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엔 새가 없다 (1)
프레드릭 플래취
오늘도 꿈을 찾아 떠나려는 이 세상 모든 이의 먼 여로를 위하여 이
책을
바친다.
차례
제 1 장 불행의 시작
제 2 장 모래성의 그늘
제 3 장 그 먼 날의 기억
제 4 장 천국의 새
제 5 장 또하나의 벽
제 6 장 구름은 흘러가도
제 7 장 나의 천사는 어디에
제 1 장 불행의 시작
1. 어느날 갑자기 사랑하는 딸 리키가 사라진 사건으로부터 불행은
시작되고...
1966년 3월 7일, 뉴욕.
3월인데도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날씨만큼이나 참담한 심정으로 뉴욕시 메디슨 5번가 끝에 자리한
까뜨리네트 수녀원 부설 학교의 교문 앞에 서 있었다. 길가의 상점들이
아직 문도 역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다.
수녀들이 아침 미사에서 부르는 나직한 찬송가가 다 끝날때까지, 나는
거대한 떡갈나무 교문에 기대어 멍하니 그 노래를 들었다.
"리키..."
단지 이 이름만을 되뇌이고 있는 내 머릿속은 마치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처럼 메말라 있었다.
한참 후에 나는 벨도 누르지 않고 교문을 열고는 키 작은 나무들이 아직
헐벗은 채로 있는 넓은 정원을 지나 대리석 홀 중앙으로 걸어 들어갔다.
고요하던 홀 안이 내 발자국 소리로 인해 가벼운 파문이 일고 있었다.
때마침 늙은 수녀 한 사람이 느린 걸음으로 걸어 나오다가 나를 보고는
희미하게 웃으며 인사를 해왔다. 고개를 약간 숙여 답례를 한 후에, 나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
--혹시 리키가 여기에 왔나요?
늙은 수녀는 리키가 누구인지도 묻지 않고 곧바로 대꾸했다.
--수녀님들과 함께 기도실에 있을 거예요.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잊은 채, 한 번에 두 계단씩 뛰어오르며
2층 기도실로 향했다.
갑자기 요란하게 열린 문 소리에 수녀들이 놀란 눈으로 불청객을
바라보았으나 그 시선들 속에서 나의 딸 리키의 낯익은 눈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황망히 문을 닫고 돌아서서 나는 길게 뻗어 있는 어두컴컴한 복도를
망연히 쳐다보았다.
교실에 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학교에 오지 않은 게 아닐까. 한동안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긴 한숨과 함께 지난 몇 시간 동안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아프게 떠올렸다.
그러다가 나는 고통스런 생각을 떨쳐 버리듯 머리를 힘껏 가로저으며
리키의 교실로 걸어갔다.
그러나 그곳 역시 말끔히 줄지어 놓인 책상들만이 학생들의 등교를
기다리고 있을 뿐 리키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슬며시 문을 열고는 교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나는 교실 뒷면에 장식된, 오스트레일리아의 풍물을 소개하는 대형 컬러
사진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캥거루와 코알라, 막 해가 떠오르고 있는 장엄한 바다 풍경, 멜보른의
현대식 시가지,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들, 그리고 모래바람이 거세게
소용돌이치고 있는 갈색사막의 사진 등이 뒷면 가득 벽을 채우고 있었다.
지난 주말, 리키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주제로 하는 수필을 숙제로 받아
놓았다고 말했었다. 그러면서 리키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정신이 집중되지 않아서 도저히 쓸 수가 없어요...
오늘 아침에 리키가 제 방에서 사라진 것을 우리가 안 것은 5시가 막
넘어서였다. 영하의 이른 새벽에 리키는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30분 넘게 집 안팎을 수소문한 끝에야 아내와 나는 리키의 교복도
옷장에서 없어진 것을 알았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그것도 부모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등교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와 아내는 다시
30여 분 동안 동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리키를 찾아보았던 것이다.
"리키야..."
여전히 이 말만을 중얼거리면서, 나는 거센 모래바람이 하늘을 향해
분노하듯 솟아오르고 있는 거대한 사막의 풍경 사진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 아침, 리키의 행방불명은 나를 두렵게 하였다. 온갖 불길한 예감이
내
가슴의 벽을 정신없이 뒤흔들어대는 느낌이었다.
나는 쓸쓸히 돌아서며 다시 교실 밖으로 걸어 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나는 교실 어딘가로부터 나지막이 들려오는 누군가의 가냘픈 흐느낌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리키?
내가 소리쳤어도 대답이 없었다. 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교실 뒤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가 보았다. 사막의 풍경 사진 바로 아래 교실 바닥에
리키가 힘없이 주저앉아 있는 게 보였다.
--리키야!
그러나 나의 음성을 듣고도 리키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아무 대답도
없이 교실 천정 모서리 쪽만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두 볼에는
선연히 눈물자국이 나 있고, 흐느끼느라 아랫턱이 연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당황과 고통의 모래바람이 내 가슴속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에서 거세게
소용돌이치는 느낌이었다.
리키는 교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교복을 입은 채 그렇게 흐트러진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이었다.
리키에게는 늘 커보이기만 하는 흰 블라우스 위에 푸른 자켓, 체크
무늬가 선명한 무릎까지 내려오는 푸른 치마, 마구 헝클어진 갈색
머리카락과 함께 그 모습은 리키를 매우 초췌하게 만들고 있었다.
한동안 리키를 멍하니 내려다보던 나는 생각다 못해 아이 옆에 나란히
앉았다. 무릎을 세워 두 손으로 그것을 감싸쥐고는, 나는 리키가 주시하고
있는 곳에 똑같이 시선을 보냈다.
이 이른 아침에 나의 딸 리키는 과연 무엇을 발견하기 위해 이 혹독한
추위도 아랑곳없이 여기 앉아 있는 것일까. 교실 천정 모서리에서 무엇을
찾아내기 위해 리키는 새벽 다섯 시 이전에 일어나 여기로 달려왔을까.
--리키야, 이제 집에 가자.
한참 후에 내가 리키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러나 리키는 여전히
그곳에 시선을 묶어 놓은 채였다. 흐느낌은 잦아들었으나,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것만은 그대로였다.
--무슨 일이지, 내 딸아?
리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렇게 말하자,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희미한 목소리로 리키가 떠듬떠듬 말했다.
--무서워요, 아빠...
--무서워 하지 말아라. 아빠가 여기 이렇게 와 있는데 뭐가 무섭단
말이냐.
우리는 너를 사랑한단다, 리키야.
리키는 그제서야 천천히 내게 시선을 돌리더니 오랫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리키를 안심시키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자 리키는 두 팔을 들어 나를 꼭 끌어안고는 내 가슴에 머리를
묻으며 중얼거렸다.
--아빠, 무서워요... 죽고 싶어요...
나는 절망에 몸을 떨었다. 어떻게 해서 이제 겨우 열세 살 밖에 안 된
내
딸 리키가 이렇게도 견딜 수 없는 삶에 직면했단 말인가. 무엇이 13세
소녀의 삶으로부터 희망을 앗아가게 했단 말인가.
리키가 이 세상 그 무엇인가로부터 13세 소녀다운 웃음과 행복을
빼앗기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못했을까.
내 가슴에 닿은 리키의 머리가 계속 들썩이고 있었다. 리키의 흐느낌,
리키의 절망, 리키가 해결하지 못하는 나로선 도무지 알 길 없는 문제들이
내 가슴에 가시가 되어 박히는 느낌이었다.
나는 리키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애쓰면서 아이의 수척한 어깨를
바라보며
울기 시작했다. 39년의 내 생애 동안, 내가 쌓아올리려 애썼던 많은
것들이
소리도 없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리키야... 이제 집에 가자.
리키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을 때에야 나는 리키 옆에 놓인 빈 약병을
보았다.
--리키야!
그 약병을 황급히 집어 들며 경약의 눈빛으로 리키를 보았을 때, 리키의
시선은 이미 아까 바라보던 천정 모서리 쪽에 처연히 향해 있었다.
또한번의 모래바람이 내 가슴을 온통 어지럽히고 있었다.
리키와 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 힐라리는 현관에 서서 초조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힐라리는 수심에 가득 차서 리키를 바라보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며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리키는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아내가 리키를 데리고 서재로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뒤늦게야
머릴 샌더스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지난 주말에 우리 부부는 샌더스 박사와 저녁 식사를 함께하면서 리키의
점점 더 깊어져만 가는 우울증세에 관하여 상의를 한 바 있다.
10년 전에 파인휘트니 병원에서 나와 함께 신경정신병학을 교육받은 바
있는 머릴 샌더스 박사는 소아정신과 분야의 전문의로서 이미 학계에서는
꽤 명성을 얻고 있는 여의사였다.
리키와 만난 이후로, 그녀는 자신의 아이인 양 여성다운 섬세함과
사랑으로 그애를 대해왔다.
--30분 내로 가겠어요.
나의 설명을 들은 머릴 샌더스 박사는 흔쾌하게 리키를 보러오겠노라고
말했다.
샌더스가 달려와 서재로 올라가서 리키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나는
식당에 혼자 앉아 있었다. 다행히 오늘은 내가 클리닉 사무실에서만
근무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시간은 충분하였다.
나는 초조하게 샌더스를 기다렸다. 무료함을 이기려고 뉴욕타임즈를
집어
들었으나 작고 검은 활자들이 제멋대로 지면 위를 기어다니는 느낌만 들
뿐,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문을 내던지고, 나는 식당 안의 풍경을 새삼스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식당 한 가운데에 검은 색 마호가니 식탁이 놓여 있고, 그 위엔 화려한
은촛대가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방 안이 텅 비어 있는 듯했다.
모래바람의 회오리가 한바탕 거세게 하늘을 향해 치솟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 풍경이 아직도 내 머릿속엔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눈에도, 심지어는 내 입안에도 온통 모래뿐인 느낌이었다.
힐라리는 존과 메어리를 등교시키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그 아이들은
집안에 뭔가 분명히 아주 나쁜 일이 일어났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감히
물어
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느끼면서 서둘러 집을 빠져 나가고 있는 듯했다.
아이들을 내보내고, 아내가 충혈된 눈으로 식당 안으로 들어와서는 식탁
의자에 쓰러질 듯 앉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은 채, 서로의 시선도 애써 피하기만
하였다.
한 시간쯤 지난 후에 샌더스 박사가 서재에서 내려왔다. 그녀가
아내에게
말했다.
--자, 우리끼리 얘기를 나눌 동안에 누구 리키와 함께 있어 줄 사람이
없을까요?
아내가 가정부를 불러 서재로 올려보낸 다음에, 우리들은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머릴 샌더스가 그녀의 교양 있고 전문의다운 태도 뒤에 어떤
불안감을 숨기려 애쓴다는 사실을 동료의사의 한 사람으로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가 있었다.
아내와 나는 잔뜩 의기소침해져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그녀 앞에
앉았다.
--리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시겠어요?
샌더스가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하자, 아내가 긴 한숨을
토해내며 대꾸했다.
--그애가 자살을 기도했어요.
--여보, 그렇게 함부로 단정짓지 마.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커.
나의 반론에 아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밀타운(신경안정제의 일종)이 없어졌잖아요. 리키가 그걸 마신 게
분명해요.
--그걸 그냥 쏟아 버렸을지도 모르잖소. 아마 그랬을 거야.
그러기를 바라면서 내가 말했으나 내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자, 그러지 마시고 더 자세히 얘기해 보세요.
샌더스가 아내를 향해 말했다. 아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잠시
고통스러워 하다가, 이윽고 침통한 음성으로 어젯밤에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어젯밤 11시가 막 지나서였다. 힐라리와 나는 뉴스 쇼 프로그램을
보다가
잠자리에 들었었는데, 우리가 막 침대의 불을 껐을 때 돌연 리키의
방으로부터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린 것이었다.
리키의 방은 우리 부부의 침실 바로 옆방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리키의 음성이라는 것을 곧 알 수가 있었다.
아내가 먼저 달려갔다. 그런데 웬일인지 리키의 방에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곧바로 뒤를 따라간 나는 아내와 함께 힘껏 문을 밀어붙여
보았다. 책상과 의자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너무도 놀라운 광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키가 방
한가운데에 서서 완전히 넋이 나간 얼굴로 괴이하게도 천정 모서리 쪽을
응시한 채 팔을 앞으로 쭉 뻗고 있는 것이었다.
--리키야!
힐라리와 내가 동시에 이름을 불렀는데도, 리키는 대답을 하지 않고 그
기이한 행동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마구 어질러진 방 바닥을 보고 처음엔 리키가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내던진 것으로만 알았다.
그러나 좀더 유심히 살펴보니, 그것은 책과 장난감, 학용품 등으로
만들어진 엉성하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모양을 갖추고 있는 십자가였던
것이다.
힐라리가 두려움에 찬 발걸음으로 리키에게 다가가서 팔을 건드려
보았으나 리키는 움직일 줄을 몰랐고 한마디 대꾸도 없었다.
더 충격적인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내가 몇 차례 더 리키의 이름을
부르다가 팔을 잡았는데, 돌연 리키가 내 손을 휙 뿌리치고는 몸을 돌이켜
밖으로 내달리더니 욕실 쪽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내가 곧바로 뒤따라가 리키를 붙잡고 꼼짝 못하도록 꼭껴안자, 그제서야
리키는 저항을 멈추고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오들오들 떨고 있는 리키를 안고 있는 동안, 이런 갑작스런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몰라서 종잡을 수 없는 생각으로 리키와 함께
덜덜
떨어야 했다.
소동은 3,40분 동안 계속되었는데, 그 이후 리키는 지쳐버렸기 때문인지
더 이상 동요하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리키를 제 방으로 데리고 가서
잠이들 때까지 기다렸다. 우리는 서로 불안스런 시선을 나누며 리키의
고르지 않은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가 침실로 돌아온 것은 1시가 가까워서였다. 잠이 올리가 만무했다.
우리는 리키에 의해 갑자기 벌어진 이 사태의 원인이나 앞으로의 일 등을
서로 다른 생각속에서 번뇌하다가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얼핏 잠이 들었던 것이다.
불편한 잠자리에 불안한 마음 때문인지 아내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이
자주 깨어 시계를 보곤 하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리키를 보러
갔었다.
그때가 새벽 5시쯤 되었다.
--그런데 그 약병 문제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우리의 설명을 다 듣고 난 샌더스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아내에게 잠시 눈길을 돌렸다가 그것에 관해 말했다.
--내게 이따금 불면증이 있기 때문에 잠을 청하기 위해 그것을 복용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병을 욕실의 선반 위에 놓아두고 있었어요.
어젯밤에 리키가 욕실 쪽으로 달려가려고 한 것은,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약병 때문이 아닌지... 오늘 아침에 학교에서 리키를 발견했을 때, 그애가
그것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 약병은 이미 완전히 비어 있었습니다...
--그 병에는 약이 어느 정도 들어 있었나요?
1--완전한 새것이었어요...
밀타운의 약효로 볼 때, 그것을 리키가 마셨다면 거의 치사량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는 나의 부주의에 가책을 느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얼마 후에
샌더스가 길게 한숨을 토해내며 한 가지 희망적인 의견을 말해주었다.
--내가 보기로는, 리키가 그 약을 마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말을 멈추고, 샌더스는 힐라리와 나를 가만히 번갈아 주시하였다.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우리는 그녀의 말을 조심스럽게 기다렸다.
--최근 들어와서의 리키의 심한 우울증세로 보건대, 설령 리키가 오늘
아침에 자살을 하려 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언제든지 실제로
시도될 수 있는 문제라는 데 유의하셔야만 합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힐라리가 몸을 떨며 중얼거렸다. 나는 샌더스의 판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리키가 무엇 때문에? 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요. 물론 지난
여름에 리키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리키에게 크나큰 충격을 준
것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일로 해서 리키가 자살을 생각하다니...
리키가 자실을 염두에 둘 다른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어요...
리키가
괴로워 해야 할 어떤 일도...
--프래드 박사님...
샌더스의 침착한 음성을 듣고서야, 나는 끓어오르는 격정을 간신히
가라앉힐 수 있었다.
--프래드 박사도 나와 똑같은 정신과 전문의입니다. 섣부른 결론이 진단을
망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같은 교실에서 함께 배운 바 있습니다. 리키는
지금 매우 심한 정신적 혼란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에 나의 진단 또한
일관성도, 논리도 모두 결여된 것이에요. 그런 이유로 더욱 나는 리키에
관한 어떠한 언질도 지금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다 자실에의
충동은 정상적인 사람에게 있어서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단지 문제는...
샌더스 박사가 말을 끊고는 힐라리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녀는 애써
평정을 찾으며 샌더스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는...
샌더스 박사는 하기 힘든 말을 토해 내려고 하는 듯 이 말을 또한번
반복하고도 잠시 동안 더 침묵을 지키다가 끝내 우리를 극심한 혼란에
빠뜨리는 말을 하고야 말았다.
--잠깐 동안의 면담에서 얻은 적은 정보만으로 진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나는 한 가지 사실만큼은 확실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것은 리키의
상태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힐라리와 나는 거의 동시에 이 말을 내뱉었다. 샌더스박사가 낮게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리키는 자신을 한 마리의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뭐라구요?
아내가 벌떡 일어섰다. 내가 그녀를 앉힐 사이도 없이,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샌더스 박사에게 말했다.
--그것은 틀림없이 리키가 꾸며대는 말일 거예요. 박사님도 리키의 그런
말을 믿으시나요?
긴 한숨을 토해냈으나, 샌더스는 아내의 물음에 대답하지는 않았다.
나는 자기 자신을 한 마리의 말이라고 여긴다는 리키의 고백에 대해
심한
혼란을 느꼈다. 그런 혼란은 침묵을 지킴으로써 아내의 반론을 일축하고
있는 샌더스의 침통한 표정 때문에 더욱 골이 깊어만 갔다.
리키가 보여왔던 일련의 증세와 그애의 고백에서 미루어 본다면,
그렇다면... 그렇다면...
샌더스 박사가 의사로서의 설명을 종결짓기 위해 신중하게 그녀의
소견의
결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내가 방금 떠올린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리키는 지금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초기에 보이는 증세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내가 여전히 선 채로 자신의 주먹을 있는 힘껏 움켜쥐는게 보였다.
마치 그녀 자신이 먼저 부서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인 것 같이.
--그러나... 어린나이에... 정신분열증이라니... 까닭도 없이... 나는...
믿을 수가 없소...
나의 말은 조각조각 부서져 허공을 어지러이 맴돌고 있었다. 그와 함께
나의 가슴 또한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아침에 보았던 오스트레일리아의
광활한 사막이 소용돌이치는 모래바람과 함께 기우뚱기우뚱 움직여
대었다.
--나는 단지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샌더스가 여러 번 이 말을 반복하였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리키를 위한, 그리고 우리 부부를 위한 어떤 위로의 말도
1나를 따뜻하게 감싸줄 수는 없었다.
샌더스의 절제된 말들 속에 함축된 그 수많은 불행의 의미들에서 같은
정신과 의사로서 내가 느낄 수 있는 위험의 신호는 훨씬 더 큰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끔찍한 예후를 가진 청소년 정신분열증 환자들에 대해 배운 한
사람의 의사로서, 그리고 인간의 상식과 질서를 벗어나 성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수없이 보아온 의사로서 아프게 리키의 얼굴을 그들의 희멀건
표정들과 오버랩시켜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치유될 길 없는 한계상황 위에서 속수무책 방치된 채 정신과 병동의
어둡고 눅눅한 긴 복도를 느릿느릿 오가는 그들의 참혹한 모습을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만난다. 그들 속에서 또 한 사람의 환자로서 촛점을 잃은
눈으로 휘적휘적 걸아가는 내 딸 리키를 발견하면서 몸서리치는 나를
연상하니 나는 소름이 끼쳤다.
내 딸 리키가? 아, 내 딸 리키가...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는 마치 머릴
샌더스 박사 때문에 리키가 이 지경에 빠지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녀를
노려보기만 했다.
힐라리가 이미 사태를 절망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요?
샌더스가 짧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리키를 병원으로 보냅시다!
분노에 차서, 나는 나를 에워싸고 있는 두 여자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내게 절망을 강요하는 한 여자와, 그것을 너무나 쉽게 현실로
받아들이려는
또 한 사람의 여자.
--북부 지방에 리키를 입원시킬 만한 훌륭한 시설을 갖춘 요양기관을 알고
있어요. 펄커크 병원이라고, 프래드 박사께서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곳일
겁니다. 시설이나 분위기가 요양기관으로서 부족함이 없고, 더구나 그곳은
프래드 박사의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보장해 줄 것입니다. 박사님의 가족
중에 정신질환자가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박사님의 명예에 영향을 끼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아마도 한달 정도면 리키는 누구보다도 총명한 소녀가
되어 귀가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샌더스 박사는 단숨에 여기까지 말을 하고는 나의 동의 따위는 구할
것도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힐라리와 나를 응시하였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한순간에 내게서 떠나가고, 더
많은 것들이 내게로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키를 위한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가 진정한 문제가 되는 이때에,
샌더스는 나의 직업적인 명예와 의사로서의 사회적 위치에 관해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고맙게 여겨야 할까.
더구나 샌더스는 어떻게 그렇게 쉽사리 리키가 정신분열증일지도
모르며,
단 한달 안에 집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말까지 할 수 있을까.
파인휘트니 병원의 신경정신과 담당의사로서, 나는 얼마나 수없이 이런
식으로 나의 환자들에게 쉽게 입원을 권하고, 쉽게 결론을 내리고, 그리고
쉽게 그들의 절망과 반감을 묵살해 왔을까.
나의 사려깊지 못한 말 한마디로 인해 인생이 엉망으로 구겨져 버린
환자는 얼마나 많을 것이며 그런 와중에서 가족들은 또 얼마나
고통받았을까.
나는 힐라리를 쳐다보았다. 소파 구석에 될 수 있는 한 최대로 몸을
깊이
파묻은 채, 그녀는 거실 바닥 어딘가를 넋을 잃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힐라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녀도 지금 이 순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리키가 이렇게 도리 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하는...
거실의 커다란 창으로 을씨년스러운 늦가을 풍경이 보이고 있었다. 비가
오려는지, 검은 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하늘이 창밖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리키를 그대로 집에 머물게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샌더스 박사의 음성이 내 귓가에서 맴돌았다. 오래 전, 파인휘트니
병원에서 정신병학 과정을 함께 공부할 때도 그녀는 이렇게 침칙했고
사려깊었다.
미모는 아니지만 매사에 분명한 태도와 정신과 의사로서 가장 적합한
신중함을 겸비하고 있기에 그녀는 10여 명의 레지던트들 중에서 가장
돋보였다.
--리키의 입원은 보다 정확하고 적절한 진단을 위해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리키의 장래를 위해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를 결정해 주여야 할 이 시점에서 우리가 보다 사려깊은
행동을 해야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기회를 놓침으로써 평생을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샌더스는 모든 것을 이미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선택의 여지가 우리에겐 없었다.
힐라리가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로 중얼거렸다.
--나는 리키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해줄거예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꼭 그래야 합니다.
결론은 내려졌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았으나 감히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불행의 전조를 알리는 화살은 이미 활시위를 벗어나
보이지 않는 저쪽으로 숨가쁘게 날아갔다.
슬픔이 강물처럼 밀려왔다. 창밖에는 마침내 후두둑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으나 나는 이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추운 날씨와 빗줄기를
원망할 틈도 없었다.
샌더스 박사는 즉시 펄커크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서 리키의 입원 절차를
밟고, 그에 따른 준비를 서두르게 하였다. 그러는 동안 아내는 렌트카
회사에 연락하여 차 한 대를 예약했다.
그런 후에 아내는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이 심정으로는 도저히
그곳까지 함께 갈 수 없으니 당신 혼자 샌더스 박사와 가주지 않겠어요,
라고. 아내는 침울하게 덧붙였다.
--나는 며칠 뒤에 좀 진정을 한 후에 펄커크에 가겠어요. 나는 리키를
병원에다 혼자 있게 내버려 두고 돌아설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나는 아내의 얼굴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씁쓸히 그러마고
대답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힐라리와 나는 대단히
원만치 못한 부부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우리는 많은 면에서 의견의 차이를 보이며 충돌해왔으나 이따금 한 가지
사실에서만은 일치된 의견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은 이혼이었다.
그러나 부부가 일생을 함께 하면서 얼마나 많은 언쟁을 벌이고 또
얼마나
수없이 이혼을 생각하는가. 그래서 나는 우리 부부의 그러한 부조화를
단지
일시적 충돌로 애써 생각해오고 있는 것이었다.
검은 색 리무진을 타고 오래도록 달리면서 나는 차창에 부딪쳐서
소리없이 굴러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 풀이 죽어 앉아 있는 리키의 손은 내 손 안에서 여전히
따뜻했다.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리키는 간혹 크게 심호흡을 하곤
하였다.
정신분열증이라구? 한달 이내에는 귀가한다구? 이것이 리키의 장래를
위해 최선의 길이라구?
나는 앞자리에 앉은 샌더스의 어깨까지 내려온 탐스러운 은발을
노려보며
종잡을 수 없는 질문의 갈피갈피를 휘젓고 있었다.
리키는 완전히 멍한 얼굴이었다. 착하고 예뻤으며, 소심했으나 맑은
심성을 가진 리키였다. "아빠, 사랑해요"라고 내게 속삭이던 리키가 오늘
내 귀에다 대고 나지막이 물었다.
--제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될까요, 아빠?
1 나는 내가 배웠고 믿어왔던 모든 것들에 의해 송두리째 배신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른인 나 자신도 내가 신뢰할 수 없는 현실을
예민한 감성을 가진 리키라고 해서 쉽게 믿을 수 있을까. 미래가 칠흑같이
어두워 보일 것은 리키에게 더 심할 것이었다.
나는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많은 것이 나를 배신하였다. 나의 직업이,
나의 인생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온 생애에 걸쳐 그토록 확고하게
의존했던 하나님이...
나는 리키가 입원하게 도리 펄커크 병원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렌트카 안에서 샌더스로부터 들은, 그곳이 우울증 환자에게는 더할 수
없이
안락한 요양기관이라는 것 이외에는.
나는 그 병원의 상담실에 리키와 나란히 앉아서 입원 의뢰서에 서명할
때
이번에는 내가 딸을 배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곳에서 한 일이라고는, 입원 의뢰서 말미에 서명을 하고 리키와
몇 마디 말이라고 나누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애써 접어 두면서 그저
간절한 포옹만 나누고는 그애가 간호원에 이끌려 힘없이 어딘가로
이끌려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뿐이었다.
자주 뒤를 돌아보며 뭔가 말을 하려 했던 리키의 말할 수 없이 수척한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마침내 눈시울을 적시고야
말았다.
"리키야, 너는 곧 집으로 돌아오게 될 거야."
그러나 이 말은 실상 나 자신에게 하는 것이었고, 나 자신을 위안하기
위한 간절한 기도에 다름 아니었다.
샌더스 박사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자, 우리 이 병원의 원장님과 얘기하러 가 볼까요.
그녀 역시 대단히 침울한 표정이었다. 이 모든 새롭고도 엄청난 현실을
우리에게 강요한 그녀를 향해 나는 나도 모르게 내뱉고 말았다.
--무슨 이유로... 왜 우리 리키가... 정말 왜, 왜...
2. 리키의 회상(1): 자신도 어쩌지 못했던 그 참담한 삶에의 기억들...
나는 나 자신을 억제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모든
건
순식간에 일어났고, 너무나 큰 무게로 나를 흔들어 대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기조차 두렵다. 이제는 완전히 끝장이라는
느낌뿐.
나는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렵기만 하다. 이
모든 불행의 한복판에 있는 내가 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것일까.
펄커크는 병원이다. 나는 이곳에 와 있다. 그렇다면 나는 환자임에
틀림없다. 환자라면 난 아파야 한다. 입원을 할 정도라면 상당히 아파야만
한다. 그렇다면 난 어디가 아프단 말인가.
내게 있어서 진정한 문제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정녕 이것이
궁금하다.
나는 늘 창문 저 밖의 세계가 궁금했었다. 내게는 모든 것이 너무나
멀리, 아주 멀리 존재하는 것 같았기에 손을 뻗어 그 무엇인가를 붙잡고
싶었다.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들의
따뜻한 손을 잡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그 무엇인가를 붙잡으려고
하는 순간이면, 어느새 그것은 산산히 부서져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해 낼 수가 없다.
어려서부터 나는 벽장과 같은 어두운 장소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
장소들은 내게 얼마나 평화로운 느낌을 가져다 주었던가. 그 안에 기어
들어가 있으면 나는 언제나 고른 숨을 쉬며 가슴 가득히 번지는 안온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밤은 언제나 내게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밤의 적막이 무서웠고,
밤의 암흑이 나를 괴롭혔다.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기만 하면, 나는 누군가가 내게로 다가와서 나를
나꿔채려 한다는 생각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언제나 나직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내게로 왔다. 저벅 저벅
저벅 처음에는 작으나 점점 더 가까이, 점점 더 크게 들려 오는 그 발자국
소리는 언제나 나를 몸서리치게 하였다.
담요를 푹 뒤집어쓰고 곰 인형을 꼭 껴안은 채 나는 진땀을 흘린다. 그
암흑의 공간 안에서 나를 위안해주고, 내게 용기를 줄 사람은 없다. 실상
내 삶의 모든 공간 위에서 이것은 언제나 마찬가지였지만.
사람들이 말한다. 리키 플래취가 자살하려고 했다고. 그러나 나는
아니다. 나만큼 살고 싶은 여자아이가 또 어디 있을까. 삶은 늘 내게 있어
절박한 문제였고 목마른 과제인만큼 내게는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렇다, 탈출.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나의 시도는 늘 실패로 끝났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나는 얼마나
엄마와 아빠를 원망했던가.
무가치한 인생이 무가치한 목표를 가지고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내
자신을
누구보다 내가 용서하기 어려웠다.
나는 두려웠다, 모든 것이. 그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이었다.
이대로 흘러가다가는 나는 반드시 삶의 가장 처참한 구렁텅이에 빠져 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여덟 살 때였던가. 이런 일기를 쓴 적이 있다.
왜?
왜, 왜, 왜?
한숨, 한숨, 한숨?
눈물, 눈물, 눈물?
삶에 대한 나의 의문은 그토록이나 뿌리가 깊은 것이었다.
의문 투성이의 13년 내 인생은 절망으로 시작해서 절망으로 결론지어질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것이 정녕 괴로웠다.
한때는 좀더 나이를 먹으면 그런 고통 따위는 씻은 듯이 사라질
것이라고
나 스스로에게 말하며 지낸 적도 있었다.
좀더 나이를 먹으며, 좀더 나이를 먹으면...
그러나 나는 흐르는 세월만큼 나의 고통의 중량 또한 점점 커간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나의 어린 시절이 그렇게 온통 슬픔만으로 얼룩진 것은 아니다.
슬프고 외로울 때마다 한 조각 기쁨을 주는 행복의 기억들이 내게도 흔히
있다.
어느 해 겨울이었다. 아빠가 우리 형제들을 위해 선물 상자들을 가득
안고 병원에서 돌아오신 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선물 상자를
내게
주시며 아빠는 큰 소리로 말씀하셨었다.
--리키야, 네 친구들이 이 상자 속에 들어 있을 거다!
예쁜 종이로 포장되어 있는 상자 위에는 빨간 색의 큰 리본이 매달려
있었다. 그 상자 안에서 나온 아빠곰과 아기곰은 아빠의 말씀대로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지금까지도 밤마다의 그 두려운 발자국 소리로부터
나를 지켜 주곤 하였다.
할아버지가 살고 계시던 바닷가는 내게 그것을 회상한다는 것만으로도
기쁨과 평화를 느끼게 한다. 끝도 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모래밭을 걸을 때면, 나는 온갖 번뇌의
가시덤불로부터 쏜살같이 빠져 나오는 쾌감 같은 것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
그분을 다시 기억한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눈물이 난다. 할아버지가 그
크고 뚱뚱한 체구로 나를 끌어안고는 내 볼에 마구 입을 맞출 때면 나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할아버지의 목을 힘껏 껴안았었다.
할아버지는 집 뒷마당에 꽤 넓은 무우밭을 가지고 계셨다. 서툴기 짝이
없는 솜씨로 할아버지와 함께 밭을 갈던 내 어린 시절의 한순간은 이제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할아버지는 그 밭의 끝쪽에 손자가 태어날 적마다 매번 한 그루씩의
나무를 심으셨다. 지금까지도 거기엔 네 그루의 나무가 나란히 서 있을
것이다.
어느 해 여름 휴가 때였다. 우리 가족이 할아버지의 집을 방문했을 때,
할아버지는 나를 보자 마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리키야, 어서 선창가에 가 보아라.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면서 바닷가의 작은 선창가로 달려갔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회색 바탕에 빨갛고 굵은 색 선이 선명히 그려진 작은
보트였다. 거기엔 "리키호"라고 보트의 이름까지 명명되어 있었다. 놀라고
있는 내게 어느새 다가온 할아버지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의 선물이다. 기쁘지 않니?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으로 괴로울 때,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고,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다시금 생각한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위안받을 수 있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하나님은 내게 있어서
거의 유일한 삶의 기둥조차도 매정하게 빼앗아가 버렸다.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서재의
소파에 누워 울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할아버지가 내게서
영원히 떠나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은 내 인생이 막다른 길목에 다달았음을 암시하는
슬픈
의식처럼 여겨졌다. 나는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땅속 깊이 가라앉고
있음을 분명히 의식할 수 있었다.
투명 유리관 속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더 이상 내게 반가운 미소를 보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흐르는 눈물과 함께 소리쳤다.
"할아버지, 일어나세요.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학교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나는 좀체로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학교는 한때 내게 피난처 같은 곳이었다. 세이크리드 하트의 까뜨리네트
수녀원 부설 학교 8학년 졸업반인 나는 한번도 수녀가 되기를 열망하는 내
마음을 접어 둔 적이 없었다.
수녀처럼 걸었고, 벨트에 묵주를 걸고 수녀처럼 정숙하게 학교에
다녔다.
수녀의 엄숙한 고요함, 수녀의 나직한 미소, 수녀의 한없이 평화로운
눈동자를 닮고 싶었다.
열심히 공부하면 나도 훌륭한 수녀가 될 수 있으리라는 몽상이 내게
다른
소녀들과 여러 모로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했었다. 수녀야말로 내가
당도할
궁극의 인생 목표였다.
나는 특히 테레사 수녀를 존경했다. 마음이 돌연 어두워지고 혼란스러울
때, 또는 무엇인가에 쫓긴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나는 테레사
수녀의 뒤를 따르는 수녀가 된 내 모습을 연상함으로써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하였다.
학교에서의 내 성적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수녀가 되려는 꿈과 성적이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이 두 가지가 나의 학교 생활을 어렵게나마
유지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할아버지의 죽음에 이어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사건에
의해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학교에서는 매주 월요일마다 교장 선생님이신 레브런트 수녀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난주의 생활기록표를 받는 행사가 있었다.
레브런트 수녀를 가운데로 하고 학생들은 그 주위에 조용히 앉는다.
레브런트 수녀의 호명에 따라 우리는 차례차례 생활기록표를 받게 된다.
간혹 호명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 생기는데, 이런 학생은 지난 주에 뭔가
잘못을 저질러 이것이 생활기록표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의 잘못이 기재된 생활기록표를 낭독해야 하는 벌을 받았다.
우리는 이 벌을 받는 것을 학교 생활 중의 가장 큰 수치로 알았다.
이것이 세 번 이상 반복되면 누구든 어떤 이유든 퇴교 조치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학교에 입학한 이래 한번도 이 발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시간이 되어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 10월 말 어느날에, 뜻밖에도 나는 이 벌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화살은 날카로웠으며 상처는 컸고, 내게는 한마디 변명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날, 레브런트 수녀는 생활기록부를 학생들에게 다 나눠 준 후에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리키 플래취는 앞으로 나와서 자신의 자난 주 생활기록표를
낭독하세요.
한동안 나는 영문을 몰라 멍하니 레브런트 수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나는 울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저질렀다고 내 스스로 읽어
내려간 그 잘못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울면서 부정하면서 나는 그래도
생활기록표를 읽어 내려가야 했다.
--나는 나태했습니다. 나는 시무룩한 얼굴로 지냈습니다. 나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강의를 제대로 듣지 않았습니다. 나는 수녀님들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친구들 앞에서 이렇게 읽어 내려가던 그 쓰라린 순간순간들을 죽을
때까지 절대로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생활기록표를 읽어
내려가면서
내가 내뱉은 말의 파편들은 모조리 남김없이 내 가슴으로 날아와 박혀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과 함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만들어 내었다.
나는 이미 내가 갈 수 있는 최악의 상태에 가 있었다. 더 이상
내려갈래야 내겨갈 수 없는 삶의 가장 밑바닥에 나는 참담히 내버려졌던
것이다.
실상 수치심은 별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밑바닥 저 끝까지
내려가도록 내버려 둔 나 자신을 내가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바로 거기에서 죽어야만 했다. 정녕 그래야만 했다.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던 바로 그때 나는 할아버지의 나라로 갔어야 옳다.
내가 의지하고 있던 삶의 언덕이 점차 황량한 사막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나는 분명히 느낄 수가 있었다. 단 한순간도 나는 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혼자 있고만 싶었다. 집에서는 서재로 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비틀즈를 들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의 노랫소리는 하나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나는 나 혼자뿐인 서재의 고요함만을 즐기고 있었다.
부모님들께는 한마디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또한 그들이 나에
대해 간섭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오직 나는 나 혼자이고만 싶었다.
내 방은 부모님의 침실 바로 옆이기 때문에 나는 자주 두 분이 언쟁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두 분의 관계가 그다지 좋은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은 내게 또다른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때때로 나는 두 분의 언쟁이 나의 잘못 때문에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사라지면 두 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불안증세가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 경련을
동반하는 그 혼란 상태는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방 한가운데에서 나를 쩔쩔
매게 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중얼거렸다.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나는 정말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한때는 얼마나 어른이
되기를 열망했던가.
그러나 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더 많은 혼란된 의식과 더 많은 고통을
내게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내가 점점 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 극심한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현실로부터, 고통으로부터,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그 모든 것으로부터...
주말이 되면, 나는 집에 있지 않고 수녀원으로 도망쳤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혼자 앉아서 나는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의 숲속을 마냥 헤매고
다녔다. 차라리 그것이 나는 좋았다.
특히 나는 교실 뒷벽에 걸린 오스트레일리아 사막의 풍경을 찍은 사진이
좋았다. 거센 모래바람이 휘몰아 치솟는 사막 한가운데에 난 혼자 서
있다는 환상에 젖으면, 그런대로 나는 행복하였다.
그 회오리바람의 거대한 줄기에 싸여 하늘로 하늘로 오르고 있다는
환각이 때로는 맹렬히 나를 사로잡기도 했다. 언제나 나는 그런 환상이
좋았다.
항상 나는 혼자였다. 수녀 중의 한 분이 내게 특별히 친절히 대해
주었는데, 나는 그분에게도 별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인 크리스티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애에게 한번도 마음의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우리의 대화는 늘
겉돌았으며, 알맹이 없는 말들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티나가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그애를 나의 삶으로부터 추방해 버렸다.
나는 나의 생활기록표 낭독을 똑바로 응시하던 크리스티나의 시선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설령 그것이 학교에서 정한 엄중한 법칙이라고 해도.
결국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그러나 언제나 혼자이길 원했으면서도,
단지
나 혼자뿐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자주 나를 절망케 했던가. 그 이율배반이
또한 나를 얼마나 괴롭혔던가.
그런데 이제 나는 정말이지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이제 고작 열세
살밖에 안 된 내가 펄커크 병원에 와 있다는 사실은, 예전에는 결코
생각지
못했던 이 돌연한 변화는, 나를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뜨리고 말았다.
나의 병실은 나무 줄기를 엮어 만든 책상과 그에 어울리는 작은 나무
침대가 놓인 방이다.
간호원에 이끌려 이 방에 들어와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침대에 앉아
뒤엉클어진 내 인생을 생각하였다. 완전한 정지, 혹은 또다른 의미의
암흑.
나는 내가 입고 있는 헐렁한 환자복을 바라보며 정지와 암흑이라는 두
가지 단어를 되씹어 보았다.
고개를 들었을 때, 창문 너머로 잔뜩 찌푸린 날씨가 펼쳐져 있었다.
펄커크에 오는 동안 내내 짖궂게 뿌리던 빗줄기가 멈춘 것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당연한 듯 말했다.
--결국 이것이 네 인생이야.
찌푸린 날씨의 찌푸린 하늘 같은 인생, 불빛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암흑 같은 인생.
나는 창가로 걸어갔다. 언제나 손을 뻗어 가지려 했던 그 많은 것들을
이제는 영영 손에 넣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몸을 떨며, 아니 그 모든
것으로부터 내가 너무나 먼 곳으로 떠나와 버렸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언제나 나는 이랬다. 구원받을 길 없는 낙오자. 함부로 구겨져 버려진
한
조각 휴지처럼. 그렇다, 나는 언제나 이랬었다.
샌더스 박사님과의 대화 중에 나는 내가 한 마리의 말인듯싶다고
말했었다. 내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 난 오히려 한 마리 새가 되고
싶었는데. 창밖의 먼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는 자유로운
날개짓의
한 마리 새...
그러나 나는 언제나 새장에 갇힌 불행한 새였다. 누군가 나의 날개를
꺾어 놓았다. 아니면 나 스스로 나의 날개를 접었을지도 모른다.
끝없이 날기를 원했으면서도 나는 나 자신을 내가 먼저 새장에 가두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내가 왜 그랬을까.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은 금방이라도 또 억수같은 비가 쏟아질
듯이 어두컴컴했다.
한동안 어지럽게 생각의 늪 속에 빠져 있던 내게 낯익은 리무진 한 대가
보인 것은 내가 침대로 막 돌아오려고 할 때였다.
나는 그 차를 금방 알아보았다. 그것은 바로 내가 아빠와 함께 이곳까지
타고 온 렌트카였다. 그 차를 본 순간 나는 정말로 이제야말로 완전히 나
혼자 남게 되었음을 아프게 깨달았다.
나는 모든 것이 다 두려워졌다. 다시는 아빠와 엄마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마침내 나는 부모로부터도 버림을 받았다. 나는 영원히 이 펄커크
병원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빠!
이렇게 울부짖으며 나는 나도 모르게 유리창을 후려쳤다. 이미 그 차는
병원 정문을 빠져 나가 그림자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진 뒤였으나 나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이기려고 더 세게 더욱 유리창을 후려쳤다.
울면서 소리지르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도달해 보려고 애를 썼던 꿈도
내
손으로 후려쳤다. 그것은 실상 나 자신을 후려치는 것인지도 몰랐다.
누군가가 거세게 피가 흐르는 내 팔을 나꿔챈 듯했다. 그 사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몇 차례 몸부림을 치다가 나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의해 의식을 잃고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들이 내게 마취제를 주사한 것이었다.
3. 리키를 입원시키고 돌아왔을 때, 그를 대하는 아내의 차가운 태도는
그에게...
펄커크에서 집을 돌아왔을 때는 해가 막 기울고 있었다. 오전에는
늦추위에 비가 오던 날씨가 오후에는 잔뜩 찌푸리더니 지금은 해가 나타난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도 나의 현실과는 반대일까. 나는 지치고 참담한
기분이었다.
샌더스 박사와 나는 돌아오면서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내게는
거의
감각이 없었다. 단지 나의 가슴을 할퀴어대는 그 끝없는 상실감에
아파했을
뿐.
샌더스를 그녀의 사무실 부근에 내려주고 집에 들어섰을 때, 아내는
거실의 벽난롯가에 앉아서 가물거리는 장작불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으나 그녀는 돌아보지도 않고 한마디
말도 없었다. 위로받고 싶은 간절한 심정으로 내가 말했다.
--리키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소?
그러나 그녀는 중얼거리듯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의사인 당신이 잘 했겠지요...
아무리 상심이 크다고 하더라도 힐라리의 이런 태도에 나는 슬그머니
화가 났다. 그녀의 뒷머리를 쏘아보다가, 나는 돌아서서 스카치가 놓인
선반으로 손을 뻗었다.
깔끝같이 날카롭게 내 혀를 적시는 스카치 한 모금을 입에 넣고서야
나는
오늘 내가 한 끼의 식사도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오늘은 내 일생을 통해 최악의 날이었소.
힐라리의 대답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단숨에 나머지
스카치를
입안에 털어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녀가 느리고 갈라진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마음이 편했는 줄 아세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오. 우리는 지금 각자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어야
할 시기요.
그녀는 내 말에는 대꾸도 없이 긴 한숨을 토해내며 쓸쓸히 물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또 한 잔의 스카치를 따르면서 나는 힐라리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오늘은 존의 생일날이에요.
충격 속에서 나는 잊고 있었다. 3월 7일, 그렇다. 오늘은 존의 아홉
번째
생일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는 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가족 파티를
준비해왔었다.
리키가 존을 위해 예쁜 카드를 손수 만들어서 오늘 그에게 주려고
했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리키의 책상 위에 놓인 그 카드를 나는
바로 어제 아침에 본 적이 있다. 그렇다, 바로 어제.
"언제나 귀여운 내 동생 존에게."
이 말과 함께 그 카드에는 예쁜 소년의 미소띤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오늘 리키는 그 카드를 존에게 주지도 못하고, 우리 가족의 뇌리에 3월
7일을 존의 생일이 아닌 리키의 정신병원 입원 날짜로 새겨지게 하고
말았다.
나는 소파 위에 푹 꺼지듯 앉았다. 술은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대신에
머릿속을 희미하게 만들어 놓았다.
리케에게 베풀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희미한 기억의 저편에서 별안간
선명한 화면으로 부각되어 달려왔고, 혼란스럽기만 한 미래에 대한 예감이
놀랍도록 거대한 모습으로 내 가슴에 꽉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했다.
--리키에게 그런 일이 생길 때까지 우리는 왜 조금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아내는 벽난로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아내는 종종 말했었다. 리키가 어른이 되기 위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가 봐요. 말하자면 아내는 리키의 그러한 불안전한 정신 상태를
사춘기
소녀가 으레껏 보이는 일종의 방황으로 판단했고, 나 역시 어느 정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힐라리나 나나 리키와 같은 나이를 똑같이 지나 오늘에 이르렀으면서도,
왜 그토록 그 아이의 마음 밑바닥 소용돌이를 알지 못했을까.
지난 해 말 크리스마스 휴가 때, 리키가 자기 방에서 꼼짝도 않고
침울하게 시간을 보내던 모습이 생각난다. 리키와 길게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 단편적인 말들에서 그애의 생각을 알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혹시 리키는 휴가 때면 정해진 약속처럼 할아버지의 바닷가로 갔던 지난
날을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이제 다시는 만날수 없는 할아버지와, 그와
함께 했던 겨울 바다를 생각하며 그토록 상심했던 것은 아닐까.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녁 미사 때였다.
우리가 성당의 우리 좌석에 앉아, 성당 안을 찬양으로 가득 채우는
성가대의 찬송가를 듣고 있을 때 나는 내 옆자리에 앉은 리키가 수심에 찬
잿빛 얼굴로 성당 천정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
순간 나는 몹시 놀랐다. 내 눈에 비친 리키의 표정은 외로움과 두려운,
그리고 기이한 환각의 복합, 바로 그것이었다.
무엇이 리키를 그렇게 곤혹스럽게 만드는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팔꿈치로 리키를 슬쩍 건드려 보았다. 그러자 리키는 대단히 놀라며 눈에
띌 정도로 손을 떠는 것이었다.
내가 얼른 손을 잡아주어 안심시켰으나 나도 리키만큼 당황했으며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슬픔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사소한 문제들에 대해 그애가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런 자신의
태도에 얼마나 크게 죄의식을 느끼고 있는지를 나는 즉각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리키에 대한 나의 위로는 단지 짧은 시간 손을 잡아주는
것으로
끝났었다. 리키가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을 그토록 절실히 구하고 있을 때,
나는 정녕 무엇을 향해 내 생의 채찍을 휘둘러왔을까.
지난 2월 초, 힐라리의 생일에 리키가 엄마를 위해 썼던 짧은 시가
있다.
리키는 봉투에 이렇게 쓰고 있었다.
"이 특별한 날에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하여. 특별한
생일을 맞이한 특별한 여인을 위한 어느 소녀의 특별한 시"
생일
아침 햇살 속에서
그대 앞에 희미하게 나타나는 해변,
밤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해변은 자라나는 마음
그리고 어린 시절은 밤과 함께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리키 플래취가 엄마에게: 사랑해요.
아내는 이 한 편의 시를 놓고, 이것이야말로 리키의 사춘기 소녀다운
감성을 잘 나타내는 시라고 말했었다.
태양과 밤, 해변과 수평선. 상반된 의미의 이 두 가지 소재를 통해
리키가 진심으로 말하고자 했던 뜻은 무엇이었을까.
--훌륭한 시로구나.
나의 칭찬에 리키는 단지 희미하게 웃기만 했었다. 그 웃음 뒤에 리키가
감추고 있던 그 무엇. 리키는 그 작은 체구 안에 왜 그리고 많은 의문들을
간직해야 했을까.
--당신 생각나요?
아내가 갑자기 이렇게 물어왔기 때문에, 나는 오랜 생각의 방황을
멈추고
그때까지도 여전히 난롯가에 앉아 있던 힐라리에게 시선을 주었다.
--리키가 여덟살 때, 그애가 신장염으로 입원했던 이래로 뭔가 잘못된 것
같아요. 맞아요, 그때 이래로 리키는 분명 전과 달라졌어요.
그다지 병약한 편은 아니었으나 리키에게는 유달리 돌발사고가 많았다.
여덟 살 때의 신장염으로 인한 입원만 하더라고 어느날 아침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1--그때부터 리키는 웬일인지 학교 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어요.
생각해
보세요. 그애는 항상 혼자였고 눈에 띄게 침울하게 변해갔어요.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실상 리키를 우울하게 만든 요인은 이 가정
안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자주 깨어졌던 리키의 건강, 최근 들어
잦았던 아내와 나의 언쟁, 그리고 할아버지의 죽음...
그러나 이런 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정신분열증 환자로 득실거릴 것인가.
힐라리가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
속에서
참기 어려운 침묵과 싸웠다. 창밖은 이미 완전한 어둠이었다. 우리는
거실에 불도 켜지 않은 채 희미하게 남아 있는 벽난로 속의 불씨만을
애매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에요.
아내가 고개를 돌리고 말문을 열었기 때문에 무겁던 침묵은 깨어졌다.
--한 가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어요. 당신은 정신과
전문의예요.
그런데, 그런데도 왜 당신은 그렇게도 리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몰랐을까요?
나는 그 순간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묵직한 통증을 느끼며 휘청했다.
아내는 정곡을 찌른 셈이었다. 비난받아 마땅한, 나 자신 현재 가장
아파하는 상처를 향해 아내는 화살을 쏘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리키가 나의 딸이고, 그애가 끝내
정신병원에 가 있게된 이상 내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내게 날아와
박힌 화살촉은 끝없는 죄책감을 내게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나는 힐라리가 오늘 하루 내내 나와 리키에게
보인 태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나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물론 나도 그 점을 괴로워하고 있소. 그러나 어떻게 당신은 그렇게도
태연자약할 수가 있소? 지금까지 당신은 펄커크에 가 있는 리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묻지 않았소. 리키의 안부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고, 나의
책임에 대해서만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건가?
대답 같은 건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나는 휙 돌아서서 서재로 올라가
버렸다.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어야 할 이 시기에 우리는
왜 서로에게 이렇게 대해야만 될까. 새로운 슬픔이 밀려들고 있었다.
모든
것이 엉망으로 뒤얽혀 버리는 느낌이었다.
--리키는 친구 집에 가 있단다. 존에게 몹시 미안하다고 그러더구나.
존의 생일을 위한 조촐한 저녁 파티를 마련한 자리에서 힐라리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꾸며대었다.
나는 그녀의 말이 아이들을 위해서는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친구 집에 가 있다면 적어도 며칠 내로 돌아와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즐거운 듯한 표정으로 생일
축가를 함께 부르고 준비해 두었던 선물도 전하며 행복한 척했다. 존과
메어리, 그리고 메티유는 부모의 눈치를 연방 보면서 예전과는 좀 다른
분위기의 이 파티를 즐거워 해야 할지 어떨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나는 오늘 하루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괴롭게 다시
떠올려 보았다.
나는 그대로는 잠들 수가 없었다. 시작도 끝도 없는 미로 속에 나 혼자
내버려진 느낌이었다.
나는 힐라리의 태평한 잠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 눈을 뜬 채
어두운 공간을 뚫어져라 응시하면서, 나는 분노하면서 힐라리의 조용한
숨소리를 들었다.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이 이렇게 절실할 때, 가장 먼저 내게 힘을 주어야
할 사람은 다름아닌 아내였다. 그러나 그녀는 내게 혹독한 말 한마디를
남기고, 지금은 이렇게 깊은 잠에 빠진 것이다.
지금쯤 리키는 잠들었을까. 새로운 낯선 환경에 두려움을 느끼며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는 리키의 모습이 애처롭게 떠올랐다.
나는 고통스럽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그것은 리키 역시
지금의 내심정과도 같은 견디기 힘든 고독을 거센 파도더미처럼
뒤집어쓰며
지내왔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런 리키에게, 내 딸 리키에게 나는 어떻게 대해왔을까. 애정의 궁핍을
느끼는 리키에게 나는 과연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말할 수
있을까.
밤이 깊어져 갈수록 더 많은 의문부호가 더 큰 소리를 내며 다가와
쉴새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end`
제 2 장 모래성의 그늘
4. 뜻밖에 제기된 하나의 불길한 가능성이 가져다 준 엄청난 충격은...
리키가 입원한 지 닷새가 지나서야, 우리는 샌더스 박사를 그녀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녀는 하루 한 번씩 펄커크를 방문하여 리키의 상태를 관찰하고, 그곳의
의사들과 의견을 나누기로 되어 있었다.
그녀는 우리를 보자, 다소 어색하고 과장된 표현으로 리키의 안부를
전했다.
--리키는 잘 있어요. 식사도 잘하고 있고, 부모님께 안부를 전해 달라고도
하더군요.
힐라리는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몇 번 끄덕여 샌더스의 호의에 고마움을
표했다. 따뜻한 커피를 권하며 샌더스가 입을 열었다.
--나는 리키에 대해 좀더 소상히 알고 싶어요. 리키에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서... 먼저 리키가 태어났을 때나 그애의 임신 기간 중에 있었던
얘기를 해주시겠어요? 어떤 사소한 문제라도 다 좋아요.
샌더스의 질문이 아내에게 먼저 던져졌다. 아내는 잠시 망설인 끝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별로... 다른 아이들과 다른 게 없었어요. 하지만 그애는 성장하면서는
뭔가 좀 다르지 않았나 싶어요.
--어떻게?
--리키는 내가 안아주거나 우유를 먹여주어도 웬지 아기다운 데가 별로
없어 보였어요. 잘 반응하지 못한다고나 할까, 어쩐지 아기에게 우유를
먹여주고 있다는 엄마로서의 기쁨 같은 걸 난 느낄 수가 없었어요. 내
쪽에서가 아니라 리키쪽으로부터 어떤 거리감 같은 게 느껴지곤 한 거죠.
그러다가 그애가 6개월이 되었을 때 수술을 받았어요.
--수술이라구요?
--오른쪽 눈썹 위 이마에 조그마한 종양이 생긴 거였어요. 그런데 의사가
수술 후에 말하더군요. 리키를 마취시키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는 거예요.
의사는 다른 아기에게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마취약을 쓰고서야 겨우
리키를 진정시킬 수가 있었다고 그러더군요.
그랬었다. 심지어 리키는 수술 뒤에도 다량의 신경안정제에 의존하여
잠을 자야 했다. 더 많은 양의 마취제에 의해 마취가 되어야 할 만큼
견고한 저항 신경을 가지고 있는 리키, 그와 함께 신경안정제에 의해서만이
잠에 빠질 수 있었던 예민한 신경의 리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이렇게 극단적인 두 가지 신경줄을 가지고
있던 어린 시절의 리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오늘의 비극을
암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두 살 때던가, 좀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어떤 일인데요?
--그 전까지는 일어서지도 못하던 아이가 어느날 돌연 일어나 걷기
시작하더니, 며칠 뒤에는 완전한 문장으로 말까지 하지 않겠어요? 우리는
참 신기한 일도 다 있구나 싶었어요.
--그랬습니다.
나는 아내의 설명에 덧붙여서 그때의 내 느낌을 샌더스에게 말했다.
