육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고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을 정도이다. 
하나의 물방울 속에서 500개 이상의 다이아텀을 볼 수 있다.
 
   가장 큰 풀
  대나무는 10층 건물의 높이까지 자라기도 한다. 또 어떤 대나무는 
무더기로 30m까지 자란다. 대나무는 앞마당의 잔디와 마찬가지고 
풀과에 속하는데 자라는데 속도가 몹시 빠르다. 몰로카 대나무는 
하룻동안 60cm까지 자라기도 한다. 이렇게 대는 엄청나게 빨리 
자라지만 꽃의 성장 속도는 아주 느리다. 어떤 대는 엄청나게 빨리 
자라지만 꽃의 성장 속도는 아주 느리다. 어떤 대나무는 20년이 지나야 
꽃을 피운다. 대나무의 막대기 같은 대는 낚싯대로 쓰이고, 또 종이, 
땔감, 자루, 가정용품, 공사용 관, 건축재, 배의 돛대 등으로 쓰인다.
 
 [  귀여운 소리를 내는 식물 ]
  노란 앵초꽃은 새벽녘에만 핀다. 그리고 꽃이 필 때는 귀여운 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마치 비누방울이 터지는 것과 같다고 한다.
 
   하나의 꽃을 피우기 위하여
  거대한 켈리(상록 침엽수로 굉장히 크다)가 개화하기 위해서는 
175--200년이 필요하다. 또한 개화 후 수백만 개의 씨들이 탄생하는데, 
이 씨는 너무 작아서 3,000개의 씨의 총중량이 28g밖에 되지 않는다.
 
   오렌지 나무
  오렌지 나무는 100년 이상 열매를 맺는다.
  
   싸이코치 클로로칠론이라는
  베네수엘라산 난초는 작은 완두콩 꼬투리 만한 씨깍지에 370만개의 
씨가 들어 있다. 이렇게 많은 씨가 맺는 중요한 이유는 대부분의 씨가 
발아하기 전에 죽기 때문이다.
 
 [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씨앗 ]
  식물 자체의 크기가 다양한 것처럼 씨앗의 크기도 매우 다양하다. 
어떤 난초 중에는 씨앗이 너무 작아 3,500만 개의 무게가 28g밖에 안 
되는 것도 있는 반면, 세이셀 코코넛 씨앗은 사과 2개보다 더 무거울 
수도 있다.
  세이셀 코코넛은 아프리카 동해안에 위치한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세이셀 공화국에서만 자라는 야자수이다. 씨앗의 형태가 2개의 
코코넛이 붙어 있는 모양과 닭아서 종종 쌍둥이 코코넛으로 부릴 기도 
하며, 여성의 골반과 유사하다고 하여 전통적으로 신비한 성질을 지닌 
것이라 여겨지기도 하였다.
  이 희귀한 야자 씨앗은 다육질의 섬유질 껍질이 단단한 땅콩 껍질 
모양의 씨앗을 감싸고 있으므로 학술적으로 보면 열매에 해당한다. 
그러나 각각의 열매 속에서 하나만의 씨앗이 있으므로 많은 학자들이 
세이셀의 열매를 씨앗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씨앗이다.(사시 참된 의미의 씨앗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남미의 
모라나무의 씨앗으로 최대 15cm까지 자란다)
 
   단일 식물의 특징
  국화는 가을에 피는 꽃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13시간의 어둠 속을 
지낸 다음에야 개화되는 특이한 꽃이다. 따라서 때로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는 상업 원예업자들은 개화 시기를 인위적으로 늦추기도 한다. 
국화는 13시간 동안 밤부터 시작하여 계속 어둠 속에 있어야 한다는 
개화 조건을 이용하여, 밤에 잠깐잠깐 국화에게 빛을 비추어 어둠을 
깨버리는 것이다.
 
   동물을 잡아먹는 식물
  동물의 원형질을 부해하여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식물을 
식육식물이라고 하는데, 그 대표적인 식물이 끈끈이주걱이다. 
  끈끈이주걱은 긴 줄기 끝에 봉오리가 동그랗게 맺혀있고 12개의 잎 
끝에는 움직일 수 있는 파리채 같은 것이 달려 있다. 이것은 잎 중간 
선에 돌쩌귀를 달고 있고 그 끝에 아주 날카로운 가식 있으며, 파리채 
중간에는 아주 미세한 샘이 있어서 꽃의 꿀과 같은 향기를 가진 액체를 
낸다. 이렇게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잎 곁을 돌아다니던 곤충은 어떤 
것이든 그 호기심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 파리채와 같은 
부분에는 극도로 감수성이 예민한 세 개의 유인용 털이 있다. 만약 한 
개의 털만 만진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나 두 개의 털에 
부딪히거나 이전의 털에 다시 부딪힌다면 용수철이 탁 닫히고 날카로운 
가시가 벌레를 사로잡아버리고 만다. 이것이 닫히는 작용은 극도로 
빨라서 0.5초도 걸리지 않는다.
  이 희생물이 덫에 갇혀 있는 동안 샘에서 소화액이 나와 곤충을 
녹이기 시작한다. 며칠 후 이 파리채 같은 부분이 다시 열리고 곤충은 
해골만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은 불어오는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만다.
 
 [  1만 년 된 씨에서 싹이 나다 ]
  만주의 이탄 퇴적층에서 발견된 1,400년 전의 로투스나무의 씨에 
바늘로 구멍을 내고 물을 주었더니 금방 싹이 나고 나무로 성장했다. 
1967년 북극의 동토 지방에서 적어도 1만 년 정도나된 루피너스 관목이 
흑두더지 무덤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것을 자라기 좋은 상태에서 
놓아두었더니 48시간 안에 싹이 났다.
 
 [  향기 없는 꽃들 ]
  일반적으로 꽃을 생각하면 그 아름다움과 향기로움이 떠오르겠지만 
사실 90% 이상의 꽃들이 불쾌한 냄새를 가지고 있거나 냄새가 전혀 
없다.
 
   커피는 고종 황제의 기호 식품
  한국에 커피가 소개된 것은 고조 32년, 1895년 을미사변 때였다. 
러시아 공사가 고종 황제에게 시음하게 한 것을 최초로, 고종 황제가 
커피를 좋아하게 되자 그때부터 궁중의 고관들의 기호 식품으로 
애용되었다.
  세계 최초의 커피 하우스는 1652년 영국 런던에서 모습을 
나타냈으며, 미국에서는 1680년에, 한국에서는 1925년 서울에 최초로 
'다방'이라는 것이 생겼다. 이 무렵 커피가 처음 판매되었을 때에는 
커피 값이 너무 비싸서 돈 있는 사람들만이 멋으로 커피를 사 
마셨으며, 한국 최초의 오페라 가수 윤심덕도 종로의 다방에서 커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흑인 노예 아들의 식물 연구
  조지 워싱턴 카버는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1896년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땅콩을 연구하여 300가지 이상의 품종을 만들어냈고, 또 
고구마를 연구하여 118가지의 품종을 만들어냈다. 땅콩은 잉크와 비누 
등에, 고구마는 사탕과 구두약 등에 쓰인다. 피칸 호도에서는 75종의 
원료를 생산해낸다.
 
   키다리 나무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것은 미국 삼나무로서, 보통 60--85m까지 
자란다. 하지만 그 씨는 1.6mm밖에 안 된다.
 
