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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요약본)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

by Casey,Riley 2023.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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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는 건강에 대한 불안과 편견으로부터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단련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심신단련’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다. 김주미 작가는 노년인 엄마의 코로나19 확진
경험을 통해 그 안에 내재된 사람들의 질병과 노년에 대한 편견과 불안을 목도한다. 또한 어떻게
하면 가족처럼 내밀한 관계에서 서로 상처받지 않고 안전하게 서 있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나아
가 노년에 이르러서도 불안하지 않고 단단해지기 위한 유쾌한 방법을 제시한다.

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



▣ Short Summary
『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는 건강에 대한 불안과 편견으로부터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단련하자는 메시
지를 담은, ‘심신단련’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다. 김주미 작가는 노년인 엄마의 코로나19 확진 경험을
통해 그 안에 내재된 사람들의 질병과 노년에 대한 편견과 불안을 목도한다. 또한 어떻게 하면 가족처
럼 내밀한 관계에서 서로 상처받지 않고 안전하게 서 있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나아가 노년에 이르러
서도 불안하지 않고 단단해지기 위한 유쾌한 방법을 제시한다.
따뜻하지만 단단하게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그리는 작가의 문체를 통해 우린 어쩌면 잘 ‘나이 듦’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당신에게 스스로를 돌보는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
는 위로와 공감의 에세이가 될 것이다.

▣ 차례
프롤로그
이 글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면
Part 1 엄마는 마녀가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중환자실의 눈물 여왕
노년과 낡음을 향한 저주
루머의 시초
안락한 동네의 마녀재판
마음의 상처가 남긴 몸의 자국들
소란한 꿈
스몰 트라우마와 버려진 스카프
코로나 블루와 은밀한 고백
Part 2 돌봄 노동이 일상으로 들어오다
집착과 기대 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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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

넘치는 가족애를 덜어낼 시간
자매애를 실은 택배 상자
행복 회로 재가동
엄마가 명절을 기다리는 이유
일상 회복을 꿈꾸며
슬기로운 쇼핑 생활
이사도라 순옥과 걷기의 자유
게으를 수 있는 권리
‘K-장녀’가 뭐길래
Part 3 노년을 기다리며 기꺼이 마녀가 되자
마음이 가라앉는 4호선
순옥 씨처럼 늙기 싫어서
흉터라는 훈장
나이 들어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필라테스 하는 할머니가 될 거야
보험보다는 모험의 힘을 믿어요
지팡이와 함께 걸어간다면
질병을 기다리며
소소하지만 위대한 자기 서사
에필로그
당신도 마녀가 될 수 있다

-3-

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

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

Part 1 엄마는 마녀가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라 여기고 가벼이 아침을 열었으나 돌아보면 인생이
라는 항해에서 큰 태풍을 만나 방향키를 돌리고 예상치 못한 물길로 떠내려가야 하는 날. 엄마와 나의
가족에게는 2020년 12월 10일이 그랬다. 목요일이었고 겨울 초입의 추위가 느껴지는 오후였다. 12월
의 바람을 우습게 본 죄로 코트 깃을 바짝 세우고 어깨를 움츠렸다. 목도리를 챙기지 않은 아침의 나
를 속으로 나무라며 병원을 빠져나왔다.
최근 몇 년 동안 엄마는 잔병치레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일이 잦았다. 매번 그 과정을 옆에서 도
와 온 나였기에 그날 역시 입원 절차는 순탄하게 흘러갔다. 과로를 하거나 겨울이 찾아오면 느닷없이
말썽을 부리는 엄마의 방광이 문제였다. 며칠 전부터 아랫배와 허리가 아프다는 엄마의 말에 가족들
모두 엄마의 방광염이 또 도졌구나 직감했다.
별 의심 없이 다니던 종합 병원의 신장내과로 향했다. 엄마를 오래 봐 온 의료진은 “재발했네요. 무리
하셨나 봐요. 통원 치료하시겠어요, 아니면 저번처럼 며칠 입원하시겠어요?”라고 물었다. 홀로 생활하
는 엄마가 식사를 챙기기에도, 한밤중 찾아오는 통증을 달래기에도 집보다는 병원이 좋을 것 같았다.
엄마도 아플 때 혼자 있으면 서럽다며 입원에 동의했다.
우리 모녀에게 병원 생활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허리에 인공 뼈를 삽입하는 수술과 폐의 종양을 제
거하는 수술을 하며 엄마는 환자로, 나는 보호자로 병실을 내 방처럼 누볐던 지난한 시간들이 있었다.
대상 포진이나 신장 결석같이 우리 가족에게는 이제 사소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입원했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번엔 입원을 위해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했다. 검사실로 향하기 전, 처음 받
는 검사에 엄마가 살짝 긴장하긴 했지만 통과 의례일 뿐이라며 안심시켰다. 검사 후에는 엄마도 해 보
니 별것 아니었다며 가벼이 웃어넘겼다. TV 뉴스에서 보던 면봉으로 코를 찌르는 모습을 드디어 본인
도 재연해 봤다고 말하면서.
체온도 정상이고 아랫배 외에 통증도 거의 없었기에 입원 수속을 마치고 엄마를 혼자 병실에 두고 오
는 마음이 그리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19 덕에 보호자가 병실에 같이 있을 수 없는 상황에 고
마움마저 느꼈다. 어서 빨리 집에 가서 식탁 위에 놓아둔 달달한 빵을 먹고 뜨뜻한 이불 속에 눕겠다
는 의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가족 채팅방에 엄마의 경미한 증상들을 읊은 후 병원에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오후면 퇴원할 수 있을 것이란 소식을 전했다. 오늘의 보호자 역할을 무사히 마치며 속으로 안
도의 숨을 내쉬었다.

