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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쟁이와 바람쟁이

by Casey,Riley 2023.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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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쟁이와 바람쟁이
이훈종



      허풍쟁이와 바람쟁이 

  넷째 마당-이야기꾼 이훈종 지음
  지은이 이훈종은 서울에서 자라 1938년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71 년 이후 중국문화학원 중문연구소에서 2년간 연구, 1978년 중화학술원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초등학교 교사, 중고등학교 교사, 교감, 건국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건국대학교 문리과대학장 등을 지냈다. 현재 우리문화연구원장으로 있다.  
  저서로 우리의 정통적인 국학자료를 도해하고 설명한 "민족생활어 사전"이 있고, 지난 60년간 이 땅에 살아오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4권으로 묶는 작업에서 첫째, 둘째 마당으로 "오사리 잡놈들" "흥부의 작은마누라"를 냈고, 이번에 전래소화들을 셋째,넷째 마당으로 모두 묶어 냈다

  (표지그림)
  서민들의 삶의 흥취를 구수하고도 익살스럽게 그려낸 김흥도의 풍속화

  (그림 설명)
  정장한 평양 기생,1910년
  평양은 색향으로 유명하여 명기가 많이 났다.
  임진왜란 때 왜장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계월향도 평양 명기였다.

  (그림 설명)
  연무복을 입은 기생들,조선 후기
  (그림 설명)
  기생수업을 받는 예비 기생들,조선 후기

  (그림 설명)
  신윤복 [풍속화첩]에서 <쌍검대무>

  (그림 설명)
  우운홍 <기방도>
  기생신분은 천인으로 여러 등급이 있었으며, 시가서화에 두루 능하고 지조가 있어야 명기 소리를 들었다.

  (그림 설명)
  음식점,조선 후기
  대충 발을 치고 땅을 파서 큰 솥을 걸고 간단한 요기를 위한 음식을 팔았다.

  (그림 설명)
  푸줏간,조선 후기
  전형적인 푸줏간 모습. 소, 돼지를 잡는 백정은 최하층 천민으로, 나중에 형평운동이라는 인권운동을 일으켰다.

  (그림 설명)
  부벽루에서 바라본 대동강,조선 후기
  봉이 김선달이 팔아먹은 그 대동강으로, 서울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려면 누구든 이 강을 건너야 했다.

  (그림 설명)
  김흥도 "단원풍속도첩"에서 '빨래터' '고누놀이' '노중상봉' '행상' 소탈한 모습의 전형적인 서민생활을 활력넘치는 필치로 묘사하였다.

  (그림 설명)
  여인의 아들자랑,1890년
  아들을 낳으면 아들을 키운다는 명예로움을 나타내기 위해 젖가슴을 드러내는 풍습이 있었다.

  (그림 설명)
  세검정,1900년
  1748년 창건. 인조반정 때 이귀,김류 등이 이곳에서 광해군 폐위를 모의하고 칼을 씻었다.

  (그림 설명)
  서당,1900년
  근대교육이 시작되기 전의 학동교육은 서당에서 이루어졌다.
  왼쪽에는 공부를 못해 광에 갇힌 학생을 친구가 돌아앉아 위로하는 모습이 있다.

  (그림 설명)
  마마배송굿,1904년
  천연두에 걸리면 마마가 말썽을 부리지 않고 곱게 물러가라고 배송굿을 벌였다.

  (그림 설명)
  노상에서의 장기놀이,1910년
  예나 지금이나 장기는 전통적인 오락기구였다.

   

      허풍쟁이와 바람쟁이-차례

  "허풍쟁이와 바람쟁이" 제목에 부치는 말

    푸즛간 인심
  -그만 자자
  -가만 있어요,아기 자거든
  -내 입 한번 놀리면
  -오냐, 이눔아! 다 주마 다 주어
  -이걸 맛있다고 처먹어?
  -갓김치를 너무 먹어서
  -까막눈 좌수
  -아버지와 아들의 차이
 - 타성바지의 지혜
  -푸줏간 인심
  -서출은 똑똑해
  -거짓말 내기
  -예끼, 이 사람! 그따위 거짓말이 어디 있나
  -꿈도 크고 봐야
  -내기 아니면 난 장기 안 두네

    과부 50명이 목놓아 울어대니
  -암행어사의 누이 
  -색시가 마음에 안 드시우?
  -뭐 그런 걸 다 가지고 관청을 괴롭혀
  -홀아비 아버지와 노총각 아들
  -보쌈당한 홀아비
  -며느리, 너는 하늘에 맹세한 것을 지켜야 할 터
  -홍제동 냇가에서 깨끗이 씻었으니
  -오다가다 만난 사이
  -권불 10년, 부불 3대라
  -과부 50명이 목놓아 울어대니

    사돈에게 팔아먹은 소
  -그날밤 포교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소도둑 그놈, 오죽 사정이 딱했으면
  -못난놈, 신이나 신고 가지
  -한 방에 농락당한 포도대장
  -사돈에게 팔아먹은 소
  -행인의 옷가지나 벗기는 좀도둑은 안되겠소!
  -지옥에 떨어진 것보다 나을 줄 아니?
  -번번이 수염을 쓰다듬더라니
  -배부른 돌담과 손 큰 여편네
  -미친 녀석, 세배를 추석에 하다니

    배갯머리 송사
  -장기 둔다 소리 마라
  -이항복을 곯려준 상놈
  -책 집어치우고 나가 놀아라!
  -꺼먼 건 먹, 하얀 건 종이
  -정수동의 꾀
  -요놈의 괭이, 길 비켜라
  -배갯머리 송사
  -자네 원하는 자리가 뭐였지?
  -암행어사라야 정신 차릴까
  -김빠진 암행어사 출두

    계집종 아들과 친구 된 율곡
  -그러더니 끝내 좋지않게 죽었다
  -입던 옷가지 빨아 입혀 딸 시집보낸 대감
  -계집종 아들과 친구 된 율곡
  -이런 세상에 이런 글 쓴 이라면
  -기우제에 웬 풍악소리
  -국립중앙박물관에 진열된 미라
  -양반이 점잖지 못하게 돈 버는 일에 눈을 떠?
  -강감찬은 곰보래요

    우물에 들어앉아 하늘이 작다고 하네
  -누님, 다 틀렸소
  -귓속에서 나온 파랑새
  -꼭 내가 먹어야 맛이냐
  -우물에 들어앉아 하늘이 작다고 하네
  -처갓집 신세 갚음

    부인에게 절하는 남편
  -남자가 셋 이상 모인 데는 가지 마라
  -방석을 비켜 앉은 처녀
  -훌륭한 자손을 줄줄이 두려면
  -물고기가 전해준 사랑편지
  -북에는 평양의 계월향이 최고
  -호조의 서리라면 문턱이 닳는데
  -도둑놈이 업어간 색시
  -부인에게 절하는 남편
  -큰마누라와 작은마누라의 차이
  -독종 마누라 만난 사내가 평생 고생한다지만
  -일가 댁 반 재산 덜어온 며느리
  -남의 사람이 잘 들어와야 집안 잘되지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애고대고 곡산장 눈물나서 못보고
  -뜻이 높은 기생은 불러야 갑니다
  -참빗 사요 참 비싸
  -인연이 없으면 저년이라도 있겠지
  -아버님, 구립니다
  -소 같대요. 그런데 뿔이 없어요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일본 포대기는 아니고
  -새댁, 배에 땀띠 안 났소?
  -화류계의 불문률

    선조의 외증조부는 아직도 가난해
  -인생 칠십에 골이 히잉하다더니
  -함양군수가 삼국사기 읽다가
  -선조 임금의 외증조부는 아직도 가난해
  -대나무 그린 서양사람
  -옥견이 솜씨 같다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상대
  -배주부가 알아본 글씨

    잘못 들어온 재산
  -무식쟁이 사위의 때늦은 결심
  -그렇게도 유난을 떨더니
  -제주도로 유배간 광해군의 어느날
  -제 돈 제가 삼켰는데 무슨 큰일이라고
  -하인이 먹다 남긴 음식 핥아 먹은 상전
  -잘못 들어온 재산
  -좀더 보챘으면 더 얻어먹는 것을

    허풍쟁이와 바람쟁이
  -하늘이 주신 복이지
  -어머니 이사 가요
  -제 놈 제 복으로 사는데 뭘 어째?
  -삽살개 한 마리가 노름꾼을 감동시키니
  -선비 체면에 내기 바둑이 웬말
  -대중 앞인데 그만함 됐지
  -부모님 돌아가신 것보다 더합니다.
  -창가가 풍류더냐? 시조를 해야지
  -비오는 날만 새는 방
  -허풍쟁이와 바람쟁이
  -아마 지금도 그저 젓고 있을걸
  -누가 뭐라거나 말거나 하는 경지에 이르니
  -벽창호
  -시골집의 다급한 사정
  -굉장한 거인
  -대감댁 상여를 물리친 할멈
  -명당에는 팔삭동이가 나게 마련

      푸줏간 인심

    그만 자자
  옛날 글방 풍속이다. 글방 친구 하면, 그래도 동네에서는 유지의 자제들이다. 저녁이면 으레 딴 방에 모여 밤글도 읽고 놀이도 하여도 성모듬,골모듬 같은 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장난을 하여 지식을 넓히곤 하였다.
  어느날 저녁 역시 한 방에 모여 밤글들을 읽는데 장가든 지 얼마 안되는 동무 하나가 꾀병을 한다. 갑자기 배가 아파 온다고 치 문지르고 내리 문지르고 하더니 못 견디겠다고 집으로 돌아간다.
  좌장이랄까 일동 가운데 가장 나이 든 학생이 조무라기 동접을 불러서 이른다.
  "너희들 둘이서 몰래 걔네 집에 가 어떻게 하나 엿보고 오너라."
  얼마 만에 돌아온 두 아이의 보고를 듣고 모두들 허리를 잡으며 웃어댔다.
  문에 구멍을 내고 들여다보니 장성한 색시는 등잔걸이 앞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녀석이 아랫목에 가 드러누워 이리저리 뒹굴더니 색시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그만 자!"
하고 조르더란다. 그럴라치면 색시는 바늘을 쑥 뽑아 가지고,
  "찌를까 보다."
  그러면 또 아랫목에 가 드러눕고, 이렇게 하기를 서너 번이나 되풀이하는 것을 보고 돌아왔다는 것이 그들의 얘기였다.
  좌장은 다른 아이들에게 일렀다.
  "너희 둘이서는 걔네 집에 가서 닭 두 마리만 서리해 오너라."
  닭을 잡아 볶아놓고는 안에 들어가 술을 걸러 내왔다.
  "얘, 닭 임자도 같이 먹어야지, 이거 무슨 맛이냐?"
  그래서 조무라기 아이들을 보내 불러오게 했다.
  "배 아픈 거 나았으면 와서 밤참 같이 먹세."
  아직 옷끈도 안 끌렀으니 할 수 없이 따라왔다.
  "이게 웬 안주냐?"
  두어 순배나 돌았을까, 그 중의 두 아이가 연극을 한다. 한 아이는 누워서 뒹굴거리고, 하나는 종이쪽을 들고 바느질하는 시늉을 한다.
  "그만 자!"
  "찌를까 보다."
  두어 번이나 되풀이하니까 멀거니 보고 있더니,
  "너희들 이거 우리 집 닭이로구나!"

    가만 있어요, 아기 자거든
  젊은 부부가 벌에 나가 진종일 그 힘든 일을 하고 돌아와 저녁인지 뭔지 몇 술 뜨고는 이내 자리에 들었다.
  어린것이 있어 젖꼭지를 물리고 토닥거리는데 남편이 지근거린다.
  "가만있어, 언내 자거든."
  도로 자리에 가 벌떡 누워 천장만 쳐다본다. 고단하여 자꾸 눈이 감기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얼마를 지나 다시 넘겨다보니까, 어린것은 아직도 쭉쭉 젖을 빨고 있고 부인이 또 나무란다.
  "가만있어요, 아기 자거든."
  이렇게 되자 어색하기도 하고 어린아이 보는 데 체면이 좀 안되기도 하여서 이번엔 한껏 기다리자니 여간 고생이 아니다. 억지로 잠을 쫓으며 얼마를 지나 '이제는 됐겠지' 하다가도, '그래도 그렇지 않다', 자문자답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다가, '이제야 설마' 하고 자신이 서서 엉거주춤 일어나 넘겨다보았다.
  정작 마누라는 곯아떨어져 침을 흘리고 잠이 들어버렸고, 딸년이 빨고 있던 젖꼭지를 쭉 뽑으며 생글생글 눈웃음을 친다. 그리곤 대견하다는 듯이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며,
  "나, 안자!"
  "..."

    내 입 한번 놀리면
  어떤 집에서 돌담을 쌓으려고 돌을 산더미처럼 준비하고, 아버지와 아들 둘이서 담을 쌓다가 뜻밖의 일이 생겼다.
  네댓 살쯤 된 이웃집의 귀염둥이 외아들 아이가 곁에 와서 놀다가 돌더미가 무너지는 바람에 그 밑에 깔려 그 밑에 깔려 그 자리에서 죽은 것이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요,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아버지와 아들은 몹시 당황하였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아이 시체를 밑에 넣고 그 위에다 돌과 흙으로 담을 쌓고 말았다.
  그 아이네 집에서 알면 어마나 놀랄 것인가! 자기네에게 잘못은 없다지만 원망들을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저녁 늦게 일을 마치고 들어와 밥상을 받고 앉아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온 참 어이가 없어서..."
  "아니, 무슨 일인데요?"
  옆에 있던 어머니가 묻자 아버지는 낮에 있었던 일을 대충 이야기하였다. 어머니가 밥상을 들고 나가자 아들은 아버지에게 책망하듯 말한다.
  "아버지는 왜 남 듣는 데서 그런 얘기를 하셔요?"
  "아니, 남이라니? 우리 세 식구뿐인데 남이 누가 있니?"
  "우리는 이렇게 부자지간이지만 어머니는 언제라도 남이 될 수 있는 식구 아니겠어요?"
  세상의 어머니들이 들으면 매우 섭섭해할 이야기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하다 아들의 말이 사실이 되어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문제는 그 몇 해 뒤의 일이다. 어쩌다가 부부가 하찮은 일로 다투던 끝에 속이 얕은 부인은 자못 협박조가 되었다.
  "내 입만 한번 놀리면 당신은 그만이어요."
  가뜩이나 독자를 잃고 눈이 뒤집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이웃집에서는 이 야릇한 말에 꼬투리를 잡고 부인을 꾀었다.
  아예 살지 않기로 결심한 부인인지라 사실을 모두 말해버리고 말았다. 이쯤 되었으니 그 집안이 어떻게 되었으리라는 것은 뻔하다.

    오냐, 이눔아! 다 주마, 다 주어
  주막을 해먹자니 창피한 직업이기는 해도 속은 살아 있다. 한번은 낮부터 비가 와 장사도 안돼서 일찍 문을 닫고 누웠는데 누가 찾는다.
  "거 누구요?"
  퉁명스럽게 물었더니,
  "양짓말 사는 김선달이다. 발벗기 귀찮으니 나와서 월천 좀 서라."
  "예, 예, 선달님입쇼? 그런데 선달님, 전 술이 취해서 제 몸도 못 추스릅니다요."
  "임마, 웬 잔소리야? 나와서 업어."
  못 이기는 체하고 업고 복판까지 와서 일부러 휘청휘청 뒷걸음을 치다가 털썩털썩 두어 번 깔고 앉아 주었으니, 물에 빠진 생쥐는 저리 가라다.
  "아, 글세 제가 뭐랬습니까? 제 몸도 못 추스르게 술을 먹었다니까요. 그러기로 이거 원 미 미 미안해서..."
  철버덕거리며 건너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혓바닥을 낼름 했것다.
  이튿날 낮에 선달 작자가 와서 생야단이다.
  "예? 그런 일이 있었어요 저는 전혀 생각이 안 나는뎁쇼."
  "어린 것 젖 물리고 깜빡 잠이 들었었는데 누가 불러서 나가더니 흠뻑 젖어가지고 들어왔던데, 그런 일이 있었구먼입쇼. 아이고, 그놈의 술이 원수지."
  "!?"

  월천이라면 물 많은 개울을 업어 건네주는 것을 말한다.

  장마 때 옹서(장인하고 사위) 간에 길을 가는데, 냇물이 넘쳐 수세가 사납다. 늙은이는 아랫도리 힘이 없다고 사위를 타일러 업혀 건너가는데 한복판에 이르자 사위가 고얀놈이지.
  "빙장어른(경상도에서는 장인을 그렇게들 부른다), 거 뒷배미 논 열마지기 주마던 것 어떡하실래요?"
  "오냐, 이눔아! 다 주마, 다 주어."

    이걸 맛있다고 처먹어?
  지금 평양식 냉면에 흔히 치고 또 회 먹는 데 없어서는 안될 겨자는 다른 것이 아니라, 초겨울 김장에 넣는 '갓'의 씨다. 그러기에 씨앗 장사들이 무씨를 팔다 남으면 곧잘 겨자에다 섞어버린다.
  강원도 산간지대에서는 이 갓을 대량으로 심어서 그 씨는 따서 겨자로 팔고, 잎과 대는 그대로 뚝뚝 끊어서 소금물에 절여 김치를 담근다. 마치 동치미 담그듯 하나 겨자 기운이 섞여 있어 그런지 시원한 맛이 이를 데 없다. 겨울날 이슥한 밤에 메밀로 국수를 눌러 이 국물에 말아 냉면으로 먹으면 천하 일미라는 것이다.
  옛날 서울에 어떤 양반이 있었는데, 자신도 벼슬이 대감 지위에 있었고, 아들마저 과거를 치러 인제 고을 원으로 가게 되었더란다. 도임해 보니, 워낙 꿀이 명산이지마는 서울서도 흔히 봉물로 받아먹던 바요, 무언가 자기 어른께 기막힌 선물을 드려야 한 텐데 하고 늘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는 밥상을 받았는데, 참 시원하고 맛있는 김치가 올라 있다. "이것이 무슨 김치냐" 물으니 갓으로 담근 거요, 이 지방에서는 지천으로 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야 지천이든 말든 자기가 서울서 고량진미에 묻혀 살았어도 이런 진미는 처음이라, 자기가 그럴 바엔 자기 아버지도 같을 거라, 보내 드려서 맛보시게 하리라 생각하였다.
  정갈하게 담근 것으로 한 동이를 새 장군(옛날에는 흔히 장군에 술이나 국물 있는 음식들을 담았다)에 넣어 잘 봉해 가지고, 건강한 하인을 하나 불러 서울로 지워냈다. 하인은 어느 영이라 거역하 수 없어 지고는 나섰으나, 앞으로 550리 길을 이걸 지고 갈 생각을 하니 따분한 노릇이다. 
  어느 놈은 고대광실 좋은 집에 배에 기름이 끼도록 고량진미에 싸여 지내며, 그도 부족하여 500여 리 밖에 김치를 지워다 먹는데, 요놈의 신세는 발바닥이 꽈리같이 부르트도록 삯길을 걸어야 하더란 말이냐? 처음 조그맣게 싹트던 불평은 날이 갈수록, 그리고 다리가 아플수록 점점 더해만 가고, 그런 위에 도중에 묵는 여각집 음식이 입에 안 맞아 죽을 노릇이다.
  하루는 길에서 비를 맞아 봉한 종이가 젖어 떨어지고 보니, 불현듯이 딴 생각이 난다. 그래 저녁상에 한 보시기 따라서 먹어보니 맛이 희한하다. 한 번 하나 두 번 하나 매일반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뒤로는 아예 매끼니마다 따라 먹기로 작정이다.
  여러 날 만에 서울이 빤히 내려다 뵈는 망우리 고개를 넘다 샘가에서 점심 도시락을 끌렀다. 그릇을 대고 장군을 기울이니 국물이라곤 이번이 마지막이다.
  "아차차, 이걸 그만 다 먹었구나! 그렇다고 국물 없는 김치를 갖다 줄 수도 없고, 도중에 넘어져 깨졌습니다고 할 수도 없고, 에라 될 대로 돼라."
하고 산골짜기 도랑물을 길어 가득 채워 꼭 막아서 짊어지고 성내로 들어섰다.
  그때만 해도 서울 안 지리가 그리 복잡하지 않던 때라 어렵지 않게 대감 댁을 찾았다. 온 연유를 고하고 물건을 드리니 대감이 친히 불러보고 대접이 융숭하다. 방 하나를 치우고 뜨뜻이 재워주며 이튿날은 하인 하나를 붙여 장안 구경을 골고루 시켜주고, 다음날 떠날 때는 노자도 두둑이 쥐어주며, 어린것들 주라고 옷가지까지 상급으로 준다. 촌놈이 처음으로 이런 대접을 받아 입이 함박만큼 벌어져 고향길을 찾아 돌아갔을 것은 물론이다.
  다음날 아침이다. 노대감이 밥상을 받았는데, 기름진 음식에 묻혀 지내며 운동조차 부족하고 보니 입맛이 있을 리가 있나? 그러자 문득 생각이 났다.
  "얘! 그 강원도서 보내온 김치 좀 놓지 그랬느냐."
  잔뜩 군침을 삼키며 기다리는데 한참 만에야 떠온다.
  "마개를 어찌나 단단히 막고 봉했던지 뽑기에 시간이 걸렸사와요."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어보니 싱겁고 짐짐한 게 군내마저 난다.
  '그래도 모처럼 사람까지 사서 보내준 건데, 그럴 리가 없지."
  다시 한 번 떠먹어 보아도 역시 그 맛이 그 맛이다 건더기를 한 젓갈 집어 먹어보니 그것도 군내가 나서 먹을 수가 없다. 그래도 어딘가 별난 풍미가 있으려니 하고 또 집어먹어 보아도 역시 그뿐이다.
  "에이! 강원도 놈들 아가리는 x구멍만도 못한가 보다. 이걸 맛있다고 처먹어? 그리고 이걸 별미랍시고 그 먼 데서 예까지 사람을 사서 지워보낸담!"

    갓김치를 너무 먹어서
  어떤 대갓집에서 젊은 부부가 잠을 자는데, 부인이 보자니 남편이 소리 없이 바시시 일어난다.
  '오줌이 마려우면 머리맡에 요강도 있고, 속이 좋지 않아 변소엘 가겠으면 당당하게 부를 켜 달래서 갈 일인데...'
  바지를 꿰고는 방을 나가 마당을 건너더니 행랑방으로 들어간다.
  부인은 발소리를 죽여 방 밖에 가 엿듣는다.
  "안반 머리에 흰떡 같은 아씨를 두고, 구질구질하게 왜 자꾸 찾아와서 귀찮게 구셔요."
  '옳지! 처음도 아닌 모양이로구나!'
  세밑에 흰떡을 쳐서 척척 이불 개듯이 접어놓고 보면 하얗고 탐스럽기가 이를 데 없다. 또 이렇게 집에서 부리는 하인의 계집 건드리는 것을 '통지기오입'이라고 한다.
  이때 남편의 변명이 또 그럴 듯하다.
  "떡을 먹으면 갓김치를 먹어야 하는 법이야..."
  더 서 있을 맛도 없어 도로 들어와 속으로 씩 웃고 말아버렸것다.
  며칠 뒤의 일이다. 시아버지 되시는 대감이 안방에서 진지를 드시게 되었다. 그래 둘이서 양수 비렁뱅이(양수거지, 본시는 양수거제)를 하고 시반을 섰는데, 아들이 쿨룩쿨룩 기침을 한다.
  대감이 수저를 멈추고 쳐다보며,
  "너 왜 요새 얼굴빛이 그렇고..., 기침은 또 웬일이냐?"
  며느리는 새침하니 숭늉을 뜨러 나가면서,
  "갓김치를 너무 먹어서 그렇다나요!"

