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재다능한 기생충학자 서민의 ‘웃기는’ 서평집, 혹은 독서 감상문 모음집이다. 기생충부터 의학사, 정치, 글쓰기를 거쳐 『집 나간 책』 이후 5년 만에 더 날카로운 시선과 더 시원한 유머로 돌아왔다. 서민은 미스터리 소설부터 대중 과학서, 글쓰기책, 사회과학서까지 두루 섭렵하며 그 책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짧고 굵게 소개해준다. 그저 재미있어서 손 가는 대로 읽은 것 같지만, 다종다양한 책에서 독서의 이유를 찾아내 알려주는 센스는 독보적이다. 독자들은 우선 저자의 입담에 놀라고, 다양한 책이 확장해주는 경험과 인식의 지평에 다시 한 번 놀라고, 마지막으로 자기도 모르게 빠져드는 독서의 즐거움에 놀라게 될 것이다.
유쾌하게 떠나 명랑하게 돌아오는 독서 여행
▣ 저자 서민
단국대학교에서 기생충학을 가르치고 있다. 베스트셀러를 노리고 쓴 『마태우스』가 ‘폭망’한 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최소한 욕은 안 먹는 책을 내는 저자가 되었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채 계속 책을 내고 있다. 이 책 『유쾌하게 떠나 명랑하게 돌아오는 독서 여행』을 내는 것도 베스트셀러 작가의 꿈을 이루려는 취지다. 원래는 돈을 벌면 기생충박물관을 지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같이 사는 개 여섯 마리를 위해 마당 있는 집을 사는 것으로 목표가 바뀌었다. 『서민의 기생충 열전』을 비롯해 지난 7년간 16권의 책을 썼다.
▣ Short Summary
이 책의 묘미 중 하나는 서민이 선택한 책에서 뽑아낸 ‘이 책의 한 줄’과 서민이 그 책에 대해 짧게 평한 ‘서민의 말’이다. ‘이 책의 한 줄’에서는 서민이 선택한 책들이 왜 수많은 책 사이에서 손이 갈 수밖에 없었는지 짧고 강렬하게 대변해준다. “어쩌면 중요한 건 사람들이 사실을 올바로 알고 있는가 아닌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가 아닌가 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는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는 ‘안아키’를 비롯해 백신 반대가 심각해지고, 백신 반대론자들에 대한 혐오가 만연해지는 상황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지적해준다.
‘서민의 말’은 서민의 책에 대한 애정과 재치가 듬뿍 묻어나는 부분이다. 좋은 책에는 찬사를 보내고, 독자를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참고로 ‘서민의 말’ 옆에 있는 말 그림은 저자 본인의 작품이다. 강준만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책 제목은 평소 부드럽게 말할 때는 들은 체도 안 하다가 목소리를 높이자 ‘오빠는 그런 과격한 페미니즘은 허락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한국 남성들을 풍자한 것이다. 오빠, 오빠는 여자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게 그냥 싫은 거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위험한 비너스』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지 말라’고 충고하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 되었다. 그의 단점은 작품에 따라 기복이 심하다는 것인데, 가끔 재미있는 책을 내니 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이 책 덕분에 그와 결별했으니 읽은 보람이 있다. 결별을 망설이는 분이라면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이 글 말미의 추천작을 읽어도 결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각 ‘감상문’의 말미에는 저자의 추천 도서가 더해져 있다. 다음 독서 여행을 떠날 독자들을 위한 저자의 애정 넘치는 선물이다. 만약 서민의 ‘감상문’을 보고 해당 책에 관심이 생겼다면 꼭 그 책을 한번 읽어보시길, 그리고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독서의 즐거움과 지적 지평의 확장을 경험했다면 추천 도서까지 섭렵해보시길 권한다.
