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호킹의 우주
존 슬로우보우
스티븐 호킹의 우주
저자약력
스티븐 호킹.
1942년 1월 8일 영국 옥스포드에서 생물학자의 장남으로 태어남.
1959년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했고 이어 케임브리지 대학원을 다녔는데 물리학에
대한 남다른 재능은 대학시절부터 나타났다고 한다.
1963년 그는 루 게릭 병(정신 마비증세)에 걸렸으나 이삼 년밖에 살지 못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오늘날까지도 끊임없는 진리 탐구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그는 아내
제인 와일드와의 사이에 세 자녀를 두고 있는데 특히 그의 아내는 불치의 병으로
기동을 못하는 남편을 도와 단란한 가정을 꾸미며 위대한 천재의 재능을 꽃피우게
해왔다.
1985년에는 기관지절개수술까지 받아 말조차 할 수 없는 호킹은 청력을 잃은
베토벤이 장엄한 대교향곡을 작곡했던 것처럼 우주의 대서사시를 과학적으로 해석해
내고 있다.
그가 태어난 해인 1942년은 물리학의 천재 갈릴레이가 죽은지 300년이 되는
해인가하면 또 하나의 천재 뉴턴이 태어난 지 300년이 되는 기이한 해이기도 하다.
옮긴이 홍동선은 1934년 대구에서 태어나 연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로 '조선후기 실학의 대외의식'이 있고 역서로 크리슈나무르티의
'명상의 나무아래', 로버트 샤피로의 '닭이냐 달걀이냐', 에리히 얀치의 '자기
조직하는 우주', 스티븐 굴드의 '다윈 이후', 칼 세이건의 '혜성', 알프레드 드
보노의 '세계를 움직인 30인의 사상가'등이 있다.
감사의 말
이 책을 마련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분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 중에도 특별히
스티븐 호킹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는 나와 함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여러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나누었고, 수학과 우주의 아름다움을 자세히 설명했으며, 내 원고를
정성껏 읽어주었다 앤 K. 두비비에는 이 작업에 없어서는 안될 열성을 기울였고
필요한 사진들을 남김없이 모았다
아울러 머레이 겔만에게 사의를 표하고 싶다 그는 콜로라도 주 애스펀에서 버섯
따기를 하다가 시간을 내어 양자역학과 상대성 물리학의 상관관계를 풀이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스티븐 호킹의 현재와 과거의 동료들 이언 모스, 맬컴 페리,
킵 소온과 로저 펜로즈의 예리한 통찰력에 힘입은 바 크다
캐서린 보슬로우와 제임스 보슬로우는 나를 이해하고 뒷받침 해주었으며, 조디
콥은 그에 못지 않은 격려를 보냈다 더하여 내가 몇 차례 영국을 방문했을 때, 댄
오키피, 존 브로크먼, 카틴카 메이트슨, 디보라 엘리스 화이트와 더글러스 스텀프
그리고 린다 크레이턴과 스튜어트 파월이 나를 따뜻이 맞아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한다
책머리에
1974년 봄철의 어느 날 아침, 런던의 세인트 제임스 공원을 내려다보는 백색 주랑의
장엄한 대저택 계단으로 정장을 한 젊은이가 들려 올라가고 있었다 칼턴하우스
테라스 6번지의 그 건물 안에 들어가자, 그 사람은 휄체어에 실려 대회의실로
들어갔다
영국 최고의 명예로 손꼽히는 왕립협회의 회원 임명장을 받기 위해서였다 영국의
왕립협회는 세계에서도 가장 탁월한 과학단체의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 들먹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32세의 스티븐 월리엄 호킹은 협회사상 최연소 회원이 되었다 그가 쌓아올린 이론
물리학의 공적에 돌려진 찬란한 영예였다 17세기 이래의 전통에 따르면, 신입회원은
연단으로 걸어나가 회장과 악수를 나누고 회원명부에 서명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임명장 수여식은 그 전통을 여지없이 깨뜨리고 있었다 노벨 생물학상
수상자이며 학회장인 앨런 호지킨경이 회원명부를 들고 연단을 내려와 회의장
앞쪽에 자리잡은 호킹의 휄체어로
다가왔다 그 신입회원이 서명을 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을 동안, 장내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 그가 서명을 마치고 활짝 웃자,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런 지 7년 뒤에 나는 처음으로 호킹을 만났다 바로 그 임명장 수여식이 있던
회의장 바깥 복도에서였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수학자-이론 물리학자였던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가 우리들을 소개했다 펜로즈는 호킹의 오랜 친구요
연구동료였고, 바로 2년 전에 협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두 사람이 함께 연구를 한
성과가 그의 회원자격 획득에 한 몫을 했었다
1962년 이후 호킹은 운동신경 질환이라는 소모성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의
신경과 근육기능을 서서히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그는 걸을 수 없을 뿐만아니라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펜로즈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에게서 내 예상보다
건강상태가 훨씬 나쁠 거라는 말은 이미 듣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내 앞에 있는 휄체어에는 세계 정상급
과학자 한 사람이 쿨렁하게 내려앉은 채 실려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어림짐작으로 그의 몸무게는 50kg을 넘지 않아보였고, 얼마나
여위었는지 그의 키를 가늠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중키는 되어 보인다는
느낌으로 180cm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만 본다면 젊은 기운이
감돌았지만, 그의 몸뚱이는 오랜 세월을 누워서 살아가는 노인의 쇠락한 몰골이었다
펜로즈가 소갯말을 끝맺자, 호킹이 입을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얼마나 작은지 그 말을 듣기 위해선 내가 몸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말을 하려고
몸부림을 쳤고, 그의 목소리는 가쁜 숨소리로 뚝뚝 끊어지고 힘겨운 신음이나 다름
없었다 나는 펜로즈에게 도와달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는 얼른 호킹의 말을 통역했다
"다음 목요일 11시에 자기 연구실에서 만나자는데요"
그 대답이 있고 난 뒤에 나는 펜로즈에게 호킹이 무척 힘들어 하는 것 같지
않더냐고 물어보았다 그와는 반대로 호킹은 무척 기분이 좋아보이더라고 펜로즈가
말했다
그 뒤로 케임브리지와 미국에서 여러 차례 나는 호킹을 만났다 그럴 때마다 그가
어떻게 일을 해 내는지 의아하기 짝없었다 제 발로 걷지 못한 지가 벌써 12년을
넘어섰고, 그의 목소리는 얼마나 가냘픈지 아주 가까운 몇 사람들만이 겨우
알아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킹은 자기 세기에 있어서 이론 물리학의 가장
뜻깊은 몇 가지 업적을 거두었고, 우리들의 우주관을 바꾸어 놓았다
내가 호킹을 깊이 알게 됨에 따라, 그 진상이 점차 밝혀졌다 그가 강인하고도
집요한 인간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살고자 하는 그의
의지나, 그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지성의 힘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지난 20년에 걸쳐 그 불가사의한 질병이 그의 체력을 빼았고
신체를 황폐화했지만, 그의 정신생활만은 굳건히 지켜왔다
호킹의 정신은 제일 강력한 그의 도구이다 그것은 그의 일이고 장난감이며,
레크레이션이며 기쁨이다 한 마디로 그의 생명이다 그 정신이 집착하는 중대한
목표는 우리들이 그 안에 살고 있는 우주, 그 우주의 생성과 작용이며, 그 종말이
최대 관심사다 그의 휠체어는 그 일을 하는 데 특별히 유리한 고지를 제공하고 있다
완전히 두뇌로만 움직이는 인간, 그 자유로운 정신이 자유를 누릴 때 인간지성의 힘이
우주를 어떻게 헤아릴 수 있는가를 그는 웅변하고 있다
1. 쿼크와 퀘이사
"인류 역사상 가장 끈질기고도 위대한 모험이 있다 우주가 어디서 와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자그마한 은하계의 보잘것없는
항성 주위를 돌고 있는 쬐그만 행성의 한 줌밖에 안 되는 주민들이 우주 전체를
완전히 이해하려고 덤비다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모험이 아닐 수 없다 한 줌 밖에
안 되는 피조물이 전체를 완전히 꿰뚫을 수 있다고 진정으로 믿고 있다는 말이다"
머레이 겔만(역주-머레이 겔만 Murray Gell-Mann. 1925~: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로
소립자론을 연구, 196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의 말이다
그는 이 모험에 참여하고 있는 이론 물리학자 그룹의 한 사람이다 그들은 우주의
심장에서 일어나는 단 하나의 상호작용, 우리들을 에워싸고 있는 일체의 현상을
풀이할 상호작용을 찾고 있다
이처럼 단 하나의 상호작용을 찾아내려는 과제는 너무나 방대하여 아인슈타인마저
그 정체를 잡아내지 못했다 그는 일생의 마지막 30년을 통일성을 찾는 데 바쳤으나
끝내 성공할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 사후 30년이 되는 오늘날 우리들은 그 목표에
좀더 가까이 가 있다 그러나 우주 안에서는 여전히 층을 이루고 있는 몇 가지
법칙들이 서로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이 자연의 기본법칙들 가운데서 제일 두드러지는 것이 중력 gravity이고,
우주에서 가장 큰 물체-항성, 행성, 여러분과 나-를 지배한다 과학자들이 벗겨놓은
이 밖에 셋은 아원자 수준에서만 작용한다 중력보다 수조 배나 강한 강행력(역주-
강핵력 strong nuclear force: 중성자와 양성자를 결속하여 원자핵을 형성시키고 있는
힘으로 중간자에 의해서 매개)은 원자핵을 한데 묶어준다
전자기력(역주-전자기력 electromagnetism: 전자를 원자핵에다 속박시키고 있는
힘으로 광자에 의해 매개)은 원자핵 둘레에다 전자들을 잡아두고, 일반 물질이
단단하게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약핵력(역주-약핵력 weak nuclear force: 원자핵은 자발적으로 붕괴하며 핵내의
중성자는 양성자로 전환하면서 전자와 반 중성미자가 탄생되어 핵외로 방출된다
이같은 붕괴현상을 지배하는 힘)은 우라늄과 같은 일정한 원자의 방사성 붕괴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아인슈타인은 수학의 늪 속을 헤매었지만, 끝내 서로 다른 이 자연법칙들을 하나로
어우를 수 없었다 그는 그들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단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궁극적이고 단순한 무엇이 있으리라 마음 속으로 믿고 있었다 이 믿음은
순전히 미학적인 호소력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만물을 해석하면서도 그 이상은 쪼갤
수 없는 일련의 방정식이 있다는 사상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물리학자들이 그와 같은 통일법칙이 가능하리라 믿고 있지는 않다
오스트리아의 이론가 볼프강 파울리(역주-볼프강 파울리 Wolfgang Pauli: 1900~58:
스위스의 이론 물리학자로 1924년 스핀을 최초로 도입하여 '파울리의 원리'를 발견
194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는 한때 이런 농담을 했다
"하느님이 흩어놓으신 것을 인간이 어찌 합칠 수 있겠느냐" 그런데 통일이론이란
과학이 계속해서 발전하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할 무엇은 아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에드먼드 힐라리 Edmund Hillary 경은 왜 그런 고생을 하며
산을 오르느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대답했다 물리학자들이
통일이론을 추구하는 이유도 그와 마찬가지다
이 법칙이 발견된 뒤에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두 가지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그 하나는 과학의 새로운 황금시대를 열게 되리라는 기대다 과학자들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아인슈타인의 물질과 에너지 통일론이 원자시대를 열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양자역학(역주-양자역학 quantum mechanics:
플랑크의 양자가설을 계기로 해 등장한 전기 양자론의 결함을 극복하여 수뢰딩거,
하이젠베르크, 디렉 등에 의해 건설된 물리학 이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양자역학이란 아원자 입자 들의 운동을 설명할 때 물리학자들이 사용하는
수학체계이다 최초의 레이저를 만드는 데 이 원자가 이용되리라고는 아무도 내다보지
못했다 어쨌든 통일이론은 일부 과학자들에게 종교적 비전이라고 해야 할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자연 속의 모든 힘과 물질이 단 하나의 근원에서 나오는 실재의
선법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세상을 한번 둘러보자 그처럼 다양한 힘이 하나로 뭉칠 수
있을 듯한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들은 저에너지의
싸늘한 우주에서 살고 있고, 그 안에서는 힘과 물질이 안정되어 서로 떨어져 있다
그러나 우주가 처음부터 현재와 같은 모양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우주는 발생하는
순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갓난 우주는 그렇게 식어감에
따라 길표지를 남겼고, 물리학자들은 그 길표지들을 더듬으며 태초로 돌아가고 있다
그 곳, 대폭발(역주-대폭발 Big Bang: 미국의 물리학자 조지 가모프에 의해 제창된
아이디어로, 우주는 아주 작은 점이 폭발하여 탄생했다는 것, 이 대폭발 이론은
우주론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는 빅뱅이 일어났던 순간, 또는 그 직후에
우주를 푸는 열쇠가 있다고 대다수의 물리학자들은 믿고 있다
그 찰라에는 4개의 힘이 태초에 격변이 일으키는 치열한 에너지 속에 함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말을 바꾸어, 1초의 몇 분의1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만은 단
하나의 상호작용으로 존재했다 이 상호작용은 기초적인 원리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이어서, 그 뒤의 모든 힘들은 거기서 내려 왔다
수학으로 재구성하는 최신방법을 사용하는 이론 물리학자들이 있다 그들은 빅뱅
직후 10억조 분의 1초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일어난 현상을 제법 그럴 듯하게
밝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실로 눈부신 업적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의
방정식만으로는 자연의 모든 힘과 법칙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그 순간을 볼 수
있을 만큼 시간적으로 태초의 결정적 순간에 접근하지 못했다
우주의 역사상, 그 뒤의 여러 단계마다 네 가지 힘 가운데서 어느 하나가 그 시간대
또는 시대를 지배해 왔다 민주체제 하에서 여러 정당들이 시대를 달리며 집권당이
되는 것과 같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우주 또는 세계에서는 제일 약하면서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중력이 으뜸가는 힘이다 그 인력은 광막한 저쪽-은하계, 항성과
퀘이사(역주-퀘이사 quasar: 강력한 전파와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는 항성상 천제로,
현재 약 150개가 발견되었다 밝기는 태양의 1조배, 크기는 성운에 비해 꽤 작다)까지
미친다
퀘이사란 우주 안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지고, 가장 적게 알려진 천체들이다 우주의
일생은 140~150억년으로 짐작되며, 중력은 우주역사의 거의 전기간에 걸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그 이전, 빅뱅 직후의 몇 초 동안에는 약핵력이 우세했고,
그 이전에는 전자기력이 군림했다
한편 대폭발 직후의 첫 몇 십억 분의 1초 동안에는 거의 완전히 강핵력이 지배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순간에는 물질과 에너지가 하나였고, 별과 은하계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우주의 역사에 있어서 그보다 수십억 분의 1초전에는 에너지가 너무 강렬하여
네 가지 힘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절대다수의 이론 물리학자들이 그 시나리오를 굳게
믿고 있다
"물질들이 제대로 식어버렸을 때에는 네 가지 힘이 갈라지고, 그 밑바닥에 깔린
상호작용이 보이지 않게 된 거에요 그 이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를 주위에 있는
모든 수학적 도구를 사용하여 밝혀내는 것이 이론 물리학자들의 임무라고 하겠지요"
하버드 대학교의 이론가 셸든 글래쇼(역주-셸든 글래쇼 Sheldon Glashow 1932~: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로 소립자의 전자기적 연구로 소립자의 전자기적 연구로
와인버그 살람과 함께 물리학상을 수상했다)가 1982년 8월 어느 비오는 날 애스틴
물리학 연구소에서 나에게 한 말이었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문제를 풀려고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주의 생성 초기에 모든 상호작용이 하나로 뭉쳐 있었다는 걸 증명한
사람은 아직 없거든요"
글래쇼는 밑바닥에 깔린 그 상호작용을 찾아내려는 일을 앞장서 해왔다 1960년대에
그는 이 통일력을 이끌어내려고 일정한 단수명 아원자 입자들을 무리지으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접근법을 따라 파고들면 들수록 설명할 수도 없고 실효성도
없는 무한수식들이 쏟아져 자왔다
당시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 있던 스티븐 와인버그 Steven Weinberg와 런던의
임피어리얼 대학에 있던 압두스 살람 Abdous Salam이 그보다는 나은 성과를 올렸다
1967년에 그들은 독자적으로 연구한 일련의 방정식을 제시했다 만일 현상을 흐리게
하는 어떤 요소들을 무시하기만 한다면, 약핵력과 전자기력이 하나로 뭉칠 수 있음을
입증해주는 방정식들이었다
와인버그-살람 모델에는 대단한 매력이 있었다 그에 따르면, 물리학자들이
원자력의 여러층들을 벗겨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입자 가속기(역주-입자 가속기
particle accelerator: 전자나 양성자 같은 하전입자를 강력한 전기장이나 자기장
속에서 가속시켜 큰 운동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장치)는 원자 분쇄기 atom smasher의
특수한 조건 하에서는 일정한 현상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미리 내다볼 수 있었다
와인버그, 살람과 글래쇼는 이 공적으로 1979년 노벨 물리학상을 함께 받았다
1970년대에는 또 다른 물리학자들이 그와는 다른 일단의 계산법을 개발했다
약핵력과 전자기력은 하나일 뿐만 아니라 원자핵을 하나로 묶어주는 강핵력도 그
일족이라는 것을 밝히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와 같은 유형의 계산법을
대통일론(역주-대통일론 grand unified theory(GUT): 전자기력 강핵력 약핵력을
통일하는 이론) 또는 줄여서 GUT라 부른다
어떤 과학자들은 대통일론 접근법이 정확히 과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머레이 겔만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통일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대(큰 대)자를 붙일 대상도 아니에요 심지어 이론이라고 할 수도 없고, 기껏 미화된
모델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그는 근원적인 상호작용을 추구하는 데 있어 그
접근법이 가장 전망이 밝은 길로 들어갈 수 있는 길잡이가 되리라는 점은 인정한다
겔만은 스스로 쿼크(역주-쿼크 quark: 소립자의 복합모델에서의 기본 구성자로
1964년 미국의 겔만 등에 의해 도입되었으며, 현재 우주선 가속기 등으로 그 실재를
확인중) 개념을 창시했다 쿼크란 아원자 입자(역주-아원자입자 subatomic
particle: 원자보다 더 작은 입자 소립자나 원자핵 따위다) 중에서도 아원자 입자이다
대다수의 이론가들은 쿼크를 양자와 중성자의 기초입자라고, 그리고 우주 안의 모든
원자들의 핵은 양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고 있다 겔만은 그와 같은 개념을
구상하여 이름을 '쿼크'라 붙였다(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피네건스 웨이크 Finnegans
Wake'에 나오는 "미스터 마크에게 세쿼크"라는 구절에서 빌려온 용어였다) 그
이전에는 이론 물리학이 일대 혼란에 빠져 있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초에
가속기에서 발견된 수 십개의 새로운 입자들을 처리하는 데 참담한 실패를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겔만이 쿼크를 합성하여, 입자 물리학자들은 다시 한번 원자핵을
어느 정도 질서가 잡힌 독자적인 소우주로 보게 되었다
겔만은 네 가지 힘의 통일을 보고싶어 한다 하지만 그의 생전에 그런 일이
일어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원자 안에서 작용하는 세 가지 힘이 같은 뿌리임을
입증한 사람이 아직 없다 어떤 사람들이 그 경지에 상당히 접근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나에게는 아직 알려오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면 우리들이 가장 익히 알고 있는 힘, 곧 중력은 어떤가? 대통일론의 어디에
맞아들어 가는가? 입자 물리학자들은 원자 안에서 밀고 당기는 세 가지 힘을 가지고
우주의 통일이론에 접근하고 있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중력은 여전히 따로 떨어진
힘으로 남아 있다 지금 입자 물리학자들은 거대한 입자 가속기를 가지고 원자 내부의
소우주를 들여다보고 있고, 한편 우주학자들은 망원경을 가지고 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양자는 동일한 사물을 보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우주학의
광대무변한 영역과 원자 안의 소우주가 마침내 하나로 수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력은 전과 다름없이 따로 불거져 나와 있다
현재 몇몇 과학자 그룹들이 중력을 다른 셋에 덧붙여 네 가지 힘을 모두 통일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겔만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그들의 절대 다수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거든요" 그러면서도 조금은 주의깊게 우주의 위대한
비밀을 향해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룩할 가능성이 있는 이론가 집단이 하나쯤 있다는
점만은 시인했다
그 집단을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스티븐 호킹이 이끌고 있다 겔만이 말을
이었다 "호킹은 입자 물리학을 이해하면서 상대성 쪽에 서 있는 유일한 인물이에요
탁월한 인물, 놀랍기 짝없는 사람입니다"
2. 강적과 맞서다
스티븐 호킹은 유복한 집안의 네 자녀 가운데 맏이로 책을 무척 좋아했다 그의
아버지는 국립 의학조사 연구소의 열대병 조사를 담당한 생물학자였다 스티븐 호킹은
1942년 1월 8일 옥스퍼드에서 태어났고, 런던과 런던에서 북쪽으로 20마일 가량
떨어진 세인트올반스 시에서 자랐다 11세에 세인트올반스학교라는 사립학교에
들어갔으며, 부모는 아들이 그 학교를 거쳐 옥스퍼드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기를
원했다
8~9세쯤 되었을 때, 그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굳어갔다 시계와
라디오를 뜯어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알 만큼의 손재주가 있었고, 자기 주위의
사물에 담겨 있는 진리를 찾아낼 수 있는 길이 과학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십대에 이미 과학의 태반이 극히 부정확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내가 보기에는
생물과학들이 지나치게 서술적이고 막연하더군요 물론 요즘에는 분자
생물학(역주-분자 생물학: 생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고분자 화합물, 특히 핵산과
단백질의 분자구조를 통하여 생명현상을 설명하려는 학문) 덕택에 훨씬 정확해지기는
했습니다만" 호킹이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하는 말이다
14세가 되자, 그는 수학자나 물리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호킹의 아버지는
아들이 영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까 두려웠고, 길을 바꾸라고 달래어 보았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시기에 호킹의 마음속에는 회의가 싹텄다 15세 때의 일이었다 1950년대에 듀크
대학교의 초감각 지각 연구계획에 따라 실시했던 주사위 실험을 해본 적이 있었다
얼마 동안 듀크 실험을 면밀히 실시한 뒤에, 초감각 지각이란 속임수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실험의 성과가 있을 때에는 실험기법에 잘못이 있더군요 그리고 실험기법이
건전할 때에는 성과가 좋지 않았어요" 호킹이 그 당시를 돌아보며 하는 말이다
지금도 그는 초심리학이란 시간낭비라 생각하고 있다 그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십대에 도달했던 그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이처럼 가끔 조숙한 재능이 엿보이긴 했지만,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부모님들은 옥스포드 대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지지 않을까 몹시
걱정을 했고, 옥스퍼드 출신인 아버지는 아들의 입학을 굳히려고 연줄을 잡으려 힘을
기울였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아들을 얕잡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
물리문제는 거의 만점을 받았고, 면접시험에는 아주 뛰어나서 합격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59년에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에 들어갔다
옥스퍼드에서 호킹은 인기있는 학생이었다 그의 해학이 교내에 알려졌고, 한때는
단과대학의 8인 조정팀이 키잡이를 하기도 했다 그 시절의 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장발에 고전음악과 공상과학 소설을 즐기던 재기발랄한 젊은이를
떠올린다 거기에다 독자적으로 자유분방하게 공부를 했다 그런데도 지도교수였던
로버트버만 박사는 그 시절을 회고하며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있다 그를 비롯하여
여러 교수들은 호킹이 "동기생들과는 완전히 다른" 일류의 정신력을 갖춘 학생임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는 물리학에는 너무 뛰어나 별로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 버만은 이렇게 말한다
"학부의 물리학이란 그에게는 전혀 도전의 대상이 될 수가 없었지요 어떤 문제든
주면, 연습도 없이 바로 그 자리에서 풀었습니다" 하루는 강의실에서 자기가 작성한
해답을 읽고 난 뒤에 종이를 똘똘 뭉쳤다 그러고는 강의실 저쪽에 있는 휴지통을
향해 같잖다는 몸짓으로 휙 던져버렸다
호킹은 중대한-그러나 편리한-순간에 적절히 잊어버리는 재주가 있었다 옥스퍼드의
졸업반이 되었을 때, 영국 건설부의 채용시험에 응시하기로 하고 원서를 냈다 그런데
깜빡잊고 시험장에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서 합격이라도 했었다면, 영락없이
그는 국내의 기념건물이나 지키는 일자리에서 일생을 마쳤을 것이다
졸업을 하게 되었을 때, 호킹은 수석을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곳에서
동북쪽으로 8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옛부터의 옥스퍼드의 라이벌,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물리학 석사과정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의 운명을 가름하는
구두시험에서 시험관에게 그는 자기 계획을 털어놓았다 "제가 수석을 하면,
케임브리지에 가게 될 겁니다 하지만 차석을 하면 옥스퍼드에 남겠습니다 그러니까
수석을 제게 주셨으면 합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순수한 호킹
스타일이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 한다
버만 박사는 뒷날 호킹과 시험담당 교수들과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들은 자기네들보다 지적으로 뛰어난 누구와 말을 하고 있었던 거에요 그리고 그
사실만은 알 만한 지각이 있었던 거지요" 호킹은 수석을 차지했고, 이듬해
케임브리지의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즈음 호킹은 일생의 과제를 이론 물리학(역주-이론 물리학: 계산과 추론 따위
이론적 연구를 주로 하는 물리학으로 물성 이론 원자핵 이론 소립자론 따위가
있다)으로 설정하고 우주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했다
물리학의 다른 분야를 검토하기는 했었지만, 잠시 지나가는 생각일 뿐이었다
언젠가 왕립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특별 하계강좌를 받는 동안, 그 당시 영국 왕립
천문학자 리처드 울리 Richard Wooley경을 도와 이중성의 성분을 측정했었다 그는
천문대의 망원경을 들여다보고는 깊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거기에는 초점을
들락거리는 흐리멍덩한 빛점 한 쌍이 있을 따름이었다
그 뒤로 한두 번 망원경을 들여다 보았을 뿐, 오늘날까지 관찰 천문학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호킹에게는 언제나 이론이 훨씬 흥미진진했고, 우주학이 그
중에도 가장 자극적이었다 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질문이 거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대학원 과정에 들어설 때에 이미 정상급 이론 물리학자의 싹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에 런던의 킹즈 대학의 연구조수로 있던 로저 펜로즈는 그 시절에 호킹을 처음
만났던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걸핏하면 아주 난처한 질문을 던지곤 했어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었으니까요 언제나 상대의 논리 가운데서 가장 취약한 점을
정면으로 겨냥했거든요 하지만 당시로서는 그가 어느 정도로 독창적인가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심각한 질병의 조짐들이 처음으로 나타난 때가 대학원 1학기 초였다 호킹의 섬세한
손재주가 뚝 떨어지고 가벼운 마비증세가 일었다 구두끈을 매기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이따금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의사들도 처음에는 진단을 내리는 데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근위축성 측색경화증 또는 운동신경 질환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보기 드문 불치의 병이었다 뉴욕의 양키즈 야구팀의 1루수 루 게릭이
그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때로는 루 게릭 병이라고도 한다 바로 그 질병으로
1983년에는 영국 배우 데이비드 니븐(역주-데이비드 니븐 David Niven 1909~1983:
'폭풍의 언덕', '천국의 계단'과 '80일간의 세계일주' 등의 명작을 남겼다)이 숨을 거두었다
운동신경 질환은 수의근 활동을 조절하는 척수와 뇌의 신경세포들을 점진적으로
무너뜨린다 첫 징후로는 손의 힘이 빠지고 비틀거리며, 말이 느려지거나 음식
삼키기가 어려워진다 신경단위인 뉴론이 제 구실을 멈춤에 따라, 그 조정을 받던
근육이 위축된다 정신은 맑은 데도 환자는 점차 불구가 되어간다 마지막으로 호흡기
근육이 시들면, 으례 폐염이 걸리거나 질식으로 목숨을 잃는다
담당의사들은 호킹의 질병이 안정되기를 바랐지만, 그의 증세는 계속해서
악화되기만 했다 겨우 2~3년쯤 살 수 있으리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 예후에 대단히 우울했지요" 호킹이 그때를 되돌아보며 하는 말이다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등져야 한다는 생각에 숨막히는 우울에 잠겨 2년을
보냈다 그 동안 연구는 거의 내팽개치고, 방안에 틀여박혀 고전음악-주로 바그너-을
듣고 공상과학 소설을 읽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뿐만 아니라 그때부터 "제법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의 지도교수는 이론 물리학자 데니스 시애마 Dennis Sciama였고, 케임브리지에서
일반 상대 그룹을 이끌고 있었다 그는 자기 제자의 잠재력을 잘 알고 있었고, 그의
질병을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들이 무얼 토의하고 있으면, 그는 반드시 감을
잡아내더군요 우수하다고 하더라도 다른 학생들은 2-3년 걸릴 일을 스티븐은 불과
한달이면 거뜬히 해내니까요 어떤 명제를 내놓던 거의 예외없이 으레 '그러나...' 하고
토를 달고 나서는 거에요" 시애마는 호킹이 우울 속에 빠져 허위적거리는 걸 그대로
버려두었다 괴로움을 잊기 위해서 곤드레만드레가 되도록 술을 마신다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논문을 쓰고 싶지 않다고 했을 때에는 가슴이 아팠다 호킹의 아버지는
아들이 빨리 논문을 완성하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시애마는 한 마디로
거절했다
몇 달이 지나면서 호킹의 상태는 마침내 안정되기 시작했다 죽음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의욕이 솟아올랐다 친구 가족과
지도교수의 격려를 받자 선천적인 그의 쾌활한 기질이 되살아났다 아울러 자기는
순전히 두뇌만을 동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사실상
인간의 체력을 강조하고 의지해야 할 필요는 거의 없었다 그의 정신만은 질병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고, 따라서 그의 연구활동에 영향을 줄 리 없었다 우울증이
가시고, 시애마는 그를 재촉했다 호킹은 다시 논문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즈음에 호킹의 일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 어느
파티에 참석했다가 런던 대학의 언어학 전공 여학생 제인 와일드 Jane Wilde를 만난
것이다 런던과 케임브리지를 오가며 2년 동안 계속된 구애 끝에 그들은 1965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분을 처음 보았을 때 벌써 그 첫 조짐이 보였어요 그러니까 전
몸이 성한 스티븐을 본적이 없지요 저는 그 뒤에 하게 될 일을 하기로 결심했고,
그대로 한 것뿐이에요" 제인의 말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은 호킹에게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때부터 살아가기로, 일을
게속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정말이지 제인은 나에게 삶의 의지를 준 은인입니다"
그녀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제인 와일드 호킹을 비범한 여성이라고 감탄한다 결혼
첫 해에 그녀는 석사과정을 마치기 위해서 런던과 케임브리지를 통학했고, 한편으로는
남편의 논문을 타자했다 거의 20년에 걸쳐 제인은 호킹의 신체수발을 해 왔다
그리고 호킹에 신체적 불구와 최근에 와서 높아진 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호킹
가족은 비교적 차분하고 평범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첫아이 로버트는 1967년에
태어났다 그로부터 3년 뒤에 딸 루시가, 1979년에는 아들 티모시가 세상에 나왔다
제인을 비롯하여 스티븐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보호본능을 나타내긴
하지만, 한결 같이 스티븐의 신체조건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분은 자기 질병에
양보하는 법이 없어요 그리고 나 역시 그분에게 양보를 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땐가
제인이 한 말이었다 부부생활의 중대한 문제는 남편의 신체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가 남편의 이론 물리학 연구의 구석구석까지 쫓아갈 수 없는 데 있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뒤 3년 동안 호킹은 케임브리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펜로즈와 협력하여 그로서는 최초로 주요 연구과제인 시간의 출발점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의 건강이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고, 1970년 초에 이르자
호킹은 완전히 휠체어에 묶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의 정신은 하늘을 날았다
1974년에 왕립협회 회원이 되었다 10년 전에 25번째 생일을 맞이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한 인간에게는 충격적인 승리였다
제인과 스티븐 호킹 부부에게 있어 그때가 직업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 뒤로는 스티븐의 건강은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그러나 몇몇 동료들은
