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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페이스북은 어떻게 우리를 단절시키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가

by Casey,Riley 2020.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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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민주적 지성적 문화의 타락을 부추긴 세계 최강이자 최대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에 대한
미디어 생태학자의 신랄한 고발장이다. 저자는 페이스북의 7가지 성격을 조목조목 파헤치고 분석하
여, 페이스북이 사람들을 더 분열시키고 단절시킨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페이스북이 오히려 민주주
의를 더 훼손하고, 독재 정치인들의 손발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시바 바이디야나단 지음



▣ 저자 시바 바이디야나단
비국 버지니아대 미디어학과 교수로 사회문화비평에 바탕을 둔 문화역사 및 미디어 연구자이다. 페이
스북 등 소셜미디어, 기술, 역사, 법률이 그의 주요한 관심 분야이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소통 확대와
민주주의 확산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행위를 한다고 폭로하는 데 열심이다. 소셜미디어가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전선동을 뿌려 대고 증오와 혐오를 퍼뜨리고 사회적 신뢰를 갉아먹고 저
널리즘을 훼손하며 방대한 감시체계를 구축해 오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대학 내에서 잡지 《계간 버
지니아리뷰》 등을 제작, 발행하는 부설 ‘미디어시민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이에 앞서 뉴욕대학에서
닐 포스트먼 교수, 헬렌 니센바움 교수 등 현재 미디어 분야의 유명 학자들과 교류하며 기술과 사회의
관계 등을 연구했다. 위스콘신-매디슨 대학, 컬럼비아 대학에서도 강의했다. 대학 재학 시절 학생신문
과 오스틴의 일간지에서 기자 활동도 했다. 저서로 『지적재산권』(2017), 『모든 것의 구글화』(2011),
『국가 재설계: 미국학에서 기술의 위치』(2007), 『도서관의 무정부주의자』(2004), 『저작권과 해적
판』(2001)이 있다.


▣ Short Summary
소셜미디어 사용자는 세계 인구의 45%인 35억 명으로 추산되는데, 페이스북의 사용자가 가장 많으며,
특히 미국 인구의 68%가 페이스북의 활성 사용자에 속한다. 이를 기반으로 페이스북은 광고를 휩쓸고
있다. 한편 앱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이 지난해 조사한 결과, 페이스북은 한국에서 사용자 수 기준으로
카카오톡에 이어 2위였으나, 사용시간으로는 1위였고, 10대와 20대에서 특히 인기였다.


이 책은 민주적 지성적 문화의 타락을 부추긴 세계 최강이자 최대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에 대한 미디
어 생태학자의 신랄한 고발장이다. 저자는 페이스북의 7가지 성격을 조목조목 파헤치고 분석하여, 페
이스북이 사람들을 더 분열시키고 단절시킨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페이스북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더
훼손하고, 독재 정치인들의 손발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판 한다.


저자는 페이스북의 성격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오락 기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게 만
드는 감시 기계,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주목 경제를 창출해내는 주목 기계, 사회적 책
임의 명분으로 과오를 감추는 자선 기계, 민주주의 확산에 기여하기는커녕 시위를 부추겼을 뿐인 시위
기계, 각국 주요 선거에 악영향을 미치는 정치 기계, 저널리즘의 신뢰를 떨어뜨리며 선전선동을 확산
시키는 허위정보 기계로 규정하면서, 결국 허튼짓이나 하는 ‘난센스 기계’라고 결론짓는다.



                                - 2 - 페이스북은 어떻게 우리를 단절시키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가
그리고 페이스북의 마법을 넘어서기 위한 해법으로, 장기적으로는 전 세계의 과학 공동체, 대학, 도서
관, 시민사회단체 등을 지원해야 하며, 또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더 좋은 저널리즘, 토론 포럼, 위
원회를 통한 숙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페이스북에 대한 저항과 탈퇴로는 효과가 약하므
로 유럽연합 방식의 반독점 규제와 개인정보 보호 규제 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서론 - 페이스북의 문제는 페이스북이다
1 페이스북은 오락 기계이다
2 페이스북은 감시 기계이다
3 페이스북은 주목 기계이다
4 페이스북은 자선 기계이다
5 페이스북은 시위 기계이다
6 페이스북은 정치 기계이다
7 페이스북은 허위정보 기계이다
결론 - 페이스북은 난센스 기계이다




서론 - 페이스북의 문제는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좋게, 자주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중대 국면에서는 비판적으로 분석돼야 마땅하다. 페이
스북은 하버드대 학생들에 의해 해킹당한 순수한 친교 사이트에서 권력으로 바뀌었다. 그것이 개인생
활을 약간 더 재밌게 해 주는지는 모르지만, 민주주의를 훨씬 더 힘들게 한다. 이 책은 선의, 선교사
정신, 그리고 컴퓨터 코드를 모든 인간 문제의 보편적 해결사로 여기는 이념의 자만심에 관한 이야기
이고, 소셜미디어가 전 세계에서 어떻게 민주적 지성적 문화의 타락을 부추겼는지에 관한 고발장이다.


