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 ( 595∼673 )
삼국 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장군, 정치가로 본관은 김해이다. 원래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
왕의 12대 자손으로, 증조부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해왕이었다. 김유신은 열다섯 살에
화랑이 되어 화랑정신을 닦았다. 여러 차례 백제와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어 지
위가 높아져 갔다. 654년에는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하기도 하였다.
660년 상대등이 된 김유신은 그해에 백재를 정복했으며, 이어서 당나라 군사와 연합하여 기
울어져 가는 고구려를 멸망시키려 했으나, 당나라 군사의 철수로 실패하였다. 668년 연합군
대총관이 된 김유신은 금성에서 국방일을 도맡다가, 태대각간의 최고 지위에 오른 뒤 당나
라 군사를 몰아내고 한강 이북의 고구려 땅을 수복하여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졌다. 673년
일흔아홉 살의 나이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1. 비범한 아이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의 이야기이다.
만노군(충북 진천) 태수 김서현은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본 별이 너무도
아름답고 밝았다.
정말 아름답고 밝은 별이구나!
꿈 속이었으나 서현은 감탄을 하여 마지않았다.
앗, 저것이 어찌된 일일까?
별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주먹만해지더니 금방 집채만큼이나 커졌다.
또 너무나 밝아 눈이 부셔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그러나 더욱 놀란 것은 별이 자기를 향해 떨어져 오는 것이 아닌가. 그 바람에 잠이 깨어
버렸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서현은 이 꿈을 혼자만 마음 속에 간직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옛날 사람들은 지금 우리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미신을 많이 믿었다. 특히 하늘의 별을
보고서 여러 가지 일을 알아냈다.
이것이 점성술이 되고 다시 천문학으로 발달했던 것이다.
저 별은 임금님 별이고, 저 별은 왕비님 별이다. 그 주위에서 조그맣게 반짝이고 있는 별
들은 대신들 별이지.
아버지가 하늘의 어떤 별을 가리키며 아들에게 설명하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그럼, 저 많은 별들 가운데 아버지, 어머니의 별도 잇고 내 별도 있겠네요?
있고 말고! 사람은 태어날 때 누구나 별 하나씩 갖고 태어난다. 그리고 늙어 병이 들면
그 별이 희미해지고 죽게 되면 별도 떨어지지.
그런데 내 별은 어디 있지요?
이런 질문이 나오면 아버지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람마다 자기 별이 잇다고는 믿었지
만, 그 별이 어느 것인지 가리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랜 동안에 걸쳐 사람들은 하늘의 별을 보면서, 한걸음 나아간 생각을 가지게 되
었다.
별자리였다. 늘 비슷한 위치에서 반짝이고 있는 별들을 보며, 그 별에 나타나는 현상과 지
상의 일을 연결시켰다.
별자리는 혹성을 가진 별의 무리이다. 그래서 고대 인도·페르시아·중국 등의 사람들은
황도를 따라 움직이는 혹성의 위치를 보아, 하늘을 3원 28수로 나누었다. 이런 천체의 분할
은 이미 미신을 벗어난 원시 천문학이었다.
그리고 만일 형혹성(화성)이 자미궁을 침범하면(겹쳐보이면), 지상에서도 반란군이 일어나
궁궐을 침범하는 아주 불길한 징조라고 생각했다.
서현이 불안하게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 때는 고구려·백제·신라의 3국이 서
로 싸우고 있었으며, 서현은 만노군의 성주로 국경을 지키는 장군이었다. 별이 떨어진 것을
본 꿈을 혼자만 간직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이번에는 만명 부인이 서현에게 말했다.
어제밤, 참으로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대체 무슨 꿈인데 이상하단 말이오?
서현은 아내의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했다. 자기도 이상한 꿈을 꾸고 그것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터였기 때문이다.
글세, 하늘에서 금빛 찬란한 옷을 입은 아이가 구름을 타고 오지 않겠어요.
뭐라고?
평소 침착한 서현도 그만 놀라는 목소리를 냈다.
아이는 싱글벙글 웃었는데 참 귀엽게도 생겼어요. 그리고 사뿐 마당에 구름을 타고 내려
앉더니 저에게 안기지 않겠어요.
만명 부인은 부끄러운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서현은 이제껏 혼자만 간직했던 불안도 잊
고 기뻐했다.
서현은 꿈 이야기를 만명 부인에게 들려 주었다. 부인은 더욱 더 얼굴을 붉혔다.
부끄러워할 것 없소, 훌륭한 태몽이 아니겠소.
김서현은 가락국(금관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11대손이었다.
가락국은 신라 제23대 법흥왕 19년(532) 신라에 항복함으로써 멸망했다. 서현은 이 당시
물론 태어나지도 않았었다.
가락국 왕족들은 신라의 서울로 옮겨갔고 신라 귀족들의 멸시를 받으며 살았다.
진흥왕 12년(551)에는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크게 무찔러 죽령 이북 10개 고을(강원)
을 새로이 차지했다. 다시 14년(553)에는 백제 땅이던 한강 하류를 점령하여 영토를 더욱 넓
혔다. 또 관산성(옥천)에서 백제군을 크게 무찔렀으며, 북한산에 순수비 를 세웠다(555). 이
어 진흥왕 23년(562)에는 신라의 공격을 받고 대가야 를 마지막으로 6가야가 모두 망했던
것이다.
서현은 무렵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무력은 신주도 행군총관이 되어 백제왕 및 그 장수 4
명을 사로잡고 군사 1만 남짓을 포로로 잡은 장군이었다. 서현(삼국사기에는 도연이라는 이
름이 김유신 비석에 있어 어느 쪽이 정말인지 모른다고 했음)은 어려서 무예를 익혔고 사냥
을 즐겼다.
어느 날 서현은 사냥을 하고 오다가 냇가에서 빨래하는 아름다운 처녀를 보았다. 그는 첫
눈에 마음이 이끌렸다. 그래서 하인을 불러 은밀히 명했다.
뉘집 아가씨인지 알아가지고 오너라.
하인은 돌아와 아뢰었다.
갈문왕 입종의 아들, 숙흘종의 따님 만명 아가씨라 합니다.
으음.
하고 서현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갈문왕은 왕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임금의 가까운 친척에게 내리는 칭호였다. 그러니 신
라의 귀족임을 틀림없었다.
서현과 만명은 어느덧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숙흘종은 반대했다.
우리는 성골 이다. 금관 가야의 망국 왕족의 후손에게 어찌 내 딸을 줄 수 있겠는가?
숙흘종은 딸을 억지로 별채에 가두고 부하를 시켜 지키게 했다. 그러나 하루는 벼락이 떨
어져 별채의 문이 부서지자 지키던 부하는 놀라 자빠졌다. 만명은 이 때 빠져나와 서현과
함께 도망쳤다.
훌륭한 아들을 낳게 되면 당신 아버님도 기뻐할 것이오.
네, 저도 그렇게 믿어요.
서현은 아직도 노여움을 풀지 않고 있는 숙흘종을 생각하며 또 말했다.
부인! 좋은 아기를 낳으려면 매사에 몸 조심하고 음식도 가려 먹어야 하오.
네.
어느덧 열 달이 지났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기는 태어나지 않았다.
어쩐 일일까?
글쎄요, 아기가 태 안에서 좀더 튼튼해져서 태어나려나 보지요.
놀랍게도 아기는 다시 열 달, 그러니까 스무 달 만에 태어났던 것이다.
때는 진평왕 17년(595)이었다.
집에선 오래 기다리던 아기가 태어났으니 모두들 기뻐하며 들떠 있었다. 하인들과 하녀들
은 춤을 덩실덩실 추기도 하였다.
이 때 한 하인이 외쳤다.
주인님! 이리 좀 나와 보십시오.
서현은 방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웬 호들갑을 떨고 있느냐, 하고 나무라고 싶었지만 주인
아씨께서 아기를 낳아 기뻐한다고 생각하니 그도 결코 싫지는 않았다.
무엇이냐?
글세, 저것 좀 보십시오. 학이 날아와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지 않사옵니까!
뒷동산에는 잣나무며 소나무가 늘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
려고 하는지 학이 몇 마리 우아하게 날고 있었다.
학은 거북과 더불어 장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새로서, 길조로 여겼다.
서현도 하인들과 함께 기뻐했다. 이 무렵에는 평균 수명도 짧았고, 어렸을 때 갖가지 병에
걸려 아기가 죽는 사망률도 높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로서 아기의 장수를 비는 마음은
간절했다.
아기의 얼굴 좀 보세요. 제가 꿈에서 보았던 금갑옷을 입은 아기와 똑같습니다. 아기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 주세요.
으음.
만명 부인의 말에 서현은 눈을 감고 손가락을 꼽았다. 육십 갑자를 따지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나도 당신이 이 아이를 배었을 때 신기한 꿈을 꾸었었지. 그 날이 경진날 밤
이었어. 그러니 이름을 경진이라고 짓고 싶은데…….
하지만 해나 달로써 이름을 짓는 것은 아기에게 이롭지 못하다고 들었어요.
나도 그것은 알고 있소. 그러니까 경자는 유자와 비슷하고, 진자는 신과 음이 비슷하오.
그럼 유신이란 이름인가요?
그렇지! 부인도 이름이 마음에 들었소?
네, 부르기 좋고 어딘지 마음 든든하게 느껴지는 이름이네요.
서현과 만명은 하인을 시켜 아기의 태를 높은 산에 가져가 깨끗한 장소에 묻으라고 일렀
다. 이 태를 묻은 산은, 이리하여 먼 훗날에 이르기까지 태령산 이라고 불렸다.
유신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는 자라면서 칼이나 활을 가지고 노는 장난을 좋아했다. 나
뭇가지를 꺾어 휘두르고, 대나무를 불에 쬐어 휘어서 활을 만들기도 하였다.
또 같은 또래의 아이들끼리 편을 갈라 전쟁 놀이를 즐겨 했다.
신라의 나라 힘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제24대 진흥왕 때 크게 뻗어나갔다.
진흥왕은 36년 동안이나 왕의 자리에 있었다. 진흥왕 29년(568)에는 특히 북한산주(광주)
를 폐하여 새로이 남천주(이천)를 설치했고, 달홀주(강원 고성)를 설치했다.
신라는 어떻게 이렇듯 삼국 중에서 가장 강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첫째로 불교의 힘이 컸다고 생각된다. 신라는 3국 가운데 가장 늦게 불교가 들어
왔다. 삼국사기 에 의하면 제23대 법흥왕 15년(528)에 비로소 불교가 공인되었다. 이차돈이
순교함으로써 나라에서도 불교를 인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교가 신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이보다 앞서 신라는 고구려, 백제뿐 아니라 왜적
의 공격에도 자주 시달렸던 것이다.
돌격, 돌격해라! 왜적은 바위 뒤에 숨어 있다.
대장의 뒤를 따르자!
유신은 손윗누이로 보희가 있었고, 손아랫누이로 문희가 있었다.
아버지 서현은 하루하루 씩씩하게 자라는 아들 유신이 대견하기만 했다.
오늘도 전쟁 놀이를 했느냐?
네.
열 살이 된 유신은 두 뺨이 연시처럼 빨개졌고 이마에 동인 머리띠에는 땀이 배어 있었
다. 이 머리띠는 누님 보희가 만들어 준 것이었다.
전쟁 놀이 할 때 눈에 땀이 들어가면 불편하지?
응.
누나가 그런 불편이 없도록 해 줄게.
서현은 그런 유신을 빙그레 미소지으며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전쟁 놀이는 어떻게 하는 거냐?
적을 쳐부수는 거예요. 그리고 적군 대장의 항복을 받지요.
그러냐. 하지만 진짜 전쟁에 나가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이 있다.
유신은 눈을 크게 떴다. 아버지의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진지한 태도였다.
진흥왕 37년(576) 봄의 일이다. 물론 유신이 태어나기 전의 일이었다.
이 때 비로소 원화 를 받들기 시작했다.