    까막눈 좌수
  평안도 성천에 윤씨 성 가진 좌수가 있었다. 워낙 머리가 좋고 성실하여 모든 처사에 막히는 일없이 처리하건만 한 가지 험이 있다면 글자를 모르는 까막눈이라는 점이었다. 그래 그를 시새우는 동관들은 귓구멍으로 신임 사또를 만나 그를 헐뜯었다.
  "좌수라는 자는 순전히 눈치로만 일을 하지 글을 전혀 못 봅니다."
  사또가 이상히 여겨 하루는 평안감사에게서 온 편지를 내밀면서 보라고 하였다. 좌수는 받아들자마자 쭉 훑어보더니 태연하게 말하였다.
  "그까짓 게 무슨 걱정입니까?"
  "아니, 이 사람아! 이렇게 가문 때에 뗏목을 떠내려보내라니 어찌 걱정이 안 되나?"
  "그까짓 게 무슨 걱정입니까? 돌과 뗏장으로 개울 줄기를 군데군데 놓으면, 쪽 흘러내리다가 그 다음 칸에 가서 걸릴 것이 아닙니까? 거기서 또 물을 모았다가 탁 트고, 또 탁 트고 하면 쉽게 큰 강까지 나가게 되지요. 그러면 되는 건데 별걸 다 걱정을 하십니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하였다.
  "과연 좌수는 참 훌륭하이."
  사또는 이렇게 칭찬하고, 그 일을 좌수에게 맡겼더니 어김없이 척척 해치우고 돌아왔다.
  원님은 먼저 까막눈이라고 헐뜯던 이방을 보고 나무랐다. 그 사람이 편지를 곧잘 보던데 왜 쓸데없이 헐뜯느냐고 사뭇 역정까지 냈다.
  그러자 이방이 말하였다.
  "그건 사또께서 모두 가르쳐주셨으니까 그런 것이지, 좌수가 혼자 읽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참 그러고 보니 편지 사연의 실마리는 사또 자신이 털어놓은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직접 글을 써보게 하리라 생각하고, 방에 드러누워 끙끙 앓는 소리를 하면서 좌수를 불렀다.
  "내가 급히 편지를 쓸데가 있는데, 이렇게 골이 아파 누웠으니 좌수가 대신 좀 써주어야겠네."
  고자질하는 이방의 말 대로라면 좌수는 틀림없이 실토를 하고 못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좌수는 그 자리에서 "예" 하고 시원스럽게 대답하고는 먹을 갈기 시작하였다.
  잠시 후 좌수는 서판에 종이를 받쳐들고 붓에 먹을 찍어서 어서 부르라고 하였다. 사또는 그래도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괘씸하여 한문으로 좍좍 내리 불렀다.
  좌수는 초서(흘림 글씨)로 내리 써 가는데, 아주 빨리 보기 좋게 받아 썼다. 그리고 두루마리의 끝 부분을 접어서 사또 앞으로 밀어놓았다. 그 곳에 이름을 쓰라는 것이었다.
  사또는 누워 있어서 몰랐지만 가까이 받아들고 보니 도무지 글씨 같지가 않았다. 꼬불꼬불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그냥 줄줄 내리 갈겨 그려놓았을 뿐이다.
  "이거 어디 알아보겠나?"
  "제가 읽어볼까요?"
  좌수는 그것을 들고 내리읽는데, 조금도 틀리지 않고 사또가 부른 그대로였다.
  "자, 저는 이렇게 읽지 않습니까?"
  "그래, 무슨 글씨체인가? 처음 보는데..."
  "감투초라는 것이올시다."
  "감투초라니?"
  "감투초는 머리에 쓰고도 제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 않습니까? 이 글씨체는 자기가 쓰고도 알아보지 못한다 하여 그러는 것 입지요. 저는 사실 까막눈이올시다. 좌수로서 여러 사또를 모셔오면서 이때까지 갖은 어려움을 무사히 넘겨왔는데, 요즘 와서 누가 무슨 말씀을 드린 모양입니다만, 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면 되지 않습니까? 너그러이 보살펴 주십시오."
  원님은 그의 태도가 너무나 순박하고 분명하여, 글씨 쓰는 일만 빼고는 모두 그 좌수에게 맡겨 많을 일을 잘 처리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차이
  제법 지낸다는 집에서 외아들을 두었는데, 배짱이 약간 별나다.
  "사내자식이 부모 천량이나 물려받아 빈둥거리며 지낸대서야 무엇에 써?"
  말을 사 가지고 장삿길에 들어섰으니 사서하는 고생이다. 한 군데 가서 주인을 잡았는데, 우연히도 부자로 사는 과부집 이다. 이 자는 뜻밖에도 사업목표로 주인집에다 눈독을 들였다.
  '저녁 뒤 안방에 들어가 한동안씩 쳐다보고 앉았다 나오기만 하고, 얼마씩 드리마' 작정하고 한 장 도막을 실천하였다.
  다음 손을 만져보고는 얼마, 그 다음에는 얼마씩으로 올려드릴게 상체만 꼭 끌어안아 보자. 그러는 동안에 밑천이 떨어져 집에 돌아가 아버지께 떼를 써서 한 바리 돈을 더 실어왔다.
  이젠 젖가슴만 만져보기로 하고 얼마, 벗은 태도를 보여만 주면 얼마씩..., 이리하여 과부는 불로소득으로 두 바리 돈을 손에 넣었다. 이제 서로 대 보기만 하자고까지 얘기가 오갔는데, 다른 데는 다 허용한 뒤라 주무르고 끌어안고 흥분시켜 놓으니 배길 재간이 없다.
  이제는 과부 측에서 안달이다.
  "그저 제발 한번만."
  "열 냥 줄게 치러 주!"
  "쉰 냥 줄게 이뤄 주!"
  "그동안 받은 거 다 돌려줄게..."
  이리하여 '반 재산 드릴게 한번만'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을 때, 궁금해 따라왔던지 아버지가 창 틈으로 엿보다가 한 마디 거들었다.
  "야, 야! 그만하거든 한 번 들어주렴."
  그리하여 제 밑천 다 찾고 반 재산 나눠 받은 아들은 아쉬워했다.
  "아버지가 나서지 않았던들 전 재산 다 뺏는 건데."
  아비는 그렇지 않았을 거다. 역시 나이를 먹어서 지각이 났다 할까? 매사에 막다른 골목까진 몰지 않은 법이요, 또 전 재산 먹어놓으면 같이 살아야 할 모양이라, 이런 저런 계산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타성바지의 지혜
  왜정 말기에 징용이다, 보국대다 하고 탄광으로 어디로 끌려나가던 일이 연상되는 얘기가 하나 있다. 옛날에 균역 이라고 일종의 노무자 징용이 있었다. 멀리 변방에까지 나아가 자칫하면 살아 돌아오지 못할 위험한 자리다. 
  한 곳에 같은 성끼리만 모여 사는 마을이 있는데, 우선 번족하여 붙이가 많고 자연 관청 출입하는 사람이며 재산있는 사람도 있어 은연 중 커다란 세력을 이루었으니, 간혹 타성바지가 섞여 지내야 도무지 쪽을 못 쓰는 형편이었다.
  그 마을에 균역으로 나갈 사람이 하나 배당되었다. 그래 공론으로 하나는 일가 중에서 나고 하나는 타성이다. 두 사람이 물망(?)에 올랐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온 동네가 모인 자리에서 결정짓기로 되었다.
  자연히 사가 끼어 제비 둘에 다 동그라미를 쳐 가지고 외톨박이 타성더러 먼저 집으래서 그것을 펴보아 공이 나오면 다른 하나는 펴 볼 것도 없이 그를 보내 버리기로 비밀리에 단단히 통이 짜여 있었다.
  정작 결정지을 날이 닥쳐왔는데, 이 타성바지 청년이 아주 영리한 사람이라 동네 안에서의 자기 처지를 십분 짐작하여 아주 신중하게 나아간다.
  제비를 뽑아 정하자고 공론이 돌고 이어 제비 접은 것을 내놓으며 집으라고들 하니 그는 '네가 먼저 집으라'고 우기지도 않고 선뜻 집어들었다.  
  그리곤 한 마디 연설을 한다.
  "늙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잔약한 처자를 거느린 몸으로서, 오늘 이 한 표는 아니할 말로 나 하나 죽고 사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다섯 식구가 모두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짓는 것이올시다. 도저히 뜯어볼 용기가 나질 않아 할 수 없이 이렇게 먹어버립니다."
  '아, 저 녀석이 저걸 씹어 삼켜버리니 저걸 어째?'
  나머지 표를 집지 않을 수 없게 된 상대방은 속절없이 제가 친 그물에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

    푸줏간 인심
  어느 곳에 박상길이라는 이가 있어 장터에서 고깃간을 차렸다. 곳에 따라 명칭을 달리 한다. 서울서는 '관', 지방에서는 '육고간' '푸주' '푸줏간' 등.
  인근동에 사는 양반 둘이 장에 왔던 길에 고기를 사러 들어왔다. 그 중 한 사람이 한껏 되바라져서 예전 뽄으로,
  "상길아, 고기 한 근 베어라."
  "예! 샌님 오셔겝쇼."
  선뜻 한 근을 베었는데, 시골서의 일이니까 짚으로 솜씨 좋게 얽어서 내준다. 동행했던 사람은 어리무던한 사람이라 저도 계집 자식 있는 사람인데 하대할 맛이 없어,
  "박서방, 고기 한 근 주소."
  "예! 샌님 오겨겝쇼."
  아까처럼 배어서 주는데, 부피가 갑절이나 된다. 먼저 샌님 술기운도 있은 위에 이 꼴을 보고,
  "이놈아! 같은 한 근인데 이 양반은 이렇게 많고, 나는 왜 이렇게 적으냐?"
  "예, 그겁쇼? 다른 사람이 잘라서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니? 이놈 둘 다 네 손으로 베고 그러느냐?"
  "아니올시다. 저건 박서방이 자른 거고, 이건 상길이 녀석이 자른 것 입니다요."

    서출은 똑똑해
  조선 말엽의 일이다. 서울에서도 한다 하는 양반들이 한방에 모여 앉았는데 청년 하나가 찾아왔다. 보니 아는 친구의 천첩 자식이다. 그런데 놈의 인사 범절이며, 저의 어른 말씀 전하고 주인의 대답 들어 확인하여 가지고 일어나는 모든 태도에 한 점 나무랄 데가 없다.
  '서자 노릇 시키긴 아깝다.'
  모두가 생각하는 반데 막 문지방을 넘어서려 할 때 좌중의 한 사람이 혼자말처럼 뇌까렸다.
  "남의 집 천출은 모두 저리 똑똑하거든!"
  실은 친자식들이라는 게 하나도 변변치 못해서 하는 자탄의 말이언만, 말이 채 떨어지기 전에 청년이 되돌아 문지방을 넘는다.
  '아차차, 망신하겠는걸!'
  그러는데 아니나다를까,
  "대감,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
  "그런 이치도 모르십니다그려! 남의 집 큰 마나님이야 한 번 시집가면 으레 큰 탈없이 백년해로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소인네들 어미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모처럼 괴임을 받다가도 한 번 차이면 어떻게 될지 몰라, 그래서 사랑을 잃지 않으려고 아침저녁으로 들이 뒷물들을 합죠. 그러니 깨끗한 구멍으로 나왔는데 똑똑치 않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거짓말 내기
  어느 곳에 부자가 하나 살았는데 심심풀이로 얘기나 실컷 들어볼 양으로 광고를 냈다.
  "누구고 거짓말을 해서 나를 굴복시키기만 하면 상금으로 암만을 치를 것이다."
  한 청년이 상 탈 욕심에 그 집을 찾아들었다.
  "저희 동네에 99세 난 처녀가 하나있는데, 그의 아들이 날 불러들이더니 이런 얘기를 합디다.
  '우리 어머니가 남편도 없이 날 낳아 키우기에 고생이 얼마나 많으셨겠나? 이에서 신물이 날 지경이지...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아들을 밸 때 겁탈을 당하면서도 남자더러 어디 사는 누구며 아이를 낳으면 어떡할 거냐고 따지셨다지 뭐야?
  돈표를 써주면서 또 이렇게 약조를 하였더래.
  만약에 아들을 낳으면 양육비로 매년 암만씩을 더 치르마.
  그런데 지금 자네가 그분 사는 데를 간다고 하니, 증거물로 이 표를 가지고 가서 돈 좀 받아다 주게.' 그럽디다."
  주머니에서 표를 꺼내 방바닥에 놓고 손으로 싹 밀어서 구김살을 편다.
  "주인 어른이 아무아무 어른 맞으시죠? 자, 이 표 확인하고 돈 내주십쇼."
  표를 보니 무척 오래된 것같이 무수히 꾸몄는데 문면대로라면 엄청난 계산이 나온다. 거짓말 아니면 진실이고 진실이면 그 돈을 치러야겠는데, 상금쪽이 훨씬 싸게 먹힌다.
  "임마, 그거 거짓말이다. 난 그런 사실 없어."
  "그러셔요. 그럼 상금 주십쇼."
  이리하여 그는 돈을 타다 그것을 밑천으로 장사를 해 잘살았다.

    예끼, 이 사람! 그 따위 거짓말이 어디 있나
  "누구든 거짓말 세 마디를 멋지게 하는 녀석에게 내 딸을 주겠다."
  이렇게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있었다.
  그래 사방의 노총각,홀아비들이 갖은 궁리를 해 가지고 모여들었다. 그러나 주인 영감이 어찌나 말주변이 좋은지, 말꼬리를 잡아 가지고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은 말문이 막혀 여간내기가 아니고는 몇 마디 못해보고 쫓겨나곤 하였다.
  한 총각이 이 이야기를 전해듣고 큰소리를 치며 그 영감을 찾아갔다. 마음속에 단단히 생각해놓은 것이 있으니 걸음걸이마저 가벼웠다.
  총각이 그 집에 도착했을 때, 영감은 마침 일꾼을 얻어다 타작을 하고 있었다. 주인을 찾아 인사를 드린 뒤 찾아온 뜻을 이야기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래, 여기서는 이렇게 구식으로 타작들을 하십니까?"
  "그럼 어떻게 하나?"
  "저희 동네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래서야 힘이 들어 어떻게 그 많은 것을 다 털어 냅니까?"
  "그럼, 어디 자네네 동네에서 하는 식을 좀 말해 보게."
  "저희 동네에서는 논두렁을 벼의 키 높이 만큼 높게 쌓습니다. 그래가지고 벼가 누렇게 익으면 논에 물을 가득히 채워 놓죠. 그러면 이삭만 물위로 나올 것이 아닙니까? 그러다가 날이 추워 꽁꽁 얼게 되면 도리깨를 들고 나가 두들겨서 거둬들입니다. 그러면 벼에 돌이 섞일 염려가 있습니까? 마당질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주 십상이죠."
  "예끼, 이 사람!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는가?"
  "하, 그런가요? 그럼 첫 번 고비는 넘겼습니다."
  "알았네. 다음 이야기나 하게."
  "여기서는 끼니마다 고기를 못 잡수시는 모양이로군요."
  "아니 이 사람아, 무슨 수로 고길 그렇게 먹어. 고기란 어쩌다 먹는 것이지."
  "그것 보십시오. 머리를 안 쓰시니까 그런 겁니다. 저희 동네에서는 끼니마다 고기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느냐고요? 튼튼한 꿰짝을 짜고 엉덩이 있는 데다 조그만 구멍을 하나 내놓지요. 그러면 송아지나 돼지 새끼가 점점 자라 궤짝 안에 꽉 차고 나서부터는 뚫어놓은 구멍으로 살이 툭 비어져 나올 거 아닙니까? 그러면 비어져 나온 만큼을 날마다 베어먹는 것이랍니다. 소나 돼지가 날마다 먹이를 먹고 자라는 대로 살은 자꾸 비어져 나오고... 그런 것도 모르시고 고기 반찬 없는 진지를 잡수신단 말입니까?"
  "예끼, 이 사람! 그 따위 거짓말이 어디 있나?"
  "아, 그렇습니까? 그럼 이젠 한 마디만 더하면 되겠군요."
  총각은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문서조각을 꺼내며 이야기를 계속 하였다. 
  "저의 집 마당에 굉장히 큰 배나무가 하나 있었다. 수십 년 전일이지요. 하루는 까마귀란 놈이 제일 잘 익은 배 하나를 따서 물고 날아가 버렸다지 뭡니까? 그래 죽어라 하고 쫓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이놈이 은진미륵 머리 위에 앉아서 그 배를 파먹지 않겠어요? 분했지만 할 수 없이 돌아왔죠. 그런데 몇 해 만에 우연히 그곳에 가보니 거기 큰 배나무가 나 있고 배가 네댓 접이나 열렸더래요. 그러니 그 배 임자가 누구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우리 배나무죠?"
  "암, 그렇지."
  "그러나 그 높은 데를 무슨 수로 올라갑니까? 혹 올라간다 해도 잘못하여 부처님을 넘어뜨리든지 하면 그 손해를 무얼로 물어줍니까? 그래 한 궁리를 냈습죠. 긴 대막대기를 가지고 가서 미륵님 콧구멍에 넣어 간질여 주었습니다." 
  "응, 그래서...?"
  "이 부처님이 연거푸 재채기를 하지 뭡니까? 그 바람에 머리 위의 배나무에서 배가 쏟아져 떨어지는데, 아유, 네댓 접 대중쳤던 배가 열접이나 되지 뭡니까? 게다가 모두 아주 굵직굵직하지 않겠어요?"
  "큰 돈 나왔겠네그려."
  "그런데 말씀입니다. 참 그것을 팔았는데 어쩔 수 없이 그걸 외상으로 줬지 뭡니까?"
  "저런! 아니 어쩌다가 그랬나?"
  "그 때 배를 사가신 분이 바로 영감님의 할아버님이신데, 팔아다 갚겠다며 떼를 쓰시니 안 드릴 수 있어야죠. 그래서 여기 있는 이 증서를 받고 드렸는데, 참 사람의 운명은 알 수 없는 것이죠. 끝내 못 갚으신 채 돌아가시지 않았겠어요? 그러니 그게 좀 오래된 일입니까? 원래 배 값은 1천 500냥이지만, 그 동안 이자까지 합치면 꼭 1만 냥입니다. 내 이제 와서 1만 냥 다 주십사 고는 할 수 없고, 절반 때려서 5천 냥만 주시면 그걸로 아주 셈을 끝내겠습니다. 자, 계산해 주십시오."
  이쯤 되면 딱한 건 주인 영감이다.
  여느 때 식의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이라고 우기면 배값 5천 냥을 물어야 할 판이고, 거짓말이라고 하였다가는 딸을 내놓아야 하게 됐다.
  영감은 한참 만에야 소리쳤다.
  "예끼, 이놈! 어디서 그런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해!"
  "그렇습니까? 그럼 세 마디 다 끝났습니다. 어서 영감님의 따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자, 여기 이렇게 사주까지 써 가지고 왔습니다."

    꿈도 크고 봐야
  남의 집 머슴 사는 총각이 대단한 꿈을 꾸었다고 만나는 이마다 보고 떠드는데, 어떤 꿈이더냐고 물으면 입을 봉하고 말을 안 한다. 주인이 물어도 대답을 않고, 그 고을 원님이 불러다 물어도 함구불언, 한번 다문 입을 떼지 않는다.
  '큰일 저지를 놈 아닐까?'
  원님은 총각을 옥에 가뒀다. 그런데 쥐란 놈이 구멍에서 낼름낼름 하기에 한 대 때렸더니 죽어버린다. 이때 다른 쥐가 무슨 나뭇가지를 물고 와 그걸로 죽은 놈의 몸을 재니까 꼬물꼬물하더니 살아난다. 얼핏 손 쓴 놈을 때려서 죽여놓고 그 나뭇가지로 재니까 역시 살아나서 종종거리며 달아난다. 
  얼마 있으려니 내아에서 곡성이 일며 관청 안이 발끈 뒤집혔다. 원님의 나이 찬 딸이 갑자기 죽었는데, 남의 원한이 빌미가 됐는지 모른다고 웬만한 죄수는 모두 석방하는 바람에 총각도 풀려 나왔다.
  그 길로 자청하여 들어가 그 막대기로 재어서 소생시켜 놓으니 갈데 없이 원님의 사위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나라의 공주님이 갑자기 죽었다는 기별이 와서 이 청년은 말을 달려 서울로 떠났다. 역시 그 막대기로 재어서 살려놓으니 공주가 떼를 쓴다.
  "아바마마, 꼭 그 청년과 살겠습니다."
  이미 결혼한 몸이라니까, 그러면 좌우부인을 봉하면 되지 않느냐고 우겨서 일약 임금의 부마가 되었다.
  이젠 그 꿈 얘기 좀 해도 괜찮치 않느냐고 주위에서 하도 조르니까 그제서야 털어놓는다.
  "아, 이렇게 누웠는데 말이야, 양쪽 손끝이 서늘하기에 보기 한 손은 동해바다에 담그고, 다른 한 손은 서해바다에 잠겼는 기라. 자고로 꿈 얘기는 말라고 했지만, 가만히 있으면 누가 알겠능교. 그래 마구 떠들어댔던 기라요."
 
    내기 아니면 난 장기 안 두네
  서울의 세력있는 부자 선비로 장기 수단이 일국의 으뜸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분이 있었다. 하루는 어느 시골 사람의 찾아와 뵙고 공손히 말한다. 
  "시골 상것이 무얼 알겠습니까마는 장기 한 수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말은 부드럽지만 한판 겨루자는 소리다.
  "나는 내기 아니면 안 두네."
  "그러하온 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집 떠난 놈이 별수 있습니까? 타고 온 말하고 하인을 걸겠습니다."
  그리하여 대국하기 세 판에 조루루 내리 지고는 힘없이 돌아갔다. 하인을 불러보니 사람이 근실하고, 말도 잘 거두지 못해 파리하기는 했으나 눈에 열기가 있고 제법 쓸 만하였다. 집에 두어 잘 먹이고 보살피니 말과 사람이 다 때를 홀딱 벗었는데, 먼젓번 촌사람이 찾아왔다.
  "돌아가 생각하니 분해 배길 수가 있습니까? 그래 이렇게 논밭 전지 문서를 꾸려 또 한 수 배우러 왔습니다."
  "그러니까 자넨 그걸 걸겠다, 그런 말이지? 난 그럼 자네한테서 뺏은 하인과 말을 검세."
  그래 다시 판을 벌였는데, 이거 형세가 순탄치 않다. 가까스로 첫판을 비겼을 뿐 두 판을 연달아 지고 나자 어이가 없어 주인의 말이,
  "자네 장기 솜씨가 그동안 많이 늘었네그랴!"
  "실은 촌에서 온 놈이 사람과 말을 여러 날 맡겨둘 데가 있어얍죠!
  그동안 잘 거둬주셔서 감축합니다. 저의 장기 수단이 본시 주인 어른 적수가 아닌 걸입쇼."
  "?!"

      과부 50명이 목놓아 울어대니

    암행어사의 누이
  어떤 대감이 자녀를 여럿 두었는데, 속을 썩이느라고 그 중의 딸 하나가 망문과가 되었다. 망문파,당문파가 있다더니, 이건 사주만 받아놓고서 얼굴도 보지 못한 신랑이 죽었다고 수절을 하라는 거다.
  세상 제도가 그러하니 어쩌는 도리가 없다. 그렇기로 아침저녁 대해 볼 적마다 부모나 동기의 마음은 미어지는 것만 같다.
  하루는 주인 대감이 답청을 가시겠다고 건장한 심복 하인에게 찬합을 짊어지우고 말 경마 잡혀 집을 나갔다. 목적지에 당도해 보니 다른 손님이란 아무도 안 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애당초 아무도 청하지 않은 거다.
  찬합을 끌러놓고 하인이 부어 올리는 대로 한 잔을 받아 잡숫더니 뜻밖에도 하인의 손목을 잡으며 반 배를 한다. 하도 황송하여 어쩔 줄 몰라 하니까 기어코 고개도 돌리지 말고 한숨에 들이켜란다.
  '노인의 장난이거니.'
  생각하며 마시고 나니까, 또 술병을 들고 부으려 한다. 사양하려니까 굳이 거푸 붓는다. 언뜻 보니 대감마님 글썽하던 눈물이 쭈루룩 줄을 지어 흘러내린다.
  '오늘따라 대감께서 왜 이러실까?'
  그날 말과 하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놀이터 북새통에 훔쳐 타고 달아나 버렸다는 거다.
  며칠 뒤 별당채 과부딸 방에서는 곡성이 흘러나왔다. 신세를 한탄하고 자살하여 죽었다는 거다. 참혹한 거 누구 보일 맛이 없다고, 시체는 남의 손 빌리지 않고 부모님만이 거두었다. 그리고 이튿날 저녁때 쓸쓸한 상여는 집을 나섰다.
  이제 대감님도 어느덧 칠십이 넘어서고 아들들도 장성하여 벼슬살고, 그중의 하나는 함경도 암행어사를 다녀 들어와 임금께 복명하였다. 암행어사란 집에도 알리지 않는 거라, 여러 날 만에 초췌한 얼굴로 돌아온 아들은 온 가족의 환영을 받았다.
  밤도 이슥하여 별당에서는 이례적으로 부자간에 호젓하게 술상을 마주 대해 앉았다.
  아버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음!"
  침음하며 술잔을 비웠다.
  "철령을 넘어서니 사뭇 멀리 온 기분이 났습니다. 안변 지경에 들어섰는데, 깨끗한 시냇가 한적한 마을에서의 일입니다. 동네아이들이 뒤섞여 놀고 있는데, 특별하게도 깨끗하게 생긴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냥 지나쳐 버리려니까 자꾸 마음이 켕기지 않습니까? 핏줄이란 그렇게 강한가 봅죠? 아이들을 앞세우고 찾아 들어가니 누이는 붙잡고 자꾸 울지 않습니까?"
  "음! 왜 안 그러겠니? 그래 며칠이나 묵었더냐?"
  "그날 하루 묵고 돌아오는 길에는 이틀이나 묵었습니다."
  "오, 잘했다. 그래, 매부도 상면했니?"
  "예! 매부가 말 훔쳐 가지고 도망갔다고 소문을 내 놔서 집 근처에는 다시 오지 못할 거래니까 쓸쓸한 웃음을 짓습니다."
  "흐흠! 그래 모두 그러니까 사 남매하고..., 또 하나 가졌더라지?"
  "예!"
  "너도 한잔 받아라. 가슴이 울적해 부자간이라도 밤새 술이나 먹고 싶구나!"

    색시가 마음에 안 드시우?
  어떤 양반 댁에서 있은 일이다. 갑자기 난리가 나자 집에서 부리던 하인들은 이때다 하고 모조리 도망을 치고, 피난은 해야겠는데 방도가 없다.
  부인을 말에 태워 떨어지지 않게 무명필로 동여맨 다음 자신이 경마를 잡고 길을 나섰으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러다 도중에 말을 세워 두고 소변을 보는데, 요놈이 조촘조촘 걸음을 뗀다. 소변은 시작돼 중단할 수도 없고 엉거주춤한 채 소리를 질렀다.
  "워!워!"
  소리가 큰 데 놀랐던지 말은 그대로 줄달음을 쳐버렸다. 동물은 귀소 본능으로 제 집을 찾아드는 습성이 있는 법이라, 말은 본래 살던 집으로 되돌아왔다.
  본집을 지키던 총각 하인이 덕분에 장가나 들까 하여 말을 잡아 세우고 보니 주인 아씨라, 질겁을 해서 아씨 친정댁으로 모셔다 드렸다.
  불시에 홀아비가 된 서방님은 맥없이 처가엘 찾아들었는데, 처남이 앞질러 통을 짜놓아서 아무도,
  "아씨 예 와 계십니다."
하고 말하는 이가 없다. 저녁에 술상을 놓고 마주앉아 처남이 권한다.
  "매부한테는 부인이고, 나한테는 친누이 아니오. 잃어버리고 섭섭하기로 말한다면 아마 내가 더하리다. 난리는 지났다지만 어디 가 어떻게 찾겠소? 마침 참한 색시가 하나 있으니 장가를 들우. 그러다가 요행 누이를 찾으면 나중 여자는 작은 마누라로 치든지..."
  재취를 할래도 처갓집 눈치를 봐야 할 판인데 이것은 처남이 권하는 것이라 마지 못한 체 그러라고 했더니, 재혼에 무슨 예식이 있느냐고 이튿날 그냥 신방을 치르게 되었다.
  저녁이 되어 옷 매무시를 고치고 앉았으려니, 처남의 댁이 색시를 부축해 데리고 들어오기에 부채 차면을 하고 일어서서 맞았다. 앞 뒤 문구멍이 뚫리며 엿보고들 킬킬거리고 웃는 가운데 자신도 앉아 그제사 자세히 보니 자기 아내다.
  어이없어하는데 처남이 들어선다.
  "왜 색시가 마음에 안 들어 그러우?"
  주안상을 내와 온 집안이 크게 웃고 모두가 다시 모여 재미나게 살았다. 
 
    뭐 그런걸 다 가지고 관청을 괴롭혀
  어떤 홀아비가 동네 참한 과부에게 은근히 뜻이 있어 하루는 삽짝 밖에서 콩 까부르는 데로 가까이 가서,
  "x."
하고 소리를 질렀다. 과부가 약이 올라서 일어서니까 그냥 뺑소니를 친다.
  이틀 뒤 부엌에서 일하고 있을 때, 안마당까지 들어가 또 소리를 지르고 튀었다.
  다시 이틀 뒤에는 뒤꼍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니 안방까지 들어가 뒷문으로 내다보고 소리를 쳤다.
  "저 망할 놈이..."
하고 부엌 모퉁이를 돌아서 쫓아올 때쯤은 이미 근처에 없었다.
  과부는 분을 참지 못해 친정 오라버니를 시켜 관청에 고소를 했다.
  동헌 앞에 원고와 피고를 나란히 세우고 원님은 물었다.
  "저 여인은 무슨 일로 이 남자를 고발했던고?"
  "예! 닷새 전에 우리 집 삽짝 밖에서 X하고 달아났습니다."
  "그래? 또..."
  과부는 표현이 잘못되었나 해서 고쳐 말했다.
  "사흘 전에는 안마당까지 들어와 또 그러고 소리 치고 갔습니다."
  "그럴려면 그러지 소린 왜 질렀노?"
  "어제는 안방까지 들어와 또 그러고 갔습니다."
  "그래? 한두 번 그런 사이도 아니고, 홀아비와 과부라니 살림 차리고 살려무나. 뭐 그런 걸 다 가지고 관청을 괴롭혀?"
  "?!"

    홀아비 아버지와 노총각 아들
  눈내린 숫눈길로 홀아비와 노총각 아들이 같이 걸으며 신세 한탄을 하다가, 여자 둘이 나란히 걸어간 발자국으로 눈길이 갔다.
  "이것 봐라. 여자 신발 자국이다.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으니, 작은 쪽은 딸, 큰 쪽은 어머니일 것이다. 내 큰 편을 얻을 게. 너는 작은 쪽 여자를...
  부지런히 걸어서 따라잡고 보니 모녀간이긴 한데 발 큰 편이 딸이다. 그러기로 장부일언이 중천금이라니, 변경할 수도 없고... 본래 약속대로 각각 혼인하여서 자녀를 두었는데, 난감한 문제가 있다. 아이들 서로 사이의 촌수는 어떻게 따져야 하노?