오염: 2012년 2월,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기업공개를 수주 앞두고 주주들에게 다음과 같은 서한을 보냈
다. ‘더 많이 공유하는 사람들이, 더 열린 문화를 창조하고 생명과 타인의 관점을 더 잘 이해하게 됩니
다. 우리는 이것이 사람들 사이에 더 강력한 관계를 훨씬 더 많이 만들어 내며,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수의 다양한 시각들에 노출되도록 돕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겨우 4년이 지났는데, 페이스북이 사람들을 연결할수록 점점 더 사람들을 갈라놓는다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그리고 또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과 정보를 공유한다는 이상적인 비전은 국가나 글로벌 문화
를 발전시키지도, 상호 이해를 넓히지도, 민주주의 운동을 강화하지도 못했다.


우리의 각종 모니터, 우리의 삶, 우리의 정신에 대한 페이스북의 지배는 여러 위험성을 띤다. 첫째는
오보나 거짓정보가 페이스북을 통해 매우 쉽게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허위
뉴스’ 돌풍을 다룬 기사들에서 우리는 이것을 목격했다. 두 번째 구조적인 문제점은 페이스북이 기쁨
이건 분노건 간에, 감성을 강타하는 콘텐츠를 키워 준다는 점이다. 페이스북에서 재빨리, 멀리까지 전
파되는 것들은 귀여운 애견동물, 귀여운 아기, 유익한 리스티클(listicles)과 생활상식 퀴즈, 그리고 혐
오 발언이다. 페이스북은 강한 반응을 일으키는 항목을 대놓고 띄워 주도록 만들어졌다. 셋째로, 더 쉽
게 이해되는 현상이 ‘필터 버블’이다. 사용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글과 페이스북에 말하면, 이
회사들이 사용자에게 그런 것들을 더 많이 제공하는 식으로 보상을 내려 준다. 결과적으로 시야를 좁
게 하고 재강화된 신념의 반향실(echo chamber)을 만들어 내게 된다.


동기부여와 숙의: 페이스북은 구조와 기능상 동기부여의 역할을 강력하게 해낸다. 대의명분을 내세워
사람들을 불러 모으거나, 기부를 간청하거나, 어떤 후보에 대해 투표를 권고하거나, 물건을 팔고 싶을
때 페이스북보다 더 잘 해낼 수 있는 미디어 기술은 거의 없다. 이처럼 페이스북은 유도에 탁월하다.
반면 숙의에는 끔찍하다. 페이스북 포스트의 구조와 그 아래 달리고 있는 댓글 가닥들이 완전하고, 침
착한 숙고를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포스트와 댓글은 바로 위의 댓글에 답장을 쓰도록 설계되었다. 그
래서 참여자들은 성급하게 반응하도록 부추겨지며, 그래서 때로 버릇없이 답장을 보낸다.


기본적으로 페이스북에 잘못된 것이 두 가지 있다. 페이스북의 작동 방식과 사람들의 사용 방식이다.
그 회사는 그만한 책임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작동 방식을 바꿀 유인이 없다. 페이스북 사용자도 개
인으로서, 생활 속에서 그것을 좋은 용도에만 쓰도록 자제할 유인이 별로 없다. 페이스북은 우리 문제



                             
에 대해 우리가 집단적으로 사고할 능력을 약화시킨다. 특히 그 문제 중 하나가 페이스북인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페이스북의 고통스런 역설이 있다. 세계를 더 좋게 만들려고 진지하게 헌신한 결과로 증
오와 혼란을 확산하려는 범죄 집단들을 불러들여 페이스북을 장악하게 했다는 점이다.


대혼란: 페이스북은 각종 사람들, 각종 움직임들이 공연하는 하나의 무대이다. 결국 무대는 생태계이며
동시에 그 자체로 매개체이다. 페이스북은 이 모든 불협화음 속에서 중요하고 힘이 커 가는 인자이다.
만일 페이스북이 다른 방식으로 설계되었다면, 페이스북은 오늘날 전 세계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
악의 무절제들을 완화시켜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개인적인 문제들
과 오락용으로만 제한적으로 참여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사용했다면, 그것은 행복을 향상시키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그러지 않고 약자 따돌리기나 심한 편견 드러내기를
포함해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가장 유해한 트렌드 일부를 키우고 확대시켜왔다.


페이스북이 모든 사람에게 나쁜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은 친구나 가족에게 버림받은 사람,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사람이라도 지지와 공동체를 찾을 수 있게 해 준다. 또 귀여운 아기와 강아지 사진의
주요한 원천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에서는 아기들과 강아지들이 인종주의와 테러리즘의 호소, 개인적인
재정지원과 의료지원 호소, 선거 후보자들에 대한 찬반 광고들과 함께 똑같은 칸에 나온다.


