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영화,리뷰,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전유성] 02

by Casey,Riley 2023. 3. 25.
반응형

도서명: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1



유럽여행 103일 동안 15개국을 돌았으니 나라마다 일주일씩 가본 셈이다.
그러니 무슨 수로 그 나라를 얘기할 수 있겠는는가. 그래도 하나 건진 건 있다.
'유럽! 거, 별거 아니더라' 는 거다. 우리가 그 동안 막연하게 알았던 외국에
대한 고정관념. 알게 모르게 그 아해들을 근사하게 여긴 우리의 시선이
틀렸더라는 거다. 그렇게 보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그랬던 거뿐. 예를 들어
프랑스 애들이 자존심 강해서 영어를 안 쓴단 얘기도 말짱 그라다. 모르니까 안
쓰는 거다. 파리 아해들도 영어만 알면 망설임 없이 잘 쓴다.(중략) 이 책이
특히 유럽여행을 할 계획이 없는 사람들. 유럽에 영영 안 가볼 사람들에게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직접 가서 확ㅇ해볼 수 없으니 좀 허풍을 떤들 어떻겠느냐
싶어서다.
프롤로그에서

지은이 전유성
문화가와 방송가를 좌지우지하는 아이디어맨. 서울에서 나고, 서라벌 예대를
나왔다. 영화기획자로, 광고 카피라이터로 다녀간 일했으며, 진로그룹 이사를
역임했다. 심야극장과 심야볼링장을 창안했다. 개업하는 사람 가게 이름
지어주기. 광고문안 짜주기. 실업자 장사 아이템 만들어 주기 등의 취미를 갖고
있다. 아이디어 보따리를 책으로 쏟아놓기 시작해, 스테디셀러가 된 베스트셀러
에세이집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 를 비롯,(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등을 내놓으며 베스트셀러 제조기로 자리 잡았다. 개그맨이란
용어를 처음 만들었고, 지금도 개그맨이다.
프롤로그
5월 11일부터 8월 24일 까지. 103일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왜
갔는가?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들도 다 가니까 갔다 오고 싶어서 갔다
왔다 면 대가리 없는 대답이지만 사실이다.
내 어렸을 적 꿈은 DJ 였다. 그보다 더 어렸을 적 꿈은 여행이었다.
해외여행이 금지돼 있던 시절.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김찬삼 아저씨는 나의
영웅이었다. 나는 몇 권이나 되는 김찬삼 세계여행기를 달달 외우다시피 했다.
나중에 영화감독 이규형이가 유럽여행 갔다 와서 세계일주기를 낼 때 원고지
200매가 넘는 사진설명을 하룻밤 꼬박 새워 붙여줄 정도였다."여긴 파리
근교에 있는 ?? 잖아. 기억 안 나?""아, 이건 스코틀랜드의 ?? 궁전인네, 이
궁전이 언제 지어진 거냐면 말야, 어쩌구!" 이래가면서, 유럽 근처에도 안
가본 내가 말이다.
1년쯤 준비를 하면서 여러 가지 책도 보고, 갔다 온 사람도 만났다.
하이텔의 여행동호회 '세계로 가는 기차' 의 자료들은 틈날 때마다 인쇄를 해서
참고했다. 사진도 본격적으로 배웠다. 여기저기 글을 쓰다 보니까 남의 사진에
내 글이 따로 노는 게 보기 안 좋았거든, 좌우간 엄청나게 찍어댔다. 때마침
후지필름의 광고모델 제의가 있어서 미친 척 필름을 5백 통만 달라고 했더니
진짜로 주더라고, 그거 받아서 다 썼다.
미령이와 둘이 떠나기로 한 건 결혼할 때 한 약속 때문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 좀 놀면서 세상을 살자고 약속하면서 해외여행도 함께 다니기로 했던
것이다. 미령이는 선천적으로 외국어에 소질도 있지만 가기 전에 불어를
개인지도 받은 덕분에 여행을 떠날 때쯤엔 '영어 중국어 능통, 불어 일어 약간'
수준이 됐다. 걸어 다니는 통역기를 곁에 두게 된 거다. 그럼 난 놀고만
있냐고? 나도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어 5개 국어를 그 자리에서 어느
나라 말인지 구분은 한다. 뿐만 아니라 8개 국어로 묵비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그럼 됐지 뭘. 문제는 기간이었다. 얼마나 다녀와야 되는가? 유럽여행 가는
아해들을 보면 보통 40일 정도를 가는데 그렇게ㅔ 똑같이 가서 뭘 보고 느끼며
얘기하겠는가. 한 100일쯤은 보고 와야겠다. 체력적으로도 젊은 아해들을
당해내려면 기본 두배는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이 쉽지, 내가 TV3개
라디오 3개를 하고 있었고 미령이가 TV2개에다 새 판을 막 내놓은 상황에 서울
방송의 '트로트 대행진' 까지 진행하고 있었으니 세 달 이상 시간을 뺀다는 건
무모한 계획 이었다. 주변에서도 걱정했지만 고민 끝에 마음을 정했다. 4월까지
하고 다음 개편에 맞춰 서로 그만두기로 약속을 한 거다. 미령인 약속을
지켰다. 안 하겠다고 강력히 얘길 했는데 난 그러지 못했다. 마음속으로만
관둬야지 하다가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관두지를 못하고 다시 6개월을 더
진행하게 됐다. 마누라에겐 "다음 개편 때 무조건 하지 마 ! 우리 유럽 가야
되잖아 !" 해놓고는 나만 다시 진행을 하게 됐으니 졸지에 배신자가 되고 만
거다. 내내 미안해하다가 결국 막판 결단을 내렸다."까짓 거, 못 먹어도
go다!" 그런데 막상 떠나려는 순간 미령이 판이 나와버렸다. 문제도 있고 해서
할 수 없이 내가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떠났다. 유럽여행
103일 동안 15개국을 돌았으니 나라마다 일주일씩 가서 본 셈이다. 그러니 무슨
수로 그 나라를 얘기할 수 있겠는가, 그냥 길만 알고 온 거다. 그래도 하나
건진 건 있다.'유럽 거 , 별거 아니더라' 는 거다. 여행을 하면서 우리가 그
동안막연하게 가졌던 외국인에 대한 고정관념, 알게 모르게 우리를 비하하고 그
아해들을 근사하게 여긴 우리의 시선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보려고
애를 썼기 때문이다. 배낭여행자들 대부분이 프랑스 애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영어를 안 쓴다고 얘기들을 하지만 그건 사실 말짱 구라다 모르니까안 쓰는
거다. 실제로 파리 아해들도 영어 아는 아해들은 망설임 없이 잘 쓴다. 또
파리에서 지팡이 짚고 길 거리를 괜히 왔다 갔다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근사해 보이지만 사실 20평도 안 되는 좁은 집구석에 박혀 있기 갑갑해서
밖을로 꾸역꾸역 나오는 거라는 걸 알았다. 문화유적뿐 아니라 나라마다 그
나라아해들의 사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이런 식으로 틀리게 생각해온
많은 부분들이 제대로 보았다. 물론 개네한테 괜찮은 구석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 스페인이나 몇몇 동네 아해들의 경우 실지로 흠잡을 게 없을 정도로
정말 친절했다. 그러면 우린 안 친절하냐 이거다. 우리 민족도 알고 보면 무척
친절한 민족이었다."지나가던 과객이인데 날이 저물어 하룻밤 유할까 하오"
이러면 "변변찮지만 들어오세요""누추하지만 안으로 드시지요"이러면서 흔쾌히
사랑채를 내주던 민족이었는데 왜 그쪽만 친절하다 대단하다 그러고 우리 쪽은
밤낮 불친절한 것만 강조하느냐는 거다. 차라리 옛날엔 우리가 얼마나
친절했냐, 그때로 돌아가면 더 근사할 거다. 하는 식으로 가지는 게 내생각이고
깨달음이다. 이 책이 특히 유럽여행을 할 계획이 없는 사람들, 유럽에 영영 안
가볼 사람들에게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직접 가서 확인해볼 수 없으니 좀
허풍을 떤들 어떻겠느냐 싶어서다 (전유성이 말은 도무지 믿을 수 없으니 내
눈으로 꼭 봐야겠다는 분이 있다면 말릴 수야 없지만)
1997년 봄 전유성

제 1장
파리 벼룩시장에서 돈 버는 법
'잔돈 줘, 임마' 는 불어로 꼭 알아두자
김찬삼 세계여행기를 읽으면서 말 그대로 꿈에 그리던 도시, 파리. 이번
여해의 베이스 캠프다, 피리에 본부를 정하고 약 보름씩 왔다갔다하자고 원칙을
정했다. 여름 방학이라 한국으로 돌아가는 한 유학생 아해의 방을 빌려 숙소를
정하기로 했다. 혼자 파리에서 보름쯤 지내는 동안 현지 사정을 익히면서
촬영팀이 외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배낭여행에 웬 좔영팀이냐 하면, 우리
부부가 유럽으로 여행을 간다니까 이왕 가는 거 비디오로 좀 찍어서 방송으로
내보내자는 데가 세 군대 있었다.'사랑의 유람선'으로 알려진 배를 타고
로ㅁ에서 출발해 코펜하겐까지 간다는 거다. 물론 뱃삯, 비행기삯은
프로덕션에서 데고,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승낙을 했다. 덕분에 13일 간의
유람선 생활이 찍히고 국내에 방영되었다. 일이 섞이면 재미가 없다라고
생각했는데 비행기삯. 뱃삯에 눈이 어두웠던 것이다. 어째든 그렇게 해서
파리로 출발했다. 나 혼자 먼저 ! 말로만 듣던 몽마르트 언덕에도 올라가보고
개선문도 가보고 에펠탑도 구경해야지 하며 계획을 세웠다. 나는 참말이지 평생
파리에 못 가볼 줄 알았다. 소싯적 "술레 봉줄 파리 ......" 하며 부르던 노래.
(이 노래가 사실은 술레 봉줄이 아니고 술레 시엘드 .... 이렇게 시작한다는 걸
나는 30년도 더 지나서야 알았다. 우리 어릴적에야 왜 그런 노래 많았잖아.
영어 가사를 소리나는 대로 들리는 대로 한국말로 적어서 외우고 다니던 .)
"왕십리 똥파리 파리의 똥파리 !" 하던 파리. 정말 파리에 똥파리가 많은지도
확인해보고 싶었다. 드골 공항에 내렸다. 우리 결혼식 사회를 본 이상영씨가
마침 그때 프랑스에 와 출판일을 하고 있어서 마중나온다고 했는데 중간에
연락이 끊겨 은근히 걱정이 됐다. 주워들은 얘기로는 드골 공항에 내려서 줄 한
번 잘못 서면 이상한 데로 빠져나간다느니 막 그랬거든. 아니나 다를까 드골
공황은 말대로 정말 엄청 복잡했다. 얼마나 큰지 출국선과 입국선이 마구
헷갈려 공항을 몇 바퀴씩 돌았다. 얼굴 팔렸다고 나만 졸졸 따라나오는
사람들을 본의 아니게 줄줄이 이끌고 여유있는 척 걷느라 진땀이 한말은 흘렀을
거다. 불어라곤 미령이 회화 배울 때 어깨 너머로 주워들은 봉주르밖에 모르니
다저녁에 아무나 붙들고 아침 인사를 할 수도 없고, 길 하나 변변히 물어보지
못한 채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는데 뚝심 좋은 아주머니 한 분이 마침 우리 앞을
지나가는 웬 중년신사를 붙들었다. 잡고 보니 내가 라디오 프로를 진행할 때
출연하신 적이 있는 하이텔 원로방의 유경희 회장이다. 뮌헨에 모임이 있어서
비행기를 갈아타러 가던 중에 헤매고 있던 우리 일행에게 걸려든 것이다.
여기는 엉뚱한 길이라며 바쁜 와중에도 조목조목 출구를 일러주는 유회장님
덕분에 간신히 길을 찾아 나가게 됐ㄷ. 민망했다. 필리핀에서 선탠하다 가끔 살
데는 사람도 있다길래 별 놈이 다 있다며 비웃다가 내가 그 꼴이 되어 2도
화상을 입은 적도 있지만, 그럴 경우엔 왜 꼭 내가 걸리는지 참. 공항에서 나와
일단 몽마르트 언덕 부근에 있는 호텔 뮬랭으로 갔다. 뮬랭 호텔은 사장이
신근수 씨다. 국내 통기타 살롱이 막 생겨나던 즈음에 선데이서울 기자로
친분이 있던 사이인데 열이면 아홉은 실패 한다는 이곳 파리에서 기반을 잡아
호텔을 경영하고 있다. 택시요금이 260프랑 나왔다. 100프랑이 우리 돈으로
만오천원이니까 4만원 가까운 돈이다. 프랑스 택시 요금은 미터기도 있지만
택시기사와 요금 합의를 먼저 봐야 한다. 기사가 트렁크에 가방을 넣어준다고
기뻐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나라 기사보담 친절하다느니 이따위 생각을
하덜덜 말아라. 다 이유가 있다. 무슨 이유냐? 짐 하나에 5프랑씩 받는다.
웬만하면 들고 타자. 택시요금 정말 비싸다. 잔돈이 없어 택시비로
500프랑짜리를 냈는데 무조건 "땡큐 땡큐" 하더니 기사자식이 잔돈을 안 주고
가버렸다. 잔돈 달라는 말을 알아야 달래지."잔돈 줘, 이 자식아!" 하는 말은
불어로 꼭 알아두자!! 한밤중, 한국말로 "엿먹어라 이 자식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게 불모님이 늘 그러셨다.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 비행기
안에서부터 재수가 없더니 결국 파리에 내리자마자 두 번씩이나 덤태기를 쓴
거다. 비행기 안에서 원로방 유경희 회장님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날보고 자기
자리로 오라는 자식이 있었다. 대화중이라는데도, 유회장님의 민망해하는
기색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손짓을 하는 거였다. 유회장님이 돌아가고 나서 그
자리에 갔더니 자기 마누라하고 악수를 한 번 하래나??? 미친?!!(여기서? 한
#1놈 #2님 #3사람 #4당나귀) 그러잖아도 우는 아이를 달래는 애 엄마 목소리가
더커서 '차라리 아이를 울게 내벌려두지 저러나'하고 짜증스럽던 판에 별
이상한 자식까지 등장해서 기분을 더럽게 만든 거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유회장님한테 전화가 왔다. 마누라가 함께 왔냐 묻고는 아직 안 왔으면 꼭 가볼
데가 있단다. 놓치면 후회한다는 유회장님의 추천지는 삐갈의 섹스숍!!!
집구석이 답답하니 밖으로 나올 수밖에!
파리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사방을 기웃거리다 보니 일없이 거리를
오락가락하는 노이네들이 무지하게 많다. 거리를 산책하는 노이네들이란다.
결혼해서 파리에 사는 윤정희 백건우를 한때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파리 하면 유행의 도시오, 패션의 도시, 환상의 도시, 예술의 도시
부러워하는 것도 당연하지 세느 강 아래 흐르는 샹송, 미국보다 훨씬 근사한
도시, 여러 가지 상상의 도시, 가슴으로 머릿속으로 선망하던 도시였는데,
영화배우로 한 참 잘 나가던 배우가 피아니스트와 결혼해 파리에 신방을
차리다니 역시 두 사람 사랑의 힘은 대단하다며 모두가 부러워했다. 얼마 뒤에
흘러다니던 이야기는 배건우 부부 집에 누가 가봤는데, 아파트가 스무 평
정도뿐이 안 되더라는 투의 입방아였다. 나는 30평에 살고 있는데 뭐 거기 가서
고작 스무 평에 산다고? 그러면서 낮춰봤다는 얘긴데, 말하는 사람 자신은
심리적으로 좀 보상이 됐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별 소용이 없는 게 사실 이
나라는 전부 다 스무 평이다. 너나 할 것 없이 그 정도뿐이 안 된다. 교외에
거의 별장이 있단다. 하지만 우선은 좁은 집구석에서 얼마나 답답하겠어???
집밖으로 나올 수밖에. 특히 멋쟁이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들보담 훨씬 많이 눈에
띈다. 할머니들이 뭐하러 저렇게 길거릴 돌아다니나? 했는데 해답은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많아서 그렇단다. 할머니를 위한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면 히트칠 게
아니냐고 했더니 그러면 안될 거란다. 할머니 한 명으로 열시간 혼자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몰라도. 사실 우리나라는 길거리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돌아 다니는 걸 거의 보기 어렵다. 그저 파고다 공원이나 남산
팔각정 같은 데서 우울한 모습으로 모여 있을 뿐이다. 노인을 우대해주는
정책도 없고 사람들도 좋게 보질 않는 분위기 때문이겠지만, 어쨌거나 슬픈
일이다. 생각해보면 젊은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것만 활기찬 거리가 아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길거리에 많이 나다니는 그런 사회가 어떻게 보면 훨씬
좋은 사회다. 프랑스에 노인들이 이렇게 많이 돌아 다니는 것, 나이 먹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건 이 나라가 복지사회라서 그렇다고 얘기들을
한다. 복지는 돈이 있어야 가능하겠지? 실제로 이 사람들 세금 내는 걸 보면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된다. 유럽의 거의 다 그렇단다.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면서도 자선단체 같은 데 기부금도 잘 내는 편이다. 나도 여기 와서
이틀인가 사흘 만에 기부금 때문에 된통 당한 적이 있다. 한 번은 지할철에서
내리는데 흑인 세 명이 웬 쪽지를 들고 와 서명을 해달란다. 뭔가 봤더니
유니세프에 기부금을 내라는 거다."어디서 왔냐! 도와 달라"
어쩌구저쩌구하면서 서명을 하라고 그러는데 이름, 주소 그 다음이 금액이란다.
이거 얼마를 해야 되나, 여기 아해들은 도대체 이럴 때 얼마씩 낼까, 천원 내면
욕먹으려나, 외상도 될까..... 머릿속으로 한창 통박을 굴리며 망설이고 있는데
한 놈이 웃으면서 원제로 제로란다. 100프랑 만육천원이다. 너무 많은 거 같아
망설이니까 얼른 값이 올라간다. 투 제로 제로. 남들은 얼마나 냈는가 대충
눈으로 훑어보니 백 프랑, 2백 프랑도 적지 않다. 하는 수 없이 원 제로 제로
하고 쓰고 그냥 갈려고 하는데 (나는 당장 받는게 아닌 줄 알았다. 주소까지
썼으니 나중에 청구서가 집으로 오는 줄 알았지) 방금 전까지 웃던 자식이
인상을 확 쓰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거다.'더러운 자식들' 하는
기분으로 백 프랑을 냈다. 그런데 내 곁에 있던 이상영 씨는 원 제로만 쓰고
10프랑만 내는 것이 아닌가??? 인상을 쓰려는 그 녀석들한테 이상영 씨가
갑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면서 원 제로 아니냐고 했더니 10프랑도 내지 말고
그냥 가라는 거다. 웃기는 녀석들이잖아!!! 저녁에 목욕을 하다 또 황당해졌다.
욕탕 안에서 느긋하게 목욕하고 나왔는데 물이 넘친 것이다. 이 나라는 하수도
배수 시설이 최고라고 자랑하는데, 그래서 관광코스에까지 배수시설 견학이
들어 있다는데 호텔 화장실은 배수 시설이 없는 곳이 많단다. 물이 빠져나갈
곳이 없으니 마른 수건으로 엎드려 닦는 수밖에, 파리까지 와서 물걸레 청소
자세가 된다는 거, 이거 열받는다.
'길모퉁이의 가페' 는 길모퉁이마다 있다
프랑스는 일본처럼 카페도 집도 모두 좁다. 그래선지 노천 카페, 길거리
카페들이 대부분이다. 노상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열이라면 카페안의 사람들은 반도 안 되는 데가 많다. 사실 여행을 떠나 오기
전에 카페 순례기를 책으로 한 번 써볼까 마음 먹기도 했다. 개성 있는 카페,
사연 있는 카페, 재미난 카페들을 모아서 '전유성이 다녀온 유럽 카페 100군데'
하는 식으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될 것 같다고 바람도 넣었고 여러 군데서
내주겠다고 하면서 돈도 미리 주겠다는데 안 쓸 수가 있나?'멋진 안내서를
써야지' 했다. 카페만 100군데 정도 다녀보자. 미령이보다 먼저 파리에 가 있는
동안 하루에 두세 군데씩 보름이면 30--40개 정도는 써놓을 수 있겠지 그랬는데
막상 와보니 그게 아니다. 특색 있는 카페들이 있나 유심히 찾아봤더니 몇
군데가 있긴 있었다. 각 나라 관광객 손님들의 넥타이를 기념으로 받아서
천장에 매달아 놓은 몽마르트의 피아노 바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몇몇 괜찮은
카페엘 가봤지만 우선 그 카페의 내력에 대해서 지금 일하는 사람들이 잘 모르
뿐더러 "언제 개업을 했느냐" 는 정도의 기본적인 질문에도 대답을 잘 못하는
것이었다 (질문은 내가 했냐고? 현지 유학생을 통역자로 아르바이트 시켰지!)
뭔가 사연이 있는 게 분명한 그럴듯한 그림을 보고 "저게 언제적 그림이고 누구
것이냐" 고 물어도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다. 베토벤이 앉았던 자리라느니
헤밍웨이가 왔다 간 데라느니 하지만 주인을 만나 확인하기도 어렵고 ....
한마디로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결국 포기를 하고 그냥 카페 그 자체를
즐기기로 했다. 우리와는 달리 여기 카페들은 커피 한잔을 먹어도 자리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 길거리에 나앉는 것이 가장 비싸고 그 다음이 창가, 가장 싼 게
서서 먹는 거란다. 국제전화로 미령이한테 얘길 하니 "그럼 안에 서만 먹어!"
한다. 와봐야 알지 , 길거리도 자유롭게 앉되 마구잡이로 의자 탁자를 놓고
먹는 게 아니다. 카페마다 단속경찰들과 약속을 해 길에 금 같은 걸 그어놓고
금 바깥으로 나오면 벌금 딱지를 붙인단다. 차 나르는 아해들이 전부 나르는
구역의 사장이라서 꿈이 카페 사장인 아해들도 많단다. 희한한 건 햇빛이
쨍쨍하다가도 종업원들이 차양을 하나둘 내리면 2 , 3분 안에 틀림없이 비가
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비가 내리다가 햇빛이 나면 거리 카페는 거의 다 만원이
된다. 거리에 앉아서 미니스커트 아가씨들을 보는 즐거움! 하긴 그래서 창밖
요금이 비싼 건지도 모르지!! 비싸게 주고 먹는 커피, 본전이나 뽑자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늙은이, 젊은 아해 할 것 없이 카페에 일단 자리 한 번
잡았다 하면 무진장 오래 앉아 있다. 식사도 길거리에서 많이 하는 게, 이
자식들이 자랑하려고 그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는 사람 많이 만날
때까지 죽치는 건가?? 지나가다 쳐다보면 아주 흐뭇한 표정,"우린 이런 데서
먹는다" 하는 얼굴로 바라본다.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비싼 거야!" 하는
표정으로 말해준다. 사실 나는 파리에 갔다 왔다는 사람도 여럿 만나봤고
사진도 수없이 보면서 유럽을 동경해왔다. 프랑소와즈 사강의 (길모퉁이의
카페) 같은 책은 제목이 너무 좋아 몇 번이고 읽어보기도 했다. 노천 카페
사진도 여러 군데서 봤다. 그때마다 길모퉁이에 카페가 한 개만 있는 줄알고
여러 군데서 봤다. 그때마다 길모퉁이에 카페가 한 개만 있는 줄알고 정말
제목도 잘 지었구나 했는데 웬걸! 파리에 오니깐 길모퉁이마다 카페가 있는 게
아닌가! 그 흔해빠진 길모퉁이의 카페에 영업이 끝날 때까지 앉아 있어본다.
아무데나 앉아 있어도 그냥 좋다. 몇 시간이고 있어도 지나가는 사람을 보니까
심심하지 않다. 야외 카페의 좋은 점은 종업원들의 그냥 가게문만 닫고
퇴근한다는 거다. 눈치도 부담도 안 준다. 미리 돈을 받았으니까 그런가???
당연하지! 한국 사람들을 카페에서 만나면 한국에도 이런 길거리 카페를 만들면
되겠냐고 물어본다. 꽤 진지하게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에 선 매연
때문에 안될 것이고 지방 소도시에서는 햇빛에 나가 앉으라면 땡볕 싫어하는
손님들이 가게를 부숴버릴지도 모른다고 몇 명에게 얘기해줬다. 정말 그러지
않을까? 길거리 카페가 사람들에겐 이래저래 인상적인 모양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지!!!
동전을 넣어야 고해를 들어주는 '자판기 성당'
시시콜콜한 애기만 잔뜩 써놓은 어떤 책 (제목은 잊어버렸음) 을 보면,
자판기를 제일 먼저 도입한 데가 성당이라고 적혀 있다. 성수를 파는 데서
시작이 됐다는 것이다. 몽마르트 언덕 한가운데 있는 사크르 쾨르 사원에
가보면 고해성사를 하고 싶을 때 동전을 넣고 마이크로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신청하는 데가 정말로 있다. 돈을 넣을면 얼마 후 신부가 나와 신자의 고해를
들어주는 것이다. 이 사크르 쾨르 사원의 정면 상단에 보면 웅장한 석상 두
개가 마치 사원 전체를 지키듯 버티고 서 있다. 왼쪽이 잔다크고 오른쪽이 또
누구 상이라나? 하여튼 프랑스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남자 여자란다.
바라보고 있으면 저 엄청난 돌덩이를 어떻게 건물 꼭대기까지 올렸을까
궁금해진다. 파리엔 이 사원뿐 아니라 돌로 지은 집들이 굉장히 많다. 유럽이
거의 그렇단다. 로마 같은 데는 도시 전체가 돌 천지라고 할 만큼,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게 돌멩이를 쌓아올려 지은 집들이 많단다. 요새야 기계로
짓고 막 그러지만 그게 다 생각해보면 오직 사람 몸뚱이로 지은 것들 아냐.
그러니까 혹시 이 집들 지을 때 황제 취미가 레고쌓기나 집 짓기, 노예 부리기
이런 게 아니었을까? 지는 손끝 하나 까딱 않고 서민들은 좇나게 고생한 거지.
황제들도 나중에 그 돌집들이 관광지가 될 줄을 몰랐겠지! 돌집이 많은 이유는
지어놓으니 한 덩어리 쌓고 돌아서서 다시 한 덩어리 들고 가보면 비가 와서
뭉게져 있고 또 쌓고 돌아서면 뭉게져 있고 .... 그래서 할 수 없이 무겁지만
돌로 지은 게 아닐까. 돌집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 무거운 집들을 지으면서
일꾼들이 얼마나 투덜댔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내가 보기엔 기마상
이거 밑에다 둬두 되는데 위에다가 올리는 이유가 뭐야? 누가 설계한 거야?"
"지가 돌을 나르면 얼마나 날라봤어?""이것도 말야, 조그맣게 만들어도 되는데
왜 이렇게 크게 만들었어? 여섯 명이 들게는 해줘야 할거 아냐!" 이런 말들을
마구마구 내뱉으면서 말이다. 일꾼들 고생은 그렇다고 쳐도 이 많은 돌덩이들은
또 어디서 다 구했을까!!! 돌집들을 볼 때마다 무지하게 궁금하다. 돌집을
짓는데 일꾼들을 모집하자 아마 많은 사람들이 모였게지. 십장이 커다란 돌을
자기 앞에 갖다놓고 일꾼들을 대상으로 돌 들어 보기 오디션을 시작했들 거야.
많은 신청자들이 번호표대로 돌 앞에 가서 힘을 써보지만 안돼. 그런데 어떤
비리비리한 청년이 나타나 자기는 그 돌을 나를 수 있다고 말해, 십장이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 니가 어떻게 그 돌을 나르느냐" 고 물어, 그러자
비리비리가 "당신이 시키면 못 들어도 우리 마누라가 시키면 들 수 있다" 고
대답을 하는 거야. 두 사람이 뭐라뭐라 계속 말을 주고받는데 잘 안 들린다. 왜
이렇게 갑갑한가 하고 깨어보니 꿈이다. 어처구니없는 꿈을 꾼 거다. 날마다
돌멩이 집들만 보고 다니니 어느새 꿈에까지 돌이 보이는 건가? 설계
전공한다는 유학생 하나를 만났는데 너무 말라서 내가 걱정스럽게 한마디 했다.
"공사 맡길 때 불안하지 않겠어???" 몸이 부실해 보이니 부실공사 할 것
같아서다. 돌로 쌓은 우리 중앙청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을 볼 적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중앙청 부수는 데 찬성한 사람, 부수기로 결정한 이후 한 번도
후회 안 해봤을까? 지금이라도 돌아서면 당장은 배신자 소리를 듣겠지만
중앙청이 있는 한 영원히 그 이름이 남을 텐데. 오늘 드디어 돌집 사이 거리를
걸어가다 개똥을 밟았다. 그걸 파리에 온 신고식이라고들 한단다. 나흘 만에
이제야 파리에 온 것을 신고 한 셈이다. 개똥 얘기하니까 하는 말이지만 여긴
정말 개 끌고 다니면서 개폼 잡는 자식들이 무지하게 많은 나라다. 개가 순진해
보여서 불쌍한 나라, 크게 짖는 놈 하나 없고 눈치만 살살 살피는 개들. 그러고
보니 한가지 생각나는 게 있다."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어" 하는 사람을 데리고
오면 개똥으로 무슨 약을 쓸 건지 엄청 궁금하네.
파리 지하철에선 표를 버리지 말자
프랑스엔 지하철이 워낙 안 가는 곳 없이 뻗쳐 있어서 지상교통이 그래도
한결 숨쉴 만하단다 (지하로 가니깐 지하철, 전기로 가면 전철, 그럼
엘리베이터는 벽으로 가니깐 벽철인가??) 지하철이 발달하면 우리도 자가용이
많이 줄어들 텐데. 우리 지하철 의자는 다 고정돼 있는데 파리 지하철은
스프링이 달려서 사람이 일어서면 저절로 공간이 되는 의자가 칸마다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자리 양보하는 놈은 없지만 이 임시 자리를 이용해 사람이
많으면 일어서고 없으면 앉고 하면서 혼잡을 줄인다. 그리고 우리는 먼 데 가는
지하철이 더 빨리 끊기는데 여기는 더 오래까지 있다. 우리는 지하철 들어갈 때
표를 찍고, 나올 때 다시 자동으로 회수하는 식인데 여기 지하철은 들어갈 때
한 번 찍으면 나올 때는 다시 찍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표를
아무렇게나 버리다간 낭패를 당하는 수가 있다. 배낭여행 학생들이 그렇게
많이들 버렸다가 봉변을 당한다나. 한번은 우리가 지하철로 딱 들어갔는데 같이
간 함혜리 기자 (이 여자가 누구냐면 서울신문사 기잔데, 프랑스에서 유학한
적이 있고 지금은 기자클럽 연수생으로 뽑혀서 프랑스에 와 있는 여자다.
기자로서 온 게 아니라서 아무 공부나 해도 되거든, 월급은 월급대로 나오고
기자클럽서 돈도 나와 아주 여유롭게 자기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있더라고, 우리
아파트도 구해주고 나를 많이 도와줬다. 왜냐? 일단 프랑스 말을 잘하기
때문이지) 가 지하철을 타다가 철로변에 표를 떨어뜨렸다. 할 수 없이 내 표를
대신 줬는데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말썽이 생겼다. 이상영 씨하고 나하고
둘이 내려 바깥으로 나가려고 출구 쪽으로 커브를 막 틀자 거짓말처럼 표
조사원이 나타난 거다. 당황한 우린 할 수 없이 새 거 하나하고 찍은 거 하나를
건네줬다. 무슨 기계에다 표를 넣고 조작해보더니 이 조사원이 대뜸 하는 말이
" 이 표 안쓴 거잖아요 " 한다. 순간 '아뿔사, 이거 어떻게 해결하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온갖 상상이 떠오른다. 경찰서에 가야 하나, 경찰서는 어떻게
생겼을까, 프랑스 경찰관들도 촌지 같은 거 받으려나, 그럼 얼마를 주지? 설마
사형은 안 시키겠지 .... 하긴 이런 것도 여행하는 재미니까, 한 번쯤 경찰서에
가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까짓거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아니야 혹시
추방시킬지도 몰라..... 소문 나면 어쩌지? 그러구 있는데 조사원이 우릴 보고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 하고 묻는다. 그러자 영어 잘하는 이상용이가 단박에
"노!" 그런다. 그랬더니 지들끼리 뭐라뭐라 그러다가 잠시 후 다음부턴
조심하라며 우릴 그냥 가란다. 외국인이니까 그냥 보내준 거다. 나오면서
이상용이 하는 말이, 거기서 섣불리 영어 좀 할줄 안다고 그러면 막 설명하고
해명하고 그래야 하니까 아예 모른다고 잡아떼는 게 속편하댄다. 역시
대한남아는 머리가 좋아! 우리 지하철은 1번 객차에 타서 2,3번 칸으로
마음대로 옮겨 다닐 수 있는데 여긴 객차 하나하나가 독립돼 있어 그게 안된다.
어쩌다 같은 칸에 표 조사원이 들어왔다 하면 퇴로가 없다. 그래서 여기
아해들도 1호칸서 표 조사를 한다. 그러면 벌써 눈치를 채고 2,3호칸서 후닥닥
막 뛰어내리는 아해들이 많단다. 하긴 그 사람들도 한칸 한칸 조사하게 돼
있으니까 붙잡긴 어렵겠지. 어째든 우린 오리발을 내미록 무사통과했다. 여기
아해들 말이 무존건 도망가라. 잡히면 벌금, 안 잡히면 벌금을 안 내도 된단다.
근사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다. 안 잡히면 안 내는
건 하나마나 한 얘기지, 도망가고 벌금은 왜 내?? 지하철 행정 하는 거 하나만
봐도 그 나라의 국민성 같은 게 대충은 드러나는 거 같다. 영국 같은 데선 표
안 끊는 몇 사람 때문에 표 사서 타는 많은 사람들 불편을 줄 수 없어서 표
검사를 잘 안 한단다. 그런데 프랑스는 이따금 조사원이 검사를 한다. 유럽에서
무임승차를 하는 배낭족들도 가끔씩 있는데, 물론 자주는 안 하지만 걸리면
벌금이 상당히 비싸다.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주초나 월말 월초다. 이때
집중적으로 표 조사를 많이 한단다. 이유는 일주일 권이 끝나면 월요일
깜빡하는 경우가 많고 한 달치도 월말이나 월초에 준비를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는 게 유학생들 얘기다. 샤를 드골 역에 내리니 지하철표 찍는
장치가 정전이다. 직원이 나와서 그냥 넘어가라고 일일이 얘길 해준다. 이럴 때
표 조사원들이 나와서 혹시 걸려봤으면 하는 마음이 잠시 들었다."그냥 넘어
가랬어요!" 라고 말하면 조사원들이 역 직원들과 연결해서 봐주는지, 안
봐주는지, 어떤 상황이 되는지 궁금했다. 크레이지 호스 쇼를 보고 나온 날도
10시쯤인데 표가 다 팔렸다고 그냥 타고 가란다. 여기도 표가 없어 개찰구를
그냥 훌쩍 타고 넘어가는 아해들이 많은데 그게 그렇게 불량스럽게 안 보인다.
한두 번쯤 지하철표 안 끊고 공짜로 타는 건 우리 식으로 치면 마치 어렸을 적
남의 집에 가서 참외서리, 닭서리, 수박서리 추억을 갖는 것과 비스하지
않을까? 그게 사실은 불법이고 걸리는 것이며 잡혀가면 큰일나는 건데도 "아,
그때 내가 참외서리 했었지" 하는 사실이 어른들한테 묘한 낭만과 향수로
남듯이, 그 아이들도 켜서 "그때 내가 말야, 사실은 돈이 없어서 지하철을 몰래
타고 다녔어 .... 갈 데도 없는데 친구놈이랑 어디 까지 갔다구 ..... 얼마나
두근두근 조마조마했는지 몰라 ..... 뭐 이러면서 아련한 추억에 잠길 거
아니겠느냐는 거다. 이웃 과수원의 참외를 서리하거나 친구들이랑 어울려
순전히 재미로 산불을 내고 그래도 그것에 대해서 뭐 그렇게 야단치거나 그러는
사람이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 이니겠어? 우리도 왜 옛날에 그런 말들이 더러
있었잖아. 술 취한 어떤 놈 하나가 깨보면 왕십리, 또 깨보면 왕십리, 하도
차가 안 가길래 ' 내가 이거 취해서 환승 지하철을 타고 몇 바퀴를 돌았나'
했는데 나중에 보니 기차는 안 타고 세 시간 동안 왕십리역 벤치에 앉아
있었다는, 그런 실없는 얘기들을 하면서 지하철타는 걸 즐기기도 하고
그랬잖냐구! 파리 지하철 정거장은 다음 정거장 표시가 없다. 나중에 봤더니
유럽의 지하철이나 기차역엔 거의 다음 역 표시가 없었다. 그러니까 타기 전에
노선표를 보고 내릴 정거장이 몇 번째인가를 확인한 후 타야 한다. 내가 파리
시장이 되면 다음 정거장 표시를 하자고 해야지! 잘돼 있다고 소문나 파리
지하철이 알고 보면 굉장히 불편하다는걸 오래 있어본 사람이나 유학생들은
안다. 화장실 없지 문도 자동이 아니지 칸마다 왔다갔다도 안되지, 정말 엄청
불편하다고 한 친구가 말했다. 그러자 다른 한 친구가 대답한다."야, 임마!
대신 잘 빠진 얘들이 많이 타잖아!" 그건 그래!!!
여기서 퀴즈 하나 내고 넘어가장.
(문)1. 파리에서 산 지하철표는 다른 지방, 예를 들면 뚤루즈에서 사용할 수
있을까? 없을 까?(해답은 41 페이지에)
#1 사용할 수 있다.
#2 사용할 수 없다.
#3 역엥서 파리 지하철 표를 집어넣고 뚤루즈 행 표로 바꿔서 사용할 수
있다.
#4 파리에서 사용한 지하철표에 4프랑을 더 내면 뚤루즈 지하철표로
교환해준다.
(문)2. 앞의 #1 #2 #3 #4 중에 해답이 있을까 없을까?
#1 있다.
#2 없다.
파리 벼룩시장에서 돈 버는 방법
파리 벼룩시장에 갔다. 러시아 군복, 프랑스 훈장, 그리고 독일군 군복
군모가 나란히 있었다. 그걸 입고 달고 했던 사람들은 원수지간으로 싸웠는데
이제 중고가 되어서 주인은 간 곳 없고 사이좋게 새 주인을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는 거다. 독일군 장교 모자를 하나 사서 쓰고 다녀보니 남의 일에는
무관심이라는 프랑스 사람들도 안 쳐다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쳐다보고
난리다. 하긴 서울 거리에서 미국 사람이 괴뢰군 모자 쓰고 다니면 얼마나
웃기겠냐, 아마 그렇게 보인 모양이다. 길 가는 친구를 막 쫓아가 등을 두드려
갖고는 "쟤 좀봐! 쟤!!" 하면서 날 가리킨다. 그 차림이 웃긴다는 거지. 하여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날 쳐다봤다. 길에서 만난 포르투갈 아해에게 미국
아해냐고 물었더니 포르투갈이라고 말한다. 우리한테 일본인이냐고 물어보면
기분 나쁘듯이 이 아해들도 고향에 가면 "야, 길에서 만난 어떤 동양애가
우리보고 미국 아해 아니냐고 물은 거 있지. 아주 기분 나빴어" 하고
친구들끼리 화제에 올릴까? 함혜리 기자의 피리 생활을 위해 벼룩시장에서 싼
침대를 하나 사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지하철에 똑같은 침대사진이 광고로 나와
있었다. 벼룩시장에서 산 것 보다는 많이는 이니지만 상당히 쌌다.
벼룩시징이라고 무조건 싼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옆집이 싸게 판다고 나도
싸게 팔리는 법은 없는 것이다. 그나저나 나는 써보지도 못할 침대 조립을
해주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함혜리 기자랑 침대를 오르락내리락 했네!
벼룩시장에서 돈 버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유학생들 사이에 돈다. 한국
유학생이 한글 사인이 들어 있는 거지 같은 그림을 하나 샀는데 그게 알고 보니
유명한 우리나라 화가의 그림이었단다. 물론 무명시절에 그린 것이긴 하지만
1억 5천만원에 팔아서 횡재를 했다는 거다. 12년 전쯤에 있었던 실화다.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 이야기를 나한테 들려준 그 학생도 시간만 나면
벼룩시장에 나가서 한글 사인을 찾는다는데 그게 쉽나! 하지만 내가 결정적으로
벼룩시장 나가는 것을 포기한 진짜 이유는 그럴 걸 사려는 유학생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는거다. 벼룩시장은 유래가 처음에 자기가 안 입는 옷을 갖다
팔기 시작하다가 지금처럼 되었단다. 그래서 옷 안에서 벼룩이 튀어나오고 해서
이름이 그렇게 되었다는 거다. 하고 들은 이야기를 해줬더니 유학생아해가
아니라고 막 우기는데 나도 맞다고 우길 수도 없고 난감했다. 대개
벼룩시장드링 쓰던 물건을 파는 걸로 알고 있는데 유럽 여러나라를 다니면서
벼룩시장을 보면 그렇지가 않다. 새것도 팔고 싸구려 물건도 섞어서 파는 곳이
대부분인데 빈 벼룩시장에 가니 정말이지 쓰던 물건들만 파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빈의 벼룩시장은 유럽에서 가장 전형적이다.
그런데 거기선 집시 여자들이 장사를 하고 남자들은 열이면 열 낮잠들을 자고
있다. 빈 남자 집시들은 밤일만 하나? 밤일? 도둑질??? 빈 벼룩시장에서 그릇
하나 사면서 깎으려고 돈이 없다고 하자 집시여자가 배시시 웃으면서 배띠를
가리킨다. 그러면서 "거시 돈 있잖아!!" 하는 것다. 이것들이 훔친 물건들
교류하며서 정보도 교류하는구만!
34쪽 (답)#2 사용할 수 없다. 도시마다 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다 다르다.
그러나까 (문)2 해답은 묻지 마!
소화제 넣은 루즈 만들면 뜰걸?!
퐁뇌프 다리 위쪽에 학사 다리라는 것이 있는데 차가 안 다니는 세느 강의
유일한 다리다. 돈 없고 갈 곳 없는 젊은 아해들이 늘 진을 치고 있는 곳이다.
우리랑 묵고 있는 사진 전공 유학생 현준이가 학년 바뀐 걸 축하해주려고 맥주
몇 캔을 비닐 봉지에 싸들고 학사 다리로 갔다. 벼룩시장에서 산 북을 두들기는
패거리 옆에 앉아서 우리는 술판을 벌였다. 그냥 바닥을 두드리는 아해도
있었고 다리 저쪽에도 북을 두드리는 아해들이 한 패거리 더 있었다. 한 아해가
왔다갔다하더니 두패거리가 합주를 하기로 한 모양이다. 박자가 안 맞는 소리에
맞춰서 까불면서 춤을 추는 여자 아해도 보인다. 우리 뒷자리에는 벤치에 맥주
한 병씩을 사다 놓고 소곤소곤하는 한 쌍이 보인다. 아주 듣기 좋고 보기 좋다.
맥주를 마시다 말고 보니 소곤소곤쌍, 언제 우리 옆으로 왔는지 옆에서 키스를
하고 난리가 났다. 여자 아해가 더욱 적극적이다. 빨고 핥고 한창이다. 이젠
여자 아해가 두 다리로 남자의 허리에 깍지를 끼고 흔들어대고 남자 아해는
여자 아해 입가의 침을 닦아가면서 도원경에 빠져 있다. 나는 그런 그림을 볼
때마다 어릴 적 그렇게 많았던 동네 게들 흘레하는 모습이 자꾸 생가가난다.
그경거리가 없던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개들 하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을 했다. 짖궂은 사람이 찬물을 끼얹으면 떨어진 개 두 마리가
깨갱거리면서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는 걸 보고 즐겼던 시절이 있었는데 .....
처음 사귄 여자와 아직은 친해지기 전이라 서로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면서
키에르케고르가 어쩌구 테스가 저쩌구 고상한 말만 하면서 걸어가다가 개들이
하는 걸 보면 서로 못 본 체하고 지나가면서 정말정말 민망했다. 속으로는 "야,
개새끼들 좀 봐!" 하고 싶으나 못하고 지나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에
오니 정말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광경을 보게 된다. 지하철, 역, 공원, 길거리
심지어 성당 안까지 정말 키스하는 사람들이 무진장 굉장히 엄청나게 많다.
아무데서나 끌어안고 키스를 막 한다. 쭉쭉 소리를 내가면서 벌건 대낮에
말이다. 자세히 보면 남자 녀석들 앞바지가 불룩하다. 7일 된 배낭족 여학생과
15일 된 배낭족 여학생한테 파리에 와서 끌어안고 키스하는 것을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을 가졌냐고 물었다. 개방적인 나라라지만 너무 자주 보게 되는 거는
충격적이라고 말한다. 유학생 여자 아해들에게 물어보니 "처음에는 놀라고
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가 대부분이고 "아, 내가 외국에 왔구나"
"자유롭구나""영화를 보는 거 같았어요" 그런다. 나도 그랬다. 으슥한
골목에서 남들이 볼까 눈을 요리조리 돌려가면서만 키스를 해본 나로선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우리 가게 '학교종이 땡땡땡' 에서 대낮에
키스하는 애들이 몇 번 있었다는 얘길 들었다. 어떤 녀석들일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내 눈에 한 쌍이 적발 되었다. 책 같은 걸로
가리면서 하는데 둘은, 특히 남자 녀석은 책으로 가리면 남들에게 안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두 번, 세 번, 그리고 네 번 하려는 찰나 나는
도저히 그러는 게 싫어 두 명의 머리통을 따로 떼어놓았다."야, 다른데 가서
해!" 그러자 두 아해가 화들짝 놀라는 거였다. 그래 놓고 나는 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저게 뭐가 어때' 하는 생각 '저놈들이 얼마나 민망했을까? 나도
저 세대에 태어났어야 하는 건데' 하는 부러움, 질투, 희망사항, 번뇌,
백팔번뇌 .....!!!!! 어쨌든 내가 뭐라고 생각하든 아해들은 키스를
쭉쭉거리면서 한다." 이 나라에 살려면 이빨을 잘 닦아야 될 거야" 하고
말했더니 "그런 거별로 신경 안 쓰는 거 같아요. 햄버거 먹다가도 하는데요"
이런다. 우리는 부둥켜안고 있는 한 쌍 곁을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한국말로
지껄인다. 우리끼리 웃으면서 말이다."야, 여관으로 가라. 여관!" 하긴 여긴
여관이 별로 없더구만! 그러니 길에서들 저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궁금하다. 왜 저렇게 열심히 키스들을 할까?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쟤네들이
키스를 하는 이유는 지나가던 남자가 자기 여자를 유심히 쳐다보면 자기 거라는
걸 보여주려고 하는 거란다. 내 생각엔 그보다는 파리가 길이 워낙 복잡하고
비슷비슷하다보니 서로 잃어버리지 말자고 키스하고 다니고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것도 아닌가봐. 이무데서나 자식들이 그러더라니깐. 내가 봐도
뻔한 길. 찾기 쉬운 공원이나 지하철 같은 데선 왜 그러는 거야???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혹시 이 아해들이 키스를 잘하는 게 오징어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우리는 입이 심심하면 오징어를 먹잖아. 연애 걸 때, 영화
구경할 때, 요즘은 차 막힐 때 심심풀이로, 입을 심심지 않게 해주려고 많고
많은 오징어 마리들이 우리의 목구멍을 짓씹힌 채로 넘어갔다 (우리는 언젠가
오징어 임령제를 한 번 지내줘야 해!!) 파리 아이들 오징어를 안 먹어서 입이
심심해서 아무데서나 입맞춤을 하는 건 아니겠지??? 사실 얘네들은 앙무 죄가
없는지도 몰라. 이상한 건 오히려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거든, 우리네
키스가 워낙 으슥한 골목에서만 이루어지다 보니 법으로 골목에서 하라고
정해진 것도 아닌데 낮에 하거나 남이 보는 데서 하면 큰일나는 것처럼 말을
하는 거 아니냐 !!! 버스 안에서 젊은 미국인 아해가 일본 노인에게 자리
양보를 했다. 그런 건 처음 봤다. 내 옆에 앉았던 아해였는데, 여기도 경로우대
사상이 있나 했더니 자기 여자 친구가 앉아 있는 곳으로 간다. 여자 친구 옆에
서 있겠구나 생각했더니 웬걸! 자기 여자 친구를 일어나라고 하더니 자기가 그
자리에 앉고 여자 친구를 자기 무릎에 앉히는 거다. 그리고는 키스를 하고
난리가 났어. 내가 한마디했지."굿 아이디어!!" 미국 아해가 막 웃었다.
드디어 영어로도 웃겨봤네!! 그런데 어느 날 지하철에서 만난 한국 여자 아해,
한국 남자 아해의 무릎에 앉아 있는데 보고 있으니 왠지 열받네! 참, 이건 파리
와서 생각한 건데, 우리도 화장품들이 많지만 말이야, 유럽 화장품 회사에서
입술에 바르는 루즈를 이제는 그 뭐랄까 먹어도 되는 영양제를 개발하면 어떨까
싶다. 간장이 좋아지는 약, 위장이 좋아지는 약, 술 깨는 약, 영양제가 섞여
있는 루즈를 개발하면 제법 팔릴걸. 길거리에서 키스하는 아해들이 하도
많으니까! '우리 애인은 장이 안 좋으니깐 장에 좋은 약이 섞인 루즈를 사서
바르고 나가야지!'"자기, 어젯밤에 술 마시고 속이 안 좋다고 그랬지? 내가
오늘은 술 깨는 약 든 루즈를 바르고 나갈게!"'오늘 그이가 소화가 안 돼서
속이 안 좋다고 했는데 오늘 나갈 때 소화제가 섞인 루즈를 듬뿍 바르고
나가야지' 할 것 아닌가???(여행하면서 내가 예언한 몇 가지 가운데 아마 이건
분명히 나올 거야. 틀림없어!!!)
퐁뇌프 다리에서 생긴 일
퐁뇌프 다리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지극히 한국적인 소리가
난다. 내용은 잘 모르겠는데 난간에서 흑인이 강에 대고 막 지껄여댄다. 술
많이 마시고 혼자 강에다 대고 푸념을 하든지 하소연을 하든지 억울함을
풀어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일행 하나가 그 친구의 소리를 알아들었다.
그리고 소리친다. 사람이 빠진 거다. 우리는 세느 강을 내려다보았다. 흰 옷
입은 아해 하나가 헤엄을 친다. 시간은 밤 열두 시를 넘었고 우리 일행은 흰
옷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장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판단이 안
섰다. 장난일 수 는 없다. 장난이면 윗도리라도 벗고 들어갔을 텐데! 옆에서
누가 통역을 해준다. 방금 강에 대고 소리 친 녀석은 "천천히, 천천히, 침착해!
내가 갈게!!" 하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구경하는 사람은 우리 일행하고 몇
안 되는 관광객뿐이고 한쪽 구석에서 노는 아해들의 북소리는 그대로 엇박자를
쳐대고 있을 뿐이다. 벤치에서는 남녀 한 쌍의 그 짓이 한창이다. 우리 일행 한
명이 비디오 카메라로 열심히 빠진 사람의 모습을 찍었다. 나중에 보니
건져내는 장면은 마침 지나가던 유람선의 불빛으로 특히 생생하게 찍혔다. 해양
경찰서 배가 두 대 달려오고 이어서 육지 에서는 특수 구조대가 달려왔다.
비디오 카메라가 쉴새없이 돌아가다가 구조대원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이 친구가 못 찍게 한다. 필름을 내놓으란다. 완강하게! 경관은 얼굴이 팔리면
안된단다. 도둑이 얼굴을 기억했다가 알아보고 도망갈 수도 있고, 경관이 먼저
당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냔다. 안 찍었다. 찍었다. 옥신각신하다 우리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테이프 바꾸게 빨리 말을 시켜!" 한쪽에서 "우린 관광객이다.
그냥 가겠다""그런 거 내가 알 바 아니다. 빨리 내놔라" 어쩌구저쩌구 하는
사이에 테이프가 바뀌었다. 이 친구, 우리가 도망가려고 슬슬 빠지니까 다른
경찰을 무전기고 바로 부른다. 자기 얼굴 지운 걸 확인하고 보내 주겠단다.
하라는 대로했지! 지 얼굴이 있을 리가 있나, 없지. 잔머리가 빠르지! 우리는
풀려났다. 한 이삼 분 걸어오는데 아까 무전기로 부른 경찰차가 나타난다.
뒷북을 치는 거다. 잔인한 농담이 시작되었다. 이거 방송국에 팔면 얼마나
받을까? 죽어야 특종이 되는 건데, 방송국에 전화해봐, 건진 상황 묘사를
생생하게 하라구, 옮기다가 죽든지 아니면 병원에서라도 죽어야 되는데, 지금
우리 잡으려고 수배 내려진 거 아냐?! 공항이 폐쇄되고 전국 경찰에 비상령이
떨어지면 재미있을 텐데, 등등. 비록 딴 나라 사람들이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일인데 .....다음날 아침 서울에서 전화가 와서 어젯밤 이야기를 했더니
마찬가지다."그 친구가 죽으면 특종이 될 텐데, 방송국에 연락해보지 그랬어?
그냥 한만 프랑 달라고 해보고 혹시 죽었으면 더 달라고 해봐. 좀 유명한
사람이면 더 받을 텐데!!!" 생각해보면 이런 잔인한 농담들을 말하지만 개그맨
세계의 직업병 같은 거다. 굳이 개그맨이라기보다는 방송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병이라는 게 맞을 거다. 개그맨들이 방송 같은 데
나와서 하는 얘기는 데부분 웃기라고 꾸며낸 이야기들이다. 평소엔 엄청나게
잔인한 농담들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예를 들어 이성미가 어느 날 방송국
나오다가 어린애랑 접촉사고를 내고 울면서 온 적이 있다. 그때 우린 농담으로
" 야, 어린애 친 거는 저번에 써먹었어. 할아버지 친 거로 바꿔" 또 언젠가는
임하룡이 김영삼 대통령 취임날 텔레비젼 모서리에 이마를 찧어 Y자 모양으로
찢어져 갖고 방송국엘 왔는데 그걸 본 우리는 "야, 그거 괜찮은데, 기왕에 찢은
거 S자 모양으로 한 군데 더 찢으면 보기 좋겠다야" 막 이랬다. 또 한 번은
내가 어느 자리에선가 농담 삼아 집을 사지 않겠다고 말을 하니까 이걸 전부
진지하게 믿고 심지어 어떤 아파트 회사에서는 분양광고를 "집을 사지 않겠다던
전유성이 마음을 바꿔......" 이렇게 뽑기까지 하는 거다. 재미있으라고 한
말을 진짜로 믿는 사람들도 황당하지만 엄청난 농담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대는
우리들의 말버릇도 사람들을 때때로 놀래키니 이게 다 직업병 아냐, 그런데
궁금한 건 말야, 이런 것 땜에 뒤탈이 생기거나 그러면 그런 것도 산재적용이
되는 거야?
거리 공연에서 만난 차력사의 아픔
여기는 공연 구경값이 비싸단다. 구경은 좋아하는데 값이 그렇게 비싸니
길에서 조금만 이상한 짓거리를 해도 돈을 잘 준다. 술 먹고 비틀거리는 놈이
있나, 길거리에서 싸우는 놈이 있나, 그러니 구경거리에 굶주릴 수밖에. 사실은
밤이 길어서 그렇단다. 밤이 기니까 심심하지, 안 심심하려면 뭔가 봐야지,
보여줄 궁리 해야지. 그러니 어떤 놈은 쓰고 어떤 놈은 읽고 그러면서 긴긴
밤을 때우는 거야. 음악도 요즘 유행가 처럼 3--4분짜린 짧다구, 밤이 되면
술이나 마시려는 우리네랑은 다르지? 구경거리가 없으니 괜찮은 여자애나
지나가면 양아치 같은 애들이 휙휙 휘파람을 불어대는 거 아니겠어? 박물관이나
길거리를 가다 보면 마네킹처럼 꼼짝 않고 서 있는 놈을 더러 만난다. 약
10분쯤 지켜서서 봤는데 정말 안 움직인다. 아마 앞에 놓인 돈 통을 들고 뛰면
쫓아오겠지, 그러나 이해할 수 없고 웃기는 건 사람 안 움직이는 거 보고 돈
준다는 사실이다. 정말 웃기는 얘기 아니냐. 채플린 그림 그리는 녀석한테는
깜빡 속았다. 이놈이 그림을 펴놓고 그리는 척하는데 정말이지 감쪽같다.
조금만 주의해서 보면 실제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림 펴놓고 그리는 척한다는
걸 알게 된다. 웬지 너무 잘 그렸다 했지!!! 나중에 우리가 방을 얻은 현준이네
집 앞을 왔다 갔다 하다가 봤는데, 슈퍼마켓 옆에 그 동네 거지들 모이는 데가
있거든, 거기에 그녀석이 있더라구, 가짜 그림을 둘둘 말아들고 말야, 거지
였나???? 우리나라엔 거의 없지만 외국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거리공연이 으레 벌어지곤 한다. 어느 아해는 길이가 3미터가 넘을 듯한
구렁이를 몸에 칭칭 감고 다니면서 사람들이 원하면 목에 걸어주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고 10프랑을 받는가 하면, 어느 아해는 귀여운 고양이를 바구니에
담아 자전거에 싣고 다니면서 사람들마다 귀여워서 만져보게 하고 돈을 받기도
한다. 길거리 공연하는 아해들도 각양각색이다. 불 먹는 아해 장대 밑으로
림보춤 추며 지나가는 아해. 채플린 옷 입고 안 움직이고 서 있는 아해. 동상
모양으로 있는 아해. 바이올린 겨는 아해. 플루트 부는 아해. 요들송 하는 아해
등등. 공통점은 모자에 돈을 받는 것이다. 한 번은 니스 길거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빈 자리를 찾아 들어가 구경을 했는데 병을 수십 개 깨뜨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약장수들이 하는 차력이려니 하고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뭐라고 떠들면서 병을 깨부수어서 깨진 유리조각을 쌓아놓는다.
그러니까 아마 진짜 병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 같은데 그 양이 족히 한 가마니는
되어 보인다. 그리곤 윗도리를 벗는다. 구경꾼 중에 몸무게가 아주 많이 나가는
뚱뚱한 사람을 고르고 또 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을 골라서 깨진 유리 조각에
마주보며 서게 한다. 윗도리를 벗었으니 눕기나 엎드릴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보고 있는데 그게 아니고 깨진 유리조각에 엎드려 얼굴을 갖다 댄 다음 뚱뚱한
사람보고 앞에 있는 사람 팔을 잡고 자기 뒤통수를 밟으라는 것이다. 시키는
대로 뚱뚱한 사람이 한 발을 뒤통수에 대니 엎들려서 소리친다. 마저 한 발을
올려놓으라고! 뚱뚱한 사람이 두발을 올려놓고 한참을 있게 한 다음 내려가게
한다. 죽든 듯이 가만히 있는 거리늬 예술가, 차력사! 긴장해서 조용히
쳐다보는 관객들. 잠시 후 그가 얼굴을 든다. 얼굴이 유리에 찢겨져 피가 철철
흐른다. 아이고! 사람들은 끔찍스러워하고 올라갔던 뚱뚱이는 미안한지 어둠
속으로사라진다. 두 군데에서 피가 철철 후른다. 묘기도 이쯤 되면 보는
사람이 더 괴롭다. 그러나 피흘리는 아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바로 돈
통을 들고 돈을 기다린다. 사람들이 각기 돈을 꺼내준다. 다른 거리의 공연보다
많은 돈이 쌓인다. 그야말로 거리 공연의 3D다. 돈벌이를 해도 어떻게 저
따위로 하는가 싶다. 물론 안 다친 날이 더 많았겠지. 하긴 다쳤다고 일어날
수도 없을 거야, 거기까지 손님들 끌어 모았으니까. 조금 참으면 돈 걷을
시간인데!!! 거기까지 하고 안할 수도 없잖아.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시절, 초대 손님으로 나온 어느 중견 가수가 생각난다. 살아오면서 가장
웃긴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해 달라는 코너였다. 이 가수가 신인시절에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데 갑자기 세트가 내려앉아서 무대 바닥으로 떨어졌단다.
그래도 자기는 박자를 놓칠까 봐 아픔을 참고서 계속해서 노래를 했단다.
엉금엉금 기어 나오면서도 노래를 불렀다는 거다. 가수가 무대 밑으로
떨어졌으니 당연히 NG인데도 불구하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노래를 불렀다니
얼마나 웃기는 상황인가! 신인시절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에피소드지만 그 얘길
들으면서 깔깔대고 웃는 한편으로 어떤 여운이 남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한 시간 후에 카페에 앉아 있다가 거리를 지나가는 그 차력사를 다시 봤다.
얼굴 찢어진 곳이 그때까지도 아픈 모양이다. 손으로 연신 피 난 자리를
만지면서 걸어간다.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저것도 밥벌이가 된다고
배웠겠지! 다른 거 하면 안 되나? 관객의 박수 맛은 정말 아편 같은 거야!
하늘은 다르지만 같은 연예인 동료로서 연민의 정이 생긴다. 그건 그렇고 이
사람들, 거리공연을 그냥 할 게 아니라 어느 기획자가 말이야, 그들을 한데
모아 두 시간짜리로 만들어서 조직적으로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든다. 돈은 나중에 각자가 똑같이 뿜빠이하고 말이지. 거리공연끼리 경쟁도
되고 한 달에 한 번 거리공연 축제도 하고 동남아 해외공연도 떠나고 말이야.
집 나온 지 십오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호출기 소리가 나는 듯하다. 호텔 옆에
무슨 지지지 하면서 물 트는 소리 같은 게 나면 나도 몰래 호출기를 찾아
바지춤을 보게 된다.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까 나뿐이 아니고 한 다섯 명 정도
그런 아해들을 만났다. 세수를 하는데 이상한 소리가 난다. 혹시 전화 소리가
아닌가 하여 얼굴을 씻다 말고 내다본다. 아이고 지겨운 호출!!! 호출기 소리를
들으면 늘 떠오르는게 있다. 어느 회사 제품이건 소리가 비슷하다는 거다. 그럴
이유는 없는 거 아냐? 다른 걸 찾아볼 생각도 안 하는 건 다 머리가 굳어서
그래. 예를 들어, 최초의 호출음은 뭐였을까? 타잔이 아아아-- 하는 소리
아닐까??? 온 동네 동물들이 동시 호출되어 뛰어오니깐 말야. 그걸 호출기에
그대로 넣는 거야. 호출기 이름은 '타잔' 이라고 짓고! 틀림없이 히트칠껄! 껄?
껄걸껄 ? 웃음소리가 나와도 되겠네!!!

제2장 우리 돈에도 코미디언 얼굴을 박자
가이드는 시의원 관광객을 싫어한다.
미령이가 왔다. 사랑의 유람선을 탔다. 앞으로 13박 14일간 배 위 생활이
시작된 거다. 코펜하겐까지 간단다. 첫 정박지는 로마다.
로마 가이드들은 시의원 이야기를 많이 한다. 파리에서도 유학생 집의 선배가
김현수라고, 현지 가이드를 하는데 이 친구 말이 시의원들은 정말 손끝 하나
까딱 않는단다. 그렇게 많이 시킨대. 한국에서 워낙 일을 많이 하다가 온
탓일까!!!
시의원들이 왔다 하면 가이드들은 정말 열받는단다. 기피대상이란다. 로마
시의원들이랑 만나게 해달라고 막 졸라서 억지로 만나게 해주면 고작해야 로마
인구가 몇이냐고 물어보고 의장이 안 나왔다고 열받는다고 퇴장하고 (의장이
스벌, 지들 만날일 있어? 의장은 안 바뻐?) 아무 방이나 막 문 열어보고
타이프 치는 여자를 보면서 "이 여자는 뭐하는 여자냐?"고 물어본단다. 그래서
그 여자가 타이프 치다가 놀라서 소리를 지르게 한단다.
현수라는 친구 말에 의하면 여기 가이드들이 대부분 아주 오래된
베테랑들인데도 가이드가 뭔 얘길 하면 굉장히 건방을 떠는 손님들이 많대.
그래서 화가 나니깐 거짓말로 설명도 막 하고 그러는 후배 가이드들이 많은데,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얘길 하라고 자기가 그랬다는 거야."유럽에 대해서
잘 아실 테니까 자세한 얘긴 생략하고..." 이렇게 말야. 그래서 후배들이
정말로 "노트르담에 대해선 여러분들이 저보다 더 잘 아실 것 같아서 자세한
얘긴 생략하고...""콜로세움에 대해서야 여러분들이 너무 잘 아실 테니까
자세한 얘긴 생략..." 이런 식으로 한 몇 번을 하니깐 열심히 잘 듣고 잘
따라주더래.
가만 보면 해외여행 초보자들은 갔다 온 나라가 입에 붙는 경우가 있다.
일본에서는...?? 영국에서는... 막 그런단 말이지.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눈으로 본 것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가이드들이 들려주는, 가이드들도 확인을
안 한, 그냥 재미있어서 한 전설이라든지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마치 자기가
보고 온 양, 혹은 "가이드가 그러는데 " 하고 가이드들의 레퍼토리를 그대로
써먹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여행객이나 들어준 사람이나 그런 함정에 빠지지
말 일이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개그맨들 가운데서도 내가 해준 얘기를 듣고 이리저리
옮기고 다니다가 다시 나한테 해주면서 마치 자신의 창작인 양 얘기하는
아해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인수분해 공식은 못 외우면서 연예인 스캔들은
기사를 보는 대로 다 외우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언젠가 우리집에 전화를
걸어온 어느 여자는 내 팬이라면서 혼자 숨도 안 쉬고 떠들더니 갑자기 "그런데
전유성 씨, 옥소리하고 변우민이 왜 헤어졌대요?" 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내가 잘 모르겠다고 하니까 같은 연예계에 있으면서 왜 모르느냐는 거
있지.
참! 황당한 메뚜기더구만. 그래서 내가 그랬다."너는 회사 다닌다는데 회사
다니는 사람들 연애하는 건 다 알고 있냐?"
가이드가 하는 말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유적지가 나오면 설명을 해준대.
그러면 설명중에 "야, 시끄럽다 " 그러는 놈들이 그ㄹ게 많대. 로마에
유적지라고 가보면 왜 기둥 부러진거, 부서진 거 그런 거 널린데가 많잖아,
그러면 "에이, 이거 다 허물어버리고 아파트나 짓지 " 하는 할머니도 있다는
거야. 비행기 안에서 집에 갈 거라며 빨리 문 열어 달라는 사람이 없나,
유적지나 궁전 앞길 같은 데서 갑자기 백주에 노상방뇨를 하는 할아버지가
없나. 정말 울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거야. 이태리 관광 중에는
밀라노에서부터 로마까지 쭉 내려가는 버스투어가 있거든. 가이드가 이태리에서
로마로 간다 그랬더니 어느 아주머니가 버스에서 벌떡 일어서서 큰소리로
"이태리여 안녕! 우리는 로마로 간다!!!" 그래더래나.
말을 들어보니 이태리에 음악 공부하러 왔다가 한계를 느끼고 가이드가 된
사람도 많고, 사실 이게 쉬운 일이 아닌데 하겠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단다.
그렇지만 결국 열 명 중에 두 명꼴만 살아남게 된단다. 내가 "가이드 이게 사람
비위 맞추는 일인데 얼마나 어렵겠냐. 내장 꺼내서 집에다 널어놓고 다녀야
되지 않겠냐 "고 그랬더니 그렇단다. 집에 돌아가서 쓸개 껴안고 많이도
울었단다.
원형을 좋아해서 원형극장이 많은가?
"로마, 하루에 다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3개월로는 모자랍니다." 은퇴
가이드의 명언이란다. 얼마나 많이 써먹었을까? 그 말을 제일 처음 사용한
사람도 밝혀야 되는데. 자신이 제일 먼저 사용했으면 왜 이말을 사용하게
되었는지도 밝혀라 (왜 밝혀?)!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말은 트래비 분수에서
어느 교황이 제일 먼저 사용했단다. 그래서 그 유명한 '한번 던지게 되면 다시
찾게 되고 두 번을 던지면...' 이 말이 나오게 된 거래나.
사람들 얘기론 정말로 트래비 분수에 동전을 하나 던지면 로마로 다시 오게
된단다. 두 개면 로마에서 사랑에 빠지고 싶을 때, 세 개는 싫은 사람하고
헤어지고 싶을 때란다. 차라리 싫은 사람을 던지지. 그렇게 헤어진 사례가 진짜
있단다. 하루에 약 400만 리라 정도의 동전이 쌓인다는데 경찰 입회하에
매일매일 수거해서 빈민들을 위해 사용한단다. 파출소 순경 입회하에
추첨하듯이. 밤 12시에 한 번 갔더니 정말로 바닥을 ㄱ더라고.
가이드하는 아해가 "여기는 역사의 도시, 영원의 도시, 태양의 도시" 라고
설명을 한다. 그러면서 로마에 올 때는 태양이 강하니 꼭 선글라스를 준비해서
오란다."그렇다면 선글라스가 발명되기 전에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하고 반 농담 삼아 물었다. 가이드는 진지했다. 파란색을 보면
눈이 덜 피로하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때 사람들은 에메랄드를 쳐다보면서
일들을 했단다.
그러니까 얘는 자기 나름대로 공부를 해서 그런 질문에 대한 준비를 해놓은
거다. 내 딴에는 요렇게 질문을 하면 대답을 못하겠지 하고 물어봤는데 이놈이
글쎄 진지하게 대답을 해준 거야. 옛날부터 이 나라에는 에메랄드가 굉장히
많이 나왔단다. 그래서 검투사들도 에메랄드를 갈아서 만든 선글라스를 끼고
싸웠다는 거다. 그리고 네로도 에메랄드로 만든 선글라스를 끼고 관람을
했단다. 인류 역사 최초로 선글라스를 낀 인물이 바로 네로라는 거다. 여기
역사책인지 야사책인지에 나와 있단다. 무지하게 노력하는 가이드다. 네로가
선글라스를 처음 사용했다는 사실을 네로 역을 오래 했던 양락이는 알고
있을까?
콜로세움은 용맹스러운 로마의 옛 검투사들이 에메랄드 선글라스를 끼고
사자와 싸우며 창검시합을 벌였던 곳이다. 거대한 원형의 폐허다. 부서지긴
했지만 그런 대로 보존 상태는 좋단다.
이태리는 어지간한 건물들은 다 원형 보존을 위해서 수리공사를 못하게
한단다. 원형을 좋아하는 나라. 그래서 원형극장이 많은가?
포르투갈에 갔을 때 리스본 길바닥 보도블록이 모자이크 모양으로 되어 있는
걸 보면서, 쪼그리고 앉아서 보도블록을 까는 우리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떠올랐던 적이 있다. 여기서도 생각이 난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구슬땀을
흘리며 길바닥 보도블록 공사를 하던 사람들. 로마는 서서 만든 도시 같은데
말이다.
어딜가나 스프레이로 벽에 낙서하는 건 정말 심각하다. 여기도 그러냐고
했더니 로마는 역사적인 건물엔 안 한단다. 가는 데마다 빈 벽이 없을 정도로
스프레이 낙서들이 가득하다. 스프레이 낙서는 정말이지 인정사정이 없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우리나라에도 전염될까 걱정이다. 스프레이 낙서 경연대회를
개최해서 글씨 비슷한 놈들 다 대조해서 범인들을 잡아넣으면 안 될까?
에메랄드 선글라스를 쓰고 사자와 싸웠던 검투사의 후예, 그 용맹스러운 로마
병사들이 오늘날에 와서는 피자집 간판 모델로 바뀌어버렸다.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피자집 간판에 병사들이 막 서있잖아!! 그걸 보니까 옛날에 세계를
주름잡던 저 용맹한 병사들이 간판에나 나오다니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 병정들이 등장하는 피자는 조각으로 판매를 하는데 맛은 별로다.
하여튼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여름에 선글라스
쓰는 것을 허용해주자고 주장하고 싶다. 햇빛에 눈 나빠지는건 아해들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잖아! 선글라스라는 게 써서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거거든. 어렸을 때부터 보호해놓으면 커서도 더 좋지 않냐는 거지. 어른만 눈
보호하고 아해들은 보호하면 안되는 거냐구. 우리는 웬일인지 선글라스 하면
위화감, 불량기, 깡패 따위를 연상하잖아. 유럽 아해들은 잘만 쓰고 다니는데
왜 우리는 선글라스를 못쓰게 하냐는 거야. 눈을 보호하려면 어릴 때부터
선글라스를 쓸 필요가 있어.
그러나 저러나 여기 햇빛이 그렇게 강하다니 잘생긴 이태리 아해들 얼굴이
걱정된다. 여름에 햇빛 많이 쏘이면 얼굴에 기미들이 생긴다. 니기미냐,
내기미냐.
로마에 공중목용탕이 없는 이유
우리를 안내해준 남봉규 사장님은 8년 간의 가이드 생활을 마치고 여행사를
경영한다. 일선에 직접 나서는 가이드는 안 한 지가 오래다. 한양가든이라는
식당도 경영하고 있는데 우리들의 가이드를 직접 맡아 나섰다. 다른 가이드들의
대선배다. 가이드들이 만나기만 하면 전부 인사를 한다."직접 나오셨네요."
하는 인사를 많이 듣는다. 어떻게 보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본인은 좀 쪽팔려
한다. 어쨌거나 남사장이 직접 나왔다는 걸로 우리가 VIP라는 게 자연스럽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걔들이 괜히 우리를 존경(?)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정말 힘든 일들을 조금도 싫은 기색 없이 해준다. 오랜 가이드 생활로 친절이
몸에 밴 사람이다. 집사람이 고맙다고 이야기했더니, 남사장이 농담 삼아 얘길
한다. 집사람 아줌마의 남편이 유레일패스 한국총판을 하는 분인데 전유성이
진미령이 부부한테 잘해주면 한국의 아우들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단다. 여기서
아우들이란 여자라는 건 아시겠지? 그래서 내가 한마디했다. 아우들이라면 내가
소개해주겠다. 내가 오형제 중의 장남이니까!!!
한양가든은 96년 2월에 개업을 했단다. 유럽에서 제일 큰 한식당이다.
580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단다. 종업원은 5개국 사람, 고추장은 한국에서
공수해온단다. 소갈비 구울 때 불판 위에 고기를 얹어주는 지배인의 솜씨가
예사 솜씨가 아니다. 불판 갈아줄 때 연기에 눈물 흘리는 거까지 영락없는
한국사람이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종업원 한 명은 우리말이 유창하다. 차에서
내리는데."어서 오세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이러는 거다.
시내에서 246번 버스를 타면 한양가든 앞이라는 정류장이 나온다. 현수막이
커다랗다. 피자가 한판에 우리 돈으로 4천원이란다. 만원 정도로 한식뷔페를
즐길 수 있다. 대단한 성업이다. 먹어본 소갈비 냉면은 맛있다. 주방장은
사장님 친형이다. 서울서 오신 분인데 서울서 출퇴근은 안 한다. 바티칸에서
8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여행사도 겸하고 있다. 이태리 타월을 수입해다가
팔고 싶어하는 이태리통이다.
하기야, 말이 이태리 타월이지, 이태리엔 정말 이태리 타월이 한 장도 없다.
중국 가면 짜장면이 없는 것처럼. 한국서 이태리 타월을 수입해다 이태리에
팔면 장사가 잘 될까? 이태리 호텔에서 이태리 타월을 수입해서 한국
관광객에게 선물하거나 욕실에 비치해두면 아마 한국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할
거야!
우리나라에선 공중 목욕탕마다 입구에 가득 재놓고 파는 이태리타월이 여기
없는 이유는 대중 목욕탕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로마는 목욕이 로마를 망하게 했다고 해서 공중 목욕탕이 없는 나라다.
목욕이 왜 로마를 망하게 했는가? 환경보호론자들의 이야기로는 나무를 너무
많이 없애서 그렇단다. 하긴, 듣고 보니 맞는 말 같다. 목욕탕 물을 데우려면
나무를 때야잖아. 목욕을 찬물로 하냐구. 물을 데워야 하는데 그 당시야 뭐,
기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연탄도 없었겠고, 그렇다고 신문지로 데울 수도
없고 결국 나무로 때지 않았겠냐는거다. 그러니 나무를 계속해서 땜으로서 그
동네 산이 전부 헐벗은 산이 돼서 환경 파괴 땜에 망한 게 아닌가 하는 거지.
그 이야기를 가이드 앞에서 했더니 가이드 얘기가,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실
목욕은 도피 문화란다. 게을러지기도 하고, 환락도 조장한다나. 하기야
나부터도 "전화 왔다!!" 그래도 목욕하는 중에 전화 받으러 가기 싫지!
우리나라 건달들도 목욕탕 사우나에서 많이 지내잖아? 도피중에 말이야.
조상의 얼을 오늘에 이어받는 건지는 몰라도, 화려했던 로마 목욕탕 문화의
상징이라고 하는 카라칼라스 목욕탕 근처엔 몸파는 여자들이 지금도 많이
있단다. 중학교 때 시험 끝나고 처음으로 단체 관람하러 국도극장에 가서 본
'폼페이 최후의 날.' 에도 나온 사치스런 목욕탕이다.
우리 속담에 '넘어진 김에 자고 간다.''넘어진 김에 눕는다.' 라는 말이
있듯이 로마에 혹시 이런 속담이 있는 건 아닐까?'목욕하려고 옷 벗은 김에
한번 한다'
지금도 뒤쪽 잔디밭은 야외 호텔이란다. 밤만 되면 너도나도 차를 가지고
와서 즉석 러브호텔이 된단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곳이 많이 있는데...!
그러고 보니 이태리와 우리는 밤문화가 서로 통하는 데가 있네!!! 우리나라에도
이런 잡지 같은 걸 만들면 참 재미있을 거야. 일단 제목은 '섹스 메거진.'
쯤으로 붙이자구, 그리고 이런 특집들을 막 내는 거야.'봄철 야외에서 하기
좋은 곳 100선!''신세대 아이들, 이런 체위를 즐긴다!''다이어트가 되는
체위!''요즘 강남 주부들 가평에서 많이 한다!''97년 최대의 유행어, 가평
가보셨어요?' 또 '단풍 보며 즐긴 섹스 고백수기!!''달밤에 하기 좋은 곳!!
''등이 배길 때 사용할 수 있는 물베게를 부록으로 드림!!' 이런 거를 팍팍
싣는 거야. 쇠고랑 차기 딱 좋겠지???
월드컵 끝나고 축구장 다 짓는 이태리 아해들
이태리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과 성격이 비슷하단다. 목소리 크고 잘 놀고
인정 많고 다혈질이고 뒤끝 없고, 그래서 그런지 동네 이름도 시골엔 리가
있더라구. 나폴리, 티볼리... 티볼리 사원은 분수가 유명한 곳이다.
아스테라라는 추기경 출신이 유배 비슷하게 와서 심심하니깐 노느니 분수라고(?
) 분수를 천여 개 만들었단다. 떠나온 로마를 그리워하면서 그가 로마를
바라보던 곳에도 가봤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천여 개의 분수 중에 700여
개가 아직도 500여 년 간 물줄기를 뽑아내고 있단다. 정말 끝내준다. 한국에선
어느 화장품 광고 CF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러고 부면 이 티볼리 분수뿐 아니라 이태리엔 정말 분수가 많다. 옛
로마시절의 전차 경기장이었던 나보나 광장에 있는 무어인의 분수, 강의 분수,
넵튠의 분수... 티볼리 분수정원에서 우리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끈 것은 다산의
분수였다. 젖이 열네 개나 달린 동상에서 분수가 콸콸 넘쳐흐르는데 그야말로
풍요와 넉넉함이 묻어 나오는 느낌이었다. 미령이는 이번 여행에서 제일 인상
깊은 곳이 트래비 분수였단다. 그래서 우린 거길 여행 시작할 때도 가고 끝날
때쯤 해서 한 번 더 갔다. 여행기간을 통틀어 유일하게 두 번 가본 곳이다.
그래도 다시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유럽은 덥다. 그래서 어딜 가나 분수가 눈에 많이 띄는 건가? 아무리 더워도
분수가 많아서 분수가에 앉으면 시원해진다. 분수물에 발을 담가도 괜찮은지
자연스럽게 발을 담그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의 느티나무 그늘이라고나 할까?
(그건 인공으로 만든 거고 우리 느티나무야 자연으로 된 거니까 우리 거가
암만해도 더 낫지!!!)
우리 식으로 생각하면, 로마의 엄마들은 아이들을 분수 기술자로 키우고 싶지
않았을까? 전쟁에 안 나가도 되니까! 우리 군대 안 나가는 식으로. 혹시 벽돌
굽는 기술자보담 쌓는 기술자가 돈이 더 생긴다고 했을지도 몰라!"얘, 넌
만드는 것보다 쌓는 기술을 배워라 " 혹은 "우리 애는 말예요, 벽돌 기술을
배우러 나갔잖아요.""우리 앤 분수 만드느라 군 같은 건 안 가요 " 뭐 그런게
자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긴선 일반적인 사진들은 찍을 수 있는데 ENG 카메라는 안된단다. 그럼
맡기겠다. 그랬는데 가이드가 "이게 워낙 비싼 거다. 자동차 한 대 값이다. 잘
보관해달라. 보관을 잘못하면 안된다. 그러니 우리가 들고 들어가서 안 찍으면
되잖아 짜샤!" 하면서 겁을 줘서는 가지고 들어와 몰래 찍었다.
입장료를 받을 수 있게 만든 것도 아이디어다. 왜냐하면 워낙 많은 나무를
심어놔서 언덕 바로 아래인데도 나무에 가려서 뜰이 안 보이는 거다. 그러니
나중에 후손들이 입장료라도 받아먹고 살지! 사실은 자기는 그런 거 미처
모르고 만들었을 텐데. 알았건 몰랐건 숲을 많이 만들어놔서 오늘날 후손들이
입장료라도 받아 먹고 살게끔 한 건 조상들의 지혜다. 우리도 세종대왕이나
문익점 같은 우리 조상들을 얘기할 적에 "우리 조상은 지혜가 많아 " 그러는데
아마 여기 사람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유럽 사람들도 보나마나 그랬을 거고 더
심한 경우는 노인들도 자기네 조상들은 지혜가 많고 슬기로웠다는 그런 얘길 할
거다.
티볼리 분수 입구 골목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일부러 한국돈
만원을 냈더니 할머니가 암말 않고 받아준다. 우리가 도리어 이상했다. 나중에
문 앞 가게에서 오카리나라는 사제 악기를 사면서 한국돈을 냈더니 안된단다.
끝까지 우겼더니 옆에 있던 이태리 사람이 자기 주머니에서 이태리 돈을 잔뜩
꺼내 보여준다. 나는 대신 돈내주는 줄 알았더니 웬걸! 이런 걸로 내야 된다고
가르쳐주는 거다.
두 시간 정도 분수 관광을 끝내고 나오는데 아까 만원자리 받은 할머니가
우릴 부른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가봤더니 우리 돈 만원짜리가
안된단다. 왜 안되냐고 물었더니 은행에 문의를 했는데 한국 돈은 교환이 안
된다고 그랬단다."그래도 한국에선 사용한다. 진짜 사용하고 있는 돈이다 "
그랬더니 그럼 한국으로 자기를 초대해주면 그 돈을 한국에 와서 사용하겠단다.
그래서 몰래 카메라라고 설명을 드리고 이태리 돈을 줬다. 한국 돈을 내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찍은 거라고 얘길 했는데, 끝까지 웃으면서
나에게 설명해 준 할머니도 옆 가게 아줌마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한참
걸어나오는데 일행 중 한 명이 "아까는 혹시 일본 돈인 줄 알고 받은 거 아냐?
" 하고 묻는다. 그 한마디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태리 사람들 성격이 우리와 정말 비슷하긴 한가 보다. 이태리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이태리 사람들은 노는 걸 좋아해서 5시가 퇴근인데 4시
45분이 되면 퇴근하려고 분침을 눈으로 막 밀어올린단다. 이 얘기 듣고 찔리는
직장인들 좀 있을걸!!!
하지만 하나 다른 게 있다. 완전히 다르다. 여기 텔레비젼에서 하루는 발명품
코너를 봤는데, 우리도 왜 요즘 한창 중소기업 제품들 소개하는 프로그램
있잖아. 그런데 그건 모두 시간이 짧잖아. 한 제품 소개하는데 금방금방
지나간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그 코너 진행하는 개그맨이 막 숨이 차서
헐떡거린단 말야. 말 빨리 하는 개그맨들을 진행자로 쓰기도 하고. 그런데 여긴
한 제품을 소개하는 데 두 시간 정도 할애를 하는 거다. 어떤 경우는 네 시간
정도 제품 설명을 하기도 한다. 쉬지 않고. 그러니까 굉장히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는 거지. 그 제품에 관한 한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는 거야. 아주
괜찮더라고.
이태리라는 나라는 이렇게 우리와 비슷한 점도 있지만 알고 보면 다른 점이
더 많은 나라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연구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복권 당첨금을 탔는데 자선단체 회장인 피아트 자동차 회장에게
맡겼단다. 모처럼 복권을 타서 괜찮은 일을 해보고 싶고 좋은 일을 위해 쓰고
싶은데 자기는 어떻게 써야 할 지를 모르니까 좋은 차 만드는 회장님이 여러
사람을 위해 쓸 수 있을거 같아서 그랬다나. 자기보다는 지금까지 한 일로 봐서
덕망이 높은 피아트 회장이 여러 사람을 위해 돈을 더 잘 쓸 수 있다는 거지.
또 대통령이 죽자 시민들이 칭송하는 포스터를 내건 나라이기도 하다. 90년
청소년 월드컵에 맞춰서 새 운동장을 오픈하려고 했는데 월드컵이 끝나고 1년
뒤에야 공사가 완공됐단다. 그래서 그때 가서야 일반에 공개가 됐다. 공사를
완벽하게 하려고 그랬다지 아마? 월드컵 때는 결국 다른 스타디움을 빌려
썼단다. 우리 같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완공하려고 했을 텐데, 국제행사니까
말이다!!!
우리나라 돈에도 코미디언 얼굴을 박자
LA 가면 차가 신호에 걸리면 흑인들이 무조건 쫓아와서 앞 유리차을
닦아준다. 그리곤 돈을 내라 그런다. 로마에서도 그런 아해들이 있었다. 걔들은
여자가 운전하면 무조건 닦는다. 우리돈으로 250원이다. 여자는 무조건 닦고
본다. 내가 아는 한국의 어느 화가랑 비슷한 놈들이다. 냄비는 무조건 닦고
봐야 돼!!!
로마는 오토바이가 많이 다닌다. 조용한 골목길을 오토바이가 달리면 그
소리가 내 귀엔 마치 모기가 윙윙대는 소리처럼 들린다.
로마에서 신호 지키는 이태리 여자 아해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빨간불이
들어온 횡단보도를 건넜다. 신호를 지키겠다고 서 있는 이태리 시골 여자
아해를 쪼다라고 말하면서. 프랑스에서 숙달이 된 거다.
로마는 지금 한창 세일중이다. 여기 와서 제일 많이 본게 SALE 간판이었다.
거리마다 세일이란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그래서 요때 여행 오는 우리나라
아줌마들은 유적지보다 베네통이니 하는 브랜드의 세일매장에 데려다 달라고
그런단다. 소렌토에 있는 이태리 가구공장에 갔더니 이태리 점원들이
"롯데백화점에서 230만원 하는 걸 여기는 집앞까지 배달해주고 깍아서 150만원.
" 이런 얘기를 막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그만큼 와서 많이 쓰고 간다는
얘기다.
이태리에서는 물건을 살 때 절반은 깍아야 된다는 얘기를 여러 사람에게서
듣는다. 우리보다 환율도 낮지만 바가지를 워낙 많이 씌운단다. 돈 단위도 한국
돈 만원이 이태리 돈2만 리라가 된다. 그러니 저쪽에서 5만 리라를 부르면 먼저
5만리라를 둘로 나누어서 우리 돈으로 2만5천원이지, 하고 속셈을 하거나
일행에게 물어본다. 그런 다음 깎으란 말이 생각나니까 2만5천원에서 5천원을
깎고 "2만 리라!!" 하고 부른다. 그러면 장사꾼 입장에서는 5만리라를 부른
건데 2만 리라 하면 너무도 턱없이 깎는 게 된다. 그러니 안 판다. 가면 잡겠지
하고 그 옛날의 남대문 스타일로 가도 안 잡는다. 그러면 우리는 나쁜
자식이라고 생각하면서 안 사고 간다.
그런데 이게 웃기는 것이, 그 사람들을 나쁜 자식들이라고 그럴 수가 없다.
사실은 우리가 계산을 잘못한 거니까. 5만 리라를 불렀으면 2만5천원이라고
생각을 하고 5천원을 깎고 나면 2만원, 그러면 2만원에 곱하기 2 해서 4만
리라라고 생각을 해야 되는데 그만 "2만 리라." 이라는 거야. 환전 환율 이런
거에서 잠깐 착각을 하는 거지
여행 다니다 보면 깎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에 띄거나 마음에 드는게 있으면
얼른 사야 된다! 외국 여행중에는 같은 자리에 다시 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다시 오는 게 아닌 다음에야 그거하나 사자고 길도 서툰데
시간을 들여가며 그 자리를 다시 찾겠는가 말이다!!! 그게 쇼핑 요령이다.
그리고 물건값이 싸든 말든 관계 없이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인가를 계산하면
빠를 텐데 ' 여기 사람 한달 수입이 얼만데 이만큼 주는 건 저 사람이 너무나
땡잡는 거야.' 그러면서 통박을 굴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필요가 없다. 그
나라 물가로 왜 생각을 하는가 말이다. 우리 상식, 우리 물가 개념으로 볼 때
무리가 아니면, 적당하다 싶으면 사는 거다. 그렇고 재고 따져서 안 사면
손해랄 것까지야 없지만 정작 사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을 놓칠 수도 있다.
정보 하나를 얘기하자면 우리나라 아해들이 여름에 여행갈 때나 그럴 적에
선탠 크림을 많이들 사잖아. 그런데 여기 와 보니까 잡지를 살 적에 부록으로
선탠 크림이랑 샴푸, 매니큐어 같은 거를 주더라고, 1천 리라쯤 하는 잡지를
사면 독자 사은품이 재미나는 것들을 많아. 고런 걸 잘봐서 사면 좋지 않겠냐는
거지.
외국 가면 왜, 자기 맘에 드는 거 쇼핑을 참 잘하는 애들이 있잖아, 나는
그런 거 잘 안해봐서 그런지 참 못하거든(소방차의 정원관이도 외국 나가면
값싸고 좋은 물건들, 근사한 것들을 잘 사는 축에 든다.) 리스본인가 거기서도
내가 뭘 좀 사보려고 그러는데 도무지 맘에 드는 게 없는 거야. 그런데 좀
다니다 보니까 겨우 하나 이거다! 하고 찍은 배낭이 있었는데, 이런 세상에
향수 사면 공짜로 주는 배낭이래!!!!! 그러니까 파는 게 아닌 거지. 그렇다고
배낭 땜에 쓰지도 않는 향수를 살 수도 없고 말야. 아쉽더라고.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그런 식으로 많이 하던데 이왕 사는 거라면 그렇게 잡지 같은 거
하나 사면 필요한 물건도 장만하고 기념도 되고 좋지 않겠어?
그런데도 우리나라 아해들은 외국에까지 와서도 물건을 살 줄 몰라. 돈을 쓸
줄 모른다는 증거가 있어. 내가 듣자니까 배낭여행 하는 여자 아해들 외국 가면
생리대 값이 상당히 비싸다고 굉장히 많이 사온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속으로
그랬다구,'야 그거 몇 푼 한다고 그러냐??? 외국 가면 한 말씩 나오냐???'
그런데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물건을 사거나 할 때 이태리 돈을 가만히
보면 모델들이 참 재미있다. 우리나라처럼 근엄하게 세종대왕이니 이순신
장군이니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조각가나 교육가들이다. 어린 아이들 교육용
교재를 만들어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몬테소리같은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도 코미디언 같은 사람들이 돈에 도안이 되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영춘 같은 사람들, 구봉서 같은 선배들이 서울시 깃발
같은 데 도안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문화적으로 뛰어난 나라가 되겠는가 말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게 너무 엄숙하다. 재미가 없다.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면서
여러 사람들을 웃기고 국민적인 즐거움을 선사한 사람들을 대접하고 사랑하면
좋지 않은가 말이다. 돈 쓸때마다 한 번이라도 웃게 되지 않겠냐고!!!(참고!
만원짜리에 있는 세종대왕 그림 누가 그린 건지 알아? 김기창 화백이더라고!!!
)
얼마 전에 프랑스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소피마르소가
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같이 왔다. 역시 프랑스는 예술을 사랑하는 나라구나!
그러면서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생각이 난 건데 말야. 우리나라
대통령도 외국에 나갈 때 그렇게 한 명씩 데리고 나가면 어떨까. 그리고 소개할
때 "이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망치질을 제일 잘하는 사람입니다 " 아니면 "이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라면을 제일 잘 끓이는 사람입니다 ""이 여자 분은
대한민국에서 파마를 제일 잘하는 여잡니다 "라고 소개를 하는 거야.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망치질로 먹고사는 사람들. 라면 끓여먹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신이 나겠어. 파마로 먹고사는 여자들이 얼마나 기분이
째지겠어. 자기 직업에 얼마나 보람과 긍지를 갖게 되겠냐구! 비행기야
전세기로 갈 테니 밥 먹을 때 숟가락 하나 더 놓은 것 아니겠어? 그래야 각
분야에서 일등이 되고 싶어할 텐데 말이야.
"나는 커서 우리나라에서 구두를 제일 잘 닦는 사람이 될 테야 ""나는 이
다음에 우리나라에서 신발 디자인을 제일 잘할 테야 ""나는 이 다음에 커서
인쇄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될 터이다" 이러면서 꿈을 키울거 아니겠냐구. 어느
분야에서든지 일등을 하면 대통령과 함께 같은 비행기를 타고 대통령의 일행이
되어 외국을 나가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아니겠어??? 물론 다음과 같은
걸로 일등은 안되지."제가 우리나라에서 음주운전으로 제일 많이 걸린
사람입니다.""제가 가출을 제일 많이 한 사람입니다.""제가 수틀릴 때 길
가는 놈들 두들겨 패는 걸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죠. 전치 4주는
보장한다니까요.""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제 또래에서 사기전과가 제일 많은
사람입니다."
{{}}오드리 헵번{{}}의 숏커트는 NG 때문에 생겼단다
오드리 헵번의 숏커트, 전 세계 여성들에게 유행된 바로 그 깜찍한 숏커트가
사실은 영화 찍을 때 이태리의 머리 자르는 아해가 NG를 하도 많이 내는 바람에
자꾸 자르다 보니 올라가서 그렇게 됐단다. 거기 가면 가이드가 그런 얘기 다
해준다. 근데 그게 세계적으로 유행을 했고 그곳이 지금은 구두가게가 되어
있다. 그야말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아우!' 네!(여기 '아우!' 는 국보자매의
히트곡 가운데 '나를 나를 잊지 마세요 머리에서 발끝까지 아우!!!' 할 때의
그 '아우!!!' 다)
오드리 헵번은 참 대단한 여자다. 요즘도 텔레비젼에 종종 얼굴을 나타내고
그러는데, 오륙십년대엔 그 요정 같은 이미지로 사람들을 휘어잡다가 나이든
지금에 와서도 여러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니 말이다. 주름살 없이 팽팽한
얼굴만 유지하면 된다고 믿는 많은 연예계 사람들은 모름지기 오드리 헵번의
과거보다는 현재를 보고 배울 일이다.
오드리 헵번의 주름살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한 번 생각해볼 만하다. 젊게
산다는 게 그렇게 좋은 것이기만 한가? 그럼 나이 먹은 사람은 즐거움도 없단
말인가? 어릴 때는 어른스러운 것을 칭찬으로 들었는데, 나이 먹고 나면
젊어보인다는 게 칭찬인가? 야유인가?
우린 정말 희한하게도 나이답지 않게 사는 걸 가장 좋게 생각한다. 어렸을
적에는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럽다느니 노숙하다느니 그러다가 나이먹으면 "아,
나이답지 않게 젊게 사시네." 혹은 "이 친구, 나일 거꾸로 먹나?
좋아보이는데!!" 막 그러니 말이다. 우리가 "옛날이 좋았어." 하고 자주
이야기하는 것도 그 밑바닥에는 옛날이 지금보담은 조금이라도 젊었기
때문이라는 의식이 사실은 깔려 있을 것이다. 이게 얼마나 우습냐. 나이 먹은
사람들의 즐거움도 우리가 인정을 해줘야 한다.
벨기에에서는 주름살투성이인 오드리 헵번이 한창 젊고 예쁠 때 출연한 영화
'논 스토리.' 에 나온 집이 관광 코스였다. 오드리 헵번은 미국 여자지만 영화
때문에 오히려 유럽, 특히 이태리에서 더 알려지고 잊혀지지 않는 인물이 된 것
같다. 로마 전체가 '로마의 휴일.' 때문에 다시 살아나게 된 느낌도 강하게
받는다.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법이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비토리아노를
배경으로 내달렸던 베네치아 광장이나 둘이 다정하게 아이스크림을 먹던 스페인
광장 계단 등 한두 곳이 아니다.
마귀 같은 형상이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진실의 입.' 도 영화 '로마의
휴일.' 땜에 유명하게 된 곳이다.'로마의 휴일.' 을 보면 그레고리 펙이 그
안에 손을 집어넣고 "악!!" 뭐 그러잖아. 옛날에는 이 진실의 입이라는 거에
팔을 집어넣으면 잘린다는 전설을 이용해 정적이나 마음에 안 드는 놈들 손을
집어넣게 해가지고 도끼로 치게 하기도 했단다. 그래서 그 폐해가 많았다는
얘기도 있다."너, 그 얘기, 구라야 진짜야? 이 자식아. 손 집어 넣어봐.
거짓말이면 그 손 절단날 줄 알아." 그래 갖고는 뒤에서 도끼로 내리쳐갖고
손을 자르고...
그러다 그게 어떻게 해서 어디론가 없어졌다가 세월이 지나 길거리에서
하수도 뚜껑으로 발견이 됐단다. 그래서 손질을 해서 그 자리에 다시
갖다놨는데 그 이후 영화 땜에 다시 유명하게 ㄷ다는 거다.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거기에 손을 집어넣으면서 스릴을 느낀다. 그리고 연인끼리
와서 손을 집어넣고는 꺅꺅거리며 좋아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스릴을
느낄 만한 데가 로마에는 또 한군데 있는데 기독교 시대 박해받던 예수교인들의
지하공동묘지다. 콜로세움에서 사자밥이 된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동료들이
4천명이 넘게 해골로 누워 있어서 해골사원이라고도 불린단다. 그 사연도
서늘하지만 내부 온도가 14도라 굉장히 시원해 여름에도 스릴을 느낀다는
곳이다.
유람선으로 돌아온 밤, 미국에서 온 여고생에게 물어봤다. 로마와 파리에서
뭘 느꼈냐고. 얘가 이랬다. 역사가 느껴지는 것은 같은데 로마는 역사 그
자체이고 파리는 역사가 있으면서 현대적인 것이 같이 있어서 좋다고 느꼈단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나는 이 나이에 왜 못 느꼈을까!!! 지금 내가 느낀다고
해도 얘네들한테 30년 이상 뒤쥐는 거잖아. 이거!
교황과 청소부가 통하는 나라
바티칸 베드로 성당에 있는 베드로의 발은 의족이다. 베드로 동상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발을 쓰다듬어서 닳은 것이다. 벌써 여덟 개째 의족이란다.
우리나라 부처 코떼어 가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그
아해들의 소원은 뭘까???
바티칸 옆에는 극빈자를 위해서 음식을 무료로 나눠주는 데가 있다. 메뉴는
딱 한가지란다. 스파게티! 그렇겠지! 얻어먹는 주제에 이것 저것 달라고 하기도
미안하겠지. 내 생각엔 이 나라에서 제일 맛있는 스파게티가 바로 그 집 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만 계속 하니까 도가 터도 트지 않았겠느냐는
거다.
베드로 성당에 가면 교황만 서는 장소가 있다. 미사를 집전하는 단상이다.
거기는 교황하고 청소부만 올라갈 수 있단다. 역대 교황만 올라갔다. 또 교황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이것도 역시 교황만 탄단다. 그래서 내가 "아,
그러면 엘리베이터 수리공만 타겠구나 " 생각했다. 그렇단다. 그러니까 제일
높은 사람하고 제일 낮은 사람은 통한다는 거다.
{{}} 로마 같은 데는 {{}}도둑놈이 득시글거린다. 집시들과 소매치기 등 전부 도둑놈
투성이여서 배낭족 열 명이 기차를 타고 가면 도둑놈들이 하룻밤에 스무 번씩
서른 번씩 훔치러 들어올 정도다. 기차 타고 밤에 아홉 시간을 가게 되면
거짓말 안 보태고 백 번 정도 훔치러 들어온단다. 문 열고 또 오고 또 오고,
그러다 조금 방심하면 들고 나가는 거다.
심지어 한 2개월 된 어린애를 안고 어른들 앞을 왔다갔다하다가, 어른 앞에
딱 던지고는 상대방이 아이를 안고 당황해할 때, 바로 그때 짐이랑 물건을 갖고
간다. 어린애를 던지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다 받을 거란 심리를 노린 야비한
방법이다. 만약 상대방이 받지 않아 애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저놈한테 부딪혀서
그랬다며 막 뒤집어진단다. 안 받아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고 그렇게 돼
있다.
여기 도둑놈들은 우리랑은 스케일이 틀리다. 고속도로 간판의 화살표 방향을
정반대로 바꿔놓아서 차를 한쪽으로 유인해 길목을 지키고 있다 털어가는가
하면, 밤에 여자가 손 들고 딱 나타나 히치하이킹하는 줄 알고 차를 세우면
양쪽에서 사내들이 해머를 들고 나타나 라이트를 깬다. 그렇게 갖고 가는 거다.
이렇게 극성맞은 도둑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신성한 지역, 바티칸과 그 주변
로마에서 우글대며 먹고사는 이유는 교황 바오로 2세가 불쌍한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한 말씀 때문이란다.
동정심 많은 폴란드 출신 교황이 불쌍한 사람은 보듬어서 같이 살아가야
한다고 한 말씀 때문에 도둑들이 없어지지를 않는다는 거다. 소매치기들이
감기가 걸려서 콜록거리면 감기약을 나눠주기도 하고 소매치기를 잡아서
때린다든가 혼을 내면 불쌍한 사람을 괴롭히지 말라는 교황의 말이 골수에 박혀
있는 할머니들이 무진장 야단을 친단다. 누가 도둑을 맞아 훔쳐간 놈을 붙잡아
때리면 거기 할머니들이 그런다는 거다."아, 왜 그 불쌍한 사람을 때리냐."
고, 그렇게 공존하면서 산다.
우리나라에서 만약에 불쌍한 사람들이 도둑질하고 그런다면 당장 역적 취급을
할 텐데. 우리 상식으로는 참 기묘한,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거 자체를 여기 사람들은 인정을 해버린다는
거다. 교황과 청소부밖에 올라설 수 없는 자리, 교황과 수리공밖에 이용할 수가
없는 장소들은 로마와 바티칸의 이런 모습을 상징해주는 곳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도둑질하는 꼬마를 붙잡아 막 때렸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들이 몰려와서 불쌍한 애를 그러지 말란다. 말로 타이르라는 거다. 말을
할 줄 알아야 말로 타이르지! 암튼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 때렸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 훔쳐가고 빼가거든. 여기 사람들은 여기 사람대로, 나는 내
식대로, 우리 식대로 한거다.
배 안에서 배 타면 기쁨이 배
바닷공기가 신선하다. 좋은 공기 마시고 세포 하나하나가 다시 태어나라!!
바다에 오래 있었으니 바다 생선처럼 싱싱해졌으면!!!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 루치아, 산타 루치아(망망대해 일망무제란 단어를 서울가면 제일
먼저 국어사전으로 찾아봐야지! 이 말을 쓰고 싶었는데 정확하게 몰라서 좀
그렇더라고.)
배를 타고 지나다 보면 육지들이 더러 보인다. 육지만 나오면 승객들이
"저기는 어디입니까?""여기가 어디쯤이죠?" 하고 묻는데 사실 종업원들도 잘
몰라. 배에서 일하는 종업원도 모르는 곳을 알아서 뭘하나? 한 시간 후면
스페인을 지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그렇다면 여기가 어딘가? 스페인에서
한 시간 배 타고 나온 데지. 어디긴!!!
스페인을 지나 유람선이 막 물 위를 떠가는데 갈매기들이 배를 따라온다.
지켜보면 그냥 나는 놈들도 많은데 꼭 그 배 굴뚝 위로 나는 갈매기도 몇 마리
있다. 이 자식들. 배 따라다니면서 연기만 들이마시는 걸 보면 혹시 뽕 하는
갈매기들 아냐?!! 갈매기 세계에도 대마초 사범이 있을까? 이놈들은 출연정지
당하면 어디로 가나???
유람선을 처음 타면 누구나 다 제일 먼저 참석하는 게 있다. 구명 조끼 입고
비상사태에 대비한 연습을 하는 건데, 구명복을 입고 갑판앞에 전부 나가서
출석을 확인하고 구명보트로 내려가는 순서와 요령을 설명 듣는다. 비행기 타면
스튜어디스가 언제나 시범을 보여주지만 우리가 직접 해보지는 않잖아. 그러나
배에서는 누구나 다 참가해야 한다. 그리고 구명보트가 내려오면 만일에 사고가
났을 경우 자기가 타고 갈 배와 자리를 구명조끼를 입고 들여다본다. 그러면
선원 한 명이 구명보트로 내려가서 엔진상태를 확인하고 시동을 한 번 걸어보고
온다.
여자 선원이 구명보트 기관실로 내려갔다 오더니 하얀 제복이 먼지로
시커멓게 되었다. 생각해보라! 시동이 잘 걸리고 먼지가 없는 게 나은 밴지,
시동이 잘 안 걸리고 먼지가 풀썩풀썩 나는 게 좋은 밴지. 구명조끼도
마찬가지다. 아주 새것도 좋지만 아주 헌 것, 사용 흔적이 많아서 너덜너덜한
중고도 좋을 수가 있다. 먼지가 하얗게 쌓였다는 건 한 번도 사고가 안 나서
사용을 안 했다는 얘기 아냐. 시동이 잘 걸리는 거는 사용을 많이 했다는
거니까 어떻게 보면 불안한 것일 수도 있다는 거지.
초등학교 지리시간에 배운 지브랄타 해협을 조금 전에 지나다. 6월 5일 4시
20분.
배를 타고 하루나 이틀씩 가다 보면 심심해서 우리끼리 말장난을 하게 되는
때가 많다. 거기는 배 갖고 돈 번 세계적인 선박왕들이 굉장히 많잖아.
그리니까 "배(船)장사가 많이 남아서 배(倍)장사래." 이런 말도 하고, 또 배가
갑갑해 속이 더부룩 하다든지 하는 말도 한다."배 안에서 해 봤니?" 는 어릴
때 우리가 많이 하던 말장난이다."배 안에서 해 봤니?" 그러면 우리는 보통
섹스를 연상하거든. 그래서 상대방이 "응, 해봤어." 그러면 "뭘 해봐.
이자식아. 그게 아니라 배 안에서 해를 봤냐고!!" 그러면서 쫑코를 주는
거다... 배안에서 배 타면 기쁨이 배.
"아, 이놈이 벌써 인생을 알아버렸구나."
외국에 나가면 꼭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그냥 길거리에서 사람을
하루종일 쫓아다니면서 저 사람이 온종일 뭘 하면서 지내는가를 알아보는
거였다. 가능하면 사진도 찍고 싶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면, 어느 날 아주 조그만 소도시에 갔다고 쳐보자.
서울 식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한가로울 것 같고 거기 사람들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 같고 그렇잖아? 저런 조그만 읍내에 나오는데 무슨 양복씩이나 입고
나오나, 우리 같음 그냥 슬리퍼 끌고 왔다갔다해도 될 텐데, 하면서 말이지.
그런데도 거기 사는 그 사람들 나름대로의 희로애락이 생활 속에 들어가보면 다
있다. 그런데 그걸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같만 보고 얘기하는 경우가 있는
거다. 그런 걸 한 번 유심히 관찰해보고, 어떻게 사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언젠가 구미 사는 조카 한 놈을 서울에 데려다 놨다. 그랬더니 아, 이놈이
서울 사람들 뭐하고 사는지 궁금해 미치겠다는 거다. 초등학교 7밖에 안 다니는
놈이. 정말 미치려고 그러더라니까. 우선 밖에 못 나가게 하지, 밤낮
위험하다고 하지, 바깥으로 못 나가게 하는 통에 애가 완전히 집안에 갇혀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도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시골은 밖에 나가면 어디
마땅히 들를 데가 없이 훵 뚫려져 있으니까 심심하겠지... 그렇게들
생각하는데, 퇴촌에 오래 살아보니까 그렇지가 않다. 얼마나 재미있다구.
그런데 그때도 어떤 놈이 와갖고는 나보고 굉장히 심심하겠단다. 이유가
뭐냐면, 이 동넨 카페가 없다는 거다. 그렇담 도시 아이들이 카페를 다니는 게
안 심심하려고 다니는 건가?
이건 그냥 나 혼자 생각하는 '자연 보는 법.' 같은 거지만, 정말, 정말이지
전혀 안 심심하다. 내가 한번은 1월 1일서부터 150일 정도를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나무를 매일 사진 찍어본 적이 있는데 그 나무들이 하루하루 보면 안
변하는 것 같아도 한달 단위로 끊어서 보면 분명히 변한다. 자연이란 게 분명히
그렇게 된단 말이다. 보름씩 끊어도 물론 변한다. 일주일, 사흘도 마찬가지다.
내가 퇴촌서 8년을 살았는데, 살면서 그런 걸 매일매일 느꼈다. 예를 들어
서울서는 퇴촌 갈 때도 매일 오른쪽만 쭉 보고 가다가 어느 날 왼쪽을 한 번
보면 아카시아가 함박같이 피어 있다거나 예상치 못한 {{}}그림이 펼쳐지거든{{}}.
그날부터 그쪽을 쭉 보다 어느 날 또 오른쪽을 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고... 식당 네온사인을 보고 매일 날아오던 매미가 어느 날 안 날아오기
시작하면 거짓말처럼 한 마리도 안 오고 딱 그친다. 거기 일층 컴컴한 구석에
두꺼비집이 있었는데, 밤 9시 30분인가 40분이 되면 한 마리가 뚜벅뚜벅
걸어나와서 매미 두 마리를 딱 잡아먹고 들어간다. 세 마리도 아니고 한 마리도
아니고 딱 두 마리다.
칠흑 같은 밤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막 들려오는데, 개구리란 놈들이 울기
시작할 때도 한꺼번에 우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끝나는 날은 하여튼
'딱'이다. 개구리 사회에는 심형래가 없는 모양인지. 어쩜 그렇게 한 마리도 안
울고 딱 소리나게 일시에 몸추는지 신기하다. 잠잠해지고 나면 그때부터 벌레
우는 소리가 들린다.(하긴 그 전에 울면 개구리한테 잡혀 먹힐 테니 별 수
없겠지) 이런 게 하나하나 유심히 보면 보인다. 너무너무 신기하다. 도시보다
훨씬 재밌고 도대체 심심할 새가 없다.
이야기가 옆길로 좀 샜는데, 그래서 여행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보자. 그
사람들은 어쩌구 사나 자세히 들여다보자, 마음먹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중에는 정말 재미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니까 뭐냐면,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일이듯는 재미와 의미가 있다는 거다.
유럽을 다니다 보면 역사적인 건물들이 많고 그 사이로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엄마나 아빠를 무진장 많이 본다. 물론 엄마 아빠가 같이 유모차를 밀고 다니며
산책하는 경우도 많다. 유모차의 종류도 다양해서 우리가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것 말고도 접는 것, 혼자용, 쌍둥이용, 세쌍둥이용까지 있다. 세쌍둥이가 그리
흔한 것도 아닌데 백화점에 진열이 되어 있는 것이다. 우산(파라솔) 달린 것,
접는 것, 접어서 등에 업게 돼 있는 것, 자전거에 매다는 것, 아기 옆에 개
태우는 것, 아기가 타는 것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것, 아기 둘을 같은 방향으로
보게 나란히 앉히는 것, 마주보게 앉히는 것, 별의별 것들이 많이 있다.
산책을 좋아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역사적인 건물들 사이를
지나고 공원을 지나고 다리를 건넌다. 아이가 말을 알아들을 때쯤이면 엄마나
아빠가 알고 있는 거리의 역사를 이야기해주고 그것도 몇 번씩이나 누구의
동상인가를 들으면서 아이는 자라나 자기가 나고 살아온 도시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문화를 배우는 것이다. 특히 햇빛이 나면 아이들은 엄마나 아버지가
끌고 다니는 유모차에 태워져 밖으로 많이 나온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다.
한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가다가 지쳤는지 다시 유모차에 기어 올라간다.
올라가더니 자동으로 손이 안전벨트로 가더니 안전벨트를 채우는 것이다. 서너
살이나 되었을까? 아주 신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우리 아이들도 그렇겠지.'
하면서도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엄마가 들어서 유모차에 태우는 그림이 먼저
떠오르고 엄마가 안전벨트를 채워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서양 아이
전체가 다 그렇지는 않은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이럴 때 학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할지 모른다."서양 아이들은 이렇게
안전벨트를 스스로 매듯이 자기의 행동이나 사고를 스스로 절제할줄 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을 보라! 강요에 의한 절제이기 때문에 같은 안전벨트라도
절제가 아니라 속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쩌구저쩌구...!"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저 아이도 안전벨트를 스스로 묶기까지 엄마가
얼마나 잔소리를 심하게 퍼부었겠는가!!!"이놈의 자식, 그것 안 하면 안
데리고 나갈 거야.""평생 음지에서나 살놈...!!!"
고은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이라는 글에, 한 아이가 울다가 제
스스로 눈물을 쓱 닦는 걸 보고 '아, 이놈이 벌써 인생을 알았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너무 빨리 철들어 버린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한 아이가 유람선 안에서 넘어졌다. 울지는 않는다. 혼자 일어서기엔 좀 어린
나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무도 안 일으켜준다. 스르로 일어날 때까지
지켜보는데 몇 번의 시도 끝에 이 아이가 결국 혼자 일어나 앉는다."브라보!!
" 하고 구경하던 두 할아버지가 외친다.
잭팟 터졌네요!!!
유람선 안에서 카지노를 하다 보면 동전이 제법 모인다. 그 동전을
스티로폼으로 만든 사발면 그릇 비슷하게 생긴 데 담아 가지고 여기저기 슬롯
머신 기계를 어슬렁거리게 된다. 두어 번 해보고 잘 안되면 다른 기계 앞으로
옮기고 그러는 것이다.
그렇게 동전을 갖고 다니다가 한 사발 정도를 쏟아버렸다. 25센트짜리를
반질반질한 유람선 마룻바닥에 쏟았으니 동전 쏟아지는 소리가 좀 컸겠어?
사당으로 튀는 동전! 아이고 이게 무슨 망신이냐? 이때 앞에 있던 할머니가
한마디한다."잭팟 터졌네요!!!"
유머감각은 때로 이렇게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 그것도 뜻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웃음을 맛볼 때는 말이다. 우리 부부가 몇 년 전 미국에 갈 적에
비행기에서 우리 앞에 탄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정말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제일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하늘에서 나를 웃긴
사람이었던 거다. 보딩 표 좌석배정을 받으면서 보통 별별 얘기를 다 하지만 이
사람 하는 말이 걸작인 게,"오늘 조종사는 누구입니까?" 그러더라고.
사이판 갔을 때 만난 가이드도 대단했다. 마나가하 섬에서 남들이 잡으니까
나도 한 번 잡아보겠다고 낚시를 했거든, 처음이었는데 던지자마자 내 낚시에
뭐가 걸린 거야. 이크! 나한테도 걸리긴 걸리는구나해서 살살 잡아당겼지.
그런데 잘 안 나오더라구. 뭔가 큰 게 걸렸구나! 하고 끈기를 가지고
당겨봤더니 웬걸, 낚시바늘이 바닷속 바위에 걸린 거야. 가이드가 날 막
비웃길래 내가 한마디했지.
"웃긴 왜 웃어, 나는 지금 물고기를 낚은 게 아니라 지구를 낚은 거야."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인가 가이드가 바닷가를 걷다가 넘어졌어. 내가 막
웃었더니 가이드가 그러더라고.
"웃지 마세요. 나는 지금 지구를 껴안은 겁니다."
그 가이드 순발력이 뛰어나데! 근데 문제는 자기가 만능 스포츠맨인데 수영
하나만 못한다는 거야. 글세 그게 말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그럼
수영마저 배운다면 만일능 스포츠맨이 되는 건가???
몇 년 전 노태우 전 대통령 땜에 웃었던 일도 생각난다. 어떤 외국기자가
"한국에는 왜 그렇게 군(軍)출신 대통령이 많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노
대통령이 "한국에는 병역 의무가 있으니까 누구나 다 군 출신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는 거야. 정말 기가 막힌 유머잖아? 본인이야 웃기려고 그런 게
아니겠지만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선 굉장히 재밌다고.
대통령 시리즈로 나가는 것 같아서 좀 뭣하지만, 박 대통령 시절에도 재미난
그러나 뒤끝이 안 좋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뒤끝이 안 좋았던 이유는 당시는
만약 입이 열 개라면 폭탄 열 개를 껴안고 살아가는 것과 마친가지일 만큼
입조심을 해야 하는 시절이었기 때문일 거다.
그때 내 친구 중에 박 대통령 전용비행기 스튜어디스와 사귀는 친구가
있었거든, 최모라고 하는 여자였는데 함께 만날 일이 있어서 이런 저런 잡담을
하다가 대통령도 부부싸움을 하는 적이 있는가 하는게 화제가 됐다. 그래서
내가 육영수 여사와 박 대통령이 부부싸움을 하면 그걸 뭐라고 하는지 아느냐고
즉석퀴즈를 냈다. 당연히 아무도 못 맞췄고 그래서 내가 정답은 '육박전'
이라고 알려줬다.
그 후에 최모양을 만났더니 진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육박전' 얘기를
대통령 앞에서 했더니 대통령께서 박장대소를 하셨단다. 물론 옆의 수행원들도
같이 웃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내용 그대로를 동아방송 '0시의 다이얼'에
가서 생방송중에 했다가 연출자도 혼나고 나도 한동안 방송출연을 못했던 적이
있다. 나로 하여금 '세상은 참으로 치열한 육박전이구나!' 하는 편견을 가지게
했던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그 무렵 한국 방송윤리위원회는 모두 137곡에
달하는 외국 가요을 방송금지 했느데 그 중에는 세계적으로 히트했던 '일요일은
참으세요' 와 '딜라일라' 같은 팝송도 포함되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우리는 일요일뿐 아니라 매일매일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참으라니까).
유람선 안에 있는 화장실에 갔는데, 내가 막 떠들면서 얘길 한 모양이다.
그랬더니 아까 그 잭팟 터졌다며 유머를 날린 할머니가 미령이한테 "아까 그
사람, 쉬지 않고 이야기하던데 그 말을 다 듣고 있었냐 "고 묻더란다. 그럼 그
할머니는 내가 하는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네! 그렇다고 했더니 다시 묻더란다.
저 남자 쉬지 않고 엄청 말 많이 하던데 그 말을 정말 다 들었느냐는 거야.
그 할머니 질문에 미령이가 저 사람은 원래 말하는 게 취미라고 그랬단다.
그러니까 또 물어보더래, 그래서 미령이가 자기는 듣는게 취미라고 그랬다나.
우리가 전에 유람선 타고 신혼여행 갔을때도 그랬거든. 매 끼니 같은
자리에서 같이 식사를 하면 서로 친해진다고. 밥을 미령이가 먼저 먹었거든,
그랫더니 먼저 먹은 남자 놈이 "우리 둘이 바깥에 나가서 달구경 하자 "고
꼬시는 거야. 그래서 옆에서 내가 "야, 너 유혹당하는 게 취미라고 그래라."
그랬더니 그대로 했어. 그러자 그 새끼가 "아, 좋아요, 난 유혹하는 게 취민데
" 이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 다음엔,"우리 남편이 사냥이 취미거든요.
끝내주는 총도 갖고 있어요." 그러라 그랬더니 그 얘길 하고는 서로 막 웃고
말았어.
밤이 되면 제비로 변하는 유람선 승무원들
유람선의 밤이다.
유람선 안에는 50년대 음악부터 해서 90년대 음악까지 나오는 바가 다 따로
있다. 어디든지 자기가 알아서 들어가 놀면 되는 거다. 나이에 따라서 음악
나오는 데가 다 다른 건데 90년대 음악 나오는 델 가보니 랩음악이 요란하다.
배 안에서 제일 경치 좋은 곳에는 스타이라운지 같은 걸 만들어놨다. 술 한잔
하려고 들러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천국이다. 폼나게 정장차림을 하고
나타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굽은 등, 불룩 나온배를 가누면서 춤들을 춘다. 술
한잔 하고 할말이 없으니 춤으로 때우려는 건 아닌지... 어쩌면 우리처럼
통박을 굴리지 않는 여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더 재미있게 놀지도 모른다.
잠시 후 승무원들이 거의 다 나타났다. 호텔 매니저, 오피스 매니저, 주방장
등등. 아, 이 사람들도 저녁에는 심심하니까 놀러 왔구나! 그랬느데,
주방장에게 우리가 술 한잔 사겠다고 했더니 자기가 한잔 사겠단다. 잠시 후
음악이 나오니깐 승무원들이 갑자기 제비로 변하는 게 아닌가! 할머니 할아버지
손님들의 춤파트너가 되어주는 것이다. 어떤 할머니는 빤짝이 옷을 입고
나타났는데 주방장이 춤을 추자고 했더니 거절을 한다. 그래도 추자고 했더니
앉아 있을 때는 안 보이던 지팡이를 들어 보인다. 다니기가 불편한 할머니다.
결국엔 춤을 같이 추긴 추는데 지팡이를 짚고도 할머니는 행복한 표정이다.
이렇게 승무원들과 손님이 춤을 추는 사이로 사진사가 나타나 사진을
찍어댄다.'아, 이 친구들이 결국 매상을 올리려고 밤에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든다. 밤에 심심한, 혹은 피곤한(피곤한지 안 한지 잘 모르겠지만)
승무원들을 일찍 안 재우고 매상을 올리러 내보낸 건 선장의 아이디어일까???
승무원 제비들은 그냥 춤만 추는 게 아니라 춤이 끝날 때쯤 주머니에서
행운권 한 장을 꺼내어 손님에게 하나씩 나눠준다. 추첨권이다. 그러니까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는 싱싱한 남녀 승무원과 함께 춤출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거다. 아주 건전하고 재미있게 노는 거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굉장한
아이디어다. 매상은 매상대로 올리고, 사진도 부지런히 찍어댄다. 선상파티
때도 찌고, 식사할 적에도 찍고, 배 들어올 적 나갈 적 쉬지 않고 찍어대는데
그렇게 찍은 사진이 다음날 아침에 식사하러 가면 턱 하니 나와 있어서 잘 나온
사람들은 사기도 한다.
유람선 안에 그 배를 상징하는 미스 홀랜드 아메리카라고 굉장한 미인이 한
명 있었는데, 이 여자 역시 손님들이 원하면 같이 웃으면서 사진도 찍어주고
그런다. 하다 못해 벨기에 같은 데 항구에 잠시 정박해서 관광을 나가게 되면
우리가 여기저기 막 다닐 적에 사진 찍는 애가 따라나와서는 길목길목마다
따라다니면서 찍어주기도 한다. 장삿속이거나 말거나 이런 거 하나는 하여튼
무척 잘 돼 있다.
유람선에서는 식사를 늘 하는 사람들끼리 하게 된다. 여러 날 같이 저녁밥을
먹으면서 노가리를 까다 보면 서로 친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무슨 할 이야기 소재가 그렇게 많나??? 형식적으로 인사하고 놀래주고
들어주고 별로 재미없어도 웃어주고 이때쯤 해서 유람선의 상술이 또 한 번
발휘된다. 상술-서비스 정신이나, 선원들을 각 테이블에 앉혀서 말상대를 하게
해준다. 호기심 많고 궁금한 게 많고 말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
상대가 되어서 선원들이 바다 생활을 들려주는 거다. 같은 돈을 벌어도 참 밉지
않게 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지 정말 괜찮은 아이디어다.
유람선 안에 있는 쇼핑센터에 가보면 도 굉장히 물건들이 많이 쌓여 있다.
가보면 무척 한가해서 '야, 저걸 어떻게 다 파나' 싶은데도 매일매일 한 품목씩
세일을 해서 다 팔아제낀다.
유람선의 식사는 인도네시아 아해들이 서빙을 하는데, 밤애 올라가
스카이라운지에 앉아 있으면 필리핀 팀이 서빙을 하고 음악도 연주한다.
다이닝룸, 풀장, 스카이라운지, 저녁 공연하는 곳 등등 밴드도 여러 팀이다.
시간대ㅁ 코너마다 서빙하고 연주하는 팀이 다 다르다.
잠자기 전에 누워서 가만히 궁리를 해본다. 스카이라운지를 혹시 한국의
스탠드바처럼 분양한 거 아냐? 600명 가까운 종업원 월급을 어떻게 줄까? 한 번
배가 뜨면 얼마나 남을까? 저 녀석들 월급은 얼마나 될까? 손님들 객실이 천
개라는데 저 아해들의 숙소까지 합하면 방이 몇 개나 되나? 우리 방은 저
아해들이 치워주는데 저 아해들의 방은 또 누가 치워주나? 이번에 배 한 번 뜬
걸로 얼마나 벌었을까?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잠 안 올 때 누워서 우리 같은
계산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도다.
이런 데까지 놀러와서 이런 계산이나 하고 있는 우리가 아직도 생각이
세계화되지 못한 건 아닐까? 다음 여행지에선 어떤 일이 생길까하는 기대보담은
이런 계산이나 하고 있으니. 그것도 남들이 다 자빠져자는 한밤중에 말이다.
리스본에서 받은 도달 증명서
리스본 가서 '니쓰봉' 하나 사 입자!!!
6월 3일 로마 어느 항구를 출발해서 6월 6일, 리스본에 도착했다.
항구에 내려서 제일 먼저 환전을 했는데 커미션을 엄청 많이 뗀다. 알아두자!
리스본 항구에서는 환전하지 말 것! 배에서 환전해도 된다.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미터기대로 가겠다는 기사와 요금 정하고 가겠다는
기사가 서로 싸움이 났다. 결국에 미터기대로 가겠다는 기사랑 탔는데 영업용
벤츠였다. 문제는 내가 벤츠를 여러 번 타보진 않았지만, 에어컨 안 달리
벤츠는 처음 타봤다는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수동으로 올리는 창문도
고장이라서 열어놓은 채 그냥 타고 다녀야 하는 벤츠였다.
배낭족 말고 관광객 여러분들에게 당부하는데, 혹시 영어가 된다면 옵션하지
말 것! 하루 약 15만원 정도면 하루 온종일 어느 나라 택시기사나 충실하게
서비스해줄 것이다!!
리스본은 뒷길로 접어들기만 하면 좁은 길투성이다. 좁기만 한 게 아니라
일방통행이 대부분이고 언덕에다 커브길이 이만저만 꼬부라진게 아니다. 빨리
가려고 해도 갈 수도 없다. 그 사이를 아이들이 공차기를 하면서 뛰놀고 동네
아저씨들이 구멍가게에서 맥주 마시면서 앉아있다. 차가 지나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난폭한 한국 운전자들이여! 포르투갈에 와서 한 달만 시내연수 끝내고
돌아가라. 사고가 반은 줄어들 것이다.
리스본에 와서 느낀 것. 길 건널 때 신호는 정말 우리나라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잘 지킨다는 거다.
리스본 로카곶이라는 델 갔다. 말 그대로 북위 38도 47분, 서경 9도 30분,
고도 140 미터인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이다. 별 볼거리도 없고 짧은
일정으로 와보기가 부담스러운 곳인데도 우리나라 배낭족 아해들이 몇 명 눈에
띈다. 언젠가 텔레비젼의 한 초코바 CF를 보고 끌려서 왔단다. 관광공사하고
광고대해사가 잘 지내야 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거야!
땅끝도달 안내소라는 데서 땅 끝에 도달했다는 증명서를 준다. 우리나라도
육지의 최남단이라고 하는 해남 밑 토말이데가 있는데 거기 가는 사람들한테
땅끝도달 증명서 같은 걸 주민 사람들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재미있게 생각하지
않을까??? 별 거 아니지만 괜히 집에다 걸어두기도 하고 말이야. 다녀가면
아무것도 없이 끝! 하는 것보담은 낫잖아.
국경일. 차는 다니지만 표 파는 사람은 같이 논다. 나중에 페스티발 장소에서
나오는데 안 비켜주는 택시 운전기사들. 한참 실랑이 끝에 비켜준다. 그러느라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렷다. 시작부터 끝까지가 운전기사와의 문제였다. 그때 든
생각이 리스본! 정말 배가 지나다가 들르니깐 왔지 다시는 와보고 싶지 않은
곳이다.
소주 안주로 밥 먹는 포르투갈 아해들
포르투갈의 전통 음식을 먹으려고 운전기사에게 물어봤더니 자기가 잘 아는
집이 있다며 우리를 데려갔다. 서울이나 포르투갈이나 맛있는 음식점은 영업용
택시기사가 잘 안다. 두 번째 탄 영업용차의 운전기사는 영어를 제법 잘한다.
호텔에서 십 년 정도 근무를 했단다. 집사람하고 영어로 말이 통하니 무척
편했다. 포르투갈 토박이에다가 여기저기 안내도 제법 잘했다. 정어리구이가
유명하다고 해서 먹기로 하고 기사가 소개해주는 음식점으로 갔다.
음식을 시켜 먹는데 주인은 정말 더럽게 찌든 얼굴이었다. 정어리를 굽는데
집게를 사용하지 않고 길거리에다가 불판을 내놓고 숯불로 굽다가 뒤집을 때가
되면 맨손으로 그냥 뒤집는다. 손이 아주 시커멓다. 오징어를 시켰는데 먹물을
그냥 같이 구워준다. 정어리에 오징어에 갈치 그리고 돼지갈비살을 먹었다.
이게 서울 같으면 그냥 소주 안주지 어디 한끼 밥이라고 할 수가 있나???
매운 소스를 "타바스코" 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그냥 갖다 주는데 "소스,
소스" 하니 후춧가루, 식초, 소금 따위를 갖다 준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네덜란드 청춘남녀가 웃으면서 '티리티리' 하고 말해준다. 그랬더니 자기네
나라 매운 소스 상표가 그것인지 그때서야 갖다 준다.
다 먹은 접시를 치우려고 하는데 주인이 접시를 자기에게 달라는 손짓을
하면서 "컴 온!! 컴 온!!" 하는 것이다. 우리는 웃었다. 주인도 웃었다.
나중에 내가 물을 시키는데 물통을 들고 "컴 온!!" 하면서 흔드니 자기도
웃으면서 물을 하 통 갖다 준다. 지가 영어를 모르는데 나는 아나 뭐!!
먹는 얘기하니까 떠오르는 게 있다. 유람선 일행 중에 우리를 짝으려고
따라온 프로덕션 사장이 한 명 있었는데 몸이 좋고 뚱뚱한 애다. 그런데 걔가
틈만 나면 그렇게 쉬지 않고 먹는 거야. 그래서 물어봤지."너 어쩜 그렇게
밥을 열심히 챙겨 먹냐?" 그랬더니 이놈이 아주 유명한 말을 하는 거다.
한끼를 놓치면 그 끼니는 평생 못 먹는다나?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전차는 운전하는 사람이 직접 돈을 받는다. 우리가 탄
차를 보고 '파이브 미닛' 이라고 하길래 오 분마다 올라간다고 이해를 하고
기다렸는데 20분이 지나도 안 올라간다.
여기 돈 1원은 한국 돈 5원이란다. 1,000에스과도 하면 곱하기 5해서
5,000원, 이렇게 계산을 한다. 그러니까 물값이 75에스과도니까 75곱하기 5하면
375원, 길거리 카페의 커피값이 350에스과도니까 350곱하기 5는 1,750원이다.
한국에서 사용하지도 않는 1원짜리를 가지고 "1원이 5원이야." 하는 것도
재미 있는 일이다. 지루함을 달래느라 돈 계산을 하며 20분을 기다려도 전차가
안 움직인다. 그랬더니 우리 일행의 한 사람이 외친다."이것도 5분 곱하기
5해야 되나!!!" 알고보니 종점까지 올라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파이브 미닛!
5분이다.
전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이상하게 생긴 노인 비스므레 한 사내가 우리
옆자리에 탔다. 자기가 안내를 해준단다. 아주 친절하게 공원을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주고 안 되는 영어로 힘들여 가면서 설명을 해준다. 너무 고마운 일
아닌가? 자기는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이란다. 한 30분 설명을 해주더니 자기
집으로 가잔다. 전망이 죽인단다."룩 앳!" 하고 두 손으로 망원경을 보는
시늉을 하면서 "베리 나이스!!" 하고 말하면 우리는 '아, 전망이 좋은
곳이구나.' 하면서 알아 듣는다.
가만히 보니 여자 두 명 만나고 남자 하나 만나고, 온 동네 남자들하고 다
아는 척을 하는 거야. 이 노인네가, 온갖 것 다 간섭하는 노인네구나
생각하면서 그래서 우리한테도 이러는 거구나 했는데 결국은 자기 방에 들라는
거였다.
자기가 옛날 기관총으로 쌈하던 얘기를 해주며 설레발을 치고 뉴욕에서 온 친구
방 등 여기저길 구경시켜준다. 그런데 자랑스레 구경시켜주는 것 치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거 하며 집이 허술하다. 우리가 쓸방을 열쇠로 열어주는데
옛날에 수녀들이 사용하던 방이란다. 옆방에 묵는 영어를 잘하는 독일 녀석(그
녀석은 영어가 되서 손님들한테 방 소개도 해주고 그러면서 거기 공짜로
있단다.)한테 우리는 방이 정해져 있다고 했더니 그렇게 친절하던 이
영감탱이가 안면을 딱 바꾸고는 내다보지도 않는 거 있지!!!
참, 포르투갈에서 서울로 콜렉트콜을 하려면 0501-8210을 하면 된다."전유성
씨 아니세요? 반갑습니다. 여행중이신가 보죠?" 전화교환수의 한국 말소리가
반갑다.
남녀혼탕 누드비치 부러울 거 없다.
6월 9일, 프랑스의 리 하브리웨라는 항구에 도착하다.
비가 내린 곳, 리 하브웨는 모래밭 휴양지다. 도빌 바닷가로 택시를 타고
갔다. 요트가 많은 곳이란다. 도빌은 알고 보니까 정말 그지 같은
모래사장이었다. 더럽고 무지하게 찐득거린다. 그러나 동네는 집들이 너무 그림
같다. 집을 지을 때 서울랜드 아니면 롯데월드에서 허가를 내준 것 같다.
생선가게까지 이쁘다. 새우 바닷가재 소라 등을 삶아서 판다. 다른 건 몰라도
삶아서 파는 소라는 가게마다 가격이 다르다. 이유는 모르겠다. 소스 때문인가?
우리가 사먹은 곳이 1킬로그램에 48프랑이었는데 다른 곳은 16프랑도 있고
24프랑도 있었다. 바가지를 쓴 건지, 양념이 다른 건지, 말이 안 되니
구체적으로 물어볼 수도 없고, 노량진 수산시장이면 물어 볼 텐데. 가격대마다
다 사먹어 볼걸!!!?? 하여튼 뭐가 다라도 다르니 값이 다르겠지! 소라 학벌이
달라도 다르겠지?????? 도빌에 오는 아해들아!! 삶아서 파는 소라값이 가게마다
틀린 거 왜 그러냐고 물어보는 공부 꼭 해와라!!
배로 돌아오는데 택시운전기사가 롱 훌레야도 들러 보란다.
롱 훌레야는 그림 같은 요트들이 있는 곳이다. 해변 여기저기에 파라솔 꽃이
피었다. 파라솔이 활짝 펴져 있는 걸 보니까 정말 꽃이 만개한 거 같다. 파라솔
칼라가 모두 똑같다!!
움직이면서 걸어 다니는 사람은 모두가 관광객이고 그 다음이 폭주족이다.
동네 사람은 장사만 열심히 한다. 화가 모네가 살았던 집을 입장료를 내고
구경했다. 우물이 멋있다. 우물도 멋있으니 당연히 집안 구석구석이 멋있을
수밖에. 모네가 그린 교회를 골목을 빙빙 돌아서 찾아보았다. 워낙 이쁘게
생겨서 그림에 웬만큼한 소질이 있으면 누구나 세계적인 화가가 될 것 같은
동네다.
아무리 관광지라도 일요일이면 문 닫는 곳이 많다. 우리가 도착한 날이 하필
일요일이다. 카지노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문을 닫았다. 할 생각은 없었지만
구경은 하고 싶었는데. 어쨌든 구경은 못하게 됐지만 돈 안 잃은 것만큼
벌었다고 자위했다. 자위???
길을 가다가 이층으로 된 회전목마를 봤다. 회전목마를 숱하게 봤지만
이층으로 돌아가느나 회전목만는 처음 본다. 하기야 관광객이 많으니 한 번
태우면 두 배를 벙어야지! 역시 머리는 창조적으로 써야 된다.
도빌 바닷가, 누드비치에 갔는데 너무 늦어서 못 보고 왔다. 처음 간
사람들이 신기해서 쳐다보면 "야, 너희도 벗고 들어와!" 한단다.
다음날 누드비치에서 윗도리를 벋은 젊은 여자들을 선그라스를 쓰고 눈을
요리조리 굴리면서 실컷 바라봤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좋은 카메라가 있으면
뭘 하나! 용기가 없어서 찍지도 못한걸!
망원 렌즈를 갖다 놓고도 쑥쓰러워서 못 찍고,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해도 꼭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아서 그쪽 방향 비슷한 딴 데만 찍었다. 필름 아깝게!!!
책보는 할머니만 들입다 찍은 거다. 나중에 미령일 옆에 세워놓고는 미령이
찍는 척하면서 찍고, 그러다 조금씩 익숙해지니까 그냥 카메라를 갖다대게 되는
거다. 이런 걸 왜 그렇게 찍으려고 했냐구? 한 번 해봐. 정말 재밌어. 또 그때
아니면 언제 찍어봐. 사실 나 보려고 그런게 아니라 후배 남자 개그맨 아해들
보여주려고 그런 거지.
여기는 탈의실이 20여 개가 되는데 탈의실 이름이 세계 각국의 유명한 배우
이름들이다. 버트 랭카스터, 말론 브란도, 데미 무어 이런 식으로 문 앞에
하나씩 붙어 있다. 기왕이면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방에 들어가 옷 벗으면
기분이 좋겠지? 신성일 박중훈은 눈을 안 씻고 찾아봐서 그런지 안 보이네!!!
여기 아해들 가슴은 정말 우리 아해들이랑은 스케일이 다르다. 암스테르담
여자들은 머리통이 크던데 여기는 젖가슴들이 커서 고민이란다. 그래서 가슴
수술을 하는데작게 만드는 수술이 유행한단다. 병원에 일년치가 미리 예약이
되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단다.
덴마크는 호박이 많이 나오는 나라라서 아가씨들이 가슴에 호박만한 젖을
달고 다닌다는데 여긴 뭐가 유명해서 가슴들이 이렇게 큰 거야? 햇빛을
듬뿍듬뿍 받아서 큰가? 하긴 여자 가슴이나 식물이나 햇빛을 봐야 쑥쑥
자라겠지? 우리나라 여자들 가슴이 작은 게 해를 못봐서 그런 거 아냐? 불쌍한
한국 여자들의 젖. 햇빛 한 번 못 쬐어 보는 젖. 버섯처럼 음지에만 있는 젖.
젖가슴 작아 고민하는 우리 아해들아, 오늘부터 보름밤 우물가에 나와
달빛이라도 가끔은 쐬어 주자꾸나!! 그래서 우리도 가슴을 내놓자! 유럽에 오는
한국 여자 배낭족 아해들아, 남녀혼탕 누드비치에 기죽지 마라. 우리도 가슴
키워 내놓으면 될 게 아니냐, 여기 아해들 말마따나 남녀평등. 남자들이 가슴
내놓는데 우리만 왜 못 내놓는 가 말이다!
안경 너머로 본 세상
어제 도빌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상대방 모르게 눈알을 굴리면서 여기저기
훑어봤는데, 습관이 되어서 오늘은 맨 안경을 끼고도 지나가는 여자를 눈알을
굴리면서 쳐다보게 된다. 선글라스가 아닌 걸 한참 뒤에 알았다.
눈이 전에부터 나빴다. 그러나 남들은 눈치를 못 챘다. 안 보인다고 눈가를
찡그리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새방을 잘 못 알아보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탤런트가 인사를 한 건지, 아나운서가 인사를 한 건지, 사실은 거의 못
알아본다. 그러니 윗사람에게 인사 못 하고 지나간 것은 얼마나 많았겠는가!
인사성 없다는 소리도 무진장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과감히 결정했다. 안경잡이가 되기로! 10년 전부터
영화볼 때만 안경을 썼는데 이번 여행에서 본격적으로 쓰게 된거다. 구석구석
많이 보려고. 지금까지도 불편해서 안경을 쓴 건 아니었다. 그냥 안 쓴 거다.
안경을 쓰니 지금까지 헛것을 보고 살았다는 생각이 막 들면서 세상이 진하게
보인다. 세상이 진하게 보이니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
살면서 한 번뿐이 못 들를 곳이 많은데 흐릿하게 보고 가느니 진하게 확실하게
보자는 생각으로 안경을 쓴 것이다. 지금은 진하게 보이는 것을 더 진하게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흐릿하게 세상을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물의 진정한 형태를 못 보고 서로 비슷한 것을 보는 것은 아닐까???
안경을 쓰면 맨눈보다야 잘 보이겟지. 도수를 높이면 좀더 잘 보이겠지.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는 사물들이 진정한 실체는 뭔가 말이다. 우리는 무얼
보고 사나?
나는 가끔 안경을 들고 안경을 쓰기 전 세상을 바라본다. 가끔 가끔 세상이
콧등을 누른다.

