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범죄는 개인범죄와 달리 기업의 문화, 지배 및 소유 구조, 의사 결정 과정, 기업환경 등 다양하고 복잡한 요소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공식적 제재만으로는 범죄를 억제하는 데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저자는 견제와 균형, 자율과 감시가 조화를 이룬 현실적 대안을 이끌어낸다.
기업범죄,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
기업범죄,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
▣ 저자 김영헌
현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집행2과 사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서울에서 출생하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재학 중 제37회 행정고시에 최연소로 합격하였으며, 서울북부지검 수사관을 역임한 후 공군에서 헌병 장교로 근무하였다. 제대 후 서울중앙지검 범죄정보과, 수사과, 조사과를 거쳐 뉴욕 주립대학(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Albany)에서 범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군 생활, 공무원 생활, 유학 생활을 거치면서, 바람직한 한국형 형사사법시스템 도입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 Short Summary
관행이 된 회계부정, 끊임없는 뇌물시비, 개발경쟁에 따른 불완전한 제품의 생산, 환경오염 물질의 불법 배출 등 기업범죄로 인한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대사회일수록 기업범죄는 더욱 은밀하게 전문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피해액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실제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고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을 기록한 엔론 사태는 그 직접적인 피해액만 해도 절도와 강도사건 총 피해액의 약 4.5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 바 있다. 그러나 기업범죄는 그 특성상 피해가 광범위한데도 정작 피해자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더욱이 적발조차 쉽지 않다. 무엇보다 기업범죄의 심각성은 특정인에게 피해를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를 불신의 늪에 빠트리는 악영향을 끼친다는 데 있다. 이는 곧 반기업 정서로 표출되며 기업과 사회, 국가의 기반을 뒤흔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 책 『기업범죄,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SERI 연구에세이 22)는 기업범죄의 여러 가지 쟁점사항을 제도적·구조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다루며, 현대 기업범죄의 특징과 유형을 분석하고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심각한 폐해와 파장을 제기한다. 또 엔론 사태를 비롯하여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에 이르기까지 국내외에서 큰 파장을 일으킨 대표적인 기업범죄 사례를 통해 기업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을 밝혀내고 그 예방책을 모색한다. 저자는 기업범죄 수사 현장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학문적 성과를 토대로 보다 투명한 사회, 투명한 기업을 위해 정부와 사회, 그리고 기업 차원에서 기업범죄를 사전에 차단·억제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까지 기업범죄를 다룬 책들은 법적인 쟁점이나 경영자들의 가십거리를 다루는 데 비중을 두어왔다. 또한 기업이 이윤 추구라는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조직이라는 사실에 치중하여 치밀한 이윤 추구가 기업범죄의 원인인 것처럼 가정해왔다. 그러나 이 책은 국내외에서 발생한 다양한 기업범죄의 사례를 통해 기업범죄가 이윤 추구만이 아닌 다양한 원인에 의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를 통해 법적 문제 해결보다는 기업윤리 등 다양한 관점에서 기업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기술하고자 한다.
