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프롤로그
5월11일부터 8월24일까지, 103일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왜 갔는가?
가보고 싶었기 때
문이다. 남들도 다 가니까 갔다 오고 싶어서 갔다 왔다. 멋대가리 없는 대답이지
만 사실이다.
내 어렸을 적 꿈은 DJ였다. 그보다 더 어렸을 적 꿈은 여행이었다. 해외여행
이 금지돼 있던 시
절,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김찬삼 아저씨는 나의 영웅이었다. 나는 몇 권이나
되는 김찬삼 세계
여행기를 달달 외우다시피 했다. 나중에 영화감독 이규형이가 유럽여행 갔다
와서 세계일주기를
낼 때 원고지 200매가 넘는 사진설명을 하룻밤 꼬박 세워 붙여줄 정도였다. “
여긴 파리 근교에
있는 OOO잖아, 기억 안 나?” “아, 이건 스코틀랜드의 OOOO궁전이네, 이 궁
전이 언제 지어진
거냐면 말야, 어쩌구!”이래가면서. 유럽 근처에도 안 가본 내가 말이다.
1년쯤 준비를 하면서 여러 가지 책도 보고, 갔다 온 사람도 만났다. 하이텔의
여행동호회 ‘세
계로 가는 기차’의 자료들은 틈날 때마다 인쇄를 해서 참고했다. 사진도 본격
적으로 배웠다. 여
기저기 글을 쓰다 보니까 남의 사진에 내 글이 따로 노는 게 보기 안 좋았거
든. 좌우간 엄청나게
찍어댔다. 때마침 후지필름의 광고모델 제의가 있어서 미친 척 필름을 5백 통
만 달라고 했더니
진짜로 주더라고. 그거 받아서 다 썼다.
미령이와 둘이 떠나기로 한 건 결혼할 때 한 약속 때문이다. 우리 자신을 위
해 좀 놀면서 세상
을 살자고 약속하면서 해외여행도 함께 다니기로 했던 것이다. 미령이는 선천
적으로 외국어에 소
질도 있지만 가기 전에 불어를 개인지도 받은 덕분에 여행을 떠날 때쯤엔 ‘
영어 중국어 능통,
불어 일어 약간’수준이 됐다. 걸어다니는 통역기를 곁에 두게 된 거다. 그럼
난 놀고만 있냐고?
나도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어 5개 국어를 그 자리에서 어느 나라 말
인지 구분은 한다.
뿐만 아니라 8개 국어로 묵비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그럼 됐지 뭘.
문제는 기간이었다. 얼마나 다녀와야 되는가? 유럽여행 가는 아해들을 보면
보통 40일 정도를
가는데 그렇게 똑같이 가서 뭘 보고 느끼며 얘기하겠는가, 한 100일쯤은 보고
와야겠다. 체력적으
로도 젊은 아해들을 당해내려면 기본 두배는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이 쉽지, 내가
TV3개, 라디오 3개를 하고 있었고 미령이가 TV2개에다 세 판을 막 내놓은
상황에 서울방송의
‘트로트 대행진’까지 진행하고 있었으니 세 달 이상 시간을 뺀다는 건 무모
한 계획이었다. 주
변에서도 걱정했지만 고민 끝에 마음을 정했다. 4월까지 하고 다음 개편에 맞
춰 서로 그만두기로
약속을 한 거다.
미령인 약속을 지켰다. 안 하겠다고 강력히 얘길 했는데 난 그러지 못했다.
마음속으로만 관둬
야지 하다가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관두지를 못하고 다시 6개월을 더 진행하
게 됐다. 마누라에
겐 “다음 개편 때 무조건 하지마! 우리 유럽 가야 되잖아!”해놓고는 나만 다
시 진행을 하게 됐
으니 졸지에 배신자가 되고 만 거다. 내내 미안해하다가 결국 막판 결단을 내
렸다. “까짓 거, 못
먹어도 GO다!”그런데 막상 떠나려는 순간 미령이 판이 나와버렸다. PR문제도
있고 해서 할 수
없이 내가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떠났다. 유럽여행 103일 동안 15개국을 돌았으니 나라마다
일주일씩 가서 본
셈이다. 그러니 무슨 수로 그 나라를 얘기할 수 있겠는가. 그냥 길만 알고 온 거
다.
그래도 하나 건진 건 있다. ‘유럽. 거, 별 거 아니더라’는 거다. 여행을 하
면서 우리가 그 동
안 막연하게 가졌던 외국인에 대한 고정관념, 알게 모르게 우리를 비하하고 그
아해들을 근사하
게 여긴 우리의 시선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보려고 애를 썼기 때문이다.
배낭여행자들 대
부분이 프랑스 애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영어를 안 쓴다고 얘기들을 하지만 그
건 사실 말짱 구라
다. 모르니까 안 쓰는 거다. 실제로 파리 아해들도 영어 아는 아해들은 망설임
없이 잘 쓴다. 또
파리에서 지팡이 짚고 길거리를 괜히 왔다갔다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근사
해 보이지만 사실
20평도 안 되는 좁은 집구석에 박혀 있기 갑갑해서 밖으로 꾸역꾸역 나오는
거라는 걸 알았다.
문화유적뿐 아니라 나라마다 그 나라 아해들의 사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까 이런 식으로 틀
리게 생각해온 많은 부분들이 제대로 보였다.
물론 걔네한테 괜찮은 구석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 스페인이나 몇몇 동네 아
해들의 경우 실지
로 흠잡을 게 없을 정도로 정말 친절했다. 그러면 우리 안 친절하냐 이거다. 우
리 민족도 알고 보
면 무척 친절한 민족이었다. “지나가던 과객인데 날이 저물어 하룻밤 유할까
하오”이러면 “변
변찮지만 들어오세요” “누추하지만 안으로 드시지요”이러면서 흔쾌히 사랑채
를 내주던 민족이
었는데 왜 그쪽만 친절하다 대단하다 그리고 우리 쪽은 밤낮 불친절한 것만
강조하는냐는 거다.
차라리 옛날엔 우리가 얼마나 친절했냐, 그때로 돌아가면
더 근사할 거다, 하는 식으로 가지는 게 내 생각이고 깨달음이다. 이 책이 특히
유럽여행을 할 계
획이 없는 사람들, 유럽에 영영 안 가볼 사람들에게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직접 가서 확인해
볼 수 없으니 좀 허풍을 떤들 어떻겠느냐 싶어서다(전유성이 말은 도무지 믿을
수 없으니 내 눈
으로 꼭 봐야겠다는 분이 있다면 말릴 수야 없지만).
1997년 봄
전유성
‘잔돈 줘, 임마’는 불어로 꼭 알아두자
김찬삼 세계여행기를 읽으면서 말 그대로 꿈에 그리던 도시, 파리. 이번 여행
의 베이스 캠프다.
파리에 본부를 정하고 약 보름씩 왔다갔다하자고 원칙을 정했다. 여름방학이라
한국으로 돌아가
는 한 유학생 아해의 방을 빌려 숙소를 정하기로 했다. 혼자 파리에서 보름쯤
지내는 동안 현지
사정을 익히면서 촬영팀이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배낭여행에 웬 촬영팀이냐
하면, 우리 부부가
유럽으로 여행을 간다니까 이왕 가는 거 비디오로 좀 찍어서 방송으로 내보내
자는 데가 세 군데
있었다. ‘사랑의 유람선’으로 알려진 배를 타고 로마에서 출발해 코펜하겐까
지 간다는 거다. 물
론 뱃삯, 비행기삯은 프로덕션에 대고.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승낙을 했다.
덕분에 13일 간의 유람선 생활이 찍히고 국내에 방영되었다. 일이 섞이면 재
미가 없다라고 생
각했는데 비행기삯, 뱃삯에 눈이 어두웠던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파리로
출발했다. 나 혼자
먼저! 말로만 듣던 몽마르트 언덕에도 올라가보고 개선문도 가보고 에펠탑도 구
경해야지 하며 계
획을 세웠다.
나는 참말이지 평생 파리에 못 가볼 줄 알았다. 소싯적 “술레 봉줄 파리...”
하며 부르던 노래.
(이 노래가 사실은 술레 봉줄이 아니고 술레 시엘드... 이렇게 시작한다는 걸 나
는 30년도 더 지나
서야 알았다. 우리 어릴적에야 왜 그런 노래 많았잖아. 영어가사를 소리나는 대
로 들리는 대로 한
국말로 적어서 외우고 다니던.) “왕십리 똥파리 파리의 똥파리!”하던 파리. 정
말 파리에 똥파리
가 많은지도 확인해보고 싶었다.
드골 공항에 내렸다. 우리 결혼식 사회를 본 이상영씨가 마침 그때 프랑스에
와 출판일을 하고
있어서 마중나온다고 했는데 중간에 연락이 끊겨 은근히 걱정이 됐다. 주워들
은 얘기로는 드골
공항에 내려서 줄 한번 잘못 서면 이상한 데로 빠져나간다느니 막 그랬거든.
아니나 다를까 드골 공항은 말대로 정말 엄청 복잡했다. 얼마나 큰지 출국선
과 입국선이 마구
헷갈려 공항을 몇 바퀴씩 돌았다. 얼굴 팔렸다고 나만 졸졸 따라다오는 사람들
을 본의 아니게 줄
줄이 이끌고 여유있는 척 걷느라 진땀이 한말은 흘렀을 거다.
불어라곤 미령이 회화 배울 때 어깨 너머로 주워들은 봉주르밖에 모르니 다저
녁에 아무나 붙들
고 아침 인사를 할 수도 없고, 길 하나 변변히 물어보지 못한 채 여기저기 헤
매고 다니는데 뚝심
좋은 아주머니 한 분이 마침 우리 앞을 지나가는 웬 중년신사를 붙들었다.
잡고 보니 내가 라디오 프로를 진행할 때 출연하신 적이 있는 하이텔 원로방의
유경희 회장이다.
뮌헨에 모임이 있어서 비행기를 갈아타러 가던 중에 헤매고 있던 우리 일행에
게 걸려든 것이다.
여기는 엉뚱한 길이라며 바쁜 와중에도 조목조목 출구를 일러주는 유회장님 덕
분에 간신히 길을
찾아 나가게 됐다. 민망했다. 필리핀에서 선탠하다 가끔 살 데는 사람도 있다길
래 별 놈이 다 있
다며 비웃다가 내가 그 꼴이 되어 2도 화상을 입은 적도 있지만, 그럴 경우엔
왜 꼭 내가 걸리는
지 참.
공항에서 나와 일단 몽마르트 언덕 부근에 있는 호텔 뮬랭으로 갔다. 뮬랭
호텔은 사장이 신근
수씨다. 국내 통기타 살롱이 막 생겨나던 즈음에 선데이서울 기자로 친분이 있
던 사이인데 열이
면 아홉은 실패한다는 이곳 파리에서 기반을 잡아 호텔을 경영하고 있다.
택시요금이 260프랑 나왔다. 100프랑이 우리 돈으로 만오천원이니가 4만원 가
까운 돈이다. 프랑
스 택시 요금은 미터기도 있지만 택시기사와 요금합의를 먼저 봐야 한다. 기사
가 트렁크에 가방
을 넣어준다고 기뻐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나라 기사보담 친절하다느니 이
따위 생각을 하덜덜
말아라. 다 이유가 있다. 무슨 이유냐? 짐 하나에 5프랑씩 받는다.
웬만하면 들고 타자. 택시요금 정말 비싸다.
잔돈이 없어 택시비로 500프랑짜리를 냈는데 무조건 “땡큐 땡큐”하더니
기사자식이 잔돈을
안 주고 가벼렸다. 잔돈 달라는 말을 알아야 달래지. “잔돈 줘, 이 자식아!”하
는 말은 불어로 꼭
알아두자! 한밤중, 한국말로 “엿먹어라 이 자식아!”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
게 부모님이 늘 그
러셨다.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
비행기 안에서부터 재수가 없더니 결국 파리에 내리자마자 두 번씩이나 덤태
기를 쓴 거다. 비
행기 안에서 원로방 유경희 회장님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날보고 자기 자리로
오라는 자식이 있
었다. 대화중이라는데도, 유회장님의 민망해하는 기색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손
짓을 하는 거였다.
유회장님이 돌아가고 나서 그 자리에 갔더니 자기 마누라하고 악수를 한 번 하
래나? 미친X!(여기
서 X란? 1. 놈, 2. 님, 3. 사람, 4. 당나귀)그렇잖아도 우는 아이를 달래는 애 엄
마 목소리가 더커
서 ‘차라리 아이를 울게 내버려두지 저러나’하고 짜증스럽던 판에 별 이상한
자식까지 기분을
더럽게 만든 거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유회장님한테 전화가 왔다. 마누라가 함께 왔냐 묻고
는 아직 안 왔으면
꼭 가볼 데가 있단다. 놓치면 후회한다는 유회장님의 추천지는 삐갈의 섹스숍!
집구석이 답답하니 밖으로 나올 수밖에!
파리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사방을 기웃거리다 보니 일없이 거리를 오락가락하
는 노인네들이 무
지하게 많다. 거리를 산책하는 노인네들이란다. 결혼해서 파리에 사는 윤정히 백
건우를 한때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파리 하면 유행의 도시오, 패션의 도시, 환상
의 도시, 예술의 도
시니 부러워하는 것도 당연하지. 세느 강 아래 흐르는 샹송, 미국보다 훨씬 근
사한 도시, 여러 가
지 상상의 도시, 가슴으로 머릿속으로 선망하던 도시였는데, 영화배우로 한참
잘 나가던 배우가
피아니스트와 결혼해 파리에 신방을 차리다니 역시 두 사람의 사랑의 힘은 대단
하다며 모두가 부
러워했다.
얼마 뒤에 흘러다니던 이야기는 백건우 부부 집에 누가 가봤는데 아파트가
스무 평 정도뿐이
안 되더라는 투의 입방아였다. 나는 30평에 살고 있는데 뭐 거기 가서 고작
스무 평에 산다고?
그러면서 낮춰봤다는 얘긴데. 말하는 사람 자신은 심리적으로 좀 보상이 됐는
지 어쨌는지 모르겠
지만 별 소용이 없는 게, 사실 이 나라는 전부 다 스무 평이다. 너나 할 것 없
이 그 정도뿐이 안
된다. 교외에 거의 별장이 있단다. 하지만 우선은 좁은 집구석에서 얼마나 답답
하겠어? 집밖으로
나올 수밖에.
특히 멋쟁이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들보담 훨씬 많이 눈에 띈다. 할머니들이
뭐하러 저렇게 길거
릴 돌아다니나? 했는데 해답은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많아서 그렇단다. 할머니
를 위한 프로그램
을 하나 만들면 히트칠 게 아니냐고 했더니 그러면 안될 거란다. 할머니 한 명
으로 열시간 혼자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몰라도.
사실 우리나라는 길거리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돌아다니는 걸 거의 보기 어
렵다. 그저 파고다
공원이나 남산 팔각정 같은 데서 우울한 모습으로 모여 있을 뿐이다. 노인을
우대해주는 정책도
없고 사람들도 좋게 보질 않는 분위기 때문이겠지만, 어쨌거나 슬픈 일이다.
생각해보면 젊은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것만 활기찬 거리가 아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길거
리에 많이 다니는 그런 사회가 이렇게 보면 훨씬 좋은 사회다. 프랑스에 노인
들이 이렇게 많이
돌아다니는 것, 나이 먹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건 이 나라가 복지사회
라서 그렇다고 얘
기들을 한다. 복지는 돈이 있어야 가능하겠지? 실제로 이 사람들 세금 내는 걸
보면 우리와는 비
교가 안 된다. 유럽이 거의 다 그렇단다.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면서도 자선단체
나 구호단체 같은
데 기부금도 잘 내는 편이다. 나도 여기 와서 이틀인가 사흘 만에 기부금 때문
에 된통 당한 적이
있다.
한번은 지하철에서 내리는데 흑인 세 명이 웬 쪽지를 들고 와 서명을 해달
란다. 뭔가 봤더니
유니세프에 기부금을 내라는 거다. “어디서 왔냐! 도와 달라”어쩌구저쩌구하면
서
서명을 하라고 그러는데 이름, 주소 그 다음이 금액이란다. 이거 얼마를 해야
되나, 여기 아해들
은 도대체 이럴 때 얼마씩 낼까, 천원 내면 욕먹으려나, 외사도 될까... 머릿속
으로 한창 통박을
굴리며 망설이고 있는데 한 놈이 웃으면서 원제로 제로란다. 100프랑, 만육천
원이다. 너무 많은
거 같아 망설이니까 얼른 값이 올라간다. 투제로 제로. 남들은 얼ㄹ마나 냈는가
대충 눈으로 훑어
보니 백프랑, 2백프랑도 적지 않다. 하는 수 없이 원 제로 제로하고 쓰고 그냥
갈려고 하는데(나
는 당장 받는 게 아닌 줄 알았다. 주소까지 썼으니 나중에 청구서가 집으로 오
는 줄 알았지)방금
전까지 웃던 자식이 인상을 확 쓰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거다. ‘더러운
자식들’하는 기
분으로 백 프랑을 냈다. 그런데 내 곁에 있던 이상영 씨는 원 제로만 쓰고 10
프랑만 내는 것이
아닌가? 인상을 쓰려는 그 녀석들한테 이상영 씨가 갑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면
서 원 제로 아니냐
고 했더니 10프랑도 내지 말고 그냥 가라는 거다. 웃기는 녀석들이잖아!
저녁에 목욕을 하다 또 황당해졌다. 욕탕 안에서 느긋하게 목욕하고 나왔는
데 물이 넘친 것이
다. 이 나라는 하수도 배수 시설이 최고라고 자랑하는데, 그래서 관광코스에까지
배수시설 견학이
들어 있다는데 호텔 화장실은 배수 시설이 없는 곳이 많단다. 물이 빠져나갈
곳이 없으니 마른
수건으로 엎드려 닦는 수밖에. 파리까지 와서 물걸레 청소 자세가 된다는 거, 이
거 열받는다.
‘길모퉁이 카페’는 길모퉁이마다 있다
프랑스는 일본처럼 카페도 집도 모두 좁다. 그래서인지 노천 카페, 길거리
카페들이 대부분이
다. 노상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열이라면 카페 안의
사람들은 반도 안
되는 데가 많다. 사실 여행을 떠나 오기 전에 카페 순례기를 책으로 한번 써볼
까 마음 먹기도 했
다. 개성 있는 카페, 사연 있는 카페, 재미난 카페들을 모아서 ‘전유성이 다녀
온 유럽 카페100군
데’하는 식으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될 것 같다고 바람도 넣었고 여러 군
데서 내주겠다고 하
면서 돈도 미리 주겠다는데 안 쓸 수가 있나? ‘멋진 안내서를 써야지’했다.
카페만 100군데 정
도 다녀보자. 미령이보다 먼저 파리에 가 있는 동안 하루에 두세 군데씩 보름
이면 30에서 40개
정도는 써놓을 수 있겠지 그랬는데 막상 와보니 그게 아니다.
특색 있는 카페들이 있나 유심히 찾아봤더니 몇 군데가 있긴 있었다. 각 나
라 관광객 손님들의
넥타이를 기념으로 받아서 천장에 매달아 놓은 몽마르트의 피아노 바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몇
몇 괜찮은 카페엘 가봤지만 우선 그 카페의 내력에 대해서 지금 일하는 사람들
이 잘 모를 뿐더러
“언제 개업을 했느냐”는 정도의 기본적인 질문에도 대답을 잘 못하는 것이었
다(질문은 내가 했
냐고? 현지 유학생을 통역사로 아르바이트 시켰지!). 뭔가 사연이 있는 게 분명
한, 그럴듯한 그림
을 보고 “저게 언젯적 그림이고 누구 것이냐”고 물어도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다. 베토벤이 앉
았던 자리라느니 헤밍웨이가 왔다 간 데라느니 하지만 주인을 만나 확인하기도
어렵고... 한마디
로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결국 포기를 하고 그냥 케페 그 자체를 즐기기로
했다.
우리와는 달리 여기 카페들은 커피 한잔을 먹어도 자리에 따라 요금이 다르
다. 길거리에 나앉
는 것이 가장 비싸고 그 다음이 창가, 가장 싼 게 서서 먹는 거란다. 국제전화로
미령이한테 얘길
하니 “그럼 안에서만 먹어!”한다. 와봐야 알지.
길거리도 자유롭게 앉되 마구잡이로 의자 탁자를 놓고 먹는 게 아니다. 카페
마다 단속경찰들과
약속을 해 길에 금 같은 걸 그어놓고 금바깥으로 나오면 벌금 딱지를 붙인단
다. 차 나르는 아해
들이 전부 나르는 구역의 사장이라서 꿈이 카페 사장인 젊은 아해들도 많단다.
희한한 건 햇빛이 쨍쨍하다가도 종업원들이 차양을 하나둘 내리면 2,3분 안
에 틀림없이 비가
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비가 내리다가 햇빛이 나면 거리 카페는 거의 다 만원
이 된다. 거리에 앉
아서 미니스커트 아가씨들을 보는 즐거움! 하긴 그래서 창밖 요금이 비싼 건지
도 모르지!
비싸게 주고 먹는 커피, 본전이나 뽑자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늙은이, 젊은 아
해 할 것 없이 카
페에 일단 자리 한번 잡았다 하면 무진장 오래 앉아 있다. 식사도 길거리에서
많이 하는 게, 이
자식들이 자랑하려고 그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는 사람 많이 만
날 때까지 죽치는
건가? 지나가다 쳐다보면 아주 흐뭇한 표정, “우린 이런 데서 먹는다”하는 얼
굴로 바라본다. 그
게 뭐냐고 물어보면 “비싼 거야!”하는 표정으로 말해준다.
사실 나는 파리에 갔다 왔다는 사람도 여럿 만나봤고 사진도 수없이 보면서
유럽을 동경해왔
다. 프랑소와즈 사강의「길모퉁이의 카페」같은 책은 제목이 너무 좋아 몇 번
이고 읽어보기도 했
다. 노천 카페 사진도 여러 군데서 봤다. 그때마다 길모퉁이에 카페가 한 개만
있는 줄 알고 정말
제목도 잘 지었구나 했는데 웬걸! 파리에 오니깐 길모퉁이마다 카페가 있는 게
아닌가!
그 흔해빠진 길모퉁이의 카페에 영업이 끝날 때까지 앉아 있어본다. 아무데
나 앉아 있어도 그
냥 좋다. 몇 시간이고 있어도 지나가는 사람을 보니까 심심하지 않다. 야외 카
페의 좋은 점은 종
업원들이 그냥 가게문만 닫고 퇴근한다는 거다. 눈치도 부담도 안 준다. 미리 돈
을 받았으니까 그
런가? 당연하지!
한국 사람들은 카페에서 만나면 한국에도 이런 길거리 카페를 만들면 되겠
냐고 물어본다. 꽤
진지하게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에선 매연 때문에 안될 것이고 지방 소
도시에서는 햇빛에
나가 앉으라면 땡볕 싫어하는 손님들이 가게를 부숴버릴지도 모른다고 몇 명에
게 얘기해줬다. 정
말 그러지 않을까? 길거리 카페가 사람들에겐 이래저래 인상적인 모양이다. 물
론 나도 마찬가지
지!
동전을 넣어야 고해를 들어주는 ‘자판기 성당’
시시콜콜한 얘기만 잔뜩 써놓은 어떤 책(제목은 잊어버렸음)을 보면, 자판기
를 제일 먼저 도입
한 데가 성당이라고 적혀 있다. 성수를 파는 데서 시작이 됐다는 것이다. 몽마르
트 언덕 한가운데
있는 사크르 쾨르(성심)사원에 가보면 고해성사를 하고 싶을 때 동전을 넣고
마이크로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신청하는 데가 정말로 있다. 돈을 넣으면 얼마 후 신부가 나와 신
자의 고해를 들어주
는 것이다.
이 사크르 쾨르 사원의 정면 상단에 보면 웅장한 석상 두 개가 마치 사원 전
체를 지키듯 버티
고 서 있다. 왼쪽이 잔다크고 오른쪽은 또 누구 상이라나? 하여튼 프랑스 사람
들이 제일 좋아하
는 남자 여자란다. 바라보고 있으면 저 엄청난 돌덩이를 어떻게 건물 꼭대기까
지 올렸을까 궁금
해진다.
파리엔 이 사원뿐 아니라 돌로 지은 집들이 굉장히 많다. 유럽이 거의 그렇
단다. 로마 같은 데
는 도시 전체가 돌 천지라고 할 만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게 돌멩이를
쌓아올려 지은 집
들이 많단다. 요새야 기계로 짓고 막 그러지만 그게 다 생각해보면 오직 사람
몸뚱이로 지은 것
들 아냐. 그러니까 혹시 이 집들 지을 때 황제 취미가 레고쌓기나 집 짓기, 노
예 부리기 이런 게
아니었을까? 저는 손끝 하나 까딱 않고 서민들은 좆나게 고생한 거지. 황제들
도 나중에 그 돌집
들이 관광지가 될 줄은 몰랐겠지!
돌집이 많은 이유는 흙으로 지어놓으니 한 덩어리 쌓고 돌아서서 다시 한 덩
어리 들고 가보면
비가 와서 뭉개져 있고 또 쌓고 돌아서면 뭉개져 있고... 그래서 할 수 없이 무
겁지만 돌로 지은
게 아닐까.
돌집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 무거운 집들을 지으면서 일꾼들이 얼마나 투
덜댔을까? 하는 생
각이 절로 든다. “내가 보기엔 기마상 이거 밑에다 둬두 되는데 위에다가 올
리는 이유가 뭐야?
누가 설계한 거야?”“지가 돌을 나르면 얼마나 날라봤어?”“이것도 말야,
조그맣게 만들어도
되는데 왜 이렇게 크게 만들었어? 여섯 명이 들게는 해줘야 할거 아냐!”이런
말들을 마구마구
내뱉으면서 말이다.
일꾼들 고생은 그렇다고 쳐도 이 많은 돌덩이들은 또 어디서 다 구했을까! 돌
집들을 볼 때마다
무지하게 궁금하다.
돌집을 짓는데 일꾼들을 모집하자 아마 많은 사람들이 모였겠지. 십장이 커
다란 돌을 자기 앞
에 갖다놓고 일꾼들을 대상으로 돌 들어보기 오디션을 시작했을 거야. 많은 신
청자들이 번호표대
로 돌 앞에 가서 힘을 써보지만 안돼. 그런데 어떤 비리비리한 청년이 나타나
자기는 그 돌을 나
를 수 있다고 말해. 십장이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니가 어떻게 그 돌
을 나르느냐”고 물
어. 그러자 비리비리가 “당신이 시키면 못 들어도 우리 마누라가 시키면 들
수 있다”고 대답을
하는 거야.
두 사람이 뭐라뭐라 계속 말을 주고받는데 잘 안 들린다. 왜 이렇게 갑갑한
가 하고 깨어보니
꿈이다. 어처구니없는 꿈을 꾼 거다. 날마다 돌맹이 집들만 보고 다니니 어느새
꿈에까지 돌이 보
이는 건가?
설계 전공한다는 유학생 하나를 만났는데 너무 말라서 내가 걱정스럽게 한마
디했다. “공사 맡
길 때 불안하지 않겠어?”몸이 부실해 보이니 부실공사 할 것 같아서다.
돌로 쌓은 우리 중앙청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을 볼 적마다 그런 생각이 든
다. 중앙청 부수는
데 찬성한 사람, 부수기로 결정한 이후 한 번도 후회 안 해봤을까? 지금이라도
돌아서면 당장은
배신자 소리를 듣겠지만 중앙청이 있는 한 영원히 그 이름이 남을 텐데.
오늘 드디어 돌집 사이 거리를 걸어가다 개똥을 밟았다. 그걸 파리에 온 신고
식이라고들한단다.
나흘 만에 이제야 파리에 온 것을 신고한 셈이다. 개똥 얘기하니까 하는 말이
지만 여긴 정말 개
끌고 다니면서 개폼 잡는 자식들이 무지하게 많은 나라다. 개가 순지해 보여서
불쌍한 나라. 크게
짖는 놈 하나 없고 눈치만 살살 살피는 개들.
그러고 보니 한가지 생각나는 게 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어”하는
사람을 데리고오면
개똥으로 무슨 약을 쓸 건지 엄청 궁금하네.
파리 지하철에선 표를 버리지 말자
프랑스엔 지하철이 워낙 안 가는 곳 없이 뻗쳐 있어서 지상교통이 그래도 한
결 숨쉴 만하단다
(지하로 가니깐 지하철, 전기로 가면 전철, 그럼 엘리베이터는 벽으로 가니깐
벽철인가?). 지하철
이 발달하면 우리도 자가용이 많이 줄어들 텐데.
우리 지하철 의자는 다 고정돼 있는데 파리 지하철은 스프링이 달려서 사람
이 일어서면저절로
공간이 되는 의자가 칸마다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자리 양보하는 놈은 없
지만 이 임시 자리
를 이용해 사람이 많으면 일어서고 없으면 앉고 하면서 혼잡을 줄인다. 그리고
우리는 먼 데 가
는 지하철이 더 빨리 끊기는데 여기는 더 오래까지 있다.
우리는 지하철 들어갈 때 표를 찍고, 나올 때 다시 자동으로 회수하는 식인
데 여기 지하철은
들어갈 때 한번 찍으면 나올 때는 다시 찍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표
를 아무렇게나 버
리다간 낭패를 당하는 수가 있다. 배낭여행 학생들이 그렇게 많이들 버렸다가
봉변을 당한다나.
한번은 우리가 지하철로 딱 들어갔는데 같이 간 함혜리 기자(이여자가 누구냐
면 서울신문사 기
잔데, 프랑스에서 유학한 적이 있고 지금은 기자클럽 연수생으로 뽑혀서 프랑
스에 와 있는 여자
다. 기자로서 온 게 아니라서 아무 공부나 해도 되거든. 월급은 월급대로 나오고
기자클럽서 돈도
나와 아주 여유롭게 자기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있더라고. 우리 아파트도 구해
주고 나를 많이 도
와줬다. 왜냐? 일단 프랑스 말을 잘하기 때문이지)가 지하철을 타다가 철로변에
표를 떨어뜨렸다.
할 수 없이 내 표를 대신 줬는데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말썽이 생겼다.
이상영 씨하고 나하고 둘이 지하철에서 내려 바깥으로 나가려고 출구 쪽으
로 커브를 막 틀자
거짓말처럼 표 조사원이 나타난 거다. 당황한 우린 할 수 없이 새 거 하나하
고 찍은 거 하나를
건네줬다. 무슨 기계에다 표를 넣고 조작해보더니 이 조사원 대뜸 하는 말이
“이 표 안 쓴 거잖
아요”한다. 순간 ‘아뿔싸, 이거 어떻게 해결하나’하는 생각과 동시에 온갖
상상이 떠오른다.
경찰서에 가야 하나. 경찰서는 어떻게 생겼을까, 프랑스 경찰관들도 촌지 같은
거 받으려나, 그럼
얼마를 주지? 설마 사형은 안 시키겠지... 하긴 이런 것도 여행하는 재미니까, 한
번쯤 경찰서에 가
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까짓거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아니야 혹시 추방시
킬지도 몰라... 소문
나면 어쩌지? 그러구 있는데 조사원이 우릴 보고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
하고 묻는다. 그러
자 영어 잘하는 이상용씨가 단박에 “노!”그런다. 그랬더니 지들끼리 뭐라뭐라
그러다가 잠시 후
다음부턴 조심하라며 우릴 그냥 가란다. 외국인이니까 그냥 보내준 거다. 나오면
서 이상용이 하는
말이, 거기서 섣불리 영어 좀 할 줄 안다고 그러면 막 설명하고 해명하고 그래
야 하니까 아예 모
른다고 잡아떼는 게 속편하댄다. 역시 대한남아는 머리가 좋아!
우리 지하철은 1번 객차에 타서 2, 3번 칸으로 마음대로 옮겨 다닐수 있는데
여긴 객차 하나하
나가 독립돼 있어 그게 안된다. 어쩌다 같은 칸에 표 조사원이 들어왔다 하면
퇴로가 없다. 그래
서 여기 아해들도 1호칸서 표 조사를 한다 그러면 벌써 눈치를 채고 2, 3호칸
서 후다닥 막 뛰어
내리는 아해들이 많단다. 하긴 그 사람들도 한칸 한칸 조사하게 돼 있으니까
이것까지 붙잡긴 어
렵겠지.
어쨌든 우린 오리발을 내밀고 무사통과했다. 여기 아해들 말이 무조건 도망
가라, 잡히면 벌금,
안잡히면 벌금을 안 내도 된단다. 근사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생각해보
니 그게 아니다. 안
잡히면 안 내는 건 하나마나 한 얘기지. 도망가고 벌금은 왜 내?
파리 벼룩시장에서 돈 버는 방법
파리 벼룩시장에 갔다. 러시아 군복, 프랑스 훈장, 그리고 독일군 군복 군모
가 나란히 있었다.
그걸 입고 달고 했던 사람들은 원수지간으로 싸웠는데 이제 중고가 되어서 주인
은 간 곳 없고 사
이좋게 새 주인을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는 거다. 독일군 장교 모자를 하나 사
서 쓰고 다녀보니
남의 일에는 무관심이라는 프랑스 사람들도 안 쳐다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쳐다보고 난리다.
하긴 서울 거리에서 미국 사람이 괴뢰군 모자 쓰고 다니면 얼마나 웃기겠냐.
아마 그렇게 보인
모양이다. 길 가는 친구를 막 쫓아가 등을 두드려 갖고는 “재 좀 봐! 재!” 하
면서 날 가리킨다.
그 차림이 웃긴다는 거지. 하여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날 쳐다봤다.
길에서 만난 포르투갈 아해에게 미국 아해냐고 물었더니 포르투갈이라고 말
한다. 우리한테 일
본인이냐고 물어보면 기분 나쁘듯이 이 아해들도 고향에 가면 “야, 길에서 만
난 어떤 동양애가
우리보고 미국 아해 아니냐고 물은 거 있지. 아주 기분 나빴어”하고 친구들끼
리 화제에 올릴까?
함혜리 기자의 파리 생활을 위해 벼룩시장에서 싼 침대를 하나 사고 돌아오
는 길에 보니 지하
철에 똑같은 침대사진이 광고로 나와 있었다. 벼룩시장에서 산 것보다 많이는
아니지만 상당히
쌌다. 벼룩시장이라고 무조건 싼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옆집이 싸게 판다고
나도 싸게 팔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그나저나 나는 써보지도 못할 침대 조립을 해주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함혜리
기자랑 침대를 오르락내리락 했네!
벼룩시장에서 돈 버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유학생들 사이에 돈다. 한국 유
학생이 한글 사인
이 들어 있는 거지 같은 그림을 하나 샀는데 그게 알고 보니 유명한 우리나라
화가의 그림이었단
다. 물론 무명시절에 그린 것이긴 하지만 1억5천만원에 팔아서 횡재를 했다는
거다. 12년 전쯤에
있었던 실화다.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 이야기를 나한테 들려준 그 학생도
시간만 나면 벼룩
시장에 나가서 한글 사인을 찾는다는데 그게 쉽나! 하지만 내가 결정적으로 벼
룩시장 나가는 것
을 포기한 진짜 이유는 그런 걸 사려는 유학생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는 거다.
벼룩시장은 유래가 처음에 자기가 안 입는 옷을 갖다 팔기 시작하다가 지금
처럼 되었단다. 그
래서 옷 안에서 벼룩이 튀어나오고 해서 이름이 그렇게 되었다는 거다, 하고
들은 이야기를 해줬
더니 유학생 아해가 아니라고 막 우기는데 나도 맞다고 우길 수도 없고 난감했
다.
대개의 벼룩시장들이 쓰던 물건을 파는 걸로 알고 있는데 유럽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벼룩시장
을 보면 그렇지가 않다. 새것도 팔고 싸구려 물건도 섞여서 파는 곳이 대부분
인데 빈 벼룩시장에
가니 정말이지 쓰던 물건들만 파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빈의 벼
룩시장은 유럽에서
가장 전형적이다. 그런데 거기선 집시 여자들이 장사를 하고 남자들은 열이면
열 낮잠들을 자고
있다. 빈 남자 집시들은 밤일만 하나? 밤일? 도둑질?
빈 벼룩시장에서 그릇 하나 사면서 깎으려고 돈이 없다고 하자 집시여자가 배
시시 웃으면서 배
때를 가리킨다. 그러면서 “거기 돈 있잖아!”하는 거다. 이것들이 훔친 물건들
교류하면서 정보
도 교류하는구만!
소화제 넣은 루즈 만들면 뜰걸?!
퐁뇌프 다리 위쪽에 학사 다리라는 것이 있는데 차가 안다니는 세느 강의
유일한 다리다. 돈
없고 갈 곳 없는 젊은 아해들이 늘 진을 치고 있는 곳이다. 우리랑 묵고 있는
사진 전공 유학생
현준이가 학년 바뀐 걸 축하해주려고 맥주 몇 캔을 비닐 봉지에 싸들고 학사
다리로 갔다. 벼룩
시장에서 산 북을 두들기는 아해도 있었고 다리 저쪽에도 북을 두드리는 아해
들이 한 패거리 더
있었다. 한 아해가 왔다갔다하더니 두 패거리가 합주를 하기로 한 모양이다. 박
자가 안 맞는 소리
에 맞춰서 까불면서 춤을 추는 여자 아해도 보인다.
우리 뒷자리에는 벤치에 맥주 한 병씩을 사다 놓고 소곤소곤하는 한 쌍이
보인다. 아주 듣기
좋고 보기 좋다. 맥주를 마시다 말고 보니 소곤소곤쌍, 언제 우리 옆으로 왔는
지 옆에서 키스를
하고 난리가 났다. 여자 아해가 더욱 적극적이다. 빨고 핥고 한창이다. 이젠 여
자 아해가 두 다리
로 남자의 허리에 깎지를 끼고 흔들어대고 남자 아해는 여자 아해 입가의 침을
닦아가면서 도원
경에 빠져 있다.
나는 그런 그림을 볼 때마다 어릴 적 그렇게 많았던 동네 개들 흘레하는 모
습이 자꾸 생간난
다. 구경거리가 없던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개들 하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 구경을 했다. 짓
궂은 사람이 찬물을 끼얹으면 떨어진 개 두마리가 깨갱거리면서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는 걸 보고
즐겼던 시절이 있었는데...
처음 사귄 여자와 아직은 친해지기 전이라 서로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면서 키
에르케고르가 어쩌
구 테스가 저쩌구 고상한 말만 하면서 걸어가다가 개들이 하는 걸 보면 서로
못 본 체하고 지나
가면서 정말정말 민망했다. 속으로는 “야,개새끼들 좀 봐!”하고 싶으나 못하
고 지나간 적도 있
었다.
그런데 프랑스에 오니 정말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광경을 보게 된다. 지하철,
역, 공원, 길거리
심지어 성당 안까지 정말 키스하는 사람들이 무진장 굉장히 엄청나게 많다. 아
무데서나 끌어안고
키스를 막한다. 쭉쭉 소리를 내가면서 벌건 대낮에 말이다. 자세히 보면 남자 녀
석들 앞바지가 불
룩하다.
7일 된 배낭족 여학생과 15일 된 배낭족 여학생한테 파리에 와서 끌어안고 키
스하는 것을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을 가졌느냐고 물었다. 개방적인 나라라지만 너무 자주 보게
되는 거는 충격적
이라고 말한다. 유학생 여자 아해들에게 물어보니 “처음에는 놀라고 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가 대부분이고 “아, 내가 외국에 왔구나” “자유롭구나”“영화를 보
는 거 같았어요”
그런다. 나도 그랬다. 으슥한 골목에서 남들이 볼까 눈을 요리조리 돌려가면서
만 키스를 해본 나
로선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우리 가게 ‘학교종이 땡땡땡’에서 대낮에 키스하는 애들이 몇 번 있었다는
얘길 들었다. 어
떤 녀석들일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내 눈에 한 쌍이 적
발(?)되었다. 책 같
은 걸로 가리면서 하는데 둘은, 특히 남자 녀석은 책으로 가리면 남들에게 안
보일 거라고 생각
하는 모양이었다. 두 번, 세 번, 그리고 네 번 하려는 찰나 나는 도저히 그러는
게 싫어 두 명의
머리통을 따로 떼어놓았다. “야, 다른데 가서 해!”그러자 두 아해가 화들짝 놀
라는 거였다. 그래
놓고 나는 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저게 뭐가 어때’하는 생각, ‘저놈들이
얼마나 민망했을
까? 나도 저 세대에 태어났어야 하는 건데’ 하는 부러움, 질투, 희망사항, 번
뇌...!
어쨌든 내가 뭐라고 생각하든 아해들은 키스를 쭉쭉거리면서 한다. “이 나
라에 살려면 이빨을
잘 닦아야 될 거야”하고 말했더니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쓰는 거 같아요.
햄버거 먹다가도 하
는데요”이런다. 우리는 부둥켜안고 있는 한 쌍 곁을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한국
말로 지껄인다. 우
리끼리 웃으면서 말이다. “야, 여관으로 가라, 여관!”하긴 여긴 여관이 별로
없더구만! 그러니
길에서들 저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궁금하다. 왜 저렇게 열심히 키스들을 할까? 누군
가는 우스갯소리로
쟤네들이 키스를 하는 이유는 지나가던 남자가 자기 여자를 유심히 쳐다보면
자기 거라는 걸 보
여주려고 하는 거란다. 내 생각엔 그보다는 파리가 길이 워낙 복잡하고 비슷
비슷하다보니 서로
잃어버릴까봐 손잡고 다니고, 잊어버리지 말자고 키스하고 다니고 그러는 게 아
닌가 싶다. 그러나
그것도 아닌가봐. 아무데서나 자식들이 그러더라니깐. 내가 봐도 뻔한 길, 찾기
쉬운 공원이나 지
하철 같은 데선 왜 그러는 거야?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혹시 이 아해들이 키스를 잘하는 게 오징어 때문은 아
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우리는 입이 심심하면 오징어를 먹잖아. 연애 걸 때, 할말 없을 때,
영화 구경할 때,
요즘은 차 막힐때 심심풀이로, 입을 심심지 않게 해주려고 많고 많은 오징어
미라들이 우리의 목
구멍을 짓씹힌 채로 넘어갔다(우리는 언제가 오징어 위령제를 한번 지내줘야
해!). 파리 아이들
오징어를 안 먹어서 입이 심심해서 아무데서나 입맞춤을 하는 건 아니겠지?
사실 얘네들은 아무 죄가 없는지도 몰라. 이상한 건 오히려 나일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거든.
우리네 키스가 워낙 으슥한 골목에서만 이루어지다 보니 법으로 골목에서 하라
고 정해진 것도 아
닌데 낮에 하거나 남이 보는 데서 하면 큰일나는 것처럼 말을 하는 거 아니냐
구!
버스 안에서 젊은 미국인 아해가 일본 노인에게 자리 양보를 했다. 그런 건
처음 봤다. 내 옆에
앉았던 아해였는데, 여기도 경로우대 사상이 있나 했더니 자기 여자 친구가 앉
아 있는 곳으로 간
다. 여자 친구 옆에 서 있겠구나 생각했더니 웬걸! 자기 여자 친구를 일어나라
고 하더니 자기가
그 자리에 앉고 여자 친구를 자기 무릎에 앉히는 거다. 그리고는 키스를 하고
난리가 났어. 내가
한마디 했지. “굿 아이디어!”미국 아해가 막 웃었다. 드디어 영어로도 웃겨
봤네! 그런데 어느
날 지하철에서 만난 한국 여자 아해, 한국 남자 아해의 무릎에 앉아 있는데 보
고 있으니 왠지 열
받네!
참, 이건 파리 와서 생각한 건데, 우리도 화장품들이 많지만 말이야, 유럽 화
장품 회사에서 입
술에 바르는 루즈를 이제는 그 뭐랄까 먹어도 되는 영양제를 개발하면 어떨까
싶다. 간장이 좋아
지는 약, 위장이 좋아지는 약, 술 깨는 약, 영양제가 섞여 있는 루즈를 개발하
면 제벌 잘팔릴걸.
길거리에서 키스하는 아해들이 하도 많으니까! ‘우리 애인은 장이 안 좋으니
깐 장에 좋은 약이
섞인 루즈를 사서 바르고 나가야지!’“자기, 어젯밤에 술 마시고 속이 난 좋
다고 그랬지? 내가
오늘은 술 깨는 약 든 루즈를 바르고 나갈게!” ‘오늘 그이가 소화가 안 돼서
속이 안좋다고 했
는데 오늘 나갈 땐 소화제가 섞인 루즈를 듬뿍 바르고 나가야지’할 것 아닌
가?(여행하면서 내가
예언한 몇 가지 가운데 아마 이건 분명히 나올 거야, 틀림없어!)
퐁뇌프 다리에서 생긴 일
퐁뇌프 다리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지극히 한국적인 소리가
난다. 내용은 잘
모르겠는데 난간에서 흑인이 강에 대고 막 지껄여댄다. 술 많이 마시고 혼자
강에다 대고 푸념을
하든지 하소연을 하든지 억울함을 풀어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일행 하나
가 그 친구의 소리
를 알아들었다. 그리고 소리친다. 사람이 빠진 거다. 우리는 세느 강을 내려다
보았다. 흰 옷 입은
아해 하나가 헤엄을 친다. 시간은 밤 열두 시를 넘었고 우리 일행은 흰 옷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장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판단이 안 섰다. 장난일 수는 없다.
장난이면 윗도리라
도 벗고 들어갔을 텐데! 옆에서 누가 통역을 해준다. 방금 강에 대고 소리 친
녀석은 “천천히,
천천히, 침착해! 내가 갈께!”하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구경하는 사람은 우
리 일행하고 몇 안
되는 관광객뿐이고 한쪽 구석에서 노는 아해들의 북소리는 그대로엇박자를 쳐
대고 있을 뿐이다.
벤치에서는 남녀 한 쌍의 그짓이 한창이다.
우리 일행 한 명이 비디오 카메라로 열심히 빠진 사람의 모습을 찍었다. 나
중에 보니 건져내는
장면은 마침 지나가던 유람선의 불빛으로 특히 생생하게 찍혔다. 해양 경찰서
배가 두 대 달려오
고 이어서 육지에서는 특수 구조대가 달려왔다. 비디오 카메라가 쉴새없이 돌
아가다가 구조대원
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이 친구가 못 찍게 한다. 필름을 내놓으란다. 완
강하게! 경관은 얼
굴이 팔리면 안된단다. 도둑이 얼굴을 기억했다가 알아보고 도망갈 수도 있고,
경관이 먼저 당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냔다.
안 찍었다, 찍었다, 옥신각신하다 우리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테이프 바
꾸게 빨리 말을 시
켜!”
한쪽에서 “우린 관광객이다. 그냥 가겠다”“그런 거 내가 알 바 아니다. 빨
리 내놔라”어쩌구
저쩌구 하는 사이에 테이프가 바뀌었다. 이친구, 우리가 도망가려고 슬슬 빠지
니까 다른 경찰을
무전기로 바로 부른다. 자기 얼굴 지운 걸 확인하고 보내 주겠단다. 하라는 대로
했지! 지 얼굴이
있을 리가 있나, 없지. 잔머리가 빠르지! 우리는 풀려났다. 한 이삼 분 걸어오는
데 아까 무전기로
부른 경찰차가 나타난다. 뒷북을 치는 거다.
잔인한 농담이 시작되었다. 이거 방송국에 팔면 얼마나 받을까? 죽어야 특종
이 되는 건데, 방송
국에 전화해봐, 건진 상황 묘사를 생생하게 하라구. 옮기다가 죽든지 아니면 병
원에서라도 죽어야
되는데, 지금 우리 잡으려고 수배 내려진거 아냐?! 공항이 폐쇄되고 전국 경찰에
비상령이 떨어지
면 재미있을 텐데, 등등.
비록 딴 나라 사람이라도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일인데... 다음날 아침 서울에
서 전화가 와서 어
젯밤 이야기를 했더니 마찬가지다. “그 친구가 죽으면 특종이 될 텐데, 방송국
에 연락해보지 그
랬어? 그냥 한 만 프랑 달라고 해보고 혹시 죽었으면 더 달라고 해봐. 좀 유명
한 사람이면 더 받
을 텐데!”
생각해보면 이런 잔인한 농담들은 말하자면 개그맨 세계의 직업병 같은 거
다. 굳이 개그맨이라
기보다는 방송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병이라는 게 맞을 거다.
개그맨들이 방송 같은 데 나와서 하는 얘기는 대부분 웃기려고 꾸며낸 이야
기들이다. 평소엔
엄청나게 잔인한 농담들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예를 들어 이성미가 어느 날
방송국 나오다가 어
린애랑 접촉사고를 내고 울면서 온 적이 있다. 그때 우린 농담으로 “야, 어린
애 친 거는 저번에
써먹었어. 할아버지 친 거로 바꿔”또 언젠가는 임하룡이 김영삼 대통령 취임
날 텔레비전 모서리
에 이마를 찧어 Y자 모양으로 찢어져 갖고 방송국엘 왔는데 그걸 본 우리는
“야, 그거 괜찮은
데. 기왕에 찢은 거 S자 모양으로 한 군데 더 찢으면 보기 좋겠다야”막 이랬
다. 또 한번은 내가
어느 자리에선가 농담 삼아 집을 사지 않겠냐고 말을 하니까 이걸 전부 진지하
게 믿고서 심지어
어떤 아파트 회사에서는 분양광고를 “집을 사지 않겠다던 전유성이 마음을 바
꿔...”이렇게 뽑기
까지 하는 거다.
재미있으라고 한 말을 진짜로 믿는 사람들도 황당하지만 엄청난 농담들을 아
무렇재 않게 해대
는 우리들의 말버릇도 사람들을 때때로 놀래키니 이게 다 직업병 아냐. 그런
데 궁금한 건 말야,
이런 것 땜에 뒤탈이 생기거나 그러면 그런 것도 산재적용이 되는 거야?
거리 공연에서 만난 차력사의 아픔
여기는 공연 구경값이 비싸단다. 구경은 좋아하는데 값이 그렇게 비싸니 길
에서 조금만 이상한
짓거리를 해도 돈을 잘 준다. 술 먹고 비틀거리는 놈이 있나, 길거리에서 싸우
는 놈이 있나. 그러
니 구경거리에 굶주릴 수밖에. 사실은 밤이 길어서 그렇단다. 밤이 기니까 심
심하지. 안심심하려
면 뭔가 봐야지, 보여줄 궁리 해야지. 그러니 어떤 놈은 쓰고 어떤 놈은 읽고 그
러면서 긴긴 밤을
때우는 거야. 음악도 요즘 유행가처럼 3, 4분짜린 짧다구, 밤에 듣기엔. 그러니
길게 만들어야 되
고, 길게 만들었대니까 들어볼려고 가고, 그래서 오페라가 나오고 교향곡이 나
오는 거 아니겠어?
밤이 되면 술이나 마실려는 우리네랑은 다르지? 구경거리가 없으니 괜찮은 여자
애나 지나가면 양
아치 같은 애들이 휙휙 휘파람을 불어대는 거 아니겠어?
박물관이나 길거리를 가다 보면 마네킹처럼 꼼짝 않고 서 있는 놈을 더러
만난다. 약 10분쯤
지켜서서 봤는데 정말 안 움직인다. 아마 앞에 놓인 돈 통을 들고 뛰면 쫓아오
겠지. 그나저나 이
해할 수 없고 웃기는 건 사람 안 움직이는 거 보고 돈 준다는 사실이다. 정말
웃기는 얘기 아니
냐.
채플린 그림 그리는 녀석한테는 깜빡 속았다. 이놈이 그림을 펴놓고 그리는
척하는데 정말이지
감쪽같다. 조금만 주의해서 보면 실제로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림 펴놓고 그리는
척한다는 걸 알게
된다. 왠지 너무 잘 그렸다 했지! 나중에 우리가 방을 얻은 현준이네 집 앞을 왔
다갔다 하다가 봤
는데, 슈퍼마켓 옆에 그 동네 거지들 모이는 데가 있거든, 거기에 그녀석이 있
더라구. 가짜 그림
을 둘둘 말아들고 말야. 거지였나?
우리나라엔 거의 없지만 외국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거리공연이 으레
벌어지곤 한다. 어
느 아해는 길이가 3미터가 넘을 듯한 구렁이를 몸에 칭칭 감고 다니면서 사람
들이 원하면 목에
걸어주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고 10프랑을 받는가 하면, 어느 아해는 귀
여운 고양이를 바구
니에 담아 자전거에 싣고 다니면서 사람들마다 귀여워서 만져보게 하고 돈을 받
기도 한다.
길거리 공연하는 아해들도 각양각색이다. 불 먹는 아해, 장대 밑으로 림보춤
추며 지나가는 아
해, 채플린 옷 입고 안 움직이고 서 있는 아해, 동상 모양으로 있는 아해, 바이
올린 켜는 아해, 플
루트 부는 아해, 요들송 하는 아해 등등. 공통점은 모자에 돈을 받는 것이다.
한번은 니스 길거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빈 자리를 찾아 들어가 구경을
했는데 병을 수십
개 깨뜨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약장수들이 하는 차력이려니 하고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계속
해서 뭐라고 떠들면서 병을 깨부수어서 깨진 유리조각을 쌓아놓는다. 그러니까
아마 진짜 병이라
는 걸 보여주는 거 같은데 그 양이 족히 한 가마니는 되어 보인다.
그리곤 윗도리를 벗는다. 구경꾼 중에 몸무게가 아주 많이 나가는 뚱뚱한 사
람을 고르고 또 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을 골라서 깨진 유리조각에 마주보며 서게 한다. 윗도리를
벗었으니 눕거나
엎드릴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게 아니고 깨진 유리조각에 엎드려 얼
굴을 갖다 댄 다음
뚱뚱한 사람보고 앞에 있는 사람 팔을 잡고 자기 뒤통수를 밟으라는 것이다.
시키는 대로 뚱뚱한
사람이 한 발을 뒤통수에 대니 엎드려서 소리친다. 마저 한 발을 올러놓으라고!
뚱뚱한 사람이 두
발을 올려놓고 한참을 있게 한 다음 내려가게 한다.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거리의 예술가, 차력사! 긴장해서 조용히 쳐다보는 관
객들. 잠시 후 그
가 얼굴을 든다. 얼굴이 유리에 찢겨져 피가 철철 흐른다. 아이고! 사람들은 끔
찍스러워하고 올라
갔던 뚱뚱이는 미안한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두 군데에서 피가 철철 흐른다.
묘기도 이쯤 되면
보는 사람이 더 괴롭다. 그러나 피흘리는 아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바로
돈 통을 들고 돈
을 기다린다. 사람들이 각기 돈을 꺼내준다. 다른 거리의 공연보다 많은 돈이
쌓인다. 그야말로
거리 공연의 3D다.