페이스북 문제를 단기간에 고칠 희망은 거의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희망이 있다. 건강한 사회적
정치적 삶을 회복하려면, 페이스북이 끼친 피해에 대한 합의된 인식과 페이스북의 마법을 넘어서겠다
는 캠페인이 필요하다. 수백만 명이 조언에 따라 페이스북을 정치적 지식이나 행동주의의 원천이 아니
라, 친교와 가족 간 연락을 위한 수단처럼 더 맞는 자리에 갖다 놓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 버
릇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규범의 확립이 기술 발전에 비해 훨씬 어렵다. 그래도 그것이 우리가 저지
른 문제에 대한 유일한 효과적인 대응이다. 최종적으로 더 건강한 공공 문화를 바라는 우리는 도서관,
학교, 대학, 시민사회단체 같은 다른 기관들을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페이스북은 오락 기계이다

2016년 10월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나는 이코노미석 뒤쪽으로 걸어갔다. 어두컴컴한 기내에서 앞으로
걸어가면서 보니 대중의 특이한 집착증이 드러났다. 약 250명의 승객 중 50명의 두 손으로부터 아주
똑같은 빛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들 50명은 휴대폰과 태블릿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 캔디크러쉬사가
게임을 하고 있었다. 페이스북 플랫폼에 런칭된 게임 중 가장 유명한 것이다. 플레이어들은 입을 다물
지 못한 채, 주변 상황과 연결을 끊고 화면만 노려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멍한 상태가 아
니라 집중하고 있었다. 딱히 행복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불편해하지도 않았다.


캔디크러쉬사가 게임은 모든 연령층이 즐기는 것 같았다. ‘즐긴다’는 용어는 틀린 것 같았다. 사람들은
게임 경험에 몰두한다. 그들의 표정은 차분했고 몸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장거리 비행에 잘 대처
하도록 도와줄 무언가를 캐내고 있었다. 승객들 뒤에 숨어 한참을 지켜보다가 얌전하게 내 자리로 돌
아왔다. 에어버스 A330기가 샬럿에 착륙하자마자 나는 휴대폰을 켜고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동행 승
객들 사이에 캔디크러쉬사가 게임이 확산된 것을 목격한 이야기를 올렸다.




                        
페이스북은 문제를 조장하고 증오를 증폭시키지만, 그럼에도 가치가 있다. 사람들은 옛 친구들과 다시
연락을 하면서, 새로운 페이스북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어울릴 이유를 찾으면서, 우스운 동영상을 보
면서, 게임을 하면서 가치를 끌어낸다. 이러한 오락 기능과 서비스 기능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이
런 것들과 강아지와 아기 사진들은 대부분은 아니라도 많은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가입한 첫째 이유들
이다. 페이스북은 우리가 가급적 깊숙하고 오랜 시간 동안 페이스북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페이스북은
서비스의 대가로 우리의 주목을 붙잡아 둔다. 우리는 기꺼이, 상당히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페이스북은 오락 기계이다. 즐거움은 가볍고 덧없다. 그게 우리를 페이스북으로 계속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또한 불안 기계, 분노 기계, 그리고 원망 기계이기도 하다. 쾌락은 가볍고
덧없을지 모르지만, 원한은 깊고 오래 간다. 이 공식에는 더 많은 것이 있다. 페이스북은 우리를 끌어
들이고, 우리를 낚아채고, 우리의 소속을 선언하도록 권장하고, 우리를 분열시키고, 모든 상호작용을
추적한다. 페이스북의 감시체계는 오락 시스템의 일부분이다. 그것들이 분리될 수 없다.


페이스북은 감시 기계이다

2017년 2월, 미 해병대 현역 여성 간부후보생이 캠프 르준에서 전입신고를 하려고 줄에 서 있었다. 그
녀의 뒤에 서 있던 한 남자 해병대 보병장병이 몰래 그녀의 사진을 찍어 ‘단결 해병대’라는 개인 페이
스북 페이지에 올렸다. 그러자 그녀에 관한 반응과 정보 요청이 빗발쳤다. 순식간에 페이스북의 사진
포스팅에 댓글들이 넘쳤다. 댓글은 거친 단계를 넘어섰다. 몇몇은 강간을 제안했다. 몇 시간 뒤 한때
애정 파트너였던 것으로 보이는 어떤 사람이 가슴을 드러낸 여성 사진을 단체방에 올렸다.


해병대 출신 토마스 브레넌은 웹사이트 ‘전마(The War Horse)’의 기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는 해병대
원 페이스북 그룹이 각 부대의 여군 사진 수천 점이 담긴 구글 드라이브 폴더의 링크를 보여 주는 ‘리
벤지 포르노’의 온상으로 전락해 버린 사실을 알게 됐다. 참고로 그 페이스북 그룹들은 전투 스트레스
와 민간인 생활로의 복귀에 대처하는 것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브레넌이 기사를 쓴 지 며칠
후 해병대는 역겨운 사진들과 링크들을 삭제했고, 페이스북 그룹은 3월에 폐쇄되었다. 그러나 그 사진
들은 그룹 회원들 사이에 떠돌아다녔고, 지금은 해병대원 수백 명의 휴대폰이나 하드드라이브에 들어
가 쉬고 있다. 이런 종류의 감시와 괴롭힘은 전 세계에서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다.


페이스북은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저지르고 싶어 하는 악의적이고 잔인한 행동들을 증폭시킨다.
이것을 포함해 페이스북이 일을 잘하는 이유는 막대한 사용자 정보를 효율적으로 분류해 우리가 원한
다고 생각되는 콘텐츠를 우리의 뉴스 피드로 보내 주는 지렛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근저에, 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것들과 달리 감시 시스템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우리에게 다가왔다.