제3장 한복에 갓 쓰고 선장파티 갔더니
도보로 걷기 좋은 도시, 도버
6월 10일, 간밤의 과음으로 아침을 굶었다. 영국 도버에 도착!!! 오늘은 뭘
구경하려나! 도버 성을 가기로 했다. 한참을 걸었다. 도버는 도보로 걷기에
좋은 도시다(사실 한 지역을 가장 잘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은 길을
걸으며 사람들의 표정과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거리의 분위기를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기에 제일 좋은 건 도보로 걷는 거다).
도버 성에서 바라보는 주변 경치는 정말 좋다! 성이라는 게 원래가 사방이 다
보이면서 감시하기 좋은 곳에 짓는 것이 상식이지만 자리 하나는 정말
명당자리를 잘 잡았다.
여러 도시를 다녀보니까 성이란 게 대강 두 종류가 있는 거 같다. 수비하기
위한 게 있고 명당터에 별장처럼 근사하게 짓고 사는 게 있다. 도버 성은
쌓아올린 돌이 굉장히 날카롭다. 옛날에 왜 도둑놈들 못 들어오게 하려고 깨진
유리조각을 담벼락에 일렬로 쭉 박아놓은 것 같은 그런 돌들이 중간중간에
있다. 그런 돌들이 대체 어디서 나는지. 이 지방에서 나는 돌인지는 몰라도
이런 돌들로 성을 쌓아놓으니 도무지 기어 올라올 수가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손톱으로 긁어봤더니 손톱이 깎이는 수준의 날카로운 돌조각들이다. 로마
병사 중에 계급이 낮아서 선발대로 올라가야 됐던 병사 아해중에 몇 명은
틀림없이 이 돌들에 손을 상했을 거야!!!"앗, 앗! 따거" 이러면서 살이 찢어진
놈도 있었겠지.
도버 성을 구경하다가 무작정 아무 문이나 열고 들어가봤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어느 교실에 모여 앉아 있었다. 물론 선생님도 계셨지! 학생들이 1에
두 번씩 실습을 나온단다. 무슨 공부를 하는가 했더니 도보 성 안에 있던 선조
병사들이 썼던 투구랑 갑옷, 그리고 방패, 칼, 신발 등등을 사진, 모형,
슬라이드로 다 보고 그걸 또 초등학교 아해들을 위한 사이즈로 축소해놓은 걸
입어보고 TV보고 들어보고 신어보는 공부였다.
돌 같은 거 나를 때 지렛대를 이용해서 이쪽에서 꾹 누르면 널빤지 같은 거
위에서 돌이 휘익 하고 날아가는 거, 그런 것도 다 실제와 똑같이 만들어서
아이들이 해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보초를 어떻게 섰는가. 두
시간씩 교대를 했는가, 15분씩 했는가. 교대하는 방법은 또 어땠나 그런 것도
직접 와서 해보고 배운단다. 그러니까 수백 년 전 자기네 조상들이 적군들을
맞아서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아이들이 직접 몸으로 느끼게 하면서 배우는 거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데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때 덕수궁에서 매년 하던
국전을 단체로 구경가던 생각이 난다. 우르르 걸어가다가 특선이라고 써 있으면
잠깐 보고, 그냥 줄 서서 있다가 돌아오고 그랬는데 여기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그림을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아이들을 그림 앞에 앉혀놓고 마냥 보게 하면서
그림 설명을 해주고 느낌을 말하고 그림 하나하나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을
듣는다. 너희들은 어떻게 그림을 봤느냐고 물으면서. 그리고 그 앞에서 그림도
그려보게 한다. 유명하거나 대표적인 그림 앞에서는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진지하게 질문하고 따라 그린다.
우리 같으면 쭉 서서 그냥 보게 할 텐데. 유화로 세계적인 그림 앞에서
그림을 따라 그리는 화가 지망생도 있다. 달리의 초상화를 똑같이 그리는 건데
저러다가 진짜하고 바꿔치기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행 중에
하나는 액자가 없으니 못 바꿔칠 거라나? 바꿔치기 하려면 액자는 못 만드나?
하면서 전시장을 나오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저렇게 그리는 거 허락해줄까 하는
생각이 나중에야 들었다.
아무튼 그런 건 정말 아주 훌륭한 교육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남한산성
같은 데 가보면 그냥 한번 눈으로 주욱 보고 오잖아. 기껏해야 닭도리탕이나
먹고. 예를 들면 우리도 남한산성 같은 데서 병자호란이나 임진왜란 때 적이
쳐들어왔을 적에 옛날 병사들이 보초를 어디어디에 어떻게 섰는지, 돌멩이는
어떻게 굴렸고 어떻게 적진을 들여다봤고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한번 직접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거다.
거 왜 성들을 보면 여긴 나 같으면 금방 넘어오겠네 할 정도로 허술한 데도
많잖아. 그럴 땐 어떻게 지켰을까, 교대는 어떻게 했을까를 아이들한테
시켜봤으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정 안되면 남한산성에 올라가서 이
기둥 저 기둥을 기웃거리며 몇백 년 전 몽고병이나 왜놈들이 쏜 화살
자국이라도 한번 찾아보고 오는 게 산 교육이 아니겠냐는 거다. 동학농민전적비
같은 데 가서도 그냥 있는 게 아니고 그 당시 어떤 식으로 싸움을 했는가 하는
걸 직접 실습으로 느껴보고 포졸 옷이라도 한번 입어보고 옛병사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우리 아이들이 느껴보면 좋을 텐데!
아, 꼬막비빔밥이 먹고 싶다
한국 음식점이 없으니 영국 도버에서 발견하는 중국 음식점도 반갑다. 한국
음식점이 있으면 불친절해도 반가울 텐데.....! 불친절한 한국 음식점이
그립다. 집 나온지 벌써 한 달째다.
얼마 전까지 한무관(가명)이라는 한국 음식점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단다.
그 사연이 조금은 슬프다. 도박해서 번 돈으로 그 음식점을 차렸다가 다시
도박으로 날렸단다. 한무관 주인 아저씨, 지금은 채소 도매상을 하면서
식당으로 채소 배달 다닌단다.
이 아저씨가 어느 날 카지노에서 딜러가 잘못한 것을 발견했단다. 딜러가
잘못했다, 아니다 맞다 말싸움을 한참 하다가 이 아저씨가 ,"조금 전에 한 걸
녹화해놓지 않았느냐, 그걸 보면서 누구 말이 맞는가 300파운드 내기를 하자"고
했대. 도박꾼답게 말이야, 결과가 궁금하지?
나중에 카지노 지배인이 와서 자기네가 맞고 주인 아저씨가 틀렸다고 했단다.
내기는 물론 안 했지! 만약에 자기네 딜러가 잘못한 것이 공개된다면 장사에
도움이 안 되니까 틀어보나마나 딜러가 잘못한 게 없다고 우겼단다. 보나마나
인상도 험악하게 썼겠지? 그때 우리 편이 한 명이라도 있었어야 되는데, 그게
다 객지의 설움 아니겠어.....! 우리나라에서 영국 사람이 그렇게 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지배인이 와서 사과하고 딜러를 교체하지 않을까???
아무튼 우리 일행은 한국에 돌아가면 먹고 싶은 것 하나씩 돌아가면서 말을
해보았다. 꼬막, 토하젓, 어리굴젓, 그리고 삼겹살이다.
가끔 가다 여행을 댕기면서 뭐 먹고 싶은 걸 얘길 많이 하는데 처는 그럴
때마다 제첩국이 먹고 싶단다. 나는 진도의 김정현 씨가 소개해서 먹어본
꼬막비빔밥이 먹고 싶다. 10월에 진도 가서 한번 먹어야지!
사실 외국에 나와서 한국 식당을 만나면 참 반갑다. 중국 음식점도 반가운데
왜 안 반갑겠어? 문제는 한국 음식값이 너무 비싸다는 거다. 단체 관광객들이야
정가대로 먹나? 단체니까 할인해서 먹겠지. 정작 제값 주고 사 먹는 건 돈 없는
배낭족 아해들 아닌가??? 배낭족에게 20퍼센트 할인을!!!! 안되면 외국은
인건비가 비싸니까 밥 먹여주는 대신 설거지나 서빙 같은 걸 시키고 밤에
청소시키고 재워주고 하면 어떨까?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여행이란 무엇인가를 굳이 설명 안 해도 다른
나라에 와서 다른 나라의 관습을 알아보고 딴 놈들은 어떻게 사는가도 보고
내가 살던 환경과 어떻게 다른가도 느껴보고 등등......! 그런데 음식 먹을
적에 문제가 생긴다. 우리 입맛에 맞는 것만 먹어야 될까? 입맛에 안 맞더라도
이 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걸 먹어야 될까? 그런데 가이드들이 새로운 맛을
보게 해주려고 데리고 가면 입맛이 맞네 틀리네 무진장 투덜댄단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한국 사람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준다고 하는데 사실은 여행 가서 우리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먹으려면 여행을 왜 가냐는 거야. 어느 게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후자를 택해서 다닌다.
그런데 다니다 보면 음식을 배달해 먹을 수 있는 한국이 역시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피자는 외국에서도 배달해주지만, 집에서 시켜먹고 싶은 게,
누워서 편안하게 먹고 싶은 게 어디 피자뿐이랴!!! 그래서 우리는
배달민족이다!!
촬영기사 덕분에 150파운드 벌었네!!!
누구나 아침에 어떤 노래를 한 번 부르게 되면 하루 종일 그 곡조가 입에서
떠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수들도 그런지 알고 싶어 10년 전쯤에
조영남에게 물어 봤다. 가수들도 그렇단다. 결혼해서 집사람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그렇단다. 켄터베리 성당에 간다고 하니 발음이 비슷해서 그러나
켄터베리하고는 관계가 전혀 없는 켄터키 옛집이 입에서 떠나지 않고 자꾸만
튀어나온다.'켄터키 옛집에 햇빛 비치어 여름날 검둥이 시절, 저 새는 긴 날을
노래 부를 때 옥수수는 벌써 익었다.'
켄터베리는 런던에서 한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는 작은 도시다. 유럽이 다
그렇지만 영국하고도 켄터베리라는 동네는 특히 역사를 후손들이 벌어먹는 데
참 잘도 이용한다. 동네 집들도 아주 오래됐는데도 흰 집들도 많다. 그대로
페인트만 요새 걸로 발라서 사용한다.
켄터베리는 성당뿐 아니라 거의 모든 관광지들이 실내촬영은 못하게 한다.
카메라를 가져간다 해도 플래시는 못 터트리게 한다. 그러나 개인이 소지한 8mm
비디오 카메라는 대개 눈감아준다.
켄터베리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유명하다. 조명이 없던 시절이므로 채광용으로
만든 것들인데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그지? 사전에 150프랑을 내면 촬영을
허가해준단다. 그냥 무대포로 찍다가 신부에게 지적을 당하자 얼른 헌금통에
돈을 넣고 기도하는 시늉을 했더니 찍으란다. 촬영기사의 기지로 150파운드
벌었네!!! 촬영기사도 그러니까 어릴 때 수박 서리 경력이 꽤 되는 거야.
그러게 경력자는 경력자끼리 알아본다니까.
켄터베리 성당 옆의 선물가게에서 발견한 부처님, 오리지널 중국 부처다.
나무관세음보살! 반갑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배로 돌아가다가 이상한 아저씨를 만났다. 동네 카페에 앉아 있어는데
애완용으로 이구아나를 기르는 것이었다. 이구아나는 개구리하고 악어하고 만든
잡종 비슷하게 생긴 아주 기분 나쁜 파충류 같은 놈인데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이 자식이 안된다는 것이다. 돈을 내란다. 준다고 했더니
2프랑을 내란다. 2프랑을 주고 나니 서비스라면서 윗주머니에서 흰쥐를 꺼내어
이구아나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징그러워 혼났는데 이번에는 이구아나를 내
어깨에 얹어놓는 것이다. 내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내 얼굴을 보고 집사람이
가져가라고 했더니 이 친구 한술 더 뜬다. 5프랑을 내야지 가져간단다.
이구아나는 2년 길렀고 쥐는 1년을 길렀다는데 이 자식이 "고우 홈!!" 하니
달랑 윗주머니로 들어간다. 이거 말고 또 뭘 기르냐고 했더니 뱀이랑 고양이 네
마리, 개 세 마리, 악어 여섯 마리를 기른단다. 별 미친놈 다 봤네!!! 2프랑은
왜 달라는 거야. 달라는 기준이 뭐야? 웃기는 자식!!
브뤼셀에선 개도 학벌이 있어야 한단다
6월 11일. 벨기에 항구다.
평생 안 와도 인생관에 별 변화를 줄 것 같지 않은 나라 벨기에의 '지' 뭐로
시작되는 항구에. 아침에 일어나니 배가 닿아 있다. 물론 유람선 일정에 들어
있던 곳이다. 폭풍우 한번 안 만나나? 그러면 얼마나 훌륭한 추억의 여행이
될까!!! 그럼 난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 소재가 생길까? 상상속 이야기를 점점
부풀려가면서 말이다. 왜, 괜히 한번씩 그런 생각들 안 해? 비행기가
납치됐다거나 폭풍을 만났다 그런 기사 같은 걸 읽으면 나는 꼭 그런 생각을
했다. 야, 내가 거기 납치되는 데 들어가 있었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물론
무사히 돌아온다는 보장만 확실하다면.
항구에 도착해서 내리는데 배 입구에 출입국관리소 직원 둘이 나와 있다.
미국 사람들만 내리는데 생긴 모양이 이상해서인지 우리보고 여권을 보잔다.
우리는 승선할 때 여권을 배에다가 맡겼는데 어느 틈엔가 미국 아해들(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자기의 여권을 손에 손에 전부 들고 있는 게 아닌가! 배 사무실에
올라가 여권을 찾아왔는데도 한참을 들여다보고 무전기로 통화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다 지나간 다음까지 정말이지 쪽팔리게 기다리게 한 다음 스탬프를
찍어준다. 그 스탬프라는 것이 또 얼마나 엉성한지 찍힌 것 같지도 않다.
찍어준 저도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그대로 준다.
나중에 내려서 스탬프 찍힌 곳을 찾아보니 무슨 글자인지 하나도 안 보인다.
그러려면 뭐하러 찍냐? 하여튼 벨기에는 잉크가 모자라는 나라인가 보다, 하는
인상을 가지고 항구에 내렸는데 아마도 다시 '벨기에'를 '볼 기회'는 없을
것이다(나중에 보니 이 벨기에 항구에 북한은 등록이 돼 있는데 남한은 등록이
안 돼 있단다. 함장이 꼭 돌아올 사람이라고 보증까지 선 끝에 내려보냈다는
거야. 이런, 세상에!!!).
벨기에 싫다싫다 하니 카메라 배터리도 떨어지네.
아주 오래 전, 지금부터 40년쯤 전에 왜 그랬는지 손을 잘 안 씻어서
엄마한테 매 맞은 적이 있다. 손을 안 씻으면 겨울에 갈라져 터지기도 했다.
손등으로 코도 문지르던 시절이니 오죽했으랴!!! 뜨거운 물에 때 더께가
덕지덕지 앉은 손을 한참 불려서 씻곤 했는데 정말 무서운 엄마라는 생각을
했었다. 브뤼셀 시에 있는 빌딩들을 보면서 갑자기 때를 불려서 씻어내던
시적이 생각나는 건, 도시 전체의 빌딩이 때가 너무 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엄마 같은 무서운 사람이 나타나서 한 달에 한번이라도 물 청소하는 날로
정하면 도시가 깨끗해지지 않을까.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동전 닦는 약을
학교에서 나눠준 다음 각자 구역을 배당받아 동상에 광을 내본다든가, 잘 닦은
아해들에겐 우등상을 준다든가 하면 어떨까???
이 나라는 초콜릿과 함께 맥주가 유명하다. 각종 맛이 나는 맥주가 110종류나
있단다. 오렌지맛 맥주, 신 맥주, 사과맛 맥주 등등 별의별 맛이 나는 맥주가
다 있다. 일반 가정집의 뒤편에 공장을 차리고 바로 뽑아낸 사제
생맥주들이란다. 그러나 한 가지 없는 게 있는데 그건 바로 초콜릿맛 나는
맥주다. 이유를 물어보니 초콜릿맛 맥주는 맛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그 유명한 초콜릿이 팔리지 않을까봐 초콜릿 업자들이 로비를 해서
안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정말 한국적인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우린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으니까!!!
맥주 말고도 유명한 게 또하나 있다. 레이스다. 각종 레이스들이 현란할
정도로 화려하고 정교하다. 그것도 모두 직접 손으로 짠 것들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길가 벤치나 공원, 상점 같은 데서 레이스를 뜨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많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홀치기 하던 옛날 우리 엄마들을 생각한다.
슬픈 기억이다. 홀치기가 뭔지 가게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를 엄마에게
물어보자. 편물도 마찬가지다. 요꼬니 뭐니 해가며 밤도 새고, 그것들이 다
어려운 시절 엄마들의 요긴한 아르바이트였던 것이다. 가격은 만만치가 않아서
우리나라 돈으로 보통 8만원, 좀 괜찮다 싶으면 10만원을 넘는 바람에 미령이도
군침만 삼키고 사지는 못했다.
도버에서도 중국 음식점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벨기에도 항구에서 나오자마자
첫번째 집이 중국음식점이다. 영어로 'Good Luck'이름도 똑같다.
체인점인가!!!!!!!?
식당에서 옆자리 할머니에게 종업원이 술을 따라주는데 다른 사람보다 조금
적게 따라준 모양이다. 그랬더니 이 할머니 하는 말,"나도 딴 사람이랑 똑같이
돈 냈는데 왜 조금 따라주는 거요?" 이런 세상에, 그냥 "조금 더 줘!" 하면 될
것을! 양보심 희생정신이 없는 아해들이다. 걸핏하면 바로 고소하고 고발하고,
고소가 뭐냐? 법률용어라서 그럴 듯하지 사실은 일러바치기 고자질 아니냐구!!!
나라에다 이르는 거지.
따지기 좋아하는 여기 사람들도 보통 때 보면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개 기르기다. 벨기에 사람들도 다들 개를 좋아한다. 한가롭게
발바리나 치와와를 앞세우고 거리를 산보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사람도 식당에
가서는 술 적게 따라줬다고 종업원한테 언성을 높일까 상상이 안 간다. 한번은
어느 성당에 가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거기까지 개를 끌고 들어온 미국인
부부가 있었다. 놀라서 쳐다보니 개가 카톨릭 신자란다. 미친 자식! 내가
세례주는 시늉을 했다. 복날 잘 넘겨라! 좋은 나라 태어났다, 이 자식들아!
개를 키우면 좋은 점이 있단다. 우선 개 똥오줌 가리게 해야지, 개밥
먹여야지, 산책시켜야지, 그러다 보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고
건강해진단다. 특히 산책 때문에. 한국에선 한가지 장점이 더 있다. 먹으면
몸보신도 된다는 걸 이 사람들은 모르나??? 여기선 아무 개나 막 기르는 게
아니라 훈련받은 개만 기르게 되어 있단다. 개도 학벌이 있어야 된다는 얘기다.
말이 좋아 작은 유럽이지 표절 동네 아냐!!
브뤼셀이라는 도시는 프랑스식 정원이랑 독일식 정원이 마주보고 있는 것도
자랑이라고 생각하는지 관광코스에 들어가 있다. 파리의 개선문을 닮은 것도
있고 에펠탑도 있단다. 작은 유럽이라고 표현하는데 말이 좋아 작은 유럽이지
나라가 표절 동네 아니냐구! 이 동네는 공윤심의 기구가 없나??? 천년이 된
도시라고 자랑은 대단하던데 말이다.'바람이란 건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부는데 사람들은 변했더라'고 노래하던 박재삼의 '천년의 바람'이란
시가 문득 생각난다. 서울 가서 읽어보자.
항구에선 브뤼셀까지는 약 한 시간이 걸린다. 김포에서 시청 앞까지 한 시간
동안 뭘 설명할 수 있을까??? 역시 반만 년을 어떻게 설명하리!!
브뤼셀 운하를 보트 타고 둘러본다. 보통 600년 된 다리들이 운하에 무척
많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할 무렵 지은 다리들인 셈이다. 콜롬버스가
미국 대륙을 발견하기 400년의 일이다. 이러니 유럽을 다니면서 미국 아해들은
무진장 부러워할 거야! 역사가 있는 도시들을 보면서.....! 콤플렉스 느껴지지
않겠어?
운하 양편에 군데군데 보이는 집들이 모두 독일 양식의 집, 포르투갈 양식의
집이란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건 뭐니뭐니 해도 오줌 누는 소년상이다. 그러나
실제 이 동상 앞에 선 세계의 관광객들은 모두 "에개..." 하며 실망한다.
그만큼 실제로 보면 볼품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보잘것없는 것들도 관광상품화 해서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바로 그 발상이 대단한 거다. 많은 나라들이 이 오줌 누는 소년상을
표절해서 여러 군데에 비슷한 소년상을 세워두고 있다. 해운대 극동호텔
앞에서도 본 것 같다. 아주 오래 전에. 그런데 오줌 누는 소년상은 없단다.
조물주도 감추려고 안으로 집어넣은 걸 인간들이 공개석상에 만들어놓는다는
것은 조물주의 뜻을 어기는 거라서 그러는 걸까?
브뤼지인지 뭔지 여기는 말똥 냄새가 심하다. 프랑스에선 개똥 땜에
골치였는데 여기선 말똥이 날 괴롭히는구나!!! 마차 때문에 그런가? 브뤼지에
오는 사람들아, 말똥을 조심합시다!!
벨기에에서 배울 걸 딱 하나 발견했다. 카펫 파는 집인데 아깝게 사진을 못
찍었다. 사진 안 봐도 설명만 들으면 우리나라 사람들 다 알 거다. 카펫을 여러
개 매달아 하나씩 내려가게 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게 한 아이디어다.
연극무대의 막처럼 카펫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좁은 진열장인데 열댓 장의
카펫이 순서대로 오르락내리락 하니 얼마나 기가 막힌 아이디어인가???
우리나라 포목점도 한번 시도해봄직!!! 이거 배울 만하다. 써먹을 만하다.
표절할 만하다.
'10일 동안 8개국'은 효도관광이 아니라구!
이 나라에선 두 나라 말을 사용한다니 정치하는 사람들 정말 어렵겠다.
연설을 두 번씩 해야 된다니 말이다. 나중에 다른 당 사람이 오리발 내밀면서
"못 들었어요" 하고 우기면 돌 거다. 또 복잡한 언어 때문에 학교도 스물 한
개씩이나 다양하게 있단다. 자기가 할 줄 아는 말로 가르치는 학교를 다녀야
한단다.. 전학을 가게 되면 어떡하지, 그럼?
벨기에 가이드의 당부 말씀. 발음이 웃기더라도 이해해주고 뭐든지 물어보면
답변을 성심껏 해주겠단다. 자기도 발음이 웃기는 건 아는 모양인데 그런
영어가 우리나라 사람이 듣기는 훨씬 좋지! 이해도 쉽고!
여기선 할머니 할아버지가 엘리베이터에서 주고받는 이야기가 굉장히 많은데
알고 봤더니 "여기가 우리가 내릴 층이 맞느냐""맞다""아닌 것 같다" 이런
이야기인 것 같다. 6월 3일에 배 타고 일주일쯤 지나니까 귀가 조금 트인다. 말
한마디 못하는 사람도 한가지 말을 오래 들으면 귀가 뚫린다고 하더니 나도
이제 서서히 외국말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나 보다. 가이드가 설명하는
바나나, 파인애플, 초콜릿이라는 단어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걸 보면!?
결혼 후 얼마 안 됐을 때 영어회화 테이프를 팔려고 집요하게 내게 찾아오던
세일즈맨이 한 명 있었다. 안 산다고 해도 필요하니 사라는 거다. 값도 비싸고
해서 안 샀는데 나중에는 나한테 출근하듯이 매일 찾아온다. 나중에 내가
한마디했다."솔직히 이야기해서 나는 영어가 필요없다. 왜냐하면 나는
동시통역기가 있다." 그러자 그런 게 어디 있냐는 거다. 나는 정색하고 말했다.
"있다, 우리집에. 우리 마누라가 동시통역기다. 어쩔래?" 그 후로 테이프
팔려던 아해는 다시 안 나타났다. 지금은 뭐하고 있을까? 테이프 팔러 다니면서
영어는 좀 늘었을까?
보통 때는 사랑의 유람선 비디오 찍으려고 차를 빌리든가 가이드들을
동행하고 다녔는데 벨기에에서는 호텔에서 정해준 관광버스를 일부러 한 번
타봤다. 그게 도대체 어떤 건가 해서 타봤더니 나이 먹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많이 돌아다니는 것보다 밥 잘 주는 걸로 그냥 끝이다. 식당에서 밥 먹는 데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이 걸린다.
식사 후에 간단한 관광이라도 해보려고 집합시간을 물으니 가이드가 장담할
수 없단다. 노인들이라서 식사시간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라나. 밥들은 잘
먹어요 참! 그러니까 무조건 "구경하고 오세요"지,"몇 시까지 오세요"가 안
되는 거다. 그래 가지고 할아버지 한 분은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유람선을 타면 유람선 마크가 달린 가방을 하나씩 준다. 수영장에 갈 때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는 헝겊 가방이다. 경유지에 내려서 쇼핑을 하거나 간단한
물건을 넣고 다니기에 좋은 가방이다. 안네의 집에서 촬영을 마치고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가 나에게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버스가 어디
있는가를 묻는다. 길을 잃은 것이다. 옵션으로 나온 할아버지다. 나는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몰라 그냥 쳐다보면서 웃었다. 그랬더니 이 할아버지가 헝겊
가방을 가리킨다."너 이 가방 알지? 우리 일행이잖아, 나는 너를 알아본다구"
대충 이런 뜻 같았다. 그러나 길게 설명해 줄 수 없는 나의 입장이고 보니
무조건 "아이 돈 노우"라고 했다. 그러자 이 할아버지, 무척 당황한 표정으로
허둥지둥 길을 건너간다.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여행 다니는 우리나라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 대부분 자식들이 보내
주는 효도관광인데 여기는 자기들이 벌어서 떠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다.
유람선 관광은 특히 그렇다. 심할 경우 10일 동안 8개국을 다니기도 하는데
그런 효도관광은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얘기하는 가이드들도 있다.
시차적응 문제도 그렇고 몸의 리듬이 다 깨진다는 거지. 이 나라 저 나라 막
옮겨 다니면서 무리하게 여행을 하면 물 갈아 먹고 배탈도 나고 잠도 잘 못
자고 고생스러워서 앓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거다.
할아버지가 유람선 계단 네 개짜리 턱에서 굴렀다. 나중에 보니까 치료는
아주머니가 하던데 같은 할아버지들 둘이 부축해서 일으켜 세워 같이 끌고
간다. 여행도 힘있을 때 다녀야지, 지팡이 짚고는 아무래도 좀......!
길 잃은 불쌍한 할아버지 이야기를 우리 일행에게 했더니 안되기는 뭐가
안됐냐고 한다. 내가 길을 잃어버리면 더 황당하지, 저 할아버지는 영어라도
된다는 거다. 맞아, 나는 정말 황당해질 거야.
영어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우리는 바디 랭귀지를 하고 상대방이
알아들으면 굉장히 좋아한다. 예를 들어 가게에 가서 칫솔을 사면서 이를 닦는
시늉을 하면서 치카치카 소리를 막 냈더니 주인이 알아서 칫솔을 꺼내준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의 바디 랭귀지 실력에 엄청 흐뭇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걸 과연 우리만 흐뭇해할까??? 아닐 것이다. 그들도 외국인이 바디 랭귀지로
한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에 흐뭇해하면서 '역시 나는 머리가 좋은 놈이야. 저
사람의 손짓발짓을 다 알아듣고 말이야' 할지도 모른다.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바디 랭귀지를 많이 구사하자??? 아니,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벨기에 할아버지 할머니들하고 옵션 투어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미령이가
아프다. 웬만하면 아프단 소리를 안 하는데........ 그러고 보니 결혼 후 처음
아프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돌아다녀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기를 빼앗긴 것 같다. 다행히 그 다음날은
멀쩡하다.
배 안에선 수염난 털보 할아버지들이 다 해적같이 보인다.
한복에 갓 쓰고 선장파티 갔더니...
유람선을 타면 꼭 한 번씩 선장파티라는 걸 하는데 선장 파티 때는 예복을
입고 가야 한단다. 배 스태프들을 소개받고 배 역사에 대해서 설명 듣고 샴페인
한잔 얻어먹는 자리다. 여기 사람들은 선장파티라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결국에는 선장이랑 사진 찍고 사진값 받아먹기 위한 건데도 말이다.
그래서 들어갈 적에 선장이랑 사진 찍으면 굉장히 영광되게 생각해서 막
나름대로 예의를 갖춰 정장도 하고 그러는데 우리는 뭐 굳이 그것 때문에
무겁게 정장 한벌 안 챙겨도 된다. 선장파티에서 출석 부르는 것도 아니고 안
간다고 찍히는 것도 아니거든.
뭔가 해서 나도 한 번 가봤는데 얘기 듣고 질문도 하고... 뭐 그렇고 그런
자리였다. 질문도 별로 없어서 일방적으로 자기네들끼리 소개하고 뭐 그런
정도다. 난 옛날에 신혼여행하면서 한번 참가해본 경험이 있어서 부러 한복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미령이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갔다. 그래 갖고 한국
사람이라고 그랬는데 파티자리에서 영어선생 딸을 한국에 둔 6^3,25^25
참전용사 할아버지를 만났다. 참전용사는 94년에 기념으로 받은 커프스 버튼을
와이셔츠에 하고 왔다며 보여준다. 자기 딴에는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해서
하고 나온 거다. 며칠 뒤엔 또 한국서 받은 훈장을 들고 있다가 갑판에서
나한테 보여주면서 하는 말이 자기 딸이 한국의 영어선생님이란다. 한국에
대해서 뭘 좀 안다며 얘길 하는데 자기도 한국 박물관에 가서 이 의상은 봤지만
신발이 지금 신고 있는 게 아닌 것 같단다. 왜냐면 운동화를 신고 있었거든!
유람선 안에서 TV를 본다. 테니스 선수가 테니스를 치고 있다. 그냥 막
고통스러워하고 점수 뺏기면 괴로워하기도 한다. 한 게임 한 게임 굉장히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혼자 무식한 생각을 해본다. 저렇게 힘들게 왜 하나.
그냥 회사 댕기면서 가끔씩 즐기면 훨씬 재미있을 텐데!!!
세상에는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지금부터 10년쯤 전의 이야기다.
연극하는 후배가 있었는데 연극해서 먹고살기 힘들다고 취직을 했다. 연출을
전공하는 친구였고, 대선배님들의 조연출도 여러 작품 했고 자기 이름으로
연출을 해서 공연도 했던 장래가 촉망됐던 친구였다.
원래 연극이라는 게 몇 년 전만 해도 나이 30이 다 된 배우라도 옆구리에
자신이 출연하는 포스터를 끼고 나가서 붙이는 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알았다. 어디 그뿐인가? 세트 만드는 일, 의상 구하는 일, 소품 만들고 구하는
일, 신문사마다 보도자료 돌리는 일, 서울시내 구석구석을 오직 걸어다녀야만
할 수 있는 예매처에 표 갖다 주기, 새로운 예매처 개발하기, 인쇄소
다니기..... 연극이 관객에게 보여지기까지는 정말 한도 끝도 없이 해야 될
일이 산더미 같다. 이건 니가 할 일, 내가 할 일이 따로 없다. 배우고 스태프고
누구나가 다 해야 될뿐더러 밤낮 구분도 없는 거다. 한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고
또다른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면 또 똑같은 작업을 처음부터 다 다시 해야 한다.
그래서 연극판에서 10년쯤 일하다 보면 못하는 일 없이 다 잘하는 사람이
된다. 특히 몸으로 때우는 일이라면 누구보담도 자신 있어 한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해도 돈 한푼 안 생기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이 친구도 그렇게 해결사가 되어 연극 계통에서 12, 13년쯤 일을 하고 보니
이젠 마누라도 생기고 얼마 안 있으면 아이도 딸릴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서더란다. 그래서 그 사랑하는 연극을 때려치우고 어느 회사에 취직을
했더란다.
회사에 들어와서 보니 사실 회사 일이라는 것이 연극에 비해서 훨씬 쉽다!
그놈의 아침 출근 시간 맞추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몸으로 때우는 일보담은
시간으로 때우는 일이 더 많더라는 것이다. 오전에 영동 쪽으로 나가면 그걸로
오전 일과 끝이요, 오후에는 또 강북으로 어디로 몇 군데 전화하면 또 그걸로
끝! 그렇게 일하면서 몇 년 지나고 보니 연극 생각에 밥맛도 없고 일도 손에 안
잡히고...... 결국 다시 그 고생을 사서 하겠다고 연극판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다. 그렇게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면 고생도 낙이라지 않는가
말이다. 남 보기엔 암만 고생스러워도 자기한테 맞는 일은 따로 있는 법이다.
배 안에서 하는 영화가 별로 재미가 없다. 영화를 배 안에서 아무거나 해줄
것이 아니라 그 나라와 관계된 유명한 영화를 해주면 좋을 텐데.'로마의
휴일'이나 '안네 프랭크의 일기''포세이돈 어드벤처''안데르센 동화''론
스토리''파랑새' 등등 고르면 얼마든지 많잖아......!!!
한국말 안내장이 있는 풍차마을
잘사는 나라냐 못사는 나라냐는 호텔 욕식에 들어가서 뜨거운 물을 틀어보면
안다! 뜨거운 물이 늦게 나오는 나라일수록 못사는 나라다. 잘사는 나라는
틀자마자 바로 뜨거운 물이 나오거든! 잘 생각해보라고. 옛날에 장(여관방)
같은 데 가면 녹물이 한참 나오다가 미지근한 물이 나왔잖아!
유럽에 와서 느낀 건 직업의 종류가 많아야 잘사는 나라라는 거다. 하수도
상수도만 봐도 알 수가 있다. 못사는 나라 방글라데시 같은 데는 상하수도가
없다(정말 없나? 이거 이러다가 있으면 방글라데시 대사관에서 항의할
텐데.....). 당장 수도 하나만 해도 없다고 생각해보라! 그렇게 되면 수도꼭지
디자인하는 놈 없지, 수돗물값 받으러 다니는 놈 없어지잖아. 수도가 하나
있음으로 해서 하수도 고치는 놈 생기지, 상수도 파는 놈 생기지, 수도계량기
맞춰주는 놈 생기지, 수돗물 나쁘다며 정수기 팔러 다니는 놈까지 수십 개의
직업이 생겨난다는 거다. 그렇게 되는 거라고.
풍차돌이는 아마 전세계에서 네덜란드에만 있는 직업인 것 같다. 풍차가
바람으로 돌아가니까 바람 부는 쪽으로 사람이 돌려주는 거다. 풍차마을에
갔는데 한국에 소개하겠다니깐 입장료를 안 받아서 기분이 좋았고 두 번째는
한국말로 안내장을 만들어놓아서 기분이 좋았다. 한국말 안내장은 유럽 와서
처음이다. 귀여운 아해 풍차돌이!
둑으로 쌓아서 바다보다 낮은 나라! 암스테르담은 한마디로 뚝섬이다.
바다보다 낮은 뚝섬이라서 생긴 직업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 중에서도 아마 뚝
잘 쌓는 사람이 제일 대접받겠지?
풍차마을에선 대낮인데도 개구리 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우리나라에 있을 땐
밤에만 우는 소리가 들렸는데! 날씨가 우중충하니 개구리가 밤인 줄 알았나
보다! 변덕 많은 날씨. 아침에는 춥더니 낮에는 우중충하더니 오후엔 덥더니
밤에는 다시 쌀쌀하다.
암스테르담에도 중국인들이 제일 많은 직종은 식당이다. 제일 비싼 음식점은
선상식당인데 역시 중국 아해들이 하는 곳이란다. 비싼 이유를 물었더니
가이드는 모른단다. 물 위에서 장사하니깐 언제 떠내려갈지 몰라서 그러는 거
아내???
여기도 한국식당이 있단다.'한국관' 이다. 종업원이 한국 사람인줄 알고
한국말로 말을 걸었더니 못 알아듣는다. 알고 봤더니 인도네시아인이란다. 한국
종업원을 구할 수 없으니 한국 사람 비슷한 외모로 구해놓은 것이다. 영어로만
주문을 받는데 음식이 하도 안 나와서 빨리 갖다 달라고 "빨리 줘요!!" 하고
한마디했더니 그 말은 알아듣는다."아이 언더스탠" 하면서 알았단다.
칼스버그의 나라라 그런지 여기 맥주는 맛이 굉장히 신선하다. 우리나라에
오는 맥주완 맛이 약간 다른 것 같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칼스버그는 배 타고
오느라고 뱃멀미한 맥주일지도 몰라!
한국 슈퍼도 있다. 600여 명의 한인들이 산다는데 장사는 잘 되는지 네덜란드
사람들은 조금 오고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많이 오고 일본 사람들이 간간이
이용한다고 한다. 우리는 거기서 진로소주와 컵라면을 샀는데 진로가 10길더
50, 약 4,500원이고 컵라면은 3길더, 1,300원이다. 한국관 근처에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먹고사는 거에 비하면 비싼 편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반가웠다.
암스테르담에서 콜렉트콜로 전화하려면 0600220082를 걸면 된다. 서울인
경우.
암스테르담에선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조심하자
안네 프랑크는 1929년생이니까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우리 나이로 67세가
된다. 초등학교 동창생들 몇 명은 지금도 살아 있을 텐데!!! 1945년에
죽었단다. 해방되던 해에.....!
안네 프랑크가 살았던 곳 옆집 두 채를 안네 프랑크 재단에서 사가지고
지금은 기념관을 만들어서 일반에게 공개를 한다. 두채를 순순히 팔았겠지!!!
우리나라처럼 값 올리려고 악착같이 안 팔고 시세보담 더 받으려고 버티지는
않았겠지!!! 입장료가 10길더, 우리 돈으로 약 4,300원 정도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보면 설명서가 굉장히 많다. 사람들도 참 무지막지한 게
그냥 대강 읽고 지나가면 될 텐데 그걸 꼼꼼히 다 읽어보는 통에 한참을 안네
프랑크가 숨어 있던 곳에서 기다리며 서 있어야 했다. 갇혀 있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라는 듯! 내가 갔을 땐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우리나라 사람들 같으면 "빨리 갑시다. 시발, 이 좁은 덴 왜 데려온 거야!"
이랬을지도 몰라. 그게 우리나라 사람다운 일이니깐!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한국 가서 다시 사 읽어봐야겠다.
암스테르담은 도시가 비교적 깨끗하다. 그런데 유럽에서 처음으로 공원이나
광장에서 술 먹고 헬렐레 하는 아해들을 만나다. 눈이 풀린 놈하며 마약에 쩔은
놈하며 검둥이들이 많다. 마약을 준합법화한다고 하니깐 쩔은 애들이 눈에 많이
띄는 건가? 이 자식들 참 문제야! 어느 카페에선 마리화나 종류가 많아서
메뉴판에다 써놓고 판단다. 웃기는 나라잖아!
여기선 사진 찍히는 걸 특히 싫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벼룩시장에서도
그렇고 공원에서도 그렇고 하다 못해 거리에서 판토마임하는 아해까지 소품으로
쓰는 우산으로 가린다.
세계 다이아몬드의 80퍼센트를 암스테르담에서 가공한단다. 우리가 들른 곳은
GASSAN이라는 곳인데 57면이나 깎는단다. 이게 세계 최고란다. 벨기에도
자기네가 80퍼센트 가공한다고 하던데.....! 각국 사람들이 다 찾아오기 때문에
각국 직원이 다 있단다. 우리는 한국 안내원 장용의 선배인 이종구 씨의 설명을
들었다. 홍콩 사람이 제일 많이 사가고 한국 사람도 등수에 든다는데 홍콩
사람의 10의 1도 안 된단다. 여기서 한국 사람들이 부부싸움을 많이 한단다.
카드로 긁어라 말아라 하면서. 한국 사람들의 카드 한도액도 알아서 월부로도
해준단다.
"미국 아해들 버스로 돌아올 때 보니까 쇼핑한 사람이 딱 세 명이더라! 두
명은 먹을 거고 한 명은 조그만 봉지에 선물을 산 거더라." 이런 얘기를
가이드들한테 들은 적이 있다. 이 자식들아, 한국 사람한테 조금만 잘해줘
봐라. 한국 사람 태운 버스 한 대만 데리고 와봐라. 시예산이 달라질 거다!!!
쇼핑센터 앞을 지나면서 여자 가이드가 하는 말. 여자에겐 쇼핑의 천국,
남자에겐 워털루 전투란다. 하긴 사자 말자 부부간에 오죽들 싸우겠어?
여기는 길에 자전거 도로가 아무데나 다 있다. 우리는 자동차 도로에서
벗어나면 찻길 다 건넌 줄 알고 막 이야기하는데 인도가 아니라
자전거도로였다. 처음 온 사람은 자동차보담은 자전거를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자전거가 많은 이유는 언덕이 없고 평지가 많아서란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많이 탄단다. 자전거는 값도 제법 비싸다는데 우리 돈으로 20만원에서 그
이상까지 있단다. 다른 건 몰라도 자전거 수리만 잘해도 학교 다닐 적에는
여학생에게 인기가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 공부 보담은 노는 거에만 신경을
쓴 학생도 나중에 자전거포에 취직하면 우리나라 자동차 정비공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친구 중에 고등학교 때 당구를 잘 치던 녀석이 있었는데 군대 가서 장교들
당구 가르치면서 편하게 지냈다는 거야. 언젠가 만났더니 당구 큐대 수리해주는
일을 하더니 지금은 종로에서 당구장 재료장을 하더라구! 한동안 죽는 시늉을
하더니 포켓볼 붐이 일어서 돈도 아주 잘 벌드라니깐!!!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에 대한 느낌. 우리 일행은 브뤼셀은 좀 더러운 도시,
암스테르담은 좀 깨끗한 도시라고 식사시간 중에 이야기한다. 일행 중에 옵션
투어를 갔다온 사람은 브뤼셀이 아름답고 암스테르담은 더러운 도시란다.
더럽든 아름답든 왔다 간다.
누드연맹에선 물건도 벗고 판단다
오늘은 6월 13일, 내일 닿을 오슬로를 향해서 배가 간다. 항해중 본 것 중에
제일 센 파도가 친다. 배 타고 가다가 고래가 물 뿜는 거 한 번 직접 봤으면!!!
사이판에서 날치 날아가는 건 봤는데!
노르웨이라는 나라엔 누드연맹이라는 게 있어서 한국 사람들이 처음엔
호기심에 들르기도 했는데 이젠 시시해서 안 간단다. 물건 파는 사람도 벗고
파는데 카메라는 절대 가져가면 안 된단다.
우리나라 속옷 파는 진열장을 어쩌다 들여다보는 경우가 있는데 예쁜
브래지어가 많이 걸려 있는 걸 보면서 '저거 저렇게 이쁠 필요가 있나????? 볼
사람은 자기 혼자거나 또 한 사람뿐일 텐데' 생각했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값도 여간 비싼 게 아닌데,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저렇게 비싼 걸 사나?
비싼 브래지어 자랑하려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여기선 길거리에서는 웬만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윗도리를 벗고 다닌다. 브래지어만 한 채로 다 큰 처녀 아이가
말이다. 우리야 이렇게 벗고 다닐 것도 아니니 더더욱 낭비가 아닌가.
여기 아이들은 오히려 그렇게 비싼 걸 하는 것도 아니란다. 돈이 없어서!
고등학생 남녀 아이들이 바닷가도 아닌 곳에서 티셔츠를 벗고 아무렇지도 않게
벌렁벌렁 잘 눕는다. 드디어 사진을 찍었는데 궁금하도다. 잘 나왔는지!
오슬로에서 배로 돌아오는 길에 브래지어만 하고 걸어가는 처녀 아해를
발견하다. 우리보담 조금 앞서 걸어가는데 우리가 탄 차가 신호에 걸렸다.
신호가 끝나면 걸어가봤자 지가 얼마나 가겠나? 차가 앞으로 갈 때 얼굴도 한번
봐야지 하고 기대하고 있는데 우리가 우회전을 하자 그 처녀 아해는 그만
직진으로 가버린다. 아깝다! 분하다!!! 우리 일행 한 명이 이야기한다. 누워
있는 것만 보다가 서서 걸어가는 것 보니까 정말 이상하네!!!
오슬로 가이드의 말. 어릴 때부터 자꾸 만져주니 가슴이 커질 수밖에 없다나!
사람 가슴을 화초로 아는구만!
노라가 집을 나간 이유를 여기 와보니 이해가 간다. 해양국가 사람들이라
맨날 바다에 나가 있으니 당신들이면 집에 있겠어?!!!
그래서인지 여기 아해들은 결혼하기 전에 동거부터 해본단다. 우선 살아보고
결정하는 거다. 고무신을 사더라도 신어보고 사듯이 살아보고 결혼을 결정하는
건 유럽 아해들의 전반적인 경향이기도 하다. 그렇게 사용해보고 평생을 맡길
것인가를 신중히 생각한 후에 결혼한다. 물론 이혼율도 많아서 다시 물르기도
한다. 하기야 바이킹족의 후예들이니 살아보면서 이놈이 방랑벽이 도지지는
않겠는가 당연히 알아봐야겠지!!
처녀가 애를 낳아도 나라가 먹여살린단다
P. 167
사람들 의식도 자유로워서 꼭 넥타이만 정장 취급하는 게 아니고 스웨터
차림도 정장으로 쳐준단다. 우리 같으면 아니 "이 자식이 누구를 뭘로 보는
거야, 스웨터 차림으로....!" 할 텐데.
우리는 사실 엄숙주의와 권위주의가 어지간한 사람들한테까지 다퍼져 있다.
병원 같은 데 가서도 치료를 다 마치고 의사한테 "얼마예요?" 그러면 결국 자기
돈이면서도 밖에 나가서 계산하라고 그런다구. 그러면 굉장히 기분 나쁘거든.
그런데 내가 만난 나이 많은 한의사들은 돈을 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아마 그런 사람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스웨터를 입고 나와도
괜찮다고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든다. 스웨터 입고 나온 사람 땜에 자기 체면이
실추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다.
하여간 이 나라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없는, 거추장스런
통념들은 일찌감치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나라다. 처녀 장관이 어느 날 배가
불러서 출근해도,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애를 낳아도 상관 안 한다. 자르지도
않는다. 뒤로는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몰라도 말이다. 우리 같으면 어떨까?
장관쯤 되는 여자가 사생활이 문란하다며 일단 목부터 자르겠지? 그리고 아마
광화문 같은 데 지나가면 조리돌림 같은 거라도 하지 않을까? 문란한 주제에
뻔뻔스럽기까지 하다고 말이지. 어딜 나다니냐면서.
여기 내각에는 17살짜리 여고생 장관도 있단다. 청소년 문제는 청소년이 제일
잘 알 거라며 수상이 임명했대나?
오슬로 가는 분들, 폭포 구경 꼭 하시길!
자전거 뒤에 끌차를 만들어서 어린아이를 태우고 다닌다. 조각공원에서 한 명
보고 놓쳤는데 또 나타나겠지 하고 돌아다녔지만 결국은 안 나타나고 말았다.
오슬로도 사진을 못 찍었다. 다른 데도 마찬가지지만 여긴 정말 잘 모르겠다.
자동차가 직진 우선이 아니라 오른쪽 골목에서 나오는 게 우선이란다. 왜
그런 법규가 생겨났는지 궁금하도다!!! 자동차도 대낮부터 불을 켜도 다니고 안
켜면 벌금을 문단다. 짐승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라는데 특히 겨울에 도시
번화가까지 내려와 먹을 걸 찾아 어슬렁거린단다. 여름에도 새벽이랑 밤에 가끔
나타난다고 한다. 낮에는 지들도 회사 근무해야 하니깐 그런가???
오슬로에 온 지 27년 된 가이드에게 물었다."여기는 한국 슈퍼 없어요?"
가이드가 슬픈 억양으로 대답한다."있었지요, 3년 전에.""근데 지금은 왜
없어요?"" 제가 하다가 망했지요!!!" 이 가이드의 말. 한국에 가면
TV프로그램이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일을 못하겠단다.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은 고아수출국. 혹은 생산국이라고 알려져있었는데
요즘엔 자동차를 수입해서 파는데 인기가 좋단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인식이
좋아졌단다. 우리가 자랑하는 88올림픽보다 더 더 더......! 한국 차는 싸고
고장이 잘 없기 때문이란다. 국내하고 사정이 다르다. 비싸고 고장 잦고......?
여긴 다른 유럽 여러 나라와 달리 건물이 요란하지 않고 소박하다. 추운
나라니깐 그럴 거야. 설계도 도면 보고 인부들이 일 안 하겠다고 하면
안되잖아!!! 백년 정도 된 빌딩이 있는 도시에 약 6개월 전에 지은 집이 있는데
다른 집들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시에서 백년 전 설계도대로 지으라고 해서
그렇게 지었단다. 빌딩마다 깃발이 해양도시답게 닻처럼 긴 게 많다.
바이킹 박물관에 가서 바이킹 배를 봤다. 날렵하게 생겼드만! 뱃가죽
밑바닥까지 조각을 섬세하게 해놓았다. 타고 다니던 썰매 밑바닥에도! 긴긴밤
얼마나 심심했으면 밑바닥까지 새겼을까??? 아무래도 뭔가 열중하면 덜 춥지.
노르웨이의 아버지, 입센. 여기선 입슨이라고 발음한다. 애국가 가사 지은
시인과 사돈간인데 그 사람 이름은 비욘슨이다. 슨 슨 슨자로 끝나는 말은,
이런 게임 함부로 하다간 아마 이 나라에선 날새는 수가 있을걸!! 하긴 날새도
자시고 할 것도 없겠네. 여긴 밤에도 해가 안 지잖아! 입슨과 비욘슨 두 사돈의
동상은 국립극장 앞에 나란히 기만한 자세로 서 있다. 그 아들이
국립극장장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공연이 없다. 겨울에만 있단다.
배로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오슬로를 여유 있게 관광하려면? 하고
가이드에게 물었다. 가이드가 대답하기를 적게 잡아도 3일은 봐야 한단다.
우리는 아침 8시에 항구에 내려서 오후 4시 50분에 배로 돌아왔으니 수박
겉핥기한 사람의 혀만 바라보고 온 셈이다. 그래도 그 유명하다는 청어조림은
먹었다(노르웨이에서는 싱싱한 청어가 많이 잡히기 때문에 웬만한 식당에 가면
이 청어를 가지고 안 만드는 요리가 없을 정도로 각종 소스를 곁들인
청어요리를 다양하게 판다). 암스테르담에서 못 먹어본 청어조림을 오슬로
뷔페식당에서 먹은 것이다. 12가지 방법으로 조리를 한다고 하는데 조금씩 다
먹어봤다. 한 가지만 빼놓고 먹을 만하더군!
벼룩시장은 없고 고물시장은 있다는데 못 가봤다. 시간이 웬수고나!!!
노르웨이는 습곡지대라 폭포가 많단다. 피오르드 가는 길에 있는 폭포들은
얼마나 웅장하고 대단한지 달리던 기차가 기념 사진 찍으라며 멈춰설 정도란다.
산꼭대기 절벽에서 폭포수가 막 쏟아져내리는데 그렇게 장관이래. 우리는 못
보고 가지만 오슬로에 오는 분들! 폭포 구경 꼭 하고 오세요!
스웨덴 사람이 덴마크 와서 술 먹는 이유
코펜하겐. 6월 15일 오전 12시에 랑길리니아 항구에 닿다. 롱라인 항구라고
했더니 이 나라 말로는 랑길리니아란다.
여기도 길거리에 손잡고 다니는 아해들, 껴안고 다니는 아해들, 키스하는
아해들이 눈에 띈다. 날씨가 추우니까 껴안든 게 생활화된 거 아닌가? 날씨가
하도 변덕스러워서 덥다가 춥다가 하니깐 말이야.
티볼리 정원에 갔다. 여기 코펜하겐 시간으로 밤 9시 42분, 티볼리 정원 카페
화장실에서 자지를 막 흔들면서 오줌을 누다. 누고 나서 흔들면서 눴다고
메모하는데 누가 갑자기 노크도 없이 문을 연다. 놀랐지만 다행이다. 막
집어넣고 난 후니까!!!
티볼리 정원은 한마디로 안데르센 팔아먹는 서울랜드인데 그 안에 6인조
밴드가 연주하고 노래하는 카페가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의 리듬이 아주 신이
난다. 가이드가 설명을 해준다. 지금 부른 노래는 이 나라 사람들의 독립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노래란다. 노래와 연주를 들으면서 관객들이 신나게
박수로 박자를 맞춘다. 나도 덩달아 박수를 치다가 슬그머니 관뒀다. 남의 나라
독립운동가에 내가 박자는 왜 맞추냐???
지금 하는 노래는 전주를 들으니 언젠가 한 번 들었던 노래 같다.'어디서
들었더라?' 듣다가 생각해보니 아까 한 시간 전에 사진 찍느라고 여기 들렀을
때 들은 곡이다. 그러니까 먼젓번 스테이지에서 했던 노래를 하고 있는 건데,
어쩐지 어디서 많이 들었다고 생각을 했네!!! 그러니까 이 아해들도 레퍼토리가
별로 없는 거야.
한복 입은 내 모습을 보고 일본인인 줄 아는 유럽 아해들이 많다. 어떤
녀석은 직접 와서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한국이라고 했더니 한국이
어디냐고 묻는다. 열받지만 할 수 없지 어떻게 해? 한국에 돌아가면 덴마크가
어디 있는 나라냐고 몇 명에게 물어봐야지. 잘 모를걸!!! 그래야 비기는 거
아니겠어!!!
덴마크 왕의 둘째 아들이 홍콩 여자랑 결혼을 해서 요즘 홍콩 붐이 일고
있단다. 중국 음식점 하는 왕서방들 매상 좀 올리겠네!
7세부터 17세까지의 아해들이 행진을 하는데 153년 전 의식 그대로 한단다.
클라리넷 부는 아해는 눈이 막 돌아간다. 저도 여기 모인 사람들을 구경하는
거다. 그래,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 너도 신기할 거다, 클라리넷
부는 아해야!!!
덴마크는 참 활기찬 도시 같다. 유럽의 마지막 땅, 암스테르담에 비해서
아직은 촌사람처럼 순박하다. 거리의 악사 연주를 듣고 환호성을 지르는 나라는
여기가 처음이다. 끝나면 박수도 잘 치고. 어느 인사가 쓴 여행기를 보니
독일의 한 대학이 발표한 국가별 청렴도 순위에서 덴마크가 뉴질랜드 다음으로
세계 2위에 올랐단다. 그만큼 깨끗한 나라라는 거다.
이 끝에서 저 끝이 1.8킬로미터나 되는, 유럽에서 제일 길다는 쇼핑 거리를
걷는다. 오후 5시쯤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하더니 두 시간 지난 후에 같은 거리를
가서 보니 자유당 시절 통금 예비 사이렌 울린 것처럼 조용한 도시가 돼 있다.
5시면 상점이 문을 닫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37시간 일을 하는데 능률적으로
열심히 하고 누가 찾아오거나 하지 않아서 집중해서 일하니까 양은 우리나라
사람보담 많단다. 대한민국의 회사원들이여 반성하자!
덴마크는 사회복지 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다. 한 직업에 50년 이상
종사하면 여왕이 상을 준단다. 내가 물었다."그럼 자식들에게 정부에서 혜택이
있나요?""그런 건 없습니다. 여기는 누구나 다 혜택을 받으니까요."
그러나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만큼 실업자가 많아진단다. 덴마크랑 스웨덴은
거리가 가까워 서로 왔다갔다하며 여행을 한다고 하는데 특히 스웨덴 사람들이
덴마크에 많이 온단다. 술을 실컷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어른들도
술을 함부로 마실 수 없게 법으로 정해놨대! 그러니 덴마크에 와서 술 마시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는 거다. 술주정뱅이는 일단 스웨덴 아해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대! 여긴 스웨덴과는 달리 아해들도 맥주를 대낮부터 마신다.
술집마다 입구에 화장실이 있다. 하기야 맥주를 마시면 아무래도 화장실을 자주
가야 되니깐!
맥주는 슈퍼마켓에서 사면 무진장 싸다. 우리도 바에서 술을 마셨는데
음식점에서는 팁을 주지만 술집에는 계산에 이미 포함되므로 줄 필요가 없다고
해서 안 줬지롱!
스웨덴과는 달리 여기선 어린 아해들이 술도 마시지만 담배도 마음껏 피울 수
있다. 그래서 아해들이 어른들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물어본단다. 우리 같으면
경을 칠 일이다. 있다고 하면 한 개피만 팔라고 그런대. 한 갑은 비싸서
아해들이 못 사니까! 파리에서는 거지들이 담배 한 대만 달라고 그러곤 불은
다른 사람에게 얻어피우는 걸 여러 번 봤는데 여기서 아해들이 어른들한테
까치담배 사는 건 아직 못 봤다.
여하튼 나이에 상관없이 술담배, 이런 거에 구애받지 않고 살 수 있는 나라,
자유로운 나라가 덴마크다. 그래서 그런지 담배가 건강에 해로우니
자제하자든가 흡연그미구역 이런 것도 별로 눈에 안 뜨인다. 자유도 좋지만
그렇다면 어린 아해들 폐암 사망률도 굉장하겠네!!
예전에 내가 생각해본 담배 안 피는 방법이 있었다. 담배 이름을 강렬하게
지으면 아무도 안 필 게 아닌가 하는 거다. 예를 들어서 담배 이름을 '폐암
3기' 또는 '매독''사망직전''자살초' 심지어는 '넌 죽었다' 식으로
지어버리면 아무도 안 사필 거야.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되면 아무도 담배를 안
필까? 아니지, 신세대는 더 많이 필지도 모른다."아니, 새 담배 '폐암
3기'잖아?""야, 이름이 개성 있는데" 이럴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개성을
중시하는 신세대니 만큼 눈치도 안 보고 체면도 안 따질 테니까.
하여튼 담배를 피든 안 피든 돈이 있든 없든 왕이나 지게꾼이나 인간은
무조건 평등하다는 게 이 나라 사람들 모토란다. 1등 인간, 2등 인간, 3등
인간이 어디 있냐? 그래서 덴마크 기차는 일등칸 이등칸이 없단다. 다만
특등칸이 있을 뿐이다. 특등은 불평등 아닌가?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덴마크에 안 와보고 썼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 와보면
햄릿 성이 있다. 그리고 아주 초라한 셰익스피어 부조도 있다. 마찬가지다.
송창식도 선운사에 안 가보고 '선운사에 가 보셨나요'를 작사 작곡했다. 시인은
바다를 보지 않고도 바다에 대해서 쓸 수 있다고 시론에 적혀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선운사 얘길 하도 보니까 거기 동백꽃이 생각난다. 지금쯤 이미 졌겠지?
내 눈엔 동백꽃이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튿어지는 것 같다.
햄릿이 여기 벽난로 앞에서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했다고 한다. 카펫방은 창을
가렸다. 이유는 햇빛에 색깔이 바랠까 봐서란다.
뭘 하나 만들어도 얘네들은 작품하는 것처럼 만든다. 그랬더니 우리 배낭족
아해 하나가 '우리는 작품이 아니라 납품이에요' 하면서 하품을 한다.
코펜하겐 왕궁에 갔다. 어떤 왕이 잘 데가 없어서 지으라고 해서 지은
왕궁이란다. 그럼 왕궁 지을 땐 어디서 잤나???
덴마크 가서 진짜 김치 얻어먹는 법
우리를 가이드해준 아줌마는 한국을 떠나 덴마크에 온지 27년이 되는데
직업은 물리치료사란다. 19년 만에 옛날 살던 서울 혜화동에 갔더니 동숭로는
복개가 되고 고향 모습이 너무 안 보여서 가슴이 아프더란다. 그 가슴 아픈 건
물리치료로는 치유가 안 된단다! 여기는 몇백년 된 거리도 그대로 놔두는데!
여기 덴마크엔 오래 된 거리뿐 아니라 패션이나 분위기도 복고풍이
유행한다고 한다. 복고풍이란 무엇이냐? 옛것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인데 왜
그런 현상이 생겨날까? 인간의 한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로운 것 새로운
것만 찾다 보니깐 옛날에 한 것인 줄도 모르면서 자기가 새롭게 만든 것일 줄
알고, 어쩌다 그게 잘 팔리면 저건 옛날 건데 자기 창작품인 줄 안다고
씹으면서도, 그런 걸 손님들이 찾으니 안 만들 수도 없고 해서 너도나도 만들고
하는 게 아닐까. 옛날 것부터 요새 것까지 잘 아는 사람이 2030년 전에
유행하던 것이라고 해설을 달고.....!
한국 슈퍼가 없는 나라에서 김치가 먹고 싶어 환장하겠다고 하시는 분은
전화번호를 찾으면 꽤 성공한, 자리잡은 한국인들의 이름이 나올 것이다.
전화를 걸어 부탁해보라! 거절 못할 것이다.
여기서 제일 오래 된 교포 가이드 부부가 우리를 자기네 집에 초대해서
김치랑 한국 음식을 해줬다. 여행 온 사람들이나 유학생들을 한 번씩 이렇게
집으로 불러서 김치맛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자기네가 김치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단다. 어느 날 새벽 2시에 어떤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한국 사람이냐고 묻더란다. 그렇다고 했더니 내가 정말이지 너무너무 김치가
먹고 싶어서 참다 못해 전화번호부를 들춰보니까 한국 이름이 있어서 중국 사람
아니면 한국 사람일 거다 해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단다. 그래서 지금 전화 거는
데가 어디냐고 해서 새벽 2시에 가서 데려와 갖고 김치를 먹였다는 것이다.
그 집에 94년도 문화방송의 '경찰청 사람들' 비디오 테이프가 있길래 그걸
다같이 쭉 보면서 잠시 생각이 한국을 다녀왔다.
이 부부는 덴마크에 온 지 남편이 30년, 아내가 27년짼데, 여기 사는 한국
남자 여자 중에 제일 오래 된 사람들이다. 지금도 600명밖에 한국 사람이 안
사니 젊었을 땐 오죽했겠어! 하루 일과를 마치면 한국 사람이 그립고 한국이
그리워서 부부가 같이 킹스트리트 거리에 나가서 한국 사람 만나보려고 몇
시간이고 서 있었다는 거야! 그러다가 한국 사람을 만나면 집으로 데려가서
밥을 먹이고 김치를 먹였단다. 그 부부가 우리를 교대로 가이드해줬는데 아직도
자기가 가이드비 받는 게 쑥스럽다고 받은 돈으로 우리 일행 점심을 산다. 이런
한국 사람이 덴마크에 있다.
그 한국 남자가 가구 디자이너인데 이 사람 말이, 덴마크의 가구는 '간단
튼튼'이 기본이라면서 그 기술은 일본도 못 따라간단다. 그 기술을 한국에 와서
가르쳐주고 싶단다. 조국을 위해서! 삼풍 무너졌을 때는 한국을 모르는 어디 딴
나라로 다시 이민을 가고 싶더래!!!
이 집 아주머니가, 스낙스라는 술은 잠 안 올 때 마시면 좋단다."밤잠 잘 안
조을 때"라고 표현한다." 잠 안 올 때" 하면 되는 것을. 그래도 한국말
잘하네! 그 아주머니가 말을 하는데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가 동시에 입에서
튀어나와 우리 일행은 웃었다."곰사합니다." 남편이 처음엔 덴마크 여자랑
동거를 했단다. 그런데 우리네는 열심히 일하고 막 저금해서 노후 생각하고
그러는데 이건 주말만 되면 놀러 가자 그러고 자기 생각만 하는 것 같아 처음엔
좋더니 점점 지겨워져 갖고 싸우고 헤어져서 나오다가 이 여자를 우연히
봤단다. 그래서 좋아하게 되고 결혼하게 됐다고 한다. 연속극 같은 얘기다.
아주머니가 준 토속주를 한잔 마셨다. 토속주 스낙스, 크, 취한다.
덴마크에서 딸라 자랑하다간 눈탱이 맞는다
고은 선생이 하신 얘긴데, 서울역에 오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고
그랬던가. 나는 지도를 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나는 정말 아침에
현관에서 구두끈을 맬 때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느 날 아침에는 구두끈을 매다가 '아, 미국이나 한 번 갔다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또 어느 날은 구두끈을 매다가 '일본이나 한 번
가보고 싶다. 거기선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요즘은
현관에서 구두 신으면서 구두끈을 묶으려고 고개를 숙이면 100미터 단거리 선수
스타트 자세가 되는데 총소리만 땅 하고 내면 선수들이 퉁겨 나가듯 어디론가
뛰어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덴마크 지도는 할아버지가 코 흘리는 것처럼 생겼단다. 그 말 듣고 지도 보니
정말 그런 것처럼 보인다. 덴마크 아해들도 그렇게 설명할까??? 궁금하도다.
여긴 모든 게 예약이다. 길에서 지나가는 택시는 어쩔 수 없이 치지만 집에선
택시도 예약을 해야 한단다.
2, 3년 전부터 한국 관광객이 급증하는데 그럼에도 아직 한국 관광객 맞을
준비가 안 돼 있다. 한국 슈퍼도 없고, 고추장이 없는 곳에선 인도네시아 소스
중에 삼발이라도 구해볼 것! 고추장 비슷해서 이곳 교민들도 그걸로 고추장
향수를 달래본단다. 밑줄 긋자! 삼발!
일본 사람들은 정말 많다. 일본 말 하는 덴마크인도 봤다, 일식집에서. 축구
붐 조성을 위해 한일 양국에서 세계축구 부회장이 있는 덴마크에 왔는데
한국에선 사물놀이 하고 하루 만에 갔는데 일본은 일주일간 아예 일본주간이란
걸 만들어서 폭죽을 하루에 45분씩 일주일 간 쏘아댔단다. 하루에 쏘아댄 양이
티볼리 가든에서 매일 쏘아대는 폭죽의 2년 치였단다. 흥국아!
덴마크 광동반점 주인도 일본 사람이다. 우리나라 김치를 주는데 맛있다.
빼갈이라고 좀 좋은 술을 달랬더니 오늘이 뭐 특별한 날이냐고 우리한테
물어본다. 그래서 아니라고 그랬더니 "이건 비싸니까 특별한 날이 아니면
마시지 말라" 며 맥주를 권한다. 자기가 먹던 고량주룰 주면서 말이다. 우리는
하도 친절해서 매상 좀 올려주려 했는데........! 참 인정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주 위에 냅킨 꽂혀 있는 모양이 꼭 배의 닻모양 같다.
광동반점 옆 면세점 가죽 파는 데서 한떼의 한국 관광객이 쏟아져 나와
찻길을 건넌다. 우리 일행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광동반점으로 가다가 마침
가죽잠바 집에서 나오는 가이드를 만났다. 우리 가이드가 아니고 한국 사람들을
몰고 온(?) 다른 한국인 가이드다. 가죽잠바 주인이 가이드에게 커미션을
주는데 나랑 눈이 딱 마주쳤다. 아주 민망한 얼굴이 된다. 누가 커미션 제의를
먼저 했을까??? 궁금하도다. 덴마크에서 달러 자랑하지 마라. 눈탱이 맞는다고
우리 일행이 얘기한다. 달러를 굉장히 좋아하기 땜에 바가지를 씌운단다.
가죽잠바집 주인이 싱글벙글하는 걸 보니까 이 사람들이 가죽잠바 사면서 혹시
떨라 쓴거 아냐??
광동반점의 일본 아저씨는 우리가 어제도 오고 오늘도 왔다고 길 건너
과일가게에 휘파람을 불어 수박을 가져오게 한 뒤 자기 개인 돈으로 사준다며
생색을 낸다. 수박은 자기가 더 잘 먹게 입 구조가 생겼던데!!! 아주 개성적인
뼈드렁니다.
유럽에서 짜장면집 하면 관광객 때문에 장사가 될까? 안될까? 아침에
일어나면 속풀이 짬뽕이 생각난다.
이 나라 사람들 중에 많이 쓰는 이름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역시 요한슨
피터슨, 핸슨, 얜슨....... 슨자 돌림이 많다. 안데르센도 여기 발음대로라면
아네슨이란다. 노르웨이 슨 씨하고 덴마크 슨 씨는 항렬이 서로 같으니 조상이
같은 거 아냐? 니가 형이다 내가 형이다 싸우지나 않을까 몰라.
끼예꾜. 키에르케고르를 이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단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라는 철학사를 쓰신 분이다. 우리나란 서영춘 씨가 벌써 오래 전에
했는데,'이거다 저거다 말씀 마시고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물에 가야 고기를
잡고......'!!????
덴마크에서는 한국 사람끼리 만나면 찻길을 막 건넌 데서 반가워하면서 언제
왔냐 어디서 왔냐 묻고 하는데 사실은 그 자리가 자전거 전용도로라는 걸 잘
모른다. 대단히 위험하다. 주의할 것!
이 나라도 역시 북유럽 다른 나라들처럼 자전거를 장려하기 위해 도시는
물론이고 시골길까지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는 곳이 없다. 기차도 자전거 칸이
따로 있다. 자전거 세워두는 곳에 가면 하얀 자전거가 있는데 시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란다. 20크로나 내고 하루 종일 타고 시내 아무데나 자전거 빌려주는
곳에 갖다놓으면 된단다.
자연 풍경을 보면 누가 권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전거를 타고 싶은 나라!
그래서 그런지 땅바닥에 퍼질러앉아 햇빛을 쪼이는 아해들이 많다. 땅바닥에
앉는 걸 좋아하는 유럽인들! 침대 생활이 지겨워서 그런가!!! 나도 유럽에 한
달쯤 살았다고 이젠 서서히 햇빛에 나가서 앉게 된다.
밤에 택시를 타고 항구의 배로 돌아왔다. 낙동의 나라라 그런지 TV 광고에도
소가 나온다. 엄마소가 유모차에 송아지를 태우고 가면서 아기에게 물리는
젖병을 송아지에게 물리고 가는 우유 광고."우리 아이 이걸로 키웠어요!"
아침저녁으로 떠오르는 만나고 싶은 사람들. 주병진이 양락이는 장사가
잘될까? 이성미 송창식.......
그 아이의 마지막 모국어
덴마크에서 성개방 이야기는 이제 벌써 옛날 이야기다. 옛날 같진 않단다.
학교에서는 애 낳지 말고 병 걸리지 말고 인생을 즐기라고 가르친단다.
성개방 문제가 심각히 다루어진 것은 60년대쯤인데 그땐 강간과 살인이
굉장히 많았단다. 여러 가지 이유가 더 있었겠지만 그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성개방을 하기로 했다는 거다! 우선 다른 나라에서 안 하니까 먼저 해보자고
했지만 그 안이 통과 된 후에 실패하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을 많이 했단다.
창녀들을 직업으로 인정한 것도 처음엔 다른 나라 여자들만 해당됐는데 범죄도
줄어들고 별 문제가 없으니까 덴마크 여자들도 참여를 했단다!
외국에서 구경 오는 사람들도 많아져서 관광 수입도 많이 늘어나고 특별히
공장을 짓는 것처럼 투자 자금이 드는 것도 아니어서 성공을 했다는 거다.
덴마크 여자들은 포르노 필름을 상업화해서 돈을 많이 벌어들였다나 어쨌다나!
하여튼 딴 나라 다니다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국내서는 들을 수
없는.......
배낭족 아해가 얘기한다. 네덜란드에선 창녀들이 보통 때는 서 있지만 낮에는
앉아 있단다. 러시아워가 아니라서 쉬는 거란다. 값은 기본이 50길더, 우리
돈으로 이만몇천 원이란다. 숏타임 가격이다. 그 다음부터는 옵션에 따라서
값이 올라간단다. 어떤 옵션이 있는지 미리 알아보지 않으면 바가지 쓰기 딱
알맞단다. 그래서 한국 애들이, 들어가면 50만원도 달라고 그러고 100만원도
달라고 그런다는데. 하면서 젖가슴을 만진다든가, 자세를 바꾼다든가, 자세에
따라서도 다 틀리고 콘돔을 끼고 하느냐 벗고 하느냐에 따라서도 값이 다
다르단다.
덴마크 사창가를 가이드와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경찰과 창녀가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이드를 내리게 하여 무슨 말인가 엿듣게 했더니
마약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란다. 여기선 창녀를 엄연한 직업으로
인정하고 세금을 받는다. 여기 사람들은 최하 48퍼센트에서 68퍼센트까지
세금을 내는데 창녀들은 하급으로 48퍼센트를 내고 은퇴하면 연금도 나온다.
문득 떠오르는 시가 있다.'창녀더러 이름이 뭐냐고 묻는 술 취한 남자의
성욕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창녀의 우두 자국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제 부모가 병들지 말고 장차 좋은 곳으로 시집가기를 바랐건만, 그래서
해수욕복을 입어도 우두 자국이 안 보이게 팔 안쪽에 우두를 놓아주었건만.'
고은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중에서.
오후 3시 30분이면 해가 지는, 겨울 동안에는 뭘 하고 사냐고 물으니까
학벌이나 직업에 관계없이 성인교육을 한단다. 성교육 말고 성인교육이다. 그게
교육으로 되는 건 아니잖아! 뜨개질, 할머니 영어교실, 혼자 된 남자를 위한
요리강좌.... 별 강좌가 다 있단다.
밤이 긴 나라. 밤이 기니 성생활이 신경 쓰이지. 아해들 성문제보담 자신들이
더 급하지. 그러니 아해들이 빨리 성에 눈뜰 수밖에 없지 않겠나!!!
궁금해서 물어봤다. 여기도 혼탕이 있냐고. 있단다. 산 위에 가면 홀수
시간엔 남자, 짝수 시간엔 여자가 사우나를 하는데 그게 시간이 혼동되어서
혼탕이 저절로 된단다. 남녀 완전혼탕이란다. 우리는 수요일이라서 못 갔다.
수요일은 장애가 있는 사람, 여자, 할머니, 유방암 수술해갖고 젖 잘라낸 사람
등등만 가는 날이란다. 재수 드럽게 없네!
오래 전에 강원도의 군인 도시인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 간 적이 있다. 그
마을 이름은 잊었지만 하나 안 잊어먹는 게 있는데 뭐냐 하면 그 마을의
목욕탕이다. 모처럼 맘먹고 목욕을 하러 갔는데 그날은 안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 목욕탕엔 탕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란다. 월수금은 남자, 화목토는
여자, 일요일은 군인.
덴마크는 섬나라라 바닷가가 많다. 바다는 청색. 청색 생선, 청어, 바다
군인, 해군 바지, 청바지. 그리고 보면 바다는 청하고 관계가 많다? 인당수의
심청이, 청이 사간 청나라 뱃사람, 이팔청춘 섬마을 선생님 이야기도 많을
텐데!!! 너무 억지다! 사실 내 말은 억지가 많어!!
그 옛날에는 청나라 뱃사람들이 엄마 없는 불쌍한 우리네 처녀 심청이를
사갔지만 요즘은 우리가 멀쩡한 우리 아해들을 이곳 덴마크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있다. 10년 동안 이 추운 나라에까지 비행기에 실려와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된 우리 아이들이 수만 명이란다. 그래선지 여기 사람들은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고아수출국으로 안단다. 여기, 슬픈 시가 하나 있다.
'한 아이가 하늘에서 울고 있다. 그것은 그 아이의 마지막 모국어.'
'아, 대한민국' 을 작사한 박건호의 시다.
기차 타고 뱃멀미할 뻔했네!
아침 8시 30분. 13일 만에 유람선 여행이 끝났다. 이제 배에서 내리자마자
강행군이 시작될 텐데, 각오를 단단히 해야지! 끝나는 날이 되니 그 동안
그렇게 친절하던 놈들이 갑자기 안면 싹 바꾸고 쌀쌀해진다. 정말이다. 나만
느낀 게 아니다. 나가 달라는 방송을 쉬지 않고 해댄다. 그래! 나간다 임마!!
나가면 될 거 아냐???!!!!
6월 17일, 오후 5시 30분. 기차로 코펜하겐을 떠나다. 마지막으로 인어상을
돌아봤다. 인어상을 먼저 보고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거나 볼품 없이 작다는 이야기를 하는 데 내가 직접 와서 보니깐 정말
괜찮았다! 실제 사람 크기만하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란단 말가!
인어상은 칼스버그라는 맥주회사에서 에릭슨이라는 조각가에게 조각을
부탁하고 조각가는 자신의 부인을 모델로 해서 조각을 했단다. 연간 벌어들이는
관광수입이 엄청나단다. 액수야 알 필요 있나! 330년이 지나면 사람이 된다는데
올해로 83년째니 앞으로도 21년을 더 기다려야 된단다. 말이 좋아 그렇지.
300년이 넘는 세월을 15살 소녀로 살아갈 일도 생각해보면 참 끔찍한 일이다.
안 와봐서 몰랐는데 배꼽 아래부터 지느러미인 줄 알았더니 발끝만 지느러미다!
아무데서나 사진을 막 찍고 가는 한국 관광객들이 큰소리로 떠든다."인어상
앞에서 인어 안 나오면 어때? 사람 얼굴이나 잘 나오면 되지!" 아마 12일에
9개국 관광하는 사람들일 거야.
유람선 일정이 다 끝나고 기차 타고 파리로 가는 중이다. 덴마크 와서
안데르센은 보지도 못하고 기차 타러 가면서 창밖으로만 내다본다! 정말 뭘 한
건지! 한심하도다!
기차 타고 배 타고 스웨덴을 못 간 게 억울했는데 파리로 가는 기차가 배를
탄단다. 기차를 탔더니 기차가 배 안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 긴 기차가 말이다.
배 위에 레일도 있고, 우리 기차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여러 대가 들어갈 수
있게 돼 있다. 유럽이 기차여행의 천국이라고 바다야 어떻게 건너랴 했는데
이렇게 해서 거뜬히 건너는구나! 정말 신기하대! 기차타고 뱃멀미할 뻔했네!!!
배에다 기차 태울 생각 누가 한 거야, 이름 적어봐!
기차가 자주 선다. 자주 서면 안 좋은 건 야간 열차, 자주 서면 좋은 것
남자, 아니지! 여자일지도??? 유럽 농촌을 차창 밖으로 내다보면 농촌집에
가든이란 간판만 갖다 붙이면 서울 근교 카페촌이랑 별로 다를 게 없다. 그만큼
카페들이 유럽 걸 많이 베껴먹었다는 거지.
파리로 오니 집에 온 것 같다. 고스톱도 쳐보고. 우리집 이사 오고 며칠 안
돼 여행을 왔더니 우리집 동수는 생각이 나는데 홋수가 생각이 안 나네.
여행 온 지 한 달째, 다행히 약국 갈 일이 없다.