돈벌이를 해도 어떻게 저 따위로 하는가 싶다. 물론 안 다친 날이 더 많았겠
지. 하긴 다쳤다고
일어날 수도 없을 거냐. 거기까지 손님들 끌어 모았으니까. 조금만 참으면 돈
걷을 시간인데! 거
기까지 하고 안할 수도 없잖아.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시절, 초대 손님으로 나온 어느 중견 가수가 생
각나다. 살아오면서
가장 웃긴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해 달라는 코너였다. 이 가수가 신인시절에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데 갑자기 세트가 내려앉아서 무대 바닥으로 떨어졌단다. 그래도 자기는
박자를 놓칠까 봐
아픔을 참고서 계속해서 노래를 했단다. 엉금엉금 기너 나오면서도 노래를 불렀
다는 거다. 가수가
무대 밑으로 떨어졌으니 당연히 NG인데도 불구하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노래를
불렀다니 얼마나
웃기는 상황인가! 신인시절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에피소드지만 그 얘길 들으면
서 깔깔대고 웃는
한편으로 어떤 여운이 남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한 시간 후에 카페에 앉아 있다가 거리를 지나가는 그 차력사를 다시
봤다. 얼굴 찢어
진 곳이 그때까지도 아픈 모양이다. 손으로 연신 피 난 자리를 만지면서 걸어
간다.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저것도 밥벌이가 된다고 배웠겠지! 다른 거 하면 안 되나? 관객
의 박수 맛은 정말
아편 같은 거야! 하늘은 다르지만 같은 연예인 동료로서 연민의 정이 생긴다.
그건 그렇고 이 사람들, 거리공연을 그냥 할 게 아니라 어느 기획자가 말이
야, 그들을 한데 모
아 두 시간짜리로 만들어서 조직적으로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든
다. 돈은 나중에 각
자가 똑같이 뿜빠이하고 말이지. 거리공연끼리 경쟁도 되고 한 달에 한 번 거
리공연축제도 하고
동남아 해외여행도 떠나고 말이야.
집 나온 지 십오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호출기 소리가 나는 듯하다. 호텔 옆
에 무슨 지지지 하
면서 물 트는 소리 같은 게 나면 나도 몰래 호출기를 찾아 바지춤을 보게 된다.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까 나뿐이 아니고 한 다섯 명 정도 그런 아해들을 만났
다. 세수를 하는데
이상한 소리가 난다. 혹시 전화 소리가 아닌가 하여 얼굴을 씻다 말고 내다본
다. 아이고 지겨운
호출!
호출기 소리를 들으면 늘 떠오르는 게 있다. 어느 회사 제품이건 소리가 비슷
하다는 거다. 그럴
이유는 없는 거 아냐? 다른 걸 찾아볼 생각도 안 하는 건 다 머리가 굳어서 그
래.
예를 들어, 최초의 호출음은 뭐였을까? 타잔이 아아아- 하는 소리 아닐까?
온 동네 동물들이
동시 호출되어 뛰어오니깐 말야. 그걸 호출기에 그대로 넣는 거야. 호출기 이름
은 ‘타잔’이라고
짓고! 틀림없이 히트칠껄! 껄? 껄껄껄? 웃음소리가 나와도 되겠네!
제2장 우리 돈에도 코미디언 얼굴을 박자
가이드는 시의원 관광객을 싫어한다
미령이가 왔다. 사랑의 유람선을 탔다. 앞으로 13박 14일 간 배 위 생활이
시작된 거다.코펜하
겐까지 간단다. 첫 정박지는 로마다. 로마 가이드들은 시의원 이야기를 많이 한
다. 파리에서도 유
학생 집의 선배가 김현수라고, 현지가이드를 많이 하는데 이 친구 말이 시의원
들은 정말 손끝 하
나 까딱 않는단다. 그렇게 많이 시킨대. 한국에서 워낙 일을 많이 하다가 온 탓
일까!
시의원들이 왔다 가면 가이드들은 정말 열받는단다. 기피대상이란다. 로마 시
의원들이랑 만나게
해달라고 막 졸라서 억지로 만나게 해주면 고작해야 로마 인구가 몇이냐고 물
어보고 의장이 안
나왔다고 열 받는다고 퇴장하고(의장이, 스벌, 지들 만날 일 있어? 의장은 안
바뻐?)아무 방이나
막 문 열어보고 타이프 치는 여자를 보면서 “이 여자는 뭐하는 여자냐?”고
물어본단다. 그래서
그 여자가 타이프 치다가 놀라서 소리를 지르게 한단다.
현수라는 친구 말에 의하면 여기 가이드들이 대부분 아주 오래된 베테랑들인
데도 가이드가 뭔
얘길 하면 굉장히 건방을 떠는 손님들이 많대. 그래서 화가 나니깐 거짓말로
설명도 막 하고 그
러는 후배 가이드들이 많은데,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얘길 하라고 자기가 그
랬다는 거야. “유
럽에 대해서 잘 아실 테니까 자세한 얘긴 생략하고...”이렇게 말야. 그래서 후배
들이 정말로 “노
트르담에 대해선 여러분들이 저보다 잘 아실 것 같아서 자세한 얘긴 생략하
고...”“콜로세움에
대해서야 여러분들이 너무 잘 아실 테니까 자세한 얘긴 생략...”이런 식으로
한 몇 번을 하니깐
열심히 잘 듣고 잘 따라주더래.
가만 보면 해외여행 초보자들은 갔다 온 나라가 입에 붙는 경우가 있다. 일본
에서는... 태국에서
는... 영국에서는... 막 그런단 말이지.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눈으로 본 것만 이
야기하는 게 아니
라 가이드들이 들려주는, 가이드들도 확인을 안 한, 그냥 재미있어서 한 전설이
라든지 거기에 얽
힌 이야기를 마치 자기가 보고온 양, 혹은 “가이드가 그러는데”하고 가이드
들의 레퍼토리를 그
대로 써먹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여행객이나 들어준 사람이나 그런 함정에 빠
지지 말 일이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개그맨들 가운데서도 내가 해준 얘기를 듣고 이리저리 옮
기고 다니다가 다
시 나한테 해주면서 마치 자신의 창작인양 얘기하는 아해들이 있다. 그런가 하
면 인수분해 공식
은 못 외우면서 연예인 스켄들은 기사를 보는 대로 다 외우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언젠가 우
리집에 전화를 걸어 온 어느 여자는 내 팬이라면서 혼자 숨도 안 쉬고 떠들더니
갑자기 “그런데
전유성 씨, 옥소리하고 변우민이 왜 헤어졌대요?”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그래
서 내가 잘 모르겠
다고 하니까 같은 연예계에 있으면서 왜 모르냐는 거 있지.
참! 황당한 메뚜기더구만. 그래서 내가 그랬다. “너는 회사 다닌다는데 회사
다니는 사람들 연
애하는 건 다 알고 있냐?”
가이드가 하는 말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유적지가 나오면 설명을 해준대.
그러면 설명중에
“야, 시끄럽다.”그러는 놈이 그렇게 많대. 로마에 유적지라고 가보면 왜 기둥
부러진 거, 부서진
거 그런 거 널린데가 많잖아. 그러면 “에이, 이거 다 허물어버리고 아파트나
짓지”하는 할머니
도 있다는 거야. 비행기 안에서 집에 갈 거라며 빨리 문 열어 달라는 사람이 없
나, 유적지나 궁전
앞길 같은 데서 갑자기 백주에 노상방뇨를 하는 할어버지가 없나, 정말 울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거야. 이태리 관광 중에는 밀라노에서부터 로마까지 쭉 내려가
는 버스투어가 있거
든. 가이드가 이태리에서 로마로 간다 그랬더니 어느 아주머니가 버스에서 벌
떡 일어서서 큰소리
로 “이태리여 안녕! 우리는 로마로 간다!”고 그러더래나.
말을 들어보니 이태리에 음악 공부하러 왔다가 한계를 느끼고 가이드가 된
사람도 많고, 사실
이게 쉬운 일이 아닌데 하겠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단다. 그렇지만 결국 열
명 중에 두 명꼴만
살아남게 된단다. 내가 “가이드 이게 사람 비위 맞추는 일인데 얼마나 어렵겠
냐. 내장 꺼내서 집
에다 널어놓고 다녀야 되지 않겠냐”고 그랬더니 그렇단다. 집에 돌아가서 쓸
개 껴안고 많이도
울었단다.
내 첫사랑 서커스 소녀는 어디에
바닷가를 다녀오다가 동네 서커스를 구경했다. 작은 바닷가 마을의 아주 작은
천막 서커스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양 산업이라 구경하기가 힘들잖아. 이미 없어졌다는 말도 있
는 서커스. 역시 우
리나라와 시스템이 비슷하다. 특히 초라하기는 우리랑 영락없다. 어린 아해들이
주로 서커스 광대
들로 나오는데 금방 표 팔던 아해가 옷 갈아입고 또 나오고 또 나오고 또 나오
고, 칼 물고 외다
리도 건너다가, 코미디에 출연도 하고 좌우간 우리랑 너무너무 똑같은 거다.
언젠가 필리핀에서 만난 가이드 하나가 떠오른다. 금방 비행장에 나와 있던
가이드가 배 타는
데 나와서 표를 받고 그 다음날은 바나나보트 타는 데 나와 있길래 “육해공군
다 관계하시네요
”했더니 “이렇게 먹구 살기가 힘들어요”그랬다. ‘맞아, 정말 사는 건 힘들어
’하는 생각을 그
때 했다.
참 안됐다는 생각으로 구경을 마쳤다. 그래도 관객들이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고 아이들이랑
같이 나온 어른들하고 엄마 아버지들이 많은 게 보기에 좋았다. 서커스 구경하
고 연민 비슷한 느
낌을 갖는 거는 누구나 비슷한데 요는 이 유치한 서커스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게 참 좋은 일이
라는 거다.
요즘 신문에 보니까 동춘 서커스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그러더라고. 참 다행
스러운 일이지. 나
도 어릴 적에 서커스 보고 자란 세댄데 어느 날 그 서커스가 없어졌단 말야.
그러면 어떤 생각이
드냐 하면, 면면하게 이어지던 우리네 어떤 정서가 하루아침에 딱 끊긴 것 같
은 생각이 드는 거
야.
내가 서너 살 때 아버지랑 부산역 근처에 서커스를 구경간 적이 있다. 혼자
댕긴 게 아니라 꼭
아버지랑 같이 서커스를 보러 다녔거든. 장대로 사람들을 일어나지 못하게 한
다거나 말을 타고
곡예를 부리던 부산 피난시절의 서커스 이야긴데 그것 땜에 우리 아버진 서커스
를 굉장히 좋아한
다. 나도 지금도 좋아하고 열 일을 제쳐놓고 구경갈 정도다.
식초를 먹으면 뼈가 노골노골해진다면 어릴 적부터 식초 먹는 소녀 이야기,
채찍으로 맞는 이
야기, 수염이 길다란 왕서방 이야기 같은 걸 사람들한테 들으면 어린 마음에
보호본능 같은 것도
들고 막 그랬다. 도와주고 싶고, 탈출시키고 싶고, 같이 도망가고 싶고... 연약한
소녀가 채찍으로
맞고 그러는 거 ‘소년세계’에서 읽으면서 막 울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서커
스단에서 재주 부
리던 그 소녀, 말 타고 곡예 부던 아해들이 나의 첫사랑일 수도 있는 거야. 잠깐
이지만.
서커스는 보호돼야 한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서커스 구경을
가면 그 아들이 아
버지하고 정서의 맥이 이어지거든. 그 아이가 어른이 돼서 아들이랑 또 서커스
구경을 가고... 지
금은 내가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서커스 구경을 가려고 해도 서커스가 없다.
아버지가 느꼈던 정
서를 아이들이 같이 나누고 싶고 정서의 맥을 잇고 싶어도 그 매개체가 없는
거다. 아버지가 서
커스 얘기를 아무리 해도 “에이, 그게 뭐예요?”그래 버리면 맥이 끊기고 만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가야 한다. 그 아들이 커서 또 아들을 데리고 가야
한다. 아들에게 할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고 어른들은 재미가 없어도 봐야 한다. 그러면서 쭉 정서
의 맥을 이어 가야
된다. 우리 아버지 시대에 밥 굶은 이야기를 해주면 요즘 아해들은 “밥
없으면 빵 먹지, 굶긴 왜 굶어?”혹은 “에이 거짓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하고 말을 해 대화
가 단절되는데, 그건 정서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서의 맥을 이어 주어야 한다.
6. 25가 되면 말로만 상기하자 그러면 뭘 하나? 그 당시에 먹던 주먹밥을 한
끼 정도 가족들이
다 먹어봐야 한다. 언젠가 어디서 그런 행사를 하는 것 같던데 요즘도 하는지
몰라? 당시의 이야
기를 들려주면서 같이 먹어본다. 물론 맛은 없겠지! 그렇지만 그런 게 산 교육
이지 공산당 나쁜
놈이라고 백날 말해보니 무슨 소용인가?
밤 열한 시에 서커스 구경을 하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관광객 아주머니들이
호텔 문 앞에서 어
딜 놀러가고 싶어가지고 막 서성이면서 서있다. 이 시간이면 아마 남편이랑 자
식들이 늦게 들어
오니까 그 시간까지 잠 못 자고 기다리던 버릇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닐까?
통역을 통해 들은 서커스 광대들의 유머. 젊을 적부터 대머리인 친구에게 거
울이 “너는 늙어
도 좋겠다. 머리 하얗게 샐 염려가 없으니!”이런 얘기를 한다. 그런데 아무도
안 웃는다. 우리 일
행은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안 웃었고 알아듣는 이태리인들은 재미가 없어서...!
원형을 좋아해서 원형극장이 많은가?
“로마, 하루에 다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3개월로는 모자랍니다”은퇴
가이드의 명언이란
다. 얼마나 많이 써먹었을까? 그 말을 제일 처음 사용한 사람도 밝혀야 되는데.
자신이 제일 먼저
사용했으면 왜 이 말을 사용하게 되었는지도 밝혀라(왜 밝혀?)! 나중에 알고 보
니 이 말은 트래비
분수에서 어느 교황이 제일 먼저 사용했단다. 그래서 그 유명한 ‘한번 던지
게 되면 다시 찾게
되고 두 번을 던지면...’이 말이 나오게 된 거래나.
사람들 얘기론 정말로 트래비 분수에 동전을 하나 던지면 로마로 다시 오게
된단다. 두 개면
로마에서 사랑에 빠지고 싶을 때, 세 개는 싫은 사람하고 헤어지고 싶을 때란
다. 차라리 싫은 사
람을 던지지. 그렇게 헤어진 사례가 진짜 있단다. 하루에 약 400만 리라 정도의
동전이 쌓인다는
데 경찰 입회하에 매일매일 수거해서 빈민들을 위해 사용한단다. 파출소 순경
입회하에 추첨하듯
이. 밤 12시에 한번 갔더니 정말로 바닥을 긁더라고.
가이드하는 아해가 “여기는 역사의 도시, 영원의 도시, 태양의 도시”라고
설명을 한다. 그러
면서 로마에 올 때는 태양이 강하니 꼭 선글라스를 준비해서 오란다. “그렇다
면 선글라스가 발
명되기 전에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하고 반 농담 삼아 물었다.
가이드는 진지했다.
파란색을 보면 눈이 덜 피로하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때 사람들은 에머랄드를
쳐다보면서 일들을
했단다.
그러니까 얘는 자기 나름대로 공부를 해서 그런 질문에 대한 준비를 해놓은
거다. 내 딴에는
요렇게 질문을 하면 대답을 못하겠지 하고 물어봤는데 이놈이 글쎄 진지하게
대답을 해준 거야.
옛날부터 이 나라에는 에메랄드가 굉장히 많이 나왔단다. 그래서 검투사들도
에메랄드를 갈아서
만든 선글라스를 끼고 싸웠다는 거다. 그리고 네로도 에메랄드로 만든 선글라
스를 끼고 관람을
했단다. 인류 역사 최초로 선글라스를 낀 인물이 바로 네로라는 거다. 여기 역
사책인지 야사책인
지에 나와 있단다. 무지하게 노력하는 가이드다. 네로가 선글라스를 처음 사용했
다는 사실을 네로
역을 오래 했던 양락이는 알고 있을까?
콜로세움은 용맹스러운 로마의 옛 검투사들이 에메랄드 선글라스를 끼고 사자
와 싸우며 창검시
합을 벌였던 곳이다. 거대한 원형의 페허다. 부서지긴 했지만 그런 대로 보존상
태는 좋단다.
이태리는 어지간한 건물들은 다 원형 보존을 위해서 수리공사를 못하게 한단
다. 원형을 좋아하
는 나라, 그래서 원형극장이 많은가?
포르투갈에 갔을 때 리스본 길바닥 보도블록이 모자이크 모양으로 되어 있는
걸 보면서, 쪼그
리고 앉아서 보도블록을 까는 우리 아주머니 어저씨들이 떠올랐던 적이 있다.
여기서도 생각이
난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구슬땀을 흘리며 길바닥 보도블록 공사를 하던 사람
들. 로마는 서서 만
든 도시 같은데 말이다.
어딜 가나 스프레이로 벽에 낙서하는 건 정말 심각하다. 여기도 그러냐고 했
더니 로마는 역사
적인 건물엔 안 한단다. 가는 데마다 빈 벽이 없을 정도로 스프레이 낙서들이
가득하다. 스프레이
낙서는 정말이지 인정사정이 없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우리나라에도 전염될
까 걱정이다. 스프
레이 낙서 경연대회를 개최해서 글씨 비슷한 놈들 다 대조해서 범인들을 잡아넣
으면 안 될까?
에메랄드 선글라스를 쓰고 사자와 싸웠던 검투사의 후예, 그 용맹스러운 로
마 병사들이 오늘날
에 와서는 피자집 간판 모델로 바뀌어버렸다.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피자집 간
판에 병사들이 막
서있잖아! 그걸 보니까 옛날에 세계를 주름잡던 저 용맹한 병사들이 간판에나
나온다니 좀 안됐
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 병정들이 등장하는 피자는 조각으로 판매를 하는데
맛은 별로다.
하여튼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여름에 선글라스
쓰는 것을 허용해
주자고 주장하고 싶다. 햇빛에 눈 나빠지는 건 아해들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잖
아!
선글라스라는 게 싸서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거걱든. 어렸을 때부터 보
호해놓으면 커서도
더 좋지 않냐는 거지. 어른만 눈 보호하고 아해들은 보호하면 안되는 거냐구. 우
리는 웬일인지 선
글라스 하면 위화감, 불량기, 깡패 따위를 연상하잖아. 유럽 아해들은 잘만 쓰
고 다니는데 왜 우
리는 선글라스를 못 쓰게 하냐는 거야. 눈을 보호하려면 어릴 때부터 선글라스
를를 쓸 필요가 있
어.
그러나 저러나 여기 햇빛이 그렇게 강하다니 잘생긴 이태리 아해들 얼굴이
걱정된다. 여름에
햇빛 많이 쏘이면 얼굴에 기미들이 생긴다. 니기미냐, 내기미냐.
로마에 공중목욕탕이 없는 이유
우리를 안내해준 남봉규 사장님은 8년 간의 가이드 생활을 마치고 여행사를
경영한다. 일선에
직접 나서는 가이드는 안 한 지가 오래다. 한양가든이라는 식당도 경영하고 있
는데 우리들의 가
이드를 직접 맡아 나섰다. 다른 가이드들의 대선배다. 가이드들이 만나기만 하
면 전부 인사를 한
다. “직접 나오셨네요”하는 인사를 많이 듣는다. 어떻게 보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본인은 좀
쪽팔려 한다. 어쨌거나 남시장이 직접 나왔다는 걸로 우리가 VIP라는 게 자연
스럽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걔들이 괜히 우리를 존경(?)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정말 힘든 일들을 조금도 싫은 기색없이 해준다. 오랜 가이드생활로 친절이
몸에 밴 사람이다.
집사람이 고맙다고 이야기했더니, 남사장이 농담삼아 얘길 한다. 집사람 아줌마
의 남편이 유레일
패스 한국총판을 하는 분인데 전유성이 진미령이 부부한테 잘해주면 한국의 아
우들을 소개해 주
겠다고 했단다. 여기서 아우들이란 여자라는 건 아시겠지? 그래서 내가 한마디
했다. 아우들이라면
내가 소개해주겠다. 내가 오형제 중의 장남이니까!
한양가든은 96년 2월에 개업을 했단다. 유럽에선 제일 큰 한식당이다. 580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단다. 종업원은 5개국 사람, 고추장은 한국에서 공수해온단다. 소갈비 구
울 때 불판 위에 고
기를 얹어주는 지배인의 솜씨가 예사 솜씨가 아니다. 불판 갈아즐 때 연기에
눈물 흘리는 것까지
영락없는 한국사람이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종업원 한명은 우리말이 유창하다.
차에서 내리는데,
“어서 오세요!안으로 들어오세요!”이러는 거다.
시내에서 246번 버스를 타면 한양가든 앞이라는 정류장이 나온다. 현수막이
커다랗다. 피자가
한판에 우리 돈으로 4천원이란다. 만원 정도로 한식뷔페를 즐길 수 있다. 대단
한 성업이다. 먹어
본 소갈비 냉면은 맛있다. 주방장은 사장님 친형이다. 서울서 오신 분인데 서울
서 출퇴근은 안한
다. 바티칸에서 8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여행사도 겸하고 있다. 이태리 타월
을 수입해다가 이
태리에 팔고 싶어하는 이태리통이다.
하기야, 말이 이태리 타월이지, 이태리엔 정말 이태리 타월이 한 장도 없다.
중국 가면 짜장면
이 없는 것처럼. 한국서 이태리 타월을 수입해다 이태리에 팔면 장사가 잘 될
까? 이태리 호텔에
서 이태리 타월을 수입해서 한국 관광객에게 선물하거나 욕실에 비치해두면
아마 한국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할 거야!
우리나라에선 공중 목욕탕마다 입구에 가득 재놓고 파는 이태리타월이 여기
없는 이유는 대중
목욕탕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로마는 목욕이 로마를 망하게 했다고 해서 공중 목욕탕이 없는 나라다. 목욕
이 왜 로마를 망하
게 했는가? 환경보호론자들의 이야기로는 나무를 너무 많이 없애서 그렇단다.
한긴, 듣고 보니 맞
는 말 같다. 목욕탕 물을 데우려면 나무를 때야잖아. 목욕을 찬물로 하냐구. 물
을 데워야 하는데
그 당시야 뭐, 기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연탄도 없었겠고, 그렇다고 신문지
로 데울 수도 없고
결국 나무로 때지 않았겠느냐는 거다. 그러니 나무를 계속해서 땜으로서 그 동
네 산이 전부 헐벗
은 산이 돼서 환경 파괴 땜에 망한 게 아닌가 하는 거지.
그 이야기를 가이드 앞에서 했더니 가이드 얘기가,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실
목욕은 도피 문화
란다. 게을러지기도 하고, 환락도 조장한다나. 하기야 나부터도 “전화 왔다!”그
래도 목욕하는 중
에 전화 받으러 가기 싫지! 우리나라 건달들도 목욕탕 사우나에서 많이 지내잖
아? 도피중에 말이
야.
조상의 얼을 오늘에 이어받는 건지는 몰라도, 화려했던 로마 목욕탕 문화의
상징이라고 하는
카라칼라스 목욕탕 근처엔 몸파는 여자들이 지금도 많이 있단다. 중학교때 시
험 끝나고 처음으로
단체 관람하러 국도극장에 가서 본 ‘폼페이 최후의 날’에도 나온 사치스런 목
욕탕이다.
우리 속담에 ‘넘어진 김에 자고 간다’‘넘어진 김에 눕는다’라는 말이 있
듯이 로마에 혹시
이런 속담이 있는 건 아닐까? ‘목욕하려고 옷 벗은 김에 한번 한다.’
지금도 뒤쪽 잔디밭은 야외 호텔이란다. 밤만 되면 너도나도 차를 가지고 와
서 즉석 러브호텔
이 된단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곳이 많이 있는데...! 그러고 보니 이태리와 우리
는 밤문화가 서로
통하는 데가 있네! 우리나라에도 이런 잡지 같은 걸 만들면 참 재미있을 거야.
일단 제목은‘섹스
매거진’쯤으로 붙이자구. 그리고 이런 특집들을 막 내는거야.‘봄철 야외에서
하기 좋은 곳 100
선!’‘신세대 아이들, 이런 체위를 즐긴다!’‘다이어트가 되는 체위!’‘요듬
강남 주부들 가평
에서 많이 한다!’‘97년 최대의 유행어, 가평 가보셨어요?’또‘단풍 보며 즐
긴 섹스 고백수기!
’‘달밤에 하기 좋은 곳!’‘등이 배길 때 사용할 수 있는 물베개를 부록으로
드림!’이런 거를
팍팍 싣는 거야. 쇠고랑 차기 딱 좋겠지?
월드컵 끝나고 축구장 다 짓는 이태리 아해들
이태리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과 성격이 비슷하단다. 목소리 크고 잘 놀고 인
정 많고 다혈질이
고 뒤끝 없고. 그래서 그런지 동네 이름도 시골엔 리가 있더라구. 나폴리 티볼
리... 티볼리 사원은
분수가 유명한 곳이다. 아스테라라는 추기경 출신이 유배 비슷하게 와서 심심
하니깐 노느니 분수
라고(?) 분수를 천여 개 만들었단다. 떠나온 로마를 그리워하면서 그가 로마를
바라보던 곳에도
가봤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천여 개의 분수 중에 700여개가 아직도 500여
년간 물줄기를 뽑
아내고 있단다. 정말 끝내준다. 한국에선 어느 화장품 광고 CF로도 유명한 곳이
다.
그러고 보면 이 티볼리 분수뿐 아니라 이태리엔 정말 분수가 많다. 옛 로마
시절의 전차 경기장
이었던 나보나 광장에 있는 무어인의 분수, 강의 분수, 넵튠의 분수... 티볼리
분수정원에서 우리
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끈 것은 다산의 분수였다. 젖이 열네 개나 달린 동상에서
분수가 콸콸 넘쳐
흐르는데 그야말로 풍요와 넉넉함이 묻어 나오는 느낌이었다. 미령이는 이번
여행에서 제일 인상
깊은 곳이 트레비 분수였단다. 그래서 우린 거길 여행 시작할 때도 가고 끝날
때쯤 해서 한번 더
갔다. 여행기간을 통틀어 유일하게 두 번 가본 곳이다. 그래도 다시 가고 싶은
곳익도 하다.
유럽은 덥다. 그래서 어딜 가나 분수가 눈에 많이 띄는 건가? 아무리 더워도
분수가 많아서 분
수가에 앉으면 시원해진다. 분수물에 발을 담가도 괜찮은지 자연스럽게 발을
담그는 사람들이 많
다. 우리의 느티나무 그늘이라고나 할까? (그건 인공으로 만든 거고 우리 느
티나무야 자연으로
된 거니까 우리 거가 암만해도 더 낫지!)
우리 식으로 생각하면, 로마의 엄마들은 아이들을 분수 기술자로 키우고 싶
지 않았을까? 전쟁
에 안나가도 되니까! 우리 군대 안나가는 식으로. 혹시 벽돌 굽는 기술자보담 쌓
는 기술자가 돈이
더 생긴다고 했을지도 몰라!“예, 너는 만드는 것보다 쌓는 기술을 배워라”혹은
“우리 애는 말예
요, 벽돌 기술을 배우러 나갔잖아요”“우리 앤 분수 만드느라 군 같은 건 안
가요”뭐 그런 게
자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선 일반적인 사진들은 찍을 수 있는데 ENG 카메라는 안된단다. 그럼
맡기겠다. 그랬는데
가이드가 “이게 워낙 비싼 거다. 자동차 한대 값이다. 잘 보관해 달라. 보관을
잘못하면 안된다.
그러니 우리가 들고 들어가서 안 찍으면 되잖아 짜샤!”하면서 겁을 줘서는 가
지고 들어와 몰래
찍었다.
입장료를 받을 수 있게 만든 것도 아이디어다. 왜냐하면 워낙 많은 나무를
심어놔서 언덕 바로
아래인데도 나무에 가려서 뜰이 안 보이는 거다. 그러니 나중에 후손들이 입
장료라도 받아먹고
살지! 사실은 자기는 그런거 미처 모르고 만들었을 텐데. 알았건 몰랐건 숲을 많
이 만들어놔서 오
늘날 후손들이 입장료라도 받아 먹고 살게끔 한 건 조상들의 지혜다. 우리도
세종대왕이나 문익
점 같은 조상들을 얘기할 적에 “우리 조상은 지혜가 많아”그러는데 아마 여기
사람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유럽 사람들도 보나마나 그랬을 거고 더 심한 경우는 토인들도 자기
네 조상들은 지혜
가 많고 슬기로왔다는 그런 얘길 할 거다.
티볼리 분수 입구 골목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일부러 한국돈
만원을 냈더니 할
머니가 암말 않고 받아준다. 우리가 도리어 이상했다. 나중에 문 앞 가게에서
오카리나라는 사제
악기를 사면서 한국돈을 냈더니 안된단다. 끝까지 우겼더니 옆에 있던 이태리
사람이 자기 주머
니에서 이태리 돈을 잔뜩 꺼내 보여준다. 나는 대신 돈내주는 줄 알았더니 왠
걸! 이런 걸로 내야
된다고 가르쳐주는 거다.
두시간 정도 분수관광을 끝내고 나오는데 아까 만원짜리 받은 할머니가 우릴
부른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가봤더니 우리 돈 만원짜리가 안된단다. 왜
안되냐고 물었더니
은행에 문의를 했는데 한국 돈은 교환이 안된다고 그랬단다. “그래도 한국에
선 사용한다. 진짜
사용하고 있는 돈이다”그랬더니 그럼 한국으로 자기를 초대해주면 그 돈을 한
국에 와서 사용하
겠단다. 그래서 몰래 카메라라고 설명을 드리고 이태리 돈을 줬다. 한국 돈을
내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찍은 거라고 얘길 했는데, 끝까지 웃으면서 나에
게 설명해준 할머니
도 옆 가게 아줌마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한참 걸어나오는데 일행중 한 명이
“아까는 혹시 일본
돈인 줄 알고 받은 거 아냐?”하고 묻는다. 그 한마디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
다.
이태리 사람들 성격이 우리와 정말 비슷하긴 한가 보다. 이태리에서 사업하
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이태리 사람들은 노는 걸 좋아해서 5시가 퇴근인데 4시 45분이 되면
퇴근하려고 분침을
눈으로 막 밀어올린단다. 이얘기 듣고 찔리는 직장인들 좀 있을걸!
하지만 하나 다른 게 있다. 완전히 다르다. 여기 텔레비전에서 하루는 발명품
코너를 봤는데, 우
리도 왜 요즘 한창 중소기업 제품들 소개하는 프로그램 있잖아. 그런데 그건 모
두 시간이 짧잖아.
한 제품 소개하는데 금방금방 지나간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그 코너 진행하는
개그맨이 막 숨이
차서 헐떡거린단 말야. 말 빨리 하는 개그맨들을 진행자로 쓰기도 하고. 그런
데 여긴 한 제품을
소개하는 데 두 시간 정도 할애를 하는 거다. 어떤 경우는 네 시간 정도 제품
설명을 하기도 한
다. 쉬지 않고. 그러니까 굉장히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는 거지. 그 제품에 관한
한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는 거야. 아주 괜찮더라고.
이태리라는 나라는 이렇게 우리와 비슷한 점도 있지만 알고 보면 다른 점이
더 많은 나라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연구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복권 당첨금을 탔
는데 자선단체 회장인 피아트 자동차 회장에게 맡겼단다. 모처럼 복권을 타서
괜찮은 일을 해보
고 싶고 좋은 일을 위해 쓰고 싶은데 자기는 어떻게 써야 할 지를 모르니까 좋
은 차 만드는 회장
님이 여러 사람을 위해 쓸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랬다나. 자기보다는 지금까지
한 일로 봐서 덕망
이 높은 피아트 회장이 여러 사람을 위해 돈을 더 잘 쓸 수 있다는 거지. 또
대통령이 죽자 시민
들이 칭송하는 포스터를 내건 나라이기도 하다. 90년 청소년 월드컵에 맞춰서
새 운동장을 오픈
하려고 했는데 월드컵이 끝나고 1년 뒤에야 공사가 완공됐단다. 그래서 그때
가서야 일반에 공개
가 됐다. 공사를 완벽하게 하려고 그랬다지 아마? 월드컵 때는 결국 다른 스타
디움을 빌려 썼단
다. 우리 같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완공하려고 했을 텐데, 국제행사니까 말이다!
우리나라 돈에도 코메디언 얼굴을 박자
LA 가면 차가 신호에 걸리면 흑인들이 무조건 쫓아와서 앞 유리창을 닦아
준다. 그리곤 돈을
내라 그런다. 로마에서도 그런 아해들이 있었다. 걔들은 여자가 운전하면 무조
건 닦는다. 우리 돈
으로 250원이다. 여자는 무조건 닦고 본다. 내가 아는 한국의 어느 화가랑 비슷
한 놈들이다. 냄비
는 무조건 닦고 봐야 돼!
로마는 오토바이가 많이 다닌다. 조용한 골목길을 오토바이가 달리면 그 소
리가 내 귀엔 마치
모기가 윙윙대는 소리처럼 들린다.
로마에서 신호지키는 이태리 여자 아해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빨간불이 들어온
횡단보도를 건넜
다. 신호를 지키겠다고 서 있는 이태리 시골 여자 아해를 쪼다라고 말하면서.
프랑스에서 숙달이
된거다.
로마는 지금 한창 세일중이다. 여기 와서 제일 많이 본 게 SALE 간판이었
다. 거리마다 세일이
란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그래서 요때 여행오는 우리나라 아줌마들은 유적지
보다 베네통이니 하
는 브렌드의 세일매장에 데려다 달라고 그런단다. 소렌토에 있는 이태리 가구
공장에 갔더니 이태
리 점원들이 “롯데백화점에서 230만원 하는 걸 여기는 집앞까지 배달해주고 깎
아서 150만원”이
런 얘기를 막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그만큼 와서 많이 쓰고 간다는 얘기다.
이태리에서는 물건을 살 때 절반은 깎아야 된다는 얘기를 여러 사람에게서
듣는다. 우리보다
환율도 낮지만 바가지를 워낙 많이 씌운단다. 돈 단위도 한국 돈 만원이 이태
리 돈 2만 리라가
된다. 그러니 저쪽에서 5만 리라를 부르면 먼저 5만리라를 둘로 나누어서 우리
돈으로 2만 5천원
이지, 하고 속셈을 하거나 일행에게 물어본다. 그런 다음 깎으란 말이 생각나니
까 2만5천원에서 5
천원를 깎고 “2만리라!”하고 부른다. 그러면 장사꾼 입장에서는 5만리라를
부른 건데 2만리라
하면 하면 너무도 턱없이 깎은 게 된다. 그러니 안 판다. 가면 잡겠지 하고 그
옛날의 남대문 스
타일로 가도 안 잡는다. 그러면 우리는 나쁜 자식이라고 생각하면서 안 사고 간
다.
그런데 이게 웃기는 것이, 그 사람들을 나쁜 자식들이라고 그렇 수가 없다.
사실은 우리가 계산을 잘못한 거니까. 5만 리라를 불렀으면 2만5천원이라고
생각을 하고 5천원
을 깎고 나면 2만원, 그러면 2만원에 곱하기 2해서 4만 리라라고 생각을 해야
되는데 그만 “2만
리라”이러는 거야. 환전 환율 이런 거에서 잠깐 착각을 하는 거지.
여행 다니다 보면 깎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에 띄거나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얼른 사야 된다!
외국 여행 중에는 같은 자리에 다시 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떨게 하다 보니
까 다시 오는 게 아
닌 담에야 그거 하나 사자고 길도 서툰데 시간을 들여가며 그 자리를 다시 찾
겠는가 말이다! 그
게 쇼핑 요령이다.
그리고 물건값이 싸든 말든 관계없이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인가를 계산하면
빠를 텐데‘여기
사람 한달 수입이 얼만데 이만큼 주는건 저 사람이 너무나 땡잡는 거야’그러면
서 통박을 굴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필요가 없다. 그 나라 물가로 왜 생각을 하는가 말이다. 우리 상식, 우
리 물가 개념으로
볼 때 무리가 아니면, 적당하다 싶으면 사는 거다. 그렇게 재고 따져서 안 사면
손해랄 것까지야
없지만 정작 사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을 놓칠 수도 있다.
정보 하나룰 얘기하자면 우리나라 아해들이 여름에 여행갈 때나 그럴 적에 선
탠 크림을 많이들
사잖아.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까 잡지를 살 적에 부록으로 선탠 크림이랑 샴
푸, 매니큐어 같은
거를 주더라고. 1천 리라쯤 하는 잡지를 사면 독자 사은품이 재미나는 것들이
많아. 고런 걸 잘
봐서 사면 좋지 않겠냐는 거지.
외국가면 왜, 자기 맘에 드는 거 쇼핑을 참 잘하는 애들이 있잖아. 나는 그런
거 잘 안해봐서 그
런지 참 못하거든(소방차의 정원관이도 외국 나가면 값싸고 좋은 물건들, 근사
한 것들을 잘 사는
축에 든다). 리스본인가 거기서도 내가 뭘 좀 사보려고 그러는데 도무지 맘에 드
는 게 없는 거야.
그런데 좀 다니다 보니까 겨우 하나 이거다!하고 찍은 배낭이 있었는데, 이런
세상에 향수 사면
공짜로 주는 배낭이래! 그러니까 파는 게 아닌거지. 그렇다고 배낭땜에 쓰지도
않는 향수를 살 수
도 없고 말야. 아쉽더라구.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그런 식으로 많이 하던데 이왕
사는 거라면 그렇
게 잡지 같은 거 하나 사면 필요한 물건도 장만하고 기념도 되고 좋지 않겠어?
그런데도 우리나라 아해들은 외국에까지 와서도 물건을 살 줄 몰라. 돈을 쓸
줄 모른다는 증거
가 있어. 내가 듣자니까 배낭여행 하는 여자 아해들 외국 가면 생리대 값이 상
당히 비싸다고 굉
장히 많이 사온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속으로 그랬다구.‘야 그거 몇 푼 한다
고 그러냐? 외국가
면 한말씩 나오냐?’
그런데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물건을 사거나 할 때 이태리 돈을 가만히 보면
모델들이 참 재미
있다. 우리나라처럼 근엄하게 세종대완이니 이순신 장군이니 하는 사람들이 아
니라 조각가나 교
육가들이다. 어린 아이들 교육용 교재를 만들어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몬테
소리같은 사람도 있
다.
우리나라도 코메디언 같은 사람들이 돈에 도안이 되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
까 하는 생각이 든
다. 서영춤 같은 사람들, 구봉서 같은 선배들이 서울시 깃발 같은 데 도안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문화적으로 뛰어난 나라가 되겠는가 말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게 너무 엄숙하
다. 재미가 없다.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면서 여러 사람들을 웃기고 국민적인 즐거움을 선사한 사람
들을 대접하고 사
랑하면 좋지 않은가 말이다. 돈 쓸 때마다 한번이라도 웃게 되지 않겠냐고!(참
고! 만원짜리에 있
는 세종대왕 그림 누가 그린 건지 알아? 김기창 화백이더라구!)
얼마 전에 프랑스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소피 마르소가
문화사절단의 일
원으로 같이 왔다. 역시 프랑스는 예술을 사랑하는 나라구나! 그러면서 부러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생각이 난 건데 말야, 우리나라 대통령도 외국에 나갈 때 그렇게 한 명
씩 데리고 나가면
어떨까. 그리고 소개할 때 “이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망치질을 제일 잘 하는
사람입니다”아니면
“이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라면을 제일 잘 끓이는 사람입니다”“이 여자분은
대한민국에서 파마
를 제일 잘하는 여잡니다”하고 소개하는 거야.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망치질로 먹고사는 사람들, 라면 끓여먹고 사는 사람들
이 얼마나 신이 나
겠어. 파마로 먹고사는 여자들이 얼마나 기분이 째지겠어. 자기 직업에 얼마나
보람과 긍지를 갖
게 되겠냐구! 비행기야 전세기로 갈 테니 밥 먹을 때 숟가락 하나 더 놓는 것
아니겠어? 그래야
각 분야에서 일등이 되고 싶어할 텐데 말이야.
“나는 커서 우리나라에서 구두를 제일 잘 닦는 사람이 될 테야”“나는 이
다음에 우리나라에
서 신발 디자인을 제일 잘할 테야”“나는 이 다음에 커서 인쇄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될 터이다
”이러면서 꿈을 키울 거 아니겠냐구. 어느 분야에서든지 일등을 하면 대통령
과 함께 같은 비행
기를 타고 대통령의 일행이 되어 외국을 나가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아
니겠어? 물론 다음
과 같은 걸로 일등은 안되지.“제가 우리나라에서 음주운전으로 제일 많이 걸
린 사람입니다,”“
제가 가출을 제일 많이 한 사람입니다,”“제가 수틀릴 때 길가는 놈들 두들겨
패는 걸로는 우리
나라에서 제일 가죠. 전치 4주는 보장한다니까요,”“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제
또래에서 사기전과
가 제일 많은 사람입니다.”
오드리 헵번의 숏커트는 NG때문에 생겼단다
오드리 헵번의 숏커트. 전세계 여성들에게 유행된 바로 그 깜찍한 숏커트가
사실은 영화 찍을
때 이태리의 머리 자르는 아해가 NG를 하도 많이 내는 바람에 자꾸 자르다 보
니 올라가서 그렇
게 됐단다. 거기 가면 가이드가 그런 얘기 다 해준다. 근데 그게 세계적으로 유
행을 했고 그곳이
지금은 구두가게가 되어 있다. 그야말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아우!’
네!(여기 ‘아우!’는 국보자매의 히트곡 가운데 ‘나를, 나를, 잊지 마세요- 머
리에서 발끝까지-
아우!’할 때의 그 ‘아우!’다)
오드리 헵번은 참 대단한 여자다. 요즘도 텔레비젼에 종종 얼굴을 나타내고
그러는대, 오륙십년
대엔 그 요정같은 이미지로 사람들을 휘어잡다가 나이든 지금에 와서도 여러 사
람들의 가슴을 울
리니 말이다. 주름살 없이 팽팽한 얼굴을 유지하면 된다고 믿는 많은 연예게
사람들은 모름지기
오드리헵번의 과거보다는 현재를 보고 배울 일이다.
오드리 헵번의 주름살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한번 생각해 볼 만한다. 젊게
산다는 게 그렇게
좋은 일이기만 한가? 그럼 나이 먹은 사람은 즐거움도 없단 말인가? 어릴 때는
어른스러운 것을
칭찬으로 들었는데, 나이 먹고 나면 젊어보인다는 게 칭찬인가? 야유인가?
우린 정말 희안하게도 나이답지 않게 사는 걸 가장 좋아한다. 어렸을 적에는
나이답지 않게 어
른스럽다느니 노숙하다느니 그러다가 나이 먹으면 “아, 나이답지 않게 젊게
사시네”혹은 “이
친구 나일 거꾸로 먹나? 좋아보이는데!”막 그러니 말이다. 우리가 “옛날이
좋았어”하고 자주
이야기하는 것도 그 밑바닥에는 옛날이 지금보담은 조금이라도 젊었기 때문이라
는 의식이 사실은
깔려 있을 것이다. 이게 얼마나 우습냐. 나이 먹은 사람들의 즐거움도 우리가
인정을 해줘야 한
다.
벨기에에서는 주름살투성이인 오드리 헵번이 한창 젊고 예쁠 때 출연한 영화
‘논 스토리’에
나온 집이 관광코스였다. 오드리 헵번은 미국여자지만 영화때문에 오히려 유럽,
특히 이태리에서
더 알려지고 잊혀지지 않는 인물이 된 것 같다. 로마 전체가 ‘로마의 휴일’
때문에 다시 살아나
게 된 느낌도 강하게 받는다.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이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비토리아노를
배경으로 내달렸던 베네치아 광장이나 둘이 다정하게 아이스크림을 먹던 스페인
광장 계단 등 한
두 곳이 아니다.
마귀같은 형상이 커더란 입을 벌리고 있는 ‘진실의 입’도 영화 ‘로마의
휴일’땜에 유명하
게 된 곳이다. ‘로마의 휴일’을 보면 그레고리 펙이 그 안에 손을 집어넣고
“악!”뭐 그러잖
아. 옛날에는 이 진실의 입이라는 거에 팔을 집어넣으면 잘린다는 전설을 이용
해 정적이나 마음
에 안 드는 놈들 손을 집어넣게 해가지고 도끼로 치게 하기도 했단다. 그래서
폐해가 많았다는
얘기도 있다. “너, 그 얘기, 구라야 진짜야? 이 자식아, 손 집어넣어 봐, 거짓
말이면 그 손 절단
날 줄 알아” 그래갖고는 뒤에서 더끼로 내려치고 손을 자르고...
그러다 그게 어떻게 해서어디론가 없어졌다가 세월이 지나 길거리에서 하수도
뚜껑으로 발견이
됐단다. 그래서 손질을 해서 그 자리에 다시 갖다놨는데 그 이후 영화땜에 다
시 유명하게 됐다는
거다.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거기에 손을 집어넣으면서 스릴을 느
낀다. 그리고 연인
끼리 와서 손을 집어넣고는 꺅꺅거리며 좋아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스릴을 느낄만한 데
가 로마에는 또 한군데 있는데 있는데 기독교시대 박해받던 예수교인들의 지
하공동묘지다. 콜로
세움에서 사자밥이 된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동료들이 4천명이 넘게 해골로 누
워있어서 해골사원
이라고도 불린다. 그 사연도 서늘하지만 내부온도가 14도라 굉장히 시원해 여
름에도 스릴을 느낀
다는 곳이다.
유람선으로 돌아온 밤, 미국에서 온 여고생에게 물어봤다. 로마와 파리에서
뭘 느꼈냐고. 얘가
그랬다. 역사가 느껴지는 것은 같은데 로마는 역사 그 자체이고 파리는 역사가
있으면서 현대적
인 것이 같이 있어서 파리가 더 좋다고 느꼈단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나는
이 나이에 왜 못
느꼈을까! 지금 내가 느낀다고 해도 얘네들한테 30년이상 뒤지는 거잖아, 이거!
교황과 청소부가 통하는 나라
바티칸 베드로 성당에 있는 베드로의 발은 의족이다. 베드로 동상앞에서 많
은 사람들이 발을
쓰다듬어서 닳은것이다. 벌써 여덟개째 의족이란다. 우리나라 부처 코 떼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그 아해들의 소원은 뭘까?
바티칸옆에는 극빈자를 위해서 음식을 무료로 나눠주는 데가 있다. 메뉴는 딱
한가지란다. 스파
케티! 그렇겠지! 얻어먹는 주제에 이것 저것 달라고 하기도 미안하겠지. 내 생
각엔 이 나라에서
제일 맛있는 스파게티가바로 그 집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만 계속
하니까 도가 터도
트지 않았겠느냐는거다.
베드로성당에 가면 교황만 서는 장소가 있다. 미사를 집전하는 단상이다. 거기
는 교황하고 청소
부만 올라갈 수 있단다. 역대 교황만 올라갔다. 또 교황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
는데 이것도 역시
교황만 탄단다. 수행원들도 못 탄단다. 그래서 내가 “아, 그러면 엘리베이터
수리공만 타겠구나
”생각했다. 그렇단다. 그러니까 제일 높은 사람하고 제일 낮은 사람은 통하는
거다.
로마 같은데는 도둑놈이 득시글거린다. 집시들과 소매치기 등 전부 도둑놈
투성이여서 배낭족
열명이 기차를 타고 가면 도둑놈들이 하룻밤에 스무 번씩 서른 번씩 훔치러 들
어올 정도다. 기차
타고 밤에 아홉시간을 가게 되면 거짓말 안 보태고 백 번 정도 훔치러 들어온
단다. 문 역고 또
오고 또 오고, 그러다 방심하면 들고 나가는거다.
심지어 한 2개월 된 어린애를 안고 어른들 앞을 왔다갔다하다가, 어른 앞에
딱 던지고는 상대
방이 아이를 들고 강황해 할 때, 바로 그때 짐이랑 물건을 갖고 간다. 어린애를
던지면 누구나 본
능적으로 다 받을 거란 심리를 노린 야비한 방법이다. 만약 상대방이 받지 않
아 애가 떨어지기라
도 하면 저놈한테 부딪혀서 그랬다며 막 뒤집어진단다. 안 받아줄 수도 없고
받아줄 수도 없고,
그렇게 돼 있다.
여기 도둑놈들은 우리랑은 스케일이 다르다. 고속도로 간판의 화살표 방향을
정반대로 바꿔놓
아서 차를 한쪽으로 유인해 길목을 지키고 있다 털어가는가 하면, 밤에 여자가
손들고 딱 나타나
히치하이킹하는 줄 알고 차를 세우면 양쪽에서 사내들이 해머를 들고 나타나
라이트를 깬다. 그
렇게 갖고 가는거다. 이렇게 극성맞은 도둑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신성한 지역,
바티칸과 그 주변
로마에서 우글대며 먹고사는 이유는 교황 바오로 2세가 불쌍한 사람들을 괴롭
히자 말라고 한 말
씀 때문이란다.
동정심 많은 폴란드 출신 교황이 불쌍한 사람은 보듬어서 같이 살아가야 한다
고 한 말씀때문에
도둑들이 없어지지를 않는다는 거다. 소매치기들이 감기가 걸려서 콜록거리면
감기약을 나눠주기
도 하고 소매치기를 잡아서 때린다든가 혼을 내면 불쌍한 사람을 괴롭히지 말
라는 교황의 말이
골수에 박혀 있는 할머니들이 무진장 야단을 친단다. 누가 도둑을 맞아 훔쳐간
놈을 붙잡아 때리
면 거기 할머니들이 그런다는거다. “아, 왜 그 불쌍한 사람을 때리냐”고. 그
렇게 공존하면서 산
다.
우리나라에서 만약에 불쌍한 사람들이 도둑질하고 그런다면 당장 역적취급을
할텐데. 우리 상
식으로는 참 기묘한,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거 자체를 여
기 사람들은 인정을 해버린다는 거다. 교황과 청소부밖에 올라설 수 없는 자리,
교황과 수리공밖
에 이용할 수 없는 장소들은 로마와 바티칸의 이런 모습을 상징해주는 곳들이
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도둑질하는 꼬마를 붙잡아 막 때렸다. 아니나 다를까 할
머니들이 몰려와서
물쌍한 애를 그러지 말란다. 말로 타이르라는 거다. 말을 할 줄 알아야 말로 타
이르지! 암튼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 때렸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 훔쳐가고 빼가거든. 여기 사
람들은 여기 사람
대로, 나는 내 식대로, 우리 식대로 한 거다.
배 안에서 배 타면 기쁨이 배
바닷공기가 신선하다. 좋은 공기 마시고 세포 하나하나가 다시 태어나라! 바다
에 오래 있었으니
바다 생선처럼 싱싱해졌으면!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산
타루치아(망망대해
일망무제란 단어를 서울 가면 제일 먼저 국어사전으로 찾아봐야지! 이 말을 쓰
고 싶었는데 뜻을
정확하게 몰라서 좀 그렇더라고).
배를 타고 지나다 보면 육지들이 더러 보인다. 육지만 나오면 승객들이 “
저기는 어디입니까?
” “여기가 어디쯤이죠?” 하고 묻는데 사실 종업원들도 잘 몰라. 배에서 일
하는 종업원도 모르
는 곳을 알아서 뭘 하나? 한시간 후면 스페인을 지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그렇다면 여기가
어딘가? 스페인에서 한 시간 배타고 나온 데지, 어디간!
스페인을 지나 유람선이 막 물위를 떠가는데 배를 따라온다. 지켜보면 그냥
나는 놈들도 많은
데 꼭 그 배 굴뚝위로 나는 갈매기도 몇 마리 있다. 이 자식들, 배 따라다니면서
연기만 들이마시
는 걸 보면 혹시 뽕 하는 갈매기들 아냐? 갈매시 세계에도 대마초 사건이 있을
까? 이 놈들은 출
연정지 당하면 어디로 가나?
유람선을 처음 타면 누구나 다 제일 먼저 참석하는 게 있다. 구명조끼 입고
비상사태에 대비한
연습을 하는 건데, 구명복을 입고 갑판앞에 전부 나가서 출석을 확인하고 구
명보트로 내려가는
순서와 요령을 설명 듣는다. 비행기 타면 스튜어디스가 언제나 시범을 보여주
지만 우리가 직접
해보지는 않잖아. 그러나 배에서는 누구나 다 참가해야 한다. 그리고 구명보트가
내려오면 만일에
사고가 났을 경우 자기가 타고 갈 배와 자리를 구명조끼를 입고 들여다 본다.
그러면 선원 한명
이 구명보트로 내려가서 엔진상태를 확인하고 시동을 한 번 걸어보고 온다.
여자선원이 구명보트 기관실로 내려갔다 오더니 하얀 제복이 먼지로 시커멓
게 되었다. 생각해
보라! 사동이 잘 걸리고 먼지가 없는 게 나은 밴지, 시동이 잘 안 걸리고 먼지
가 풀썩풀썩 나는
게 좋은 밴지. 구명조끼도 마찬가지다. 아주 새것도 좋지만아주 헌것. 사용흔적
이 많아서 너덜너
덜한 중고도 좋을 수가 있다. 먼지가 하얗게 쌓였다는 건 한번도 사고가 안 나
서 사용을 안 했다
는 얘기 아냐. 시동이 잘 걸리는거는 사용을 많이 했다는 거니까 어떻게 보면
불안한 것일 수도
있다는거지.
“아, 이놈이 벌써 인생을 알아버렸구나”
외국에 나가면 꼭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그냥 길거리에서 사람을 하루
종일 쫓아다니면서
저 사람이 온종일 뭘 하면서 지내는가를 알아보는 거였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면, 어느날 아주 조그만 소도시에 갔다고 쳐보자. 서
울식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한가로울 것 같고 거기 사람들은 아무 일도 안하는 것 같고 그렇잖아?
저런 조그만 읍내
에 나오는데 무슨 양복씩이나 입고 나오나, 우리 같음 그냥 슬리퍼 끌고 왔다
갔다해도 될 텐데,
하면서 말이지. 그런데도 거기 사는 그 사람들 나름대로의 희로애락이 생활속
에 들러가보면 다
있다. 그런데 그걸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겉만 보고 얘기하는 경우가 있는거다.