    보쌈당한 홀아비
  옛날에는 과부를 업어 가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은 국법으로 개가를 금하고 있었으므로 약탈해서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니, 사전에 쌍방이 합의해 놓고 일종의 연극으로 꾸미는 일도 흔히 있었지만 때로는 정말 불의에 습격하는 수도 있었다.
  어느 시골에 집은 가난하나 학식과 덕행이 놀라운 김 진사라는 선비가 하나 있었는데, 상배(부인을 여읨)하고 이어 속현(아내를 여읜 뒤 다시 새 아내를 맞는 일)을 하지 못한 채 있었다. 재취장가를 들자니 살림이 간구하여 처녀는 줄 이가 없고, 이웃에 젊은 과부가 하나 있긴 하나 감히 바랄 수가 없다.
  인물도 얌전할뿐더러 가문도 괜찮으니 수절할 것으로 세상이 다 아는 바라, 무뢰배를 동원하여 업어올 주변도 못되고, 그렇다고 매파를 놓아 통혼할 계제도 안 된다. 아주 가까이 한 동네 안에 가장 걸맞는 홀아비와 가부가 서로 바라보며 살면서도 합쳐 봅시다고 한마디 건네지도 못하고 지내다니 참 애타는 노릇이다.
  어느날 밤도 이슥하였는데 과부집에서 하인이 왔다. 편지 한 장을 놓고 가기에 뜯어보니, "진사님은 직접 뵙고 긴히 상의할 말씀이 있으니 이내 자취 없이 좀 와 주십시오. 대문은 지쳐만 두겠고, 개는 챙겨놓았으니 염려 마시고... 그럼 꼭 기다리겠습니다" 하는 사연이다.
  진사님 사뭇 가슴이 두근거려 어쩔 줄을 몰라한다. 아무리 동네간이라도 그래도 출입이다. 밤중이라도 옷갓을 정제하고 과부집으로 행차를 납신다. 약속한 일이라 아무 거리낄 것 없이 안마당에 들어서니, 이내 손짓해 방으로 맞아들인다.
  가뜩이나 얼떨떨해 어쩔 줄을 몰라하며 그런대로 좌정하니 이내 주안을 올린다. 두어 잔 권하는 대로 받아 마시고 나니 여자가 말한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지낼 수 없어서 이렇게 이면부지하고 오시라고 했습니다. 우선 몇 잔 더 드시고..."
  진사님 혹시나 하였던 일루의 희망이 이루어지게 됨에 더욱 무어라 말이 안 나온다.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우리 한번 차림을 바꿔보면 어떻겠어요? 나는 남복하고, 진사님은 쪽찌고 여복하고, 호호!"
  술상을 물리고 이부자리를 펴며 여자가 하는 소리다. 가부간 대답도 하기 전에 망건을 벗기더니 상투를 풀어내어 내리 빗긴다. 쪽을 찌어 놓으니 그 꼴인들 오죽하랴만, 이내 속속들이 갈아입으라면서 자신은 살그머니 밖으로 나간다.
  '그렇겠지! 예서야?'
  속으로 생각하며 치마 저고리까지 다 갈아입고, 그러고 앉았기가 수삽하여 아주 불까지 꺼버리고 깔아놓은 이불 속으로 가만히 들어가 기다린다.
  "왜 이렇게 안 들어올까? 자꾸 졸음은 오는데."
  그러는데 밖의 동정이 심상치 않다. 몇 사람의 수군수군하는 소리가 들리더니만 하나가 문을 잡아챈다. 고리를 걸었으려니 하고 당겼다가 뜻밖에 활짝 열리는 바람에 잠깐 휘우뚱하였던 모양이다. 이내 장정두엇이 뛰어들더니 잡담 제하고 입에 재갈을 물린다. 그리고 이불로 둘둘 말아서 묶는데, 혼나는 건 진사님이다.
  "아, 이놈들이..."
  어쩌고 할 새도, 할 수도 없다. 이내 들쳐업더니 풍우같이 내닫는다. 사지를 허우적거려 봐야 도리도 없고, 그대로 얼마를 달리더니 어느 집에 당도한 눈치다. 방에 들여다놓고 끌러도 진사님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무척 놀라셨을 텐데, 오늘 저녁은 제가 모시고 자지요. 과히 염렬랑 마셔요."
하며 끌어안아다 이불을 덮어주는 사람은 말 만한 처녀다. 처녀의 말이, 자기는 이 골 좌수가 상배한 후 마땅한 혼처가 없어, 아무데 과부가 얌전하다는 것을 알고 사람을 사서 업어온 것인데 이제 웬일이냐는 것이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으랬다고 처녀가 갖다준 남북을 차려입고, 상투에 망건,감투까지 얹어 쓰고선 마당으로 난 미닫이를 벼락같이 열어젖힌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안방에 있던 좌수랑 모든 가족은 모두 제 귀를 의심하였다. 건넌방에서 저렇게 우람한 남자 목소리가 나다니?
  "여봐라! 이 집엔 게 누구 없느냐?"
  식구들이 뛰쳐나와 보니 동여다 놓은 과부가 밤중에 둔갑을 했는지 난데없는 헌헌장부다.
  "이놈, 양반을 이렇게 욕보일 법이 있을꼬?"
  이리하여 김 진사는 돈 많고 권세 있는 그 고을 좌수 누이로 아내를 삼게 되었는데, 이웃집 과부는 간 곳을 모른다. 얼마만에 동네 뒤 깊은 연못가에서 여자 신 한 켤레와 유서 한 통이 발견됐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지낼 수 없어서 한 가지 좋은 일이나 하고 저는 갑니다."
  아마 진사에게 무척 생각은 있었건만 주위 이목에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이 길을 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며느리, 너는 하늘에 맹세한 것을 지켜야 할 터
  경상도 안동에는 본시 김씨와 권씨가 대성이요 출중한 인물도 많았다. 어느 때 권 진사라는 분이 있었는데 인물도 출중하고 수단이 놀라운 외에 집안 다스리는 법이 엄하였다. 가족이고 하인이고 잘못을 범하면 용서하는 법이 없이 모두들 벌벌 기었고 이웃에까지도 좋은 경계가 되었다.
  다만 늦게까지 일점 혈육이 없다가 나이 사십이나 되어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이 또한 인물이 깨끗하여 온 고을의 칭송을 받았다. 그런데 귀한 아들이라 일찌감치 손을 보려고 몸 튼튼한 며느리를 얻었더니 남자 몇 몫 할 여자였다.
  하루는 그 집 아들이 이웃 마을에 아버지 심부름으로 나들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인데,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주막집 추녀 밑에 들어서서 비를 피했다.
  지나가는 비라 금방 그치려니 했더니, 점점 세차게 퍼부어 위에서 오는 비보다도 튀는 흙탕물에 견딜 수가 없다. 그러는데 주막 주인이 와 굽실하며 말을 건넨다.
  "아래에서 튀는 물이 더합니다. 잠깐 안으로 들어오셔서 비를 피하십시오."
  헛간에는 사인교가 놓여 있고 좋은 말도 한 필 매어 있는 것을 보니 어느 양반 행차가 든 모양이다. 내행도 있고 한 데를 들어갈 맛이 없어 몇 번 사양하자니까, 안마루께서 자기 또래나 되었을까 한 선비가 들어오라고 손짓해 부르며 일변 신발을 찾는다. 그냥 있으면 기어이 쫓아나와 맞아들일 판이라 마지못해 따라 들어갔다.
  마루에는 깨끗한 등메를 깔았고, 내행들은 딴 방에 들었는지 선비와 단 둘이 마주 대해 앉게 되었다.
  "우리, 이렇게 비를 피하는 동안 심심하니 얘기나 하시며..."
하더니 찬합을 끌어당겨 여는데, 음식이 모두 정갈하고 사기병에서 따르는 술 또한 향기 높고 준열하였다. 권커니 자커니 두어 순배나 마셨을까, 그 뒤론 도통 기억이 없다.
  혼미한 중에도 목이 타는 듯하여 고개를 들고 손을 내밀어 머리맡을 더듬으니 그릇이 와 닿는다. 일변 눈을 비비며 받아 마시니 시원하고 정신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골서 보기 드문 제호탕 식힌 것이니 그렇지 않겠는가? 정신이 들고 보니 이거 내 집이 아니다. 머리맡에는 생전 보지 못한 어여쁜 여인이 촛불 곁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이상도 하다. 내 어느 선비하고 술을 먹은 것 같은데.'
하고 방문을 열어보니, 비는 깨끗이 개고 보름 지난 달이 중천에 휘영청한데 헛간과 마구의 말도 가마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내가 꿈을 꾸었나? 도깨비한테 홀렸을까?'
옆에 앉았던 여인이 입을 연다.
  "서방님께서는 무얼 그리 찾으십니까? 찾으셔도 허사일 것입니다. 깊은 사연이 있으니 좀 들어보십시오."
  자기는 죽어도 본색을 댈 수 없는 서울 모 대신의 딸인데, 혼인을 정해놓고 신랑이 죽어 망문과의 신세가 되어 까닭에 없는 수절을 한다고 청춘을 늙히는 것이 가엾어, 어제 만나신 분이 자기 오라버닌데, 그가 한 꾀를 내었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신세를 한탄해 자살한 양으로 꾸며 헛장사를 지내 외면을 치레하고, 단 두 남매 팔도강산 유람을 나섰다는 것이다. 가마꾼이며 마부는 그때그때 바꿔서 고용한 사람이니까 자기네 행색은 알 리도 없고, 이렇게 방랑해 다니다가 어디서고 자기 누이 고생이나 안 시킬 만한 청년을 만나면, 어제 술은 집에서부터 준비해온 것인데 그것을 먹여 떨궈놓고, 누이를 그 방에 처넣고선 밤새 말을 달려 도망해 버리기로 그렇게 미리 꾸며놓았다는 것이다.
  "오라버니 타신 말은 천리준총이오라, 그때부터 달렸으면 지금쯤 죽령을 훨씬 넘었을 것입니다. 이젠 이 하늘 땅 사이에 당신밖엔 밑을 데 없는 신세올시다. 죽이시든 살리시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저 먹을 것은 제가 가지고 왔으니 그것은 염려 마십시오."
  묵직해 보이는 피롱 한 바리를 가리켜 보인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큰일이다. 그렇다고 자청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와서 거절했다간 생사람 죽일 판이고.
  '에잉, 사내자식의 일이다. 저지르고 볼밖에.'
  그리하여 여인의 손을 잡아 백년해로의 가약을 맺은 것은 물론이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 곰곰이 생각하니 수습할 길이 막연하다. 곧 주인을 불러 아씨 잘 보호할 것을 단단히 부탁하고 주막을 나섰다. 곧장 집으로 안 오고, 동접 친구 가운데 꾀가 제갈량 같다는 사람을 찾았다. 전후 사정을 얘기하였더니 그도 난감한 모양이다. 한참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이렇게 말한다.
  "일이 대단히 어려운 만큼 잠깐 시일이 필요하니 오늘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게. 그러면 내 편지할 게니 아버지께 보여 드리고 놀러오게. 동접 몇몇이 모여 시회를 한다고... 그럼 무슨 도리가 있을 듯 하이."
  집에 돌아와서는 비에 막혀 하룻밤 드새고 왔습니다 고 여쭙고, 제 방에 돌아와 친구의 편지 오기만 기다린다.
  아니나다를까, 얼마 있자니 사랑에서 부르신다.
  "옛다, 아무개한테서 편지 왔다. 갸가 황 진사 막내아들이지? 아놈아, 남의 자식 글 솜씨 좀 봐라. 너는 언제나 그만큼 쓰게 되니? 내 나귀 타고 갔다가 늦지 않게 돌아오너라. 그리고 오늘 지은 것도 한 벌 베껴오고...
  '아이구! 호랑이 굴을 벗어난 것 같다.'
  친구 집에 당도하니 벌써 몇몇이 모였다가 반겨 맞는다. 술이고 밥이고 도무지 맛이 안 나는 것을 그런대로 종일 놀다가 헤어지는데, 친구가 이른다.
  "오늘 지은 시들은 써 가지고 갈 게 아니라 모두 외어서 여쭙게. 그래야 신용도 늘지! 그리고 집에서도 하루 놀고 싶어들 하는데, 아버님 무서워 엄두들을 못 낸다고 슬쩍 불을 지르게. 그래 자네 집에서 만나게들 되면 무슨 도리가 있느니."
  집에 돌아와 뵈니 글 지은 것들을 보여 달란다. 그래 십여 명이 지은 것을 줄줄 외며 설명하니 진사님의 입이 헤 벌어진다. 제 자식 똑똑하게 노는 데 좋아 안 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래 한창 기분이 좋은데 정작 얘기를 꺼낸다.
  "모두 저희 집 누마루가 시원하다고들 하면서, 가서 매실주라도 대접 받을래도 아버님께서 하 무서우셔서 입이 안 열린다고들 그럽니다."
  "무섭기는, 내가 사람 잡아 먹는다든? 내일이라도 부르려무나."
  "그렇게 급하게 서두르실 거야?"
  "날 무섭다고들 한다니 무섭지 않다는 걸 보여주어야지."
  이튿날 통기를 받고 깎은 새 서방님들이 모여드는데, 모두 고을의 명사들 자제다. 권 진사는 일일이 절 받고 안부를 물은 뒤에 천천히 입을 연다.
  "날 무섭다고 한 녀석이 누구누구냐? 늙은이가 싫으면 그저 싫지 공연히 조명들을 지어 가지고..."
  "아니올시다. 어른들께서 젊은 아이들을 그렇게 보시지 저희야 뭐랍니까? 모시고 있어야 듣고 배울 것도 있고 한 것을..."
  "그럼 너희들 오늘은 나도 놀이에 껴주련? 어른 애 구별 없이 파탈(딱딱한 의관을 벗어치우고 편안한 차림이 되는 것)하고 말이다."
  모두들 대답 대신 박수를 쳐서 환영하였다. 진사님은 먼저 일어나 웃옷과 관을 벗어 걸고 모두 파탈하기를 권하였다.
  음식상이 나와 술이 두어 순배나 돌았을까, 꾀쟁이 청년이 일어나 발론을 하였다.
  "우리 이렇게 진사님까지 모신 자리에 흥겹게 놀지 않는 사람은 벌을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럼 이것은 벌주 잔이고..."
  모두들 보니 주발이다. 이건 사뭇 위협이다.
  "이제 차례로 돌아가며 노래든 춤이든 재주껏 좌석의 흥을 돋우는데, 만약에 거르는 분은 아까 얘기대로 이걸로 벌주를 한잔 잡숴야 합니다. 그러면 제가 서 있는 것을 표준하여 옷깃 여민 대로 오른편에서부터 차례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리하여 여흥으로 접어들어 흥겹게들 노는데, 진사님도 시조 한 장을 제법 불러 갈채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사회 보는 꾀쟁이 청년 차례가 되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고담을 한 마디 얘기하겠습니다."
  "허허허허, 젊은애가 고담을 해? 암 좋지, 늙었더라도 새로운 건 배워야 하니까."
  청년이 꺼낸 얘기는 이 집 아들이 겪은 그대로의 줄거리라, 진사님은 연신 무릎을 치며 감탄해 마지않는다.
  "그러면 끝으로 사태가 이쯤 되었을 때, 여러분이 직접 당하신 일이라면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우선 진사님 말씀해 주십시오."
  "그야 당연히 데려와야지. 암, 사내자식이라면..."
  "꼭 그러시겠습니까? 또 그래야 합니까?"
  "아암, 그렇고 말고. 여부가 있나?"
  "예, 그렇습니까? 이것은 다름 아닌 댁의 자제가 지금 문틈에 손 낀 듯이 당해 있는 딱한 처지올시다. 그러면 저희는 말씀 드릴 거 끝났으니 물러들 가겠습니다."
  모두들 일어나 도포랑 중치막을 떼어 입는데, 진사님의 불호령이 연거푸 떨어진다.
  "에잉, 이 고얀놈들 같으니. 냉큼들 물러가거라. 여봐라, 마당쇠야. 갸들 모두 다 모이라고 해라!"
  서방님짜리를 잡아 내려 멍석에 말아놓고 수좌를 한다.
  "네 요놈! 늙은 부모님 모신 몸으로 승낙 없이 작첩을 해? 네놈 남겨두나 않으나 내 집은 망했어. 차라리 네놈을 내 손으로 죽여서 내 뒤끝을 보고 죽겠다. 여봐라. 그놈을 작두에 넣고 밟아라."
  그렇기로 누가 감히 집행하겠는가?
  하인이라도 지각있는 늙은이 마당쇠가 눈물을 흘리며 간한다.
  "나리마님, 진노하시는 건 당연하십니다마는 이 댁의 후사를 끊으시렵니까? 제발 덕분에 그 말씀 거둬 주십시사."
  "에에잉, 듣기 싫다. 썩 넣고 밟지 못할까?"
  마누라가 쫓아 나와 매달리며 말린다.
  "아유 영감 이게 웬 말이오? 어쩌자고 외아들을? 조상 향화는 누구더러 받으라고?"
  "에잉, 이놈의 할멈 접아 내라. 제 자식 귀한 줄만 알고..."
  그러는데 며느리가 체수는 커다라니 거적을 끌고 나와 뜰 아래 엎드려 대죄를 한다.
  "그저 아버님 하해 같은 은덕으로 제 낯을 보아 용서해주십시오."
  "에이, 이년, 듣기 싫다. 서방 없으면 못 살겠더냐? 그놈 썩 밟지 못할까?"
  "아이구,아버님. 그 분부가 웬 말씀입니까? 저 죽고 남편 살면 이 댁 후사 이으련만, 남편 죽고 저만 살아 그 죄를 어이하리까? 아버님, 너무하신 말씀이십니다. 제가 죽을 테니 남편일랑 살리셔서 이 댁 향화 잇게 하여 주십시오."
  "음!? 네 뜻이 정 그리 굳다면은 다짐 두겠느냐?"
  "목숨마저 바치려는 몸, 다짐 아닌 더한 거라도 두오리다."
  "오냐, 지필묵 내어 주어라."
  다짐받아 간직하고 다시 목청을 가다듬어 훈시한다.
  "네놈 듣거라. 너 저지른 죄로 봐서는 죽여 마땅하되, 네 아내 정성이 저리 갸륵하기로 특히 목숨만을 살려주는 것이니, 가도를 엄히 세워 편벽됨이 없이 할 것이요, 며느리, 너는 하늘을 두고 맹세한 것을 평생에 잊어서는 안 되느니라. 여봐라, 마당쇠야. 사인교 가지고 아무데 주막에 가서 아씨 모셔 오도록 해라. 그리고 주막 주인도 함께 불러오면 내 행하도 후히 태우리라."

    홍제동 냇가에서 깨끗이 씻었으니
  혼인 때 신랑을 달아먹는 풍습이 있는데, 경사날 싫은 말 할 수 없는 약점을 잡아 떨어먹는다고 일축할 것은 못된다. 새로운 풍조로 알지만 연애결혼은 이 땅에서도 본래의 모습이었고, 몸값만큼을 재물이나 노역으로 치러야 하는 것이 매매혼이다. 너무 동족끼리만 혼인하다 보니 근친 사이에 머저리가 태어나기 때문에 타 부족을 습격하여 그곳 여인을 훔쳐오던 약탈혼의 남은 자취라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이 약탈혼이 이 땅에도 실지로 있었으니 수절하는 과부를 동여오는 것이 그것이다. 사전에 구메구메 연락이 닿아 그런 형식으로나마 체면을 유지하는 수도 있었지만, 실제 불의에 습격하는 예도 있어 아들 딸 낳고 잘사는 가문도 보았다.
  옛날에 정변이 일면, 몰린 집안의 정경부인이 졸지에 원수의 집 종으로 배당되는 수가 있었다. 그의 몸에서 난 소생은 외조부가 당당한 충신이건만 자손 대대로 어둠에서 살아야 했을 것이니 몸서리 쳐지는 일이다.
  거기다 대면, 병자호란 때 되놈에게 납치 당해 훼절하고 돌아 온 고관댁 부인들을 서울 교외 홍제동 냇가에서 물을 데워 목욕시키고, 이제 깨끗이 씻어냈으니 재론하지 말라 했다는 처사는 또 다른 면에서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합심이 되어 일을 척척 잘 해내면 '손이 맞는다' '손발이 잘 맞는다'하고, 같이 음모를 꾸몄다면 '배가 맞았다'고 하는데, 서로 좋아 합했으면 '눈이 맞았다'고 한다.
  마음만 있으면 눈이 입보다 웅변이 된다 하더니, 연애란 오랜 사귐에서 되는 것이 아니라 첫 번 서로의 눈길이 번쩍하는 데서 이뤄지는 것인 모양이다.

    오다가다 만난 사이
  여기 기이한 얘기가 있다. 시부모가 싫든지 당사자끼리 뜻이 안 맞아 결혼생활을 청산하려는 여인이 시댁을 도망쳐 나오는 수가 있는데, 이것이 도망꾼이라는 거다. 앞길을 열어야겠기에 더 볼일 없는 시집에서 재주껏 훔쳐서 싸 가지고 나오는 때문에 보퉁이가 크면 '도망꾼 보따리냐'고도 한다.
  이런 여인은 친정으로도 못 간다. 남편이 찾으러오기가 십상이고, 부모님도 가문의 망신이라고 되쫓아 보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 노상에서 누구고 처음 만난 사내와 살게 되는데, 이것이 '오다가다 만난 사이'라는 것이다. 아내 있는 남자에게 붙잡혀 첩이 될 수도 때론 있겠지만, 좋은 세상이라 대개는 동네 안의 그럴싸한 홀아비 차지가 된다.
  "홀아비 궤침엔 이가 서말"이라고, 그렇게 지내다 듬뿍 싸 가지고 온 여인을 만나면 글자 그대로 금시발복으로 팔자를 고친다.
  어떤 영감이 외아들을 잃고 소생마저 없는 홀며느리의 봉양을 받고 사는데, 하루는 사당에 뵙고 나오라고 하더니 조그만 보퉁이를 들려서 강제로 축출을 했다. "팔자 고쳐 가거라." 울며 울며 길에 나선 청상은 숭굴숭굴한 중년 홀아비를 만나 자리를 잡았는데 보따리를 끌러보니 한 가산이 훌륭하다. 그 신세를 무엇으로 갚으랴? 남편과 상의 끝에 전실 소생의 처녀를 시아버지께 중신을 섰다. 나이 차 나는 후취이지만 정식 결혼이라, 그의 소생은 적자로서 옛 시댁의 가계를 이었다. 적선지가에 필유여경은 여기도 적용 될 것이다.
  살다 보면 별놈도 다 있다. 딸년 사주를 봤더니 과부가 될 팔자라, 기껏 생각해낸다는 것이 총각을 납치 해다 결혼 절차를 올리고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것으로 액땜을 했으니 정식 결혼은 행복하리라는 것인데, 이렇게 해서 총각의 종적이 사라지는 것을 '보쌈해 갔다'고 한다. 아마도 으슥한 데서 돈에 매수된 장정들이 느닷없이 나타나 입에 재갈을 물려 자루에 넣어서 메고 뛰었을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팔자는 못 고치는 법이다, 그런 여자치고 잘된 전례가 없다"는 말을 잊지 않는데, 당연한 얘기다. 못된 짓을 하고 복을 받자니 뻔뻔스런 놈들이나 할 짓이다.

    권불 10년, 부불 3대라
  고장과 성씨만 대도 알 만한 어느 가문이 번성한 얘기다. 며느리가 미워 가마를 태워서 쭟으면 친정에서 돌려보내고, 그러면 이쪽에서 되돌려 보내기가 몇 번째다. 또다시 교군꾼들이 메고 나섰다가, 어느 주막에서 한 잔씩 하고 나서 메고 일어서는데 전혀 무게가 안 나간다. 창문(둘이 메는 헝겊 가마의 불밝이창은 가벼우라고 운모 조각을 댔다)으로 들여다보니까 아씨는 여전히 앉아 있다.
  "망설이지 말고 시댁으로 되돌아가자."
  아씨의 지시를 따라 맨몸으로 오는 것만큼이나 가볍게 되돌아왔는데, 이번에는 모두들 환영을 한다. 그로부터 재산이 불어 당대에 9천 석 추수를 했다고 한다.
  색시가 자신을 갖고 시댁으로 되돌아가게 된 것은 조그만 벌거숭이 아이가 가마 앞문도 열지 않은 채 들어와 덥석 품에 안겨서 황홀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것이 인업 이었던 것이다.
  대구 사는 서모라는 명사가 서울길을 떠나 어느 주막에서 다리를 쉬는데, 살이 비쳐 보이도록 깨끗한 총각 둘이 있는 것을 보고 말을 걸었다.
  "도령들은 어딜 살며 어딜 가는고?"
  "안동 이 아무개씨 댁에 여섯이 있는데 모두 다 떠나게 돼서 저희는 대구로 갑니다."
  이 아무개라면 안동서도 이름난 부호라, '아차 이 집이 망하는구나! 여섯이나 있던 업이 모두 떠나가다니.'
  "그래 대구 뉘게로 가노?"
  "서 아무게씨 댁으로 갑니다."
  바로 자기 집이다. 속으로 놀라우면서도 되물었다.
  "그래 몇 해나 머물 작정으로들 가지?"
  "40년 기한이올시다."
  "그 서 아무개가 바로 난데, 내 집에 올 생각 말게. 40년이면 내 말년은 편하겠지. 아들 대에도 괜잖을 거고... 그렇지만 부잣집 자식이라고 무엇 하나 못 배운 손자놈들의 늘그막의 꼴이 눈에 보이는 듯하이. 제발이지 내 집엔 오지 말게."
  업이라면 재산을 늘려주는 보호신으로 여기는 것이데, 족제비, 구렁이가 대상이 되고, 여기 등장한 것들은 사람 형국을 한 인업들이다. 자식 없는 집에 갓난아기를 개구멍으로 넣어주면 그것도 '업이 들었다'고 하는데, 생명이 소중하니 고이 길러달라는 염원인 것이다.
  매사에 환경의 격변을 좋지 않게 여기는 것이 우리의 오랜 관념이다. 그래서 졸부귀불상(갑작스레 부하고 귀하게 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이라 했고, '재는 재'라 하여 재앙을 불러온다고 몹시 삼가고 조심하였다.
  권불십년이요 부불삼대라 하여, 부귀는 오래 지니기 힘들다는 것이 통념이고, 그래서 그것을 오래 지니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옛 어른들은 설명해왔고, 또 사실 그렇게 많이 풀렸다.