▣ 차례
책을 내며
1. 기업범죄, 왜 문제인가
높은 비용과 광범위한 피해자들
낮은 적발 가능성
수사의 어려움
사회 신뢰의 추락
점증하는 사회적 관심
2. 기업범죄란 무엇인가
기업범죄는 조직의 목적을 추구하는 행위
화이트칼라 범죄와의 차이
기업범죄에는 어떤 유형이 있나
기업범죄를 예방하는 공식․비공식 시스템
개인의 범죄인가, 조직의 범죄인가
개인의 범죄와 어떻게 다른가
3. 세계를 놀라게 한 기업범죄
월 스트리트 스캔들 : 메릴린치 사의 투자자 오도 사건
고객의 생명을 앗아간 포드자동차의 핀토
기업 회계 제도의 한계를 드러낸 엔론 사태
4. 한국 사회를 뒤흔든 기업범죄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
대기업 분식회계 사건
5. 정부 차원의 기업범죄 예방
일관된 수사와 조사를 통해 예측 가능성을 심어주어야
더 빨리, 더 강하게, 더 확실하게 처벌해야
증거 확보를 위해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다양한 제도 및 탄력적인 법적용이 필요하다
직접규제의 대안, 자율규제와 강제적 자율규제
6. 사회 차원의 기업범죄 예방
기업범죄 사실에 대한 언론 보도 효과
인내심과 건설적 비판이 필요하다
7. CEO 및 기업 구성원의 역할
내부 고발에 대한 인식 제고
실천적 윤리경영을 위하여
효과적인 윤리경영 강화를 위한 제언
자율 감시 시스템의 확립
8. 반기업 정서를 극복하는 길
프로야구에서 얻은 해법
국민의 기대 수준과 반기업 정서
경쟁력 강화가 반기업 정서를 잠재운다
기업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1장 기업범죄, 왜 문제인가
1999년 FBI는 미국 내에서 전통적인 범죄로 불리는 절도와 강도로 인한 피해액이 380억 달러(약 38조 원)에 달한다고 발표하였다.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2001년 엔론(Enron)의 회계 부정 사건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액이 1,700억 달러(약 170조 원)에 달해 절도와 강도 사건 총 피해액의 약 4.5배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기업범죄로 인한 피해액이 매년 1조 5,000억 달러(약 1,50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정확한 통계 자료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투입한 공적 자금 153조 원 대부분이 기업범죄와 관련한 부실대출로 동맥경화 현상을 일으킨 은행권의 자금 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비추어볼 때 우리나라도 기업범죄로 인한 피해액이 절도나 강도 등 전통적인 범죄로 인한 피해액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범죄 수사는 경찰 등 형사사법기관의 적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피해자 등 이해 관계자의 신고에 의해 수사가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기업범죄는 전통적인 범죄와 달리 은밀하게 또 전문적으로 이루어지고 피해자가 광범위하지만, 정작 본인은 피해자인 줄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기업범죄에 대한 효과적인 수사 단서를 탐지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 알려진 기업범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또한 적발하더라도 유죄를 입증하는 데 곤란을 겪으며,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일반범죄에 비해 처벌 수위가 낮은 편이다. 이런 탓에 기업범죄자들에게 선고되는 낮은 형벌은 일반인이 볼 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2장 기업범죄란 무엇인가
범죄학자인 클리나드와 퀴니는 『범죄행동 시스템(Criminal Behavior System)』이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기업범죄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그들에 의하면 기업범죄는 조직의 구성원이 기업이나 조직을 대표해 범죄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범죄는 오너 등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조직의 목적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기업범죄는 넓은 의미에서 화이트칼라 범죄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좁은 의미의 화이트칼라 범죄는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회사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저지르는 범죄라고 정의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의 이익을 위하는 기업범죄와 구분된다.
기업범죄에는 크게 다섯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사기기만형 범죄로 기업의 허위․과장 광고, 사기, 탈세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시장통제형 범죄로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행위, 독과점 범죄, 불공정 거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셋째, 폭력형 범죄로 제조물 범죄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넷째, 뇌물형 범죄로 상업적․정치적 뇌물로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범죄이다. 다섯째, 기본권 침해형 범죄로 기업이라는 조직의 막강한 권력을 이용하여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이다. 이렇듯 기업범죄는 행위의 특성으로 볼 때 그 유형이 실로 다양하고 광범위하며, 이를 수사하거나 단속․규제하는 기관 역시 다양하다.
기업범죄에 대한 주요 쟁점은 기업범죄를 기업 경영층 등 구성원의 행위로 보고 개인범죄와 동일하게 해석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견해와, 그것과 달리 독자적인 특이성을 갖는 범죄로 해석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견해 차이에서 나타난다. 이 같은 논의는 기업에 책임을 물어 직접 처벌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학문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업범죄에서 실제 행위자인 기업 구성원과 더불어 기업에 대해서도 연대해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3장 세계를 놀라게 한 기업범죄
인터넷 버블이 꺼지고 있던 2001년, 미국의 유명 증권사이자 투자은행인 메릴린치 사의 한 고객이 이 회사의 IT 관련 유명 애널리스트인 헨리 블리짓의 잘못된 주식 보고서로 인해 50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고 고소하면서 사건이 표면화되었다. 고소인 측은 인포스페이스가 실질적으로 투자 가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사자’ 등급('buy' rating)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준 이유는 메릴린치가 투자은행으로서 이 회사와 계약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월 스트리트 금융 자본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소속 애널리스트의 의견마저도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된다. 다시 말해 투자은행의 이익 창출을 위해 공정하기로 유명한 주식평가 부분을 이용한 범죄인 것이다.