그런걸 한번 유심
히 관찰해보고, 어떻게 사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언젠가 구미 사는 조카 한 놈을 서울에 데려다 놨다. 그랬더니 아, 이놈이
서울사람들 뭐하고
사는지 궁금해 미치겠다는 거다. 초등학교밖에 안 다니는 놈이. 정말 미치려고
그
러더라니까 우선 밖에 못 나가게 하지, 밤낮 위험하다고 하지. 바깥으로 못 나
가게 하는 통에 애
가 완전히 집안네 갇혀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도시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시골
은 밖에 나가면 어
디 마땅히 들를 데가 없이 휭 뚤려져 있으니싸 심심하겠지… 그렇게들 생각하
는데, 퇴촌에 오래
살아보니까 그렇지가 않다. 얼마나 재미있다구. 그런데 그때도 어떤 놈이 와갖고
는 나보고 굉장히
심심하겠단다. 이유가 뭐냐면, 이 동넨 카페가 없다는거다. 그렇담 도시아이들
이 카페를 다니는
게 심심하려고 다니는건가?
이건 그냥 나 혼자 생각하는 ‘자연 보는 법’같은 거지만, 정말, 정말이지
전혀 안 심심하다.
내가 한번은 1월1일서부터 150일정도를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나무를 매일
사진 찍어본 적이
있는데 그 나무들이 하루하루 보면 안 변하는 것 같아도 한달 단위로 끊어서
보면 분명히 변한
다. 자연이라는 게 분명히 그렇게 된단 말이다.다. 보름씩 끊어도 물론 변한다.
일주일, 사흘도 마
찬가지다.
내가 퇴촌서 8년 살았는데, 살면서 그런 걸 매일매일 느꼈다. 예를 들어 서울
서 퇴촌 갈때도 매
일 오른쪽만 쭉 보고 가다가 어느 날 왼쪽을 한번 보면 아카시아가 함박같이 피
어 있다거나 예상
치 못한 그림이 펼쳐지거든. 그날부터 그쪽을 쭉 보다 어느 날 또 오른쪽을 보
면 전혀 다른 풍경
이 펼쳐쳐 있고... 식당 네온사인을 보고 매일 날아오던 매미가어느 날 안 날아
오기 시작하면 거
짓말처럼 한 마리도 안 오고 딱 그친다. 거기 일층 컴컴한 구석에 두꺼비집이
있었는데, 밤9시30
분인가 40분이 되면 한마리가 뚜벅뚜벅 걸어나와서 매미 두마리를 딱 잡아먹고
들어간다. 세마리
도 아니고 한마리도 아니고 딱 두마리다.
칠흙같은 밤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막 들려오는데, 개구리란 놈들이 울기 시
작할 때도 동시에
한꺼번에 우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끝나는 날은 하여튼 ‘딱’이다. 개구리
사회에는 심형래가
없는 모양인지, 어쩜 그렇게 한 마리도 안 울고 딱 소리나게 일시에 멈추는지
신기하다. 잠잠해지
고 나면 그때부터 벌레 우는 소리가 들린다(하긴 그 전에 울면 개구리한테 잡혀
먹힐 테니 별 수
없겠지). 너무너무 신기하다. 도시보다 훨씬 재밌고 도대체 심심할 새가 없다.
이야기가 옆길로 좀 샜는데, 그래서 여행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보자, 그 사람
들은 어쩌구 사나
자세히 들여다 보자, 마음먹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중에는 정말 재미
있는 사람들도 이
었다. 그러니까 뭐냐면,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일이든 재미와 의미가 있다는
거다.
유럽을 다니다 보면 역사적인 건물들이 많고 그 사이로 유모차를 끌고 다니
는 엄마나 아빠를
무진장 많이 본다. 물론 엄마 아빠가 같이 유모차를 밀고 다니며 산책하는 경우
도 많다. 유모차의
종류도 다양해서 우리가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것 말고도 접는 것, 혼자용, 쌍
동이용, 세쌍동이용
까지 있다. 세쌍동이가 그리 흔한 것도 아닌데 백화점에 진열이 되어 있는 것
이다. 우산(파라솔)
달린것, 접는것, 접어서 등에 업게 돼 있는 것, 자전거에 매다는 것, 아이 옆에
개 태우는 것, 아
기가 타는 것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것, 별의별 것들이 많이 있다.
산책을 좋아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역사적인 건물들 사이
를 지나고 공원을
지나고 다리를 건넌다. 아이가 말을 알아들을 때쯤이면 엄마나 아빠가 알고 있
는 거리의 역사를
이야기해주고 그것도 몇 번씩이나 누구의 동상인가를 들으면서 아이는 자라나
자기가 나고 살아
온 도시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문화를 배우는 것이다. 특히 햇빛이 나면 아이
들은 엄마나 아빠
가 끌고 다니는 유모차에 태워져 밖으로 많이 나온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태
운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다.
한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가다가 지쳤는지 다시 유모차에 기어 올라간다. 올
라가더니 자동으로
손이 안전벨트로 가더니 안전벨트를 채우는 것이다. 서너 살이나 되었을까? 아
주 신통하다는 생
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겠지’하면서도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엄마
가 들어서 유모차
에 태우는 그림이 먼저 떠오르고 엄마가 안전벨트를 채워줄 거라는 생각이 든
다. 물론 서양 아이
전체가 다 그렇지는 않은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이럴 때 학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할지 모름다. “서양 아이들은 이렇게 안전
벨트를 스스로 매듯
이 자기의 행동이나 사고를 스스로 절제할 줄 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을 보
라! 강요에 의한 절
제이기 때문에 같은 안전벨트라도 절제가 아니라 속박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
다. 어쩌구저쩌구..!
”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저 아이도 안전벨트를 스스로 묶기까지
엄마가 얼마나 잔소
리를 심하게 퍼부었겠는가! “이놈의 자식, 그것 안 하면 안 데리고 나갈 거야”
“평생 음지에서나 살 놈...”
고은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글에, 한 아이가 울다가 제 스스
로 눈물을 쓱 닦는
걸 보고 ‘아, 이놈이 벌써 인생을 알았구나’그런 대목이 있는데, 역시 이놈이
스스로 기어 올라
가서 어린 놈이 안전벨트를 자기 손으로 맬 적에 ‘아, 이놈이 벌써 인생을
알아버렸구나’하는
마음이 든다. 너무 빨리 철들어 버린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한 아이가 유람선 안에서 넘어졌다. 울지는 않는다. 혼자 일어서기엔 좀 어린
나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무도 안 일으켜준다.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지켜보는 데 몇 번의
시도끝에 이 아이
가 결국 혼자 일어나 앉는다. “브라보!”하고 구경하던 두 할아버지가 외친다.
잭팟 터졌네요!
유람선 안에서 카지노를 하다 보면 동전이 제법 모인다. 그 동전을 스티로폼
으로 만든 사발면 그릇 비슷하게 생긴 데 담아 가지고 여기저기 슬롯 머신 기계
를 어슬렁거리게 된다. 두어 번 해보고 잘 안되면 다른 기계 앞으로 옮기고 그
러는 것이다.
그렇게 동전을 갖고 다니다가 한 사발 정도를 쏟아버렸다. 25센트짜리를 반질
반질한 유람선 마룻바닥에 쏟았으니 동전 쏟아지는 소리가 좀 켰겠어? 사방으로
튀는 동전! 아니고 이게 무슨 망신이냐? 이때 앞에 있던 할머니가 한마디한다.
“잭팟 터졌네요!”
유머감각은 때로 이렇게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 그것도 뜻하지 않은 사람에게
서 웃음을 맛볼 때는 말이다. 우리 부부가 몇 년 전 미국갈 적에 비행기에서 우
리 앞에 탄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정말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제일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하늘에서 나를 웃긴 사람이었던 거다. 보
딩 표 좌석배정을 받으면서 보통 별별 얘기를 다 하지만 이 사람 하는 말이 걸
작인 게, “오늘 조종사는 누구입니까?”그러더라고.
사이판 갔을 때 만난 가이드도 대단했다. 마나가하 섬에서 남들이 잡을니까
나도 한번 잡아보겠다고 낚시를 했거든. 처음이었는데 던지자마자 내 낚시에 뭐
가 걸린 거야. 이크! 나한테도 걸리긴 걸리는구나해서 살살 잡아당겼지. 그런데
잘 안 나오더라구. 뭔가 큰 게 걸렸구나! 하고 끈기를 가지고 당겨봤더니 웬걸,
낚시바늘이 바닷속 바위에 걸린 거야. 가이드가 날 막 비웃길래 내가 한마디했
지.
“웃긴 왜 웃어, 나는 지금 물고기를 낚을 게 아니라 지구를 낚은 거야.”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인가 가이드가 바닷가를 걷다가 넘어졌어. 내가 막 웃었
더니 가이드가 그러더라고.
“웃지 마세요. 나는 지금 지구를 껴안은 겁니다.”
그 가이드 순발력 뛰어나데! 근데 문제는 자기가 만능 스포츠맨인데 수영 하
나만 못한다는 거야. 글쎄 그게 말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그럼 수영마저
배운다면 만일능 스포츠맨이 되는 건가?
몇 년 전 노태우 전 대통령 땜에 웃었던 일도 생각난다. 어떤 외국기자가 “
한국에는 왜 그렇게 군출신 대통령이 많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노 대통령이 “
한국에는 병역 의무가 있으니까 누구나 다 군 출신입니다”이렇게 대답을 하는
거야. 정말 기가 막힌 유머잖아? 본인이야 웃기려고 그런 게 아니겠지만 받아들
이는 사람 입장에선 굉장히 재밌다고.
대통령 시리즈로 나가는 것 같아서 좀 뭣하지만, 박 대통령 시절에도 재미난
그러나 뒤끝이 안 좋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뒤끝이 안 좋았던 이유는 당시는 만
약 입이 열 개라면 폭탄 열 개를 껴안고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일 만큼 입조심
을 해야 하는 시절이었기 때문일 거다.
그때 내 친구 중에 박 대통령 전용비행기 스튜디어스와 사귀는 친구가 있었거
든. 최모라고 하는 여자였는데 함께 만날 일이 있어서 이런 저런 잡담을 하다가
대통령도 부부싸움을 하는 적이 있는가 하는게 화제가 됐다. 그래서 내가 육영
수 여사와 박 대통령이 부부싸움을 하면 그걸 뭐라고 하는지 아느냐고 즉석퀴즈
를 냈다. 당연히 아무도 못 맞췄고 그래서 내가 정답은 ‘육박전’이라고 알려
줬다.
그 후에 최모양을 만났더니 진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육박전’얘기를 대
통령 앞에서 했더니 대통령께서 박장대소를 하셨단다. 물론 옆의 수행원들도 같
이 웃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내용 그대로를 동아방송 ‘0시의 다이얼’에 가
서 생방송중에 했다가 연출자도 혼나고 나도 한동안 방송출연을 못했던 적이 있
다. 나로 하여금 ‘세상은 참으로 치열한 육박전이구나’하는 편견을 가지게 했
던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그 무렵 한국 방송윤리위원히는 모두 137곡에 달하
는 외국 가요를 방송금지 했는데 그 중에는 세계적으로 히트했던 ‘일요일은 참
으세요’와 ‘딜라일라’같은 팝송도 포함되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우
리는 일요일뿐 아니라 매일매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참으라니까).
유람선 안에 있는 화장실에 갔는데, 내가 막 떠들면서 얘길 한 모양이다. 그랬
더니 아까 그 잭팟 터졌다면 유머를 날린 할머니가 미령이 한테 “아까 그 사
람, 쉬지 않고 이야기하던데 그 말을 다 듣고 있었냐”고 묻더란다. 그럼 그 할
머니는 내가 하는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네! 그렇다고 했더니 다시 묻더란다. 저
남자 쉬지 않고 엄청 말 많이 하던데 그 말을 정말 다 들었냐는 거야.
그 할머니 질문에 미령이가 저 사람은 원래 말하는 게 취미라고 그랬단다. 그
러니까 또 물어보더래. 그래서 미령이가, 자기는 듣는 게 취미라고 그랬다나.
우리가 전에 유람선 타고 신혼여행 갔을 때도 그랬거든. 매 끼니 같은 자리레
서 같이 식사를 하면 서로 친해진다고. 밥을 미령이가 먼저 먹었거든, 그랬더니
먼저 먹은 남자 놈이 “우리 둘이 바깥에 나가서 달구경 하자”고 꼬시는 거야.
그래서 옆에서 내가 “야, 너 유혹당하는 게 취미라고 그래라”그랬던니 그대로
했어. 그러자 그 새끼가 “아, 좋아요, 난 유혹하는 게 취민데”이러는 거야. 그
래서 내가 그 다음엔, “우리 남편이 사냥이 취미거든요. 끝내주는 총도 갖고 있
어요”그러라 그랬더니 그 얘길 하고는 서로 막 웃고 말았어.
밤이 되면 제비로 변하는 유람선 승무원들
유람선의 밤이다.
유람선 안에는 50년대 음악부터 해서 90년대 음악까지 나오는 바가 다 따로
있다. 어디든지 자기가 알아서 들어가 놀면 되는 거다. 나이에 따라서 음악 나오
는 데가 다 다른 건데 90년대 음악 나오는 델 가보니 랩음악이 요란하다.
배 안에서 제일 경치 좋은 곳에는 스카이라운지 같은 걸 만들어놨다. 술 한잔
하려고 들러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천국이다. 폼나게 정장차림을 하고 나타
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굽은 등, 불룩 나온 배를 가누면서 춤들을 춘다. 술 한
잔 하고 할말이 없으니 춤으로 때우려는 건 아닌지... 어쩌면 우리처럼 통박을
굴리지 않는 여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더 재미있게 놀지도 모른다.
잠시 후 승무원들이 거의 다 나타났다. 호텔 매니저, 오피스 매니저, 주방장
등등. 아, 이 사람들도 저녁에는 심심하니까 놀러 왔구나! 그랬는데, 주방장에게
우리가 술 한잔 사겠다고 했더니 자기가 한잔 사겠단다. 잠시 후 음악이 나오니
깐 승무원들이 갑자기 제비로 변하는게 아닌가! 할머니 할아버지 손님들의 춤파
트너가 되어주는 것이다. 어떤 할머니는 빤짝이 옷을 입고 나타났는데 주방장이
춤을 추자고 했더니 거절을 한다. 그래도 추자고 했더니 앉아 있을 때는 안 보
이던 지팡이를 들어 보인다. 다니기가 불편한 할머니다. 결국엔 춤을 같이 추긴
추는데 지팡이를 짚고도 할머니는 행복한 표정이다.
이렇게 승무원들과 손님이 춤을 추는 사이로 사진사가 나타나 사진을 찍어댄
다. ‘아, 이 친구들이 결국 매상을 올리려고 밤에 나왔구나’하는 생각이 그제
야 든다. 밤에 심심한, 혹은 피곤한(피곤한지 안 한지 잘 모르겠지만)승무원들을
일찍 안 재우고 매상을 올리러 내보낸 건 선정의 아이디어일까?
승무원 베비들은 그냥 춤만 추는 게 아니라 춤이 끝날 때쯤 주머니에서 행운
권 한 장을 꺼내어 손님에게 하나씩 나눠준다. 추첨권이다. 그러니까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는 싱싱한 남녀 승무원과 함께 춤출수 있는 기회가 되는 거다. 아
주 건전하고 재미있게 노는 거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굉장한 아이디어다.
매상은 매상대로 올리고, 사진도 부지런히 찍어댄다. 선상파티 때도 찍고, 식사
할 적에도 찍고, 배 들어올 적 나갈 적 쉬지 않고 찍어대는데 그렇게 찍은 사진
이 다음날 아침에 식사하러 가면 턱 하니 나와 있어서 잘 나온 사람들은 사기도
한다.
유람선 안에 그 배를 상징하는 미스 홀랜드 아메리카라고 굉장한 미인이 한
명 있었는데, 이 여자 역시 손님들이 원하면 같이 웃으면서 사진도 찍어주고 그
런다. 하다 못해 벨기에 같은 데 항구에 잠시 정박해서 관광을 나가게 되면 우
리가 여기저기 막 다닐 적에 사진 찍는 애가 따라나와서는 길목길목마다 따라다
니면서 찍어주기도 한다. 장삿속이거나 말거나 이런 거 하나는 하여튼 무척 잘
돼 있다.
유람선에서는 식사를 늘 하는 사람들끼리리 하게 된다. 여러 날 같이 저녁밥
을 먹으면서 노가리를 까다 보면 서로 친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무슨 할 이야기, 소재가 그렇게 많나? 형식적으로 인사하고 놀래주고
들어주고 별로 재미없어도 웃어주고 이때쯤 해서 유람선의 상술이 또 한번 발휘
된다. 상술= 서비스 정신이다. 선원들을 각 테이블에 앉혀서 말상대를 하게 해준
다. 호기심 많고 궁금한 게 많고 말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 상대가 되
어서 선원들이 바다 생활을 들려주는 거다. 같은 돈을 벌어도 참 밉지 않게 번
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지 정말 괜찮은 아이디어다.
유람선 안에 있는 쇼핑센타에 가보면 또 굉장히 물건들이 많이 쌓여 있다. 가
보면 무척 한가해서 ‘야, 저걸 어떻게 다 파냐’싶은데도 매일매일 한 품목씩
세일을 해서 다 팔아제낀다.
유람선의 식사는 인도네시아 아해들이 서빙을 하는데, 밤에 올라가 스카이라
운지에 앉아 있으면 필리핀 팀이 서빙을 하고 음악도 연주한다. 다이닝룸, 풀장,
스카이라운지, 저녁 공연하는 곳 등등 밴드도 여러 팀이다. 시간대마다 코너마다
서빙하고 연주하는 팀이 다 다르다.
잠자기 전에 누워서 가만히 궁리를 해본다. 스카이라운지를 혹시 한국의 스탠
드바처럼 분양한 거 아냐? 600명 가까운 종업원 월급을 어떻게 줄까? 한번 배가
뜨면 얼마나 남을까? 저 녀석들 월급은 얼마나 될까? 손님들 객실이 천 개라는
데 저 아해들의 숙소까지 합하면 방이 몇 개나 되나? 우리 방은 저 아해들이 치
워주는데 저 아해들의 방은 또 누가 치워주나? 이번에 배 한번 뜬 걸로 얼마나
벌었을까?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잠 안 올 때 누워서 우리 같은 계산을 하고 있을
까? 궁금하도다.
이런 데까지 놀러 와서 이런 계산이나 하고 있는 우리가 아직도 생각이 세계
화되지 못한 건 아닐까? 다음 여행지에선 어떤 일이 생길까하는 기대보담은 이
런 계산이나 하고 있으니. 그것도 남들이 다 자빠져자는 한밤중에 말이다.
리스본에서 받은 땅끝 도달 증명서
리스본 가서 ‘니 쓰봉’하나 사 입자!
6월 3일 로마 어느 항구를 출발해서 6월 6일, 리스본에 도착했다.
항구에 내려서 제일 먼저 환전을 했는데 커미션을 엄청 많이 뗀다. 알아두자!
리스본 항구에서는 환전하지 말것! 배에서 환전해도 된다.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미터기대로 가겠다는 기사와 요금 정하고 가겠다는 기
사가 서로 싸움이 났다. 결국엔 미터기대로 가겠다는 기사랑 탔는데 영업용 벤
츠였다. 문제는 내가 벤츠를 여러 번 타보진 않았지만, 에어컨 안 달린 벤츠는
처음 타봤다는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수동으로 올리는 창문도 고장이라서 열
어놓은 채 그냥 타고 다녀야 하는 벤츠였다.
배낭족 말고 관광객 여러분들에게 당부하는데, 혹시 영어가 된다면 옵션하지
말 것! 하루 약 15만원 정도면 하루 온종일 어느 나라 택시기사나 충실하게 서
비스해줄 것이다!
리스본은 뒷길로 접어들기만 하면 좁은 길투성이다. 좁기만 한 게 아니라 일
방통행이 대부분이고 언덕에다 커브길이 이만저만 꼬부라진게 아니다. 빨리 가
려고 해도 갈 수도 없다. 그 사이를 아이들이 공차기를 하면서 뛰놀고 동네 아
저씨들이 구멍가게에서 맥주 마시면서 앉아있다. 차가 지나가도 아랑곳하지 않
는다.
난폭한 한국 운전자들이여! 포르투갈에 와서 한 달만 시내연수 끝내고 돌아가
라. 사고가 반은 줄어들 것이다.
리스본에 와서 느낀 것. 길 건널 때 신호는 정말 우리나라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잘 지킨다는 거다.
리스본 로카곶이라는 델 갔다. 말 그대로 북위 38도 47분, 서경 9도 30분, 고
도 140미터인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이다. 별 볼거리도 없고 짧은 일정으로는
와보기가 부담스러운 곳인데도 우리나라 배낭족 아해들이 몇 명 눈에 띈다. 언
젠가 텔레비전의 한 초코바 CF를 보고 끌려서 왔단다. 관광공사하고 광고대행사
가 잘 지내야 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거야!
땅끝도달 안내소라는 데서 땅끝에 도달했다는 증명서를 준다. 우리나라도 육
지의 최남단이라고 하는 해남 밑 토말이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 가는 사람들한테
땅끝도달 증명서 같은 걸 주면 사람들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재미있게 생각하지
않을까? 별 거 아니지만 괜히 집에다 걸어두기도 하고 말이야. 다녀가면 아무것
도 없이 끝! 하는 것보담은 낫잖아.
국경일, 차는 다니지만 표 파는 사람은 같이 논다. 나중에 페스티발 장소에서
나오는데 안 비켜주는 택시 운전기사들. 한참 실랑이 끝에 비켜준다. 그러느라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시작부터 끝까지가 운전기사와의 문제였다. 그때 든
생각이 리스본! 정말 배가 지나가다 들르니깐 왔지 다시는 와보고 싶지 않은 곳
이다.
소주 안주로 밥 먹는 포르투갈 아해들
포르투갈의 전통 음식을 먹으려고 운전기사에게 물어봤더니 자기가 잘 아는
집이 있다며 우리를 데려갔다. 서울이나 포르투갈이나 맛있는 음식점은 영업용
택시기사가 잘 안다. 두 번째 탄 영업용차의 운전기사는 영어를 제법 잘한다. 호
텔에서 십 년 정도 근무를 했단다. 집사람하고 영어로 말이 통하니 무척 편했다.
포르투갈 토박이에다가 여기 저기 안내도 제법 잘했다. 정어리구이가 유명하다
고 해서 먹기로 하고 기사가 소개해주는 음식점으로 갔다.
음식을 시켜 먹는데 주인은 정말 더럽게 찌든 얼굴이었다. 정어리를 굽는데
집게를 사용하지 않고 길거리에다가 불판을 내놓고 숯불로 굽다가 뒤집을 때가
되면 맨손으로 그냥 뒤집는다. 손이 아주 시커멓다. 오징어를 시켰는데 먹물을
그냥 같이 구워준다. 정어리에 오징어에 갈치 그리고 돼지갈비살을 먹었다. 이게
서울 같으면 그냥 소주 안주지 어디 한끼 밥이라고 할 수가 있나?
매운 소스를 “타바스코”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그냥 갖다 주는데 “소
스, 소스”하니 후춧가루, 식초, 소금 따위를 갖다 준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네
덜란드 청춘남녀가 웃으면서 ‘티리티리’하고 말해준다. 그랬더니 자기네 나라
매운 소스 상표가 그것인지 그때서야 갖다 준다.
다 먹은 접시를 치우려고 하는데 주인이 접시를 자기에게 달라는 손짓을 하면
서 “컴 온! 컴 온!”하는 것이다. 우리는 웃었다. 주인도 웃었다. 나중에 내가
물을 시키는데 물통을 들고 “컴 온!”하면서 흔드니 자기도 웃으면서 물을 한
통 갖다 준다. 지가 영어를 모르는데 나는 아나 뭐!
먹는 얘기하니까 떠오르는 게 있다. 유람선 일행 중에 우리를 찍으려고 따라
온 프로덕션 사장이 한 명 있었는데 몸이 좋고 뚱뚱한 애다. 그런데 걔가 틈만
나면 그렇게 쉬지 않고 먹는 거야. 그래서 물어봤지. “너 어쩜 그렇게 밥을 열
심히 챙겨 먹냐?”그랬더니 이놈이 아주 유명한 말을 하는 거다. 한끼를 놓치면
그 끼니는 평생 못 먹는다나?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전차는 운전하는 사람이 직접 돈을 받는다. 우리가 탄
차를 보고 ‘파이브 미닛’이라고 하길래 오 분마다 올라간다고 이해를 하고 기
다렸는데 20분이 지나도 안 올라간다.
여기 돈 1원은 한국 돈 5원이란다. 1000에스코도 하면 곱하기 5해서 5000원,
이렇게 계산을 한다. 그러니까 물값이 75에스과도니까 75곱하기 5하면 375원, 길
거리 카페의 커피값이 350에스과도니까 350 곱하기 5는 1750원이다.
한국에서 사용하지도 않는 1원짜리를 가지고 “1원이 5원이야”하는 것도 재
미있는 일이다. 지루함을 달래느라 돈 계산을 하며 20분을 기다려도 전차가 안
움직인다. 그랬더니 우리 일행의 한 사람이 외친다. “이것도 5분 곱하기 5해야
되나!”알고 보니 종점까지 올라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파이브 미닛! 5분이다.
전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이상하게 생긴 노인 비스므레 한 사내가 우리 옆자리
에 탔다. 자기가 안내를 해준단다. 아주 친절하게 공원을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
주고 안 되는 영어로 힘들여 가면서 설명을 해준다. 너무 고마운 일 아닌가? 자
기는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이란다. 한 30분 설명을 해주더니 자기 집으로 가잔
다. 전망이 죽인단다. “룩 앳!”하고 두손으로 망원경을 보는 시늉을 하면서 “
베리 나이스!”하고 말하면 우리는 ‘아, 전망이 좋은 곳이구나’하면서 알아듣
는다.
가만히 보니 여자 두 명 만나고 남자 하나 만나고, 온 동네 남자들하고 다 아
는 척을 하는 거야, 이 노인네가. 온갖 것 다 간섭하는 노인네구나 생각하면서
그래서 우리한테도 이러는 거구나 했는데 결국은 자기 방에 들라는 거였다.
자기가 옛날 기관총으로 쌈하던 얘기를 해주며 설레발을 치고 뉴욕에 온 친구
방 등 여기저길 구경시켠준다. 그런데 자랑스레 구경시켜주는 것 치곤 엘리베이
터도 없는 거 하며 집이 허술하다. 우리가 쓸방을 열쇠로 열어주는데 옛날에 수
녀들이 사용하던 방이란다. 옆방에 묵는 영어를 잘하는 독일 녀석(그 녀석은 영
어가 돼서 손님들한테 방 소개도 해주고 그러면서 거기 공짜로 있단다)한테 우
리는 방이 정해져 있다고 했더니 그렇게 친절하던 이 영감탱이가 안면을 딱 바
꾸고는 내다보지도 않는 거 있지!
참, 포르투갈에서 서울로 콜렉트콜을 하려면 050178210을 하면 된다. “전유성
씨 아니세요? 반갑습니다. 여행중이신가 보죠?”전화교환수의 한국 말소리가 반
갑다.
남녀혼탕 누드비치 부러울 거 없다
6월9일, 프랑스의 리 하브웨라는 항구에 도착하다. 배가 내린 곳, 리 하브웨는
모래밭 휴양지다. 도빌 바닷가로 택시를 타고 갔다. 요트가 많은 곳이란다. 도빌
은 알고 보니까 정말 그지 같은 모래사장이었다. 더럽고 무지하게 찐듯거린다.
그러나 동네는 집들이 너무 그림 같다. 집을 지을 때 서울랜드 아니면 롯데월드
에서 허가를 내준 것 같다.
생선가게까지 이쁘다. 새우 바닷가재 소라 등을 삶아서 판다. 다른건 몰라도
삶아서 파는 소라는 가게마다 가격이 다르다. 이유는 모르겠다. 소스 때문인가?
우리가 사먹은 곳이 1킬로그램에 48프랑이었는데 다른 곳은 16프랑도 있고 24
프랑도 있었다. 바가지를 쓴 건지, 양념이 다른 건지 말이 안되니 구체적으로 물
어볼 수도 없고, 노량진 수산시장이면 물어 볼 텐데. 가격대마다 다 사먹어 볼
걸! 하여튼 뭐가 달라도 다르니 값이 다르겠지! 소라 학벌이 달라도 다르겠지?
도빌에 오는 아해들아! 삶아서 파는 소라값이 가게마다 틀린 거 왜 그러냐고 물
어보는 공부 꼭 해와라!
배로 돌아오는데 택시운전사가 롱 홀레야도 들러 보란다.
롱 홀레야는 그림 같은 요트들이 있는 곳이다. 해변 여기저기서 파라솔 꽃이
피었다. 파라솔이 활짝 퍼져 있는 걸 보니까 정말 꽃이 만개한 거 같다. 파라솔
칼라가 모두 똑같다!
움직이면서 걸어다니는 사람은 모두가 관광객이고 그 다음이 폭주족이다. 동
네 사람은 장사만 열심히 한다. 화가 모네가 살았던 집을 입장료를 내고 구경했
다. 우물이 멋있다. 우물도 멋있으니 당연히 집안 구석구석이 멋있을 수밖에. 모
네가 그린 교회를 골목을 빙빙 돌아서 찾아보았다. 워낙 이쁘게 생겨서 그림에
웬만큼만 소질이 있으면 누구나 세계적인 화가가 될 것 같은 동네다.
아무리 관광지라도 일요일이면 문 닫는 곳이 많다. 우리가 도착한 날이 하필
일요일이다. 카지노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문을 닫았다. 할 생각은 없었지만 구경
은 하고 싶었는데. 어쨌든 구경은 못하게 됐지만 돈 안 잃는 것만큼 벌었다고
자위를 했다. 자위?
길을 가다가 이층으로 된 회전목마를 봤다. 회전목마를 숱하게 봤지만 이층으
로 돌아가는 회전목마는 처음 본다. 하기야 관광객이 많으니 한번 태우면 두 배
를 벌어야지! 역시 머리는 창조적으로 써야 된다.
도빌 바닷가, 누드비치에 갔는데 너무 늦어서 못 보고 왔다. 처음 간 사람들이
신기해서 쳐다보면 “야, 너희도 벗고 들어와!”한단다.
다음날 누드비치에서 윗도리를 벗은 젊은 여자들을 선글라스를 쓰고 눈을 요
리조리 굴리면서 실컷 바라봤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좋은 카메라가 있으면 뭘
하나! 용기가 없어서 찍지도 못한걸!
망원 렌즈를 갖다 놓고도 쑥스러워서 못 찍고,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해도 꼭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아서 그쪽 방향 비슷한 딴 데만 찍었다. 필름 아깝게! 책
보는 할머니만 들입다 찍은 거다. 나중엔 미령일 옆에 세워놓고는 미령이 찍는
척하면서 찍고, 그러다 조금씩 익숙해지려니까 그냥 카메라를 갖다대게 되는 거
다. 이런 걸 왜 그렇게 찍으려고 했냐구? 한번 해봐, 정말 재밌어. 또 그때 아니
면 언제 찍어봐. 사실 나보려고 그런 게 아니라 후배 남자 개그맨 아해들 보여
주려고 그런 거지.
여기는 탈의실이 20여 개가 되는데 탈의실 이름이 세계 각국의 유명한 배우
이름들이다. 버트 랭카스터, 말론 브란도, 데미 무어 이런 식으로 문 앞에 하나
씩 붙어 있다. 기왕이면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방에 들어가 옷 벗으면 기분이 좋
겠지? 신성일 박중훈 눈을 안 씻고 찾아보서 그런지 안 보이네!
여기 아해들 가슴은 정말 우리 아해들이랑은 스케일이 다르다. 암스테르담 여
자들은 머리통이 크던데 여기는 젖가슴들이 커서 고민이란다. 그래서 가슴 수술
을 하는데 작게 만드는 수술이 유행한단다. 병원에 일녀치가 미리 예약이 되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단다.
덴마크는 호박이 많이 나오는 나라라서 아가씨들이 가슴에 호박만한 젖을 달
고 다닌다는데 여긴 뭐가 유명해서 가슴들이 이렇게 큰 거야? 햇빛을 듬뿍듬뿍
받아서 큰가? 하긴 여자 가슴이나 식물이나 햇빛을 봐야 쑥쑥 자라겠지? 우리나
라 여자들 가슴이 작은 게 해를 못봐서 그런 거 아냐? 불쌍한 한국 여자들의
젖, 햇빛 한번 못 쬐어 보는 젖, 버섯처럼 음지에만 있는 젖.
젖가슴 작아 고민하는 우리 아해들아, 오늘부터 보름밤 우물가에 나와 달빛이
라도 가끔은 좀 쐬어주자꾸나!! 그래서 우리도 가슴을 내놓자! 유럽에 오는 한국
여자 배낭족 아해들아, 남녀혼탕 누드비치에 기죽지 마라, 우리도 가슴 키워 내
놓으면 될 게 아니냐, 여기 아해들 말마따나 남녀평등, 남자들이 가슴 내놓는데
우리만 왜 못 내놓는가 말이다
안경 너머로 본 세상
어제 도빌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상대방 모르게 눈알을 굴리면서 여기저기 훑
어봤는데 습관이 되어서 오늘은 맨 안경을 끼고도 지나가는 여자를 눈알을 굴리
면서 쳐다보게 된다. 선글라스가 아닌 걸 한참 뒤어 알았다.
눈이 전에부터 나빴다. 그러나 남들은 눈치를 못 챘다. 안 보인다고 눈가를 찡
그리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잘못 알아보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
니다. 탤런트가 인사를 한 건지, 아나운서가 인사를 한 건지, 사실은 거의 못 알
아본다. 그러니 윗사람에게 인사를 못 하고 지나간 것은 얼마나 많았겠는가! 인
사성 없다는 소리도 무진장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과감히 결정했다. 안경잡이가 되기로! 10년 전부터 영활볼
때만 안경을 썼는데 이번 여행에서 본격적으로 쓰게 된거다. 구석구석 많이 보
려고. 지금까지도 불편해서 안경을 안 쓴 건 아니었다. 그냥 안 쓴거다.
안경을 쓰니 지금까지 헛것을 보고 살았다는 생각이 막 들면서 세상이 진하게
보인다. 세상이 진하게 보이니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 살면
서 한 번뿐이 못 들를 곳이 많은데 흐릿하게 보고 가느니 진하게 확실하게 보자
는 생각으로 안경을 쓴 것이다. 지금은 진하게 보이는 것을 더 진하게 보는 사
람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흐릿하게 세상을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
리는 사물의 진정한 형태를 못 보고 서로 비슷한 것을 보는 것은 아닐까?
안경을 쓰면 맨눈보다야 잘 보이겠지. 도수를 높이면 좀더 잘 보이겠지. 그러
나 우리가
바라보는 사물들의 진정한 실체는 뭔가 말이다. 우리는 무얼 보고 사나?
나는 가끔 안경을 들고
안경을 쓰기 전 세상을 바라본다.
가끔
가끔
세상이 콧등을 누른다.
제3장 한복에 갓 쓰고 선장파티 갔더니
도보로 걷기 좋은 도시, 도버
6월 10일, 간밤의 과음으로 아침을 굶었다. 영국 도버에 도착! 오늘은 뭘 구경
하려나! 도버 성을 가기로 했다. 한참을 걸었다. 도버는 도보로 걷기에 좋은 도
시다(사실 한 지역을 가장 잘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은 길을 걸으며 사람
들의 표정과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거리의 분위기를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기에 제일 좋은 건 도보로 걷는 거다).
도버 성에서 바라보는 주변 경치는 정말 좋다! 성이라는 게 원래가 사방이 다
보이면서 감시하기 좋은 곳에 짓는 것이 상식이지만 자리 하나는 정말 명당자리
를 잘 잡았다.
여러 도시를 다녀보니까 성이란 게 대강 두 종류가 있는 거 같다. 수비하기
위한 것이 있고 명당터에 별장처럼 근사하게 짓고 사는 게 있다. 도버 성은 쌓
아올린 돌이 굉장히 날카롭다. 옛날에 왜 도둑놈들 못 들어오게 하려고 깨진 유
리조각을 담벼락에 일렬로 쭉 박아놓은 것 같은 그런 돌들이 중간중간에 있다.
그런 돌들이 대체 어디서 나는지, 이 지방에서 나는 돌인지는 몰라도 이런 돌들
로 성을 쌓아놓으니 도무지 기어 올라올 수가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손톱으로 긁어봤더니 손톱이 까이는 수준의 날카로운 돌조각들이다. 로마 병
사 중에 계급이 낮아서 선발대로 올라가야 됐던 병사 아해중에 몇 명은 틀림없
이 돌들에 손을 상했을 거야! “앗, 앗! 따거”이러면서 살이 찢어진 놈도 있었
겠지.
도버 성을 구경하다가 무작정 아무 문이나 열고 들어가봤다. 초등학교 학생들
이 어느 교실에 모여 앉아 있었다. 물론 선생님도 계셨지! 학생들이 1년에 두 번
씩 실습을 나온단다. 무슨 공부를 하는가 했더니 도버 성 안에 있던 선조 병사
들이 썼던 투구랑 갑옷, 그리고 방패, 칼, 신발 등등을 사진, 모형, 슬라이드로 다
보고 그걸 또 초등학교 아해들을 위한 사이즈로 축소해놓은 걸 입어보고 써보고
들어보고 신어보는 공부였다.
돌 같은 거 나를 때 지렛대를 이용해서 이 쪽에서 꾹 누르면 널빤지 같은 거
위에서 돌이 휘익 하고 날아가는 거, 그런 것도 다 실제와 똑같이 만들어서 아
이들이 해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보초를 어떻게 섰는가. 두 시간씩
교대를 했는가, 15분씩 했는가. 교대하는 방법은 또 어땠나 그런 것도 직접 와서
해보고 배운단다. 그러니까 수백년 전 자기네 조상들이 적군들을 맞아서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아이들이 직접 몸으로 느끼게 하면서 배우는 거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데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때 덕수궁에서 매년 하던
국전을 단체로 구경가던 생각이 난다. 우르르 걸어가다가 특선이라고 써 있으면
잠깐 보고, 그냥 줄 서서 있다가 돌아오고 그랬는데 여기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그림을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아이들을 그림 앞에 앉혀놓고 마냥 보게 하면서
그림 설명을 해주고 느낌을 말하고 그림 하나하나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을 듣는
다. 너희들은 어떻게 그림을 봤느냐고 물으면서, 그리고 그 앞에서 그림을 그려
보게 한다. 유명하거나 대표적인 그림 앞에서는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진지하게
질문하고 따라 그린다.
우리 같으면 쭉 서서 그냥 보게 할 텐데. 유화로 세계적인 그림 앞에서 그림
을 따라 그리는 화가 지망생도 있다. 달리의 초상화를 똑같이 그리는 건데 저러
다가 진짜하고 바꿔치기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행 중에 하나는
액자가 없으니 못 바꿔칠 거라나? 바꿔치기 하려면 액자는 못 만드나? 하면서
전시장을 나오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저렇게 그리는 거 허락해줄까 하는 생각이
나중에야 들었다.
아무튼 그런 건 정말 아주 훌륭한 교육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남한산성
같은 데 가보면 그냥 한번 눈으로 주욱 보고 오잖아. 기껏해야 닭도리탕이나 먹
고. 예를 들면 우리도 남한산성 같은 데서 병자호란이나 임진왜란 때 적이 쳐들
어왔을 적에 옛날 병사들이 보초를 어디어디에 어떻게 섰는지, 돌멩이는 어떻게
굴렸고 어떻게 적진을 들여다봤고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한번 직접 해보면 어떻
겠는냐는 거다.
거 왜 성들을 보면 ‘여긴 나 같으면 금방 넘어오겠네’할정도로 허술한 데도
많잖아, 그럴 땐 어떻게 지켰을까, 교대는 어떻게 했을까를 아이들한테 시켜봤으
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정 안되면 남한산성에 올라가서 이 기둥 저
기둥을 기웃거리며 몇백 년 전 몽고병이나 왜놈들이 쏜 화살 자국이라도 한번
찾아보고 오는 게 산 교육이 아니겠냐는 거다. 동학농민전적비 같은 데 가서도
그냥 있을 게 아니고 그 당시 어떤 식으로 싸움을 했는가 하는 걸 직접 실습으
로 느껴보고 포졸 옷이라도 한번 입어보고 옛병사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우리 아
이들이 느껴보면 좋을 텐데!
아, 꼬막비빔밥이 먹고 싶다
한국 음식점이 없으니 영국 도버에서 발견하는 중국 음식점도 반갑다. 한국
음식점이 있으면 불친절해도 반가울 텐데...! 불친절한 한국 음식점이 그립다. 집
나온지 벌써 한 딸째다.
얼마 전까지 한무관(가명)이라는 한국 음식점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단다. 그
사연이 조금은 슬프다. 도박해서 번 돈으로 그 음식점을 차렸다가 다시 도박으
로 날렸단다. 한무관 주인 아저씨, 지금은 채소 도매상을 하면서 식당으로 채소
배달 다닌단다.
이 아저씨가 어느 날 카지노에서 딜러가 잘못한 것을 발견했단다. 딜러가 잘
못했다, 아니다 맞다 말싸움을 한참 하다가 이 아저씨가, “조금 전에 한 걸 녹
화해놓지 않았느냐, 그걸 보면서 누구 말이 맞는가 300파운드 내기를 하자”고
했대. 도박꾼답게 말이야. 결과가 궁금하지?
나중에 카지노 지배인이 와서 자기네가 맞고 주인 아저씨가 틀렸다고 했단다.
내기는 물론 안 했지! 만약에 자기네 딜러가 잘못한 것이 공개된다면 장사가 도
움이 안 되니까 틀어보나마나 딜러가 잘못한 게 없다고 우겼단다. 보나마나 인
상도 험악하게 썼겠지? 그때 우리 편이 한 명이라도 있었어야 되는데, 그게 다
객지의 설움 아니겠어...! 우리나라에서 영국 사람이 그렇게 했다면 어떻게 했을
까? 지배인이 와서 사과하고 딜러를 교체하지 않을까?
아무튼 우리 일행은 한국에 들어가면 먹고 싶은 것 하나씩 돌아가면서 말을
해보았다. 꼬막, 토하젓, 어리굴젓, 그리고 삼겹살.
가끔 가다 여행을 댕기면서 뭐 먹고 싶은 걸 얘길 많이 하는데 처는 그럴 때
마다 제첩국이 먹고 싶단다. 나는 진도의 김강현 씨가 소개해서 먹어본 꼬막비
빔밥이 먹고 싶다. 10월에 진도 가서 한번 먹어야지!
사실 외국에 나와서 한국 식당을 만나면 참 반갑다. 중국 음식점도 반가운데
왜 안 반갑겠어? 문제는 한국 음식값이 너무 비싸다는 거다. 단체 관광객들이야
정가대로 먹나? 단체니까 할인해서 먹겠지. 정작 제값 주고 사 먹는 건 돈 없는
배낭족 아해들 아닌가? 배낭족에게 20퍼센트나 할인을! 안되면 외국은 인건비가
비싸다니까 밥 먹여주는 대신 설거지나 서빙 같은 걸 시키고 밤에 청소시키고
재워주고 하면 어떨까?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여행이란 무엇인가를 굳이 설명 안 해도 다른 나라
에 와서 다른 나라의 관습을 알아보고 딴 놈들은 어떻게 사는가도 보고 내가 살
던 환경과 어떻게 다른가도 느껴보고 등등...! 그런데 음식 먹을 적에 문제가 생
긴다. 우리 입맛에 맞는 것만 먹어야 될까? 입맛에 안 맞더라도 이 나라 사람들
이 즐겨 먹는 걸 먹어야 될까? 그런데 가이드들이 새로운 맛을 보게 해주려고
데리고 가면 입맛이 맞네 틀리네 무진장 투덜댄단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한국
사람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준다고 하는데 사실은 여행 가서 우리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먹으려면 여행을 왜 가냐는 거야. 어느 게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후
자를 택해서 다닌다.
그런데 다니다 보면 음식을 배달해 먹을 수 있는 한국이 역시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피자는 외국에서도 배달해주지만, 집에서 시켜먹고 싶은 게, 누
워서 편안하게 먹고 싶은 게 어디 피자뿐이랴! 그래서 우리는 배달민족이다!
촬영기사 덕분에 150파운드 벌었네!
누구나 아침에 어떤 노래를 한 번 부르게 되면 하루 종일 그 곡조가 입에서
떠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수들도 그런지 알고 싶어 10년 전쯤에 조영남
에게 물어봤다. 가수들도 그렇단다. 결혼해서 집사람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그렇
단다. 컨터베리 성당에 간다고 하니 발음이 비슷해서 그러나 켄터베리하고는 관
계가 전혀 없는 켄터키 옛집이 입에서 떠나지 않고 자꾸만 튀어나온다. ‘켄터
키 옛집에 햇빛 비치어 여름날 검둥이 시절, 저 새는 긴 날을 노래 부를 때 옥
수수는 벌써 익었다.’
컨터베리는 런던에서 한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는 작은 도시다. 유럽이 다 그
렇지만 영국하고도 켄터베리라는 동네는 특히 역사를 후손들이 벌어먹는 데 참
잘도 이용한다. 동네 집들도 아주 오래됐는데도 흰 집들도 많다. 그래도 페인트
만 요새 걸로 발라서 사용한다.
컨터베리는 성당뿐 아니라 거의 모든 관광지들이 실내찰영은 못하게 한다. 카
메라를 가져간다 해도 플래시는 못 터트리게 한다. 그러나 개인이 소지한 8mm
비디오 카메라는 대개 눈감아준다.
켄터베리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유명하다. 조명이 없던 시절이므로 채광용으로
만든 것들인데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그지? 사전에 150프랑을 내면 촬영을 허가
해준단다. 그냥 무대포로 찍다가 신부에게 지적을 당하자 얼른 헌금통에 돈을
넣고 기도하는 시늉을 했더니 찍으란다. 촬영기사의 기지로 150파운드 벌었네!
촬영기사도 그러니까 어릴 때 수박 서리 경력이 꽤 되는 거야. 그러게 경력자는
경력자끼리 알아본다니깐.
켄터베리 성당 옆의 선물가게에서 발견한 부처님. 오리지널 중국 부처다. 나무
관세음보살! 반갑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배로 돌아가다가 이상한 아저씨를 만났다. 동네 카페에 앉아 있었는데 애완용
으로 이구아나를 기르는 것이었다. 이구아나는 개구리하고 악어하고 만든 잡종
비슷하게 생긴 아주 기분 나뿐 파충류 같은 놈인데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이 자식이 안된다는 것이다. 돈을 내란다. 준다고 했더니 2프랑을 내
란다. 2프랑을 주고 나니 서비스라면서 윗주머니에서 흰쥐를 꺼내어 이구아나
머리 위에 올려 놓는다. 징그러워 혼났는데 이번에는 이구아나를 내 어깨에 얹
어놓는 것이다. 내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내 얼굴을 보고 집사람이 가져가라고
했더니 이 친구 한술 더 뜬다. 5프랑을 내야지 가져간단다. 이구아나는 2년 길렀
고 쥐는 1년을 길렀다는데 이 자식이 “고우 홈!”하니 달랑 윗주머니로 들어간
다. 이거 말고 또 뭘 기르냐고 했더니 뱀이랑 고양이 네 마리, 개 세마리, 악어
여섯 마리를 기른단다. 별 미친놈 다 봤네! 2프랑은 왜 달라는 거야, 달라는 기
준이 뭐야? 웃기는 자식!
브뤼셀에선 개도 학벌이 있어야 한단다
6월 11일, 벨기에 항구다.
평생 안 와도 인생관에 별 변화를 줄 것 같지 않은 나라 벨기에의 ‘지’뭐로
시작되는 항구에, 아침에 일어나니 배가 닿아 있다. 물론 유람선 일정에 들어 있
던 곳이다. 폭풍우 한번 안 만나나? 그러면 얼마나 훌륭한 추억의 여행이 될까!
그럼 난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 소재가 생길까? 상상속 이야기를 점점 부풀려가
면서 말이다. 왜, 괜히 한번씩 그런 생각들 안 해? 비행기가 납치됐다거나 폭풍
을 만났다 그런 기사 같은 걸 읽으면 나는 꼭 그런 생각을 했다. 야, 내가 거기
납치되는 데 들어가 있었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물론 무사히 돌아온다는 보장
만 확실하다면.
항구에 도착해서 내리는데 배 입구에 출입국관리소 직원 둘이 나와 있다. 미
국 사람들만 내리는데 생긴 모양이 이상해서인지 우리보고 여권을 보잔다. 우리
는 승선할 때 여권을 배에다가 맡겼는데 어느 틈엔가 미국 아해들(할아버지 할
머니들)은 자기의 여권을 손에 손에 전부 들고 있는 게 아닌가! 배 사무실에 올
라가 여권을 찾아왔는데도 한참을 들여다보고 무전기로 통화를 하고 다른 사람
들이 다 지나간 다음까지 정말이지 쪽팔리게 기다리게 한다음 스탬프를 찍어준
다. 그 스탬프라는 것이 또 얼마나 엉성한지 찍힌 것 같지도 않다. 찍어준 저도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그대로 준다.
나중에 내려서 스탬프 찍힌 곳을 찾아보니 무슨 글자인지 하나도 안 보인다.
그러려면 뭐하러 찍냐? 하여튼 벨기에는 잉크가 모자라는 나라인가 보다, 하는
인상을 가지고 항구에 내렸는데 아마도 다시 ‘벨기에’를 ‘볼 기회’는 없을
것이다(나중에 보니 이 벨기에 항구에 북한은 등록이 돼 있는데 남한은 등록이
안 돼 있단다. 함장이 꼭 돌아올 사람이라고 보증까지 선 끝에 내려보냈다는 거
야. 이런, 세상에!)
벨기에 싫다싫다 하니 카메라 배터리도 떨어지네.
아주 오래 전, 지금부터 40년쯤 전에 왜 그랬는지 손을 잘 안 씻어서 엄마한
테 매 맞은 적이 있다. 손을 안 씻으면 겨울에 갈라져 터지기도 했다. 손등으로
코도 문지르던 시절이니 오죽했으랴! 뜨거운 물에 때 더께가 덕지덕지 앉은 손
을 한참 불려서 씻곤 했는데 정말 무서운 엄마라는 생각을 했었다. 브뤼셀 시에
있는 빌딩들을 보면서 갑자기 때를 불려서 씻어내던 시절이 생각나는 건, 도시
전체의 빌딩이 때가 너무 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엄마 같은 무서운 사람
이 나타나서 한 달에 한번이라도 물 청소하는 날로 정하면 도시가 깨끗해지지
않을까.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동전 닦는 약을 학교에서 나눠준 다음 각자 구
역을 배당받아 동상에 광을 내본다든가, 잘 닦은 아해들에겐 우등상을 준다든가
하면 어떨까?
이 나라는 초콜릿과 함께 맥주가 유명하다. 각종 맛이 나는 맥주가 110종류나
있단다. 오렌지맛 맥주, 신 맥주, 사과맛 맥주 등등 별의별 맛이 나는 맥주가 다
있다. 일반 가정집의 뒤편에 공장을 차리고 바로 뽑아낸 사제 생맥주들이란다.
그러나 한 가지 없는 게 있는데 그건 바로 초콜릿맛 나는 맥주다. 이유를 물어
보니 초콜릿맛 맥주는 맛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그 유명한
초콜릿이 팔리지 않을까봐 초코릿 업자들이 로비를 해서 안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정말 한국적인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우린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
랐으니까!
맥주 말고도 유명한 게 또하나 있다. 레이스다. 각종 레이스들이 현란할 정도
로 화려하고 정교하다. 그것도 모두 직접 손으로 짠 것들이라는데, 그래서 그런
지 길가 벤치나 공원, 상점 같은 데서 레이스를 뜨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많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홀치기 하던 옛날 우리 엄마들을 생각한다. 슬픈 기억
이다. 홀치기가 뭔지 가계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를 엄마에게 물어보자. 편물
도 마찬가지다. 요꼬니 뭐니 해가며 밤도 새고. 그것들이 다 어려운 시절 엄마들
의 요긴한 아르바이트였던 것이다. 가격은 만만치가 않아서 우리나라 돈으로 보
통 8만원, 좀 괜찮다 싶으면 10만원을 넘는 바람에 미령이도 군침만 삼키고 사
지는 못했다.
도버에서도 중국 음식점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벨기에도 항구에서 나오자마자
첫번째 집이 중국음식점이다. 영어로 ‘Good Luck’(호운). 이름도 똑같다. 체인
점인가!
식당에서 옆자리 할머니에게 종업원이 술을 따라주는데 다른 사람보다 조금
적게 따라준 모양이다. 그랬더니 이 할머니 하는 말, “나도 딴 사람이랑 똑같이
돈 냈는데 왜 조금 따라주는 거요?”이런 세상에, 그냥 “조금 더 줘!”하면 될
것을! 양보심 희생정신이 없는 아해들이다. 걸핏하면 바로 고소하고 고발하고.
고소가 뭐냐? 법률용어라서 그럴 듯하지 사실은 일러바치기 고자질 아니냐구!
나라에다 이르는 거지.
따지기 좋아하는 여기 사람들도 보통 때 보면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개 기르기다. 벨기에 사람들도 다들 개를 좋아한다. 한가롭게
발바리나 치와와를 앞세우고 거리를 산보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사람도 식당에
가서는 술 적게 따라줬다고 종업원한테 언성을 높일까 상상이 안 간다. 한번은
어는 성당에 가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거기까지 개를 끌고 들어온 미국인 부부
가 있었다. 놀라서 쳐다보니 개가 카톨릭 신자란다. 미친 자식! 내가 세례주는
시늉을 했다. 복날 잘 넘겨라! 좋은 나라 태어났다. 이 자식들아!
개를 키우면 좋은 점이 있단다. 우선 개 똥오줌 가리게 해야지, 개밥 먹여야
지, 산책시켜야지, 그러다 보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고 건강해진단다. 특히
산책 때문에. 한국에선 한가지 장점이 더 있다. 먹으면 몸보신도 된다는 걸 이
사람들은 모르나? 여기선 아무 개나 막 기르는 게 아니라 훈련받은 개만 기르게
되어 있단다. 개도 학벌이 있어야 된다는 얘기다.
말이 좋아 작은 유럽이지 표절 동네 아냐!
브뤼셀이라는 도시는 프랑스식 정원이랑 독일식 정원이 마주보고 있는 것도
자랑이라고 생각하는지 관광코스에 들어가 있다. 파리의 개선문을 닮은 것도 있
고 에펠탑도 있단다. 작은 유럽이라고 표현하는데 말이 좋아 작은 유럽이지 나
라가 표절 동네 아니냐구! 이 동네는 공윤심의 기구가 없나? 천년이 된 도시라
고 자랑은 대단하던데 말이다. ‘바람이란 건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부
는데 사람들은 변했더라’고 노래하던 박재삼의 ‘천년의 바람’이란 시가 문득
생각난다. 서울 가서 읽어보자.
