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책 3
폴임 지음
차례
제22장 우주, 지구, 공간, 천문학
제22장-우주, 지구
우주마라톤
우주 비행사의 입국 세관 보고
우주 쓰레기
우주 항공사의 카메라
우주 대폭발
가장 가까이 접근한 혜성
인간이 탄생되기까지의 머나먼 길
태양 표면보다 높은 온도
제22장-공간, 천문학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
인류가 멸망할 가능성
평화를 가져다준 일식
천왕성은 왜 누워 있는가?
달은 항상 떨어진다
태양이 빛나는 이유
화성이나 프록시마 센토리에 가려면
42년 동안의 낮과 밤
태양이 선 것인가, 지구가 선 것인가?
제23장 음향, 항공, 속도
제23장 음향
사람과 동물 중 청각 기능이 우세한 쪽은?
경적에 따라 달리 보이는 색깔
전화가 필요 없는 지역
85데시벨이 넘는 소리는
제23장-항공
논스톱 보이저
처음으로 우주 여행을 함께한 부부
갓난아이의 우주 탐험 임무
비둘기를 이용한 항공사의 정보 교환
라이트 형제와 보잉 747
747 점보 제트 여객기가
제23장-속도
거북은 토기에게 이길 수밖에 없었다.
왜 밤에 차가 더 잘 달릴까?
잉카의 우편 배달
총알은
제24장 과학, 과학자 발명, 발견
제24장-과학
뉴턴의 사과
반짝이는 보석의 분무
레이저 광선의 위력
먼 곳에서 더 빨리 소리를 듣는다
전자오븐은 어떻게 음식을 데울까?
세숫대야 하나에 차는 물
캄캄한 밤의 벨소리
감기 걸리는 컴퓨터
제24장-과학자
아인슈타인과 루스벨트 대통령
미친 과학자와 노벨상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은 잘못되었다
디킨스의 취침자세
성적이 부진했던 천재들
파스퇴르의 강박관념
퀴리 가족의 영예
빛을 이용한 적군 퇴치
제24장-발명
전화를 이용한 최초의 대화
사람은 한 번에 378개의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
죽은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기계
에디슨과 전기 의자
차는 역시 벤즈
플라스틱 자동차
콜라로 움직이는 자동차
양털 깎는 로봇
색을 분해하는 로봇
사과 컴퓨터
실리콘 칩의 용량
크로노미터를 발명한 독학 기술자
제임스 와트는 증기 기관을 발명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모터
혈액으로 콘크리트를 만든다
종이 건전지
기차를 발명한 사람
제24장-발견
실수로 발견한 경화 고무
항생제의 발견
페니실린의 발견
제25장-음악
슈베르트의 제6번 교향곡
미국에서 가장 거대한 음악제
천재 음악가들
음악가의 죽음
카라얀, 지휘의 제왕
300년 동안의 비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노래
9번 교향곡의 희생자들
피아노가 없는 피아노 연주회
근시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긴 피아노 연주
하버드의 응원가가 나치의 행진곡으로
악보를 쓸 줄 모르는 음악가
제26장-물리, 화학에너지, 광물
제26장 물리, 화학
원자 폭탄의 시조는 아인슈타인 아니었다
종이 원자 폭탄
꼬마와 뚱보
골프공은 왜 울퉁불퉁한가?
먼지는 폭발한다
빛은 얼마나 뜨거운가?
유리가 깨어지는 속도
빛에 의한 색소 표백
공기도 무게가 있다.
샴페인잔에 떨어진 건포도
계란의 신선도 실험
빨리 달리는 차가 연료를 절약한다
구토물, 찌꺼기 등으로 고급 화장품을 만든다.
유리는 고체인가, 액체인가?
소금을 화학적으로 분해하면
제26장-에너지
번개의 온도
번개가 한 번 번쩍일 때
런던시의 가로등
칵테일 파티
전자와 양전자
에너지의 크기
제26장-광물
손안에서 녹는 금속
완벽한 보석 다이아몬드
옷감 1파운드가 금 1파운드보다 더 무겁다
바닷속에는 수백만 톤의 금이 있다
어떤 여인의 살해 동기
백만 파운드의 불상
철 1파운드에는
생물의 사체가 압축, 퇴적되면
가장 무거운 원소
연필 하나로
제27장 고대, 고고학
제27장-고대
법적으로 허용되는 살인
나체 육상 선수의 우승
아내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하여
음높이로 양을 측정한다
여자는 결혼을 해야 사람이 된다
페키비안의 반란
누가 더 일을 많이 하는가
제27장-고고학
아담과 노아 홍수
이사야의 발견
가장 뚜렷한 화석
검은 돌
우표 한 장이 10만 달러
2백 년의 화려한 잠에서 깨어나다
이스터섬의 신비한 석상들
제28장-미술
모나라지의 주인공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담배 연기 때문에 살아났다
피카소의 괴벽만 아니었어도!
무명 시절의 피카소
20년 동안 은닉되었던 누드화
경매에 부쳐진 가장 큰 그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정글에서 자살한 폴 고갱
만약에 복권에 당첨된다면
56세에 연 첫 개인전
'마른 사람'이 성낭갑 속에
아버지의 이름을 빌린 작품
명작을 얻기 위한 몸부림
길이가 5Km나 되는 캔버스
뛰어난 그림 날조자
가짜 그림을 산 나치의 지도자
교수대가 된 동상
세계에서 가장 큰 갤러리
하나의 인물화 때문에 추방당한 화가
파리의 자유의 여신상
인생은 70부터인가?
장난 때문에 치료된 실어증
형편없는 색칠놀이
추상화의 첫 등장
제29장-단테의 신곡
제 30장 스포츠
달리는 기관차 아베베
20개의 세계 신기록과 9개의 금메달
최초의 여성 권투 시합
누가 승자인가?
세계 최대의 대결
천재 복서 에디 이간
1시간에 125개의 홈런을 날리다
첨단 부정 출발 탐지기
테니스에서 쓰는 Love
73세에 올림픽에 출전하다
야구 선수 박찬호
금메달의 가치
조지 포먼의 현재 직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제31장 건축
세계 유일의 아름다운 사리탑
고층 건물이 없는 미국의 수도
얼음 궁전에서의 사랑
절벽을 깎아 만든 무덤
화장실 없는 궁전
3명만 수용하는 교회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에펠탑
유럽에서 가장 큰 요새인 크레믈린
1년에 한 번 개방되는 에메랄드 사원
존재하지 않는 둥근 지붕
암석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오마르 성원
부처의 일생을 조각한 보로부다르 사원
백악관의 내력
세계 최대의 종교 건축물
펜타곤
고속도로 공사 비용
제32장 경제, 화폐, 오락, 대학교
제32장-경제, 화폐
수에즈 운하 매수
그렇다면 나도 재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스피린과 경제
책은 정신의 양식이다
미국에서 발행된 첫 동전
하나님께 버림받은 동전
달러의 얼굴
영혼을 가진 돈
도자기로 만든 동전
아직도 살아 있는 히틀러의 예금
제32장-오락, 대학교
단 한 번의 승부
바둑의 수
자연 속에 우뚝 선 대학교들
이화여자대학교와 민비
세계에서 가장 큰 대학교
제33장-미국의 라이프 스타일
자동차 사고에 무감각해진 미국인들
성취만이 인생의 목표였나?
외설물에 소비되는 돈
18세기의 평균 수명
전쟁과 학살의 차이
인공 수정과 신생아
건강한 정자를 팝니다!
청교도들의 노예 무역
포상금 걸린 인디언 두개골
세계 제일의 살인율
마약 판매액
세계에서 강간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나라도
미국과 소련에서 하루에 일어나는 사건들
오늘날 미국의 교도소는
제34장 결혼, 라이프 스타일, 유행
제34장-결혼
금욕은 죄의 원인
하루 만의 이혼
400명의 남편을 가진 여자
연상의 여인과 결혼한 사람들
독신주의자들
나는 당신과 이혼한다
제34장-라이프 스타일
어떤 황제의 인생
목욕을 규제하던 중세
단백질 섭취를 위하여 식인하던 사람들
처녀를 입증하는 방법
북소리로 사람을 구별한다
인디언 여성들은 고문의 고수인가?
수염을 기르려면 세금을 내야 한다
옷이 필요없는 사람들
이혼율이 가장 높은 나라
아내를 빌려주는 예우
에스키모인들도 냉장고를?
가솔린보다 엄청나게 비싼 수박 값
돌베개를 베고 자도 잠만 잘 온다
매독의 역사
잠옷은 왜 잠옷인가?
제34장-유행
전미국을 휩쓴 블루진의 비밀
대통령이 퍼뜨린 유행
지팡이에서 향수 냄새가 난다
거지들의 흉내
제35장 대통령, 왕과 여왕
제35장-대통령
대통령을 체포하라
라스베가스의 레이건
누드 모델 대통령
대통령의 부채
애꾸눈 대통령
팔자 좋은 대통령
유일한 GI 대통령
링컨 대통령의 계승자
제35장-왕과 여왕
노래하는 네로 황제
남자끼리 치른 결혼식
키작은 남자와 발이 큰 여자
문둥이에게 입맞추는 황제
뒤바뀐 아기의 황제 등극
공민왕은 호모였다
팔방 미인 아크바 황제
재위 기간이 가장 길었던 왕과 여왕들
발레에 출연한 루이 14세
크레믈린의 저주받은자
글을 쓸 줄 모르는 유능한 황제
정략 결혼에 의해 건설된 합스부르크
나폴레옹의 이력서
알렉산더가의 비운
왕관을 전당잡힌 왕
목욕 횟수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영국 여왕
여왕도 역시 여자이기에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자손은 따로 있다
청소부와 황후
여황제의 공식적인 애인과의 섹스
처형을 위한 예행 연습
생후 6개월의 여왕
제36장 영화, 영화배우
제36장-영화
스칼렛 오하라 역을 찾아라
마지막 황제
쉰들러 리스트
트럭 운전사가 대스타가 되다
한 번 출연에 5백만 달러
가장 큰 영화관과 가장 작은 영화관
인기 배우가 나오지 않는 영화
로널드 레이건 부인의 키스
제36장-영화 배우
실베스타 스탤론의 출연료는 티셔츠 25벌
탈세 혐의로 복역한 소피아 로렌
고학력 영화 배우
주유소에서 일했던 영화 배우들
웨이터로 일했던 영화 배우들
코미디언 재벌
한국의 밥 호프
D학점의 영화 제작자
영화 배우의 오기라는 것
국회 훈장을 받은 에디 머피
반전주의자 제인 폰다
이발소에서 일했던 영화 배우들
제37장 대학생이 보는 만화
제38장 영어 단어
월프레드 윙크 박사가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의미의 단어들
다음을 정확하게 발음해보라.
성적 흥분의 수단이 되는 단어들
영어 단어의 명세성
외국어가 영어로 된 것
500의 얼굴을 가진 Set
동물의 집단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들
빛이 있는 곳
가장 긴 영어 단어는
영어의 적극적인 사용법과 소극적인 사용법
결혼 기념을 나타내는 단어들
[ 폴 임 ]
1940년 12월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응용심리학을 공부,
조지아주에서는 종교심리학을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20년 동안 우주에 속한 가장
가치 있고 흥미 있는 사실들의 기록을 수집해왔으며,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와 하와이에
거주하면서 더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전념중이다.
[ 제22장 우주, 지구, 공간, 천문학 ]
[ 제22장-우주, 지구 ]
[ 우주마라톤 ]
소련의 발레리 리유민은 어떤 사람보다도 가장 오래 우주 속에서 살았던 사람으로,
거의 1년 가까이를 견디어냈다.
1979년 여름, 소련의 비행사 리유민과 블라디미르 라코프는 우주 정거장 샤루트 6호에
탑승하여 연속적으로 175일 동안을 지낸 다음 소련의 카자흐스탄 근교로 귀환하였다.
1년 후 리유민은 우주 비행사 리오니드 뽀포프와 함께 또다시 우주로 발사되었다.
이번에는 전번의 기록을 갱신하여 185일 동안 우주에 머물렀는데, 결국은 총 360일을
우주에서 보낸 것이다. 이로 인하여 두 가지 목적이 달성되었는데, 지속적으로 인체에
중량이 주어지지 않으면 어떤 영향이 있는가를 조사하는 것이 그 한 가지였다.
1979년 두 비행사가 우주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안락의자에 앉아서 밖으로 나왔다.
중력이 작용하는 곳에서의 생활 감각을 다시 익혀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걷는 법이라든가, 물을 마시는 행위에 다시 적응해야 했다. 그들은 환영객들이 던진
작은 꽃다발을 집어드는 데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으며, 며칠 동안은 아침에 일어나
침대 밖으로 나올 때 수영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1980년 10월 11일, 리유민이 두번째 여행에서 지구로 돌아왔을 때 그의 균형 감각은
첫번째에 비해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는데, 아마도 리유민과 뽀포프가 매일 운동을
하고 올바른 식사를 하도록 노력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리유민은 아무런 보조 수단도
없이 우주선 밖으로 걸어나올 수 있었으며, 무중력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떠나기 전보다
5Kg나 몸무게가 늘었다.
[ 우주 비행사의 입국 세관 보고 ]
미국에 입국할 때에는 반드시 세관을 거쳐야 하는데 예외적으로 우주 비행사들이
지구로 귀환했을 때에는 세관을 거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우주 비행사들은 품목
명세서를 한 장 제출해야 했다.
1969년 7월 24일 아폴로 11호를 타고 역사적인 달 착륙을 수행하고 돌아온 3명의 우주
비행사인 닐 암스트롱, 버즈 앨드린, 마이클 콜린즈는 하늘에서 바다로 떨어졌다.
그들은 하와이를 거쳐서 들어왔는데, 여러 가지 종류의 달 암석과 흙을 가지고 왔다.
얼마 후 휴스턴에 있는 NASA중앙본부에서 우수갯소리로 세관 보고를 하였느냐고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물론 대답은 'No!'였지만, 그들은 미국 세관의 규격 용지에 달
암석과 흙에 관한 명세 보고를 하도록 요청받았다. 세 사람이 서명한 한 보고서는 미국
세관 호놀룰루 지부로 보내져 보관되었다.
은하수 M-82의 폭발
사진을 통하여 은하수 M-82를 보면 중심부에서 뭔가가 끓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바로 폭발할 조짐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마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분출된 수소는
은하수 M-82의 중심부에서 바깥쪽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폭발은 1억
5천 년간 지속될 것이다.
별의 회전
우리의 은하계에 있는 모든 별들은 매 2억 년마다 한 번씩 은하계의 중심을 기점으로
회전한다. 반면 그 중심부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지구와 다른 태양계의
행성들도 은하계의 중심을 기점으로 초당 약270km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 우주 쓰레기 ]
지구 주위에는 약 1,200개의 인공위성이 있는데, 이에 덧붙여 거의 3,500개에 달하는
우주 쓰레기가 있다. 그 중에는 다 쓰고 버려진 로켓, 부서진 인공위성 조각, 나사못,
도자기의 파편, 우주선에서 벗겨진 금속막 등이 있는데 이 모든 쓰레기와 인공위성등은
모두 NASA에 의해 계속적으로 탐지되어 기록되고 있다.
콜로라도 록키 산맥 아래의 깊숙한 곳에 15개의 육중한 건물로 이루어진 NASA는
레이다, 천체 망원경, 또는 다른 탐지기에 잡힌 수신을 하루에 3만 건 이상 컴퓨터
시설로 처리하고 있다. 베이커 넌 천체 망원경에 달린 카메라는 32,000km 밖에 있는
농구공 크기밖에 안 되는 물체로부터 나오는 광선을 사진 찍을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우주 쓰레기를 감시하는 이유는 그레이프푸르트만큼 작은 쇳조각이라도 지구에
떨어졌을 때는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무서운 것은 적국의 레이다망에
잡히게 되면 미사일로 오인되어 보복 공격의 빌미를 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기회는 아주 적다. 지구 궤도에 있는 4,698개의 물체 중 어떤
것들은 4,800km 이상 떨어져 있어서 중력의 영향을 받을 기회가 아주 희박하다.
이것들은 아마도 몇백 년 혹은 몇천 년 동안 안
전하게 우주 속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구에 가까이 있는 것들은 하루에 1개
이상 지구로 떨어지지만 대기권에 들어오는 순간 모두 연소된다. 그런데 1979년 7월에
스카이랩의 부스러기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어느 지역에 떨어진
경우도 있었다.
NASA에서는 크기가 너무 작아서 탐지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고 말하는데, 이러한
것들도 간간이 자취를 드러낸다. 최근에는 지구 궤도를 순회하는 장갑이 있다는 사실도
보고되었다.
[ 우주 항공사의 카메라 ]
미국 우주 항공사의 마이클 콜린즈가 우주를 여행하다가 떨어뜨린 스웨덴제
하셀브라드 카메라는 영원한 미아가 되어 계속 지구를 돌고 있을 것이다.
[ 우주 대폭발 ]
우주 대폭발 때의 온도는 1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 도나 되었을 것이다.
큰 것은 일찍 죽는다
거대한 별들은 빨리, 그리고 아주 격렬하게 타는 반면 그 삶은 매우 짧다. 우리에게
Type 2 초신성이라 알려져 있는 'Sanduleak-69도 202'의 크기는 태양의 20배이다.
따라서 그것의 삶은 태양보다 짧은 1천 1백만 년밖에 되지 않는다.
첫 천만 년 동안 이 별도 태양처럼 핵반응 때 수소를 태워 헬륨을 방출시키게 된다.
수소가 어느 정도 태워졌을 때 이번에는 헬륨이 타기 시작하고, 곧 산소와 탄소를
함유한 다른 원소들로 변형된다. 그리고 이 별의 외각 부분이 부풀어올라 적색
초거성으로 된다. 만일 태양의 자리에 놓여진다면, 지구의 표면과 맞닿을 만큼 거대한
별이 된다. 헬륨이 다 타면 이 별은 남빛으로 변하면서 뜨거워지고 크기가 약간
축소되는 현상을 보이면서 헬륨이후 탄소, 그리고 다른 물질들을 연속적으로 태우게
된다. 그러다가 죽기 1주일 전 이 별의 중심부는 화성만한 크기의 철덩어리(이때의
밝기는 태양의 8만 배이다)로, 곧 대격변이 일어나서 위에 언급된 여러 반응들도
종결되고, 중심부는 아주 많은 '중성미자'를 방출시키며 무너져내린다. 결국 별의
외곽층들은 폭발해 두꺼운 가스층과 파편들과 방사선을 배출하고 별 자체는 갈기갈기
찢겨지게 된다.
[ 가장 가까이 접근한 혜성 ]
혜성에 관한 가장 오래 된 기록은 기원전 7세기까지 올라간다. 1770년 7월 1일
렉설(Lexell) 혜성은 태양에 대하여 초속 38.4km의 속력으로 지구에 1,192,000km까지
접근했다. 지구는 가장 최근의 기록으로서 1910년 5월 19일 헬리 혜성의 꼬리를
통과하여 지나갔다고 알려져 있다.
지구와 별과의 거리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별은 148,720,000km 떨어져 있는 태양이며, 태양
다음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별은 40조 킬로미터(4.3광년) 떨어져 있는 알파
센토리인데, 이 별은 하나의 별이 아니라 세 별이 합쳐져서 하나의 별을 이루고 있다.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은하는 200,000광년 떨어져
있는 성운이다.
여러 가지 천체
'소행성'
화성과 목성 궤도 사이에 있는 작은 행성들을 소행성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기우세피 피아지라는 천문학자는 1801년에 첫행성 케레스를 발견하였다. 그 이후로
수천 개의 행성들과 2,000개 이상의 궤도가 발견되어왔다. 대부분의 소행성들은 직경이
겨우 몇 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 조그마한 바위에 불과한 반면, 케레스는 직경 770km를
지닌 최대의 소행성이다. 최근에 직경이 960km나 되는 소행성이 발견되었다.
'블랙 홀'
별이 소멸하기 직전, 그 중심부에서 방출된 에너지는 중력의 영역을 헤쳐나가기에는
미약하기 때문에 결구 자체내에서 붕괴되고 만다. 그리고 붕괴되기 전 방출된 에너지는
기온 상승과 축소 현상을 보이며 수축되다가, 결국 몇 킬로미터의 지름을 지닌 구형
물체로 종말을 고하게 된다, 그러나 구형체가 굉장히 크다면, 이 구형체가 미치는
중력의 영역은 실로 강력해서 어떤 물체라도 심지어 빛조차도 삽시간에 빨려들어가
흔적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블랙 홀이다. 천체물리학자들에 의하면
우리의 은하계 속에는 10억 이상의 블랙 홀이 존재한다.
'혜성'
혜성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태양계의 일원이다. 혜성의 핵은 직경 수킬로미터로
냉동 가스와 수많은 먼지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혜성은 항상 꼬리를 뾰족하게 하고
태양으로부터 멀어진다. 에드먼드 헨리(1656-1742)는 처음으로 혜성이 무엇인지를 알린
천체학자였다. 그리고 그 혜성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헬리 혜성이라고 지칭했다.
또한 헬리 혜성은 1758년에 재등장한다고 예언했는데 그의 예언은 정확했다. 종종
마크 트웨인의 이름도 헬리 혜성에 연루되는데 그 이유는 마크 트웨인이 태어난 때와
그가 운명했던 1910년에 헬리 혜성이 하늘에서 빛났기 때문이었다. 헬리 혜성은
매77년마다 모습을 드러내는데 1986년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리고 앞으로 2063년에
또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유성'
중력에 의해 지구로 떨어지는 금속이나 암석으로 된 작은 파편인 유성은 초당 72km의
속력으로 지구 표면을 향해 급강하한다. 그러나 급강하할시 공기와의 마찰로 유성의
기온이 급상승 되므로 결국 땅에 떨어지기 전에 산산조각나 흩어지게 된다.(땅에
도달한 유성은 운석으로 불려진다) 유성은 뒤에 불꽃 꼬리를 달고 떨어지는데, 이것은
다른 것들과 유성을 식별해 주는 특징이기도 하다.
'은하수'
별들의 거대한 군단인 밀키 웨이라고 불리는 은하수는 천억개로 이루어진 별들의
무리이다. 그리고 이 방대한 무리에 비하면 태양은 수많은 크고 작은 별들 중에서 단지
중간보다 조금 더 큰 별에 불과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소재한 마운트 팔로머
천문대에서는 약10억의 은하들을 볼 수 있다.
'신성'
주목되지 않던, 따라서 관측되지도 않던 별이 갑자기 평소 때보다 몇 배의 빛을
발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의 별은 신성이라고 부른다. 이 새로운 별은 일정
기간-몇 달에서부터 몇 년까지-이 지난 후에 희미해진다.
'혹성'
별 주위를 도는 물체는 빛을 발산하지 않는다. 태양계에는 9개의 혹성이 존재하는데
지구도 그 중 하나의 혹성이다. 근처에 있는 별들의 움직임이 불규칙하다는 사실은 그
별들 또한 혹성들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맥동성'
맥동성은 초신성이 폭발할 때 부서진 조각들로 이루어진다. 맥동성은 20km의 직경을
가지고 있으며, 생성시 초당 1,000번 정도 회전을 거듭한다. 1967년에 발견된 최초의
맥동성은 놀라울 정도로 규칙적인 진동률을 보여준다 하여 다른 ET로부터 날아든
'의미있는 신호'로 해석되기도 했다.
'퀘이사'
준성 혹은 항성상 천체라고도 불리는 퀘이사는 그 중심부에서 방대한 에너지를
방출해내는 은하의 일종이다. 1960년대 초기에 발견된 '30273'이라는 퀘이사는 1초에
299,792km의 속도로 빛을 보내고 있다. 빛이 퀘이사로부터 지구까지 오는 데에는
적어도 100억 년 정도 걸린다. 하나의 퀘이사는 적어도 태양보다 100조 배 더 많은
에너지를 방출해내고 있는데, 이러한 에너지는 블랙 홀로부터 공급받는 것으로
추측된다. 1970년대에 와서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천문대에서 500개 이상의 새로운
퀘이사를 발견하였다.
최근에 발견된 퀘이사 OQ172는 이제까지 발견된 것보다 상당히 멀리 - 지구로부터 약
100억 광년 정도 - 떨어져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초신성'(별들의 죽음)
초신성은 별의 폭발을 말하는데, 이때 별은 지니고 있던 대부분의 물질을 우주 속으로
내보내고 사멸된다. 최고도에 있을 때, 초신성은 태양의 수천만 배에서 수억 배
정도까지 밝다. 오늘날 우리가 클랩 네브라라고 부르는 것은 1054년 7월 4일 처음으로
보여진 초신성의 파편이다. 근 2년 동안 클랩 네브라의 밝기는 너무 엄청나서 낮에는
도저히 육안으로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 후 클랩 네브라의 빛은 희미해지다가
사라졌다 한다. 많은 유럽인들은 그 현장을 지복천년이 끝나고 심판의 날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경고라고 여겼었다.
지금으로부터 16만 년 전 어느 은하에서 어떤 별이 폭발했는데, 1987년 2월에야 그
빛을 볼 수 있었다. 태양이 60억 년 전에 탄생했다고 본다면 지금은 청년 시절이어서
앞으로 적어도 100억 년은 더 살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별들은 태어나고 죽는다.
'위성'
혹성을 도는 물체로, 현재까지 밝혀진 자연 위성들의 크기는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화성의 작은 위성 데이모스의 직경은 8km인 데 반해 목성의 거대한 위성
제니메드는 5,000km 정도의 직경을 가지고 있다.
'별'
자체에서 빛을 내뿜는 물체로서, 그 중심부는 가스로 가득차 있다. 태양도 별의
일종이다.
[ 인간이 탄생되기까지의 머나먼 길 ]
우주의 탄생: 145억 년 전
태양과 지구: 46억 년 전
프리모다이얼 숩(아미노산 같은 것들): 40억 년 전
유전 인자(DNA): 39억 년 전
세포: 38억 년 전
초록색의 조류: 32억 년 전
세포의 핵: 14억 년 전
바이러스: 13억 년 전
원생동물: 12억 년 전
섹스: 10억 년 전
해면동물: 9억 년 전
조개: 6억 5천만 년 전
게, 새우, 가재: 5억 5천만 년 전
낙지: 5억 5천만 년 전
물고기: 5억 년 전
이끼, 고사리: 4억 3천만 년 전
지네: 4억 2천만 년 전
양서류: 3억 9천만 년 전
곤충: 3억 5천만 년 전
파충류: 3억 4천 5백만 년 전
포유동물: 2억 2천 5백만 년 전
공룡: 2억 2천 5백만 년 전
캥거루: 1억 3천 6백만 년 전
코끼리: 1억 년 전
쥐: 6천만 년 전
토끼: 5천 5백만 년 전
새: 1억 9천 5백만 년 전
꽃: 1억 년 전
공룡의 멸종: 6천 5백만 년 전(공룡이 멸종하자마자 출연한 것이 원숭이)
원숭이: 6천 5백만 년 전
인간: 2천 만 년 전(아프리카)
인간이 걷기 시작: 6백만 년 전
여성: 4백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10만 년 전(인류의 출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네안데르탈인: 5만 년 전(독일의 네안데르탈에서 유골이 발견된 구석기 시대 원시
인류)
미국 인디언: 3만 5천 년 전(몽고에서 시베리아를 거쳐서 알래스카까지 왔고 또
여기에서 미국까지 이주해왔다)
지구는 푸른색
세계 최초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있을 때 어두운 우주
공간 속에서 빛나는 지구의 모습에 감탄한 말이다. 그는 300km 위의 공간을 29,000km
속도로 1시간 48분 동안 선회하고 지구에 귀환하였다.
산소 없이 타는 태양
지구에서는 산소 없는 연소 작용이란 있을 수 없다. 연소란 연소물에서 나오는 탄소와
산소 원자 사이의 화학 작용이고, 그 결과 이산화탄소와 빛과 열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우주 공간에는 산소가 전혀 없는 것을 생각할 때 어떻게 태양은 계속 타오를 수
있을까?
지구에서의 연소와 태양에서의 연소는 서로 다르다. 태양의 연소는 수소 폭탄의
연소와 유사한데, 수소가 헬륨으로 변할 때 약간은 에너지로 변한다. 그래서 태양은
산소가 없어도 끊임없이 타오르며 빛과 열을 낼 수 있는 것이다.
태양 에너지
태양의 지름은 1,384,000km로 지구의 약 109배나 되고 그 부피 또한 무려
1,300,000배나 된다. 즉 태양 속에는 지구가 1,300,000개나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태양은 지구와 달리 수소와 헬륨으로 되어 있어 지구보다 훨씬 가볍다. 언제나
불타오르고 있는 태양은 1초에 100,000메가톤(1메가톤은 1,000,000톤)의 TNT와 같은
에너지를 방출하고, 이때 4,000,000톤의 수소를 소모한다. 이것은 지구가 태양에서
100년 동안 받는 에너지의 양과 같다. 또 인간이 태어난 이래 소비한 모든 에너지보다
훨씬 많다. 태양이 생긴 뒤부터 지금까지 방출한 에너지는
17,280,000,000,000,000,000,000 톤의 수소를 태우는 것과 맞먹는다.
태양과 지구
태양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로 150,000,000km 정도 떨어져 있다. 태양에서
보내주는 열과 빛이 없이는 지구의 생명이란 존재할 수 없다. 태양의 빛이 태양에서
지구까지 도착하는 데는 8분 30초 걸린다. 지구의 지름이 12,800km라면 태양의 지름은
1,384,000km 로 100배가 넘는다.
이 거대한 공은 근본적으로 큰 수소 덩어리로 표면 온도가 6,000도이고 내부 온도는
13,900,000도에 달한다. 태양은 지구와 같은 방향으로 돌고 있지만 속도는 다르다.
태양도 지구처럼 한축을 중심으로 시계 도는 방향으로 회전한다.
지구는 한바퀴 완전히 도는 데 24시간이 걸리고 태양은 30시간이 걸린다. 또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것처럼 태양도 은하계를 중심으로 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바퀴 도는 데는 1년이 걸리고, 태양이 1초에 240km의 속도로 달려서 은하계를 한바퀴
공전하는 데는 2억 2천 5백만 년이 걸린다.
10년이면 태양에 갈 수 있다
만약 우리가 1시간에 1,600km로 달린다면 태양까지 가는 데(약 149,000,000km)는 10년
7개월 정도 걸릴 것이다.
태양과 지구의 속도
지구는 1초에 29km 속도로 여행하면서 태양을 한바퀴 도는 데 1년이 걸리고, 태양은
1초에 240km 속도로 은하계를 도는 데 225,000,000년이 걸린다.
New Flash
지구에서 이 현상을 알게 되기까지 17만 년이 걸렸다. 1987년 2월 23일, 오하이오와
일본에 있는 중성미자 탐지기가 처음으로 'Sanduleak-69도202'의 죽음을 알렸다. 이
소식은 급속히 퍼졌고 몇 시간내에 세계의 모든 천체 망원경은 큰 마젤란운쪽으로
일제히 향해졌다. 1987년 5월, 최고도에 달한 초신성의 1987A의 밝기는 태양의 2억
5천만 배였다. 1990년초, 우주 비행사들은 우리의 은하계 안에서 초신성의 흔적을
발견했다. 아마 20세기 중 폭발했었겠지만, 구름과 먼지 입자들 때문에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우주의 속도 제한
빛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 돈다. 빛이 1초에 가는 거리는 297,600km이고,
1분에는 17,856,000km이며, 1시간에는 1,071,360,000km, 하룻동안에는
25,712,640,000km, 1년 동안에는 9,385,113,600,000km의 거리를 달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의 넓이는 100,000광년으로 거리로 환산하면
9,385,113,600,000,000,000km나 된다.
난쟁이 별
1862년 미국의 천문학자 앨번 클라크가 망원경으로 처음 발견한 아주 작은 난쟁이 별
시리우스 B에서는 성냥 한 갑의 무게가 50톤이나 나간다.
해왕성
해왕성에서는 결코 생일을 맞을 수 없다. 그곳의 1년은 지구의 165년과 같기
때문이다.
명왕성
명왕성의 온도는 영하 300도이다. 그곳은 지구에서 너무 떨어서 우리가 하루에
1,600,000km를 달린다 해도 10년이 걸려야만 도착할 수 있다.
금성
금성은 공전하는 방향으로 자전하지 않는 유일한 혹성이고, 온도는 450도가 넘는다.
태양을 도는 혹성들의 속도
태양을 도는 혹성들의 속도는 그 궤도가 태양에 가까울수록 빠르다.
혹성- 속도(km/초)
수성- 46.2
금성- 33.8
지구- 28.8
화성- 23.3
목성- 12.6
토성- 9.3
천왕성- 6.6
해왕성- 5.2
명왕성- 4.5
지구의 모양과 크기에 대한 논쟁
역사의 한 가지 부조리한 허구는 콜럼버스가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할 때에 다른 모든
이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다는 일이다. 이사멜라 여왕이 궁정에서 벌어진 이
논쟁에서 지구의 진짜 모양은 뒤켠이었고 문제가 되었던 것은 지구의 크기였다.
콜럼버스의 반대자들은 콜럼버스가 지구의 크기를 과소평가한다고 지적하면서 서쪽을
향해 유럽을 떠나 동양까지 항해하지는 못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유럽과 동양 사이에
미지의 대륙이 있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곤 그들의 주장이 옳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콜럼버스는 되돌아갔거나 항해 도중 죽었을 것이다.
지구는 둥근가?
지구의 모양은 수학자들이 쓰는 말로는 편구체가 된다. 즉 지구는 아일랜드, 페루
가까이의 해양 지대. 남아프리카. 뉴기니 지방 네 군데가 조금씩 튀어나와 있다.
지구의 무게와 조밀도
뉴턴은 지구의 무게는 6,600,000,000,000,000,000,000 톤에 이르고, 조밀도는 물과
비교해볼 때 6.5배라고 주장했었는데, 실로 정확한 측정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들은
뉴턴이 주장한 뒤 100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증명될 수 있었다. 오늘날 밝혀진
바에 의하면 지구의 무게는 60,000,000,000,000,000,000,000 톤이라고 한다.
지구의 깊이
지구 표면에서 중간 핵까지의 거리는 2,900km이고 중심 핵까지의 거리는 4,800km이며,
또 그 한가운데까지는 6,200km이다.
폭격당하는 지구
지구는 외계로부터 오는 별똥에 매일 폭격을 당하고 있다. 대부분은 대기권내로
들어와서 심한 마찰로 타 없어지고 타다가 남은 조그마한 물체만 떨어지기도 한다.
이것을 운석이라고 하는데, 지구에 떨어지는 이 부스러기는 1년에 1,500,000톤 정도
된다. 하루에 75,000,000개의 별똥이 지구에 떨어지지만 공중에서 거의 다 타버리고
10개 정도만 땅에 떨어진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속도
지구는 총알보다 8배 빠른 107,000km 속도로 태양을 한바퀴 도는 데 365일 6시간 9분
9.54초 걸린다. 지구가 1년 동안 달리는 거리는 958,000,000km나 된다.
지구는 원통형
'지구는 평평하지 않다'는 진리를 처음 알아낸 사람은 그리스의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로, BC 560년경 그는 지구가 원통형이라고 주장했다. BC 350년경
'원통형의 지구'의 학설은 실제로 어떤 부조리나 모순을 발견할 수 없는 일리 있는
주장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지구가 원통형이라는 것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장을 믿기에 이르렀다.
그 후 1,800년이 지난 후에야 마젤란에 의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는데,
그 증거란 페르디나드 마젤란이 무사히 지구를 완전히 도는 탐험을 마치고 귀환했던
사실이다.
보이는 가장 먼 물체
육안으로 보이는 가장 멀리 떨어진 천체는 '메시어 31'로 알려진 밝기 3.47의
안드로메다 대성운이다. 이 와상 성운은 지구로부터 2,150,000광년 또는 약
20,200,000,000,000,000,000km 떨어져 있으며, 지구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
원자에서 어느 궁극의 지평선까지
우리가 일생 동안 경험하는 크기는 아주 작은 먼지에서부터 큰 산에까지 이른다.
이들은 우주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다음은 크기의 여러 가지를
보여주는 26개의 예이다.
물체 크기(mm)
수소 원자의 지름 0.00000003
설탕 입자 0.0000007
헤모글로빈 입자 0.0000068
DNA 입자 0.000002
타바코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넓이 0.00004
적외선 파장의 길이 0.0007
엽록체 0.008
몸의 세포 0.05
먼지 0.1
페인트칠의 두께 0.1
핀 머리 1
벼룩 1.5
손톱 10
발 299
소화 기관 10,000
알려진 가장 큰 나무 109,860
지구의 지름 12,750,000,000
빛이 진공 상태를 1초에 가는 거리 300,000,000,000
지구에서 달까지 384,300,000,000
지구에서 태양까지 149,500,000,000,000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 9,460,000,000,000,000,000
가장 가까운 별 프록시마 센토리까지 40,200,000,000,000,000,000
우리 은하계의 지름 946,000,000,000,000,000-
,000,000
우리 은하계가 있는 은하단의 지름 49,200,000,000,000,000,000-
,000,000
관측할수 있는 가장 멀리 있는 물체 94,600,000,000,000,000,000,000-
,000,000
궁극의 수평선 189,200,000,000,000,000,000-
,000,000,000
지구의 자전 속도가 변한다는 것은 사실인가?
지구의 자전 속도는 7월말경과 8월초에 최고조에 달하며, 4월경에는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인다. 그리고 그 고저간의 차이는 0.0012초 정도이다. 1900년대 이후로 지구의
자전은 1년 단위로 1.7초씩 점점 늦어지고 있다. 지질학상 기록으로 볼 때, 과거에는
지구의 자전 주기가 지금보다 훨씬 빨라 낮이 훨씬 짧았고, 1년이 지금의 365일보다 더
길었다는 사실에 입각해서 보면 지구의 자전 속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은 받아들여질
만한 사실이기도 하다. 또한 가령, 3억 5천만 년 전에 1년은 400-410일이었고, 2억
8천만 년 전에는 390일이었다.
여름이 겨울보다 더운 이유
여름이 겨울보다 더운 이유는 태양이 지구와 더 가깝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태양은 여름보다도 겨울에 지구에 4,800,000km 더 접근해 있다.
태양과 지구의 온도
태양의 내부는 섭씨 1,300만도의 고도로 달아오른 뜨거운 열기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땅 속으로 6,400km 정도 파고들어가면 지구의 중심부에 도달하는데 화씨 9,000도의
불이 타고 있을 것이다.
물의 분포
지구 위에 있는 물의 97%는 바다의 소금물이고 2.8%만이 민물인데 민물 중 6%만이
액체 상태의 물이다. 즉 90% 이상이 극지방의 얼음 상태로 갇혀 있고 나머지가 대기
중의 수증기로 존재한다. 액체 상태의 민물 중 98%가 지하수이다.
지구상의 물은 지구가 생성된 46억 년 이래 그 양에 변함이 없다.
흑해에서는 잘 익사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어느 누구도 흑해나 그레이트 솔트호속으로 쉽게 빠져들지
못할 것이다. 흑해나 그레이트 솔트호의 물은 염도 때문에 부력이 커서 어떤 물체도
쉽게 표면 아래로 내려앉지 않는 것이다.
바닷물
바닷물 속에는 육지를 150m 두께로 덮을 양의 염분이 들어 있다.
바다보다 낮은 남극 대륙
남극 대륙은 얼음의 무게에 짓눌려 땅의 대부분이 바다보다 낮다. 가장 낮은 곳인
벤틀리 트렌치의 해발 고도는 -2,538m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 또한
남극이다. 얼음 표면의 해발 고도는 2,050m이다. 이와는 반대로 북극의 얼음은
북극해를 2-3m 두께로 덮고 있을 뿐이며, 평균 온도도 남극보다 15도 가량 높다.
남극의 종자 식물
남극에서 서식하는 꽃 피는 식물은 잔디와 일종의 카네이션 두 가지밖에 없다.
번개가 식물을 생장시킨다
번개는 1,000만 볼트의 힘을 갖고 지구를 강타한다. 그러나 번개는 공기 속에 질소와
산소를 연합시켜 빗방울 속에 녹여두었다가 비가 올 때 땅에 스며들어 식물을 잘
자라게 하는 1,000만 톤의 비료를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미생물의 천국
전형적인 농장의 1,224평의 흙에는 1톤의 균류와 수톤의 세균과 91kg의 원생동물과
45kg의 해초와 45kg의 이스트가 있다.
목성, 혜성 충돌
슈메이커-레비 혜성과 목성의 충돌이 1994년 7월 16일부터 시작되어 21일까지
계속되었다. 21개의 크고 작은 얼음과 암석으로 구성된 혜성 슈메이커-레비는 총탄의
60배인 초속 60km의 속도로 목성을 향해 돌진하여 결국은 충돌하고 말았다. 이때의
폭발위력은 수소 폭탄 100,000개가 동시에 폭발할 때 발하는 에너지와 같다고 한다.
[ 태양 표면보다 높은 온도 ]
슈메이커-레비 혜성과 목성이 충돌할 때 슈메이커-레비의 21개 파편 중의 하나인
'G.프래그먼트'는 직경 8km에 달하는 화염을 토했다. 이때의 온도는 태양 표면 온도
화씨 9,997도보다 높은 화씨 14,000도나 되었다(LA타임스, 1994년 11월 16일).
태양보다
더 밝은 별은 에타 카리내로 6,500,000배나 더 밝다. 또, 태양보다 더 큰 별은
엠-클래스 수퍼-자이언트 베텔주스로서 그 직경이 6,400,000km로 태양보다 500배 더
크다.
[ 제22장-공간, 천문학 ]
[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 ]
약 9,000개의 별이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이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든지 하늘의
반쪽만 보이며 지평선 부근의 별들은 지표에서 올라오는 안개 등에 가려 예민한 시력을
가진 사람이 구름이 없는 칠흑 같은 밤에 볼 수 있는 별은 3,000개 정도이다.
미국의 새 우주선 콜럼비아호
미국의 새 우주선 콜럼비아호가 우주권을 성공적으로 비행할 수 있을 때까지 든
비용은 무려 100억 달러나 된다.
아인슈타인의 꿈
상대성 이론의 원리에 의하면 빛보다 빠른 물체를 타고 우주를 달린다면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한다. 말은 타고 다닐 때는 하루에 130km를 여행할 수 있었고 1800년에 기차가
생긴 뒤에는 8시간에 240km를, 1925년 자동차 발명 뒤에는 8시간에 480km를 갈 수
있었다. 또 비행기가 생긴 뒤에는 1시간에 175km로 더욱 줄었고, 1964년 미군공군
SR-71 정찰기는 1시간에 3,500km를 기록했다. 또 1961년 세계 최초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탄 보스토크 1호는 우주권에서 1시간에 29,000km의 속도로 지구를 돌았다.
1982년 11월의 콜럼비아호는 5일 동안 지구를 82번이나 돌아 총 3,210,000km를
여행했다.
대나무의 성장: 3.8cm/시속
달팽이: 48m/시속
나무늘보: 109m/시속(땅에서) 274m/시속(나무위에서)
큰거북: 274m/시속
미시시피강: 4.8km/시속
꿀벌: 17.7km/시속
인간이 가장 빨리 뛸 때: 24km/시속
뛰는 캥거루: 64km/시속
치타가 뛸 때: 96km/시속
칼새: 170km/시속
근육 섬유 조직을 통한 신경 전달: 330km/시속
총알 열차: 380km/시속
경주용 자동차: 410km/시속
음속(20도에서): 1,220km/시속
USSR미그 25전투기: 3,400km/시속
Lockheed SR71A(정찰기): 3,530km/시속
총알의 속도: 3,620km/시속
달이 지구를 돌 때: 3,680km/시속
우주선 콜럼비아호: 26,900km/시속
지구가 태양을 돌 때: 107,245km/시속
수성이 태양을 돌 때: 172,000km/시속
가스와 먼지로 된 성운
오리온 성운은 오리온 별자리의 칼 부분에 있는 맨눈으로 보이는 거대한 가스와
먼지의 집합체이다. 이 성운은 지름이 30광년(290km에 백만을 백만 번 곱한 거리)이나
되지만, 모든 별 사이의 성운이 그렇듯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희박하다. 성운 전체를
꿰뚫는 직경 25mm의 원통 안에는 같은 직경의 작은 동전을 만들만한 물질밖에 없다.
가장 빨리 움직이는 별
밤하늘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가장 빠른 별은 버나드 별이다. 이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희미한 별이 보름달의 직경에 펼친 각도와 동등한 거리를 움직이는 데 180년이 걸린다.
서기 11800년에 이 별은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토리보다 더
가까운 3.85광년까지 접근하여 태양을 지나치게 된다.
[ 인류가 멸망할 가능성 ]
우주 공간 속에는 수많은 것들이 떠돌아다닌다. 특히 화성과 목성의 궤도 사이에
흩어져 있는 소행성들이 지구에 접근해올 위험이 있다. 그 크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지구에 부딪치면 대격변을 일으키게 된다고 프린스턴 대학의 테일러 박사는 말한다.
만약 바다에 떨어지면 물결이 높아져서 육지의 사람들을 쓸어낼 것이고, 땅 위에
떨어지면 원자 폭탄보다 더 큰 폭발을 일으킨다고 한다.
1937년에 헤르메스라는 소행성이 지구와 780,511km 가까이까지 접근한 적이 있다.
10만 년에 한 번 정도로 소행성이 지구에 부딪힌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1988년 2월 MIT 대학의 과학자들은 소행성 충돌의 결과는 여태까지 수많은
과학자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즉 충돌 때 생긴 질소
산화물에서 생긴 연기가 1년 동안 지구를 뒤덮어 빛을 차단하므로, 그 동안은 완전히
암흑 세계가 될 것이고 지독한 산성비가 내리며 물은 오염되어 더 이상 마실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한다.
[ 평화를 가져다준 일식 ]
일식에 의해 종식된 전쟁이 있다. 그리고 이 일은 정확한 날짜를 아는 가장 오래 된
역사적 사실이 되었다. 소아시아에서 전쟁을 준비하던 리디아와 메디아의 군인들은
일식에 의해 냉정을 되찾고 평화 협정에 조인하게 되었다. 현대의 천문학자들은 이
일식을 BC 585년 5월 28일로 밝혀냈다.
망원경의 거대한 기능
팔로마 천문대의 망원경은 1948년 록펠러 재단의 기부금으로 캘리포니아주에
건설되었는데 11,262,136,320,000,000,000,000 km 떨어진 별을 볼 수 있고, 무게가
무려 14.5톤이나 된다. 하지만 이 천문대보다 50%나 더 멀리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소련에 있는데, 직경 6m에 무게 42톤으로 24,000km 거리에 있는 개미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헤일 망원경의 규모
캘리포니아 팔로마산 천문대에 있는 헤일 망원경은 직경 5m, 무게 20톤의 거울로
이루어져 있다. 이 거울을 주조하여 냉각시키는 데 1년이 걸렸으며, 원하는 모양대로
갈아내고 거울 표면을 처리하는 데 11년이 소요되었다. 이 모든 작업을 마치기까지
5톤의 유리가 갈려나갔고 28,000kg의 연마제가 사용되었다.