제 4 장
피리에선 무단횡단을 하자
햇빛 나면 윗도리 벗는 파리 여자들
라스베가스에서 쇼를 본적이 있었다. 라스베가스는 도박도 유명하지만 쇼도
유명하다. 로비에서 하는 공짜부터 돈 내고 구경하는 쇼까지 아주 다양한
레파토리가 있다. 쇼 종류를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고 인간이 간사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요즘엔 한국에서도 외극 무희들이 나와사 가슴을
드러내는 일이 종종 있지만 아주 오래 전이라고 해봐야 십여 년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라스베가스 무대 위에서 무희들이 머리에다가 깃털을 모가지가
꺽일 정도로 달고 아랫도리만 가린 채 알가슴을 내놓고 무대로 약 백여명이
걸어나온다. 정신은 주머니게 집어넣고 쳐다보고 있는데 우리 일행 중의
누군가가 좀 큰소리로 외친다."야, 저기 브래지어 한 여자 있다""뭐 어디?
어디?""저기! 저기!" 하면서 우리 일행은 브래지어 한 여자 무희를 한 동안
찾았다."그래 저기 있다. 파란색으로 한 여자 맞지???""그래! 그래!"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왔다갔다하는 무희들 사이에서 우리는
숨은 브래지어 찾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마찬가지다. 유럽에서도 인간이
간사해지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파리 사람들은 햇빛이 나면 윗도리를
벗는다는데 어디서 벗나? 했더니 세느 강변에서 벗는단다. 햇빛이 비치면
윗도리 홀랑 벗고 세느강가로 돗자리 들고 나오는 청춘 남녀들 유학생들 말로는
그것도 포인트가 있단다. 낚시 포인트처럼 자리를 잘 잡아야 실컷, 실속 있게
볼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 후배가 오면 족보처럼 포인트를 물려준다고 한다.
목만 좋으면 백주에 키스신이나 에로신도 덤으로 딸려온단다. 난 초보라
그랬는지 운이 없었는지 결국 세느 강변에서는 구경도 못하고 마지막 카드로
실내 수영장엘 갔다. 그랬더니 정말 말로만 듣던 외화로만 보던 , 사진으로만
보던, 상상만 했던, 설마했던, 전해주는 사람을 의심했던 모든 일들이 현실로
나타났다. 여자들이 윗도리를 완전히 벗고 일광욕 중이다. 저기 한 명 짜잔! 또
한 명! 어, 이거 한둘이 아니잖아! 슬금슬금 보기도 하고 나중엔 지나가는
척하고 보기도 하면서 놀랍다. 정말이구나! 이게 웬일이냐! 오마나! 오마나!
내가 유럽에 왔구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남이야 보건 말건 저마다. 그 크고
탐스런 젖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놓고 두 손으로 선탠 오일을 썩썩 바르고
있는 여자들, 여기 오래 사신 분 설명에 의하면 여기는 남녀평등 사회이므로
남자가 가슴을 드러내듯이 여자가 가슴을 드러내는 거란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아니 할머니잖아! 저기도 할머니, 요기도 할머니 아냐, 할머니보담은 좀
젊은데!!! 아니, 할머니들만 벗는구나! 아니, 저기 젊은 여자 아해가 한 명
벗었네! 저기.... 하면서 결국엔 놀랍고 신기했던 할머니의 젖가슴은
시시해지고 거들떠보기도 싫고 이왕 이면 처녀 아해들만 찾게 되더라는 애기다.
해변으로 진출해보니 점입가경이다. 이렇게 신나는 일이! 체면이고 뭐고 실컷
봐야지! 하며 눈에 불을 켜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여긴 바닷가에서도
고등하고 남자여자 아해가 놀러 와서는 훌러덩훌러덩 그냥 벗는다. 한 가지
궁금한 건. 백사장에 젖가슴을 드러내 놓은 아해들을 보면 이상하게 흑인은 한
명도 없다. 흑인도 파리 시민이라면서, 흑인들은 그럴지도 모른다."저
아해들이 우리처럼 되려고 하나봐! 우린 안 저래도 새카만데" 하면서 안 태우는
게 아닐까!!! 그런데 이 수영장이란 데가 여자들 벗어서가 아니라 정말
괜찮았다. 아쿠아 불가드라는 수영장인데 8번선 발라드 역에서 하차하면
나온다. 네 시간까지가 기본이고 한 시간에 얼마씩 더 내는 실내외 수영장인데
수영복을 입고 왔다갔다한다. 남녀공용 사우나는 기대하지 마라. 그런 건 없다.
대신 하이 슬라이드가 너무 기똥찬 게 많다. 바로 일직선으로 떨어지는 거. 막
커브를 도는 거. 아무튼 종류가 엄청나게 많아서 어떻게 보면 하이 슬라이드로
청룡열차 타는 기분을 맛볼 수 있는 데다.
늙은 거지의 눈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문화의 나라, 예술의 나라, 개성의 나라라 그런지 프랑스엔 거지도 정말
고상하고 다양하다. 인형극 하는 거지가 있는가 하면 일요일엔 성당 가느라
쉬는 거지도 있고, 애완견을 데리고 다니는 거지도 있다. 우리가 얻어 살고
있는 파리 아파트 앞에도 거지 한 병이 앉아 있다. 불쌍해서 내가 1프랑을
주니깐 안 받는단다. 통역을 시켜 이유를 물어보니 일요일은 쉰단다. 지가
보령제약이야 뭐야!! 일요일은 교회에 나가야 하기 땜에 돈을 안 받는 거지들도
실제로 있다. 또 표말에 '헝그리'라고 써서 들고 다니는 거지도 있고 개를 끌고
다니는 거지도 있다. 개는 굶길 수 없으니까 정부에 등록을 하면 개 먹이라고
일주일에 12파운드씩 돈이 나온단다. 그걸로 저는 밥 사먹고 개는 얻어먹이고
한다나. 영국 얘기다. 암놈이 임심하면 출산비용도 주겠네!!! 제일 놀라운 건
인형국을 하는 거지다. 그 아이디어와 여유!!! 하모니카를 제법 구성지게 부는
거지도 눈에 띈다. 지하철 객차에서 뭐라고 얘기하는 거지가 있다."나는
직업이 없다. 그래서 배가 고프다. 여러분들이 돈을 주면 빵을 사먹고 옷도 새
옷으로 깨끗하게 갈아입고 다니겠다. 그러니까 돈을 좀 달라"는 말이란다.
여기는 이런 거지들이 굉장히 자주 눈에 띈다."나는 직업이 없지만 아니가
둘이라서 먹여살려야 되니 조금씩만 도와달라, 애들이 집에서 빵을 기다리고
있다" 에서부터 "예전에 무슨 일을 했는데 지금은 실직을 했다. 당분간만
도와달라" 이런 보충설명(?) 을 구사하는 거지도 있단다. 그럼 직업이 없으니
거지 하지, 있는데 구걸이 취미라서 거지하냐???? 사회복지 국가여서 그런지
정치노선이 바꿔는 통애 국가의 잘못으로 생겨나는 실업자들이 많다. 그래서
갑자기 일이 없어져 빌어먹는 사람들을 사람들은 대부분 이해한단다. 역사의
피해자 정책의 희생자로 보며 관용을 베푸는 것이다. 거리를 헤메던 사람들도
정치노선이 바뀌면 다시 일을 하기도 하고 ...... 물론 거지 타성에 절은
놈들도 없잖아 있지만 대부분 우리 거지 개념하곤 근본적으로 틀리다. 이유야
어쨌건 뻔뻔스럽게 그냥 달라는데도 사람들은 비교적 잘 준다. 장사도 안
되는데 하루에 두 번인가 왔길래 "아, 거 좀 자주오고 그러지 마세요" 그랬더니
"나도 코스가 있어서 오고 싶어도 자주 못온다" 던 옛날 우리 어릴 적 거지가
생각난다. 또 한 놈은 아침에 문을 열자마자 왔길래 10원을 주는데 (요즘이야
적선 단위가 커져서 100원도 주고 그러지만 그땐 보통 10원씩 줄 때였다)
이따가 저녁나절에 오라고 그랬더니 "10원 때문에 두 번 걸음 하란 말이요???"
그런 거지도 있었다. 마치 빛이라도 받으러 온 것처럼 당당하게 말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줬던 적도 있다. 곰짝 못하고 번번히 거지한테 지고 살았으니 그땐
거지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없으면 없는 대로 배 고프면 달래서
먹으면 되고 스케줄이 바쁘길 하나, 오라는 데가 있나 오라는 데 없으면 어때,
가고 싶은 데 가고 잠 오면 자고 급한 일도 없으니 그냥 내처자면 되고 참
좋겠다' 그랬던 거다. 그런데 어느 날 거지에 대한 그런 내 동경(?) 이 와장창
부서졌다. 언젠가 새벽에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면서 집으로 가던 길이었는데
을지로 지하도를 지나가면서 잠에서 막 깨어난 거지를 본 적이 있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그 거지는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지하철역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낮이라면 여기저기 왔다갔다라도 할 텐데 새벽에 일어난 거지는 무슨
생각을 할까? 참 불쌍했다. 자다가 깨어나도 갈 데도 없을 테고 그 시간에
황량한 지하도에서 다시 잠들기도 쉽지 않을 텐데, 그 모양으로 밤을 햐얗게
새고 있을 걸 생각하니 내가 거지가 아닌 게 그렇게 다행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심란한 밤을 보내고, 날이 밝으면 오늘은 또 어디로 갈까를 고민할 그
거지에 비하면 나는 무지하게 행복한 사나이였던 것이다. 그후로는 어지간하면
배부른 불평을 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남의 불행울 보면서 내 처지를 깨달은
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늙은 거지의 눈을 보면 돈을 안 줄 수가 없다.
프랑스 거지들도 보면 통박을 굴린다. 프랑스 사람이 지나 가면 뭐라고
한마디씩 "한푼 줍쇼, 한푼 줍쇼!" 하다가 우리 일행이 지나가니깐 뭐라고 말을
하려다 마는 눈치다. 멈칫 한다."내가 하는 이야기를 아마도 너흰 못 알아들을
거댜, 그러니 말을 한 하는 게 낫다."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해봤자 안
준다는 걸 뻔히 아는 거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이 나라 거지들은 아마 외국어
한두 개쯤 안 배운 걸 후회하지 않을까. 수입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텐데,
그리고 관광객들이 아무래도 많이 들락거리니까 거지들도 거지들도 세계 각국
코인을 다 받는다고 써놓으면 여행 다니다가 남는 코인을 처리하려는 사람도
많아서 수입이 더 나을 텐데, 환전소가 많으니 돈 바꾸기도 수월할 거고!!! 이
아이디어를 거지에게 팔아 말아?? 김성태라고 프랑에서 사진하는 작가가
있는데 한 번은 집에 돌아 오는 길에 거지 생일파티를 봤단다. 길거리
한구석에서 생일상도 차리고 여자 거지도 초청해서 저희끼리 포도주를 마시고
놀더란다. 거지들끼리 모여서 품바타령은 안 부르나??? 파리 전체가 텅 비는
여름철, 바캉스 땐 거지들도 휴가를 간다. 휴가지에 사람이 많으니까 휴가도
즐기고 구걸고 하고 바닷가에서 몸도 태우려고 그러는 걸까? 거지들 가운덴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아해들이 굉장히 많은데 걔들 소지품이 사실 굉장히
궁금하다. 도대체 뭐가 들었길래 저렇게 소중하게 갖고 댕기는가 말이다. 사진
한 번 찍어보고 싶어서 50프랑 줄 테니까 찍을 수 없냐고 시도하다가 결국은 못
찍었다. 적은 돈이 아닌데도 싫어했다. 하긴 거지도 사생활이 있겠지. 사람에겐
누구나 내보이고 싶지 않은 마지막 부분은 있는 법이다. 빌어먹는 일이라고
쉬울 리는 없다. 그래서 거지들 가운데는 무턱대고 돈 달라고 들러붙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작은 재주나 기술 같은 걸 보여주며 그걸로 돈을 버는
아해들이 많이 있다. 한 번은 우리나라 배낭족 남자 아해 둘이 길거리에서
모자를 앞에 놓고 텀블링을 한 시간 정도 했는데 25페니짜리 하나가
들어왔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거지 노릇도 쉽지 않다는 거다. 아무렴
먹고사는 일이 쉽기야 하겠어? 그래도 거지는 골칫덩어리다. 거지를 없앨 수
있는 방법 중에서, 거지들한테도 영수증을 발행하게 하면 어떨까. 세무신고를
하면, 거지가 탈세하다 걸리면 영업정지를 먹을 거고 그러면 그 사람들이 할 수
없이 취직을 하지 않을까? 언젠가 잡지에서 본 뉴욕 거지들의 데모가 생각난다.
정부에서 강제로 목욕을 시키니까."우리를 강제로 목욕시키지 마라. 우리가
깨끗하면 누가 우리를 거지로 알고 돈을 주느냐" 그러면서 격렬하게 항의
했단다. 결국엔 재판을 걸었는데 거지가 이겼다지 아마?
아무거나 막 두들기는 파리 음악의 날
6월 21일 파리에 와서 무척 기대를 한 날이다. 이유는 이 날이 음악의 날이기
때문이다. 자기 집 스피커를 창밖에 내놓고 크게 틀어도 되고, 가지고 나올
악기가 정 없으면 솥이나 냄비를 들고 나와서 두들겨도 좋다고 TV방송에서
아침부터 바람을 잡는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일만한 곳이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다 나와서 연주를 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가들이 파리에 와서
연주를 한단다. 아침에 우리가 다른 집이 스피커를 내놨는가 확인했더니 아무도
안 내놨다. 그런데 오후가 되니 동네 입구에 밴드들이 연주들을 시작한다. 설마
했는데 정말이다. 우리는 정신 없이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다.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은 헤퓌블릭 광장이었다. 전철을 타고 광장으로 가는 길인데 그 광장에 가기
전전 정거장에서 프랑스 아해들이 우르르 많이 내린다. 뭘 잘 모를 때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 데를 따라사면 된다는 말은 왜 그럴 때 생각이 나는지.
'바로 저 사람들을 따라가면 좋은 데가 나올 거야' 하며 우리도 무조건 따라
내렸는데 물어보니 그냥 집에 가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내린 곳으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헤퓌블릭 광장으로 가서 영국 그룹의 연주도 듣고, 오다가 싸움
구경도 했다. 광장에는 무진장 많은 아해들이 모여 있었다. 이런 걸 볼 적마다.
'우리나라도 이런 날이 있었으면' 하면서도 잘 될까 걱정부터 앞선다. 술 먹고
싸우고 부수고 난동부리고 부녀자 희롱하고 그러지는 않을까. 여기서도
소매치기들은 극성이다. 우리 여자 일행의 넓적다리를 슬쩍 만진다. 놀라는
사이 주머니나 가방을 뒤지는 새로운 수법인데 다리를 만지자마자 내가 보고는
팔꿈치로 쳤더니 미안하다면서 그냥 간다. 나쁜 시키들! 어쨌거나 무슨 날을
하나 정해서 이렇게 온 시민들이 축제처럼 놀고 즐길 수 있게 한 건 좋은
생각이다. 이 나라 국민들은 틈만 나면 뭐든지 이유를 붙여서 이런 식으로
문화행사를 즐긴다. 부러운 일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스위스 국경일에 맞춰서
파리에 들어가야 하기 땜에 모든 일정을 거지 맞춰놓고 기다리는 아해들도
있다. 7월 14일 의 프랑스 혁명기념일 같은 땐 각 나라에 흩어져 있던 프랑스
사람들이랑 외국인들이 모두 파리로 모인단다. 개선문 주위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며 그날의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다. 또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에선 12월
31일이 되면 새해맞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다. 또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에선
12월 31일이 되면 새해맞이 축제를 뻑적지근하게 연다. 영국은 트라팔가 광장,
프랑스는 샹젤리제 거리 등 나라마다 유명한 장소에서 거의 광란(?) 에 가까운
축제무드가 조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은 지하철과 버스가 새벽까지 무료로
운행된다. 새벽까지 함께 새해를 즐긴 시민들에 대한 정부당국의 배려인 거다.
8월 15일 같은 때 우리는 무슨 행사를 하나? 생각해보면 갑갑하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광복절을 두고 뭘 기다리느냔 거지. 남의 나라 국경일에는
그러는데. 그러니까 국경일에는 젊은 사람들을 위한 축제가 있어야 한다. 윗
사람끼리는 어쩐지 몰라도 서민들의 의식을 고쳐주는 건 사실은 많은
문화행사다. 8월 15일이 국경일이라고 뭘 했는지 난 사실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겠다. 시민회관 행사중계만 생각나는 거다! 커서는 8.15 특집 드라마
만드는 거 하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럴 거다. 그런 날일수록 젊은 사람들의
문화축제를 만들어야 된다. 그날은 서울시내 연주하는 사람들을 전부 모아서
연주회를 한 번 해본다든가, 곳곳에서 음악연주를 막 할 수 있게 한다든가,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들이랑 연주자들이 거리에서 공연을 하면 젊은 아해들이
기대를 하면 서 아, 광복절이 되면 뭐도 듣고 뭐도 들어야지, 어디도
가고...... 그렇게 되는 거다. 젊은 아해들끼리는 음악으로 세계가 통하니까
놀러 온 외국인들도 함께 우리의 국경일을 즐길 수도 있고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파고다 공원이나 남산 팔각정 같은 데선 사람들을 모아 태극기 달고
광복절 그날의 감격을 재현도 해보고 말이지. 그렇게 돼야지. 남산에서
형식적인 불꽃놀이나 몇 번 하고 세종문화회관에서 삼부요인이 참가해서
기념식이나 하고 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느냐 하는 거다. 기념식, 기념사,
공휴일, 노는 날 다 좋지만 국경일이 그런 걸로 끝나버리는 건 문제가 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나이 드신 분들의 회고도 좋지만 젊은
사람들이 즐기고 느낄 수 있는 기념일이 되어야 한다.
유럽에도 '감자탕'이 있단다
6월 22일, 바르비종에 있는 밀레가 만종을 그렸다는 밀밭에 소풍을 갔다.
돼지고기 삼겹살을 싸들고 갔는데 가스레인지를 잘못 사서 구워 먹을 수가
없다. 우린 종류가 한 가지뿐인 줄 알고 가스레인지도 사고 가스통도 사갔는데
막상 현장에 가서 끼워보고 하니까 이제 맞지가 않는다. 짝이 안 맞는 걸 산
거지. 할 수 없이 옆자리에 피크닉 나온 프랑스 사람에게 빌리러 갔다. 켤 수가
없어서 켜 달라고 했더니 가스가 없단다. 그래서 새 가스를 집어 넣으려고
시도를 하다가 프랑스 사람이 그만 실수로 자기네 쓸 가스를 다 날려버렸다!
그러더니 미안하다고 연신 말하는 거다. 자기네 거 날려 놓고 자기네가
미안하다고 연신 "빠르동, 빠르동" 하는데 우리는 도리어 괜찮다.괜찮다고
위로를 해줬지. 그림이 좀 이상하잖아?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가면서 가스가
고장나 미안하다며 밥을 못 먹어 어떡하냐고 그러면서 자기네 바게트를 잔뜩
주고 간다. 그런데 사실 그날 삼겹살을 나무를 주워서 구워먹긴 구워먹었다.
나중에 파리에 오래 산 사람에게 말했더니 깜짝 놀란다. 불법이라는 거다.
그래서 한마디했지. 프랑스 법이 어차피 불법 아니냐고, 마침 바위 모양이 한국
사람들이 보면 구워 먹기좋게, 불 때기 좋게 생겨 먹었더라구. 그러게 누가
그러게 누가 그렇게 생긴 바위를 갖다놓으래??? 다음날은 고호가 셋방 살던
동네를 갔다. 월요일은 쉰다는데 우리는 마침 그날을 피해 갔다. 아주 작은
이층 다락방에 살았더군! 사진을 못 찍게 한다. 우리는 고호 그림이 있나
했는데 그림은 없고 약 20여 명씩 줄을 서서 들어가는데 들어가면 알지도
못하는 소리를 한참 듣고 나서 그 다음 방으로 간다. 그 다음 방은 작은
소극장처럼 생겨서 의자들이 있었다. 앉아서 쉬는 곳인가 했더니 거기서 10여분
정도 고호 슬라이드를 보여준단다. 멀티비전이다. 그 당시 사람들이 막 떠드는
소리, 마차 지나가는 소리들을 잠시 보여주는데 그리곤 끝이다. 생각해보니
사진을 못 찍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거 보여주고 돈 받는 게 알려지면
장사에 지장 있을 것 같아서 그러는 게 아닌가. 한국식 발상이지. 볼 것도 없는
거야. 그러나 별 볼일 없는데도 돈을 이렇게 받고 하는 것, 그렇게 해서
관광지를 만드는 게 대단한 일이지 사실은. 고호네 집에 왔으니 말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고호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내 친구 중에는 이름도 고호로
바꾼 친구도 있는데 이런 걸 프랑스 아해들이 왜 몰라주나? 일본
아해들용으로는 설명서가 있는데 우리 건 여기도 없다! 끌로드 모네 집을
찾아갔더니 일요일 월요일은 쉰단다. 지네들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서
평일날만 열어도 볼 사람은 다 보게 돼 있단 건가?!! 모네라는 화가는 꽃을
많이 그린 화가다. 수련을 주로 그렸는데 인상파의 효시로 1882년도 해 뜨는
풍경을 처음으로 그렸단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모네 그림 엽서를 파는데 모네가
그린 그림들의 꽃씨가 들어 있는 엽서를 판다. 정말 훌륭한 아니디어다. 기념품
가게는 온통 꽃에 관한 상품들로 가득 차 있다. 꽃향기, 꽃잎, 꽃다발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다. 그리고 관광지 어디를 가든 엽서들을 파는데 여기만
유일하게 봉함 엽서를 판다. 우리나라 시의원들 이런 것 좀 보고 가지 표절 좀
하지!'메밀꽃 필무렵' 이효석 생가에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장날 따라서
가는 코스도 한 번 개발해보고 메밀묵도 팔고 메밀로 만든 음식도 연구하고
엽서에 메밀 씨앗을 넣어 파는 거 하면 어떨까? 궁리 좀 하면 어떨까? 자기네가
무슨 쇼 연구하러 온 거야, 뭐야? 오기만 하면 리도쇼나 보고 말이야!(여행을
갔다 서울에 돌아와 보니 장날 따라사는 코스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개발이
됐단다. 그런 생각을 동시에 한 사람이 있나 보지. 여길 와본 사람이든 안 와본
사람이든 어쨌든 그런 거가 개발이 됐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표절을 안 하고
했다면 훨씬 더 좋은 일이구.) 유럽여행을 하다 보면 감자탕이 참 먹고
싶어진다. 감자탕을 안 먹는 유럽 아해들의 식성을 이해할 수 없다. 그 맛있는
것을 왜 안 먹나 했더니 이 아해들이 유명한 사람 하나만 있으면 우리네 감자탕
우려먹는 거보담 훨씬 더 오래오래 우려먹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 이게
바로 유럽식 감자탕이다. 갔다 온 사람들이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유럽에도 감자탕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곳곳에 감자탕집이라고 하고 있지만 이
사람네들은 하여튼 유명한 사람만 하나 있으면 무진장 우려먹는 걸로 감자탕을
만든다. 체코에 있는 'Reduta' 라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재즈클럽은 3년 전에
빌 클린턴 대통령이 체코 방문중 들렀던 곳이라고 해서 하루아침에 전세계
배낭족들의 명소가 됐단다. 고호네 집도 그렇고 모네네 집, 모짜르트네 집 전부
그렇다. 모짜르트가 사사받았던 곳, 어린 시절 자랐던 곳은 그런 곳대로,
밀레가 만종을 그린 밀밭은 밀밭대로, 헤밍웨이가 한 번 들렀던 식당은
식당대로 선전을 해댄다. 또 뭐 피카소가 한 번 왔다 갔던 카페 샅은 데도
"피카소가 왔다 갔던 집이래!" 이러면서 동네방네 선전하고 심지어는 피카소가
자주 거닐었던 산책로까지도 이 사람들은 우려먹는다. 거기를 같이 걸어보는
거다.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 같은 데도 오르락내리락 댕기면서
걸어다니고........ 뼈다귀를 세세년년 우려먹는, 질리지도 않는 감자탕이다.
"고호처럼 살고 싶어"
오르세 미술관에서 우리 배낭족 아해들을 만났다. 만종이 여기 있냐고 하니
"그런 게 여기 있대요" 하고 물어 보는데 순간적으로 내가 잘못 알았나 하는
생각에 어물어물 대답을 하고 나오다가 거기서 파는 책을 한 권 샀더니 만종이
있는 게 아닌가. 막 뛰어가서 만종을 찾아보고 나왔다. 어릴 적 머리 깍으러 간
이발소 정면 벽에 걸려 있던 그림. 교실 학습란 뒷벽이나 동네 양품점 벽에
먼지가 뽀얀 채 걸려 있던 그림. 그림을 진품으로 보고 나니 감개가 무량했다.
'피리 부는 소년' 도 여기 있구만! 고호의 자화상이 여기 있네 하고 보니 여기
있는 게 오리지날인 거다! 한 번 더 와야지 하며 오르세를 나왔는데 결국엔 모
가고 말았다. 고호가 셋방 살던 동네를 다녀오고 해바라기 까지 진품으로 보고
나니 드는 생각이 있다. 우리가 살면서 흔히 남들에게 근사하게 보이기 위해서
쓰는 말들이 좀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건데 예를 들어서 "고호처럼 살고
싶어" 하든가 "집시처럼 살고 싶어""고국의 밤은 아름다워라" 등등 뭐 그런
거다. 또 남자들이 군대 갈 때 뭐라 그러냐면 " 군대 갈 때 아무한테도 안
알리고 그냥 갈 거야" 그런다. 그렇게 얘기하는 아해들 백이면 백 다 막상 갈
때는 환송식을 하지 아마? 그런 게 다 사실은 근사하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얘기엿다는 걸 우린 크면서 이내 깨닫는다. 내가 볼 땐 "고호를 좋아해요" 도
아마추어와 프로가 있다는 거지. 아마추어는 고호를 그냥 좋아할 수 있지만
미술 전공자는 "난 어떠어떠해서 고호가 좋아" 이렇게 말해야 되는 거
아니냐구. 그런데 고호만 알기 때문에 고호를 좋아한다고 그러는 아해들도
있다는 거지, 사실은. 우리 집은 남자 형제만 다섯인데 동생들이 성적표를
가져오면 어머니, 아버지 그 다음이 내 순서로 성적표를 받아보거든. 가만히
보면 공부 못했다고 부모님께 한바탕 꾸중을 듣고 난 뒤의 동생들 표정이 영
밝지를 않은 거야. 근데 또 ㅋㄴ형 앞에 불려오는 거지. 동생들의 성적표를
보기 전에 내가 먼저 묻는 말이 있어,"둘째야! 너는 좋아하는 과목이 뭐냐?
셋째 너는, 그리고 넷째, 다섯째는?" 그러면 각자 좋아하는 과목이 나온다구,
그러면 그 다음에 성적표를 보는 거야. 둘째가 국어를 좋아하는 과목이라고
했다면 나는 국어성적만 봐. 나머지 동생들도 마찬가지야. 좋아하는 과목
점수가 잘 나와야지. 좋아하는 과목 점수가 형편없이 나오면 나한테 혼이 나는
거지. 막 두들겨 팼다구. 어린아이에게 국어도 잘하고 산수도 잘하고 미술도
잘하고 줄넘기도 잘하고 음악도 잘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을
했던 거야.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생각해봐. 왜 팼는가를! 지가
좋아하는 과목은 잘해야 되잖아, 지가 좋아한다고 해놓고 그것마저 점수가
나쁘면 말이 안 되는 거지. 문제는 그러다 보니 둘짼가 셋째는 성적표 가져올
적마다 좋아하는 과목이 달라지는 것 같더라는 거야. 점수가 제일 많이 나오는
과목을 좋아한다고 그러더라구. 동생들이 나보다 더 똑똑해서 자기네들이
좋아하는 과목을 형이 못 외운다는 걸 눈치 챘기 때문이야. 이런 게 다 같은
얘기라고, 지가 잘할 수 있으니까. 성적이 잘 나왔으니까 좋아하는 게 되어버린
거잖아. 그러니까 결국 내 말은, 고호를 좋아하는 것도 아마추어랑 프로는
달라야 한다는 거지. 괜히 폼 잡느라 "고호처럼 살고 싶어" 그러다 큰코 다치는
수도 있다구. 한번은 임성훈이가 길을 지나가는데 어떤 여자 아해가 쫓아와서는
팔장을 끼면서 "오빠라고 얘기 좀 해주세요. 누가 쫓아와요" 그러더래. 그래서
이 친구 눈 딱 감고 시킨 대로 했대. 나도 드디어 장가를 가는구나 그러면서.
그래서 깡패들이 와서 "넌 뭐야?" 하길래 "이 여자 오빠다" 그랬더니 "오빠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어. 이 새꺄" 그러면서 막 쥐어패더래. 하여간 엄청
맞았는데 때릴 만큼 때리고는 그놈들이 갔대. 그래서 자기는 흠씬 맞은 채 그
여자애가 어디선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고 한참을 거기 서 있는데 20분이
지나도 그 여자 아해가 나타나지 않더라는 거야. 임성훈이가 두들겨 맞는
사이에 도망을 간거지. 그래서 깨달았다는거 아냐. 아, 멋있고 근사하고 그런
거는 영화에서나 있는 거구나. 폼은 아무나 잡는 게 이니로구나.
파리에선 무단횡단을 하자
프랑스가 참 잘하고 있는 점도 많은데 그 중 제일 눈에 띄는 것 하나가 도로
정책이다. 파리에서 한두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다가 보면 동네로 들어가는
길이 S자로 구부러진 걸 많이 볼 수 있다. 거의 로타리로 돼 있어서 바로
좌회전이 안 되고 반원 이상, 1분의 3을 돌아서 좌회전하게 돼 있고, 반원을
돌아서 직진하게 돼 있고, 우회전을 하게 돼 있다. 그건 다시 말해서 거기
가서 자동적으로 속도를 줄이라는 거다. 빨리 달리지 말고 주의하라는 뜻이다.
사람 위주로 배려된 것이다. 독일이나 미국이나 이럴 델 가봐도 무조건
네거리는 로타리다. 반원 돌아 좌회전, 반원 돌아 직진, 그러니까 빨리 달릴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들은 자연히 천천히 간다. 곡선이 많으니 속도
위반도 없고 난폭운전도 할 수가 없다. 운전하는 사람이 여유가 생긴다. 걸어
다니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이런 건 당연히 상을 줘야 된다. 그에 반해
우리는 장호원이나 이천, 광주 같은 데를 가다 보면 길이 일직선으로 되어
있다. 쫙쫙 뻗은 게 차 본위로 돼 있는 거다.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그걸
방지하려고 어떤 길은 억지로 데꾸보꾸 (요철) 을 만들어 갖고 갑자기 차가
가다가 덜컹덜컹 서게 만들어놨다. 동네 입구 같은 데 만들어놓은 데꾸보꾸는
사람을 놀라게 해서 차 망가지게 하려는 심보가 들여다보인다. 프랑스의 곡선
길들을 보면 여태껏 우리는 길 하면 쭉 뻗은 직선도로만 잘된 길로 알고 좋은
줄 알았는데 사실 그거는 차 본위였지 인간 본위가 아니었다는 걸 새삼 알게
된다. 그런 게 잘된 도로계획이라고 배워온 우리는 조금만 동네 입구가
불편해도 길을 탓하고 동네를 탓하고 도로공사를 탓하고 정부를 탓해왔구나!!!!
길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잘된 길을 바둑판처럼 정렬된 길,
직선으로 곧게 뻗은 길, 이렇게 표현하는데 프랑스 길들은 거의 다 직각으로
꺽이는 사거리 개념이 아니고 사선이다. 그래서 한 번 길을 잘못 찾으면 굉장히
헤맨다. 우리는 직진해서 오른쪽으로 길을 잘못 들어서면 다시 왼쪽으로 나와서
뒤로 돌면 제자리로 오는데 여기는 그렇지가 않다. 한 번 엇갈리기 시작하면
왼쪽 오른쪽 구분이 없이 계속 사선사선사선으로 비껴가는 식이라 굉장히
복잡하고 힘들다. 한 번은 일행들이랑 파리의 한국 음식점 '우정 식당' 을
찾는데 지하철 한 정거장밖에 안 돼 계단을 구불구불 내려가 지하철도 타기
번거롭고 시내 구경도 할 겸 해서 걸어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1시간 20분이나
헤맸다. 사선사선으로 막 가다 보니까 이건 자꾸만 처음 보는 길로 빠지는 게
피라미드가 따로 없었다. 나중엔 탈진해서 밥이고 뭐고 다 귀찮았다. 계단 조금
내려가기 ㅅ어하다가 봉변을 당한 거다. 길들을 사선으로 만든 건 다 이유가
있단다. 파리시는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거리 방사형으로 조성돼 있는데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해 도로와 건물들을 특별 설계했다고 한다. 일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선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각으로 된 건물 사이에 또 다른 건물이
들어서고 하는 식으로 미학을 고려해 설계를 했다. 광화문 네거리에 서면
중앙청이 보이는 식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에 성당이나 관공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이 자리잡고 있어 한눈에 딱 들어오게, 예쁘고 돋보이게 만들었다.
거기다 삼각형으로 자르니까 삼각형의 자투리 공간이 많이 생겨 그 자리에
회전목마가 들어서고 찻길을 건너다 쉬는 공간이 되고 의자가 놓여진 공원도
되는 깃이다. 같이 다니던 이상영 씨 한테 이런 얘기를 하니 깜짝 놀란다.
파리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 거리 개념 자체를 잘 모르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조금만 익숙해지면 집 찾기는 여기가 더 쉽게 되어 있으니까!!!
또 한가지 유럽엔 길거리에 육교가 없다. 육교가 뭔가? 자동차 지나가는 데
방해가 되니까 사람들이 위로 피해서 지나가거라! 이런 거 아니냔 말이다.
인간보다는 자동차 위주로 된 행정의 산물이다. 우리는 차로 폼 잡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차 본위이니까!! 그러니 아무나 막 사지! 아무나 다 가지고
있으니 좋은 놈으로 골라 사야지! 주말에 차 끌고 밖에 나가지 않으면 차 사고
손해봤다고 생각하는 인간들 많은 것도 그래서 그런가??? 그런데도 우리나라
운전자들 대부분이 정작 중요한 운전기술은 운전면허 필기시험 필기시험 합격
순간 다 잊어먹는다. 그리고 오래될수록 생각이 안 나는 거다. 정말 문제다.
차로 폼 잡는 얘기 하다 보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난다. 몇 년 전에 이봉원이하고 조금산이하고 밤무대 DJ사상 최초로 둘이서
'따블' 진행을 본 적이 있다. 얘네들이 나가는 밤업소에 영업부장인가 뭔가
하는 웨이터가 있었단다. 그런데 이놈이 무슨 근거와 사유에선지 모르지만
조금산이가 출근하면 깍듯이 45도 각도로 존댓말에 경어까지 쓰고, 봉원이가
차에서 내리면 반말짓거리 비슷하게 말꼬리가 안개 속에 떠난 여인처럼 모습을
감추더라는 거다. 이상한 건 진실을 파헤쳐 인수분해로 까발리고 원인을 알아야
대처를 하든가 할 거 아니겠어? 알고 보니 그 원인이란 게 두 사람이 타고
다니는 차에 있더란다. 조금산이 차가 이봉원이 차보다 조금 비싸고 기통수도
많은 거였다나 어쨌다나. 하여튼 유럽은 어딜 가나 육교도 없지만 횡단보도도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빨간불이라도 차가 없으면 막 건너다닌다. 자동차가
지나가든 말든 무단횡단도 한다. 횡단보도 이닌 데서 맘대로 건너다녀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생각 안 한다. 무단횡단이 생활화되어 있는 것이다. 택시운전도
마찬가지다. 파리 택시기사들 운전 하나는 정날 드럽다. 빨간불이라도 사람이
없으면 막 달린다. 그래서 특히 영국에 살던 사람이 파리에 오면 차가 막
부딪칠 것 같은 착각이 든단다. 영국은 우측, 여긴 좌측통행이어서 확 가면
반대로 가니까 막 부딪힐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신호등도 잘
안 기키니 말이다. 나중에 뮬랭 호텔 주인 아줌마한테 한마디했다. 그렇게
무질서해도 되냐고? 선진국의 자동차문화 운운하며 국내에서 듣던 것과는 너무
다르지 않냐고, 아줌마 얘기가 그래도 한국보담 교통사고는 안 난단다. 신근수
씨가 파리에 와서 일 년쯤 지나 말귀를 갓 알아듣기 시작했을 때였는데
횡단보도에 빨간불이 켜있어서 파란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려고 서 있었더니
교통경찰이 다가와 도리어 묻더란다. 왜 안 건너가고 서 계시냐고, 어디 아프신
건 아니냐고, 하여간 별난 동네다. 그러나 막상 다녀보니 아슬아슬한 것 같은
데도 알아서 잘 서주고 잘 피해서 잘 다닌다. 아무렇지도 않게. 무질서해
보여도 다 자기네 나름의 룰이 있는 것이다. 그 룰의 기준은 사람이나, 육교가
없는 것, 횡단보도가 없는 건 이 나라가 인간 중심의 사회란 걸 보여준다.
프랑스 에스컬레이터에도 뛰는 아해들 많더라
나폴레옹 궁이 있는 퐁텐블로에 파를 빌려 타고 가는데 유리창에 돌멩이가
튀었다. 그래서 앞 유리창이 깨졌다. 빌린 차라 돈이 엄청날 텐데 큰일났다고
그러길래 유리 창 값을 서로 반씩 물어야 된다고 내가 말해줬다."내가 잘못한
건 사실 없지만 내가 빌려가서 깨뜨렸으니까 도의적인 책임은 있다. 그러나
니네 나라 도로가 나빴고, 니네 나라 동네에서 갑자기 돌멩이가 튀어 올라온
건데 그걸 내가 다 물기는 억울하지 않느냐?" 그러라고 그랬더니 그렇게
했단다. 좀 놀라운 건 그 얘기가 받아들여져서 반값만 내라고 그랬다는 거다.
우리 같으면 그렇게 얘기했을 적에 상대방이 믿었겠냐라는 거지. 안 믿을 수도
잇거든."무조건 물어내야 된다" 그럴 수도 있단 말이야. 내가 옛날에 춘천에
갔는데 택시를 타고 가다가 창문 유리창이 깨졌어. 그랬더니 이 기사가 끝까지
날보고 물어내래. 그래서 막 싸웠어. 어떻게 닫는 거마다 다 깨진 것도 아니고,
그저 딱 다는 순간 느닷없이 깨져버린 건데, 내가 딴 거 잘못 건드린 것도 없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법적으로 처리하자고 얘길 하는 거야. 그 법적인 게 뭐냐면,
원래 모든 택시가 운전하는 사람이 문을 열어주고 닫아주게 돼 있다는 거지.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하나도 안 하면서 그런 문제가 생켜나니까 그걸 가지고
날보고 물어내라고 그런 거야. 그래서 꼼짝없이 물었던 적이 있는데 그런 걸로
생각을 해보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선진국인가 알수 있다는 거야.
자신감이잖아. 프랑스는 또 어딜 가나 집도 좁고 두 명밖에 못 타는
엘리베이터도 많지만 작은 집도 불 켜는 스위치 하나는 겨서 찾기 쉽고 켜기
쉽게 해 놓았다. 필요 없을 때는 불이 자동으로 꺼지게 돼 있고 필요할 땐
손으로 켜게 돼 있다. 흔히들 우리를 비하해서 얘기할 때.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어가는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뿐이라고 자조적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파리 가서 보면 바쁜 사람 뛰라고 길을 비켜준다. 에스컬레이터 오른쪽은
그래서 항상 비어 있다. 뛰어가려는 놈들을 위해서 처음부터 왼쪽에 한 줄로
서는 것이다. 뛰어가는 놈뿐 아니다. 년들도 한둘이 아니다. 바쁘면 뛰어가는
거지 뭐! 뭐가 어때!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어가는 게 뭐가 나쁘다고 그렇게 욕을
하나. 우리는 바쁜 사람이 뛰어 올라가야 되는데도 한사코 안 비켜준다. 그리고
눈짓으로 짜증을 낸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뛰는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밖에
없다고 이야기 한 사람, 누군진 모르지만 정말 웃긴다. 지하철 티켓 한 장
끊어줄 테니 프랑스까지 오는 비행기값만 내고 와서 타봐! 지하철은 꽁짜니까,
뛰는 놈 천지다. 많은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곳에선 뛰는 놈들이 있는
게 훨씬 소통이 잘된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나갈 때는 뒷사람 나올 때까지
자기가 연 문을 반드시 잡아준다. 우리나라처럼 꽝하고 부딪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쨌든 나폴레옹 궁에서도 느낀 거지만 여기가 참 잘돼 있는게, 궁을
걷다가 지루해질 만하면 나가는 곳이나 문이 꼭 있다. 왕도 걷다가 밖으로
나가고 싶었을 테니까. 공원을 걷다가도 다리가 아플 때쯤이면 의자가 꼭
나온다. 에스컬레이터도 이용자가 직접 신호를 바꾸게 돼 있고,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인간을 위해서 편리한 것들을 잘도 만들어둔다. 마치 만드는 사람이
사전답사라도 한 뒤에, 아니면 한동안 살아본 뒤에 만든 것처럼 돼 있다.
여기는 또 상담이 상당히 까다로운데 반해 일이 성사가 되면 담당이 바뀌어도
그대로 시행이 되는 나라라고 이상영 씨가 말한다. 또, 근무하는 시간만큼 정말
굉장히 철저하게 지킨단다. 근무시간 동안에는 열 명을 만나든 자기가 일하는
시간만큼만 일해주면 된다라는 생각인데, 우리는 창구 같은 데서 한 사람이
오래 물어보면 짜증을 내잖아, 그런다고 갑자기 시간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시간에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우리는
담당자가 없으면 안되는 일이 많다. 자리를 비워도 안되고 심지어는 담당자가
휴가를 가면 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나라다. 에이씨. 이상영이가 만난 그놈만
그렇겠지. 설마 다 그러겠어.
다리 세 개는 프로다?!
유럽의 관광지에서는 걸핏하면 사진을 못 찍게 한다. 유적이나 유물을
보호하려는 것도 있지만 허가를 받고 찍으라는 거다. 이유만 타당하다고
생각되면 거의 허락해준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가서 막 찍는다.
퐁텐블로의 나폴레옹 궁에서도 경비원이 사진을 못 찍게 한다. 결국은 허가받고
하거나 돈 내라는 이야기다. 허가를 낼 적에 돈을 받기도 하거든. 프로들한테는
,"우리는 학생이다" 그랬더니 다리 세 개, 삼발이를 갖고 왔으니 안된단다.
아마추어가 아니고 프로라는 거다."뭐가 프로의 기준이냐?" 그랬더니 "다리 세
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프로" 란다. 그래, 하긴 맞다. 카바레 제비들도
다리가 세 개기 땜에 프로지. 춤추느라고 다리 두 개. 한 개는 영업용으로
쓰잖아?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다. 신문을 보면 유부녀들이 카바레 제비한테
당했다느니 하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왜 그런 유부녀들이 줄어들지 않고 계속
나오는 걸까? 이유는 세 가지 중에 하나가 아닐까? 유부녀들이 자기는 당하지
않을 거라고 자만하거나, 아니면 유부녀들이 경계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비족들이 여자를 꼬시는 수단이 날로 높아지거나, 그것도 아니면 유부녀들이
신문을 전혀 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신문기사를 본다면 그렇게 넘어가진
않을 텐데 말이야. 나폴레옹 궁에서 남자 베낭족 아해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여자 아해가 "저두 끼워주세요" 하고 말한다."끼워달라니! 그건
음담패설이잖아" 했더니 얼른 알아듣고 사라진다. 가이드들에게 이런
음담패설을 몇 개 가르쳐줬더니 감사의 마음으로 맥주를 실컷 사주길래 나와서
처음 얻어먹어 봤다. 음담패설 얘길 하다 보니 생각나는 게, 성욕이 생긴다고
이야기하면 우린 보통 "어머, 저 사람 왜 저래?" 한다."어머, 웃겨, 뭐 저런
야한 사람이 있어""어머, 벌건 대낮에 뭐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못 배워 처먹은 당나귀 같은 놈!" 이따우 얘기들을 하는 거다.
성욕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하다는 이야기인데 말이다. 비리비리하면 그런
얘기도 못해. 프랑스 성인 프로그램은 어떻게 보면 일본 것보다 더 야하다.
굉장하다. 충격을 받는다.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 밤 열두 시 넘어서 케이블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아라. 공중파는 수요일날 틀어보아라. 여기 처음 온
사람들은 처음에 열심히 보지만 나중엔 안 본단다. 남이 하는 것 보면 뭘하냐!
본인이 직접 해야지!!! 오늘은 6월 28일 금요일이다. 야, 기대된다. 오늘밤
열두 시! 성인용 잡지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를 학생들이 사보는가 물어
봤다. 아니다. 말 그대로 성인들이 사본다. 학생들은 직접 한단다. 부모님들의
주말여행이 아해들로 하여금 자유로운 성을 즐기게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주말여행을 많이 가니까 러브호텔이 따로 필요 없다. 늘 집을
비우니까 말이다. 부모님들은 모르지만 아해들은 옷 속에서 강원도 감자처럼
영글어간다.
박물관에 없던 한글 안내문, 쇼핑센터엔 있더라
파리 사람들은 여름이면 모두 바캉스를 떠난다. 세일이 한창이다. 여기선
세일을 임의로 정하는 게 아니라 국가와 협의를 해서 정한다. 올해는 바캉스
떠나기 전 6월 24일부터다. 일주일 연기돼서 지금이 대복세일이란다.
백화점이고 상점들이고 할 것 없이 전부 다 세일 분위기다. 유학생들은
세일이니 그런 거를 잘 모르는데 유학생 엄마들의 정보는 빠르다."버버리
사와라, 세일한단다" 국제전화로 알려주기도 하고 어느 백화점 가면 있다는
거까지 다 알려준단다. 세일 기간이 연기 된다는 거를 한국 엄마들이 먼저 알고
있다는 얘기에 우리가 정말 정보화사회에 살고 있구나를 실감했다. 가만 보면
한글 안내문이 미술관이나 박물관, 유적지에는 없지만 쇼핑센터엔 다 있다.
한글 안내문 없는 것에 불평들이 많고 의기소침 해지고 김새고 하지만 있는
곳도 있는 것이다. 실망하지 마라?!?! 웬만큼 큰 쇼핑센타에 가면 한인
종업원까지 있단다.(한 군데 더, 사창가에도 있다. 그런 데는 주로 이렇게
씌어 있다.'김 사장님 어서 오세요') 영국 차이니스 거리에서 피카다리 쪽
가는 길에 있는 그 유명한 버버리 본사 매장에도 한국인 종업원들이 있다.
공장만 16개가 몰려 있어 피카다리에 상업은행이 많다는데 거기 예금은 여기
버버리 매장에서 다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규모가 큰 곳이다.
가격이 생각보담 안 비싸 그런지 한국 사람이 무더기로 몰려오는 바람에 한국
아르바이트생 안내원은 물롬 판매장 본사 카운터에 앉아서 돈 받는 여자까지
한국 여자다. 영국 아해들보다 계산이 빨라 그렇게 됐단다. 장하다. 우리의
수학 두뇌들!! 딴 데 가면 몇 달러, 몇 프랑, 몇 파운드 하는데 버버리의
한국인 종업원들은 "면세해서 25만원이에요""세일해서 74만원 정도예요" 하니
얼마나 알아듣기 쉬운가???? 오월 말인가 버버리 본사 근처에 갔을 때 우리
일행 한 명이 거기 가면 싸게 산다고 해서 따라가 물건에 하자가 약간 있는
것을 정가의 4분의 1에 사오는 걸 내가 봤다. 그런데 두 달 차이로 값이 많이
올랐단다.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뭉텅이로 사가니까 그렇단다. 가게마다
사람들이 복작거리는데 한가지 눈에 띄는 건,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두
개라는 거다. 그러나 카운터랑 떨어진 문은 가게로 들어오기만 하지 나갈 수는
없다. 카운터 앞을 지나야만 나갈 수 있다. 얼마나 합리적인 방법인가??? 이런
게 바로 관광정책이다. 물건을 살 때 좀 비싸다 싶으면 "한국하고 비교해서
한국보담 싸" 하고 한국보담 비싸다고 생각하면 "그렇지만 프랑스 물가에
비하면 싸다" 고 생각하고 사대는 즐거운 쇼핑!!! 안 살 때는 그 반대가
되겠지???? 아줌마 단체 관광하는 사람들이 거의 그런 식으로 해서 산단다.
그러니 뭉텅이 쇼핑이 될 수밖에!! 엔젠가 해외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서울로
날아오기 전 호텔방에서 "피곤해, 피곤해, 이번 여행은 정말 강행군이었어.
피곤해, 정말 피곤해" 하던 여자들 생각이 난다. 그런데도 "쇼핑을 하려면
지금이 마지막이야. 일어나" 하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던 여자들...... 그래서
우리는 그 쇼핑에 이름을 붙였다. 막판 뒤집기 쇼핑이라고. 어쨌든 버버리니
베네통이니 좀 유명하고 알려진 브랜드가 있는 데 근처엘 가면 가이드들은
대부분 "가지 마세요, 거기 절대로 가지 마세요" 그런다. 통제의 방법이다. 한
번 들어가면 안 나오기도 하고 물건사대는 데 정신이 팔려 늦게 오기도 하고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기니까 미리 못을 박는 거다. 한 번은 로마에서 패키지
여행 팀들을 한나절 따라다니는데 열받는 일이 있었다. 민박집을 하는 아주
인심 좋고 마음 좋은 아저씨가 가이드를 하는 팀이었는데 (급할 때나 대목때,
그렇잖으면 아주 특별한 때 유럽 박물관 기행이나 미술관 기행 그런 식으로
이따금씩 가이드를 해준단다) 나는 쫓아간 거라기보다 바티칸 앞에 있다가
어떻게 같이 가게 됐다. 아는 아해들 몇 명이 거기를 쫓아온 것이다."30부,
여긴 30분만 보시면 됩니다. 30분 뒤에 여기로 모이세요" 이 아저씨가 그러구
다들 구경을 하려고 흩어졌는데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안 오는 거다. 한
명이 트래비 분수 앞에서 모두들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야. 그냥 두고 가려고
그랬지. 근데 차마 그럴 수도 없고 죽겠더라고 정말. 나중에야 어기적어기적
오는데 보니까 고등학생이다. 고등학교 2학년짜리 여자 아해더라고."너 어디
갔다 왔어?" 그러니까 "베네통 갔다 왔어요!" 이러는 거야."미안합니다" 이런
얘기도 없구 말이야, 정말정말 생각 같았으면 패 죽이고 싶은 거야.
"몰랐어요.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어요?" 이러는데, 아, 정말 열받더라구. 정말
열받어. 들어가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한 데를 부들부들 들어가서는 말야.
그렇다고 걔가 뭐래도 샀냐면, 물건을 사지도 않았어뇨. 하나도 그러니 그게
뭐냔 말야.
샹젤리제 구둣방에서 짝짝이 구두를 파는 이유
샹젤리제 거리의 구둣방에 갔다. 온통 세일인데 소쿠리 같은 것에 구두가
잔뜩 들어 있다. 한 켤레에 160프랑인데 '메이드 인 이태리' 라는 상표도 붙어
있다. 160이면 우리 돈으로 얼만가? 우선 100이면 약 16,000원에다가, 60
곱하기 160이면 약 10,000원. 모두 합해 2만 6,000원에 이태리 구두가 한
컬레라니 얼마나 싼 거야!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우선 마음에
맞는 디자인을 고르고 발에 맞는 구두 한 짝을 들어 신어보았다. 여러 개 중 잘
맞는 것이 하나 나온다. 그런데 오른쪽을 신어보고 왼쪽을 신으려고 짝을
찾아보니 어렵쇼! 왼쪽 한 짝이 없는 짝짝이인 것이다.'그럼 그렇지! 이
자식들이 못 쓰고 안 팔리는 구두를 싸게 판다는 전시용이었구나' 하며
투덜대는데 내 옆에서 구두를 들고 고르던 프랑스 아해가 한 짝을 들고
구두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나도 따라 들어가봤지! 그리고 짝짝이 구두의
비밀을 알아냈다. 매장 안에는 세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무진장 많은 거야.
일손이 모자라니 밖의 구두를 감시할 사람이 없잖아! 그래서 짝짝이들만 내놓은
거더라고. 한 짝은 훔쳐가봐야 소용이 없잖아! 외다리가 아닌 다음에는 한 짝을
고른 사람이 매장 안에 들고 들어가면 나머지 한 짝을 꺼내주는 거지! 귀여운
자식들. 그런 상술을 모르고 나는 촌놈처럼 우리나라 통박만 굴리고
있었으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가 구두 파는 사람들에게 많이
속아온 것도 사실이잖아!!!! 언제나 가봐도 점포 정리. 새로 개업한 집도 점포
정리, 몇 년이 지나도 점포정리에 얼마나 많이 속았냐구! 흰 종이에 까만
붓글씨로, 붓글씨하나는 명필인데!!! 칠성제화에 납품하는 거예요! 라든가
가구는 메이커에 납품하는 거라든가. 뭐 그런 거 많잖아! 하도 많이 속았기
땜에 거기서도 그렇게 얘길 했는데 그 사람들은 머리가 굉장히 좋은 거지. 밖에
쌓아논 걸 가지고 들어와서 살 수 있게 해놓은 거니까. 우리도 왜 그 생각을
미쳐 못했을까? 가서 얘기해줘야지. 샹젤리제 거리엔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다니는 젊은 아해들이 많이 보인다. 학교도 시장도 회사도 심지어는 슈퍼에
근무하면서도 탄다. 분명 관광객은 아닐 테고 하루종일 타고 다니려면 다리도
적잖이 아플 텐데. 보나마나 후회도 하면서 할 수 없이 타고 다니는 녀석들도
많을 거다. 한가지 궁금증. 저거 타다가 발등이 근지러우면 다 끄르고 발을
긁어야 하니 얼마나 괴로울까. 근지러운 얘길 하다 보니 갑자기 내 몸이
근지러워진다. 때 미는 목욕 한 지가 얼마나 됐더라? 샹젤리제 거리에는
몸무게를 다는 저울이 있다. 우리 동네 목욕탕에 있는 것 같은 저울인데 돈을
내고 달아 보게 한다. 프랑스 꼬마 두 놈이 저울에 올라가더니 자기 몸무게가
3킬로그램이 나오니까 이상하다는 듯이 다른 친구들 데려온다. 그 친구도 역시
3킬로그램이다. 내가 다음에 올라섰다. 역시 3킬로그램이다. 그제야 꼬마들도
돈을 내야 몸무게를 재는 바늘이 돌아간다는 걸 알았다.(저울을 보니 프로그램
아이템 하나가 생각난다. 서울 가면 썩먹어야지. 물 양동이 들고 풀장 징검다리
건너가 물 무게를 다는 거다. 아, 뚱땡이 옷 입고 농구하기도 괜찮겠네!)
가이드의 말을 들어보면 한국 학생들은 일단 세 명이 한꺼번에 올라가서
몸무게를 쟨 후 한 명씩 내려오면서 빼기를 하면 돈 한 번 내고 세 명 몸무게를
알 수 있단다. 태국이나 인도 아해들은 그렇게 못 한다 면서 한국인의
잔대가리를 높이 칭송한다. 역시 수학 영재들은 달라! 그래, 그건 그래서
좋은데 몸무게는 왜 달아보는 거야. 대중 목욕탕이 없어서 그런가. 우리는
목욕탕에서 공짠데!!! 그러고 보니 잘 안 씻는 자식들이 많아서 그런지 이
나라엔 공중 목욕탕도 하나 없다. 아! 공중 목욕탕이 없는 나라 프랑스!!!
파리의 때밀이 소년을 불러 엎드려서 때 한 번 벅벅 밀어보고 싶다. 이따가
이발소 발견하면 머리나 깍아야지!
배낭족 여학생 배낭 속을 봤더니.....
"이 나라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갈 젊은이들이여!"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정말이다. 유럽에 오니 양 어깨에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정말
많다. 배낭 멘 모습이 일어서서 다니는 달팽이같이 보인다.(달팽이는 가출을
하지 않는다. 달팽이는 주택정책이 뛰어난 놈들이다. 달팽이 나라엔 전세나
사글세가 없다는 것이다.) 배낭 메고 다 등산가는 것처럼 배낭을 메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더니 이제는 처녀 아해들부터 나이
먹은 사람들까지 전부 다 집단으로 배낭을 메고 다닌다. 배낭을 메면 편리한 건
사실이다. 그러니까 메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요즘은 핸드백 들고
다니는 사람 찾아보기가 정말 힘이 들 정도가 되었다. 힘들게 찾아볼 이유도
없지만! 이렇게 집단으로 유행을 하니까 할머니도 약수터에 갈 적에 배낭을
메고 다닌다. 할아버지도 마찬가지고, 전쟁중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파리에도
배낭 메고 다니는 아해들이 굉장히 많다. 내가 얘기하려는 것은 배낭끈을 조금
길게 메서 걸을 적마다 엉덩이를 툭툭 치다는 거다. 그것에 습관이 되고 길들여
있으니 배낭을 안 메고 있을 땐 허리나 엉덩이가 허전하지 않겠냐는 거다. 등이
빈 것 같고 말 그대로 빽이 없으면 허전하다는 거다. 그러니 나중에 남편이
허리나 엉덩이를 자주 만져주지 않으면 그게 가정 불화의 원인이 되고 새로운
형태의 이혼 사유가 되어 사회현상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이 왜 될까???
배낭 아야기를 할 때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있다.'밀레' 라고 하는
프랑스제 배낭이다. 밀레 배낭은 말하자면 산을 좀 타거나 여행을 좀 다닌다.
하는 우리 대선배들 중에서도 한두 명이 메고 다닐까 말까 하는 전설적인
배낭이었다. 산에 가서 허리 펴고 떡하니 목소리를 깔고는 "내가 말야, 밀레를
메고 다니는데....."하고 폼들을 잡곤 했던, 아무튼 굉장히 비쌌다. 보통
배낭이 7 , 8천원 할 적에 10만원도 했고 3만원 넘어갈 적엔 뭐 20만원씩도
했으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브랜드를 선호하니까 상표만으로도 인기가
무지하게 좋았다. 그런데 그거 자체가 또 참 잘 만들어진 게, 힘을 어깨하고
허리에 분산시켜서 등에 딱 붙게 만들어서 똑같은 무게를 짊어져도 좀 덜
무겁게 느껴지게 돼 있다. 등받침이 잘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 그걸
굉장히 갖고 싶어하고 메고 싶어했는데 한국에선 워낙 비싸니까 못 샀던 거다.
그래서 이번 여행길에 나도 밀레를 하나 사려고 그랬다. 그런데 마침 파리에서
방 빌렸던 집 유학생 아해가 밀레 가방을 가지고 있더라고 그래서 그 동안 걔
걸 쭉 메고 다녔다. 한국에 갈 적에 꼭 밀레 하나 사가지고 가야지 생각하면서
그러다가 스위스역에서 딱 내렸는데 배낭을 힘겹게 메고 가는 우리 여학생이
하나 있더라고 등을 보니까 이게 웬일이야. 밀레인 거야. 얼마나 반가워, 저게
한국 돈으로 한 20만원 정도 했었던 건데. 너무 반가워서 "야, 그거
밀레아니냐" 고 그랬더니 밀레래. 어떻게 구했냐고 그랬더니 동대문 시장에서
3만 5천원 주고 샀다는 거야. 그러니 얼마나 실망이야. 한국에 나와 있는 것도
몰랐는데 거기서 그걸 봤으니. 그래서 밀레 메고 가는 그 여자 아해한데 내가
물었어 "배낭 무게가 얼마나 되냐?""아마 지금 메고 있는 배낭무게가 족히 쌀
반 가마니 무게는 넘을 턴데 엄마가 쌀 반 가마니면 메고 언양 가서지고 오라고
하면 어떡할 거냐?" 그랬더니 대답이 바로 튀어나와 "가출할 거예요!" 배낭족
여학생 8명의 배낭 속을 들여다보았다. 뒤져 보았는데 저 연약한 어깨에 저렇게
무거운 배낭을 메고 저 고생을 할까 했는데 80퍼센트가 웃었다. 설마설마
했는데 역시 옷을 잔뜩 짊어진 것이다. 배낭여행을 하다 보면 행선지가 같아서
처음 만나 같이 동행하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여행지에서 그렇게 만난
아해들을 의식해거 옷을 갈아입느라고 그러는 거란다. 내가 니스에서
스페인까지 동행한 여자 아해는 2박3일 있는 동안에 네 번을 갈아입는 걸 봤다.
외국 아해들에게 물으면 그런 것 전혀 신경 안 쓴단다. 우리가 옷이 많아서
그런 걸까? 근데 배낭 무게는 걔네들이 우리 아해들 것보다 훨씬 무겁다. 나는
농담 삼아 " 그렇게 옷 많이 집어넣고 다니면 집에 있는 옷장 비었겠네!!!"
그랬더니 한결같이 줄이고 줄인 게 이거란다. 작정을 하고 이번엔 외국
아해들이 짊어지고 다니는 배낭 속을 봤다. 두 명 거다. 물안경, 카셋트, 비옷
소설책, 엽서 등등이 빼곡하다. 이렇게 집어넣고 다니다가 비라도 오면 어느
틈에 비옷을 꺼내 갈아입는데 동작 빠르기가 동물들이 보호색을 바꾸는 것
같다. 그리고 높은 곳에 올라가면 꼭 쌍안경을 꺼내는데 우리 아해들은 눈이
좋아 그런지 쌍안경을 안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그 쌍안경이라는 게 알고 보면
참 재미나는 거다. 산밑에 있으면 산 높이를 보려고 기를 쓰는데 높은 산에
가선 아까 쌍안경 봤던 그 자리를 꼭 챙겨 보더라고. 또 열차 시간이 남으면
엽서를 쓰고 (여긴 엽서에 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유적지 안에서
버스에서 배 갑판에서 식당에서 거리의 카페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편지를
즐겨 쓴다. 전화 한 통화보담 엽서값이 싸니깐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보기 좋은
풍경이다) 소설책을 들여다보고 카세트 듣고, 뭐 그렇게 시간 보내고 노는 데
쓰이는 물건들을 가득 메고 다닌다. 우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내가 본
아해들도 그랬지만 서양 여자 아해들은 정말 배낭이 크기도 하다. 우리 덩치
좋은 남자 배낭족들보다 훨씬 크다. 그러고도 바이올린 들고 다니는 아해.
군용수통을 양쪽에 차고서 물 담는 아해. 고양이 끼고 다니는 아해들이 있다.
남자 아해들 중엔 심지어 새장을 통째들고 다니는 놈도 있다. 나중에 보니
이태리 아해들은 아예 선풍기를 들고 바캉스를 간단다. 냉장고까지 가지고 가는
놈도 많단다. 커다란 솔을 배낭에 메달고 다니는 아해도 봤다. 돗자리 (잠자리)
청소부터 옷에 묻은 모래 털기까지 아마 쓸모가 많겠지? 하여튼 개성있는
아해들이다."저 안에 뭐가 들었을까요?" 한 남학생 배낭족 여자 아해의 산더미
같은 배낭을 보며 궁금해한다. 배낭 위에는 우리 초등학교 때 교실에서 앉던
그런 모양의 걸상까지 얹혀 있다. 그 큰 짐을 지고도 낙터처럼 뚜벅뚜벅 잘도
걷는다. 두 다리가 튼튼하다. 우리 여자 배낭족들은 다리가 너무 가냘퍼!
연약한 두 다리로 쌀가마니 같은 배낭을 지고 다니는 여자 아해들을 보면 어떤
땐 사람이 아니라 배낭이 걸어가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든다. 근데도 이 아해들의
말, 살찔까 봐 걱정이란다!!! 유럽 여자 아해들, 아무데서나 윗도리 막 벗고
그러는 거 같지만 자세히 보면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다. 최소한 배낭 메고 다닐
때 똥꼬바지는 안 입는다. 다리가 길어서 그런가? 그렇다면 길게 보이라고
그러나, 우리 아해들? 베낭 메고 똥꼬바지 입은 아해들이 너무 많다. 배낭족은
굵은 다리가 아름다운 거 아냐?
눈물 없이 못 듣는 유학생 떡순이 이야기
몇 년 전서부터 여자들 사이에 불기 시작한 새로운 직업이 있다. 그게 뭐냐면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거다. 나이트 클럽엘 가서 옛날엔 "너 뭐야?" 그러면
"학생이에요" 그렇게 얘기를 많이 했는데 요즘은 "메이크업 해요, 코디네이터
해요. 내레이터 모델 해요" 이런 아해들이 굉장히 많아졌고, 또 뭐하면 "지금
판 내려고 준비해요" 이런 아해들도 많다. 그래서 새롭게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
메이크업 하는 직업이다. 메이크업 배우려는 아해들은 파리로 오라. 2년 코스
3년 코스도 있지만 2주 코스 3주 코스도 있다. 말도 모르는데 어떻게 2 ,
3주냐고 묻는다면 그런 데 신경 쓸 것 없다! 어학은 무슨 말라죽을 어학이냐!
한국인 강사가 가르치는 데도 있다는데!!! 아무리 돈이 많고 유학에 환장을
했더라도 프랑스에 와서 동양화 전공하겠다고 우기는 사람은 없겠지. 산수화만
그린다든가 매란국죽만 그린다든가!!!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그냥 "프랑스 말
배우러 왔어요" 하면 될 것을 "어학 배우러 왔어요" 하고 말한다. 말에다
학문까지 더해놓으니 아해들이 짧은 기간에 얼마나 고생할까. 유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유학원들이 해주는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비싸단다. 파리에
오자마자 지방으로 가는 학생들 기차표 끊어주고 태워주는 걸로 끝이다. 밤에
도착하면 저녁을 사주고 하루 재우고 그 다음날 출발시켜도 되는데
도착하자마자 바로 기차 있는 데로 막 가게 해가지고 거기서 표 주고 내리라고
그리고는 바로 빠이빠이 해버린단다. 그러면 애들만 황당해지는 거지. 인솔비
명목으로 약 30만원씩 해주는 것도 비자 받기가 어렵다느니 하는 핑계를 댄다는
거야. 학생이 아무리 먼저 온 유학생을 통해서 알아놓은 정보도 부모님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단다."니가 뭘 아니? 여행사 말 들어!" 하는
어머니들의 허점을 노려서 비싸게 받는다고 너도나도 목소리가 크다. 물론 약은
학생들은 혼자서 잘하는 경우도 많지만 유학하려는 허영심 같은 것들을 비집고
들어오는 상술 때문에 모두들 열받아 한다. 세무조사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부탁하는 학생도 있다. 얘들이 생각하는 복수는 오직 그거 하나뿐이 없다.
유학생 얘기가 나온 김에 여기,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한 유학생 여자
아해의 이야기가 있다 (이건 신파조로, 소리 내어 읽어보자) 여기 한 여학생이
있다. 파리로 유학을 온 거디-다. 이억만리 머나먼 곳에 다 큰 딸년을 보내는
부모님의 마음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어머니는 수소문 끝에 한국 사람 집에
딸을 하숙시키기로 하였다. 하숙집은 떡집이었다. 매일 떡을 만들어 파는
그집은 일손이 달렸다. 마음 약한 여자 아해가 가끔 설거지를 자진해서
도와주곤 했더니 나중엔 당연히 설거지를 해야 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시일이
지날수록 시키는 일이 많아졌고 나중에는 노골적으로 떡 만드는 일을
시키더란다. 여자 아해, 낮이고 밤이고 떡시루에 떡을 찌고 쌀을 불리고 떡
포장하다 보니 나중엔 떡 만드는 거 하려고 유학을 온 건지 미술공부를 하려고
온 건지 정말 구분이 안 되더란다. 주인 여자는 "내일이 명절인데 왜 빨리 안
들어오냐? 떡주문이 잔뜩 들어와 있는데......." 그러면서 은근히 조퇴까지
강요하고 나중엔 아예 배달까지 부탁을 하더란 것이었다. 참다 못한 떡순이가
일년 만에 거길 나와서 독립을 하였는데 가끔 명절 때가 되면 떡을 만들어서
유학생들한테 돌리었다. 그래서 떡순이가 만든 떡을 먹어본 유학생들, 떡순이
떡은 정말 맛있더라- 떡순이 떡이 정말로 그렇게 맛이 있었는지. 떡 보니
생각나는 고국의 얼굴들 땜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떡순이 떡 얘긴 여기
유학생 아해들 사이에서 꽤 유명하다. 사실 만리타국에서 객지 생활 하다 보면
한국 생각이 날 때도 많다고 아해들은 애기한다. 하루는 밤늦은 시간, 파리
전체의 영업이 끝난 시간. 한국 사람이 잘 온다는 가라오케집을 노크하고
들어가니 유학생들이 가득 차 있다. 고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아해들, 밤이
늦었는데도 고국의 그리운 사람들을 보고 싶어하는지 내가 들어갔을 때
민해경의 '보고 싶은 얼굴' 을 합창하고 있다. 얼마나 보고 싶으면 밤에, 그
밤에 그런 노래를 부르냐, 그것도 평일날, 술값도 만만찮은 비싼 곳에서!!!
유학생활을 하다가 한국이 생각날 때를 물어보니까 대답이 여러 가지다. 빵
기술 배우는 대중이 놈은 차 운전하면서 신승훈 노래 듣다가 순간적으로 한국인
줄 알고 옆을 보니까 외국 사람들이 운전을 많이 하고 가더래, 순간적으로 아,
여기가 이태원인가??? 했는데 그때 한국 생각이 많이 나더란다. 또 어느 날은
전화벨 소리에 새벽잠을 깼는데 받고 보니 한국에서 온 전화야, 한국말로 한참
떠들다가 전화를 끊고 텔레비젼을 켰는데 외국말로 화면이 나오더래."아, AFKN
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럴 때 현수놈은 한국 생각이 말도 못하게 난다고
그러더라구. 현준이는 말야. 분명히 자기 말이 맞는데 언어구사 능력이 없어서
설명을 못하고 이 단어 저 단어 막 낑낑대고 있는데 상대방이 "알았어!
알았어!" 하면서 막 무시하면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때. 그럴 때 한국 생각이
그렇게 난단다. 그러니 이런 불쌍한 유학생 아해들이 맘보 나쁜 교포들을 만나
맘고생이라도 하게 되면 얼마나 울화통이 터지겠어? 그래도 그런 인간은 꼭
있더라구. 한국에서 온 유학생 한 명이 프랑스 사람과 결혼한 한국 여자 집에
하숙을 하게 됐단다. 이 아해가 불어학원을 나가겠다고 했더니 그럴 필요
없다면서 자기가 가르쳐주겠다고 그러더래. 큰소리 뻥뻥 치더니 며칠 동안
철자법만 가르쳐주고 천 프랑을 받아 먹었다는 거야. 그래서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따졌더니 고소하라고 법적으로 하라고 도리어 막 성질을 내더래 그래서
"더럽다. 먹구 떨어져라!" 뭐 그러구 짐 싸서 나왔다는 얘기가 있어. 누가
유학생 다큐멘터리 한편 제작 안 하나? 했다 하면 아줌마 상대 프로그램으로는
왔다일 텐데 말야!!! 그래도 한가지 부러운 건 있다. 유학생 공부하기 좋은 게
일년에 얼마 하는 식으로 아주 적은 돈만 내면 박물관은 언제나 공짜란다.
예술과 예술가들에 대한 기본 예우가 있는 거다. 나 대학시절에도 무슨 로얄
발레단 공연 같은 거나 무슨 오페라 내한공연이라도 하면 돈은 없지 무진장
속상했거든. 세종문화회관 공연료가 엄청 비싸니까 돈 있는 사람만 보게 돼
있잖아. 나도 명색이 예술가 지망생인데 그런 귀한 공연을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못 본다는 게 머무 억울해서 가슴이 답답할 때도 많았다구.
세종문화회관 공연료가 학생할인이 안 되면 미리 와서 걔들한테 청소를 하게
하든가 자리 안내를 하게 하든가 표를 받게 하든가 그런 식으로라도 해서
예술을 아끼는 예술 지망생이나 가난한 예술 애호가를 도와야 한다. 그거
하나는 확실하게 프랑스 배워야 한다구.
무좀약 대머리약은 프랑스제가 좋다
'바퀴벌레약은 일제가 좋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새 제품이 나오면 "이거
일본에 가서 보니까 똑같은 게 있던데!" 하고 말씀하시던 분들이 계셨다.
바퀴벌레 잡는 약뿐 아니라 변비약도 일제가 좋다고 하고 심지어 사업 아이템을
구한다면 일본에 가는 사람도 숱하게 봤다. 내가 아는 친척 아저씨도 그러다가
홀랑 망했다. 이 사람이 일본에 가서 무슨 아이템을 베껴 왔냐 하면, 초등학교
아해들이 메고 다니는 가방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리자는 거야 그래서 찻길을
건널 적에 그게 빨간 신호등, 그러니까 빨간불 들어온 걸로 생각하고 차들이
저절로 서개끔 캠페인을 벌여 가지고 팔자는 거자. 일본 아해들이 그걸 메고
다니는데 신기하게도 다니는 차들이 전부 그걸 보고는 서더라는 거야.
아이디어가 괜찮다고 생각해가지고 이 사람이 엄청 많은 돈을 들여서 그걸 갖고
교육부에 갔는데, 교육부에서 이 사람 미치지 않았느냐고 그러더란다. 초등학교
아해들이 왜 일본 국기를 등에다 메고 다니냐면서. 그래서 쫄딱 망했다는
얘기다. 생각해보라구 빨간불보다도 일장기잖아 그게. 일본 얘들이야 자기네
국기니까 메고 다니면 가서서는 건데 우리나라에서 그게 통하겠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는가 하면,바퀴벌레약 좋다는 것은 그만큼 그 나라에
바퀴벌레가 많다는 것이고 변비약 좋다는 것은 그 나라에 변비 환자가 많다는
게 아니겠어? 유럽을 다니다 보면 돌로 지은 집들이 몇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많이 서 있다구. 그렇다면 돌로 된 그 건물들을 지으려다가 돌 떨어트려 발
찧은 사람들도 많을 거고, 건물 지을 때 남들은 무거운 돌 들고 가는데 작은
돌만 얄밉게 들고 다니는 게 눈에 띄어 맞은 사람도 많을 거고, 높은 데서 발을
헛디뎌 아래로 떨어진 사람도 많을 테니 그런 약도 많이 발달해 있지 않을까
하는 거지. 프랑스는 또 대머리약이 좋은 게 많단다. 두 좋류가 있는데 하나는
안 빠지게 하는 거, 또 하나는 새로 나게 하는 거래나. 그래서 써본 사람에게
들어보니 안 빠지게 하는 거는 효과가 있었단다. 피부를 조여주는 거 같단다.
그 얘기는 뭐냐 하면, 결국은 발명가들이 남의 나라 국민을 위해서 발명하지는
않는거다는 거다. 언젠가 해외토픽에 프랑스 파리에서 대머리 경연대회가
열렸는데, 일등한 대머리에게 금으로 만든 벗을 부상으로 줬다는 기사를
읽었다. 멋있게 생긴 걸 뽑았는지 아니면 광이 제일 많이 나는 대머리를
뽑았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에 자기 나르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그해의 대머리를
뽑았겠지. 하면서 참 재미있는 경연대회도 있구나. 그런 걸 처음에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를 궁금한 적이 있는데 이제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나는
어느 나라에든 가면 어른들에게 꼭 물어보는 게 이 나라 사람들의 정력제가
무엇인가 하는 거다 (이 나라는 굴하고 거위간이라고 하는 데, 카사노바가
하루에 굴을 열 개씩 먹었다나!! 그러면서 많이들 먹는단다) 그 다음 질문이 이
나라에서 제일 잘 듣는 약이 뭐냐고 물어보는데 무좀약과 대머리약이란다. 정말
머리에서 발끝까지다. 대머리약이 잘 듣는다는 것은 물론 대머리가 많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그 사람들을 즐겁게 해줘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
이 대머리 경연대회가 열렸겠지 뭐!!! 내가 최초에 프랑스라는 걸 느끼고
불어를 사용했던 게 생각해보면 굉장히 웃긴다. 마담이라는 말, 시골
다방에서도 사용하는 우리을의 불어,"김 마담 여기 쌍화차 한 잔!" 6월
30일이다.
그 나이에 아직도 산타를 믿냐???
에펠탑에 올랐다. 높이가 300미터가 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기네
국기를 매달아놓았다고 프랑스가 자랑을 하는 곳이다. 전망대 안에는 세계 여러
나라가 에펠탑으로부터 어느 방향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표시도 있다.
에펠탑 앞에 가면 보기 싫은 건물(?) 이 있다. 에펠탑은 그 건물에 올라가서
보는 게 제일 아름답단다. 그러면 그 건물이 안 보일 테니까??? 말 된다.
그러고 보니 어느 책에서 본 얘기 한 토막이 떠오른다. 에펠탑을 세울 때
반대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 제일 심하게 반대했던 사람을 어느 날 에펠이
탐 안에서 만났단다. 에펠탑이 안 보이는 곳으로 떠나 버리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던 자식인지라 비위가 상한 에펠이 " 너 이 새끼야,
에펠탑이 그렇게 싫다싫다 그러더니 여긴 왜 와서 얼쩡거려?" 하고 따져
물었더니 그 자식 왈 "여기 와서 숨어야 탑이 안 보이잖아!!" 그랬대나. 방위를
모르면 에펠탑은 여기저기서 홍길동처럼 나타난다. 왼쪽에, 오른쪽에, 열한 기
방향에, 한 시 방향에, 그래서 어느 도시를 가든지 지도를 들여다보고 방위를
알아둘 핑요가 있다는 거다. 사실 번화가를 지도 없이 한참 헤메다보면
뒷골목만 나온다. 외국나가면 진열장의 상품 보는 재미도 있는데 명동에서
구경하다가 을지로 6가까지 걸어가는 경우, 혹은 서대문 경찰서 앞까지
걸어가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프랑스에서 들은 에펠탑 이야기다. 우리나라
한강다리처럼 여기도 에펠탑에 올라와 자살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단다.
크리스마스 날 한 여자 아해가 에펠탑에 올라가 자살을 기도하는데 웬 아저씨가
나타나서 말리더란다."왜 자살을 하려고 그러느냐?" 그랬더니 여자 아해가
"당신이 뭔데 그래요?" 그랬단다. 아저씨가 "내가 뭐긴, 산타 클로스지."
그랬더니 이 여자 아해,"크리스마스 날, 불러주는 남자 놈도 없고 돈도 없고
얼굴도 못생기고 그래서 정말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너무 외로웠거든요. 날
불러주기를 기다렸는데 아무도 안 불러줘서 비관돼서 자살하려고요" 그랬더니
산타가 그랬대."그러지 말고 내가 니 소원을 들어줄 테니까 너도 내 소원을
들어주라"고,"소원이 뭔데요?" 했더니 "야, 산타 클로스는 어디 쉬운 줄 아냐,
넌 스물 몇 살 살아오면서 그랬지만 산타라는 거는 매년, 평생을 남들 파티하는
데 몰래 들어가서 선물이나 놔주고 오고, 집에 온다고 마누라가 있냐 뭐가
있냐, 나는 더하다. 그래서 25일날 새벽이 되면 나는 더 쓸쓸하다구. 그러니까
내가 소원을 들어줄 테니까 너도 내 소원을 들어주는 거야. 서로 좋지않냐."
여자가 거듭 "그래서 소원이 뭔데요?" 그랬더니, 이 산타가 그랬대."한번
하자!" 그래서 뭐 이왕 죽을 거. 여자 아해는 산타와 그거를 한 번 했대.
그랬더니 다 끝난 뒤에 이놈의 산타가 짐을 챙기더니 그냥 가버리는거야.
그래서 이 아해,"아니, 내 소원 들어준다고 그랬잖아요" 하고 따졌더니 산타가
돌아보면 그러더란다."아참 그렇지, 너 나이가 몇 살이지?" 여자 아해가
"스물두 살이에요" 그랬더니 이 양아치 산타가 이렇게 한마디를 던지고 돌아서
가더래."그 나이레 아직도 산타 클로스를 믿는 거야???" 그래서 재수 없는
놈은 한강다리 올라가 죽으려고 해도 올라가다 다리를 뺀다는 얘기가 있지???
마음 잡았다가 오랜만에 나온 양아치는 마음을 놓았다 잡았다 하는데 스님들은
그게 왜 안될까??? 평생 마음이란 무엇일까. 그러면서 면벽이나 하고 그러는 걸
보면 말이야. 근데 갑자기 이 생각이 왜 들지?
유럽에서 쓰레기 치우면 욕만 먹는다
외국에 나오니까 뭐가 좋으냐고 남자 배낭객에게 물었다."여기선 길거리에서
꽁초를 아무데나 버려도 되니깐 좋아요." 한국에서 담배 때문에 벌금을 두 번
물었는데 한 번은 길에서 꽁초 버리다가 물었고 한 번을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려서 물었단다. 우리는 길가에 꽁초를 버리지 말자고 막
그러지만 프랑스에 와서는 좀 자유롭게 담배도 한 번 버려보자는 그런 얘기다.
꽁초를 버리면 치우는 사람이 있다. 여기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얘기한다.
거리가 깨끗하면 우리가 청소하는 사람들 주라고 세금 낼 이유가 없다고.
우리나라는 그게 바뀌어 갖고 화장실에서 오줌 누는데 청소하는 아줌마들이 막
들어와서는 "왜 이렇게 지저분하게 쓰는 거야?" 하면서 투덜댄다. 이런 거
책에다 쓰긴 좀 뭣하지만, 이거 완전히 정신 없는 아줌마들 아니냔 말야.
지저분하게 쓰지 말라 그러면서 짜증내는데, 지저분하게 쓴 놈은 벌써 갔잖아.
그리구 말야.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 보면 세면대 앞의 유리에 물이 튀잖아,
그러면 이렇게 튀게 쓰지 말래. 짜증을 벅벅 내면서 말이지. 생각해보라구,
말이돼? 그건, 분수를 모르는 거야. 자기가 할 일을 하면 되는 거지. 왜 짜증
내고 툴툴 거려? 그 사람들은 그게 직업이라구. 만약 우리가 화장실 깨끗하게
쓰고 물도 안 튀기고 그러면 자기가 거기 있을 이유가 없어. 화장실에서 말야,
여자가 들어와 가지고 왜 이렇게 쓰냐고 막 뭐라 그러고 짜증 내면 정말 오줌
누다가도 안 나와 민망하다구. 어느 땐 볼 일 다 보고 나오다가 그 말 듣고
민망해지기도 하구. 우리가 옛날에 말야, 영화 촬영장에 가면 조명하는
사람들이나 소품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처음 온 사람들은 우리가 들어주고
그러거든. 그런데 그러면 그 사람들이 싫어해."이건 우리 거예요, 우리가
해야될 일이에요" 그런다고 얘들이, 그리고 혹시 아마추어가 들다가 고장나거나
또 자칫 잘못 해서 소품을 잃어버리면 자시네들이 고생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배우는 연기만 하세요" 그래, 나쁜 뜻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 안
도와줘도 된다는 거지. 보기 좋잖아? 좀 본받아야 되지 않겠어? 가끔씩 가다가
여의도에서 집회 같은 걸 하면 쓰레기가 막 널브러져 있단 말야.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쓰레기를 다 주워가지고 가지, 그러면 문화시민으로서의 긍지를
보여줬다고 신문에 나고 난리잖아. 공연 같은 거 끝나면 쓰레기 줍고 가지는
멘트가 막 나온다고, 줍는 시민들을 보여주고 카메라가 비춰. 운동장은 깨끗해.
그러면 아! 문화시민의 면모가 어쩌구 .....그러잖아. 프랑스 애들, 유럽
아해들은 쓰레기 그대로 다 놓고 간다구. 그 나라가 우리보다 선진국인데 왜
그러냔 말이야. 개념이 달라 그런다구. 걔네는 "청소하는 사람이 있는데 왜
우리가 치워" 이러면서 안 치우잖아. 자기네가 청소를 하면 청소하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쫓겨난다고 생각하는 거야. 청소 깨끗이 하면 그 사람들은 할
일이없으니까 시에서 감원시키잖아. 또 쓰레기를 들고 간다고 해서 청소부가
쓰레기를 안치우는 것도 아니라고. 우리는 몇 트럭분의 쓰레기가 나왔다느니
하는 수치가 꼭 나오잖아, 안 치우고 가는 사람들을 망나니 취급도 하고
말이야. 쓰레기 치우는 사람이 있는데도 구태어 들고 가는 사람이
문화시민인지. 치우는 사람이 치우게 해주는 게 문화시민인지. 난 정말 잘
모르겠어. 한가지 궁금한 건 우리나라 높은 양반들 "선진국에선 이미 오래
전서부터 해오던....."하고 노래부르는 것처럼, 쓰레기 치우는 사람이
치우도록, 그 사람들 밥줄 안 끊기도록 쓰레기 놓고 가는 걸 선진국 프랑스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는데 왜 그런 건 안 따라하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선진국 얘기하다 보니까 생각난 건데, 유럽 아해들은 전철에서 노인네들에게
자리 양보를 하는 걸 거의 볼 수 없다. 무거운 걸 들고 낑낑대는 노인들도 그저
본체 만 체다. 그러다 보니 바퀴 다린 가방을 혼자서 힘겹게 끌고 가는
노인네들을 보면서 들어주겠다고 했다가는 도둑으로 의심받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렇지만 사실은 여행하면서 굉장히 많이 들어줬다. 그럴 때마다 노인들
역시 굉장히 좋아하는 거야. 그때 혼자서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처음에 바퀴
달린 가방을 생각한 사람은 노인네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아무도 잘 안
들어주니까!!!
이게, 니네 집서 산 게 아냐
뮬랭 호텔에서 내려오면서 게찌게를 끓이려고 게를 한 마리 샀다. 몽마르트로
오는 지하철을 타고 우리 숙소로 올라오려고 하는데 암만 해도 한 마리로는
모자란 듯해서 한 마리를 다른 가게에서 마저 사려고 그러는데 쥔이 무지
바쁘다.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들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비닐봉지도 새깔이
똑같으니, 안 그래도 바쁜 주인이 보고 내가 자기 가게에서 집어넣고 돈 내려고
기다린 줄 알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마구 드는 거다. 당신 같으면
어찌하겠는가.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붙잡아 증인으로 삼고 싶을 거다. 나도
그랬다. 게도둑으로 몰릴까 봐 증인을 구하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그 옆
빵집 주인이 마침 밖에 나와 있길래 옳지, 저 사람이다 생각하고 내가 이 가게
절 집어넣지 않았다는 걸 보게 하려고 비닐봉지를 깃발처럼 높이 들고 막
흔들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 거다. 저 동양 남자가
비닐봉지를 왜 저렇게 흔드나. 그 사람들이야 훔쳐가리라는 생각 자체를 안
했겠지만 내 쪽에서 괜히 켕겨서 그런 거다. 결국에는 한국적인 생각 때문에
그런 거란 얘기다. 여기서 한 번 퀴즈를 내보자. 만약 당신이 그런 의심을
받았다면 그상황을 어떻게 해결하고 나올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열심히 비닐봉지 든 손을 흔드는 것뿐이었는데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건지 무척 궁금하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빨리 한글을 깨우쳐줘야 할
텐데. 세종대왕님이 조금만 더 오래 사셔서 세계를 재패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며칠 후 이 가게에서 생선을 샀다. 대가리를 칼로 자른 다음
버려도 되냐고 생선가게 주인이 대가리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시늉을 한다.
그래서 버려도 좋다고 내가 대가리를 끄덕였다.

