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무남들이 가는 대로, 세상이 이끄는 대로 그냥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 휘둘리거나 흔들리면서,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을 고민하고 있지는 않은가. 새로운 시작은 두렵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를 때, 우린 다시 ‘내 삶’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오늘 우리에게 다시 꿈을 이야기하며, 그 꿈을 향한 작은 날개짓이 바로 여기, 일상에 있다고 말한다.
꿈꾸는 나비의 작은 날개짓
성균관대학교에서 철학으로 석,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대학교에서 여전히 교학상장 하고 있다. 이 책은 한 명의 인간이자 철학을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시대를 위해 필자가 해야 할 몫을 떠올린 결과이다. 하지만 이 책은 지금 우리 삶을 냉철히 진단하거나, 우리가 처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팍팍한 현실에 지쳐 꿈조차 꾸지 못하는 이들에게, 다시 꿈을 얘기하고 싶었고, 누구나 ‘자기만의 꿈’을 꾸길 바랐다. 그 꿈이 비록 작은 날개짓처럼 느껴지더라도, ‘나만의 삶’을 향한 위대한 여정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 Short Summary
우리 삶과 가장 맞닿아 있는 인문서: 이 책은 이렇게 누구나 일상에서 부딪힐 만한 문제들과 현대인들이 안고 살아가는 고민들을 담고 있다. 서로 다른 성격과 생각을 가진 세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이러한 문제와 고민들을 깊게 생각해보게 한다. 이 책은 문제를 제시하고 다양한 의견을 이야기하지만 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세 친구가 각자의 답을 찾아가는 것과 같이 독자도 함께 고민하며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도록 이끈다.
꿈과 나, 작은 날개짓과 일상: 우리는 늘 타인과 어울려 살아야 하지만 부딪히며 상처받기 일쑤다.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고,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며 사는 동안, 우리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바라는지조차 잊은 채,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러는 사이, ‘꿈’은 우리 언젠가부터 허황된 것, 현실과 동떨어진 낭만이 되어 삶과 아주 멀어져 버렸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꿈’은 ‘내 마음이 이끄는 것’으로써 지금 바로 여기, 우리 앞에 놓인 일상 가운데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낙타-사자-어린아이, 하다-잇다-짓다: 작가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정신의 세 단계 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차용하여 현재 우리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한다. 기존의 가치에 순응하는 낙타의 정신은 자신의 의지로 자신만의 삶을 살고자 할 때 사자로 변한다. 기존의 가치를 상징하는 용은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고 맞서지만, 사자의 의지는 용과 싸워 이긴다. 사자가 된 정신은 이제 다시 어린아이의 정신으로 변화해야 한다. 어린아이가 된 정신만이 처음부터 자기만의 놀이를 통해 자기만의 삶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니체의 이 이야기를 ‘하다-잇다-짓다’로 풀어내며, 각 정신의 단계를 온몸으로 부딪쳐 행동하고 경험하는 삶(하다)과 자신만의 경험을 자신만의 의미로 잇는 삶(잇다)으로, 그리고 다시 자기만의 삶을 지어가는 삶(짓다)의 모습으로 엮어간다. 낙타-사자-어린아이를 단계로 바라보면 ‘부정과 극복’이 필요하지만, ‘하다-잇다-짓다’로 연결 지으면, 삶의 모든 과정은 하나로 이어진다. 잘했건 못했건 내가 밟아온 모든 시간을 끌어안고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동안, 개개인의 삶은 모두 자기만의 의미로 빛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삶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힘: 살아가다보면 후회되는 순간도 있고, 헛되이 보냈다고 생각되는 시간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시간들조차 자기만의 정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걸어온 그 발자취 안에서 현재의 답을 찾게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이러한 통찰에 이른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당신의 책이 될 것이다.
▣ 차례
여는 글
인트로
1부 나와 남
중(中)의 회상-아버지라는 사람
헤아려 보기
얼마 전 이야기-값싼 동정심
무심코 던지는 돌
정(情)의 이야기-입장차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정(情)의 회상-복숭아와 씨앗
헤아림의 황금률
2부 나와 세상
지(知)의 이야기-지성이면 감천일까
나만의 답을 찾아서
운명은 있을까
쉽지 않은 문제
고민하기
지(知)의 친구 이야기-하면 된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3부 나로부터
지(知)의 회상-낙타의 시간
용에 맞서는 우리의 자세
사자의 용기
하다-잇다-짓다
중(中)의 이야기-나의 발자국
꿈, 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스스로 빛나는 별
일상의 힘
일상의 힘
작가의 말
꿈꾸는 나비의 작은 날개짓
지재 지음
몽무 / 2018년 12월 / 126쪽 / 13,800원
인트로 Intro
삶, 삶은 삶의 의지로 산다. 삶의 의지. 단지 살아남는 것을 넘어 사람만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여기까지 왔다.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은 저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고, 각자 자기만의 가치관이 있으며, 생김새도 모두 다르다. 자기만의 삶의 의미를 찾아 자기만의 삶의 의지로 자기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일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지금 여기, 주어진 환경과 상황을 온몸으로 껴안으며,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세 사람이 있다.