세계 2위의 자동차 메이커인 미국의 포드자동차가 1971년 출시한 소형차 핀토(Pinto) 역시 기업범죄와 관련하여 유명한 사례이다. 당시 독일 차와 일본 차가 소형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어서 포드로서는 신차 출시가 다급한 형편이었다. 이를 위해 일반적으로 43개월이 걸리는 신차의 연구개발 기간을 25개월로 앞당겼다. 그런데 출시 전 마지막 충돌테스트에서 연료탱크 결함이 발견된 것이다. 당시 경영진은 교체비용과 사고발생시 보상비용을 각각 분석한 뒤 후자가 훨씬 싸게 먹힌다는 결론을 얻고, 바로 생산을 지시했다. 이후 조사결과 연료탱크로 인한 화재 사고로 8년 동안 500여 명이 사망하였음이 드러났고, 1980년 이 모델의 생산은 중단되었다.
유럽과 달리 미국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CEO다. 분기별 실적은 CEO에게 생명줄과도 같다. 그들은 불확실한 장기 수익이나 회사의 잠재 가치를 높이기 위한 대규모 투자보다는 단기간 내에 수익을 극대화해 투자자나 오너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선호한다. 그래서 비용 절감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식인 종업원 해고를 통해 CEO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인다. 또한 더 나은 숫자를 만들기 위해 이를 감시하는 전문가 집단을 돈으로 매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엔론은 회계법인인 아서 앤더슨에 16년째 매년 5,200만 달러를 지불하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최근 6년 동안 아서 앤더슨의 직원을 300명 이상 고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엔론의 법률 자문 회사인 빈슨 앤 얼킨스 역시 1990년대 후반 들어 20명에 이르는 이 회사 소속 변호사들이 엔론의 사내 변호사로 고용되었다. 그런 까닭에 양 사의 직원들이 미래의 직장인 엔론의 비리를 밝혀내고 시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힘들었다.
미국은 자국의 회계 시스템을 글로벌 스탠더드라 생각하고 다른 나라에 그와 비슷한 회계 시스템을 도입할 것을 직․간접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회계 전문가조차도 재무제표 등 회계 시스템이 기업의 재무 상태를 완전히 그리고 공정하게 나타낼 수 있을까 하는 데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따라서 일차적으로는 전문가 집단의 살아 있는 양심과 올바른 직업윤리가 회복되어야 기업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며, 부차적으로는 올바른 직업윤리를 심어주기 위한 자율적 혹은 타율적 감시 제도 마련도 필요하다. 현재 미국식 자본주의는 한국의 미래처럼 보인다. 그러나 올바른 직업윤리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폐해를 수없이 겪게 될까봐 두려움이 앞선다.
4장 한국 사회를 뒤흔든 기업범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이 1999년에 반세기 동안 국내에서 발생한 10대 환경 사건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였다. 당시 1위로 꼽힌 것이 1991년에 발생한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낙동강을 상수원으로 하는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전 국민들에게 환경오염의 심각성과 기업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 이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도적으로 폐수를 방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기업의 하부 조직을 효과적으로 관리․감독하지 못했거나, 미래의 위험을 효과적으로 계산하지 못했거나, 조직적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구축하는 데 실패해서 발생한, 조직의 실패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조직의 실패가 많은 기업범죄의 원인이 된다면 사법 및 규제당국의 올바른 역할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는 기업범죄를 적발 및 처벌하고 규제에 맞게 기업 활동을 하는지 감시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규제 일변도의 정책은 고의성 기업범죄에 대해서만 효과가 있을 뿐이다. 기업 내부의 관리 실패로 비롯된 기업범죄에 대해서는 컨설턴트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규제 대상 기업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조직의 약점을 분석하고, 미래에 조직의 실패로 인한 법규 위반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교육시켜야 한다. 실제로 일부 규제당국은 법집행 기관보다는 교육 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부패방지위원회는 한국전력 등과 부패 방지 관련 양해 각서(MOU)를 체결하여 컨설팅을 하고 있다.