--어느날 밤에 리키의 방을 지나는데, 그애가 마치 무슨 연극의 대사를
외우듯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어요. 맞아요, 서툴기는 하지만 그건
완벽한 하나의 문장이었어요. 내가 들어가자, 리키는 곧 말을 멈추고는
굳게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것이었어요. 아내와 나는, 리키가 좀 조숙한 게
아닌가 여겼지요...
--맞아요. 리키는 주위 사람들에게 뭔가 특별한 아이라고 여기게 할 만큼
이상한 데가 있었어요. 특히 이상한 것은 리키가 말하기를 싫어한다는
것이었어요. 나중에는 좀 나아지긴 했으나 그애는 필요한 말 이외에는
좀체로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어요.
--어떤 의미에서 리키는 대단히 조용한 아이였습니다. 도대체 그 아이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잠겨 있는지 부모인 우리가 모를 때도 많았습니다.
--학교에 들어갔을 때 리키는 적응하는데 꽤나 애를 먹는 것 같더군요.
선생님들은 리키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걸 싫어한다고 말하더군요.
--네 살 때였는데, 리키가 길에서 넘어져 이마에 큰 타박상을 입은 적이
있었어요.
--신장염을 앓아서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어요.
마치 밸부가 돌려진 수도꼭지처럼 리키의 과거가 쏟아져 나왔다. 그와
함께 나는 리키의 아버지로서의 내가 얼마나 그 아이에게 무심했던가를
아프게 깨달아야 했다. 나는 그애가 그토록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지내오는
동안 하나의 벽이 되어 주고 하나의 기둥이 되어주는 대신에 단지
의사로서의 내 직업적 명성과 위치만을 고수하며 허덕여오지 않았을까.
--그때 리키는 정말 몹시 앓았어요. 그런데 어느날 간호원이 놀라운 얘길
하더군요. 리키가 일부러 자꾸만 침대에서 떨어지려 한다는 거예요.
떨어졌다가는 다시 침대에 기어오르고, 그리고는 다시 몸을 바닥에
던지고... 입원해 있던 2주 내내 고열에 시달리고 헛소리까지 하던 리키가
장난삼아 그럴 리가 있었겠어요?
그때 리키는 끝내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신장염 치료와 함께 머리에
붕대를 감아야 하는 불상사를 낳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리키는 그렇게 고집스러운 아이였다. 입을 꾹 다물과
자기의 의지대로만 행동하려는 아이였던 것이다.
다섯 살 때까지, 리키는 밤에 잠을 자러 제 방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 잘
시간이 되면 리키는 자기 방으로 가는 체하다가는 다시 우리 부부의 침실
쪽으로 오곤 했다.
--너, 어서 가서 자지 않고 뭐하고 있니?
우리가 이렇게 화를 내면, 리키는 제 방으로 가는 체하다가는 다시
울상이 된 얼굴에 억지 웃음을 띠며 돌아오는 것이었다.
어느 때는 억지로 그애를 제 방으로 끌고 가기도 했다. 그러면 그애는
마치 공포에 질린 것처럼 벌벌 떨며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어느날이었다. 리키가 다시 우리의 침실 앞을 기웃거렸다. 이미 12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었다.
--리키야, 왜 너는 자지 않고 거기 서 있는 거냐. 무섭니?
그러나 리키는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리키의 그런 태도가 어린
아이들이 흔히 갖는 어둠에 대한 공포심의 일종이라고 여기곤 했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에는 내 방의 문틈으로 거실의 불빛이 스며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잠이 드는 버릇이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나는 그 아이의 어둠에 대한 공포심을 없애 주겠다는 생각으로
파인휘트니 병원의 동료의사의 권유에 따라 너무나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불을 끈 채 리키를 제 방에 가두고 방문을 잠가 버렸던 것이다.
그때 일을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나는 리키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 울며
몸부림치며 우리를 부르다가 바닥에 쓰러져 지쳐 잠이 든 리키를
들어올리며 나는 애처로움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나는
일주일이나 계속해서 그런 매정한 짓을 저질렀으니...
리키의 과거에 대한 힐라리와 나의 설명을 듣는 샌더스 박사의 표정은
한마디로 침통,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잊고 멍하니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닷새 전의 펄커크 행 리무진 안에서 느꼈던 비참한
기분이 오늘 새로운 고통이 되어 다가왔다.
리키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얼마나
무책임한 존재였던가. 이 문제에 대한 죄책감으로 말한다면 나는 영원히 그
멍에를 벗지 못할 것이었다.
샌더스 박사가 천천히 화제를 돌림으로써 침울한 분위기를 바꿔주려
했다.
--리키의 형제들은 몇 살이죠?
--리키 밑으로 이제 아홉 살이 된 존, 일곱 살이 된 메어리, 그리고
메티유는 다섯 살입니다.
--그 아이들은 리키의 입원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리키가 특수학교로 옮겨 기숙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어요.
샌더스 박사가 뭔가 한동안 깊이 생각하는 눈치더니, 혼잣말이듯 빠르게
중얼거렸다.
--그 아이들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리키의 상태에 대해
솔직히 털어 놓으셔야만 할 겁니다.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포의 물결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 말은 결국
리키가 당초 예정된 한 달이 아니라 그보다 오래, 아주 오랫동안 입원할
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게 아닌가.
내 예상은 정확했다. 황망히 내가 그것을 물어 보자, 샌더스는 행복한
가정에 돌을 던지는 불행의 단어들을 내뱉도록 강요된 역할이 왜 하필
자기에게 맡겨졌는가 하는 곤혹의 표정으로 우리를 슬며시 외면했다.
명백해진 불행을 은폐한 채, 상투적인 말로 이리저리 우회하며 환자
가족에게 진실을 전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는 경험으로 안다.
그러나 이것은 경우가 다르지 않은가.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리키가
우리 가족을 완전히 불행으로 떨어뜨리게 할 만큼 최악의 상태라고는 믿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바로 닷새 전에 샌더스 박사는 말하지 않았던가. 한 달 후면 리키가
정상으로 돌아와 가족의 품에 안기게 되리라고. 그런데 지금 그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 닷새 동안에
리키의 병을 깊게 할 무슨 돌발사고가 있었기에?
--지난 나흘 동안 나는 펄커크의 유능한 의료진들과 함께 리키 플래취의
상태에 폭넓게 관찰해 보았습니다.
샌더스 박사는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비록 짧은 시간 안에 발견된 사실들이 리키의 상태를 이해하는데 완전한
열쇠가 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만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게 뭐죠?
튀어오르는 공처럼 몸을 일으키며 힐라리가 물었다. 부서질 듯이
핸드백의 금속제 손잡이를 잡고 있는 그녀의 흰 손엔 핏기 하나 없었다.
--리키는 자폐성 정신분열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자폐성?
--그렇습니다.
나는 뭔가 묵직한 것이 쿵 하고 내 뒷머리를 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별안간 몽롱해진 의식을 간신히 추스리면서 나는 할 말을 잃고 샌더스
박사를 노려보았다.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데 있어 대단히 곤란을 느끼는 자폐증
어린이들을 나는 여러 번 만나본 적이 있다. 그들은 안으로 안으로만 자기
자신을 조여 들어가 결국엔 자아 속의 종착에 이르는 독특한 성격을
보인다.
그들은 또한 자기의 능력으로는 남들과 의사를 소통할 수가 없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사회 생활에 있어 부적격자들인 것이다. 그런데 리키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폐성 정신분열증이라는 것이다.
리키가 그랬던가. 자신의 능력으로 의사를 표현하지 못했던가. 안으로
안으로만 조여들어갔던가. 사회적 활동에 부적격자였던가.
혼자 있기를 열망했을망정 리키는 비교적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해왔고
친구는 적었으나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한 적은 없었다.
학교에서의 적응 능력이 부족한 듯하다고 언젠가 선생 한 분이 말한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적응력의 부족이지 자폐증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자폐증세를 가진 아이들은 또한 말하기 능력이 현저히 뒤떨어진다.
하지만 리키는 말하기를 싫어는 했을망정 말하는 능력이 지체되었거나
그것을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인 적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 결론도 위험합니다. 우리 역시 하나의 가능성을
세심히 떠올려 보는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의사들은 충분히 조사하고
연구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교적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박사님 스스로 한 달 안에 집으로 돌아오게 될 거라고 하셨잖아요?
아내가 칼로 자르듯이 매섭게 소리쳤다. 샌더스가 몹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리키는 지금 외과적 수술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리키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심입니다.
힐라리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작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느낌
소리는 작았으나 어깨는 격정에 못 이겨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잘못
내려진 판결에 저항하는 죄인처럼 고개를 번쩍 들고 항변했다.
--리키는 단지 침울했을 뿐이오, 우울증세가 좀 심했을 뿐이란 말이오.
여기에 덧붙여서 나는 리키가 항 진정제에 의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신경정신과 환자에 대한 항 진정제 치료법은 사실은 아직까지 의사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못 받고 있는 형편이다. 정신 의학계에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의사들 사이에는 약물에 의한
치료보다 면밀한 관찰 후의 심리적 혹은 물리적 치료를 더 선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에 이 치료법을 수용하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파인휘트니 병원에서 한 우울증 환자에게 이 약물을
투여하여, 근 1년 동안 우울증에 빠져 있던 그를 단 4주 만에 정상적으로
회복시킨 뒤로는 나의 환자들에게 광범위하게 투여하기 시작하였고
그때마다 좋은 결과를 얻곤 했던 것이다.
--리키에게 항 진정제를 쓰면 일주일 안에 반드시 좋아질 것입니다!
나의 호언장담에 샌더스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애쓰면서 잠시 침묵하던 그녀가 이윽고 단호하게 내뱉었다.
--프래드 박사님! 당신은 리키의 아버지일 뿐, 그애의 주치의는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리키의 치료에 있어서, 그애의 담당의사인 내게
무엇을 어떻게 하고 무엇을 하지 말라는 식으로 명령하진 말라는 뜻입니다.
아내는 계속 흐느꼈다. 이미 그녀는 다시 한번 샌더스의 결정에 저항의
몸짓 한번 없이 굴복한 것이었다.
나는 아내의 태도에 분노와 실망을 느끼며 샌더스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너무나 한꺼번에 쏟아졌기 때문에 나는 샌더스의
말에 한마디도 반박할 수가 없었다.
--리키에게 시간을 줍시다. 그리고 보다 많은 의사들이 리키를 위해 뭔가
헌신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또 무슨 말이오?
--이미 펄커크는 리키에게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리키를 다른
유능한 의사들이 있는 좀더 큰 병운으로 옮깁시다.
아내가 돌연 눈물을 그치고 샌더스를 바라보았다. 내 머릿속에는 또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리키의 두려움에 찬 표정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펄커크는 우울증세를 가진 환자에게는 더할 수 없이 훌륭한 곳이지만...
나는 아무런 의식도 없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는 단지 샌더스
박사 뒤로 보이는 창밖의 빈 하늘을 무의미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식은 커피로 의미없이 입술을 적시며 하염없이 바라보는 하늘을 뜻밖에도
참 푸르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뒤늦게야 내가 얼마나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있었는가를 깨달았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아버지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가장 적절한 길을 내게 가르쳐주곤 하셨는데, 그것은
거의 과녁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지금 같이 내 눈 앞의 모든 것이 모호할 때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그분은 훌륭하게 나의 발길이 어디로 향해져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주셨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우울증세보다 내면의 다른 무엇이 더 심각하게 보이는
리키에게 펄커크는 이미 적절한 장소가 아닙니다.
나는 아내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넋이 나간 얼굴로 힘없이 늘어뜨린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그녀와 나의 손은 이미 리키의
보호자로서의 손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하는 딸을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떠나보낸 무책임한 타인의 손에 불과했다.
나는 정녕 그것을 용인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리키는 통 잠을 못 이루고 있어요. 리키는 밤새도록 일어나서는
쓸데없이 서성거리며 심한 불안증세를 보이고 있어요. 담당의사가
간호원에게 신경안정제를 투여하라고 지시했지만 그것을 리키가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주사를 투여했지요. 그러나 그것 역시 리키를
쉽사리 잠재울 수는 없었습니다. 일반환자에게 투여하는 주사량으로는
리키를 진정시킬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대신 리키는 격심한 흥분상태에서
계속 울부짖었다고 해요. 병원 근무자들이 리키를 조용히 시키려고 애를
썼지만 어찌나 난폭하게 구는지 고생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펄커크의
의사들은 리키를 보다 더 주의 깊게 살펴볼 수 있는 시설이 잘된 병원으로
옮겨가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믿을 수가 없어요. 그애는 결코 난폭하지 않았어요. 리키는 양처럼 순한
아이였다구요!
아내의 말은 절규에 가까웠다. 절규. 샌더스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그리고 어쩌면 힐라리 자신에 대한...
--아마도 낯선 곳에 가 있기 때문일 거예요. 이제 열세 살밖에 안 된
아이가 갑자기 그런 환경에 가 있게 되니 얼마나 불안했겠어요. 그래요,
그애는 두려웠던 거예요. 우리는 리키를 펄커크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요.
윙윙, 실바람소리 같은 종잡을 수 없는 메아리가 내 귓가에서 맴도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화창해진 3월 중순의 날씨가 창밖의 푸른
하늘가에서 한껏 뽐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만큼이나 내 마음속은 텅
비어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리키에겐 어느 정도 자기 방어력이 있었다고
보아집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그 힘이 무너졌고,
그와 동시에 이제 본격적인 정신병적 행동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어떤 일"이라구? 리키의 마음을 헤집어 뒤흔드는 그 "어떤
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어느 해 여름, 리키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바닷가 모래밭을 나란히
걸어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 리키의 무한히 행복해 하던 모습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큰 체구의 할아버지의 걸음걸이를 따라갈 수가
없어 뛰듯이 걷던 어린 리키의 해맑은 표정에서 "알 수 없는 어떤 일"이
어떻게 싹틀 수 있었단 말인가.
--우리는 이제 리키를 어느 곳으로 옮길 것인가를 의논해야만 합니다.
프래드 박사, 이것은 내 견해인게 뉴욕 병원 관할의 웨스트체스터 병원이
어떨까요?
처음에 나는 그녀의 말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뉴욕 병원..."을 중얼거리며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반사적으로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샌더스 그곳은 내 근무처요!
--프래드 박사께서는 분명히 뉴욕 병원에서 근부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파인휘트니에서죠!
그녀의 말은 정확했다. 뉴욕 병원은 산하에 두 개의 부설 병원을
거느리고 있다. 뉴욕에 있는 파인휘트니와 화이트 플레인즈에 있는
웨스트체스터가 그곳이다.
이 두 병원을 각기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다 거리상으로도 멀기
때문에 실상 내가 뉴욕 병원에서 근무한 지 15년이나 되었는데도, 나는
그곳에 두 번밖에 가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리키가 웨스트체스터에 입원하다 해도 거기서 리키가 나의
딸임을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며 심지어 내가 리키를 보러
가더라도 나를 알아볼 사람 또한 별로 없을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그곳이 엄연히 뉴욕 병원 산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파인휘트니의 정신과 전문의가 자신의 딸을 뉴욕 병원 산하의 다른
병원에 입원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가져올 문제점과 파문은 내가 우려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명예와 전통을 중히 여기는 보수적 성향의 뉴욕 병원 간부들은 나에게
새로운 선택을 강요하게 할른지도 모른다. 그들이 곧잘 들먹이는 뉴욕
병원의 명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나 또한 정신과 의사로서 진료에 생각지 못한 애로를 많이 겪게 될지도
모른다. 어린 딸 하나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의사에게 가족의 정신질환을
치료받게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샌더스 박사가 나의 결정을 기다리기 위해 침묵을 지켰다. 힐라리는 두
손을 기도하듯 모으고 창밖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내 생의 손가락 사이로 힘없이 빠져 나가는 명예와 신분이라는
이름의 모래들을 고통스럽게 바라보았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기를 내게
요구하셨던 아버지, 아버지라면 이같은 경우 무엇을 선택했을까.
"최선"으로 말하자면 머릴 샌더스야말로 모든 것을 다 기울이고 있었다.
그녀의 부드럽지만 단호한 표정은 이미 리케에게 무엇이 최선인가를
결론짓고 있었다.
나는 내게 매달렸던 수많은 환자에게, 그리고 그의 가족들에게 진실과
최선이라는 두 개의 의미를 담은 샌더스의 저렇토록 확신에 찬 태도를
얼마만큼 보여온 의사일까.
나의 결정을 기다리며 초조히 앉아 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얼마나
우유부단하고 애매한 태도로 그들의 결정을 흐리게 했을까.
긴 한숨과 함께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리키를 웨스트체스터에 보내는 데 동의합니다.
이날의 순간적인 결정이 리키를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의 수렁에 빠뜨리는
것이 되었음을 우리는 먼훗날에야 겨우 깨달았다.
5. 할아버지를 잃고 상심의 밑바닥에 있던 리키, 아빠는 그것을 떠올려
보지만...
샌더스 박사의 사무실에서 나온 후에, 힐라리는 곧 다가올 메어리의
생일을 위해 선물을 사려고 백화점으로 갔고 나는 메디슨 67번가에 있는 내
사무실로 곧장 향했다.
나는 온통 리키의 생각뿐이었다. 샌더스와의 면담을 다시 떠올려 보니,
나는 그녀에게 리키의 건강이 깨어지게 된 보다 근원적인 동기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리키는 어릴 적부터 약간 유별난 면이 있는 아이이기는
했다. 혼자 있기를 좋아 하였으며 고집스럽게 함구하는 버릇이 있었으며,
자주 아팠다.
그러나 나는 이런 피상적인 문제에서가 아니라 보다 깊은 리키의 내면의
세계에 접근했어야 했다. 리키의 내면을 꿰뚫는 사고의 흐름이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봤어야 옳다.
지난 해 6월이었다. 당시 77세였던 나의 아버지가 씨브라이트의
해변가에서 먼 수평선을 향해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아버지는 바람따라 흐르는 구름 저편으로 무심히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을 보며 사색을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사색은 아버지의 취미이자
말년의 생활 그 자체였으니까.
나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했다. 아버지는 결코 요란하지 않았으되 매우
활동적인 성격이었다. 설령 아버지의 그런 면이 힐라리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못 견디게 하는 경우가 간혹 있더라도, 여전히 아버지는 내게 있어
하나의 거울이었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특히 리키를 매우 아꼈다.
아마도 리키는 아빠와 엄마에게서 찾지 못한 어떤 특별한 감정을
할아버지의 영혼속에서 발견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에게 찾을 수
있는 깊은 정신적 일치감이 리키의 삶에 큰 피난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6월의 해변에서 내게 등을 보이며 혼자 앉아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내
일생을 통해 마지막 본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가 그토록 정신없이
바라보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로부터 정확히 이틀 뒤에 내 사무실에
요란히 울리던 아버지의 부음을 전하는 전화벨 소리와 함께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간단한 장례식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리키에게는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한
느낌을 던져준 슬픈 의식이었을까. 나는 나의 고통에만 젖어 있느라 리키의
충격을 간과하였던 것이다.
아버지의 형혼을 위한 기도 시간이 되었을 때, 리키의 고통은 절정에
달한 것 같았다. 내가 한순간 눈을 떴을 때, 리키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쏜살같이 할아버지의 관 쪽으로 달려가 뚜껑을 열고는
할아버지의 식은 뺨에 키스를 하는 것이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넋을 잃고 관을 바라보기만 하던 리키의 이 돌발적인
행동은 내게 쓰라린 아픔을 던져주었다. 그 슬픈 키스와 함께 리키는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한 할아버지의 체취와 영혼의 그림자와도 고통스럽게
결별했었으리라.
아버지의 사망 이후 나는 오랫동안 정신적 방황을 거듭하였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내게는 형제조차 없었기에 가정의 안온한 느낌을 내게
제공해 줄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었다. 소년 시절과 청년기를 아버지에
의지하며 보낸 내게 아버지라는 의미는 그렇게 각별하였다.
아버지의 사망 이후 나는 몇 달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다. 어느 새벽
불현듯 깨어나 아득히 내려앉는 감정에 떨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그 슬픔은 운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환자 진료와 코넬 대학 의학부에서의 강의, 그리고 각종
모임 등으로 해서 서서히 그 까마득하던 상실감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추수감사절이 막 지난 어느날, 나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고 싶어 슬라이드
영사기를 꺼내어 수십 장의 슬라이드를 돌려 보았다.
힐라리가 이제 겨우 슬픔을 잊을 만한 때가 되었는데 하필 지금 그런
일을 하여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리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반대했으나 어쨌든
나는 시작했다.
서재에는 아내와 리키, 그리고 존이 나에 의해 찰칵거리며 넘어가는
슬라이드 사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리키의 어린 시절, 그애가 겨울 외투 속에 자그마한 얼굴을 간신히
감추고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는 꽁꽁 얼음이 언 강을 건너고 있는 모습이
맨 처음 화면에 나타났다.
그 다음 장면은 아버지와 내가 강기슭 어느 곳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힐라리가 찍은 사진이었다.
몇 장의 사진이 지나가고, 리키가 할아버지와 함께 나무를 심는 화면이
비쳤다. 그 순간, 리키가 환희에 들떠서 소리쳤다.
--저건 메티유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나무를 심는 거였어요.
--포플러 나무였지.
내가 맞장구를 치며 리키를 돌아보았을 때, 화면 불빛에 리키의 눈동자가
물기에 젖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리키는 일어서 듯 허리를 세우고는 그
장면에 시선을 못박고 있었다.
그 다음 사진은 아버지의 집 앞에 꽉 들어찼던 크고 노란 해바라기의
장관이었다. 리키는 간혹 할아버지에게 왜 해바라기는 자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키가 자라느냐고 묻곤 해서 할아버지를 유쾌하게 웃게 하곤 했다.
때로는 탄성과 때로는 안타까움으로 수십 장의 슬라이드 사진을 다 본
후에 내가 불을 켰을 때, 리키는 의자에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화면
쪽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리키의 왼손이 다른쪽 팔을 찌를 듯이 움켜쥐고
있었다. 리키의 핏기 없는 초췌한 얼굴을 보며 내가 부드럽게 말했다.
--리키야, 이젠 네 방으로 가서 책이나 읽으렴.
그러나 리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부릅뜬 두 눈을 눈물로 가득 채우고
마치 불꺼진 화면속에서 어떤 것을 찾아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그렇게
노려보기만 하였다.
--리키, 뭐하고 있니. 어서 네 방으로 돌아가래두...
힐라리가 약간 언성을 높였다. 그런데도 리키는 그냥 그대로인 채였다.
그 순간 내가 보인 태도는 무엇이었던가. 나는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던
것이다.
--리키! 어서 일어나! 네 방으로 가지 않으면 다시는 이 사진들을 보여주지
않을 테다!
이렇게 내뱉고 나서, 나는 나의 퉁명스러움에 자못 놀랐다.
그뿐이었던가. 나는 한술 더 떠서, 리키의 작은 팔을 확 나꿔채서는 억지로
등을 밀어 서재에서 나가게 했던 것이다.
리키가 그 순간 겪었을 당혹과 두려움과 실망을 지금에 와서 생각한다면,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나서 펄커크에 가게 된 그애의 병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다.
나는 이제야 그것을 알겠다...
힐라리는 슬라이드에서 나타나는 우리 부부의 신혼 초 모습을 주의깊게
바라보는 눈치였다.
결혼한 지 2년이 지났을 때, 나는 모든 면에서 매우 침체되어 있었다.
나는 벨레비유 병원 내과 병동에서 사흘 중 이틀은 야근을 하며 대단히
혹독한 인턴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계속되는 호출과 밀어닥치는 응급환자,
레지던트들의 가혹한 명령에 속수무책 허둥대면서 나는 메마르고
고통스러운 스물다섯 살을 보낸 것이었다.
나의 침체는 당연히 아내에게 옮아갔다. 사정이야 어떻든 나는 가정에
보다 충실해야만 했다. 그러나 나의 상태는 파인휘트니 병원에서
정신병학을 교육받게 된 스물여섯 살의 후반기까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음으로써 계속 아내를 낙심시켰다.
여기다 아내와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치 못했다. 힐라리는 적어도
그녀에게는 숨막히는 듯한 아버지의 침묵에 몹시 못 견뎌 하였다. 그러다가
입을 열면, 거리낌없이 한마디 내뱉는 아버지의 태도가 그녀를 매우 겁먹게
한 것이 분명했다.
물론 아내가 아버지를 향한 나의 존경심과 리키와 할아버지의 돈독한
관계를 깊이 인식한 것은 사실이었다. 또한 시아버지의 자신에 대한 사랑도
그에 못지 않음을 힐라리가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판이한 성격의 두 사람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도 하기 전에
힐라리는 너무 일찍 지쳐 버렸다.
파인휘트니에서의 근무가 내게 새로운 생활 기반을 제공해 주자 우리
가정은 점차 활기를 띠어가는 듯했으나 그마저도 밑바닥까지 내려간
힐라리의 마음을 회복시켜 놓기에는 부족한 것이었다. 아내는 이미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 실망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자주 화가 났다. 그녀의 나에 대한 무관심에 화가 났으며, 아버지에
대한 경원도 나는 분노케 했다. 따라서 우리의 부부 생활은 잦은 마찰과
그만큼의 화해와 보이지 않는 갈등과 애써 감추는 분노의 연속이었다.
예민한 리키에게 이것이 간과될 리가 없었을 것이다. 두려움에 찬 눈으로
우리가 언쟁하고 있는 곳을 기웃거리던 어린 시절의 리키를 나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존과 메어리, 심지어 메티유까지도 할아버지에
관한 질문을 했으나 리키만은 거의 언급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누구를 제일 많이 사랑했을까?
--아빠, 할아버지의 집과 보트들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엄마, 할아버지는 지금 어디서 살고 계실까요?
아이들이 할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얘기를 하면, 리키는 넋이 나간 얼얼한
얼굴로 변해서는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이었다.
오직 한번, 어느날 내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서재의 소파에 누워 음악을
듣고 있는데 리키가 들어와서는 내 옆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빠,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요... 몹시 보고 싶어요...
나는 리키의 작은 손을 꼭 쥐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리키의
눈망울에 번져 있는 그 커다란 공허의 그림자에 나는 눈을 뜨기 어려웠다.
--리키야, 나도 그렇단다...
이 단순한 말이 리키의 갈증을 해결하지 못했음은 명백하다. 그런데도
나는 리키를 위한 보다 따뜻한 한마디도 더 덧붙이지 못했다.
내 가슴에 회색빛 앙금으로 남은 수많은 기억의 가닥을 하나하나 짚어
나가다 보면, 리키에게는 그 끝에 언제나 같은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리키에게는 거의 유일한 친구이자 보호자였으며 희망이자 살아
있다는 것의 기쁨이었다. 그런데 그가 어느날 갑자기 죽었다. 한 마디 말도
없이, 매정하게.
나는 왜 이런 점을 좀더 소상하게 샌더스 박사에게 설명 못했을까. 나는
리키의 입원 이후 눈에 띄게 허둥대는 나 자신을 책망하며, 즉시
샌더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녀는 자리에 있었다.
나의 흥분에 찬 설명을 다 듣고난 샌더스의 반응은, 그러나 의외로
간단했고 덤덤했다.
--알겠습니다. 참고로 하죠.
내게는 냉담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샌더스의 음성을 전화기에 묻어
두면서, 나는 불현듯 떠오르는 또다른 불길한 생각에 몸을 떨었다.
그것은 리키의 병에 관한 원인이 따로 있으나 샌더스가 아직 내게는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예감, 바로 그것이었다.
오늘 샌더스의 사무실을 나오려 할 때, 그녀가 우리에게 지나는 말처럼
해주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리키를 만나더라도 너무 놀라지는 마십시오. 사실은 그애가 펄커크에
입원하던 첫날, 좀 거칠게 행동하다가 제 손으로 유리창을 깨어
다쳤거든요. 그다지 심한 상처는 아니에요. 피를 흘렸을 뿐, 곧 치료가
되었습니다.
거칠고 난폭한 행동. 리키가 입원하면서 보이고 있다는 이러한 행동은
전에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슬픈 일이지만 이것은 샌더스
박사가 말한 바 그대로 리키에게서 자기 방어력이 소멸되었다는 구체적인
증거인 것이다.
나는 이 기막힌 현실이 두렵기만 하여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았다.
그러나 나의 기도를 들어주기에는 하나님이 너무나 멀리 있다는 느낌만 들
뿐이었다.
6. 리키의 회상(2): 언제나 사랑을 갈구했으나 또 언제나 그렇게 사랑에
목말랐던...
꿈을 꾼 것 같다. 아빠와 드라이브를 하였으나 나는 별로 즐거운 기분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가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차는 오랫동안 낯선 도로를
달려 이곳에 도착, 얼떨떨한 기분의 나를 팽개치듯 내려 놓았다.
차 속에서는 아빠가 내내 내 손을 잡고 있었으나 나는 별로 따뜻함을 못
느꼈다. 내 손이 지나치게 차기 때문이었을까.
아빠는 별로 말이 없었다. 실은 나도 아빠가 나에 대해 뭘 물어오는 걸
두려워 했었다.
아빠와의 짧은 이별 뒤에, 나는 알 수 없는 어떤 여자에 이끌려 유리벽이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처음 그 방에 들아갔을 때의 내 느낌은
"춥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집에서 입던 겨울 외투를 그대로 입고
있었는데도 그 방은 내게 지나치게 추웠다.
--자, 침대에 오르거라.
꿈속의 그 여자가 내게 말했으므로 나는 순순히 침대에 올랐다. 침대에
누워 유리벽 저쪽을 보니 몇 사람이 나의 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들이
손을 흔들며 내게 웃음을 지어 보였으나 나는 좀체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나는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잠을 자면서도 나는 춥다는
느낌과 함께 우울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우울하게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 방은 작은 캐비닛과 침대가 있는 것 말고는 온통 회색의 벽이다. 작은
방인데도 내게는 왜 이렇게 텅 비어 있는 느낌이 들까.
침대 반대편에는 방에 비해 지나치게 큰 창이 있다. 그러나 튼튼한
철망이 온통 창문을 덮고 있어서 밖은 흡사 망사로 된 천을 뒤집어쓰고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긴 잠에서 깨어나 그 창가에 서 있는데, 간호원이 들어와 맥박을 재었다.
--리키, 나는 쥬디라고 한단다. 앞으로 나하고 친하게 지내자.
그녀가 친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나는 웃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겠니?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 일일이 대꾸하기에는 붕대로
묶인 내 팔이 너무 아팠다.
--이곳은 펄커크가 아니란다. 알지?
이렇게 말하면서 쥬디가 내게 환자복을 꺼내 갈아 입으라고 말했다. 나는
말없이 푸른 색 체크 무늬가 있는 환자복으로 갈아 입었다.
저, 아빠를 만나고 싶은데요. 이렇게 말하고 싶어 입을 벌려 보았으나
웬일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입안에 가득했던 침이 흘러나왔다.
쥬디가 내 턱을 적시는 침을 닦아주며 싱긋 웃었다.
--방 안에만 있지 말고 복도나 휴게실에 나가서 놀아도 돼. 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야.
나는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쥬디가 나간 후에 나는 창가로 걸어갔다.
오후인지 오전인지 분간이 되지는 않았으나 날씨는 제법 화창했다.
창밖은 곧바로 숲이었다. 나는 문을 열어 숲으로부터의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창문을 열려고 했으나 그것은 열리지
않았다.
철망은 첫눈에 보아도 참 튼튼해 보였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튼튼한
철망이 필요했을까.
학교에도 이런 종류의 철망이 있었다. 철망을 볼 때마다 나는 참 기이한
생각이 든다. 그렇게 간단히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 놓을 수 있는 벽이
또 있을까. 왜 어른들은 애써 이런 벽을 만들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단절시키려 하는 것일까.
나는 쥬디의 권유대로 밖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내 방과 똑같이 생긴 몇
개의 방을 지나자 커다란 홀이 나왔다. 거긴 휴게실이었다. 엷은
초록색으로 칠해진 벽이 아까 창을 통해 보았던 숲을 연상시켰다.
10여 명의 여자들이 비닐로 덮인 의자에 앉아 TV의 옛날 영화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 여자들은 대개 5,60대의 부인들로 내 나이 또래들은
찾을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적잖이 실망감을 느꼈다.
뒷자석에 앉아 한동안 무료하게 TV를 보고 있는데 언제 왔는지 어떤
부인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너 처음 보는 아이구나.
그 부인은 내게 이렇게 말을 하고는 씩 웃으면서 내게 담배를 권했다.
처음엔 싫다고 했지만 계속 권했으므로 나는 억지로 그것을 받아 빨아
보았다.
훅 하고 현기증이 삽시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목이 갑자기 콱 막히는 것
같아서 기침을 하는데 그 부인이 소리내어 웃었다.
--한번 더 해봐, 그러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구!
나는 용기를 내었다. 야릇한 고통이 전신을 흔들어대는 느낌이었다.
이상한 것은 웬일인지 그 고통을 오래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담배를 피웠다. 갑자기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낯선 곳에서의 첫날밤은 비교적 편안한 잠이었다. 내가 입고 있는 건
질기고 튼튼한 옷인데 이런 투박한 느낌만 아니라면 나의 잠자리는 훨씬 더
안락했을지도 모른다.
질기고 튼튼한 옷, 튼튼한 철망으로 뒤덮인 창문, 나는 누운 채 이것들을
새삼스럽게 살펴보았다. 열리지 않는 창문과 더불어 그것들은 내 몸을 꽉
조이는, 내 체구에 비해 자나치게 작은 외투 같아 보였다.
그러다가 나는 베갯잇이 젖는 것을 보고 내가 지난 밤 잠을 자다가 혹시
운 게 아닌가 생각하였다. 아니면 땀을 몹시 흘린 것일까.
그날 오전에 나는 쥬디와 함께 필립스 선생에게로 갔다. 그가 나의
주치의가 될 예정이라고 쥬디가 사전에 설명해주었다.
그는 내게 많은 질문을 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가 물어 보는 것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답을 찾느라 오히려 한 가지도 제대로 답하지 못하였다.
면담을 마치고 그의 사무실을 나오면서 나는 횡설수설한 나의 답변에서
그가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몹시 불안하기만 했다.
--너는 언제 어떻게 네가 아프다는 걸 알았지?
이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하나의 변명 같은 것이었다. 나의 변명을
필립스 선생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참으로 궁색하게
나의 과거를 털어 놓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자주 질병에 의해서가 아니라 병이 들고 싶었던 내
마음에 의해 앓아 눕곤 했었다. 왜 자꾸만 그런 생각이 났을까. 죄책감과
호기심이 뒤얽힌 안개 속 같이 몽롱한 의식, 나는 끊임없이 질병을
갈구해왔다.
어린 시절 어느 때, 나는 길가를 달려가다가 발을 헛딛어 넘어지는
바람에 이미를 콘크리트 바닥에 세게 부딪쳤다. 피가 흐르는 것도 잊고
내가 맨 처음 떠올린 생각은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될 절호의 기회라
여긴 것이었다. 그때 우리 집엔 남동생 존이 막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여덟 살 때던가. 나는 낮잠을 자다가 벌떡 일어나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엄마, 갑자기 모든 게 두 개로 보여.
엄마는 즉시 체온계를 내 입안에 넣더니, 그 결과를 보고 매우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의 병은 신장염이었다.
병원 생활은 내게 편안과 불안의 상반된 두 가지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지는 것만은 사실이었으나 그
편안함 뒤로 이런 생활이 부모님으로 하여금 내게서 영영 멀어지게 만드는
계기를 주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던 것이다.
신장염이 회복되어 가면서, 나의 성격은 나도 모르게 난폭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나 자신을 억제하기가 힘들었다.
간호원이나 의사들이 나를 기피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의
쾌감이었다. 나의 난폭성은 그래서 날이 갈수록 더해갔는지도 모른다.
어느날 밤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똑바로 서 있다가 그대로 바닥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때 나는 새처럼 날고 싶다는 느낌과 함께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바닥에서 나를 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눈에 나를 부르는 그 무엇인가의 손짓이 보였는지도 모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르는데도 나는 신들린
것처럼 계속 침대에 올라 바닥에 몸을 던졌다.
--이 말썽쟁이! 피를 닦아 주지 않을 테니 어디 그대로 견뎌봐!
간호원이 매섭게 소리쳤으나 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의 상처보다 나를 더 아프게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도 나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성장하면서, 나는 늘 외톨이였다. 나는 늘 혼자였으며, 그것이 좋았다.
학교에 가서도 아픈 척하며 조퇴를 하고는 집에 돌아와 내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몽상은 나를 즐겁게 하였다. 나는 나 혼자만의 깊은 몽상의 늪에 항상
빠져 있었고, 그런 때 비로소 행복을 느꼈다.
사람이란 성장하면서, 한두 번쯤 어린 시절로 회귀하고픈 심리를
갖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더이상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았거나 내 동생들처럼 부모의 시중을 받으면서
유년기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존이 태어났을 때 나는 그에게 심한 질투를 느꼈다. 존은 나의 영토를
침범한 아이였다. 어느날 나는 유모차에 있는 그애의 넙적다리를 몰래
꼬집기도 했다.
이런 짓을 저지르고 나면 나는 몹시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마도 내
가슴속에는 태어났을 때부터 뿌려진 악의 씨가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때때로 나는 그런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의 아픈 척하는 버릇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 살 때까지 장이 대단히 좋지 않았던 메어리는 가족들의 각별한 관심과
간호를 받으며 자라나야 했다. 아기들이 흔히 먹는 음식물조차도 메어리는
무척 고생을 하며 섭취해야 했기에, 그애에겐 무엇이든지 최고급품이
필요했다.
그런 메어리를 나만은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메어리가 왕궁의 공주가
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
나는 자주 입 안에 뜨거운 물을 물고 있다가 재빨리 온도계를 입에
꽂고는 엄마에게 보여주며 몹시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엄마는
말한다.
--안 되겠구나. 오늘은 학교에 가지 말고 집에서 푹 쉬거라.
그렇게 하여 내 방에 들어가 있으면, 이런 식으로 엄마를 바보로
만든다는 건 언젠가 마땅한 죄값을 치러야 될 범죄라는 생각이 다시 나를
괴롭혔다.
한 번은 메어리가 결막염에 걸렸다. 나는 그애의 침대에 기어 들어가
메어리의 아픈 눈에 생긴 이물질을 내 눈에 대고 문질러 대었다. 다음날 내
눈에는 믿든 안 믿든 그애의 병이 옮아붙었다.
메어리가 음식물을 토하며 심한 고열에 시달리면, 나는 그애의 침대로
들어가 깊이깊이 숨을 들이마셔 메어리가 갖고 있는 병균을 훔쳐냈다. 그
다음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앓았던 것이다.
나중에서야 나는 학교에서의 신체검사에서 내게 질병 감염에 아주 예민한
전염성 단핵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필립스 선생과 마주앉아 지나간 날들을 조용히 회상해 볼 때, 나는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다.
아마도 내가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내 마음속의 비밀을 털어 놓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런 고백을 가능케
했을까.
필립스 선생은 내가 말하는 동안, 내내 침묵을 지키고만 있었다. 그
침묵만으로도 나는 참 평화로웠다. 내 말이 끝나자 필립스 선생이 물었다.
--리키, 너는 네 마음속에 올바르지 못한 것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그리고
그것이 괴롭니?
나는 대담하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내 의식의 갈피 속에 숨어 있는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내게
말했다.
"리키, 네가 그것을 인정한다는 건, 곧 네 스스로 너를 정신이상자로
인정하는 것이 되는 거야."
나는 다시 침묵하기로 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너무 많은 말을 한 것이
조금 후회되었다.
쥬디와 함께 긴 복도를 지나 내 방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갑자기 내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공허감, 그 끝없는.
갑자기 춥다는 느낌이 들어 나는 침대에 올랐고, 즉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펄커크에서와 마찬가지로 입원 이래 나는 계속해서
그렇게 잠이 쏟아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몰랐다.
제 3 장 그 먼 날의 기억
7. 리키를 병원에 보내고 절망에 빠지며 아픈 자책감에 방황하는 아빠...
리키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것은 너무 민감한 결정이 아니었을까.
3월 7일의 갑작스런 사태 이후,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 선택만이 리키를 위한 최선의 방법일 수밖에 없었을까. 이 선택이
리키를 더 빨리 더 나쁜 방향으로 몰고 가는 건 아닐까. 나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얼마나 많은 환자들을 얼마나 잦은 안이한 판단 아래
그들을 정신병원이라는 암담한 틀 속에 가둬왔을까.
지난 해만 하더라도 나는 50여 명의 사람들을 파인휘트니 병원에
입원시킨 바 있다.
물론 그중 어떤 사람들은 하루하루의 삶에 대처하기가 불가능한
환자들이었고, 또 어떤 이는 세상에 대해 불만과 적의를 가지고 있어서
그대로는 도저히 사회의 한구석을 치지할 수 없는 사람도 있기는 했었다.
또 몇몇 사람은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정신병자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나의 결정이 순간순간 정당했으며 합리적이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지금의 나의 대답은 솔직히 확고하지 못하다.
많은 정신과 의사들은 신경정신과 환자들에게 있어서는 입원만이 가장
획기적인 무엇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 믿고 있으며 이 점 나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환자의 상태를 보다 면밀히 주시하기 위해서는 보다 밀착된 접근이
필요하고, 더구나 타인에게 위험을 줄 가능성이 현저한 환자에게 안전한
격리 장소를 제공한다는 것은 사회 통념상으로도 합리적이라는 것이
의사들의 공통된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정신병원에 누군가를 입원시킨 한 사람의 환자 가족이 되어
생각해 보니 이런 고정관념이 얼마나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가를
아프게 느끼게 된다.
그렇다. 나는 너무나 쉽게 그들에게 입원을 명령했으며, 가족들에게는
영원히 씻지 못할 또다른 상처를 안겨주었다. 지금의 내가 받고 있는
상처보다 몇 십 배 더 가혹한 고통의 형벌이 그들에게 있었을 것임을
이제야 나는 알겠다.
나는 뉴저지 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생활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장했다.
미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빵과 스프를 배급받기 위해 주 정부의 사회보장국 건물 앞에 줄을 서고
있던 그 시절에, 나는 가정부와 정원사가 고용된 집에서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구김살없이 자라났다.
아버지가 뉴저지 해변가 휴양지에 마련한 아담한 별장은 나의 어린 시절
여름을 온통 바닷가에서 보낸 유쾌한 추억으로 가득하게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핍에 허덕일 때, 나는 그들의 따가운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마치 선택받은 사람처럼 뉴저지 주 안에서 손꼽히는 명문인
카톨릭 예수회부설 학교에 들어갔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고난으로부터 뚝 떨어진 한 사람의 이방인이었으며,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사회의 고통으로부터 면제받은 귀족에
다름아닌 생활을 즐겼던 것이 사실이다.
힐라리와의 만남은 나의 자존심을 한껏 부풀리게 한 또다른 화려한
선택이었다.
우리는 내가 아직 의과 대학생이었을 때, 뉴욕의 어느 종교 모임에서
만났다. 그녀는 아일랜드계 카톨릭 가문에서 태어난 이지적이고 아름다운
처녀로 우리 모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여성 중의 하나였다.
2년 가까이 계속된 우리의 교제는 너무나 티없고 행복했던 순간순간들로
이어졌다. 우리는 서로 깊이 신뢰했으며 삶의 가치와 목표에 대한 공통의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 했다.
더구나 카톨릭 신앙이라는 특별한 유대가 밑바닥에 깔린 우리의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각자 인생의 가장 훌륭한 선물이라는 느낌을 갖게끔 하기에
충분하였다.
나는 지금도 힐라리의 반짝이는 두 눈과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던 그녀의
맑은 비음이 섞인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무의미한 약속 같은 건 존재할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는 꿈과
소망과 사랑만이 있었으며 모든 것은 여기에 관련되어 행복한 기대감으로
가득했었다.
우리가 나의 옛 은사이며 성작자이신 베이커 신부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힐라리와 나만큼 훌륭하게 서로에게 어울리는
짝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우리의 결혼식은 일종의 축제 같은 것이었다. 일찍 아내를 잃고 나만을
위해 일생을 보내다시피 하신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뉴저지 주의 작은 마을
전체를 거대한 결혼식장으로 만들어 놓고는 마을 사람들에게 한 잔 톡톡히
내었던 것이다.
과묵하시던 아버지의 이러한 배려야말로 뜻밖이었으며, 또 그만큼 우리를
황홀한 경악에 빠뜨리게 하였었다.
물론 우리가 함께 살아가면서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사랑의 첫번째 결실인 리키가 그런 문제들 중의 하나였다.
리키는 한마디로 손쉬운 아이가 아니었다. 예민한 신경의 소유자임을
일찍부터 부모에게 내보인 리키는 우리가 그것을 사랑으로 너그러이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게 만들었다.
리키는 비교적 자주 아팠으며, 그것도 아주 심하게 앓았다. 아기를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젊은 엄마였던 힐라리는 갑자기 심각한 상태로
빠져드는 리키의 불덩어리 같은 몸을 안고 눈물만 펑펑 쏟기도 했다.
리키가 세 살일 때, 힐라리는 뜻밖의 유산으로 아기를 잃었다. 2년 뒤에
우리가 특별한 기쁨으로 존의 탄생을 지켜보기까지 그녀의 상심은 컸다.
카톨릭 신앙이 아니었다면 힐라리를 재탱시키기 어려웠을 만큼 그녀의
좌절은 컸었다.
존의 탄생으로 힐라리는 좌절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났으나, 이번에는
소아과 의사가 존의 심장 판막에 약간의 이상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또다른
불안에 떨어야 했다.
몇 달 후에 그것이 제 스스로 아물었다는 의사의 조언이 있었을 때에야
비로소 힐라리의 입가엔 미소가 감돌았으며 우리는 더큰 기쁨으로 존을
대하였다.
유달리 특별하게 리키가 소외감을 갖지 않도록 신경을 쓴 적은 없으나,
그렇다고 리키를 소홀히 대한 적도 별로 없을 만큼 힐라리와 나는
아이들에게 각별했다고 생각한다.
메어리와 메티우의 탄생이 이어진 4, 5년 동안이 아마도 우리 가정의
가장 행복하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메티유를 산부인과 병원에서 데리고
올 때는 검정색 대형 리무진을 타고 그해 초에 새로 구입한 77번가의 방이
다섯 개나 되는 아파트로 자랑스럽게 돌아올 정도로 우리는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었다.
아버지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몇 달 동안 우리 부부 사이가 최대로
어려운 때였지 않나 싶다. 이상하게도 어느날 부터인가 우리는 각자의
생각이 상대방의 생각과 현격한 거리를 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의견의 충돌이 잦아졌다. 사소한 문제에도 우리는 생전 처음 만난 사람을
대하듯 생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언쟁을 하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서로에 대한 착각이 우리 부부 사이의 최대의
약점이었다. 힐라리와 나는 가정과 가족에 대한 헌신의 책임을 똑같이
공유하고는 있었으나 진정한 영혼의 목소리로 서로의 가슴을 적시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부부의 불행은 보다 일찍 그것을 의식하거나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에 있었다. 우리는 결국 너무나 다른 생각과 너무나 거리가 먼 이상을
가슴속 깊이 간직한 채 그것이 무엇이며 그로 인해 올 결과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몇 가지의 공통점과 종교적 믿음만으로 지내왔다.
만약 종교적 유대감이 없었다면 우리는 보다 일찍 그런 결함을
발견했을는지도 모른다. 결국 신앙이 우리의 서로에 대한 착각을 수면
이하로 가라앉게 했던 셈이다. 그러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우리의 착각은 물 밖으로 나왔던 것이다. 힐라리도 나도
그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어린 시절에 나는 칼끝처럼 차가운 겨울 새벽에 집을 나와 라틴어를
배우기 위해 성당으로 갔으며 진정한 크리스챤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신부님의 충고를 들으며 복사로 봉사하기도 했다.
성장하면서 나는 나의 돈독한 신앙을 통해 힘과 용기로 삶의 방향 감각을
얻곤 했는데, 이것이 할라리에게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을 성싶다.
그러나 물 밖으로 나와 현실을 보다 냉정히 바라볼 때, 내가 느끼는
행복과 자존심, 그릭 힘과 용기는 신앙심에 의해 조금은 과장된 것임을
알았고 이런 과장된 제스츄어가 우리의 부부 관계에도 어느 정도 개입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정신과 의사가 되기까지에는 내 나름의 많은 고민이 뒤따랐다. 그때
나는 카톨릭 예수회의 요양소로 가서 며칠 동안 홀로 지내며 묵상과 기도로
보내면서 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빌었다.
그것이 끝났을 때, 나는 정신과 의사야말로 내가 나 자신에게 가장
올바르게 요구할 수 있는 나의 천직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가 있었다.
체니 다이델 교수는 내가 파인휘트니 병원에서 정신병학 수련을 신청했을
때 내게 이렇게 물었다.
--자네의 신앙이 그것을 쉽게 용인하던가?
나는 질문에 심한 저항감을 느끼며 단호하게 답변했었다.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파인휘트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있던 체니
교수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생활이 나에게 견디기 힘든 매우 난처한
문제들을 자주 강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으나 나의 신념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때 내게 정신과 의사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체니 교수의 말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뜻밖의 사태에 봉착하게 되지. 환자들의 고통이
뜻밖의 방법으로 분출되는가 하면, 교과서에 나와 있지 않은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그들을 가라앉게 만들 수도 있네. 자네가 갖고 있는 지금의 그
신념은 그런 의미에서 언제든 도전받게 되고, 또 언제든 좌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라네.
나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다. 나는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이 없었으며 시시때때로 보람에 몸을 떨며 이 일에 몰두하였다.
물론 정신과 의사란 화려한 직업은 아니었다. 그것은 피폐하고 척박한
가슴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힘든 작업의 연속이었다. 그것은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와의 피나는 싸움이었으며 언제나 긴장된 관찰이
요구되는 싸움이기도 했다.
나는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나는 나의 선택이 옳았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으며, 그럴 때 가장 큰 기쁨을 맛보곤 하였다.
그런 한편으로 나는 사생활을 지키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나는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즉시 문을 닫고 나 개인의 세계로
들어갔다.
집에서건 다른 모임에서건 나는 내 직업과 그것에 관련된 일에 대해 결코
말한적이 없었다. 심지어 나의 친구 중에는 내가 무엇을 전공하는 의사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정신과 의사가 되고 나서도 오랫동안 아버지는 나의 진로 선택을
탐탁치 않게 여기셨다. 정신과 의사가 다른 의사들보다 좌절하기 쉽다는
아버지의 견해는 사실 그다지 틀린 것은 아니었다.
힐라리 역시 한동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심장
전공의 외과 의사가 되기를 희망해오다가 예기치 않게도 정신과 의사가
되자 몹시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힐라리의 생각은 점차 바뀌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때, 그녀는 내게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자필 서명이 인쇄된
초상화 판넬을 선물로 주었었다. 이 선물은 지금도 내 사무실 벽에 걸려
있다.
수련기간을 끝내고 다시 3년을 보낸 후에 정신요법에 있어서의
약물치료법에 관한 나의 논문이 책으로 출간되자 힐라리의 어머니는 몇 달
동안이나 이 사실을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마다 자랑하곤 하였다.
나의 논문은 당시 학계에 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아직도
정신의학계에서는 심리요법이나 물리요법이 주류를 이루던 그 시기에 항
진정제 투여를 주제로 하는 나의 연구 발표는 하나의 획기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파인휘트니에서 나는 그동안 내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역량있는 의사라는
평가를 받으며 점차 명성을 얻어갔다.
어린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궁핍을 겪고 있을 때 그런 고통으로부터
면제되었다는 느낌으로 생활했던 내게, 또한 그런 의식이 삼십대 초반에
아직도 강하게 뿌리내렸던 내게, 그런 명성은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물론 이따금씩 나는 나의 직업적 긍지를 송두리째 흔들어대는 폭풍우를
만나 고통을 받기도 했다.
어느 해던가. 나는 다이안이란 한 젊은 여인을 치료한 적이 있었다.
23세의 그녀는 부드러운 음성과 우수에 젖은 큰 눈을 가진 미모의
여성이었다.
비록 그녀의 행동에는 무력감과 불합리성에 의해 자주 혼란스러움이
따르곤 했으나 전체적으로 그녀는 지적이고 침착했으며 품위를 잃지 않고
있었다.
나는 왜 그녀가 정신병원에 들어왔는지 이해 못할 때가 많았다. 더구나
선배 의사들이 그녀가 결코 회복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심한 당혹감을 느꼈다.
아침마다의 의료진 회합에서, 어느날 체니 교수는 심각하게 말했었다.
--다이안의 경우처럼 특별한 징후 없이 착 가라앉은 환자보다 차라리
시끄럽고 난폭한 환자가 치료하기는 더 쉬운 법이오. 일찍이 정신병학의
권위자이신 블로일러 박사는, 다이안 같은 정신과 환자는 갑자기
환각상태에 빠져들거나 환청에 스스로 놀라 심한 발작 증세를 보이는가
하면 격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어 다른 환자들보다 더욱 전망이 어렵게
되는 법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내 경험으로 보아 이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다이안은 내가 길을 가다가 흔히 만날 수 있는 젊은 여인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런 다이안이 치유 불가능한 정신병을 앓고 있다니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체니 박사를 포함한 선배 의사들의 견해를 묵살하고는 내
나름대로의 스케줄에 따라 참으로 열심히 그녀를 보살폈다. 나는 선배
의사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치기어린 신념 아래 다이안을
정상인으로 만들기 위한 나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내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그녀가 체니 박사의 예상대로 더욱 심각한
상태로 빠져들어 보다 종합적인 검진을 받기 위해 국립병원으로 옮겨 갔을
때 나는 그녀를 내 마음에서 떠나 보내려고 무진 애를 써야만 되었다.
50세의 중소기업 경영자인 막스 슈라이벤의 경우는 더욱 처참하였다.
나를 만나기 직전까지 그는 그의 전 삶에 깊숙이 침투한 우울증 때문에
그야말로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 마자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하며, 모든 사람이 자기를
얼마나 사악하고 파괴적인 존재로 취급하는지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악마에게 사로잡혀야 하는 영원한 형벌을 받았소!
막스 슈라이벤은 내가 미처 그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악마의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인 입원 보름 만에 병원 옥상에서 지상으로 몸을 던졌다.
그때 내가 받은 충격과 참담한 심경은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난다 해도
영구히 내 가슴에서 씻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몇 번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나의 직업적 신념은 튼튼히
뿌리내린 나의 인생관에 의해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체니 교수를 비롯한 많은 선배들로부터 배운 진단과 치료의 논리적
체계와 나의 흰 가운은 나를 한 사람의 확고한 정신과 의사로 파인휘트니
병원에 서게 하였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도 조심스럽게 구축해온 기둥들이 여지없이 파괴될
조짐 앞에 지금 나는 직면해 있는 것이다.
1 리키가 떠난 후, 몇 주일 동안 나는 밤마다 침대 곁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차가운 4월의 새벽길을 미사를 드리러 가기 위해 마다하지
않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이 리키의 병을 위해 무슨 유익을 가져다 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내가 그토록 굳건히 믿어온 신앙에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그것을 중단해 버렸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 버린 리키를 생각한다면, 나는 내 인생
전체를 지배해온 하나님에게 철저히 철저히 배신당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실상 하나님 말고는 내 인생을 통털어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달리 없었다.
나는 밤이면 침대 속으로 들어가 아내가 잠들었는지 살펴보고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 쓴 채 하나님에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제가 계속해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end`
`end`
8. 리키가 유일한 친구였던 크리스티나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에는...
보고 싶은 크리스티나에게.
어떻게 지내고 있니? 너를 본 지도 벌써 한 달이 훨씬 넘었구나.
나는 잘 지내고 있어.
한 달 정도 후면 집에 돌아갈 수 있고 학교에도 갈 수 있게 될 거야.
나는 이번 토요일쯤에 어쩌면 엄마와 아빠를 만나게 될지도 몰라. 나는
그분들이 너무나 보고 싶어.
이토록이나 오래 떨어져서 그분들을 생각하자니, 나는 눈물이 나와 견딜
수가 없어.
크리스티나. 너는 부모님과 언제든 함께 지낼 수 있으니 참으로 네가
부럽구나.
오늘 또다시 나는 필립스 선생을 만났단다. 그분은 나의 주치의로 파이프
담배를 무척 즐기는 의사 선생님이셔. 나는 그의 사무실에서 나는 은은한
알코올 냄새와 파이프 담배 냄새가 무척 마음에 들어.