세 사람은 정(情), 지(知), 중(中). 영화동아리에서 만났다. 서로 너무 달라서 친해진 세 사람은 각자의 이름에서 그들의 성격을 나타내는 한 글자를 따서 별명처럼 부른다. 셋이 만나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편하다는 세 친구. 서로에게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또는 각자의 삶을 돌아보며 서로에게 조언을 듣고 싶을 때마다 함께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1부 나와 남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정: 사랑을 잘 모를 땐 쿨한 게 멋있어 보여서 난 그럴 수 있을 줄 알았거든. 근데 감정이 무슨 접착제처럼 붙어서 잘 안 떨어지니까 오만 생각이 다 들어. 내가 그 때 이랬으면 어땠을까? 그때 그 사람도 날 좋아한 건 아니었나? 타이밍을 잘 잡았더라면 괜찮았을까? 내가 좀 더 다가갔어야 했나? 혹시 혼자 그냥 들떠 있었던 건가? 그 사람도 날 좋아할지도 모른다며 혼자 착각한 건 아닌지…… 어쨌든 질척대는 중이야. 사람 마음은 너무 어려워.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에 대해 조금 더 민감하게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의 마음을 내 마음처럼 알 수가 없어. 내 의지만으로는 상대방의 마음 곁에 갈 수조차 없나봐.
지: 너 요새 조금 들떠 있는 것 같더니, 잘 안 됐나보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잖아. 사람 마음이야 늘 어렵지. 상대방의 마음도 모르고 내 마음도 어찌 할 줄 모르겠고, 그러다보면 타이밍이고 뭐고 생각할 새도 없고. 상대방의 모든 것들이 내 마음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되고 있는데, 그 상황에 어떻게 제대로 생각을 하겠어. 내 마음은 저쪽으로 가버렸으니, 이미 내 의지로 어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이럴 땐 들뜬 감정 때문에 자기 마음 아는 것도 쉽지 않아.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인류 역사 이래 감정은 단 한 번도 쿨한 적 없었다. 좋아한 만큼 정리할 것들도 그만큼인 거지, ‘질척’은 무슨.
정: 고맙다, 야. 너한테 이런 근사한 위로를 받을 줄은 몰랐네. 난 이번 일로 사랑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어. 만약에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제대로 알 수 있나? 연인관계는 수평적인 관계라 부모님이 자식을 내리사랑 하는 것과는 다르거든. 서로 사랑하면서도 싸우고, 싸우다 결국 헤어지는 건 대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런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 그런데도 정말 한결같이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물론 사랑이라는 게 이론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자주 실패하다보니 별 생각이 다 드네.
중: 일단 난 사람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데 한 표야. 우리가 다른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싶을 때를 생각해보면, 처음엔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하잖아? 조금 더 친해지면, 그 사람의 입장에 서보기도하고, 그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도 할 거야. 서로 통하는 구석이 많다면 친해지는 게 더 쉽기도 하겠고. 근데 아무리 가까워진다 해도 사소한 감각이나 느낌까지 알기는 어려워. 어찌 보면 우리가 이해하는 건 그 사람의 이미지일 뿐, 그 이미지가 그 사람 자체는 아닐 거야. 사람은 입체인데, 우리는 마치 평면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느낌이거든. 분명히 한계가 있어. 사랑도 처음엔 이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근데 내가 볼 때 사랑이 이해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온몸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는 것?
정: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온몸으로 끌어안는 거다? 어떤 의미지? 혹 이런 거야? 예전에 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생일선물을 사주려고, 알바해서 돈 모으고 뭘 사줄까 고민하며 그 추운 겨울날, 벌벌 떨어가며 선물 사러 다닌 적이 있었어. 고생은 했지만 선물 받고 좋아하는 얼굴을 보니까 마냥 좋더라. 그동안 들였던 시간과 노력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어. 아니, 그 행복해 하는 모습을 계속 볼 수만 있다면, 앞으로 더 좋은 선물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었거든.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마음, 뭐, 이런 건가?