제 5장 외국 사람이라고 다 미국 사람은 아니더라
해외여행이 아주 어려웠던 시절레 연예계엔 이런 이야기가 나돌았다.어떻게
해서든지 일본엘 가라. 동경 시내까지 들어갈 것도 없다. 일본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한국으로 와라.그리고 선데이서울에 귀국했다고 귀국인사
인터뷰를 해라. 그런 다음 귀국 리사이틀을 하면 성공한다. 가수들을 소개할
적에도 동남아 해외 공연ㅇ르 마치고 방금 귀국한 누구하고 소개를 하던 시절도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이종용 리사이틀을 대전에서 했는데 지금은 고인이 됨 김현식을
소개하면서 장난으로 동남아 27개국을 순회하고 돌아온 가수라고 소개를 했더니
노래도 듣기도 전에 정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온 적이 있었다. 물론
노래를 잘하기도 했지만 동남아 갔다 온 가수라는 것 때문에 박수도 굉장히
많이 나왔던 거다.
그때즘 아주 무식한 권투선수가 있었는데 얘가한번은 홍콩에 갔다 왔다고
자기 친구들이랑 노가리를 마구마구 까고 "홍콩에 가니까... 말야.
어쩌구......" 하면서 한참 얘기하다 보니까 대만 이야기도 하고 상해 이야기도
하더란다. 그러니까 이 친구들이 듣다가 벌떡 일어나서 "너 이 새까!! 홍콩
갔다 온 놈이 대만 상해가 다 뭐냐? 너 홍콩 갔다는 거 구라지?" 그랬대.
그러자 이놈이 대뜸 하는 말이,"야 임마 스포츠에 국경이 어딨냐?" 이랬다는
거야.
이 친구가 한번은 또 무슨 일이 있어서 홍콩에 같이 간 사람들이랑
호텔방에서 커피를 시켰대. 이 호텔이 특급호텔이었는데 모닝커피를 마시려고
주문을 하는데 이 친구 대뜸 전화기에 대고 "원 커피. 컴 히어!" 그러자 재주도
용하지, 어찌어찌 알아 들은 룸 서비스에서 몇 호실이냐고 묻자 통박을 굴린 이
친구, 큰소리로 "천육백삼십호!!" 이랬대. 기가 차서 멍하니 바라보는
일행들에게 "뭘 그래 임마,아라비아어는 만국공통어 아냐?" 그랬다지 아마?
외국이나 외국 사람이 낯설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 나는 한국에 온
서양 사람이 다 미국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ㄷ 생각나는 게 뭐냐면, 부산
동광동 시절 내가 제일 먼저 본 미국 사람이 옆집에서 양색시랑 같이 살던 미국
사람이었는데, 더운 여름 낮이면 양갈보가 등물을 해주던 광경이다. 얼드려
있으면 등을타고 물이 목을 돌아 목 아래로 내려오는데 바라보고 있던 내
맘에는 "야, 미국 사람은 등하고 목 있는 데가 아래위로 뚫렸구나"이런 생각이
막 들었다. 초들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내내 그렇게 믿었다.
초량에 살 때는 기찻길 옆으로 막 뛰어가던 어떤 미국 사람이 기차에 갑자기
빨려 들어가 죽었다. 그러자 미군 열차라고, 맨 뒤칸에 있던 열차에서 미국
여자가 내려서 피투성이 시체를 막 만지는 걸 보고 할머니와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역시 미국 사람은 대단하다고. 어떻게 저런 끔찍한 걸 막 만지고
주무르냐고.
내가 부산에서 초등학교 다닐 적에, 같은 반에 선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피엑스에서 가져온 온갖 잡동사니를 다 가지고 다녀 피엑스 보이라고 불렸다.
"피엑스에 가면 구할 수 있어." 그 선원 아들의 말을 들으면서 난 피엑스가
뭔지 잘은 모르자만 아무튼 엄청난 곳일 것이라고 짐작하곤 했다. 1에서 15까지
번호 맞추기 놀이를 하면서 그놈이 갖고 있는 신기한 것들을 너무 갖고 싶었기
때문에 목숨 걸고 번호를 맞추던 기억이난다.
그리고 미군부대에서 크리스 마스 때가 되면 YMCA를 통해서 장난감을 막
나눠ㅈ는데 그렇게 갖고 싶었던 만년필, 아이노꼬 다마, 낙타가 그려진 노란
연필이 선물꾸러미 속에 다 들어 있었다. 그걸 나눠주는 노랑머리 아저씨
아줌마들은 전부 다 미국 사람으로 우러러봤는데 나중에 커서 보니까 영국
사람도 있고 프랑스 사람도 있고 호주 사람도 있었다. 한국에 온 서양 사람이
다 미국 사람도 아니었고 프랑스에 산다고 다 프랑스 사람도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러던 내가 영국에 와 있다는 게 내 스스로 참 신기하다.
일본인 흉내는 내지 말자 아해들아
런던에서 만난 어느 여대생,"시내에 쫙 깔ㄹ어!" 하면서 지나간다. 무슨
얘긴가 했더니 한국 살마이 쫙 깔렸다는 말이다. 말하는 투가 한국 사람이
많은게 떫다는 투다. 영국까지 왔는데 한국 사람이 많아서 싫다는 거야. 영국은
자기네만 와야 된ㄴ데 한국 사람 만나서 "아이 피곤해" 하는 거 같다. 매친년!
그것도 힌번이 아니고 "시내에 쫙 깔렸어, 쫙 깔렸어!" 하고 두 번이나 강조
하는 거 있지! 영국이라고 영국 아해드만 깔린 줄 아는 모양인데 독일 아해,
스위스아해, 미국 아해들이 쫙 깔린 건 안 보이느 모양이다!"쫙깔렸어"의 그
표현이 정마 씁쓸하다."전경이 쫙 깔렸어" 할 때나 쓰던 그 표현을
들으니......!
그런데 그렇게 쫙 깔릴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국에 많이 나와 있다면
우리가 영국식 배우지 말고 우리식으로 자쭈 하면 영국이 결국엔 우리식 배우지
않을까? 약 천년 후엔!!!
모나코에서 한국 배낭족 아해들과 만나서 같이 걸어가는데 이 아해들 얘기가,
"한국 아해들끼리 만나면 특히 여자들끼리 만나면 재수없어하는 거
같아요"그런다."왜 그럴까?" 처가 묻는다. 나는 그 해답을 잘 모른다. 그저
지네 동네서는 유럽 간다면 앞서간다고 생각하는 아해들인데 여기 와서 너무
많이 만나다 보니 희소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을 해서 그러는 게 아닌가
추정해볼 뿐이다. 아마 그럴 거다.
내 경험으로도 우리나라 사람들을 마나는 게 사실 좀 피곤할 때도 있다.그게
뭐냐면 사람들 만나 사진 찍히기인데, 프랑스 오페라 하우스 앞 같은 데나
그림이 괜찮은 데서 나한테 무조건8밀리 카메라를 갖다대면서 투덜대는
사람들도 많다. 카메라를 갖다댔는데 포즈도 안 취해준다나. 카메라가 한두
대여야지.
이게 다 얼굴이 팔린 탓에 겪는 불상사들이다. 어떤 땐 웃고 넘기는 차원을
넘어서 곤란을 느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전유성 씨 맞죠?"라고 물어보면
"네"하고 간단히 대답하거나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이름이 뭐죠?"라고 하면
"전유성입니다"하면 그만이데 "아저시 내가 참 좋아해요. 근데 이름이 뭐드라?"
이러면 그때는 대답하기도 싫어질 뿐아니라 황당해지는 것이다.
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김해공항에서 택시를 탔는데기사 아저씨가 하시는
말씀이 "아, 이 아저씨 어디서 봤는데, 어디서 봤더라? 아저씨 나 본 적
없어요? 토요일 권투 구경 가서 봤나? 빨리 말해보소, 나를 어디서 봤는지? 와,
미치겠네.어데서 봤드라??? 생각 안 나요? 아, 어데서 봤드으라. 야! 이거 미쳐
버리것네. 말해보소, 어데서 봤는가?" 말 이러면서 날 취조하는 거다.
"내가 아저씨를 어딧 봐요?" 이러니까 "마, 봤는데, 분명히 내가 봤다타이.
생각 좀 해보소"이렇게 닦달하는 게 아닌가.
이럴 때 "내가 개그맨이요" 하고 말할 수도 없고 정말 애매하더라구.
긴해공항에서 범일동까지 줄창 그러고 가는데 정말 피곤하더라니깐.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더 황당한 경우는 공중 목욕탕에 갈땐데 "아이고, 이거
전유성 씨 아닙니까?" 하며너 밑을 힐끈거리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아주 기분
나쁘다. 이런 건 성폭력에 안 걸리나?
어쨌든 내가 보기에도 한국 단체관광객들은 서로 만나는 걸 혐오스러워한다.
우리 배낭족들이 이태리 놈들한테 사진 찍어 달라고 카메라를 맡기면 바로
들고 튄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같은 한국 아해들엑 부탁하면 모른 척한단다.
중국 아해들 행세 비스므레한 짓거리를 한다는 거다.못알아듣는 척하면서.
흑인에게는 카메라 들이대고 손짓만 해도 알아 듣는데 말이다. 그래도 그나다
다행처럼 느꺄지는 건 우리 땐 일본 아해들처럼 보이려고 했다는 거다.
아주 오래 전에 연예인들이 일본 공연을 갔는데 한국 목소리로 크게
이야기하고 다니니까 일본에 먼저 가 있던 연예인이 조용히 하라고 일본 사람인
것처럼 보이자고해서 가수 최백호가 열받아서 찌개 그릇을 엎었던 적이 있다.
이 이야기가 신문엔 안 났지만 우리끼리는 다 알고 있는 이야기가 되어 있다.
그런데 한가지 웃기는 건, 일본인 아니냐고 하면 기분은 나쁘지만 그렇게
보이니까 대우는 좋은 것 같다는 느낌을 가끔 받는다는 거다.
모나코에서 만나 마이애미 사는 노처녀 배낭족이 우리에게 동양인들끼리 중국
일본 한국을 어떻게 구분하느냐고 궁금해서 물어본다. 울는 걸음걸이나 옷
헤어스타일 등으로 구분을 한다고 했다.
목소리가 좀 큰 애들은 중국 아해들, 어딘가 좀 사근사근한 애들은 일본
아해들, 왁자지껄 좀 어수선하지만 뭔가 다부져 모이는 아해들은 우리 아해들,
뭐 대충 그렇지 않은가. 참 다들 벗고 왔다갔다하는 해변에서 청바지 입고
버티는 아해들도 틀림없이 우리 아해들이다. 한 유학생이 얘기해준, 영국에서
한국 사람 알아보는 요령 한가지가 있다. 박물관 안에서 떠드는 사람, 햇빛 날
때 그늘에 앉아 있는 사람은 십중팔구 한국 사람이란다. 그리고 우르르 떼지어
다니는 아줌마들은 한국에서 온 패키지팀이라고 보면 틀림없단다.
사실 우리가 봐도 정확하게는 구분하기 어려운데 이쪽 사람드른 언뜻 봐서
중국 사람 일본 사람 한국 사람을 구분하기가 거의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미국
사람 프랑스 사람 독일 사람을 잘 구별 못 하듯이 말이다. 기차 타고 두 시간을
같이 가고도 프랑스 노인네 부부, 우리를 끝까지 일본인으로 안 적도 있다.
일본에서 2년 일했다는데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더니 아무렇게도
생각 안 한단다. 그러면서 한국말 일본말도 구분을 못하는 거다. 일본하고 한국
사이가 좋은지 나쁜지도 잘 몰라. 그래서 내가 내릴 때 합장을 하고 "안녕히
가세요" 그랬더니 같이 합장을 해준다.
우리는 그렇다 치고 그럼 너희는 서양 아해들을 어떻게 구분하냐,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게 궁금하다고 했더니, 자기네들도 구분을 잘 못하는데 독일 사람은
구분을 한단다. 샌들에 양말 신은 사람은 틀림없이 독일 사람이라는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 남자 배낭족 하나가 그때 마침 샌들에 양말을 신고 우리 옆에
앉아 있었다. 그렇다면 이 아해도 독일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이 인간, 한참
있다가 홀트 출신 아니냔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웃었지만 별로 유쾌하지는
않았다.
이문세 뭐 먹고 사나 물어봐 임마!
영국에서 고1, 고2, 고3 여학생과 중3 남학생과 인터뷰를 해봤다!! 영국에서
괜찮은 아ㅐ들은 어떤 아해들이냐? 얘네들말이 홍콩 놈들은 뒷말이
많단다.그리고 중구구 아해들은 착하대나. 근데 우리나라 아해들은 고자질을
잘한단다.식민지 금성의 하나가 바로 고자질이라는 거야.
유학생 아해들도 만났다.유학 와서 제일 좋은 점은 잠 많이 자고 공부
스트레스를 안 받는 거란다. 한국으 일년 만에 갔는데 고3 친구를 못 만나고
왔다. 나중에 다시 물으니 두 명 만났단다. 고3 친구를 못 만나고 왔다. 나중에
다시 물으니 두 명 만났단다. 고3이니까 대학갈 걱정에 시간도 없고 얼굴이
떠서지내더란다.
우리나라 대학문제를 생각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무조건 전부 일년을 쉬게 한 다음, 대학엘 갈 건가 취직을 할
건가 진로를 결정짓게 하면 어떨까? 우리나라는 너무 대학, 대학하니까 대학이
뭐하는 덴지 차분히 생각할 틈이 없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내내 그랬으니까
일년 정도는 쉬어보고 그래도 대학교엘 꼭 가야겠다 그러면 가고. 해보니까
아니다 하면 안 가도록 그런 유예기간을 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참 부러운 거 한가지는, 여기 고3은 한 달 동안 자율적이란다."하지마라"가
없고"시도해봐"를 선생님들이 입버릇처럼 한단다. 나도 안다. 중2 때 땡땡이
쳐서 집으로 걸어오던 그 여름날의 오후. 지금쯤 6교시여서 아이들은 공부하고
있겠지 하는 생각. 땡땡이 치는 재미 땜에 막상 학교에 나왔는데 갈 데가 없는
거야. 그래서 원효로 입구에서 집까지 걸으면서 '애들은 공부하겠지''지금은
쉬는 시간이겠구나' 마음은 계속 교실에 머물렀었었지.
아해들 말이, 제일 패주고 싶은 놈이 빌리러 오는 놈이란다. 년이고 놈이고
뭘 그렇게 잘 빌린대. 또 담벼락에서 담배 피우면서. 옷 갈아입는 거 바라보는
년(놈은 없다), 잘못하고 "쏘리" 소리 하는 인간들, 방귀뀌고 "익스 큐즈 미"
하면 단 줄 아는 년놈들. 샤워 안 하는 아해들은 냄새가 미친단다.
너희 나라에 당근 나냐고 물어보고. 오이 먹냐고 물어보는 교장선생님 때문에
돌겠단다.88올림픽 이야기해도 모른단다. 무식한 교장놈아!!! 대영 발물관이니
맨체스터 사원 같은 데
한번 가봐라, 한국 사람이 얼마나 맣이 구경 와서 돈 쓰고 가는데, 당근이
나냐구???!!! 이문세한테 물어봐라, 이문세 뭐 먹고사나!! 당근쥬스 선전도
한다 임마!!!
아해들 말이, 35분 수업하는 학교도 있단다. 그래 갖고 무슨 공부가 되냐고
했더니 공부시간 짧은 학교가 좋은 학교란다. 그래서 20분 하는 데도 있다나.
우리 유학생 아해들은 수학 예술과 달리기가 뛰어나단다.
유학생 가운데는 카드로 돈을 막 꺼내서 쓰는 아해들도 많은데 영국만 그런
건지 몰라도 영국에선 하루에 얼마 이상을 꺼낼 수 없게 신청을 할 수 있단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제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거 시도하면 실패할지도
몰라. 우리는 막 갖다 쓸 수 있다고 해야 좋아할 테니 말야. 하루에 20파운드
이상은 안 꺼내쓴다는 한 유학생의 이야기, 배울 만하지 않다? 2만원이 좀 넘는
돈으로 하루를 견디다 보면 공부 말고는 다른데 신경 쓰기도 어렵단다. 그래도
큰 불편은 없대. 3일에 50파운드씩 스게 만들어놔서 50파운드를 쓰려면 3일을
기다린 후에 스게 된다는 거다. 자기 자긴에게 저금을 하는 버릇도 생기고
말야.
7월 1일, 인터시티 기차 안에서 만화가 임재학 씨 집에 불나는 꿈을
꾸다(참고로 만화가 임재학은『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와『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의 그림을 그린 만화가임)
에딘버러 가거든 잔돈부터 바꿔라
에디버러에 갔다. 런던에ㅓ 에딘버러 가는 밤기차를 탔는데 우리는 일등칸을
탔다. 가는 데 6시간, 오는데 4시간 반 걸리지만 밤차를 타고 가면 숙박비를
줄일 수 있다. 기차는 두 명씩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아래위로 침대가
하나씩이다. 이층으로 되어 있는 침대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모르는 남녀가
한방에 탈 수도 있지 않을까? 남자는 남자끼리 넣어주나? 여자는 여자끼리.
성인들이니까 알아서 타라고 막 섞는 건 아닐까??? 상상만 해도 즐거워. 이런
건 상상으로 끝나야지 역무원한테 물어보면 재미없지롱(나중에 보니 따로따로
넣어주더라)!
영국에서 밤 11시 55분에 출발해서 아침 6시쯤 에딘버러에 도착했다.
기타에서는 "종착역이오니 잊으신 물건 없이 안녕히 가라" 는 흔한 말 한마디도
없다. 아침밥으로 빵을 갖다준 늙은 승무원은 한 시간 정도 더 있어도 되니 밥
먹고 천천히 내리란다.
여기가 참 황당한게, 새벽애 낯선 도시에 내리면 정말 갈 데가 없다는 거다.
인포메이션도 없고. 7시에 연다는 인포는 20분이 지나도 안 열고(오는 날 오후
한 시에도 안 열드만!). 황당한 새벽! 날씨도 춥고 파카입은 사람들이 막
출근하고 그러는데 기분이 오싹했다. 그래서 우린 근처 호텔로 들어갔다.
새벽 일찍 열차에서 내렸는데 인포메이션이 문을 안 열어 갈 데가 없을 땐
아무데나 가까운 호텔을 찾아 들어가자! 호텔에 가면 지도부터 별거별거 다
구할 수 있다! 똥 한가지! 기차를 타고 다니면 여러 나라의 역을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데 역에서 내리면 다음 갈 곳 예약도 할 수 있지만 대중 교총포
알아보는 것도 필수다. 역 근처에는 보통 안내센터가 있는데 유럽 어느 역이나
제 고장 소개하는 안내소는 정말 잘 되어 있다. 인쇄물 종류도 수십 종이고
아무리 많이 가지고 가도 공짜다. 책자 속 사진도 비싼 엽서보다 더 괜찮은 게
많다. 우리 역에 가보고 싶다. 서울역 부산역 대구역 옥천역 등등.
시시한 퀴즈 하나!
런던에서 에딘버러 가는 기차를 탔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경부선
열차 타고 내다보는 풍경이랑 똑같다. 이유는? 밤기차를 탔으니까!
에딘버러에서는 버스를 탈 때 타는 사람들이 운전기사 옆에 달린 돈통에
액수를 말하고 돈을 집어넣는다. 60펜스가 기본인데 운전기사가 직접 받는다.
큰돈으 내면 바꿔오라고 한다. 잔돈을 절대 안 바꿔준다. 우리는 잔돈이 없어서
바꾸려고 다 저녁때 한 시간 동안 거리를 헤맸다. 6시가 지나서 상점들이
문들을 다 닫았기 때문이다. 척 날더러 돈을 바꿔 오란다. 영어를 못라는
날더러 잔돈을 바꿔오라는 거디. 그래 부딪쳐보자! 10파운드를 들고 어떤
팝으로 들어갔다. 1파운드를 보이면서 "천지 모니 리틀 모니!" 했더니
바꿔준다."체인지 투 코인!" 라면 될 것을. 바꿔가지고 나오다가 생각날 게
뭐람!!!
1파운드를 펜스로 뭇 바꾸고 할 수 없이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부탁해 돈전을
바꿨다. 1파운드를 주고 90센트를 받았는데 아주 좋아했다. 우리도 좋았다.
버스비가 1파운드 20센트니까 우리 두 사람이 2파운드 40센트를 내야 되는데
잔돈을 안 바꿔주니까 꼼짝없이 3파운드를 내야 됐거든. 90센트를 받았지만
3파운드 내고 60센트 못 받은 것보다는 이익 아냐!!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10센트를 벌었다고 되게 좋아했다. 후줄그레한 아저씨가.
배낭족 아해들아! 에딘버러에 오거든 잔돈부터 바꿀 일이다. 그러지 않으면
버스를 2파운드 내고 타게 도니다. 그러면 타고 나서 바로 후회할
것이다.이렇게 말이다!"버스 정거장 앞에 있던 여자 거지에게 바꿀걸!80펜스를
더 냈으니 거지에게 40펜스가 이익이었을 텐데! 불우이웃돕기도 하고 말야."
에딘버러 성에 가는데 비가 내린다. 그래서 그런지 차가 많이 밀린다. 비가
오면 늘 이렇게 차가 밀리냐고 택시 운전사에게 물어보니 사람들이
스코틀랜드를 엔조이하느라 천천히 길을 건너기 때문이라고 유머로 받았다.
에딘버러 아해들은 정말 친절ㅎ. 오줌 누는 시늉을 하면 화장실을
가르쳐준다. 지도를 열심히 보면 지나가던 사람이 어디를 찾냐면서 가르쳐준다.
제스처 게임에 나가면 우승하겠네!!! 영국 사람들이 다 그렇단다. 길을
물어보면 정말 친절히 잘 대답해준다. 잘 몰라도 가르쳐주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본다.남의 물음에 친절히 잘 대답해준다는 것은 자기도 남에게 물어볼
일이 많다는 것이 아닐까??? 맞을 거야!!
어떤 할머니에게 길을 물어봤는데 한 20분을 따라오면서 길을 너무나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친절한 할머니. 낟 이렇게 쓰지만 그 할머니도 오랜만에
실컷 말했다고 일게에 쓰지 않을까??? 여긴 얘기에 굶주린 사람들이 많으니까.
실제로 언젠가 누가 미국에 가서 영어를 배우려면 학원 가서 배우고 복습은 그
동네 할머니하고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기발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할머니들은 외롭다. 미국이나 영구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할머니에게 길을 물어보라. 모르는 사람이 자기에게 물어본 것을 고맙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정말 친절하게 가르쳐중다. 아주 열심히이다. 심지어는 막
ㅉ아와서 500미터쯤 걸어가서 가르쳐주고는 시계를 가리키면서 미안하다고,
시간 없다고 하면서 바쁜 듯이 걸어간다. 사례를 하면 실례인 것도 같고,
우리도 할머니 할아버지 되면 그렇게 하자.
할머니만은 아니다. 젊은 아해들도 성심껏 가르쳐준다. 우리 역시 아무한테나
물어보는 게 아니고 관상을 보듯이, 저 사람이 좋을 것 같다. 한가한 놈 같다.
시간이 많아 가지고 괜히 길거리에 나앉았는 놈 같다 등 이젠 사람을
골라가면서 물어보는 여유도 생긴다. 우리가 보고 찍는 거야. 지도 들고 가고
싶은 곳 찍기만 해도 알아듣는다. 세떼들 모여들 듯이 와서 가르쳐 준다.
여긴 특히 노인들이 버스나 전철 안에서 십자말 풀이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그만큼 심심한ㄷ 길 물어보면 잘 가르쳐줄 수밖에. 우리가 돈을 받아야돼. 길
물어보고, 담배 한 개피라도??!
그런데 우리나라 시골하고 영국의 시골이 공통점이 있다. 에딘버러에서도
그랬다. 길 물어보면 5분만 가면 된단다. 그러나 가보니 20분이 넘게 걸렸다.
잘못 온 게 아닌가 하고 몇 번 확인하면서 가는데 계속 "5분만 가면 돼요"다.
물어보는 사람들마다 계속 4분,5분 그러는 거다.베를린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카메라점을 물으니 길 가던 사람이 친절하게 500미터만 가면
된다다. 500미터 가서 물어봐도 또 500미터가 아닌가 해서 한참을 찾아봤다.
친절하게만 가르쳐주면 뭐하나, 가도가도 나오질 않는데!!
아무나 들어가 노는 영국 공원 잔디밭
'한 소년이 공원에서 울고 있다. 지나가던 신사가 왜 우느냐고 묻는다.
소년은 가지고 놀던 공이 잔디밭에 들어가서 운다고 말한다. 그러자 신사가
지팡이로 소년의 공을 꺼내준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웠다.
영국 어린이의 도덕심을 배우며자람거시다.
그 공원이 하이드파크인 걸로 기억하는데 (틀리면 할 수 없고) 하여 간 거기
가보니 울고 있는 소년은 없고 잔디밭에 누워 자빠져 있는 청춘남녀들만
보인다.
우리를 안내한 택시기사가 가이드 노릇을 충실히 잘했는데 나중에 엽서랑
똑같은 곳이 있다면 안내까지 해준 곳이 바로 이 공원이다.
영국 공원들은 술 취한 사람들이 없어서 그런지 공원 같지가 않다. 그러나
잔디가 죽든 말든 아랑곳없이 퍼질러 누워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거리는
아해들의 모습 하나는 정말 부럽다.'잔비 밭에 들어가지 마시오!' 는
우리나라만 있는 거 같다! 그것도 어릴 때부터 칭찬받은 아주 잘 슨
글씨로!(누구나 글을 처은 배울 때 맨처은 자기 일므부터 끈단다. 그러므로
이름을 한글이나 한자나 이쁜 글로 쓸 수 있게 만들어 주면 평생 글씨를 잘
쓴대나! 어쩐대나! 하는 말ㅇㄹ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들었다가 잊어 버렸는데
4학년 때 가시 생각이 났다가 지금 다시 생각이난다. 이게 얼마 만이야!!)
여기 와서 다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잔디밭에 왜 못 들어가게
하는가? 상하면 다시 심으면 되지!어느 한 사람이 한번 못 들어가게 한 것이
굳어버린 것은 아닌지!
잔디밭에 하도 안 들어가 버릇해서 인지 우리 아해들 가운데는 볕쬐기 좋은
잔디밭을 보고도 얼른 뛰어들지를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부터도 베를린의
퍼가몬 왕궁이라는 데를 가서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왕궁 앞 잔디밭을 나혼자
걸으면서 이거 혹시 걸리는 게 안닌가 마구마구 불안했으니까.
유럽 아해들이나 미국 아해들은 공원이든 어디든 잔디밭에 다 들어간다.
일광욕하고 책 보고 이야기하고 심지어는 축구도 한다. 외국인에게 친절하자
그러는데 그런 아해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잔디밭에 들어가게 된다. 얼마나
불편한 일인데. 얼마 전에도 조순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 공무원에게
"잔디밭에 들어가게 합시다!" 그랬더니 그러면 잔디가 죽는단다. 사람은 안
죽나. 죽으면 닷 심으면 되잖아. 잔디가 종류가 다르다고 그러는데 다르면 다른
걸로 심어볼 필요도 있지 않느냐구. 잔디 나고 사람 났나. 잔디라는 건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그래서 그 안에서 놀고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친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흔히들 유럽에 가면 사람들이 길 하나를
물어도 친절하게 가르쳐주는데 우리나라는 불친절하다고 그러잖아. 신문이나
방송도 그런 말을 흔히 하는데 그건 모르는 말씀이다. 불친절한 한국인을 만난
외국인만 골라서 인터뷰했기 땜에 그런 거라는 거다.
외국 아해들이 길 물어보면 잘 가르쳐주는 건 우리가 그래도 영어로 묻기
때문이다. 우리가 외구인한테 길을 못 가르쳐주는 건 우리가 영어를 하려는
것만큼걔ㄴㄹ이 우리말에 노력 안 하기 때문이라구. 그런데도 우리는되지
못라게 툭하면 한국인이 불친절하다 어쩌구 그러잖아. 아, 친절한 사람도 있고
불친절한 사람도 있고 그런 거지. 누굴 만나느냐는 순전히 그 외국인의 재수일
뿐이라구. 유럽이라고 다 친절한 것도 아냐. 바가지도 씌우고 도둑놈도 많다구.
그런데 문제는 다니다 보니까 관광사업이 꼰 친절이 우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외국인들에게 불친절해서 안 온다는 기사가 아주 오래 전부터
나오느데 이젠 생각을 바꾸어볼 때다. 볼거리가 있으면 친절이랑 관계없이 오게
돼 있다. 프랑스 아해들, 독일 아해들 정말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일년이면 우리나라 아해들을 포한해전 세계 아해들이 그 불친절한 나라에 돈을
쓰려고 기를 쓰고 찾아간다.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 도둑이
많다고 누구나 긴장하면서도 모두가 이 나라로 몰려드는 것 역시
볼거리를수없이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볼거리들은 제대로
보게하기 위한 배려가 여행자 중심으로 잘 돼 있다.
예를 들면, 외국엔 싼 배낭족들이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싼 숙소들이 굉장히
많이 개발돼 이싸. 그런에 우리는 그런 게 없다. 그래서 이상하ㅔ 관광객,
그러면 돈 만은 사람인 것처럼 생각해선지 관광호텔이란데가 엄청 비싸다.
관광객에겐 왜 그렇게 다 비싸야 해?
실제로 현실벅으로 관광호텔에 가보가. 새벽 2시, 4시까지 영업을 허가해주는
관광호텔 나이트클럽에 가면 눈에 뛰느니 우리나라 아해들뿐이다. 간혹 외국
아해들도 몇 명 있지만. 미국 같은 외국에 가면 그렇게 우리처럼 밤새는 데가
없다. 있어도 걔들은 주말이나 금요일날 사거 노리 우리처럼 평일에 개떼같이
몰려가진 않는다.
우리 관광호텔도 이제는 두 종류가 돼야 한다. 배낭족같이 돈 없이 오는
사람들이 와서 자는 싼 숙소도 이썽애 되고 돈 많은 사람들이 머무르는
그럴듯한 숙소도 있어야 된다는 거다. 가난한 여행자 중심의 호텔이나 민박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관광객이 유치된다.
우리도 이야깃거리, 볼거리를 만들어서 관광객을 유치할 생각을 해야지,
말연하게 밤낮 외국 가서 실수하지 마라 외국인한테 친절해라 그래 갖고는
힘들다.친절도 친절이지만 잔디밭에도 들어가게 하고 얼마 안 되는 볼거리라도
제대로 볼 수 있게 싼 숙소들들 많이 만들자!!
그런데 한가지 웃기는 건, 여기 하이드파크 잔디밭엔 해변에서 볼 수 있느
비치용 의자가 있다. 물론 공짜가 아니다. 앉아 있으면 누군가가 돈을 받으러
온다. 처음에 우리 배낭족 아해들이 공짜인 줄 알고 앉아 있다가 초록색 옷을
입은 아해가 와서 돈을 달라고 해 50팬스를 냈단다. 듣고 있던 처가 "돈
내자마자 다른 데로 갔지요?" 그러자 그랬단다. 그때부텀 본격적으로 더 앉아
있어도 되는데 우리는 돈을 내면 김새게 생각하고 그 순가 떠난다. 휘한하지?
참,파리에서는 발 밑의 개쫑을 조심해야 되지만 영국 공원 벤치에서는 새똥을
조심해야 한다. 영국이나 파리나 개끌고 산책을 많이 하는데 파리에는 개똥이
널려 있고 영국에는 안 널려 있어 알고 보니 영국은 개똥을 이도에 못 누레
하고 차라리 차도에 누게 한단다. 그리고 인도에다 누면 개주인이 치워야
한단다. 웃기는 얘기다.
이 공원에 와서 발견한 것, 영국에는 여왕만 있는 줄 알았더니 왕도 물 있네.
노씨 성 가진 왕들. 노 스모킹, 노 파킹.
우리한테 길 묻는 영국 촌 아해들도 있더라
글래스고 가는 버스역을 가르쳐주는 주름투성이 할머니의 수첩을보니 영억
가득 차 있다.
버스가 1시 14분에 온다고 그랬는데 30분이 되어도 안 온다. 우리 말고 한
팀이 혹시 버스가 지나간 건 아니냐고 물었다. 이번 버스를 놓치면 2시50분에
다음 버스가 오기 땜에 모든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 ㄸ문이란다. 원래
스코틀랜드 아해들이 이렇단다. 배낭을 둘러멘다. 자기네는 못 기다린다고 다른
곳으로 가겠다는 거다. 그들이 사라지고 약 5분후 버스가 나타났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 말했다."야, 한국 사람보담 성질 급한 아해들도 있구나!
주소나 알아둘걸! 성질 급한 사람들끼리 펜팔이나 하자고!"
성질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을 풍자하는 우스개가 생각난다. 섣달 그믐날
결혼을 했는데 그날 밤 자고 일어나서 결혼한 지 햇수로 2년 됐는데 애가
없다고 신랑이 화를 냈대나 어쨌대나 하는 얘기. 날짜로 따지면 이틀이고
시간으로 따지면 24시간고 햇수로 계산하면 2년째가 되는 이 우스갯소리를
우리는 한번쯤 듣고 자랐다. 지금 이 우스갯소리를 처음 듣는다면 초등학생들도
안 웃을 거다. 조금 똑똑한 초등학생들은 웃기는커녕 도리어화를 낼지도
모른다. 내 수준을 뭘로 보느냐고. 이 얘긴 속편이 더 웃긴데 섣달 그믐날
시집온 색시가 그 다음날 여태 애가 안 섰다고 시어머니한테 들볶였다지 아마??
그러고 보니 해외여행 4박 5일이라는 것ㅇ 얼마나 웃기는 계산인가하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왜냐하면 떠나느 날 밤 8시 30분에 출발해 새벽 2시에
도착하니 벌써 1박 2ㅣ일이 되고 말지, 또 새벽 3시에 비행기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도 역시 하루 계산에 들어가니 왔다갔다하는데만 2박 3일이 되고
마는 거 아니냔 말이다. 섣달 그믐날 시집온 신부 신랑의 계산법이 우리를
웃겼듣이 이 해외여행 역시도 마찬가지다.
버스를 탔는데 자기는 로만드 호수로 간다면서 우리복 상세히 물어보는 영국
촌 아해도 있네!!!
에딘버러로 되돌아가는 시간 때문에 글래스고에서는 30분에 한 대씩 떠나는
한 시간짜리 시내투어 버스를 탔다. 버스에 타고 시내를 돌면서 설명만 듣는
투어다. 책에 나와 있는 플록하우스는 시내에서 30분 이상 가야 한단다. 할머니
두 명이 우리 옆자리에 탔다. 관광객이냐고 물었더니 이 동네 토박이란다.
심심하면 산책 겸 이 버스를 타고 돈단다. 이것저것 설명을 해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할머니 음식이 맛있다고 그러면 할머니는 우리르 자기네 집에
데리고갈지도 모른다."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할머니가 잘하는
요리는 뭔가요?""먹어본 사람들이 다 칭찬을 하던가요?""믿을 수 없네요!"
"정말 잘하세요?" 이러면서 슬슬 유도를 하면 집으로 가자고 하고 요리도
해주지 않을까??? 잠도 재워주면서! 만화 같은 우리네 할머니랑 한번 비굘ㄹ
해본다. 그쪽 할머니들은 자기네 집에 데기고 갈 수 있는 여지가 훨ㅆㄴ 더
많다. 왜냐면 혼자 사니까. 한국 할머니들은 인정이 많아서 데려가서 솜씨를
보여주고 싶긴하지만 며느리들의 눈치를 봐야 되는데 여기 할머니들은 혼자
사시니까 며느리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을 것이기 ㄸ문이다, 라는 혼자만의
상상.
유럽에서 제일 큰 벼룩시장이 글래스고에서 열린다는데 우리는 주말이
아니라서 꽝이 되었다. 책에 나와 있어서 찾아갔는데!!! 글래스고, 잘 알지도
못하는 동네인데 유럽에서 제일 큰 벼룩시장이라니!!!
글래스고의 넬슨 제독 동상 뒤쪽에는 나폴레옹 전쟁 전사자 기념관이 짓다가
만 채로 방치되어 있다. 미완성이 된 이유는 예산이 바닥나서 그랬단다. 짓다가
만 곳도 관강지가 된다는 사실!
아비뇽 다리가 생각난다. 돈이 없어서 짓다가 만 다린데 그것도 관광지랍시고
돈을 받더라니깐. 짓다가 만 다리를 입장료를 내고 올라가서 걸어봤다.
성수대교를 돈 받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갔다 온 사람 여럿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네들도 그런 생각을 했단다. 성수대교 무너진 건
세계적으로 유명하니깐.
여기 와서 보니 삼풍백화점 무너진 사건, 성수대교 무너진 사건들은 외국에
사는 우리네 교포들을 정말로 쪽팔리게 만든 것 같다. 어떤 교포 한 분은
성수대교하고 삼풍 얘기가 너무 부끄러워서 밖에를 못 나갔단다. 유학생 중 한
명이 농담을 한다. 무너져야 할 게 딱 하나 있대! 뭐냐고 했더니 통일의
벽이라나? 그건 왜 부실공사를 안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넬슨 제독의 동상 가는 길에 카페가 하나 있는데 제목이 '1812년'이다.
우리는 들어가서 한잔 마셨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 '1812년' 문앞에 서 있는
종업원 아해에게 물어보았다. 1812년에 지은 거냐고. 아니란다. 속았다는
기분이 든다. 그냥 카페 이름이 '1812년' 이란다. 그러면서 카페의 역사가 적힌
책 비스므레한 걸 한 권 들고 나왔는데 1818년에 만들어졌단다. 에이 몇 년차이
아니네!!!'1812년' 이라는 음악 제목에서 카페 이름을 지었단다. 처음 연주할
때 대포를 진짜로 쏘면서 연주했다는 그 곡. 들어보긴 했지만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곡. 서울가면 한번 들어 봐야지(했는데 아직도 못 들었다.)
우리 모두 동상이 되자
유럽엔 동상이 굉장히 많다. 여기저기 별별 동상들이 다 눈에 띈다. 잔다크,
나폴레옹, 찰리 채플린……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유명한 사람들의
동산도 많고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물론 그 나라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유명하겠지만), 자기네끼리만 아는 사람들의 동상도 많다. 우리는 모르지만
자기네 나라 사람들을 위해서 뭔가 일을 한 사람들을 오래 기리기 위해
세워놨겠지. 역사에 어떻게든지 이름이 남는 사람일 텐데……!
파리엔 어던 회전목마 뒤에 동상 하나가 딱 서 있었다. 오가는 사람마다
"아니, 저 사람이 이 회전목마를 만든 사람이야? 아니면 회전목마 주인이야?
것두 아니면 감시하려고 서 있는 거야"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든다. 덴마크에
갔더니 30년 동안 한자리에서 생선장사를 했던 두 아주머니를 동상으로
만들어놨다. 생선을 들고 lT는 모습을 조각해서 말이지. 그랬더니 또 그 앞에
한 아저씨 생선장수가 아주머니들의 동상 모습 그대로 생선을 들고 팔고
있더라고. 연습을 많이 했는지 제스처도 암튼 똑같다. 그게 관광명소인 거다.
암튼 유럽엔 이렇게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동상들이 시내 곳곳,
건물 곳곳에 있다.
그래서 혹시 나는 이 나라 아이들은 "넌 커서 뭐가 되겠냐"고 물어 봤을 적에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자동차 회사 사장이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국 아해들의 꿈이 혹시 "나중에 죽어서 피카다리 근처에
동상으로 남고 싶어요!" 는 아닐까.
어렸을 적에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이 "너 커서 뭐가 될래?" 그러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척 궁금하다. 난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누가 그렇게
물어본다는 게. 뭐라고 대답을 해야 되나 참 난감했다. 선생님이 그런 걸 물어
볼 땐 무슨 시험문제를 물어보는 거 같기도 하고, 해답이 있어야 되는데 잘못
틀리게 대답을 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까지 있었다.
초등락교 2학년 때 내 앞자리에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선생님이 앞에서부터 쭉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물어보시더니
'너,너,너,1분단,2분단'을 다 거텨 차례가 되자 이 친구가 큰소리로 "훌륭한
과학자가 되겠습니다!!" 그러는 거다. 공불 잘했거든. 그 다음이 내 차례였는데
"저, 전...... 생각이 잘 안 나가지구요" 이러면서 막 더듬거렸다."뭐가
될래???" 선생님은 계속 다그치시고 난 더 당황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저...... 그래 가지고, 저,저,저,전......" 그러면서 결국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아무 말도 못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날부터 내 앞 친구의 그 근사한
대답, 훌륭헌 과학자가 되겠다는 말을 외웠다.'나도 딴사람이 물으면 저렇ㄱ
대답해야지' 하면서 말이다. 드디어 초등학교 3학년이 됐는데 담임선생님도
바뀌고 그래서 이번엔 외운 대로 그렇게 대답했다. 말해 놓고 나니까 내 자신이
새삼 근사하게 보였다.
그렇게 우리 어렸을 적에는 이담에 커서 뭐가 될지 불안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래서 뭐가 돼야지 하고 제각기 희망을 설정도 하곤 햇다. 그런데 부모님들이
자식들한테 "너 커서 뭐가 될래?" 그렇게 물었을 때 "대통령이요, 장광이요,
선생님이요, 의사요"아이들이 그런 얘기를 막 하면 부모님들은 가끔씩 착각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아니. 얘가 박사가 되겠대, 변호사가 되겠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말야" 그렇게 흐뭇해하고 그러는 거다.
그러나 부모님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거, 하나가 뭐냐면, 사실 아이들이 알 수
있는 직업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거다. 몇 개 안 된다. 늘 의사선생님 놀이
아니면 장군 놀이, 아니면 선생님 놀이 그런 식이다. 그래서 그 몇 개 안 되는
거 중에 한두 개 불쑥 얘기한 것 갖고는"혹 얘가 천재는 아닌가. 얘를
영재교육을 보내야 되는데 이거 내가 잘못해가지고 얘를 둔재로 만드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단 말이지.
유럽 아해들은 자기 동내의 동상들을 보고 자라면서 "나는 나중에 크면 우리
마을의 동상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자기 마을 입구의 동상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말이다. 그런데 왜 하필 동상일까? 금상
은상도 있는데.
어쨌든 우리들이 커서 앞으로 뭐가 되야 할 것인가를 생각할 적에 그 마을을
위해서 혹은 그 동네를 위해서, 아니면 우리 사회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해서
어떻게 남겨져야 될까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된다는 게 아주 중요한 게 아닌가
하는 거다.
네덜란드 어느 지방에 가면 소년 동상 하나가 조그마하게 서 있다. 이게
뭐냐면 우리가 초등학교 ㄸ 배운 네덜란드 소년의 이야기 있지 왜. 둑이 터지는
것을 발견한 네덜란드 소년이 마을이 물바다가 되제 않게 하려고 밤새도록
추위와 싸우며 손가락으로 팔뚝으로 둑을 막았다는 이야기 말이다.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다 배웠고 다 아는 그 소년의 상이란다. 많은 사람들이
네덜란드에 와서 그 소년이 막은 둑이 어디냐고 가보고 싶어한단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네덜란드 사람들은 도리어 모른다는 거야. 자라는
아해들엑 애국심을 심어주기 위해, 미국에서 만든 이야기를 우리 교과서에
실었기 대문이래. 그러나 하도 많은 사람들이 네덜란드에 오면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기 때문에 그 지방에 가상의 소년 동상을 만들어놓았다는 거다. 가이드도
이야기만 들었고 가보지는 못했다고 전해주는 '전설 따라 네덜란드'
이야기다(개그맨 김한국이 언젠가 야간업소 일하는 어느 코미디언 별명을
네덜란드 모이라고 지어준 적이 있었다. 어찌나 여자를 밝히는지 구멍만 보면
막으려고 한다나!!!)
동상 얘기 하니까 내 얘기도 한마디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충무로에 심야 볼링장을 만들었잖아. 왜 그랬냐면, 개그맨
장두석이나 후배들이랑 이 볼링장이랑 델 가기만 하면 "한 게임만 더쳐, 함
게임만 더" 하는데 볼링 못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정말 지루하더라고.
장두석이만 그러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면서 시간을 안 지키고
10시를 넘기는 거야. 그래서 그럴 바에야 아예 치고 싶을 때까지 치게 해주면
어떻겠냐 해서 심야 볼링장을 만든 거지.
처음엔 거기 볼링 오래 한 과장이니 하는 사람들이 막 반대하고 그랫다고.
그런데 그 뒤에 심야 볼링장이 매상이 엄청 올랐잖아. 그러니까 전유성이도
심야 볼링장 만든 공롤 동상 하나 세워주면 좋잖아!!!
이거는 좀 말장난 같은 얘기지만. 누구나 다 금상만 받으려고 일등만 하려고
그럴 적에 "나는 세 번째 동사이 되겠습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으 사회가
좋은 사회 아닌가. 소년들이여! 이담에 크거들랑 모두 동상이 되어라!
거기 동상들 유래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설명을 들었는데, 얘들아! 우리
동상들도 알아두자. 왜 만들어졌는가. 한국 은행 앞 동상은 주가 왜 만들었지?
대영박물관은 거대한 장물아비의 집
대영박물관에 가면 역사적인 유물들이 많다. 박물관이니까. 문제는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보느냐는 것이다. 역사 연대표를 읽으면서 감탄하고 있는데
여자들은 진열된 장신구에만 신경을 쓴다. 어찌 보면 그게 훨씬 현실적이고
필요한 것인지도......!
대영박물관은 거대한 장물아비의 집이다. 물건들 가운데는 지금 그 나라로
도로 갖다주려고 해도 운반수단이 고민일 정도로 큰 것들이 많은데 그 당시엔
어떻게 갖고 왔을까??? 갖고 가려고 궁리하고 시킨 놈은 편했겠지만 나르던
아해들은 얼마나 고생이 심했을까??? 특식이 나 좀 나왔을까???
일요일 끝나는 시간은 6시인데 10분 전부터 내보내기 시작한다. 우리 것을 안
본 것 같아 물어물어 찾아가는데 경비들이 몰아낸다. 겨우 우리 것을 보고
돌아서면서 우리 학생들이 했던 소리가 생각난다."우리 것은 어디 있냐?"
그랬더니 "저기로 돌아가면 있어요. 별루 없어요" 그런다."야, 임마! 없으면
좋지 뭘 그래!!" 속으로 이런 것 생각은 안 했겠지.'일본 아해들 것은 많던데!
일본이 부러워!'
런던 성에 갔다. 역대 왕들의 왕관이 전시되어 있다. 짱구가 왕이 되면
디자이너들이 고민 많이 하겠네!!! 보석도 더 들어가야 되고 국고도 더
낭비되니 말이지. 여자가 혼자마나 보는 보석은 꽝이지, 남들이 알아줘야
보석이 더 빛나는 거다. 유럽 어느 성에 가봐도 왕 거나 지금의 내 거나
더블치매 크기는 똑같드만!!방이 커서 자다가 오줌 마려우면 화장실 간 게
나보다 불편했을걸!! 그런데 그때 아해들은 요강을 특히 소박한 궁전들이 많다.
검소한 왕실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창고 같은 걸로 착갈할
만큼 허름한 곳도 있다.
파리의 웬만한 성에선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는데 영국은 그렇지 않다. 그저
좀 보면서 걸어 들어가다 보면 돈 내는 곳이 여러 군데다. 이게 바로 영국인의
상술이구나, 혼자 생각을 해봤는데 여기 사시는 아주머니 말은 다르다.
정원까지는 누구나 거저 봐라. 대신 지금부터는 돈을 냐라. 이런 거란다.
정원까지는 누구나 거저 봐라. 대신 지금부터는 돈을 내라. 이런 거란다. 나는
언제나 틀리는 생각을많이 한다.
그런데 영국 사람들이 역사를 좋아하기는 좋아하는 모양이다. 어느 음식점
진열장을 들여다봤더니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는 거야. 가게 개업 때부터의
먼지를 보관하려는 모양이지?
영국 신사들도 비 오면 뛴다
우리는 보통 영국을 안개의 도시, 신사의 나라라고 배웠느데 나는 습기 찬
도시, 습진 많은 시가의 나라 영국이라고 하나 더 붙이고 싶다.
비가 오면 여기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잽싸게 비옷으로 갈아입는다. 정말
빠르다. 비옷 크기가 좀 작은 것 같은데 다방에서건 어디서건 무진장 빨리
갈아입기 때문에 마치 개구리의 보호색을 보는 듯하다.
영국 아해들에세 묻는다. 전유성,"비 오면 어떻게 해요?우리는 막 뛰는데?"
영국 아해,"아뇨, 보통처럼 걸어요" 전유성,"지금 길거리에 아무도
없는데요?" 영국 아해,"아이구, 이건 정말 비가 많이 오네요." 후다다닥!!!
이리저리 막 뛰는 영국인들을 봤다. 조금 올 때나 여유지 퍼부으면 우리랑
다를 게 없지 뭐!
그 옛날 런던 대화재 이후로 런던 사람들은 화재에 굉장히 민감하단다. 얼마
전 런던의 힐튼 호텔에서 화재 비상벨이 울렸단다. 아침에 도착한 가이드가
손님들 다친 사람은 없냐고 했더니 없다고 그랬단다. 지배인이 놀람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다가 놀라서 옷 벗은 채 뛰쳐나오는데 한국 사람들은 옷 다
입고 보따리 다 들고 나오더란다. 너희들은 이해가 안 가겠지, 그만큼 사고가
많이 나서 우리는 침착한 거란다. 야들아!
런던대화재 기념탑이 있는데 311계단이다. 가이드복 같이 올라가잿더니
싫어하는 표정을 짓던 이유를 알겠다. 그런데 이미 입장권을 샀으니까 안
올라가 볼 수는 없고, 올라가 봐. 다리 아프지 물론!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도
권해야지, 나만 아플 수 있나! 올라거ㅏ지 말라고 그럴 수도 없어, 나도 한번
다리가 아팠으니까 니네들도 아파 봐라 이거지. 재미있는 건 내려오면 꼭대기
걸어 올라갔다 왔다는 증면서를 한 장씩 준다.액자 해놔야지!
가이드가 런던브리지를 설명하면서 영화 '애수'에 나온단다.'애수'가 언제적
영화인데! 40년도 넘은 여환데 그 영화에 나온는 게 뭐가 중요해! 지금 눈앞에
있는데!!!!!
96년 7월 4일 오후 4시 3분, 스위스 시계탑 밑에서 거리의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리다 말고 갑자기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피해 허둥지둥 남의 처마로
달려간다. 얼굴 그려 달라고 앉아 있던 손님들, 벙찐 얼굴들이다.
영국 전화부스에 가득한 스티커의 정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영국의 상징하면 역시 빨간 버스, 빨간 전화부스다.
사진이나 엽서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나라에도 똑같은 것이 있다. 정말이지
열받는다. 그걸 그대로 표절을 하다니, 연예인들의 표절은 걸린ㄴ데 그런 건 왜
안 걸리는지 몰라. 색이라도 노란색이나 딴색으로 바꾸지.
파리에는 없는데 영국에는 전화부스마다 자기를 찾아 달라는 창녀들의
스티커가 많이 붙어 있다.
인터컨넨철 호첼 옆 공중전화부스에서 스티커를 제거하고 나오는 경찰관을
만났다. 양손에 스티커를 떼어가지고 나온는데 양이 굉장히 많았다. 내가 먼저
한마디했다."오늘 경찰관 회식 있는 모양이지?여자 고르려고 떼가지고 나오는
모양이야, 높은 사람은 예쁜 여가 선탯하겠네. 경찰은 싸게 해줄까? 아마 저거
뗀 놈이 에쯤 애 것 한두장 감추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면 그 바로 상관은 "야,
임마!! 감춘 거 알어, 내놔!!" 하면서 주머니를 뒤질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하는 표절 가운데 대표적인 게 요즘 우리나라 주유소다.
유럽에는 소박한 주유소가 아주 많다. 로마의 주유소들은 인도 중간에 있어서
차가 기름을 집어넣으면 바로 출발하게끔 돼 있고 베네치아에선 배가 버스나
자가용처럼 다니니까 바다 한가운데 있게 인상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주유소는 왜 그리 소란스러운지 모르겠다. 롤러브레이드 타고 춤추고 이상한
만국기 비슷한 것 매달아놓고...... 그런 게 사실은 일본 가면 거의 똑같이
하는 짓이거든. 다른 건 몰라도 일본 주유소에서 하는 짓거리를 우리가 왜
하나???
예를 들어 자동차가 가는데 식용유를 넣어도 되고 소금을 넣어도 되고 맥주를
넣어도 되는데 기름 좀 넣어 달라고 그러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이건 다
똑같이 어차피 기름을 넣어야 되는데 유독 왜 만국기를 흔들고 어린 여자
아해들이 막 춤을 추고 머리에 띠를 두르고 엉덩이를 흔들고 그러느냐는 거다.
참 웃긴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것보다는 차라리 양쪽에 두 명의 젊은
여자가 있고 가운데 뚱뚱하기 그지없는 아줌마가 춤을 춘다든가 하면 훨씬
인상적일 텐데 왜 그런 생각은 못하는지 모르겠더라고.
인터컨티넬털 호텔 옆 공중전화부스의 스티커를 못 봐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영국에 살던 우리나라 사람이 한국에 오면 너도나도 물어보는 게 "백마
타봤냐"란다. 아니라고 하면 이상하게 쪼다 취급받는 기분이 든단다. 또하나,
식당에서 일했다고 하면 실감을 못한단다. 쉽게 이야기하면 거의 자수성가를
해야 하는 풍토를 이해를 못한다는 거다. 영국 사니까 좋겠다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이 교포가 그랬단다."이 나이에 학교 간다. 매일 애
데리러." 어쨌든 자꾸 그런 거 물어보는 것 땜에 친구들도 만나기 싫어진단다.
나는 말했다. 그럴 땐 해봤다고 해라. 그것도 아주 많이. 한 아해랑하면 딴
친구도 소개해준다 그래라. 나중에는 귀찮아서 안 하게 된다고. 마음 먹고
열심히 한 친구는 한 반에 여자 아해가 40명인데 30명정도를 한 아해들도
있다고 해라. 그래야 영국에 와서 다시 한번 환상이 깨지고 저는 못했으니 너를
우러러볼 게 아니냐고.
588 간 건 자랑하지 않으면서 영국 가서 여자랑 잔 걸 자랑하는 이유는 뭘까.
거의가 창녀들이랑 하고 와서 자랑하는 건 미친놈 아니냐고. 길거리 지나가는
아해들 꼬셔서 해봐라, 그게 절말 멋진 놈이지.
내 후배 중에 여행가가 있었는데 20대 시절의 친구들이 제일 궁금해하던 것도
그 나라 여자랑 해봤냐는 거였단다. 이 친구가 한 말,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생각해보니 그 나라의 콘돔하고만 해봤대나!!??!
닮은 사람 흉내내는 건 동서양이 마찬가지더라
에딘버러 버스터미널에서 글래스고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화장실에 갔다.
버스터미널 낙서는 우리 것이랑 정말 비슷해!!!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그림은
수준이나 내용이 우리랑 다를 바없다. 화장실에 앉으면 그런 생각만나는
모양이다. 사진을 찍어서 증거로 남기려는데 아쉽다. 화장실에 누가 카메라를
들고 간단 말인가! 오다가 들러서 찍어야지. 찍긴 뭘 찍어! 오줌 안 마려운데!
그걸로 끝이지(그래서 결국 화장실 안 가고 끝났다).
책에 서양이 아름답다고 해서 구경 나왔다는 여자 배낭족 하나랑 에딘버러를
걸어보다. 그날 따라 구름이 많이 끼어서 지는 해를 바라볼 수 없었다. 그냥
걷다가 '1982' 카페에서 위스키 한잔하고 넬슨 동상 등을 보고 내려오는데 이
아해가 유홍준의 『나의 문화답사기』2권에 나오는 소리를 하는 것이다. 석양을
못 봤으니 내일 아침 해 뜨는 거라도 보러 일찍 나와봐야겠단다. 해 지는
쪽으로 해가 뜨나???
에딘버러에는 희한한 정망 망원경이 하나 있다. 안경점 하는 여자가 이걸
발명했는데, 프리즘을 막대기에 달아서 높은 망루에 설치해놓고 그걸 삥삥
돌려가면서 보면 밑의 원반에 에딘버러의 모든 경치가 비친다. 여기 한곳에서
에딘버러의 모든 것을 구경할 수가 있다. 250년전에 만들어진 건데 정말
신기하다. 딴 지방에는 없는 아주 희한한 구경거리다. 지나가는 자동차까지도,
사람 얼굴까지도 아주 상세하게 보인다. 프리즘을 이용한 아주 특이한
발명품이다. 거기서 가이드가 한 장소를 가리킨다. 그곳에서 제임스 본드가
1950년도에 우유배달을 했단다. 한번쯤은 꼭 가서 볼 만하다.
에딘버러 자판기에서 담배를 샀는데 16이라고 씌어 있다. 이게 무슨 숫잔가
하고 궁리를 하는 중에 누가 말한다. 16개가 들어 있다. 20개 값을 받고
자판기에선 16개를 주니 자판기 담배가 비싼 것이다. 그냥 가게에서 사라, 네
개피가 어디냐, 보리 흉년에!!!
에딘버러에서 기차를 타고 오는데 어느 나라 아해인지는 몰라도 살바도르
달리 닮은 아해가 우리 옆자리에 타고 있었다.
김도향이라는 가수를 닮은 대학 일년 휴배가 생각난다. 우연히 영국에서
만났는데 가이드를 한단다. 반가웠다. 날리리라는 삼중창단으로 활약하던
후배인데 김도향을 닮았다고 김도향 노래를 열심히 불렀다가 내 소개하여
가수가 된 후배였다. 자기랑 닮은 사람 흉내를 내는 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얘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 아들 앞에서 "야,
임마 내가 말이야. 너희 아버지가 너만했을 때부터 알았어" 그랬는데 지금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아무리 후배지만 그 아들 앞에서 너무 이 새끼, 저
새끼 그런게 좀 미안하다.
이 아해가 살바도르를 닮았으니 수염도 자연히 그렇게 기를 수밖에.그런데
문제는 이놈이 쉬지 않고 수염을 꼬는 것이다. 오른손을 꼬다가 지치면 왼손,
왼손, 오른손을 교대로 사용하면서꼬아대는데 정말 신경이 무진장 쓰인다.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이 잘 안드는 가위로 오징어를 자를 때 옆에서 입에 힘을
주어본 적이 있는지? 그런 경험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콧수멍 께속 후비는
놈만 봐도 무진장 신경 쓰이잖다. 안 보려고 해도 자꾸만 눈이 가는데, 생각
같아서는 그 녀석 수염을 확 잡아 뜯고 싶었는데 세상이 좋아서 못 뽑았다는
이야기 끝!
에딘버러는 8,9우러이 가장 알찬 달이란다. 엄청 괜찮은 행사들이 연이러
열리기 때문이다. 에딘버러 성을 배경으로 야간에 화려한 군사의 시이 3주나
계속되고 11일부터 31일까지는 국제 페스티벌이 있다. 세계적인 유명인사들이
다 모이는 세계 최대의 음악과 영극 예술제다. 오나가나 시간이 웬수다. 우리는
못 보고 가지만 8월에 계획 잡은 사람들은 좋겠네!!!
뭉게구름들의 놀이터 로만드 호수
런던에서 에딘버러, 에딘버러에서 글래스고 1시간 10분, 거기서 다시 약50분
동앙ㄴ 버스를 타고 로만드 호수에 갔다. 외국인이 한국 처음 와서 서울,부산
안가고 김포에서 바로 가원도 속초까지 비행기 타고 내려서 삼척 동굴 구경가는
건 아닌지 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가서 보니 아주 괜찮은 마을이다.
빨래가 평화처럼 널려 있는곳, 목소리가 저절로 낮추어지는 곳, 뭉게
구름들의 놀이터, 뭉게구름들의 집합처, 뭉게구름들의 학교, 뭉게구름들의
시장...... 호숫가 마을은 집들은 정말 이쁘게 가꾸었다. 특히 정원을
경쟁하듯이 잘 가꾸어 놓았다. 가게가 세 개 있는데 들어가면 세 가게 전부 다
비스킷을 소님들에게 권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눈 마주칠 때마다 권한다. 세
번째 가게 주인 아저시가 비스킷을 설명해준다. 비스킷으로 위스키를 마시면
위스키가 우리를 죽일지도 모른단다. 역설을 이용한 영국의 유머다. 위스키가
나오는 마을이거든, 거기가. 위스키 안주로 비스킷을 굉장히 좋다는 거야,
그래서 자꾸만 먹게 돼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호수 가는 길에 얼굴에 뭐가 오돌토돌 많이 난 영국 사람을 만났다. 튀김
같은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글래스고의 약국에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손잡이에 관한
모든 것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곳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지팡이 손잡이, 삽
손잡이, 문 손잡이, 우산 손잡이, 꽃삽 손잡이, 휠체어 손잡이, 개목근 손잡이
등 손잡이에 관한 책이 한 권으로, 그것ㄷ 아주 두꺼운 한 권으로 만드어져서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온갖 손잡이까지 상세한 사진과 함께 수록되어 있는
책이다.
문득 강선철이라는 내 친구가 생각난다. 1969년 대학 시절에 물건 파는 곳을
안내하는 책을 만들고 ㅣ다고 했던 친구다. 망치 노끈 등등 우리가 어던 물건을
사고 싶은데 어디서 파는지 몰라서 못 사는 경우도 있고 막연하게 청계천에
가면 있겠지 하고 나갔다가 헤매면서 하루를 허비하게 되는 경우를 줄여주자는
생각이었다.
'참으로 기발한 생각이다' 하면서 아주 오랫동안 기억을 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살다 보면 줄자 파는 데가 어딘지, 중고다리미 파는 데가 있다는데
어딘지 시시콜콜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요즘은 또 한국 전통술 파는 데가
알마 전에 생겼다는데 아는 사람이 있나. 그것뿐이 아니고 고운 소금, 군용
구두, 망치, 혁대 장쇠, 미꾸라지, 가물치, 호박엿 등등 사실 사고 싶어도
어디서 파는지 몰라서 못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도 일전에 시걸 사시는
외삼촌이 서울에 경운기 부속을 부탁했는데 어디 가서 사는지 몰라 고민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나도 고등학교 때 그런 생각을 했지.'서울 토박이인 내가 모르는데
다른 도에서 온 사람들은 얼마나 불편할까? 이 사람들을 위해서 무슨 물건을
어디서 판다고 알려주느 책을 하나 만들어야지' 하고 말이다.
강선철이가 만약에 대학시절의 꿈을 이루게 된다면 그 책 내용 중에 손잡이에
관한 책은 글래스고 어느 약국에 가면 살 수 있다는 것도 포함시키라고
해야지!!!
유럽엔 잡지가 수백 종이 있는데 그런 건 정말 부럽다. 강아지에 고양이에,
그런 것들이 너무 잘돼 있는 것이다. 옌예인 되고 싶어하는 사람만 소개하는
잡지는 어떨까???
언젠가 미국에 가보니 어느 자동차 여행가가 쓴 책이 히트를 했단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소개가 안 됐는데 어떤 책이냐 하면 엔진열을 이영한 음식
만들기라는 책이었다. 자동차 엔진열을 이용해서 음식을 만드는데, 시속 몇
킬로미터로 몇 분을 달리면 고기가 구워지고 몇 분을 달리면 피자가 구워지고
커피를 끓이려면 몇 분을 달려야 커피물을 끓일 수 있는가? 하는 그런
책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책을 들여와 차가 막힐 ㄸ 실험을 해보면 어떨까?
밥을 하려면 얼마를 놓고 몇 분이나 달려애 되고, 김치찌개를 끓이려면 또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연구해 보면?? 그러다가 연구가 끝이 나면 집에다가 전화
한통 할 수 있지 않을까???
"여보 기다려. 지금 올림픽도로인데 밥 해놓지 말고 기다려. 내 곧 밥하고
찌개 끓여서 들어갈게." 연구해보자. 자동차 엔진 위에다가 밥하는 그릇은
디자인이 일반 솥하고 다를 테니 책 파는 사람은 물론이지만 솥장사 하는
분들도 덩달아 한몫 볼 게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이건 그 책에 부록쯤으로
끼워주면 좋은데, 어차피 출퇴근시간이면 서울시내 모든 고싱 막히게
마련이잖아. 지겹고 짜증나는 퇴근길, 웃기라도 좀 해야 되지 않겠어? 이럴 때
한가지 앙디어가 있다. 물이 반쯤 찬 5리터짜리 물통 수십 개를 가득 싣는
거다. 그러면 차가 움직이거나 설 때마다 물통의 물이 출렁거려 대포 소리를 낼
것 아니겠어? 피서가 따로 없다구. 또 단체 관광버스가 줄이어 달려올 ㄸ 보통
1번부터 오리 마련인ㄷ 모두 몇 대가 되는지 궁금하잖아. 성질 급한 사람 숨
넘어가기 십상이라고. 이럴 때 맨 끝번호와 앞번호를 바꿔 달게 하는 거야.
그리고 말야, 마지막으로 이건 내가 아무데도 얘기 안 한 돈 될 꺼린데, 요즘
왜 명예퇴직이다 뭐다 그래서 뒤숭숭한 직장인들 많잖아. 조그만 가게 하나
시작해보려는 사람들도 있고 말이지. 그 사람들을 위한 쌩쌩한 창업 정보서를
하나 내는 거야.
우선지역을 정하는데 예를 들어 신촌부터 청량리까지 양쪽에 쭉늘어선가게
있잖아. 그걸 다 찾아댕기면서 이 가게는 얼마 주고 열었고 지금 얼마 정도
수입이 오르고 내가 옛날에는 뭐했는데 지금은 이걸 하게 됐고 하는 얘기를 쭉
다 모으자는 거야. 창업 정보로 그것처럼 더 좋은게 어디 있어.
나는 치킨 센터를 하는데 개업 준비에 얼말 들였고, 가겟세는 얼마고
권리금은 얼마고 이런 걸 시시콜콜하게 조사해보자 이거지. 딱 100명만. 세금
때문에 대답 안 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거고. 아르바이트생한테 가게 맡겨놓고
나처럼 해외여행 떠난 사람도 있을 거니까 대답해주는 사람만 하면 될 거야.
양식을 만들어서 사진 찍어주고, 그렇게 해서 그 사람들 사진을 전부
만세부르는 걸로 찍어 가지고는 제목을 '독립만세!' 그래갖고 3·1절
기획특집으로 내는 거야. 그러면 난 그거 충분히 뜬다고 생각해. 이규형이 책이
잘 팔리는 것도 사실은 그런 타이밍이 맞은 거야. 어때, 괜찮잖아?!
영국 가정은 은행통장이 셋이란다
파리에서 유로 스타로 세 시간을 달려서 영국에 오면 시간을 한 시간 뒤로
돌려야 된다. 날짜변경선에서 아이를 낳으면 사주쟁이는 어디를 기준으로 낳은
시간을 따지나? 영국에서 점을 보는 한국 사람은 영국식으로 시간을 따져야
되나? 한국 시간으로 이야기하면 그러니까 그 아이가 서머타임에 걸렸으니까
시간이 오후 7시로 해야지 맞겠순, 어쩌구저쩌구.....!
영국 가정은 은행통장이 셋이란다. 남편 것, 마누라 것, 두 사람 공동의 것,
자기가 번 것 자기가 쓰고 같이 얼마씩 낸 던을 모아서 집세 전기세 등등을
낸다나! 한국 지원이 "그런게 말이 되냐? 부부인데" 했더니 "남편은 CD
플레이어를 사는데 여자가 그런 거 싫어하면 여자만 손해잖아. 그리고 여자가
쓰는 화장품은 남자는 필요 없는 거잖아. 그러니 자기 돈으로 자기 것을
사야지" 그러더란다. 그래서 할말이 없어졌다는 거야, 그 한국 직원이. 그래서
내가 한마디했다. 그럼 CD 플레이어 틀 때 마누라는 귀 막고 있냐???
에딘버러의 민토 스트리트는 B & B 거리다. 잘 골라라, 비엔비 천지다. 처음
가면 자꾸만 처음 보는데로 가려는 경향이 있는데 늘 그렇지만 고르고 나면 더
좋은 곳이 나타난다. 걱정 마라. 노숙 안 하게 된다. 천천히 골라라. 방 없으면
노숙해보는 것도 재미지 안 그래??? 비엔비는 달러는 안 받는다. 미리 바꿔라.
우리는 미리 못 바꿔서 고생했다. 아침에 은행에 바구러 갔더니 보통 날은
9시에 문을 여는데 우리가 간 날은 수요일이라 스태프 회의 때문에 10시에
연단다. 열받더구만!
달러를 안 받는 이유는 그 동네 사는 사람이 바꾸러 가면 커미션을 많이
떼어서 그렇단다. 그런 집구석하구는!!! 민토 스트리트는 러시아워가 지나면
버스가 30분에 한 대씩 다닌다. 끈기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11시 30분이
지나면 버스가 완전히 끊긴다. 조심해야 한다. 집나오면 일찍 자라는 교훈이다.
영국에서 읽은 유머가 생각난다. 부모님을 죽인 놈이 재판을 받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냐고 물어보는 재판관에게 "나는 고아이니깐 정상을
참작해주십시오!!!" 이랬단다.
다른 유럽도 마찬가지지만 영국의 세금은 무섭단다. 영국인들한테 이런
얘기가 있다. 길에서 돈을 주워도 조용히 해야 한다. 세무원이 쫓아온다.
부가가치세가 자그마치 17.5퍼센트다. 이건 가이드의 실제상황인데, 한번은
거지가 돈을 달래서 돈을 못 주겠다고 했단다."너 세금 내냐? 그럼 세금 떼고
줄게" 했더니 안 받겠다고 하더란다. 치사해서 안 받은 거지, 세금 때문일까??
(세금 때문은 아닌 거 같다???)
그런데 여기 펑크족은 얼른 보면 거지하고 헷갈리는 놈들이 많다. 길가에서
펑크족 한 놈을 만났는데 이놈이 내가 사진으르 찍을까봐 계속경계를 하는
거야. 나중에 한 장 찍자고 했더니 밥값을 달라는 시늉을 하더라고. 그래서
1파운드를 줬지. 그랬더니 옆엣놈도 같이 달라는 거야. 할수 없었이 줬지.
그리고 사진을 두 번 찍었지. 술 냄새가 풀풀 나는 펑크족 50이 넘은 거 있지.
사진 찍고 가려는데 옆에 있던 펑크족이 자기도 돈을 달라는 거야. 있는 줄도
몰랐지. 너는 사진 안 찍어서 안준다니깐 그럼 사진을 찍으란다. 먼저 찍은
놈들. 돈만 받아 처먹고 아무리 "치즈, 치즈!!!" 해도 별 반응이 없더구만!!!
무표정하기가 개그맨 전유성 같애!!!
술 안주로 쓰려고 멸치를 꺼내다 문득 멸치 얼굴을 들여다본다. 멸치도
자세히 살펴보면 다 개성 있는 얼굴들이다. 그건 꽁치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솔방울도 똑같이 생긴 것 같지만 사실은 다 다른 것처럼 인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다. 그래서 세상이 재미있다는 거 아닌가?
영국에서 지하철표 사면 버스는 공짜!
유럽 지하철은 표 종류가 상당히 많다. 파리처럼 열 장씩 묶어서 싸게 파는
곳이 있는가 하면 오스트리아 빈처럼 1일권을 한 번 사면 열 번을 탈 수 있는
것도 있고, 날짜와 관계없이 열 번을 타는 스페인 거가 있는가 하면,
인스부르크에서는 2인권을 사면 아이까지 세 사람이 탈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갈아탈 적마다 표를 내야 되는 체코 것도 있고, 산세바스찬에선 운전사가 직접
받는다. 시실리는 타는 사람이 매표소에서 표를 사와야 된다. 어쨋든 이런 것이
모두 손님이 편안하게 하려고 만들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영국에선 지하철표를 하나 사면 시내버스는 하루종일 공짜다. 그냥 버스만
타면 비싼데 말이다. 그러니 지하철표를 사서 버스를 타는게 여령이다. 지하철
티켓을 한 장 사면 그날 하루는 종일 탈 수 있게 만든 건 영국 사람들 길눈이
어두워서 날씨도 흐리고 안개도 많이 끼고 비도 많이 오고 하니가 목적지 혹은
집 찾을 때까지 타라는 배려가 아닐까? 맞을 거야. 그런데 지하철은 아침 출근
때는 비싸다. 9시 30분이 지나야 싸진다.
영국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책이나 신문을 많이 읽는다. 독서열에 대해서
한마디하려고 했더니 그런 게 아니고 이유가 있단다. 남들이랑 눈맞추기 싫어서
그런다나! 책 보는 데도 별 희한한 이유가 다 있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나도 그럴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요새는 이동할 때 주로
버스나 지하철, 택시 같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 운전면허가 아직 없는
탓도 있지만 서울 시내 도로 사정이 나빠서 그 편이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하고
여러 모로 간편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 때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해대는 질문이다.
"정유성 씨가 왜 이걸 타셨어요?"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은 질문을 하고
나는 똑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아니, 왜 이걸 타다니요? 당신과 똑같은 이유로 타지요."
왜 타다니, 너무 뻔한 얘기 아닌가 말이다. 그런 재미없고 판에 박힌 질문
대신 각자 개성 있는 질문을 해준다면 일상이 좀더 신선해질것만 같다. 하다
못해 이런 질문이라도 좋다."진유성 씨 등에 점 몇 개 있으세요?" 아니면 영국
사람들처럼 책을 읽든가.
지하철표 사면 버스는 공짜라니까 영국은 지하철 이외의 대중교통 수단은
황인가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덧붙이자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대중교통수단이 다양하게 발달해서 필요와 형편에 따라 골라타기 좋게 돼
있다는 거다. 영국 택시는 여섯 명까지 탈 수 있다. 택시요금은 내려서 낸다.
우리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잘만 뛰면 돈을 안 내도될 텐데. 운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늙었고, 결정적인 것은 우측에 운전대가 있으니까 도망 가면 아무래도
출발이 늦잖아. 007 영화처럼 혹시 차에 총 달린 거 아닐까? 운전대로 방향을
조정해서 피용!!! 007 영화에 그런 신무기들이 많잖아. 영국이니까.
빈 택시가 시내만 돌아 다니는 대신 시내에서 지하철로 30분이나 한시간쯤
걸리는 곳에 나갈 때는 미니 캡이라는 걸 이용할 수 있다. 밤에는 그걸 타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자가용과 마을버스를 합친 것 중에 좋은 것만
골랐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종의 허가받은 나라시다. 멀리 갈 때는 그게 싸고
편하다. 지하철이 끝날 때까지 구경하는 경우에는 말이다. 어디서 타느냐고
물으면 동네 사람들이 다 가르쳐준다. 스위스 시계 근처에 있고 플래닛
할리우드 앞에도 있다.
나도 한번 민박집을 찾느라고 미니 캡을 타고 정신없이 왔다갔다헤맨 적이
있다. 미니 캡 운전사가 자리를 몰라서 30분 이상을 헤맨 것이다. 우리는
미안해서 내릴 때 팁을 많이 줬는데 기사가 굉장히 쭈뼛거리면서 돈을 받는다.
나중에 유학생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차비를 왜 줬냔다. 목적지까지 데려다준
게 아니므로 안 줘도 된다는 거다.

제6장 아비뇽 축제를 보니 눈물이난다
커다란 이태원 쇼핑센터 같은 안도라
안도라에서 버스를 타고 넘어가는데 2.107미터라는 팻말이 보인다. 세상에
태어나서 비행기로 말고 제일 높은 곳을 지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내가 여러 사람들한테 백두산 높이가 몇이냐고 물어봤는데 대답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더라는 사실이다. 거참 안타까운 일이지. 거의가 모른다. 2.774미터라는
길. 대학생 아해들도 통 모르더라고. 그런 거를 .
우리가 놀러 다니다 보면 놀러 갈 때의 기분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무조건 놀러 간다고 기분이 다 똑같은 건 아니라는 얘기다. 산에 가는 기분
다르고, 강에 가는 기분 다르고, 바다에 가는 기분이 다르다. 산에 갈 때의
기분은 뭘랄까 좀 힘들잖아. 그러면서도 성취감 같은 게 있고, 바다에 간다면
좀 설렌다든가 하면서 그 느낌이 또 다르고, 강이면 또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잠긴다든지 해서 다 다른데 이 세가지의 공통점은 어쨌든 좋다는 거다.
어딜가든.
안도라 갈 적의 기분이. 우린 유럽여행을 갔잖아. 그러면서도 여행중에서도
꼭 어딘가 산엘 놀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는 거야. 배낭 여행자들이 주로
관광지만 다니다가 자연, 산 쪽으로 가니까 색다른 기분으로 갔다는 거지.
안도라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마을이고 온 동네가, 도시 전체가 면세
지역이다. 도시국가이기도 하다.
여기서 재미나는 거는, 산을 하나 넘어가야 되는데, 어떤 산이냐 하면, 왜
만화영화를 보면 뾰족한 산이 있는데 마치 실을 잡아당기면서 종이를 돌리면
심이 나오는 색연필처럼, 딱따구리나 뭐 이런 애들이 삥삥 돌아서 올라가는 산
있잖아. 그러 산을 올라가야 되는 거다.
안도라라는 도시국가는 말하자면 커다란 이태원 쇼핑센터라고 생각하면 된다.
막상 가보면 쇼핑센터만 있으니까 우리 같은 배낭여행하는 사람들한테는 별
볼일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담배들이 굉장히 싸다. 물건을 사면 CD를
끼워준다든가 담배 끼워주기도 한창이다. 술 한병에 티셔츠, 모자, 볼펜 심지어
우산까지도 끼워준다.
우리는 쇼핑 외엔 볼 게 없어서 왔다갔다하다가 그냥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 왔다 간다는 것만으로 의미르 두고 돌아가버릴까 어쩔까 망설이다가 결국
'볼 만한 게 하나는 있겠지' 하는 생각에 하룻밤을 자봤다. 그랬더니 정말
근사한 게 있긴 있었다. 온천인데, 현대적인 풀장이면서 사우나 시설에
디자인이 정말 끝내줬다. 실내 실외가 다 돼 있는데 차갑게 되는 데도 있고
뜨겁게 되느 데도 있고 아주 경치 좋은 데 자리잡고 있다. 스페인 돈 500을
넣어야 락커 문이 잠기는 데 나중에 그 돈 도로 찾아서 수건을 빌리면 된다.
300이다.
우리는 그렇게 온천을 잘 했는데 안도라에서 만난 노르웨이 노처녀들은
온천이 있는지도 모른단다. 그럼 이틀 동안 뭐했냐니까 쇼핑만 눈물 나게
했단다. 그러게 노르웨이 여자나 한국 여자나 여자는 여잔가봐.
우리는 나라마다 토속음식을 먹어보려고 무지 노력을 하고 찾아다녔느데
안도라에서는 못 먹었다. 중국 음식점에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도라의
토속음식은 뭘까 떠나오는 날 아침에 생각이 들었다. 안도라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여기 토속음식은 혹시 나물이나 버섯볶음이 아닐까.
호텔에 들어가 방을 잡는데 이 아해들은 스페인어를 쓴다. 영어를 도대체 못
알아듣는다. 할 수 없이 이 아해들이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하면 우리도
한국말로 하자그래 갖고 한국말로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산이 잘 보이는 전망 좋은 곳으로 줘. 알았어?" 그러자 아해들이 알아듣는다는
스페인어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말야. 시끄러우면 절대 안 돼 알았지?"
이러면서 '돈은 깎아줘야 되고, 싼 방이어야 되고, 더블이어야 되고, 막 그런
식으로 한국말로 쉬지 않고 둘이서 돌아가면서 얘기 했는데 결국엔 우리가
원하는 방을 순 한국말로만 해서 얻어 들었다. 그래, 호텔와서 방 얻었으면
됐지. 스페인어 못한다고 기죽을 것 없다. 호텔에서 방 주는 아해하고 토론
벌일 일 없잖아???
키를 딱 받아서 방에 들어가 창을 여니 전망이 정말 좋다. 멀리 높은 산이
보이고 가까이로는 깎아지른 벼랑에 절묘하게 지은 집들이 아름답다. 잠시 누워
텔레비젼이라도 보려고 하니 우리의 시골 여인숙에도 있는 텔레비젼이 없다.
다른 데는 있는지 몰라도 우리가 묵은 호텔에는 없다. 습관적으로 심심하면
텔레비젼을 켰는데 정말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래! 여기까지 와서 무슨
텔레비젼이냐. 자연에 와서 자연을 감상하느 게 낫지!" 하면서 창밖을
내다보니 정말 산의 모습이 장관이다." 이런 데 와서 무슨TV냐 " 하는 주인
아저씨의 배려가 새삼 고맙지는 않고 깊은 뜻은 알겠다(나중에 보니까 텔레비젼
보는데가 로비에 따로 있었다.)
석양의 하늘, 구름, 자세히 들으면 들리는 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 정말
좋다. 서점에 가면 책 계산대 옆에 늘 쌓여 있는 엽서와 책을 본 적이 있다.
엽서만 한두 개 살 뿐 책은 안 샀는데 <우리 꽃 백가지> 책을 사서 꽃 이름을
외우리라는 결심을 산으로 쌓인 안도라에 와서 했다. <우리 꽃 백가지>도
사야지!!! 여기 와서 보니까 산에 나무들도 많고 이름 모를 나무가 울울창창이
있다. 이름 모를 나무라고 얘기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그걸 사서 보고 좀
구체적으로 쓰는게 좋지 않겠나 생각을 하게 된 거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습관적으로 머리맡에 리모콘을 찾으려다가 " 아참, 여긴
없지 " 하면서 창문을 연다. 근데 나는 이럴 때 자꾸만 딴 생각이 든다. 혹시
우리 방 것만 고장 나서 수리 맡긴 건 아닐까???
창을 여니 온 산에 눈이 와서 하얗다."간밤에 눈이 많이 내렸네!" 그런데
오후 2시쯤 뚤루즈에 가니까 "아이고 더워 미치겠네 "다. 간반에 눈이 많이
내렸네 해놓고 아이고 더워 미치겠다 그러는 게 여행자들한테나 가능한 거잖아.
그것도 하루에 말이지.
안도라 역사 연대기를 들어보는 역사공부도 좋지만 안도라 자연 속에
묻혔다가 설명 안 듣고도 저절로 나오는 감탄만 하고 오는 것도 좋은 일이다.
나도 여행이라며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고 있지만, 입센을 보고 싶고,
안데르센이 인어공주, 성문 앞 우물 곁의 보리수를 보고 싶고, 노트르담의
꼽추를 보고 싶고, 애국심의 네덜란드 소년, 오줌누는 소년을 보고 싶지 역사를
듣고 싶지는 않더라!
그러니까 우리가 여행을 다니면서 쉴 줄도 알아야 된다는 거다. 내가 보기에
외국 나가는 거 처음이면서 배낭여행 나오는 이들이 8,90퍼센트는 될 거라고
추정을 하는데, 그래서인지 관광을 해야 되는 곳과 쉬어야 할 곳을 구분을
못한다. 가령 안도라라든가 니스, 모나코 같은 곳은 휴양지기 땜에 정말 휴양을
해야 한다. 쉴 줄도 알아야 더 잘 보이는 거다.
니스 해변에서 한국 여학생 식별하는 법
니스에 가면서 우리의 고정관념은 바닷가에 있는 호텔은 비싸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쌀 거라는 거였다. 또 호텔에 수영장이 있으면 비싸고 없으면 쌀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가 않다. 바닷가 가까운 곳에 있어도 싼 호텔들이 많다.
한 시간쯤 바닷가를 거닐어보면서 호텔을 선택하는 것도 괜찮을지 몰라!!!
수영장이 없는 것같이 보이는데 지붕에 수영장이 있는 호텔도 있고,바닷가에
있는 우라지게 비싼 호텔이지만 수영장이 없는 곳도 있다. 꼭 참고해라!!! 니스
역 옆에도 호텔들이 있는데 거기가 되레 비싼 데도 있다.
언뜻 보면 중국 사람 일본 사람 한국 사람 구분이 잘 안 갈 적이 많은데 니스
해변에선 틀림없이 우리 아해들을 구분하는 요령이 있다. 멀리서 보면
백사장에서 청바지를 입고 누워 있는 여학생들이 있는데 그런 아해들은
백발백중 한국 아해들이다. 해변에 선탠하러 내려가다가 내가 먼저 여자
아해들에게 말을 걸었다."너 한국 사람이지?""네!"하는 대답이 바로 나온다.
전부 수영복 차림이었는데 그네들만 청바지를 입고 누워 있었다. 우리 아해들은
왜 벗는걸 싫어하는 걸까?
니스 해변엔 벗은 아해들이 굉장히 많다. 대부분 윗도리는 훌러덩 벗은
모습이다. 이젠 처도 같은 편이 되어 "저기 봐! 저쪽이 젊은 애야" 하고
손짓으로 가르쳐준다. 배낭족 여자 아해들을 세 명 만났는데 대개 다
민망하다고 그런다. 처음에는 자기네들도 야외에서 벗었다는 거에 대해서
신기하게 생각하고 쳐다보고 그랬는데 이젠 그저 그렇단다. 하기야 여자 배낭족
아해들 지들끼리는 목욕탕에서도 보고, 볼 기회가 많잖아. 그러니 별 신기하게
생각 안 할 수 밖에.
그런데 정작 네덜란드 바닷가에서 만난 한 한국 할아버지는 여자 아해들이
옷을 홀랑 벗고 있는데 욕을 하고 난리다."자지도 쪼끄만 놈들이...
계집년들이..." 막 그러는 거다. 듣다보니 화가 난다. 남이야 크든 작든, 벗든
입든 무슨 상관이야. 아니 그러면 자지가 크면 내놔도 된다는 거야? 작다고
흉보면서 거거 왜 서있어. 큰 놈만 장땡인가. 유머야 뭐야?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그러고 보니 브리즈드 바르도도 미친년이다.남의 나라에서 개를 먹든
말든 지가 무슨 상관이냐?!!
언젠가 야구해설가 하일성씨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전화 인터뷰를 하는데,'배꼽티를 입은 여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을 여러 명에게 했단다. 젊은 아해들은 "어떠냐?
시원하고 좋지 않으냐?""유행이다" 등등의 대답이 나왔고 나이 드신 분들은
말도 안 된다는 둥 도덕군자님들의 말씀들이 여러 명 오갔는데 그 중 50대 한
분에게 질문을 하니 입가에 웃음이 가득 띤 목소리로 대답하시기를 "우리야 뭐
고마울 따름이죠!" 하고 대답을 했단다.
마찬가지다. 니스 해변의 윗도리 벗고 누운 아해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여행의 피곤함을 풀어주는 피로회복제 박카스라고나 할까 헤포스라고나
할까?(헤포스는 최근 유럽여행 중에 파리까지 연락이 와서 광고 찍어간
피로회복제 이름이다. 내가 헤포스라는 걸 한국에서 광고를 좀 했는데 유럽여행
간 걸 알고 이 팀들이 파리로 온 거야. 유럽에서도 헤포스가 좋더군요. 이런
카피를 써가지고 와서 찍었지. 근데 실제로 유럽에 가니까 있긴 있어. 똑같은
게. 나는 찍으면서도 남들이 '전유성이 자식이 유럽까지 가서 광고를 하고
말야. 몇 푼 건지는구나' 뭐 이런 생각하겠지 했는데, 실제로 몇 푼 건진 걸로
잘 쓰고 왔어. 더 재미나는 게 있는데 그게 뭐냐면, 헤포스 찍을 데 거기
약사가 흑인이었거든. 그련데 여기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얼굴을 백인으로 바꿔
버렸어.)
니스 해변은 모래가 아니고 자갈이다. 우리가 들어간 시간이 7월 11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였는데 물이 굉장히 차다. 바닷가에 토막을 죽 쳐놓고
입장료를 받는데, 레스토랑도 만들어놓고 한 게 꼭 우이동 같은 데 서 파라솔
쳐놓고 자릿세 받는 것 같다. 자갈이라 안 좋은데 하나 좋은 점은 모래가 안
묻는다는 거다. 대신 무진장 배긴다. 그냥 알아서 자갈밭에 누우면 되는데
그렇지 않고 매트리스에 누우려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된다. 호텔에 묵는
사람은 호텔에서 매트리스있는 곳에 들어가는 표를 하나 준다.
우리는 첫날은 그냥 자갈밭에 누웠다가 져녁에 호텔로 들어오면서 그런 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그러면 그렇지! 이런 게 있었구나'하며 그 다음 날 표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해변을 주인 아주머니에게 물어서 두 장이면 되는 것을
'혹시 들락날락할지도 몰라' 하면서 열댓장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호텔에서
지정해준 해변을 찾아갔다. 표를 내고 들어가려고 하니 이건 입장권이 아니고
호텔에서 발행하는 할인권이란다. 돈을 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돈을 안
받을 리가 있나??? 티켓 열댓장 가져온 것이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호텔에 매트리스가 다 있으니까 프론트에 가서 달라고 얘기해
받아가면 된다고 그런다.이런!!
호텔에서 할인권 준 데로 찾아가 누웠는데 웬 늘씬한 여자가 수영복을 상표
꼬리가 달린 채로 입고 걸어온다. 이상해서 쳐다보니 다른 수영복을 갈아 입고
역시 상표를 달고 왔다갔다하며 걸어다닌다. 알고 봤더니 혼자서 수영복을 팔러
다니며 일인 패션쇼를 하는 것이다. 혼자서 빙빙 돌고 갈아입고 다시 오고,
정말 쇼다. 갈아입는건 어떻게 해결하나 했더니 아랫도리는 미리 입은 수영복에
4개, 5개 계속 겹쳐 입고 ㅇ도리는 서슴없이 벗고 갈아입는다. 야, 탈의실 이용
안 해서 편리하더구만. 사입는 아주머니들도 더러 보인다. 그러고 보니 유럽
여자들은 해변에서 수영복 갈아입기 정말 좋다. 밑은 큰 타월로 가리고 위는
누가 보든지 말든지 훌러덩!!!벗으면 끝이잖아.
자갈뿐인 니스 바닷가에서 큰 타월 한 장이랑 매트를 깔고 누웠는데도 등이
비긴다. 좋은 건, 벗고 누운 여자 아해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는 거다.
"자갈밭에 누워 외로운 물새 될까, 뚜뚜두 뚜두 뚜두뚜뚜두" 이 노래 부르던
대학가요제 출신의 높은음자리 아해들은 지금 뭘하고 있을까? 자갈같이 많은
연예계의 신인들!!!
아이디어 하나, 걸어다니는 수영복 말고도 니스 해변 상점에는 수영복 입은
마네킹이 굉장히 많이 진열돼 있다. 거기다 모래를 묻히면 더 실감나지
않을까??? 아무래도 엉덩이나 등짝 같은 데 모래가 좀 묻어야 해변 분위기가
나지 않겠어?
이태원서 위조품 사가는 프랑스 위조방지조사단
니스에 구치 가방 파는 데가 있다.그냥 구경하러 들어갔다. 일하는 여자가
8만 프랑짜리를 1만6천 프랑이라고 말한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 몇 번
확인을 해도 1만 6천 프랑이란다.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저거보다 좀 작은
가바은 없냐고 하니 카탈로그를 꺼내어 여기저기 넘겨가면서 값을 설명해
준다.거기에 8만 프랑이라고 씌어있다.조금 전에 1만 6천 프랑이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하니까 자기가 잠시 착각을 했단다. 우리는 구치 가게를 나오면서
동시에 말했다."아까 1만 6천 프랑이라고 할 때 얼른 살걸!"하고. 잠시 후
"그런데 돈은 있나???"하는 말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여기 가이드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구치 같은 것은 파리에서도 없어서 못
판다는데 한국 관광객들이 와서 집에 하나씩 다 있다고 하니 돌겠단다.
겔랑이라는 화장품은 무조건 매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손님 봐서
들여보낸다고 하니 알아서 차려 입고 가라는 거다.
구치나 피에르 가르뎅 같은 프랑스 제품을 위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사단이 전세계로 파견이 된단다. 우리나라 이태원에 온 조사단은 자기 나라
제품이 하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걸 보고 감탄을 한단다. 그래서 위조품을
사가지고 와서 마누라에게 선물하기도 한 대나??!! 그래서 그런 것들만 모은
위조 박물관이 파리엔 따로 있단다. 파리 가면 꼭 봐야지!!!(나중에 가서
봤더니 볼펜서부터 속내의, 팬티까지 전세계에서 프랑스거랑 다른 나라 유명
브랜드를 위조한 제품들이 다 진열돼 있다. 우리나라 제품도 적지 않다. 이런
박물관엔 없어도 되는데 왜 꼭 끼는지 원.)
세계적인 휴양지라 부자들만 올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니스는 물건 값이
엄청나게 비싸다. 마음에 들어서 큰맘 먹고 조끼를 하나 사러 들어가면서
500프랑 정도면 무리를 하자 했더니 2,700프랑이란다. 거지 같은 놈들. 그
돈이면 내가 두루마기를 하나 만들어 입겠다.
간밤의 숙취로 새벽잠에서 깨어났다. 속이 안 좋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이 안 온다. 화장실에 갔다가 잠이 안 와서 TV를 켰다. TV를 보다가 스르르
잠이 오는데 끄기가 싫어서 개기다가 TV소리에 잠을 못 이뤘다. 비몽사몽간에
한 시간 반을 버티다가 TV를 끄고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이런 세상에! 고 잠시
사이에 잠이 달아나서 눈만 말똥말똥!!! 밤을 꼬빡 새웠다
국영 카지노로 먹고사는 모나코 아해들
모나코라는 나라는 앞이 바다 그리고 항구다. 산 중간에 길이 길게 나 있는
게 부산 동광동 같다. 언덕과 언덕 사이에 구름다리 길 같은 게 있으면서
한쪽은 그렇게 일방통행으로 만들어놓고 밑으로 내려가면서 계단을 만들어서
희한하게 해놨는데, 지네둘 딴에는 머리 굴리고 굴려서 합리적으로 만든
길이겠지 뭐!
해양박물관에서 버스를 타고 카지노에 내려 달라고 버스기사에게 부탁을
했다. 그런데 그놈이 알았다는 것처럼 얘길 하더니 말을 안 해줘서 종점까지
갔다. 느닷없이 종점이라고 내리라는 거다! 어쩐지 이상하게 버스가 산꼭대기로
계속 올라가더니,"우리가 카지노에 간다고 했잖아! 못내려!!" 우린 그러면서
안 내렸다. 책 내용을 보면 카지노를 하면 거의 다 잃는다는 얘기가
있거든.그런데 그렇게 잃어주는 게 모나코 시민들을 돕는 길이라고. 얘네들은
그걸로 먹고사니까 하는 자부심에 약간의 건방을 떨면서.
사실 여기는 국민들이 세금도 내지 않고, 국가예산 자체가 관광수입과 국영
'그랑카지노'의 수입이란다. 국가차원에서 도박을 권장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국가의 사활을 걸고 도박을 장려해야 되는 이상한 운명의 나라인 것이다."우린
돈 낼 수 없어 임마, 다시 확실하게 해"그러고는 그 버스를 타고 도로
내려왔다. 어떻게 보면 버스비 싼값에 몬테카를로를 한바퀴 돌아본 셈인데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잠시 후에 카지노가 있다는 곳에 내렸다.
도박장의 교훈이 있는데 뭐냐면 늦게 들어가서 늦게 나오라는 것이다. 성질
급한 놈이 빨리 들어가서 빨리 잃고 빨리 나온다는 뜻이겠지? 라스베가스하고
다른 게 거긴 왕립 카지노장 하나뿐이 없다. 또 라스베가스는 아무 호텔에나 다
들어갈 수 있는데 여긴 다르다. 학생들은 거의 다 슬롯머신(빠친꼬)을 하는데
한도가 100프랑이다..
왕립 카지노 장에 들어가니 괴장히 으리으리하고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다르다. 역사가 있는 고전적인 건물이다. 슬롯머신은 문간방에 있고 정식 게임
방은 안에 있단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란다. 슬롯머신은 무료다. 도박하러 온
것도 거의 잃을 확률이 많은 판에 입장료를 내라니! 정말 도둑놈들이라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도박으로 먹고사는 동네라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돈을 내려고 하는데 입장료 받는 아해의 태도가 건방지기 짝이 없다. 입장료
받는 자리에 앉아서 지네들끼리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손님에게는 눈길 한 번 안 주고 말만 "한 사람당 5프랑 주세요" 하면서 사진
보는 데 열중이다. 뚜껑 열리데! 이게 기분을 상하게 해서 돈을 잃게 하려는
고도의 상술인다? 돈을 눈앞에 보여주니 그때야 돈을 쳐다보며 사람은 역시 안
쳐다보면서 패스포트를 보여 달란다. 우리는 니스에서 가벼운 차림으로
카메라와 돈만 들고 출발을 하였으므로 당연히 여권을 안 가지고 갔고
도박하는데 무슨 패스포트를 보랴 싶어서 챙기지를 않았다. 근데 안된다는
것이다. 이거 사정을 해 볼까 하다가 '관두자 집에 가자' 하고 두말없이
돌아서는데 이 물건이 아직도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뚜껑 열린 머리에서
김이 줄줄 나기 시작한다. 모나코를 갈 때부터 "두 시간만 하자""한 시간만
해라""시간이 문제냐 돈이 문제지!" 하고 티격태격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열받는 일만 생기다니.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돌아오면서 택시기사에게 하소연을 하였다."너희
나라 너무한 것 아니냐! 무슨 도박장에서 패스포트를 챙기냐! 우리는 니스에
놓고 왔기 때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서는 길이다." 그랬더니 기사가 하는
말,"그럼 패스포트 가지고 다시 올 거니" 그래서 한국말로 쏴줬다."깠니?
이놈아! 다시 오게?!"
내려서 택시요금을 보니 144프랑이 나왔다.200프랑을 내니 이 자식이
150프랑만 주면서 6프랑을 꿀꺽해버리네! 기차역에서 물을 사러 갔는데 물값도
제일 비싼 15프랑이다. 이래저래 열받는 게 쓰리고에 피박 쓴 기분이다. 꾹
참고 기차를 기다리는데 이제는 기차까지 연착이다. 분명히 안내판에는 1번
플랫폼이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기차가 3번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거 있지.
고스톱 쳐서 돈 잃고 광값 물어주는 일까지 남아 있었던 것이다. 떠날 때까지
끓는다 끓어! 이것도 무슨 도박하면서 번호 맞추기 하는 거냐? 1번 예상해 놓고
3번이면 왕창 쓰고 ----.
모나코에서 돌아온 후 열받아서 그럼 니스에도 카지노 시설이 있는가
알아보니 몇 군데 있단다. 가자. 가서 썩은 무라도 한 번 찔러 보다 하고
우리는 물어 물어 그날로 도박장을 찾아갔다. 그런데 입구까지 갔는데
출입금지란다. 처의 반바지가 안된다는 거다. 그냥 반바지는 되는데 청바지를
너덜너덜하게 자른 '삘리삘리'는 안된다는 거야. 그래서 그걸 안으로
집어넣었다."그럼 이렇게 하면 되느냐?"고 했더니 윙크를 하고 봐줄 테니
들어가란다. 들어가서 게임 룸을 찾았더니 여기는 정장이 아니면 안된단다.
입장료는 없더군! 양복 입은 체면에 돈 잃고 깽판 칠 수 없게 하려고 그런
건지! 그러면서 슬롯머신은 지하에 가서 할 수 있단다. 들어갔지. 200프랑을
바꿨지! 슬롯머신에 않았지. 3분도 안 되어 모두 갖다바쳤지.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김샜다. 열받네. 하루 종일! 그날 밤 나는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영화처럼 콘티를 그리는 거야. 음, 딱 들어간다. 그런데
걸린다.
"여기 양복 입은 사람 아니면 안되는데요"
"그래? 그럼 지배인 좀 불러 줘."
"제가 지배인인데요."
"음, 그래. 자네가 지배인인가? 양복을 안 입어서 안된다면 말이지 이 호텔에
양복집은 있는가?"
"없는데요."
"그래 놓고 무슨 장사를 하려고 그러나. 자네 종업원 중에서 나하고 체격이
비슷한 친구를 빨리 찾아서 그 친구 양복을 내게 가져오게. 내일 아침 내가 전
종업원의 유니픔을 바꿔주겠네."
헛소리 팍!팍!
유럽 최대의 슈퍼마ㅋ에서 돌멍게를 발견하다
칸느, 니스, 모나코는 모두 근처에 있다. 7월 14일 예정인 파리의 혁명기념일
전야제 행사 때문에 세 군데 중 칸느를 포기하기로 해싸다. 칸느영화제가
5월초에 이미 끝나버려서 가도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니스를 가면서 칸느를 포기한 것이 못내 아쉬워서 헬리콥터를 타면 10분이면
간다기에 한 번 타보려고 한 사람 앞에 200프랑 정도면 무리를 해보기로 했다.
가는 시간을 물어보니 시간이 따로 없고 손님이 5명 모이면 간단다. 5명까지
기다리기 귀찮거나 바쁘면 2천 프랑에 28프랑 세금을 내면 아무 때나 출발을
한단다. 쉽게 말해 양재동에서 성남 가는 총알 택시와 운영체제가 비슷하다.
총알 헬리콥터로구만. 하고 씁쓸하게 한마디하고 칸느를 다시 한 번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기차 타고 칸느를 지나갈 때 열심히 차창 밖을 내다보기로 했지!
차창 밖으로 칸느 가는 헬리콥터를 바라보기만 했네!!!
모나코에는 유럽에서 제일 큰 슈퍼마켓이 있는데 거길 갔다가 돌멍게를
발견했다. 아마 자연산일 것이다. 해양수족관에선 해삼을 발견했다. 자개
공예품도 발견했는데 전복 껍질로 만든 게 우리랑 거의 똑같다.
모나코 해양박물관을 60프랑 내고 관람하다가 배낭족 학생들을 만났다.
60프랑, 이거 좀 비싼 거 아니냐고 했더니 하는 말이 "학생은 30프랑인데요."
열받네. 학생이면 덜 보냐??? 그 학생들 나보다 먼저 들어가서 나 나올
때까지도 안 나오던데. 모나코 기차역에서 파리로 가려고 차를 기다리고 서
있는데 건너편의 한국 배낭족 여자 아해들이 로마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플랫폼에서 큰소리로 말한다."로마에 가면 진짜 소매치기가
많아요!!"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한 번쯤 가벼운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도 인생의 살아
있는 교훈이 되지 않을까. 여행이란 예측할 수 없는 일을 극복해나가는 용기와
지혜도 필요한 것이니까??? 그러나 이게 말은 그럴듯하지만 남이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나 해줄 수 있는 말이지 나한테 그런 일이 닥치면 얼마나
열받을까???
7월 11일, 모나코에서 기차 타고 니스에 같이 온 건국대 건축공학과 다니는
학생. 오늘 밤은 노숙할 거라고 하던데 노숙은 잘했을까?
아직도 사람이 사는 까르까손느 성
어느 성이나 다 특색이 있겠지만 내가 다녀본 성 중에는 프랑스의 까르까손느
성이 참 인상적이었다. 다른 성들은 역사적인 유물들이 주종을 이루는데
까르까손느 이 성은 그 당시의 자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게 보였다. 그 사람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가게가 고풍스럽고 다른데서는 안파는 상품들이 눈에 많이
띄어서 더 좋았다.
파리의 웬만한 성에는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는데 까르까손느 성에는 입장료가
없어서 이게 웬일이냐며 좋아했는데 한참 들어가니 입장료를 받는 곳이 나왔다.
역시 내가 순진해. 장사하는 곳은 이익금이 입장료인데. 입장료 받는 곳은
장사하는 데가 아니고 역시 유물은 보여주는 곳이다. 그러니 입장료를
받지이--(개그맨 이홍렬 말투)!
내가 거길 간 이유는, 이름이 재미있어서였다. 80년대말 '까르까손느'라는
이상한 이름의 카페가 이태원에 있었다. 개그맨 김한국이 개발한 카페인데
실내장식도 제법 돈을 들였고 분위기도 근사해서 자주 갔었다. 그땐 무슨
말인지도 몰랐는데 파리에 와서 남부지방 지도를 보니 까르까손느라는 지방이
있어서 꼭 가보고 싶어서 갔다 온 거다.
김한국이가 어느 날 까르까손느 카페에 갔는데 커다란 쥐 한 마리가
지나가더란다. 한국이가 놀라서 종업원에세 "이 카페에 쥐가 왔다갔다 하면
되냐?" 그랬더니 종업원이 정색을 하고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그러더란다.
"아니예요. 다람쥐예요." 분명히 쥔데 증거가 없으니 어떡하나? 주인 아저씨가
취미로 기르는 다람쥐라는 데 말이다.
유럽에서는 택시가 우리처럼 아무데나 막 다니지 않는데, 까르까손느 택시도
역시 그랬다. 성에 가면서는 반나절밖에 시간이 없어서 역에서 택시를 불러
탔다. 택시를 타면서 보니 택시정류장에 택시회사 전화번호가 크게 써 있어ㅛ서
나중에 그 번호로 택시를 다시 불러서 탔는데 손님들을 위한 배려가 아주
그만인 아이디어였다. 택시 기사에게 우리가 성을 한 번 보고 나오는데 밖에서
기다려줄 수 있냐고 했더니 기다리면 돈이 많이 나오니까 전화하라면서
가르쳐주고 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이 기사를 다시 기차역에서 만나게 됐는데
영어를 조금 할 줄 알길래 영어를 못 알아 들으면서 성질을 부리는 역무원에게
통역사로 잘 써먹었다.
이 역무원 놈이 웃기는게, 보통 유럽 아해들에게 길을 물어볼 땐 종이에
목적지를 보여준다고. 그러면 대부분은 알아 보고 손짓 발짓으로라도 얘길
해주거든. 그렇지만 간혹 영어로 이야기를 하면 못 알아듣고 성질을 내는 놈도
있다. 이놈이 그런 놈인데 막 성질을 부리는 거야. 창구에 있는 자식이. 더럽게
못된 자식이더라고. 보통 지도에 표시하면 다 알아듣고 응해주는데 못 알아듣고
신경질을 낸 거지.
그건 자존심하고 관계없는 거라고, 지가 못 알아듣기 땜에 그런 거잖아.
자식! 우리는 성질 없는 줄 아냐? 그래서 사람 사는 데는 좋은 놈도 있고 나쁜
놈도 있는 거지. 우리만 불친절하거나 무뚝뚝한 게 아니라는 거다.
아비뇽 페스티벌을 보니 눈물이 난다
아비뇽 페스티벌. 한국에 알려진 이름으로는 연극 페스티벌이다. 내가
연극연출을 전공했잖아. 그러다 보니까 아비뇽에서 제일 많은 사진을 찍었고
감동도 제일 많이 받았고 거리 퍼포먼스 그런 것들을 보면서 마구 눈물이
날뻔했다.
아비뇽 연극제는 젊음이 철철 넘친다. 거리공연, 마술사, 차력사에 별의별
공연이 다 있다. 그렇다고 젊은이들만 오는 게 아니라 나이 든 관광객들도 많이
온다. 정말 좋은 기획이다. 도시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보기 좋다.
그러니 부수적으로 레스토랑 호텔 옷가게 등등 도시경제가 살아난다. 대학로에
소극장이 많아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카페가 생기고 사람들이 넘쳐나서
젊은이의 거리가 되듯이 말이다. 작년 한 해만도 축제 기간 중 이 도시가
벌어들인 돈이 우리 돈으로 수백억 원이 넘었다니 그야말로 '도랑 치면서
가재도 잡는' 짭짤한 기획이다. 굳이 상술로 치자면 제발로 돈을 들고 찾아오게
만드는 고급상술이 아닌가.
여기는 소극장이 너무너무 많지만 찾기도 쉽게 해놨다. 공연자들이 자기네
연극을 알리기 위해 준비해온 것들도 다양하다. 포스터 전단은 물론이고 길에
나와서 벌이는 홍보전도 치열하다. 경찰 두 명이 나오는 연극은 출연자가 정말
경찰차를 타고 나와서 광고지를 나눠주는가 하면 아주 귀엽게 생긴 미국 극단의
여자 아해는 자유의 여신상 옷을 입고 거리에 서서 여신상과 같은 포즈로 서서
전단을 나눠주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빨간 콩 한 알을 나눠주면서 이따가
가져오면 20프랑 할인을 해준다고 한다.
가짜 피아노를 손수레에 끌고 다니면서 음악극을 광고하는 아해들도 있다.
역시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빨래집게를 옷에 집어주면서 공연장에 와서
보이면 무료라고 선전한다. 우리는 그 집게를 가지고 저녁에 음악극 공연을
보러 갔는데 말 그대로 공짜였고 굉장히 재미있었다. 장난 같은 빨래집게지만
안 가지고 온 사람에게는 85프랑을 확실하게 받는 것이다.
또 3인승 자전거를 만들어서 앞에 한 명, 뒤에 한 명이 타고 가운데는
뼈다귀로 사람을 만들어서 해골이 자전거 가운데 타고 바퀴를 젓게 만든 것도
있고, 어떻게 구했는지는 몰라도 할리 데이비슨이라는 최신형 오토바이가 20여
대 도시의 길을 가로지르고 폭주족들이 내는 소리를 내면서(소리만 내면서)
아주 천천히 달리기도 한다(천천히인데 달린다는 표현이 맞나?). 천천히
오토바이가 나가면 모든 자동차는 할 수 없이 오토바이 뒤에 있은 죄(?)로
천천히 갈 수밖에 없다. 폭주족이라 해도 안 좋은 것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오토바이를 가지고 그것도 젊은 아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할리
데이비슨으로 연극광고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아주 오래 전 70년대 초반, 에저또 극단이라는 데서 길거리 연극을 처음
시도할 때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붙들려가던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막 나오려고
했다. 도시 전체를 연극 포스터로 가득 채운 연극제, 그것도 한 달 간이나
정말이지 부러워서 눈물이 흘렀다.
이 사람들은 포스터를 아무렇게나 막 붙이는 것이 아니고 라면박스를 뒤에
대고 앞에다 포스터를 붙이고 끈으로 달아놓은 것이 우리와 다른 점이다. 온
동네를 풀칠을 해서 붙이느 ㄴ게 아니고 또 남의 것 위에 다 겹쳐서 붙이지도
않고 벽에다 함부로 막 붙이는 것도 아니다. 광고 전단도 아무나 막 주지를
않는 다.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만 주면서 받은 사람에겐 꼭 설명을 해주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 연극을 볼 마음이 있든 없든 길거리에 막 뿌리다시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심을 보였으니 전단 받은 사람이 근처에 막 버릴 일이 또한
없는 것이다. 포스터 자체도 재미있게 상당히 많아서 종일 구경해도 지루하지가
않다.
포스터를 대강 훑어 보고는 미령이와 무슨 공연을 볼 것인가를 정하면서
심하게 변덕을 부렸다."이것 보자. 아니, 저것 보자. 안볼래 저것볼래. 이게
낫지 않을까?" 이걸 보러 극장을 찾아서 골목길을 가다가 "아니야, 저걸로 볼래
요건 또 어떨까?" 이 날리를 치니 처가 심하게 투덜댄다. 아깐 안 본다고
하더니 지금은 보자고? 뭐, 또 안본다고?"나도 미치겠더군
변덕을 부린 이유는 간단하다. 뭘 봐야 좋을지 모르겠는거야. 구경거리가
너무 많다 보니 말이지. 이걸 보자니 저것도 보고 싶고 저것저것 만힝 보고
싶어서, 나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서 그랬다. 결국 처는 음악극을 보자. 나는
연극을 보자고 주장하다가 둘이 합쳐진 뮤지컬을 봤다. 공짜 집게를 갖고 가
무료로 보게 된 음악극이었다.
그걸 보다 보니 그 옛날 유머가 하나 떠올랐다. 어렸을 적에 자기는 의사가
아니면 절대로 시집을 안가겠다는 여자 아해가 크더니 어느 날 군인한테
시집을가겠다고 그랬단다. 그래서 그 아버지가 궁리 끝에 군의관한테 시집을
보냈대나...
그 음악극이 아주 재미나는게 뭐냐면, 무대에서 셋이 노래를 한다. 이태리
가곡을 부르는 거다. 네다섯 명이 연주를 하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떡하니
조명을 받고 앞으로 나온다. 일절 끝날 때쯤 바바방 하면서 피아노 간주를
하면서 이 사람이 인사를 딱하고 들어가는데 그게 굉장히 멋지다. 그러니까
악기 연주 끝나고 노래가 나오는 1절이 끝나고 등장해서 피아노로 간주만 하고
바로 퇴장하는 거다
그리고 또하나는 피아노 옆에서 막 노래를 하면서 노래 부르는 사람이 피아노
뚜껑에 손을 대는 거야. 그런 경우 있잖아 왜, 그러면서 이 사람이 손을 탁
드니까 피아노 치던 사람이 왼손으로 피아노를 막 치면서 양복 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을 오른손으로 딱 꺼내더니 거길 막 닦는거야. 그리고는 손수건을 딱
집어넣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두손으로 피아노를 치는데 노래 부르는
사람이 또 거시기를 짚으니까 이 피아니스트가 이번엔 앞 주머니에서 슬그머너
권총을 꺼내더니 막 쏴, 그러자 총에서 물이 나오더라고 물총인거지, 노래
부르는 사람이 깜짝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는데 그걸 딱하니 넣고 다시
태연하게 피아노를 막 치는 거야. 그게 너무너무 재미있더라고.
그렇게 많이 웃고 즐겁게 본게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걸. 우리와 같이
뮤지컬을 보던 여자 하나는 그걸 보면서 갑자기 미친년처럼 크놋리로 웃는거야.
웃음소리 하나는 정말 무지하게 크더라고. 깜짝놀랐어. 하긴 웃는 것도 우리는
마음 놓고 못 웃잖아. 눈치나 보고. 그렇게 통쾌하게 웃는 걸 보니 놀라긴
했지만 좋아 보이더라고.
아비뇽 감옥일기 쓸 뻔한 이야기
쥐스킨트의 '향수'를 읽는 도중에 내 코에도 이상한 냄새가난다. 이게 무슨
냄새지? 코를 벌름거려본다. 짬뽕냄새다. 프랑스 아비뇽 호텔 3층에서
짬뽕냄새라니!... 아니야, 자세히 맡아보자, 고기 삶는 냄새같다. 우리 방이
3층인데 창문도 닫혀 있고 길에서 올라오는 냄새도 아닐테고... 둘러보니 앗!
배게에서 연기가난다. 침대 머리맡에 등이 하나씩 달려 있는데 그게 한 사람
앞에 하나씩 켜지게 되어있다. 새벽이라 스위치를 올리고 책을 보는데 옆
사람이 눈이 부시면 잠이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내 쪽은 그냥 놔두고 옆 사람
머리맡에 있는 등을 베개로 막아놓았는데 시간이 오래 지나 그만 베개가 탄
것이다.
연기가 본격적으로 풀풀 올라온다 얼른 베개를 들어보니 시꺼먼 등자국이
둥그렇게 나고 안에 있는 새털로 불이 옮겨 붙어서 타고 있는 중이다.'어머나
놀래라!!!' 얼른 온 방의 불을 켠 뒤 베개를 들고 화장실로 달려가 물 속에
집어 넣었다. 하마터면 세계여행이고 뭐고 바오하범으로 감옥여행을 할 뻔했다.
우리는 서둘러 체크아웃을 마치고 나왔다. 일부러 베개 태웠다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호텔을 무사히 빠져 나왔다. 역까지 걸어가면서 혹시
호텔에서 우리를 따라오지 않을까 별 걱정이 다 되었다.'아니지, 왜 따라와.
우리가 가려는 역에 먼저 택시를 타고 나와 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알리바이를 어떻게 만들지? 불을 켜놓고 샤워 후에 나오니 그렇게 되었더라고
할까? 아니야. 두명을 따로 불러서 조사하면 말이 달라질지도 몰라! 경찰이
도착해 한국말을 못하게 따로따로 떼어서 데리고 가겠지. 그렇다면 신문에
방화범으로 나오고, 고국에서 알게되고, 사람들은 궁금해서 입방아를 찧을테고.
여행가는 게 부러웠던 사람들은 우리를 고소하게 생각할 거야. 양락이가 한마디
할 것이고 성미도 깐죽거리겠지. 그렇다면 유럽여행, 아니지 아비뇽 감옥
일기를 써야지!!!
남의 문화 유산 답사기 2권에 계속