▣ 차례
뻔뻔한 서문
첫 번째 여행_ 이상한 나라에서 책 읽기
더 아픈 사람이 있는 이유 『아픔이 길이 되려면』 / 우리는 왜 음모론에 빠져들까? 『테슬라 모터스』 / 우리나라 사람이 화성에 남았다면? 『마션』 / ‘갑질 돌려막기’의 이유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 다른 세계가 필요한 이유 『아무도 무릎 꿇지 않는 밤』 / 너는 왜 그러고 사니?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 ‘정상’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편의점 인간』 / 혐오에 빠지지 않고 두려움에 맞서는 법 『면역에 관하여』 / 서번트 증후군을 원하는 사회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 어느 날 초능력이 생긴다면 『비둘기피리 꽃』 / 어떤 토론을 좋아하세요? 『상실의 시대』 / 사과라도 잘해야죠 『공개 사과의 기술』 / 좋은 도시를 만드는 비결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과학자에게 정치가 중요한 이유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 / 교수를 조심하세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 투명함도 능력이다 『투명정부』 / 민주주의의 주적을 찾아서 『아주 낯선 선택』
두 번째 여행_ 책 한 권이 사람을 바꾸진 않겠지만
새로운 눈으로 영화 보기 『혼자서 본 영화』 / 전쟁을 보는 여자의 눈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침묵은 우리를 보호하지 못한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 잊어버리고 지워버린 이들에 대한 기록 『영초언니』 / 왜곡된 거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 과학으로 포장한 거짓의 실체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 여혐의 역사를 집대성하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 누가 틀렸을까?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 / 빨래하다 읽은 고전 『빨래하는 페미니즘』 / ‘며느라기’를 아세요? 『며느라기』 / 평생직장에 사표를 던진 이유 『며느리 사표』 / 폭력 남편 대처법 『나오미와 가나코』 / 사형을 시켜도 모자랄 『죽여 마땅한 사람들』 / 꽃뱀의 탄생과 대처법 『강간은 강간이다』 / 불륜이라고요? 『미투의 정치학』 / 여자 탓 좀 그만하자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 한국의 남자들이여, 어디로 가시렵니까? 『한국, 남자』 / 남성이 임신할 수 있다면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 남자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 페미니즘을 수단으로 한 위인전 『아빠의 페미니즘』 /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차이 『무코다 이발소』 / 비욘세와 유아인 『페미니즘을 팝니다』
세 번째 여행_ 읽고 쓰며, 명랑하게 삽니다
내가 동물원 주인이 된다면?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 하루키와 요충 『기사단장 죽이기』 / 정신과의 건투를 비는 이유 『정신의학의 탄생』 / AI 의사를 아세요? 『과학, 누구냐 넌?』 / 우리가 꼭 해야 할 질문 『참 괜찮은 죽음』 / 가족, 그 징글징글함 『가상가족놀이』 / 이름의 힘 『루미너리스』 / ‘혼고왕’ 서민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 거절이 어려우세요? 『출근길 명화 한 점』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당신의 완벽한 1년』 / 글쓰기 연습이 필요한 이유 『잽』 / 박근혜와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 / 웹툰 작가와 독서의 관계 『풀꽃도 꽃이다』 / 좋은 묘사는 어디서 나올까? 『공터에서』 / 인생은 왜 고달픈 것일까? 『뜨거운 피』 /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백만불짜리 글쓰기 습관』 / 환상에도 현실감이 필요하다 『램브란트의 유령』 / 어떤 상황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비결 『모스크바의 신사』 / 여성의 호감을 얻는 법 『오베라는 남자』 / 남녀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스토커』 / 괜한 자신감의 말로 『위험한 비너스』
유쾌하게 떠나 명랑하게 돌아오는 독서 여행
서민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20년 2월 / 388쪽 / 16,000원
첫 번째 여행_ 이상한 나라에서 책 읽기
더 아픈 사람이 있는 이유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나라는 제왕절개 수술을 많이 하는 나라다. 2013년 통계에 의하면 전체 분만의 36퍼센트가 제왕절개 수술로 이루어졌다. 중국(47퍼센트)처럼 우리나라보다 높은 나라도 있긴 하지만, OECD 평균(25.8퍼센트)을 감안하면 높은 편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자연분만보다 제왕절개 수술이 비싸니 ‘의사가 돈을 더 벌기 위해서’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자연분만할 때 태아가 잘못된 확률은 제왕절개 수술을 할 때보다 훨씬 크다. 좁은 출구를 통해 태아가 나오다 보니 수술로 꺼내는 것보다 위험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아이가 잘못되면 아이의 가족은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 법원은 대부분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면 의사의 과실이 없지만, 자연분만을 했다면 의사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다. 이렇게 본다면 의사가 제왕절개 수술을 선호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확률이 낮긴 하지만 제왕절개 수술을 해도 산모나 태아에게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법적으로는 무죄가 나올지라도, 산모가 “내 아이를 살려내라!”라는 피켓을 들고 병원 앞에서 시위를 한다면 어떨까? 서울아산병원이나 서울대학교병원처럼 큰 병원이라면 그런 일이 생긴다고 병원 평판이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작은 병원에는 치명적이다. 그런 소문이 난 병원에 올 산모는 없을 테니, 합의금으로 거액을 지불하거나 병원 문을 닫는 것이 의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 이런 일이 잦아지면 작은 병원들은 분만 자체를 꺼리게 된다.