그분은 영화배우 스티브 알렌을 닮았어. 정말이야, 너도 그분을 보면 내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거야.
처음에 내가 그분을 만났을 때, 그는 내게 한꺼번에 무척이나 많은
질문을 던졌었어. 그렇지만 나는 별로 대답하지 않았어.
하지만 오늘은 그 반대였어. 내가 많은 이야기를 하고, 그분은 되도록 내
말을 듣겠다는 듯이 침묵을 지켜주었어.
나는 내가 병원에 있는 것이 참 편하고 모든 사람들이 내게 정말로 잘
대해준다고 그에게 말했어.
그러다가 나는 사람들이 내가 더욱 미치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고
말했어. 나는 내가 상처받아 왔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그에게 고백했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그가 물었을 때, 나는 대답 대신 울기 시작했어.
하지만 난 곧 그쳤어. 계속 울었다가는 어쩌면 다시는 여기서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야.
나는 필립스 선생에게 말했어. 나의 정신병은 어쩌면 아빠가 병원에서
가져와 내게 준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랬더니 그가 내게 내 스스로 나를 정신병에 걸렸다고 믿게끔 만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어.
간호원들이 나에 대해 소근대는 것을 들었다고 말하면서 내가 "그것이
정말일까요"하고 묻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웃지도
않았어.
그 표정을 통해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
내가 언제 엄마와 아빠를 만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내가 준비되어
있을 때라고 잘라 말했어.
그의 말에 의하면, 내가 아직은 엄마 아빠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뜻인데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정녕 알 수가 없어.
그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물었어. 학교
생활에 대해, 나의 유일한 친구인 너에 대해, 그리고 나의 가족에 대해...
이윽고 그가 할아버지에 관해 물었을 때, 나는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어.
할아버지에 관해서는 단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눈물나게 한다고 털어
놓았더니 그는 잠시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어.
그가 내게 나의 부모님이 날 어떻게 대해왔는지 물었는데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냥 입을 다물었어.
크리스티나.
나는 네가 몹시 보고 싶어. 너와 함께 했던 많은 나날들이 간절한 추억이
되어 나를 슬프게 해.
이 편지를 너에게 부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껴.
어너제 다시 너와 나란히 길을 걸을 수 있게 될까.
여기서 벗어난 곳이라면 그 어디든지 너와 함께 걷고 싶은 내 마음을
너는 알까...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며.
1966년 4월
리키가.
9. 또다시 제기되는 전혀 다른 불행의 가능성에 아빠와 엄마의 절망은
더욱...
웨스트체스터로 향하는 빗길을 힐라리와 나는 한마디 말도 없이 달렸다.
자동차의 와이퍼를 최대한으로 돌려 놓았는데도 나의 시야는 쏟아지는 비
때문에 온통 부옇게 흐려 있었다.
힐라리는 때로 가벼운 한숨을 토해내며 창 너머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에 눈길을 주고만 있었다.
새벽부터 계속 내리는 비가 우리의 가슴까지 모두 적셨기 때문인지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 짙은 우수가 깔려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더 좋았다.
쏟아져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침묵을 지키기에는 더없이 좋은
구실이 되어 주었다.
리키가 웨스트체스터 병원에 가 있은 지 열흘째 되던 날, 리키의
상담역으로 있는 자원봉사자 제퍼스 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돌아오는
토요일에 웨스트체스터에 와달라는 이야기였다.
제퍼스 부인은 자신이 필립스 선생을 도와 웨스트체스터에 입원한 몇
명의 환자를 보살피고 있다고 덧붙이면서 리키도 자기가 맡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우리가 리키를 만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을까요? 의사들이 허락했나요?
나의 질문에 제퍼스는 다소 억양이 없는 메마른 음성으로 대답하였다.
--리키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끼리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오시라는
겁니다.
리키를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감이 일순간 사라졌으나 어쨌든 좋았다.
힐라리의 느낌은 어쨌는지 모르지만, 나는 목요일부터 이미 잠을 못 이루며
필립스 선생을 만나면 나누게 될 이야기를 머리에 그리고는 하였던 것이다.
적어도 열흘 이상 리키를 관찰해온 필립스 선생으로부터 리키에 관련된
문제들을 어느 정도는 듣게 되지 않을까. 그 문제의 해답을 찾는 데 있어,
내가 어느 정도는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제가 제퍼스입니다.
그녀는 우리가 사납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간신히 피하며 웨스트체스터의
로비로 들어서자, 곧 우리를 알아보고는 달려와 인사를 하였다. 전화의
음성보다는 꽤 젊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40대 후반의 여인다운 잔잔한
여유가 그녀의 약간은 비대한 체구에서 물씬 풍긴다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곧 병원 지하의 휴게실로 안내되었다. 그곳은 예상밖으로 컸다.
드문드문 앉아 있는 몇 명의 환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썰렁함이 그 방의
공허감을 더욱 짙게 하는 듯했다.
전에 나는 이 병원에 두 번 정도 와 본 적이 있으나 그것도 모두 한 시간
내외의 공적인 방문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대한 특별한 인상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 사랑하는 딸을 입원시킨 보호자의 한 사람으로 와 보니,
웨스트체스터 병원의 지나치게 큰 규모와 그에 비례해 느껴지는 황량함이
나를 매우 왜소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휴게실의 풍경은 더욱 그랬다. 다양한 모양과 다양한 색깔의 빛바랜
소파들, 그것들은 필시 병원 이곳저곳에서 사용하다 버린 소파들을
수선해서 갖다 놓은 것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그 소파들 앞에는 닳아서 너덜거리는 쿠션이 있는 나무 안락의자가
있었고 탁자 위에는 더러운 재털이가 놓여 있었다.
휴게실은 또 지나치게 밝았다. 비가 쏟아지고 있는 밖의 질척거리는
날씨에 비해, 그리고 우울한 나의 기분에 비해 유달리 밝은 불빛의
휴게실은 내가 이미 보통의 일반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정신병을 앓고 있는
딸을 둔 특별한 아버지라는 사실을 확연하게 깨닫게 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저 만큼 앉아 있는 두 사람의 환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말을 누가 엿들을세라 계속 소근거리고 있었다.
"죄악의 냄새..."
나도 모르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제퍼스 부인이 복도로 나가
인스턴트 커피가 든 종이컵을 들고와 우리에게 권할 때, 나는 불쑥 물었다.
--필립스 선생은 안 오십니까?
나는 리키의 주치의인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에 은근히
화가 났다. 힐라리와 나는 필립스 선생을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여기에 온 것이다.
--저는 그분과 아주 가깝게 일하고 있지요.
제퍼스 부인이 이런 식으로 필립스의 불참을 통고해주었다. 나의 질문을
요령있게 회피하는 대단한 화술이긴 했으나, 나는 필립스의 이런 면담
방식에 심한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제퍼스라는 일개 자원봉사자를 우리에게 상담자로 보낸
것이다. 주치의인 자신이 나타나지 않고 왜 하필 자원봉사자를 우리에게
내보냈을까. 같은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그의 방식에 아연하였다.
물론 의사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진료 방법이 있다. 그러나 필립스의 이런
태도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환자 가족에 대한 예의나 품위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적어도 나는 환자 가족에게 이런 식으로 대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당혹감에 안절부절 못하며 의자 가장자리에 걸터앉아서 제퍼스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할라리는 뜻밖에도 평온을 유지하며 의자
깊숙이 앉아 있었다.
힐라리의 저토록 태연자약한 태도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리키의 입원
이래 그녀가 보인 태도는 거의 완벽한 저런 침묵과 방관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 침묵, 그 무표정, 안으로 안으로만 삭이는 저토록 지나친 절제야말로
정신병원으로 가 버린 리키와 함께 나를 부서지게 하는 또하나의
고통이었다.
커피가 든 종이컵을 들어 살짝 입술을 적시고증 제퍼스가 입을 열었다.
--리키는 잘 있어요. 적어도 육체적 건강만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리키는 회복이 별로 안 되어가고 있는 편이에요. 이곳에 온 지 보름밖에 안
되어 좀 성급한 기대감인지는 모르지만...
--별로 안 되어가고 있다는 건 무슨 뜻이지요?
그녀가 권하는 커피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내가 약간 언성을 높이며
물었다. 제퍼스 부인이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채 가만히 나를
바라보더니 나의 질문과는 상관없는 말을 하였다.
--필립스 선생님과 리키의 사이는 아주 좋은 편입니다.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죠. 또 리키는 여기서 몇 명의 친구도 사귀었어요. 그것 역시 회복을
위해선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입니까?
--리키는 잠을 통 자지 않아요. 밤마다 까닭 모를 불안감에 시달리며 방
안을 서성대고 있어요. 그밖에도 운동을 거부한다든지, 남의 소지품을
파괴한다든지 하는... 아무튼 리키는 다루기가 꽤나 쉽지 않은 아이에요.
리키가 집에서도 그렇게 까다로웠나요?
제퍼스 부인의 질문에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예, 때때로.
나는 리키가 윤년 2월 29일에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것이락 말하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아마 그애 나이 여덟 살 때였을 것이다.
--왜 하필 4년마다 한 번씩밖에 돌아오지 않는 날이 네 생일이었으면
좋겠다는 거지?
내 물음에 리키는 대답을 하지 않았었다. 그 직후에 리키와 나누었던
대화는 지금까지도 불가사의한 일로 나를 혼란에 빠뜨리곤 한다.
--아이가 있는 집마다 누가 있을까?
--그게 무슨 뜻이지? 아빠는 모르겠구나, 누구를 말하는 거지?
--나는 아니야.
--네가 아니라구?
--아빠는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아시잖아요?
--내가 알고 있다구?
--그 과자들은 누가 먹었지? 나는 아니야. 마루 위에는 누가 옷을
놔두었을까? 나는 아니야. 거실에 있는 저것은 누구의 숙제지? 나는
아니야...
리키는 정녕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리키는 그 형이상학적 말들 속에
무엇을 함축하고 있었던 것일까.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대화는 거기서 끊겻으나 그 대화가 남긴 안개처럼
막막한 느낌은 지금까지도 내 가슴에 선명히 남아 있는 것이다.
제퍼스 부인의 음성이 들려왔으므로 나는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리키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는 태도를 완강히 고집하고
있어요. 리키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리키 플래취라고나 할까요. 내가 처음
리키를 만나 이름을 묻자, 그애는 자신을 메어리라고 소개했고, 그 이유를
묻는 내게 "메어리, 고집센 아이 메어리"라는 말을 노래하듯 들려
주었어요.
또다른 혼란이 한바탕 빗줄기처럼 내 가슴을 때리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그 말에 담긴 의미를 가늠해 보기
위해 눈살을 찌푸리며 간신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퍼스 부인은 혹시 리키가 자신의 과거를 잊어버린 아이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리키가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그중에서도 메어리로 착각하고 있다는 의미일까.
또하나의 불길한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었다. 샌더스 박사는
말하지 않았던가. 리키가 자폐성 정신분열증에 걸렸는지도 모르겠다고.
과거를 잊어버리고, 자기 자신을 혼동하는 아이. 나는 내 머리를 휘젓고
지나가는 짧은, 그러나 깊은 현기증을 느꼈다.
--좀더 이해하기 쉽게 말씀해 보십시오.
힐라리가 갑자기 허리를 세우고 앉으며 제퍼스 부인에게 말했다. 그녀
역시 당황해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제퍼스 부인은 다시 한번 커피잔을
들어 한모금 짧게 마시고는 곧 입을 열었다.
--저는 이곳에서의 리키의 행동과 집에서의 그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알고 싶어요. 분명히 리키는 웨스트체스터에 온 이후로 아까 말씀드린 그런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리키의 그런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어디서 왜 나왔느냐 하는 것을 밝히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제퍼스의 말에 힐라리는 팔짱을 끼고는 뭔가 깊이 생각해 보는 말투였다.
제퍼스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은 자기 어머니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자라납니다.
어머니의 말투나 차림새, 심지어 사고의 방향까지도... 리키의
어머니께서는 어떠셨나요?
힐라리의 눈가에 재빠르게 당혹감이 스쳐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힐라리는 용케도 평정을 유지하며 또박또박 대답하였다.
--나는 결혼 이후 좋은 아내가 되려고 노력했고 정신과 의사인 남편의
생애에 있어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했던 한 사람의 평범한
여자였어요. 그것은 내 삶의 궁극적 목표였고 또 어떤 아내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 믿어왔어요.
제퍼스 부인이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힐라리의 말을 액면 그대로
인정하였다. 그렇다. 힐라리는 비교적 헌신적인 아내였으며 가정을 위해
때로는 자신의 개인적 욕구도 포기할 수 있는 아내였다.
그에 비한다면 나는 어떤 남편이었을까. 나는 힐라리처럼 자신있게 내가
어떻게 해왔으며 나의 목표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말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물론 나 역시 가정에 비교적 충실한 가장의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렇게 위기가 닥쳤을 때 흔들리지 않는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그리고 가정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리키의 입원 이후 나는 모든 일에서 자신감을 상실하고 말았다. 내 직업,
내 아내, 그리고 내 인생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아직 리키의 문제가 어디에서 왜 발생하였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령 리키가 정신분열증이라고 해도. 우리는 그것이 부모가 문제의
근원이 되어 생긴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리키와 두
분과의 관계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우리는 리키를 사랑합니다.
힐라리가 단호하게 답변했다. 그녀의 음성이 커다란 방에 약하게
메아리를 이루다가 부서졌다. 아까부터 계속 소근거리고 있던 두 사람의
환자가 동시에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애도 그걸 인정할 거예요. 우리가 그애에게 언제나 올바른
일만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리키는 우리의 첫애였어요. 그랬기에 우리의
관심이 그만큼 더 각별했다고 생각해요.
--두 분 중 누가 더 리키와 가까웠다고 생각하시나요?
--리키는 나보다 아빠를 더 따르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나는 아이들을
훈육시켜야 했던 사람이에요. 그것은 모든 어머니들의 몫이 아닐까요?
--그럼 프래드 박사께서는 어떠셨나요?
그녀의 물음에 미처 내가 답변하기도 전에 힐라리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애들에게 관대한 편이었어요. 좀 지나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나는 다시 이 말을 인정했다. 아이들에 대한 힐라리의 엄격한 교육
방식에 비한다면 나는 자유스럽게 방임해온 아빠였다. 그래서 이것은
힐라리에게는 늘상 불만이 되곤 하는 문제이기도 하였다.
--왜 나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악역만 맡아야 하는 거죠?
언젠가 힐라리가 존의 시원찮은 성적표를 보고 그 아이를 혼내주고 난
후에 내게 했던 말이다. 그때 나는 뭐라고 대답했던가. "그것은 오래
전부터 당신의 몫이 아니었던가?"
--두 분 사이에 다툼은 많은 편이었나요?
이번에도 힐라리가 즉시 대답했다.
--우리는 그리 자주 다투는 편은 아니었어요. 적어도 지난 해까지는...
--그 말은... 최근까지는 가정 내에서 부부 사이의 언쟁이 대체로 금지돼
있었다는 걸 의미하나요?
--그런 뜻은 아니에요. 다만 우리가 많이 다투지는 않았다는 걸 뜻해요.
--그랬군요. 그렇다면 두 분께서는 상대방이나 기타 일에 대한 불만과
실망을 어떤 식으로 표출하셨나요?
순간적으로 힐라리와 나는 시선이 마주쳤다. 확실히 우리는 그다지
다툼이 없는 편이었다.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이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방관이나 체념 같은 것이었을까. 종교적 신념이라는 그림자에 갇힌
침묵은 아니었을까.
어쨌든 우리는 그 흔한 부부싸움을 별로 하지 않는 부부임에는
분명하였다. 부부싸움을 하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또 확인받기에는
너무 일찍 지쳐 버린 탓이었을까.
--저의 이런 질문은, 우리가 잠재된 분노를 간접적 표현일지 모르는 리키의
몇 가지 행동에 유의해 보자는 뜻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리키가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리키가 자신의
억제된 감정을 그런 복잡한 방법을 통해 호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종종 나는 진찰실에서 표현되지 않은 비통함이나 좌절감을 가슴속에
깊이깊이 묻어둔 채 성장해온 환자들의 우수에 찬 얼굴을 보곤 했다.
마치 가슴속에 다이나마이트와도 같은 감정의 폭탄을 가지고 있으면서
언제 손에 든 성냥불을 그 폭탄의 심지에 붙여야 할지를 모르는 상태의
초조함이 그들의 얼굴에는 짙은 그림자가 되어 드리워져 있었다. 리키 역시
그런 소녀의 하나였을까.
--그렇다면 리키가 우리 부부가 감정을 억제하는 부적절한 생활을
계속해왔기 때문에 병을 얻었다는 뜻입니까?
나는 의자의 팔걸이를 단단히 붙잡으면서 간신히 물었다. 마치 무너지기
직전의 낡은 탑처럼.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는 마세요.
제퍼스 부인이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말을 반박했다.
--우리는 단지 리키의 생활에 관련된 모든 것으로부터 리키를 병들게 한 그
무엇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나는 팔걸이를 붙잡고 있는 내 손아귀에서 힘이 저절로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리키를 병들게 했을 우리 가정의 그 무엇... 한때는 가장 완벽한 기반
위에 서 있다고 믿었던 내 가정 안에서 누구도 모르게 싹트고 자라왔을 그
무엇...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리키와 형제들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힐라리가 식은 커피가 담긴 종이컵에 시선을 둔 채 나지막이 말했다.
--존이 태어났을 때, 그애는 몹시 질투하는 것 같았어요.
--그때 몇 살이었죠?
--다섯 살이었어요. 동생이 태어났다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기가
용이하지 않았어요. 때때로 리키는 내가 존과 함께 하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힐라리의 말대로 리키는 존이 태어나자 대단히 당혹해 했었다. 아마도
리키는 존에게 부모를 빼앗겼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2년 후에 메어리가 태어났을 때, 그러니까 리키가 일곱 살일 때 우리는
그애에게 가정에서의 역할과 책임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 메어리를
보살피도록 조치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계획은 한 달도 못 가 중단되어야만 했다. 리키가 이 일에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키는 동생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과 다투지도
않았다. 메어리가 좀 성장했을 때, 둘을 같은 방에서 자도록 해보았으나
리키의 흥미 잃은 표정과 무관심 때문에 얼마 못 가 또한 중단하고 말았다.
그대신 리키는 주말이면 으레껏 할아버지를 방문하게 해달라고 떼를 쓰곤
했다. 리키는 할아버지의 집을 마치 또 하나의 보금자리로 여기는 것
같았다. 어쩌면 리키에게 있어 그 보금자리는 자신이 사는 집보다도 더
따뜻하고 안온한 느낌을 주었던 듯싶다.
나는 손도 대지 않았던 종이컵 속의 식은 커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삶에 대한 열정을 너무 이른 나이에 잃어버린 나의 딸 리키의 의식
밑바닥을 채우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완정히 용해되지 않은 채 컵의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는 설탕처럼 리키의
가슴 저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그 무엇, 무엇이 리키를 그토록 힘든 인생에
직면하게 했을까.
제퍼스 부인과 우리와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그녀는 리키의 학교 생활,
교우 관계, 그밖에도 리키에게 관련된 많은 질문들을 용의주도하게
우리에게 퍼부어댔다.
그로부터 한 시간쯤 후에, 마침내 제퍼스 부인은 대화를 마감하겠다는
듯이 우리와의 대화를 메모하던 노트를 집어들고 일어서려고 했다.
--자, 여기서 저는 그만 일어나야겠습니다. 많은 시간, 유익했습니다.
먼 길을 빗줄기를 뚫고 달려왔으나, 나는 오늘 리키에 대해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된 것이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제퍼스 부인과의
대화는 결국 나를 더욱 큰 혼란의 늪에 빠뜨렸을 뿐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똑똑히 바라보며 나는 노골적으로 내뱉었다.
--필립스 씨가 오늘 단 몇 분이라도 우리를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 내겐
여전히 의문으로 남습니다. 우리가 언제쯤 그를 만나게 될까요?
--곧 만나게 될 겁니다.
제퍼스 부인의 답변은 간단했다. 그리고 그 말에는 나의 불만을 들어줄
마음이 그녀에게, 그리고 필립스에게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담고 있었다.
여전히 내리퍼붓는 빗줄기를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보며 우리가 집에
도착했을 때, 뜻밖에도 리키가 보낸 한 통의 편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엔 두 편의 시가 조심스레 찢겨진 노란 메모지 조각 위에 쓰여
있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께: 여기 제가 쓴 시가 있습니다.
* 밤을 밝혀라
낮
빛이 밝게 빛나고 있다.
나의 눈 속에
빛을 차단하는
집착, 그리고 과거.
모든 것이 사라지는
밤,
밤을 밝혀라.
* 부푼 마음
북
움푹 패인 북을
두들겨라.
가방 속에 흩어져 있는
자주빛 양파들
앉아라.
회전목마가
빙빙 돌며 노래부른다.
사람들이 나를 본다, 발을 멈추고.
그들은 무엇을 보는가.
나의 생각을 방해하는 그들,
그들을 위해
불을 뿜어라, 가스를 켜라.
보아라
곳곳마다 불이다.
돌아가는 회전목마 위에서 보면
세상이 온통 불,
불이 춤을 춘다.
10. 희망의 불씨마저 빼앗긴 채 절망의 안개 속을 헤매는 아빠의 슬픔은
오늘도...
웨스트체스터 병원의 정신과 전문의로 그 병원의 진료부장으로 있는
아놀드 스튜어트 박사로부터 내게 전화가 온 것은 그 이튿날이었다.
그는 청소년 정신병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온 선배 의사의 한
사람으로, 그가 개발한 10대 환자에 대한 진료 프로그램은 10대 환자들은
어린아이들이나 성인들과는 또다른 특멸한 징후를 보이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진료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이론하에 세워진 치료법으로 이미 미국
내의 많은 병원에서 채택하고 있었다.
뉴욕 병원이라는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본다면 우리는 한 식구나 다름이
없었으나 불행하게도 그와 나는 전혀 안면이 없었다.
--스튜어트 박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요.
내 사무실의 비서가 전해주는 말을 듣고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의
첫마디는 뜻밖에도 경쾌했다.
--필립스 선생과 만나지 못한 사실에 아직도 화가 나 있는 건 아니겠죠?
그가 너털웃음과 함께 내게 물어왔으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곧
웃음을 거두고는 변명하기 시작했다.
--필립스 선생은 비록 레지던트이긴 하지만 매우 유능한 의사입니다. 그는
선배 의사인 당신을 만나게 됨으로써 생길지도 모를 판단력의 혼란을
우려했던 것입니다. 그는 보다 객관적인 눈으로 리키 문제를 바라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은 내가 명령한
결정이었어요.
나는 묵묵히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내 가슴은 불길한 예감으로 쿵쿵
울려댔다. 웨스트체스터 병원은 좀더 책임 있는 의사의 입을 통해 리키의
나쁜 예후를 내게 알리려는 게 아닐까. 나는 당혹감과 불안감이 뒤엉킨
마음을 간신히 진정하면서 그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솔직히 리키에 대해서는 보고만 듣는 입장입니다. 물론 중요한
문제에 대한 조언과 충고는 한다고 하지만. 그러나 이것마저도 며칠 동안
중단할 형편이에요. 공교롭게도 회의 참석을 위해 앞으로 열흘 동안
디트로이트에 가 있어야 하거든요.
나는 긴 한숨을 토하며 수화기를 노려보았다. 보고만 듣는다는 입장의
그가 내게 왜 전화를 한 것일까. 나의 의문은 곧바로 이어진 그의 말에
의해 풀렸다. 그는 디트로이트에 갔다오면 보다 본격적으로 리키를 자기
책임하에 두고 치료에 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나는 오늘 아침에 자원봉사자 제퍼스 부인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습니다.
리키와 당신 부부를 면담한 내용에 대해서...
--그러셨군요...
침을 꿀꺽 삼키며 나는 그제서야 겨우 한마디 하였다. 그가 나를
안심시키려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상관없으시다면, 제퍼스 부인이 내게 보고한 몇 가지 문제에 대해 다시
알아보고 싶군요. 괜찮겠습니까?
--좋습니다.
아직도 긴장감을 풀지 못하며 내가 힘없이 대꾸하자, 그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리키의 외할아버지는 당신의 아내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리키의 외할머니는 얼마 후 재혼했다가 몇 년 전에 다시 사별했습니다.
결국 리키의 어머니는 의붓아버지에 의해 양육되었는데, 그 남자는
무능력자였고 게다가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리키의 외할머니는 생활력이 강한 여성으로 똑똑하고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들었습니다만...
--맞습니다. 우리 모두가 존경한 분이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 당신의 문제로 가봅시다. 프래드 박사, 실례지만 당신의
정신 건강은 스스로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주저주저하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물어왔다. 순간적으로 당황했으나,
내가 지금 한 사람의 정신과 의사로서가 아니라 리키의 아버지로서 그와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항상 올바르고 정직하게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는 아주
건전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 정신적으로
아주 좋지 못한 시기도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벨레비유 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할 때와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난 굉장히 참담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리키로 인해서...
전화기 저쪽으로부터 무슨 노트를 뒤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내
그가 원하던 것을 찾았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리키 문제를 얘기해 봅시다.
이 말과 함께 팽팽한 긴장감이 다시 나를 사로잡았다. 있는 힘껏
잡아당긴 활시위와도 같은 불안감이 순식간에 내게 엄습해왔다.
--리키는... 물론 잘 있습니다. 몇 가지 문제만을 제외하고는 우리의 진료
계획도 차질이 없어요. 그 몇 가지 문제라는 것이 사실은 제일 큰
과제이기는 하지만... 드릴 말씀은, 나는 10대 정신과 환자들에게 진정제
같은 약물을 사용하는 걸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필립스 선생에게 때로는 리키에게 진정제를 투여하라고 명령하곤 했습니다.
--리키가 또 난폭하게 굴었나요?
--나는 리키가 원래부터 그렇게 공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시에 돌출하는 리키의 공격성이 의료진을 당황케 하고,
그런 당혹감과 동요가 다른 환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또다른 부작용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아이가... 무슨 짓을 저질렀나요?
두려움을 느끼며 내가 다그쳤다. 스튜어트 박사가 천천히, 아주 상세하게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어제 리키는 진료를 거부하고 제 방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어요. 거기서
리키는 침대 매트리스에 머리를 쾅쾅 찧어대는 거였어요. 간호원들이
뜯어말리려 했을 때, 그애가 난폭하게 뿌리치며 간호원을 약간 구타했지요.
수화기를 들고 있는 내 손은 힘을 잃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나의 딸
리키가 그 아름답던 갈색 머리칼을 마구 풀어헤친 채 매트리스에 머리를
내려치는 모습을 그려 보며 몸서리를 쳤다.
`end`
`end`
천국엔 새가 없다(2)
차례
제 8 장 꿈속의 여로
제 9 장 수평선
제 10장 한낮의 암흑
제 11장 운명의 그림자
제 12장 눈물의 의미
제 13장 빛과 그림자
제 14장 천국엔 새가 없다.
꿈속의 여로
리키를 치료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은 1967년,1968년, 그리고
1969년 겨울에 이르기까지 웨스트체스터에서 계속되었다. 리키의
열다섯 번째 생일이 지나고 이제 그애는 열여섯 살이 되었다.
리키는 어느덧 열일곱 살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좀 아이러니컬한 표현일지는 모르지만 내 삶의 지난 2년 반은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거의 똑같은 나날의
반복...... 나는 거의 매일같이 필립스 선생과 만났으며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스튜어트 박사를 만났다. 케인 선생이 지도하는
레크레이션 시간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으며 공예 시간에는 도자기를
만들었고, 간혹은 병원에서 마련한 일종의 정신질환 치료 과정인
사이코 드라마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자유 시간이 되면 나는 TV를
보거나 휴게실에 무료하게 앉아 있거나 동료환자들과 함께 병원
주변을 산보하였다. 그러다 지치면 시를 썼다. 그 시들은 대부분
이튿날이 되면 한 조각의 휴지가 되어 버려지기도 했으나, 여러 편의
시들은 아빠와 엄마에게 보내지기도 하였다. 나의 시들이 문학적으로
어떤 특별한 가치를 지녔다고는 보지 않지만, 시를 쓰노라면 나는
마음이 무한히 평화로워지는 나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 할 수가
있었다. 어떤 작품은 내가 보기에도 한없이 유치했고, 또 어떤 시는
다 완성한 뒤에 내가 읽어봐도 참으로 황당무계하여 얼굴이
붉어지고는 하였다. 그러나 시를 쓰는 그 순간순간들의 평화가 나를
행복하게 하였고, 고통에서 빠져 나와 시에 골몰 할 수 있다는,
그렇게 함으로써 얻어지는 위안에 나는 평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마치 내 삶이 먼먼 별들 속 어딘가에 있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사라져 버린 듯한 공허감에 가슴 무너질 때마다, 마음의 갈피 속에서
솟아나오는 언어들은 내게 그런대로 삶의 의미를 되씹게 해주어
좋았다. 언젠가 나는 이런 시를 쓴 적이 있다. 나의 세계 나의 세계는
외로워 아득한 꿈처럼 혼자만의 나의 세계는 외로워 목화송이처럼
가득 피어나 하늘을 가리는 구름 너머로 아, 밤의 적막 저편 너머로
오늘도 별은 빛나건만 나의 세계는 가난해 드넓은 사막 한가운데로
들이치는 소나기 그러나 이 세상 어떤 물로도 나의 세계를 적실 수는
없네 아, 이토록 목이 마른 나의 세계는 언제나 가난해 오늘도 꿈은
가득하건만
병원에서의 지난 2년 반은 언제나 틀에 박힌 생활의 연속이었기에
때로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 한없이 무디어지는, 그래서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는 순간순간의 계속이었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이
한 바퀴 순환을 하고 내가 나이를 한 살, 두 살 더 먹어가더라도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기만 하였다.
여름이 되면 우리들은 씨 사운드에 있는 해변으로 가서 배구나 수영
같은 가벼운 운동을 하거나, 일광욕을 하거나,해변가 상점에서 파는
핫도그 같은 것을 사 먹으며 모래사장을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런 시간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그저 혼자 있는 것이 더 마음 편했다. 내가 시를 쓰기 좋아하고 공예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내 성격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공예 시간에 내가 만든 도자기는 이미 수십 개가 넘었고,
어떤 것은 우수한 작품이라는 평판을 받아 병원 로비의 벽 선반 위에
놓여지기도했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해보려는 나의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었다. 비록 나는 엄마의 도움으로 까뜨리네트 수녀원
부설학교의 졸업장은 받아놨을지라도 8학년의 마지막 학기를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내 힘으로 공부를 마무리짓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그런 의욕은 항상 나 자신도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문제의 그 돌발적인 격정의 불길 때문에 언제나 며칠 못 가
산산조각이 났다. 웨스트체스트에서 운영하는 특수학교 교육 과정을
밟기 위해 교실에 앉아 있노라면 나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기억할
수 없고 어떤 것도 내 머릿속에 집어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달아야 했다. 수업 도중에 돌연 발작적으로 일어나는
격정의 불길 때문에 나는 엉망진창이 되어 법석을 떨거나 여태까지
해왔던 방법대로 나 스스로를 상처나게 하는 일들을 계속하였다.
자살. 그것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거머리처럼 계속해서 내 의식의
허벅지에 이빨을 들이대고서 기회 있을 적마다 나를 죽음으로 치닫게
하였다. 언제나 소란을 피우고 난 뒤에 나는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또다시 생각하였던 것이다. 내게 병마가 찾아들고 악몽이 시작된
이래로 이렇게 내가 단 하루도 죽음에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한 것은
어쩌면 나로 하여금 죽음과 아주 친근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야속하게도 죽음에의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다시 죽음의 신을 만나기 위해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여기서 1967년 2월 14일의 자살 소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때 나는 60여 시간 만에야 겨우 의식의 꼬투리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거의 완전히 죽음의 문턱에까지 가 있었다고 한다.
한웅큼 입안에 털어 넣은 약들은 나를 죽음의 깊은 바다에까지는
이르게 하지 못하고, 그 긴 시간 동안 끊어질려다 이어지고
그러다가는 다시 끊어지는 절망적 혼수 상태에 이르게 했을
뿐이었다. 웨스트체스터의 의료진들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것보다는 죽음의 신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해
여름부터 하나둘 모아두었던 약들, 빛깔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그렇기에 약효도 제각각인 50알이 넘는 그 약들은, 내게 죽음 대신에
질어증과 굉장한 두통이 동반되는 시력 저하를 선물하였다. 나는
정녕 죽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죽음만이 나의 문제를 순식간에
완전히 해결할 유일한 길이라 믿었었다. 때때로 나는 나 자신에게 더
많은 인내와 더 많은 시도를 해보라고 타이르면서 기도하고는
하였다. 그 기도속에서 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막연한 꿈을
꾸었고, 그 꿈에 매달려 내가 병마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정상인이
될 수도 있으며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아오르는 내 마음속 격정의 불길에 번번이 무릎을 꿇어야 했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내가 약을 모으고, 그 약의 힘을 빌어 죽음을
택하기로 작정한 것은 바로 엄마와 아빠의 이혼 직후부터였다.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내가 성공적인 자살의 방법을 생각하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기 시작한 것은 그해 추수감사절 때 엄마의
집을 방문하고 나서였다. 그때 이미 나는 내 침대 시트 밑에 30여
알의 약을 모아두고 있었다. 그것들은 언제나 나를 깊은 잠에 빠지게
하고 손과 발을 떨게 만드는 바로 그 약이었다. 그리고 그 약들은 내
가슴이 미어지도록 불탈 때마다 놀랍도록 재빠르게 그것을 잠재우는
것들이었다. 내가 발작을 일으키고 격리병실로 옮겨지고 습포제나
물통이 있는 물리치료실로 강제로 끌려갈 때마다 간호원들이 황망히
들고 있던 그 약들. 나는 그것들을 기회 있을 적마다 교묘히 하나씩
둘씩 빼내어 모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60여 시간의 새까만 무의식
혼수 상태에서 벗어나고서도 다시 일주일 동안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간호원 쥬디를 알아보았다고 한다. 간신히
눈을 치뜨고 무엇인가를 발견하려고 두리번거렸는데, 때마침 저만치
입구에서 쥬디가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녀 뒤로 눈부신
백열등이 병실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한밤중이었던 것
같다. 이튿날 아침에 병실로 뛰어든 아빠와 엄마의 참담한 눈물을
보며 나는 차라리 눈을 감아 버렸었다. 자살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
억울했던가. 그토록 무거운 짐을 지고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던가. 여전히 엄마와 아빠가 미움의 대상이었던가. 내 생의
한가운데에 불끈 솟아 있는 의문부호들은 아직도 건재해 있었으나 한
가지 사실만은 명확하였다. 그것은 아직도 내가 여전히 터널 속에
내버려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살의 실패가 내게 가져다 준
후유증은 오래 갔으며 부작용은 깊고도 컸다. 말을 할 수 없었으며,
하더라도 심하게 더듬거나 말을 할적마다 턱을 흥건히 적실 만큼
침을 흘려야 했다. 자살 실패 후 석 달 가까이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때 이 증세는 특히 심했다. 10개월 정도 지나자 실어 증세는 점차
사라졌으나, 어찌 된 일인지 두통과 시력 저하는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자살 기도 전에도 나는 무엇을 읽으려고 하면
그것들이 내 앞에서 안개에 휩싸이듯 사라져 버리거나 작은 조각으로
찢어지고 부서져 거의 볼 수 없는 이상한 증상으로 고생을 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적어도 그 정도로 심한 두통은 뒤따르지
않았었다. 아마도 내가 먹은 약들은 내 몸 속에 들어가 내 육신을
뒤흔드는 심각한 부작용을 남긴 채 나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것 같다. 이것은 결국 무엇을 뜻하는가. 신은 아직도 내게 더 많은
삶의 짐과 고통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죽음조차도 번번이
거부당하는 나는 내가 생각해봐도 참으로 가련한 존재였다. 머나먼
밤하늘 어딘가에 있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사라져 버린 듯한 나의
삶. 그 삶을 되찾을 의욕도, 모든 것을 체념할 기운마저도 다 잃은
무감각한 하루하루. 그토록 멍한 상태의 2년 반이 흘렀을 때 나는
벌써 16세 소녀가 되어 있었다. 열여섯 살. 나는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나이라는 그 시절에 다만 멍한 눈빛과 텅텅 빈 가슴으로
웨스트체스터 병원의 정신과 병동 안에 그렇게 갇혀 있었던 것이다.
28. 여전한 어둠, 여전한 절망, 여전한 고통이 아빠의 뇌리에
쌓여 있는데.... 힐라리와 나는 리키를 그대로 웨스트체스터에
놔두기로 하였다. 설령 그애가 빈사 상태의 자살 미수 소동을
벌이고, 또 그전까지 조금도 차도가 없이 계속 정신적 육체적 방황을
거듭함으로써 웨스트체스터의 의료진이 우리를 실망시켰지만
우리에게 확실한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 당분간 더 리키를 그곳에
머무르게 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 당분간이 벌써 2년 반이라는
시간이 되었다. 회복의 기미를 보였다가는 재발하고, 그러다가는
다시 회복의 실마리를 조금씩 내비치는 리키의 그 예견할 수 없는
상태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그리고 보다 단일화되고 집중적인 정신 치료여야 한다는 주위
사람들의 권고는 나와 힐라리로 하여금 리키의 자살 미수 소동
이후에 들불처럼 타올랐던 분노와 원망, 그리고 스튜어트 박사를
비롯한 웨스트체스터 의료진에 대한 배신감을 다소나마 잠재우게
하였다. 「정신활동 치료약의 다양한 처방과 투여로 리키의 증세를
완화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이 언젠가는 반드시 뚜렷한 성과를 얻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이며 인내로써 기다릴
것입니다.」 리키를 살려낸 후에, 스튜어트 박사가 다시금 새로이
각오하면서 내게 한 말이다. 다른 곳으로 옮긴다 해서 리키를 확실히
회복시킬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이상, 힐라리와 나는 스튜어트
박사의 이러한 각오를 다시금 믿고 그의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치료법에 리키를 맡겨 놓는 것이 더 현명하리라는 사실에 인식을
같이 했다. 한바탕 자살 미수 소동을 벌이고 난 뒤에, 리키에게는
마침내 리튬과 같은 고단위 정신질환 치료제가 투여되었으며 항
진정제 류의 약들도 계속 투여되었다고 나는 짐작한다. 리튬은
광란적 우울증 환자의 치료에 사용되는 식염복합제로 웬만한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결코 투여되지 않는 단위가 높은
치료약이다. 한때 그애가 복용하였던 페노다이아진과 같은 약보다 몇
배 더 고단위인 리튬은, 그러나 결과적으로 리키에게 아무런 효과도
주지 못한 것같다. 물론 나는 리키에게 투여되었을 이런 특별한 약에
대해 명확하고 상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 웨스트체스트 병원의 그
변함없는 대화 기피 정책 때문에 내가 다만 그런 것을 짐작으로만 알
뿐이었다. 6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의사들은 그런 특별한 사항들을
가족에게 일일이 알릴 필요가 없다는 방침을 굳게 고수하고 있었다.
환자 가족의 ‘알 권리’가 철저히 무시된, 그런 일방적 조치가 당시
의료계에서는 하나의 불문률이며 관행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
가정의 가장이며 환자의 보호자로서가 아닌 한 사람의 의사로서 내가
고집스레 리키의 치료 과정에 참여하거나 간여하려 했다면 전혀 길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애의 치료에 어떤
식으로든 방해되는 것이 두려웠으며 그것이 리키의 치료에 위험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이미 충분히 기가 죽어 있었다. 60여
시간의 완전한 빈사 상태와 다시 일주일 가까운 장시간의 혼수 상태,
리키의 그 식물인간과도 같은 절망적 연명의 시간속에서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을 자책하고 쥐어뜯으며 나를 원망했던가. 그리고 나는
얼마나 이 세상 모든 것이 두려웠으며, 특히 리키가 걸어가고 있는
그 길이 얼마나 내게 엄청난 벽처럼 여겨졌던가. 1967년 2월 14일의
그 참혹하리만치 절망스럽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그늘로 내 가슴에
자리하였다. 오랫동안, 아니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난다 해도 그날의
그토록 혹독하던 절망과 초조감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수시로 리키가 나를 흔들며 나의 무력함을 비난하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항상 나는 비틀거렸으며 그만큼 낙심에 젖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여기다 그 소동 이후에, 스튜어트 박사의
나에 대한 경계가 더욱 냉정해졌고 엄격해졌다. 가족을 만나기만
하면 더욱 기승을 부리는 리키의 발작 증세에 따라, 그리고
웨스트체스터에 우리가 리키를 그대로 놔두기로 결정한 이상 우리로
하여금 따르기를 강요하면서 스튜어트 박사가 내린 결정의 대표적인
것은 리키와 가족 사이의 완벽한 차단이었다. 「가족과의 만남이
리키로 하여금 더욱 고통스러운 감정 상태나 분노한 행동을 촉발시킬
실마리를 주고 있는 것이 확실해진 지금, 우리는 그애에게 악영향을
끼칠 여지가 있는 결정은 앞으로 절대로 내리지 않을 것이오.」
그대신 스튜어트 박사는 리키의 상태에 관한 보고를 열흘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내게 전화 통보해주기로 하였다. 슬프고 답답하고 괴로운
일이지만 나는 이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리키의 자살 소동이
재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 앞에서 나는 스튜어트 박사의 어떤
결정에도 굴복해야만 되었다. 스튜어트 박사는 10일에 한 번씩
정확하게 리키의 상태를 내게 알려 주었다. 「리키는 실어 증세에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리키가 먹었던 다양한 약들의
복합적 부작용에서 이렇게 빠르게 회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리키는 당신과 힐라리가 보낸 생일 선물을 받고
무척 기뻐했습니다. 리키는 간호원들과 환자들이 마련해준
생일파티를 아주 훌륭하게 치뤘습니다.」 「리키가 글을 읽고 쓰는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실어 증세는 거의 완전히
해소되었으나 시력 장애는 좀체 사라지지 않아 고민입니다. 더 두고
봅시다.」 「그애는 가족이 자기를 잊지 말기를 바란다고 내게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그애는 언제 자기가 집에 가게 되느냐고
묻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옛날처럼 그렇게 반항적이거나 자살
충동에 시달리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애가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그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그애가 혼자 힘으로 더 많은 책임을 질 수 있게 되기를
바라십시오.」 「우리는 리키가 공부에 다시 집착할 수 있게
해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잘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스튜어트 박사의 말만으로 리키를 그려볼 수 있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리키는 나로부터 더욱 멀어진 것 같았고, 어느
때는 스튜어트 박사의 말에서 차라리 리키를 포기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전율하기도 하였다.
그런 느낌에 젖어 있다가 황망히 눈을 뜨고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면, 거기에 나의 아이들이 아직 나를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존과
메어리, 그리고 메티유는 리키로 인해서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진 나를
붙잡아주고 있는 튼튼한 끈이었다. 그 끈이 있었기에 나의 삶은
그나마 유지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느날인가
나는 존에게 그애가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서 어느 단원의 개요를
상세히 설명해준 적이 있다. 며칠 후 존은 내가 설명한 대목이
그대로 시험에 나오는 바람에 만점을 받았노라며 그 답례로 내게
만년필을 선물하였다. 한번은 메티유와 폭풍우를 뚫고 시골을 간
적이 있는데, 내가 천둥과 번개가 아무런 두려움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시키자 아이가 따뜻한 작은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때 오히려 내가 느꼈던 그 무한한 안도감을 어린 메티유는
알까닭이 없을 것이다. 메어리가 나와 팔짱을 끼고서 윌트디즈니에서
스노우 화이트라는 오래된 영화를 볼 때도 나는 똑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메어리는 이제 여덟 살이 되었는데, 자라면서 점차로 리키의
외모를 닮아가고 있어 내게 때로는 기쁨을 주고, 또 때로는 슬픔을
주었다. 주말마다 아이들은 나와 함께 머물렀다. 내가 밖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 나는 아이들이 나를 서로 먼저 맞이하려고 즐겁게
소리치며 앞을 다투어 문가로 달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나의 아이들이기에 앞서 나의 유일한 의지처였으며 영원한 친구였다.
리키 생각으로는 눈물겨울 때, 존을 비롯한 세 아이들은 내가
상심하면서 느끼는 그 드넓은 공허감을 조금씩 조금씩 채워주고 있는
것이었다. 1968년 연말의 어느날에, 나는 홀로 내 아파트에 앉아서
오래된 앨범을 꺼내 들었다. 힐라리와의 결혼식 사진이 조금은
변색되었지만 아직도 선연한 흑백 추억으로 거기 남아 있었다.
결혼식장으로 가는 힐라리가 자기 집에서 떠나는 사진이 거기
있었다. 그 앨범엔 내가 여러 해 동안 보지 못했던 얼굴들도
가득했다. 춤추는 아버지, 그리고 너무도 젊어 보이는 힐라리와 나,
우리를 태우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큰 리무진. 앨범속에서는 우리가
사랑을 나누던 시절에 쓴 연애편지도 튀어 나왔고 내가 쿠바에서
적도 의약품을 연구하던 어느 해 여름에 힐라리가 손수 만들어서
보내준 카드도 들어 있었다. 거기서 힐라리는 우리 가정이 얼마나
행복하며, 그녀가 나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있나를 쓰고 있었다.
지금은 모두 거짓이 되고 신기루가 되어버린 많은 것들이 현실과는
그렇게도 동떨어진 얼굴로 거기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을 보니 내
가슴은 소리도 없이 금이 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얼마후에, 나
자신도 모르게 가장 소중한 사진 몇장만을 남겨 놓고는 나머지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벽난로의 불길 속에 던져 버렸다. 물론 그런
행동들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몸짓이나마 있을 때, 비로소 나는 과거의 족쇄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힐라리와 이혼이 네게 가져다준
충격과 상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그런 조심스런 몸짓이 내게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건 명백했다. 나는 새로이
시작하고 싶었다. 어느 때는 몸서리치도록 간절히.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서 있는 그 진창의 현실로부터 맹렬히. 그때마다, 그런
순간마다 리키는 나를 그 자리에 그대로 있도록 꽁꽁 붙잡아매고
있었다. 나는 그런 때면 곧잘 나 자신에게 묻고는 하였다. ‘리키가
그런 상태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면 어찌 할텐가. 리키가
또다시 자살을 기도하여, 정말이지 어느날 갑자기 죽어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리키를 그대로 잃고도 나는 힐라리와의 이혼의 상처를
잊어가듯이 언젠가는 그렇게 서서히 리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질문이 내게 던져질 때마다 나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며, 그럴 가능성의 빌미마저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존과 메어리, 그리고 메티유가 있는
그곳에다 리키를 데려다 놓아야만 되었다. 꼭 그래야만 되었다. 비록
힐라리는 떠났어도 나는 나에 의해서 세워진 내 가정을 다시 원래의
그 모습대로 만들어 놓아야만 되었다. 가정과 가족의 소중한 의미를
절대로 절대로 이렇게 손쉽게 잃어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랬음에도 2년 반이라는 긴 시간을 그렇게 허비하면서 리키를
웨스트체스터의 붉은 벽돌 건물 안에다 방치한 채, 속수무책
허둥대고 낙심하는 생활을 계속하는 나의 어리석음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29. 리키의 친구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 아빠는 분노로
치를 떨면서... 1969년 2월 말이었다. 나는 엄청난 2월의 폭설속을
뚫고 나의 클리닉으로 출근을 하였다. 내가 코트를 벗어 눈을 털어
내고는 막 옷걸이에다 걸어 놓으려는데 나의 비서인 베르니스 양이
인터폰을 통해 말했다. 「박사님. 한 젊은 여자가 전화를
해왔습니다. 이름이 캘리라고 합니다. 무슨 용건인지 제겐 말을 하지
않고 박사님과 통화를 하게 해달라고만 합니다. 바꿔드릴까요?」
나는 이른 아침부터 상담 전화에 시달리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더구나 밖에는 이미 한 사람의 상담 예약자가 오전 9시가 되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아니, 환자와 상담 중이라고 말해줘요.」
이렇게 말을 뱉는 순간, 갑자기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캘리라구? 나는 이 이름이 어디서 많이 들은 불길한 의미가
담긴 이름임을 떠올리며 얼른 생각을 바꾸고는, 베르니스에게 전화를
돌리라고 명령했다. 「리키 아버지이신가요?」 캘리는 굉장히 쉰
목소리인데다 대단히 낮고도 재빠르게 말을 이어가고 있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저는 리키의 친구
캘리예요!」 그제서야 나는 캘리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 하나가
웨스트체스터 병원에서 리키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내었다.
「여긴 병원이에요. 몰래 전화를 거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 잘 들으세요. 리키가 지금 특수 격리병실에 있어요. 그애는
지난 2주일 동안 거기 갇혀 있었어요. 빨리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애는 죽을지도 몰라요. 거긴 같은 격리병실이라 해도 예사
격리병실이 아닌 곳이예요!」 「캘리, 고맙구나. 그런데...
확실하니?」 「저를 믿으세요. 저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있는 거예요.
아, 저기 노블과 바바라가 오고 있어요. 이만...」 캘리의 전화가
끊기자 마자, 나는 등줄기를 타고 씽 하고 지나는 냉기를 느꼈다.
거긴 같은 격리병실이라 해도 예사 격리병실이 아니예요.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애는.. 나는 와들와들 손을 떨며 스튜어트
박사의 사무실로 전화를 돌렸다. 그러나 그의 비서는 그가 의학회의
때문에 멕시코에 가 있으며 다음 월요일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 가셨소?」 「18일 전에 가셨습니다.」 비서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그가 열흘 전에, 10일에 한번씩 내게 전화해오던
것을 그날만은 해주지 않아서 내가 직접 그에게 전화를 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때 그의 비서는 스튜어트 박사가 출장 중이며 특별히
내게 메시지 하나를 남겨 놓고 갔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그
메시지에는 리키가 건강히 잘 있으며 치료를 위한 스케줄에 잘
따라주기 때문에 특별히 달리 할 말이 없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먹구름처럼 번져오는 의혹을 떨쳐내지 못하면서 웨스트체스터로
달려갔다. 평소 같으면 1시간 정도 걸릴 텐데, 거리에 가득히 쌓인
폭설로 인해서 세 시간이 걸려서야 겨우 병원에 당도할 수 있었다.
내가 웨스트체스터에 뛰어들어 병원 접수 창구로 달려가 리키를
면회하겠다고 하자, 접수계 간호원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리키는 면회가 허용되지 않아요. 스튜어트 박사의
허락을 받아오셔야만 됩니다.」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억지로 가라앉히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이것 봐요, 그는 지금
없어요! 그는 외국에 나가고 여기 없단 말이오. 리키가 지금 어떤
상태로 있는지 내 눈으로 똑똑히 봐야겠소, 지금 당장!」 「그래도
스튜어트 박사님의 허락서가 없이는 면회가 안됩니다. 이것은 병원의
규칙이예요.」 「이봐요, 내 말이 들리지 않소? 지금 당장이라고
했소!」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병원 안팎이 온통 울리도록
소리를 쳤다. 리키가 자살을 꿈꾸며 한웅큼 약을 먹었던 그날 그
새벽에도 나는 이렇게 소리를 쳤었다. 그날의 절망이 새삼스러운
통증으로 되살아 옴을 아프게 느끼며, 나는 접수구 창문을 부서져라
두드리며 계속 소리를 쳤다. 그러자 접수계 간호원이 마지 못해 말을
하는 것이었다. 「스튜어트 박사님이 안 계시다면, 다른 의사
선생님의 허락이라도 받아야만 됩니다.」 「다른 의사라면
누구하고?」 「제가 한번 찾아보겠어요.」「필립스 선생은 어떻소?」
나의 물음에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녀는 전화 교환기의 몇 개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눌렀다. 내가 그녀의 전화 내용을 들으려고
하자, 그녀는 뻔뻔스럽게도 재빨리 돌아서서 수화기에 대고
소근거리는 것이었다. 「필립스 선생님은 당신이 휠룩 박사님과
말씀을 나눠야만 한다고 하시는군요.」 그녀가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차갑게 내뱉었다. 「휠룩 박사가 누구요?」 「그 분은
스튜어트 박사님이 부재중이실 때 업무를 대신하시는
선생님이십니다.」 이 말과 함께 그녀는 회색 철제 책상과 두 개의
의자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휴게실로 나를 안내하였다.
거리서 20여 분을 기다리게 한 뒤에 큰 키에 금발을 가진,
우락부락하게 생긴 휠룩 박사가 나타났다. 「프래드 박사님, 우리는
초면인 것 같군요.」 그는 아주 성깔 있는 목소리로 말을 했는데
가끔 마른 기침을 하면서 강인하게 보이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그는 한마디로 만만한 사내가 아니었다. 「사실, 나는
오늘 아침에 리키의 상태를 보았습니다. 여기 리키의 병상일지가
있는데 보여 드릴까요?」 「이것 보시오, 휠룩 박사님!」 나는 두
눈을 있는대로 크게 뜨고는 그를 노려보았다. 「나는 내 딸을
보러왔소. 그애가 벌써 보름째 격리병실에 갇혀 있다는 게
사실이오?」 나의 물음에 그는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것을
애써 감추며 그가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당신이 최근
그애의 상태에 대해 알게 되었나요?」 「그것은 말할 수 없소!」
「병원에 있는 누군가가 그것을 당신에게 고자질했던 모양인데...」
「당신에게는 그따위 하찮은 문제가 중요한지 모르지만, 나는 내
딸이 더 소중하오. 하루 이틀도 아닌 보름씩이나 특수 격리병실에
어린아이를 가둬 놓다니,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짓을 저지를 수가
있소?」 「잔인하다고 했소? 그애에게 어떻게 했기에?」 「어물쩡
넘기려 하지 마시오!」 나의 사나운 말씨에도 그는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면서 쌀쌀한
음성으로 말했다. 「리키를 만난다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일이
아닌 것 같소. 더구나 이번의 조치는 리키에게 환자로서의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려는 방법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오...」 「공동체
의식이라구? 아이를 격리 수용하는 그런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더구나 그애를 일반 격리병실도 아닌 특수병실에다 가둬 놓고도...
도대체 이게 누구의 결정이오? 필립스요, 아니면 스튜어트요?」 물론
리키가 전에도 격리병실에 수용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보통 하루 이틀에 불과했으며, 그것도
일반병실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격리병실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캘리의 전화로 추축하건대 지금 리키는 완전히 독립되어 뚝
떨어진 격리 수용실에 가 있는것 같았으며 그것도 벌써 보름째 거기
갇혀 있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에만도 몸서리를 치겠는데, 휠록의
거만함에 나는 더더욱 진저리를 쳤다. 「그 결정은 사실 내가
내렸소.」 「당신이?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나는 스튜어트
박사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소,아시겠소?」 나는 분노에 몸을 떨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여전히 차가운 미소가 드리워진 그의
얼굴을 노려보며 사납게 소리쳤다. 「당신은 병원 환경에 영향받기
쉬운 나이의 여자아이에게 그런 악랄한 결정이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보았소?」 「격리수용도 하나의 훈련 과정이며 치료라는 걸
이해해 주시오.」 「내 허락 없이 저지른 그따위 잔인무도한 치료를
정당화하려고 하다니 난 당신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소.」
「이봐요, 프래드 박사. 당신도 나와 똑같은 정신과 의사라고 알고
있는데,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당신은 잊고 있는 것 같군요.
환자를 통제하려고 계획한 어떤 절차도, 의사는 환자 가족의 의견에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이봐요,휠록 박사. 리키는 죄인이 아니란
말이오. 그애는 환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내 말을 가로막으며
그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나도 그점은 잘 알고 있소. 그러나
리키는 계속해서 병원의 규칙을 어겼소. 목욕탕에 몰래 들어가
담배를 피우고, 병원의 기물을 파괴하고, 간호원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약을 먹지 않고, 그 약들을 몰래 시트 밑에다 숨겨 놓고...
