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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요약본)파리의 감각

by Casey,Riley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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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번역가인 저자는 평소 불어에 매력을 느끼고, 파리를 동경해 왔다. 그러다 서른의 문턱에서 큰
실패를 맛보고 홀로 파리로 떠난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와
같은 질문이 내면에서 끝없이 떠올라,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자기를 들여다보았다. 그 과정이 이
책에서 말하는 ‘파리의 감각’이다. 저자는 파리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6개의 감각을 통해 다
채롭게 펼쳐 낸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육감까지 아우르는 세심한 묘사와 표현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때로는 한낮의 카페에서 햇살을 즐기며 사색과 몽상에 빠지게 하며, 때로는 비 오는
파리의 어느 거리를 걷게 한다.

파리의 감각


▣ Short Summary
어떤 여행의 순간은 오래도록 떠나지 않고 우리를 위로한다. 이 책은 그러한 순간들을 감각적이고 아
름다운 언어로 포착해 낸 에세이이다. 언어를 사랑하는 통번역가인 작가는 평소 불어에 매력을 느끼고,
막연히 파리를 동경해 왔다. 그러다 서른의 문턱에서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
아야 할지’ 등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질문들을 견딜 수 없어, 홀로 파리로 떠난다. 작가가 경험한 파리
는 현실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세계였다. 스트레스로 원인 모를 병과 통증을 달고 살았던, 늘 어딘가에
쫓기는 것처럼 숨 막히던 삶과는 동떨어진 세계. 혼자이지만 그 자체로 충만하고, 고독하지만 어쩐지
그마저도 즐거운 그곳에서 만난 건 진짜 ‘나’였다.
혼자 여행을 떠나면 나를 사색할 기회가 많아진다.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눌 이가 없어, 나와 대화하고,
나를 조금 더 이해하고 나와 친해지게 된다. 작가는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내면의 질문에 답을 찾기 위
해 자기를 들여다보았다. 그 과정에서 떠올랐던 생각들은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작가는 이 과정
을 ‘파리의 감각’이라고 말한다. 파리의 감각은 여행이 끝난 후에도 수년간 떠나지 않았다. 짧은 여행 기
간 동안 답을 찾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30대의 끝자락에 들
어선 작가는 더 깊어진 사유와 농밀해진 표현으로 이러한 과정들을 한 권에 담아냈다.

▣ 차례
프롤로그
파리 제1의 감각 - 시각: 내 눈에 담긴 파리의 얼굴
마담과 마드모아젤 사이에서 / 모네, 영혼의 정수 / 아멜리에와 사랑스러운 고독 / 언젠가 함께 파리에
/ 방돔 광장에서 마주친 반 고흐 블루 / 빗속에 녹아드는 아름다운 침묵을 / 어린 파리지엔느 / 자신만
의 표정이 있을 것 / 한없이 따뜻한 센강의 블루
파리 제2의 감각 - 청각: 내 귀에 울려 퍼진 파리의 음성
메닐몽탕 거리에 울려 퍼진 새벽의 종소리 / 눈을 맞추며 건네는 작은 인사 / 오페라 하우스와 인생의
아라베스크 / 파리는 빛나는 순간들 / 쓸쓸한 영혼을 위한 노래 / 마들렌에서 만난 파리 남자 / 카페
크렘 한 잔 주세요 / 1870년 파리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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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감각

파리 제3의 감각 - 미각: 내 혀에 드리워진 파리의 맛
크레페를 먹을 때는 크레페만 생각하자 / 관능적이면서 우아한 파리의 맛 / 솔직하고 자유롭게, 카페
필로에서 철학 한잔 / 마카롱에 물든 마음 / 사르르 녹아내리는 몽블랑과 눈 덮인 산 / 한낮의 와인과
에스카르고와 밀푀유 / 말차 같은 시간들 / 미지근한 와인 대신 시원한 맥주를
파리 제4의 감각 - 후각: 내 코에 스며든 파리의 냄새
수프에 기대는 밤 / 파리의 정원을 담은 차의 향기 / 바게트 품에 안기 / 브리 치즈가 내게 알려 준 것
/ 종이 냄새가 그리운 날에 / 월하, 달빛 아래 / 몽소 공원 진초록 벤치에 앉아
파리 제5의 감각 - 촉각: 내 피부에 스친 파리의 위로
파리를 부드럽게 품어 내는 존재, 에펠탑 / 헤밍웨이의 토끼 발 / 말 없는 것들의 위로 / 보주 광장의
촉감 / 너에게 진한 키스를 보내 / 머리칼에 파리의 밤이 스쳤다 / 찬란한 고독과 별 헤는 밤 / 옛것의
고상함
파리 제6의 감각 - 육감: 내 영혼에 각인된 파리의 느낌
루브르 밤의 신비 / 파리 최초의 카페에서 만난 위대한 작가들 / 생폴 생루이 성당에서의 낮잠 / 길을
잃은 파리의 밤에 / 나를 사색하는 여행 / 물랭루주와 생의 슬픔을 그려 내는 사람 / 베르사유 궁전 거
울의 방에서 / 흑과 백이 교차하는 세계에서 샤넬을 만나다 / 가장 따뜻한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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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감각