감시는 국가에서 나온 것이든, 다른 사람, 다른 그룹에서 온 것이든, 괴롭힘과 모욕을 조장한다. 만일
폴리스의 많은 사람이 대중 토론 참여를 시도할 때마다 괴롭힘을 당하고 말도 못하게 되고 위협당한다
면, 우리는 공화국에서 책임감 있고, 정보를 가진, 참여적인 시민으로서 행동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것은 우리 삶을 긍정적으로 확장시켜 주는 인터넷 플랫폼의 잠재력에 대한 가장
심각한 제약일 것이다.




                             
돈 벌이를 위한 데이터: 페이스북은 우리를 주요한 세 가지 유형의 감시에 노출시킨다. 첫째, 상업적이
고 정치적인 단체들은 페이스북의 광고 시스템을 통해 페이스북의 타깃팅 파워와 예측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 둘째, 페이스북의 다른 사용자들은 우리가 프로필에 적어 보여 준 것들을 통해 우리를 지켜
보고 추적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친구를 맺고 끊는 것,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다양한 게
시 글을 추천하거나 댓글을 다는 것, 각자의 의견이나 좋고 싫은 것을 드러내는 것을 다 본다. 셋째,
각국 정부들은 민간인이나 수상한 사람을 염탐하기 위해 페이스북을 활용해 친구나 협력자의 것으로
보이게 페이스북 계정을 허위로 만들거나, 페이스북 보안을 깨고 들어가 데이터를 모은다.


페이스북은 시위 기계이다

2010년 6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경찰이 28살 무역업자 칼리드 사이드의 집 앞에서 그를 때려 숨
지게 했다. 경찰은 사이드의 가족에게 그가 마약 거래에 연루되어 있었고, 그가 질식사했다고 말했다.
폭행 목격자들은 경찰의 주장을 반박했고 폭행 장면을 증언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얼마 지나
지 않아 사이드의 부검 사진들이 페이스북 아랍어판과 영어판, 그리고 유튜브 페이지에 삽시간에 확산
되었다. 곧 국제적인 아랍의 위성뉴스 채널인〈알자지라〉가 소요 사태를 알아차렸고, 그 사진들을 게
재했다. 다른 국제뉴스 매체들도 사이드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죽음의 은폐와 그것을 유발한 경
찰 부패에 항의하는 데모가 2010년 여름 내내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를 휘젓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우리 모두가 칼리드 사이드이다’의 운영을 지원했던 두바이 주재 구글 직원 와엘 고
님은 2011년 테드 토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그 사진을 기억합니다. 그는 잔인하게 고문당
해 사망했습니다.” 이집트 정부는 수십 년간 비슷한 잔혹한 사건들에 했던 것처럼 기사를 통제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페이스북에 사이드의 사진이 올라간 것이 통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2011년 1월과 2월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포트사이드, 이집트와 다른 도시들에서 일어난 거대한 봉기
는 결국 무바라크 대통령을 30년 만에 권좌에서 내몰았다. 무바라크의 권위주의에 대한 점차 증가하는
국민적 불만, 그리고 2011년 이전 약 10년간 축적된 경찰권 남용에 반대하는 고도로 조직화된 대중운
동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폭발사태는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2006년 시위와 2008년 총파업 때는 못 했다. 그런데 2011년의 데모는 어떻게 해서 사회 각계각층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나가게 했는가? 답변은 단순하다. 2006년과 2008년에는 페이스북이 영
어판뿐이었지만, 2011년에는 아랍어로도 이용 가능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칼리드 사이드이다’가 페
이스북 이용자들이 다른 사람들도 기꺼이 저항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신호등 역할을 해냈다. 이
것은 고님 생각이다.


만일 소셜미디어가 없었더라도 시위가 벌어졌을까, 또는 똑같은 방식으로 시위가 벌어졌을까를 시험해
볼 수는 없다. 아무튼 그 시위들은 벌어졌다. 소셜미디어 서비스, 특히 페이스북은 정치적, 사회적 대
중운동과 이어지는 시위에 특별한 방식으로 영향을 준다. 페이스북의 존재 때문에 시위가 가능해지거
나, 또는 더 현실적으로 더 커지는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은 정보와 계획들에 대한 관심의 공유를 밝
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을 쉽게 만들어 줄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님의 표현대로 ‘우리는 외롭지 않다’고 할 마음이 있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설득
하거나 어쩌면 속일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거대한 저항운동은 충분한 사람들이 참
여할 것이라고, 충분한 사람들이 설득된 경우에만 가능하다. 페이스북은 그들에게 대중운동이 임계치
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준다. 다만 페이스북은 깊은 정치적 숙고나 조직화라는 어려운 일을 만들어 내
지도 않고, 고무하지도 않는다.


이집트의 역경이 이 점을 분명히 해 준다. 1월 25일 혁명 때와 그 후에 고님과 다른 사람들은 봉기에
대표가 없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고님 자신도 무슬림들과 기독교도들이 나란히 시위에 나서 관대
하고 민주적인 이집트의 비전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을 크게 자랑했다. 유럽과 북미에서 편안한 의자에
서 고님을 응원했던 많은 사람들의 편견에 호소했던 시위대였다. 그런데 무바라크를 전복시킨 대중운
동의 실체는 이러한 초기의 희망 어린 조짐들과는 달랐다. 이집트는 악랄한 권위주의적 독재 정부에
의해 다시 통치되고 있다. 이집트는 군부에 의해 움직여진다. 알고 보니 무바라크의 실각의 열쇠는
2011년 초기 몇 주가 안 돼서 군부가 관여하기를 거부하면서 물러선 데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자유주
의적 범세계주의자들과 이슬람주의자들 간의 불편한 혼합으로 이루어진 이집트의 새로운 리더 무리는
새 정부 계획을 짜고 선거를 치렀다. 군부 지도자들은 이를 지켜보기만 했다. 자유주의자들이 가진 것
은 단지 페이스북 페이지와 원대한 생각뿐이었다.