나는 스튜어트 박사를 대신해서 여러 번 경고를 하였지만 리키는
끝내 나의 명령을 어겼소!」 나는 휠록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행위를 끝끝내 정당화하려는 그의 뻔뻔스러움에 구토를
느끼며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봐요, 휠록 씨.리키가
정상적이라면 내가 왜 병원에다 그애를 데려다 놓았겠소. 그애는
환자이고, 환자이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가 또다시 내 말을 가로막으려 했기 때문에 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당신은 리키를 정신분열증 환자로 취급하고
있는 모양인데, 스튜어트 박사는 그런 진단을 내린 적이 없소.」
「당신은 정신질환자 모두를 단지 쓰레기 같은 존재로 여기는
모양인데, 내 앞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소. 그애는 내딸이고, 나는
당신에게 그애를 맡긴 적이 없으니까!」 「이것 보시오! 프레드
박사. 진정하고 내 말을 들으시오.」 그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 걸음 다가서며
소리쳤다. 「지금 당장 리키를 내 앞에 데리고 나오시오. 지금
당장!」 「이것 봐요. 프래드 박사. 당신은 리키를 이곳에 입원시킬
때 병원의 규칙에 따르겠다고 서약을 하였소. 면회할 권리를
통제당해도 좋다는 대목이 거기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으셨소?」
「지금 당신은 내가 내 딸을 만날 수 없다고 말하는 거요?」
「당신과 리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할 테니까요.」
「그것은 내가 판단할 문제요! 내가 당신이 말하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소?」 「당신은 그애의 보호자요. 당신은
언제든지 그애를 데리고 나갈수 있소.」 휠록이 냉소를 머금은 채
내뱉었을 때 나의 분노는 절정에 다달았다. 나는 회색 철제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당신이 의사요? 아니면 감옥의 교도관이요?」
「말 조심하시오! 나는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소. 더구나 나의
환자에 대한 나의 치료방법에 대해서는 누구하고도 타협하거나
방해받고 싶지 않소. 나의 방법에 반대한다면 지금 당장 그애를
퇴원시키시오.」 이 말과 함께 휠록은 천천히 일어섰다. 나는 죽일
듯이 그를 노려보았을 뿐,갑자기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나는 그의
멱살을 움켜쥐거나 그의 육중하게 보이는 아랫턱을 후려갈기고
싶었다. 그리고 나서 열쇠를 빼앗아서 리키가 갇혀 있는 병실로
달려가 단 1분만이라도 그애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러나...나는 그
어떤 몸짓도 하지 못한 채, 다만 휠록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만
있었을 뿐이었다. 휠록이 조금도 표정의 변화 없이 나를 마주
바라보면서 아주 느린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며칠 안으로
스튜어트 박사가 돌아옵니다. 그때 이 문제를 그와 상의하도록
하시오. 나는 더이상 할 말이 없소. 그럼 이만...」 삭막한 휴게실에
나 혼자만을 남겨 놓고 휠록이 나가 버리자 나는 완전히 힘이 빠지고
말았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서 나도 모르게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리키야...」
30.끝내 리키는 그 무서운 전기쇼크 치료를 받게 되고, 그것을
지켜보는 아빠는.. 그로부터 닷새 후인 월요일 오전에 힐라리와 나는
웨스트체스터로 달려갔다. 스튜어트 박사와는 아침 일찍 통화를
하였다. 아직도 눈에 뒤덮인 정원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마침내 우리는 마주 앉았다. 창 너머 저쪽으로 환자들이
만들어 놓은 듯한 눈사람이 등을 보인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겨울은 제가 좋아하는 계절입니다.」 스튜어트 박사가 짐짓 여유를
보이며 한가하게 중얼거렸으나, 그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내가
불쑥 내뱉었다. 「우리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아시겠죠?」 「압니다.」
그는 순순히 시인했다. 힐라리가 하소연하듯이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요? 특수 격리병실이라니...」
「그것은 제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만일 제가 있었다면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저도 그 일을 알고 나서 무척 화가
났었습니다.」 「어떻게 휠록 박사는 다른 의사의 환자를 그렇게
함부로 다룰 수가 있습니까? 」 힐라리의 물음에 그가 어색하게
담배를 꺼내 피워 물며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한참 후에야
그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부재중일 때의 관리 감독자로서 그것은 그의 고유권한입니다. 필립스
선생 역시 그 일에 대해 반대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군요. 그러나
일개 레지던트로서 그는 휠록의 명령을 거부할 힘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휠록과 나는 종종 의견 충돌을
일으키고는 하는 그런 사이입니다. 프래드 박사, 당신은 우리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할 말도
없었으며, 있다 해도 말을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사실만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휠록 박사의
조치가 부분적으로는 리키로 하여금 절망에서 벗어나도록 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절망이라고 했습니까?」 나는 의혹에
차서 스튜어트 박사를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휠록이라는 자를 위해 변명을 하고 계시군요.」 스튜어트 박사는
아무 말도 없이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힐라리는 거의 울듯한
표정으로 창밖으로 보이는 설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키는 거의
3년 가까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스튜어트 박사가 재떨이에 담배를
눌러 끄면서 나지막이 말문을 열었다. 1966년 3월로부터 시작된
리키의 병원 생활은 스튜어트가 굳이 상기시켜 주지 않더라도 만
3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만 3년. 이 사실을 새삼 아프게 음미하고
있는 내게 스튜어트가 천천히, 아주 침통하게 말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원하고 계획하는 방식대로 리키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달에도 리키는 우리의 기대를 또한번
저버렸습니다.」 「무슨 뜻이죠?」 힐라리가 근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스튜어트에게 물었다. 「자기
파멸,무질서,자학...저는 그애가 만성적인 치유 불능 상태로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정말로 큰 우려를 느끼고 있습니다.」
「만성적 치유 불능 상태라면... 이봐요, 스튜어트 박사님. 당신은
전화상으로 단 한번도 내게 그런 사실을 말한 적이 없소. 매번
좋아지고 있다, 괜찮다, 이런 식이었소. 그런데 이제 와서 만성적
치유 불능 상태라니,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소?」 스튜어트
박사가 또 한 개비의 담배를 꺼내 들고는 느릿느릿 라이터를 켰다.
그가 자기가 내뿜은 담배 연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심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는 오늘 아침에 직접 리키를 보러 갔어요. 그애는
아직도 격리병실에 있습니다. 쥬디 양과 제가 리키를 데리고 나오려
할 때, 그애는 몇 걸음 옮기다가 그만 균형을 잃고 넘어졌어요.
그애는 머리에 약간의 충격을 받았고 코뼈가 부러졌어요. 그다지
심한 부상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애를 외과 병실로 옮겨 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저는 리키에게 아버지가 며칠 전에 여기 왔었으며
격리병실에 수용되어 있는 것도 알고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러나
그애은 그런 것에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끝내
힐라리는 울음을 터뜨렸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녀는
소리나지 않도록 애쓰면서 어깨를 들먹이며 울었다. 「저는 지난 3년
동안 언제나 변함없는 자세로 리키를 대해왔다고 자부합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구요. 리키를 치료한 후에, 저는 미카엘 헨드릭스
박사에게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그는 그가 항시 가지고 있던 생각
그대로 리키가 전기 쇼크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힐라리가 눈물로 펑 젖은 얼굴을 번쩍 들면서
소리쳤다. 「우리는 절대로 그걸 허락할 수 없어요. 차라리 리키를
데리고 나가겠어요.」 「그애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쁜 상태입니다.」 스튜어트 박사의 말은 안타깝다는 빛이
가득하기만 했다. 힐라리가 지지 않고 다시 소리쳤다. 「이제 겨우
열여섯 살 소녀에게 전기 쇼크 치료라니 말도 되지 않아요.」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진 스튜어트 박사의 말은 우리를 경악에 빠뜨리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사실... 그것은 이미 행해졌어요.」
「뭐라구요?」 하마트면 나는 탁자를 걷어찰 뻔했다. 힐라리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입만 크게 벌리고는 스튜어트 박사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겨우 물었다. 「도대체 몇 번이나
행해졌단 말입니까?」 「열 다섯 번? 어쩌면 그 이상...」 「열다섯
번이나?」 힐라리가 절망에 찬 음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손이
눈에 띌 정도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실상 표준치에
해당되는 수준입니다. 또 그것은 우리가 상상하듯이 그렇게 두렵거나
위험한 것도 아닙니다.」 나는 스튜어트 박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냉정을 되찾으려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으나, 온몸이 떨리고
있기 때문에 내 손은 흡사 경련을 일으킨듯이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전기 쇼크 치료를 받는 환자는, 이 치료를 받기 전에 육체적
경련이 일어나지 않도록 근육이완제 정맥주사를 맞는다. 이렇게 되면
환자는 잠에 빠지게 되고, 의사들은 이 사이에 머리 양쪽의 관자놀이
위쪽에 플러스와 마이너스 전극을 갖다 대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이것은 2,3회 정도 순간적으로 가해지기 때문에 환자가 깨어났을 때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결국 리키는 이런 전기
쇼크 치료를 15회 이상 받아왔다는 것이었다. 힐라리는 의자의
가장자리에 불안스럽게 앉아서 스튜어트 박사의 말이 가져다 주는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가늠해 보기 위해 애를 쓰는 눈치였다.
스튜어트 박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프래드 박사, 당신에게 말해야
할 다른 문제가 있소. 휠록 박사는 몇몇 다른 동료의사들에게
당신과의 언쟁에 대해 자세하게 말했소. 그들은 휠록의 말을 듣고
당신이 리키를 위해 우리 병원에서 한 일에 대해 불만이라면 리키를
내보내는게 좋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제 말을 이해하시겠소?」
이해 못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휠록의 비열한 행위와 무분별한
언동에 격분을 느꼈다. 나의 격분을 대신하여 힐라리가 말문을
열었다. 「스튜어트 박사님. 정말로 우리가 리키를 이곳에 그대로
놔두어야 될지 어떨지를 결정할 순간이 온 것 같군요. 그렇지
않은가요?」 힐라리의 단호한 말에 스튜어트는 침통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여길 보세요. 쇼크 치료는 리키에게 보다 나은
기능 수준을 가져다 줄지도 모릅니다. 만일 지속적인 쇼크 치료에
리키가 반응을 보이기만 한다면 그애는 사회 복귀시설로 갈 수 있을
겁니다. 최소한 그곳은 문제도 없고 고통도 적은 곳입니다.」 나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막연하게 리키를 이곳에 놔둘 형편이
아니었으며, 놔둔다고 해도 그 어떤 확신도 가질 수가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내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을 때, 스튜어트 박사가 한
가지 사실을 지적했다. 「만일 이대로 리키를 방치했다가는, 리키는
국립병원으로 옮겨지게 될 것입니다.」 「오, 그건 안돼요!」
힐라리가 끝내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나 역시 소파의 손잡이를
움켜잡으며 미친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제였던가. 리키가
말했었다. 그렇다. 리키가 특별휴가를 받아 힐라리의 집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때 리키는 사라가 국립병원으로 강제 후송된 것을
말하면서 슬프게 중얼거렸었다. 「나도 언젠가는 국립병원으로
보내지겠지요?」 그러면서 그애는 말했었다. 아빠도 그렇게 매정하게
환자를 국립병원 같은 험악하고 열악한 병원으로 강제로 보내느냐고.
나는 리키의 그 말을 상기하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국립병원은
안 됩니다. 그애를 그곳에 보낼수는 없습니다.」 「그곳은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에요.」 스튜어트 박사가 변명처럼 주장했다.
「그곳들 중에 몇몇은 잘 운영되고 있어요. 나는 개인병원에서
상태가 좋지 못했던 환자들이 국립병원으로 가서 오히려 극적으로
상태가 호전된 경우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나는 비통함과 체념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눈으로 그를 응시하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결국 요점은 쇼크 치료냐, 아니면 국립병원이냐 하는
양자택일만 남았다 이거군요.」 스튜어트는 대답 대신 머리만 조용히
끄덕였다. 힐라리가 절망과 불안으로 뒤범벅이 된 표정으로 나를
돌아다보았다. 나역시 한동안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스튜어트 박사에게 물었다. 「스튜어트 박사님. 만일
리키가 당신의 딸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실 겁니까?」
「리키는 저의 딸이 아닙니다. 비록 제가 그애를 대단히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 결정은 완전히 두 분의
몫입니다.」 힐라리가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중요한 결정의
순간순간 마다 매번 힐라리는 일찍 사태를 절망 쪽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해왔다. 그러나 나는 이제는 그녀의 그런 태도를 원망할 힘도
없었다. 힐라리가 울먹이면서 떠듬떠듬 묻고 있었다. 「박사님은
정말 그것이 리키를 도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나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어떤 확신도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쇼크 치료에 대한 반응은 그 결과가 한결같지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급격히 건강을 되찾았는가 하면, 다른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결코 그런 치료법을
선호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쇼크 치료가
어떤 심각한 육체적 합병증이나 부작용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기억상실이나 뇌손상과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이
뒤따른다고 들었는데...」 힐라리의 반론에 스튜어트 박사는 즉각
해명을 해주었다. 「기억상실은 대체로 일시적인 현상이고 뇌손상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보고나 증거가 없습니다. 다만 반응이
지체되는 리키 같은 환자에게는 사기를 저하시키는, 달리 말하면
그런 극단적인 치료로도 회복되지 않아서 느끼게 되는 실망감 같은
정신적 낭패감이 문제가 되겠지요.」 이제 결정의 순간이 왔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왜 그 순간 불현듯 돌아가신 아버지의 그토록이나
단호하던 얼굴이 떠올랐을까. 지난 3년 동안의 리키의 입원으로 나는
심신이 말이 아니게 피폐해져 있었으나 한 가지 사실에서만은 언제나
단호히 대처해오고 있었다. 그것은 리키를 정상인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길이라면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을 택하겠다는 결심
바로 그것이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명예 따위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소중한 것은 리키였으며 가정이었으며 나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나는 얼마나 수없이 많은 밤을 밝히며
깨달아왔던가. 리키가 음독 자살을 기도했던 1967년 2월의 그 사건이
있고부터 이런 깨달음은 더욱 견고한 뿌리가 되어 내 가슴에
자리하였다. 반드시 리키를 살려내어, 결코 포기하지 않고 리키를
제자리에 데려다 놓아 내 가족 내 가정의 소중한 의미를 되찾고야
말겠다는 다짐은 매일 밤 그렇게 새로웠던 것이다. 60여 시간 동안
생명과 죽음의 경계선상에서 방황했던, 그날 그 사건의 새벽 이후에
나는 얼마나 많은 눈물의 기도로써 나를 질책하면서 리키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치겠노라고 다짐했던가. 나는 생각하였다. 무엇이
최선인가. 전기 쇼크 치료인가, 아니면 국립병원인가. 나는 지난
3년간의 스튜어트 박사에 대한 신뢰감을 떠나서, 모든 것을 떠나서,
심지어는 지리한 치료보다는 뭔가 획기적이고 단호한 결정으로 되든
안 되든 결과를 빨리 보고야 말겠다는 그런 따위의 조급함을 떠나서
냉정히 나 자신에게 물었다. 무엇이 최선인가. 마침내 나는 힐라리의
의견과는 관계없이 굳은 음성으로 말해주었다. 「리키에게 전기 쇼크
치료를 하는데 동의합니다.」 한동안 힐라리가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대신 나는 조용히
일어나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듯한 창밖을 바라보기 위해 창으로
걸어갔다. 힐라리의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리키가 이 일에 대해
알고 있나요.」 「저는 이 일에 대해 이미 리키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애가 어떻게 생각하던가요?」 「리키는....
자신이 좋아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다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그 순간 눈물을 흘린 것을 스튜어트나 힐라리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리키가 희망을 포기하려고 했다면 누가
우리로 하여금 그런 결정을 하게 할 수 있었겠는가. 리키는 실상
누구보다도 열심히 인내하고 있었으며, 회복되기를 열망하고
있었으며, 그리고 죽음이 아닌 삶을 그애의 본능과 함께 움켜쥐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자살 기도나 자기 파멸행위 같은 것도 오히려
삶을 위한 처절한 투쟁의 한 방법임을 나는 뜨거운 아픔으로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31. 리키의 회상(7) 꿈속에서 리키는 밤새도록 달리지만, 언제나
깨어나면 거기 그대로... 필립스 선생은 내게 다시 쇼크 치료가
행해질 것이며, 그것은 아빠와 엄마도 동의한 일이라고 말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에 어떤
거부의 의사도 나타내지 못했다. 나는 질끈 눈을 감고 그 악몽의
시간들을 떠올려 보았다. 처음에 나는 그 일들에 관해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월요일, 수요일, 그리고 금요일이 되면 나는 쇼크
치료실로 가서 차디찬 베드 위에 누워야 했다. 질긴 옷이나 면으로
된 파자마를 입고, 시트를 덮은 채 팔을 뻗으면 간호원은 식염
마취약으로 정맥주사를 놓는다. 잠시 후에 나는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되고, 그들이 내게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알 길이 없게
된다. 꿈조차 꾸지 않는 깊은 잠은 완전한 무의식과도 같은, 일종의
또다른 죽음이었다. 살아 있으면서 그런 완전한 적막의 정지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행복인가,불행인가. 쇼크 치료가 끝나면
그들은 나를 베드에서 들어올려 치료실 한쪽에 있는 탁구대
크기만한 또다른 테이블로 옮겨 놓는다. 내가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오는 것은 그곳에서이고, 나는 거기서도 한참 동안 누워 있다가
심신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게 되면 나의 병실로 돌아간다. 가끔
나는 그 테이블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누워 이대로 영원히 잠들었으면 하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기대를 하고는 하였다. 비틀즈, 사이몬과 가펑클 등의 서정어린
음악들에서 나는 가끔 나의 개인적인 의미들을 찾을 수 있었다.
어떤 노래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끝. 왜 내 마음은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는 걸까.
왜 내 마음의 눈은 눈물을 그칠 수 없는 것일까. 사람들은 모른다.
그것이 세상의 끝이라는 걸. 네가 안녕을 고할 때, 그것이 끝이라는
걸.
나는 정녕 회복되기를 원했다. 나는 정녕 원래의 내 모습을 되찾기를
간절히 간절히 원했다. 그것이 내가 쇼크 치료에 응했던 단 하나의
이유이다. 나는 쇼크 치료가 나의 악몽을 극적으로 깨워주리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나의 팔뚝에 있는 정맥에 있는대로 다
주사를 해버렸고, 끝내는 더이상 바늘을 꽂을 데가 없어서 내 목에
있는 정맥을 찾아야만 했다. 내 팔뚝은 왼쪽 오른쪽 할것없이 시커먼
바늘 자국으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와 함께 회복되기를 갈망했던
나의 기대도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내 목에 정맥주사를 놓을
때는 나를 유아용의 비좁은 침대 안에다 집어 넣었다. 식염 마취약을
맞는 동안 너무나 통증이 심하기 때문에 내가 몸을 비틀기라도 할까
봐 그러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라도 된다면 어른 손가락만한
바늘은 정통으로 내 목을 관통하고 말 것이다. 한번은 치료가 다
끝난 후에도, 의식은 되찾았으나 몸을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분명히 그들은 내게 근육이완제를 너무 많이
주사한 것이었다. 나는 끔찍했다. 무엇인가 말을 해보려고 했지만
혀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목구멍이 점점 더 졸아드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이 죽음의 시작이라고 느꼈다. 다행히 누군가가 나의
곤경을 알아차렸고, 간호원과 의사가 달려들어 내가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후로 나는 쇼크 치료가 두려워졌다. 나는 쇼크
치료로도 내가 더이상 호전되거나 회복될 전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 무의미하고도 악랄한 고통의 시간이 두렵기만
하였다. 두려움. 실상 그것은 내 의식의 덮개 위에 묵직하게
내려앉은 하나의 검은 그림자였다. 웨스트체스터에 있은 지 3년이
지났을 때, 나는 내게 외부 생활에 올바로 대처할 만한 능력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내가 사태가 좋아지고 완전히
온전한 심신을 가진 소녀로 거듭나더라도, 병원의 문을 열고 나갔을
때 새로이 닥쳐올 변화에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것은 내 능력 밖의 먼먼 일로만 여겨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나는 정해진 일과처럼 다시 발작을 일으켰다. 그들은
그런 나의 상태를 ‘재발’이라고 불렀다. 근근이 쇼크 치료를
마치고, 회복 테이블 위에 누워서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나는 슬프게
떠올라오는 할아버지의 영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그분만
살아 계셨더라도 내가 이 지경으로까지 처참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분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릴 기력도 없다. 나는
이미 여러 번 자살에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그것을 시도해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나 죽음은 생생한 냄새로 내 정신을
자극하고는 있었으나, 그것을 다시 실행하기에는 나는 이미 너무
지쳐 있었다. 죽음 대신에 나를 사로잡는 생각 하나는 그렇다. 그건
탈출이었다. 도망치고 싶은 나의 욕망은 강렬한 불길같이 내 의식을
언제든 태우고 있었다. 호시탐탐 나는 병원으로부터 도망칠 기회만을
엿보았다. 그러나 그것 역시 내게는 전혀 가능성이 없는 또 하나의
신기루에 불과하였다. 어느날 밤에, 나는 몰래 병실을 빠져 나와
병원 뒷담 쪽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갔다. 그러나 나의 다리는
도망치고 싶은 나의 열망을 들어줄 만큼 튼튼하지 못했다. 내가
운동장의 한가운데쯤 달려갔을 때, 경비원들이 떼를 지어 달려와
나를 나꿔채고는 발버둥치는 나를 질질 끌며 다시 병실에다 가둬
놓는 것이었다. 나는 밤마다 침대에 누워서 어떻게 하면 내가 도망을
쳐서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 수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했다.
꿈속에서 나는 밤새도록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나는
여전히 거기 있었고, 침대 시트를 흥건히 적신 땀과 눈물만이 내
노력의 보상인 양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수평선 너머 그곳
32. 갑작스런 퇴원 명령, 그는 리키가 이제 완쾌되었다고
말하며..... 열여덟 차례에 걸친 쇼크 치료 과정이 끝날 때쯤에,
리키에게는 또하나의 6월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나중에 그애는
쇼크 치료의 경험에 대해 약간씩 기억할 수가 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두려웠으며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에 대해 내게 말했었다.
대개 병원에서는 쇼크 치료에 관한 매우 악랄한 유언비어가 돌게
마련이었다. 쇼크 치료를 받다 보면 뇌를 통해 전류가 요동을 히고,
환자의 전신은 파도처럼 거세게 경련을 일으키게 되며 어떤 사람은
자기 혀를 물어뜯기까지 한다는 등의 끔찍한 유언비어가 그것이었다.
물론 이런 유언비어의 대부분은 과장된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이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환자는 겁을 먹게 마련인 것이다. 특별한
용기와 인내 없이는 불가능한 쇼크 치료를 나의 동의전에 이미 15회
이상 받은 바 있고, 그후에 다시 18회나 더 받은 리키의 그 진정한
용기에 나는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회복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이 없이 어찌 그것을 무려 33회나 흔쾌히 받을 수 있었겠는가.
리키의 그런 용기에 대한 보답이 마침내 우리에게 온 것은 바로 그해
7월 첫째 주 월요일이었다. 힐라리와 나는 스튜어트 박사를 만나기
위해 다시 웨스트체스터에 갔다. 그는 지난 주에 내게 전화를 통해
오늘 한번 만나자는 말을 전해왔다. 갑작스런 일이었기에 나는
리키가 또 무슨 일을 저질렀는 줄로만 알고 깜짝 놀랐다. 스튜어트
박사가 우리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짐짓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해주었다. 「실망을 드리는 말씀을 나누지는 않을 테니 안심하시고
오십시오. 가능하다면 부인과 함께... 」 우리가 스튜어트 박사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곳에는 뜻밖에도 필립스 선생도 와 있었다.
우리는 초면이었다. 20대 후반인 그는 실제로 스티브 알렌을 닮았다.
하지만 그는 약간 긴장되어 있는 것 같았고 겸손했으며 그다지 말이
없는 것 같았다. 한두 마디의 인사말 뒤에 스튜어트 박사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두 분은 오늘 리키를 만나게 될 겁니다.」 너무나
뜻밖의 말이기 때문에 힐라리와 나는 한동안 할 말을 잃고는 서로의
얼굴만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난 당신들이 그애를 만나면 좀
놀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리키는 새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몰라볼 정도로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지요. 만일
그애가 다음 몇 주까지도 이런 상태를 유지한다면, 우리는 리키를
퇴원시키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의혹에
차서 그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였다. 나는 스튜어트 박사가 농담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힐라리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우리 리키를 집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건가요?
정말인가요?」 힐라리의 물음에 스튜어트 박사는 만면에 가득 웃음을
머금고는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난 도무지...」 「모두 사실입니다.」 나는 스튜어트
박사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을 단박에 수긍할 수가 없었다.
바라고 바라던 일이 이렇게 갑자기 현실로 닥치고 보니, 내게는
리키가 퇴원하게 되리라는 사실이 곧이들리지 않았다. 나는 필립스
선생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여전히 긴장한 듯한 무표정한 얼굴로
소파 한쪽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그런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박사님의 말씀은 모두 사실입니다.」 힐라리와 나의 시선이 그
순간 부딪쳤다. 그녀는 조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자, 우리는
리키의 장래 문제를 얘기할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리키에게
특수학교가 필요하리라고 봅니다만... 그애는 너무 오랫동안 공부와
떨어져 있었습니다. 정신병 치료시설을 갖춘 특수학교 같은 곳이면
좋겠습니다만...」 「그런 곳이 있나요?」 힐라리가 아직도 완전히
의혹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머뭇거리며 물었다. 「몇 군데
있습니다만 나는 컨넥티컷에 있는 체리런 스쿨을 권하고 싶군요.
체리런 스쿨은 훌륭한 교육 과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많은
아이들을 퇴원 후에 그곳으로 보낸 바 있습니다. 물론 그애들은 몇몇
아이만 빼놓고는 일반적으로 다 건강히 학교 생활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두 분이 먼저 체리런 스쿨을 방문하시고 나서
결정하십시오. 자, 그럼 우리 다함께 리키를 만나러 갈까요?」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리키가 전기 치료를
받는 동안에 우리는 그애를 한번도 면회하지 못했었다. 과거에도 늘
그랬듯이 내가 그애에 관해 알고 있는 정보란 모두 전해들은
이야기뿐이었다. 리키는 무엇을 기억할까. 리키가 우리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쇼크 치료에 동의했다는 이유로 내게 화가 나
있을까. 리키는 정말 좋아진 것일까. 리키가 쇼크 치료에 잘
반응했던 것은 단지 의사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속임수가 아니었을까.
물안개 속처럼 모든 것은 불투명했고 그 어떤 생각도 명료히
떠오르지 않았다. 스튜어트 박사의 뒤를 따라가는 나의 발걸음은
내가 생각해봐도 참으로 어색하기만 해서 마치 캄캄한 한밤중에
시골길을 걸어가듯이 조심스럽기만 하였다. 3년의 세월이 지나고
다시 3개월이 훌쩍 지나가 버린 리키의 입원 기간 동안 내가 느꼈던
그 많은 의혹과 절망과 당황이 이렇게도 갑자기 순식간에 사라지게
되다니 나는 웨스트체스터에 처음 들어설 때처럼 그 어떤 확신도
서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날 내가 마침내 리키를 만났을 때, 나는
스튜어트 박사의 말대로 그애의 변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리키의 생일에 힐라리가 보냈던 장미빛 드레스를 입은 그애는 너무도
어른스러워 보여서 한 사람의 성인 여자와도 같았다. 약간은
땅딸막했지만, 리키는 전체적으로 아주 예쁜 젊은 숙녀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애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과거에 우리가
리키를 만나러 왔을 때는, 그애는 항상 우리를 반기려고
어린아이처럼 뛰어왔었다. 하지만 오늘 그애는 어른스런 걸음걸이로
걸어와서는 가득 웃음이 담긴 얼굴을 약간 숙여 인사를 한 후에 먼저
힐라리를 포옹했고, 다음에는 나를 포옹하는 것이었다. 「잘 있었니,
내 딸아!」 내 물음에 리키가 꾸밈이 없는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저는 정말로 좋아요.」 힐라리가 다시 리키를 껴안아주며
말했다. 「아주 어른스러워 보이는구나.」 「고마워요, 엄마. 하지만
기억력은 그다지 좋은 편이 못돼요. 가끔씩 두통이 있구요. 그러나
저는 아주 좋아졌어요. 저 자신이 그걸 느낄 수 있어요. 나는 리키를
웨스트체스터에 입원시켜 놓고 맨 처음 면회하러 왔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리키를 보고 나는 무엇을 느꼈던가. 이 아이는
리키가 아니며, 스튜어트 박사는 리키를 닮은 어떤 아이를 데려다
내게 팔아넘기려 한다고 생각했었다. 오늘의 리키도 생소한 느낌을
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3년 동안 고착되었던 병든 소녀의 이미지가
고작인 내게 오늘 리키는 너무도 예쁘고 활달한 작은 숙녀가 되어
나타남으로써 또한번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아빠, 제가 몹시
나쁘긴 나빴었나 봐요.」 「무슨 뜻이지, 리키?」 「그건... 글쎄요,
간호원 노블이 제가 나쁘게 행동하곤 했다고 말했어요. 저는 아주
오랫동안 격리 수용되어 있었어요. 제가 그렇게 상태가 나빴나요?」
「아니다,리키야.」나를 대신하여 스튜어트 박사가 리키의 생각을
고쳐주었다. 「나쁜 게 아니라 다만 아팠을 뿐이었지. 하지만
리키야, 지금은 아주 좋아졌단다.」 「때때로 저는 정말...
정상이라는 느낌이에요.」 「그래, 너는 정상이란다.」 「그럼 제가
지금 집에 돌아갈 수 있나요?」 리키가 스튜어트 박사와 필립스
선생을 똑바로 응시했다. 필립스는 여전히 침묵이었다. 스튜어트가
빙긋 웃으며 대답하였다. 「오늘은 아니란다. 하지만 넌 곧 가게 될
거야.」 「언제요?」 「다음 주말쯤? 모든 것이 확실히 좋아지고
나면, 그때쯤 너는 이곳과 작별을 하게 된단다.」 「영원히.」
리키가 작게 소리치자, 힐라리가 격하게 울면서 이 말을 따라했다.
「영원히」갑자기 리키가 발레리나처럼 팔을 들고는 한 바퀴
빙그르르 돌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안녕, 웨스트체스터여. 안녕!
안녕! 안녕!」 리키의 날아오를 듯한 기분은 곧바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울면서 웃으면서 힐라리가 한걸음에 달려가 리키를
껴안았다. 나 역시 달려가 리키를 껴안아주었다. 그때 건너편 탁자에
앉아서 편지를 쓰고 있던 한 늙은 여자가 리키에게 말을 했다.
「리키야. 축하한다. 하지만 우리들 중에 몇 명은 영원히 여기에
머물러야만 한단다. 우리를 잊지 말아라.」 리키가 그녀에게 크게
손을 흔들어 보이더니, 돌연 필립스 선생에게 다가가서 말문을
열었다. 「여기에서 기다리세요. 드릴 것이 있어요!」 그애는 채
5분도 되지 않아서 돌아왔다. 그애가 가지고 온 물건을 보고 나와
힐라리는 대단히 놀랐다. 그것은 함부로 망가지고 찢어져서 여기저기
되는대로 꿰맨 도로시 인형이었던 것이다. 힐라리와 내가 이혼하자,
리키는 그것을 목욕탕으로 가지고 가서 마구 부수고 찢어 버렸었다.
그런데 리키는 다시 이것을 남몰래 가져다가 어설픈 솜씨로 꿰매어
그럭저럭 원형대로 만들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걸 선생님께
드리겠어요.」 필립스는 리키에게서 인형을 받아들고서 어색하게 서
있었다. 스튜어트 박사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안 돼,
리키에게서 인형을 받아들고서 어색하게 서 있었다. 스튜어트 박사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안 돼, 리키. 도로시 인형은 네가 가장
아끼는 인형이잖아.」 「맞아요, 그건 제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예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도로시를 선생님이 가지시기를 원해요. 그것은
제가 가는 곳에는 이제 어울리지 않거든요.」 힐라리와 나는
눈시울만 붉힐 뿐, 이 문제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얼마후,
스튜어트 박사는 리키와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한가지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리키는 완전히 이곳과 작별하기 전에 이틀간
뉴욕을 방문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예행연습이라고나 할까요?」 그날로부터 사흘 후에 리키는
스튜어트 박사 말대로 뉴욕의 내 아파트에 왔다. 이틀 예정의 이
방문은 한마디로 아주 좋았다. 리키는 아파트의 방 하나를 완전히
그애의 물건들로 들어차게 만들어 놓은 나의 배려에 고마워하면서,
옛날 추억이 가득한 그곳에서 그애의 장난감들과 하룻밤을 지냈다.
밤 사이에 나는 리키가 그 작은 침대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아마도 옛날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을 이것저것 꺼내고
들춰보는 눈치였다. 그 소리들을 들으면서 나는 지난 3년여의
악몽으로부터 내가 얼마나 빨리 멀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스스로도 놀랐다. 치료나 경과 같은 의료 용어 대신에 이제 리키와
우리는 학교와 친구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다. 투약이나 처방
따위의 말들을 잊고, 이제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내일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힐라리와 나는 리키와 함께 컨넥티멋에
있는 체리런 스쿨을 방문했고, 그곳이 리키를 위해 아주 훌륭한
곳이라는 사실에 의견을 같이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두 명의
매우 행복해 하는 여인들을 데리고 백화점으로 갔다. 그녀들의
이름은 힐라리와 리키였다.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젊은 숙녀
리키를 위해 옷을 사줘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이지 까맣게
과거를 잊고 있었다. 심지어 힐라리와 나는 서로 이혼한 사이라는
사실까지도 가끔 잊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아주 따뜻이 대했고
목소리에는 이따금 정말로 애정이 담겨 있었다. 리키는 자신의 새
삶을 기어이 성공시키고자 하는 결심으로 꽉 차 있어 보였다. 「제가
아이들보다 두세 살 위라면 어떻게 되는 거죠? 제가 정신병원에서
3년을 보냈다고 하면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넌 해낼
거다.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힐라리와 내가 번갈아가며 리키에게
용기를 심어주었다. 「제겐 열 명의 아이들과 겨루어도 지지 않을
힘이 있다구요. 저는 힘들 때면 할아버지 생각을 해왔어요. 그분이
얼마나 용기가 있으셨으며 지혜로웠는지에 대해... 학교에 가서도
그렇게 할 거예요. 꼭...」 나는 리키를 설복시켜 온 그애 자신속에
있는 영혼의 함에 놀라움을 느꼈다. 그렇다. 그 영혼의 생명력은
리키로 하여금 병원에서 일어났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했고 그
모든 것을 이기고 살아 남게 하였다. 어쩌면 그것은 리키의
선생님들이 어린 리키에게 어떤 특별한 면이 있다고 말하고 했던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그것은 힐라리와 내가 리키의
어린 시절부터 느꼈던 남다른 면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나는 리키의 영혼속에 강력한 힘을 가진 그 무엇인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와 겸허함을 느꼈다.
33.재활학교에서 힘차게 새출발한 리키. 그러나 며칠 못가
다시... 체리런 스쿨에서 처음 몇 주 동안 리키는 아주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운명의 신의 리키에 대한 훼방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던 것일까. 어느날 돌연 리키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들어갔고, 이것은 또다른 풍파의 시작으로 연결되어
다시금 리키에게 길고 긴 항해의 첫발을 내딛게 했던 것이다. 어느날
아침에 리키는 첫수업에 그만 지각을 했다. 그애는 아침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옷을 입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고 후에 말했다.
리키는 웨스트체스터에서 느끼지 못했던 일종의 무기력감을 어느
순간부터 심하게 느꼈노라고도 했다. 리키는 그때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짙푸른 풀밭이 펼쳐진 체리런의 후원을
가로질러 교실로 달려가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새 친구인
머쉬와 알렌, 이렇게 셋이서 항상 함께 다녔다. 알렌은 여드름
투성이 소년으로 말을 할 때면 심하게 몸을 떠는 아이였다. 우리의
선생님인 미스 존슨은 누군가 지각을 하면 버럭 고함을 치셨다.
그녀는 항상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 여기 주목해요.
주목하라니까!」 난 그녀를 좋아했다. 언젠가 그녀가 우리의 나이를
물은 적이 있었는데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열여섯
살이지만 8학년의 마지막 학기를 다 마치지 못했노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존슨 선생님은 말했다. 「나이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중요한
것은 노력하는 데 있고, 인생의 참된 의미와 가치도 바로 거기 있는
거예요.」 나는 기뻤다. 그 말이야말로 누군가로부터 내가 꼭 듣고
싶었던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날 아침에, 지각을 했기 때문에 나는
약간 흥분이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약간 긴장되어
있었거나. 아무튼 내가 의자에 앉아 칠판을 바라보았을 때, 매우
기이한 현상이 내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존슨
선생님은 칠판에 몇 개의 수학 문제를 적고 있었다. 내가 그
숫자들을 똑바로 쳐다보았을 때, 그것들은 제각기 살아서 꿈틀대는
벌레처럼 칠판을 어지러이 기어다녔다. 그와 함께 나는 심한
구역질을 느꼈다. 나는 존슨 선생님의 분필에 집중하지 않으려고
황망히 눈길을 돌렸다. 그러다 얼마 후에 다시 칠판을 보았을 때,
이번에 그 숫자들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에 삽시간에 자취를 감춰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이 거기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문제는 내 눈에 있었으며 내 마음에 있었다. 아침 햇살이 교실
안으로 가득가득 들이치고 있었는데도 점점 더 어두워져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당혹해 하는 얼굴을 재빨리 알아보고 존슨 선생님이
내게로 와서 물었다. 「리키, 왜 그러지? 괜찮니?」
「....괜찮아요...」 그러나 나는 그녀의 음성을 점차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난 떨리기 시작했다. 난 내가 알렌처럼 떨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기만 했다. 실상 이런 일은 수녀원 부설학교에서도,그리고
웨스트체스터에 있던 학교 교실에서도 가끔씩 경험했던 일이었다.
병원에 있을 때, 한번은 칠판 위의 글자들이 빵부스러기처럼 마구
부서져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느낀
무서움은 정말로 굉장했다. 내가 필립스 선생님에게 이것을 호소하자
그는 이렇게 대꾸했었다. 「일종의 공포증이로구나. 하지만 만일
네가 그것을 무시해 버리면 사라질 것이다.」 체리런에서 나는
필립스 선생의 이 말을 떠올리면서 그 갑작스런 사건에 개의치
않으려고 애를 써봤지만 거의 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너무나 무서웠다.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며 나는 마음을 진정해
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존슨 선생님의 머리가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제멋대로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내 눈앞의 모든
것이 붕괴되고 말 것처럼 부서져 내리는 것 같이 느껴지는 데는
도저히 대책이 서질 않았다. 습포제, 물통, 그리고 격리병실. 단지
암흑뿐이던 그 격리 수용실에서 느꼈던 나 혼자만의 뼈저리던
고독감이 쿵쿵 울리는 북소리처럼 내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떠올라와
나를 들쑤셔 대었다. 그 다음 순간에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큰
소리를 쳤다. 「나는 어른이 되고 싶어! 나는 어른이 되고 싶어!」
내가 왜 그렇게 소리를 질렀을까, 어쩌면 나는 내가 어른이 되기를
두려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한 필립스 선생님의 말을 그
순간에 떠올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조용하던 교실은
나의 갑작스러운 고함소리로 삽시간에 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나중에
아이들이 내게 말했는데, 내가 일어나서 칠판으로 달려가더니
주먹으로 계속해서 칠판을 후려쳤다고 한다. 나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분명히 의자에서 그냥 일어섰을 뿐이라고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존슨 선생님이 내게 당장 그 행동을 그만 두지 않으면 학교
간호원을 부르겠다고 소리쳤다고 얘기해주었다. 이 얘기에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간호원을 불러! 보고서를 쓰라구! 날
격리실로 보내란 말이야! 어서 간호원을 불러 봐!」 이것도 나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기이한 것은 아이들 중의 한 명이
소리친 말이 내 기억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렇게
소리쳤다. 「저애는 미쳤어. 저 아이는 미쳤다구. 빨리 간호원을
불러야해.」 꽃무늬가 새겨진 흰 가운을 입은 중년의 간호원이
연락을 받고 달려왔는데, 내가 그 꽃들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모두
기억해낼 수 있다는 것은 두고두고 신기한 일이었다. 그것은
분홍색과 푸른색의 밝은 색조가 흰 가운 위에서 찬란히 꽃피고 있는
무늬였다. 다음에 내가 기억하는 것은 양호실의 흰 벽을 보며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맨 처음으로 내게 떠오른 생각이 그들이 나를
더이상 체리런에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깨닫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체리런의 그 간호원은 당시의 리키의 갑작스런 행위에 대해 이렇게
그녀의 병상일지에 적고 있었다. 존슨 선생이 학생 하나를 내게 보내
급히 교실로 오라고 했다. 내가 교실에 당도했을 때, 리키는 굉장히
심한 긴장 증세에 빠져 있었다. 리키는 교실 정면에 똑바로 서
있었는데 눈동자가 심하게 움직여대고 있어서 마치 그것은 신체
부분과 전혀 연관이 없어보였다. 리키의 머리는 마치 무엇을 거세게
부정하듯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양손을 앞으로 뻣뻣하게 내밀고
있었다. 이와 함께 리키는 전신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리키는
양호실로 데려 가려는 내게 줄곧 저항했다. 그래서 나는 리키에게
신경안정제 두 알을 먹였다. 리키는 약 30분 만에 잠이 들었고 거의
한 시간 동안 잤다. 이것은 다른 사람보다 민감하게 약에 반응하는
것이며 그에 반해 매우 빠르게 정상을 찾는 셈이었다. 리키가
깨어났을 때, 나는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리키는 대답했다. 기억은 하지만,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리키는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아주
혼란스러워 보였고 대단히 멍한 상태였다. 나는 리키에게 이 일을
교장 선생님께 알려야만 한다고 했고, 그렇게 되면 그분의 호출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리키가 내 팔을 붙잡고는 간절히
말했다. 「제발 그분께 알리지 말아 주세요. 그분은 정말로 실망하실
거예요. 이제 다시는 안 그러겠어요. 절대로, 절대로....」 교장
선생은 리키를 체리런에 남도록 하는 것에 확고히 반대하면서,
철저한 정신질환 치료 관리를 제공하는 다른 학교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는 심지어 리키가 한동안 더 병원에 있어야만 되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나는 리키를 또다시 병원에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며칠 동안의 생각끝에 당분간 리키를 내가 데리고 있기로
결정하였다. 나는 되도록 일을 긍적적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단 3주
만에 끝장이 난 체리런에서의 학교 생활도, 그것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예행연습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 일이
있기 전의 20여 일 동안 리키가 정상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쾌활하고
성실한 학교 생활을 했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나는 체리런에서 리키를 데리고 나와 곧장
아파트로 갔다. 나의 비서인 베르니스 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내게는 마치 조카처럼 여겨지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내 아이들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내가 다른 사람을 구할 동안 내 아파트에서 우리와 함께 머물러 줄
것을 부탁하자 흔쾌히 응했었다. 아파트에 온 이후, 리키는 이따금
우울한 듯했으나 그다지 심한 편은 아니었다. 나는 시간을 두고
리키를 입학시킬 말한 학교를 찾아보기로 하고, 리키를 안심하고
맡길 만한 시설을 갖춘 곳이 나타날 때까지는 그대로 리키와 함께
하려고 했다. 그러나 니키가 내 아파트에 온 지 보름쯤 되었을 때,
나의 계획은 또다시 터진 돌발적인 사고로 삽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날 저녁, 나는 파인휘트니 병원의 동료의사들과 만나고
있었다. 우리는 병원 부근의 한 레스토랑에서 정례적인 회식을 하고
있던 중있다. 웨이터가 급히 와서는 내게 전화가 왔다고 알려준 것은
그 회식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베르니스였다. 그녀는 대단히
다급한 목소리로 즉시 집으로 와달라고 말했다. 내가 아파트 현관에
들어섰을 때, 베르니스의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만! 그만 해, 리키! 그만...」 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리키의 방으로 달려갔다. 내가 그 방의 열려진 문 앞에 섰을 때, 내
눈앞에는 놀랍고 기가 막힌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베르니스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흠뻑 땀을 쏟으며 리키의 허리를 간신히
얼싸안고 있었고, 리키는 몸을 비틀어 거기서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손으로는 베르니스의 머리칼을 마구 움켜쥐고는
그녀의 머리를 바닥에 세게 계속해서 밀어붙이고 있었다. 「리키,
그만두지 못해?」 나는 당황하여 소리질렀다. 내가 리키의 양팔을
억지로 붙잡고는 베르니스로부터 떼어 내자, 서서히 리키의 격동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곧 그애는 조용히 바닥에 눕더니 죽은듯이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그 아이 곁에 앉아서
참담한 심정으로 이 사건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되씹어 보았다. 며칠
전에 나는 오랜만에 레오 코빈 박사에게 전화를 했었다. 리키에 관한
나의 설명을 주의깊게 듣고 나서 코빈박사는 말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리키로 하여금 자꾸만 자기
절제력을 상실하게 하는 것 같군.」 새로운 환경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 리키를 이토록 엉망으로 만드는 것일까. 리키는 과연
무엇이 얼마나 두렵단 말인가. 나는 그애가 갖고 있는 두려움이나
걱정을 덜어 줄 어떤 힘도 가지지 못한 무력감에 몸을 떨었다.
이튿날, 나는 다시 레오 코빈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말을
듣고, 코빈 박사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하였다. 「리키를 다시
병원으로 보내는 게 좋겠군...」 슬프지만 나는 코빈 박사의 이
의견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키의 그 예측할 수 없는
돌발적인 발작 상태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한 나는 언제나 그렇게 무기력하게 허둥댈 뿐, 그
어떤 도움도 그애에게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베르니스와의 그
일이 있던 날 밤에 리키가 완전히 잠이 든걸 확인하고 방을 나오다가
나는 책상 위에 놓인 리키의 시 한편을 발견하였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혼돈
무모한 단어들, 그것들을 내버려라. 빌어먹을, 어째서 난 알 수가
없는가. 모든 것은 너무 간단하기만 한데 내게는 오히려 너무나
어렵다. 난 정말 모른다, 내가 뭘해야 할지를. 어떻게 그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나는 모른다,나는 모른다. 오직 신만이 아실 뿐.
바보같이 신은 왜 내게 말해주지 않는가. 단지 작은 일부분만이라도
내게 말해주면 좋으련만 아, 그러나 누가 정녕 바보란 말인가.
제기랄, 나는 알고 있다. 빌어먹을, 그건 나다.
34. 그렇게 두려워했던 국립병원, 끝내 그곳으로 옮겨지게 된
리키에게는... 리키가 재입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자,
힐라리와 나는 그애를 과연 어느 병원으로 보내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잠시 고민하였다. 웨스트체스터 병원은 애초부터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나는 레오 코빈 박사를 다시 찾아가 이 문제를
의논했는데, 그는 메릴랜드의 발티모아에 있는 이노크프레트 병원을
추천하였다. 그 병원은 시설면에서 웨스트체스터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쾌적한 환경도 마음에 드는 대목이었지만, 훌륭한 의료진과
만전을 기한 시설이 나를 만족시켰다. 나는 지난 3년여의 리키
입원으로 이미 20만 달러 이상을 소비하였다. 아버지가 내게 남긴
유산의 상당 부분을 웨스트체스터에 갖다 바친 셈이다. 이노크프레트
병원은 웨스트체스터에 비교가 되지 않는 시설을 갖춘 1급 병원이기
때문에 당연히 입원 치료비도 훨씬 비쌀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내가 완전한 빈털터리가 되더라도 반드시
리키를 원래의 그애 모습으로 되돌려 놓겠노라고. 그랬기에 앞으로
닥칠 재정적인 부담 따위는 내게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힐라리에게
매월 보내는 생활비도 아직 여전하였기에, 나는 지난 달
애지중지하던 차를 처분하였다. 나는 리키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어떤 대가도 아낌없이 치를 각오가 이미 되어 있었다.
이노크프레트 병원의 의사들이 내게 전해준 최초 보고서는 아주
낙관적이었다. 그애는 병원 내에 설치된 특수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어느 때는 환자들과 어울려 사진 촬영을 위해 외출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리키는 병원에서 스스로 자원봉사자 클럽에
가입하여 노인 환자나 장애자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완전히 낙관할 수는 없지만, 이노크프레트에 간 지
두달 동안 리키의 병세는 대단히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의료진들은 물론이고 나와 힐라리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거기서
2개월을 막 보냈을 때, 나는 리키의 담당의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리키가 어떤 뚜렷한 자극도 없이 갑자기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기 시작 했다는 것이다. 「프래드 박사님. 리키가 이해할 수
없는 발작을 일으키면서 유리꽃병을 벽에다 집어 던지고는 그 유리
파편으로 팔뚝을 마구 그어댔습니다. 그애의 분노가 어디서 왜 터져
나왔는지 우리는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힐라리와
함께 병원에 달려갔을 때, 그 담당의사는 침통하고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리키의 장래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말의 대부분은 이미 웨스트체스트에서 수없이
논의되었던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리키의 병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 비용이 많이 드는 장기적 병원 체류, 그리고 궁극적 회복에
대한 불확실성... 그러면서 그는 일찍이 스튜어트 박사가 우리에게
언급했고 권고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하였다. 「리키를 국립병원으로
보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곳은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닙니다.」 보험에도 불구하고 이미 20만 달러 이상을
소비한 리키, 내가 무한정 이렇게 고급 병원만을 고집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명백했다. 딕 콜 박사의 보이지 않는 배려로 나는
아직도 파인휘트니 병원에서 근무를 할 수는 있었지만, 이것 역시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았다. 이미 몇
명의 내 단골 환자가 병원측에 담당의사 경질을 강력히 요구하며
나로부터 떠나갔으며, 눈에 띄지는 않으나 동료들의 나에 대한
태도가 확실히 변화된 것도 나는 잘 느끼고 있는 터였다.
‘국립병원...’ 나는 속으로 여러 번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리키에
대한 그 의사의 견해를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는 내가 과거에
들었던 똑같은 혼란스러운 이야기를 반복하였다. 「대개
정신분열증과 정서불안의 계속적인 되풀이 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분열 증세 쪽입니다. 물론 정신분열증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그것이 아니라는 증거는
더욱 없습니다.」 리키가 앰블런스로 발티모아에서 롱아일랜드에
있는 센트랄 아일립 국립병원으로 옮겨진 것은 그로부터 열흘
뒤였다. 아빠도 그렇게 매정하게 가련한 환자들을 마구 국립병원
으로 보내나요? 리키가 내게 했던 말이 날카로운 창끝이 되어 내
가슴을 찌르고 파헤치는 것 같았다. 변명 같지만, 나는 이미 리키의
상태가 장기적 치료를 요하는 것으로 판명된 이상 거기에 대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용이 많이 드는 고급 병원에 계속
리키를 두었다가 어느날 더이상 그애를 뒷바라지할 수 없게 될
정도로 빈털터리가 된다면, 문제는 내 상상의 세계 저 밖으로 치닫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나의 재정 상태를
감안하여 리키에 대한 장기 입원에 대비해야 했던 것이다. 스튜어트
박사나 이노크프레트 병원의 의사들이 시종일관 말했던, 국립병원이
흔히 생각하듯 그렇게 나쁜 곳만은 아니라는 권고도 내 결심을
조금은 합리화시켜 주었는지 모른다. 아무튼 리키는 끝내 국립병원인
센트랄 아일립 병원으로 옮겨지고 말았다. 그애가 1966년 3월에
펄커크로 간 이래로 벌써 4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국립병원에 우리가
들어섰을 때, 내가 맨 처음 받은 느낌은 음산함 바로 그것이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의 몰골이나 형상은 우리가 예전에는 결코 만나보지
못했던, 초췌하고 수척하며 그러면서도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폭발물과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쉬었다. 힐라리는 차마 말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듯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리키는 말이 없었고 표정도 없었다.
이노크프레트에서 앰블런스에 실려지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없었으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애의 손을 잡고 있었으나
어떤 따뜻함도 전해져오지 않아 내 가슴을 부서지게 하였다.
힐라리와 내가 센트랄 아일립 국립병원 출입구로 들어섰을 때,
거기에 우리가 현재 처하고 있는 상황을 액면 그대로 보여주는
광경이 선명한 형체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대한 회색 건물의
작은 창문마다에 단단히 달려 있는 녹슨 철제 빗장들, 그 건물
아래로는 갈색의 마른 풀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된 채 무성히 자라고
있었고 깨진 채로 높이 서있는 가로등 사이로는 너무 녹이 슬어 붉게
변색된 철제 벤치가 풀밭 사이로 너저분하게 놓여 있었다. 우리는
하인즈 홀져 박사라는 의사의 사무실로 안내되었다. 이노크프레트
병원측은 내게 홀져 박사를 소개하면서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그에게 연락을 취해 놓겠노라고 하였었다. 그는 이 병원의 선임
정신과 의사로 있는 사람이었다. 건물 외부와는 달리, 그의 방은
곳곳에 걸려 있는 사진과 놋쇠 장식품이 놓인 신비스런 빅토리아식
책상, 편안하게 느껴지는 밤색 가죽의자들로 꽉차 지나치게
복잡하였다. 60대의 잿빛 머리칼을 가진 그는 둥굴고 주름진 얼굴에
깊은 눈과 얇은 입술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에게 차를 권하며 그가
친근한 목소리로 먼저 말했다. 「두 분이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겠나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의 음성은 상당히 묵직했다.
낮은 바리톤의 독일식 영어 발음으로 이렇게 말하고는, 그가 우리를
한동안 바라보더니 천천히 다시 말을 이었다. 「정신분열증은 지루한
싸움입니다. 그러나 리키가 이곳에서 지나치게 오래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홀져 박사님. 그애의 과저
병상기록을 보시고 어떻게 느끼시나요?」 힐라리가 풀이 죽은
음성으로 물었다. 홀져 박사는 펄커크에서부터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두터운 병상기록을 대충 훑어보고 나서, 매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병의 형태는 아주 다양합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리키는 여전히 많은 감정과 그 감정에 의한
결정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대목입니다.
일반적인 정신분열증의 경우에는 이런 것을 거의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홀져 박사가 다시 한번 병상 기록지를 살펴보고
나서는 또 말했다. 「물론 우리는 도움받지 못해왔던 많은 환자들이
실제로 여기에서 아주 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이 병원은 웨스트체스터나 이노크프레트 병원보다 훨씬
환경과 시설이 열악합니다. 또 이곳에는 상태가 매우 심각한,
버림받은 환자들이 많이 수용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리키와 같은
환자에게 그다지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홀져
박사에 대해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친절함, 박식, 그리고 재능.
마치 그는 오랜 과거의 시간과 장소를 거쳐서 여기에 보내진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나는 스위스 태생입니다. 블로일러와
함께 공부했죠. 1939년에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나는 개업을
하거나 의과대학의 교수직을 마다하고 바로 이곳 센트랄 아일립을
선택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30년 동안 일해왔습니다. 나는 이곳에
있는 환자들을 사랑하고 이해합니다. 만일 내가 이곳에 없다면,
그들은 어느 것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신조로 일해왔다고
자부합니다.」 힐라리와 나는 그의 진지하고도 신념에 차 있는 말에
감동을 받았다. 나는 이 병원에 들어서면서 가졌던 나쁜 감정에 다소
부끄러움을 느꼈다. 「물론 당신들은 정신질환자들이 좀처럼 완전히
회복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일종의
불치병이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누구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 나름대로의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해주고 회복될 날을 끈질지게 기다리면서 한 걸음
저만큼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인내,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인내뿐입니다.」 홀져 박사가 이 말과 함께 사무실 창문 쪽으로
걸어가서는 운동장을 쳐다보았다. 마침 창밖으로는 세 명의 환자들이
주변을 목적없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저들이 자신의 일을 할 수
있고 자신을 돌보며 가치있게 살수 있는, 유럽에서 행해지고 있는
그러한 특별한 마을이 미국에는 아직 없다는 것이 정말로
유감입니다. 미국인들은 뚜렷한 흑백 논리를 가지고 정신질환자들을
보려는 버릇이 있습니다. 완전하게 치료해서 정상인이 되느냐,
아니면 실패를 느끼면서 실망한 채로 폐인 취급하느냐 하는...」
홀져 박사가 다시 소파로 걸어와서는 우리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관심과 애정을 리키를
위해 쏟겠습니다. 리키는 그동안 다양한 치료를 받아왔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여기 오기 전에 밞았던 전철대로...」 「리키는
페노다이아진에 심각한 부작용이 있습니다.」 나의 지적에 홀져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것에 대해 확실히 기록해 놓겠습니다.」
「그애는 한때 아주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았어요.」 힐라리가 근심과
의혹에 찬 눈빛으로 홀져 박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가 싱긋 웃으며
말을 받았다.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리키의 탁월한 자제력에 의해
어느 때는 분출하는 감정이 억제되기 때문에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좋아보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사실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나는 리키의 자기 파괴적인 행위에 대해 알게 된 순간부터 줄곧 나늘
괴롭혀왔던 의문점을 그에게 물었다.「일반적인 정신병 환자들은
주로 외부에 대한 공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리키는 계속해서
자학, 자살과 같은 자멸적 행위에 집착해왔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내가 이 문제를 물어본 첫번째 의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에 대한 어떤 명백한 대답도 결코 들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의학서적에서조차도 리키의 경우를 설명하는
케이스가 없었다. 리키의 자멸적인 행위는 홀져 박사 말대로
리키에게 자신의 감정을 콘트롤할 수 있는 결정력이 명백히 살아
있다는 증거의 하나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리키는 그 결정력을
삶의 방편으로 쓰지 않고 자학적 행위에 쏟아붓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었다. 리키의 발작은 대부분 이렇게 자기 파괴적 성향을 보이며
벌어지기 때문에 사태가 항상 심각했다. 「자학 행위는 흔한 일은
아닙니다만, 일부 환자에게는 흔한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환자는 다루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한 가지 여기서 주목할 문제는
그런 환자에 경험이 없는 의사들은 그것이 정신이상의 신호라고
성급히 결론 짓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노이로제에 걸인 어느 환자의 경우에서 리키와 같은 성향을
가진 케이스를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노이로제는
정신분열증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환자는 완벽주의자였으며 자신의
실패를 용납 못하는, 그래서 언제나 자신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사람이었죠. 남성보다는 여성들, 특히 자존심이 강한 여성들 중에서
자신에 대한 통제의 한 방편으로 그런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콘트롤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이 병적인 방법으로나 파괴적인 목적을 위해 행해질 때
잘못인 것이죠.」 「그럼 홀져 박사님께선 리키 같은 환자에 대한
진료 경험이 있으신가요?」 「에. 저는 몇 년 전에 한 젊은 여성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갑상선 호르몬을 과다 복용했었죠.