왕은 좋은 인재를 뽑아 신하로 쓰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선 사람됨을 알
기 힘들다. 이래서 여럿이 떼지어 놀게 하고, 그 행동을 관찰하여 사람을 뽑아 쓸 계획을 세
웠다.
남모와 준정은 서로 경쟁했다.
마침내 준정은 남모를 자기집에 초대하고 술을 억지로 먹여 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
기편 사람을 시켜 강물에 빠뜨려 죽여 버렸다.
이 때문에 준정도 사형을 당했다. 모였던 무리들도 이 사건으로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왕은 탄식했다.
모처럼 인재를 뽑아 쓰려고 했는데 다 틀렸구나. 이번에는 사내애로 잘난 아이를 뽑아
곱게 단장시켜 우두머리로 삼자. 사내들끼리라면 시샘하며 싸우는 일도 없겠지.
이 곱게 단장시킨 사내 아이가 화랑이고 화랑을 따르는 무리를 화랑도라 하였다.
화랑을 받들며 많은 무리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함께 어울리며 도의로써 서로 연마하고,
가무를 즐기며 즐겁게 놀았다. 때로는 산과 강을 찾아 나라 안 곳곳 가보지 않는 데가 없었
다.
이렇듯 단체 생활을 하다 보면, 그 사람됨도 절로 알 수 있었다. 이리하여 화랑도 가운데
유능하고 훌륭한 젊은이를 뽑아 벼슬아치로 썼던 것이다.
알겠니, 너도 그런 화랑이 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글공부도 열심히 하고 때로는 사냥도
하며 심신을 단련시켜야 한다.
아버지, 저도 꼭 화랑이 되겠어요. 그런데 다섯 가지 계율이란 무엇인지요?
그것은 조금 더 크면 알게 된다.
하고 서현은 다시금 자랑스런 듯이 아들을 바라보았다.
2. 화 랑 정 신
진흥왕이 죽고 제25대 진지왕이 왕위에 올랐다(576). 화랑 제도가 비로소 시작된 해였다.
진지왕은 3년밖에 왕위에 있었기 때문에 이미 늙어 있었던 것이다.
진지왕이 죽고 제 26대 진평왕의 시대가 되었다(579).
진평왕 9년(587)의 일이다. 이 무렵 대세와 구칠이란 사람이 작은 조각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이들은 모두 신라의 귀족인데, 세속을 벗어나 살고 싶었던 것이다.
대세는 친구인 출가한 중 담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 신라 산골에 묻혀 일생을 마친다면, 저 바다를 모르는 못 속의 고기나 넓은 산림을
모르는 새장 안의 새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는 장차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강남 땅으로
가겠네. 그리고 스승을 만나 영산에서 수도하여 속세의 탈을 벗고 신선이 되겠네.
그러나 담수는 시큰둥하게 여기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대세는 담수와 헤어지자 동지를
구하였는데 마침 구칠을 만나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어느 날 남산의 절에서 함께 잤는데,
밤중에 비바람이 몰아쳐 물구덩이에 낙엽이 둥둥 떴다. 대세는 그것을 보자 구칠에게 말했
다.
나와 함께 서쪽으로 유람을 감이 어떻겠는가. 지금 각자 나뭇잎 하나씩을 가져다가 물에
띄워 보세. 그리고 누구 것이 먼저 앞서 가는가를 보고 선후를 결정하세.
나뭇잎은 재세의 것이 앞섰다. 대세는 웃었다.
약속대로 내가 먼저 가겠네.
그러자 구칠도 외쳤다.
나도 사내인데 왜 못 간단 말이냐!
대세는 구칠이 함께 갈 수 있는 친구임을 짐작학 자기의 뜻을 말했다. 둘은 드디어 친구
가 되어 남해에서 배를 타고 떠났다.
이것은 그 당시 신라에 신선도가 있었음을 말해 준다. 신선도는 신라 고유의 것으로 지금
은 모두 없어졌으나 자취만은 남아 있다. 화랑도는 유교와 불교, 그리고 신선도가 합쳐져 만
들어진 것이다.
저것은 소판댁의 도련님이 아닌가? 씩씩하고 늠름한 모습일세.
유신은 열다섯 살 때 화랑이 되었다. 두 개의 아름다운 깃털을 꽂은 관을 쓴 유신의 화랑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감탄했다.
관을 쓰면서 유신은 다섯 가지 맹세를 사람들 앞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선창했다. 그러자
낭도들은 유신을 따라 그것을 복창했다.
이 날 집에서는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유신의 화랑 임명을 축하하고, 마을 사람들
과 친구에게도 한턱내는 것이었다.
손님들이 가 버리자 아버지는 유신에게 조용히 말했다.
너는 화랑도의 다섯 가지 계율을 입으로 외치며 맹세했다. 그런데 과연 그 뜻을 알고 있
느냐?
뜻으로 말한다면…….
유신은 뜻풀이를 하려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엄한 표정이 되어 꾸짖었다.
비록 뜻은 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실행하며 경험하기 전에는 안다고 할 수 없다. 그저
머리로 알고 입으로 지껄여서는 아무 소용없다. 실천이 중요하다.
진평왕 11년(589), 원광 법사가 불법을 구하기 위해 중국에 갔다. 그리고 그는 22년(600)
에 돌아왔다. 김유신의 나이 여섯 살 때였다.
원광 법사는 성실론과 열반경을 배워가지고 돌아왔다.
이 때 귀산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본디 사량부 사람인데 아버지는 아간 무은이었
다. 귀산은 같은 마을의 추항과 벗이 되어 아주 친했다.
인간이란 마음을 바르게 갖고, 몸을 닦지 않으면 훌륭한 인물이 되지 못하네. 그러니 어
진 분을 찾아가 배움을 청하도록 하세.
귀산과 추항은 법사 앞에 나아가 절하고 공손히 아뢰었다.
저희들은 배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쪼록 저희들에게 평생의 교훈이 될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불가에는 보살계라는 것이 있어 그 종류가 열 가지나 된다. 너희들은 속인이므로 그런
계율은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너희들에게도 지켜야 하는 다섯 가지 계율이 있다. 명
심하고 가슴에 새기도록 하라.
네.
첫째는 임금을 섬기되 충성해야 한다. 둘째는 어버이를 섬기되 효도해야 한다. 셋째는 벗
을 사귀되 신의가 있어야 한다. 넷째는 전장에서 싸울 때 물러나서는 안된다. 다섯째는 살아
있는 것을 죽일 때 이를 가려서 해야 한다.
귀산과 추항은 말했다.
다른 것은 모두 가르침대로 할 수 있으나, 살아 있는 것을 가려서 죽이라는 말씀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불교에는 불살생계라 하여 살아 있는 것은 죽일 수 없다. 따라서 승려는 이를 엄격히 지
켜야 한다. 하지만 보통사람은 계율대로 다 지킬 수가 없는 것이다.
원광 법사는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여섯 재일과 봄 여름엔 죽이지 않는데, 이는 시기를 가리는 일이다. 또, 기르고 뿌리는
것은 죽이지 않는다. 말·소·개·닭 등이 그런 것들이다. 작은 것은 죽이지 않는데 이는 한
입에도 차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가리며, 다만 자기에게 필요한 최소한에 그치고 많이 죽
이지 않는다면, 이는 세속의 좋은 계율이라 할 수 있다.
잘 알았습니다.
하루는 유신이 숲 속으로 말을 달렸다. 하인은 숨을 헐떡이며 그 뒤를 따랐다.
앗! 저기 사슴이!
유신은 말을 달리면서 재빨리 겨냥학 활을 쏘았다.
맞았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도련님!
하인은 좋아하며 쓰러진 사슴 쪽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이것이 어쩐 일일까? 쓰러져 있던
사슴은 하인이 가까이 가자 벌떡 일어나 달아났던 것이다.
사슴이 쓰러져 있던 곳에 유신의 화살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을 무심코 집어든 하인은 외
쳤다.
화살에 활촉이 없지않아?
진평왕 초기에는 전쟁이 잦았다. 이를테면 진평왕 25년(603), 고구려가 북한산성을 공격하
였다. 왕은 친히 1만의 군사를 데리고 가서 이것을 막았다.
지평왕 30년(608), 왕은 고구려가 자주 신라를 침범하는 것을 걱정하여 원광 법사를 찾아
갔다.
대사, 고구려를 치려면 아무래도 수나라에 원병을 청해야만 하겠소. 대사께서 군사를 빌
리는 글월을 써 주시오.
그러자 원광은 합장하며 말했다.
대왕이시여, 제가 살자고 남을 없애는 것은 불가에서 할 짓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대
왕의 물과 곡식을 먹고 사는데 감히 명령을 어길 수야 있겠습니까.
그리고 글을 지어 바쳤다. 왕은 33년(611), 이 글월을 수 양제에게 보냈고, 수도 이를 허락
했다.
이 때 유신은 열일곱 살로 국선이 되었다. 국선도 화랑으로, 화랑도의 총우두머리가 된 것
이다.
유신은 낭도들을 데리고 아름다운 산천을 두루 돌아다녔다.
정말로 아름다운 날라일세. 이런 나라에 태어난 것을 크나큰 은혜로 알아야 하네.
그럴수록 이 나라를 지키고 적이 얼씬하지 못하도록 우리 젊은이들이 힘써야 하네.
이 무렵 백제의 군사가 신라의 가잠성을 포위하고 맹렬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성주 찬
덕은 백여 일이나 버티어가며 싸웠지만 결국 성은 함락되고 그는 전사하고 말았다.
지금 젊은 화랑도들은 그 이야기를 하며 진달래가 피어 있는 산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아, 저기 주막이 보인다.
음,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게 되었군.
지금껏 나라 일을 걱정하던 젊은이들은 주막을 보자 딴 생각부터 했다.
곧 술상이 차려지고 아름다운 가야금 소리가 흥을 돋구었다.
그러나 유신은 왠지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국선님, 왜 그러세요?
아무 것도 아니다.
유신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는 다시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
지금 우리들이 산천이나 유람하며 다니고, 주막에서 희희덕거리고 있을 때인가?
눈을 감고 있는 유신의 코에 달콤한 향기가 풍겼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이 자기 손을 어
루만지고 있었다.
유신은 놀라 눈을 떴다. 보니까 앳되어 보이는 소녀가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고 있었
다.
그러자 다른 낭도들이 크게 웃었다.
천관아, 뭘 우물거리고 있느냐? 그분은 우리 낭도의 국선님으로 김유신이시다. 장차 이
나라의 큰 인물이 되실 것이니 정성껏 모셔야 한다.
그러자 유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사람들은 놀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왜? 우리말에 화각 났나?
그러자 유신은 대답도 않고 주막을 나와 버렸다. 그리고 말에 오르자 산쪽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유신은 어디를 향해 말을 무섭게 달리고 있는 것일까?
그가 따로 정한 목표는 없었다. 그저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이대로 도읍에 머물러 있으면 내 마음도 때 묻고 더렵혀지고 만다.!
그는 어느덧 중악에 다다랐다. 중악은 산봉우리가 아름답고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골짜기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아직도 봄이라 물이 차가웠지만, 유신은 옷을
벗고 몸을 깨끗이 씻었다.
그는 몸의 더러움뿐 아니라 마음의 더러움마저도 씻어내는 기분이었다.
중악산 중턱에 바위 굴이 하나 있었다. 바닥에 깨끗한 모래가 깔려 있고 습기도 없어 견
딜 만했다.
유신은 바위 굴에서 하느님께 기도드렸다.
지금 적국이 날뛰면 범이나 이리 떼처럼 우리 나라를 침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금도
평안할 날이 없습니다. 저는 한낱 미미한 존재이고 재주도 힘도 없지만, 나라의 재난을 없앨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오로지 하느님께서 저를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하루 이틀 사흘……,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나흘째 되는 날 몸에 갈색 옷을 걸치
고 손에 명아주 지팡이를 든 흰 수염의 노인이 나타났다.