파리의 감각
시각 - 내 눈에 담긴 파리의 얼굴
마담과 마드모아젤 사이에서
누군가 내게 말했다. 인생에서 나이 듦에 대해 혼란을 겪는 시기가 두 번 찾아온다고.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갈 때 한 번, 서른아홉에서 마흔으로 넘어갈 때 또 한 번. 그리고 마흔 이후로는 더 이상
나이를 세지 않게 된단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스물아홉의 나는 엄청난 혼돈의 시기
를 겪은 것이 맞다. 그리고 아직 접해 보지는 않았지만 마흔을 그리 얼마 남기지 않은 지금 이 시점에,
나는 나이에 대한 상념에 자주 빠지고 있다. 서른아홉이 되면 10년 전의 그때와 마찬가지로 제2의 혼
돈을 겪게 되는 것일까?
처음 파리를 방문했던 시기는 서른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그 계절의 나는 나이를
먹어 간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예민해 있었다. 실제 나이는 삼십 대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이십 대라는
젊음의 상징에는 집착을 버리지 않았다. 아니, 버릴 수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었고, 어떤
삶의 의미도, 가치도, 정수도 찾지 못한 상태였기에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몹시 두려웠다.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 나는 촘촘한 간격의 이코노미 클래스 한가운데에 앉아 11시간이 넘도록 움직
일 자유를 상실한 채 좌석에 묶여 있었다. 기내식 배식 시간에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음식을 전달받아야 했고, 승무원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도 송구스럽다는 듯이 조금 버겁게 청해야 했
다. 두 번째 배급 시간이 되었을 때, 승무원이 나를 향해 물었다. “마담, 무엇을 드시겠어요?”
나는 그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단순하게도 나를 ‘마담’이라고 칭한 것 때문이었다. 내가 탑승했
던 비행기의 항공사는 에어프랑스로, 그 승무원은 불어 억양의 영어를 구사하는 프랑스 남자였다. 물
론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당시의 내 의식에 문제가 있었을 뿐. 불어로 마담은 기혼 여성에 대
한 경청, 또는 미혼이니 기혼 여부와 관계없이 여성에 대한 경칭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그땐 후자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나는 음식을 앞에 두고 한참이나 상념에 빠져 있었다. 왜 나를 ‘마드모아젤(미혼 여성에 대한 경칭)’이
라고 부르지 않는 거지?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나? 이제는 내가 더 이상 이십 대로 보이지 않는 건
가? 내가 이십 대가 아닌 것도 맞고, 나이 들어 보일 수도 있으니, 마담이라 부를 수도 있어. 틀린 게
아니라고. 근데 왜 이렇게 화가 나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뒤섞이기 시작하니 내가 삼십 대라는
현실이 그토록 쓸쓸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한국에서 ‘어려 보인다’는 말은 주로 칭찬으로 쓰인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좋았다.
서른 중반이 될 때까지 나를 이십 대로 봐 주는 것을 즐겼고, 겉모습을 가꾸는 데 열정을 쏟아부었다.
심지어는 일부러 나이를 드러내지 않기도 했다. 나이를 말하지 않았을 때 나를 이십 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며 작은 희열을 느꼈으니까. 안티에이징에 좋다는 화장품과 제품들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피부과에 가서 시술을 받는 날이 많아졌다. 팽팽해진 얼굴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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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감각