-4-

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

‘아, 오늘 미션은 잘 끝냈구나. 그래도 이번엔 이만하길 다행이다!’
다행이라 안심하던 나의 속삭임이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불행을 맞이하는 외침으로 바뀔 것이란 예상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다음 날 아침 8시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어제의 피로로 잠이 덜 깬
채 전화기를 귀에 가져갔다.
“미야, 미야. 뭔가 이상하다.”
엄마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왜, 엄마? 의사 선생님 다녀갔어?” “아니, 간호사가 왔는데, 뭐라 뭐라 하면서 이 방에 못 있는다고
짐을 옮기라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방을 옮기라고? 아, 다인실에 자리 나면 옮겨 달랬는
데 그 말인가?” “아니, 어제 코로나 검사한 거 있잖아. 엄마랑 같이 검사한 사람들 중에 누가 확진이
나왔나 본데, 그래서 병실을 옮겨야 된다는데? 빨리 준비하라고만 하고 휙 나가 버려서 자세히 묻지도
못했다.” “뭐? 알았어요. 일단 진정하고 계셔 봐요. 간호사실에 지금 전화해 볼게요.”
목소리에서 엄마가 얼마나 당황하고 있는지 짐작이 되었다. 엄마와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간호사실로
전화를 걸었다.
“저, 609호 환자 보호자인데요. 혹시 어제 입원 환자 중에서 확진자가 나왔나요? 엄마에게 병실을 옮
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서요.” “네. 보호자분이 어제 온 따님이세요? 그게, 어머니 어제 검사 결
과가 나왔는데요, 코로나 확진입니다. 저희도 조금 전에 통보받아서 보호자분께 곧 연락을 드리려고
했어요.” “네? 잠시만요! 어제 입원한다고 검사했던 분들 중 한 명이 아니라 저희 엄마가 확진이라고
요?” “네.” “혹시 검사 결과가 잘못되거나 다른 분과 바뀌었을 가능성은 없나요? 저희 엄마 열도 없고
기침이나 인후통도 없고 증상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다른 분들은 다 이상 없고요. 환자분만 확진으로
나왔습니다. 일단 저희 병원에서 격리할 수 있는 공간인 1인실에서 대기를 하시다 저희도 보건소 안내
에 따라 차후 조치를 할 거고요, 보호자분한테도 지역구 보건소에서 전화가 갈 겁니다. 보호자분도 접
촉자이니 어디 가지 말고 대기해 주세요.”
우르르 쾅!
엄마가 코로나19 확진자라는 소리가 나의 머리에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손을 떨며 들고 있던 전화기
화면을 보니 2020년 12월 11일이었다.
사람 좋아하고 수다를 즐기던 엄마는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살며 가족과 이웃 사이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소한 그 행복을 한동안, 아니 영원히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바로 그날을 기
점으로! 보건소 전화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아차, 내가 또 뒤통수를 맞았구나! 이번엔 별일 없을 것이
라며 병원을 나서던 나의 안일한 태도가 하늘의 비웃음을 샀구나.’
엄마와 나의 삶 앞에 예상치 못할 불행이 도사리고 있다는 경고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망망대해 한가
운데서 오가지도 못하고 엄마 홀로 위태롭게 서 있어야 하는, 외롭고도 기나긴 코로나 회복을 향한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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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