이 곳은 독사와 맹수가 많아 무서운 곳인데, 귀하신 손님께서 혼자 계시다니 무슨 까닭
이오?
어른께선 어디에서 오셨는지요. 높으신 이름을 가르쳐 주십시오.
노인은 껄걸 웃었다.
나는 한낱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는 사람이오. 남들은 나를 보고 난승이라고 부릅디다.
난승이란 이기기 몹시 어렵다는 뜻이다. 유신은 이 대답을 듣자 더욱 더 예사 사람이 아
님을 믿었다. 그래서 다시 두 번 절하고 말했다.
저는 신라 사람입니다. 나라의 원수를 생각할 적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찢어질 듯
이 아파 이곳에 왔습니다. 이곳에서 혹시 이인(재주가 신통하고 비범한 사람)을 만날 수 있
을까 하고 간절히 바랐었지요. 아무쪼록 어른께서 저의 소원을 가엾이 여기시고 방법과 술
수를 가르쳐 주십시오.
비법을 터득한다 하여도 함부로 남에게 내세우지 말라. 만일 불의한 일에 쓴다면 오히려
화를 입게 된다.
어른의 가르침을 맹세코 잊지 않겠습니다.
유신이 문득 고개를 들자 노인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유신은 중악산에서 다시 열박산으로 옮겨 무예를 닦았다. 그는 높은 바위에서 뛰어내리긷
했고, 칼을 번개처럼 빨리 휘두르기도 했다.
그리고 산신령께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신령님,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 우리 신라의 적 고구려와 백제를 무찌르게 해 주십시오.
그가 꼭 1년 만에 산에서 내려오자 낭도들이 기뻐했다. 그 가운데 백석이라는 자가 있었
다. 백석은 어디 사람이며 부모가 누구인지는 모르나 유신의 용화 향도가 된 지가 몇 년이
나 되었다.
국선님, 몰라 보도록 늠름해지고 얼굴도 검게 타셨습니다. 그런데 얼굴에 근심이 엿보인
는군요. 무슨 걱정이라도 계십니까?
나는 자나깨나 우리 신라를 노릭 있는 적국을 쳐부술 생각을 하고 있네.
그러자 백석은 불쑥 물었다.
국선께서는 지금 백제와 고구려의 어느 쪽이 신라에 더 큰 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백제나 고구려나 신라에겐 적국임에는 다름이 없었다. 이 때 백제는 무왕 때였고 고구려
는 영양왕이 임금이었다.
백제의 무왕은 이름 그대로 전쟁을 많이 한 왕이다.
옛날부터 백제와 신라는 서로 이웃하고 있어 전쟁이 잦았다. 더욱이 가락국이나 대가야와
같은 6가야가 멸망하고 신라와 백제의 세력이 맞부딪치자 전쟁은 더욱 자주 일어났다.
무왕 3년(602), 백제는 군사 4만을 동원하여 신라의 아막산성(운봉)을 공격했다. 아막산성
은 지리산 기슭에 있고 산을 넘으면 신라의 전략 요지로 신라의 거창·고령으로 진격할 수
있는 길목이었다. 이 때 신라군은 고전을 했고 앞서의 귀산 등이 전사했던 것이다.
유신이 잠자코 있자 백석은 말했다.
나는 백제보다는 고구려가 더욱 강성하여 치기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고구려는 수나라와 자주 충돌했다. 그런데 고구려는 오히려 수나라를 압도할 정도였다.
영양왕 9년(598), 고구려는 1만 남짓의 군사로 요하 서쪽을 공격했다. 그러자 수 문제는
30만 대군으로 고구려에 보복 공격을 해 왔다. 그러나 이들은 고구려군에게 형편없이 패배
하였고 살아 돌아간 자가 열에 하나 둘밖에 되지 않았다.
유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구려는 중국의 수나라도 쉽게 무찌르지 못하는 강국인 것이다.
게다가 고구려는 영양왕 14년(603), 고승 장군을 보내어 우리의 북한산성을 공격하지 않
았습니까.
유신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유신도 아홉 살 때의 일이라 기억이 생생했다. 이 때
그의 아버지도 적을 막기 위해 출전했었다.
고구려는 영양왕 19년(608)에도 신라의 북녘 지성을 공격하여 양민 8천여 명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그리고 이 해 우명 산성도 그들에게 함락되었습니다.
백석의 말처럼 고구려가 백제보다 신라에게 더욱 위협적인 존재임은 유신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적국을 막을 궁리를 하고 있네. 고구려에는 과연 어
떤 인물이 있을까?
을지문덕이 있습니다.
을지문덕?
유신은 백석이 어째서 고구려의 사정에 대해 그리도 잘 아는지 의심할 겨를도 없었다.
진평왕 34년(612), 수 양제는 신라의 요청도 있고 앞서의 패전을 보복하기 위해 113만이라
는 대군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공격했다. 그러나 을지 문덕의 교묘한 유인전술에 빠져 크게
패했다. 특히 살수(청천강)에서는 30만 5천 명이 고구려군에게 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김유신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고구려에 그와 같은 명장이 있다면 우리 신라에겐 큰 위협이 아닌가. 대체 어떠한 명장이
기에 수나라의 백만 대군을 무찌를 수 있었을까? 물론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국난을 막지
못한다. 아마도 고구려의 백성들이 용감하고, 일치 단결하여 외국의 침략을 막았을 것이다.
그런 고구려에 대해 잘 알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러자 백석은 유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나 한 것처럼 말했다.
병법에 적을 알고 나를 안다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고 했습니다. 적을 알지 않고소
는 적을 이기지 못합니다.
으음.
유신은 백석의 말이 백 번 옳다고 여겼다. 백석은 유신의 표정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 저와 고구려에 가지 않겠습니까?
고구려에?
적국에 몰래 들어가 고구려의 내막을 샅샅이 탐지하고 돌아오는 겁니다. 그러면 장차 삼
국 통일을 할 때 많은 참고가 되지 않겠습니까?
유신은 자기도 모르게 백석의 손을 덥썩 잡았다.
자네의 의견은 정말로 훌륭하네. 그러나 적국에 들어갔다가 발각되면 목숨이 위험할 텐
데 함께 가 줄 텐가?
유신은 이미 결심을 하고 있었다.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적국에 몰
래 들어가 정보를 수집할 생각이었다.
백석은 씨익 웃었다.
국선님. 그런 일이라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는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방랑한 일이 있습
니다. 그 때 고구려의 사투리를 조금 배웠고 그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국선님의 길 안내를 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삼국 시대는 교통 사정이 좋지 않아 서로 왕래가 적어, 풍속도 달랐고 언어도 많이 차이
가 있었으리라.
신을 모시는 풍습도 각각 달랐다. 삼국사기 를 보면 이런 기록이 나온다.
<고구려는 언제나 시월 상달에 하늘에 제사한다. 귀신·사직·영성을 제사하는데, 10월의
이 행사를 동맹 이라 부른다. 나라 동쪽에 큰 굴이 있어 이를 수신 이라 부르며 이 역시 10
월에 맞아들여 제사한다.>
<백제는 매년 봄 2월, 여름 5월, 가을 8월, 겨울 11월에 왕이 하늘과 오제의 신께 제사한
다. 또, 그 시조 구태묘를 나라 동쪽에 세우고 1년에 네 차례 제사했다.>
이밖에 음식, 옷차림, 가옥의 구조도 달랐다.
유신은 준비를 갖추고 백석과 함께 길을 떠났다. 얼마쯤 가자 백석이 뒤를 돌아보더니 유
신에게 말했다.
웬 여자 두 사람이 아까부터 우리를 줄곧 따라오고 있습니다.
유신은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가는 방향이 같은 게지.
그래도 이상합니다. 이 근처에서 잠깐 쉬도록 합시다. 그러면 따라오는 것인지 그냥 지나
가는 것인지 알 수 있겠지요.
유신과 백석이 길가 나무에 말을 매고 쉬고 있으려니까 두 여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유신이 보니까 둘다 아름다운 처녀였다.
처녀들은 가까이 다가와서는 유신에게 사뿐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저희들도 함께 쉬어갈 수 있을까요?
네, 그렇게 하시지요. 그런데 낭자들은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저희들은 북쪽으로 갑니다.
그럼 마침 잘 되었군요. 여기서 쉬고 난 뒤 함께 가도록 합시다.
정말 친절하시군요.
그러자 옆에 있던 백석은 말했다.
이분은 용화 향도의 국선님으로 김유신님이십니다. 그런데 아가씨들은 어째서 이런 쓸쓸
한 들판을 하인도 없이 길을 걷고 계십니까?
그러나 처녀들은 백석의 물음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들은 골화천(영천)에 이르러 이 날 밤을 자게 되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또 한 사
람의 처녀가 나타났다.
저도 낭도님들과 함께 지낼 수 없을까요?
그렇게 하십시오. 말벗이 되어 서로 즐겁게 갑시다.
나중에 나타난 처녀는 어디선가 맛있는 광일을 가져왔다. 그리고 세 처녀가 번갈아가며
유신에게 과일을 권했다.
국선님, 아무쪼록 이 과일을 잡수세요.
제가 껍질을 벗겨 드리겠어요.
여자들은 연신 과일을 권했다. 그들은 마치 자매간이기나 한 것처럼 서로 친해졌고 자기
들끼리 시샘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둥근 달이 동쪽 하늘에 떠올랐다. 백석은 여자들이 유신에게만 친절한 것을 보고
화가 났는지 퉁명스럽게 누워 있었다.
이윽고 한 처녀가 유신에게 속삭였다.
어머나, 예쁜 달이네요.
그러자 다른 처녀도 맞장구를 쳤다.
이런 달밤에는 달빛 아래서 춤을 추고 노는 게 재미있어요!
그래, 그래, 그것이 좋을 거야.
여자들은 저희들끼리 수군거렸다. 그러자 한 여자가 말했다.
밖으로 함께 나가세요, 에? 그러나 저 백석이란 사람은 싫어요. 그를 떼어놓고 국선님만
살짝 나오세요.
여자들은 먼저 나갔다. 유신이 보았더니 백석은 곤한지 코를 골며 잠이 들어 있었다.
유신이 밖으로 나가자 여자들은 숲 속으로 그를 이끌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이르
자 여자들은 별안간 산신령의 모습으로 변했다.
앗, 당신들은?
놀라지 말라. 우리들은 호국신인 나림, 혈례, 그리고 골화이시다!
신라에는 삼산 오악이라는 명산이 있었다. 삼산이란 낭산과 오리산고 금강산을 일컬었다.
낭산은 지금의 경주에 있는데 그곳의 산신령이 나림이었다.
또, 혈례는 청도의 오리산 신이고, 골화는 영천 금강산의 신이었다.
참고로 오악을 말한다면 ①동쪽의 토함산 ②남쪽의 지리산 ③서쪽의 계룡산 ④북쪽의 태
백산 ⑤중앙의 부악이었다.
신라에선 해마다 삼산에 큰 제사를, 오악에는 그것보다 자근 제사를 올리며 받들었다. 이
런 삼산 오악의 신령은 나라를 지켜주는 신이었다.
김유신은 호국신의 말을 듣자 부끄러웠다.
지금 적국의 사람이 너를 꾀어 끌고가는데 너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들이 보다 못해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말을 마치자 세 신령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유신은 숙소로 돌아왔지만 백석은 자고 있었
다.
유신은 이튿날 아침 백석에게 말했다.
지금 생각하니 집에 중요한 것을 잊고 왔네. 집에 가서 그것을 가직 다시 출발하도록 하
세.
백석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순순히 뒤따라왔다. 고구려로 가는 일이 하루 이틀쯤 늦어져
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유신은 집에 돌아오자 하인을 시켜 백석을 결박하고 엄중하게 캐물었다.
너는 나를 적국 고구려에 꾀어 데려가려 했다. 사내답게 사실대로 말해라!
백석은 시치미를 떼었다.