   미모사의 자극에 대한 반응
  성장한 미모사의 얇은 잎은 줄기를 중심으로 하여 균형을 이루면서 
밖으로 뻗는다. 그런데 한 잎을 건드리면 모든 잎은 즉시 수직 운동을 
하며 줄기를 중심으로 움츠러들게 되며, 이때 줄기는 힘없이 아래로 
구부러진다. 이를 반복해 같은 자극을 두 번씩 주면 나무 전체가 
시들면서 공포를 느끼는 듯한 인상까지 주는 것이다.
  미모사는 강한 바람, 고온, 진동, 갑작스러운 어둠과 이 밖의 다른 
자극에도 사람이 만질 때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시든 상태에서 
잠시 시간이 지나면 잎들은 천천히 원래의 위치로 움직인다. 그러나 
이때 다시 자극을 주면 운동을 시작한다.
  신기한 것은 미모사는 짧은 시간 안에 계속해서 자극을 받게 되면 더 
이상 개폐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온도 범위 
내에서는 반응을 결코 나타내지 않는다. 
  이러한 기이한 운동은 잎줄기 밑에 있는 펄비니(pulvini)라는 작은 
몸체 때문에 일어난다. 잎이 자극을 받으면 전기적 충격이 식물을 통해 
전달되고 물은 신속히 펄비니를 지나 줄기로 들어간다. 수축된 
펄비니는 더 이상 잎들을 지탱할 수 없게 되므로 식물이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  콩은 회춘 작용을 한다 ]
  콩은 글자 그대로 영양 덩어리이다. 40% 정도가 단백질이고 지방 
18%, 섬유 3.5%, 당분 7.0%, 펜토산 4.4%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콩에는 비타민 A, C, D, E는 물론 비타민 B 복합체가 풍부하다. 특히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아미산을 함유하고 있어 회춘 
작용을 한다.
 
   토마토는 
  과실이 아니고 채소이며, 오이는 채소가 아니라 과실이다. 감자는 
뿌리가 아니고 줄기이며 대는 나무가 아니라 풀이다. 또 바나나는 
나무가 아니가 풀이고 땅콩은 건과가 아니라 콩의 일종이다. 양파도 
채소가 아니라 백합의 일종이다.
 
   마늘 이야기
  마늘이 최초로 재배된 곳은 남시베리아 지방으로 여겨지는데 지금은 
중앙 아시아와 지중해 지방에서 재배되고 있다. 사람들은 마늘을 아주 
옛날부터 양년으로 먹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늘을 많이 
재배하였고 이집트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 이 풍성한 마늘의 
기억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하였다. 고대 
이집트인들도 마늘을 재배하였다.
  성직자들은 마늘을 부정한 음식으로 쳐서 사원 안에 마늘이나 마늘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는 것을 금하였다. 그러나 당시 피라미드를 
짓느라고 땀을 흘리던 일꾼들은 많은 양의 마늘과 양파를 먹었다. 
로마인들도 마늘이 힘과 용기를 북돋아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군인들은 
이것을 먹었다. 그러나 원로원에서는 마늘을 먹은 뒤에 사이빌 사원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했다. 인도의 승려 층에서는 마늘이 미움을 
받았으나 대중들 사이에는 많이 애용되었다.
 
   치클나무에서
  껌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은 뉴욕 스태틴 아일랜드의 사진사 토머스 
아담스에 의해서였다. 또 껌이 상업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848년 메인주 방골의 존 커티스에 의해서이다. 1888년 껌 판매기가 
뉴욕 엘리베이티드 철도회사의 정류장에 설치되었는데 이때부터 껌 
사업이 붐을 타게 되었다.
 
   독이 있는 식물
  이름  발견 장소  독성이 있는 부분  섭취 후의 결과
  미나리아제비  들판  전체  소화 불량
  체리  나무, 관목  잔가지. 잎  사망
  그로커스  정원  구근  구토
  월계수  장식용 식물  액과  사망
  딱총나무  나무,  관목  잎, 수피, 햇가지  구역질
  디기탈리스  정원  잎  불규칙한 심장박동
  독미나리  들판  전체  사망
  히야신스  가정용 정원  구근  구역질. 사망
  아이리스  정원  땅속 줄기  소화 불량
  흰꽃독말풀  들판  전체  사망
  참제비고깔속식물  정원  씨, 어린 식물  소화 불량, 사망
  은방울꽃  정원  잎, 꽃  불규칙한 심장박동
  가지속식물 들판  전체, 특히 열매  사망
  참나무  나무관목  잎, 열매  신장 기능 약화
  서양협죽도  가정용 정원  잔가지. 잎  소화 불량, 사망
  붉은 셀비어  장식용 식물  열매  사망
  진달래속 식물  장식용 식물  전체  사망
  대황  채소용 정원  잎사귀(평평한 곳)  사망
  등나무  장식용 식물  씨, 콩깍지(꼬투리)  소화 불량
  주목  장식용 식물  열매  사망 

   풍매화의 꽃가루
  어떤 식물은 바람에 의존하여 꽃가루를 퍼뜨리며 수정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많은 양의 꽃가루를 생산한다. 선인장이나 꽃의 한 무리 
또는 한 그루의 나무는 550만 개의 꽃가루를 만든다.
 
 [  선인장과 그 천적 ]
  호주에 유입된 프리클리페어 선인장은 무서운 속도로 번식하여 여러 
광활한 지역을 사람이나 양이 들어갈 수 없는 선인장 덤불로 뒤덮었다. 
다행히 자연계는 그 해결책으로 캑토블라스티스 캑토럼이라는 선인장 
나방을 마련해놓았다. 1925년 아르헨티나에 놓여진 나방의 유충이 
프리클리페어 선인장 덤불을 먹어치움으로써 이 외래의 식물의 번식을 
통제하게 되었다.
 
 [    제21장 조류, 어류, 고충, 생물, 미생물 ]
 [    제21장--조류 ]
 [  날개 달린 태양 숭배자 ]
  갈매기의 화려하고 우아한 친척인 북극 제비갈매기는 지구상의 모든 
철새중 가장 장엄한 이동을 한다. 매해 가을이 되면 길이가 350mm밖에 
되지 않는 이 새는 북유럽과, 북미, 그리고 그린랜드의 번식지를 떠나 
남반부의 여름을 나기 위해 지구의 반바퀴를 돌아 남극권으로 
이동한다.
  북극 제비갈매기를 거리상으로 가장 짧은 여정을 선택하지 않고 
바람을 타고 이동하므로 35,000km에 달하는 왕복여행을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새는 모든 동물 중 가장 많은 햇빛을 보는 셈이 된다. 
번식에서 낮이 길이가 24시간에 가까운 북극의 여름을 보내고, 여정의 
또 다른 끝에서 긴 남극의 여름을 즐긴다.
  조류학자들이 갓 태어난 제비갈매기에 가벼운 고리를 달아 26년 동안 
관찰한 결과 매해 2회씩 극과 극 사이를 이동하면서 총100만km를 
여행했다고 한다.
 
   휘파람새의 국제적 감각
  아프리카와 유럽 사이를 오가는 철새인 초원 휘파람새는 능숙한 
흉내쟁이로서, 다른 조류의 노래로부터 따온 국제적인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조류학자들이 한 마리의 휘파람새의 노래를 분석한 결과, 
200종에 달하는 다른 조류의 소리를 구별해낼 수 있었다. 그 반은 
아프리카에 사는 새들을 흉내낸 것이고, 나머지 반은 유럽에 서식하는 
새들을 흉내낸 것이라고 한다.
 