이는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로, 지금 개인 병원 산부인과는 물론이고 중소 병원들도 웬만하면 분만을 하지 않는다. 이 현상이 가져온 결과는 참혹했다. 큰 병원이 몰려 있는 수도권과 달리 지방의 작은 산부인과는 분만을 잘 하지 않고, 그러다보니 분만 때 생기는 응급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강원도 태백에 살던 여성이 분만 도중 자궁이 파열되었을 때, 그 상황을 해결해줄 병원이 근처에 없었다. 결국 여성은 130킬로미터를 달려 원주로 가다가 사망하고 만다. 출생아 10만 명당 아이를 낳다 숨지는 산모의 수를 모성사망비라고 하며, 이것은 한 나라의 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다. 수명이나 병원 이용 횟수 등 의료에 관한 각종 지표가 톱클래스인 우리나라지만, 모성사망비만큼은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 2013년 OECD 평균 모성사망비는 7명인데, 우리나라는 11.5명이었다. 지역별로 나누면 심각성이 더 커진다.
이런 문제의식이 있던 터라, 김승섭이 쓴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의대를 나와 현재 보건대학교 교수인 그는 이 책에서 질병은 의료 제도와 문화가 만들어낸 측면이 있으며, 개인을 치료하기보다 제도를 손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책에 나온 사례 중 낙태 이야기를 소개한다. 1966년 루마니아 대통령 차우셰스쿠는 출산율이 줄어드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강력한 낙태금지법을 시행한다. 아이가 4명 있거나 산모 나이가 45세를 넘지 않으면 낙태를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무려 23년간 지속된 이 정책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우선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데 충분한 경제적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법을 피하는 길을 찾아야 했으니까요.” 낙태를 하지 못한 여성들로 인해 고아원 등 시설에서 자라나는 아이 수가 증가했다. 가장 큰 비극은 모성사망비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성들은 의사의 도움 없이 유산하기 위해 위험한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낙태금지법이 시행되기 전인 1966년에 비해 1983년 루마니아의 모성사망비는 7배 높아졌고, 이는 경제 수준이 비슷한 불가리아나 체코보다 9배나 높은 수치였다. 이 수치는 결국 1989년 혁명과 더불어 낙태금지법이 철폐되면서 이전으로 돌아갔다.
이는 낙태금지법이 출산율을 높이는 수단이 되지 못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여기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 낙태를 저출산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낙태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려 하니 말이다(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낙태법은 2020년까지 수정되어야 하는데, 이를 두고도 많은 논란이 있다). 그 결과 불법적인 방법으로 낙태를 하려던 여성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태아도 생명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던 분들이 산모의 목숨이 위험해지는 현실에 눈감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정말 저출산이 문제라면 아이를 낳아 잘 기를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김승섭은 이 밖에도 가난이 사람을 병들게 한다면서 사회안전망 확충을 주장하고, 근무 중 부상당한 소방공무원이 평가에 불이익이 있을까봐 대부분 자기 돈으로 치료를 받는다는 슬픈 연구 결과도 알려준다. 좋은 책의 조건 중 하나는 깨달음을 주는 것이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들이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 “그렇게 고생하면 나중에 돈 많이 벌잖아”라고 말할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만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전공의들이 지금처럼 일할 때, 과연 그들이 진료하는 환자는 안전할 수 있을까?” 실제로 연구 결과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전공의일수록 의료 과실의 위험이 커진다고 한다.
책을 읽다 보니 제도와 문화가 질병을 유발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십분 이해하게 되었는데, 저자가 하는 연구가 자본을 비롯해 소위 ‘가진 자’들에게 불편한 것이라 걱정이 된다. 저자는 삼성반도체의 작업환경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건강을 이야기하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의 2차 가해를 비판한다. 또한 비정규직 확대가 우리 사회의 자살률을 높이는 잔인한 짓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과연 그가 앞으로도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그가 활발히 연구하면 할수록, 우리 사회가 더 좋아질 수 있으니까.
서번트 증후군을 원하는 사회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기억력이 아주 비상한 남자가 능력을 발휘해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 아닐까 싶었는데, 정말 그랬다. 최근 20년간 일어난 모든 것을 기억하고, 필요하면 그 장면을 불러내 머릿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비상한 능력을 지닌 데커라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얼핏 생각하면 ‘야, 그거 정말 좋겠다!’ 싶지만, 꼭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만 해도 살면서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수십, 아니 수백 번이다. 20대에는 술에 취해 버스 운전기사와 험한 말을 하면서 싸운 적도 있는데, 콕 찍어서 이 사례만 소개하는 이유는 이게 그나마 덜 부끄러운 짓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내가 마치 사회정의의 수호자인 양 신문에 칼럼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는 비결은 내게 불리한 것은 죄다 잊어버리는 놀라운 망각 능력 덕분이다. 과거의 기억들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날 압박한다면 머리를 깎고 산으로 올라가야지 않을까?