항구에서 브뤼셀까지는 약 한 시간이 걸린다. 김포에서 시청 앞까지 한 시간
동안 뭘 설명할 수 있을까? 역사 반만 년을 어떻게 설명하리!
브뤼셀 운하를 보트 타고 둘러본다. 보통 600년 된 다리들이 운하에 무척 많
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할 무렵 지은 다리들인 셈이다. 콜롬버스가 미국
대륙을 발견하기 400년전의 일이다. 이러니 유럽을 다니면서 미국 아해들은 무
진장 부러워할 거야! 역사가 있는 도시들을 보면서...! 콤플렉스 느껴지지 않겠
어?
운하 양편에 군데군데 보이는 집들이 모두 독일 양식의 집, 포르투갈 양식의
집이란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건 뭐니뭐니 해도 오줌 누는 소년상이다. 그러나
실제 이 동상 앞에 선 세계의 관광객들은 모두 “에걔...”하며 실망한다. 그만큼
실제로 보면 볼품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보잘것없는 것들도 관광상품화 해서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바로 그 발상이 대단한 거다. 많은 나라들이 이 오줌 누는 소년상을 표절
해서 여러 군데에 비슷한 소년상을 세워두고 있다. 해운대 극동호텔 앞에서도
본 것 같다. 아주 오래 전에. 그런데 오줌 누는 소녀상은 없단다. 조물주도 감추
려고 안으로 집어넣은 걸 인간들이 공개석상에 만들어놓는다는 것은 조물주의
뜻을 어기는 거라서 그러는 걸까?
브뤼지(BRUGGE)인지 뭔지 여기는 말똥 냄새가 심하다. 프랑스에 선 개똥 땜
에 골치였는데 여기선 말똥이 날 괴롭히는구나! 마차 때문에 그런가? 브뤼지에
오는 사람들아, 말똥을 조심합시다!
벨기에에서 배울 걸 딱 하나 발견했다. 카펫 파는 집인데 아깝게 사진을 못
찍었다. 사진 안 봐도 설명만 들으면 우리나라 사람들 다 알 거다. 카펫을 여러
개 매달아 하나씩 내려가게 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게 한 아이디어다. 연극
무대의 막처럼 카펫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좁은 진열장인데 열댓 장의 카
펫이 순서대로 오르락내리락 하니 얼마나 기가 막힌 아이디어인가? 우리나라 포
목점도 한번 시도해봄직! 이거 배울 만하다. 써먹을 만하다. 표절할 만하다.
‘10일 동안 8개국’은 효도관광이 아니라구!
이 나라에선 두 나라 말을 사용한다니 정치하는 사람들 정말 어렵겠다. 연설
을 두 번씩 해야 된다니 말이다. 나중에 다른 당 사람이 오리발 내밀면서 “못
들었어요”하고 우기면 돌 거다. 또 복잡한 언어 때문에 학교도 스물한 개씩이
나 다양하게 있단다. 자기가 할 줄 아는 말로 가르치는 학교를 다녀야 한단다.
전학을 가게 되면 어떡하지, 그럼?
벨기에 가이드의 당부 말씀. 발음이 웃기더라도 이해해주고 뭐든지 물어보면
답변을 성심껏 해주겠단다. 자기도 발음이 웃기는 건 아는 모양인데 그런 영어
가 우리나라 사람이 듣기는 훨씬 좋지! 이해도 쉽고!
여기선 할머니 할아버지가 엘리베이터에서 주고받는 이야기가 굉장히 많은데
알고 봤더니 “여기가 우리가 내릴 층이 맞느냐” “맞다” “아닌 것 같다”이
런 이야기인 것 같다. 6월 3일에 배 타고 일주일쯤 지나니까 귀가 조금 트인다.
말 한마디 못하는 사람도 한가지 말을 오래 들으면 귀가 뚫린다고 하더니 나도
이제 서서히 외국말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나 보다. 가이드가 설명하는 바나나,
파인애플, 초콜릿이라는 단어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걸 보면!
결혼 후 얼마 안 됐을 때 영어회화 테이프를 팔려고 집요하게 내게 찾아오던
세일즈맨이 한 명 있었다. 안 산다고 해도 필요하니 사라는 거다. 값도 비싸고
해서 안 샀는데 나중에는 나한테 출근하듯이 매일 찾아온다. 나중에 내가 한마
디했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나는 영어가 필요없다. 왜냐하면 나는 동시통역기
가 있다.”그러자 그런 게 어디 있냐는 거다. 나는 정색하고 말했다. “있다, 우
리집에. 우리 마누라가 동시통역기다. 어쩔래?”그 후로 테이프 팔려던 아해는
다시 안 나타났다. 지금은 뭐하고 있을까? 테이프 팔러 다니면서 영어는 좀 늘
었을까?
보통 때는 사랑의 유람선 비디오 찍으려고 차를 빌리든가 가이드들을 동행하
고 다녔는데 벨기에에서는 호텔에서 정해준 관광버스를 일부러 한번 타봤다. 그
게 도대체 어떤 건가 해서 타봤더니 나이 먹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많이 돌아다
니는 것보다 밥 잘 주는 걸로 그냥 끝이다. 식당에서 밥 먹는 데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이 걸린다.
식사 후에 간단한 관광이라도 해보려고 집합시간을 물으니 가이드가 장담할
수 없단다. 노인들이라서 식사시간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라나. 밥들은 잘 먹
어요 참! 그러니까 무조건 “구경하고 오세요”지, “몇 시까지 오세요”가 안
되는 거다. 그래 가지고 할아버지 한 분은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유람선을 타면 유람선 마크가 달린 가방을 하나씩 준다. 수영장에 갈 때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는 헝겊 가방이다. 경유지에 내려서 쇼핑을 하거나 간단한 물
건을 넣고 다니기에 좋은 가방이다. 안네의 집에서 촬영을 마치고 일행을 기다
리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가 나에게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버스가 어디 있는가를
묻느다. 길을 잃은 것이다. 옵션으로 나온 할아버지다. 나는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몰라 그냥 쳐다보면서 웃었다. 그랬더니 이 할아버지가 헝겊 가방을 가리킨다.
“너 이 가방 알지? 우린 일행이잖아, 나는 너를 알아본다구”대충 이런 뜻 같
았다. 그러나 길게 설명해 줄 수 없는 나의 입장이고 보니 무조건 “아이 돈 노
우”라고 했다. 그러자 이 할아버지, 무척 당황한 표정으로 허둥지둥 길을 건너
간다.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여행 다니는 우리나라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 대부분 자식들이 보내
주는 효도관광인데 여기는 자기들이 벌어서 떠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다.
유람선 관광은 특히 그렇다. 심할 경우 10일 동안 8개국을 다니기도 하는데 그
런 효도관광은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얘기하는 가이드들도 있다. 시차적응
문제도 그렇고 몸의 리듬이 다 깨진다는 거지. 이 나라 저 나라 막 옮겨 다니면
서 무리하게 여행을 하면 물 갈아 먹고 배탈도 나고 잠도 잘 못 자고 고생스러
워서 앓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거다.
할아버지가 유람선 계단 네 개짜리 턱에서 굴렀다. 나중에 보니까 치료는 아
주머니가 하던데 같은 할아버지들 둘이 부축해서 일으켜 세워 같이 끌고 간다.
여행도 힘있을 때 다녀야지, 지팡이 짚고는 아무래도 좀...!
길 잃은 불쌍한 할아버지 아야기를 우리 일행에게 했더니 안되기는 뭐가 안됐
냐고 한다. 내가 길을 잃어버리면 더 황당하지, 저 할아버지는 영어라도 된다는
거다. 맞아, 나는 정말 황당해질 거야.
영어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우리는 바디 랭귀지를 하고 상대방이 알아들
으면 굉장히 좋아한다. 예를 들어 가게에 가서 칫솔을 사면서 이를 닦는 시늉을
하면서 치카치카 소리를 막 냈더니 주인이 알아서 칫솔을 꺼내준다. 그러면 우
리는 자신의 바디 랭귀지 실력에 엄청 흐뭇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걸 과연 우
리만 흐뭇해할까? 아닐 것이다. 그들도 외국인이 바디 랭귀지로 한 말을 알아들
었다는 것에 흐뭇해하면서 ‘역시 나는 머리가 좋은 놈이야. 저 사람의 손짓발
짓을 다 알아듣고 말이다’할지도 모른다.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바디 랭귀지를 많이 구사하자? 아니,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
지?
벨기에 할아버지 할머니들하고 옵션 투어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미령이가 아프
다. 웬만해서 아프단 소리를 안 하는데.... 그러고 보니 결혼 후 처음 아프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돌아다녀
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기를 빼앗긴 것 같다. 다행히 그 다음날은 멀쩡하다.
배 안에선 수염난 털보 할아버지들이 다 해적같이 보인다.
한복에 갓쓰고 선장파티 갔더니...
유람선을 타면 꼭 한 번씩 선장파티라는 걸 하는데 선장파티 때는 예복을 입
고 가야 한단다. 배 스태프들은 소개받고 배 역사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샴페인
한잔 얻어먹는 자리다. 여기 사람들은 선장파티라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결국에는 선장이랑 사진찍고 사진값 받아먹기 위한 건데도 말이다. 그래서 들어
갈 적에 선장이랑 사진 찍으면 굉장히 영광되게 생각해서 막 나름대로 예의를
갖춰 정장도 하고 그러는데 우리는 뭐 굳이 그것때문에 무겁게 정장 한벌 안 챙
겨도 된다. 선장파티에서 출석 부르는 것도 아니고 안간다고 찍히는 것도 아니
거든. 뭔가해서 나도 한번 가봤는데 얘기듣고 질문도 하고... 뭐 그렇고그런 자리
였다. 질문도 별로 없어서 일방적으로 자기네들끼리 소개하고 뭐 그런 정도다.
난 옛날에 신혼여행하면서 한번 참가해본 경험이 있어서 부러 한복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미령이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갔다. 그래 갖고 한국사람이라고 그랬는
데 파티자리에서 영어선생 딸을 한국에 둔 6.25참전용사 할아버지를 만났다. 참
전용사는 94년에 기념으로 받은 커프스 버튼을 와이셔츠에 하고 왔다며 보여준
다. 자기딴에는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해서 하고 나온 거다. 며칠 뒤엔 또 한국
서 받은 훈장을 들고 있다가 갑판에서 나한테 보여주면서 하는 말이 자기 딸이
한국의 영어선생님이란다. 한국에 대해서 뭘 좀 안다며 얘길 하는데 자기도 한
국 박물관에 가서 이 의상을 봤지만 신발이 지금 신고 있는 게 아닌 것 같단다.
왜냐하면 운동화를 신고 있었거든! 유람선 안에서 TV를 본다. 테니스 선수가 테
니스를 치고 있다. 그냥 막 고통스러워하고 점수 뺏기면 괴로워 하기도 한다. 한
게임 한 게임 굉장히 힘들어하는 걸보면서 혼자 무식한 생각을 해본다. 저렇게
힘들게 왜하나. 그냥 회사댕기면서 가끔씩 즐기면 훨씬 재미있을 텐데! 세상에는
사서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지금부터 10년쯤 전의 이야기다. 연극하는
후배가 있었는데 연극해서 먹고살기 힘들다고 취직을 했다. 연출을 전공하는 친
구였고. 대선배님들의 조연출도 여러 작품 했고 자기 이름으로 연출을 해서 공
연도 했던 장래가 촉망됐던 친구였다. 원래 연극이라는 게 몇년 전만 해도 나이
30이 다 된 배우라도 옆구리에 자신이 출연하는 포스터를 끼고 나가서 붙이는
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알았다. 어디 그뿐인가? 세트 만드는 일,의상 구하
는 일,소품 만들고 구하는 일,신문사마다 보도자료 돌리는 일,서울시내 구석구석
을 오직 걸어다녀야만 할 수 있는 예매처에 표 갖다주기,새로운 예매처 개발하
기,인쇄소 다니기... 연극이 관객에게 보여지기 까지는 정말로 한도 끝도 없이 해
야 될 일이 산더미 같다. 이건 니가 할일, 내가 할일이 따로 없다. 배우고 스태
프고 누구나 다 해야될 뿐더러 밤낮 구분도 없는 거다. 한 작품이 무대에 올려
지고 또다른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면 똑 같은 작업을 처음부터 다 다시 해야 한
다. 그래서 연극판에서 10년쯤 일하다 보면 못하는 일 없이 다 잘하는 사람이
된다. 특히 몸으로 때우는 일이라면 누구보담도 자신 있어 한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해도 돈 한푼 안 생기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이 친구도 그렇게 해결
사가 되어 연극계통에서 12,3년쯤 일을 하다보니 이젠 마누라도 생기고 얼마 안
있으면 아이도 딸릴텐데... 하는 걱정이 앞서더란다. 그래서 그 사랑하는 연극을
때려 치우고 어느 회사에 취직을 했더란다. 회사에 들어와서 보니 사실 회사 일
이라는 것이 연극에 비해서 훨씬 쉽다! 그놈의 아침 출근시산 맞추기가 힘들어
서 그렇지. 몸으로 때우는 일보담은 시간으로 때우는 일이 더 많더라는 것이다.
오전에 영동 쪽으로 나가면 그걸로 오전 일과 끝이요,오후에는 또 강북으로 몇
군데 전화하면 그걸로 끝! 그렇게 일하면서 몇년 지나고 보니 연극 생각에 밥맛
도 없고 일도 손에 안잡히고... 결국 다시 그 고생을 사서 하겠다고 연극판에 돌
아왔다는 얘기다. 그러게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면 고생도 낙이라지 않
는가 말이다. 남보기엔 암만 고생스러워도 자기한테 맞는 일은 따로 있는 법이
다. 배 안에서 하는 영화가 별로 재미가 없다. 영화를 배안에서 아무거나 해줄
것이 아니라 그 나라와 관계된 유명한 영화를 해주면 좋을텐데. ‘로마의 휴일
’이나 ‘안네 프랭크의 일기’ ‘포세이돈 어드벤쳐’ ‘안데르센 동화’ ‘론
스토리’ ‘파랑새’ 등등. 고르면 얼마든지 많잖아...!
한국말 안내장이 있는 풍차마을
잘사는 나라냐 못사는 나라냐는 호텔 욕실에 들어가서 뜨거운 물을 틀어보면
안다! 뜨거운 물이 늦게 나오는 나라일수록 못사는 나라다. 잘사는 나라는 틀자
마자 바로 뜨거운 물이 나오거든! 잘 생각해 보라고. 옛날에 장(여관방)같은 데
가면 녹물이 한참 나오다가 미지근한 물이 나왔잖아! 유럽에 와서 느낀 건 직업
의 종류가 많아야 잘사는 나라라는 거다.하수도 상수도만 봐도 알 수가 있다. 못
사는나라 방글라데시 같은 데는 상하수도가 없다(정말 없나? 이거 이러다가 있
으면 방글라데시 대사관에서 항의할 텐데...). 당장 수도하나만 해도 없다고 생
각해보라! 그렇게되면 수도꼭지 디자인하는 놈 없지, 수돗물값 받으러 다니는 놈
없지, 수도요금 고지서 인쇄할 놈 없지, 여하튼 수도에 관한 건 일체 없어지잖
아. 수도가 하나 있음으로 해서 하수도 고치는 놈 생기지, 상수도 파는 놈 생기
지, 수도계량기 맞춰주는 놈 생기지, 수돗물 나쁘다며 정수기 팔러다니는 놈까지
수 십개의 직업이 생겨난다는거다. 그렇게 되는 거라고. 풍차돌이는 아마 전세계
에서 네덜란드에만 있는 직업인 것 같다. 풍차가 바람으로 돌아가니까 바람 부
는 방향 쪽으로 사람이 돌려주는 거다. 풍차마을에 갔는데 한국에 소개하겠다니
깐 입장료를 안 받아서 기분이 좋았고 두 번째는 한국말로 안내장을 만들어놓아
서 기분이 좋았다. 한국말 안내장은 유럽에 와서 처음이다. 귀여운 아해 풍차돌
이! 둑으로 쌓여서 바다보다 낮은 나라! 암스테르담은 한마디로 뚝섬이다. 바다
보다 낮은 뚝섬이라서 생긴 직업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 중에서도 아마 뚝 잘
쌓는 사람이 제일 대접받겠지? 풍차마을에서는 대낮인데도 개구리 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우리나라에 있을 땐 밤에만 우는 소리가 들렸는데!날씨가 우중충하니
개구리가 밤인 줄 알았나 보다! 변덕 많은 날씨. 아침에는 춥더니 낮에는 우중
충 하더니 오후에는 덥더니 밤에는 다시 쌀쌀하다. 암스테르담에도 중국인들이
제일 많은 직종은 식당이다. 제일 비싼 음식점은 선상식당인데 역시 중국 아해
들이 하는 곳이란다. 비싼 이유를 물었더니 가이드는 모른단다. 물위에서 장사하
니깐 언제 떠내려갈지 몰라서 그러는 거 아냐? 여기도 한국식당이 있단다. ‘한
국관’이다. 종업원이 한국 사람인 줄 알고 한국말로 말을 걸었더니 못 알아듣
는다. 알고 봤더니 인도네시아인이란다. 한국 종업원을 구할 수 없으니 한국 사
람 비슷한 외모로 구해 놓은 것이다. 영어로만 주문을 받는데 음식이 하도 안
나와서 빨리 갖다 달라고 “빨리 줘요!”하고 한마디했더니 그 말은 알아 듣는
다. “아이 언더스탠”하면서 알았단다. 칼스버그의 나라라 그런지 여기 맥주는
맛이 굉장히 신선하다. 우리나라에 오는 맥주완 맛이 약간 다른 것 같다. 우리나
라에 들어온 칼스버그는 배타고 오느라고 배멀미한 맥주인지도 몰라! 한국 슈퍼
도 있다. 600여 명의 한인들이 산다는데 장사는잘 되는지 네덜란드 사람들은 조
금 오고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많이 오고 일본 사람들이 간간이 이용한다고 한
다. 우리는 거기서 진로소주와 컵라면을 샀는데 진로가 10길더 50, 약 4,500원이
고 컵라면은 3길더, 1,300원이다. 한국관 근처에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먹고사
는 거에 비하면 비싼 편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반가웠다. 암스테르담에서 콜렉트
콜로 전화하려면 0600220082를 걸면 된다. 서울인 경우.
암스테르담에선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조심하자
안네 프랑크는 1929년생이니까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우리나이로 67세가 된
다. 초등학교 동창생들 몇 명은 지금도 살아 있을 텐데! 1945년에 죽었단다. 해
방되던 해에...! 안네 프랑크가 살았던 곳 옆집 두채를 안네 프랑크 재단에서 사
가지고 지금은 기념관을 만들어서 일반에게 공개를 한다. 두 채를 순순히 팔았
겠지! 우리나라 같이 값 올리려고 악착같이 안팔고 시세보담 더 받으려고 버티
지는 않았겠지! 입장료가 10길더, 우리돈으로 약 4,300원정도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보면 설명서가 굉장히 많다. 사람들도 참 무지막지한게 그냥 대강 읽고
지나가면 될 텐데 그걸 꼼꼼히 다 읽어보는 통에 한참을 안네 프랑크가 숨어 있
던 곳에서 기다리며 서 있어야 했다. 갇혀 있었던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라는 듯! 내가 갔을 땐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우리나라 사람들 같으면 “
빨리 갑시다. 시발, 이좁은 데 왜 데려온 거야!”이랬을지도 몰라. 그게 우리나라
사람다운 일이니깐!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한국 가서 다시사 읽어봐야겠다. 암스
테르담은 도시가 비교적 깨끗하다. 그런데 유럽에서 처음으로 공원이나 광장에
서 술먹고 헬렐레 하는 아해들을 만난다. 눈이 풀린 놈하며 마약에 쩔은 놈하며
검둥이들이 많다. 마약을 준합법화한다고 하니깐 쩔은 애들이 눈에 많이 띄는
건가? 이 자식들 참 문제야! 어는 카페에선 마리화나 종류가 많아서 메뉴판에다
써놓고 판단다. 웃기는 나라잖아! 여기선 사진 찍히는 걸 특히 싫어한다는 인상
을 받았다. 벼룩시장에서도 그렇고 공원에서도 그렇고 하다 못해 거리에서 판토
마임하는 아해까지 소품으로 쓰는 우산으로 가린다. 세게 다이아몬드의 80퍼센
트를 암스테르담에서 가공한단다. 우리가 들른곳은 GASSAN이라는 곳인데 57면
이나 깍는단다. 이게세계 최고란다. 벨기에도 자기네가 80퍼센트 가공한다고 하
던데...! 각국 사람들이 다 찾아오기 때문에 각국 직원들이 다 있단다. 우리는 한
국 안내원 장용의 선배인 이종구씨의설명을 들었다. 홍콩 사람이 제일 많이 사
가고 한국 사람도 등수에 든다는데 홍콩사람의 10의 1도 안 된단다. 여기서 한
국 사람들이 부부사움을 많이 한단다. 카드로 긁어라 말아라 하면서. 한국 사람
들의 카드 한도액도 알아서 월부로도 해준단다. “미국 아해들 버스로 돌아올
때 보니까 쇼핑한 사람이 딱 세 명이더라! 두 명은 먹을 거고 한 명은 조그만
봉지에 선물을 산 거더라.”이런 얘기를 가이드들한테 들은 적이 있다. 이 자식
들아, 한국 사람한테 조금만 잘해줘 봐라. 한국 사람 태운 버스 한 대만 데리고
와봐라. 시예산이 달라질 거다! 쇼핑센터 앞을 지나면서 여자 가이드가 하는 말.
여자에겐 쇼핑의 천국,남자에겐 워털루 전투란다. 하긴 사자 말자 부부간에 오직
들 싸우겠어? 여기엔 길에 자전거 도로가 아무데나 다 있다. 우리는 자동차 도
로에서 벗어나면 찻길 다 건넌 줄 알고 막 이야기하는데 인도가 아니라 자전거
도로였다. 처음온 사람은 자동차보담은 자전거를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자전거가
많은 이유는 언덕이 없고 평지가 많아서란다. 남녀노소 불문하고많이 탄단다. 자
전거는 값도 제법 비싸다는데 우리 돈으로 20만원에서 그 이상까지 있단다.
다른 건 몰라도 자전거 수리만 잘해도 학교 다닐 적에는 여학생에게 인기가 있
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 공부보담은 노는 거에만 신경을 쓴 학생도 나중에 자전
거포에 취직하면 우리나라 자동차 정비공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친구 중에 고등학교 때당구를 잘 치던 녀석이 있었는데 군대 가서 장
교들 당구 가르치면서 편하게 지냈다는 거야언젠가 만났더니 당구 큐대 수리해
주는 일을 하더니 지금은 종로에서 당구장 재료상을 하더라구! 한동안 죽는 시
늉을 하더니 포켓볼 붐이 일어서 돈도 아주 잘 벌드라니깐!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에 대한 느낌. 우리 일행은 브뤼쉘은 좀 더러운 도시, 암스테르담은 좀 깨끗
하고 도시라고 식사시간 중에 이야기한다. 일행 중에 옵션 투어를 갔다온 사람
은 브뤼쉘이 아름답고 암스테르담은 더러운 도시란다. 더럽든 아름답든 왔다 간
다.
누드연맹에선 물건도 벗고 판단다
오늘은 6월13일, 내일 닿을 오슬로를 향해서 배가 간다. 항해중 본 것 중에 제일
센 파도가 친다. 배 타고 가다가 고래가 물 뿜는 거 한번 직접 봤으면! 사이판에
서 날치 날아가는 건 봤는데! 노르웨이라는 나라엔 누드연맹이라는 게 있어서
한국사람들이 처음엔 호기심에 들르기도 했는데 이젠 시시해서 안 간단다. 물건
파는 사람도 벗고 파는데 카메라는 절대 가져가면 안 된단다. 우리나라 속옷 파
는 진열장을 어쩌다 들여다보는 경우가 있는데 예쁜브래지어가 많이 걸려 있는
걸 보면서 ‘저거 저렇게 이쁠 필요가 있나? 볼사람은 자기 혼자거나 또 한사람
뿐일 텐데’생각했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값도 여간 비싼 게 아닌데,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저렇게 비싼 걸 사나? 비싼 브래지어 자랑하려고 그러는지
는 몰라도 여기선 길거리에서는 웬만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윗도리를 벗고 다닌
다. 브래지어만 한 채로 다 큰 처녀아이가 말이다. 우리야 이렇게 벗고 다닐 것
도 아니니 더더욱 낭비가 아닌가. 여기 아이들은 오히려 그렇게 비싼 걸 하는
것도 아니란다. 돈이 없어서!고등학생 남녀 아이들이 바닷가도 아닌 곳에서 티셔
츠를 벗고 아무렇지도 않게 벌렁벌렁 잘 눕는다. 드디어 사진을 찍었는데 궁금
하도다. 잘 나왔는지! 오슬로에서 배로 돌아오는
길에 브래지어만 하고 걸어가는 처녀 아해를 발견하다. 우리보담 조금 앞서 걸
어가는데 우리가 탄 차가 신호에 걸렸다. 신호가 끝나면 걸어가봤자 지가 얼마
나 가겠나? 차가 앞으로 갈 때 얼굴도 한 번 봐야지 하고 기대하고 있는데 우리
가 우회전을 하자 그 처녀 아해는 그만 직진으로 가버린다. 아깝다! 분하다! 우
리 일행 한 명이이 이야기 한다. 누워 있는 것만 보다가 서서 걸어가는 것 보니
까 정말 이상하네! 오슬로 가이등의 말. 어릴 때부터자꾸 만져주니 가슴이 커질
수 밖에 없다나! 사람 가슴을 화초로 아는구만! 노라가 집을 나간 이유를 여기
와보니 이해가 간다. 해양국가 사람들이라 맨날 바다에 나가 있으니 당신들이면
집에 있겠어? 그래서인지 여기 아해들은 결혼하기 전에 동거부터 해본단다. 우
선 살아보고 결정하는 거다. 고무신을 사더라도 신어보고 사듯이 살아보고 결혼
을 결정하는 건 유럽 아해들의 전반적인 경향이기도 하다. 그렇게 사용해보고
평생을 맡길 것인가를 신중히 생각한 후에 결혼한다. 물론 이혼율도 많아서 다
시 물르기도 한다. 하기야 바이킹족의 후예들이니 살아보면서 이놈이 방랑벽이
도지지는 않겠는가 당연히 알아봐야겠지!
처녀가 애를 낳아도 나라가 먹여살린단다
노르웨이말로 니그가 등이란다. 색은 주머니. 그래서 생겨난 말이 니그색, 일본
발음으로 니꾸사꾸란다. 여기선 국회의원이 전부 메고 다닌다고 한다. 빙판길에
넘어지면 손에 들고 다니는 것보담 덜 다치기 때문이란다. 등짐은 그래서 노르
웨이가 오리지널! 유럽에 오니 스웨터를 허리에 감고 다니는 게 저마다 자기 나
라가 오리지널이란다. 그건 그만큼 그 나라의 날씨가 드럽다는 얘기다. 낮에는
덥고 저녁엔 쌀쌀하고 변덕이 심하다는 것이다. 서로 오리지널, 원조라고 하는데
어디가 원조인지 잘 모르겠지만, 스웨터 허리에 매고 다니면서 밤에 날씨가 쌀
쌀해도 안 입고 끝까지 버티는 오리지널 나라는 확실히 안다. 우리나라다! 이 나
라는 수상도 여자, 장관도 39%가 여자다. 여자 힘이 세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애가 10살이 될 때까지 생활비를 준다. 나라에서 먹여살리는 거다. 인구증가 정
책 때문이라나! 애 낳을 때나 몸이 아플 때나 병원비도 거의 공짜다. 병원에서는
어지간하면 약을 잘 안주고 자연치유를 적극 권장한단다. 좋은 자연 앞에 있으
면 저절로 병이 낫는단다. 맞는 말 같기도 해. 좋은 공기가 있는 곳에선 술도 빨
리 깨거든! 사람들의 의식도 자유로워서 꼭 넥타이만 정장 취급하는 게 아니고
스웨터 차림도 정장으로 쳐준단다. 우리 같으면 “이 자식이 누구를 뭘로 보는
거야, 스웨터 차림으로...!”할 텐데. 우리는 사실 엄숙주의와 권위주의가 어지간
한 사람들한테 까지 다 퍼져 있다. 병원 같은 데 가서도 치료를 다 마치고 의사
한테 “얼마예요?”그러면 결국 자기 돈이면서 밖에 나가서 계산하라고 그런다
구. 그러면 굉장히 기분 나쁘거든. 그런데 내가 만난 나이 많은 한의사들은 돈을
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호주머니에 집어 넣는다. 그런 거 보면 별거 아닌데도
참 신선하다. 굉장히 인간적이잖아. 아마 그런 사람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스웨터
를 입고 나와도 괜찮다고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든다. 스웨터 입고 나온 사람 땜
에 자기 체면이 실추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다. 하여간 이 나라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없는,거추장스런 통념들은 일치감치 쓰레기통
에 던져버린 나라다. 처녀 장관이 어느 날 배가 불러서 출근해도, 아버지가 누군
지 모르는 애를 낳아도 상관 안 한다. 뒤로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몰라도 말이
다. 우리 같으면 어떨까? 장관쯤 되는 여자가 사생활이 문란하다며 일단 목부터
자르겠지? 그리고 아마 광화문 같은 데 지나가면 조리돌림 같은 거라도 하지 않
을까? 문란한 주제에 뻔뻔스럽기까지 하다고 말이지. 어딜 나다니냐면서. 여기
내각에는 17살짜리 여고생 장관도 있단다. 청소년 문제는 청소년이 제일 잘 알
거라며 수상이 임명했대나?
한복에 갓쓰고 선장파티 갔더니...
유람선을 타면 꼭 한 번씩 선장파티라는 걸 하는데 선장파티 때는 예복을 입
고 가야 한단다. 배 스태프들은 소개받고 배 역사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샴페인
한잔 얻어먹는 자리다. 여기 사람들은 선장파티라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결국에는 선장이랑 사진찍고 사진값 받아먹기 위한 건데도 말이다. 그래서 들어
갈 적에 선장이랑 사진 찍으면 굉장히 영광되게 생각해서 막 나름대로 예의를
갖춰 정장도 하고 그러는데 우리는 뭐 굳이 그것때문에 무겁게 정장 한벌 안 챙
겨도 된다. 선장파티에서 출석 부르는 것도 아니고 안간다고 찍히는 것도 아니
거든. 뭔가해서 나도 한번 가봤는데 얘기듣고 질문도 하고... 뭐 그렇고그런 자리
였다. 질문도 별로 없어서 일방적으로 자기네들끼리 소개하고 뭐 그런 정도다.
난 옛날에 신혼여행하면서 한번 참가해본 경험이 있어서 부러 한복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미령이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갔다. 그래 갖고 한국사람이라고 그랬는
데 파티자리에서 영어선생 딸을 한국에 둔 6.25참전용사 할아버지를 만났다. 참
전용사는 94년에 기념으로 받은 커프스 버튼을 와이셔츠에 하고 왔다며 보여준
다. 자기딴에는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해서 하고 나온 거다. 며칠 뒤엔 또 한국
서 받은 훈장을 들고 있다가 갑판에서 나한테 보여주면서 하는 말이 자기 딸이
한국의 영어선생님이란다. 한국에 대해서 뭘 좀 안다며 얘길 하는데 자기도 한
국 박물관에 가서 이 의상을 봤지만 신발이 지금 신고 있는 게 아닌 것 같단다.
왜냐하면 운동화를 신고 있었거든! 유람선 안에서 TV를 본다. 테니스 선수가 테
니스를 치고 있다. 그냥 막 고통스러워하고 점수 뺏기면 괴로워 하기도 한다. 한
게임 한 게임 굉장히 힘들어하는 걸보면서 혼자 무식한 생각을 해본다. 저렇게
힘들게 왜하나. 그냥 회사댕기면서 가끔씩 즐기면 훨씬 재미있을 텐데! 세상에는
사서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지금부터 10년쯤 전의 이야기다. 연극하는
후배가 있었는데 연극해서 먹고살기 힘들다고 취직을 했다. 연출을 전공하는 친
구였고. 대선배님들의 조연출도 여러 작품 했고 자기 이름으로 연출을 해서 공
연도 했던 장래가 촉망됐던 친구였다. 원래 연극이라는 게 몇년 전만 해도 나이
30이 다 된 배우라도 옆구리에 자신이 출연하는 포스터를 끼고 나가서 붙이는
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알았다. 어디 그뿐인가? 세트 만드는 일,의상 구하
는 일,소품 만들고 구하는 일,신문사마다 보도자료 돌리는 일,서울시내 구석구석
을 오직 걸어다녀야만 할 수 있는 예매처에 표 갖다주기,새로운 예매처 개발하
기,인쇄소 다니기... 연극이 관객에게 보여지기 까지는 정말로 한도 끝도 없이 해
야 될 일이 산더미 같다. 이건 니가 할일, 내가 할일이 따로 없다. 배우고 스태
프고 누구나 다 해야될 뿐더러 밤낮 구분도 없는 거다. 한 작품이 무대에 올려
지고 또다른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면 똑 같은 작업을 처음부터 다 다시 해야 한
다. 그래서 연극판에서 10년쯤 일하다 보면 못하는 일 없이 다 잘하는 사람이
된다. 특히 몸으로 때우는 일이라면 누구보담도 자신 있어 한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해도 돈 한푼 안 생기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이 친구도 그렇게 해결
사가 되어 연극계통에서 12,3년쯤 일을 하다보니 이젠 마누라도 생기고 얼마 안
있으면 아이도 딸릴텐데... 하는 걱정이 앞서더란다. 그래서 그 사랑하는 연극을
때려 치우고 어느 회사에 취직을 했더란다. 회사에 들어와서 보니 사실 회사 일
이라는 것이 연극에 비해서 훨씬 쉽다! 그놈의 아침 출근시산 맞추기가 힘들어
서 그렇지. 몸으로 때우는 일보담은 시간으로 때우는 일이 더 많더라는 것이다.
오전에 영동 쪽으로 나가면 그걸로 오전 일과 끝이요,오후에는 또 강북으로 몇
군데 전화하면 그걸로 끝! 그렇게 일하면서 몇년 지나고 보니 연극 생각에 밥맛
도 없고 일도 손에 안잡히고... 결국 다시 그 고생을 사서 하겠다고 연극판에 돌
아왔다는 얘기다. 그러게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면 고생도 낙이라지 않
는가 말이다. 남보기엔 암만 고생스러워도 자기한테 맞는 일은 따로 있는 법이
다. 배 안에서 하는 영화가 별로 재미가 없다. 영화를 배안에서 아무거나 해줄
것이 아니라 그 나라와 관계된 유명한 영화를 해주면 좋을텐데. ‘로마의 휴일
’이나 ‘안네 프랭크의 일기’ ‘포세이돈 어드벤쳐’ ‘안데르센 동화’ ‘론
스토리’ ‘파랑새’ 등등. 고르면 얼마든지 많잖아...!
한국말 안내장이 있는 풍차마을
잘사는 나라냐 못사는 나라냐는 호텔 욕실에 들어가서 뜨거운 물을 틀어보면
안다! 뜨거운 물이 늦게 나오는 나라일수록 못사는 나라다. 잘사는 나라는 틀자
마자 바로 뜨거운 물이 나오거든! 잘 생각해 보라고. 옛날에 장(여관방)같은 데
가면 녹물이 한참 나오다가 미지근한 물이 나왔잖아! 유럽에 와서 느낀 건 직업
의 종류가 많아야 잘사는 나라라는 거다.하수도 상수도만 봐도 알 수가 있다. 못
사는나라 방글라데시 같은 데는 상하수도가 없다(정말 없나? 이거 이러다가 있
으면 방글라데시 대사관에서 항의할 텐데...). 당장 수도하나만 해도 없다고 생
각해보라! 그렇게되면 수도꼭지 디자인하는 놈 없지, 수돗물값 받으러 다니는 놈
없지, 수도요금 고지서 인쇄할 놈 없지, 여하튼 수도에 관한 건 일체 없어지잖
아. 수도가 하나 있음으로 해서 하수도 고치는 놈 생기지, 상수도 파는 놈 생기
지, 수도계량기 맞춰주는 놈 생기지, 수돗물 나쁘다며 정수기 팔러다니는 놈까지
수 십개의 직업이 생겨난다는거다. 그렇게 되는 거라고. 풍차돌이는 아마 전세계
에서 네덜란드에만 있는 직업인 것 같다. 풍차가 바람으로 돌아가니까 바람 부
는 방향 쪽으로 사람이 돌려주는 거다. 풍차마을에 갔는데 한국에 소개하겠다니
깐 입장료를 안 받아서 기분이 좋았고 두 번째는 한국말로 안내장을 만들어놓아
서 기분이 좋았다. 한국말 안내장은 유럽에 와서 처음이다. 귀여운 아해 풍차돌
이! 둑으로 쌓여서 바다보다 낮은 나라! 암스테르담은 한마디로 뚝섬이다. 바다
보다 낮은 뚝섬이라서 생긴 직업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 중에서도 아마 뚝 잘
쌓는 사람이 제일 대접받겠지? 풍차마을에서는 대낮인데도 개구리 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우리나라에 있을 땐 밤에만 우는 소리가 들렸는데!날씨가 우중충하니
개구리가 밤인 줄 알았나 보다! 변덕 많은 날씨. 아침에는 춥더니 낮에는 우중
충 하더니 오후에는 덥더니 밤에는 다시 쌀쌀하다. 암스테르담에도 중국인들이
제일 많은 직종은 식당이다. 제일 비싼 음식점은 선상식당인데 역시 중국 아해
들이 하는 곳이란다. 비싼 이유를 물었더니 가이드는 모른단다. 물위에서 장사하
니깐 언제 떠내려갈지 몰라서 그러는 거 아냐? 여기도 한국식당이 있단다. ‘한
국관’이다. 종업원이 한국 사람인 줄 알고 한국말로 말을 걸었더니 못 알아듣
는다. 알고 봤더니 인도네시아인이란다. 한국 종업원을 구할 수 없으니 한국 사
람 비슷한 외모로 구해 놓은 것이다. 영어로만 주문을 받는데 음식이 하도 안
나와서 빨리 갖다 달라고 “빨리 줘요!”하고 한마디했더니 그 말은 알아 듣는
다. “아이 언더스탠”하면서 알았단다. 칼스버그의 나라라 그런지 여기 맥주는
맛이 굉장히 신선하다. 우리나라에 오는 맥주완 맛이 약간 다른 것 같다. 우리나
라에 들어온 칼스버그는 배타고 오느라고 배멀미한 맥주인지도 몰라! 한국 슈퍼
도 있다. 600여 명의 한인들이 산다는데 장사는잘 되는지 네덜란드 사람들은 조
금 오고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많이 오고 일본 사람들이 간간이 이용한다고 한
다. 우리는 거기서 진로소주와 컵라면을 샀는데 진로가 10길더 50, 약 4,500원이
고 컵라면은 3길더, 1,300원이다. 한국관 근처에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먹고사
는 거에 비하면 비싼 편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반가웠다. 암스테르담에서 콜렉트
콜로 전화하려면 0600220082를 걸면 된다. 서울인 경우.
암스테르담에선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조심하자
안네 프랑크는 1929년생이니까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우리나이로 67세가 된
다. 초등학교 동창생들 몇 명은 지금도 살아 있을 텐데! 1945년에 죽었단다. 해
방되던 해에...! 안네 프랑크가 살았던 곳 옆집 두채를 안네 프랑크 재단에서 사
가지고 지금은 기념관을 만들어서 일반에게 공개를 한다. 두 채를 순순히 팔았
겠지! 우리나라 같이 값 올리려고 악착같이 안팔고 시세보담 더 받으려고 버티
지는 않았겠지! 입장료가 10길더, 우리돈으로 약 4,300원정도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보면 설명서가 굉장히 많다. 사람들도 참 무지막지한게 그냥 대강 읽고
지나가면 될 텐데 그걸 꼼꼼히 다 읽어보는 통에 한참을 안네 프랑크가 숨어 있
던 곳에서 기다리며 서 있어야 했다. 갇혀 있었던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라는 듯! 내가 갔을 땐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우리나라 사람들 같으면 “
빨리 갑시다. 시발, 이좁은 데 왜 데려온 거야!”이랬을지도 몰라. 그게 우리나라
사람다운 일이니깐!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한국 가서 다시사 읽어봐야겠다. 암스
테르담은 도시가 비교적 깨끗하다. 그런데 유럽에서 처음으로 공원이나 광장에
서 술먹고 헬렐레 하는 아해들을 만난다. 눈이 풀린 놈하며 마약에 쩔은 놈하며
검둥이들이 많다. 마약을 준합법화한다고 하니깐 쩔은 애들이 눈에 많이 띄는
건가? 이 자식들 참 문제야! 어는 카페에선 마리화나 종류가 많아서 메뉴판에다
써놓고 판단다. 웃기는 나라잖아! 여기선 사진 찍히는 걸 특히 싫어한다는 인상
을 받았다. 벼룩시장에서도 그렇고 공원에서도 그렇고 하다 못해 거리에서 판토
마임하는 아해까지 소품으로 쓰는 우산으로 가린다. 세게 다이아몬드의 80퍼센
트를 암스테르담에서 가공한단다. 우리가 들른곳은 GASSAN이라는 곳인데 57면
이나 깍는단다. 이게세계 최고란다. 벨기에도 자기네가 80퍼센트 가공한다고 하
던데...! 각국 사람들이 다 찾아오기 때문에 각국 직원들이 다 있단다. 우리는 한
국 안내원 장용의 선배인 이종구씨의설명을 들었다. 홍콩 사람이 제일 많이 사
가고 한국 사람도 등수에 든다는데 홍콩사람의 10의 1도 안 된단다. 여기서 한
국 사람들이 부부사움을 많이 한단다. 카드로 긁어라 말아라 하면서. 한국 사람
들의 카드 한도액도 알아서 월부로도 해준단다. “미국 아해들 버스로 돌아올
때 보니까 쇼핑한 사람이 딱 세 명이더라! 두 명은 먹을 거고 한 명은 조그만
봉지에 선물을 산 거더라.”이런 얘기를 가이드들한테 들은 적이 있다. 이 자식
들아, 한국 사람한테 조금만 잘해줘 봐라. 한국 사람 태운 버스 한 대만 데리고
와봐라. 시예산이 달라질 거다! 쇼핑센터 앞을 지나면서 여자 가이드가 하는 말.
여자에겐 쇼핑의 천국,남자에겐 워털루 전투란다. 하긴 사자 말자 부부간에 오직
들 싸우겠어? 여기엔 길에 자전거 도로가 아무데나 다 있다. 우리는 자동차 도
로에서 벗어나면 찻길 다 건넌 줄 알고 막 이야기하는데 인도가 아니라 자전거
도로였다. 처음온 사람은 자동차보담은 자전거를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자전거가
많은 이유는 언덕이 없고 평지가 많아서란다. 남녀노소 불문하고많이 탄단다. 자
전거는 값도 제법 비싸다는데 우리 돈으로 20만원에서 그 이상까지 있단다.
다른 건 몰라도 자전거 수리만 잘해도 학교 다닐 적에는 여학생에게 인기가 있
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 공부보담은 노는 거에만 신경을 쓴 학생도 나중에 자전
거포에 취직하면 우리나라 자동차 정비공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친구 중에 고등학교 때당구를 잘 치던 녀석이 있었는데 군대 가서 장
교들 당구 가르치면서 편하게 지냈다는 거야언젠가 만났더니 당구 큐대 수리해
주는 일을 하더니 지금은 종로에서 당구장 재료상을 하더라구! 한동안 죽는 시
늉을 하더니 포켓볼 붐이 일어서 돈도 아주 잘 벌드라니깐!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에 대한 느낌. 우리 일행은 브뤼쉘은 좀 더러운 도시, 암스테르담은 좀 깨끗
하고 도시라고 식사시간 중에 이야기한다. 일행 중에 옵션 투어를 갔다온 사람
은 브뤼쉘이 아름답고 암스테르담은 더러운 도시란다. 더럽든 아름답든 왔다 간
다.
누드연맹에선 물건도 벗고 판단다
오늘은 6월13일, 내일 닿을 오슬로를 향해서 배가 간다. 항해중 본 것 중에 제일
센 파도가 친다. 배 타고 가다가 고래가 물 뿜는 거 한번 직접 봤으면! 사이판에
서 날치 날아가는 건 봤는데! 노르웨이라는 나라엔 누드연맹이라는 게 있어서
한국사람들이 처음엔 호기심에 들르기도 했는데 이젠 시시해서 안 간단다. 물건
파는 사람도 벗고 파는데 카메라는 절대 가져가면 안 된단다. 우리나라 속옷 파
는 진열장을 어쩌다 들여다보는 경우가 있는데 예쁜브래지어가 많이 걸려 있는
걸 보면서 ‘저거 저렇게 이쁠 필요가 있나? 볼사람은 자기 혼자거나 또 한사람
뿐일 텐데’생각했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값도 여간 비싼 게 아닌데,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저렇게 비싼 걸 사나? 비싼 브래지어 자랑하려고 그러는지
는 몰라도 여기선 길거리에서는 웬만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윗도리를 벗고 다닌
다. 브래지어만 한 채로 다 큰 처녀아이가 말이다. 우리야 이렇게 벗고 다닐 것
도 아니니 더더욱 낭비가 아닌가. 여기 아이들은 오히려 그렇게 비싼 걸 하는
것도 아니란다. 돈이 없어서!고등학생 남녀 아이들이 바닷가도 아닌 곳에서 티셔
츠를 벗고 아무렇지도 않게 벌렁벌렁 잘 눕는다. 드디어 사진을 찍었는데 궁금
하도다. 잘 나왔는지! 오슬로에서 배로 돌아오는
길에 브래지어만 하고 걸어가는 처녀 아해를 발견하다. 우리보담 조금 앞서 걸
어가는데 우리가 탄 차가 신호에 걸렸다. 신호가 끝나면 걸어가봤자 지가 얼마
나 가겠나? 차가 앞으로 갈 때 얼굴도 한 번 봐야지 하고 기대하고 있는데 우리
가 우회전을 하자 그 처녀 아해는 그만 직진으로 가버린다. 아깝다! 분하다! 우
리 일행 한 명이이 이야기 한다. 누워 있는 것만 보다가 서서 걸어가는 것 보니
까 정말 이상하네! 오슬로 가이등의 말. 어릴 때부터자꾸 만져주니 가슴이 커질
수 밖에 없다나! 사람 가슴을 화초로 아는구만! 노라가 집을 나간 이유를 여기
와보니 이해가 간다. 해양국가 사람들이라 맨날 바다에 나가 있으니 당신들이면
집에 있겠어? 그래서인지 여기 아해들은 결혼하기 전에 동거부터 해본단다. 우
선 살아보고 결정하는 거다. 고무신을 사더라도 신어보고 사듯이 살아보고 결혼
을 결정하는 건 유럽 아해들의 전반적인 경향이기도 하다. 그렇게 사용해보고
평생을 맡길 것인가를 신중히 생각한 후에 결혼한다. 물론 이혼율도 많아서 다
시 물르기도 한다. 하기야 바이킹족의 후예들이니 살아보면서 이놈이 방랑벽이
도지지는 않겠는가 당연히 알아봐야겠지!
처녀가 애를 낳아도 나라가 먹여살린단다
노르웨이말로 니그가 등이란다. 색은 주머니. 그래서 생겨난 말이 니그색, 일본
발음으로 니꾸사꾸란다. 여기선 국회의원이 전부 메고 다닌다고 한다. 빙판길에
넘어지면 손에 들고 다니는 것보담 덜 다치기 때문이란다. 등짐은 그래서 노르
웨이가 오리지널! 유럽에 오니 스웨터를 허리에 감고 다니는 게 저마다 자기 나
라가 오리지널이란다. 그건 그만큼 그 나라의 날씨가 드럽다는 얘기다. 낮에는
덥고 저녁엔 쌀쌀하고 변덕이 심하다는 것이다. 서로 오리지널, 원조라고 하는데
어디가 원조인지 잘 모르겠지만, 스웨터 허리에 매고 다니면서 밤에 날씨가 쌀
쌀해도 안 입고 끝까지 버티는 오리지널 나라는 확실히 안다. 우리나라다! 이 나
라는 수상도 여자, 장관도 39%가 여자다. 여자 힘이 세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애가 10살이 될 때까지 생활비를 준다. 나라에서 먹여살리는 거다. 인구증가 정
책 때문이라나! 애 낳을 때나 몸이 아플 때나 병원비도 거의 공짜다. 병원에서는
어지간하면 약을 잘 안주고 자연치유를 적극 권장한단다. 좋은 자연 앞에 있으
면 저절로 병이 낫는단다. 맞는 말 같기도 해. 좋은 공기가 있는 곳에선 술도 빨
리 깨거든! 사람들의 의식도 자유로워서 꼭 넥타이만 정장 취급하는 게 아니고
스웨터 차림도 정장으로 쳐준단다. 우리 같으면 “이 자식이 누구를 뭘로 보는
거야, 스웨터 차림으로...!”할 텐데. 우리는 사실 엄숙주의와 권위주의가 어지간
한 사람들한테 까지 다 퍼져 있다. 병원 같은 데 가서도 치료를 다 마치고 의사
한테 “얼마예요?”그러면 결국 자기 돈이면서 밖에 나가서 계산하라고 그런다
구. 그러면 굉장히 기분 나쁘거든. 그런데 내가 만난 나이 많은 한의사들은 돈을
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호주머니에 집어 넣는다. 그런 거 보면 별거 아닌데도
참 신선하다. 굉장히 인간적이잖아. 아마 그런 사람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스웨터
를 입고 나와도 괜찮다고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든다. 스웨터 입고 나온 사람 땜
에 자기 체면이 실추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다. 하여간 이 나라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없는,거추장스런 통념들은 일치감치 쓰레기통
에 던져버린 나라다. 처녀 장관이 어느 날 배가 불러서 출근해도, 아버지가 누군
지 모르는 애를 낳아도 상관 안 한다. 뒤로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몰라도 말이
다. 우리 같으면 어떨까? 장관쯤 되는 여자가 사생활이 문란하다며 일단 목부터
자르겠지? 그리고 아마 광화문 같은 데 지나가면 조리돌림 같은 거라도 하지 않
을까? 문란한 주제에 뻔뻔스럽기까지 하다고 말이지. 어딜 나다니냐면서. 여기
내각에는 17살짜리 여고생 장관도 있단다. 청소년 문제는 청소년이 제일 잘 알
거라며 수상이 임명했대나?
덴마크에서 딸라 자랑하다간 눈탱이 맞는다
고은 선생이 하신 얘긴데, 서울역에 오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고 그랬던
가. 나는 지도를 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나는 정말 아침에 현관에서 구
두끈을 맬 때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느날 아침에는 구두끈을 매다가 ‘아, 미국이나 한번 갔다 왔으면 좋겠다’
고 생각하는가 하면 또 어느 날은 구두끈을 매다가 ‘일본이나 한번 가보고 싶
다. 거기선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하고 생각한다. 요즘은 현관에서
구두 신으면서 구두끈을 묶으려고 고개를 숙이면 100미터 단거리 선수 스타트
자세가 되는데 총소리만 땅하고 내면 선수들이 퉁겨 나가듯 어디론가 뛰어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덴마크 지도는 할아버지가 코 흘리는 것처럼 생겼단다. 그 말 듣고 지도 보니
정말 그런 것처럼 보인다. 덴마크 아해들도 그렇게 설명할까? 궁금하도다.
여긴 모든게 예약이다. 길에서 지나가는 택시는 어쩔 수 없이 서지만 집에선
택시도 예약을 해야 한단다.
2,3년전부터 한국 관광객이 급증하는데 그럼에도 아직 한국 관광객 맞을 준비
가 안 돼 있다. 한국 슈퍼도 없고, 고추장이 없는 곳에선 인도네시아 소스 중에
삼발(SAMBEL)이라도 구해볼 것! 고추장 비슷해서 이곳 교민들도 그걸로 고추
장 향수를 달래본단다. 밑줄 긋자! 삼발!
일본 사람들은 정말 많다. 일본 말 하는 덴마크인도 봤다. 일식집에서. 축구
붐 조성을
위해 한일 양국에서 세계축구부회장이 있는 덴마크에 왔는데 한국에선 사물놀이
하고 하루 만에 갔는데 일본은 일주일간 아예 일본주간이란 걸 만들어서 폭죽을
하루에 45분씩 일주일 간 쏘아댔단다. 하루에 쏘아댄 양이 티볼리 가든에서 매
일 쏘아대는 폭죽의 2년치였단다. 흥국아!
덴마크 관동반점 주인도 일본 사람이다. 우리나라 김치를 주는데 맛있다. 빼갈
이라고 좀 좋은 술을 달랬더니 오늘이 뭐 특별한 날이냐고 우리한테 물어본다.
그래서 아니라고 그랬더니 “이건 비싸니까 특별한 날이 아니면 마시지 말라”
며 맥주를 권한다. 자기가 먹던 고량주를 주면서 말이다. 우리는 하도 친절해서
매상 좀 올려주려 했는데....! 참 인정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자 위의 냅킨 꽂혀 있는 모양이 꼭 배의 닻모양 같다.
광동반점 옆 면세점 가죽 파는 데서 한떼의 한국 관광객이 쏟아져 나와 찻길
을 건넌다. 우리 일행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광동반점으로 가다가 마침 가죽잠바
집에서 나오는 가이드를 만났다. 우리 가이드가 아니고 한국 사람들을 몰고 온
(?) 다른 한국인 가이드다. 가죽잠바 주인이 가이드에게 커미션을 주는데 나랑
눈이 딱 마주쳤다. 아주 민망한 얼굴이 된다. 누가 커미션 제의를 먼저 했을까?
궁금하도다. 덴마크에서 달러 자랑하지 마라. 눈탱이 맞는다고 우리 일행이 얘기
한다. 달러를 굉장히 좋아하기 땜에 바가지를 씌운단다. 가죽잠바집 주인이 싱글
벙글하는걸 보니까 이 사람들이 가죽잠바 사면서 혹시 딸라 쓴거 아냐?
광동반점의 일본 아저씨는 우리가 어제도 오고 오늘도 왔다고 길건너 과일가
게에 휘파람을 불어 수박을 가져오게 한 뒤 자기 개인 돈으로 사준다며 생색을
낸다. 수박은 자기가 더 잘 먹게 입 구조가 생겼던데! 아주 개성적인 뻐드렁니
다.
유럽에서 짜장면집 하면 관광객 때문에 장사가 될까?안될까?아침에 일어나면
속풀이 짬뽕이 생각난다.
이 나라 사람들 중에 많이 쓰는 이름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역시 요한슨,피터
슨,핸슨,얜슨... 슨자 돌림이 많다. 안데르센도 여기 발음대로라면 아네슨이란다.
노르웨이 슨 씨하고 덴마크 슨 씨는 항렬이 서로 같으니 조상이 같으거 아냐?