    과부 50명이 목놓아 울어대니
  옛날 평양성 안에 큰 부자가 한 집 있었다. 영감 마누라 해로해 살건만 소생이라곤 무남독녀로 딸 하나라, 그 아이가 차차로 커가니까 성중 총각들 사이에 자주 화제에 올랐다.
  "어떤 놈이 재수가 좋아서 그 집에 사위로 들어가 그 많은 재산을 차지하게 되려누?"
  물론 어른들 사이에서도 얘깃거리가 되고, 입심 좋은 부인네들은 부지런히 중매를 들려고 그 집 문턱을 넘나들었다. 하루는 영감이 출입했다 들어오더니 엉뚱한 소리를 한다.
  "나, 우리 아기딸년 신랑감 하나 골랐지."
  할머니가 솔깃하여 묻는다.
  "어느 사는 누구의 몇째 아들이야요?"
  "그게 아니고... 저 대동문 안에서 포목전하는 이주부 있잖소? 그 집에서 심부름하는 총각놈 있지? 갸 괜찮아 보이데."
  "뭐야요? 그놈은 작년까지 쪽박 들고 남의 집 문전으로 다니며 비럭질하던 거렁뱅이 아니오? 아니 우리 아기딸년이 어떤 아인데. 쥐면 꺼질세라 불면 날세라 금지옥엽 같이 키워가지고 그래, 우리집에 밥이 없소? 돈이 없고? 뭐가 부족해서 그따위 거러지한테다..."
  "쉬이 따들지 말고. 그러기에 여자는 속이 좁다는 거야. 내 얘기 좀 찬찬히 들어보오. 제 집, 제 부모, 동기 의젓하게 갖춘 놈이 내 집에 데릴사위라고 들어왔다가 저희들끼리는 정이 들어 씨공달공 하다가도 늙은이들 귀찮다고 훌쩍 나가는 날이면, 우리 두 영감, 할멈은 끈 떨어진 됫박이야. 그랬다고 무를 수가 있소? 죽고 나면 재산은 다 저희들거 되는 거고. 차라리 돌아갈 데도 의지할 데도 의지할 데도 없는 놈을 데려와야 사위겸 아들겸 내 자손 되는 거지. 안 그렇소?"
  "!"
  "그러지 말고 그 전방엘 한번 가보오. 내가 보기엔 그늘에서 자란 아이답지 않게 애가 붙임성이 있고 괜잖아."
  할머니가 다녀오고는 포목전 주인 이주부를 수양아버지로 삼아 혼인절차를 밟게 되니 평양 성중은 또 한번 그 얘기로 들끓었다.
  이제 혼인날이다. 부자의 단 하나밖에 없는 외딸이라, 돈을 아끼지 않고 풍성하게 차려서 온 성안 사람들이 잔치를 한번 푸짐하게 얻어먹고 비틀거리며 돌아갔다.
  "사람 팔자 시간문제라던데, 이내 팔자 기박하여. 어, 취한다."
  손님도 다 헤어지고 이제 가족끼리만 남아 신방을 꾸몄는데 불끈 방에서 신부가 소릴 치며 뛰쳐나온다.
  "어머나! 이걸 어째요? 신랑이 죽어서 뻣뻣해요."
  모두들 놀라서 달려가 불을 켜고 보니 진짜 뻗어 있다. 용하다는 의원집엘 달려가고 무당집, 판수집으로 달음박질을 쳤다. 그런데 길 건넛집 할멈이 와서 그러는 것이다.
  "우리집에 손님 한 분이 와 계신데 자신이 보면 무슨 수가 있을 거라고 그러셔요. 용한 의원 이라데요."
  어서 오시라고 해 보였더니,
  "이거 일이 급하군. 과부 한 50명 구할 수 없겠소?"
  "과부라니, 늙은이오? 젊은이오?"
  "상관없으니, 빨리들 오래서 마당에 늘어앉아 큰 소리로 울라고들 일러요. 돈 뒀다 뭣에 쓰오? 행하를 미리 후하게들 주고."
  이리하여 잔칫집은 삽시간에 초상집이 되어 애고대고, 처음엔 돈에 팔려 형식으로 우는 척하다가 정작 제 설움에 복받쳐 목을 놓고 울어댔다.
  신랑의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앉았던 이 의원은 이제 그만들 울라고 손을 저었다. 신랑 얼굴에 핏기가 돌고 이내 눈을 떠서 두리번거리는 것이다. 약낭에서 소합원 한 알을 꺼내 더운물에 개어서 흘려넣어 주니까, 그것을 삼키더니 부축을 받고 일어나 앉는다.
  "자 그럼, 사랑으로."
  안내를 받아 큰사랑에 들어서니 평양 성중의 내로라는 명의들이 다 모여 있다.
  인사를 나누기가 무섭게,
  "거 무슨 치료법이 그렇소?"
  "예, 원리는 다 같은 거죠. 이열치열이요, 이냉치냉이라. 열은 열로 다스리는 거 아닙니까? 앞집에 와 묵으면서 듣자니 신랑의 자란 환경이 순조롭지 않답디다그려. 그래 '이거 병 나지' 하고 떠나는 걸 하루 물리고 대기했는데, 것 보셔요. 큰일날 뻔했지.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서 생기는 것을 '병이 난다'고 해요. 평소에 수양을 쌓은 사람이라면 웬만한 격변에 견디지만, 그렇질 못하면 으레 병이 나죠. 사업에 실패하고 피를 토한다든지. 그런데 이번 환자는 너무나 행복해진 환경에 그만 황홀해서 여직 고생하던 생각을 하면 울음을 터뜨려야겠는데, 경을 당한 겨여요. 하니 설음 중에서 과부 설움보다 더한 게 어디 있겠소? 이것을 풀어서 뭉쳤던 슬픔을 끌어낸 거지요."
  "아 참, 성함과 거처가 어떻게 되시더라?"
  "나 성천 사는 이경화라오."
  "온 저런! 성화는 익히 들었습니다마는 이렇게 뵐 줄이야."
  그는 인조 7년에 태어나 숙종 32년까지 산 실재인물로, 침구에 뛰어났고, 저술까지 있어 의학사상에 발자취가 뚜렷한 분이다. 이런 얘기야 물론 그의 명성에 부회한 야담이지만, 환경의 변화가 심한 요즈음 스트레스 해결로 마음의 평형을 유지하라는 교훈으로 새겨들을 만하다.


      사돈에게 팔아먹은 소

    그날 밤 포교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옛날에 어느 포교 한 사람이 급료를 타다가 뒤주에 넣고 자물쇠를 채웠다. 물론 쌀을 푸는 됫박도 그 속에 있었다.
  그날 밤 포교 집에 도둑이 들었다.
  밤에 부부가 자고 있는데 뒤주를 열고 쌀을 푸는 소리가 났다. 부인이 먼저 듣고 남편을 깨우며 소곤거렸다.
  "도둑이 들었어요, 소리치셔요!"
  남편도 깨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나직이 세었다.
  "일곱, 여덟, 아홉..."
  "세긴 뭘 세어요? 소리치고 나가지."
  "모르거든 가만히 있어. 스물 셋, 스물 넷... 스물 아홉, 서른. 이놈 게  섰거라!"
  문을 박차고 소리를 지르고 내다르니 도둑놈은 엉겁결에 자루를 놓아두고 도망을 쳤다.
  불을 밝히고 나서 남편은 신기하다는 듯이 말하였다.
  "이봐요, 마누라! 네댓 되 펐을 때 쫓으면 가지고 달아났을 것이고, 여남은 되 펐을 때 쫓으면 쏟아놓고 달아난단 말이야. 이렇게 서른까지 담도록 두었다 쫓으니까 자루를 두고 갔지 않소?"
  떨어진 쌀로 꼬리가 잡힐까 보아, 자루는 새 헝겊으로 촘촘히 꿰매어 만들었는데 제법 쓸 만하였다.
  "이거 한동안 쓰겠지?"

    소도둑 그놈, 오죽 사정이 딱했으면
  어느 날 한밤중 어느 집에 소도둑이 들었다. 잠귀 밝은 안주인이 먼저 알고 영감을 깨우는 데 이 양반이 지독한 해수쟁이라.
  "쿨룩쿨룩 쿨룩... 나도 들어서 알아. 오죽 사정이 딱해야 남의 소를 쿨룩쿨룩... 아이 숨차... 남의 소를 끌러왔을라구... 쿨룩쿨룩... 우린 그거 아니라도 살잖아? 쿨룩쿨룩..."
  도둑은 이 말을 듣고 속이 뭉클하였다. 그러나 주인 영감의 말마따나 이게 아니면 당장 다른 방도가 없는 터라, 내친 김에 그냥 끌어다가 처분해 급한 고비를 넘겼다.
  며칠 뒤 해수쟁이 영감 집에 옷갓을 말끔히 차린 손이 하나 찾아들었다. 그의 절을 받고 주인은 물었다.
  "뉘신지 잘 모르겠는데 쿨룩쿨룩... 웬 절은 또?"
  "예, 일전엔 참 고마웠습니다. 사실은 제가 댁의 소를 끌고 간 바로 그날 도둑놈이올시다."
  "!?"
  "잠깐 저하고 저기 좀 가셔야겠습니다."
  "가는 거야 좋지만 쿨룩쿨룩... 이렇게 병객이라 놔서..."
  도둑은 억지로 주인을 이끌고 나섰다. 할머니는, '이 소도둑놈이 영감을 끌고 가 어쩌는 거나 아닌가?' 하고 애가 탔으나 도리가 없다.
  얼마를 왔는지 새소리,물소리 어울려 별천지를 이룬 산간인데, 하얗게 펼쳐진 반석을 가리키며 앉으라 하고는 어디를 부리나케 간다.
  얼마만에 오지자배기에 담아가지고 온 것을 보니, 산중에서 나는 토종벌을 집째 뜯어온 것이다.
  "자, 이걸 이렇게... 예, 예, 그렇게 잡숫고, 여기 갯조각은 이리로 이렇게 뱉어 놓으십시오."
  연신 권하는 바람에 얼마를 먹고 났는데, 조갈이 나서 물을 먹으려니까, 그건 안된단다. 그러고는 자꾸 더 먹으란다. 이제 더 못 먹겠다니까 소리 좀 봐라.
  "전 소도둑놈이어요, 제 말을 들어야 하는 거여요."
  거의 강제로 먹이는 바람에 얼마를 더 먹었던지 영감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제 정신이 드셨구먼요! 이렇게 어두웠으니 힘들게 걸어가실 수도 없고 그냥 제 등에 업히셔요."
  환자 늙은이를 업고 녀석은 줄달음을 놓았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늙은이는 또 정신을 모르고 잤다. 이튿날 나직이 깨었는데 신기도 하지 그렇게 앓던 해수가 깨끗이 나았지 않은가? 하도 신기하고 고마워 다시 그 젊은이가 찾아오기를 기다렸으나 허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후 젊은이는 생업을 바꾸어 딴 길로 나섰으니까...

    못난 놈, 신이나 신고 가지
  어떤 선비가 글만 읽고 앉았으니 생계가 말이 아니다. 먹을 걱정, 입을 걱정, 돈 쓸 걱정이 태산 같아 여편네 등쌀에 살 수도 없고... 우선 제일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어 도둑질이나 해보라고 한밤중에 집을 나섰다.
  첫 개시로 어떤 집엘 소리 없이 들어간 것까지는 좋은데 안에서 누가 그런다.
  "누구냐? 무얼 가지러 온 모양인데, 햇내기인 게지! 내 불 켤게 좀 들어오려무나."
  이불로 하반신을 가린 채 문을 열고 들어오라는 데 이거 난처하다.
  "괜찮아! 신이나 벗어놓고 그냥 들어와"
  어쩔 수 없어 방에 들어가 엉거주춤하고 있으려니 아주 다정하게 나온다.
  "자, 이리로 가까이 오게. 추울 텐데 불도 좀 쬐고. 아이구 번듯하게 잘생긴 얼굴이군! 그래 생업이 뭔데 이 길을 개업했어? 필연코 첫 출발이렸다."
  "!?"
  "그럴 테지. 나는 이 방면의 도사야. 내 집을 모르고 들어왔을 제야 초행이지 안 그런가? 그래... 내 집에 무엇이 어디 있고, 얼마나 값이 나가며, 어떻게 하면 손에 넣고 어떻게 처분할 수 있는지 무슨 연구 좀 한 게 있나? 쯧쯧 글을 읽어도 헛 읽었지. 그래그래! 유가서를 읽었으니 그럴 수밖에... 이 길로 들어서려면 병가서를 봐야 하는 건데, 자아, 그건 그렇고, 우리 첫 사업 한 번 해보지 않겠나? 예서 이렇게 삽짝을 나가 오른쪽으로 다섯 번째 집에서 오늘 명주 짜는 일을 마쳤어. 내일 장에 내려고 말이지. 거기 가서 그저 베틀에 있거든 잘라오고, 끊어서 어디다 뒀거든 살짝 가지고 오게! 어디 첫 솜씨 좀 보세나!"
  양손은 깍지껴 뒤통수를 받치고 벌렁 드러누워 천장을 쳐다보고 있는데, 신입생이 돌아온다.
  "베틀은 뜯어서 방문 뒤에 세웠는데, 물건을 어디다 둔지 몰라서 그냥 왔어요."
  "그래? 기어코 내가 한 행보 쳐야겠군."
  둘이는 다시 명주 짠 집으로 가, 도사는 베 뜯어 쌓아놓은 데서 바디를 찾아내 나무 끝으로 '만돌린' 켜듯이 박박박박 간격 맞춰 긁었다.
  잠귀 밝은 시어머니가 먼저 듣고 며느리를 깨운다.
  "얘, 아가! 귀뚜라미가 운다! 그 명주 짜 놓은 거 쏠라. 부엌의 옹솥에 넣고 소댕으로 꼬옥 덮어놓아라아."
  "네에!"
  둘이는 돌아와 잠깐 눈을 붙이고, 아침을 마친 뒤 출입할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저러나 사람은 의복이 날개라는데, 자네 그 망건꼴이 뭔가? 내 새 망건 하나 선사하지! 그 너줄한 거 이리 주게."
  주인은 백지를 꺼내서 넷으로 내더니 그 한 가닥으로 망건을 감싸 도루루 말아서 도포 소매에 넣었다. 신입생은 동저고릿바람에 수건으로 머리를 동였으니 흡사 양반이 하인 데리고 나선 행차다.
  장터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라, 백포장을 치고 온갖 물건이 나왔는데, 갓, 망건 펼쳐놓은 앞에 둘은 섰다.
  "이 사람 머리에 맞은 걸로 하나 주우. 조금 작은 모양인데, 그 웃길 대벌로... 사람! 웬 골통이 그리커? 음! 됐군. 얼마요?"
  장사꾼이 새 백지로 도루루 말아 싸서 주는 망건을 받아 도포 소매에 넣은 도사는 옷자락을 젖히고 허리춤을 더듬다가 말한다.
  "이런 정신 좀 보게. 돈 차고 오는 것을 잊었네. 엇소! 이따 이 사람이 돈 가지고 나오거든 건네주."
  장사꾼은 선비가 돌려주는 망건을 받아 찾기 좋게 물건 사이에 꽂으면서,
  "예, 예! 아무 때라도 좋습니다. 오늘은 여기 종일 있을 거니깝쇼."
  '찾아가긴 누가 찾아 가? 벌써 바꿔친 것을.'
  집에 돌아와 새 망건을 씌워놓고 주인은 활짝 웃었다.
  "온! 진작 그러고 볼 일이지. 그런데 말일세! 자네 이제 어떻게 하려나? 공부를 계속하겠다면 내가 벌어서 살림을 대어주는 거고."
  "두 가질 다 했으면 합니다만..."
  "뭐야? 이 날도둑놈 같으니. 나는 이 길을 걸어도 나 사는 꼴 좀 보아. 꼭 먹고 살만큼만 쓰고, 남은 것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선심도 쓰고...
  도술도심이야. 무어? 공부를 더 해 가지고 이 길을 걷겠다? 도심도술이면 사회에 끼칠 해독이 얼만데... 너 좀 죽어봐라!"
  주인은 부업으로 담배 써는 일을 하고 있던 터요, 담배 써는 작두는 힘을 덜기 위해 자루가 길어서 고두쇠만 빼면 그냥 청룡도다. 이놈을 을러메는 통에 이 신입생은 신도 안 신고 달아나려 한다.
  "못난 놈! 신이나 신고 가. 그리고 그 마음씨를 고쳐! 마음씨를. 그리고 이건 네 꺼다. 가지고 가거라."
  전날 밤 손에 넣은 명주를 던져주고 문을 콱 닫았다. 그리곤 담뱃대를 집으면서 혼자 하는 소리다.
  "온! 세상에 고약한 놈 다 보겠네."

    한 방에 농락 당한 포도대장
  조선 말기 정조 때의 일이었다. 서울 장안에 이상한 도둑이 자주 나타났는데, 여느 도둑과 다른 점은 물건을 훔치되 꼭 큼직큼직한 집만을 털고 능숙한 필치로 반드시 매화가지 하나를 그려놓고 가는 것이었다.
  누가 특별히 지은 것도 아닌데, 그 도둑은 일지매(매화가지 하나라는 뜻)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워낙 크게 훔치는 것이라 혼자는 다 못 쓸 것이요, 분명히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아니나다를까, 누가 던졌는지 모를 많은 재물이 가난한 집에 곧잘 굴러 들어온다는 풍문이 나돌았다. 그래 어느덧 의적 일지매에 대한 이야기가 장안에 자자하였다.
  물론 포도청에서는 있는 힘을 다하여 일지매를 잡으려 하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도무지 종적을 가릴 수가 없었다.
  포도청 대장은 몸소 포교들을 이끌고 매일 밤마다 경계를 하였으나, 도둑은 포교들을 놀리기나 하듯이 거의 저녁마다 엉뚱한 방향에서 나타나 매화가지 그림을 남겼다.
  어느 날, 일지매라는 사람이 포도청에 자수해왔다. 잡히면 죽을 것이 뻔한데 장난으로 그럴 리는 없고...
  대장은 그 사람을 불러다가 몇 마디 말을 물은 뒤에 우선 옥에 가두었다.
  그날 밤 일지매는 휘영청 밝은 달을 옥창으로 내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늙수그레한 옥사장이가 쇠도리깨를 든 채 뒷짐을 지고 뜰을 거닐고 있었다.
  "여보시오, 옥사장이!"
  일지매는 목소리를 낮추어 불렀다.
  옥사장이는 뒷짐을 풀고 옥문 앞으로 다가서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밖이 밝으니 추녀 밑 옥 속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날 불렀나? 일지매."
  "예, 내가 불렀소. 여기 들어와 앉아서 생각해보니 하나 잊은 게 있어요. 나야 멀지 않아서 죽을 목숨인데 재물은 두어 무엇에 쓰겠소? 잠깐 귀를... 거기 다리 기둥 밑에 사금 한 봉지를 묻어놓았으니 찾아다 쓰시오. 그 나이가 되도록 구실을 살아야 어디 노후에 편안할 준비나마 되어 있겠소?"
  옥사장이는 어이가 없었다. 내일 모레면 죽음을 당할 죄수가 남을 동정하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이튿날 옥사장이는 일지매가 일러준 장소에 가서 값진 사금을 찾아냈다.
  "이 사금으로 농토나 장만하여 시골 살림을 하면 늘그막에 편안히 지낼 만하리다."
  고요한 한밤중이 되자, 일지매가 또 옥사장이를 불렀다.
  "날 좀 내놓아 주시오."
  "?"
  "나의 사람됨을 모르겠소? 두 시간 후면 꼭 돌아올 테니 너무 걱정 말고..."
  옥사장이는 동정을 받은데다가 젊은 놈 하는 짓이 호감이 가서 나중 일이야 어찌 되었든 옥문을 열어주었다.
  그날 저녁, 일지매는 포도청 대장 집으로 들어갔다. 그것도 첩과 둘이서 깔고 자는 요를 훔치자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잠자리에 들어 정신 모르게 자고 있는데, 일지매는 옷을 홀랑 벗고 첩과 대장 사이에 누웠다.
  대장을 밀면 첩이 밀거니 하고 밀려나고, 첩을 밀면 대장이 밀거니 생각하고 둘은 다 물러났다. 일지매는 요를 돌돌 말아 옆구리에 꼈다.
  벽에는 먹빛도 또렷이 매화가지 하나를 그리고, 방을 나서려던 일지매는 그냥 가기가 심심해서 첩의 얼굴에 입을 쪽 맞췄다. 잠이 깬 첩은 손을 저어 더듬어 일지매의 발목을 잡고 소리를 쳤다.
  "누가 들어왔어요. 불 좀 켜셔요!"
  일지매는 성큼 대장의 발목을 쥐고 숨을 죽였다.
  "왜 남의 발목은 쥐고 소란이야?"
  "으응! 당신 발목이었소?"
  첩은 일지매의 발목을 놓으며 돌아누웠다. 일지매도 대장의 발목을 살며시 놓았다.
  방을 빠져 나온 도둑은 훔쳐낸 요를 아이들이 오줌싼 포대기처럼 대문 옆 담장에 널어놓고 옥으로 돌아왔다. 옥사장이는 무사히 돌아온 것을 반가워하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아까운 청년이 그만...'
  이튿날, 포도청이 발끈 뒤집혔다. 일지매는 갇혀 있는데, 일지매가 또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것도 대장의 집에 말이다.
  대장은 약이 상투 끝까지 올라서 일지매를 끌어냈다.
  "이놈, 네가 일지매가 틀림 없느냐?"
  "예, 제가 일지매입니다. 잡히면 죽을 것을 어떤 놈이 자진해서 일지매하고 하겠소?"
  "이놈! 엊저녁에도 일지매가 나타났는데 그래도 네놈이 일지매란 말이냐?"
   일지매는 한참 동안 덤덤히 있더니 잡자기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구, 몹쓸 놈의 일지매야! 며칠만 더 참아주지 않고... 흐흐흐, 세상이 하도 살기 힘들어 생목숨을 끊으려 했더니 그도 안 되기에 어떻게 남의 손을 빌려서나 죽을까 했더니... 흑흑! 망할 놈의 일지매가 그 동안을 못 참아 가지고...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게 하다니..."
  대장은 더욱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놈 순 미친놈이로구나. 어서 결박을 끄르고 삼문 바깥으로 내쫓아라."
  그 뒤에도 일지매는 심심치 않을 만큼 장안에 나타나더니,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사돈에게 팔아먹은 소
  어떤 사람이 아무짝에도 못쓸 소를 팔러갔다가 장에서 사돈을 만났다. 그는 소를 사러왔던 길이다. 같은 값이면 사돈 것을 사주려고 문답이다.
  "먹기는 잘 하나요?"
  "그야! 귀신같이 먹지."
  "걸음은?"
  "태산같이 걸어."
  "일은?"
  "그야 말도 마시오."
  흥정은 되고 술 한 잔씩을 나누고 돌아왔는데 다음 장날 사돈을 만났더니 생 짜증을 낸다.
  "통 먹지도 않는걸."
  "내 뭐라고 했소? 귀신 같이 먹는다 했지 않아? 귀신이 뭐 먹는 것 봤어?"
  "걸음도 안 걷는걸."
  "내 뭐라고 했소? 태산같이 걷는다 하지 않았소? 산이 옮겨다닌답니까?"
  "일도 통 않구."
  "그래 내 뭐라고 했소? 일 얘긴 하지도 말라고 그랬지 않아?"
  "?"
  중국 옛이야기엔 이런 것도 있다. 어떤 벼슬아치가 생선을 좋아한다기에 선물로 가져갔더니 받질 않는다.
  "생선을 좋아하신다기에 모처럼 가져왔는데 왜 퇴하십니까?"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이걸 받아 먹고 직장이 떨어지면 다시는 생선을 먹을 수 없지 않습니까?"
  요사이 공무원 숙정이 일단락지어졌다는 소식이다.
  "후유"하고 안도의 한숨을 쉴 이도 있겠고 자기딴엔 억울하다고 변명할 이도 있을 것이다. 울지 않는데도 자꾸 주었지 누가 울었느냐고 할 수탉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먹지도 못하는 반면 일도 못하는 소가 끼어 남았을 것도 상상이 된다. 태산 모양말이다.
  한편 시간이 아닌데도 애타게 우는 수탉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뿐인가. 울어야겠는데 울지도 못하는 수탉마저 있다는 데도 생각이 미쳐야 한다. 저임금노동자말이다. 먹을 만큼은 주고, 또 때맞춰 울고, 그래야 제대로 돌아가는 법이다.

    행인의 옷가지나 벗기는 좀도둑은 안되겠소!
  어떤 명문의 조상 누군가가 그랬다는 얘기다. 아직 초립동 시절, 그러니까 갓 장가든 때요 옛날 일이니까 15, 16세 소년이었을 것이다. 몹시 추운 날 나귀를 타고 하인 하나를 데리고 새벽길을 가는데 어느 고갯마루에서 도둑떼를 만났다. 나귀는 물론이요 옷까지 몽땅 벗겨가서 속옷바람으로 달달 떨고 앉았다.
  이때 아주 건장한 체격의 중노인 한 분이 지나가다 이 모습을 보았다.
  "이 추운 날씨에 이게 웬일인고?"
  집채만한 몸집에 풀어헤친 앞가슴에는 털이 숭숭 나 있고 김이 무럭무럭 오르며 손에 쥔 지팡이는 팔뚝 같은 쇠몽둥이다. 예사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방금 이곳에서 도둑에게 행장을 빼앗기고 이 꼴이 되었습니다."
  "그래? 그놈들이 지금 어디쯤 갔지?"
  "저 고개 아래 사람하고 말소리가 들리는 게 놈들입니다."
  "네 이놈들, 게 섰거라!"
  노인은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달려 내려간다. 그리곤 몇 마디 고함소리가 나고 하더니 한참만에 말발굽소리가 들리며 노인이 나타난다. 물론 옷가지는 고스란히 젊은이 손에 돌아왔다.
  소년은 차근차근 옷을 입었다. 그리고 맨 나중 대님을 매면서 말한다.
  "고맙긴 대단히 고맙소이다만 이 다음에는 다시 그러지 마시오."
  "뭐야? 요놈 얼어죽을 걸 살려주니까 무어 이 다음엔 그러질 마라?"
  "예! 어르신네 덕분이라 분명히 고맙다는 인사는 차렸습니다. 그렇지만 이 다음엔 다시 그러지 마십시오. 그 얘기입니다."
  "뭐? 그럼 네가 날 훈계하는 세이냐?"
  "보아하니 신수가 그만하시고 댁에는 아들, 손자, 며느리 거느리고 유복하게 지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하고는 전혀 모르는 처음 만난 사이 아닙니까? 그런데 아까 그 도둑들 중에 어르신네보다 센 놈이 섞였었다면 아마 지금쯤 살아 계시진 못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런 지각없는 짓이 어디 있겠습니까. 힘에 무던히 자신이 있으신 모양인데, 자 보시렵니까?"
  소년은 앞에 서 있는 서까래 길이나 되는 나무를 힘 안 들이고 서너 개 뽑아 내던지고 말을 이었다.
  "나도 이 정도 힘은 가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까짓 행인의 옷가지나 벗기는 좀도둑하고 목숨을 걸고 다투진 않으렵니다. 왜냐고요? 아직 어리니까 장차 큰일을 하려면 아껴야지요. 하하하!"

    지옥에 떨어진 것보다 나을 줄 아니?
  어떤 사람이 죽어서 저승엘 갔다. 물론 전하는 얘기대로 염라대왕 앞에서 생전의 행적을 조사 받았다. 염라대왕 앞에서 서사역을 맡은 최 판관도 하도 여러 해를 이 일에 종사하다보니 어떤 정도의 판결이 내려질지는 대강 짐작이 간다. 극락으로 간다거나 지옥으로 간다거나 아니면 축생으로 태어나게 한다든지 말이다.
  이 친구 마음씨를 곱게 못 썼던 터라 판관 생각에 지옥에서도 초입쯤 아니면 축생 가운데 구렁이나 뭐로 환생시켜 주려니 했는데 의외의 판결이 떨어진다.
  "그놈, 인간으로 환생시켜 줘라."
  "뭐? 이런 고얀 놈을 인간으로?"
하고 망설이는데 다음 조건이 나온다.
  "선비로 태어나게 해줘라."
  "뭐? 선비로?"
  사농공상이라는데 그 중에서도 선비로? 맹자의 말대로라면 군자에 3락이 있는데 천하에 왕 되는 일은 그 가운데 들어 있지 않다고까지 하였는데...
  속으로 되뇌고 있으려니 뒤이어 조건이 제시된다.
  "그놈, 아들 5형제만 점지시켜 줘라."
  최 판관은 그만 기가 차서 붓대를 놓고 일어섰다.
  "대왕께서는 오늘 무슨 판결을 그렇게 내리십니까?"
  염라대왕은 한참을 껄껄 웃더니 내뱉듯이 말한다.
  "이놈아! 가난한 선비가 아들 5형제를 공부시켜내자면 뭐 지옥에 떨어진 것보다 나은 줄 아느냐?"
  이제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세상이니까 이런 것도 옛 얘기가 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학비 대기에 허덕일 이가 있을 것이니 전생에 어쨌기에 그러느냐고 묻고도 싶고 적지않이 동정도 간다.
  어떤 친구는 아들이 대학에 들어갔다기에 치하했더니,
  "불행히 합격을 했어!"
  그야말로 고생길이 훤하기에 하는 소리일 것이다.