축복받은 지구
달은 태양 위에 꼭 맞게 포개진다. 이는 전적으로 천문학적 우연이며 개기 일식을
가능케 한다. 지구에서 보아서 달은 태양을 완전히 가리기에 충분할 만큼 크다. 태양이
가려져 있는 동안 태양 표면 근처의 특별히 밝은 부분인 코로나를 완벽하게 볼 수
있도록 달은 또한 적절히 작다. 달이 이토록 태양과 꼭 맞게 포개져야 할 아무런
천문학적 이유가 없는데, 다른 모든 혹성 가운데 지구만 이러한 축복을 누린다.
[ 천왕성은 왜 누워 있는가? ]
옆으로 누워 있는 유일한 혹성은 천왕성이다. 아무도 이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 천왕성은 자전축이 98도나 기울어진 채 태양을 공전하며, 지구의 자전축은
23.5도, 화성의 자전축은 24도, 그리고 목성은 겨우 3도만 기울어져 있다.
[ 달은 항상 떨어진다 ]
달은 이 떨어짐을 상쇄하려고 스스로 곁운동을 한다. 그러므로 달은 결코 떨어지거나
이탈하지 않고 지구 주위의 궤도에 머물러 있게 된다.
갈릴레이의 역사와 그 대가
갈레이가 '돌은 무거울수록 빨리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반대했을 때
그는 피사 대학교의 교수직에서 밀려날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갈릴레이의
생각, 즉 '무게가 서로 다른 물체라해도 동시에 땅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여러 해 동안 망원경으로 태양을 관찰했기 때문에
말년에는 완전히 눈이 멀어 장님이 되었다.
돌 조각으로 된 고리의 회전일 뿐
토성의 고리는 사진에서와 같이 납작하고 딱딱한 원반이 아니다. 토성의 고리는
얼음으로 둘러싸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백억 개의 작은 돌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고리는 토성 주위를 각기 다른 속도로 회전하는데, 고리의 두께는 겨우 16km에
불과하다. 1978년 목성과 천왕성에도 고리가 있음이 우연히 발견되었다.
목성의 크기와 압력
가장 큰 혹성인 목성의 하루는 매우 짧다. 목성은 그 둘레가 지구의 40,000km에
비하여 448,000km나 되지만, 자전 속도는 9시간 55분에 불과하다. 또 목성 중심의
압력은 지구 중심 압력의 3배에 해당된다(지구 중심 부위의 압력은 1제곱 센티미터당
4,185톤이다).
[ 태양이 빛나는 이유 ]
태양 중심의 압력은 1제곱 센티미터당 무려 11억 톤에 달한다. 이는 원자를
찌그러뜨려 원자핵이 밖으로 드러나게 하기에 충분한 압력이다. 압력에 의하여 밖으로
드러난 원자핵은 서로 충돌하고 상호 작용하여 빛과 열을 방출하게 된다.
윌리엄 픽커링의 학설
1855-1938년에 생존했던 유명한 천문학자인 윌리엄 픽커링은 1924년 달의 분화구에
있는 많은 검은 점들은 달에 있는 많은 곤충들이 모여 있는 것이라 했다. 또 그는 달의
천문학자는 지구의 북미 초원 지역에 흩어져 있는 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은
19세기초에 많은 코뿔소 떼가 모여 돌아다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iss Me Right Now, Sweetheart
천문학자들은 분광법으로 별을 분류하여 이에 영어 알파벳을 하나씩 기호로 할당한다.
이렇게 분류된 별은 온도의 높이에 따라 O, B, A, F, G, K, M, R, N 그리고 S의 순서로
배열된다. 이 순서를 쉽게 기억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문장이 고안되었다. "오,착한
소녀가 되거라; 어서 나에게 뽀뽀해 주오, 내 사랑."
우주의 사이클
우주는 새로운 곳에서 창조되기도 하고 파괴되기도 한다. 이것은 천문학자 알랜
샌드에이지 교수의 말이다. 밀도가 극도로 높은 별, 예를 들어 시리우스 B별은 창조된
지 오래 된 사멸 직전의 별로서, 우주는 약 800억 년의 주기로 재창조된다고 한다.
[ 화성이나 프록시마 센토리에 가려면 ]
만약 사람이 화성에 살 수 있다면 지구를 떠나 화성까지 가는 데 1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태양계 바깥에 존재하는 가장 가까운 별은 프록시마 센토리로서 4광년
정도 떨어져 있다. 따라서 1시간에 40,000km 속도로 달리는 우주선이 그곳에
도착하려면 7만 5천년이 걸린다.
달과 지구는 서로가 서로를 돈다
달과 지구의 중력 중심은 지표면 1,600km 밑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지구의 중심은 이
중력 중심 주위를 27.3일의 주기로 회전한다. 중력 중심은 항상 지구의 중심과 달의
중심을 잇는 직선상에 위치한다. 지구가 중력 중심 주위를 회전하는 것은 지구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자전과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공전에 이은 제3의
운동이다.
[ 42년 동안의 낮과 밤 ]
천왕성에는 유일하게 대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물이 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
혹성의 크기는 직경이 51,000km 정도로 지구보다 4배 정도 더 길다. 편평체로 태양을
돌고 있기 때문에 만약에 인간이 살 수 있다면 단 두 계절밖에 없다. 즉 42년 동안
태양이 비치는 '낮'을 경험할 수 있는 계절과 다른 쪽에서는 얼음과 어둠이 깔린
'밤'을 42년 동안 경험하는 계절이 있다. 태양으로부터 2,872,700,000km 떨어져 있고
태양을 도는 데 84년이나 걸리는 이 혹성의 온도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금성의 자전
금성은 584일마다 한 번씩 지구와 태양 사이를 지나간다. 이 기간 동안 금성은 정확히
다섯 번 자전한다. 그러므로 금성이 지구와 태양 사이를 통과할 때 늘 금성의 같은
면이 지구로 향하게 된다. 천문학자들은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지구의 중력이 멀리 떨어진 금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도, 그저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는 생각도 그럴듯하지 않다.
태양과 농사
농산물 수확의 증감과 태양 흑점 운동 사이에는 상관 관계가 있다. 한 예로, 태양
흑점 운동이 활발하면 밀 농사가 풍년을 이루고, 태양 흑점 운동이 저조하면 밀 수확도
저조해진다.
중성자 별의 무게가 44조 킬로그램
중성자 별은 대부분 중성자인 아원자 입자들이 사실상 서로 접해 있는 극도로 압축된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만일 태양이 중성자 별로 압착되어진다면 그 직경은
1,384,640km 대신에 12.8km 정도가 된다. 1kg의 물체가 중성자 별에서는 44조
킬로그램이 된다.
[ 태양이 선 것인가, 지구가 선 것인가? ]
여호와는 태양이 기브온 위에 머물러 있도록 했고 달은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도록
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당시 종교계와 과학계에 일대 혁명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카톨릭 교회는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금서로
정하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에겐 벌금형을 내렸다. 종교 개혁자인 마틴 루터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비웃으며 "그는 천문학의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뒤집어
놓는 벼락 출세한 점성가에 지나지 않는다. 여호와가 움직이지 말라고 한 것은
태양이지 지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제23장 음향, 항공, 속도 ]
[ 제23장 음향 ]
[ 사람과 동물 중 청각 기능이 우세한 쪽은? ]
흡혈 박쥐와 큰 박쥐(얼굴이 여우와 비슷하며 과일을 즐겨 먹음)는 인간의 청각보다 10배나
높은 210,000 헤르츠의 고주파를 들을 수 있다. 돌고래의 경우는 이보다 더 청각 기능이
박달하여 280,000헤르츠가지 들을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청각 기능이 발달된 종족은
페넥(북아프리카산의 귀가 크고 뾰족한 엷은 황갈색 여우)이다. 몸의 크기에 비해 대단히 큰
귀를 가지고 있는 페넥은 1.6Km 떨어져 있는 동물의 움직임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 경적에 따라 달리 보이는 색깔 ]
자동차가 길에서 울리는 경적 소리는 운전자의 시력에 영향을 주어 초록색은 점점 더 밝아
보이게 하고 붉은색은 더 어두워 보이게 한다.
사람의 청각
사람의 고막에서의 진동은 3,000헤르츠(초당 진동수)의 음파를 찾는 데 수소 원자 직경의 1/10,
혹은 1cm의 10억만분의 1 정도로 아주 작다.
인간들은 피콜로(플루트보다 한 옥타브 높은 음을 낸다.)보다 더 높은 20,000헤르츠의
고주파를 들을 수 있는 반면, 저음 바이올린보다 더 낮은 음인 20헤르츠의 저주파도 들을 수
있다.
[ 전화가 필요 없는 지역 ]
북극이나 남극 지방에서는 1,6km 정도 떨어진 사람끼리도 전화가 아니라 육성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차갑고 밀도 높은 공기와 매끄러운 얼음이 소리의 전달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소리의 속도
소리는 해수면에서 1초에 332km 속도로 달린다. 소리는 금속을 통할 때 가장 빠르고, 그 다음이
물 속, 그 다음이 공기 속이다. 즉 금속에서는 1.6km가는 데 1/3초, 물 속에서는 1초, 공기
속에서는 5초 걸린다.
소리에 의한 방향 감각
사람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3도내에서 알 수 있다. 한쪽 귀가 다른 쪽 귀보다 약간 앞에
달려 있는 올빼미는 소리의 방향을 1도내로 더욱 정확히 감지 할 수 있다고 한다.
[ 85데시벨이 넘는 소리는 ]
청각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고 한다. 아기가 욕구 불만으로 우는 소리는 100데시벨이라고
한다.
데시벨은
소리의 상대적 크기에 대한 측정 단위이다. 10데시벨의 소리 보다 20데시벨의 소리는 10배 더
크고, 30데시벨은 100배 더 크다. 1데시벨은 어림하여 사람의 귀가 구별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차이로 정의 된다. 이해를 돕고 수음이 얼마나 큰지를 쉽게 짐작토록 다음 표를 마련하였다.
10데시벨 가녀린 속삭임
20데시벨 조용한 대화
30데시벨 평상적인 대화
40데시벨 한적한 차도
50데시벨 타자기, 큰 소리로 나누는 대화
60데시벨 소란스러운 사무실
70데시벨 보통 차도, 천천히 달리는 기차
80데시벨 록뮤직, 지하철
90데시벨 밀리는 차도, 천둥
100데시벨 이륙하는 제트 여객기
140데시벨 으악!(육체적 고통을 느끼는 비명소리)
[ 제23장-항공 ]
[ 논스톱 보이저 ]
1986년 12월 24일 지나 이거와 딕루탄에 의하여 제조되고 조종된 단엽기 보이저는 사상 최초로
재급유가 필요없는 논스톱 세계 일주를 위해 캘리포니아의 에드워드 공군 기지를 떠났다. 엄청난
거리를 날아야 하는 보이저에는 3,181kg의 연료가 채워졌다.
이륙 후 멈추는 보조 엔진에도 불구하고 보이저는 점보 제트기보다 더 긴 4,300m의 활주로를
달리고서야 이륙할 수 있었다. 보이저는 12월 23일 40,212km에 달하는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귀환하였다.
[ 처음으로 우주 여행을 함께한 부부 ]
우주 비행사 제인 데이스와 마크 리는 최초로 우주 비행을 한 부부이다. 그들은 1992년 9월
12일 8일간의 비행 임무를 띠고 우주 비행선 엔버디호에 탑승했다. 일반적으로, NASA는 결혼한
부부가 함께 탑승하는 것을 금지해왔다. 그러나 예외가 바로 이들에게 적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 사이에는 아직 아기가 없고 결혼전부터 오랫동안 이 비행 임무를 위한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이었다.
[ 갓난아이의 우주 탐험 임무 ]
첫 우주 탐험의 임무를 맡은 23명의 미국 우주 비행사 중22명은 갓 태어난 사내아이들이거나
어린 사내들이었다.
달 여행 예약
1969년 첫 월면 보행(달의 표면을 걷다)이 성공한 후, 팬 아메리칸 항공사는 시간과 때를
명시하지 않은 채 달 여행을 내걸고 주문 예약을 받기 시작했는데, 신문에 이 계획안이
실리자마자 곧 80,000명 이상의 예약 주문이 밀리기 시작했다.
[ 비둘기를 이용한 항공사의 정보 교환 ]
항공계의 거물인 록히드 미사일 항공사는 각 공장끼리의 기술 자료 교환에 컴퓨터를
이용하였음은 물론 비둘기까지도 이용하였다.
1982년 1월 이래, 캘리포니아의 써니베일에 위치한 록히드사는 48km 떨어진 산타크루즈산 속의
펠튼에 있는 실험 기지까지 신속하게 자료를 운반하기 위하여 잘 훈련된 50마리의 비둘기 군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비둘기는 차로 가는 것보다 2배나 빠르게 그곳으로 날아갈 수 있었으며,
배달부를 고용하는 것보다 비둘기를 이용하는 것이 비용도 적게 들었다.
매일 아침 써니베일에서는 컴퓨터에서 나온 설계도를 마이크로 필름에 담아 조그만 통 속에
넣어 비둘기 다리에 묶은 다음 비둘기를 날려보냈는데, 아직까지도 이 방법은 100% 효과적이라
고
한다. 잃어버리거나 손상된 것이 없었으며 다른 곳으로 잘못 배달된 것도 없었다고 한다.
27,000km의 속도로 나는 비행기
우리가 보통 타고 다니는 747여객기는 1,030km로 난다. 프랑스와 영국의 합작 비행기 콩코드는
2,100km, 소련 여객기 TU-144는 2,550km로 날 수 있었다. USAF 록히드 SR-71A 정찰기는
3,530km까지 날 수 있었다. 그러나 1988년 1월 15일 미 공군의 스텔스기는 30,480km 상공에서
6,115km의 기록을 세웠다. 또 USAF의 윌리엄 J. 나이트 소령은 7,270km의 기록을 세웠다. 그러
나
1995년쯤에는 음속보다 25배나 빠른 27,000km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최신 비행기가 개발 된다고
한다. 이 비행기가 지구를 한바퀴 도는 데는 1시간 40분 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로켓 카운트 다운
'3, 2, 1, 제로, 발사!' 이 유명한 로켓 카운트 다운을 고안 한 사람은 독일인 영화 감독
프리츠 랑인데, 1928년 그가 제작한 영화(달 속의 여인)란 작품에서 이 카운트 다운을 처음으로
선보였다(이 영화는 '로켓으로 달까지'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찰스 린드버그는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대서양을 67번째로 횡단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단독 비행으로 대서양을 횡단한 최초의 비행사이다.
[ 라이트 형제와 보잉 747 ]
라이트 형제가 키티호크에서 최초로 비행한 역사적인 기록은 12초였다. 이 12초의 비행 거리는
보잉 747의 날개보다 짧은 거리다.
[ 747 점보 제트 여객기가]
이륙할 때는 1분에 700l의 연료를 태운다고 한다.
비행기는
9,144km 상공에서보다 7,620km 상공에서 더 많은 연료를 소모한다. 하늘 높이 올라갈수록
대기의 압력이 줄어들어 저항를 적게 받기 때문이다.
[ 제23장-속도 ]
[ 거북은 토기에게 이길 수밖에 없었다. ]
우리는 토끼와 거북의 경주에서 느림보 거북이 토끼를 보기좋게 이긴 이야기를 알고 있다.
이것은 매우 타당성 있는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는데, 자라나 거북의 몸은 공기 저항과 마찰을
잘 극복할 수 있는 포물선 모양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스피드를 내기에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시속 370km의 속도로 달린 메이저 시그레이브의 경주용 자동차 '황금 화살'은 포물선형으로
제작되었고, 시속 393km라는 세계적인 기록을 냈던 캡틴 맬콤 캠벨의 '파랑새' 역시 거북
모양으로 제작되었다.
수평의 위치에서 세워둔 고성능 총의 총구를 떠난 총알 또한 공기 중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그러므로 거북이 경주에서 토끼를 이긴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높이에 따른 소리의 속도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언스트 마크 이후 소리의 속도는 높이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가령 해저에서의 소리의 속도는 시간당 1,216km이며 상공
1,216km에서는 1,056km이다.
[ 왜 밤에 차가 더 잘 달릴까? ]
차는 밤이나 습도가 높은 날 더 부드럽게 달리는데, 공기가 더 차기 때문이지 공기 속의 더
많은 산소 때문은 아니다. 공기 속의 산소량은 항상 같다. 차거운 공기는 따뜻한 공기보다
밀도가 높기 때문에 엔진은 습도가 높고 차가울 때 더 많은 공기를 받아들이게 된다. 따라서
밤이나 빗속을 운전할 때는 차의 힘이 좋고 엔진 노크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 잉카의 우편 배달 ]
잉카에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이 소식을 전해야 했다. 잉카의 우편 배달부는 그 이름을
채스뀌즈라 했는데, 거점이 약 2.4km마다 있었다. 그리하여 키토에서 쿠스코까지 2,000km
거리에서도 소식은 5일 안에 전달될 수 있었다. 즉 이것은 1시간에 16km 속도로 달렸음을
뜻한다.
[ 총알은 ]
시속 3,620km의 속도로 날아간다. 이것을 촬영하려면 1초에 11,000,000의 속도로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있어야 한다.
74초 이후
1986년 1월 31일 우주선 첼린저호가 발사된 지 74초 만에 폭발했다. 7명의 승무원과 수천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탑승객으로 선정된 고등학교 여교사 크리스타 맥아우리퍼까지 8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 폭발 사건의 원인은 385,000가롱의 수소와 140,000가롱의 산소를 싣고 가는 연료
탱크의 어떤 고장 때문인 것 같다.
[ 제24장 과학, 과학자 발명, 발견 ]
[ 제24장-과학 ]
[ 뉴턴의 사과 ]
뉴턴의 사과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속하는 전설이다. 뉴턴 스스로가 그 이야기를 했다.
초승달이 하늘에 떠 있던 어느 날 저녁, 뉴턴은 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사과을 보았다. 그는
사과에 작용하는 힘과 동일한 힘이 달에도 작용하고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 그러나 이 전설 중 사실이 아닌 부분이 있다, 사과가 뉴턴의 머리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번개의 세기
가정에서 쓰는 115볼트의 전기만으로도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할 수 있는데, 번개의
전력은 1,000,000,000,000볼트가 넘는다.
[ 반짝이는 보석의 분무 ]
보기에 지극히 아름다운 일이 하나 있다. 석양을 향해 소변을 내버리는 일이다. 배설물이 (우주
공간으로) 나가면서 밖으로 향한 분출구의 끝에 도달하며 즉시 수천만 조각의 작은 얼음 결정이
되어 반짝거린다. 본질적으로 완벽한 진공으로 내보내어지는 배설물은 우주선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속도로 모든 방향으로, 그리고 방사상으로 완전한 반구 형태로 퍼져나간다.
이는 놀랄 만하며 믿을 수 없는 흐름을 연출한다... 반짝이는 보석의 분무! 이것은 가히
장관이다.
애시도미터로부터 자이모미터까지
애시도미터(acidometer)와 자이모미터(zymometer)는 측정 기구와 알파와 오메가라고 할 만하다.
이미 짐작하다시피 애시도미터는 용액의 산도를 측정한다. 그리고 자이모미터는 발효도를
측정하는 기구이다. 여기에 20가지 희귀한 측정 기구를 선택하여 그들이 무엇을 측정하는지를
알아보자
1. 크레니오미터(craniometer) 해골
2. 할로미터(halometer) 형태, 결정체의 각과 면
3. 실로미터(sillometer) 배의 속력
4. 바이아미터(viameter) 여행 거리
5. 오실로미터(oscillmeter) 우주선이나 배의 좌우 동요
6. 갈락토미터(galactometer) 우유와 유동
7. 우미터(oometer) 새의 알
8. 텔레미터(telemeter) 멀리 있는 물체와의 거리
9. 애스트로포미터(astrophometer) 별의 밝기
10. 클리노미터(clinometer) 고도각
11. 덴드로미터(dendrometer) 나무의 높이
12. 피렐리오미터(pyrheliometer) 태양의 열
13. 리트라미터(literameter) 용액의 비중
14. 아트모미터(atmometer) 수증기의 증발
15. 인크리노미터(inclinometer) 지자기
16. 코니미터(konimeter) 공기 속의 먼지
17. 트리보미터(tribometer) 미끄럼 마찰력
18. 드로소미터(drosometer) 이슬
19. 오로미터(orometer) 산의 높이
20. 리플렉토미터(reflectometer) 연기의 구성 성분
자, 이젠 여러분의 차례! 10개의 측정 기구와 그들의 측정하는 현상이나 물체, 요소 등을
다음과 같이 섞어놓았다. 과연 독자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1. 그라디오미터(gradiometer)
2. 컴프토미터(comptometer)
3. 갈바노미터(galvanometer)
4. 포토미터(photometer)
5. 살리미터(salimeter)
6. 우리노미터(urinometer)
7. 알젠토미터(argentometer)
8. 폴라리미터(polarimeter)
9. 바이브로미터(vibrometer)
10. 스파이로미터(spirometer)
가)작은 전류
나)고속 계산
다)염도
라)흡수량
마)소변의 비중
바)기울기
사)쾌활량
아)은 용액의 농도
자)진동
차)빛의 편광
답: 1. 바) 2. 나) 3. 가) 4. 라) 5. 다) 6. 마) 7. 아) 8.차) 9. 자) 10. 사)
콜럼버스와 암스트롱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이사벨라 여왕에게 전하는 데 5달이 걸렸고, 유럽
신문들은 링컨 대통령의 암살을 보도하는 데 2주일 걸렸다. 그러나 암스트롱은 달에서 1.3초
만에 지구에 말을 전할 수 있었다.
[ 레이저 광선의 위력 ]
1950년에 발명된 레이저 광선은 인간이 발견한 에너지 중 가장 강한 것이다. 레이저 광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냉장해두었던 루비 크리스탈에 빛을 쪼인다. 이 빛의 루비의 어떤 원자를
자극하면 이 원자가 아주 강렬한 붉은 빛을 방사한다. 이 빛은 하도 강해서 5,000분의 1초 만에
다이아몬드에 구멍을 낼 수 있으며, 태양빛보다 1평방인치당 2,000배가 넘은 에너지를 낼 수
있다.
산화물의 무게
어떤 물체가 타 들어간 후 그 이후에 생긴 물질들, 즉 연기, 가스, 재, 유연 등을 그대로 무게
측정해본다면 태워진 후에 생긴 물질의 무게가 원레 물체보다 조금 더 무거울 것이다. 그 이유는
그 물질이 타는 과정에서 산소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 먼 곳에서 더 빨리 소리를 듣는다 ]
라디오 파장은 초당 약 300,000km까지 퍼지고, 사운드 웨이브는 시간당 1,100km까지
울려퍼진다. 텔레비전의 뉴스는 쉬운 예로 텔레비전 속에서 울려나오는 방향 뒷면과 벽을 두고
반대쪽에 있는 것보다 21,000km 떨어져 있는 곳에서 더 빨리 그 소리를 접할 수 있다.
[ 전자오븐은 어떻게 음식을 데울까? ]
전자파(마이크로웨이브)는 음식 속에 있는 물 입자를 1초에 2,500,000,000번 진동시켜 그
에너지로 음식을 데운다. 따라서 물기가 없는 음식은 결코 데워지지 않는다. 물기 없는 그릇이
뜨거워지는 것은 물기가 있는 음식이 뜨거워져서 그 열이 그릇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라듐은 세계의 것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한 퀴리 부부는 특허를 내지 않은 채 평생 동안 가난하게 살았다. 라듐은
세계의 것이지 개인의 것이 아니므로 이익을 얻을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895년에
X선을 발견한 독일 물리학자 뢴트겐도 특허를 내지 않고 가난하게 살다 죽었다.
[ 세숫대야 하나에 차는 물 ]
세숫대야 하나에 차는 물로 170제곱킬로미터의 넓은 지역을 뒤덮는 15m 두께의 안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석탄과 다이아몬드
석탄과 다이아몬드는 동일 화학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 탄소이다.
[ 캄캄한 밤의 벨소리 ]
1977년 7월 13일 저녁부터 그 다음날인 14일 오후까지 뉴욕시는 캄캄한 밤이었다. 정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전화국 집계에 의하면 정전 시간 동안 뉴욕의 전화 이용 수는 8천만 통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뉴욕시의 Business Day(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업무 시간)의 평균 전화 통화
수는 3천6백만 통이었다고 한다.
무지개의 끝
왜 우리는 무지개의 끝을 볼 수 없을까? 그 답은 간단하다. 무지개의 끝이란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무지개의 빛이 완전히 원형을 이루며 굽어지게 되어 있지만, 우리가 그
원형을 다 볼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시야가 수평선에 의해 꺾이기 때문이다.
[ 감기 걸리는 컴퓨터 ]
오늘날은 이미 컴퓨터 시대로, 음악을 작곡하거나 미술 도안을 그려내거나 바둑을 두는 것도
컴퓨터가 해낸다. 또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사랑이라는 말이 2,271번 나온다는 것도 쉽게
발견해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컴퓨터 CDC 7600은 1초에 36,000,000번의 속도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또 그것은 몹시 민감해서 조금이라도 온도가 내려가거나 찬 곳에 두면
감기에 걸린다고 한다.
광물의 굳기
모스 경도는 다음과 같은 10개의 기본 광물과 그 재질의 단단함을 비교하여 측정한다.
광물의 종류 경도 시험 방법 모스 경도
활석 손톱에 의해 부서짐 1.0
석고 손톱에 의해 흠집이 생김 2.0
방해석 구리에 의해 흠집이 생김 3.0
형석 유리에 의해 흠집이 생김 4.0
인회석 칼에 의해 흠집이 생김 5.0
장석 석영에 의해 흠집이 생김 6.0
석영 줄에 의해 흠집이 생김 7.0
황옥 강옥에 의해 흠집이 생김 8.0
강옥 금강석에 의해 흠집이 생김 9.0
금강석 금강석에 의해 흠집이 생김 10.0
[ 제24장-과학자 ]
[ 아인슈타인과 루스벨트 대통령 ]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유명한 1939년 8월 2일자 편지에서-사실은 핵물리학자 레오 질라드에 의해
씌어졌다-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이에 의해서 막대한 에너지와 많은 양의 라듐과 유사한
새로운 원소가 생성된다" 면서 커다란 우라늄 덩어리에서 발생될 수 있는 연쇄 핵반응의
가능성을 건의했다. 만일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된다면 원자 폭탄의 제조가 가능해진다. 이
편지에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배에 의해 운반되는 지극히
강력한 새로운 형태의 폭탄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 폭탄은 항구 전체를 폭파시킬 뿐만
아니라 아마 항구를 둘러싼 주변 지역까지도 파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폭탄은
너무 무거워 비행기로 운반하지 못할 것입니다."
[ 미친 과학자와 노벨상 ]
알프레드 노벨의 니트로글리세린 공장은 1864년 폭발로 파괴되었다. 스웨덴 정부는 공장 재건을
허가하지 않았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은 파괴 물질을 제조한 사악한 미친 과학자로
보여지기 시작했다. 노벨은 평생 그런 평가와 싸워야 했다. 그의 사후에 노벨상이 제정됨으로써
마침내 노벨은 오명을 씻을수 있었다.
파스칼과 클레오파트라
17세기 프랑스 수학자이며 물리학자, 그리고 철학자이자 문장가인 블레즈 파스칼은 계산기와
계산자를 어린 시절에 발명하였으며 현대 확률 이론을 정립하였고, 그의 이름이 붙여진 제도
삼각자를 고안하였을 뿐만 아니라 패션의 특성을 발견하고 미분방정식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어록은 과학과 전혀 상관이 없다. "클레오파드라의 코가 한치만 더
낮았더라면, 또는 크롬웰이 방광에 생긴 병 때문에 일찍 죽지만 않았더라면 세계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라고 말한 사람이 바로 파스칼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은 잘못되었다 ]
아리스토탤레스는 BC384--322년에 생존했던 그리스 철학자로서 1,800년 동안 물리학뿐만 아니
라
생물학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누려왔다. 그러나 오늘날 그의 가르침이 많이 잘못되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는 화살, 돌과 같은 물체가 나는 것은 공기 때문이고 또 인간의 감각과 지성은
두뇌가 아니라 심장에 의해서 작동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고 믿었다. 그외에도 생물은 조상 없이도 생겨날 수 있다고 믿었는데, 동물의 썩은
시체에서 생겨난 구더기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19세기말의 뛰어난 수학자 에드문드
위테이커는 "그의 자연 철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잘못되어 있고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 디킨스의 취침자세 ]
찰스 디킨스는 침대가 남북으로 놓여 있을 때에만 적절한 수면을 취할 수 있다고 믿었다.
디킨스는 이렇게 함으로써 가로누운 몸을 통하여 자기장이 똑바로 흐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토머스 영은 신동
1803년 빛의 파동 이론을 완성한 토머스 영은 비범한 신동이었다. 그는 2세 때부터 읽기
시작했으며 4세에는 성서를 두 번이나 독파했다. 어린 시절 영은 12개국 언어를 공부하였으며
다양한 악기를 연주할 줄 알았다. 케임브리지에서 수학하는 동안 그는 '영 효과'로 알려진 빛의
한 현상을 발견하였다. 빛에 관한 이론에 덧붙여 토머스 영은 최초로 이집트 상형 문자 판독의
길을 열어놓았다.
발명의 왕과 사후의 세계
토머스 에디슨은 사후에도 생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기계를 발명하여 1920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잡지에 발표했다. 그는 또 전기, 영사기, 축음기 레코드, 전기 펜, 철도 신호등, 왁스
종이, 축음기, 합성수지, 밧데리, 자동 전송기, 딕 레이팅 머쉰, 등사편 기계, 라디오 진공관,
전기 소켓, 포트랜드 시멘트, 광석 분쇄기 등 1,000가지가 넘는 발명을 했다.
[ 성적이 부진했던 천재들 ]
토머스 에디슨, 아인슈타인, 뉴턴, 파스퇴르 등은 학교 성적이 변변치 않았던 몇 안 되는
천재들이었다. 교사였던 에디슨의 어머니는 어린 에디슨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자 화가 난
나머지 그를 학교에서 퇴학시킨 후 스스로 가르쳤으며, 아이작 뉴턴은 십대일 때 성실한 농부가
되기를 희망하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학교에서 중퇴하였다.
토머스 에디슨은 밧데리를 연구하는데
10,000,000달러 이상을 썼는데 1905년 자신이 만든 밧데리 중 하나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판매된 모든 밧데리를 상환해주었다. 그리하여 또1,000,000달러를 썼다.
[ 파스퇴르의 강박관념 ]
저온 살균(파스퇴르의 이름으로부터 기인, pasteurization)을 해야 하는 포도주나 식초 또는
맥주에 관해 연구한 루이스 파스퇴르는 오물과 감염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는
악수하기를 거절했으며 식사 전에 접시와 잔을 특별한 방법으로 세척하곤 했다.
조소와 냉대 속에 핀 멘델의 업적
유전학의 기초를 수립한 오스트리아의 성직자 그레고리 요한 멘델은 줄곧 인정받지 못했던
불운아였다. 본래 그는 대학교수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대학 교수 자격 시험에 세번이나
낙방하였다. 그의 모교 비엔나 대학교의 시험 채점 교수는 멘델이 결격된 것은 통찰력과
필수적인 기초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고 한다. 이에 굴하지 않고 멘델은 유전학
분야에서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실험 결과를 얻은 후, 스위스의 유명한 식물학자에게
보냈으나, 그로부터 단지 조소와 냉대만을 받았을 뿐이었다. 또한 자신의 실험 토대로 유전학에
관한 책을 펴낸 적이 있었지만 역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결국 멘델은 과학에 관한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가 죽은지 16년이 지난 후, 즉 1900년에 이르러서야
'유전학 분야에 남긴 그의 뛰어난 업적'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많이는 썼지만 베스트 셀러는 없다.
소련 태생 물리학자 아이작 아시모프는 생화학 교수이자 공상 과학소설가이며 성경 주석
학자이다. 그는 1992년까지 280권의 책을 출판했는데, 베스트 샐러는 단 한 권도 없었다.
진화론의 선구자
진화론을 연구하던 찰스 다윈은 논쟁의 여지가 다분한 결론을 예견하고 증거를 수집하여
보강하는 노력을 지속하면서 발표를 미룬 채 14년 소비했다. 한편 다윈이 동일한 연구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박물학자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는 보르네오에서 앓아누운 단3일 동안 진화론을
써서 비평을 받기 위해 이를 다윈에게 보냈다. 혼지백산한 다윈은 1858년 윌리스와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하기로 동의했다. 다음해 다윈은 생물학에 혁명을 불러일으킨 그 유명한 "종의
기원"을 출판했다. 이는 다윈이 처음 계획한 분량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일생 동안 다윈은 이를
얕잡아 '초록'이라고 불렀다.
글을 쓰지 못하는 과학자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금세기 최고의 이론 물리학자 중 한 사람은, 특별한 노력 없이는
머리조차 들지 못하며 불분명하고 단조로운 어조는 지극히 친밀한 몇 사람 외에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스티븐 호킹이다. 신경과 근육 계통의 희귀한 황폐성 질환의
희생자인 호킹은 쓸 수 없으므로 난해한 방정식이 그의 마음에 명멸해 지나갈 때마다 모두를
기억해야 한다. 이는 모차르트가 교향곡 전체를 머릿속에서 작곡하는 이에 비견할 만하다.
호킹은 특별히 블랙 홀 물리학의 전문가이다.
환관의 종이 발명
종이는 서기 105년 중국의 환관 채륜에 의해 발명되었다. 아마도 채륜은 기술사에 있어서
유일한 환관임에 틀림없다. 공인된 3세기 무렵의 한나라 역사에 의하면 채륜은 종이 표본을
호티황제에게 보여주고 귀족 칭호를 수여받았다고 한다. 중국의 종이 제조 기술자들은 서기
751년 사마르칸드의 아랍인에 의해 사로 잡혀갔다. 서기 794년에 이르러서는 바그다드에
국가에서 운영하는 제지소가 몇 개 생겨났으며 1150년경에 아랍인들은 스페인에서 종이를
만들었다. 영국에서 종이가 처음 제조된 때는 다트포드에 제지소가 설립되었던 1590년이다.
[ 퀴리 가족의 영예 ]
노벨상 헤트 트릭을 달성한 가족이 있다. 마리 퀴리와 그 남편 피에르 퀴리는 1903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고 마리 퀴리는 또 191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의 딸 이렌은
남편 프레드릭 줄리오 퀴리와 함께 1935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 빛을 이용한 적군 퇴치 ]
태양 에너지는 오늘날에야 비로소 개발되어 생활에 응용되고 있다. 고대에 처음 그것을 이용한
사람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아르키메데스로서, BC 214년 로마군들이 쳐들어왔을 때
수많은 거울들로 햇빛을 한 곳에 반사시켜 로마군들의 배를 불태웠다.
[ 제24장-발명 ]
[ 전화를 이용한 최초의 대화 ]
1876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한창 전화 발명에 골몰하던 중, 그만 실수하여 전지산을
엎질러 온통 바지다 젖게 되었다. 그래서 벨은 얼른 그의 조수를 불렀다. "와트슨! 와트슨! 어서
이리로 와주게, 도움이 필요해!" 그때 와트슨은 다른 층에 있었다. 그리고 접속하고 있던
전화기을 통해 벨의 소리를 듣고 얼른 그의 방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전화기에 대고 벨이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1915년, 처음으로 대륙 횡단 전화선이 개통되었을 때 (물론 이 국제선을 처음으로 이용한
사람도 벨이었다) 벨은 동부 해안에 있었는데, 역시 와트슨을 불렀다. "와트슨! 와트슨! 어서
이리로 와주게. 도움이 필요해!" 와트슨은 벨의 음성을 듣도 달려오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얼른
달려갈 수 없었다. 와트슨은 동부 해안으로부터 4,800km 떨어진 캘리포니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 사람은 한 번에 378개의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 ]
킬 왓젤이라는 오스트리아 사람은 '파노모니코'라는 한 사람이 연주할 수 있는 악기의 집합체를
만들었다. 파노모니코는 플래절렛 150개, 플루트 150개, 오보에 50개, 트렘펫 18개, 팡파레 5개,
드럼 3개, 케틀드럼 2개로 구성되어 총 378개에 달한다. 오스트리아의 찰스 대공은 왓젤의 이
환상적인 발명품을 구입하였는데, 왕자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이 악기를 사용한것이
아니라 왕가의 시끄러운 심부름꾼을 괴롭히기 위한 목적으로 구입한 것이었다.
[ 죽은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기계 ]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가였던 에디슨은 죽은 사람과 통화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려고
오랫동안 고심하였다. "나는 이미 죽었지만 어떤 형태로 존재하거나,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에 의해 움직일 수 있는 기계나 어떤 장치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고 오랫동안
생각해보았다."라고 말하면서 "만일 인간이 영혼을 조사함에 있어서 진정한 발전을 이룩하려
한다면 과학적 사고방식과 과학적 기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나는 믿는다."라고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을 통하여 역설하였다.
에디슨은 그가 만들어내려고 했던 기구의 모양이 밸브 형태를 닮은 것이리라 짐작하면서, 이
기계가 완성되어 작동할 수 있게 되면 사후 세계로부터의 메시지와 영향력을 증대시켜 우리가
조사하고자 하는 것을 어떤 형태로든 기록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하였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잡지와의 초기 인터뷰에서 에디슨은 죽은 자와 이야기 한다는 개념에
대해 언급하고 오래지 않아 기계를 완성하고자 했으나, 이 거대한 발명품은 에디슨의 머릿속
구상에만 그치고 말았다.
뉴저지주 웨스트 오렌지에 있는 국립 에디슨 유적지의 관계자들은 에디슨의 죽은 사람과
통화한다는 발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에디슨의 이러한 발언은 불성실한 것이었다고
말하였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세계적인 인정받고 있었던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잡지사는 에디슨의 발상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음에 틀림없다.
누가 발명했을까?
합판은 노벨상의 창시자 알프레드 노벨이, 흔들의자는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이, 가위와
콘텍트 렌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룰렛은 파스칼이 발명하였다.
인력거
인력거는 일본에 선교사로 가 있던 미국 감리교 목사인 조나단 스코비에 의해서 발명되었다.
그는 병약한 아내를 위해 이것을 고안했는데, 처음 사용한 것은 1869년 요코하마에서였다.
[ 에디슨과 전기 의자 ]
경쟁 관계에 있는 사업가를 여론 비판으로 패배시키기 위하여 토머스 에지슨이 전기 의자를
지지하였다면 여러분은 크게 전율할 것이다. 1880년대에 에디슨과 조지 웨스팅 하우스는 새로이
시작된 전력 사업의 패권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웨스팅 하우스의 교류 제품이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에디슨은 직류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려 하였다. 둘은 신문지상을 통하여
통렬하게 싸움을 벌였는데, 에디슨은 교류를 사용하는 것이 신빙성이 없고 안전하지 않으며,
목숨을 빼앗길지도 모른다고까지 주장하였다.
1887년에 뉴욕 주의회에서는 그당시 시행되고 있었던 교수형을 대신할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때 에디슨은 그의 경쟁자를 물리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며, 기술자인
헤롤드 브라운에게 뉴저지주 체스트 오렌지에 있는 자신의 실험실에서 교류 장치를 실험해보도록
권고하였다. 브라운은 50마리 이상의 도둑고양이와 개들을 전기 의자에서 죽였는데, 뉴욕주
담당관들이 조그만 실험 동물을 인체에 적용하는 것은 적합치 않다고 말하자 브라운은 말과 소를
대신 사용하였다. 그러자 주 담당관들은 그 실험에 대해 수긍하게 되었다.
1890년 8월 6일 살인죄로 어떤 감옥에 수감되었던 윌리엄 케믈러가 최초로 전기 의자에서
죽음을 당하였다. 교류 전류를 사용한 전기 의자는 웨스팅 하우스의 교류 사용법이 치명적이라고
공박한 에디슨의 주장을 충분히 입증해준 것이다.
최초의 전신 전보를 이용한 범인 체포
살인범을 체포하는 데 전신 전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845년 설날이었다. 슬로우의 한 저택에서
여자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용의자인 존 타웰은 기차를 타고 런던을 향하고 있었다. 다행히
세계 최초의 대중 전신 전보 시스템이 1843년 슬로우와 런던 사이에 가설되어 있었다. 존 타웰은
전보로 연락받은 런던의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사형에 처해졌다.
다 빈치는 예술, 수학, 천문학, 발명의 천재였다
만약 여러분이 화가, 조각가, 건축가, 음악가, 시인, 철학자, 발명가, 생물학자, 천문학자,
지질학자, 수학자 중에서 자신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될
수 있으며, 또 이 모든 분야에서 대가가 될 수 있는 비상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사람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
1452년 이탈리아 플로렌스 인근에서 출생한 레오나르도는 학교에 재학중이던 소년 시절에 이미
선생님도 쩔쩔매던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 수 있었다. 10대 소년이었을 때는 저명한 화가
안드리오 델 베로치오의 문하생으로 입문했으며, 20세에는 이미 스승의 실력과 맞먹었다.
30대 초반에 레오나르도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색깔은 퇴색했지만 세계 최고의 걸작품 중의
하나로 꼽히는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간주되는 또 하나의 불멸의 작품 '모나리자'를 완성하였다.
중년기에 레오나르도는 바티칸의 교황청과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 자신이 창작한 여러
아름다운 작품을 장식하였다. 레오나르도는 거의 일생 동안 예술가로서만 명성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의 비망록에는-그 당시 부터 수세기 동안 수용되지 않았던-과학 발명품의 탄생을
기대하면서 그렸던 20여 개의 환상적인 발명품의 그림이 담겨져 있다. 물론 레오나르도 두뇌에서
나온 대부분의 소산물-비행기, 헬리콥터, 잠수함 등-은 그의 생애에서 비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으며, 현대 과학이 이를 재발견할 때까지는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잊혀져 있었다.
세계 최초의 도시 건설
수메르인(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정착하여 살던 고대인)은 기원전 3500년경에 이미 글을
사용하였고 세계 최초의 도시를 건설하였으며 바퀴를 발명하였다.
전화의 최초 발명가
전화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발명하지 않았다. 전화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독일 태생의
필립 레이스이다. 그는 소위 Telephone이라고 불려지는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구를 1861년에
만들었고, 벨은 1876년에 전화에 관한 모든 것을 특허냈을 뿐이다.
[ 차는 역시 벤즈 ]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차는 디젤 엔진이 장착된 1957년형 180D 메르세데스 벤즈로 알려져 있다.
이 차는 21년 동안 달까지 거리의 5배에 해당하는 1,906,879km를 운행했다.
[ 플라스틱 자동차 ]
미래의 자동차 엔진은 부분적으로 플라스틱으로 제조될 것이다. 캐나다의 한 자동차 제조업체는
플라스틱 부품을 사용한 엔진이 일반 엔진보다 더 효율적이며 내구성이 강하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에서는 이미 연결 막대와 피스톤 링, 그리고 시간 조절 톱니바퀴에 플라스틱을 사용한 특수
엔진을 탑제한 경주용 자동차가 트랙을 돌고 있다. 과학자들은 현재 냉각 장치가 필요 없는
도자기로 만들어진 디젤 엔진을 실험중이다.
[ 콜라로 움직이는 자동차 ]
코카 콜라가 엔진 윤활유를 대체할 수 있다. 이런 있음직하지 않은 일은 영국의 과학자 잭
스코필드 박사에 의해 윤활유 대신 콜라와 특수 첨가제를 넣은 차로 115km 거리의 맨체스터와
리버풀을 왕복함으로써 1989년 입증되었다. 스코필드 박사는 콜라와 반응하여 윤활체를 생성하는
화학 물질을 개발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이 윤활체는 다른 어떤 윤활유보다도 엔진의 수명을
더욱 연장시켜준다고 한다.
어떤 실업자의 발명
직업을 구하기 위하여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걸어다녔던 험프리 오술리반은 어느 날 너무 피곤한
나머지 아예 길바닥에 털썩 주저 앉은 적이 있었다. 그가 바로 고무 뒤축을 발명한 장본인이다.
[ 양털 깎는 로봇 ]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대학교에서는 양털 깎는 로봇을 개발하였다. 감지기가 부착된 기계 팔과
자르는 장치가 달린 이 기계는 잘못되어 양을 잘라버리는 일 없이 양의 형태를 따라가도록 1초에
수백만 번의 계산을 수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로봇은 때때로 실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털을 깎는 데 로봇이 사람보다 더 오래 걸리지만 로봇은 사람보다 더 긴 시간 일할 수
있다며 개발에 참여한 사람들은 확신에 차 있다. 이 로봇에 대한 양떼의 반응은 보고되지
않았다.
[ 색을 분해하는 로봇 ]
미국의 연구가들은 루빅스 큐브를 풀어내는 로봇을 개발하였다. '큐 로봇'이라고 불리는 이
로봇은 한손으로 큐브를 잡고 각 표면에 칠해져 있는 색의 조합을 읽으면서 직접 큐브를
조작하여 퍼즐을 푼다. 이 로봇은 어떤 복잡한 색의 조합도 3분 안에 풀어낸다고 한다.
예술 분야에서의 로봇의 기능
일본의 로봇은 이제 예술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 '와수 로봇' 은 눈으로 악보를 읽어
내려가면서 이를 건반과 발판을 사용하여 전자 오르간으로 연주해낸다. 다른 로봇은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20초 정도 비디오 카메라로 관찰한 다음 인간의 얼굴이 담긴 초상화를 스케치한다.
[ 사과 컴퓨터 ]
1988년에 미국 미시간 대학교의 두 과학자 로랜드 잡과 글렌 브라운은 세계 최초로 사과
모양으로 생긴 사과 크기의 컴퓨터를 개발하였다. 전문적으로 '충격 감지 장치' 라고 불리는 이
사과 컴퓨터는 다른 여러 진짜 과일들과 함께 트럭 뒤에 실려서 운송되며 운송 도중 과일들이
받는 충격과 과일간의 부딪침을 기록하여 언제, 어디서 과일들이 손상되었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준다.
전자 계산기의 기원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파스칼은 오늘날 우리가 많이 쓰는 전자 계산기의 모체가 되는
최초의 기계식 계산기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가 이 기계를 만들고자 한 것은 세금 징수원인
아버지 때문이었다. 세금을 계산하기 위하여 골머리를 앓는 아버지를 보고 젊은 파스칼은
아버지를 돕기 위해 계산기를 고안해내었던 것이다.
[ 실리콘 칩의 용량 ]
얼마 전까지만 해도 1개의 실리콘 칩에 저장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약20,000단어에 해당하는
백만 비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1988년에 일본의 도시바에서 무려 4백만 비트의 용량을 가진 칩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손톱만한 면적의 이 칩에 160페이지 짜리 책 한 권을 집어넣을 수 있다.
[ 크로노미터를 발명한 독학 기술자 ]
1707년 영국 함대는 경도를 잘못 측정한 탓에 영국 남서부에서 벗어난 시칠리아섬에서 부딪혀
난파한 적이 있었다. 그때 영국은 해군 제독 클라우데슬리 쇼벨을 포함하여 4척의 군함과
2,000명의 인명 피해를 입었다. 이 사건 이후 영국 황실에서는 정확하게 경도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에게 2만 프랑크의 상을 내리겠다고 공고했다. 그 상은 요크셔주의 기구
제조업자인 존 해리슨에게로 돌아갔다. 그가 고안해낸 크로노미터(경도 측정 따위에 사용되는
정밀한 기계)는 해양 항해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할 만큼 정확한 것이었다. 이후 근 150년간
해리슨의 크로노미터를 능가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영국 황실은 해리슨이 영국 학술원의 정식
회원이 아니라, 독학으로 깨우친 기술자라는 이유로 그에게 상금을 내리기를 주저하였다. 실로
그릇된 처사였다. 그 후 조지 2세가 왕위를 계승했을 때 조지 2세는 해리슨에게 2만 프랑크를
하사하였다. 그때의 2만 프랑크는 오늘날의 환율로 계산해보면 100만 달러 정도의 가치였다.