5장 정부 차원의 기업범죄 예방
학계나 언론계에서는 ‘빨리 빨리’로 상징되는 조급증으로 인해 차근차근 해법을 찾아서 대처하기보다 현상만 가지고 처방하는 대중요법 때문에 우리 경제가 골병이 든다고 주장한다. 우리 경제에 이런 상황이 현실화된 것이 1997년의 외환위기라고 볼 수 있다. 과도한 차입 경영과 엉터리 회계, 정부 주도의 은행 시스템, 정경유착이 초래한 병인데도 외환위기 이전에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수술하기보다는 당장의 증세만을 보고 임시방편으로 치료해오다 문제를 키운 꼴이 되었다. 하지만 사실 외환위기 이후에도 단기적인 처방에 주력한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대증요법의 결과는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주기적인 경기 침체이다. 신용카드 발급남발과 부동산 담보 대출 비용의 상향 조정은 결국 내수시장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기업 범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외환위기 이후 유수의 기업들이 재정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부당 대출을 받아 외형 불리기에만 급급했고, 화의를 신청하다가 파산을 하는 등 해체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순환출자, 순환채무보증, 분식회계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위기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일부 기업들이 오너의 경영권 보장을 위해 주주나 회사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외환위기 사태가 벌어진 지 8년여가 지난 지금도 우리는 종합 대책이라는 이름의 종합감기약을 여전히 선호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기업범죄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인식에 동의하고 있다. 기업의 경영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낮은 벌금을 내는 것을 영업 행위에 필요한 기업 비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기업의 지배 구조와 기업범죄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주주들을 처벌하는 것이 기업범죄를 줄이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는 기업의 소유 구조가 기업범죄의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한다. 1991년 미국 연방양형위원회가 판사들에게 기업범죄에 따른 벌금을 다섯 배에서 열 배 사이로 증액하면 기업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며 지침을 내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비효율적이고 과다한 비용이 드는 정부의 직접규제만으로는 완벽하게 감시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나타난 대안이 자율규제이다. 자율규제는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효율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특히 재정 압박에 시달리는 정부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처럼 여겨진다. 자율규제가 가진 첫 번째 장점은 적용 범위가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장점으로 자율규제는 공무원보다 감찰을 훨씬 전문적으로 또 깊이 있게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온정주의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나라라면 내부 감시 기능의 독립성 확보가 문제되는 등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복잡하고 전문적인 기업 분야에서 비현실적인 규제를 배제하고 비용을 절감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은 충분히 살리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면 이 방법은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하겠다.