    번번이 수염을 쓰다듬더라니
  어떤 사람이 동네 부잣집에 갈 때마다 번번이 술대접을 받는 것까지는 좋은데 언제나 똑같이 몇 가지 하찮은 안주에 술이라곤 막걸리밖에는 차례가 안 온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그런가 하면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친구 아무개는 갈 적마다 약주에 닭고기 안주로 번번이 잘 얻어먹는다는 얘기요, 그 고장 유지 모씨는 갈 적마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내더라고 한다.
  사람이 한잔 술에 눈물이 난다고 자기 지위가 변변치 못한 것도 분한데 이런 차별대우를 받다니, 곰곰 생각한 그는 다음 번 그 집을 찾았을 때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별다른 것은 느끼지 못했는데 여전히 막걸리상이 나오고 차림새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돌아와서 곰곰 생각해보았다. 주인 영감은 아랫목에서 언제나처럼 그 보기 좋게 난 수염을 연신 쓰다듬어 내리며 웃고 얘기하고 하였을 뿐인데.
  "옳다! 그러다."
  다음날 다시 그 집을 찾았을 때 그는 들어앉는 길로 선수를 쳤다.
  "거 영감님, 이마에 피가 묻었습니다."
  "피? 피가 웬일이야?"
  영감은 손으로 이마를 닦았다.
  "아니 거기가 아니라, 예 거깁니다. 예, 이제야 지워졌습니다."
  몇 가지 얘기를 나누고 있으려니까 안문이 열리더니 하인 둘이서 상을 맞들고 들어온다.
  물론 최상급이다.
  잔뜩 포식하고 돌아온 그는 자리에 누우며 혼자 웃었다.
  "망할 놈의 늙은이! 번번이 수염을 쓰다듬더라니."
  부자요 또 봉제사 접빈객에 빈틈없는 가정이라 누가 오든 그냥 맨입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것이 좋은데 번번이 주인이 시켜서 차려온데서야 체면이 서나? 손님 온 기색만 있으면 식모는 나가 문틈으로 엿보고, 영감은 수염을 쓰다듬든지 코를 문지르든지 야구 캐처처럼 사인을 하는 것이다. 늘 약주나 얻어먹는 손일 때는 손 가는 데가 이마나 수염은 아니었을 것이다.
  강화도 전등사 부락 모여관에서는 초저녁에 든 손님도 저녁을 못 얻어먹는 수가 있는가 하면 밤중에 들어도 식사대접을 받는 손님이 있다. 제도는 간단하다. 대문 옆에 있는 주인 방에서,
  "얘! 거 밥 있니?"
하면,
  "예, 밥 있어요."
  "얘! 밥 남았니?"
하면,
  "없어요."
  그것뿐이다.

    배부른 돌담과 손 큰 여편네
  일요일마다 비가 온다고 짜증내는 이도 있지만 농촌에서도 봄에 비 많이 오는 것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이겠는데, "높은 자락에 못자리 하는 해엔 잘 먹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못자리할 무렵 물이 모자라 깊은 자락을 찾아다니는 해에 오히려 풍년이 든다는 것이다.
  하루 낭패는 아침에 취한 술이요, 열흘 낭패는 발에 안 맞는 신이요, 1년 낭패는 봄에 많이 온 비요, 일생의 낭패는 성미 나쁜 마누라다.
  맨 마지막 말을 이끌어내기 위해 앞의 것들은 들러리로 나온 폭이겠지만 그래도 모두 그럴 듯한 예들이다.
  또 성종 때 성현이 지은 "용재총화"에는 아무짝에도 못쓸 것으로 다음 4가지를 열거하였다.

  돌담 배부른 것
  여편네 손 큰 것
  봄에 비 잦은 것
  어린아이 입 싼 것

  그런대로 웃고 넘기겠는데 어린아이 입싼 것에만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아이들이라면 무조건 윽박지르고 기를 못 펴게 하던 때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어른의 말끝을 잡아 오금을 박는 것 같은 얄미운 짓은 덜하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어린이의 얘기 같은 것도 모아서 들려줄 필요가 있다.
  평산 신씨의 조상 한 분은 어렸을 때 누가 벽에 낙서를 했다고 온 집안이 야단이요, 형들은 모두 안 그랬노라고 변명하느라 법석인데 그분은 한마디 변명도 않는다. 어머니가 물으니 거기 놓인 발판에 올라서서 손을 들어 보인다. 이래도 닿지 않는데 뭣 하러 방패막이 하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점잖고 지혜로운 얘기를 들려주는 부모가 필요하건만 만날 그 돼먹지 않은 텔레비전 프로에만 매달리게 하다니 딱한 노릇이다.

    미친 녀석, 세배를 추석에 하다니
  어떤 아전이 추석날 아침 동헌으로 사또를 뵈오러 가는 길인데 길에서 친구 아전을 만났다.
  "어딜 벌써 다녀오나?"
  "오늘이 추석 아녀? 그래 세배 다녀오는 길일세!"
  "미친 녀석. 이 사람아, 추석에 세배하는 거 어디서 봤어? 세배는 단오 때 하는 거지."
  휘적휘적 삼문께를 지나도록 히죽히죽 웃는다.
  "미친 녀석, 세배를 추석에 하다니!"
  동헌 대청에 이르러 열어놓은 장지 밖에서 사또께 절을 하면서도 그 일이 우스워 "픽!"하고 또 웃음을 터뜨렸다.
  "이 사람아, 아침부터, 그것도 어른께 문안을 드린다는 사람이 웃으면서 절을 하다니, 어 무엄하도다."
  사또의 점잖은 꾸중에 이 친구 등에 찬 땀이 흐른다. 잘못 건드려 불호령이 떨어지고 매라도 맞든지 한다면 저만 손해라. 손을 깊은 채 굽실거리며 변명을 한다.
  "소인이 어찌 체통이야 모르오리까마는 하 우스운 일이 생각나서 무심중에 그리 하였사오니 그저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고..."
하며 길에서 겪은 사연을 소상히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사또는 호탕하게 한참이나 웃더니 "뭐? 추석에 세배를 다니는 놈이 있어? 허허허, 그래 자네는 뭐라고 했나?"
  "예! 그래 소인은 '이 사람아 세배는 단오에 다니는 거지 아무 때나 다녀?' 그랬습지요."
  사또는 웃음을 삼키고 한참이나 자못 점잖게 침묵을 지키고 앉았다가 내뱉듯이 말한다.
  "향것(서울 사람이 시골 사람들을 얕잡아 하던 말)들은 할 수 없도다. 이 사람아 세배는 한식 때 하지 아무 때나 해?"
  "?..."

      베갯머리 송사

    장기 둔다 소리 마라
  퇴계 선생댁 청지기의 아내가 대감을 뵙고 여쭙는다.
  "대감마님, 그 놈이 장기에 미쳐 집일을 통 돌보지 않아 큰일이올씨다. 어떻게 좀 다시 두지 못하게 단단히 꾸지람 좀 해주십시오."
  "그래?"
하고는 다시 대답이 없다. 사실 선생은 장기를 둘 줄 몰랐다. 다음날 쉴 참에 제자 하나를 데리고 장기 행마하는 법을 배워 멱은 알만큼 되었다. 며칠 뒤 시간이 나기에 청지기를 불렀다.
  "너 장기수단이 놀랍다면서? 네 처 말이 장기에 미쳐 다닌다더라."
  녀석은 머리를 긁적긁적하면서 어물어물한다. 선생은 장기판을 가져다 앞에 놓고,
  "너 게 좀 앉아라. 나하고 한 수 두자꾸나."
  "아이, 천만에..."
  어쩌고 하다가 판을 가운데 놓고 앉았는데, 척척 말을 몇 번 옮겨 진세를 벌여놓고 나서는, 상을 한번 옮겨놓고 대감은 빙그레 웃으며 말하신다.
  "너 졌다."
  이놈이 장기엔 이골이 나서 대여섯 수는 내다본다는 놈이라 가만히 헤어본다. '이리 하면 이리 막으며 이렇게 나오실 거고, 이렇게 나가면 이리이리 하신다...' 꼭 졌지 벗어날 길이 없다. 제 꾀에 제가 넘어 간 것이다. 장기짝을 놓으며,
  "졌습니다."
  "이놈, 사랑에 알아보면 알겠지만, 난 장기 배운 지 사흘밖에 안돼. 그까짓 장기를 가지고 어딜 다니며 둔다 소릴 한단 말이냐? 다시는 장기짝에 손도 대지 마라!"
  "?!"

  대구에 살던 서병오란 분은 호는 석재라 하며 여러 가지에 능하다고 하여 팔능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사람이다. 하도 유명하다 보니 흥선대원군이 듣고 불러 올려서 조석으로 말벗을 삼았다. 정사에 바쁘지 않을 때면 별 실속 없는 것 같은 얘기도 나누고, 장기도 두고... 그러자니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였다.
  한번은 석재가 근친하러 가겠노라 인사하고 나와, 시중에서 박보(장기 두는 비결을 모은 책)를 몇 벌 구해 독실하게 읽고 다시 그를 찾았다.
  심심하던 참이라 장기판을 대했는데, 수가 갑자기 높아져서 대적할 길이 없다. 가뜩이나 강단 센 대원군이 지기는 꼭 졌는데, 졌다 소리는 하기 싫고... 그러던 참에 사람이 들어와 정사에 관해 문의를 드리니까, 손에 들었던 장기 쪽을 내려놓는다.
  "응, 그래?"
하더니 그쪽 응대를 한다. 다시는 장기 두자는 말을 않더라는 것이다.

    이항복을 곯려준 상놈
  흔히 오성 대감으로 불리는 임진왜란 때 재상 이항복의 어려서 얘기라고 한다. 바로 옆집이 대장간이데, 늘 보아도 낫이나 호미를 칠 적이면 쇠를 끄트머리 톡 끊어 잘라 내버리곤 한다.
  '저놈이 저러다 말년에 궁하게 지내지!'
  이렇게 생각한 어린 오성은 그 잘라 내버린 쇠 끄트머리를 주워다 모을 생각을 하였다.
  양반 체면에 상놈의 것을 손으로 집어오기도 창피한 노릇이라, 어린애니까 뒤를 튼 풍차바지를 입었는데, 앉아서 노는 체하고 뭉칫뭉칫 하다가는 꼭 항문으로 물어서 가져오곤 하였다.
  대장장이 영감이 보자니 옆집 양반 댁 아이가 매양 그 짓이라, 한번은 식지도 않은 뜨거운 쇠 끄트머리를 잘라 떨구었다. 아니나 다를까, 뭉칫뭉칫 뒷걸음을 쳐서 무는데, '아, 뜨뜨뜨' 그만 항문을 데었다.
  주인은 속으로 좋아라고 웃었다.
  이튿날 이 아이가 살구를 들고 와서 맛있게 먹는다. 그래 귀엽기도 하고 하여 장난을 건다.
  "도련님, 거 나 한 개 주시구려."
  "눈 꼭 감고 입 딱 벌리면 하나 주지."
  그중 탐스러운 것을 집어들고 그러는 바람에 하라는 대로 했더니 정말 입에 넣어준다.
  "에 퀴퀴 퀴, 이거 똥 아냐?"
  "흠! 양반을 곯려주는 놈은 똥을 먹여야 해!"
  그런 일도 있었는데, 오성의 예측대로 대장장이는 점점 가난해져서 이제 가게를 남의 손에 넘기지 안으면 되었다.
  그러는데 옆의 양반댁에서 잠깐 오라고 하였다. 그때 항문으로 쇠붙이를 물어가던 개구쟁이는 이제 어엿한 서당 도련님이 되었다.
  "내, 영감이 오늘날 이렇게 고생하게 될 줄을 진작부터 알았었소. 그렇게 쇠끝을 톡톡 끊어버리니 그게 모두 얼마며, 첫째 신상에 좋질 않아. 그래 체면에 집어올 수는 없고 하여 항문으로 물어다 모은 것이 독으로 두 독이나 모였소. 모두 애당초 당신의 것이야. 이제 몽땅 내줄 것이니 다시 영업을 계속하도록 하시오. 앞으론 잘해서 노래(늙은 뒤)에 고생은 면해야지."
  "그저 황송합니다. 그런 걸 모르고 뜨거운 것은 던져 드려서..."
  "그거야 살구로 갚지 않았소? 하하하..."
  다시 대장간을 차린 옆집 늙은이는 근실하여 말년에는 지내기가 괜찮았더라고 한다.

    책 집어치우고 나가 놀아라!
  조선 정조 때 이문원이라는 판서가 있었는데, 이 분이 글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이 분은 경기도 가평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자랐다. 위로 두형과 함께 똑똑하다는 소문이 나서, 서울 사는 일가인 이천보라는 판서가 아들이 없어 양자를 구하려고 찾아왔다.
  하나씩 불러 앉히고 말을 시켜 보는데 큰 아이의 말이다.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저도 세상에 나온 이상 공부를 잘해서 일인지하(한 사람의 아래)요, 만인지상(모든 사람의 위)인 정승이 되어 이 나라 정치를 바로 하여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려 합니다."
  과연 소문난 대로 똑똑한 대답이었다.
  둘째는 그러면 뭐라고 했을가?
  "형이 이미 벼슬길에 오르겠다니, 형제가 같은 방향으로 가느니보다 저는 돈을 많이 벌어 돈의 힘으로 많은 일을 해보려 합니다."
  그 말도 어린이치고는 기특한 소리였다.
  끝으로 다섯 살 짜리 문원의 차례였다.
  "나는 밑씻개나 둘 있었으면 좋겠어."
  지금같이 종이가 흔하지 않던 옛날에는 짚을 10cm쯤 되게 여러 번 꺾어  접고, 나머지로 감아서 흡사 엿가락 크기만 하게 하여 그것으로 뒤보고 난 뒤를 닦았다.
  너무나 엉뚱한 소리에 아버지는 나무랐다.
  "예끼놈, 그게 무슨 소리냐? 서울 아저씨가 계신데..."
  "형들 그 되지 않은 소리하는 입 좀 틀어막아 주려고 그래요."
  서울에서 온 판서 대감은 이 아이의 기상이 마음에 들어 자기가 탄 가마에 들여앉혀 가지고 돌아왔다.
  그 이듬해 봄이었다. 선생님을 모시고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천자문의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르 황" 넉 자를 달포를 두고 가르쳐도 깨우치질 못하고, 얼굴이 점점 노래지며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였다.
  사랑에 드나드는 손님이며 모든 식구들이 대감께 권하였다. 재주가 팔랑팔랑 일찍 트이는 애도 있으나, 큰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늦게 풀리는 수도 있으니 한 일 년 두었다 다시 시작해보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책을 집어치우고 나름대로 나가 놀라고 하자, 다시 밥도 잘 먹고 행동도 생기를 띠어 활발해졌다.
  일 년이 지나 이듬해 봄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역시 하늘 천 따 지에서 막혀 혈색이 없어지고 건강마저 나빠졌다. 대감은 속이 상했으나, 주위 사람들이 여러 번 권하여 또 일 년 놀리기로 하였다. 그러자 밥도 잘 먹고 활발하게 잘 놀았다.
  다음 해 봄, 소년은 여덟 살이 되었다. 머저리가 아닌 이상 지혜가 트일 때도 되었는데, 가르쳐 보니 역시 그 모양이었다.
  "청보에 개똥을 쌌다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내가 잘못 데려온 탓이나 하지 누굴 원망하겠느냐? 도로 데려다 주어라."
  대감은 더 참을 수 없어 양자를 취소하여 건장한 하인에게 업혀 제 본집으로 돌려보냈다.
  아들이 없던 사람이 남의 자식일지라도 늘그막에 자기 아들로 삼아 아버지 소리를 듣는 것을 낙으로 여겨오던 터라, 보내놓고 나니 허전하여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가평에 갔던 하인이 돌아오자 대감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그래, 도련님 모시고 가는 동안 뭐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느냐?"
  "왜 없었겠습니까? 제가 업고 동대문을 나서면서 그랬습죠. '도련님도 딱하슈. 공부만 조금 하면 그 크나큰 집이 다 도련님 거요, 잘 먹고 잘 입고 지낼텐데, 그래 하늘 천 따 지에 막혀 가지고 시골로 쫓겨가 꽁보리밥에 황금 조밥이나 자시다 말 것이냐'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업힌 채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면서, '예끼놈, 모르는 소리 마라. 내가 왜 하늘 천 따 지를 몰라? 천지현황을 삼 년 독하니 언재호야를 하시독고(천 자의 첫 구절인 천지현황을 3년이나 걸려 읽었으니 마지막 구절인 언재호야는 어느 때나 읽을 것인가)? 너 뒤 별당에 가 봤니? 3칸 광에 가득한 게 다 책이야. 섣불리 공부하는 체하다가는 그걸 다 읽으라고 할 판이니 그럼 언제 일을 해 보게? 그래 애당초 글 안 배우려고 한 노릇이지 모르긴 왜 몰라.' 그러지 않으시겠어요?"
  "오, 알았다. 너 되짚어 내려가 도련님을 모시고 오너라."
  다시 양아버지에게로 돌아온 문언 소년은 공부 안해도 좋고,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완전히 자유가 주어졌다.
  그날부터 하인 아이며 이웃 아이들을 모아놓고 장난을 하는데, 어찌나 드세게 소란을 떠는지 누구도 막을 길이 없었다.
  양아버지는 속으로 곰곰 생각하였다.
  '하인의 말만 듣고 다시 데려오긴 했지만, 한번 시험해보고 틀리면 그땐 영 하직이다.'
  다음날 아침 대궐에 들어가면서 좁쌀 한 말을 내주고 이문원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너 오늘 꼼짝 말고 이걸 다 세어놔라. 저녁때 나와봐서 세어놓지 않았으면 크게 혼날 줄 알아라."
  저녁때 돌아와서 물으니까 몇 억. 몇 만, 몇 백 개라고 거침없이 대답하였다(옛날에는 십만을 억이라고 하였다).
  "오냐! 나가 놀아라."
  그래 놓고 대감은 하인을 불러서 물었다.
  "도련님이 좁쌀을 어떻게 세시더냐?"
  아침부터 곱살스럽게 하나, 둘, 셋, 넷 세었다면 쫓아보내려는 생각에서였다.
  "점심때가 지나도록 장난만 하시기에, '아버님께 꾸중 들으시려고 그러시느냐'고 빨리 세시라고 하였더니, 저희들을 방으로 부르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은저울을 내다가 한 돈쭝을 달더니 장판방에 확 헤쳐놓고 여럿이 나눠서 세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럿이 센 것을 합쳐서 몇 백, 몇 십, 몇 개라고 하였더니, 이번에는 큰 저울로 전체 무게를 달고 좁쌀을 쏟고는 말을 달아 그 무게를 빼고, 전체 근량으로 곱하여 계산하였습니다."
  "그걸 모두 제가 하더냐?"
  "웬걸입쇼? 청지기 장서방 보고 계산해 내라고 하였습니다."
  대감은 속으로 흐뭇하여 혼자말처럼 뇌었다.
  "우리집에 중시조(누구의 자손이라면 세상이 알 만한 훌륭한 조상) 났다!"

    꺼먼 건 먹, 하?? 건 종이
  양반의 자식이라면, 또 아버지의 대를 잇자면 벼슬을 하여야겠고, 그러자면 과거를 봐야겠는데 이문원은 공부가 없으니 어쩔 것인가!
  그래도 때가 되니 과거장엘 갔다. 글제가 나붙자 모두 끙끙거리며 글을 생각하고 야단들인데, 무얼 어떻게 했는지 문원 도련님은 맨 먼저 써서 제출하는 것이 아닌가.
  하도 빨리 내니 시관들이 눈이 휘둥그래져 뜯어보았다. "신불문"(신은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세 글자를 아주 서투른 솜씨로 써 놓았을 뿐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하였던 임금님께 보였더니 몹시 진노하였다.
  "어느 놈의 그따위 짓을 하였단 말이냐? 비봉(과거에서 협잡을 막기 위해 집안 계통과 이름 쓴 부분을 접어서 봉한 것. 뜯으면 자연적으로 합격발표가 되는 제도였다고 이야기꾼은 말한다)을 뜯어보아라."
  그리하여 그때 법에 따라 그냥 합격으로 발표가 되었다.
  엉터리 수단으로 과거에 합격한 젊은 날의 이문원은 순탄하게 벼슬길에 올랐지만, 가는 곳마다 무식한 사또로서의 뒷말을 면치 못하였다.
  한번은 강원도의 영월 군수로 가는데 도중에서 노송을 만났다.
  노송이란 지나가는 관원에게 판결을 호소하는 것으로, 이것을 당한 관원은 그것을 해결 지어 주어야 길을 떠날 수 있었다. 본래는 그 고을 원에게 호소하는 법이나, 상대가 지방에 세력을 뻗친 사람일 경우 그들 압력에 휘말릴 염려가 있으므로, 그런 때는 의송 이라고 순찰 나온 감사에게 직접 호소하는 길이 있었다. 그것마저 여의치 않을 때는 지나가는 관원을 붙잡고 공정한 판결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만난 노송은 그런 복잡한 것도 아니었다.
  어느 총각이 7년 동안 머슴을 살아 받은 새경을 다시 변리를 놓아 늘리고 하여 80냥이라는 목돈을 만들어 지고 나오다가 원님의 행차에 가로막혀, 무거운 것 지고 섰기도 뭣하여 주막집 절구통에 내려놓고 구경하고 가니 간 곳이 없더란다. 원님 행차 구경하다 잃어버렸으니 그것을 찾아주고 가라는 것이었다.
  이 무식하다는 원님은 괴상한 명령을 내렸다.
  "그 절구통이란 놈을 잡아 대령하라."
  하인들이 절구통을 오랏줄로 친친 동여 사또 앞에 갖다놓으니 절구를 보고 호령하였다.
  "네 이놈, 아가리는 몸통 만한 것이 생김새부터 남의 돈 삼키게 돼먹었다. 이놈을 제주도로 귀양을 보내리라. 그러나 네놈이 제 발로 걸어가지는 못할 것이니 절구 주인을 불러라."
  "절구를 귀양 보냐야겠는데, 제 발로 걷지는 못하고 사람을 사서 지워 보내자면 비용이 100냥이 든다. 그러니 그 돈을 네가 물어야겠다."
  주막 주인이 생각하니 비용으로 100냥을 무느니, 80냥 원금을 물어주는 것이 20냥이나 적은지라, 잃어버린 돈 80냥을 자기가 물겠다고 나섰다.
  사또는 아무래도 좋으니 빨리만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사면팔방으로 돈을 모으러 다니는데, 가난한 시골구석에 그렇게 많은 돈이 있을 리 없었다. 빨리 가져오라고 독촉은 빗발치듯하고, 주막 주인은 허둥지둥 어찌되었든 몇 시간만에 80냥의 엽전을 마련해 가지고 왔다.
  사또는 마당에 멍석을 펴고 그 위에 이 돈을 늘어놓은 뒤 총각을 불렀다.
  "이 가운데서 어느 것이 네 돈인가 골라보아라."
  지금도 많은 금액의 돈이면 돈 묶는 끈으로 자기 돈 남의 돈을 구별 할 수 있다. 그런데 옛날에는 엽전을 끈에다 꿰어서 썼기 때문에 그 끈을 바꾸지 않는 한 제 돈과 남의 돈을 쉽게 가릴 수가 있었다.
  총각이 한참 동안 뒤적이더니 돈 두 꾸러미를 집어들었다.
  "이것이 제 것이올시다."
  "알았다. 그러면 주막 주인! 그 돈은 누구한테서 빌려온 것인가 말해 보아라."
  "이거는, 옳지! 저희 집 술청에서 심부름하는 놈 것입니다."
  그 놈을 잡아다가 엎어놓고 볼기 몇 대를 치니 금방 어디에 감추어 놓았다고 실토를 하였다. 그리하여 총각에게는 아무쪼록 장사 잘해 잘살라고 그 돈을 돌려주고, 주막 주인에게는 빌려왔던 돈을 모두 돌려주라고 일렀다.
  물론 절구도 결박이 풀려 커다란 입을 하늘을 향해 벌린 채 전처럼 제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이 분이 점차로 벼슬이 높아져 판서 지위까지 올랐는데, 이 분에게 시험을 채점하여 순번과 합격, 불합격을 결정하는 과거의 시관이란 중대한 임무가 맡겨졌다. 본래 무식하니 어떻게 해낼 것인가 주위의 관심이 대단하였다. 
  그 분 밑에서 채점의 실무를 보는 학식 있는 사람들은 이때야말로 한몫 보게 되었다고 속으로 기뻐하였다.
  "대감! 이번 과거에는 아무 대감의 자재 아무개, 아무 대감의 손자사위 아무개를 급제로 뽑겠습니다. 괜찮겠습지요?"
  "음! 좋아, 좋아. 내야 까막눈이 무얼 알겠소? 영감들이 다 알아서 하시구려."
  시관들은 싱글벙글하였다.
  "부탁이 하나 있소. 우리 집 아이들이 커가고 있으니, 글 잘 되고 글씨 잘 쓴 것이 채점하다 눈에 띄거든 좀 골라주시구려."
  "그야 어렵지 않습니다."
  미리 합격자를 내정하고 하는 채점이라, 그저 건성건성 형식으로만 보아 넘기니 정말 난장판이었다. 그러다가도 한 장씩 시험지를 뽑아서는 대감 앞에 내놓았다.
  "이게 잘 된 거요? 내야 원 알 수가 있나? 꺼먼 건 먹이고 하얀 건 종이니..."
  하루의 채점이 끝나고 예정하였던 대로 누구누구를 급제자로 발표하려는 참이었다.
  "잠깐만!"
  "예?"
  "이걸로 급제자를 내시오. 영감들, 이게 모두 글 잘 짓고 글씨 잘 쓴 것이라 하지 않았소? 과거란 글 잘 짓고 글씨 잘 쓰는 사람을 뽑는 거거든."
  "그래도..."
  "그래도 라니, 어쨌단 말이오?"
  무식한 대감이 시관의 책임자로 나앉았던 때문에 조선 500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공평한 과거가 치러졌다고 한다.