지: 근데 막상 내가 해 준 선물을 자주 하지 않으면 서운하지 않냐? 난 그런 적 있었는데. 나도 예전에 사귀던 사람 생일 챙겨주려고 알바까지 해서 목걸이를 선물했거든. 받을 땐 엄청 좋아하더니, 막상 잘 안 하더라. 선물이 고맙긴 했겠지만, 마음엔 안 들었나 봐. 그 사람의 취향을 잘 몰랐던 나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잘 하지 않았던 그 사람이나 그때부터 조금씩 어긋났지. 그때 서로 솔직히 얘기하고 서운한 마음을 털고 갔으면 좋았을 걸, 그때 생긴 작은 틈이 나중엔 너무 커져서 메울 수조차 없더라. 내 마음을 다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내 마음 같지 않을 수도 있고, 상대방이 마음을 다한다고 해도 나한테는 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글쎄.
중: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선생이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다음에 재혼한 두 번째 부인은 정신적으로 부족한 사람이었대. 바느질을 제대로 못해서 빗자루 같은 버선을 만들고, 하얀 도포에 빨간 천을 덧대 옷을 기웠다는 거지. 하지만 퇴계선생은 늘 부인이 만들어준 버선을 신고 도포를 입고 다니셨대. 근데 조선시대 사대부로서 말도 안 되는 버선을 신고 누덕누덕한 도포를 입는 게 과연 쉬웠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온몸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는 말이 이 즈음이지 싶어. 내 마음의 사랑을 넘어 상대방의 사랑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는 마음. 퇴계선생이 당시의 사회적 관습이나 남의 시선까지 넘어설 수 있었던 게 바로 이 때문이었다고 생각해.
정: 내 마음의 사랑을 넘어 상대방의 사랑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진심으로 소중히 여긴다? 음…… 생각해보면, 정말 난 늘 내 마음속에 사랑만 생각했던 것 같아. 내가 선물해주고 싶어서 선물을 하고, 내가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고 행복했지만, 그러면서도 늘 불안해하고 만족하지 못했던 건, 어쩌면 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내 사랑에 취해 나를 너머 상대방의 사랑까지는 헤아리지 못했어. 바라고 서운해 하고, 해주고 받고 싶어 하고, 늘 그랬지.
지: 나도 그래. 아니, 오히려 난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한계를 그었던 것 같다.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고, 확인된 만큼만 서로를 바라보는 정도로 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생각해 보니까, 난 별로 좋은 연인이 아니었겠다 싶다.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할 만큼 부담스러운 사람이기도 했겠고. 난 내 마음을 넘어 상대방의 마음까지 존중하는 건 생각조차 해본 적 없거든. 그냥 상대방의 마음은 내가 알 수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최선을 다하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괜히 옛날 생각난다.
중: 사랑에 정답이 없다고 하잖아. 백인백색,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상황도 다른 데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사랑의 색깔도 다르니까. 근데 사랑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자기 마음의 한계를 지우고, 나의 ‘이 마음’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먼저 품고 헤아리겠다는 다짐은 할 수 있잖아.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하는 사랑의 색깔은 다를 수는 있겠지. 근데 사랑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이럴 수 있다면, 나는 최소한 좋은 연인이 될 자격은 되지 않으려나?
정: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원제: As good as it gets, 1997. 감독: 제임스 L. 부룩스)란 영화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당신을 만난 다음부터 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라고 고백을 하는 장면이 있어. 난 사랑한다는 말보다 이 말이 더 감동적이었어. 사랑한다는 말은 내 마음을 고백하는 말이지만 당신을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고백은, 단지 내 마음을 쏟아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겠다는 말이잖아. 사랑을 자기 안에서 자기 방식대로 끌어안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사랑으로 자신을 좀 더 좋은 모습으로 변화하는 데까지 이르는 건, 아까 말한 온몸으로 끌어안는 사랑과 비슷한 것 같아. 자신이 서 있는 영역을 송두리째 뒤집어엎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온몸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면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다.