그리고 의사들은 수술로 그녀의 갑상선을 제거해 버리는 바보같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녀의 경우, 자기 학대와 자살 충동 때문에 그
약을 먹었던 것입니다. 많은 경우, 자해 행위는 자살을 부르게
됩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한편으로는 자살을 꿈꾸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 맹렬히 살고 싶어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해
행위는,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일부를 죽이는 것이 됩니다.」
「박사님께서는 그것을 멈추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힘듭니다. 그것을 위해 환자 자신이 먼저 가능한 한 모든 의지력을
발휘해야만 합니다. 그와 함께 의사들은 환자가 겪고 있는 내적
고통과 갈등을 구원할 수 있게끔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이건 어느
한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리키에게 있어서, 병원에
장기 체류했던 것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요인이라고 나는 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니까 의사와 간호원과 가족 모두가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지 않게 이들 환자의 반응에 대한 지도를 받고 나서
여기에 대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주목해야 할 것은,
환자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환자를 겁나게 하거나
좌절시키거나 분노케 하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삼가게 하기가 좀체로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가 빅토리아식 책상 위에 그의 손바닥을
가지런히 얹고는 잠시 멈추었다. 나의 뇌리에는 웨스트체스터의 휠록
박사 얼굴이 번개처럼 스쳤다. 구제받을 길 없는 리키를 특수 격리
병동에 수용시켰던 그의 야만적인 치료와 그 방자하던 태도, 그리고
뻔뻔스럽던 자기합리화. 그것이 리키를 얼마나 절망케 하고 분노케
하고 겁나게 했을 것인가를 생각하니 나는 새삼 증오심이
끊어올랐다. 어디 그뿐인가. 두드려도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처럼
언제나 무표정과 침묵으로 리키를 대했던 필립스의 태도가 리키에게
주었을 낙담과 좌절은 얼마나 컸을 것인가. 그런 곳에 리키를 3년
넘게 방치한 채 속수무책 허둥대기만 했던 아빠로서의 나의 무책임과
무력함은 누구보다 먼저 비난받아 마땅했다. 수없이 자행되었던 자살
소동과 자학의 꼬투리가 홀져 박사의 지적대로 그런 냉혹한 병원
체계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면, 웨스트체스터를 비난하기에 앞서 먼저
내가 죄값을 치러야 할 것이었다. 「리키의 장래에 대해서 나는 어떤
전망도 예상도 지금은 보류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의 많은 부분이
바로 리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리키의 뜻에 따라
그애의 장래는 변화의 폭이 커질 것입니다.」 「여기 있는 다른
환자들은 어떻습니까?」 힐라리가 완전히 홀져 박사를 신뢰할 수
있겠다는 편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물론 내 가슴에도 그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급속히 우러나왔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여기는 그렇게 좋은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충분한 의사도,
간호원도, 그리고 시설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또 일부 환자들은
상태가 아주 좋지 않습니다. 여기서 여러 해를 보낸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리키가 보다 나은 병동에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애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거나 공작을 즐기고 싶다면, 우리는 제공할 수
있는 도구를 주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고작입니다. 그 이상은
기대하지 마십시오. 어떤 환자들은 노인 환자들을 자발적으로 돕거나
채소와 꽃 같은 것을 기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홀져
박사는 갑자기 어떤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잠시 후에 그가 길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렇더라도 나는 리키가
여기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애는... 젊고
아름다운... 그것이 항상 불안합니다.」 그 말과 함께 힐라리와 나는
약속이나 한듯이 깊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 리키는 이제 열여덟
살이 되어가고 있었다. 젊고 아름다운, 리키는 이제 단순한 소녀가
아닌 한 사람의 성인 여성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원하신다면
언제든 방문을 허락하겠습니다. 리키가 원한다면, 언제든 외출도
가능하도록 조처하겠습니다. 이곳의 식사는 아주 형편없습니다.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방문에 어떤 특별한 제한이 없나요?」
「리키에게 어떤 방해가 된다면 단지 방문 시간이 좀 짧아질 뿐,
언제나 문을 열어 놓겠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완전히 가족들로부터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몇 명은 충분히 떠날 만큼 완쾌되었는데도 갈
곳이 없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세월이 사람들로
하여금 한때 가족이었던 그 환자가 없이도 사는 법에 이미
익숙해지게 만들어 주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국립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올 때, 나는 이 말이 갖는 의미를 아프게 음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키를 잊으면서, 그애 없이도 사는 법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내게 있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애는
나의 일부분이기에, 아니 전부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35.국립병원의 암담한 병실 속에서 리키가 아빠를 그리워하면서
쓴 편지에는... 사랑하는 아빠. 글씨가 형편없더라도 용서하세요.
쥬디가 이곳에 없기 때문에 글자를 정정해 줄 사람이 없어요. 이곳의
간호원은 비욘디예요. 그녀는 친절하긴 하지만, 늘 바쁘기 때문에
만나보기가 쉽지 않아요. 환자들은 이제까지 제가 보아온 사람들과
너무 달라요. 한 여자가 저를 보더니 갑자기 말했어요. 「내 곁에
오지 마. 너는 분명히 날 죽이려고 할 거야. 네가 날 죽이려고 여기
새로 온 아이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조심할 거예요. 제가 만난
여자 중에는 엘라라는 환자도 있어요. 그녀는 서른 살이에요. 그녀는
이곳에 5년 동안이나 있었다고 해요. 그녀의 아버지는 마약
중독자였는데, 그녀가 세 살 때 집을 나갔다고 해요.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는 재혼을 하게 되었는데 의붓아버지는 그녀를 몹시
학대했다고 해요. 그녀는 지난 5년동안 누구 한 사람 자기를 찾아와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물로 하소연하더군요. 그녀는 제가 어떻게
홀져 박사의 보호를 받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했어요. 그녀가 말하길,
제 경우는 특수 치료라고 그러더군요. 제가 아빠가 정신과 의사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왜 아빠가 이런 속에 저를 입원시켰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그러더군요. 그런 의문은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이곳이 제게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요. 엘라는 제가 병에 걸린 것
같지 않다고 말했어요. 우리가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거기에는
다른 여자 하나가 있었는데 그녀는 벽에 등을 대고 기대서서는 몇
분간 계속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질렀어요. 그녀의 말은 온통 악의에
찬 욕지거리였어요. 하지만 아빠, 저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 말들은 모두 웨스트체스터에 있을 때 들었던 것들이기
때문이에요. 비욘디 양은 제가 노인 병동으로 가서 노인들을
도와주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어요. 그건 물론 좋은 생각이긴 해요.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학교에 관심이 있어요. 어쨌든 저는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심정이거든요. 저는 비욘디에게 웨스트체스터의
간호원들이 저를 아주 다루기 힘든 환자로 취급했었다고 털어
놓았어요. 그랬더니 비욘디 양은 말했어요. 그것은 그 간호원들이
무엇이 정말 힘든지를 모르기 때문에 한 말이라구요. 아빠. 저는
지난 밤 내내 잠들지 못했어요. 저는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
자신에게 물었어요. 나는 지난 세월 동안 과연 무엇을 찾기 위해
애써왔던가. 정말로 나는 한 마리 새였으며 나 자신을 하찮은
존재라고 여겨왔던가. 나는 정말로 병들었는가. 나는 단지 스스로
병들지 않은 척하며 있는 건 아닌가. 내게 소리쳤던 그 여자처럼
내가 터널 한가운데서 죽음을 당하면 어찌할 것인가. 아니면 허공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던 그 여자처럼 내가 어느 때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오늘 아침에 저는 복도에서 홀져 박사를 만났어요. 왜
그랬을까요, 그분을 본 순간 저는 할아버지가 생각났어요. 저는
구분을 믿고 싶어졌어요. 며칠 전에 있었던 그 분과의 상담에서
그분은 말했어요. 제가 정신분열증에 걸렸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구요. 그분은 제게 진정한 답변을 주지 못한 다른 의사들과는
달랐어요. 그분은 말하기를, 제가 더이상 좋아지지 않는다 해도 제가
어디서든지 삶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분명히 말해 주었어요. 그 순간
저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제가 그분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울고 말았지만 저는 기분이 매우
좋았어요. 그분은 이처럼 제가 병든 것을 당황해야 할 이유도
고통스러워 할 필요도 없다고 했어요. 그건 제 잘못도 아니고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했어요. 「그건 단지 하나의 감기와도 같이
너를 잠시 아프게 하는 병에 불과하단다.」 그분이 이렇게 제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을 때, 저는 그분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더욱 크게
울었어요. 다른 의사들은 한결같이 제가 어떻게 미쳤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제가 저지른 죄는 무엇인지, 엄마와 아빠는 어땠는지
말해달라고 숨돌릴 틈도 없이 계속 물어댔지만 홀져 박사님은 그러지
않으셨어요. 그분은 그대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제 병이 누구의
죄도 아닌 것처럼, 누구의 도움도 받으려 하지 말고 제 스스로의
힘으로 이것을 이겨 보라구요. 「내가 힘껏 도와 주마.」 그분이
이렇게 말했을 때, 저는 또다시 할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어요. 저는
깨달았어요. 어느 누구도 저를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이것은 아빠조차도 예외가 아닐거예요. 3한년
때였어요. 달리기 경주를 하는데, 그때 저는 누군가 제 뒤를 무섭게
쫓아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더욱 빨리 달려 1등을 했던
적이 있어요. 저는 지난 밤 내내 그런 느낌을 가졌어요. 그래요,
저는 홀져 박사님의 말대로 저 혼자의 힘으로 해내야만 했어요.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진정한 리키 플래취를 그들에게 보여주겠어요.
오늘 아침 일찍 기상을 알리는 벨이 울렸을 때, 저는 불현듯 살아
있음을 느꼈어요. 저는 그 벨이 전세계에 들릴 수 있도록 아주 크게
울려 퍼지고 있다고 느꼈어요. 아빠, 부디 빨리 저를 만나러
와주세요. 사랑하는 아빠의 딸 리키. 추신: 빨리요!
한낮의 유혹 36. 어느날 갑자기 병원을 탈출해 아빠를 찾아온
리키,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신비론자인 존 경은 〈어두운
밤의 영혼〉이라는 개념에서 고통으로 가득찬 무시무시한 삶의
여로를 말한 바 있다. 목표와 신념과 희망을 잃어버린 인생만큼
지독한 것도 달리 없으리라. 그런 삶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지루함 역시 고통의 한계를 요구한다. 1966년 3월에
리키가 처음 입원했을 때로부터 계속적으로 내가 겪어야 했던
낙심과 좌절은 일종의 암흑과도 같은 터널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정녕 어두운 밤의 영혼이었다. 힐라리와의 이혼은 나의 낙심에
쐐기를 박는 치명타였고, 리키의 자살 미수는 더욱 혹독한
고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이상 바람에 흔들리고 폭풍우에
시달리는 신참내기 정신과 의사가 아니었다. 5년의 세월을 보낸
지금 나는 한 사람의 명망 있는, 나 스스로의 영역을 확실히
확보한 전문의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나는 고참 군인들이
신병들보다 전쟁터에서 훨씬 더 높은 생존률을 가진 이유를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비록 신병들이 육체적으로 더
강인하다고 해도 막상 적의 화력에 직면하게 되면 속수무책 손을
들고 만다는 사실을 나는 책을 통해 읽은 적이 있다. 나 역시
신병의 한 사람으로 내 삶의 전쟁터에서 인생이라는 적의 포로가
되어 여러 해를 근근이 보내고 오늘에 이른 느낌이다. 리키의
시나리오가 내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가늠해 볼 틈도 없이
나는 하루하루를 보냈으며, 그 악몽의 와중에서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끝내 리키를
국립병원으로 보내놓고 나서야, 내가 변화의 시기에 와 있음을
명징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최소한 잠시
동안만이라도 내가 걸어왔던 그 혼돈의 진창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느꼈다. 빌 모리스의 완강한 반대와
몇몇 동료들의 우정어린 충고에도 아랑곳없이 내가 파인휘트니
병원에 사표를 내던진 것은 이런 변화의 첫번째 발걸음이었다.
딕 콜 박사는 나의 사표를 받아들고는 참으로 오랬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진지하게 말을 했다. 「자네의 결심에 동의하겠네.」
그는 더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나 그날 밤 늦게 딕 콜은
나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말했다. 「병원으로부터의
자네의 탈출이 만족할 만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리라고 나는
확신하네. 그리고...」 그가 잠시 말을 끊고는, 뭔가 하기
어려운 말인듯 좀 망설이다가 끝내 말을 이었다. 「지난 5년
동안의 자네의 인내심을 나는 마음 깊이 존경하고 있다네.
리키는 반드시 좋아질 걸세.」 나는 뉴욕시 동부 50번가에 새
사무실을 차렸다. 거기서 나는 나의 개인 환자들의 진료와
면담을 계속했다. 나는 환자들을 선택해서 받았다. 리키를
상기시켜 줄 만한 나이의 젊은 환자들은 진료를 거부하였다.
나는 또한 집도 옮겼다. 파인휘트니에서의 퇴직금과 먼젓번
아파트를 처분한 돈의 일부를 리키의 장기 치료에 대비한
기금으로 적립해 놓고 보다 작은 크기의 아파트로 옮긴 것이다.
어느날 나는 퇴근길에 어느 그릇가게로 가서 타원형의 흰색
벽걸이 그릇 네 개를 사서 거기에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새겼다. 나는 그것들을 내 침실의 책상 머리에 나란히 걸어
놓았다. 나는 그것들을 보며 아침에 출근을 하였고, 퇴근
후에는 거기 새겨진 이름들을 천천히 큰 소리로 한 번씩 불러
보았다. 「리키, 존,메어리,메티유」 가정이 와해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난 뒤에야 나는 내게 얼마나 눈물이 흔한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작은 감동에도 눈시울을 붉혔으며, 조금만
가슴을 태워도 그것을 적시기 위해 또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나는 눈물 대신 희망을 가지기로 하였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는 얼마나 수없이 이것을
다짐했던가. 나는 혼자가 아니며 포로도 아니며 희망을 잃은
난파선은 더욱 아니라고 얼마나 수없이 되뇌였던가. 차츰 나는
냉정함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는 예전처럼 그렇게 허둥대지 않고
환자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모든 일에 비교적 올바르게 대처할
수가 있었다. 리키가 국립병원에 가 있은 지도 벌써 1년 가까이
된 1972년 6월 어느날이었다. 그동안 나는 2,3주마다 한 번씩
리키를 방문했으며, 자주 그애를 밖으로 데리고 나와 함께
산보를 하였다. 열아홉 살의 완전한 성인 여자가 돼버린 리키는
장난스럽게 내 팔짱을 끼고는 때로는 휘파람을 휙휙 불어대면서
나와 같이 걸었다. 나는 홀져 박사로부터 리키의 상태가 여전히
의문투성이와 난해함으로 얽혀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듣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리키가 얼마나 더 오래 거기 있어야
하느냐고 물을 때마다 홀져 박사는 한결같이 말했다.
「불확실합니다. 기다리며 지켜보자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그가 내게 말했다. 리키에게 리튬을
주사했으며, 그것마저도 부작용 때문에 중단했노라고. 결국
리키는 자신의 강렬한 변화 의지와는 동떨어진 터널속의 암담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그애가 그해 6월 어느날
매우 놀라운 일을 저질렀다. 그날 오후에 나는 머리 위에 양손을
얹고는 할 수 있는 한 곧게 편 채로 흔들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무자비하게 더운 초여름 날씨 때문에 나는 자꾸만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겨우겨우 견디고 있었다. 오후 4시 10분을
가리키는 디지탈 시계를 보면서 나는 다섯시로 예정된 환자와의
약속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베르니스는 이미 떠났고, 내
사무실에는 제니스라는 이름의 새로운 비서가 와서 이미 1년
전부터 나와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녀가 인터폰을 통해 내게
말했다. 「박사님, 방문객이 한 분 찾아왔는데요.」 「누군데?」
「놀라지마세요?」 「놀라지 말라구?」 「리키가 찾아왔어요.」
나는 하마터면 흔들의자에서 뒤로 벌렁 나자빠질 뻔했다. 내가
황급히 의자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블루진과 선명한 붉은색의 면
셔츠를 입은 리키가 내 방으로 뛰어들었다. 리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빠, 화내시지 않을 거죠?」 나는 한동안 멍하니
그애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나는 엉거주춤 일어서서 리키에게
다가가며 말을 하였다. 「물론이지, 리키야.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잠시 그곳을 빠져 나왔어요.」 「어떻게?」 리키는
환하게 미소지으며 마치 이 방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게
의자를 권하더니 맞은편에 걸터앉았다. 「병원에서 도망쳐서
정거장으로 걸어갔어요. 저는 거기서 한 중년신사에게 다가가
돈을 잃어버려서 집에 갈 수 없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분은 제게 10달러를 주는 거였어요. 저는 그의
이름과 주소를 받았고 꼭 그 돈을 돌려주겠노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여기 온 거예요. 멋지지 않아요?」 「리키야.」
나는 억지로 웃었다. 그런 후에 나는 달래듯이 말해주었다.
「너는 돌아가야만 한다, 리키야.」 「알고 있어요, 아빠.
하지만 하룻밤만 아빠와 함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내일
돌아가겠어요. 꼭 그렇게 하게 해주세요.」 나는 리키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애는 아주 정상적인 것 같았다. 두 눈은
총 명히 빛나고 있었으며 얼굴엔 온기가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약간 안심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상기하였다. 홀져
박사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었다. 나는
리키를 잠시 밖으로 나가게 하고는, 홀져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나의 사죄와 리키의 탈출 경위에 관한 설명을 다
듣고 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거기 가 있다니
다행이군요. 지금 당장 비욘디 양에게 알리겠습니다. 언제
리키를 보내시겠습니까?」 「내일 제가 직접 데리고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리키가
병원에서 탈출했다는 것을 그가 좋아하지 않는것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화를 내거나 리키의 무분별한
태도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날 밤, 리키와 나는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리키는 거실 창문을 통해
바라보이는 밖의 풍경을 보며 즐거운 듯이 소리쳤다. 「아빠,
엄청난 광경이에요. 저 강과 다리를 좀 보세요. 그리고 저
불빛들! 강물에 비치는 빛줄기들의 출렁거리는 모습! 아빠, 정말
멋이 있어요.」 「아빠 방의 책상 위에 걸려 있는 것을 보렴!」
나의 권유에 리키가 쏜살같이 침실로 달려갔다. 그 방에서 곧
리키의 음성이 들려왔다. 「우리의 이름이 새겨진
그릇들이군요!」 내가 그 방으로 리키를 뒤따라 들어갔을 때,
그애는 그 벽걸이 그릇 밑에 놓여진 목각인형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거기엔 네 명의 아이들이 제각기의 행복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리키가 나를 향해 돌아섰을 때, 나는 그애의 눈망울이
촉촉히 젖어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조용히 그애에게 다가갔다.
나는 분명히 내가 웃으려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나는 리키가 보지 못하도록 애쓰면서 그만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그동안 내게서 멀어지고
도망쳤는지 모른다. 얼마나 큰 꿈들이 지난 세월의 뒤안길에서
무너지고 깨어졌는지 모른다. 여지없이 함몰된 내 가정의 영토
안에서 나는 이제 또 무엇을 잃어야 하고 무엇을 빼앗겨야
하는가. 리키가 내 품안에 있으나 이 아이는 여전히 내 손길 저
밖에 있다. 영원히 영원히 닿지 않을 듯 먼먼 저 밖에. 그것은
존과 메어리, 메티유도 마찬가지였다. 주말마다 한 번씩
만난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아버지와 자식간의 만남이 그런 식의
법칙하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해야 한단 말인가. 만나고 싶을 때
만나고, 꾸짖고 싶을 때 꾸짖고, 껴안아주고 싶을 때 맘껏
껴안아주고 싶은 나의 아이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그렇게
나로부터 너무나 먼 저편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리키도 내
품안에서 흐느꼈다. 이제 열세 살 어린 소녀가 아닌 한 사람의
성숙한 여인이 되어서 리키는 내 품에 안겨있다. 슬픔이
강물처럼 흘러 내 가슴으로 사정없이 들이치는 느낌이었다. 삶의
가장 보석같은 시기를 사방이 온통 회색빛인 정신 병동에서
지내야만 하는 이 아이를 생각하니 나는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침묵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포옹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먼저 리키에게서 몸을 떼며 말했다.
「자, 아빠가 준비한 식사를 할 시간이구나. 아빠의 솜씨를 한번
맛보지 않겠니?」 리키가 온통 질퍽하게 젖은 얼굴에 억지로
웃음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리키가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나는 행복을 느꼈다. 아마도 리키가
나의 음식을 맛보는 것도 오랜만일 것이다. 어쩌면 처음인지도
모른다. 리키는 아빠의 정성에 당연히 보답해야 된다는 듯이
완전히 그릇을 비워주었다. 「그래 리키야, 왜 병원에서 나오게
됐지?」 식사 후에 내가 진지하게 묻자 리키가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빠, 저는 외로웠어요.
그리고 아빠가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나왔니?」
「쉬웠어요. 거긴 다른 병원처럼 자물쇠를 채우지 않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밖으로 나올 수가 있어요.」 우리는 그날
밤, 행복하고 자유롭지만 여전히 위험의 가능성이 잠복된 시간을
옛날 이야기로 채우며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다가 잠을 잤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리키는 특히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놀라운 것은 나 자신도 잊어버린 세세한
것들까지도 리키의 기억의 창고 속에서는 여전히 생생한
모습으로 살아 숨쉰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리키는 그 옛날
할아버지의 거실 벽에 걸려 있던 그림까지도 세밀히 기억하고
있었다. 코스모스가 만발한 정원의 나무의자에 앉아서 늙은
수도승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담겨진 한 폭의 유화는 아마도
리키가 네 살 때쯤에 아버지가 다니던 성당으로 옮겨갔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 그림을 무척 아끼고 있었는데, 새로 지은
성당의 복도에 그것을 걸어 놓기 위해 거리낌없이 신부님께
드렸던 것이다. 리키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놀랍고 신기한 일이었다. 더구나 리키는 그 그림의
크기며 코스모스의 빛깔까지도 세세히 기억해 내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밖에도 리키는 병원에서 겪었던 많은 이야기도 쉴새없이
하였다. 그애는 자신이 겪어야 했던 전기 쇼크 치료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것을 자기가 얼마나 두려워했으며,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었는지에 대해서도... 「아빠가 그 치료에 동의한
것이 원망스러웠니?」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리키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솔직하게 시인했다. 「약간은요. 하지만 저는 그것이
병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의 하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쿵 하는 묵직한 통증이 나의 뒷머리를 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리키가 얼마나 자신의 병에서
벗어나기를 열망해왔는가를. 어떤 고통도 마다않고, 스스로
불길에 뛰어드는 불나비처럼 치료의 고통 한가운데로 언제든
뛰어들었던 리키였음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또 잘
알았다. 리키가 이렇게 쉬지 않고 지껄이는 것이 왜 그런가를.
그렇다, 리키는 목마르게 대화의 상대자를 구해왔던 것이다.
목마르게, 목이 마르게. 열세 살로부터 열아홉 살에
이르기까지의 그 활달한 나이에, 마음껏 지껄이고 웃고 떠들어야
할 나이에 정신 병동의 창살안에 갇혀서 무한정의 침묵을
강요당했던 리키는 얼마나 대화의 갈증에 시달려 왔을 것인가.
그 생각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나는 리키의 말을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들었다. 이튿날, 롱아일랜드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리키로 인해 순수한 기쁨에 젖어 있었다고 느낀다.
그애가 국립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돌아서서, 힘껏 손을 흔들고는
용감하게 크고 어두운 건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나는 꼼꼼이
지켜보았다. 그렇다. 리키의 결심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재생의 결심, 회복의 신념은 결국엔 리키의 저 힘찬 발걸음에
의해 꼭 이루어지고 말 것이다. 나는 리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도록 거기에 서서 참으로 오랫동안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였다. 일찍이 레오 코빈 박사는 내게 말했었다. 내게
닥쳐오는 그 숱한 곤경을 하나님이 나를 더 훌륭한 의사가 되게
하려고 일부러 만드는 시나리오로 받아들이라고. 그 말을 다시
한번 음미하면서 나는 기도하였다. 어두운 밤의 영혼처럼
무시무시한 삶의 여로가 내게 계속된다 해도, 나는 그것을
피하지 않을 것이며 두려워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다만 인내와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겠노라고. 그리고 나는 또 기도하였다.
리키는 반드시 자기 삶의 본래 그 자리로 돌아와 내 옆에 힘차게
서게 되리라고. 그 언젠가는, 그 어느 때인가는...
▶ 이제 고독이 사사로운 일상의 한부분이 돼버린 그에게
어느날 다가온 여인은..... 그해 늦여름에 나는 빌 모리스의
아내인 셀리아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지난 6년
동안, 마치 자기에게 나의 독신생활을 청산해 주어야 할 책무라도
있다는 듯이 여러 명의 여성들을 내게 소개해주려 해왔다. 어쩌면
여기엔 빌 모리스의 우정어린 부추김이 뒤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셀리아의 대부분의 주선을 적당히 거절하거나 회피해왔다.
나는 재혼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다고 늘상
생각했었고, 그럴 형편도 아니었다. 물론 힐라리와 이혼한 지
6년이 지난 후에 나는 서서히 깨달아가고는 있었다. 나는 혼자
살도록 되어 있지 않으며 카톨릭 신자든 아니든, 점차로 기회가
생기면 재혼을 하겠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었다. 70년대 초에
들어서서 카톨릭 교회 내에서는 이혼과 재혼이라는
금기사항으로부터 점차로 개방화 되어가는 추세에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 다소 영향을 미 친 것도 사실이다. 카톨릭을 신앙하는
친지 중 누군가가 어느날 돌연 이혼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가 얼마 후 거림낌없이 재혼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재혼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생각에
그칠 뿐, 나는 막상 재혼이라는 현실적인 관문 앞에서는 언제든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리키가 여전히 참담한 상태에 있는데,
나 혼자만의 행복을 찾아 떠난다는 것이 우선 죄스러웠고, 그와
함께 재정적인 부담 또한 용이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재혼을
하더라도 리키가 완전히 제 자리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그럴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셀리아의 제의를 번번이
묵살하거나 기피했던 것이다. 그러나 셀리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날 내게 전화를 걸어온 것도 역시 이 문제를 말하려고
했던 것은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이번에 그녀가 내게
소개해주려는 여인은 셀리아의 친구 동생으로 워싱톤에서 살다가
최근에 이혼하고 뉴욕으로 온 두 아이의 엄마였다. 실은 셀리아는
그녀를 내게 소개해주려고 벌서 세 차례나 그녀에 관해 얘기를
하고서 한번 그녀를 만나볼 것을 강권해온 터였다. 조용하고
지적인 젊은 여인이라는 설명과 함께, 셀리아가 내게 말한 그녀는
이름이 조이스였다. 그녀는 브룩클린에 있는 사립학교를 졸업한
후 마운트 롤요크 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녀 역시
카톨릭 신자로, 대학 졸업 후 한동안 사회봉사 센터에 다니다가
전 남편과 결혼을 했다. 셀리아의 설명에 의하면, 그들은 두
아이를 낳고 살 때까지 무수히 많은 서로에 대한 싸움의 반복과
화해, 그리고 계속되는 갈등으로 지냈다고 한다.
연애결혼이었으나 그들은 서로에 대해 깊이 악고 이해하기 전에
너무 일찍 결혼에 합의한 것이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됐다는
것이다. 20대 후반인 조이스는 이혼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면서 노력을 했으나 서로에 대해 결코 어울리지 않는 감정을
영원히 해소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마침내 남편의 이혼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셀리아는 그날도 열심히 그녀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한번 만나보기를 간청했다. 셀리아는 조이스가 리키
문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으며, 그애에 관해 진실로
가슴아파했다고 덧붙였다. 나는 묵묵히 셀리아의 말을 듣기만
했다. 그러다가 나는 셀리아의 권유를 무조건 언제까지나 회피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하는 의문을 나 자신에게 던졌다. 이미 결심
한 대로, 나는 언젠가는 재혼할 것이며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조이스와 만난다 해도 지금 당장 결혼을 결심하거나 내일
당장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아닌 이상 셀리아의 간청을 계속해서
묵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마침내 그 여자를 한번
만나보기로 하고 셀리아의 권고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튿날
우리는 만났다. 셀리아와 빌 모리스도 함께였으나 그들은 긴급한
약속이 있다는 뻔한 거짓말을 남기며 30분 후에 재빨리 나가
버렸다. 나의 어색해 하고 더듬거리는 말투와 행동을 조이스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러나 그녀는 대단히 침착했으며 남을
편안하게 하는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나의 불안해 하는 태도를
이해하겠다는 듯이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그녀는 워싱톤에 비해
숨막히게 복잡한 뉴욕의 새 생활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우리의
대화는 확실히 알맹이도 없고 겉돈다고 느꼈으나, 또한 나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주는 그 무한한
편안함을..... 그 뒤로 우리는 여러 차례 만났다. 조이스는 비록
힐라리만큼은 아니더라도 키가 크고, 건강하며 검은 머리칼을
가진 여인이었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친절함을 지닌 여자였다.
그렇게 몇 차례 만나면서 나는 그녀가 상당히 매혹적인 미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웃지 않으며 말수도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심할 바 없이 그것은 이혼의 충격이
아직도 그녀의 가슴 언저리에 맴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미 6년 전에 내가 그랬듯이 그녀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누적된
슬픔에 대단히 저쳐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낭만적 정서를 즐기는
타입이라기보다는 그런 것을 보더라도 내색하지 않고 안으로만
차곡차곡 쌓아두는 여자였다. 나에게 그녀의 그런 성격은 일종의
동정심이랄까, 연민이랄까, 아무튼 동병상 련의 아픔을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만나면서 공통의 화제를
찾으려 애쓰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어갔다. 언젠가 한번은
어떤 얘기인가를 하다가 재혼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그때
조이스는 다소 불안해 하는 태도를 내게 보임으로써 결혼의 실패
로 인해 그녀에게 얼마나 상처가 컸었는가를 느끼게 하였다. 나는
하나의 거울을 보듯 조이스의 모습에서 나의 얼굴은 보았다.
특히나 상처받기 쉬운 섬세한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 이혼이
가져다주는 상처가 얼마나 골이 깊은가를 나는 아프게 깨달았다.
언젠가는 재혼을 하게 될 것이다. 조이스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나는 다시 한번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바로
그런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문 뒤에나 재혼도 가능하리라는
사실이었다. 새로운 생활에 직면했을 때, 옛상처의 여전한 그늘을
의식하면서 조이스나 나처럼 불안 감을 떨치지 못하고 또다른
결혼에 들어간다면 어쩌면 그것은 더 큰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나에겐 리키가 있었다. 리키
때문에 재혼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라, 리키를 저처럼
버려 두고 그애에게 또다른 파문을 던져주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은 너무나 간절하고도 확고했던 것이다. 나는 결국
힐라리와의 이혼이 내게 준 상처 자국이 완전히 아문 뒤에,
정상으로 돌아온 리키의 진심어린 동의를 받은 뒤에, 내게
불어왔던 폭풍우의 많은 고통들이 코빈 박사의 말대로 나를 더욱
완성된 한 사람의 의 사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시나리오였다는
것이 확인된 뒤에 재혼을 하리라고 결심하고 있었다.
▶국립병원의 노의사가 돌연 아빠에게 말한다. 정신분열증이
아니라고..... 그해 가을이 깊어갈 무렵이었다. 그해의 가을이
특별한 인상으로 나의 뇌리에 남아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도
조이스 때문일 것이다. 조이스와 나는 계속 만나고 있었으며 많은
연령 차이에도 불구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우정을 나눠오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만나면서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많이
회복했노라고 솔직히 고백하곤 하여 나를 감격시켰다. 나 역시
그런 조이스를 친구 이상의 각별한 마음으로 대해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우수수 흩날려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도 어수선해지던
내 마음이 조금씩조금씩 갈피를 잡아 가기 시작한 것도 아마
조이스의 따뜻하면서도 결코 요란하지 않은 그 목소리와 미소
덕분일 터였다. 그렇게 그해 가을을 보내고 있던 내게 홀져
박사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또다른 변화의 엄숙한 예고나
마찬가지였다. 홀져 박사는 그 특유의 낮은 음성으로 내게 리키가
퇴원할 준비가 되었노라고 말했다. 그가 내게 말한 내용은
여태까지 리키와 나를 짓눌러왔던, 많은 의사들의 그 엄청났던
진단과는 거리가 있어 나를 놀라게 하였다. 「나의 기준으로 말을
한다면, 리키는 결단코 정신분열증이 아닙니다. 리키는 어떤
착란이나 분열 증세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리키가 나에게 준
가장 깊은 인상 중의 하나는, 그녀의 엄청난 감수성과 다른
사람과 크게 비교될 만한 폭넓은 감정상의 리듬입니다. 나를
믿으십시오. 나의 아주 정밀한 기준과 오랜 임상 경험을 통하여
얻은 지식을 전제로 해서 말씀드리건 대, 리키는 결코 정신분열증
환자가 아닙니다.」 「홀져 박사님.....」 나는 아마도 그의
이름을 여러 번 반복해서 불렀을 듯싶다. 수화기를 꽉 움켜쥔 내
손에서는 진땀이 흐르고 있었다. 「예, 압니다. 그럼 리키가
그동안 보여온 혼란 상태의 자멸적 행위 같은 것들은 무 엇이냐고
묻고 싶으신 거죠?」 「그렇습니다.」 「그것이 정신병적인
측면에서 관찰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음을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그동안 관찰해 본
결과로는 다른 의사들이 그녀를 정신분열증 환자로 취급한 것이
대단히 위험 한 진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얼른 이해가 되지가 않습니다. 리키는 그동안.....」 「프래드
박사, 물론입니다. 나의 견해를 얼른 수긍하지 못하는 당신의
심정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리키에 대한 나의 관찰을 믿으십시오.
리키는 분명히 정신분열증과 매 우 유사한 병을 앓아왔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유사한 것일 뿐 결코 정신불열증 그 자체는
아니라는 사실을 저는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런 발견을 하고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는 데 있어 다소 시간이 걸린 것은 그만큼
리키의 증세가 다양하고 복잡했기 때문이었고, 또 그만큼 정확을
기하고 싶었던 나의 개인적 욕심 탓도 잇었음을 이해해주십시오.
그리고 여기서 꼭 주목하고 싶은 것은 리키의 증세가 무엇에 의한
것이었든지간에, 그것을 이겨낸 것은 그녀 자신의 용기와
결단력에 의한 힘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리키는 정말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입니다.」 나는 그심한 혼란을 느꼈다. 6년
동안의 혼돈이 일시에 또다른 탁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정말이지 대단히 기쁘고 반가운 소식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홀져 박사의 견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더 큰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혀 새로운 가능성이면서도
거기엔 많은 의혹이 담긴 위험한 희망이 있었다. 홀져 박사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그 진한 인간적 존경심과 신뢰감을
회상한다면, 그리고 리키가 국립병원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나마 오늘까지 별다른 문제 없이 버텨온 게 전적으로 그의 공인
것을 인정한다면, 나는 그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그러나..... 어찌 되었든 주치의의 퇴원 명령은 그것이
희망적인 것이든 절망적인 것이든 받아들여야만 되는 것이었다.
일주일 후에 나는 롱아일랜드의 센트랄 아일립 국립병원으로
갔고, 거기서 리키를 데리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쩌면
그렇게도 강렬히 리키의 퇴원을, 회복을, 재기를
기다려왔으면서도 아직 그애를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해놓지
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홀져 박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신뢰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리키는 건강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활달했으며,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리키의 상태는 홀져 박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어떤 의심도 받지
않을 만큼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퇴원 후에 나는
홀져 박사의 권유와 리키와의 약속, 그리고 내 나름대로의 판단에
따라 그 길 로 곧바로 뉴저지주에 있는 사회복지시설인
웨스트힐로 갔다. 그곳은 봅과 마리 놀란 부부가 경영하는 사설
사회복지시설로 젊은 여성을 위한 일종의 재활 학교였다. 전직
학교 교사들인 그들 부부는 정시적 장애를 겪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곤경을 돕기 위해 사회적 기능인 으로의 재활 양성
코스를 만들어 경영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거긴 리키와 같은
여성들만의 작은 사회로, 그곳에서 나름대로의 기술을 익혀
장차의 사회생활에 대비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꾸며 놓고 있는
것이었다. 리키가 그곳에서 보낸 10개월은 한마디로 새로운 혼란
그 것이었다. 리키는 분명 그곳에 가 있게 된 것에 기쁨을
느꼈다고 생각하지만, 결과는 또다른 수렁으로의 발걸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리키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웨스트힐에 가기
위해 뉴저지주의 햄스테드로 향했을 때, 나는 행복했다. 나는
자유롭기를 열망해왔는데, 웨스트힐은 내가 갈구하는 자유와
사회의 파도에 적응할 힘을 주기에 충분하리라 여겨졌다. 홀져
박사님은 내가 퇴원하기 전에 웨스트힐에 대해 소상히 말해
주었으며 그곳에 내가 나를 다스리고, 아직도 남아 있는 내
마음속 격정의 불길을 잠재우기에 충분한 많은 일거리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일거리에 최대한 집중하면서 지난
날의 고통이나 장차의 두려움 따위는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 내
말 알아듣겠지?」 나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나는 각오가 되어
있었으며 희망에 들떠 있었다. 맨처음 웨스트힐에 가서 나는
간호실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했다. 나는 참으로 열심히 그 일에
매달렸다. 나는 내가 남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기뻤다. 거기서 나는 봅 선생님으로부터 운전 교습도
받았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봅 선생님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빨리 운전 기술을 터득한다고 놀라워했다. 웨스트힐에는
학교가 있었다. 봅과 마리, 두 분이 번갈아가면서 중요 과목을
가르쳤으며 다른 과목들은 햄스테드이 자원봉사자들이 맞고
있었다. ] 나는 그 학교에서 수업을 받기로 하고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인 GED에 대비하기로 했다. 나는 이미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로 치닫고 있었다. 나는 내 힘으로 마치지 못한 마지막
학기를 꼭 채우고, 나의 실력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끝내고
싶었다. 그것은 하나의 집착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불행한 사건으로 중단해야 했던 일에 대한 일종의 도전과도 같은
것이었다. 비록 공부에 대한 열망은 그때마다 뜻하지 않은
사건들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아무튼 그 일만은 반드시 내
손으로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버린 적이 없 었다.
그러나 공부를 새로 시작하면서 나는 전에 경험했던 것처럼
배우는 데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재확인해야만
하였다. 72년 12월로 예정된 시험이 다가오면 올수록 나는 더욱더
공부를 했고, 그와 함께 더욱더 혼란스러움을 느껴야 했으면
더욱더 많은 것 을 잊어버렸다. 나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알파벳의 철자조차도 제대로 쓸수가 없었고 어느 때는 가끔
눈앞이 캄캄해지며 모든 것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곧 뒤쳐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계에 맞부딪치려는 의지보다 차라리 눈을
감고 손을 놓아 버리는 쪽을 택하기 시작했 다. 아,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병원으로 되돌아가길 원하는 생각의 싹이 자라고
있었다. 다시 내 마음속에는 누군가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가 나로 하여금 다시 잔혹한 행위를 하도록 유혹했고, 나는 그
충동 과 몸서리치는 싸움을 계속해야 했다. 그러다가 나는 끝내
굴복하고 말았다. 나는 어느날 저녁식사 도중에 탁자 위에 있던
접시를 마루에 힘껏 내리쳤으며, 깨어진 조각을 집어들고는
그것으로 나의 팔뚝을 확 그어 버렸다. 그것은 결코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 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내 살을
찢고 베어낼 때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솟구쳐 흐르는
검붉은 피를 바라보았을 때에야, 나는 극도의 두려움에 떨었으며
뼈까지 베어졌을까 봐 무서웠다. 이런 돌발사태에 대처해 본
경험이 없는 봅과 마리 부부는 나를 즉시 뉴저지주의 지방
정신병원인 버진파인즈에 입원시켰다. 병원으로 가면서 나는
무엇을 느꼈던가. 나는 참으로 깊은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초소한 GED를 치르지 않아도 되었고, 다시 실패를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의사들은 몇 가지
질문을 내게 퍼 붓고는 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결정하려고
수근거렸다. 그들 중 한 명이 내가 분명히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리튬과 페노다이아진을 말했다. 나는 두렵지 않았다. 설령
그것이 내 손을 떨게 하고 온몸이 졸아드는 듯한 고통을 준다고
해도 나는 결코 두렵지 않았 다. 왜냐하면 그 약들은 적어도 내게
GED나 실패 따위의 걱정은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해
6월, 갑자기 버진파인즈 병원의 의사들은 내게 퇴원 명령을
내리고 햄스테드의 웨스트힐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들은 나의
병을 더이상 치료할 능력이 없었거나, 아니면 자신 이 없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그들은 내게 숱한 페노다이아진과 도래진을
처방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퇴원을 명령했던 것이다. 햄스테드의
웨스트힐은 그해 여름에 나에게는 기쁨과 두려움, 희망과 절망의
극단적인 두 개의 감정을 동시에 가져다준 곳으로 기억된다.
광할한 초 원 너머로 보이는 캣츠힐 산맥이 웅장한 모습을 뽐내는
그곳은 내게는 일종의 여름 휴양지와도 같아서 기쁨과 희망을
주었으나, 8월로 접어들면서 나는 다시 FED에 대해 강박관념과도
같은 극성스러운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아무도 내게 시험을
치라고 명령하지 않는데도 불 구하고 GED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두려운 고통을 느꼈고, 치솟아오르는 가슴속
불길과 싸우는 이중 삼주으이 괴로움을 또한번 겪어야 했다. 나는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나는 다시 병원으로 가고만 싶었다. 나는
다시 내 자신을 파괴하고 싶으 안달이 났다. 나는 다시 밤을
밝히며 서서, 입술을 질끈 깨물면서 내 마음속의 그 무엇인가와
피나는 싸움을 계속했다. 그런 고통이 극에 달하여 끝내 내가
또다시 굴복할 시점에 거의 다달았을 때 아빠가 찾아왔고, 아빠는
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리키야, 아빠가 네가 새로 있을 만한
곳 을 알아놓았다. 나는 고울드 농장이라고 하는 그곳이 네
마음에 꼭 들것이라고 믿는다. 아빠의 말에 따라주겠지?」 내
운명이 극적인 반전을 일으키며 새로운 삶으로 치닫는 계기를
가져다준 곳, 고울드 농장. 일주일 후에 나는 그곳으로 갔다.
▶휴양기관에 들어가 다시 한번 재생의 길을 찾으려는 리키,
마음의 다짐은 크지만..... 나는 오래 전부터 고울드 농장에 대해
알고 있었다. 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 중에 몇 명이 퇴원 후에
그곳으로 가서 상당히 좋아졌다. 그곳은 피츠필드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서부 매사츄세츠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고울드 농장이 홀져 박사가 얘?했던 일종의 유렵식
수용시설이라 생각해왔다. 그곳에 들어가는 환자들은 병원에
입원함으로써 달고 다니게 되는 정신병이라는 꼬리표를 버리고,
생산적인 일에 종사함으로써 자존심을 다시 얻을 수 있었다.
거기에 리키를 보내는 것은 흡사 대학에 들어가는 한 젊은이의 ?
학 과정과도 같이 까다로운 절차의 연속이었다. 처음에
고울드에서 의사들은 리키의 그간의 병상일지를 검토하고 또
검토했다. 그리고는 면담을 했다. 리키의 자멸적 행동에 대한
과거 기록은 그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리키에 대한
그들의 경계심과 의혹을 풀도록 그들을 확신시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리키였다. 이런 과정을 밟고 난
뒤에야 그들은 리키의 수용을 겨우 허락하였다. 리키는 고울드
농장에 가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좋은 기분을 느끼는 게
분명하였다. 리키와 내가 환자들이 지내고 있는 농가를 지날 때,
그애의 눈은 돌연 반짝였으며 소나 말들이 방목되어 있는 것을
보자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저 동물들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되다니, 저알 믿어지지가 않아요!」 우리가 차에서 내리려 할 때
리키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진심어린 말투로 털어 놓았다. 「아빠,
사랑해 요. 저는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게 되어 어라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이곳을 진실로 좋아하게 될 거예요. 최선을
다하겠어요, 약속해요.」 「고맙구나,리키.네 뜻을 알겠다.」
리키와 나는 언제까지나 그렇게 하겠다는 듯이 손을 꼭 잡고
서로이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 있었 다. 그 순간 나는 기도하였다.
나는 결코 기적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그러므로 리키가 말했듯이
단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고울드 농장의 감독관인 켄트 스미드
씨는 아주 친절하고 관대한 기질이 물씬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가
우리를 보고 맨처음 한 말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환자’라는 말은 절대 쓰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거주민’이라고 부르지요.」 그의 목소리는 풍기는
인상만큼이나 온화했다. 그는 단 한순간도 입가에서 미소를 잃는
법이 없이 리키와 내게 따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리키는
다른 사람들처럼 농 장에서 일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할당량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식량을 스스로 재배하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 말하고
서로를 알며 삶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럭 그룹을 지어
만납니다. 그것은 일종의 사회 적응훈련입니다. 삶의 정도에서
벗어나 있었던 리키와 같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상당히 중요한
기회를 제공해줄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공부하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을 위하여 특별 교육 과정을 설치해 놓고 있습니다.
리키에게는 불필요한 일일 테고 나도 그러기를 바라지만, 우리는
유능한 정신과 의사들과 정기적으로 상담을 하는 시간도
가집니다.」 처음 몇 달 동안 리키는 1966년 봄 이래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그녀는 동물과 일하는 시간들을 소중한 체험으로 받아들이며
즐거워했다. 그때 리키 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아빠.
저는 이곳이 정말 좋아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저는
동물을 사랑해요. 삽으로 거름을 퍼내는 일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다지 나쁜 건 아니에요. 매일 아침 우리는 일어나서
합창을 해요. 날씨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덥거나 춥거나 비가
오거나 우리는 그것을 계속해야 해요 저는 대부분의 날들을
창고로 걸어 내려가서 소똥을 삽으로 퍼내고, 소에게 먹이를
주고, 우유를 먹어야 하는 송아지들을 돌보고 대청소를 해요.
힘들지만 견딜 만해요. 아빠. 제가 송아지의 혓바닥에 내 손을
핥게 내맡길 수 있다는 걸 상상하실 수 있으세요? 소의 혓바닥은
흡사 잔모래바ㅈ처럼 까칠까칠해요. 제가 싫어하는 곳은
닭장이에요. 하루는 그곳을 청소하고 달걀을 꺼내야만 했어요.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닭의 몸에 붙어 있는 이를 잡았어요. 내
친구인 린디는 온몸에 이가 옮아붙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고생을
해요. 저는 공예품을 만들거나 베틀을 짜는 일을 좋아해요. 제가
만든 몇 점의 물건들이 고울드 농장의 가게에 진열돼 있답니다.
곧 저를 보러 와주세요. 사랑하는 아빠에게 리키. 리키의 방은
본관 3층에 있었는데, 그 방에서는 멀리 서있는 흰 자작나무들과
목초지를 바라다볼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맘껏 누릴 수 있었다.
어느날 밤에 리키는 달빛 은은히 비치는 그 아름다운 초원 품경을
큰 창문을 통해 바라보며 이런 일기를 써놓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울드 농장에 오기 전에 한두 번 정도는 병원에
입원했었다. 따라서 우리는 같은 병을 앓았다는, 동지와도 같은
친근감을 가지고 서로를 대한다. 린디는 내가 이곳에 오고 나서
며칠 뒤에 들어온 아이로, 우리는 곧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한때
간호 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당뇨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해온
그녀는 기이하게도 내가 이따금씩 느꼈던 문제의 그 충동적 발작
때문에 그녀 스스로를 다치게 했다고 한다. 그녀는 사탕이나
빵조각을 지나치게 먹는 바람에 자주 인슐린 쇼크를 받았다.
한번을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내 가 그녀의 목구멍에 오렌지
쥬스를 넣어주었는데 그녀는 쇼크에서 깨어난 후에 나의 친절함에
매우 고마워했다. 왜 인슐린 쇼크가 일어나는지 알면서도 그렇게
단 것을 찾는가. 린디를 보면서 느낀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농장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질병 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고울드 농장에 있는 동안 결코
나 자신을 다치게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런
생각이 아지랭이처럼 모락모락 피어올 적마다 나는 얼마나
괴로웠던가. 그런 괴 로움을 잊기 위해 나는 일에 더욱
몰두하였다. 농장은 내가 일에 정신을 팔기에 충분한 일거리들로
가득차 있었다. 거주민은 약 80여 명 정도이다. 본관은 훌륭한
식당을 갖춘 거대한 건물로 TV시청실도 있고 도서실도 있다.
웨스트 매사츄세츠의 겨울은 매섭게 차다. 나는 밖에 나가 일하는
것이 싫었지만, 매번 농장에서 지급해주는 두터운 옷을 입고 나의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밖으로 나갸야만 되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소유의 방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나의 방이 비록 작고
보잘것없지만 매우 소중한 나만의 왕국으로 꾸며 놓고 있다.
감독관 인 켄트 스미드에게는 낸시라는 사랑스런 아내가 있다.
나는 그녀가 무척 좋았다. 또 한 사람 내가 좋아하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우리가 ‘미스 엘레나’라고 부르는 82세의
노부인이다. 고울드 농장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이곳에 살고
있는 미스 엘레나의 집은 언제든 개 방되어 있는데, 나는 가끔
그녀의 집을 방문하였다. 고울드 농장의 인부인 팀과 그의 아내
엘리자베드 또한 나와 친한 친구이다. 그들이 첫째 아이를 가졌을
때, 그들은 내게 그 아이의 대모가 되어달라고 말했다. 나는 정말
영광스러웠다. 나는 매일 밤 기도하였다. 제발 이 곳에서
성공적인 삶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때때로 나는 생각하였다.
미스 엘레나처럼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지만,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해도 두렵지는 않을 것이라고. ▶리키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정말 회복되어가는 것일까..... 1973년 가을에
이르렀을 때, 나의 삶은 나름대로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었다.
조이스와의 우정 이상의 우정은 계속되고 있었으며, 여기다 나의
아이들이 이제는 제각기 장대같이 성장해 있었다. 존은 고등학교
3학년으로 트리니티 폴링 학교에 들어갔다. 이제 12세가 된
메티유는 무비 카메라에 매료되어 영화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열네 살이 된 메어리는 거의 6피트 가까운 큰 키에 멋진
용모를 가진 소녀로 변했다. 그애는 지금 로욜라 고등학교
남녀공학 학급의 1학년으로, 이 학교에 다니기 전까지 리키가
다녔던 까뜨리네트 수녀원 부설학교에 있다가 1년 전에 여기로
전학해왔다. 지금 메어리는 학교 대표팀 농구선수로 활동하면서
즐겁고 보람있는 고교생활을 보내고 있지만, 수녀원 부설학교에
있을 때는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리키가 그 학교를 떠난 지
7년이나 되었음에도 그애에 대한 편견과 이상 한 감정은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되어 학교 주변을 맴돌았던 것 같다. 일부
학부형이나 학교 선생님들이 아니라면 누가 리키에 관한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인가. 메어리는 친구들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으며 늘 겉돌았다. 선생님들은 그것이 마치 메어리가
정신질환자 의 동생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기피를 받고 있는
것처럼 기록카드에 써놓고 있었다. 이 부당한 편견에 대항하는
길은 메어리를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아이들은 올바르게 성장해주고 있었다. 이미 리키가 없는 삶에
익숙해져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이 들은 항상 리키를
그리워했으며 이따금 나와 고울드 농장으로 가서 리키와 만나는
일을 행복해 하였다. 아이들이 제법 어른티가 박히면서 올바로
성장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얼마나 크게 위안해주는 일인지
몰랐다. 그들은 나의 자식들이기에 앞서 나의 친구였으며 삶의
희망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리키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애를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나는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리키는 그렇게 여전히 나의 가족이었으며 내 가정 안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조이스를 소개했다. 그녀를
그들에게 소개한 내 진심을 이해했을까.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이 조이스를 혼감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그녀의
따뜻하면서도 세밀한 친절에 남다른 감정을 느낀 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우정 이상의 우정. 조이스와 나는 우리의
관계를 이런식으로 표현했다. 결코 멀지도 않 지만, 그렇다고
확연히 가까움을 느낄 수 있는 사이는 아직 아닌. 내가 그녀를
만나오면서 느끼는 감정 중에서 가장두드러지는 것은 한마디로
편안함이었다. 그녀를 만나면 난 정말 마음이 무척 편했다.
진정으로 위로받고 싶다고 느끼면서 상대를 찾고 있을 때,
조이스는 언 제든 내게로 와서 그녀만이 가진 깊고 따뜻한 미소로
나의 넋두리를 들어주는 것이었다. 그해 10월 어느날, 나와
조이스는 빌 모리스와 그의 아내인 셀리아를 초대하여 함께
저녁식사를 하였다. 저녁식사 후에, 여자들이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나와 빌은 내가 침실 겸 서재로 쓰는
방으로 들어갔다. 빌은 작은 구식 책상 위에 놓인 리키의 사진을
집어들고는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리키는 한쪽
무릎에 헝겊 조각을 댄 블루진을 입은 채 가을 자작나무를
배경으로 통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리키는 그 사진을 바로
일주일 전에 내게 보내왔던 것이다. 「리키는 정말 아주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라났군!」 빌이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이 사진은
어디서 찍은 거지?」 「고울드 농장에서.」 「리키가 거기에 가
있은 지도 벌써 일 년이 넘었군 그래. 그렇지?」 「그렇다네.」
「리키가 지금 몇 살 이지?」 「놀라지 말게. 그애가 벌써 스물한
살이라네.」 「믿을 수가 없군!」 「내 서랍엔 과거 수년 동안
리키가 보내온 시로 가득차 있다네. 하나 읽어 보겠나?」 나는
그날 아침에 받았던 것을 골라 빌에게 건네주었다. 사람과 시간
인생은 시간, 그리고 그건 무한정이다. 하루, 아니 일 분의
시간일지라도 그건 산을 움직이고 강물을 변하게 하고 그리고
꽃을 피울 수 있다. 사람은 그들 마음의 조그만 다락방에서
시간을 따라 성장한다. 마음의 세계 저편에 가득한 것들 생각을
나누고 평화를 가져오는 부드러운 말들 그리고 사람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마치 사람이 사람을 필요로 하듯이. 빌은 잠시
조용히 앉아 그 시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런 시들이 책상 서랍에 가득하다구?」 「그렇다네.