[ 제임스 와트는 증기 기관을 발명하지 않았다 ]
토머스 뉴코멘이 1712년 증기 기관을 발명했다. 1778년에 이르러스는 콘웰 광산에만 70개
이상의 뉴코멘 기관이 가동하고 있었다. 와트는 뉴코멘 기관의 수리를 의뢰받아 바퀴를 돌릴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기관으로 개조했다. 이렇게 개조된 증기 기관의 유용성은 초기의 뉴코멘
기관을 곧 기억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레이트 이스턴호의 성능
1858년 런던 팀즈강에서 진수된 증기선 그레이트 이스턴호는 배 톤수 22,500톤, 길이
23km이었던 당시 가장 큰 배보다 5배나 더 컸다. 이 배는 77년 뒤 진수된 퀸 메리호의 2배에
해당하는 4,00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도록 건조되었다. 그레이트 이스턴호는 15,000톤의 석탄을
적재하고 연료의 재공급 없이 지구를 한바퀴 돌 수 있었다.
[ 세계에서 가장 작은 모터 ]
이 세계에서 가장 작은 모터는 바늘귀보다도 작으며 그 무게는 50만분의 1파운드이다.
켈리포니아의 윌엄 맥랠런에 의해서 제조된 사방이 64분의 1인치이며 13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이 모터의 출력은 백만분의 1마력이다. 이 모터의 작동 모습은 현미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맥렐런은 이쑤시개와 현미경 그리고 시계를 만들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선반을 이용하여
이 모터를 만들었다.
[ 혈액으로 콘크리트를 만든다 ]
프랑스의 어떤 회사는 마른 혈액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콘크리트를 개발하였다. 특정한
화학 물질과 섞여진 분말 혈액은 콘크리트 안에서 균일하게 분산되어 기포를 만들며 이 기포
주변에 형성된 규산염 막의 강도와 균질성이 새로운 콘크리트를 재래식 콘크리트보다 더욱
강하게 만든다.
[ 종이 건전지 ]
수년내에 사람은 '평면 건전지'를-적어도 외관상 평평해 보이는-구입하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할 것이다. 일본의 연구가들을 건전지 역할을 하는 유연한 종이를 개발하였다. 이 최신형
종이 건전지는 용액이나 반유동 상태의 물질을 포함하는 대신 금속박막 사이에 구리로 포화된
플라스틱을 집어넣어 다시 플라스틱으로 포장한 완전히 마른 건전지이다.
특허 NO. 1180.753
최근 미국에는 'female fish'를 잡는 새로운 고안품이 특허를 받았다. 그것은 낚시바늘에
거울이 부착되어 있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기 위해 달려온 female fish를 잡기 위한
고안품이다.
[ 기차를 발명한 사람 ]
기차를 발명한 사람은 조지 스티븐슨이 아니다. 1804년 리차드 트레바딕이 처음으로 기차를
발명했다. 하지만 철도 위를 달릴 수 있는 기차는 10년 뒤인 1814년 스티븐슨이 발명했고, 그
기차는 영국 리버풀과 맨체스티까지 64km를 달렸다.
아마콘 675의 발명
1초에 600,000,000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영국인에 의해서 발명되었다. 그
카메라의 이름은 아마콘 675이다.
[ 제24장-발견 ]
[ 실수로 발견한 경화 고무 ]
1830년대 이전에 고무는 그리 유용한 물질이 아니었다. 추운날에는 딱딱하고 뻣뻣해지며 더운
날에는 물렁물렁해지고 끈적거렸다. 찰스 굿이어, 그는 실패한 사업가요 빚 때문에 감옥살이
까지 하였으며 더더군다나 화학자도 아니었지만, 고무를 개량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것에 자기의
마지막 행운을 걸기로 결정했다. 굿이어는 고무에 유황을 첨가해 보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실수로 그 혼합물을 난로 위에 쏟았다. 뜨거운 고무-유황을
혼합체를 집어들었을 때 굿이어는 모든 온도에서 끈적거리지 않고 유연한 어떤 물질을 손에 쥐고
있음을 깨달았다. 굿이어는 그의 발견을 '경화 고무'라는 제목으로 출원하여 1844년에 특허를
받았다. 이것이 지금은 고분자화학으로 불리는 분야의 중요한 첫 발전이다. 그러나 굿이어의
과정은 너무 간단하여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특허를 침해했다.
탐험가의 거대한 동물원 발견
1519년 스페인의 탐험가 헤르난 코르테스는 멕시코에서 300명의 파수꾼이 필요할 정도로 큰
동물원을 발견했다.
[ 항생제의 발견 ]
모든 과학적 발견이 과학자들의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미국의
식물학자 벤자민 민제 두가는 66세 되던 1948년에 학문적 절정기를 맞이하였으며, 이때에 대역
분광 테트라사이클린 항생제를 발견하고 그 용법을 소개하였다.
[ 페니실린의 발견 ]
영국 세균학자 알레산더 플레밍은 1928년 페니실린을 발견할 때까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였다.
하지만 수많은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하여 탐구하여 나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세균을
배양하는 접시에 잘못하여 푸른색 곰팡이를 떨어뜨렸는데, 잠시 후에 그 곰팡이 근처의 세균들이
모두 죽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질병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게 될 페니실린을
발견하였고, 실패를 거듭한 지 17년 만에 노벨의학상을 수상하였다. 참으로 우연한 실수가
역사에 뚜렷한 대사건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 제25장-음악 ]
[ 슈베르트의 제6번 교향곡 ]
파리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슈베르트의 제6번 교향곡의 연주를 거절하였고,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에서는 조소를 보냈다. 그래서 이것이 작곡된 지 30년이 지날 때까지 한번도 연주된
적이 없었으나, 오늘날에는 모든 교향곡 중 가장 유명한 걸작의 하나로 꼽힌다.
슈베르트는 빨리, 쉽게 그리고 다작을 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즐거운 나의 집
존 하워드 페인은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단 하나의 노래로 많은 사람들에게 유명해졌으나 그
자신은 결코 즐거운 나의 집을 가져보지 못했다. 페인은 1791년 뉴욕에서 태어나 평생 영화계에
몸담고 있었는데, 때로는 집이 아예 없었고 무일푼일 때도 많았다. 배우요, 극작가요, 때로는
감방 생활까지도 했던 페인은 미국 영사관 직원으로 있다가 북아프리카에서 죽었다. 오늘날에는
그가 어린 시절의 한때를 보낸 롱아일랜드 이스트 햄튼의 조그마한 오막살이를 페인의 즐거운
나의 집으로 기념하고 있다.
[ 미국에서 가장 거대한 음악제 ]
미국에서 가장 거대한 음악제는 1872년 6월 17일부터 7월 14일까지 계속된 세계 평화 대
축제이다. 이것은 프랑크와 프러시아 간의 전쟁이 끝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는데,
오케스트라에 2,000개의 악기가 동원되었고 큰북은 그 직경이 8m나 되었으며, 합창단은
20,000명이나 되었다. 이 어마어마한 집단이 '아름다운 다뉴브강'을 연주하기 위해 당시 빈에
살고 있던 작곡가 요한 스트라우스를 20,000달러에 초청하였다.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천재 음악가였다. 그의 재능은 어려서부터
너무도 뛰어나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3세에 합시코드 연주를
시작했는데, 거의 본능적으로 모든 것을 배우는 듯했으며, 음악에 관한 어떤 것도 두번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그의 귀는 너무 예민해서 바이올린 조율시에 여덟번째 음의
탈선도 가려낼 수 있을 정도였다.
볼프강의 아버지는 현악 4중주단에서 연주하곤 했다. 하루는 아버지가 4중주단의 연주를
불참하게 되자, 당시 5세이던 볼프강이 그 빈자리를 맡게 되었다. 볼프강은 그 연주곡을 전혀
들어본 일이 없었지만, 수주일 연습하여 익히 알고 있다는 듯이 훌륭하게 연주해냈다. 그의
아버지와 다른 연주자들의 놀람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지만, 어린 볼프강은 단지 어깨를
으쓱하며 "제2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위하여 공부하고 연습할 필요는 없잖아요?"라고 말하였다.
볼프강은 어린 나이에 연주법을 배우던 무렵부터 작곡을 시작했고, 5세가 되자 합시코드를
위한 2개의 미뉴에트을 작곡할 수 있었다. 7세가 되면서 찬탄할 만한 소나타를 썼으며 우리가
생각해도 믿기 어려운 완벽한 교향곡을 썼을 때는 그의 나이 겨우 8세였다.
볼프강의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알고서부터 유럽의 음악 도시들을 여행할 때 항상 아들과
동행했다. 어린 볼프강은 유럽의 위대한 음악가들 앞에서 그들을 전율시킬 만큼 완숙하게
연주해냈으며, 어떤 멜로디든 단 한 번 연주되면 듣고 난 뒤 그것을 충실하게 재현하곤 하였다.
한번은 모차르트를 시험해보려고 복잡한 악보를 그에게 주었지만, 여러 시간 또는 여러 날
연습한 1급 음악가들만이 할 수 있을 정도의 정확성으로 그 악보를 연주하였다. 당시 로마에서는
성주간(Holy Week) 동안에 1년에 한 번 그레고리오 알레그리의 '미저레리'가 교황청 합창단에
의하여 공연되었는데 이 곡은 교황이 세계 다른 어느 곳에서도 공연되는 것을 금지하였고, 단
하나뿐인 그 악보는 교황청 지하실에 철저히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지 이
신성한 작품을 복사하지 못하도록 법령을 만들어두고 위반하면 파문하였다. '미저레리'는 길고
복잡한 대위법으로 된 작품이었다. 모차르트는 이 연주를 한 번 들은 후, 집에 들어와서 기억을
더듬어 전체 악보르 베껴쓰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접한 교황은 그 천채성에 감동하여 소년을
파문시키는 대신 오히려 골든슈퍼 십자가 훈장을 수여하였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리트는
1791년 35세로 죽기 전까지 600곡의 오페라, 오페레타, 피아노와 현악 4중주를 위한 협주곡,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세레나데, 경문가, 미사곡, 그리고 다른 여러가지 형태의 고전
음악들을 작곡하였다.
[ 천재 음악가들 ]
사무엘 웰스리는 3세에 오르간을 쳤고, 리차드 스트라우스는 6세에 작곡을 시작했으며,
베토벤은 8세에 연주회를 가졌다. 쇼팽은 9세에 첫 연주를 시작했고 슈베르트는 11세에 중요한
작곡을 시작했다.
[ 음악가의 죽음 ]
모차르트는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곡을 작곡하다가 죽었고, 브라암스는 불에 타 죽은
어린아이를 위해서 그 유명한 '자장가'를 작곡했다. 헨델이 유명한 오라토리오 "주여 당신의
법령은 얼마나 어둡습니까"를 작곡했을 때는 이미 장님이었다. 쇼팽은 사랑하는 연인 조르주
상드와 습기 많은 섬으로 도망가 살다가 폐결핵으로 죽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 노래는 1818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모르'라는 목사가 3시간 만에 작곡하였다.
[ 카라얀, 지휘의 제왕 ]
1963년 10월 15일 밤 베를린 필하모니홀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장엄, 숭고, 법열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베토벤(교향곡 9번)의 연주가 막 끝난 것이다. 이날의 주인공은 헤르베르트
폰카라얀, 마치 1824년 베토벤 자신에 의해 초연되었을 때의 열광이 재현된 것 같았다.
누구도 그의 명성을 따를 자가 없는 '지휘의 제왕' 자리에 오른 카라얀. 아마 세계의 지휘자들
가운데 카라얀만큼 신비의 대상이 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전문 평론가들이라고 하는 몇몇은
카라얀의 예술은 너무나 독선적이고 현혹적이며 세속화되어 있다는 비평도 했다. 하지만 막상
그의 새로운 레코드가 나오면 듣지 않고는 못 베긴다. 그런가 하면 일단의 광신적인 카리얀
팬들은 전세 비행기까지 동원, 카라얀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그의 음악을 듣고 열광한다.
그래서 '카라얀병'이라는 새로운 병이 생겨나기도 했을 정도인 것이다.
카라얀 예술의 본령-그것도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마술적인 지휘력에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의 피아노시모는 그 누구의 것보다 작고, 그의 포르테시모는 그 누구의 것보다 크다.
긴장되고도 팽팽한 현의 울림, 꽉 차오르는 관의 우렁찬 모습, 어느 한 군데도 흠 잡을 수 없는
세련된 흐름이야말로 카라얀 예술의 진수라 할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특히 '로시니'의 사곡을
들어보면 더욱 가슴 깊이 느끼게 된다. 그런가하면 그의 바그너는 또 어떤가? 그건 차라리
음악이라기보다는 도저히 견디어낼 수 없는 힘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의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예술적 정열-1978년 그는 다시 두번째 베토벤 교향곡 녹음을 시작,
이번에는 스튜디오가 아닌 베를린 필하모니홀에서 전곡을 녹음, 금세기 최고의 걸작을 만든 뒤
수많은 팬들에게 그의 영혼을 전하고 1990년 그의 생애를 마쳤다.
파가니니는 왜 다섯 곡밖에 작곡하지 않았나?
더 작곡하여도 자신의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는 귀신도 나와서 춤을 추었다고 할 정도로 테크닉이 뛰어났다고 한다.
[ 300년 동안의 비밀 ]
안토니우스 스트라디베리우스는 1644년에 태어났는데 원래 나무 세공사였다. 바이올린을 배운
뒤 바이올린을 만드는 데 흥미를 느껴, 18세에 당시 크레오나의 유명한 바이올린 제작자였던
니콜로 아마티의 견습공이 되었다. 1680년부터 자립하여 일하기 시작한 그는 여러 가지 형태로
바이올린을 만들어보면서 실험을 하였다.
그는 아름다운 인간의 목소리와 같이 뛰어난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을, 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이올린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바이올린에 자개, 상아, 흑단 같은 것들을
박아 장식하였다. 40세가 되었을 때는 그는 아주 유명해졌고 부자가 되었다. 그는 바이올린
만드는 비법을 어딘가에 숨겨 두었는데 함께 일했던 두 아들조차 그 비밀을 알지 못했다.
94세까지 사는 동안 그는 1,116개의 바이올린을 만들었다.
1737년 그가 죽은 뒤부터 스트라디베리우스 바이올린의 비밀을 캐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
무게를 재는 등 모든 세밀한 것까지 그대로 따서 아주 조심스럽게 바이올린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약간 좋은 바이올린이 만들어지긴 하였으나, 이 거장의 악기를 따라갈 만한 바이올린
제작자 뷰이란은 스트라디베리우스의 비밀을 캐는 데 평생을 보냈다. 마침내 그는
스트라디베리우스의 증손자 지아코모 스트라베리우스를 만났으나 지아코모는 결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엇이 스트라디베리우스의 바이올린을 뛰어나게 만드는가에 대해 많은 상상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무의 특성이나 악기의 모양 때문이라고 보았고, 어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부분이
연결되는 방식에 비밀이 있다고 하였다. 또 다른 사람들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자랐으나 그뒤
사라져 버린 어떤 나무로 부터 채취한 즙으로 만든 칠 때문이라고 보았다.
가장 널리 믿어지던 이론은 바이올린 겉에 칠한 니스의 배합 비율에 비밀이 있다는 것이었다.
화학자들이 이 배합 비율에 비밀이 있다는 것이었다. 화학자들이 이 배합을 분석하였고, 실제로
어떤 바이올린 제작자들은 그것을 가능한 한 비숫하게 모방함으로써 바이올린의 소리를 굉장히
향상시켰다. 또 나무를 물에 담갔다가 말린 뒤에 바이올린을 만드는 것도 비밀의 하나로
알려졌다.
어쨌든 아직까지 그 누구도 그 비밀을 완전히 캐내지 못하였고, 따라서 250년 전과 마찬가지로
스트라디베리우스 바이올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비 속에 감춰져 있다.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도 스트라el베리우스 바이올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노래 ]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노래는 'Happy birthday to you'이다. 1936년 밀드레드와 패티
힐이 작곡했는데, 아직도 로열티를 받는다.
바그너와 13
작곡가 리처드 바그너는 평생 동안 13이라는 숫자에 쫓겼다. 그가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
나타난 것은 1831년으로 합하면 13이고, '탄호이저'를 완성한 날이 4월 13일이며, 파리에서 처음
연주한 날은 1861년 3월 13일 이었다. 또 '니벨룽 겐의 반지'도 1876년 8월 13일에 처음
연주되었다. 그가 리가에 있는 주립극장의 대표가 되었을 때 그 극장은 9월 13일에 문을 열었다.
바그너는 13개의 오페라를 작곡했고 1년간 망명 생활을 했으며, 독일이 새 연합국이 된지 13년째
되던 해 13번째 날에 죽었다.
작곡가의 작곡 스타일
하이든은 언제나 프레드릭 대제가 준 반지를 끼고 깨끗하고 흰 종이에만 곡을 썼고, 바그너는
완전히 정장을 하고서 작곡을 했다. 도 모차르트는 당구를 치면서, 로시니는 술에 취해서 곡을
썼고 크리스토퍼 그럭은 아무도 없는 들 한복판에서 작곡을 했다.
[ 9번 교향곡의 희생자들 ]
베토벤, 드보르작, 말러, 윌리엄스 등은 제10번 교향곡을 작곡하기 전에 죽었다. 이들은 모두
제9번 교향곡의 희생자들 이다.
[ 피아노가 없는 피아노 연주회 ]
피아니스트 앙드레 프레빈은 뉴욕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2시간
만에 프레빈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두 도착하였으나 주최측에서 피아노를 준비하지 못했다.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은 전통적으로 대포와 총소리를 함께 넣어서 연주하였다.
애틀렌타에서 연주할 때 지휘자 로버트 쇼는 진짜 폭발 장치를 해서 단추를 누르자 연기와
폭음이 가득했다. 이 연기가 화재 경보기를 울리게 해서 소방서에서 도끼와 호스를 들고
달려왔고, 그래서 이 음악회는 예정보다 빨리 끝나게 되었다.
[ 근시 때문에 ]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였던 토스카니니는 악보없이 교향곡을 연주했다. 그는
몹시 심한 근시여서 바로 앞의 악보조차 볼 수 없었으므로 모든 악보를 외우고 있어야 했다.
[ 세계에서 가장 긴 피아노 연주 ]
1967년 67세의 하인즈 아른츠는 하루 2시간씩 자는 시간 외에는 44일, 즉, 1,056시간 동안
계속 피아노를 연주하였다. 이 연주는 독일에서 시작되어 배로 미국까지 여행하면서 계속되었다.
[ 하버드의 응원가가 나치의 행진곡으로 ]
'만세, 만세'라는 후렴이 붙여진 나치의 행진곡은 하버드 풋볼팀의 응원가를 에른스트
한프스탱글이 개작한 것이다. 독일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프스탱글은
1990년 하버드를 졸업했다.
1922년 바바리아의 한 비어 홀에서 열변하는 아돌프 히틀러의 연설에 감동을 받은 그때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던, 후에 독재자가 될 인물과 친교를 맺게 되었다. 큰 키에 튀어나온
턱을 지녔던 한프스탱글(별명은 '작은사람'이란 뜻의 '픗지'였다)은 열광적으로 연주를 하곤
했다. 그가 허리를 곧추세우고 열중하는 동안 히틀러는 휘파람을 불며 밴드 지휘자처럼 팔을
휘두르면서 돌아다녔다.
어느 날 그는 친구를 위하여 하버드의 응원가를 연주하면서 그들이 하버드 편의 열정을 모으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그 노래를 불렀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히틀러는 "이 곡은 위대한
우리의 운동을 위해 꼭 필요한 곡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픗지는 그 곡들 중 하나를 개작했고
후에 히틀러가 독일에서 정권을 잡게 되었을 때 갈색 제복을 입은 군악대에 의해 연주되었다.
곡중 "라, 라, 라" 는 "만세"로 바꾸었다. 한프스탱글은 이 밖에도 여러 편의 나치 행진곡을
작곡했다.
나중에 히틀러 정권에 환멸을 느낀 그는 워싱턴 DC로 갔는데 그곳에서 그는 비공식적으로
억류되어 2차 대전중에 독일의 형세를 알려주는 데 한몫을 했다.
모차르트는
돈 지오반니의 연습을 지휘할 때 지오반니의 육탄 돌격에 직면한 젤리나 역을 맡은
성악가로부터 그럴듯한 비명을 이끌어낼 수 없었다. 모차르트는 그녀 뒤로 몰래 기어가 결정적
순간에 그녀의 허벅지 사이를 움켜쥐었다. 그녀는 째지듯 소리쳤다. "바로 그것이" 모차르트는
말했다. "순진무구한 처녀가 순결을 잃을 위험에 직면하여 외치는 소리야."
브라암스는
음악을 공부하던 10대 초기에 살롱이나 뱃사람이 드나드는 선술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곤
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연주할 때는 소란스러웠던 군중으로부터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앞에
시집을 펼쳐놓았다고 한다.
슈베르트는
돈이 필요한 빈털터리 젊은 작곡가로서 하루에 8개의 가곡을 작곡하는 등 믿지 못할 정도로
부지런하였다. 그는 자다가 좋은 악상이 떠오르면 곧 오선지에 옮길 수 있도록 안경을 낀 채
잠을 잤다고 한다.
멘델스존은
'한여름 밤의 꿈' 서곡 악보를 마차에 두고 내려 잃어버렸다. 그는 기억에 의존하여 한 음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다시 작곡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불 같은 성품으로 악명 높았다. 한번은 화가 난 나머지 뉴욕 카네기홀의 문 하나를 주먹으로
부숴버렸다. 어떤 감상적인 팬은 부서진 나뭇조각을 기념물로 간직하고 있다.
[ 악보를 쓸 줄 모르는 음악가 ]
미국내에서 가장 다작의 대중가요 작사가인 어빙 베를린은 악보를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른다.
그가 머릿속으로만 작곡된 노래를 허밍음으로 부르거나 가사를 붙여 부르면 비서가 악보에 그
음들을 받아적는 것이다.
심포니 C장조, K.425
모차르트는 단 5일 만에 작곡하고, 악보에 기입하고, 리허설까지 협연한 교향곡이 있는데 바로
심포니 C장조, K.425, 일명 린츠 심포니이다.
알트로 토스카니니와 레오나드 번스타인은
실제로 '지휘자'로서 그들의 인생이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대리'로 지휘하게 되었다가 일약
행운을 잡은 정말 행운의 주인공들이다. 한때 첼리스트였던 토스카니니는 리오 데
자네이로(브라질의 옛 수도)의 오페라 극장에서 우연한 기회에 오케스트라 연단에 서게 되어
기억을 더듬어 베르디의 '아이다'를 연주하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오 토스카니니는 지휘자로
변신하게 되었다.
레오나드 번스타인도 카네기홀에서 앓고 있는 '브루노 윌터'대신 지휘하게 되었는데, 그
다음날 뉴욕의 전신문의 머리기사는 바로 '레오나드 번스타인의 지휘자로서의 출발'이란 기사로
장식되었다. 레오나드 번스타인은 '윌터'가 수석 지휘자로 있는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에서
부(보조)지휘자였다.
세르지 지아길레브와 아고르 스트라빈스키
그들은 피츠버그에서 법학을 공부한 법학도들이었다. '지아길레브'는 작곡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의 스승, 니콜라스 림스카 코르사코브는 스트라빈스키의 숨어 있는 음악적 재능을
키워주었으며 그 결과 스트라빈스키는 '현대 음악의 아버지'가 된 것이다.
어빙 베를린의 노래는
1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밝혀졌다. 그의 노래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1978년 5월
집계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에서만도 113,067,354장의 레코드와 5,688,845의 악보 사본들이
팔렸다고 보고되었다. 그는 3,000곡의 노래를 작곡해왔으며 그 중 1,000여곡이 음반으로
제작되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필경 걷는 것을 즐겨 했을까? 그는 오르가니스트 '벅스테후드'의 음악을 듣기 위하여 독일의
안스타드트에서 루벡까지 370Km의 거리를 걸었다고 한다, 또한 헨델이 '헬레'라는 마을을 마차를
타고 떠났다는 정보를 듣고 돌아오는 헨델을 만나기 위해 그곳까지 40Km를 걸어갔다는 일화가
있다.
유년시절 베토벤
그의 음악 선생님들로부터, 작곡가로서는 거의 희망이 없다는 절망적인 말을 들었다. 심지어
베토벤에게 일정 기간 동안 화성법을 가르쳤던 하이든조차도 베토벤의 잠재적인 천재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 제26장-물리, 화학에너지, 광물 ]
[ 제26장 물리, 화학 ]
[ 원자 폭탄의 시조는 아인슈타인 아니었다 ]
1939년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프랭크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원자 폭탄 개발을 촉구하는
서한은 아인슈타인이 쓴 것이 아니라 콜럼비아 대학의 물리학자 레오 질라드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핵 시대의 첫장을 연 유명한 서류였다.
1939년에 질라드와 프린스턴의 과학자 유진 위그너는 아인슈타인에게 아주 중대한 요청을
하였다. 아인슈타인의 명성에 힘입어, 핵에너지를 이용한 전쟁 용품에 대한 연구와 원자폭탄을
구상하고 제조하는데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빌려쓰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아인슈타인은 핵의 연쇄 반응에 대해 연구에 그리 관심이 높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제안에 동의하였다.
8월 2일 질라드는 아주 큰 우라늄 덩어리 안에서 폭발된 핵의 연쇄 반응에 의하여 방출된
막강한 힘과, 이와 더불어 생겨난 수많은 라듐 같은 입자들에 관한 설계안을 작성하여
아인슈타인이 서명하도록 제시하였다.
그 내용은 드디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전달되었고, 아인슈타인이 첫번째 설계안과 후속안에
서명함으로써 원자 폭탄을 개발하게 한 '맨해튼 계획' 이 1942년에 실현을 보게 되었다.
질라드가 그 계획을 수립하게 한 장본이었다면, 결국 아인슈타인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셈이었다. 후일 아인슈타인은 "나는 그저 우체통 노릇을 했을 뿐이다. 그들은 완성된 편지를
내게 가져왔고, 나는 그저 그 편지를 부쳤을 뿐이다" 라고 쓰고 있다.
그렇지만 질라드는 그 원자 폭탄이 1945년에 일본 국민의 머리 위로 떨어지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였다. 미국은 원자 폭탄의 막강한 파괴력을 과시만 하고 인명 살상이 있기 전에 일본이
항복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미국 정부가 실제로 그 폭탄을 사용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알게 되었을 때 질라드는 항의 서한과 전보를 보냈다. 미국 정부에 의한 원자 폭탄 사용을
저지시키는 데 실패하자 그는 물리학계를 떠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여행을 평화 운동과
핵무기 사용 자제를 위해서 보냈다고 한다.
[ 종이 원자 폭탄 ]
1945년 여름까지만 해도 원자 폭탄 제조는 비밀에 부쳐진 작업이었는데 '놀랄 만한 공상
과학'이라는 잡지의 1943년 3월호에는 놀랍게도 진짜 폭탄을 기술한 것 같은 한 편의 짧은
이야기가 실렸다. 정보가 새어나갔다고 단정한 미국의 비밀정보부 요원들이 조사를 하기 위해 그
잡지사 편집실에 밀어닥쳤다. "마지막선"이라는 그 소설을 한때 저널리스트였으며 방송인이기도
하였단 크레브 카트밀(1908--1964)이라는 사람의 작품이었다.
"마지막 선"에서 세이야라는 사나이는 전쟁으로 찢겨진 전국 씩싸 연합국으로 보내진다.
이보르의 사명은 씩싸군이 만든 새로운 비밀 무기를 무력화 시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지구
전체를 파괴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폭탄이었다. 이보르는 그 폭탄이 우라늄 동위원소 U235로
만들어졌고, 453g으로 섬 하나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게 된다. 이보르는 비밀
작전 수행중에 만난 지하 공작원 한 사람에게 "U235 폭탄 조작으로 하릇밤에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말하고, 지하 공작원은 이보르를 원자 폭탄 제조 책임자인 한 과학자에게 데려가
이보르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알아본다. 그리고 이보르는 U235의 폭발과 융합 장치, 그리고
폭탄의 작동 등을 모두 설명하고 자신의 공작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그런데 카트밀은
미국 정부에서 볼 때는 너무도 생생하게 그 이야기를 썼던 것이다. 잡지사의 편집인 존 W. 캠블
주니어는 카트밀이 어떠한 기밀 정보에도 관여하지 않고 또한 연합군의 공작 수행원도 아니란
것을 연방 정부 요원에게 누누이 강조하여야 했다. 카트밀은 공공 도서관에서 연구 자료들을
찾아서 하나의 소설 속에 정리하여 놓았던 것이다. 그가 찾아낸 자료들 중의 어떤 것을
1940년도에 이미 공표된 것도 있었다.
정부 요원들은 캠블의 말에 수긍하고 적들이 이 잡지를 통하여 정보를 얻지 못하도록 "마지막
선"을 압류하기로 합의하고, 카트밀은 풀려나와 공상소설을 계속 쓸 수 있었다. 정부 요원들은
손에 닥치는 대로 1943년 3월호 잡지를 사들였으며, 그 결과 그 잡지만은 유독 품귀 현상을 빚게
되었다.
만약에 빛보다 더 빨리 갈 수 있다면
빛은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을 돈다. 만약에 인간이 빛만큼이나 빨리 갈 수 있다면 몸이
조그맣게 줄어들 것이고 또 빛보다 더 빨리 갈 수 있다면 당분간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갈것이라고 한다(아인슈타인 박사)
[ 꼬마와 뚱보 ]
1945년 7월 16일 미국 로스 알라모스에서 처음 원폭 실험이 있었다. 원자 폭탄을 만든 사람은
오펜하이머 박사로서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 235 폭탄을 '꼬마(little
boy)'라 하고, 8월 9일 나가사끼에 투하된 플루토늄 239 폭탄을 '뚱보(fatman)'라 불렀다.
히로시마에서는 건물의 67%가 파괴되거나 불탔고 69,000명이 다쳤으며 66,000명이 죽었다. 또
나가사끼에서는 25,000명이 다치고 39,000명이 죽었다. 미국이 나가사끼에 '뚱보'를 떨어뜨렸을
때의 원자탄 보유량은 단 하나였다.
원자 폭탄과 수소 폭탄의 차이
원자 폭탄과 수소 폭탄의 원리는 반대이다. 원자 폭탄은 우라늄 원자를 분해하여 그 에너지를
방출한다. 즉 '핵분열'을 이용한다. 그러나 수소 폭탄은 '행융합'의 원리를 이용한다. 즉 엄청난
양의 열로 수소 원자들이 서로 융합하여 헬륨 원자를 형성하고 이때 생긴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소 폭탄의 원자를 융합시킬 수 있는 강한 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은 원자
폭탄의 폭발 뿐이다. 따라서 수소 폭탄은 원자 폭탄을 안에 가지고 있다. 즉 원자 폭탄이 먼저
폭발하여 엄청난 양의 열을 내면 이 열에 의해 수소 폭탄이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수소 폭탄에서 원자 하나의 무게는
1g의 1,000,000,000,000,000,000,000 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의 노벨상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노벨상을 받기 16년 전에 발표된 유명한 상대성 이론에 대한 입적이
아니라 그보다 덜 알려진 광전자 효과를 발견한 업적으로 1924년 노벨상를 받았다.
[ 골프공은 왜 울퉁불퉁한가? ]
골프공의 홈들은 밋밋한 볼보다 공아 훨씬 멀리 날아가게 해주면서 항력을 최소화 시킨다.
홈이 있는 골프공의 경우, 공이 공기 속을 날아갈 때, 약화시키는 항력을 약화시킨다. 가령,
같은 힘으로 '공'을 쳤을 때, 밋밋한 공은 65m밖에는 날아가지 못하지만, 홈이 파인 공은 275m를
날아간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는 입증될 수 있다. 하나의 골프공 안에는 약 300개에서 500개의
홈들이 있는데, 이 홈은 각각 0,25mm의 깊이로 파여 있다. 그 밖에 이홈들은 공을
역회전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역회전으로 공들은 공기의 압력을 덜 받게 되어 비행기처럼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 공을 날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원자 시계
지금까지 만들어진 시계 중에서 정확한 시계는 1964년 미 해군 연구실에서 만든 원자
시계이다. 이 시계는 1,700,000년에 1초가 빨라진다.
LA에서 뉴욕까지
한 방울의 물은 1,700,000,000,000,000,000의 분자를 가지고 있다. 만약에 이것이 모래로
변형된다면 LA에서 뉴욕까지 가는 길을 깔 수 있을 것이다.
연기와 완전 연소
불이 붙는다고 반드시 연기가 나는 것은 아니다. 연기는 불이 잘 타고 있지 않음을 뜻한다.
따라서 완전히 잘 타는 불은 거의 연기가 나지 않는다.
강낭콩 450g이 544Kg을 들어올린다
윌리암 펜 파운드 교수는 툴레인 대학의 식물학과 학생들에게 450g의 강남콩들이 544kg의
무게를 들어올릴 수 있음을 입증해보였다.
그는 전기가 통하는 1cm 높이의 철제 용기에 물을 가득 채우고 강낭콩들을 완전히 잠기게
하였다. 그런 다음 이 강낭콩 위에 전기가 가해진 철판을 1장 깔고 그 위에 평평한 돌을 올려
놓았다. 그리고 이 위로 실험을 위해 빌려온 포드 차의 앞축이 올려졌다. 학생들이 경이감과
호기심 속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콩들이 불어서 부풀기 시작하고 차는 공중으로 0.4cm 정도
들어올려졌다.
[ 먼지는 폭발한다 ]
아주 미세한 먼지는 광산의 가스 (메탄가스)처럼 폭발의 주요한 소재가 된다.
6*6*10cm짜리 방안에 44kg의 밀가루 한 부대를 먼지처럼 흩뿌린 다음 불을 붙혀
점화시키면 2,500톤 무게의 파괴력으로 3m 높이까지 튀어오르며 폭발할 것이다. 1913년 6월 24일
미국의 버팔로의 한 제분소에서 밀가루 분말의 폭발로 33명이 사망했고 80명이 부상당했으며,
아울러 제분소 건불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엄청난 재산 피해가 있었다.
더운물을 갑자기 유리컵에 부었을 때
두꺼운 컵이 얇은 컵보다 더 잘 깨진다. 또한 더운물이 찬물보다 더 무거우며, 더러운 눈은
깨끗한 눈보다 더 빨리 녹는다.
지름이 61cm인 파이프
지름이 61cm인 파이프가 지름이 30cm인 파이프보다 4배가 많은 물을 통과시킬 수 있다.
초고압의 크기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지속적인 초고압은 1제곱cm당 1,800,000kg으로서 이는 에베레스트 산이
지각에 미치는 압력의 700배에 해당한다. 이러한 압력이 다이아몬드에 가해지면 다이아몬드가
마치 녹은 플라스틱처럼 흐느적거리게 된다.
[ 빛은 얼마나 뜨거운가? ]
번개가 칠 때, 주위의 공기 온도는 약 화씨 54,000도(30,000도씨)인데, 이는 태양의 표면보다
6배가 더 뜨거운 온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번개를 맞아도 죽지 않고 살아왔다.
실례로 미국 공원 감시원이 로이 설리반은 1942년부터 1977년까지 무려 7번이나 번개를 맞았는데
별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구름 속에서부터 땅으로 향하는 번개
에너지가 지구로 통하는 가장 짧은 길은 사람의 어깨와 다리를 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번개가
사람의 신장이나 척추를 관통하지만 않는다면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원자 입자의 평균 수명
핵물리학자에 의해 발견된 어떤 아원자 입자는 그 평균 수명이 1조분의 1초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구에서 달까지 가는 데 1.25초가 걸리는 빛은 이 시간 동안 겨우 양성자를 가로지를 수
있을 뿐이다.
압력의 크기
종이컵에 위에서 아래로 구멍을 내어 물을 붓는다면 맨 밑에 있는 구멍으로 나오는 물이 가장
멀리 그리고 빨리 튀어나올 것이다. 바닥 부분이 가장 압력이 세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때문에 댐을 지을 때 바닥으로 갈수록 벽을 더 두껍게 만든다.
[ 유리가 깨어지는 속도 ]
유리가 실제로 깨어질 때 금이 가는 속도는 시속 4,800km이다. 이것을 사진으로 포착하려면
셔터의 속도가 1초에 100만분의 1로 조정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1초를 100만으로 나눈
순간을 포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리로 만든 공
유리로 만든 공은 고무공보다 더 높이 튄다. 또 강철로 만든 공은 유리공보다 더 높이 튄다.
[ 빛에 의한 색소 표백 ]
잔상은 사진기 플래시나 눈부신 전구와 같은 밝은 물체를 응시한 직후에 느끼는 어두운 영상을
말한다. 강한 빛은 망막의 감광성 색소를 잠시 표백하여 허공 중에 떠다니는 잔상을 느끼게
한다. 이 잔상은 서서히 없어지거나 눈을 깜박이거나 다름 배경을 바라봄으로써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물질의 가장 근본적인 구성 요소
미국의 물리학자 머레이 캘만은 물질의 가장 근본적인 구성요소인 쿼크(quark)의 존재를
예언하여 196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갤만은 세 종유의 소립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이름을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가상"에 나오는 '검열관 마크의 세쿼크'에서 따왔다. 현재는
셋이상의 쿼크가 존재하며 이 쿼크들은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물리학자들은
기묘한 특성을 가진 쿼크는 여섯 가지 '맛'을 가지고 있으며 각기 위, 아래, 매력, 기묘, 천장,
바닥으로 불린다. 천장과 바닥은 한때 진리와 미녀로 불렀다. 이들 쿼크는 적색과 보색, 녹색과
그 보색, 청색과 그 보색의 여섯가지 '색'을 가진다고 한다.
무게의 변수
1 하키 퍽(아이스하키용의 고무로 만든 납자한 원반) 36g
2 켄자스 커피빌에 떨어지는 우박(1970. 9.3) 752g
3 레기 잭슨의 박쥐 1kg
4 평균 남자의 뇌 1.4kg
5 치와와(개) 2.26kg
6 벽돌 하나 4kg
7 뉴욕시의 전화번호부 책(뉴욕의 5대 독립 행정구(뉴욕시, 맨해튼, 브룩클럽 리차몬드,
퀸즈)를 포함한 전화번호부) 6.5kg
8 포트노에 있는 금괴 12.4kg
9 프레드 아스테이어 63.4kg
10 세인드 버나드 개(성인) 86kg
11 프란시스 A. 존슨의 대포알(미네아폴리스에서 서쪽으로 80km 떨어진 프란시스 A. 존슨의
개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4,530kg
12 이스터섬 (칠레 서쪽의 태평양성에 있는 칠레령 섬.) 45,300kg
13 자유의 여신상 203,850kg
14 레드우드나무(가장 큰 것) 5,436,000kg
15 에펠탑 6,342,000kg
16 엘리자베스 2세 때의 영국 황실 기전 60,567,000kg
17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330,690,000kg
18 후버댐 안의 콘크리트 5,210,000,000kg
19 이집트의 쿠퓨 피라미드 5,800,000,000kg
20 달 7,000,000,000,000,000,000,000kg
21 지구 6,018,000,000,000,000,
000,000,000kg
(지구와 달의 무게는 중력의 법칙을 근거로 하여 측정한 이론적인 수치이다.)
[ 공기도 무게가 있다. ]
960km의 높이에 1평방인치 넓이의 공기를 달아보면 무게가 6.8kg 정도 되는데 이것은
갓난아기의 2배나 된다.
열의 흡수와 반사
검은색은 열을 흡수하고 흰색은 열을 반사한다.
달걀을 부화시키려면
뭉툭한 끝으로 세워져 있는 달걀은 부화하지 못한다. 바로 그곳에 자리잡은 공기 방이 달걀
내용물의 무게로 파괴되기 때문이다.
[ 샴페인잔에 떨어진 건포도 ]
샴페인잔에 떨어진 건포도는 잔 안에서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계속한다.
[ 계란의 신선도 실험 ]
계란을 소금물에 담가보아 가라앉으면 싱싱한 것이고 뜨면 오래 된 것이다.
[ 빨리 달리는 차가 연료를 절약한다 ]
한 시간에 평균 90km를 달리는 차는 한 시간에 80km를 달리는 차보다 연료를 1/3만큼 덜
소모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
아인슈타인은 1905년 26세의 젊은 나이에 상대성 원리를 세상에 발표했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한 사람은 12명에 지나지 않았다.
[ 구토물, 찌꺼기 등으로 고급 화장품을 만든다. ]
앰버그리스라고 불리는 고급 향수의 원료가 되는 것은 고래가 소화 불량으로 토해낸 불순물이
바다에 떠 있다가 태양과 공기에 노출되어 색깔이 변하면서 매우 향기로운 물체로 변한 것이다.
고급 화장품을 만드는 데 기본적인 요소인 나노린은 원래 더러운 냄새가 나는 끈적거리는
물체로, 이것은 양의 털에서 짜낸 찌꺼기 같은 것이다.
녹지 않은 얼음
얼음 결정은 모두가 알다시피 0도 이상되면 곧 녹는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인 퍼시
브리지만은 물이 끊는 온도인 100도가 넘어도 녹지 않는 얼음-7이라는 특별한 얼음을 만들었다.
그는 여러 물질에 고압을 가할 때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하던 중 이를 발견하였다. 초고압
상태에서 얼음은 물 분자가 눌러 서로 꼭 붙어 있어서 100도가 넘는 온도조차도 분자를 서로
떼어낼 수 없게 된다.
[ 유리는 고체인가, 액체인가? ]
일반적인 상식으로 볼 때 유리는 실내 온도 (20도 C)에서 고체인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유리는 고도의 점성을 지닌 액체이다. 여기서 점성이란 액체내의 내부 마찰을 의미하는 액체의
속성으로, 시간이 추이됨에 따라 점점 느려지고 결국에는 열에 의해 사라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점성은 일반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열린 와인병은 쏟아질 수 있다.
즉 와인은 중력에 의해 쉽게 흘러내린다. 반면에 단풍 당밀은 쉽게 흘러내리지 않는다. 당밀은
와인보다 높은 점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유리는 일반적으로 실리콘 리옥사이드 주변에 자리잡은 혼성의 산화 질소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아주 좋은 전기 차단제인 화학 성분이 첨가된 상업용 유리는 모래(셀리 카), 석회석,
소다(탄산 소다)를 화씨 2,552도와 2,732도에서 가열, 혼합시켜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용해물이 점성을 띠고, 화씨로 약 932(섭씨 500도로 유리 변형온도라 불린다.)가 되면 그
용해물은 음료수 병을 만들기 위해 고체화된다. 이때 미량의 철분 산화질소가 병의 색을 내는데
이용된다. 즉 산화 질소납은 커트 글라스나 크리스탈을 만들기 위한 연성, 밀도, 그리고
굴절성을 증가시키는 데 쓰인다. 그리고 붕사는 주방용이나 실험 도구를 만들기 위해 열팽창을
줄이는 데 사용된다. 그와 다른 물질들은, 주문된 크리스탈 모양의 변형을 막기 위하여 액체나
기체층에서부터 서서히 냉각되어 유리의 모양을 만드는 데 이용된다.
한편 오석과 같은 종류의 유리들은 자연 상태에서 만들어졌고, 유리 제품들은 기원전
2,500년경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에서 최초로 만들어졌으며, 다양한 모양의 유리를 만드는 기법은
기원전 100년경 포이니시아에서부터 개발되었다.
라듐 건강 식품
알려진 여러 가지 위험에도 불구하고 라듐이 함유된 건강 식품과 생수의 제조는 1930년
중엽까지 미국에서 번창하는 사업이었다. 라듐생수(뉴욕의 한 회사는 15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였다고한다), 라듐 치약, 라듐 화장품, 라듐 발모제 등이 있었으며 아마추어 골프
선수권자인 에벤 바이어에 의해 선전된 라듐 청량 음료까지 있었다. 매일 두병의 라듐 청량
음료를 마셨던 에벤바이어의 턱은 급격히 붕괴되었으며 수년 뒤 그는 빈혈로 사망 하였다.
[ 소금을 화학적으로 분해하면 ]
염화나트륨이 주성분임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을 사람이 먹으면 죽는다.
수증기
수증기는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식을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그네슘
마그네슘은 타고 나면 무게가 더 나간다.
목화
목화는 물보다 1.5배 더 무겁다. 셀룰로오스의 비중이 1.5이기 때문이다.
[ 제26장-에너지 ]
[ 번개의 온도 ]
번개의 온도는 태양 표면 온도인 섭씨 6,000도의 5배에 이른다.
[ 번개가 한 번 번쩍일 때 ]
번개가 한 번 번쩍일 때 37억 5천만 킬로와이트의 전기 에너지를 방출한다. 이 에너지의 약
75%는 열로 소모되어 주변온도를 섭씨 15,000도까지 올려놓으며 이에 따라 급격히 팽창된
공기는 천둥이라 불리는 소리의 충격파를 발생시킨다. 이 천둥은 29Km나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다.
[ 런던시의 가로등 ]
런던시의 가로등이 횃불에서 가스등으로 처음 바뀐 때는 1807년이었다. 이 가스등을 켜기
위해 석탄 가스가 사용되었다.
질량에너지
1파운드에 해당하는 어떤 물질이든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공식 E=MC에 따라서
모든 질량이 에너지로 바뀐다면 114억 킬로와이트시(Kw/h)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나온다.
1g의 물질이 에너지로 바뀐다면
만일 1온스의 28분의 1에 해당하는 1g의 물질이 에너지로 바뀌고 이 에너지가 전부
1,000와트의 전등에 사용된다면 호머가 살아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인 2,850년 전 전등을 켜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 칵테일 파티 ]
칵테일 파티에 한 사람씩 더 참석할 때마다 120W짜리 전구를 하나씩 켜놓는 것과 같다.
사람이 하루를 지내는 데 2500cal가 필요한데 이것은 궁극적으로 열의 형태로 한 시간에
104cal를 방출하는 것과 동일하며 이는 120W에 해당한다.
[ 전자와 양전자 ]
전자와 양전자는 두 가지 방법으로 서로 끌어당긴다. 상반된 하전량에 따른 전자기적 인력과
질량을 가진 두 물체 사이의 중력에 의한 인력이다. 전자기력은 중력보다
4,2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0,000,000 배나 더 강하다.(자연계에
알려진 4가지 힘 즉 중력, 약상호작용, 전자기력, 강상호작용, 가운데 중력이 가장 약하다.)
[ 에너지의 크기 ]
우주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는 조그마한 원자가 분해되는 것으로부터 별의 폭발에
이르기까지 에너지가 방출된다.