이 책의 주인공 데커는 경찰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한다. 그 뒤에도 그의 기억력은 빛을 발한다. 각종 단서를 토대로 범인을 추격하는 것이 경찰의 임무인데, 비상한 기억력이 있다면 훨씬 유리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데커에게 쓰라린 시련이 닥친다. 누군가 딸과 아내를 무참히 살해한 것이다. 비상한 기억력 탓에 그 당시 상황이 계속 떠오르니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데커는 경찰을 그만두고 폐인 상태로 살고 있다. 그랬던 데커가 다시금 심기일전해 15개월 전 그의 가족을 죽인 범인을 쫓는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데커가 범인을 잡느냐 마느냐보다 여기서 집중할 것은 ‘서번트 증후군’이다. 의대를 나왔는데도 나는 서번트 증후군에 대해 잘 몰랐다. 심지어 그 단어조차 모르고 있어서, 언젠가 어느 분이 “혹시 서번트 아닌가요?”라고 물었을 때, “저는 서민인데요”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그분이 더 답변을 안 하기에 혹시나 싶어 검색해보니 자폐증과 관련된 단어가 나와서, ‘아, 이분은 내가 대인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구나’라고 정리하고 말았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 의하면 서번트 증후군은 뇌 기능 장애가 있는 사람이 의사소통 등 일상생활은 정상적으로 영위하지만 특정 분야에 있어서는 일반인이 도달할 수 없는 천재성을 보이는 경우를 지칭한다. 내게 “혹시 서번트 아닌가요?”라고 물었던 분은, 내 글을 칭찬한 것이었지만, 칭찬도 아는 사람에게 해야 의미가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서번트’는 프랑스어로, ‘박학다식한 바보’라는 뜻이다. 1887년 존 랭던 다운이 지능은 낮지만 기억력이 유난히 뛰어난 사람을 기술하려고 이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우리나라에 서번트 증후군이 알려진 것은 더스틴 호프먼이 주연한 <레인 맨>이라는 영화가 개봉하면서다. 호프먼은 천재적인 기억력을 지닌 자폐증 환자로 나왔는데, 도박장에서 카드의 순서를 외워 큰돈을 번다.
<레인 맨>은 서번트 증후군에 대해 알려주긴 했지만, 자폐증 환자에 대한 왜곡된 견해를 심어주었다. 자폐성 장애 중 아주 극소수만이 이런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자폐증 환자가 서번트 증후군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 탓에 자폐증 환자의 부모는 “우리 아이가 혹시 비상한 기억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기대를 하고, 그로 인해 더 큰 실망을 하기도 했다.
내가 몰랐던 또 하나는 후천적 장애로 서번트 증후군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책의 주인공 데커는 미식축구 도중 상대 선수와 충돌해 나가떨어졌고, 그 이후 서번트 증후군이 되었다. 책에는 후천적으로 서번트 증후군이 된 실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올랜도 서렐도 후천적 서번트 증후군이었다. 열 살 때 농구공에 머리를 맞은 후 탁월한 시간 계산 능력이 생겼고 모든 날의 날씨와 특정한 날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완벽한 기억을 갖게 되었다. 대니얼 타멧은 어릴 때 간질 발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세기의 천재가 되었다. 원주율을 2만 2,000자릿수까지 나열할 수 있었고, 일주일 만에 여러 언어를 완벽하게 익혔다.”
대체 어떤 원리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책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그는 두뇌가 두 가지 변화를 일으켰다고 결론지었다. 첫째, 그의 머리에는 배수관 같은 경로가 뚫렸고 그 경로로 정보가 훨씬 더 원활히 흐르게 되었다. 둘째, 그의 머리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전기회로망이 열려 채색된 숫자들을 보는 능력이 생겼다.”