그때 내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주 던졌던 질문은, ‘내가 몇 살처럼 보이냐’는 것이었다. 참 어리석
게도 나를 이십 대로 봐 주면 환호했고 제 나이로 봐 주면 침울해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나이 먹도록 이룬 것이 없으니 뭔가를 이루기 전까지 늙어 보여선 안 돼. 젊음을 유지해야
해.’ 그런데 젊음에 집착하면 할수록 내면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결코 채워
지지 않는 밑 빠진 물독이 된 것처럼 엄청난 공허함이 밀려왔다. 이런 헛된 마음으로 살아가던 나를
깨운 것은 가브리엘 샤넬의 말이었다. “마흔이 넘으면 그 누구도 젊지 않다. 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일 수는 있다.”
언젠가 프랑스 여자의 나이 듦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에서는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외모가 아닌 ‘매혹’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중년에 가까워진 프랑스 여자가 젊어
보이기 위해 외모에 집착하거나 나이가 들었다고 위축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한마디
로 그들에겐 젊어 보이는 것보다 매력적으로 보이는 게 더 중요한 것이다.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내면
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 나이를 더해 갈수록 더욱더 깊어지는 것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
혹을 쌓는 것에 집중하면 더 이상 젊음에 집착할 필요가 없겠구나.
원숙미가 더해진 어른의 얼굴에서는 다양한 표정이 읽힌다. 얼굴에 각인된 풍부한 표정은 생의 역사를
말해 주고, 때론 그것이 그 어떤 말보다도 위엄 있게 느껴진다. 자기만의 아우라가 풍겨 나오는 것이
다. 매혹이란 때로는 눈빛의 깊이나 미간의 쓰임, 주름의 위치, 근사한 미소일 수도 있으며, 자기에게
꼭 맞는 스타일 또는 자신이 쓰는 언어가 될 수도 있다. 이토록 다채로운 아름다움이 존재함에도 나는
오로지 눈에 보이는 젊음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를 늙음 또는 생의 상실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마담이라는 호칭 하나로 마음이 격렬히 뒤흔
들렸던 것처럼 말이다.
그 후로 몇 년이 흘러 프랑스 여자가 나이를 바라보는 관점을 접하고, 아름다움이란 다채롭고 입체적
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내 생각은 서서히 바뀌었다. 이제는 나이 듦을 더 이상 부정적으로 여기
지 않는다.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것에 몸서리치게 격분하고, 뒷자리 숫자가 바뀔 때마다 괴로워
하던 지난날들과 달리 이제는 좀 더 삶의 태도와 매혹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비록, 지금 당
장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 미지의 것이라 하더라도.
모네, 영혼의 정수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혼자인 사람들이 클로드 모네의 <수련>을 왜 하염없이 바라보는지를, 부동
의 자세로 그림을 마주하던 몇몇 이들은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를 떠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스산한
날씨 때문이었는지 내가 방문했을 당시의 오랑주리 미술관은 비교적 한가했다. 특별한 공간에서 사색
과 고독을 만끽할 수 있는, 인생에서 몇 안 될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때의 나는, 나에
게 침잠하는 법을 잘 몰랐다. 작품들이 근사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 앞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는 사람들
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사람들은 그림 앞에서 왜 저렇게 오래 앉아 있는 거지?’라는 생각뿐,
작품 자체에 감동하거나 어떤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수련 연작이 뿜어내는 공간의 신비와 아름다움
을 그때는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모네를 사랑하게 되었다. 파리 근방의 작은 마을 지베르니에서 기분 전환
을 위해 수련을 심었던 그는 처음엔 그것을 그림으로 그릴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수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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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감각

사랑에 빠진 것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마음이 영글지 않았을 때는 큰 관심이 없다가
도, 어느 날 갑자기 늘 눈앞에 있던 대상이 빛나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모네는 수련을 보며 그런 느낌
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몇 해 전 우랑주리 미술관에서 그의 수련 연작을 마주했을 때는 별 느낌
이 없다가 세월이 흘러 아련한 감정을 품게 된 것처럼 말이다. 과거의 나는 그림의 내면으로 깊이 들
어갈 수 없었다. 나의 눈은 오로지 외적인 아름다움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사물의 내면이나 본
질에는 마음을 할애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만물에는 적절한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마음에도 그 ‘때’가 존재한다. 마음이 영글어지
는 때 말이다. 나는 파리 여행 이후로 그 시기를 맞이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영혼의 유배기’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속에서 비바람이 불고 번개가 치며 폭풍이 끊이지 않던 그 시절, 스스로
가 인생의 바닥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그때가 무언
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당시 나의 마음에도 새로운 변화를 위한 시간이 필요
했다. 그 시기는 신이 나에게 주는 어떤 표지가 아니었을까? 지금은 인생에서 무언가를 배우면서 의식
의 성장을 이룰 시기이니 지금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한 단계 더 진화할 준비를 하라고 말이다.
그 시절의 나는 풋풋한 마음의 계절이 지나, 열매가 무르익어 가는 것처럼 더 성숙하고 단단한 마음을
만드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그 후 당장 눈앞의 상황이 확 바뀌진 않았지만 확실한 건 내 안에 자아
의 신화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존재했다는 것이고, 좀 더 괜찮은 나로 거듭나기 위해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선택한 것이었다. 나의 의식이 이전과 달리 성숙해졌다고 느꼈을 때는 다름 아닌 실패의
경험들을 두루두루 거치고 난 후였다. 어쩌면 삶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렇기에 인생의 실패를 경험한 나를 쓰다듬고 위로해 주어야
마땅하다.
마음이 영글어지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그중의 하나가 모네의 그림 <수련>이다. 그
의 그림을 보면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개념이 떠오른다. 그는 수련에 대해 이렇게 말
했다. “나는 내 인생을 전부 바쳐야 할 꽃들을 그리는 중입니다.” 그는 결국 자아의 신화를 이뤄 냈다.
한 인간으로 태어나 자신의 인생을 전부 바칠 수 있을 만큼의 열정을 쏟았다는 건 마음과 영혼이 하나
가 되어 몰두할 만한 대상을 찾았다는 의미다. 나의 가슴이 노래하고 나의 영혼이 기뻐하는 무언가를
찾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또 찾는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누구나 인정할 만한 최고의 경지에
오른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는 자기 자신을 세상 속에 온전히 녹여냈다. 나는 그가
당시에 느꼈을 영혼의 기쁨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수련> 연작을 그리면서 궁극의 몰입을 경험했을 것이다. 몰입의 경지에 들어서는 순간 육체는
지금 여기 있으나 마음과 정신이 대상 안으로 깊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모네도 이것을 경험하
지 않았을까? 그가 그린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모호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뚜렷한 경계선이 사라지고 대상의 본질만이 살아 숨 쉬는 신비로움의 극치. 그의 영혼이 경계선을 허
물고 자연의 정수 안으로 스며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몰입의 경지에 들어섰던 나의 지난날들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처연한 마
음이 들었다. 무언가에 온전히 함입했다기보다 중심에서 벗어난 가장자리에서 맴돌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 집중한 적은 있어도 오롯이 나를 위한 몰입은 없었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과 취업을 위해, 직장인이 되어서는 돈을 위해, 나는 언제나 외적인 틀에 나를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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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감각