    정수동의 꾀
  하원 정수동이 늘 다니는 대감댁엘 갔는데 한 문객이 얘기를 한다.
  "벼슬 한자리 얻어 할까 하고 벌써 여러 해 따라다니는데, 대감께서 알아주시질 않는구려. 어떻게 해야 인정을 받아 눈에 들지 망연하오."
  "허나 내가 무슨 말주변이 있어야지?"
  "염려 마오. 내가 장지 뒤에서 살살 일러줄게. 그대로만 하면 될 거니까."
  "그래? 그럼 실수 없이 해줘야 하오."
  단단히 약속을 해놓고 다음날 대감이 사랑에 있어 문객이 가득할 때에 판을 벌였다.
  "오늘은 시생이 할 줄 모르나마 옛날 얘길 한마디 합죠."
  "호, 그래? 그거 좋지! 어서 하게."
  "옛날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응, 그래서."
  "어느 산골짜기로 들어가는데, 날이 저물어 옵니다 그려."
  "음, 그래."
  "허리 길이가 발 가웃이나 뒬 백액대호가 썩 나타났습니다 그려."
  "흠, 그래서."
  "..."
  "그래 어떻게 됐나?"
  "대감..."
  "이 사람이 울긴?"
  "정수동이가 가 버렸습니다요."
  "무어?"
  그제사 여태까지 온 꿍꿍이속을 알고 방안엔 폭소가 벌어졌다.
  대감도 한참을 따라 웃다가 정수동이의 한 짓을 생각하고,
  "비인이로다!"
하였다(미련한 사람을 여러 좌중 앞에서 망신시키다니 사람은 아니라는 뜻).
  그러나 책방(비서역)은 그리 안 들었다. 충청도의 비인 고을을 주라는 줄 알고 주선하여 그 고을 현감을 시켜주었다.
  뒤에 정수동을 만나 그날 일을 항의하니까,
  "흥! 비인 고을은 누가 시켜 줬는데."

    요놈의 괭이, 길 비켜라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기 전, 거의 양광(거짓 미친 체)으로 시정을 누비고 다녔을 때, 어느 기생집에서 봉변을 당하였다. 종실의 어른으로서 체면 없이 비굴하게 논다고 어느 무변에게 넙치가 되게 얻어맞은 것이다.
  "정일품 현록대부 주제에, 이놈아 이게 처신이야? 종친 얼굴에 똥칠을 하다니..."
  무예에 출중한 군인에게 가뜩이나 체소한 흥선군은 꼼짝 못하고 흠씬 맞았다. 때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처신 좀 고치라고, 소위 버르장머리를 가르친 것이다.
  물론 뱃속에 육조를 배포하고 있는 그다. 그것으로 제 버릇(?)이 고쳐질 리는 없지만...
  얼마 후 세상은 바뀌어 흥선군은 일약 대원군으로서 군림하였다. 요직에 있는 고관들이 줄지어 인사차 들어오는 중에 예의 그 군관이 섞여 있었다.
  '놈 배짱 한번 좋다!'
  대원군은 윗방에서 울리는 그의 절을 거만스러이 받고 빈정거리듯 물었다.
  "자네, 이제도 내게 손찌검하겠나?"
  "!?"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무변은 고개를 번쩍 치켜들며,
  "지금도 그때처럼 체통에 어긋난 짓 하시면, 또 치겠습니다."
  "흐음!"
  그가 대화를 마치고 일어섰을 때 대감은 이례적으로 일어서 나와 배웅을 하였다. 툇마루 상기둥 옆에 고양이가 엎드려 햇빛을 쬐는 것을 툭 차며, 
  "요놈의 괭이, 길 비켜라. 금위 대장 나가신다!"
  목소리가 낮아서 이 무변도 똑똑히는 못 알아듣고, 긴가민가 제 귀를 의심하였다.
  그런데 이튿날로 발령이 났다.
  이장렴은 이렇게 해서 특차 발탁되어 대감의 후광을 업고 소신껏 일하였다. 그는 성종왕자 계성군의 후손이었다.

    베갯머리 송사
  이경하 라면 대원군 집권 시 훈련대장으로 좌우 포도대장을 겸했던 사람이다. 특히 천주교도 박해를 맡아 살인여마(사람 죽이기를 삼대 베어 넘기듯 한다)하였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의 아들 범진은 친로파 정객으로, 손자 위종은 헤이그 밀사의 한 분으로 통역의 책임을 졌던 그런 가문이다.
  그의 집이 현 중국 대사관 사리에 있어 지명을 따 낙동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통하였는데, 그는 임명장을 받을 때 대원군 면전에서 딱 부러지게 다졌다.
  "대감의 분부라도 청만은 안 받겠습니다."
  "좋아! 그래서 자네를 시키는 거야."
  그가 하루는 소실집에서 쉬는데 밤에 그의 첩이 이런다.
  "대감! 상을 차리든지 하면 와서 일도 돕고 하는 할멈 있잖아요?"
  "음! 삼복 어멈이라는 그 할미 말이지?"
  "예! 손자놈이 잡혀 있다고 대감께 좀 알아보아 줍시사고 해요."
  "음! 알았어."
  이튿날 출사하는 길로 할멈의 손자 일을 물으니 부하들이 다 벌벌 떨었다.
  "그저 별일 아니고, 동네에서 약간 버릇없이 군다기에 하룻저녁 재워 혼이나 좀 내주려고 대감께도 품하지 않았사온데..."
  "알았다. 그놈 끌어내 대령하라."
  "!?"
  "형틀에 올려 매고 매우 쳐라."
  글자 그대로 불문곡직, 내리치는 매질에 청년은 정신을 잃고, 계속되는 호된 매에 그만 장하고혼이 되고 말았다.
  "대감! 낙명이 되었사옵니다."
  "알았다! 삼문 밖에 거적 덮어놓아 찾아가게 하라."
  앞을 서성거리며 하회를 기다리던 할멈은 시체를 쓸어안고 울며 폭백하였다. 이판 새판이다.
  "이놈아! 내 손자 살려 내랬지, 죽여달라더냐? 내 손자가 뭘 잘못해 이렇게 죽여놨단 말이냐? 이놈아!"
  "내게다 청탁을 해? 안될 말이지. 더구나 소첩을 통해 베갯머리 송사로 부탁하다니..."

    자네, 원하는 자리가 뭐였지?
  흥선대원군이 낙백 했던 시절,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준 시골 청년이 한 사람이었다. 파락호라는 소리까지 듣던 흥선군이 일조에 나라 실권을 몰아 쥐게 되었으니, 어느 모로 보나 의당 한자리 안 시켜 줄 수 없는 사이다.
  사사로운 청탁이나 뒷구멍 거래를 막아 안동 김씨 집권시절의 구악을 일소하겠노라고 장담하고 나선 처지에, 자신에게 고맙게 했다 해서 한자리 주자고 아랫사람에게 지시할 수는 없었다.
  사흘이 멀다 하고 찾아오는 그에게 그저 좀 기다려 보라고 일러 돌려보내기도 이제는 딱하게 쯤 되었다.
  한번은 세밑에 그 청년이 묵은 세배 겸 인사를 왔다.
  "대감, 정사다망하신데 자꾸 찾아 뵙기도 뭣하고... 이젠 내려가 농사에나 전념하렵니다."
  "그래? 며칠 있다 세뱃술이나 한잔 먹고 가지 그려!"
  '자, 미련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니 뿌리치고 내려갈 수도 없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한 번 속아봐?'
  청년은 어쩌는 수 없이 객지에서 설을 쇠었다.
  초하루, 초이튿날은 그럭저럭 보내고 사나흘쯤 지나서 대원군을 찾았다. 한다 하는 대감들이 즐비하게 둘러앉았는데, 세배를 드리니 아랫간으로 내려오란다. 이것만으로도 특별한 대우다. 그러더니 떡 벌어지게 차린 세뱃상이 나온다. 생각 같아서야 휩쓸어 먹고 싶으나, 그러지도 못하고 체면을 차려 얼만큼 먹고 마시고 하고 나서다.
  입가심으로 차를 드는데,
  "자네, 나 좀 보세."
  "예?"
하고 가까이 다가가니 그의 귀에다 대고,
  "자넨 그만 내려가고, 자네 대부인이나 오셔서 내 자리끼 심부름이나 하시게 함 어때?"
  대부인이라면 어머니라는 뜻이요, 자리끼는 머리맡에 떠다놓고 밤중에 자다가 목이 탈 때 마시는 물이니, 이거는 쉽게 말해 '너 어머니 바쳐라' 하는 얘기다.
  청년은 자리를 차고 일어나면서,
  "대감! 그것도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사뭇 발악에 가까운 소리를 치더니,
  "에잉! 내 참."
하고 옷자락을 내려 여미며 돌아갈 채비를 한다.
  대원군은 난처한 듯이 엉거주춤 무릎으로 일어서며,
  "자네, 이 사람! 노여웠나?"
  "노엽다니요! 그래 여태까지 이 000를 무얼로 보신 겁니까?"
  사뭇 애걸하다시피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건만, 기어이 뿌리치고 대감들 앞을 휘적휘적 지나 인사도 없이 뜰에 내려 뒤도 안 돌아보고 휭하니 나가버린다. 대원군은 미닫이를 열고 뭐라고 한마디 불러볼 듯이 하더니 그만두고, 입맛을 쩍쩍 다시며 자리에 앉는다. 좌중의 공기는 졸연히 명랑해지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청년은 좀처럼 분이 풀리지 않았다. "푸푸-" 하면서 벽에 기대어 앉았으니 그동안 쌓아온 공적은 수포로 돌아가고 이제 와 이런 수모까지 당하고... 울래야 울 수조차 없는 심정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무정히 흘러 어둑어둑해질 무렵이다. 누가 찾아왔다.
  "아무데서 오신 0서방님 처소가 여깁니까요?"
  "예! 그렇소만..."
  "이거 저희댁 대감께서 보내시는 물건이온데, 약소하지만 거둬주십사고요... 그리고 편지는 여기 있습니다."
  돌돌 말아서 싼 품이 피륙인 모양이고, 편지를 뜯어보니 별 사연 없이 그저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얘기뿐이다. 보낸 이는 평소 점잖게는 보아 왔지만 아직 정식 인사도 없는 분이다.
  차인을 돌려보내고 보내온 물건을 뜯어볼까 하고 있는데 또 누가 찾는다.
  "여기십니까? 아무 서방님 처소는..."
  문을 열어보니 또 물건과 편지다.
  곰배염배 사람이 찾아드는데, 모두가 똑같은 사연이다. 옳지! 그러고 보니 대원위 대감댁 사람에 모였던 대감들이다.
  이튿날도 아침부터 찾아드는데, 어떤 이는 직접 찾아온다. 이거 우선 남보기가 미안해 먼저 받은 물건은 어디 딴 칸이라도 얻어서 챙겨놓아야 할 판이다.
  어제 광경을 목도한 대감들에 이어, 이번에는 전해들은 사람들이 교제를 터오는 것이다.
  "옳거니! 내가 호통치는 것을 보고 '야, 이것 대단한 놈이다. 저 대감 쩔쩔 매는 꼴 좀 보아라.' 그러고들 내게 접근해오는 거로구나."
  청년은 물건이 쌓여 흐뭇도 하고, 대원군의 일장 연극에 탄복하였다.
  며칠 뒤다. 대원군이 사람을 보냈다.
  "자네, 노여움은 좀 풀렸나? 모두들 자넬 한자리 시켜야겠다고들 하는데, 원하는 자리가 뭐였지?"

    암행어사라야 정신차릴까
  옛날의 암행어사는 글자 그대로 몰래 다니는 암행이라, 본색을 숨기는 것이 특색이다. 그래서 이런 얘기가 있다.
  어느 고을의 원님이 위세를 보이느라 그랬는지, 공사를 처리하는 등 남의 앞에 나앉으면 큼직한 부채를 훨쩍 펴서 귀 뒤에서부터 활활 내리 부치며 몸을 흔드는 버릇이 있었다.
  그 밑에서 명령을 거행하는 사령들이 공론을 하였다.
  "내 저 부채질 못하게 할게, 너 볼래?"
  "임마, 무슨 수로 그렇게 해? 그 어른의 본래 버릇인 것을."
  "두고 봐라. 내가 성사시키면 너 한잔 사야 한다."
  그러고는 창 앞으로 바짝 다가가 조그만 소리로 아뢰는 것이다.
  "웬 중년의 남자가 어찌 보면 퇴물 점쟁이도 같고, 어떻게 보면 집 잃은 사람도 같은데, 구지레한 옷차림으로 어제부터 장터를 돌아다니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고 다니는데 어떻게 할갑쇼? 잡아들여서 문초해 보시면."
  "그래? 아직 너무 떠들지 말고, 너랑 눈치 빠른 몇 사람이서 먼발치로 좀더 살펴보도록 해라."
  내려와서 보니, 원님의 그 위세 좋던 부채질은 뚝 끊기어 반쯤만 펴서 든 채 몸도 안 흔들며 턱 아래로만 힘없이 부치고 있다.
  "내 저 부채질 다시 활활 부치도록 해줄게. 너 두고 보련!"
  "임마, 금방 또 손을 쓸 수는 없지 않아?"
  "그래 그래, 이따 점심 지나서 하기로 하지."
  원님이 겁에 질려 옹송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실컷 보다가 점심때가 지나서 다시 다가가,
  "안전님! 어제부터 쏘다니던 그 이상한 과객이 저 윗말의 김진사댁으로 들어갔는데 자세히 물으니, 그 댁에 드나드는 지관이라는굽쇼."
  "그런 걸 왜 어제부터 돌아다녔던고?"
  다시 부채는 쫙 펴지고, 귀 뒤에서 활활 내리 부치며 몸을 계속 흔드는 본래의 자세로 돌아가더라고 한다.
  행객의 차림새로 보아 암행어사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기가 죽어 있다가 아닌 것을 확실히 알자 당초의 활기를 되찾은 것이다.

    김빠진 암행어사 출두
  동래 정씨로 호를 임당이라 하는 유길 상공이 있었다. 중종 10년에 태어나 선조 21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4년 전에 세상을 떠난 분인데, 명문 출신에다 수재로 무과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정부의 요직을 두루 거쳐 좌의정까지 지낸 분이다.
  그가 젊어서 호남지방의 암행어사 특명을 받아 전라도의 최남단인 해남 땅에서 진도의 벽파진으로 건너가는 나루목에 다다라 주막에 들었다.
  이 양반이 곧장 나룻배를 타고 건너는 것이 아니고 역졸들을 불러모아 쑥덕공론도 하고 그러면서 며칠을 묵었다. 물론 접객업소의 사람들이란 눈치가 빠른 법이라, 저들은 일행의 정체를 알아차렸고 사람을 진도 고을로 보내 이러이러한 일행이 와 있노라고 알렸다.
  기밀은 알려질 대로 알려진 뒤에, 마치 엉덩이 무거운 사람이 자리를 뜨듯 끙하고 일어나서 나루를 건넜다.
  말할 것도 없이 진도에서는 백성을 늘어 세워 환영만 안 했을 뿐,
  "옳지 옳지, 저기 어사의 일행이 간다."
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뒤에, 관청 삼문 기둥을 두드리며 김새는 소리로, "암행어사 출두요"하고 외쳤다.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 있는 터라, 진도 원님은,
  "어서 오십시오."
하고 반갑게 맞이하였다.
  자기 딴에는 얼없이 맞춰놓느라고 했겠지만 중앙에서 데리고 간 민첩한 서리들이 검열해보니 일처리의 귀가 맞지 않는 곳이 여기 저기서 퉁겨져 나왔다.
  물론 어사의 판단으로 진도 군수는 파면되고, 창고는 봉해놓고 후임 군수가 취임하면 열어서 처리하게 하였다. 이른바 봉고 파직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일이 있은 뒤 그의 친구가 물었다.
  "암행어사라는 직분이 불쑥 뛰쳐나와 갑자기 뒤져서 가릴 것은 가리는 것이 본분인데, 무슨 일 처리를 그렇게 느슨하게 하였단 말이오?"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설명하는데, 당시 진도 군수는 무관 출신이라 전투에 나서면 일당백의 용기를 발휘하겠지만, 내정에 대해선 백지이고 인정이 많아서 단 한 가지도 딱 부러지게 처리하지 못했을 터인데, 갑자기 들이닥치면 엉망진창일 것이 뻔하니, 그렇다면 죽여야 하겠는데 죽일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 정도로 해 파면조치로 끝내려고 일부러 그랬다는 것이다.


      계집종 아들과 친구 된 율곡

    그러더니 끝내 좋지 않게 죽었다
  조선 중기에 잠곡 김육 이라는 명재상이 있었다.
  그가 중년에 어느 자리에서 보고 돌아와 자제들에게 들려주었다는 이야기가 여러 책에 실려서 전한다.
  한번은 어느 고관이 세상을 떠났는데, 아직 나이가 많지 않았는지 관재(관을 짤 널)의 준비가 없었다. 지금처럼 장의사에 맡겨 얇은 송판으로 짠  것을 사다 쓰면 되던 때가 아니다. 연세 높은 부모를 모신 사람이면 두껍고 좋은 널갓을 미리미리 준비하는 법이었는데, 그런 준비가 없었으니 낭패다. 더구나 돌아간 분의 몸집이 워낙 커서 여간 재목으로는 그가 들어간 관을 짤 수가 없다. 관 짜는 목수 말이, 어느 어느 댁(그도 물론 벼슬하는 가문이다)에 있는 널이라면 소용이 닿겠으니, 우선 당겨다 쓰고 차차 장만해서 갚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여 모두들 그럴싸하게 들었다.
  그래 좌중의 하나가 사람을 보내서 이곳 상가 댁 형편이 이러이러하니, 어떻게 사정 좀 보아주지 않겠느냐고 청해보았다. 그런데 집에 노부모가 계셔서 장만해놓은 것인데 노인의 근력은 믿지 못할 일이라 갑자기 일을 당하게 되면 고란하지 않느냐면서 거절하더라고 전한다.
  하기야 그도 그렇지 억지로 우겨서 될 일이 아니다. 그러는데 당시 조정  안에서 이리 왈 저리 왈 하는 위치에 있는 대감짜리 하나가, 이 역시 초상났다는 소식을 듣고 문상차 찾아왔다. 같은 초상집을 찾아도 상주가 예모를 갖추어서 성복을 하고 나야 절차를 밟아 조상을 하는 법이지, 그전에 달려오면 그냥 말로 위문하고 무어 도와드릴 거 없느냐고 묻는 것이 옳은 인사다. 따라서 서로 절하고 하는 절차는 아직 없게 마련이다.
  들어앉자 좌중의 얘기를 듣고 그는 거드름을 피웠다.
  "그래? 그럼 다시 한번 갔다오게. 이번엔 내가 그런다고 분명히 명토 박아서 좀 도와줘야겠다고 해."
  심부름 갔던 사람이 오래지 않아 얼굴이 환해서 들어왔다. 그대로 전했더니 즉각 내다 실어주어서 안동(길을 갈 때 사람을 따르게 하거나, 물건을 지니고 감)해 가지고 왔노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누군데' 하는 눈치가 외모에 들어나 보여서 좌중의 뜻있는 이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까짓거 세력이 있다고, '안될 일도 내가 말하면 되지' 하는 그 귀하신 몸 자세가 문제인 것이다.
  잠곡도 당시는 아직 지위가 그리 높지는 않았던 모양이나, 자제들더러 얘기했을 때는 너흴랑 이 다음에 그러지 마라 하는 교훈을 담아서 얘기했을 것이다.
  이 얘기는 실은 "동평견문록"(효종의 사위인 동평위 정재륜이 평생에 듣고 본 것을 적은 책)에는 끝에 덧붙였다.
  "그러더니 끝내 좋지 않게 죽었다."(과불량사)
  너무 세력을 믿고 덤벙대다가 아마도 법에 걸려서 죽은 모양이다.
  임진왜란 때 도원수로 활약한 권률 장군의 이름지은 의도를 보면 복 많이 받고 귀히 되라는 그런 뜻이 아니라, 률 자는 두려워서 떤다는 '떨 률' 자다. 권은 '권세 권', 출세하여 권력을 쥐고 권세 있는 자리에 오를수록 혹시라도 분수에 넘치지나 않을까 조심하고 떨라는 원대한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입던 옷가지 빨아 입혀 딸 시집보낸 대감
  동래 정씨에 홍순 이라는 이가 있었다. 영조 21년 을축에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두루 거쳐 우의정에까지 오른 분이다.
  그가 호조판서로 예조판서를 겸하고 있을 때, 저 유명한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서 죽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연히 예조판서 책임 하에 장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그는 모든 절차를 될 수 있는 한 후하게 하고, 염습하는 데 쓰인 옷감에서부터 시신에 신기는 신발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재료를 한 조각씩 따로 떼어, 그 당시의 경비 쓴 문부와 함께 궤짝은 믿을 만한 서리에게 맡기며 일렀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큰일날 것이니 부디부디 단단히 간수하렷다."
  아니나다를까 영조가 연세 높아 승하하시고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왕세손으로서 왕위에 올랐으니, 까딱 잘못했다가는 연산군의 재판으로 일대 보복의 형옥이 일어날 판이다.
  자기 아버지를 혹시라도 소홀하게 다루었을까 하여 왕은 상례 당시의 담당관을 물었다. 곧 어전에 불려 들어간 그는 이미 일러두었던 서리에게 그 궤짝을 가져오게 하고, 몸소 차고 다니던 열쇠로 열었다. 그리하여 이러이런 천으로 이러이러한 옷을 지어 입혀 드리고, 이러한 재료로 이런 것을 만들어 넣어드려 경비는 암만암만이 나고... 재료 견본과 함께 밝혀진 사실을 보고 정조의 마음은 누그러졌다.
  아버지를 위해 쏟은 그 정성, 오늘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만반의 대비를 갖춰놓은 그 꼼꼼한 일솜씨. 임금은 크게 감동하였고 그래 정승으로 승진시켜 국가대사를 의논하게 된 것이다.
  그보다 앞서 그가 평안감사로 있었을 당시의 일이다. 기생 하나가 사또가 안 계신 틈을 타 담배를 조금 훔쳐서 피웠다. 자리에 돌아와 담배함 안의 것이 틀린 것을 알고는, 누가 그랬는가를 밝혀 예의 그 기생은 끌려내려가 매 30대의 무서운 형벌을 받았다.
  그런지 얼마 뒤 일이다. 심부름하는 통인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 전신을 비춰보는 체경을 깨뜨려놓고 겁에 질려서 떨었다.
  담배 한두 대에 그런 형벌을 내리던 사또인데...
  자리에 돌아와 대령할 아이들 하나 없어 텅 빈 것을 보고 다른 하인에게 물으니 그런 사정이라, 모두 불러오게 했다. 잘 타이르고 깨어진 것이나마 한 쪽씩 나눠주고 다시는 말이 없다. 그 당시 유리로 된 거울은 정말로 귀중품이었으므로 측근에 모셨던 이가 의아해서 물었다.
  "거울을 깨친 것이 먼젓번 담배에 비할 것이 아는데, 먼저 건 벌하고 이번엔 그냥 두시다니..."
  "그게 아냐! 먼저 건 고의로 그랬으니 소행이 발칙하고, 이번 거야 철  모르는 아이들이 실수로 그런 거 아닌가배."
  그런 홍 정승에게 딸이 있어 걸맞는 가문의 수재를 사위로 맞게 됐는데, 혼사에 쓸 부비를 부인과 의논하니 혼수에 800냥, 잔치비용에 400냥의 예산을 가져야겠다고 한다.
  혼인날이 다 되도록 피륙을 안 들여와 부인이 안절부절 못한다.
  "장사꾼이 가져오마고 하더니 웬일인고? 할 수 있소? 입던 옷이나 빨아 입혀서 보낼밖에."
  또 잔칫거리를 들여오지 않아 성화를 하니까,
  "가져오마더니 웬일인고? 할 수 있소? 그냥 있는 거나 가지고 치러야지."
  그렇게 치러진 혼례이니 딸은 물론 사위에게도 은연중 불평이 켰을 것이다. 그러거나말거나 사위가 처가에 와 밥먹고 묵는 것까지 용납 않고 되쫓아 보내던 박정한 장인은 몇 해 만에 딸과 사위를 불렀다.
  집 가까운 한 곳에 이르더니 모여주는데, 조촐한 집에 뜨락도 아늑하고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그야말로 분통같이 꾸며져 있다.
  "네가 시집갈 때 네 어머니에게 물었더니 1천 200냥은 들 거라고 하더구나. 그렇기로 그 많은 돈을 공연히 남의 눈이나 즐겁게 하려고 써버릴 것이 뭐냐? 그래 그 돈을 따로 세워가지고 그 동안 늘렸느니라. 그 불어난 것으로 이 집도 지었고, 시골에 따도 사서 몇 백 석 추수는 받을 만하게 해놓았지. 이만하면 남의 집에 꾸러가지는 않을 것이니, 예 와 살도록 하여라. 그렇다고 추수나 받아먹고 편히 지내라는 얘기는 아니다. 후고의 염려 없이 사나이답게 앞길을 열어 가는 기본을 삼아라, 그런 얘기지. 하하하."
  한번은 그의 사는 집을 수리하는데 그 공임 몇 푼을 가지고 장색들과 다투는 것이었다. 자제들이 보기에 딱해서 조용한 시간을 타서 말씀드렸다.
  "가난한 일꾼들의 수고비를 깎자고 하신다면 상신된 체면에 뭣하지 않습니까?"
  "모르는 소리! 정승은 일국의 의표야. 나 편한 것만 취해서 품삯을 올려주면 곧장 선례가 돼서 많은 백성에게 '누'가 된다는 것은 왜 생각 않누?"