==============================
도서명: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2
저자명: 전유성


차례
제1장 여행에서 모범생일 필요는 없다
"지가 내 돈을 먹어, 대한 남아의 돈을?"
베란다를 좋아하는 유럽 아해들
여행에서 모범생일 필요는 없다
화장실 가는데 포크는 왜 주는거야
배낭족이 돈 써야 국력도 큰다
런던 가면 '미스 사이공'을 꼭 봐야하는 이유
루브르에선 액자만 보고 나와도 본전 뽑는다
베르사이유 궁전 입장권은 비싼걸 사라
유학생 아해들의 '슬픈 이별'
우리 가게를 '학교종이 통통통'으로 바꾸라구?
프랑스, 이것만 읽고 가도 본전 뽑는다.
서양 아해들 미소는 생존 본능이다.
제2장 내가 스위스법을 어떻게 알아?
아이 엠 소리라니, 개 소리지
웅프라우에서는 조조 할인을 조심할 것
가짜 신동엽이 왔다 간 스위스 곱창 전골집
"스위스 가서 호텔 문짝 부쉈대매요?"
내가 스위스법을 어떻게 알아?
번지 점프의 원조는 한국이다
배낭족 아해들과 오텔 팩 아해들
급류 타기는 인스부르크에서
좋은 건 베낄수록 좋다
오리 피하니까 백조 나타나네
제3장 헝가리 동물원엔 개나 소나 다 있다
헝가리 암달러상은 요런 수법을 쓴단다
나 죽은 뒤에도 저렇게들 살아가겠지
구라로 유명해진 부다 성의 피아노 카페
헝가리 와서 헝그리 됐네
헝가리 동물원엔 개나 소나 다 있더라
디즈니성은 왼쪽 길로 가라
뮌헨 호프브로이의 '죽이는' 장사 아이디어
체코 가는 사람들, 잠 푹자고 떠납시다
체코 환전소 앞에서 담배 피면 벌금문다
봉지쌀을 파는 나라. 체코
사진 찍으려면 엽서 먼저 사라
체코 아해들 스프레이에는 금지구역이 없다
체코에서 안 당하고 택시 타는 법
음악의 도시 빈과 거리의 악사들
누군가 손 흔들 때 못 보고 지나친 게 몇번일까?
인스부르크에도 산정호수가 있더라
제4장 시실리 마피아가 생긴 이유
파리에 돌아오니 낯익은 거지도 생기네
베네치아 골목길은 누상동보다 좁다
카푸치노가 수사들 옷 색깔이래
유럽 여행길에 가장 인상 쓴 곳
사라지는 건 대개 다 슬프다
이태리 밤 열차엔 하룻밤에 도둑이 몇 번 들어올까?
이태리 식당 종업원이 손님보다 먼저 밥 먹는 이유
집시 율법엔 도욱질도 죄가 아니래
이런 기술 놔두고 사기는 왜 치냐?
"고스톱 치다 광 먹고 싶어요"
시실리 마피아가 생긴 이유
아직도 불을 뿜는 에트나 화산
해삼 방귀 냄새라도 맡고 싶고나
아흐 지긋지긋한 도둑놈들
제 5장 우린 왜 심각한 동상만 있을까?
난생 처음 눈치 안보고 떠들어 봤네
늦게 배운 도둑질 날새는 줄 모르더군
박물관은 무료가 좋다. 산세바스찬처럼
전유성이 추리한 플라멩코의 원조는
발에 박힌 가시를 빼는 동상도 다 있더라
"나도 스페인제 양말 한 번 신어보자"
자랑하면 어때? 세상사는 재미지
나를 웃긴 유럽의 CF들
노는 날엔 노는거. 당연한거 아냐?
제6장 역사는 지우지 말자
전두환 노태우 글씨. 지우지 말자
황태자의 첫 경험은 어디일까?
하이델베르크 유학생들의 김치찌개
안 마실 수 없었던 유럽의 마지막 밤
이번 여행중 들른 파리의 마지막 장소
에필로그: 배낭여행 100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부록: 유럽 가기전에 봐야할 영화 32가지
전유성의 유럽 스케치
벼룩이 나와서 벼룩시장이래
세로로 선 가로등
표절하고 싶은 길거리 공연
나를 거쳐간 변기들
@ff
제1장
여행에서 모범생일 필요는 없다.
"지가 내 돈을 먹어, 대한 남아의 돈을?
한국인이 묵는 호텔마다 라이브쇼에 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수두룩하게 나붙어 있다."그래도 한국 사람들. 몰래 가요. 못
말려요." 웨이터의 말이다. 해외연수 나온 한 친구 역시 해가 지기
무섭게 가봐야겠다며 극구 나간다. 라이브쇼를 못 보면 암만 해도
그것 땜에 다시 파리에 올 것 같아서란다.
제일 인기가 있는 데는 삐갈이라고 섹스숍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캉캉춤의 발생지 몰랭루즈가 있고 그 길로 쭉 올라가면 파리의 남산
몽마르트 언덕이 있는 곳인데 "목사님도 다녀갔다고 자랑하는
삐갈의 스트립쇼!" 라는 가이드들의 카피로도 유명하다. 핍쇼라고
해서 돈 집어넣고 보는 각종 비디오에서부터 남녀가 실제로 뒤엉켜
해보이는 진한 실연까지 다 있단다. 클레이지 호스쇼가
소극장이라면 리도쇼는 대한극장이라고 할 만큼 분위기가
빵빵하단다. 금발 여자가 나와서 한잔 사달라며 바가지를 왕창
씌우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해야 된다고 웨이터가 당부를 한 곳이다.
삐끼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호객도 한다.
니스에서 만나서 우리 일행이 된 여학생들과 몽마르트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지하철을 타러다 보니 그 앞을 지나가게
됐다. 우리가 일본 사람인 줄 알고 삐끼 자식들 입에선 곧바로
"곤니찌와!"가 튀어나왔다."코리아야. 코리아. 우리는
코리아라구!" 그랬더니 그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미스터 김
들어와요!" 하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얼마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그럴까. 일행인 여학생이 한마디한다."여기 김씨가
많이 온 모양이지요?"
나중에 들어보니 해 지기 무섭게 나갔던 연수생 친구는 이날
라이브쇼장에서 바가지를 왕창 썼단다. 350프랑인데 프랑 자를
붙이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350달러라고 우겼대나. 관광지라서
그렇대! 억울해서 사람들 많은 데서 거품 물고 기절하는 시늉을
했더니 놀라서 돈을 도로 내주면서 그냥 길에 갖다 버리더란다.
어차피 불법이니까 지들도 당황을 한 거다."지가 내 돈을 먹어.
대한 남아의 돈을?" 그 친구 득의만만해서 돌아왔겠지만 아마도
혼쭐이 빠졌을 것이다. 앞으로 한 삼 년간은 라이브쇼 얘기만
들어도 경기할 게 분명하다. 그래도 일단 목적을 달성했으니 한국
갔다 다시 파리 오는 차비는 굳었네!!
벼룩시장의 야바위꾼들은 수법이 좀더 교묘하다. 두 눈이 멀쩡이
뜨고 3천 달러를 날린 아줌마도 있다. 좌판 위에 컵 세 개를 놓고
이리저리 돌리면서 표적물을 맞추는, 우리 어릴 적 많이 보던
흔해빠진 방법과 비슷하다. 세 가지 수법이 있는데 많이 쓰이는 건
동그라미가 세 개 그려진 카드 중 동그라미 하나 그려진 걸 찾는
거다. 그 동네 유학하는 학생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수법이란다.
아랍인들이 주로 그짓을 한다. 좌판도 한국 야바위랑 같다. 한가지
다른 점은 우리완 달리 불량스럽게 안 보인다는 거다. 사과상자
같은 보리박스 위에 기구들을 주섬주섬 늘어놓고 밝은 미소로
손님을 흘리는 게 상스럽기보담은 코믹하게 보인다. 조금
과장하자면 무슨 퍼포먼스 같다."아유, 옆에 걸지 왜 그랬어?..."
"이그, 내가 힌트를 줬는데 딴 데 걸면 어떡해?... 바보같이!" 이런
너스레를 막 떤다. 장난처럼. 잃는 사람이 당장은 기분 나쁘지
않게끔 갖은 변죽을 울리며 썰레발을 치는 것이다. 가만히 지켜보면
빤하면서도 나름대로 재미있다.
한 사람이 이 야바위꾼한테 계속 돈을 잃는다. 야바위꾼은 막
안타까워한다."어머! 이 바보 좀 봐. 멍청하게... 거긴 왜 자꾸
걸고 그래?" 한 놈은 그러는 사이 계속 딴다."이 치 좀 봐. 얼마나
머리 좋게 생겼어? 어쩜 족집게네 족집게. 내 돈 다 말아먹을래나
봐. 막 이러면서 속상한 척 은근히 추켜세워주면 구경하던 사람들도
박수를 쳐주고...
두세 명이 일당이 돼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바람을 잡는데 완전
오락이다. 그러다 한 놈이 계속 따니까 "너 땜에 나 오늘 돈 하나도
못 벌었다. 나도 먹고살아야 되니까 그만큼 땄음 이제 그만해"
그러면서 신경질을 낸다. 그러니까 이놈은 그때부터 안 하는데 다른
사람이 자꾸만 틀린다. 먼저 하던 틀리던 놈 말고 어느새 또 다른
놈이다. 그러자 잘하던 놈이 곁에 가서 여기 걸라. 저기 걸라며
가르쳐준다. 그러니까 이 못하는 놈. 훈수대로 해서 따먹기도
하고...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는다. 야바위가 "너, 하지 말라는데 왜
자꾸끼냐?"며 훈수 놈을 보고 막 뭐라뭐라 그러니까 이놈 왈."저
사람이 너무 잃어서 좀 가르쳐준 것뿐" 이라며 한쪽으로 잠자코
물러나 있다가 결정적일 때 또 거들고 한다."너. 하지 말라니까
자꾸 정말 왜 이래?" 그러면서 야바위가 핏대를 올리니까 이 훈수
두던 놈이 곁에 있던 아줌마(사실은 처음부터 표적물로 삼았을 게
분명함)를 쳐다보며 "왜 자꾸 나만 갖고 그러냐. 이 아줌마가 해도
그럴 거냐?"고 같이 목소리를 높여 따진다."이 아줌마 같으면야 돈
주지. 그럼" 야바위의 말에 이놈, 아줌마를 보며 돈 있으면 빨리
걸라고 부추긴다. 땅 짚고 헤엄치기라며 자기를 보란다. 좀
망설이던 아줌마가 급기야 바람잡이의 거듭되는 권유에 귀가
솔깃해져 좌판 앞으로 다가서는데 야바위는 그때부터 짐짓 딴 데를
본다. 아줌마랑 손님들 보게 한쪽 손을 슬쩍 들어주면서. 살짝 든
손 사이로 얼핏 보이는 동그라미 한 개.
"아줌마, 빨리 여기 걸어! 직빵이라구! 바람잡이 훈수 놈은 계속
귓속말로 권유를 하고. 이 아줌마가 망설이자 야바위는 다시 한 번
딴데를 보며 모르는 척 손을 조금 더 들어준다. 동그라미 한 개가
선명하다. 그러자 급기야 한탕에 눈이 어두워진 이 아줌마. 옆에 선
자기 남편을 보고 "이쪽이 분명하니 여기 걸겠다"며 돈을 천 프랑,
2천 프랑까지 주섬주섬 꺼낸다.
그때쯤 훈수 놈이 아줌마 쪽을 넘겨다 보더니 백 안에 돈이 더
있으니까 왜 2천 프랑만 하냐고 더하라며 막판 공세를 편다. 걸면
거는대로 따먹게 돼 있다면서.
아줌마. 이윽고 핸드백에서 천 프랑을 더 꺼내면서 남편보고 빨리
컵 밑을 들춰보란다. 남편이 컵을 들추는 순간. 이럴 수가...
귀신이 곡하게도 동그라미가 세 개다. 아까 슬쩍 보여줄 땐 위의 두
개를 손가락으로 가렸던 거다. 너무도 간단한. 하지만
속아넘어가기도 쉬운 속임수다. 극성맞은 훈수 놈은 이미 어디론가
내빼버리고. 야바위꾼도 아줌마한테서 돈을 딱 가로채더니
일어선다. 당황한 아줌마가 좌판을 부여잡고 "폴리스!"를 외치자
야바위는 좌판을 그대로 팽개친채 쏜살같이 줄행랑을 친다.
좌판이라고 해봤자 값으로 따지면 몇 푼 안 되는 거니 그야말로
멋모르는 관광객 등쳐 한몫 잡고는 판 놓고 도망가버린 거다.
순식간에 당한 아줌마. 얼굴이 허옇게 떠서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3천 프랑이면 50만원 가까운 돈이니 기가 막힐 만도 하다. 세상이
어수룩한 건지 야바위도 먹고 살리는 건지 이런 진풍경이 가끔씩
벌어진단다.
유학생 하나가 어처구니없이 당했다는 얼치기 마술쇼도 파리
뒷골목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어느 날은 수염난 거지 하나가
마술을 보여주겠다고 한 친구한테 라이터를 빌려 달라더란다. 별
생각 없이 빌려줬더니 이 거지 할아버지. 자기가 마술로 라이터를
없애버리겠다고 그러면서 말 같지 않은 주문을 몇 마디 외우더니
라이터를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없어졌다고 하더란다. 주머니에
집어넣는 걸 분명히 봤기 땜에 처음엔 장난인 줄 알고 "나름대로
유머가 있는 거지군" 했는데 정말 안 주더라는 것이다. 달라고
했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마술로 없애버려서 없다고 하더란다.
나중에 순경을 데리고 와서 주머니를 뒤져봐도 안 나왔단다. 가려던
순경이 마지막으로 거지가 앉아 있던 의자 밑을 뒤져 라이터를
찾아냈는데 자기는 모르는 라이터라고 우기더라나! 그 자리를 더
뒤져보니 얼마나 해먹었던지 국적불명의 라이터가 수두룩하더라는
얘기다.
베란다를 좋아하는 유럽 아해들
프랑스 베란다나 창가에는 빨간 제라늄 화분이 많이 놓여 있어서
집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아주 오래된 집들인데도 꽃이 새집처럼
보이게하는 역할을 하는 거다. 프랑스 아해들이 꽃을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제라늄이라는 꽃은 자생력이 강해서 봄에 심어놓고 물 한
번만주면 일년내내 알아서 잘 자란단다. 가장 결정적인 건.
제라늄에는 살충 성분이 있어서 창가에 놓아두면 모기 같은 벌레가
집안으로 못 들어오게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꽃을
사랑해서이기도 하지만 벌레 퇴치를 위해서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고
현지 가이드 김 현수는 말한다.
유럽의 베란다는 야외식당도 되고 볕 모자란 유럽 사람들이
해바라기하는 곳도 되고 꽃 가꾸기도하고 밖을 내다보기도 하는
장소다. 우리도 베란다가 있지만 우리의 아파트 베란다는 대개가 다
빨래 말리는 곳으로 전락해 있다. 그 비싼 공간을!! 오죽하면
없애버리고 마루 깔아서 방이나 거실고 만들까? 어떻게 보면 그곳이
상당히 문화적인 공간이거든. 우린 문화 공간보다 방 넓은 게
좋다는 식이다.
그림 삽입
프랑스 베란다나 창가에는 빨간 제라늄 화분이 많이 놓여 있어서
집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아주 오래된 집들인데도 꽃이 새집처럼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거다. 프랑스 아해들이 꽃을 아주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복덕방 아저씨들이 방을 소개할 적에 좋다고
내새우는 몇 가지 요건들이 있었다. 그게 뭐냐 하면 "겨울에 웃풍이
없어요" 같은 거다. 웃풍이 있는 방에서 자본 적이 있는가?
아랫목은 절절 끓는데. 끓어서 뜨거운데 윗목은 물이 깡깡 얼던 방.
구들 밑으로 연탄이 왔다갔다하게 한 혁명적인 아이디어가 나왔던
시절이 있었거든 그래서 밀어넣었다가 뺐다가 했는데 그 시절 방
얻는 첫째 조건은 웃풍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거였다.
그 다음 레퍼토리가 "주인이랑 부엌을 따로 써요" 그 다음이
"주인 집이랑 문을 따로 써요. 주인 눈치볼 게 없다니까요" 그럴
거다. 이런 것들이 굉장한 자랑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 이런 나라의 복덕방 사람들은 집을 팔거나 세주려고 얘기할
적에 이런 말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 집은 베란다가 무척
커요" 혹은 "ㄱ자로 꺾어진 이 집은, 이쪽도 볼 수 있고 저쪽도 볼
수 있게 베란다가 커브를 틀어 있어서 양쪽을 다 이용할 수
있어요."
그림 삽입
유럽의 베란다는 야외식당도 되고 볕 모자란 유럽 사람들이
해바라기하는 곳도 되고 꽃 가꾸기도 하고 밖을 내다보기도 하는
장소다. 우리도 베란다가 있지만 우리의 아파트 베란다는 대개가 다
빨래 말리는 곳으로 전락해 있다. 그 비싼 공간을 없애버리고 마루
깔아서 방이나 거실로 만들까?
이 사람들은 정말 베란다를 많이 이용한다. 기차 타고 지나가는데
베란다에서서 내다보고 손 흔들어주는 할머니, 할아버지, 총 쏘는
시늉하는 젊은 청년도 있고. 노래 연습하는 처녀도 봤다. 옛날부터
베란다에 나와서 밖을 보는 것을 좋아한 모양이다. 유럽 어딜 가나
베란다가 없는 집들이 거의 없다.
정 베란다를 만들 형편이 안 되면 하다 못해 창문이라도 건물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든다. 전문가들은 햇빛 때문이라고 하는데
요즘 시로 지은 집들도 베란다를 만들어서 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내려다보기도 하지만 남들이 올려다보는 것도
의식하겠지! 그러니 꽃을 내다 걸로 커튼도 예쁘게 해달라고
그러면서 주부들끼리 솜씨를 겨루듯 베란다를 꾸미는 게 아닐까.
바가지 긁을 때 여기 부인들은 혹시 이러지 않을까?"당신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베란다 커튼 값 하나 못 벌어와요?
커튼 갈아 본 게 벌써 언제야? 시집올 때 해온 걸 아직도 쓰잖아.
앞집 제라르네 베란다 커튼 새로 해단 것도 안 봤어요? 제라르 아빠
부활절 보너스 타서 이번에 새로 해달았다잖아. 이런 구식 땡땡이
무늬 커튼을 베란다에 달아놓은 집은 이 동네서 우리집밖에 없을
거야. 창피해서 시장에도 못 나가겠어. 아이고 내가 못 살아. 내
팔자야. 엉엉엉....."
여행에서 모범생일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실수담,
혹은 추태 부린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만 실수하고 추태를 부리겠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고 전부 규율부장만 사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다른 나라 녀석들도 실수하고 추태를 부릴
거다. 여기 와서 며칠 새 내가 본 것만 해도 몇 건은 된다. 어제도
대낮에 스물너댓 살은 되어 보이는 여자 아해 하나가 몽마르트 언덕
올라가는 길에 앉아서 술 먹고 오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사진만 안
찍었을 뿐이지 증인도 있다!(오바이트 내용물은 한국 거랑 색깔이
물론 달랐지!!)
그날 밤 혼자서 막 상상을 해봤다. 여기 여자 아해 오바이트한 걸
닦아주면서 숙소로 데리고 와서 와인을 한잔 먹이고 그렇게 건수를
한 번 올리는 상상...
외국 아해들이 오바이트하는 모양을 보니 생각나는게 있다. 7,
8년 전 이태원이 술꾼들로 한참 호황을 누릴 때 웨이터들이
출퇴근용으로 사용하는 오토바이를 묶어두는 전봇대가 있었다.
전봇대 앞 널빤지 위에 페인트로 "오토바이" 이렇게 써 있었는데
항상 그 자리가 지저분했다. 나중에 생각을 해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도 언젠가 술이 취해서 그
팻말이 붙어 있는 전봇대를 지나간 적이 있는데 순간적으로
"오토바이"라고 쓴 글씨가 술 취한 내 눈에는 "오바이트"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니 지나가던 다른 술꾼들도 "야, 이태원은 술집이 많다
보니까 오바이트하는 데도 따로 마련해 놨구냐" 싶어서 안심하고
오바이트를 할 수밖에.
추태 얘기로 돌아가보자. 독일 화장실에 가면 한국 사람 못
들어가게 하는 데가 있단다. 한국 사람을 못 들어가게 해? 우린
오줌도 못누냐? 한꺼번에 많이 나다니다 보면 실수도 하는 거지.
지들은 실수 안 하나? 내가 파리에서 보니까 거기도 사업하다
망하는 사람이 있더라구. 제 나라 사람들도 자기 나라에서 살다가
실수해서 사업도 망하고 운전도 실수하고, 하다 못해 길 가다
실수로 넘너지기도 할 텐데 유독 우리나라 사람만 외국 나가서
실수하지 말라니 말이 되냐 이거다. 외국 아해들도 우리나라에서
추태 부리잖아!
내가 프랑스 버스에서 봤는데 말야.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한
여학생이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남학생에게 뭐라고 한마디를
하더라구. 그러니까 남학생이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주는 거야.
그러자 이 여자 아해, 몇 장을 떼내 둘둘 말은 다음 나팔 부는
소리가 나게 코를 풀어 대더라고. 정말이지 유럽 사람들, 코푸는
소리만큼은 화끈하잖아? 지하철, 길거리, 기차, 카페, 어디서고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여학생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큰 소리로
코를 푼단 말야. 심지어 밥 먹다가도. 코 푸는 소리 하나는 정말
대륙적이지. 우리나라 여학생 같으면 부끄러워서 몰래 나가서 코를
풀 텐데! 펑펑 나팔 부는 소리가 나도록 코를 푸는 얘네들의 습관도
우리식으로 보면 추태고 무례지만 우린 참잖아. 시비도 안 걸고.
왜냐하면 이 나라에선 그게 자연스러우니까 인정하고 그냥 넘기는
거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자기네들을 참듯이 얘네들도 우리를
참아줘야 한다는 얘기야. 내 말은.
가장 우리다운 게 가장 세계화된 거라고들 하는데 그 우리다운 게
뭔지 한 번 생갹해볼 필요가 있어. 오래간만에 만나거나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아는 사람들끼리 있으면 밤새며 술 마시고 떠들고
그러는게 우리식이잖아. 격의 없이. 그리고 아, 잘 지냈다 그러고,
친해진 것처럼 얘기하고 술을 막 강제로 먹여가지고 상대가 뻗으면
우리는 굉장히 우정을 돈독히 한 걸로 얘기를 한단 말야. 그게
우리식 아닌가.
그러면 그 식대로. 해외 나가서도 우리식대로 하는 게 정상이지.
우리식으로 한다고 만나서 술 마시고 어울리고 그러면 대번에
추태를 부렸다고 그런단 말이야.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거라는 구호를 성실하게 지킨 탓에 호텔에서 쫓겨나는 아해들이
많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돼?
로마에 가서 로마법을 따르라고 그러는데, 로마 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무슨 로마법을 읽을 시간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우리법을 안 읽고 사는데 거기까지 가서 로마법을 어떻게 읽냔
말이야. 내가 한국에 50년 가까이 살면서도 아직 한국법을 잘
모르는데 사나흘 있으면서 그 나라 법을 무슨 수로 어떻게
알겠냐구. 법대생도 아니고 로마에 가서 로마법을 따르라니 말이 안
되잖아!
한때 우리가 고스톱판을 벌이는 걸 비난하는 글들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많이 없어졌잖아? 한때 하다 마는 거야. 막 그럴 필요도
없는 거라구. 외국 아해들도 카드 다 해. 공항, 식당, 기차,
유스호스텔, 할아버지와 손자와 젊은 아해들끼리 연인끼리 다
한다고. 무슨 재미로 하는지는 모르겠어. 돈이 왔다갔더하지
않으니. 심지어 이건 내가 헝가리 온천에서 본 거지만, 젊은 아해
하나가 온천 속에 몸을 담근채로 카드를 돌리면서 블랙잭을 하는 거
있지! 진지하게. 심각하게. 때로는 안타까워하면서. 구경꾼들도 빙
둘러서 있고 말이야. 그런데 "줄거 있어" 하면서 계속 "가리"만
하더라고. 돈과는 무관하게 말야.
사실 우리의 고스톱이란 게 금세기에 와서 방방곡곡 가가호호마다
유행하기 시작한 일종의 개인 금융사업이잖아? 그런데 고스톱을 칠
때 "어머 무슨 패가 이래""패 좀 잘 줄 수 없어?""아이, 내가
죽어야 되는데 먼저 죽으면 어떻게 해""무슨 패가 이따위야?
완전히 개패잖아 개패""일어날 때 봐야지""가진 게 돈밖에
없으니까 돈으로 막는 수밖에 없어" 이렇게 입으로 쉴 새 없이
투덜대면서 돈을 따는 인간들이 있어. 개패 들고 돈 따는 이런
놈들은 덩치 좋고 성질 더러운 놈이 날잡아서 개패듯이 두들겨
패거나 언젠가는 화투신의 노여움을 받아 지옥에 떨어져서 화투도
못 치고 몇천 년 동안 화투방석이나 빨면서 보내게 해야 돼.(너무
과격했냐?)
사실 한국 사람들 목소리가 우리 귀에 잘 들려서 그런 거지. 외국
아해들도 목소리는 무진장 크다. 거기다 대부분 고음이고...
스페인이나 유럽 아해들 너무너무 시끄럽잖아. 새벽까지 떠들고...
목소리 큰 외국 아해들은 떠드는 것도 스캐일이 틀려. 가만 보면
여자 꼬실 때만 작아지고 부드러워지는 것 같더라고. 얘네들이 한
번 밤새도록 떠들기 시작하면 정말 못 말리는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만 갖고 목소리 크게 떠든다고 그러는지. 자기비하도 아니고
말야.
사실 식당 같은 데서 우리 목소리는 오히려 너무 작아. 외국
아해들은 전혀 남 신경 안 쓰고 목소리 높이잖아. 기차고 식당이고
어디고 간에. 대신 우리는 떠들었다 하면 밤을 새지. 남들이 자든
말든. 그래서 가끔 찍히는 거야. 그렇지만 어떡해? 그런 식으로
우리나라에서 살아왔는데. 그게 새로 사귄 사람들과 으레 하던
일인데. 그게 외국 나오면 아주 나쁜 일처럼 되어버린단 말야.
우리도 외국문화를 이해해야 되지만 그 아해들이 우리나라를
이해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니스에서 만난 한국 배낭 여행족 학생 얘기다. 중앙일보에
외국여행 간 한국인 추태기사가 났단단. 그 말 들으니 20대
배낭족들이 오해 받을까 봐 걱정이다. 20대보다는 나이 먹은
사람들이 정말 문제다. 20대 배낭족들은 호텔 한 번 들어가는
것만도 감지덕지다. 추태 부릴 시간도 없다. 막연하게 기사 쓰지
말고 누구라고 콕 찍어라. 내가 한 번은 파리 시내에서 꽤 밤늦은
시간에 만난 우리 배낭족 아해에게 "너 밤에 왜 그렇게
돌아다니냐?" 그랬더니 7일 간 기차에서만 자고 일주일 만에 처음
잡은 호텔인데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밤에 돌아다닌단다.
"아무거라도 더 보려구요!"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한지 우리가
카페에서 음식을 먹다 술도 사주고 와인도 사주고 그랬다. 이런
아해들이 무슨 추태를 부리겠냐는 거지.
한 번은 우리가 말린 오징어를 기차 안에서 꺼내 먹었다. 중국인
슈퍼에 갔다가 만난 오징어다. 우리 울릉도오징어만큼은 아니지만
그건 대로 맛있었다. 그런데 여학생 하나가 우리에게 충고를 한다.
"오징어는 먹지 말래요. 유럽 사람들은 오징어 냄새를 시체 썩는
냄새처럼 느낀대요." 한국에서 떠나올 적에 배낭족 선배들이
그랬단다.
오징어 가지고 와서 먹으면 어떠냐! 맛있으면 됐지. 혐오식품도
아니고 말이야.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 나간다고 그 나라 사람이
되는건 아니잖아? 그러니 고추장 김치 같은 걸 먹는 건 당연한
일이지! 걔네들도 냄새 고약한 치즈를 먹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는 오징어 다리를 뚝 떼어 그 여학생한테 줬다.
그러면서 맛있게 먹었다. 주변의 외국 사람들도 냄새가 고약한지
인상을 조금 찌푸리긴 해도 별말은 없었다. 그런데 미령이가
화장실에 갔다 오다 보니 옆옆 칸에 탄 한국 여자 배낭족 아해가
우리들을 씹고 있었단다."전유성이하고 진미령이가 말이야. 외국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는데도 오징어를 막 질경질경 씹는 거 있지"
하면서. 미령이가 듣고 있는 것도 모르고. 그래서 미령이가
걔들한테 가서 "얘, 너 오징어 한 마리 줄까?" 그랬단다. 그
아해들."그게 아니구요. 얘가 멀미를 해서 어쩌구어쩌구..."
하면서 얼굴이 홍당무가 되더란다. 멀미 이야기가 왜 나오나? 우리
음식 먹는데 남의 나라 눈치볼 게 뭐 있어? 왜 같은 편이 안
돼주냐고!!
아해들한테 얘기해주고 싶다."외국 나와서 외국인 너무 의식하지
마!" 라고. 그럼우리 것은 언제 보여주겠어?
여행이란 그런 거지. 그러면서 하나둘 배워가는 거지. 여행에서
꼭 모범생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안 그래?
화장실 가는데 포크는 왜 주는 거야
프랑스 사람들은 고기를 먹을 때는 빨간 포도주를, 흰살 생선을
먹을 땐 흰 포도주를 먹는다. 개구리 요리를 먹으러 갔는데
개구리가 고기니깐 빨간 포도주를 먹자고 했더니 일하는 아주머니가
흰 포도주를 먹어야 된단다. 그래야 개구리가 물인 줄 알고
뱃속에서 헤엄을 친대나. 물론 통역해서 알아들었는데 늘 써먹는
레퍼토리일 것이다. 문제는 개구리 요리다. 그걸로 한끼를 때우는
건 줄 알았더니 달팽이 요리나 개구리 요리는 에피타이저라고 해서
음식을 먹기 전에 먹는 맛내기 음식이라는 거다.
우리는 개구리를 요리로 먹지 말고 안주로 먹자고 합의를 봤다.
소주 사간 게있었거든! 잠시 후 화장실을 가려고 물어봤더니
아주머니가 손짓으로 가리킨다. 그러면서 달팽이를 꺼내먹을 때
사용하는 자그만 두 갈래 포크를 나한테 주는 것이다. 달팽이 돌려
꺼내먹듯이 남자의 그것을 꺼내라는 뜻이리라. 나는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고 나오면서 그 포크를 일부러 조금 휘어가지고 나왔다.
아주머니가 그 포크를 보더니 왜 휘었냔다. 내가 대답했다. 내건 좀
길어서 이걸로 꺼내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저절로 휘었다고.
아주머니는 깔깔대고 웃었다. 혹시 속으로 부러워하지는 않았을까?
그림삽입
개구리는 어디서 나오냐고 물으니 터키에서 잡아다가 프랑스 사람이
요리를 한단다. 그걸 일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국 사람이
먹었다. 사진은 당시 26년 된 프랑스 개구리 요릿집 간판. 맨밑에
"26..."어쩌구라고 쓴 거 보이지?!
개구리는 어디서 나오냐고 물으니 터키에서 잡아다가 프랑스
사람이 요리를 한단다. 그걸 일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국
사람이 먹었다. 언젠가 마포를 지나오면서 본 빵집 간판이
생각난다."부산 뉴욕 마포지점"이라는 이름의 빵집. 일찍이
앞서가신 분들이다. 파리의 오페라극장 옆에 있는 일본 음식점 역시
중국 사람이 주인이다. 지나가다 보면 일본음식을 한국 사람이 먹고
앉아 있다. 말 그대로 "위 아 더 월드"다.
그런데 화장실을 가서 보니 한가지 애매한 게 있었다. 남자들이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데 용변 후에 손을 씻어야 되는 거야? 용변
전, 꺼내기 전에 씻어야 되는 거야? 보통 우리는 볼일 본 뒤에
씻거든. 그런데 손을 먼저 씻고 꺼내야 되는 거 아닌가? 뭐? 씻고
꺼내든 꺼내고 씻든 정력만 좋으면 된다구?
1권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내가 나라마다 가서 빠트리지 않고
물어보는 것 중의 하나가 이 나라는 정력제가 뭐냐는 것이다.
웬만한 나라는 연어를 정력제로 친단다. 파리는 거위간과
굴이라는데 카사노바가 굴을 하루에 10개씩 먹었대나! 먹어보면
우리 것보담 맛이 없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우리 굴이 훨씬
맛있다. 이 사람들은 그냥 레몬만 쳐서 먹으니 그런가? 병인양요
시절에 이 아해들이 굴맛 안 보고 간 게 다행이지 뭐냐!
암스테르담은 오래된 치즈, 오슬로는 청어조림이 정력제란다.
덴마크 사람들은 자연 치유력이 좋아 특별히 정력제란 건 없고
정력이 남아돌아서 하루 왼종일 스키만 타고 집에 와서는 지쳐서
잠이 든단다. 그래도 스쿠알렌은 거기가 제일 좋은 제품이 나온다고
하는데 우리처럼 매일 먹는 게 아니고 심장이 안 좋을 때나 책 같은
거 오래 보고 나서 눈이 피로하고 침침해질 때 가끔씩 먹는다고
한다.
그래도 굳이 들자면 정력제로는 청어를 치고, 스낙스라고 감자를
증류해 먼든 토속술을 든다. 정력보담은 건강을 위한 것들이라고
하는데 병원에서도 신경안정제대신 스낙스를 처방해준단다. 나중에
하이델베르크에 가서 물어봤더니 거기는 아스파라거스를 최고의
정력제로 치는데 통조림으로 해놓은 거 말고 오리지널로 나온
야채를 그렇게 많이들 먹는단다. 딴 데 가서도 꼭 물어봐야지!
그런데 참, 우리 속담에 재수 좋은 과부 가지밭에 넘어진다는
말이 있잖아? 누가 그런 거야? 프랑스 가지 크기를 보면 가지밭에
넘어졌다고 해서 꼭 재수 있다고만은 볼 수 없을걸!
그림삽입
개구리요릿집 실내 인테리어는 개구리 튀듯이 튄다. 세계의 돈들을
마구 붙여놨다. 가운데 위쯤에 퇴계 이황 선생 얼굴도 보인다.
기왕이면 세종대왕으로 하지! 돈이 아까웠나?
얘기가 곁길로 잠깐 샜는데. 여기 식당 아줌마 말로는 적포도주는
미리 한 시간 전에 따놓았다가 먹으면 떫은맛이 없어진단다. 식당에
예약을 하면 미리 따놓는단다. 그렇지 않으면 넓고 큰잔에 따라서
흔들어서 마셔도 아쉬운 대로 괜잖다. 우리 배낭족들은 한 시간
전에 예약할 수 없으니까 그런 거 관계없이 그냥 사서 바로 마셔도
된다.
파리 레스토랑의 에티켓과 매너. 맛의 비밀은 요리학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파리의 요리학원은 참 재밌는 구석이
있다. 요리를 배우러 가면 주방장을 지망하는 학생이 음식을 만들고
그 요리를 날라다주는 사람은 웨이터 지망생이다. 요리를 배우는
데도 하루짜리 이틀짜리 등이 있다. 학생들이 주로 가서 먹는데
값도 싸고 그런 대로 먹을 만하단다. 장차 요리 만드는 사람과
웨이터들의 예비손님인 셈이다. 그러니 값싸게 먹으러 온
손님이지만 만드는 사람도 나르는 사람도 서로가 정성을 들일
수밖에 없다. 같이 커나가는 거니까.
그런데 한가지 성가신 건, 여기 식당에선 음식 먹는 중간중간에
끝났냐고 물어보면서 그릇을 자주 가져간다는 거다. 사용하지 않는
그릇들도 열심히 가져간다. 유럽 식당이 거의 다 그렇단다.
식사하다 말고 그릇 훔쳐갈까 봐 그러나!! 야외니까 관리가 잘 안
돼서 그러나! 주방 아해들 심심할까 봐 그릇 가지고 놀려고
가져가는 건가? 포크 내려놓고 잠시 한숨만 돌려도 "피니시?" 하고
물어본다. 뻑하면 와서 물어 보는 거야. 피니시? 피니시? 피니시?
거 꽤 신경 쓰이더라구.
배낭족이 돈 써야 국력도 큰다
해마다 몇만 명의 20대 배낭족들이 25일에서 40일 간 유럽여행을
다녀온단다. 정말이다. 유럽에 나보담 먼저와 본 사람이 너무 많다.
앞으로도 점점 늘어날 우세라고 하는데 나는 이미 늦었다. 화성이나
금성이 개발되면 남보다 먼저 가봐야지!
남자들은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에 많이들 나오는 거 같은데 회사
다니다 관두고 배낭여행 나온 친구들이 의외로 많은 데 놀랐다.
잘한 일이다. 우리네 인생살이 6, 70년 중에 한달 정도 자기에 대한
투자는 장한 일이지. 그렇고 말고.
어릴 때 들은 말 중에 처옥자쇄(妻獄子鎖)라는 말이 있다.
마누라는 감옥이요. 자식은 자물쇠라는 뜻이다. 나는 항상 그 말을
마누라는 배낭이요,."자식은 옆에 차는 물병이로다" 라고
생각해왔다. 중국 말 중에도 "인생은 여행이다"라는 게 있으니
인생은 어차피 배낭 지고 훌쩍 떠나는 여행이 아니겠는가?
배낭족 남과 여가 만나서 일행이 돼도 서로 짐을 안 들어준단다.
서로 무거운 거 아니까. 또 서로 돈이 없는 줄 알기 때문에 돈도
각자가 알아서 낸단다. 서울에선 남자가 먼저 쓰는데 이런 게
여행을 통해서 성숙해가는 증거가 아니고 뭐겠어?
관광수지 적자라는 말이 신문지상에도 종종 오르고 많이들 쓴다.
무분별한 해외여행이니 하는 말과 같이 붙어서 말이다. 관광적자
이야기를 하면 배낭족에게화가 미칠까 봐 겁이 나는데, 엄밀하게
말해 배낭족이 쓰는 비용은 계산에 포함시키지 말아야 된다. 나는
중2때 단식 부기를 배우고 중3때 복식부기를 배웠다. 이 둘이 다른
점은 복식부기가 무형재산을 돈으로 쳐준다는 거다.
배낭족이 쓰는 돈은 미래에 대한 투자다. 국력이 커 가는 소리다.
국가의 장래에 도움이 되는 엄청난 투자를 개인이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 오히려 혜택을 줘야 한다. 그 친구들이 외국의
문화를 접하고 또 우리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하는 것이 길게
봐서 우리의 국력신장에 얼마나 도움되는 일이겠는가. 내가 만난
배낭족 학생들은 대부분 외국 아해들한테 우리 인사말을 가르쳐주는
데도 열심이고, 뭐 하나라도 더 보고 배우려고 밤잠을 줄여가며
애를 쓰는 아해들이었다. 돈이 있다 해도 쓸 시간도 없으려니와
추태 같은 거 부릴 시간은 더더욱 없다.
농담이지만 나는 이 아해들에게 장학금을 주든가 나중에 그
친구들이 사회에 나오면 아파트 0순위 청약 자격이라도 주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관광수지 적자를 강조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단식부기 계산으로 하지 말고 복식부기로 계산하자.
정부에서 보조는 못 해줄망정 돈 썼다고 뭐라 그러진 말자.
고생하며 다니는 배낭족들에 비해, 시의원님들이나
정책결정자들은 고작 일주일 정도 유럽에 머물다 가는데 특급
호텔에서 자고 온갖 대접을 받으며 호사스런 관광을 한다. 그러구선
"이미 선진국에서는 오래된 제도로서..." 하면서 함부로 정책결정
하는데, 그러지덜 마러라. 외국제도 같은 걸 들여올 일이 있으면
배낭족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배낭족들은 니스
물속에도 들어가보고 야간 열차도 타보고 벼룩시장도 직접 다니면서
몸으로 때운 사람들이다. 도대체 안가는 데가 없는 "침투족"들인
거다. 잘못하면 우습게 보인다. 나중에 표에 지장 있으니 신중을
기해야 할걸!!
그림 삽입
스페인에서 찍은 돈키호테와 산초상. 뒤엣놈이 작가랜다. 내 별명이
옛날에 돈키호테였거든. 동지적 사명감으로 일부러 찾아가 찍은
사진이다.
얼마 전에도 내가 "별밤"에 나가서 그 얘길 했다. 배낭여행 얘길
했더니 모두들 "싸게 가는 법 좀 소개해주세요"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대답을 그렇게 했다."싸게 가는 법은 너희들끼리
결정을 해라. 배낭여행 하는 아해들이 보통 12월달서부터 준비를
해서 3월달서부터 구체적인 계획들을 세운단다. 니네 또래들 새로
가려는 아이들도 많을테니까 정보는 그때 동료들끼리 주고받고
나한테는 돈 쓸 데 가서 확실하게 쓰는 걸 배워라." 이게 뭐냐면,
여행갈 때 돈을 아끼는 게 꼭 좋은건 아니라는 거다.
유럽 여기저기를 여행하면서 벵스 캠프인 파리로 잠깐잠깐
돌아와 머물 때면 늘 오페라극장 계단이나 몽마르트 언덕 계단에
앉아 있곤 했다. 그래서 우리 아해들이 어떻게 노나 가만히
지켜보면 카에 앉아서 커피 마시는 아해들이 거의 없다. 파리 같은
데는 노천카페들이 굉장히 유명한데 실제로 배낭족 아해들이 그런
데서 커피 마시는 광경을 거의 못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거다.
그저 비싸다고 생각하고 아껴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 돈으로
차라리 밥을 사먹겠다고 마음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천카페 같은
데 한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분명히 있다. 그러니까 한두 번 정도는 그런 걸 예산에
집어넣으라는 거다.
여행의 의미가 그 나라, 그 도시를 느끼는 건데 무조건 안
쓰려고만 하면 결국 유스호스텔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럴
바에야 구태여 여행 같은 거 떠나지 말고 그냥 집에 편안하게,
가만히 있는 편이 낫지 않겠어? 평생에 몇 번 오기 힘든 유럽여행
경험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만들고 싶다면, 아해들아, 쓸 때 가선
쓰자꾸나!
런던 가면 "미스 사이공"을 꼭 봐야 되는 이유
이건 말하자면 "쓸 때 쓰자" 2편인데. 영국에 가는 배낭족들은 꼭
뮤지컬를 보라고 나는 권하고 싶다."미스 사이공"이나 "오페라의
유령""레 미제라블"이나 아니 몇 년씩 공연하고 있는 것들이
많으니 뭐가 돼도 좋다. 골라잡아 하나쯤은 꼭 보자.
사람들의 얘길 들으면 국내 정보지 여기저기 "뮤지컬을 싸게 보는
법" 이라고 해서 갖가지 정보들이 나와 있다는데. 사실 싸게 본다는
건 굉장히 안 좋은 자리에서 보는 거다. 이왕 보려고 마음먹었다면
그럴 땐 좀 쓰라는 거지. 다른 데서 아끼더라도. 사실 뮤지컬은
표값이 천차만별인데 위층이라도 무대 정면 가운데 자리는 비싸고
아래층이라도 가운데가 아닌 측면으로 갈수록 또 값이 싸진다.
그리고 기둥 뒷자리 라든지 좀 관람하기 불편한 자리 역시 값이
떨어진다., 돈 아끼겠다고 기둥 뒤나 발코니 끄트머리에 앉아
봤다가 무대가 거의 보이지 않는 바람에 소리만 듣고 나왔다는
아해들도 많다. 좀 펀안하게 제대로 보길 원한다면 이왕이면 좋은
자리. 제대로 된 자리에 앉아서 감상하는 게 좋다.
그런 연극이 우리나라에 한 번 오면 10만원도 넘고 그러거든.
그런데 거기 가서 보게 되면 괜찮은 자리라고 해봤댔자 3, 4만원
정도밖에 안 하잖아.
이번에 런던에 가서 "미스 사이공"을 봤다. 표 살 때 배낭여행 온
여학생 두 명하고 영국 사는 유학생하고 셋이 내 앞에 섰는데
학생들은 좀 싼 표를 사고 나는 제일 좋은 표를 샀다. 유학 온
학생이 어디로 가면 된다 그래 가지고 같이 뮤지컬을 보러 간 건데
딱 들어가면서부터 입구가 달라지잖아. 같이 간 아이들이랑 따로
보려니까 왠지 좀 미안하더라고.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까지 미안하게는 생각을 안했는데 뮤지컬이 끝나고 정말로
미안한 생각이드는 거야.
거기 보면 호치민이 사이공을 장악을 했을 적에 호치민 동상이
하나 나오는데 그 동상이 굉장히 크거든. 이 뮤지컬이,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굉장히 규모가 크다고. 무대 위로 헬리콥터가 실제로 막
내려왔다 올라갈 정도야. 물론 세토로 만든 거겠지만 거기다
사람들을 태우고 올라가는 장면이 있을 정도로 그렇게 무대가 큰데
그 여학생들이 보고 나와서는 그러는 거야. 자기들은 발코니에서
봤는데 제일 처음 묻는 말이."아까 그 호치민 동상 나왔을 때
전신이 다 나오던가요?" 하는 거였어."너흰 어디까지 봤는데?"
하니깐 종아리 아래까지만 봤대. 너무 꼭대기에서 봐가지고 무르팍
아래만 보이더라는 거지. 전체가 다나오긴 나왔는지 무진장
궁금해하더라구. 우린 로얄석에서 동상 머리를 고개를 쳐들고
봤는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너무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막
들었어.
아껴 쓰긴 했지만 그래도 그 배낭족 아해들보담은 돈을 좀 여유
있게 가지고 간 편이었는데 왜 그때 내가 사주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로 안타까웠다는 거야. 그러나 내가 뭐 돈이
많아서 그거를 그렇게 봤다는 거보다 그런 거 볼 적에는 확실하게.
한 번 정도는 제대로 봐야 된다는 거지.
그림 삽입
런던에 가서 "미스 사이공"을 봤다. 이건 그 공연장 앞에서 파는
Penis 란 이름의 파스타. 말 그대로 국수 가락이 거시기처럼
생겼다!
여행 다니면서 먹는 음식도 마찬가지다. 스위스의 전통음식에
뽕뒤라는 게 있거든. 조금만 "전통" 자가 들어가면 원체 비싸서
많이는 못 먹어봤지만 그래도 스위스에 왔으니 이번 여행기간에
그걸 한 번 먹어 보자 그래 가지고 그거 잘한다는 데를 물어물어
찾아갔어. 미령이가 먹는 거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고(사실
미령이뿐 아니라 결혼하고 보니까 처가가 모두 미식가
집안이더라구. 결혼 직전 처가 식구들과 어울려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거든. 나는 날만 새면 "어디를 가볼까"가 최대 고민이었는데
처가 식구들은 "뭘 좀 먹어볼까"로 여행 내내 고민을 하는 거야)
요리도 잘하는 편이어서 맛있는 음식을 보면 요리법까지 일일이
배울 정도니 여기까지 와서 어떻게 토속음식을 안 먹어보겠어.
아주 친절한 할아버지 두 분이 오리지널 뽕뒤 전문 식당에 우리를
데려다줬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그 가게가 쉬는 날인
거야. 그래서 다른 집을 가르처줘서 아주 어렵게 찾아갔어.
노천식당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기차에서 만난 배낭족
여학생 두 명이 거길 지나가다 우리가 앉아 있는 걸 보고는 "여기
싸요?" 그러는 거야. 보통은 여긴 뭘 잘하냐, 여기 맛있는 데냐,
그렇게 묻는 게 맞잖아. 그런데 걔들은 그렇게 묻는 거야.
사실 그 집이 싼 집이 아니었거든. 그래서 사실대로 안 싸다고
얘기해줬더니 실망한 표정으로 "어디 가면 싼 데 찾을 수
있을까요?" 이러는 거야. 그래서 우리 일행이 그때 네 명이었는데
이리 오라고. 우리가 사주겠다고 그랬어. 그런데얘들이 "괜잖아요.
우린 싼 데 찾아요" 그러면서 돌아서서 언덕길을 막 멀어져
가더라고. 그 뒷모습을 보니 정말 가슴이 아팠어. 그때 잡았어야
되는 건데 말이야. 그러면서 문득 연극배우들 생각이 나는 거야.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극을 해오면서 느낀 건. 아무리 처음 가는
지방이라도 연극배우들은 그 지방에 가서 제일 싼 음식점을 찾는
데는 본능적인 후각을 가지고 있다는 거였어. 언젠가
연극배우들이랑 일본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우리 숙소가
신주꾸였거든. 회비를 걷은 게 아니고 박권수 화백의 일본
미술전람회에 그냥 축하해주러 간 자리여서 배가 고프면 밥은 각자
알아서 처리들을 했다고. 굶든지 남이 사주면 먹든지 지가 사먹든지
하여튼 알아서 약 스무 명이 그러고 댕겼어. 그런데 이상한 건 거기
역 근처에 먹자골목이 있는데 내가 밥만 먹으러 들어가면 그곳에
우리 일행들이 거의 다 와 있었다는 거야. 정말 신기하게도 말이지.
가는 곳마다 예외가 아니었어.
연극배우들이라면 그애들처럼 안 묻고 바로 싼 데를 찾을 텐데!!
각설하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여행 간다 그러면 보통 돈
절약에 관한 얘기들을 많이 묻는데, 절약도 좋지만 여행을 떠날 때
한 군데 정도는 그 나라의 전통음식을 먹어보겠다는 계획을 꼭
세우고 갔으면 한다는 거다. 다른 거에서 절약을 하더라도 말이지
(안 먹어보면 후회하는 음식이 정말 많다). 알고 보면 선진국일수록
서민들의 음식이 그리 비싸지 않다. 도리어 외국에 나가면 한국
음식이 비싸다. 구하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그것도 단체 관광객들은
어차피 할인해서 먹는데. 정말 오래간만에 고국의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개인 배낭객들은 할인도 못 받으니까 고스란히 비싼 돈
주고 먹는 게 안타까운 거다.
이태리에는 한국 학생들을 위한 한국 식당이 있는데 굉장히 싸게
파는 데도 있고 배낭 멘 사람들한테는 10퍼센트 할인해준다고
써붙여 놓은 데도 있단다. 그 식당 앞에서 배낭 파는 장사. 아니면
빌려주는 장사라도 해볼 사람 누구 없나? 돈 좀 벌 텐데. 양복 입은
사람마다 그 앞에서 배낭 빌려 가지고 하나씩 둘러메고는 밥을
먹으러 가는 거야. 싸게. 그 돈 모아서 또 배낭여행 떠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잖아?
그런데 이 뽕뒤라는 음식이 참 재미있더라구. 고기 생선 야채
감자 고구마 같은 온갖 재료들이 날로 나오고 기름 치즈 육수물
같은 것도 줄줄이 나오는 음식이야. 그러면 자기가 직접 재료
중에서 골라 꼬치를 만들어 먹는데 튀겨 먹든 삶아 먹든 자기
마음대로인 거야. 그런데 말야. 옥수수 맛, 군밤 맛, 계란프라이
맛은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더라고.
런던에 가면 "미스 사이공"을 꼭 봐야 되는 이유 : 공연한 지 2년
되었는데 언제 결혼할지 모르잖아! 미스 때 봐야지 결혼하면 미세스
사이공이 되잖아!
루브르에선 액자만 보고 나와도 본전 뽑는다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 정말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약 한
시간 동안 줄을 서서 들어가서 이것저것 헤매면서 세 시간 정도
구경을 하고 나왔다.
루브르가 세계적 미술관이라 그러는데, 그래서 제대로 보려면
일주일을 꼬박 봐도 모자란다고들 하는데 나는 뭐 구태여 어려운 거
설명 듣고 알고 싶지 않다. 내가 학교 다닐 때 미술책에 나온 것만
봐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모나리자의 미소"하고 "미로의
비너스" 두 작품을 보고나오니 본전 생각은 안 나는 거 같더라고!
(그런데 "미로의 비너스"가 말이야. 알고 보니 미로가 작자가
아니라 그리스의 미로라는 데서 발견이 됐기 때문에 미로의
비너스래.) 다른 사람들 열심히 그림 구경할 때 나는 그림을
집어넣은 액자만 열심히 들여다봤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액자 만든
사람들도 대단하더라니까! 정말 대단한 예술가들이다.
내가 이 얘기를 했더니, 이장호 감독이 자기도 나올 때쯤 멀리서
방들을 다시 한 번 보니까 조명시설이 너무너무 완벽하게 근사하게
돼있더란다. 그래서 "아, 조명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이 감독은
거기서 느꼈다는 거다. 나는 놓쳤지만 다음 번에 가는 사람은 이
감독 말처럼 조명을 눈여겨보는 것도 좋을 거다.
그림 삽입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 다른 사람들 열심히 그림 구경할 때 나는
그림을 집어넣은 액자만 열심히 들여다봤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액자 만든 사람들도 대단하더라니까! 정말 대단한 예술가들이다.
사진은 루브르 박물관앞에서 만난 우리나라 수녀님들.
파리에 사진을 전공하는 아해가 있는데 걔가 사진을 잘 찍거든.
학교에서도 일등씩 하는데, 하나 결정적인 게 스튜디오에서 물건을
찍으려면 조명 세팅이 아무래도 안 된다는 거야. 파리 아해들은 온
집안을 환하게 켜는 우리네 조명하고는 다르게 부분 부분 켜는 거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너무 자연스럽게 조명기를 적재적소에
갖다놓는데 우리는 그게 안 되는 거라고 그러더라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루브르 박물관은 다 보려면 3개월을
봐도 못 본다는데 기껏 두세 시간 보고 나와서 보긴 뭘 봤다는
거냐?" 맞는 말 같지만 틀리는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놈들은 3개월
시간 있어도 안 보는 놈들이다. 그러는 저는 3개월 시간 주면 3개월
동안 루브르 박물관만 구석구석 다 보고 나올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말만 하는 것보다는 십 분이라도 보고 나온 사람이 훨씬
낫다. 세 시간 동안 박물관에 가서 박물관 냄새만 맡고 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배낭족 아해들이 그 안에 들어가서 두 시간을
있든 최소한 관광객 아저씨 아줌마들이 쇼핑센터에서 한두 시간
보내는 것보담은 훨씬 괜찮은 거라는 거지. 그림 못 보면 어떠냐.
그 안에 두 시간 있었다는 사실. 그림 안 보고 액자만 보고 나와도
된다. 똑같은 액자가 하나도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하고
나온다는 것만도 무형재산으로 대단한 일인 거다. 그러니까 본전을
뽑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거지.
예를 들면 루브르에서 어떤 여자 하나를 봤는데 내가 보기엔 그
여자도 루브르 와서 본전은 뽑고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보면 그 당시 여왕이나 왕 근처에 있던 여자들,
귀부인들의 초상화가 많잖아. 그런데 그 여자가 그림을 보다가
한마디하는 거야."어머 저 시절에도 저런 파마가 있었네. 그
당시에는 파마를 어떻게 했을까?" 너무 현실적인 생각이잖아!
나처럼 폼 잡지 않고 말이야. 그러고 보니까 정말 요새 파마머리
같은 모양도 많이 보이더라고.
나라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헝가리라는 나라 하나를 놓고도
"헝가리는 지저분해요" 하는 아해가 있는가 하면."헝가리는
깨끗해요" 하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아해들이 있다. 그렇게
정반대로 보고 오더라도 일단 보고 오는 게 좋다는 거다. 이 얘길
하다 보니 "얼룩말이 흰말에 검은 줄인가, 검은 말에 흰 줄인가"도
시각에 따라서 달라보일 수 있다는. 누군가가 써놓은 글이 갑자기
떠오르네.
암튼 우리는 툭 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이다" 그런 얘길
하고 그러는데 그렇게라도 만지고 온 사람들끼리 모여서 막 얘길
하면 그래도 안 가본 사람들보다 훨씬 실체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갔다오는 게 낫지. 안 갔다온
사람이 "헝가리는 깨끗해요"하고 말하는 사람 얘길 듣고 "아,
헝가리는 정말 깨끗해" 그런 얘기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거다. 안 가본 사람의 "지저분해요" 얘기만 듣고서 지저분하다느니
어쩌니 떠드는 건 설악산 근처엔 가보지도 않고 "아, 지금 설악산
단풍이 한창입니다. 아름다워요"라고 얘기 하는 아나운서하고
똑같다.
정보 하나, 루브르 박물관은 매월 첫 번째 일요일은 공짜다.
평일에도 오후 3시 이후부터는 싸다. 그리고 월요일 수요일은
밤늦게까지 한다(밤 9시 45분 폐관). 단, 화요일은 휴관이다.
베르사이유 궁전 입장권은 비싼 걸 사라
베르사이유 천정화를 보고 나면 정말 머리가 뻣뻣해진다. 고개를
하도 들고 다녀서. 보는 입장에서도 머리가 뻣뻣한데 그린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천정화를 도대체 어떤 놈이 어떻게 그렸을까? 하긴
알면 뭐해! 이미 다 그려놨는데! 너한테 그리라고 안 시킬게!!
베르사이유 궁전에 가면 모노레일이나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꼭
다녀봐야 한다. 앙뜨와네뜨의 거울벽이나 요강도 빠트리지 말고
보자. 그리고 그 유명한 정원에는 연못만 서른두 개라는데 최소한
세 개 이상은 봐야 후회 안 한다!!
앙뜨와네뜨가 있던 데를 갔는데 침대를 없앴단다. 그 여자가 워낙
나쁜 여자라서 처형시킬 때 없앴다는 거다. 영혼마저도 누워서 쉴
수 없게 한다는 뜻이란다. 여기 사람들도 가끔 가다 그런 이유를
단다. 그 여자가 불미스러운 일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보여주기만
하는 거지 그 여자가 썼던 건 침대뿐 아니라 다 없앴단다. 그런데
거기 벽이 하나 있다. 큰 거울벽인데, 그 벽 거울이 내려가게 돼
있어서 밖의 경치가 보인다. 그것도 꼭 관리인들이 와서 해주는데
얘기 안 하면 안 해주는 경우가 있으니까 얘길 해서 보자고 챙겨야
된다. 또 앙뜨와네뜨의 좌변기가 있는데 부드러운 양털 같은 것으로
돼 있어서 오줌 누기 좋게 만들어놨다. 꼭 한 번 볼 것!
그림삽입
앙뜨와네뜨가 있던 데를 갔는데 침대를 없앴단다. 그 여자가 워낙
나쁜 여자라서 처형시킬 때 없앴다는거다. 영혼마저도 누워서 쉴 수
없게 한다는 뜻이란다. 또 앙뜨와네뜨의 좌변기가 있는데 부드러운
양털 같은 것으로 돼 있는데 오줌 누기 좋게 만들어놨다. 꼭한 번
볼 것!
베르사이유를 구경하다 보니 안내를 하는 곳에 각국 나라말로 된
팸플릿이 다 놓여 있는데 유독 우리말로 된 설명서만 없다. 그러니
건성건성 걸어다니면서 구경할 수 밖에! 뭐가 뭔지 모르니까 봐도
본 것 같지 않더라고. 웬만하면 한글 안내문 하나 만들어놓으면
좋을 텐데. 한국 관광객도 많이 오는데 말야. 작년에 25만이고 올해
40만이라니까. 한 사람이 오줌 한 번 누고 2프랑만 내도 80프랑을
떨어뜨리고 가는 건데 안내 설명문 하나 한글로 된 것이 없다니!
열받네. 내가 돈이 많다면 자비로 만들어서 "이거 한국 사람 오면
주쇼!" 하고 나눠주고 싶다.
안내문 땜에 열받아서 내려오다가 배낭족 아해들을 만났는데 이
아해들이 할말이 많단다. 자기네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그것 땜에
프랑스 아해들이랑 싸웠다는 거다. 한글 안내문을 왜 안 만드느냐고
따지는 배낭족 학생에게 루브르 박물관 직원이 "일본은 루브르
수리할 때 돈이라도 대줬지만 너네 나라가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 하길래 할말이 없어져 버렸단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동경
박물관에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일본
아해들이 동경 박물관을 내면서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모나리자의
미소"를 팔라고 그랬단다. 돈이 많으니까 해본 짓이겠지! 그랬더니
박물관장이 잠깐 기다리라고 그런 후 모나리자의 미소 그림을 5개나
가져오더란다. 어떤 걸 사기를 원하냐면서. 오리지널을 고를 눈이
없었던 일본 아해의 꼬랑지가 그래서 한풀 꺾여 내려갔다는 얘기다.
그러나 싸운 얘길 듣고 보니 또 열받는다. 내가 이
아해들이었다면 그 루브르 직원에게 이렇게 말해줬을 텐데.
"야 임마! 우리나라 사람이 일년에 40만이 온다는데 니네는
변소값까지 받아 챙기잖아? 한 사람이 2프랑씩 내고 화장실 한 번
이용해도 일년이면 80만 프랑이다. 이 자식아! 니 몇 년치 월급인
줄 아냐! 이 깍쟁이 배랑뱅이 같은 놈아!! 집에 가다가 일본 차에나
치어라. 염병에 밥 말아먹을 놈아!" 순진한 우리 아해들."거기까진
생각 못했어요" 하면서 미안해한다.
하긴, 한글 안내문 없다고 열받지 말자. 우린 어디에 프랑스어
안내문 하나라도 있냐? 이번 기회에 어학공부도 하고 좋지, 뭘
그래!
어딜 가든지 없는 줄 알아도 한글 안내문을 줄기차게 요구하면
없다고 대답하기 귀찮아서라도 만들어 놓을 것이라는 글이 하이텔에
올라 왔단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정말 참신하다. 나도 그렇게
해야지. 자꾸 그러다 보면 변하는 게 있을 테니까.
그림 삽입
베르사이유를 구경하다 보니 안내를 하는 곳에 우리말로 된
설명서만 없다. 한국 관광객도 많이 오는데 말이다. 작년에
25만이고 올해 40만이라니까, 한 사람이 오줌 한 번 누고 2프랑만
내도 80만 프랑을 떨어뜨리고 가는 건데 안내 설명문 하나 한글로
된 것이 없다니! 열받네. 내가 돈이 많다면 자비로 만들어서 "이거
한국 사람 오면 주쇼!" 하고 나눠주고 싶다.
아이디어 하나! 유럽 관광지에 가는 곳마다 한글 안내문이
없는데. 여행을 갔다 오면 각 나라 동전들이 굉장히 많이 모이잖아.
그걸 모아서 후배 배낭객들을 위해 한글 안내문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 누가 하자고 하면 바로 시작이 될 텐데! 하자고 하면
동조해줄 사람은 무지 많을 거야.
정보 하나 더. 베르사이유는 입장권이 싼 거 비싼 거 두 가지가
있는데 45프랑짜리를 사야 다 본다. 싼 거 사면 다 못 본다. 기왕
갔으면 비싼 거 사서 요강까지 확실히 보고 오자!
유학생 아해들의 "슬픈 이별"
베르사이유에 갔다오면서 한 모녀를 만났다. 자상한 어미니로
보였다. 그런데 딸은 미치겠단다. 일년에 4개월을 와서 살고 가는데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단다. 딸의 고민은 이내 증명됐다. 나중에
증권회사 직원하고 유학생 2명.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몽파르나스
술집에 가기로 했는데 딸은 가만 있는데 엄마가 따라나서려는 거다.
애만 보내라고 해도 극구 안된단다. 정말 못 생긴 딸 하나 갖고
드럽게 지랄이더라구!! 그러면서 자기가 굉장히 자상하기 땜에
이런다는 걸 거듭 강조하는 모습이 옛날 우리 후배 놈의 아버지하고
똑같았다.
형사 출신인 그 아버지가 어느 날 방송국엘 찾아왔다. 그리곤
나보고 대뜸 묻는 거다."우리 아들이 여기 몇 시쯤 들어왔습니까?"
그건 왜 물으시냐고 그랬더니 자기가 아버진데 아들이 방송국에 몇
시에 왔나 알아보러 왔대나? 그러면서 자기는 아들이 개그맨 되는
걸 굉장히 좋아하고 밀어준다며 생색을 내는 거야. 사실 후배 놈이
재능 있고 괜찮은 놈이긴 했거든. 그런데 자기로 말할 것 같으면
아들 친구들이 오면 같이 나가 놀아줘, 포장마차나 디스코텍도 같이
가줘, 늦게 들어오면 잠 안 자고 기다려, 심지어 자는 아들 놈
주머니까지 몰래 뒤져 돈 없으면 넣어주기도 한 대. 이런 자상한
아버지를 왜 싫어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나 있는 아들 놈이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는지. 가출까지 하면서 반항을 하니 속이 있는
대로 탄다나. 그래서 내가 대놓고 말해 줬어."아버지가
정신병자라서 그래요!!"
사실 남자 아해들이란 게 친구들끼리 따로 할 얘기도 있고. 술도
떡이 되게 취해보고 싶을 때가 있고. 밤에 혼자 자면서 자위도 한
번 몰래 해보고 뭐 그러는 거잖아. 그런데 아버지란 사람이 애가 몇
시에 들어왔나 밤낮으로 체크하고, 잘 자나 하고 자는 애 몰래
방문이나 열어보고, 혹시 나가진 않았나 댓바람부터 감시하고
그런다니 당연히 애가 견딜 수가 없는 거지. 그런 집구석에 어떻게
붙어 있겠어.
이 엄마도 혹시 그런 거 아닌가 의심이 들더라고. 모진 맘 먹고
먼나라까지 딸을 보냈으면 그냥 보낸 거지. 독립심도 길러주고
자립심도 키워주고 폭풍을 한번 맞으면 그 폭풍 속에서 혼자
살아남아도 보고 그러는 거지 말야. 폭풍이 몰아친다고 자기가 대신
맞아주겠다는 거야 뭐야. 함께 맞자는 거야? 그러면 좀 나아져?
그 엄마가 그렇게 극구 가자는 거야, 술집을. 자기가 한잔
사겠다나 뭐라나. 가만히 보면 딸은 완전히 핑계고 사실은 자기가
가고 싶어 그러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더라구.
유학생 부모들이 자식들을 프랑스나 독일 같은 선진국 보낼 땐
가서 좋은 거 많이 배우고 오라고 보내는 거 아냐. 공불 잘하거나
또 뭘 전공하거나 해가지고 유학 가는 걸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해서 보낸단 말이야. 아이들도 물론 그 기대에 부응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선진국에 와서 촌스럽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애를
쓰잖아. 그 나라 아이들처럼 패선을 한다든지 머리에 물을
들인다든가 헤어스타일도 나름대로 프랑스식으로 하든가 그러면서
말이야. 얘네들이 프랑스 와서도 한국식을 계속 고집하고 있으면
굉장히 촌스러워진다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프랑스식으로 변하는
거잖아, 시간이 가면서.
그런데 막상 그 아해들이 방학이 돼서 한국에 오면 부모들이 막
뭐라 그러는 거야. 머리는 왜 그렇게 깎았냐. 염색은 또 왜 그렇게
요란스러우냐. 옷은 왜 이렇게 입었냐. 치장이 이게 뭐냐 이렇게
얘길 한다고. 이율배반이지 뭐야. 그래서 한국 갈 때 되면 아이들이
막 고만을 한 대. 머리 깎고 수염 깎고 머리 물들인 거 몽땅
지우고. 옷차림도 한국식으로 바꾸고. 완전히 한국식이 왜서
돌아간대는 거야. 한국에서 유행하는 옷을 사입고 돌아가고. 그럴
형편이 못 되는 애들은 유학 올 때 입었던 옷들을 다시 꺼내 입고
가기도 하고.
그럴 바에야 유학을 왜 보냈냐는 거지. 유학이라는 게 공부만
하는게 아니라 생활하고 문화도 익히고 우리보다 좀 앞서나간
사람들 거를 두루두루 배워 가지고 오자는 건데 차림새를 가지고 왜
그렇게 야단을 치는 거냐고. 그러니까 비애를 느끼는 거야, 애들이.
그리고 재미나는 건 뭐냐면, 그렇게 나와 있다 보면 유학생
아해들끼리 서로 사귀기도 하고 그러는데, 방학이 돼서 한국 가려고
같은 비행기를 탈 거 아냐? 그런데 한국 오면 부모들이 공항에 딱
나와 있잖아. 그러면 비행기 안에선 서로 손 붙잡고 그렇게
다정하던 애들이 거기서부터 서로 모르는 척 딱 갈라서면서 슬픈
이별을 한 대는 거야.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말이지. 참
딱한 일이라고. 그러러면 뭐하러 보냈냐 이거지. 보냈으면 믿어야
할 텐데 말이야. 콱 믿고 내버려둬야 할 게 아니냐구.
우리 가게를 "학교종이 통통통"으로 바꾸라구?
프랑스라는 나라는 길이나 집을 보면 똑같은 게 정말 없다. 이
자식들은 남이 하는 건 도대체 인정을 안 하는 거 아냐? 뭐든 가만
놔두지를 못하는 성질인가?? 실내장식도 벽도 천장도 칸막이도 그냥
단순하거나 일직선으론 무조건 안 한다. 가만 놔두면 잠을 못 자는
게 분명하다. 내가 가본 슈퍼마켓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놀라는 건, 건물마다 창문 디자인이 다 다르다는 거다. 아마
창 만드는 놈이 "이건 안 써먹은 창문 디자인인데요" 그러면
위엣놈이 "야 임마, 그건 16번지에서 내가 본 거야" 이럴지도
모른다. 하다 못해 사람 못 들어가게 하는 방범용 쇠창살 같은
것까지 다 틀리다. 영국은 한 블록 집이 통째로 똑같은데 들어가는
입구가 다 달라 눈길을 끌더니 만 여기도 마찬가지다. 하드웨어는
같지만 소프트웨어에 이르면 놀랄 만큼 딴판이 된다.
아름답기로 세계에서 몇째 간다는 샹젤리제 거리만 봐도 그렇다.
차양은 어느 집이고 할 것 없이 다 똑같은 빨간 색인데 의자를 보면
색깔이며 디자인, 크기와 무늬가 가게마다 제각각이다. 통일해야 될
거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통일해서 거리 미관을 해치지 않지만 작은
부분에선 최대한 개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비슷하게 하면
저작권에라도 걸리는 것처럼 뭐가 달라도 다르게 만들고 꾸민다.
몇 년 전 문호리 최양락이네 가게에 동네 사람이라고 그러면서
구경 와선 줄자 들고 이리저리 재던 철딱서니 없는 어른들이
생각난다. 창문 길이 하며 지붕 모양하며 똑같이 짓겠다는 거다.
한때 중광 스님집이 참 삼삼하게 잘 지었다고 소문이 나자 들어가는
입구를 어떤 놈이 개떡같이 표절해 카페를 차린 적도 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우리 가게 "학교종이 땡땡땡"까지 똑같은 게
생겨버렸다. 내 아이디어로 다른 사람들도 돈 벌게 되면 좋은
거니까 똑같은 이름으로 차리는 것까진 괜찮은데 문제는 어떤
여자가 우리 상호를 상표등록 해버린 거다. 그 여자는 좋은 이름만
보면 자기 이름으로 상표등록 해놓는 게 취미란다. 이의신청을
해놨지만 잘못하다간 가게 이름을 "학교종이 통통통"이나 "학교종이
땅땅땅"으로 바꾸는 불상사는 안 생기려는지 모르겠다. 이런 일들이
기본적으로 양심에 저촉이 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아해들하고
무슨 얘기가 되겠어. 멋도 개성도 모르는 사람들인 거지.
하긴 세상에는 똑같이 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모양이더라고. 남의 집에 와서 똑같은 물건이 있으면 무조건 자기
달라는 사람도 여러 번 봤다. 성냥이며 티스푼, 도자기, 수석,
심지어 한 번은 도수도 안 맞을 텐데 안경까지 달라는 친구도
있더라니까.
나중에 영국 가서 봤더니 거긴 똑같은 집들이 쭉이다. 미국집은
유치원 같은 데. 영국집은 피자헛 같은 데가 상당히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온통 빨간 지붕이다. 앞에서 봐도 뒤에서 봐도 똑같은 집이
줄줄이다. 한 블록 전체가 아예 판박이 집들도 많다. 아마
집장사들이 지은 집들이겠지! 똑같이 지으면 아무래도 재료비도
싸게 먹히고 시간도 단축되기 땜에 그렇게 지었을 거야. 민박하는
집에서 밖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오려는데 그 집이 그 집 같아서
정말 애를 먹었다. 낮에는 주소보고 찾으면 되지만 밤에는 정말
난감하더라니깐. 집모양이 너무 똑같아서. 그런 게 지들도 싫은지
집 울타리들은 다 다르다. 낮에 눈여겨볼 일이다. 혹은 정원 모양을
자세히 외워둘 필요가 있다.
그림 삽입
나중에 영국 가서 봤더니 거기도 똑같은 집들이 쭉이다. 민박하는
집에서 밖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오려는데 그 집이 그 집 같아서
정말 애를 먹었다. 낮에는 주소보고 찾으면 되지만 밤에는 정말
난감하더라니깐. 집모양이 너무 똑같아서, 그런 게 지들도 싫은지
집 울타리들은 다 다르다. 낮에 눈여겨 볼 일이다. 혹은 정원
모양을 자세히 외워둘 필요가있다,
이런 것이 어떻게 보면 몰개성이 아니라 단결심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놀랄 만큼 단순한 아해들이다."쳐들어가!" 하면 쳐들어가는
단결심!"돌격!" 하면 돌격뿐이 모르는 단순성! 영국이 한때,
세계를 꽉잡았던 이유도 이런 단순성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머리
굴리는 아해들한텐 결국 안되잖아.
가만히 보면 이 사람들 울타리 하나는 정말 철저히 주인
마음이다. 다른 건 몰라도 울타리만큼은 내 맘대로 내 멋대로
해보겠다 이거지. 담쟁이도 올리고, 색색으로 칠도하고 판자 모양도
다르게 하고, 벽돌도 쌓아 만들기도 한다. 나름대로 옆집이랑 다른
모습의 울타리를 꾸미면서 자기집 꾸민 것에 얼마나 흐뭇해했을까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돌아가신 코미디언 이기동 선배의 "내 집"이라는 코미디가
생각난다. 온 식구가 다 나와서 이기동이라고 써 있는 문패를 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드디어 문패의 마지막 망치질을 끝낸
이기동.
"야, 이제 우리집이 생겼다. 이게 얼마 만이냐!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참고 월급쟁이 30년 만에 드디어 내 집이 생겼다.
하하하."
이때 행인1. 지나간다. 이기동, 행인1에게 묻는다.
"실례지만 한글을 읽을 줄 아십니까?"
행인1. 안다고 대답한다.
이기동, 자기 집 문패를 가리키면서 "그럼 저기에 뭐라고 씌어
있습니까?"
행인1."이기동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이기동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누군지 모르겠는데요."
"이기동이 바로 납니다."
"그래서요?"
"저게 이게 바로 우리집입니다."
화가 난 행인1."여보, 집 없는 사람이 어디 있소? 나도 집
있소."
그러자 이기동, 반가워하면서 "아, 그렇습니까? 선생도 집이
있으시다고요? 우리 집 있는 사람끼리 그룹을 하나 만듭시다."
행인1. 별 미친놈 다 본다는 듯이 지나가고, 행인5까지
비슷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것이다.
프랑스, 이것만 읽고 가도 본전 뽑는다!
프랑스에서 유학생들이 처음 방 얻을 때 드는 복덕방비는 한달
방세다. 아는 사람을 통해서 구하면 돈이 많이 굳는다. 유학 가려는
사람들 이 책 한 권 사서 읽고 가면 책값은 뽑을걸!
책값 얘기 나온 김에 몇 가지 더!(하나에 천원씩만 잡아도
책값은 충분히 뽑겠지?)
하나, 여행을 할 적에 유레일 패스에 관한 교육을 잘 듣고 올
필요가 있다. 그러면 돈을 절약할 수 있는 길이 굉장히 많다.
사랑의 유람선 탈 적에 우리를 찍으려 왔던 연출자가 모르고 우리
유레일 패스를 가지고 한국으로 가버렸다. 유레일 패스는 한국에서
사가지고 출발을 해야 되고 유럽 현지에선 못 구하잖아. 나중에
알고 보니 유레일 패스는 소포금지 품목이란다. 유학생들이 그렇게
사서 쓸까 봐 DHL에 유레일 패스를 사서 주지 못하게 돼 있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다행히 유레일 패스를 받았다. DHL로 보내
왔는데 보통은 책 사이에 끼워서 보낸다고 한다. 이런 거 얘기해도
돼나 몰라! 설마 구속시키진 않겠지?
그림삽입
파리에 가면 한국 서점이 있다. 올해 새로 생겼는데 문화재 복원을
전공하던 사람이 한다. 옛날 책부터 최신간까지 다 취급하기 땜에
편리하다. 나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권을 여기서 사서 갖고
다니며 읽었다. 문제는 값이 좀 비싸다는 것. 여긴 파리에서 제일
처음 생긴 집이라는데,"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 일곱 권 팔았다나?!!
그리고 유레일 패스를 사면 타임테이블이라고 해서 도시별 기차
발착시간표가 적힌 작은 책자를 주는데 틀린 부분도 있기 때문에
항상 다음 행선지의 열차시간은 역에서 직접 확인해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같이 출발하는 기차라도 중간에 갈라져 서로 다른 곳으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니 기차를 탈 때는 항상 그 칸의 행선지를
확인해야 된다.
프랑스의 교외선 RER이 유레일 패스를 보여주면 공짜라는 건 알고
떠나겠지!
둘, 프랑스 상점들은 모두 8시까지 하고 칼같이 문을 닫는다.
24시간 영업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단다. 하지만 늦게까지 하는
상점이 있다. 아랍 사람들 가게다. 파리에서 밤늦게까지 문 연
가게는 대부분 아랍 사람들이 하는 데라고 보면 틀림없다. 그러나
늦은 시간 반갑다고 함부로 갈 일이 아니다. 값이 엄청나게 비싸다.
무조건 거의 두 배로 생각하면 된다. 협잡질이나 야바위를 하는
아랍 아해들이 많은데 아랍이라고 하면 알아듣는다면서 유학생들은
아해들을 보통 "낙타"라고 부른다.
낙타들 얘기를 잠깐 하자면, 유학생들 가운데 아랍 아해들이 사는
동네에 자취를 하는 아해들이 있는데 그 앞을 지나가다 보면 밤낮
그렇게 물건을 사라고 그런단다."야, 카메라 하나 사라, 카세트
하나 사라, 비디오 카메라 하나 사라..." 그런데 그게 전부
훔쳐갖고 온 거다. 이 새끼들이, 처음엔 막 웃으면서 그러다가
나중엔 겁도 주고 그런대. 나중에 단골이 되면 안 그런단다. 한국
사람처럼 친해진다는 거지.
상점에서 사는 것보다는 암만 해도 싸니까 가난한 유학생들이
거기서 물건을 사게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어쨌거나 장물이니
조심할 일이다. 언젠가 로마 벼룩시장에서 흑인 한 놈이 비디오
카메라를 파는데 가만 보니 이 새끼가 충전하는 기계까지 같이
끼워서 팔고 있다. 이 놈도 처음엔 몰랐겠지? 처음엔 충전지 안
훔쳐왔다고 야단맞았거나 충전지까지 가져와야 제값 받는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러지 않았겠어?
셋, 파리에 가면 한국 서점이 있다. 올해 새로 생겼는데 문화재
복원 전공하던 사람이 한다. 오래된 책부터 최신간까지 다 취급하기
땜에 편리하다. 나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권을 여기서 사서
갖고 다니며 읽었다.
네, 파리에서 10프랑짜리 동전을 사용하다가 곤란을 겪는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자판기나 공중전화에 한 번 넣었는데 잘 안
걸리거나 물건이 안 나오는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한 두어 번만
시도해보고 돈을 바꾸는게 좋다. 몇 년 전부터 프랑스 전역에
10프랑짜리 가짜 돈이 나돈단다. 그 숫자가 천만 개나 된대나. 워낙
어마어마한 숫자라 정부에서도 어쩌지를 못하고 그냥 사용을 하는데
파리에 조금 살아본 사람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금방 구분해낸다.
우리도 얘길 듣고 보니 알겠더라고. 가짜라도 물건 사고 그럴 때는
통용이 된다. 보통 땐 괜찮으니 그냥 사용하자.
다섯, 뚤루즈 역에서 내릴 적에 일등칸을 타고 침대칸에서
내렸다. 그런데 간밤 기차 탈 적에 아침을 준다며 주문받는 걸
분명히 봤는데 주질 않는 것이다. 이상하다 해서 암만 봐도 식사 줄
분위기가 아닌 거야. 김이 새서 돈 주고 사먹으려고 역 안의 식당에
가서 주문을 했는데 막 먹으려고 그러는 순간 종업원이 기차티켓을
보고는 공짜라고 하더라고. 새벽에 문 연 역 구내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준다. 공짜니 잊지 말고 챙겨 먹도록!
여섯, 여기선 기차를 예약하려면 은행 창구처럼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 되는데 기계의 국내선과 국외선 표 번호 받는 버튼이
다르다. 우리는 기차를 예약하려고 국내선 눌러서 나온 번호표를
들고 한참 기다리는데 프랑스 아해가 가르쳐줬다. 국외선 표를 다시
받아야 된단다. 알아두면 시간낭비 안 한다.
일곱, 파리에서 트럼프 카드를 살 땐 조심하자. 어떤 용도의
게임인지 알 수 없는데 32장짜리가 있다. 그걸 싸다고 생각하고
리용 역에서 20프랑 주고 샀는데 기차가 로마로 출발한 후에 알고
봤더니 32장짜리다. 그래서 게임을 못했다. 제대로라면 52장인데
이건 5 6 7 8 9인가가 없다. 왜 그런 카드를 파는 거야! 열받더만!
결국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후배 아해를 카드 구하러 보냈다,.
그러나 이 아해 말이 어디서 그걸 구하냔다."자식아, 구해오라면
구해오지!"
옛날에 우리가 그런 얘기 많이 했거든."야, 담배 있니?" 그러면
후배들이 "없어요!" 그럼 "야, 우리 땐 안 그랬다. 없어요 소릴
어떻게 하니, 구하러 갔지." 그래서 얘도 구하러 간 거야. 이리저리
댕기다가 열차 승무원 유니폼을 입은 아해한테 가서 물었단다.
카드를 구할 수 있냐고! 없다고 그러더래. 그러지 말고 딴 데서
구해달라고 하면서 음료수를 한 병 권했더니 자기 발밑에 헝겊 쳐
놓은 것을 들추더란다. 보니깐 음료수가 가득 찼더라는 거야.
그러더니 음료수 내 것이나 사먹으라더래. 알고 봤더니 이 아해가
역무원이 아니고 홍익회인거야!
아무튼 파리 카드. 싸다고 절대 사지 말아라. 20프랑만 날린다.
잘 못하면 음료수값까지 날리는 수도 있을걸!!
여덟, 남자들이 파리의 좌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보고 앉은 채로
물을 내리다가는 가금 황당해질 수가 있다. 우리의 좌변기는 대부분
뒤에서 물이 나오는데 파리의 좌변기는 뒤에서도 앞에서도 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앉아서 물을 내리면 남자의 그것이 물에 젖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할 것! 이게 쉬워보여도 알고 보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더라니깐!
아홉, 파리에서 머릴 감으면 머리카락이 파리에 온 걸 보고
놀란단다. 놀라서 얼이 빠진다는 거다. 그래서 머리카락이 말을 안
듣는단다. 물이 나빠서 그렇대나. 석회질이 많아서 그러니 파리에서
머리 감을 땐 꼭 파리 샴푸를 쓰도록. 누구는 또 영국 샴푸를 써야
말을 듣는다나! 어떤 사람은 한국에 돌아가면 비듬이 생긴다고
투덜투덜!
열, 호텔을 잡아놓고 30분 만에 취소하려고 했더니 돈을 한푼도
줄수 없단다."경찰 불러라, 마음대로 해라"가 파리 스타일이다.
미리 돈내지 말고 후불로 하는 게 좋다. 그래야 타협하다 안 되면
반이라도 받을 수 있다. 니스에서 만난 여학생 세 명도호텔을
잡아놓고 우리를 만나는 바람에 해변에 있다가 파리로 오게 됐는데
30분 만에 갔다 오더니 돈을 안 준단다. 후불로 해도 되는데 모르고
당한 거다.
열하나, 프랑스 엘리베이터는 0층부터 시작된다. 헷갈리지 말자.
그러니까 우리네 3층은 얘네들의 2층이 되는 거다. 잘못하면 남의
호텔방에 가서 문을 열다 몰매 맞는 수가 있다.
열둘, 파리에선 카트를 10프랑 내야 쓸 수 있지만 다시 갖다
놓으면 돈이 도로 나온다. 주머니에 10프랑뿐이 없는 아해들. 개털
될까 봐 무거운 거 들고 낑낑대지 말고 팍팍 쓰자.
그리고 이건 마지막 정보다. 그런데 다 공개할 수 없다. 그러니
이야기만 듣는 게 좋을걸.
아주 오래 전에 쇼 비디오자키라는 KBS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이 잘 나가던 시절에 어디서 스폰서를 했는지 일본으로
녹화를 간 적이 있었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갔는데
외국을 처음 나가는 개그맨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흥분들이 되었고 제각기 나름대로의 준비를
해왔다. 부산에 미리 내려간 하상훈은 고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낼 수 없다. 일본 가는 전야제를 해야 된다면서 사람들을 막
데리고 가서 술도 마시고 돈을 엄청 썼다. 아침에 배에 도착하니
거의 전부 따로따로 준비했는지 키미테를 귀 뒤에 붙이고들
나타난다. 그리고 누가 이야기를 했는지 진원지는 알 수 없지만
일본 자판기에 우리 돈 백원짜리가 맞는다고 백동전을 왕창
바꿔왔다. 그래서 실제로 일본에 가서는 호텔 자판기에 캔맥주를
너도나도 다 빼서 먹어버렸다. 그런데 얼마 전 일본 갈 일이 있어
다시 실험해보니 안 되는 거다. 알고 봤더니 그전엔 됐단다.
백원짜리로. 한국 사람 땜에 고쳤다는 것이다. 미국도 빨래방
기계에 백원짜리가 맞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 갖고 그걸로 한동안
계속 썼는데 그 아파트에서 보면 한국집이 몇 안되니까 금방
걸리잖아. 그래서 아파트 관리인한테 혼이 났단다. 몇 집 안되는
한국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넣지 말라고 경고하고 그랬다는
거다.
그런데 파리에서도 내가 백원짜리 동전을 쓸 수 있는 데를
발견했다. 국익에 이롭지 않으므로 밝히지는 않겠다. 나는 파리
돈인 줄 알고 본의 아니게 두 번 썼다. 반쯤 들어가는데 보니까
한국돈인 거야. 그래서 내친 김에 한 번 넣어 봤더니 이게 되더라는
거지. 그래서 다른 아해를 데리고 와서 또 해봤더니 또 돼! 계속
되는 거였어. 이걸 책에 써서 보탬이 되게 할까 말까 유학생들하고
의논을 해봤는데 말자는 결로 결론이 났다. 우리 일행엔 나보다
애국자가 많았던 거다.
서양 아해들 미소는 생존본능이다?!
유럽 아해들이나 서양 아해들이 기분 나쁘다는 얘기들을 잘 안
하잖아. 늘 웃고 사는 게 아마 속으로 별의별 생각 궁리를 다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아 더 무섭고
나쁜 놈들일 수 있지 않겠냐는 거다.
파리에 아침 9시에 도착해 지하철을 탔는데 두 사람 자리를 한
젊은 아해가 차지하고 모로 누워서 자빠져 자고 있다. 지난밤에 뭘
했길래 저렇게 자는 걸까? 그렇게 지 멋대로 자빠져 자고 있는데도
아무도 못 본 척한다. 사실 속으로 별의별 궁리와 상상을 다 할
거야.
서양 아해들 악수는 무기가 없는 걸 알리는 신호라는데 그러면
미소는 뭘까? 우리 속담에 웃는 얼굴에 침 뱉기랬는데 얘네들은
아마 웃는 얼굴에 총 쏘랴! 이럴지도 모르겠다. 잘 웃는 얘들이
상당히 많은 데 얘들이 잘 웃는 건 총알이 오고가는 상황에서
살아보겠다는 본능이 만들어낸 생존의 방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놈의 동네는 다니다 보면 조금만 부딪쳐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그렇다면 만약 내가 부딪치고
미안하다고 안 하면 적으로 간주한다는 것인가.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부딪치고 인사하는 게 썩 좋은 것만은 아니란 거다.
그림삽입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프랑스 사람들의 집이 너무 보기 좋더라.
철조망까지 예술적이더라며 부러워하는데, 철조망들을 굉장히
아름답게 만들어놓기는 했어도 가만히 살펴보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곳은, 무진장 뽀족하게 만들어서(강격한 의지를 담아)
치명적으로 해놓았다(아름다운 디자인 속에 장미의 가시가 있듯이).
디자인은 아름답지만 꼭 찔리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건 다시
말해 침입자가 그만큼 많다는 증거가 아닌가?
집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프랑스 사람들의 집이
너무 보기 좋더라. 철조망까지 예술적이더라며 부러워하는데,
철조망들을 굉장히 아름답게 만들어놓긴 했어도 가만히 살펴보면
들어오지 못하게 한 곳은 무진장 뾰족하게 만들어서(강력한 의지를
담아) 치명적으로 해놓았다. 디자인은 아름답지만 꼭 찔리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건 다시 말해 침입자가 그만큼 많다는 증거가
아닌가?
또 아해들끼리 만나기만 하면 "굿모닝""굿모닝" 하고 인사를
하는데 이게 또 아주 형식적인 인사다."나는 네 편이야" 라는
의사표시, 적이 아니란 걸 확인하는 절차라는 생각이 든다.
"굿모닝!""하이!""하와 유!" 이게 전부 "나는 너를 해칠 의사가
없다. 그러니 너도 나를 해치지 말라"는 말이 아닐까?"밤새
안녕하십니까" 보담 알고 보면 더 살벌한 인사말 일지도 몰라!
모르는 사람끼리라도 "굿모닝!" 하면 대개 "굿모닝!" 하고 같이
대답해주는데 대답해주기 싫어서 "와이?" 하고 대답해본다.
상대방이 깜짝 놀란다. 놀란 저 녀석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ff
제 2 장 아이엠 소리라니, 개소리지!
7월 18일 스위스 베른으로 간다. 파리에서 스위스 가는 데제베를
탔다. 스위스 기차 밖 풍경은 아무곳이나 둘러보고 아무데나
찍어도 세운상가 패널 사진은 나오게 생겨 있다. 이건 나뿐 아니라
갔다 온 사람들이 다 하는 얘기다. 송승환이도 그러더라구.
우리는 스위스를 동경해왔다. 전쟁을 많이 겪은 나라라서 그런지
중립국이라는 걸 부러워하는 거다. 그러나 비상을 걸면 60만의
군인이 모인단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 요들송 그리고 비밀은행이
스위스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우리 집사람은 내가 문가를 막 심각하게 이야기하면 믿는다.
"스위스는 정직한 나라이기 때문에 특히 저울이 유명하다. 조금도
바늘이 안 틀리는 저울하면 스위스다. 오죽 하면 나라이름이
스위스냐. 스가 양쪽에 있고 가운데 위자가 있어서 '스'와 '스'를
'위'가 들어 중심을 잡아주고 있지 않느냐."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앞엣것까지는 진지하게 속는 거다.
그림-스위스 밖 풍경은 아무곳이나 둘러보고 아무데나 찍어도
세운상가 패널 사진은 나오게 생겨있다. 이건 나뿐 아니라 갔다온
사람들이 하는 얘기다.
한국에서는 게나 고동이나 차를 갖고 다니는데 영국은 핸드폰을,
스위스는 요트를 다 가지고 있단다. 기찻간에서 만난 배낭족
아해가 들려준 말이다.
한창 노가리를 까고 있는데 열차간에 애완견이 왔다갔다한다.
'유럽 아해들은 개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기차여행 다닐 때도 개를
데리고 다니고, 개팔자에 떼제베 1등칸이라니 호강이 늘어졌군'
하고 생각을 했다. 치와와처럼 조그만 발바리 종류였다 아주
귀엽게 생긴 발바리. 개 주인은 청바지에 대머리가 약간 벗겨진
티셔츠 람의 50대 중반 사내였다.
그런데 그 사내가 갑자기 우리 일행 중의 준태에게 지갑을
보아주는 것이다. 의아해서 쳐다보니 여권을 보여 달라는 것 같다.
나중에 준태는 떨어진 지갑 주인을 찾아주는 걸로 알았단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지갑에 사진이 붙어 있는데 그 사내의 사진이다.
사복경찰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야, 유럽경찰 좋구나. 애완견을다 끌고
다니고...' 했는데 그 사복경찰이 준태의 가방을 조사해보겠다고
데리고 기차 짐칸으로 나가는 게 아닌가. 왜 그러는가를 옆의 외국
아해에게 물어보니 개가 지금 이상한 냄새를 맡아서 조사해보러 간
거란다. 그 조그만 개가 마약을 적발하는 개였다. 물론 우리가
마약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어서 안심을 했지만, 마약단속을 한다고
하면 커다란 세퍼드 같은 개만 생각했지 좆만한 발바리가
마약적발을 하러 다닐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우린 굉장히
놀랐다.
나중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증명되자 얘네들이 18번인 "아이 엠
소리"를 남발하면서 보내주더란다. 아이 옘 소리라니 개 소리지?
일행중의 한 명은 용각산이라도 한 곽 있었으면 큰일날 뻔했을
거라고 위로를 해주었지만 아무래도 기분은 안 좋았다. 큰 개도
아니고 조그만 발바리 새끼가 사람을 이렇게 당황하게 만들어도
되는 것인가 말이다. 가방 속에 갓김치, 멸치, 고추장, 라면,
게볶음 등이 잔뜩 들어있다보니 이 강아지가 평소엔 못 맡아보던
냄새라서 주인에게 시호를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 한참 지난 후에
내가 물어봤다. "준태야, 너 혹시 저개 지나갈 적에 방귀
뀌었냐???"
융프라우에서는 조조 할인을 조심할 것
융프라우에서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케이블카를 한 번 타는 게
아니고 여러 번에 나눠서 갈아타고 내려온다. 일본인 관광객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노리까이'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
갈아타라는 말이구나. 노리까이라는 말. 어릴 적에 갈아탄다는
뜻으로 어른들이 사용하는 것을 들었는데 지금 들어보니 정말
새삼스럽다. 아직도 저 뜻은 변하지 않았는데, 영어도
마찬가지겠지. 어릴 때 배워둘걸, 말은 바뀌는 게 아닌데, 외국어를
어릴 적에 했으면 지금은 훨씬 더 근사한 여행을 할 수 있었을
뗀테!!! 고1 때 영어 선생하고 싸운 후에 영어공부 때려치운 게
갑자기 후회된다.
보통 "51번 일어나서 읽어 봐" 선생님이 이렇게 시키면 내 번호를
불러도 옆엣놈보고 일어나서 읽으라고 시키고, 그러면 그놈이 할 수
없이 일어나서 읽고 그랬는데 어느 날은 이 선생이 번호를 지적
안하고 "전유성이 읽어 봐!" 이렇게 딱 찍어서 지적을 하는 거다.
할 수 없이 일어나서 떠듬떠듬 읽어 내려가는데 '2,800
people'이라는 말이 문장중에 나왔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충
넘어가려고 "이천팔백 피플"하고 읽어버렸다.
영어 선생이 당연히 당황해서 얼굴색이 변했지. 너 숫자를 왜
그렇게 읽느냔다. "난 숫자를 영어로 몰라서 그렇다" 그랬더니 이
선생이 성질을 막 내는 거다. 고등학교 1학년 놈이 뭘 모른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우리 반에 이거 제대로 읽을 줄 아는 놈
있을면 손들어보라"고. 그랬더니 정말 한 5분의 4가 몰라. 거의 다
모드더라고. 그러자 이선생이 막 화를 낸다.
그래서 "아, 까놓고 말해 영어는 배워서 뭐하냐"고 그랬니 이
선생하는 말이,"영어를 배우면 외교관도 되고… 통역사도 되고,
출세길이 어쩌구저쩌구…" 막 그러는 거야. "그럼 선생님은 영어
잘하면서 왜 우리 학교 선생밖에 못 됐냐"고 그랬더니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열을 받더라고, 퇴학을 시킨대, 날보고, 그래서 "퇴학이
영어 맘대로 시키는 거냐고, 영어 못 한다고 한국에서 퇴학시키는
게 말이 되냐고, 한국말 못한다고 퇴학시킨다면 몰라도" 이러면서
계속 깐죽거리니까 선생이 무진장 열받지, 퇴학을 꼭 시켜버리고
말겠다는 거야. "그런 건 학칙에 따라야지 선생 맘대로 학생이
덤빈다고 퇴학시키면 되냐"고 맘대로 하라고 그랬지. 그랬더니
나오라 그러더니 다짜고짜 막 패는 거야. 무지하게 얻어맞은 뒤에
내 자리에 들어와서 영어책을 북 찢어 던지고는(다시 말해 잉글리쉬
북을 북소리 나게 찢고는)밖으로 나가버렸지, 그 다음서부터 영어
시간에 안 들어갔다. 그래서 영어를 못하게 된 거지.
노리까이 얘기하다 잠시 옆길로 빠졌다.
융프라우에서 내려오는데 케이블카 앞에 한 떼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서 있다. 일본인 가이드가 사람 숫자를 세면서
케이블카에 태우고 있는데 정원이 다 찼다. 노리까이 하라던
가이드가 결국 못 탄채문이 닫히려고 한다. 그러자 일본인 여자
가이드가 문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고는 자기도 태워달라고
사정사정을 하는 거다. 자기는 가이드인데 지금 같이 내려가야
다음 기차를 탈 수 있다. 그러니 태워달라는 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차장은 안된단다. 그 사람들 한 번 안된다면 안되잖아.
기차 시간표며 다음 예정지를 계속해서 보여주면서 나중엔 울면서
사정사정을 하는데도 차장은 끝까지 문을 안 열어준다.
울면서 매달리고 있는 가이드의 등을 누군가 뒤에서 잡아당긴다.
케이블카에서 근무하는 직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와 같은
관광객이다. 당신 때문에 케이블카가 늦게 내려가면 다른 사람들이
계속 늦어진다는 것이다. 가이드는 울고불고, 나이 든 노인네들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하는데 눈물이 그치질 않는다.
안됐다. 참 안됐다. 융프라우 올라가는 길은 일본 자본이
엄청나게 들어가서 만들었다는데, 그래서 일본 아해들은 뿌듯한
마음으로 올라가고 우리 아해들은 약간 기죽어서 올라가는데
일본인이 이렇게 괄시받는 게 아이라니가 아닐 수 없다.
융프라우를 처음 올라갈 때는 터널로 해서 올라간다는 얘기는
몰랐기 땜에 터널이 나오면 금방 끝나나 보다 생각하는데, 언제
끝나나 하면서 밖의 경치 구경하다 보니까 터널 안에 그냥 정거장이
나타난다.
눈비가 많이 오는 나라니까 눈비 올 때를 대비해서(눈비 올 때도
장사 해 먹으려고) 융프라우 정거장을 터널 안에 만든 건가? 그러다
보니까 옷을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반바지에 샌들
신고 올라오는 배낭족들도 많으니까. 물론 얼음 동굴에서는 좀
추워하는데 그저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반가운 건 융프라우 관광기차가 올해부턴 한국말 설명을 해준다는
거다. 여러 나라 말에 이어 우리나라 목소리로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이북 출신 여자가 녹음을 했는지 방송을 들어보면 마치
이북 방송듣는 기분이다. 내가 가서 다시 녹음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쩠든 기분은 좋다.
이문세 팬이나 조조 할인 밝히는 사람들을 위한 정보, 인터라켄
올라가는 관광열차표에서는 조조 할인이 있다. 그런데 이게 값은
싸지만 새벽에 올라가면 가는 동안 해가 뜨지 않아 아무것도 못보는
불상사가 생길 수 도 있으니 겨울에 가는 배낭족들은 명심할
일이다!!
가짜 신동엽이 왔다 간 스위스이 곱창전골집
한국을 떠나온 지 두 달하고도 11일, 아직도 못 버리는
아침7시30분이면 눈을 뜨는 습관.
스위스 어느 식당에서 곱창전골을 먹었다. 17일 날 신동엽이
다녀갔다고 사인 북에 전혀 있는데 이 아해가 지금은 어디 있을까?
이런 데서 만나면 더욱 신날 텐데!! 이제 유럽 배낭족 출신
개그맨들도 하나둘 생기겠지!!!했는데 한국에 와서 동엽이한테
물어보니까 안 왔단다. 그러니까 다른 아해가 장난으로 써놓은
거다. 어쩐지! 그때도 의아하게 생각했다. 애들이 올 시간이 없을
텐데…
곱창이 외국에서 굉장히 싼 고긴데 그 집은 너무나 맛이 없었다.
만들어놓고는 연신 "맛있죠, 맛있죠?" 그러는데 맛이 너무 없으니가
빈말 몇 마디도 뭐라고 할 수가 없는 거야. 십 년쯤 전에 고장난
자전거 바퀴 해진 거 잘라 논 걸로 곱창전골을 해준 거 같은데 갑은
또 되게 비싸요. 그래서 주인 아줌마가 혹시 한국에 오면 내가
곱창전골을 정말 정식으로 한 그릇 사주고 싶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이 곱창 아줌마처럼 뻔한 대답을 원하면서
질문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럴 땐 그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대답을 해줘야 하는가 하고 고민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솔직하게 맛이 없다고 그러면 금방 실망할 거 아니냐구. 그렇다고
빈말을 할 수도 없잖아. 맛이 없는걸. OX가 안되는 답을 묻긴 왜
묻는지 묻고 싶다.
작년인가 부산 동래 허심청 앞에 있는 어느 해물탕집에서의
일이다. 해물탕 전문이라는 집인데 주인 여자가 와서 무지하게
아는 체를 하는 거다.
"부산은 어쩐 일이세요? 공연 있어요? 어디 출연해요?"
심지어는 "옆에 계신 분은 누구세요?""테레비에 나오는 분
아니세용?""우리집에 주현미도 왔다 갔어요."
질문하는 사이에도 해물탕은 끊는다.
"우리 아들이 전유성씨 되게 좋아하는데 지금 학교 갔어요.?
그러더니 주방에 대고 "아줌마 이리 나와 봐요. 전유성씨 몰라요?"
"그런데 참 진미령이는 왜 같이 안 왔어요?"
드디어 해물탕이 다 끊었다. 한 숟가락 뜨기도 전에 다시 질문이
쏟아진다.
"우리집 해물탕 맛 어때요?"
한 숟가락 떠먹으니 짜기만 하고 정말 맛이 없었다. 대답을 안하고
그냥 먹으려는데 계속해서 묻는다.
"어때요 해물탕 맛?"
그래도 나는 대답을 안 했다. 다시 집요하게 묻는다.
"맛있지요? 우리집 해물탕. 딴 데서는 우리집 흉내도 못 내요."
속으로 '흉내를 왜 못 내냐, 간장만 갖다 부으면 될 텐데'
하면서도 아무 말 없이 먹으려는데 이 여자가 내 옆에서 떠날 줄을
모르는 거다. 그럴 때 "네 맛있어요"하고 빈말 한마디 못하는 나도
문제지만 대답을 안 하면 그런가 보다 해야지 악착같이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들으려고 물어보는 주인 여자도 눈치 없는 여자가
아닌가 말이다. 하두 물어보길래 나중에 "너무 짜다"고 했더니 이
여자가 깜짝 놀란다.
"딴 사람은 다 맛있다던데요?"
그럼 뭐하러 물어보는 거야. 그래서 결국은 그 집을 나올 때 난
속으로 다짐했지.'그래 결심했어! 다시는 이 집에 안 오는
거야!!!'
내 주위에 이런 사람이 정말 서너 명 있다. 음식점도 안 하면서
말이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자기가 할 일을 미리 다 결정해놓고
나서 남에게 상의하는 사람이다. "동쪽으로 가는 게 좋을까요?
서쪽으로 가는게 좋을까요?"
남은 열심히 대답을 해주고 설명해주고 같이 진지하게 상의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알고 보면 미리 남쪽으로 가려고 결정해놓은
자식들, 번번히 속다가 나중에 정말 열받게 하는 자식들이다. 남의
집 냉면 한 번도 안 먹어보고 냉면집 차려 돈 벌어보겠다고
생각하는 인간들, 정말 맛없게 냉면 만들면서 손님들 입맛만
나무라는 이상한 식당 주인들, 그런 사람 많잖아, 왜.
영국에서는 피자집에 위스키를 마시러 갔다. 갔는데 위스키를 안
판단다. 할 수 없이 파스탄가 뭔가를 먹었는데 너무 비싸다.
그래서 나오다 그 앞에 있는 인도 음식점을 보니 메뉴판을 밖에다
내다 붙였는데 1.8파운드 어쩌구저쩌구 이렇게 적혀 있다. "어.
이거 생각보담 싸네"하고 그날 저녁에 갔지. 들어가서 뭐가 뭔지
몰라 망설이고 헤매고 있는데 종업원이 와서 스폐셜을 들어보란다.
그게 뭔가를 설명하는데 우리 일행 중 미령이를(돈 낼 사람이라는
걸 정확히 알아보는 눈을 가졌다 그놈은) 자기가 권한 음식을 먹고
있는 다른 테이블로 데리고 가더니 먹고 있는 사람에게 "나이스
나이스?"하고 물어보는 거다. 먹던 사람이 "나이스"란다. 그럴 때
그 음식 먹으면서 "아니오" 할 놈 있으면 손 들어보라고 해! 그래서
할 수 없이 그걸 시켜 먹었는데 계산하면서 보니까 굉장히 비싼
거다. 그래서 메뉴판을 자세히 보니까 에피타이저 값이
1.8파운드였고 본 음식을 다 치니까 어저께 먹은 그 피자집보다
훨씬 비싸다. 뭐 피하려다 뭐 만난 거지.
하이라이트는 다시 스위스다. 낮에 어느 레스토랑을 지나가다
보니까 우리의 육회 같은 걸 누가 먹고 있길래 저녁에 그 집에
들러서 그걸 시켰는데 음식 이름을 몰라 한참을 헤맸다. 미령이가
일본말로 사시미… 뭐라고 하고 소고기 얇게 저민 것을 손으로 써는
시늉을 해가면서 설명을 해댔지.
나는 성질이 급해서 "야, 딴 거 시켜 먹자"하는데도 처는
끈질기게 시도를 한다. 나중에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종업원이