1. 우라늄 원자가 분리될 때 0.0001
2. 한 단어의 평균 한 음절을 발음할 때 200
3. 당신의 얼굴위로 달빛이 1초 동안 비칠 때 300
4. 귀뚜리미가 울 때, 혹은 벌이 날갯짓할 때 9,000
5. 50센트 동전이 손에서 땅으로 떨어질 때 혹은 타자기의 키를 손으로 때릴 때 1,000,000
6. 10와트 전등을 1분간 사용할 때 6,000,000,000
7. 치명적인 X-레이 광선의 양 9,000,000,000
8. 코끼리를 총으로 쏠 때 / 성냥을 켤 때 12,000,000,000
9. 고속도로에서 내는 속력으로 4톤 트럭의 엑설레이터를 밟을 때 9,000,000,000,000
10. 하루종일 중노동(도랑파기 / 나무패기) 할 때 100,000,000,000,000
11. 우주선이 발사될 때 9,000,000,000,000,000,000
12. 첫 원자탄이 터질 때 1,000,000,000,000,000,000,000
13. 허리케인(폭풍) 50,000,000,000,000,000,000,000
14. 100메가톤의 수소 폭탄 10,000,000,000,000,000,
000,000,000
15. 리히터 스케일 측정 결과 8-9포인트의 거대한 지진. 1906년 샌프란시스코의 지진 강도와
유사함 60,000,000,000,000,
000,000,000,000
16. 지구가 1년 동안 태양으로 부터 받는 에너지
1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
17. 태양의 연간 에너지 방출량
8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0,000
18. 하나의 별이 폭발할 때-504년, 많은 사람들은 초신성이 성령 구절의 하나인 '최후의
심판의 날' 을 예언한다고 믿었다. 그 초신성은 10^45^49의 에너지를 낸다
1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
[ 제26장-광물 ]
[ 손안에서 녹는 금속 ]
희기 금속 원소인 갈륨은 섭씨 30도에서 녹으며, 만져도 해를 입지 않는다. 따라서 손안에
갈륨 조각을 쥐고서 잠깐 동안만 있으면 금세 녹는 것을 볼 수 있다.
[ 완벽한 보석 다이아몬드 ]
다이아몬드는 한 가지 화학 원소로 아루어진 유일한 보석이며 이 화학 원소는 탄소이다.
다이아몬드는 완벽하리만치 투명함에도 불구하고 탄소는 검은 분말이다. 다이아몬드는 경도에
따라 화씨 1,400도부터 1,607도 사이에서 완전 연소된다. 그러나 일반적인 화재는 이 정도의
높은 온도에 도달하지 못하므로 독자가 소장하고 있는 다이아몬드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했던 대화재만이 화씨 2,200도의 높은 온도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다이아몬드가 형성되는 곳은 땅속 깊이 1300Km 아래에서이다. 그러나 화산이 폭발할
때 함께 땅위로 올라와 있기 때문에 발견하기 쉬운 것이다.
1캐럿은 205.3mg이다
다이아몬드 반 캐럿을 만들기 위해서는 21톤의 흙과 돌을 파내야 한다. 다이아몬드를 자르는
것은 역시 다른 다이아몬드이다. 다이아몬드는 두번째로 강한 광물인 코론듐보다 90배나 더
강하다.
[ 옷감 1파운드가 금 1파운드보다 더 무겁다 ]
1파운드면 다 같은 1파운드인가? 그렇지 않다. 1파운드의 옷감은 1파운드의 금보다 훨씬 더
무겁다. 왜냐하면 옷감에는 16온스를 1파운드로 하는 상형(16온스를 1파운드로 정한 형량.
귀금속, 보석, 약품 이외의 물품에 씀)이 적용되는 반면, 금에는 12온스를 1파운드로 하는
트로이형(금, 은, 보석의 무게를 재는 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환영받는 이방인
이제까지 발견된 가장 큰 금덩어리는 '환영받는 이방인' 이라 이름붙여진 78.4Kg짜리이다.
이것은 1869년 오스트레일리아의 빅토리아주에서 한 여행객이 타고 가던 마차 바퀴에 차여
발견되었다.
금을 얻기 위하여
1온스의 금을 땅으로부터 얻기 위하여 광부는 4Km나 깊이 파 내려가야 한다.
남아프리카 광업의 랜드 그룹은 금 400톤을 얻기 위하여 1년에 6천만 톤이 넘는 광석을
분쇄한다. 이집트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의 여러 갑절에 해당하는 분량의 원광석에서
9입방피트의 순금을 뽑아낸다.
[ 바닷속에는 수백만 톤의 금이 있다 ]
바닷물이 녹아 있는 금의 양은 9백만 톤에 이르며 이는 유사이래 인류가 캐낸 금의 180배에
달한다. 그러나 바닷물에 녹아 있는 금은 너무 희석되어 있으므로 추출하기에는 채산성이 없다.
금의 전성과 연성
금은 전성과 연성이 매우 뛰어나다. 약 28g의 금으로는 수백평방피트를 덮을 수 있는 얇은
막으로(282,000분의 1인치보다 앏게) 두들겨 펼 수 있으며 80Km 길이의 미세한 선으로 뽑아
늘일 수도 있다.
[ 어떤 여인의 살해 동기 ]
대영 함대의 총사령관이었던 장군 클라우데슬리 쇼벨 경은 1707년 실리 제도의 암초에 배가
좌초되어 육지로 헤엄쳐가는 도중 한 늙은 여인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 여인은 지금까지 해변
원주민 사이에서 통용되는 파도에 밀려 올라온 시체는 주인이 없다는 생각으로, 장군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합법적으로 소유하기 위하여 그를 죽였다.
[ 백만 파운드의 불상 ]
일본이 첫 영구 수도였던 나라에 있는 통대지 절의 거대한 전은 높이 16m로 주조된 거대한
청동 불상을 모시기 위해 8세기 중엽에 세워졌다. 불상의 무게는 백만파운드가 넘으며 4분의
1톤에 해당하는 금박으로 입혀져 있다.
수은과 세슘의 액화
화씨 40도에서 고체가 되는 수은은 최적 실내 온도에서 액체상태가 되는 유일한 금속이다.
그러나 희기한 금속 세슘은 섭씨 82.4도에서 녹는다. 따라서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에는
세슘이 액체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현상을 자주 목격하기란 쉽지 않다. 세슘의 화학
작용은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에 실험실에 설치된 조건 아래서가 아니면 세슘의 금속 상태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보석 수집가
1627년에 죽은 인도의 황제 자한기르는 2,235,600캐럿의 진주를 가지고 있었고 931,500캐럿의
에메랄드와 376,600캐럿의 루비와 279,450캐럿의 다이아몬드와 186,300캐럿의 비취를 수장하고
있었다.
[ 철 1파운드에는 ]
4,891,500,000,000,000,
000,000,000 개의 원자가 있다.
[ 생물의 사체가 압축, 퇴적되면 ]
석유는 적어도 수천만년 전에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때 죽은 공룡들의 시체와 기타의
식물들이 섞여서 압축되고 퇴적되었다가 생긴 것이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접착제로 석유를
사용한 기록이 성경에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전차 바퀴에 석유를 칠해서 매끄럽게 했으며,
고대 중국인들도 석유를 여러가지로 사용할줄 알았다. 땅을 파고 석유를 두레박으로 길어올려
석유를 퍼낸 기록이 있다.
납과 주석의 합금
납은 화씨 620도에서 녹고 주석은 화씨 446도에서 녹지만 이 두 금속이 함께 녹아
백랍(solder)이라는 새로운 금속이 만들어지면 이것은 화씨 356도에서 녹는다.
[ 가장 무거운 원소 ]
단단하고 무거운 원소 오스뮴은 지구상에서 가장 무거운 원소로 금보다 1/16 정도 더 무겁다.
1달러 지폐만한 크기의 2.5cm두께의 오스뮴 덩어리의 무게는 거의 6Kg에 달한다.
해수와 광물
바닷물 속에는 5,250,000,000,000톤의 광물이 있으므로 모든 입방마일의 해수는 적어도 1억
5천 톤의 광물을 함유하고 있는 셈이다. 지구상에는 3억 5천 입방마일의 해수가 존재한다.
알루미늄
비행기 날개를 만드는 데 쓰이는 알루미늄은 1평방인치가 40,823Kg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또 알루미늄은 하도 가늘게 뽑아낼 수 있어서 680g으로 지구를 한바퀴 돌 수 있을 정도이다.
[ 연필 하나로 ]
연필은 흑연으로 만드는데 연필 하나로 적어도 48Km 길이의 선을 그을 수 있고, 50,000단어
이상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연필의 평균 수명은 그 1/100밖에 밖에 안 된다.
우라늄의 힘
453g의 우라늄은 1,350톤의 석탄이 내는 것과 같은 양의 에너지를 낸다.
흠정역 성서에는
1,700개가 넘는 보석과 귀금속이 인용되어 있다.
[ 제27장 고대, 고고학 ]
[ 제27장-고대 ]
[ 법적으로 허용되는 살인 ]
스파르타에서 태어난 모든 새 생명들은 축생 직후 건강 진단을 받게 되어있다. 선천적으로
청각 자애를 가진 귀머거리 아이들을 죽이기 위해서 였는데, 이는 법적으로 허용되는
행위였다.
또한 신체 건장한 아이들은 7세가 되면 강제로 엄마의 품을 떠나 바라크(병역)에서 성장기를
보내야 한다.
이것이 스파르타식의 삶이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발상
BC 510년경 아테네인들은 독재자 '히피아스' 를 내쫓은 후, 또 다른 독재자의 군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여러 방법들을 고안해냈다. 그 방법으로 그들은 1년에 한 번 투표를
실시했는데 그 목적은 누군가를 의원 등으로 선출함이 아니라 누군가를 귀양보내려는 데
있었다. 각 아테네인들은 자신이 느끼기에 아테네의 평화와 안정을 무너뜨릴 수 있는 요소를
다분히 가지고 있는 정치인의 이름을 써서 익명으로 제출할 수 있었다. 주로 갑작스런 급진적
세력이 커진 정치인들이 주목되었다. 투표 결과 6,000표 이상을 얻은 사람은 누구든지 10년
동안 아테네를 떠나 귀양길에 올라야만 했다. 그러나 그렇게 수치스런 귀양이라고 일축할 수는
없었다. 그의 재산도 몰수 되지 않으며, 그의 가족 또한 아무런 해도 입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나면 그는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서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이 고안은 단지 민주주의를 가장 민주적으로 지키려는 아테네인들의 순수한
발상이라고 여겨진다.
놀라운 잉카 문명
15세기에서 16세기초까지 남아메리카 중앙 안데스 지방--지금의 페루와 볼리비아--을
지배하였던 잉카 제국은 여러 면에서 서양문명보다 앞서 있었다.
당시 유럽 의사들이 거머리 처방을 하고 있을 때, 잉카의 의사들은 벌써 뇌수술을 성공적으로
단행시키고 있었으며, 잉카의 농업, 건축, 그리고 천문학 모두가 서양보다 놀랍도록 앞서
있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잉카의 업적은 사회 안정 제도로서, 거지가 한 명도 없었다. 그
이유는 고아와 과부, 병자를 정부에서 특별히 보호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중노동자들은 50세에
은퇴하게 되어 있으며, 그 이후의 노후 생활은 정부에서 지급하는 연금으로 편안하게 여생을
지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특히 범죄자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아킬레스와 거북
BC 425년경 '아킬레스와 거북' 의 관계에서 보여지는 제노의 논리적 모순은 21세기 동안
수학공식으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 제노는 아킬레스가 거북보다 10배나 빨리
달리며, 거북이 아킬레스보다 9m 먼저 출발선에 있다고 가정했을 때 아킬레스는 결코 거북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제시했다. 가령 아킬레스가 마침내 거북의 출발선, 즉 9m를 뛰어왔을 때
거북은 90cm 앞서 있을 것이고, 아킬레스가 90cm를 뛸 경우 거북은 9cm움직이게 된다는 것이
제노의 이론이었다. 따라서 계속 이런 패턴으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아킬레스는 거북을
이기지 못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록 거북이 9cm 앞서 출발했다 해도 빨리 달리는
주자가 느림보 주자를 마침내는 앞지른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1600년대 중반, 스코틀렌드의 수학자 제임스 그레고리는 수열의 법칙이 실제상 존재한다는
것을 밝히고자 했다. 수열의 법칙은 어떤 무한대의 숫자도 유한한 총계에 합해지게 된다는
이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설혹 제노의 주장이 없었어도 아킬레스와 거북의 패러독스는
제임스 그레고리의 수열의 법칙과 부합되는 예가 될 수 있었다.
알몸으로 운동하는 그리스인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 안에서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벌거벗은 채로
시큐리스 거리로 뛰쳐나가서 "Eureka! Eureka!(드디어 알아냈어!)" 라고 외쳤다는 일화는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관습에 비추어볼 때, 그 행동은 놀랄만한, 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리스인들은 습관적으로 벌거벗고 운동했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남자의 나체를
본다는 것이 결코 쇼킹한 사건은 아니었다.
[ 나체 육상 선수의 우승 ]
고대 올림픽 선수들은 완전히 벌거벗은 채 뛰고 달리고 씨름하였다. 처음에 그들은 허리에
두르는 간단한 속옷을 입었다. 그러나 기원전 720년에 개최된 15차 올림픽 경기에서 우연히
옷을 잃어버린 달리기 주자가 경주에 우승하면서 옷을 벗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 정숙함을
지키기 위하여 여자들은 선수와 관중에서 제외되었다. 근처의 절벽에서 던져버린다는 협박은,
훔쳐보는 여자들을 단념시키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
고대 이집트인들이 미라를 만들 때 특수한 방부제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흔히
쓰이는 재료인 밀랍, 기름, 소금 등을 썼을 뿐이다. 그러나 미라를 만드는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여서 때로는 70일이나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한다. 물이 새어들지 않도록 시체를 붕대로
감싼다음 그 위를 왁스로 문질렀다고 한다. 이 왁스를 페르시아어로는 'mum' 이라 하고
아랍어로는 'munza' 라 한다. 오늘날 미라를 'mummy' 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뉴기니아의 문화와 언어
석기 시대 원주민들의 거주지인 뉴기니아(오스트레일아 북방의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섬)에는
700종류의 다른 문화와 언어, 방언 등이 존재했었다. 일례로, 서로의 집이 8Km 정도 떨어져만
있어도 그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말을 했고, 교통수단인 카누가 80Km의 거리를 둘 때, 카누에
몸을 실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각각 달라 10가지 이상이나 되었다.
스파르타쿠스의 권력
BC 73년 노예혁명을 주도했던 로마의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의 권력이 하늘을 치솟을 만큼
강해졌을 때 그의 휘하에는 90,000명의 부하가 있었다. 그리고 남부 이탈리아 전역을
지배하였다.
고대 중국의 의사
고대 중국에는 환자가 건강할때도 의사에게 돈을 지불했는데, 왜냐하면 의사가 질병을
예방시켜 주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환자가 죽으면 의사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간주해서 의사의 집 현관문 앞에 특수한 초롱을 달아놓았다.
[ 아내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하여 ]
아내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하여 고대의 중국 남성들은 먼 길을 떠나거나 또는 나갈 경우,
아내의 대음순을 실로 꿰매어 놓았다고 한다. 이는 남자와 성관계를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 음높이로 양을 측정한다 ]
고대 중국인들은 곡식이나 술의 양을 측정하는 용기를 만들때에 정확도를 확인하는 방편으로
옳은 소리를 내도록 했다. 용기의 정확한 치수 대신에 중국인들은 모양과 무게, 그리고
두들겨서 나는 소리의 음높이를 정하였다. 정해진 음정에서 벗어남은 올바른 치수에서
벗어남을 나타내고, 따라서 용기의 용적이 부정확함을 보여주었다.
왕립 고속도로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은 그의 행진용 도로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했다. 기원전 700년에
건설된 이 길의 폭은 현대 3차선 도로의 6배나 되고 포장도 잘되었으며, 높은 열주로 선이
매겨져 있었다. 왕은 이 장엄함을 보존하기 위해 불철주야 고심한 나머지 왕립 고속도로 위로
돌출한 발코니를 짓는 사람은 장대에 꽂아 그 사람 자신의 집 지붕에 달아놓겠다고 포고령을
내렸다고 한다.
로마 제국의 도로망
최고 전성기 시절인 AD200--250년에 로마 제국의 영토는 오늘날 미국의 면적과 거의
비슷하였다. 로마 시내의 인구는 약 100만 명이었지만 로마 제국의 휘하에 달린 인구는 1억을
초과했었다. 또한 로마 제국은 일찍이 도로 시설이 잘 발달되었는데, 도합 28,800Km의
도로들이 로마제국을 가로질러 사방으로 놓여있었다.
로마의 인구 증가 정책
인구를 증가시키려는 정책으로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는 자손을 많이 둔 로마인들에게 푸짐한
부상품이 뒤따르는 상을 수여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어린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들에게는
마차를 타지 못하도록 금했으며, 보석과 같은 장신구도 일체 착용치 못하게 하였다.
[ 여자는 결혼을 해야 사람이 된다 ]
고대 로마인이나 그리스인은 나이를 계산하는 방법이 매우 특이했다. 남자는 태어난 날부터
한 살로 계산했고 여자는 결혼한 날부터 계산했다. 그러므로 결혼 10주년을 맞이해도 여자의
나이는 겨우 열 살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한 첫해에 아들을 낳는 여자는 자신의
아들과 나이를 똑같이 먹어가게 되었던 셈이다. 즉 여자에게는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 생애
최초의 날이 되었던 셈이다.
스톤 헨지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놀라운 건축물 중 하나인 스톤 헨지는 잉글랜드 남서쪽
살리스베리 평원의 한적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수천 년 전 누군가에 의해 거대한 바위로 세워진 이 놀라운 건축물은 수세기 동안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에게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그 중 많은 돌들이 지금은 넘어져 땅바닥에 깔려
있지만 도랑, 구멍, 바위 등의 건축배열이 원래 기본적으로는 하나의 중심을 가진 원의
연속임을 알 수 있다. 지름 91m의 고리모양의 도랑이 가장 바깥의 원을 형성하고 있다.
중심으로 가면서 다음번의 원은 흙으로 채워진 56개의 원형 구멍을 이루고 있다. 스톤 헨지를
연구한 영국의 골동품 연구가 이름을 딴 이들 '오브리 홀' 은 그넓이가 각각 2m이고 깊이는
1m이다. 이 원형 안에는 Y와 Z홀이라는 작은 홀로 된 두개의 원형이 있다. 세번째는, 각각
높이 4m로 포스트 앤드 린텔(수직과 가로로 놓여진 큰 돌)식으로 세워진 거대한 사르센 돌들이
원형을 이루고 있다. 가장 내부는 가로놓여진 돌 없이 수직의 사암으로 이루어진 원형으로
되어있다.
사암으로 된 원형 안에는 5개의 거대한 삼석탑으로 된 말편자 모양의 돌이 있는데 이는 두
개의 수직 기둥 돌위에 린텔이 가로로 놓인 7m 높이의 거대한 돌들이다. 삼석탑은 각각 30톤이
넘는다. 말편자 모양은 알 모양의 사암을 둘러싸고 있으며, 이 사암은 차례로 중앙의 '제단'
돌을 둘러싸고 있다.
선사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돌기둥 위에 가로지르는 거대한 돌을 올려놓는 것만도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스톤 헨지 중 어떤 바위들은 48Km나 떨어진 채석장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그러나 이 돌들이 운반된 실제 거리는 거의 2배이다. 고고학자들은 사암들이 웨일즈의
프리셀리 마운틴에서 운반되어왔으며, 가장 쉬운 길은 육지와 강을 지나는 380Km라고 말하고
있다. 뗏목과 굴림대를 쓴다고 해도 이것은 굉장한 작업이다. 이 돌 하나를 운반하는 데에
적어도 800명의 인원이 필요했을 것이다.
스톤 헨지의 내부 원형건축에는 7년 정도의 기간이 걸린 것으로 생각된다. 전체 건축에는
1,500,000명의 노동력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선사 시대 사람들이 돌 하나로 이루어진
이런 이상한 기둥을 건축하는 데에 왜 그처럼 열심이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이 건축물들은 수세기 동안 이 교도소의 사원으로도 사용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오브리
홀에서 태운 뼈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세기 초에 이르러, 그 주축은 하지 때(6월
21일)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을 곧바로 가리키고 있다는 뜻이다. 스톤 헨지 구조물은
고대인들에게 작물의 파종과 수확 시기를 가르쳐주는 일종의 원시적인 경보시계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 페키비안의 반란 ]
BC 166년 페키비안들이 반란을 일으킨 주요 원인은 안토니오 6세인 세레우치드 왕이
예루살렘에 체육관을 건축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체육관은 '발가벗고 운동하는 장소' 란
의미를 지녔다. 유태인들은 누드 광경을 보고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미노스 문명의 발달
BC 2000년경, 크레타섬의 미노스 문명은 '수심 측량 기술' 로 유명하다. 현대식 수세식
화장실, 잘 고안된 하수구 제도, 공급파이프들이 1899년 옛 크레소스 궁전 자리에서
발견되었다.
고대 이집트 문명
BC 300년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국립 도서관에는 무려 20만 권이나 되는 책이 서가에 꽂혀
있었다고 한다. 또 고대 이집트의 배는 매우 세밀하여 일촌에 위수가 540이나 되었다. 그리고
산림을 둘러쌀 수 있는 그물이라도 능히 운반할 수 있을 만큼 가벼웠다고 한다. 이것이 고대
이집트의 문명이다.
시저도 조수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BC 50년경 시저가 100척의 배를 이끌고 영국으로 침입했을 때 배를 충분히 해안 가까이
끌어대지 않았기 때문에 상륙에 실패했다. 로마 제국이 융성하던 당시의 고대인들은 주로
지중해에서의 항해 경험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지중해는 조수가 없는 바다로 유명하다.
계절에 따라 한 시간이 다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한 시간이 하루의 1/12이었다. 그리고 낮은 해가 뜨는 때부터 지는
때까지로 계산하였기 때문애 여름철 낮의 한 시간은 겨울철 낮의 한 시간보다 훨씬 길 수밖에
없었다.
[ 누가 더 일을 많이 하는가 ]
현대 한국인들은 1년에 적어도 2,000시간을, 일본인들은 2,200시간을, 미국인들은
1,900시간을 일한다고 한다. 그러나 고대 로마인들은 1년에 겨우 1,600시간밖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고 전해진다.
[ 제27장-고고학 ]
[ 아담과 노아 홍수 ]
아담은 언제 창조되었으며, 노아 홍수는 언제 있었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서 무오설을 가장 열렬히 주장하는 워필드 박사에 의하면 아담이 창조된 후
아브라함이 출생하기까지는 20만 년이라는 기간이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방사성 동위 원소에 의한 연대 측정
화석과 지층의 연대(나이)를 측정하는 가장 믿을 만한 방법은 탄소와 칼륨, 아르곤에 의한
방사능에 따른 것이다. 2--5%의 근소한 오차밖에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 이사야의 발견 ]
1947년 어느 날 15세 된 어떤 소년은 잃어버린 염소를 찿기 위하여 사막을 헤매던 중, 사해
서북쪽에의 매우 경사진 바위틈에있는 동굴 속에서 우연히 하나의 항아리를 발견하였다. 이 중
하나가 히브리어로 된 구약 성경의 이사야로 판명되었다. 이 사해 사본은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 당시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 가장 뚜렷한 화석 ]
인간이 발견한 가장 뚜렷한 화석은 5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검은 돌 ]
가장 오래된 화석으로는 27년이 된 '오스트렐리아 수정' 과 박테리아 형상이 남아 있는 '검은
돌' 이라고 불리는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화석으로서 30억 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 우표 한 장이 10만 달러 ]
1856년에 아프리카의 갬비아(서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발행되어 1센트에 팔렸던 우표 한 장이
오늘날에 와서는 무려 100,000달러나 나간다고 한다.
루시를 사랑합니다
1974년 미국의 고고학자 도날드 조한슨은 에디오피아의 하달에서 인간의 화석을 찾고 있던 중
비로 침식된 자갈 골짜기 건너편에서 인간의 손 한 부분을 보게 되었다. 일행은 황급히
그곳으로 달려가서 묻힌 부분을 파기 시작했다. 조한슨은 마침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원인으로
보이는 여자 해골 40%를 모을 수 있었다. 약 300만 년 전에 존재하였던 이 원인은 주요한
인간의 형태, 즉 서서 걷는 형태를 지니고 있었으며, 골격으로 보아 단지 1m 정도의 단구임을
알 수 있었다. 머리 크기는 작은 포도 열매 정도였고 길게 흔들거리는 팔 끝에는 현대인의
것과 비슷한 손가락이 달려 있었다. 이는 실로 최고의 눈부신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화석 조각들이 지난 몇백만 년간의 인간 진화의 과정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이처럼 오래 된 것이면서도 완전한 진화를 보여주는 화석이 발견된 적은 없었던 것이다.
화석이 발견된 날 밤 조한슨과 그의 대학 동료들이 맥주를 마시며 화석의발견을 기뻐하고
있는데, 마침 비틀즈의 노래 'Lucy in the sky diamond(루시, 하늘에서 다이아 몬드와 함께)'
가 나오고 있었다. 노래와 흥분에 취하여 이들은 이 조그마한 화석을 루시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그때부터 화석의 이름은 루시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고용한 에티오피아인
일꾼들은 그녀를 덴케네쉬('너는 최고야'라는 의미) 라고 불렀다.
[ 2백 년의 화려한 잠에서 깨어나다 ]
1924년 여름 요하네스버그의 대학 교수 다이트 박사는 아프리카 타옹그스에 있는 석회암
채석장에서 2백만 년 전에 살았던 인간으로 보이는 '타옹그스의 아이' 의 뼈를 발견하였다.
6--7세로 보이는 이 아이는 그로부터 2백만 년이란 긴 잠에서 깨어나게 된 것이다.
공룡의 크기
어떤 공룡은 암탉만큼이나 작았으며, 검룡의 두뇌는 얼마나 작은지 등판 한 가운데 있는
신경절보다 더 작았다고 한다.
오늘날까지 살아온 선사 시대의 생물들
'실러켄스' (강극어)
4억 년 전에 존재했다가 7천만 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던 실러켄스는 1939년
아프리카의 동해안에서 살아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1.8m 길이의 실러켄스는 오늘날
'살아있는 화석' 이라 일컬어진다.
'오스트랄리언 페어'
2천만 년 전에 멸종 상태에 있었다고 전해졌지만, 1869년 생명체로 발견되었다.
'링굴라' (해양동물)
완족류에 해당되며, 지금까지 약 5,000년 동안 존재해온 것으로 모든 동물 중 가장 오랜
생명을 자랑한다.
'깅콩'
다윈이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지칭했던 나무로서, 중생대의 파충류, 공룡 등과 같은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생존해왔다. 중국등 각지에서 쉽게 발견된다.
'페리패투스'
곤충의 일종으로 5억 년 전부터 생존해왔다. 열대지방에서 발견된다.
'편자게'
원래의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존재하는 갑각류의 일종이다.
'돈 레드우드'
1억 년 전부터 지구상에 등장한 오래 된 나무이며, 1946년 중국에서 발견된 이후로
캘리포니아에도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투아타라'
2억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오는 파충류로도 알려져 있다.
뉴질랜드 근처의 섬에서 발견된다.
'오가피'
기린과 생물학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아프리카 동물로, 3천 년 전부터 존재해오고
있다.
'웰위치아'
몇백만 년 전부터 지구에 존재해왔으며, 지금도 남서부 아프리카의 사막에서 발견된다.
'브리스트레콘 파인'
BC 6200년에 지구상에 나타나 오늘까지 살아오는 나무로, 메두셀라(피라미드가 건축된 때와
동시에 생존하기 시작했다) 라고 알려진 브리스트레콘 파인의 한 표본은 4,600년이나 된
나무라고 한다. 또한 캘리포니아의 화이트 마운틴에 가보면 2,743m의 이 나무를 직접 볼 수
있다.
'스테판 아일렌드 개구리'
현존하는 개구리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이 개구리는 1억 7천만--2억 7천 5백만 년 정도의
나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원산지인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으며, 대부분의
개구리와는 달리 꼬인 발가락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크로코다일'
1억 6천만--1억 9천 5백만 년 동안 번성해온 파충류로서, 세계전역에서 볼 수 있으며,
현재까지 21종이 발견되었다.
'덕크빌 플레티푸스'
1억 5천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서 존재해왔고, 1797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수중 포유류이다.
'터틀'
2억 7천 5백만 년이라는 나이를 지닌 거북으로, 세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200--250종류에 이른다.
투탄카멘 왕의 저주
1922년 고고학자 하워즈 카터와 포드 카나본은 투탄카멘 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수많은 비밀을
밝혀냈다. 하지만 포드 카나본은 5개월 후에 카이로에서 죽었다. 그날 밤 카이로시의 모든
전기가 나가고 영국에서는 카나본의 개가 짖다가 갑자기 죽었다. 카나본은 모기에 물린 왼쪽
볼이 악화되어 죽었는데 이상하게도 투탄카멘 왕 미라의 왼쪽 볼에도 똑같은 상처가 있었다.
또 카터는 1939년에 죽었고, 무덤에서 파낸 보물 목록을 만들었던 베렐은 49세에 자살했으며,
1966년에 전시회를 위해서 그 보물을 파리에 보내기로 동의한 이집트 관리인 모하메드
이브라함은 회의를 끝내고 나오다가 자동차에 치여 이틀 후에 죽었다. 뿐만 아니라 무덤에
들어갔다 나온 카나본의 친척 허버트는 복막염으로 죽었고, 무덤을 방문했던 이집트 왕자
알리화니 베이는 런던 호텔에서 살해당했으며 그의 동생은 자살했다. 조지J. 구우드는 무덤을
방문했을 때 걸린 감기가 악화되어 죽었다.
이처럼 투탄카멘 왕의 무덤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마다 이상하게 죽어가자 '투탄카멘 왕의
저주' 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첫 희생자는 영국계 이집트 학자 휴이블린 화이트였다. 그는
왕이 무덤에 갔다 온 뒤부터는 알 수 없는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1924년 '투탄카멘
저주로 죽는다' 는 혈서를 남기고 목매달아 죽었다.
캐롤린 스탕거 필립 박사는 사람들이 계속 죽어간 이유가 투탄카멘 왕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무덤에 묻힌 과일과 야채들이 썩으면서 만든 곰팡이 때문이라도 주장한다.
[ 이스터섬의 신비한 석상들 ]
1722년 부활절날, 독일의 탐험가 야콥 로제벤은 남아메리카로 부터 4,000Km떨어져 있는
이스터라는 작은 섬에 갈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지금은 활동을 그친 화산의 분화구와
구석기 시대의 돌 작품인, 무표정하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얼굴들의 집단을 발견하였다.
오늘날까지도 고고학자들은 이 거대한 석상에서 비롯된 이스터섬의 신비를 풀지 못하고 있다.
그 엄청난 두상들은 섬의 화산에 의해 융기된 경사면을 등지고 세워져 있다. 땅 속 깊이 묻힌
비슷비슷한 머리들이 3--12m가량 지면으로 올라와 있는데 대부분의 무게가 거의 50톤이 넘을
정도로 크다. 모두 합하여 600개가 넘는 석상들이 섬의 경사면 여기저기에 점처럼 박혀서 마침
심각한 얼굴들의 전시회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이 상들은 투파라는 다공질의 부드러운 석회를
깎아서 만든 것인데 그 출처는 이 섬의 화산지 중 하나인 라노 라리쿠스 라는 곳이다.
탐험가들이 이 황페화된 출처를 처음 발견했을 때 그곳에서 150개나 되는 석상들이 옮겨지지
못한 채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상들은 각각의 그 완성된 단계가 달랐고 또 석상을
만들던 기구들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거대한 작업은 어떤 갑작스런 계기로
중단된 이후 다시는 재개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 섬을 더욱 세밀히 조사하는 가운데 자기들의 발견에 더욱 놀라워 했다. 이
석상 아래의 땅 속에서는 뼈와 재가 발견되었으며, 그 옆에서는 납작하고 빨간 바위들이
발견되었는데, 이것들은 한때 석상의 머리에 얹었던 모자나 뚜껑이었던 것같다. 고고학자들이
얼굴 주위의 땅을 깊이 파 들어가자 얼굴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조각되어 땅 속으로 9m나 깊이
파묻혀 있었다.
어떻게 하여 이 거대한 돌들을 라노 라라쿠에서부터 외부를 전혀 다치지 않은 채 16Km나 옮길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해서 몸체 부분이 땅 속에 그렇게 깊이 파묻힐 수 있었을까? 이 석상들은
얼마나 오래 전에, 누구에 의하여, 왜 조각되었을까? 갑자기 이 일을 중단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이러한 의문을 연구하고 토론하였지만 아직까지 정확힌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 제28장-미술 ]
[ 모나라지의 주인공 ]
1503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대작 '모나리자'는 현재까지도 가장 값진 그림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이 그림은 얼핏 보기에 밀라노의 공작 부인을 묘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해오는 전설에 따르면, 이 그림의 주인공은 모나리자 지오콘다라는
여인으로, 플로렌스의 상인인 프란체스코 지오콘다가 주문했던 그림이라고 한다. 그런데
프란체스코 지오콘다는 부인의 초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아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았는데, 그로부터 10년 후 프랑스의 왕 프란시스 1세가 금 492온스를 지불하고 그
그림을 사들인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현시세로 환산하면 30만 달러가 된다.
[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는 '모나리자'가 미국의 뉴욕 박물관으로 이송될 때 그
보험금이 2억 달러나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 그림만은 방탄 유리로 덮여 전시되고 있는데,
1911년 8월 21일 '모나리자'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난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이 그림을 도난당한
후 다시 찾을 때까지 2년 반 동안 약 20,000명의 용의자를 심문했는데, 그 중에는 화가 피카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도둑을 잡고 보니 범인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근무하던 페인트공이었다.
[ 담배 연기 때문에 살아났다 ]
파블로 피카소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뻔하였다. 그를 사산아라고 여겼든 그의 어머니가
피카소를 그 자리에서 버리려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고 있던 그의
삼촌(물리학자)이 피카소의 폐 속으로 담배 연기가 가득한 입김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울지
않던 피카소가 앙앙 울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피카소의 생명의 은인은 그의 삼촌이었다.
[ 피카소의 괴벽만 아니었어도! ]
피카소는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작품들을 붓으로 획획 갈겨 못쓰게 만든 후 "나는 10만
프랑을 단 한 번에 써버릴 수 있을 만큼 부자이다"라고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또한 가난했던
시절 자기 그림들을 태워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곤 했었다.
피카소의 그림 위에 야곱의 발자국이 있다
피카소와 시인 막스 야곱은 파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함께 살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이 한 침대에서 교대로 잠을 잤다는 것이다. 즉 피카소는 주로 밤을 새워
작업했기 때문에 밤에는 야곱이 침대를 이용했고, 피카소는 낮에 야곱이 장난감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동안 그 침대에서 잠을 잤다. 따라서, 야곱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종종
그림으로 뒤덮인 카펫 위를 걸어다녀야만 했다. 후에 미술 전문가들은 야곱의 발자국을
제거시켰다.
피카소의 유품과 재산
1973년 피카소는 프랑스 남쪽 지방의 어느 마을에 있는 4개의 개인 창고에 다음과 같은 유품을
남기고 죽었다. 그림 1,876점, 조각 1,355점, 도자기 2,880점, 스케치와 데생 11,000점, 부식
동판화 27,000점, 판화, 석판 인화 등이었다.
또한 그의 재산도 엄청나서 1,251,673,200프랑크였다. 이것을 달리 환산해 보면 2억 5천만
달러, 2천억 원에 해당한다.
38,000,000달러에 팔린 피카소의 그림
1988년에 피카소의 그림 중 하나인 '곡예사와 어릿광대'는 38,000,000달러에 팔렸다.
1989년에는 피카소의 다른 그림 하나가 47,850,000달러에 팔렸다.
[ 무명 시절의 피카소 ]
스타인 형제들인 게르트루즈와 그의 형 레오는 피카소의 첫 작품 '꽃바구니를 가진 소녀'를
30달러에 샀다. 또한 당시 아무도 피카소의 작품을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906년에서
1909년까지 3년 동안 피카소의 작품들을 독점 구입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림을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이번에는 피카소가 그들에게 자신의 그림들을 무료로 기증하였다고 한다.
15세의 피카소
'화인 아트 오브 바르셀로나 아카데미' 예술학교에 재학중인 학생들은 한 달 동안 시험에 준한
예술 작품들을 제출해야만 했다. 그 당시 15세였던 피카소는 단 하루 만에 이 과제를 완성했고
다른 모든 어른들을 제치고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피카소의 그림이 없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는 작품은 그 작가가 죽은 지 60년이 지나야 한다. 단 한 사람의
예외가 있었는데 그것은 프랑스의 화가 조지 브라크(1882-1963)이다.
[ 20년 동안 은닉되었던 누드화 ]
폴 에밀 차바스의 유명한 누드화 '9월의 아침'은 현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전에는 20여 년 동안 은닉되어 있었다. 그 작품이 처음으로 전시되었던 때는
1912년이었다. 그러다가 러시아인이 그 작품을 샀고 혁명 기간 동안 숨겨져 있다가, 1935년에
파리의 어떤 개인 수집품 중에서 발견된 것이다.
[ 경매에 부쳐진 가장 큰 그림 ]
경매에 부쳐진 가장 큰 그림은 스웨덴 화가 칼 라손이 그린 '동지'로 알려져 있다.
스칸디나비아 전설을 묘사한 폭 13.5m, 높이 6.4m의 이 그림은 1987년 소더비 경매에서 한
일본인에게 150만 달러에 팔렸다. 역설적으로 1915년 라손이 이 그림을 완성했을 때 스톡홀름
국립박물관에서는 전시를 거부하였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화가
1912년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피에르 오거스트 르느와르는 다시 걷느냐 혹은 그림을
그리느냐의 둘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해야 했다. 이유인즉, 6년 동안 류마티스성 관절염 때문에
절뚝거리며 걸어다녔는데, 증상이 심각해져 꼼짝없이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만 할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일단 르느와르는 남부 프랑스 자택에서 휠체어에 앉아 병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의사는 특별 식이 요법을 통해 르느와르의 양쪽 다리에 힘을 키우게 하였다. 4주일 만에
식이 요법은 효험을 거두어, 71세의 르느와르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몇 발짝 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선 상태에서 르느와르는 의사에게 말했다. "의사 양반! 난 포기하겠소! 지금 난
온몸의 힘을 다해 서 있는 거요. 그렇게 되면 난 그림을 그릴 힘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오.
따라서 걷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일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난 그림을 택하겠소!" 그리고
나서 앉은 후에 르느와르는 두번 다시 걷지 않았다. 그리고 그림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손가락들로 붓을
꼭 쥔 채 르느와르는 대작 '파리의 판결' '모자 쓴 여인'이란 그림을 완성하였다.
또한 조각 작품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한 지라 르느와르는 조수가 직접
작업하게 하면서 자신은 지팡이를 들고 어느 부분에 진흙을 붙여야 하고 혹은 떼어내야 하는지를
지시했다. 1919년 그가 죽을 때까지 르느와르는 유럽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인정받은 조각품 두
점을 완성했는데, 이것은 모두 조수들의 손을 빌려 완성한 이때의 작품들이다. 바로 '비너스'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여인'이다.
르느와르의 '목욕하는 여인'
발랄한 감각과 표현으로 색채감이 선명한 많은 그림들을 남긴 인상파 화가 르느와르는 70세가
지나면서부터 누드 여인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에서는 여인 하체가 풍만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의 관절통 때문이었다. 그가 '목욕하는 여인'이란 시리즈 그림을 시작했을 때
그의 손은 거의 마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붓을 손에 매달아 그렸으므로 자연히 몸 구석구석을
그리는 붓의 터치가 두꺼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뇌에 몸부림치는 영혼을 표현한 고흐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하나가 1980년 500만 달러에, 1985년에는 '일출과 풍경'이 990만
달러에, 1992년에는 1억 달러에 팔리기까지 했지만, 사실 19세기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화가 반
고흐는 살아 생전에는 그림으로 돈을 벌지 못한 가난뱅이였다. 그러나 이와 상관없이 계속
그림을 그려, 1888년부터 1889년까지 프랑스의 남동 지역인 아를즈라는 마을에서 거의 15개월을
머무는 동안 200여 점 이상을 그렸다. 그뿐 아니라, 숨을 거두기 전 70일 동안 불붙는 열정과
샘솟는 창의력으로 하루에 한 점씩 그림을 그려내었다. 본래 반 고흐는 선교사였다. 목사였던
부친의 뒤를 이어 광산촌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화가가 되었지만 불행히도 화가로서의 그의
천재적 재질은 사후 때까지도 인정받지 못하였다. 더욱이 거의 전생애 동안 지독한 정신
질환으로 시달렸는데, 결국 정도가 심해져서 정신 이상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의 정신
질환 증세는 우울증, 분노, 간헐적인 발작, 천재적인 예리함 등이 뒤섞인 심리적 불안 및 현실
공포에 기인한 것이었다. 한 번은 친구이자 동료인 폴 고갱과 심하게 다투고 난 후에, 자신의
오른쪽 귀를 잘라서 사랑한 조카에게 보낸 적도 있었다. 결국 1889년 고흐는 아를즈 근처에 있는
'성 레미'라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처음에는 그의 정신병이 치유되는 듯 보였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리고 1890년 5월부터는
파리의 북쪽 '오베르쉬르 오와즈'에 살고 있는 형 테오와 가까이 살면서 정신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1890년 7월, 빈센트 반 고흐는 극심한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했다. 그
6개월 후, 고흐를 재정적으로 도와주었던 테오도 죽었는데, 의사의 말에 의하면 슬픔과 우울증,
긴장으로 인한 의기 소침증 때문이었다고 한다. 테오가 죽은 뒤,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750통의
편지들이 공개되었는데, 그 편지 속에는 고흐의 화가로서의 철학관과 야심 등이 적혀 있었고,
얼마만큼 생전에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았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히 적혀 있었다.
가난한 예술가들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에 그의 그림을 84달러 어치밖에 팔지 못했다. 모네는 1891년에
100,000프랑이 생겼지만 말년에는 프랑스의 시골을 방황하면서 가난하게 살았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연인'은 모두 세 번씩이나 거절당했던 작품들이다.
예술가와 그의 작품
로댕은 1917년 겨울 어느 골방에서 동상으로 사망하였다. 하지만 그의 조각 작품들은 알맞은
온도의 호화스러운 박물관에 잘 보관되어 있다.
[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원래 깊이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을 나타내려 한 게 아니고 시인
단테를 조각한 것이다.
[ 정글에서 자살한 폴 고갱 ]
1882년 폴 고갱은 파리의 '주식 중매인'이라는 유망한 직업을 버리고 전문 화가의 길로
나섰다. 또한 가족을 버리고 남은 생애 동안 이곳저곳-처음에는 브리타니, 그리고 나서
마르티니크, 파나마, 그 후 남동 프랑스 마을 아를즈(아를즈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와 함께
있었다)-을 떠돌아 다니면서 보냈다. 소위 자연적인 삶을 찾기 위하여 고갱은 남태평양을
두번이나 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폴리네시아인들과 많은 섬들이 그의 화폭에 담겨졌는데,
현재까지 고갱의 뛰어난 작품들을 보면, 거의가 이것들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이것에 심한 타격을 받고 1897년의 마지막 날
타히티의 정글 속으로 기어들어가 '비소'원소를 다량 복용함으로써 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했다.
곧 먹은 비소 분말 가루들을 대부분 토해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 다음날엔 아픈 몸을
이끌고 정글 속을 빠져나갔다. 그 후 고갱은 남태평양에 머물렀는데, 그의 보헤미안적 기질과
원주민을 편든다는 이유로 종교적 관직자들과 심한 마찰을 빚었다.
그의 말년은 참으로 참담했다. 가난과 병으로 찌들다 결국 마르케자섬에서 1903년 그의 생을
마감했을 때 그 섬의 프랑스 주교는 고갱을 두고 이런 글을 썼었다. "오늘, 이 섬에서 큰 사건이
일어났는데, 바로 경멸의 대상인 고갱의 갑작스런 죽음이다. 존경받는 화가일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신의 적이며 불경스런 모든 것들을 지닌 악마이다."
1892년 타히티에서 그린 유화 '기타 치는 사람'은 1980년 런던에서 38만 프랑크에 경매되었다.
폴 고갱이 화가가 되기까지의 여정
폴 고갱이 한때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던 당시 일했던 노동자로 그는 하루 13시간씩 열대의
태양이 내리쬐고 비가 내리며 모기가 들끓는 늪지에서 노동을 했다. 그 후에 전세계를 항해하는
선원이 되었으며, 증권 브로커로 생계를 꾸려나가다가 35세에 이르러서야 화가가 될 결심을
하였다.
폴 고갱이 그린 에덴 동산
1889년 파리에서 세계 박람회가 열리고 있을 때 고갱이 출품한 타히티판 이브의 모습에서는
뱀이 출현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타히티섬에는 뱀이 전혀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갱은 뱀 대신에 도마뱀을 출현시키고 있다.
모네 때문에 개화되지 못한 참나무
1883년, 클로드 모네는 지베르네에 있는 집 근처의 크라우스내의 가파른 절벽을 뒤로하고
시원스럽게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참나무를 화폭에 담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않았던 기후
변화로 3주일 동안 작업을 할 수 없었다. 그 후 곧 그림을 그리려고 앉았을 때는 이미 3주일
전의 나무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었다. 참나무의 꽃봉오리들이 울긋불긋 솟아났고, 이제 곧
개화의 시기가 다가온 것만 같았다. 모네는 곧 시장에게 나무를 3주일 전의 원형으로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시장은 모네의 요구대로 나무에 새로 생겨난 잎과 봉오리들을 모두 제거하게
하였다. 그러나 모네는 전에 앉았던 그 위치에 가서 좌정하고 그림을 계속 그렸다고 한다.
[ 만약에 복권에 당첨된다면 ]
당신도 모네 같은 화가가 될 수 있다. 1891년 모네는 100,000프랑짜리 복권에 당첨되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자기가 원하는 대로 어디에서나 마음놓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 훌륭한 전원 풍경의 명작들을 만들어내게 한 원동력은 바로 복권이었다.
미국 최초의 여류 전문 조각가
미국 최초의 여류 전문 조각가는 패미션스 로벨 라이트였다. 그녀는 당시 영국과 미국의
저명인사들을 모델로 삼아 조각을 했고, 그것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불과 웨스트 민스터 아베이에 소장되어 있는 1779년에 완성된 '차담경' 정도이다.
빛과 색의 3원색
예술가들은 빨강, 노랑, 파랑을 모든 색의 기초라고 하고, 과학자들은 빨강, 초록, 파랑을
기초색이라고 말하는데, 빨강, 초록의 물감을 아무리 섞어도 노랑색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빨강과 초록색의 빛이 겹쳐지면 노란빛이 된다. 이 수수께끼 같은 사실은 물감을 통해
얻는 색과 빛을 통해 얻는 색이 서로 다름을 가르쳐 준다.
[ 56세에 연 첫 개인전 ]
프랑스의 Ecole des Beaux-ARTS라는 예술학교에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는 세잔은
1895년 파리의 라피트가에 있는 볼라드 갤러리에서 그의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56세였다.
세잔은 대가이다
세잔의 그림은 그가 죽은 뒤에야 평가받기 시작했다. 세잔이 살아 있었을 때는 아무도 그의
그림을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앵무새에게 "세잔은 대가이다"라는 말을 훈련시켜 두었다가
손님이 오면 그 말을 계속하게 했다.