채색된 숫자라는 것은 서번트 증후군 중 일부가 공감각이 있기 때문인데, 데커 역시 그랬다. “감각신경의 통로들이 교차했는지 숫자와 색깔이 연결되었고 시간도 그림처럼 보인다. 색깔들이 불쑥불쑥 생각 속으로 끼어든다. 나 같은 사람들을 공감각자라고 부른다. 나는 숫자와 색깔을 연결 지어 생각하고 시간을 본다. 사람이나 사물을 색깔로 인식한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서번트 증후군이 과연 좋은 것인지 회의가 들지도 모르겠다. 완벽한 기억력도 숨이 막힐 텐데, 거기에 색깔까지 끼어든다고? 그런데도 막상 서번트 증후군으로 만들어주는 수술법이 나온다면 그 수술을 받을 이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부끄러운 기억이 남는 단점보다 각종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장점이 훨씬 크게 보일 테니 말이다. 취업이 어려워 구직을 포기하는 청년이 늘어나는 시대를 감안하면, 아무리 비싸도 수술을 받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지 않을까? 서번트 증후군으로 가득 채워진 사회를 상상하니 왠지 좀 오싹해진다. 서번트 증후군의 비밀이 차라리 밝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다.
두 번째 여행_ 책 한 권이 사람을 바꾸진 않겠지만
‘며느라기’를 아세요? 『며느라기』
10여 년 전, ‘페미니즘의 교과서’라고 알려진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읽었다. 상하권으로 나누어진 이 책은 상권이 528쪽, 하권은 ‘해설’을 제외하면 530쪽이다. 두꺼운 책이라고 다 읽기 힘든 건 아니지만, 이 책은 두께보다 엄청난 깊이로 나를 힘들게 했다. 다음 구절을 보자. “의식은 제각기 남을 노예 상태로 전락시킴으로써 자기완성을 시도한다. 그러나 노예도 또한 노동과 공포 속에서 자기를 비본질적인 것으로 느끼고 있다. 변증법적으로 뒤집어 생각해서 그에게는 주인이 비본질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연극은 양쪽이 상대의 객체를 자유로이 인정하는…….”(상권 216쪽) 부끄럽지만 나는 지금도 이게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말이 책 전체에 걸쳐 등장한다. 결론에서도 변함이 없다. “남녀는 제각기 육체화된 실존의 이상한 애매성에서 살고 있다.”(하권 525쪽) 읽은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을 읽던 기억은 트라우마로 저장되어 있다.
아마도 저자는 이 책을 쓰려고 굉장히 많은 텍스트를 섭렵하고, 그것을 적확한 문장으로 뽑아내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 책은 나 같은 일반인에게는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깨달음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책을 통해 확인하는 순간 생긴다. ‘아, 내가 불쾌한 것이 당연하구나. 상대가 무례한 거였구나!’ 그 순간 페미니즘이 왜 필요한지 알게 된다. 하지만 『제2의 성』이 그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는 의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금 시대의 페미니즘 열풍은 페미니즘을 쉽게 이야기하는 책이 쏟아진 덕분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성차별 사례를 소설로 꾸며 수많은 페미니스트를 탄생시켰다.
『며느라기』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웹툰으로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연재 당시 독자 수가 60만 명에 달했던 인기 웹툰은 곧 책으로 묶여 나왔고, 인터넷 서점 순위에서도 종합 10위 안에 들며 승승장구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여성의 대다수는 누군가의 며느리다. 며느리, 듣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단어다. 노동의 전담자이자 억압의 상징이며, 그러면서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며느리 아니던가?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간단히 살펴보자. 직장에서 대리로 일하는 민사린은 결혼과 동시에 며느리가 된다. 결혼 초기, 민사린은 바쁜 와중에도 시어머니 생일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 드리려고 전날 시댁에 가서 잠을 자고, 새벽에 홀로 일어나 근사한 생일상을 차린다. 남편도, 마침 친정에 와 있던 시누이도 상을 차리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다 먹은 그릇을 씻는 것도 당연히 며느리의 몫이다. 민사린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남은 식구들은 민사린이 깎아놓은 사과를 먹는다.
그날 저녁에도 민사린은 시댁 식구들과 모임을 가졌다. 하지만 곧 시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 다가왔다. 점수를 따기 위해 다시 시댁에 갔고, 거기서 민사린이 폭탄선언을 한다. “참, 어머니, 다음다음 주 친척 결혼식은 못 갈 것 같아요. 제가 독일로 출장을 가야 해서요.”(113쪽) 그러자 시어머니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유부녀가 일주일이나 집을 비우냐”, “그 출장은 꼭 가야 하는 것이냐”, “꼭 가야 하는 게 아니면 다음에 간다고 해라”,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집을 비우면 어떡하느냐”
하지만 시어머니는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맨 마지막에 나온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바로 그것. “새신랑이 밥도 못 얻어먹으면 어떡하니.”(114쪽) 직장인에게 해외 출장은 자기 능력을 발휘할 좋은 기회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아들 밥 때문에 포기하라고 한다. “어디 아프다고 해도 되고, 집안에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해도 되고.”(115쪽)
갑자기 몇 년 전 일이 떠오른다. 아내가 갑자기 성당에 다니겠다며 교리 공부를 시작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는 크게 기뻐하셨다. ‘자식을 낳으면 신자로 만들겠다’라는 약속을 못 지킨 것이 마음에 걸리던 터에, 며느리라도 신자가 된다면 그 자체로도 좋은 일이고, 잘 하면 며느리가 아들을 꼬일 수도 있을 테니까.