나타났는데 갑자기 '웰던'하고, 내가 아는 단어가 나오는 거다.
웰던 하면 비프스테이크를 시킬 때 확실하게 구워달라는 거 아닌가?
알아들은 것 같냐고 물었더니 대강 알아들은 것 같단다. 나중에
음식을 가져오는데 보니까 우리가 시키려고 한 거다. 알고 보니
웰던 반대냐고 물은 거란다. 나중에 그 음식 이름을 알아서 파리에
돌아와 가이드하는 김현수에게 들으니 카파치오라고 한단다. 먹고
싶은 만큼 더 갖다 달라면 얼마든지 공짜로 주는 음식이라는 거다.
우리는 황당했다. 맛있다고 일인분을 더 시켜서 이인분 값을 내고
왔으니 말이다.
그래서 생각한 건데, 배낭여행 설명회 때 각국 메뉴를 설명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을따? 있다면 고민이고 없다면 누가 개발해봐도 될
텐데, 특강 같은 거 열면 올 사람들 꽤 있을 거다.
"스위스 가서 호텔 문짝 부쉈대매요?"
아주 오래 전 우리에게는 이상한 자랑거리들이 있었다. 다방에서
실수로 커피잔을 깨트리고 물어줄 돈이 없어서 지배인한테 아주
개망신스럽게 야단을 맞고서, 친구들이 요즘 그 다방에 왜 안
가냐고 하면 "내가 다방을 엎어버렸잖냐!" 이러면서 자랑을 하던
시절, 그뿐인가? 통금에 걸려서 파출소에 붙들려가러나 노상방뇨를
하다가 붙들려가더라도 그것이 무슨 대단한 자랑인 것처럼
떠벌려댔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각서를 써주고 훈방으로 나오고는 소장
책상을 부쉈다느니, 파출소 유리창을 다 깨고 나왔다느니, 순경이
하도 뭐라고 그러길래 얌전하게 있다가 "비상전화 한 통
씁시다"했더니 순경이 바짝 얼면서 봐주더라는 이야기를 자랑처럼
떠벌리고 다녔다. 이런 이야기들이 시중에 아주 자연스럽게
여기저기 떠돌아다녔고 몇 번씩 이야기할수록 점점 단어들이
세련되게 변하면서 소설은 더욱 재미 있어졌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아무도 없이 혼자 있을 때 일어났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왜 그때는 다들 그렇게 불량스럽게 보이려고 애를 썼을까? 톱으로
후려쳤더니 코가 떨어져서 떨어진 코를 들고 병원으로 뛰어갔다는
등의 아무도 확인하지 못한 무용담을 들으면서 한 번도 써먹지 못할
공갈 반도를 차고 다니고, 한 손으로 한쪽 끝을 쳐서 손에 공간
반도가 척 한 번에 감기는 연습을 하고 다니고 말이다. 빵집에서
쌔벼온 포크를 두 개는 안쪽으로 두 개는 밖으로 구부리고 손잡이
부분을 안으로 구부려 오른손에 끼워보기도 하고,"누구는 야전
도끼를 가지고 다닌대, 누구는 자전거 체인을 가지고 다닌대"
그러면서 만년필 빈 속통에 화약을 넣고 다니기도 했다.
어느 선배는 넥타이 끝에 면도칼을 달고 다니다가 싸울 땐
넥타이를 휘둘렀다나? 상대방 얼굴엔 면도칼 자국이 나지만
파출소에 잡혀가면 증거가 없어서 그냥 풀려난다면서 순경들을
바지저고리로 만들더군. 접었다 폈다 하는 머리빗을 퍼니까
상대방이 잭나이프인 줄 알고 도망을 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통쾌하게 생각하고 '나도 하나 사야지' 하던 시절, 아무짝에도 쓸모
없고 괜히 학교에서 가장 검사할 때 들통이 나서 정학 맞는데나
쓰였던, 전찻길에 깔아놓아서 납작하게 되었던 대못, 일명
아이구찌!
요즘은 그런 일이 없어졌지만 그 망령들이 해외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여행하면서 옛날 얘기를 하는 애들한테 "요샌 참 좋아졌어.
우리 때는 말야. 비행기 시동이 꺼지면 내려서 막 밀었다니깐"
이렇게 한마디씩 끼여드는 허풍하고는 질이 다르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스위스 호텔에서 문짝을 때려 부순 무용담(?) 얘기다.
얼마 전 어느 소도시의 공무원 세 명이 스위스에서 술이 취해
호텔 문짝을 부숴버리고 스위스 경찰에 붙들려가서 싹싹 빌고
풀려난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일행은 그 이야기를
듣고 매우 흥분했다. 빼주지 말아야지 왜 빼줬냐고, 그러나
가이드들은 만장일치로 우선 빼주고 보자는 쪽이었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단 사고가 나면 사람부터 빼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지
않냐며! 그 다음 질문이 그럼 돈은 누가 물어주었냐는 것이었다.
여행사에서 물어줬단다. 이런 세상에!!! 그 말을 들으니 다방에서
개망신당하고 파출소에 가서 야단 맞고 자랑스레 떠벌리던 생각이
갑자기 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기네들끼리 은밀히 그 소동을 즐길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부풀려서 마치 스위스
알프스 정상을 맨발로 정복한 것처럼 떠벌려댈 것이 틀림없다.
셋이 같이 호텔 문짝을 부숴버렸으니 증인동 있고 얼마나 신나는
달방이겠는가??? 유럽 이야기만 나오면 스위스를 떠올릴 것이고
스위스 시계 찬 사람만 보아도, 요들송만 들어도, 호텔 문짝뿐
아니라 호텔 전체가 박살나는 이야기로 얼마나 부풀려질 것인가
뻔한 일이다. 나중에는 서로 자기가 많이 부쉈다고 싸우지나
않을는지 몰라!!!
나는 정말 열받는다. 회사원도 아닌 공무원이 그랬다는 게 정말
세금 내고 싶지 않다. 방송인으로서 이 사람들을 방송에 한 번
출연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위스 갔다온 사람으로,
그리고 스위스에서의 일을 상세히 한 번 들어보는 거다. "호텔
문짝 부쉈대매요?" 이렇게 물으면 이 사람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생방송에 말이다.
내가 스위스법을 어떻게 알아?
정말이다. 우리가 스위스에 갈 적엔 통나무집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고생하는 우리나라 배낭족 아해들 몇 명 불러 밥도 해먹이고
우리도 풀 쉬자고 떠났다. 박물관도 가지 말고 미술관도 가지 말고
정말 쉬자고 떠난 것이다. 통나무집을 빌려주는 데가 있다고 해서
그걸 통째로 한 번 빌리자 해서 물어물어 그런 데를 찾아 나섰다.
융프라우 밑 인터라켄 쪽이란다.
밤9시쯤 도착해서 가져간 쌀과 라면, 각종 반찬을 풀어놓을
통나무집(캐빈) 한 채를 예약하려고 전화를 걸어보니 방이 있단다.
한창 상냥하게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냐, 몇 인용이 좋겠느냐,
준비된 것은 많다"던 전화 건너편의 목소리가 마지막 국적을 묻는
질문에 "꼬레야"라고 답했더니 태도가 돌변했다. "방이 없다"는
것이다. 너무너무 열이 받쳤다.
간신히 예약을 하고 통나무집을 빌려주는 호텔로 갔더니 방이
가득찼단다. 분명 전화로 방을 예약하고 그곳을 찾은 건데도
지배인은 우리에게 아주 냉담한 반응이었고, 지배인의 누치를
살피던 예약담당은 슬슬 예약표를 지워버리는 게 아닌가, 우리가
한쪽에 서 있는데 지배인 놈이 여기서 나가랜다. 김새잖아, 일단
나왔다.
그때 우리 일행에 여자 한 명이 더 있었다. 사랑의 유람선
비디오 찍으러 서울서 따라온 홍실장이다. 그 여자하고 미령이가
호텔로 가서 방을 얻었다. 그랬는데 그 호텔에 있는 아가씨가 두
명 치 돈을 받고 방을 안내해주고는 남자들도 와서 자도 된다고
얘길 했단다. 학생 아해들이 동양 사람들 얼굴을 잘 모르니까
옆자리도 비어 있는데 우리보고 여기 와서 같이 지내자고 해서
준태랑 나랑 거기서 잤다. 사실은 몰래 잔 거다. 그리고 아침이
돼서 미령일 데리고 다시 통나무집 빌려주는 데로 갔다. 이번엔
다른 데다.
큰 통나무집을 하나 달라고 그랬더니 여자 아해가 분명히 준다고
해놓고는 갑자기 웬 지배인이란 놈이 오더니 주지 말란다. 이유가
뭐냐고 따졌더니 좀 기다리라느니 어쩌니 하는데 우리가 듣기에는
한국 사람이니까 주지 말라는 거 같다.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안된다는 거야. 더 기다리란다, 두 시간을,"그럼 그 동안은
뭐하냐, 대체 왜 그러냐" 그랬더니 청소하기 땜에 그렇단다.
그래서 가 봤더니 청소가 다 돼있다. 열불이 난다. 그래도
기다렸지, 얘네들이 기다리라는 시간에서 세 시간을 기다린 거잖아,
우리가 여행 다니면서 세 시간을 앉아서 기다린다는 건 굉장한
시간낭비라고, 그렇게 세 시간을 기다렸는데도 결국 대답은 안
준다는 거다. 우리는 그때 아침을 못 먹고 점심도 안 먹었기
때문에 한국 학생들이 얻어 자는 방에서 밥을 해먹고 있었는데 내가
잠깐 사진을 찍고 들어가니까 미령이와 우리 일행이 밥을 먹고 있는
사이 여기서 나가라고 난리가 났다. "밥을 왜 해먹냐, 경찰을
부르겠다"며 한바탕 싸움이 붙은 거다.
"야, 이 자식들아, 우리가 세 시간을 기다렸는데 니놈들이
어쩌고…" 대들며 따졌지만 결국은 우리가 쫓겨난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스위스, 나라 보러 왔지 인간 보러 왔냐, 아이구 더러운
놈한테 걸렸네!"
생각할수록 열받는다. 정말이다. 나쁜 자식이다. 그렇게
인종차별을 하더니, 통나무집을 외국 아해들에겐 분명히 빌려준단
말야, 그런데 한국 사람들한테는 안 주는 거다. 외국 학생들은 여유
있게 캠핑시설을 즐기는데 우리 학생들은 화기 단 두 개로 20여
명이 줄지어서 밥을 해먹으며, 수용소같이 많은 인원이 한 방에
잔단다. 똑같은 돈을 내고도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숙박을
거절당하거나, 아주 형편없는 시설을 제공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만의 소리가 없다. 부당한 대우에는 당당히 항의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그날 밤에도 그래서 우리가 인포에 가 호텔을 물어봤다. 배낭족
학생들에게 말했다. 인종차별 한다고, 그랬더니 그네들은 잘
모르고 "안 그렇던데요?" 하는 것이다. 그걸 보니 아해들도 잘
모르는 거지, 방이 있냐고 물으니까 인포 직원이 아, 있단다."네
명이다" 그러니까 국적이 어디냐 묻는다. "한국이다" 그랬더니
갑자기 안면을 바꾼다. 없다는 거다. 그러니까 이 지배인 놈이
전화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 스타일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거지.
정말 한국 사람들이 와서 개판을 쳐서 그럴 수도 있다. 술
마시고 뭐하고 막 밤새 개판을 쳤단다. 그러면 그렇게 개판을 친
당사자가 누구냐 이건데, 통나무를 빌릴 정도라면 아해들은 아니다
이거지, 끝까지 나는 배낭족을 옹호하는 입장인데, 사실
배낭족으로선 감히 빌릴수가 없는 돈이거든.
스위스 관광성에 얘기해서 이놈들을 짤라버릴까, 통나무집 앞에서
연좌농성을 할까 별별 생각을 다 했지만 결국 그냥 왔다. 밥
먹으라고 방 빌려준 애들한테 간다는 얘기도 못 하고, 혹시 스위스
놈들한테 쫓겨나서 피해를 입었는지 알아보지도 못하고 와서
걔네들한테 지금도 미안하다.
근데 한국에 와서 보니까 우리가 묵었던 그 캠프장이 신문에
났다. 인종차별을 심하게 한다고 신문에 실제로 난 거다. 그렇게
불친절하기 땜에 친절하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나, 그리고 옆에
사진이 딱 나왔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가서
싸웠던 그 못된 지배인 놈이 있던 호텔 사진이다. 그러니까 못된
놈들이라는 거지.
우리가 추태를 부렸다고 치자구. 스위스 입장에서나 추태지 우리
입장에선 당연한 거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까 관광공사 사람들이
사실은 "얘들아, 스위스 아해들아, 거기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서
좀 피곤하지? 그런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성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래 그래,
그러니까 너희가 이해해라, 대신 장사 많이 시켜주잖아?"하고 그
사람들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있어야지, 스위스에서 그런 걸
가지고 스위스 사람들이 재는 잣대로 똑같이 스위스 입장에 서서
우리가 추태를 부렸다고 얘길 한다는 거는 매국노 같은 놈이다.
지가 무슨 스위스 놈이야? 스위스 온 지 하루 이틀 만에 우리가
스위스법을 어떻게 알아? 우리야 한 번 오지만 여러 번 손님
받아본 프로들이 이해를 해야 할 거 아니냐구!!
나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비하하고 스스로 깔볼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고 그래서 외국에서 만나면 한국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무지하게 반갑잖아. 모처럼 타국에서 같이
만나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떠드는 게 추태라니 말이 안 된다.
우리만의 오래된 관습이지, 그게 왜 추태냔 말이다.
번지 점프의 원조는 한국이다??
스위스에는 지형을 이용한 스포츠가 세 가지 있다.
'래프팅'이라고 하는 급류 타기가 있고 또 계곡을 그냥 막걸어
내려가는, 물살이 센 폭포 같은 데를 막 곤두박질을 쳐가면서 그냥
휩쓸려 내려가는 '계곡 물 타고 내려오기' 그리고 '번지 점프'
이렇게 세 가지다. 유럽 사람들은 계곡 물타고 내려오기를 제일
좋아하는데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급류 타기나 번지 점프를
좋아한단다.
우리 배낭여행족 학생들 가운데는 번지 점프를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하고 싶다고 다 하는 것은 아니다.
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스위스 프랑으로 100미터 위에서
떨어지는데 100프랑이란다. 우리 돈으로 6만원이 넘는다. 1미터
떨어지는데 1프랑씩이다. 그래서 학생들마다 막판까지 할까말까를
망설이고 일단 한 번 뛰어내리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그날부터 며칠
굶을 각오를 해야 한다.
아마 어른들은 아해들이 번지 점프를 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말릴
것이다. 혹시 잘못될 걸 걱정하기 때문이다. 나도 마누라가
말렸으니까.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래? 줄이라도 끊어지면 어떡할라구? 누구
혼자 살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누구 과부 만들일 있어? 허리라도
다치면 어떡할 거야?" 이러구 말리는 미령이 때문에 나도 결국은 못
하고 말았다.
거기 안내하는 델 가보면 먼저 뛰어내린 사람들을 찍어놓은
비디오가 있는데 V자를 그리면서 뛰어내리는 사람도 있고 무슨 말을
하는지 어쩌구저쩌구 막 소리치면서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대견한 건, 그 떨리고 힘들고 무서운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한국이라는 이름 때문에 용기를 가지고 뛰어내린다는
사실이다. 뛰어내릴 적에 '하나, 둘, 셋' 이렇게 옆이나 뒤에서
아해들이 숫자를 막 불러주는데, 엄청 겁이 난단다. 얼굴이 허옇게
질려 있는데 진행자가 "당신네 나라 이름이 뭐냐?"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큰소리로 물으면 "코리아!!!" 이러구 고함을 지르면서
자기가 내뱉은 그 말 때문에 결국은 뛰어내린단다. 다른 나라
아해들이 쳐다보는데 나라 이름 물어보니 기죽지 않으려고 말이다.
대한민국이 쪽팔릴까 봐 대한의 아해들이 뛰어내린다는 것을
어른들은 알고 있으라! 당신들이 생각하는 가장 안 좋은 상황에서도
그들은 코리아를 생각한다. 대단한 애국심이 아닌가.
번지 점프를 왜 하려고 그러느냐고 학생들에게 물어봤더니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다면 한다'에서 이홍렬이가 뛰어내리는
걸 보고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여러 아해들이 그
얘길 한다. 그래서 나는 개그맨들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홍렬이도 뛰어내릴땐 상당히 겁이 났다고 그러더라고. 정말로
떨어지기 싫었는데 방송이 뭔지. 그래서 할 수 없이 떨어지면서
"야, 이 나쁜 자식들아!" 그러구 카메라를 보고 외치면서
떨어졌다는 거야.
여기 스위스는 더 위험한 게 이홍렬이처럼 물 위에 떨어지는 게
아니라 산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줄을 매달아놓고 케일블카를 타고
올라가서는 주차장을 향해서 뛰어내리게 돼 있다. 잘못하면 맨땅에
해딩하는 수가 있으니 그야말로 아찔한 거지.
그래서 내가 한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이홍렬이가 카메라를
보면서 그런 것처럼 "야, 이 나쁜 자식들아" 그러면서 뛰어내리면
내가 100프랑을 주겠다고 그랬다. 양심적으로 정말 그렇게만
한다면 말이다. 꼭 그 말이 아니더라도 여덟 글자짜리로 아무 거나
외치고 뛰어내리면 무조건 내가 번지 점프 값을 대신 내주겠다 그런
거다. 애들이 좋단다. 그렇게 하자는 거다.
그런데 한 예닐곱 명이 뛰어내렸는데 막상 아무도 그 말을
못했다.
딱 여덟 마딘데도 그게 안 되더란다. 뛰어내리는 순간이 되면
막상 너무 겁이 나서 그냥 "악!!!" 비명밖에 못 지르고 끝났다는
거지. 어떤 아해는 외국 애들이 뛰어내릴 적에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리는 걸 보고 근사해보여서 자기도 그렇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그냥 "으악!!!"하고 뛰어내렸단다.
뛰어내린 아해들 이야길 들어보면 정말 별의별 얘기가 다 있다.
'다시 한 번 내려갔다 출렁거릴 때가 더 겁났다''악! 소리뿐이 안
나더라''뛰어내린 게 아니라 떨어진 거다''기분이 정말 짜릿했다'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오줌 쌀 뻔했다''살아온 인생이 다
보이더라'등등. 다시 하겠냐고 그러니까 다시는 못하겠다. 그렇게
겁먹었던 친구 중 하나를 나중에 뮌헨에서 다시 만났는데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단다. 그러게 여행은 담력을 키워준다는 말이 맞는
거지.
그런데 말이다.'번지 점프의 원조는 한국'이라는 얘기가 있다.
이 얘길 거기서 만난 아해들한테도 다 해줬는데, 그게 뭐냐면,
옛날에 우리나라 주막집에서 왜 과객들이 길가다 쉬면서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잠도 자고 그랬잖아. 대개는 다 후불로 계산하고
그랬는데 술 먹고 계산 제대로 하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그래서
도망을 못 가게 하려고 주인이 손님 잘 적에 뒷다리를 한 짝씩 다
묶어놨대. 그런데 이 친구들이 돈은 없고 계산은 해야 되고 할 수
없이 자다가 일어나 도망을 가다가는 주막집 근처 자리를 잘 몰라
가지고 외나무다리 같은 데서 그만 톡 떨어져 가지고 대롱대롱 밤새
매달린다는 거야, 그 다음날 주인이 그걸 발견해 올려줘 가지고는
간신히 살아나고.
그래서 가난한 길손들에게는 주막이 아주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거지. 그래서 사람들은 그 뒤부터 번지 있는 데도
절대 안 갔대. 그러다 보니 주막마다 매상이 뚝 떨어지고, 그래서
주막들이 앞을 다투어 '우리집은 번지가 없다' 이런 푯말도 내다
걸고 그러면서 손님 끌기에 나섰다는 거야. 오죽하면 '번지 없는
주막'이라는 노래까지 나오고 그랬다는 거 아냐.
이런 얘기를 막하면서 우리나라가 번지 점프의 원조다 그랬더니
다 믿는다. 학생들이 그렇게 순진하더라는 거지. 내 말을 그대로
믿는 거야. 눈을 끔뻑거리면서.
배낭족 아해들과 호텔 팩 아해들
발모아 유스호스텔은 전형적인 유럽식 유스호스텔이다. 많을 땐
500명 정도가 와서 잔단다. 수용시설의 두 배가 넘는 사람들이
오는 거란다. 외국 여러 나라 아해들과 우리 나라 배낭족들이
3분의 1은 된다. 오죽하면 한국 사람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했을까.
열댓 평의 유스호스텔 식당에 수십 명이 모여서 밥을 먹었다.
외국 아해들 정말 시끄럽다. 그 큰 목소리로 지치지도 않고
떠들어댄다. 우리 아해들 목소리는 거기 비하면 정말 작은거다.
낄낄대고 웃는 아해, 호들갑스럽게 웃는 아해, 저 아해들이 상대방
말이나 듣고 지 이야기를 하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큰소리로
이야기를 해댄다.
아비뇽에서 음악극을 구경할 때 웃는 장면에서 혼자 크게 웃던
여자가 생각난다. 유난히 큰 목소리로 웃는데, 웃기는 장면에서
크게 웃는 게 당연한데도 나는 "저런 미친년이 있나?" 하는
생각으로 그 여자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잘 웃어주는 여자를
고맙게 생각해야 되는 개그맨인데도 말이다. 좌우지간에 우리의
목소리는 작다.
사람이 많다 보니 이것도 호텔이냐고 항의하고 투덜대는 호텔 팩
아해들이 있는가 하면 배낭족 아해들은 잠자리 구한 것만도 굉장히
고맙게 생각한다. 식당 의자 치워놓고 바닥에 매트리스 깔고 자는
것만도 감지덕지다. 나도 마찬가지다. 다행인 것은 역에서 만난
배낭족들과 합해서 우리 일행이 여덟 명이었는데 식당 의자 치우고
그나마 열명을 같은 바닥에 자도록 배정해준 것이다. 한국
아르바이트생이 너무 너무 고마웠다.
우리 일행인 준태가 굉장히 코를 심하게 골거든. 그래서 두 줄로
쭉 자는데, 우리는 한쪽 구석 바닥에서 자고 준태는 내 옆
빈자리에서 맘껏 코를 골며 잤다. 처음엔 그 아르바이트생 아해가
우릴 보고 "화장실은 몇 시까지 써야 되고 세면장은 또 몇 시까지
써야 되구요" 막 그러길래, 왜 만나면 좀 잘난 척하고 괜히 그런
놈들 있잖아. 그런 배낭족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르바이트생인
거야.
급류 타기를 하러 가야 되는데 그 많은 외국 학생들 사이에 짐이
걱정이다. 짐 맡기는 데가 어디 있냐고 했더니 아르바이트하는
한국 학생이 식당 옆에 그냥 놓고 가란다. 우리는 도둑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약간은 불안한 마음으로 괜찮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 친구하는 이야기가 질문한 나를 당혹하게 한다. "여기
학생들은 자기 짐이 많아서 남의 것 손을 못 대요! 그냥 갔다
오세요." 얼마나 창피했더니, 집시가 사람을 이렇게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나도 사실은 괜찮은 놈인데 말이다.
여기서 만난 배낭족 학생들 애기가 20대도 초반 중반이
세대차이가 난단다. 20대 중반 여자 배낭족이 말한다. "요즘 20대
초반 아해들은 김치 생각이 안 난대요. 햄버거 세대라 김치 그렇게
안 찾아요." 정말 20대 중반 아해들은 부피를 줄이려고
부스러트려서 가지고 왔다는 라면을 꺼내 끓여 먹는데 그 밑의
아해들은 마카로니 스파게티 이런 걸 사다가 끓여 먹는다.
호텔 팩 아해들 얘기가 잠깐 나왔는데, 유럽에 와보니 세 가지
팩이 있다. 열쇠고리 팩, 그레고리 팩, 호텔 팩이다. 배낭족과
호텔 패키지 사이에는 묘한 위화감이 흐른다. 서로가 안 좋아한다.
그리고 서로 안 좋아하는 걸 서로 안다. 호텔 팩은 배낭족을 돈도
없는 것들, 개털들로 보고, 배낭족은 호텔 팩을 보며 돈지랄들 하러
왔구나 생각해갖고 서로 싫어하는 거다.
한 도시에 도착을 하면 호텔 팩 아해들은 쇼핑부터, 배낭족
아해들은 잠자리부터 해결한다. 호텔 팩 아해들은 잠자리부터
해결한다. 호텔 팩 아해들은 빵빵한 집안이 많단다. 부모님들이
걱정이 되어서 호텔 팩으로 보내주니까 그 돈 받아가지고
배낭여행을 다니는 아해들도 많다. 그리고 친구랑 둘이 간다고
그러고 혼자 가기도 한다. 유럽여행 간다니까 부모님이 보내주긴
했는데 객지에서 고생이 많을까 봐 호텔 팩으로 해줘서 왔다는 한
여학생, 와서 보니 그 아해들이랑 다니기에는 금전적으로 너무
벅차더란다. 같이 맞추기가 힘들어서 다음에 올 적엔 한 번
와봤으니까 부모님에게 잘 말씀드려서 개인 배낭여행으로 오겠다는
거다. 유럽여행 다시 오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것만 해도 큰
깨달음, 부처 됐네!
급류 타기는 인스부르크에서
스위스에서 급류 타기는 재미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권할
만하다. 사실 급류 타기는 급류라는 말이 주는 묘한 매력도 있고,
약간은 위험스럽기도 하고 모험하는 기분이 들 것도 같아 상당히
해보고 싶었다. 짜릿한 스릴감도 맛보고, 번지 점프는 마누라들이
무조건 말리니 해볼 수가 없다. 꿩 대신 닭이라고 급류 타기를
해보기를 했다.
모두들 처음이라 약간씩은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타기
전에 지금이라고 취소가 안 될까 하는 농담도 던졌지만 사실 그게
본심이었다. 타기 전에 노 젓는 연습을 지상에서 하는데, 우선
배에 올라타니 배 난간에 앉으라는 거다. 자연히 엉덩이가 배
안쪽으로 들어가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된다. 탈의실에서 보온
옷을 갈아입을 때는 수영복을 속에 입으랬는데 우리 여학생 중에는
청반바지를 속에 입고 그냥 타는 아해들도 있다. 물어보니
몰랐단다. 급류 타기엔 수영복을 반드시 가지고 갈 것!
물속에 들어가니 사실은 별거 아니다. 5분쯤 지나자 긴장들이
풀리면서 "아하, 이 맛에 하는구나!"하고 얼굴에 미소들이
생겨났다. 노를 젓지 않아도 절로 떠내려가는 거다. 뒤에서
조교가 방향을 알아서 잡아주니 초보자들도 재미있다. 노 젓는
일도 한 세 번 젓다가 쉬고, 세 번 젓다가 또 쉬고 그렇게
널널하다. 한참을 내려가는데 이제는 물에 뛰어들어서 떠내려가고
싶은 사람은 떠내려오란다. 이제 사실은 하이라이튼데 나는 못
뛰어내렸다. 같이 탄 일행들은 물속으로 다뛰어내린다.
이쯤에선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호수와 합하게 되는데 물
색깔이 다르다. 계곡물은 석회질 물인데 호숫물은 파랗다. 수심이
3백 미터에서 5백 미터까지 된단다. 호수에서 끝이 나게 되는데
물도 차지 않다. 마지막으로 모두 다 뛰어내리라고 조교가 명령을
내린다. "에라 모르겠다. 죽기 아니면 가무러치기다" 하고
뛰어내렸는데 구명조끼가 있으니 빠지지는 않는다. 허부적허부적
불안감을 가지고 헤엄을 치는데 앞서 가던 여자 아해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는 게 아닌가, 아이고 이게 왠일, 일어서고 보니 우리가
뛰어내린 자리는 깊이가 무릎팍밖에 안 된다. 우리만이 아니고
다음 팀도 마찬가지로 허부적대다가 멋쩍게 일어난다. 서로들
민망해하면서.
인스부르크에서의 급류 타기는 더 흥미진진하다. 급류 타기를
기차역에서 신청하고 각자 알아서 잠을 해결한 후 새벽에 기차를
타고 임스트 역에 올라가면 차가 사람들을 데리러 온다. 한국
배낭족만 18명이다. 외국 아해들은 한 명도 없다. 그만큼 한국
아해들에게 인기다. 또 가격도 스위스보담 싸다. 나도 스위스에서
한 번 경험을 해보고 재미있어서 곧장 인스부르크까지 올라왔다.
급류 타기라는 것은 하는 일이 세 가지다. "스놉, 앞으로 젓기,
뒤로 젓기!"다. 한국 아해들이 많이 오니까 라이프가드들이
한국말로 구호를 외쳐댄다. "앞으로, 뒤로!" 그리고 내려가는
동중에 하드하게 하는 것을 한국말로 뭐냐고 물어본다. "억수로!"
라고 누군가 가르쳐준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굳이 틀리다고
고쳐주고 싶지도 않다.
아주 오래 전 우리의 선배들은 외국인들이 단어를 물어보면 욕을
가르쳐주고 뜻도 모르는 외국인이 천연덕스럽게 욕을 하면 막
웃어대기도 했지만 이 아해들은 그 세대들하고는 다르기 때문이다.
실지로 여행하다 보면 우리 아해들,"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건배"등등 나쁘지 않은 말들을 여기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는데 아주
건강하게 보인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억수로, 뒤로!" 이렇게 구호를
외치면서 내려간다. 처음에는 겁을 먹지만 조금만 흘러 내려가면
그렇게 무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강가에 부딪히지 않게
방향을 뒤에서 잡아주기 때문이다.
급류 타기의 재미는 소용돌이를 만나면 청룡열차가 거꾸로
곤두박질 칠 때의 기분이랑 비슷하다는 거다. 너무 긴 건 위험할지
몰라도 2.30미터 정도는 "으악! 으악!" 소리 질러대면서 내려갈
만하다. 순탄하게 흘러가는 곳에서는 배 위에서 일어서기,
어깨동무하고 일어서기, 번호 붙이기, 앞에서 뒤로 뱃전 밟고
뛰어다니가, 소용돌이에서 옆으로 가기, 뒤로 가기, 그러다가 물에
뛰어들어 떠내려가기, 헤엄치기 등등이 재미있다. 물에
떠내려가기는 해도 구명조끼를 입었기 땜에 빠지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떠내려가고 싶지만 알프스의 눈이 녹아서 내려오기 때문에
물이 몹시 차서 아쉽게 금방 배 위로 올라오는 수밖에 없다.
떠내려가다 보면 다리 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사람이 진짜로
빠진 줄 알고 구경하느라 난리가 난다.
참고로 한만디한다면, 인스부르크에서 타본 사람은 스위스에서는
타지 말 일이다. 스위스보담은 인스부르크가 훨씬 스릴이 있어서
단박에 시시해지기 때문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스위스보담 값이
훨씬 싸다는 것이다. 타는 시간이 두 시간이라고 두 시간만
계산하면 안된다. 거의 한나절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배 타러
올라가는 시간, 타고 나서 다시 원래 장소로 오는 시간까지 말이다.
발모아 유스호스텔에서 파티를 한단다. 낮에 마지막 급류 타기
했던 장소에서, 사실은 파티라는 것을 빙자해서 장사하는 건데
"와와" 함성소리가 크다. 무슨 파티냐고 물으니 모른단다. 그래,
여행이란 것도 그렇고 세상사가 우리가 아는 데로만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모르면 어떠냐? 가보는 거다.
좋은 건 베낄수록 좋다.
스위스 쮜리히에서 본 건데, 공원 길바닥에 체스판을 무진장 크게
그려놓고 체스알을 무릎 크기로 만들어 노인네 두 사람이 대결을
하는데 사람들이 그 옆으로 의자를 빙 둘러놓고 앉아서 구경을
한다. 낑낑거리면서 두는데 작은 장기판에 머리를 대고 구경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고 보기도 좋다. 스위스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도시를 가다 보면 이런 모습이 종종 눈에 띄어서
'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서울 가며 저거 하나는 표절해야지, 꼭
만들어야지' 했다.
여행이 끝나고 서울에 돌아와 인사동에 장기판을 하나 만들었다.
240만원을 들여 만들었는데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굉장히 큰
액수였다. 궁을 비롯해서 차니 포니 상이니 졸이니 하는
장기알들을 모두 나무로 전각을 하고 200만원을 빌려서 조각한
사람에게 줬다. 그래서 얼마 전 인사동 축제 때 사람들이 가지고
놀수 있게 내놨는데 정말 웃겼다.
'궁'같은 건 나이 드신 분들이 혼자서 들기가 굉장히 힘들 정도로
크게 만들었기 때문에 "장 받아라!!" 그러면서 큰소리는 쳤는데
들지를 못해서 끙끙대는 모습이 굉장히 재미있게 보였다. 장기판은
파란테이프13개로 인사갤러리 앞에다가 임시로 만들었다. 장기를
둬본 사람은 알겠지만 차나 상 같은 자기 말로 상대방 장기알 위를
딱! 치면서 먹는 맛이 참 괜찮은데 이건 물론 그런 맛은 없다.
대신, 상대방 말을 따먹어야 되는데 무거우니까 폼 나게 들지를
못해 고역스러워하는 거라든가, 궁같은 건 무거워서 두세 명이
들어서 옮기고 그런 게 더 재미있었다.
인사동 축제 같은 땐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가장 한국적인
동네, 한국적인 모습을 보고 가길 원한다. 또 그런 자부심이 있는
동네가 인사동 관훈동이다. 서울 사람들이 그 작은 동네, 그 짧은
길에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배웠던,
을사보호 조약 때 화가 나신 민영환 선생님이 자격을 했더니
대나무가 솟아올랐다던 집이 아직도 남아 잇는데가 거기다.
이틀밖에 못 해서 좀 서운했지만 앞으로 대학 축제라든가
지역단위 축제 같은 때 이런 장기놀이가 활성화되면 굉장히
재미있을 거다.
유럽엘 가서 남들 본 것 똑같이 보고 오려면 갈 필요가 없다.
이런거 하나라도 건져 왔으니 그래도 보람이 있는 거지. 우리도
다니면서 이런 괜찮은 아이디어, 좋은 꺼리는 표절도 좀 하고
그러자. 표절한다고 자기 잇속을 차리거나 다른 사람들한테 민페
끼치는 게 아니잖아?
그런데 그 장기놀이에 재미있는 얘기가 또 하나 있다. 보통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살 적에 "30원이에요" 그랬는데 그 다음날
주인이 와 가지고 "아, 이거 어제 내가 계산을 잘못해가지고 그런데
사실은 35원이니가 돈 더 주세요" 그러면 "무슨 소리예요?
30원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면서 언쟁이 오갈수도 있고 시비의
조건이 되잖아. 그런데 그거 만들 때 우리 동네에서 200만원을
주고 조각하시는 분을 시켜서 전각을 떳거든. 그런데 하루는
조각하신 분이 우리가게로 왔더라고.
"이거 말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200만원 받는 거는 손핸 거
같습니다. 남는 게 없어요. 조금 더 주세요"그러는 거야.
생각해보니 그말도 일리는 있는거 같애, 무엇보다 그것 땜에 여러
사람이 이틀 동안 굉장히 즐겁게 잘 놀았잖아? 그래서 나도 흔쾌히
"그럼 20만원 더 드릴게요" 그랬어. 그래도 안 된다고 그러면
30만원 더 드려야지 했는데 "좋습니다"그러면서 가더라고. 그게
말야,'참 인간적으로 얘기가 되는 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그런 게 한국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몇 년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거든. 친구 차를 타고 주유소 앞을
가다가 친구가 기름 넣고 나오는 어떤 차를 들이받았어. 무사고
운전 경력5년인 이 친구가 머리까지 조아리면서 잘못을 비는데도
상대방 차주인이 육두문자까지 섞어가면서 친구 놈을 닦달을 하는
거야. 부아가 치밀어서 한마디만 더하면 내 이놈을 그냥 두나
봐라 하고 있는데 내 친구가 그러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냐고. 그랬더니 이놈이 앞 타이어를 발로 걷어차면서 막
투덜거리는 거야. "거참, 내일 이차를 아는 사람한테 넘기기로
했는데..."이러면서. 이 친구가 빨리 일을 수습하고 곤란한
상황을 빠져나가고 싶어서 "까짓거, 그럼 10만원만 내쇼. 나야
내일30만원에 팔아도 밑지는 건 아니니까"
깜짝 놀랐어. 얼마나 신선해? 차 사고만 났다 하면 일단 한밑천
잡고 보자는 사람이 허다한 요즘 세상에 40만원을 주겠다는데도
10만원만 달라기가 쉬운 일이냐구. 껄렁껄렁한 모양에
육두문자가지 섞어가며 사고낸 친구를 닦달하던 사람이 말야, 참
많이 유쾌하더라고. 두고 두고. 양심이란 건 결국 분수나 자족과
같은 말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그때 했더랬어.
그런데 이장기놀이 얘기가 속편이 있어. 그 아저씨가 말야,
며칠이 지났는데 또 왔더라고. 20만원을 더 달라는 거야.
이번에는 화가 나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일주일 뒤에
드릴게요!!!"
얼마 전에는 내가 최민수한테 결혼선물로 문패를 주려고 다시
부탁했거든. 15만원이라고 해서 찾으러 가니가 또 12만원이래는
거야. 15만원 하려고 그랬는데 생각해보니까 좀 비싼 거 같더라나.
그렇게 안 받아도 될 거 같다고 그러더라구. 그래서 12만원만
주고왔어. 아무튼 재미있는 아저씨야. 더 재미있는 건 그
문패에다,
늘 사랑으로 최민수 강주은 유성
이렇게 전각을 뜨고 그 밑에 한 줄은 비워놨거든. 아들 이름이
나랑 같은 유성이니까 아이 하나를 더 낳게 되면, 그리고 요행히
걔가 딸이면 내친 김에 미령이라고 지으라고 그랬어. 민수가 막
웃더라고. 그래야 말이 맞잖아?
오리 피하니까 백조 나타나네
7월 21일 쮜리히 역 앞에서 흑인 여자 배낭족을 처음으로 만났다.
쮜리히의 인상은, 낮에 술 취한 사람이 많다, 디스플레이가
뛰어나다, 배꼽티가 유난히 눈에 많이 뛴다는 거다.
거의 길 끝까지 걸어가다가 길을 잃었다. 유럽의 길이라는 게
우리처럼 네모가 나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서 골목을 조금만 잘못
들어가도 영 다른 데가 나온다, 다시 그 자리로 찾아온다는 게 여간
힘든게 아니다. 꼭 그 길로만 다시 돌아와야 된다.
자판기에서 전차표를 사야 되는데 사용법이 나라마다 다르니 참
답답하다. 일요일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택시도 없다. 몇
명에게 물으니 우리가 내릴 역을 한참 지나쳤단다. 나중에 보니 세
정거장이나 지나왔다. 에라 모르겠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무임승차를 하자고 마음 먹고 전차(여기서는 트램이라고
그런다)를 집어탔다. 처음으로 해보는 무임승차, 정말이지 묘한
불안감과 쾌감이 어우러진다.
유럽엔 공원도 많고 미술관도 많고 박물관도 많다. 처음엔 세
군데 다 돌아봐야 되는 줄 알고 무턱대고 다녔는데 나중엔 요령이
생긴다.
다른 곳엔 없지만 이곳엔 있는 것, 예를 들면 빙하공원 같은 곳은
꼭 가야겠구나 그런 거다. 그래서 빙하공원엘 갔다. 여긴 어디든지
돈 내고 들어가면 뭔가 얘깃거리가 있다. '거울의 미로'라고
거울로 만든 미로도 참 재미있는 데 중 하나다. 자리 공부하는
사람들은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쮜리히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호수 래만호에 백조가
오리랑 같이 논다. 둘 다 헤엄을 치고 놀다 목을 물 속에 화
집어넣어서 고기들을 잡아먹는다. 오리는 부러울 거다, 아마.
백조가 고기 잡을 때 목이 길어서 조금 더 깊은 곳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물고기가 볼 땐 오리가 쿡 하고
자기네들을 공격하는 거에 놀라 싹 피하면 백조가 순식간에 와서 확
집어먹는 거지. 그러니까 물고기들 사이에서도 그런 속담이 있을
수가 있다. 여우 피하니까 호랑이 나타난다고,'오리 피하니까
백조 나타나네' 뭐 그런.
여기서 잠깐, 유럽여행 길에 깨달음을 얻은 속담 몇 가지만
소개하고 넘어가자.
1. 파리에서 영어하기
2. 백인 심은 데 백인 나고 흑인 심은 데 흑인 난다.(사진하는
남자의 부인이 바람을 피워 애를 낳았는데 흑인이 나왔단다.
사진작가의 이야기,"노출이 안 맞았나???")
3. 로마에서 소매치기당하고 파리 와서 눈 흘긴다.
4. 벨기에서 새는 바가지 덴마크에서도 샌다.
스위스를 떠나려고 하니 좋은 캠프장도 보이고 시설이 괜찮아
보이는 유스호스텔도 여러 개 눈에 뛴다. 옷을 사도 그렇고
가전제품을 사도 그렇다. 물건을 사고 나서도 결정 짓고 난
다음에는 이상하게 내가 산 물건보다 좋은 것이 싼값에 나와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열받는 거지. 인간도 저 세상으로 갈
적에 후회할 일들이 많이 보이겠지!
배낭족 아해들 말을 들으니 헝가리가 좋다는 아해들도 있고
나쁘다는 아해들도 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나름대로 열심히
들어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일행의 다음 행선지가 헝가리하고
체코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이야기하던 배낭족 가운데 "여기
사람들이 우릴 보고 곤니찌와 하는 게 제일 싫어요"하던 여학생이
나에게 기념사진을 찍자고 한다. 그런데 찍다 보니 카메라가
SONY다. 이런!!!!
헝가리 가는 기차를 탔는데 여권도 안 보고 며칠 있을 건가를
적는데도 없다. 대신 돈, 담배, 술을 적으란다. 승무원이
적으라는 거다. 이거야 원, 불안하잖아, 돈 가진 건 왜 적으라는
거야, 동구권은 왜 이래??? 하면서 사실대로 적었다. 옆칸에 가서
한국 배낭족에게 물어보니 승무원이 적지 말랬단다. 승무원
마음이다. 이런 세상에.
부다페스트까지 가는 기차는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막
달린다. 기차가 방향을 바꾸는 이유는 국경을 통과해 여러 나라를
거치니까 그 나라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야 되잖아? 그런데
기차는 유턴이 안 된단 말이야. 그러니 대가리로 들어갔다가 꼬리로
나와야 되고 그라다 보니 방향이 바뀔 수밖에! 우리 일행 여자
한명은 기차가 가는 방향으로 앉아야지만 멀미를 안 한다고 늘 기차
진행 방향으로 앉곤 했는데 졸다가 자다가 눈을 뜨면 자리를
바꾸느라고 내가 멀미를 한 지경이다.
@ff
제 3 장 헝가리 동물원엔 개나 소나 다 있다.
헝가리 암달라상은 요런 수법을 쓴단다.
새벽에 기차가 헝가리에 도착했는데 기차가 도착하기 전에 아주
괜찮게 생긴 여학생 하나가 "굿모닝" 하고 인사를 한다. 의아하게
생각하는데 잠시 후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묻는다. 유스호스텔
가자는 삐끼였다. 언제탔을까? 기차는 여전히 달리고 헝가리 역에
닿으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이 새벽에!!! 헝가리 공대 기숙사에서
여름이면 숙소를 제공한다.
역에 당도하니 아주 많은 삐끼들이 나와 있다. 학생 아르바이트
삐끼들이다. 아주 조직적이다. 그리고 아주머니들도 많이 나와
있다. 자기 아파트를 빌려주겠다는 아줌마 삐끼와 학생 아르바이트
삐끼들은 서로가 라이벌이다. 우리는 학생 삐끼를 따라갔다.
아줌마 삐끼들은 자기 집에서 묵고 간 한국 학생들에게 부탁을 해
자기 집을 추천한다는 글을 담은 노트를 가지고 다닌다."학생
삐끼들 말을 믿지 마라. 거짓말이다.""유스호스텔은 거짓말이니
가지 말라"라고 씌어 있다. 학생 삐끼한테 속은 배낭족이 써준
건지, 그런 내용으로 써달라고 아주머니가 부탁했는지,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했지만 학생들이 그래도 때가 덜 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학생들 말 믿지 말라고 써달라고 시킨 아주머니
발상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림설명: 미국 아해가 용돈이 떨어졌는지 헝가리 거리에서 마술을
하더라구. 신통친 않았지만 어쨌든 박수를 받고 바야흐로 돈을
걷으려는 순간 비호처럼 나타난 사진 속의 할아버지가 돈을 싹
수금하는 거야. 미국 아해, 얼굴이 시뻘개졌지만 본토 거지 한테
싸움이 돼야 말이지. 말도 안통하고! 눈 뜨고 당한 거야)
1인당 9달러였는데 기숙사까지 봉고로 태워다준다. 거기서 결정을
다 지으면 게네들이 와서 싣고 가는 것이다. 결국 기치에서 만난
삐끼의 소개로 헝가리 공대 기숙사에 잠자리를 찾아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잠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면서 갑자기 오래 전, 어려웠던 60년대에 바지 주름 잡으려고
이불 밑에 깔고 자던 일이 생각이 났다. 잠 한번 험하게 자고 나면
바지 불이 비뚜로 잡혀서 정말 낭패였다. 다시 다릴 시간은 없고
학교 갈 시간은 다 돼가고....! 옛날 생각이 날 만큼 숙소가 거지
같았다.
식사를 하며 몇 가지 정보들을 들었다. 헝가리에도 조직범죄가
있단다. 그러나 자기네 조직끼리는 싸우고 사고를 쳐도 절대로 일반
시민들은 안 건드린다나. 그런데 헝가리 암달러상에 대한 얘기가
재미있다. 우리에게도 암달러상들이 있었다. 우리의 암달러상
엄마들은 정말로 정말로 어렵고 어려웠던 시절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우리세대를 씩씩하고 건강하게 키워준 억척 같은, 장한
대한의 엄마들이다.
헝가리 암달러상들은 사기꾼들이란다. 젊은 남자 아해들이
역에서부터 헴버거집까지 집요하게 따라붙는데 이 아해들이 사기를
친다는 거다. 높은 환율을 주겠다고 하고는 100달러짜리를 관광객이
먼저 내면 그냥 들고 튀는 아해들도 있고 스님이 보는 앞에서
헝가리 돈을 세어주는데 가고 난 다음에 다시 세어보면 중간에
지폐가 아닌 다른 종이, 백지들이 수두록 끼여 있단다. 나는
이수법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이 두 눈으로 본 수법을
후배 배낭객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100달러 버리더라도 우리의
아해들이 속지 않게 하는게 국가를 위해서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국가고 뭐고 간에 당장에 마누라에게 도라이 취급을
받았다. 속이는 줄 뻔히 알면서 속아주려고 한다고! 남에게 듣는
것보담 내가 직접 체험하고 일러주는 게 더 낫지 않느냐고 해도
역시 먹혀 들어가지를 않는다. 역에서 헝가리 사기꾼들이 미국
배낭객을 상대로 사기치는 걸 바로 곁에서 지켜봤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우리 여학생들에게 듣고 아주 부러웠다. 내 앞에선 그런
일이 왜 안 일어나는가 하고 헝가리 암달러상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남들은 공짜로 보는데 나는 돈 투자하겠다는데도 못
봤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 배낭족 아해들이 어떤 아해들인가! 엄마가 쌀 반
가마만 어깨에 매고 오라고 해도 안 할 아해들이 스스로 자진해서
세계를 보겠다고 쌀가마 같은 배낭을 매고 뛰어든 거 아닌가!
속인다는 것 다 알고 들어오기 때문에 나처럼 안달하지 않고,
느긋하고 점잖은 구렁이가 몇 마리쯤 들어 있어서 내가 100달러를
날려가며 체험 않더라도 다 알고 있단다. 걱정을 말 일이다. 이게
다 나이 탓이다.
나 죽은 뒤에도 저렇게들 살아가겠지!
헝가리 인포에서 지도를 받으면 한국 식당 이름이 나오는데 우리
일행은 신나라라고 읽었다. 그 집을 찾아가 주문을 할 때까지도
계속 신나라로 알았다가 종업원이 새 나라라고 하는 통에 "그래
맞아, 새나라야" 하고 얼굴을 마주보고 어떻게 우리 일행 전부가
틀리게 읽었는지 의아해했다. 신나라 레코드사 땜에 그랬나? 아마도
여행 다니다가 한국 식당이 헝가리에 있고 지도에 나와 있어서 한국
음식을 먹는다는 일이 '신이나서' 우리도 모르게 그렇게 읽었는지도
모른다.
식당에 들어서니 종업원이 우리를 맞이하는데 헝가리 사람이다
우리는 대뜸 한국 사람 없냐고 물었다. 없단다."주방장도요?" 하고
물으니 그렇단다. 주방장도 종업원도 모두모두 헝가리 사람이란다.
얼마나 신기한가? 나중에 지배인에게 물으니 주인이 반은 항가리
사람이고 반은 한국사람이란다. 그러면 그렇지. 무언가 한국이랑
연관이 있는 사람이니까 이 머나먼 객지에서 한국 음식점을 하겠지!
지배인의 설명에 의하면 새나라 식당은 유럽 다른 나라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으며, 주인은 일본에 파친코도 여러 개 가지고 있는데
헝가리에는 일년에 한 번 오월에 온단다. 내년에는 언제 올는지
자기도 모른단다. 실내장식으로는 서까래도 제법 비슷하게 올리고
한국 그림들이 여러 점 걸려 있고 무당 칼도 걸려 있다. 구하려다
못 구해서 그랬는지 일본 그림도 두어 장 있었다. 한국 그림은 내가
보기엔 중국에서 그린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약간은 색달랐다.
그래도 그렇지 얼마나 대한한 사람인가 말이다 헝가리의 한국 식당!
김치맛도 제법이었다.'야 이것 봐라'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
사람을 우리가 왜 몰랐는가? 신기했다. 파친코를 여러 개 한다길레
야쿠자 출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들었다. 사장 양반을
우리나라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지배인에게 우리 연락처를
맡기고 혹시 한국에 오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식사가 끝나고 온천을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종업원이 소개해준
사람이 바로 식당 앞에서 삼성전자 대리점을 하고 있는 이한기
씨였다. 이한기 씨에게 사장에 대해서 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조총련이라는 것이다. 아이고 이게 웬일이야? 아이고 큰일 났네.
"이한기 씨, 우리가 사장에게 연락처를 줬는데 도로 달라고
합시다." 우리 재촉에 이한기 씨가 바로 뛰어들어가 연락처를 도로
받아왔다.(그래도 우리는 아직 그런거에 찜찜한 세대한다.
아해들아)
그래도 김치는 맛있다. 헝가리 사람들이 이렇게 김치를 맛있게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이한기 씨가 웃는다. 김치 담글 적마다 자기가
맛을 봐주러 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제깟 것들이 우리 도움
없이 김치맛을 그렇게 만들 수가 없지!
헝가리 켄트키 식당에 사람이 많아서 미령이가 음식 주문하러 간
사이에 노천에 자리를 맡아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즐겁다. 저마다 다른 언어, 목적지. 계획. 인생관이 다를 사람들이
지나간다.(그림설명: 헝가리의 한국식당 새나라. 유럽
다른나라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단다. 주인이 일본에서 파친코사업도
한단다. 알고 보니 주인이 조총련계라서 깜짝 놀랐다.)
나 태어나기 전부터 그래 왔고 나 죽은 다음에도 저렇게
살아가겠지! 한국에서도 경치 좋은 데 가면 꼭 그랬다. 백담사 앞에
가면 물굽이가 휘돌아가는 데가 있는데 거기 위에서 물이 굽이처
돌아가는 쪽을 바라보는 등이 굽은 늙은 송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나 죽어도 저 소나무는 저 경치를 굽어보고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더랬지.
'구라'로 유명해진 부다 성의 피아노 카페
앞에서 얘기한 이한기 씨는 세운 상가에 있던 사람이다. 96년으로
항가리에 온 지 9년째 됐는데 전자상을 한다. 세운 상가에 있을 땐
일 끝나면 매일 술 마시고 방석집 가고, 자다가도 전화 받고 나가서
술 마시고 했는데 여기 와선 말도 안 통하지, 술집도 가게도 일찍
끝나고……. 밤에 일 끝나면 할 일이 없어서 미치고
환장하겠더란다. 사생결단하고 내전중인 유고에 들어가 파라볼라
안테나를 팔고 해서 지금은 대리점도 여러 개 가지고 있고, 자기
말로도 그렇지만 우리가 봐도 제법 성공한 기업인이다.
사생결단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정말이지 얼굴에 비장감 마저
비친다.
생활에 여유도 생기고 차츰 말도 통하고 해서 이쪽 아해들은 무슨
재미로 사는가를 살펴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항가리에도
나름대로의 밤 문화가 있더라는 거다. 사시사철 오페라가 있고
음악회가 있고 연극 영화를 보는 재미, 그것을 보며 주말을 즐기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더라는 거야, 한국과는 또 다르게 살맛이
난대나. 한국에 가서 친구들에게 오페라며 연극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이 이상하게 생각을 한단다."야가 객지에서 오래 살더니
약간 돌았나. 시방 무슨 야그를 하는겨" 이러면서 놀린대.
마친가지로 그 역시 아직도 술 마시러 밤늦게 다니는 옛 친구들이
이상하게 보인단다.
이 한기 씨가 극찬하는 헝가리 첫 번째 명소가 부다 성이다.
전망대로 향하는 부다 언덕을 걸어 올라가 전망대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저절로 시가 나온다고 하는데 그 시를 한번 얘기해보라고
했더니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도 부다 언덕을
올라가면서 시를 한번 읊어보자! 만약에 시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아는 시라도 소리 내어 중얼거리거나 낭송하면서 걸어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가 아니겠어! 큰소리로 낭송하면서 걸어도 누가
알아듣기가 하냐고?! 한번 해보자. 기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정
생각이 안 나면 노래가사라도 떠올려 본다면 그럴듯하지 않겠는가!
노래를 읊고 가다 보면 성이 나온다. 부다 성 안에 삐에르 카페가
있는데 거기 피아노를 싸놓은 덮개의 수술을 머리 땋듯이 막 땋으면
사랑,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손님들이 피아노
덮개를 마구마구 이렇게 저렇게 땋아놓은 모습이 보인다. 주인은
시간이 나면 다시 풀고….손님은 다시 땋고…….피아노를 쳐주는
카페다. 알고 있는 옛팝송을 신청하면 쳐 준다. 이런 카페가 따로
있는 걸 보면 얘네들도 살면서 안 풀리는 일이 많다는 얘기다.
중국에 가도 그런 게 있었는데. 그러니까 그럴듯한 이야깃거리를
하나 만들어놓으면 그게 관광 명소가 된다는 거다. 이런 것도
카페를 유명하게 하는 하나의 소재가 된다는 거지.
중국에 있는 거는 뭐냐면 빨랫줄 같은 걸 찻집 안에 쳐놓고
사랑하는 커풀이 열쇠를 하나씩 사는 거다. 그래서 빨랫줄에다
자물쇠를 딱 걸어놓고 사랑이 그 자물쇠처럼 딱 걸려가지고 안
빠지기를 바라는 거래나. 열쇠와 자물쇠. 열쇠를 둘이서 한 손씩
잡고 강에다 던져버린단다. 영원히 이게 풀어지지 말고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그러니까 그 얘긴 별의별개 다화제가 되고 명소가 된다는
거다.
인스부르크 어느 카페에 갔더니 빨랫줄을 쭉 쳐놨는데 거기다
집게로 시를 걸어놓았다. 빨래처럼! 아마추어들이 자기 시를
걸어놓기도 하고 시가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기도 하고 또 와서
걸어놓고 그런단다. 그걸 보면서 나도 '서울 가면 저거 하나
표절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간단하잖아. 빨랫줄 하나
걸어놓으면 숱한 사람들이 낙서를 하고 싶어할 테니까. 집에서
끄적거려본 시도 갖다가 걸고 말이지.
유럽은 그런 걸로 유명한 장소들이 정말 많다.
"우리집 식당은 우리 동네에서 제일 유명합니다." 해서
들어가보니 음식맛도 없고 실내장식도 형편이 없는 거야.
실내장식이야 우리가 따질수 없고 음식 맛없는 건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이 집이 유명하다고 해서 일부러 왔는데 음식맛이 너무
없네요" 하고 말했더니 산적처럼 생긴 주인이 나타나서 "바로
그겁니다.! 우리집은 맛없다고 하는 손님을 패서 내보내는걸로
유명한 식당이죠" 하는 코미디를 오래 전에 유머 일번지에서 한
적이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불친절한 걸로 기네스북에 올려진 중국집이 영국
런던에 실제로 있다고 해서 "에이 설마 그럴까" 하고 가본 적이
있다. 이름이 소혼가 뭐 그런데. 가봤더니 그 호기심 땜에 온
사람들이 굉장히 많더라고. 여기가 정말 불친절한 게. 젓가락도 쾅.
숟가락도 쾅. 젓가락도 여섯명이 들어오면 12개를 주는 게 아니라
두세 개를 탁자 위에 좍 떨어뜨린다. 엽차잔을 쾅쾅 쾅쾅하며
탁자에 마구 놓는데 물이 막 쏟아지는 거다 물잔으로 그냥 막
장기를 두더라고. 그런데도 손님이 정말 많아. 아무걸로라도
유명해지면 손님이 오는 거지. 여러 번 들른 유학생 여자가
종업원이 미소 띄우는 걸 오늘 처음 봤단다.(그림설명: 부다 성
안에 삐에르 카페가 있는데 거기 피아노를 싸놓은 덮개의 수술을
머리 땋듯이 막 땋으면 사랑.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손님들이 피아노 덮개를 마구마구 이렇게 저렇게
땋아놓은 모습이 보인다.)
팁도 안 받는다는데. 일부러 팁을 줘 봤더니 정말 거절하더라고.
팁이라는 건 서비스에 대한 대가인데 자기네는 서비스를 한 게 없기
때문에 안받는다는 대나.
이런 식으로 유럽에서는 별게 다 꺼리고 자랑이다. 헝가리는
동구권에서 맥도널드 햄버거가 제일 먼저 들어왔다고 자랑하고
이태리는 맥도널드 햄버거가 유럽에서 제일 늦게 들어왔다고
자랑이다. 이태리 빵이 너무 맛있어서 햄버거가 들어올 틈이
없었다나!? 어쨌다나. 프랑스는 KPC가 잘 안팔리는 것도 자랑을
삼는다. 프랑스의 국조가 닭이라서 그렇단다. 우리도 자랑하자.
햄버거가 맛들어서 김치 안 먹는 아해들이 많아졌다고!
헝가리에 있는 동구권 최초의 맥도널드는 판매 기록으로도
기네스북에 올랐단다. 한번 들러서 소변을 보든지 사먹든지. 가볼
만하지 않겠어??!
그런데 말야. 과자 이름 같은 걸 발음하기 힘들고 길게 만든
제품을 하나 내 놓으면 어떨까?
"꺄샥뱁비이야루먁슬므리낄후키리얍 하나 주세요"
"응! 꺄샥뱁비이야루먁슬므리낄후테리얍슬 달라고?"
이렇게 하면 발음이 된다는 걸로. 외울 수 있다는 걸로 재미로
와서 사먹지 않을까? 물론 뜻은 없지! 외국엔 그런 식당들. 상점들
많잖아! 맛도 없으면서. 불친절하면서. 그런 걸로 돈 버는 데들!!!
헝가리 와서 헝그리 됐네.
여행안내 책에 안 나온 헝가리에 관한 이야기 두 가지. 하나는
애국가를 작곡한 음악가 안익태 선생님이 셈멜바이스라는 리스트
음악원 분교에서 음악공부를 하셨고 기록상 헝가리에 온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또 한가지는 이한기 씨의 추정인데.
광개토대왕이 분명히 형가리까지 진출을 했다는 심증을 갖고
있단다.(이한기 씨는 그 근거로 이나라에 구추가 있고 절구가
있다는 근거를 대는데 사실 다른 나라에도 그건 다 있지 않나?)
물론 이한기 씨도 헝가리가 아직 공산권일 때 헝가리에 들어온
최초의 한국인이다. 역시 최초끼리 알아보는가 보다!! 광개토대왕의
헝가리 진출 근거를 계속 찾아보고 있는 중이라니 역사학도 되시는
분들이 헝가리에 가면 이한기 씨를 만나보는게 좋을 거 같다. 현재
한국일보 헝가리 명예지국장을 하고 있으며 새나라 식당 앞에
사무실이 있으니 연락이 될 것이다.
헝가리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만도 열 명이 넘는다는데 그 중엔
헝가리의 상징인 고추에서 비타민c를 발견해 노벨상을 받은 사람도
있단다 그래선지 집안에도. 가게 장식에도 고추를 많이 걸어두었다.
음식에도 고추를 많이 넣는단다. 그러니까 '가을 하늘 매운 고추
우리의 자랑이다'는 고쳐져야 한다''가을 하늘 매운 고추는
우리끼리의 자랑이다'로 노벨상 수상자를 무더기로 배출한 데라
그런지 40년 전의 출판사도 아직 남아 있단다. 지적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400년 전에 우린 뭐했지?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헝가리의 가장 큰 자랑거리 중
하나는 온천이다. 2천 개가 넘는단다. 알려진 데도 좋지만 잘 안
알려진 곳을 개발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해서 우리는 이왕이면 진흙
온천을 가 보자고 이한기 씨에게 물어봤다. 자기도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어디 있는지는 모른단다. 언젠가 KAL 사보 모닝캄에
헝가리의 온천이 소개된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우리는 그 온천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세지니 푸르도(SJCHENYIC PURDO). 푸르도는 목욕하다. 목욕하는
곳이란 뜻인데 헝가리식 온천이다. 목욕비가 호텔보담 싸다. 세지니
푸르도 역에서 내린다. 시내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전차를 타고
10분쯤 가야 되는데 하루에 몇 시간씩 걸어 다니는 배낭족들에겐
10분정도 전차를 더 타는 건 일도 아니다. 단 전차에서 내려 길을
걸을 땐 신호등을 열심히 지켜야 된다. 헝가리에서는 운전사가 난폭
운전을 심하게 하기 때문이다.
심장병이나 관절염에 좋다고 소문이 나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오는데 노천 온천이고 넓어서 여행중의 피로를 풀기에
안성맞춤이다. 할아버지들만 있고 가격이 호텔보다는 싸고 수영복
빌려주는 값을 따로 받는데 얼마 안 된다. 책에 소개돼서 한구구
배낭족들이 제법 오는 모양인데 호텔보담은 우리 정서에 더 맞는 것
같아 권하고 싶다.
(헝가리의 어느 아파트 앞을 지나다가 현관 쪽에서 동글 동글
특이한 장식(?)을 발견했다. 뭔가 했더니 문패다 그옆엣 건
초인종이고 집들이라도 하면 동(棟) 체만 알아도 찾아가긴 쉽겠네.)
일본도 그렇지만 헝가리는 우리하고 개념이 달라서 수영복을 입고
남녀가 같이 탕에 들어간다. 월수금은 남성, 화목토는 여성. 하는
식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단다. 사우나도 같이 하고 수영도 같이
하는 것이다. 근데 우린 왜 안되는 걸까!!!!!
거기선 뭐든지 돈만 내면 빌릴 수가 있다. 수영복을 가져가야
되는데 못 가져가서 우리도 보증금을 내고 빌려 입었다. 그러니까
혹시 수영복이 준비가 안 되었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부자 나라는 수영복을 안 빌려주지만 헝가리는 빌려준다. 온천에
따라선 수영복이 필요 없는 곳도 있단다. 에이프런만 걸치고 탕
속에 들어간다는 거다. 수영복을 갖다주면 보증금을 다시 돌려준다.
그 돈의 일부로 다시 수건을 빌려 몸을 닦으면 된다. 헝가리에선
온천을 두 군데 가봤는데 타월을 갖다달라면 타월 빌리는 데서
침대시트 같은 걸 갖다준다. 처음엔 '이 아해가 말을 잘 못
알아들었나'(그림설명: 다뉴브 강을 봤다. 다뉴브 강은 영어식이고
도나우강은 독일식. 헝가리 식은 두나 강이란다. 틀린 이름만큼이나
느낌이 다르다. 이 강 양쪽에 부디하고 페스트란 도시가 있다.
양쪽을 합쳐서 부다페스트라고 그러지? 사진에 나온 레스트랑은
페스트 쪽에 있는 게 틀림없다. 페스트 부다라고 써 있으니까.)
했는데 두 곳 다 그따위 것을 가져 오는 거다. 이 침대시트 같은
타월은 물도 흡수가 잘 안되고 몸도 제대로 안 닦여서 거의 가
불평을 한다. 그러나 헝가리 온천 가는 사람들은 타월을 따로
가져가는 게 조을걸.?!!
그런데 헝가리 온천에서 두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다. 때를
밀거나 닦으면 모두들 눈을 흘긴다는 것이고 반지를 끼고
들어가거나 하면 나중에 후회할 일만 남는다는 것다. 은반지 끼고
들어갔다가 새까맣게 변하고 백수정이 변색되어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도 있단다.
다뉴브 강을 봤다. 다뉴브 강은 영어식이고 도나우 강은 독일식.
헝가리식은 두나 강에서 제일 아름다운 엘리자베스 다리를 거닐면서
강을 본다.
목이 마르면 물보다 과일을 사먹는 게 쌀 정도로 여기는 과일이
지천이다. 땅이 기름져서 뭐든지 심기만 하면 주렁주렁 열린단다.
그래서 이 땅을 징기스칸이 그렇게 탐을 냈단다."700년 전엔
몽골의 침략으로 인구의 절반을 잃었다는데 그 탓인지 유적 곳곳에
몽골 냄새가 짙다. 지금도 어린애가 울면 어른들이 "뚝 그치지
않으면 몽골군이 잡아간다."며 으름장을 놓는단다. 그래서 여기
아이들은 호랑이나 곶감보다 몽골군을 제일로 무서워한다는 얘기다.
슬픈 역사다.
7월 23일 새벽 1시반 구경 다니느라고 밥도 못 먹고 기숙사
숙소에서 새벽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헝가리에 와서 헐그리 됐네.
"동물원이 어디예요?" 하고 길가는 사람에게 물으면
"어디예요?".만 생각이 날 거다. 그래서 다시 물어볼 거다.
"뭐라구요???""동물원 어디냐구요???""아, 동물원이요!!!"
그러나 서양말의 구조는 그게 아니다."웨얼 이스 주?" 하고
물어본다 "어디 있지? 동물원" 하고 묻는 것이다. 우리 식은 묻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이 같이 생각하게 하는 구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어디있지?" 하면 "뭐가"하고 생각하게 되고 그
다음에 "동물원"하면 "아! 동물원?"해서 물어보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의 교류가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쓸데없는
생각-ⓛ일거야. ②일지도 몰라. ③이었을 거야. ④이야.
헝가리 동물원에 가면서 또 한번 무임승차를 했다. 표 파는
기계가 고장 나는 바람에 표 파는 곳에서 표를 안 팔아서(여긴
낮에도 문닫힌 곳이 많다.) 할 수 없이 무임승차를 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는 열 장을 샀는데 전차 안의 검표기에 제대로 찍을 줄을
몰라서 하나씩 사용하고 계속 그냥 버렸는데 사실은 다시 사용할 수
있는 표다. 검표기에 넣었지만 사용했다는 표시가 안 찍혀 나온
것이다. 헝가리에서 전차표를 사면 세게 눌러야 찍힌다.!! 우린
그걸 모르고 살짝 누르고 한번 쓰고 버리곤 했으니 사실은 표시가
하나도 안 된 거다. 그러니까 계속 새 거를 버린 셈이고 서류상으론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무임승차가 된 셈이다.
헝가리 동물원에 가니 정문에 무궁화꽃이 피어 있다. 우리 꽃을
남의 나라에서 보는 기분도 새롭다. 들어가보니 개도 있고 소도
있고 쥐도 있다. 개나 쥐나 소를 가두어놓은 동물원은 헝가리가
처음 아닐까? 그러니까 참 소박한 동물원이라는 느낌이다. 여기
사람들이 워낙 그렇단다. 한가롭고 느긋하고 소탈하다는 거다.
헝가리 광시곡의 고향답게 헝가리 옥가게는 젊은 아해들 옷 파는
곳도 우리 처음 랩 음악을 틀어제껴 넋을 빼지 않고 점잖게 클래식
음악을 틀어준다. 한국에 와서 보니까 옷가게도 전부 막
시끌벅적한데다 그때 8, 9월쯤에 터보의 트위스트 킹'이
유행이었는데 온 거리, 온 상점에서 그 노래뿐이 나오질 않는 거다.
왜 전부들 그러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럴 때 한두 개 점포에서
클래식을 틀면 훨씬 더 눈에 띌 텐데 유행의 첨단인 옷을 판다는
데서 그런 차별화가 안 된다는 건 정말 말이 안 되지 않냐구,
이상하게도 배꼽을 내놓고 다니는 아해들이 헝가리에는 특히 많이
보인다. 배꼽티의 고향은 어디인가? 배꼽을 내놓는다고 배곱티라고
한다면 젖가슴이 안 보이게 젖만 가린 티는 왜 젖티라고 할까?
이 나라가 못살기 땜에 그런지는 몰라도 젊은 아해들이 배꼽을 내
놓고 다니는 거에 비해서 아주머니들의 핸드백은 거의 다
비닐봉지들이다. 우리나라 시장에서 물건 살 때 주는 비닐봉지들을
핸드백 삼아 들고 다닌다. 사진을 찍을까 했는데 굳이 찍을 이유가
없겠다 싶어서 관뒀다. 옛날 우리 어릴 적에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이 못사는 것만 일부러 찍어 가지고 막 알린다더라. 그랬던
얘기도 기억이 나고 해서 참 찍을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도버 슈퍼에서는 물건 싸주는 비닐봉지를 1페니에 팔면서 안 사면
라면박스나 과일박스에 싸 가라고 그러는 바람에 가정주부들이
장바구니를 갖고 슈퍼에 다녔는데. 여기서도 비닐봉지 값이 비싸서
이렇게 핸드백 삼아 들고 다니는 걸까??
동물원을 보고 나서 어딜 갈까 하고 있는데 마이클 잭슨이 잠깐
어느 호텔 앞에서 모습을 보인단다. 유럽 투어콘서트 중 헝가리를
들른 것이다. 그래서 거기로 갔다. 가보니 무슨 호텔인가 앞에
아해들이 수 백명 모여 있었다. 매니저들이 20분 뒤에 나온다며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준 후 계속해서 15분 (그림설명:
동물원을 보고 나서 어딜 갈까 하고 있는데 마이클 잭슨이 잠깐
어느 호텔앞에서 모습을 보인단다. 유럽 투어콘스트 중 헝가리를
들른 것이다. 그래서 거기로 갔다. 나도 이 기회에 한번 보자 해서
나무 위에도 올라가고 했는데 불행히도 전혀 보지 못했다. 대신
여행갔다온 후 한국 공항에서 봤지.) 뒤 10분 뒤 이런 식으로
카운트다운을 해준다. 우리 같으면 "마이클 마이클!" 하면서 연호도
하고 나름대로 소리도 지르고 그러면서 굉장히 시끄러울 텐데 여기
아해들은 마이클잭슨이 호텔 문 밖으로 나온다는 시간까지 그이
히트곡들을 부르면서 조용히 차분하게 기다린다.
마침내 마이클 잭슨이 호텔 밖으로 나오고 2.30분 동안 뭐라고
얘기도 하고 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즈를 취해주더니 정해진
시간이 지나자 보디가드들이 딱 막고 섯 사진도 뭣도 못찍게 한다.
그리곤 바로 차에 올라 어디론가 가는데 차 속에 까지 보디가드들이
얼굴과 몸을 가려 전혀 볼 수가 없다. 나도 이 기회에 한번 보자
해서 나무 위에도 올라가고 했는데 불행히도 전혀 보지 못했다.
대신 여행 갔다 온 후 한국 공항에서 봤지!!
헝가리에 왔던 노태우 씨가 하루 없어졌는데 그때 스위스에
갔다온 거라고 이한기 씨가 설명을 한다. 물론 비밀은행 일
때문이다. 그래서 스케쥴상 하루가 빈다는 것이다. 내가 그랬다.
"에이, 우리가 스위스에서 와봤지만 헝가리까지 15시간이나
걸리는데 어떻게 하루 만에 갔다 와?"
"야, 노태우가 우리처럼 배낭족이냐? 기차는 왜 타냐? 비행기
타지?
"참!.그렇네!>
디즈니 성은 왼쪽 길로 가라.
7월24일 새벽 5시 20분. 헝가리에서 뮌헨으로 가는 밤 열차
안에서 눈을 뜨고 밖을 바라보니 바깥 경치가 아직은 흑백이다.
여명, 무슨 역인가? 기차가 멈췄네.
독일 하면 생각나는 게 폴크스바겐, 히틀러, 게슈타포다.
성냥개비 하나로 세 명 이상 모여야 담뱃불을 붙인다던 독일
사람들! 독일 사람들은 맥주를 좋아해서 집에 수도가 두 게 있는데
하나는 틀면 우리처름 수돗물이 나오고 나머지 하나를 틀면 맥주가
나온다는 얘길 어릴 적부터 들었다. 또 우리나라 아해들은 어릴 때
커서 뭐가 되겠냐고 물어보면 대통령이 된다고 하는데 독일
아해들에게 물어보면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대답한단다. 독일 병정
같다는 칭찬 같은 별명도 생각난다. 뭐 밀어붙이는 거 잘하는
아해들을 보면 "독일 병정 같애" 그랬다.
그런데 독일 사람들이 워낙 검소하기 때문에 그랬다고 하지만
담뱃불을 붙일 때 세명이 모여야 성냥 한 개피를 쓴 건 왜
그랬을까? 담배가 몸에 나쁜 건 몰랐나? 그땐 라이터가 없었나?
이런 아침이었는데도 독일 거리에 정정이 많다. 차림새 때문인지
여기 사람들은 학자풍으로 보이고 지식인으로 보이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처럼 보인다. 영국보담은 확실히 양복 옷 색깔도 잘 맞추는
거 같다.
뮌헨에 오는 한국인들. 전세계의 여행자들이 빼놓지 않고
찾아가는 곳이 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다. 뮌헨에서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가려면 퓌센이란 델 가야 하는데 기차로 2시간
30분이 걸린다. 성 하나 보러 서울에서 진주까지 갔다오는 셈인데도
열댓 시간씩 기차를 타고 다니다 보니 종로에서 여의도 가는
기분으로 갔다가 오게 된다.
한국은 경치 좋은 곳에 절이 있고 유럽엔 성이 있다. 이렇게
썼다가 나중에 한 줄 고쳐 넣었다. 경치 좋은 마을은 교회가 있어서
더 경치가 좋아진다고 정말 그림같이 이쁜 교회들이 많다!.
유럽성은 우리하고 다르다. 우리 성은 그냥 성이고 사람이 어디서
살았나 싶은데, 유럽 성은 실제로 그 안에서 사람이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대로 정원도 가꾸고 창문 같은 것도 멋있게
장식한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만화영화 디즈니 성의 모델이 됐다고 해서
독일 사람들은 디즈니 성이라고도 한단다. 실제로 월트디즈니
사에선 백조를 연상시키는 이 성이 하도 아름다워서 로고마크로
만들어 자기네들이 만드는 모든 영화의 오프닝에 집어넣고 있단다.
어릴적 달력에서 많이 보던 성. 외국 성하면 떠올리던 전형적인
독일풍의 성으로 바그너 마니아였던 루드비히 왕의 예술혼이
화장실에까지 배어 있는 아주 독특한 성이다.
(그림설명: 노이슈반슈타인성. 만화영화 디즈니 성의 모델이 됐다고
해서 독일 사람들은 디즈니 성이라고도 한단다. 실제로 월트디즈니
사에선 백조를 연상시키는 이 성이 하도 아름다워서 로로마크로
만들어 자기네들이 만드는 모든 영화의 오프닝에 집어넣고 있다.)
디즈니 성을 올라가려면 버스에서 내린 지점에 두 길이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올라가는 건 오른쪽이다. 초행길이나 잘 모르는 데를
갈 때 눈치로 많은 사람들이 가는 데로 따라가면 대개는 틀리지
않는데 여기서만은 예외다. 사람들이 적에 가는 왼쪽 길이 지름길인
거다. 오른쪽 길은 성이 산 위에 있으니 경사진 길을 올라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올라간다. 왼쪽 길은 자세히 보면 약간 밑으로
내려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 길이 단연 빠르다. 10분
정도(?)눈 단축할 수 있다. 몰론 다리가 튼튼한 사람은 마음대로
할 일이지만!! 마차를 타고 올라가려면 오른쪽 길이 좋다.
이 성은 짓는 데 17년이 걸렸다는데 결국 지은 왕은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렸단다. 올라가는 길은 전에 한번 와본
우리 일행이 길 안내를 맡았다. 왼쪽으로 올라가는 게 지름길이라는
걸 그 녀석이 얘기해줬다. 근데 경사가 굉장히 가팔랐기 때문에 십
분 단축을 돈버는 기분으로 갔다.
전에 올라갈 때도 비가 내렸다는데 10분쯤 올라가는데 비가
슬금슬금 오더니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우리가 올라가는 길은
산길인데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는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온다. 이럴
때 글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우리 일행이 성을 향해 더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이 흐려지더니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사이로
빗방울이 처음에는 가늘게, 시간이 시간이 지날수록 굵어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이 비는 17년 동안 이 아름다운 성을 공들여
지어놓고 제 명을 다 살아보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왕의
눈물이리라." 이런 근사한 기행문을 쓸지도 모르지만 나는 비가
오니까 열만 받는다. 하필이면 비가 오냐. 경사는 가파르고 다리는
아파 죽겠는데 이런 생각밖에 안났다.
성에 올라가면 사람들에게 독어 영어 일어 이태리어로 가이드가
설명을 해 준다. 그래서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줄에 서서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독일이라 그런지 독어 줄이 제일
길었고 그 다음이 영어 줄이었다. 일본 단체들이 많이 내려오는 걸
봤는데 일어 줄이 아주 짧았다. 그 다음으로 불어 이태리어 줄에
사람들이 고만고만하게 서 있었다. 우리는 영어 줄에 서게 되었다.
여행하다 만난 듯한 한국 배낭족 팀. 남자 한 명 여자 두 명이
우리보다 한참 늦게 올라왔다. 재빨리 주위를 살펴본 뒤 제일 짧은
일본 줄로 가서 선다. 속으로 "참 약은 학생이구나" 하고 쳐다보고
있는데 그 아해들 앞에서 줄이 딱 끊겨버린다. 다음은 불어 줄이
들어갈 차례다. 이태리어 독어 영어 다음에 일어 차례가 될 것이다.
그러자 이 아해들이 우리가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 듯
우리 쪽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슬금슬금 저 뒤쪽 불어 줄로 다시
가서 서는 게 아닌가!!
나는 보인다.,……. 민망해서 우리를 못 쳐다본 것을 일본 줄에
간 게 창피했다는 것을 배낭족 아해들이 제일 열받아 하는 게 여기
아해들이 우리한테 "곤니찌와" 하는 거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그래 놓고 일본 줄에 가서 서는 학생들을 보니 왠지 씁쓸하다.
요새는 관광지마다 중국 아해들도 우리 아해들만큼 엄청나게
많이들 몰려온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준태가 내게 묻는다."독어
영어 일어 불어 이태리어 다음에 줄이 하나 더 생긴다면 중국어가
먼저 생길까? 한국어가 먼저 생길까요? 그건 나도 궁금하다. 십
년쯤 후에 다시 와서 확인해볼까?
성을 다 보고 내려오는 길에 우리 중 제일 뚱뚱한 준태가
미끄러졌다. 금방 바로 일어섰지만 기분은 안 좋을 것이다.
산돼지도 사냥꾼에 쫓기다 가시덤불에 끼기도 하고 그러면서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는 적이 있을 텐데 그때 산돼지의 기분이 어떨 것
같냐고 물어봤더니 대답이 간단하다."이제 죽었구나! 할 거
같아요.""너도 그랬니?""아뇨, 난 바지 버렸나 했어요."
뮌헨 호프브로이의 '죽이는' 장사 아이디어
뮌헨 호프브로이에서 배낭족 아해들 한무더기를 만났다. 술집은
넓지만 사람들이 많아 앉을 자리가 없어서 "여기같이 앉아요" 하는
학생들과 한자리에 합석을 했다. 먼저 앉아 있는 학생들도 다 그
자리에서 합석을 하게 된 사이란다.
"다녀보니까 우리나라가 제일 깨끗해요" 하고 말하자 옆에 있던
학생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 한다."아녜요. 우리나라가 제일
더러워요." 나이 먹은 나로서는 선뜻 판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뭐라고 한마디는 해야겠는데 말이다. 할 수 없이 "깨끗한 데도 있고
지저분한 데도 있단다. 하여튼 알았으니까 많이 보고 다녀라. 나도
많이 보고 다닐게!" 그래버렸다. 한국을 얘기할 적에도 이렇게
정반대의 의견이 나오는데 딴 나라 얘기하는 게 오죽하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몇 번 말하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보고 얘기하는 게
낫다는 거다.
호프브로이에서는 악단이 각국의 음악들을 신나게 연주한다.
20마르크 정도 주면 신청곡을 연주해주는데 우리 자리에 있던 한
학생이 모금을 한다. 아리랑을 신청할 거란다. 우리는 학생이라
10마르크밖에 없다고 얘기했다며 자리로 돌아왔다. 모금은 잘됐냐고
했더니 호응을 잘 해주더란다. 잠시 후 아리랑이 울려퍼지고 안에
있던 한국 사람들이 아리랑을 합창하고 음악이 끝나자 박수를
쳐댄다.
그런데 거기서 들으니까 좋은 거지. 신나서 들을 수 있는 곡이
어째서 하필이면 슬픈 멜로디의 아리랑일까?! 나중에
인스부르크에서 만난 여학생에게 들었는데 외국 연주자들이 우리
곡을 연주한다는 것에 신기해하면서 아리랑 말고도 '사랑의 미로'
까지 신청해서 같이 불렀단다. 그러나 '사랑의 미로'도 역시 슬픈
멜로디 아닌가 말이다. 일본에서도 마친가지다.'돌아와요
부산항에'역시 멜로디가 슬프다. 모르지. 디스코로 편곡해서
연주해주면 흥이 날지.
인스부르크에서 만난 여학생 아해들은 자기네도 호프브로이에서
술을 많이 마셨단다. 왜냐하면 모금을 했는데 돈이 남았다는 거다.
그래서 뺑쳐 가지고 술을 많이 마셨단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학생이니까 깎아주세요" 보다는 나중에 한번 정도는 "학생이지만
한50마르크줄게 연주 잘해 이 자식들아" 하는 것도 폼 나는 말이
아니겠어?
그런데 이 뮌헨 호프브로이의 아이디어가 죽인다. 맥주 많이
마시면 오줌 많이 나오는 거 아니깐 화장실에서 돈을 받는 거다.
그러게 아이디어는 돈을 벌게 한다. 누가 알았으랴! 맥주집에서
화장실 입장료 받을줄을!!!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하면 당장 망할
껄껄껄……!
나도 한번 머리를 돌려보자. 이런 술집은 어떨까? 바닥을 그물로
만들어서 지정된 시간이 되면 그물이 점점 하늘로 올라가는 거야.
손님 종업원 할 것 없이 그물에 걸려서 죄다 천정으로 올라가는
거지. 그러면 그물 사이로 다리가 빠지는 놈, 옆 사람이랑 부딪치는
놈. 안빠지려고 발버둥치다가 넘어져서 얼굴이 그물 빡으로 나오는
놈 등등 별별 모습이 다 펼쳐지겠지. 그리고는 약 이삼 분 뒤에
서서히 도로 내려오는 거야.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또 이런 술집도 괜찮겠지? 유치장처럼 만들어서 여자들을 가둬
두는 거야. 손님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유치장에 찍힌 여자
죄수번호를 찍고, 그러면 간수 옷을 입은 종업원이 손님에게 열쇠를
갖다주고, 손님이 열쇠로 여죄수를 풀어주고는 같이 파트너가 되어
술을 마시는 술집, 참 술맛이 날 거야.
근데 말이지. 꼭 술집에 와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우리의 술
습관은 왜 그런 거야? 반쯤 죽여야 하는 걸 목표로 삼으니 말이다.
안 먹겠다는 거 강제로 먹이고 "나는 네 잔인데 너는 왜 두
잔이냐?" 그러면서 똑 같이 먹이려고 그러고 반쯤 죽게 먹이고는 그
다음날 회사로 확인해 보고 "외근한다고 늦게 나오신대요""그래서
들렀다 늦게 나오신대요" 그러면 "아. 이게 나랑 같이 술 먹어갖고
못 일어났구나' 그러면서 아주 흐뭇하게 생각을 하고 '아, 요번
거래는 성사가 됐다' 라고 안심하고, 속으로 깔깔대고 웃으면서
좋아하는 풍토. 그런 더러운 풍토가 있다. 안 먹겠다면 안 주면
되는데……. 노래도 안하겠다고 그러면 안 시키면 도는데 강제로 막
하라고 시켜놓고 막상부르면 안 듣잖아. 이 자식들이.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떠들면서 또 앵콜앵콜은 무진장 외친다구.
손바닥을 마주 쳐대면서!
술 좋아하냐고 그러면서 자기 집에서 먹는 자식. 여자 필요
없다며 자기 세컨드 집에 가서 밤새워 먹이려는 자식. 술에 약하면
그 사람의 능력까지 똥으로 보는 풍토. 억지로 노래시켜 놓고 안
듣는 풍토. 두시간짜리 영화 보고 와서 그 영화 설명을 네 시간
이상 하는 놈들. 삐삐쳐놓고 다른 데 통화 길게 하는 놈들. 행선지
물어보고 안 태워주는 택시기사들……. 호프브로이에서 술 마시다
보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막난다. 음주운전 자랑하는 우리나라. 안
걸린 것도 자랑. 걸려도 자랑하는 우리나라 생각이난다.
(그림설명: 독일 거리에서 제멋대로 누워 공연구경하는 아해들 서
있는 사람들이 더 무안할 정도로 당당한 표정이다. 자유! 분방!!)
술집 같은 델 가보면 자기들끼리 술 잘 마시다가
내가 들어가면 개그맨들 얘기 꺼내는 사람들 정말 많다. 나
들으라는 듯이 개그맨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 자리로 와서 무조건 말을 시키는 놈들은 또 뭐야. 자기 자리로
가서 술 한잔하자. 우리 애가 좋아하는데 사인 하나 해달라 그러는
사람들도 있고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는 관계없이 우리
일행 여자 얼굴을 뻔히 쳐다보면서 "진미령이 아니네" 하는
인간들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덮어놓고 "전유성 씨, 술 한잔
따라 주쇼" 하는 경우도 여러 번 당했는데 그럴 때면 난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야! 이 자식아, 내가 안 들어왔으면 니들끼리
무슨 얘길 할려구 이 집에 들어왔냐?
술 문화 중에 안 좋은 게 또
하나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차현재라고 CF 사무실을 하나
차렸다. 그래서 얘가 거래처 사람들한테 말하기 좋게 "언제
저녁이나 합시다." 그래 갖고 정말 어느 날은 만나서 저녁을 먹고
헤어졌는데, 그러면 사람들이 굉장히 싫어한단다."저녁이나 먹자"
그러면 우린 저녁 먹고 술 먹는 것까지 연결이 되는데, 계속
"저녁이나 먹읍시다" 해놓고는 "오늘 저녁 먹었으니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그러면 괜히 기분 나쁘게 생각하고 그런다는 거다.
그래서 가끔씩 고민도 하고 그러는데 안됐더라고. 말대로한거잖아.
잘못한게 아닌거야.
친구랑 약속을 할 적에 몸에 나쁜 술만 노상 마시지 말고 다음과
같은 약속들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 지금 당장 친구에게 전화를거는
거다.
"영숙아, 우릴 언제 만나서죽이나 한 그릇 먹자." 동훈아 엄마,
다음달 초순에 만나서 우리 도토리묵이나 한 사발씩 먹는 거
어떠니?""미현아, 이번 동창회 때 시어머니 스웨터나 한 벌 짜자.
그러니까 실하고 바늘 꼭 가지고 나와.""용수형, 우리 언제 만나서
간장약하고 위장약아니 한 알씩 먹는 거 어때요?""미영아, 우리
언제 만나서 손톱이나 같이 다듬자. 그리고 말이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매 맞았던 이야기 좀 준비해와. 손톱 다듬으면서 각자
돌아가면서 이야기할 거니까.""미숙아, 다음달에 만나서 우리
거짓말이나 실컷 해보지 않을래?"
체코 가는 사람들, 잠 푹 자고 떠납시다.!!
밤기차를 타고 체코로 가는데 한밤중. 새벽을 가리지 않고
역무관이 표 검사. 여권 검사를 하러 들어온다. 잠들만 하면
들어오고, 또 간신히 잠들어 놓으면 문을 두드린다. 성가셔 죽을
지경이다. 체코라는 나라는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기찻간에서
여권과 차표 검사를 시도 때도 없이 하니 제대로 잠자기가 무지하게
힘들다. 체코 가는 사람들. 잠 푹자고 떠납시다.!!
역에 내리면 대학생 아해들이 방학을 맞이하여 배낭 여행족들을
상대로 숙소를 소개해 주는 이란바 손님 끌기 아르바이트를 한다.
우리는 한 여학생의 소개로 한 곳을 소개받았다. 그 여학생이
노트를 보여줘서 보니 먼저 다녀간 배낭족들이 "좋은 곳이다." 잘
쉬었다 간다."추천할 만하다." 등등의 많은 글들을 남겼다.
여기도 헝가리처럼 학생들과 아파트 빌려주는 아주머니들과는
사이가 안 좋은 것 같다. 상도의고 뭐고 없다. 학생이랑 이야기하는
중인데도 어느 아주머니는 자기 아파트로 가지고 계속 추근거린다.
우리는 경험을 살려 이번에도 학생들 말을 듣기로 했다.
헝가리에서는 숙소까지 봉고차(?)로 데려다줬는데 여기 체코는
지하철 노선만 가르쳐준다. 다른 배낭족들과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가서 내렸는데 지도를 보니 서울역에서 구파발 정도가 되는
거리였다. 역에 내리면 표시가 있단다. "아니, 이거 너무 멀잖아"
하고 역에서 나와보니 유스호스텔 가는 방향이 페인트로 아스팔트
바닥에 표시되어 있다."그래, 이런 것도 아이디어야" 하고 속으로
웃으면서 학생들 뒤를 따랐다.
커브를 틀고 언덕을 올라가고 내려가고, 평지를 가고 또 한참을
가도 건물은커녕 집도 안 보인다. 허허벌판도 지나고 그렇게
한참을 길을 따라가다 보니 그때서야 드문드문 집이 나온다. 그래도
유스호스텔은 안 나온다. 앞서 가던 일행들이랑 거리도 많이
쳐졌다. 유스호스텔은 나타날 기미도 없다., 비도 오고 배낭은
무겁고 처량하기도 한데 지하철역에서 숙소까지가 너무나 멀다.20
분 이상을 걸으니(그것도 언덕길로) 힘이 들어서 도저히 못 걷겠다.
스위스에서 만난 여학생이 체코에 갔다 와서 "유스호스텔이라고
들어 갔는데 완전 수용소 같았어요." 하던 말이 자꾸 떠오른다.
조금 더 가다 보니 멀리 초등학교 비슷한 게 보인다. 저긴가 부다
하는데, 짐 내려놓고 시내 나가 그 죽인다는 야경 구경하고 밤에
다시 걸어 들어 올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역으로 돌아가자 하고 눈앞에 숙소를 두고 땀을 흘리며 온 길을
다시 후진했다. 역에 갔더니 영어를 유창하게 쓰는, 맘씨
좋아보이는 아주머니가 자기네 아파트를 소개하겠단다. 그래,
유스호스텔도 경험했는데 아파트도 경험해 보자. 하고 그
아주머니의 아파트 값을 물어보니 네 명에 80달러를 달란다.
"50달러만 하자""안된다""우리는 돈이 많이 없다.""곤란하다"
옥신각신 흥정 끝에 60달러를 주기로 하고 환전과 기차 예약을
끝낸후(말이 환전과 예약이지 무려 한 시간이나 걸렸다.)아주머니를
따라서 아파트로 갔다. 역에서 한 정거장이고 전차에서 내려 5분
정도 걷는 아파트였다. 체코 서민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아파트에 들어서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벽면에 조용기 목사의
부흥회 집회 포스타가 붙어 있었다. 나는 교인은 아니었지만
반가웠다. 아무것도 없이 살지만 비록 달력 그림 같은 거라도 액자
하나만큼은 넉넉하게 붙여 놓은 집이었다. 자면서 생각해보니
야경을 보고 먼 유스호스텔 언덕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걷는
맛도 재미있었을 것 같다. 항상 놓친 고기가 아까운 법이고 남의
손에 든 떡이 더 커보이기 마련이거든.
체코 환전소 앞에서 담배 피면 벌금 문다.
체코 환전소 앞에서 배낭족 아해들이 우르르 몰려 있다. 새벽 세
시에 담배 피우다가 벌금 무는 아해들이다."노스모킹"을 체코말로
써놓고 적발하면 벌금을 그 자리에서 물린다. 새벽 세 시에 환전소
문 여는 아해들이다. 체코 들어가는 아해들은 '노스모킹' 체코말로
꼭 외워 가자!!
체코는 물가가 싸다고 들어가서 싸게 놀다가 잘못해서 벌금 물고
나오는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많은 배낭족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체코의 명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체코의 야경이다. 체코에 왜
가느냐고 물으면 물가가 싸서 포식 좀 하러 간다고 대부분 그러는데
갔다 온 후에 다시 물어보면 야경이 그렇게 좋았다고 이야기들을
하는 거지. 체코가 좋아서 하루 생각하고 들어갔다가 3일 있었다는
남자 배낭족도 만났다. 사실 딴 사람들은 야경이 멋있다고들
그러는데, 나는 노을은 몰라도 조명이 비치는 야경은 왜 그런지 좀
기괴하게 보이더라고.
체코에서 만난 여학생 배낭족 한 명은 물가가 싸서 음식점에서 밥
먹고 종업원한테 팁까지 줬다고 자랑하는가 하면, 어느 여학생은
물가가 싸서 물건을 하도 많이 사는 바람에 다른 나라보다 오히려
돈을 더 많이 써서 걱정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체코같이 물가가 싼 나라에 와서도 부득부득 밥을 해먹는
배낭족들을 여러 명 만났는데 그때마다 난 이렇게 얘기했다.
"그러지 마라. 싼데 와선 사먹고 비싼 나라 가서 해먹어라.:" 체코
같은 대선 좀 그럴듯한 레스트랑에 들어가서 먹어도 되는데 배안족
아해들은 무조건 아끼려다 보니 물가가 싼 곳에서도 돈을 안 쓴다.
체코에선 좀 폼 잡고 쓰고 먹으라며 잔소리처럼 여러 명에게
말했지만 별로 수긍을 못하는 눈치다. 여름에 괌이나 사이판 가는
사람에게 여름에 더운 델 뭐하러 가냐고. 겨울에 여름나라 가는 게
더 좋지 않냐고 하면 내 말이 맞다고 하면서도 그대로 부득부득
사이판이나 태국으로 놀러가는 사람들처럼!!!! 아버지도 그렇고
딸도 그렇고. 말 안 듣는 유전인자들이 있는 모양이이……. 정말 놀
줄을 모른다. 내가 얼마나 많이 싸들아다닌 사람인데! 내말을 안
듣는다. 부모님 말은 잘 듣는지 궁금하도다!
그런데 물가가 싼 체코에 와서 물건값을 더 깎게 되는 것은
왜일까? 아파트 빌리는 값도 사실은 싼 편인데 자꾸만 깎게 된다.
그러게 누군가 그랬어. 백화점에 가선 못 깎고 시장통에 가서
깎는다고 은근히 무시하는 건 아닐까???
마닐라를 경유해 온 여자 배안족 하나는 마닐라가 우리보다
못사는 것을 비웃으면서 왔단다. 그러면서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에
가면 주눅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더란다.
체코에 가서 지하철 벌금 물은 이야기가 다녀온 아해들마다
굉장히 화제다. 그런 아해들이 실제로 많았단다. 우리도 그런
경우를 당할 뻔 했다. 몰랐으면 그냥 당했지! 아파트 아주머니의
설명을 듣고 우리 아해들이 벌금을 무는 이유를 대강 알게 되었다.
우선은 공무원들이 부패했고 다음은 전철표에 문제가 있었단 거다.
다른 유럽 도시들은 지하철표를 사면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도
도는데 여기선 다르다. 네 정거장까지는 6크로나짜리를 사는데 네
정거장이 넘으면 10크로나를 사야 된다. 물론 한 정거장짜리는 더
싸다. 가난한 사람들은 짧게 가고 싸게 해주는 거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그 나라 사람들은 훈련이 되어 있으니까 잘하지만 우리는
마고 햇갈리는 것이다.'한 장 사면 대여섯 정거장쯤 가도 되겠지'
하다가 걸리면 벌금을 문다는 것인데, 말은 안 통하지. 벌금은
내라고 그러지. 분명히 표는 샀는데 왜 무임승차했냐고 따지지.
게다가 적당히 부패한 단속원들이 많아서 터무니없이 벌금을 물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라고 지나가는데 붙잡아 무조건 벌금을 내라고 하지는
않는다. 뭔가 꼬투리가 있어야 잡아놓고 바가지 같은 것을
씌운단다. 학생들은 "검은 머리만 조사해요" 하고 원망을 한다.
하긴. 단속하는 입장이 되어 봐라! 이왕 단속하는 거면 적발이
많이 돼야 재미있지 않겠냐! 검은 머리가 잘 모르니까 잘 걸리는
거거든. 위반을 많이 하니까 같은 값이면 검은머리를 잡는 거지.
낚시를 해도 포인트를 알면 입질이 좋듯이 그 아해들도 검은머리가
포인트 아니겠냐구!!! 이 말 듣고 체코에 가는 아해들 가운데 머리
염색하고 가는 아해들도 생길까? 설마?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봐!!
위반자 잡는 맛도 사실 재미있을 거라고,'저놈이 위반했을 거야'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붙잡았는데 꽝이면 아무래도 기분 안 좋지
마리아 테레지아 다리 옆 교회에서 클래식 음악회가 열린단다.
교회뿐만 아니고, 여기저기서 음악회를 한다는 진단을 나눠 준다.
우리는 교회에서 하는 음악회에 들어 갔다. 20분 전인데 객석에
한두 사람이 앉아 있다. 일행중의 한 명이 화장실에 갔다온다기에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5분 뒤에 들어갔더니 그 사이에 가득
찼다. 할 수 없이 옆 자리 연주자의 머리색깔만 무슨 색인가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음악을 들었다. 물론 아는곡은하나도 안
나오는데(클레식이니깐!) 교회의 화려한 실내장식을 눈으로 보느라
한 시간 반이 조금도 지루하지가 않다.
사실은 아베마리아의 산타루치아가 프로그램에 적혀 있어서
기다렸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아는 아베마리아가 아니고 다른
아베마리아였다. 기독교 나라라서 아베마리아가 한두 개가
아니겠지! 그러면서 산타루치아나 들어야겠다. 그랬는데
산타루치아도 마찬가지다.'내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인줄 알았는데 그것마져도 다른 산타루치아인 거다.
한 시간 반 동안 아는 곡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정말 근사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역사적인 유물로서의 교회가 아니고 지금도
이렇게 음악회를 한다는 아이디어도 괜찮다.
다른 나라와 달리 관광객을 의식한 듯 다리 근처에선 밤늦게까지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연다. 슈퍼 술집 선물가게등등. 유럽 여러
나라를 다니다 보면 어딜 가나 귀걸이 목걸이 팔찌같은
엑세서리들이 비슷비슷하고, 특히 귀걸이는 똑같은 게, 거의 한
나라에서 누가 대량으로 만들어서 공급하는 데가 있다는 걸 느낀다.
대개가 네팔에서 만든 것 같은, 그러면서 인디언 냄새가 조금 나는
거른 분위기여서, 흑인이 파는 거나 백인이 파는 거나 아랍
아해들이 파는 거나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 곡 사야 할 필요는
없다. 이 나라에서 못 사도 저 나라에 가면 노점상들이 같은 걸
팔고 있다.
그런데 체코는 다르다. 만드는 사람이 직접 들고 나와서 팔기
때문에 아이디어도 신선하고 재미있다. 다른 도시의 엑세서리하고는
전혀 다르다. 심지어는 대장간을 차려놓고 시뻘겋게 달군 쇠를
두들겨서 그 자리에서 촛대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양초도 직접
만들어 팔고 집안팎의 소품들을 여기서 다 만들어주는데 특이하고
아주 개성들이 있다. 값도 싸다. 외국 나가는 사람에게 "잘 다녀와"
대신 "선물 뭐 사다줄래?" 하는 사람들에게 사주면 좋을 듯한
것들도 많이 있다. 혹시 선물할 일이 있으면 여기서 사는 게 좋다.
체코에서 파는 물건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크리스탈이다.
난 크리스탈이란 것에 대해 별 흥미를 갖지 않고 살았는데 체코에
와서 보니 크리스탈이라는 게 정말 괜찮구나. 죽여주는구나. 싶다.
우리가 봐온 크리스탈이란 거의 다 투명하고 하얀 거에 각을 깍아낸
건데, 요가 건 유리표면에온갖 조각들을 다 하고 온갖 색체들을 다
집어넣었다. 가게에 있는 것을 통해 다 갖고 싶을 정도다."야,
이리 와서 이것 좀 구경해"소리가 3초마다 한번씩 절로 튀어
나온다. 다 갖고 싶지만 돈이 있나? 돈이 있다고 한들 깨질까봐
가져갈 수가 있나?!!
(그림설명: 유럽 어딜 가나 엑세서리는 다 비슷한데 체코는 다르다.
만드는 사람이 들고 나와서 팔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신선하고
재미있다. 대장간을 차려놓고 시뻘겋게 달군 쇄를 두들겨서 그
자리에서 촛대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사진은 포크를 휘어서 만든
장신구 절묘하지?!!)
그러나 장사들은 내 마음을 미리 다 알고 있다. 문 앞에 세계
어느 나라든지 소포비 부담해서 보내준다는 메모를 커다랗게
붙여놓은 거다. 아서라 말아라. 우리집이 크리스탈로 가득 찰라.