리키는 처음부터 내게 그런 시들을 보내주었지.」 「이보게,
프래드.」 빌이 조용히 웃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그가 힐끗 사진
속 의 리키를 바라보고는, 다시 내게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나는 이제 리키에 관한 걱정을 하지 않기로 했네.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리키 말이
맞네. 사람들에게는 정말 시간이 필요하지.....」 「힐라리와
내가 헤어지고 나서, 밤에 내가 자네 아파트로 간 것이 벌써 7년
전의 일이네. 그때 나는 빈털터리였지.」 나는 그때의 절망과
고독을 떠올리고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괴로워했다. 그로부터
7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은 정녕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많은
것이 변했고 흘러갔으며 찾아왔다. 다 행스럽게도 리키도 아직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거의 제자리에 돌아오 있다. 그애가
정신병원에 있지 않고 고울드 농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큰 안도를 느끼는지 모른다. 이따금 홀져 박사의 말이
떠올라 나를 안심시키기도 했다. 정신분열증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모호한 진단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가해졌던 리키에
대한 극단적 치료 방법들. 그러나 홀져 박사는 자신을 믿으라면서
분명한 어조로 말하지 않았는가. 리키는 정신분열증 환자가
절대로 아니라고. 「리키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리기튼 거기에 있는 것을 매우 흡족해 한다네.」 「자주 그애를
보러 가나?」 「한달에 한 번 정도씩. 리키가 뉴욕에도 몇 번
왔었네. 지난 주에는 아이들과 함께 그곳을 다녀왔지.」 「요즈음
자네는 리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글쎄, 아직
완전히 안심하지는 못하고 있네. 하지만 분 명한 것은, 리키가
예전의 혼란에서 매우 멀리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라네.」 빌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한번 리키가 쓴 시를
훑어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곤 했네.
리키는 결코 일반적 의미로는 정신병 환자가 아니지만, 오늘의
의학계가 아직 이르지 못한 아주 특별한 경우의 정신질환자일
가능성은 있다고 말일세. 그애를 돕기 위한 모든 노력이 어쩌면
그애를 더욱 혼란에 빠뜨렸을 수도 있다고 나는 믿네. 그애를
치료하는 모든 사람의 시도가 거꾸로 리키를 파국으로 몰고가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 하겠나? 내 말은, 자네가 리키를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파악해 보는 것도 그애의 완전한 회복을 기약하는 한
방법일 수도 있으리라는 것일세.」 빌의 말을 들어면서 나는 문득
펄커크에 입원하기 전 여름과 가을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이
떠올랐다. 할아버지의 죽음, 사춘기 의 시작, 학교에서의 계속된
실수와 그에 따른 징벌, 그리고 힐라리와 나 사이의 갈등.....
그러다가 나는 갑자기 까맣게 잊혀졌던 일 하나를 생각해냈다.
리키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의 그 일이 왜 그동안
잠재의식의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다가 그 시간에야 불현 듯
떠올랐을까. 그때 우리 가족은 크리스티나와 함께 동부 햄프턴에
있는 메이드스톤 해변으로 갔었다. 리키와 크리스티나는 조그만
섬 같은 모래톱을 발견하고는 그곳에서 뛰어놀다가 그만 밀려오는
파도더미 속에 뒤덮이고 말았다. 어느 순간에 나는 리키와
크리스티나가 허공에 손을 흔들며 소리치는 것을 보았다. 비록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나는 분명히 그 아이들의
숨찬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다. 나는 곧바로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맹렬히 헤엄쳐 나갔다. 그러나
내가 더 가까이 가면 갈수록 소용돌이 는 더욱 거세어졌다. 나는
리키가 ‘아빠, 살려주세요!’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몰랐다. 파도 위로
솟아올랐다가는 다시 가라앉고, 그러다가는 몸부림을 치며 다시
떠오르는 리키를 뻔히 보면서, 그리고 그쪽으로 미친 듯이 헤엄쳐
가고 는 있지만 그 자리에서만 빙빙 맴돌고 있는 나 자신에게
절망하면서 나는 정녕 어찌 할 바를 몰랐다. 해변 뒤쪽의
구조대원은 여전히 크고 흰 의자에 앉아서 여자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해변가 저쪽의 비치 파라솔 밑에 있는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일들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때였다. 내
눈에 리키와 크리스티나를 향해 다가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한쪽 팔을 꽉 잡고는 인간 사슬을
이루면서 리키와 크리스티나가 있는 곳까지 뻐ㅊ어 나가 마침내
아이들을 잡아당겼다. 나는 그들이 그애들을 한 사람 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침착하게 옮기는 것을 보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내가
리키와 크리스티나를 껴안으며 그애들의 이름을 부를때까지도
아이들은 공포와 불안의 기색이 역력한 눈빛을 떨구지 못하며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나의 회상을 다 듣고 난 빌은 뭔가 깊이
생각하 는 눈치더니,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섬세한 감성의 소녀에게 큰 충격을 주었겠군.」 「나도
그렇게 믿네. 아마도 리키는 다른 소녀들보다 훨씬 더 여린
감성을 지녔기에 그 충격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수도 있었을 걸세. 물론 그것만이 전부 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리키의 그 상처받기 쉬웠던
감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리키의 주변을 맴돌았던 많은 사건들,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여과하는 과정에서 사람은 점차 성장해 나가는 것인 데 리키는
남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느꼈고 극단적으로 받아들여 왔었다.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빠져 허위적대면서 살아온 나날들, 거기서
리키는 매번 좌절을, 절망을, 실패를 느꼈음에 분명하다.
그런데도 참으로 경이로운 것은 리키의 그 엄청난 인내력이다.
리키는 7년이 라는 그 믿을 수 없을 만큼 긴긴 세월을 단지
인내심 하나만으로 연명하며 오늘에 이르른 것이다. 이대로만,
제발 이대로만이라도..... 리키가 고울드 농장에 간 이래로 난
얼마나 많이 이렇게 기도했는지 모른다. 그렇다. 리키가 겪었던
그 깊은 수렁, 상처, 고통 따위는 여 린 감성을 지녔던 단지 어린
시절 때의 일일 뿐이다. 이제 리키는 충분히 충격을 흡수하고
여과하고 소화해낼 만큼 나이를 먹었으며, 그것은 지나 7년간의
경이롭다고 밖에는 표현하기 못할 그애의 인내심에 대한
보상으로도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이었다. ▶리키의 남동생 존이
누나를 그리워하며 쓴 한 편의 시, 그 속에 담겨 있는..... 그해
크리스마스 때, 존이 내게 선물을 주면서 상자 손에다 자기가 쓴
한 편의 시를 넣었다. 그 시는 리키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는
동부 햄프턴을 기억한다. 클럽 회관이 있는 메이드스톤 그 안에는
초록빛 골프장이 있고 수영장도 있다. 너이 수영복은 노란 색
줄무늬의 파란 옷 너의 등을 쏘았던 그 별.....
나는 한 아파트를 기억한다. 우리 부모가 이혼한 그곳 나의 방은
모퉁이에 있었고 내 옆방엔 목욕탕, 거기서 난 여러 번 너의
울음소릴 들었다. 나의 가슴에 못 박던 그 흐느낌.....
너의 방은 부모님의 방과 연결돼 있어 그들이 사랑할 때를 너는
알았고 그들이 싸울 때도 너는 알았다. 모든 것으로부터 너무
멀리 있어서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할 때 너는 너무나 많은 것을
일찍 알아 버렸다.
그리고 나는 기억한다. 집으로부터 떠나 너무나 먼 데서 네가
오랫동안 머문 것을. 너의 생일날 우리 모두 즐거웠던 일, 큰
웅덩이가 있는 나무 숲속 사이를 마음껏 뛰놀며 보냈던 어린
시절, 그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 너는 너무 오래 우리에게서 떠나
있었지.
지금도 너는 홀로 서 있다. 아직도 폭풍우는 끝나지 않았으며
너의 환상도 끝나지 않았다. 언제 너이 방황은 끝나 내 기억의
숲속으로 돌아오려는가.
운명의 그림자
▶뜻밖에 걸려온 전화, 뜻밖에 만난 사람. 리키의 운명이
다시 변화의 기로에서..... 그해 크리스마스에 리키를 방문하고
돌아왔을 때, 나와 조이스는 오래 전부터 계획한 조촐한 파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해 마지막 날에 둘만의 사간을 갖기로
약속했던 이 계획이 갑자기 무산된 것은 고울드 농장의 켄트
스미드가 걸어온 전화 때문이었다. 「리키에 관해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허심탄회하게 얘기했으면 합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리키를 보고온 지 불과 하루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그 사이에 리키가 또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이번 방문 때 켄트
스미드가 부재중이었음을 상기하면서, 혹시 그가 내게 리키 에
관해 꼭 말이 있었으나 만나지 못해서 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무슨
일이냐는 나의 질문에 켄트 스미드는 단지 ‘리키에
관해서’라고만 말했다. 나는 조이스와의 약속을 연초로 미루고
고울드 농장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리키는
전반적으로는 분명히 좋아지고 있습니다.」 켄트 스미드의 말은
불안한 내 마음을 어느 정도는 차분히 가라앉게 해주는 것이었다.
「제가 박사님을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뵙고자 했던 이유는
리키에게 새해를 진정한 의미의 새해로 맞이하게 해주고픈 간절한
욕구 때문입니다. 나의 갑작스런 면담 요청에 놀라셨다면
용서하십시오.」 나는 약간씩 안도하면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리키가 농장을 떠나 도시로 가는 것, 소풍가는
것, 학교에 가는 것 등에 대해 주저하고 있으며 어느 때는 완강히
그것을 거절한다고 말했다. 「단지 예외가 있다면 가족이 왔을 때
외출하는 것만을 리키가 매우 즐거워한다는 것이지요.」그는 잠시
말을 끊고는 한동안 나를 응시하다가, 느린 어조로 자신의 말을
계속했다. 「나는 리키를 위해 우리 모두가 뭔가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느낍니다. 의사들은 그러 한 리키의 상태가 일종의
공포증이라고 말합니다. 여러 측면에서 볼 때, 리키는 이곳에와서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이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리키가 여기 머무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리키가
가지고 있는 그런 공포증을 해소시킬 방법을 찾아줘야 한다는
것은 아주 명백해집니다.」 그의 차분하면서도 분명한 말에 나는
두려워 떨었다. 나의 두려움이 지난 수년간 겪었던 온갖 불행에
의한 민감한 반응 탓인지, 아니면 그의 말에 담겨진 확실한
경고의 뜻을 이해해서였는지 분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켄트 스미드의 그 경험이 풍부한 면담 방법에서, 그가 뭔가 내게
꼭 짚고 넘어갈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나의 물음에 그는 지체없이 대답하였다. 「나는 리키가
정신과 의사와 만나 그런 공포 증에 대한 보다 면밀한 관찰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 보세요, 켄트 스미드 씨!」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켄트
스미드의 결론이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맺어지는 것을 예상한
적도 없었고, 심지어는 이런 얘기를 들으러 조이스와 의 약속을
연기하면서까지 마음 졸이며 달려왔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도
했다. 「리키는 이미 수많은 정신병 치료를 받았습니다. 더이상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어야만 되겠습니까? 리키가 받았던 정신병
치료가 그애의 성격을 오히려 비뚤어지게 만들어 회복을 더디게
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을 리키가 정신과 의사와 만나 진료를 받아야 할
만큼 심각한 공포증에 빠져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설령 리키가 그간의 정신병 치료를 통해 많은 고초를
겪었다고 해도 그것을 피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게 나의
확신입니다. 리키가 사회에 나가기를 두려워한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이곳에 그대로 머물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켄트 스미드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이상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고울드 농장의 상담 의사인 플란더즈 박사를 추천하고자 합니다.
리키를 그에게 보내는 것이 그녀의 이문제에 가장 올바로
직면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저는 추호도 의심이 없습니다.」
「당신은 내게 너무 작은 선택의 기회만을 요구하는군요.」 나는
풀이 죽은 음성으로 겨우 말했다. 켄트 스미드의 확신에 차
있으면서도 진지하고,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설득에 나는 끝내
굴복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나는 일단 이렇게 말을
해놓고도 잠시 더 망설이다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일단 그것을
시도해 봅시다. 그러나 더 좋아지지 않고, 조금이 라도 더 나빠질
기미가 보인다면 그때는 무조건 취소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미국 정신의학협회의 의사 인명부에서
랄프플란더즈를 찾아보았다. 그는 38세로, 나이에 비해서는 매우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의사였다. 오랫동안 롱아일랜드 지방에서
활동해왔다고 인 명부에는 적혀 있었다. 그는 리키에 대한 최초의
면담이 있은 뒤에 내게 전화를 통해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리키의 과거 기록을 살펴보았습니다. 나의 생각으로는,
웨스트체스터를 떠난후에 그녀의 치료에 있어 가장 중대한 실수는
개인적 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꾸준 한 계획이 없었다는데 있다고
봅니다. 그녀를 앞으로 계속 규칙적으로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때부터 리키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그를 만나기
시작했으며, 그의 치료 프로그램에 따라 켄트 스미드를 비롯한
농장 사람들의 각별한 관찰을 받았다. 리키는 이제 22세가 되어
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완전한 성인이 된 것이다. 언제나 끝이
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새로운 환경, 새로운 병원을 찾아 헤맨
9년 가까운 세월이 그속에 있다. 어느 만큼의 세월을 더 소비하고
더 가슴을 태우고 더 리키를 괴롭혀야 비극의 시나리오는 막을
내릴 것인가. 리키를 일주일에 한 번씩 4개월 가까이 만나온
플란더즈 박사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1974년 5월 중순이었다.
「모든 것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가 여전히 자신에 찬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그녀가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것을 저는 믿지 않아요. 그녀는 제가 경헙했던 몇몇
신경증 환자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또한 저는 그녀의 증상이 어느
정도는 그동안 그녀가 겪었던 병원 생활과 의사들에게 영향받은
바 크다고 봅니다. 자기도 모르게 다양한 증상의 환자들을
모방함으로써 회복되고 재발되는 악순환을 저질렀고, 그런
와중에서 치료의 명목으로 의사들이 행하는 잔혹 행위에 의해
더욱 심해졌다는 것에 대해 저는 당신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의사들의 잔혹 행위에 의해 리키의 상태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다는 플란더즈의 의견. 실질적으로 나의
생각이기도 한 이 견해야말로 리키를 파멸 시켜 왔던 가장 큰
요인의 하나라고 나는 굳게 믿었다. 웨스트체스터의 휠록
박사라는 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뻔뻔스러운 자기 합리화와
가당치도 않은 자기 논리로 리키를 특수 격리병실에 가두었던
그의 잔인무도한 행위에 다시 한번 치를 떨며 내가 리키의 향후
치료 대책 에 대해 말하려고 할 때, 그가 먼저 말을 시작했다.
「제가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리키의 상처를 치유할 만한
정신과 의사와 그녀와의 관계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일종의 감정전이 요법을 통해 리키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몇 번의 시도를 통해 저는 이미
진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 요법이 대해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나는 적어도 이 치료법이
리키에게 신체적 위험을 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안심을 하면서 그의 제의에 동의하였다. 감정전이 요법은
정신질환자의 감정을 콘트롤하기 위해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환자가 가지고 있는 공포증이나 불안증을 해소시켜주는 일종의
심리 요법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의 사람에게 이 요법은 자칫
엄청난 심리적 고통의 파도더미를 안겨 줄 위험성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플란더즈 박사의 리키에 대한 견해가 나와 많은
면에서 일치점을 보이기 때문에 그의 계획에 동의해주었던
것이다.또하나 리키는 이제 스스로의 문제를 책임질 나이였다.
리키는 13세 어린 소녀 시절에 나의 품으로부터 떠났기 때문에,
아직도 나는 맨처음 펄커크로 향하던 때의 리키 의 연약하고
초췌한 어린 모습을 내 뇌리속에 간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세월이 흐르고 많은 것이 변하고 존과 메어리, 메티유 등도
장대같이 키가 커 버렸고 리키 또한 완전한 성인 여자로
성장했지만, 내가 리키를 생각하고 그애를 만날 때마다 느기는
감정은 여전한 연민, 가련함, 펄커크에서 헤어지던 때의 그
암담함 등이 범벅되어 떠오르는 그런 슬픈 영상뿐이었던 것이다.
리키가 플란더즈 박사에 의해 공포증 해소를 이한 감정전이
훈련을 받는 동안에 나는 <우울증의 불가사의>라는 책을 펴냈다.
1974년 9월의 일이다. 리키가 여전히 고울드 농장에 있고,
플란더즈 박사의 적극적인 치료 아래 있는 가운데 펴낸 책이라
내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저술이었다. 이 책이 가지는 보다
더 특별한 의미는 이 책이 계기가 되어 내가 새로운 일과 아주
특별한 사람을 동시에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펴내고
나서 몇 주 후에 나는 교육영화 제작자인 노먼 바이즈만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우연히 서점에 나갔다가 이
책을 사보게 되었는데, 퍽 감명깊게 읽었노라고 말하면서 내게
정중히 점심식사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우리으 대화는 유익했으며
나는 그의 박식함에 놀 랐다. 그는 우울증이나 노이로제와 같은
신경증을 앓았던 경험이 있음을 토로하면서, 그 뒤로 이런 류의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몇 달 뒤에 나는 항 진정제
토프라닐을 제조해서 파는 제약회사의 상임고문으로 일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회 사에서는 사람들에게
‘우울증의 모든 것’을 계도할 교육영화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나와 의논하고자 하였다. 나는 노먼 바이즈만을
회사에 추천했다. 1975년 3월 초, 노먼과 나는 마침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끝내고는 열정적으로 일을 마친 후의 감미로운
휴식 시간을 가졌다. 노먼의 의자는 그의 큰 체구에 비해
지나치게 작아 보였다고 기억된다. 거기에 앉아서 노먼은 자신이
태평양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공군 비행사로 있었던 때의
모험담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전쟁 뒤에 허리우드로 왔을 때의
연속적인 참담한 실패와 그로 인한 정신적 갈등이 얼마나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는지에 대해서도 토로하였다. 우리는 이미 짧은
기간 동안에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의
개인적인 힘과 성실성, 그리고 그 시간의 친근한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리키에 관해 털어 놓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에서
리키 문ㅈ는 나에게는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진 비밀 중의
비밀이었다. 나는 아주 각별한 사이가 아니면 결코 리키 문제를
털어 놓지 않아왔다. 나의 고백을 듣고 노먼은 눈에 보일 정도로
슬퍼하였다. 그가 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나더니 천천히
말했다. 「고울드 농장은 내가 알고 있는 훌륭한 회복센터 중의
하나이긴 하죠. 하지만 당신은 한번쯤 뉴 헤븐에 있는 게셀센터를
생각해 봤어야 했소.」나도 게셀센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은 청소년 정신발달 연구를 위한 우수센터로 오래 전부터
명성을 얻고 있었다. 물론 게셀센터에 대하여, 내가 지난 몇 년
동안의 방황 기간 동안에 전혀 생각 못해 본 것은 아니었다.
누구였더라. 그렇다, 언젠가 빌 모리스가 내게 뉴 헤븐의
게셀센터로 리키를 데리고 가 보자고 권한 적이 있었다. 리키가
자살소동을 벌려 나의 정신을 온통 엉망으로 만들어 놨던 바로
그해의 일이다. 그러나 그때는 아직도 리키의 상태가
정신분열증에 가갑다는 의견이 지배적일 때였으며, 또 실제로
수없이 리키가 그런 증세하에서 자해와 자멸적 행위를 계속할
때였기 때문에 일종의 회복센터인 게셀을 생각할 엄두도 내지
않았던 것이다. 「게셀 은 리키의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놓을지도 모르오.」 「전혀 다른 의견?」 「그렇소.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멜빈 카플란 박사라는 안과의사가 있소. 여러 해
동안 그분은 정규적인 시력검사 센터를 운영해왔죠. 그런데
어느날 그는 어린 아들을 잃는 바람에 너 무 상심한 나머지
게셀을 그만두었다고 해요.」 나는 노먼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노먼이 그런 안과의사에 대해 내게 이야기해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의 말이 계속되었다. 「그는 자페성 청소년들은
시각적 인지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아주 흥미로운 연구 아닙니까? 나는 언젠가는 그들의 작업에 대해
영상기록으로 남기기를 원하고 있다오. 중요한 것은, 당신도
리키의 시력 검사를 한번 해 봐야 한다는 사실이오. 리키가
머물렀던 병원에서 한번이라도 그녀의 눈을 점검해 본 적이
있소?」 「내 기억으로는 없는 것 같소.」 「왜? 리키가 끊임없이
자신의 시력 장애를 호소하고 있었는데도 왜 당신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지 믿을 수가 없소.」 노먼의
말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그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전혀 다른 각도에서의 전혀 다 른 문제
제기였다. 일찍이 누구 한 사람 이 문제에 대해 의문을 던진
사람은 없다. 리키가 그렇게도 시각 장애를 하소연하고 그애의
온갖 혼란이 거의 대부분 눈, 눈, 눈에서 비롯되었는데도! 「내가
그것을 의학적으로 더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당신은 꼭
그렇게 해야 만 한다고 생각하오. 그건 간단한 검사라오.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요. 그러나 그것이 어떤 해결책을 모색할
작은 빌미라도 제공해준다면 한번 해봐도 손해볼 게 없지
않겠소?」 「일단 고울드 농자의 플란더즈 박사와 켄트 스미드
등에게 이야기해 보겠소. 그들이 승락한 다면 즉시.....」그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격한 음성으로 분통을 터뜨렸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소?」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그가 왜 그렇게도
분통을 터뜨리는지 몰랐다. 「리키는 당신의 딸이오. 플란더즈나
켄트 스미드의 승락 따위가 무슨 필요가 있소?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소?」 나는 내가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끈기
있게 나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리키의 치료를 지켜봐왔는지를
그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눈물겹게 버터온 나날들, 그
뒤안길에서 내가 겪었던 고통에 대해서도. 그러나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먼 은 굳은 의지로 말했던 것이다. 「어느
누구도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당신을 위해 대신해줄 수는 없단
말이오. 당신은 리키의 아버지가 아니오? 당황해하고, 걱정하고,
일이 터진 뒤에 허둥지둥 발버둥치고.....그것이 당신의
전부였소. 도대ㅊ 언제 당신은 당신의 손으로 직접 당신 딸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오? 도대체 언제?」 아팠다. 이를 악물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리키는 모든 사람의
기대에도 아랑곳없이 다시 거기 낭떠러지를 향해 뚜벅뚜벅.....
1975년 봄, 리키는 그녀의 스물두 번째 생일 주말에 힐라리와
내가 농장으로 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한 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당혹감이 푸른 빛의 비수처럼 날을 세우며 내 가슴에
성큼 꽂혔다. 힐라리와 나는 이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만났다.
우리는 오랫동안 리키 의 돌연한 태도에 대해 걱정과 우려를 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논의했다. 왜 갑자기 리키가 이렇게 차갑게
변해 버렸을까. 다른 것은 다 원하지 않아도 가족과의 만남은
언제든 환영하였던 리키가 왜 이렇게 갑작스레 냉랭해졌을까.
오랫동안의 의논 끝에 우리는 일단 리키 의 생각에 따르기로
했다. 힐라리는 말했다. 「일단 이것을 리키가 새로이 찾으려는
독립심의 발로라고 받아들입시다.」 리키는 지난 몇 주 동안
힐라리에게 서너 통의 편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리키는 그
정교하던 자신의 글씨체를 완전히 잃고, 지금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휘갈려 쓰는 글씨체를 가지고 있다. 한 가지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휘갈겨 쓰는 글씨체에도 불구하고 내용에
있어서만은 논리적 모순이 거의 없이 나름대로의 내용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생일날에 자신을 보러 오지 말 것을 요구하는
편지를 받은 지 이틀 후에 힐라리는 또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런데 그 내용 중에 나를 경악시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힐라리와 나에 대한 격렬한 분노였다. 리키는 일찍이 한번도
표현하지 않았던 글귀로 우리를 비난하고 있었다. 힐라리는 즉시
리키의 주치의인 플란더즈 박사에게 전화를 하였다. 그는 리키가
지난 몇 달 동안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다소 나빠진 것을 말하면서
리키의 건강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리키는 시무룩하고
자주 극심한 침묵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녀는 일에 대한 책임도
태만히 하고 있습니다.」 플란더즈의 우려를 직접 확인 할 수
있는 리키의 편지가 며칠 뒤에 내게 배달되어 왔다. 아빠에게
저는 좋아요. 왜 아빠와 엄마는 그렇게 항상 쓸데없는 참견을
하세요? 엄마와 아빠의 참견이 없으면 제가 훨씬 더 빨리 좋아질
거예요. 저는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저를
담당하신 의사 선생님은 훌흉한 분이에요. 저는 늘 그분을
존경해요. 저는 그 분만이 저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행. 제발 저를 혼자 있게 내버려 두세요. 이제 저 자신은
제가 돌볼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더이상 제가 엄마 아빠를
미워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이편지를 받고 나는 얼마나
섭섭했는지 모른다. 나는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하지 못한 게
있다면 참견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리키에 대해, 그애의
치료에 대해 나는 가급적 언급을 회피하면서 묵묵히
인내해왔었다. 그런데도 리키는 말한다. 참견하지 말라고, 그렇
게 하여 자기가 나와 힐라리를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나는 이
편지를 받고 플란더즈 박사에게 사흘 동안이나 계속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실망과 당혹감을 느끼면서도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당장이라도
고울드 농 장으로 달려가 리키를 만나고 싶어도 나를 만나기를
원하지 않는 그애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두려웠다. 리키는 그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흘란더즈 박사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어쩌면 그를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 압도당한 느낌이다. 그는 내가 이제까지 만나왔던 수많은
의사들과는 아주 판이한 면을 갖고 있다. 그는 친절하고
세심하면서 언제든 나를 설득시킬 수 있는 히을 가지 고 있다.
그는 30대 후반이지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붉은
빛이 나는 갈색 머리에 코 밑에 수염을 기른 그는 필립스
선생처럼 파이프 담배를 즐긴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 나의 변화무쌍한 경험담에 대해 털어 놓았다. 나의 어린
시절, 할아버지 의 사망, 아빠와 엄마의 불화, 그리고 하교생활에
관해 나는 비교적 소상히 얘기할 수 있었다. 나는 할아저지의
죽음과 그후에 내가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였었는지에 대해서도
그에게 말했다.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것은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그분의 청취 태도였다. 내가 어떤 말, 어떤 표현을
하더라도 그분은 끝까지 침착하게 들어주었던 것이다. 그가
농장에 오지 않는 날에는, 난 그에게 편지를 썼다. 어느날은 서너
통의 편지를 썼던 날도 있다. 한동안 모든 게 잘 되어가는
듯싶었다. 그를 만남으로써 내 가슴에 피어오르는 희망과 기쁨이
나로 하여금 삶의 의욕을 충만토록 해주었다. 내가 그에게 쓴
편지와 노트에는, 내가 나 스스로를 다치게 하였고 절망케 했던
많은 것들이 써 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호했던
때의 일들에 관해서도 계속해서 썼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나를
또다른 막다른 길 로 몰아가게 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어떤 것은 감추거나 축소해서, 또 어떤
것은 과장하거나 억지로 만들어서 써나갔던 것이다. 이것이 나를
어느 정도는 혼란에 빠뜨린 게 분명하다. 내가 나에 관한
이야기들을 꾸며대고 있었다는 걸 그가 눈치챘을까. 내가
거짓말쟁이이며 헛된 욕망의 노예라는 사실을 그가 알았을까.
그를 연모하는 마음이 내 가슴에 들꽃처럼 피어나 번져 있음을
생각할 때, 나의 가식과 거짓을 그가 눈치챘으리라 여겨진다는
것은 나를 또다른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그때 쓴 편지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사랑하는 플란더즈 박사님. 저는 죽는다는 게
겁나요. 그런데도 전 그런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요. 오늘은
너무나 공허했고 혼란스러웠으며 또 터질듯 부풀어오른 긴장감도
떨쳐버릴 수가 없었어요. 저는 제 가슴을 때때로 이렇게 짓이겨
놓는 감정 상태를 콘트롤할 수가 없어요. 오늘 저는 누군가 의
무릎에 기대어 울고만 싶어요. 끝없이, 끝도 없이 말이에요. 저의
마음속에는 이토록이나 많은 고통이 숨쉬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이세상 어디에도
없는 거예요. 심지어 부모님조차도 제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해요. 저는 정말이지 병들고 싶지 않아요. 저는
때로는 제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으면 좋겠다느 생각을 하곤 해요.
여기 제가 쓴 시가 있어요. 읽어주세요.
때때로 혼자라는 느낌이 든다. 내일이 두렵다. 눈감고 싶다.
가끔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단념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언제나 솟아오르는 절망의 빛, 빛. 내 생애 처음으로 빗속을
거닐었다. 너무도 좋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천중은 싫었다, 신의
분노가 두려웠기에. 고울드 농장에서 머무르면서 내가 가장
뼈저리게 깨달은 것중의 하나는, 내가 얼마나 많이 아프게 되기를
원했으며 절망을 원해왔는가 하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불구가
되기를 생의 유일한 열망처럼 꿈꾸었던 적도 있 다. 한번은
린디가 의도적으로 가시철망을 힘껏 움켜쥠으로써 손바닥을
상처나게 했는데, 나는 어느 순간 그녀의 그런 행동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질투하고 있음을 알았다. 나도 붕대를 원했고,
플란더즈 박사와 의사들로부터 주의를 끌고 싶었다. 어느날 밤에
나는 신발 한 짝을 가지고 외양간 안으로 들어가 나의 종아리를
반복해서 내리쳤다. 나는 스스로를 거의 인사불성 상태로
빠뜨렸으며, 그와 함께 아주 기이한 환각적 기쁨에 빠져들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기대했던 것만큼 부풀어 오르지는
않았지만 다리는 아팠다. 그래서 나는 몇 번 더 내리침으로써
상처 부위를 더욱 부풀게 만들었다. 며칠 동안 나는 걸을 수가
없었고 멍이 심했으며 놀랄 정도로 부었었다. 내가 의사들에게
그것을 보여주었을 때, 그들은 피츠필드 병원의 응급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농장의 의사들은 아마도 혈전증 단핵증을 앓았 던
나의 과거 기록에 유의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피츠필드 병원의 의사는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고, 단지 따뜻한
물수건으로 상처 부위를 적시도록 하라고만 하는 것이다. 나는
너무나 실망했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 같은 치료는 없었다.
그러나 며칠 수 나는 그 부의에 상당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다시 의사에게 보였을 때, 그는 악성 정맥염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리키 문제에 관해 그애의 보호자로서 플란더즈 박사와
상의하고 싶은 나의 간절한 희망은 3주째 그에 의해 묵살되고
있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대신 나는 몇 번인가
켄트 스미드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나와의 전화 통화에서
대단히 우려 섞인 언질 을 계속해왔다. 「저는 리키가 그 정도로
몸의 상태가 나빠진 것에 대해 책임을 느낍니다.」 「우리는 다음
주에 그녀의 방을 바꿔 줄 예정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새로운
변화를 제공할 계획이었던 거죠.」 「우리는 리키가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상태가 나빠졌는지 아직 이유 를 모르고 있습니다.
계속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통해 리키에 관해 보다
소상히 알고자 하는 나의 소망은 조금도 충족되지 않았다. 그런
어느날 그가 아주 어두운 음성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지난
밤이었습니다. 그녀는 정신병 치료를 마치고 곧장 자기 방으로
갔습니다. 그녀가 저녁식사 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몇몇 친구들이
그녀의 방으로 가 보니, 그녀가 울고 있더라는 겁시다. 놀라운
일은 그녀가 자신의 물건들을 모두 부서뜨리고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왜 그런 소란을 듣지 못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매우 화가 나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가 더
심하게 자기 자신을 상처나게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다리를 다쳤는데, 아마 이것은 정맥염의
재발인 듯싶습니다. 그녀는 이것을 당신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제가 리키에게 당신께 전화를 직접 걸어 보라고
권했지만, 그녀는 지금은 누구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녀가 여기에 더이상 머물 수 없음을 알려드리고
싶군요. 우리는 그녀의 위험에 대처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해요. 또한 의학적으로도 그녀의 정맥염을 다룰 수가 없구요.
그녀를 피츠필드 병원으로 보내겠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
병원에도 정신 병동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리키는 외과 병동에서
정맥염 치료를 받으면서 플란더즈 박사로부터의 정신 치료도 계속
받게 될 것입니다. 만일 정맥염이 치료되고 정신적으로도 충분히
회복된다면, 그때 고울드 농장으로의 복귀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나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낙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리키가 정신 병동으로 되돌아가지
않기를 기도하는 일뿐이었다. 리키가 정신 병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또 얼마나 당황할 것인 가. 겨우겨우 터널의
끝에 당도했다고 믿어왔으나, 결국 알고 보니 여전히 터널의
한복판이었음을 알게 될 때 리키가 느낄 암담함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키는 또다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 또다른 낭떠러지로..... ▶리키의
회상(8)무의미한 삶의 연속에 염증을 느낀 리키는 다시 자살을
기도하고..... 다리에 버팀목을 대고 침대에 누워 있도록
강요받은 나에게 피츠필드 병원에서의 새로운 생활은 무의미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불구가 되는 걸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때로는 가끔 그런 상태로 빠져 들어가는 나 자신에 약간씩
안도하기도 하면서 나는 계속해서 다리 통증에 시달렸다.
간호원들은 좋았다. 그들은 내게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아침마다 그들 중 하나가 내 바에 들어와서는 씻는 일을 도와
주고 머리도 땋아주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 나는 먹는 것을 중단해 보기도 했다. 나는 소다수만
마셨고 담 배를 피웠다. 누워만 있고 운동은 전혀 하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그러나 단식은 대단한
의지력을 필요로 했다. 언제나 나는 음식에 대해 욕심을 냈으며
어느 때는 꿈에서조차도 무엇인가를 먹는 꿈을 꾸고는 하였다.
얼마 뒤에 다행히도 체중이 퍽 줄었 으며 상당히 마른 체구가
되어 나를 즐겁게 하였다. 때때로 나는 고통 때문에 수면제나
진통제인 디메롤을 주사받았다. 그러나 이건 정신적 고통이
아니라 육체적 통증 때문이었다. 디메롤이 한순간 내게 준
행복감은 좋았다. 한동안 그들은 4시간마다 내게 디메롤을 주사했
었는데, 중독이 될지도 모른다고 그만 두도록 플란더즈 박사가
결정을 내렸다. 그 결정이 있은 지 3일 동안 나는 땀을 비오듯
쏟았다. 온몽이 떨렸으며 굉장히 메스꺼웠다. 어느 때는 내
온몸으로 개미들이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에야 디메롤 에 대한 나의 집착은 사라졌지만, 나는
아주 우울했다. 이런 나의 정신 상태에 의사들은 잠시 난감해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하루에 4시간 동안 내 다리에 곧은
부록을 대어 놓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는 나는 가능할
때마다 다리를 구부리려고 하였다. 슬프게도, 나의 한쪽 다리는
기능이 점점 쇠퇴해지는 것 같았으며 나는 휠체어에 의지해서
옮겨다녀야만 되었다. 물리 치료는 그런대로 받을 만했다. 그들은
나를 소용돌이치는 물 속에 넣고, 근육을 만달기 위한 노력으로
나의 발과 다리를 계속해서 움직이도록 했다. 물리치료실에는
많은 환자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다리가 없었으며, 또다른
어떤 사람은 불구나 장애자로 고생하고 있었다. 가장 불행하게
보이는 환자들은 고질적인 관절염이나 경화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가끔은 근육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좌절하며 눈물 을 흘리곤 했는데 물리치료사들은
그들에게 말했다. 「자, 너는 할 수 있어. 해낼 수 있단
말이야!」 나는 나머지 내 인생이 그런 식으로 불구가 될 것 같아
놀라기 시작했다.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한데도, 막연한
가능성에 매달려 더욱 심신을 괴롭게 만드는 그런 불 행이 내게도
닥칠 것 같아 두렵기 시작했다. 나는 키티라고 하는 한
여자아이와 친하게 지냈다. 열여섯 살인 키티는 아주 조용한
소녀였다. 그럼에도 키티는 입가에서 미소를 떨쳐내지 않고
지내는,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도 불행할 것 같지 않은 소녀였다.
그녀는 빗을 손으 로 잡을 수가 없었다. 악성 신경염에 걸려서 손
근육이 불구가 되었기 때문에 그녀의 손은 거의 쓸모없을 정도가
돼 있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빗겨 주곤 했다. 그다지 잘하지는
못했지만, 가끔은 그녀의 머리를 길게 땋아 말총머리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부 터인가 이상하게도 나는 키티의
병에 대해 조금씩 질투심이 일기 시작했다. 나는 주먹을 꼭
쥐고는 키티의 불구가 된 손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무
후에, 놀랍게도 내 손의 기능이 퇴화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돌이켜볼 때, 나는 모방의 천재였다. 불구된 손 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고 그런 역할을 연기하는 추악한 모방자. 그때
나는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플란더즈 박사님. 저는 제 자신을
다치게 하는 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강박관념에
붙들렸다가 풀어질 때까지, 저는 오랫동안 웅크리고 앉아서
꼼짝않고 있어야만 해요. 최근 들어선 머리카락이 더욱 심하게
빠지고 있고 입 안팍이 몹시 아파요. 혹시 비타민 결핍증이 아닐
까요? 지금까지 줄곧 저는 생각보다는 강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살아왔으나, 이제는 그런 생각마저도 희미해져만 갑니다.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그런 희미함은 제
가슴을 짓이겨 놓고는 해요. 손을 뻗어 박사님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리키 이 편지를 쓸 당시에, 나는 고통 때문에 진통제
페르코단을 복용하고 있었고 동시에 수면제인 플래시딜도 함께
먹고 있었다. 그런 어느날 하나의 예고처럼, 그 약들의 부작용이
나늘 찾아왔다. 어느날 내가 그 약들을 먹었는데, 30여 분 뒤에
엄청난 돌풍이 내게 밀려오 는 것처럼 커다란 소리가 윙윙 내
귓가에 맴도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괴이한 소리와 견디기 힘든
고통을 이겨 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곧 모든 것은
깜깜해졌고 곧바로 나는 기절을 하고 말았다. 어느날 저녁에 나는
플래시딜과 페르코단을 복용한 뒤에, 오트밀 그릇 을 가지고
식당에 앉아 있었다. 또다시 내가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 느끼는
순간에, 나는 곧 기절을 하면서 오트밀 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말았다. 사람들은 내가 질식하지 않도록 내 얼굴을 황급히
쳐들고는 허겁지겁 닦아내야 했다고 한다. 어느날 밤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휠체어로 가려다가 그만 또다시 기절을 하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부터 사람들은, 밤에는 내가 한 자세로
있도록 침대에 묶어 놓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부서지고 망가지고 무너지고 있음을 인지했는 지도 모른다.
어느날 나는 이런 삶이 너무나 지겹고 또 지겹다고 느끼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발작을 일으키고 말았다. 나는 침대에 묶인 채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몸부림치고 소리지르고,
울면서 한탄했다. 그 이튿날, 피츠필드의 의사들은 나를 정신
병동 으로 보냈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들이 나를 들것에
옮겨 싣고는 한마디 말도 없이 정신 병동으로 데리고 갔기 때문에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지난 두 달 동안 걷지를 않았기 때문에
계속 침대생활을 해야 했다. 더구나 나는 독방에 수용되었다.
나는 너무나 참당해 서 먹는 것조차 중단해 버렸다. 단지 내가
먹는 것이 있다면 오렌지 쥬스뿐이었으며, 그 때문에 끊임없이
설사를 해야 했고 그와 함께 체중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그때 내 몸무게는 30kg이었다. 거기에서 며칠인가 보내고, 창을
뚫고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보며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떳을 때
나는 내 마음속에서 걷잡을 수 없기 일기 시작하는 분노의 감정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나에 대한 분노, 모든 사람에 대한 분노,
분노, 분노..... 나는 내가 정신 병동에 다시 돌아와 있다는
사실을 용서할수가 없었다. 내가 이제 정신 병동에서 견 디어낼
수 없으리라는 사실은 무엇보다도 명백했다. 나는 고울드
농장에서 오랫동안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여기
피츠필드 병원 정신 병동에 와 있는 것이다.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또한 의사들과 간호원들에게도
화가 났다. 그들 에게 앙갚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조용히
혼자 떠나는 것밖에는 달리 길이 없을 듯싶었다. 그들은 단지
내가 아직도 살아 있는지 어떤지 확인하러 올뿐이었다. 내가
자살을 한다면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정말 궁금했다. 나의 식은
몸을 보며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주의를 둘러보았다. 내 옷가방이 저쪽 구석에 놓여
있었다. 나는 침대 밑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그 가방이 있는
곳까지 기어갔다. 나는 가방을 움켜잡았다. 나는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몇 번인가 자살 미수 소동을 벌인 뒤로 전혀
죽음을 생각 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제와서 죽음의 방법 따위를 따질
겨를이 없다고 생각했다. 페르코단이나 플래시딜이 있다면 보다
손쉽게 죽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웨스트체스터에서의 일이 나의
병상일 지에 기록돼 있어서인지 그뒤로 모든 병원의 모든
의사들은 철저히 내가 약을 먹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나는 그
뒤로는 어떤 약도 모을 수 없었으며, 보다 중요한 일은 약에 의한
자실 미수가 가져오는 엄청난 부작용이 나를 두렵게 했기 때문에
다시는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가방을 열었다.
나는 내 삶을 중단시킬 무엇인가를 거기서 찾길 원했다. 내
심장은 내가 그것을 거의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빨리
속력을 내고 있었다. 내가 마침내 가방 속으로부터 잡아올린 것은
6개들이 스타킹 셋트였다. 고울드 농장에 있을 때, 엄마는 내게
화장품과 함께 이것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내 나이의 다른
여자들이 마음껏 청춘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을 때, 나는 온통
회색빛 정신 병동이나 정신 휴양소 같은데서만 지내왔기 때문에
엄마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이런 류의 선물을 종종 해왔다. 나는
6개 의 스타킹을 나란히 묶었다. 그것들이 하나의 제법 긴 밧줄이
되었을 때, 나는 추호의 말성임도 없이 그것을 내 목에 감았다.
아주 세게. 나는 희망이 없었다. 그래서 한번 더 그것을 목에
감았다. 나는 갈 곳도 없었다. 나는 좀더 세게 그것을 감았다.
나는 나에 대한 분노 를 멈출 길 없었다. 이윽고 나는 있는 힘껏
줄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나는 미친 여자다. 나는 회생의
가능성도 없이 언제나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분노, 분노,
그리고..... 꿈결같이 희미하게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이를
악물고 응시하면서 나는 나의 행위를 계속했다. 마 치 죽어서라도
이토록 참당한 환경을, 이런 환경 속에 있는 나를 기억이나 할
것처럼. 나는 이렇게 죽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죽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요원하기만 하였던 나의 꿈, 나의
인생을 이런 식으로 마감하는 것은 더 추악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 았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적어도
열다섯 살 내외의 소녀시절 때 시도하였던 자살에의 이유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훨씬 분명한 타당성으로 나는 내목을 조이고 또
조이는 스타킹의 줄을 놓지 않았다. 희미함, 아스라이
멀어지는..... 언제나 이 순간 이 되면 눈물이 났었으나 나는
이제 울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리 울어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왜냐하면 눈물이 나의 삶에
거름이 되지 못하고 나를 더욱 초라하게 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으나 무섭지 않았다. 앙갚 음,
분노, 그리고 절망. 나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리키의
회상(9)끝내 미국에서도 최악의 병원이라는 곳으로..... 「나는
너의 이런 행동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플란더즈 박사가 맨처음 한 말은 이것이었다. 나는 나의
침대에 팔다리가 가죽끈으로 묶인 채 누워 있었다. 그는 무척
화가 난 모양이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서는, 파이프 담배를
연거푸 뿜어대었다. 「왜 그런 짓을 저질렀지, 리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나?」 나는 눈을 감았다. 나는 내가 다시
한번 추악한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그다지 수치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무척 화가 많이
나 있다는 사실에만은 걱정이 되엇다. 이 걱정이 하나의 현실,
하나의 급격한 상황 변화를 예고하는 전조로써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그 이튿날이었다. 「나는 네가 올바른 사고 방식을
배울 수 있게끔, 너르 북부 햄프턴 주립병원으 로 보내기로
하였다. 내가 널 거기로 보내려는 것은 모두 너를 위한 것이야.」
「박사님, 저는 이제 다시는 죽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리키!」 그가 엄숙하게 내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나는 더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리키. 너는 너의 병에 합당한 충분한
대 우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북부 햄프턴 병원은
네게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삶의 방법을 가르쳐주게
될 거야.」 「박사님, 저는 정신병자가 아니에요. 저는
주립병원을 이미 충분히 경험했어요. 거기선 내 인생을 위해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어요」 「그렇지 안아. 그곳은 네게 훌륭한
삶의 기회를.....」 「박사님은 저의 부모님의 허락이 업시는
저를 보내실 수 없을 거예요!」 나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플란더즈 박사는 여전히 침착하게 말했다. 「리키, 그것은
내가 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해야만 하는 일이야.
물론 나는 너의 부모님에게 전화를 하겠어. 그러나 너는 이제
성인이야, 완전한 성인! 그러니 네 부모님의 승락같은 것은
더이상 필요치 않아.」 성인, 완전한 성인. 찌를듯 들려온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얼마나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나 는 지금 얼마나 내가 완전한 성인이 되었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성인,완전한 성인, 스물두
살의..... 어쩌면 나는 아직까지도 극단적인 두 개의 감정
사이에서 방황을 거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희망과 어서 빨리 어른이 되었으 면 하는 또다른
강렬한 욕망 사이에서, 스물두 살의 오늘도 나는 방황을 거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끝내 나는 그날로 북부 햄프턴 병원으로
옮겨졌다. 걸을 수가 없기 때문에 들것에 실려서 난느 앰블런스에
태워졌다. 북부 햄프턴 주립 정신병원. 나는 젠가 이곳에 대해
한번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을 앰블런스에 태워지고 나서야
생각해냈다. 누구였더라, 누구인지 분명히 기억 되지는 않지만,
아무튼 누군가 그곳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 병원이야말로 이
나라에서 가장 나쁜 병원 중의 하나라고. 그곳이야말로 정신병
환자가 갈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코스라고. 나는 플란더즈
박사에게 지독한 배신감을 느꼈으나 그를 원망하고픈 기력도
분노도 없었다. 북구 햄프턴 주립병원. 플란더즈 박사도 별다른
선택의 길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은 먼훗날의 일이지만,
그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며 털털거리는 앰블 런스에 누워 있는
나에게도 희망도 없었고 의욕도 없었다. 그들이 나를 밀폐된
보호병실로 옮겼을 때,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울음소리와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를 들었다. 손바닥만한
밀페 공간에서 숨막힐 듯이 뻗쳐 나오는 괴이한 냄새와
소름끼치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잠시 기절하였다. 「거기는
정신병자가 갈 수 있는 최악의 코스야.」 이 말이 다시금
들려오는 것 같이 느껴졌을 때, 나는 모든 것이 까마득히
멀어지는 것 같았다. 휙 하는 뜨거운 모래바람이었을까, 나를
기절하게 만든 것은. 깨어날을 때, 맨처음 내 눈에 띈 것은 벽 위
높은 곳에 있는 빗장이 쳐진 작은 창문이었다. 방은
어두컴컴했다. 나는 일어서 보려고 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내가 튼튼한 가죽끈에 의해 온몸이 침대에 꽁꽁 묶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를 못견디게 하는 것은 소독약의 짙은
냄시와 오줌 냄새와도 같은 지리내, 그리고 담배 연기와도 같이
방안 가득 자욱한 썩은 냄새였다. 보호감호실. 그렇다, 나는 결국
정신병 환자가 갈 수 있는 마지막 코스에까지 끝내는 다다르고
말았다. 나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역겨운 냄새를 참아내기
위해서 가끔 숨을 멈추었다가 는 급히 토해내면서 나는 절망의
끝장에까지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였다. 절망? 그동안 나는 얼마나
사치스럽게 이 말을 주주 써왔던가. 죽음? 나는 그동안 몇 번이나
내 목숨을 끝내기 위해 발버둥쳤던가. 그러나 이제는 적어도 내
힘으로는 나를 죽게 할 수 없게 만들어 버 릴 정도로 자유마저
없는 곳에 나는 와 있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어리석게도 진정한
삶,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몰랐던가. 아이러니컬하게도 플란더즈
박사는 내가 여기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배우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점점 더 짙게 배
어오는 냄새들. 나는 눈물을 흘리고 싶었느나 그것이 지금의 내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줄 것인지 생각해 보곤 이를 악물었다. 잠시
후에, 나는 그 역겨운 냄새들 속에서 실제로 담배 연기 낸새가
나고 있음을 알고 약간 의아해 하였다.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을
때 내 방의 귀퉁이에서 어떤 여자가 코바늘 뜨개질을 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말하자면 나의
간호보조원이었다. 아니 일종의 감시자라고나 할까. 그녀는 길고
지루한 그 감시의 시간에 담배를 피움으로써 무료함을 달래고
있은 것이었다. 그녀가 나를 힐끗 바라보더니, 지나치게 크고
지나치게 꾸며진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 깨어났군요.
아가씨는 정말 오랫동안 잠을 잤어요. 거의 사흘이나! 목욕하고
싶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내게 다가와 끈을
풀어주기 시작했을 때, 어느새 알고 다른 여자들이 내 방에
우르르 들어와 그녀를 도와주었다. 「자, 일어나요. 우리는 더
기다릴 수가 없으니까.」그중의 한 명이 냉랭하게 소리쳤다. 「전
걸을 수가 없어요.」 내가 겨우 말했다. 그러나 이번엔 또 한
여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하는 것이었다. 「뭐라고 하는
소리지?」 「전..... 걸을 수가 없어요.」 「우리에게 그런
엉터리 같은 소리는 집어치워!」그녀가 버럭 소리를 질렀을 때
이미 나는 떨기 시작했다. 그들은 침대에서 나를 끌어냈다. 나는
이미 내 정신이 아니었으며, 제 정신이 아닌 것은 그녀들도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일어나! 여기가 어디 인지 알고 하는
수작이야? 그런 엄살이 여기서 통할 줄 알았어?」 한 여자가
거칠게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나는 얼결에 일어서려고 하다가 그만
그대로 벌렁 넘어져서 의자 뒤로 머리를 부딪쳤다. 마루 위로
쓰러지고 나서야 나는 월경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하체 는 온통 피투성이였다. 그들은 내가 그들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기를 기다리면서
화가 난 얼굴로 내 주의를 빙빙 맴돌았다. 나는 두려웠다.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을 바라볼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피투성이가 된 나의 하체 쪽을 멀거니 바라보면서 나는 온통
두렵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침내 키가 크고 흑색 피부를 가진 어떤
남자가 흰 가운을 입고 나를 살펴보려고 들어왔다. 그는 허리를
구부리고는 왜 내가 마룻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지 물었다. 나는
그 남자에게 나의 다리를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내
힘으로는 일어설 수도 걸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단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을
뿐이다. 잠시 후, 그는 나를 겁나게 만들었던 여자에게 이유를
묻더니, 뭔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 에게
휠체어를 가지고 오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희부연 불빛의 통로를
따라 나를 휠체어에 앉혀 밀고 갔다. 터널은 어두웠고,
1800년대의 지하 감옥을 연상시키는 방들이 제각기 작은 창틀을
복도로 향한 채 늘어서 있었다. 휠체어는 너무나 느릿느릿
움직였다. 천정은 높았 으며 그에비해 불빛은 너무나 어두웠다.
그리고 지독한 냄새가 계속 코를 찔렀다. 후에 누군가가 내게
말해주었다. 그 병원의 보호감호 병동은 실제로 남북전쟁 당시의
감옥이었다고. 음식도 형편없었다. 그날 저녁식사부터 시작된
매일매일의 식사에서 그들은 내게 고무 냄 새가 나는 핫도그나
부석부석한 토스트, 차가운 오트밀 같은 것들을 던지듯 내놓으며
먹으라고 강요했다. 이미 나는 철저할 정도로 말라 있었기 때문에
간호보조원들은 내가 식사하는 것을 반다시 지켜보았으며, 그래서
나는 먹기 싫어도 억지로 먹는 시늉을 해야만 하였다. 그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로 미친 것 같았다. 내가 이제껏 있어왔던
병원들은 여기에 비하면 궁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표정은
다양했으나 한결같은 건 그것이 살아있는 표정이 아니라는
사실이었고 그들의 숨소리, 그들의 손짓, 그들의 말이 살아있는
자의 것이 결 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맨처음에 내 방에
들어왔던 그 검은 피브를 가진 키 큰 남자는 알고 보니 나의
담당의사였다. 그가 나를 똑바로 직시하면서, 내게 던진 최초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왜 자살하려고 했나요? 정말로 죽기를
원했나요?」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 았다. 그에게 하고 싶은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정말 죽기를 원한다. 나는 이제
더이상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더이상, 더이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소리쳤다. 「아니에요. 저는 죽고 싶지
않았어요. 전 다만 주의를 끌려고 한 것뿐이었어요. 모두 다 내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아니 그들이 나를 정신병원으로 옮기려고
해서..... 제가 여기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하죠?」 그
의사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소리없이 웃었다. 비웃는
것일까. 그가 말했다. 「플란더즈 박사님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
없었어요. 당신이 얼마나 위험한 짓을 저질렀었는지 알아요?
여기서는 그런 짓을 저지를 수도 없겠지만 만일 그런 생각을 먹게
되면, 또는 그런 행위를 저지르게 되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는 그때 가서 알게 될 거요!」 ▶리키의
회상(10)리키가 자신을 향해 피눈물의 선홍빛 글시로 쓴
편지에는..... 나에게:1975년 8월 29일, 오후. 나는 이렇게
뒤죽박죽이 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정말 어떤 일이
있었으며 앞으로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나는 외롭다. 그러나 눈물은 이제 더이상 흐르지 않는다.
나는 빈털터리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이상 삶을 구걸하고 싶
지 않다. 신은 왜 인간을 창조하는지 알 수가 없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 어떤 고통도 결코 느끼지
않을 텐데..... 누군가가 크고 긴 날카로운 칼로 어떤 사람을
상처나게 하려고 한다. 그의 눈알을 도려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그것은 잘못 되 었다고 점잖게 타이른다. 그가 말한다. '그대신
네 자신의 손을 잘라라'라고. 나는 우유는 싫다. 그대신 나는
핫초콜릿이 들어 있는 병이나 고무 꼭지를 갖고 싶다. 어린
소녀가 울고 있다. 그애는 지독히 추위를 탔다. 게다가 그애가
아끼는 인형이 죽어 버렸따. 그애가 인 형의 온몸을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이제 더이상 그애는 그것을 가질 수가 없다. 그애의
유모는 재미있는 발가락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발가락들은
제멋대로 굽어 있다. 요전날 엄마는 내게 양배추 요리를 먹으라고
했는데, 나는 그걸 먹고 몹시 아팠다. 나는 담요를 푹 뒤집
어쓰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그건 없었다. 추웠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노틀담의 꼽추를 보았는데, 그 꼽추가 나를
놀라게 했다. 눈을 꼭 감고 있어도 꼽추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거기 서서 나를 보고 말한다. 네가 내대신 종을 쳐라. 나는
홍역에 걸렸다. 아니 면 어떤 다른 병에 걸렸나 보다. 내
눈에서는 불이 뿜어져 나오듯 뜨거운 무엇인가가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엄마가 나의 방을 어둡게 만들었다. 나는 어두운 것이
무섭다. 내가 태어나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어둠속에서 오들오들
떨며 언제든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 다. 나는 모든 것을
계속 지켜보고 있지만, 그것들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모든
것이 잘못되고 거짓된 것뿐이다. 누군가가 내게 속삭인다. 만일
내가 원한다면, 나 스스로 나의 심장을 멈추게 할 수 있다고.
나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하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정녕
다 어디로 가 있는 것일까. 정말로 살아서 걷고, 말을 하고, 웃는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 있는 것일까. 내 안에는 악마가 있는
것일까. 내가 사악한 것은 신이 나를 버렸기 때문일까. 천정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지독히도 멀리. 그리고 이곳은
지겨운 곳, 나는 숨을 쉴 수가 없다. 나는 움직일 수도 없다.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면서도, 매번 자기 자신에 의해
상처받는 그 작은 소녀는 사라졌다. 어디로 갔을까. 그녀는 벽장
안에 숨기를 좋아했다. 어디로 갔을까. 여기, 지금, 그리고 나.