지난 1~2년에 그의 말을 알아듣기가 훨씬 어려워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친구의 일부, 특히 정기적으로 그를 만나지 않는 친구들은 적잖이 우려하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전반적으로 그의 병세가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호킹은 케임브리지의 응용수학과 이론 물리학부에서 일하고 있다 이 학부가 들어가
있는 우중충한 벽돌 건물은 케임브리지의 고딕 건물과 첨탑 사이에 버려진 19세기의
공장 건물을 연상시킨다 건물 뒤쪽으로 다시 골목이 있으며, 호킹이 회전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갈때 이용하는 길이 25피트의 경사로가 있다 그의 집은 반 마일
가량 떨어진 웨스트로드 거리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가옥 1층이다 거기서 모터를 달고
있는 휄체어를 타고 매일 출퇴근한다
별로 마음을 끌지 않는 잿빛 휴게실을 마주하고 있는 그의 연구실은 과학자들의
그것답게 투박하다 거기에는 물리학 교과서들이 잔뜩 꼳힌 서가와 컴퓨터 단말기,
귀여운 자녀의 사진들, 그리고 호킹이 대학 행정처와 싸움을 벌여 얻어낸 특수 책장
넘기개가 있다 그와 더불어 특수장치를 한 전화기 한 대가 있지만, 요즘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과학논문 목록들은 쉽게 검토할 수 있도록 벽에 잔뜩 붙여놓았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호킹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당시에 그의
비서였던 젊은 여인 쥬디 펠라의 통역으로 그 가냘프고도 단조로운 목소리를 몇 시간
동안 들었다 그때 그가 말하는 것을 절반쯤 밖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함께 몇년
동안 일을 했던 펠라도 몇 마디는 알아 듣지 못했고, 할 수 없이 호킹이 힘들여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미국인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원인의 일부가 그의 영국
억양에 있다고 했더니 그는 적잖이 재미있어 했다
일을 할 때에는 그의 몸뚱이가 때때로 그의 휠체어에 축 쳐져 내려 앉았고, 이따금
그의 머리는 그의 가슴에 풀썩 내려 덮였다 머리와 얼굴의 움직임을 전혀 조절하지
못하고, 가끔 짓는 미소마저 금방 찡그리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의
연구실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호킹은 장난꾸러기와 같은 웃음으로 나를 맞았고,
묵직한 안경 뒤에서 그의 파란 눈이 빤짝였다
희끗희끗한 그의 갈색머리는 초기 비틀즈 스타일이고, 과학자들이 으레 차리는 대로
그는 과학자들의 판에 박힌 옷을 입었다 풍덩한 바지, 굵직한 줄무늬 셔츠, 체크
무늬나 트위드의 스포츠형 상의, 지나치게 화려하여 잘 어울리지 않는 넥타이를 매고
있다 거기에다 캠퍼스에서 즐겨 신는 운동화나 신 바닥이 부드러운 부츠를 신었지만,
밑바닥이 닳지 않은 것이 유난히 눈에 띈다
호킹은 사물을 세심하고 철저하게 생각하고 난 뒤에야 말을 한다 따라서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 또 말을 허비하지 않는다 때로는 비서가 들어와서 다른 일을 하거나
차를 마시기 위해서 몇분 동안 말을 중단한 뒤에도 전에 하던 말의 중허리에서 다시
이어간다 그리고 자신의 신체적인 제약을 완전히 잊어버리기 때문에, 나도 자리를
함께 하고는 금방 그의 행동에 물이 들었다
이처럼 그의 신체조건을 깡그리 잊어버리던 어느 날 나는 그와 함께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며칠 전에 나는 런던에서 스코시 경기를 하다가 팔꿈치를 조금
다쳤었고, 무심코 나는 그 일을 화제에 올렸다 호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휠체어를 몰고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러고는 내가 핵심주제인 이론 물리학으로
돌아갈 때까지 복도에서 기다렸다
연구실에 나와서 호킹이 하는 일은 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론 물리학의 문제들을
푸는 새로운 접근법을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의 동료인 이언 모스 Ian
Moss가 어느 날 아침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아이디어는 모두 스티븐의 머리에서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과연 실효가 있는지를 실험하는 일을 할 뿐이에요"
호킹은 상상을 넘어서는 기억력을 타고났다 보통 사람이 문장 하나에 낱말들을
배열하듯, 수학의 상형문자들을 짜맞추며, 여러 장에 걸쳐 이어지는 복잡한 방정식을
풀고, 그들을 고스란히 기억할 수 있었다 앨버타 대학교의 워너 이스레이얼 Werner
Israel은 이론 물리학자요 호킹과 함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지은 연구동료이다
그는 호킹의 위대한 기억력은 머리 속에서 교향곡을 와벽하게 지어낼 수 있는
모차르트의 그것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동료들은 호킹의 무서운 기억력 앞에서 언제나 넋을 잃고 경탄해 마지 않는다
비서 한 사람이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을 방문하는 호킹을 따라갔었다 한 번은 호킹이
기억하고 있던 40쪽 길이의 방정식을 받아 적었는데, 그런 지 24시간 뒤에 사소한
실수를 기억해내고 다시 고쳐 쓰도록 했다
내가 호킹의 제자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어느 땐가 그가 호킹을
자동차에 태우고 물리학회에 참석하려고 런던으로 가던 중에 있었던 일이다 호킹은
몇 년 전에 읽은 어느 책의 사소한 실수를 기억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실수가
나오는 책장의 쪽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다른 물리학자들은 그의 머리 속에서
완성되어 나오는 복잡한 방정식들은 정교할 뿐만아니라 영감이 배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론 물리학자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 수 없다
호킹의 연구성과에 끌려 대서양을 둘러싸고 있는 아메리카와 유럽의 빼어난 이론
물리학자들이 케임브리지로 몰려들고 있다 거의 날마다 점심시간과 중간휴식의
티타임에 그들은 으레 한 자리에 모여 내용은 영락없이 21세기의 공상과학 소설이다
적색편이(역주-적색편이 red shift: 먼 곳에 있는 성운의 스펙트럼 선이 파장이 약간
긴 쪽으로 몰려 있는 현상)와 양자효율 quantum effects에서, 그들의 환경을 헤아릴
수 없는 광년의 거리와 시간을 뛰어넘고 블랙홀(역주-블랙홀 black hole: 질량이 크고
밀도가 높은 항성은 중력도 그만큼 크다 땅 위에서 공을 던지면 지구의 중력에 의해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항성은 주위의 모든 물체를 끌어당길 뿐 아니라
빛까지도 흡수,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블랙홀)과 특이점(역주-특이점
singularity: 아무 차원도 없고, 무한대의 밀도와 중력만 있는 상태)을 들먹인다
숨쉴 틈도 없이 이야기는 펼쳐지고, 휘몰아치는 반론과 촌철살인의 경구들이 간간이
양념을 친다 "이봐, 호킹이 벌써 늙었는가봐" 호킹이 아주 미미한 수학적 실수를
하자 어느날 대학원생이 이죽거린다 호킹은 이런 소리가 귀에 들리면 새로운 힘이
솟고, 토론의 열기는 그날의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언젠가 그의 제자 한 사람이
호킹과 티타임을 갖는 쪽이 다른 사람과 한 학기를 보내는 것보다 일깨워주는 바가 더
크다고 말했다
사실 호킹이 지금까지의 업적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놀랍기 그지 없다
의사들은 그가 살아 있다는 현실이 곧 기적이라 믿고 있다 또 호킹의 질병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의 어느 의사는
그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곧 의학사에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노라고 말했다
그처럼 극적인 발언을 할 때마다, 호킹의 동료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호킹의 지도
아래 석사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프린스턴 대학교의 물리학 교수로 있는 맬컴 페리
Malcolm Perry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호킹은 역시 호킹이에요 그는 그런 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들도 마찬가지에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테크)의 지질학 및 물리학자인 제럴드 워서버그 Gerald
Wasserburg는 각종 회의석상에서 호킹을 만난 뒤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혔다
"인간지성의 과학사에는 놀라운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장 경이로운
귀감으로 손꼽혀야 할 겁니다"
그러나 빈틈없이 짜여진 물리학계 내부에는 호킹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정상급 이론가 한 사람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하고 있는 연구를 하고 있는 거에요 신체조건이 그러니까 훨씬 많은
주목을 끌고 있을 뿐이지요" 그리고 과학회의에 참석해서는 지나친 연극을 하거나
논쟁을 일삼는다고 비난하는 물리학자들도 없지 않다
이와 같이 다혈질적이고 시기심이 있는 동료들과는 갈등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호킹의 업적은 다방면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78년에 그는 이론
물리학의 최고 영예라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상을 받았다
1982년 한 해만 해도 노터데임 대학교, 시카고 대학교, 프린스턴과 뉴욕 대학교에서
그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에게 대영제국 사령관의
호칭을 수여했다 언론 매체들은 호킹을 20세기 후반의 아인슈타인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호킹은 그와 같은 여러 주장들을 으레 들이대는 한 마디로 잘라버린다
"무얼 읽는다고 닥치는 대로 믿지는 않습니다"
3. 갈릴레이의 눈
17세기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역주-갈릴레오 갈릴레이 Gallieo Galilei
1564~1642: 이탈리아의 천문 물리학자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를 관측, 목성에도 달과
같은 위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관측에 의거해 지동설 등 전파, 교황청의 탄압을
받았다)는 20세기 최고의 과학자일 수 있다는 것이 스티븐 호킹의 견해다 호킹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는 상징과 물리의 양면에서 자기 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최초의 과학자였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누리고 있는
과학시대의 선도자였습니다"
"게다가 자기 눈을 활용하여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지요 아울러 그는 목격한 대상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행동한 거에요 정확한 해답을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일단 자기가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거기서 벗어나지 않았어요"
갈릴레이가 떠난 뒤 34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과학자들도 그 이상의 자세와 방법을
구사할 수는 없다고 호킹은 굳게 믿고 있다
"갈릴레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과학자들도 주류를 벗어나 그 밖으로 걸어나갈
채비를 해야 하는 겁니다 현재 공인되고 있는 사상의 틀을 벗어나 멀리 나아갈
준비를 해야한다는 말이에요 앞으로 나아가려면 그 길밖에 없지요" 그는 몇 초
동안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웃다가 말을 이었다 "물론 어느 길로 발을 내딛는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주류를 멀리 벗어난 사람들이 매주 몇 통씩의 편지를 호킹에게 보내고 있다
그는 그 편지들을 읽고 적잖이 재미있어 한다 그 중 한 통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미국의 미시간 주에 사는 어떤 사람이 보낸 편지로 종이 한 장에 갈겨쓴 방정식이
어지러웠다 호킹이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우주의 비밀을 발견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지만, 갈릴레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갈릴레이는 호킹-아울러 아인슈타인과 뉴턴-의 지성적인 직계조상이었다 그는,
자연 속에 가장 널리 퍼져 있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약한 힘이라고 할 중력을 규정한
최초의 과학자였다 갈릴레이 이후에는 당초의 설명을 수정하고, 다시 뜻매김하며,
조정하는 문제로만 일관했다 뉴턴은 갈릴레이를 수선하고 좀더 세련되게 다듬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기본법칙들의 날을 세우고 폭을 넓혀 온 우주를 포함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호킹을 비롯한 다른 우주 연구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역주-일반 상대성 이론 general relativity: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에
의거하여 전개한 이론의 하나, 관성에 대한 질량과 중력 질량이 같다고 하는 '등가의
원리'를 출발점으로 하여, 고속도 운동에 대해서도 상대성이 성립한다고 가정)에
똑같은 손질을 하려고 노력중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이란 우주학자들의 가장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중력과 그 힘의 현대적인 해석이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독일의 과학잡지 '물리학 연감 Annalen der Physik' 제 17권에
3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때 아인슈타인의 사상은 혁명적이었다 당시로서는 이
논문들이 과학사의 방향을 바꿔놓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첫째 논문은
통계역학을, 그리고 둘째 논문은 아인슈타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광전효과(역주-광전효과 photoelectric effect: 어떤 종류의 금속이나 반도체 등에
빛을 조사하면 전자를 방출하거나, 전기 저항이 변화하거나, 기전력을 발생하는
현상으로 1888년 할박스가 발견)를 다루고 있다
셋째 논문은 바로 우리들이 시간과 공간을 바라보는 자세를 영원히 바꿔놓게 되는
폭탄선언이었다 나중에 이름이 붙여지게 되듯 특수 상대성 이론(역주-특수 상대성
이론 special relativity: 서로 등속운동을 하고 있는 관측자에 대하여 모든
물리법칙은 동일한 형식을 취하여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의
윤곽을 그렸고, 공간은 물질 삼투적인 에테르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간은 강물의
흐름과 같이 작용한다는 오랜 명제를 다루었다 이들은 오랜 세월에 결쳐 과학을
지배했던 사상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을 시인이나 철학자가 아니라 과학자들에게 쓸모있는
용어로 뜻매김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것들은 보통 사람들이 보통 연장을
가지고 잴 수 있는 계량적인 것이어야 했고, 과학적으로 쓸모가 없는 추상적인
것이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공간이나 시간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바로 19세기의 문제에 대한 20세기의 직선적인 해답이었다
그 이전 200년의 가장 뛰어난 사고를 대답하게 깔아뭉개고 나서 아인슈타인은 2개의
가설을 내놓았다 빛은 그 출처가 어디든 가리지 않고 언제나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는 가설이 그 중의 하나였다 이것은 새롭다고 할 주장은 아니었다 그때까지
실시한 각종 측정법에 의해서 이 사실은 벌써 입증되었고, 빛은 초당 약
186,000마일(요즘은 그 정확한 값으로 186,286 마일을 사용하고 있다)로 달린다는
증거가 확실히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위대한 실험과학자들 가운데 자기
눈앞에 놓여 있는 증거에 담긴 뜻을 그대로 믿으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무도 아인슈타인이 보는 것, 그 출처와 방향과는 전혀 관계없이 빛의 속도는
언제나 동일하고 결코 변치 않는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셋째
논문에서 빛의 근원이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이 점만은 진실이라고 지적했다 말을
바꾸어, 설사 그 발광체가 은하계나 항성처럼 고속도로 움직이더라도 텅 빈 공간을
꿰뚫는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는 것이다
이는 종전의 논리와는 상치되는, 상식과 어긋난다는 인상을 주었다 우리들을
향해서 다가오는 별이 발사하는 빛의 속도와 우리들에게서 멀어져 가는 별빛의 속도가
똑같다는 뜻이니까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얼떨떨할 수밖에 없다 움직이는 열차에 실린 총에서 발사된 총탄이 한자리에
가만히 있는 총에서 나온 총탄보다 속도가 빨라야 한다는 것이 논리적인 생각이다
열차의 속도에다 총탄의 속도를 보태야 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을 빌리면, 이 논리가 빛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빛의 속도는 언제나
일정하다 따라서 빛의 속도는 다른 물체 또는 물질의 속도와는 다르다 총탄이나 달
또는 행성은 다른 무엇과의 상대적인 속도를 갖고 있다 빛의 속도는 어느 것과도
상대적인 관계에 있지 않는다 절대상수이며, 언제나 똑같다
둘째로 실험에 참가한 사람이 탐지할 수 있는 것은 상대운동(역주-상대운동
relative motion: 상대성 원리에 따르면 모든 물체의 운동은 상대운동이지만, 기준
좌표제로서 관성제를 택했을 경우에는 절대론적인 뉴턴의 법칙이 적용되므로
상대운동이라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뿐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그러면 열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정거장의 플랫폼에 서 있는 사람을 가정해본다 이때 움직이는
것은 열차이지 플랫폼이 아니다 그렇지만 열차를 타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은 자신과
열차는 가만히 있는데, 플랫폼에 있는 사람을 비롯한 다른 모든 것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두 가설들을 간추린다면, 한쪽은 모든 운동이 상대적이라 규정하고, 다른 쪽은 빛의
속도만은 절대상수로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모순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특수 상대성의 세계에서는 갈등을 빚지 않고, 시간은 절대적이고, 언제나
과거에서 현재로 흘러가는 강물처럼 시간은 절대적이라는 뉴턴의 기본가설을 물리치는
구실을 했다
이인슈타인은 광속의 불변성과 그 밖의 모든 운동의 상대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사고실험(역주-사고실험: 사고장에서, 어떠한 실험방식을 상정하고,
그것으로부터 어떠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를 음미하는 일 하나의 이론
체계내에서의 연역추리의 보조 수단으로서 쓰인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전개하기 위해서 생각되는 전자의 위치 측정의 실험 등)을 했다 정거장 플랫폼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동쪽과 서쪽으로 멀리 떨어져 일어난 2개의 번개가 동시에 철로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가정하자 논리적으로 따져서 그는 두 번개가 동시에
일어났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와는 달리 플랫폼 앞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고속
이동하고 있는 열차를 타고 있는 사람을 가정해본다 그에게는 서쪽 번개가 먼저 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를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열차 위의 관찰자는 서쪽의
번개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는데, 빛의 속도는 일정하니까 동쪽 번개보다는 좀더 빨리
그에게 도달했다 따라서 플랫폼에 서 있던 사람은 2개의 섬광을 보았고, 열차의
관찰자는 먼저 하나를 보고 뒤이어 다른 번개를 보았다 그들은 사실상 똑같은 현상을
서로 다르게 보고했을 수 있다 나아가서 번개가 약간 차이를 두고 동쪽에서 먼저
쳤다면, 동시에 2개의 섬광을 보았다고 보고하는 쪽은 열차의 관찰자 일 것이다
그러면 어느 관찰자가 잘못을 저질렀는가? 열차냐 아니면 플랫폼이냐는 기준에
따라 양쪽이 모두 옳았다 이와 똑같은 이치로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서로
이어지고, 다 같이 변덕스럽다는 증거를 내놓았다 그럴 경우 관찰자의 운동에 따라
결과는 달랐다 예를 들어, 비교적 단순한 수학적 이치를 활용하여 플랫폼 위의
사람에게는 쏜살같이 지나가는 열차 창문의 길이가 실제로 짧아진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열차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빛의 속도에 가까와지면, 창문의 길이는 0으로
줄어든다 반면에 열차위의 사람에게는 그 창문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대담하고도 상대적인 아인슈타인의 신세계에서는 무엇 하나 똑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없었다 다만 빛의 속도는 예외였다 그와 같은 사고방식에서 괴기한 몇 가지
결론이 나왔다 이를테면, 플랫폼 위의 사람이 달려가는 열차를 타고 있는 사람의
시계를 볼 수 있다고 하자 땅 위를 정상적으로 달리는 열차의 느린 속도에서도 그
시계는 좀더 느리게 간다 물론 그 더딤이 아주 미미하여 측정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속도가 빨라져서 광속에 가까워지면, 그 변화는 엄청나다
여기서 지구 위의 어떤 사람이 광속의 약 86p인 초속 16만 마일로 떠나가는
우주선을 보고 있다고 하자 우주선의 시계는 평상시의 절반 속도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을 아인슈타인은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그와 함께 우주선의 크기는 그 전의
절반으로 줄고, 질량은 2배로 늘어난다 우주선에 타고 있는 우주 비행사에게는 그
변화가 우주선이 아닌 지구 위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시간마저도
더디게 가는 것 같아진다
이처럼 서로가 상대운동을 하고 있는 물체나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달리 측정된다는
선언이 나왔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은 절대시간을 영원히("영원"이라는 개념은
상대성이 지배하는 우주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또 하나의 관념에 지나지 않았다)
폐기하고 말았다 뒷날 아인슈타인은 광속에 가까운 우주선 속에 우주 비행사와 땅
위에 있는 쌍동이 형제 사이에는 노화속도에 차이가 있다는 논증을 시도했다 그에
따르면,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더디게 늙어간다고 했다
1905년에 아인슈타인은 네번째이자 마지막인 논문을 발표했다 어느 논문보다
대담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의 낡은 개념을 이미 내버린 뒤였다
이때부터 질량과 에너지를 두고 똑같은 일을 벌였다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질량과
에너지는 서로 분리되어 뚜렷이 구별된다고 보았다 아인슈타인 이전의 물리학자들이
그랬듯이, 우리들은 직관적으로 하나의 공과 그 공을 던지는 에너지는 동일한 것이
아니라고 느낀다 특수 상대성의 가설에 따라 아인슈타인은 이 구분이 옳지 않다는
점을 밝혔냈다
그는 특수 상대성의 수학적 방법과 광전효과 논문에 담긴 몇 가지 개념을 활용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어느 물체가 빛의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한다면, 그
질량은 광속의 제곱으로 에너지를 나눈 만큼 줄어든다 말을 바꾸어 m=E / C^6,23^라는
결론이 나온다 거기서 지극히 간단한 대수적 단계를 거치면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방정식 E=mc^126^이 나왔다 이 방정식은 1907년에 세상에 알려졌다
아인슈타인은 질량과 에너지가 등가일 뿐만 아니라 서로 바꿀 수 있음을 밝혀냈다
거기에는 어마어마한 뜻이 숨어 있었다 적절한 조건 하에서라면 아주 작은 양의
물질이라 하더라도 방대한 에너지, TNT 수만 톤에서 수십만 톤에 이르는 폭발력과
맞먹는 에너지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특수 상대성이 작용하고 있으며 질량과 에너지는 실제로 호환성이 있음을 입자
가속기 안에서 실증한 사례는 수천, 아니 수만 번이나 있었다 입자 가속기란 오늘날
물리학자들이 원자핵을 연구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원자를 분쇄하는 거대한 장치다
미국 시카고에는 국립 페르미 가속기 연구소가 있다 거기서 둘레 4마일의 관 속으로
양자를 가속시켜 광속의 몇 분의 1까지 도달했을 때, 그 질량이 수천 배나
늘어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과 그 가설들을 수립하는 과정에, 등속도 운동을
하는 관찰자들간의 시간과 공간측정에 연관돠는 새로운 법칙들만을 다루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속이나 감속을 하고 행성궤도처럼 곡선운동을 하는 경우는 모두
제외했다 아인슈타인은 가속운동(역주-가속운동: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 속도를
더하는 물체의 운동 중력 때문에 낙하하는 물체의 운동 따위이다)이라는 훨씬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비등속 운동 문제들 가운데서도 제일 어려운 과제가 중력에 들어 있었다 지구가
어떤 물체를 지면으로 끌어들일 때의 가속도(역주-가속도 acceleration: 단위 시간내에
있어서의 속도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점점 증가하여 따라 점점 증가하여 가는 비율,
속률)에서 중력의 작용을 알 수 있었다 뉴턴과 갈릴레이가 다 같이 눈치를 챘던
중력에는 놀라운 성질이 있었다 무게와는 상관없이 모든 물체에 똑같이 작용한다는
점이었다 과연 그렇게 했는지 의심스럽지만 갈릴레이는 피사의 사탑에서 실험을
했다고 해서 유명하다 그에 따르면, 질량이 다른 물체들을 동시에 떨어뜨려 지면에
똑같이 닿았음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가령 포탄이 깃털보다 먼저 떨어질 경우에는,
공기의 저항에 차이가 있다는 풀이였다
갈릴레이와 뉴턴은 중력을 자연의 독특한 힘으로 보았다 다시 말하면, 지구를
비롯하여 다른 천체들의 특이한 힘이라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작용을 그보다
훨씬 넓은 현상으로 풀이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자 지구의 중력권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선 안에서 어느
과학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우주선 안의 엘리베이터가
초당 32피트의 비율로 가속도가 붙으며 위로 올라간다 그 속도가 바로 탑에서
떨어뜨린 포탄처럼 중력에 끌려 지구로 내려오는 물체의 운동을 말해준다 그러나
지구 중력권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선 안의 엘리베이터에서는 과학자의 몸뚱이가 상향
가속운동에 저항하기 때문에 그의 발은 바닥에 그대로 붙어 있다 따라서 그가 돌을
떨어뜨리면, 지구 위에서와 같이 바닥으로 내려간다
과학자로서는 그 아래쪽으로의 끌림을 중력에 원인을 돌려야 할지, 아니면
엘리베이터의 상향 가속작용에 저항하는 신체의 관성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러므로 중력이 일으키는 가속현상과 다른 근원에서 나오는
가속현상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그것을
가리켜 동치원리라고 했다 인력권은 "상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약 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에서 뛰어내리고, 그 중간에 돌 하나를 떨어뜨렸다고
하자 그러면 그와 돌이 함께 자유낙하를 하게 된다 그 돌은 갈릴레이의 눈에는
정지상태에 있는 듯이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중력이 잠시 정지된 효과를 내기 때문에
갈릴레이는 자신도 역시 한동안 정지상태에 있는 듯한 착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력이란 무엇인가?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의 개념들을 이용하고
새로운 개념들을 덧붙여 독특한 방법으로 중력을 설면했다 중력이란 일상적인 의미의
힘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는 해석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구식 기하학, 즉
유클리드(역주-유클리드 기하학: 유클리드에 의하여 시작된 기하학 비 유클리드
기하학과의 상이점은 순수한 공리의 선택방법에 있으며, 결함, 순서, 합동, 평행, 연속의
오군으로 정리되었다) 기하학은 그의 새로운 우주관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제한이
많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특수 상대성에 유클리드의 그것과는 다른 기하학을 추가했다
마르셀 그로스만 Marcel Grossman은 아인슈타인의 옛친구로 스위스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동급생이었다 그의 노트 덕택에 아인슈타인은 중요한 시험을 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이번에는 그로스만이 어디를 보라고 훈수를 두었다 그것은 독일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 Bernhard Riemann이 발전시킨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한
유형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자기에게 없던 수학적 도구를 거기서 찾았고, 그것은
만곡공간 기하학이었다
그러나 휘어진 공간과 가속 엘리베이터가 중력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아인슈타인의
말을 따라 다시 한 번 상상력을 펼쳐보기로 한다 과학자를 싣고 있는 우주선의
엘리베이터는 극도로 가속화하여 광속에 접근했다 그럴 경우 한쪽 벽의 구멍으로
들어오는 광선은 과학자가 보기에 조금 밑으로 휘어져 호를 그리고는 반대편 벽 약간
아래쪽을 비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 이전에 나온 아인슈타인의 정의에 따르면, 빛과 질량은
일정한 조건하에서는 동등하다 빛은 에너지를 갖고 있으며, 따라소 질량이 있다
그리고 질량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중력의 끌림을 받는다 이렇게 볼 때, 중력이란
가속의 한 형태에 다름 없다 그러므로 가속화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빛과
과학자가 다같이 영향을 받고, 둘이 모두 엘리베이터의 밑바닥으로 끌리게 된다 그와
똑같은 이치로 광선이 행성처럼 무거운 물체 가까이를 통과할 경우, 중력으로
말미암아 그 광선은 행성 쪽으로 휘어진다고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이 개념을 10개의 정식 또는 장방정식으로 함께 묶었고, 1916년에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발표했다 그것은 특수 상대성 이론보다 훨씬 혁명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사실상 그 이론적인 선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아인슈타인이 힘으로서의 중력개념을
완전히 배제했다는 데 있었다 힘으로서는 중력이란 있을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
대신에 우리들이 힘으로 생각하고 있는 중력에 우주 기하학-리만이 제시한 만곡공간
기하학을 내세웠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만곡공간을 시공 연속체라 불렀다
그것은 트램폴린과 비슷했다 그 위에 포탄을 하나 얹어놓으면 크게 휘어지며
밑으로 내려간다 트램폴린에 오렌지 하나를 올려놓으면, 살짝 내려않을 뿐이고, 보다
깊은 구멍으로 굴러가려는 성향을 나타낸다 항성과 행성들은 우주공간에 그와 똑같은
효과를 낳는다 천체들은 실제로 주위 공간을 휘어지게 하며, 공간 그 자체의
기하학적 성질을 바꿔놓는다 이와 같이 움푹 들어가고 휘어진 공간에서는 보다 큰
물체들이 트램폴린위의 포탄처럼 한층 질량이 작은 물체들을 그 쪽으로 끌어들인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당시의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넘어 그 영역을 멀리 확대했다
전혀 새로운 물리학이었고, 완전히 새로운 우주관이었다 따라서 그걸 믿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이 자기의 휘어진 공간개념을 입증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던 두 가지
자연현상이 있었다 그 첫째는 수성의 궤도와 연관이 있었다 수성은 1세기가 넘도록
뉴턴 물리학이 제시했던 타원궤도를 따라가지 않고 엉뚱한 궤도를 그리고 있었다 그
행성이 태양에 제일 가까운 위치에 도달했을 때에는 궤도의 호각이 43초 더 길었다
그 편차가 미미하기는 했으나, 19세기의 기술로도 측정할 수 있는 이 현상을
그때까지는 아무도 설명할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의 장방정식을 수성궤도에 적용하자
정확히 호각 43초의 차이를 예측할 수 있었다
그 이론을 시험하는 또 하나의 사례는 그보다 훨씬 어려웠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 따르면, 멀리 떨어진 항성에서 나오는 빛은 태양 주위의 중력장(역주-
중력장: 중력을 지구표면 가까이에 있는 물체에 작용하는 힘이라 한다면, 지구의
만유인력의 장과 지구의 원심력을 합한 것이 중력장)으로 인해서 살짝 휘어지게 되어
있었다 우주선 안, 과학자가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에서 광선이 휘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 방정식에 따라 문제의 굴절률은 호각으로 정확히 1.7초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 계산을 시험할 수 있는 유일한 시점은 개기일식(역주-개기일식: 일식에
있어서 해와 지구 사이에 달이 완전히 가리어 해가 보이지 않게 되는 현상)이었다
그때라야만 태양과 직선상에 있는 어느 항성의 빛이 완전히 가려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이 발표된 지 약 3년 뒤에 마침내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1919년
5월 29일, 남반구에 개기식이 일어나게 되었다 영국 왕립 협회가 아프리카 서해안의
섬인 프린스페 섬으로 탐사대를 보냈다 개기일식이 일어나고 있을 때, 영국 물리학자
아서 에딩턴(역주-아서 에딩턴 Arthur Eddington 1882~1944: 항성의 질량과 광도에
대한 연구 1932년경부터는 디랙의 양자역학을 더하여 독자적인 통일 장이론을 전개,
우주 팽창론을 주장했다)이 아인슈타인의 계산과 거의 일치하는 별빛의 굴절현상을
확인했다 베를린에서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인슈타인은 자기는 그런 결과가 나오리라는 것을
단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노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측정결과가 일반 상대성을
뒷받침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겠느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꾸했다 "그랬다면
사랑하는 하느님에게 섭섭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거에요"
관찰결과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우주가 대체로 일반 상대성
이론이 제시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여러 가지 증명 가운데서 최초의 본보기를
남겼으며, 이때 현대의 이론 우주학이 탄생했던 것이다
인간의 우주관을 다시 손질하기에 앞서 거의 예외없이 낡은 우주관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일정한 기간이 있기 마련이다 낡은 사물도식에 맞아들어 가지 않는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고, 옛 개념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아인슈타인이 무대위에
등장했을 때, 과학계는 과거의 개념을 뒤엎을 채비가 되어 있었다 뉴턴의
대건축물에는 큰 틈이 벌어져 사물을 과거와는 크게 달리 볼 수 있었다 지금 20세기
물리학의 단일 거석에 새로운 기념관을 도입할 만큼 큰 틈이 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호킹은 일반 상대성 이론이 남김없이 설명되어 공인된 우주에 태어났다 따라서 이
교조와 함께 자라난 과학자들의 제2세대였다 20세기에는 과학의 진보가 너무나
빠르고 눈부시어 이미 아인슈타인마저도 신성한 자리에서 물러났다 과연
아인슈타인의 우주관은 크게 훼손되어 우리들은 과학의 새 시대의 문턱에 들어섰는가?