추며 근사한 모양을 만들려고만 했지 정작 나에게 맞는 틀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지금의 현
실을, 주어진 삶을, 멀거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데 모네의 <수련>이 어느 날 내게 말을 걸었다. 앞
으로의 네 삶에서, 너의 인생을 온전히 바칠 만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라고. 가장자리에서 벗어나
중심을 향해 조금씩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그 무엇에 대해 말이다.
자신만의 표정이 있을 것
식물을 사랑하던 나는 한때 아주 잠깐이었지만 플로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파리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도 그런 마음이 있었다. 식물을 동경했다. 식물을, 꽃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에 오는 기분이 어떨까 생
각해 보았다. 실제로 그 무렵, 꽃 공부를 하러 한국에서 파리로 유학을 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
도 그중에 한 명이 된다면 어떨지 상상하며 파리를 걸으니 꽃과 관련된 것들이 자주 보였다. 작은 꽃
집, 꽃을 안은 여자와 꽃을 고르는 남자, 꽃을 바라보는 내 모습이. 파리에서 꽃을 보는 감각이 쌓일
때마다 꽃에도 프렌치 스타일이 있다는 사실을 차츰 알게 되었다.
파리에 오기 전까지 나에게 꽃이란 기념할 만한 날에 남이 나를 위해 선물하는, 일상과는 거리가 먼
식물이었다. 꽃 하면 장미꽃과 안개꽃이 생각났고, 둘의 조합이 꽃다발의 정석이라 믿었다. 스치듯 마
주치는 파리의 꽃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꽃을 받았던 게 언
제지?’ 시간을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그렇게 십 년도 더 된 기억 속에서 가까스로 사진 한
장을 떠올렸다. 태슬이 대롱대롱 매달린 학사모를 쓴 채 맑게 웃어 보이는 내 품에는 노란 프리지어
한 다발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꽃은 까만 졸업 가운과 대비되어 실제보다 훨씬 더 생생히 빛나 보였
다. 이것이 내가 꽃과 함께한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후로 내 인생에 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건, 나에
게 기념할 만한 인상적인 일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런 결론에 이르자, 내 인생이 조
금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꽃의 존재란 일상 너머의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파리에서는 달랐다. 파리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기 사람들은 특
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꽃을 사서 집 안 곳곳에 장식하거나 선물해요.” 나는 마레 지구의 어느 뒷골목
에서 그 말을 떠올렸다. 주홍빛 석양이 반쯤 차오른 늦은 오후, 개를 데리고 선 은빛 머리 노인이 편안
한 차림으로 꽃을 고르고, 향기를 맡고, 싱그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곁에서 그를 바라보며 생
각했다. ‘오늘 그의 식탁이 한결 화사해지겠구나…….’ 나는 파리의 거리에서 이런 장면들을 종종 발견
했다. 사람들은 색색의 꽃다발을 품에 안고 나를 스쳐 지나갔다.
파리의 꽃다발에는 수십 개의 표정이 있었다. 꽃들은 짜 맞춘 것처럼 똑같은 생김새가 아닌 각자의 개
성과 철학과 스타일을 만면에 드리운 싱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언뜻 보면 막 자다 깬 산발한 여인
의 머리 같기도 했고, 들판에 흐드러진 꽃무리를 한 움큼 끊어 놓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프렌치
스타일 꽃다발에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옮겨다 놓은, 작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었
다. 이름 모를 꽃과 풀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함께 뒤엉키며, 자신만의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를 창조
해 냈다. 또 하나의 작은 정원 같았다.
파리에서 이런 꽃다발을 본 순간, 비슷한 종류의 꽃을 한데 묶어야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편
견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작은 정원과도 같은 그 꽃다발에서 수선화는, 튤립은, 라넌큘러스는, 리시
안셔스는, 아스트란티아는, 레몬트리는, 보리사초는, 아이비 덩굴은, 강아지풀은, 유칼립투스는 따로
있는 듯 함께 있었다. 각자 있을 때는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식물이 하나둘 모이자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감각의 꽃다발이 탄생한 것이다. 매뉴얼대로 만들어진 개성 없는 꽃 덩어리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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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감각