2부 나와 세상
나만의 답을 찾아서
영화 매트릭스는 총 3편으로 제작되었다. <매트릭스>(The Matrix, 1998), <매트릭스 2 - 리로디드>(The Matrix Reloaded, 2003), <매트릭스 3 - 레볼루션>(The Matrix Revolution, 2003). 매트릭스 1편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매트릭스 안에서 프로그래머로 살고 있던 네오는 세상이 이상하다고 여긴다. 어느 날, 매트릭스의 실체를 알고 있는 모피어스와 트리니티를 만나게 되고,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기계가 만들어놓은 가상의 세계인 매트릭스를 떠나 실제 세상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리고 알게 된 진실. 오래 전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을 압도했고, 인간은 기계의 전원을 끄기 위해 하늘을 태우면서 오히려 세상은 무너진다. 이후 기계는 인간을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에서 살게 하고, 인간의 생체 에너지를 동력으로 사용하며, 압도적인 힘으로 실제 세계의 인간과 인간들이 사는 ‘시온’과 대치하고 있다. 기계들은 인간들이 사는 세상인 시온을 공격하고 이를 구하기 위해 네오를 비롯한 인간들은 기계와의 전쟁을 시작한다. 2편과 3편에서는 계속에서 네오의 선택과 의지를 주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지: 영화 <매트릭스> 두 번째 이야기를 보면 구원자 ‘그’인 네오가 인간들이 사는 ‘시온’을 구하기 위해 매트릭스를 만든 창조주를 찾아가는 장면이 있어. 근데 창조주의 말이 기가 막혀. 구원자는 계속 있어왔고 네오는 여섯 번째로 찾아온 ‘그’라는 거지. 매트릭스에 생기는 일종의 바이러스 같은 존재인 구원자를 창조주는 왜 계속 놔두었을까. 기계가 처음 매트릭스를 만들었을 때 사람들은 세상이 너무 완벽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대. 몇 번의 시도 끝에 창조주는 사람에게 ‘선택권’을 줬어. 매트릭스는 가상현실이고, 실제 사람의 몸은 기계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건전지일 뿐인데도, 선택권이 주어지고 세상의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워지니까 사람들은 오히려 매트릭스를 진짜 현실이라고 믿었어. 창조자는 네오에게도 선택권을 주며 구원자의 운명을 통제하려고 하지.
정: 하지만 ‘운명은 내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고 말하던 네오는 자신의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증명해 나가게 돼. 지금까지 창조주와 대면한 구원자들은 모두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구할 것인지, 위험에 빠진 연인을 구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어. 네오 전의 구원자들은 하나같이 기계들이 예상한 대로 세상을 구하는 선택을 했거든. 근데 여섯 번째 ‘그’인 네오는 망설임 없이 연인을 구하는 선택을 해. 그리고 다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지. 기계들의 예상을 넘어서는 네오의 이 선택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네오는 주어진 선택지에 따르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믿었어. 그래서 네오의 선택은 둘 중에 하나가 아니라 둘 중에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의 문제였던 거지. 기계는 사람의 선택권을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네오는 ‘자신만의 답’을 찾아간 거야.
중: 맞아. 예언자였던 오라클은 네오가 정말 ‘그’라고 정확히 얘기하지 않고 선택의 순간이 올 거라고만 했어. 오라클의 예언은 어긋난 적이 없다고 하니 네오는 불안했고, 자신을 믿지 못했지. 하지만 네오는 다른 사람의 신념이나 예언을 넘어서 자신의 선택을 통해 서서히 ‘그’가 되어가고 결국 스스로 ‘그’가 되거든. 그는 주어진 상황이 던져주는 질문에 수동적으로 답을 찾지 않고, 주어진 선택지를 뛰어넘어 상황과 정면으로 맞서 ‘왜?’라고 스스로에게 물어 봐. 네오는 주어진 선택지를 뒤엎고, 자신의 온몸을 부딪쳐 자신만의 질문을 통해 자신만의 답을 찾아 나간 거지.
정: 선택지를 뒤엎는 선택이라. 예를 한번 들어볼까? 폭풍우가 치는 날, 나는 차를 끌고 집으로 가고 있어. 앞이 보이지도 않는 길을 겨우 가고 있는데, 버스 정류장에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세 명이 있어. 한 사람은 내 생명을 구해준 적 있는 의사, 또 한 사람은 몹시 아파 보이는 할머니, 마지막 한 사람은 나의 이상형. 내 차에는 한 사람만 태울 수 있다고 한다면 누구를 태우고 갈 것인가? 이런 질문에 많은 경우, 마치 네오 이전의 구원자들이 세상을 구하는 선택을 한 것처럼, 도덕적인 이유를 들며 내가 태울 한 사람을 선택해. 하지만 다 떠나서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이상형을 선택하고 싶다면? 세상을 구하기보다 연인을 선택한 네오와 같이, 문제가 주는 선택지를 뒤엎고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도 있어. 차 열쇠를 의사에게 주고 할머니를 태우고 먼저 가라고 한 다음, 나는 이상형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겠다고 하는 거야. 내 마음이 이끄는 선택을 한 다음, 그 다음 일어날 모든 문제에 최선을 다해 행동하는 거지.