눈으로 사진으로만 가져갈 수밖에! 다음에 체코 들려서 크리스탈만
사가야지! 딴 데는 안들르고 헛된 꿈, 헛된 소망. 개소리!
재미나는 물건이 한가지 더 있다. 그건 봉지쌀이다. 외상으로
봉지 쌀을 사먹던 그 옛날이 생겨난다. 봉지쌀을 파는 나라. 체코!
사진 찍으려면 엽서를 먼저 사라
경치 좋은 곳이나 역사적인 유적에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 보면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걸머멘 노숙한 사진작가들을
만나게 된다. 그 사람들이 간 다음 그들이 사진 찍은 자리에 얼른
가서 똑같이 서 갖고 내 카메라로 경치나 건물을 들여다보면
틀림없이 좋은 구도의 사진이 나오는 포인트다. 사진 찍는 위치,
높이들이 아마추어들이랑 정말로 다르다. 사진을 배우는 나로서는
정말 고마운 선생님들일 수밖에 없다. 여러 번 그렇게 쫓아다니면서
찍었다.
체코에서 거리의 화가가 한 아가씨를 그리는데 어떤 아저씨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 모습을 찍는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서
열심히 찍어댄다. 화가의 어깨 위로 스케치북. 그리고 포즈를 취한
아가씨.
"앗 포인트다!" 하고 나도 그쪽으로 가 이리저리 카메라를 갖다
댔다. 그림을 그리는 중이라 모델 아가씨는 움직이면 안되는데
아가씨 의 눈동자가 내 쪽으로 막 돌아온다. 내가 사진을 찍는데 그
아저씨가 몸으로 가리면서 찍기도 하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도
용기를 내어 가까이 혹은 멀리서 막 찍었지. 그랬더니, 그 아가씨.
움직이지는 못하고 이상한 표정이 자꾸 되는 거야. 눈치를 보니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이상해하면서, 아저씨가 들이대면 가만
있는 거 같더라고!
나는 그 아저씨가 찍은 자리를 외어 두었다. 조금 있으니 그
아저씨가 찍기를 멈추고 앉아서 담배를 피운다. 나는 얼른 쫓아가서
그 아저씨가 찍었던 위치에 섰다. 그리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필름 한 통을 다 찍고 필름을 갈려고 할 무렵 그림도 거의 끝이
났다.
담배 피우던 사진사 아저씨가 옆의 아주머니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도 끝내야지. 하고 돌아서는데, 아가씨가 아저씨하고
이야기를 하는 걸 가만히 보니 아가씨의 아버지인 거 있지! 그것도
모르고 아버지처럼 찍어댔으니 나도 참 눈치가 없는 놈이다. 나 참
황당하고 민망하고 무안하고 면구스러워서! 그래도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한가지 소득은 있다. 물론 아가씨가 이뻤다는 거지!!
사진 찍는 사람들이나 촬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엽서를 사서
보고 포인트를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전문가들이 찍은 거니까
암만 해도 낫거든, 일단 엽서가게에가서 엽서 구경을 하면 그 동네
유명한 데는 거의 다 나와 있으니까 거기서 사진 찍을 포인트를
찾으면 한결 쉽다. 볼 만한 데, 찍을 만한 데를 알려면 전망대나 그
동네서 가장 높은 데 올라가서 전체를 내려다봐도 좋고 누가
권하는데 그 동네 젊은 아해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
같다.
아주 오래 전에 양락이하고 자전거를 타고 속초엘 간적이 있었다.
자전거를 2만5천원엔가 사가지고 속초에 가서는 가차편에 서울로
부친다는 계획이었다. 양수리에서 하루. 신남에서 하루 자고 인제를
거쳐 설악산에 들렀다. 이제는 서울에 올 차례다. 기차역을 찾는데
아뿔사!!속초에는 기차역이없단다. 그렇다. 속초에는 기차역이
없다. 둘다 그 사실을 깜빡했던 것이다. 별수 없이 자전거를
화물트럭으로 부치기로 부치는 값이 자전거 값보다 더 나간단다.
에라 모르겠다. 먹고 나 보자. 화물 싣는 데서 일하는 아저씨에게
자전거 두 대를 만원에 팔고 그 돈으로 광어회를 사먹었다. 문제는
자전거를 타고 속초까지 갔다온 증거가 없다는 거였다. 둘만 안다.
사진이 없으니까.
첫날부터 양락이는 카메라를 가지고 가자고. 그래서 경치 좋은
데서 사진을 찍자고 그랬다. 사실 카메라도 짐이다. 될 수 있는
데로 짐을 줄여야 하긴 하지만 카메라까지 짐이 되는 것은 아닌데도
나는 그럴듯하게 둘러댔다."나는 어디 가면 사진 안 찍는다. 사진
그게 뭐냐! 우리가 직접 갔다 온 게 중요하지 사진 찍으면 뭘 하냐?
모든 경치를 머릿속에 넣고 가슴에 담아오면 되는 거지. 남들처럼
똑같이 경치 좋은 곳을 배경으로 넣어 뒤통수로 보는 건 하지 말자.
어쩌구…….
자전거 여행을 갔다온 뒤에 한참 있다 양락이는 투덜댔다."형
말은 들을 땐 그럴듯하게 들리는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 말두 안돼."
그러면 나는 한마디 한다."임마, 나는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줄
아니? 나두 그래, 임마!"
지금도 마찬가지다. 카메라를 세 대나 가지고 왔는데 그 흔한
사진 한 장 못 찍고 있다. 카메라를 장만해 사진전문가한테 1년
넘게 배웠고. 여기 와서도 하여튼 엄청나게 찍어댔지만 뒤통수로
보는 인물 사진은 도대체 몇 장 찍지를 못한 거다. 풍경이나
일반사진도 뭘 모를 때는 어떤 그림이 되나 안되나를 대강 알게
되면서 낭비가 줄어들었다. 이번 여행 동안 필름 160통을
소비했지만 우리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은 딱 한 장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유럽에 올 때부터 가로등, 쓰레기통, 성기 모양
거리 공연. 맨홀 뚜껑. 기지, 벼룩시장. 이런 건 거의 닥치는 대로
집중적으로 찍었다.(사진설명: 내가 주로 찍거나 서로 찍어주다
보니 부부가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 귀국한 후에 모 잡지사에서
우리 부부사진이라고 이걸 집어넣었는데, 편집장이 보더니 "아니
이건 최유진 아냐? 얘가 여기 왜 있어?" 그랬단다. 하마트면 엉뚱한
부부가 태어날 뻔했다.) 우체통하고 공중전화부스는 찍다가 지쳐
포기했다. 이것들은 딴 사람들이 거의 안했기 때문에 한 것이다.
특히 쓰레기통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찍어서 소개한 아해들이 없어서 내 딴엔 한번 골라본 셈인데 정말
종류도 많고 크기도 각양각색이다. 잠깐 지나쳐 갔더라도 다시
쫓아가서 찍고 그랬는데 디자인이 너무 다르고 많아서 정말 지겨울
정도로 많이 찍어댔다. 나중엔 찍기가 싫다. 안 찍으면 그만이지만
이왕 찍은 거 한번 해볼랍니다!! 이거 말이야 내가 쓰레기통을
디자인해주면서 쓰레기통을 전부 하나로 통일하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야 괜히 열받네!!!
그런데 쓰레기통을 찍다 보니 한가지 인상적인 게 있었다. 파리
시내를 걷다 보면 병만 집어넣는 쓰레기통이 있는데. 개 데리고
다니면서 아무데나 똥 누게 하고 빨간불에도 무단횡단을 밥먹듯이
하는 파리 사람들이 병만은 아무데나 버리지 않고 꼭 거기다
집어넣더라는 거다. 정말이지 고지식을 지나 무식하게, 무지하게.
정성스럽게 집어넣는 거있지!!!
체코 아해들 스프레이에는 금지구역이 없다.
7월 26일. 새벽부터 비가 주룩주룩 오네. 빗소리에 잠이 깼다.
비가 굉장히 많이 왔다. 황당하네 이거. 그러나 다행히 오후엔
개었다.
오전에 체코 국립박물관엘 갔다. 지구상의 온갖 돌덩이들을 다
모아논 것 같다. 느낌을 절리하면 한마디."체코 국립중앙박물관은
거대한 광물박물관이다???"
십이 사도가 나와서 행진을 하는 시계탑이 있는 광장이 있단다.
그쪽으로 갔다. 매 시간 창문 두 개가 열리고 십이 사도가 그 열린
창문을 돌아가면서 나타났다가 사라진단다. 시계기둥 옆의 해골은
왜 서 있나 했는데 그 사이 해골이 종을 쳐댄다.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려고 오래 전부터 가다리면서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우리는 산에 올라갔다가 시간이 되어 부랴부라 급한
마음으로 오 분 전에 도착했다. 책을 보니 여섯 시가 제일 죽인다는
것다.
자기 팔목을 들여다보면서.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초침이
돌아가면서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드디어 "일 분 전!!!"하고
누군가 소리 친다. 큰 광장에 가득 찬 관광객들은 높은 시계탑을
향해 일제히 고개를 쳐든 상태로 "오 초 전, 사 초전, 삼 초 전 .
이 초 전."하고 초가 지날수록 큰소리로 새계를 보면서 질러댄다.
한마음 한뜻으로 "드. 드. 디. 디. 어.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무
무 문, 문이 열. 열. 여을린다. 십이 사도 지나간다. 창문으로."
그리고 끝났다. 십이 사도는 딱 한번 지나가고 끝이 났다.
피시시이익∼ 어이가 없다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퍼진다. 혹시나
하고 시계를 쳐다보는 시간이 20초 쯤 지나면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피식거린다.
"아니 저걸 보려고 우리가 30분 전부터 여기 나와 다리 아프게
서 있었나""저것 땜에 좋은 자리 맡으려고 그렇게 난리를 쳤나?"
하는 표정들이 역력하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은 세계공통이다. ㅁ
명은 그래도 미련이 남은 듯 시계탑을 계속 올려다 본다., 그러나
한 번 끝나면 끝이다., 한 시간 뒤에 다시 저러겠지. 일행 중에
누구 한마디 한다."돈 안 내고 뭐 하나 봤네,""그 대신 짧잖아."
체코에도 스프레이로 도시 건물이나 벽에 그림 그리는 아해들이
늘고 있단다. 스프레이의 국제적 침투다. 우리는 머리에뿌리는 무스
스프레이가 침투를 했었는데! 체코 아해들 스프레이에는 금지구역이
없다. 기차역은 물론이고 지나가는 기차에도 마구 뿌려대고
그러댄다. 새로 생긴 건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로마 아해. 독일
아해들처럼 정말 오래된 유적, 역사적인 건물에는 절대 안한단다!.
저녁에는 독일 맥주보다 훨씬 좋다고 하이텔에 소문이 짜하게 난
프라하 맥주를 사와서 일행들과 파티를 했다. 물가 싼 나라 체코에
왔으니 이 정도 호사야 괜찮겠지?
체코에서 안 당하고 택시 타는 법
체코에서 빈 가는 새벽 1시 20분 기차는 중앙역이 아니라 다른
역에서 떠난다. 조심하라. 중앙역에서 전철 타고 세 정거장 떨어진
홀쉬스 역으로 가서 어느 역에서 차를 타는지 미리 알아놔야 한다.
우리도 물론 알아는 뒀지! 영어를 잘 모르는 표 파는 아해가 "쎄임
스테이션?" 하니까 그냥 "쎄임 역" 하고 대답하길래(우리 경부선도
서울역에서도 출발하지만 용산역에서도 출발하는 것도 있잖아)
예약도 했겠다. 밤늦게 여유 있게 나와 물어보니 아뿔사. 다른
데란다. 어떡하나?
택시를 타고 갔지. 체코 택시는 웃기는 게 시내를 왔다갔다하는
텍시는 값이 싸지만 역앞 같은 데 대기하고 있는 택시는 요금이
엄청나다는 거다. 똑같이 생겨 구별하기도 어려운데 네 배까지
차이가 난단다. 더 웃기는 건 못된 운전사들이 많다는 것이다. 얼른
보면 양아치인지 택시기사인지 분간이 안 갈 만큼 불량스럽다.
지나가는 택시를 못 잡게 하는 역앞의 택시기사들. 무조건 자기네
차를 타야 한단다. 딴차를 잡으려고 손을 흔들면 인상을 쓰면서 막
못 서게 한다."죽어!!내리면" 그런 표정이다. 아주 불량스럽다.
양아치 같은 노무 시키들.
그러면서 요금을 아주 엄청나게 부른다. 천원 정도면 되는데
만원을 부르면서 막 바가지 씌우는 놈들도 있다. 터무니 없이
비싸다. 그러니 당연히값을 흥정해야한다. 흥정을 하면서 버터햐
하는데 시간이 없으니 흥정도 오래할 수 없고 깎는 데까지 깎다가
안되면 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1달러라도 깎자"하고 버텨
우리는 2달러 깎았다. 밤인데 어떡하냐" 돈도 선불로 달라는데
줘야지 어떡해. 시간은 없고 인상은 더럽고' 분위기가 약간은
살벌하다. 영어도 아니고 체코말로 옆에서 바람을 막 잡는다.
그러나 신기한 건 아무리 불량스러워도 일단 결정이 되고 나면
태도가 백팔십도 변한다는 거다. 천원이 됐든 2천원이 됐든 흥정이
딱 끝나면 무조건 내려서 택시 문부터 열어준다. 그리고 꼭 손님의
집을 들어서 트렁크나 좌석에 넣어준다. 내려서도 마찬가지다.
아파트면 아파트 근처까지 트렁크를 일일이 다 들어주는 거다. 이런
태도는 본받을 만하다. 우리는 그런 게 안되잖아.
카멜레온같이 친절한 택시기사를 보니 영국 택시가 생각난다.
영국 같은 데야 그런 거 하나는 정말 엄∼청 잘돼 있다. 타고
가다가 손님이 카메라만 창밖에 딱애면 "찰카닥" 소리 나기
전까지는 절대 안 움직인다. 처음엔 '이런 친절한 사람들이 다
있다니" 하면서 엄청 감동도 하고 그랬는데 생각해 보니 그게 다
사회복지제도가 잘돼 있기 땜에 그런 거다. 못살면 제아무리
친절하고 싶어도 못 그런다. 그러니 잘사는 건 중요하다.
잘사는 길을 사실 간단하다. 모두가 법 잘 지키고 세금 잘내면
된다. 그런데 기막힌 건. 우리나라에서 법을 어기지 않고 정직하게
택시 운전 하면 아주 쪼다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그
조다취급 받는 거에 대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거다. 법규를 지킨
사람들 한테는 아파트도 좀 싸게 분양해주고 의료보험 해택도 팍팍
주고, 아이들 교육비도 깎아주고 그러면 당장은 쪽팔리지만 그런
해택 때문에라도 열심히 할 수가 있다. 우리는 벌만 주는 재도가
발달돼 있지 도무지 상주는 재도가 발달이 안돼 있는데, 그게
문제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내 생각은 오늘부터라도 차선 위반을 하거나
중앙선 위반을 하면 무조건 벌금을 한 50만원 물리자는거다 그렇게
해서 그 벌금을 밑천 삼아 경찰 월급도 많이 주고 정직하게 운전한
사람들. 원리원칙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한테 혜택을 줘야 한다는
거지. 예를 들어서 택시기사들마다 앞에다 10년 20년 운전한 거.
무사고 라고 쓰고 다니면 그거 기록 깨는 게 쪽팔려서라도 11년
21년 하려고, 마저 지키려고 노력한다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전에 신문 해외란에 났는데 덴마크의 둘째 왕자가 애인이랑
파티에 갔다오다가 음주운전으로 걸렸단다. 그래서 거게 막 여론이
돼가지고 감옥에 보내야 된다. 말아야 된다 말들이 많았는데 결국
'젊은 사람이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한번은 용서해주자'는 쪽으로
갔단다. 그래서 왕자가 사귀는 외국여자 아해를 제 나라로 내보내는
걸로 사태를 매듭지었대. 명색이 왕위 계승권잔데 감옥에 들어갔던
사람을 왕으로 하기도 그럴 거고…….(그런데 좀 잠잠해지니까 다시
저들끼리 만나나 보더라고, 만약에 걔량 결혼하면 왕위 계승권이
박탈 되는 상황인데 말이지. 결국 둘이 결혼했대.)
그러니까 뭐냐면 그런 게 엄격해야 신이 난다는거지. 이것도
덴마크 얘긴데 말야. 교통부 장관이 어느 집 파티에 갔다오다가
음주운전으로 결렸대. 당연히 장관 자리에서 잘리고 지금은 핫도그
장사를 한다나! 안데르센 동화가 아냐! 실화라구! 우리도 그 사람을
봤다니깐 진짜로 길거리에서 손수레를 끌고 핫도그 장사를 하고
있었어. 그래도 장관 정도 자리에서 행세했던 사람이 교통법규를 안
지켜서 쫓겨나 길가에서 햄버거 장사나 하고……, 그럴수 수 있는
사회가 얼마나 신이 나. 서민들로선.
하이델베르크에서도 거기 유학생 애들이 나랑 길거리 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저 집은 손님들이 많고 여긴 손님이 적어요'
그러더라고. 다 같은 맥주집인데. 그래서 왜 그러냐니까 한마디로
저쪽은 맥주 맛있는거 팔고 이쪽은 맛 없는 걸 판다는 거야. 그러면
우리 생각으로는 맛 없는 맥주집이 맛있는 맥주로 바꾸지. 왜
그러구 매상도 못 올리냐니까. 얘들 말이. 이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한다는 거야. 맛있는 걸 팔든 맛없는 걸 팔든 하루에 정해진
시간 일하면 사회복지 혜택이 다 똑같은데 뭐 하러 일부러 성가시게
장사하느냐 이거지. 대신 맛 없는 맥주를 계속 파는 걸 전통으로
삼아서 그냥 산다는 거야. 개성도 있고 소문도 나고 말이야. 그것도
괜찮은 얘기 아냐???
음악의 도시 빈과 거리의 악사들
7월 27일. 또 새날이 기차 안으로 밝아온다. 새벽 여섯시 반, 눈
뜨고 바라보니. 미명 속에 파스텔 톤 칼라다. 빈 이다.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로 햇갈리는 나라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아주 오래 전에 빈을 소개한 짤막한 글을 읽었다. 빈은 음악의
도시라서 전화가에 있는 번호 7인가 8인가를 누르면 기본 음인
'솔' 소리가 나온다는 걸로 기억되는 나라다. 튜닝하는 데
도움이되고, 그런 것이라구(여기서 튜닝이란 악기를 조율하는걸
말한다지 아마(?) 한번 확인 해봐야지.
우리는 오나가나 숙소가 걱정이다. 빈에 내려서 걱정을 한다.
빈에 빈 집 많을까??? 역에 내리면 먼저 온 선배 배낭족들에게
묻는다. 숙소는 어디가 좋으냐고! 값은 얼마냐? 얼마나 가깝냐?
시설은 괜찮으냐?
우리가 묵은 까치네 민박집 딸이 피아노를 전공한다기에
물어봤다. 빈에 온지 칠 년인데 그런 소리를 처음 들었단다.
전화기를 들고 일에서부터 하나하나 확인을 해갔다. 그때 내가 잘못
본 건 아닌데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꽝이네!(분명 봤다구!! 그
기사 누가 쓴 거야?)
음악의 도시라 그런지. 여기는 거리의 공연자들이 상당히 많다.
죄다 음악하는 사람들이다. 거리의 악사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어렵고 힘들게 배워서 거리에서 저걸 하고 있나? 바이올린 레슨비가
우리나라는 엄청난데 길에서 그러는게 우리에겐 이상하게 느껴진다.
언젠가 미국 만화에서 바이올린 레슨을 안 가겠다는 어린아이를
달래고 야단치고 얼러서 억지로 데리고 나가는데 거지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어서 엄마가 아이들 눈을 가리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안성기씨 부인에게 들으니 두 종류가 있는데 직업으로 하는 부류와
아마추어란다. 아마추어는 여행비를 벌기 위해 재미로 하는데 그냥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고 시에다가 얼마간의 돈을 지불하고
거리에서 연주를 할 수 있단다. 물론 오디션 같은 건 없다. 아마도
돈이 필요했으리라.
어느 날 남들이 하는 걸 보고 "저 아해보담은 내 연주가 나으니
내가 나가기만 하면 저 아해보담 더 생기지 않을까? 에라 한번
해보자" 그랬을 것이다. 그랬는데."어, 해보니까 돈이 생기네"
"창피한데 관둬. 아냐. 내일 한번 더 해 보자" 하면서 한두 달이
지났겠지. 그럭저럭 재미도 있고 "이번 달가지만 하고 관둬야지.
누가 뭐라고 하든 무슨 상관이냐? 뭐라고 하는 놈이 돈 주냐"
그러다가 "육 개월만 채워야지. 아니야. 이왕이면 적금 하나 탈
때까지다" 하면서 일 년, 그러다 보면 좋은 장소도 알게 되고 집에
있으려니 좀도 쑤시고. 보낸 세월이 아깝고 "어, 벌써 삼 년
지나갔네. 인제 다른거 하자니 늦고 이거나 계속해보자." 이렇게
되어가면서 직업관도 생기고 나름대로의 철학도 생긴 게 아니겠는가
말이다."비가 안 와야 될 텐데! 일당 벌이를 나가려면. 요즘엔
연주하는 아해들이 너무 많아졌단 말이야. 일찍 나가서 길목을
지켜야지 그래도 거지보담은 내가 낫지" 이러면서
모짜르트 동상 앞에서 한 팀이 연주를 하고 있는데 다음 팀이
귓속말로 너네들 시간 다 됐다고 이야기를 해주고 간다. 좋은
자리는 지네들 끼리 시간을 타협을 하는 모양이다. 연주 팀들.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알았다고 머리를 끄덕인다.
연주하면서 번 돈 보태 배냥여행하는 외국 아해들. 건강하게
보여서 좋다. 모자에 돈이 아주 적게 들어 있어도 즐겁게 보인다.
젊다는 거. 그리고 젊어 고생한다는 건 그런 거다.
밤에 시청사에서 틀어주는 오페라 포스터엔 필름 페스티벌이라고
해서 갔는데 오페라를 하나 틀어준다. 화면도 그렇게 안 크고
음향은 엉망이라 실망해도 좋은 수준이다. 그래도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이 모여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필름을 보는 것보담은
모여서 이야기하고 밤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다. 맥주를 마시고
취해서 돌아 다니는 사람들도 없고 시비도 싸움도 없다.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낮에 우리가 돌아다녔던 관광명소들이
배경으로 나온다. 그걸 다시 화면으로 보니 반갑다. 음향이
떨어진들 어떠랴! 화면이 적으면 어떠랴! 시청 앞 광장에 이렇게
시민과 관광객을 사대로 오페라를 틀어준다는 게 신나는 달밤이다.
나중에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물어봤다. 소리. 음향. 화면 그런
게 안 좋다. 그랬더니 여기 사람들이 의외로 굉장히 보수적인 데가
있어 가지고 새로운 거계니 기술을 받아들이는 거가 잘 안된단다.
시민들을 위해서 그런 프로그램을 해주자는 발상은 앞서가는데도
돌비나 서라운드 그건 거는 빨리빨리 안 돌아간다는 거다. 아무렴
어때!!
빈에서 제일 중요한 스테판 궁전과 자연사 박물관을 못 봐서 빈은
이번 여행 중 가장 아쉬운 곳이되었다. 우리 일행 중에 처와 처의
후배가 피곤에 지친 탓이다. 특히 자연사 박물관은 규모가 그렇게
어마어마하다니 재미있는 것도 많을 텐데……. 민박집 잠자리에서
처의 후배가 한마디한다."언니 우리 서울 가면 경복궁 덕수궁이나
실컷 구경해요."
아쉽다. 빈. 빈 가슴으로 떠난다. 한 이틀 코스인데 1박 2일
만에. 그것도 반나절은 벼룩시장에서 보내다니…….
으흐흐. 서울에 와서 처의 후배를 다시 만났는데 덕수궁 경복궁
이야기가 한번도 안 나오데!!
빈에 관한 정보. 오스트리아는 대체로 시민들이 신호를 잘
지킨다. 그리고 빈에서는 전차표를 일일권을 사는 게 훨씬
이익이다. 도착하자마자 사는게 좋다. 한 번 타는데 17실링인데
일일권은 50실링이니 세 번만 타도 본전 뽑는다.
누군가 손 흔들 때 못 보고 지나친 게 몇 번일까??
오른쪽 사타구니에 가래톳이 생기려나???
배낭이 점점 무거워진다. 이게 무슨 여행인가? 중노동이지.
헝가리에서 남자들한테 끝내주는 술이라고 해서 4홉들이 큰 병을
예닐곱 병 샀는데 그걸 별 수 없어 내가 다 짊어지게 됐다. 거기다
내배낭까지 말이 안통하는 바람에 큰 걸로 사가지고 고생이 더 심한
거다. 남자들한테 끝내주는 술 좋아하다 오스트리아에서 인생
끝내주게 생겼네!! 배낭에 깔려 죽은 최초의 한국인이
오스트리아에서 출현하려나!
여행 다닌 지 두달 반. 이런 걸 두 번 느꼈다. 또 한 번은
스위스에서 몸값이 싼 데를 발견해갖고 여섯 명인가 엄청 큰 거를
사서 한 바케스 되는 걸 아깝다고 끝까지 메고 다니면서 다 먹었던
거다. 그때도 물값 아끼려다 하마터면 골병들 뻔했는데 그 병이
여기 와서 또 도지려고 그런다. 물 여섯 병이 얼마나 무거운지는
가까운 슈퍼에 들들 때 케트병 여섯 개를 들고 슈퍼마켓을 한번
돌아보자. 궁금하신 분들은!
사랑의 유람선 타는 테를 쫓아왔던 원 프로덕션 홍 실장이라는
처후배가 나중에 다시 파리로 오겠다고 하고 약속을 지켜서
우리하고 합류를 했는데. 열한 시쯤 호텔에서 느직하게 일어나
널널하게 쇼핑이나 댕기고 그러는 줄 알고 우리를 쫓아왔다가 열흘
정도를 생으로 배낭여행을 하고 그러니까 너무나 힘들어 한다.
징그럽고 막 미치겠단다.
(그림설명: 짤즈부르크에 있는 코인리커 안내판 내가 어떻게
아라봤냐면 누군가 조그맣게 한글로 써놓은 걸 봤거든! 친절도
하지!!)
짤즈부르크는 독일과 가까운 관광지라서 웬만한 곳에서는 독일
돈도 받는다. 그러니까 독일에서 들어갔다면 굳이 환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짤즈부르크 자동 환전기는 각 나라 돈을
환전해주는 게 특생이다. 동전은 안 받지만 지폐를 내면 동전까지
주는데 신통하다..
모짜르트가 살던 집은 입장료를 내면 누구나 핸드폰을
준다.(여기해드폰은 핸드폰처럼 생겨서 핸드폰이라고 함) 입장료에
포함이 되어 있는 이 핸드폰은 방마다 센서가 달려 있어서 방을
옮길 적마다 알아서 꺼지고 켜지면서 그 방에 맞는 안내문을 영어로
설명해 준다. 물론 모짜르트 음악이 배경으로 깔린다. 귀에 대고
들으면 재목은 모르지만 익은 곡들 어디선가 들어본 음악들이
흘러나와서 '야, 이것도 모짜르트구나. 요것도 모짜르트
것이었구나! 감탄하면서 듣게 된다.(사진 설명: 모짜르트가 사라던
집은 입장료를 내면 누구나 핸드폰을 준다. 여기 해드폰은
핸드폰처럼 생겨서 핸드폰이라고 함) 정말로 훌륭한 아이디어다.
다른 나라 다른 곳에도 이런 건 있짐나 따로 돈을 내야 되고
사용자가 일일이 작품 앞에 가서 번호를 눌러야만 설명이 나오는 데
이 집 것은 방에 들어가면 지가 알아서 바뀐다는 점이 좋다 어느
방에서는 모짜르트의 생애를 담은 멀티비젼을 틀어주는데 거기서
나오는 말발굽 소리가 인상적이다.'아, 저 소리였구나' 하는
그런소리다.
참고로 모짜르트의 한문식 이름은 毛七뜻이다. 모짜르트?? 발음을
조심할 것!!
서울 가면 사운드 오브 뮤직 비디오 구해서 봐야지.
짤즈부르크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를 해도 사실은 기억이 잘
안난다. 무슨 이야긴가 하면 짤즈부르크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을
찍었는데 영화 본지 오래 돼서 기억이 가물 거린다는 것이다.
짤즈부르크 길거리에서 믹서기 같은 주방기구를 선전한다. 파는
사람은 이 믹서기가 소음이 굉장히 적다는 걸 무척 강조한다.
소리가 안 난다는 거다. 조용하다는 시범을 보이는데 소음기보다
파는 사람 목소리가 더 크더구만!!
짤즈부르크에서 인스부르크 가는 기차를 기다리면서 시간이 남아
인스부르크 반대쪽으로 가는 기차 안을 들여다본다. 혼자 떠나는
우리 남자 배낭족 아해가 보인다. 빵을 먹고 있다. 손을 흔들어주고
싶어 흔들었다. 열심히 흔들었는데 그 아해 날 못 보고 떠나가는게
섭섭하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리라. 누군가 나에게 손을 흔들 때못
보고 지나친 게 몇 번일까???
인스부르크에도 선정호수가 있더라
인스부르크에서는 디즈니 성에서 만난 한국인 가족 전화번호를
하나 얻어서 미리 연락을 하니 남자분이 역으로 마중을 나와주었다.
서울대에서 독문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박사 하나 더 따려고 이곳에
와서 오스트리아의 민중극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는 안성기씨다.
부인은 비올라를 전공하시는 분이고 세 살. 네 살 연년생 아해들이
있다. 밀짚모자 쓴 모양이 아주 귀여운 극성맞지 않은 아해들이다.
이 부두 집에서 점심을 얻어먹었다. 김치찌개 갈비찜을 그것도
잡곡밥으로 실컷, 정말 고맙게 잘 먹었다. 디즈니 서어에서 우리를
만난 게 불행의 씨앗이었을 것이다. 밤늦게 기차역까지 마중
나와주고 유스호스텔에 데려다주고 그 다음날 가이드 까지 해줬다.
인스부르크는 평지가 우리나라의 대관령 정도 높이가 된단다.
그러니 2천 미터 정도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는 것이 별일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두 시간 정도 기차 타고 가는 기분으로들 타고 다닌다.
일요일에 2천 5백미터 정도는 기본적인 산책 코스란다. 세 살 네
살짜리 아해들 데리고 높은 지대에 있는 인스부르크는 공기가 맑아
그런지 대단한 장수마을이다. 해발 8백 미터가 넘는 마을도 있단다.
일년 중 가장 무더운 8월에도 스키를 탈 수 있는 데다.
인스부르크에서 시간을 내서 6번 전차를 타고 종점으로 올라가면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경기장이 나온다. 사실 이건 별 거 아니다.
거기서 다시 위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있는데 이걸 타고 올라가면
시내경치가 일품이다. 케이블카 타기가 뭐하면 종점에서 시골길을
한 정거장쯤 내려오면 배낭족이 아직 침투하지 않은 난서세 호수가
나온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산 위의 호수인데 인스부르크
사람들의 휴식처이고 하루 반나절 쉬어가기는 일품인 곳이다.
인스부르크에서 급류 타기만 하러온 배낭족들은 밤기차까지 시간이
상당히 많이 남는다. 한번 쯤 올라가서 경치 좋은 산길을 15분쯤
산책하는 즐거움도 있다. 호숫가에서 수영도 하고 보트도 타고
선텐을 즐기면 더욱 좋지!!! 숲으로 둘러싸인 잔디밭에서 테니스장
승마 골프 행글라이더까지 골고루 즐길 수 있다. 6번 전차는 한
시간에 한 번 올라온다. 시간표를 잘 활용하면 의외로 좋은 곳에서
한나절을 보내게 되어 기분 전환도 시간 낭비를 줄인다.
우리는 스위스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인스부르크는 아직
금융실명제가 안돼 있어서 검은 돈이 이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단다. 스위스는 너무 알려졌으니 인스부르크에 10달러 집어넣고
통장 하나 개설해놓고 갈까?
마터호른 정상에가면 007을 틀어준단다. 보내고 가봤더니 옛날
영화. 초창기 007 영화였다. 시간이 되면 틀어주는 게 아니라
손님들이 틀게 되어 있다는 게 다른 곳과는 다르다.
인스부르크의 닭 체인점은 오후 여덟 시가 넘으면 치킨이
반값이다. 우리는 어젯밤 사 먹었다. 비네발드 치킨 체인점이다.
미국 아해들은 빵을 먹을 적에 빵을 옆으로 발라서 쨈을 골고루
발라 먹는데, 프랑스 아해들은 빵을 손으로 뜯어서 조금씩 쨈을
발라가며 먹는다. 오늘 아침 7월 29일 한국 배낭족 아해가
미국식으로 빵을 잘라 쨈을 발라가며 어그적어그적 먹고 있다.
@ff
제4장
시실리 마피아가 생긴 이유
파리에 돌아오니 낯익은 거지도 생기네!
파리에 다시 돌아오니 이젠 낯익은 거지도 생기네! 8월 2일. 낯이
익어 인사할 뻔했네!
파리 디즈니에 가서 뽕을 뽑고 오다. 탈 수 있는 건 다 타 봤다.
자유이용권과 하나하나 타는 것이 구분돼 있는 우리 나라나 일본과
달리 프랑스는 자유이용권만 있다. 그걸로 서른 개쯤 되는
놀이기구들을 모두 탈 수 있단다. 유람선은 일부러 안 탔다.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처음부터 타지 말자고 했다. 모르고 빠진 게 하나
있으면 모를까. 완벽하게 스물 아홉 개를 다 타보고 나왔다. 난 왜
이럴 때 이렇게 뿌듯할까??!!
디즈니 가는 길에 타이즈를 입은 임산부를 봤다. 쫄바지를 입은
7, 8개월의 임산부도 있다. 우린 가리려고 애를 쓰는데 어떻게
쫄바지를 입고 다니는가 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빵빵한 배를
내놓고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가는 여자의 모습이 아름답다. 아주
건강하게 보인다. 파리 텔레비전의 어느 여자 MC도 임신
8개월이란다. 드레스를 입고 나와서 사회를 보는데 자신 있게
드러낸 아랫배가 건강하게 보인다. 데미 무어가 여기 와서 배워간
거 아냐???!!
골동품상을 지나가는데 엽서가 한 장 진열되어 있다. 모짜르트가
친구에게 쓴 엽서란다. 정말 글도 잘 썼다. 예술가답게! 값이
억대란다. 우리 서로 엽서들이라고 주고 받아야겠다. 나중에 돈이
될 수도 있지 않겠어?
그런데 말야. 엽서는 엽서엽서엽서 여보서......여보세요의
약자같지 않아? 그런 식으로 하면 다음 사람이 쓰는 요는 다음요
다음요....담요다. 이 다음 사람이 못 쓰게 비행기에 담요를 훔쳐와
기찻간에서 혼자 덮고 자는 여자를 만났다.
이태리에 가는 기차 시간이 두 시간 남아서 엽서를 쓴다. 잠들기
전이나 잠 깨고 난 후에 문득 생각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쓰는 것이다. 이 엽서 나중에 돈 될 수도 있으니 잘 보관하라고
추신에다 써야지!!
그런데 쿠셋(침대칸 기차)을 타면 참 이상도 하다. 예약한
사람들이 항상 먼저 뛰어 들어가!
달리는 밤열차 새벽 세 시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는다. 1편은 가지고 갔고 2편은 프랑스 한국서점에서 샀다. 정말
글을 잘 썼다는 생각을 한다. 남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한밤중에 내
나라를 생각하다. 때론 현실보다 글이 더 절실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밤열차가 첫번째 니종 역에 도착했다. 밤늦은 시각, 9시 15분쯤에
일행 중에 누가 불쑥 한마디 내뱉는다."우동 안 파나?"
밤기차를 타고 내리면 얼굴이 꾀죄죄해진다. 이럴 때면
중고등학교 때 교회 다니면서 밤새며 놀던 때가 생각난다. 같이
밤을 새고 새벽이 되면 제일 먼저 "선생님 오늘 이 안 닦았지요?"
하면서 다같이 웃었던 적이 있다. 꼭 그 말을 써먹는 놈들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런 말하면 일행들이 다 웃었는데 요즘
아해들은 안 그럴 거 같아서 씁쓸해! 보나마나 썰렁하다고 하겠지.
웃기면 웃고, 안 웃기면 안 웃으면 되는데 언제부턴지 "그건
썰렁해요""그건 재밌어요" 이렇게 되어버렸다. 웃음을 평하는
세태를 느끼며 공개방송 나갈 때마다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벽에 역에 도착해 깜빡 잠이 들었다. 굉장히 추웠다. 옆을 보니
미령이가 세계지도를 덮고 자고 있어서 이불 삼아 덮으려고 뺏었다.
따뜻하다.
베네치아 골목길은 누상동보다 좁다
8월 4일 밤기차로 파리에서 출발해 새벽에 밀라노에 도착했다. 갓
결혼한 부부 가이드를 만났다. 그리고 베네치아로 향했다. 너무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정말 물 위에 집이 있을까? 있다면 어떻게
가능할까? 궁금했거든. 정말 바단지 실감이 안 나 일행 몰래 물을
찍어 혀에 대보니 정말 짭짤하다. 바다다.
(베니스의 개성상인)이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소설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곳 베네치아가 배경이다. 영어로는 베니스고
여기말로는 베네치아다. 혹시 루벤스의 "동양에서 온 남자" 가 여기
미술관에 있는 게 아닌가 문득 생각나서 인포에서 물어보니
모르겠단다.
베네치아 골목길은 정말 좁다. 소문난 서울의 누상동
골목길보다도 더 좁다. 좁고 긴 골목 사이로 집들이 서있고 아주
작고 예쁜 가게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미로 같은 길이지만
역까지 나가는 길이 화살표 방향으로 잘돼 있다. 화장실 표시도
아주 잘돼 있어서 화살표 따라 우리 일행은 찾아나섰다. 20분만에
화장실을 찾았더니 입장 시간이 끝나 들여보낼 수가 없단다. 별꼴을
다 보겠네. 화장실 시간이 끝나다니 나 원 참 더러운 자식들!!
용변도 시간 맞춰 봐야 되나?
카페마다 화장실이 없다고 문 앞에 써놨다. 여기 살고 있는
지들은 어디 가서 누고 오는 거야? 요강에다 누고 바다에 갖다
버리나? 거저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돈까지 받으면서!!! 공짜로 일
볼 수 있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관광공사에 계신 분들 중
어느 한 분이라도 우리나라를 소개하는 책자 만들 때 우리나라는
전국 어디서고 화장실 돈 안 받는다고 집어넣어서 선전해야 할
것이다. 돈 받는 데가 몇 군데 있긴 하지만 외국인에겐 안 받게
하면 될 것 아냐?
베네치아는 버스가 배다. 택시는 모터 달린 배다. 곤돌라는
콜택시다. 지나가는 배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그렇다면
저건 불법 영업하는 배인가? 속칭 나라시인가? 알고 보니 화물배,
그러니까 용달 배란다.
배를 타고 집 사이를 다니다 보면 낮에는 몰랐는데 밤이 되니
일층엔 불이 안 들어와 있다. 유학생에게 물어보니 실지로 일층에는
사람이 안 산단다. 베네치아 엄마, 아이들 모아놓고 "아래층 사는
애들이랑 놀지 마" 하는 건 아닐까? 아해들도 엄마 영향 받아서
"우린 5층 산다""얌마, 난8층이야!" 하고 지들끼리 자랑하는 건
아닐까?
방이 없다고 난리들이다. 말로만 듣던 노숙을 하게 되려나! 방
구하느라 쩔쩔매다가 어떻게 해서 마침 호텔을 잡았다.
베네치아에서 노숙한다는 우리의 배낭족이 궁금해서 새벽 여섯 시에
나가봤다. 외국 배낭족들은 침낭 속에서, 장한 우리의 배낭족들은
침낭 없이 맨땅에서 그냥 잔다. 모자로 얼굴만 가리고 팔짱을 낀
채, 그러나 배낭만은 놓치지 않고.
카푸치노가 수사들 옷 색깔이래!!!
밀라노는 월요일 오전에 가게문들을 안 연다. 가이드 말로는
일요일날 질펀하게 노니까 월요일 아침은 쉬느라고 오후 세 시에
연단다. 지나가던 또 한 사람은 밀라노 패션가가 그 주일의 색깔을
결정하는 회의를 하느라고 그렇다고 하는데 모르겠다.
밀라노의 스칼렛 극장은 아무나 못 서는 무대다. 우리
한국인으로는 정명훈 김동규 조수미가 서본 곳이란다. 베르디
음악원은 2백명 중에 1백6십명이 한국 학생이다. 그것도 올해
합격생만 그렇단다. 음악유학생이 1천5백명이나 되는 곳이다.
가이드가 농담 삼아 하는 말이, 한국 유학생 아니면 운영이
안된단다. 그럼 한국으로 이사 오면 되겠네!!! 그러나 알고 보면
사실은 학비가 굉장히 싼 곳이다. 국립은 우리 돈으로 일년에
5만원인가를 낸단다. 학기는 6, 7, 8, 9월이 방학이고 10월부터
개학이다.
스칼렛 극장 앞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상이 서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름인 줄 알았는데 "다"가
"프롬(from)"이란다. 빈치 마을에서 온 레오나르도라는 뜻이다.
빈치는 피렌체 근처의 작은 마을인데 올리브 산지로 알려진 데다.
모나리자도 모나가 마담이고 리자는 엘리자베스의 약자라니
엘리자베스 부인의 미소가 된다. 여기 와서 보니 그런 이름들이 꽤
되는 것 같다. 유명한 조각이나 작품들도 복사를 해서 사방에
놓이고 걸려 있다. 최후의 만찬 그림 역시 한두 군데가 아니다.
최후의 만찬 때 반찬은 뭐였을까???
밀라노 피아짜 로레또 광장 앞에 있는 중국집에다 우리
가이드들이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줬더니 한국 사람들이 오면
으레 김치를 먼저 내온다. 김치가 반찬인 줄 모르는 것 같은데 맛은
있다. 김치가 야채니까 야채샐러드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우리들은
해석했다. 두부김치볶음도 정말 맛이 있었는데 우동맛은 좀 아닌 것
같았다. 볶음밥은 1천5백원 정도인데 서너 명이 와서 이인분만 시켜
먹으면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을 정도다.
이태리 중국집에 들르는 사람은 서비스 요금이 포함이 되는지
안되는지 확인을 하고 들어가는 게 좋다. 보통 요금의 15퍼센트
정도인데 특별한 서비스가 없어도 줘야 하니 아깝기도 하지만
음식값에 꼭 맞춰 들어갔다가 낭패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된다.
파리에선 한국식 짜장면이 있다는 광고지를 여러 번 봤는데
가보진 못했다. 유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단다.
열성 가이드 한 분이 얼마 전에 이 중국집에다 김치에 이어
짜장면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줬단다. 우리는 못 먹고 가지만 내년에
이 집에 오는 배낭족들은 짜장면을 먹게 될 확률이 높다. 밀라노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다면 이태리 안 오려다가도 마음 바꿔먹을
사람 꽤 될걸!
아, 짜장면 먹고 싶다. 오늘 시켜 먹어야지, 준태야, 어디
있니??(중국집 명함을 준태가 보관하고 있거든.)
밀라노의 산마르코 광장은 ㄷ자로 되어 있는데 네 귀퉁이에
야외카페가 있다. 카페마다 각기 다른 음악을 연주한다. 칸소네
팝송 등등. 우리는 사지선다형 객관식에 강하니까 네 개 중에 한
곳을 고르기는 쉬울 것이다. 에스프레소 한 잔 혹은 시원한 콜라 한
잔 마시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보는 것도 괜찮겠지? 파리
노천카페에서 돈 아끼느라 그냥 온 아해들은 여기 또 한번의 기회가
있으니 안심할 것!!
밀라노까지 와서 사지선다 카페를 보니 언젠가 대학교 수능시험에
빵점 짜리가 일곱 명 나왔다는 기사가 생각난다. 1, 2, 3, 4 중에서
아무 번호나 같은 번호에 쳐도 30점은 맞을 확률이 있다던데
3백개나 되는 문제 중에서 어쩌면 그렇게도 정답을 피해 동그라미를
쳤는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그 기사를 읽으면서
들었다. 뇌를 한번 조사해봐야 되지 않을까? 수박이 익었나 안
익었나 따보는 것처럼 머리를 삼각형으로 따서 뇌를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 그 기사를 읽으면서 마구마구 들었던 거다.
여기 카페에는 카푸치노 카피라는 게 있다. 한국에서도 잘 마시는
종류의 커핀데 알고 보니 카푸치노가 수사들의 옷색깔이란다.
그런데 (장미의 이름)에는 왜 카푸치노 얘기가 한마디도 안 나오는
거야?
밀라노 역 앞에는 마약쟁이들과 에이즈 환자들이 득시글한데
요즘은 잘 안 보인단다. 얼마 전만 해도 에이즈 환자들이 자기 피를
주사기에 뽑아서 지나가는 사람 팔뚝에 갑자기 바늘째 꽂기도 하고
주사기를 잔디밭에 세운 채로 묻어놔서 모르고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다가 찔리기도 했단다. 나쁜 자식들!!
유럽여행 길에 가장 인상 쓴 곳
유럽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리라. 가장
인상 깊은 곳이 어디였냐고. 그러면 나는 대답하리라. 가장 인상
깊은 곳은 잘 모르겠고 가장 인상 쓴 곳은 있었다고. 거기가
어디냐고 다시 묻는다면 베테치아라고 대답하겠다.
우리는 바닷가의 식당에 갔다. 밀라노,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도시에서는 바가지가 극성이라는 말을 익혀 들어서 스파게티를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 "에라, 그래도 본토 스파게틴데...." 하며
용기를 내 식당문을 연 것이다.
영어를 아주 능숙하게 사용하는 웨이터에게 주문을 했다. 1만1천
리라짜리 스파게티 삼인분을 시켰다. 혹시나 해서 물었다. 바닷가
쪽에 앉았다고 돈 더 받는 게 아니냐고. 아니란다. 물어본 이유는
옆 자리에 미국 아해들이 있는데 술만 마신다고 하니까 바다 쪽으로
못 앉게 했던 것이다.
스파게티 하나만 먹고 일어났어야 했는데 양이 너무 적어서 나만
일인분을 더 시켰다. 생선요리 1만 리라짜리를. 그러면 4만3천
리라여야 계산이 맞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놈들이 생선을 아주 큰
것을 가지고 온다. 눈짐작으로 봐도 상당히 크다. 그걸 세
접시에다가 나누어 담는다. 한 사람만 먹으려고 일인분만 시켰다고
했더니 그때서부터 영어를 안 쓴다. 어물어물하더니 이태리말로
지껄이는 것이다. 순간 "바가지다!" 하고 나는 소리쳤다.
이왕 바가지 쓰는 것 같은데 얼마나 쓸 것 같은가에 대하여
우리는 퀴즈를 냈다. 쓰잘데기 없이, 철딱서니 없이 희희낙락거리며
말이다. 처는 8만 리라, 준태는 10만 리라, 나는 13만 리라를
불렀다. 왜냐하면 처음에 3만3천에다가 다시 3만3천이면 6만6천에다
지가 써봐야 두 배지, 해서 약 13만 리라라는 계산이 나온 거다.
드디어 종업원이 계산서를 가지고 왔다. 26만5천 리라란다.
어이가 없었다. 입이 딱 벌어진다. 입이 딱 벌어진다.
13만2천5백원! 으아, 해도해도 너무한다. 6천원짜리 스파게티
먹으로 왔다가 무려 13만원 돈을 내게 된 것이다. 설마설마 했는데,
우리는 따졌다. 이태리 지배인의 해명이 걸작이다. 스파게티 값은
도합 3만3천 리라가 맞는데 거기에 우선 테이블세가 붙는단다.
바다를 볼 수 있는 창가의 테이블이라서 세금이 더 붙고 거기에
기본 서비스료 등등 별의별 명목이 등장한다. 결정적인 건 우리
스파게티의 소스가 바닷가재 소스래나, 주문하지도 않은 해물소스를
얹었기 때문에 요금이 가산되는데 그 해물소스에 들어간 바닷가재가
일킬로그램짜리라는 거다. 일킬로그램짜리였는지 일그램짜리였는지
확인해볼 방법은 전혀 없었다. 그 다음부터는 이 새끼가 다시
이태리어로 지껄인다. 유창하게 영어를 하던 지배인 놈이 갑자기
영어는 나 몰라라 하는 거다. 어이가 없다 못해 정말 기가 막혔다.
개자식!!
도둑들이 득시글대는 이태리 구경 와서 도둑 안 맞은 것을
다행으로 알고 다녔는데, 여행지 중에서 그래도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던 베네치아에서 도둑 대신 눈탱이를 맞은 것이다.
미령이가 쉽게 물러날소냐며 손짓 발짓을 동원해 따지고 있는데
내가 말렸다. 씌우자고 작정한 놈들을 뭘로 당해내겠느냔 말이다.
영수증을 땅바닥에 내던지면서 "야, 이 나쁜 자식아" 하고
돌아섰다. 돈은 물론 다 냈지.
로마로 돌아가서 남사장에게 바가지 쓴 얘기를 하면 역성이라도
들어줄 줄 알았더니 "거기가 원래 그래요." 하고 끝이다. 옆에
있던 아리랑 사장님이 한 말씀 거든다."같은 이태리 아해들끼리도
그쪽 아해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해요." 나중에 들으니
이곳에서 우리처럼 바가지를 쓴 사람이 한둘이 아니란다. 배낭족
학생들에게도 지독하게 바가지를 씌운다는 거다. 더 기분나쁜 건,
이놈들이 미국인이나 영어를 쓰는 백인들에게는 꼼짝없이 제 값만
받으면서 유독 머리카락이 검은 사람들, 그러니까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하고 제대로 따지지 못하는 동양 사람들에게만 바가지를
씌운다는 사실이다. 그런 경우에는 쉽게 흥분하고 따지는 것보다
무조건 폴라치아(이탈이아에선 경찰을 폴라치아라고 부른다)를
부르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란다. 다음 번에 화산이 터지면
틀림없이 베네치아가 될 거야. 폼페이처럼.
밤에는 모기를 한 마리기 때려 잡았다. 바가지 씌운 베네치아
웨이터는 때려 잡지 못하고.
나중에 하이델베르크에 갔더니 유학생들 말이 유럽 사람들, 특히
독일 사람들한텐 바가지를 절대 안 씌운단다. 독일 사람들은
조목조목, 꼬치꼬치 끝까지 따지기 때문에 바가지를 감히, 도저히,
결코 못 씌운다는 거다. 조금이라도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바로
경찰을 부른단다. 베네치아 바가지는 만만한 일본하고 우리에게만
씌운다는 거다. 왜 안 따졌냐고, 다음에 오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막 따져야 된단다. 미안하다 후배들아, 그 생각은 못했구나.
식당에서 나와 공중전화카드를 샀는데 카드를 집어넣었는데도
전화가 안 걸린다. 뒤에 서있던 아해가 가르쳐준다. 카드 한구석의
삼각형을 떼어내야 된단다. 이태리 다른 곳도 마찬가지란다.
까다롭긴, 이태리에서 다른 나라로 전화를 걸려면 나라 번호가
공중전화에 적혀 있는데 찾아보니 일본만 있고 우리는 없다.
빌어먹을, 공중전화에서까지 열받네!!! 혹시 잊어버리면 일본 것을
보아라. 끝 번호에다가 1을 더하면 우리나라 국가 번호가 된다.
제기랄!!!
사라지는 건 대개 다 슬프다
로마에 있는 한국음식점 아리랑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생선찌개를 시켰는데 음식이 참 맛있다. 집사람이 한 마디한다.
소주를 부르는 맛이란다. 만약에 만화영화로 만든다면 어떨까.
생선찌개냄비에서 김이 모락모락 난다. 그 김이 꼬불탕찌불탕
해갖고 소주병에게로 간다. 그 다음 장면, 소주가 저벅저벅 로마
병정들처럼 걸어들어오면서 "부르셨습니까?" 이러지 않을까.
소주 마시기 좋은 계절이 이제 곧 다가온다. 소주는 잃어버린,
사라져가는 우리의 지난 기억들을 일깨우는 술이다. 소줏집에 가서
"소주 반 병 사절"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지? 우리 주위에서
소주 반병을 시키는 일이 이제는 없어졌다. 그만큼 삭막해진 거다.
"아저씨, 소주 반 병만 주세요" 그러면 아저씨는 새 소주병을
가지고 와서 빈 병에다가 따르곤 했는데, 따라지는 소주병을
바라보면서 행여 반 병이 덜 따라질까 봐 모두들 조마조마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어쩌다가 소주가 반 병에서 조금 더 따라지면
"옜소! 여기 더 따른 걸루 드슈" 했던 주인 아저씨의 인심.
또 일손이 달리는 포장마차 아줌마는 소주 반 병을 시키면
병따개로 새 소주병을 따주면서 "마시다가 냄기세요" 했었단
말이야. 그런 풍경이 언젠가부터 우리 주위에서 사라져버렸다.
사라지는 건 대개 다 슬프다."아들을 고대하다가 딸 쌍둥이를
낳아서 하루 내내 소주 두 되를 천천히 마시는 비 오는 날의
아버지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던 어느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여행을 다니다 보니 술 먹을 일이 정말 많다. 무진장 많이 먹게
된다. 일찍 들어갈 집이 있나 준비해야 할 스케줄이 있나. 아주
마음 편하게 술을 먹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선 나랑 10년 전에 마신
사람이나 20년 전에 마신 사람이나 술주정했다는 얘기는 전혀 없고
"그 사람은 술 취하면 간다" 그런 얘기만 있는데, 여기서는 술
취해서 갈 데도 없고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많이 마시게 된다.
특히 다음 일 걱정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다음 일이란
녹화시간 약속시간 집에 들어갈 시간 등등이다. 술 양이 점점
많아진다. 술이 는다. 왜? 집에 안 가도 되니까??? 집은 술맛도
없게 하나???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엔 유독 술에 절어 사는 사람들이 많다. 술에
절다 못해 데인 사람도 지천이다. 술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슨 말을 듣다 보면 뭐뭐에 데였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내가
말야, 이래뵈도 연애에 덴 사람이야""이거 왜 이래? 일없어, 내가
노름에 덴 사람이라구" 등등.
몇 년 전에 필리핀에 간 적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보라카이라는
곳을 많이 간다고 하는데 우리는 좀 색다른 데를 가고 싶다고
했더니 시프라는 곳을 누가 소개해주어 그곳으로 정했다. 거기서
럼주 한 병 마시다가 덴 이야기다. 걔네 말이 백 명 중에 한 명
정도가 꼭 화상을 입는단다. 뭘 그럴까 웃어넘기면서 럼주를 마시고
여섯 시간 동안 그늘에서 잤다. 그랬는데 한 사흘 지나고 나서부터
허물이 벗겨지기 시작하는데, 정말 심하게 화상을 입었다. 지독한
햇볕이다. 허물 벗기를 한번 하고 나니 얼룩덜룩해진 게 온몸이
완전히 예비군복이다.
그래서 거기서 바닷가 청소하는 아해들한테 물어봤다."니네 나라
아해들도 덥나?" 그랬더니 자기네도 더워서 십 분 이상 일을
못한단다. 그래서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고, 들어갔다 나오고
그런데나, 거기서도 호텔 모래사장에 자갈이나 이상한 미역 찌꺼기
같은 걸 치우는 얘들이 있었는데 쉬지 않고 물속을
들락날락거리면서 그런 일을 하더라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인간들도 가죽갈이를 한번씩 해야 된다는
것이다. 소주에 덴 사람, 노름에 덴 사람처럼, 나야말로 필리핀에서
태우다 덴 사람이기 때문에 겁이 났다. 그러다 보니 니스에서도
그랬고 여기 이태리에도 근사한 바닷가들이 많은데 한번도
본격적으로 태워보질 못한 것이다. 딱 맞는 표현이 아닌가 말이다.
태우다 데였으니 태우는 데 데일 수밖에.
근데 필리핀서 만난 어떤 한국 사람 말이. 자기는 여기가 좋아서
팔년 전부터 매년 온단다. 그 호텔이 생긴 지 3년 됐다는데 말이다.
이태리 밤열차엔 하룻밤에 도둑이 몇 번 들어올까
몇 년 전에 이런 퀴즈 하나를 써먹은 적이 있다. 도둑이 담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이를 본 주인이 "도둑이야!" 하고 외치다
도둑이 한 말은?
정답,"안 넘어가면 되잖아!"
우리는 왜 도둑놈을 두려워할까? 가진 게 많으면 두려움이
생긴다는데 돈 없는 배낭여행자들 역시 제일 두려워하는 게
도둑이고 소매치기다.
아주 오래 전 우리나라에도 소매치기가 극성을 부리던 시절
"소매치기" 라는 김길호 작 희곡이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어
대학시절에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절묘한 기술을 가진 소매치기
하나가 교도소에서 나와서 마음 잡고 다신 이일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데, 옛날 동료이자 선배가 회유를 한다. 하기 싫다고
뻗대다가 동료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하다가
그만 다시 붙들려간다는 내용이다. 그 희곡에 보면 귀부인의 다이아
반지를 빼내는 내용이 나온다.
기차를 타고 다이아 반지를 끼고 있는 귀부인 앞에 앉아서
계속해서 얼굴 보고, 반지 낀 손 보고, 얼굴 보고, 반지 낀 손 보는
것을 반복하면 앞에 앉은 귀부인은 인상 더러운 자식 하나가 앞에
앉아서 자가 얼굴하고 반지 낀 손을 번갈아 보고 그러는 거에 그만
슬그머니 불안해진다. 안절부절못하던 귀부인은 급기야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내어 손가방 안에다 집어넣는다는 것인데 그러면
손가방 안에 든 것 털기는 식은죽 먹기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소매치기도 이렇게 심리적인 면을 이용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데
이태리 소매치기는 그냥 눈앞에서 집어가고 주인이 뭐라고 하면
"미안하다, 내 가방인 줄 알았다"며 우기니 말따위가 안되는
것이다.
가차를 타고 자리를 잡고 앉으면 잠시 후 기차가 떠난다. 어느
정도 달리다 보면 "이게 내 자리구나, 이걸 타고 내 목적지까지
가게 되는구나" 하고 어느 정도 심리적 안정감을 얻게 될 때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버스 같은 거 통학할 적에 엔진 옆에
가서 앉는다든가, 운전석 뒤라든가, 앞에서 세번째라든가,"나는
뒷자리가 좋아"라든가 어쨌든 늘 앉는 자리에 가서 앉게 되는 게
그런 심리 때문이란다.
그렇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었을 때, 기차객실을 연결하는 문이
열리고 불량하게 생긴(불량하게 봐서 더욱 그렇게 보이는) 한무리의
사내들이 나타나서 두리번거리면서 자리를 찾는다. 그러면 앉아서
발을 뻗고 창밖을 내다보고 졸 준비를 하던 사람들은 이상하게
경계의 눈빛이 되면서 불안감에 휩싸이곤 했다." 저 사람들이
말로만 듣던 신문에 나던 도둑놈들일 거야" 하면서 남 모르게
값나갈 물건이 있는 쪽으로 눈이 가고 마음이 가고 손이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심리를 소매치기들이 이용하기도 한단다. 아, 훔쳐올
게 저거하고 저거군! 하는 거다.
여의도 증권회사의 한 직원은 신혼여행차 로마에 와서 지나가던
행인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카메라를 맡기고 분수 앞으로 걸어가
돌아섰더니 그만 총알 탄 사나이가 되어버렸단다. 몽땅 털렸다는
거다."여권도 잃어버렸어요" 하면서 기가 막힌다는 듯이 웃는다.
이런 C8놈들!!!!
세 번이나 털려서 정신이 나간 우리 배낭족 여학생도 만나고
사흘을 꼬박 그 자리에서 지키다 다른 도둑을 잡아서 돈을 받아내고
이태리의 전설이 된 한국인 청년도 있었다.
요즘은 여권 훔쳐가는 놈들이 그렇게 많단다. 우리나라 여권은
굉장히 비싸게 거래된단다. 어느 날 경찰서에서 로마 참사관 김경석
님 한테로 전화가 왔는데 "여기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
있어서 잡아놨는데 뭐가 좀 이상하니 공항에 나와서 확인해보라"고
하더래. 가봤더니 흑인 두 명이 잡혀 있더란다. 로마 아해들이
보기에도 한국 여권 주인이 흑인인 게 너무 말이 안 되니까 이 여권
도둑들을 붙잡아논 거야.
이태리 소매치기는 정말 수법도 다양한데 제일 흔한 것 중 하나가
사진 찍어달라는 수법이다. 우리가 찍어달라고 하면 물론 그대로
카메라를 들고 튀니까 조심하고 안 맡기면 되지만 문제는 그놈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할 때다. 그러면 촬영에 눈이 팔려 있는 동안 딴
놈들이 옆에 있는 짐들을 갖고 간다는 거지. 사진 같은 건 안
찍어주는 게 좋다. 그리고 찍더라도 짐을 손에서 놓으면 안된다. 그
외에도 샴푸 같은 걸 어깨에 떨어뜨려서 그거 닦는 새에 털어 가고,
배낭에 새똥색깔의 액체를 뿌리고 닦아주는 척하면서 배낭을
훔쳐가기도 한단다. 깔끔하게 하고 다니면서 친절을 베푸는
소매치기 커플도 있다.
최근의 신종 수법은 2, 3개월 된 아이를 들고 점 찍어 놓은
관광객앞을 왔다갔다하다가 갑자기 어린아이를 그 사람에게 던지는
거다. 순간적으로 어린아리를 던지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받는다.
그럴 때 주머니를 뒤지거나 가방을 들고 표표히 사라진단다. 내가
물었다."그럴 때 안 받고 아이가 떨어지면요?" 그러면 "이
사람한테 부딪혀서 우리 얘가 떨어졌다"며 소리소리를 지른단다.
물론 아해는 떨어져서 다친다.
아해들은 그렇게 소매치기를 하는 소품으로 사용된단다. 그
다음은 아이 껴안고 길거리에 나앉기, 조금 크면 독립을 시킨다.
아해들의 범죄는 부모 책임인데 파출소에 가도 부모가 누군지
모른다고 오리발을 내민단다. 입국과 동시에 여권을 찢어버리니
어디서 온 놈인지 알아야 강제출국을 시키지. 그래서 로마경찰들도
골머리를 앓는단다. 고속도로 같은 델 가다 보면 방향표시판 같은
걸 바꿔놓고 차를 그쪽으로 유도해 길을 막고 있다가 털어가는
아해들도 있단다.
우리 여행객 중에는 이태리 소매치기에게 피해를 당하고도 말을
몰라 쩔쩔매는 경우가 많단다. 그럴 땐 무조건 한국말로라도
"도둑이야!" 하고 큰소리를 지를 일이다. 동포애를 발휘해서
도망가는 놈 발 걸어주는 한국 사람들이 앞으로는 틀림없이 생겨날
거다. 워낙 한국 관광객도 많고 소매치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오니깐......! 그래야 한국 관광객 털고 도망가다가 넘어진
소매치기들도 생겨날 거고 그렇게 해서 차차 줄어들지 않겠어?!!!
혼자서 생각해본 소매치기 방지법 몇 개가 있다. 기차여행을 하면
도둑놈들이 그렇게 설친다는데, 우리가 어렸을 때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날이 되면 가지고 놀던 끈화약을 이용한 퇴치법이다.
기억하고 있지 않은 사람을 위해 잠시 설명하자면, 조금 굵은
실 가운데에 화약을 뭉쳐넣고 실끝을 잡아당기면 가운데 화약이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실이 끊어지는, 그 당시 아해들의
놀이기구였다. 요즘 생일 케이크를 사면 한두 개씩 끼워주는 거
말이다. 터지면 라면발 같은 종이가 소리와 함께 뛰쳐나오는
부라보콘 같은 거! 그게 당시는 조명탄과 함께 굉장히 인기 있는
장난감이었는데 이걸 기차도둑 방지를 위해 이용해보면 어떨까?
잠을 잘 적에 문을 닫으면서 이 끈 양끝을 출입문에다가 매달아
두면 도둑이 문을 열려다가 혼비백산하지 않을까??? 같은 편이 나갈
땐 실을 끌러놓고 암호를 정해서 디시 들어오면 되고.......!
번거롭긴 하겠지만 물건 잃어버리고 당황하는 거보담 낫지
않겠어???
또 이사 갈 때 사용하는 넓적한 테이프로 효과를 보았다는 여학생
배낭족도 만났다. 우리도 시도해볼 참이다. 기차 안에서 문을 열면
"찌익" 하고 테이프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깬단다. 다음 방법,
얼굴에 피를 묻히고 자면 놈들이 겁을 내지 않을까? 장난감 칼을
배에 꽂고 있으면 어떨까? 누명 안 쓰려고 안 들어올까? 가방을
밑에 집어넣고 자면 기어들어 가야 하니까 약간은 안심이 된단다.
한번 겪어보자. 아니, 그걸로는 약할지도 몰라. 길 갈 땐 그런 거
다 소용없잖아? 아, 그래!!! 전염병 걸린 사람처럼 아픈 흉내를
내면서 걸어가거나 체포조처럼 수갑을 채워서 일행을 끌고 가면
"형사가 잡아가는 모양이구나" 해서 안 훔쳐갈지도
모르겠다.(유럽에서는 수갑을 아무데서나 살 수 있다.)
아니야, 이것도 약할지 몰라. 쥐덫이나 쥐잡는 끈끈이 손덫을
하나 만들어서 우리나라 사람만 가지고 다니면 어떨까? 아예
스티커로 만들어서 조심하라는 경고장으로 붙이고 다니면 이
아해들이 도둑질하기를 겁낼 텐데!!! 우리가 왜 소변금지라고
담벼락에 경고장을 많이 붙여 놔도 말을 안 들을 땐 가위 같은
것들을 그려 놓고 그러잖아. 내가 언젠가 어느 동네에 가서 보니까,
도마에 시퍼렇게 날 선 도끼 사진이 하나 좍 찍혀 있는데 자지가
반이 팍 잘려 나가고 피가 팍! 튀는 섬뜩한 그림을 그려논 집이
있더라고. 집주인이 삼청교육대 조교 출신인지는 모르겠지만(나하고
자주 노는 아해 중에 삼청교육대 조교 하던 놈이 하나 있거든. 근데
그놈은 그런 거 그려논 적 없대). 도끼에 핏자국이 막 벌겋게
얼룩져 있는데, 그런 덴 암만 강심장이라도 오줌 누기가 섬뜩할
거야. 그런 것처럼 배낭이나 지갑에 집어넣은 손이 확 잘려
들어가면서 피투성이가 되는 그림을 그려가지고 경고 스티커로
만들어서 배낭이고 가방 같은 데 전부 붙이고 다니면 아마 도둑놈의
새끼들도 좀 찜찜하지 않겠어?
또 어디선가 팔길래 하나 사두고 안 써먹은 게 하나 있는데,
인신매매단이 한창 신문지상에 설칠 때 호신용으로 사용하라고 누가
만들어 판 것 중에 끈을 잡아당기면 삐!! 하고 소리가 나는 기구가
있었거든. 그걸 열차 문 앞에 달아 놓거나 한쪽 끝을 중요한 데
달아놓으면 틀림없이 요긴하게 써먹을 거야.
조심을 하느라고 해서 다행히 도둑을 안 맞았구나 했는데 결국
버스 안에서 늙은 영감탱이 하나가 미령이의 배낭 재크를 열었다.
물론 헛손질을 했지. 갖고 가봐야 지가 선탠 크림이 왜 필요해!
김샐걸!!!
퀴즈 : 이태리의 밤열차에 도둑이 많다. 배낭족 열 명이
스위스에서 밤열차를 타고 로마에 갔다고 치자. 약 아홉 시간
여행중에 하룻밤에 몇 번 밤도둑이 들어올까?
정답 : 열다섯 번.(내가 어느 날 밤은 스위스에서 이태리까지
야간열차를 타고 가는데 도둑놈이 문을 백 번이나 열었어. 그러고는
하는 말이 지 방인 줄 알았대. 조금만 방심하면 다 털리는 거야.
장난이 아니라구 정말.)
이태리식당 종업원이 손님보다 먼저 밥 먹는 이유
근사한 이태리식당에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조금 있다가
일곱 시에 들어오란다. 종업원들이 저녁밥 먹는 시간이래나. 점심도
종업원들이 먼저 먹는단다. 하? 요것 봐라! 재밌네!! 손님보담
종업원들이 먼저 밥을 먹어?!?!?!!! 어쨌든 우리는 기다리다가
오라는 시간에 식당엘 들어갔다.
우리 돈으로 3만원 정도인데 두 시간 동안 먹을 것이 줄기차게
나온다. 술은 얼마든지 공짜다. 음식맛도 좋다. 우리랑 다른 걸,
종업원들이 먼저 식사를 한 후에 손님들을 맞이한다는 거다.
그때까지 우린 못 들어가는 거지. 알고 보니 유럽 식당이 전부 다
그렇단다.
잘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식당 종업원들은 손님들이 다 간 다음에
점심을 먹든지 저녁을 먹는다. 손님들의 점심시간이 끝난 후 서너
시쯤이 돼야 점심을 먹고 저녁 역시 파장이 다 된 시간인 열 시쯤이
돼야 먹는 거다. 손님이 점심 먹으로 두 시 반 정도까지 오는데, 이
팀들이 다 간 다음에야 먹을 수가 있거든. 그러면 "저 팀 다 간
다음에 내가 점심 먹어야지" 하고 있는데 2시 40분쯤 돼서 또
손님이 오게 되면 종업원들이 김새는 거다."저것들 때문에 오늘
점심은 또 늦는군! 아이고! 배고파! 열받네!" 그러면서 당연히
불친절해지기 시작하는 거지.
저녁도 마찬가지다. 여섯 시부터 여덟 시쯤까지 손님들이 오면,
저것들이 다 가고 나면 밥 먹어야지 하는데 여덟 시 반쯤이나 아홉
시쯤에 몇 놈이 또 먹으러 들어오면 김새잖아. 그렇다고 나가랄
수도 없고. 그런데 여긴 종업원들이 먼저 먹는다고. 그러니까 내
배가 부르니까 여유 있다 이거지. 우리는 굶주림 속에서 일하니까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 거야. 허기진 몸으로 서빙을 하니 불친절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그것도 주인들이나 손님들 상식이,"아니
스벌, 손님이 먹기 전에 종업원이 먼저 먹어?" 하는 8 x 같은
의식들을 가지고 있잖아, 대개.
이태리 사람들 본받아야 된다. 배고픈 상태에서 손님 서빙하는 거
하고는 확실히 다르다. 밥을 먼저 먹은 종업원은 제 배가 부르니
느긋하게 일을 하는 것이고 밥을 안 먹고 손님들 식사를 나르면
여유가 안 생길 것은 뻔한 이치가 아닌가 말이다.
"아줌마 여기 김치 갖다 달래는데 뭐해요?""아줌마 여기 아직
멀었어요?""이거 주방장이 닭 잡으러 양계장까지 간 거야 뭐야, 왜
안 나와?" 식당에서 밥 기다리면서 이런 소리 한번 안 질러본 한국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대구 금산 삼계탕집 주인이 내 얘기를 듣고 종업원 식사시간을
바꿨더니 종업원도 손님들한테 자연스럽게 잘하고 다들
좋아하더란다(수성못 들안길 끄트머리에 있다. 금산삼계탕!!). 내
배가 불러야 여유도 생기고 친절해지는 거랍니다. 식당집 쥔
양반들!!!
이태리 동네 식당에 가면 재미있는 게 하나 더 있다.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서 식사도 하고 밴드에 맞춰서 춤도 춘다는 거다.
아주 건전한 춤을 아이들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다
나와서 춘다. 그런데 거기 있던 우리 일행 중의 한 여편네가 "한국
남자들은 멋대가리가 없어!!" 하면서 막 씹는다. 객지 나와서 한국
남자들을 이태리 아해들이랑 비교해가면서 씹다니, 갑자기 열받네.
지가 한국 남자들을 얼마나 상대해봤다구!!! 지 남편만 그런 거지,
"들" 자는 왜 붙이냐!!
가만히 보면 이런 여자들이 더러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서
줄거리는 안 보고 그 탤런트의 사생활만 이야기하는 여자들,
그런가하면 드라마 속의 남편이 부인 몰래 바람을 피우면 자기
남편에게,"당신도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 자기 남편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 여자들도 있다. 그럴 때 당신 남자들은 속으로 이럴지도
모른다."당신 남편을 너무 과대평가 하지 마."
한창 춤을 추는 중에 악기소리가 줄었다. 교대시간인 줄 알았는데
잠시 후 음악소리가 다시 난다.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누가
설명해준다. 전화 거는 사람이 있어서 소리를 낮춘 거란다.
룸살롱에서 집으로 전화 걸면 자동으로 하던 이야기를 딱 멈추던
술집 여자 아해들 생각이 난다. 수화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상대방이 "거기 어디야?" 할까 봐서다."그래 가지고 말이야,
어쩌구저쩌구" 이러면서 막 떠들다가 우리 일행이 전화를 걸어서
"아, 여보 나 말이야. 지금 김 사장하고..." 이러면 거짓말같이
수다를 딱 멈추던 아해들.
집시 율법엔 도둑질도 죄가 아니래!!
로마의 늦은 밤, 집시도 잠든다.
로마에 민선시장이 두 번 취임했다. 덕분에 집시가 좀 줄었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된단다. 이런 생각도 했다. 배낭족들이 길을 갈 때
정삼각형으로 서서 양쪽을 서로 감시해주기! 그러면 좀 안전하지
않을까? 하여튼 도둑놈들 땜에 별별 생각을 다하는군.
우리는 한때 집시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 유랑, 방랑,
동경자, 떠돌이, 역마살, 이상하게 사춘기 때 연민을 갖게 하던
단어들이다. 방랑하고 집 없이 떠도는 멋있는 아해들, 집시. 한때
집시치마라는 것도 유행했고, 여자 아이 별명 중에 집시 별명을
가지면 아주 고상한 여자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고, 집시여인이라는
노래도 나와서 히트를 쳤다. 거기다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의 사랑 이야기가 집시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는 데
결정적으로 도장을 찍었다. 속았다. 집시 역할 맡은 배우가 근사한
걸 가지고 집시가 근사한 줄 오해한 것이다.
와서 보라. 집시는 경계의 대상이고 소매치기의 상징이다.
이치현이가 요즘도 집시, 집시, 집시, 집시여인 하고 노래하면
배낭여행 갔다온 애들한테 아마 맞을걸. 물건 잃어버린 아해들이
떼로 몰려와 변상 해달랠지도 몰라."낮에는 꽃 따라 밤에는 별
따라"가 아니라 "낮에는 지갑 따라 밤에는 기차 따라" 도둑질하는
도둑 여인이다.
(유럽은 재미있다)라는 책을 보면 영어의 집시(Gypsy)는
이집트인을 의미하는 이집션 (Esyption)이 잘못 전해진 것이란다.
그래서 영국 사람들은 집시를 이집트에서 왔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특이한 생활양식과 정열적인 음악성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명곡
오페라 소설의 영감과 소재가 되어 왔지만 오늘날 와선 굉장히
평판이 나쁘다. 그러나 이런 부류는 일부일 뿐 철저한
자연애호생활을 고수하는 집시들도 많단다. 그러게 미꾸라지 몇
마리가 도랑물을 다 흐린다더니 옛말 하나 그른 거 없다.
얘네들이 마구잡이로 유랑을 하는 것 같아도 알고 보면 다 코스가
있단다. 서너 가족으로 이루어진 무리들의 이동 코스는 집시족
어른들의 회의에 따라서 빈틈없이 정해진다는 거다. 어쨌든
무계획한 방랑이나 대책 없는 떠돌이 생활이 아니라는 것이다.
웃기는 건 이들이 율법에 따른 생활을 한다는 건데, 남의 물건을
슬쩍 가져다제것처럼 쓰는 일은 걔네들의 율법상 죄악이 아니란다.
강탈하거나 잠근 문을 부수고 들어가 훔치는 건 율법에 저촉이
되지만 말이다.
어쨌든 유럽 전체에 퍼져 있는 집시는 백5십만 명이 넘는단다.
유럽에선 헝가리가 집시의 원조라는데, 헝가리 민요가 사실은
집시음악이라는 거다. 무노동 무학력에 음악만 띵가띵가하고 카메라
같은 걸 주로 훔치면서 역 광장을 포인트 삼아 득시글댄다.
한국 아해들은 집시들이 도둑질을 하도 많이 하니까 조심하라는
뜻으로 "집시 조심해!" 하고 소리를 지른다. 집시들이 알아들을까
봐 우리는 "오페라"라는 은어을 사용했다.(떼거리가 오페라면 혼자
다니면 솔로겠네!!!!). 내가 파리에 있을 적에 시간이 나면 오페라
계단에 많이 앉아 있었고 몽마르트 언덕에 올라가 있었는데 오페라
계단 앞엔 엄마 아빠 형제 자매 집시들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
있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한테 돈 달라고 손 벌리는 꼬마들도 다
집시다.
처음엔 어린 집시 아해가 아코디언을 들고 연주하는 것이
신기하고 신통해서 동전을 막 줬다. 여러 번 나가서 낯이 익은
아해들을 보니 아코디언을 뿌파뿌파 아무렇게나 소리를 내다가
관광객이 소리를 들었다는 반응을 보이면 바로 아코디언을 접고
손을 내민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다음부터는 돈을 안
줬는데 처음 보는 관광객들은 감쪽같이 속는다. 남매가 그런 짓을
하고 다니면서 만만하게 보이는 여자 관광객에게는 간지럼을 태우고
결국에는 계단에 앉지도 못하게 괴롭히는 것이다. 이 아이들 등살에
뛰어서 도망 가는 관광객도 여러 명 봤다. 똑같은 디자인의
아코디언을 어디서 구했는지, 훔쳤는지 가슴에 끼고 다니면서 정말
무의미한 소리로 돈을 구걸하는 것이다.
그때 점심때만 되면 나와서 구걸을 하는 집시 아해 세 자매도 그
근처에 있었다. 그 아해들 중에 하나가 집에서 "엄마, 나 십원만"
하고 말하면 엄마가 "이게 어디 밖에서 하던 버릇을 집에서 하냐"고
화내면서 야단칠까? 아니면 "나가서 달래!" 하고 말할까? 난 늘
그게 궁금했다.
집시들도 가끔 가족들이랑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본다.
놀러가는 건지 외할머니 댁에 가는 건지 짐들을 잔뜩 챙겨 가지고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럴 땐 집시들도 지네 물건 잊어버릴까 봐
단속하겠지!!!
옮겨 다니는 집시 소매치기들이 유럽 전역으로 다니는 건지
암스테르담에서도 집시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그렇게 말하는 자기도 한 달에 두 번 정도 당한단다. 그
방법도 가지가지다.
1. 소매치기들의 수법이 신문을 내밀면서 말을 자꾸 시킨단다.
가라고 해도 자꾸 그런대. 잠시 후 바이바이하고 사라지고 나면
주머니가 썰렁하다.
2. 아줌마 집시가 아이를 데리고 나타난다. 한푼만 달라고 한다.
아이가 뒤진다. 소매치기하다가 들키면 씩 웃고 그냥 사라지는놈,
바이바이하고 사라지는 놈, 조금도 죄의식을 안 느낀다.
3. 호텔 프론트에서 잠깐 뭔가를 기록하느라 방심을 한다.
프론트니깐 마음을 놓고 옆에 물건을 놓고 쓰는데 그때 널름!!!
집어간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
4. 향수를 사려고 흥정을 다 끝낸 다음 향수 냄새를 다시
맡아보는데 그 사이에 널름 당한 사람도 있다. 수원 사는
사람이란다.
덴마크에도 집시 소매치기들이 극성인데 거기 소매치기는 이태리
마피아 아해들이란다. 그래서 좀더 전문적이고 지능적이란다. 6월
말 부터 8월 초까지가 이들이 나타나는 대목이라는데 부지런한
놈들은 6월 중순부터도 설쳐댄다. 4월부터 9월까지가 덴마크의
관광시즌인데,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4월이 되면 "지금 이태리의
소매치기가 열차를 타고 우리나라로 오고 있습니다"를 중계방송
한단다. MC들의 오프닝멘트겠지! 우리나라로 치면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는 것처럼 "관광철에 주머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를 대중매체에서 걱정해주는 거다. 소매치기만 잘해도
세계일주 하겠네! 주머니 따라 유럽일주!!!
근데 한가지 궁금한 게 있다. 우리나라 법 가운데 집시법 위반,
집시법 위반 그러는데 이게 대체 뭘까? 우리나라엔 집시도 없는데
말이다.
이런 기술 놔두고 사기는 왜 치냐?!!
베네치아에는 배로 갈 수 있는 몇 군데 섬이 있는데 무라도라는
섬도 그 중 한 곳이다. 무라도는 (베니스의 개성상인)에 나오는
유리공예품을 만드는 곳이다. 유리를 뜨거운 불에 녹여서 긴
막대기에 불고 자르고 붙이기도 하면서 공예품을 만들어낸다.
유리기술을 밖으로 빼돌리지 못하도록 예전에는 모든 유리세공
장인들을 이 섬에 격리시켰다고 한다.
배에서 내리면 이곳에도 삐끼들이 자기네 집으로 가자고 손님을
끌어간다. 들어가면 관람석까지 만들어놓고 유리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유리공예가 앞에 팁 받는 곳이 있는데 안 줘도 상관없다.
장사에 약삭빠른 사람들이라서 간단한 것을 하나 만든 다음에는 살
사람 안 살 사람들을 즉시 판단해 종업원이 붙어서 진열된 곳으로
안내를 한다. 여기 말고도 한 두어 군데 더 들어가보는 것도 괜찮은
구경거리가 된다. 물건이 마음에 들어도 깨질까 봐 못 사는 사람이
많은데 정말 눈이 확뜨이게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사라. 소포로
부쳐주기도 하므로.
무라도 구경을 마치고 다시 베네치아로 나오면 골목골목에 많은
유리공예품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가격들을 살펴보았더니
무라도보담 제법 비싼 편이다. 그러니까 쇼핑은, 먼저 골목을
다니면서 모양을 머릿속에 입력한 다음 엔터를 치고 무라도에 가서
불러오기를 하는 것이 요령이다.
무라도 유리공예품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괜찮다. 이런 좋은 기술
놔두고 사기는 왜 치냐?!!
베네치아에는 무라도 말고도 리도라는 섬이 있는데 이곳은
해수욕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주로 돈 내고 들어가는 유료 비치지만
공짜 해변도 있다. 돈 내는 곳은 말 그대로 영화장면이다. 우리는
이곳저곳을 몇 군데 다니다가 약간 쌈직한 곳을 골라 들어갔다.
파라솔 한 개에 비치베드 두 개를 빌렸는데 3만3천 리라다. 자,
그럼 우리 돈으로 계산을 해보자. 3만3천이면 만6천5백원이고
이것을 네 명이 나누면 4천125원이 된다. 파라솔 그늘 아래 두 명이
타월 깔고 눕고 두 명은 교대로 비치베드에 누워 있으면 사실은
그렇게 비싼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배낭족들은 한
명도 눈에 안 띈다. 한참 뒤 한국 배낭족들이 몇 명 오긴 왔는데
수영복도 안 갈아입고 뜨거운 모래밭에 누워서 낮잠을 잔다. 일본
아해들 중국 아해들은 많은데 말이다. 배낭여행 철이 되면 대학에서
"돈 쓰는 법"에 대한 특강을 개설하든가 해야지, 안타까운 일이다.
리도 섬에 내리면 버스가 바로 있다. 버스를 타고 아무 방향이나
타도 된다. 하나는 오른쪽으로 하나는 왼쪽으로 해서 섬을 한바퀴
돌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곳 아무데서나 내려도 상관없다.
우리는 여러 군데 값을 물어보고 다녔는데 더 비싼 곳도 있었다.
인상적인 건, 여기 베네치아뿐 아니라 이태리라는 나라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엄청 많아서 어지간한 가게 점원들은 거의 다 일본어를
웬만큼 구사할 줄 안다는 것이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쓰고 가는
돈이 이태리 전체 관광 수입액의 50퍼센트가 넘는다니 그럴 만도
하다. 이태리에서는 그래서인지 여하튼 일본인에 대한 대우가
남다르다. 미령이가 이태리 말을 못해 일본 말을 쓰는 바람에
무라도에서 일본인으로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대접이 거의
환상적인 거야. 기분 참 묘하더라고! 물론 아무것도 안 샀지!!
"고스톱 치다 광 먹고 싶어요"
트래비 분수의 새벽 한 시, 대낮만큼 관광객들이 많다. 아리랑
사장님이 말씀하신다. 밤에는 한국 아해들이 없단다. 사실 트래비
분수는 밤에 와야 더 멋있단다. 그래서 우리도 밤에 갔다. 한국
아해들이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한국 아해들이 없다는 말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이야기하는 도중에 둘레둘레 찾아보니 한국
배낭족 아해 두명이 보인다."저기 한국학생들 있네요" 아리랑
사장님이 말씀하신다."보세요. 금방 갑니다."
"사진기 꺼내지요?"
정말 꺼낸다.
"찍지요?"
정말 찍는다.
"갑니다."
정말 간다.
"저 정도 가지고는 안됩니다. 딴 나라 아해들과 같이 이야기하는
정도의 수준이 돼야 됩니다. 여기 앉아서 이야기도 좀 하고
그래야지요. 여기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외국 아해들, 일행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여기서 바로 만나서 저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우리
아해들, 도둑만 무서워하고 밤이 되면 꼼짝도 못하잖아요. 그만큼
자신이 없다는 거지요. 치안이 얼마나 잘돼 있는데 여기가."
치안 이야기 전까지는 맞다. 나도 아리랑 사장님이 없었더라면
치안문제 때문에 여기 못 왔을지도 모른다.
늦은 밤, 숙소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이제 내일이면 로마를
떠난다. 트래비 분수에 동전은 던졌건만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이곳을 찾을수 있을까. 더구나 배낭을 메고 말이다. 뒤척이다가
잠들기 전 여행 끝나고 서울에 가면 "이홍렬쇼"에서 홍렬이가 어떤
질문을 할까를 상상해 본다(유럽여행을 갔다 오면 제일 먼저 여행
이야기를 "이홍렬쇼"에서 얘기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거든.
결과적으로 "이홍렬쇼"에는 출연을 못하고 "이주일의 투나잇쇼"에
출연을 했는데 유럽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새는
바람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상한 토크쇼가 돼버렸어. 준비가 안된
질문이 주원인이었어). 다음에 홍렬이가 혹시 질문하면 이렇게
대답해줘야지.
질문 1 "에피소드 좀 얘기해주세요."
"어머, 거기 안 갔는데."
질문 1 "언제 제일 기분이 좋았어요?"
"한국을 떠날 때요."
질문 1 "가장 인상 깊은 곳은?"
"인상 쓴 곳은 두 군덴데, 육지는 스위스구요. 바다는
베테치아예요."
질문 1 "어디를 다시 가보고 싶어요?"
"베네치아 화장실이요, 급했거든요."
질문 1 "여행 다니면서 가장 먹고 싶었던 건?"
"고스톱 치다가 광 먹고 싶었어요."
질문 1 "배운 음식은?"
"밀라노 중국집에서 김치 담그는 법이요."
시실리 마피아가 생긴 이유
시실리.
따오르미나. 언덕마을의 낫소스 해변.
"시라쿠사는 기원전 7세기에 세워진 도시로 그리스 도시국가의
식민지다. 암벽으로 만들어진 그리코 시어터는 음향시설이
끝내준다. 아그린젠트 같은 기원전 6세기의 신전들도 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은 원형이 잘 보존된 신전이다." 여기까지가
로마의 한국참사관이 얘기해준 걸 적은 메모다.
시실리의 수도 팔레르모는 마피아의 원산지다. 참사관 얘기로는
시실리 섬이 너무 너무 아름다워서 조물주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마피아를 만들어놨단다. 보라색 나팔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시실리 섬. 물빛이 너무 진해 잉크병에 담아가지고 도시에 가서
만년필에 담아 쓰면 그대로 잉크처럼 배어나올 것 같다.
여기 소나무들은 굉장히 깨끗하다. 방금 목욕 마치고 머리 빗고
서 있는 정갈한 소나무들이 참 잘 생겼다는 인상을 준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줄 알았다던 스위스에선 만난 배낭족 남자
아해의 말이 떠 오른다. 어느 대학인지 안 물어본 게 후회되네.
시실리는 말이 섬이지 사방 25키로미터x150킬로미터란다. 굉장히
큰 섬이니 제주도처럼 생각해선 안될 일이다. 7천구의 해골이
보관된 카프치니 지하공동묘지에 가면 죽은 지 백년 이상 된 의사,
변호사, 처녀 등의 시신이 보관돼 있다. 방부 처리를 잘해서
1850년대에 죽은 여자 아해가 산 사람처럼 보인다.
시실리는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인포메이션 센터가 역에 없고
시내에 있다. 박물관 미술관은 낮잠 자는 시간 땜에 세 시에 다시
연단다. 시내에서 인포 있는 광장을 묻고 물어 버스 타고 찾아간
후에 인포에서 지도를 하나 받아들고 물어물어 다시 역으로
걸어왔다. 무진장 덥네!
시실리 사람들은 늦게 출발하고 늦게 문 열어도 끝나는 시간은 잘
지킨다. 그 덕을 우리도 봤다. 늦게 출발하는 여기 사람들의 버릇
덕분에 우리가 막차를 탈수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 터미널이 멀어서
막 뛰어가면서 놓치면 어쩌나 했는데 그래도 잘 기다려줬다. 좀
늦었지만 달러가보니서 있는 버스. 그 버스를 두 명이 타고 다시 한
명이 저 멀리 뛰어가서 버스표를 사온다.
유스호스텔을 찾아 들어가는데 이층 베란다에서 어떤 아해가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래서 쳐다보고 "야!! 유스호스텔,
유스호스텔!" 그랬는데 갑자기 그 아해가 없어졌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그 아해 목소리가 들린다. 창밖으로 나와 우리를 막
부르면서 뭐라고 얘길 하는 거다. 그러니까 얘는, 우리가
물어보니까 안에 들어가 누군가한테 물어보고 와서 대답해준 것
같다. 착실한 놈 같으니.
그 아해가 일러준 대로 유스호스텔 팻말을 보고 걸어가는데
왼쪽으로 돌면 보인다던 유스호스텔이 한참을 걸어가도,
보이기는커녕 그림자도 없다. 한참 주춤거리며 가는데 배낭 멘
모습만 보고도 아마 유스호스텔을 찾아가는 줄을 안 모양인지
지나가던 차가 옆에 서더니 웬 할아버지가 내려서 이 동네
유스호스텔이 왼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있다고 알려주고는 다시
차를 타고 떠난다.
여긴 유스호스텔이 잘돼 있다. 열한 시까지 문을 닫는다든가 하지
않고 가정집 같다. 열쇠를 세 개씩 준다. 방 열쇠, 현관 열쇠, 개인
열쇠다. 출입도 아주 자유롭고 취사장 냉장고엔 양념까지 다 갖춰져
있어서 이게 웬일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손님용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 먹는 거란다. 한국 사람으로선 우리가 두 번째
투숙객이라나, 그 많던 한국 배낭족이 정말 한 명도 없다.
시실리는 밤 열두 시가 넘도록 덥다. 아해들 떠드는 소리도
들린다. 유스호스텔 우리 방이 이층인데 옆집도 이층이다. 가만히
보니까 베란다엔 웃통 벗은 아버지, 안 벗은 엄마, 꼬마들이
식구대로 나와서 바람을 쏘이고 있다. 광내는 걸 좋아하는지
들여다본 집마다 마루가 반들반들하더니 이 집도 마찬가지다.
여행을 하다 보면 하루를 참 길게 산다. 새벽에 내려서 배 타고
기차 타고 구시가 보고 다시 시내에 인포 들러 떠나는 버스
잡아타고 유스호스텔에 드니 아홉 시다. 하루가 이렇게 길고 한
일이 많은데 서울 살면 하루가 짧고 하는 일도 적어라. 아니지,
이제 여행도 끝나가는데 생각해보니 서울 가면 할 일이 태산 같네.
아직도 불을 뿜는 에트나 화산
새벽 2시 10분, 3시 10분, 4시 40분, 5시, 6시 10분, 6시 50분에
잠이 깼다. 부구경 간다고 마음이 들떴나? 이제 그만 일어나자!!!
에트나에는 아직도 불을 뿜는다는 활화산이 있다. 2천년 전부터
활동을 했고 1989년에는 크게 한 번 터지기도 했는데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모른단다.
평지에서 산까지 하루 두 번 버스가 운행하는데 버스는 5천 리라,
케이블카는 만6천 리라다. 둘 다 타고 올라가면 불도 볼 수 있단다.
융프라우보다 더 높은데도 값이 더 싸다. 화산이 막 퍼진다. 재수가
좋으면 가끔씩 가다 불기둥이 올라오는 것도 볼 수 있단다. 잭팟
터지듯이 행운이 있는 사람한테는 보인다는 거다. 바로 3백미터
앞에서 본 사람도 있단다. 한국에서 복권 당첨 잘 되는 사람은 여기
한 번 와도 좋을 것 같다.
9시 15분 유스호스텔 출발. 10시 15분 에트나 화산 입구 도착.
케이블로 20분. 걸어서 왕복은 다섯 시간. 지프 타면 왔다갔다 두
시간이란다. 1960미터까지는 자동차를 타고 올라가고
3450미터부터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간다. 괜찮네. 화산
들여다본다는 게 참 재미있지 않겠느냐고. 불구경은 언제나
재미있지.
우리가 꼭대기에 갔을 때는 화산이 밑에서 터져 올라오는 건지
가스가 올라가는 게 보인다. 유황냄새도 막 나고. 화산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밑으로 흐르는 물들이 수증기가 돼가지고 나오는
거란다.
무슨 소리가 계속해서 부우우우웅 나는 게, 이게 활화산이라는데
언제 터지려고 그러는지 불안하기도 하다. 꼭대기에서 가스가 확
백미터 이상 분출되는 모습을 계속 보는 거다. 가스와 폭발음이
번갈아 보이고 들린다.
화산 구경할 생각을 하니까 어젯밤부터 기분이 좋았는데 막상
불을 못 봐서 기분이 나쁘다. 가스 냄새가 나서 더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여기서 달걀을 삶아 먹을 생각을 하니 또 기분이 좋아진다.
이 수증기에 달걀을 삶아 먹으면 정말 맛있겠다는 생각이든다.
그런데 오는 차편을 한참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기분이 다시
나빴다. 기분이 하루 사이에 몇 번씩 좋았다 나빴다 한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히치 하이킹을 두 번 했다. 높은 산동네라서
내려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한 번 산에 올라가면 버스가
다시 올라오는 저녁까지 산 위에 있어야 했는데 점심시간에 기차를
예약해놓은 우리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네 시간이나 기다려야
온다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무작정 걸어내려온 거다.
고영수 닮은 사람이 우릴 삼 분의 일쯤 태워다줬다. 서울 가면
고영수한테 고맙다고 그래야지.
내려서 다시 한참을 걷다 보니 길거리 과일노점에서 과일을 사는
할머니가 보인다. 야채나 고무풍선처럼 아주 긴 호박, 과일 같은 걸
늘어놓고 파는 그 노점에서 뚱뚱한 그 할머니는 하나라도 시장
바구니에 더 넣으려고 주인이랑 한창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하나만 더 얹어 달라""안된다""딱 하나만""그러면 밑진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 과일장수가 마음이 바뀌었는지 과일을 듬뿍
집어준다.
흥정이 끝난 뒤에 그 할머니는 의외로 멋진 승용차에 올라탔는데
통박을 굴려보니까 잘하면 태워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얘길 했다.
그랬더니 역시 할머니가 우리를 태워주는 거다. 지나가는 차를
보면서 "저 새끼들, 태워주지도 않고 말이야" 그러면서 뭐라뭐라
궁시렁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우린 개네들을 태워줬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이 나서 얘기지만 난, 사실 서울서 퇴촌 갈
적에 태워 달란 사람이 있으면 한 번도 안 빼먹고 태워줬다.
정말로. 그러니까 난 그런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거지.
기차역에 다 내려서 뭔가 사례를 하고 싶어 고마움을 표시하는
우리 부부에게 그 할머니는 갑자기. 방금 전 그 산 위에서 악착같이
하나라도 더 받아내려고 애쓰며 산 커다란 배를 세 개나 덥석
집어서 우리에게 먹으라고 건네준다.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우걱우걱 막 메어 먹었지. 갈증이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먹다 보니 이 할머니도 이상하고 그 과일장수도 이상하다. 그렇게
악착같이 깎자고 그러고 하나도 못 주겠다며 실랑이를 벌이던
사람들이 아닌가 말이다. 아무튼 인심 넉넉한 할머니의 인정 덕분에
다리도 입도 호사를 했다.
이태리 여자 아해들이 이쁘다고 얘기했지만 시골로 오니
자연산들이 많다. 배도 원주민처럼 불룩 나오고. 유럽여행 와서
처음 로마에 왔을 때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이태리 여자들이
전반적으로 이쁘다고 했더니 유학 온 지 삼 년 된 친구가 자기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는데 육개월쯤 지나고 보니 안 그렇더라는
거다. 여기도 후진 아해들은 아주 후지대나. 그러나 우리는
육개월도 있을 수 없는 여행객 아닌가 말이다. 육개월을 못
있었는데도 이런 못생긴 아해들을 봤으니 행운인가??!! 어쨌든
이태리 미인들은 참 경제적이다. 없을 땐 확실히 없고 있을 땐
틀림없이 있으니까 말이다.
밤에 방 안에서 미령이와 오징어를 구워 먹었다. 시체 타는 냄새
같다고 옆집 아저씨가 신고하려나?
해삼 방귀 냄새라도 맡고 싶고나
따오르미나. 이름이 참 정겹고 좋다. 따오르미나. 따오르미나...
여긴 온 동네가 다 덥다. 바다도 집도 사람도 자전거도 화분도.
바닷가에 앉아 기차를 기다렸다. 해 지는 바닷가에 앉아서 보니까
여기가 시실리인지 속초 앞바다인지 분간이 안 간다. 수영복 입은
귀여운 손녀딸 재롱에 활짝 웃는 이빨 빠진 할머니. 사람 사는 게
그게 그거로구나.
모래를 보다 보니까 조약돌이 깨지고 깨져 일백 번 고쳐 깨져
모래가 되고. 술병 조각도 닳고 깨지고 화분 부스러기도 조개
껍데기도 복숭아 씨도 파도에 매 맞고 어루만져지고 닳아가다가
모래가 된다. 조용히 몸을 맡기면 내생각도 모래가 된다.
바다 내음은 어디나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다. 다라에 멍게, 해삼
파는 아줌마만 있으면 영락없이 충무동 방파제 앞에서 송도까지
가는 길이다. 어디선가 "멍게 사이소!!"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듣고 싶은 소리,"전복 껍데기 파세요. 전복 껍데기
파우쉐이요오우아."
전복 껍데기를 사서 무엇에 쓸까? 하나에 얼마나 줄까?
궁금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이 문득 생각난다. 돌아가는 삼각자가
정말 돌아가는 줄 알고 구경 갔던 그 시절. 빨래비눗감으로 썼던 그
전복이 시집가는 새색시의 자개장이 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부잣집 마나님이 마른 걸레질로 광을 내는 자개장의 원료 전복
껍데기. 사고로 타이탄 차에 전복됐다는 교통정보를 들으며 "그래!
차가 뒤집어지면 전복처럼 혼자서 못 일어나니까 전복이라고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웃기도 했지.
"멍게 사이소!!" 하는 억센 자갈치 아지매들의 목소리가 그립다.
그 멍게를 벌건 초고추장에다가 버무려서 소주 한잔 카! 아, 해삼!!
그리운 해삼!! 해삼 방귀 냄새라도 맡고 싶고나.
해삼삼매경에 빠져 앉아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빗물로
세척한 후 다시 바닷물로 헹궜더니 머리가 더럽게 근지럽다.
여기 사람들을 보니까 "그로잉 업" 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난다.
왜, 이태리 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호기심, 어른들 세계에 대한
동경,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그린 코믹한 영화였잖아. 그 영화를
보면 동네 얼음 장사가 나온다고. 얼음을 톱으로 잘라서 그걸
사가지고 가는 장면을 보고 우린 그때 "아, 저 이태리 영화 언제 적
거길래, 한국에도 없는 얼음 사먹는 장면이 다 있냐" 그랬거든.
그런데 실제로 이 동네 오니까 그렇더라고. 얼음을 썰어서 팔고사고
하는 그런 동네였어. 얼음을 그렇게 한 덩이씩 사서 썰어먹는 거야.
그래서 그로잉 업 다시 한 번 보고 오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지.
(이놈의 여행은 어떻게 된 게 세 달 가까이 영화 한 편을 못 보네?)
또 여기서 보니까 코카콜라를 가지고 광고한 게 기발한 게 굉장히
많아. 콜라병을 부채처럼 쭉 펼쳐놓은 것도 있고. 샤워기에
코카콜라를 달아서 꼭지를 틀면 콜라가 쫙 쏟아져나오게 한 것도
있고, 선풍기 프로펠러를 코카콜라로 만들어서 바람개비가 돌아가면
콜라가 바람처럼 좍 뿌리는 것도 있는 거야. 그러니까 세 가지 다
굉장히 시원한 느낌을 주게 만들었더라고. 그런 게 사실 굉장히
기발한 아이디어잖아.
그걸 보고 말야. 난 샤워기도 알고 코카콜라도 알고 선풍기도
아는데 왜 그 동안 저런 생각을 못했나 싶은 거야. 그래서 그때
생각해본 게 뭐냐면, 얼음을 망치 같은 걸로 쾅쾅쾅!!! 깨가지고 그
속에서 핸드폰을 좌악 끌어내갖고는 "시원한 통화!!!(?)" 아니면
시퍼런 물속에서 핸드폰이 속구쳐 나오는 거야. 그렇게 해서
"통화가 시원합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거지.
발차시간을 앞두고 바다에 들어가 파도 타기를 하다 엄지발가락
부상을 당했다. 시실리, 따오르미나가 남겨준 상처다.
아흐, 지긋지긋한 도둑놈들!
로마를 떠난다. 피렌체는 꼭 가고 싶었는데 포기하기로 했다.
우리가 연애할 때 이태리 식당 피렌체에 몇 번 간적이 있어서 꼭
가보려고 했었는데...!! 못 간 것이다. 시실리에서 8월 10일밤 10시
24분에 떠나 11일 아침 8시 40분에 배를 타고 로마에서 내려 11일
10시 58분 기차를 타고 스페인의 아이룬까지 가는데 꼬박 스물여섯
시간이 걸린단다. 그런데도 기차가 너무너무 천천히 가고
정거장마다 어떤 때는 한 시간도 서고 두 시간도 서고, 십 분씩
서는 건 보통이다. 안에는 음식점 하나 없다.
처음엔 이태리에서 스페인까지가 하도 멀다니 거기만큼은
비행기를 타고 마지막으로 마누라를 호강시켜줘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로마에서 스페인 가는 주말 비행기 값은 싸다. 왜? 많이
가니까 당연히 싸야지. 그런데도 알아보니 75만 리라란다. 40만원쯤
되는 돈이다. 좋은 기차도 마찬가지다. 비행기 못지 않게 비싸다.
쿠셋 예약비가 15만 리라란다. 8만원쯤 된다. 그래서 엄두를 못
내고 포기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배낭여행자들이 아니가 말이다. 할
수 없이 스물여섯 시간 걸린다는 코파트 기차를 예약했다. 그게
이렇게 늦을 줄 알았나?
기차가 가다말다 가다말다. 천천히 가기도하고...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게. 무슨 이런 열차가 있나 싶다. 옛날 우리나라 비둘기호
열차는 양반이다. 무슨 열차가 한 시간도 서고 30분도 서고
그러느냔 말이다. 신임 기관사들 연습 코스인가? 신참들 연수용
기차 아냐? 혹시 기차 뒤에 초보운전 써붙인 거 아냐 이거?
그렇게 흔들리면서 가다가 기차 안에서 배낭족 우리 여자 아해
하나를 만났다. 니스에서 내린단다."야, 니스에 가지 말고 우리랑
스페인에 같이 가자" 그랬더니 이 여자 아해가 니스 가는 걸
포기한다. 결국 우리 방에 같이 오게 됐다.
콤파트먼트에 나, 미령이, 여자 아해, 준태 그렇게 넷이 잤다.
그렇게 자고 일어났는데 방심하고 있는 사이, 우리 일행 준태의
여권 지갑이 든 가방이 땅에 떨어져 있다. 선반에 올려 놨던
거였는데. 그걸 집어들자 여자 아해가 "내 가방 못 봤어요?"
그런다. 잃어버린 거다. 카드하고 돈하고 몽땅이다. 그러잖아도
자전거 체인으로 잠그자 그랬는데, 설마하는 사이에 도둑을 맞은