아내가 세례를 받던 날 어머니는 물론이고 장모님과 다른 친척 한 분도 오셨기에, 세례식이 끝나고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하지만 어머니는 식사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당일에는 이유를 모른 채 헤어졌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 때문이었다. 세례식이 4시에 시작이었는데 나는 점심을 간단히 먹은 탓에 배가 고팠고, 그래서 인근 편의점에서 초콜릿을 사서 먹었다.
어머니는 내게 물으셨다. “점심 안 먹었냐?” 나는 조금밖에 안 먹어서 배가 고프다고 대답했다. 어머니의 낯빛이 변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며느리가 아들 밥을 안 주었다니, 어머니의 눈에 영세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세례식이 곧 시작인데 “나가서 뭐 좀 먹자”고 하신 것도, 식당에 가서 시종 불쾌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던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아내가 수술해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빨리 나아라. 아들 밥 못 먹는다”라고 하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시 『며느라기』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날을 계기로 시어머니와 잘 지내려는 민사린의 마음이 조금씩 무너진다. 얼굴도 못 본 할아버지 제사와 명절 때 차례를 혼자 준비하는 것에 화가 쌓이고, 그런데도 자신은 큰상 대신 조그만 상에서 반찬도 없는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어이없다. 차례를 지내고 파김치가 되어서 집에 온 날, 남편이 말했다. “사린아, 엄마가 저녁 먹으러 오라는데 어떻게 할래?” 남편과의 실랑이가 이어지고, 결국 민사린은 남편을 혼자 시댁에 보낸다.
이제 민사린은 시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며느리가 아니다. ‘며느라기’란 무엇일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예쁨을 받으려고 안 시키는 일도 다 하는 시기로, 보통 1~2년이면 끝난단다. 이 땅의 시어머니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며느리를 좀더 편하게 해주는 시어머니가 되지 않을까? 페미니즘의 목적이 여성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라면, 『제2의 성』보다 『며느라기』가 나은 책일지 모른다. 『며느라기』의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한국의 남자들이여, 어디로 가시렵니까? 『한국, 남자』
“어쩌면, 그렇게 한(국)남(자)스럽니?” 2018년 11월 30일, 인터넷서점 예스24를 이용하던 남성들은 채널예스에서 보내온 이메일 제목에 경악했다. 자신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한남’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떡하니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채널예스가 『한국, 남자』의 저자 최태섭과 인터뷰하고, 그 내용으로 홍보 이메일을 보내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 제목은 다음과 같은 저자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이번 책에 대한 독자 반응이요?……제 기사에 댓글을 달거나 페이스북으로 직접 찾아와서 글을 남기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주장이 10년째 똑같아요.”
별 논리도 없는 말을 10년씩이나 우겨대는 것, 이것이 채널예스가 생각한 ‘한남스러움’의 실체였다. 물론 이것은 채널 예스만의 시각은 아니었다. 인터넷만 살펴보아도 ‘한남’이라는 단어가 ‘지질한 남성’을 비난하는 말임을 쉽게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해도 예스24처럼 공인된 회사가 이런 단어를 썼다는 사실은 충격일 수 있다. 예스24가 남성보다는 여성의 편에 섰단 것은 확실하다.
이럴 때 남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가 예스24에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예스24가 사과하기는 했지만, 남성들은 이 사과를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다. “이게 사과냐?”는 말은 사과를 받을 마음이 없는 사람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두 번째가 해당 책을 불매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남성들의 불매운동이 이 책의 판매를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남성들은 그래서 세 번째 방법을 택하는데, 바로 예스24 회원에서 탈퇴하기다. 수많은 남성이 탈퇴했다. 이들이 조용히 탈퇴했다면 알 방법이 없지만, 그들은 자신이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탈퇴 ‘인증샷’을 올렸고, 덕분에 이슈가 되었다.
남성들의 분노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탈퇴로 대응하는 것은 하수 중 하수다. 예스24는 인터넷 서점일 뿐, 콘텐츠를 생산하는 곳은 아니다. 채널예스 담당자가 제목을 부적절하게 붙이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저자의 말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 예스24 전체의 시각은 아니다. 그런데 탈퇴를 하다니, 그럼 그들은 어디서 책을 살까?