닌, 식물 하나하나의 스타일이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 창의적인 발상이 가미된 다채로운 세계였다.
그중에서도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더듬이처럼 불쑥 튀어나온 회녹색의 유칼립투스였다(속명인
‘Eucalyptus’는 ‘아름답다’와 ‘덮인다’는 뜻의 그리스어 합성어로 꽃의 모양에서 유래되었다). 밋밋한 외
모와 달리 톡 쏘는 듯 맵싸한 향기를 뿜어내는 그 식물에는 분명 끌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내가 만약
유칼립투스로 살아간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저 그런 초록 식물에 지나지 않는다면 울상을 지을까, 아
니면 다른 꽃들과 어우러질 것을 생각하며 즐거워할까? 내가 유칼립투스의 개성에 주목한 건 파리를
통해서였다. 사실 나는 이 초록 식물이 단독으로 있을 때는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화려한 꽃들 속에 유칼립투스가 하나둘 더해지는 순간, 자기 매력뿐 아니라 다른 꽃들의 매력까지도
함께 증폭시키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장미와 함께일 때의 표정이 달랐고, 리시안셔스와 함께일 때의 표정이 달랐다. ‘비범한 평범함’ 같은 매
력이 있었다. 유칼립투스는 싱싱한 꽃들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밀며 꽃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면서도
자신의 개성 또한 결코 잃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아름답고, 그는 그대로, 그녀는 그녀대로 아름다울
수 있도록. 그들이 사람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이런 말을 할 것만 같다. 자신만의 표정이 있을 것,
당당할 것 그리고 자유로울 것. 이것이 파리의 식물이 내게 알려 준 삶의 철학이었다.

청각 - 내 귀에 울려 퍼진 파리의 음성
눈을 맞추며 건네는 작은 인사
그날은 모처럼 서두르지 않는 아침이었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분주함도 없었고, 삶을 살아 내야 한
다는 압박감도 없었다. 느긋하게 나를 기다려 주는 귀한 날이, 그날 아침 내게 주어졌다. 그 계절의 나
는 내가 만든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나를 향한 불만을 자주 토해
냈다. 삶을 숙제하듯 살았다. 내가 삶을 살고 있다기보다 삶이 나를 살아가는 것 같은 아주 이질적인
감각 속에서 유쾌하지 않은 일상을 그저 흘려보낼 뿐이었다.
내가 두 다리로 단단히 서면 지면을 제대로 느낀 적이 과연 언제였던가? 그렇게 일상을 바쁘게 살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아무도 없는 거친 땅에 홀로 떨어져 있었다. 나는 방치되었다. 아니, 내가 나를
방치했다. 그때 머릿속이 부연 연기로 가득 차오르면서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의 경계선이 흐릿하게
보였다. 온통 회색빛으로 둘러싸인 일상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음울한
생각이었다.
나로 살아가는 기쁨을 느낄 수 없는 아침이란 참으로 냉혹한 것이다. 매일 아침 나는 상쾌하지 않은
기상과 함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살기 위해 무언가를 먹었다. 유일하게 나를 의식할 수 있는 시간은
커피를 음미할 때뿐이었다. 그런데 커피를 너무 마신 탓에 나중에는 그마저도 또 다른 고통으로 변했
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수천 개의 바늘이 위를 찔러 대는 것처럼 쓰라리고 더부룩했다. 커피 한 잔도
내 몸의 눈치를 보면서 마셔야 했다.
커피를 줄이고 식이 요법을 하면서 위염 증상이 어느 정도 완화되었을 무렵, 이번에는 알 수 없는 피
부병이 나를 덮쳤다. 처음에는 팔다리가 약간 가려운 정도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가려운 부위가 온몸
으로 확장되었다.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위가 염증으로 뒤덮였다. 누가 봐도 눈살을 찌푸릴 만큼 확연
히 눈에 띄는 상흔이 몸에 가득했다. 피부과 여러 곳을 찾아가 상담을 받았으나 어떤 의사도 명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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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감각