6장 사회 차원의 기업범죄 예방
수사기관은 수사의 필요상 혹은 잠재적 범죄자에게 유사 범죄에 대한 수사 상황을 공개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와 국민의 알 권리 때문에 피의 사실을 공개하곤 한다. 물론 피의 사실 공개로 인하여 당사자는 억울하게 재판을 받기도 전부터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등 부정적인 측면도 많다. 실제로 북유럽의 여러 나라 가운데에는 피고인에 대한 무죄 추정 원칙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확정판결 전 범죄 사실 공개를 엄격히 금지하는 나라도 있다. 반면 인권 외교를 자처할 정도로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의 경우, 변호사들이 수사 단계에서 피의 사실 공개의 위법성과 인권 침해 가능성에 대해서 무신경한 것을 보면, 인권이라는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 외에도 각 나라마다 특이한 법 감정에 비추어 그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기업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기업범죄에 대한 대표적인 형사 처벌인 법인 벌금과 관련해, 벌금을 납부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람이 아닌 법인 자체를 노역장에 유치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때는 다른 방법이 필요한데, 해당 기업의 범죄 사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그 효과는 어떠할까?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기업의 경영진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윤리적 기준을 중시하는 경영자의 3분의 1이 기업범죄의 언론 공개가 윤리경영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대답하였다. 실제로 기업범죄의 언론 공개는 기업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할뿐더러 제품의 판매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기업범죄 사실의 공개는 기업 자체에 대한 처벌로 매우 효과적인 수단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언론의 조급증은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과거에는 정치권력이 검찰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였지만, 지금은 여론의 힘이 가장 큰 압력처럼 보인다. 사실 여론은 항상 단기적인 요소에 쉽게 움직이며, 그것이 우리나라 특유의 빠른 망각 증세와 더해지면 근본적이고 내실 있는 대책을 세우기가 힘들어진다. 예를 들어 2003년에 검찰이 대선 비자금과 부당 내부 거래 문제로 재계 3위인 SK그룹을 수개월 동안 수사할 당시 일부 언론은 검찰 수사의 형평성과 그 의도에 대해서 의심을 하고, 조기에 수사를 마무리할 것을 주장하였다. 언론이 다각적인 취재와 더불어 균형 잡힌 기사, 그리고 치밀하고 건설적인 비판을 할 때 향후 기업범죄를 예방하는 힘이 될 것이다.
7장 CEO 및 기업 구성원의 역할
실화를 바탕으로 한 러셀 크로 주연의 영화 <인사이더(The Insider)>(1999)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신변의 위협, 그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기업의 막강한 힘을 그린 수작이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에서 내부고발자가 겪는 어려움은 극적인 전개를 위해 약간 과장된 측면은 있지만, 실제로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길을 걷고 있다. 2004년 부패방지위원회가 국회 법사위에 제출한 국감 자료에 따르면, 조직 내에 부정부패를 고발한 내부신고자나 고발자는 집단따돌림에서부터 감봉, 파면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에서 한 설문조사 결과도, 내부고발자 중 62%가 직장을 잃었고, 11%가 감봉을 당했으며, 나머지는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보직을 옮긴 것으로 나왔다.
이처럼 내부고발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가 어렵고 기존의 수많은 내부고발자들이 핍박을 받는 상황에서 내부고발자 제도를 민간기업에까지 확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장기적으로 기업 내부의 절차와 기업문화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기업 내부의 부정적인 시각과 불법 행위에 대한 침묵은 과거 정부의 보호와 카르텔이 존재했던 안정적인 기업 환경에서는 문제가 없었을지 모르지만, 전 세계적으로 급변하는 기업 환경에서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결국 내부의 인식 변화와 고발의 필요성에 대한 내재화만이 기업 환경을 투명하게 만들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업 내 법무팀이나 준법감시팀의 영향력을 높일 것이고, 의사 결정 과정에서 법적․도덕적 가치를 중시할 것이며, 업무 프로세서가 변화함에 따라 궁극적으로는 투명한 정책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8장 반기업 정서를 극복하는 길
외환위기 이후로 정부의 보호를 기대하는 기업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우리 기업들은 세계적인 기업들과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고, 그것을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만큼의 국제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그리 많지 않다.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하기에는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고,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하기보다는 국내 시장을 수성하는 데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과 끊임없는 노력을 바탕으로 해외에서도 성과를 거둘 때만이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도 사라질 것이다. 2005년에는 전년에 비해 반기업 정서가 많이 누그러졌는데, 이것은 우리의 대표 기업들이 선진국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에는 록펠러, 카네기 등 유명 기업인의 이름이 붙은 건물, 도서관, 대학 등 공공기관이 많다. 비록 그들이 살아생전에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부를 축적했거나 다른 기업가들을 매수하는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나, 후세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그들의 아낌없는 기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업가들에게는 이러한 기부문화가 너무도 멀게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일련의 변칙 상속 문제도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정부의 규제에 대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장하고 기업의 지배 구조에 대해서는 한국식으로 하자는 편의적인 발상은 기업이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투명성과 사회 공헌이라는 측면에서 국민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역할을 하면 반기업 정서는 자연스레 극복될 것이고, 더불어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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