거다. 설마했는데...
아침에 내려서 잃어버린 지갑이며 여권, 가방 분실신고를 하려고
스페인 경찰서를 찾아갔는데 경찰서가 굉장히 복잡하다. 경찰병원도
찾아가고 파출소가고 여권 만들어 주는 분실소도 가고 고생 끝에
분실 신고를 했는데 오 분만 기다리라더니 이것도 두 시간 이상이
걸린다. 경찰이 영어 할 줄 아는 동료를 밤에 나가 불러오고 그러는
바람에 반나절은 족히 까먹어버린 거다. 이래저래 산세바스찬에는
여섯 시가 넘어서야 도착을 했다. 아흐, 지긋지긋한 도둑놈들!
@ff
제 5 장
우린 왜 심각한 동상만 있을까
난생 처음 눈치 안 보고 떠들어봤네!
산세바스찬은 원래 스페인 왕실의 휴양지였던 곳인데 때마침
우리가 간 8월 14일 무렵이 축제였다. 축제 기간이 11일부터
18일까지인데 이 기간에는 방 구하기가 무지하게 힘들단다.
도착해서 보니 펜션인가 게스트하우스인가를 소개한다며 삐끼들이
역에 막 나와 있다. 한 사람은 할아버지인데 이 사람은 벙어리라서
무조건 엄지손가락만 쳐든다. 그래서 거기를 갈까 하고 있는데
준태랑 일행 여자애는 더 싼 데를 따로 구해 보겠단다. 아홉 시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그 전에 돌아왔다.
유스호스텔을 하나 봤단다. 저녁때 다녀보니까 시내에는 방이 다
나갔다고 해서 난감하던 참이라 버스를 타고 유스호스텔로 가봤다.
가서 보니 산세바스찬 유스호스텔은 시설이 아주 괜찮다. 장소도
좋고. 분위기가 스위스 저리 가라다. 스물다섯 살까지는
1775페세타.
스물여섯 살부터는 2천 페세타를 받는데 멤버십 카드를 꼭
소지해야된단다(역전에서 24번 버스를 타고 가면 되는데 전화로
물업고 알아서 찾을 것. 버스비는 95페세타다). 그런데 거기도
만원이다. 방이 없단다. 그래서 열 시쯤 됐는데 프론트에서
펜션이랑 호텔 명단이 쭉 적혀 있는 리스트를 준다. 그걸 들고
미령이가 전화를 해봤더니 거는 족족 다 만원이란다. 80군데쯤
전화를 걸어 방이 있냐고 물었는데 전부 다 찼다는거다. 거는
데마다 "고고리또, 고고리또!!!" 막 그런다('컴플릿또' 정도면 감이
잡히는데 이 말은 영 모르겠더라고. 스페인 말은 도대체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이건 무슨 양계장에서 쓰는 말 같잖아!! 그런데 우리
뒤에 있던 배낭족 아해들은 우리 덕을 상당히 봤을 것이다. 밤이라
개들도 똑같은 명단을 들고 전화를 해봐야 할 참인데 우리가 계속
전화로 확인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안되겠다. 여기서 우리가 돈을 써야겠다. 드디어 돈 쓸
때가 됐다" 생각하고 한 시간이나 삼십 분쯤 기차나 버스를 타고
나가면 호텔이 있겠지, 안되면 택시 타고 시외로 나가자, 그래서
그리스 바닷가에 취해보자. 그러면서 시외로 나가는 택시를 타러
갔다. 그런데 언덕길을 7,80미터쯤 내려가면서 보니까 이게 웬일!
호텔이 하나 딱 있는 거다. 들어가 보니까 이런 세상에! 방이
있다네! 밤 11시 25분. 나중에 알고 보니까 조금 비싼 방이다. 하긴
우리 기준으로 치면 그렇게 비싸다고도 볼 수 없지. 3,
4만원짜리다. 그러니까 유스호스텔에서 소개해준 건 배낭
여행자들을 위한 아주 싼 호텔들이었던 거다. 어이가 없었다. 바로
체크인을 하고 머리를 감은 뒤 구경 삼아 구시가지로 나갔다.
축제라 그런지 시가지는 온통 술 마시고 노는 분위기다. 젊은
아해들이 골목마다 넘친다. 술집 앞에 길거리에 그냥 퍼질러 앉아
있기도 하고. 그런데 희한하게도 싸움하는 아해들, 주정하는
아해들은 한 명도 없다. 소리 지르고 노래 불러도 자기네 소리에만
열중해서 남의 소린 신경도 안 쓴다. 그 좁은 길에 앉아 술 마시고
토론하고, 아해들을 둥그렇게 모아놓고 조영남처럼 노가리 끼는
패들도 있다. 그래도 길 막고 뭐라 그러는 아해들도 없다. 그
모습이 보기가 좋으면서도 괜히 불안하다. 그런 거에 워낙 익숙지가
않으니까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거다. 그렇지만 우리도 곧 막 떠들기
시작했지. 큰쇠로 마구마구 떠들었다."야!!! 그래 가지고
말이야!!!""지난번에 내가 동숭동엔 갔더니 말야… 어떤 자식들이
어쩌구저쩌구…"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도 누구 하나 신경도 안
쓴다.
굉장히 비좁은 골목길에 자리잡은 디스코텍에서 아해들이 밤새워
춤을 춘다. 들어간 놈들만 해도 행운일 정도의 좁은 디스코텍이다.
못 들어간 아해들은 디스코텍 앞에서 안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를 들으면서 춤을 춘다. 그러니 가뜩이나 좁은 골목길이 더
비좁아진다.
우리도 고함지르고 춤 추고 구경하며 거리를 몇 시간이고
돌아다녔다.
딴 나라 아해들 어떻게 노는가 관찰하러 갔다가 안에는
들어가보지도 못한 채.
그런데 거기서 펑크족 남녀 두 쌍을 봤다. 로마에서 우리랑 같이
스물여섯 시간을 기차 타고 스페인까지 온 친구들인데 여기
스페인에서 마주친 거다. 기차 탈 때부터 초록색 펑크족 여자
아해가 등도 멍이 들고 눈탱이도 양쪽 다 밤탱이여서 "저 애가
까불다가 맞았나봐""쟤네들은 어는 경우에 여자를 때리나"
그랬는데 그날 밤 산세바스찬에서 자정이 넘어 디스코덱 앞에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는 거다. 아직도 멍이 안 삭은 눈탱이
밤탱이들. 때리고 맞을진 몰라도 너희도 그렇게 함께 밤을 즐기고
있구나. 그래. 내일은 맞아도 오늘은 마셔라. 마셔보는 거다!
축제라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여기 와서 느끼는 건, 스페인은
밤문화가 정말 잘 발달되어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자연히 치안도
잘 되어 있다. 7,8월엔 낮이 덥고 밤이 시원하니. 낮엔 별 볼일
없다가 밤에 모두들 나댕기니까 그렇단다. 디스코텍도 종류별로
있고 길거리도 엄청 북적거린다. 여름에는 식당 문 여는 시간이
길어지고 하루 종일 문을 여는 식당도 많단다. 새벽녘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집도 있다. 밤이 되면서 물이 오르는 도시다. 니스와는
또다른 멋이 있다. 끼리끼리 술집에서 길거리 바에서 심지어 길바닥
위에 모여 앉아 무슨 얘기인가를 열심히 주고받으면서 밤을 보내는
사람들, 그 속에 섞여 난생 처음 사람들 눈치 안 보고 있는 대로
떠들어본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르더군
8월 14일. 새벽 4시 20분에 깨어 어리굴젓을 생각한다.
4시 45분에 잠자리를 벗어나 사진기를 들고 혼자 바닷가를
걸어본다. 호텔에서 나왔는데 문 열어주는 아해가 나땜에 자다 말고
나온 게 미안하다. 그런데 나 혼자 댕기니까 금방 심심하더라고.
그래서 새벽에 나온 걸 후회하고 다시 들어가려고 했지만 십 분
만에 다시 가문 열어 달라기가 미안하잖아 . 괜히 새벽 바닷가를
일없이 오가며 궁상맞게 한 시간을 보냈다.
밤새고 집으로 돌아가는 젊은 아해들이 줄지어 내 옆을 지나간다.
여자 아해를 쫓아가는 놈들도 있고 무진장 빨리 걸어가는 여자
아해를 더 빠른 걸음으로 쫓아가며 뭐라고뭐라고 얘길 하는 남자
아해도 있고 떠들면서 걷는 아해도 있다. 나도 밤새고 아침에
뻗어서 잠잘 때의 재미를 아는 놈인데, 아마 저 아해들도 이제 곧
그렇게 잠들겠지.
낮에는 보트를 빌렸다. 요즘은 진흙팩이 유행을 하지만 해초로
팩을 하면 피부가 좋아진다고 해초팩이라는 게 한때 우리나라에서
유행을 했던 적도 있다. 바다에서 고무보트를 5백 페세타 주고 한
시간 빌려서 타고 노는 도중에 수면을 보니 해초가 상당히 많이
떠다닌다. 그걸 주워 처가 얼굴에 막 문질렀다. 옆에서 침대처럼
생긴 걸 타고 물놀이를 하고 있던 모녀가 그모습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대고 웃는다.
동양인도 많지 않은데 바다에 뜬 해초를 건져 얼굴을 막 문지르니
관심과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나도 사실 우습기만 했다.
얼굴을 만져보니 해초에서 나온 미끈미끈한 액체가 얼굴에
흡수되어서인지 피부가 매끌매끌하다. 웃고 있는 모녀에게 해보라고
권했다. 우아하게 쳐다보던 엄마는 우리가 몇 번 하는 걸 보더니
자신도 해본다. 그리고 얼굴을 만져보더니 우리보다 더 열심히
문질러댄다. 나중에는 딸한테 등이고 팔이고 막 문지르라고 하는
것이다.
보트 대여 시간이 끝나가길래 우리는 보트를 갖다주러 물가로
나왔다. 잠시 그 모녀를 잊고 있다가 눈으로 찾아보니 딸 아이랑
엄마는 엎드려서 얼굴이며 등허리, 다리까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때까지도 문지르고 있었다. 우리는 아까 그 모녀가 우릴 보고
웃을 때보다 더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러게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이 딱 맞는 거야. 저 모녀가 이제 해초팩의
진가를 깨달았으니 산세바스찬 바다의 해초가 남아날래나.
산세바스찬. 바닷가의 파라솔들은 주인이 다 있단다. 그러나 언제
올지는 모른단다. 의자만 돈 주고 빌려준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이동에 돗자리 깔아놓고 자릿세 받는 것과 매한가지다. 주인이 안
오면 모르지만 오면 파라솔 값을 다 내야 한다는 거지. 우리는
주인이 안오는 바람에 공짜로 사용했다.
집 떠난 지 석 달, 고향 음식들이 종종 꿈에 보인다.
아. 복지리가 먹고 싶다.
박물관은 무료가 좋다, 산세바스찬처럼
산세바스찬에서 박물관에 와보니 무료다. 생각해보니 그래,
박물관은 무료일 필요가 있다. 그렇고 말고. 옛날 것 요새 것.
최첨단 것까지 다 있다. 현대 작품은 관람객이 일일이 다 만져보고
시험해보도록 해놨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직접 만져보게 하고
시험해보도록 한 박물관은 여기가 처음이다. 거울을 써서
착시현상을 이용한 것도 있도 별별 희한한 것들이 다 있다. 그런데
갑자기 불이 나갔다. 둘러보니 거의 우리 일행들뿐이다. 다른
관람객들은 미리 알고 나간 거지. 밖으로 나오니 젊은 아해들이
그냥 길거리에 누워서 낮잠들을 자고 있다.
이번 유럽여행 동안 숱한 미술관을 가 봤지만 말 그대로 밖에서는
정문, 안에서는 출구를 찾아다니며 구경했다. 박물관이란 데가
대부분 미로처럼 돼 있다구. 구불탕구불탕한 길을 되짚어 나오니
1시 30분이 었는데 밖으로 나가란다. 낮잠 잘 시간이래나. 3시에
다시 연단다. 길잃은 아이가 집을 찾아가듯이 뱅뱅 돌아나와
바깥으로 나가는 방향 표시를 보고 집 찾은 듯이 반갑게
뛰쳐나왔다.
박물관을 나와 시내로 가니 거리공연이 한창이다. 딥퍼플만
연주하는 거리악사들이란다. 연주가 아주 후진데도 아해들이 많이
모여서 춤추고 열광한다. 2, 30년 전에 유행하던 음악에 열광하는
스페인의 젊은 아해들. 유럽은 확실히 우리보다 한 템포가 늦다.
미국 문화에 익숙한 우리가 볼 때는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음악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들려온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아직 때가
덜 묻어서 그런가. 최신 영화를 할리우드와 동시 개봉하는
우리네하고는 정서부터가 다르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이들의 개성과 차분함이 투박할지 몰라도 나빠 보이진 않는다는
거다. 그런 게 어쩌면 줏대일 수도 있다는 거지.
골목의 노인 악대들이 막 지나간다. 트럼펫 트럼본 섹스폰같이
전부 부는 악기다. 가게 주인들이 서로 자기 업소 앞에서 불이
달라고 하면서 포도주를 병째로 내준다. 그런데 악대들 틈에 끼여
있는 한 할아버지가 눈에 띈다. 할아버지가 들고 가는 악기라는 게
자세히 보니 참우습다. 사람 중간 크기만한 업소용 선풍기를
왼손으로 받쳐들고 오른손으로는 일단 이단 삼단 스위치를 누르면서
콘센트를 입에 물고 선풍기 둥근 곳을 얼굴에 대고 마치 수자폰
악기처럼 부는 게 아닌가. 그걸부는 시늉을 하며 악대에 끼여
행진하는 할아버지의 여유와 유머가 신선하게 보인다.
식당에 가니 아바이순대랑 맛도 모양도 똑같은 순대가 있다.
새우젓만 없네! 이 사람들도 새우젓 먹는 맛을 알면 우리보다 더 잘
먹지 않을까.
요리하는 걸 지켜보니 리스본과 산세바스찬의 공통점이 있다.
오징어 요리할 때 먹물도 같이 넣고 요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악착같이 씻어버리는데 이 사람들든 시커먼 걸 같이 먹는다.
그런데 사실은 먹어도 괜찮단다.
전유성이 추리한 플라멩코의 원조는?
산세바스찬에서 여덟 시간 동안 낮기차를 타고 마드리드로
갔다. 기차 출발하고 마드리드까지 처음부터 산길, 밭길이다.
중간에 도시는 하나도 없다. 부산에서 서울 올 때 중간에 도시는
하나도 없이. 부산에서 서울 올 때 중간에 도시는 하나도 없이.
대구 조치원 대전 수원 그런 거 전혀 없이 막 바로 서울로 오는
것처럼 밭길 밭길 밭길 끝. 곧장 마드리드다.
마드리드는 숙박시설이 잘돼 있어서 몇 군데만 돌아다니면 싼
곳을 얻을 수 있다. 귀찮아도 많이 돌아다닐수록 발이 돈 벌어줄
수도 있으니까 열심히 뛰는 게 좋다!! 딴 도시에는 자정 넘어 불
커진 가게들이 별로 없는데 열두 시가 넘어도 마드리드엔 불
켜진 가게가 많고 돌아 다니는 아해들도 많다.
우리는 밤에 도착을 했다. 여행 안내책자에 싼 데들이 많이
소개돼 있어서 숙소를 구하려고 막 돌아다녔는데 할아버지
하나가 어딜 가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싼 숙소 구하러 간다고
그랬더니 우리가 찾아가려는 유스호스텔이 마약쟁이들이 많아
스페인 사람들도 가기를 꺼려하는 곳인데 주소를 어떻게
알았느냐는 거다. 책에 나와 있다고 그러니까 굉장히 놀라는
눈치다. 그런데 우리 아해들은 그런 걸 모르고 막 가는 거거든.
단지 싸다라는 거 때문에. 돈을 아끼기 위해서 멋모르고 가고
그러는 건데 저쪽은 실제로 주사 꽂는 시늉을 하면서 위험하다는
얘기를 몇 번씩 한다.
하여튼 그 할아버지 삐끼가 소개해준 펜션에 들었다. 짐을
풀고 나서 플라멩코를 보러 가려고 물어보니 가르쳐주겠단다.
마드리드에 유명한 곳이 여덟 군데가 있는데 그 중 하나란다.
옛날에 우리가 팝송 핀을 살 때 요령이 하나 있었다. 외국
연주자들이 누가 누군지를 잘 모르잖아. 그러면 주로 사진을
보고 고른다는 거다. 주로 늙은 사람들 거를 고르면 실패가
없다. 그러면 대개는 괜찮다. 평생을 그걸 했다는 얘기거든.
그랬는데 거기 가서 보니까 나이든 연주자와 늙은 남녀 무희가
있었다. 역시 어떻게 보면 그 할아버지가 소개를 잘해 준 건지도
모르겠다.
여섯 개의 손님 테이블에서 서너 평의 무대가 있고 무대 위엔
아무것도 없이 뻘건 중국집 의자 같은 것만 다섯 개가 놓여
있다. 놀라운 것은 기타 연주 팀 세 명의 연주를 마이크 없이
듣는다는 거다. 노래도 육성으로 막 내지른다.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 된다. 무희가 발 구르는 따르닥 따따다다다다다닥 딱딱
소리. 스피디하게 움직이는 모습. 율동과 손뼉 소리가 아주
격정적이다. 우웁∼ 이러 면서 내 어깨가 마구 그냥 움직이려고
한다. 그러나 섹시한 춤은 아니다.
정열적인 춤을 보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플라멩코의 원조는 아마 선생님들이 아닐까 하는 . 스페인
사람들 목소리가 원래 굉장히 크거든. 거리고 지하철이고
술집이고 정말 시끄럽잖아. 남의 나라 와서 남의 나라 아해들
시끄러운 것 가지고 왈가왈부할 수 없지만, 하여간 무지무지하게
크다구. 우리는 보통 아해들이 떠들면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고
말로 하잖아.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분필로 칠판을 친다구.
그래도 안되면 들고 있던 나무로 교탁을 쾅!! 내려치면서
"조용히 해!!" 그렇게 해도 계속 떠들면 오른발을 들어 교단을
땅땅 구르면서 "조용히들 해!!!" 그러잖아.
그래서 '아. 바로 이거구나. 스페인 아해들이 얼마나 말을 안
듣고 떠들면 집중을 시키려고 저렇게 발을 땅땅 구르는 춤이
발달을 했을까, 온 발을 있는 대로 굴러서 다다다다다다!!!하며
더 큰소리를 내는 플라멩코가 그렇게 해서 탄생했구나' 그런
생각이 든 거지.
맥주 한 잔씩을 시켜놓고 얼마나 씌울려나 맞추기를 했다.
가게에서 사먹으면 거기 맥주가 한 병에 보통 2백 페세타거든.
산세바스찬 바닷가 파라솔에서는 3백 페세타씩을 받았으니까
과연 여기서는 얼마나 받겠는가 하는 거지. 3천 페세타? 아니면
2천 4백 페세타? 그랬는데 나중에 보니 둘이 합해 8천 4백
페세타였다. 이런 바가지가 있나?
춤추는 걸 가만히 보니 여자가 돌아나와 혼자 추는 플라멩코도
있고 , 여자가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있으면 남자가 나타나서
춤추고 여자가 일어서서 따라 춤추고, 둘이 같이 맞춤을 추고,
그리고는 남자가 사라지고 여자는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 '앗,
꿈이었구나' 하는 식으로 줄거리가 있는 것들도 있다. 또 남자
한 명이 노래하면 무희 넷이서 춤추고 우리나라 민요 식으로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비스 무리하게 후렴을
넣는 것도 있고 추임새를 사이사이 끼넣는 것도 있고 하여간
형식이 굉장히 다양하다.
노래가 끝나면 그 사람들이 캐스터네츠와 CD를 객석으로 팔리
다닌다. 만약에 진미령이 야간 업소에서 노래 부르고 직접 CD를
들고 객석을 돌면,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측은하게 볼까?
우리는 2천 페세타에 캐스터네츠만 샀다. 우리 돈으로 치면
5천원에 두 개인 셈이다. 그런데 그 다음날 푸라도 미술관엘
가니 그 앞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똑같은 걸 하나에 3백
페세타를 받고 판다. 바가지를 왕창 쓴 거지. 뭐가 다른가
주인한테 물어봤더니 주인 말이 "다르긴 뭐가 달라. 다 같은
공장에서 나온 건데. 원래가 3백 페세타짜리야. 스페인 어디를
가나 똑같이 3백 페세타에 팔어" 이러는 거야. 뚜껑이 확
열리면서 머리에서 김이 막 나대.
플라멩코를 보고 바가지 맥주를 마시고 바가지 캐스터테츠를
사고 새벽 한 시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삐끼 할아버지를
만났다."어땠나? 좋았지?" 하고 묻는데 "비쌌다, 비싸서 기분
잡쳤다. 맥주가 말이야, 어쩌면 그렇게 비쌀 수가 있냐"고 따져
물으니까 이 할아버지, 갑자기 베네치아 그놈이랑 똑같이
그때부터 우리 말을 못 알아들은 것처럼 딴청을 핏기 시작한다.
스페인 말로 막 뭐라 그러는데 아주 수법이 똑같더라구.
발에 박힌 가시를 배는 동상도 다 있더라!
마드리드 푸라도 미술관에서 본 동상 중에 잊을 수 없는게
하나 있었다. 보통 미술관 같은 데서 동상들을 보면 표정이
굉장히 근엄하다. 딱 폼을 잡고 서 있거나 앉아 있잖아. 내가 본
건 누드였는데 의자에 앉아서 오른쪽 발바닥에 박힌 가시를
빼내느라고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180년 전에 만들어진
거란다.
한밤중 다 잠든 밤에 홀로 일어나 손톱으로 발바닥의 티눈을
떼본적이 있는가? 아니면 목욕탕에서 발바닥에 박힌 가시를
빼보려고 용을 써본 적은? 그거 빼려면 참 우스꽝스러운 자세가
되거든. 남한테 보여 주기도 좀 그렇고. 남들은
우스꽝스럽겠지만 본인은 얼마나 심각하겠어? 혼자서 남들 다
자는 밤에 왼쪽 다리를 오른쪽에다 올려놓고 열심히 가시를
빼려고 해보지만 그게 어디 또 쉽게 빠지나. 어떻게든 빼보려고
침도 발라보고… 그러지만 굉장히 불편하잖아.
평상시에는 잘 들여다보지 않던 발바닥. 씻을 때도 자세히 안
보던 그 오른쪽 발바닥을 바로 눈 가까이에 대고 열심히
들여다보는 자세!
바로 그런 자세의 조각이 푸라도 미술관에 있더라니깐! 한참
보고 있으니 얼마나 실감이 나는지 내가 그러고 있던 때가
생각도 나고, 내 발바닥에 가시가 박힌 듯하더라구.'아. 저런
자세의 조각도 할 수 있구나' 싶은, 너무너무 인간적인
동상이었다. 너무너무 리얼하게, 너무 세밀하게 상세하게
조각되어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보면서 공감할 수 있는 자세였던
것이다. 저런 걸 백 연도 더 전에 만들었다니!!
우린 너무 심각한 자세만 조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그렇게 평범하고 재미있는 걸 만들었을 때는 심각한 거,
무표정한 거, 근엄한 거 등등 굉장히 많은 표정의 동상을
어지간히 다 만들어본 다음에 저런 거를 만들지 않았겠는가.
그러면 우리 조각도 이런 경지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겠나 하는
거지.
덴마크 개휘연이라는 동네의 분수대 옆에 처칠 파크가 있다.
처칠 동상이 거기 있는데 늘 입에 물고 있는 트레이드마크인
시가가 없는 채로 만들어진 것이다. 덴마크가 2차대전 때
영국군의 신세를 많이 져서 그 신세를 갚겠다는 뜻으로 만든
거라나. 처칠 하면 시가가 생각나는데 좀 독특하게 시가 없는
처칠을 만들어보자 해서 처칠이 자기 시가를 떨어트리고 찾는
모습으로 만든 거란다. 그래서 시가가 풀밭 위에 떨어져서
처칠이 막 두리번거리면 그걸 찾고 있는 걸 조각한 거야. 더
재미있는 건 그 동네 사람들 말이 그 옆이 바로 호숫가라서
오리들이 여러 마리 헤엄을 치고 있는데 거기 사는 어떤 오리가
시가를 물고 갔다나! 어쨌다나! 동상 하나에도 유머와
이야깃거리를 만들게 하는 게 동화의 나라다운 기발함이
엿보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베토벤 동상이 있다. 그래서 어느 날
거길 갔다. 베토벤 동상이 어디 있는가 독일 아해에게 물어보니
그런 게 없단다. 아주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난색을
하고 생글거린다.
금시초문이란다. 쉴러, 하이네, 괴테는 저 밑에 있는데 베토벤은
없다는 거다. 자기는 처음 듣는다나. 그래서 발길을 돌리려고
보니 누가 사진을 찍고 있는데 카메라 앞에 프리즘이 달려 있다.
아래로 스펙트럼이 퍼지느 스타일로 찍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내가 요새 카메라에 관심이 많아서 "카메라 앞에 웬 프리즘?"
하고 이것저것 묻다 보니 찍고 있는 동상이 바로 베토벤이란다.
베토벤의 전신상이 벗고 서 있고 뒤에 여자 두명이 같이 서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생각으로는 베토벤, 그러면 옛날 음악노트
표지에 그려져 있던. 정장하고 펜 들고 악보를 그리며 엄숙한,
혹은 고뇌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기 쉬운데 그
베토벤이 설마 벗고 서 있으리란 생각은 못한다. 아마 그놈도
그런 거 같았다. 우리도 밑에 베토벤이라고 안 써놨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갑자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 동네에 그런 동상이 있는 것도 모르는 그놈도 한심하지만
프랑크푸르트 촌놈도 모르는 베토벤 동상을 찾겠다고 4,
50분씩이나 동네를 헤맨 나도 우습지 않느냔 말이다.
푸라도 미술관에서 또하나 건진 게 있다. 고야의 '옷 벗은
마야부인'이다. 한국에서도 늘 예술이냐! 외설이나! 논쟁이 나올
적에 등장하던 그림, 사진이 나오면서 입씨름이 한창 벌어지곤
하던 그림을 본 거다.
그리고 나란히 걸려 있는 옷 입은(신발까지 신은) 똑같은 포즈의
마야부인도 봤다. 옷 입고 한번, 옷 벗고 한번 그린 그 발상이
재미있다.
미술에 대해서 무지한 내가 그 당시에도 예술 외설 논쟁이
있었을지 알고 싶다. 혹시 그 당시에도 그런 논쟁이 있었다면
고야는 어떤 심정으로 그렸을까? 혹시 "못 먹어도 고야!" 하지는
않았겠지.
푸라도 미술관은 토요일과 일요일은 무료인데 우리가 들른
날은 평일이어서 할 수 없이 입장료를 냈다. 입장료 안 내고도
아무 화랑이나 공짜로 들어가 그림 구경할 수 있는 인사동
골목이 그립구나!
스페인 바가지는 다양하기도 하더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의 일인데 그날이 8월 15일, 성모승천
국경일이었다. 고고학 박물관을 가자고 택시를 탔다. 이번엔
시에스타료는 안 낸다고 미리 못을 박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못을 박게 된 내막은 다음 다음 페이지에 있다) 가보니 고고학
박물관이 축제일이라 쉰단다. 할 수 없이 차를 돌려 마드리드
시내가 다 내려다보인다는 마드리드의 남산에 해당되는 산엘
올라갔는데 역시 축제일이라 쉰다네. 다들 노는 바람에 도로가
아예 페쇄돼버렸다.
기사놈 수법이 정말 약 오르는 게, 우리가 가려고 하는 데가
남산으로 치면 케이블카 타는 덴데 이놈은 미친 척하고 남산
꼭대기까지 올라 간 거야. 분명히 케이블카 타는 곳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정상까지 우리를 태우고 간 거지. 저 아래 케이블
카 타는 곳까지만 갔으면 오히려 차타기가 편했을 텐데, 이
새끼는 정상까지 가려고 하다가 우리가 안 간다니까 산 중간에
그냥 떨어뜨려버린 거다. 사철탕 끓여먹을 자식! 그러더니
요금에 150페세타를 더 내라는 거야. 축제일이라서 더 받아야
된다나.
운전사는 그냥 가버렸지. 지하철도 버스 정류장도 없고 방향도
모르지. 참 황당하더라고. 게다가 거시선 또 이상하게 히치
하이킹이 안되는 거야. 아무리 해도 안 세워주더라고. 결국
시외를 뺑뺑 돌아서 네 번이나 전철을 갈아타고 시내로 나왔다.
10분이면 갈 수 있는 남산에서 종로 2가까지를 지하철 순환선
타고 교대 앞으로 갔다가 신촌 쪽으로 왔다가 그런 식으로
둘러둘러서 시내까지 나온 셈이다. 젊은 여자 아해에게 길을
물었더니 이 아해. 영어로 물어봤는데 못 알아들은 걸 굉장히
쑥스러워하며 얼굴을 붉힌다. 그래도 몇 사람에게 물어물어
고생을 한 끝에 시내까지 나왔다.
미령이가 화가 나가지고 날보고 뭐라 그런다. 내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지나면 이런 것도 추억이야, 추억이야" 그랬더니
막 성질 내면서 이런 것도 지나고 나면 재미있다고 할 거냐고
나한테 화를 내는거다. 그래서 나도 홧김에 지나가는 택시만
보면 "야, 이 시키야!! 니가 뭔데 돈을 더 달라고 그래?""축제
할증이 다 뭐야?!!" 그러면서 계속 쫑코를 먹였다.
낮잠 자는 놈을 깨운 것도 아니고 축제일이면 지네 축제일이지
우리가 돈을 왜 더 내냐. 쉰시키들! 낮잠 자는데 깨워서 일을
시켰다고 돈을 더 받아야 될 사람은 창녀가 아니냐구!
축제일보다는 차라리 마누라 생일인데. 또는 우리 아해 백일이라
집에 가려고 했는데 못 갔으니까 돈을 더 달라고 하면 웃기나
하지!
스페인에서만 세 번째 바가지다. 택시 한번 더 타보고 싶다.
노 낮잠, 노 축제일 하면 그 다음은 무슨 핑계로 더 달라고
할까?
스페인이 바가지란 것이 생각해보면 우습고 어처구니가 없다.
마드리드에선 시간이 없길래 택시를 타기로 했다. 보린
레스토랑이란 덴데, 그 유명한 2주일짜리 새끼돼지 요리를 하는
식당이다. 우리도 아마 호남 어딘가 그 비슷한 요리가 있지?
헤밍웨이가 왔다간 집이라고 간판까지 붙어 있는 데다. 그리고
그 옆집은 이 집과 메뉴도 똑같으면서 헤밍웨이가 왔다가지 않은
집이라고 붙여놨다. 여기다 내려주고는 운전사 놈이 요금
150페세타를 추가로 내란다. 자기가 낮잠 자는 시간에 일을 했기
땜에 돈을 더 받아야 된다는 거다. 시에스타 시간을 빙자해
바가지를 씌운 거지. 말이 안 통하는데 그럼 내야지
어떡해?(이번 여행에선 아무튼 말 땜에 떼먹히는 돈이 엄청
많다, 다음엔 꼭 말 배워서 와야지. 택시요금에 관한
말만이라도!! 이런 건 누가 책 안 내나?? 10개 국어로 부당요금
따지는 법, 잔돈 떼먹는 기사한테 대드는 법.)다음 번엔 낮잠
자는 시간엔 돈을 못 주겠다고 그러고 식당 앞에 내렸다.
웨이터에게 얘길 하니 말도 안된단다. 빙빙 돌아왔다는 거다.
그랑비아에서 걸어서 2분 거리인데 일방통행이라 빙빙
돌아와놓고는 시에스타라고 웃돈까지 얹어서 390페세타를 냈다는
거 아냐!
"나도 스페인제 양말 한번 신어보자"
8월 16일 새벽 6시 40분, 마드리드에서 파리행 열차를 탔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커튼을 들추니 가로등이 손전등 든아이처럼
휙휙 지나간다. 눈 감으면 떠오르는 가로등. 가로등이 할미꽃
같다. 가로등은 지상에서 지상에서 가장 가까운, 인간이 만든
별이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세로로 서 있는데
가로등이래!!!
마드리드에서 파리까지는 밤기차가 여러 종류인데 두 가지로
나누면 밤에 가다가 중간에 내려 갈아타는 것과 곧장 가는
직행이 있다. 밤에 갈아타는 거는 유레일 패스로 공짜로 탈 수
있는데 직행은 굉장히 비싸다.
스페인은 우리 여행의 마무리 단계이므로 정말 쉬자. 여행중의
바캉스다. 이런 기분으로 갔었다. 좀 쉬자 하는 마음으로 갔기
땜에 올적에는 좀 편히 오자 해서 비싼 기차를 타고 왔다.
아무데도 가지 말고 바닷가 한군데만 박혀 있다 오자고 처음부터
계획을 세웠지만 산세바스찬 바닷가에 이틀씩 있다 보니 사실
좀이 쑤셨다. 여행 내내 막 돌아다녀 버릇한 때문에 쉰다는 게
잘 안되더라는 거다. 마침내 참지를 못 하고 낮기차를 타고 밤에
마드리드에 도착해 그날 밤 플라멩코를 보고 다음날 낮에
박물관과 미술관 등등을 둘러보는 예전의 일정으로 다시
돌아가버렸다. 그리고는 당연하게도 또다시 피곤에 지쳐서
이렇게 파리 가는 기차에 실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기차가
편하니까 피곤이 한결 덜하다.
식당에 바까지 달려 있는 좋은 기차 '다르코'에선 물도 준다.
물 두통이 공짜다. 달리는 기차를 타고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밖을 보니 자연풍경이 줌 인, 줌 아웃이 안 되는 카메라로 찍은
TV를 보는 것 같다.
자다가 눈을 뜨니 문이 안 잠겼다. 문을 잠그고 잠이 들었는데
꿈결인 듯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얼결에 대답하고 보니 처가
문밖에서 두들기는 소리다. 도둑 때문에 문을 잠근 것이 처를
삼십 분 간밖에 세워두게 했다. 이 열차는 고급이라 도둑이 들
수가 없다. 보통 기차는 식당 칸이 없는데도 있겠지 했다가
굶고 다닌 걸 생각해 이번엔 물, 빵, 통조림을 잔뜩 사가지고
탔는데, 이런 집구석!
열차 안의 수돗물은 특급이고 완행이고 정말 버릇없이
떨어진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온 앞섶을 다 적시는
확!!사이즈다.
미령이는 아무리 피곤해도 옷을 꼭 개켜 놔두고 잠이 든다.
서울에서도. 하다 못해 자다가 이불이 흐트러져도 다시 딱 펴서
잔다. 양말도 그렇고, 서울서도 암만 술이 취해도 밤에 밥을 꼭
해놓고 잔다. 요즘은 별로 안 그런 편이지만.
배낭여행객 숙소에서까지 내 고린내 나는 운동화를 빠느라
미령이가 고생을 엄청 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상황에 따라
세탁은 물론 목욕가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내가
운동화에서 냄새가 난다고 불평을 좀 했던 모양이다(그런데 왜
이렇게 기억이 안 나는 걸까?)
문제는 그것 땜에 다툰 일도 많았다는 거다. 짐을 가지고
다니다 보면 남자들은 귀찮으니까 양말 같은 것쯤 더러 버리고
싶기도 한데 "인제 양말 좀 버리자" 그러면 미령이는 기를 쓰고
안된다는 것이다. 빨아야 된다나. 양말 땜에 기차 타고 가면서
몇 번을 옥신각신 다퉜다.
"버리자."
"빨아 신어."
"버려."
"빨아."
"버리재니까."
"빨아 신음 되는데 왜!!"
막 그러다 나중에 "야, 나도 스페인제 양말 한번 신어보자"
그랬더니 "알았어. 버려" 뭐 그랬다는 얘기다.
자랑하면 어때? 세상 사는 재미지!!
언젠가 작은 차를 파는 광고에서 프랑스나 유럽 사람들은 작은
차를 탄다며 마치 검소해서 그런 것처럼 얘기했었지. 그런데
파리에 와서 보니 큰 차는 거저 줘도 못 타게 길이 좁다. 그러니
주차장도 물론 태부족이다. 한마디로 '주차장이 없는 나라, 너네
나라 프랑스 나라'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동차를 탈 때 남을 의식해서 좋은 차를
탄다거나 자랑하기 위해서 차를 탄다고 하면 죄지은 사람
비스므레하게 취급하는 풍조가 있다. 큰 차 타고 다니면
이상하게도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것도 별로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자랑하면 어때??? 그게 세상 사는 재미지! 좁아 터진
길 땜에 큰 차를 탈 수가 없는 걸 두고 검소하다며 남의 나라
아해들을 칭찬하면서 자기 나라 아해들 큰 차 타고 다니는 꼴은
못 봐준다는 건 모순 아닌가? 그런 게 바로 우리 자신을
비하하고 쓸데없이 상대를 올리는 잘못된 관념이잖아.
우리는 또, 프랑스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두세 시간씩 하는
이유를 여유 있는 습관 때문이라고 배웠다. 식사 시간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라는 등, 대화를 즐긴다는 등, 미식취미
때문이라는 등 많은 얘길 했는데 사실은 그런 근사한 이유
때문이 아니고 음식이 늦게 나와서란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방에 일하는 사람이 모자라서 그런 거다. 인건비가 비싸서
사람을 많이 못 쓰기 때문이다. 교포 하나가 파리에서 식당을
하면서 한국식 경영으로 종업원을 많이 썼단다. 당연히 음식이
빨리빨리 나올 거 아냐? 그랬더니 그 자식들도 빨리빨리 먹고
나가더라는 거다.
사실 프랑스 같은 나라는 복지국가다. 실업수당이 나오는데
우리처럼 굳이 주방에서 궂은 일,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한다.
그런 거 하는 놈, 하겠다는 놈은 무진장 비싸고. 그런 거다.
우린 밥 먹는 거 하나 갖고도 마치 우리가 무식한 것처럼,
여유가 없는 것처럼 비하했왔는데 뒤집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나도 한번 여기 호텔에서 식사를 하는데 식사가 어찌나
늦게 나오는지 정말 열받았던 적이 있다. 술에 취해 비몽사몽
기다리라는 건지 먼저 술을 한잔씩 꼭 주더라고! 아는 체하는
사람들은 밥맛이 좋아지라고 주는 거라는데 술 한잔 갖다주고
20분 만에 짜디짠 치즈 두 조각 갖다주고, 한 시간을 더
기다려서야 메인 식사를 갖다주는 거다.
기다리느라 얼마나 진들이 빠졌으면 식사가 도착하자 식탁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날 정도다. 외제 아해들도 지루하긴
엄청 지루했던가 봐! 밥 나온다고 박수까지 치는 걸 보면.
그러게 사람 사는 덴다 비슷한 거다. 배고픈데 고상이 뭐고
대화가 다 뭐란 말이더냐!
프랑스 아해들이 자존심 때문에 영어를 안 쓴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모르니까 안 쓰는 거다. 그 아해들도 영어 아는
아해들은 잘 쓴다.
요즘 배낭족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우리가 하도 많이 나오니까
프랑스 아해들이 이젠 영어를 쓴대나? 우리 때문에 쓴다고
착각하지 마라. 우리 땜에 쓴다면 우리말을 써야지 영어는 왜
쓰냐?
유람선에서 본 외국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식사하면서 사진을
많이 찍는 것도 그렇다. 기념도 기념이지만 그런 좋은 식사를
정장 하고 먹어보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 일본 관광객들이 유럽으로 한창 여행들을 많이 올 때
모두가 다 근사한 놈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 대부분 농부들이라는
게 밝혀졌을 때 얼마나 씁스레했는데! 마찬가지로 그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아마 촌사람들일 거야. 보나마나지 뭐, 옷 입는 거
보면 모르나. 자기가 정말 기괴한 모습이란걸 모르는 할머니들도
정말 많아! 튀기만 하면 단가. 웃음거리가 되는데. 말을 안할
뿐이지 속으로 비웃을지도 모른다구! 이기적인 할머니들! 밥
먹는 데서 담배를 꺼 달란다. 자기가 딴 데로 가면 되지. 그 말
듣고 금방 끄는 한국 청년 정말 순진해!!!
외국인들이 어디 기차표나 유람선 입장권 같은 걸 살 때도
마찬가지다. 가만 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 정말 말이 많다.
농담을 하는지 표파는 인간들이랑 낄낄대기도 하고 온갖 수다를
다 떤다. 그런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유 있어
보인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 그렇지 않다. 이 인간들도 관광을
처음 나와 본 촌사람들이 많다는 거다. 그러니 번잡한 도시에서
얼마나 불안하겠어! 그러니 시시콜콜 물어보고 확인하고 그러는
거 아니겠냐구!
그래서 한가지 주의할 건. 유럽에서 기차표나 비행기표를 살
때는 정말이지 일찍 나가야 된다는 거다. 내 경험에 의하면
할머니들이 표를 사러오면 이건 정말 표 파는 아해들이랑 끝날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해댄다. 내용이나 알면 덜 답답하지!
물어보는 것도 많고 농담도 하는 모양이다. 기차를 바로
갈아타야 하는데 할머니 하나가 내 앞에서 약 6분을
이야기하니까 정말 돌 것 같더라구! 다 끝났나 싶어서 우리가
가려는 역을 적은 쪽지를 내미는데 다시 와서 또 물어!!!
으이구! 지갑에서 신용카드 하나 내는데도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안 본 사람은 모른다. 정말이다. 빨리 나가라. 그리고 할머니
뒤에 바로 서는 것보담 젊은 사람 다섯 번째 뒤에 서는 게 더
빠를 수도 있다!
나를 웃긴 유럽의 CF들
호텔 같은데서 프랑스 CF를 보면 아주 재미있는 것들이 있다.
코믹한 것도 제법 많고 유명한 사람을 쓰느니 아이디어로 광고를
한단다.
차 광고 하나를 예로 들면, 차가 고물이니까 새 차로 바꾸자고
남편이 마누라를 자꾸 조른다. 마누라는 안된다고 한다. 화가 난
남편은 어느날 밤 차가 부서지면 새 차로 바꾸겠지하는 마음으로
아내 몰래 밖으로 나가 커버가 씌워진 차를 두들겨 부숴 버린다.
아침에 나가 보니 맙소사!!! 남편을 기쁘게 해주려고 마누라가
어젯밤 새차로 바꿔놓은 걸 모르고 부순 것이다. 부서진 차를
보고 놀라는 남편, 또잉!!!
또하나는, 세일 광곤데, 여자 하나가 막 잠을 잔다. 잠을
자다가 자명종 소리에 깨는데 자명종을 멈추게 하고 멈추게하고
멈추게 하고 그러다 보니까 한 3백 개 정도의 자명종을 다
멈추게 한 거다. 그러다 보니 잠이 깨서 막 놀래갖고 달려간다.
세일하는 데 가려고 시간을 맞춰 놨던 거지.
이번엔 세탁기 광고, 빨래가 막 널려 있는데 남녀가 사랑과
영혼처럼 그 속으로 몸을 집어넣고, 올 하나하나가 다 보이는
빨래 속에서 설명을 한다. 그 뒤에 나오는 건 화장품
선전인데.VVVVVV형태로 있던 V자가 한일자로 쫙 펴진다.
그러니까 주름살이 쫙 펴지는 느낌이 나는 거지.
또 어떤 긴 말야. 몇 시간 전서부터 와서 낚시를 하는데
낚시가 안돼. 늦게 온 사람들은 고기가 막 걸려. 근데 이 남자만
죽으라고 안되는 거야. 그래서 낚시 포기하고 발이나 씻고
가려고 두 발을 강에 스윽 담갔더니 고기들이 둥둥둥둥 뜨는
거야. 이 남자한테 무좀이 있어서 고기들이 둥둥 뜬 거야. 그걸
막 건져서 판다는 그런 광고. 알고 보니 무좀약 광고더라구.
그리고 그 해의 우수상 받은 광고가 있는데. 이게 참
재미있어. 어린아이가 아기 코끼리한테 가서는 과자를 코로
주려다가 낼름 자기가 먹어버리는 거야. 당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과자를 누가 주려고 입 근처까지 주다가 먹으려고 입을 내미는
순간 낼름 자기가 먹어버리면 무지무지하게 화가 나잖아.
마찬가지로 코끼리도 얼마나 열이 받았겠어? 인간들도
약오르는데 말야. 코가 길다고 밸까지 없겠어? 십 년 뒤에
국가행사가 있어 동물들이 거리행진을 하는데 코끼리도 크고
애도 컸지. 그런데 이 코끼리가 한참 가다가 그 꼬마(이제는
어른이 다 된)의 엉덩이를 한대 딱! 때리고 간다고 기발하고
깜찍하잖아?
나중에 보니 영국 광고도 무척 재미있더라구. 특히 스코들랜드
가구 세일 광고는 발상이 굉장히 독특해. 한 아저씨가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를 해. 뒤에선 가구세일 설명을 막 한다고. 무슨
백화점에선 가구 세일을 하는데 몇 퍼센트 합니다… 좋은 가구란
어떤 것이냐면 어쩌구 그러면서 말이야. 그러면서 뒷그림으로는
인부들에 의해 가구가 계속 실려나가는 거야. 나중에는 이
아저씨가 앉아 있는 소파까지 들고 나가 버려. 이 아저씨. 한참
설명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까 낯선 집에 자기가 소파에 앉은
채로 와 있는 거야. 그래서 이게 무슨 일인가 해서 보니까 그
사람이 앉아 있던 소파가 이미 세일이 돼가지고 팔려온 거였어.
놀라는 아저씨의 얼굴에서 화면이 멈추면서 "띠옹!" 그러고는
가구 세일 자막이 나와. 팔리기 전에 빨리 사라는 얘기지.
또 무지하게 인상적인 게 하나 있는데. 뭐냐면 프랑스 광고다.
잠자리에 굉장히 섹시한 여자가 누워 있고 여자가 다리를 떡
하니 위로 올린다. 그리고 스타킹을 신는 거지. 영상 자체며
분위기가 남자라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섹시하다. 그러다
화면에 갑자기 콘돔이 튀어나오는 거야. 다리는 거시기,
들어올린 다리는 선 거시기, 스타킹은 콘돔!! 이런 식이지.
엄청난 상징이잖아?!!
이런 게 바로 프랑스의 전형적인 콩트다. 여자의 일생, 진주
목걸이 따위가 다 이런 것들이라서 우리가 한때 코미디를 꽁트,
꽁트 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코미디는 뒤가 빤하면 재미가
없어" 하는 고정관념을 낳았다. 코미디는 반드시 역전의 묘미,
역전이 돼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뒤가
빤하지만 재미있는 코미디도 있다.
춘향전만 봐도 그렇잖아. 앞도 뒤도 무진장 빤하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맛도 있고 재미있다구. 하는 과정이 중요한 거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노는 날엔 노는 거, 당연한 거 아냐?
관광객이 많이 오는 프랑스나 영국. 독일에서는 외국 관광객이
오면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니??? 하고 물어봤더니 안
가르친댄다. 우리는 외국인에게 친철해야 한다는걸 전국민 필수
소양교육처럼 가르치고, 외국인들이 본다며 보신탕도 못 먹게
하고 그러는데 말이다.
여기 아해들은 우리랑은 다르다. 관광객에게 친절하라고
잔소리해대는 사람도 따로 없고 구경을 하러 오든 가든 신경도
별로 안 쓴다. 불 친절한 놈들도 많다. 그리고 주말장사 같은
거에 관심이 없다. 나도 장사를 하자만 주말이면 손님이 더 드니
당연히 매상이 올라 좋아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남
노는 주말에 내가 왜 일하냐? 나도 놀아야지. 쉬어야지 하면서
너나할것없이 가게문을 닫는다. 하긴 여덟 시간 일했으면 되긴
됐지. 그런데 다 닫으면 저는 어디 가서 노냐??
한번은 프랑크푸르트 괴테 집 앞에 간 적이 있는데 문을 안
열어줘서 황당했다. 몇 분이 늦었던 것이다."괴테야. 괴테야"
몇 번 큰소리로 부르다가 일층 창의 나팔꽃 냄새만 맡고
돌아서고 말았다. 그때 난 굉장히 열받았다. 도서관이나 박물관
미술관 그런 데가 아해들이 조퇴하지 않고도 가서 볼 수
있어야지 왜 일찍 문을 닫는단 말인가? 그런데다가 일요일날
문을 아예 안 열면. 그럼 얘들은 언제 가야 되냐구?
프랑크푸르트는 또 8월엔 오페라. 콘서트. 뮤지컬 공연이 거의
없어서 완전히 허탕을 쳤다. 그때가 대목이라고 알고 갔는데
아니라는거다. 우리는 보통 여름방학 겨울방학을 대목으로
생각하는데 이 사람들은 여름은 전혀 없다. 겨울엔 좀 있나
보던데 바캉스다 뭐다 해서 남들 노는 여름 휴가 시즌엔 이
사람들도 노는 거야. 나만 일하기 싫다 이거지. 우리랑은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돈이 없는 사람은 벌어보려고 바쁘고 돈이 많은 사람은
더 벌려고 정신없이 뛴다. 하긴 그것도 이상하긴 하다. 부자면서
왜 돈을 벌려고 할까? 나 같음면 안 그러겠는데. 그러나
부자들은 그렇게 생각안하겠지. 부자들만의 재미가 있을 거야.
여행도 사실은 부자니까 하는 거 아닌가.
먹고사는 것도 마다하고 놀자 쉬자 하는 아해들은 과연 어떻게
노나 하고 여기 아해들 노는 걸 봐도 정말 다르다. 너도나도
술집 행이 아니라 오페라를 보러 간다든가 주말 여행을 간다든가
하는 식이다. 한마디로 개성이 있다. 사실 우리네 놀이문화가
한정되어 있는 이유는 사시사철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절을 기다린다. 사월이 오면 꽃이 피겠지, 목련이 지면 이제
여름이 한달 남았네! 가을비가 한번 오면 그 다음부턴
추워지겠군… 이런 식이다. 그래서 때 맞춰 봄에는 꽃놀이,
여름에는 수영, 가을에는 단풍놀이, 겨울엔 스키나 썰매를 타러
간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유럽은 계절을
기다리지 않고 계절을 찾아간다. 사계절이 유럽 안에 다 있으니
선택하기에 따라 아침에 같이 출발을 해도 누구는 여름으로
누구는 겨울로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길 수가 있는 거다. 어떤
놈이 수영을 갈 때, 또 어떤 놈은 스키를 가고, 스키를 하다가도
싫증나면 선탠을 할 수가 있다. 우리랑은 발상이나
스케일에서부터 노는 게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유럽여행을 좋아하는 모양이지만.
@ff
제6장
역사는 지우지 말자
전두환 노태우 글씨, 지우지 말자
베를린. 8월 18일
여자 베낭객을 만났는데 독일에선 이상하게 인종차별하는 거 같아
속이 상한단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안했냐? 우리도 좀 해.
우리도 많이 한다고. 검둥이라고, 검둥이라고, 일본놈이라고
하잖아. 그런 거 신경쓰지 말고 볼 것만 보고 와"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그런데 베를린 최영철씨에게 물어봤더니 자긴 그런 거 못
느낀단다. 우리를 포츠담까지 태워주고 베를린까지 벽 박물관까지
데려다 준 분으로 베를린에서 제일 오래된 교포다. 민박을 하고
아침을 먹으러 간 일본 식당에서 만난 주인 아저씬데 20여 년 전에
한국을 떠나 왔단다. 이북에서 납치를 하려고 했다가 미수로 그친
적도 있는 분이다. 그런데 나치 제국주의자 헤스의 생일 같은 날엔
독일 아해들이 외국인은 니네 나라로 가라고 데모하기도 한단다.
이분이 아들을 위해 일식집을 하나 차렸는데 구동독 소령을
60마르크 주고 아르바이트로 채용했다. 정식 웨이트 같으면 웨이트
복장을 하거나 학생들 같으면 학생 느낌이 날 텐데 이 사람은 그냥
늙수그레한 아저씨다. 저쪽 손님 테이블에서 이상한 놈이
시큰둥하게 앉아 있어서 난 또 같은 손님인 줄 알았지. 그런데
손님이 오니까 슥 일어나 치우고 서빙하고 그러는 거야. 하여간
딱딱하고 좀 어색한 게, 서빙하는 사람 같은 기분은 영 안 든다.
독일이 통합되면서 동독 장교들은 다 제대를 시켰단다. 병사들은
서독 군복으로 전부 갈아 입히기만 하고, 오갈데 없으니까 이렇게
맥주집에도 취직도 하고 그런다는 거다.
베를린은 역사적인 도시다. 장벽 박물관에서는 이제 과거의
유산이 되어버린 분단시대의 벽조각들이 통일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그 보잘것없는 벽돌 쪼가리, 손바닥만한 담벽 파편을
주워서 집에 갖다놓고 간직하는 사람들이 수십만 명에 달한단다.
그들이 간직한 건 하찮은 벽돌 부스러기가 아니라 생생한 역사의
교훈이고 의미일 것이다. 맥주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구동독 소령
역시 온몸으로 자신의 역사를 말해주는 산 증인이다. 행색과 언행이
조금 우스꽝스럽고 비감해도 말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갔다 왔다는 한 배낭족 남자 얘리를 들었다.
한 통으로 4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질식사시켰던 가스통이며
가스실, 시체보관실, 화장터들이 그대로 남아 있더란다. 2만명을
총살시킨 벽도 있고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어린 아해들의 옷과
인형, 신발들만 모아놓은 데도 따로 있더란다. 쉰들러 리스트의
무대가 됐던 제 2수용서도 갔는데 아우슈비츠보다 열 배는 큰
그곳에 가니 가슴도 열배로 아프더란다. 해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 애도하고 순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울며 다닌단다.
베를린에도 나치 대학살의 역사를 보여주는 흔적들이 많다.
역사는 그런 것이다. 가슴은 비록 아프더라도 지나간 시간의
흔적들을 남겨 후세의 교훈을 삼는 것이다.
대청댐에 박정희가 쓴 글이 있었는데 언젠가 지워졌다. 다음에는
전두환이 쓴 글씨를 봤는데 언젠가 가보니 또 지워지고 없다. 정작
이름을 붓글씨로 써놨는데 여론에서 뭐라고 하자 막바로 지운 거다.
왜 지우고 없애나? 유럽은 안 지운다. 그대로 놔두고 몇백년 동안
역사적으로 욕한다. 관광객들만 오면 "이놈이 옛날에 어떻게 어떻게
나쁜 놈이었는데..." 해가면서 말이다. 두고두고 씹는 거다. 나치
수용소 있던 자리 같은데도 다 보전해놨다. 아픈 역사이지만
하나도 안 지우고 안 없앤 거다. 대신 거기선 길 가는 자동차가
속력을 못 낸다. 경적도 울려선 안된다. 돌아가신 영혼들을
지금이라도 좀 조용히 쉬게 하자 그런 뜻이란다. 지워버리면 바로
잊는다. 지우면 당장은 속시원할지 모르지만 나중 사람들은 모른다.
오히려 전두환, 노태우를 도와주는 일이 되는 거다. 조금만 지나면
다 잊어버린다구.
문제는 생각하는 방법의 차이인데,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태국 같은 데를 가도 그렇다. 수상 배를 타고 죽 가서 내린
뒤 시장을 거쳐서 태국 왕궁을 들어가게 돼 있거든. 그런데 시장을
보면 정말 더럽다. 발바닥이 시꺼매가지고 구정물이 바작바작
흐르는 분위기에서 생선을 구워 파는데. 저걸 대체 언제 구워놨는지
상한 건 아닌지 싶을 정도다. 조금 과장되게 얘기하면 먼지가
일센티씩 쌓여 있는 생선들을 줄줄이 놓인 일미터쯤 되는 그 사이를
뚫고 지나 왕궁을 가는 거다. 수십만의 관광객이 그 앞을 지나간다.
그럼 우리나라 같으면 어떡하겠냔 말이다. 관광객이 지나가는데
저놈의 거 다 치우라고 그러지 않겠어? 구청이나 시청에서
특별단속반이 와서 때려 부수고 야단이 날 거라고, 분명히.
어느 나라에 포장마차나 노점상이 많다는 거는, 그렇게 해야지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다. 내버려뒤야 된다. 그걸
인정해줘야지. 무슨 얘기야. 왜 못하게 해. 대신 비위생적으로 하는
거 단속하고, 권리금 받아먹고 돈 떼어먹고 없는 사람 등쳐먹는
못된 새끼들을 단속해야지. 안 그래?
세금 내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노점상들이 너무 많이 생기면
타격을 입는다고 그러지만 그것도 그렇지도 않다. 어떻게 보면,
노점 구경 온 사람, 그거 사러 온 사람들이 가게에도 들어가거든
우리나라 사람들인데 그거 사러 온 사람들이 가게에도 들어가거든
우리나라 사람들인데 같이 먹고살면 어때? 지금 미국만 가도
노점상들이 얼마나 많이? 있다는 건 다 있다고 개들이. 잘사는
나라에도 다 있고 못사는 나라에도 다 있는데. 요는 그렇게 살아야
되는 사람들이 어딘가는 하여튼 있다는 거다. 그러니 그 자체를
부정하지 말자는 거지. 인정을 하자구.
프랑스가 우리보다 선진국이다. 그런데 파리에서는 무단횡단을
다한다. 빨간불이지만 차 안 지나갈 때 사람이 그냥 서 있으면
경찰이 왜 안 지나가냐고 건너가냐고 건너가라고 그럴 정도다.
유럽에는 육교가 없고 우리는 육교가 있다. 육교가 있다는 건
뭐냐면 "자식들아, 차 가는데 방해하지 말고 위로 가든지 밑으로
가" 하는 차 본위 행정이란 얘기다. 그쪽은 사람 위주로 돼있기
땜에 얼른 보기엔 우리보다 무질서해 보일지 몰라도 조금만
익숙해지면, 그리고 적응해 살다 보면 그게 사람들을 위한
규칙들이란 걸 알게 된다.
황태자의 첫경험은 어디일까?
하이델베르크성.
마크 트웨인은 '톰소여의 모험'을 이 성을 걸으면서 완성했다고
한다. 하이델베르크 성에 올라가면 22만 리터짜리 초대형 와인
술통이 있었는데 세금을 못 내는 시민들에게 와인을 세금 대신
거둬서 성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나눠줬단다. 각종 와인이 다 섞여서
짬봉 되겠네! 물 탄 놈도 있을 것이고. 물 탄 거 낸 놈이 군대 와선
다시 물 탄 거 마시고... 그러지 않았을까.
나도 이번 여행에서 포도주를 굉장히 많이 마셔봤는데 하나같이
포도맛이 별로 안 난다. 포도맛이 제일 많이 나는 거는 역시
우리나라의 옛날 진로 포도주더라고.
하이델베르크에는 맥주 종류가 등록된 것만 약 5천 3백 종이란다.
3리터가 넘어 보이는 맥주캔도 있다. 맥주 사전을 만들면 어떨까?
A맥주: 맛이 찝찌를하지만 뒤끝은 깨끗. B맥주: 누가 사주면 먹되
자기 돈 내고는 절대 먹지 마. C맥주: 뒤끝은 안 좋은데 혀에서
목까지 잘 넘어간다. 이런 식으로.
철학자의 거리는 걸어 올라가는 데만 꼬박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철학을 안할 수가 없다. 주의할 건,
올라가는 동안 내내 쉬는 곳은 있는데 쉬하는 곳은 없다는 거다. 한
시간을 참을 자신이 있는 사람, 아니면 준비가 된 사람만 올라가는
게 좋을 걸!!
호아태자의 첫사랑에 나온 술집이 옥슨인가. 하여튼 거길 갔다.
도중에 보니까
굉장히 근사한 호텔이 보인다. 유학생 하나가 "이 호텔에 묵은
값이요." 그러더라구. 난 또 호텔 팔려고 내놨다구. 그러게 사람이
말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거야.
옥슨은 'Zun RoIEn OXEN' 이라고 해서 우리말로 하면 '붉은
황소처럼' 이라는 정열적인 이름의 가게다. 그런데 거기 종업원
여자가 너무 불친절하고 가게 분위기도 정열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서 애들이 김새 가지고 그 옆집으로 갔더니 고향의 봄, 아침
이슬 같은 곡을 피아노로 연주해주는 아해가 있다. 물론 팁은
받았지. 그 전에 갔던 놈들이 개판을 많이 부렸는지 어쨌는지 암튼
엄청 불쾌하게 대하더라고. 황태자의 첫사랑에 나온 술집이 둘 중에
하난데 꼭 옥슨인지는 확실하지 않대. 그런데 한국 아해들은 그
옆집을 더 잘 간다는 거야. 하기야 원조보다 아류가, 오리저널보다
이미테이션이 더 히트를 치는 경우란 것도 있기는 하지. 종종.
때로는 엉뚱한 장소나 전혀 다른 사람이 그럴듯하게 잘못 알려지는
경우란 것도 있다구.
미령이도 그래. 언젠가 스포츠 신문에 '대만 출신 가수 진미령,
추석에 연변 위문공연'이라는 제목으로 처의 거사가 났더라고. 물론
나도 방송 출연이나 각종 잡지 인터뷰 같은 데서 부인이 대만
출신이 아니냐는 질문은 많이 받아 왔어. 진미령은 대만 출신
가수가 아니야. 내가 알고 있기론 대만을 몇 년 전에 처음 갔다
왔거든. 그런데 왜 자꾸 대만 출신 가수라는 걸까?
심지어는 어떤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에서 국제결혼한 여러
쌍들이 나와 국제결혼에 얽힌 이야기를 한 일이 있는데 거기에 우리
부부가 초대된 일도 있다. 우리는 해당이 안 된다고 했더니
거짓말하지 말라며 부득부득 출연을 하란다. 미령이가 화교라는 거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잘 알아보라고 몇 번이나 얘기를 해도
믿지를 않는다. 그러더니 방영 하루 전날 진미령이 정말로 대만
출신이 아니라는 것을 방송 작가가 어디에선가 알게 됐단다. 그러니
어떡해. 나갈 수밖에 다른 사람들 섭외할 시간도 없으니 국제결혼한
다른 부부들과 함께 출연을 하되 우리 부부는 국제결혼한 다른
부부로 나오라나(더 웃긴 건 그 다음이다. 질문 내용이 우리 부부
얘기가 아니고 개그맨 김정열이 대만 여자랑 결혼을 했는데 그
부부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달라는 것이다. 그럼 처음부터
김정열을 섭외하면 될 것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미령인 대만 출신이 아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만 출신이냐고 물어볼지 궁금하다.
여기는 도시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차분하면서도 자유로워
첫사랑인지 첫 번 로맨스인지 확인을 아 해봐서 모르겠지만
황태자가 충분히 그 비스므레한 건수를 만들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기 대학생들의 분방함은 화장실 낙서 하나를 통해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여기도 역시 낙서는 정치 종교 섹스에 관한 것
투성이다. 낙서 중에 하나가 근사하게 메뉴판에 써 있어서
들여다보니까 어럽쇼 이게 뭐냐, 주방장이 권하는 오늘의
특선요리가 프랑스 여지 ×지란다.
20대 초반의 한 아해는 돈 내고 들어가는 화장실 입구에 서
있다가 내가 들어가자 돈을 주면서 콘돔을 자판기에서 사달란다.
이런 세상에! 어린놈의 새끼가.
그런데 은근히 궁금한 게 있다. 황태자의 첫사람은 그렇다 치고
황태자의 첫경험은 도대체 어디일까?
하이델베르크 유학생들의 김치찌개
하이델베르크에 유학생들아 굉장히 많은데 한여름이면 얘들도
정말이지 괴롭단다. 올해도 숱한 배낭족들이 다녀갔단다. 전화번호
들고 아는 사람 이름 팔거나 "선배님" 하면서 찾아오는데 정말이지
생판 모르는 아해들도 수두룩하단다. 조금 알면 없는 얘기도
만들어서 하곤 하는데 돌겠단다. 그냥 보낼 수도 없고 , 김치고
뭐고 있는 반찬 다 아작내놓고 간단다.
그래서 조금 아는 아해들이 찾아오면 궁여지책으로 거짓말을 한
대."아, 왔구나, 우리 내일 아침 일찍 어디로 연수 떠나는데. 오늘
하루만 자고 가라..." 이런 식으로 피한다는 거다. 어떻게 조금
연줄연줄로 알면 핑계를 대고 문전박대를 하는데 통 모르는
애들한테는 그런 핑계도 못 댄단다. 정말 자기 하나만 믿고 온
애들이니까. 그래서 별 수 없이 같이 노는데 이놈들이 오래간만에
한국 음식을 보면 환장을 해서 김치고 뭐고 널름널름 다 처먹고
평소에도 유학생들 5, 7명이 큰 냄비 같은 데다 넣고 아끼면
끓여먹는 김치통조림을 순식간에 끝장을 낸다는 거야.
그 유학생도 처음엔 뭘 몰라서 김치만 막 먼저 건져 먹다가 욕을
엄청 먹었단다. 찌개 국물 먼저 먹고 김치를 먹어야 된다고
그러면서 말이다. 막 유학 온 애들이 뭘 모르고 "저녁은 김치찌개나
끓여 먹을까요? 그러면 선배들이 "뭐 이놈아?! 김치가 얼마나
귀한데 김치찌개나라니?" 그러면서 혼을 낸다는 거지. 유학생들에게
김치 보내기 운동을 벌이면 어떨까.
객지에서 김치 그리며 공부하는 우리 유학생 아해들 얘기를 막
하면서 같이 놀다가 후배들 밥해줘야 한다고 광복이 형은 갔다.
하이델베르크에는 우리 유학생이 정말 많다. 생물, 법학, 체육학,
정치학 등 전공 분야도 다양하고 젊은 층부터 한국말 가르치는 전직
교장선생님 같은 나이 먹은 유학생까지 섞여 있다. 다른 도시는
젊은 유학생 아해들이 방학 때라 한국 가버리고 텅 비어 있는데
여긴 마흔이 다 된 유학생들이 대부분이고 한국도 잘 안 간단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에이즈 균을 연구한다는 한 유학생의 얘기로는
오 년 안에 에이즈 균을 틀림없이 잡는단다. 옛날에는 외국 나갈 때
한국 남자들이 외국 여자랑 엉큼한 짓 할까 봐 마누라들이
노심초사하면서 차라리 잘됐다. 그랬는데 이제 오 년 우쯤이면 한국
남자들이 건수를 잡을는지.
이렇게 유학생들이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여기가 학생들에
대한 혜택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예를
들어 스물두 과목을 이수해야 졸업을 한다. 그러면 스무 과목
정도만 듣고 나머지 두과목은 남겨둬서 계속 학생신분을
유지한단다. 그래서 학생증을 자기고 산다는 거지.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여행 프로그램 같은 것들도 수시로
제공되는데 그 중 제일 인기가 좋은 것이 사막 횡단 어드벤처란다.
우리나라 돈으로 50만원 정도면 카사블랑카에서 카이로까지 가는데
매년 여름이면 최고의 인기라는 거다. 가다가 실종되는 아해들도
있지만 두 달 동안 떠나는데 먹여주고 재워주고 거의 공짜나
마찬가지여서 신청자가 너무 많단다. 우리가 관광지 찾아 다니는
여행이랑은 또다른 차원의 탐험이다. 건강진단서부터 떼야 하는
증명서도 많고 까다로운데 합격했다하면 무조건 간단다. 지원자가
많다 보니 경쟁률도 세고 합격자 명단에 드는 걸 복권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행운으로 생각한단다. 대학시절에 꼭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과정이라는 거다. 여기선 학생뿐 아니라 선생님 자격증
같은 게 있어도 '국립'자 들어가는 건 무조건 공짜다.
이런 식으로 혜택이 너무 많으니까 얼마 전에 그런 안건이 하나
나왔단다. 무작정 학생혜택 줄게 아니라 팔년이면 팔년, 십년이면
십년의 시한을 정해서 그 시한이 지나면 일반으로 취급을 하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동의를 했대. 그런대 그렇게만 되면 그
사람들이 일반인이 됐을 때 취직문제가 심각하잖아. 실업률이 더
높아질 거다라는 반대여론에 부딪쳐서 결국무산에 됐다고
그러더라고(이 얘긴 국회 문공위에 속해 있는 김한길씨가 해준
얘기다).
또 여기는 시내버스도 완벽하단다. 이런 버스를 본 적이 없다고
유학생들이 모두 얘기할 정도다. 다음엔 어디에 내린다는 게
글자로도 말로도 나오고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게끔 리프트도 있고
아무튼 완벽하게 돼 있단다. 그렇지만 단 한가지 에어컨은 없단다.
에어컨을 쓰려면 환경부담금을 엄청나게 내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못 쓴다는 거다(완벽하단다, 돼 있단다. 없단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안 타보고 얘기하는 걸로 알겠지? 타봤다! 그렇지만 한두 번 탄다고
버스에 대하여 어떻게 아냐? 유학생에게 설명 들었지!). 여름에
하이델베르크 가는 사람들 버스 탈 때 부채 준비해야겠네!!
어쨌든 그래서 그런지 여기는 거지들도 그렇게 여유다. 한 번은
우리 일행이 지나가는데 술 취한 40대 거지가 "미스터 킴 미스터
킴!!" 하고 부른다. 돈을 달라는 거다. 같이 가던 유학생 아해가
거지 말이 떨어지자마자 선수를 쳐서 "야! 넌 왜 나한테 보기만
하면 돈 달라고 그러냐? 그러지 말고 오늘은 니가 날 좀 줘"
그랬더니 이 거지가 대뜸 얼마나 필요하냐고 그러니까 거지가
바지를 잠시 부스럭거리는가 싶더니 오마르크를 슥 꺼내서 주는 거
있지. 나 원 참.
확실히 이 나라 거지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보면 조금 다른 것도
같은 게, 독일 거지들이 지하철에서 노숙하는 우리 배낭족
학생들에게 여기 공기가 안 좋으니까 환기를 해야 한다며 환기창을
열어주더란다. 거지의 여유와 지혜에 무진장 감동했다고 배낭족
아해 하나가 나한테 해준 얘기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웬만하면
같이 다니면서 독일어라도 좀 배우지 그랬냐?
유학생들한테는 음식을 싸게 먹을 수 있는 정보가 있다.
학생관장 앞에 있는 학생식당은 점심만 하는데 식권을 마르크에
다섯장씩 묶어서 판단다. 단체할인 차원이나 반찬과 밥(?)을 합해
네 끼까지 먹을 수 있고 후식은 따로다. 우리 땐 아이스크림이나
나왔는데 먹을 만했다. 물론 돈이 정 없을 땐 한국 학생을 찾아
"식권 한 장만 주세요." 이러면서 얻어먹는 방법도 있다. 대신 서울
와서 김치 한 통을 챙겨 보내는 근사한 보답이겠지?
김치 얘기하다 보니 이틀 전 베를린에서의 해프닝이 생각난다.
고추장에가가 양파를 찍어 먹다가 오래 놔뒀더니 이게 발효가
됐는지 김치 비슷하게 돼 버렸더라구, 그래서 우리가 김치
비스므레한 걸 개발했다고 좋아했는데. 문제는 이 냄새가 굉장히
독했다는거야. 그걸 못 견뎌 아해들이 서서히 피해 나가는 거지.
베를린 중국 서커스 공연장에 그걸 갖고 갔더니(독일은 서커스가
유명하거든. 그런데 그때는 인포에 가서 물어보니 공연이 없대.
그래서 중국 서커스 구경을 갔는데 서커스 자리가 우리네와
비슷해서 스폐셜 A석, B석, C석으로 나뉘어 있더라고, 우리는
A석에서 구경했는데 우리 앞자리들이 스폐셜, 즉 제일 비싼
자리였어) 스폐셜하고 1등석에 앉았던 우리 주변 아해들이
휴식시간에 하나 둘 빠져나가더니 다시는 안 들어오더라구. 가만
보니까 딴 자리로 가서 보는 거야. 물론 더 싼 자리지! 그 아해들은
'서커스를 보면서 휴식시간이 되면 빨리 이 자리를 떠야지' 하는
생각을 했는지도 몰라! 돌아온건 할머니들 몇 명뿐이었어. 그 중 한
할머니는 계속 우리 배낭만 째려보는데, 민망해서 혼났지!! 비싼 돈
낸 만큼 대우받으려고 자기 권리를 확실하게 주장하는게 유럽
아해들이잖아.
더 황당한 건, 공연을 보고 나서 안경을 사러 안경집에
들어갔는데 그 안경점에 이상한 냄새가 막 나더라고. 그래서 '아니
이게 무슨 냄새니?" 그랬더니 얘가 "이거 우리 고추장에 양파 썩는
냄새예요." 그러더라고. 이런 세상에, 우리 거였단 거야.
영국에선 우리 일행이 늦게 합류를 하면서 종갓집 김치를 가지고
왔거든. 종류도 여러 가지여서 오랜만에 김치를 먹었다구. 갓김치,
열무김치, 총각김치,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하룻밤 자고 나니까
다른 김치는 그대로 인데 총각김치만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거
있지? 역시 총각은 총각이었던가 봐!!!! 혼자만 빵빵하게 커지다니!
김치 얘기 끝.
안 마실 수 없었던 유럽의 마지막 밤
8월 19일 하이델베르크.
외국에 나와 있어도 세월은 가는구나. 딧새 후면 귀국이다. 노들
강변에 봄 버들 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 새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서 매여나 볼까? 굉장히 잘 쓴 우리 조상들의 가락이고
시구다. 어쩌면 내 심정을 이렇게 잘 표현했는지. 하이델베르크에서
유럽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유학생들과 헤어져 기차 난간에 나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엉엉 울었다. 100일이 이렇게 금방 가버리다니.
남들은 100일을 길다 말다 그러는데 정말이지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다.
유학생들과 옛날 대강간이었다는 맥주집에서 술을 마셨다. 정말
당시에 쓰던 연장들이 실내 장식으로 걸려 있다. 1차 하고 2차를
돌고는 네시가 넘어서 프린스로 3차를 갔다. 옛날 신촌 시절,
신촌에서 술 마시고 이대 입구까지 걸어가는 기분으로 갔더니
우리가 1차에서 술 마셨던 맥주집 종업원들이 3차 집에서는 손님이
되어 있다. 물론 우리랑 같이 막 주거니 받거니 마셨지. 저녁때는
네카 강에 가서 와인을 마셨다. 그날 밤 우리는 온 하이덱베르크
시내를 돌며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고, 떠들었고, 취했고, 또
마시고 떠들었다.
그러다가 동이 터 기차를 타러 역에 간다는 걸 아는 친구들도
있고 모르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지들끼리 얘길 하다 알게 됐는지
기차가 떠날 때쯤 이 친구들이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쫓아왔다.
제법 먼 길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서로 술이 좀 취한 채로
악수하고 "잘 있거라.""잘가거라." 그러다 보니까 무진장 슬펐다.
이 친구들을 알게 된 사연. 여행 100일째 되는 날, 밤에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해서 역에 내렸더니 한국 사람이 우리밖에
없었어. 근데 저쪽에 우리말로 얘기하는 사람이 있더라고.
유학생들이었는데 숙소를 구한다니까 아, 우리가 구해주겠다고 그래
가지고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좀 비싼 호텔에 묵게 된 거야.
그 전에 김대중 씨가 왔을 적에는 학생들이 스물 두 명 모였는데
나는 스물여섯 명이, 그것도 자진해서 모였단다. 정치학 전공하는
유학생이 막 불러모은 거다.
'꼭 들러야지' 했던 아루리스부르크를 결국
포기했다(아우리스부르크에선 프랑스 사람들이 살지만 아직도 독일
말을 쓰고 있단다. 2차대전 때 독일에게 점령을 당했기 때문이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모델 같은 독불 국경 마을이다).
하이델베르크 유학생들이랑 너무 재미있게 노는 바람에 하루를 더
머물었기 때문이다. 도시가 사람을 붙잡는게 아니고 결국엔 사람이
붙잡는구나.
이번 여행중 들른 파리의 마지막 장소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결국 하이델베르크에서 내 여행은 쫑을 친
것이다. 귀국까지 하루 반이 남았다. 일단 하이델베르크에 라면 한
박스를 사서 부치고 가봐야 될 데를 다시 한 번 챙겨보니 노트르담
사원이 일순위다.
노트르담 사원 맨 꼭대기까지 387개의 낡은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면 종류가 있고 커다란 종이 있다. 콰지모도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절규하며 매달여 울던 그종이다. 누구나 막 두들겨봐도
된단다.
가이드들이 밖에서 막 설명을 한다. 저게 예수님의 생전 모습이고
어쩌구하면서 쭉, 가이드 경력 칠년 된 사람하고 노트르담을 걸어서
올라갈 필요도 없었고 가자는 사람도 없었고 그래서 매번 그냥
지나왔다는 거다.
그런데 노트르담에서 바라보니까. 노트르담에 세는 강 가운데
놓인 시떼 섬 안에 우뚝 솟아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에펠탑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경치가 휠씬 좋다. 파리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데가 프랑스에서 세군데거든. 에펠탑, 노트르담, 그리고 몽마르트
언덕인데, 내가 프랑스에 있는 동안 세군데 다 올라가 봤지만
노트르담 위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제일 좋은 것 같다는 거다.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님 십자가 조각이 있단다. 거기다가
금장식을 막 해놨다. 예수님 왼쪽 손에 박힌 못이 노트르담 안에
있는데 그건 보물관이라고 따로 방이 있어서 그 안에 들어가야 볼수
있단다. 몰론 공짜가 아니라 돈 내고 들어가는 데다. 배낭
여행자들이나 관광객들은 거의 안 본단다.
노트르담 사원은 1996년 5월 30일, 내가 처음 찾았던 날도
공사중이더니 아직도 공사를 하고 있다. 껍질을 다 꺼내서 깨끗하게
하려는 스케일링 작업중인 거다. 그래서 요즘 관광 오는 사람은
노트르담 공사하는 겉모양을 보게 된다. 물론 안에서는 돈 내고
들어가서 구경을 하지만...! 찾아오는 한국 사람만 해도 하루에
수백 명인데 이렇게 몇 달씩 공사를 하면 한마디쯤은 써놔야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공사중 구경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콰지모도 백' 혹은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 백' 이렇게
한글로 써놔야지! 자주 올 수도 없고 평생에 한 번 있는 여행이
대부분일텐데 말이야.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파리에 오면 서울광장이라는 게 있다.
88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서 파리시에서 만들어준 거다. 게떼
역이라는 게 있거든(개떼가 아니라게떼!!). 지하철 타고 십삼
번에서 내려 까딸로니아(CATALOGNA) 광장을 찾으면 된다. 아무것도
없고 서울광장이라고 팻말만 붙어 있다. 일부러 권하고 싶지도
않다. 찾아가기가 힘들거든. 이런 것도 있다. 이거지 뭐. 작지만
이런 땅을 내주고 그랬으면 파리까지 오는 우리나라 사람들 한
번씩이라도 찾아올 수 있게 볼거리를 만드는건 우리 관광공사와
정부가 한 일이 아닐까?
언젠가 프랑스 어느 대학교에서 땅을 무료로 줄 테니까 각
나라마다 기숙사를 알아서 지으라고 그랬단다. 그래서 우리보다
후진국들도 그 대학교에 기숙사를 몇 동씩 지었는데 우리나라만 안
지었단다. 예산이 없어 그랬다는데, 그런 데 쓰는 돈을 왜
아끼는지, 그런데 쓸 돈이 왜 없는지 난 정말 궁금하다. 땅도
공자로 준대는데 집 잘 짓는 우리나라가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돈이 없다면서 기숙사 한 동도 못 짓느냐는 말이다. 영화 배우고
사진 배우고 디자인 배우느라 프랑스에 와있는 한국 유학생
아해들이 얼만데, 객지에서 힘들게 공부하는 그 아해들을 왜
기죽이는지 정말 화가 난다.
또하나 가볼 만한 데가 더 있다. 파리에 '소나무갤러리'라고
오십여 명의 예술가들, 특히 한국 예술가들이 주축이 된 거대한
작업실이 있다. 이번 여행중 파리에 들른 파리의 마지막 장소다.
2차 대전 때 탱크 공장을 국방부에서 불하받아 만들었다는
프랑스에서 외국들이 오면 우리도 이런 작업실이 있다는걸
구경시켜주고 그러는 데다. 소나무 갤러리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소나무가 우리나라 나무이기 때문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축이고
회장도 우리나라 사람으로 작품사진하는 김성태씨다
가서 보니까 프랑스 사람들은 다 빠져나갔고 불가리아나 폴란드
같은 딴 나라 예술가들이 작업들을 하고 있다. 함께 와인도 마시고
생일이면 파티도 열어주고 아이들 문제도 상의하고 불어도
가르쳐주고 자전거도 가르쳐주고 그러다는데 아주 보기가 좋다.
바람직한 예술가 공동체다. 실제로 거기 회원들은 자기 분야의
중견들이고 다들 나름으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란다. 아주
아마추어들 작업실은 아닌 거다. 내가 간 날은 누드 크로키를 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네들끼리 소그룹 공부를
하기도 한단다. 우리나라와 좀 다른거 하나는, 누드모델이 가릴
생각을 전혀 안하고 자기 맘대로 왔다갔다한다는거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외국인이 있다고 어색해하거나 그런 게 전혀 없다.
예전 같으면 내가 먼저 민망해서 눈을 다른 데로 돌리거나 했겠지만
나도 여행 다니면서 그 새 벗은 아해들을 보고 다닌 관록이 쌓여서
아주 자연스럽게 대처를 했다는 거 아냐? 그렇다고 뭐 누구 보기를
돌같이 한 건 아니고.
에필로그
배낭여행, 100일만 하면 전유성 만큼 한다
뭐 사왔느냐, 어떻게 놀고 왔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곤 했다."당신 배낭 여행에 대해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아냐? 한 번 가봐!"
배낭여행은 열한 시쯤 호텔에서 느직하게 일어나 널널하게
쇼핑이나 댕기고 그러는 여행이 절대 아니다. 20킬로그램 이상되는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 하루 네 시간에서 열 한시간을 걷는
고행이다. 카페나 식당에 들를 시간도 없다. 호텔에서 묵고 맛있는
것만 찾아 먹는 여행하고 전혀 다르다.
백일을 채우고도 안오겠다고 작정하고 떠나 103일 만에 돌아왔다.
결산을 해보니 일인당 450만원씩을썼다. 뱃삯하고 비행기표
스폰서가 있었던 덕분에 별로 돈을 안 쓴 것이다. 13박 14일 간
사랑의 유람선을 타고 한 여행은 그 나름으로 재미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진짜 배낭 여행이라곤 할 수 없다. 배에서 내린 뒤
석 달 동안은 정말 강행군이었다. 야간열차에서 38일을 자고 학교
강당, 대학기숙사, 캠프장, 유스호스텔 같은 데를 주로 돌아다녔다.
하루 숙박비가 2만원 돼도 비싸서 못 같다. 식사도 바케트 같은 거
사다가 잼 발라 먹고, 돈 7만원을 아끼기 위해 비행기 대신 왕복
4시간 넘는 완행열차를 타기도 했다. 유명하다는 매장 문전에도 안
가본 건 목적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생스러웠지만 어차피
고생하기로 마음 먹고 떠난 여행이 아니더냐. 똑같이 고생하고,
같이 구겨져서 잤지만 우리 부부와 일반 배낭여행자들의 차이가
있었다면 우리는 아주 '기름지게' 먹고 다녔다는 점이다.
미령이가 요리에 취미가 있고 음식에 호기심이 많아 식사 한끼
정도는 꼭 그 나라의 음식을 먹어보자고 작정을 했다. 교통비를
아끼려고 몇 십리를 걸어 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그 지방의 특색
잇는 음식이 보이면 돈을 아끼지 않고 먹었다. 짤즈브르크에서는
비프스테이크, 독일에서는 소시지 요리, 프랑스에선 케밥,
헝가리에서는 우리 육개장 비슷한 헝가리씩 수프, 그밖에도
스페인의 새끼돼지구이, 노르웨이의 청어초절임, 바이킹 카레요리
등등 많은 전통음식들을 맛있게 먹었다. 가장 특이했던 건
스위스에서 먹어본 뽕뒤라는 음식이었다. 샤브샤브와 비슷하게
고기를 꼬쟁이에 끼워서 건져 먹는데 육수에도 데쳐 먹고 치츠에도
튀기고 그러는 거다.
돌아다니다가 피곤이 극에 달하고 기름진 음식에 질리면 월세로
얻어놓은 파리의 아파트를 찾아 휴식을 취하고 다음 여행지에 대한
정보 수집을 하며 중국 시장에 가서 배추, 무, 멸치액젓 같은 걸
사다가 김치를 담가 먹기도 했다(이건 물론 미령이가 했지).
우리 부부가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끓었고
파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보름이나 이십 일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파리에 돌아왔다. 하면 주변의 유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이틀이고 사흘이고 계속 마시고 놀았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사실 관광지나 볼거리가 주는 묘미보다는 그곳에서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인 것
같다. 배낭여행의 묘미가 바로 그런게 아니겠는가. 발길 닿는
곳에서 먹고 자고 모르는 사람들고 만나서 수다 떨고 마음 맞으면
함께 어울려 술 한잔하고... 그러나 외국에서 만나는 우리
동포들이야 반갑고 살갑기가 말할 것도 없다. 그들과 어울려 고달픈
이국생활에 그리운 고국 얘기에 밤을 밝히느라 술도 원없이 먹었다.
많이 구경해보려 했지만 한 도시에 하루 이틀이 고작이다 보니
수박 겉ㅎ기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나가는 게, 나가서
직접 보고 오는게 백번이고 낫다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 거기
사람들은 물론 내가 왔다 간 거 모를 거다. 감쪽같이 다녀왔으니깐.
여행을 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 사람들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대주의에 빠져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수시로
했다. 물론 외국 나가서 심한 추태를 부리는 건 곤란하겠지만
적어도 외국여행을 한다면 우리의 정서랄지 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주는 그런 민간외교사절로서의 자부심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궁하다고는 해도 우리 호주머니 사정이 훨씬
나은 편이니까 기특한 배낭여행 동지들을 만나면 아낌없이
호주머니를 털었다. 학생들이 오랜만에 배불리 먹고 기운을 차려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도 많은 우리 것을 알려주고 온다면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떠나기 전에 확실히 정한 게, 미술관에 가면 내가 어릴 적
미술 책에서 본 것만큼은 진품으로 확인하자는 거였다. 미로의
비너스나 모나리자의 미소 같은, 그래서 피카소의 그림과 조각들을
내셔널 갤러리, 또 무슨 미술관에서 오리지널로 빠짐없이 보고
왔다.
또 책에서 본 대로 빈 전화기에선 '솔' 음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노트르담 성당 안에 예수님이 못 박힌 십자가 조각하고
왼손에 박혔던 못이 실제로 있는지, 결국 그런 것에 대한 확인
작업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갔다 와서 반성한 거 한가지는 우리가 그 동안
경복궁이나 덕수궁을 열심히 안 다닌 게 그렇게 후회되더라는
것이다. 국전을 안 가본 지가 언젠데 외국 미술관을 찾아다닌다는
게 우습잖아. 그래서 빈에서 스테판 궁전을 못 본 대신 서울 가서
경복궁. 덕수궁 구경이나 가자고 하던 처 후배한테선 왜 아직까지
연락이 안 올까.?
일년 반쯤 후에 우리는 아프리카로 다시 떠날 예정이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냥 돌아다닌다는게 좋은 거지.
우리가 지구에 살면서 대한민국에만 있었다는 것보다는 여러 군데
있아봤다는게 더 낫지 않겠어? 세계화란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구 요새야 우리도 국제 결혼을 많이들 하지만
옛날에는 얼마나 이상하게들 봤어. 그렇게 세상은 빨리 변하는
거라고. 나중에 우주시대가 오면 이런 말이 나올지도 몰라."걔가
글세 화성놈이랑 붙었대" 목성 남자들이 뒤끝이 그렇게 안 좋대며?"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는데 여행이 좋은 거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서 못 간다는 사람도 많다.
바쁜사람에게 "바쁘지만 시간 내서 여행 좀 다녀오세요"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행하면서 느낀게 있다면 시간은 남들이
내주는 게 아니라 본인이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바쁜 사람들을
불러다 쓰려고 그러는 게 이 사회잖아. 그러니 만큼 바쁠수록 더
시간을 만들어 자기를 위해 써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젊은 배낭족 아해들이 보통 40일정도를 여행하는데 자기 인생에서
40일은 정신적인 양분을 축적하는데 충분한 시간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힘이 달려서라도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황인용
씨도 언젠가 유럽여행 티켓이 한 장 있었는데 시간이 없어 차일피일
썩힐 뻔하다가 나의 부채질에 힘을 입어 무리를 해 떠났다. 와서는
정말 좋아했다. 가봐야 좋은 줄 안다. 나도 어쨌거나 라디오
텔레비전 프로다 팽개치고 갔고 미령이도 판 내자마자 떠난 거거든
이사하고 사흘만에 갔으니 황당하긴 하지만 방송을 하는 사람으로서
경험이 풍부한 것도 나쁘지 않고 인생살이에 귀한 체험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여건을 따지면 평생 못 간다.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가는게 좋다. 느끼는 것도 많고 얻어오는 것도 많은 법이니까.
정말이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떠나라. 떠나고 볼일이다.
나이 마흔이 넘고부터는 시간이 더 빠른 것 같다. 노들강변
봄비도 나무 휘휘 눌어진 가지에 무정 세월의 한 허리를 칭칭 동여
묶어 둘까나.
마드리드에서 남아 있던 지하철표를 주던 현정이 후배, 이틀 동안
무료 가이드해주고 물건값도 깍아준 헝가리의 이한기. 양쪽에 군용
수통 찬 배낭족 남자 아해놈, 선뜻 와인 여섯 병을 사온 성남훈,
온갖 도움을 아끼지 않은 함혜리, 정갓집 김치를 사다 주며 떠나기
전에 저녁을 사준 이성미, 소나무 갤러리의 김성태, 부러워했던
이홍열, 밤 늦게 찾아와 여비에 보태 쓰라고 봉투를 놓고 간
이필주, 카메라 렌즈를 빌려준 안성남, 가끔씩 전화해주던 전준용,
서울을 비운 동안 학교종이 땡땡땡을 보살피던 박종훈, 종호 형제,
제임스 딘 사장 주병진, 보나마나 먹고 싶은 것 준비해주실 장모님,
그리고 이모님, 무엇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보고 싶은 엄마, 파리
몰랭루즈의 신근수와 그 부인 마담 신, 안부 전화 끝에 원고
물어보던 이진아, 꿈에 세 번이나 보이던 임재학, 가라오케에서 술
사주고 2차 가야 된다고 우기던 영국의 전영욱 사장, 방값 외상
지고 온 이태리 한강가든의 남 사장, 유레일 패스 공짜로 준
서울항공사 정형욱 사장, 필름을 왕창 조달해준 한국후지필름과 그
회사 홍보실의 박진선, 모두 잘돼야 될 텐데. 끝
부록
유럽 가기 전에 봐야 할 영화 32가지
내가 '영화에 관한 백과사전'인 정종화 씨한테 이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한 이유는 이런 정보가 필요하단걸 여행중에 절감했기
때문이다.
유럽엔 유명한 소설이나 영화에 얽힌 얘기들이 어딜 가나 널려
있잖아. 파리하면 '노틀담의 곱추'가 생각나고, 로마 하면 '로마의
휴일'이 떠오르고... 이런 식이지. 하지만 대부분이 몇십 년 전
작품이고 보니 막상 나가서는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더라구. 정말로
맘 먹고 갔는데 기억 속의 명장면들을 현장에서 확인하지 못하고
오면 손해가 막심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유럽여행 갈 계획이 있다면
여기 나오는 영화들 정도는 미리미리 봐두자 하는 거다. 장담하지만
여행 재미가 틀림없이 몇 배로 늘어날걸??!!!
유럽 가기 전에 봐야 할 영화 32가지
정종화(영화연구가)
유럽
내가 유럽을 처음으로 본 것은 전유성이 6세이던 1955년,
폴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문호 헨릭 센키비츠 원작의 '쿼바디스'와
헵번의 데뷔작 '로마의 휴일' 속에서였다.
'쿼바디스'는 비록 치네치타 촬영소에서 세트로 촬영했지만
로마의 대군의 개선을 비롯하여 폭군 네로의 호화찬란한 궁중
가무와 그리스도의 대학살, 화염에 싸인 로마의 불타는 시가 등
철저한 고증으로 로마제국의 운명과 흥망을 재현시켜 로마는 하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로마의 휴일'은 '쿼바디스'와 달리 1953년의 로마 풍경을 영화로
구경하게 해주었다.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라는 아피아 가도는 기원전 312년에 군사용으로 건저낸 도로로서
소나무의 가로수가 아름답다. 헵번과 펙이 음료수를 마시는 카페
구레토는 스페인 광장 근처에 있다. 100년대에 문을 열어 바이런,
비제, 리스트, 바그너가 단골 손님이었고 '톰 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과 서부의 왕자 버펄러 빌도 필적을남겼다.
네오 리얼리즘의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가 감독한 1948년의
'자전거 도둑'은 전쟁으로 얼룩진 로마 거리를 배경으로 비참한
서민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모처럼 일자리를 구한
아버지가 잃어버린 자건거를 찾다가 오히려 자전거 도둑이 되어
처절한 좌절을 아들과 맛본다는 강렬한 영화이다.
로마역을 배경으로 메리라는 유부녀가 우연히 만난 지오바니와
하오 6시 40분부터 8시 30분까지 1시간 50분 동안 사랑을 나누다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종착역'과 소피아 로렌이 러시아행
기차를 타고 가는 '해바라기'의 정거장도 로마역이었다.
나폴리를 중심으로 한 소렌토, 카프리 섬, 폼페이 유적 등을 남부
이탈리아의 관광 중심지라 밝은 태양과 짙푸른 바다가 조화된
풍경이 아름답다. 나폴리를 배경으로 한 '여수'(September
Affair)는 연애영화의 극치이다.
운하와 곤돌라와 물의 도시베네치아의 아름다운 풍광 위에서
펼쳐지는 '여정(Summertime)은 캐서린 헵번과 '닥터 지바고'의 감독
데이비드 린이 4개월 동안 현지에서 로케를 했다.
베네치아는 117개의 섬을 378개의 다리로 연결해 놓은 독특한
형태의 도시로 '007 시리즈' 2탄인 '007 위기일발'의 화려한
라스트가 아로새겨진 곳이기도 하다.
파리
새로운 다리라는 의미의 퐁뇌프는 1604년에 만들어져 파리에서
가장 오랜 연륜을 자랑한다. 영화 '퐁뇌프의 연인들'의 어두운
절망과 애잔한 희망이 교차되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원래 풍자와 포도밭이었던 몽마르뜨 언덕은 순교의 언덕이란 뜻을
가졌는데, 유명한 뮬랭루즈가 있는 예술의 마을이기도 하다. 영화
'뮬랭루즈' 는 1952년작으로 어렸을 때 계단에서 떨어져 난쟁이가
된 화가 로트랙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로트랙이 그린 뮬랭루즈는
미술사에 남는 걸작으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파리의 수호신인 노트르담 대성당은 안소니 퀸이 추한 콰자모도로
나온 '노트르담의 꼽추'라는 영화로 더욱 유명하다. 이 성당은 파리
중심지를 흐르는 세느강의 한 섬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서기
1163년에 기공되어 약 1백년 후에 완공되었다. 중세 고딕 건축의
걸작으로 정면에 솟은 두 개의 탑 높이는 69미터, 중앙의 둥근 창이
직경이 10미터나 된다. 나폴레옹 황제가 1804년 이곳에서 대관식을
했다.
18세 소녀 프랑스와 사강이 쓴 화제의 소설을 영화한 '슬픔이여
안녕'도 원작 속에 묘사된 남쪽 리베라 해변과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을 직접 촬영해 담고 있다.
안개 짙은 세느 강변에 사는 미국인 부부에게 갑자기 찾아든 유괴
사건을 그린 서스펜스 드라마 '파리는 안개에 젖어'도 보고 가는 게
좋겠다.'태양은 가득히'로 유명한 르네 클레망 감독이 파리의
갖가지 풍물을 신선한 연출력으로 인상 깊게 묘사했다.
파리는 우리나라 영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최초로 파리를
도케한 1960년의 '길은 멀어도'는 최무룡과 김지미가 나오는데 주로
세느강과 생토노레 거리와 뤽상부르 공원에서 촬영된 작품이다.
정동환이 화가로 나온 '몽마르뜨 언덕의 상투'같은 작품도 있었고,
정인엽 감독의 파리 애마'도 볼로뉴의 숲에서 푸르름의 파리를
아름답게 보여주었다.
영국과 독일 그리고 빈
1955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상영될 때 '애정'이란 타이틀을 달아
뉘앙스가 야릇해진 영화 '폭풍의 언덕' 원작자 에밀리 브론테가
요크셔 지방의 가혹한 황야에서 친구 하나 없이 그날의 일상생활과
싸우면서 빚어낸 열정의 작품을 영화화한 것으로,'벤허'의 감독
월리엄 와일러가 직접 요크셔 지방을 로케하여 히드클리프와 캐시의
격렬한 사랑을 그려냈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작품상을
다퉜지만 흑백촬영상을 받는 데 그쳤다.
여화 얘기는 아니지만, 세익스피어의 경우 작품의 무대를 영국의
도시에서 찾아보기는 힘들다.'햄릿'은 덴마크,'로미오와
줄리엣'은 이타리아의 베로나,'오셀로는 베니스 공화국,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토마스 하디의
'테스'는 영국의 남부를 배경으로 했고, 스콧의 '흑기사'와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가 안개 깔린 런던의 골목을
묘사했다.
에이레로 불리우는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는 더블린의
곳곳을 촬영한 '심야의 탈주'가 있고, 남부 뉴우조스에서 로케를 한
존 포드 감독의 '아일랜드의
연풍'도 봐둘 만하다.
"나는 복수를 하고 사랑도 했다. 역사는 사랑하는 연인에게는
냉혹한 것이다"'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의 마지막 대사다. 레마르크는 1929년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발표했으며 1915년 '개선문' 그리고 1954년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내놓아 모두 영화화되었으나 동과 서로
갈라져 있을 때라 미국의 자본으로 미국에서 제작되었다.'사랑할
때와 죽을 때'만이 구서독의 바이레른 주에서 촬영을 했을 뿐이다.
독일 남부에 있는 하이델베르크는 '황태자와 첫사랑'을 촬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베를린은 통독 후 박광수 감독이 안성기와
강수연을 대동하고 '베를린의 리포트'를 로케한 곳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는 빈을 중심으로 일찍부터 음악이 발달한 나라 음악의
도시 빈은 2차대전 후 4개국 관리하에 있었는데, 이때의 모습은
영화 '제3의 사나이'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낙엽이
떨어지는 가로수길의 대원경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 라스트
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티롤은 오스트리아의 전형적인 산악지대로 도레미송과
에델바이스로 유명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장소.
네들란드인과 유태인의 혼혈아로서 2차대전 중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수용돼 처참한 희생물이 된 13세 소녀 안에 프랑크가
생전에 남긴 일기를 영화화한 '안네의 일기'도 보고 떠나는 게
어떨지. 안네가 숨어 살았던 곳은 이제 관광지로 유명해졌다.
장구한 역사만큼이나 다양하고 또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워온
유럽의 모습을 영화에서 확인하고, 영화사의 명장면들이 아로새겨진
곳들을 찾아본다면 여행의 재미가 찾아본다면 여행의 재미가 몇
배로 늘어나지 않을까.
추천의 글
10년을 계획한 전유성식 유럽 살아보기
이규형(작가/영화감독)
"마지막 날엔 진짜 오기 싫더라."
진짜 아쉬운 감정을 가지고 아쉬운 음성으로 그렇게 말했다. 난
속으로 무지 놀랬다. 유성 형은 자기감정을 좀체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전유성을 웃겨보기라는 프로그램이 나올 정도 아닌가.
물론 이 사람이 웃는 걸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웬만큼 좋으면
시큰둥하게 으응∼하는 정도. 난 지난 세월 거의 같이 살다시피
하면서도 이 형이 진짜 좋아하는 걸 딱 두 번밖에 못 봤다. 그
하나가 숱한 화제를 뿌렸던 전유성식 컴퓨터이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지금 내가 놀라고 있는 전유성식 유럽여행이다. 혹시 이 책
제목이 코믹하게만 여겨져서 알맹이가 어떨까 불안한 사람은 맘놓고
통독하시라. 이것이 바로 전유성식 유머다. 웃기면서 세상의 허점을
쑤시는 비수 같은 한마디 한마디. 이사람, 대충 좋았어도 재미있는
얘기를 좔좔 해대는 사람인데 진짜 좋았다고 그럴 땐 알아보는 거
아니겠습니까요?
10년 전에 내가 유럽을 갔다 와서 소위 유럽여행기라는 진부한
책을 썼는데 원고를 다 써보니 500매밖에 안 됐다. 출판하는 분은
아시겠지만 1000매는 돼야 책 낼 수 있는게 상식이다. 끙끙 앓고
있을 때 유성형이 단숨에 나머지 반을 다 써줬다. 유럽에 가본 적도
없는 사람이 나랑 호텔방에 들어가 이틀 만에 좌좌좌 쏟아낸 거다.
거짓말 같겠지만 진짜인 이유가 있다. 난 한 번 갔다 왔을 뿐인
유럽이건만 이 형은 지난 세월 주위에 갔다. 왔다는 거의 모든
사람의 얘기를 경청해서 머릿속에 저장해두고 있었고 엄청남
독서량으로 그 나름의 유럽관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파리의
어떤 거리 얘기를 하면 그 형은 그 거리 바로 뒤의 둘째 골목에
있는 담배가게를 아냐고 되묻는 거다. 가본 사람보다 훨씬 가본
사람 같은 그의 유럽 이야기. 이게 바로 전유성식 개그다. 더
믿어지지 않는건 그 책 (만국청춘스케치)기 88년에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중에 하나였다는 사실. 내 원고가 아니라 형의
유럽여행(?) 이 재미있어서 말이다.
이제 그 전유성이 진짜로 유럽을 보고 유럽 책을 썼다. 여러분의
주목해줘야 할 점은 이 사람이 유럽여행을 가본 것이 아니라
유럽에서 살아본 것이란 점이다. 파리에 집을 얻어 놓고 일도 하고
부인과 시장도 보고 하면서(때론 여행도 하면서)유럽에서 최소한
생활해 보면서 유럽을 전유성식으로 정복했다는 점이다. 여행한
것과 살아본 것은 그 느낌, 깊이가 이 글을 쓰고 있다.'아! 역시
전유성표구나...'
너무 미안한 건 옛날에 빚진 만큼 왕창 원고를 못 써주고 겨우
발문에 그친다는 점이다. 읽어보니깐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완벽하게 재미있는 내용이다. 그러 수밖에 없는 비밀을 나는 알고
있다. 주위에서(여행사만 해도 수두룩) 유럽여행 공짜로 한 번 안
갈래요 할 때마다 그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 전유성이었다. 여행이
아니라 살아볼 능력이 될 때까지 안 간다며 10년을 반항(?) 했던
거다. 형은 계속 중얼거리며 이 책을 썼을 것이다."아... 진짜
오기 싫더라..."

=======================================

반응형

'책,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낚시 완벽 가이드  (0) 2023.03.26
날지 않는 새  (0) 2023.03.25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전유성] 01  (0) 2023.03.25
노자를 웃긴 남자  (0) 2023.03.25
논리 시작 오류 끝  (0) 2023.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