물론 우리나라에는 알라딘, 교보문고, 인터파크 등 다른 인터넷 서점이 몇 군데 더 있다. 하지만 그 서점들도 예스24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상점은 더 많이 팔아주는 고객을 우대하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책을 많이 읽는다. 2014년 인터파크는 “여성이 책 1권을 살 때 남성은 0.6권을 구입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2015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책 읽기에 대해 여성이 남성보다 2배 이상 선호도를 보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페미니즘 열풍까지 불어 『82년생 김지영』이 100만 부 넘게 팔기도 했으니, 인터넷 서점들이 여성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예스24 탈퇴가 하수라면, 상수는 무엇일까? 게임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목숨 걸고 하는 대신, 책을 읽는 것이다. 남성이 많은 책을 읽고, 남성이 선호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인터넷 서점들이 남성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인터넷 커뮤니티와 달리 책에서는 삶을 더 잘 살아갈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남성에게 아쉬운 것은 그들이 페미니즘을 잘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적을 알아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면, 페미니즘책을 읽어야 ‘페미니즘=정신병’ 같은 소리도 그만할 수 있고, 여성들과 진지하게 토론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번에 논란이 된 『한국, 남자』도 그렇다. “목차에서부터 극단적인 페미니스트의 향기가 느껴진다”는 100자 평에서 보듯 남성들은 책을 읽지도 않은 채 별점 테러를 하기 바쁘지만, 막상 내용을 보면 남성에게 욕을 먹어야 할 책인지 의문이다.
우리는 남성을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주체이며,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가족과 나를 지키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런 시각을 ‘이상적인 남성상’이라고 정의한 뒤 이는 지배계급이 만들어낸 허구의 개념이라고 일갈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남성들은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지 못했고, 전쟁 직후나 외환 위기 등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여성들이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삶을 지켜냈다. 지금도 여성의 수입이 주요한 가정이 매우 많다. 이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원래 삶이란 남성과 여성이 힘을 합쳐 만들어내는 것이니, 이를 두고 “한국 남성만 무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
저자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한국 남성이 이상적인 남성상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상적인 남성은 대부분에게 불가능한 명제이므로, 이에 부합하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로 귀결된다. 여기에서 한국 남성의 문제가 시작된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여성과 힘을 합치면 좋을 텐데, 한국 남성의 문제는 그 실패를 다른 사회적 약자, 특히 여성 탓으로 돌린다는 점이다. 위기의 순간에 더 큰 피해를 본 쪽은 분명 여성인데도, 남성들은 자신을 피해자로 칭하면서 여성을 욕했다. 징집의 주체인 국가를 상대로 개선을 요구하기보다는 여성들에게 “왜 너희는 군대에 가지 않느냐?”며 윽박지르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해결책은 없을까? 좋은 남자가 되는 것은 어려우며, 해법도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는 “누군가를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한 사람의 주체로, 또 타인과 연대하고 돌보는 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278쪽)를 고민해보자고 말하며 책을 끝맺는다. 저자의 결론이 조금 추상적이라 내 식대로 해석해보면 이렇다. “밤낮 인터넷에서 여자만 욕한다고 되는 일은 없다. 제발 책 좀 읽으시라. 그러면 인터넷 서점에서도 대접받을 수 있고, 삶의 해법도 찾을 수 있다.”
세 번째 여행_ 읽고 쓰며, 명랑하게 삽니다
웹툰 작가와 독서의 관계 『풀꽃도 꽃이다』
웹툰 작가가 인기가 많다. 그들이 억대 연봉을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인기가 더 높아졌다.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을 때 “웹툰작가요”라고 답하는 경우도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다. 그런데 웹툰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흔히 그림만 잘 그리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웹툰 작가들은 그림을 잘 그리며, 웹툰을 보다 보면 그림에 감탄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윤태호 작가의 이야기를 잠깐 살펴보자.
영화로 만들어진 <내부자들>과 드라마로 만들어져 인기를 모은 <미생>으로 스타덤에 오른 윤태호 작가는 어린 시절 그림을 워낙 잘 그려, 미술 대회에서 받은 상으로 방 안이 가득 찰 지경이었단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과연 그림 실력이 중요하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그 당시에는 웹툰이 없었고, 대신 잡지에 만화를 연재하곤 했다.