니가 형이다 내가 형이다 싸우지나 않을까 몰라.
끼예꾜. 키에르케고르를 이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단다. 이것이냐. 저것이
냐?라는 철학서를 쓰신 분이다. 우리나란 서영춘씨가 벌써 오래전에 했는데, ‘
이거다 저거다 말씀 마시고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물에 가야 고기를 잡고...’!
덴마크에서는 한국 사람끼리 만나면 찻길을 막 건넌 데서 반가워하면서 언제
왔냐 어디서 왔냐 묻고 하는데 사실은 그 자리가 자전거 전용도로라는걸 잘 모
른다. 대단히 위험하다. 주의할 것!
이 나라도 역시 북유럽 다른 나라들처럼 자전거를 장려하기 위해 도시는 물론
이고 시골길까지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는 곳이 없다. 기차도 자전거 칸이 따로
있다. 자전거 세워두는 곳에 가면 하얀 자전거가 있는데 시에서 빌려주는 자전
거란다. 20크로나 내고 하루 종일 타고 시내 아무데나 자전거 빌려주는 곳에 갖
다놓으면 된단다.
자연 풍경을 보면 누가 권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전거를 타고 싶은 나라! 그래
서 그런지 땅바닥에 퍼질러앉아 햇빛을 쪼이는 아해들이 많다. 땅바닥에 앉는
걸 좋아하는 유럽인들! 침대 생활이 지겨워서 그런가! 나도 유럽에 한 달쯤 살았
다고 이젠 서서히 햇빛에 나가서 앉게된다.
밤에 택시를 타고 항구의 배로 돌아왔다. 낙농의 나라라 그런지 TV광고에도
소가 나온다. 엄마소가 유모차에 송아지를 태우고 가면서 아기에게 물리는 젖병
을 송아지에게 물리고 가는 우유광고. “우리 아이 이걸로 키웠어요!”
아침 저녁으로 떠오르는 만나고 싶은 사람들. 주병진이 양락이는 장사가 잘될
까? 이성미
송창식...
그 아이의 마지막 모국어
덴마크에서 성개방 이야기는 이제 벌써 옛날 이야기다. 옛날 같진 않단다. 학
교에서는 애 낳지 말고 병 걸리지 말고 인생을 즐기라고 가르친단다.
성개방 문제가 심각히 다루어진 것은 60년대쯤인데 그땐 강간과 살인이 굉장
히 많았단다. 여러 가지 이유가 더 있었겠지만 그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성개방
을 하기로 했다는 거다! 우선 다른 나라에서 안 하니까 먼저 해보자고 했지만
그 안이 통과된 후에 실패하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을 많이 했단다. 창녀들을 직
업으로 인정한 것도 처음엔 다른 나라 여자들만 해당됐는데 범죄도 줄어들고 별
문제가 없으니까 덴마크 여자들도 참여를 했단다!
외국에서 구경 오는 사람들도 많아져서 관광 수입도 많이 늘어나고 특별히 공
장을 짖는 것처럼 투자 자금이 드는 것도 아니어서 성공을 했다는 거다. 덴마크
여자들은 포르노 필름을 상업화해서 돈을 많이 벌어들였다나 어쨌다나! 하여튼
딴 나라 다니다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국내서는 들을 수 없는...
배낭족 아해가 얘기한다. 네덜란드에선 창녀들이 보통 때는 서 있지만 낮에는
앉아 있단다. 러시아워가 아니라서 쉬는 거란다. 값은 기본이 50길더, 우리 돈으
로 이만몇천원이란다. 숏타임 가격이다. 그 다음부터는 옵션에 따라서 값이 올라
간단다. 어떤 옵션이 있는지 미리 알아보지 않으면 바가지 쓰기 딱 알맞단다. 그
래서 한국 애들이, 들어가면 50만원도 달라고 그러고 100만원도 달라고 그런다
는데, 하면서 젖가슴을 만진다든가, 자세를 바꾼다든가, 자세에 따라서도 다 틀
리고 콘돔을 끼고 하느냐 벗고 하느냐에 따라서도 값이 다 다르단다.
덴마크에는 포르노 극장이 있다. 합법이다. 여러 군데 있단다. 한국은 포르노
극장이 있지만 불법이다. 청계천에 오래 전부터 있지만 당국에선 없는 걸로 발
표한다.
덴마크 사창가를 가이드와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경찰과 창녀가 웃으면서 이
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이드를 내리게 하여 무슨 말인가 엿듣게 했더니 마약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란다. 여기선 창녀를 엄연한 직업으로 인정하
고 세금을 받는다. 여기 사람들은 최하48퍼센트에서 68퍼센트까지 세금을 내는
데 창녀들을 하급으로 48퍼센트를 내고 은퇴하면 연금도 나온다.
문득 떠오르는 시가 있다. ‘창녀더러 이름이 뭐냐고 묻는 술 취한 남자의 성
욕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창녀의 우두 자국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제 부모가
병들지 말고 장차 좋은 곳으로 시집가기를 바랐건만, 그래서 해수욕복을 입어도
우두 자국이 안 보이게 팔 안쪽에 우두를 놓아주었건만.’고은의 ‘우리를 슬프
게 하는 것들’중에서.
오후 3시30분이면 해가 지는, 겨울 동안에는 뭘 하고 사냐고 물으니까 학벌이
나 직업에 관계없이 성인교육을 한단다. 성교육 말고 성인 교육이다. 그게 교육
으로 되는건 아니잖아! 뜨개질, 할머니 영어교실, 혼자 된 남자를 위한 요리강
좌... 별 강좌가 다 있단다.
밤이 긴 나라. 밤이 기니 성생활이 신경 쓰이지. 아해들 성문제보담 자신들이
더 급하지. 그러니 아해들이 빨리 성에 눈뜰 수밖에 없지 않겠나!
궁금해서 물어봤다. 여기도 혼탕이 있냐고. 있단다. 산위에 가면 홀수 시간엔
남자, 짝수 시간에 여자가 사우나를 하는데 그게 시간이 혼동되어서 혼탕이 저
절로 된단다. 남녀 완전혼탕이란다. 우리는 수요일이라서 못 갔다. 수요일은 장
애가 있는 사람, 여자, 할머니, 유방암 수술해갖고 젖 잘라낸 사람 등등만 가는
날이란다. 재수 드럽게 없네!
오래 전에 강원도의 군인 도시인 어느 조그마한 마음에 간 적이 있다. 그 마
을 이름은 잊었지만 하나 안 잊어먹는게 있는데 뭐냐 하면 그 마을의 목욕탕이
다. 모처럼 맘먹고 목욕을 하러 갔는데 그날은 안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 목
욕탕엔 탕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란다. 월수금은 남자, 화목토는 여자, 일요일
은 군인.
덴마크는 섬나라라 바닷가가 많다. 바다는 청색. 청색 생선, 청어, 바다 군인,
해군 바지, 청바지 그리고 보면 바다는 청하고 관계가 많다? 인당수의 심청이,
청이 사간 청나라 뱃사람, 이팔청춘 섬마을 선생님 이야기도 많을 텐데! 너무 억
지다! 사실 내말은 억지가 많어!
그 옛날에는 청나라 뱃사람들이 엄마 없는 불쌍한 우리네 처녀 심청이를 사갔
지만 요즘은 우리가 멀쩡한 우리 아해들을 이곳 덴마크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있
다. 10년동안 이 추운 나라에까지 비행기에 실려와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된 우리
아이들이 수만 명이란다. 그래선지 여기 사람들은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고아수
출국으로 안단다. 여기, 슬픈 시가 하나 있다.
‘한 아이가 하늘에서 울고 있다. 그것은 그 아이의 마지막 모국어.’
‘아, 대한민국’을 작사한 박건호의 시다.
기차 타고 뱃멀리할 뻔했네!
아침 8시30분. 13일만에 유람선 여행이 끝났다. 이제 배에서 내리자마자 강행
군이 시작될 텐데, 각오를 단단히 해야지! 끝나는 날이 되니 그동안 그렇게 친절
하던 놈들이 갑자기 안면 싸 바꾸고 쌀쌀해진다. 정말이다. 나만 느낀게 아니다.
나가 달라는 방송을 쉬지 않고 해댄다. 그래!나간다 임마! 나가면 될 거 아냐?
6월17일, 오후5시30분. 기차로 코펜하겐을 떠나다. 마지막으로 인어상을 돌아
봤다. 인어상을 먼저 보고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거나 볼품 없이 작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직접 와서 보니깐 정말 괜찮았다!
실제 사람 크기만하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란단 말인가!
인어상은 칼스버그라는 맥주회사에서 에릭슨이라는 조각가에게 조각을 부탁하
고 조각가는 자신의 부인을 모델로 해서 조각을 했단다. 연간 벌어들이는 관광
수입이 엄청나단다. 액수야 알 필요 있나! 330년이 지나면 사람이 된다는데 올해
로 83년째니 앞으로도 217년을 더 기다려야 된단다. 말이 좋아 그렇지, 300년이
넘는 세월을 15살 소녀로 살아갈 일도 생각해보면 참 끔찍한 일이다. 안 와봐서
몰랐는데 배꼽 아래부터 지느러미인줄 알았더니 발끝만 지느러미다!
아무데서나 사진을 막 찍고 가는 한국 관광객들이 큰소리로 떠든다. “인어상
앞에서 인어 안 나오면 어때? 사람 얼굴이나 잘 나오면 되지!”아마 12일에 9개
국 관광하는 사람들일거야.
유람선 일정이 다끝나고 기차 타고 파리로 가는 중이다. 덴마크 와서 안데르
센은 보지도 못하고 기차 타러 가면서 창밖으로만 내다본다! 정말 뭘 한 건지!
한심하도다!
기차 타고 배 타고 스웨덴을 못 간 게 억울했는데 파리로 가는 기차가 배를
탄단다. 기차를 탔더니 기차가 배안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 긴기차가 말이다. 배
위에 레일도 있고, 우리 기차만 들어가는게 아니라 여러 대가 들어갈 수 있게
돼 있다. 유럽이 기차여행의 천국이라도 바다야 어떻게 건너랴 했는데 이렇게
해서 거뜬히 건너는 구나! 정말 신기하대! 기차 타고 뱃멀리할 뻔했네! 배에다
기차 태울 생각 누가 한거야, 이름 적어봐!
기차가 자주 선다. 자주 서면 안 좋은 건 야간 열차, 자주 서면 좋은 것 남자,
아니지! 여자일지도? 유럽 농촌을 차창 밖으로 내다보면 농촌집에 가든이란 간
판만 갖다 붙이면 서울 근교 카페촌이랑 별로 다를게 없다. 그만큼 카페들이 유
럽 걸 많이 베껴 먹었다는 거지.
파리로 오니 집에 온 것 같다. 고스톱도 쳐보고, 우리집 이사 오고 며칠 안 돼
여행을 왔더니 우리집 동수는 생각이 나는데 홋수가 생각이 안나네.
여행 온 지 한달째, 다행히 약국 갈 일이 없다.
제4장 파리에선 무단횡단을 하자
햇빛 나면 윗도리 벗는 파리 여자들
라스베가스에서 쇼를 본 적이 있었다. 라스베가스는 도박도 유명하지만 쇼도
유명하다. 로비에서 하는 공짜부터 돈 내고 구경하는 쇼까지 아주 다양한 레퍼
토리가 있다. 쇼 종류를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고 인간이 간사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요즘엔 한국에서도 외국 무희들이 나와서 가슴을 드러내는 일이
종종 있지만 아주 오래 전이라고 해봐야 십여 년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라스베가스 무대 위에서 무희들이 머리에다가 깃털을 모가지가 꺽일 정도로
달고 아랫도리만 가린 채 알가슴을 내놓고 무대로 약 백여명이 걸어나온다. 정
신은 주머니에 집어넣고 쳐다보고 있는데 우리 일행 중의 누군가가 좀 큰소리로
외친다. “야, 저기 브래지어 한 여자 있다” “뭐, 어디? 어디?” “저기! 저기!
” 하면서 우리 일행은 브래지어 한 여자 무희를 한동안 찾았다. “그래 저기
있다. 파란색으로 한 여자 맞지?” “그래! 그래!”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왔다갔다하는 무희들 사이에서 우리는 숨은 브래지어 찾기
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마찬가지다. 유럽에서도 인간이 간사해지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파리 사람들은 햇빛이 나면 윗도리를 벗는다는데 어디서 벗나? 했더니 세느
강변에서 벗는단다. 햇빛이 비치면 윗도리 홀랑 벗고 세느 강가로 돗자리 들고
나오는 청춘 남녀들. 유학생들 말로는 그것도 포인트가 있단다. 낚시 포인트처럼
자리를 잘 잡아야 실컷, 실속 있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 후배가 오면 족보
처럼 포인트를 물려준다고 한다. 목만 좋으면 백주에 키스신이나 에로신도 덤으
로 딸려온단다. 난 초보라 그랬는지 운이 없었는지 결국 세느 강변에서는 구경
도 못하고 마지막 카드로 실내 수영장엘 갔다.
그랬더니 정말 말로만 듣던, 영화로만 보던, 사진으로만 보던, 상상만 했던, 설
마했던, 전해주는 사람을 의심했던 모든 일들이 현실로 나타났다. 여자들이 윗도
리를 완전히 벗고 일광욕 중이다. 저기 한 명 짜잔! 또 한 명! 어, 이거 한둘이
아니잖아! 슬금슬금 보기도 하고 나중엔 지나가는 척하고 보기도 하면서 놀랍다,
정말이구나! 이게 웬일이냐! 오마나! 오마나! 내가 유럽에 왔구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남이야 보건 말건 저마다 그 크고 탐스런 젖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놓고
두 손으로 선탠 오일을 썩썩 바르고 있는 여자들. 여기 오래 사신 분 설명에 의
하면 여기는 남녀평등 사회이므로 남자가 가슴을 드러내듯이 여자가 가슴을 드
러내는 거란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아니 할머니잖아! 저기도 할머니, 요기도 할머니 아냐, 할
머니보담은 좀 젊은데! 아니, 할머니들만 벗는구나! 아니, 할머니들만 벗는구나!
아니, 저기 젊은여자 아해가 한 명 벗었네! 저기... 하면서 결국엔 놀랍고 신기했
던 할머니의 젖가슴은 시시해지고 거들떠보기도 싫고 이왕이면 처녀 아해들만
찾게 되더라는 얘기다.
해변으로 진출해보니 점입가경이다. 이렇게 신나는 일이! 체면이고 뭐고 실컷
봐야지! 하며 눈에 불을 켜고 사방을 부리번거렸다. 여긴 바닷가에서도 고등하교
남자여자 아해가 놀러 와서는 훌러덩훌러덩 그냥 벗는다. 한 가지 궁굼한 건, 백
사장에 젖가슴을 드러내 놓은 아해들을 보면 이상하게 흑인은 한 명도 없다. 흑
인도 파리 시민이라면서. 흑인들은 그럴지도 모른다. “저 아해들이 우리처럼 되
려고 하나봐! 우린 안 저래도 새카만데” 하면서 안 태우는 게 아닐까!
그런데 이 수영장이란 데가 여자들 벗어서가 아니라 정말 괜찮았다. 아쿠아
불가드라는 수영장인데 8번선 발라드 역에서 하차하면 나온다. 네 시간까지는
기본이고 한 시간에 얼마씩 더 내는 실내외 수영장인데 수영복을 입고 왔다갔다
한다. 남녀공용 사우나는 기대하지 마라. 그런 건 없다. 대신 하이 슬라이드가
너무 기똥찬 게 많다. 바로 일직선으로 떨어지는 거. 막 커브를 도는 거, 아무튼
종류가 엄청나게 많아서 어떻게 보면 하이 슬라이드로 청룡열차 타는 기분을 맛
볼 수 있는 데다.
늙은 거지의 눈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문화의 나라, 예술의 나라, 개성의 나라라 그런지 프랑스엔 거지도 정말 고상
하고 다양하다. 인형극 하는 거지가 있는가 하면 일요일엔 성당 가느라 쉬는 거
지도 있고, 애완견을 데리고 다니는 거지도 있다. 우리가 얻어 살고 있는 파리
아파트 앞에도 거지 한 명이 앉아 있다. 불쌍해서 내가 1프랑을 주니깐 안 받는
단다. 통역을 시켜 이유를 물어보니 일요일은 쉰단다. 지가 보령제약이야 뭐야!
일요일은 교회에 나가야 하기 땜에 돈을 안 받는 거지들도 실제로 있다.
또 푯말에 ‘헝그리’라고 써서 들고 다니는 거지도 있고 개를 끌고 다니는
거지도 있다. 개는 굶길 수 없으니까 정부에 등록을 하면 개 먹이라고 일주일에
12파운드씩 돈이 나온단다. 그걸로 저는 밥 사먹고 개는 얻어먹이고 한다나. 영
국 얘기다. 암놈이 임신하면 출산비용도 주겠네! 제일 놀라운 건 인형극을 하는
거지다. 그 아이디어와 여유! 하모니카를 제법 구성지게 부는 거지도 눈에 띈다.
지하철 객차에서 뭐라고 뭐라고 얘기하는 거지가 있다. “나는 직업이 없다.
그래서 배가 고프다. 여러분들이 돈을 주면 빵을 사먹고 옷도 새 옷으로 갈아입
고 다니겠다. 그러니까 돈을 좀 달라”는 말이란다.
여기는 이런 거지들이 굉장히 자주 눈에 띈다. “나는 직업이 없지만 아이가
둘이라서 먹여살려야 되니 조금씩만 도와달라. 애들이 집에서 빵을 기다리고 있
다”에서부터 “예전에 무슨 일을 했는데 지금은 실직을 했다. 당분간만 도와달
라” 이런 보충설명(?)을 구사하는 거지도 있단다. 그럼 직업이 없으니 거지 하
지, 있는데 구걸이 취미라서 거지 하냐?
사회복지 국가여서 그런지 정치노선이 바뀌는 통에 국가의 잘못으로 생겨나는
실업자들이 많다. 그래서 갑자기 일이 없어져 빌어먹는 사람들을 사람들은 대부
분 이해한단다. 역사의 피해자, 정책의 희생자로 보며 관용을 베푸는 것이다. 거
리를 헤매던 사람들도 정치노선이 바뀌면 다시 일을 하기도 하고... 물론 거지
타성에 절은 놈들도 없잖아 있지만 대부분 우리 거지 개념하곤 근본적으로 틀리
다. 이유야 어쨌건 뻔뻔스럽게 그냥 달라는데도 사람들은 비교적 잘 준다.
장사도 안 되는데 하루에 두 번인가 왔길래 “아, 거 좀 자주 오고 그러지 마
세요”그랬더니 “나도 코스가 있어서 오고 싶어도 자주 못 온다”던 옛날 우리
어릴 적 거지가 생각난다. 또 한 놈은 아침에 문을 열자마자 왔길래 10원을 주
는데(요즘이야 적선 단위가 커져서 100원도 주고 그러지만 그땐 보통 10원씩 줄
때였다) 이따가 저녁나절에 오라고 그랬더니 “10원 때문에 두 번 걸음 하란 말
이요?” 그런 거지도 있었다. 마치 빚이라도 받으러 온 것처럼 당당하게 말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줬던 적도 있다. 꼼짝 못하고 번번히 거지한테 지고 살았으
니 그땐 거지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배 고프면
달래서 먹으면 되고 스케줄이 바쁘길 하나, 오라는 데가 있나. 오라는 데 없으면
어때. 가고 싶은 데 가고 잠 오면 자고 급한 일도 없으니 그냥 내처자면 되고
참 좋겠다’그랬던 거다.
그런데 어느 날 거지에 대한 그런 내 동경(?)이 와장창 부서졌다. 언젠가 새벽
에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면서 집으로 가던 길이었는데 을지로 지하도를 지나가
면서 잠에서 막 깨어난 거지를 본 적이 있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그 거지는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지하철역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낮이라면 여기
저기 왔다갔다라도 할 텐데 새벽에 일어난 거지는 무슨 생각을 할까? 참 불쌍했
다. 자다가 깨어나도 갈 데도 없을 테고 그 시간에 황량한 지하도에서 다시 잠
들기도 쉽지 않을 텐데, 그 모양으로 밤을 하얗게 새고 있을 걸 생각하니 내가
거지가 아닌 게 그렇게 다행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심란한 밤을 보내고, 날이 밝으면 오늘은 또 어디로 갈까를 고민할 그
거지에 비하면 나는 무지하게 행복한 사나이였던 것이다. 그후로는 어지간하면
배부른 불평을 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남의 불행을 보면서 내 처지를 깨달은
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늙은 거지의 눈을 보면 돈을 안 줄 수가 없다.
프랑스 거지들도 가만히 보면 통박을 굴린다. 프랑스 사람이 지나가면 뭐라고
한마디씩 “한푼 줍쇼, 한푼 줍쇼!”하다가 우리 일행이 지나가니깐 뭐라고 말을
하려다 마는 눈치다. 멈칫 한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아마도 너흰 못 알아들을
거야, 그러니 말을 안 하는 게 낫다”하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해봤자 안 준다
는 걸 뻔히 아는 거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이 나라 거지들은 아마 외국어 한두 개쯤 안 배운 걸 후
회하지 않을까. 수입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텐데. 그리고 관광객들이 아무래도
많이 들락거리니까 거지들도 세계 각국 코인을 다 받는다고 써놓으면 여행 다니
다가 남는 코인을 처리하려는 사람도 많아서 수입이 더 나을 텐데. 환전소가 많
으니 돈 바꾸기도 수월할 거고!!! 이 아이디어를 거지에게 팔아 말아?
김성태라고 프랑스에서 사진하는 작가가 있는데 한번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거지 생일파티를 봤단다. 길거리 한구석에서 생일상도 차리고 여자 거지도 초청
해서 저희끼리 포도주를 마시고 놀더란다. 거지들 끼리 모여서 품바타령은 안
부르나?
파리 전체가 텅 비는 여름철, 바캉스 땐 거지들도 휴가를 간다. 휴가지에 사람
이 많으니까 휴가도 즐기고 구걸도 하고 바닷가에서 몸도 태우려고 그러는 걸
까?
거지들 가운덴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아해들이 굉장히 많은데 걔들 소지품이
사실 굉장히 궁금하다. 도대체 뭐가 들었길래 저렇게 소중하게 갖고 댕기는가
말이다. 사진 한번 찍어보고 싶어서 50프랑 줄 테니까 찍을 수 없냐고 시도하다
가 결국은 못 찍었다. 적은 돈이 아닌데도 싫어했다. 하긴 거지도 사생활이 있겠
지. 사람에겐 누구나 내보이고 싶지 않은 마지막 부분은 있는 법이다.
빌어먹는 일이라고 쉬울 리는 없다. 그래서 거지들 가운데는 무턱대고 돈 달
라고 들러붙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작은 재주나 기술 같은 걸 보여주며 그걸로
돈을 버는 아해들이 많이 있다. 한번은 우리나라 배낭족 남자 아해 둘이 길거리
에서 모자를 앞에 놓고 텀블링을 한 시간 정도 했는데 25페니짜리 하나가 들어
왔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거지 노릇도 쉽지 않다는 거다. 아무렴 먹고사는
일이 쉽기야 하겠어?
그래도 거지는 골칫덩어리다. 거지를 없앨 수 있는 방법 중에서, 거지들한테도
영수증을 발행하게 하면 어떨까. 세무신고를 하면, 거지가 탈세하다 걸리면 영업
정지를 먹을 거고 그러면 그 사람들이 할 수 없이 취직을 하지 않을까?
언젠가 잡지에서 본 뉴욕 거지들의 데모가 생각난다. 정부에서 강제로 목욕을
시키니까,“우리를 강제로 목욕시키지 마라, 우리가 깨끗하면 누가 우리를 거지
로 알고 돈을 주느냐”그러면서 격렬하게 항의 했단다. 결국엔 재판을 걸었는데
거지가 이겼다지 아마?
아무거나 막 두들기는 파리 음악의 날
6월 21일은 파리에 와서 무척 기대를 한 날이다. 이유는 이 날이 음악의 날이
기 때문이다. 자기 집 스피커를 창밖에 내놓고 크게 틀어도 되고, 가지고 나올
악기가 정 없으면 솥이나 냄비를 들고 나와서 두들겨도 좋다고 TV방송에서 아
침부처 바람을 잡는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일만한 곳이면 악기를 연주하는 사
람들이 다 나와서 연주를 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가들이 파리에 와서 연주
를 한단다.
아침에 우리가 다른 집이 스피커를 내놨는가 확인했더니 아무도 안 내놨다.
그런데 오후가 되니 동네 입구에 밴드들이 연주들을 시작한다. 설마 했는데 정
말이다. 우리는 정신 없이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다.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은 헤퓌
블릭 광장이었다.
전철을 타고 광장으로 가는 길인데 그 광장에 가기 전전 정거장에서 프랑스
아해들이 우르르 많이 내린다. 뭘 잘 모를 때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 데를 따라
가면 된다는 말은 왜 그럴 때 생각이 나는지, ‘바로 저 사람들을 따라가면 좋
은 데가 나올 거야’하며 우리도 무조건 따라 내렸는데 물어보니 그냥 집에 가
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내린 곳으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헤퓌블릭 광장으로 가
서 영국 그룹의 연주도 듣고, 오다가 싸움 구경도 했다.
광장에는 무진당 많은 아해들이 모여 있었다. 이런 걸 볼 적마다 ‘우리나라
도 이런 날이 있었으면’하면서도 잘 될까 걱정부터 앞선다. 술 먹고 싸우고 부
수고 난동부리고 부녀자 희롱하고 그러지는 않을까.
여기서도 소매치기들은 극성이다. 우리 여자 일행의 넓적다리를 슬쩍 만진다.
놀라는 사이 주머니나 가방을 뒤지는 새로운 수법인데 다리를 만지자마자 내가
보고는 팔꿈치로 쳤더니 미안하다면서 그냥 간다. 나쁜 시키들!
어쨌거나 무슨 날을 하나 정해서 이렇게 온 시민들이 축제처럼 놀고 즐길 수
있게 한 건 좋은 생각이다. 이 나라 국민들은 틈만 나면 뭐든지 이유를 붙여서
이런 식으로 문화행사를 즐긴다. 부러운 일이다.
여행를 하다 보면 스위스 국경일에 맞춰서 파리에 들어가려고 하루 노숙해야
된다고 하는 학생도 있고 프랑스 국경일에 맞춰서 파리를 들어가야 하기 땜에
모든 일정을 거기 맞춰놓고 기다리는 아해들도 있다. 7월14일의 프랑스 혁명기
념일 같은 땐 각 나라에 흩어져있던 프랑스 사람들이랑 외국인들이 모두 파리로
모인단다. 개선문 주우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며 그날의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다. 또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에선 12월31일이 되면새해맞이 축제를 뻑적지근하
게 연다. 영국은 트라팔가 광장, 프랑스는 샹젤리제 거리 등 나라마다 유명한 장
소에서 거의 광관(?)에 가까운 축제무드가 조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은 지하
철과 버스가 새벽까지 무료로 운행된다. 새벽까지 함께 새해를 즐긴 시민들에
대한 정부당국의 배려인 거다.
8월15일 같은 때 우리는 무슨 행사를 하나? 생각해보면 참 갑갑하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광복절을 두고 뭘 기다리느냔 거지. 남의 나라 국경일에는 그러는데.
그러니까 국경일에는 젊은 사람들을 위한 축제가 있어야 한다. 윗사람끼리는
어쩐지 몰라도 서민들의 의식을 고쳐주는 건 사실은 많은 문화행사다. 8월15일
이 국경일이라고 뭘 했는지 난 사실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겠다. 시민회관 행사
중계만 생각나는 거다! 커서는 8.15특집 드라마 만드는 거 하고. 아마 많은 사람
들이 그럴 거다.
그런 날일수록 젊은 사람들의 문화축제를 만들어야 된다. 그날은 서울시내 연
주하는 사람들을 전부 모아서 연주회를 한번 해본다든가, 곳곳에서 음악연주를
막 할 수 있게 한다든가,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들이랑 연주자들이 거리에서 공
연을 하면 젊은 아해들이 기대를 하면서 아, 공복절이 되면 뭐도 듣고 뭐도 들
어야지. 어디고 가고... 그렇게 되는 거다. 젊은 아해들끼리는 음악으로 세계가
통하니까 놀러 온 외국인들도 함께 우리의 국경일을 즐길 수도 있고 얼마나 좋
은가 말이다. 파고다 공원이나 남산 팔각정 같은 데선 사람들을 모아 태극기 달
고 광복절 그날의 감격을 재현도 해보고 말이지.
그렇게 돼야지, 남산에서 형식적인 불꽃놀이나 몇 번 하고 세종문화회관에서
삼부요인이 참가해서 기념식이나 하고 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느냐 하는
거다. 기념식, 기념사, 공휴일, 노는 날 다 좋지만 국경일이 그런 걸로 끝나버리
는 건 문제가 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나이 드신 분들의
회고도 좋지만 젊은 사람들이 즐기고 느낄 수 있는 기념일이 되어야 한다.
유럽에도 ‘감자탕’이 있단다
6월 22일. 바르비종에 있는, 밀레가 만종을 그렸다는 밀밭에 소풍을 갔다. 돼
지고기 삼겹살을 싸들고 갔는데 가스레인지를 잘못 사서 구워 먹을 수가 없다.
우린 종류가 한 가지뿐인 줄 알고 가스레인지도 사고 가스통도 사갔는데 막상
현장에 가서 끼워보려고 하니까 이게 맞지가 않는다. 짝이 안 맞는 걸 산 거지.
할 수 없이 옆자리에 피크닉 나온 프랑스 사람에게 빌리러 갔다. 켤 수가 없어
서 켜 달라고 했더니 가스가 없단다. 그래서 새 가스를 집어 넣으려고 시도를
하다가 프랑스 사람이 그만 실수로 자기네 쓸 가스를 다 날려버렸다! 그러더니
미안하다고 연신 말하는 거다. 자기네 거 날려 놓고 자기네가 미안하다고 연신
“빠르동, 빠르동”하는데 우리는 도리어 괜찮다, 괜찮다고 위로를 해줬지. 그림
이 좀 이상하잖아?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가면서 가스가 고장나 미안하다며 밥
을 못 먹어 어떡하냐고 그러면서 자기네 바게트를 잔뜩 주고 간다.
그런데 사실 그날 삼겹살을 나무를 주워서 구워먹긴 구워먹었다. 나중에 파리
에 오래 산 사람에게 말해더니 깜짝 놀란다. 불법이라는 거다. 그래서 한마디했
지. 프랑스 법이 어차피 불법 아니냐고. 마치 바위 모양이 한국 사람들이 보면
고기 구워 먹기좋게, 불 때기 좋게 생겨 먹었더라구. 그러게 누가 그렇게 생긴
바위를 갖다놓으래?
다음날은 고호가 셋방 살던 동네를 갔다. 월요일은 쉰다는데 우리는 마침 그
날을 피해 갔다. 아주 작은 이층 다락방에 살았더군! 사진을 못 찍게 한다. 우리
는 고호 그림이 있나 했는데 그림은 없고 약 20여명씩 줄응 서서 들어가는데 들
어가면 알지도 못하는 소리를 한참 듣고나서 그 다음 방으로 간다. 그 다음 방
은 작은 소극장처럼 생겨서 의자들이 있었다. 앉아서 쉬는 곳인가 했더니 거기
서 10여 분 정도 고호 슬라이드를 보여준단다. 멀티비전이다. 그 당시 사람들이
막 떠드는 소리, 마차 지나가는 소리들을 잠시 보여주는데 그리곤 끝이다.
생각해보니 사진을 못 찍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거 보여주고 돈 받는
게 알려지면 장사에 지장 있을 것 같아서 그러는 게 아닌가. 한국식 발상이지.
볼 것도 없는 거야. 그러나 별 볼일 없는데도 돈을 이렇게 받고 하는 것, 그렇게
해서 관광지를 만드는 게 대단한 일이지 사실은.
고호네 집에 왔으니 말이자만 우리나라 사람이 고호를 얼마나 좋아 하는데,
내 친구 중에는 이름도 고호로 바꾼 친구도 있는데 이런 걸 프랑스 아해들이 왜
몰라주나? 일본 아해들용으로는 설명서가 있는데 우리 건 여기도 없다!
끌로드 모네 집을 찾아갔더니 일요일 월요일은 쉰단다. 지네들은 예술을 사랑
하는 사람이 많아서 평일날만 열어도 볼 사람은 다 보게 돼 있단 건가?
모네라는 화가는 꽃을 많이 그린 화가다. 수련을 주로 그렸는데 인상파의 효
시로 1882년도 해 뜨는 풍경을 처음으로 그렸단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모네 그
림 엽서를 파는데 모네가 그린 그림들의 꽃씨가 들어 있는 엽서를 판다.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다. 기념품 가게는 온통 꽃에 관한 상품들로 가득 차 있다. 꽃향
기, 꽃잎, 꽃다발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다. 그리고 관광지 어디를 가든 엽서들
을 파는데 여기만 유일하게 봉함 엽서를 판다.
우리나라 시의원들 이런 것 좀 보고 가서 표절 좀 하지!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 생가에 메밀꽃 사진도 좋고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장날 따라서 가는
코스도 한번 개발해보고 메밀묵도 팔고 메밀로 만든 음식도 연구하고 엽서에 메
밀 씨앗을 넣어 파는 거 하면 어떨까? 궁리 좀 하면 어떨까? 자기네가 무슨 쇼
연구하러 온 거야, 뭐야? 오기만 하면 리도쇼나 보고 말이야!! (여행을 갔다 서
울에 돌아와 보니 장날 따라가는 코스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개발이 됐단다. 그
런 생각을 동시에 한 사람이 있나 보지. 여길 와본 사람이든 안 와본 사람이든
어쨌든 그런 거가 개발이 됐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표절을 안 하고 했다면 훨
씬 더 좋은 일이구.)
유럽여행을 하다 보면 감자탕이 참 먹고 싶어진다. 감자탕을 안 먹는 유럽 아
해들의 식성을 이해할 수 없다. 그 맛있는 것을 왜 안 먹나 했더니 이 아해들이
유명한 사람 하나만 있으면 우리네 감자탕 우려먹는 거보담 훨씬 더 오래오래
우려먹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 이게 바로 유럽식 감자탕이다.
갔다 온 사람들이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유럽에도 감자탕이 있
는 것이다. 우리는 곳곳에 감자탕집이라고 하고 있지만 이 사람네들은 하여튼
유명한 사람만 하나 있으면 무진장 우려먹는 걸로 감자탕을 만든다. 체코에 있
는 ‘Reduta’라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재즈클럽은 3년 전에 빌 클린턴 대통
령이 체코 방문중 들렀던 곳이라고 해서 하루아침에 전세계 배낭족들의 명소가
됐단다.
고호네 집도 그렇고 모네네 집, 모짜르트네 집 전부 그렇다. 모짜르트가 사사
받았던 곳, 어린 시절 자랐던 곳은 그런 곳대로, 밀레가 만종을 그린 밀밭은 밀
밭대로, 헤밍웨이가 한번 들렀던 식당은 식당대로 선전을 해댄다. 또 뭐 피카소
가 한번 왔다 갔던 카페 같은 데도 “피카소가 왔다 갔던 집이래!”이러면서 동
네방네 선전하고 심지어는 피카소가 자주 거닐었던 산책로까지도 이 사람들은
우려먹는다. 거기를 같이 걸어보는 거다.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 같은 데도
오르락내리락 댕기면서 걸어다니고... 뼈다귀를 세세년년 우려먹는, 질리지도 않
는 감자탕이다.
“고호처럼 살고 싶어”
오르세 미술관에서 우리 배낭족 아해들을 만났다. 만종이 여기 있냐고 하니“
그런 게 여기 있대요?” 하고 물어보는데 순간적으로 내가 잘못 알았나 하는 생
각에 어물어물 대답을 하고 나오다가 거기서파는 책을 한 권 샀더니 만종이 있
는 게 아닌가. 막 뛰어가서 만종을 찾아보고 나왔다. 어릴 적 머리 깎으러 간 이
발소 정면 벽에 걸려 있던 그림. 교실 학습란 뒷벽이나 동네 양품점 벽에 먼지
가 뽀얀 채 걸려 있던 그림을 진품으로 보고 나니 감개가 무량했다. ‘피리 부
는 소년’도 여기 있구만! 고호이 자화상이 여기 있네 하고 보니 여기 있는 게
다 오리지널인 거다! 한번 더 와야지 하며 오르세를 나왔는데 결국엔 못 가고
말았다.
고호가 셋방 살던 동네를 다녀오고 해바라기까지 진품으로 보고나니 드는 생
각이 있다.
우리가 살면서 흔히 남들에게 근사하게 보이기 위해서 쓰는 말들이 좀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건데 예를 들어서“고호처럼 살고 싶어”라든가 “집시처
럼 살고 싶어” “고국이 밤은 아름다워라”등등 뭐 그 런 거다. 또 남자들이
군대 갈 때 뭐라 그러냐면 “군대 갈 때 아무한테도 안 알리고 그냥 갈 거야”
그런다. 그렇게 얘기하는 이해들 백이면 백 다 막상 갈 때는 환송식을 하지 아
마? 그런 게 다 사실은 근사하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얘기였다는 걸 우린 크면
서 이내 깨닫는다.
내가 볼 땐 “고호를 좋아해요”도 아마추어와 프로가 있다는 거지. 아마추어
는 고호를 그냥 좋아할 수 있지만 미술 전공자는 “난 어떠어떠해서 고호가 좋
아”이렇게 말해야 되는 거 아니냐구. 그런데 고호만 알기 때문에 고호를 좋아
한다고 그러는 아해들도 있다는 거지. 사실은.
우리 집은 남자 형제만 다섯인데 동생들이 성적표를 가져오면 어머니, 아버지
그 다음이 내 순서로 성적표를 받아보거든. 가만히 보면 공부 못했다고 부모님
께 한바탕 꾸중을 듣고 난 뒤의 동생들 표정이 영 밝지를 않은 거야. 근데 또
큰형 앞에 불려오는 거지. 동생들의 성적표를 보기 전에 내가 먼저 묻는 말이
있어. “둘째야!너는 좋아하는 과목이 뭐냐? 셋째 너는. 그리고 넷째, 다섯째는?
”그러면 각자 좋아하는 과목이 나온다구. 그러면 그 다음에 성적표를 보는 거
야.
둘째가 국어를 좋아하는 과목이라고 했다면 나는 국어성적만 봐. 나머지 동생
들도 마찬가지야. 좋아하는 과목 점수가 잘 나와야지, 좋아하는 과목 점수가 형
편없이 나오면 나한테 혼이 나는 거지. 막 두들겨 팼다구. 어린아이에게 국어도
잘하고 산수도 잘하고 미술도 잘하고 줄넘기도 잘하고 음악도 잘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을 했던 거야.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생각
해봐. 왜 팼는가를! 지가 좋아하는 과목은 잘해야 되잖아. 지가 좋아한다고 해놓
고 그것마저 점수가 나쁘면 말이 안 되는 거지.
문제는 그러다 보니 둘짼가 셋째는 성적표를 가져올 적마다 좋아하는 과목이
달라지는 것 같더라는 거야. 점수가 제일 많이 나오는 과목을 좋아한다고 그러
더라구. 동생들이 나보다 더 똑똑해서 자기네들이 좋아하는 과목을 형이 못 외
운다는 걸 눈치 챘기 때문이야. 이런 게 다 같은 얘기라고. 지가 잘할 수 있으니
까, 성적이 잘 나왔으니가 좋아하는 게 되어버린 거잖아.
그러니까 결국 내 말은, 고호를 좋아하는 것도 아마추어랑 프로는 달라야 한
다는 거지. 괘힌 폼 잡느라 “고호처럼 사라고 싶어”그러다 큰 코 다치는 수도
있다구.
한번은 임성훈이가 길을 지나가는데 어떤 여자 아해가 막 쫓아와서는 팔짱을
끼면서 “오빠라고 얘기 좀 해주세요. 누가 쫓아와요”그러더래. 그래서 이 친구
눈 딱 감고 시킨 대로 했대. 나도 드디어 장가를 가는구나 그러면서. 그래서 깡
패들이 와서 “넌 뭐야?”하길래 “이 여자 오빠다”그랬더니 “오빠가 가바자
기 어디서 나타났어. 이 새꺄”그러면서 막 쥐어패더래. 하여간 엄청 맞았는데
때릴 만큼 때리고는 그놈들이 갔대. 그래서 자기는 흠씬 맞은 채 그 여자애가
어디선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고 한참을 거기 서 있는데 20분이 지나도 그 여
자 아해가 나타나지 않더라는 거야. 임성훈이가 두들겨 맞는 사이에 도망을 간
거지. 그래서 깨달았다는 거 아냐. 아, 멋있고 근사하고 그런 거는 영화에서나
있는 거구나. 폼은 아무나 잡는 게 아니로구나.
파리에서 무단횡단을 하자
프랑스가 참 잘하고 있는 점도 많은데 그 중 제일 눈에 띄는 것 하나가 도로
정책이다. 파리에서 한 두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다가 보면 동네로 들어가는
길이 S자로 구부러진 걸 많이 볼수 있다. 거의 로터리로 돼 있어서 바로 좌회전
이 안 되고 반원 이상, 4분의 3을 돌아서 좌회전하게 돼 있고, 반원을 돌아서 직
진하게 돼 있고, 우회전을 하게 돼 있다. 그건 다시 말해서 거기 가서 자동적으
로 속도를 줄이라는 거다. 빨리 달리지 말고 주의하라는 뜻이다. 사람 위주로 배
려된 것이다.
독일이나 미국이나 이런 델 가봐도 무조건 네거리는 로터리다. 반원 돌아 좌
회전, 바나원 돌아 직진, 그러니가 빨리 달릴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들
은 자연히 천천히 간다. 곡선이 많으이 속도 위반도 없고 난폭운전도 할 수가
없다. 운전하는 사람이 여유가 생긴다. 걸어다니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이런 건 당연히 상을 줘야 된다.
그에 반해 우리는 장호원이나 이천, 광주 같은 데를 가다 보면 길이 일직선으
로 되어 있다. 쫙쫙 뻗은 게 차 본위로 돼 있는 거다.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그
걸 방지하려고 어떤 길은 억지로 데꾸보꾸(요철)를 만들어 갖고 갑자기 차가 가
다가 덜컹덜컹 서게 만들어놨다. 동네 입구 같은 데 만들어놓은 데꾸보꾸는 사
람을 놀라게 해서 차 망가지게 하려는 심보가 들여다보인다.
프랑스의 곡선 길들을 보면 여태껏 우리른 길 하면 쭉 뻗은 직선도로만 잘된
길로 알고 좋은 줄 알았는데 사실 그거는 차 본위였지 인간 본위가 아니었다는
걸 새삼 알게 된다. 그런 게 잘된 도로계획이라고 배워온 우리는 조금만 동네
입구가 불편해도 길을 탓하고 동네를 탓하고 도로공사를 탓하고 정부를 탓해왔
구나!
길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잘된 길을 바둑판처럼 정렬된 길,
지기선으로 곧게 뻗은 길, 이렇게 표현하는데 프랑스 길들은 거의 다 직각으로
꺾이는 사거리 개념이 아니고 사선이다. 그래서 한번 길을 잘못 찾으면 굉장히
헤맨다. 우리는 직진해서 오른족으로 길을 잘못 들어서면 다시 왼족으로 나와서
뒤로 돌면 제자리로 오는데 여기는 그렇지가 않다. 한번 엇갈리기 시작하면 왼
쪽 오른쪽 구분이 없이 계속 사선사선사선으로 비껴가는 식이라 굉장히 복잡하
고 힘들다.
한번은 일행들이랑 파리의 한국 음식점 ‘우정식당’을 찾는데 지하철 한 정
거장밖에 안 돼 계단을 구불구불 내려가 지하철도 타기 번거롭고 시내 구경도
할 겸 해서 걸어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1시간 20분이나 헤맸다. 사선사선으로
막 가다 보니까 이건 자꾸만 처음 보는 길로 빠지는 게 피라미드가 따로 없었
다. 나중엔 탈진해서 밥이고 뭐고 다 귀찮았다. 계단 조금 내려가기 싫어하다가
봉변을 당한 거다.
길들을 사선으로 만든 건 다 이유가 있단다. 파리시는 개선문을 중심으로 12
거리 방사형을 조성돼 있는데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해 도로와 건물들을 특별 설
계했다고 한다. 일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선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직각
으로 된 건물 사이에 또 다른 건물이 들어서고 하는 식으로 미학을 고려해 설계
를 했다. 광화문 네거리에 서면 중앙청이 보이는 식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에 성
당이나 관공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들이 자리잡고 있어 한눈에 딱 들어오게, 예
쁘고 돋보이게 만들었다. 거기다 삼각형으로 자르니까 삼각형의 자투리 공간이
많이 생겨 그 자리에 회전목마가 들어서고 찻길을 건너다 쉬는 공간이 되고 의
자가 놓여진 공원도 되는 식이다.
같이 다니던 이상여 씨 한테 이런 얘기를 하니 깜짜가 놀란다. 파리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 거리 개념 자체를 잘 모르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조금만 익숙해지면 집 찾기는 여기가 더 쉽게 되어 있으니까!
또 한가지 유럽엔 길거리에 육교가 없다. 육교가 뭔가? 자동차 지나가는 데
방해기 되니까 삼람들아, 위로 피해서 지나가거라! 이런 거 아니냔 말이다. 인간
보다는 자동차 위주로 된 행정의 산물이다. 우리는 차로 폼 잡고 싶어하는 사
람들이 많다. 차 본위이니까! 그러니 아무나 막 사지! 아무나 다 가지고 있으니
좋은 놈으로 골라 사야지! 주말에 차 끌고 밖에 나가지 않으면 차 사고 손해봤
다고 생각하는 인간들 많은 것도 그래서 그런가? 그런데도 우리나라 운전자들
대부분이 정작 중오한 운전기술은 운전면허 필기시험 합격 순간
다 잊어먹는다. 그리고 오래될수록 생각이 안 나는 거다. 정말 문제다. 차로 폼
잡는 얘기 하다 보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난다.
몇 년 전에 이봉원이하고 조금산이하고 밤부대마다 ‘따블 붐이 일어나기 시작
했잖아 왜. 그런데 얘네들이 나가는 밤 업소에 영업부장인가 뭔가 하는 웨이터
가 있었단다. 그런데 이놈이 무슨 근거와 사유에선지 모르지만 조금산이가 출근
하면 깍듯이 45도 각도롤 존댓말에 경어까지 쓰고, 봉원이가 차에서 내리면 반
말짓거리 비슷하게 말꼬리가 안개 속에 떠난 여인처럼 모습을 감추더라는 거다.
이상한 건 진실을 파헤쳐 인수분해로 까발리고 원인을 알아야 대처를 하든가 할
거 아니겠어? 알고 보니 그 원인이란 게 두 사람이 타고 다니는 차에 있더란다.
조금산이 차가 이봉원이 차보다 조금 비싸고 기통수도 많은 거였다나 어쨌다나.
하여튼 유럽은 어딜 가나 육교도 없지만 횡단보도도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빨간불이라도 차가 없으면 막 건너다닌다. 자동차가 지나가든 말든 무단횡단도
한다. 횡단보도 아닌 데서 맘대로 건너다녀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생각 안 한다.
무단횡단이 생활화되어 있는 것이다. 택시운전자도 마찬가지다. 파리 택시기사들
운전 하나는 정말 드럽다. 빨간불이라도 사람이 없으면 막 달린다. 그래서 특히
영국에 살던 사람이 파리에 오면 차가 막 부딪칠 것 같은 착각이 든단다. 영국
은 우측, 여긴 좌측통행이어서 확 가면 반대로 가니가 막 부딪힐 것 같은 기분
이 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신호등도 잘 안 지키니 말이다.
나중에 뮬랭 호텔 주인 아줌마한테 한마디했다. 그렇게 무질서해도 되냐고?
선진국의 자동차문화 운운하며 국내에서 듣던 것과는 너무 다르지 않냐고. 아줌
마 얘기가 그래도 한국보담 교통사고는 안 난단다.
신근수 씨가 파리에 와서 일 년쯤 지나 말귀를 가사 알아듣기 시작했을 때였
는데 횡단보도에 빨간불이 켜있어서 파란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려고 서 있었
더니 교통경찰이 다가와 도리어 묻더란다. 왜 안 건너가고 서 계시냐고, 어디 아
프신 건 아니냐고. 하여간 별난 동네다. 그러나 막상 다녀보니 아슬아슬한 것 같
은 데도 알아서 잘 서주고 잘 피해서 잘 다닌다. 아무렇지도 않게. 무질서해 보
여도 다 자기네 나름의 룰이 있는 것이다. 그 룰의 기준은 사람이다. 육교가 없
는 것, 횡단보도가 없는 건 이 나라가 인간 중심의 사회란 걸 보여준다.
르랑스 에스켤레이터에도 뛰은 아해들 많더라
나폴레옹 궁이 잇는 퐁텐블로에 차를 빌려 타고 가는데 유리창에 돌멩이가 튀
었다. 그래서 앞 유리창이 깨졌다. 빌린 차라 돈이 엄청날 텐데 큰일났다고 그러
길래 유리창 값을 서로 반씩 물어야 되니다고 내가 말해줬다. “내가 잘못한 건
사실 없지만 내가 빌려가서 깨뜨렸으니까도의적인 책임은 있다. 그러나 니네 나
라 도로가 나빴고, 니네 나라 동네에서 갑자기 돌멩이가 튀어 올라온 건데 그걸
내가 다 물기는 억울하지 않느냐?”그러라고 그랬더니 그렇게 했단다. 좀 놀라
운 건 그 얘기가 받아들여져서 만값만 내라고 그랬다는 거다. 우리 같으면 그렇
게 얘기했을 적에 상대방이 믿었겠냐라는 거지. 안 믿을 수도 있거든. “무조건
물어내야 된다”그럴 수도 있단 말이야.
내가 옛날에 춘천에 갔는데 택시를 타고 가다가 창문 유리차이 깨졌어. 그랬
더니 이 기사가 끝까지 날보고 물어내래. 그래서 막 싸웠어. 어떻게 닫는 거마다
다 깨진 것도 아니고, 그저 딱 닫는 순간 느닷없이 깨져버린 건데, 내가 단 거
잘못 건드린 것도 없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법적으로 처리하자고 얘길 하는 거
야. 그 법적인게 뭐냐면, 원래 모든 택시가 운전하는 사람이 문을 열어주고 닫아
주게 돼 있다는 거지.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하나도 안 하면서 그런 문제가 생
겨나니까 그걸 가지고 날보고 물어내라고 그런 거야. 그래서 꼼짝없이 물었던
적이 있는데 그런 걸로 생각을 해보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선진국인가 알수 있
다는 거야. 자신감이잖아.
프랑스는 도 어딜 가나 집도 좁고 두 명밖에 못 타는 엘리베이터도 많지만 자
가은 집도 불 켜는 스위치 하나는 커서 찾기 쉽고 켜기 쉬게 해놓았다. 필요 없
을 대는 불이 자동으로 거지게 돼 이씨고 필요할 땐 손으로 켜게 돼 있다. 흔히
들 우리를 비하해서 얘기할 때,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어가는 사람은 우리나라 사
람뿐이라고 자조적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파리 가서 보면 바쁜 사람 뛰라
고 길을 비켜준다.
에스컬레이터 오른쪽은 그래서 항상 비어 있다. 뛰어가려는 놈들을위해서 처
음부터 왼쪽에 한 줄로 서는 것이다. 뛰어가는 놈뿐 아니다. 년들도 한둘이 아니
다. 바쁘면 뛰어가는 거지뭐! 뭐가 어때!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어가는 게 뭐가 나
쁘다고 그렇게 욕을 하나. 우리른 바쁜 사람이 뛰어 올라가야 되는데도 한사코
안 비켜준다. 그리고 눈짓으로 짜증을 낸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뛰는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밖에 없다고 이야기 한 사람, 누
군진 모르지만 정말 웃긴다. 지하철 티켓 한 장 끊어줄 테니 프랑스끼지 오는
비행기값만 내고 와서 타봐! 지하철은 공짜니까. 뛰는 놈 천지다. 많은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곳에선 뛰는 놈들이 있는 게 훨씬 소통이 잘된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나갈 때는 뒷사람 나롤 때까지 자기가 연 문을 반드시 잡아준다. 우
리나라처럼 꽝하고 부딪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쨌든 나폴레옹 궁에서도 느낀 거지만 여기가 참 잘돼 있는 게. 궁을 걷다가
지루해질 만하면 나가는 곳이나 문이 꼭 있다. 왕도 걷다가 밖으로 나가고 싶었
을 테니까. 공원을 걷다가도 다리가 아플 때쯤이면 의자가 꼭 나온다. 에스컬레
이터도 이용자가 직접 신호를 바구게 돼있고.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인간을 위
해서 펀리한 것들을 잘도 만들어둔다. 마치 만드는 사람이 사전답사라도 한 뒤
에, 아니면 한동안 살아본 뒤에 만든 것처럼 돼 있다.
여기는 또 상담이 상다히 가다로운데 반해 한번 일이 성사가 되면 담당이 바
귀어도 그대로 시행이 디는 나라라고 이상영 씨가 말한다. 또, 근무하는 사간만
큼은 정말 굉장히 철저하게 지킨단다. 근무시간 동안에는 열 명을 만나든 자기
가 일하는 시간만큼만 일해주면 된다라는 생각인데, 우리른 창구 같은 데서 한
사람이 오래 물어보면 짜증을 내잖아. 그런다고 갑자기 시간이 줄어든 것도 아
니고 똑같은 시간에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우리는 담당자가 없으면 안되는 일이 많다! 자리를 비워도 안되고 심지어는
담당자가 휴가를 가면 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나라다. 에이 씨, 이상영이가 만
난 그놈만 그렇겠지, 설망 다 그러겠어.
다리 세 개는 프로다?
유럽의 관광지에서는 걸핏하면 사진을 못 찍게 한다. 유적이나 유물을 보호하
려는 것도 있지만 허가를 받고 찍으라는 거다. 이유만 타당하다고 생각되면 거
의 허락해준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가서 막 찍는다.
퐁텐블로의 나폴레옹 궁에서도 경비원이 사진을 못 찍게 한다. 결국은 허가받
고 하거나 돈 내라는 이야기다. 허가를 낼 적에 돈을 받기도 하거든, 프로들한
테는. “우리는 학생이다”그랬더니 다리 세개, 삼발이를 갖고 왔으니 안된단다.