답을 들려주지 못했다.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피부 상태가 날로 악화되는 와중에 마지막으로
찾아간 의사에게서 색다른 대답을 듣게 되었다.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 거예요. 무슨 일해요?” “아, 번
역 일을 하고 있어요.” “그래요. 평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요? 이건 스트레스 안 받으면 낫는 병이
에요. 병원에 자주 나와요. 경과 보면서 치료해 나가자고요.”
의사 선생님은 무심하게 시크했으며, 어딘가 차가운 면이 있었다. 여기가 피부과인가 정신과인가 순간
혼란을 겪던 도중에 나는 선생님의 왼손에서 의수를 발견했다. 무언가 사연 있는 손이었다. 같은 자리
에서 20년 넘게 개인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냉랭한 표정을 한 초로의 남자. 그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
었던 걸까? 나는 그 순간,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상처와 사연을 자신만의 비밀의 방에 저장하며 살
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적 고통과 마음의 통증이 피부로 발현된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어
쩌면, 상처의 날들을 살아 본 사람만이 내릴 수 있는 처방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 선생님과 마음이 묘
하게 통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삶에는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마음의 상흔일 것이다. 몸과 마음의 통증은
스트레스라는 현대적인 이름을 달고 종종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때로는 그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내가 고통 속에서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나를 방치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나를 사랑하
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는 어쩌면 젊은 날의 대부분을 애정 결핍의 상태로 살았는지도 모른다. 나조
차도 나를 아껴 주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니 삶은 내게 어떤 즐거움도 주지 못했다.
하지만 파리에서 맞이한 그날 아침만큼은 달랐다. 촉촉하고 윤기 나는 광휘의 아침. 발코니를 타고 흐
르는 신선한 공기와 함께 거실에서는 나른한 재즈가 흐르고 있고, 노란색 머그잔에 담긴 홍차는 따끈
한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홍차의 온기가 내 안에 들어왔을 때 잠시나마 나는, 생에 대한 의지를 느꼈
다. 작은 행복이 온몸으로 퍼지자 아주 오랜만에 나의 의식이 현실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항상 안개
로 자욱했던 회색 도시에 어디선가 빛 한줄기가 떨어져서 모든 것이 선명해진 느낌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도로 위로는 빨간색 자동차가 지나가고, 카페에서 새어 나온 피아노 선율이 거리를
채우고, 사람들이 복작대는 도시 소음이 일상의 배경음으로 흐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풍겨 오는 고소
한 빵 냄새와 우아한 커피 향이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웠다. 그러자 행복의 스위치가 켜지기라도 한
것처럼 나의 아침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익숙하지 않은 감정에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나는 그 감정
에 기꺼이 편승하여 식빵을 굽고, 계란을 굽고, 소시지를 구웠다. 잘 구워진 음식을 플레이트에 가지런
히 담고, 비어 있는 공간에 작고 귀여운 방울토마토도 몇 개 더했다.
나는 그때, 어떤 특별한 기운에 의해 어둠의 끄트머리에서 어슴푸레한 빛의 세계로 서서히 걸어 나오
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장소 하나 달라졌을 뿐인데 생각이 이토록 선명해질 줄이야. 머릿속의
안개가 점차 걷히면서 싱그러운 아침 이슬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물기 머금은 푸른 잎처럼 신선하고
생기 가득한 아침이었다. 오래간만에 느껴 보는 감정에 나는 들떠 있었다. 밖에 나갈 채비를 하기 위
해 거울을 들여다보니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때 경직되어 있던 표정과는 다른 부드러운 미소가 얼굴에
스며 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었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까지도.
그날따라 나는 무척 기분이 좋아서 숙소 1층 거울 앞에서도 사진을 찍느라 한참을 서 있었다. 오랜만에
맑게 갠 내 모습을 계속해서 보고 싶었던 것일까. 고개를 왼쪽으로 꺾었다 오른쪽으로 꺾고, 또 멀건 표
정을 지어 보였다가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하며 다양한 내 모습을 담았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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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감각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의 목소리인가 싶어 무심히 지나치려는데, 다시 한번 육중
한 목소리가 나의 청각을 자극했다. 이번에도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에 몰두하려
던 그 순간, 몸집이 큰 중년 남성이 거울 속에 비친 내 눈을 보며 이렇게 외쳤다. “봉주르!”
다소 채근하는 듯한 말투였다. 그 묵직한 음성은 알고 보니 아파트 관리인 아저씨가 내게 보내는 아침
인사였다. 의도치 않게 그의 인사를 무시하고 사진 찍기 바빴다는 걸 깨닫고 머쓱해졌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기는 파리지.’ 이곳은 낯선 사람과도 눈인사와 미소를 주고받는 파리였다. 평소에 낯선 사람에
게는 인사를 잘 건네지 않았던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달짝거리며 말했다. “아…… 안녕……, 아니 봉
주르!”
내 목소리를 들은 아저씨는 그제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사라졌다. 인사를 나
눌 당시에는 수줍음에 고개를 떨구었지만, 현관 유리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와 눈을 맞추며 건네는 작은 인사가 그날 아침의 활력이 될 수도 있구나. 누군가와 눈빛을 교환
할 수 있다는 건, 세상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드러운 봄 햇살을 손 그늘로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따스하게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미각 - 내 혀에 드리워진 파리의 맛
솔직하고 자유롭게, 카페 필로에서 철학 한 잔
파리를 껴안은 오후 3시의 빛은 아름다웠다. 햇살의 따스함에 녹아든 나는, 파리의 일부가 되어 빛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거리를 한참이나 거닐다가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
그때, 도로 건너편에 빨간 차양을 드리운 노천카페가 보였다. 나는 햇살을 피해 카페 안쪽 창가 자리
에 앉았다.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메뉴판을 읽어 내려갔다. 웨이터가 다가와 물 한 잔을 두고 갔다. 메
뉴판을 잠시 내려놓고 먼저 목을 적셨다. ‘아, 이제야 살 것 같네.’
메뉴판을 다시 집어 들고 피로와 갈증을 해소시켜 줄 무언가를 찾았다. 달콤하고 상큼한 디저트를 먹
고 싶었다. 쇼콜라 케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충분히 기운을 회복하고도 남을 단 메뉴임이 틀림없었다.
‘뭔가 상큼한 게 마시고 싶은데…….’ 함께 곁들일 음료로 싱싱한 야채주스를 주문했다. 주문하고 보니
어색한 조합이라 피식 웃음이 났다. 쇼콜라 케이크에 야채주스라니, 케이크에는 커피라는 생각이 있던
터라 나로서도 이런 선택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사람이란 때때로, 예상에 없던 전혀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하니까. 이것 또한 여행의 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테이블 위로 팔꿈치를 고정시켜 놓은 채 양쪽 손가락 끝을 서로 붙이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테라스
에서 한낮의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날도 더운데 나도 맥주를 시킬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들 때쯤, 찰나의 생각이 무색하게 주문한 음식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맥주는 이따 집에
가서 마시지 뭐.’ 한눈에 봐도 진해 보이는 쇼콜라 케이크 한 점을 크게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진한 단맛이 지친 기분을 싹 녹여 주었다. 꾸덕꾸덕한 식감이 맛을 한층 업그레이드해
주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야채주스로 눈을 돌렸다. 투박한 유리잔에 담긴 빨간색의 걸쭉한 주스가 보였다. 빨간 테이
블보와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일체감은 내게 케이크와 주스를 가져다준 한 남자, 카
페 웨이터에게까지 이어졌다. 고개를 돌려 왼쪽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을 때 나는 그와 눈이 마주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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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감각