그리고 또하나 북부 햄프턴 주립 정신병원. 나는 모든 것을 다
잃었다. 누가 빼앗아갔을까. 왜 빼앗겼을까. 누군가가 소리없이
웃고 있다. 그러나 그는 모를 것이다. 그가 소리없이 거기 서서
웃고 있을 때, 어디선가 누군가는 소리없이 울고 있다는 것을.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흐느낌 소리도 없이 울 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나의 귀를 파고드는 누군가의 흐느낌소리, 긴 탄식의
한숨소리. 그리고 간혹은 웃음소리. 나를 가슴 아프게 하고 나를
더욱 침울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칼날같은 웃음소리. 복도를
따라 길게 여음을 남기며 크게 들렸다가 이윽고 산산이 부서져
메아리치는 그 웃음소리를 듣노라면 나는 왜 그렇게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나를 보고 요술쟁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을 감동시켜야 한다. 그들의 가슴에 파문을 던져야
한다. 나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이
내려지려 하고, 누군 가가 나를 보고 이제 떠나라고 한다. 나는
나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떠나서는 안 된다고. 더 많은
역할을 위해, 아니면 더 많은 그 무엇인가를 위해 아직은 더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죽음만이 가장 확실한 도피처가 될 것임은
명백해졌다.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얼 마나 수없이 나는
실패하였던가. 죽음이 나를 함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도
또한 명백해졌다. 그럼 무엇을 원하는가? 신에게 나는 묻는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이나. 그럼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몽롱한 의식인 채 그냥 그대로 처참히 누워 있기만을 강요할
수록, 나는 더욱 명료히 눈을 뜨고 빗장이 쳐진 창문을 보며
묻는다. 이 어둠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요?
그들이 나의 손과 발을 튼튼한 가죽끈으로 묶어 놓고, 함부로
말도 하지 못하도록 상대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도록 이렇게 가두어 놓았는데, 이 어둠속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무엇을 기도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요?
나는 이렇게 되도록 짜여진 내 인생의 시나리오를 납득할 수
없다. 뒤죽박죽 헝클어진 내 삶의 갈래갈래를 어디서부터 손을
쓰고 어떻게 곧게 펴나가야 할지 알 수도 없다. 할아버지. 그분이
어디선가 나를 부르고 있는 소리를 요즘 들어 자주 듣게 된다.
그런데도 나는 그 목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지 못한다. 안다
해도 갈 수도 없겠지만..... 모든 것이 철저히 뒤죽박죽이다.
그속에 내가 있다. 언제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리키의 회상(11)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너서려는 리키.....
나는 체념과 낙심으로 가득찬 그 특수 보호감호실에서의 생활을
한 달 가까이 계속했다. 그것은 정말이지 인내나 용기의 생활이
아닌, 완전한 포기와 무력감의 생활 그 자체였다. 나는 늘상 몸을
떨었다. 일부는 두려움 때문에, 그리고 일부는 계속된 약물
치료의 부작 용 때문에. 지금까지 나는 너무도 많은 각기 다른
약물을 써왔다. 그 약물들의 이름을 일일이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 몸에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거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것 따위는 모두 내 몸
안에서의 약물의 부적절한 혼합 때 문일 것이다. 보호감호실에서
한 달 정도 보내고 난 후에, 나는 일종의 회복실인 다른 병실로
옮겨졌다. 이름만 다를 뿐, 환경은 똑같이 형편없었고 나에 대한
대우도 마찬가지였으나 다행스러운 것은 나를 속박하는 가죽끈이
낮에는 내게서 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제 힘들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걸을 수도 있게 되었다. 회복실에서는
간호보조원의 허락을 받으면 병동내에서는 어디든지 마음대로
다닐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아주 약간씩의 자유도 누릴 수가
있었다. 나는 내 방의 간호보조원을 무시했다. 이상한 것은 그녀
역시 그다지 나를 심 하게 구속하려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병동 내의 이곳저곳을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며, 마치 나를
감시하는 그들을 오히려 내가 감시하듯이 엿보고 다녔다. 병원의
풍경은 내가 경험해왔던 바 그대로였다. 정처없이 왔다갔다 하는
환자들, 휴게실의 너덜대는 의자에 걸터앉아서 허공을 뚫어지게
바라보거나 뭔가 고함을 치려고 번쩍 고개를 쳐들고 있는
환자들이 거기 있었다. 그들이 무섭다. 그들 대부분을 벌써 몇
년째 여기에 있어왔다. 그들은 부릅뜬 눈이거나 초점 잃은
눈이거나 상관없이 모두 죄악의 추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그들에게 그렇게 보일 것인가. 병동 내를 왔다갔다 하면서
나는 어디 한군데 내가 발붙일 곳이 여기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상 이것은 어느 병원에서난 마찬가지로 느끼는
것이었지만. 매일같이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채 복도와
오락실, 목욕탕 같은 곳을 돌 아다녔다. 화장실의 문은 반쯤
부서져 있는데다가 대단히 불결하였다. 변기는 씻겨지지 않은 채
그대로였으며 악취가 풍겼다. 밤새도록 투덜대고, 소리를 지르고,
코를 골고, 쉬지 않고 우는 사람들 틈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나는 어느새 내가 놀랍도록 이 모든 환경에 친숙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정말이지 이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나는
플라스틱 매트리스에서 잠을 자야 했는데, 그 딱딱한 감촉 때문에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더구나 다 닳아빠진 담요를 덮고
있노라면 참기 어려운 오물 냄새가 코를 찔러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언 제나 나는 비몽사몽으로 밤을 지새우며 거의
무감갛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나는
마루를 청소하고 방을 걸레질해야 한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여인은 거칠고 뻣뻣한 천을 덮고 있었는데, 그녀는 매트리스에
다리가 묶여 있어 거기서 나올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간호보조원의
도움을 받아 식사를 했는데, 내가 이 방에 온 지 열흘 가까이
되도록 우리는 결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침묵은 우리 두
사람을 차라리 마음 편하게 했는지 모른다. 나중에 듣기로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매우 난폭했었는데 내게만을 별로 위협적
이지 않았다. 내가 방 청소를 끝내고 걸레와 물통을 세면장으로
가지고 가서 더러운 물을 버리고 걸레를 짠 후에 담배를 피우고
나면 어느새 시간은 오전 10시가 가까워 온다. 나는 그뒤에 대개
오락실로 간다. 그곳에는 늘상 뜨개질을 하는 한 노부인이 있다.
어느날 내가 그 노부인에게 지금 만들고 있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겨울 스웨터를 짜고 있노라고 대답하였다. 「참
예뻐요.」내가 말하자, 그녀가 웃음을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고맙구나. 그런데 그 담배 좀 꺼줄 수 없겠니? 난
담배 연기는 질색이거든.」 그 날부터 우리는 친해질 수 있었다.
한 가지 괴이한 것은, 내가 보기에 그녀는 조금도 이병원의
분위기나 환경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차분하며 왜 그녀가 여기에
수용되어 있나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그 노부인이 짜고 있는
스웨터는 이미 절반쯤 완성되어 있었는데 매우 정 교하고
아름다워서 내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그
휴게실에서 만난 폴라라는 또다른 친구를 통해 그녀에 대해 듣게
되었다. 폴라는 덩치가 큰 30대 여인으로, 언제나 얼굴에까지
립스틱을 바르고 다니고, 스커트 아래로 속바지를 길게 입는
이상한 여자였 는데 자기 자신을 내게 소개할 때, 자기는
어릴때에 일종의 뇌염을 앓았었노라고 했다. 폴라는 그 노부인이
이 병원에 온 지 벌써 5년이 넘었으며, 동시에 그 스웨터를 짜기
시작한 것도 5년이 넘었다고 말해주었다. 「그 여자는
편집광이야. 너 조심해야 해. 저 여자는 너의 목을 조를지도
몰라.」 실제로 그 노부인은 1년 전에 어느 여자의 목을 졸라
거의 빈사 상태에 빠뜨렸었다고 한다. 폴라와 나는 자주 어울려
다녔다. 우리는 특히 병원 내에 있는 간이상점에 자주 함께 갔다.
거기선 콜라, 캔디, 빵, 담배 등을 팔았는데 값이 매우 쌌다. 어
느날 나는 프렌치 후라이를 주문하고 폴라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황급히 입 속에 샌드위치를 집어 넣고는 게걸스럽게
먹더니, 내가 미처 내 것을 먹으려 하기도 전에 또다시 손을
뻗쳤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따. 「내게도 좀 남겨 줘!」 내가
소리를 지르자, 폴라 가 두 눈을 부릅뜨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너같은 욕심쟁이는 처음 보았어!」 내가 다시 소리지르자
폴라는 씩씩거리며 일어서더니 찬바람을 일으키며 상점 밖으로
나가 버렸다. 「너 아주 쉽게 미치는구나! 나는 너에게 말을 할
수조차 없구나!」 나는 계속해서 허공에 다 대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데 그날 밤에, 내가 막 잠에 빠지려고 하는데 복도
끝어디선가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그것이 폴라의
음성이라는 것을 나는 즉각 알아차렸다. 「나는 불타고 있다. 내
몸에 불이 붙었어!」 내가 밖으로 뛰어 나갔을 때, 폴라가 잠옷
소매에 불이 붙어 있는 채로 복도 저쪽에서 서서 울부짖고
있었다. 한 간호보조원이 폴라에게 소화기를 뿜어대어 불을
껐으나 폴라는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 「리키가 나로고 미쳤다고
했어! 리키가 내 음식을 못 먹게 했어. 난 리키 때문에 죽을
거야. 리키가 날 죽일 지도 모르니까. 난 무서워. 난
무서위.....」 난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그저 멍청히 서서
폴라가 계속 지껄여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담당
간호원이 폴라의 불에 데인 팔뚝에 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아주었다. 「폴라, 얘기해 봐요. 어떻게 된 거죠?」 폴라는 계
속 씩씩거리며 뭔가를 두서없이 지껄여댔다. 아마도 열번도 더 내
이름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다른 환자 한명이 폴라대신 말했다.
「나는 폴라가 하는 것을 보았어요. 그녀가 휴지통에 불을
지르더니 거기에다 자기 팔뚝을 들이밀었어요. 끔찍한
일이에요!」 간호원을 그것이 사실이냐고 폴라에게 물었다.
폴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머뭇거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간호원이 차갑게 말했다. 「이번 일 때문에 당신은 격리실로 가야
해요. 이번 일은 정말 심각한 문제예요.」 「나는 가고 싶지
않아요. 나를 그냥 여기 있게 해주세요. 제가 잘못했어 요.」
폴라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으나 간호원은 이에 아랑곳없이 몇몇
간호보조원들을 부르더니 그 자리에서 폴라를 밖으로 데리고
가도록 명령했다. 나는 폴라가 입에 담지 못할 욕지거리를 그
간호원과 내게 퍼붓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폴라가 휴지통에
불을 지른 것이 병원 전체에 옮겨 붙었다면? 나는 화염속에서
발버둥치고 연기속에서 쿨럭거리며 방황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진저리를 쳤다. 나는 플라스틱 매트리스로 돌아와서 드러누웠지만
좀체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수없이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다시금 온몸이 떨리고, 개 미가 내 온몸을 뒤덮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견디기 어려웠다. 불.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내
가슴속에 도사리고 있어 언제든 내 심장을 뜨겁게 하던 불, 불을.
담뱃불로 내 팔뚝을 태우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치솟아오르는
분수처럼 내 의식을 적셔왔다. 나는 일어섰다. 담배를 찾아 피워
물고는 팔뚝을 내밀면서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두웠기 때문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의 팔뚝에는 아직도 선명한 자국으로 내가
여러 번 담뱃불로 태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나는 온몸을
기어다니는 개미들을 태워 죽이고 싶었다. 나는 언제나 변함없이
흐느적흐느적 떨려오는 팔과 다리를 불태워 없애고 싶었다. 나는
살이 타는 냄새를 맡고 싶었다. 아, 얼마나 오랫동안 나는 그
냄새를 맡고 싶었다.아, 얼마나 오랫동안 나는 그 냄새를 잊고
있었던가. 그런데 내가 막 담뱃불을 내 팔뚝에 갖다 대려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온 것이다. 「그런 짓을 하면
못 써. 어서 담뱃불을 꺼.」 난 깜짝 놀랐다.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담배를 그대로 떨어뜨릴 뻔했다. 그 음성은 바로 나와
같은 방을 쓰면서도 여태까지 한번도 제대로 말을 나누지 않았던
바로 그 여자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나는 멍청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순간적으로 나는 그녀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그대로 담배를 든 채 애매하게 그녀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어서
담뱃불을 끄지 못해?」 그녀가 다시 엄숙하게 명령했을 때,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슬그머니 담뱃불을 끄고 말았다. 그 순간 왜
그토록 눈물이 났을까. 울어야 할 분명한 이유도 모른 채 아무튼
나는 아주 섧게 울었다. 그녀는 다시 입을 다물어 버림으로써
나로 하여금 더욱 겁에 질리게 하였다. 아니다. 나를 더욱 겁나게
하는 것은, 이제는 그렇게 내 몸을 상처나게 하고 나를 짓이겨
버림으로써 오히 려 나의 존재를 확인받고자 했던 그런 맹렬한
욕망마저도 이제는 내 가슴속 바닷가에서 완전히 씻겨져 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정말이다. 죽음이다. 죽음에의
유혹에 시달리고 또 직접 자살을 기도함으로써 오히려 더욱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자 했던 나의 욕망도 이제는 완전히 헛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업슨 빈 들판, 거기에 나는
우두커니 서 있다. 감가도 없이, 누구 한 사람 주목하는 사람도
없이. 이튿날, 나는 담당의사를 찾아가 말했다. 「저는 이곳에서
나가고 싶어요. 전 더이상 이곳에서 계속있을 수가 없어 요.
이곳은 막다른 곳이에요. 이곳은 저에게 어울리는 곳이 아니에요.
저를 보내주세요.」 나의 말은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어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내 말의 파편들이 벽에 부딪쳤다가 다시 내 귓가로
돌아왔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정년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건너지 못할 하나의 강을 건너와
여기에 있다는 것을.
51. 리키의 가슴에 서서히 피어오르는 희망의 푸른 빛. 리키는
이제 정말 일어서는가......
「카플란 박사님이 제게 빌려주신 안경 때문에 제가 좀 이상해
보이나요?」 리키가 물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진심어린
어조로 말했다. 「그 안경이 너를 아주 이지적으로 보이게
하는구나.」 우리는 카플란 박사를 만난 지 사흘 뒤에 유명한
정선건강 상담자인 드로시 소이어를 만나기 위해 렉싱톤 39번가로
가는 길이었다. 드로시와의 만남은 갑자기 이루어졌다. 카플란
박사를 만난날 밤에 빌 모리스가 나의 집에 찾아왔는데,리키오 함께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그가 돌연 리키가 드로시 소이어를 한번
만나보는게 어떻겠느나고 제안했던 것이다. 「드로시는 정신건강
상담자로 전국적으로 상당히 이름 놓은 여의사라네. 나도 그녀에게
몇 명의 퇴원 환자를 보내봤는데 그들이 그녀의 도움을 받아 상당히
놀라운 회복 기능을 찾았다네.」 드로시 소이어라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한때 정신질환을 앓았으나 현재 회복 단계에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특별한 상담을 통하여 보다 빠르게 회복 기능을 되찾게
해주는 일을 하고 있는 드로시 소이어를 빌 모리스의 말대로 리키가
한번 만나 보는 것도 유익할 것 같아서 나는 즉시 전화를
걸었고,그녀는 사흘 뒤의 오후 3시를 약속 시간으로 정해주었다.
상담실은 소박한 가구의 꾸밈없는 배치와 그녀의 진심어린 친절로
인해서 그 방에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18층 꼭대기에 올라와
있으면서도 우선 편안함을 준다고 느껴졌다. 진한 은발에 큰 키의
드로시가 우리에게 앉을 것을 권하며 곧바로 리키에게 말했다.
「아가씨가 리키군요.만나서 반가워요,리키.」 나는 그녀의 태도에서
성실성이 엿보였기 때문에 일단 안심을 했다.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제가 다른 한 분과의 상담을 금방
끝내겠습니다만....」 리키와 나는 웃음으로써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10분 쯤 지났을 때,갈색 투리스 정장 차림의 젊은
부인이 드로시의 또다른 상담실에서 나와 우리에게 짧게 미소를
보내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가자 드로시가 곧 뒤따라 나와서
나에게 말문을 열었다. 「프래드 박사님.리키와 단둘이서만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그런 후에 함께 대화를 합시다. 양해해주시겠습니까?」
리키가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고,거의 50분 동안의 대화가 끝났을
때에야 나는 드로시의 부름을 받았다. 조그만 방은 꽃으로 가득차
있었고 옆 탁자 위에는 반쯤 끝낸 스웨터와 뜨개용 바늘이 놓여
있었다. 비록 창문은 닫혀 있었지만 저 아래 렉싱톤가에서
불규칙적으로 들리는 버스소리와 경적소리 등이 그런대로 멋이
있었다. 「리키는 예상밖으로 아주 쾌활한 여성이군요.우리는 참으로
유익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그렇지 않나요,리키?」 리키는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드로시의 말에 공감을 표시했다.
「박사님,당신의 따님은 참으로 엄청난 운명의 나날을 보냈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키는 모든 것을 정말로 잘 헤쳐
나왔어요.리키의 용기와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드로시는 부드럽고 아주 분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뭐랄까,그녀의 음성에는 그 목소리만 듣고도 충분히 신뢰가
가는 그 무엇이 짙게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은 우리의 뒷전으로 사라졌어요. 그렇지 않나요?」 나는 드로시가
‘우리’라고 말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물론 지금도 리키의 문제가
완전히 뒷전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카플란 박사는 말하지
않았는가.리키의 진정한 문제는 그녀의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을 만큼
짙게 베이고 스며든 그 모든 불행한 경험의 기억들을 없애 버리는 데
있다고. 「이제 리키는 새로운 삶을 건설하기 위한 출발의 시기에 와
있어요.리키가 어얼스 하우스에 들어갈 예정인 것은 아주 환영할
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저는 그곳의 책임자 중 한 사람인 로니
라로체를 잘 알고 있습니다. 파이퍼 박사와 함께 거기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지요.」 드로시는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절대로
부정적인 어휘를 사용하지 않았다. 희망과 긍적과 낙관의 언어를
통해 은연중에 나와 리키에게 편한함을 주려고 하였다.
「아빠,드로시 선생님은 제게 적성검사를 한 적이 있느냐고
물으셨어요.제게 그런 적이 있나요?」 리키가 진지하게 물어왔다.
나는 1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가슴 아픈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13살 어린 나이에 정신병원에 들어간 리키이다. 리키는
온통 정신질환에 대한 물리적 치료와 약과 주사로만 10년 세월을
보냈다. 따라서 리키에겐 그 나이 또래의 소녀들이 자기 삶의 진로를
위한 그 어떤 검사도 시험도 상담조차도 받은 적이 없이 오로지
정신병이라는 족쇄에 묶여만 있었던 것이다. 「아빠,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해 본 기억이 없어요.병원에선
저에게 한번도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어요.」 리키가 다소 가라앉은
음성으로 지난 세월을 회고하자,드리시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이
쾌활하게 입을 열었다. 「박사님,저는 아시다시피 정신건강 회복
카운셀러입니다. 박사님과 같은 정신과 의사들은 일반적으로 환자가
가진 문제의 뿌리에 접근해서 그것을 해결하고 싶어 하죠. 물론
그것도 아주 훌륭한 방법이긴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달하려고
하는 것을 그것과 약간 다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진정한
자아세계를 찾아주려고 노력합니다. 더 좋은 것을 얻고,더 좋은 곳에
머루르게 하기 위해 적절한 직업을 구하고,친구를 사귀고 재능을
발견하여 그것을 발휘하게끔 해주는 것이 우리와 같은 정신건강
카운셀러의 할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지나치게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강조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최근의 한 의학
보고서에는 생활에 잘 대처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들 자신의 삶에 매우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선입관을 주입시키고 있다고 했더군요.
리키,당신은 스스로 낙관주의자라고 생각하나요?」 「낙관주의자가
무엇이죠?」 「그는 꿈을 꾸는 사람이죠. 자신의 꿈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도 하구요.그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세상이
그렇게 무서운 곳이 아니며 행복의 가치를 세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나는 드로시의 말에 수긍하면서,리키가 그
참담했던 생활중에 보였던 그 많은 비관적 자멸적 행위를 떠올리며
말했다. 「나는 리키가 지난 수년 동안 그렇게 낙관적인 감정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의 말에 리키가 돌연
반대 의견을 내놓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빠,드로시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이 맞는다면 말이에요,저는 분명히
낙관주의자였어요.그래요,저는 언제나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해 꿈을
꾸어왔어요. 저는 심지어 최악의 순간에 처했을 때에도,제가
가슴속에 품고 있는 꿈을 반드시 이룰 날이 있으리라고 믿고
있었어요.」 리키의 눈에는 내가 일찍이 보지 못했던 생동감 넘치는
총명함과 밝은 빛이 어려 있었다. 드로시가 리키의 손을 잡으며
격려했다. 「그것이 바로 아까 내가 말한,내가 리키를 존경하고
있다는 것의 확실한 이유예요.」 때때로 나는 진정으로 유능한
정신과 의사란,교육과 경험에 의한 나름대로의 소양에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합쳐진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는 지금 그
천부적 재능을 가진 정신과 의사 중 한 사람의 앞에 앉아 있는
셈이었다. 나는 여성의 몸으로 한 사람의 환자에게 이렇게도
순식간에,이렇게도 강력하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드로시의 능력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자,지금부터 나의 교육 방법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나는 결코 정규적인 시간 계획 따위는 세우지
않습니다. 물론 사전에 시간 약속은 하지요, 하지만 내 역할은 한
사람의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리키가 나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원할 경우에,약속된 시간에 나에게 와서 필요한 만큼
나와 함께 지내거나 혹은 그보다 더 적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 만일
리키가 어얼스 하우스에 들오간다면,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를 만나면 됩니다. 원하신다면,내가 리키를 만나기 위해 어얼스
하우스로 갈 수도 있습니다. 또 리키가 내게 전화를 하고 싶을
때는,어떤 시간이라도 또 아무리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고 나는
거기에 기꺼이 응할 겁니다. 그러는 동안에 리키와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해야 할 많은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갈 것입니다.」 우리가
떠나려고 일어섰을 때,드로시는 리키를 똑바로 쳐다보며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리키,나는 당신에게 커다란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당신이 어떤 생활을 해왔건,그리고 그 생활의 그림자가
어떻게 짙게 배었건 상관없이 나는 당신이 반드시 좋아지게 되리라는
것을 알아요.」 우리가 차로 돌아와 막 시동을 걸었을 때,리키가
즐거움에 가득찬 음성으로 말했다. 「아빠,저는 이제까지 드로시와
같은 분을 결코 만나본 적이 없었어요. 그분이 정말로 제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저는 분명히 느낄 수가 있을 것 같아요. 그 관심은
저의 병에 대해서가 아니고,제가 뭘 느끼고 있는가 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드로시는 한 인간으로서 제가 누구이며,무엇을
원하며,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저 스스로 깨닫게 하려고
했어요. 아빠,아빠는 제가 이제는 고통을 멀리 떨쳐 버릴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으세요?」 리키의 말을 들으며,그리고 그녀의
희망에 찬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어느새 그녀의 손을 꼭 잡고는 세게 힘을 주고 있었다.
빛과 그림자 52.리키에게서 발견된 또하나의 엄청난 비밀,
10년 투병 생활의 어리석음에 그들은.... 리키와 내가 어얼스
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 밝은 갈색 골덴
자켓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창고로 보이는 건물에서 걸어 나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바로 로니 라로체였다. 나중에
나는 그녀가 1940년대의 인기 영화배우였던 로자린드 러셀의
조카딸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이모의 미모와 자태를 빼닮은
듯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리키의 손을 잡고서
본관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리키가 그녀에게 물었다. 「이곳에는
동물이 있나요?」 「개와 고양이들이 있지요.」 「저는 소와
말들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여기는 농장이 아니에요. 아
당신은 한동안 농장에서 지냈다죠?」 「그래요, 저는 그곳을 아주
좋아했어요. 노동은 힘들었지만, 그밖의 모든 것은 다
좋았어요.」 「글쎄요, 여기서도 당신은 역시 힘들게 일을 해야만
할거예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농장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무슨 일을 하는데요?」 리키가 다소 걱정스럽게 묻자 로니가
싱긋 웃더니 힐끗 나를 쳐다보면서 대꾸했다. 「곧 알게 될
거예요.」 우리는 로니를 따라 본관 건물의 안으로 들어가 커다란
거실을 통해 복도를 계속 걸어갔다. 거실에는 어울리지 않게
짝지워진 안락의자와 탁자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어쩌면
그것들은 재고를 정리하는 가구점에서 이것저것 일괄적으로
구입한 것처럼 보였다. 리키와 나는 벽난로 앞에서 연기가 나는
장작불에 발을 쪼이며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20대 청년과 조각
그림을 조심스럽게 끼워 맞추고 있는 한 젊은 여자를 지나쳐
갔다. 로니의 사무실은 그녀의 바쁜 일과를 말해주듯 온갖 서류와
책과 도구들로 어지럽게 가득차 있었다. 크고 까만 숫자들이 적힌
카렌다가 빛바랜 누런 탁자와 세 개의 낡은 캐비닛이 있는 한쪽
벽에 지나치게 크게 자리를 차지하며 걸려 있었다. 「프래드
박사님, 저는 리키에게 이곳저곳을 두루 보여주고 싶군요. 그리고
리키와 개인적으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로니가
사무적으로 명령하듯 말했다. 내가 기다리겠다고 말하자 그녀가
곧 덧붙였다. 「어쩌면 두어 시간 걸릴 거예요. 죄송하지만
박사님은 점심식사를 하러 가시는 게 좋겠어요. 저는 리키가
오늘부터 당장 다른 사람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도록 하고
싶어요.」 로니는 이렇게 말을 하고는 프린스턴 시내로 향하는
도로 아랫마을에 있는 챨리라는 식당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기꺼이 따랐다. 챨리 식당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함께 들면서
나는 리키 문제를 객관화시켜서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다. 나는
리키를 북부 햄프턴 주립 정신병원에서 데리고 나온 이후로, 단
며칠 사이에 많은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나는
이런 시도들이 리키의 지난 수년간의 문제를 빠르게, 어쩌면
너무도 빠르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기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내가 그동안 너무나
희망에 들떠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들이 이제까지의 기분과는
완전히 다른 색조를 띠며 내 머리에 떠올라오는 것이었다. 카플란
박사의 검사가 갑자기 이상하게 여겨졌다. 여기다 드로시
소이어와 로니 라로체는 물론 따뜻하고 호의적이며 매우 지적인
여성들이기는 하였지만 어딘가 미심쩍은 면이 있는 것 같았다.
리키는 그동안 계속적으로 그녀를 회복시키려고 헌신했던 정신과
전문의들의 손 안에 있어오지 않았는가. 어얼스 하우스나 드로시
소이어나, 심지어는 카플란의 시도조차도 이미 나 모르게
행해져왔던 건 아닐까. 몇 달 못 가서 리키를 또한번 병원에
입원시켜야만 한다는 전화가 걸려와 예전처럼 나를 또다시 극심한
혼란과 절망에 빠뜨리지는 않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너무나
손쉽게 나의 기대에 의해 기만당해왔으며 좌절을 강요당해왔다.
간신히 일으켜 세웠던 자존심과 기대감이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경험은 이제는 하나의 일상처럼 여겨졌다. 어얼스 하우스에
와서도 만일 리키가 다시 병원으로 실려가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리키가 또다시 자기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 광분한다면,
리키가 지금 가지고 있는 희망에 배신당하고 끝내 다시 그자리로
돌아서 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나도 모르게
떠올린 수많은 의문부호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다시
어얼스 하우스에 돌아왔을 때까지도 이러한 의문부호들은 아주 큰
몸짓으로 내 가슴에 머리를 들이대고 있었으나, 거실로 들어섰을
때 리키가 다른 젊은이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다시 신속히 낙관주의자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빠,저는 이곳이 좋아요!」 리키가 나늘 보자 의자에서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리키는 아직 얼굴에 익숙지 않은 프리즘
안경을 손가락으로 치켜올리며 내게 다가와서는 흥분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로니는 만일 제가 저 자신을 다치게 하는
행위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이곳에 머무르게 하겠다고
했어요. 아빠, 그리고 저는 여기서 제 방도 갖게 될 거예요.」
내가 만족스런 미소를 리키에게 보냈을 때, 어느새 로니가 우리
옆에 다가와서 실무적인 문제를 이야기해주었다. 「리키는 내일
혈액과 소변검사를 포함한 신체검사를 받게 됩니다. 결과를 봐서,
우리는 리키에게 적절한 식이요법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밖에
이곳에서 하는 일은 무엇이 있나요?」 「우리는 여기 수용되는
사람들을 하나의 학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회복하기 위한 방법을 배우고 삶을 위한 진정한 방법을 터득하기
위한 방법을 배우고 삶을 위한 진정한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우리의 가르침을 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의
프로그램에 따라 세상에서의 자신의 몫을 하기 위한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그들의 병을 우리의 생화학적 해결 방법에 따른
프로그램에 의해 단계적으로 풀어 나갈 것입니다.」 로니는
여기까지 말을 하고는, 그제서야 나와 리키를 의자에 앉도록
권했다. 「프래드 박사님, 혹시 아시는지 모르지만...」 그녀가
잠시 말을 끊고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는 침착하게 다시 말을
이었다. 「저 역시 정신분열증에서 회복한 사람의 하나입니다.」
나는 그녀의 돌연한 고백에 깜짝 놀랐다. 그와 함께 그녀의
솔직함과 용기에 겸허한 생각이 들었다. 「많은 정신과 의사들은
저에게 불치병이라는 선고를 내렸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끝내
그것을 이겨냈고, 지금 저는 제 나름대로의 구실을 다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정신분열증으로 몰아붙이고 회복
불가능이라 말했을 때, 카알 파이퍼 박사는 저의 영양상의
불균형을 말했어요. 그리고 저는 그의 방법에 의해 정상적으로
돌아섰고 지금은 제가 겪은 것과 알고 있는 일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위치에 있습니다. 저는 리키도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믿어요. 리키는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내가 언제 파이퍼
박사를 만나게 될까요?」 「일주일 이내에 만나게 될 겁니다.
모든 검사에 대한 결과가 나오는 대로 즉시.」 나는 희망을
선택하기로 하였다. 물론 한번의 절차는 남아 있었다. 리키의
병이 영양상의 불균형에 의한 것이라는 확실한 테스트 결과가
전제되어야 한다. 만일 리키가 영양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이제까지와 고통을 겪었다면 어떻게 하는가. 나는
또다시 머리를 들이밀려는 어두운 생각을 힘껏 밀어내며, 내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불행을 미리부터 예상해서 스스로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파이퍼
박사와 만나기로 한 약속은 12월 두 번째 월요일로 정해졌다.
그의 개인 사무실은 프린스턴시 206번가에 자리잡고 있는 이층
벽돌 건물에 있었다. 그 사무실의 공식적인 명칭은 〈두뇌
생물학센터〉로, 파이퍼 박사가 그동안 미국 정신의학계에
일으켜온 파문에 비한다면 사무실이 지나치게 작아 보였다.
「만나뵙게 되어 기쁩니다.」 내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파이퍼 박사는 60대의 노안에 밝은 웃음을 가득 지으면서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칼슘 연구의 선구자를 만나뵙게 되어
기쁩니다.」 이 말과 함께 그는 한쪽 벽면을 수백 권의 책으로
완전히 채우고 있는 서가의 한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엔 수년전에
내가 발간한 책인 신진대사 연구서가 꽃혀 있었다. 「프래드
박사, 당신은 영양과 정신병 사이의 관련성을 공식적으로 최초로
연구하고 증명한 의사 중의 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그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60대 후반인데도 그의 혈색 좋은
얼굴과 빛나는 눈, 그리고 민첩한 움직임은 그가 가진 열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대다수 정신과 의사들에게
내가 정신질환자에게 이상야릇한 식이요법을 적용하는 일종의
사이비 의사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적절한 대답을 해보려 했으나, 금방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빙긋 웃기만 하였다. 「프래드 박사.
나는 당신의 결정이 쉽지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어쨌든 이 땅의 많은 정신과 전문의들로부터 배척을 받고 있는
마당에, 당신이 결심하기까지에는 많은 고민이 뒤따랐으리라는 걸
알아요.」 나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그가 책상으로 가서
리키의 검사 기록이 수록된 챠트를 들고 왔다. 나는 그속에 들어
있는 기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실로 리키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것이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시할 중요한 단서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처음 리키 문제를 전화상으로 이야기할 때, 나는 리키의
혈액과 소변검사 결과가 우리가 다룰 수 있다고 믿는 것과
배치된다면 리키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기억나시죠?」 「예, 기억납니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리키는 우리가 다룰 수 있는 환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리키는
영양학상의 심한 불균형 상태에 있어왔던 것입니다.」 그 순간,
나는 일생에서 몇 번 경험했던 것으로 기억되는 오싹 하는 한기를
느꼈다. 아주 오래 전에, 해군기지에서 확성기를 통해 보도되는
일본의 공식적인 항복 소식을 듣고 느꼈던 것과 똑같은 한기였다.
그 순간에 떠오르는 또하나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건
로니라로체의 말이었다. 이 세상 모든 의사들이 자기를
정신분열증이라 규정하며 불치병의 선고를 내렸을 때, 파이퍼
박사만이 유일하게 영양상의 불균현을 지적했고, 그의 방법에
따라 치료를 받아 회복되었다고 했던 그녀의 말... 파이퍼 박사는
다시 말했다. 「정신분열증에는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유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상 이것은 육체적인 병의 다양성을
상징하므로 용어 자체로서는 하찮은 꼬리표이기는 하지만,어쨌든
첫번째 그룹은 뇌의 기능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히스타민의
비정상적 함유로 고혈압을 일으키는 타입이고, 두번째는 반대로
저혈압을 일으키는 것이지요. 세 번째는 퓨린 대사작용의 과다
또는 극소 분비로 인한 신체 불균형이에요.」 「리키는 그럼 그
세가지 타입 중에서 어느 쪽에 속합니까?」 「임상학적으로
리키는 두 번째, 즉 히스타민의 비정상적 함유로 인해서 저혈압을
나타내는 타입이지요. 따라서 리키는 강박관념, 마음속에
계속적으로 난잡하게 일어나는 혼란된 생각, 자제력의 부족, 그녀
자신과 외부세계에 대해 부단히 저항하는 부적절한 인식 따위의
정신적 결함을 보여왔을 것입니다.」 그는 리키의 챠트를 한참
살펴본 후에 놀라운 지적을 하였다. 「리키는 복부의 왼쪽 상단에
고통이 있었을 겁니다.」 나는 그의 관찰력에 대단히 당황하였다.
리키는 실제로 어린 시절 이래로 자주 복통을 호소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힐라리와 나는 그것이 긴장 증세의 일종이거나 혹은
주의를 끌기 위한 리키 특유의 꾀병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리키는 또한 잠을 자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리키는
어렸을 때, 극심한 정서 불안으로 인한 정신적 부담에 시달렸을
거예요. 이 모든 것은 대사작용의 무질서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믿어야 하는 마술사의 어떤 요술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파이퍼 박사의 목소리는 무한한 열정을 그속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열정은 순식간에 내게도 전염되는 듯했다.
그는 자기가 짜놓은, 리키를 회복시키기 위한 식이요법의
프로그램을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리키는 히스타민에 의한
저혈압을 높이기 위해 매일 비타민C 300미리그램을 섭취해야
합니다. 여기에 나이아신 800미리그램,염산4미리그램을 첨가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비타민B-12
1000미리그램을 주사로 보충해야 할 것입니다.」 파이퍼 박사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내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문을 던지고 말았다. 「그러한 스케줄에 따라
리키가 치료를 받으면, 정말로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기준에 따라 정상치를 산정할 때, 기준치를 0으로
본다면 리키는 -70정도예요. 내가 만났던 환자들이 대부분
-30이내임을 기억할 때, 리키의 경우는 아주 심각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리키는 무려 10년 이상을
버텨왔어요. 이것은 전적으로 리키의 정신력에 의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리키가 엄청난 불행에 처해 있었으면서도
탁월한 용기와 인내력으로 모든 난관을 헤쳐온 그 정신력만 계속
유지해준다면, 회복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비록 그녀의 현재
상태가 몹시 좋지 않다고 해도 말입니다.」 「리키는 오랫동안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말로 다 못할 고생을 하면서 오늘까지
살아왔어요. 다시 한번 박사님께 묻고 싶습니다. 리키가 정말
완전히 재기할 수가 있겠습니까?」 「당신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은 내가 새로운 환자를 만날때 마다
예외없이 받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리키가
이제까지 보여온 탁월한 정신력만 계속 유지해준다면 우리는
리키를 정상인으로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반드시!」「그렇다면... 기간은 어느 정도 걸리게 되나요?」 「몇
개월 정도,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단계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우리는 두 번째 프로그램을 마련합니다. 그런데 실은
그때부터가 아주 힘이 듭니다. 환자들은 매우 혼란을 느낄 수가
있는데, 그것은 광범위하고도 근원적인 생리학적 변화가 몸
속에서 이루어 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단계를 벗어나면
정말로 향상된 것을 목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파이퍼
박사가 그의 큰 손으로 나의 어깨를 단단히 잡으며 이제까지와는
전혀 딴판인 낮은 음성으로, 그러나 여전히 열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리키는 내가 만나고자 허락했던 첫번째 환자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녀가 나의 마지막 환자는 더욱 아닙니다.
나에게 오는 환자들은 모든 시도가 다 실패로 돌아간 뒤에, 모든
것을 철저히 다 잃은 뒤에 찾아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당신과
마찬가지로 의심이 많지요.」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나는 웃지 않았다. 그의 말이 담고 있는 의미가 내게 주는
아픔은 마치 칼로 베인 듯한 크나큰 통증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을 다 잃은 뒤에야... 「이름을 댈 수는 없지만, 당신의 동료
중에 한 사람이 몇 년 전에 내게 그의 아들을 데리고 왔어요.
아마 그는 리키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반드시 당신에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의 아들 역시 불가능의 낙인이 찍혀
있었지요.」 나는 그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가
파인휘트니 병원의 의사이거나 코넬 대학 동창 중의 하나이리라는
사실이었다. 「그의 아들은 정말 보기 드문 환자였어요. 누가
보더라도 그는 가망이 없다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는 금년에
예일대학을 졸업했어요.」 「그렇다면... 정말로 우리 리키도
희망이 있는 거군요.」 나는 거의 울듯이 중얼거렸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 순간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몇 년
동안에 리키가 잃고, 잃고, 또 잃었던 그 많은 것들에 대한
억울함은 여기서 논하지 말자. 언제였던가. 나의 은사인 레오
코빈 박사는 말했었다. 누구의 탓이건, 누구의 잘못이건 그것은
논하지 말라고. 그렇다. 중요한 것은 오늘이고 더 중요한 것은
희망이다. 리키에게 희망이 있느냐는 나의 질문에 파이퍼 박사는
다시 열정적인 음성으로 소리쳤다. 「희망이라고 했소? 리키에겐
언제나 희망이 있어왔소. 단, 누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해왔을
뿐이지. 그렇지 않나요?」 나는 내가 정신과 의사로서 이제까지
배워왔고 경험해왔던 모든 것이 다 산산조각이 나도 좋았다.
사람들이 파이퍼 박사에 대해서, 또는 어얼스 하우스에 대해서
어떤 편견을 갖고 어떤 악담을 해도 좋았다. 누구도 일깨워주지
못한 리키의 희망을, 그애의 삶을 제자리로 온전히 갖다 놓기만
한다면 나는 어떤 대가도 다 치를 수 있다고 다시금 생각하였다.
53.리키의 회상(12) 행복을 찾아 떠나는 한 마리 작은 새처럼
희망에 부푼... 내가 인생의 태반을 기다림으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다림은 무척 지루하고 신경이 쓰여졌다. 그만큼
나는 어얼스 하우스에 들어가게 되기를 목마르게 기다려왔던 것
같다. 나는 아빠의 말씀대로 계속 기도를 하고 있었다. 너의 간구를
통하여, 너의 간구를 통하여... 그런 중에도 나는 계속 분주했다.
나는 산보를 했고,그림을 그렸으며 뜨개질도 하였다. 어얼스
하우스에의 완전한 입학 절차를 밟기 위해 취해지는 전 단계
스케줄에 따라 나는 하루하루를 바삐 움직였다. 나는 조용해졌으며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심 나는 이것이 정말로 나를 위한
해답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어얼스 하우스에
입학이 허용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베드로가 나의 간구를
받아들였다고 믿고 그분께 감사드렸다. 「성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를 계속 지켜봐 주십시오.」 나는 이 간구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확신이 나를
만족시켰다. 로니가 어얼스 하우스에 정식으로 들어오게 된 것을
축하해주면서 나의 방으로 안내했다. 나는 너무나 흥분을 한 나머지
두렵기까지 하였다. 「리키, 당신의 취향대로 방을 꾸며도 좋아요.
얼마든지!」 그녀가 내 방의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면서 말했을 때,
나는 갑자기 방으로 쏟아져 들어온 햇살 때문에 너무나 황홀해졌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나서 방 안을 살펴보았다. 한 모퉁이에 잘
정돈돼 놓여 있는 메트리스, 그 옆에는 큰 키의 책꽂이, 그리고
벽에는 벽장도 있었다. 벽장 아래에는 자그마한 책상이 놓여 있어서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을 때 마음대로 쓸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로니는 나에게 짐을 풀어 벽장에 넣으라고 말하고는, 점심식사 때
보자고 말한 후에 방을 나갔다. 이윽고 그 방에 나 혼자 남겨졌을
때, 나는 매트리스에 앉아서 내 주변을 새삼스런 감격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래 나는 정말로 여기 있는 거야. 나는 정말로
회복하게 될거야.」 나는 울지 않았다. 나는 눈물 대신에 벌떡
일어나 나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짐을 챙긴 뒤에 나는
오랫동안 방랑의 생활을 하다 마침내 고향집에 돌아온 사람처럼
다음에 할 일이 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아랫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54.리키의 회상(13) 그녀의 재활을 위한 몸부림은 일단
승리의... 일주일에 한 번씩, 리키는 충실하게 카플란 박사의
병원으로 시력 증진훈련을 받으러 갔다. 그는 리키를 위한 다양한
훈련 스케줄을 짜놓고 성실히 치료에 임해주었다. 리키는 위치와
거리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리키는 활같은 도구를 이용해 훈련을 받았는데, 이것은 리키가 맞힐
곳을 바라보고 목표를 겨냥한 다음에 활을 정확히 쏘게 하는 방법의
반복 학습이었다. 또 리키는 시각적 자극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가
없을 뿐더러 순식간에 활동을 중단해 버리기 때문에, 시각적인
정보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것에 대해서 차츰차츰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여기다 리키는 또한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것과 자신과의
관계속에서 그녀 자신의 신체적 위치를 파악하는 훈련을 배웠으며,
그녀가 깨달은 바를 믿는 법을 배웠다. 어얼스 하우스는 리키가 이런
시각훈련을 무리없이 받을 수 있도록 특별히 허가해주었다. 또한
어얼스 하우스는 리키가 카플란 박사를 만나지 않는 일주일 중
6일간의 자율훈련 시간에 누군가 그녀의 훈련을 지켜보도록
배려해주었다. 그녀의 혼란된 의식을 잠재워 놓고, 눈에 들어오는
정보를 순순히 받아들이도록 하게 하는 이 훈련은 매우 독특했다.
공간에서 굴러다니는 공을 따라다니며 보는 훈련, 칠판에 쓰여진
글자 중에서 옆으로 누운 8자, 또는 뒤집어진 3자를 찾아내는 훈련,
벽에 붙어 있는 숫자판을 한번은 한쪽 눈으로, 또 한번은 두 눈으로
바라보면서 읽어 내려가는 훈련 등등 리키가 홀로 연습해야 하는
운동은 다양하면서도 어렵고 또 그만큼 효과가 큰 것들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력 증진훈련이란 것은 내가 정신과 의사로서
믿어왔던 정신의학적 치료 방법에 크게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나가는 리키의 모습을 보면서 카플란
박사의 치료 방법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얼스 하우스의
파이퍼 박사에 의한 리키의 치료도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리키가 영양 치료의 프로그램에 의한 확실한 효과를 얻으려면
적어도 반 년의 세월이 걸릴 것이며 그런 후에나 본격적인 정신
훈련이 뒤따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리키는 이렇게 그려내고
있다.
어얼스 하우스에서의 나날은 어린 시절 이후로 내가 겪은 가장 멋진
날들이었다. 나는 요가,발레,집안일 등을 배우고 익혀 나갔는데 이
모든 것을 그다지 어려운 느낌없이 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고울드 농장에서 나온 이후로 처음으로 잘 먹었으며 파이퍼 박사가
처방해준 비타민 제제도 충실히 복용하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많은 증상을 간직하고 있었다. 때때로 나는 대화 도중에 마치 추위에
얼어붇는 것처럼 전신을 떨었다. 로니는 그것이 의견을 억지로 잘
전달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움을 늘 강조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는 마음이
약간 안정이 되어 더이상 떨지도 않았고 혀와 눈동자를 굴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때때로 그런 증상이 불시에 튀어오르는 용수철처럼
내 의식의 골짜기를 휘저어 대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처음에
나는 누군가와 신체적으로 접촉하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나는
서서히 그것에 익숙해져 갔으며 로니로부터 포옹을 받는 것에도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 가끔은 내가 먼저 그녀를 포옹해주기
시작했다. 그런 때 그녀는 정말 티 하나 없이 맑은 얼굴로 내게
미소를 보내주었다. 나는 로니를 처음 보았을 때 이미 그녀가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되리라고
믿었었다. 그녀는 정말이지 너무나 많은 것을 공감해주었다. 그녀는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으며 얼마나 뼛속깊이 아팠었나를 알고
있었다. 그녀를 쳐다보면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나의 내면세계가 변화의 색조로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가끔씩은 나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하였다. 그러나 그런
충동은 예전보다 훨씬 미약했으며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 그것을
잠재우는 자제력이 더 강하게 피어올랐던 것이다. 어얼스 하우스가
다른 곳과 정말로 확연히 다른 한 가지는 그들이 내게 왜 병이
났는가 하는 질문 대신에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질 수 있으며 더 잘
거기에 머무를 수 있느냐 하는 말을 해주려 애쓴다는 데 있었다.
나는 나쁜 행동 대신 좋은 행동을 하는 법에서부터 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법, 음식을 요리하는 법, 그리고 모든 일을 내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법을 배웠다. 어얼스 하우스에 온 지 석달이
지났을 때, 나는 카플란 박사와의 지속적인 시력 증진훈련과
이곳에서의 정신력 강화훈련을 통해 한 가지 놀라운 일을 해내었다.
그것은 예전에 고울드 농장에서 취득한 운전면허를 이용해서 카플란
박사와의 약속일에 그가 있는 태리 타운까지 나 스스로의 힘으로
운전을 해서 차를 몰고 간 일이었다. 나는 점차 몰라보게 변해가고
있었다. 외면적으로, 또 내면적으로. 여기다 웃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의 변모는 보다 확실해졌다. 나는 오랫동안 공허하고
텅 빈 삶속에서 근근이 살아왔기 때문에 좀체로 웃지 않았었다. 오랜
세월 내 얼굴에 뿌리깊이 내려앉은 침울함은 나로 하여금 미소를
모르게 했고 눈물만 알게 했다. 미소짓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곧
나의 삶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를 긍정한다는 것이고 사물을 밝게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보다 배우기가 무척
힘든 과정 중의 하나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요가도 함께 배웠다.
우리를 가르친 사람은 30대의 만능 스포츠맨인 데이비드 스미드
선생이었다. 흡사 20대 초반같이 보이는 그는 엄청난 거리를 수영할
수 있었으며 암벽 등반의 명수였고 여기다 갖가지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기도 했다. 내게 미소짓는 법을 가르친 사림이 바로
데이비드였다. 그는 내게 거울 앞에 앉으라고 명령하고는 여러 가지
모양의 미소를 짓게 하였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았고, 한동안 나는
그것이 대단히 부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그것 자체를 거짓인 양
느끼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는 거울을 보는 것을 싫어하였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의 이런 거울 기피 습관은 하루 이틀
사이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병원의 거울들은 대개 알루미늄이나 깰
수 없는 특수물질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심하게
변색되어 거의 거울 구실을 하지 못했었다. 거의 10년 동안 나는 내
얼굴을 거울속에서 볼 수가 없었고, 그럴 의욕조차 없었기 때문에
내게 거울 기피증이 생긴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어느날,
나는 로니가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를 보았다. 그것은 어얼스
하우스에서 교육받는 사람들의 생활을 일일이 기록한 비디오
테이프였는데 거기에서 나는 나의 웃는 모습을 보고 대단히 놀랐다.
그속의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었다. 그 사람은 완전히 다른 젊은
여자였다. 쾌활하고, 밝고, 그리고 여유가 있는 젊은 여성 리키
플래취! 그뒤부터 나는 정말이지 웃는다는 것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고 진정으로 밝게 웃으려고 노력하였다. 봄에 데이비드 스미드는
우리를 델라웨어 계곡으로 데리고 가서 3박4일 동안의 야영 훈련을
지휘하였다. 거기서 우리는 황야를 걸었으며 험준한 산길을 누볐고
험한 물살을 가르며 카누를 저었다. 데이비드 스미드는 말했다.
우리가 자연과 싸워 이길 수만 있다면, 거기서 나오게 되는 공포와
싸울 수가 있다면, 우리는 사회에 나가 매일같이 생기는 문제들도
능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델라웨어 계곡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복통과 두통을 동시에 일으킴으로써 이미 내가 상당히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처음에 산에 올랐을 때, 나는
너무나 무서워서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고 전신이 마비되는 것 같아서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로니는 내게 소리쳤다.「리키, 힘을 내!
리키는 할 수 있어!」 그녀는 내게 끊임없이 소리치고 질책하면서
재가 기어이 그 산길을 오르게 하였다. 데이비드도 내게 매정하게
소리쳤다. 「리키, 그렇게 두렵다면 가능한 한 빨리 산등성이를
올라가! 여기서 포기한다는 건 말도 안 돼!」 나는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산길은 대단히 가팔랐으며 험한 바위로 가득했다. 한순간
내가 아랫쪽을 쳐다보았을 때, 나는 하마터면 정신을 잃고 그대로
아래로 굴러 떨어질 뻔하였다. 너무도 아득한 위에까지 올라와 있던
나는 다시 더 오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떨기만 하였다. 그러나 나는
다시 시작하였다. 데이비드의 말대로 거기서 포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었다.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정말로
승리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고, 꼭 그래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산꼭대기에 당도했을 때, 나는 너무나 기운이 빠진 나머지
그대로 바닥에 드러눕고 말았다. 로니가 다가와 나를 얼싸안으며
말해주었다. 「리키, 기어코 해냈군요. 정말 훌륭해요.」 그밖에도
우리는 수많은 어려운 훈련을 받았다. 차가운 물을 흠뻑 맞으며
강물의 험한 물살을 가로지르는 카누 훈련을 하면서,그리고 엄청나게
목이 마른 것을 참고 하루 종일 사막을 걸어가면서 나는 수없이 나
자신에게 말하였다. 이것이 결국 내가 가야 할 길이라면, 기꺼이
걸어가리라고. 4일간의 야영훈련을 무사히 마쳤을 때, 나는 무엇인가
나에게 중요한 일이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 과정에서 많은
공포와 갈증을 극복했으며 성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달았다.
데이비드가 어얼스 하우스로 돌아오면서 내게 한 말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리키, 이제 당신은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다
할 수가 있게 될 겁니다.」 야영훈련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훈련에서
내가 교육을 받는 동안에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내가 그간 얼마나
이기적이었나 하는 점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단지 나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걱정해 왔었다. 오로지 나 혼자만의 삶속에서 나
혼자만의 행복과 불행을 생각해왔었다. 이제야 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도 소중하며,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주기 위한 기회를
가져야만 나도 그들로부터 기회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건강한 사람으로 알고 좋아해주길 원했다. 내가
아팠었다는 이유로 나를 기피하겨나 색다른 시선으로 보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 내가 해야 하는게 무엇인가. 그것은 명백했다.
나 혼자만을 생각하고 나의 행복만을 추구하던 지난 날의 삶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길밖엔 달리 없었다. 이렇게 카플란 박사님과
파이퍼 박사님, 그리고 어얼스 하우스의 직원들과 학생들은 나의
삶에 있어서 커다란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특히 로니
라로체의 나에 대한 헌신을 어찌 잊을까. 그녀는 내가 추구하고자
했던 일과 인생에 대한 귀한 깨달음을 주려고 매번 애를 썼다. 나는
확실히 점점 더 나아지고 있었다. 어얼스 하우스에서의 1년이 단지
기쁨과 즐거움만으로 충만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거기서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소중한 것 하나를 얻었음에 분명하다.
그것은 내 삶과 행복의 궁극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었다. 그러나
어얼스 하우스에서의 1년이 지났을 때, 나는 거기서 나와 사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단한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결코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세상에서 살아 나갈 만한 충분한 능력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시력 증진훈련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과거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은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씩은 그곳에 가야 했고
나 혼자서 하는 자율훈련은 앞으로도 계속 실시해야만 되었다. 나는
여지껏 쓰고 있는 프리즘 안경을 그대로 착용한 채 사회에 나가
일반인들과 섞여 살아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꼈다.
프리즘 안경을 벗으면 아직도 나는 과거와 같은 시각적 충격과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두려움은 단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이 로니를 비롯한 어얼스 하우스 직원들의 의견이었다. 특히
로니는 내 등을 두드려주며 말했다. 「리키, 물론 여기서 졸업한다는
것이 당신의 완전한 회복을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그것은 단지
당신이 다음 계단으로 오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힘을 얻었다는
의미밖에는 없어요.」 그녀는 이 말과 함께, 내가 새로운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두려웠으며 이제부터 마주하게 될
미지의 세게에서 내가 너무나 무력할 것만 같았다. 마침내 떠나야 할
날 아침에, 나는 일찍 일어나서 어얼스 하우스와 동물들과
나무들에게 다가가 작별 인사를 하였다. 나는 여전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지만 아무튼 떠나야만 되었다. 나는 여기서 나가면, 사회
적응훈련을 위한 어얼스 하우스의 교육 스케줄에 따라 이곳과
자매결연을 맺은 한 민간인의 집에 머무르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고, 내가 사회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 로니는 가방을 움켜쥔 채 덜덜 떨고 있는 나를 억지로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녀는 미리 준비된 차에 나를 밀어 넣으며 쾅 하고
문을 닫았다. 「리키, 잘 될 거예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언제든
나를 만나고 싶으면 놀러와도 좋아요. 그러나 단지 놀러온다는
목적일 때에만 나는 당신을 만날 거예요!」 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어얼스 하우스를 빠져 나감으로써 나에게 그렇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나를 위해 헌신해준 로니와 데이비드 등 어얼스 하우스의 사람들에게
고마움의 인사조차 전하지 못하게 하였다. 어을스 하우스에서 나와
그날로 내가 간 곳은 기업체의 광고 담당자로 일하는, 파이퍼
박사님의 오랜 친구인 베더제니라는 여인의 집이었다. 그녀는 내게
퍽 호의적으로 대해주어 일단 나를 안심시켰다. 40대의 독신여성인
베더는 내가 도착하자 마자, 나를 집안으로 안내하고는 앞으로 내가
기거할 방을 가르쳐주었다. 방은 작았으나 그런대로 멋지고
아늑했다. 나를 흡족하게 만든 것은 그 방의 창문이었다. 내가
창문을 열자 드넓은 초원이 그림처럼 펼쳐져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어찌 되었든 새롭게 시작된 이 생활에 적응해 나가야만 된다는
사실을 서서히 인식해가고 있었다. 베더는 내게 앞으로 우리 두
사람이 식품비를 반분하게 되며, 가사일과 잔디 깎는 일도 나누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를 기쁘게 한 일은, 앞으로 한동안 내가
두뇌 생물학센터에서 일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물론 내게 확고한
일거리가 정해질 때까지의 한정된 소임이고 이 모든것이 어얼스
하우스의 훈련 과정 중 일부였지만 내게도 책임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나는 정말 큰 행복을 느꼈다. 그런데 내가 어얼스 하우스에서 나온
지 15일쯤 지났을 때, 한 쇼핑센터에 들렀는데 거기서 나는 가게
입구에 붙어 있는 광고지를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시간제로 일을 할
젊은 여성을 구한다는 내용이 써 있었다. 그때 내게는 두 가지
상반된 의견이 떠올랐다.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 일을 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였고 그 다음에 즉시 떠오른 생각은 그 일을
맡았다가 엉망진창으로 일을 버려 놓는 나의 참담한 모습이었다.