해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안락한 동네의 마녀재판
나는 가끔 생각한다. 엄마가 노년이 아니었다면, 엄마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엄마가 홀로 살지 않았다
면 지금의 상황과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여성 독거노인이었기에 코로나19 확진 이후의 현실은 엄마
에게 더 가혹한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말이다.
엄마가 사는 동네 이름인 ‘안락동’은 안락서원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말 그대로 편안하다는 뜻을 지
닌 지명이다. 일곱 살의 어린 내가 살기 훨씬 예전부터 주거 지역이었고 지금도 시장을 둘러싸고 주택
가와 빌라촌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 기억 속에 안락동의 풍경은 골목을 따라 집과 작은 가게들이 옹기
종기 늘어서 있고 곳곳에 평상이 놓여 있다. 골목에서 열 살 남짓의 나와 친구들이 땡볕에서 땀을 흘
리며 놀이를 하고 있으면, 평상 위에선 엄마들이 모여 비빔국수며 전을 만들어 우리를 부른다. 그렇게
큰 평상에 앞집과 옆집, 뒷집 아이들이 뒤엉켜 앉아 같이 먹고 같이 뛰고 같이 웃던 시절이 아직도 생
생하다.
하지만 지금의 안락동은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졌다. 2020년 기준 노인 인구 현황에 따르면, 안락동이
속한 동래구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부산시 구, 군 중 다섯 번째로 많은 지역구라고 한다. 나의 모
교였던 중학교는 이미 사라졌고 초등학교도 곧 폐교될 예정이라는 소문이 들릴 만큼 어린이나 청장년
층 인구를 찾아보기 힘든 동네이다.
나는 안락동을 ‘도시 속 읍내’라 부르곤 한다. 시장 길을 따라 걷다 골목으로 들어오면, 어느 집에 숟
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알 정도로 토박이인 동네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곳에선 마치 어느 시골의
숨은 동네처럼 시간이 멈춘 느낌을 종종 받는다. 내가 엄마와 손을 잡고 다니던 목욕탕은 영업을 하지
않은 지 20년이 넘어 폐허가 되었지만 굴뚝마저 그대로인 채 남아 있다. 고소한 냄새와 요란한 소리로
나를 사로잡던 떡 방앗간도 그대로이고, 동네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낡은 간판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하철에서 내려 엄마 집까지 10분 거리 동안 나는 세네 번은 고개를 숙이며 구부정한 자세로 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어르신들 대부분이 몇십 년 터줏대감들이라 마흔 중반을 넘은 나
를 향해 아직도 이름을 부르며 “아이고, 엄마 보러 왔어?”, “저기 호떡집 딸 가는구나.”라며 알은체를
해 주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남동생 부부는 신혼살림을 이 동네에 차렸다. 하지만 얼마 살지 않고 더 큰 동네의 아파트
로 이사 갔다. 올케가 이 동네에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시장을 가든, 은행을 가든, 식당을 가든 모
르는 사람들이 빤히 쳐다보거나 “나, 네 시엄마 친구야.”라며 먼저 인사를 할 때였다고 한다. 지금도 우
스갯소리로 동생 부부에게 감시자들이 너무 많아 도망치듯 이사를 간 게 아니냐며 놀리곤 한다.
이렇게 좁고 내밀한 관계로 뒤얽힌 동네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30년 넘게 시장에서
호떡 장사를 해 동네 아이들 중에 그 집 호떡과 어묵 국물 먹지 않은 아이가 없다던, 인심 좋고 발이
넓은 사람. 바로, 나의 엄마다.
어제까지 다정한 이웃이었던 엄마는 한순간에 동네 전체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왜 안 그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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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