호킹은 딱 부러지게 대답하려 하지 않는다 "사태가 확연해 지기까지는 아무도 단언할
수가 없지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의 장점은 바로 그 밝혀지지 않았다는 데
있으니까요"
4. 아인슈타인과의 연결고리
"하느님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역주-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879~1955: 독일 태생의 이론 물리학자 상대성이론과
통일장 이론 등을 내놓아 그때까지 '진리'로 여겨지던 뉴턴의 물리학에 근본적 변혁을
가져왔다 그는 우주가 공처럼 닫혀 있고 끝이 없어 팽창도 수축도 없다고
생각했다)이 여러 차례 말과 글로 남긴 한 마디였다 양자역학이라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물리학적 이론이 발표되자 격분을 참지 못하여 내뱉은 일종의 선언이었다
양자역학이란 아원자 입자들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 1920년대와 30년대에 발전된
수학체계였다 그로부터 몇 십년 뒤에 스티븐호킹은 이렇게 응수했다 "하느님은
주사위 놀이를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찾아낼 수도 없는 곳에 주사위를 던진다" 그
말은 아인슈타인 말처럼 날이 서지는 않았지만, 호킹의 의도를 분명히 전하고 있다
인간이 쌓은 지식이 드디어 아인슈타인을 앞지를 수 있을 때가 왔다는
뜻이었다(역주-볼 수도 없는 곳에 주사위를 던진다는 말은 블랙홀 안에 떨어지기도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호킹은 그의 연구실에 아인슈타인의 사진과 포스터 몇 점을 모아 두었다 이따금
낡은 것들을 새로 들어온 사진이나 포스터로 바꾸어 놓는다 그렇지만 호킹이
아인슈타인에 관해서 나에게 한 말이라고는 단 한 마디뿐이었다 "글쎄요, 그분은
아주 훌륭한 물리학자였습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이 실험을 통해 확인된 뒤에 아인슈타인은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찬사를 받고 영예를 누렸다 신문과 잡지 기자들은 그와 인터뷰를 하려고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그리고 일반 상대성의 비밀을 쉽게 풀이하려는 책들이 수없이
나왔다 그와 동시에 상대성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수학적
상형문자들을 이용하는 데 불과한 외로운 인간이 우주 전체를 재정의할 수 있다는
주장을 믿지 않으려 버티기도 했다
찬사와 논란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연구작업을 끈덕지게 밀고
나갔다 일반 상대성 이론과 같이 혁명적인 위업을 다시 되풀이할 수 없더라도 자신의
이론체계를 확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방정식으로 시공 기하학을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체의 시공 기하학을 해설할 수 있다고 그는 확신했다 다시 말하면,
우주의 시작에서 마지막까지를 풀이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17년에 그는 한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무엇보다 그 논문은 현대 우주학-우주의
기원 역사와 형태를 연구하는-을 확립했다
참으로 탁월한 한 편의 논문이었다 레이저(역주-레이저: 원자가 내는 빛의
스펙트럼은 양자 역학이 전자에 불연속한 에너지값을 허용하기 때문이며, 마찬가지
현상이 원자핵, 고체, 분자 등에서도 나타난다 이는 레이저에 이용되고 있다)가
처음으로 만들어지기 40년 전인 이때 이미, 이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그 원리를
밝혔고,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업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일반 상대성 방정식으로 우주 속의 큰
물질이 장기간에 걸쳐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즉시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 물체란 다름이 아니었다 그의 방정식을 가장 정확하고 간단하게 해석한다면
불안정한 우주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우주가 팽창되고 있을 가능성마저 있었다
특히 네덜란드 천문학자 빌렘 데 지터 Willem de Sitter(1872~1934)는 이미 그
방정식을 둘러싼 문제점을 해결해 두고 있었다 우주는 늘어나지 않으면 줄어들고
있으며,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이 말에 아인슈타인은 멈칫거렸다
그는 자기의 방정식이 대다수의 천문학자들이 그리던 우주를 그대로 뒷받침해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우주는 안정되고 변함이 없으며 등방형-사방이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뜻-이고, 어디를 가나 동질적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엉뚱한 쪽으로 빠져나갈 길을 찾았다 일반 상대성 이론이 이와같이
정태적인 우주에 맞도록 자기의 방정식을 바꾸고 말았던 것이다 이른바 우주상수
comological constant라는 숫자를 끌어들이고는 "조금 수정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우주상수에 당장 문제가 생겼다 일반 상대성이란 그 자체가 아주 완벽한
이론이어서 우주상수란 전혀 쓸모가 없었다 그러므로 "델타 조건"이라고 불렸던
이 상수는 사실상 필요가 없었다 아인슈타인 역시 이 점을 뼈아프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1917년 논문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이 단정했다 "그(델타) 조건은
필요성이 한정되어 있다 항성의 이동속도는 미미하다 이 사실에 비추어 물질의
준정태적 붙포를 뒷받침할 때에만 이 조건이 필요하다"
1922년 소련 수학자 알렉산데르 프리드만 Alexander Friedman이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해결했다 이때 우주상수를 받아들이는 경우와 배제하는 양면을 모두 고려에
넣었다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그는 영원히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정적 우주를
제시하여 우주상수를 해결했다 아울러 프리드만은 한층 대담한 제2의 해법을
내놓았다 그는 델타 조건을 배제하고 사실상 두 개의 서로 다른 모델로서 최초의
팽창우주(역주-팽창우주 expanding universe: 백 수십억 년 전에 폭발적으로
개벽되었다고 생각되는 우주가 계속 팽창하여 우주의 온도와 밀도가 내려감에 따라,
원소 은하 별이 형성되고, 진화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주) 모델을
이끌어냈는데, 아직 어느 쪽이 정확한지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이들은 각기 다른
우주의 운명을 그리고 있다
팽창우주를 전제로 한 프리드리만의 두 개 모델은 사실상 오늘날 우주학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첫째 모델에 따르면, 물질의 밀도는 일정한 임계량(역주-임계량: 핵분열
물질이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의 질량)을 밑돌고 있으며 우주는 무한하고
영원히 팽창하게 된다 둘째 모델은 현대의 대다수 우주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는데,
물질의 밀도가 임계(역주-임계: 핵분열 연쇄 반응이 일정한 비율로 유지되고 있는
상태이다) 수준보다 높다고 본다 따라서 어느 날엔가 우주는 팽창을 멈추게 될
것이다 그것은 유한하면서도 테두리가 없다 그 안에서 직선으로 나아가면 결국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이처럼 기괴한 관념을 우리들은 뜨거운 프라이팬에서 달걀이 익듯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호킹은 스스로 휘어져 돌아온다는 그 우주를 그 자체가
휘어져 돌아가는 거대한 블랙홀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적어도 수학적으로 기술할
때에는 똑같다고 그는 말한다
"이 우주 모델을 또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을 거에요 어마어마하게 부풀어 오르는
풍선(역주-풍선이 부풀어오름에 따라 그 위의 여러점들은 서로 멀리 떨어진다)이
그겁니다" 호킹의 말이었다 그 풍선 위의 여러 점들은 은하계를 가리킨다
1922년에 아인슈타인은 프리드만의 우주학에 대한 수학적인 비평을 발표했다
그러나 오해지 않아 그 주장을 철회하고, 거의 10년 동안 그 문제를 전혀 들먹이지
않았다
그럴 즈음 미국 서부에는 잇달아 좀더 큰 망원경이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이들을
통해서 프리드만은 자기가 계산을 통해서 미리 내다보았던 현상을 하늘에서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1908년에 60인치 반사 망원경이 캘리포니아 주 윌슨 산에 세워졌고
1917년에는 같은 천문대에 100인치 망원경이 들어섰다 지난 날 아마추어 권투
선수권자였던 에드윈 허블(역주-에드윈 허블 Wdwin Hubble 1889~1953: 1990년 5월초
미국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가 그의 성을 딴 허블 망원경을 지구궤도에 올려놓았다 이
망원경은 천체 연구뿐 아니라 우주의 생성기원 연구에 큰 공헌을 하리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호킹의 우주연구와 아원자 연구에도 큰 도움을 주리라 생각된다)은
1919년에 윌슨 천문대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는 1923년에 이르러 우리 은하계인
은하수와 우리와 제일 가까운 안드로메다 은하계의 추정 거리를 처음으로 밝혔다
아울러 허블은 안드로메다가 우리 은하계와 크기가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이는
우주의 다른 부분도 우리의 은하계와 같을 것이라는 최초의 암시였다 1920년대에
허블은 멀리 떨어진 은하계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한결같이 엽총을 떠난
산탄처럼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이었다
1929년에 허블은 그의 자료를 바탕으로 은하계들은 우리 은하계와의 거리와
비례하는 속도로 멀어지고 있노라고 공표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최초의
직접적인 증거였다 이는 곧 허블 법칙이라 불려지게 되었고, 절대다수의
물리학자들은 프리드만의 아인슈타인 해석이 아인슈타인의 자기해석보다 정확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마침내 과학자로서의 일생 중에 우주상수는 최악의
실수였다고 시인하기에 이르렀다
허블의 관찰결과가 발표되기 이전에는 프리드만의 우주계산이 이론 과학자들의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허블의 법칙과 연결되면서 그들은 오늘날의 이른바
우주원리를 확립하게 되었다 우주는 모든 방향으로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 그 기조를
이루고 있다 그와 더불어 우주의 어느 위치에 있든 어떤 관찰자에게도 우주는 거의
비슷한 모양을 보여준다 1930년대 이후로 사실상 어느 과학적인 관찰결과도 우주의
팽창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천문학 자료가 반드시 우주원리를 뒷받침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들이 이 문제를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호킹이 이렇게 말했다 "사실
우주가 모든 위치에서 똑같다는 보장이 없거든요 결국 서로 다른 가지들이 달린
우주의 그림을 그리게 되는 거에요 우리들은 우주의 다른 부분을 볼 수 없는 가지에
숨어 있을 수가 있는 거에요 실제로 우주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형태를 갖추고 있을
확률은 0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상대성은 프리드만의 계산과 허블의 관찰결과를 결합하여
최초의 완전한 우주상을 마련했다 물론 이 우주상의 빈틈하나 없이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십년 뒤 호킹과 로저 펜로즈가 우주 연구계에 뛰어
들어온 뒤에야 그 우주상이 얼마나 포괄적인가를 우주학자들은 깨닫게 되었다
"프리드만 해법의 특징 가운데 당시에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를 들어볼까요 이 해법에 따르면,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우주의 모든 물질은 단 한 지점에 집중되어 있다는 거에요" 호킹이 나에게 한
말이었다 이 단일점을 가리켜 "특이점"이라 부른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주의 실제상황이 극단적일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호킹의 말은 이어졌다 그와 펜로즈가 우주기원의 상대론적 해석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때라 프리드만 모델이 눈길을 끌었다 우주생성의 첫 100초 남짓
동안에 일어난 사태를 상당히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들은 그 이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를 규명하려는 데 정열을 쏟게 된 것입니다"
호킹의 말이었다
프리드만 모델은 하나의 신기원을 이룩했지만, 실제로 우주에는 불규칙성이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불규칙성은 확대되고, 개별적인
입자들이 수렴되면서도 서로 빗나가 일종의 비단일성 도약을 일으키게 되는 겁니다"
호킹의 말이었다 "그럴 경우 그 표면의 점들이 수축과정에 서로 빗나감으로써 한
자리에 모여들지 않는 거에요 따라서 우주는 단 하나의 특이점에서 만나지 않은 채
재팽창을 하게 된다는 말이에요"
호킹은 잠시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누구 한 사람 프리드만의 모델을
우주생성의 태초에 무엇이 일어났던가를 해석하는 수단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를
않은 거에요 사실은 우주에 시작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였지요
우리들은 그들이 잘못 알고 있다는 점을 입증한 겁니다"
물리학자들은 프리드만의 팽창우주 모델을 이론적으로 수축시키면서 원점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말을 바꾸어, 어느 의미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우주의 생성초기, 즉 태초에 무엇이 일어났던가를 탐구하고 있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과제가 있었다 그들은 프리드만의 모델이 암시하듯 우주에는
출발점이 있었고, 거기에 일체의 물질이 단 한 점에 집중되어 있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 대폭발, 빅뱅이 일어났고, 그 안에 이 단일점이 나타났으며,
동시에 폭발하여 우리들의 우주, 공간과 시간을 창출했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했다
호킹과 그의 동료 로저 펜로즈가 바로 이 위업을 달성하려 연구에 착수했다
당시에 펜로즈는 젊은 수학자 겸 이론 물리학자였으며, 런던 대학교의 버크벡
대학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때 벌써 세계 최고의 수학자의 한사람으로 탄탄한
발판을 마련했었다 게다가 기하학과 수학의 수수께기와 퍼즐의 명수였을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의 그래픽 화가 에셔 M.C. Escher가 그린 몇 점의 그림에 영감을 주는
구실을 했었다 펜로즈의 취미와 관심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저명한 유전학자이며 수학 퍼즐의 발명가였고, 그의 형제 중 한 사람은 열 번이나
영국의 체스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거기에다가 그의 숙부는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화가였을 뿐더러 파블로 피카소의 친구로서 피카소의 전기도 썼다
"우리들이 제일 처음 착수한 주요 영역은 시간의 출발점이었으며, 그 종말이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어요" 호킹의 말이었다 "1962년에 나는 이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한 거에요 그때에는 시간에는 출발점이 없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였습니다"
빅뱅 이론가들이 관찰할 수 있는 모델을 찾으려 할 때, 논리적으로 적절한 장소가
항성이 붕괴되는 일련의 현상이 벌어지는 바로 그곳이다 이 항성들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지고, 결국 그 자리에 블랙홀이 생긴다 그 블랙홀의 중심부에는
문제가 되고 있는 '특이점'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측면에 관심이
끌리게 된다 팽창우주의 특징 몇 가지-물론 이 경우에는 팽창이 아니라 수축이라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간다-를 거기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항성은 태양처럼 평균값에 가까운 별에서, 그 지름이 지구 궤도만큼이나 큰
안타레스(역주-안타레스 Antares: 전갈자리의 알파 성으로 거리 약 600광년이며,
직경은 태양의 약 230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이들은 두 가지 힘을 갖추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열기와 복사현상에서 나오는 힘찬 외향력이고, 이는 항성의
원자들 간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다른 하나는 중력이 일으키는 억센
외향력이다 어느 항성의 역사란 본질적으로 이들 두 힘의 줄다리기라 할 수 있다
항성의 무게가 어느 수준을 넘어선다고 하자 그러면 우주 안에서 움직이는 그 밖의
다른 상호작용-강핵력, 약핵력과 전자기력-은 항성물질 자체에 대한 중력을 물리칠
수가 없다 그때부터 모든 물질이 속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처럼 항성이 제 위에 무너져 내리면, 일체의 물질을 내포하는 무난히 작은 하나의
점, 밀도가 무한대인 단일점으로 수축된다 그와 같은 붕괴현상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은 무엇인가? 물리학자들은 끝없이 무너지는 항성을 상상하기는
했지만, 이른바 특이점이라는 상태에 그 별이 도달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는
가늠할 수 없었다 특이점은 길이 끝나는 곳이며, 거기서 시간과 공간은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호킹이 말을 이었다 "특이점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일상적인 개념이
무너지는 거에요 그와 마찬가지로 문제의 방정식도 무너져버린 거지요"
특이점이란 수학적인 추상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님이 밝혀지리라 믿었던 이론
물리학자들이 적지 않았다 펜로즈는 그의 눈부신 수학적 재능을 발휘하여 끝없이
무너지는 항성이란 결코 이론적인 장난감이 아님을 입증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특이점으로 끝마무리를 짓는다는 것을 밝혀놓았다 그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단순한 은유로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종말에 이를 수가 있다
1965년에 호킹은 특이점을 증명한다는 이 작업에 끌려 펜로즈와 공동연구에
착수했다 그 뒤 3년에 걸쳐 그들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특이점들의 구조를 둘러싸고
몇 가지 핵심적인 이론을 가다듬었고, 우주는 특이점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밝혔냈다
어느 항성이 궁극적으로 붕괴하여 나온 최종산물과 비슷한 무한밀도의 특이점으로
우주가 시작된다는 것을 증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거야말로 우리들의
모든 방정식들이 무너져 내린 바로 그 점이었어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 해법이
있었지만, 당시에 대다수 사람들은 별로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등방성을 지닌 우주를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호킹은 이렇게
회고한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문제를 다루었던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진실에
다가가려면 규모가 큰 여러 가지 불규칙성들을 다루는 복잡한 해법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호킹이 껄껄대며 웃었다 "진리나 진실은 지극히 간단할 수
있다는 걸 믿으려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겁니다"
우주의 팽창을 되짚어서 이론적으로 수축시켜 나갈 때에 물리학자들은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그 중 하나로 입자들은 불규칙적이고 무작위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서로 부딪치지 않고 빗나갈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963년에 일단의
소련 이론 물리학자들이 바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들은 빅뱅 기간에 수축과 팽창
국면이 번갈아 일어나서 입자들이 서로 부딪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하는 이론을
내놓았다
호킹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착수한 대형 연구과제가 그들이
틀렸다는 걸 밝히는 일이었어요" 1965년과 68년 사이에 그와 펜로즈는 그 문제와
씨름했다 당시에 어떤 생각을 했던가를 호킹이 나에게 털어놓았다 "우리들은 새로운
수학기법을 개발하게 되었지요 사실은 시간과 공간은 서로 인과관계를 이루며 얽혀
있다는 접근방법이었어요 일반 상대성에 따르면 어떤 신호도 빛보다 빨리 전달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호킹과 펜로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빅뱅의 순간에
개별적인 입자들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 우리들은
거시적 성질을 이용해서도 태초의 특이점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밝혀낸 것에요
이전의 어느 것보다 간단한 접근법이었습니다 이로 미루어 시간에는 시작이 있는
겁니다"
호킹과 펜로즈는 우주가 하나의 특이점에서 시작되었다는 증명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 실제로는 우주가 특이점에서 시작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입증했다
"결국 우리들은 일반 상대성 이론의 제일 간단한 해법이 정확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지요" 호킹의 말이었다 "실은 우주는 전체적으로 대단히 복잡한 존재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상대성의 정확한 해법이 바로 가장 간단한 것이라니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프리드만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풀이하여 처음으로 완전한 우주상을
그려냈고, 호킹과 펜로즈는 이 초안에 초기우주의 상대론적인 해석을 덧붙였다
여기서 적어도 하나의 물리학적 특이점이 존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호킹과 펜로즈는 계산을 통해서 이 특이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히
실제적이고 물리적이라 하더라고 정상적인 물리형태가 무너지는 시공간(역주-시공간
space-time: 4차원의 공간, 상대성 이론에 있어서 우주를 표현하는 데 쓰이는데, 보통
공간에 대응하는 세 개의 차원과 시간에 대응하는 네번째의 차원을 가진다)의 수학적
사상의 하나다 그들의 계산에 따라 실제로 물리적 특징을 갖고 있는 상대론적 우주는
그와 같은 특이점을 반드시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담긴 뜻은
분명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우주를 볼 때에는 태초에 빅뱅이나 그와
흡사한 현상을 반드시 찾아내게 된다 빅뱅의 이론적 분석이란 그들이 최초로 시도한
우주학의 위업으로, 프리드만이 일반 상대성 이론에 자신의 수학기법을 응용한 이후
우주학에 남긴 가장 위대한 발걸음의 하나로 꼽히게 되었다
거의 같은 시기인 1960년대에 천문학적인 발견이 잇달아 프리드만의 이론구조를
뒷받침했다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허블 이후에)이 우주 전역에 골고루
퍼져 있는 배경복사 또는 자연 방사선이었고, 1964년에는 아르노 펜지아스(역주-
아르노 펜지아스 Arnold Penzias 1933~: 미국의 전파 천문학자로 윌슨wilison과 함께
3도k의 우주 배경복사를 발견해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했다)와 로버트
윌슨이 뜻밖에도 이들을 발견했다 호킹이 주석을 붙였다 "그것을 빅뱅의 유산으로
해석한 것은 옳았어요 1964년에 이미 조지 가모프(역주-조지 가모프 Gerge Gamow
1904~68: 소련 출신의 미국 물리학자 원자핵 붕괴와 항성 진화분야에 업적이
크다)와 그의 동료들이 예측했었지요 그런데 당시에는 프리드만 모델을 둘러싼
논란이 이유가 되기도 하여 아무도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밖에도 엄청난 의의를 지닌 발견이 있었다 헬륨 원소가 우주 안의 모든 물질
질량의 약 25p를 차지하고, 나머지 75p는 주로 수소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가모프가 계산하고 그 뒤에 한층 정교하게 처리한 계산에 따르면, 특이점 이후
정교하게 처리한 계산에 따르면, 특이점 이후 약 100초 동안에 그 이전에 생성된
양자와 중성자 (역주-중성자: 소립자의 하나로 1932년 채드윅이 발견 양자와 거의
같은 질량을 가지며, 전하가 없고 양자와 함께 원자핵의 구성요소)의 25p 가량이
헬륨으로 바뀌었고, 소량의 중수소가 생겨났다는 거에요 가모프의 계산을 따르지
않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토록 많은 헬륨을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이지요 따라서 이론
물리학자들로서는 우주의 고밀도 단계에서 넘어온 배경복사에 못지 않은
발견성과였습니다"
이들의 발견으로 말미암아 우주는 초고온 폭발이 일어나는 가운데 생성되었다는
이론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확인하게 되었다 여기서 그들은 이론 과학자들이 단순히
추리 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음을 똑똑히 밝혔다 그들은 우주의 탄생과 역사에
관한 타당성있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하여 호킹과 펜로즈는 이 모든
관찰결과를 종합하여 빅뱅, 즉 대폭발은 사실과 이론 양면에서 그럴 듯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설명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상수라는 큰 실수를 저질렀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그보다 몇 년
전에 이미 그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었다 프리드만의 우회적인 도움을 받아
어처구니없는 델타 상수를 버리고 나니, 우주는 그 역사상 적어도 한 번은 특이점이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이론이 완전히 무너지는 방정식 상의 한
점 때문에 이 특이점의 특성을 무시하고 말았다
그때까지 가장 널리 인정받은 빅뱅 이론은 다음과 같았다 100~150억년 전 우주
속의 모든 물질은 원시 불덩어리 속에 압축된 초고온 가스로 이루어져 있었다
"빅뱅을 둘러싼 최대의 오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허공의 어느 곳에 물질 덩어리가
있고, 거기서 빅뱅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이에요" 우리들이 우주의 태초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호킹이 하는 말이었다 "빅뱅에서 생성된 것은 물질만이
아니었습니다 시간과 공간도 생성된 거에요 시간에 시작이 있다는 의미에서 공간에도
시작이 있지요"
과연 그는 빅뱅과 더불어 시간이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을까? 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태초의 우주에 돌아가면, 일반적인 시간개념은 모호해지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일상적인 시간 관념을 들고 무한정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는 거지요
빅뱅에 가까이 가면 시간을 전혀 규정할 수 없는 위치에 도달하게 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시간에는 시작이 있는 겁니다"
상대성의 물리학을 우주의 태초에 특이점이 존재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용했다
이때 호킹은 이렇게 말했다 "이 접근법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주기원의 특이점을
예측하기 위해서 이용된 일반 상대성은 순전히 고전적인 이론이에요 그래서 빅뱅에서
생성되는 아원자 입자들의 양자적 형태를 설명할 요소가 상대성 이론에는 없지요"
아원자 입자들의 운동과 질량은 양자역학이 기술하고 있다 양자역학이란 일찍이
1920년대와 30년대에 개발된 수학체계다 아원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그리고 있으며, 그 핵심에는 불확정성 원리(역주-불확정성 원리 uncertainty
principle: 양자역학에 특징적인 기초 원리 위치와 운동량, 시간과 에너지와 같이
서로 관계가 있는 한 쌍의 물리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가 자리잡고 있다 불확정성 원리란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역주-베르너 하이젠베르크 Werner Heisenberg 1901~: 원자 물리학을
연구하여 양자역학의 기초를 확립하고, 다시 불확정성원리와 원자핵의 구조를 밝혀
193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했다)가 1927년에 처음으로 발표한 물리학 원리였다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쌍을 이루고 있는 일정한 양들, 예를 들어 어느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 이로 미루어 전자는 고전 물리학이 기술하는
객관, 절대적이고 결정가능한 물질조각이 아니다 그와는 달리 어느 의미로는 원자핵
주변에 묻어나 있는 일종의 객관적 실체라 하겠다
불확정성 원리가 양자역학을 다른 일체의 물리학과 구분짓는다 수학적 측면에서
원자와 핵입자들은 불확정적이고 무작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고 단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입자의 어느 순간의 위치는 확률과 통계방식을 사용해서 그려 낼
수밖에 없다
바로 이와 같이 예측할 수 없는 요인으로 말미암아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우주를 질서정연하고 예측가능한 장소로 보려는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그와 같은 견해를 빈틈없이 반영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에서는 양자역학 체계란 철학과 수학 양면에서 일반 상대성 이론과
동일한 우주에 존재할 자격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을 일반
상대성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이론체계로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일반 상대성과
마찬가지로 양자역학은 그를 상대로 지금까지 고안한 일체의 시험을 하나도 남김없이
통과했다 이들 실험은 원자의 성분을 갈라내는 입자 가속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원자의 성분이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는 이 과정을 가리켜 일부 이론과 과학자들은
시계를 부수어 무엇이 나오는가를 알아보려는 것과 같다고 신랄하게 공격하기도 한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아원자계, 나아가서는 원자의 세계를 넘어서도 인간의 지성이
규정하기 이전에는 독립된 구조가 전혀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이와 같은 우주관은
동양철학과 유사상을 갖고 있다 호킹은 크게 당황하고 있지만, 프리초프 카프라
Fritjof Capra의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The tao of Physics'과 마이클 탈봇
Michael Talbot의 '신비주의와 신물리학 Mysticism and the New Physics'등 수많은
저서가 쏟아져 나와 양자 물리학과 동양의 신비사상을 연결지으려 하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일반 상대성이 제시하는 우주관과 양자론을 조화할 수 없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시간의 태초에 완벽한 하나의 점을 인정한다 그와는 달리 양자역학은
어느 하나의 입자 또는 특이점의 정확한 위치, 속도와 크기를 동시에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단 하나의 점을 인정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우리들이 태초에 있었던 극미의 우주작용을 이해하려 한다면,
양자역학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얼핏 보기에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듯한
물리학의 두 영역을 조화시켜야만 비로소 이론 물리학자들은 우주 전체의 작용을
설명할 통일장 이론(역주-통일장 이론 unified theory of field: 일반 상대성이론을
확장하여, 중력장, 전자장 및 핵력의 장 등을 물리적 공간의 어떤 성질에 귀착시켜서
일반적인 장을 통일적으로 논하려는 이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호킹은 자신의 연구활동을 통해서 그와 같은 이론을 수립하려면 블랙홀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블랙홀은 그 황량하고 음산한 구속 속에
수학적으로 시간의 기원과 같은 핵심적인 요소를 감추고 있다
5. 블랙홀과의 만남
1978년 9월 4일자 '타임'은 블랙홀을 표지기사로 다루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곧잘 오해를 받고 있는 블랙홀이라는 대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절정에 달했음을
알려주는 기획물이었다 보조적인 박스 기사에는 호킹이 가장 두드러진 인물로
등장했고,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과학 이론가의 한 사람이며, 아마도 아인슈타인과
맞먹는 과학자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적었다
내가 그 비유가 어떠냐고 묻자, 호킹이 껄껄대며 웃었다 "서로 다른 두
사람-더구나 다른 두 물리학자를 비교하는 것은 전혀 타당성이 없지요" 그는 이
문제를 마무리지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은 계량화 할 수는 없으니까요"
호킹은 자신의 블랙홀의 거장이라 인정하는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요즘
그의 관심은 다른 데, 주로 우주생성의 초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여전히
블랙홀을 경외감과 흥미를 갖고 보고 있다 그리고 블랙홀이라면 언제든지 이야기할
마음의 자세를 갖추고 있다
"여기서 바로 그 곳으로 갈 수는 없지요" 내가 블랙홀과 부딪치면 어떻겠느냐고
묻자, 그가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고 나서 그의 가녀린 어깨를 보일 듯 말 듯
으쓱하고는, 자신의 블랙홀 연구성과를 설명하려고 말문을 열며 수학을 어느 정도
깊숙히 다룰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호킹의 말을 빌리면, 블랙홀은 시간과 공간의 피륙에 찢어진 구멍이다
물리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블랙홀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중력에 의해 밀도가
지극히 높으며 일그러져 있고, 거기서는 빛을 비롯하여 무엇 하나 달아날 수 없다고
믿어 왔다 따라서 블랙홀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아무도 보지 못했고,
아무리 강력한 망원경을 이용하더라도 절대로 보지 못할 것이다
호킹은 그들이 존재한다는 걸 확신하고 있다 "우리 은하계에만 적어도 1억 개는
있을 거에요" 호킹의 말이었다 나는 그 증거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당분간은
일반 상대성 방정식의 특별한 해법과 빈약한 몇 가지 물리자료만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인했다
블랙홀을 둘러싸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많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호킹의 연구성과에 크게 힘을 입은 물리학자들은 은하계와 퀘이사의 발생에서 우주