대체 무엇을 사실대로 말하라는 겁니까? 느닷없이 저를 결박하고 이런 창피를 주시니 저
는 억울합니다.
그래도 변명을 하는구나. 너는 고구려의 첩자이지?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하고 백석은 여전히 잡아떼었다.
그렇다면 골화천에서 우리들이 만난 세 여인을 알고 있을 테지?
네.
그들이 누구인 줄 아느냐? 그들은 이 나라의 호국신이다. 신령이 나한테 모든 거을 말씀
해 주셨다. 그래도 끝끝내 나를 속일 작정니냐?
넷?
백석은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탄식했다.
역시 이분은 신령의 도움을 받는 특별한 분이구나.
어서 말해라!
유신은 무섭게 호령을 했다.
예, 말씀드리겠습니다.
백석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낭도들은 백석의 자백을 듣자 그만
기가 차서 입을 딱 벌렸다.
백석은 이런 자상한 이야기를 늘어 놓았던 것이다.
저는 고구려 사람입니다. 저는 어느 날 고구려 왕의 밀명을 받았습니다. 너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신라에 잠입하여 김유신을 얻어야 할 것이므로 화랑의 낭도가 되어 몇 년 동안 충
실히 그를 섬기도록 하라.
어째서 고구려 왕이 나를 너의 나라에 데려오라고 했느냐?
왕은 말하기를, 내가 김유시늘 꼭 데려오라고 하는 것은 내 손으로 그를 죽이고 싶기 때
문이다. 또, 내 손으로 죽이지 않고선 안심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것 참 이상하구나. 고구려 왕은 나하고 아무런 원한도 없다. 그런데 자기 손으로 나를
꼭 죽이고 싶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아닙니다. 모두 인과 응보 탓이지요.
백석의 말에 유신은 놀라며 되물었다.
인과 응보?
그렇습니다.
인과 응보는 불교의 사상이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의 온갖 일은 괴로움이라고 본다. 사람
은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게 된가. 이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그 때문에 사람은
괴로움 속에 사는 것이다.
또, 인간은 죽어도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하낟. 살아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은 극락에 태
어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죄가 맣기 때문에 짐승이 되거나 지옥에 떨어져 온갖
괴로움을 받는다. 이것이 인과 응보이다.
불교의 목적은 이런 인과 응보가 없는, 괴로움이 없는 세계로 가는 일이다.
그래, 나에게 무슨 인과 응보가 있다는 것이냐?
하고 유신은 물었다.
우리 고구여에 뛰어난 점쟁이로 추남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해 고구려와 신라 국
경에 있는 강물이 이상하게도 거꾸로 흘렀습니다. 왕은 걱정이 되어 추남을 불러 점을 치도
록 명했습니다. 추남은 점을 치니 상을 찌푸리며 머뭇거렸습지다. 왜 머뭇거리고 있느냐 하
고 왕이 재촉하자 추남은 대답했습니다. 대단히 황송하오나 왕비님의 옳지 못한 행실 때문
에 강물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고 말입니다.
……
왕비님은 추남의 점괘를 이야기듣자 매우 화를 냈습니다. 추남은 엉터리 점쟁이다. 그가
무엇을 안다고 감히 왕비인 나를 헐뜯느냐. 정말로 점을 잘 친다면 시험하여 알아볼 수 있
습니다, 하고 왕께 청했습니다.
으음, 그래서?
왕은 왕비님의 말을 듣자, 그것도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상자 속에 쥐 한 마
리를 잡아 넣고 추남에게 점을 치게 했습니다. 추남은 산가지를 흔들고 육십갑자를 셈하여
중얼거리더니 마로했습니다. 상자 속네는 쥐가 모두 여덟 마리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왕은
이 대답을 듣자 화를 내고, 군사를 시켜 추남을 당장 끌어 내어 목을 치라고 명했습니다. 상
자 속에 쥐가 들어 있다는 것까지는 맞추었지만 숫자가 틀렸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죽게 되면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고 믿는다. 이것을 전
생 이라 하고 이렇듯 끊임없이 죽었다가는 태어나는 게 윤회 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든 짐승으로 태어나든 또는 나무나 벌레로 태어나든 이윽고 나이를 먹고
죽게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백석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추남은 형장에 끌려가 목이 잘렸습니다. 그는 죽을 때 외쳤습니다. 나는 죽어 반드시 다
른 나라의 대장으로 태어나 고구려를 멸망시키겠다고 말입니다. 우리 고구려 왕은 나중에
추남이 남긴 말을 기분나쁘게 여기고 상자 속의 쥐의 배를 갈라보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뱃속에 새끼가 일곱 마리 들어 있지 않겠어요! 왕은 후회했습니다. 내가 잘 알아보지도 않
고 추남을 죽였구나! 이런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인지 왕은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그랬
더니 꿈에 추남이 나타나 왕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다행히 신라의 김서현 공의 아들로 태어
나게 되었다. 내가 죽을 때 약속했던 것처럼 반드시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
일하겠다,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고구려 왕은 늘 그것을 걱정하여 당신을 우리 나라에
데려다가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유신은 백석의 긴 이야기를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새삼 인연의 무서움을 알고 몸을 부르
르 떨었다. 백석의 말을 듣고 있던 낭도를 역시 모두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적국의 첩자인 줄 안 이상 백석을 살려 줄 수는 없었다. 유신은 백석을 관가에 넘
겼고, 그가 처형되자 정중히 장례를 지내 주었다.
세월은 흘렀다. 나이가 들어 유신은 장가를 들었다. 그러나 이 때 결혼한 부인의 성씨는
전하지 않는다.
그 동안 세상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진평왕 38년, 유신은 이미 스물두 살이었다. 삼국은
여전히 솥의 세발처럼 맞서고 있었으며 이 해 겨울, 백제가 모산성을 공격했다. 백제의 무왕
이 달솔 백기에게 군사 8천을 주어 모산성을 공격하게 한 것이었다.
이어 진평왕 40년(618), 신라의 북한산주의 군주(군사령관) 변품이 가잠성을 공격했다. 가
잠성은 본디 신라의 성이었는데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고 성주 찬덕이 전사한 곳이
다. 찬덕의 아들 해론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신라군의 앞장을 서서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아 신라군은 가잠성을 되찾았다.
이 무렵 고구려에선 영양왕이 죽고 그의 배다른 아우 건무왕이 뒤를 이었다. 그 동안 고
구려는 수나라의 공격을 계속 물리쳤다. 수나라는 결국 나라 힘이 약해졌고, 양제는 신하들
에게 살해되어 멸망했다. 진평왕 39년(618), 이연이 군사를 일으켜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당
나라를 세웠다.
김유신은 계속 국선으로 있으면서 젊은이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이 무렵 친하게 사귀던
사람으로 김춘추가 있었다.
3. 김춘추와의 만남
김춘추는 신라 제25대 진지왕의 아들인 이찬 용춘의 아들이었다. 따라서 진평왕과는 4촌
이었다. 그는 차분한 성격이었고 유신과도 친했다. 그러므로 유신의 집에도 자주 놀러왔다.
어느 날 유신의 누님인 보희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래서 동생 문희에게 말했다.
어제밤, 참 이상ㅎ나 꿈을 꾸었어.
어머 무슨 꿈을 꾸었는데?
보희놔 문희는 다 같이 용모가 아름다웠다. 그러나 언니 보희는 새침데기고 활발하지 못
했다. 문희는 눈이 시원스럽게 크로 서글서글했다. 그리고 마음이 너그럽고 명랑하며 친절한
성격이었다.
그럼, 내가 언니의 꿈을 살 테니까 나에게만 살짝 말해 주
그럼 말해 줄게. 내가 꿈에 서악을 올랐는데 오줌이 마려워 누었지 뭐냐. 그랬더니 금성
의 성 안이 온통 오줌 바다가 되었어. 호호호…….
보희는 자기가 말하고도 우스워 깔깔 웃었다. 그리고 동생에게 다짐을 받았다.
네가 내 꿈을 사겠다고 했지. 그래 무엇을 주겠니?
언니, 내 명주 치마를 주면 되겠어?
그것이면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열흘쯤 지난 정월 보름날이었다. 김춘추가 유신의 집에 놀러 왕ㅆ다.
그들은 앞뜰에서 축국(깃이 달린 공을 제기처럼 서로 차면서 놀던 경기)을 하며 놀았다.
그런데 유신이 그만 춘추의 옷자락을 밟는 바람에 솔기가 뜯어졌다.
미안해.
괜찮아. 그렇지만 솔기가 뜯어진 옷을 입고 집에 갈수도 없고…….
가만히 있어. 누이들에게 부탁하여 꿰매 달라고 할테니.
유신이 안채로 들어가자 마침 보희가 있었다.
누님, 김춘추의 옷자락을 제가 발로 밟아 솔기가 뜯어졌는데 꿰매 주세요.
내가 어떻게 귀공자의 옷을 꿰매 둘 수 있겠니?
보희는 남녀가 서로 내외하는 예의를 좇아 사양했다. 이래서 유신은 아지(문희)를 불러 부
탁했다.
네가 김 공자의 옷을 꿰매 주겠니?
네, 오라버니.
문희는 부끄러웠지만 춘추의 옷을 꿰매 주었다. 이 때문에 문희와 춘추는 서로 친해졌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갔다.
김춘추는 602년에 태어났다. 유신보다 일곱 살이 적었다.
진평왕 44년(622), 정월을 맞아 왕은 황료사에 납시었다. 신년을 맞아 부처님께 나라를 지
켜 달락 빌기 위해서였다. 왕의 행행에는 춘추의 아버지 용춘도 뒤따랐다.
불전에 참배를 마치고 임금님은 방장(고승들의 방)에서 잠시 휴식했다. 왕은 용춘을 돌아
보며 생각난 듯 말했다.
나는 이미 늙었소. 게다가 태자마저 없으니 앞날이 걱정되는구려. 경께서 가까운 친척으
로 내성 사신 이 되어 왕실의 일을 보살펴 주시구려.
원래 신라는 대궁·양궁·사량궁의 세 궁전에 각각 사신을 두었는데 내성 사신 한 사람만
을 두어 세 궁전을 돌보게 하자는 것이다. 즉 대궐의 일을 맡아 보면서 왕실을 보호해 다랄
고 부탁했던 것이다.
황공하신 분부입니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났다. 어느 날 춘추는 오랜만에 유신네 집을 말을 달렸다.
장군님은 집에 계신가?
마침 시골로 사냥을 하러 가셨습니다. 며칠 지나야 오실 겁니다.
그런가.
춘추는 실망하고 돌아섰다. 그러자 유신의 하인이 따라나오며 말했다.
공자님, 저의 주인댁 작은 아가씨께서 공자님을 잠깐 뵙고 싶다고 합니다.
작은 아가씨?
춘추는 중얼거리다가 옛날 생각이 났다. 언젠가 유신과축국을 하다가 옷이 찢어졌고 그래
서 유신의 누이동생 문희가 꿰매 주었던 생각이 난 것이다.
그럼 작은 아갔는 아직도 시집을 가지 않았나?
네. 큰 아가씨 보희님은 시집을 가서 벌써 귀여운 도련님이 있지요. 그런나 문희 아가씨
는 출가하지 않았습니다.
알았다.
춘추는 하인의 안내로 유신의 집 뒤뜰로 갔다. 춘추는 문희를 보자 놀랐다. 옛날보다 더욱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이윽고 춘추는 문희의 손을 힘있게 잡아주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처음 만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되었구려. 어떠 하시오? 내 아내가
되어 주시지 않겠소!
어머나!
갑작스런 춘추의 말에 문희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실은 그런 희망을 가지고 오늘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네, 하지만 부모님으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라버님의 승낙도…….
승낙은 나중에라도 좋소. 김 장군도 우리의 사랑을 안다면 반대하지는 않을 것읻.
그리고 1년쯤 지났다.
유신은 누이동생 문희가 시집도 가지 않았는데 아기를 가졌음을 알고 몹시 성을 냈다.