겠는가. 동네 이름처럼 안락한 동네, 시장을 중심으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던 소박한 동네에 낯설고
공포스러운 바이러스를 데리고 온 사람, 게다가 노년 인구가 대부분인 동네에서 생활 터전인 목욕탕과
병원, 시장을 바지런하게 돌아다녔던 사람이 아닌가.
40년 가까이 시장에서 열심히 장사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베풀어 ‘장한 어머니상’까지 받았던
엄마였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악의 기운을 퍼뜨리는 엄마는 ‘마녀’로 낙인찍히기에 모든 조건이
완벽했을지도 모른다.
끈끈하고 선량해 보이던 동네 사람들은 난생처음 경험하는 바이러스의 공포에 점점 날을 세우고 폐쇄
적이 되어 갔다. 순박하고 평화롭던 동네에 나쁜 것, 외부의 위험을 안으로 들여온 존재는 40년간 동
고동락했던 이웃이라 해도 결코 그들이 품을 수 없는, 오히려 배척해야 하는 존재였다.
게다가 엄마의 삶은 거의 모든 것이 공개되어 있었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우두커니 앉아 혼자 눈물만
흘리며 침묵을 지키던 순간에도 엄마의 전화기만은 홀로 요란스럽게 울었다. 처음엔 눈물을 훔치며 전
화를 받았지만 엄마는 이내 전화 받기를 포기했다. 동네 사람들은 전화를 걸어 처음에는 안부를 묻는
척하다 곧 언제부터 증상이 나타났느냐, 어디에서 옮아 온 것 같으냐, 며칠 사이에 자신의 집이나 가
게에 혹시 왔다 가지 않았느냐며 꼬치꼬치 물었다고 한다. 엄마가 병원에서 치료를 끝낸 후 집으로 돌
아온 후에도 이러한 추궁은 계속되었다.
완치 판정을 받은 후에도 엄마는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집 안에만 있는 것이 갑갑해 옥
상에 잠깐 올라 가볍게 몸을 풀고 있으면 건너편 집 아주머니는 엄마를 매섭게 쳐다보고는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낮에는 사람들 눈이 무서워 밤이 되어 모자를 눌러쓰고 생필품을 사러 나가면 누군가
엄마를 알아보고 소문을 냈다. 확진자가 동네를 활보하고 다닌다고. 엄마의 친구 또는 지인들은 엄마
에게 전화를 걸어 걱정하는 투로 말하곤 했다.
“순옥아, 당분간 동네에서 돌아다니지 않는 게 좋겠다.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어. 아직 집 밖에 나오
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내가 친하니까 나보고 말하라고 하더라.”
확진자로 낙인찍힌 후,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은 동네 사람들에게 감시를 당했다. 엄마의 움직임들은 재
판대에 올려졌고 엄마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간대와 길로는 다니지 말라는 판결을 받은 듯했다.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엄마가 안락동 사람들에게 ‘마녀재판’을 받은 것만 같았다. 동네 사람들은 엄마
의 작은 움직임마저 불길한 행동으로 보았고 엄마로 인해 공동체의 안전이 파괴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 사회에서 일어났던 ‘마녀사냥’ 현상의 주된 공격 대상은 과부였다고 한다.
홀로 사는 여성은 원죄를 가졌으며 악마와 내통하여 심부름꾼이 되기 쉽다고 믿었다. 엄마 역시 든든
한 남편이나 자식들이 항시 곁에 있었다면 사람들이 엄마를 향해 폭력과도 같은 시선을 보내거나 전화
기 넘어 상처가 되는 말을 던지며 때와 시를 가리지 않고 돌팔매질할 순 없었을 것이다.
마녀처럼 엄마를 따돌린 동네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엄마를 따돌려서라도 안
전하고 평온한 동네 안락동을 되찾고 싶었을 테니까. 엄마를 동네에서 배척시킴으로써 코로나 확진자
가 아닌 그들은 더욱 하나로 뭉치게 되었을 테니까.

-7-

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

그래도, 그래도 마녀의 딸이 되고 보니 지금도 원망의 마음이 앞선다. 엄마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40년 넘게 지켜봐 온 가족 같은 이웃들이기에 그들의 말과 시선, 행동이 남긴 상처는 엄마와 나에게
오랫동안 흉터로 남아 있을 것 같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받은 상처는 지울 수 없는 깊은 아픔을 남긴
다.