[ '마른 사람'이 성낭갑 속에 ]
스위스의 조각가 알베르토 지아코메치(1901-1966)는 인간의 형성을 순수한 본질로 정화하는
데만 집착한 나머지, 완성된 조각품도 내키지 않으면 거침없이 깎아내려 결국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만들곤 하였다. 주로 프랑스에서 작업을 했지만 1942년-1946년에는 2차 세계
대전을 피해 중립국인 스위스로 가 있었다. 그러다 전쟁이 끝난 후에 다시 파리로 돌아왔을 때,
그는 지난 4년 동안의 결실인 작품들을 6개의 성냥갑 속에 넣어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지아코메치의 독톡한 동 인물상으로, 일명 '마른 사람'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이제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대공황은 재벌을 피해가는가?
1930년, 대공황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미국 재벌 앤드류 멜론은 러시아의 에르미타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림 21점을 7백만 달러에 구입했다. 그리고 러시아인들이 현금을
요구했을 때에도 멜론은 기꺼이 지불할 수 있었다. 대공황에도 역시 부자는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일까?
[ 아버지의 이름을 빌린 작품 ]
1978년 영국인인 예술 역사학자들은 19세기 풍경화의 대가로 꼽히는 존 콘스타블의 그림 10여
점은 사실 그의 아들 리오넬이 그린 작품임을 밝혀냈다.
황금의 집에 숨겨져 있는 보물
BC 64년 대화재 이후 로마의 한가운데에 네로 황제가 세운 거대한 보물 궁전은 그 후
1,500년이 지난 후 이탈리아에서 예술적 찬사를 받았다. 그 궁전은 일명 '황금의 집'으로
불렸는데, 그 이유는 현관이 금으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네로의 생전 왕실 화가인
파뮬러스에 의해 설계된 궁전이었지만 BC 68년, 네로가 자살을 한 후부터 그 궁전은 파괴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15세기 후반 과거에 묻혀버린 몇 개의 방들이 재발견 되었는데, 그 방들은 인간과
동물들의 형상을 복합한 것들과 꽃, 잎, 그리고 조개들을 이용한 화려한 장식들로 치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스타일은 몇 명의 이탈리아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동료 화가들처럼 라파엘은 그 황금의 집의 천장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아프로디테'와 쌍둥이 동상
BC 4세기에 만들어진 프락시텔레의 누드상 '아프로디테'는 고대사에서 가장 추앙받는
동상이었다. 그러나 이와 똑같은 또 하나의 동상이 있었는데, 코스에 세워진 이 쌍둥이 동상은
옷을 입고 있었다. 누드상 '아프로디테'는 700년 동안 터키의 최남서쪽 반도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크니두스 지역에서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며 우뚝 서 있었다.
인생이란 거꾸로 걸린 '르 바또'
1961년 10월 18일 미국 뉴욕에 있는 현대 미술 박물관에는 이중섭이 모방했다는 헨리 마티스의
추상화 '르 바또'가 전시되었다. 그뒤 47일 동안 약 100,000명이 이 그림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사실 이 그림은 그 동안 거꾸로 걸려 있었다.
참회의 의미로 교황의 동상을 만들었으나
교황 훌리오 2세와 심한 마찰을 빚은 적이 있었던 미켈란젤로는 1505년 그 행위에 대한 참회로
약 1년이 소요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바로 성하-훌리오 2세-의 동 초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 동 초상화는 녹여서 전쟁용 대포를 만드는 데 이용되었다.
[ 명작을 얻기 위한 몸부림 ]
19세기 프랑스 화가 진 게리컬트는 그의 대작 '메두사의 뗏목'을 그려낼 때 독특한 방법으로
정신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난파된 배의 149명 승객들이 망망대해에서 겨우 뗏목 하나에 매달려
떠내려갔던 재해에서 영감을 얻어 '메두사의 뗏목'을 그려냈는데, 그는 실제로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병원에서 사람들의 죽음을 연구하였다. 또한 머리를 깎고 시체 공시장에 있는
시체들사이에 누워서 몇 시간이고 눈을 감고 있었다.
이것이 그에게 있어서 사회적 현실에서 벗어나 극도의 세계로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대부분의 화가나 아트 스쿨에서 외면당하고 격렬한 비난까지
받았었다.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는 당대의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한 사람으로 그가 남긴 250편의 시와 소네트는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다.
천재 여류 화가
스위스의 화가 안젤리카 커프만(1740-1807)은 불과 11세의 어린 나이에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67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녀는 오로지 그림만 그리며 일생을 보냈다. 따라서 유럽의
웬만한 박물관에 가보면 그녀의 필치가 숨쉬는 초상화들과 그녀가 그린 다른 그림들이 시대적인
순서로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길이가 5Km나 되는 캔버스 ]
1840년 뉴욕에 사는 25세의 존 반바르드라는 화가는 소형 보트를 타고 미시시피강을
출발하였다. 그 후 400일 동안 경치를 바삐 그려가면서 강줄기를 따라 보트의 노를 젓다 막대로
밀다 하면서, 그림을 위하여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그 후 5년 동안 반바르드는 '미시시피의 파노라마'라고 이름 붙인 작품에 열의를 쏟았다.
거대한 강 어귀에서부터 뉴올리언즈에 이르는 1,920Km의 전망을 묘사하면서 반바르드는 규모가
이에 버금가는 커다란 캔버스에 작업을 하였다. 길이가 약 5Km이고 폭이 4m나 되었다.
거대한 작품은 2개의 수직 회전 원통에 전시되었다. 그림 전체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2시간이
걸렸지만, 수천 명의 사람이 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관람료를 아끼지 않았다. 반바르드는
미국과 유럽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면서 2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 후 한 영국인에게 팔렸으나
사라지고 말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림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림은 폴 필리모테욱스와 그의 16명 조수들이 1883년 그린 '게츠버그의
전쟁'이었다. 그 그림을 완성하는 데만 2년 반이 걸렸다고 한다. 길이 125m, 높이 21m, 무게
5,349kg인 이 그림은 1964년 노스캐롤라이나 윈스턴 사렘에 거주하는 조에 킹에게 팔렸다.
구석기 시대의 누드 조각
구석기 시대의 누드 조각은 젖가슴, 배, 엉덩이, 허벅지가 두드러져 보인다. 손은 배 위에
얹혀 있고 사타구니의 삼각이 강조되어 있다. 그 동안 이 그림과 동물 다산 의식의 관계에 대해
고찰되어 왔다. 이러한 대표적인 초기 작품에서 흥미있는 것은 초기 동물 그림들이 사실적으로
표현된 데 반하여 이들은 사실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대신 허벅지나 젖가슴 같은 성적인
부분이 과장되어 표현되어 있다. 현대에도 미개한 지역에서는 흔히 그러하듯이, 뚱뚱함에 대한
선호는 몸에 축적된 영양에 의한 생존 가치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 뛰어난 그림 날조자 ]
클로드 라토르 부인은 아주 솜씨가 뛰어난 그림 날조자였다. 그녀는 유명한 화가 마리스
우트릴로의 스타일을 그대로 모방해서 그림을 그렸는데, 파리의 교회 지역이나 거리에 즐비하게
놓여진 마리스 우트릴로의 그림들을 그대로 본딴 클로드 라토르의 그림을 보고, 우트릴로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우트릴로는 솔직히 어떤 그림이 진품인 자기 그림이고,
어떤 그림이 그녀의 그림인지도 구별하지 못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 가짜 그림을 산 나치의 지도자 ]
한스 반 미저렌은 국보 'Vermeer' 그림을 나치의 지도자 헤르멘 고어링에게 팔아넘겼다는
죄목으로 붙잡혔다. 전후 네덜란드 정부는 물론 'Vermeer' 그림을 소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
미저렌이 넘겼던 그림이 진품이라고 여기고, 한스 반 미저렌을 국가의 보물을 외국으로 팔아넘긴
중죄인으로 몰아붙였다. 마침내 재판은 시작되었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사실이 밝혀졌다. 화가
반 미저렌은 나치에게 팔았던 그림이 가짜라고 고백했고,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은 진품을 위조한
날조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술 비평가들에게 지금 네덜란드 정부가 소장한 그림의 진품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의뢰했다.
거부가 된 예술품의 수집가
프랑스의 예술 작품 수집가이자 매매인, 그리고 출판업자이기도 한 앙브로아즈
불라드(1867-1939)는 반 고흐, 세잔, 마티스, 피카소, 르느와르 등의 그림들을 수집했다. 그
당시는 그 화가들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았을 때였는데, 불라드는 싼값으로 그들의
작품을 구입하였다가, 그들이 조금씩 유명세를 타기 시작할 때부터 천천히 비싼 가격으로
매매함으로써 큰 부자가 되었다.
[ 교수대가 된 동상 ]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승마상은 현존하는 것 중 가장 큰 로마의 동제
조각품인데 한때 교수대로 사용된 적이 있었다. 교황 존 8세가 BC 905년, 반란 도시의 장관을
교수형시키는 데 이 동상을 이용했다. 이외에도, 1347년 호민관 콜라 디리엔초는 한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승마상의 말 한쪽 콧구멍은 와인을, 다른 쪽 콧구멍은 물을 내뿜는 분수대로
활용한 적이 있었다. 1539년 미켈란젤로는 로마의 캄피도 글리오 광장에 있는 이 동상의 둘레에
돌을 장식하였고 말의 생동감에 반하여 말에게 걸어보라는 명령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4세기 동안 세워져 있던 20개 이상의 동상들 중에서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는 이 승마상은 5m의
높이를 자랑한다. 그러나 한때 로마 최초의 황제인 콘스탄틴의 동상이라고 잘못 인식된 적도
있었는데, 그런 오해로 인해 중세기 내내 숭상받아왔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이 동상이 원래 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만일 그 금이 다시 표면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이 세계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고, 그 말의 입을 통해 곧 최후의 심판의 날이
공개될 것이라는 전설이었다.
꼬마 앉은뱅이의 열정
브라질의 조각가, 건축가인 안토니오 리즈보다는 하박 팔과 손을 잃은 후에도 작업을
계속했다. 원인도 모른 채 30 후반에 앉은뱅이 병에 걸린 후, 리즈보다는 상박 팔에다 망치와
지젤을 묶고서 작업을 했다. 또한 '알레우아디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꼬마
앉은뱅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로코코 건축물의 화강암 형식을 갖춘 공법 '알레자디노'도 그의
이름을 따라 명명된 것이다. 꼬마 앉은뱅이, 그는 과연 누구인가? 1738년에 태어나 1800-1805년
동안 12개의 거대한 돌로 만든 인물상인 대작 '예언자들'을 완성했으며 그 동상은 오늘날에도
브라질의 한 도시인 콩고나스 드 캄포에 아직도 서 있다.
구석기 시대의 벽화
초창기의 예술 작품들은 남부 프랑스와 북북 스페인의 동굴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의 동물
벽화였다. 웅대한 이 벽화는 BC 30000-10000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 세계에서 가장 큰 갤러리 ]
소련의 레닌그라드에 소재한 'Winter Palace and the neighboring hermitage'는 세계에서 가장
큰 캘러리이다. 거의 3백만 점의 작품들과 건축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이 캘러리 안에만도
322개의 작은 갤러리들이 있다. 그리고 관람하는 데만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는데, 구석구석을
둘러보려면 적어도 24Km 정도 걸어야 한다.
[ 하나의 인물화 때문에 추방당한 화가 ]
사실주의 화가 존 싱어 서전트는 파리에서 미의 상징으로 평가되는 버지니 아베노 구트로
부인을 화폭에 담아 자신의 대작이라면서 대중에게 선보인 바 있었다. 존은 그녀의 모습
그대로를 묘사했다고 주장했지만 대중들에게 보여진 그 인물화는 추악하고 교양미 없는 천한
여인의 모습일 뿐이었다. 이에, 그녀가 발끈하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결국 존은 영국의
런던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사무엘 F.B. 모스
우리는 사무엘 F.B.모스 하면 모스코스와 전기 전보의 창시자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예술 분야에서도 뛰어난 재원이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미국에 프랑스에 은판 사진법을
소개한 장본인이 바로 사무엘 F.B.모스이다. 또한 그의 초상화 작품들은 이미 미술 애호가들에게
사랑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는 '국제 디자인 아카데미'의 창업주로서 1대 학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뉴욕 대학의 전신인 뉴욕 시립대학에서 40년간 조각과, 회화과의 교수로 재직했다.
[ 파리의 자유의 여신상 ]
뉴욕항 입구를 압도하는 자유의 여신상-공개적으로는 세계를 알리는 자유-은 파리의 세느강
둑에 아직도 서 있는 동상의 확대판이다. 조각가인 프레데릭 오거스트 바르톨디(1843-1904)에
의해 조각된 파리의 오리지널 동상의 높이는 3m밖에 되지 않지만, 에펠탑의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에 의해 건축된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은 철과 금속 골조물 위에 동을 입혀 완성된 것으로,
화강암과 콘크리트로 된 받침돌을 합치면 땅에서부터 가장 높은 불꽃의 끝까지 93m나 된다. 원래
그 동상은 미국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가 선물로 준 것인데, 공식적으로 1884년 7월
4일인 독립 기념일에 인도되었고, 그 후 2년 뒤 뉴욕에서 재조립되었다. 그리고 1986년 7월 4일,
뉴욕시에서 개최된 자유의 여신상 100주년 기념식에 맞추어 장기간에 걸친 보수 작업은 끝을
맺게 되었다.
[ 인생은 70부터인가? ]
비록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미국의 최고령 예술가인 그랜드마 모스(1860-1961)를 낮게
평가했지만, 그녀의 그림에 스며 있는 인생의 열정에 매료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녀는
12살 때 가정의 불화로 집을 나와, 토머스 새몬 모스와 1887년 결혼을 할 때까지 가정부로
일했다. 10명의 아이를 출산했지만 5명만 살았으며, 남편의 농장 수입을 돕기 위해 감자 스낵과
버터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76세에 팔 관절염으로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되자, 그때부터
그랜드마 모스는 뉴욕의 그리니치로부터 40km정도 떨어져 있는 후식폭스라는 마을에서 101세로
죽기 전까지 1,000점이 넘는 그림을 남겼다.
그랜드마 모스의 진품을 소유한 사람들
대중 가요 작사가 콜 포터는 무절제하게 선물을 나누어주기로 유명했다. 어떤 크리스마스날,
그는 같은 마을에 사는 웬 노파가 그린 20점의 그림을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몇 년 후, 이 노파는 실력 있는 화가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동시에 포터의 20명의
친구들은 그들의 그랜드마 모스의 진품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페르시아산 융단
매 3평방피트마다 1백만 개의 매듭을 가지고 있는 페르시아산 융단이 닳고 닳아 못쓰게 될
때까지는 거의 500년이 걸릴 것이다.
[ 장난 때문에 치료된 실어증 ]
추상파 화가 아쉴리 고르키는 5살 때 그의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자 그 충격으로 실어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선생님이 어느 날 갑자기 절벽에서 튀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놀라
악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물론 선생님이 장난친 것이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그의 실어 증세는
말끔히 없어졌다.
예상치 않았던 유명 화가, 그리고 결혼
미국에서 가장 찬양받는 화가 중의 하나인 조지아 오키프(1887-1986)는 아주 어이없이
미술계에 등단한 화가였다. 1916년 오키프는 29세의 나이에 텍사스 캐년에 있는 웨스트 텍사스
주립대학 미술대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중, 오랜 친구이자 전 룸메이트였던 친구에게 자신의
자랑스러워했던 작품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부탁까지
했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사진을 창조적 예술로 승격시킨 개척자이자 현대 미술의 영향력 있는
보조자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1864-1946)에게 오키프의 작품을 보였다. 그리고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그 작품들을 유명한 화랑에 걸도록 하였다. 그후, 이 소식을 알게
된 오키츠는 스티글리츠와 친구의 행동에 몹시 격분하였다. 하지만 1918년경, 오키프는
긍정적으로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고, 곧 뉴욕으로 이주해서 그림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다가 스티글리츠와 오키프 사이에서 사랑이 싹터 마침내 결혼을 하기에까지 이르렀으며,
1946년 스티글리츠가 죽은 후 오키프는 뉴멕시코에서 남은 여생을 보냈다.
니나를 찾아라
유명한 만화가 알 허쉬페드는 30년 동안 딸의 이름 Nina를 작품의 인물들의 이름에 삽입시켜
등장시켰다. 가령, nahinma(나힌마:이름)식으로 알파벳 N,I,N,A를 작품의 등장인물의 이름 등에
응용한 것이다. 그리고 허쉬펠드의 팬들은 흥미를 가지고 숨어 있는 '니나'를 찾는 데
열중하기도 하였다. 또한 미국 공군은 전투기 조종사의 목표를 찾는 훈련을 '니나 찾기'로
명명하였으며, 어떤 국방성 자문위원은 은폐 전술에 관한 연구 비용 60,000달러중 일부를 니나
찾는 연구에 투자하였다.
[ 형편없는 색칠놀이 ]
워싱턴, 해밀턴, 존, 폴 존스 및 혁명적 영웅들의 초상화를 그렸던 화가 찰스 윌슨은 성인 될
때까지 그림 자체를 본 적이 없었다. 메릴랜드, 아나폴리스에서 안장 만드는 기술자였던 그는,
어느 날 연장 도구를 구입하기 위하여 노르폭에 갔을 때 처음으로 그림이란 걸 보게 되었다.
그때 그가 받은 그림에 대한 느낌은 '형편없는 색칠놀이'였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라면 훨씬 더 잘 그릴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던 그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림을
시작했고, 그림으로 돈과 명예를 얻으리라 결심했다. 보스턴에서는 존 싱글톤 코프리에게서,
런던에서 베자민 웨스트에게서 사사를 받았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림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의 아들과 딸들, 형제, 누이, 친척들, 심지어 이웃에게까지 그림 기법을 기르쳐주었다. 그 중
두 아들(당시에는 17세 소년들이었다) 렘브란트와 라파엘은 후에 그의 친형 제임스처럼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렘브란트의 장례비
렘브란트는 500점의 유화, 300점의 동판화 등 1,500점의 그림을 남겼고 오늘날 그의 작품은 한
점에 2,000,000달러 이상 호가 된다. 하지만 그가 죽었을 때는 무일푼 빈털터리로 장례비
5.20달러조차 없어서 친구가 대신 지불해야 했다.
[ 추상화의 첫 등장 ]
종래의 예술 소재들은 인물이나 사물이었다. 적어도 카시미르 마레비치가 신소재를 찾아내기
전까지는 그것들이 거의 고정화된 예술 소재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예술의
세계를 좀더 넓히고 싶어했던 러시아의 화가 카시미르 마레비치는 흰 도화지 위에 검정색의
사각형을 그려냄으로써 새로운 예술 기법을 꾀하였는데, 이 그림은 추상화의 첫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1901년 파리로 나가, 로트레크의 영향하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을 푸른 색조로
그리는 '푸른 시대'를 출발로, 1905년 네덜란드 여행 뒤에 '복숭아빛의 시대'로 화풍을 옮겼다.
뒤에 흑인 조각의 특이한 조형에 흥미를 가지고, 1907년 '아비뇽의 딸들'을 그려 큐비즘을
창시하였다. 20년 전후에 한 때 고전적 사실로 돌아갔으나, 25년경 쉬르레알리즘의 영향을 받고,
특이한 데포르메에 의한 조소적 표현을 시도하여 '메타모르포즈의 시대'로 들어갔다.
이후 각종의 표현 방법을 받아들여서 자유로운 조형에 정진하였다. 37년에는 반전적 대작인
'게르니카'를 발표하고, 파리의 레지스탕스 운동의 투사와 교제하였으며, 전후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이어서 니이스에서 가까운 안티프에서 가벼운 필치에 의하여 '피리 부는 목신' 등을
그리는 '안티프 시대'를 맞이하였다. 석판화, 조각, 도기 등도 제작하였으며 20세기 현대 미술의
최고봉으로서, 그가 기여한 영향은 매우 크다. 1974년에 한국 서울에서 그의 특별전이 열리었다.
그의 그림들...(그림생략)
[ 제29장-단테의 신곡 ]
그림설명
지옥의나룻배를 젓는 카론(Caron)-지옥편 3장
지옥의 언저리를 헤매는 억울한 영혼들-지옥편 4장
간음의 죄로 인하여 지옥에 떨어진 파올로(Paolo)와 프란체스카(Francesca)-지옥편 5장
비르질리오의 호통으로 땅에 쓰러지는 플루토(Pluto)-지옥편 7장
아르젠티(Arenti)를 뱃전에서 밀쳐내는 비르질리오(Virgil)-지옥편 8장
나무가 되어 고통에 신음하는 자살자들의 영혼-지옥편 13장
마귀와 죄인들-지옥편 18장
오물 구덩이에 빠진 간음자들과 아첨꾼들-지옥편 18장
교회를 이용하여 치부하였던 죄인들의 영혼-지옥편 19장
뱀구덩이에서 고통하는 도둑들의 영혼-지옥편 24장
자신의 목을 등불처럼 들고 있는 망령-지옥편 28장
친아버지를 사랑한 불륜의 죄를 지은 미라(Mirrah)공주의 망령-지옥편 30장
거인 안테이우스(Antaeus)의 도움으로 마지막 회당으로 내려서는 단테와 비르질리아-지옥편
31장
피아(Pia)-연옥편 4장
돌팔매질을 당하는 스테판(Stephen)-연옥편 15장
탐욕과 인색의 죄값을 치르고 있는 교황 아드리아누스 5세의 영혼-연옥편 19장
폭음과 폭식의 죄값을 치르고 있는 영혼들-연옥편 24장
자선, 희망 그리고 신념을 상징하는 세 여인-연옥편 29장
기독교를 위하여 싸운 하나님의 전사들의 영혼이 십자가 주위에서 합창을 하고 있는
장면-천국편 14장
단체와 성 베아트리체(Beatrice)-천국편 19장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은 단테-천국편 26장
모후의 왕관을 쓴 성모 마리아-천국편 29장
[ 제 30장 스포츠 ]
[ 달리는 기관차 아베베 ]
올림픽에서 맨발로 달려 우승함으로써 '맨발의 왕자'로 불려
지기도 했던 아베베는, 1964년 동경 올림픽에서도 2시간 12분 11초 2라는 당시 세계 최고
기록으로 올림픽 사상 최초로 마라톤 2연패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1969년 교통 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었고, 1973년 뇌출혈로 41세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 20개의 세계 신기록과 9개의 금메달 ]
육상 릴레이 경기에서 마지막 주자로 명성이 높았던 파보뉴미
(1897-1973)는 1920년과 1932년 사이에 20개의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으며, 9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가장 긴 싸움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계속되었던 권투 시합은 1893년 4월 6일 뉴올리언즈의 올림픽 클럽
사각링 위에서 앤디 보웬(흑인)과 잭 버크 사이의 경기였다. 이 시합은 7시간 19분에 걸쳐
110라운드까지 진행되었다. 무쇠 같은 사람들! 당신 입에서 이와 같은 말이 쉽게 튀어나오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역설스러운 것은 심판관 잭 더피가 110라운드에서 시합을 중지시키고 게임
몰수를 선언했다는 것이다.
에릭 헤이렌
에릭 헤이렌은 1980년 동계 올림픽 스케이트 경기에서 그의 5번째 금메달을 획득했다.
[ 최초의 여성 권투 시합 ]
오늘날 미국에는 프로 권투 선수로 등록된 여성이 50명 정도 된다. 그러나 여성의 복싱은
새로운 유행이 아니다. 두 여자가 겨루었던 최초의 공식적인 시합이 이미 120여 년 전에 있었다.
1876년 3월 16일, 24세의 넬리 사운더스가 25세의 로즈 할란드를 맞아 뉴욕의 한 링에서
시합을 벌였다. 열렬한 복싱 팬들이 200달러와 은쟁반이라는 상품을 놓고 겨루는 그들을
열광적으로 응원했음은 물론이다.
이 두 선수는 모두 버라이어티 쇼의 댄서로서 그 게임을 위해
맹훈련을 받았는데, 특히 사운더스는 프로 권투 선수인 남편으로부터 직접 훈련을 받았을
정도였다.
미스 할란드는 흰색 타이츠에 푸른색 트렁크스(넓적다리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남자용
반바지.)를 입었고, 미시즈 사운더스는 흰색 보디스(몸에 꼭 끼는 보통 소매가 없는 여성복
상의. 원래는 코르셋 위에 입고 가슴을 끈으로 죈 것.)와 자주색 브리치즈(무릎 밑까지 밀착된
형태로 된 승마복.)로 멋을 내었다. 게임이 시작되자 그들은 주저하는 몸짓을 보였다. '뉴욕
타임스'는 이에 대해 "미스 할란드는 그녀의 손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리고 미시즈
사운더스는 공격과 방어에 대한 좋은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다"라고
평하였다. 마침내 사운더스는 할란드의 얼굴에 일격을 가했고 시합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3라운드에 가서야 할란드는 페이스를 되찾기 시작해서 둘은 20점 동점을 이루었으며,
4라운드에서 사운더스가 한 점을 더 땀으로써 승리를 거두었다. 시합이 끝난 뒤 이 역사상
최초의 여자 복서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링에서 내려왔다.
세계 헤비급 권투 챔피언이 강단에 서다
젠트니는 한때 예일 대학에서 셰익스피어에 관해 강의를 했고, 알리도 한때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초청 강사로 강연한 적이 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다
세계를 열광시켰던 권투 선수 클레이(무하마드 알리)는 시인이기도 해서 이 유명한 시를 썼다.
그의 고조 할아버지는 노예 출신으로 주인의 성에서 클레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주인은
1860년에 러시아의 미국 대사를 지낸 케시우스 마세우스 클레이였다.
[ 누가 승자인가? ]
1988년 서울 올림픽 권투 경기에서 한국 선수 박시헌은 미국 선수 로이 존스를 판정으로
이겼다. 그러나 박시헌은 로이 존스에게 32번의 펀치를 가했고, 로이 존스는 박시헌에게 86번의
펀치를 가했다.
[ 세계 최대의 대결 ]
1988년 6월 미국 애틀랜틱시에서 열린 헤비급 권투 시합으로,
마이크 타이슨은 마이켈 스핑크스를 91초 만에 다운시켰다. 그는 이 시합으로 22,000,000달러를
벌었는데, 1초에 약 241,758달러를 번 셈이다.
[ 천재 복서 에디 이간 ]
예일 대학과 하버드 대학 출신의 에디 이간은 1920년 올림픽
권투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1932년 동계 올림픽
봅슬레이 4인승 경기에서 공동 금메달을 획득했다.
[ 1시간에 125개의 홈런을 날리다 ]
가장 위대한 야구 선수로 손꼽혔던 베이브 루스는 1927년
2월 로스앤젤레스의 리글리 필드에서 벌어진 시범경기에서
이 같은 놀라운 기록을 이룩해내었다. 루스는 여유 있는
웃음을 지으며 1시간 동안 125번이나 그를 향해 던져지는
투수들의 공을 담장 밖으로 날려보냈다.
프로 야구 선수의 직업 전환
1903년 이후 복음 전도사로서 유명한 벌리 선데이는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전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1883년부터
1891년까지, 시카고, 피츠버그, 그리고 필라델피아팀 등에서 프로 야구 선수로 활약했었다.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사나이의 비극
BC 516-540년의 올림픽 레슬링에서 모두 여섯 번이나 우승했던 그리스인 미로는 1톤의 황소를
어깨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그는 작가, 가수이기도 했고 훌륭한 군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바로 그 힘 때문에 일어났다. 어느 날 산길을 지나던 그는 두 갈래로 벌어진 나무
줄기를 보았고 그것을 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곧 벌렸으나 불행히도
그의 굵은 손이 벌어진 나무 틈에 끼여 빠지지 않아 어둠 속으로부터 달려든 늑대들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 첨단 부정 출발 탐지기 ]
바르셀로나 올림픽 육상 종목에서는 부정 출발하는 선수가 많았다. 조금이라도 더 금메달에
근접하려는 선수들의 욕망 때문이었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들 장면의 포착은 기록 계시의
첨단화 덕분이며 주체는 바르셀로나 공식 계시업체인 세이코가
제공한 '0.001초 감지기'이다. 흔히 '첨단 부정 출발 탐지기'로
알려진 이 기기는 선수들의 출발 상황을 0.001초까지 측정한다.
운좋게 선수들의 부정 출발이 발사 신호와 일치하더라도 출발
신호에 대한 반응 속도가 0.001초 이하이면 이를 심판에게 알리게 된다.
장대높이뛰기 선수
장대높이뛰기 선수는 땅에 착지할 때, 그의 관 모양의 정강이
뼈 관절부에 1평방인치당 9,100kg의 압력을 받는다.
[ 테니스에서 쓰는 Love ]
테니스 경기에서 스코어를 말할 때 Zero라든지 Nothing이라는
말 대신 'Love'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은 아마 몇 세기 전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경기자들은 점수판에 Zero를 쓸 때 계란처럼 생긴 O를 그린다. 프랑스어로 O는
L'euf로써 그 발음이 마치 Love와 같이 들린다. 이때부터 영국의 테니스 경기자들도 영점을
Love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 73세에 올림픽에 출전하다 ]
스웨덴 스톡홀름의 전신 사무실의 한 경리 직원 오스카쥐 스완은 몹시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당시에 생존한 사람들 중 가장 정확한 라이플 사격수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65년 동안 500번 이상 상과 상품을 받았으며 올림픽 대회에 네
번이나 참가하였다. 그의 가장 뛰어난 부문은 뛰어가는 사슴 쏘기이다.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
스완은 뛰어가는 사슴쏘기 싱글 부문에서 금메달을 땄다.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그는 61세로
모든 참가자 중 가장 나이가 많았으나, 뛰어가는 사슴 쏘기싱글에서 금메달, 더블에서 동메달을
땀으로써 스웨덴이 단체, 싱글 부문에서 금메달을 따는 데 공헌하였다.
1912년 올림픽은 스완의 고향인 스톡홀름에서 열렸다. 그는
수천이나 되는 그의 동포들이 보내는 찬탄의 시선을 받으며 경기에 참가하여 뛰어가는 사슴 쏘기
부문에서 금메달팀에 속하였고 더블에서는 동메달팀에 속하였다.
1916년 올림픽은 1차 세계 대전 때문에 열리지 못했다. 그러나 1920년 안토웝에서 열린 올림픽
대회에 스완은 73세라는 놀라운 나이로 참가하여 스웨덴이 싱글에서 동메달, 더블에서 은메달을
따는 데 기여하였다. 4년 후 스완은 한 번 더 스웨덴의 사격팀에 뽑혔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병이 나서 이 경기에 참가하지 못했고 1927년 80세로 사망했다.
[ 야구 선수 박찬호 ]
LA 다저스와 9억 6천만 원을 받고 6년간 계약을 한 야구 선수
박찬호의 최고 시속은 155km에 이른다.
[ 금메달의 가치 ]
노벨상 금메달의 실제 가격은 1976년도의 시장 가격으로
15,000달러였으나 메달에 포함된 금의 가치는 약 2,000달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올림픽
금메달 속에는 겨우 6g의 순금이 들었을 뿐으로 가치는 110달러 정도이다. 은메달은 66달러,
동메달은 16달러의 가치밖에 없다.
아이스 스케이팅의 나라
네덜란드인이 아이스 스케이팅을 처음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스케이터는 그들인 것 같다. 13,000,000명의 인구 가운데 약 25%가 마치
스케이트 선수이거나 한 것처럼 스케이팅에 능하다. 변두리 지방의 어떤 여인들은 계란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도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 만큼 능숙하다.
45세 인간 승리
조지 포먼이 프로 복싱 사상 최고령 세계 챔피언에 오르는 신화를 창조했다. 포먼은 1994년
11월 6일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벌어진 세계 권투협회(WBA)와 국제권투연맹(IBF) 헤비급 타이틀
매치에서 19세 연하의 챔피언 마이클 무어리(26세 미국)을 10회 2분 3초 만에 KO로 제압, 1974년
무하마드 알리에게 패한 뒤 20년 만에 세계 챔피언 벨트를 되찾았다. 이로써 조지 포먼은 1951년
37세에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저지 조 윌콧트(미국)의 헤비급 최고령 타이틀 획득 기록과 1903년
40세에 라이트 헤비급 타이틀을 따낸 보브 피츠시몬스(영국)의 최고령 세계 챔피언 등극 기록을
모두 경신했다.
[ 조지 포먼의 현재 직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그는 미국에 있는 조그마한 침례교회의 목사이다.
[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
캐나다 벤 존슨은 미국의 칼 루이스를 이기고 100m 달리기에서 9초 83의 벽을 깼다. 그러나
놀랍게도 약물(스테로이드)을 복용한 흔적이 발견되어 그 모든 승리와 영예를 잃었다.
[ 제31장 건축 ]
[ 세계 유일의 아름다운 사리탑 ]
성스러운 유골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사리탑은 불교 기념물로서, 대개 돌을 박은 흙으로
만들어진다. 간혹 규모가 거대해지기도 하는 유골 보관함은 불교를 믿고 있는 모든 국가에서
발견되며, 1,000년이 넘은 사리탑도 많다. 세계에서 가장 웅장하고 오래 된 사리탑은 스리랑카
또는 세이론섬의 아누라다프라에 있다.
이 고대 도시는 12세기 동안 세이론의 수도였으며, 많은 불교도들의 순례 여행지의 중심지였다.
오늘날, 아누라다프라의 유적으로는 여러 개의 거대한 사리탑(일부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규모가 크다)과 단단한 암석에서 깍아낸 사원, 지붕이 활동으로 만들어진 황동궁 등이 있다.
그러나 아누라다프라에 있는 모든 신성한 구조물 중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것은 루완
웰리탑이다. BC 144년에 세워진 이 탑은 면적이 500평방피트를 넘고, 두께가 18cm나 되는 고체
은 덩어리를 바닥으로 하여 건축되었다. 바닥에 사용된 은의 가격만도 300만 달러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고층 건물이 없는 미국의 수도 ]
미국의 워싱턴 DC에는 고층 건물이 없다. 그 이유는 이곳에 국회의사당 높이가 229cm인데,
건축법에 이보다 더 높은 건축물은 지을 수 없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사상 최악의 파티
수에즈 운하는 1억 달러의 공사비를 들여 1859년 4월 25일 시작, 1896년 11월 17일에
완성되었다. 이집트 정부는 이 역사적인 날 사상 최대의 파티를 열고 유럽 각국의 명사들
6,000명을 초대했다. 베르디가 기념 오페라 '아이다'를 작곡하고 세계에서 가장 좋은 포도주를
배로 날라왔으며 가장 화려한 불꽃놀이를 했다. 뿐만 아니라 500명의 특수 요리사와 3,000명의
웨이터가 고용되기도 했는데, 이처럼 어마어마한 파티를 여느라 이집트는 거의 파산할 뻔했다.
[ 얼음 궁전에서의 사랑 ]
1883년의 성 폴 윈터 카니발을 위하여 1에어커의 대지위에 14층 높이의 얼음 궁전이 세워졌다.
이 카니발은 미네소타주의 수도에서 해마다 벌이는 행사였지만 그 같은 규모의 얼음 궁전이
지어진 일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이 얼음 궁전을 짓는 데 55,000장의 얼음
덩어리가 사용되었고 전깃불 조명으로 궁전은 더욱 밝은 빛을 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름다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바로 조지 브라운과 에바 이반의 결혼식으로, 하객의 수만도 6,000만
명이 넘었다.
그런데 브라운과 이반의 결혼식이 얼음 궁전에서 거행되었던 첫 결혼식은 아니었다. 일찍이
150여 년 전에 러시아의 왕자 미하엘 골리신은 이탈리아의 카톨릭 교도를 아내로 맞았는데,
이일은 황후 안나 이바노바의 심한 노여움을 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부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황후는 그에 대한 노여움을 풀지 않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던 왕자와 가족들에 대한
근친 복수를 결심했다. 그녀는 사악한 유머 감각을 지닌 여인이었다. 안나 이바노바는 1739년
겨울에 성 페테르스부르크에 얼음 궁전을 짓게하고 얼음으로 만든 모든 가구-접시와 화장대
그리고 침대까지-를 설치했다. 모든 것이 완성되었을 때 그녀는 자기가 발견한 가장 추하게 생긴
여인을 왕자의 두번째 신부로 정하고는 결혼식이 거행되기 직전 신랑 신부로 하여금 코끼리를
타고 온 시내를 퍼레이드하게 했다. 그들은 황후의 기이한 명령에 따라 행진을 한 것이다.
행진의 마지막 길은 얼음 궁전의 문을 통과하는 것이었고, 그곳에서 그들은 코끼리에서 내려
얼음으로 된 신방으로 안내되었다. 그런 다음 출구를 봉쇄하였다. 그날 이 신혼 부부는 혹독하게
추운 밤을 보내면서 견디어야 했는데, 그로부터 만 9개월 후 왕자빈은 쌍둥이를 출산하였다.
[ 절벽을 깎아 만든 무덤 ]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무덤의 일부가 있는 고대 도시 페트라는 요르단 남부에 높이 치솟은
적사암 벼랑 사이의 자그만한 사막 계곡의 깊은 곳에 숨어 있다. 페트리는 역사가 2,000년이나
되었으나 원래 먼 거리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1812년까지 서방세계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
도시가 발견되었을때, 전세계는 벼랑의 한쪽 면을 깎아내어 만든 엄청난 분홍색 무덤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페트라에는 BC 4세기부터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로마의 전진기지, 이주민의 무역중심지,
회교도의 종교 중심지, 그리고 십자군 시대에는 기독교의 거점으로 사용되었다. 계곡을 둘러싼
가파른 벼랑으로 인해 페트라는 난공 불락의 요새였으며, 특히 벼랑 사이를 굽어치는 협곡만이
유일하게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 통로는 매우 협소하여 사람이 양팔을 뻗으면 양쪽
벽면에 손이 닿을 수 있을 정도였다. 5--6명의 병사만 갖고도 이런 곳에서는 대규모 군대에 맞서
도시를 방어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페트라에 자리잡은 부유한 이주민 상인들은 다른 고대 도시와 경쟁하기
위해 거대한 무덤과 사원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페트라로의 자재수송이 좁은 입구로 인해
방해를 받자, 상인들과 페트라의 왕은 벼랑의 벽을 깍아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대단한 걸작품이었다.
색깔은 적사암 벼랑과 같은 장미빛의 분홍색이고, 클래식한 스타일로 기둥과 벽이 장식되어
있으며, 거대한 건축물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거인들을 위해 지어진 것처럼 보였다.
가장 커다란 무덤은 높이가 15층 건물 높이로 단단한 바위에서 한 조각으로 깎아내린 것이다.
무덤의 정문은 높이가 12m를 넘으며, 바닥의 문턱은 하도 높아서 사람이 오르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사실 무덤이 대규모이고 디자인과 건축면에서 너무 뛰어나, 인근 지역에서 거주했던
아랍인들은 회교도 정신인 신령만이 무덤 건축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길이가 305m가 넘는 협곡 전체에 벼랑의 벽을 깍아 거대한 무덤과 사원을 만들었으니, 이
자체만으로도 장관을 이루어 하나의 건축물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조각 작품에 가깝다. 페트라의
무덤은 세계에서 가장 기이하고 가장 인상적인 광경을 자아내고 있다.
[ 화장실 없는 궁전 ]
루브르나 베르사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에 들어오기전에 볼일을 미리
보도록 되어 있었다. 정원에 늘어서 있던 수많은 조각들은 소변을 보는 데 적합한 곳으로
사용되었다.
피사의 사탑은 불완전성이 아름답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탑 중의 하나는 아름다움이나 크기 때문에 명성을 얻은 것이 아니라
불완전성으로 유명해졌다. 분명히 붕괴 직전을 맴돌고 있지만 피사의 사탑으로 더 잘 알려진
피사 성당의 종탑은 매년 수천 명의 관광객을 위험한 통로로 끌어 들인다.
육안으로도 기울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탑은 정교한 건축 예술품으로, 이탈리아
로마네스크 양식의 독립구조이다. 탑의 원통 모양의 중심은 6개의 대리석 기둥으로 떠받친
발코니에 둘러싸여 있으며, 꼭대기에는 다양한 색깔의 종루가 놓여 있다. 방문객들은 쉽게
올라가 종루를 둘러싸는 베란다에 나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성당과 길을 내려다볼 수 있다.
탑의 시공은 1174년에 시작되었다. 초석 토대 공사는 습지의 땅 19m 깊이에서 이루어졌으며,
나무 몸통을 말뚝으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곧 발견되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건설업자들은 탑의 남쪽에 난 복도의 높이를 높였으나, 탑은 점점 더 남쪽으로
기울기만 하였다.
사실 탑은 남쪽으로 기울었을 뿐만 아니라, 남쪽에 추가로 더 해진 높이 때문에 북쪽으로
굽어져 있다. 55m 높이의 탑은 이제 수직에서 4m 정도 벗어나 있다. 수년에 걸쳐서 탑을 구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제시되었다. 탑이 계속 보존되기 위해서는 이들 방법 중 하나가 효과적
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탑이 붕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스페인 사라고사에 있던 비슷한 사탑은 1887년에 무너졌다. 설사 피사의 사탑이 엔지니어에
의해 보존되더라도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남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북쪽으로 굽어져 있어서
절대로 똑바로 서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아피안 하이웨이
아피안 하이웨이는 고대 로마의 유명한 군사 도로로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용되고
있다. BC312년에 만들기 시작했는데 BC 71년 반란을 일으켜 도망간 노예들을 잡아 이 길에
십자가를 세우고 화형시켰다. 그때 죽은 노예들의 수가 6,000명이 넘었다.
러시아의 이반 뇌제
러시아의 이반 뇌제는 1555년 모스크바에 성 바실교회를 세웠는데, 그 아름다움에 반한 나머지
더 아름다운 건물이 세워질까봐 설계자 포스트닉과 바르마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파나마 운하를 건설케 한 우표
현재의 파나마 운하가 있는 지점이 정해지게 된 것은 아마도 프랑스의 건설 기술자였던 필립 장
부노바리야라는 한 집념의 사나이가 미국 국회로 보낸 니카라과 우표 한 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국 국회는 애초에 이 지역 운하를 니카라과에 건설하려고 했었는데, 부노바리야는
프랑스-파나마 운하 건설 계획을 추진하다가 1889년에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운하 건설
권리를 미국에 팔 수 없을까 고심하였다. 수염을 기르고 우쭐대는 듯한 이 조그만 사나이를
테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은 '결투자의 외관'을 가진 사나이라고 말했다. 그때 당시 미국은
한시라도 빨리 북남미 대륙을 가로 지르는 운하를 파는 것이 급선무였다. 왜냐하면 전함
'오래곤'호가 스페인-미국 전쟁터로 긴급히 보내져야 되었는데,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남미을
돌아서 카리즈해 까지 도달하는 데 장장 68일이라는 향해 기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의회내에서는 1899년경까지도 이 운하 건설에 대한 결정을 보류하고 있었다. 그것도 파나마가
아니라 니카라과에 건설하는 계획안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부노바리야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천재 지변이 일어났다. 1902년 5월 8일 마르티크섬의 펠레산이 폭발하여 3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약 1개월 후 니카라과의 모모톰보가 또 폭발하였다.
그런데 이런 불행한 일들이 부노바리야에게는 행운을 가져왔다. 그는 화산 연기를 내뿜는
모모톰보의 모습이 담김 1900년도 니카라과 우표 600장을 찾아내어 미국 의회에 보냈다. 의미
있는 질문을 슬쩍 던진 것이었다. 화산이 없는 파나마 같은 곳에 운하를 건설하면 안전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1904년 미국 의회에서는 파마나를 운하 건설지로 선택하게 되었다.
[ 3명만 수용하는 교회 ]
몬테카지노의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교회이다. 단지 3명만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교회는
켄터키주 코방콘시 근처에 있다. 겉으로는 영묘(능)를 닮은 이 교회는 한 번에 단지 3명만을
수용할 수 있는데, 각각의 거친 나무의자가 재단을 향해 설치되어 있다. 교회의 벽은 23m
높이밖에 안 되며, 소형의 종탑은 너무도 작아서 종을 설치해놓을 수가 없다. 이 소형 교회는
1850년 베네딕트 승려에 의하여 세워졌다. 교회의 이름은 이탈리아에 있는 최초의 베네딕트
수도원인 몬테카지노의 이름을 따서 불렀는데, 1944년 폭탄을 맞아 손상되었다.
70층 건물 높이의 후버댐
애리조나주 서북쪽 끝에서 깊은 협곡을 가로질러 뻗어 있는 콘크리트 벽의 한쪽에는
콜로라도강이 남쪽을 향해 불모의 구릉지대 사이를 굽어쳐 흐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파란
호수가 애리조나-네바다주 경계선을 따라 멀리 뻗어 있다. 이 호수가 최초의 거대한 콘크리트
댐인 후비댐 벽으로 생긴 메드호이다.
후비댐은 이제 더 이상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댐은 아니지만, 아직도 세계적인 건축물의 신비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1931년 공사가 시작된 이래 현대적인 댐 건설 기법을 선도하고 있다.
이 메드호는 원래 강변의 거대한 사막 지대를 헤치고 나가는 협곡으로, 물이 곧 차 들어올 것에
대비하기 위하여 협곡의 500평방마일 이상의 면적이 소거되었다. 후비댐 부지의 상류에는 강물의
흐름을 일시적으로 막기 위해 임시 토양 댐이 설치되었으며, 공사 현장으로부터 물줄기를 돌리기
위하여 지하에 지름이 15m나 되는 터널을 4개나 팠다. 1936년 2년여에 걸친 동사로 콘크리트
벽이 완공되고 4개의 터널을 막았다. 댐 뒤로 물이 고이기 시작하면서, 차츰차츰 협곡을
채워나가 184km 길이의 메드호를 탄생시켰으며, 1955년까지 메드호는 세계 최대의 인공호수로
군림하였다. 게다가 댐으로부터 호수의 깊이가 183m나 되었다.
후버댐의 바닥 두께는 183m, 윗부분의 두께는 14m로, 댐은 총 396m나 뻗어 있어 협곡의 한쪽과
다른 한쪽을 연결시키며, 골짜기 바닥으로부터 221m 정도 솟아 있다. 총 7천만 톤의 시멘트가
사용되었으며, 이는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 보다도 더 무거운 것이다.
후버댐이 가져다 주는 혜택은 무엇인가?
댐의 바닥에 있는 수력 발전소의 발전 능력은 130만 킬로와트나 되어 웬만큼 큰 규모의 도시를
밝히고도 남을 양이다. 그리고 메드호에서 나오는 물은 미국과 멕시코의 100만 에이커의 땅에
잠시 물을 대줄 수 있다. 잠시 댐의 이름이 볼더댐으로 개명된 적도 있지만, 1947년 다시
후버댐으로 복귀되었다. 오늘날 댐의 호수는 전기 용수를 공급하고 수백만 명을 홍수로부터
통제해줄 뿐만 아니라 매년 수만 명이 다녀가는 국립 휴양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에펠탑 ]
1880년 후반 파리에서는 앞으로 있을 국제 박람회를 위해 계획된 탑에 대한 항의 시위가 온
도시를 휩쓸고 있었다. 이 탑은 프랑스의 영광을 상징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안되었으나, 예술가,
작가, 관리들은 무용지물의 기형물이며 재료로서 강철을 이용한 것은 위대한 기념물을 모욕하는
행위라고 비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항의와 시대의 압력, 건축 기법에 대한 제한적인 지식에고
불구하고 알렉산더 구스타브 에펠은 설계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로부터 약90년이 지난 오늘날,
이 에펠탑은 세계에서 가장 높고(TV탑 제외) 웅장하며, 프랑스를 상징하는 유명한 탑이 되었다.