그 자체의 궁극적인 운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블랙홀에 의지하여 풀어내려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뭐라구 할까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는
자세와 같다고나 할까요" 호킹이 나한테 한 말이었다 다른 어느 사람에 못지 않게
호킹은 모든 천제 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이 대상의 수수께끼와 신비를 다루는 것을
무척 즐기고 있다 "우리들이 정상상태에서 감지하는 시간과 공간이 블랙홀 안에서는
끝장이 나고 마는 거에요 생각하면 할수록 곤혹스러운 일이에요"
블랙홀의 가장자리에 바싹 다가오는 소행성이나 우주 비행사와 같은 물체는 먼저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지다가 구멍 안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블랙홀들은 우주의 진공청소기이다 따라서 거대한 별들에서 시작하여,
우주진(역주-우주진: 우주에 가득 차 있는 미립물질 지구로 낙하할 때 공기와
마찰하여 불을 일으키는 것을 유성이라고 한다)의 알갱이들과 빛을 이루는
광자(역주-광자: 양자론에서 빛을 특정의 에너지와 운동을 가지는 일종의 입자적인
것으로 취급할 경우에 생각하는 빛의 입자로 광양자라고도 한다)에 이르기까지 만나는
것은 닥치는 대로 빨아들인다 블랙홀에서 빠져나갈 길은 없다
호킹을 비롯하여 이론 과학자들은 굳게 믿고 있다 물리학계에서 오랫동안 찾아온
통일개념, 우주의 핵심적인 상호작용을 설명할 이론은 블랙홀의 언저리 또는
우주진화의 어느 시점에 일어나는 그와 비슷하게 특이한 구조에서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론상 그와 같은 수학구조는 다음과 같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먼저
우주 안의 모든 물질의 구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그와 동시에 이 물질 사이에
작용하는 모든 힘을 풀이해야 한다 죽에서 시멘트에 이르는 모든 것에 효력이 있는
단일처방을 만들어내고, 그 모두를 수학 방정식으로 표현하려는 방법과 비슷하다
억지로 꾸며낸 듯한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킹은 20년 또는 그 이내에 현대
물리학이 그와 같은 포괄적 개념이나 방정식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장담하고 있다
처음으로 블랙홀에 관심을 두게 된 사연을 묻자 호킹을 이렇게 대답했다 "블랙홀
안에서 비로소 소립자들을 뭉치는 강한 힘과 중력이라는 그보다 약한 힘이 하나로
합쳐지는 게 분명해지더군요 물론 블랙홀은 그 자체만으로도 일정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요 인간의 마음에 그들이 전달하는 신비와 이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블랙홀은 별들의 죽음이 불러들이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어느 별이 붕괴할 때에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특이점에 도달한다 이때, 특이점에 도달하기 직전에 있는 별의
죽음에 있어 마지막 단계를 블랙홀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주의 다른
부분과 분리시키고 특이점을 가려서 그 주변의 일상적인 시공과 단절시키는 것이
블랙홀이다
프랑스 과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역주-피에르 시몽 라플라스 Pierre Simon
Laplace1749~1827: 만유인력의 이론과 이의 태양계에의 응용, 우주창조에도 논급하고
'천체역학'을 발표하여 태양계의 기원에 관한 가설인 성운설을 주장했다)는 중력과
빛에 관한 뉴턴 사상만을 이용하여 1976년에 처음으로 별의 붕괴에 관한 가설을
제시했다 별이 아주 클 때, 그 별이 붕괴한 뒤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 별이 강력한 중력을 구사하여 빛을 포함한 모든
복사(역주-복사radiation: 열이나 전자파가 물체로부터 사방에 방사하는 현상 또,
전자파의 형식을 취하여 전달되는 에너지)를 다시 잡아들이게 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사실 이 우주에서 제일 큰 발광체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라플라스는
적었다 거의 200년이라는 시대를 앞선 가설이었다
태양의 경우에는 50억년이 가깝도록 상충하는 힘 사이에서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 뒤로도 최소한 그만한 기간에 걸쳐 평형을 이루게 되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 이론에 따르면, 그때쯤에 태양의 핵연료가 바닥이 나고 마침내 중력이
줄다리기에서 줄을 끌어오기 시작하게 된다 지름 86만 5천 마일의 밀도가 높고
뜨거운 기체 덩어리인 태양의 질량이 그때부터 무너져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태양의 물질이 어느 수준까지 농축되면, 천문 학자들이 말하는 "백색왜성"(역주-
백색왜성white dwarf: 백색미광의 항성으로 1만~100만 g/cm^126^ 의 극히 고밀도인 것이
특징이다)이 생긴다 원자핵들과 헐렁하게 떨어져 나온 전자들이 들끓는 덩어리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이름이다 태양의 경우에 백색왜성은 지구의 4배 가량에 지나지
않으며, 우주의 차원에서 볼 때 아주 미미한 크기다
그러나 그 질량은 지금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표면에 있는
원자물질에 대한 중력은 오늘날보다 훨씬 강력할 것이다 우주선과 같은 물체가
지금의 태양을 떠날때 필요한 속도는 초속 380마일이다 그러나 백색왜성이 되었을
때에는 초속 2100마일을 넘어서야 한다
별의 붕괴작용은 계속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별이 무한정 붕괴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별이 그와 같은 영구 자기 소멸점에 도달하려면 상당한 질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태양은 최초의 질량이 평균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단
백색왜성 단계에 이르면 그 이상 붕괴되지는 않는다 배타원리 exclusion
principle라는 물리학 법칙이 바로 이때에 뛰어들게 된다
이 법칙에 따르면, 2개의 전자가 동일한 에너지 공간을 차지할 수 없다 말을
바꾸어, 물질을 빽빽하게 채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일상적인 기준에
비추어본다면 이 한계는 대단히 크다 백색왜성 단계에서, 극히 작은 태양의 무게도
몇 톤에 이른다
당초부터 질량이 더 큰 별-태양의 1.4배 또는 그 이상이 되는-이라면, 중력이
배타원리를 짓누르고 만다 그런 별은 중력붕괴의 진통을 겪게 되고, 태양의 경우보다
훨씬 작게 짜부라져서 원자핵들을 따로 떼어내고 원자를 부서뜨린다
결국 그것은 "중성자별"(역주-중성자별 neutronstar: 저온의 별로 중성자들 사이의
배타원리에 따르는 척력으로 지탱되고 있다)이 된다 지름이 불과 몇 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 중성자들의 무거운 덩어리다 그리고 표면에서의 이탈속도는 초속 12만
마일에 이른다 그 별이 태양의 질량보다 3.6배 이상이면, 수축작용이 중성자별
단계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때에는 중력이 뚜렷이 앞장서서 일을 벌이고, 무자비하게
밀고 나간다 그 별을 줄일대로 줄여 그 자체의 무게의 희생물로 삼는다 드디어
그것은 표면의 이탈속도가 너무 커져서 빛의 속도인 186,282마일에 도달한다 바로
그 순간의 별을 지켜보고 있으면, 약한 전자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희미한 빛이
깜빡거리다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중력은 마지막 희생물로 빛을 빨아들인다 이제 블랙홀이 된 과거의 별은
절대적이고 완벽하게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또한 그 상태로 오래오래 머물러 있을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대형 망원경을 통해서 아직도 빛을 발하는 백색왜성의 사진을 찍어
그 흔적을 밝혀내고 있다 그리고 전파 망원경으로는 중성자 별의 전자기가
꽥꽥거리는 소리를 잡아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본질로 인해서 블랙홀들은 교신을
하는 실력만은 형편이 없다 그들이 존재한다는 데에는 대체로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천체 물리학자들은-심지어 이론 물리학자들도-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면 호킹 자신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과연 그가 어떤 방정식의
조작물이 아닌 블랙홀들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가? 사실은 몇 명의 다른
물리학자들과 더불어 그는 적어도 하나를 이미 발견했노라 확신하고 있다
"백조자리(역주-백조자리 cygnus: 북반구에 있는 큰 성좌로 은하의 중간에 위치하는데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약 200개이다)를 보고 있으면, 블랙홀을 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겁니다" 호킹의 주장이다
어떤 별들은 짝을 이루어 돌아다닌다 그들은 쌍성이라 불리며, 하나의 중력
중심주위를 돌고 있다 쌍성계의 한쪽 별이 붕괴하여 블랙홀이 돌 때, 그 보이지 않는
검은 별이 눈에 보이는 짝을 계속해서 중력으로 안고 있다 호킹은 천문학자들이
지구에서 6천 광년 떨어진 백조자리에서 그와 같은 혼합 결혼상태 하나를 이미
발견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눈에 보이는 저 푸른별은 길게 늘어나고 일그러져
있거든요" 그의 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 짝인 블랙홀이 엄청난 중력으로
끌어 당기고 있으므로 달걀 모양으로 길쭉하게 보이는 것이다
백조 x-1이라는 쌍성계에서 이 블랙홀이 발견된 것은 1973년의 일이다 이론 천체
물리학자들은 해왕성(궤도 회전에 필요한 시간에 변덕이 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행성) 저쪽에 불쑥 또 다른 행성이 뛰어 들어온 경우보다
블랙홀이라는 이 현상을 보고 더 흥분했다 그 발생원인이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끝없는 추측을 하고 있다
호킹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저명한 이론가요 자기의 절친한 친구 킵 소온 Kip
Thorne과 내기를 한 적이 있었다 백조 x-1에 있는 신비로운 물체의 조상이
무엇인가를 놓고 한 내기였다 문제의 쌍성계에 블랙홀이 들어 있지 않다면,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가슴 아파할 것이지만, 호킹은 영국의 유머 잡지 '프라이빗 아이
Prtvate Eye'를 4년 동안 받아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블랙홀이 있다면, 소온이
'펜트하우스 Penthouse'1년분을 받기로 했다
이처럼 4대 1이라는 괴상한 내기가 물리학계에 악명을 날렸다 호킹은 자신의
연구내용으로 미루어 블랙홀이 없어서는 안 되는 처지다 그런데 어째서 블랙홀에
반대하는 쪽에 내기를 걸었을까? "사실 그건 나 자신의 심리상태를 밝히는 일종의
성명이었어요" 어느 날 그가 나한테 한 말이었다 우리들은 그때 백조 x-1안에 블랙홀
하나가 있을 확률을 논의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킵 소온보다는 훨씬 이기기가 수월
했던 거에요" 펄스(역주-펄스 pulse: 맥박처럼 짧은 시간에 생기는 진동현상으로
2차대전이후에 전자 계산기 입자 가속기 제어장치등에 이용)를 방출하는 경우와 같이
몇 가지 현상만을 관찰하더라도 블랙홀을 부정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그는 백조 x-1이 실제로 블랙홀임이 확인되리라 굳게 믿고 있다 "그게
블랙홀이 아니라면 정말 이색적인 것이어야 할 거에요" 그의 말이었다
천문학자들이 벌써 하나 이상의 블랙홀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1983년에 캐나다
미국인으로 구성된 연구반이 우리 은하계 바깥에서 또 다른 블랙홀을 발견했노라고
발표했다 그들은 대마젤란 성운에서 강력한 x선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 블랙홀을
탐지했다 대마젤란 성운이란 우리 은하계의 위성 은하계이며,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다
그들은 칠레의 새로톨롤로의 인터아메리칸 천문대의 158인치 망원경을 이용했다
그에 따르면 블랙홀은 지구에서 18만 광년의 거리에 있고, 무게는 태양의 약 10배이며
쌍성의 짝과는 불과 1100만 마일 떨어져 있었다
백조자리나 대마젤란 성운 또는 그밖의 다른 곳에 있는 블랙홀이란 어느 모로 보나
우주의 괴기한 주민이다 그 존재가 물리학 법칙에 커다란 부담을 준다 더구나
블랙홀은 점차 붕괴되어 단 하나의 특이점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특이점이란
우주의 대폭발 빅뱅이 시작될 때의 그것과 같이 밀도가 무한대인 극미의 점을
가리킨다 블랙홀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이 무엇인가?
호킹과 펜로즈는 그들의 초기연구를 통해서 완전히 타버린 일부 별에서 바로 이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뒷날 호킹은 또 다른 동료들과 함께 연구해,
블랙홀은 붕괴된 별과는 그 이상 관계가 없고 비교적 정지된 상태로 안정될 수
있음을 밝혔다 실은 그와 같은 블랙홀에는 측정할 수 있는 매개변수가 세 가지 밖에
없다 질량, 회전율과 전하가 그들이다
"이것이 실제로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호킹의 말이었다 그에
앞서 나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볼 수도 없고 측량할 수도 없는 물체가 실제로
매개변수를 갖고 있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냐고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글쎄요, 먼저 어느 블랙홀의 중력장 구조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블랙홀을 담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천체 물리학적 대상, 가령 백조 X-1의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그 모델의 속성을 실제로 관찰한 결과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에 블랙홀들은 일종의 문화현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의 스티커와
T-셔츠가 "블랙홀이 멋지다"고 소리높이 외쳤다 토크쇼에는 으레 블랙홀이 화제에
올랐고, 끝없는 익살과 농담의 소재가 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 많은 사람들이
블랙홀에 굉장한 관심을 보인 것은 일시적인 유행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블랙홀은 우주공간의 버뮤다 삼각해역(역주-버뮤다 삼각해역: 버뮤다 제도를 정점으로
하고 플로리다와 푸에르토리코를 잇는 선을 밑변으로 하는 삼각형의 해역 이
해역에서 원인불명의 비행기, 배의 사고가 잦아 '마의 바다'라 불린다)의 일종이었고,
초심리학과 밀교 그리고 UFO와 점성술사이의 어느 위치에 있는 무엇이었다
블랙홀이나 빅뱅의 심상이 우리들의 무의식을 혼란에 빠뜨리고 동시에 즐겁개
해준다 블랙홀이란 우리 자신의 운명이나 우주의 운명이 그려주는 은유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별이 짜부러질 수 있다면, 우주전체가 그렇게 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호킹은 이렇게 말했다 "이들을 블랙홀이라고 부른 것은 존 휠러 John Wheeler의
걸작이었습니다 그 이름이 수많은 인간의 신경증세를 불러일으킨 거에요
블랙홀이라는 이름과 그 대중화 사이에 심리적인 이음새가 있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요"
"어느 개념에 훌륭한 이름을 붙이는 작업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가 잠시
과학용어의 심리학적 측면을 들먹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할 때 사람들의 관심이
거기에 쏠리게 됩니다 '블랙홀'이라는 이름에는 상당히 극적인 기미가 배어 있지만,
거기에는 지극히 기술적인 색채도 들어 있거든요 심리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주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멋지게 그리고 있다고 할 거에요"
빅뱅 이전에는 절대적인 망각이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블랙홀의 중심에는
절대적인 망각이 도사리고 있다 빅뱅 이전에 정상적인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듯이,
거기에는 정상적인 시간이 있을 수 없다 호킹이 보기에는 거기에 블랙홀과 빅뱅의
매력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나아가서 그들 두 개념에 20세기 물리학의 쌍동이 기둥이
서 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과 막스 플랑크(역주-막스 플랑크 Max Planck
1858~1947: 독일의 이론 물리학자 열복사의 연구로 191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의 양자론(역주-플랑크의 양자론: 물체가 복사를 방출 또는 흡수할 때, 그
에너지는 요소적인 양자의 정수배가 되어 있음을 주장하는 것으로 오늘날 양자역학의
기초가 되었다)이 그들이다 1974년에 스티븐 호킹은 대담하고도 위험하기 짝없는
이론적인 선수를 쳤다 블랙홀을 둘러싼 놀라운 신사상을 내놓았는데, 쿼크와
퀘이사들이 사실은 깊이 숨겨진 단 하나의 물리학 법칙 안에서 작용할 수 있으리라는
가설을 처음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6. 폭발하는 블랙홀들
러더퍼드-애플턴연구소는 자동차를 몰고 런던에서 서쪽으로 약 1시간 반을
달려가야 하는 옥스퍼드 남쪽 메마르고 볼품없는 평원, M4도로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수평방 킬로미터의 대지에 세워진 이 연구소는 하웰의 바로 이웃에
자리잡고 있다 하웰은 미국의 원자력 연구의 중심지 뉴멕시코 주 산타페 부근의
로스앨라모스 국립 연구소의 영국판이라 할 수 있다
양쪽의 과학자들이 입자 물리학과 이론 물리학, 그리고 에너지의 기초연구를 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로스앨라모스와 하웰은 핵무기를 설계하는 기초공장이기도
하다 이들 두 연구소는 지리적인 위치로는 큰 거리가 있지만, 서로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 허름한 철조망 울타리, 무덤덤한 유사상이 있다 허름한 철조망 울타리,
무덤덤한 중년의 수위들과 비교적 숫자가 적은 검문소들이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비연구의 내용을 눈가림하고 있다 한편으로 또 그곳에서 일하는 물리학자들이
좋아하는 계산되기는 했지만 수더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974년 겨울, 호킹은 케임브리지에서 러더퍼드 애플턴을 찾아갔다 논문 한 편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벌써 몇 달 동안 두고두고 고민을 했었고, 일단의 동료
물리학자들에게 그 논문을 건네 주던 날에도 고민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논문의
제목은 "블랙홀은 폭발하는가?"였다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호킹이 이번만은 그 논문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두고
조마조마해 했다 그의 제안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상을 담고 있었고, 만약 옳다면
이론 물리학을 밑바닥에서 부터 다시 생각하기 않을 수 없었다 논문의 제목에
붙어 있는 물음표는 자기 자신의 의문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이작
뉴턴(역주-아이작 뉴턴 Isaac Newton 1642~1727: 영국의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역학체계를 세우는 한편, 우주의 모든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되 질량에 비례,
거리에 반비례하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1783년 존 미첼은 이에 근거해
블랙홀 개념을 끌어냈다)이 '중력이 물체를 밑으로 끌어내리는가?'라는 소책자를 펴낼
때에 별로 자신이 없었던 경우와 비슷했다
호킹의 권위와 명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청중은 똘똘 뭉쳐 그에 맞섰다
강의실에는 입자 물리학자와 입자 가속기 실험자들이 가득차 있었다 그들은, 수학적
수식화 작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대다수의 실험 물리학자들에게 적합한 실용적인
결과를 별로 내놓지 못하는 우주학 이론가들에게는 독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우연히 들러본 뜨내기 핵무기 물리학자도 한둘 끼어 있었다
호킹이 입을 열었다 실내의 조명이 희미해지면서 스크린에 방정식의 슬라이드가
비치기 시작했다 해설을 계속함에 따라 그는 블랙홀을 둘러 싸고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대의 기존 지식과는 상반되는 사상이 거기에 담겨 있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물리학자들은 대부분이 호킹의 논리를 제대로 따라갈 수
없었다 질문도 거의 나오지 않는 가운데 호킹은 서둘러 논문 설명회를 마무리지었다
실내의 조명이 다시 밝아졌다 사회를 맡은 존 테일러 John Taylor는 런던 대학교
수학교수였고 '블랙홀'과 '미래의 정신상태'(초심리학을 소재로 한 추론)와 같은
대중적인 저서를 낸 저술가였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한 마디로 잘랐다
"스티븐, 대단히 미안합니다 이건 완전히 황당무계한 헛소리군요"
그날 러더퍼드-애플턴에서 호킹이 내놓은 논문은 1970년에 처음 착수한 연구에 그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보다 2년 전인 1968년에 빠르게 맥박치는 우주 전파원을
발견했고, 그에 따라 블랙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 처음에는 천체 물리학자들
사이에 그 원인을 둘러싸고 혼란이 없지 않았으나 고속 회전을 하는 중성자별들이 그
원인이라는 해석에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하게 되었다 중성자별이란 태양과 비슷한
질량을 가지고 있지만, 반지름은 10마일을 넘지 않는 천체를 가리킨다
그들은 "펄사"(역주-펄사 pulsar: 1967년 영국 천문학자 휴이시 Hewish 등에 의해
발견된 전파 천체)또는 "맥동전파원"이라 불렸고, 중성자별들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듯했다 중성자별이란 폭삭 짜부러져서 원자핵만큼 밀도가 높고, 거의 중성자만으로
구성된 별을 가리킨다 따라서 한 컵의 분량이 무게로는 몇 톤이 나간다 중성자별은
불랙홀이 아니고, 블랙홀로 가는 도중의 중간 정거장에 지나지 않는다 말을 바꾸어,
그 별의 중력이 핵 용광로의 외향적 출력을 압도할 때 일어나는 휴식상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중성자별들이 실질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분명히 뒷받침되었다 그로
미루어 붕괴될 때에 별이 따라가는 진행과정을 둘러싼 이론들은 본질적으로 정확했다
상황이 그러했으므로 1968년에 우주 연구가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된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중성자별들이 존재한다면, 블랙홀이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지
않은가? " 중성자별과는 달리 블랙홀은 그 뜻매김으로도 알 수 있듯이, 어떤 종류의
복사작용도 일으킬 수 없다 블랙홀이 있을 경우에도 외형적인 현상으로는 이웃 별에
미치는 중력의 영향 밖에 없다 그 증거가 1972년에 발견된 백조 X-1이었다 이것이
일종의 쌍성계로 호킹이 킵 소온과 내기를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보다 3년 전인 1969년에 로저 펜로즈는 일종의 사고실험을 고안하여 블랙홀은
이웃 물체에 단순히 중력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블랙홀이
회전한다면 거기서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것을 가리켜 "초복사
superradiance"라 불렀다 그에 따르면, 블랙홀 부근에 있는 일정한 유형의 파동들이
회전하는 블랙홀에 의해서 흡수되지 않고 오히려 증폭되고 멀리 튕겨져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펜로즈의 사고실험 역시 블랙홀 그 자체의 회전력 가운데 일부가 밖으로 뻗어나갈
가능성이 있음을 비치고 있었다 이는 블랙홀이 그 자체의 고립된 실체, 우주의 다른
모든 물질과는 동떨어진 존재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밝히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회전하는 블랙홀은 쌍창생 paircreation 이라는 과정을 거쳐 전기 또는
회전력을 잃게 된다고 보았다 하나의 입자와 반입자(역주-반입자 antiparticle: 질량
따위의 물리량은 같으나 전하나 자기 모멘트moment의 부호가 반대로, 보통의 소립자와
짝을 이루는 입자) 예를 들어, 전자와 반전자 또는 양전자(역주-양전자 positron:
전자의 반입자로 1932년 앤더슨이 우주선을 연구하는 도중 발견했다 수명이 극히
짧으며 관측도 힘드는데, 에너지가 큰 감마선을 물질과 접촉시킬 때도 발생하며, 인공
방사능의 성질을 가진 원자핵 가운데서도 발견되었다)가 블랙홀 바로 바깥에서
형성된다는 말이었다
뒤이어 전자는 중력에 의해 블랙홀 안으로 끌려 들어가지만, 양전자는 달아난다
그 과정에 블랙홀의 전하량 가운데 아주 작은 양이 상쇄되고, 각 운동량 또는 회전
운동량의 극소 부분이 실려나간다 그러면 실제로 블랙홀이 에너지를 잃게 된다
이전에는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현상이다
그 시절에 호킹은 블랙홀을 에워싸고 있는 경계, 다시 말하면 블랙홀 중력의 강력한
아귀에서 빛이 도망갈 수 있는 정확한 지점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것을 가리켜
"사상지평 event horizon"이라 부른다 블랙홀의 질량이 크면 클수록 사상지평의
표면적이 더욱 커진다
사상지평은 일종의 일방적 피막으로 그려볼 수 있다 바깥의 빛이 들어올 수는
있지만, 절대로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는 없다 블랙홀 안에 사람이 앉아 있다면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을 볼 수 있고, 그것이 사상지평 바로 너머에 있는 우주선의
기호화된 교신내용일 수 있다
그러나 내부의 관찰자는 신호를 밖으로 내보낼 수 없다 빛이나 전파 또는 어떤
형태의 에너지도 사상지평 너머로 나가지 못한다 우주선 선장이 블랙홀 안으로
정찰원을 보낸 뒤 내부의 상황을 알고자 하더라도 영원히 회신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사상지평은 우주선 선장과 정찰원을 영원히 떼어놓고 말지만, 이론 물리학자에게
주는 좌절감은 그보다 좀 덜한 것 같다 사실 호킹을 비롯하여 지구의 물리학자들은
거기에서 매력적인 함축을 찾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일단 빛-또는 그 밖의 어떤
것-이 블랙홀에 떨어지면 바깥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그 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상실된 정보라는 이 개념을 확대하여 "블랙홀에는
털이 없다"는 정리로 다듬었다
이 괴상한 표현은 물리학자들이 좋아하는 전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담긴
의미는 간단하다 똑같은 질량, 전하량과 스핀을 가진 2개의 블랙홀은 무엇으로
구성되었든 관계없이 외부의 관찰자에게는 똑같아 보인다 심지어 물질로 구성된
블랙홀과 반물질로 이루어진 다른 블랙홀도 구별할 수 없다 따라서 블랙홀의 물리적
특징은 거의 대부분이 우리들에게는 영원히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물리학자들은 이와같이 보이지 않는 특징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에
새로운 인식에 도달했다 블랙홀의 표면적 크기, 말을 바꾸어, 사상지평의 크기가
외부인의 관심을 끌고 있는 오직 하나뿐인 의미있는 특징이라는 사실이었다
이거야말로 실제로 의미있는 숫자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특징이었고, 블랙홀을
둘러싼 그 밖의 모든 것은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었다
1970년 말경에 블랙홀의 가장 흥미있는 일면으로서 사상지평의 크기가 지니고 있는
특별한 의미가 호킹의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잠자리로 가던 길에
그에게 문득 한 가지 구상이 떠올랐다 그것이 얼마나 선명했던지 그날 밤 내내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블랙홀의 사상지평은 그 크기가, 다시 말하면, 그 표면적이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는 극히 단순한 가설이었다 그것은 수학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누구든 알 수 있는 소박한 개념이다
"글쎄요, 아무튼 누가 어디서건 착상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호킹이 뒷날
구상하게 된 시점을 되돌아보며 하는 말이었다 잠못 이루는 밤을 보낸 뒤 며칠 동안
그와 몇몇 동료가 수학적 방법으로 그 구상을 시험했다 어느 정도 논리가 성립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킹은 일반 상대성의 개념을 적용하여 블랙홀의 사상지평에 관한 결론에 도달했다
블랙홀의 내부를 살펴보라고 정찰원를 보내는 우주선 선장을 생각해보자 그 정찰원은
작은 비행체를 타고 우주선을 떠나 바로 블랙홀로 다가가며, 사상지평 안으로
떨어진다 그가 망각의 세계로 빠져들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정찰원에게 나타나는
광경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주선에서 바라보고 있는 선장의 눈에는 또 다른 장면이 벌어진다 그
정찰원이 타고 있는 비행체는 그 주위를 느리게, 그리고 끝없이 회전하면서 블랙홀에
다가간다 블랙홀이 회전하고 있다면, 정찰원이 타고 있는 비행체의 외형적인 속도는
블랙홀의 회전속도와 정비례한다 선장은 정찰원이 사상지평을 파고 들어가는 장면을
전혀 보지 못한다
시간의 척도가 서로 다른 현상을 시간팽창이 극단적인 사례로 설명하고 있다 빛의
속도로 달리는 우주 여행자가 겪는 현상과 같다는 말이다 사상지평 가까이에서는
블랙홀의 중력이 대단하여 무슨 물체-정찰원을 포함하여-든 빛의 속도와 비슷한
가속도로 끌어당긴다
그 중력장과는 안전한 거리를 두고 있는 우주선에서 지켜보는 선장에게는 정찰원이
지수 급수적인 비율로 느리게 움직이는 듯이 보인다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
여행자가 지구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나이가 들지 않는 듯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선장이 보기에 정찰원이 타고 있는 비행체의 속도가 떨어지는 비율은
사상지평의 중력에 반비례한다 블랙홀의 질량이 크면 클수록, 그리고 중력이 크면
클수록 선장에게 보이는 정찰원의 외형적인 감속현상은 더욱 느려진다 정찰원에게는
그와 반대로 보인다 블랙홀이 크면 클수록 사상지평을 통해 들어가는 속도가
느리다는 생각이 든다
호킹은 시간팽창이라는 일반 상대성의 개념을 사상지평 그 자체의 크기는 외부의
관찰자에게는 절대로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블랙홀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에 있어 의미심장한 한 단계였다 모든 블랙홀의 행태에 보편적인 한계를 그은
최초의 시도였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통찰력이 있는 가설이 나오기전까지는 블랙홀의
정태적 경계 또는 역동적인 경계와 같은 개념이 나오지 않았다
한편 호킹의 줄어들지 않는 사상 지평론은 엔트로피 개념과 중요한 이음고리를 굳게
다졌다 그 정의에 따르면 엔트로피 역시 시간과 더불어 증가한다 엔트로피(역주-
엔트로피 entropy: 열량과 온도에 관한 물질계의 상태를 나타내는 열역학적 양의 하나)
개념은 열역학 제2법칙의 부수이론으로, 물리적 과제를 수행하는데 이용되는 에너지
양은 반드시 감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에너지는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바뀔 때,
이를테면 전기에서 열로 바뀔 때 점진적인 "무효용 inurility"상태로 옮아간다 이와
같은 현상을 가리키는 낱말이 엔트로피다
전기와 같이 이용가치가 높은 형태의 에너지는 엔트로피가 낮고, 효용성이 낮은
열과 같은 에저지는 엔트로피가 높다 엔트로피가 낮은 에너지는 언제든지 엔트로피가
높은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 그러므로 전기를 열로 바꾸기는 쉽다 그러나 그 과정
또는 작용을 뒤집기란 불가능하다 엔트로피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에너지의
무효용성이 늘어난다는 뜻에서 엔트로피는 언제나 늘어나기 마련이다 이 말은 어느
체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자동차나 컴퓨터, 별이나 우주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말이다 아울러 블랙홀의 사상지평의 크기는 절대로 줄어들지 않는다 따라서 외부
관찰자들에게는 영원히 보이지 않았을 수많은 물리적 특성들을 그려낼 엔트로피 값을
블랙홀에 돌려주는 것은 이치에 맞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하다보이 중대한 난관에 부딪쳤다 블랙홀에 일정한 엔트로피 값을
배정한다면, 제 구실을 하는 열역학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정한 온도 역시
인정해야 했다 그런데 온도를 가진 물체는 당연히 열을 복사해야 하고, 고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블랙홀은 방출하는 것이 전혀 없다 그것은 호킹 역시 몇 년 동안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였다 그러다가 러더퍼드-애플턴 연구소에 제출한 논문을
쓰기에 이르렀다
그 사이에도 호킹은 블랙홀 연구를 쉬지 않았다 1971년에 어느 별의 죽음이
블랙홀이 생기는 유일한 길은 아니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그리고 우주 안에는 무너진
별이 아닌 블랙홀이 수백만개나 있다고 주장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론 과학자들은 태양질량의 10~15배의 무너지는
별들만이 블랙홀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유일한 중력장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작은
블랙홀, 예를 들어, 원자핵만한 크기의 블랙홀은 어떻게 생길까? 중력이 별이나
그밖의 물질을 그만큼 작에 줄일 수 있을까? 이와 같은 문제를 헤아리기는 어려웠다
중력이란 원자핵처럼 작은 대상 안에서는 거의 영향을 끼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킹은 뜻밖의 결론에 도달했다 어느 물체, 심지어 질량이 1
또는 2kg일 때도 충분히 압력을 가하기만 하면 엄청난 밀도의 수준으로 압축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 토막의 쇠덩어리와 같이 작은 물체의 물질을 죄어서 아주 작은
공간, 가령 양자의 크기로 줄여나가면 어느 시점에 가서 자체 중력이 운동을 넘겨받게
된다 압축작용은 계속되고 마침내 아주 작은 블랙홀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작용을 촉발할 만큼 큰 힘이 지구 위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나아가서는 가시적인 우주에도 그런 조짐이 없다 호킹은 그 해답이 시간의 출발점,
즉 태초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오로지 그때에만 우주를 형성한 물질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고, 작은 블랙홀을 만들기에 충분한 압력이 있었다
호킹은 완벽하게 균질적인 우주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다른 부위보다 훨씬 밀도가 높은 구역처럼 불규칙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면,
일정한 밀도 이상의 영역들이 무너져 작은 블랙홀이 생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들 미니 블랙홀들이 절묘하고도 풍부한 원시수프 속의 밀도가 아주 높은 공간에
짜부라져 들어가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원시수프는
빅뱅 또는 태초의 대폭발 직후 첫 10^45,35^20초 이내에만 존재했었다
호킹은 지금 작으면서도 강력한 이 검은점 수십억 개가 우주에 널려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지구와 명왕성의 거리만큼 그들은 서로 바싹 붙어 있으리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할 때, 우주 전역에는 1입방 광년마다 1억 개의
미니 블랙홀이 있다
위에서 말한 호킹의 논문이 발표된 뒤에 물리학자들은 이와 같은 미니 블랙홀론은
재빨리 전세계 물리학계를 휩쓸었다
호킹은 작은 블랙홀의 연구를 계속하여 가장 대담한 다음 단계에 도달했다 이들
원시물체 중의 하나와 같이 작은 대상을 원자 내부의 입자들과 마찬가지로
양자역학으로 그려낼 수 있으리라는 가설을 제시했던 것이다