Part 2 돌봄 노동이 일상으로 들어오다
집착과 기대 그 사이
리베카 솔닛은 책 『멀고도 가까운』에서 살구를 통해 어머니와 자신의 관계를 되짚는다. 어머니가 돌
아가시며 남긴 살구나무에서 딴 살구는 그녀의 거실을 뒤덮어 버리고 부담으로 남았다. 살구는 그녀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실마리고 멀고도 가까운 모녀 사이를 상징하는 존재다.
엄마가 코로나19 회복기를 거치는 동안 나는 자주 이 책에 기댔다. 엄마에게 받은 살구가 내게도 있을
까, 있다면 무엇일까 생각했다.
리베카 솔닛의 어머니는 작가인 딸의 하루를 “너는 온종일 집 안에만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잖아.”
라고 묘사했다. 그녀처럼 뛰어난 작가는 아니지만 글을 쓰고 간간이 강의를 하며 사는 나의 일상도 다
르지 않다. 내가 유일한 딸이자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업을 가졌기에 엄마의 곁에 가장 오래
머물고 쉽게 찾는 가족이 되었다.
리베카 솔닛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살구를 처리하는 일이 남았듯이 나에겐 코로나19 확진자
가 된 엄마 대신 병원을 돌며 약을 타는 일이 주어졌다.
엄마가 매일 빼놓지 않고 먹어야 하는 약은 크게 네 종류다. 천식과 폐 건강을 위한 호흡 약, 고혈압을
낮추는 약과 방광염을 예방하기 위한 약, 그리고 밤사이 매시간 엄마를 깨워 화장실로 향하게 하는 빈
뇨를 다스리는 약까지. 2주마다 처방받는 약, 한 달마다 처방받는 약, 석 달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야
하는 약까지 그 모든 것의 일정이 나의 스케줄표로 들어왔다.
엄마가 집 밖을 나서길 두려워해 처음 한두 달은 나 혼자 병원을 다녔다. 내가 엄마의 딸이란 것을 증
명하는 가족 관계 증명서를 품에 지니고 있어야 했다. 엄마 대신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에게 엄마의 상
황을 간결하지만 호소력 있게 설명하고 최대한 많은 양의 약을 달라고 부탁했다. 5분도 채 되지 않는
의사와의 만남을 위해 병원에서 두 시간 넘게 대기하기도 일쑤였다. 시간을 들인 만큼 돈이 들어오는
프리랜서의 일상에서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강의료는 적지만 보람을 느낄 수 있어 이어 가던 주부나 성인 대상 강의들을 차례로 취소했다.
기한이 촉박한 원고 청탁도 거절했다. 마음이 쫓기는 일까지 맡는다면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 갈 것
같았다.
일상을 느슨하게 조율했음에도 왠지 모를 답답함과 화가 마음에 쌓였다.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의
전화에서 동네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서글픔을 반복해 얘기하는 엄마에게도 조금씩 지쳐 갔다.

-8-

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

엄마는 원래 성격이 급한 분인데, 코로나19를 경험하곤 불안이 더 커져 당장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일
에 안달복달했다. 특히 생필품에 대한 집착이 커졌는데 물이나 쌀, 세제와 같은 것이 꽉꽉 채워져 있
지 않으면 불안해했다.
엄마 주위에는 오지랖이 넓고 자기 신념에 찬 지인들만 있는 것인지, 그들은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출
처를 알 수 없거나 오류가 있는 사실들을 전했다. 그런 정보를 가만히 듣고 있다 궁금증이 쌓이면 엄
마는 내게 전화를 했다.
“미야, 〇〇엄마도 코로나 확진됐는데 정부에서 돈을 받았다던데. 자기도 받고, 자기 때문에 격리한 사
람도 받았대. 나도 동사무소 가 볼까?” “미야, 우리 동네에서 확진된 다른 사람은 병원비 하나도 안 냈
다고, 나 보고도 병원 전화해서 따지라는데 사실이니?” “미야, 뉴스 보니까 코로나 후유증이 더 겁난다
던데. 나도 다시 건강 검진 받아 볼까?”
결국 나는, 폭발했다.
“엄마, 제발! 그만 좀 해요. 그 사람들하고 엄마하곤 상황이 다르다고 몇 번 말해요. 내가 다 알아봤다
고, 똑같은 질문 지난번에도 하셨잖아. 나도 좀 살자고요. 나도 지쳐요!”
소리치듯 내뱉고 전화를 먼저 끊어 버렸다. 옆에 남편이 있는 것도 잊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는 남편의 손길이 느껴졌다. 한바탕 울고 나니 마음이
좀 가라앉고 창피함이 밀려왔다. 혼자 울고 있을 엄마가 떠올랐다. 남편이 말했다.
“후회되지? 어머니가 걱정되지? 너도 많이 지쳤던 거야. 근데 어머니도 네가 갑자기 화를 내니 많이
놀라셨을 것 같아. 평소에 어머니에게 네 감정이나 힘듦을 표현한 적이 없잖아. 마음을 좀 진정시키고
어머니한테 차분히 설명을 드려. 제삼자인 내가 봤을 땐, 어머니와 너 사이에 감정의 거리 두기가 필
요한 시기인 것 같아. 아무리 엄마와 딸 사이라도 지금처럼 모든 걸 공유하며 살 순 없지 않을까?”
그랬다. 엄마와 나 사이엔 틈이 필요했다. 서로의 감정이 부딪히지 않게 해 줄 숨구멍, 서로의 상태를
제대로 읽기 위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거리감 말이다. 몇 달간 엄마가 나인 듯, 내가 엄마인 듯 한
데 뭉쳐 있어 이제는 상대의 얼굴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 게 아닐까.
엄마 곁에서 나도 힘들다는 것을 나조차 몰랐다. 참다 참다 폭발한 감정이 엄마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금은 후회한다. 그때 소리친 일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엄마의 보호자이니 무조건 다 받아 줘야 한다고 여기던 나의 오만함을 반성한다.
그날 밤, 엄마에게 긴 문자를 보냈다. 말로 전하면 허공에 사라져 버릴까 봐, 눈물에 막혀 버릴까 봐
글로 마음을 전했다.
[엄마, 아까 소리쳐서 미안해요. 내가 화낸 건 엄마 때문이 아니야. 엄마를 둘러싼 상황에 화가 난 거
예요. 마음에 두지 말라고 해도 엄마 마음에 남을 못된 말을 해서 나도 많이 아프고 속상해요. 엄마도
많이 힘들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에 혼란스럽고 불안하지? 근데 나도 그렇다, 엄마? 그러니까