지: 네 말에 일리가 있긴 하다만 네오가 왜 구원자였겠어? 네오만이 그렇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잖아. 우리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늘 불안하고, 결과는 장담할 수 없으니까 맨날 두려워. 주어진 선택지 앞에서도 결정장애가 올 지경인데, 그 선택지를 뒤엎을 수 있다니. 난 얼마 전에 거스름돈 천 원 더 받은 거 다시 돌려주는 데도 3초쯤 고민했다. 조그마한 양심 하나 지키는 것도 이렇게 힘들어서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조차 질 때가 더 많은데, 자기 마음이 이끄는 선택을 한다? 불굴의 의지를 가졌거나 확고한 자기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글쎄.
정: 자기만의 답을 찾는 일에 꼭 큰 결단이나 행동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영화처럼 세상을 구하는 극단적인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거든.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내 자신과 관련된 일에서는 내 의지대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어. 아까 네가 말한 것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작은 양심 지키는 것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나가는 게 그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일상 속 작은 일들은 사소한 것 같지만, 큰 결딴을 내려야 하는 어느 때, 이 작은 것들이 결국 나를 받치는 힘이 될 수 있어. 우리가 소소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의 아주 작은 선택들이 사실은 나 자신을 바꾸는 거대한 힘의 조각들이 되는 거지.
중: 매트릭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모피어스가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의 차이”에 대해 말을 해.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는 건, 몸으로 움직여 경험으로 갖고 있는 것과 확실히 달라. ‘어쩔 수 없다’, ‘할 수 없다’고 미리 스스로의 한계를 그어놓는 것보다 작은 일이라도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몸에 익지 않은 지식은 불안하고 위태롭지만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지식은 확고하게 몸에 새겨지거든.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알고, 작은 게임이라도 이겨본 사람이 승리하는 법을 배워. 작은 거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직접 하는 동안 조금씩 나아질 수도 있다고 보는데.
지: 그래. 꼭 대단한 다짐이 필요하고 무진장 애를 써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는 건 어렵지 않지. 나도 한 번 해보지 뭐.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어. 운명을 단지 사람에게 닥치는 상황 정도로만 얘기하기엔, 그리고 이 운명을 단지 사람의 의지나 행동만으로 다 부딪쳐 갈 수 있다는 얘기는 너무 이상적인 것 같은데, 어때? 살다보면 사람의 의지만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뭔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또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맞닥뜨리게 되는 운명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들도 난 분명히 있다고 보는데, 운명은 있을까?
3부 나로부터
꿈, 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지: 난 어릴 때부터 크게 하고 싶다거나 갖고 싶은 것들이 많지 않았던 듯해. 생각해보면 늘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곧잘 따르는 아이였거든. 그래서 장래희망을 써내라고 할 때마다 고민 좀 했어. ‘공무원’이라고 쓰기엔 너무 심심해 보여서 ‘좋은 아빠’라고 쓰기도 했거든.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난 왜 다른 아이들처럼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어떤 일을 하고 싶다거나 그런 꿈이 없었는지? 너무 자연스러웠어. 난 비교적 안정적으로 성장했고 계속해서 이런 안정이 지속되기를 바라며 크는 동안, 다른 것들을 꿈꿀 만한 눈을 갖지 못했는지도 모르겠고.
정: 난 오히려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고 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 게 탈이었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내 삶을 걸어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의 꿈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하지만 수많은 내 생각들을 모두 담아낼 만한 꿈을 난 찾지 못했어. 아마도 이때가 제일 힘들고 답답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꿈이 있는 사람은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칠 수 있어, 하지만 자신의 꿈을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을 만한 열정도 준비돼 있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참아낼 만한 힘도 있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가슴은 타오르는데 이 뜨거운 마음을 쏟아낼 때가 없다는 게 사실 더 힘들지. 넌 평범한 꿈이었다고 겸손하게 얘기하지만 내가 볼 땐 그것도 분명 너의 꿈이었고, 넌 그 꿈을 위해 최선을 다했어.