아마추어가 아니고 프로라는 거다. “뭐가 프로의 기준이냐?”그랬더니 “다리
세 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프로”란다. 그래, 하긴 맞다. 카바레 제비들도 다
리가 세 개기 땜에 프로지, 춤추느라고 다리 두개, 한 개는 영업용으로 쓰잖아?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다. 신문을 보면 유부녀들이 카바레 제비한테 당했
다느니 하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왜 그런 유부녀들이 줄어들지를 않고 계속
나오는 걸까? 이유는 세 가지 중에 하나가 아닐까? 유부녀들이 자기는 당하지
않을 거라고 자만하거나, 아니면 유부녀들이 경계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비족
들이 여자를 고시는 수단이 날로 높아지건, 그것도 아니면 유부녀들이 신문을
전혀 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신문기사를 본다면 그렇게 넘어가진 않을 텐데
말이다.
나폴레옹 궁에서 남자 배낭족 아해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여자 아해가
“저두 끼워주세요”하고 말한다. “끼워달라니! 그건 음담패설이잖아”했더니
얼른 알아듣고 사라진다.
가이드들에게 이런 음담패설을 몇 개 가르쳐줬더니 감사의 마음으로 맥주를
실컷 사주길래 객지 나와서 처음 얻어먹어 봤다.
음담패설 얘길 하다 보니 생각나는 게, 성욕이 생긴다고 이야기하면 우린 보
통 “어머, 저 사람 왜 저래?”한다. “어머, 웃겨. 뭐 저런 야한 사람이 있어”
“어머, 벌건 대낮에 뭐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못 배
워 처먹은 당나귀 같은 놈!” 이따우 얘기들을 하는 거다. 성욕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하다는 이야기인데 말이다. 비리비리하면 그런 얘기도 못해.
프랑스 성인 프로그램은 어떻게 보면 일본 것보다 더 야하다. 굉장하다. 충격
을 받는다.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 밤 열두 시 넘어서 케이블 TV 채널을 이리
저리 돌려보아라. 공중파는 수요일날 틀어보아라. 여기 처음 온 사람들은 처음에
열심히 보지만 나중엔 안 본단다. 남이하는 것 보면 뭘하냐! 본인이 직접 해야
기! 오늘은 6월 28일 금요일이다. 야, 기대된다. 오늘밤 열두 시!
성인용 잡지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를 학생들이 사보는가 물어봤다. 아니다.
말 그대로 성인들이 사본다. 학생들은 직접 한단다.
부모님들의 주말여행이 아해들로 하여금 자유로운 성을 즐기게 하는 게 아닌
가, 생각해본다. 주말여행을 많이 가니까 러브호텔이 따로 필요 없다. 늘 집을
비우니까 말이다. 부모님들은 모르지만 아해들은 옷 속에서 강원도 감자처럼 영
글어간다.
박물관에 없던 한글 안내문, 쇼핑센터에 있더라
파리 사람들을 여름이면 모두 바캉스를 떠난다. 세일이 한창이다. 여기선 세일을
임의로 정하는게 아니라 국가와 협의를 해서 정한다. 올해는 바캉스 떠나기 전
6월24일부터다. 일주일 연기돼서 지금이 대목세일이란다. 백화점이고 상점들이고
할 것 없이 전부 다 세일 분위기다. 유학생들은 세일이니 그런 거를 잘 모르는
데 유학생 엄마들의 정보는 빠르다.
“버버리 사와라, 세일한단다”국제전화로 알려주기도 하고 어느 백화점 가면
있다는 거까지 다 알려준단다. 세일 기간이 연기된다는 거를 한국 엄마들이 먼
저 알고 있다는 얘기에 우리가 정말 정보화사회에 살고 있구나를 실감했다. 가
만 보면 한글 안내문이 미술관이나 박물관, 유적지에는 없지만 쇼핑센터엔 다
있다. 한글 안내문 없는 것에 불평들이 많고 의기소침해지고 김새고 하지만 있
는 곳도 있는 것이다. 실망하지 마라! 웬만큼 큰 쇼핑센터에 가면 한인 종업원까
지 있단다(한 군데 더, 사창가에도 있다. 그런 데는 주로 이렇게 씌어 있다. ‘김
사장님 어서 오세요’). 영국 차이니스 거리에서 피카디리 쪽 가는 길에 있는 그
유명한 버버리 본사 매장에도 한국인 종업원들이 있다. 공장만 16개가 몰려 있
어 피카디리에 상업은행이 많다는데 거기 예금은 여기 버버리 매장에서 다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규모가 큰 곳이다. 가격이 생각보담 안 비싸
그런지 한국 사람이 무더기로 몰려오는 바람에 한국 아르바이트생 안내원은 물
론 판매장 본사 카운터에 앉아서 돈 받는 여자까지 한국 여자다. 영국 아해들보
다 계산이 빨라 그렇게 됐단다. 장하다. 우리의 수학 두뇌들! 딴 데 가면 몇 달
러, 몇 프랑, 몇 파운드 하는데 버버리의 한국이 종업원들은 “면세해서 25만원
이에요” “세일해서 74만우너 정도예요”하니 얼마나 알아듣기 쉬운가? 오월
말인가 버버리 본사 근처에 갔을 때 우리 일행 한 명이 거기 가면 싸게 산다고
해서 따라가 물건에 하자가 약간 있는 것을 정가의 4분의 1에 사오는 걸 내가
봤다. 그런데 두 달 차이로 값이 많이 올랐단다.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뭉텅이로
사가니깐 그렇단다. 가게마다 사람들이 복작거리는데 한가지 눈에 띄는 건,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두 개라는 거다. 그러나 카운터랑 떨어진 문은 가게로 들
어오기만 하지 나갈 수는 없다. 카운터 앞을 지나야만 나갈 수 있다. 얼마나 합
리적인 방법인가? 이런 게 바로 관광정책이다. 물건을 살 때 좀 비싸다 싶으면
“한국하고 비교해서 한국보담 싸”하고 한국보담 비싸다고 생각하면 “그렇지
만 프랑스 물가에 비하면 싸다”고 생각하고 사대는 즐거운 쇼핑! 안 살 때는
그 반대가 되겠지? 아줌마 단체 관광하는 사람들이 거의 그런 식으로 해서 산단
다. 그러니 뭉텅이 쇼핑이 될 수 밖에! 언젠가 해외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서울로
날아오기 전 호텔방에서 “피곤해, 피곤해. 이번 여행은 정말 강행군이었어. 피
곤해, 정말 피곤해”하던 여자들 생각이 난다. 그런데도 “쇼핑을 하려면 지금이
마지막이야. 일어나”하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던 여자들. 그래서 우리는 그 쇼핑
에 이름을 붙였다. 막판 뒤집기 쇼핑이라고. 어쨌든 버버리니 베네통이니 좀 유
명하고 알려진 브랜드가 있는데 근처엘 가면 가이드들은 대부분 “가지 마세요,
거기 절대로 가지 마세요”그런다. 통제의 방법이다. 한번 들어가면 안 나오기도
하고 물건 사대는 데 정신이 팔려 늦게 오기도 하고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기니
가 미리 못을 박는 거다. 한번은 로마에서 패키지 여행 팀들을 한나절 따라다니
는데 열받는 일이 있었다. 민박집을 하는 아주 인심 좋고 마음 좋은 아저씨가
가이드를 하는 팀이었는데(급할 때나 대목때, 그렇잖으면 아주 특별한 때 유럽
박물관 기행이나 미술관 기행 그런 식으로 이따금씩 가이드를 해준다)나는 쫓아
간 거라기보다 바티칸 앞에 있다가 어떻게 같이 가게 됐다. 아는 아해들 몇 명
이 거기를 쫓아온 것이다. “30분, 여긴 30분만 보시면 됩니다. 30분 뒤에 여기
로 모이세요”이 아저씨가 그러구 다들 구경을 하려고 흩어졌는데 한 시간, 두
시간 지나도 안 오는 거다, 한명이. 트래비 분수 앞에서 모두들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야, 그냥 두고 가려고 그랬지. 근데 차마 그럴 수도 없고 죽겠더라고 정말.
나중에에야 어기적어기적 오는데 보니까 고등학생이다. 고등학교 2학년짜리 여
자 아해더라고. “너 어디 갔다 왔어?”그러니까 “베네통 갔다 왔어요!”이러는
거야. “미안합니다”이런 얘기도 없구 말야. 정말정말 생각 같았으면 패 죽이고
싶은 거야. “몰랐어요.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어요?”이러는데, 아, 정말 열받더
라구. 정말 열받어. 들어가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한 데를 부득부득 들어가서는
말야, 그렇다고 걔가 뭐래도 샀나면, 물건을 사지도 않았어요, 하나도. 그러니 그
게 뭐냔 말야.
샹젤리제 구둣방에서 짝짝이 구두를 파는 이유
샹젤리제 거리의 구둣방에 갔다. 온통 세일인데 소쿠리 같은 것에 구두가 잔
뜩 들어 있다. 한 켤레에 160프랑인데 ‘메이드 인 이태리’라는 상표도 붙어
있다. 160이면 우리돈으로 얼만가? 우선 100이면 약 16,000원에다가, 60 곱하기
160이면 약 10,000원 모두 합해 2만 6,000원에 이태리 구두가 한 켤레라니 얼마
나 싼 거야!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우선 마음에 맞는 디자인을
고르고 발에 맞는 구두 한짝을 들어 신어 보았다. 여러 개 중 잘 맞는 것이 하
나 나온다. 그런데 오른쪽을 신어보고 왼쪽을 신으려고 짝을 찾아보니 어렵쇼!
왼쪽 한 짝이 없는 짝짝이인 것이다. ‘그럼 그렇지! 이 자식들이 못 쓰고 안 팔
리는 구두를 싸게 판다는 전시용이었구나’하며 투덜대는데 내 옆에서 구두를
들고 고르던 프랑스 아해가 한 짝을 들고 구두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나도 따
라 들어가봤지! 그리고 짝짝이 구두의 비밀을 알아냈다. 매장 안에는 세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무진장 많은 거야. 일손이 모자라니 밖의 구두를 감시할 사람
이 없잖아! 그래서 짝짝이들만 내놓은 거더라고. 한 짝은 훔쳐가봐야 소용이 없
잖아! 외다리가 아닌 다음에는. 한 짝을 고른 사람이 매장 안에 들고 들어가면
나머지 한 짝을 꺼내주는 거지! 귀여운 자식들. 그런 상술을 모르고 나는 촌놈처
럼 우리나라 통박만 굴리고 있었으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가 구두 파는 사
람들에게 많이 속아온 것도 사실이잖아! 언제나 가봐도 점포 정리, 새로 개업한
집도 점포 정리, 몇년이 지나도 점포정리에 얼마나 많이 속았냐규! 흰 종이에 까
만 붓글씨 하나는 명필이데! 칠성제화에 납품하는 거예요!라든가 가구는 메이커
에 납품하는 거라든가. 뭐 그런 거 많잖아! 하도 많이 속았기 땜에 거기서도 그
렇게 얘길 했는데 그사람들은 머리가 굉장히 좋은 거지. 밖에 쌓아논 걸 가지고
들어와서 살 수 있게 해
놓은 거니까. 우리도 왜 그 생각을 미처 못했을까? 가서 얘기해줘야지. 샹젤리제
거리엔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다니는 젊은 아해들이 많이 보인다. 학교도 시장도
회사도 심지어는 슈퍼에 근무하면서도 탄다. 분명 관광객은 아닐 테고 하루종일
타고 다니려면 다리도 적잖이 아플텐데. 보나마나 후회도 하면서 할 수 없이 타
고 다니는 녀석들도 많은 거다. 한가지 궁금증. 저거 타다가 발등이 근지러우면
다 끄르고 발을 글ㅎ어야 하니 얼마나 괴로울까. 근지러운 얘길 하다 보니 갑자
기 내 몸이 근지러워진다. 때미는 목욕 한 지가 얼마나 됐더라? 샹젤리제 거리
에는 몸무게를 다는 저울이 있다. 우리 동네 목욕탕에 있는 것 같은 저울인데
돈을 내고 달아 보게 한다. 프랑스 꼬마 두 놈이 저울에 올라가더니 자기 몸무
게가 3킬로그램이다. 내가 다음에 올라섰다. 역시 3킬로그램이다. 그제야 꼬마들
도 돈을 내야 몸무게를 재는 바늘이 돌아간다는 걸 알았다. (저울을 보니 프로그
램 아이템 하나가 생각이 난다. 서울 가면 써먹어야지. 물 양동이 들고 풀장 징
검다리 건너가 물 무게를 다는 거다. 아, 뚱댕이 옷 입고 농구하기도 괜찮겠네!
가이드의 말을 들어보면 한국 학생들은 일단 세 명이 한꺼번에 올라거서 몸무게
를 잰 후 한 명씩 내려오면서 빼기를 하면 돈 한 번 내고 세 명 몸무게를 알 수
있단다. 태국이나 인도 아해들은 그렇게 못한다면서 한국인의 잔대가리를 높이
칭송한다. 역시 수학 영재들은 달라! 그래, 그건 그래서 좋은데 몸무게는 왜 달
아보는 거야. 대중 목욕탕이 없어서 그런가. 우리는 목욕탕에서 공짠데! 그러고
보니 잘 안 씻는 자깃들이 많아서 그런지 이 나라엔 공중 목욕탕도 하나 없다.
아! 공중 목욕탕이 없는 나라 프랑스! 파리의 때밀이 소년을 불러 엎드려서 때
한번 벅벅 밀어보고 싶다. 이따가 이발소 발견하면 머리나 깍아야지!
배낭족 여학생 배낭 속을 봤더니...
이 나라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갈 젊은이들이여!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정말
이다. 유럽에 오니 양 어깨에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정말 많다. 배
낭 멘 소습이 일어서서 다니는 달팽이 같이 보인다(달팽이는 가출을 하지 않는
다. 달팽이는 주택정책이 뛰어난 놈들이다. 달팽이 나라엔 전세나 사글세가 없다
는 거 아냐). 배낭 메고 다니면서 배낭여행이란 걸 하다가 언제부터 우리나라 학
생들이전부 다 등산가는 것처럼 배낭을 메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나 하는 생각
이 든다. 그러더니 이제는 처녀 아해들부터 나이 먹은 사람들까지 다 집단으로
배낭을 메고 다닌다. 배낭을 매면 편리한 건 사실이다. 그러니까 메겠지만 아무
리 그래도 그렇지 요즘은 핸드백 들고 다니는 사람 찾아보기가 정말 힘이들 정
도가 되었다. 힘들게 찾아볼 이유도 없지만! 이렇게 집단으로 유행을 하니까 할
머니도 약수터에 갈 적에 배낭을 메고 다닌다. 할아버지도 마찬가지고. 할아버지
도 마찬가지고. 전쟁중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파리에도 배낭 메고 다니는 아해
들이 굉장히 많다. 내가 얘기하려는 것은 배낭끈을 조금 길게 메서 걸을적마다
엉덩이를 툭툭 친다는 거다. 그것에 습관이 되고 길들여 있으니 배낭을 안메고
있을 땐 허리나 엉덩이가 허전하지 않겠냐는 거다. 등이 빈 것 같고 말 그대로
빽이 없으면 허전하다는 거다. 그러니 나중에 남편이 허리나 엉덩이를 자주 만
져주지 않으면 그게 가정 불화의 원인이되고 새로운 형태의 이혼 사유가 되어
사회현상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이 왜 될까? 배낭 이야기를 할 때면 제일 먼
저 떠오르는게 있다. 밀레라고 하면 프랑스제 배낭이다. 밀레 배낭은 말하자면
산을 좀 타거나 여행을 좀 다닌다 하는 우리 대선배들 중에서도 한두 명이 메고
다닐까 말까하는 전설적인 배낭이었다. 산에 가서 허리 펴고 떡하니 목소리를
껄고는 내가 말야. 밀레를 메고 다니는데 하고 폼들을 잡곤 했던. 아무튼 굉장히
비쌌다. 보통 배낭이 7,8천원 할적에 10만원도 했고 3만원 넘어갈 적엔 뭐 20만
원씩도 했으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 브랜드를 선호하니까 상표만으로도
인기가 무지하게 좋았다. 그런데 그거 자체가 또 참 잘 만들어진 게, 힘을 어깨
하고 허리에 분산시켜서 등에 딱 붙게 만들어서 똑같은 무게를 짊어져도 좀 덜
무겁게느껴지게돼 있다. 등받침이 잘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 그걸 굉장히
갖고 싶어하고 메고 싶어했는데 한국에선 워낙 비싸니까 못 샀던 거다. 그래서
이번 여행길에 나도 밀레를 하나 사려고 그랬다. 그런데 마침 파리에서 방 빌렸
던 집 유학생 아해가 밀레 가방을 가지고 있더라고 그래서 그동안 걔 걸 쭉 메
고 다녔다. 한국에 갈 적에 꼭 밀레 하나 사가지고 가야지 생각하면서. 그러다가
스위스역에서 딱 내렸는데 배낭을 힘겹게 메고 가는 우리 여학생이 하나 있더라
고. 등을 보니까 이게 웬일이야, 밀레인 거야. 얼마나 반가워. 저게 한국돈으로
한20만원 정도 했었던 건데. 너무 반가워서 아, 그거 밀레 아니냐고 그랬더니 밀
레래. 어떻게 구했냐고 그랬더니 동대문 시장에서 3만 5천원주고 샀다는 거야.그
러니 얼마나 실망이야. 한국에 나와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기서 그걸 봤으니. 그
래서 밀레 메고 가는 그 여자 아해한테 내가 물었어. 배낭 무게가 얼마냐 되냐?
아마 지금 메고 있는 배낭무게가 족히 쌀 반 가마니 무게는 넘을텐데 엄마가 쌀
반 가마니만 메고 안양 가서 지고 오라고 하면 어떡할 거냐? 그랬더니 대답이
바로 튀어나와. 가출할 거예요! 배낭족 여학생 8명의 배낭속을 들여다 보았다.
뭐가 들었는데 저 연약한 어깨에 저렇게 무거운 배낭을 메고 저 고생을 할까?
했는데 80%퍼센트가 옷이었다. 설마설마 했는데 역시 옷을 잔뜩 짊어진 것이다.
배낭여행을 하다 보면 행선지가 같아서 처음 만나 같이 동행하게 되는경우가 상
당히 많은 데 여행지에서 그렇게 만난 아해들을 의식해서 옷을 갈아입느나고 그
러는 거란다. 내가 니스에서 스페인까지 동행한 여자 아해는 2박 3일 있는 동안
에 네번을 갈아입는 걸 봤다. 외국 아해들에게 물으면 그런 것 전혀 신경 안 쓴
단다. 우리가 옷이 많아서 그런 걸까? 근데 배낭 무게는 걔네들이 우리 아해들
것보다 훨씬 무겁다. 나는 농담삼아 “그렇게 옷 많이 집어넣고 다니면 집에 있
는 옷장 비었겠네! 그랬더니 한결같이 줄이고 줄인 게 이거란다. 작정을 하고 이
번엔 외국 아해들이 짊어지고 다니는 배낭속을 봤다. 두명 거다. 물안경, 카세트,
비옷, 소설책, 엽서등등이 빼곡하다. 이렇게 집어넣고 다니다가 비라도 오면 어
느 틈에 비옷을 꺼내 갈아입는데 동작 빠르기가 동물들이 보호색을 바꾸는 것
같다. 그리고 높은 곳에 올라가면 꼭 쌍안경을 꺼내는데 우리 아해들은 눈이 좋
아 그런지 쌍안경을 안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그 쌍안
경이라는 게 알고 보면 참 재미나는 거다. 산밑에 있으면 산 높이를 보려고 기
를 쓰는데, 높은 산에 가선 아까 쌍안경 봤던 그 자리를 꼭 챙겨 보더라고. 또
열차 시간이 남으면 엽서를 쓰고(여긴 엽서에 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
다. 유적지 안에서 버스에서 배 갑판에서 식당에서 거리의카페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편지를 즐겨 쓴다. 전화 한 통화보담 엽서갑이 싸니깐 그런 건 아닐 것
이다. 보기 좋은 풍경이다)소설책을 들여다 보고 카세트 듣고 뭐 그렇게 시간 보
내고 노는 데 쓰이는 물건들을 가득 메고 다닌다. 우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내가 본 아해들도 그랬지만 서양 여자 아해들은 정말 배낭이 크기도 하다. 우리
덩치 좋은 남자 배낭족들보다 훨씬 크다. 그러고도 바이올린 들고 다니는 아해,
군용수통을 양쪽에 차고서 물 담는 아해, 고양이 끼고 다니는 아해들도 있다. 남
자 아해들 중엔 심지어 새장을 똥째들고 다니는 놈도 있다. 나중에 보니 이태리
아해들은 아예 선풍기를 들고 바캉스를 간단다. 냉장고까지 가지고 가는 놈도
많단다. 커다란 솔을 배낭에 매달고 다니는 아해도 봤다. 돗자리(잠자리)청소부
터 옷에 묻은 모패 털기까지 아나 쓸모가 많겠지? 하여튼 개성 있는 아해들이
다. 저안에 뭐가 들었을까요? 한 남학생 배낭족이 외국 배낭족 여자 아해의 산
더미 같은 배낭을 보며 궁금해 한다. 배낭 위에는 우리 초등학교 때 교실에서
앉던 그런 모양의 걸상까지 얹혀 있다. 그 큰 짐을 지고도 낙타처럼 뚜벅뚜벅
잘도 걷는다. 두 다리가 튼튼하다. 우리 여자 배낭족들은 다리가 너무 가날퍼!
연약한 두 다리로 쌀가마니 같은 배낭을 지고다니는 여자 아해들을 보면 어떤
땐 사람이 아니라 배낭이 걸어가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든다. 근데도 이 아해들의
말, 살찔까 봐 걱정이란다. 유럽 여자 아해들, 아무데서도 윗도리 막 벗고 그러
는 거 같지만 자세히 보면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다. 최소한 배낭메고 다닐 때
똥꼬바지는 안 입는다. 다리가 길어서 그런가? 그렇다면 길게 보이려고 그러나,
우리 아해들? 배낭 메고 똥꼬바지 입은 아해들이 너무 많다. 배낭족은 굵은 다
리가 아름다운 거 아냐?
눈물 없이 못 듣는 유학생 떡순이 이야기
몇 년 전서부터 여자들 사이에불기 시작한 새로운 직업이 있다. 그게 뭐냐면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거다. 나이트 클럽엘 가서 옛날엔 너 뭐야? 그러면 학생
이에요. 그렇게 얘기를 많이 했는데 요즘은 메이크업 해요. 코디네이터 해요, 내
레이터 모델해요, 이런 아해들이 굉장히 많아졌고, 또 뭐하면 지금 판 내려고 준
비해요 이런애들도 많다. 그래서 새롭게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 메이크업 하는
직업이다. 메이크업 배우려는 아해들은 파리로 오라. 2년 코스 3년 코스도 있지
만 2주코스 3주 코스도 있다. 말도 모르는데 어떻게 2,3주냐고 묻는다면 그런데
신경쓸 게 없다. 어학은 무슨 말라죽을 어학이냐! 한국인 강사가 가르치는 데도
있다는데! 아무리 돈이 많고 유학에 환장을 했더라도 프랑스에와서 동양화 전공
하겠다고 우기는 사람은 없겠지. 산수화만 그린다는가 매란국죽만 그린다든가!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그냥 프랑스말 배우러왔어요. 하면 될것을 어학 배우러 왔
어요 하고 말한다. 말에다 학문까지 더해놓으니 아해들의 짧은 기간에 얼마나
고생을 할까. 유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유학원들이 해주는 것에 비하면 터무
니 없이 비싸단다. 파리에 오자마자 지방으로 가는 학생들 기차표 끊어주고 태
워주는 걸로 끝이다. 밤에 도착하면 저녁을 사주고 하루 재우고 그 다음날 출발
시켜도 되는데 도착하자 마자 바로 기차있는데로 막 가게해가지고 거기서 표 주
고 내리라고 그러고는 바로 빠이빠이 해버린단다. 그러면 애들만 황당해지는 기
지. 인솔비 명목으로 약 30만원씩 해주는 것도 비자 받기가 어렵다느니 하는 핑
계를 댄다는 거야. 학생이 아무리 먼저 온 우학생을 통해서 알아놓은 정보도 부
모님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단다. 니가 뭘 아니 여행사 말들. 하는 어머니들
의 허점을 노려서 비싸게 받는다고 너도나도 목소리가 크다. 물론 약은 학생들
은 혼자서 잘하는 경우도 많지만 유학하려는 약간의 허영심 같은 것들을 비집고
들어오는 상술 때문에 모두들 열받아 한다. 세무조사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부탁하는 학생도 있다. 얘들이 생각하는 복수는 오직 그거 하나뿐이 없다. 유학
생 얘기가 나온 김에 여기, 눈물 없이는 볼수 없는 한 유학생 여자 아해의 이야
기가 있다(이건 신파조로, 소리내어 읽어보자) 여기 한 여학생이 있다. 파리로
유학을 온거디다. 이역만리 머나먼 곳에 다 큰 딸년을 보내는 부모님의 마음을
불안하기 그지없다. 어머니는 수소문 끝에 한국 사람 집에 딸을 하숙시키기로
하였다. 하숙집은 떡집이었다. 매일 떡을 만들어 파는 그 집은 일손이 달렸다.
마음 약한 여자 아해가 가끔 설거지를 자진해서 도와주곤 했더니 나중엔 당연히
설거지를 해야 되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시일이 지날수록 시키는 일이 많아졌
고 나중에는 노골적으로 떡 만드는 일을 시키더란다. 여자 아해, 낮이고 밤이고
떡시루에 떡을 찌고 쌀을 불리고 떡 포장하다 보니 나중엔 떡 만드넌 거 하려고
유학을 온 건진 미술공부를 하려고 온 건지 정말 구분이 안 되더란다. 주인 여
자는 내일이 명절인데 왜 발리 안 들어오냐? 떡주문이 잔뜩 들어와 있는데. 그
러면서 은근히 조퇴까지 강요하고 나중엔 아예 배달까지 부탁을 하더란 것이다.
참다 못한 떡순이가 일년만에 거길 나와서 독립을 하였는데 가끔 가다 명절 때
가 되면 떡을 만들어서 유학생들한테 돌리었다. 그래서 떡순이가 만든 떡을 먹
어본 유학생들, 떡순이 떡은 정말 맛있더라. 떡순이 떡이 정말로 그렇게 맛이 있
었는지, 떡 보니 생각나는 고국의 얼굴들 땜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떡
순이 떡 얘긴 여기 유학생 아해들 사이에서 꽤 유명하다. 사실 만리타국에서 객
지 생활 하다 보면 한국 생각이 날 때도 많다고 아해들은 얘기한다. 하루는 밤
늦은 시간, 파리 전체의 영업이 끝난 시간, 한국 사람이 잘 온다는 가라오케집
을 노크하고 들어가니 유학생들이 가득 차 있다. 고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그
아해들, 밤이 늦었는데도 고국의 그리운 사람들을 보고 싶어하는지 내가 들어갔
을 때 민혜경의 보고싶은 얼굴 을 합창하고 있다. 얼마나 보고 싶으면 밤에, 그
밤에 그런 노래를 부르냐. 그것도 평일날, 술값도 만만찬은 비싼 곳에서!! 유학생
활을 하다가 한국이 생각날 때를 물어보니까 대답이 여러 가지다. 빵 기술 배우
는 대중이 놈은 차 운전하면서 신승훈 노래듣다가 순각적으로 한국인 줄 알고
옆을 보니까 외국 사람들이 운전을 많이 하고 가더래. 순간적으로 아, 여기가 이
태원인가? 했는데 그때 한국 생각이 많이 나더란다. 또 어느날은 전화벨 소리에
새벽잠을 깼는데 받고 보니 한국에서 온 전화야, 한국말로 한참 떠들다가 전화
를 끊고 텔레비전을 켰는데 외국말로 화면이 나오더래. 아 AFKN 인가? 하는
생각이 들때 그럴 때 현수놈은 한국 생각이 말도 못하게 난다고 그러
더라구. 현준이는 말야 분명히 자기 말이 맞는데 언어구사 능력이 없어서 설명
을 못하고 이 단어 저 단어 막 무시하면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때, 그럴 때
한 국 생각이 그렇게 난단다. 그러니 이런 불쌍한 유학생 아해들이 맘보 나쁜
교포들을 만나 맘 고생이라도 하게 되면 얼마나 울화통이 터지겠어? 그래도 이
런 인간은 꼭 있더라구. 한국에서 온 유학생 한 명이 프랑스 사람과 결혼한 한
국 여자 집에 하숙을 하게 됐단다. 이 아해가 불어학원을 나가겠다고 했더니 그
럴 필요 없다면서 자기가 가르쳐주겠다고 그러더래. 큰소리 뻥뻥 치더니 며칠동
안 철자법만 가르쳐주고 천 프랑을 받아 먹었다는 거야. 그래서 이런 법이 어디
있나고 따졌더니 고소하라고 법적으로 하라고 도리어 막 성질을 내더래. 그래서.
더럽다. 먹구 떨어져라. 뭐 그러구 짐싸서 나왔다는 얘기가 있어. 누가 유학생
다큐멘터리 한편 제작 안하나? 했다 하면 아줌마 상대 프로그램으로는 왔다일
텐데 말야. 그래도 한가지 부러운 건 있다. 유학생 공부하긴 좋은게 일년에 얼마
하는 식으로 아주 적은 돈만 내면 박물관은 언제나 공짜란다. 예술과 예술가들
에 대한 기본 예우가 있는 거다. 나 대학시절에도 무슨 로얄 발레단 공연 같은
거나 무슨 오페라 내한공연이라도 하면 돈은 없지 무진장 속상했거든. 세종문화
회관 공연료가 엄청 비싸니까 돈 있는 사람만 보게 돼 있잖아. 나도 명색이 예
술가 지망생인데 그런 귀한 공연을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못 본다는 게 너무
억울해서 가슴이 답답할 때도 많았다구. 세종문화회관 공연료가 학생할인이 안
되면 미리 와소 걔들한테 청소를 하게 하든가 자리 안내를 하게 하든가 표를 받
게 하든가 그런 식으로라도 해서 예술을 아끼는 지망생이나 가난한 예술 애호가
를 도와야 한다. 우리나라, 그거 하나는 확실하게 프랑스 배워야 한다구.
무좀약 대머리약은 프랑스제가 좋다
‘바퀴벌레약은 일제가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새 제품이 나오면 “이거
일본에 가서 보니까 똑같은 게 있던데!”하고 말씀하시던 분들이 계셨다. 바퀴벌
레 잡는 약뿐 아니라 변비약도 일제가 좋다고 하고 심지어 사업 아이템을 구한
다며 일본에 가는 사람도 숱하게 봤다. 내가 아는 친척 아저씨도 그러다가 홀랑
망했다.
이 사람이 일본에 가서 무슨 아이템을 베껴 왔냐 하면, 초등학교 아해들이 메
고 다니는 가방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리자는 거야. 그래서 찻길을 건널 적에 그
게 빨간 신호등, 그러니까 빨간불 들어온 걸로 생각하고 차들이 저절로 서게끔
캠페인을 벌여 가지고 팔자는 거지, 일본 아해들이 그걸 메고 다니는데 신기하
게도 다니는 차들이 전부 그걸 보고는 서더라는 거야.
아이디어가 괘찮다고 생각해가지고 이 사람이 엄청 많은 돈을 들여서 그걸 갖
고 교육부에 갔는데, 교육부에서 이 사람 미치지 않았느냐고 그러더란다. 초등학
교 아해들이 왜 일본 국기를 등에다 메고 다니냐면서. 그래서 쫄딱 망했다는 얘
기다. 생각해보라구. 빨간불보다도 일장기잖아 그게. 일본 애들이야 자기네 국기
니까 메고 다니면 가서 서는 건데 우리나라에서 그게 통하겠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는가 하면, 바퀴벌레약 좋다는 것은 그만큼 그 나
라에 바퀴벌레가 많다는 것이고 변비약 좋다는 것은 그 나라에 변비 환자가 많
다는 게 아니겠어? 유럽을 다니다 보면 돌로 지은 집들이 몇백 년의 역사를 자
랑하며 많이 서 있다구. 그렇다면 돌로 된 그 건물들을 지으려다가 돌 떨어트려
발 찧은 사람들도 많을 거고, 건물 지을 때 남들은 무거운 돌 들고 가는데 작은
돌만 얄밉게 들고 다니는 게 눈에 띄어 맞은 사람도 많을 거고, 높은 데서 발을
헛디뎌 아래로 떨어진 사람도 많을 테니 그런 약도 많이 발달해 있지 않을까 하
는 거지.
프랑스는 또 대머리약이 좋은 게 많단다.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안 빠지게
하는 거, 또 하나는 새로 나게 하는 거래나. 그래서 써본 사람에게 들어보니 안
빠지게 하는 거는 효과가 있었단다. 피부를 조여 주는 거 같단다. 그 얘기는 뭐
냐 하면, 결국은 발명가들이 남의 나라 국민을 위해서 발명하지는 않는다는 거
다.
언젠가 해외토픽에 프랑스 파리에서 대머리 경연대회가 열렸는데, 일등한 대
머리에게 금으로 만든 빗을 부상으로 줬다는 기사를 읽었다. 멋있게 생긴 걸 뽑
았는지 아니면 광이 제일 많이 나는 대머리를 뽑았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에 자
기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그해의 대머리를 뽑았겠지, 하면서 참 재미있는
경연대회도 있구나, 그런 걸 처음에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를 궁리한 적이 있는
데 이제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나는 어느 나라에든 가면 어른들에게 꼭 물어보는 게 이 나라 사람들의 정력
제가 무엇인가 하는 거다(이 나라는 굴하고 거위간이라고 하는데, 카사노바가 하
루에 굴을 열 개씩 먹었다나!! 그러면서 많이들 먹는단다). 그 다음 질문이 이
나라에서 제일 잘 듣는 약이 뭐냐고 물어보는데 무좀약과 대머리약이란다. 정말
머리에서 발끝까지다. 대머리약이 잘 듣는다는 것은 물론 대머리가 많기 때문이
리라. 그러니 그 사람들을 즐겁게 해줘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 이 대머
리 경연대회가 열렸겠지 뭐!
내가 최초에 프랑스라는 걸 느끼고 불어를 사용했던 게 싱각해보면 굉장히 웃
긴다. 마담이라는 말. 시골 다방에서도 사용하는 우리들의 불어, “김 마담 여기
쌍화차 한 잔!”
6월 30일이다.
그 나이에 아직도 산타를 믿냐?
에펠탑에 올랐다. 높이가 300미터가 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기네 국
기를 매달아 놓았다고 프랑스가 자랑을 하는 곳이다. 전망대 안에는 세계 여러
나라가 에펠탑으로부터 어느 방향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표시도 있다.
에펠탑 앞에 가면 보기 싫은 건물(?)이 있다. 에펠탑은 그 건물에 올라가서 보
는 게 제일 아름답단다. 그러면 그 건물이 안 보일 테니까? 말 된다. 그러고 보
니 어느 책에서 본 얘기 한 토막이 떠오른다.
에펠탑을 세울 때 반대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 제일 심하게 반대했던 사람
을 어느 날 에펠이 탑 안에서 만났단다. 에펠탑이 안 보이는 곳으로 떠나 버리
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던 자식인지라 비위가 상한 에펠이 “너 이새
끼야, 에펠탑이 그렇게 싫다싫다 그러더니 여긴 왜 와서 얼쩡거려?” 하고 따져
물었더니 그 자식 왈“여기 와서 숨어야 탑이 안 보이잖아!”그랬대나.
방위를 모르면 에펠탑은 여기저기서 홍길동처럼 나타난다. 왼쪽에, 오른쪽에,
열한 시 방향에, 한 시 방향에. 그래서 어느 도시를 가든지 지도를 들여다보고
방위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거다.
사실 번화가를 지도 없이 한참 헤매다보면 뒷골목만 나온다. 외국 나가면 진
열장의 상품 보는 재미도 있는데 명동에서 구경하다가 을지로6가까지 걸어가는
경우, 혹은 서대문 경찰서 앞까지 걸어가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프랑스에서 들은 에펠탑 이야기다. 우리나라 한강다리처럼 여기도 에펠탑에
올라와 자살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단다. 크리스마스 날 한 여자 아해가 에펠탑
에 올라가 자살을 기도하는데 웬 아저씨가 나타나서 말리더란다. “왜 자살을
하려고 그러느냐?”그랬더니 여자 아해가 “당신이 원데 그래요?”그랬단다. 아
저씨가 “내가 뭐긴, 산타 클로스지.”그랬더니 이 여자 아해, “크리스마스 날,
불러주는 남자 놈도 없고 돈도 없고 얼굴도 못생기고 그래서 정말 매년 크리스
마스가 되면 너무 외로웠거든요. 날 불러주기를 기다렸는데 아무도 안 불러줘서
비관돼서 자살하려고요”그랬더니 산타가 그랬대. “그러지 말고 내가 니 소원
을 들어줄 테니까 너도 내 소원을 들어주라”고. “소원이 뭔데요?”했더니 “
야, 산타 클로스는 어디 쉬운 줄 아냐. 넌 스물 몇 살 살아오면서 그랬지만 산타
라는 거는 매년, 평생을 남들 파티하는 데 몰래 들어가서 선물이나 놔주고 오고,
집에 온다고 마누라가 있냐 뭐가 있냐. 나는 더하다. 그래서 25일날 새벽이 되면
나는 더 쓸쓸하다구. 그러니까 내가 니 소원을 들어줄 테니까 너도 내 소원을
들어주는 거야. 서로 좋지 않냐.”여자가 거듭 “그래서 소원이 뭔데요?”그랬더
니, 이 산타가 그랬대. “한번 하자!”
그래서 뭐 이왕 죽을 거, 여자 아해는 산타와 그거를 한번 했대. 그랬더니 다
끝난 뒤에 이놈의 산타가 짐을 챙기더니 그냥 나가버리는 거야. 그래서 이 아해,
“아니, 내 소원 들어준다고 그랬잖아요”하고 따졌더니 산타가 돌아보면서 그
러더란다. “아참 그렇지, 너 나이가 몇 살이지?”여자 아해가 “스물두 살 이에
요”그랬더니 이 양아치 산타가 이렇게 한마디를 던지고 돌아서 가더래. “그래
서 재수 없는 놈은 한강다리 올라가 죽으려고 해도 올라가다 다리를 삔다는 얘
기가 있지?
마음 잡았다가 오랜만에 나온 양아치는 마음을 놓았다 잡았다 하는데 스님들
은 그게 왜 안될까? 평생 마음이란 무엇일까, 그러면서 면벽이나 하고 그러는
걸 보면 말이야. 근데 갑자기 이 생각이 왜 들지?
유럽에서 쓰레기 치우면 욕만 먹는다
외국에 나오니까 뭐가 좋으냐고 남자 배낭객에게 물었다. “여기선 길거리에
서 꽁초를 아무데나 버려도 되니깐 좋아요”한국에서 담배 때문에 벌금을 두 번
물었는데 한번은 길에서 꽁초 버리다가 물었고 한번은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담
베 피우다 걸려서 물었단다. 우리는 길가에 꽁초를 버리지 말자고 막 그러지만
프랑스에 와서는 좀 자유롭게 담배도 한번 버려보자는 그런 얘기다. 꽁초를 버
리면 치우는 사람이 있다. 여기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얘기한다. 거리가 깨끗
하면 우리가 청소하는 사람들 주라고 세금 낼 이유가 없다고.
우리나라는 그게 바뀌어 갖고 화장실에서 오줌 누는데 청소하는 아줌마들이
막 들어와서는 “왜 이렇게 지저분하게 쓰는 거야?”하면서 투덜댄다. 이런 거
책에다 쓰긴 좀 뭣하지만, 이거 완전히 정신 없는 아줌마들 아니냔 말야, 지저분
하게 쓰지 말라 그러면서 짜증내는데, 지저분하게 쓴 놈은 벌써 갔잖아. 그리구
말야,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 보면 세면대 앞의 유리에 물이 튀잖아, 그러면 이렇
게 튀게 쓰지 말래. 짜증을 벅벅 내면서 말이지.
생각해보라구. 말이 돼? 그건, 분수를 모르는 거야. 자기가 할 일을 하면 되는
거지, 왜 짜증 내고 툴툴 거려? 그 사람들은 그게 직업이라구. 만약 우리가 화장
실 깨끗하게 쓰고 물도 안 튀기고 그러면 자기가 거기 있을 이유가 없어. 화장
실에서 말야, 여자가 들어와 가지고 왜 이렇게 쓰냐고 막 뭐라 그러고 짜증 내
면 정말 오줌 누다가도 안 나와 민망하다구. 어느 땐 볼 일 다 보고 나오다가
그 말 듣고 민망해지기도 하구.
우리가 옛날에 말야, 영화 촬영장에 가면 조명하는 사람들이나 소품하는 사
람들이 있는데 처음 온 사람들은 우리가 들어주고 그러거든. 그런데 그러면 그
사람들이 싫어해. “이건 우리 거예요, 우리가 해야 될 일이에요”그런다고 얘들
이. 그리고 혹시 아마추어가 들다가 고장나거나 또 자칫 잘못 해서 소품을 잃어
버리면 자기네들이 고생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배우는 연기만 하세요”
그래. 나쁜 뜻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 안 도와줘도 된다는 거지. 보기 좋잖아? 좀
본받아야 되지 않겠어?
가끔씩 가다가 여의도에서 집회 같은 걸 하면 쓰레기가 막 널브러져 있단 말
야.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쓰레기를 다 주워가지고 가지, 그러면 문화시민으
로서의 긍지를 보여줬다고 신문에 나고 난리잖아. 공연 같은 거 끝나면 쓰레기
줍고 가자는 멘트가 막 나온다고. 줍는 시민들을 보여주고 카메라가 비춰. 운동
장은 깨끗해. 그러면 아! 문화시민의 면모가 어쩌구... 그러잖아.
프랑스 애들, 유럽 아해들은 쓰레기 그대로 다 놓고 간다구. 그 나라가 우리보
다 선진국인데 왜 그러냔 말이야. 개념이 달라 그런다구. 걔네는 “청소하는 사
람이 있는데 왜 우리가 치워”이러면서 안 치우잖아. 자기네가 청소를 하면 청
소하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쫓겨난다고 생각하는 거야. 청소 깨끗이 하면 그 사
람들은 할 일이 없으니까 시에서 감원시키잖아. 또 쓰레기를 들고 간다고 해서
청소부가 쓰레기를 안 치우는 것도 아니라고. 우리는 몇 트럭분의 쓰레기가 나
왔다느니 하는 수치가 꼭 나오잖아. 안 치우고 가는 사람들을 망나니 취급도 하
고 말이야. 쓰레기 치우는 사람이 있는데도 구태여 들고 가는 사람이 문화시민
인지, 치우는 사람이 치우게 해주는 게 문화시민인지. 난 정말 잘 모르겠어.
한가지 궁금한 건 우리나라 높은 양반들 “선진국에선 이미 오래 전서부터 해
오던...”
하고 노래부르는 것처럼, 쓰레기 치우는 사람이 치우도록, 그 사람들 밥줄 안 끊
기도록 쓰레기 놓고 가는 걸 선진국 프랑스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는
데 왜 그런 건 안 따라하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선진국 얘기하다 보니까 생각난 건데, 유럽 아해들은 전철에서 노인네들에게
자리 양보를 하는 걸 거의 볼 수 없다. 무거운 걸 들고 낑낑대는 노인들도 그저
본 체 만 체다. 그러다 보니 바퀴 달린 가방을 혼자서 힘겹게 끌고 가는 노인네
들을 보면서 들어주겠다고 했다가는 도둑으로 의심받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렇지만 사실은 여행하면서 굉장히 많이 들어줬다. 그럴 때마다 노인들 역시
굉장히 좋아하는 거야. 그때 혼자서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처음에 바퀴 달린 가
방을 생각한 사람은 노인네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아무도 잘 안 들어주니까!
이 게, 니네 집서 산 게 아냐
뮬랭 호텔에서 내려오면서 게찌게를 끓이려고 게를 한 마리 샀다. 몽마르트로
오는 지하철을 타고 우리 숙소로 올라오려고 하는데 암만 해도 한 마리로는 모
자란 듯해서 한 마리를 다른 가게에서 마저 사려고 그러는데 쥔이 무지 바쁘다.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들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비닐봉지도 색깔이 똑같으니, 안
그래도 바쁜 주인이 보고 내가 자기 가게에서 집어넣고 돈 내려고 기다린 줄
알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마구 드는 거다.
당신 같으면 어찌하겠는가.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붙잡아 증인으로 삼고 싶을
거다. 나도 그랬다. 게도둑으로 몰릴까 봐 증인을 구하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데 그 옆 빵집 주인이 마침 밖에 나와 있길래 옳지, 저 사람이다 생각하고 내가
이 가게 걸 집어넣지 않았다는 걸 보게 하려고 비닐봉지를 깃발처럼 높이 들고
막 흔들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 거다. 저 동양 남자가 비
닐봉지를 왜 저렇게 흔드나. 그 사람들이야 훔쳐가리라는 생각 자체를 안 했겠
지만 내 쪽에서 괜히 켕겨서 그런 거다. 결국에는 한국적인 생각 때문에 그런
거란 얘기다.
여기서 한번 퀴즈를 내보자. 만약 당신이 그런 의심을 받았다면 그 상황을 어
떻게 해결하고 나올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열심히 비닐봉지
든 손을 흔드는 것뿐이었는데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건지 무척 궁금
하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빨리 한글을 깨우쳐줘야 할 텐데, 세종대왕님이 조금만 더
오래 사셔서 세계를 제패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며칠 후 이 가게에서 생선을 샀다. 대가리를 칼로 자른 다음 버려도 되냐고
생선가게 주인이 대가리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시늉을 한다. 그래서 버려도 좋다
고 내 대가리를 끄덕였다.
제5장
영국 신사들도 비 오면 뛴다.
외국 사람이라고 다 미국 사람은 아니더라.
해외여행이 아주 어려웠던 시절에 연예계엔 이런 이야기가 나돌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일본엘 가라. 동경 시내까지 들어갈 것도 없다. 일본 공항에서 내리자
마자 바로 한국으로 와라. 그리고 선데이서울에 귀국했다고 귀국인사 인터뷰를
해라. 그런 다음 귀국 리사이틀을 하면 성공한다. 가수들을 소개할 적에도 동남
아 해외 공연을 마치고 방금 귀국한 누구라고 소개를 하던 시절도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이종용 리사이틀을 대전에서 했는데 지금은 고인이 된 김현식을
소개하면서 장난으로 동남아 27개국을 순회하고 돌아온 가수라고 소개를 했더니
노래도 듣기도 전에 정말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온 적이 있었다.물론 노래
를 잘하기도 했지만 동남아 갔다 온 가수라는 것 때문에 박수도 굉장히 많이 나
왔던 거다.
그때쯤 아주 무식한 권투선수가 있었는데 얘가 한번은 홍콩에 권투시합을 하
러 갔단다.실화다.귀국한 뒤에 외국 갔다 왔다고 자기 친구들이랑 노가리를 마구
마구 까고 “홍콩에 가니까... 말야, 어쩌구...”하면서 한참 얘기하다 보니까 대
만 이야기도 하고 상해이야기도 하더란다. 그러니까 이 친구들이 듣다가 벌떡
일어나서 “너 이 새꺄! 홍콩 같다 온 놈이 대만 상해가 다 뭐냐? 너홍콩 같다
는 거 구라지?”그랬대.그러자 이놈이 대뜸 하는 말이,“야 임마 스포츠에 국경
이 이딨냐?”이랬다는 거야.
이 친구가 한번은 또 무슨 일이 있어서 홍콩에 같이 간 사람들이랑 호텔방에
서 커피를 시켰대. 이 호텔이 특급호텔이었는데 모닝커피를 마시려고 주문을 하
는데 이 친구 대뜸 전화기에 대고 “원 커피,컴 히어!”그러자 재주도 용하지,
어찌어찌 알아 들은 룸서비스에서 몇 호실 이냐고 묻자 통박을 굴린 이 친구,큰
소리로 “헌육백삼십오 호!”이랬대. 기가 차서 멍하니 바라보는 일행들에게 “
뭘 그래 임마, 아라비아어는 만국공통어 아냐?”그랬다지 아마?
외국이나 외국 사람이 낯설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어릴때 나는 한국에 온 서
양 사람이 다 미국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지금도 생각나는 게 뭐냐면,부산 동광동
시절 내가 제일 먼저 본 미국 사람이 옆집에서 양색시랑 같이 살던 미국 사람이
었는데,더운 여름 낮이면 양갈보가 등물을 해주던 광경이다.엎드려 있으면 등을
타고 물이 목을 돌아 목 아래로 내려오는데 바라보고 있던 내 맘에는 “야,미국
사람은 등하고 목 있는 데가 아래위로 뚫렸구나”이런 생각이 막 들었다.초등학
교 들어가기 전까지 내내 그렇게 믿었다.
초량에 살 때는 기찻길 옆으로 막 뛰어가던 어떤 미국 사람이 기차에 갑자기
빨려 들어가 죽었다.그러자 미군열차라고,맨 뒤칸에 있던 열차에서 미국 여자가
내려서 피투성이 시체를 막 만지는 걸 보고 할머니와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
다.역시 미국 사람은 대단하다고.어떻게 저런 끔찍한 걸 막 만지고 주무르느냐
고.
내가 부산에서 초등학교 다닐 적에,같은 반에 선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피
엑스에서 가져온 온갖 잡동사니를 다 가지고 다녀 피엑스 보이라고 불렸다.“피
엑스에 가면 구할 수 있어.”그 선원 아들의 말을 들으면서 난 피엑스가 뭔지
잘은 모르지만 아무튼 엄청난 곳일 것이라고 짐작하곤 했다. 1에서 15까지 번호
맞추기 놀이를 하면서 그놈이 갖고 있는 신기한 것들을 너무 갖고 싶었기 때문
에 목숨 걸고 번호를 맞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미군부대에서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YMCA를 통해서 장난감을 막 나
눠줬는데 그렇게 갖고 싶었던 만년필,아이노꼬 다마,낙타가 그려진 노란 연필이
선물꾸러미 속에 다 들어 있었다.그걸 나눠주는 노랑머리 아저씨 아줌마들을 전
부 다 미국 사람으로 우러러봤는데 나중에 커서 보니까 영국 사람도 있고 프랑
스 사람도 있고 호주 사람도 있었다.한국에 온 서양 사람이 다 미국 사람도 아
니었고 프랑스에 산다고 다 프랑스 사람도 아니었던 것이다.아무튼 그러던 내가
영국에 와 있다는 게 내 스스로 참 신기하다.
일본인 흉내는 내지 말자 아해들아
런던에서 만난 어느 여대생.“시내에 쫙 깔렸어!”하면서 지나간다.무슨 얘긴
가 했더니 한국 사람이 쫙 깔렸다는 말이다.말하는 투가 한국 사람 많은 게 떫
다는 투다.영국까지 왔는데 한국 사람이 많아서 싫다는 거야.영국은 자기네만 와
야 되는데 한국 사람 만나서 “아이 피곤해”하는거 같다.매친 년! 그것도 한 번
이 아니고 “시내에 쫙 깔렸어, 쫙 깔렸어!”하고 두 번이나 강조하는 거 있지!
영국이라고 영국 아해들만 깔린 줄 아는 모양인데 독일 아해,스위스 아해,미국
아해들이 쫙 깔린 건 안 보이는 모양이다!“쫙 깔렸어”의 그 표현이 정말 씁쓸
하다.“전경이 쫙 깔렸어”할 때나 쓰던 그 표현을 들으니...!
그런데 그렇게 쫙 깔릴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국에 많이 나와 있다면
우리가 영국식 배우지 말고 우리식으로 자꾸 하면 영국이 결국엔 우리식 배우지
않을까? 약 천년 후엔!
모나코에서 한국 배낭족 아해들과 만나서 같이 걸어가는데 이 아해들 얘기가,
“한국 아해들끼리 만나면 특히 여자들끼라 만나면 재수 없어하는 거 같아요”
그런다. “왜 그럴까?”처가 묻는다. 나는 그 해답을 잘 모른다. 그저 지네 동네
서는 유럽 간다면 앞서간다고 생각하는 아해들인데 여기 와서 너무 많이 만나다
보니 희소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을 해서 그러는 게 아닌가 추정해볼 뿐이다.
아마 그럴 거다.
내 경험으로도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나는 게 사실 좀 피곤할 때도 있다. 그게
뭐냐면 사람들 만나 사진 찍히기인데. 프랑스 오페라 하우스 앞 같은 데나 그림
이 괜찮은 데서 나한테 무조건8미리 카메라를 갖다대면서 투덜대는 사람들도 많
다. 카메라를 갖다댔는데 포즈도 안 취해준다나. 카메라가 한두 대여야지.
이게 다 얼굴이 팔린 탓에 겪는 불상사들이다. 예를 들어 “전유성 씨 맞죠?
”라고 물어보면 “네”하고 간단히 대답하거나 “텔레비젼에서 봤는데 이름이
뭐죠?”라고 하면 “전유성입니다”하면 그만인데 “아저씨 내가 참 좋아해요.
근데 이름이 뭐드라?”이러면 그때는 대답하기도 싫어질 뿐 아니라 황당해지는
것이다.
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김해공항에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하시는
말씀이“아,이 아저씨 어디서 봤는데,어디서 봤더라? 아저씨 나 본 적 없어요?
토요일에 권투 구경 가서 봤나? 빨리 말해보소, 나를 어디서 봤는지? 와,미치겠
네.어데서 봤드라? 생각 안 나요? 아,어데서 봤드으라. 야! 이거 미쳐 버리겠네.
말해보소, 어데서 봤는가?”막 이러면서 날 취조하는 거다.
“내가 아저씨를 어디서 봐요?”이러니까 “마, 봤는데, 분명히 내가 봤다카
이, 생각 좀 해보소”이렇게 닦달하는 게 아닌가.
이럴 때 “내가 개그맨이요”하고 말할 수도 없고 정말 애매하더라구. 김해공
항에서 범일동까지 줄창 그러고 가는데 정말 피곤하더라니깐.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더 황당한 경우는 공중 목욕탕에 갈땐데 “아이고, 이거 전유성 씨
아닙니까?”하면서 밑을 힐끔거리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아주 기분 나쁘다. 이런
건 성폭력에 안 걸리나?
어쨌든 내가 보기에도 한국 단체관광객들은 서로 만나는 걸 혐오스러워한다.
우리 배낭족들이 이태리 놈들한테 사진 찍어 달라고 카메라 맡기면 바로 들고
튄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같은 한국 아해들에게 부탁하면 모른 척한단다. 중국
아해들 행세 비스므레한 짓거리를 한다는 거다. 못 알아듣는 척하면서. 흑인에게
는 카메라 들이대고 손짓만 해도 알아 듣는데 말이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처럼
느껴지는 건 우리 땐 일본 아해들처럼 보이려고 했다는 거다.