-9-

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

우리 둘 다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오늘만 살면 어때? 내일의 돈 걱정, 내일 아프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오늘 누릴 수 있는 엄마와 나의 시간을 우울하게 써 버리는 게 너무 아깝잖아요.
그리고 엄마, 아파도 돼! 아파도 행복할 수 있어. 또 다른 질병이 찾아오면 새로 온 심술궂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살살 달래 가며 살아가 보자. 엄마 몸, 70년 동안 애쓰며 살았잖아. 아픈 게 당연하고, 쉬고
싶어서 아픈 것일 수도 있으니 탓하지 말고, 원망도 말고, 엄마가 아픈 건 잘못이 아니니까 아프다고
미안해하지 말아요. 엄마, 나도 아직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철부지 마흔여섯 딸이에요. 내 옆에서 투
닥거리며 지금처럼 계속 살아가요. 난 엄마가 필요해. 나도 이제 아플 땐 엄마한테 기댈게. 사랑해, 엄
마!]
다음 날 아침, 엄마에게 먼저 전화가 왔다.
“잘 잤니? 많이 울어서 얼굴 퉁퉁 부었지? 엄마는 괜찮다. 네 얘기 들으니 엄마도 정신이 번쩍 들더라.
엄마도 혼자 할 수 있는 일, 다시 혼자 해 볼게. 잘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제 나한테 거는 전화도 줄여.
나도 너 귀찮아! 나한테 집착 그만해 줘.”
우리는 다시, 웃었다. 그러다 며칠 후 서로에게 또 짜증을 내고 금세 눈물을 찔끔 흘리며 사과하고 이
내 누군가를 같이 험담하며 “맞지? 내 말이!”를 거듭하면서 이심전심이 되었다. 남편은 이런 모녀를
지켜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미소 짓고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래도 그날 이후 엄마와 나의 마음의 거리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고 그만큼 모녀 사이에서 가슴에 박
힐 상처의 말을 주고받을 일도 줄어들었다. 엄마와 나 사이에 풀어야 할 숙제인 ‘살구’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 양은 점점 적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Part 3 노년을 기다리며 기꺼이 마녀가 되자
마음이 가라앉는 4호선
부산의 지하철은 모두 4개 호선이다. 차가 없어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는 나는 1호선부터 4호선을 골고
루 이용하는 승객이다. 1호선은 지하철 기관사인 남편이 운전하는 노선이고 2호선은 강의를 하거나 연
구를 맡은 학교와 기관에 갈 때 주로 이용하며 3호선은 현재 거주하는 아파트 앞을 지나가니 나의 최
종 목적지로 향하는 노선인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 4호선은 엄마가 살고 있는, 나 또한 20년 넘게 살
았던 친정집 동네를 지난다.
2, 3년 전까지 4호선을 타면 잠깐이지만 짧은 여행을 떠나는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부산 지하
철 4호선은 기관사가 없는 무인 열차다. 지하철의 맨 앞칸에 탑승하면 기관사실이 있는 다른 전동차들
과 달리, 4호선 차들은 맨 앞면이 시야가 개방된 유리 창문으로 되어 있다. 차가 달리기 시작하면 그동
안 궁금했던 지하 터널이 생생히 펼쳐지고 철로 위를 달리는 속도감을 눈으로 체험할 수 있다.
친정에 가는 날이면 4호선 맨 앞칸에 서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일곱 살에 이사 와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그리운 나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 내 인생을 잠깐씩 되돌아보는 타임머신이 되어 주었다.
4호선은 나에게 향수와 정겨움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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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