 [  철새의 체력 관리 ]
  철새들은 사막이나 바다를 가로지르는 긴 여정 동안 필요한 체력을 
비축하기 위하여 이동하기 전에 집중적으로 먹는다. 휘파람새와 같은 
작은 조류는 이 기간 동안 몸무게가 2배로 불러난다. 

 [  레이더로 새를 추적한다 ]
  조류학자들은 한때 둥근 달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철새들을 새어보기 
위하여 망원경이나 쌍안경으로 달을 쳐다 보느라 온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철새 추적 방법은 대부분 사라졌다. 현재의 
레이더 장비는 매우 정교해서 철새의 종류를 구별해서 화면에 나타난 
각각의 새를 추적할 수 있으며, 새의 심장 박동도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고독한 비둘기
  암비둘기는 혼자 있으면 알을 낳지 못한다. 난소의 기능이 
활발해야만 알을 낳을 수 있는데, 이러기 위해서는 다른 비둘기를 
보거나, 다른 비둘기가 없을 때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라도 
보아야 한다.
  
 [  재봉새는 실로 둥지를 꿰맨다 ]
  인도의 재봉새는 아주 특별한 둥지를 만든다. 재봉새 수컷이 
나뭇가지 끝 근처 가까이 있는 나뭇잎 2장을 발견하면 자신의 부리를 
바늘삼아 나뭇잎 둘레에 구멍을 뚫어놓은 다음 얇은 야채 섬유를 
이용하여 2장의 나뭇잎을 꿰맨다. 이 주머니 같은 둥지 안에 면 같은 
솜털을 깔고 재봉새 암컷을 낳기 위한 아늑한 집을 만드는 것이다. 
  
 [  독수리 둥지의 무게는 1톤 ]
  대부분의 새는 알을 낳기 위하여 매년 새로운 둥지를 만들며, 한 
계절에 두세 번의 둥지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흰머리 독수리는 여러 
해 계속해서 같은 둥지를 사용한다. 이 힘센 동물은 일생 동안 한 
마리의 배우자만 선택하여 높은 나무 위에 하나의 보금자리를 짓는다. 
이 독수리는 새로운 재료를 더하여 매년 거대한 둥지를 보수하므로, 몇 
년이 지났을 때 둥지의 무게가 900kg까지 나가기도 한다.
 
 [  기러기가 V자로 날아가는 이유 ]
  기러기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V자 대형을 이루며 난다. 기러기의 
날개는 바람을 일게 하여 뒤에 공기의 흐름을 남긴다. 각 새들은 앞에 
있는 새가 공기의 흐름에 의해 부력을 얻도록 쐐기 모양의 대형으로 
자기의 위치를 잡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선두를 제외한 모든 새가 쉽게 
날 수 있다. 기러기는 이동하는 동안 차례를 지켜 선두 위치에서 날 
만큼 재치가 있다.
  기러기는 모두 철새로 여름에는 북쪽으로, 겨울에는 남쪽으로 
이주하는데, 이들을 해발 8,900m 상고에서 날아간다.
 
 [  계속해서 2년을 날 수 있는 새 ]
  남해왕조는 오늘날 날아다니는 생물체 중 익폭이 가장 큰 새로서 
한쪽 날개 끝에서 다른 날개 끝까지의 길이가 3m에서 4m에 이른다. 이 
새는 대서양 바람을 타고 살도록 잘 적응되어서 어린 남해왕조가 
태어난 섬을 한번 박차고 떠나면 2년 동안 육지에 내리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끝이 뾰족하게 생긴 날개 모양으로 인해서 남해왕조는 
활강하거나 날아오르는 동안 가속할 수 있다. 이 새는 물고기나 
떠다니는 썩은 고기 같은 부유물을 먹고 살며 물위에 착륙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음악의 천재
  몽킹버드(mockingbird, 주:지빠귀와 비슷한 미국산 앵무새의 일종)는 
7분 동안에 87번이나 음을 변화시키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
 
   가장 빨리 날개를 젓는 새
  가장 빨리 날개를 젓는 새는 열대 남아메리카의 헬리악틴 코누타라는 
새로 알려져 있으며 1초에 90번 날개짓을 한다.
 
   회색자고새의 배우자 조건
  스웨던의 한 연구자에 의하면 암컷 회색자고새는 배우자로서 보초를 
잘 서는 수컷을 선택한다고 한다. 그는 자고새를 두 편으로 나누어 
한편은 외부와 단절된 새장에, 다른 한편은 외부를 볼수 있도록 열린 
새장에 두었다. 그리고 이 두 편 중 자유롭게 배우자를 선택하도록 
허용되었다. 그 결과 열린 새장에서 열심히 주변을 살피는 수컷이 주로 
선택되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어린 새를 보호할 능력이 더 많다고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동굴유조의 장애물 피하기
  어떤 야행성 조류는 박쥐처럼 잘 발달되지는 않았지만 메아리로 어둠 
속의 장애물을 피한다. 남미의 동굴유조는 박쥐가 내는 초음파 대신에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짤깍대는 소리를 낸다고 한다. 이와 같은 긴 
파장의 소리는 작은 물체에 의해 반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동굴유조는 소리의 반사로 둥지를 튼 굴속을 날아다니지만 먹이를 찾는 
데는 후각과 시각에 의존한다.
 
   부리가 몸보다 큰 터칸
  터칸은 남미의 열대 지역에서 열매를 먹고사는 새의 한 종류이다. 이 
새는 굉장히 큰 부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실상 이 새의 어떤 
종류는 자기 몸보다 더 큰 부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너무 큰 
부리 때문에 터칸 새는 때로 본의 아니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 큰 부리를 달고 다니는 것이 그리 힘들지는 않다고 한다.
 
 [  플라밍고는 왜 한쪽 다리로 서 있는가? ]
  홍학이라고 불리는 플라밍고의 몸 색깔은 원래 분홍색이 아니다. 즉 
이들이 먹는 음식의 색깔에 따라 털 색이 변한다. 또 드러난 피부에서 
열이 손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항상 한 다리로 서 있는 것이다.
 
 [  새는 왜 노래를 부르나? ]
  서양 사람들은 새가 기뻐서 노래를 부른다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새가 슬퍼서 운다고 한다. 그러나 새는 노래하지도 울지도 않는다. 
새는 자기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서, 짝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건강을 
위해서 소리를 낸다고 한다.(앤드류 베커의 조류학에서)
 
   어미보다 무거운 새끼 섬새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헌신적인 어미를 가진 동물은 어린 섬새일 
것이다. 어미 섬새는 한 마리의 새끼 섬새가 어미보다 더 크고 
뚱뚱해질 때까지 먹이를 먹인다. 이렇게 되고 나면 어미는 멀리 날아가 
벌리지만, 새끼는 너무 뚱뚱하고 어려서 스스로 먹이를 찾아 나설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며칠 동안 이미 쪘던 살에 의존하여 생활하면서 
날 수 있을 정도로 말라 몸이 가벼워지면 혼자 먹이를 찾아 나선다.
 
 [  새들도 노래하는 장소가 따로 있다 ]
  새들은 거의 예외 없이 땅에 내려서는 노래하지 않는다. 새들은 
날아다니면서, 또는 지면 위의 물체에 앉아서 노래한다. 이에 대한 
예외로는 해변의 고깜루떼새와 미국 들참새가 있다. 
 