1973년에는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 이론이 양립할 수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렇지만 호킹은 일반 상대성 이론의 핵심적인 일면을 차지하고 있는
블랙홀들을 양자 역학적 용어로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낼 때가 왔다고 굳게 믿었다
그 해 늦게 호킹은 크고 작은 블랙홀 부근의 물질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가을에 이르러 그는 희미하나마 하나의 구상이 떠올랐다 어느 날
그는 블랙홀의 난해한 수학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때 종전의 관념과는 근본적으로
상치되는 결론에 도달했고, 이전에 중대한 실수를 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 알려진 모든 물리학 법칙을 비웃으며 블랙홀들은 끊이지 않는 냇물처럼
입자들을 뿜어내고 있음을 발견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블랙홀들은 회전하고 있지 않는 한 아무 것도 내뿜을 수 없다는 기존의 이론을 믿고
있었다 그 뒤 몇 주일에 걸쳐 그의 계산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를 찾아내려고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마침내 블랙홀의 가장자리, 정확히 말해서 바로 사상지평에다 양자론을 적용하면
블랙홀은 입자들을 방출할 수 있다는 확신에 도달했다 그는 양자역학의 뼈대를
이루는 불확정성 원리를 바탕으로 허공은 절대로 비어 있을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말을 바꾸어, 허공은 언제나 활발히 움직이고 있으며, 그 안에는 무엇인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우주공간에는, 예를 들어 전자와 그에 맞서는 반물질로서 양전자가 있다
이처럼 상반되는 소립자들의 쌍들은 1초의 몇 분의 1동안만 존재하다가 X선의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서로가 결합하고 소멸된다
사상지평에서 그와 같은 변환이 일어났다고 하자 그러면 입자들 가운데 하나가
강력한 중력의 품에 안겨 블랙홀 속으로 떠돌며 내려가고, 다시는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다 다른 입자는 상호소멸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지 않고 자유로이 밖으로
달아난다 외부의 관찰자에게는 두번째 입자가 마치 블랙홀로부터 금방 튀어나온 듯이
보인다(그보다 더 큰 물체는 일반 상대성의 규칙을 따르기 때문에 위와 같은 변환에
끼일 수는 없다)
1973년 말에만 하더라도 이 생각은 뜻밖의 기괴한 주장으로 받아들여 졌다 호킹
역시 자신의 연구성과를 믿지 않았다 그 문제를 푸느라 몇 주일 동안 씨름을 했다
드디어 그는 자신의 옭아매고 있던 문제를 풀어냈다 사상지평에서 양자변환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가? 호킹은 그의 해답을 처음부터 가슴 속에
품고 있었는데 마침내 수학적으로 그 증명을 내놓을 수 있었다 방대한 중력장을
갖추고 있는 블랙홀 그 자체가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호킹은 계산을 통해 또 다른 충격적인 결론을 끌어냈다 블랙홀은
입자방출(역주-입자방출: 핵으로 부터 광자 이외의 입자가 틔어 나오는 일 감마
방출과 대조된다) 또는 복사에 에너지를 쏟아넣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침식된다 그리고 결국 그 중력장이 너무 힘없이 흩어져서 그 이상 제 몸을 가눌 수
없게 된다 이때 블랙홀은 폭발하여 고에너지 감마선(역주-감마선: 극히 파장이 짧은
전자파로 물질을 투과하는 능력은 몹시 강하나, 전리작용이나 감광작용은 비교적
약하다)의 소나기를 뿌리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블랙홀이 폭발하는 것은 아니다 항성이 무너져 생긴 큰 블랙홀이나
천문학자들이 일부 은하계의 핵심에 있다고 생각하는 괴물 블랙홀과 같이 대형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증발과정이 너무 길고, 우주의 나이보다 몇 배나 되니까
그럴 겨를이 없다 예를 들어, 태양이나 평균 크기의 항성과 질량이 같은 블랙홀의
경우에는 그 천체가 블랙홀이 된 뒤 10^45^66년 동안은 증발과 최종적인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호킹은 계산했다 심지어 우주의 차원에서도 그 시간은 너무
길어서 어떤 기간으로 따진다는 것은 무의미한 노릇이다
하지만 그의 계산에 따르면 작은 블랙홀들은 그보다 훨씬 빨리 증발하고 폭발하며,
그들의 평균 수명은 약 100억년이다 아주 긴 세월이지만 우주의 나이보다는 약간
짧은 기간이다 그들의 평균 반지름은 10^45,35^13cm여서 양자의 크기만 하며, 무게는
약 10억 톤으로 에베레스트 산의 무게와 거의 맞먹는다
사상지평에서의 입자방출은 엄청나다 호킹은 약 6천 메가와트, 대략 대형 원자력
발전소 6개의 에너지 산출량과 같다고 보았다 그러나 전력회사가 작은 블랙홀을
전원으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함부로 세울 일이 아니다 만약 작은 블랙홀 하나를
지구표면에 끌어온다면, 그 무게로 말미암아 총알이 깃털 베개를 뚫듯이 지구를
꿰뚫고 달아날 것이다
이들 작은 블랙홀의 증발과정의 마지막 단계는 진행속도가 대단히 빠르다 따라서
1메가톤 급 핵폭탄 1천만 개의 힘과 맞먹는 폭발을 일으킨다 이것은 결코 한가한
계산이 아니며, 호킹은 이들이 우리 우주에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실제로 그는 실험을 통해서 그의 블랙홀 폭발론을 증명하거나 반증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었다 새로운 과학이론을 내놓을 때에는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이다
미니 블랙홀의 수명이 우주의 나이와 비슷하기 때문에, 그 중 몇몇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이따금 폭발했으리라 추측된다 이처럼 블랙홀이 폭발하게 되면, 막대한
양의 고에너지 감마선이 쏟아져 나온다 호킹은 지구궤도에 대형 감마선 수집기를
띄워놓으면 이와 같은 폭발을 탐지하기란 쉬운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우주
왕복선을 이용하여 지구궤도에 하나를 만들어 띄워놓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다 아울러 그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우주 한 귀퉁이, 100년에 1입방
광년의 공간에서 대략 2개의 블랙홀 폭발이 있으리라 추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그 결론에 도달했을때에는, 블랙홀이 증발하고
폭발한다는 발상이 정통적인 천문학의 사고방식과는 너무 동떨어져서 호킹마저도
자신의 연구성과에 의심을 품었다 결과를 깔아뭉개고 앉아서 몇 주일 동안
머리속으로 계산을 되풀이했다 그대로 발표하기에는 너무나 엉뚱하고 이상야릇했다
그것을 믿을 사람이 없었다 그는 혼자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블랙홀이 침식하고
폭발한다면 이미 블랙홀이 아니지 않는가?" 호킹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가설이었다
전세계에 명성을 날리고 있는 과학사가 토머스쿤 Thomas Kuhn은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과학계에서 의미심장한 돌파구를
열었을 때, 처음부터 받아들여진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돌파구를 연
과학자-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윌리엄 하비(역주-윌리엄 하비 William Harvey
1578~1657: 영국의 의학자 생리학자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생리학설을
밝혀내고 고래의 갈레노스 학설에 감연히 반대하였다)와 같은-는 오랫동안
무시당하거나 따돌림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1974년 초에 호킹은 자신이 그 꼴을 당할까 두려워했다 블랙홀 폭발론이 옳다면
천체 물리학계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블랙홀 고정론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만일 호킹이 엉터리라는 증거가 나오면,
그의 명성과 신뢰를 되살리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릴 게 분명했다
따라서 그는 머리 속으로 계산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그
동안에 절친한 친구와 연구동료 몇 사람들에게만 블랙홀이 끈덕지게 방출하는
에너지가 있다는 말을 했다 일부 동료들이 그가 제시한 결과에 의문을 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날 마틴 리스 Martin Rees가 데니스 시애마를
찾아와서 물었다 "호킹이 온 세상을 벌컥 뒤집어 놓았다는데, 소식 들었어요?"
이처럼 몇 주일에 걸쳐 갈길을 결정짓지 못하고 있을 때에 시애마가 연구결과를
발표하라고 호킹에게 조용히 권고했다 드디어 시애마의 설득이 먹혀들었고, 호킹은
러더퍼드-애플턴 연구소를 찾기로 결심했다 그가 두려워했던 것 이상으로 첫 반응은
좋지 않았다 내가 정말 빗나가고 말았는가? 호킹은 잠시 마음 속으로 허둥댔다
다음 달에 그는 영국의 권위있는 과학 주간지 '자연 Nature'에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세계 전역의 물리학자들이 그걸 화제에 올렸다 그 뒤
몇 주일 동안 블랙홀 폭발론은 물리학회에서 가장 많이 화제에 오른 새로운 발상의
대열에 끼었다 몇몇 물리학자들은 이론 물리학계에서 근년에 나온 가장 중요한
연구성과 속에 그 새로운 이론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호킹의 팬이었던 시애마는 그 논문을 "물리학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업적으로
꼽힌다"고 찬양했다
호킹이 밝혀낸 블랙홀 역학은 여러 모로 중요한 뜻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작용방향은 반대이면서도 빅뱅에 뒤이은 순간에 일어났다는 현상을 둘러싼 빅뱅에
뒤이은 순간에 일어났다는 현상을 둘어싼 몇 가지 현상과 비슷했다 그러므로 이
모델은 물리학자들이 폭발을 통해 우주가 생성되는 순간에 아원자 입자들이 생기고,
서로 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면이 있었다
블랙홀에 양자역학을 적용함으로써 호킹은, 양자역학을 일반 상대성 이론과 결합할 수
있는 근원적인 상호작용을 밝혀낼 잠정적인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그들은
통일하는 것, 다시 말하면 이른바 중력의 양자화란 물리학에 있어 가장 어려운
문제이다
1974년 이후 블랙홀들이 입자를 방출하고 폭발한다는 수학적 증거들이 점점 더
쌓이고 있으며, 다른 접근법을 사용하는 그밖의 이론가들이 그를 뒷받침하고 있다
블랙홀 방출 그 자체를 "호킹복사 Hawking radiation"라 부르고 있으며, 세계 어느
곳의 어떤 물리학자도 그 내용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말할 수 있다
7. 마지막 의문
이 우주 안에서 블랙홀보다 그 형상을 그리기 어려운 대상은 찾기 어렵다 다만
태초의 대폭발, 빅뱅은 예외라 할 수 있다 빅뱅은 지금까지 수많은 물리학자들의
마음 속에 수많은 비전을 불러일으키는 구실을 하고 있다 이들의 마음 속에서 빅뱅은
거듭거듭 일고 있고, 수많은 인간의 머릿속에서 수없이 계산되고 있다 하지만 그
기간은 4반 세기를 조금 넘었을 뿐이다
물리학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대체로 이렇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어떠한
허공개념으로도 따르지 못할 절대적인 진공 속으로 단 한 점의 원형적 잠재력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 점은 생성의 바로 그 순간에 모든 물질, 모든 차원, 모든
에너지와 모든 시간을 내포하고 있다가, 폭발하면서 그 내용을 밖으로 뿜어냈다
그리고 생성의 기원이 되는 순간에 모든 물질과 모든 힘들은 서로 구분할 수 없었다
우주가 팽창하고 식어감에 따라 물질과 힘은 서로 떨어졌고, 이와 같이 서로 떨어져
갈라지는 일을 되풀이 했다 그 역사의 첫 10억 분의 1초에도 여전히 분열이
계속되었다 멀지 않아 물질의 모든 성분들-지금 우리들이 쿼크와 경입자(역주-경입자
leptons: 아원자 입자들의 한 무리이며, 전자, 중성미자, 타우tau와 뮤 중간자가
여기에 들어간다 이들은 모두가 중성자와 양자로 구성된 원자핵 밖에 있고 쿼크로
구성되어 있다)라 부르는-은 서로 독립된 실체가 되었으며, 서로 다른 부류로
갈라졌고 그 뒤로는 두번 다시 합쳐지지 않았다
이 최대의 격변을 일으킨 단 하나의 힘 역시 산산이 갈라져 나갔고, 새로운 힘으로
쪼개지면서 쿼크와 경입자를 형성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입자들은 생성되고 있던
새로운 힘들과 영원히 결합하게 되었다 이처럼 갈라진 힘 가운데 셋은 지금도 원자
안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서 제일 힘이 센 것이 원자핵 구성입자들의
성분-양자와 중성자들을 만드는 쿼크-들을 한데 묶어 주는 강핵력이다 그보다
1000배나 약한 것이 경입자의 일종인 전자들을 지배한다 이 힘은 원자를 단단하게
보이는 구실을 하고, 아울러 전파와 광파(역주-광파: 1905년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에 의해 파동과 입자의 양면성이 있음이 밝혀졌다)의 원인이 된다
그보다 다시 100배나 약한 것이 약핵력이다 이 힘은 우라늄과 같이 일정한 원소의
원자 안에있는 중성자들을 천천히 부서뜨리는 방사성 붕괴를 일으킨다 이 모든
힘들은, 힘을 실어나르는 입자로 1초의 몇 분의 1동안만 존재하는 벡터 보존(역주-
보존 Boson: 광자, ^4,1234^ 중간자와 짝수의 동종입자로 이루어지는 원자핵의 전부 및
정수스핀을 갖는 입자의 전부)에 의해 전달되는데, 사람들이 작은 보트를 타고
가죽공 하나를 가지고 서로 주고 받을 때 일어나는 반동과 흡사한 방법으로 힘을
전달한다
벡터 보존은 그 수명이 지극히 짧은 한 순간에 불과하고, 그 사이에 힘을 넘겨준다
보트 사이를 공이 오가면, 그 공을 받을 때마다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글루온(역주-글루온 gluon: 쿼크사이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입자)이라는 벡터 보존의
일종이 강핵력을 낳고, 광자는 원자 밖에 있는 질량 없는 입자이다 이는 빛의
성분으로 전자기력을 내는 보존이다
전자기력과 강핵력의 경우에는 보존들이 곡예사 사이를 오가는 공과 같은 구실을
한다 공을 주고 받는 곡예사들은 공에 묶여 한 덩어리가 되어 에너지를 교환한다
방사성 붕괴를 일으키는 힘을 전달하는 3개의 입자가 있고, 그 중 둘은 W이며 다른
하나는 Z라 부른다 그들은 1983년에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그 주역이 CERN(제네바에
있는 유럽 핵 연구소)의 카를로 루비아 Carlo Rubbia가 이끄는 연구반이었다
중력은 제일 약한 힘이고, 우주에서 작용하는 그 밖의 유일한 힘이기도 하다 이는
강핵력보다 약 10^45^38배나 약하다 아직도 탐지되지 않은 또
하나의 벡터 보존이 중력자(역주-중력자: 중력장의 양자로서 이론적으로 도입된 입자,
정지 질량 및 전하는 O, 스핀 2)이고 이론상으로 중력을 일으킨다 중력은 큰
질량에만 작용하기 때문에 원자 내부에는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겨우 지난 10년 사이에야 여러 가지 대통일 이론이 나왔고, 3개의 아원자력들이 단
하나의 근원적인 상호작용을 담당하는 성분임을 입증하려는 노력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 어느 하나도 중력을 포함시키지는 않았다
대통일 이론을 연구한 공로로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던 셀든 글래쇼가 어느 땐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주가 아주 뜨거웠던 때에는 모든 힘이 하나였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법을 지니고 있는 듯한 모든 것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오직
하나의 힘을 발견하려고 지금 우리들은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거에요"
호킹도 그에 동의하고 있다 "그 네 가지 힘을 단 하나의 수학적 설명으로 통일하는
것이 모든 과학의 가장 위대한 목표이지요"
나는 이 탐구의 방법이 어떠하며, 그 자신의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돌연 엄숙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내 목표는 간단합니다 우주가 어째서
지금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도대체 왜 존재하고 있느냐를 비롯하여 우주를 완전히
이해하려는 데 있습니다"
나는 취재 노트에 얼른 이 대목을 갈겨 썼다 내가 눈을 들자 호킹은 몸을 흔들며
웃어댔고, 그의 눈이 번쩍 빛을 뿜었다
"그 말이 귀에 익지 않습니까? " 호킹이 되물었다
잠시 더듬어보니 과연 그랬다 그보다 1년 전에 나는 호킹에 관한 글을 썼고,
그것이 미국의 인기있는 과학잡지에 실렸다 그 글의 첫머리에 호킹이 했던 그 말을
정확하게 뚜렷이 내세웠다 내가 그 전 해에 만났을 때 나한테 했던 바로 그 말이었다
대다수의 이론 물리학자들이 그렇듯이 호킹은 지금도 연구대상의 모든 목표들
가운데서도 가장 손에 잡히지 않는 비밀은 우주창생의 첫머리 중에서도 첫머리에 숨어
있다고 믿는다 그 시간은 빅뱅이라는 태초의 첫 1초 가운데서도 1조 분의 1을
가리킨다 우리들이 싸늘하고 안정된 우주에서 보고 있는 네 가지 힘이 그때 그
자리에서는 하나였으리라 생각된다 우주가 겨우 10^45,35^32 또는 10^45,35^33초밖에
되지 않았을 때의 그 믿을 수 없는 순간에 일어난 사상들을 검증한 뒤에 이와 같은
가설이 나왔다 그러나 호킹은 시간적으로 그보다 더 멀리 밀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0조 단위 이상을 줄여야 한다는 계산이다
"실은 10^45,35^33초와 10^45,35^43초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를 알고 싶은
거에요" 호킹의 말이었다 "생명 그 자체를 포함하여 우주에 관한 모든 문제의
궁극적인 해답이 바로 그때 그 곳에 있는 거니까요"
"고전적 시간관은 그 이전의 어느 때, 10^45,35^33초와 10^45,35^43초 사이의 어느
순간에 무너지는 겁니다 최근에 나는 10^45,35^33초의 우주를 주제로 한 논문을
썼습니다만, 사실 내 관심은 그 이전의 어느 순간에 있었지요 실제로 이 순간에
결정적인 모델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느 것도 결정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시간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어느 가설에도 제약이 따른다 첫째, 그 자리에는 직접
관찰할 수 있는 배경복사는 우주창생과 연결짓는 인류의 중대한 고리이다 숲속의
돌로 둘러싼 구덩이에서 불붙은 석탄을 발견했을 때처럼, 배경복사는 이전에 그곳에는
뜨거운 무엇이 있었던가를 물리학자들에게 알려준다 그것은 아주 균질적이고
어디에나 있다 그런 까닭에 동질적이거나 등방성 우주라는 우주학의 모델들은
본질적으로 정확함을 알 수 있다 우주학자들이 씨름해야 할 또
하나의 핵심적인 증거는 오늘날 우주공간에서 드러나는 수소-헬륨의 75대25p의
비율이다 호킹을 비롯하여 그 밖에 대다수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생긴 지 불과 몇 분
안에 이들이 만들어졌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나는 호킹에게 물었다 과학자들이 드디어 우주 최초의 순간을 헤아리기 시작했다는
확신을 갖는 근거가 어디 있느냐가 궁금했다 우주학자들이 우주발달의 전기간을
철저하게 연구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기초적인 관찰결과를 크게 잘못 해석할 수도
있었다
"글쎄요,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이
망원경을 통해서 좀 더 먼 곳을 볼 때에는 반드시 시간적으로 더 먼 과거를 볼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주공간을 좀더 멀리 보면 볼수록, 태초의 그 순간으로 좀더
다가가는 거에요" 호킹의 말이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저 멀리에 있는 모든 것이 이곳에 있는 모든
것과 똑같고, 똑같이 작용한다는 가정이 밑바닥에 깔려 있지 않습니까?" 내가 따져
물었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우리 시대에 발견한 자연법칙들이 우주 안에서 언제나 작용하고 있다고
지레짐작하는 것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사실이에요"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이런 가정을 하면서 과학적이기보다는 형이상학적 신념의
도약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우주의 기원에 뛰어들 때에는 상당히 강력한 가정을 하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배경복사와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사실들은 우리들의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들의 계산이 본질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없거든요"
사실 우주공간과 강력한 입자 가속기를 가지고 실시한 관찰과 연구결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들의 여행 시나리오가 놀랄 만큼 일관성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여행에는 몇 군데의 핵심적인 정거장이 있다 이론 과학자들이 그 사상들을 면밀히
조사하고 싶어 하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점들이다
이들 가운데 첫째가 우주의 나이가 10억 년이 되었을 때다 천체 물리학자들은
그때에 퀘이사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믿는다 퀘이사란 현재로서는 우주공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물체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는 우주학 대회의 핵심적인 과제다 그러나 대체적인 의견은 일치하고
있다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듯이 우주는 이즈음에 새카만 하늘에 밝은 점들이 박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 정거장이 100억년이 넘는 시점이다 그때 우주의 나이는 겨우
50만년이었다 소립자들이 한데 모여 원자를 형성한 것도 이때였다 그 이전에는
우주가 너무 뜨거워 전자가 원자핵주변의 궤도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우주공간에는 헐렁하게 떠다니는 전자와 원자핵들이 광막하게 들끓고 있었다
물리학자들은 이 시점을 가려낼 수 있다 어느 원소의 원자핵에 전자가 묶여
있으려면 전자기력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을
상응하는 온도로 바꾸고, 식어가는 우주가 그 단계의 시점을 밝혀내기만 하면 된다
그 계산의 해답은 50만년이다
호킹의 주장을 빌리면, "어느 땐가 원자들이 형성되기 시작했을 때, 물질이
응결하여 은하계와 항성이 생겨났다 그리고 중력이 우주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빛이 우주 전역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이즈음이었다
태초로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에서 다음 정거장은 약 10만년이다 우주에는 두 가지
주요 구성요소들이 있다 첫째는 은하계, 항성과 행성 및 사람들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이고, 둘째는 배경 마이크로파를 형성하는 복사이다 오늘날 배경 복사와 물질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지금보다 밀도와 온도가 훨씬 컸던 우주의 초기에는 물질과 복사가 서로
강력하게 작용했다 실은 그때 배경 마이크로파의 광자들은 물질을 구성하는 양자와
중성자, 그리고 전자와 짝을 이루고 있었다 10만년 이후에 우주가 냉각함에 따라
복사와 물질은 서로 갈라졌다 1964년 아르노 펜지아스와 로버트 윌슨에 의해 발견된
배경 마이크로파는 물질에서 떨어져 나올 때의 순간적인 복사의 유물이다
이론 물리학자들이 설정한 다음 정거장은 우주의 유아기, 0시를 3분 가량 지났을
때다 호킹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건 아주 중요한 시점이에요 3분 이전에는 우주가
너무 뜨거워 원자핵 안에서 양자(역주-양자 proton: 중성자와 함께 원자핵의 구성
요소가 되는 소립자의 하나로, 수소의 원자핵은 한 개의 양자로 된다)와 중성자가
결합할 수 없거든요 강핵력을 매우 주의깊게 살펴야 할 때가 3분의 시점이에요"
첫 3분 동안에 양자와 중성자가 우연히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더라도 배경복사에서
나온 광자나 그밖의 입자들과 충돌하여 서로 밀쳐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3분이
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충분히 냉각되어 강핵력이 1개의 양자와 1개의 중성자, 또는
1개의 양자와 2개의 중성자를 끌어 맞추어 중수소핵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와 대략 같은 시점에 한 쌍의 양자와 1개 또는 2개의 중성자들이 합쳐져 헬륨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날까지 변함없는 75대25의 수소-헬륨 비율이 튼튼히
자리잡은 것이 바로 이때였다 또한 그밖에도 가벼운 원소의 핵이 3분이 되는 시점에
생겼다 그러나 수백만 년 뒤에 와서야 비로소 철과 금과 같은 무거운 원소가 항성의
용광로 안에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3분의 시점에는 전체의 그림이 아주 깔끔하게 드러난다 지금 압도적인 자리에 있는
강핵력은 그 상호작용이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 중간형의 가속기로도 이 시점에
존재했던 것과 아주 흡사한 상황을 재현할 수 있다
최초의 3분을 계속해서 거슬러 계산해나가면, 우주는 주로 냉각국면에 있다
0시에서 약 100분의 1초가 지났을 때에 우주는 섭씨 2천억 도 가량이다 따라서
서로가 충돌하여 생긴 에너지 속에서 수백 가지 입자들이 만들어지고 소멸될 수 있을
정도로 뜨겁다 100분의 1초라는 이정표는 또 다른 의미로도 중요하다 물리학자들은
원점으로의 소급여행중 이 시점까지의 사실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상당한
자신을 가지고 있다
호킹의 말이 이어졌다 "그 시나리오는 분명합니다 100분의 1초까지의
상황전개에는 거의 이견이 없습니다"
이 시점을 떠나 다시 잃어버린 우주의 역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갈 때 우주학자들은
입자 물리학자들의 연구성과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입자 가속기들은 이 땅
위에서 그와 비슷한 상황을 남김없이 재현할 수 있다 말을 바꾸어, 중간형의
가속기마저도 이 시점의 우주 에너지와 맞먹을 수 있다
0시로부터 1만분의 1초 10^45,35^4와 100만분의 1초 10^45,35^6 사이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있다 이때 우주물질의 기초성분이 만들어졌다 쿼크가 3개씩 무리지어
결합함으로써 중성자와 양자들이 나왔던 것이다 그 이전에는 우주란 부글부글 끓는
쿼크의 죽이었고, 에너지가 너무 강하고 너무 빽빽히 다져져서 핵입자를 만들 수
없었다
물리학자들은 이 시점에서 부딪치는 일정한 이론적인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쿼크
수프"라는 개념을 실제로 사용하고 있다 10^45,35^4초에 우주의 밀도가 너무 커서
모든 양자와 중성자 사이의 공간은 입자 그 자체의 크기만한 간격밖에 없다
물리학자들이 편안하게 이론을 전개하기에는 지나치게 비좁은 공간이다 그들은
그처럼 높은 밀도를 설명하기 위해서 아원자 입자들의 행동을 새로이 서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다행한 일이 있다 원자핵 안에서 핵입자들을 한데 모아주는 강핵력의
성질 가운데 하나가 그 힘이 거리에 비례하여 늘어난다는 점이다 입자들이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힘은 떨어진다 이것은 양자와 중성자 그리고 그들을 구성하는 쿼크에
다 같이 적용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물리학자들은 그 나름의 모델을 개발하게 되었다 그에 따르면, 고밀도의
초기우주는 서로가 상호작용 하지 않고 간신히 떨어져 있는 입자들의 혼합물이다
이른바 쿼크 수프 모델이다 이때부터 0시에 이르기까지 온도만이 점차 올라갈 뿐이다
그 모델이 정확하다면 다음과 같은 풀이가 가능하다 온도는 플랑크 벽, 곧 우주가
10^45,35^43초가 되는 시점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상승한다 그 시점을 넘어서면
물리학자들의 계산은 제 구실을 할 수 없다
다른 모델들은 차가운 빅뱅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우주가 냉랭한 상태에서
폭발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1조 분의 1초 뒤가 0시의 온도보다 내려가야 할
필요가 없는 공간팽창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모델들에 따른다면, 쿼크를 반드시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 그 제안자들의 말을 빌리면, 소립자들의 수효는 우주의 기점을
향해 아무런 명백한 제한없이 늘어난다
이 말은 역설로 들린다 역사적으로 보아 우주는 언제나 식어왔다 오늘날에도 식고
있다 따라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우주는 태초의 특이점에 이르는
순간까지 점차 뜨거워져야 한다 그러나 이 모델들은 초기우주의 상당한 에너지가
더욱더 크고 무거운 많은 입자들을 만드는데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태초의
빅뱅은 비교적 온도가 낮은 것이었다고 한다
요즘 이론가들 사이에는 차가운 빅뱅보다는 쿼크 수프 모델이 훨씬 인기가 있다
그렇지만 호킹은 눈을 반짝이며 이런 말을 했다 "이론 물리학자들의 마음은 바뀔 수
있지요, 그것도 상당히 자주"
출생한 뒤 처음 10^45,35^10초 사이에 우주는 이미 우리 태양계만큼이나 커졌고,
이는 방대한 에너지의 거대한 팽창현상이었다 그런데 지구 최대의 가속기들은 몇
개의 양자와 반양자(역주-반양자: 양자에 대한 반입자로 양자와 접촉하면 서로
파괴되는데, 우주를 파괴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의 충돌과정을 통해서 100만분의
1초가 된 우주의 열기나 에너지 수준을 되풀이 할 수 있다
이때 물리학자들은 가장 의미심장한 단계의 하나에 도달한다 이론 물리학자들이
오늘날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4개의 힘이 처음으로 통일되는 장면을 보는 것이 바로
이때다 글래쇼, 스티븐 와인버그와 압두스 살람이 세운 이론에 따르면, 이 시점
이전에는 경입자를 다스리는 전자기력과 복사 붕괴를 일으키는 약핵력은 똑같은
하나의 실체였다
호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계산이 정확하다면, 10^45,35^10 초 이전에는 이
우주에 오직 3개의 힘이 있었을 뿐이에요 전자기력과 약핵력이 결합되어 하나였고,
강핵력과 중력이 있었던 거에요 오늘날 우주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의 근원은
하나임을 암시하는 논리입니다"
와인버그, 글래쇼와 살람의 통일이론은 지구 최대의 가속기로 시험할 수 있다
1982년과 83년에 카를로 루비아가 이끄는 연구반이 스위스 제네바 부근에 있는 CERN의
대형 양자-반양자 충돌장치를 이용했다 그 자리에서 통일이론이 예측했던 것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성질을 갖춘 W와 Z입자들이 나왔다
루비아의 연구반이 최초의 W 입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을 때 내가 CERN을 방문했다
현재 지구상에서 제일 강력한 그 가속기로 만들어낸 에너지 수준은 1천억 전자
볼트(역주-전자볼트 electron vlot: 소립자, 원자핵, 원자, 분자 등의 에너지를
나타내는 단위의 하나)였고, 1000조(10^45^15)도와 맞먹었다 이것은 우주가
10^45,35^12초가 되었을 때의 온도와 거의 같다
무거운 입자들의 조짐이 컴퓨터 터미널에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CERN의 조정실을
달구던 흥분은 손에 잡힐 듯했고 삽시간에 모든 사람들에게 옮아 갔다 루비아가
나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저 작은 짐승을 쫓아 몇 년 동안이나 헤매고 다닌겁니다
이제 우리들이 조심스레 쳐놓은 덫에 걸려들기 시작하는군요 저들이 우리가 생각한
바로 그것들이라면, 실험 물리학에 중대한 이정표가 세워지는 거지요"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여행을 다그치면서 이때부터는 이론 물리학자들도 독자적인
길을 열어야 한다 현재 그보다 더 큰 가속기가 건설중이지만, 지구상에서 지금
세워지고 있는 어느 장치로도 우주 초기의 온도에 맞먹을 높은 수준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이제부터는 실험적인 방법으로 이론적인 추리를 입증할 길이 없다
호킹은 10^45,35^20초에 작은 블랙홀이 형성되었으리라 생각하는 단계에 도달한다
그는 이와 같은 미니 블랙홀들이 우주 전역에 흩어져 있다고 믿는다 역사상 처음으로
물리학자들은 이 안에서 중력의 양자효과를 찾아야 한다
"미니 블랙홀들이 아주 많다고는 할 수 없을 거에요" 호킹이 말했다 "그렇지
않다면 감마선을 많이 볼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감마선을 많이 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 은하계에서 지구와 명왕성의 거리 이상으로 가깝지는 않아요
거기에다 은하계의 중력효과로 말미암아 미니 블랙홀의 밀도는 은하계 바깥보다는 그
안에서 더 높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10^45,35^32초에 우주는 소프트볼 크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온도는
10^45^27켈빈(K)도(역주-켈빈도: 열역학의 법치기을 바탕으로 하여 정의된 온도의
고저를 나타내는 척도로 절대온도라고도 한다)이다 그보다 조금 앞선
10^45,35^35초에 원점회귀 여행의 마지막 정거장이 있다 물리학자들이 초기우주
역사를 둘러싼 사관이 정확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이기도 하다
특이점 이후 1초의 몇 분의 1이란 빛이 양자를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1조'배나 짧다
대통일론을 확신하고 있는 물리학자들은 10^45,35^35초에 강핵력이 다른 두 가지
아원자력-전자기력과 약핵력-과 하나였다고 굳게 믿는다 이들 대통일론은 우주사에
있어 이 순간의 우주가 어떤 모양이었던가를 그리려 하고 있다 우주는 크기가
10^45,35^24cm에 지나지 않았고, 그 순수 에너지는 쿼크 및 경입자와 같은 점과 같은
입자로 응결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물질(역주-물질 matter: 분자의 집합체로, 분자는
원자의 복합입자이고 원자는 원자핵과 핵외 전자의 복합입자이며, 원자핵은 중성자와
양성자의 복합입자)과 반물질(역주-반물질: 전자, 양자, 중성자로 이루어지는 실재의
물질에 대하여, 그 반입자인 양전자, 반양자, 반중성자로 이루어지는 물질
이론적으로 상정되어 있으나 실재는 확인되지 않았다)이 거의 같은 분량이었다
플랑크 벽의 시점은 10^45,35^43초에 다가온다 이 시점에는 시간, 공간과 물질을
서술하는 물리학자들의 능력이 근본적으로 무너진다 중력은 빅뱅의 순간에 존재했던
단일 통일력과의 이음을 막 끊어버린 단계에 이른다 그러나 중력의 양자처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렇다고 단정할 자신이 없다
물리학자들이 플랑크 벽을 통과하려면, 다양한 대통일론들이 제 궤도를 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지구상의 가속기로 그들의 시험할 확고한 방법이 없다
우주사의 이 시점에서의 에너지 수준은 도저히 재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따라서
새로운 실험기법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일론이 맞다면, 남은 것은 중력뿐이에요 그러나 대통일론이 과연 정확한
모델인지는 완전한 확신이 서질 않아요" 호킹의 말이었다 "잘아시다시피, 표준형
빅뱅 모델에는 몇 가지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게다가 다양한 대통일론들이
반드시 일관성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지도 않단 말이에요"
또 한 가지, 자기 일중극 magnetic monoploe의 문제가 끈덕지게 따라다닌다
대다수의 대통일론에 따르면, 자기 일중극이란 그 정체를 알기 어려운 입자로 플랑크
벽의 이쪽에 있는 순간의 공간에서 비틀려 나왔다 물질의 생성과 지배과정을
설명하는 이론들도 이와 같은 자기 일중극에 도달한다 그들은 자유자극이며,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어느 자석의 남북극과 비슷하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물리학 교수 블라스 카브레라 Blas Cabrera는 전혀 새로운
물질인 이들 자기 일중극들이 오늘날에도 실제로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노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카브레라의 연구결과에 대해서는 배심원들이 아직 평결을 내리지 않았다
마이크로파의 배경복사가 지나치게 균일하다는 사실이 또 다른 관심사이다 실제로
그 복사가 우주의 나이 10만년 경에 물질에서 떨어져 나왔다고 하자 그러면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우주의 전혀 다른 부분에 퍼져 있는 복사가 어떻게 그처럼
동질적일까? 우주사의 그 시점에 우주공간의 각 부분들은 이미 몇 백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었다 그처럼 먼 거리를 두고 에너지 교환이 일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주공간의 어디서나 똑같은 배경온도를 탐지할 수 있었던가?