엄마가 코로나19에 확진된 후, 4호선 열차를 탈 일이 더 많아졌다. 틈틈이 엄마의 몸 상태를 살피거나
엄마의 목소리에 작은 변화라도 감지되면 그날 바로, 혹은 주말을 이용해 엄마 집으로 향했다. 평일이
던 어느 날, 엄마는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지만 “여보세요.”라는 첫 마디에 컨디션이 좋지 않음을 감지
하고 집을 나섰다. 언제나처럼 4호선 맨 앞칸에 앉았는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같은 칸에 타고 있는 승객들을 쳐다봤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노인들이었다. 노인들의 나라에
잘못 입성한, 아니 너무 일찍 도착한 중년이 된 기분이었다.
평소 같으면 달리던 차의 창밖이나 핸드폰 화면을 봤을 텐데 이상하게 그날은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노인들에게 눈길이 갔다. 굽은 등으로 끌차 안에 농산물을 가득 싣고 탄 할머니, 낡은 구두에 더 낡은
배낭을 메고 잘 들리지 않는지 고함을 치듯 통화를 하는 할아버지, 유튜브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를 이
어폰 없이 듣는 어르신과 차가 출발하고 문이 닫히는데 우산을 끼워 의기양양 승차하는 할아버지까지.
그곳에 내가 앞으로 부양해야 하는 노년, 그리고 마침내 나의 모습이 될 노년이 전시되고 있었다.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져 어깨가 처지기 시작했다. 그날의 4호선은 앞으로가 아닌, 아래로 돌진하는 전
차였다. 가라앉는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오래 생각했다. 4호선에서 만난 노인들처럼 내 부모도 초라
한 존재로 보일 것이란 안타까움, 어쩔 수 없는 것을 알지만 노화된 몸이 지하철 안에서 본의 아니게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불편함, 지금은 미간을 찌푸리고 보고 있지만 나의 노년
은 다를 수 있을까, 라는 당혹감과 초조함까지. 마음속에서 쇳덩이가 하나씩 더해지듯 부정적인 생각
과 감정들이 차곡차곡 얹히며 우울함이 나를 발밑으로 자꾸만 끌고 들어갔다. 추억이 깃든 과거를 여
행하던 4호선은 이제, 불안한 미래를 예견하는 열차가 되어 중년의 나와 노년의 엄마 사이를 운행하고
있었다.
다시 4호선을 타고 미소 지을 수 있으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물음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
지 않았다. 엄마가 혹은 내가 더 나이 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겁내지 않기 위해, 노화를 반기지는 않
더라도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받아들이기 위해 자세를 고쳐 앉을 필요성을 느꼈다. 늙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노년의 일상을 그려 본 적 없기에 단단히 채비하지 못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4호선 노인들에게 느꼈던 거리감을 좁혀 보려 요즘 나는 지하철에 타면 나와 다른 세계의 존재라고 생
각하며 힐긋대던 곁눈질을 거두려 한다. 그들의 거친 손과 굽은 등에, 낡은 물건들에, 보고 듣는 것마
저 쉽지 않은 신체 감각에 담긴 저마다의 사연을 읽어 내기 위해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그래도 애정
보다는 동정이, 존경보다는 미움이 앞서는 어르신의 모습을 발견하면 그저 속으로 되뇐다. 나의 내일
은 저렇지 않기를, 잘 늙어 가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부모 세대와도 진솔한 대화를 이
어 가야겠다고. 이렇게 하나씩 실천하다 보면 머지않은 어느 날, 가벼운 마음으로 4호선 지하철에 몸
을 실을 날이 돌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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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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