   일찍 일어나는 새들
  새벽 4시만 지나면 벌써 지빠귀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3시쯤에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 같은 노랫소리는 메추라기의 
지저귐이다. 블랙 캡이라고 불리는 머리가 까만 새는 4시쯤에 나무 
사이에서 지저귄다. 집 주위에 서식하는 참새나 박새들은 실상 아침 
새중에서 가장 늦게 깨는 새에 속한다. 4시가 지나자마자 땅위에서 
붉은가슴울새와 굴뚝새가 연속적으로 울어제친다. 종달새는 
푸른머리새나 홍방울새 등이 한창 지저귄 후에야 비로소 일어나 
지저귀기 시작한다. 
 
   개똥지빠귀의 식성
  어린 개똥지빠귀는 하루에 4m에 달하는 지렁이를 먹어야 한다.
  
   벌새의 무게와 에너지 소비량
  가장 큰 벌새의 무게는 20g 정도이다. 그러나 가장 작은 벌새의 
무게는 2g 정도밖에 되지 않으므로 이 벌새의 알 125개의 무게가 보통 
우리가 먹는 계란의 무게와 비슷하다.
  또한 벌새의 에너지 소비량은 하루에 10kcal정도이다. 인간이 하루에 
2,500kcal를 소모해야 하는 점과 비교할 때, 벌새의 무게를 감안하면 
벌새는 인간보다 150배정도 되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셈이 된다.
 
   조류학의 아버지
  조류학의 아버지 알렉산더 윌슨은 2,230,272,000마리의 비둘기가 
380km나 길게 떼를 지어 날아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벌새의 거대한 신진대사
  벌새는 맥박이 1분에 500번 뛰며, 흥분하면 1,200번 뛴다. 이에 비해 
타조는 38번 뛴다. 인간의 호흡이 1분에 16번, 비둘기가 25번인 데 
비해 벌새는 250번이나 숨을 쉰다. 또한 다른 일반 새들의 맛봉오리의 
수는 40--60개인 데 비해 벌새의 그것은 10,000개나 된다. 그러나 너무 
빨리 음식을 삼키므로 음식의 맛을 잘 모른다고 한다.
 
 [  날지 못하는 새들 ]
  (화식조)
  화식 조는 크기에 있어 타조와 에무(타조와 외형이 비슷한 새)를 
능가하는 큰 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숲속과 파푸아의 섬에서 서식하는 
화식조는 과일 열매들과 곤충들, 혹은 작은 동물들을 먹이로 삼고 
있다. 3개의 발가락의 맨 안쪽에는 면도칼같이 날카로운 발톱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동물과 싸울 때 아주 유용한 무기이다. 
  (가마우지)
  가마우지과에 속하는 다른 새들은 약간이나마 날아다니는 데 반해, 
이사벨라섬에서만 살고 있는 가라포가스 가마우지는 전혀 날지 못한다. 
기슭에 둥우리를 틀고 사는데 수영과 다이빙에 능하다. 그러나 
가라포가스 가마우지는 사냥꾼들의 먹이 감이 되어온 탓에 지금은 거의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에무)
  오스트레일리아산 에무는 타조 다음으로 큰 새다. 그리고 타조와 
흡사한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 에무는 시간당 50km를 달릴 수 있고 
3개의 발가락을 가진 두발은 적과 싸울 때 요긴하게 쓰인다. 한때 거의 
멸종 상태에 있었으므로 지금은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도도)
  비둘기과에 속하는 새들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도도는 한때 
마다가스카의 동쪽 마우리티우스섬에서 서식했다. 그러나 이 섬에 
포르투갈인이 부렸던 수퇘지들에게 잡아먹히곤 하였다. 결구 도도는 
1700년경 멸종되고 말았다.
  (타조)
  주로 아프리카 남쪽과 동쪽 평지에서 10--50마리씩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타조는 현존하는 새 중 제일 크며, 날지 못하는 새 중에서 
가장 빨리 움직인다. 본래 민첩하고 뛰어난 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적들보다 재빨리 움직이거나 달릴 수 있다.
  (모아)
  유사 이래 가장 큰 새로 손꼽히는 모아는 뉴질랜드에서 서식했으나 
400여 년 전에 멸종되었다. 한때는 칠면조 정도의 크기에서부터 3m 
크기에 이르기까지 25종의 종족을 지녔으나, 뉴질랜드에 정착했던 
폴리네시아인에 의해 식량으로 이용되다가 17세기말에 대부분 
멸종되었으며, 나머지 소수 종족들은 19세기에 멸종되었다.
  (펭귄)
  펭귄의 18종족들은 남극 대륙으로부터 갈라파고스섬까지에 이르는 
남반구에 살고 있다. 땅 위에 설 수는 있지만 우스꽝스럽게 걷는다. 
펭귄의 지느러미 발(본래 날개였다)과 온몸을 둘러싸고 있는 비늘 같은 
깃털들은 수영과 다이빙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들이다. 펭귄들은 짝을 
찾거나 털갈이할 때는 물을 떠난다.
  (키위)
  뉴질랜드가 원산지인 키위는 멸종된 모아와 같은 과에 속한다. 
날지는 못하지만 8cm 정도의 한 쌍 날개가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에는 날아다녔을 것으로 추측된다. 키위는 특별히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부리의 끝에 위치한 콧구멍은 땅에 난 구멍에 
부리를 들이밀고 지렁이 냄새를 맡는 데 사용되었다. 고 한다. 키위는 
종족 번식을 하지 못해(수정란 착색 불능) 거의 멸종되고 말았다.

 [    제21장--어류 ]
 [  금붕어의 아름다움의 비결 ]
  금붕어의 아름다운 황금빛 색깔은 어두운 어항이나 흐르는 시냇물 
같은 곳에서 변화한다. 그 빛나는 금빛 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못이나 혹은 조명을 받는 어항 속에서 살게 해야 한다.
 
   어류의 혼인색
  연어, 피라미, 납자루 등의 수컷은 번식기가 되면 몸의 색깔이 
분홍색으로 변하여 핑크 무드로 암컷을 유혹한다.
 
   해마의 번식
  해마에게 있어서 배를 운반하는 것은 암컷이 아니라 수컷이다. 
암컷은 수컷의 부화 주머니에 알을 낳는다. 알은 8일에서 10일에 
이르는 임신 기간동안 불풀어오른 주머니 안에서 자란다.
 
   신선한 정어리가 있을까?
  당신은 충격적인 사실을 알 권리가 있는데, 정어리라는 생선은 없다. 
정어리라는 용어는 사실상 수많은 종류의 작은 생선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이름이므로, 어떤 생선이 캔에 포장되기 전까지는 정어리가 
아니다.
 
 [  빛을 내어 먹이를 유인하는 아귀 ]
  심해 생물 중 가장 기이한 것 중의 하나는 아귀 암컷으로, 이것은 
빛을 발하는 돌기를 이용하여 먹이를 잡는다. 아귀의 몸 위에는 10cm 
정도 되는 가늘고 긴 한 가닥의 살이 나와 낚싯줄처럼 떠 있는데, 실 
가닥 끝에는 캄캄한 바닷속에서도 빛을 내는 살로 된 미끼 덩어리가 
붙어 있다. 흔들리는 불빛에 유혹되어 작은 물고기들이 접근하면 
아귀는 재빨리 이들을 잡아먹는다. 아귀의 이 빛은 개똥벌레의 빛과 
같은 발광 장치로서, 화학적 반응에 의하여 복사 에너지로 전환되어 
발산되는데, 빛을 발산하는 성질은 암컷에게만 있다.
  수컷은 크기가 작고 암컷에 의존하며 암컷의 껍질을 파고 들어가 
기생 생활을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2마리 이상의 수컷이 암컷 한 
마리에 붙어서 살기도 한다. 곧 수컷의 입과 혀가 숙주*의 살과 
붙어버리고 둘의 혈관이 서로 연결되며, 생식 기관을 제외한 수컷의 
거의 모든 기관이 퇴화하므로 혈액을 통해 영양분을 직접 공급받는다.
  아귀는 움직임이 느리고 거의 완전히 어둠 속에서 무리 짓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동물이어서, 이러한 방법이 아니면 짝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으므로 이와 같은 희귀한 관계가 성립되었다고 추측된다.
 