‘나는 정말 일을 해보고 싶어. 나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내가 얼마나 잘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직접 느껴보고 싶어!’
‘나는 할 수 없을 거야. 어쩌면 나는 저 일을 하다가 일을 망쳐
놓고 쫓겨나게 될 거야.’ 나는 오랫동안 거기 서서 이런 상반된 두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끝내 한 가지 뚜렷한 결론을 내렸다. 어찌
되었는 새로 시작해야 하는 마당에, 이왕에 시작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한번 부딪쳐 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그 쇼핑센터의
책임자를 찾아갔다. 그는 나를 보자, 그 자리에서 자기 아내와
의논한 후에 쾌히 일을 주겠노라고 말했다. 그 이튿날부터 나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생선 샌드위치를 손님들에게 내놓기도
하고 금전등록기에서 일하기도 하면서 대단히 바쁜 일과를 보내게
되었다. 첫번째 주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는, 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름으로 튀기는 일까지 맡았고 어얼스 하우스에서 배운 기술을
활용하여 일반적인 요리도 도맡아 했다. 매일 점심시간이 되면
대단히 바빴다. 카운터에 20여 명이나 되는 맣은 사람들이 계산을
위해 기다릴 때도 있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으려고 내심 애쓰면서,
또한 계산에 틀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정말 얼이 빠질 정도로
분주하게 일을 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는 내가 정말로 일을
잘 해냈으며 사람들이 나를 정말로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자못
놀랐다. 그것은 참으로 기묘한 느낌을 주는 경험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한다. 내가 참으로 능숙하게 일을 잘 처리한다고
한다. 쇼핑센터의 책임자인 탐스 씨는 심지어 이런 말까지 하였다.
「이제까지 파트 타임으로 일했던 어떤 여성보다도 훨씬 훌륭하게
일하고 있어요.」 그 당시에 나는 다음과 같은 일기를 쓰고 있었다.
오늘 밤 나는 다시 과거에 대한 꿈을 꾸게 될까. 잠겨진 문과 함정에
빠진 내 마음, 그리고 어둠... 미래에 대한 공포로 매번
도망치려고만 했던 과거의 나... 너무도 많은 변화가 너무나 짧은
시간속에서 일어났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된다. 나는 쇼핑센터에서의
파트 타임 일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아직도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나는 진정한 친구도 없으며
장래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확실한 계획이 없다. 나는 가까운 미래에
몇 사람의 친구를 사귀기를 원한다. 외로움은 나를 얼마나 두렵게
하는지. 나는 언제나 내가 혼자라는 감정을 가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문득 외로움에 사무칠 때면, 혹은 일을 하다가 갑자기
당혹스런 일에 맞부딪치게 되면, 나는 차라리 병이 나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편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병을 나
스스로 정복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말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고야 말 것이다. 비록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진정한 삶. 두려움의 극복, 나
스스로에 대한 자랑스러움. 리키 플래취. 너는 꼭 해내고야 말
것이다.
그렇다. 어얼스 하우스에서 나와서도 나는 비록 예전과 같이는
아니더라도 가끔씩은 매우 혼란된 의식을 느끼거나 병원으로
돌아가서 수렁속의 편한함에 안주하는 편이 낫겠다고 느끼는 등의
감정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다. 그러나 더 분명한 것은 그런 자멸적
정신 상태가 샘솟을 때 그 즉시로 내게는 그것을 억누르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꾸짖는 또 하나의 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를 파괴하고 혼란에 빠뜨리는 또하나의 내가 아니라 나를 일으켜
세우고 달래고 희망을 갖게 하는 나, 나는 마음속에 있는 또하나의
평화로운 나를 분명히 인식할 수가 있었다. 쇼핑센터에서의 일은
여전히 분주했다. 아빠와 나는 편지나 전화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있었고, 엄마와도 이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 어느날 내가
어얼스 하우스에서 나온 지 꼭 석 달이 되었을 때, 그날도 정말로
대단히 바쁜 하루 일과를 보내고 무척 피곤해 하며 집으로
돌아왔었는데 깜짝 놀랄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가족들이
그 집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와 엄마, 존, 메어리, 메티유, 이렇게 다섯 사람은 내가 집으로
들어서자 크게 박수를 치며 나를 맞아주었다. 거기에는 나의
가족뿐만 아니라 로니와 데이비드도 와 있었다. 「리키야, 보다 일찍
오고 싶었지만 어얼스 하우스의 계획에 따르느라 이제야 오게 된
것이란다. 정말 몰라보게 변했구나.」 아빠가 이렇게 말하며 내 손을
잡았을 때,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비록 나의 어둠속
여로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내가 그래도 여기까지 아주 멀리 와
있으며 그것도 내 힘으로 무사히 해냈다는 사실에 나는 가슴 뿌듯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리키야.」 엄마도 눈물을
흘렸다. 엄마의 얼굴에는 이미 중년의 기색이 역력해져서 그간의
시름이 어떠했는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엄마는 나에게
아주 귀한 의미가 담긴 선물을 주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은색의
눈물방울 모양을 한 보석이었다. 엄마는 말했다. 「우리는 지난 세월
동안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렸었지. 그러나 이제는 정말 눈물은
그만두기로 하자.」 그것은 우리 모두가 수년 동안 너무도 많이 흘린
눈물의 상징이었다. 나는 너무도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와 함께
나는 정말이지 부질없이 흘려보낸 세월과 덧없이 떠나보낸 시간들을
아프게 아프게 반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966년 3월 14일로부터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여기까지 왔다. 어쩌면 더 흘려야 할 눈물과
더 아파해야 할 고통이 앞으로의 나의 삶 어디선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로니의 말대로 나는 완전한 회복을 위한
첫계단을 겨우 통과했을 뿐이며 앞으로의 계단이 얼마나 더 험난하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수고를 더 요구할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엄마가 준 눈물방울 모양의 보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 한, 나는 이제 어떤 눈물을 흘리더라고 결코 예전처럼
그렇게 절망스럽지는 않을 것이라 여겨졌다.
55.리키의 회상(14) 재기의 기쁨도 잠시, 다시 찾아든 악몽에
리키는 모든것의 끝을... 어얼스 하우스에서 나온 지 반 년이 지났을
때, 그때까지도 나는 여전히 쇼핑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 가지
바뀐 것이 있다면 파트 타임에서 풀 타임으로, 그것도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어 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의 사회활동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나의 적응력은
이제까지의 누구보다도 뛰어나다고 로니는 말했다. 그때 나는 새롭게
전개되는 생활에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대처해 나갈 수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큰 부담은 없었고, 간혹 예전의
정신 상태가 되살아나곤 해쓰나 그런대로 자제할 수 있었다. 그런
어느날이었다. 베더가 집안 일 때문에 발티모어에 가느라 집을
비우는 바람에 열흘 가량 나 혼자 집을 지키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약간씩 식욕부진을 느끼면서 또 한편으로 간헐적인 불면증을 겪고
있었는데, 전에도 간혹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내가 식욕부진과 불면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데에는 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매일매일의 바쁜 일과속에서
나는 파이퍼 박사의 비타민 제제를 먹는 것을 자주 잊어버렸기
때문에 어쩌면 이것이 비타민 복용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은 탓이
아닌가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 혼자 집을 지키게된 지 4일이
지났을 때, 웬일인지 잠을 자는 시간이 정말로 끔찍하리만치
싫어지는 것이었다. 그때 이미 나는 이틀째 꼬박 굶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집 부근의 신경정신과 의사를 만나보러 갔다.
어쩌면 나는 이것을 아빠나 로니에게 말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꼈었는지도 모르겠다. 의사는 불면증과 식욕부진을 대수롭지 않게
보았는지 내게 수면제를 처방해주었다. 그러나 그 약으로도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나는 보드카 한 병을 샀다.
나는 그것을 약과 함께 조금 마셨다. 그러는 것이 불면증에 효력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로부터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했다.아주 조금이라 해도 나는 전에
보드카를 마셔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다음달까지도 온통
흔들려대는 기분을 느끼며 겨우 지탱했다. 그런데도 나는 어리석게도
그날 밤 또다시 보드카와 수면제를 먹었다. 나는 아마도 그것들
덕분에 잠을 자기는 했던 모양이다. 이튿날 새벽에 나는 와들와들
떨면서 잠을 깨었다. 나의 온몸은 얼어붙은 것 같았다. 나는
스웨터와 담요를 있는대로 꺼내 덮었으며, 뭔가 따뜻한 것을 찾다가
다시 술을 한 잔 마셨다. 혼란스러웠던 나는 그 직후에 벌어진
일들을 기억할 수가 없다. 후에 로니가 내게 말하기를, 그날 아침에
우연히 내게 전화를 걸었는데 연결이 되지 않아서, 불길한 생각이
들어 나의 집으로 달려왔다고 한다. 그녀는 내가 혼수 상태에 빠진
채 내 주위에 온갖 가구들을 흐트러뜨리고는 마루 한가운데
나동그라져 있었다고 말했다. 「리키, 당신은 수면제를 한 알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다 먹어 버렸어요.」 그런데도 나는 어떤 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단지 간신히 기억되는 것은 상당히 추웠다는
느낌과 무서운 암흑이 내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들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의식을 회복했을 때, 나는 병실에 누워 있었다. 나는
병실의 흰 벽과 내가 10년 동안이나 맡았기 때문에 나의 코에 너무나
익숙해진 병원 냄새와 맞부딪치는 순간,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팔뚝에 꽂혀 있던 정맥주사를 거칠게 떼어낼 정도로 너무나
큰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내가 다시 정신을 잃고는 몇
시간 뒤에 다시 의식을 회복했을 때, 나는 내 몸이 침대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곧바로 프린스턴 의학센터 정신과
병동으로 옮겨졌다. 나는 가죽끈에 의해 온몸이 꽁꽁 묶인 채, 내가
어떻게 그런 끔찍한 느낌을 받고 그런 추악한 짓을 저질렀는지
가늠해 보려 애를 써 보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내가 과거에 병원에
있을 때 수없이 경험했던 바 그대로 뿌연 물안개 그것이었다. 한
남자 간호보조원이 들어와서는 나의 몸을 묶고 있는 가죽끈을
점검하면서 말했다. 「불편하더라도 참아야 합니다. 움직이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소용없는 일이니까.」 나는 그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가 문 밖으로 나간 뒤에도 계속해서 몸부림을
치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나는 죽는 것이 무서웠다. 페노다이아진
주사에 또다시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암흑의 격리병실에
갇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들불처럼 떠올라 내 의식을 붉게
태웠으므로 나는 그 불길속에서 아우성을 쳐댔다. 프린스턴
하우스에서의 며칠 동안 나는 계속 그렇게 끔찍스런 모습으로
있었다. 당연히 시력 장애가 동반되었다. 나는 어떤 것도 볼 수가
없었으며, 마치 나의 눈알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구르며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또난 나는 마치 내가 길고 평평하며 좁은 상자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
카플란 박사가 지적한 심층 인지력이 상실된 것을 의미하였다.
로니가 나를 찾아와 분통을 터뜨린 것은 당연하였다. 그녀는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터질듯 입술을 깨물면서 나를 바라보다가, 끝내는
손으로 침대를 탕탕 치며 흐느껴 울었다. 그날 오후 로니는
간호원이나 의사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몰래 나에게 사복을
입히고는, 나를 데리고 잽싸게 프린스턴 의학센터를 빠져 나와
그길로 캐리어 병원으로 갔다. 나중에 로니는 말했다. 프린스턴
병원에서는 나의 상태를 대단히 심각하게 보고 있었으며 가만히
놔두었다가는 내게 어떤 조치를 취할지 모르기 때문에 부득이 그런
일을 하게 된것이라고. 캐리어 병원에 가서 나는 다행히 가죽끈에
묶이는 신세는 면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모든 것이 두렵기만 하였다. 나는 입안의 침이 모두 말라 버린 듯한
갈증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악몽이 시작된듯 눈알이 뒤틀리고
구르고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다음 순간, 나는 침대 시트를
가닥가닥 찢기 시작했으며 무서운 힘으로 매트리스를 뒤집어엎어
버렸다. 뭔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어졌다. 그 소리를 듣고 남자
간호보조원들이 달려 들어갔다. 그들은 나를 잡아채려고 했고, 나는
그들에게 계속 저항했다.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저항한다는 것은
결국 점점 더 현실과 멀어져 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즉시
나를 격리병실로 데리고 갔으며 문을 잠궈 버렸다. 그들은 격리병실
안의 대부분의 집기와 옷, 심지어 침대 시트마저도 치워 버렸다.
나는 그들의 그런 행위를 보면서 내가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대로 죽을 수가 없었으며
또다시 사람들의 버림을 받을 수는 없었다. 나는 극도로 혼란된
의식속에서 계속 구르고 몸부림쳤다. 심지어 나는 내 머리를 시멘트
벽에다 쾅쾅 박기 시작했다. 나는 무서웠다. 심지어 그러는 나
자신까지도 무서웠으나 그렇다고 그 행동을 멈출 수도 없었다. 나는
마치 제동장치가 망가진 기관차처럼 절벽을 향하여 맹렬히 달려
내려가고 있는 셈이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려 들어와 나를 억누르고 주사를 맞히고는 심한 욕설을
내뱉으며 나가버렸다. 한참 후에 나는 깨어났으며,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간신히 기억해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문으로 기어갔다.
복도로 통하는 창문을 통해 내가 밖에서 대리하고 있는 한 간호원을
불렀을 때 그녀는 두려움과 놀라움이 뒤범벅이 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죠?」 「저의... 안경을... 주세요...」 그러나
그녀는 내게 싸늘히 대답하였다. 「안 돼요. 우리는 당신이 자멸적인
행위를 하게끔 기회를 만들어줄 수는 없으니까요.」
56. 다시 쓰려진 리키를 힘없이 바라보는 아빠의 눈에서 끝내
분노의....
돌이켜보면, 나는 리키가 병원에 있는 동안이나 어얼스하우스에
가있던 때나 너무나 많은 축배와 또 그만큼의 쓴잔을 번갈아 마셔 온
것 같다. 리키가 좀 나아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쁜 나머지 희망의
축배를 들었으며 그러다가 슬픈 소식을 들으면 쓴 잔을 다시 들었다.
그러나 리키가 어얼스하우스에서 나와 거의 완벽하다 할 정도로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이제야말로 후회없는 희망의 축배를
마음껏 들 수 있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물론 조심스럽고 걱정스러운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리키는 너무나 잘 해주었고
눈시울이 뜨거워질 만큼 최선을 다해 자기 생의 수레바퀴를 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또한번 절망의 쓴 잔을 마셔야 했다.
이번의 충격은 희망이 그만큼 기대가 그만큼 또 컸기에 내게 다가온
강도가 엄청났다. 나는 리키의 돌연한 재발을 이해해보려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리키가 13살에 병원에 간 이래로 최초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옴을 느꼈다. 시시각각 로니가 내게 알려오는 소식은
암담함의 연속이었다. 로니는 어얼스 하우스의 프로그램에 호의적인
의사 한 사람이 캐리어 병원에 있으니 그애를 일단 그곳으로 몰래
빼내야겠다고 말하면서, 나의 의향을 물었다. 로니는 천만 다행으로
리키가 가장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전화를 걸었다가 뜻밖의 불통에
불길함을 느끼고는 그애의 집으로 달려갔고, 거기서 빈사 상태의
리키를 발견하고는 응급처치만을 목적으로 그애를 프린스턴 병원으로
옮겼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은 후에 예상치 못한 리키의
발작으로 사태는 돌연 이상하게 돌아갔고, 로니가 뒤늦게 리키를
퇴원시키려 해도 프린스턴 병원에서 그애를 놓아주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로니가 리키를 캐리어 병원에 안전하게 옮겨다 놓은 후에
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녀는 상당히 흥분에 찬 어조로 말했다.
「저는 이렇게 하는 게 리키와 당신을 혼란시키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요. 하지만 저는 이것만이 리키를 위한 최선의 길임을 확신해요.」
그때 나는 분명히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로니, 나는 당신과 항상
함께 있어요. 당신의 뜻대로 하세요.] 리키가 어얼스 하우스에서 나와
아주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할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굉장히 유달랐다.
나는 리키의 오랜 병원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하려고 그애를 어얼스
하우스에 보낼 대 많은 고뇌를 했었고 정신과 의사의 한 사람으로 심한
갈등을 겪었었다. 의학계의 배척을 받는 사설 단체, 의학적으로 확실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그곳에 리키를 보낸다는 건 나에게 말 못할
갈등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리키가 나의 갈등과 고뇌를 불식시키듯 한
사람의 성실한 사회인으로 재생한 모습을 보는 나의 기쁨이 남달랐던
것처럼, 오늘의 리키가 있기까지 온갖 헌신을 아끼지 않았던 로니를
보는 나의 마음은 고마움과 경이로움의 혼합 그것이었다. 나는 로니를
믿었다. 로니가 하려는 모든 결정을 따라주는 것이 리키를 위한
최선의 대책임을 나는 믿었다. 이틀 뒤에 나는 캐리어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그곳은 이미 내가 지난 수년 동안 여러 차례 갔던 적이 있는
병원이었다. 나는 그곳이 유능한 의사들로 구성된 병원임을 부인하지
않았으나 그곳에 있는 의사들이 리키를 회복시키겠다는 노력에
대해서는 저의기 희의적이었으며, 그 병원이 과거의 모든 병원이
리키에게 그랬듯이 다분히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절차를 리키에게
밟도록 강요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리키는 로니의
계획대로 다시 어언스하우스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로니가
그런 희망을 가진다해도 파이퍼 박사를 비롯한 다른 의료진이 리키의
재발에 실망하여 그애를 거부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정중하게 리키의 병동으로 안내를 받았다. 나는 침착해지려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내가 잠겨진 문을 열로 그 안에 들어갔을 때, 나는
너무나 놀라서 나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고 말았다. 머리를 푹 숙이고
팔과 손을 계속해서 떨고 있는 리키가 노파처럼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는 다리를 질질 끌며 나를 향해 걸어오는 것이었다. 푸른 색
줄무늬의 환자복을 입은 리키는 단 며칠 사이에 저 악명 높은 북부
햄프턴 주립 정신병원의 특수 격리병실에 있을 때보다 더 처참한
몰골이 되어 내 앞에 섰다. 나는 리키의 그 모습이 너무나 분하고,
리키와 내가 그동안 공들였던 세월의 탑이 이렇게도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 너무나 억울해서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허물어지고, 짓이겨졌을 때에도
이보다 더 비참한 기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그애를 보며 그토록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느니 차라리 함께 죽어 버리자고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정녕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리키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보았을 때, 나는 단지 그애를 포옹했을 뿐이었다.
그애를 다시 잘못되지나 않을까 해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떨림은 그애를 포옹하고 있는 내게도 금세 전염이 되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말을 잃은 채 서로의 심장이 너무도 세게 박동하고
있음을 의식하면서 포옹하고 있었다. 「리키야, 안경은 어디있지?」
「간호원실에 있나봐요.」 「왜 그걸 끼고 있지 않는 거지?」 「그들이
못끼게 해요.」 나는 간호원실로 달려갔다. 주근깨가 온통 얼굴을
뒤덮고 있는 깡마른 간호원이 나를 맞이하였다. 「리키는 안경을
가지고 있었소. 그에에겐 그 안경이 필요하오.」 나의 설명에도
그녀는 냉정하게 대꾸하였다. 「저는 의사로부터 서명받은 지시사항
외에는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좋아요. 그럼 의사는 어디에
있소?」 「리키의 담당의사는 지금 병원에 안 계세요.」 「그럼 그를
대신하는 의사는 누구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리키를
돌볼 권한을 가지고 있어요.」 그녀의 태도는 계속 비협조적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간호원실에 멍하니 서 있었다.
리키는 간호원실 밖의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서 텅 비어 버린 눈으로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것 보세요, 간호원. 저에게는 그 안경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이 병동의 오늘 밤 숙직 의사를 만나게 해
주시오. 어쩌면 이것은 한 젊은 여자의 생사가 달린 문제란 말이오.」
「숙직 의사가 와도 별 수가 없을 거예요.」 「그럼 리키를 담당한다는
그 의사의 연락처를 내게 알려주시오. 내가 직접 그에게 전화를
걸겠소.」 내가 다시 재촉하자 간호원은 마지못해서 숙직 의사에게
전화연락을 해 보겠노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줘요, 고마워요.」 나는
그녀의 배려에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감사를 표시하고는 복도로 나와
리키에게 다가갔다. 리키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한쪽
어깨가 축 늘어져 있고, 머리칼은 말할 수 없이 풀어헤쳐져 있어서
대단히 보기 흉한 몰골이었다. 나는 리키 옆에 나란히 앉아서 그애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라. 잘 될 거야」 나의
간절한 위로에도 리키의 태도는 조금도 위안을 받은 기색이 아니었다.
리키가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저를 차라리 죽게 내버려 두세요. 저는.....저는 정말 살고
싶지 않아요......」 확 하고 뜨거운 불길이 내 목을 태우는
느낌이었다. 리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대단한 화력을 가진 불씨로
살아서 내 목을 지져대는 느낌이었다. 나는 리키의 어깨를 감싸안고서,
정말이지 이제 내가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신에게 묻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초라하게 복도에 나란히 앉아
있는데 귀에 익은 음성이 요란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로니였다. 「박사님! 왜 그러고 앉아 계시죠?」 리키가 힐끗 로니를
바라보고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황급히 외면하며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을 아프게 느끼면서, 나는 그간의 사정을 로니에게 말했다.
그때까지도 숙직 의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의 말을 다 듣고난 로니는
알겠다는 듯이 즉시 돌아서더니 전화 박스로 달려갔다. 이 병원에
있다는, 어얼스 하우스에 협조적인 의사에게 연락을 취해 보기
위해서였다. 로니가 전화를 하러 간 사이에 30대의 젊은 의사 하나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우리 쪽을 향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는
간단히 간호원과 이야기를 나눈 뒤에 내게로 와서는 던지듯 내뱉었다.
「도와드릴까요?」 나는 카플란 박사로부터 얻은 그 특수 안경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와 함께 나는 리키가 지속적으로 몸을 떨고 있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애가 무슨 약을 투여받았는지도 물었다.
「리키는 페노다이아진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소. 혹시 페노다이아진을
투여받았는지 알아봐 주시오.」 「글쎄요. 그 약에 대해서는 내가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저 환자의 상태는
병적으로 흥분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만.......」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큰 소리를 치려다가 꾹 눌러참으면서 나는 안경에
대해 다시 말했다. 그러나 그 젊은 의사는 막무가내였다. 리키는 자해
행위를 했습니다. 그것도 거칠게! 홈즈 박사님은 챠트에다 환자의
그런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어떠한 위험한 물건도 접근시켜서는
안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홈즈 박사님의 허락 없이는 제
권한만으로 리키에게 안경을 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
주십시오. 나는 그 젊은 의사의 바보같은 고집에 정말 화가 났다.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그의 얼굴에다 대고 큰 소리를 쳤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수작임을 내가 모를 줄 아시오? 리키가 그
안경으로 자해 행위라도 하면 문책이라도 당할까 두렵다 이거요? 내게
당장 홈즈 박사의 연락처를 대란 말이오!」 내가 너무나 살벌하게
소리를 치기 때문에 그 젊은 의사는 좀 겁을 먹었는지 한 걸음 뒤로
물러 서며 말을 하였다. 「말을 삼가하시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이봐, 간호원!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군데 이렇게 소리를 치는 거지?」
그런데 그때였다. 간호원실의 전화가 요란한 벨소리로 우리의 다툼을
잠시 뜯어말렸다. 그 벨소리와 거의 동시에 로니가 다시 우리에게
달려왔다. 「연락이 됐어요. 어쩌면 곧 홈즈 박사라는 의사한테서
직접 전화가 걸려올지도 모르겠는데......」 「이미 전화가
걸려왔어요.」 이렇게 대답한 사람은 간호원이었다. 그는 젊은 의사를
간호원실로 불러들이더니 뭔가 잠시 소근거렸다. 그리고 나서야,
간호원은 책상 서랍에서 안경을 꺼내 그 젊은 의사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내게 프리즘 안경을 전해주었다. 나는 빼앗듯이
그것을 받아들고는 리키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는 그 안경을 안전하게
그애의 눈에다 갖다 대었다. 그리고는 정확히 리키의 귀에다 그것을
갈아주며 말을 했다. 「리키야. 이젠 안심하거라.」 리키는 눈물만
주르르 흘릴 뿐 말이 없었다. 어느새 리키와 나는 손을 마주잡고
있었는데, 나는 아주 서서히 그애의 손이 따뜻해져옴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로니가 리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리키,
진정으로 성공할 수 있으려면 보다 더 강건해야 돼. 모든 것이 잘
되어갈 때일수록 방심하거나 긴장감을 늦추어서는 안돼. 이것이
리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리키 자신에게 보다 더 충실하도록 한번
더 기회를 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좌절을 이겨내야 해. 알겠어?」
간호원과 그 젊은 의사는 우리의 대화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저만큼 물러서서 우두커니 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로니가 나와 리키만 듣도록 나지막이 속삭였다.
「제가 아는 그 의사와 통화를 했는데 2,3일 안으로 리키를 퇴원시킬
수 있게끔 홈즈 박사와 상의를 하겠답니다. 힘들더라도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될 거예요.」 나는 로니에게 고맙다는 말도 잊고 리키의 손만
꼭 쥐고 있었다.
14. 천국엔 새가 있다
57.리키의 회상
마침내 리키에게 찾아온 행복. 그녀에게는 연인도 생기고.....
끔찍한 폭풍우는 지나갔으나 내 마음은 여전히 불확실했고, 나는
여전히 외줄 위에 서 있었다. 로니가 일주일 동안 나와 함께 있어 줄
그녀의 친구 한 사람을 보내왔고, 캐리어 병원에서 나온 그
이튿날부터는 어얼수 하우스에 다시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내가
과거 수년 동안 배우고 익혔던 모든 능력을 잃어버린 느낌의
나날이었다. 나의 뇌리엔 지워지지 않는 너무나 많은 불행한 기억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습포제에 싸여 울먹이던 나의 모습, 밤낮으로
고통과 두려움에 떨고 있다가 들것에 묶여 실려 나갈때 한눈에
들어오던 그 아스라한 암흑의 복도, 그리고 미친 사람들의 시도 때도
없는 울음과 웃음소리...... 나에겐 새로운 시도가 요구되었다.
그리고 나에겐 보다 더 많은 인내와 긴장과 용기가 요구되었다. 처음에
나는 어떻게 피아노를 쳐야 하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최악의 상태에 있었을지라도 결코 흥미를 잃은 적이 없는 공예나
조각에조차도 애정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결국 길고 먼 길을 돌고
돌아서 다시 원점에 돌아온 셈이었다. 나는 어얼스 하우스에서
재교육을 받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발작을 일으키게 될 것이며 어쩔 수
없는 광란 상태에 또한번, 다시 한번 빠져들고 말 것이라는 예감을
하며 심한 좌절감에 빠져들었다. 그때 로니와 데이비드가 나를 위해
휘두른 선의의 채찍질은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흐른다 해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참으로 헌신과 정성이 담긴 말로서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일깨워주려 애를 썼고, 퍼즐 장난감의 흐트러진 조각들을
정성스레 모아서 결국엔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만들 듯 나를 다시
원래의 나로 만들어 놓으려 했다. 결국 내게 요구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나의 내적인 힘과 지략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더욱 강력히 요구되는 것은 내 삶에 대한 더 많은 인내,
더 많은 간절한 기도, 더 진지한 삶의 자세였다. 어쩌면 나는 내
의식의 저 밑바닥 그늘에 숨어서 언제든 나를 공격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던 압박감에 한순간이 방심 끝에 굴복하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빠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키, 너는 병의
재발로 인해 생겼던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지 말아야 한다. 한순간
네가 정상 상태를 상실했던 것은 정말이지 아무런 뜻도 없는 거란다.
건강한 사람도 때때로 생기를 잃게 되고는 한단다. 중요한 것은,
전보다 더 좋아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일뿐이야.」 아빠의 충고는
나를 다소 안심시켰다. 나는 차츰 자신감을 되찾게 되어 좌절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끔 되었다. 나는 다시 식이요법을
해나갔다. 한동안 중단했던 비타민 제제의 복용도 계속했다. 시력
증진훈련도 자율적으로 해나갔으며 데이비드의 조력을 받아 정신력
강화훈련도 했다. 나는 또한 알코올이 나의 신체 조직에 있어서는
독약이나 마찬가지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날 이후로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하였다.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
될 것이다. 나는 다시금 시를 쓰면서 나의 어휘력이 정말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학교 교육을 받았더라도 거의 그것에 몰두할 수가
없었고, 그것마저도 도중에 중단해 버렸기 때문에 어휘력의 부족이
실상 그리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으나 나는 마음속에서 물이 끓어오르듯
넘치는 감정의 분출을 시로써 표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어휘의
구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단어의 학습에
열을 올렸다. 누군가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를 사용하면, 나는
그것의 의미와 철자를 꼬치꼬치 캐물었고 그래도 이해할 수가 없으면
사전을 찾았다. 한번은 데이비드에게 '굴욕'의 뜻을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데이비드는 빙긋이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리키, 당신이
설령 그 의미를 모른다 해도 당신은 이미 그것을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경험한 장본인이라오.」 나는 그의 설명을 듣고 수년 동안 내가
겪어야만 되었던 일들에 관하여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나는 그
단어가 '겸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굼해 했다. 「전혀 관계가
없어요. 겸손은 사람들이 얼마나 훌륭한가 하는 것이지만 굴욕이란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는 것이니까요.」 그렇다. 나는 얼마나
업신여김을 당해왔던가. 1966년 3월에 펄커크에 간 이래로 나는 살
가치도 없고 희망을 품어서도 안 되며, 오로지 죽음과 가까이 서 있는
더러운 인간으로 취급받아 왔었다. 나는 더 이상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겪으면서 걸어온 길이 아무리 최악의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나는 이제 더 이상은 그런 취급을 받아선 안 되었다. 그것은 내
삶의 가치에 관한 문제였고 생명에 관한 문제이기도 했다.
1979년 봄에, 나는 26세 여자의 몸으로 플레인즈보로 구조대의
아르바이트 지원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응급치료사 자격을
땄다. 구조대에서 내가 하는 일은 구급차를 운전하면서 환자를
돌보고, 그를 안전하게 병원 응급치료까지 데려다주는 일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최소한 하루는 야간 비상근무를 했는데, 내게 그런 일들은
조금도 피곤함을 주지 않았다. 호출 신호기를 통해 호출을 받으면,
나는 차에 파란 불을 켜놓고는 쏜살같이 본부 사무실에서 지시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나는 이런 일을 하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내
생활은 환자가 있는 곳에서 병원으로, 그러다가는 다시 응급환자가
있는 곳으로 달리는 체력과 주의력이 요구되는 삶의 연속이었지만
조금도 힘든 줄을 몰랐다. 처크 히트만과의 만남은 내가 응급치료사로
일한 지 3개월 가까이 지난 그해 여름 어느날이었다. 그러나 실상
우리의 만남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우리의 첫만남은 짧고 빨랐다.
내가 캐리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정신과 간호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던
처크는 어느날 잠깐 내게 약을 전해주러 내 병실에 들렀었다고 한다.
그것이 첫만남의 전부였기에 우리가 두 번째 반났을 때 그것을
기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다. 두번째 만남은 우연이었다.
내가 응급환자를 싣고 캐리어 병원으로 갔다가 잠시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그가 내 앞을 지나다가 그만 들고 있던 이스턴트 커피잔을
쏟으며 넘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몹시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내
손을 온통 적신 커피와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손등, 그리고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처크를 번갈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우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졌고, 서로가 만나게 되면 언제든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대단히 명랑한
남자였다. 더구나 그는 내게 퍽 친절했으며 무슨 일이든지 자신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는 사려깊은 남자이기도 했다. 그해 겨울의 비행기
데이트를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의 친구 하나가 경비행기
한 대를 가지고 있는데 처크와 나를 특별히 초대하였다. 우리는 메르셀
공항에서 출발하여 뉴욕시를 까마득하게 아래로 내려다보며 상공을
날은 후에 컨넥티컷 위로 계속 날아갔다. 나는 그때 비행기를 처음 타
보는 것이었지만 조금도 두렵지 않았으며 훌륭히 나 자신을 자제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후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가벼운 식사를
위해 웨스트체스터 공항에 착륙하고, 식사를 마친 다음에 다시
이륙하려고 했을 때 돌연 비행기가 출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악화된 날씨 때문에 모든 비행기의 이륙이 금지되었다는 것이었다.
처크와 나는 그날 밤 야간열차를 타고 프린스턴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우리는 너무나 많은 진심어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런 대화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필요로 하는 존재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응급치료사로 일하면서 나는 많은 다른 남자들을 만났지만, 내게
정말로 편안함을 준 사람은 처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내가
최악의 상태에 빠져 있을 때를 직접 목격했었는데도, 조금도 개의치
않고 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당시를 처크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리키의 병원 생활을 회고해 볼 때, 나는 그후의 리키를 경이로운
눈으로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이 문제를 캐리어 병원의 동료들과
한번 이야기해 본 적이 있다. 그녀의 과거 기록에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겪은 비참한 발자취가 선연한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이 기록만으로도 의사들은 그녀에 대한 기대를 이미 버리고
있었다고 생각되었다. 아주 여러 해 동안 의사들은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가장 중요한 점을 찾지
못했고 찾으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런 이유로 해서 나는 문제가
있다면 실은 그들 의사들에게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리키는 그녀의
과거와 그녀가 겪어야 했던 모든 일에 대하여 내가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나 역시 그녀에게 감사했다. 그녀의
순수성, 꾸밈없는 태도, 그리고 정직함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리키가 그러한 끔찍스러운 일을 겪고 난 후에도, 결코 어떠한 어려움도
겪어 보지 않았던 다른 여자들보다 더 너그럽고 평화로우며 순수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결코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리키는 어떠한 비통함도 자기 마음속에 지니고 있지
않음으로써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나를 놀라게 했다.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놓쳐 버린 기회와 꿈들을 다시 붙자고야 말겠다는 신념과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리키의 경우를 통해서 나는 정신병원에는
의사들의 무지와 태반과 닫힌 마음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는
환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났다면
나는 너무도 화가 나서 무슨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리키는
그들 의사들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타인의 무지를 비난할 수
없듯이 의사들이 리키에 대해 더이상 알지 못했던 것을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리키의 의견이었다. 계속해서 그 일에 매달려 화를
낸다면 앞으로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리키의 소신임을 내가
충분히 이해하기까지에는 다소 많은 시간이 걸렸으나 나는 그것이
리키가 가지고 있는 너그러움의 소산임을 알고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1980년 새해 첫날 아침에 나는 그해의 첫번째 전화를 처크로부터
받았다. 「리키, 아주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 지금 내가 그리로 가도
되겠어?」 나는 영문을 몰라 잠시 망설였다. 나는 그날 오전에
뉴욕으로 가서 아빠를 만날 예정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와 길게
이야기를 나눌 형편이 아니었다. 「글쎄요, 처크...... 다음에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실은.....」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처크는
막무가내였다. 그날 아침이 아니면 절대로 안되며, 더구나 미루어서는
결코 안되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리키, 많이 걸리지 않아. 한시간
정도면 충분해.」 결국 나는 졌다. 약30분 후에, 처크가 뜻밖에도
신사복 정장 차림에 예쁜 장미 한 송이를 들고 나의 집에 왔다. 그는
내가 문을 열어주자 마자, 마치 용기가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모든
것을 다 쏟아내야 한다는 듯이 속사포처럼 말을 하기 시작했다.
「리키, 나와 결혼해줘. 리키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언제나 꿈꾸어
왔어. 새해 첫날 아침에 꼭 이 애기를 해야겠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었어.」 나는 그가 하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나도 그를 사랑했으며, 그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미고 가족의 소중한 의미를 음미하며 살아가는 장래 어느날의
내 모습을 이따금 상상해 보곤 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 그 누구도
정말로 나와 결혼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었다.
설령 처크처럼 나를 진실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조차도 말이다.
나같이 결함이 많고 나같이 최악의 경험을 한 여자를 누가 과연 영원한
반려자고 생각할 것인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을 몸 구석구석에
늘어뜨리고 있는 내가 아닌가. 나는 막연하게지만 간간이 결혼이라는
문제를 떠올릴 때마다 얼른 나 자신을 되볼아보며 그런 생각의 작은
꼬투리마저도 꾹꾹 억눌러 사라지게 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처크는
말했다.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나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언제나
꿈꾸어 왔었다고. 나는 정신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처럼
흐느적거리면서 뒤로 한 걸음 두 걸음 물러서다가 소파에 푹 꺼지듯
앉았다. 나는 오랫동안 멍하니 거기 앉아서 내 눈에 보이는 집안의
가구들을 무의미하게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나는 울기
시작했다. 소리없는 긴 흐느낌속에서, 나는 문득 한 마리 새가 되고자
했던 어린 시절의 동경과 결코 그리 될 수 없음을 한탄하면서 부질없이
흘려보낸 세월을 생각하였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생의 굴레속에서
허덕거리며 찾으려 했던 그 많은 것들이 떠올랐고, 그런 와중에서
잃어버리고 또 잃어버렸던 내 생의 소중한 시간들을 생각하였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나는 정녕 내게도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못해왔었다. 처크를 사랑하고 때로는 그가 보고 싶어 험한
빗길을 달려 그의 집 앞으로 달려가는 날이 있었을지라도 이런 날이
나에게 찾아오리라고는 정말 생각지 않았었다. 나는 계속 울었다.
그러나 그 눈물은 내가 지금껏 흘린 그 어떤 눈물과도 의미가 다른
것이었다. 엄마가 내게 준 그 눈물방울 모양의 보석도 내가 그때 흘린
눈물의 의미만은 담고 있지 못할 것이었다. 처크는 나를 한동안 울게
내버려 두고 있다가 천천히 내게 걸어오더니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마도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을 거야. 리키는 그렇게 생각지 않아?」 그 다음 순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뜨겁게 포옹했다. 눈물이 여전히 흐르고
있었으나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58.폭풍우는 끝나고 담담히 지난날을 회고하는 그녀는 지금
여기에.......
1990년, 플로리다. 어떤 면에서 나의 삶은 다른 어떤 사람들의
삶보다 훨씬 더 불완전했다고 생각된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때때로
나는 내게 일어났었던 일들에 대해 전혀 믿을 수가 없을 때가 있다.
그것은 마치 흉칙한 꿈 같았다. 그렇다. 오랜 시간 나는 악몽을 꾼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나로 하여금 병원에 옭아매어지도록
운명지워진 악몽이었다. 그 꿈속에서 나는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뛰고 또 뛰었다. 하지만 나는 여러 해 동안
언제나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었으며 내 생의 평원 위에는 어떤 꽃도
풀도 없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처크와 나는 우리들 스스로의
행복한 삶을 잘 꾸려 나왔다. 나는 결혼 이후에도 정열적인 나날을
보냈다. 첫애를 쌍동이로 낳은 후에는 쌍동이 협회 어머니회에
가입했고, 어얼스 하우스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하루 종일
자원봉사자로 일했으며, 출판사에 아르바이트직을 얻어서 지방으로
우편물을 발송하거나 주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했다. 1985년 우리는
뉴저지 보든 타운에 있는 오래된 집을 한 채 샀다. 델라웨어 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 집은 명실상부한 우리 가정의 낙원이었다.
일 년 후에 우리가 그 집을 보수할 필요를 느꼈을 때, 우리는 너무도
힘이 들었다. 아무리 처크와 내가 열심히 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
집을 개량하는 데는 엄청난 돈이 필요했다. 처크와 나는 이 문제로
오랫동안 의논을 하였다. 프린스톤 지역은 날이 갈수록 변해서
이제는 인구 문제와 환경오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나는
또한 이곳의 혹독한 추위와 어두운 겨울이 싫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아쉬움이 있을지라도
프로리다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하였다. 나는 플로리다의 태양을
사랑했으며 해변이 좋았고 바다가 내게 주는 그 무한한 평화로움에
매일같이 감명을 받았다. 나는 그동안 간호원 자격증을 획득했다.
나는 오랫동안 남을 돕고자 했던 꿈을 이 자격증을 획득함으로써
이루었다. 비록 늦었지만 나는 기회가 닿는 대로 병원에서 일을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나는 가족이 그리웠기 때문에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으레 뉴욕으로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을 만나고 있다. 아버지는 1982년에, 그러니까 내가 처크와
결혼한 지 2년 뒤에 재혼을 하였다. 상대는 오랫동안 친구 이상의
우정을 나눠오던 조이스 부인으로, 두 분의 결합은 오랜 세월
주고받아 온 도타운 우정 때문에 매우 행복해 보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머니는 아직 혼자이다. 그분은 내가 가끔 재혼 문제를
꺼낼 때면 싱긋 웃으면서 다시 결혼할 의사가 없다고 말하곤 하신다.
이제는 내가 그들 두분의 이혼이 전적으로 내 탓이라 여기며
자책하지는 않지만, 내가 그들의 파경에 한 몫을 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특히 어머니에게는 죄책감을 씻을 수가 없다. 나는
어얼스 하우스에서의 상담역 자원봉사에 남다른 애착과 긍지를
느끼며 그 일에 임했다. 나는 그곳에 들어온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안내하며, 특별한 방법으로 그들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갖도록 가르치는 일을 한다. 캐리어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
나를 억누르던 그 끔찍한 악몽의 그늘이 내게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때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울증이 찾아와 며칠 동안 침울하고 낙심하는 생활을
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다시 발작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떨며 입술을 깨물곤 한다. 그러나 나는 잘 안다.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희망을 꿈꾸고, 또 언제나 나 자신을 지켜내려는 의지의
뿌리가 이제는 깊이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그런 생각을 하며
불안감을 떨치고, 그런 행동을 의식적으로 해내면서 내 발길을
희망이 있는 쪽으로 돌리노라면 나는 어느새 원래의 나로 돌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로니가 암으로 1년간의 투병 끝에 1987년에
죽은 것은 나를 극심한 비탄에 빠지게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비탄을
내가 어떻게 해소시켜야 하는지를 알았으며, 비록 그녀의 죽음이 내
가슴에 텅 빈 자리를 남겨 놓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여기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녀가 어얼스
하우스에 남겨 놓은 자리에 대신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의 도움으로 내가 어둠의 터널로부터 벗어났듯이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한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로니로부터 받은 그
보람있는 유산을 사용하고 싶었다. 어얼스 하우스에서 어떤 학생이
내게 물은 적이 있다. 「당신은 우리를 진실로 이해하나요?」 그
순간 나는 로니가 내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로 나타났었던가를
기억해냈다. 내가 아무 거리낌없이 나 역시 어얼스 하우스
출신이라고 고백했을 때, 그들은 깜짝 놀라며 자기들에게 정말로
희망이 있느냐고 또 물었다. 나는 즉시 그들에게 힘차게
말해주었다. 「우리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려고만 한다면, 언제나
희망이 있는 법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했다.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것, 다가오는 각각의
문제에 당당히 대처하는 것, 데이비드가 내게 설명해주었던 굴욕의
의미에 관한 것 등등 나는 내가 느끼고 깨달은 바를 그들에게
솔직하게 다 말해주었다. 때때로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말을 해주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나의 일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어느 때는 너무도 당황하여 옛날처럼 똑바로 볼 수 없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 분명히 다른 하나는
내 속에 부정적인 나를 꾸짖고 내가 선택한 올바른 길로 똑바르게 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이끄는 진정한 내가 크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나의 시각은 예전처럼 혼란에 빠져들
때도 있다. 밀폐된 상자 속에 갖혀 있는 느낌이 든다든지, 조그만
구멍으로 내다보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 때 나는 얼른 눈을 감거나 프리즘 안경을 써서 그것을
이겨낸다. 나는 더이상 두렵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이 무엇이며,
그나마도 곧 없어지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때는
사람들에게 나의 과거를 밝힌다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 조차도
혐오스러울 때가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나의 팔뚝에 있는 흉터를
보거나 나의 끔찍한 비밀을 알아 버린다면 그 즉시로 나를 외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곤 했다. 그런 멸시를 내가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언제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몹시 불안감을
느꼈었다. 그러나 이제는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미래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겁을 먹거나 드려워하지도
않는다. 어느날 나는 어얼스 하우스에서 일을 하다가 창틀에서
거미줄을 치고 있는 거미 한 마리를 보게 되었다. 내가 거미줄을
없애 버리자, 그 거미는 또다른 거미줄을 쳤다. 내가 세 번씩이나
그것을 제거했지만 그때마다 거미는 줄기차게 거미줄을 치는
것이었다. 그 다음 순간에 나는 그 거미를 그대로 놔두었다. 나는
그 거미처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였다.
인생이라는 먼 여행길에서 어둡고 추웠던 그 경험은 인생 전체를
놓고 본다면 아주 적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가
확고하게 깨닫게 되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며, 나는 그 모든
수고로움을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나는 서있다.
59. 천국에는 새가 있다. 언제나 그랬으며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현재 37세인 리키는 세 아이의 어머니로서 활기차고 유능하며 상식과
지혜, 그리고 자제력에 관한 괄목할 만한 능력을 가진 중년여성으로
변모해 있다. 한때 나는 잠을 자면서 반은 꿈으로, 나머지 반은
추억으로 희미한 어둠속의 여로를 방황하곤 했었다. 그러면서 나는
돌이켜보았다. 리키의 병이 아주 심했던 몇 년 동안, 그리고 그녀가
극적으로 회복한 이래로 지금까지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으며 그 일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었던가를. 물론 나는
많은 것을 잃기도 하고, 또다른 많은 것을 얻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그런 수많은 변화속에서도 리키와 내가 먼 가시밭길을 지나 건강한
선체와 정신으로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일 것이다. 나는 이 기회를
빌어 힐라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비록 우리는 헤어져 남남이
되었으나, 그려는 리키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보내주었으며 리키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주었다. 또 그녀는 리키의
형제들을 잘 키워내어 그들이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함으로써 모성애의 참모습을 보여주었다. 리키의 동생인 존은 지금
서른두 살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와 그의 아내는
켈리포니아 팜 스프링즈에서 살고 있으며 두 사람 다 대학 강단에서
정열적으로 활약하고 있다. 메어리는 서른 살로 회계사로 일하고
있으며 그녀의 남편은 회사의 재정자료 지배인으로 있다. 28세인
메티유는 사업가의 아내가 되어 남편을 내조하면서 행복한 가정의
안주인으로 단란하게 살고 있다. 힐라리는 혼자 힘으로 훌륭한 삶을
창출해왔으며, 아이들에 대한 헌신으로 가득찬 20년을 보냈다. 리키의
회복에 있어 그녀의 변함없는 애정이 중요한 몫을 했음을 생각할 때,
나는 그녀에게 언제나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리키에 대해 말했을 때, 동료들의 반응은 실로 다양했다.
동정심, 우려, 격려, 그리고 기피...... 리키가 완전히 회복한 다음에,
그련를 만나본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그녀가 결코 정신분열증에 걸린
것이 아니었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리키가 그렇게
완벽하게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나는 리키가 정신적으로 병에 걸린 상태가 '전혀'아닐 수도 있다고
결론짓곤 하지만, 또 어떤 때는 리키의 병이 정신적 문제에서
연유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곤 한다. 이렇게 나는 여전한
불확실성 위에 있음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1966년 3월
리키는 분명히 큰 불안속에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보다 더
예민해진 감성,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학교에서의 멸시와 적응
실패, 그리고 부모의 갈등 등 그녀가 불안을 느꼈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불행하게도 그때 리키는 그녀의 가족이 믿었던 한
정신과 의사에 의해 우울증이 확대 해석되어 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이것은 그녀가 갖고 있던
불안감을 대대적으로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에서도 가장
훌륭하다는 의사들의 쓸모없는 노력에 의해 짓밟히기 시작한 리키의
운명은 10년동안 정신분열증의 꼬리표를 단 채 그 당시의 병원의
규범과 절차에 의해 철저히 암흑으로만 치달았다. 더구나
웨스트체스터에 있을 때 리키는 거의 말이 없는 냉담하고 재미없는
의사와 함께 앉아서 반복적으로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음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내부에 암담한 느낌을 쌓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되는 최악의 치료 방법이 리키를 더욱 악화시키고,
리키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필요없는 존재로 여기게 했을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가혹한 시나리오는 리키로 하여금 두번 세 번의 자살
기도에까지 이르게 하면서 그녀 스스로에 의한 파멸을 통해 의사들의
잘못된 견해를 증명케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용감하게도 리키는
의사들의 손은 물론이고 그 시나리오를 만든 악마의 손까지도 물리치고
오늘에 이르렀다.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묻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리키를 병이 나게끔 만든 요인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가 대담해왔던 것은 왜 그녀가 더 좋아지지 않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치료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리키가 그러한
고통을 당하면서 혼란된 상황속에서 수년 동안 생활했었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그녀의 개인적인 회복력에 집중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흔히 회복력에는 세가지 요소가 있다. 개성, 환경, 그리고
환자의 신체적 생화학 구성이 그것이다. 다행히 리키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회복력의 소유자였으며 특히 지혜,
창조력, 날카로운 유모어 감각, 편견 없는 사고, 종교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었음으로 해서 그 험난한 여정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보아진다. 더구나 리키에게는 가족의 사랑과 따뜻한 부양이 있었다.
심지어 그녀가 여러 달 동안 가족을 배척하고 증오심에 불탈 때에도,
나와 할라리는 리키를 포기하지 않았다. 가족이 있는 환자가 없는
환자들보다 훨씬 더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는 명백한 사실에 대한
보고는 의학계에 이미 정설이 되었다. 여기서 나는 어얼스 하우스와
고울드 농장, 카풀란 박사의 시력 증진훈련 등에 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리키의 경우에 그녀가 생화학적 불균형 상태의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까지도 어얼스
하우스에서 행하고 있는 영양치료법은 나의 동료들 대다수에 의해
배척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카알 파이퍼 박사에 의해 정립된 그
식이요법에 많은 결점이 있음은 실상 나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리키의 회복 시기는 확실히 어얼스하우스에 간 직후부터이며 그녀가
삶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의지를 나타낸 것도 바로 이때부터임을
생각할 때, 어얼스 하우스에서 시행하고 있는 치료법은 분명히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리키가 기능상으로
맹인이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어쩌면 리키는 세 살 때부터
시력 불능 상태에 빠져 버렸을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불능이
교정될 때까지는 어떤 치료 형태도 지속적인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카플란 박사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리키의 과거를 되새겨 보다가
그녀의 사고 경향, 머리 부상, 강한 시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우울증,
학교에서 직면한 여러가지 시각적인 사고들을 떠올리게 되면 왜 초기에
정신과 의사들이 리키의 눈에 관심을 나타내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마도 그것은 의사들의 타 분야에 대한 무관심과 태만의
소산에 다름 아닐 것이다. 나의 동료들은 리키를 혁명적으로 도운 이
두가지 방법, 즉 몸의 분자 성분을 영양으로 조절하는 치료나 시각적인
인지 훈련을 통해 리키가 회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여전히
냉소를 머금는다. 그러나 어쨋든 좋다. 혁명적으로 도왔든, 그
치료들이 리키의 회복에 작은 빌미를 제공했든 아무튼 리키는
회복됐으며 건강한 사회인으로 복귀하였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실상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리키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운명적인 문제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다소 센티멘탈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나는 리키와 함께 걸어온 가시밭길 위에서 숱하게 오묘한
운명의 힘을 체험했다. 오스카 크루지의 조언이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카플란 박사의 존재를 알려 주었던 노먼 바이즈만을 내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얼스 하우스에서 로니 라로체를
만나지 않고, 만났더라도 리키가 어얼스 하우스에서 나온 후에 사회
생활을 할 때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것은
다 그만두더라도 일찍이 리키가 정신분열증에 걸린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였던 홀져 박사의 말을 우리가 보다 일찍 수용하였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가장 오묘한 운명의 시나리오는 리키가 수면제와
보드카를 함께 마셨다가 빈사 상태에 빠졌을 때, 로니가 리키의 집에
전화를 건 것일 게다. 로니의 관심이 없었다면 리키의 오늘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카알 융은 우리 삶속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들의 중요성에 대해서 글을 쓴 바 있다. 그는 그것을
공시성이라 규정하고, 그 사건들에는 나름대로의 논리와 운명이 있으며
우리 자신의 특별한 성질, 혹은 우리 주위의 힘,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초자연적 힘으로부터의 파생하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의
결합이 이루어내는 하나의 청사진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의식적인
선택이 이런 청사진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변은 위대한 과학자였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다음 말이
대신하고 있다. 「우리가 지식을 얻으면 얻을수록 우주의 본질은
더욱더 신비로워지게 마련이다.」 저명한 인류학자 조셉 캄벨은
'영웅'을 이렇게 정의한다. '영웅이란 집을 떠나 비극과 장애물에
직면하기 위해 황야로 나간다. 그는 그것들을 정복한 뒤에 집에
남겨진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지혜와 시각을 가지고 돌아온다.' 이런
정의에 입각한다면, 리키를 분명히 한 사람의 영웅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리키의 이야기에서 파악되어지는 진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념과 희망과 사랑을 통한 죽음과 부활의 의미 바로 그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는가에 대한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만, 그 의문에 설득력
있게 반박되어지는 반대 의견을 아직 없다. 리키가 열 살이었을 때,
그애가 내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아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때 나는 대답을 일단
유보하고 그애의 생각이 어떤지를 되물었다. 그때 리키는 또랑또랑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모든 사람은 다 죽게 마련이에요. 아마도
예수님은 죽음이 무섭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려 했었는지도
몰라요.」 리키의 이 천진난만한 대꾸는 아주 오랫동안 내게
기억되었다. 우리는 태어난다. 우리는 죽는다. 그리고 용기와
신념으로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이러한 순환은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우리의
삶속에서 성공이라는 문제도 이와 같다고 나는 단정하고 싶다. 해내고
실패하고 다시 해내는 가운데 진정한 승리는 있는 것이며 그것을
리키는 누구의 가르침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냈던 것이다.
리키가 드로시와의 상담중에 했던 말은 그런 의미에서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드로시가 리키에게 낙관주의인지를 물었을 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애가 그렇지 못한다고 말했으나, 리키는 분명한 어조로
말했었다. 「가장 처참한 상태에 빠져 있었을 때라 할지라도, 저는
한번도 저의 꿈과 희망을 포기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분명한 낙관주의자예요.」 그렇다. 우리는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로 우리 마음속에 간직한 꿈과 희망으로부터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마음속의 천국에서 스스로 한 마리 영혼의 새가 되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의 순례자로 존재하는 한, 우리는 결코 먹구름속의
하늘이거나 진창의 먼 가시밭길에서 낙오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리키의 천국에는 언제나 변함없이 새가 있었으며 그것은 우리들의
천국에도 있다. 천국에는 새가 있다. 언제나 그랬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리키는 그 먼먼 방황의 여로에서 돌아와 마침내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 ---천국에는 새가 있다. ==끝==
천국에는 새가 없다를 끝내면서
'신념과 사랑과 희망을 통한 죽음과 부활의 진실' 프레드릭 플래취
박사는 이 책을 발간하면서, 자기 가족의 가 시밭길 20년을 굳이
책으로 엮어 내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진실 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었다고 말합니다. 신념과 사랑과 희망-그렇습니다. 우리는 리키의
참담한 투병 생활을 지켜보면서 인간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재산은
바로 이 세 가지 밖에는 더이상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가정이라는 토양 위에서 오늘도 가족이라는 나무는 자라고 있
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에 이르러 가정과 가족의 소중한
의 미가 점차 퇴색되어가고, 신념과 사랑과 희망이라는 인간 본연의
아름다운 정서마저도 나날이 고갈되어가고 있음을 봅니다. [천국엔
새가 없다'에서 리키는 이러한 시대에 자신의 가혹한 운명을 한 점
거리낌없이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오늘을 사는 모든 이에게 과연
무엇이 진정한 용기이며 행복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리키는
현재 세 아이의 엄마로, 그리고 단란한 가정의 주부로, 더 나아가
활기차게 사회활동을 해나가고 있는 캐리어우먼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한때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으나, 거기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 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리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현실이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감동적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 그녀를 통해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이것입니다. '이곳에서 누군가 웃고 있으면, 어디선가
누군가는 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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