2012년 선거 이후 무슬림형제단이 정권을 잡았다. 형제단은 집권하더니 기독교도와 여성들을 지원했
던 활동들을 탄압했다. 그러자 무슬림형제단 정부와 무함마드 모르시 대통령의 통치에 반대하는 시위
가 벌어졌다. 2012년 11월 모르시는 비상지휘권을 선포했고, 비판세력과 언론인들을 잡아넣기 시작했
다. 2013년 4월 더 커진 반 모르시 시위가 2011년 시위에 맞먹는 규모와 강도로 터지기 시작했다.
2013년 7월 압델 파타 엘 시시 장군의 지휘 하에 있던 군부가 이집트를 장악했다. 이어 무바라크를
쫓아내기 위해 작동했던 모든 요소들을 잔혹하게 깨부수었다. 시시는 그 후 권좌를 지키고 있다. ‘우리
모두가 칼리드 사이드이다’라는 영어 페이스북 페이지는 28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거느린 채 활성화
상태로 남아 있다. 그것은 안티 시시의 뉴스와 선전을 퍼뜨리는 데 열심이다. 하지만 또 한 번의 ‘페이
스북 혁명’이 조만간 가능할 것 같다고 누구도 주장하지 않는다.


혼자가 아니다: 페이스북은 동기유발을 위한 강력한 수단이다. 페이스북의 설계된 방식 때문이고, 강한
감정적 대응을 유발하는 콘텐츠를 좋아하는 알고리즘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페이스북은 숙고를 위해
서는 쓸모없는 도구이다. 페이스북은 사람들을 억압적인 정부에 반대해 폭동을 일으키도록 움직이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고, 사람들이 민주적 또는 범세계주의적 정부에 대항하거나, 억압적 정부
를 지지하도록 폭동을 일으키게 하는 데도 똑같이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페이스북은 숙의적인
정치를 이해시키거나 가치를 높이기보다는, 정치를 더 불안정하게 한다. 그래서 개방적이고, 성공적이
며, 민주적인 공화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페이스북은 위험하다. 하지만 덜 안정적이고 덜 개방적
이며 덜 민주적인 환경에 사는 사람들에게 페이스북은 단기적으로는 매우 유용할 수 있다.


페이스북은 정치 기계이다

2016년 선거는 놀랄 일이었다. 총득표는 클린턴이 거의 300만 표를 앞섰다. 트럼프는 각 주에 인구수
에 따라 3~55표를 부여한 투표인단 투표에서 이겼다. 트럼프는 TV 광고나 유권자 가정방문 접촉 같은




                      
전통적 방식의 정치 광고와 유세에 큰돈을 쓰지 않았다. 그러고도 4년 전 선거에서 민주당 대통령 오
바마가 가져갔던 3개 주(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에서 예상 밖의 승리를 따냈다. 이들 3개 주
는 트럼프에게 선거인단을 몰아 줬다. 3개 주(전체 투표자수 1,390만)에서 단지 7만 6,700표 차이인데
도 그렇게 됐다. 트럼프는 그렇게 매우 박빙인 주에서 선거인단 전체를 독식한 덕분에 304 대 227표
라는 상당한 차이로 클린턴에 승리했다. 트럼프는 어떻게 그런 솜씨를 보여 줄 수 있었는가?


바로 페이스북이 차이를 만들어냈다. 페이스북 덕분에 트럼프는 몇 개 주를 골라 놀랄 만큼 정밀하게
유권자들에게 타깃 광고를 할 수 있었다. 때로 페이스북 광고의 의도는 클린턴에게 투표하지 말도록
설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때로 트럼프 팀은 페이스북 광고를 조정하고 시험해 가며 잠재적인 트럼프
투표자들 소그룹이 여론조사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그것은 주효했다.


한 가지 의문은, 페이스북이 유권자 타깃용으로 외부 컨설턴트들로부터 제공받은 유권자 상세 데이터
의 양식을 만드는 데 도움을 필요로 했는가 하는 것이다. 또는 트럼프가 핵심 3개 주를 클린턴으로부
터 훔쳐 가기 위해 필요했던 도구들을 페이스북이 모두 제공했는가 하는 것이다. 어쨌든 숙의가 아닌
동기에 기반해 선거가 결정된다는 것은 미국 민주주의의 운명에 관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페이스
북 알고리즘이 설득의 예술과 과학을 다스린다면 민주주의는 어떻게 보일까?