그의 시선 또한 잠시 나에게 머무르는 듯 보였다. 그 찰나의 순간, 나는 그가 메고 있던 빨간색 넥타이
에 시선을 고정했다. 내 시선에 세 개의 붉은 오브제가 들어오자 알 수 없는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빨
간색 테이블보, 빨간색 주스, 빨간색 넥타이. 이 세 개의 지점이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었을 때 나
는 이것이 일종의 세렌디피티라고 생각했다.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발견한 뜻밖의 재미, 의도치 않은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조화를 이루는 장면 속에서 나는 작은 기쁨을 느꼈다.
야채주스를 마시며 그를 응시했다. 새하얀 셔츠와 앞치마, 검은색 조끼, 그 위에 맨 빨간색 넥타이. 담
백한 블랙과 화이트 위에 놓인 강렬한 빨간색은 어쩐지 섹시하기까지 했다. 내가 작은 눈빛만 보내도
그는 빠르게 움직여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몸에 밴 것 같은 민첩하면서도 정제되고 세련된 움직임은
오랜 세월 쌓아 온 그의 경력을 보여 주는 듯했다.
어쩌면 그런 감각은 노련한 직업인에게만 나오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파리 카페
에는 나이가 지긋한 중년 남성의 웨이터들이 많은 것 같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섬세하고, 진지한 듯하
면서 유머를 즐기는 그런 어른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파리 카페는 어른을 위한 장소가 아닐까?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나누는 곳.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느낀 바를 드러내는 솔직한
어른의 공간. 이들은 감정을 나누는 것에 거부감이 없고, 누구에게도 아첨하지 않는다. 이는 자신의 생
각을 서슴없이 발언할 수 있는 곳인 ‘철학 카페’를 보면 알 수 있다.
프랑스 철학계에는 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 카페에 모여 자유롭게 토론하는 ‘카페 필로’ 문화가 있다.
철학 카페의 창시자인 프랑스 철학자 마르코 소테는 어렵게만 느껴지는 철학을 일상에서 더 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국적, 종교, 문화, 성별, 나이 등과 상관없이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자기 생각
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특별한 장소가 아닌,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서 ‘거리의 철학’
을 추구한 것이다.
파리 마레 지구에는 ‘카페 데 파르’라는 철학 카페가 있다. 이 카페에 모인 사람들은 틀림이 아닌 다름
을 인정하는 프랑스의 톨레랑스 정신을 근간으로, 다양한 주제를 놓고 열띤 대화를 펼친다. 일요일 아
침 10시, 철학자와 비슷한 지적 수준을 가진 사람들이 이 톨레랑스를 만끽하기 위해 카페 데 파르로
몰려든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철학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의견을 주고받는다.
카페 필로의 열정은 극장에서도 피어났다. 파리 MK2 극장에서는 매주 월요일, 철학 세미나가 열린다.
철학과 형이상학, 윤리학, 인문학 등의 주제를 놓고 극장에서 세미나를 개최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조
금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이 또한 내 편견에서 비롯된 것임을 후일 알아차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극장
에 모여 그날의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하고, 자기 생각을 말한다.
내 의견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타인과 깊이 교류하는 것은 철학 속에서 온전한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
다. 이처럼 생활에서 철학을 접할 때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영혼은 어떤 소명을 위해 이 생에
왔는가 등 자기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고 사색하게 된다. 나를 생각한다는 것은 어쩌면
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믿고, 기다려 주
는 시간을 갖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철학은 이런 생각과 사색을 돕는다.
파리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고 돌아온 후 나는 나에 대해 자주 생각했고, 자주 사색했다. 돌이켜 생각
해 보면 나는 늘 타인을 의식하며 살아왔다. 어두운 감정을 비로소 인식하고 뒤를 돌아보니, 타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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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감각

위한 배려라는 멋진 포장 속에는 내 비겁한 마음이 숨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지금의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철학에 가까이 다가서 보기로 했다.
거창한 학문 같은 철학이 아니라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캐주얼한 철학에. 내가 정의하는 ‘캐주
얼 철학’이란 생각하고 느끼는 그대로를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올라오는 감정을 알아차리기
위해 마음을 쓰고 연습하는 것이다. 불편한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기에 바빴던 지난 삶을 뒤로 하고,
올라오는 모든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보았다. 그러자 흐리멍덩했던 눈빛이 조금씩 반짝
거리기 시작했다. 짙은 갈색 눈동자에 황금색 띠를 두른, 철학자의 눈빛이었다.