    계집종 아들과 친구 된 율곡
  조선 중엽에 구봉 송익필 이라는 분이 있었다. 인명 사전에는 서출이라 하고, 본관은 여산으로 사련의 아들이라고 나와 있다.
  사련 이라는 이는 연산군 2년에 태어나 선조 8년까지 살았는데, 이분 역시 안돈후의 서녀 감정의 소생이라고 되어 있다. 미천한 출신으로 간신 심정에게 아부하여 벼슬길에 올랐는데, 안처겸, 안당, 권전 등이 남곤, 심정 등의 대신을 제거하려 한다고 무고하여 신사무옥을 일으켰다. 안씨 일문 등에 화를 입히고 그 공으로 당상에까지 올라 30여 년 간 거드럭거리다가 죽고, 선조 19년에 이르러 사건 전모가 밝혀지며 관직을 삭탈당했는데 이런 이의 서자, 그것도 계집종 막덕의 몸에서 났으니 그야말로 내세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체가 낮아 벼슬길은 단념했으나, 율곡, 우계 등과 교유하며 성리학을 논하여 통달했고, 예학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이미 당상으로 대감 지위에 오른 율곡 선생과도 대등하게 친구로 사귀었는데, 여기 문제가 있다. 서로 자네니 내니 하고 사귀는 것을 '벗을 한다'고 하여 약간 까다로웠다. 지벌이 상적하고 학식이 비슷하며, 연령 또한 과히 차이가 나지 않아야 허교 한다고 하여 서로 말을 놓는다. 십년이장즉형사지 한다고 하여 9년까지는 벗을 하여도 그 이상 차이가 날 때는 노형으로 대하는 것이 도리였다.
  또 노인 자체라고 하여 그 사람 아버지가 자기 할아버지와 친구간이면, 서로 거북한 사이로 쳐서 경대하며 지내고, 나이 차는 얼마 안 나더라도 장형하고 트고 지내는 분에게는 까불지 못하는데, 그것은 장형부모라 하여 맏형을 형님 중에서도 각별히 여기는 때문이었다.
  율곡의 아우가 형님 처신에 불평이다.
  "그래 형님도, 무의무관의 그것도 남의 집 종의 새끼(종 신분일 때는 '아기'니 '아들'이니 하는 말을 안 썼다)하고 너나들이를 하신단 말씀입니까? 형님 안 계실 때 찾아오면 뜰에도 못 오르게 하고 혼내서 쫓아보내겠습니다."
  "그래? 며칠 뒤 그를 오라고 해놓고 내 피해줄 테니 네 마음대로 해보려무나."
  약조된 날, 아우는 정자관을 높다랗게 쓰고 큰사랑 아랫목 보료 위에 점잖을 빼고 앉았다. 속으로는 '이놈이 오면, 그냥...' 하고 벼르고 앉았는 것이다.
  대문께서 자기 집 하인이 외친다.
  "구봉 송 선생 듭시오."
  율곡의 아우는 자신도 모르게 관을 벗어놓고 일변 갓을 떼어서 쓰며 대청으로 나와 버선발로 대뜰에 내려섰다.
  "선생님! 어서 오십쇼"
  "어! 그래 중씨는 아니 계신가?"
  "잠깐 출타했습니다."
  "온! 사람을 만나자 해놓고 비우다니?"
  스스럼없이 아랫목 보료에 가 털썩 앉는데, 계씨는 자신도 모르게 날아갈 듯이 절을 한 번 하고 한 무릎을 세우고 모셔 앉았다. 무슨 분부가 떨어지면 금방 일어나 거행할 수 있는 자세다.
  한참만에야 구봉이 입을 뗀다.
  "요새 쌀값이 얼마나 하누? 나무는 짐에 어떻게 하고."
  "쌀은 섬에 암만 냥이고, 나무는 드리없으나 좋은 건 짐에 암만한다고 들었습니다."
  또 한동안 덤덤히 앉았다가 자리를 뜨며 이른다.
  "중씨 들어오시거든 나 다녀갔다고 여쭙게."
  "예! 그럼 안녕히 행차하십쇼."
  대문간까지 나아가 배송하고 돌아서며,
  "아차차! 이런 제에기..."
하고 한숨을 토했다.
  갓을 벗어 팽개치고 관을 집어 쓸 생각도 않고, 후우푸우 화가 나서 방에서 마루로 마루에서 방으로 왔다갔다하면서 분을 삭였다.
  관은 평교간에는 같이 쓰지만, 점잖은 어른을 뵐 적에는 갓으로 바꿔 써서 정장을 하는 것이 당시 예절이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형제가 같이 앉았을 때 율곡이 물었다.
  "너 오늘 구봉 혼 좀 내줬니?"
  "혼내주는 게 뭡니까? 뜰에 내려가 모셔 올리고 절을 하고..."
  "그 정도는 되는 사람이지, 그래 무얼 묻데?"
  "쌀값은 어떻고 나무금은 얼마 하느냐고 묻습디다."
  "흐! 너는 그런 얘기밖에 할 상대가 안된다는 얘기다."
  "?!"

    이런 세상에 이론 글 쓴 이라면
  영동 김씨에 괴애 김수온 이라는 분이 있었으니, 세종 때 분과급제하여 뛰어난 문장 재주를 사랑 받아 대왕의 여러 가지 책 편찬에 종사한 분이다.
  그는 타고난 총명에다 대단한 독서가였는데, 남의 책이고 내 책이고 한 장씩 차례로 뜯어서 소매 속에 넣고 다니면서 몇 번 꺼내보아 완전히 외우고 나서는 꾸깃꾸깃해 내버리니 한 권을 다 읽어 외우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그가 병조의 정랑(정5품직으로 주무국장쯤 되는 자리)으로 있을 때 김씨 성을 가진 분이 좌랑(정6품직으로 정랑 바로 다음자리 보좌관)으로 있었는데, 한번은 그를 대해 그런다.
  "내 약간 관상을 보는데 귀공의 상이 매우 좋소이다."
  "어떻게 그런 것을 다... 좀 더 자세히 일러주실 수 없겠소?"
  "얼마나 힘들여 공부한 것인데... 쉽게야 말할 수 있겠소? 한상 낸다면 모를까?"
  그래 김 좌랑은 크게 잔치를 벌이고 동료 친구들까지 청하여 질탕하게 놀았다.
  "이제 좀 자세히..."
  "댁이 이미 오십을 넘겼으니 그만 하면 면요(너무 일찍 죽었다는 소리는 안 듣는 것)는 하였고,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를 일이며 벼슬도 하였것다 배도 주리진 않으니, 그만하면 수부귀를 겸해 지닌 상이라, 그 이상을 내 어찌 알겠소?"
  "?!"
  그후 오랜 뒤 얘기다. 그때도 현직교육이 있어 관원들에게 과제를 내주었는데, 한 사람이 제출한 답안을 보니 이거 큰일날 소리다. '맹자견량혜왕' 이라는 맹자의 첫 장을 읽은 감상을 써내라는 거였는데, 논문의 요지가 이러하다.
  양의 혜왕은 참칭(왕이라면 중앙집권인 주나라 왕 뿐이요, 혜왕이 제후 주제에 스스로 왕이라 한 것은 분수에 넘치는 호칭이라는 것)인데 맹자쯤 되는 분이 어찌 그따위 체통에 어긋난 짓을 하는 제후를 만났단 말이냐고 맹렬히 공격한 내용이다.
  그는 글 써낸 사람을 불렀다.
  "이 늙은이가 지금 어느 절에 있던고?"
  "어디 있다니요?"
  "이 사람! 죽고 싶은가! 차작을 받더라도 바로 읽어 보고나 내야지. 바로 말해봐!"
  "거 봐. 그게 김시습일세. 지금 세상에 이런 글을 서슴없이 써낼 사람은 그밖에 없어."
  당시는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세조의 정통성을 가지고 논할 수 있는 시국이 못되었다. 김수온은 문신이면서도 불교에 깊은 공부를 가지고 있어서 김시습과는 뜻이 통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김시습은 세종의 은총을 못잊어 일생을 방랑으로 보냈다.

    기우제에 웬 풍악소리
  일의 경중을 가늠해 선후를 차릴 줄 알면 그를 유능한 사람이라고들 한다. 아무렇게나 우선 시작부터 해놓고 뒷감당을 못한다면, 사실은 그런 사람이 오히려 많은 형편이지만 크고 적고 간에 무얼 맡길 상대가 되지 못한다.
  성종 하면 조선 초기의 흥륭하는 운세를 타고 많은 업적을 남긴 임금이다. 다만 재주있는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문학과 음악에도 조예가 깊고 보니 연락을 즐기고 여성문제에도 단순치 않아, 뒷날 연산군의 병탈이 거기서 많이 유래됐다는 평을 듣는 어른이다.
  어느 해 몹시 가물어서 임금이 친히 경회루 못 가에 나와 비를 비는 행사를 주관하는데, 어디서 풍악소리가 들려와 모두 놀랐다.
  "이 가뭄에 풍악을 울리며 잔치를 하다니."
  알아보니 방주감찰(사헌부 정6품관의 수석자)의 잔칫날이라는 것이다. 그렇기로 백성이 도탄에 들어 위에서 친히 뙤약볕에 나와 서서 긍휼을 비는 이 판국에...
  결국 잔치에 모였던 13인은 모두 잡혀와 옥에 갇히는 몸이 되었다. 그런데 그 주제에 아들을 시켜 석방운동을 벌였으니 웃기는 얘기다. 고만고만한 어린것들이 연명으로 탄원서를 들고 줄지어 진정하러 왔다는 전갈을 듣고 임금은 진노했다.
  "제 놈들이 분수없는 짓을 저질러놓고는 무어? 어린것들을 시켜서 용서해달라고? 고놈들 모조리 잡아 들여라."
  우람한 체격에 별감들이 보기에도 설고 무시무시한 홍의의 넓은 소매를 날리며 양팔을 벌리고,
  "요놈들 모조리 잡아들이랍신다!"
  외치면서 몰려나오니, 철모르는 꼬맹이들이 댕기 꼬리를 내저으며 거미 알 헤어지듯 흩어져들 가는데, 한 놈 아이가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 채 꼿꼿이 서 있다가 순순히 그들을 따라서 들어온다.
  "너는 저 사람들이 무섭지도 않더냐? 왜 도망 안 갔니?"
  "아비를 구하기 위해서 한 일이온데, 죄를 받으면 받았지 어찌 도망가오리까?"
  "소신이 짓고 쓰기도 소신이 하였사옵니다."
  "그래!? 네 나이 몇 살이냐?"
  "열 셋이옵니다."
  "너 속이면 혼날 줄 알아라. 네 손으로 다시 짓고 쓰고 하겠느냐?"
  "앞서 글도 모두 소신 손으로 한 것이오니, 시험하신다면 지어 올리오리다."
  그래 [민한](가뭄을 애처로워하노라)이란 제목으로 글을 짓게 했더니, 그 자리에서 써 올리는 데 그 끝을 이렇게 맺었다.
  "동해과부가 상초삼지한하고,
  은왕성탕이 능치천리지우오니,
  원성상은 진념언하소서."
  성탕은 은나라의 성군이라 누구나 아는 일이고, 동해과부는 잠깐 설명이 필요하다.
  중국 전한 때 우공 이라는 분이 있었다. 동해땅 하비라는 곳에서 형옥 다스리는 직책을 띠고 있었는데 관내에서 사고가 났다. 한 젊은 여인이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됐는데, 자식조차 없으니 의당 팔자를 고쳐가야겠으나 시어머니 봉양할 이가 없어 그냥 시댁을 지키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내 걱정 말고 시집을 가라 하고, 본인은 계속 효성을 다해 봉양을 하고, 그러기를 10년이나 하다가 시어머니가 목을 매 자살을 했다. "나 때문에 청춘을 그냥 늙힐 수는 없지 않느냐?" 그런 뜻에서다.
  시집간 시누이들이 고소를 했다. "이년이 시집갈 욕심에 걸리적거리는 시어미를 없앴소." 원님은 한쪽 말만 듣고 효부를 체포하였다. 우공은 여인의 평소 행동으로 보아 그럴 리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통하지 않자 직장을 내놓고 나와버렸다. 하 몹시 독한 고문을 가하니 효부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자복해 안락한 죽음의 길을 택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내리 3년을 가무는 것이라, 새로 온 태수가 까닭을 물으니 우공이 말하였다. "상 주어야 할 사람을 죽인 때문인 줄로 아외다." 그래 소 잡고 크게 차려 과부 묘에 제사지내 주었더니 원혼도 감동했던지 그로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 농사도 풍년이 들고 다시 태평을 되찾았다. "설원" 이라는 책에 나오는 얘기다.
  대왕은 크게 기특히 여겨 다시 물었다.
  "네 아비는 누구냐?"
  "예, 방주감찰 김세우이옵니다."
  "네 이름은?"
  "어린 룡 규 자, 외자 이름이옵니다."
  "네가 글짓기도 잘하고 쓰기도 잘하니, 너의 글을 보고 네 아비를 놓아주며, 너의 글씨를 보고 네 아비의 동료들을 놓아주는 것이니, 너의 그 효심을 나라와 임금께 충성하는 길로 옮길지니라."
  왕은 잡혔던 사람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저자 미상의 "청구야담"에 전하는 얘기다.
  그는 명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홍문관의 정3품직인 전한에까지 올랐다. 세종 당시의 집현전을 대신한 관서였으니, 학문을 연구하는 매우 깨끗한 벼슬자리에서 일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진열된 미라
  조선왕조 건국 당시 공이 컸던 분에 하륜이 있었다.
  관상술에 뛰어나 일찍이 동료 친구 민제를 보고 말하기를 "내가 사람을 많이 보았으나, 둘째사위(정안군으로 뒷날의태종) 같은 이를 일찍 보지 못하였으니 한번 만나게 해주시오" 해서 교제를 터 깊이 사귀며 하늘을 덮을 영특한 기상이라 하였다니, 태종에 대한 기대가 무한히 컸었음을 알 만하다.
  태조 7년(1398) 그가 충청도 관찰사로 임명받아 떠나기에 앞서 그의 저택에서 여러 친구들이 모여 전송하는 자리가 벌어졌는데, 당시 한창 또래 씩씩한 청년 왕자 정안군도 자리를 같이했다.
  당시뿐 아니라 개화되어 외세가 밀려들기까지는 우리나라 잔치하는 식이 음식상은 각자가 따로 받고, 술은 단지 앞에서 부어 한잔씩 들고 가 돌려가며 권하는 것이 식이었다. 하륜은 자기를 전별하는 자리에 귀하신 왕자가 친히 임석하신 것을 감격스럽게 여겨 몸소 그 앞에 가 무릎을 꿇고 잔을 받들어 올린 것까지는 좋은데, 국그릇을 왕자 옷자락에 둘러엎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한창 팔팔하던 정안군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뛰쳐나와 자신의 말을 끌어내 타고 속력을 내어 자택으로 달려서 돌아가고 말았다.
  하륜은 허둥지둥 왕자의 옷자락을 잡고 만류하려 하였으나 뿌리치고 가버리자 자신도 뒤따라 말을 달려 정안군의 뒤를 쫓았다. 누가 보나 왕자께 실례한 것을 사과하러 가는 것으로 느꼈을 것이다.
  정안군이 댁에 돌아와 대문을 들어서 그대로 말을 몰아 중문을 통과해 들어왔는데, 뒤미처 하륜이 거기까지 따라 들어오며 자기를 붙잡지 않는가?
  "나리!"
  정안군도 그제서는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방에 데리고 들어와 마주 대해 앉았다.
  "나리, 난국을 눈앞에 두고 그 풍파를 어찌하시려고 안연히 앉아 계시는 겁니까?"
  "!?"
  "왕위 계승에 있어 평상시에는 적장자로 잇는 법 입니다마는, 건국 초에는 공 있는 왕자를 세우는 것이 도리요 또 전례이온대, 지금 위에서는 막내 왕자(방석: 당시 15세)를 세자로 세웠지 않습니까?
  이런 땐 유능할수록 신변이 위험한 법입니다. 저쪽 처지가 되어 생각해 보십시오. 용 같고 범 같은 이복 형님들이 쭈욱 버티고 있는데, 마음놓고 그 자리를 지키겠습니까? 거기다 그쪽에는 꾀 주머니 같은 정도전이 딸려 있습니다."
  이번엔 주인 정안군이 딱 20년 연상의 이 노련한 정치가 하륜의 손을 꽉 잡으며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대처해야 되겠소?"
  "예! 소인은 충청도 임지로 떠납니다마는 서울에는 이숙번이 지안산군사로 있어 일을 같이 의논할 만하며, 그밖에 아무아무가 같이 보좌해 올릴 것입니다.
  아 이것 좀 보게!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우면 남의 의심을 사겠기로 이만..."
  그가 황망히 떠나가는 뒷모습을 뒷날의 태종인 정안군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계기로 모의는 급속도로 진전해 이숙번의 지휘 아래 정도전을 잡아 없애고 방번과 방석 두 이복 동생을 잡아죽이는 제 1왕자의 난(또는 정도전의 난)이 발발하였다. 이에 태조는 화가 치밀어 그 길로 서울을 떠나 금강산을 구경하고는 함흥 고향에 돌아가 오랫동안 버티는 사이, 많은 충신들이 잇달아 목숨을 잃는 함흥차사의 비극이 펼쳐진다.
  이 사실상 쿠데다에서 정도전을 사로잡았을 때, 살려만 주시면 극력 왕업을 돕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을 태종은 눈을 딱 감고,
  "네가 고려조를 망해먹고, 이제 또 창업 초의 이 왕조마저 망하게 하려는 거냐."
하며 입참지(그 자리에서 목쳐 죽임)했다고 한다.
  일제 말 서울 창동 역 확장공사장에서 정도전의 것이라는 시체가 미라 형태로 발견되어 6.25사변 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 진열 돼 있었다.
  그것이 정도전이라는 중요한 근거는 창업 초 지금의 노원 벌을 국도로 정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고, 삼봉  이라는 그의 호도 자신이 사는 집터에서 우람하게 쳐다보이는 삼각산의 세 봉우리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견해이다. 충주호를 관광하다 보면 단양의 도담 삼봉에다 연결 지어서 설명하는데, 믿을 만한 논리가 있는지 여부는 미처 밝히지 못하겠다.

    양반이 점잖지 못하게 돈 버는 일에 눈을 떠?
  조선 중엽에 윤현 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가 호조판서로 있을 적에 헌 돗자리가 헤어져서 못쓰게 된 것을 모조리 거두어 곳간에 챙겨두게 하여서 모두들 비웃었다.
  "저까짓 걸 무엇에 쓰려고 저러노?"
  조금 조용한 시간이 생기자 그는 그 알량한 물건들을 끌어냈다. 그리고 자리 가장자리를 돌려가며 둘러 꾸민 푸른 천을 뜯어내고 나머지를 조지서로 보냈다. 조지서라면 종이 만드는 공장으로 서울 창의문 밖 세검정 계곡에 있었다. 이놈을 불려 찧어서 종이 원료에 섞었더니, 제품이 곱고도 질겨 십상이다.
  푸른 천은 빨아 다려 예조로 보내, 예조에서는 그것으로 야인 곧 여진족의 옷끈을 만들었다. 따로 몇 십 필씩 물들여 끊어 쓰지 않고도 됐으니 희한한 착상이다. 여진족하고는 소소한 거래가 늘 있었고 그들은 저희 국토에서 나지 않는 때문에 무명으로 만든 거라면 무엇이나 좋아서 바꾸어갔다.
  이러한 그였으니 매사에 처리가 어떠하였을까는 미루어 알 만하다. 어느 해 목화 값이 지천이었는데 그는 돈을 내어서 그것을 사 재었다. 무엇이든 한번 싸면 주기적으로 꼭 오르게 마련이라, 몇 해 안 가 목화 흉년으로 값이 껑충 뛰었을 때 내다 팔아서 몫돈을 벌었다.
  "양반이 점잖지 못하게 돈 버는 일에 눈을 뜨다니?"
  당시에 상류층 인사라면 이런 말도 좋이 들었을 것이나, 입으로 청백하기를 뇌까리면서 뒤로는 호박씨를 까 남에게 몹쓸 짓이나 하던 부류와는 비교가 안되는 얘기다.

    강감찬은 곰보래요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학자요 정치가로 정인지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초대 임금이 태조 5년에 나서 성종 9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조선의 초창기 왕성한 운세를 타고 천품의 재주를 한껏 발휘하여 출세하고 또 많은 공적을 남긴 분이다.
  그의 출생을 놓고 석성현감 홍인의 아들로, 권우의 문인이라고만 하였으니, 결코 혁혁한 가문은 못된다. 집안에 신동에 태어났다고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겠는데, 또한 사명감을 갖고 학문에 열중하였을 것은 물론이다.
  옛날 공부라는 게 한문으로 된 원전을 주를 참고하며 읽어 이해하고는 책을 펼쳐놓은 채 눈길을 코끝으로 모아 책은 보는지 마는지 몸을 전후 또는 좌우로 흔들며,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외우는 것이다. 가다가 막힐 때나 잠시 눈을 들어 본문을 보고, 다시 본래 자세로 돌아가 왱왱 외우는 것이 태반이다. 어두운 호롱불 아래에서는 또 그렇게 하는 공부밖에 달리 할 길이 없다.
  어느 가을, 밤도 이슥하여 주인공이 이렇게 글을 외우고 있는데, 시늉만의 등불이 펄렁이더니 앞이 갑자기 훤하다. 눈을 들어보니 묘령의 여인 하나가 다소곳이 서 있지 않은가?
  "사불범정 이라니 요망한 귀신이거든 썩 물러가라. 사람이거든 어인 사람이며 어쩐 일로 왔는가를 말하라."
  잔뜩 율기(자기 자신의 태도를 엄정하게 갖는 것)를 하고 묻는 말에 상대방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러나 똑똑히 말한다.
  "곁의 집에 사는 처자이온데 도련님의 글 읽으시는 소리를 듣고, 사모하옵는 마음을 억제치 못하와 그만 이렇게..."
  금방이라도 다가올 모양이라 언사를 부드럽게 하여 차분히 일렀다.
  "우리나라는 예의지국이라, 자고로 예절을 숭상하는 터에 젊은 남녀가 사사로이 만나는 건 도리가 아닌 줄로 아오. 오늘은 그냥 돌아가고 중매를 놓아 청혼하면 달리 방도가 있을 것이니 그리 알고 어서..."
  상대는 기안에 눌려 다시 더 아무 말 못하고 소리 없이 사라져갔다.
  "아휴."
  큰 숨을 몰아 쉰 그는 밝는 대로 부모님을 졸랐다.
  "집 팔고 이사 갑시다."
  이리하여 무사히 고비를 넘겼다고 하는데, 지금 청소년들이면 어떻게 대처했을 것인가?
  고려 초기의 강감찬 장군만큼 일화가 많은 이도 적을 것이다. 그는 천병만마를 호령하는 장군도 아니다. 문과 출신으로 체수도 작고 얼굴은 박박곰보에 검기는 왜 그렇게 까맣던지, 흔히 외모론 보잘것없으면서 재주 있는 사람을 그렇게 별명 지어 부르기까지 하는 그런 분이다.
  옛날에는 청년들이 자기도 당당한 남아라고 뽐낼 때면 하는 말이 있다.
  "나도 임마! 홍역, 마마 다한 놈이다."
  마마는 천연두 증세도 대단했고, 혹 살아남더라도 그 흉터가 말이 아니다. 날짜를 채우고 환자가 머리를 들고 일어나게 되면, 호구별성마마 배송 낸다고 마마귀신을 전별하는 의식을 치렀다. 시원스럽게 어서 어서 가라고 평화적이긴 하나 쫓아내는 절차다.
  소년 강감찬이 그런 자리에 와서 두 손을 모아 빌더라지 않은가?
  "별성마마님, 이 집을 떠나거든 제발 내게로 와주시오."
  간 데마다 쫓아내는데 오라고 환영하는 데가 있으니 오죽 좋은가? 강감찬은 그 길로 몸져 누어 않아 사경을 헤맸다. 얼굴에 손등에 무섭게 돋았던 것이 딱지가 질 때 곱게 넘기면 흉터가 안 남는 것인데, 이 딱한 소년은 제가 사정없이 할퀴었다. 어른들이 말려도 듣지 않고... 그리하여 박박 얽은 얼굴로 일어나 앉은 그는 흡족한 듯이 웃었다.
  "이제 됐어, 얼굴이 좀 곱상하다보니 계집애들이 어찌나 따르는지! 이젠 마음 놓고 공부하고 장부답게 일도 해야지... 에헴!"


      우물에 들어앉아 하늘이 작다고 하네

    누님, 다 틀렸소
  흔히 칠거지악이라는 단어를 내세워 옛날 남성들의 횡포를 얘기하는데 웃기는 얘기다. 어쩔 수 없이 아내를 내보내야 할 7가지를 들었대서 툭하면 그것만 추켜들지만, 거기에 대응하여 쫓아내지 못할 3가지가 열거돼 있는 것을 몰라서 그러는지, 아니면 알고도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흔히 조강지처는 불하당  이라는 말을 들추는데, 조는 술찌끼, 강은 곡식을 찧고 벗겼을 때 나오는 겨, 2가지 다 먹을 것이 못되는 음식이다. 돼지에게나 줄 그런 것을 먹으면서 고생을 같이 한 아내는 내보내지 못한다는 것이 본래의 뜻이요, 거기엔 다음과 같이 얽힌 얘기가 있다.
  후한의 광무제가 왕조를 중흥하고 나니 이젠 집안 일을 좀 정리해야 할 단계인데 누님 호양 공주가 과부가 되었다. 광무제는 부하 중에 송흥 이라는 장군을 점찍고 어전으로 불렀다. 병풍 뒤에다 누님을 앉혀놓고 황제는 말머리를 꺼냈다.
  "속담에 이르기를 귀역교부역처(귀해지면 친구를 바꾸고 부해지면 아내를 바꾼다)라는데 어떻게 생각하오?"
  "신이 듣기에 빈천지교는 불가망이요(가난하고 천했을 때의 교분은 잊지 못한다), 조강지처는 불하당이라 하옵니다."
  황제는 병풍 뒤로 들리게 말했더란다.
  "누님, 다 틀렸소."
  우리나라에도 이에 못지 않게 인간미 넘치는 얘기가 있다.
  신라 때 지금 충주 땅의 어떤 사람이 아들을 낳았는데, 이게 묘하게도 머리 뒤에 높은 뼈가 불룩 솟아있고 정수리에 검은 반점이 있다. 보는 이마다 "하, 괴상하게 생겼으니 무언가 한가락 할 거다"고들 하여서 곱게 키웠는데 이름도 자연 '쇠마리'가 되었다.
  자라나면서 공부를 즐기기에 어떤 방향을 취하려느냐니까 단연코 유학을 공부하겠단다. 그래 선생을 붙여서 "효경", "곡례", "이아", "문선" 등을 읽혔더니, 그야말로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우쳐 장족의 진보로 주위를 놀라게 하였고 그후 벼슬길에 발을 디뎌 많은 촉망을 받게 되었다.
  이 청년이 젊은 혈기에 바람을 피워 가마실이란 동네 대장간 집 딸하고 눈이 맞아 정이 자못 깊었다. 그러는 중에도 스무 살이 차니까 부모님은 읍내의 얼굴 곱고 행실 뛰어난 색시를 골라 혼담을 진행하였으니 물론 걸맞는 가문의 규수였을 것이다.
  당사자 되는 신랑이 다른 데로는 장가를 못 가겠노라고 버틴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으레 할말을 늘어놓는다.
  "네가 지금 명성이 한껏 높아서 나라 안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래 그따위 천한 집 출생하고 살겠다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느냐?"
  출세에 장애가 된다거나 한 말까지는 기록에 없지만, 독선생을 앉힐 정도의 집안이니 그런 말도 족히 나왔을 것이다.
  그랬더니 아들의 대답이 의연하다.
  "가난하고 지위 낮은 것은 부끄러울 것이 없지만 도를 배우고도 이를 행하지 못하는 것은 정말로 부끄러운 것입니다(학도이불행지성소차야). 일찍이 옛사람 말에 조강지처는 불하당이요, 빈천지교는 불가망이라고 들었습니다. 천한 여자지만 차마 버릴 수는 없습니다(천처 소불인기자야)."
  신념을 가지고 내세우는 고집을 누가 꺾겠는가?
  그후 태종무열왕이 즉위했을 때 당나라에서 조서를 보내왔는데, 물론 한문이요, 당시 국내 실력 가지고는 풀지 못할 곳이 많아서 그를 불러 물었더니 척척 읽어내고, 답서를 쓰게 했더니 흠잡을 곳이 없다. 왕이 놀랍고도 기뻐서 가까이 불러 이름을 물으니 우두라 한다.
  "그런 이름으로야 쓰겠는가? 경의 머리뼈를 보니 강수(우리말로는 역시 쇠마리) 선생이라 함이 좋으리라."
하고 일을 맡길 만하다 하여 임생 이라 부르며 달리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였다. 지금 그의 자손으로 일컫는 가문에 강 씨가 있고 임 씨도 있다.
  신문왕대에 이르러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위에서 비용을 풍부히 보냈건만, 그의 부인은 장례 치르고 나서 남은 것을 모조리 절에 기부하고 도로 가난하기 전과 같다. 나라에서 보살펴주마 하니까 미망인은 끝내 사양해 받지 않았으니, 그 남편에 그 아내라고나 할까. 분수를 지키며 조용히 사는 품이 한창 시절의 강수 선생이 열애해 그 뜻을 굽히지 않게 할 만한 일면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겠다.