아주 오래 전에 연예인들이 일본 공연을 갔는데 한국 목소리로 크게 이야기하
고 다니니까 일본에 먼저 가 있던 연예인이 조용히 하라고 일본 사람인 것처럼
보이자고 해서 가수 최백호가 열받아서 찌개 그릇을 엎었던 적이 있다. 이 이야
기가 신문엔 안 났지만 우리끼리는 다 알고 있는 이야기가 되어 있다. 그런데
한가지 웃기는 건. 일본인 아니냐고 하면 가끔은 기분은 나쁘지만 그렇게 보이
니까 대우는 좋은 것 같다는 느낌을 가끔 받는다는 거다.
모나코에서 만난 마이애미 사는 노처녀 배낭족이 우리에게 동양인들끼리 중국
일본 한국을 어떻게 구분하느냐고 궁금해서 물어본다. 우리는 걸음걸이나 옷 헤
어스타일 등으로 구분을 한다고 했다.
목소리가 좀 큰 애들은 중국 아해들, 어딘가 좀 사근사근한 애들은 일본 아해
들, 왁자지껄 좀 어수선한하지만 뭔가 다부져 보이는 아해들은 우리 아해들, 뭐
대충 그렇지 않은가. 참,다들 벗고 왔다갔다하는 해변에서 청바지 입고버티는 아
해들도 틀림없이 우리 아해들이다. 한 유학생이 얘기해준, 영국에서 한국 사람
알아보는 요령 한가지가 있다. 박물관 안에서 떠드는 사람, 햇빛 날 때 그늘에
앉아 있는 사람은 십중 팔구 한국 사람이란다. 그리고 우르르 떼지어 다니는 아
줌마들은 한국에서 온 패키지팀이라고 보면 틀림없단다.
사실 우리가 봐도 정확하게는 구분하기 어려운데 이쪽 사람들은 언뜻 봐서 중
국 사람 일본 사람 한국 사람을 구분하기가 거의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미국
사람 프랑스 사람 독일 사람을 잘 구별 못 하듯이 말이다. 기차 타고 두시간을
같이 가고도 프랑스 노인네 부부, 우리를 끝까지 일본인으로 안 적도 있다. 일본
에서 2년을 일했다는데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더니 아무렇게도 생
각 안 한단다. 그러면서 한국말 일본말도 구분을 못하는 거다. 일본하고 한국하
고 사이가 좋은지 나쁜지도 잘 몰라. 그래서 내가 내릴 때 합장을 하고 “안녕
히 가세요”그랬더니 같이 합장을 해준다.
우리는 그렇다 치고 그럼 너희는 서양 아해들을 어떻게 구분하냐,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게 궁금하다고 했더니, 자기네들도 구분을 잘 못하는데 독일 사람은
구분을 한단다. 샌들에 양말 신은 사람은 틀림없이 독일 사람이라는 거다. 그런
데 우리나라 남자 배낭족 하나가 그때 마침 샌들에 양말을 신고 우리 옆에 앉아
있었다. 그렇다면 이 아해도 독일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이 인간, 한참 있다가 홀
트 출신 아니냔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웃었지만 별로 유쾌하지는 않았다.
이문세 뭐 먹고사나 물어봐 임마!
영국에서 고1, 고2, 고3 여학생과 중3 남학생과 인터뷰를 해봤다! 영국에서 괜
찮은 아해들은 어떤 아해들이냐? 얘네들 말이 홍콩 놈들은 뒷말이 많단다. 그리
고 중국 아해들은 착하대나. 근데 우리나라 아해들은 고자질을 잘 한단다. 식민
지 근성의 하나가 바로 고자질이라는 거야.
유학생 아해들도 만났다. 유학 와서 제일 좋은 점은 잠 많이 자고 공부 스트
레스 안 받는 거란다. 한국을 일년 만에 갔는데 고3 친구를 못 만나고 왔다. 나
중에 다시 물으니 두 명 만났단다. 고3이니까 대학갈 걱정에 시간도 없고 얼굴
이 떠서 지내더란다.
우리나라 대학문제를 생각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
고 나서 무조건 전부 일년을 쉬게 한 다음, 대학엘 갈 건가 취직을 할 건가 진
로를 결정짓게 하면 어떨까? 우리나라는 너무 대학, 대학 하니까 대학이 뭐하는
덴지 차분히 생각할 틈이 없다. 중학교,고등학교를 내내 그랬으니까 일년 정도는
쉬어 보고 그래도 대학교엘 꼭 가야겠다 그러면 가고, 해보니까 아니다 하면 안
가도록 그런 유예기간을 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참 부러운 거 한가지는, 여기 고3은 한 달 동안 자율적이란다.“하지 마라”가
없고 “시도해봐”를 선생님들이 입버릇처럼 한단다. 기숙사에서 도망 나오는
재미,그러나 막상 나오면 할 일도 없단다. 나도 안다. 중2때 땡땡이 쳐서 집으로
걸어오던 그 여름날의 오후. 지금쯤 6교시여서 아이들은 공부하고 있겠지 하는
생각. 땡땡이 치는 재미 땜에 막상 학교는 나왔는데 갈 데가 없는 거야. 그래서
원효로 입구에서 집까지 걸으면서 ‘애들은 공부하겠지’ ‘지금은 쉬는 시간이
겠구나’마음은 계속 교실에 머물렀었었지.
아해들 말이, 제일 패주고 싶은 놈은 빌리러 오는 놈이란다. 년이고 놈이고 뭘
그렇게 잘 빌린대. 또 담벼락에서 담배 피우면서, 옷 갈아입는 거 바라보는 년
(놈은 없다), 잘못하고“쏘리”소리 하는 인간들, 방귀 뀌고 “익스 큐즈 미”하
면 단 줄 아는 년놈들. 샤워 안 하는 아해들은 냄새가 미친단다.
너희 나라에 당근 나냐고 물어보고, 오이 먹냐고 물어보는 교장선생님 때문에
돌겠단다. 88올림픽 이야기해도 모른단다. 무식한 교장놈아! 대영 박물관이니 맨
체스터 사원 같은 데 한번 가봐라, 한국 사람이 얼마나 많이 구경 와서 돈 쓰고
가는데, 당근이 나냐구? 이문세한테 물어봐라, 이문세 뭐 먹고사나! 당근쥬스 선
전도 한다 임마!
아해들 말이, 35분 수업하는 학교도 있단다. 그래 갖고 무슨 공부가 되냐고 했
더니 공부시간 짧은 학교가 좋은 학교란다. 그래서 20분 하는 데도 있다나. 우리
유학생 아해들은 수학 예술과 달리기가 뛰어나단다.
유학생 가운데는 카드로 돈을 막 꺼내서 쓰는 아해들도 많은데 영국만 그런
건지 몰라도
영국에선 하루에 얼마 이상을 꺼낼 수 없게 신청을 할 수 있단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제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거 시도하면 실패할지도
몰라. 우리는 막 갖다 쓸 수 있다고 해야 좋아할 테니 말야. 하루에 20파운드 이
상은 안 꺼내쓴다는 한 유학생의 이야기, 배울 만 하지 않아? 2만원이 좀 넘는
돈으로 하루를 견디다 보면공부 말고는 다른 데 신경 쓰기도 어렵단다. 그래도
큰 불편은 없대. 3일에 50파운드씩 쓰게 만들어놔서 50파운드를 쓰려면 3일을
기다린 후에 쓰게 된다는 거다. 자기 자신에게 저금을 하는 버릇도 생기고 말야.
7월 1일, 인터시티 기차 안에서 만화가 임재학 씨 집에 불나는 꿈을 꾸다(참고
로 만화가 임재학은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와 “조금만 비
겁하면 인생이 즐겁다”의 그림을 그린 만화가임).
에딘버러 가거든 잔돈부터 바꿔라
에딘버러에 갔다. 런던에서 에딘버라 가는 밤기차를 탔는데 우리는 일등칸을
탔다. 가는데 6시간, 오는데 4시간 반 걸리지만 밤차를 타고 가면 숙박비를 줄일
수 있다. 기차는 두
명씩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아래위로 침대가 하나씩이다. 이층으로 되어 있는
침대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모르는 남녀가 한방에 탈 수도 있지 않을까? 남자는
남자끼리 넣어주나? 여자는 여자끼리. 성인들이니까 알아서 타라고 막 섞는
건 아닐까? 상상만 해도 즐거워.
이런 건 상상만 해도 즐거워. 이런 건 상상으로 끝나야지 역무원한테 물어보면
재미없지롱(나중에 보니 따로따로 넣어주더라)!
영국에서 밤11시55분에 출발해서 아침6시쯤 에딘버러에 도착했다. 기차에서는
“종착역이오니 잊으신 물건 없이 안녕히 가라”는 흔한 말 한마디 없다. 아침
밥으로 빵을 갖다준 늙은 승무원은 한 시간 정도 더 있어도 되니 밥 먹고 천천
히 내리란다.
여기가 참 황당한 게, 새벽에 낯선 도시에 내리면 정말 갈 데가 없다는 거다.
인포메이션도 없고. 7시에 연다는 인포는 20분이 지나도 안열고(오는 날 오후 한
시에도 안 열드만!). 황당한 새벽! 날씨도 춥고 파카입은 사람들이 막 출근하고
그러는데 기분이 오싹했다. 그래서 우린 근처 호텔로 들어갔다.
새벽 일찍 열차에서 내렸는데 인포메이션이 문을 안 열어 갈 데가 없을 땐 아
무데나 가까운 호텔을 찾아 들어가자! 호텔에 가면 지도부터 별거별거 다 구할
수 있다! 또 한가지!
기차를 타고 다니면 여러 나라의 역을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데 역에서 내리면
다음 갈 곳 예약도 할 수 있지만 대중 교통표 알아보는 것도 필수다. 역 근처에
는 보통 안내센터가 있는데 유럽 어느 역이나 제 고장 소개하는 안내소는 정말
잘 되어 있다. 인쇄물 종류도 수십 종이고 아무리 많이 가지고 가도 공짜다. 책
자 속 사진도 비싼 엽서보다 더 괜찮은 게 많다. 우리 역에 가 보고 싶다. 서울
역 부산역 대구역 옥천역 등등.
시시한 퀴즈 하나!
런던에서 에딘버러 가는 가차를 탔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경부선 열
차 타고 내다보는 풍경이랑 똑같다. 이유는? 밤기차를 탔으니까!
에딘버러에서는 버스를 탈 때 타는 사람들이 운전기사 옆에 달린 돈통에 액수
를 말하고 돈을 집어넣는다. 60펜스가 기본인데 운전기사가 직접 받는다. 큰돈을
내면 바꿔오라고 한다. 잔돈을 절대 안 바꿔준다. 우리는 잔돈이 없어서 바꾸려
고 다 저녁때 한 시간 동안 거리를 헤맸다. 6시가 지나서 상점들이 문들을 다
닫았기 때문이다. 처가 날더러 돈을 바꿔 오란다. 영어를 못하는 날더러 잔돈을
바꿔오라는 거다. 그래 부딪쳐보자! 10파운드를 들고 어떤 팝으로 들어갔다. 1파
운드를 보이면서 “첸지 모니 리틀 모니!”했더니 바꿔준다.“체인지 투 코인!”
하면 될 것을. 바꿔가지고 나오다가 생각날 게 뭐람!
1파운드를 펜스로 못 바꾸고 할 수 없이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부탁 해 동전을
바꿨다. 1파운드를 주고 90센트를 받았는데 아주 좋아했다. 우리도 좋았다. 버스
비가 1파운드 20센트니까 우리 두 사람이 2파운드 40센트를 내야 되는데 잔돈을
안 바꿔주니까 꼼짝없이 3파운드를 내야 됐거든. 90센트를 받았지만 3파운드 내
고 60센트 못 받은 것보다는 이익 아냐!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10센트를 벌었
다고 되게 좋아했다. 후줄그레한 아저씨가.
배낭족 아해들아! 에딘버러에 오거든 잔돈부터 바꿀 일이다. 그러지 않으면 버
스를 2파운드 내고 타게 된다. 그러면 타고 나서 바로 후회할 것이다. 이렇게 말
이다!“버스 정거장 옆에 있던 여자 거지에게 바꿀걸! 80펜스를 더 냈으니 거지
에게 40펜스를 주고도 40펜스가 이익이었을 텐데! 불우이웃돕기도 하고 말야.”
에딘버러 성에 가는데 비가 내린다. 그래서 그런지 차가 많이 밀린다. 비가 오
면 늘 이렇게 차가 밀리냐고 택시 운전사에게 물어보니 사람들이 스코틀랜드를
엔조이하느라 천천히 길을 건너기 때문이라고 유머로 받았다.
에딘버러 아해들은 정말 친절하다. 오줌 누는 시늉을 하면 화장실을 가르쳐준
다. 지도를 열심히 보면 지나가던 사람이 어디를 찾냐면서 가르쳐준다. 제스쳐
게임에 나가면 우승하겠네! 영국 사람들이 다 그렇단다. 길을 물어보면 정말 친
절히 잘 대답해준다. 잘 몰라도 가르쳐주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본다. 배낭족
들이 물어보는 게 대부분인데 지도를 같이 찾아보고 지도 있는 곳으로 데려가고
그래도 모르면 안내소를 찾아가 보라고 한다. 남의 물음에 친절히 잘 대답해준
다는 것은 자기도 남에게 물어볼 일이 많다는 것이 아닐까? 맞을 거야!
어떤 할머니에게 길을 물어봤는데 한 20분을 따라오면서 길을 너무나 친절하
게 가르쳐준다. 친절한 할머니. 나도 이렇게 쓰지만 그 할머니도 오랜만에 실컷
말했다고 일기에 쓰지 않을까? 여긴 얘기에 굶주린 사람들이 많으니까. 실제로
언젠가 누가 미국에 가서 영어를 배우려면 학원 가서 배우고 복습은 그 동네 할
머니하고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발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할머니들은 외롭다. 미국이나 영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할머니들
에게 길을 물어보라. 모르는 사람이 자기에게 물어본 것을 고맙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정말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아주 열심히다. 심지어는 막 쫓아와서 500미
터쯤 걸어가서 가르쳐주고는 시계를 가리키면서 미안하다고, 시간 없다고 하면
서 바쁜 듯이 걸어간다. 사례를 하면 실례인 것도 같고. 우리도 할머니 할아버지
되면 그렇게 하자.
할머니만은 아니다. 젊은 아해들도 성심껏 가르쳐준다. 우리 역시 아무한테나
물어보는 게 아니고 관상을 보듯이, 저 사람이 좋을 것 같다. 한가한 놈 같다.
시간이 많아 가지고 괜히 길거리에 나앉았는 놈 같다 등 이젠 사람을 골라가면
서 물어보는 여유도 생긴다. 우리가 보고 찍는 거야. 지도 들고 가고 싶은 곳 찍
기만 해도 알아듣는다. 새떼들 모여들 듯이 와서 가르쳐준다.
여긴 특히 노인들이 버스나 전철 안에서 십자말 풀이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그만큼 심심한데 길 물어보면 잘 가르쳐줄 수밖에. 우리가 돈을 받아야 돼. 길
물어보고 담배 한 개피라도?
그런데 우리나라 시골하고 영국의 시골이 공통점이 있다. 에딘버러에서도 그
랬다. 길 물어보면 5분만 가면 된단다. 그러나 가보니 20분이 넘게 걸렸다. 잘못
온 게 아닌가 하고 몇 번 확인하면서 가는데 계속 “5분만 가면 돼요”다. 물어
보는 사람들마다 계속 5분,5분 그러는 거다. 베를린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 였다.
카메라점을 물으니 길 가던 사람이 친절하게 500미터만 가면 된단다.500미터 가
서 물어봐도 또 500미터다. 우리가 못 본 새 가게 하나가 지나가고 또 다음 가
게가 500미터가 아닌가 해서 한참을 찾아봤다. 친절하게만 가르쳐주면 뭐하나,
가도 가도 나오질 않는데!
아무나 들어가 노는 영국 공원 잔디밭
“한 소년이 공원에서 울고 있다. 지나가던 신사가 왜 우느냐고 묻는다. 소년
은 가지고 놀던 공이 잔디밭에 들어가서 운다고 말한다. 그러자 신사가 지팡이
로 소년의 공을 꺼내준다.”이런 이야기를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웠다.
영국 어린이의 도덕심을 배우며 자란 것이다.
그 공원이 하이드파크인 걸로 기억하는데(틀리면 할 수 없고) 하여 간 거기
가보니 울고 있는 소년은 없고 잔디밭에 누워 자빠져 있는 청춘남녀들만 보인
다.
우리를 안내한 택시기사가 가이드 노릇을 충실히 잘했는데 나중에 엽서랑 똑
같은 곳이 있다며 안내까지 해준 곳이 바로 이 공원이다.
영국 공원들은 술 취한 사람들이 없어서 그런지 공원 같지가 않다.
그러나 잔디가 죽든 말든 아랑곳없이 퍼질러 누워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거리
는 아해들의 모습 하나는 정말 부럽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는 우리나
라만 있는 거 같다! 그것도 어릴 때부터 칭찬받은 아주 잘 쓴 글씨로! (누구나
글을 처음 배울 때 맨처음 자기 이름부터 쓴단다. 그러므로 이름을 한글이나 한
자나 이쁜 글로 쓸 수 있게 만들어주면 평생 글씨를 잘 쓴대나! 어쩐대나! 하는
말을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들었다가 잊어버렸는데 4학년 때 다시 생각이 났다
가 지금 다시 생각이 난다. 이게 얼마 만이야!)
여기 와서 다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잔디밭에 왜 못들어가게
하는가? 상하면 다시 심으면 되지! 어느 한 사람이 한번 못들어가게 한 것이 굳
어버린 것은 아닌지!
잔디밭에 하도 안 들어가 버릇해서인지 우리 아해들 가운데는 별쬐기 좋은 잔
디밭을 보고도 얼른 뛰어들지를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부터도 베를린의
퍼가몬 왕궁이라는 데를 가서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왕궁 앞 잔디밭을 나혼자
걸으면서 이거 혹시 걸리는 게 아닌가 마구마구 불안했으니까.
유럽 아해들이나 미국 아해들은 공원이든 어디든 잔디밭에 다 들어간다. 일광
욕하고 책 보고 이야기하고 심지어는 축구도 한다. 외국인에게 친절하자 친절하
자 그러는데 그런 아해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잔디밭에 못 들어가게 하는 게 불
친절이 아닌가? 친절도 친절이지만 잔디밭에 들어가게 해야 된다. 얼마나 불편
한 일인데. 얼마 전에도 조순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 공무원에게 “잔디밭에
들어가게 합시다!”그랬더니 그러면 잔디가 죽는단다. 사람은 안 죽나. 죽으면
다시 심으면 되잖아. 잔디가 종류가 다르다고도 그러는데 다르면 다른 걸로 심
어볼 필요도 있지 않느냐구. 잔디 나고 사람 났나. 잔디라는 건 사람들이 들어
갈 수 있도록, 그래서 그 안에서 놀고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친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흔히들 유럽에 가면 사람들이 길 하나를 물
어도 친절하게 가르쳐주는데 우리나라는 불친절하다고 그러잖아. 신문이나 방
송도 그런 말을 흔히 하는데 그건 모르는 말씀니다.
불친절한 한국인을 만난 외국인만 골라서 인터뷰했기 땜에 그런 거라는 거다.
외국 아해들이 길 물어보면 잘 가르쳐주는 건 우리가 그래도 영어로 묻기 때
문이다. 우리가 외국인한테 길을 못 가르쳐주는 건 우리가 영어를 하려는 것만
큼 걔네들이 우리말에 노력 안 하기 때문이라구.
그런데도 우리는 되지 못하게 툭하면 한국인이 불친절하다 어쩌구 그러잖아. 아,
친절한 사람도 있고 불친절한 사람도 있고 그런 거지, 누굴만나느냐는 순전히
그 외국인의 재수일 뿐이라구. 유럽이라고 다 친절한 것도 아냐. 바가지도 씌우
고 도둑놈도 많다구.
그런데 문제는 다니다 보니까 관광사업이 꼭 친절이 우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외국인들에게 불친절해서 안 온다는 기사가 아주 오래 전부터 나
오는데 이젠 생각을 바꾸어볼 때다. 볼거리가 있으면 친절이랑 관계없이 오게
돼 있다. 프랑스 아해들, 독일 아해들 정말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일년
이면 우리나라 아해들을 포함해 전 세계 아해들이 그 불친절한 나라에 돈을 쓰
려고 기를 쓰고 찾아간다.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 도둑이 많다고
누구나 긴장 하면서도 무두가 이 나라로 몰려드는 것 역시 볼거리를 수없이 만
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볼거리들을 제대로 보게 하기 위한 배려가 여
행자 중심으로 잘 돼 있다.
예를 들면, 외국엔 싼 배낭족들이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싼 숙소들이 굉장히
많이 개발돼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게 없다. 그래서 이상하게 관광객, 그러면
돈 많은 사람인 것처럼 생각해선지 관광호텔이란데가 엄청 비싸다. 관광객에겐
왜 그렇게 다 비싸야 해?
실제로 현실적으로 관광호텔에 가봐라. 새벽 2시,4시까지 영업을 허가해주는
관광호텔 나이트클럽에 가면 눈에 띄느니 우리나라 아해들뿐이다. 간혹 외국 아
해들도 몇 명 있지만. 미국 같은 외국에 가면 그렇게 우리처럼 밤새는 데가 없
다. 있어도 걔들은 주말이나 금요일날가서 놀지 우리처럼 평일에 개떼같이 몰려
가진 않는다.
우리 관광호텔도 이제는 두 종류가 돼야 한다. 배낭족같이 돈 없이 오는 사람
들이 와서 자는 싼 숙소도 있어야 되고 돈 많은 사람들이 머루르는 그럴듯한 숙
소도 있어야 된다는 거다. 가난한 여행자 중심의 호텔이나 민박이 많이 만들어
져야 한다. 그래야 관광객이 유치된다.
우리도 이야깃거리, 볼거리를 만들어서 관광객을 유치할 생각을 해야지, 막연
하게 밤낮 외국 가서 실수하지 마라 외국인한테 친절해가 그래 갖고는 힘들다.
친절도 친절이지만 잔디밭에도 들어가게 하고 얼마 안되는 볼거리라도 제대로
볼 수 있게 싼 숙소들을 많이 만들자!
그런데 한가지 웃기는 건, 여기 하이드파크 잔디밭엔 해변에서 볼수 있는 비
치용 의자가 있다. 물론 공짜가 아니다. 앉아 있으면 누군가가 돈을 받으로 온
다. 처음에 우리 배낭족 아해들이 공짜인 줄 알고 앉아 있다가 초록색 옷을 입
은 아해가 와서 돈을 달라고 해 50펜스를 냈단다. 듣고 있던 처가 “돈 내자마
자 다른 데로 갔지요?”그러자 그랬단다. 그때부텀 본격적으로 더 앉아 있어도
되는데 우리는 돈을 내면 김새게 생각하고 그 순간 떠난다. 희한하지?
참, 파리에서는 발 밑의 개똥을 조심해야 되지만 영국 공원 벤치에서는 새똥
을 조심해야 한다. 영국이나 파리나 개 끌고 산책을 많이 하는데 파리에는 개똥
이 널려 있고 영국에는 안 널려 있어 알고 보니 영국은 개똥을 인도에 못 누게
하고 차라리 차도에 누게 한단다. 그리고 인도에다 누면 개주인이 치워야 한단
다. 웃기는 얘기다.
이 공원에 와서 발견한 것, 영국에는 여왕만 있는 줄 알았더니 왕도 둘 있네.
노씨 성 가진 왕들. 노 스모킹, 노 파킹.
우리한테 길 묻는 영국 촌 아해도 있더라
글래스고 가는 버스역을 가르쳐주는 주름투성이 할머니의 수첩을 보니 영어가
가득 차 있다.
버스가 1시14분에 온다고 그랬는데 30분이 되어도 안온다. 우리 말고 한 팀이
혹시 버스가 지나간 건 아니냐고 물었다. 이번 버스를 놓치면 2시 50분에 다음
버스가 오기 땜에 모든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란다. 원래 스코틀랜드 아
해들이 이렇단다. 배낭을 둘러멘다. 자기네는 못 기다린다고 다른 곳으로 가겠다
는 거다. 그들이 사라지고 약 5분 후 버스가 나타났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 말했다. “야, 한국 사람보담 성질 급한 아해들도 있
구나! 주소나 알아둘걸! 성질 급한 사람들끼리 펜팔이나 하자고!”
성질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을 풍자하는 우스개가 생각난다. 섣달 그믐날 결혼
을 했는데 그날 밤 자고 일어나서 결혼한 지 햇수로 2년 됐는데 애가 없다고 신
랑이 화를 냈대나 어쨌대나 하는 얘기. 날짜로 따지면 이틀이고 시간으로 따지
면 24시간이고 햇수로 계산하면 2년째가되는 이 우스갯소리를 우리는 한번쯤 듣
고 자랐다. 지금 이 우스갯소리를 처음 듣느다면 초등학생들도 안 웃을 거다. 조
금 똑똑한 초등학생들은 웃기는커녕 도리어 화를 낼지도 모른다. 내 수준을 뭘
로 보느냐고. 이 얘긴 속편이 더 웃긴데 섣달 그믐날 시집온 색시가 그 다음날
여태 애가 안 섰다고 시어머니한테 들볶였다지 아마?
그러고 보니 해외여행 4박5일이라는 것이 웃기는 계산인가하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왜냐하면 떠나는 날 밤 8시 30분에 출발해 새벽 2시에 도착하니 벌써 1박
2일이 되고 말지, 또 새벽 3시에 비행기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도 역시 하루
계산에 들어가니 왔다갔다하는데만 2박3일이 되고 마는 거 아니냔 말이다. 섣달
그믐날 시집온 신부에게 그 다음날 햇수로 2년 됐다며 아이를 못 낳는다고 뭐라
고 했다는 신랑의 계산법이 우리를 웃겼듯이 이 해외여행 역시도 마찬가지다.
버스를 탔는데 자기는 로만드 호수로 간다면서 우리보고 상세히 물어보는 영
국 촌 아히도 있네!
에딘버러로 되돌아가는 시간 때문에 글래스고에서는 30분에 한대씩 떠나는 한
시간짜리 시내투어 버스를 탔다. 관광객이냐고 물었더니 이 동네 토박이란다.
심심하면 산책 겸 이 버스를 타고 돈단다. 이것저것 설명을 해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할머니 음식이 맛있다고 그러면 할머니는 우리를 자기네 집에 데리고
갈지도 모른다.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할머니가 잘하는 요리는
뭔가요?” “먹어본 사람들이 다 칭찬을 하던가요?” “믿을 수 없네요!” “정
말 잘하세요?” 이러면서 슬슬 유도를 하면 집을 가지고 하고 요리도 해주지 않
을까? 잠도 재워주면서! 만화 같은 생각이지 뭐!
우리네 할머니랑 한번 비교를 해본다. 그쪽 할머니들이 자기네 집에 데리고
갈 수 있는 여지가 훨씬 더 많다. 왜냐면 혼자 사니까. 한국 할머니들은 인정이
많아서 데려가서 솜씨를 보여주고 싶긴하지만 며느리들의 눈치를 봐야 되는데
여기 할머니들은 혼자 사시니까 며느리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
이다. 라는 혼자만의 상상.
유럽에서 제일 큰 벼룩시장이 글래스고에서 열린다는데 우리는 주말이 아니라
서 꽝이 되었다. 책에 나와 있어서 찾아갔는데! 글래스고, 잘 알지도 못하는 동
네인데 유럽에서 제일 큰 벼룩시장이라니!
글래스고의 넬슨 제독 동상 뒤쪽에는 나폴레옹 전쟁 전사자 기념관이 짓다가
만 채로 방치되어 있다. 미완성이 된 이유는 예산이 바닥나서 그랬단다. 짓다가
만 곳도 관광지가 된다는 사실!
아비뇽 다리가 생각난다. 돈이 없어서 짓다가 만 다린데 그것도 관광지랍시고
돈을 받더라니깐. 짓다가 만 다리를 입장료를 내고 올라가서 걸어봤다. 성수대교
를 돈 받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갔다온 사람 여럿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네들도 그런 생각을 했단다. 성수대교 무너진 건 세계적으로 유명하
니깐.
여기 와서 보니 삼풍백화점 무너진 사건, 성수대교 무너진 사건들은 외국에
사는 우리네 교포들을 정말로 쪽팔리게 만든 것 같다. 어떤교포 한 분은 성수대
교하고 삼풍 얘기가 너무 부끄러워서 밖에를 못 나갔단다. 유학생 중 한 명이
농담을 한다. 무너져야 할 게 딱 하나 있대! 뭐냐고 했더니 통일의 벽이라나? 그
건 왜 부실공사를 안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넬슨 제독의 동상 가는 길에 카페가 하나 있는데 제목이 “1812 년”이다. 우
리는 들어가서 한잔 마셨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 “1812년”문앞에 서 있는 종
업원 아해에게 물어보았다. 1812년에 지은 거냐고. 아니란다. 속았다는 기분이
든다. 그냥 카페 이름이 “1812년”이란다. 그러면서 카페의 역사가 적힌 책 비
스므레한 걸 한 권 들고 나왔는데 1818년에 만들어졌단다. 에이 몇 년 차이 아
니네! “1812년”이라는 음악 제목에서 카페 이름을 지었단다. 처음 연주할 때
대포를 진짜로 쏘면서 연주했다는 그 곡. 들어보긴 했지만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곡. 서울가면 한번 들어봐야지(했는데 아직도 못 들었다).
우리 모두 동상이 되자
우럽엔 동상이 굉장히 많다. 여기저기 별별 동상들이 다눈에 띈다. 잔다크, 나
폴레옹, 찰리 채플린...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유명한 사람들의 동상도 많고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물론 그 나라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유명하겠지만), 자기네끼리만 아는 사
람들의 동상도 많다. 우리는 모르지만 자기네 나라 사람들을 위해서 뭔가 일을
한 사람들을 오래 기리기 위해 세워놨겠지. 역사에 어떻게든지 이름이 남는 사
람들일 텐데...!
파리엔 어떤 회전목마 뒤에 동상 하나가 딱 서 있었다. 오가는 사람마다 “아
니, 저 사람이 이 회전목마를 만든 사람이야? 아니면 회전목마 주인이야? 것두
아니면 감시하려고 서있는 거야”그런 생각을 갖게 만든다. 덴마크에 갔더니 30
년 동안 한자리에서 생선장사를 했던 두아주머니를 동상으로 만들어놨다. 생선
을 들고 있는 모습을 조각해서 말이지. 그랬더니 또 그 앞에 한 아저씨 생선장
수가 아주머니들의 동상 모습 그대로 생선을 들고 팔고 있더라고. 연습을 맣이
했는지 제스처도 암튼 똑같다. 그게 관광명소인 거다. 암튼 유럽엔 이렇게 우리
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동상들이 시내 곳곳, 건물 곳곳에 있다.
그래서 혹시 나는 이 나라 아이들은 “넌 커서 뭐가 되겠냐”고 물어봤을 적
에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자동차 회사 사장이 되겠습니다. 또 뭐뭐가 되겠습니
다”가 아니고 “어느 네거리의 동상이 되겠습니다”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국 아해들의 꿈이 혹시 “나중에 죽어서 피카디리 근처에 동상으로 남
고 싶어요!”는 아닐까.
어렸을 적에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이 “너 커서 뭐가 될래?”그러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척 궁금하다. 난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누가 그렇게 물
어보면 커서 뭐가 될지 몰라 불안했다. 너무 겁이 났다. 그런 걸 물어본다는 게.
뭐라고 대답을 해야 되나 참 난감했다. 선생님이 그런 걸 물어볼 땐 무슨 시럼
문제를 물어보는 거 같기도 하고, 해답이 있어야 되는데 잘못 틀리게 대답을 하
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까지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내 앞자리에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선생님
이 앞에서부터 쭉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물어보시더니 “너,너,너,너, 1분단, 2분단
”을 다 거쳐 차례가 되자 이 친구가 큰소리로 “훌륭한 과학자가 되겠습니다!
” 그러는 거다. 공불 잘했거든. 그다음이 내 차례였는데 “저, 전... 생각이 잘
안 나가지구요”이러면서 막더듬거렸다. “뭐가 될래?” 선생님은 게속 다그치
고 난 더 당황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저... 그래 가지고, 저, 저, 저,
전...” 그러면서 결국 그냥 넘아가고 말았다. 아무 말도 못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날부터 내 앞 친구의 그 근사한 대답, 훌륭한 과학자가 되겠다는 말을 외웠다.
“나도 딴사람이 물으면 저렇게 대답해야지”하면서 말이다. 드디어 초등학교 3
학년이 됐는데 담임선생님도 바뀌고 그래서 이번엔 외운 대로 그렇게 대답했다.
말해 놓고 나니까 재 자신이 새삼 근사하게 보였다.
그렇게 우리 어렸을 적에는 이담에 커서 뭐가 될지 불안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래서 뭐가 돼야지 하고 제각기 희망을 설종도 하곤 했다. 그런데 부모님들이
자식들한테 “너 커서 뭐가 될래?”그렇게 물었을때 “대통령이요, 장관이요, 선
생님이요, 의사요”아이들이 그런 얘기를 막 하면부모님들은 가끔씩 착각에 빠
지는 경우도 있다. “아니, 얘가 박사가 되겠대, 변호사가 되겠대, 불쌍한 사람들
을 위해서 말야”그렇게 흐뭇해하고 그러는 거다.
그러나 부모님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거, 착각하고 있는 거 하나가 뭐냐면, 사실
아이들이 알 수 있는 직업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거다. 몇개 안된다. 늘 의사선
생님 놀이 아니면 장군 놀이, 아니면 선생님 놀리 그런 식이다. 그래서 그 몇 안
되는 거 중에 한두 개 불쑥 얘기한 걸 갖고는 “혹시 얘가 천재는 아니가. 얘를
영재교육을 보내야 되는데 이거 내가 잘못해가지고 얘를 든재로 만드는 거 아닌
가”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단 말이지.
유럽 아해들은 자기 동네의 동상들을 보고 나라면서 “나는 나중에 크면 우리
마을의 동상이 되어야지”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자기 마을 입구의 동상이 된
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말이다. 그런데 왜 하필 동상일까? 금상
은상도 있는데.
어쨌든 우리들이 커서 앞으로 뭐가 되야 할 것인가를 생각할 적에 그 마을을
위해서 혹은 그 동네를 위해서, 아니면 우리 사회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해서 어
떻게 남겨져야 될까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된다는게 아주 중요한 게 아닌가 하는
거다.
네덜란드 어느 지방에 가면 소년 동상 하나가 조그마하게 서 있다.
이게 뭐냐면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배운 네덜란드 소년의 이야기 있지 왜. 둑이
터지는 것을 발견한 네덜난드 소년이 마을이 물바다가 되지 않게 하려고 밤새도
록 추위와 싸우며 손가락으로 팔뚝으로 둑을 말았다는 이야기 말이다. 우리 국
민이면 누구나 다 배웠고 아 아는 그 소년의 상이란다. 많은 사람들이 네덜란드
에 와서 그소년이 막은 둑이 어디냐고 가보고 싶어한단다.
그런데 그이야기를 네덜란드 사람들은 도리어 모른다는 거야. 자라는 아해들
에게 애국심을 심어주기 위해, 미국에서 만든 이야기를 우리 교과서에 실었기
때문이래. 그러나 하도 많은 사람ㄷㄹ이 네덜란드레 오면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
보기 때문에 그 지방에 가상의 소년 동상을 만들어놓았다는 거다. 가이드도 이
야기만 들었고 가보지는 못했다고 전해주는 “전설 따라 네덜란드”이야기다(개
그맨 김한국이 언젠가 야간업소 일하는 어느 코미디언의 별명을 네덜란드 보이
라고 지어준 적이 있었다. 어찌나 여자를 밝히느지 구멍만 보면 막으려고 한다
나!).
동상 얘기 하니까 내 얘기도 한마디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충무로에 심야 볼링장을 만들었잖아. 왜 그랬냐면, 개그맨 장두
석이나 후배들이랑 이 볼링장이란 델 가기만 하면 “한 게임만 더 쳐. 한 게임
만 더”하는데 볼링 못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정말 지루하더라고. 장두석이만 그
러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면서 시건을 안 지키고 10시를 넘기는 거
야. 그래서 그럴 바에야 아예 치고 싶을 때까지 치게 해주면 어떻겠냐 해서 심
야 볼링장을 만든거지.
처음엔 거기 볼링 오래 한 과장이니 하는 사람들이 막 반대하고 그랬다고. 그
런데 그 뒤에 심야 볼링장이 매상이 엄청 올랐잖아. 그러나까 전유성이도 심야
볼링장 만든 공로로 동상 하나 세워주면 좋잖아!
이거는 좀 말장난 같은 얘기지만, 누구나 다 금상만 받으려고 일등만 하려고
그럴 적에 “나는 세 번째 동상이 되겠습니다”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 아닌가. 소년들이여! 이담에 크거들랑 모두 동상이 되어라!
거기 동상들 유래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설명을 들었는데, 얘들아! 우리 동상
들도 알아두자. 왜 만들어졌는가. 한국은행 앞 동상은 누가 왜 만들었지?
대영박물관은 거대한 장물아비의 집
대영박물관에 가면 역사적인 유물들이 많다.박물관이니까.문제는 어디에 관심
을 가지고 보느냐는 것이다.역사연대표를 읽으면서 감탄하고 있는데 여자들은
진열된 장신구에만 신경을 쓴다.어찌보면 그게 훨씬 현실적이고 필요한 것인지
도...!
대영박물관은 거대한 장물아비의 집이다.물건들 가운데는 지금 그 나라로 도
로 갖다주려고 해도 운반수단이 고민일 정도로 큰 것들이 많은데 그 당시엔 어
떻게 갖고 왔을까?갖고 가려고 궁리하고 시킨놈은 편했겠지만 나르던 아해들은
얼마나 고생이 심했을까?특식이나 좀 나왔을까?
일요일 끝나는 시간은 6시인데 10분 전부터 내보내기 시작한다.우리 것을 안
본 것 같아 물어물어 찾아가는데 경비들이 몰아낸다. 겨우 우리 것을 보고 돌아
서면서 우리 학생들이 했던 소리가 생각난다. “우리 것은 어디 있냐?”그랬더
니 “저기로 돌아가면 있어요.별루 없어요”그런다.“야,임마! 없으면 좋지 월 그
래!”속으로 이런 것 생각은 안했겠지.‘일본 아해들 것은 많던데! 일본이 부러
워!’
런던 성에 갔다.역대 왕들의 왕관이 전시되어 있다. 짱구가 왕이 되면 디자이
너들이 고민 많이 하겠네! 보석도 더 들어가야 되고 국고도 더 낭비되닌 말이지.
여자가 혼자만 보는 보석은 꽝이지, 남들이 알아줘야 보석이 더 빛나는 거다. 유
럽 어느 성에 가봐도 왕 거나 지금의 내 거나 더블침대 크기는 똑같드만! 방이
커서 자다가 오줌 마려우면 화장실 가는 게 나보다 불편했을걸! 그런데 그때 아
해들은 요강을 썼단다. 결국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는 얘기다. 다니다 보면
영국엔 특히 소박한 궁전들이 많다. 검소한 왕실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
기도 하지만 창고 같은 걸로 착각할 만큼 허름한 곳도 있다.
파리의 웬만한 성에선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는데 영국은 그렇지 않다. 그저
좀 보면서 걸어 들어가다 보면 돈 내는 곳이 여러 군데다. 이게 바로 영국인의
상술이구나, 혼자 생가을 해봤는데 여기 사시는 아주머니 말은 다르다. 정원까지
는 누구나 거저 봐라. 대신 지금부터는 돈을 내라. 이런 거란다.나는 언제나 틀
리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데 영국 사람들이 역사를 좋아하기는 좋아하는 모양이다. 어느 음식점 진
열장을 들여다봤더니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는 거야. 가게 개업 때부터의 먼지
를 보관하려는 모양이지?
영국 신사들도 비 오면 뛴다
우리는 보통 영국을 안개의 도시, 신사의 나라라고 배웠는데 나는 습기 찬 도
시, 습진 많은 신사의 나라 영국이라고 하나 더 붙이고 싶다.
비가 오면 여기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잽싸게 비옷으로 갈아입는다. 정말 빠르
다. 비옷 크기가 좀 작은 것 같은데 다방에서건 어디서건 무진장 빨리 갈아입기
때문에 마치 개구리의 보호색을 보는 듯하다.
영국 아해들에게 묻는다.전유성, “비 오면 어떻게 해요? 우리는 막 뛰는데?”
영국 아해, “아뇨, 보통처럼 걸어요”전유성, “지금 길거리에 아무도 없느데
요?”영국 아해,“아이구, 이건 정말 비가 많이 오네요.”후다다닥!
이리저리 막 뛰는 영국인들은 봤다.조금 올 때나 여유지 퍼부으면 우리랑 다
를 게 없지 뭐!
그 옛날 런던 대화재 이후로 런던 사람들은 화재에 굉장히 민감하단다. 얼마
전 런던의 힐튼 호텔에서 화재 비상벨이 울렸단다. 아침에 도착한 가이드가 손
님들 다친 사람은 없냐고 했더니 없다고 그랬단다. 지배인이 놀란 것은 다른 나
라 사람들은 자다가 놀라서 옷 벗은 채 뛰쳐나오는데 한국 사람들은 옷 다 입고
보따리 다 들고 나오더란다. 너희들은 이해가 안 가겠지, 그만큼 사고가 많이 나
서 우리는 침착한 거란다. 야들아!
런던대화재 기념탑이 있는데 311계단이다. 가이드보고 같이 오라가쟀더니 싫
어하는 표정을 짓던 이유를 알겠다. 그런데 이미 입장권을 샀으니까 안 올라가
볼 수는 없고, 올라가 봐. 다리 아프지 물론!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도 권해야지,
나만 아플 수 있나! 올라가지 말라고 그럴 수도 없어, 나도 한번 다리가 아팠으
니까 니네들도 아파 봐라 이거지. 재미있는 건 내려오면 꼭대기 걸어 올라갔다
왔다는 증명서를 한장씩 준다. 액자 해놔야지!
가이드가 런던브리지를 설명하면서 영화 ‘애수’에 나온단다. ‘애수’가 언
제적 영화인데! 40년도 넘은 영환데 그 영화에 나오는 게 뭐가 중요해! 지금눈앞
에 있는데!
96년7월4일 오후4시3분, 스위스 시계탑 밑에서 거리의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
리다 말고 갑자기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피해 허둥지둥 남의 처마로 달려간다.
얼굴 그려 달라고 앉아 있던 손님들, 벙찐 얼굴들이다.
영국 전화부스에 가득한 스티커의 정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영국의 상징하면 역시 빨간 버스, 빨간 전화부스다. 사진
이나 엽서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나라에도 똑같은 것이 있다. 정말이지 열
받는다. 그걸 그대로 표절을 하다니. 연예인들의 표절은 걸리는데 그런 건 왜 안
걸리는지 몰라. 색이라도 노란색이나 딴색으로 바꾸지.
파리에는 없는데 영국에는 전화부스마다 자기를 찾아 달라는 창녀들의 스티커
가 많이 붙어 있다.
인터컨티넨털 호텔 옆 공중전화부스에서 스티커를 제거하고 나오는 경찰관을
만났다. 양손에 스티커들을 떼어가지고 나오는데 양이 굉장히 많았다. 내가 먼저
한마디했다.“오늘 경찰관 회식 있는 모양이지? 여자 고르려고 떼가지고 나오는
모양이야, 높은 사람은 예쁜 애 것 한두장 감추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면 그 바
로 상관은 야,임마!!감춘 거 알어, 내놔!”하면서 주머니를 뒤질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하는 표절 가운데 대표적인 게 요즘 우리나라 주유소다.
유럽에는 소박한 주유소가 아주 많다. 로마의 주유소들은 인도 중간에 있어서
차가 기름을 집어넣으면 바로 출발하게끔 돼 있고 베네치아에선 배가 버스난 자
가용처럼 다니니까 바다 한가운데 있는게 인상적이다.그런데 우리나라 주유소는
왜 그리 소란스러운지 모르겠다. 롤러브레이드 타고 춤추고 이상한 만국기 비슷
한 것 매달아 놓고... 그런 게 사실은 일본 가면 거의 똑같이 하는 짓이거든. 다
른 건 몰라도 일본 주유소에서 하는 짓거리를 우리가 왜 하나?
예를 들어 자동차가 가는데 식용유를 넣어도 되고 소금을 넣어도 되고 맥주를
넣어도 되는데 기름 좀 넣어 달라고 그러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이건 다 똑
같이 어차피 기름을 넣어야 되는데 유독 왜 만국기를 흔들고 어린 여자 아해들
이 막 춤을 추고 머리에 띠를 두르고 엉덩이를 흔들고 그러느냐는 거다. 참 웃
긴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 것보다는 차라리 양쪽에 두 명의 젊은 여자가 있
고 가운데 뚱뚱하기 그지없는 아줌마가 춤을 춘다든가 하면 훨씬 인상적일 텐데
왜 그런 생각은 못하는지 모르겠더라고.
인터컨티넨털 호텔 옆 공중전화부스의 스티커를 못 봐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영국에 살던 우리나라 사람이 한국에 오면 노도나도 물어보는 게 “백마 타봤냐
”란다. 아니라고 하면 이상하게 쪼다 취급받는 기분이 든단다. 또하나, 식당에
서 일했다고 하면 실감을 못한단다. 쉽게 이야기하면 거의 자수성가를 해야 하
는 풍토를 이해를 못한다는 거다. 영국 사니까 좋겠다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이 교포가 그랬단다.“이 나이에 학교 간다.매일 애 데리러.” 어쨌든 자
꾸 그런 거 물어보는 것 땜에 친구들도 만나기 싫어진단다.
나는 말했다. 그럴 땐 해봤다고 해라. 그것도 아주 많이. 한 아해랑하면 딴 친
구도 소개해준다 그래라. 나중에는 귀찮아서 안 하게 된다고. 마음 먹고 열심히
한 친구는 한 반 에 여자 아해가 40명인데 30명정도를 한 아해들도 있다고 해
라. 그래야 영국에 와서 다시 한번 환상이 깨지고 저는 못했으니 너를 우러러볼
게 아니냐고.
588 간 건 자랑하지 않으면서 영국 가서 여자랑 잔 걸 자랑하는 이유는 뭘까.
거의가 창녀들이랑 하고 와서 자랑하는 건 미친놈 아니냐고. 길거리 지나가는
아해들 꼬셔서 해봐라, 그게 정말 멋진 놈이지.
내 후배 중에 여행가가 있었는데 20대 시절의 친구들이 제일 궁금해하던 것도
그 나라 여자랑 해봤냐는 거였단다.이 친구가 한 말, 세계각국을 다니면서 생각
해보니 그 나라의 콘돔하고만 해봤대나!
닮은 사람 흉내내는 건 동서양이 마찬가지더라
에딘버러 버스터미널에서 글래스고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화장실에 갔다.
버스터미널 낙서는 우리 것이랑 정말 비슷해!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그림은 수
준이나 내용이 우리랑 다를 바 없다. 화장실에 앉으면 그런 생각만 나는 모양이
다. 사진을 찍어서 증거로 남기려는데 아쉽다! 화장실에 누가 카메라를 들고 간
단 말인가! 오다가 들러서 찍어야지. 찍긴 뭘 찍어! 오줌 안 마려운데! 그걸로
끝이지(그래서 결국 화장실 안 가고 끝났다).
책에 석양이 아름답다고 해서 구경 나왔다는 여자 배낭족 하나랑 에딘버러를
걸어보다.그날 따라 구름이 많이 끼어서 지는 해를 바라 볼 수 없었다.그냥 걷다
가 ‘1982’카페에서 위스키 한잔하고 넬슨 동상 등을 보고 내려오는데 이 아해
가 유홍준의 나의 문화답사기 2권에 나오는 소리를 하는 것이다. 석양을 못 봤
으니 내일 아침 해 뜨는 거라도 보러 일찍 나와보야겠단다. 해 지는 쪽으로 해
가 뜨나?
에딘버러에는 희한한 전망 망원경이 하나 있다. 안경점 하는 여자가 이걸 발
명했는데,프리즘을 막대기에 달아서 높은 망루에 설치해놓고 그걸 뻥뻥 돌려가
면서 보면 밑의 원반에 에딘버러의 모든 경치가 비친다. 여기 한곳에서 에딘버
러의 모든 것을 구경할 수가 있다. 205년전에 만들어진 건데 정말 신기하다. 딴
지방에는 없는 아주 희한한 구경거리다.지나가는 자동차까지도, 사람 얼굴까지도
아주 상세하게 보인다. 프리즘을 이용한 아주 특이한 발명품이다. 거기서 가이드
가 한 장소를 가리킨다. 그곳에서 제임스 본드가 1950년도에 우유배달을 했단다.
한번쯤은 꼭 가서 볼 만하다.
에딘버러 자판기에서 담배를 샀는데 16이라고 씌어 있다.이게 무슨 숫잔가 하
고 궁리를 하는 중에 누가 말한다. 16세 미만에게는 안파는 표시라고. 아니다.
담배를 뜯고 보니 16개가 들어 있다. 20개 값을 받고 자판기에선 16개를 주니
자판기 담배가 비싼 것이다.그냥 가게에서 사라, 네 개피가 어디냐, 보리 흉년에!
에딘버러에서 기차를 타고 오는데 어느나라 아해인지는 몰라도 살바도르 달리
닮은 아해가 우리 옆자리에 타고 있었다.
김도향이라는 가수를 닮은 대학 일년 후배가 생각난다. 우연히 영국에서 만났
는데 가이드를 한단다. 반가웠다. 닐리리라는 삼중창단으로 활약하던 후배인데
김도향을 닮았다고 김도향 노래를 열심히 불렀다가 내가 소개하여 가수가 된 후
배였다. 자기랑 닮은 사람 흉내를 내는 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얘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 아들 앞에서“야, 임마 내가 말이야.
너희 아버지가 너만했을 때부터 알았어”그랬는데 지금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까 아무리 후배지만 그 아들 앞에서 너무 내가 이 새끼, 저 새끼 그런 게 좀 미
안하다.
이 아해가 살바도르를 닮았으니 수염도 자연히 그렇게 기를 수밖에. 그런데
문제는 이놈이 쉬지 않고 수염을 꼬는 것이다. 오른손을 꼬다가 지치면 왼손, 왼
손, 오른손을 교대로 사용하면서 꼬아대는데 정말 신경이 무진장 쓰인다. 여러분
들은 다른 사람이 잘 안 드는 가위로 오징어를 자를 때 옆에서 입에 힘을 주어
본 적이 있는지? 그런 경험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콧구멍 계속 후비는 놈만
봐도 무진장 신경 쓰이잖아. 안 보려고 해도 자꾸만 눈이 가는데, 생각 같아서는
그 녀석 수염을 확 잡아 뜯고 싶었는데 세상이 좋아서 못 뽑았다는 이야기 끝!
에딘버러는 8, 9월이 가장 알찬 달이란다.엄청 괜찮은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기
때문이다.에딘버러 성을 배경으로 야간에 화려한 군사의식이 3주나 계속되고 11
일부터 31일까진는 국제 페스티벌이 있다. 세계적인 유명인사들이 다 모이는 세
계 최대의 음악과 연극예술제다.오나가나 시간이 웬수다.우리는 못 보고 가지만
8월에 계획 잡은 사람들은 좋겠네!
뭉게구름들의 놀이터 로만드 호수
런던에서 에딘버러, 에딘버러에서 글래스고 1시간 10분.
거기서 다시 약50분 동안 보스를 타고 로만드 호수에 갔다.외국인이 한국 처
음 와서 서울, 부산 안 가고 김포에서 바로 강원도 속초까지 비행기 타고 내려
서 삼척 동굴 구경가는 건 아닌지 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가서 보니 아주 괜찮
은 마을이다.
빨래가 평화처럼 널려 있는 곳, 목소리가 저절로 낮추어지는 곳, 뭉게구름들의
놀이터,뭉게구름들의 집합처, 뭉게구름들의 학교, 뭉게구름들의 시장... 호숫가
마을은 집들을 정말 이쁘게 가꾸었다. 특히 정원을 경쟁하듯이 잘 가꾸어놓았다.
가게가 세 개 있는데 들어가면 세 가게 전부 다 비스킷을 손님들에게 권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눈 마주칠 때마다 권한다. 세 번째 가게 주인 아저씨가 비스
킷을 설명해준다. 비스킷으로 위스키를 마시면 위스키가 우리를 죽일지도 모른
단다.역설을 이용한 영국의 유머다. 위스키가 나오는 마을이거든, 거기가. 위스키
안주로 비스킷이 굉장히 좋다는 거야, 그래서 자꾸만 먹게 돼서 죽일지도 모른
다는 거지.
호수 가는 길에 얼굴에 뭐가 오돌토돌 많이 난 영국 사람을 만났다. 튀김 같
은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글래스고의 약국에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손잡이에 관한
모든 것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곳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지팡이 손잡이, 삽 손잡
이, 문 손잡이, 우산 손잡이, 꽃삽 손잡이, 휠체어 손잡이, 개목끈 손잡이 등 손잡
이에 관한 책이 한 권으로, 그것도 아주 두꺼운 한 권으로 만들어져서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온갖 손잡이까지 상세한 사진과 함께 수록되어 있는 책이다.
문득 강선철이라는 내 친구가 생각난다. 1969년 대학 시절에 물건 파는 곳을
안내하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던 친구다. 망치 노끈 등등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사고 싶은데 어디서 파는지 몰라서 못 사는 경우도 있고 막연하게 청계천에 가
면 있겠지 하고 나갔다가 헤매면서 하루를 허비하게 되는 경우를 줄여주자는 생
각이었다.
‘참으로 기발한 생각이다’하면서 아주 오랫동안 기억을 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살다 보면 줄자 파는 데가 어딘지, 중고다리미 파는 데가 있다는데 어딘
지 시시콜콜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요즘은 또 한국 전통술 파트ㅌ 데가 얼
마 전에 생겼다는데 아는 사람이 있나. 그것뿐이 아니고 고운소금, 군용 구두,
망치, 혁대 장쇠, 미꾸라지, 가물치,호박엿 등등 사실 사고 싶어도 어디서 파는지
몰라서 못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도 일전에 시골 사시는 외삼촌이 서울에 경
운기 부속을 부탁했는데 어디 가서 사는 몰라 고민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나도 고등하교 때 그런 생각을 했지.‘서울 토박이인 내가 모르는데
다른 도에서 온 사람들은 얼마나 불편할까? 이 사람들을 위해서 무슨 물건은 어
디서 판다고 알려주는 책을 하나 만들어야지’하고 말이다.
강선철이가 만약에 대학시절의 꿈을 이루게 된다면 그 책 내용 중에 손잡이에
관한 책은 글래스고 어느 약국에 가면 살 수 있다는 것도 포함시키라고 해야지!