거기에다 10^45,35^43초에는 여전히 그 벽이 가로막고 있다 이 마지막 경계선을
통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 저쪽에는
궁극적이고도 단순하고 자기설명이 가능한 우주가 존재할 것이다
다시 호킹의 설명을 붙였다 "이 시점의 중력장은 대단히 강력하여 양자효과를
계산에 넣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이해하려 한다면,
중력작용과 양자역학이 결합되는 방식을 밝혀내야 합니다"
"플랑크 시간은 고전적 상대성 이론으로 시간과 공간을 서술하는 우리들의 능력이
무너졌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력을 양자화하는 방법을 알 수 없기 때문이에요"
어느 의미에서, 이론 과학자들은 플랑크 벽을 통과할 수는 없었지만, 접근은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우주 발달사의 중대한 시점을 넘어 방정식들을 이리저리 얼렁뚱땅
꿰어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가 10^45,35^4초였다 빽빽히 들어찬 양자와
중성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슬쩍 넘어가도 괜찮다고 결정했던 시점이었다 플랑크 벽은
우주의 최후통첩이다 거기서는 방정식을 어물쩍 넘겨버릴 수 없고, 지나치게
복잡하고 모호하여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뛰어넘을 수도 없다 바로 여기서 인류
역사상 가장 명쾌한 표현으로 인간의 모든 계산과 사고를 집중시켜 우주를 탐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우주가 어떻게 시작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끝내 정확하게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8. 거품이냐 빅뱅이냐?
한 세대의 물리학자들에게 빅뱅은 우주생성의 운용법으로 단단히 제 구실을 해왔다
하지만 요즘 우주학 회의에 가보면, 거품과 팽창우주 이야기 이외에는 다른 말을 듣기
어렵다
그 동안 이론 물리학자들이 빅뱅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적당히 꾸며낸 요인들을 놓고
속이 편했을 리가 없다 그 시나리오에 따르면 대폭발이 일어나 물질과 힘이
태어났고, 그것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오늘날까지 팽창하고 있는 우주를
만들어냈다 어떤 사람들에게 태초의 특이점은 곤혹스러웠고,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에게 빅뱅은 배경(자연) 복사의 균질성을 적절히 설명하지 못하게 한다
그것은 폭탄이 터져서 파편들을 완벽한 구형으로 흩어지게 한다는 말과 같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빅뱅론은 우주 속에 있는 공간의 본질을 둘러싸고 일반적인
단언을 하고 있다 즉, 우주 자체의 평면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공간을 구체의 표면이
아니라 평평한 탁자의 표면과 같다고 간단히 치부하고 말았던 것이다
호킹은 "우주가 거품으로 시작했다는 이론이 이와 같은 여러 문제들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1981년에 시작된 거품이론은 빅뱅의 결함을 거의
제거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그
밑바닥에는 허공에 떠 있는 풍선들과 마찬가지로 부풀어오르는 거품에서 하나가 아닌
여러 개 우주가 생겼다는 관념이 깔려 있다 태초에 에너지화된 점들이 고르지 않게
혼합되어 있었고, 그 점 하나하나가 천조의 조 배보다 더 뜨거운 온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 열기로 인해서 이 점들은 대단히 빨리 팽창하여 멀지 않아 그 열을 잃고
말았다 따라서 그들은 "초고속으로 냉각되었다"
이 현상은 10^45,35^43초의 플랑크 벽을 조금 지나서 일어난다 그때 중력은 벌써
3개의 양자력에서 떨어져 나온 뒤다 그 초냉각대들은 하버드 대학교 물리학 교수
시드니 콜먼 Sidney Coleman이 "거짓 진공"이라 이름 붙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문제의 거짓 진공은 둘레에 있는 중력장에서 에너지를 끌어들인다 그 과정이 시작된
후 약 10^45,35^35초에 그 초냉각대들은 음중력의 일격과 같은 방대한 에너지의
반격을 받고 폭발하여 거품을 이루고, 그 하나가 독자적인 우주가 된다
"거짓 진공"이 그 개념의 열쇠다 그것은 영하로 뚝 떨어지게 냉각된 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물은 한 순간 그와 같이 액체의 상태로 있다가 재빨리 결정을 이루어 얼음이
된다 초냉각대들 역시 그와 같은 이치가 적용된다 그들은 한 순간 교란 되지 않은
상태로 있을 수 있다
거짓 진공의 작용으로 만들어진 거품들이 다시 식기 시작할 때, 한데 뭉쳐 있던
전자기력과 약핵력이 서로 떨어져 나와 독립된 실체를 만든다 그 거품들 가운데 하나-
우리 우주-의 안에 있는 에너지가 응어리지면서 경입자 및 쿼크와 같은 입자가 되기
시작한다 이 팽창기의 끝, 태초 이후 10^45,35^32초에 우리 우주는 모든 별, 은하계,
행성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구성할 물질을 품고 있으며, 그 크기는 1개의
사과만 하다 이 시점에 와서 일반적인 빅뱅 시나리오를 물려받는다
요즘 물리학자들은 거품 시나리오에 대단한 흥미를 갖고 있다 한 가지 이유를
들어본다 우주 팽창기에 거품은 빅뱅 도식에서보다는 훨씬 느리게 발달했다 그에
따라 물질은 시간을 두고 발달하여 고르게 혼합되었고, 동일한 온도에 도달했으며,
우주 전역에서 균질적인 복사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거품이론은 자의적인 가설이 아니라 자연법칙에 의지하여 우주의
평면성을 설명 할 수 있다 거품 하나가 오늘날의 우주의 크기로 자랄 동안에, 지구와
같이 큰 구체의 표면이 평평하게 보이듯이 평면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면 거품 시나리오에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무엇인가? 천체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된 거품 안에 물질 덩어리들이 어떻게 응결하여 은하계와 별들이
되었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일부 물리학자들은 동시에 여러 개의
우주들이 생겼다는 가설을 놓고 어리둥절하다
과연 어느 때에 가서 인간이 그 실상을 확실히 알 수 있을까? 물리학자들은 이
대목에 와서는 서로 의견이 엇갈린다 상식만으로 따진다면, 부풀어오르는 빵 속의
거품이나 기포처럼 분리된 우주들은 절대로 만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파격적인
이론 과학자들은 그들다운 열성으로 전혀 다른 주장을 한다 팽창속도가 내려가다가
마침내 중지하면, 일부 우주들은 결국 서로 합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는 것이다
"팽창이라는 현상은 이 시기의 우주 확대과정이 정밀하게 조절되었음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호킹의 말이었다 "한편으로는 이 때문에 우주는 블랙홀과는
달리 폭삭 내려앉지 않고 팽창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물질이 너무 엷게 퍼져서
은하계가 형성될 수는 없었을 거에요"
나는 호킹의 언어를 빌린다면 "시간의 시작"인 특이점에서의 우주의 문제가
궁금했다 거품이론이 수많은 이론 물리학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이 특이점을 제거할
수 있을까?
"글쎄요, 거품을 이용한다면 특이점이 없는 우주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호킹이 내 의문에 대답했다 "하지만 중력붕괴에 있어서의 특이점에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게다가 블랙홀의 특이점 역시 제거할 수 없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거품개념이 최초의 특이점을 제거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가능할 수도 있겠지요" 호킹이 그답지 않게 어정쩡한 말을 했다
몇몇 물리학자들이 거품우주를 연구해왔다 그 중 한 사람이 프린스턴 대학교의
젊은 천체 물리학자 J. 리처드 고트 Richard Gott이다 그는 우리들의 우주란
대단히 크면서도 한정된 밀도의 뜨거운 액체 속의 거품들과 마찬가지로 무한수의
우주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우주
하나하나가 팽창의 각도에서 본다면 "열려있고" 무한하며, 영원히 식지 않고 커진다
이 거품들은 빌렘 데 지터의 이름을 딴 이른바 데 지터 공간에서 형성되었다
데 지터는 1917년에 처음으로 이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언제나 팽창하고
있는 곡면의 무한우주를 서술하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장 방정식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이다 그의 해답에 데 지터는 만유 반발력과 비슷한 우주상수를
덧붙였다 만유 반발력이란 일종의 음중력이다 데 지터의 팽창우주에서는 어느
개별적인 점도 다른 점과는 서로 멀어지는 성향이 있고, 그 분리속도는 점차 늘어간다
고트의 거품우주에서는 최초의 거품이 그를 에워싸고 있는 데 지터 공간에서
거침없이 틀지워진다 그러는 과정에 태초의 특이점이 제거된다 고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방대한 우주는 동질적이다 그와 같은 우주는 팽창초기의 우주가 단
한 순간이라도 모든 부분이 다른 모든 부분과 직접 또는 근본적으로 서로 연관되었을
때에만 생길 수 있다
표준적인 빅뱅 우주론에 따르면, 초기우주의 각 부분은 인과관계로 이어지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팽창이 시작되었을 때 그들 사이는 거리가 너무 멀어 빛이 왕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로 우주학자들은 늘 골치를 썩이고 있다 팽창
우주론에서와 마찬가지로 고트의 모델에서도 짧기는 하지만 밀도의 정지국면이 있고,
이 시간에 우주의 모든 부분들이 인과적으로 서로 연관을 짓게 된다 그 사이에
거칠고 들쭉날쭉한 점들을 잘 쓰다듬어 동질적인 우주를 만든다
그러나 고트의 우주론에는 특이한 점이 있어 호킹 복사를 초기우주에 적용하고 있다
고트는 중력과 양자역학의 상호작용에 주목했고, 블랙홀을 둘러싸고 있는
사상지평들은 끊임없이 열복사(역주-열복사: 열전달 원인이 되며 고온일수록 강하고
파장이 짧다)를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침내 호킹 복사가 우주 전역에 고루
퍼져 있는 배경복사를 설명한다는 가설에 도달했다
호킹을 비롯하여 여러 과학자들이 사상지평에서의 블랙홀 복사는 심오한 정리의
특수사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미 입증했다 그리고 사상지평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나 열복사가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빛이 달아날 수 없는 어떤 부위의
경계, 블랙홀의 가장자리나 우주의 변경에서는 어떤 형태의 열복사가 일어날 것이다
데 지터 공간의 중대한 성질 가운데 하나가 사상지평과 호킹 복사가 그 곳에 가득한
것이라고 고트는 주장한다 그것은 늘 증가하는-사실 지수 급수적으로 증가하는-모든
사상지평들을 만들어내는 팽창현상이다 2개의 점이 아주 멀리 그리고 대단히 빨리
떨어져나가 그 사이를 광선이 도달할 수 없다고 하자 그러면 그 두 점의 사이에
사상지평이 일어난다
호킹과 그의 제자요 연구실 동료인 게어리 기번스 Gary Gibbons는 호킹 복사가 이들
특수한 사상지평들과 연관이 있다는 계산을 끝마쳤다 그러나 고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호킹과 기번스는 초기우주의 팽창관계에 나오는 복사의 에너지 밀도를 수학적으로
설명했다 고트는 이들의 성과를 이용하고, 에너지 밀도의 일관성과 동질성을 보장할
또 하나의 요인을 덧붙인다 이 상수는 수학적인 차원에서 데 지터 공간을 채우고
있는 균일한 밀도의 유체(역주-유체 fluid: 액체와 기체의 병칭 압축성 유체와
비압축성 유체의 둘로 대별하고, 점성이 전연 없는 것을 완전 유체라고 한다)와
아주 비슷하다 그러나 이 고트 유체는 음압력을 지니고 있고, 창시자 고트는 그것을
만유흡력이라 부르고 있다
고트는 최근에 계산한 양자 장이론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호킹 복사는
일정한 조건하에서 정확히 이처럼 괴이한 모양으로 작용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 조건들은 초기단계의 데 지터 공간의 팽창기에 존재했다
그의 계산에 따라 흥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사상지평은 호킹 복사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복사는 거품우주를 팽창하게 하는 유체가 된다 고트 상수, 또는 호킹
복사의 유체는 데 지터 공간의 지수 급수적 팽창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그리고 그
팽창작용으로 인해서 사상지평이 생긴다
이 순환론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 호킹 복사가 굉장히 뜨거워 섭씨
10^45^31도 이상이어야 하고, 1^356,146,14,134^의 물질밀도는 10^45^93g이라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이어야 한다 그와 더불어 고트가 상당히 자신을 갖는 대목이 있다
이처럼 극단적인 밀도와 열은, 중력이 양자장과 의심스러울 정도로 흡사하게 작용할
적정한 조건, 중력이 양자화되는 수준이다
고트는 자신의 거품이론에 팽창기를 포함했다 이 전환기에 물질은 미묘하게 변한다
예를 들어, 그 이전에는 질량이 없던 쿼크가 갑자기 질량을 띠게 된다 이 기간에
호킹 복사는 팽창하는 데 지터 공간에서 거품으로 들어가고, 10^45,35^42초라는 한
찰라에 일반물질로 바뀐다 오늘날의 천체 물리학자들이 되돌아보며 빅뱅이라 부르는
그 현상이 복사에서 물질로 바뀌는 거의 찰라적인 이 변환이라고 고트는 믿고 있다
따라서 새 우주의 사상지평이 생성하는 호킹 복사는 오늘날의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의 근원이다 호킹 복사는 데 지터 공간에서 원래 균일하기 떄문에 배경
마이크로파와 우주 그 자체가 다 같이 극히 동질적이다
고트 모델에는 위험스러운 일면이 있다 플랑크 시간의 저쪽, 다시 말하면,
10^45,35^44초 또는 그 이전에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우리들에게 알려주려 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시기에 무한한 숫자의 다른 우주들이 잔에 따른
맥주 위에 거품이 일듯 생겨났다
그러나 불행히도 다른 우주들 가운데 단 하나도 영원히 관찰할 수 없다 각기
사상지평을 사이에 두고 다른 우주와 갈라져 있고, 사상지평은 빛의 장벽이 되어 서로
일체의 정보를 전달할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다
어느 과학이론이든 그 본질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자연스러운 귀결로 반증할
수도 있어야 한다 따라서 고트가 말하는 거품과 무한한 숫자의 우주들을 증명하거나
반증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가능성이 전혀 없다
또 하나, 데 지터 공간의 거품행태를 좀더 정확히 알려고 한다면 연구를 더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의 모델이 갖는 이론적이 틀이 좀더 튼튼해질 수 있다 사실을
수집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우주의 거시적 특성과 행태에 관해서 좀더 완벽하고 질
높은 천문관측을 해야 한다고 고트는 강조한다
은하계와 성단(역주-성단: 천구의 일부에 밀집하여 있는 항성의 큰 집단)들은 완전히
동질적인 우주에서는 절대로 형성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이 대다수 천체 물리학자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고트의 이론에 따르면, 출생 직후의 한 순간에 우주는 바로 그와
같은 모습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우주사의 어느 시점에 와서야 우주는 들쭉날쭉 하고
임의적인 요동을 일으키게 되었다 하늘을 좀더 멀리, 좀더 자세히 볼 수 있으면 이와
같은 변태를 설명 할 수 있으리라고 고트는 믿고 있다
나는 호킹에게 고트의 이론을 물어보았다 특히 우주 안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를
호킹의 복사를 이용하여 설명하는 데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데 지터 공간에는 열복사가 있는데, 거품이 중요한 요소지요 그런데 고트는
그걸 정확하게 계산에 넣지 않았어요" 호킹은 이렇게 말하고는 얼른 말을 이어 자기의
연구결과를 옹호했다 "게어리 기번스와 내가 데 지터 공간에는 열복사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했어요 블랙홀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상지평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형상이 일어나는 거에요 따라서 블랙홀 복사와 아주 흡사하고, 아울러 호킹
복사와도 비슷하지요"
그러면 호킹은 고트가 초기우주에 호킹 복사를 적용하려는 시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는 그의 상표가 된 그 짓궂은 웃음을 날리며 입을 열었다 "글쎄요, 고트는
독일어로 하느님이란 뜻이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과분한 주목을 받고 세상에
알려졌다고 해야 할 거에요 그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비슷한 아이디어를 내놓았어요
그 중 몇 사람은 고트를 훨씬 앞질렀지요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거품을
일으키는 역학을 좀더 자세히 설명했어요"
"그 중 두 사람이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앨런 거스 Alan Guth와 모스크바의
스타로빈스키 Starobinskii에요" 호킹의 말이 이어졌다 "사실은 스타로빈스키가
거품 우주론을 들고 나온 최초의 인물입니다"
호킹은 1981년 말에 거품-빅뱅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때 몇몇 소련 이론 과학자들의
탁월한 연구에 끌려 소련을 방문하여 팽창우주를 둘러싸고 그들이 배우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는 모스크바의 레베데프 물리학 연구소로 A. A. 스타로빈스키,
A. D. 린데 Linde를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을 찾아갔다
"소련에서 전개된 거품 우주론의 일부는 사실 아주 매력이 있더군요" 호킹이 당시를
회고했다 "내가 관심을 가졌던 기본사상은 아주 단순했어요"
"거품이 생겨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하나 이상의 거품이 등장하기 마련이에요
거기에다 이 거품들은 동질적이 아닌 우주가 생기게 되는 거에요 그건 오늘날
우리들이 관찰하고 있는 우주와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린데는 어느 논문에서 이웃에 다른 거품이 형성되지 않고 단 하나의 거품이 생길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발상이야말로 호킹이 조사, 연구하고 싶었던 주요
과제였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린데와 이 문제를 놓고 여러 시간 토론을 벌였다
호킹이 그때를 되돌아보며 말했다 "린데의 사상이 소련에서는 최고라는 생각을 하며
그 곳을 떠났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이론에는 어딘가 잘못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요"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뒤 그는 제일 먼저 동료인 이언 모스와 무릎을 맞대고 앉아서
소련 이론들의 결함을 바로잡을 논문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거스의 시나리오에 나타나는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팽창단계에 등장하는
몇 개의 큰 거품들이 지배하는 지극히 비균질적인 우주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데
문제가 있었던 거에요" 호킹이 말했다 "우리들은 논문을 통해 일정한 환경하에서
초기우주의 모든 공간점에서 동시에 팽창기가 일어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므로 비균질적인 상태가 조성될 수 없는 거에요"
호킹이 그 접근법을 구상했고, 모스는 계산을 담당했다 그들은 비교적 직선적인
과정을 거쳐 이 해법에 도달했다 호킹이 말을 이었다 "다른 논문들은 평면 시-공간
문제로서 팽창기로부터의 탈출을 다루었습니다 거기에는 우주의 곡률(역주-
곡률 curvature: 곡선이나 곡면의 굽은 정도, 그 값은 곡률 반지름의 역수이다)과 한정
지평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팽창기가 평면시공이 아니라 만곡시공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입증했지요
그러므로 달리 비균질성이 없는 우주는 팽창기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이 논문은
까다로운 문제에 비교적 단순한 해답을 내리고 있어 우주학자들 사이에 널리 관심을
끌었다
1982년 6월, 호킹과 게어리 기번스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초기우주-우주사의
첫 1초 동안-를 주제로 회의를 주제했다 이 분야의 대표적 학자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소련에서 린데와 스타로빈스키를 비롯한 5명의 우주학자들이 참석했고, 미국과
유렵에서는 거스를 비롯하여 24명의 학자들이 몰려들었다 한 가지 문제가 가장 큰
관심을 끌었다
어느 것이든 팽창 시나리오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거시적으로 볼 때에는
우주가 균질적이지만, 미시적으로 볼 때에는 반드시 균일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그 안에는 은하계와 별들, 그리고 은하계 집단과 같은 물질 덩어리들이 들어
있다 말을 바꾸어, 팽창우주가 지금 우리들이 우주에서 보고 있는 별과 은하계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전혀 분명치 않았다 3주 간의 워크숍에 참석했던 물리학자들은
이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 몇 개 그룹으로 나누어졌다 각 그룹을 호킹, 거스와
스타로빈스키를 비롯한 권위자들이 이끌었다
그 자리에 모인 이론 물리학자들은 "새 팽창우주"라고 부르기 시작한 대상을 놓고
시험과 검증을 거듭했다 그들은 흑판과 컴퓨터 터미널 주의에 무리지어 앉아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때는 은하계 형성문제의 해법을 발견했노라는
생각을 했다 팽창 시나리오는 우주 전역에 적절히 퍼져 있는 물질 덩어리의 정확한
숫자를 제대로 산출했음을 그들의 계산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팽창 시나리오를 수학적인 결론까지 밀고 나갔을 때에는 사정이 달랐다 이
물질 덩어리들은 때 이르게 형성되었다가 거의 순간적으로 붕괴되어 블랙홀이 되었고,
우주는 칠흑같은 어둠에 싸였다 호킹과 몇 명의 학자들이 협력하여 만든 새
팽창우주의 가장 단순한 모델은 생긴지 불과 6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사망선고를
내려야 했다
"이번 회의는 적어도 우리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회의는 실패작이 아니었지요 아울러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밝혀주었습니다" 호킹의 말이었다
우주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모델은 여전히 팽창우주이다 호킹의 말이 이어졌다
"그쪽이 올바른 접근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들어내는 문제보다는 풀어주는
문제가 더 많으니까요 " 이론 과학자들이 유달이 좋아하는 팽창의 산물이 하나 있다
초기의 팽창폭발이 초기우주의 모든 물질을 매끈하게 가다듬어 우리 우주와
마찬가지로 끝없이 팽창할 수 있는 밀도를 마련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급속히 성장하는 젊은 우주는 물질의 밀도가 대단히 높아서 블랙홀과 마찬가지로
제물에 무너져 내릴 수 있었다 혹은 물질이 너무 얇게 펼쳐져 은하계로 덩어리질 수
없었고, 우주공간을 그냥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우주팽창에는 놀랄만큼 정밀한
조절이 필요했다 이 현상은 팽창기의 첫 10^45,35^32초에 일어났으리라 생각된다
우리 우주는 아직 청년기에 있지만, 이론 과학자들은 그 궁극적인 운명을
탐색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들은 열린 우주에서 살고 있는가? 현재의
팽창작용이 영원히 계속될 것인가? 그리하여 결국 모든 물질은 흩어질 대로 흩어져
항성과 은하계들이 하나씩 하나씩 껌뻑거리다가 사라지고 말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은 닫혀진 우주에 살고 있는가? 어느 날엔가 우주가 제 위에 주저물러앉고,
빅뱅을 역전시켜 천체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빅크런치 Big Crunch라는 몰락의 대격변을
겪게 될 것인가? 우주의 운명은 아직도 수십억, 또는 수백억년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호킹의 의견을 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우주의 운명을 안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의 대답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가장 정확하게 말한다면 바로 붕괴와 팽창의 경계선상에
있다고 하겠지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 추측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느 특정한 우주론 모델은 붕괴를 피하기에 알맞은 에너지를 가지고 계속해서
팽창하는 우주를 그리고 있습니다 내가 어느 모델을 골라야 한다면, 저쪽, 붕괴의
언저리에 있다는 바로 그 모델을 고르겠습니다"
그런데 나란히 자리잡은 거품 우주관은 우주가 열려 있고, 무한히 팽창하다가
마침내 끝없이 어둡고 차가운 상태에 도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해석이 정확한가?