페이스북의 트럼프 대선 지원: 2015년 여름에 트럼프가 선거캠프를 하나로 합쳤을 때 선택할 만한 공
화당 내 선거 베테랑이 얼마 없었다. 그래서 그는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사위 재러드 쿠슈너에게 눈을
돌려 디지털 전략을 모았다. 선거 후 쿠슈너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일
하던 한 기술기업의 직원을 불러내 페이스북의 마이크로 타깃팅(특정한 유권자 집단을 겨냥한 선거운
동) 방법을 과외 받았다.”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트럼프와 쿠슈너는 근래에 트럼프의 여러 회사에서
인터넷 마케팅을 해 온 사람을 고용했는데, 그가 브래드 파스칼이다.


페이스북의 작동 방식을 알았던 파스칼은 트럼프를 위해 페이스북 관련 업무를 맡았다. 샌안토니오에
서 파스칼은 디지털 작업을 통해 페이스북에 매달 7,000만 달러를 지불하고, 세 가지 기능을 수행하였
다. 즉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에서 후보를 홍보하고, 캠페인을 지원하기 위해 물건을 팔고, 지지자들로
부터 기부를 얻어 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페이스북 또는 트럼프 캠페인 웹사이트를 통해 돈을 기부하
거나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모자를 산 모든 사람은 캠페인 측에 이름, 주소, e메일 주소를 제공했다.
고객명단 기능을 하는 페이스북의 사용자 지정 광고는 광고주들이 고객의 e메일 주소들을 페이스북에
올릴 수 있게 해 준다. 이어 페이스북은 그 e메일 주소들과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처음 가입할 때 제공
한 정보를 비교한다. 광고주들은 이런 식으로 예비고객에게 도달할 정밀한 방법을 확보한다.


트럼프 캠페인의 경우 고객은 유권자들이다. 사용자 지정 광고는 페이스북을 통해 과거의 기부자들을
타깃식으로 접촉해 더 많은 돈을 즉시 요청할 수 있게 해 준다. 파스칼은 이 방법을 써서 핵심 주(州)
의 트럼프 지지자들과 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지지자들에게 후보자
의 페이스북 라이브 출연 여부에 관한 사전 안내를 보내 줬고, 트럼프 집회를 위해 장거리 여행을 하
도록 권유할 수 있었다. 또한 선거일에 투표하도록 그들의 옆구리를 찌를 수 있었다.


한편 사용자 지정 광고는 캠페인 측에 추가능력을 제공한다. 비지지자 같거나 반대편 지지자 같은 사
람들의 e메일 주소를 집어넣으면 20명 정도의 작은 그룹으로 타깃팅할 수 있다. 그러면 그들에게 투표



                            
를 하지 말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 참고로 사용자 지정 광고는 2014년에 페이스북이 수익과 매출의
이륙 지점에 도달하는 데 기여했다. 페이스북은 신발과 화장품을 파는 기업들을 위한 광고 도구부터
개발했고, 이어 정치 캠페인으로 넓혀 갔다. “그들은 이런 능력의 최악의 남용, 책임질 필요가 없고 재
검토될 수 없는 정치 광고들에 관해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고 파슨스 디자인스쿨의 데이비드 캐롤 교
수는 말했다. 그런 광고들은 방대한 규모로 제작되었다. 작게는 20명 정도의 그룹들을 타깃으로 하고
사라져 버려 조사를 받거나 논의 대상에 오르는 일이 전혀 없었다.


페이스북은 허위정보 기계이다

우리는 전 세계에 걸쳐 민주주의에 대한 인터넷에 기반을 둔 공격의 한복판에 있다. 옥스퍼드대 인터
넷연구소의 학자들이 ‘봇’, 즉 자동 신상입력기들을 추적해 봤다. 그것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넘나
들고 있었는데,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악화시키기 위해, 또는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어디에
서든 지지하는 후보들을 당선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러시아의 요원들이 강력한 페
이스북 광고 시스템을 직접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러시아의 허위정보는 지난 2년간 프
랑스, 네덜란드, 영국 유권자들의 소셜미디어 피드에 영향을 끼쳤다. 전 세계 권위주의 정당들을 위해
활동하는 소셜미디어 자원봉사자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페이스북, 트위터, 페이스북 소유의 인스타그
램과 와츠앱을 허위정보, 선전, 그리고 비판세력과 언론인들을 겨냥한 위협들로 넘쳐나게 했다.


이러한 허위정보는 여러 형태를 띠고 있고 여러 다른 동기를 갖고 있다. 어떤 것은 광고 수익을 내기
위해 클릭을 유도하도록 설계되었고, 어떤 것은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고, 민주주의를 작동하게 하는
제도들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거나, 민주적 숙의를 방해하도록, 정당, 정부 또는 비정부 활동가에 의
해 설계되었다. 또 어떤 것은 그것을 홍보하는 사람들의 오락적 가치를 위해서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난장판이어서, 그 현상을 하나의 영역이나 주제로 논하기는 어렵다. 다양한 유형의 허위정보를 조사하
려면 민족학, 데이터 과학, 디지털 포렌식을 포함해 학술적, 저널리즘적 도구가 필요하다. 페이스북은
전 세계적인 범위와 사용자 및 광고 데이터를 풍부하게 수집해 갖고 있는데, 페이스북은 이러한 허위
정보 유포 행위가 전 세계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만일
그 데이터에서 페이스북의 문제가 드러난다면 페이스북이 가장 큰 손해를 볼 것이다. 예를 들어, 페이
스북이 오래전에 허위정보의 흐름을 막을 수 있었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 또는 페이스북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런 문제가 페이스북의 핵심
설계의 고질병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말이다. 그래서 페이스북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허위정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악하려면 전체 생태계를 고려해야 한다. 이런 콘텐츠를 밀어내는 사
람들은 레딧이나 4Chan과 같은 변방부에서 시작한다. 이런 곳은 글쓰기가 쉽고, 비슷한 생각을 하면
서 뭔가 해보려는 동료들 사이에서 다양한 형태의 메시지를 시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트위
터용으로 눈에 띄는 새로운 해시태그를 만들거나, 새로운 콘텐츠를 이미 활용 중인 인기 해시태그와
결합할 수 있다. 또 그들은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릴 수 있다. 유튜브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손
쉽게 재배포하기 좋고, 자체 서비스를 선호하는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 덕분에 그 자체로 강력한 소셜
유통 플랫폼이다. 일단 트위터에서 아이템이나 이슈가 눈에 띄면, 버즈피드, 브레이트바트, 살롱, 허프
포스트와 같은 인정받는 온라인 뉴스 및 논평 사이트의 편집자들이 주목하게 된다.