 [  농어의 성전환 ]
  농어라는 물고기는 새끼 때는 모두 암컷이지만, 5년 뒤에는 반 
정도가 수컷으로 변하다.
  
   칠성장어의 회유
  민물 칠성장어도 연어처럼 산란지를 찾아 6,400km나 되는 먼 거리를 
여행한다. 집을 찾아 돌아오는 본능은 마치 레이다나 수중 음파 
탐지기만큼이나 정확하다.
 
   리더의 조건
  물고기 하렘의 수컷은 수백만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지만, 수컷이 
죽으면 암컷 중 가장 강한 놈이 수컷으로 전환하여 암컷들을 이끈다.
 
   산란을 위한 여정
  어떤 종류의 유럽산 뱀장어는 고향의 강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멕시코만 변두리의 사르가소 해역에 알을 낳는다. 이 산란지에 
다다르기 위해서 그들은 찾을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물길을 통해서, 댐 
등의 장애물이 있으면 짧은 거리의 육지 여행까지 감행하면서 유럽의 
강을 떠난다. 이들은 바다에 다다르면 5,000km에서 10,000km 떨어진 
산란지를 향해 망망대해의 길을 떠난다. 떠난 뱀장어는 다시는 
유럽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치어는 해류를 타고 약 3년의 
여정 끝에 유럽으로 되돌아온다.
 
   돌고래
  돌고래는 꼬치고기를 한 입에 물어 으깨거나 주둥이로 박아서 간단히 
상어를 죽일 수도 있고 또 가끔씩 그렇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을 
공격했다는 기록은 한번도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돌고래가 지능이 
뛰어난 동물임을 입증한다.
 
   뱀장어의 감각과 호흡
  뱀장어는 예민한 미각과 후각을 가지고 있다. 뱀장어는 400리터의 
물에 희석된 극소량의 화학 물질을 감지해 낸다. 또한 뱀장어는 좁은 
아가미 출구를 닫을 수 있으며 호흡을 위해 필요한 산소량의 60%를 
끈적끈적한 점액성 피부를 통해 얻을 수 있으므로, 서늘한 밤에는 젖은 
풀 사이로 땅 위를 이동할 수 있다.
 
   아귀
  아귀의 암컷은 수컷보다 6배 더 크다. 수컷은 암컷의 머리끝에 닻을 
내리고 일생을 거시서 지낸다. 글자 그대로 한 몸이 되어 산다. 그들의 
소화기와 순환기는 서서히 합쳐진다. 두 대의 비대한 생식기와 한두 
개의 지느러미를 제외하고 수컷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다. 
 
   굴 
  굴은 일반적으로 암수한몸이다. 수컷으로 시작해서 암컷이 되고 또 
수컷이 되었다가 다시 암컷이 된다. 굴은 일생동안 여러 번 수컷과 
암컷 사이를 오가며 산다.
 
   사수어
  사수어는 수면 바로 밑에서 물로 사격을 가하여 수면 위를 배회하는 
곤충들을 먹이로 삼는다. 이 물고기는 아가미의 뚜껑을 수축시켜 혀와 
입천장으로 이루어진 가는 관으로 물을 밀어 내보낸다. 사수어의 
조준은 매우 정확하여 물 총알이 목표물을 곧바로 기절시킨다고 한다.
 
   청고래
  청고래는 먹지 않고 반년을 버틸 수 있다. 그 동안 청고래의 생명은 
피하 지방으로 유지된다.
  
   다랑어 
  다랑어는 시간당 14km의 일정한 속력으로 무한정 헤엄칠 수 있다. 
다랑어는 결코 쉬지 않는다. 한 계산에 의하면 15년 된 다랑어는 그 
동안 1,600,000km를 헤엄친다고 한다.
   
   전기뱀장어
  전기뱀장어는 평균 방전 전압이 400볼트에 이르는 가장 위험한 전기 
물고기 가운데 하나이다. 전기뱀장어의 몸의 절반이상은 전기를 
발생시키기 위한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  물고기도 물에 빠져 죽을 수 있다 ]
  물고기는 아가미로 산소를 받아서 숨을 쉬므로 물 속의 산소량이 
적어지면 자연히 숨이 막혀 죽게 된다. 이러한 일이 자주 일어나는 
곳은 말라버린 연못이다. 물의 양이 줄어 물고기들이 적은 양의 물에 
몰려들고 모든 산소를 마셔버리기 때문이다. 아가미가 상해도 질식하게 
되며, 때로는 날씨가 원인이 되는 수도 있다. 보통 물 속에 산소가 
부족하면 수면으로 떠올라 산소를 들이마신다. 하지만 수면이 얼어 
있으면 숨이 막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다의 목수 
  톱상어는 실제로 몸의 한 부분이 톱니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그 톱 
같은 것을 움직여서 다른 물고기들을 잡아먹는다. 톱상어는 물고기 
떼를 발견하면 두 줄로 금이 새겨진 톱을 앞뒤로 흔들면서 쫓아가고 
때로 먹이를 찾기 위하여 해저로 내려가기도 한다. 또 이 동물은 
자신이 잡은 먹이를 먹은 후 지나가는 동료를 위해 조금 남겨두는 
아량을 보이기도 하며, 때로 큰 물고기나 고래 등에게 덤벼 상처를 
통해서 나오는 내장 같은 것들을  먹는다. 납작한 머리에 매혹적으로 
생긴 이 동물들은 열대와 아열대 바다의 해저에 거주하고 있지만, 그 
중 일부가 강으로까지 헤엄쳐 올라와서 인도의 강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에게 톱을 들이대기도 한다.
 
 [  육지에서도 살 수 있는 물고기 ]
  날치, 베도라치류, 미드 스키퍼 등은 바다에서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살 수 있다.
  
   연어의 귀향
  바다를 떠나 자기가 탄생한 담수 하천을 찾아 올라가서 산란을 할 
때까지 연어의 여행은 계속된다. 연어는 우선 먹기를 그치다. 소화 
기관은 성 기관이 발달하도록 자리를 내주기 위해서 줄어들며, 
저장해두었던 지방으로 1년간 버틸 수 있다. 매일 최대 40km의 속도로 
헤엄쳐 여울을 뛰어 건너고 3.6m 높이의 작은 폭포를 단숨에 뛰어넘어 
올라가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이 집념 어린 귀향 길에 대부분의 
힘을 쏟고 산란 뒤에는 바로 죽는다.
 