너는 우리 가문을 욕되게 했다. 더구나 아버지도 없는 아기를 가졌으니 살려 둘 수 없
다.
그런데도 문희는 울고만 있을 뿐이었다. 유신은 마침내 문희를 불에 태워 죽이기로 했다.
이 소문이 신라의 서울 금성 안에 널리 퍼졌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이 소문을 수군
거렸다.
김유신이 정말로 자기 누이 동생을 불에 태워 죽일까?
그는 불 같은 성격이라 한번 마음먹었다면 그대로 실행할 걸세.
그렇지만 설마 그런 일로 자기의 누이 동생을 불에 태워 죽이기야 하겠나?
당시는 남자와 여자의 풍기가 어지러웠다. 그래서 이런 일은 큰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는
지도 모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고개를 흔들며 거들었다.
자네는 낭비성 싸움 때의 김유신에 대한 소문도 듣지 못했나? 유신은 예사로운 사람이
아닐세. 한번 결심한 것은 틀림없이 실행하는 사람일세.
진평왕 46년(629), 유신은 서른다섯 살이었다. 이 해 신라는 큰 위기를 맞았다.
이 해 8월(음력), 왕은 이찬 임영리·파진찬 김용춘·소판 김서현 등에게 군사를 주어 고
구려의 낭비성(청주)을 치게 했다. 이 때 유신도 처음으로 전장에 나가 싸웠고 전공을 세웠
다. 그러나 고구려군은 강했다.
고구려 군사를 도저히 못 당하겠다. 싸우다가 죽게 되면 우리만 억울하다.
신라군은 이렇게 말하며 나가 싸우려 하지 않았다.
제가 앞장서 적과 싸우게 해 주십시오.
서현은 걱정스런 듯이 말했다.
군사의 사기가 떨어져 아무도 감히 나가 싸우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네가 혼다 앞장서
서 용감히 싸운다고 하여 네 뒤를 딸 주겠느냐?
아버님, 그렇지만 저는 지금껏 충효로써 나라와 어버이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배워 왔
습니다. 비록 우리 군사가 지금 적에게 패하여 사기가 떨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저는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듣건대 옷자락을추스르면 옷이 단정해지고 벼릿줄을 들면
그물 코가 펴진다 고 말했습니다. 장수으 행동이 곧 군사의 모범이 되므로 저는 옷자락이나
그물의 벼릿줄 노릇을 하겠습니다.
유신은 이어 말에 올라 칼을 뽑아들더니 힘껏 외쳤다.
용감히 싸워 이름을 백 년 천 년 뒤까지 남기고, 비겁한 자로 후손에게 부끄러움을 남기
지 않으려는 자는 내 뒤를 따르라!
사람들은 이 때의 용감한 김유신의 행동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해 겨울 10월, 신라는 백제군의 공격을 받아 속함·앵잠·기잠·봉잠·기현·
혈책 등 6성을 포위 당하고, 함락되거나 항복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급찬 눌최는 봉잠
·앵잠·기현 3성이 군사를 합쳐 굳게 지키다가 마침내 전사했다. 그렇기 때문에 유신의 용
감한 이름이 사람들 머리에 더욱 뚜렷하게 남게 되었다.
김 장군은 용맹뿐 아니라 결단력도 있다네.
어떤?
유신도 젊었을 때에는 놀기를 좋아했다. 술도 마셨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그럴 때일
수록 국선일 때 만난 아름다운 소녀 천관의 생각이 떠올랐다.
천관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도 그 주막에 있을까?
유신은 언젠가 친구들과 함께 천관이 있었던 주막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 곳에 천관은 없
었다.
유신은 실망하고 술만 마셨다. 주막 주인이 유신에게 물었다.
장군님은 이런 곳에 오셔서 즐겁게 노시지 않고 왜 쓸쓸한 얼굴로 약주만 마시고 계십니
까?
유신은 주막 여주인을 보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 생각이 나자 왜 진작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하고 후회가 되었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쓸쓸하오.
어머나! 그것이 누구이지요?
벌써 몇 년 전이었네. 이 집에 천관이라는 아름다운 소녀가 있었지.
그러자 여주인은 입을 가리고 호호호 하고 웃었다.
아니, 왜 실없이 웃는가?
유신이 무섭게 눈을 부릅뜨며 말하자 여주인은 급히 술을 저어가며 말했다.
저는 장군님이 벌써 알고 계신 줄 알았지요.
무엇을 말인가?
천관에 대해서입지요.
유신은 이 할멈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자기를 놀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살
살 달래며 물었다.
사례금은 듬뿍 줄 테니까 그애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게.
네, 천관은 지금 신성 북문 밖에서 오로지 장군님만을 그리워하며 혼자 살고 있지요. 장
군님이 찾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애가 얼마나 기뻐할까요.
왜 그 말을 진작 하지 않았나?
유신은 주막 할멈에게 천관의 집 위치를 물어 즉시 달려갔다.
천관은 정말로 유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신을 보더니
장군님!
하며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유신과 천관은 한집에서 여러 날을 보냈다. 천관이 유신에게 말했다.
장군님! 며칠이고 집에 돌아가시지 않는다면 부모님도 부인도 걱정하실 거에요.
괜찮아. 아버님은 지금 낭비성에 계시고, 나도 그곳에 돌아가야 하지만 며칠 여유가 있
소.
하지만 어머님과 부인께서…….
천관이 자꾸 염려하기 때문에 유신도 금성의 본집으로 돌아왔다. 유신이 대문을 들어서자
하인이 말했다.
서방님은 어디 가셨다가 이제야 돌아오십니까? 벌써 사흘이나 집을 비우셨습니다.
유신은 하인의 말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녀석은 주인의 행동을 일일이 참견할 셈이냐! 사흘이고 닷새고 내가 하는 일인데 웬
참견이야?
서방님 그게 아닙니다. 마님께서 서방님이 돌아오시지 않자 식사도 않으시고 걱정하여
자리에 누워 계십니다. 어서 들어가 보십시오.
뭐라고, 어머님께서?
유신도 이 말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곧 어머니 만명 부인 방으로가서 절하고 그 앞
에 무릎을 꿇었다.
어딜 갔다가 이제야 오느냐?
어머님, 죄송합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그만…….
듣기 싫다. 이제는 어미마저 속이려 하는구나.
어머님, 거짓말이 아닙니다.
유신은 이마에 진땀을 흘려가며 말했다.
닥쳐라! 금성은 좁은 고장이다. 또 너는 나라의 중요한 직책을 가진 사람으로 사람들 눈
에 잘띈다. 어미는 네가 천관이란 계집의 집에서 얼이 빠진 채 뒹굴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
유신은 그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사람이란 지위가 높아질수록 행동을 조심하고 남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유신은 이 때 부장군이었다. 신라의 군제는 몇 번 바뀌었지만 육정이 있었다. 육정은 대당
·귀당·한산정·우수정(춘천)·하서정(강릉)·아산정의 여섯 병영이었다. 그리고 유신은 낭
비성에 첫 출전할 때 중당 당주였다.
신라의 영토가 넓어지고 나라 힘을 뻗어나가기 위해선 많은 부대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육정 이외에도 구서당·십당·오주서·삼무당 같은 부대들이 생겼다.
신라 군제의 특색은 갑옷에 따라 부대를 금방 알아 보게 했다는 점이다. 옷깃에 갖가지
색깔의 헝겊을 달아 표시했는데 유신이 당주로 있었던 중당은 흰 옷깃을 달았다. 또 사용하
는 무기나 병과에 따라 부대를 다르게 불렀다. 예를 들어 기마대는 마당이고, 긴 창을 무기
로 썼다면 장창당이다.
어머니의 꾸중은 엄했다.
너는 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야 할 사람이다. 그런데 그래 가지고서야 장차 어찌 큰일
을 하겠느냐?
어머님, 천관은 몸가짐이나 마음씨가 조금도 나무랄데 없는 여인입니다.
너는 아직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는구나. 사내가 계집에게 마음을 뺏기면 큰일을 못 한다.
알았습니다. 어머님.
마침내 유신은 결심을 하고 다시는 천관을 만나지 않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다졌다.
그러나 천관을 잊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열심히 병서를 읽고 잡념을 쫓으려고 했
지만 눈앞에 방긋 웃는 천관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장군님, 왜 요즘에는 오시지 않지요? 벌써 저를 잊으셨요?
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꿈에도 보였다.
그러나 유신은 이를 악물고 유혹을 뿌리쳤다.
그런데 어느 날의 일이다. 유신은 전처럼 벗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는데 그만 술이 취했다.
그래서 말 위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말은 충실하게 주인을 태우고 달가닥 달가닥, 말발굽 소리도 가볍게 걸었다. 그리고 천관
의 집 대문 앞에 이르자 주인을 깨우려는 듯 히잉하며 높다랗게 울었다.
벌써 집에 다 왔나?
유신은 잠에서 깨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니, 이 곳은?
말울음 소리에 천관은 버선발로 뛰어나와 대문을 열고 유신을 반겼다.
유신은 말에서 뛰어내리자 칼을 뽑아 들며 외쳤다.
주인의 뜻도 모르는 말은 필요없다!
칼이 달빛에 반사되며 번쩍하자 말의 머리는 피를 뿜고 멀리 나가떨어졌다.
천관은 순간 까무러치고 말았다. 유신은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고 집을 향해 걸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천관에게 빌고 있었다.
천관이여! 나를 원망하지 말아 다오. 나에게는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이 있다.
알겠나! 김유신 장군은 그렇듯 결단이 있는 분일세. 그러니 가엾은 누이 동생을 불에 태
워 죽이고 말 거야.
이런 소문은 금성 안에 쫙 퍼졌다.
그러나 유신도 문희가 가엾다고 생각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오라버니로서 문희의 행복을
찾아 주고 싶었다.
그래서 하인들을 시켜 소문을 일부러 퍼뜨렸던 것이다.
유신은 문희의 상대가 김춘추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
었다. 따라서 문희와 춘추를 혼인시키자면 계략이 필요했던 것이다.
진평왕 53년(631), 왕이 세상을 떠났다. 왕에게 아들이 없어 맏공주 덕만이 왕위에 올랐는
데, 이분이 선덕여왕이다.
선덕 여왕은 성품이 너그럽고 인자했다. 그리고 총명했다. 어렸을 때 당나라에서 모란꽃을
그린 그림을 보내왔다. 사람들은 그림에 그려진 꽃을 보고 모두 감탄했다.
참 아름다운 꽃이구나.
그러나 덕만은 아직 어린 소녀였는데도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향기가 없는 꽃이지요.
진평왕은 놀라며 물었다.
네가 어떻게 그것을 아느냐? 아직 실물은 한 번도 보지 못했을 텐데.
꽃은 아름답지만 그림에 나비나 벌의 모습이 없습니다. 그러니 향기가 없을 게 아니겠어
요.
선덕 여왕은 왕위에 오르자 백성 가운데 홀아비·과부·고아 등 외로운 사람들에게 곡식
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왕이 남산에 올라 금성의 장안을 굽어보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유신은
즉시 하인을 시켜 후원에 장작과 나뭇단을 쌓으라고 했다. 그리고 문희를 불러내어 엄하게
말했다.
오늘에야말로 너를 태워 죽이겠다. 저 장작더미 위에 올라가라.
문희는 이미 죽기를 결심하고 있었다. 유신이 말하자 순순히 장작더미 위로 올라갔다. 그
것을 보는 노비들과 이웃 사람들은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았다.
이윽고 여왕이 남산에 올랐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남산에서는 김유신의 집이 환히 굽어보
였다.
유신은 하인에게 명했다.
장작에 불을 질러라!
장작에는 미리 물을 끼얹어 잘 타지 않도록 해 놓았다.그래서 불을 붙이자 장작은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기는 바람도 없어 곧장 하늘로 솟았다. 문희는 합장
을 하며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외고 있었다.
저것은 무슨 연기냐?