                         
이런 사이트들은 종종 그날의 핫이슈나 논쟁과 연결될 수 있는 생생한 콘텐츠에 굶주리고 있다. 그래
서 편집자들은 젊은 저임금 기자들로 하여금 서로 반향을 일으켜 보라고 열심히 다그친다. 서로 주장
을 깎아 내리거나 틀렸다고 하는 것조차 포함해 ‘멋대로 주장’을 하거나 음흉한 논평을 주고받아 보라
고 한다. 이 정도로 콘텐츠에 목마른 뉴스 사이트는 기사를 키울 수만 있다면 그 기사가 중요한 건지,
심지어 진실인지 여부도 따지지 않는다. 신생 뉴스 매체들은 기사의 제목 뽑기, 사진 배치, 글쓰기 스
타일을 소셜미디어에 뿌리는 용도로 최적화했다. 만약 그 매체들이 그런 기사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가디언》, 《BBC》, 《폭스뉴스》, 《CNN》과 같은 유력 뉴스 매체들이 나설 것이다.


이들이 그날 최고의 화제를 따라잡고 애초의 주장에서 잘못된 부분을 고쳐 가며 새 기사로 준비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것은 거의 문제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허울만 그럴듯한 콘텐츠가 미디어 생태계 사
슬의 맨 꼭대기까지 올라가 버리게 된다. 사슬의 매 칸마다 세계 최대 최강의 미디어 시스템인 페이스
북이 허위정보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콘텐츠가 허프포스트 또는 브레이트바트 정도의
미디어에 도달할 때쯤 수많은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이 콘텐츠를 거부할 수 없다.


허위정보의 주장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즐겁게 공유하고, 허위정보의 존재에 경악하는 사람들은
혐오감 때문에 또 그것을 공유한다. 순응 또는 혐오감 증 어떤 것을 드러내는 의도였든 간에 댓글과
공유는 똑같이 작용해 똑같은 결과를 낳는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부정적, 긍정적 댓글을 모두 ‘의미 있
는 참여’라고 파악한다. 그러고는 그 메시지를 증폭시켜 더 많은 뉴스 피드에 밀어 넣고 더 잘 보이는
자리로, 더 자주 내보낸다. 그런데 그 효과는 똑같다. 혼란이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허위정보의 창작
자들은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이냐’ 하면서 비웃는다.


결론 - 페이스북은 난센스 기계이다

멈춰 생각하라: 인류가 모두 한 종족이라니, 참 황당하다. 21세기 초엽에 우리는 세계의 한 쪽에서 다
른 쪽으로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갖고 있다. 신호의 손실 없이 아이디어와 논란거리를
퍼뜨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거대한 폭풍이나 지진을 예상해, 대도시의 생명과 안전을 향상시키기
위한 진지한 글로벌 대화를 할 수는 없다. 또 우리는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에 공중보건 문제에 대해
고심할 수 없다. 또 이제는 권력을 잡기 위해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이 너무 쉽기 때문에, 우리는 혈통
에 집착하는 국수주의에 효과적으로 저항하는 세계 윤리(global ethic)를 되살릴 수 없다. 그래서 우리
는 무력하고 취약하다. 바로 그 도구와 기술들이 우리를 파멸시킨다고 위협한다. 우리는 무한한 재능
을 발휘하지만 숙달하지는 못한다. 무한한 데이터를 처리하지만 지혜를 보여 주지 못한다.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 후 한나 아렌트가 천착했던 문제다. ‘문명’과 기술의 ‘진전’에 대한 우리의 가정
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후 전체주의 정권이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서 부상
한 결과이다. 한 종으로서, 우리는 똑똑하면서도 멍청해 보였다. 우리는 물건을 만드는 데 아주 대단했
다. 특히 개인 소비를 위한 일회용품, 그리고 죽음과 억압의 기술을 만드는 데 있어서 탁월했으며, 이
때문에 아렌트는 인간을 ‘호모 파버(Homo faber)’라고 명명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충분히
생각하는 데 서툴렀다. 푸틴, 모디, 에르도안, 트럼프 등의 등장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전체주의에 관한
아렌트의 고전 논문들을 다시 읽었던 것이 이해가 된다.