에펠탑은 세느 강변의 전망이 좋은 긴 산책길을 따라 321m 높이로 우뚝 솟아 있다. 탑의
바닥에는 4개의 거대한 돌기둥이 4개의 강철 기둥을 받치고 있으며, 강철 기둥은 189m 높이에서
하나의 가느다란 뾰족탑을 만들기 위하여 합쳐진다. 기둥 사이에는 축구장이 들어서고도 공간이
남을 정도의 간격이 있다.
1889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국제 박람회에 맞추어 17개월 만에 완공되었다. 아치와 오벨리스크
모양을 혼합한 설계는 12,000개의 구성 부품을 필요로 하였으며, 총 무게는 7,500톤이었다. 선진
안전 대책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공사 기간 동안 치명적인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놀라운 사실은 관광객들로 부터 1백만 달러가 넘는 총 건축 비용을 1년 만에 회수 했다고 한다.
오늘날 에펠탑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의 하나이다. 엘리베이터가 기둥을 따라
비스듬히 기울어져 3개층의 전망대로 운영되며, 이들 전망대에서는 파리의 경치는 물론
144km가지의 주변의 시골 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
시작 단계에서는 탑이 쓸모없다는 비난까지 받았으나, 1925---1936년에는 25만 개의 램프로
구성된 전기 '시트레온'의 광고가 에펠탑에 설치되었는데, 이것은 역사적으로 가장 큰
광고물로서 38km나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오늘날 에펠탑은 라디오 및 TV 방송탑, 기상대 등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폴 게티 박물관과 구두쇠
캘리포니아주 말리부에 있는 J. 폴 게티 박물관은 석유왕 게티가 4,200만 달러를 들여서
지었는데, 그는 이 박물관의 운영비로 12억 7천 190만 달러를 내놓았다. 그러나 게티는 자기
박물관에 직접 가본 적이 없다. 게티는 자신을 찾아온 손님들이 전화를 쓰려고 할 때 공중전화를
쓰게 할 정도로 구두쇠였는데, 1976년 세상을 떠날 때 그가 남긴 돈은 40억 달러였다.
[ 유럽에서 가장 큰 요새인 크레믈린 ]
비상한 정도의 아름다움과 웅장한 규모,복잡한 구조을 지닌 크레믈린은 전유럽을 통틀어 가장
큰 요새라고 할수있다. 크레믈린은 궁전, 성당, 병영, 상점, 시장 등이 내포되어 있는 자체적
작은 도시라고 할 수 있는데 6세기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었다. 1365년 주춧돌이 놓였고
1세기 후에 차르 이반 3세가 전체적으로 재건하였는데, 1812년 나폴레옹 점령시 거의 모든
도시가 불타는 악조건 속에서도 크레믈린은 굳건히 버티어냈다.
크레믈린은 모스크바강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 위에 있으며, 2km의 삼각형 벽으로 둘러싸인
다양하고도 복잡한 건물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전채 면적은 90에어커에 이른다. 크레믈린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건축물들은 그 자체로도 매우 유명하다. 15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파셋 궁전은 유백색의 매력적인 궁전으로, 정면은 다이아몬드 형상의 다면체로
꾸며졌으며, 19세기에 건축된 그랜드 궁전은 크레믈린내에서 가장 큰 건물로, 요즈음은 최고
회의의 장소로도 쓰인다.
20개의 게이트 타워 중 가장 유명한 스파가야 타워는 높이가 82m이며, 크레믈린에서 가장 큰
키를 자랑하는 벨 타워는 황금색 양파 모양의 돔 형식으로 세워졌다. 이 벨 타워 안에는
1733년에 주조된 무게 216톤, 높이 6m의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인 왕종이 전시되어 있는데,이 종의
추를 흔들리게 하는 데에만도 24명의 힘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종은
사용되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땅으로 떨어진 후 다시는 울리지 못했다.
크레믈린은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큰 대포를 소유하고 있는데, 그 대포는 너무도 거대해서 발포된
적이 없다. 또 크레믈린 동쪽에 있는 붉은 광장에는 아름다운 바실 대성당이 있는데, 16세기
후반에 세워진 이 화려한 대성당은 아름다운 다채색에 붉은 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붉은
광장에서 또 특기할 만한 것은 레닌의 검은 대리석 무덤이다.
[ 1년에 한 번 개방되는 에메랄드 사원 ]
방콕에는 400여 개의 불교 사원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에메랄드 불교
사원일 것이다. 탈로카 왕이 영적 보호자로서 그 건물을 공인했던 15세기 이래로 에메랄드 불교
사원은 모든 태국 사람들의 종교적 생활의 중심이 되어왔다.
에메랄드 사원은 왓프라캐오라는 종교적 복합 건축물의 한 부분으로, 태국의 수도를 관통하는
카오프라야강 둑에 위치하고 있다. 복합 건물은 길이 7km, 높이 4m, 두께 3m나 되는 담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아름답게 장식된 63개의 문이 이 신성한 장소로의 입장을 허용한다.
에메랄드 사원을 포함하고있는 왓프라캐오는 고대의 불교 경전과 사소한 기념물, 존경받았던
성인의 동상, 그리고 유명한 솔도파(불사리의 봉인이나 절의 장엄을 표시하기 위해 쌓은 탑) 및
유골 저장소가 있다. 왕실 판테온(신들을 모신 신전)에는 실물 크기의 전임 왕들의 청동상이
보유되어 있는데 이것은 1년에 오직 한 번 방문객들에게 개방된다.
뜰의 곳곳에는 키 큰 석고상 수호신 또는 야크(티벹트 고원에 서식하는 들소류)상이 악귀를
쫓기 위한 목적으로 놓여 있으며 모든 문과 창문, 조각상, 탑, 그리고 기둥은 위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져 끝이 뾰족하게 보이는데, 마치 불꽃이 너울거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왓프라캐오로부터 카오프라야강을 똑바로 건너면 작은 왓아룬 또는 여명의 사원이 나온다. 이
사원 역시 두꺼운 벽들에 도기와 자기류의 조각들이 복잡하게 아로새겨져 있으며, 각 층은
수호신이 새겨진 일렬의 기둥들에 의해 받쳐지고 있다.
어쩌면 햇빛 속에서 반짝이는 바늘침 모양의 탑들이 강을 경계하고 있는 이 두 건축물은
동양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전경을 자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계의 도로
로마의 전성기에는 유럽 각 지역과 아프리카, 소아시아를 연결하는 포장 도로가 90,000km나
되었다. 또 잉카 제국의 전성기에는 지금의 아르헨티나, 콜럼비아를 연결하는 도로가 16,000km나
되었다. 지금 미국의 도로는 9,335,000km로 지구를 200바퀴나 돌고도 남는다.
[ 존재하지 않는 둥근 지붕 ]
안드리아 달 파조의 가장 훌륭한 예술 작품인 돔은 로마의 세인트 아그나지오 교회의 건축 기간
동안 창조되었다. 그 교회는 완공 후 파조가 평시도로 있던 예수교의 설립자에게 바쳐졌는데,
'세인트 피터 사원의 돔' 이후 로마에서 최대의 돔을 지닌 교회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돔은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돔이 아니다. 평평한 천장 위에 그림으로 그린 돔에
불과하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사실 세인트 이그나지오 교회를 건축하던 중
예산이 바닥나 건축을 중단해야만 했다. 그러나 돔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이 완공되었기 때문에
교회측의 입장에서는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리하여 1691년 파조에게 구원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결국 원근법의 거장인 파조는 교회의 입장을 이해하고 평평한 천장 위에 돔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교회의 입구와 본당에서 보면 그 돔은 마치 진짜 같았고 교인들도 그 돔의 엄숙함에
그만 숙연해졌다고 한다. 원레 파조의 돔은 예산이 다시 모여지면 진짜 돔을 세울 때까지 임시
방편으로 그려진 것이었지만 그 존재하지도 않은 돔이 너무나도 유명해지자 교회 쪽은 그 돔을
그대로 놔두게 되어 오늘날 현대인들도 볼 수 있게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것
트랜스-시베리안 석유 파이프 라인은 인간이 만든 것중 세계에서 가장 긴 것이다. 그 타이틀은
여태까지는 중국의 만리장성이 갖고 있었으나, 앞으로 건축될 더욱더 현대적인 건축물에 그
타이틀이 주어지게 마련인데 연료 파이프 라인이 바로 그 타이틀을 얻은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이 지하 6km에 묻혀져서, 만리장성만큼 감동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지만 공학적인
업적으로 보아, 옛날 중국인들에게 대한 만리장성의 중요성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하이웨이와 철도를 제외하고, 인간이 만든 것 중 길이에 있어서 아무것도 이 거대한 파이프
라인에 비교할 수 없다. 이 강철관으로 된 파이프 라인은 보통 지름 30--61cm로 외부의 유정에서
대도시로 운반하는 데에 사용된다. 여태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석유 파이프 라인은 엘비타의
유정에서 온테리오주 사르니아에 있는 정유소들까지 2,840km로 뻗어 있다. 그 길을 따라 13개의
펌프소는 땅 밑의 관을 통하여 한 시간에 5--10km씩 석유를 펌프하여 매일 7백만 갤런의 석유를
이동시킨 캐나다의 인터프로빈셜 파이프 라인이었다. 그러나 세계 최장의 석유 파이프 라인은 곧
소련의 트랜스-시베리안 석유 파이프 라인이 될 것인데, 이것이 완성되면 거의 4,576km로 최장의
파이프 라인이 될 것이다. 이미 완성된 텍사스와 뉴욕시 사이의 천연 가스 파이프 라인은
2,944km이며, 미완성인 러시아 파이프 라인은 3,360km나 된다. 또한 지금 계획중인 것은 3,520km
이상의 캐나다를 가로지르는 가스 파이프 라인이며, 또 다른 러시안 파이프라인은 거의
9,120km에 이를 예정인데 그렇게 된다면 이 파이프 라인은 만리장성의 거의 3배를 넘는 구조물이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
베르사유 궁전은 1661년부터 50년이나 걸려서야 완공되었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이 궁전을
짓는 데 1,000만 달러 이상을 들였는데, 한때 국고가 바닥나 인부들 22,000명의 급료마저 지급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이 궁전 안에는 하인이 4,000명, 정식 궁신들이 1,000명이 넘었고,
놀랍게도 1,011,700km나 되는 정원에 1,400개의 분수들이 있어 파리 시민 전체가 쓰는 물과
똑같은 양의 물을 소모하였다. 어쨌거나 베르사이유 궁전은 그 규모나 장식으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일 것이다.
[ 암석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오마르 성원 ]
예루살렘의 오마르 성원은 돔 형태로 지어진 최초의 사원이다. 그러나 이 성스러운 건축물은
안에 보관하기로 한 전시물, 즉 회교도들이 신성시하는 커다란 화강암으로 더 유명하다.
회교도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도 이 암석을 신성시하는데, 바로 이 거대한 암석 위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한 복종의 증거로 자신의 아들 이삭을 희생시키기로 동의하였다고 한다.
BC 10세기에는 유태의 솔로몬 왕이 이 자리에서 자신의 사원을 세웠으며, 사원의 가장 성스러운
자리인 율법의 방주의 자리를 이 암석 위로 하였다. 솔로몬 사원이 바빌로니아인들에 의해
파괴된 후 그 자리에 헤롯왕이 또 하나의 사원을 건축하였으나 이 사원 역시 AD 70년에
로마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회교도 신앙에 따르면 마호메트가 메카에서 예루살렘까지 날개 달린 말을 타고 운반되다가
오랫동안 이 암석 위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637년 회교도들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직후, 후세의
회교도 신도들을 위해 암석을 보존하자는 의미에서 이 신성한 암석을 둘러싸기 위한 사원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팔각형 모양으로 거의 30m 높이의 목조 돔으로 지붕이 처리된 이 성원은 691년에 완공되었으며,
그 이름은 오마르 칼리프를 따라 명명되었다. 성원을 둘러싸는 정원은 옛 성벽 도시 전체 면적의
1/6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길이 18m, 폭 12m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인 이 암석 자체에도 여러 개의 깊은 구멍이 있는데,
회교도들은 이것이 마호메트를 성스러운 도시로 데려온 거대한 말의 발자국이라고 믿고 있다.
자살 충동을 일으키는 금문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은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에서 자살하는 사람을 구하려고 내민 손이
끝내 그 자살자의 손을 놓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이 다리는 1937년에 완공되었는데
그때부터 1992년까지 다리에서 떨어져 자살한 사람이 700명이나 되고, 이처럼 자살 충동을
강하게 불러 일으키는 다리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이 1년에 1,000만 명이나 된다.
[ 부처의 일생을 조각한 보로부다르 사원 ]
자비에 위치한 보로부다르 사원은 가장 커다란 사원 중의 하나로, 서구인의 눈에는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불교 성지 중의 하나이다. 나선형으로 도는 길을 따라 파라미드 모양의 건축물
꼭대기에 오르면, 방문객은 세밀한 양각 조각으로 표현된 작품을 통해 부처의 생활과 불교
교리의 고심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성골함의 석가산은 9세기에 세워졌으나 금세기초 다시 복원되기 전까지인 900여 년 동안
빽빽한 정글로 뒤덮여 있었다. 기념물은 7개의 사각 테라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3개의 원형
테라스 또는 플랫폼이 놓여 있고, 이들 플랫폼에는 72개의 작은 종모양의 불탑 또는 성골함이
있다. 각각의 성골함에는 부처의 조각상이 놓여 있고 작은 뾰족탑에는 하나의 커다란 성골함이
커다란 미완성의 부처상을 보관하고 있다.
각 면에 있는 4개의 계단이 제일 꼭대기에 있는 불탑을 향해 테라스와 플랫폼을 가로질러 놓여
있지만 보로부다르 사원을 건축한 사람들은 순례자들이 많은 양각 조각을 따라 길을 우회하도록
설계하였다. 순례자는 높은 외벽을 따라 둘레를 걷는 것으로 시작하여, 부처상에 얽힌 일화와
여러 가지 불교의 도덕적인 교리를 둘러보게 된다. 한 테라스에서 다음 테라스로 올라가면서
순례자는 전시관 불상이 빽빽이 들어선 벽감, 조각이 된 방수관, 테라스 벽을 채운 양각의
조각을 살펴볼 수 있다.
순례자의 구불구불한 길은 원형의 플랫폼에 도달했을 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순례자가 72개의
작은 불탑을 지났을 경우에만 놀랍고도 독창적인 건축물의 최고를 장식하는 위대한 부처를
바라볼 수 있다.
[ 백악관의 내력 ]
세계를 움직이는 집 백악관은 1800년에 지어졌다. 원래는 (대통령의 집)이라 불렀지만 1812년
영국인에 의해 불에 그을려 시커먼 벽에 흰 페인트 칠을 한뒤부터 '백악관'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공식적으로 호칭되기는 루스벨트 대통령 때부터였다. 프랑스 건축가 피에르 찰스가 설계했고
132개의 방이 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만 빼고 2대 존아담스부터 역대 미국 대통령 모두가
이곳에서 거주하였다.
[ 세계 최대의 종교 건축물 ]
9--14세기에 앙코르는 오늘날 캄보디아 자리에 위치했던 크메르 재국의 수도였다. 거의 200만
명에 가까운 주민이 살던 앙코르는 정글 한가운데 40평방마일에 걸쳐서 퍼져 있다. 부귀영화를
누리던 크메르의 왕들은 앙코르가 동양권에서 가장 크고 장엄한 도시로 손꼽힐 때까지 웅장한
사원과 왕궁,각종 기념물 등을 건축하였다. 그러나 14세기에 크메르인들은 참패를 당했고,
수도는 약탈당하였다. 그 후 500년 동안 앙코르는 황량하게 버려져서, 무성한 정글림이 길과
건물을 뒤덮었으며 원숭이, 박쥐, 표범 등이 텅빈 복도를 휘젓고 다녔다. 전세계에서 앙코르는
전설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1861년 프랑스의 자연학자인 헨리 모호트는 나비를 찾던 중 수도에 있던 대부분의
석재가 원래의 위치에 있는 이 정글 도시를 우연히 발견하였다. 그 후 여행객들과 학자들은 이
웅한한 앙코르 와트의 장관을 보기위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앙코르 와트로 알려진 앙코르의 주사원은 아시아 전체에서 가장 커다란 건축물이고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종교 건축물이었다. 커다란 화랑, 연주 정원, 복도 등은 5개의 도토리 모양의 탑으로
덮여 있으며, 가장 높은 것은 76m나 되었다. 정교한 석조 조각이 거대한 사원 전체의 수천
미터에 이르는 벽을 장식하고 있고, 신, 코브라, 왕, 크메르의 무희들의 모습이 방과 복도에
줄지어 서 있다.
앙코르 와트는 사원을 둘러싸는 해자 위를 가로지르는 366m 길이의 석조 둑길을 통해 들어갈수
있다. 둑길의 양편에는 2m길이의 석조 귀신상 54개가 있는데 이 귀신상은 크메르의 성스러운
뱀인 머리가 7개인 석조 코브라상의 몸체를 지탱하고 있으며, 둑길의 끝에는 20m 높이의 입구
탑이 사원으로 이어져 있다.
중앙 사원은 거대한 정글 도시에 있는 여러 웅장한 건축물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도서관,
욕탕, 문, 왕궁, 사원이 워낙 광대한 지역에 퍼져 있어서 앙코르의 모든 것을 보기에는 1주일도
부족하다. 고대 수도를 에워싸고 있는 정글을 밀어내는 작업 또한 매우 어려운 것이어서 아직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이다.
규모만으로도 앙코르는 숨막히는 장관이고, 사원은 건축과 예술의 감탄을 자아낸다. 이토록
장엄한 도시가 그렇게도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던 것은 세계 불가사리의 중의 하나라고 할
만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성 베드로 성당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건축물 중 하나인 성 베드로 성당은 르네상스 시대의 뛰어난
예술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그림이나 조각들이 자랑거리이다
성 베드로 성당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구심점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으며, 자리잡은 장소 역시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다. 이 성당은 터버강 왼쪽에 있는데 로마 황제 네로가 잔학한 구경거리를
즐기기 위해 큰 원형 경기장을 만들었던 곳으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로마 군중들의 구경거리가
되면서 학살당하였던 곳이다. 그 희생자들 중 첫 교황 성 베드로는 이곳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후
군중 무덤에 함께 묻혔다. 4세기에 로마의 첫 기독교인 황제인 콘스탄틴은 이 옛 원형 경기장
자리에 한 작은 교회를 짓고 재단을 성 베드로가 묻힌 장소라고 여겨지는 곳에 정하였다.
여기에서 많은 교황들과 황제들이 취임식을 가졌다.
15세기에 콘스탄틴 황제가 세운 이 교회는 무너지고 일부분이 교황 니콜라스 5세에 의해 다시
건립되었다. 1506년 르네상스 절정기에 교황 쥴리앙 2세는 이곳에 당시 로마시의 전인구
80,000명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권위 있는 큰 교회를 짓기로 결심하였다. 건축가 브라망의
기념비적인 설계가 받아들여졌고 세계 교회에서 가장 큰 건축 역사가 시작되었다. 브라망의
설계는 굉장히 크고 정교해서 12명의 건축가들이 이 계획에 평생을 바쳤다. 라파엘도 당시 이
건축 역사를 담당하였으며, 미켈란젤로도 그 거대한 원형 지붕을 짓는 지휘자로 참가했는데 다른
예술가 들과 같이 그도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이 교회가 봉헌된 것은 시작한 지 120년이 지나서였다. 그리고 그 거대한 성당 앞부분의
기둥들과 광장은 40년이 더 걸러서야 끝났다. 네로의 원형 경기장에서 죽음을 당한 수천의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하여 이집트의 방청탑이 광장의 한가운데에 세워졌다. 성 베드로 성당의
주된 부분은 213m 길이에 137m 넓이로 28,328m가 넘는 땅을 포함하는, 세계 대부분 성당이 이
안에 쉽게 들어앉을 수 있을 만한 넓이로서, 지붕만 해도 보통 건물 15층 정도의 높이가 된다.
이 성당 안에 44개의 재단이 있고 청동으로 된 가장 큰 재단은 교황만이 예배를 집도할 수
있으며, 상당히 큰 390개의 동상들이 안과 밖을 장식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다른 장관은 아마 미켈란젤로가 만든 원형 지붕일 것이다. 수백년 동안 이
성베드로 성당의 원형 지붕이 세계에서 가장 큰 것이었다. 이것은 너무 커서 워싱턴시에 있는
국회의사당을 집어넣고도 18m가 남을 정도라고 한다.
[ 펜타곤 ]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 개입하기 얼마 전에 B.B.소머벨 장군은 전쟁에 관련된 모든 부서들을
포함할 건물을 건축할 것을 제의 했다. 그의 제안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곧 세계 대전에
휩싸이게 될 형편에 이는 불필요한 거대한 작업이라 하였으며, 어떤 사람들은 이는 중앙 집권된
부서들의 건축으로 필수적이라고 하였다. 후자의 견해가 지배적이어서 1941년 9월, 워싱턴시에서
부터 포토맥강을 가로지르는 34에이커의 대지 위에 건물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13,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거대한 계획에 동원되어 600만 입방야드의 흙이
파내어졌고, 41,492개의 기둥이 습한 땅에 묻혀졌다. 또한 41만 입방야드의 콘크리트가
부어졌고, 포토맥강 바닥에서 68만 톤의 모래와 자갈이 파내어졌다.
1943년 1월에 완성된 이 건물에는 이미 그전에 육군성의 직원들이 이주해오고 있었다. 오늘날,
펜타곤으로 알려진 이 건물은 미국 국방성과 동등한 위치에 잇으며,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사무실
건물로 군림한다. 총 건물 면적은 1.5평방마일에 달하며, 건물은 10개의 스포크스(살)로 연결된
같은 중심의 5개의 오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외각 오각형의 각 변의 길이는 28km에 이르며,
가장 안쪽의 오각형은 커다랗고 트인 안뜰을 포함한다. 포장된 안마당과 운반 차량을 위한
도로가 서로의 연결을 분리시켜 놓는다.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빌딩의 정교한 설계는 2개의
사무실 사이의 거리가 549m(또는 걸어서 6분)를 넘지 않게 한다. 5개의 층과 중 이층, 그리고
지하는 전체 면적 6,005,000평방피트에 달하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총 면적의 3배이다.
48km에 이르는 도로와 교차로가 대지를 에워싸는 반면에 6Km에 달하는 복도들이 거대한 단지
사이에 각각 뻗어 있다. 매일 펜타콘은 30,000명이 넘는 국방성 직원들이 수용한다. 다른
소도시들처럼 펜타곤에도 중심가가 있다. 콘코오스로 알려진 긴 복도에는 구두 닦는 곳,
이발소를 비롯하여 항공사 대리점, 버스 정류소, 우체국에 이르는 모든 종류의 상점과 쇼룸들이
줄지어서 있다. 2개의 식당, 6개의 카페테리아, 10개의 스낵바만으로도 700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다. 건축될 당시 펜타곤의 총 공사비는 8,3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같은 크기의 사무실을 임대하는 데 정부는 하루에 2,000만 달러 이상을 지출해야
할 것이다.
세계의 지붕
130m의 언덕 꼭대기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산맥에 둘러싸인 포탈라성은 티베트의 수도 라사시를
굽어보고 있다. 1959년 중국이 이 나라를 지배하개 될 때까지 이곳은 600만 명이 넘는
티베트인들의 영적, 정치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처소였다.
13층 건물인 포탈라는 지붕이 금으로 덮여 있고 넓이만도 동서로 274m나 된다, 6개의 문이 이
성을 경계하고 있는데 이 문까지 가려면 125개의 계단을 거쳐야 한다. 이 성이 완성되기까지에는
1645년부터 3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 이 성은 빨간색 건물과 흰색 건물 두 채로 되어 있는데
요새, 성, 사원으로 5대 달라이 라마 때 완성되었다.
내부로 들어가면 1,000개가 넘는 방과 10,000개가 넘는 예배당이 있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5대 달라이 라마의 무덤인데, 약 18m높이에 반톤이나 되는 금으로 싸여 있고 바닥은 은으로 되어
있으며, 많은 보석과 진기한 자기, 비취로 장식되어 있고 진주로 전체를 둘렀는데 그 수가 20만
개나 된다. 7명의 다른 달라이 라마들의 무덤도 이 포탈라성 안에 있고 20만 개의 조각과 2만
개의 두루마리, 246개의 금으로 그린 그림과 615권의 불교 경전이 금 글자로 씌어 있다. 또한
회당의 벽은 698개의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이곳은 한때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은
사원이었으나 오늘날은 박물관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은 인도 아그라에 있는 타지마할이다. 이것은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사랑하는 황비 무무타지 마할을 위해 만든 회교식 무덤이다. 20,000명의 장정들이
18년 동안 노동하여 1648년에 완공하였다.
콜로세움
콜로세움은 BC 59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AD 80년경에 완공한 최초의 노천 극장이다. 전체를 돌로
만들었는데 관람할 수 있는 자리가 50,000석이나 된다.
[ 고속도로 공사 비용 ]
1970년 후반에 뉴욕 변두리에 건설된 고속도로의 공사비가 1.6Km당 2억 5천만 달러나 들었으며,
1980년에 건설된 지하철 공사비는 1.6Km당 5억 달러가 소용되었다. 그런데 1993년, 30년만에
완공된 LA 공항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105후리웨이를 완공시키는 데에는 1,6Km당 3억 달러가
투자되었다.
피라미드
이집트의 대피라미드 속의 공간은 런던의 성 바울 성당, 웨스트민스터 사원, 플로렌스의 성당
모두가 다 들어가고도 남는다. 또 여기에 든 돌은 하나가 2,5톤에서 15톤까지 무려
2,500,000개나 되는데, 이 돌들을 다 펼쳐 놓으면 우리나라 전체를 완전히 둘러싸고도 남는다.
[ 제32장 경제, 화폐, 오락, 대학교 ]
[ 제32장-경제, 화폐 ]
[ 수에즈 운하 매수 ]
영국 수상과 빅토리아 여왕이 수에즈 운하를 이집트로부터 매수하고자 원할 때, 영국의 유태계
재벌인 로스차일드는 400만 달러를 내놓았다. 그리하여 1857년 11월 5일 수에즈 운하는 영국인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 그렇다면 나도 재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1964년 단돈 5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유학간 황규민 사장은 1975년 총자본금 9,000달러로
조그마한 차고에서 텔레비디오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그 후 불과 9년 만에 8억 달러를 거머쥐어
미국 400명의 부호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1972년 단돈 35달러를 들고 미국 땅에 이민온 임종오 사장은 20년 후인 1992년에는 7천만
달러의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는 하노버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지만, 자신은 골프를 한번도
쳐본 적이 없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1848년 빈털터리로 미국에 온 카네기는 피츠버그의 어느 강철 공장에서
주급 1달러를 받고 일했다. 그러나 50년 후에는 미국 제일의 부자가 되었고, 일생 동안 3억
5천만 달러 이상을 자선 사업과 교육 기관에 기부하였다.
한국의 김우중 회장은 5백만 원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10년 후에는 한국에서 가장 큰 빌딩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20년 후에는 한국 4대 재벌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1952년 미국
멤피스에 있는 조그마한 호텔에서 청소부로 시작한 찰스 게몬스 윌슨은 1992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호텔을 가진 호텔 왕이 되었다.
[ 아스피린과 경제 ]
통계에 의하면 아스피린의 판매고가 그때의 경제 전망의 바로미터가 된다고 한다. 아스피린의
판매가 증가될 때는 경제 전망이 어두우나, 아스피린의 판매고가 저하될 때에는 이와 정반대여서
잘 팔릴 때는 호경기를 뜻하고, 잘 팔리지 않을 때는 경기가 나쁨을 의미한다.
[ 책은 정신의 양식이다 ]
'정신의 양식'은 랍세스 도서관 현판에 새겨진 말이다. 지금부터 3, 250년 전에 랍세스 2세는
도서관을 세우고 20,000권의 책을 갖추었다. 또 그 안에는 2,000,000,000,000 달러에 달하는
재산이 있었다.
경제 대국의 이면
1992년 미국의 외채는 4조 달러에 이르렀다. 그러나 1948년 한 해 동안 외국에 원조해준 돈은
46,746,000,000달러였다.
[ 미국에서 발행된 첫 동전 ]
1787년 발행된 푸지오 동전은 미국에서 발행된 첫 동전이다. 이 1센트짜리 동전은 독립 전쟁에
사용된 대포의 포신을 감싼 구리를 녹여 만들었다. 동전의 한 면에 새겨진 푸지오라는 라틴말은
'나는 난다(I fly)'라는 뜻이며 여기서 '나(I)'는 시간(time)을 의미한다. 동전의 다른 한
면에는 '당신 일을 돌보라(Mind your business)'고 씌어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에 의해 이 말이
새겨졌으므로 이 동전은 프랭클린 동전이라고도 불린다. 오늘날 이 동전은 수집가에게 30달러에
거래된다.
[ 하나님께 버림받은 동전 ]
1849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발행된 2실링짜리 은화 '플로린'은 전통적 명각인 'D.G(Dei Graira:
하나님의 은총에 의하여)'와 'F.D(Fidei Defensor: 신앙의 옹호자)'가 새겨져 있지 않아
'하나님께 버림받은' 또는 '불경한' 동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해에 만연한 악성 콜레라가
플로린 동전의 저주로 믿어지자 동전은 곧 폐기되었으며, 조폐국장은 여론의 압력으로
사임해야만 했다.
[ 달러의 얼굴 ]
100,000달러짜리 지폐에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1달러짜리 지폐에는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 영혼을 가진 돈 ]
1930년대까지 서부 아프리카에서 돈으로 사용되었던 팔뚝만한 길이의 가는 쇠막대, 즉 기지
페니는 흔히 영혼을 가진 돈으로 불렸다. 기지 페니에 손상이 가면 돈의 영혼이 상실된다고
생각하였다. 주술사가 주문을 외워 돈을 '환생'시켜야 돈의 가치가 재생되었다. 2개의 기지
페니로 20개의 오렌지나 손이 여러 개 달린 큰 바나나 뭉치를 살 수 있었다. 이 돈은 또 다른
실용적인 가치가 있었다. 여러 개의 기지 페니를 대장장이에게 가지고 가 작살이나 연장을
만들기도 했다.
검은양 은행의 은행권 발행
1810년 영국의 웰쉬에 있는 '검은양 은행'은 그 지역 양치기들이 돈의 가치를 쉽게 알도록 양이
그려진 은행권을 발행했다. 10실링짜리 은행권에는 양 새끼를, 1파운드 지폐에는 성장한 양을,
그리고 2파운드에는 두 마리의 암양을 그려넣었다. 그러나 이 돈은 널리 통용되지 않았고 몇 해
만에 폐지되었다.
[ 도자기로 만든 동전 ]
19세기 중엽에 태국 사람들은 도박장에서 현금의 대용품으로 도자기로 만든 동전을 쓰기
시작했다. 이 도박용 '사금파리'는 곧 정식 동전을 완전히 대신하여 수년 동안 통용되었다.
[ 아직도 살아 있는 히틀러의 예금 ]
아돌프 히틀러는 2차 세계 대전 전에 미국 은행에 1,000,000달러 이상 예금했는데 아직도 그
원금과 이자가 은행에 보관되어 있다.
[ 제32장-오락, 대학교 ]
[ 단 한 번의 승부 ]
한 순간에 행운이 찾아오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였다. 마잘린 공작 부인(1646--1699)은
5,000,000프랑이 넘는 유산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카드놀이로 이것을 한 푼도 안 남기고 다
날렸다. 가이스 공작(1519--1563)은 8,000,000프랑이 넘는 전재산을 단 한 장의 카드를 뒤집는
데 걸었다. 그는 400 대 1의 비율에서 이겼다. 그 결과 20,000달러를 벌었는데, 이것을 숭리의
소식을 가지고 온 심부름꾼에게 모두 주었다.
프랑스의 케로신성은 1880년에 단 한 번의 카드 게임으로 주인이 바뀌었으며, 저명한 영국의
정치가 찰스 제임스 폭스(1749--1806)는 50만 파운드가 넘는 돈을 21세가 되기 전에 잃었다.
영국 오크 햄튼의 윌리엄 노스모어(1690--1735)는 단 한 장의 카드로, 400,000파운드를 잃었다.
하지만 1714년 불쌍하게 여긴 이웃들이 그를 하원의원으로 뽑아주었다. 프랑스의 국립 도서관은
한 장의 카드를 뒤집는 것으로 얻어졌다. 1644년 유명한 카디널 마잘린과 자크 투베에프는
200,000프랑을 걸고 카드놀이의 일종인 피케를 하였다. 그 결과 마잘린이 이겨 이 도서관 건물을
얻었던 것이다.
[ 바둑의 수 ]
바둑에서 각 점에서 처음 네 번 움직이는 데 가능한 방법의 수는 318,979,564,000가지이다.
[ 자연 속에 우뚝 선 대학교들 ]
1636년 하버드 대학이 생겼을 때 주변에는 인디언들과 사나운 짐승들, 늑대들이 많았다고 한다.
1886년 3월 우리나라에 연희전문학교가 생겼을 때도 뒷산에 늑대와 여우, 사슴과 토끼들이
들끓었다고 한다. 연희전문학교의 첫 학기 학생으로 16명이 지원했다.
[ 이화여자대학교와 민비 ]
한국 여자 고등 교육의 효시가 된 이화여자대학교는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 스크랜턴에 의해
1886년 5월에 설립되었다. 그리고 '이화'라는 이름은 민비로부터 하사받았다.
파리 대학교
파리 대학교는 15세기말경에 이미 50개의 단과대학과 20,000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예일 대학
예일 대학은 하버드 대학 출신에 의해서 세워졌다. 예일의 최초의 이름은 'Coliegiate school
of connecticut'이었다. 1718년에 기부금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엔리휴 예일의 이름을 따서
현재의 예일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중퇴 학위
대학을 2년 정도 다니다 중퇴했을 때의 학위를 associate라고 한다.
하버드 대학에는
농과 대학과 지리학과가 없다.
[ 세계에서 가장 큰 대학교 ]
뉴욕 시내 곳곳에 2,200개의 건물이 퍼져 있고, 21,000명의 교수와 237,000명의 학생들,
137,000명의 시간제 학생들이 있다. 여러 가지 전공 과목들은 박사 과정까지 합하여 약
3,700종류나 된다. 이러한 규모를 자랑하는 뉴욕 주립대학은 몇몇 사립대학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 주의 사람들에게 싸고 좋은 교육을 골고루 제공한다는 점에서 아주 적합하다. 뉴욕
입법부가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에게 무료로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1948년 7월에
설립함으로써 시작되어 1950년대에 크게 성장하였고 33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학교로
발전하였다.
[ 제33장-미국의 라이프 스타일 ]
[ 자동차 사고에 무감각해진 미국인들 ]
매년 미국에서 발생하는 자동차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진다. 그러나 약 100명의 인명 피해를 냈던 비행기 추락
사고는 각 뉴스나 신문에 헤드라인으로 실려 관심을 끌었다. 참고로 매년 자동차 사고가
앗아가는 인명은 50,000명 이상이다.
[ 성취만이 인생의 목표였나? ]
조지 이스트맨(1854--1932)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불행히도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후에 그가 설립한 회사 이스트맨 코닥은 대회사로 성장하였고,
덕분에 그는 여러 교육 기관에 1억 달러를 기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말년에 그는 외로움으로
나날을 보내던 중, 더 이상 뭔가 성취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후 자살을 택했다.
[ 외설물에 소비되는 돈 ]
미국에는 9,320,000제곱미터의 땅이 있고 5,790,000km의 고속도로가 있다. 1년 동안 미국인들이
소비하는 깡통 수는 48,000,000,000개, 병은 26,000,000,000개, 자동차는 7,000,000대이다. 또
그들이 외설물에 소비하는 돈은 4,000,000,000달러이다.
미국의 국가
'The Star Spangled Banner'는 실제로는 영국인들의 인기 있는 '애주가'였다. 1814년 9월 14일
미국의 법률가 프란시스 스코트키이는 볼티모어 항구에서 영국 배를 타고 있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났다가 미국 국기가 영국군에 의해 폭격을 받고 난 후에도 다치지 않고 펄럭이는 것을
보았다. 이에 영감을 받아서 1931년 3월 4일 시를 한 편 써서 미국의 '국가'라고 이름붙였다.
국회의원들은 투표할 때만 맨 정신
미국에서 주류 제조 판매 금주법이 실시된 동안에도 실상 20만 개가 넘는 주류 밀매점이
있었다. 뉴욕시만 보더라도 이전의 15,000개의 살롱 대신 32,000개의 주류 밀매점이 호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또한 금주법으로 인해 국민들은 정치인들을 불신임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이유는 와렌 G. 하딩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는 금주법을 발표해놓고,
자택에서는 몰래 술을 마셨다는 소문이 무성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가리켜 '국회의원들은
투표할 때만 맨 정신'이라는 은어가 나돌 정도였다.
[ 18세기의 평균 수명 ]
조지 워싱턴이 1789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 당시 미국인들의 평균 수명 기간을 보면, 남자는
34.5년이었고, 여자는 36.5년이었다.
[ 전쟁과 학살의 차이 ]
백인과 인디언의 싸움에서 백인이 승리했을 때는 전쟁이라 하고, 인디언이 승리했을 때는 대량
학살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미국이다
어떤 비디오 기사가 새로 산 비디오 카메라를 테스트해보려다 우연히 로스앤젤레스 경찰이 흑인
로드니 킹을 구타하는 장면을 생생히 촬영하게 되었다. 이 필름은 1992년 4월 29일의 LA 중앙
남부를 중심으로 한국 타운에 이르기까지 4,000여 업체가 입주한 건물들을 몽땅 태워버렸다. 이
폭동으로 입은 LA전체의 피해액은 800,000,000달러였고, 한국 교포들의 피해액은
434,345,636달러나 되었다.
미국의 라이프 스타일
피츠버그 대학 연구팀이 연구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일생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는 데
5년을 소비한다고 한다. 미국인들이 커피 브레이크에 소비하는 시간은 1년에 2주일이나 된다.
미국인들은 여행을 좋아해서 한 달에 850,000명이 비행기 여행을 즐긴다. 그리고 약
2,000,000명의 여행객이 호텔이나 모텔에 투숙한다. 미국인들은 하루에 500,000,000톤의
쓰레기와 10,000,000톤의 음료수 병과 캔을 버린다. 미국인들은 1년에 1, 875,715,000리터 이상
되는 미네랄 워터를 프랑스 알프산에 있는 호수에서 수입하여 마신다.
미국인들이 비타민에 소비하는 돈은 1년에 130,000,000달러나 된다. 미국에서는 1년에
600,000명 이상의 사생아가 탄생한다. 미국에서는 6,600,000명 이상의 아이들이 의붓어버이와
같이 산다.
[ 인공 수정과 신생아 ]
1년에 인공 수정을 하는 여자는 17,200명이나 된다. 그 결과 매년 65,000명의 신생아가 아버지
없이 태어난다.
[ 건강한 정자를 팝니다! ]
정자 은행에서는 젊고 건강한 남자가 사정한 정액이 담긴 조그마한 유리관을 50달러 정도에
사서, 이를 필요로 하는 여자들에게 200달러 정도에 판다.
TV 시청 시간
미국인들은 1주일에 평균 29시간 동안 TV를 보며, 특히 55세 이상인 여자들은 40시간 이상
본다. 반면에 소련인들은 14시간, 일본인들은 28시간 동안 TV를 본다고 한다.
[ 청교도들의 노예 무역 ]
처음부터 청교도 식민지 개척자들은 노예매매로 재미를 보았다. 생포한 인디언은 서인도로
팔아넘기고,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데려와 노예로 삼았다. 보스턴 북부 교회의 목사인 코튼
마터는 인디언과 흑인을 모두 노예로 부리고 있었다. 그러나 1641년 신앙심이 깊었던 사무엘
마베브릭은 노들스 아일랜드 위에 흩뿌려진 흑인 노예들의 핏줄기를 가리키며 '인간적 사랑'을
호소했다고 한다.
[ 포상금 걸린 인디언 두개골 ]
미국의 식민지 중의 하나인 뉴네덜란드의 통치자 윌리엄 키에프트는 1630년경 실제로 인디언을
죽였다는 증거를 보이게 되면 순식간에 돈방석에 앉게 될 것이다는 기괴한 생각을 하였다.
그렇다면 무엇을 증거로 삼을 것인가! 바로 두개골이었다. 마침내 윌리엄 키에프트의 생각은
그대로 적중했다. 1703년, 매사추세츠 식민지는 두개골당 60달러의 포상금을 내렸고, 1700년대
중간 펜실베니아에서는 남자 인디언 두개골에는 134달러, 여자 인디언 두개골에는 50달러의
상여금을 전달했다.
표리부동
노예 해방을 위해서 남북 전쟁을 주도했던 북군의 그랜트 장군은 전쟁이 끝나고도 노예를
4명이나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1848년 결혼할 때 결혼 선물로 줄리아 덴트에게 건장한 노예를
1명 주었는데, 그녀 역시 결혼할 때 이미 1명의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
미국의 상술
1959년에 미국 공군에서 명예 훈장을 받은 일본의 미노루 젠다 장군은 바로 진주만 공격을
지휘했던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일본에 비행기를 팔려면 일본 공군의 총책인 그의 추천이
있어야 했다. 젠다 장군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록히드 회사의 F104기를 직접 연습 비행했다.
[ 세계 제일의 살인율 ]
미국의 살인율은 일본보다 무려 200배나 높아서 1년당 총에 맞아 죽는 사람의 수는 일본의
46명에 대해 무려 9,602명이나 된다. 물론 일본에서는 각 개인이 권총을 소지할 수 없는 법 조항
탓도 있겠지만, 미국내에서의 살인율은 타의 추정을 불허한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살인율을 자랑하는 미국에서는 13.5초마다 한 자루의 권총이
팔려나간다고 한다. 더군다나 술에 취해서 운전하다 죽는 사람이 1년에 22,083명이나 된다고
하니 미국은 죽자는 나라인가, 살자는 나라인가? (10,000명당 1명이 취중 운전으로 죽는다.)
미국 인디언
미국 인디언은 미국 시민으로 인정되지 않았었다. 제 1차 세계대전에 미국 군인으로
참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924년까지 투표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미국에서 징역살이를 했던 죄수들
미국에서 징역살이를 했던 죄수들 중의 43%는 출감한지 1년도 안 되어 다시 체포되어 복역한다.
[ 마약 판매액 ]
1980년 한 해 동안 25,000,000명의 미국인이 대마초를 피웠고, 대마초의 밀매액은
24,000,000,000달러, 코카인의 밀매액은 30,000,000,000달러였다. 1982년 통계에 의하면
10,000,000명의 미국인이 코카인을 정기적으로 쓰고, 5,000,000명이 코카인을 시험해 본 적이
있다고 한다. 1990년의 마약 판매액은 160,000,000,000달러나 되었다.
[ 세계에서 강간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나라도 ]
역시 미국이다. 15세에서 59세 된 여자들 100,000명 중 강간당하는 여자는 1년에 114명이나
된다. 다음은 네덜란드로 92명이다.
키 큰 사람은 우주인이 될 수 없다
미국 우주국에서는 우주인이 될 수 있는 자격으로 첫째 키가 183cm미만이라야 된다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미국이 최고
미국에서는 1년에 정크 메일(Junk Mail: 각종 광고 용지등의 불필요한 우편물)이
64,700,000,000통이나 배달되며, 인구 100,000명당 426명이 교도소에 간다. 또한 멕시코인들이
1년에 263깡통의 콜라를 마시는 반면 미국인들은 평균 292깡통을 마신다.
[ 미국과 소련에서 하루에 일어나는 사건들 ]
구분 미국 소련
실종자 68, 959명 239명
이민자 1, 648명 19명
마약 구매 301, 369, 863달러 1, 859, 693달러
알코올 중독자 10, 500,000명 21,000,000명
자살 84명 151명
AIDS환자 1,000,000명 10,000명
당뇨병 환자 11,000,000명 3,000,000명
수입 26.83달러 11.41달러
장거리 전화 141, 764, 398통 4, 657, 534통
원자탄 실험 56번(1년당) 108번(1년당)
[ 오늘날 미국의 교도소는 ]
오늘날 미국의 교도소는 휴양지로 되어가고 있다. 펜실베니아주 어떤 교도소에서는
재소자들에게 제인 폰다의 에어로빅 율동을 비디오로 보여주면서 에어로빅 운동을 시킨다.
뉴멕시코에 있는 어떤 교도소에서는 부부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특별히 만들어진 트렐러를
제공하며, 매사추세츠에 있는 어떤 교도소에서는 종신수가 방문객을 맞이하면 갈비를 제공한다.
[ 제34장 결혼, 라이프 스타일, 유행 ]
[ 제34장-결혼 ]
[ 금욕은 죄의 원인 ]
마틴 루터는 독신주의를 포기하고 카타리나 본 보라와 결혼했다. 그는 금욕이란 악마가
만들어낸 것으로 죄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 하루 만의 이혼 ]
발렌티노는 진 액커와 결혼한지 하루 만에 이혼하였다.
[ 400명의 남편을 가진 여자 ]
북서 아프리카의 버르버 종족에게는 여성의 해방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알제리아의 카헤나 여왕에게는 400명의 남편이 있었다. 이에 대응할 만한 서양인으로는 테레사
본이라는 영국 여인이 있다. 1922년 12월 19일에 테레사 본은 영국의 쉐힐드에 있는 즉결
재판소에 불려갔는데, 24세의 이 여인은 불만이 많은 남편 본으로부터 이혼의 동의도 없이 다른
남성과 결혼한 혐의였다.
여기서 그녀는 첫번째 남편과 헤어진 이래 61명의 남성과 결혼했었다고 고백하여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테레사는 영국 제도와 독일과 남아프리카 등지를 여행하면서 평균 한달에 한 번
이상의 비율로 결혼했던 것이다.
[ 연상의 여인과 결혼한 사람들 ]
아우구스투스는 7세 연상의 스크리보니와 결혼했고 셰익스피어도 7세 연상의 헤라웨이와
결혼했다.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은 7세, 칼 마르크스의 부인 웨스트 페렌은 4세, D.H.로렌스의
부인 리초펜은 6세 연상이었다.
[ 독신주의자들 ]
평생 동안 결혼하지 않은 철학자로는 플라톤, 성 어거스틴, 토머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파스칼, 스피노자, 볼테르, 흄, 쇼펜하우어, 키에르케고르, 니체, 사르트르, 칸트, 김동길 등이
있다.
신부값
신부값은 신랑이 신부 혹은 신부의 아버지에게 주는 것으로서 모하(Mohar)라고도 하는데,
신부가 갖고 오는 지참금과 반대되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지참금은?
아마도 세계 최대의 지참금은 이집트 바로 왕의 딸이 솔로몬 왕과 결혼하기 위하여 가져온
것으로, 그 당시 이집트 영토였던 팔레스티나 최대의 상업 도시 게제르시일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
마하트마 간디는 카스트바 간디와 13세에 결혼해서 62년 동안 결혼 생활을 했다.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의 부인은 15세에 31세의 젊은 육군 장교 사다트와 결혼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는 14세(?)에 목수 요셉과 결혼했다. 마리 앙트와네트도 14세에 루이 16세와
결혼했다.