육감 - 내 영혼에 각인된 파리의 느낌
물랭루주와 생의 슬픔을 그려 내는 사람
몽마르트르 언덕을 내려오자 거대한 빨간 풍차가 있는 건물이 보였다. 프랑스에 역사적인 극장 ‘물랭
루주’였다. 1889년에 개관한 물랭루주는 프렌치 캉캉을 비롯한 예술적인 카바레 쇼로 잘 알려져 있다.
물랭루주는 프랑스의 국민 가수 에디트 피아프와 이브 몽탕이 처음 만난 곳이나, 영화 <물랭루주>의
배경지로도 유명하지만, 나는 여러 장면들을 제쳐 두고 물랭루주 구석 어딘가에서 술을 마시며 그림을
그렸을, 키 작은 한 남자를 떠올렸다. 그의 이름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
강렬한 빛을 내뿜은 빨간 풍차를 바라보며, 나는 그를 생각했다. 당시 귀족 신분이었던 로트레크가 카
바레에서 그림을 그리게 된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을 이전과 전혀 다른 삶으로 내몰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 한 번도 하지 않은 경험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
을까? 캄캄한 방에서 홀로 빛을 발하는 쓸쓸한 조명등 같은 삶을 살았던 그는, 상처받은 영혼이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뼈가 매우 무르고 약했다. 당시 빈번하게 일어난 근친혼(귀족 간의 근친혼은 가문의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다)에 의해 유전적으로 병약한 체질로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그에게 두 번
의 골절 사고가 일어났다. 감수성 예민했던 열네 살의 그는, 더 이상 하반신이 자라지 않는다는 비극
적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의 키는 152cm에서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이러한 체질
때문에 어려서부터 승마나 사냥과 같은 귀족 문화를 즐길 수 없었다.
아버지마저 그를 미워하고 조롱했다. 가문의 명예가 더럽혀진다는 이유로 그에게 가명을 쓰도록 강요
하기까지 했다. 그의 젊은 날은 슬픔으로 물들었고, 상처받은 그의 영혼은 마음 둘 곳이 필요했다. 그
래서 그는 스물두 살이 되던 해 집을 떠나 몽마르트르로 향했다. 그는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
했다. 그가 한 말을 보면 왜 그토록 그가 그림의 세계에 몰두했는지 알 수 있다.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 내 다리가 조금만 길었더라도 나는 결코 그림 따위 그리지 않았을 것
이다.”
그림에 몰두하면서 자신만의 예술 색채를 찾고 멋진 화가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신
체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만큼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 그를 버티게 한 것은 술이었다.
술 아니면 그림, 그림 아니면 술로 버티는 삶이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파리 사교계의 정점에 있었던
물랭루주 지배인에게 자신이 술집 홍보 포스터와 그림을 그려 줄 테니 무제한으로 술을 제공해 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물랭루주와 로트레크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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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감각

그는 물랭루주에서 주로 환락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그의 그림을 본 많은 사람들이 그를
환락가의 퇴폐 화가라 불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쩌면 그는 환락가 사람들에게 자신을 이입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난하고 초라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았던 것
인지도 모른다.
그는 상처받은 자신의 영혼을 그렸다. 술에 취해 동공이 풀린 사람의 눈을 통해 상체를 훤히 드러내
보인 채로 질펀하게 앉아 있는 여인의 뒷모습을 통해, 고난한 생을 풀어내는 무용수의 현란한 춤 동작
을 통해, 그리고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외롭고 쓸쓸한 여인을 통해서 말이다. 그의 친구들은 밤의 세
계와 친근했던 매춘부나 무희와 같은 몽마르트 사람들이었다. 로트레크에서 그녀들은 삶이자 친구였고,
사랑하는 사람이자 훌륭한 모델이었다.
그가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는 그 자리를 술이 차지했다. 그는 독한 코냑과 압생트를 반반 섞어 마시
며 술에 의존한 채 살아갔다. 하지만 술은 단순한 유희를 넘어 점점 그의 영혼을 잠식했고, 그는 서른
다섯 살이 되던 해 급기야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초점 없는 그의 삶은 뒤틀리고 흔들리다
가 이내 무너져 내렸다. 그의 세상이 소멸한 것은 서른일곱이 되던 해였다. 그는 이런 말을 남기고 육
체를 벗어났다. “산다는 것은 충분히 슬픕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랑스럽고 즐겁게 나타내야 하지요. 푸
른색과 붉은색 물감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생의 슬픔을 그려 내기 위해서입니다.”
파리에서 돌아온 이후의 삶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나는 마음의 빈자리를 채울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그 무엇은 요가가 되었다가, 커피가 되었고, 또 명상이 되었다. 그렇게 무수히 반복하기를 몇
년, 드디어 내 마음이 쉴 곳을 찾았다. 바로 ‘쓰기’였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수많은 감정들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평화를 얻었다. 7년 전 몽마르트르에서 내게 던졌던 질문의 답을 최근에 이르러서야
발견한 셈이다. 쓰는 행위는 그 어떤 것보다 내가 온전히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 준다. 내 인생에서 쓰
기란, 툴루즈 로트레크의 파란 물감과 빨간 물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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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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