선덕 여왕은 문득 검은 연기를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신하 하나가 대답했다.
저곳은 부장군 김유신의 집입니다.
그럼 유신의 집에 불이 났단 말이냐?
아닙니다. 유신의 누이가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배어, 가문을 더럽혔다고 불태워 죽이는
연기인 것 같습니다.
선덕 여왕은 깜짝 놀랐다.
그렇다고 사람을 불태워 죽인다? 절대로 안 될 일이다. 빨리 사람을 보내어 즉시 중지하
도록 하라.
제가 가겠습니다.
하고 김춘추가 나섰다.
그도 문희가 자기 때문에 죽는다고 생각하여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여왕님, 저를 꼭 보내 주십시오. 문희는 저 때문에 죽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하고 여왕은 아름다운 얼굴을 찌푸렸다.
자세한 것은 한시가 급하니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춘추는 곧 말을 타고 쏜살같이 달려 내려갔다. 그리고 연신 외쳤다.
화형은 당장 중지하시오, 왕명이오.
왕명이란 말에 유신도 하인을 시켜 불을 끄게 했다. 문희는 너무도 무서워 떨다가 그래로
까무러쳐 있었다.
장군, 내가 잘못했소!
하고 춘추는 유신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즉시 여왕에게 문희와 결혼할 것을 아
뢰었다.
이윽고 혼인의 예가 올려졌다. 문희는 춘추를 보며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이것이 꿈인가요, 생시인가요?
자, 이제부터는 아무 염려도 하지 마시오. 재난이 지나면 행복이 찾아오는 법이니까.
세월은 흘러갔다.
선덕 여왕 2년(633), 백제 무왕은 군사를 보내어 신라의 서곡성을 빼앗았다.
여왕님이라 적국이 우리를 얕보는 게 아닐까?
여왕은 용춘을 시켜 각 주현을 돌아보게 하고 민심을 진정시켰다.
선덕 여왕 5년(636)의 일이었다. 여왕은 봄부터 병이 있었는데 좀처럼 낫지 않았다. 이어
장마달이 되자 개구리떼가 대궐 서쪽 옥문지에 모여들어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럽
게 울어댔다.
신하들은 모여 수군거렸다.
개구리가 극성을 떠니 이상하구려. 그렇다고 개구리를 모두 잡아 죽일 수도 없고…….
그러자 여왕이 말했다.
개구리의 툭 불거진 눈은 병사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오. 내가 어려서 들었는데 서남쪽에
옥문곡이라는 골짜기가 있다고 하오. 혹시 백제병이 그 곳에 몰래 들어왕 우리 나라를 엿보
고 있어 개구리도 걱정하여 울고 있는지 모르오.
장군 알천이 군사를 끌고 가서 옥문곡을 수색했다. 과연 백제의 당군 우소가 군사 5백을
이끌고 몰래 들어와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알천은 이를 공격하여 전멸 시켰다.
선덕 여왕 9년, 원광 법사가 세상을 떠났다. 이어 다음해 배제에선 무왕이 죽고 태자 의자
왕이 뒤를 이었다. 11년에는 고구려에서 영류왕이 연개소문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연개소문은 막리지가 되어 정권을 한손에 쥐고 어린 보장왕을 왕위에 앉혔다.
이 무렵 김유신은 이미 마흔여덟 살이었다. 하루는 여왕의 급한 부름을 받았다. 유신이 대
궐에 들어갔더니 김춘추도 와 있었고, 백관이 모두 모여 있었다. 침통한 공기가 궁전을 덮고
있었다.
지금 나라가 위태롭소.
선덕 여왕은 말했으나 선뜻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해 가을 7월 백제 의자왕은 대군
을 일으켜 신라의 서쪽을 공격했다. 특히 백제의 장군 윤충은 대야성(합천)을 공격, 이를 함
락시켰다. 그리하여 성주 품석, 그의 아내 고타소(김춘추의 딸), 죽죽, 용서와 같은 장수가
모두 전사했다.
춘추는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유신이 그 앞에 가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넋을 잃고
있었다.
이윽고 춘추는 외쳤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어찌 백제를 없애지 못한단 말이냐!
그러고는 왕에게 말했다.
제가 고구려에 가서 원병을 청하겠습니다.
오!
여왕도 신하들도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자 김유신이 나섰다.
4. 굳은 맹세
고구려는 쉽게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그은 달리 방법이 없겠지요.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런 때일수록 모든 사람이 마음을 합치고 흔들림이 없다면 백제도 더
는 쳐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김춘추는 고구려로 떠날 때 유신에게 말했다.
우리는 한 형제처럼, 아니 한몸처럼 나라의 팔다리가 되었는데, 만약 내가 고구려에 가서
살해를 당하게 된다면 장군은 가만히 있겠소?
무슨 말씀을 하시오! 만일 매부가 가서 곧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의 말굽이 반드시 고구
려·백제 두 임금의 집 뜰을 짓밟고 말 것이오. 만일 내 말에 거짓이 있다면 장차 무슨 낯
으로 이 나라 사람을 본단 말이오!
춘추는 기뻐했다. 곧 유신과 더불어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함께 나누어 마셨다. 그리
고 맹세했다.
나는 60일을 예정으로 돌아오겠소. 만일 그 날짜가 지나도 오지 않거든 다시 만날 날이
없는 것으로 아시오.
이어 유신은 부하 군사를 시켜 무사한 귀국을 빌며 춘추에게 술을 올리도록 했다. 춘추는
그것을 받아마시고 고구려를 향해 떠났다.
이윽고 유신은 압량주 군주에 임명되었다. 군주는 그 주의 최고 군사령관이었다. 한편 춘
추는 사간 훈신과 함께 길을 재촉하여 대매현에 이르렀다. 그 고장의 수령 두사지가 베 3백
필을 바쳤다. 그것을 가지고 고구려 영내에 들어갔더니 태대대려 벼슬인 개금이 마중나와
숙소를 정해 주고 후한 대접을 해 주었다.
이상하다. 고구려 왕도 백제의 횡포를 미워하고 나를 후하게 대접하는 모양이로구나.
그런데 어떤 신하가 보장왕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김춘추는 관상을 보니 예사 인물이 아닙니다. 살려 두었다가는 우리 고구려에 해가 될
것이니 차라리 죽이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보장왕은 춘추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다.
마목현과 죽령 이북땅은 본디 우리 땅이다. 신라에서 그것을 돌려 주지 않는다면 원병은
물론이고 그대도 돌아가지 못하리라.
나라의 영토를 신하가 마음대로 돌려 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무리하신 말씀입니다.
보장왕은 화를 내며 춘추를 죽이려다가 감금시켰다. 춘추는 가지고 간 베 3백 필을 그 나
라 대신 선도해에게 뇌물로 주며, 은근히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이런 꾀를 가르쳐 주었다.
당신은 저 거북과 토끼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하셨소?
춘추도 선도해의 말을 알아차렸다. 토끼와 속여 바다 속으로 데려갔는데 그 때 토끼가 꾀
를 부려 자기의 간은 육지에 두고 왔으니 가져와야 한다고 하며 살아났다는 이야기이다.
춘추는 곧 보장왕에게 글월을 올렸다.
두 산마루는 본디 고구려의 영토입니다. 신은 본국에 돌아가는 즉시 우리 왕께 아뢰어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믿지 않으신다면, 저 해를 두고 맹세했습니다.
보장왕은 이 글월을 보자 기뻐했다.
한편 유신은 약속한 60일이 지나도록 춘추가 돌아오지 않자 결사대 3천 명을 뽑아 훈시했
다.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내걸고, 어려움이 있을 때 자기 한몸을 돌보지 않는 게 우리 화
랑의 정신이다. 무릇 한 사람이 죽기로 나서면 백 사람과 맞설 수 있고 백 사람이 죽기로
나서면 천 사람을 이길 수 있고, 천 사람이 죽기로 나서면 만 사람도 무찌를 수 있다. 천하
에 무서울 게 어디 있느냐? 지금 나라의 어진 대신이 타국에서 감금되어 있는데 무서워만
하고 어려움을 무릅씨지 않는다면 될 말이냐.
그러자 3천 명의 결사댄느 입을 모아 한결같이 대답했다.
비록 만 번 죽고 한 번 살아나오는 곳이라도 장군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이 때 고구려의 첩자로 덕창이란 자가 중으로 가장하여 들어와 있었다. 그는 신라군의 사
기가 높음을 알고 급히 보고했다.
김유신과 김춘추는 생사를 함께 할 것을 굳게 맹세했고, 3천의 결사대가 바야흐로 우리
나라를 치려합니다. 왕은 빨리 춘추를 석방하여 화를 면하도록 하십시오.
보장왕도 놀라 춘추를 놓아 주었다. 춘추는 고구려 국경을 벗어나자 보장왕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는 백제에 대한 쌓인 원수를 풀려고 멀리 와서 병사를 빌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
왕께서 오히려 영토를 내놓으라고 하니 이는 제가 마음대로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먼
저 대왕께 글월을 올려 약속한 것은 용궁에 끌려 갔던 토끼의 지혜를 본뜬 것임을 알려 드
립니다.
보장왕은 그제야 속았음을 알고 분하게 여겼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춘추가 돌아오자 선덕 여왕은 기뻐했다. 이어 13년(644), 유신을 소판 상장군에 임명하여
백제를 치도록 했다.
상장군이 된 유신은 부하에게 외쳤다.
우리는 이제 대야성 품석 장군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죽기로 싸운다면 감히 가로막는
적이 없으리라.
네!
우리의 첫 번째 공격 목표는 가혜성이다. 우리 신라군의 그 동안 갈고 닦은 용맹이 어떠
한지를 보여 주자!
격전이 벌어졌다. 백제군도 용감히 싸웠으나 김유신의 신라군 앞에는 힘없이 무너졌다. 유
신은 이 때 가혜성, 성열성 등 일곱 성을 빼앗았고 가혜진을 개척했다.
이듬해 정월 개선하여 미처 왕을 뵙지도 못했는데 사자가 달려왕 어명을 전했다.
장군은 수고스럽지만 곧 출동하시오. 백제의 대군이 몰려와 우리의 매리포성을 공격하여
심히 위태롭다 하오.
알았소.
유신은 지친 군사를 격려하여 저장으로 달려갔다.
유신의 부대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강행군을 하여 매리포성을 구했다. 그리고 적병의 목
을 2천이나 베었다.
3월에 유신과 부하들은 이기고 돌아왔다. 유신은 군대를 성밖에 머무르게 하고 자기만 혼
자서 성 안 대궐에 들어가 승전 보고를 올릴 참이었다.
먼지를 일으키며 성 안에서 말탄 장수 하나가 달려오고 있었다.
어명이오, 어명이오!
무슨 일일까?
유신과 부하들은 모두 궁금하게 여겼다. 이윽고 사자가 달려와 말에서 뛰어내리자 급히
아뢰었다.
지금 국경에서의 급보에 의하면 백제군이 또 침략하여 노략질을 일삼고 있다고 합니다.
왕께서는 장군께 수고스러우나 적을 무찔러 달라고 하셨습니다.
유신은 자기 집에도 들르지 않은 채, 무기를 정비하고, 군사들에게는 소를 잡게 하여 고기
와 술과 밥을 실컷 먹이고 난 뒤, 곧 출동 명령을 내렸다.
이 때 지소 부인(김춘추의 셋째 딸, 신라는 근친 결혼을 했다.)은 아들 5형제를 데리고 집
앞에 나와 전선으로 향하는 김 장군을 전송했다. 아들들의 이름은 위로부터 삼광·원술·원
정·장이·원망이었다.
아버님,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그러나 유신은 돌아보지도 않고 집 앞을 그대로 지나갔다. 얼마쯤 가자 유신은 말을 멈추
더니 부하에게 일렀다.
바가지에 물을 떠오너라. 목이 마르구나.
부하는 가까운 유신의 집으로 뛰어갔다. 지소 부인은 우물의 물을 바가지로 뜨자 꿀을 조
금 타서 군사에게 전해 주었다.