중: 내가 대학원에서 논문을 쓸 때, 우리 지도교수께서 하셨던 얘기가 아직도 생각나. “하고 싶은 걸 하기보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하고 싶은 것? 정말 많지. 상상만으로 가슴 뛰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평생 꿈만 꾸고 살아도 된다면 그렇게 살고 싶을 만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 논문 주제를 고르면서 정말 멋지겠다고 생각했던 주제들은 왜 모두 ‘하고 싶은 것’이기만 하고, ‘할 수는 없는 것’들인지. 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그나마 내가 하고 싶은 것들과 가장 가까운 것을 고르는 차선책이,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 우리가 늘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꿈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헤매다 할 수 없는 현실에 부딪쳐 좌절을 겪고 나면, 꿈은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며 돌아서거든. 근데 과연 꿈이란 게 그런 걸까?
지: 그 말도 맞다만, 할 수 있는 꿈만 꾸었던 내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꿈도 좀 꾸어봤으면 싶을 때도 있다.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지금은 사실 막연하게 생각만 할 뿐, 지금의 내 생활 외에 색다른 것들을 꿈 꿔본 적은 없거든. 그래서 솔직히 좀 삶이 지루하다거나 하루하루가 좀 지겹다거나 그런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기도 하고. 용기를 내고 싶기도 하고 어떤 일에 열정을 갖고 싶기도 하지만, 하고 싶다거나 갖고 싶은 마음이 열렬히 생기지 않는 걸 보면, 참…… 답답하기도 하고. 근데 넌 하고 싶은 것 가운데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걸 찾을 수 있었지?
정: 알다시피 난 꽤나 오래 방황했잖아. 내가 살아 숨 쉬는 의미를 알지 못한 때가 있었거든. 난 도대체 왜 지금 여기 숨을 쉬고 있는 거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분명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 텐데, 삶의 이유를 찾고 싶었어. 근데 이건 다른 사람이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어. 오롯이 혼자 부딪쳐야 하는 문제였지. 내가 사는 이유를 알지 못하니까 눈앞은 늘 안개처럼 희미하고 어두웠어. 더구나 세상은 지루하게 반복되는 데다 마음에 드는 건 하나도 없고.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됐어. 처음부터 내 삶의 의미라는 건 있지도 않았다는 걸. 내가 그렇게 찾아 헤맨 내 삶의 의미란 결국 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야. 정답은 없는 것 같아.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의미를 만들어갈 뿐. 난 그제야 말 그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 중에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낸 거지.
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 늘 영화 보는 게 좋았어. 그래서 영화 동아리에 들었고, 거기서 너희들이랑 친구가 됐지. 한때는 정말 진지하게 영화를 보고 함께 토론을 하는 동안 진심으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 것 같다. 근데 난 왜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꾸지 않았지? 그때 만약 꿈을 꾸었다면, 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으려나? 어릴 때부터 생각했던 길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내가 과연 다른 꿈을 꿀 여력이나 있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진짜 꿈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만 꿈만 꾸는 사람들은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하지 못하는 이유만 찾잖아. 꿈은 핑계를 대며 가슴에 간직하는 게 아니라, 두 발로 뛰며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하는 건데.
중: 하고 싶은 건 늘 우리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어. 위만 바라보다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을 놓치면 그대로 넘어지기만 하지, 우리는 절대로 자신이 원하는 걸 잡을 수 없거든. 꿈은 하고자 하는 것들 가운데 할 수 있는 것부터,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지금 여기에서부터, 꿈은 우리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걸어가는 모든 길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면서도 마음속 깊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네 말처럼 핑계대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거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은 느리더라도, 지금부터 조금씩 영화에 대해 진지하게 배워보는 건 어때? 시나리오도 써보고, 영화 제작에 대해서도 알아보면서 계속 관심을 갖고 가다 보면, 언젠가 너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정: 나잠 히크메트의 「진정한 여행」이라는 시는 처음에 이렇게 시작해.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사실 우리의 꿈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시작되었더라도 무르익어가는 중일지도 몰라. 아름다운 노래를 향한 노력은 늘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향한 꿈으로 남아있고, 꿈을 이루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아직 남아있을 최고의 나날을 꿈꾸며 앞으로 또 나아가겠지. 이 시의 말미에서는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라고 했어. 각자의 꿈이, 각자의 길이 소중한 만큼 방황하고 헤매는 건 당연한지도 몰라.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한 번도 그만둔 적 없잖아. 부지런히 달려왔다가 잠시 멈춰선 지금,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고민을 끌어안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우린 인생의 진짜 여행을 시작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진정한 여행
(나짐 히크케트)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
회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다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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