[ 나는 당신과 이혼한다 ]
Let's go to Reno(리노로 갑시다)라는 말은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젊은이들이 부부 싸움을 할 때
홧김에 흔히 쓰는 말로 '이혼합시다'라는 뜻이다. 그 이유로는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이혼을
하려면 6개월 이상 걸리는데 네바다주에 있는 리노에 가기만 하면 그날로 이혼이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이혼 수속이 하루에 완료된다. 이슬람교는 한 남자가 4명의
부인을 거느릴 수 있지만, 현대 이집트에서는 남자 100명 중 1명 정도의 남자만이 한 명 이상의
부인을 두고 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남자가 나는 당신과 이혼한다라고 세번 말함으로써 이혼
수속이 간단히 끝남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에서의 이혼율은 영국보다 낮다.
[ 제34장-라이프 스타일 ]
[ 어떤 황제의 인생 ]
1605년에서 1627년까지 몽고를 통치했던 몽고 자한거 황제는 300명의 정식 아내와 5,000명의
궁녀와 남색을 위한 1,000명의 젊은 남자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궁 밖에는 12,000마리의
코끼리와 10,000마리의 황소와 2,000마리의 낙타와 3,000마리의 사슴과 4,000마리의 개와 길들인
100마리의 사자와 500마리의 물소를 기르고 있었다.
[ 목욕을 규제하던 중세 ]
물론 3,000년 전 로마 시대에도 목욕탕이 있었고 비누가 생산되었다. 그러나 중세에 와서
1,000년 동안 목욕을 하지 않고 산시대가 있었다. 중세에는 목욕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로 엄격히 규제되었는데, 왜냐하면 몸을 노출시킨다는 생각만 해도 죄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 후 1641년 영국에선 비누다운 비누가 생산 되기 시작했지만, 정부는 비누 생산업에
엄격한 규제와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에 비누 생산업은 활발하지 못했다.
[ 단백질 섭취를 위하여 식인하던 사람들 ]
아즈텍 사람들은 매년 250,000명, 즉 전체 인구의 1%를 죽여 신의 제물로 바쳤다고 전해진다.
아즈텍 사람들은 죽은 제물들을 구워 먹었는데, 이는 평소 단백질 섭취가 적은 아즈텍인들이
단백질을 보충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하다. 부호들은 멀리서 짐승들을 사올 수 있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야채 섭취만으로는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할 수 없어서 이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옥수수와 콩 제배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계속되는 흉년으로 이것마저 불가능하게
되었다.
문맹과 후진의 나라
방글라데시인은 70%가 문맹이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70세인데, 이들은 45세밖에 되지 않고,
그전에 대부분의 유아와 산모들이 죽는다. 아이가 태어나 5세가 될 때까지 살아 남을 가능성은
5%밖에 안 되고, 위생시설이 제대로 없어 아직 콜레라, 폐병, 나병 등이 만연한다. 인구의
20%만이 의사의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
[ 처녀를 입증하는 방법 ]
영국의 튜더 왕조 시대에 처녀임을 증명하는 표시는 손목을 완전히 덮는 소매가 달리고 가슴이
많이 노출된 드레스를 입는 것이었다.
누가 가장 행복한가?
시카고 대학교의 연구팀에 의하면 '혼자 사는 여자보다는 결혼한 남자가 더 행복하고, 결혼한
여자보다는 혼자 사는 여자가 더 행복하며, 혼자 사는 남자보다는 결혼한 여자가 더 행복하다'
고 한다.
미국인과 인도인
미국의 한 시민과 인도의 한 시민을 두고 일생 동안 소비하는 물질과 만들어내는 공해를 비교할
때 미국의 한 시민이 쓰는 물질과 공해는 인도인 8명이 쓰고 만들어내는 것과 맞먹는다.
[ 북소리로 사람을 구별한다 ]
음성으로 사람을 구별하듯이 아프리카 서부 지방의 신호인 북소리를 듣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은
북소리로 북치는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 인디언 여성들은 고문의 고수인가? ]
인디언 여성들은 때때로 미국 군대를 공격했다. 그리고 인디언 남자들은 미국인 포로들을
인디언 여성들에게 건네주었다. 고문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 수염을 기르려면 세금을 내야 한다 ]
1698년 피터 대제는 러시아를 서구화시키려는 한 방편으로 모든 국민들(농부는 제외시켰다)에게
턱수염을 깎으라는 법령을 포고했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턱수염을 깎는 것이 대유행이었는데,
피터 대제는 이 유행에 발맞춰가자는 의도로 이런 포고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일부
러시안들은 턱수염 깎는 것을 거부하고 다른 나라로 도망가기도 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피터
대제는 턱수염을 기르는 사람은 턱없이 높은 세금을 납부하도록 조치했다. 따라서 세금을 낼
만한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눈물을 머금고 턱수염을 잘라내야만 했다.
[ 옷이 필요없는 사람들 ]
프랑스의 남쪽에 위치한 포트 내추어라는 한 해변에 위치한 마을에서는 전주민들이 나체로
다닌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도, 영화관을 갈 때도, 나이트크럽에 술을 마실 때도 남녀가
나체로 다닌다.
[ 이혼율이 가장 높은 나라 ]
인도 남서쪽에 있는 조그마한 섬들로 구성된 말디베스는 이혼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이다.
1년에 1000명이 결혼한다면 10년내에 250명이 이혼하고 30년 내에 750명이 이혼한다. 결국 일생
동안에 모두 다 이혼하고 만다.
에스키모는 이글루에 살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알레스카의 에스키모가 이글루에 산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속고 있는 것이다. 그
지역이나 캐나다 서부 지역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이글루는 이제 박물관이나 그림책에서나 볼
수 있다. 물론 그린랜드나 바핀섬, 기타 다른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은 돔형으로 지은 얼음집에서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경험 많은 건축가가 혼자서 단단히 뭉쳐진 눈덩이를 잘라서
1--2시간내에 조립해서 가장 현대적인 규모의 이글루를 만든다. 이 기술은 매우 유용한 것으로
특히 폭풍우에 사로잡혀 피할 길이 없을 때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알래스카의 에스키모는 어디에 사는가?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의 여러 마을에서 볼 수 있는 통나무 집에 살고 있는데, 연안에
거주하는 에스키모의 통나무 집은 좀더 원시적으로 보이는 구조이다. 연안 지역은 나무가
부족하므로 종종 건축 자재를 뗏목 형태나 선박 편으로 수송받아야 한다. 고고학적 기록에
따르면 알래스카의 에스키모인들은 5,000년 전 부터 잔디가 섞인 흙으로 만든 오두막이나
아메리카 순록, 해마, 북극곰의 가죽으로 만든 텐트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버릇 없는 자식들
에스키모인들은 자식을 몹시 사랑하여 자식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한다.
그들은 자식들에게 특별한 음식을 주고 애들이 묻는 질문에 꼭 대답한다. 이상하게도
알래스카에서는 겨우 서너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허락하는 경우가 있다.
알래스카의 아버지들은 흡연이 소년들을 남자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 아내를 빌려주는 예우 ]
에스키모인들을 자기 집을 방문하는 남자 손님에게 그날 밤을 위한 최고의 대우로 아내를
제공하는 습관이 있었다. 또 실생활의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히말라야 산악인들도 아내를
서로 교환하며 사는 풍습이 있었으며, 남자 손님이 방문했을 때 여자들을 존경을 나타내는
뜻으로 가슴을 드러내고 인사를 했다.
[ 에스키모인들도 냉장고를? ]
에스키모들은 음식을 얼지 않게 하기 위하여 냉장고를 이용 한다.
알래스카주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갈 때 유리창으로 큰사슴을 내려다보는 것을 법으로 금하고 있다.
[ 가솔린보다 엄청나게 비싼 수박 값 ]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가솔린 한 통의 값이 31센트이지만, 수박 한 덩어리의 값은 16달러이다.
전족의 의미
300년 전 중국에서는 여자의 발을 졸라매어 전족을 하였다. 본래는 발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생긴 관습이 아니라 여자의 성실함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발을 졸라매 놓으면
혼자서는 멀리 돌아다니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 돌베개를 베고 자도 잠만 잘 온다 ]
고대 이집트인들을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잤다. 조선시대의 우리 선조들은 나무 베개를 베고 잠을
잤다. 그러나 현대의 강남 압구정동의 사람들을 오리털 베개를 베고도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잔다.
상류층 여인들의 멋내기
중세 일본의 상류층 여인들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이에 검은 칠을 했다.
오늘날 인도의 힌두교의 여인들도 자신의 모습을 꾸미기 위해서 이에 검거나 붉은 칠을 한다.
[ 매독의 역사 ]
창녀촌을 이용하는 정도가 줄어드는 데 크게 기여한 매독은 1494년 콜럼버스의 선원들에 의해
하이티에서 포르투갈을 거쳐 유럽에 들어왔는데 이 새로운 성병은 상상할 수도 없는 속도로 유럽
전역에 퍼졌다. 1495년에는 프랑스, 독일, 스위스로, 1497년에는 스코틀랜드에, 1499년에는 찰스
8세의 해체된 군사들과 함께 헝가리와 러시아에 퍼졌다. 1506년에는 크레테의 대주교가 바로 이
매독 때문에 죽었다.
소련의 라이프 스타일
1,300만 명의 도시 주민들을 아직도 공동 아파트나 합숙소 같은 곳에서 목욕탕, 주방 및
침실까지 공용으로 사용하면서 살고 있다. 도시 지역 밖에 사는 주민의 약 절반 정도는 수세식
변기와 수도 시설이 안 된 곳에서 살고 있다. 진공 청소기, 아스피린, 치약 같은 일용품이 매우
희귀하거나 아예 없다. 소련인 100명 가운데 9명만이 전화를 가지고 있다. 약300만 명의 소련
시민들은 맑은 물을 마시지 못하고 산다. 피임약이 부족하려 종종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시술하는
낙태 수술로 산아 제한을 한다. 소련 남자의 평균 수명은 68세이다.
[ 잠옷은 왜 잠옷인가? ]
인도에서는 직장에서 일할 때나 길거리를 다닐 때 잠옷을 입고 있다 해도 에티켓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과 에디슨
에디슨은 하루에 잠을 4시간 밖에 자지 않고 과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하루에
10시간씩 잠을 자고도 뛰어난 과학자가 되었다.
[ 제34장-유행 ]
[ 전미국을 휩쓴 블루진의 비밀 ]
블루진은 두 가난뱅이에 의해 고안되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행상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재단사였다.
1848년 독일 남부의 바바리아주 출신의 유태인인 레비 스트라우스라는 사람은 미국으로
이민와서 뉴욕의 주택을 돌며 직물류를 판매하는 행상업을 시작하였다. 후에 샌프란시스코로 간
스트라우스는 뚜꺼운 텐트 천을 잘라 기워 최초의 레비 진 한벌을 만들었다. 이 질긴 바지는
대히트를 쳤고, 그는 이내 성공 가도를 달리는 사업가가 되었다.
스트라우스가 푸른색으로 염색했던 갈색 천은 프랑스의 니메에서 수입되어 '니메의 사지' 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데님' 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유사한 천이 이탈리아의 제노아에서도
들어왔는데 제노아의 불어 발음인 '제네' 를 영어식으로 표기한 것이 '진'이다
1872년 스트라우스는 제이콥 W. 데이비스라는 한 재단사로 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는
네바다에서 수년 동안의 고생 끝에 3달러짜리 데님과 즈크 천으로 만든 바지에 자신에 고유
브랜드를 붙여 성공적으로 판매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는 스트라우스에게 보낸 편지에 "제
바지의 비밀은 바로 제가 포켓에 끼워둔 리벳에 있다." 라는 말을 했다. 두 사람은 힘을 모았고
리벳을 넣어 만든 데님은 전 미국을 휩쓸었다.
1873년 이래로 이 바지의 디자인은 거의 변경되지 않았지만 1833년에 중대한 한차례의 변경이
있었다. 그 당시 레비스트라우스사의 사장으로 있던 윌터 하스 스트라우스는 오리지널 모델
501진을 입고 캠핑을 갔었는데, 그 가랑이에는 구리 리벳이 들어가 있었다. 캠프파이어 불길에서
나온 열기로 리벳이 눅눅해지면서, 하스는 몸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 뜨거운 '리벳 증후군'으로
고통받게 되었다. 그 후 레비 스트라우스 이사회는 그 위험한 리벳을 제거시키기로 결정하였다.
[ 대통령이 퍼뜨린 유행 ]
로널드 대통령이 보청기를 끼기 시작하자 그것이 일대 유행이 되었고 그 값도 40%나 올랐다.
[ 지팡이에서 향수 냄새가 난다 ]
지팡이는 18세기 유럽인들 사이에서 대유행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80개, 루소는
40개의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다. 여자들의 지팡이 속에는 향수병과 뮤직박스, 로맨틱한 그림들이
감춰져 있었다.
[ 거지들의 흉내 ]
청바지는 미국에서 1940년경에 작업복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세계 젊은
남녀 사이에 평상복이나 레저복으로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착용되고 있다.
1990년대에 와서는 청바지에 구멍을 내거나 잘라내어 속살이 밖으로 노출되도록 하여 거지들의
흉내를 내고 있다.
[ 제35장 대통령, 왕과 여왕 ]
[ 제35장-대통령 ]
[ 대통령을 체포하라 ]
당신이 언젠가 과속 운전으로 교통 위반 딱지를 받게 된다해도 자신을 너무 나무라지는 말라.
미국의 한 대통령도 재임 기간 중 같은 협의로 체포된 적이 있었다.
워싱턴시의 경찰관 윌리엄 웨스트는 어느 날 M가 서쪽에서 놀랄 만한 속도로 돌진하는 한 필의
말이 끄는 마차 한대를 발견하였다. 말 굴레를 움켜진 웨스트는 반 블록이나 질질 끌려간 후에야
말을 멈추게 할 수 있었다. 기사를 체포할 즈음에야 웨스트는 그가 다름아닌 율리시즈S.
그랜트라는 것을 알았다. 당황한 웨스트는 깍듯이 사과를 했지만 대통령은 자발적으로 죄를
인정하고 "경찰관, 자네 임무에 최선을 다하게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고, 웨스트는 대통령의 말과 마차를 우리에 넣었다. 그리고 후에 말과 마차는 백악관으로
돌려보내졌다.
그런데 사실은 웨스트가 말 고삐를 쥔 대통령을 발견했을 때 그렇게 쇼크를 받을 필요까지는
없었다. 1860년 대통령직에 올랐을 때 그랜트는 이미 과속 혐의로 두 번이나 체포되어 각각
5달러의 벌금을 물었던 이력이 있었다. 또 한번은 그랜트가 대통령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법을 위반한 적이 있는데, 펜실벤이니아의 맥킨 카운터에서 낚시 여행을 하고 있던 그랜트는
그때가 낚시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곧장 치안 판사를
찾아갔으나 판사는 이 존엄한 위반자에게 법 적용을 내켜하지 않았다. 그랜트는 충분한 벌금을
내겠다고 주장하면서 치안 판사에게 법을 적용하는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나무랐다고
한다.
[ 라스베가스의 레이건 ]
1954년 2월 15일, 장래의 미 연방 대통령은 2주일 계약으로 '최후의 개척자'라는 호텔의 라모나
룸에서 공연을 가졌다.
타고난 춤과 노래 실력이 없는 레이건에게 이 공연은 도박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관객은
많았고 반응 또한 좋았던 것으로 보아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여겨진다. 한 잡지 기고가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레이건의 모습은 춤추고 노래하고, 광대짓에 엉덩이를 찧는 일까지
나이트클럽의 오렌 베테랑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을 자신도 소화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 같았다" 라고 쓰고 있었다.
레이건은 영화 배우로서의 명성를 쌓기에는 별 가망이 없었고, 스스로도 TV나 연극 무대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재능을 잘 살려주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몇 편의 영화에의
출연을 거절하기도 했다. 그러자 그의 직업 소개인은 라스베가스의 출연을 권했던 것이다.
레이건의 라모나 룸에서 일할 동안에는 광고지의 선두에 그의 이름이 게재되었다. 부인인
낸시가 뒷좌석 조용한 곳에 앉아 매일 저녁 그의 쇼를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프로그램의 진행 및
1인 희극을 하였고, 시끌벅적한 광대팀인 허니 브라더스와 무대위를 종횡 무진하였다(어떤
비평가는 그의 광대짓을 보고 '갈비뼈를 부러뜨릴 정도'로 웃기는 것이었다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90분에 이르는 밤무대의 마지막은 레이건과 밴드 지휘자의 레슬링으로 장식되었다.
라스베가스에서의 레이건의 인기는 대단하여서 그 호텔의 주인은 레이건이 좀더 일해주기를
바랬다. 마이애미, 뉴욕, 시카고 등지에서도 비슷한 요구가 들어왔으나 레이건은 밤일을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레이건과 낸시 모두 라스베가스에 대하여 자신들이 계속 있을 곳이 못
된다고 느낀 것이다. 할리우드로 돌아가는 것만이 그들의 일말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도박의
수도에서 이룬 그의 성공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전조였을 뿐이었다. 그해 레이건은 연봉
12만 5천 달러를 받고 'General Electric Theater'라는 TV드라마의 해설자가 되기로 계약을
맺었다.
레이건과 7이라는 숫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37년에 영화계에 데뷔했고 일리노이주 딕슨 근처 유흥가에서 7년
동안 구조원으로 일하며 77명의 목숨을 구했다. 1947년에 영화 배우 협회 회장이 되었고
1967년에 캘리포니아 주지사 후보가 될 수 있는 공화당 공천을 받았고, 대통령이 된 지 17일
만에 70회 생일을 맞았으며, 70일 만에 저격을 당했다. 그는 77세 때 백악관을 떠났다.
[ 누드 모델 대통령 ]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40년에 USC 미술 대학에서 옷을 벗고 누드 모델 노릇을 했다. 포드
대통령도 누드 모델을 한 적이 있으며 한때 'Look'나 'Cosmopolitan'지의 표지 모델로 나온 적도
있었다.
대통령 존 아담스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아담스는 일생 동안 우울증 환자로서 고통을 받았으며, 누구나 그가 일찍
죽으리라고 생각할 정도로 허약하였다. 37세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스스로
병자라고 믿고서 죽음을 예측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그는 62세에 미국 제2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그의 아들 존 퀸시 아담스가 미국 제6대 대통령이 되는 것까지 보면서 91세의
장수를 누렸다.
임병준이 그린 초상화
존슨 대통령이 고향 텍사스 아스틴에 있는 존슨 도서관에서는 한국의 임병준이 글자로 존슨
대통령의 얼굴을 그린 특수한 초상화가 소장되어 있다.
[ 대통령의 부채 ]
토머스 제퍼슨은 83세 되던 1826년에 107,000달러의 빚을 안고 파산했다. 제퍼슨은 자기 땅을
상금으로 내건 복권을 판매하도록 버지니아 주의회에 요청하여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제퍼슨의
복권은 실패하였으며 그는 많은 부채를 남긴 채 죽었다.
누가 찰스 디킨스를 죽였나?
미국의 제7대 대통령이었던 앤드류 잭슨은 자기 아내인 라첼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소설가 찰스
디킨스와 격투하여 그를 죽였다.
3대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인권을 옹호하고 민권 운동을 시작한 사람이지만 130명의 노예를 소유하였다.
[ 애꾸눈 대통령 ]
테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은 애꾸눈이었다. 1904년 어느 날 젊은 장교와 권투 시합을 하다가
왼쪽 눈을 실명한 것이다. 그는 1907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불운한 대통령
1841년 미국 제9대 대통령 윌리엄 헨리 헤이슨은 눈 내리는 겨울날 코트도 입지 않고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대통령 취임 연설을 했다. 그의 독특한 취임 연설은 다른 대통령보다 거의 2배나
길어 8,445단어의 장문으로 두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는 그떄 걸린 감기가 폐렴으로
발전, 한 달 뒤에 죽었다.
[ 팔자 좋은 대통령 ]
칼빈 쿨리지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게으르고 일을 안 한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하루에 10시간 자고, 10시간 동안은 배회하며 겨우 4시간 동안만 일을 했다. 9시 전에는 직무를
보지 않았고 점심을 매우 오랫동안 들었으며 12시 30분에는 꼭 낮잠을 잤다. 또 여름에는
오랫동안 휴가를 가서 낚시에 몰두했는데, 한번은 3개월 동안 뉴잉글랜드의 어느 휴양지에서
조지 거쉰의 '우수의 광상곡'을 들으며 매일 낮잠을 즐겼다. 그는 그 동안 백악관에 한 번도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54세의 대통령과 24세의 금발 미녀
1974년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하여 사망하자 딸 근헤 양이 영부인 역할을
대리했다. 미국의 제10대 대통령 존 타일러도 1842년 그의 부인이 뇌출혈로 사망한 뒤 며느리가
그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1844년 54세의 대통령은 며느리보다 더 어린 24세의 금발 미녀 줄리아
가디너와 재혼했는데, 이 발랄한 퍼스트 레이디는 아주 열광적이고 사치스럽게 자신의 공식적인
임무를 수행했다.
링컨과 케네디
'페레이드' 신문에 매주 1회 실리는 칼럼 'The book of lists' 'The people's Alamanac'
'Significa'의 필자들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과 존 F.케네디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을 요구하는 수많은 독자들의 편지를 받았다. 칼럼 작가들은 그들의 칼럼을 사랑해준 많은
독자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1. 아들과 형제: 링컨에게는 에드워드와 로버트라는 이름의 두아들이 있었다. 그들 중
에드워드는 3세 때 죽었고 로버트는 별 탈 없이 잘살고 있다. 한편 케네디 로버트와
에드워드라는 이름의 형제들이 있는데, 로버트는 자객에 의해 암살당했고 에드워드는 아무 일
없이 잘살고 있다.
2. 대통령으로 선출된 시기: 링컨은 1860년 대통령으로 선출 되었고, 케네디가 대통령 업무를
시작한 시기는 그로부터 100년뒤인 1960년 이었다.
3. 비서: 링컨의 비서는 케네디였고, 케네디의 비서 이름은 링컨이었다(동명이인)
4. 아내: 메리 링컨과 재키 케네디는 그들의 남편과 백악관에 있을 때 사랑하는 자식을 잃었다.
5. 암살: 링컨과 케네디의 암살 사건에도 묘하게 일치하는 점들이 있다. 모두 부인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뒤통수에 총상을 입고 암살당했으며, 이 사건은 모두 금요일에 일어났다.
6. 암살범들: 링컨의 암살범 존 월크스 부스와 케네디의 암살범 리 하비 오스월드는 모두
남부인으로서 20대에 범행을 저질렀다.
7. 범죄상황: 부스는 링컨이 극장안에 앉아 있을 때 총을 쏜 후 창고에 숨었다. 케네디의
암살범 오스월드는 극장 안에서 케네디에게 총을 겨누었으며, 그 후 극장 안에 숨어 있다가
나중에 붙잡혔다. 부스와 오스월드는 모두 재판을 받지 못하고 사살되었다.
8. 대통령직 계승: 아브라함 링컨은 1808년에 태어난 '엔드류 존슨'의 뒤를 이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존F. 케네디는 1908년에 태어난 '린든 존슨'의 다음 대통령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앤드류 존슨과 린든 존슨은 둘 다 상원의원을 지낸 바 있다.
9. 숫자상의 공통점: 링컨과 케네디의 이름은 모두 7개의 알파벳을 가지고 있고, 전임 대통령인
린든 존슨과 앤드류 존슨의 이름은 13개의 알파벳으로 되어 있다. 한편 두 대통령의 암살범 존
윌크스 부스와 리 하오비스 월드의 이름도 각각 15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졌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1832년에 실직하고 선거에 떨어졌으며 1833년 사업에 실패했다. 1836년 신경통 환자가 되었고
1848년 국회의원 지명전에서 탈락했다. 1849년 국회의원 재지명전에서, 1854년 상원 입후보에서
낙선했으며 1856년 부대통령 지명전에서 떨어졌다. 1856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했으나 1861년
미국 제 16대 대통령이 되었다. - 아브라함 링컨
[ 유일한 GI 대통령 ]
링컨은 대통령이 되기 전 군대에서의 마지막 계급이 일등병이었던 유일한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일등병 링컨은 1833년 5월 27일 부터 7월 10일까지의 복무 기간 동안 하루에 21센트씩의 급료를
받았다.
30년 후의 총사령관
1832년 Black Hawk Indian War 때는 아브라함 링컨과 제퍼슨 데이비스는 결코 주목받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30년 후 그들은 각각 총사령관이 되었다. 링컨은 북부군의 총사령관으로,
제퍼슨은 남부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재등장하였는데, 그들은 남북 전쟁 때 양극의
우두머리였다.
[ 링컨 대통령의 계승자 ]
링컨 대통령의 계승자인 제17대 미국 대통령 앤드류 존슨은 학교를 전혀 가보지 못한
사람이었고, 18세에 16세의 구두장이의 딸과 결혼하여 그녀로부터 쓰고 읽는 법을 배웠다. 또한
앤드류 존슨은 탄핵 재판을 받을 뻔한 첫번째 대통령이었다.
[ 제35장-왕과 여왕 ]
[ 노래하는 네로 황제 ]
네로는 로마의 황제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야심이 다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로마의 연대
편찬 기록자 슈토니우스의 말에 의하면, 네로의 마지막 남은 욕망은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고 한다. 결국 개인 교습을 받은 후에 네로는 나폴리에서 데뷔를 하였다. 그러나 네로가
노래를 하고 있는 동안 객석은 그만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지진처럼 우렁찬 네로의 목소리가
온극장 안을 메우자, 이를 듣다 못한 관객들이 앞을 다투어 극장 밖으로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격분한 네로는 그 다음 공연 때부터는 모든 문을 봉쇄시켜버렸다. 그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동안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어떤 여인은 극장
안에서 출산해야 했으며, 듣는 척하면서 마지못해 박수 갈채를 보내던 일부 남자들은 몰래
도망치려다가 붙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아주 재치있는 3명의 시민들은 들키지 않고
무사히 극장 밖으로 빠져나올수 있었는데 그들의 재치는 이러했다. 1명은 죽은 척했고 나머지
2명은 그 사람의 머리와 다리를 잡고 아주 정정당당하게 실어내었던 것이다.
[ 남자끼리 치른 결혼식 ]
네로 황제는 남자 노예 스코러스와 공식적으로 결혼식을 가졌다. 미국의 켈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터에 있는 아구나 비치시에서는 남자와 남자의 결혼을 인정하고 증명서도 만들어 준다.
[ 키작은 남자와 발이 큰 여자 ]
751--768년에 프랑코를 다스린 '작은 자' 페핀 왕의 키는 135cm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페핀은 육 척에 달하는 검을 차고 다니는 유능한 기사였으며 샤를마뉴의 아버지로 불렸다.
반면에 페핀의 부인은 '발 큰 여인' 베르타로 알려져 있다.
[ 문둥이에게 입맞추는 황제 ]
프랑스 카페 왕조의 루이 9세는 성자였다. 그의 기독교 정신은 11명의 자녀를 낳은 부인에 대한
성실성으로 입증된다. 이러한 성실성은 사실 13세기 왕실의 관습이 아니었다. 루이는 마음을
고상하게 한다는 이유로 머리카락으로 짠 속옷을 입었고, 겸손의 표현으로서 문둥이에게 입을
맞추었으며 걸인들을 왕실 만찬에 초청하였다. 초대된 사회의 최하층민들이 어찌나 악취를
풍겼던지 코앞에 꽃을 둘 수 없었던 근위병들이 항의를 하였다고 한다. 루이는 또한 결투에 의한
재판을 폐지하고 송사에 있어서 사실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하도록 했다.
그는 신성 모독, 도박, 매춘을 엄격한 법으로 다스렸으나 한편 이교도와 유태인들을 가장
야만스럽게 취급하기도 했다. 그는 흑사병으로 죽은 27년 뒤인 1297년, 성 루이드 성자의 반열에
이름이 올려졌다.
신성 로마 제국의 찰스 5세는 이렇게 말하였다.
"짐은, 신에게는 스페인어로, 여자에게는 이탈리아어로, 남자에게는 프랑스어로, 그리고
말에게는 독일어로 말하노라."
[ 뒤바뀐 아기의 황제 등극 ]
유사이래, 바뀌어진 가장 고귀한 아기는 중국의 황제 치엔 룽(1711--1789)이다. 그의 공식
어머니가 된 황제 융챙(1677--1736)의 빈 니우훌라는 여아를 출산했다. 의심스럽고 야만적이며
징벌적인 불평투성이 황제는 빈이 아들을 낳지 못하면 폐빈시키겠다고 협박했다. 니우훌라는
자신의 딸을 같은 날 탄생한 대신의 아들과 바꾸어버렸다. 이렇게 바뀌어진 아이를 받아들고
기쁨에 넘친 황제는 그날로 빈 니우훌라를 여황제의 자리에 앉히고 거할 궁전을 따로 주었다.
니우훌리는 67년 동안 그 궁전에서 여황제로 군림했다.
바뀌어진 소년은 결국 황제에 등극하여 60여 년 동안 중국을 다스렸다. 그의 치세 동안 중국은
역사의 황금기를 누렸다. 중국이 이보다 더 안정되거나 풍요로운 적은 없었다. 이때에 중국은
가장 넓은 영토와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했다. 치엔 룽은 중국역사를 통해서 가장 지헤로운
황제였으며 33,950여 편의 시를 지은 시인이요, 천부의 재능을 부여받은 저술가였다. 그는
밑창의 높이가 7,6cm나 되는 화분 신발을 유행시켰으며, 그의 (양)어머니의 생전에 그녀를 매일
방문하기를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역사는 불안한 어머니의 작은 속임수에 대해 잠잠하기로
결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 인구의 25%에 대한 위대한 혜택으로 기록하였다.
명나라 황제 홍우
명나라 황제 홍우(1368--1398)는 재위 말기에 10일 동안 무려 3,391가지 다른 일을 다룬
1,660개의 문건을 처리했다.
일본의 왕위
일본의 왕위는 6세기 이후 한번도 중단된 적이 없이 한 왕조에 의해 계승되었다. 현재의 천황인
이키하도는 125대 계승자이다.
진시황의 가족
만리장성을 쌓게 한 진시황의 직계 가족은 수천 이나 된다. 어떤 고대 기록에 의하면 그는
13,000명이 넘는 아내를 거느렸는데, 하룻밤에 하나씩 갈아치웠다고 한다. 또 그는 가족들을
모두 한 성에서 살게 하였는데 거기에는 10,000개 이상의 방이 있었다고 한다.
생전에 그는 자신이 죽으면 모든 가족들을 함께 장사시켜달라고 했는데, 그대로 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BC 210년 그가 죽은 뒤 그의 장남은 12형제와 10자매, 왕관을 노릴 만한
모든 친척들을 목베느라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 공민왕은 호모였다 ]
공민왕는 젊고 잘생긴 미남들을 골라 자제위를 조직한 후 좌우에서 시중을 들게 했는데, 밤에는
왕의 호모 섹스 상대를 했다고 한다. 공민왕은 늘 죽은 노국 공주를 생각해서 후궁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 팔방 미인 아크바 황제 ]
인도 몽골 제국(1556--1605)의 세번째 황제 아크바는 총명한 장군이며 동시에 흉폭한 병사였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진기한 식물과 잔디, 접목한 나무, 잡종교배된
비둘기 등을 수입하였으며 동물학을 연구하였고 서양의 파이프 오르간을 가져와 연주하였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 및 다른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기록된 가르침을 번역하였고 교황과 두
스페인 왕에게 편지를 보냈으며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의 서신 왕래를 통하여 사상 처음으로
앵글로-인디언 간의 외교 관게를 수립했다.
[ 재위 기간이 가장 길었던 왕과 여왕들 ]
이름 재위연도 통치기간
포프 2세(이집트 왕) BC 2566--2476 90년간
루이 14세 (프랑스 왕) 1643--1715 72년간
존 2세 (리히텐슈타인 왕자) 1858--1929 71년간
프랜즈 조셉(오스트리아, 헝가리 왕) 1848--1916 67년간
빅토리아(영국 여왕) 1837--1901 64년간
조지 3세 (영국 왕) 1760--1820 60년간
루이 15세 (프랑스 왕) 1715--1774 59년간
페브로 2세 (브라질 황제) 1831--1889 58년간
윌 헬미나(네델란드 여왕) 1890--1948 58년간
헨리 3세(영국 왕) 1216--1272 56년간
짐은 곧 국가이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7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어떤 황제보다도 많은 권력을 행사했다. 그는
1643년 5세에 왕이 되어 24세부터 스스로 통치하기 시작했다. 루이는 전제주의 개념의 전형을
세웠다. 즉 헌법이나 사법부로부터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통치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때
자신의 지위를 '짐은 곧 국가이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당시 작지만 각료 회의가 있었으나
그들은 왕이 하자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
[ 발레에 출연한 루이 14세 ]
태양왕 루이 14세는 13세 되던 해부터 활동적이고 열렬한 춤의 예찬론자였다. 그는 춤추기에
너무 늙고 지나치게 살찌기 전까지 장 뱁티스트 룰리가 작곡한 30여 발레에 출연하였다.
루이 14세의 자기 과시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알현객의 장엄함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 베르사유 궁전의 6분의 1의
가치가 나가는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모피 예복의 무게에 비틀거리면, 베르사유궁 거울의 방에서
샴국(지금의 태국)대사를 접견하였다.
35년 만의 특별 개봉
피터 3세 대제는 그의 부인 캐더린의 공모자에 의해 1762년 34세로 암살될 때까지 6개월 동안
러시아를 통치했다. 그의 관은 대관식을 치르기 위한 목적으로 죽은지 35년 뒤에 특별히
개봉되었다.
다른 사람은 살려냈으나...
피터 대제는 1724년 겨울 배를 타고 지나가다가 마침 옆을 지나던 배가 침몰하는 것을 보고 물
속에 뛰어들어 구조 작업을 도왔다. 그는 그때 감기에 걸여 고열에 시달리다가 3주일 뒤에
죽었다.
[ 크레믈린의 저주받은자 ]
'크레믈린의 저주 받은 자'로 알려진 피터 대제는 어린 시절 외갓집 친척들이 잔인한 고문 끝에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자기의 이름을 딴 수고 성 페테스부르크를 건설할 때에 새 도시
건설에 단 1명의 석공이라도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모스크바에 있는 석조 건물의 극히
경미한 수리조차도 금했다고 한다.
[ 글을 쓸 줄 모르는 유능한 황제 ]
프랑크의 황제(742--814) 샤를마뉴는 결코 쓰기를 배우지 못했다. 오랫동안의 연습에도
불구하고 쓰기를 배우지 못하자 그는 마침내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샤를마뉴는 읽을 줄은
알았다. 사실 그는, 쓰는 기술은 존엄성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여 이를 수도승이나 하급
서기에게 맡겼던 그 어느 왕보다 유능했다.
나폴레옹의 파격적인 거부
샤를마뉴 대제를 선왕으로 칭하는 나폴레옹은 한 가지 지극히 중대한 면에서 샤를마뉴 대제의
선례를 따르기를 피했다. 프랑코 황제는 800년에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이러한
일은 중세 전체에 걸쳐 교황과 황제의 세력 다툼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행위로 존속되었다.
자신의 정복에 의해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1804년 교황 피우스 7세에 의해 왕위에 오르기를
거부했다. 그는 교회로부터 독립함을 연출하기 위해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 정략 결혼에 의해 건설된 합스부르크 ]
근대사 초기의 합스부르크 제국은 전쟁에 의해 세워졌다기보다는 왕조 사이의 정략 결혼에 의해
세워졌다. 아라공(스페인 동북부의 옛 왕국)의 페르디난드는 1469년 카스틸(스페인 중부의 옛
왕국)의 이사벨라와 결혼하여 스페인을 통일하였다. 그들의 딸은 '미친 여인'으로 불리는
조안나이다. 1477년에 합스부르크의 막사밀리언은 버건디(프랑스의 동남부 지방)의 메리와
결혼함으로써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일부를 합병하였다. 그들의 아들인 '미남왕'으로 알려진
필립은 조안나와 결혼하였으며 그들의 아들 찰스 5세는 1519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어
비엔나에서 부터 영국 해협까지, 그리고 피레네 산맥에서부터 안데스 산맥에 이르는 제국을
계승하였다. 이에 덧붙여 아메리칸의 광대한 정복지가 이 제국에 부속되었다.
죽음 대신에 주어진 왕위
바빌로니아 역사에는 엔릴-바니 이야기가 있다. 에라-리미티왕의 정원사인 엔릴-바니는 새해
경축 행사의 일환인 '그날의 왕'에 선출되었다. 관습에 의해 가짜 왕은 하릇동안 군림한 뒤에
신에게 희생제물로 바쳤다. 그러나 엔릴-바니의 경우는 달랐다 공교롭게도 에리-리미티 왕은
경축 행사 도중에 죽었고 엔릴-바니는 계속 왕위를 유지했다. 그는 24년 동안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서핑은 왕족의 스포츠
밀려와서 부서지는 파도를 타고 노는 서핑은 스릴 만점의 수상 스포츠이다.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은 기후가 좋고 밀려오는 파도의 폭이 크며 속도가 빠르고 강하기 때문에 서핑의 낙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1810년 하와이 5개 섬을 통일한 카미하미하왕은 '서핑은 오로지 왕족만이
즐기는 스포츠'라는 법령을 만들었다.
죄수에서 왕으로
모하메드 6세가 1918년 터키의 술탄이 되었을 때 그는 4세 때 부터 53년 동안 엄격한 자택
연금에 처해진 죄수였다. 당시 일부 나라에서는 왕위에 뜻을 둔 왕족의 현 왕에 위협을 가하는
존재로 여겨져 연금되는 일이 드물지 않았었다. 모하메드가 감옥에서 왕좌에 오르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찰스의 비밀
1167년 암살된 찰스 7세는 찰스는 이름을 가진 첫 스웨덴 왕이었다. 그러나 찰스 1, 2, 3, 4,
5, 6세 스웨덴 왕은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더욱 이상한 일은 거의
300년이 지난 뒤에야 찰스 7세 왕(1448-1457)이 즉위한 것이다.
환관 나르세스
환관 나르세스가 6세기 중엽에 동고트(고대 이탈리아 왕국(495--555))를 멸망시켜서 이탈리아
전체를 지배하는 비잔틴 왕국을 세우고 수도 라베나를 건설한 때는 74세였다. 그는 90세가
되어서도 라베나에서 이탈리아를 통치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저의 영향
줄리어스 시저의 이름은 암살된 지 20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세계 각국의 통치자 이름 속에 살아
있다. 근대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제들은 카이저(Kaiser)로 불렸다. 이는 라틴어 시저의
독일 철자법으로 아주 발음이 유사하다. 러시아의 차르(Tsar 또는 Czar) 역시 시저의 한
형태이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불가리아의 차르 세메온 2세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고
1947년까지 인도의 대영 제국 황제의 이름에는 카이저-이-힌드 라는 칭호가 따라다녔다.
[ 나폴레옹의 이력서 ]
나폴레옹은 10세에 프랑스로 이주해서 브리엔느 군사학교에 입학하고, 15세에는 파리의
사관학교에 입학, 16세에 졸업을 했다. 이때 그의 성적은 58명중 42등이었다. 졸업 후 소위에
임관되었으며(16세), 24세에는 툴롱 반도의 진압에서 무훈을 세워 소장이 되었다. 26세에는
이탈리아 원정군 총사령관으로서 이탈리아를 정복하였고 33세에는 종신 통령에 임명되었으며,
35세에는 프랑스의 황제가 되었다.
영원한 후회
20세에 왕이 되어 33세에 죽을 때까지 13년 동안 동서로 종횡무진 하였던 알렉산더 대왕은,
죽마고우이며 한때 전쟁터에서 자기의 생명을 구해주었던 은인이기도 한 클레이토스가 많은
사람들이 모인 연회석상에서 술에 취하여 자신에게 폭언을 퍼붓자, 그에게 창을 던져 죽였다.
그러나 분노한 마음이 풀리자 친구를 살해한 죄책감 때문에 몸져누워 이틀 동안이나 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순간적으로 분노했을 때 참지 못했던 마음을 영원히 후회하고 슬퍼했다고 한다.
[ 알렉산더가의 비운 ]
알렉산더 대왕이 병으로 죽자 이복동생 아리다오스가 왕으로 추대되었는데, 얼마 뒤에 왕과
왕비 록사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뒤 태어난 아들과 대왕의 어머니 올리피아스와 친척 등이
알수 없는 자객에 의해 차례로 살해되었다.
히틀러와 크리스천 10세
히틀러는 덴마크에 거주하는 유태인의 신분을 떨어뜨리고 고립시키기 위하여 다른 여타
지역에서 행하였듯이 다윗의 별이 그려진 완장을 차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의도는
덴마크인의 용감하고 동정 어린 행동에 의해 좌절되었다. 명령이 공포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모든 종교의 덴마크인이 완장을 찼다. 덴마크 왕 크리스천 10세는 "짐은 덴마크의 첫번째
유태인이다"라고 선포했다.
[ 왕관을 전당잡힌 왕 ]
영국 왕 리처드 2세는 자신의 왕관을 전당잡힐 정도로 왕실의 재산을 탕진하였다고 한다.
괴팍스러운 왕비 후보 훈련
성경 에스더에 보면 페르시아에서 후보를 뽑을 때 후궁전에 그들을 모아놓고 6개월 동안이나
향유와 몰약으로 준비를 시켰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
영국을 일게 섬나라에서 해상 제국으로 성자시킨 엘리자베스 1세는 25세에 즉위하여 45년 동안
통치한 존경받는 여왕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악명 높은 헨리 8세와, 그에 의해서 살해된
어머니 앤불린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그녀는 일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영국을 세계 최대 강국으로
만드는 기반을 굳혔다.
프로이드의 몸값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숙모인 그리스와 덴마크의 공작 부인 조지는 82세의 지그문드
프로이드를 오스트리아에서 영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1938년 나치에게 뇌물성 몸값으로
20,000파운드를 지불했다. 나치 점령 정부는 프로이드가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거짓 주장하며
그의 서재와 장서를 압수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돈을 받아냈다. 프로이드는 역시 공작 부인의
도움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자기 재산을 가져와 공작 부인에게 몸값을 갚았다. 프로이드는
영국에서 15개월 살다가 암으로 죽었다.
3개의 왕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53년 대관식날 하루에 3개의 왕관을 번갈아 썼다. 그녀는 빅토리아
여왕의 다이아몬드 장식 반월관을 쓰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갔다. 공식 대관 의식에서는
진주가 점점이 박힌 무거운 순금제 성 에드워드의 왕관이 사용되었다. 사원에서 나와 행진하면서
쓴 왕관은 두꺼운 순백 가두리 장식이 된 대영 제국 순은제 홍예관이었다.
[ 목욕 횟수 ]
16세기에 영국을 다스렸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한 달에 단 한번 목욕을 했다고 한다.
[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영국 여왕 ]
영어는 빅토리아 여왕의 모국어가 아니었다. 독일 공작의 딸인 그녀의 어머니는 가정에서
독일어를 사용하였으며 빅토리아 여왕은 64년이나 영국을 통치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였다.
[ 여왕도 역시 여자이기에 ]
분만의 고통을 덜기 위해 처음으로 마취술이 채용되었던 1840년대에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물론
남성들) 금단의 과일을 따먹은 대가로 하나님이 이브에게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라고 성서에 씌어 있음을 이유로 이를 반대했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이 1853년
7번째 자녀를 분만하면서 클리로포름으로 마취하기를 허용하자 모든 항의가 멈추었다. 어느
누구도 여왕을 비판할 만큼 배짱이 두둑하지 않았다.
[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자손은 따로 있다 ]
빅토리아 여왕이 태어난 해인 1819년, 섭정왕이었던 빅토리아의 할아버지 조지 3세는 일곱
아들과 네 딸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로소 합법적으로 왕위를 계승할 자손을 얻게 되었다.
조지의 네번째 아들 에드워드에게서 태어난 빅토리아는 삼촌 윌리엄 4세를 이어 1837년 여왕이
되었다.
[ 청소부와 황후 ]
어떤 청소부는 낮 시간에는 빌딩을 청소하였지만 밤이 되면 법정의 사무실로 들어가 사건
기록을 요약한 판결문을 도적질 하곤 하였다. 그는 때로 판결문이 지워질 때까지 물 속에 서류를
담그거나 집으로 가져가서 불살라버리곤 했다. 그 결과 사형 선고를 받았던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집행을 당하지 않았고,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다. 그 가운데는 조세핀도
있었는데, 그녀는 후에 프랑스의 황후가 된, 유명한 영웅의 부인 마담 드 라파이에트였다.
[ 여황제의 공식적인 애인과의 섹스 ]
소련의 캐더린 여제는 성적으로 결코 만족할 줄 모르며, 본능적인 입을 항상 크게 벌리고
있었다. 그녀는 하루에 6회 이상의 성행위를 했지만 결코 만족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21명의
공식적인 애인을 고용해서 마음대로 즐겼으며, 그들은 그녀와 섹스를 하기 전에 건강 진단을
받아야 했다.
눈 가리고 아옹 하기
1787년 지방을 시찰중이던 러시아의 철권 황후 캐더린은 부유한 마을과 희희낙락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 백성들을 행복스럽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믿었다. 철권 황후는 이 '포템킨
마을'이 그녀의 순방길을 따라 애꾸눈 재상 그레고리 포템킨에 의해 계획되고 날조된 허위임을
깨닫지 못하였다. 포템킨은 백성들에게 거리를 청소하고 집앞을 새로 칠한 후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미소를 머금으라고 명령했다. 여황제는 겉보기 뒤의 더러움과 비참함을 결코 눈치채지
못했다.
[ 처형을 위한 예행 연습 ]
헨리 8세의 5번째 부인인 캐더린 하워드 여왕은 자신의 처형을 위한 예행 연습에 참여하였다.
다음날 단두형에 처해짐을 통보받은 여왕은 처형자의 도끼와 자신을 묶을 도구를 감옥에
가져오도록 요청하였고 이는 실행되었다.
죽은 후에 병을 고치려나
580년 프랑코 왕 귄트람의 부인 오스트리칠다아 여왕은 이질에 걸렸다. 치료를 담당한 두
의사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여왕은 자기가 죽을 경우 자신의 무덤 앞에서 두 의사도
함께 죽이겠다는 약속을 왕 귄트람으로부터 받아냈다. 여왕은 죽었고 두 의사는 여왕의 소원대로
다른 왕실 의사가 보는 앞에서 처형되었다.
[ 생후 6개월의 여왕 ]
메리 스튜어트는 태어난 지 6일 만에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되었다. 그녀가 태어나던 1542년
12월 8일 그녀의 아버지 제임스 4세는 임종하고 있었다. 메리 스튜어트는 왕관을 쓰기에도,
왕홀을 들고 근엄한 맹세로 서약하기에도 터무니없이 어린 아홉 달 되던 때에 스털린성의
성당에서 정식 대관식을 가졌다. 영국의 헨리 4세도 1422년 비슷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무식의 표시인가, 뛰어난 조크인가?
하와이 최후의 여왕 릴리우오칼라니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을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은 유명한
첫 인사말을 남겼다. "제 몸속에도 영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어요. 우리의 조상님들께서 영국
선원들을 잡아먹은 적이 있으니까요."