                           
나는 사회, 사고, 행동에 대한 그녀의 사상을 재발견할 것을 촉구한다. 그녀의 사상은 중대한 도전을
마주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을 언급한다. 그것은 1950년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적절하다. 아
렌트의 주요 통찰 중 하나는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자신의 행동의 큰 파장을 고려하지 못
하는 곳에서 전체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반인륜적 거대 범죄에 연루되는 행동의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사람이 분명하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모든 움직임을 멈춰야 한다고
믿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는 ‘멈춰 생각하라(stop and think)’는 것이었다.


저항과 탈퇴: 2013년 유명한 인터넷 문화 작가 더글러스 러쉬코프는 ‘CNN닷컴’ 칼럼에서 페이스북 탈
퇴를 선언했다. 러쉬코프는 “페이스북은 그저 그런 기술일 뿐”이라며 페이스북이 특히 위험하고 정직
하지 못하다고 썼다. 페이스북은 ‘페이스북 친구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모든 관계를 수평적 거래의
연결로 취급한다. 그리고 페이스북은 우리의 노동을 착취한다. 러쉬코프는 “수 억 명의 페이스북 사용
자들이 꼼꼼하게 페이지를 꾸며 가느라 들이는 노력에 비하면 페이스북 멘로파크 사옥에서 수천 명의
직원들이 기울인 노력은 희미하다”고 했다. 근본적으로 러쉬코프는 페이스북이 우리의 창작 콘텐츠와
데이터를 자신의 목적으로 용도 변경했던 방식들을 찾아냈다. 이 과정은 페이스북의 핵심적인 주장 및
조언과는 모순되었다. 문제는 2013년의 페이스북이 이미 막강해, 페이스북에서 빠져나오면 다른 사람
들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는 점이다. 2018년까지 확실히 세계의 많은 부분에서
그렇게 됐다. 나도 여전히 페이스북 사용자이며 그만둘 계획이 없다.


페이스북의 중대한 영향력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많지는 않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 모두가 오늘 페이스북 계정을 탈퇴해도 페이스북의 수익이나 계량지표에는 일시적 문제로도 올
라가지 않을 것이다. 저항은 소용없다. 이 글을 읽은 모든 사람들이 페이스북의 기능 중 일부를 바꾸
거나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더 깊이 고려하라고 촉구하는 편지를 페이스북에 보냈다고 하자. 회원 수
가 너무 방대한 페이스북의 어느 누구도 반응하거나 답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항은 필요한 것 같다. 즉각적인 대응이 없을 것 같다고 해서 문제를 설명하고 개입을 요구하
는 것을 단념해서는 안 된다. 공증 담론의 질적 저하와 전문가와 기관에 대한 신뢰의 침식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기술원리주의에 도전하는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그것은 수십 년 또는 수 세기에 걸쳐 결과
를 낳는다. 나는 곧 이 책보다 더 강력한 책이 뒤따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학술논의도 계속되고 발전
돼야 한다. 그러면 능력 있는 활동가들이 분명하고 달성 가능한 의제를 들고 나올 수 있다. 현재 이러
한 문제를 우려하는 학자와 평론가, 작가, 활동가, 정책 입안자들의 공동체가 커질 것 같다.


페이스북이 만들어내고, 드러내거나, 증폭시키는 문제에 대한 가장 유익한 대응은 깊고 의미 있는 지
식을 창출하는 기관들에 재투자하고 그것들을 강화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전 세계의 과학 공동체,
대학, 도서관, 박물관을 지원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가장 시급한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성을 활용
할 수 있는 더 좋은 저널리즘, 토론 포럼, 위원회를 통한 숙의를 강화해야 한다. 우리는 어리석었다.
그간 우리는 잃은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투자가 이러한 기관들로부터 ‘혁신’을 장담하는 사업으로 흘러
가게 했다. 이런 것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


규제와 개혁: 이 문제 극복을 위한 몇 가지 정책적 개입이 있다. 그것은 프라이버시, 데이터 보호권,
그리고 독점 금지와 경쟁의 영역에 놓여 있는데, 이 분야에서 EU는 미국보다 시민들에게 더 나은 서
비스를 제공한다. 우리가 할 최소한의 일은 세계적으로 EU식 데이터 보호법을 채택하는 것이다. 개인



                             
은 자신이 생성한 데이터가 민간 기업에서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를 알 권리를 가져야 하고, 페이스북
이나 구글 같은 기업의 사용자 자료 기록에서 자신의 데이터를 제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권리와 권한에 대한 토대가 유럽의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보호법의 최신 버전에 들어 있다.


한편 반독점을 위한 강력한 정책 개입은 페이스북이라는 권력 집중을 해소하는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
다. 미국은 페이스북을 해체해야 한다. 페이스북의 핵심 애플리케이션과 회사로부터 와츠앱, 인스타그
램, 오큐러스 리프트, 그리고 페이스북 메신저를 분리해야 한다. 각 부문이 별도로 존재하면서 노동,
자본, 사용자, 데이터, 광고주를 놓고 서로 경쟁해야 한다. 향후 인수합병은 데이터가 급증한 페이스북,
또는 인스타그램, 또는 오큘러스 리프트의 잠재력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미국 반독점
법에 관한 현행 이론으로는 그러한 분리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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