   복어 한 마리
  복어 한 마리가 사람 30 명을 죽일 수 있다. 복어의 독 성분은 
테트로도톡신인데 청산가리의 13배나 되는 독성을 지녔다. 0.5mg으로 
50kg의 사람을 즉사시킬 수 있고, 독이 많은 복어 한 마리는 사람 
30명을 죽일 수도 있다. 맛이 덤덤하며 무색 무취하며 아무리 강한 
열에도 없어지지 않는다. 만약 이 독을 먹으면 10분쯤 뒤부터 기분이 
이상해지고 안색이 질리며, 정신이 흐려지고 입술, 혀가 마비되면서 
손, 발까지 마비된다. 그러다가 호흡마저 곤란해지면 죽게 된다. 
산란기의 독은 보통 때보다 두배나 더 강하다.
 
   세상에 태어나는 영광
  대구는 200만 개 이상의 알을 낳지만 실제로 새끼가 되는 것은 5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  독을 뿜어 적을 퇴치하는 석어 ]
  인도양과 태평양의 모래톱의 얕고 따뜻한 바닷물에는 석어가 
서식하고 있다. 길이 30cm 가량 되는 기괴하게 생긴 물고기의 피부는 
회색과 갈색으로 우중충하게 얼룩지고 사마귀투성이에다 주름지고 
거칠지만, 산호초 모퉁이와 틈새에 살고 있는 이 물고기를 완벽하게 
위장해준다. 그러나 혹시 다른 물고기가 찾아내어 공격해오면 두번째 
방어책이 준비되어 있다. 가시 돋친 등지느러미를 곧추세우고 치명적인 
독을 내뿜는다. 운 없는 관광객이 때때로 석어의 공격을 받기도 
하는데, 격심한 통증에 이어 마비 현상이 나타나 곧 치료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불가사리
  불가사리는 몇 개의 작은 조각으로 잘라져도 각 조각이 완벽한 
새로운 한 개체로 성장한다.
 
   물고기의 역사
  5천 8백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경골어류의 화석이 발견됨에 
따라 물고기가 그 당시에도 생존했었음이 증명되었다.

 [    제21장-곤충 ]
 [  파리 장례식에 10만 달러를 소비하다 ]
  로마의 시인이었던 버질(BC 70--19년)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했던 
문학가 중의 한 사람으로, 기교가 뛰어난 목가지와 전원시를 썼으며, 
특히 서사시(이니드)를 쓰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또 버질은 기상천외한 
행동을 하는 신비스러운 인물이었는데, 다음은 수토니우스 
트란퀼리스가 (아우구스투의 인생)이라는 책에서 밝힌 그에 대한 
일화이다.
  BC 43년 로마가 제2의 삼두정치의 지배를 받을 때 부유충의 놀고 
있는 땅을 몰수하여 전쟁 퇴역군에게 나누어주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묘지나 영묘와 같은 특정 지역은 법령에서 제외되었다. 로마 
에스퀼린 언덕에 있는 영지를 빼앗기는 것을 두려워한 버질은 파리 한 
마리를 지신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애완동물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정성스럽게 장례를 치러 주었다. 버질과 함께 로마의 여러 유명 
인사들이 조사를 하는 가운데 파리는 화려하게 매장되었는데 여기서 
사용된 장례비용은 80만 세스테르티우스로서 오늘날의 10만 달러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버질의 애완 파리에 대한 의식 덕택에 저택은 
영묘로 지정되었으며, 그 결과 정부의 압류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  수컷 파리의 지참금 ]
  어떤 조류나 곤충의 수컷은 암컷에게 지참금으로 먹이를 제공해야 
한다. 한 예로 암컷 전갈파리는 커다란 죽은 곤충을 바친 수컷하고만 
교미한다. 암컷 전갈파리는 좀처럼 스스로 사냥에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  꿀벌은 1초에 날개를 200번 퍼덕인다 ]
  벌집은 세상에서 가장 바쁜 장소 중의 하나로 쉬지 않고 윙윙거리며 
돌아다니는 군중들로 꽉찬 도시이다. 평균 5만 개 정도의 방으로 
이루어진 벌집에서는 3만 5천 마리 이상의 벌들이 각각 맡은 과업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 종류로는 알속에 누워서 세월을 보내는 여왕벌과, 새로 알을 깐 
여왕벌과 교미하는 것이 유일한 업무인 수벌, 거대한 곤충 도시를 
위하여 보모로서, 문지기로서, 방을 만드는 건축가로서, 음식 
공급자로서 봉사하는 일벌 등이 있다. 벌들은 꽃꿀*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나고 이것을 발견하면 집단을 위한 꿀을 만든다. 이 일은 매우 힘든 
노동으로 454g의 꿀을 만들기 위해서는 벌통과 꽃 사이를 37,000번 
왕복해야 한다.
  꿀벌은 1초에 200번 정도 날개를 치는 데, 이러한 날개짓은 벌집의 
중앙에 있는 일벌과 어린 벌에게 신선한 공기를 공급해주는 
에어컨디셔너의 역할을 하고, 겨울에는 체온을 상승시켜주는 작용을 
한다. 또한 꿀벌은 귀머거리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내는 날개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한다.
  * flower nectar. 꽃에서 분비되는 감미로운 액체로서 곤충을 
유인하여, 곤충은 이것을 빨아먹고 꿀을 만들게 된다.
 
   일벌의 타임 테이블
  꿀벌은 여왕벌과 수벌과 일벌로 구성되며 그 제도는 절대적으로 
여왕벌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다. 일벌들은 꽃가루와 꿀을 구하기 
위하여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 여행하고 그 길을 잊지 않고 찾아오며, 
꽃을 방문하는 데 있어서 스케줄대로 한다. 수례국화는 11시에, 붉은 
크로바는 오후 1시에 방문하는 등, 타임 테이블에 의해서 다니는 
것이다. 이 꽃들은 그 시간에 더 많은 향기를 발산하기 때문이다.
 
   벌의 시각
  벌의 눈은 머리 위에 3개, 앞에 2개가 있는데 자외선까지 볼수 있다.
 
   나비의 변태
  한 마리의 아름다운 성체로 되기까지 나비는 여러 변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알로부터 나온 유충이 일정한 크기까지 자라면 가는 
가지에 몸을 붙이고 실크로 몸을 두툼하게 감싸기 위해 자신의 
분비물을 이용한다. 유충은 종류에 따라 수일부터 수개월에 이르기까지 
고치라고 불리는 실크 덮가 안에 머무르다가 적당한 시기에 고치로부터 
아름다운 나비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비는 햇볕 속에서 겨울을 나기 위하여 남쪽으로 이동한다. 이 미묘한 
생물은 놀라운 방향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종류는 미국으로부터 
버뮤다까지 960km에 이르는 바다 위를 날아가지도 한다. 또 봄에는 큰 
무리의 나비떼가 남쪽으로부터 날아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남쪽으로 이동하였다가 월동 후 돌아오는 나비떼인지, 아니면 남쪽에서 
새로 태어난 나비들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  비 오는 날의 나비 ]
  비가 오면 나비는 풀잎이나 나뭇잎 사이에 숨어서 피한다. 떨어진 
빗방울이 굴러떨어져서 몸 속으로 흡수되지 않게 되어 있다. 하지만 
폭우가 몰아치면 살아 남기 어렵다.
 
   암컷을 찾아내는 예민한 후각
  산누에나방과 기타 다른 누에나방 종의 수컷은 동물 세계에서 특별히 
예민한 후각을 지닌다고 한다. 수컷은 깃털처럼 생긴 한쌍의 더듬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의 코 같은 일반적 후각 기관이 아니라 오직 암컷의 
페로몬 분비에만 반응하는 더듬이로, 수컷은 500m나 떨어진 암컷의 
암내도 맡는다. 각각의 더듬이에는 40,000개의 암내 수용 세포가 있다.
 