유럽엔 잡지가 수백 종이 있는데 그런 건 정말 부럽다. 강아지에 고양이에, 그
런 것들이 너무 잘돼 있는 것이다. 연예인 되고 싶어하는 사람만 소개하는 잡지
는 어떨까?
언젠가 미국에 가보니 어느 자동차 여행가가 쓴 책이 히트를 했단다. 우리나
라에는 아직 소개가 안 됐는데 어떤 책이냐 하면 엔진열을 이용한 음식 만들기
라는 책이었다. 자동차 엔진열을 이용해서 음식을 만드는데, 시속 몇 킬로미터로
몇 분을 달리면 고기가 구워지고 몇 분을 달리면 피자가 구워지고 커피를 끓이
려면 몇 분을 달려야 커피물을 끓일 수 있는가?
하는 그런 책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책을 들여와 차가 막힐 때 실험을 해보
면 어떨까? 밥을 하려면 얼마를 놓고 몇 분이나 달려야 되고, 김치찌개를 끓이
려면 또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연구 해 보면??그러다가 연구가 끝이 나면 집에
다가 전화 한통 할 수 있지 않을까?
“여보 기다려. 지금 올림픽도로인데 밥 해놓지 말고 기다려. 내 곧 밥하고 찌
개 끓여서 들어갈게.”연구해보자. 자동차 엔진 위에다가 밥하는 그릇은 디자인
이 일반 솥하고 다를 테니 책 파는 사람은 물론이지만 솥장사 하는 분들도 덩달
아 한몫 볼 게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이건 그 책에 부록쯤으로 끼워주면 좋은데, 어차피 출토근신간이면 서
울시내 모든 곳이 막히게 마련이잖아. 지겹고 짜증나는 퇴근길 웃기라도 좀 해
야 되지 않겠어? 이럴 때 한가지 아이디어가 있다. 물이 반쯤 찬 5리터짜리 물
통 수십 개를 차에 가득 싣는 거다. 그러면 차가 움직이거나 설 때마다 물통의
물이 출렁거려 대포 소리를 낼 것 아니겠어? 피서가 따로 없다구. 또 단체 관
과버스가 줄이어 달려올 때 보통 1번부터 오기 마련인데 모두 몇 대가 되는 궁
금하잖아. 성질 급한 사람 숨 넘어가기 십상이라고.이럴 때 맨 끝번호와 앞번호
를 바꿔 달게 하는 거야.
그리고 말야, 마지막으로 이건 내가 아무데도 얘기 안 한 돈 될 꺼린데, 요즘
왜 명예퇴직이다 뭐다 그래서 뒤숭숭한 직장인들 많잖아. 조그만 가게 하나 시
작해보려는 사람들도 있고 말이지. 그 사람들을 위한 쌩쌩한 창업 정보서를 하
나 내는 거야.
우선 지역을 정하는데, 예를 들어 신촌부터 청량리까지 양쪽에 쭉 늘어선 가
게 있잖아.그걸 다 찾아댕기면서 이 가게는 얼마 주고 열었고 지금 얼마 정도
수입이 오르고 내가 옛날에는 워했는데 지금은 이 걸 하게 됐고 하는 얘기를 쭉
다 모으자는 거야. 창업정보로 그것처럼 더 좋은 게 어디 있어.
나는 치킨 센터를 하는데 개업 준비레 얼말 들였고, 가겟세는 얼마고 권리금
은 얼마고 이런 걸 시시콜콜하게 조사해보자 이거지. 딱100명만. 세금 때문에 대
답 안 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거니까 대답해 주는 사람만 하면 될 거야. 양식을
만들어서 사진 찍어주고, 그렇게 해서 그 사람들 사진을 전부 만세부르는 걸로
찍어 가지고는 제목을 ‘독립만세!’그래 갖고 3. 1절 기획특집으로 내는 거야.
그러면 난 그거 충분히 뜬다고 생각해. 이규형이 책이 잘 팔리는 것도 사실은
그런 타이밍이 맞은 거야. 어때,괜찮잖아?
영국가정은 은행통장이 셋이란다
파리에서 유로 스타로 세 시간을 달려서 영국에 오면 시간을 한 시간 뒤로 돌
려야 된다. 날짜변경선에서 아이를 낳으면 사주쟁이는 어디를 기준으로 낳은 시
간을 따지나? 영국에서 점을 보는 한국 사람은 영국식으로 시간을 따져야 되나?
한국 시간으로 이야기하면 그러니까 그 아이가 서머타임에 걸렸으니까 시간이
오후 7시로 해야지 맞겠군. 어쩌구저쩌구...
영국 가정은 은행통장이 셋이란다. 남편 것, 마누라 것, 두사람 공동의 것. 자
기가 번 것 자기가 쓰고 얼마씩 낸 돈을 모아서 집세 전기세 등등을 낸다나! 한
국직원이 “그런 게 말이 되냐? 부부인데”했더니 “남편은 CD플레이어를 사는
데 여자가 그런 거 싫어하면 여자만 손해잖아. 그리고 여자가 쓰는 화장품은 남
자는 필요 없는 거잖아. 그러니 자기돈으로 자기 것을 사야지”그러더란다. 그래
서 할말이 없어졌다는 거야, 그 한국 직원이. 그래서 내가 한마디했다. 그럼 CD
플레이어 틀 때 마누라는 귀 막고 있나?
에딘버러의 민토 스트리트는 B&B거리다. 잘 골라라, 비엔비 천지다. 처음 가
면 자꾸만 처음 보는 데로 가려는 경향이 있는데 늘 그렇지만 고르고 나면 더
좋은 곳이 나타난다. 걱정 마라. 노숙 안 하게 된다. 천천히 골라라. 방 없으면
노숙해보는 것도 지미지 안 그래? 비엔비는 달러는 안 받는다. 미리 바꿔라. 우
리는 미리 못 바꿔서 고생했다. 아침에 은행에 바꾸러 갔더니 보통 날은 9시에
문을 여는데 우리가 간 날은 수요일이라 스태프 회의 때문에 10시에 연단다. 열
받더구만!
달러를 안 받는 이유는 그 동네 사는 사람이 바꾸러 가면 커미션을 많이 떼어
서 그렇단다. 이런 집구석하구는! 민토 스트리트는 러시아워가 지나면 버스가 30
분에 한 대씩 다닌다. 끈기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11시30분이 자나면 버스가
완전히 끊긴다. 조심해야 한다. 집나오면 일찍 자라는 교훈이다.
영국에서 읽은 유머가 생각난다. 부모님을 죽인 놈이 재판을 받게되었다. 마지
막으로 할 말이 없냐고 물어보는 재판관에게 “나는 고아이니깐 정상을 참작해
주십시오!”이랬단다.
다른 유럽도 마찬가지지만 영국의 세금은 무섭단다. 영국인들한테 이런 얘기
가 있다.
길에서 돈을 주워도 조용히 해야 한다. 세무원이 쫓아온다. 부가가치세가 자그마
치 17.5퍼센트다. 이건 가이드의 실제상항인데, 한번은 거지가 돈을 달래서 돈을
못 주겠다고 했단다. “너 세금 내냐? 그럼 세금 떼고 줄게”했더니 안 받겠다
고 하더란다. 치사해서 안 받은 거지, 세금 때문일까?(세금 때문은 아닌 거 같
다?)
그런데 여기 펑크족은 얼른 보면 거지하고 헷갈리는 놈들이 많다. 길가에서
펑크족 한놈을 만났는데 이놈이 내가 사진을 찍을까봐 계속 경계를 하는 거야.
나중에 한 장 찍자고 했더니 밥값을 달라는 시늉을 하더라고. 그래서 1파운드를
줬지. 그랬더니 옆엣놈도 같이 달라는 거야. 할수 없이 줬지. 그리고 사진을 두
번찍었지. 술 냄새가 풀풀 나는 펑크족,
50이 넘은 거 있지. 사진 찍고 가려는데 옆에 있던 펑크족이 자기도 돈을 달라
는 거야. 있는 줄도 몰랐지. 너는 사진 안 찍어서 안준다니깐 그럼 사진을 찍으
란다. 먼저 찍은 놈들, 돈만 받아 처먹고 아무리 “치즈, 치즈!” 해도 별 반응이
없더구만! 무표정하기가 개그맨 정유성 같애!
술 안주로 쓰려고 멸치를 꺼내다 문득 멸치 얼굴을 들여다본다. 멸치도 자세
히 살펴보면 다 개성있는 얼굴들이다. 그건 꽁치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솔방울도
똑같이 생긴 것 같지만 사실은 다 다른 것처럼 인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별의
별 인간들이 다 있다. 그래서 세상이 재미있다는 거 아닌가?
영국에서 지하철표 사면 버스는 공짜!
유럽 지하철은 표 종류가 상당히 많다. 파리처럼 열 장씩 묶어서 싸게 파는
곳이 있는가 하면 오스트리아빈처럼 1일권을 한 번 사면 열 번을 탈 수 있는 것
도 있고, 날짜와 관계없이 열 번을 타는 스페인 거가 있는가 하면, 인스부르크에
서는 2인권을 사면 아이까지 세 사람이 탈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갈아탈 적마다
표를 내야 되는 체코 것도 있고, 산세바스찬에선 운전사가 직접 받는다. 시실리
는 타는 사람이 매표소에서 표를 사와야 된다. 어쨌든 이런 것이 모두 손님이
편하게 하려고 만들지 않았겠느나는 생각이 든다.
영국에선 지하철표를 하나 사면 시내버스는 하루종일 공짜다. 그냥 버스만 타
면 비싼데 말이다. 그러니 지하철표를 사서 버스를 타는게 요령이다. 지하철 티
켓을 한 장 사면 그날 하루는 종일 탈 수 있게 만든 건 영국 사람들 길눈이 어
두워서 날씨도 흐리고 안개도 많이 끼고 비도 많이 오고 하니까 목적지 혹은 집
찾을 때까지 타라는 배려가 아닐까? 맞을 거야. 그런데 지하철은 아침 출근때는
비싸다. 9시30분이 지나야 싸진다.
영국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책이나 신문을 많이 읽는다. 독서열에 대해서 한마
디하려고 했더니 그런 게 아니고 이유가 있단다. 남들이랑 눈맞추기 싫어서 그
런다나! 책 보는 데도 별 희한한 이유가 다 있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
해할 만도 하다. 나도 그럴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요새는 이동할 때 주로 버스나
지하철, 택시 같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 운전면허가 아직 없는 탓도 있지만
서울 시내 도로 사정이 나빠서 그 편이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하고 여러모로 간편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버
스나 지하철을 탔을 때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해대는 질문이다.
“전유성 씨가 왜 이걸 타셨어요?”다들 약속이나 한 둣이 똑같은 질문을 하
고 나는 똑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아니, 왜 이걸 타다니요? 당신과 똑같은 이유로 타지요.”
왜 타다니, 너무 뻔한 얘기 아닌가 말이다. 그런 재미없고 판에 박힌 질문 대
신 각자 개성있는 질문을 해준다면 일상이 좀더 신선해질것만 같다. 하다 못해
이런 질문이라도 좋다. “전유성 씨 등에 점 몇 개 있으세요?”아니면 영국 사
람들처럼 책을 읽든가.
지하철표 사면 버스는 공짜라니까 영국은 지하철 이외의 대중교통 수단은 황
인가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덧붙이자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대중교통
수단이 다양하게 발달해서 필요와 형편에 따라 골라 타기 좋게 돼 있다는 거다.
영국 택시는 여섯 명까지 탈수 있다. 택시요금은 내려서 낸다. 우리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잘만 뛰면 돈을 안 내도 될 텐데. 운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늙었고,
결정적인 것은 우측에 운전대가 있으니까 도망 가면 아무래도 출발이 늦잖아.
007영화처럼 혹시 차에 총 달린 거 아닐까? 운전대로 방향을 조정해서 피용!
007영화에 그런 신무기들이 많잖아. 영국이니까.
빈 택시가 시내만 돌아다니는 대신 시내에서 지하철로 30분이나 한시간쯤 걸
리는 곳에 나갈 때는 미니 캡이라는 걸 이용할 수 있다. 밤에는 그걸 타보는 것
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자가용과 마을버스를 합친것 중에 좋은 것만 골랐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종의 허가받은 나라시다. 멀리 갈 때는 그게 싸고 편하다. 지
하철이 끝날 때까지 구경하는 경우에는 말이다. 어디서 타느냐고 물으면 동네
사람들이 다 가르쳐준다. 스위스 시계 근처에 있고 플래닛 할리우드 앞에도 있
다.
나도 한번 민박집을 찾느라고 미니 캡을 타고 정신없이 왔다갔다 헤맨 적이
있다. 미니 캡 운전사가 지리를 몰라서 30분 이상을 헤맨 것이다. 우리는 미안해
서 내릴 때 팁을 많이 줬는데 가사가 굉장히 쭈뼛 거리면서 돈을 받는다. 나중
에 유학생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차비를 왜 줬냔다. 목적지까지 데려다준 게 아니므로 안 줘도 된다는 거다.
커다란 이태원 쇼핑센터 같은 안도라
안도라에서 버스를 타고 넘어가는데 2,407미터라는 팻말이 보인다. 세상에 태
어나서 비행기로 말고 제일 높은 곳을 지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내
가 여러 사람들한테 백두산 높이가 몇이냐고 물어봤는데 대답하는 사람들이 거
의 없더라는 사실이다. 거참 안타까운 일이지. 거의가 모른다. 2,774미터라는 걸.
대학생 아해들도 통 모르더라고. 그런거를.
우리가 놀러 다니다 보면 놀러 갈 때의 기분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무조건 놀러 간다고 기분이 다 똑같은 건 아니더라는 얘기다. 산에 가는 기분
다르고, 강에 가는 기분 다르고, 바다에 가는 기분이 다르다. 산에 갈 때의 기분
은 뭐랄까 좀 힘들잖아. 그러면서도 성취감 같은 게 있고, 바다에 간다면 좀 설
렌다든가 하면서 그 느낌이 또 다르고, 강이면 또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잠긴다든지 해서 다 다른데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어쨌든 좋다는 거다. 어딜
가든.
안도라 갈 적의 기분이, 우린 유럽여행을 갔잖아, 그러면서도 여행중에서도 꼭
어딘가 산엘 놀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는 거야. 배낭여행자들이 주로 관광지만
다니다가 자연, 산 쪽으로 가니까 색다른 기분으로 갔다는 거지.
안도라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마을이고 온 동네가, 도시 전체가 면세 지역이
다. 도시국가이기도 하다.
여기서 재미나는 거는, 산을 하나 넘어가야 되는데, 어떤 산이냐 하면, 왜 만
화영화를 보면 뾰족한 산이 있는데 마치 실을 잡아당기면서 종이를 돌리면 심이
나오는 색연필처럼, 딱따구리나 뭐 이런 애들이 삥삥 돌아서 올라가는 산 있잖
아. 그런산을 올라가야 되는 거다.
안도라라는 도시국가는 말하자면 커다란 이태원 쇼핑센터라고 생각하면 된
다. 막상 가보면 소핑센터만 있으니까 우리 같은 배낭여행하는 사람들한테는 별
볼일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담배들이 굉장히 싸다. 물건을 사면 CD를 끼워
준다든가 담배 끼워주기도 한창이다. 술 한 병에 티셔츠, 모자, 볼펜 심지어 우
산까지도 끼워준다.
우리는 쇼핑 이엔 볼 게 없어서 왔다갔다하다가 그냥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았다 간다는 것만으로 의미를 두고 돌아가버릴까 어쩔까 망설이다가 결국
‘볼 만한 게 설마 하나는 있겠지’하는 생각에 하룻밤을 자화ㅆ다. 그랬더니
정말 근사한 게 있긴 있었다. 온천인데, 현대적인 풀장이면서 사우나 시설에 디
자인이 정말 끝내줬다. 실내 실외가 다 돼 있는데 차갑게 되는 데도 있고 뜨겁
게 되는 데도 있고 아주 경치 좋은 데 자리잡고 있다. 스페인 돈500을 넣어야
락커 문이 잠기는데 나중에 그 돈 도로 찾아서 수건을 빌리면 된다. 300이다.
우리는 그렇게 온천을 잘 했는데 안도라에서 만난 노르웨이 노처녀둘을 온천
이 있는지도 로른단다. 그럼 이틀 동안 뭐했냐니까 쇼핑만 눈물 나게 했단다. 그
러게 노르웨이 여자나 한국 여자나 여자는 여잔가봐.
우리는 나라마다 토속음식을 먹어보려고 무지 노력을 하고 찾아 다녔는데 안
도라에선 못 먹었다. 중국 음식점에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도라의 토속음식은
뭘까 더나오는 날 아침에 생각이 들었다. 안도라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
니 여기 토속음식은 혹시 나물이나 버섯볶음이 아닐까.
호텔에 들어가 방을 잡는데 이 아해들은 스페인어를 쓴다. 영어를 도대체 못
알아듣는다. 할수 없이 이 아해들이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하면 우리도 한국말로
하자 그래 갖고 한국말로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산이 잘 보
이는 전망 좋은 곳으로 줘, 알았어?”그러자 아해들이 알아듣는다는 스페인어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말야, 시끄러우면 절대 안 돼 알았지?”이러면서 ‘돈은
깎아줘야 되고, 싼 방이어야 되고, 더불이어야 되고’막 그런 식으로 한국말로
쉬지 않고 둘이서 돌아가면서 얘길 했는데 결국엔 우리가 원하는 방을 순 한국
말로만 해서 얻어 들었다. 그래, 호텔 와서 방 얻었으면 됐지, 스페인어 못한다
고 기죽을 것 없다. 호텔에서 방 주는 아해하고 토론 벌일 일 없잖아?
키를 딱 받아서 방에 들어가 창을 여니 전망이 정말 좋다. 멀리 높은 산이 보
이고 가까이로는 깎아지른 벼랑에 절묘하게 지은 집들이 아름답다. 잠시 누워
텔레비젼이라도 보려고 하니 우리의 시골 여인숙에도 있는 텔레비전이 없다. 다
른 데는 있는지 몰라도 우리가 묵은 호텔에는 없다. 습관적으로 심심하면 텔레
비전을 켰는데 정말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래! 여기까지 와서 무슨 텔레비전
이냐, 자연에 와서 자연을 감상하는 게 낫지!”하면서 창밖을 내다보니 정말 산
의 모습이 장관이다. “이런 데 화서 무슨 TV냐”하는 주인 아저씨의 배려가
새삼 고맙지는 않고 깊은 뜻은 알겠다(나중에 보니까 텔레비전 보는데가 로비에
따로 있었다)
석양의 하늘, 구름, 자세히 들으면 들리는 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 정말 좋다.
서점에 가면 책 계산대 옆에 늘 쌓여 있는 엽서와 책을 본적이 있다. 엽서만 한
두 개 살 뿐 책은 안 샀는데 “우리꽃 백 가지”책을 사서 꽃 이름을 외우리라
는 결심을 산으로 쌓인 안도라에 와서 했다. “우리 나무 백 가지”도 사야지!
여기와서 보니까 산에 나무들도 많고 이름 모를 나무가 울울창창이 있다. 이름
모를 나무라고 얘기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그걸 사서 보고 좀 구체적으로 쓰는
게 좋지 않겠나 생각을 하게 된 거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습관적으로 머리맡 리모콘을 찾으려다가 “아참, 여긴 없
지”하면서 창문을 연다. 근데 나는 이럴 때 자꾸만 딴 생각이 든다. 혹시 우리
방 것만 고장 나서 수리 맡긴 건 아닐까?
창을 여니 온 산에 눈이 와서 하얗다.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렸네!”그런데 오
후 2시쯤 뚤루즈에 아니까 “아이고 더워 미치겠네”다.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렸
네 히놓고 아이고 더워 미치겠다 그러는 게 여행자들 한테나 가능한 거잖아. 그
것도 하루에 말이지.
안도라 역사 연대기를 들어보는 역사공부도 좋지만 안도라 자연속에 묻혔다가
설명 안 듣고도 저절로 나오는 감탄만 하고 오는 것도 좋은 일이다.
나도 여행이라며 이나라 저 나라를 다니고 있지만, 입센을 보고 싶고, 안데르
센의 인어공주, 성문 앞 우물 곁의 보리수를 보고 싶고, 노트르담의 꼽추를 보고
싶고, 애국심의 네덜란드 소년, 오줌 누는 소년을 보고 싶지 역사를 듣고 싶지는
않더라!
그러니까 우리가 여행을 다니면서 쉴 줄도 알아야 된다는 거다. 내가 보기에
외국 나가는 거 처음이면서 배낭여행 나오는 이들이 8,90퍼센트는 될 거라고 추
정을 하는데, 그래서인지 관광을 해야 되는 곳과 쉬어야 할 곳을 구분을 못한다.
가령 안도라라든가 니스, 모나코 같은 곳은 휴양지기 땜에 정말 휴양을 해야 한
다. 쉴 줄도 알아야 더 잘 보이는 거다.
니스 해변에서 한국 여학생 식별하는 법
니스에 가면서 우리의 고정관념은 바닷가에 있는 호텔은 비싸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쌀 거라는 거였다. 또 호텔에 수영장이 있으면 비싸고 없으면 쌀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가 않다. 바닷가 가까운 곳에 있어도 싼 호텔들이 많다. 한
시간쯤 바닷가 바닷가를 거닐어보면서 호텔을 선택하는 것도 괜찮을지 몰라! 수
영장이 없는 것같이 보이는데 지붕에 수영장이 있는 호텔도 있고, 바닷가에 있
는 우라지게 비싼 호텔들이지만 수영장이 없는 곳도 있다. 꼭 참고해라! 니스 역
옆에도 호텔들이 있는데 거기가 되레 비싼 데도 있다.
언뜻 보면 중국 사람 일본 사람 한국 사람 구분이 잘 안 갈 적이 많은데 니스
해변에선 틀림없이 우리 아해들을 구분하는 요령이 있다. 멸리서 보면 백사장에
청바지를 입고 누워 있는 여학생들이 있는데 그런 아해들은 백발백중 한국 아해
들이다. 해변에 선탠하려 내려가다가 내가 먼저 여자 아해들에게 말을 걸었다.
“너 한국 사람이지?” “네!”하는 대답이 바로 나온다. 전부 수영복 차림이었
는데 그네들만 청바지를 입고 누워 있었다. 우리 아해들은 왜 벗는 걸 싫어하는
걸까?
니스 해변엔 벗은 아해들이 굉장히 많다. 대부분 윗도리는 훌러덩 벗은 모습
이다. 이젠 처도 같은 편이 되어 “저기 봐! 저쪽이 젊은 애야”하고 손짓으로
가르쳐준다. 배낭족 여자 아해들을 세 명 만났는데 대개 다 민망하다고 그런다.
처음에는 자기네들도 야외에서
벗었다는 거에 대해서 신기하게 생각하고 쳐다보고 그랬는데 이젠 그저 그렇단
다. 하기야 여자 배낭족 아해들 지들끼리는 목욕탕에서도 보고, 볼 기회가 많잖
아. 그러니 별 신기하게 생각 안 할 수밖에.
그런데 정작 네덜란드 바닷가에서 만남 한 한국 할아버지는 여자 아해들이 옷
을 홀랑 벗고 있는데 욕을 하고 난리다. “자지도 쪼그만 놈들이... 계집년들이...
”막 그러는거다. 듣다 보니 화가 난다. 남이야 크든 작든, 벗든 입든 무슨 상관
이야. 아니 그러면 자지가 크면 내놔도 된다는 거야? 작다고 흉보면서 거기 왜
서 있어. 큰 놈만 장땡인가. 유머야 뭐야?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그러고
보니 브리지드 바르도도 미친년이다.
남의 날에서 개를 먹든 말든 지가 무슨 상관이나?
언젠가 야구해설가 하일성 씨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라디오 프
로그램에서 전화 인터뷰를 하는데, ‘배꼽티를 입은 여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
가’하는 질문을 여러 명에게 했단다. 젊은 아해들은 “어떠냐? 시원하고 좋지
않으나?” “유행이다”등등의 대답이 나왔고 나이 드신 분들은 말도 안 된다는
둥 도덕군자님들의 말씀들이 여러 명 오갔는데 그 중 50대 한 분에게 질문을 하
니 입가에 웃음이 가득 띤 목소리로 대답하식를 “우리아 뭐 고마울 따름이죠!
”하고 대답을 했단다.
마찬가지다. 니스 해변의 윗도리 벗고 누운 아해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
도 여행의 피곤함을 풀어주는 피로회복제 박카스라고나 할까 헤포스라고 할까?
(헤포스는 최근 유럽여행 중에 파리까지 연략이 와서 광고 찍어간 피로회복제
이름이다. 내가 헤포스라는걸 한국에서광고를 좀했는데 유럽여행 간 걸 알고 이
팀들이 파리로 온거야. 유럽에서도 헤포스가 좋더군요, 이런 카피를 써가지고 와
서 찍었지. 근데 실제로 유럽에 가니까 있긴 있어, 똑같은 게. 나는 찍으면서도
남들이 ‘전유성이 자식이 우럽까지 가서 광고를 하고 말야,
몇 푼 건지는구나‘ 뭐 이런 생각하겠지 했는데, 실제로 몇푼 건진 걸로 잘 쓰
고 왔어.
더 재미나는 있는데 그게 뭐냐면, 헤포스 찍을때 거기 약사가 흑인이었거든, 그
런데 여기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얼굴을 백인으로 바꿔 버렸어.)
니스 해변은 모래가 아니고 자갈이다. 우리가 들어간 시간이 7월 11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였는데 물이 굉장히 차다. 바닷가에 토막을 죽 쳐놓고 입
장료를 받는데, 레스토랑도 만들어 놓고 한 게 꼭 우이동 같은 데, 파라솔 쳐놓
고 자릿세 받는 것 같다. 자갈이라 안좋은데 하나 좋은 점은 모래가 안 묻는다
는 거다. 대신 무진장 배긴다. 그냥 알아서 자갈밭에 누우면 되는데 그렇지 않고
매트리스에 누우려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된다. 호텔에 묵는 사람은 호텔에
서 매트리스 이쓴 곳에 들어가는 표를 하나 준다.
우리는 첫날은 그냥 자갈밭에 누웠다가 저녁에 호텔로 들어오면서 그런 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 그렇지! 이런 게 있었구나’하며 그 다음날 표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해변을 주인 아주머니에게 물어서 두 장이면 되는 것을
‘혹시 들락날락할지도 몰라’하면서 열댓장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호텔에서 지
정해준 해변을 찾아갔다. 표를 내고 들어가려고 하니 이건 입장권이 아니고 호
텔에서 발행하는 할인권이란다. 돈을 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돈을 안 받
을 리가 있나? 티켓 열댓장 가져온 것이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들어보
니 호텔에 매트리스가 다 있으니까 프론트에 가서 달라고 얘기해 받아가면 된다
고 그런다, 이런!
호텔에서 할인권 준 데로 찾아가 누웠는데 웬 늘씬한 여자가 수영복을 상표
꼬리가 달린 채로 입고 걸어온다. 이상해서 쳐다보니 다른 수영복을 갈아입고
역시 상표를 달고 왔다갔다하며 걸어다닌다. 알고 봤더니 혼자서 수영복을 팔러
다니며 일인 패션쇼를 하는 것이다. 혼자서 빙빙 돌고 갈아입고 다시 오고, 정말
쇼다. 갈아 입는 건 어떻게 해결하나 했더니 아랫도리는 미리 입은 수영복에 4
개, 5, 계속 겹쳐 입고 윗도리는 서슴없이 벗고 갈아입는다. 야,탈의실 이용 안
해서 편리하더구만. 사입는 아주머니들도 더러 보인다. 그러고 보니 유럽 여자들
은 해변에서 수영복 갈아입기 정말 좋다. 밑은 큰 타월로 가리고 위는 누가 보
든지 말든지 훌러덩! 벗으면 끝이잖아.
자갈뿐인 니스 바닷가에 큰 타월 한 장이랑 매트를 깔고 누웠는데도 등이 배
긴다. 좋은 건, 벗고 누운 여자 아해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는 거다. “자갈밭
에 누워 외로운 물새 될까, 뚜뚜두 뚜두 뚜두뚜뚜두”이 노래 부르던 대학가요
제 출신의 높은 음자리 아해들은 지금 뭘하고 있을까? 자갈같이 많은 연예계의
신인들!
아이디어 하나, 걸어다니는 수여복 말고도 니스 해변 상점에는 수영복 입은
마네킹이 굉장히 많이 진열돼 있다. 거기다 모래를 묻히면 더 실감나지 않으까?
아무래도 엉덩이나 등짝 같은 데 모래가 좀 묻어야 해변 분위기가 나지 않겠어?
이태원서 위조풍 사가는 프랑스 위조방지조사단
니스에 구치 가방 파는 데가 있다. 그냥 구경하러 들어갔다. 일하는 여자가 8
만 프랑짜리를 1만6천 프랑이라고 말한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 몇 번 확인
을 해도 1만6천 프랑이란다.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저거보다 좀 작은 가방은 없
냐고 하니 카탈로그를 꺼내어 여기저기 넘겨가면서 값을 설명해 준다. 거기에 8
만프랑이라고 씌어 있다. 조금 전에 1만6천
프랑이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하니까 자기가 잠시 착각을 했단다. 우리는 구치
가게를 나오면서 동시에 말했다. “아까 1만6천 프랑이라고 할 때 얼른 살걸!”
하고, 잠시 후 “그런데 돈은 있나?”하는 말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여기 가이드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구치 같은 것은 파리에서도 없어서 못 판다
는데 한국 관광객들이 와서 집에 하나씩 다 있다고 하니 돌겠단다. 겔랑이라는
화장품은 무조건 매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손님 봐서 들여보낸다고 하니 알
아서 차려 입고 가라는 거다.
구치나 피에르 가르뎅 같은 프랑스 제품을 위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사
단이 전세계로 파견이 된단다. 우리나라 이태원에 온 조사단은 자기 나라 제품
이 하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걸 보고 감탄을 한단다. 그래서 위조품을 사가지고
와서 마누라에게 선물하기도 한대나? 그래서 그런 것들만 모은 위조박물관이 파
리엔 따로 있단다. 파리 가면 꼭 가봐야지!(나중에 가서 봤더니 볼펜서부텀 속내
의, 팬티까지 전세계에서 프랑스 거랑 다른 나라 우명 브랜드를 위조한 제품들
이 다 진열되 있다. 우리나라 제품도 적지 않다. 이런 박물관엔 없어도 되는데
왜 꼭 끼는지 원)
세계적인 휴양지라 부자들만 올 거라고 생갹해서 그런지 니스는 물건 값이 엄
청나게 비
싸다. 마음에 들어서 큰맘 먹고 조끼를 하나 사러 들어가면서 500프랑 정도면
무리를 하자 했더니 2,700프랑이란다. 거지 같은 놈들, 그 돈이면 내가 두루마기
를 하나 만들어 입겠다.
간밤의 숙취로 새벽잠에서 깨어났다. 속이 안 좋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이
안 온다. 화장실에 갔다가 잠이 안 와서 TV를 켰다. TV를 보다가 스르르 잠이
오는데 끄기가 싫어서 개기다가 TV소리에 잠을 못이뤘다. 비몽사몽간에 한 시
간 반을 버티다가 TV를 끄고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이런 세상에! 고 잠시 사이
에 잠이 달아나서 눈만말똥말똥! 밤을 꼬빡 새웠다.
국영 카지노를 먹고사는 모나코 아해들
모나코라는 나라는 앞이 바다 그리고 항구다. 산 중간에 길이 길게 나 있는
게 부산 동광동 같다. 언덕이 많아 그런지 이상하게 연구한 길들도 많다. 언덕과
언덕 사이에 구름다리 길 같은 게 있으면서 한쪽은 그렇게 일방통행으로 만들어
놓고 밑으로 내러가면서는 계단을 만들어서 희한하게 해놨는데, 지네들 딴에는
머리 굴리고 굴려서 합리적으로 만드ㅌ 길이겠지 뭐!
해양박물관에서 버스를 타고 카지노에 내려 달라고 버스기사에게 부탁을 했
다. 그런데 그놈이 알았다는 것처럼 얘길 하더니 망을 안 해줘서 종점까지 갔다.
느닷업시 종점이라고 내리라는 거다! 어쩐지 이상하게 버스가 산꼭대기로 계속
올라가더라니. “우리가 키지노에 간다고 했잖아! 못 내려!”우린 그러면서 안
내렸다. 책 내용을 보면 카지노를 하면 거의 다 잃는다는 얘기가 있거든. 그런데
그렇게 잃어주는게 모나코 시민들을 돕는 길이라고. 얘네들은 그걸로 먹고사니
까 하는 자부심에 약간의 건방을 떨면서.
사실 여기는 국민들이 세금도 내지 않고, 국가예산 자체가 관광수입과 국영
‘그랑카지노’의 수입이란다. 국가차원에서 도박을 권장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국가의 사활을 걸고 도박을 장려해야 되는 이상한 운명의 나라인 거다.‘우린
돈 낼 수 없어 임마, 다시확실하게 해 “ 그러고는 그 버스를 타고 도로 내려왔
다. 어떻게 보면 버스비 싼값에 몬테카를로를 한바퀴 돌아본 셈인데 그것도 나
쁘진 않았다. 잠시 후에 카지노가 있다는 곳에서 내렸다.
도박장의 교훈이 있는데 뭐냐면 늦게 들어가서 늦게 나오라는 것이다. 성질
급한 놈이 빨리 들어가서 빨리 일고 빨리 나온다는 뜻이겠지? 라스베가스하고
다른 게 거긴 왕립 카지노장이 하나뿐이 없다. 또 라스베가스는 아무 호텔에나
다 들어갈 수 있는데 여긴 다르다. 학생들은 거의 다 슬롯머신(파친코)을 하는데
한도가 100프랑이다.
왕립 카지노장에 들어가니 굉장히 으리으리하고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다르다.
역사가 앴는 고전적인 건물이다. 슬롯머신은 문간방에 있고 정식게임방은 안에
있단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란다. 슬롯머신은 무료다. 도박하러 온 것도 거의
잃을 확률이 많은 판에 입장료를 내라니! 정말 도둑놈들이라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도박으로 먹고 사는 동네라니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돈을 내려고 하는데 입장료 받는 아해의 태도가 건방지기 짝이 없다. 입장료
받는 자리에 앉아서 지네들끼리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손님에게
는 눈길 한번 안 주고 말만 “한 사람당 5프랑 주세요”하면서 사진 보는 데 열
중이다. 뚜껑 열리대! 이게 기분을 상하게 해서 돈을 잃게 하려는 고도의 상술인
가? 돈을 눈앞에 보여주니 그때야 돈을 쳐다보며 사람은 역시 안 쳐다보면서 패
스포트를 보여 달란다. 우리는 니스에서 가벼운 차림으로 카메라와 돈만 들고
출발을 하였으므로 당연히 여권을 안 가지고 갔고 도박하는데 무
슨 패스포트를 보랴 싶어서 챙기지를 않았다. 근데 안된다는 것이다. 이거 사정
을 해볼까 하다가 ‘관두자, 집에 가자’하고 두말없이 돌아서는데 이 물건이
아직도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뚜껑 열린 머리에서 김이 술술 나기 시작한다.
모나코를 갈 때부터 “두 시간만 하자” “한시간만 해라” “시간이 문제냐?
액수가 문제지!”하고 티격태격했는데 막상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열받는
일만 생기다니.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돌아오면서 택시기사에게 하소연을 했다. “너희 나
라 너무한 거 아니냐! 무슨 도박장에서 패스토트를 챙기냐! 우리는 니스에 놓고
왔기 때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길이다.”그랬더니 기사가 하는 말, “
그럼 패스포트 가지고 다시 올 거냐”그랫 한국말로 쏴줬다.“깠니? 이놈아! 다
시 오게?!”
내려서 택시요금을 보니 44프랑이 나왔다. 200프랑을 내니 이 자식이 150프랑
스만 주면서 6프랑을 꿀꺽해버리네! 기차역에서 물을 사러 갔더니 물값도 제일
비싼 15프랑이다. 이래저래 열받는 게 쓰리고에 피박 쓴 기분이다. 꾹 참고 기차
를 기다리는데 이제는 기차까지 연착이다. 분명히 안내판에는 1번 플랫폼이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기차가 3번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거 있지. 고스톱 쳐서
돈 잃고 광값 물어주는 일까지 남아 있었던 것이다. 떠날 때까지 끓는다 끓어!
이것도 무슨 도박하면서 번호 맞추기 하는 거냐? 1번 예상해놓고 3번이면 왕창
쓰고...
모나코에서 돌아온 후 열받아서 그럼 니스에도 카지노 시설이 있는가 알아보
니 몇 군데 있단다. 가자, 가서 썩은 무라도 한번 찔러보자 하고 우리는 물어물
어 그날로 도박장을 찾아갔다. 그런데 입구까지는 갔는데 출입금지란다. 처의 반
바지가 안된다는 거다. 그냥 반바지는 되는데 청바지를 너덜너덜하게 자른 ‘빨
리빨리’는 안된다는 거야. 그래서 그걸 안으로 집어 넣었다. “그럼 이렇게 하
면 되느냐?”고 했더니 윙크를 얼른 하면서 봐줄 테니 들어가란다. 들어가서 게
임룸을 찾았더니 여기는 정장이 아니면 안된단다. 입장료는 없더군! 양복 입은
체면에 돈 잃고 깽판 칠 수 없게 하려고 그런 건지! 그러면서 슬롯머신은 지하
에 가서 할 수 있단다. 들어갔지. 200프랑을 바꿨지! 슬롯머신에 앉았지. 3분도
안되어 모두 갖다바쳤지.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김샜다. 열받네. 하루종일! 그날 밤 나는 만화를 그리
기 시작했다. 영화처럼 콘티를 그리는 거야. 음, 딱 들어간다, 그런데 걸린다.
“여기 양복 입은 사람 아니면 안되는데요.”
“그래? 그럼 지배인 좀 불러줘.“
“제가 지배인인데요.”
“음, 그래, 자네가 지배인인가? 양복을 안 입어서 안된다면 말이지, 이 호텔
에 양복집은 있는가?”
“없는데요.”
“그래 놓고 무슨 장사를 하려고 하나. 자네 종업원 중에서 나하고 체격이 비
슷한 친구를 빨리 찾아서 그 친구 양복을 내게 가져오게. 내일 아침 내가 전 종
업원의 유니폼을 바꿔주겠네.”
헛소리 팍! 팍!
유럽 최대의 슈퍼마켓에서 돌멍게를 발견하다
칸느, 니스, 모나코는 모두 근처에 있다. 7월 14일 예정인 파리의 혁명기념일
전야제 행사 때문에 세 군데 중 칸느를 포기하기로 했다. 칸느영화제가 5월초에
이미 끝나버려서 가도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것 간은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니스를 가면서 칸느를 폭한 것이 못내 아쉬워서 헬리콥터를 타면 10분이면 간
다기에 한번 타보려고 한 사람 앞에 200프랑 정도면 무리를 해보기로 했다. 가
는 시간을 물어보니 시간이 따로 없고 손님이 5명 모이면 간단다. 5명까지 기다
리기 귀찮거나 바쁘면 2천 프랑에 28프랑 세금을 내면 아무 때나 출발을 한단
다. 쉽게 말해 양재동에서 성남 가는 총알 택시와 운영체제가 비슷하다. 총알 헤
리콥터로구만. 하고 씁쓸하게 한마디하고 칸느를 다시 한번 포기하기로 했다. 대
신 기차 타고 칸느를 지나갈 때 열심히 차창 밖을 내다보기로 했지! 차창 밖으
로 칸느 가는 헬리콥터를 바라보기만 했네!
모나코에는 유럽에서 제일 큰 슈퍼마켓이 있는데 거길 갔다가 돌멍게를 발견
했다. 아마 자연산일 것이다. 해양수족관에선 해삼을 발견했다. 자개 공예품도
발견했는데 전복 껍질로 만든 게 우리랑 거의 같다.
모나코 해양박물관을 60프랑 내고 관람하다가 배낭족 학생들을 만났다. 60프
랑, 이거 좀 비싼거 아니냐고 했더니 하는 말이 “학생은 30프랑인데요.”열받
네, 학생이면 덜 보냐? 그 학생들 나보다 먼저 들어가서 나 나올 때까지도 안
나오던데. 모나코 기차역에서 파리로 가려고 차를 기다리고 서 있는데 건너편의
한국 배낭족 여자 아해들이 로마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플
랫폼에서 큰소리로 말한다. “로마에 가면 진짜 소매치기 많아요!”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한번쯤 가벼운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도 인생의 살아
있는 교훈이 되지 않을까. 여행이란 예측할 수 없는 일을 극복해나가는 용기와
지혜도 필요한 것이니까? 그러나 이게 말은 그럴듯하지만 남이 물건 잃어버렸을
때나 해줄 수 있는 말이지 나한테 그런 일이 닥치면 얼마나 열받을까?
7월11일, 모나코에서 기차 타고 니스에 같이 온 건국대 건축공학과 다니는 학
생, 오늘밤은 노숙할 거라고 하던데 노숙은 잘했을까?
아직고 사람이 사는 까르까손느 성
어느 성이나 다 특색이 있겠지만 내가 다녀본 성 중에는 프랑스의 까르까손느
성이 참 인상적이었다. 다른 성들은 역사적인 유물들이 주종을 이루는데 까르까
손느 이성은 그 당싱의 자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
다는 것이 그렇게 좋게 보였다. 그 사람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었
는데 가게가 고풍스럽고 다른데서는 안 파는 상품들이 눈에 많이 띄어서 더 좋
았다.
파리의 웬만한 성에는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는데 까르까손느 성에는 입장료가
없어서 이게 웬일이냐며 좋아했는데 한참 들어가니 입장료를 받는 곳이 니왔다.
역시 내가 순진해, 장사하는 곳은 이익금이 입장료인데 입장료 받는 곳은 장사
하는 데가 아니고 역시 유물을 보여주는 곳이다. 그러니 입장료를 받지이-(개그
맨 이홍렬 말투)!
내가 거길 간 이유는 이름이 재미있어서였다. 80년대말 ‘까르까손느’라는
이상한 이름의 카페가 이태원에 있었다. 개그맨 김한국이 개발한 카페인데 실내
장식도 제법 돈을 들였고 분위기도 근사해서 자주 갔었다. 그땐 무슨 말인지도
몰랐는데 파리에 와서 남부지방 지도를 보니 까르까손느라는 지방이 있어서 꼭
가보고 싶어서 갔다 온 거다.
김한국이가 어느 날 까르까손느 카페에 갔는데 커다란 쥐 한마리가 지나가더
란다. 한국이가 놀라서 종업원에게 “야 카페에 쥐가 왔다갔다 하면 되냐? 놀랬
잖아!”그랬더니 종업원이 정색을 하고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그러더란다. “아니
에요, 다람쥐예요”분명히 쥔데 증거가 없으니 어떡하나? 주인 아저씨가 취미로
기르는 다람쥐라는데 말이다.
유럽에서는 택시가 우리처럼 아무데나 막 다니지 않는데 까르까손느 택시도
역시 그랬다. 성에 가면서 반나절밖에 시간이 없어서 역에서 택시를 불러 탔다.
택시를 타면서 보니 택시정류장에 택시기사 전화번호가 크게 써 있어서 나중에
그 번호로 택시를 다시 불러서 탔는데 손님들을 위한 배려가 아주 그만인 아이
디어였다. 택시기사에게 우리가 성을 한번 보고 나오는데 밖에서 기다려줄 수
있냐고 했더니 기다리면 돈이 많이 나오니까 전화하라면서 가르쳐주고 가는 것
이었다. 나중에 이 기사를 다시 기차역에서 만나게 됐는데 영어를 조금 할줄 알
길래 영어를 못 알아 들으면서 성질을 부리는 역무원에게 통역사로 잘 써먹었
다.
이 역무원 놈이 웃기는 게, 보통 유럽 아해들에게 길을 물어볼 땐 종이에 목
적지를 보여준다고. 그러면 대부분은 알아보고 손짓 발짓으로라도 얘길 해주거
든. 그렇지만 간혹 영어로 이야기를 하면 못 알아 듣고 성질을 내는 놈도 있다.
이놈이 그런 놈인데 막 얘기하다 말고 문을 꽝 소리나게 닫고 막 성질을 부리는
거야, 창구에 있는 자식이 더럽게 못도니 자식이더라고. 보통 지도에 표시하면
다 알아듣고 응해주는데 못 알아듣고 신경질을 낸 거지.
그건 자존심하고 관계없는 거라고, 지가 못 알아듣기 땜에 그런 거잖아 자식!
우리는 성질 없는 줄 아냐? 그래서 사람 사는 데는 좋은 놈도 있고 나쁜 놈도
있는 거지, 우리만 불친절하거나 무뚝뚝한게 하니라는 거다.
아비뇽 페스티벌을 보니 눈물이 난다
아비뇽 페스티벌. 한국에 알려진 이름으로는 연극 페스티벌이다. 내가 연극연
출을 전공했잖아. 그러다 보니까 아비뇽에서 제일 많은 사진을 찍었고 감동도
제일 많이 받았고 거리 퍼포먼스 그런 것들을 보면서 마구 눈물이 날뻔했다.
아비뇽 연극제는 젊음이 철철 넘친다. 거리공연, 마술사, 차력사에 별의별 공
연이 다 있다. 그렇다고 젊은이들만 오는 게 아니라 나이 든 관광객들도 많이
온다. 정말 좋은 기획이다. 도시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보기좋다. 그러
니 부수적으로 레스토랑 호텔 옷가게 등등 도시경제가 살아난다. 대학로에 소극
장이 많아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카페가 생기고 사람들이 넘쳐나서 젊은이의
거리가 되듯이 말이다. 작년 한 해만도 축제 기간중 이 도시가 벌어들인 돈이
우리 돈으로 수백억 원이 넘었다니 그야말로 도랑 치면서 가재도 잡는 짭짤한
기획이다. 굳이 상술로 치자면 제발로 돈을 들고 찾아오게 만드는 고급상술이
아닌가.
여기는 소극장이 너무너무 많지만 찾기도 쉽게 해놨다. 공연자들이 자기네 연
극을 알리기 위해 준비해온 것들도 다양하다. 포스터 전단은 물론이고 거리에
나와서 벌이는 홍보전도 치열하다. 경찰 두 명이 나오는 연극은 출연자가 정말
경찰차를 타고 나와서 광고지를 나눠 주는가 하면 아주 귀엽게 생긴 미국 극단
의 여자 아해는 자유의 여신상 옷을 입고 거리에 서서 여신상과 같은 포즈로 서
서 전단을 나눠주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빨간 콩 한 알을 나눠주면서 이
따가 자기네 공연때 콩알을 가져오면 20프랑 할인을 해준다고 한다.
가짜 피아노를 손수레에 끌고 다니면서 음악극을 광고하는 아해들도 있다. 역
시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빨래집게를 옷에 집어주면서 공연장에 와서 보이
면 무료라고 선전한다.
우리는 그 집게를 가지고 저녁에 음악극 공연을 보고 갔는데 말 그대로 공짜였
고 굉장히 재미있었다. 장난 같은 빨래집게지만 안 가지고 온 사람에게는 85프
랑을 확실하게 받는 것이다.
또3인승 자전거를 만들어서 앞에 한명, 뒤에 한명이 타고 가운데는 뼈다귀로
사람을 만들어서 해골이 자전거 가운데 타고 바퀴를 젓게만든 것도 있고, 어떻
게 구했는지는 몰라도 할리 데이비슨이라느 최신형 오토바이가 20여 대 도시의
길을 가로지르고 폭주족들이 내는 소리를 내면서(소리만 내면서)아주 천천히 달
리기도 한다(천천히인데 달린다는 표현이 맞나?). 천천히 오토바이가 나가면 모
든 자동차는 할수없이 오토바이 뒤에 있는 죄(?)로 천천히 갈 수밖에 없다. 폭주
족이라고 해서 안좋은 것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오토바이를 가지고 그것도 젊
은 아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할리 데이비슨으로 연극광고를 한다는 것
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아주 오래 전 70년대 초반, 에저또 극당니라는 데서 길거리 연극을 처음시도
할때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붙들려가던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막 나오려고 했다.
도시 전체를 연극 포스터로 가득 채운연극제, 그것도 한달 간이나. 정말이지 부
러워서 눈물이 흘렀다.
이사람들은 포스터를 아무렇게나 막 붙이는 것이 아니로 라면박스를 뒤에 대
고 앞에다 포스터를 붙이고 끈으로 달아놓는 것이 우리와 다른 점이다. 온 동네
를 풀칠을 해서 붙이는 게 아니고 또 남의 것 위에다 겹쳐서 붙이지도 않고 벽
에다 함부로 막 붙이느 것도 아니다. 광고전단도 아무나 막 주지 않는다.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만 주면서 받은 사람데겐 꼭 설명을 해주는 것이 우리와 다르
다. 연극을 볼 마음이 있든 없든 길거리에 막 뿌리다시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심을 보였으니 전단 받은 사람이 근처에 막 버릴 일 또한 없는 것이다. 포스
터자체도 재미있는 게 상당히 많아서 종일 구경해도 지루하지가 않다.
포스터를 대강 훑어보고는 미령이와 무슨 공연을 볼 것인가를 정하면서 심하
게 변덕을 부렸다. “이것보자. 아니. 저것보자. 안볼래. 저것볼래. 이게낫지않을
까”이걸보러 극장을 찾아서 골목길을 가다가 “아니야, 저걸로볼래. 요건 또 어
떨까?”이 난리를 치니 처가 심하게 투덜댄다. 빨리 결정을 하란다.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보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아깐 안 본다고 하더니 지금은 보자고?
뭐, 또 안 본다구?”나도 미치겠더군.
변덕을 부린 이유는 간단하다. 뭘 봐야 좋을지 모르겠는 거야. 구경거리가 놈
많다보니 말이지. 이걸 보자니 저것도 보고 싶고 이것저것 많이 보고 싶어서, 나
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서 그랬다. 결국 처는 음악극을 보자,나는 연극을 보자
고 주장하다가 둘이 합쳐진 뮤지컬을 봤다. 공짜 집게를 갖고 가 무료로 보게
된 음악극이었다.
그걸 보다 보니 그 옛날 유머 하나가 떠올랐다. 어렸을 적에 자기는 의사가
아니면 절대로 시짐을 안 가겠다는 여자 아해가 크더니 어느날 군이한테 시집을
가겠다고 그랬단다. 그래서 그 아버지가 궁리 끝에 군의관한테 시집을 보냈재
나...
그 음악극이 아주 재미나는 게 뭐냐면, 무대에서 셋이 노래를 한다. 이태리 가
곡을 부르는 거다. 네다섯 명이 연주를 하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떡하니 조명
을 받고 앞으로 나온다. 일절 끝날 때쯤 바바방 하면서 피아노 간주를 하면서
이 사람이 인사를 딱 하고 들어가는데 그게 굉장히 멋지다. 그러니까 악기 연주
끝나고 노래가 나오는데 1절이 끝나고 등장해서 피아노로 간주만 하고 바로 퇴
장하는 거다.
그리고 또하나는 피아노 옆에서 막 노래를 하면서 노래 부르는 사람이 피아노
뚜껑에 손을 대는 거야. 그런 경우 있잖아 왜, 그러면서 이사람이 손을 탁 드니
까 피아노 치던 사람이 왼손으로 피아노를 막 치면서 양복 주머니에 있던 손수
건을 오른손으로 딱 꺼내더니 거길 막 닦는 거야. 그리고는 손수건을 딱 집어넣
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둣이 두손으로 피아노를 계속 치는데 노래 부르는 사람이
또 거기를 짚으니까 이 피아니스트가 이번엔 앞주머니에서 슬그머니 권총을 꺼
내더니 막 쏴. 그러자 총에서 물이 막 나오더라고. 룰총인 거지. 노래부르는 사
람이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 있는데 그걸 딱하니 넣고 다시 태연하게 피아
노를 막 치는 거야. 그게 너무너무 재미있더라고.
그렇게 많이 웃고 즐겁게 본게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걸. 우리와같이 뮤지컬
을 보던 여자 하나는 그걸 보면서 갑자기 미친년처럼 큰소리로 웃는 거야. 웃음
소리 하나는 정말 무지하게 크더라고. 깜짝 놀랐어. 하긴 웃는 것도 우리는 마음
놓고 못 웃잖아. 눈치나 보고. 그렇게 통쾌하게 웃는걸 보니 놀라긴 했지만 좋아
보이더라고.
아비뇽 감옥일기 쓸 뻔한 이야기
귀스킨트의 향수 를 읽는 도중에 내 코에도 이상한 냄새가 나다. 이게 무슨
냄새지? 코를 벌름거려본다. 짬뽕냄새다. 프랑스 아비뇽 호텔 3층에 짬뽕냄새라
니...!
아니야. 자세히 맡아보자. 고기 삶는 냄새 같다. 우리 방이 3층인데 창문도 닫혀
있고 길에서 올라오는 냄새도 아닐테고... 둘러보니 앗! 베개에서 연기가 난다.
침대 머리맡에 등이 하나씩 달려 있는데 그게 한사람 앞에 하나씩 켜지게 되어
있다. 새벽이라 스위치를 올리고 책을 보는데 옆사람이 눈이 부시면 잠이 방해
가 될것 같아서 태쪽은 그냥 놔두고 옆사람 머리맡에 있는 등을 베개로 막아놓
았는데 시간이 오래 지나 그만 베개가 탄 것이다.
연기가 본격적으로 풀풀 올라온다. 얼른 베개를 들어보니 시커면 등자국이 둥
그렇게
나고 안에 있는 새털로 불이 옮겨붙어서 타고 있는 중이다. “어머나 놀래라!”
얼른 온방의 불을 켠 뒤 베개를 들고 화장실로 달려가 물 속에 집어넣었다. 하
마터면 세계여행이고 뭐고 방화범으로 감옥여행을 할 뻔했다. 우리는 서둘러 체
크아웃을 마치고 나왔다. 일부러 베개 태웠다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판
단하고 호텔을 무사히(?) 빠져 나왔다. 역까지 걸어가면시 혹시 호텔에서 우리를
따라오지 않을까 별 걱정이 다 되었다. 아니지, 왜 따라와, 우리가 자려는 역에
먼저 택시를 타고 나와 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알리바이를 어떻게 만들지? 불
켜놓고 샤워 후에 나오니 그렇게 되었더라고 할까? 아니야, 두명을 따로 불러서
조사하면 말이 달라질지도 몰라! 경찰이 도착해 한국말을 못하게 따로따로 떼어
서 데리고 가겠지. 그렇다면 신문에 방호범으로 나오고,고국에서 알게 되고,사람
들은 궁금해서 입방아를 찧을 것이고, 여행가는 게 부러웠던 사람들은 우리를
고소하게 생각할 거야. 양락이가 한마디할 것이고, 성미도 깐죽거리겠지. 그렇다
면 유럽여행, 아니지 아비뇽 감옥일기를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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