데카르트를 요절케 한 여왕
1년에 걸친 간청과 감언으로 스웨덴 여왕을 마침내 뜻하던 바를 성취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수학자, 과학자인 르네 데카르트는 1645년
예술 문학 대학의 설립을 돕는 여왕의 철학 개인 교수로 초청되었다. 19세의 여왕 크리스티나는
이 프랑스의 천재를 모셔오기 위해 군함을 보내었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의 혹독한 겨울과 난방
시설도 되지 않은 궁전 도서실에서 열린 아침 5시부터 6시 사이의 철학 강의로 유행성 감기에
걸린 데카르트는 그만 요절하고 말았다.
사치는 여왕의 전유물인가?
두어 번의 왕실 연회를 위해 이사벨라 여왕은 신세계를 탐험한 콜럼버스를 지원했던 액수에
버금가는 돈을 지불했다고 한다.
은나라 최후의 왕인 주왕은
정치는 돌보지 않고 매일같이 주색에 빠진 중국의 대표적인 폭군으로 평가되지만, 그는 독부인
달기를 기쁘게 해주기 위하여 나라의 재정을 물쓰듯이 탕진하면서 큰 궁전과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연못은 술로 가득 채우고 나뭇가지마다에는 고기를 매달아 수풀을 만든 다음
만조백반을 불러대 주연을 베풀었는데 연회에 참석한 사람은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 발가벗고
마시며 춤추게 했다. 이와 같은 밤을 새우는 광란의 주연은 무려 120일이나 계속되었다고 한다.
[ 제36장 영화, 영화배우 ]
[ 제36장-영화 ]
[ 스칼렛 오하라 역을 찾아라 ]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역을 찾기 위해 비비언 리가 나타날 때까지
1,400명이나 면접을 했다.
검열된 다큐멘터리
한때 미국 정부는 오스카-워너 존 포드를 공동 감독으로 위촉해서 제작했던 어떤 필름을
압수한 적이 있었다.
1942년, 포드는 진주만 공격에 관한 특선 장편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촬영 기사
그레그 톨란드와 손잡고 영화 제작에 돌입했다. '12월의 일곱번째 날'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그러한 공격에 대비하지 못한 미 해군의 실책을 있는 그대로 상세하게 묘사했다. 군부에서
이것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백악관에서는 포드의 전체 필름의 검열을 허용하는 명령을 내렸고
해군에서는 그 필름을 압수했다.
이후 포드는 이 영화의 문제시되는 모든 부분을 삭제하여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상영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필름은 진주만 전쟁에 참가한 미군을 변호하는 선전 필름으로 보였고
1943년 오스카상을 수상하였다.
[ 마지막 황제 ]
아카데미 대상작 '마지막 황제'는 그 엄청난 수의 군중 장면이 놀라운데, 여기에는 19,000명의
엑스트라와 700명의 배우가 동원되었다. 이 중 2,000명의 자원 엑스트라는 중국의 군인들이었다.
[ 쉰들러 리스트 ]
1994년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7개 부문에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쉰들러 리스트'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10년에 걸쳐서 만든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 트럭 운전사가 대스타가 되다 ]
엘비스 프레슬리와 록허드슨은 트럭 운전사였다.
노익장 과시
설리번 하트는 70세에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을 해냈으며, 눈물의
여왕으로 불리는 한국의 전옥은 50세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역을 해냈다.
[ 한 번 출연에 5백만 달러 ]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라스베가스에 있는 MGM 오프닝 쇼에 2번 출현하는 데 10,000,000달러를
받아 그 전액을 비영리 단체에 기부했다.
[ 가장 큰 영화관과 가장 작은 영화관 ]
이제까지 존재했던 영화관 중 가장 큰 것은 1960년에 폐쇄된 뉴욕의 록시 영화관이다.
전성기인 1930년대에는 6,214명의 관람객을 위해 300명의 고용인이 필요했다. 반대로 당시의
상설 영화관으로서 가장 작은 것은 25석을 가진 쿠바 콜론의 미라마 영화관이었다.
[ 인기 배우가 나오지 않는 영화 ]
오랫동안 대부분의 영화들이 인기가 높은 배우를 써서 성공률을 높였다. 그런데 인기 배우를
쓰지 않고도 크게 성공한 5편의 영화가 있다. 'ET'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 '제국은 다시
산다' '죠스' 등인데 이들 영화에서는 인기 배우가 주연을 맡지 않았다.
대통령의 얼굴
미국의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가 1964년 'The Best Man'이란 영화를 만들 때 대통렬 역을 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이때 영화 배우였던 로널드 레이건이 추천되었지만 감독과 운영진들에 의해
거절당했다. 그의 얼굴이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할리우드 마이러스 스필버그
8세 때부터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의 8mm 코닥 카메라를 빌려 동생들을 배우로
출연시켰다. 27세 때는 '죠스'를 만들어 예상을 완전히 깨고 개봉 한 달 만에 미국내에서만
65,000,000달러를 벌어들였다. 영화관 예술 형태가 생긴 이래로 최고의 흥행을 올린 20편 가운데
7편이 그의 작품인 사실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 중 1위, 2위가 그의 작품인 '쥬라기 공원'과
'ET'다.
[ 로널드 레이건 부인의 키스 ]
영화사상 가장 오래 걸린 키스는 1940년의 영화 '당신은 이제 군대에'에서 레지 루미와 레이건
대통령의 첫 부인 제인 와이먼 사이에 나눈 것으로 무려 185초나 걸렸다.
필름 편집
1939년에 제작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촬영하는 데 137Km의 필름이 소모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영화 자체에는 6Km만 사용되고 나머지는 모두 잘려나갔다.
서울에서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상영 시간이 너무 길다고 하여 중요한 노래 전부를 잘라버린
사상 최악의 필름 편집을 하였다.
[ 제36장-영화 배우 ]
[ 실베스타 스탤론의 출연료는 티셔츠 25벌 ]
배우의 출연료는 영화 제작비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출연료가 치솟기 시작한 것은 1963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클레오파트라'에 출연하는 조건으로 100만 달러를 요구하면서부터이다.
말론 브란도는 '슈퍼맨'에 출연하여 12일 동안 촬영한 대가로 370만 달러를 챙겼고(1979),
실베스타 스탤론은 스스로 제작 감독 주연한 '록키4'에서 1,600만 달러를 벌었다(1987). 첫 주연
작품인 '플랫부쉬의 주'에서 실베스타 스탤론은 티셔츠 25벌을 받았다고 한다.
16,000 대 1의 경쟁
월남전 영화 '플래툰'으로 유명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천국과 지상' 주인공으로 뽑힌 베트남
태생의 힙 타이 리(22세)는 16,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994년도의 미국 영화계의 신데렐라가
되었다.
킨데르 파워
1994년 미국의 아역 배우 맥컬리 컬킨(13세)은 한 번 영화에 출연하면서 900만 달러를
받았다(나 홀로 집에).
[ 탈세 혐의로 복역한 소피아 로렌 ]
미스 로마 앰런 이탈리아 출신 할리우드 여우 소피아 로렌은 탈세를 한 혐의로 고향인
이탈리아 카셰타시에서 17일 동안 복역을 했어야 했다.
꽃으로 이야기하라
꽃이 인간의 사랑을 더욱 풍부하게 해줄 수 있을까? 특히 이성간의 사랑을...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람들이 꽃이야말로 연애 감정을 자극한다고 믿었다.
저항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남자만을 찾았던 클레오파트라 역시 꽃의 힘을 신봉했다. 줄리어스
시저가 암살된 후 그녀는 그의 후계자로 지목된 마크 안토니를 유혹하기 위해 배를 타고
출발했다. 그녀는 먼저 수많은 꽃으로 갑판을 장식한 황금 유람선 위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을 로마의 지도자에게 소개하였다. 그런 다음 그 이집트의 여왕은 연회장에서 2m 길이로
장미꽃을 늘어뜨림으로써 안토니를 그 향기에 취하게 만들었다. 그 후 그 커플은 3명의 아이를
낳았다.
1844년 프랑스의 극작가 알렉산더 뒤마는 무희이면서 요부로 소문난 롤라 몽테즈에게 연정을
느꼈다. 그는 방안 가득 장미꽃잎을 흩뿌리고 카우치로 그녀를 끌어들였는데, 그는 그곳을 '사랑
행위를 위해 특별히 디자인된 무대'라고 불렀다. 그 후 롤라는 뒤마를 일컬어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훌륭한 능변가'라고 한마디 했다.
1920년대 스크린의 위대한 연인 루돌프 발렌티노에게 할리우드의 사치스런 풍조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여배우 폴라 니그리는 처음에는 그의 태도에 놀랐으나, 마침내 이 호색한의 친절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드디어 어느 날 발렌티노는 그녀에게 장미꽃 한 다발을 선사했고,
그들은 함께 저녁식사를 즐겼다. 그 다음 발렌티노는 꽃다발에서 꽃잎을 하나하나 뜯어 그녀의
침대에 뿌렸다. 그리고는 폴라에게 "...우리 이 꽃 침실에서 새벽이 올 때까지 즐기자"라고
말했다.
누구일까요?
그는 문제아로서 국민학교에서 퇴학당했고 세번이나 교도소에 간 적이 있으며, 술주정꾼으로
큰소리를 잘 쳤다. 또 옷을 가장 못 입는 사람 중 한 명으로 뽑히고 8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하지만 스스로 작사. 작곡한 영화 주제가가 히트하기도 했고 영화'Thunder Road'에 출연한
배우이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 고학력 영화 배우 ]
율브린너는 할리우드의 배우들 중 유일하게 법학 박사학위를 지니고 있었으며, '양들의
침묵'에서 아카데미 여우상을 받은 조디 포스터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고, 준 아리슨은
석사학위를 받은 유일한 여우이다.
[ 주유소에서 일했던 영화 배우들 ]
'다나 앤드류'
캘리포니아 벤 나이스에서 주유소의 심부름꾼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주유소 주인 스탠리
토미와 존 와드류는 그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정식 월급 이외에 1주일에 50달러씩을 더 주었다고
한다.
'세바스찬 케보트'
성격 배우 케보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14세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주유소 심부름꾼을
비롯하여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당시 로스앤젤레스 시티 칼리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미국 제대 군인
원효법'에 따라 제대 군인에게 지급되는 연금으로 근근이 살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생활이 어렵자
산타모니카에 있는 주유소에서 일을 했었다.
'제임스 가너'
어렸을 때 가너는 고향인 오클라호마 노르마에서 주유소 일을 포함하여 50종류의 일을 했었다.
주유소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소다수 장사를 하던 폴 노르만은 가너를 영화계와 첫 인연을 맺게
해주었다. 몇 년 후 성공한 폴이 영화 제작업자가 되었을 때 그는 가너를 영화 제작팀 일원으로
고용했었다. 그때 가너의 임무는 '큐' 사인을 하는 것이었다.
'젠 켈리'
1938년 '날 혼자 내버려두세요'라는 뮤지컬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하기 전, 켈리는 고향
피츠버그에 있는 주유소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알란 래드'
'This Gun for hire'(1942)와 'Shane'(1953) 영화로 유명해진 터프가이 알란 래드는 영화계에
발을 디디기 전 로스앤젤레스에 있던 주유소에서 일을 했었다.
'딘 마틴'
10학년 때 학교를 중퇴했던 딘 마틴은 고향 스튜벤빌에 있는 주유소에서 일했었다. 딘 마틴은
1946년 어느 날 체리 주이스라는 이름의 사나이를 만남으로써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되었다.
[ 웨이터로 일했던 영화 배우들 ]
'루돌프 발렌티노'
1913년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루돌프 발렌티노는 브룩클린에서 웨이터로 일한 적이 있었다.
'라몬 모바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린 모바로는 가정을 꾸려나가야만 했다. 그래서 로스앤젤레스
레스토랑에서 노래하는 웨이터로 일했다.
'제임스 케그니'
1차 세계 대전중에 당시 10대 소년이었던 제임스 케그니와 그의 두 형제들은 뉴욕 114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로 일했다.
'피터 핀치'
16세 때 핀치는 친구의 웨이터복을 빌려 입고서 시드니의 아스트라 호텔에서 웨이터 노릇을 한
적이 있었다. 몇 년 후, 핀치는 그때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호텔내의 구석구석까지 청소하고 반짝반짝 윤이 나게 바닥을 닦았다. 디너
파티 때에는 귀부인들과 상류사회 사람들이 모인 틈 속에서 샴페인병 마개를 따주거나 맛있는
요리를 날라주고, 때에 따라서는 그릇의 뚜껑까지 열어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2주일 만에
해고당했다.
'마이클 케인'
런던 토박이로, 고기 시장에서 운반인이었던 아버지와 막일 잡역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마이클 케인은 16-18세에 웨이터를 포함하여 여러 잡일을 했었다.
'멜켐 맥도웰'
중학교를 졸업한 후 리버풀에 있는 아버지의 술집에서 웨이터로 일했다.
'커크 더글러스'
1940년 추수 감사절 때 커크 더글러스는 수중에 돈 한 푼 없어서 겨우 20센트의 스튜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그리고 나서 저녁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세레프트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수당은 주급제로 팁까지 더하여 주당 15달러였다. 그러나 커크 더글러스는 이
돈으로 '아메리칸 드라마 아트 아카데미'의 수업료를 냈었다. 또한 이따금 레스토랑에서
샌드위치를 몰래 훔쳐먹어 끼니를 때우기도 하였다.
'제임스 켄'
1950년대말, 호프스트라 대학을 중퇴한 켄은 주말마다 뉴욕에 있는 사교장에서 웨이터로
일했다. 그리고 나서, '네이버후드 플레이 하우스'라는 연극 학교에서 연극 학도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제임스 코코'
1940년대말, 코코는 그랜드 센트럴역에 있는 간이 음식점에서 웨이터로 일했다. 코코는 그
시절을 끔찍했던 과거라고 회상했다. "기차역에는 수백 명의 굶주린 사람들이 물밀듯이
쏟아져나와 서로 주문한 것을 달라고 아우성치는데 정말 손이 열이라도 부족할 지경이었습니다.
잠시도 쉴 틈 없었습니다. 한번은 하도 화가 나서 커피물을 달라고 줄을 서 있던 12명의
사람들에게 아예 주전자의 물을 통째로 쏟아부은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난 해고되었지요!"
'진 헤크만'
1956년, 헤크만은 뉴욕에 있는 하워드 존슨의 레스토랑에서 카운터를 본 적이 있었다.
'더스틴 호프만'
1958-1965년까지 7년 동안 더스틴 호프만은 여러 가지 잡일을 했다. 맨해튼에 있는 여러
레스토랑에서 그는 웨이터로 일해야 했다.
'이브 몽땅'
15세 무렵부터 가장 역할을 해야 했던 이브 몽땅은 마르세일레의 카페에서 웨이터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다.
'제임스 가르너'
1952-1953년 동안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젊은 퇴역군인이었던 가르너는 50여 가지에 이르는
여러 잡일을 했다. 그때, 고향인 오클라호마 노르만에서 웨이터를 하기도 했다.
'버디 헤게트'
브룩클린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보스슈트 단지내에 있는 호텔에서 웨이터이자
엔터테이너로 일했다.
'에디 켄터'
10대에 에디 켄터는 코니 아일랜드의 카레이 윌셔 살롱에서 노래하는 웨이터였고, 그때 피아노
반주자는 지미 듀란트였다.
'윌리엄 벤딕스'
걸쭉하고 혼탁한 목소리로 유명한 벤딕스는 1920년대 브룩클린에서 노래하는 웨이터였다.
웨이트리스로 일했던 영화 배우들
'재클린 버셋'
TV 상업 광고에 출연하기 전 그녀는 1962년 런던의 어느 칵테일 바에서 일한 적이 있다.
'존 브론델'
맨해튼 렉싱톤가와 84번가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던 존 브론델은 유명한 10대 희극 배우가 되기
전에 웨이트리스로 일했었다. 한때 코러스 걸을 시도했으나 낙방했다.
'베티 데이비스'
당시 이혼했던 베티 데이비스의 어머니는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 그녀의 어머니는
신인 사진 작가였다 - 베티는 아브라함의 커싱 아카데미에 있는 구내 카페테리아에서
웨이트리스를 하면서 학비를 벌었다. 다행히 그녀의 학급 친구(남녀 공학이었다)들은 그녀를
깔보지 않았지만, 행여나 그들에게 무시당할까봐 베티는 늘 두려워했었다. 베티 데이비스는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내 자존심을 걸고 일했던 첫 입문이라고나 할까요?"
'올리비아 드 하빌런드'
괴팍한 계부 조지 폰테인은 그녀가 영화 배우가 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에 올리비아는 16세에
집을 나와 사라토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한 적이 있다.
'페이 더너웨이'
보스턴 대학 응용미술학과에 등록한 이후 페이 더너웨이는 함께 어울려 다녔던 부잣집 딸들로
구성된 '피피'클럽 회원들에게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웨이트리스로 돈을 벌었는데, 이것은 페이
더너웨이에게 굴욕감과 수치스러움을 가져다주었다.
'프란시스 화머'
가난하게 태어난 금발의 여인 프란시스 화머는 워싱턴 대학 시절 라이너 내셔널 파크에서
노래하는 웨이트리스로 일해 학비를 벌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게 유명세를 가져다준
작품'로타의 이중 생활'과 '가수'등은 그녀의 웨이트리스 시절과 흡사한 내용들을 다룬
영화들이었다.
'존 폰테인'
올리비아 드 하빌런드(그녀의 언니)와 함께 살았으나, 사고 방식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집을
나와 캘리포니아 사라토가에 있는 '런드블래드'에서 하숙 생활을 했다. 그때 그녀는 오전 중에는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오후와 저녁에는 과일을 팔았다.
'로렌 휴톤'
18세 때 남플로리다 대학을 중퇴했던 휴톤은 뉴욕으로 건너가 칵테일 바의 웨이트리스가
되었다. 후에 그 시절을 그녀는 이렇게 회고했다. "겨울이었습니다. 난 배가 고팠고요. 그래서
플레이보이 바니에서 일을 했었는데 정말 여자에겐 치욕스런 직업이었습니다. 단골 손님들은 날
창녀로 취급했답니다."
'그렌다 잭슨'
런던에 있는 영화 학교를 졸업한 후 그렌다 잭슨은 웨이트리스를 포함하여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마델린 칸'
1960년대초 호프스트라 대학교를 장학생으로 다닐 때 그녀는 롱 아일랜드 벨모어라는 독일식
레스토랑에서 노래하는 웨이트리스였다. 마델리능 거기에서 일하려면 풍부한 유머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마린 스테프리톤'
2차 세계 대전중 낮에는 맨해튼에 있는 허벌트 벌고프라는 연극 학교를 다니면서 밤에는
웨이트리스로 일했다.
'메리 스틴버겐'
1972년 알칸사스에 있는 헨드릭스 칼리지를 그만두고 그녀는 연극 공부를 하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 그러나 잭 니콜슨이 '남쪽으로 가는'(1978)이란 영화에 그녀를 주연 배우로 캐스팅하기
전까지, 그녀는 맨해튼 연극 클럽에서보다 '매직 팬'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를 하면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릴리 톰슨'
1960년대 중반 릴리는 맨해튼의 중심지인 49번가와 브로드웨이에 있는 하워드 존슨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했다. 어느 날 그녀는 레스토랑에 있었던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소리쳤다. "여기에 계신 모든 신사 숙녀 여러분! 모두 여기를 주목 해주십시오. 하워드 존슨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 릴리 톰슨이 이제 곧 모습을 나타내겠습니다. 자! 모두 그녀에게 우렁찬
박수를 쳐주십시오." 그날 릴리는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의 팁을 받았다. 그러나 그날 릴리는
소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제인 위먼'
1930년대 그녀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어느 카페테리아로부터 해고를 당했다. 파이를 여섯
조각으로 반듯하게 자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라퀠 웰치'
다라어 어부인 제임스 웰치와 1963년 이혼한 이후 그녀는 달라스에 있는 칵테일 바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했다. 당장의 생계도 문제였고 어린 두 아들의 뒷바라지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신디 윌리엄스'
로스앤젤레스 시티 칼리지를 졸업한 후 로스앤젤레스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다가 잭 니콜슨이
감독한 영화 'Ga-s-s'(1970)와 'Drive He Said'(1971)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 그 후 '라베린과 셜리'라는 코미디물에서 셜리 역을 맡음으로써 할리우드의 스타가
되었다.
이미지 관리를 위하여
그레타 가르보는 스웨덴 출신으로 매우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모습의 할리우드 여배우이다.
1922년부터 1941년 은퇴할 때까지 22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36세의 나이로 최고 절정의 인기에
이르렀을 때 은퇴를 선언한 뒤 누구와의 교제도 단절했다.
[ 코미디언 재벌 ]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 밥 호프는 미국 100대 부자들 중 한명이다.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그의 재산 500,000,000달러라고 한다.
[ 한국의 밥 호프 ]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면서 브라운관을 활보하던 이주일은 무명 시절에 '샛별
악극단'등의 유랑 극단을 전전하던 보조 코미디언이었다. 그는 1971년 이리역 하춘화를 업고
뛰어나와 구출하였는데, 이 사실이 매스컴을 타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1992년에 이주일은
국회의원이 되었다.
릴리언 기쉬
92세의 주연 배우 릴리언 기쉬는 1988년 92세의 노장으로 '8월의 고래'라는 영화에
출연하였다.
[ D학점의 영화 제작자 ]
루카스는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 '제국은 다시 산다' 등의 영화를 제작하여 세계 최고의
제작자가 되기 훨씬 이전인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학교 성적은 D였다.
[ 영화 배우의 오기라는 것 ]
워너 브라더즈 영화사에서는 영화'마이 페어 레이디'에 출연하기에는 렉슨 해리슨이 너무
늙었다고 생각하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해리슨은 자기의 나체 사진을 감독인 조지 쿠커에게
보냈고 마침내 그 역을 맡아 그해 아카데미 최고 연기자상을 받았다.
영화 감독의 엑스트라 출연
알프레드 히치코크는 50여 편의 영화를 감독했는데 그 중 30개 이상의 영화에서 자기 자신이
나타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1969년의 영화 '토파즈'에서는 공항에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나이, 1966년의 영화 '찢어진 커튼'에서는 아기를 안고 호텔 로비에 앉아 있는 사나이,
1963년의 영화 '새'에서는 흰 복슬강아지 두마리를 데리고 애완 동물 가게를 떠나는 사나이 등이
그것이다.
[ 국회 훈장을 받은 에디 머피 ]
영화 배우 에디 머피는 2차 세계 대전 때 전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는 국회 훈장을 받았고, 또
다른 5개의 메달도 받았다.
마이클 더글러스
영화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사나이' 단 한 편의 히트로 아버지 커크 더글러스가 일생 동안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이때 적어도 1억 달러 이상을 벌었고, 1992년에 일생의 명예를
걸고 만든 영화 '원초적 본능'으로 또 한 번 히트, 1억 달러 이상을 벌었다.
제임스 딘의 매력
24세의 꽃다운 청춘을 자동차 사고로 날려버린 제임스 딘은 많은 영화 팬들의 우상이었다.
특히 '에덴의 동쪽'과 '이유없는 반항'에서 그의 곁눈질하는 모습은 반항아의 상징적인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곁눈질이 시력 장애 때문이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철저한 직업 의식
로버트 드 니로는 자기 역을 철저히 연구하기를 좋아하였다. '대부 2'에 나오는 비르 코를레온
역을 하기 위해 직접 시실리에 가서 방언을 연구하였다. 또 '택시 드라이버'에 출연하기 전에는
택시 운전 면허를 따서 직접 택시를 몰기도 하였다. 또 '성난 코뿔소'에 출연하기 위해 몸무게를
22.6Kg이나 늘리고 영화의 모델인 제이크 라오타와 복싱 연습을 하기도 하였다.
그레이스 켈리
'켄트리 걸' '하이눈' '이창' '상류 사회' 등에서 고상하고 아름다운 연기를 보여주었던
만인의 애인 그레이스 켈리는 인기 절정이었던 26세에 모나코의 왕자 레이니드와 결혼했다.
그러나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의 죽음은 그녀의 신비로운 매력만큼이나
신비했다.
여성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루돌프 발렌티노
오늘날까지도 루돌프 발렌티노의 무덤을 찾아오는 여성들이 있다. 그는 1895년 이탈리아
카스텔레타에서 태어나 1913년 부모를 따라 미국의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온 후 여러 가지
잡일을 했으나, '묵시의 네말'이란 영화가 히트를 해서 미국 최고의 영화 배우가 되었다. 1922년
'피와 모래'의 연기로 전세계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여성들의 영원한
우상인 그가 3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자 그의 무덤을 찾는 여성들이 하루에도 1,000명이
넘었다.
[ 반전주의자 제인 폰다 ]
헨리 폰다의 딸인 폰다는 반전주의자로 미국이 월맹과 싸우고 있을 때 그녀는 베트남에 가서
월맹 편을 드는 발언을 했지만 미국 정부는 그녀를 벌하지 않았다. 제인 폰다는 미국과 전세계의
에어로빅 체조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여성이기도 하다.
[ 이발소에서 일했던 영화 배우들 ]
'헨리 아멜다'
14세 때 아멜다는 이탈리아에서 뉴욕으로 밀항한 후 이발사 조수로서 일하게 되었다.
영화계에서 그는 좋은 성품의 소유자라는 평판을 받았다. 그런 이유에서였는지 그는 많은
영화에서 라틴어, 라틴계와 관련된 대부분의 역을 맡게 되었다.
'찰리 채플린'
9세 때부터 그는 혼자 힘으로 살아야만 했다. 따라서 밤에는 하이드 파크나 코벤트 가든
마켓에서 일을 했으며, 그외에도 하루에 여러 종류의 일을 닥치는 대로 하였다. 물론 이발소에서
손님에게 면도 직전에 비누 거품을 칠해 주는 일도 하였다. 몇 년 후에 '위대한 독재자'라는
영화에서 그가 맡은 두 배역 중 하나는 바로 이발소의 비누 거품 소년 역이었다.
'페티 코모'
1940년대의 뮤지컬 스타 페티 코모는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이발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는 겨우 11세였다. 14세 때 그는 매달 월세를 지불하는 가게를 운영하다가 1929년과 1934년
사이에 케논스버그에서 점포를 사서 장사를 하게 되었다. 그 후 프레디 칼론의 오케스트라와
그리고 테드 웸과 함께 공연을 가진 적이 있었다. 5년 후, 케논스버그로 돌아와 다시 장사를
하려 했지만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을 맡게 되자 마음을 바꾸었다.
'그레타 가르보'
1920년 6월 아버지의 죽음 이후 14세의 그레타 가르보는 아더에켄그린이 운영하는 이발소에서
비누 거품을 칠해주는 소녀로 일했다. 먼저 손님의 목에 두른 타월을 고정시킨 후 얼굴을 닦아
주고 나서 비누 거품을 칠해 주었다. 그 다음엔 얼굴을 말끔히 씻어주고 뜨거운 타월로 얼굴을
촉촉하게 해주는 전형적인 비누 거품 소녀였다. 그레타 가르보는 그때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내 손으로 처음 월급을 타고 얼마나 스스로를 대견해했었는지
몰라요!"
'헨리 랑돈'
미소년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 당시 찰리 채플린, 케톤 해롤드, 리오드와 막상막하의 인기를
누렸다 - 헨리 랑돈은 한때 이발사로 일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 제37장 대학생이 보는 만화 ]
그림설명
여자 사장이 남자 비서에게 하는 말:무조건 남자로 바꾸라는 거예요. 도대체 어디서 온
전화에요? 국세청에서 쥐잡는 고양이래요.
조류학자가 이사온 곳
여호와 증인의 꿈
무제
몇 사람을 전도 했나?
김영삼, 김대중에게 보내는 편지
잔돈이 없군요
수금은 토끼가 하고 지불은 거북이가
백담사의 고독
일본식 영어 교육
지금 베토벤은 제947심포니를 작곡하고 있지만,제9번 심포니가 더 좋아
변장
오늘이 바로 그날이야
현실과 예술
어떤 미술 교실
천의 얼굴을 가진 여인
장래가 촉망되는, 노련함, 이상주의자, 순진한, 사기꾼, 약한, 자만심이 강한, 노처녀,
신혼기분, 거짓말을 잘하는, 호기심이 많은, 싸움을 좋아하는, 콧대 높은, 색을 밝히는, 잘난체
하는, 전문가적인, 회피하는, 악마를 그리워할 때, 냉담함, 싫증낼줄 모르는, 겁많은, 게으른
[ 제38장 영어 단어 ]
[ 월프레드 윙크 박사가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의미의 단어들 ]
Chimes: 부딪혔을 때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 소리를 내는 한 벌의 벨이나 금속, 돌, 나무 등등
Dawn: 출몰시 빛이 하늘에 퍼지기 시작하는 때, 새벽녘.
Golden: 금으로 만들어진, 혹은 금과 연관되어 있는 것, 합금의.
Hush: 조용한, 정막한
Lullaby: 엄마가 아기를 재우기 위해 불러주는 노래, 일명 자장가.
Luminous: 빛을 내보내는, 빛이 환히 비쳐드는.
Melody: 잘 조율된 부드럽고 조화로운 소리.
Mist: 지구의 표면 근처나 표면의 대기 속에서 파편 같은 형태로 표류하고 있는 물 입자로서 곧
빗방울로 변하게 된다. 일명 안개.
Murmuring: 나직하게 작게 들리는 음성
Transquil: 동요의 반대 의미, 평온하고 조용한.
Midget와 Dwarf
약 2,000명의 소형 인간(midget)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데 이들은 몸의 모든 부분은 완전한
정상이나 단지 그 크기가 작은 사람이다. 이들은 존재하는 60,000명의 난쟁이와 혼동하면 안
된다. 난쟁이는 머리와 상체의 크기는 정상인데 비해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짧다.
[ 다음을 정확하게 발음해보라. ]
당신도 한번 다음 10개의 단어를 발음해 보라. 로버트 L.리프리의 책 (믿거나 말거나)에서
말하길 10만 명중 단 1명만이 이 단어들을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다고 한다.
data, gratis, culinary, cocaine, gondola, version, impious, chic, caribbean, viking
--gamy가 만들어주는 결혼의 세계
성경에 나타난 일부다처주의자는 단연 700명의 아내를 가졌던 솔로몬이 으뜸이며, 브리감 영은
28명의 아내를 두었다. (왕과 나)에서 율브린너가 보여준 대로 샴의 왕이었던 몬구트는
9,000명의 여자와 결혼했다. 우간다의 왕이었던 무테사는 7,000명의 여자와, 색스니의 왕이었던
아우구스트는 365명의 여자와 결혼했다. 이러한 사람들을 일명 일부다처자(Polygamist)라고
한다. --gamy는 결혼을 의미하는 헬라이어 gamos에서 왔다.
[ 성적 흥분의 수단이 되는 단어들 ]
algolagnia giving or receiving pain(고통을 주거나 받기)
crurophilous legs(다리)
erotomatia caressing breasts(유방 애무하기)
hyphephilia touching or rubbing certain fabrics(비단, 벨벳 silk, velvet, etc 등과 같은
어떤 섬유를 만지거나 문지르기)
iconolagny viewing erotic pictures(에로틱한 사진들을 보여주기)
kleptolagnia stealing(훔침)
mazophilous thighs(허벅다리)
osphresiolagnia odors(방향)
pygophilous buttocks(둔부)
pyrolagnia starting or watching fires(불을 지르거나 구경하기)
tantalolagnia teasing(짓궂게 괴롭히기)
tehlerethism nipples(젖꼭지)
titallagnia tickling(간지럼 태우기)
undinism sight of water(물을 보면)
[ 영어 단어의 명세성 ]
1. alglet: 신발 끈 끝에 달린 쇠붙이 장식.
2. bibcock: 구멍이 아래쪽으로 향한 수도꼭지
3. brassard: 팔 위쪽에 겨드랑이를 중심으로 두르는 천으로 된 밴드로, 히틀러가 둘렀던
갈고리 십자형( )의 기장처럼, 이완장은 계급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무늬를 지니고 있다.
4. bratelles: 일종의 장식용 끈(가죽끈)으로 옷의 앞쪽 벨트에서부터 어깨 너머 뒤쪽 벨트까지
이어진다.
5. duff: 주로 숲속의 평지에서 발견되는 부패하고 있는 유기물.
6. harp: 전등의 갓을 지탱시켜(받쳐)주는 조그만 금속테.
7. hemidemisemiguaver: 64분 음부(32분 음부 demisemiquaver라고 하며, 16분 음부는
semiquaver라고 한다.)
8. kick or punt: 술병 바닥에서 볼 때 병의 움푹 들어간 부분으로 병이 세워지는 데 안정감을
주지만, 용량(내용물)을 감소시킨다.
9. phosphenes: 눈을 꽉 감고 있을 때 눈 속에서 보이는 빛, 안구에 가해지는 압력으로 망막
근육이 긴장됨에 따라 생기게 된다. 즉 안구에 압력이 가해질 때의 자각 광감.
10. piggin: 통널 한 장을 위로 길게 내밀어 손잡이로 쓰게한 작은 물통
11. quarrel: 격자문에 쓰여지는 것처럼 작은 다이아몬드 모양의 유리창.
12. sam brown belt: 유니폼에 부착된 가죽 벨트로서 검, 권총 따위를 받치는 데 이용되며,
오른쪽 어깨 위를 두르는 가죽 끈과 이어져 지탱되기도 한다. 캐나다 황실 경찰 대원들이
착용한다.
13. solidus: 7/8과 같은 분수나, 단어와 단어 사이에 쓰여지는 사선으로 대각선,
슬래시(slash), separative virgule(짧은 사선), shant, shilling이라고 불려진다.
14. tang: 연장이나 가죽 끝에 툭 튀어나온 뾰족한 부분.
15. tobies: 맥주를 담는 조그만 도기 그릇 같은 컵, 혹은 머그, 피쳐잔, toby는 챙이 위로
향한 모자를 쓴 땅딸보 노인의 모습으로 되어 있으며 모자 부분에 입술을 대고 술을 마시게
된다.
16. zarf: 손잡이 없는 커피잔을 끼워 들어서 마실 수 있게 하는 것.
Ldiot, lmbecile, Moron
모두 바보의 척도를 나타내는 영어 단어들이다.
idiot: 3--4세 정도 된 어린이의 지능을 가진 어른을 의미한다.
imbecile: 7--8세 정도 된 어린이의 지능을 가진 어른을 의미한다.
moron: 8--12세 정도 된 어린이의 지능을 가진, IQ가 50--59정도 되는 어른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1910년까지 영어에 없었던 것으로 정신 박약자의 척도를 재기 위해 헨리 갈라드 박사가
만들어낸 단어이다.
'fortnight'라는 단어는
'fourteen nights'라는 단어의축약형이다. 이 단어는 영국에서는 아주 흔히 쓰는 단어이나,
미국에서는 two weeks라는 말로 대치되었다.
horse 연구
stallion은 낳은 지 5년 이상 된 수말을 지칭하고 colt는 5년 이하의 수말이다. mare는 낳은 지
5년 이상된 암말이고 filly는 5년 이하의 암말이다. foal은 성과 관계없이 어린 말을 지칭한다.
A quarter horse를 직역하면 1/4말인데 이는 다른 동물과 교접시켜서 낳은 괴상한 튀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400m 거리를 달리는 단거리 경주용 말을 지칭한다. thoroughbred란
pedigree(순종)라는 단어의 뜻처럼 혈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말의 한 종류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 종류의 말은 본래 동양계로서, 영국에서 개량시켜 오늘날 최상급의 말이 되었다.
[ 외국어가 영어로 된 것 ]
(알콘 키안어)
skunk(스컹크), pecan(피칸), squaw(북미 인디언 여자나 부인), chipmunk(미국 유럽산 줄무늬
다람쥐).
(아라비아어)
almanac(역서 연감: 천체 운행, 연중 행사 따위의 설명이 있는 것), matress(매트리스),
admirl(제독), sheiki(아랍, 회교권 나라 등에서의 족장, 교주), hashish(하시시: 인도 대마로
만든 마취제, 마리화나)
(남미(일부지역)어)
poncho (남비의 현주민들이 입는 외투)
(오스트리아의 원부민어)
kangaroo(캥거루), boomerang(부메랑), koala(코알라)
(바스크어)
bizzare(기이한), jai alai(중남미에서 성행하며 라켓을 사용하는 핸드볼 비슷한 실내 경기).
(카브리어)
canon(카누)
(중국어)
silk(실크), kowtow(중국식 인사: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다), tea(차), catsup(케첩),
tycoon(대군, 장군).
(촉토어)
bayou(강 어귀, 후미)
(크리어)
eskimo(에스키모), woodchuck(북미산의 아모트).
(수족어)
tepee(아메리칸 인디언의 천막집).
(에스키모어)
kayak(에스키모인의 수렵용 작은 배), igloo(이글루)
(서인도 제도)
voodoo(부두교)
(핀란드어)
sauna(사우나)
(괴라니어)
jaguar(미국표범)
(하와이어)
hula(훌라), lei(화환), muumuu(무무: 하와이 사람들의 옷), ukulele(기타 비슷한 현악기),
liau(하와이 요리).
(헤브라이어)
amen(아멘), hallelujah(할렐루야), kosher(식품 따위가 정결한), sabbath(안식일)
(헝가리어)
coach(긴 의자), goulash(쇠고기, 야채로 만든 스튜), paprika(고추로 만든 향신료).
(일본어)
kimoto(기모도), samurai(사무라이), haiku(하이쿠), karate(가라데).
(자바어)
batik(염색법의 일종).
(키큐유어)
zebra(얼룩말).
(라폴란드어)
tundra(툰트라, 동토지대).
(말레이어)
sarong(허리에 두르는 천), bamboo(대나무), orangutan(오랑우탄), gingham(깅엄: 면직물의
하나).
(말라얄랑어)
teak(티크나무)
(멜다이브어)
atoll.
(마크마크어)
toboggan(터보건 썰매)
(나와어)
tomoto(토마토), chocolate(초콜릿), avocado(아보카도), chili(칠리)
(로드아일랜드 동부어(미국))
moose(큰 사슴), papoose(인디언 아기).
(오집웨이어)
totem(토템).
(포와탄어)
raccoon(미국너구리), persimmon(감나무)
(케추아어)
coca(코카나무), condor(남미산 독수리), quinine(키니네), vicuna(야생 라마의 일종)
(타갈로그어)
boondocks(황야, 벽지)
(타히티어)
tattoo(군대 나팔)
(타이노어)
hammock(매달아놓은 그물 침대), hurricane(허리케인)
(타일랜드어)
catamaran(뗏목배), pariah(부랑자), curry(카레 가루).
(티베트어)
llama(미국낙타), yeti(설인), yak(야크형 전투기)
(퉁가어)
taboo(금기)
(퉁구스어)
shaman(무당)
(투피인디언어)
petunia(댕강나무 메꽃), tapioca(카사바 뿌리에서 뺴낸 전분질 식량)
(터키어)
yogurt(요구르트), shish kebab(불고기 요리의 일종).
영어로 500을
five hundred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우리말에서 전지 500장을 나타내는 '연'이 영어의
ream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와 같이 수의 단위를 나타내는
특이한 단어를 144를 나타내는 gross, 20을 의미하는 score, 13을 뜻하는 baker's dozen, 12를
나타내는 dozen등이 있다.
[ 500의 얼굴을 가진 Set ]
이 단어는 명사로서 58, 동사로서 126, 형용사로서 10가지의 뜻을 가진 매우 짧은 단어이다.
fl로 시작되는 단어들
모두 '가벼운, 부드러운'의 함축된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다.
flaff: 휘날리다
flame: 불꽃
flanker: 측보
flatulence: 공허
flaw: 흠
flee: 달아나다
fleet: 함대
flicker: 깜박이다.
flimsy: 여린
flip: 살짝 치다
flird: 얄팍한
flisk: 가볍게 휘젓다
flitter: 훨훨 날다
flivver: 작은 배
float: 뜨다
floaty: 떠 있는
floccose: 양털 모양의
flock: 한 뭉치의 양털
flop: 맥없이 넘어지다.
flory: 꽃무늬 장식의
floss: 명주솜
flotsam: 표류 화물
flounder: 허둥대다
flourish: 번창하다
flubdub: 엉터리 같은
flue: 보풀
fluke: 요행
fluk: 날아오르다.
fluxion: 유동률
flake: 눈송이
flan: 돌풍
flap: 나부끼다
flavor: 풍미
flea: 벼룩
fleece: 양털
flick: 가볍게 치기
flimflam: 속임
flinder: 파편
flippancy: 경솔
flirt: 마음이 들뜬 여자
flit: 사뿐히 날다
flitting: 반도주
flix: 부드러운 털
float-stone: 경석
flob: 뒤뚱대다
floccule: 술
floe: : 부빙
floret: 작은 꽃
floscule: 작은 꽃
flotage: 부력
flonce: 허둥댐
flour: 밀가루
flow: 흐르다
fluctuate: 오르내리다
fluff: 솜털
flush: 날아오름
flutter: 펄럭이다
fly: 파리
[ 동물의 집단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들 ]
a murder of crows: 까마귀 떼
a clowder of cats: 고양이 떼
a leap of leopards: 표범 떼
a sloth of bears: 곰 떼
a rafter of turkeys: 칠면조 떼
a smack of jellyfish: 해파리 떼
a skulk of foxes: 여우 뗴
a labor of moles: 두더지 떼
a peep of chickens: 닭떼
a crash of rhinocerose: 코뿔소 떼
a paddling of ducks: 오리 떼
a siege of herons: 왜가리 떼
a rag of colts: 당나귀 떼
a drift of hogs: 돼지 떼
a charm of finches: 참새 떼
a trip of goats: 염소 떼
a knot of toads: 두꺼비 떼
a shrewdness of apes: 원숭이 떼
a parliament of owls: 부엉이 떼
a troop of kangaroos: 캥거루 떼
a gaggle of geese: 거위 떼
a pride of lions: 사자 떼
a watch of nightingales: 나이팅게일(유럽산 지빠귀과의 새) 떼
a muster of peacocks: 공작(수컷) 떼
an exaltation of larks: 종달새 떼
[ 빛이 있는 곳 ]
gl로 시작되는 빛에 관계된 단어는 151개이다
glisten, glitter, gleam, glow, glossy, glary, glass, glazened, glassing, glaumed glaced,
glazer, glaciously, glaizie, glasynge, glaster, gleaced, gleeding, gleaming, glimmered,
glistered, glamourously, glimbling, glissing, glamourous, glastering, glimmer, glint,
glamour, gloam, gleened, glistened, glimpsed, glittery, gloamed, gloring, glozing,
gloomed, gloriously, gloating, gloweden, gleacen, glastered, gleening, gleamed, glish,
glaze, glare, gleen, glister, gleamer, glimmery, gleacing, glassine, glauming, glancing,
glacing, glanzglod, gloomily, glacious, glist, glimble, gliss, glowed, gloaming, glore,
gloom, glozed, glacy, glash, ghaik, gleace, gloomth, glad, glower, gloss, glorious,
glimpse, glinter, glazzed, glance, glassy, glured, gloat, gloze, glost, gleed, glade,
glaum, glazy, glee, gliff, glent, glid, glised, glared, glace, glimmed, glory, gloater,
glowingg, glosser, gluring, glisk, glissed, glancy, glaise, glassed, gleamy, gledy, gleit,
gledge, glisked, gloomy, glored, gloated, glossed, glozer, glazed, glassen, glanced,
glaring, glazing, glacure, glop, glur, glim, gleg, glished, glisking, glowered,
glistening, glimmering, glittered, gloaminshot, glozingly, gleamingly, glisteningly,
glisterous, glmmerlously, glitteringly, glooming, gloatingly, glimmeringly, glisterin,
glyglimpsing, glowering, glishing.
'flyer'가 의미하는 것
이 단어는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보통 나는 것들, 즉 비행기나 새나 곤충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그런 뜻도 있지만 선전문이 들어 있는 광고 쪽지나 전단을 의마하는
경우가 더 맣다. 그러나 이 단어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캥거루의 수컷을
의미할 때 boomer라 하고, 새끼를 의미할 때 joey라 하고, 집단을 의미할 때 troop라고 하고,
암컷을 의미할 때 flyer라고 한다.
[ 가장 긴 영어 단어는 ]
헬라의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그의 희곡 The Ecclesiazusae에서 사용한 다음의 단어이다.
LOPADOTEMACHOSELACHO
GALEOKRANIOLEIPSANODRI
MHYPOTRIMMATOSILPHIOP
APAAOMELITOKATAKECH
YMENOKICHLEPIKOSSYPH
OPHATTOPERISTERALEK
TRYONOPTEKEPHALLIOK
IGKLOPELEIOLAGOIOSIRA
IOBAPHETRAGANOPTER
YGON(182 letters)
Cite, Site, Sight
이 단어들은 서로 뜻은 틀리지만 발음은 같다.
[ 영어의 적극적인 사용법과 소극적인 사용법 ]
적극적인 사용법-소극적인 사용법
advertant(giving attention, heedful: 주의 깊은 신중한)-indvertent
algesia(sensitiveness to pain: 고통에 굉장히 민감한)-analgesia
biotic(of or relating to life: 생명의)-antibiotic
canny(free from weird qualities or unnatural powers: 온순한, 초자연력과 무관한)-uncanny
clement(of weather, mild: 날씨가 온화한, 따뜻한)-inclement
conscionable(conscientious: 양심적인)-unconscionable
consolate(consoled, comforted: 위안이 되는)-disconsolate
corrigible(correctable: 고칠 수 있는)-incorrigible
couth(marked by finesse, polish: 세련된, 점잖은)-uncouth
delible(capable of being deleted: 삭제될 수 있는)-indelible
descript(described, inscribed: 묘사된, 그려진)-nondescript
domitable(tamable: 길들일 수 있는)-indomitable
effable(capable of being uttered or expressed: 표현되어질 수 있는)-ineffable
evitable(avoidable: 피할 수 있는)-inevitable
feckful(efficient, powerful: 효율적인)-feckless
furl(접다, 개켜지다)-unfurl
gtuntle(to put in good humor: 즐거워하는, 재미있는)-disgruntle
gust(inclination, liking: 좋은 감정의 폭발)-disgust
histamine(히스타민)-antihistamine
infectant(an agent of infection: 전염병을 일으키는)-disinfectant
kempt(neatly kept, trim: 머리를 산뜻하게 빗은, 단정한)-unkempt
licit(not forbidden by law: 허가된)-illicit
maculate(marked with spots, besmirched: 더렵혀진, 오점이 남겨진)-immaculate
nocuous(likely to cause injury: 유해한)-innocuous
odorant(an odorous substance: 향기가 좋은)-deodorant
peccable(liable or prone to sin: 죄를 범하기 쉬운)-impeccable
pervious(물질, 빛 따위가 통과되는)-impervious
placable(of a tolerant nature: 관대한)-implacable
sipid(affecting the organs of taste: 풍미 있는)-insipid
speakable(capable of being spoken: 말할 수 있는)-unspeakable
wieldy(strong, manageable: 휘두르기 쉬운, 알맞은)-unwieldy
[ 결혼 기념을 나타내는 단어들 ]
cotton: 결혼한 지 1년이 자났을 때
paper: 2년
leather: 3년
flower/fruit: 4년
wood: 5년
iron/sugar candy: 6년
wool: 7년
bronze: 8년
copper: 9년
tin: 10년
steel: 11년
silk and find linen: 12년
lace: 13년
ivory: 14년
crystal: 15년
china: 20년
silver: 25년
pearl: 30년
coral: 35년
ruby: 40년
sapphire: 45년
golden: 50년
emerald: 55년
diamond: 60,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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