 [  가장 많이 먹는 식충 ]
  자연이 만든 가장 효율적인 '먹는 기계'는 북아메리카의 
폴리페무스나방의 유충이다. 이 유충은 알에서 깨어난 지 48시간 안에 
당시 몸무게의 27,300배에 달하는 양을 먹어치운다. 사람으로 환산하면 
10kg의 아이가 300톤의 음식물을 먹어치우는 것과 같다.
 
   누에는 몸 길이의 12,000배 되는 실을 뽑아낸다
  누에는 나방의 유충으로, 자신의 고치를 만들기 위하여 1,000m가 
넘는 노란색 또는 흰색의 매끄러운 실을 뽑아내어 자신의 몸을 단단히 
둘러싼다. 이것은 키가 183cm인 사람이 길이가 24km나 되는 실을  뽑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누에의 알은 매우 작아서 35,000개가 모여도 28g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 8cm 정도까지 자라면 가는 
가지에 몸을 붙이고 매끄러운 고치를 치기 시작한다. 그 후 유충의 몸 
안에서 생산되어 미량의 왁스와 섞인 피브로인이라는 축축한 물질이 
입을 통하여 방출된다. 피브로인은 공기 속에서 빨리 미르며, 유충은 
결국 800m 길이의 실크사로 몸을 휘감는 것이다.
 
 [  나비의 체온 ]
  나비는 체온이 27도 이상일 때에만 날 수 있기 때문에 낮에 
날아다닌다. 하지만 나방은 밤에 날아다닌다.
 
 [  바퀴버레의 생명력 ]
  바퀴벌레의 종류는 약 3,500가지이다. 바퀴벌레는 종이, 풀, 비누, 
같은 것을 먹고도 살 수 있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해도 5개월은 버틸 
수 있다. 방사선에도 죽지 않고 48시간 동안 냉동된다 해도 여전히 
살아날 수 있다.
  
 [  먹지 않고 살아가는 곤충 ]
  좀, 하루살이, 미지 등은 위가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아간다. 좀의 수명은 7일, 하루살이는 6시간, 미지는 12시간이다.
 
   사슴말파리의 비행 속도
  곤충은 새처럼 빨리 날지 못한다. 가장 빠른 곤충인 사슴말파리는 
지속적으로 시속 58km의 속도로 날 수 있다.
 
   곤충의 피와 심장
  곤충의 혈액은 빨간색이 아니다. 대개 무색이거나 엷은 노랑색이거나 
초록색이다. 가끔 그 몸을 뭉갰을 때 빨간색의 액체가 나오는 것을 
발견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곤충이 다른 동물이나 사람의 피를 빨아먹은 
것이 나오는 것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곤충에게는 단지 정맥만이 
존재한다. 이 정맥이 몸의 끝에서 끝까지 그 길이대로 흐르는데 
군데군데 두꺼운 부분이 심장이다. 따라서 곤충은 여러 개의 심장을 
지니고 있다. 이 심장의 정맥이 양 끝에서 피를 퍼내면 이 피가 몸 
전체의 순환 구조를 돌다가 다시 심장에 나 있는 구멍들을 통해서 다시 
정맥으로 돌아오게 된다.
 
   곤충의 청각
  메뚜기와 귀뚜라미의 머리에는 귀가 없으며, 다른 친구들이 내는 
특별한 소리를 듣기 위한 청각 기관은 몸의 다른 위치에 존재한다. 
메뚜기의 청각 기관은 배의 양쪽에 있으며, 귀뚜라미는 보통 앞발에 
있다.
 
   17년 동안의 잠
  매미는 17년 동안 땅 속에서 번데기 생활을 한다. 17년이 지난 후 
화려한 잠에서 깨어나면 비로소 성숙한 매미로 변신하여, 교접을 한 뒤 
알을 낳고는 하룻밤을 잔뒤 죽는다.
  
 [  모기 천하 ]
  곤충의 종류 중 가장 지독한 것은 모기일 것이다. 모기는 가장 추운 
지대인 캐나다 북부와 시베리아, 북극 지방뿐만 아니라 적도의 정글 
속에서도 거뜬히 살아갈 수 있다.
  
   흡혈하는 것은 모기의 암컷
  모기는 턱이 없기 때문에 물지 않고 찌른다. 긴 주둥이로 상대의 
몸을 깊숙이 찌른 뒤에 코에 있는 관으로 피를 빨아올린다. 모기는 한 
번에 몸무게의 반 정도의 피를 빨 수 있다. 이렇게 피를 빠는 것들은 
모두 암컷으로, 이는 뱃속에 있는 알에 영양을 공급하기 위함이다.
 
 [  털로 소리를 듣는다 ]
  많은 곤충들은 털로 소리를 듣는다. 수벌의 경우 더듬이를 따라 작은 
털이 많이 나 있다. 소리가 나면 털이 떨리고, 이 진동이 중앙 
신경계에 전달되면 신경계에서 소리를 판단한다. 바퀴벌레는 배에 털이 
나 있어서 소리를 배로 듣고, 송충이는 온몸이 털로 덮여 있으므로 
온몸으로 소리를 듣는 셈이다. 또 수컷 모기의 더듬이는 라디오 
수신기와 같이 암컷의 날개짓에서 나오는 고음의 흐느낌에 주파수가 
맞추어져 있다.
 
   곤충의 근육 조직
 모든 곤충은 사람보다 근육 조직이 더 많다. 모충의 경우 
2,000,--4,000개 정도의 근육 조직이 있다.
 
   땅강아지의 땅굴 파기
  암컷이 확실히 듣도록 수컷 땅강아지는 자기 노래를 증폭하는 굴을 
판다. 메가폰처럼 생긴 원뿔 모양의 이 쌍굴은 수컷이 땅밑에서 
연주하는 노래를 밖으로 이끌어내어 600m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한다.
 
 [  개미와 벌의 운반 능력 ]
  개미는 자기 몸무게보다 50배나 더 무거운 것을 들 수 있고 벌은 
자기보다 300배 더 무거운 것을 운반할 수 있는데, 인간으로 보면 
10톤짜리 트레일러를 끌어야 하는 것과 같다.
 
 [  개미의 IQ는  ]
  개미는 기억도 생각도 못한다. 그러나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예를 
들면 미로를 사용한 실험에서 개미는 빠르고 정확한 기억을 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
 
 [  가장 예민한 후각 ]
  자연에서 보게 되는 가장 예민한 후각은 수컷 산누에나방(Eudir 
pavonia)의 후각이다. 독일에서 1961년 행해진 실험에 의하면 이 
나방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11km나 떨어져 있는 암컷이 풍기는 
암내도 맡는다고 한다. 암컷 나방은 고가 알코올의 하나로 알려진 이 
냄새 물질을 0.0001mg에도 못 미치는 극소량 지니고 있다.
 
   재봉개미의 둥지와 부화
  아프리카 열대 지방에 사는 재봉개미는 자신의 유충을 도구로 
사용한다. 유충은 끈적거리는 실을 자아내는데, 개미는 이 실로 
잎사귀를 엮어서 둥지를 만든다. 재봉개미는 유충이 건설에 한 몫 
차지한 이 둥지 안으로 옮겨서 부화하게 된다.
 
 [  개똥벌레를 나타내는 말 ]
  개똥벌레를 나타내는 데는 'firefly'와 'glowworm' 두 가지를 
쓰는데, 앞의 것은 수컷, 뒤의 것은 암컷을 뜻한다.
 