"나란히 있다는 다수 우주론은 열린 우주론에 영향을 주지 않아요" 호킹의 대답이었다 "사실은 그걸 고전적인 문제라 생각할 수는 없어요 양자역학, 그리고 그에 따른 모든 확률을 계산에 넣어야 할 거에요"
"수많은 우주들이 나란히 있다는 것다고 할 때, 참으로 위험한 땅,
형이상학적인 땅을 밟고 있는
거에요 비트겐슈타인(역주-비트겐슈타인 Wittgen stein 1889~1951: 오스트리아의
철학자로 논리적 실증주의 입장 생전유일의 저작 '논리 철학적 논문'에 의해 빈 Wien
학파에 큰 영향을 주었다)이 그런 말을 했을 겁니다 그는 반생을 케임브리지에서
보냈지요 다른 우주들의 존재란 술어가 아니라고 그는 말했어요 적어도 나는 그
분이 그런 말을 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말의 뜻은 다른 것이 아니었어요
우리들이 관찰할 수 있는 어떤 결과가 없는 한 다른 우주들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본들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거에요"
"우주에 양자역학을 적용할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우주가 서로 온갖 모양의
가지들을 달고 있는 그림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되는 겁니다"
이들은 관찰할 수 있는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부위들을 가리키는가?
"아네요 이들은 물리적인 가지들이 아닙니다" 호킹이 내 의문을 풀어나갔다
"우주가 여러 가지 다른 형태를 갖출 확률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뜻이에요 우주가
달려 있을 확률이 있고, 닫혀 있을 확률도 있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그는 자기의 추리를 즐기는 표정이 역력했다 "우리들은 열림과 닫힘의 바로
경계선에 있는 우주의 특정한 가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에요 열림과 닫힘의
경계선에 너무나 가까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우주의 가장 놀라운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경계선에 있지 않을 확률도 엄청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우주가 그 상태에 너무나 접근해 있어서 과연 어느 쪽에 있는지를 가름할 수
없습니다"
우주가 열렸는지 아니면 닫혔는지를 어느 때에 가서 알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형이상학에 맡겨야만 가장 적절한 문제가 되고 말 것인가?
"머지 않아 그럴만한 장비가 나오겠지요" 호킹이 말했다 "우주 망원경이 경계선의
어느 쪽에 우리들의 우주가 자리잡고 있는지를 결정적으로 밝혀줄 거에요 우주공간을
좀더 깊숙히 탐색하여 우주 안의 물질을 좀더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어느 쪽에 있다고 단정하지 못할 경우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너무 근접해 있기 때문이에요 만일 우리 우주가 완전히 그 경계선 위에 균형을 잡고
있다면, 영원히 알 수 없을 거에요 그러나 우리들이 지금까지 관찰한 모든 조짐으로
미루어, 우주 망원경이 작동할 때에는 우주의 열림과 닫힘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 겁니다"
"그때 무얼 알 수 있을까요?"
"우리 몸 속의 원자들의 운명이지요"
나는 프랑스 알프스에 있는 스키 마을 샤모니를 내려다보는 몽블랑의 비탈에 서
있었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으며, 산은 가을의 첫눈을 너울처럼 쓰고 나무잎새들은 막
단풍이 지기 시작했다 피아트의 소형 패널트럭이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이어주는
몽블랑 터널을 빠져 나왔다 스위스 제네바의 서쪽 60마일 지점에 CERN 가속기
연구소가 있다 그곳 고위직의 한 사람인 로저 앙트완Roger Antoine과 내가 그 차에
올라탔다 트럭은 U자 회전을 하여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갔다
길이 7마일 터널의 중간지점에 이르자 자동차 매연과 디젤 냄새로 공기가 매캐했다
바로 그 지점에 도로에서 옆으로 들어가는 바위동굴이 있었다 단 한 가지를
시험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우주에서 가장 안정되고 믿음직한
시민이라고 할 양자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양자들도 다른
대다수의 입자들고 마찬가지로 붕괴하고 마는가? 20년 전이었다면, 양자 붕괴론은
과학계의 이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오늘날 그 가설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다양한 대통일론들이 빚어낸 하나의 결과로
종전에는 불변이라 생각했던 양자가 결국 붕괴되어 다른 입자가 된다는 가설이 나왔다
이론에 따르면, 양자를 묶어두는 강핵력과 방사성 붕괴(역주-방사성 붕괴: 핵종이
스스로 방사선을 방출하고 다른 핵종으로 변환하는 현상 붕괴의 종류로는 ^4,1^붕괴,
^4,12^붕괴 ^4,1245^붕괴와 전자 포획, 양자붕괴 등이 있다)를 일으키는 약핵력은
궁극적으로 동일한 기초적 상호작용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이상호작용은 우주사의 첫 10^45,35^32초의 한 찰라에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므로
방사성 원자와 마찬가지로 양자 그자체도 결국은 붕괴의 운명을 맞게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론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예측하고 있다 어느 양자든 붕괴하는 데에는
대단히 긴 시간이 필요하며, 평군 잡아 적어도 10^45^30년 또는 그 이상이 걸리리라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이 아득한 미래에 일러날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할 장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놀랄 만큼 쉬운 일이엇다 그
시간의 거리가 우주의 나이보다 더 길다
몽블랑 꼭대기에서 밑으로 2마일을 내려가면 우주복사에서 완전히 차단되어
과학장비에 그릇된 신호가 나타나지 않는다 거기서 이탈리아 물리학자 피키 피오
Picchi Pio가 나에게 양자의 일생을 측정하는 실험을 보여주었다
"우리들이 수십억 년을 살아서 양자가 사라지는지 어떤지를 볼 수 없는 건
분명합니다" 피오의 말이었다 "그러나 10^45^30개 또는 그 이상의 양자들을 모아
일정한 기간, 예를 들어 1년 사이에 붕괴되는 지를 알아볼 수 있는지요"
양자붕괴(역주-양자붕괴: 원자핵이 붕괴되어 그 안에서 양자가 서서히 나오는 현상
우라늄의 핵분열 따위처럼 원자핵은 몇가지 형태로 붕괴되지만 이때 양자가 방출되는
현상의 확인은 대단히 어려웠는데, 정밀한 장치의 등자으로 가능해졌다)가 자연의
사실이라면, 통계적으로 적어도 양자가 1년에 1개는 사라질 것이다
피오가 자신이 모아놓은 양자들을 보여주었다 통틀어 150톤이 되는 그것들은
층층으로 쌓아올린 철판에 들어 있는 양자의 숫자가 약 10^45^32개, "실험을 훌륭히
해낼 수 있는 아주 적절한 숫자"라고 했다
그 철판에는 가이거 계수기(역주-가이거 계수기 Geiger counter: 방사선 입자의
입사로 일어나는 기체방전을 이용하여 그 입자를 하나씩 세는 장치)와 비슷한 장치가
4만2천 개가 박혀 있어 죽어가는 양자가 방출하는 폭발적인 복사를 잡아낼 수 있다
열량계(역주-열량계 calorimeter: 물체의 열량을 측정하고 비열^256^잠열들을 알아내는
장치)라고 불리는 이 장치들이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어, 이탈리아의 몇 개 대학과
CERN에 소속되 피오를 비롯한 연구동료들은 컴퓨터 터미널에서 원하는 신호가 있기를
지켜보게 된다
아니 그냥 지켜보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내가 1982년 말에 그 실험을 직접 보았을
때, 후보가 되는 4개의 사상들이 컴퓨터 스크린에 이미 나타났었다
피오가 컴퓨터의 프린트 한 장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는 실험 참가자들이
양자붕괴의 흔적이라고 보아도 좋을 Y형 자국이 하나 있었다 양자 하나가 붕괴하여
뮤 중간자라는 경입자 하나와 양전자로 갈라지고, 자그마한 에너지 폭발이 일어나
열량계에 잡혔다는 풀이였다 그가 나에게 보여준 또 다른 자국은 중성미자(역주-
중성미자 neutrino: 베타가 붕괴할 때에 에너지 항존의 법칙으로 보아 그 존재가
가정된 중성의 소립자 실증되지 않았으나 그 존재는 거의 인정되고 있다)의
그것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중성미자는 지구를 완전히 꿰뚫고 나와 몽블랑의 이
터널에 도달했다
인도와 일본, 미국의 오하이오, 미테소타, 사우스다코타와 유타 등지에서 그와
비슷한 실험을 통하여 양자의 일생을 밝히기 위해 거액의 돈을 쓰고 있다 인도의
실험 과학자들은 줄잡아 8개의 양자붕괴 사레들을 확인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대다수의 실험은 확고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만에 하나라도
양자붕괴를 확실히 증명할 수 있다면, 다양한 대통일론들이 올바른 궤도를 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아울러 우주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것을 과학자들은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양자는 물질의 핵심적인 구성요소들이기 때문이다
호킹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그런 방법으로 양자붕괴를 찾아내지는 못할 거에요" 어느 날 그의 연구실에서
호킹이 나에게 잘라 말했다 "만약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그 실험에 어떤 잘못이
있음을 말해주는 겁니다 양자의 일생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길다고 보고
있으니까요 그들은 10^45^30년에서 10^45^33년에 이르는 시간대를 보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에요 나는 10^45^33년보다는 상당히 긴
시간이어야 하리라 추산을 하고 있어요 그럴 경우에는 거의 볼 수 없을 거란
말입니다"
"아주 자신이 있는 듯한 말씀이로군요" 내가 말했다
"대통일 모델들에 등장하는 제일 단순한 방정식들이 정확하다면, 발견될 수 있을
거에요" 그는 한 걸음 물러섰다가 다시 강조했다 "하지만 그 일생이 10^45^33년보다
훨씬 긴 대통일 모델들을 만들 수 있지요 그러면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지금만이 아니라 미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를테면 양자붕괴를
중성미자들이 일으킨 다른 일정한 현상들과 구분할 수 없을 거에요 이들 현상은
똑같지 않으면서도 양자붕괴와는 아주 흡사하거든요" 나는 피키 피오의 중성미자를
떠올렸다 그것은 지구를 완전히 꿰뚫고 찾아왔으며, 그 자국이 이른바 죽음의 진통
중에 있는 양자가 남긴 자국과 무척 닮았다
"그와 더불어 작은 블랙홀이 일으킨 또 다른 유형의 양자붕괴가 있습니다" 호킹이
말했다 "이들 작은 블랙홀은 양자보다 작거든요 하지만 그 경우의 양자수명은
10^45^45년에 가깝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아직 그만한 시간을 측정할 순 없습니다"
호킹은 양자 연구가들의 실험을 경멸했다 그것은 이론 과학자들과 실험 과학자들
사이에서 으레 일어나는 상호불신의 일종이라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나는 실험 과학자들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거에요"
"어느 때건 양자붕괴가 입증된다면, 상당히 재미있는 추리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9. 인류의 원리를 찾아서
태초의 대폭발 빅뱅론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종교계에서는 그에 즉각 호응하는
단체들이 적지 않았다 거기 담길 수 있는 과학적 창세기가 어떤 내용인가를 안 뒤에
교황 파우스 12세는 1951년에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과학이 문을 열 때마다 바로
그 뒤에 하느님이 기다리고 계시듯, 참다운 과학은 점진적으로 하느님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서서히 발견되고 있는 빅뱅의 여러 사실들이 줄잡아
어떤 창조자 또는 창조력의 작업을 암시하고 있노라 생각하고 있다 과학은 절대로
창생의 바로 그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없고, 철학, 형이상학과 신학이 시작되는
시점까지 도달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 오래지 않아 밝혀질지도 모른다 스티븐
호킹이 이 불확실한 영역을 잠시 더듬어본 적이 있다 "빅뱅과 같은 상태에서는 우리
우주가 출현하지 못할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그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우주의
기원을 논의할 때마다 거기에는 분명히 종교적인 함축이 배어 있기 마련이지요
틀림없이 종교적인 기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종교적인 측면을
피하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에 호킹과 몇 명의 동료들이 우주의 숫자가 아니라 의미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부 과학자들은 이단이라 생각했지만, 다른 과학자들은 우주를 올바른 시각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원리를 완성했다
호킹의 원리는 고전적인 사고실험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우리 일상세계,
아원자계와 우주 그 자체의 모든 특징은 몇 가지 기본 물리법칙과 상수들, 통틀어
15개를 넘지 않을 인자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그 원리의 제1전제였다 이들은
과학이 지금까지 발견한 것들이고, 소립자들의 질량과 그들 사이에 작용하는 기본력의
상대적인 힘을 포함하고 있다
호킹은 브랜던 카터 Brandon Carter를 비롯한 여러 동료들과 함께 자연에 존재하는
지극히 미묘한 균형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원자핵의 쿼크, 중성자와 양자들에
작용하는 강핵력이 조금만 약하더라도 안정적인 원소는 수소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밖의 어떤 원소도 존재할 수 없다
만약 강핵력이 전자 및 중성미자들과 같은 경입자들의 행동방식을 규제하는 힘인
전자기력과의 관계에서 조금 더 강력하다면, 단 2개의 양자-중양자-를 담고 있는
원자핵이 우주의 안정된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수소가 존재하지 않고,
설사 별과 은하계들이 진화한다고 하더라도 그 모양과 작용방식은 지금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가령 중력상수가 좀더 강하다면-강핵력보다 10^45^38배가 아니라 10^45^25배만
약하다면-우리들의 우주는 훨씬 작고 빠를 것이다 항성의 평균질량은 태양의
10^45,35^12배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그 수면은 불과 1년에 지나지 않아 인류와 같은
복합적인 생물현상이 일어날 시간적인 여유가 없을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중력이 지금보다 약하다면, 물질은 별과 은하계로 응결하지 않을
터이고, 우주는 차갑게 텅 비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력이 다른 세 가지 힘보다
훨씬 약하 때문에 우리 은하계와 태양계가 발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호킹은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주는 아직도 인간이 측정하지 못하는 붕괴와 영원팽창의
경계에 바싹 다가서서 성장하고 있으며, 그 성장속도는 은하게와 별들이 형성되기에
꼭 알맞았다
"사실 은하계와 별들이 있는 우리 우주와 같은 우주는 실제로 전혀 있음직하지
않습니다" 호킹이 설명했다 "실제로 나타날 수 있었던 상수와 법칙들을 검토해보면,
우리들과 같은 생물을 만들어낼 우주가 등장할 확률은 지극히 적지요"
거기에다 엔트로피의 문제가 있다 붕괴와 혼돈이 꾸준히 늘어나는 척도로서의
엔트로피는 열역학 제2법칙(역주-열역학 제2법칙: 사이클 변화의 종점에서, 다른
아무런 효과도 낳는 일 없이 열원에서 열을 빼내어 등량의 일을 낳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법칙이다)의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그 법칙은 우주의 어떤 변화도
조금씩 더 무질서한 상태로 향해 나아간다고 단정하고 있다 엔트로피는 언제나
올라간다 그리고 질서는 언제나 떨어진다 해체를 향한 보편적인 성향은 어디서나 그
증거를 드러내고 있다 자동차는 녹이 슬고, 별들은 늙어 죽으며, 스테레오는 고장이
난다 사람들은 늙고 산은 침식되며, 건물들은 무너진다 여기서 하나의 딜레마에
부딪친다 우주가 서서히 태엽이 풀리는 시계와 같은 곳이라면, 애당초 그 시계의
태엽은 어떻게 감겼을까? 열역학 제2법칙을 무시하고 질서는 혼돈에서 우러나왔다
열역학 제2법칙은 절대적이 아니다 엔트로피는 줄어들 수 있다 말을 바꾸어,
질서가 자연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아주 낮다 큰통 속에 시계의
부품들을 넣었다고 하자 그 통을 흔들어서 부품들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시계로
결합될 확률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과연 그것이 빅뱅에 이르는 사상과 같은가? 우리
우주는 엔트로피의 방대하고도 우발적인 역전현상일까? 그렇지 않으면, 문자 그대로
하나의 기적일까?
우리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들이 그 안에 존재하는 사실에 있다고
호킹은 생각하고 있다 "이 원리를 달리 표현하면 '우리들이 있기 때문에 사물들은
지금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말을 이어 이렇게 강조했다 "이 원리의 한 가지 변형에 따르면, 서로 다르고
독립된 우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가 물리적 매개변수들과 그 원초적
조건에 상이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요 그 절대다수는 지능적 생물이 발달하기에
적절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 소수에는 우리 우주와 같은 조건과 매개변수들이 있을 거에요"
그는 잠깐 숨을 돌렸다 "거기서는 지능적인 생물이 발달할 수 있고, 그들이 '어째서
우주는 우리들이 관찰하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거에요 그 질문에 대한 오직 하나의 해답이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런
질문을 할 존재가 없다는 거에요"
"놀라운 일이에요 서로 다른 물리적 매개변수들의 값 사이에는 놀라운 숫적
관계들이 많이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원리가 그 중 일부를 설명할 수 있거든요"
호킹의 말이었다
브랜던 카터는 이 기묘한 개념을 "인류원리 anthropic principle"라고 부르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카터와 호킹의 인류원리를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신학자들은 대부분 이 원리에 몹시 곤혹하고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창조주의 역사를 분명히 주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창조의 섬과에서 나타난 우주가 실제로 우리 우주가 갖고 있는 특징을
반드시 갖추게 된다고는 아직까지 증명하지 못했다 인류원리는 우주의 기원을 둘러싼
우리들의 호기심을 실질적으로 풀어주지 못한 어정쩡한 논리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과학이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 인류원리라 하겠다
호킹은 인류 가운데도 가장 호기심이 많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인류원리가
실질적 의미에서 우주의 참다운 과학적 서술에 가까이 가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이 인류원리에 의지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주의
원초 조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떤 통일이론이 필요할 겁니다"
어떤 물리학자들은 그 개념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텍사스 대학교의 존 휠러
교수는 물리학자중의 물리학자라는 칭송을 받아 왔다 그는 인류원리를 좀더 확대한
뒤에 끝없는 팽창과 수축의 순환 속에서 우주들의 조화를 그리고 있다 이 현상은
그가 "초공간 Superspace"이라 부르는 영역에서 일어난다 초공간이란 무한한 차원을
가진 공간이며, 그 안의 모든 점이 우주의 기하학적 전체상과 상응하고 있다
초공간 안에는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유형의 우주가 들어설 여유가 있다
거기에는 불과 몇 분 뒤에 붕괴되는 우주와, 모든 별들이 초록이나 빨강으로 보이는
우주가 들어설 수 있다 이들 초공간 우주들은 대다수가 생명이 없으므로 사산이라고
할 수 있다 휠러는 우리 우주가 비록 작고 잃어버린 한쪽 구석일망정 생물을 만들어
내기에 적합하게 조절되어 있는 독특한 존재라는데 호킹 및 카터와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인류는 모든 생성물 가운데서도 정상이라 하겠다 우주는 우리들이 그
안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휠러는 생명이 진화하지 못한
우주는 실패한 우주라는 의견을 서슴지 않고 제시한다 나아가서 그는 그안에서
생물이 진화할 수 없는 우주는 아예 존재 할 수 없었으리라 믿게 되었다
휠러는 이것을 "관찰자 observership" 원리라 부르고 있다 그것은 관찰자가 없다면
아원자 물리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양자관의 연장이다 휠러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들은 관찰자 의존적 참여우주에 살고 있다 일체의 물리법칙들은 그들을
정식화하는 관찰자의 존재에 의지하고 있다
사실 그는 이 원리가 물리학 법칙들은 원초적인 없음, 즉 전면적인 엔트로피에 대한
대항장치라는 사상을 도출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관찰자가 없는 우주는 결코
우주일 수가 없다
최근에 일부 물리학자들은 자신의 연구와 동양의 신비사상과의 관계에 주목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양자역학의 관찰자 의존성에 그치지 않고, 그 역리 가능성과 확률이
힌두교, 불교와 도교의 문헌에 이미 예언되어 있다고 믿는다 이른바
신물리학자들이라 불리는 이들이 즐겨 내놓는 주장이 있다 양자역학은 실은 힌두교의
뿔달린 신으로 파괴와 우주 해체를 담당하고 있는 시바 또는 마하데바의 재발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찍이 서기전 3~4세기에 인도에 등장했던 시바는 몇 가지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중 하나가 나타라자이다 나타라자는 네 팔을 가지고 있으며, 엎드린 악마 위에서
춤을 추는 우주춤의 제왕이다 그 신의 춤은 우주창생과 파멸의 영속적 과정을
상징한다 물질은 전혀 실체가 없다 그것은 오고 가는 에너지의 역동적이고 율동적인
회전운동에 불과하다
버크벡 대학의 이론 물리학 교수 데이비드 보옴 David Bohm은 신물리학자의 한
사람이다 그는 보다 높은 차원의 실재들을 파악할 인간의 정신능력을 재래과학이
부정하거나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표준형 과학은 경험을 분리된 조각으로
갈라놓기 때문에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인간정신, 특히 물리학자의 정신은
경험에다 억지로 범주를 씌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물리적 실재라는 솔기없는 거미줄을 서로 떨어진 사상으로 토막쳐놓고,
그들은 나란히 독립되거나 시간과 공간의 서로 다른 부분에서만 일어나는 듯이
생각한다 보옴의 견해는 이어진다 물리학자들은 동양의 신비사상을 이해함으로써
잠시나마 스스로 만들어낸 감옥에서 자기정신을 해방시켜 과학적 생성의 한 순간에
도달할 수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는 호킹의 한 동료인 브라이언 조셉슨 Brian Josephson이
동양의 명상기법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1973년에 노벨상을 받은 조셉슨은 인간지능과
그것이 관찰하는 세계와의 관계를 우려하고 있다 그리고 동양의 신비사상을
터득함으로써 그는 객관적 실재를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인식에 도달했다
"그건 쓰레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호킹이 잘라 말했다 나는 메모장에서 눈길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명령조로 말했다 "적어두십시오 그건 전혀 횡당무계한
헛소리라고"
늦봄의 어느 날 아침 우리들은 그는 연구실에 마주 앉아 있었다 빅뱅과 하느님
그리고 인류원리의 관계를 화제로 우리들의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일부
물리학자들이 양자 물리학의 에너지-물질교환과 동양 신비사상의 창조-해체순환고리를
발견하는 열의를 보이고 있었다 이들에 대해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양자역학의 선구자 닐스 보어(역주-닐스 보어 Niels Bohr 1885~1962:
덴마크의 물리학자 192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에
양자조건을 적용하여 수소의 선 스펙트럼을 설명하는 대응원리를 발표했다) 역시
양자역학을 종교적, 신비적, 초심리적 추리의 도약대로 삼으려는 것은 쓸데없는
노력이라 주장했다
호킹은 단정했다 "동양 신비사상의 우주는 환상이에요 자기 연구와 동양
신비사상과를 연결지으려는 물리학자는 물리학을 포기한 겁니다"
1980년 4월 29일, 호킹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루카시안 석좌교수로 취임했다 그
자리는 대학교의 가장 놓은 지위의 하나이고, 그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눈부신 성취의 표상이었다 그의 취임 강연은 "이론 물리학의 끝이 눈앞에
다가왔는가?"였다 그를 대신하여 제자 한 사람이 그 강연문을 낭독했다(역주-강연
전문을 부록에 실었다)
호킹은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오래지 않아 태초에 우주가 어떤 모양이었고, 오늘날
우주가 어떻게 해서 저와 같이 움직이고 있는가를 설명할 새 이론이 나오리라 믿고
있다 그러자면 자연에서 관찰되는 네 가지 힘을 좀더 확고히 파악해야 한다 그
열쇠는 중력의 양자론이며, 20년 이내에 쉽게 도달하게 될 것이다 호킹은 "조금은
경고의 의미가 담긴 말"로 우리들의 대화를 끝맺었다
"현재 컴퓨터는 연구의 유용한 보조장비입니다 그러나 인간정신이 그 방향을
설정해야지요" 호킹이 말했다 "그러나 최근에 급속히 발전하는 컴퓨터의 추세에
비추어볼 때, 이론 물리학을 완전히 물려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겠어요"
"그러므로 이론 물리학은 아니더라도 이론 물리학자의 끝은 눈앞에 다가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들은 그로부터 2년 뒤에 다시 그 문제를 화제에 올렸다 나는 특별히 그의
마지막 말에 관심을 보였다 그가 내 의문에 응답했다 "요컨대, 우리들은 지난 20년,
또는 50년 사이에 먼 길을 왔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속도로 무한정 진행할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앞으로 20년안에 우리들은 완전히 정체의 수렁에
빠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통일이론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구요"
나는 호킹에게 물리학계에서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물었다
"이론 물리학에 관한 한 나는 이미 산을 넘었습니다 사실은 산을 넘어선 지
오래라고 해야 할 겁니다" 호킹의 대답이었다 1982년 1월에 그는 40대에 접어들었다
지난 20년 동안 엄청난 역경을 딛고 싸워온 그답게 현실에 투철한 안목을 살려 이렇게
설명했다
"글쎄요, 이론 물리학계의 가장 뛰어난 연구업적은 대부분 아주 젊은 사람들이
이룩했습니다 대체로 20대였지요 그러니까 40대란 이론 물리학계에서는 위대한
발견을 기대할 인생의 단계가 아닙니다"
그가 내놓은 이유에 따르면, 사람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정신적인 기민성을 잃게
된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그 이상은 모르는 거에요 따라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상이나 관념에 도달하면, 주저없이 자기 운명을 걸게 되는 거지요"
호킹을 계속해서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독감이 걸려도 단 하루를 쉬지 않으려는
고집 또는 저항의식일까?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유형의 정신적 강인성, 그럴 수 없이
뻣뻣한 윗입술의 힘일까? 그로 말미암아 호킹은 다른 사람이었다면 파멸했을 조건을
두고 불평을 하려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생각조차 하려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둘을 조금씩 겸비하지 않았을까? 스티븐 호킹은 지극히 강인한 사람이고,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 가운데 제일 끈질기다 사실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 지구상에서 두뇌가 가장 완벽하게 발달한 인물이며, 생각하기 위해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이 뒤 20년 사이에 우리들은 통일이론에 도달하리라 믿습니다 물론 일련의 작은
단계를 거쳐서이겠지요" 그의 말이었다 "일단 그 이론을 발견하고 나면 이론
물리학의 재미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부록
스티븐 호킹의 케임브리지 대학교 루카시안 석좌교수 취임강연
이론 물리학의 끝이 눈앞에 다가왔는가?