유신은 물을 맛있게 꿀꺽꿀꺽 마시고는 말했다.
우리 집 물맛은 옛날과 다름이 없구나.
그리고 다시 말을 몰아 곧장 나아갔다. 이것을 지켜 본 장병들은 말했다.
대장군도 저러한데 우리가 어찌 가족과 헤어지는 것을 원망하겠는가. 오로지 나라를 위
해 힘껏 싸우자!
유신은 국경에 도착하자 가차없이 백제병을 무찔렀다. 그리고 개선했는데 이번에는 또다
른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그럽고 어질기로 이름난 선덕 여왕께서 병석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유신은 이를 걱정하고 종묘에 가서 정성껏 빌었다.
선덕 여왕의 병이 낫기를 비는 마음은 모든 사람이 한결 같았다.
특히 선덕 여왕 14년(645), 황룡사의 9층탑이 완성되자 사람들은 탑을 돌며 나라의 안녕과
왕의 건강을 기원했다.
이 무렵, 고구려는 국난을 맞고 있었다. 당태종 이세민은 군사를 일으키는 구실로,
연개소문이 포악하여 임금을 죽이고 대신들마저 해치고 있다. 백성을 못살게 굴 뿐 아니
라 신라를 자주 침범하여 세상을 어지럽게 하니, 이는 마땅히 쳐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내세우는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수나라 뒤를 이은 당나라는 고구
려의 세력을 꺾고 싶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장량·이세적 등을 대장으로 10만 병력을 동원했고 고구려의 요동땅을 공격했
다. 그런데 안시성을 포위했지만 성주 양만춘이 단단히 지켜 당태종은 마침내 군을 철수시
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백성들의 간절한 기원에도 불구하고 선덕 여왕의 병세는 더욱 더 무거워졌다. 선덕 여왕
16년(647), 정월의 일이었다.
여왕이 늘 병석에 있고 정치를 바르게 하지 못하여 전란이 끊임없다.
대신 비담과 염종이 이런 이유를 내세워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세력이 자못 강했다.
삼국 시대 중반부터 서라벌에는 금성·월성·만월성·명활성·남산성이 있어 이 다섯 개
의 성으로 도읍을 이루고 있었다. 신라 초기에는 왕들이 금성에 있었으나 후대에 내려와선
대개 월성에서 살고 있었다.
비담과 염종은 반란을 일으키고 명활성을 점령했다.
유신은 대장군으로 춘추와 함께 월성을 지켰지만 반란군의 힘이 강하여 10일 동안이나 포
위를 당했다. 더욱이 어느 날 한밤중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졌다. 비담 등은 이것을 보고 소
문을 퍼뜨렸다.
별이 떨어지면 불길한 징조다. 이는 여왕이 죽고 그 군대가 패할 징조이다!
이 말에 반란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고, 여왕군은 사기가 떨어졌다. 그리고
슬슬 도망치려는 자마저 있었다. 선덕 여왕도 몹시 근심했다.
유신은 여왕을 뵙고 말했다.
길과 흉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하기에 달린 것입니다. 덕이 있다면 비록 별
의 이변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길 수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아군은 사기가 떨어져 있소.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신에게 계책이 있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유신은 궁전에서 나오자 짚으로 커다란 허수아비를 만들게 했다. 그리고 그 속에 불씨를
넣고 연에 매달아 하늘 높이 띄웠다.
아, 하늘에서 별이 타고 있다.
성 안의 여왕군은 물론이고 성 밖의 반란군도 불타고 있는 허수아비를 보며 수군거렸다.
그 때 유신은 성벽에서 외쳤다.
모두들 보았느냐? 저것은 어제 밤에 떨어졌던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간 것이다.
이 바람에 거꾸로 여왕군은 사기가 올랐고 반란군은 사기가 떨어졌다. 이 기회를 틈타 유
신은 성문을 열고 쳐나가 반란군을 무찔러 버렸다.
반란은 평정되었으나 선덕 여왕은 마침내 세상을 떠났고 여동생 승만이 뒤를 이었다. 진
덕 여왕이다. 진덕 여왕은 키가 7척이고 팔이 길어 무릎 아래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이 해 10월 백제군이 다시 침공을 하여 신라의 무산·감물·동잠의 세 성을 포위했다. 유
신은 보병과 기병 1만을 이끌고가서 백제군과 싸웠다. 신라군은 고전에 빠졌다. 유신은 비령
자를 불러 말했다.
지금 사태가 위급하다. 그대가 아니면 누가 우리 군사의 사기를 일으킬 수 있겠는가?
비령자 역시 화랑 출신이었다.
장군께서 많은 용사 가운데 저를 지명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
람을 위해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아들 거진과 하인 합절과 더불어 적진에 돌입하여 적을 무찔렀다.
5. 삼국 통일
진덕 여왕은 김춘추와 그의 아들 김인문을 당나라에 보내어 구원을 청하기로 했다. 당태
종은 춘추에게 물었다.
내가 듣건대 당신 나라에 김유신이란 명장이 있다고 한다. 과연 그 사람됨과 재주가 어
떠한가?
춘추는 생각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네, 유신이 비록 재주와 지혜가 조금 있다고는 하지만, 당나라 인물에 비한다면 별것이
아니지요.
그러자 당태종은 껄걸 웃었다.
핫핫핫, 겸손해 할 것은 없소. 과연 군자의 나라다운 대답이오.
하고 신라를 원조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 때 당나라는 고구려를 공격하느라고 딴 생
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이 때 김유신은 압량주 군주로 매일 술을 마시고 풍악을 즐기며 군무를 돌보지 않았다.
그 곳 주민들이 왕에게 상주했다.
유신은 중요한 직책을 맡고도 매일 술만 마시고 있습니다. 그를 처벌하십시오.
진덕 여왕은 유신을 곧 불러들였다. 그러자 유신은 백관을 물리쳐 달라고 한 다음 비밀히
아뢰었다.
소장이 매일 술만 마시고 놀았던 것은 백제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첩자들은 우
리측 보고를 하며 공격이 없을 거라고 했겠지요. 지금이야말로 군을 일으켜 대야성의 원수
를 갚을 때입니다.
진덕 여왕은 유신의 깊은 속을 그제야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작은 병력으로 백제의 대군을 무찌를 수는 없지 않소.
아닙니다. 전쟁의 승패는 병력의 많고 적음에 있지않고 백성들의 결심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백성들이 저를 고발할 만큼 적을 무찔러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니 백제쯤 조금
도 두려울 게 없습니다.
신라군은 얼마 안 된다. 모조리 없애 버려라!
백제군은 신라군을 얕보고 골짜기 안으로 추격해 왔다. 유신은 이것을 미리 예상하고 병
사를 숨어 있게 했었다. 적이 깊숙히 들어오자 앞뒤로 가로막고 맹렬히 공격했다. 싸움은 대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포로로 잡은 백제병에게 편지를 들려 보냈다.
지금 우리의 군주 품석과 그 아내 고타소의 유해가 너희 나라에 묻혀 있다. 이번 싸움에
백제의 장수 8명이 나의 포로가 되어 목숨을 살려 달라고 한다. 그러니 그 두 사람의 유해
왕 포로 장수 8명을 교환하도록 하자.
백제의 좌평 중상이 의자왕께 건의했다.
신라 사람의 해골을 우리 땅에 둔들 별 이득이 없으니 돌려보내도록 하십시오.
의자왕은 품석과 그 아내의 백골을 파서 독에 넣어 보냈다. 유신도 약속대로 8명의 백제
장수를 돌려보내 주었다.
유신은 이 공으로 이찬이 되었다.
이어 유신은 다시 백제를 공격하여 진례 등 9성을 무찔러 적군 9천을 베었고 6백 명을 사
로잡았다. 이제는 김유신 하면, 신라 제일의 명장으로 손꼽혔다.
백제 장군 은상이 석토 등 7성을 공격했다. 유신은 죽지·진춘·천굴 등 장군을 거느리고
나가 적과 싸웠다. 그러나 서로 엎치락뒤치락하여 10일이 지나도록 승패가 나지 않았다.
유신은 부하들을 도살성(천안) 아래 진을 치게 하고 푹 쉬게 했다.
그 때 물새가 날아들었다.
난데없는 물새가 왜 저렇듯 날아들까? 저것은 불길한 징조이다.
장병들은 그것을 보자 마음이 동요되어 술렁거렸다.
새가 나는데 무엇이 이상하다는 것이냐?
유신은 장병을 꾸짖고 부하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오늘 밤 반드시 적의 첩자가 침투할 것이다. 너희들은 모르는 체하고 누구냐고 묻지도
말아라. 그리고 모닥불가에 모여 앉아 내일이면 원군이 온다고 큰 소리로 지껄여라.
적의 첩자가 숨어 들었다가 이 정보를 알아 가지고 은상에게 보고했다.
신라의 원군이 내일 몰려온다고? 이것 큰일났는데…….
백제군은 크게 동요되었다. 김유신의 부대도 힘겨운데 또 새로운 신라군이 오면 못당하리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신은 이런 적의 불안한 마음을 찔렀다.
공격하라, 공격하라! 적에게 숨 돌릴 여유를 주지말라.
신라군은 새벽에 백제군을 기습 공격했다. 전쟁은 무긴 병력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정신력
이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유신은 좌평 은상, 달솔 자견 등 10여 명의 적장과 적병을 1만
가까이 베었다. 또, 수백 명의 적병을 사로잡고 말 1만 필을 빼앗았다.
세월은 흘러 유신도 어느덧 예순 살이 되었다. 진덕 여왕이 654년 3월 승하하자, 신라의
성골은 대가 끊겼다. 유신은 알천과 의논하여 진골인 김춘추를 왕으로 받들었는데, 이분이
태종 무열왕이다. 성골 부모가 다 왕족이고, 진골은 부모의 한쪽만이 왕족인 사람을 말한다.
춘추는 사양했다.
나는 이미 늙어 왕위에 오르기에 부족하오,
그러나 달리 왕될 사람이 없었고 나라가 여러 모로 어려운 때였을므로 태종 무열왕은 왕
위에 올랐다. 유신은 대각찬이 되었다.
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은 사람됨이 큼직하여 용맹스럽고 담력이 있었다. 게다가 효성
도 지극하여 처음에는 나라를 잘 다스렸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교만해지고 술과 노는
데만 빠져 정치를 돌보지 않게 되었다. 좌평 성충이 왕께 간청했지만 듣지 않고 그를 옥에
가두었다. 성충은 옥에서 죽으면서 마지막까지도 외적에 대비할 것을 왕에게 간곡히 아뢰었
다.
당나라와 신라가 반드시 공격할 겁니다. 잘 대비하십시오.
그러나 의자왕은 이 말마저 무시했다.
신라 사람으로 백제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서는 종이 되어 고생하던 조미압이란 사람이 있
었다. 그는 여러 해동안 종으로 있으면서 좌평 임자의 집에서 주인의 신임을 얻었다. 그런
조미압이 백제를 탈출하여 유신에게 와서 정보를 알렸다. 유신은 조미압에게 부탁했다.
백제의 좌평 임자는 세력이 있고 그 나라를 움직일 힘이 있다고 한다. 그대는 수고스럽
지만 다시 백제로 돌아가 임자에게 내 뜻을 전하고 우리와 내통할 것을 권해라.
알았습니다.
임자는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미압을 일부러 탈출하게 하고 그가 어떤
제안을 가지고 돌아오나를 시험했던 것이다. 임자는 충신이 죽임을 당하고 의자왕이 정신을
못차리자 나라의 멸망이 머지 않았음을 알았다.
조미압이 돌아오자, 임자는 그를 통해 유신과 내통하게 되었다.
무열왕 7년(660), 백제 공격의 때는 무르익었다. 백제에선 갖가지 멸망의 징조가 나타났다.