 [    제21장-생물, 미생물 ]
 [  당신은 결코 고독하지 않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는 단지 '우리 가족'만이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쥐, 산쥐, 두꺼비, 노래기, 박쥐, 딱정벌레, 좀벌레, 무당벌레, 
진딧물, 청파리, 장수말벌, 책좀, 바퀴벌레, 등의 많은 생물들과 공동 
생활을 하고 있다.
 
 [  진주를 만드는 고통 ]
  조개가 진주를 만드는 데는 5--10년이란 세월이 걸린다. 성숙한 
진주는 외부로부터 물체가 조개에 자극을 주면 조개의 체내에서 이상한 
분비가 새긴다고 한다. 진주 한 알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조개는 10년 
동안 이물질과의 싸움에서 오는 고통과 아픔을 참아야 한다.
 
   개구리 사촌인가?
  중미의 발실리스크 도마배은 강이나 호수 주벼에 있을 때 위험이 
닥치면 수면 위로 뛰어 달아날 수 있다. 이 도마뱀은 시속 12km의 빠른 
속도와 몸무게를 지탱해주는 물갈퀴가 달린 발가락 때문에 물에 빠지지 
않으며, 폭400m의 호수를 가로지르기도 한다. 이와 같이 항여 약탈자를 
쫓아내지 못하면 빠른 속도로 헤엄치거나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오랫동안 잠수하기도 한다.
 
 [  거미는 거미줄에 걸리지 않는다 ]
  거미는 발에서 특수 윤활류가 나와 발이 거미줄에 달라붙는 것을 
방지한다.
 
 [  거미의 진동 감지기 ]
  거미는 다리에 공기의 흐름이나 진동을 감지하는 미세한 털을 가지고 
있다. 진동을 감지하는 다른 기관들은 몸 전체에 퍼져 있는 틈새에 
위치한다. 어떤 거미는 그물에 먹이가 걸렸을 때 빨리 알 수 있도록 
대부분의 진동 감지기를 다리 마디 사이에 가지고 있다.
 
   뱀의 청각
  뱀은 귀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들을 수가 없다. 그러나 혀가 
음향에 극도로 민감하여 계속해서 혀를 내둘러 음파를 파악한다.
 
 [  지렁이의 재생력 ]
  지렁이는 한몸에 중요한 기관이 여러 개 있으므로 반으로 잘라도 곧 
두 마리의 지렁이로 재생되어 살 수 있다.
 
   빈대의 번식
  빈대는 단위 생식을 하므로 암컷 빈대는 정자 없이도 알을 생산할 수 
있다.
 
   어류의 비늘
  물고기는 일생 동안 같은 수의 비늘을 가지고 있으며, 몸이 자람에 
따라 비늘의 크기도 자란다.
 
   달팽이의 세계
  달팽이는 일생에 한 번 교접을 하는데, 교접은 무려 12시간이나 
계속된다. 수명은 2년 정도 되고 14,175개나 되는 이를 가지고 있으며, 
달팽이가 배설하는 무채색의 점액질은 기어다닐 때 보호막이 되어준다. 
가령 달팽이들이 면도날 위를 기어갈 때도 몸이 잘려지지 않는 것은 
달팽이의 몸 아래에 붙어 있는 이 배설물 때문이다.
 
   생물의 번식 기간
  세균은 다른 미생물처럼 암수의 교접이 없이 몸이 둘로 분해되어 
번식한다. 태어난 지 20분만에 또 다른 세균을 생산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24시간이 지나면 한 마리의 세균이 약 40억의 자손을 번식시키는 
셈이 된다. 아메바는 약 2일이면 다른 아메바를 번식시키며 파리는 
태어난 지 하루면 다른 파리를 번식시킨다. 그러나 코끼리는 태어난 지 
15년이 지나야 완전히 성숙하며, 악어는 16년이 지나야 성숙되어 
새끼를 낳을 수 있다.
 
   달팽이의 겨울나기
  달팽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잠을 잔다. 겨울 동면 기간인 몇 달 
이외에도 뜨거운 태양과 폭우를 피하기 위하여 껍질 속에 기어들어가 
잠을 자는데, 그 이유는 뜨거운 태양열이 달팽이를 말려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고, 폭우는 달팽이를 완전히 침수시켜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달팽이는 살기 위하여 잠을 자는 것이다. 심지어 사막의 어떤 
달팽이들은 3--4년 동안 잠을 자기도 한다.
 
   최초의 미생물학자
  17세기의 모든 현미경 학자 중에서 가장 특이할 만한 인물은 
한평새을 델프트 시청의 하찮은 청소부로 지낸 안토니 반 뢰벤호크를 
꼽을 수 있다. 스스로 현미경을 만든 뢰벤호크는 처음으로 정충을 
관찰한 사람인데 음란하다고 여겨질까보아 매우 조심하면서 그의 
발길을 보고 하였다고 한다. 그는 또 세균으로 여겨지는 생체 구조를 
최초로 발표한 사람이다. 그 후 뢰벤호크가 스스로 제작한 현미경처럼 
분명하고 선명하게 확대할 수 있는 현미경이 고안될 때까지 1세기 동안 
아무도 세균을 관찰하지 못했다.
  
 [  늑막폐염 유기체 ]
  독립 생활에 필요한 모든 화학 성분을 내포한 생명체 중에서 
현재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미세한 생명체는 '늑막폐염 유기체'라 
불리는 세균이다. 세균은 너무 작으므로 2.5cm 길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2천만 개의 세균이 일렬로 늘어서야 할 정도이다.
 
 [  가장 빠른 세균 ]
  막대 모양으로 생긴 브델로비브리오박테리오보라스라는 세균은 
극편모를 이용하여 초당 100번 회전하며, 1초에 자기 몸 길이 
2^356,134,4,134^의 50배를 움직인다. 사람으로 볼 때, 이는 단거리 
주자가 시속 320km로 달리며 수영 선수가 영국 해협을 6분에 
가로지름과 같다.
 
 [  물 한 방울 속의 세균의 수 ]
  자유 생명체 중 가장 왜소한 세포 조직체인 세균은 사실상 굉장히 
적다. 물 한 방울 속에는 5천만 개의 세균이 서너 번만 분열한다고 
해도 그 수는 기하학적으로 커질 것이다.
 
   바실러스 서브틸리스의 번식
  세균의 한 종류인 바실러스 서브틸리스는 20분마다 한 번씩 분열할 
수 있다. 2분법에 의해 간단히 분열하는 이 세균은 적절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한 마리가 8시간 안에 무려 1,600만 마리로 분열한다.
 
   세균 번식의 조건
  사람의 몸 안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세균은 따뜻하고 습한 환경 
속에서도 잘 번식한다. 따뜻한 물로 목욕이나 샤워를 하면 수많은 죽은 
세균을 씻어내지만 살아 남은 세균의 번식률은 20배나 더 증가시킨다.
 
   산파 두꺼비라는 이름의 유래
  산파 두꺼비라는 이름은 새끼를 안전하게 부화시키기 위한 수컷의 
행동에서 비롯되었다. 암컷이 깐 줄 모양으로 연결된 알을 수정시킨 
다음 수컷은 뒷다리로 알을 끌어안고 수주 동안 적절한 습기를 
유지하고 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가는 곳마다 끌고 다닌다. 알이 
부화될 때가 되면 뒷다리를 연못에 담그고 갓 태어날 올챙이를 물로 
출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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