어려서부터 만화가를 꿈꾸었던 윤태호는 ‘25세 이전에 잡지에 만화를 연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정확히 25세던 1993년 그 목표를 달성한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그림은 기가 막히게 잘 그렸지만, 스토리가 따라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림만 잘 그리면 되는 줄 알았던 작가에게 작품을 연재하는 4개월은 지옥 같았다. 그 후 윤태호는 어떻게 하면 스토리를 잘 짤 수 있을지를 연구하려고 다시금 문하생 생활을 자처한다. 그가 쓴 방법은 최인호 작가의 전집 등 유명한 작품의 필사였다.
조정래의 『풀꽃도 꽃이다』에도 스토리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학교교육의 현실을 그린 이 책에 등장하는 한동유는 만화가를 꿈꾸는 고등학생으로, 하루 빨리 학교를 때려치운 뒤 명성 높은 만화가 ‘이 선생님’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선생님은 해외에 있거나 다른 일로 바빠서 그를 만나 줄 여유가 없다. 한동유는 이 선생님의 문하생인 키 큰 아저씨에게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하소연한다. 이에 대한 아저씨의 대답을 보자.
“말했잖아. 적당 적당하게 공부하면서 고등학교, 대학 나오고, 그 담에 이 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라고. 있잖냐, 고등학교, 대학 괜히 다니는 거 아니야. 그 동안 만화에 대해서 계속 많이 생각하고, 세상 경험도 많이 쌓고, 책도 고루고루 읽어 지식도 넓히고 상상력도 자꾸 키우고, 이 세상 온갖 것 못 그리는 게 없게 매일 연습하고, 그게 다 좋은 만화가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야. 그 과정이 지금 네가 원하는 것처럼 한 사람의 문하생이 되면 자기만의 개성 있고 독특한 만화가가 되지 못하고 그저 손재주만 좀 있는 그림 기술자로 끝내고 말아. 그건 끔찍한 비극이지. 내 말 이해가 되니?”(2권 109쪽)
만화가와 그림 기술자의 차이는 스토리의 유무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웹툰에 “그림이 마음에 안 든다”면서 평점을 낮게 매기는 경우는 드물다. 스토리가 얼마나 재미있느냐, 개연성이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이말년 서유기>는 그림만 보면 그다지 강한 인상을 못 받지만, 기상천외한 스토리 덕분에 늘 10점 만점에 9.9점을 넘는 평점을 받았다.
반면 같은 포털사이트에 연재한 <ㄷㅇㅇㄹㅋㅉ>은 탁월한 그림에도 불구하고 2점대라는 기록적인 평점에 시달렸다. 별다른 스토리 없이 주먹다짐만 난무하는 것이 이유인 듯하다. 그러니까 자기만의 스토리는 만화가 혹은 웹툰 작가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며, 그러려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책을 고루 읽는 것이 중요하다.
스토리의 중요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 명만 더 예를 든다. 국내 1세대 웹툰 작가로 꼽히는 강풀 작가다. 다른 만화가들과 달리 강풀은 만화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그가 좋아했던 것은 소설책 읽기로, 어릴 적부터 도서관에 가서 살다시피 했을 정도였다.
“세상에 이런 좋은 곳이 없었어요. 하루 종일 책을 공짜로 읽고 심지어 책을 대여할 수도 있고.” 그의 책 사랑은 정도가 심해서, 고등학교 때 수업 시간에도 소설책을 읽었단다. 특히, 황석영과 조정래 작가의 책을 좋아했는데, 국문과를 선택한 것도 소설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랬던 그가 만화를 그리게 된 것은 총학생회에서 홍보를 담당하게 되면서부터였다. 학생회 행사 참여가 저조했던 시절, 강풀은 학생을 모으려고 난생 처음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만화 덕분에 학생회 행사에는 사람이 많이 왔고, 강풀은 만화가로 사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문하생으로 들어가려 이력서를 냈지만, 그를 받아준 곳은 없었다. 그림 실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인터넷에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만화를 올리기 시작한다. “저한테 오랫동안 따라다닌 말이 ‘만화 못 그리는 만화가’였어요. 만화가에게 그림을 못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마이너스인지 이 바닥에 들어오니 뼈저리게 느껴요.”
실제로 강풀의 만화들은 비슷비슷해 보인다. 특히, 주인공은 다 비슷하게 생겨서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안 될 때도 있다. 그런데도 그의 만화는 재미 면에서 최고다. 스토리가 워낙 출중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떻게 이런 훌륭한 스토리를 짤 수 있었을까? 강풀은 어릴 적부터 책에 빠져 산 것이 스토리 구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웹툰 작가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책을 읽어라.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은 웹툰 작가에게 필수적인 스토리 짜는 능력을 길러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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