이 자리에서 나는 그다지 머지않은 장래, 구체적으로 말해서 20세기 말까지 이론
물리학의 목표를 성취할 가능성에 대해 토의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들은
관찰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서술할 수 있는 물리적 상호작용의 완전하고 일관성이
있으며, 통일된 이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와 같은
예측을 할 때는 대단히 조심스럽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세기에 들어온
뒤에도 우리들은 이미 최소한 두 차례나 궁극적인 종합의 언저리에 도달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초에는 연속체 역학 continuum mechanics을 통해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일정한 숫자의 탄성, 점성, 전도율 계수들을 측정하기만 하면 만사는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원자구조와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그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다시 1920년대 말에 막스 보른(역주-막스 보른 Max Born
1882~1970: 독일 태생의 영국 이론 물리학자로 195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으며,
결정격자와 원자구조 이론개발에 이바지했다)은 괴팅겐을 찾아온 한 무리의
과학자들에게 "우리들이 알고 있는 물리학은 6개월 뒤에 영원히 끝장이 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폴 디랙(역주-폴 디랙 Paul Dirac 1902~84: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로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으며, 상대론적 양자역학의 개척자이다)이 전자의
형태를 지배하는 디랙 방정식(역주-디랙 방정식: 1928년 디랙에 의해 구해진 소립자를
기술하는 상대론적 파동 방정식의 하나)을 발견한 직후의 일로, 아다시피 폴 디랙은
루카시안 석좌교수로 나의 선임자였습니다 당시에는 그와 비슷한 방정식이 그 밖의
유일한 소립자로 알려진 양자를 지배하리라 예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성자와
핵력이 발견되어 그 기대들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제는 양자와 중성자의
어느 쪽도 소립자가 아니며, 그들은 한층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최근 몇년 사이에 대단한 진보를 이룩했습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가운데 일부는 자기 일생중에 완전한
이론을 볼 수 있으리라는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펼 근거가 없지 않습니다
설사 완전한 통일이론에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제일 단순한 상황이 아니라면 상세한
예측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물리법칙들은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디랙이 지적했듯이 그의
방정식은 "대부분의 물리학과 모든 화학"의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들은 가장 단순한 체계, 곧 양자 하나와 전자 하나로 구성된 수소원자의 방정식을
풀 수 있었을 뿐입니다 원자핵이 하나 이상 있는 분자들은 제쳐두고라도 전자가
그보다 많은 복합적 원자들의 경우, 타당성이 의심스러운 어림셈과 직관적인 추측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10^45^23개 남짓한 입자들도 이루어진 거시체계들에
대해서는 통계법을 이용하고, 그 방정식을 정밀하게 풀 수 있는 듯한 허세는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칙적으로 우리들은 생물학 전반을 지배하는 방정식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행태 연구를 응용수학의 한 가지로 줄여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완전하고 통일된 이론이라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들이 물리적 실재의 모델을
만들려고 할 때는 일반적으로 두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1. 다양한 물리량들이 복종하는 일련의 국소적 법칙들. 이들은 으레 미분
방정식으로 정식화된다
2. 일련의 경계조건들. 일정한 시간에 우주의 일부 지역의 상태를 알려주고, 그
뒤에 우주의 다른 부위에서 그곳으로 어떤 효과가 전파되는가를 말해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과학의 역할은 이들 가운데 첫째에 한정되어 있고, 국소 물리학
법칙들을 완전히 갖출 때에만 이론 물리학은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입버룻처럼
주장해왔습니다 그들은 우주의 원초적 조건을 형이상학이나 종교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로 보려 합니다 어느 면에서 이와 같은 자세는, 지난 여러 세기에 걸쳐 모든
자연현상을 하느님의 역사이고 파고 들어서는 안될 대상이라 주장하면 과학적인
조사와 연구를 억제했던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우주의 원초적 조건은 국소적
물리법칙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연구와 이론의 대상으로 적합한 문제라 생각합니다
"사물들은 과거에 그랬으니까 지금도 그렇다"고 하는 것 이상의 무엇을 말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완전한 이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초적 조건들의 특이성의 문제란 국소적 물리법칙들의 자의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질량과 같이 조정 가능한 매개변수들이나, 사람에 따라 어떤 값을 줄 수
있는 결합상수들이 여러 개 들어 있을 경우에는 그 이론이 완전하다고 보려하지
않습니다 사실 원초적 조건들과 이론 속의 매개변수들의 값들은, 어느 쪽이나
자의적이 아니고 아주 조심스럽게 뽑아낸 듯한 인상을 줍니다 예를 들어, 양자-
중성자의 질량차가 전자질량의 2배 가량이 아니라면, 원소들을 구성하고 화학과
생물학의 기초를 이루는 안정된 200종 가량의 뉴클레이드가 나올 리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양자의 중력질량이 크게 달라진다면, 이들 뉴클레이드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별들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주의 원초적 팽창이 약간
작았거나 좀더 컸다면, 이러한 별들이 발달하기 이전에 우주가 붕괴되었거나 너무
빨리 팽창하여 중력응집이 있어야 하는 별들은 영원히 형성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원초적 조건들과 매개변수의 제약을 원리의 지위에 올려놓기까지
했습니다 그것은 인류원리이며, "우리들 인간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물들은 지금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원리는 다양하게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중 어느 해석에 따르면, 서로 분리된 수많은 우주들이 있으며, 그
우주들은 물리적 매개변수의 값이 서로 다르고, 원초적 조건들도 상이합니다 이들
우주의 대다수는 지능적인 생물의 복합적인 구조들이 발달하기에 필요한 적정한
조건을 갖추지 않았습니다 우리 우주와 같은 조건과 매개변수들을 갖춘 소수의
우주에서만 지능적인 생물이 발달하고, "우주가 우리들이 보고 있는 모양을 갖추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를 물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질문의 해답은 간단합니다
거기에 지능적인 생물이 없다면,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그 인류원리는 상이한 물리적 매개변수들 간의 놀라운 숫자적 관계 중에서 상당수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만족할 정도는 아닙니다 누구든 그보다 더
심오한 설명이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으로는 우주
전역을 풀이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태양계는 우리들의 생존에 분명히
필수불가결한 조건입니다 핵 합성으로 무거운 원소들이 형성될 수 있었던 인근의
한층 앞선 세대의 항성도 마찬가집니다 나아가서 우리 은하계 전체가 필수
조건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관찰할 수 있는 우주 전역에 거의 균일하게 퍼져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주를 접어두고, 굳이 다른 은하계가 존재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처럼 거시적인 우주의 동질성이 인간 중심관을 뒷받침하기에 지극히
어려운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또한 지극히 평범한 나선 은하계의 변두리에 있는
평균적인 항성을 감싸고 도는 미미한 행성 위에 있는 몇 가지 복잡한 분자구조와 같이
지엽적인 무엇이 우주의 구조를 결정한다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인류원리에 의지하지 않으려 한다면, 우주의 원초적 조건과 다양한 물리적
매개변수들을 설명할 어떤 통일이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완전한 이론을 구성하기란 불가능합니다(그렇다고 완전한 이론을 찾아내려는 사람들이
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나는 매주 2, 3건의 통일이론을 우편으로 받고 있습니다)
그 대신 일정한 상호작용을 무시하거나, 단순한 방법으로 어림잡을 수 있는 상황을
서술할 수 있는 부분 이론들을 찾아야 합니다 먼저 우주의 구성 내용을 두 부분으로
가릅니다 하나는 쿼크, 전자, 뮤 중간자 등과 같은 "물질"이며, 다른 하나는 중력,
전자기력 등과 같은 "상호작용"입니다 물질입자들은, 2분의 1 정수 스핀(역주-스핀
spin: 자연계의 소립자들을 정수 또는 반정수 중 어느 하나의 스핀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는 전자와 같은 2분의 1의 스핀을
가지며, 중간자는 0인 스핀을 가졌다고 추정) 장들에 의해 서술되고, 어떤 상태에서든
주어진 종류의 입자 하나 이외는 있을 수 없다는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따릅니다 이런
까닭에 어느 정도까지는 붕괴되지 않거나, 무한대의 공간으로 복사하여 달아나지 않는
고체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물질 원리들은 두그룹으로 나누어집니다 쿼크로 구성된
강입자들과 그 나머지를 이루고 있는 경입자들 입니다
상호작용들은 현상을 기준으로 4개 범주로 나누어집니다 힘의 순서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직 강입자들과 상호작용하는 강핵력, 하전 강입자와 경입자들과
상호작용 하는 전자기력, 모든 강입자 및 경입자들과 상호작용하는 약핵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의 셋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약하면서 만물과 상호작용하는 중력입니다
그 상호작용들은 파울리 배타원리를 따르지 않는 정수 스핀 장으로 표현됩니다
따라서 그들은 동일한 상태에 수많은 입자들이 만들어낸 장들이 모두 합쳐서 거시적
규모로만 탐지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냅니다 이런 이유가 있어 그들은 제일 먼저
이론의 뒷받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17세기에는 뉴턴이 중력을, 그리고 19세기에는
맥스웰(역주-맥스웰 James Maxwell 1831~79: 영국의 물리학자 전자장의 기본
방정식을 도출하여, 이로써 전자파의 존재를 증명, '빛의 전자이론'의 기초를
세웠다)이 전자기력의 이론체계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이론들은 그 바탕에
있어 양립 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체계에 균일속도를 부여 한다면, 뉴턴 이론은
불변이었고 그와는 달리 맥스웰 이론(역주-맥스웰 이론: 맥스웰이 패러디의 전자기의
실험과, 전자기의 매질로서의 저자장과를 합한 이론을 기초로 하여, 모든 전자기의
현상을 설명하려고 한 이론이다)은 우선속도, 다시 말하면 광속을 규정했던 것입니다
결국 맥스웰 이론의 불변성과 양립하기 위해서 수정해야 할 대상은 뉴턴의
중력이론임이 밝혀졌습니다 이 작업은 1915년에 이 세상에 나온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가능했습니다
중력의 상대성 이론과 전기역학의 맥스웰 이론은 이른바 고전이론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계속적으로 변하는 양들을 내포하고, 적어도 원칙에 있어서는
인위적으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이론들을 사용하여
원자 모델을 만들려고 할 때에는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원자는 작은 양(^26^) 전하의
핵을 음(^35^)전하의 전자들이 구름처럼 감싸고 있음이 드러났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지구가 태양 주위의 궤도를 돌고 있듯이, 전자들은 원자 핵 둘레의 궤도를
돌고 있다는 가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고전이론에 따르면 전자들이
전자기파를 방출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전자기파들은 에너지를 실어나가고,
전자들을 빙글빙글 돌다가 원자핵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원자붕괴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다가 양자론(역주-양자론 quantum theory: 열복사, 빛, 원자를 대상으로 해서
에너지는 소량이 있다는 가정 위에서 선 이론으로 미시적 존재의 구조, 기능의 추구를
위해 양자적 관점에서 전개된 물리학 이론의 총칭 1900년 막스 플랑크의 양자가설을
시초로 시작)이 발견되어 이 문제를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양자론이 20세기 이론
물리학계의 최대 업적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기본가설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입니다 그 이론을 빌리면, 한 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처럼 짝을 이루고 있는 2개의 양을 동시에 다룰 때는 임의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습니다 원자를 예를 들어봅시다 최저 에너지 상태에 있는 전자는 원자핵 안에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럴 경우 그 위치와 속도를 다같이 정확히 규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는 달리 전자는 원자핵 주변에 일정한 확률분포로 깔려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상태에서 전자가 전자기파의 형태로 에너지를 복사할 수는 없습니다
전자가 한층 낮은 에너지 상태로 떨어질 수 없는 까닭에서 입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양자역학을 자유도(역주-자유도: 하나의 역학게에서 물체의
운동상태나 평형상태를 나타내는 데 필요한 독립변수의 개요)가 한정된 원자나 분자와
같은 체게에 응용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전자기장에 적용하려 했을 때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전자기장에는 무한수의 자유도, 어림잡아 시공의 한 점에 2개의
자유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 수많은 자유도들을 각기 위치와 운동량을 갖춘
진동자(역주-진동자: 기계적으로 규칙적인 진동을 하는 아주 미소한 물체)로 볼 수
있습니다 진동자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가만히 있다면, 정확히 규정된
위치와 운동량이 나옵니다 그와는 달리 각 지동자는 이른바 "영점 요둉들"과
비영nonzero 에너지의 최저량을 반드시 갖추고 있습니다 모든 무한수의 자유도들이
가지고 있는 영점요동 에너지(역주-영점 에너지 zeropoint energy: 전 자가 원자핵
둘레에서 궤도운동을 할 경우 그 최저 에너지의 바닥상태에서는 당연시 궤도운동은
정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전자의 궤도운동이 여전히 지속되는데, 이를
지속시키는 에너지가 바로 영점 에너지)들은 가시적인 질량과 전자의 전하를 무한대로
만듭니다
1940년대 말에 재규격화라는 절차가 마련되어 이 난관을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일정한 무한량들을 작위적으로 빼내고 한정된 잔여분만을 남겼습니다
전자기적으로 빼내고 한정된 잔여분만을 남겼습니다 전자가력의 경우에는 그와 같은
무한 뺄셈 두 가지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질량과 관계되고, 다른 하나는
전자의 전하와 연관이 있었습니다 이 재규격화 절차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확고한
개념적 또는 수학적 기초 위에 올려놓은 적이 없었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를테면, 수소원자 스펙트럼의 일부 선들의 자그마한 변위, 즉
램Lamb 이동을 예측하여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완전이론을 구축하려는
각도에서 본다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입니다 무한 뺄셈을 한 뒤에 남은 한정
잔여분의 가치를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전자가 지금과
같은 질량과 전하를 가진 이유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인류원리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대체로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약핵력과 강핵력은 제규격화할 수 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말을 바꾸어, 그들을 유한한 상태로 바꾸려면 무한수의 무한 뺄셈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 이론으로는 결정되지 않는 유한잔여가 무한개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론은 예측력이 없습니다 인간이 무한개의 매개변수들을 측정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971년에 트후프트 tHooft가 그 이전에 살람과
와인버그가 제시한 전자기력과 약핵력 상호작용 통일 모델이 유한개의 유한
뺄셈만으로도 실제로 재규격화 할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살람-와인버그 이론에서는
전자기 상호작용을 하는 스핀1 입자인 양자가 w^3,26^, w^3,35^와 z^356,145^라는
다른 스핀1 짝들과 합세합니다 지극히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는 이들 네 가지
입자들이 한결같이 비슷한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저에너지 상태에서는 "자발적
대칭성 파괴"라는 현상이 일어나 광자는 영의 정지질량을 갖고, w^3,26^, w^3,35^와
z^356,145^는 한결같이 대단한 질량을 갖고 있음을 설명해 줍니다 이 이론의
저에너지 예측은 관찰결과와 정확히 맞아 들어 갔고,그 공적을 인정하여 스웨덴
학술원은 1979년의 노벨 물리학상을 살람-와인버그와 글레쇼에게 수여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비슷한 통일이론을 구축했습니다 그런데 글래쇼는 노벨 위원회는
도박을 하고 있다고 서슴지 않고 말했습니다 당시로서는 광자가 운반하는 자기력과
w^3,26^, w^3,35^와 z^356,145^이 운반하는 약핵력의 통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이론체계를 시험하기에 충분한 힘을 내는 입자 가속기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몇
년 뒤에는 그러기에 충분한 가속기들이 완성될 것이고, 대다수의 물리학자들은 그
기기를 이용하여 살람-와인버그 이론을 뒷받침하게 되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살람-와인버그 이론이 성공함으로써 강력 상호작용에 대해서도 그와 비슷한
재규격화 이론을 찾으려는 노력이 펼쳐졌습니다 양자와 파이 중간자(역주-중간자:
소립자 중에서 전자보다 무겁고 양성자 보다 가벼운 입자로, 원자핵을 구성하는
중성자와 양성자들 사이에 작용하고 있는 핵력을 매개하는 입자)와 같은
강입자들은 본격적인 소립자일 수 없고, 쿼크라 불리는 다른 입자들이 묶인 상태라는
인식은 일찍부터 있었습니다 이들은 기묘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 듯하고, 강입자
안에서 제법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지만 단 하나의 쿼크를 따로 떼어내기는
불가능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들은 언제나 3개의 한 무리(양자나 중성자와
마찬가지로)가 되거나 쿼크와 반쿼크(파이 중간자와 같이 )의 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쿼크에다 색이라는 속성을 부여했습니다 그런데 이
색이란 우리들의 정상적인 색 감각과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강조해두어야 하겠습니다
단순히 편의를 의해 붙인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쿼크는 적색, 녹색과 청색의 세
가지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입자와 같이 독립적으로 묶여 있는 상태이면
색이 없습니다 양자의 경우에는 적색, 녹색과 청색의 세 가지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입자와 같이 독립적으로 묶여 있는 상태이면 색이 없습니다 양자의
경우에는 적색, 녹색과 청색이 결합되고, 파이 중간자의 경우에는 적색과 반적색,
녹색과 반녹색, 그리고 청색과 반청색의 혼합입니다
쿼크 간의 강핵력 상호작용의 운반체는 글루온이라는 스핀1의 입자들이며, 약핵력
상호작용을 운반하는 입자들과 비슷합니다 아울러 글루온은 색을 지니고 있고,
그들과 쿼크는 양자 색역학(QCD)이라는 재규격화 이론을 따릅니다 그와 같은
재규격화 절차로 말미암아 그 이론으 효율적 결합상수는 측정될 때의 에너지 상태에
따라 결정되고, 아주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는 영(0)으로 줄어듭니다 이 현상을
점근적 자유라 합니다 강입자 내부의 쿼크들은 고에너지 충돌속의 자유 입자들과
마찬가지 행동을 하며, 그들의 상호작용은 섭동(역주-섭동: 일반적으로 역학계에서
주요한 힘의 작용에 의한 운동이 부차적인 힘의 영향으로 인하여 교란되어 일어나는
운동)이론으로 처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섭동이론의 예측결과는 관찰내용과 상당한
수준에서 질적으로 일치하고 있지만, 실험을 통해서 입증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에너지 상태에서 효율적 결합상수는 아주 커지고, 섭동이론은 무너집니다 이
"적외선 예속infrared slavery"이 어째서 쿼크들은 언제나 무색의 묶인 상태에 갇혀
있는지를 설명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도 이걸 자신있게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강핵력 상호작용의 재규격화 이론과 약핵력과 전자기력 상호작용을 풀이할 또 다른
재규격화 이론이 나왔습니다 이들 두 이론을 결합한 하나의 이론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이론들에는 상당히 과장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대통이론(GUT)이 그것입니다 이 명칭이 가리키듯 그렇게 크지 않고,
완전히 통일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결합상수들과 질량이 같은 불확정
재규격화 매개변수들이 적잖이 들어 있기 때문에 완전한 이론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완전한 통일이론을 향한 뜻깊은 한 걸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강핵력
상호작용의 효율적인 결합상수는 저에너지 상태에서는 크지만, 고에너지 상태에서는
점근적 자유로 인해서 점점 줄어듭니다 그와는 반대로 살람-와인버그 이론의 효율적
결합상수는 저에너지 상태에서는 작지만, 고에너지에서는 점차 늘어납니다 이 이론은
점근적으로 자유로운 것이 아닌 까닭에서입니다 결합상수들의 저에너지 증감율을
바탕으로 추론해보면, 2개의 결합상수들은 약 10^45^15GeV(역주-GeV: 큰 가속기의
출력을 나타내는 에너지의 단위로서 10억 볼트에 해당)에너지 수준에서 같아집니다
그 이론들에 따르면, 이 에너지 수준 이상이 되면 강핵력 상호작용은 약핵력 상호작용
및 전자기력 상호작용과 통일됩니다 그러나 그보다 에너지가 낮으면, 자발적 대칭성
파괴가 일어납니다
10^45^15GeV라는 에너지는 연구실 실험의 한계를 크게 넘어섭니다 현재 입자
가속기는 약 10GeV의 중심질량 에너지를 낼 수 있고, 다음 세대는 100GeV 남짓의
에너지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정도면 살람-와인버그 이론에 따라 전자기력이
약핵력과 통일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약핵력 상호작용과 전자기력 상호작용들이
강핵력 상호작용과 통일될 수 있으리라는 에너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실험실에서 실험할 수 있을 정도로 낮은 에너지로 가름할 수 있는 대통일론은
없습니다 가령 양자는 완전히 안정될 수 없고, 수명 10^45^31년을 일기로 붕괴되리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실험상 수명 하한은 약 10^45^30년이고, 이 수준을
향상시킬 가능성은 있으리라 봅니다
그 밖에 또 하나 관찰상의 예측으로는 우주의 중입자(역주-중입자: 소립자
가운데에서 핵자 및, 핵자보다 질량이 무거운 스핀 반기수의 소립자인 하이페론의
총칭)와 광자의 비율과 관계가 있습니다 물리학 법칙들은 입자와 반입자에 다같이
적용되는 듯합니다 한층 정확히 말한다면, 입자가 반입자에 의해서 대체되고,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로 바뀌며, 모든 입자들의 속도가 역전된다면, 그들은
똑같습니다 이것을 CPT정리라 합니다 아울러 그것은 어느 합리적인 이론의 내부에서
성립되어야 할 기본가설의 결과입니다 그렇지만 지구와 나아가서 태양계 전체가
반양자나 반중성자 없이 양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실은 입자와 반입자의
간의 그와 같은 불균형이 우리들의 존재에 필요한 또 다른 '사전'조건입니다 만약
태양계가 입자와 반입자의 숫자가 똑같은 혼합물이라면, 모두가 서로 소멸복사가
탐지되지 않음으로 우리 은하계는 반입자가 아니라 전적으로 입자로 구성되어
있음직하고, 우주전체로서는 10^45^8개의 광자의 약 1개 입자 꼴로 반입자보다
입자들이 많으리라 보고 있습니다 인류원리를 끌어대어 이 현상을 설명하려고 시도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대통이론들이 그 불균형을 설명할 수 있는 기작의 구실을 합니다
일체의 상호작용들이 C(반입자로 입자를 대체한다), P(오른손잡이를 왼손잡이로
바꾼다), 그리고 T(시간의 방향을 역전시킨다)를 결합했을 때에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T만을 조건으로 할 때에는 상호작용들이 변할 수 있습니다 초기 우주에서는
팽창에 의해 주어지는 시간의 화살표가 아주 뚜렷하고, 이 가운데서 상호작용은
반입자들보다는 입자들을 더 많이 산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숫자는 모델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관찰결과와 일치한다고 해서 대통일론을 확인해
준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지금까지는 물리적 상호작용의 첫 세 범주들, 강핵력과 약핵력 그리고 전자기력의
통일에 거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넷째요 마지막 인자인 중력은 그동안
소홀히 해왔습니다 이를 정당화하는 논거가 하나 있습니다 중력은 너무 약해서
양자중력 효과는 입자 가속기의 그것보다 훨씬 큰 입자 에너지 수준에 이르러야만
비로서 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력은 재규격화할 수 없다는 게 또 다른 논거가
됩니다 유한 해답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무한개의 무한 뺄셈을 하고, 그에 상응하는
무한수의 불확정 유한잔여를 남겨야 합니다 아무튼 완전한 통일된 이론에
도달하려면, 중력을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더 나아가서 고전적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장이 무한히 강력한 시공의 특이점들이 있으리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
특이점들이 있으리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 특이점들은 과거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주 팽창의 시발점(빅뱅)에 있었고, 미래에는 항성들과 우주 그 자체의 중력붕괴가
있을 때 발생한 것입니다 특이점들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고전적 이론이 무너지게
되리라는 시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력장이 강력하여 양자중력 효과가
중요한 역할을 할 때까지는 고전이론이 무너질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따라서 중력의
양자론은 초기우주를 서술하고, 인류원리에 의지하지 않고 원초적 조건을 설명하려 할
경우에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와 더불어 위에서 말한 이론은 다음과 같은 의문에 해답을 내릴 때에 필요합니다
시간에 실제로 시작이 있으며, 고전적 상대성 이론이 예측한 대로 끝이 있는가? 혹은
빅뱅과 빅크런치의 특이점들이 양자효과에 의해서 밖으로 분산되었는가? 시간과
공간의 구조 그 자체가 불확정성 원리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에, 잘 정리된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특이점들이 여전히 존재할 개연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일정한 수학적 의미에서 그들을 지나 시간을 계속해서
밀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의식이나 측정능력과 연관지은 주관적 시간개념은
종말을 고하게 될 것입니다
중력의 양자론을 도출하고, 그것을 다른 세 범주의 상호작용들과 통일할 수 있는
전망이 있는가? 초중력supergravity이라는 일반 상대성의 연장선 상에 가장 큰 희망을
걸 수 있을 듯합니다 여기서 중력 상호작용을 실어나르는 스핀2 입자 중력자가
이른바 초대칭성 변환에 의해서 여러 개의 다른 저 스핀 장과 연관지어집니다 그와
같은 이론은 한층 큰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그것은 2분의 1정수 스핀 입자들이
대표하는 "물질"과 정수 스핀 입자들이 대표하는 "상호작용들"을 가르는 낡은
이분법을 씻어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자론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무한인자들은
서로 상쇄하는 큰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상쇄되어 어떤 무한 뺄셈도
없는 유한이론이 나오게 될지 어떨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중력을 포함하는
이론들은 유한하거나 비재규격화하는 것을 입증할 수 있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 어떤
무한 뺄셈을 해야 한다면, 무한개의 뺄셈을 해야 하고 그에 따라 무한개의 불확정적
나머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초중력의 모든 무한 요인들이 서로 상쇄하여
소멸된다면, 하나의 이론이 도출될 수 있습니다 그 이론은 일체의 물질입자와
상호작용들을 남김없이 통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확정 재규격화 매개변수들이
전혀 없다는 뜻에서 완전하기도 했습니다
중력을 다른 물리적 상호작용과 통일하는 것은 고사하고, 아직 중력의 양자론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론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그 중 하나가 중력이 시공의 원인구조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말을 바꾸어, 중력은 어느 사상들이 인과적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는가를
결정합니다 일반 상대성의 고전이론에서 이와 같은 본보기의 하나가 블랙홀입니다
블랙홀은 중력장이 대단히 강력하여 어떤 빛이나 신호도 그 안으로 끌려 들어간 뒤
외부세계로 달아날 수 없는 시공의 부위입니다 블랙홀에 가까운 강렬한 중력장이
입자와 반입자의 쌍을 만들어 내고, 그 중 하나가 블랙홀에 빠지면, 다른 하나는
무한대의 공간으로 달아납니다 달아나는 입자는 블랙홀이 내뿜는 것 같아 보입니다
블랙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관찰자는 나오는 입자들만을 측정할 수 있고, 구멍으로
떨어지는 입자는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들어가고 나오는 입자들의 상관관게를 밝힐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나오는 입자들은 불확정성 원리와 으레 연관되는 정도 이상의
무질서 혹은 예측 불가능성을 띠게 됩니다 정상상태에서 불확정성 원리는, 어느
입자의 위치나 속도 '또는' 하나의 위치와 속도의 결합을 결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림잡아 결정적 예측을 할 수 있는 능력은 반으로 줄어듭니다
그러나 블랙홀이 방출하는 입자의 경우에는 블랙홀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관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방출입자들의 위치와 속도의 '어느 쪽도' 결정적으로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기껏해야 입자들이 일정한 양식으로 방출될 확률을 말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설령 통일론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통계적 예측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아울러 우리들이 관찰하고 있는 독특하고 유일한 우주가 있다는 우주관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대신 일정한 확률분포를 갖춘 모든 우주가 존재할 수 있는
조화로운 우주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와 같은 가설이 거의 완벽한 열평형(역주-
열평형: 온도가 다른 물질을 접촉시켰을 경우에 열이 흐르다가 같은 온도가 되었을 때
열의 유동이 정지된 상태) 속의 빅뱅으로 우주가 시작된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열평형은 미시적 배열의 숫자가 극대화하고, 그에따라 확률이 최대값에 이릅니다
볼테르의 철학자 팡글로(역주-팡글로 Pangloss: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에 등장하는
철학자로 볼테르가 맞서 싸웠던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사상을 의인화한 인물이다)의
말을 빌린다면, "우리들은 가능성이 있는 모든 천체 가운데서도 가장 확률이 높은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다지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들이 완전한 통일 이론을 찾아낼 수 있는 전망은
어떻습니까? 관찰의 거리를 단축하고 에너지를 높일 때마다 새로운 구조층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3*10^45,35^2 전자볼트의 전형적인 에너지 입자가 등장하는
브라운(역주-브라운 운동: 액체중에 부유하는 고체 미립자가 행하는 복잡하고 불규칙한
운동으로 1827년 영국의 식물학자 브라운 Brown이 발견했다) 운동이 발견되어 물질은
연속적이 아니라 원자로 구성되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뒤 얼마 되지 않아 분할할
수 없다고 생각되던 이 원자들이 몇 전자볼트급 에너지를 지니고 원자핵 주위를
돌아가는 전자로 이루어졌음이 드러났습니다 원자핵은 다시 이른바 소립자들이라는
양자와 중성자로 구성되고, 그들은 10^45,35^6 전자볼트급의 핵띠에 의해 한데 묶여져
있습니다 이렇게 흘러가는 이 이야기의 마지막 일화는 양자와 중성자가 전자볼트급의
띠에 묶여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요즘 거대한 장치를 만들고 엄청난 자금을
들여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실험을 한다는 것은 이론 물리학이 벌써 얼마나 많은
업적을 올렸는가를 말해주는 찬사라 하겠습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에너지가 점차 높아감에 따라 구조층의 무한연속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은 모택동 사망 직후 4인방 치하의 중국에서는
상자 안의 상자라는 무한 역행관이 공식 이데올로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력에는 한계가 있어 10^45,35^33cm라는 지극히 짧은 거리나 10^45^25
전자볼트라는 지극히 높은 에너지 수준에서만 드러납니다 이보다 더 짧은 거리에서는
시간-공간이 매끈한 연속체로서의 행동을 멈추고, 중력장의 양자요동으로 말미암아
거품 덩어리 구조가 됩니다
현재 우리들의 실험한계는 약 10^45^10 전자볼트이고, 중력단절은 10^45^28
전자볼트에서 일어납니다 이 사이에는 아직도 파헤쳐지지 않은 아주 큰 영역이
있습니다 대통일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방대한 중간지대에 한두 개의 구조층
밖에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에 고지식한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낙관해도 좋은 근거가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중력이 어느 초중력 이론
안에서만 다른 물리적 상호작용과 통일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와 같은
이론들의 숫자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거기에는 이른바 N=8 확장
초중력이라는 최대이론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중력자 1개, 중력미자라는 스핀 2분의 3
입자 8개, 스핀1 입자 28개, 스핀 2분의 1 입자 56개, 그리고 스핀0입자 70개가 들어
있습니다 이들의 숫자가 많기는 하지만 강핵력과 약핵력 상호작용에 있어 관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입자들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가령 N=8이론에는 스핀
1입자 8개가 들어 있습니다 이들은 강한 상호작용을 운반하는 4개의 입자 중 2개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만, 다른 2개를 남겨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글루온이나 쿼크와
같은 관찰된 입자들의 상당수 또는 대부분은 그 순간의 인상과는 달리 사실상
소립자가 아니고 기본적인 N=8 입자들의 묶인 상태라 해야 할 것입니다 가까운 장래에
이 복합구조들을 탐사할 만큼 강력한 가속기가 나올 가능성이 없고, 특히 현재의
경제추세로 미루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나올 가망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장치가 없더라도 할 일이 있습니다 잘 규정된 N=8 이론에서 이와 같이 묶인 상태들이
나온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지금 또는 가까운 장래에 접근할 수 있는 에너지 수준에서
실험하여 여러 가지 예측결과를 내놓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전자기력과 강핵력
상호작용을 통일하는 살람-와인버그 이론의 처지와 비슷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이
이론에 바탕을 둔 저에너지 예측들이 관찰결과와 아주 잘 들어맞고 있어,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에너지 수준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으면서도 그 가치가 널리
인정되고 있습니다
우주를 서술하는 이론에는 분명히 구분되는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고안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만 머물러 있는 다른 이론들과는 달리, 바로 이론이 살아 움직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N=8 초중력 이론이 특별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1. 4차원적이고
2. 중력을 포함하고 있으며
3. 무한 뺄셈을 하지 않고 유한할 수 있는
오직 하나뿐인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매개변수 없는 완전한 이론을 갖추려
한다면 제3의 성질이 필요하다고 나는 늘 지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인류원리에
호소하지 않고 제1과 3을 만족시키되 중력을 포함하지 않는 일관된 이론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우주 안에서는 복잡한 구조들이 발달하는 데 필요한 큰
집합체로 물질을 한데 모을 인력이 모자랍니다 시공이 4차원이라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문제는 으레 물리학의 영역밖에서 논란을 빚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도 역시
그럴듯한 인류원리적인 논거가 있습니다 시공 3차원-즉, 2개의 공간과 1개의 시간-은
분명히 복잡한 유기체를 위해 모자라는 점이 있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만약
공간이 3차원 이상이라면 태양 주위의 행성궤도들과 원자핵 둘레의 전자들은
불안정하고, 나선을 그리며 안으로 떨어지는 성향을 보일 것입니다 시간의 차원이
1개 이상일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와 같은 우주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궁극적인 이론이 있다는 뜻을 비쳤습니다 과연 사실일까? 거기에는
적어도 세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1. 완전한 통일이론이 있다
2. 궁극적인 이론은 없다 그러나 어느 이론의 사슬을 따라 멀리 따라가기만
한다면, 어느 특별한 범주의 관찰들을 예측할 수 있는 이론들이 무한히 잇달아 나올
것이다
3. 이론이란 없다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는 관찰을 서술하거나 예측할 수 없고,
그마저 자의적이다
세번째 견해는 17세기와 18세기의 과학자들에의 대항논리로 나왔습니다 "감히 누가
하느님이 마음을 바꿀 자유를 규제할 법칙들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도
거리낌없이 그들은 이론을 구상했고, 하느님의 형벌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에
와서 제 3의 가능성을 우리들의 도식안에 포함시켜 효율적으로 문제를 제거했습니다
본질적으로 양자역학은 우리들이 알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는 대상을 다루는
이론입니다
제2의 가능성은 에너지가 점차 올라감에 따라 무한히 계속되는 구조들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플랑크 에너지 10^45^28 전자볼트에서 단절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럴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므로 제1의 가능성만이 남게
됩니다 현재로서는 N=8 초중력 이론이 시야에 들어오는 유일한 후보입니다 이 뒤 몇
년사이에 중대한 계산이 나오고, 그에 따라 그 이론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도 있습니다 그 이론이 이같은 시험을 통과하려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필요한 예측을 할 수 있는 계산법이 개발되고, 국소
물리법칙들만이 아니라 우주의 원초적 조건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지적한
과제들은 이후 20년 동안 이론 물리학자들에게 가장 두드러진 문제거리가 될 것입니다
나는 그들에게는 그 이상의 시간적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보내면서 나의
말을 끝맺고자 합니다 지금 컴퓨터는 연구에 아주 쓸모있는 보조장치가 되고 있지만,
그 방향은 인간정신이 지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컴퓨터 발달속도의 연장선
상에서 생각해보면, 컴퓨터가 이론 물리학자의 자리를 물려받을 가능성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비록 이론 물리학은 아니더라도 이론 물리학자들의 끝은 눈앞에 다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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