한 무리의 여우가 궁 안에 들어왔고 그 중 흰 여우 한 마리가 좌평의 의자에 앉았다. 어느
때는 귀신이 궁궐에 나타나
백제가 망한다. 백제가 망한다.
라고 크게 외친 뒤 땅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의자왕은 그 곳을 파라고 했다. 그랬더니 땅
속에 거북이 한 마리가 있고 등에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져 있었다.
백제는 보름달이요, 신라는 초승달이다.
왕은 무당에게 뜻을 물었다.
보름달은 이미 다 찬 것입니다. 차면 기울게 마련이지요. 초승달은 아직 차지 않은 것으
로 점점 차오르게 되지요.
의자왕은 신라군과 당나라군이 양쪽에서 쳐들어온다는 급보를 받자 신하들을 모아 의견을
물었다.
좌평 의직은 말했다.
당나라군은 멀리 바다를 건너와 우리 백제 땅의 지리에 어둡고, 신라는 당의 힘을 빌리
고자 하므로 쉽게는 쳐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러니 먼저 당나라군부터 깨뜨리십시오.
그러자 달솔 상영은 주장했다.
당은 멀리 왔기 때문에 빨리 결전하려 할 것이므로 그 기세가 날카로울 것입니다. 그런
데 신라는 우리 군에게 여러 번 패한 바 있으므로 무찌르기 쉽습니다. 먼저 신라군을 치고
그런 뒤 당군을 공격하는게 순서입니다.
왕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죄인으로 귀양가 있는 좌평 흥수에게 의견을 물었다. 흥수는
상서를 올렸다.
저는 죽은 좌평 성충과 의견이 같습니다. 탄현 고개를 굳게 지켜 신라군이 들어오지 못
하게 하고, 백마강 어귀를 막아 당군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면 나라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신들은 흥수의 의견에 반대했다. 의자왕은 갈팡질팡하며 작전을 정하지 못했다.
그 사이 김유신은 탄현을 넘었고, 당의 수군도 백마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의자왕은 다급해
졌다.
뭐라고? 김유신이 탄현을 넘었다고!
왕은 계백을 불러 김유신을 막으라고 명했다. 계백은 결사대 5천을 이끌고 황산(충남 연
산)들로 달려갔다.
나라가 쓰러질 때 목숨을 바쳐 싸우는 자가 없다면, 후세 사람들이 우리 백제를 뭐라고
할 것인가!
계백이 외치자 5천의 용사들은 입을 모아 다짐했다.
황산들에서 신라군과 백제군은 맞부딪쳤다. 계백은 네 차례 싸워 네 번 모두 이겼다. 그러
나 김유신은 역시 명장이었다. 진지를 높은 곳으로 옮기고 시간을 끌었다. 이렇게 되자 계백
의 용기도 한창 사기가 오른 신라군 앞에 당하지 못했다. 계백군은 신라군을 거듭 공격하여
전사자가 늘어나 병력이 줄어 들었다.
이 때 신라의 관창이 앞장을 서 신라군의 사기를 돋구었다. 이릴하여 마침내 계백은 전사
했고 그 부대는 전멸되었다.
김유신은 다시 군대를 진군시켜 백제의 도읍으로 통하는 나루에서 당군과 만났다. 그러자
새 한 마리가 나타나 진지 위를 맴돌았다. 소정방은 그것을 꺼림칙하게 여기고 군을 후퇴하
려 했다. 그러자 유신은 외쳤다.
나는 새 한 마리 때문에 하늘의 때를 놓칠 수 없소.
그가 신검을 뽑아 하늘 높이 들자 새는 칼의 신령한 힘으로 떨어져 죽었다. 신라군과 당
군은 물밀 듯이 강을 건넜다. 백제군은 이를 막아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 때 백제병은 1만
남짓이나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한다. 의자왕은 적군의 함성이 궁성까지 들리자 탄식했다.
아, 성충의 말을 듣지 않아 이 지경이 되었구나!
의자왕은 태자 융을 데리고 웅진성(공주)으로 달아났다. 당군은 사비성을 포위했다. 의자
왕의 둘째 아들 태가 스스로 왕이 되어 끝까지 싸우려고 했다. 그런데 태자 융의 아들 문사
가 이를 반대했다.
임금님과 태자이신 아버님께서 이미 이곳을 떠나셨습니다. 숙부님이 스스로 왕이 되어
결사적으로 싸워, 적군이 포위를 풀고 가버리면 나중에 우리들의 목숨은 어떻게 되겠습니
까?
태가 말을 듣지 않자 문사는 종자들을 데리고 성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백성들이 그를 따
랐다. 태는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소정방은 부하를 시켜 성벽에 당나라 기치를 꽂게 하였
다. 태는 할 수 없이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 이어 의자왕과 태자 융이 백제의 여러 성과 더
불어 모두 항복했다. 소정방은 의자왕과 대신, 백성 1만 3천 남짓을 자기 나라로 끌고 갔다.
애처로웠던 것은 궁녀들이었다. 그들은 적을 피하여 부소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더 갈 곳
이 없어진 궁녀들은 벼랑 아래로 몸을 던져 백마강에 빠져 죽었다. 궁녀들이 떨어진 바위를
이 때부터 낙화암이라 불렀다. 아름다운 궁녀를 꽃으로 비유하고 꽃이 흩날린 바위라는 뜻
이었다.
백제는 본디 5부 37군 2백 성 76만 호가 있었는데, 당나라는 백제의 옛 땅에 웅진·마한
·동면·금련·덕안의 다섯 도독부를 두어 다스렸다. 나중에 신라의 김유신은 백제의 유민
들과 협력하여 그 옛 땅을 찾는 데 힘을 기울였다. 김유신은 백제를 멸망시킨 공로로 대각
간이 되었다.
661년 4월, 고구려 공격이 시작되었다. 당나라의 소정방·임아상 등이 패강(대동강)까지 이
르러 강을 건널 준비를 했다. 이 때 신라에서는 태종 무열왕이 6월에 세상을 떠나고 법민이
왕위에 올랐다. 문무왕이다.
소정방은 패강을 건너기 전 신라에게 군량미를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문무왕은 신하들을
모으고 대책을 의논했다.
적국 영내를 거쳐 당군이 있는 곳까지 군량을 수송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오. 그
렇다고 동맹국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러자 김유신이 말했다.
저에게 그 임무를 맡겨 주십시오.
대각간께서?
유신은 이 때 예순일곱 살의 고령이었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았습니다. 꼭 임무를 달성하겠으니 대왕은 안심하십시오.
그리하여 김유신, 김인문 등은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군량미 2만 섬을 무사히 당군에게
수송해 주었다.
8월, 드디어 신라군과 당군은 패강을 건너 평양성을 포위했다. 유신은 부하들에게 말했다.
늦게 건너는 자는 목을 베리라.
신라군이 반쯤 건너갔을 때 고구려군이 공격했다. 이 때문에 신라군은 많은 사람들이 죽
었지만, 유신은 계속 외쳤다.
두려워 말고 강을 건너라!
이리하여 강을 건너자 고구려군에게 맹반격을 하여 적을 수만 명 베어 죽였다.
이어 문무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인문·흠순 등과 평양성에 이르렀다.
당군은 평양성을 공격하였으나 적의 저항이 완강하고 큰 눈이 내려 일단 후퇴했다. 그리
고 이듬해 평양성 다시 포위 공격했다. 마침내 고구려는 멸망하고 보장왕은 당나라로 잡혀
갔다. 문무왕 8년(668)의 일로, 김유신은 이 때 태대각간이 되었다.
670년, 고구려의 유민이 들고 일어나 당의 관리를 모두 죽여 버렸다.
신라는 웅진에 연락하여 함께 고구려 유민을 치자고 했지만 당나라는 응하지 않았다. 당
나라는 백제 왕자 융을 웅진 도독으로 임명하고 계속 분할 정책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신라는 당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여러 번 요구했다.
그러나 당은 승낙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무왕 10년(670), 신라는 백제의 옛땅 80여 성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이 때문에 신라는 당과 틈이 벌어졌다. 신라는 김인문을 시켜 외교로 당나라를 달래는 한
편 백제의 땅을 되찾아 나갔다.
문무왕 11년 6월, 신라의 장군 죽지는 비로소 부여 석성에서 당군과 충돌했다. 그리고 당
군을 크게 무찔러 5천 명을 베었다.
10월에는 당의 병선 70여 척을 무찔렀다.
그리고 한편으로 백제 유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책도 썼다. 백제 유민만으로, 백
금 서당 이란 군대를 조직하기도 했던 것이다. 문무왕 13년(673), 서라벌에는 몇 가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하늘에 이상한 별이 나타났고, 땅에선는 지진이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내다 덕이 모자라는 탓일까? 장차 이 나라에 무슨 변고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문무왕은 자나깨나 나라를 지킬 걱정을 했다. 삼국을 통일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였다. 당나라의 세력이 들어와 있고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도 완전히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었다. 김유신은 일흔아홉 살이었다. 요즘에는 자주 병석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왕이 근
심에 잠겨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식사마저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자 대궐로 갔다.
왕은 유신을 보자 놀라며 정중히 맞았다.
대왕이시여, 늙은이가 이렇듯 찾아온 것은 너무 걱정하시지 말라는 말을 제가 직접 하기
위해서입니다.
알겠습니다. 아무쪼록 가르침을 남겨 주십시오.
소인배를 멀리 하고 군자를 가까이 하며 나라의 아래위가 서로 화목하면 됩니다.
7월 1일, 김유신은 눈을 감았다. 왕은 유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슬피 울었다. 그리고
악대 1백 명을 주어 금산벌에 나가 장사케 하고, 관아에 명하여 비석을 세우고 공적을 기록
하게 했다.
(참고)■ 고구려와 백제의 부흥운동
고구려의 부흥 운동
당나라가 평양성을 점령하고 임금을 잡아가면서 고구려는 멸망했다. 그러나 고구려 백성
들은 무너진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곳곳에서 무기를 들고 일어났다. 이것을 고구려 부
흥 운동 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고구려의 대형 검모장은 왕자 안승을 임금으로 내세워 군사
를 일으켰다. 그들을 안승의 부흥군 이라고 한다. 안승의 부흥군은 궁모성에서 일어나 있는
힘을 다해 싸웠으나 1년 만에 당군에게 크게 패해 신라에 항복했다. 신라는 안승에게 금마
저를 다스리게 하고 그를 고구려 왕 이라고 불렀다. 고구려 왕 안승은 금마저를 중심으로
고구려 유민들을 다스렸다. 안시성의 고구려 부흥군도 671년 7월까지 당군에 맞서 싸웠으며
백빙산에서는 신라군과 고구려 유민들을 무장시켜 당군과 싸웠다. 그러나 모든 부흥운동이
끝내 고구려를 다시 일으키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부흥운동 때문에 당나라가 평
양에 설치했던 안동도호부 를 오늘의 만주 푸순인 신성 으로 옮겼다.
백제의 부흥 운동
백제는 왕과 신하들, 그리고 장군들 사이에 권력 다툼을 하다가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
에게 나라가 멸망하였다. 그 때문에 왕과 정부는 무너졌지만 백제 군사들은 그대로 있었다.
그들이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들고 있어났다. 백제의 부흥 운동은 4년 동안 이어졌다.
왕족 복신과 승려인 도침이 일본에 가 있던 왕자 풍을 불러와 그를 임금으로 내세워 사비성
과 웅진성의 당군을 공격했던 것이다. 당군은 신라군과 손을 잡소 여기에 맞섰으며 고구려
와 왜국의 군사들이 백제를 도와 싸웠다. 그러나 그 사이 복신과 도침의 세력 다툼이 일어
났다.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세력을 손에 넣자 풍이 그를 죽였다. 그러는 동안 당군은 힘을
더욱 키워 부흥군을 공격하자 부흥군은 흩어지고 풍은 일본으로 도망쳤다. 풍이 도망가자
다른 여러 곳의 부흥군들도 흩어져 버렸으며 마지막에는 임존성의 흑치상지도 항복하고 말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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