    귓속에서 나온 파랑새
  조선시대에 훌륭한 정승이 여러 분 있었으나 초기에는 황희 후기에는 약현대신 김재찬을 꼽을 수 있다.
  그 황희 정승은 청렴하기로 이름났고 많은 일화를 남긴 분인데, 특히 공사를 엄격히 구별한 그의 처신은 높이 꼽을 만하다. 하루는 방에서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으려니까 정경부인이 곁에 와 상의하는 것이다.
  "저녁거리가 없는데 어떡하죠?"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샌님이라는데, 일국의 영의정 댁에 끼닛거리가 없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대감은 천천히 눈길을 돌리면서 조용히 일렀다.
  "그런 것도 정승에게 상의하여야 하오?"
  부인은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갔다.
  집안에서 부리는 하인들의 철부지 어린것들이 무릎에 올라앉고 오줌을 싸고 해도 괘념치 않았다.
  한번은 여자 하인들이 서로 싸우다 달려와서,
  "대감마님! 아무개 년이 이리이리 하길래 쇤네가 이리이리 했는데 쇤네 말이 맞습죠?"
  "오냐! 네 말이 맞다."
  이번엔 상대편 되는 애가 달려왔다.
  "다감마님 아무개 년이 글쎄 요러요러한 짓을 했길래, 쇤네가 이러이러하게 나무랐는데 쇤네 말이 맞습죠?"
  "오냐오냐, 네 말이 맞다."
  마침 다니러 와서 곁에 앉았던 처남 되는 사람이 끼어 들었다.
  "아이 형님도! 이년은 이리하였고 저년은 이리하여 잘잘못을 뻔한데, 아무거나 다 옳다시니 그런 처사가 어디 있어요?"
  "그래 그래, 자네 말이 옳아."
  그가 나랏일을 이 모양으로 처리했다면 큰일 날 일이겠지만 그게 아니다. 하루는 아침에 사진(옛날엔 출근을 그렇게 말했다)할 양으로 사모관대를 갖추고 의자에 앉아 채비(벼슬 지위에 따라 타고 다니는 초헌이나 평교자)가 마련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부인이 무슨 일인가 그 방엘 들어서다가 놀라서 멈칫하고 섰다. 그 전신에 넘쳐흐르는 위엄에 그만 눌려버린 것이다.
  대감은 빙싯이 웃으며,
  "지금에야 우리 마누라가 정승을 알아보는군!"
  사를 떠나 오직 정도만을 걸어 수십 년 조정에서 지내온 그에게는 유한 가운데도 허튼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할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가 높은 연세로도 조정의 수반으로 세종대왕의 절대 신임을 받고 있을 때, 김종서가 그 아랫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툭하면 그를 불러 세우고 호되게 나무라는 것이다. 꾸짖어도 보통으로 꾸짖는 것이 아니라, 조정의 체통을 내세워 그 결과로 파생 될 앞으로의 일까지를 쳐들어서 장황하게 나무라기를 자주 하여서 약간 후배 되는 허조가 옆에 있다가 넌지시 간하였다.
  "젊은 사람치고는 일을 차분하게 잘 처리합니다. 지금 조정에 그만한 인재가 없는데, 같은 일을 놓고도 툭하면 김종서만 불러서 꾸짖으시니 그 저의를 모르겠소이다."
  "그만한 인물이기에 나무라는 것이오. 다음 세대에 우리 지위에 서서 큰일을 처리할 인물은 그밖에 없기 때문에 옥성(훌륭하게 닦아서 완성시키는 것)시키려고 그러는 것이죠."
  그 뒤 김종서는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쳐 함경도 지방을 개척하는 함길도절재사의 중책을 맡았다.
  그 무렵 어느 날 아침 일이다. 황희 정승이 소세를 마치고 머리를 매만지다가 부인이 들어서니까 주위를 살피고 목소리를 낮추어서, "부인! 이건 부인만 알고 있지, 누구에게도 입밖에 내지 마오"라고 전제하고 이렇게 잇는다. 
  "글세 낯을 씻는데 왼쪽 귀에서 요만한 파랑새가 나오며, 펄펄펄 저기께로 날아가지 뭐요. 보도 듣도 못하던 기이한 일이라 무슨 징존지? 부디 아무에게도..."
  그런지 대엿새 뒤 일이다. 황 정승이 대왕을 가까이 모셔 앉았는데, 아주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경의 귀에서 파랑새가 나와 날아갔다는 얘기가 들리니 그게 무슨 소리요?"
  황 정승은 부복하며,
  "다른 일이 아니오라, 닷새 전 아무 날 아침 세수를 마치고 나서, 절대 아무에게도 얘기해서는 안된다는 전제를 달아 신의 노처에게 말한 것이옵니다. 평생을 같이 살아온 아내에게 신신당부했건만, 그것이 온 장안을 돌아 상감마마께까지 도달하였지 않았겠습니까?"
  다시 이마를 방바닥에 조아리며,
  "지금 김종서가 국가의 전병력을 거느리고 함길도 경영에 나서고 있사온데, '만약에 그에게 흑심이라도 있는 날이면...'하는 말이 은밀히 돌고 있사옵니다마는 신의 목을 걸고 보증하옵니다. 김종서는 만의 하나 그럴 인물이 아니옵니다."
  세종대왕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이 늙은 대신을 안아 일으키며 울먹였다.
  "알았소, 알았소. 경의 그 성충을 누가 당한단 말이오."
  성군도 승하하시고 노정승도 세상을 떠난 뒤, 나라 안의 신망을 온몸에 받던 김종서는 혁신세력의 기습을 받아 허무하게 세상을 마쳤다. 그것도 이 나라의 운이었던지...

    선생님의 높은 뜻이 정 그러시다면
  우리나라 개화기 지도자에 이승훈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둘 있다. 하나는 실학자 이가환의 아들이요 다산 정약용의 매부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영세신자로 순조 1년에 순교한 분이다. 또 한 분은 기미독립선인에 민족대표 33인인 중의 한 분인, 오산 학교 설립자 남강 이승훈 선생으로 이제 그 분을 얘기하려 한다.
  평안북도 정주 태생으로 어린 나이로 상업에 몸담아 남의 점원 노릇을 하며 일을 배워, 30세부터는 독립하여 상당한 업체를 운영하였다. 1907년 고종이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강제 퇴위 당하던 그해, 평양에서 도산 안창호의 강연을 듣고 크게 감동하였으니 44세 때 일이다.
  흔히 안도산 하면 대단한 웅변가로 여기기 쉬운데, 그의 강연을 실제로 들은 연배층의 얘기를 들으면 전혀 그렇지 않다. 달변이나 유창한 웅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듣기 민망할 정도로 힘들어 보이는 연설이었는데, 어찌나 열의를 가지고 성의를 다해 얘기하는지 그 성실함에 감동되는 그런 연설풍이더라고 한다.
  금주단연으로 생활을 일신하고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설립하니 이것이 민족 교육의 도장인 오산학교다. 신민회에 가입하고 기독교에 입교하여 사회지도 일선에 서자 당국에 미움을 사 제주도에 가 귀양을 살고, 일본 정부의 탄압으로 105인 사건에 연루돼 징역을 살고 나서는 평양신학교를 마치고 목사 자격을 땄다. 기미독립선언에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서명해 또다시 옥고를 치렀으나, 그의 신념은 날이 갈수록 더욱 굳어만 갔다.
  1930년 5월 3일 선생의 동상이 건립되고 다음 5일날 일이다. 선생은 일찌감치 학교에 나와 교사 교정을 샅샅이 둘러보고 들어가 누웠다. 밤새 병세가 악화돼 새벽에 운명하니 향년 68세라. 서울과 평양, 정주 세 곳의 여러 인사가 모여 장례를 치를 상의를 하였는데 문제가 생겼다.
  선생은 돌아갈 제 유언하더라는 것이다.
  "내 스스로 몸을 나라와 민족에 던지더니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나 죽거든 서울로 가져가 뼈를 추려 연결해서 여러 학생들의 사람 관절 이어진 것을 연구하는 표본을 삼아다고. 공연히 깊은 땅에 편안히 묻어 내 뜻에 어긋나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제 되는 택로, 택호와 형님의 아들 자경 및 친구 박기선 등 임종 자리에 있던 분들이 눈물로 이 뜻을 고하자 여럿은 고민하였다. 기독교의 교리상 유해는 훼손하지 못하는 법이지만, 선생의 높은 뜻이 정 그러시다면... 모두 그 뜻을 따르기로 해 영구는 서울로 옮겨지고 지금의 서울대학교병원에 안치되었다. 남의 손을 댈 것이 뭐냐? 사랑하는 제자들의 깨끗한 손길로 가죽이 벗겨지고 내장을 긁어내고 뼈를 갈아내는 작업이 한창일 때 문제가 생겼다. 총독부 당국에서 금지령이 내려진 것이다.
  "인도상 어찌 차마 저희 선생님을 그럴 수가 있느냐? 중지하라."
  사실 저네들은 속으로 떤 것이다. 이일이 성취됐을 때 가뜩이나 골칫거리인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5년 과정 중에는 으레 한번씩 인체골격에 대해 배울 것이고, 이 표본을 내세우고 저들은 기도를 올리겠지. 그것을 못하게 하여 세월이 흐르더라도 무언중에 가슴 깊이 새겨질 민족정신을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야 있고 없고 젊은이 가슴속에 끓어오를 그 거룩한 정신. 저들은 인도주의를 내걸어 금령을 내린 것이다.
  이리하여 시신마저 온전치 못한 채 선생의 유해는 직경 한 자 높이 두 자 두 치 되는 유리 항아리에 거두어 넣어져 다시 정주로 옮겨졌다. 그해 10월 다시 나무상자로 덧씌워서 오산 성현 동쪽 건좌원에 장사지내니, 선생의 뜻은 이렇게 해서 좌절되었다.

    꼭 내가 먹어야 맛이냐
  어느 원로 교장선생님이 서울 미아리에 용하다는 점쟁이가 있어서 새벽같이 찾아갔더니, 벌써부터 승용차들이 줄을 지었는데 그 중에는 관용번호 10이내의 차량도 있었다고 해 모두들 웃었다. 하지만 오십보 소백보지, 자기는 뭐 별다르다고 그를 비웃는담?
  각설하고 연일 정씨로 저 유명한 송강 정철의 현손에 호를 장암이라고 하는 분이 있었다. 호 자 외에 이름을 썼는데, 명문출신으로 30세가 넘도록 소과(생원이나 진사 고시) 하나 못하였으니 내심으로는 꽤 초조했을 것이다.
  하루는 그의 꿈에 신인이 나타나 말하는 것이다.
  "그대의 이름이 나빠 성사를 못해. 삼 수 변과 흰 백 자를 떼어버리면 금방이라도 과거에 급제할 것이니 알아서 하라."
  꿈에 이르는 대로 한다면 그의 이름은 고(고할 고, 윗사람에게 아뤌 때는 곡)가 된다.
  '별 미친놈의 소리도 다 듣겠다. 내 공부가 모자라서 그런 것이지, 이름자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글공부에만 열중하였는데, 똑같은 꿈이 거듭 꿔진다. 그래도 웬만한 사람 같으면 굽힐 만도 하건만 운명의 신이 약해서 그랬던지 그의 장력이 이겨서 그랬던지 그는 내내 고치지 않고 버텼다.
  이윽고 그는 숙종 임술년(1682년), 일찍 뒀으면 손자 볼 나이인 35세에 생원시에 들고, 그 2년 뒤에는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이 열렸다.
  그 사이 내외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반대당의 모함을 만나 귀양을 갔다 풀려 돌아오고 하는 환로의 풍파를 거치면서 영조 원년(1725년) 78세로 우의정에 오르고 이어 좌의정, 영의정까지 지내고 1729년 기로소에 들고 영중추부사로 치사(은퇴)하였다. 대기만성이라더니 늦게 출세해 최고의 지위까지 누린 것이다. 아마 귀신이 이르는 대로 했다면 출세나 급제는 빨랐을는지 모르나 이렇게 늦복을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만년에 충주로 낙향했는데, 그의 고택은 지금의 수안보 온천 가까이의 괴산군 연풍면에 고이 보존되어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맥없이 소일하기 심심하여 배나무 수십 그루를 심고, 그 연세에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접을 붙이는데, 도승지 이형좌가 다시 조정에 들라는 어명을 받들고 왔다. 묘목이 몇 뼘씩밖에 안 되는 것을 보고 도승지는 그랬다.
  "대감! 이렇게 어린 나무에 어느 해가에 열매맺기를 기다리겠습니까?"
  그 말에는 은연중에 자신은 먹어보지도 못할 걸 늙은이가 그 고생하며 가꾸느냐는 어투가 담겨 있었다.
  사실 정 정승의 그때 나이 80세라 따라 웃었는데, 그 뒤 이 승지가 차차 승진하여 충청도 관찰사가 되어 왔다. 으레 하는 순서로 원로대신을 찾아뵈었더니 조촐하게 술자리를 차렸는데 상에 놓인 배가 유난히도 향기롭고 맛이 있다.
  "배맛이 미상불 괜찮지요? 그때 내 손수 접붙여서 기른 나무에서 딴것이라오. 벌써 여러 해째 열매를 맺는걸."
  만면에 웃음을 짓는데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꼭 내가 먹어야만 맛이냐? 나는 요행히 오래 살아서 맛보지만 그렇지 않으면 또 어떠리?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먹더라도 그 아니 좋은 일인가.'
  옛날 중국의 관자라는 정치가의 말이 생각난다.

  일 년 앞을 내다본다면 곡식 농사 짓는 것만 같은 것이 없고,
  십 년 앞날을 위해서면 나무 심는 것을 당할 이 없으며,
  평생사업으로는 사람을 키우는 이만 같은 것이 없다.
  일년지계 모여수곡
  십년지계 모여수목
  종신지계 모여수인

  3가지 모두 늙었다고 그만둘 수는 없는 일들이다.

    우물에 들어앉아 하늘이 작다고 하네
  한산 이씨 조상에 목은 이색이라는 분이 있다. 포은, 야은과 함께 여말 삼은으로 꼽히는 분이다.
  그가 중국 원나라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그 고장의 학사 구양현이 변두리 나라 사람이라 얕잡아 보고 글귀 하나를 지어서 빈정댔다.

  짐승 발자국 새 발자취의 길이 중국에 통하였구나.

  수제조적지도 교어중국

  너희 같은 미개인의 발자취가 중국에까지 통했다고 노골적으로 조롱한 말이다.
  상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목은은 대구로 짝을 채웠다.

  닭 울고 개짖는 소리가 사방 먼데까지 들리었도다.

  계명구폐지성 달간사경

  개가 짖고 닭이 울면 사람이 사는 곳이라, 그래 사람을 찾아서 온 것이다. 왜 이리 짖어대느냐?
  승부는 물을 것도 없다. 상대는 대단히 감탄하면서 또 한 마디를 던졌다.
  술잔을 들고 바다에 들어서니 바다의 엄청남을 알겠지.

  지배입해지다해

  너희 같은 좁은 소견으로 이런 대처에 의당 놀랐을 테지.
  목은은 또 금방 이에 대구하였다.

  우물에 들어앉아 하늘을 보면서 하늘이 작다고 하네그려!
  좌정간천왈소천

  요런 좁은 데 들어앉아서 세상 넓은 줄 모르는 소리 작작 해라.
  이번 역시 멋지게 되치기로 받아넘겼다.
  구양이 코가 납작해 물러나니까 이번엔 성이 목은과 같이 이씨인 사람이 대신 나섰다.

  옛날의 인상여와 사마상여는 이름은 서로 같되 실상은 같지 않다.

  인상여사마상여 명상여 실불상여

  은연중 나하고 그대하곤 성은 같아도 실상은 다르다고 빈정거리는 말이다.
  목은은 이에 대응해 이렇게 말했다.

  옛날 전국시대의 신룽군인 위무기와 당나라 때 명재상인 장손무기의 이름은 같으나 옛날에도 무기였고 지금 또한 무기지 않은가?

  위무기장손무기 고무기 금역무기

  무기는 거리낌이 없다는 뜻도 되니까, 그대와 내 성이 같아도 거리낄 거 없지 않느냐는 해석이 된다.

  이씨도 그만 두 손을 들어 항복하고 말았다.
  "동방에 문사가 많다더니 과연이구려!"
  위 문답에서 쳐든 이름들은 역사상 모두 칭송 받는 명인들인데, 그 중에도 인상여에 대한 일화를 하나 소개하겠다.
  진나라라고 무도한 강국이 있어서 이웃나라가 모두 떨고 있는데 조나라에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옥을 무한히 좋아했다. 당시 조나라가 간직하고 있던 화씨벽이라는 천하의 명옥이 있는데(이 옥으로는 뒷날 전국지??라는 옥새를 새겼다), 15개 성과 맞바꾸자고 하나 속셈으로는 옥만 빼앗고 말 생각이었다. 군사적으로 밀리는 조나라로서는 커다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을 원만하게 해결 지을 만한 인재는 없더란 말인가?"
  그리하여 뽑힌 것이 인상여였는데, 외모로 보아서는 그냥 가냘픈 백면서생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중임을 띠고 떠나며 맹세하였다.
  "영지가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옥을 온전히 하여('완벽'이라는 말은 여기서 생긴 말이다) 돌아오리이라."
  회담에 임해보니, 아니나다를까 옥만 거두고 성 같은 거 갈라줄 꿈도 안 꾼다.
  "잠깐! 그 옥에 흠이 있는데 그것을 지적해 드리오리다."
  속여서 옥을 다시 혼에 쥔 그는 뚜벅뚜벅 화가 나 곧추선 머리카락으로 관을 치받치며(노발지관) 기둥 앞에 우뚝 섰다.
  "신의 머리와 이 옥이 함께 박살날 것이오이다."
  수하를 시켜 옥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진나라 소왕 앞에 나아가 엎드려 죄를 빌었다. 그러나 지난 일인 걸 어찌하랴! 소왕은 오히려 그의 충의를 칭찬해 돌려보내고 얘기는 없던 것으로 되었다.
  조나라 왕은 돌아오는 길로 인상여의 직위를 높여 상경 자리에 앉혔다. 그랬더니 역전의 노장인 염파가 벼르는 것이다.
  "내가 머리가 허옇도록 신명을 걸고 수없이 나가 세운 공로를 뭘로 아는가? 내 고놈의 애송이를 기어코 욕보이리라."
  그 말을 전해듣고부터 그와 마주칠 만한 공식석상에는 나가기를 꺼려하니까 주변에서 말하였다.
  "염 장군이 그렇게도 무서우십니까?"
  "진나라 군신도 꾸짖어서 물리친 난데 일개 염 장군쭘 무엇이 그리 무섭겠는가? 지금 강한 진나라로서도 우리 조나라를 어쩌지 못하는 것은 문관에 내가 있고 무장으로 염 장군이 있기 때문인데 지금 두 호랑이가 싸워봐, 나라 꼴이 무엇이 되겠는가? 그래서 꾹 참는 게지."
  간접으로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역시 솔직한 군인이다 웃통을 벗고 매채를 묶어서 지고 그의 문간에 가 엎드려 빌었다.
  "이 미련한 염파를 실컷 때려서 벌해주시오."
  물론 인상여는 쫓아나와 그를 얼싸안고 눈물 흐르는 양빰을 비비며 서로 맹세하였다.
  "어느 한쪽이 약속을 어겨도 목을 치리라."
  이것이 유명한 문경지교의 유래가 되는 얘기이다.
  한나라 때 거문고 솜씨로 수절과부인 탁문군을 꼬여 내 멋진 일생을 보낸 대 문장가 사마상여가 인상여의 사람됨을 흠모한 나머지 그의 이름을 따 자기 이름을 삼은 것이라, 이름이 서로 같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처갓집 신세 갚음
  조선 중기 서울에 흥순언 이라는 역관이 살았다. 중국을 드나들며 사신들 외교활동에 통역 일을 맡았다. 말이 역관이지, 직접 외국인을 상대하여 교섭하는 직책이었던 때문에 혀끝 하나 놀리기에 따라 하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무역에 관여해 욕 안 먹고도 상당한 재산을 이룰 수 있었던 때문에 그들의 생활은 누구나 윤기가 돌았다.
  그 홍 역관이 한번은 사신을 모시고 중국엘 갔는데 공식적인 임무를 마치고 시간이 나자 객기를 피우고 싶어졌다. 그래 요새로 치면 나이트클럽을 찾아 나섰는데, 그곳 홍등가의 풍습대로 매파들이 나와서 손님을 끌었다.
  "대인, 아주 좋은 곳이 있습니다."
  그냥 예사로만 들었더니 뒤따르는 말이 솔깃하다.
  "하룻저녁 모시는데 ooo금인데, 그 길로 일생을 다 바치겠다는 군입쇼."
  호기심에 따라 들어갔더니 그야말로 아침 이슬을 머금은 꽃송이 같은 처녀인데, 그냥 양갓집 규수라기보다 사뭇 고상하게 귀티가 난다. 물론 말이야 유창하게 통하는 사이라, 조용히 사정을 물었더니 딱하기 이를 데 없다.
  벼슬 사는 아버지를 모시고 북경 와 살았는데, 갑자기 자리를 잃고 이내 돌아가셔서 고향인 강남으로 운구해 모시고 싶으나, 워낙 청백하게 지내셔서 그럴 여축도 없고, 생각다 못해 이곳에 나와서 자기 몸을 팔아 그것으로 경비를 충당하려고 터무니없는 고가를 불렀으니 들어만 주신다면 그 길로 일생을 모시겠노라는 얘기였다.
  홍순언은 의기 남아다. 이 정경을 보고 어떻게 돌아서겠는가? 그는 가진 것 모두를 던져 아가씨를 구렁에서 건져주었다. 그리곤 손목 한번 안 쥐어 보고, 그냥 돌아서려 하는데 처녀가 붙들고 매달린다.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사오리까? 어디 계신 누구이신 줄이나 일러 주시면, 일생 동안 은인으로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딸로 여겨 주십시오, 아버지!"
  그 순정에 감동해 나는 조선인 아무개로라 하고 휘적휘적 대문을 나섰다. 물론 그것이 사재였는지 공금이었는지 그 많은 금액을 보충하려면 무척이나 고생했을 것이다.
  그 일이 있은 뒤로 중국 들어갔다 나온 동료 역관들의 말이 국경을 들어서면서부터 관원들이 이번 행보에 홍 대인은 안 왔느냐고 자꾸만 묻더라는 것이다.
  '이상한 일도 있다' 했었는데, 다음 번 자기 차례가 돼서 들어갔더니, 아니나다를까 산해관을 들어서자 관원하나가 다가와서 묻는다.
  "이번 행보에 홍대인이 오셨는지요?"
  내가 그라고 했더니, 그러냐고 무척 좋아하며 돌아갔다. 북경에 도착해 급한 공사를 마치고 나자 또 한 사람이 객관으로 찾아와 전한다.
  "석노야께서 대인을 기다린 지 오래시외다."
  노야라면 저들이 말하는 극존칭으로, 우리말로 하면 '대감'에나 해당할 그런 호칭이다. 준비해 갖고 온 가마를 타고 따라나섰더니 얼마를 가다가 어떤 고대광실 크나큰 집 대문을 썩 들어서더니 몇 겹 대문을 또 거쳐서 내려놓는다. 그곳 풍습에 익숙해서 잘 알지만 여기는 주인의 서재 아닌가? 점잖은 분이 나서며 손을 턱 잡는다.
  "내 아내가 대인을 뵙겠다는구려."
  "!?"
  "띠에띠에!" (아버지!) 
  "아니 아버지라니?"
  주렴 안으로부터 구르듯이 달려나와 맞는 귀부인을 보니, 아니 이거 홍등가에서 구해준 그 아가씨 아닌가? 
  "내 아내에게 아버지면 당신은 내게 장인이오. 그리고 조선은 나의 처가이고."
  주인은 요새로 치면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병부상서 석성이요, 아가씨는 홍 역관의 도움으로 아버지 장례를 무사히 치르고 연줄이 닿아 그의 후취부인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물론 융숭한 대접을 받고, 나중에도 귀한 선물은 부인이 그 동안 보은, 보사 무늬를 놓아서 손수 짜서 모은 것이다.
  국무위원을 사위로 두고보니 그동안 정체됐던 양국간의 어려웠던 문제도 순화롭게 풀려서 국가의 체면도 서게 되었다.
  그것은 문제도 안 된다. 예고도 없이 왜군이 쳐들어와 이른바 임진왜란이 일어났으니, 200년 평화에 젖어온 조선 정부로서는 어쩔 방도가 없다. 물론 각 처에서 군관민이 일체가 되어 용감하게 싸웠지만, 나라의 운명이 달린 큰일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인물은 요청된다. 중국 관계는 물론 홍순언이 나서야 했고, 그는 수양딸 치마폭에 엎어져 울음으로 호소하였다. 병부상서의 설명으로 조선은 의기 있는 사람이 사는 우방임을 생각해, 드디어 이여송이 10만 명의 원군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서며 정세는 급전환을 보였다. 그 뒤의 임란 사정은 얘기 않는다. 다만 석성 그 자신은 일본과의 강화문제로 책임을 물어 옥에 갇히고 그 안에서 생을 마쳤으니, 처갓집 신세 갚음치고는 너무나 애처로운 최후였다.


      부인에게 절하는 남편

    남자가 셋 이상 모인 데는 가지 마라
  옛날에 어떤 장군이 있었는데 화살이 빗발치듯 하는 가운데서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전투를 해내는 용감한 사나이였다.
  이 양반이 어쩐 일인지 마누라 앞에서는 꼼짝을 못한다. 이르자면 아내무섬쟁이라.
  "그래, 나 같은 용사가 한낱 아녀자에게 고개가 안 올라가다니!"
  자탄하던 끝에 한 가지 생각을 해냈다.
  "어디 다른 놈들은 어떤가 시험해볼밖에."
  출즌하는 길로 부하 전 장병을 조련장으로 모아놓고 동쪽과 서쪽 양끝에 붉은 기와 푸른 기를 꽂았다.
  "너희들 중에 아내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푸른 깃발 아래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붉은 깃발 밑으로 모여라. 헤쳐 모엿!"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군사들은 뛰었다.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려서 보니 전부 푸른 기 밑에 모였는데 오직 군졸 한 사람만이 붉은 기아래 우뚝 서 있다.
  "원, 저런 용사도 있나? 이 많은 이들이 모두 아내가 무섭다는데."
  장군은 그 용사를 앞으로 불렀다. 무슨 비방이라도 캐낼까 하여 은근히 물었다.
  "너는 어떻게 아내를 무서워 않는지 그 얘기 좀 들려주련?"
  "옛! 장군님, 제 처가 '남자들이란 모이기만 하면 여자 얘기를 하니 남자가 셋 이상 모인 데는 가지 마라'고 해서 혼자 따로 선 것입니다."
  "..."

    방석을 비켜 앉은 처녀
  조선 제21대 영조 대왕은 역대에 유례없이 83세까지 장수하신 어른인데, 중년에 세자를 뒤주에 가둬 자진케 하는 등 궁중생활은 별로 순탄치 못하였다. 거기다 춘추 환진갑이 지나 정성왕후 서씨가 하세 하시니, 국법에 곤전(왕후 자리)은 비워두지 못하는 제도라, 상기가 끝나자 왕후 간택을 서두르게 되었다.
  간택이라면 양반가 처자들의 출가를 일체 금하고, 후보자를 궁중에 불러들여 일차로 선발하는 것이 초간택, 둘째, 셋째의 간택으로 마지막 결전을 거쳐 왕비나 세자빈을 들여앉히는 절차이다. 혼사만 결정되면 팔자를 고치는데, 때로는 궁중의 복잡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돌이킬 수 없는 불행에 빠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신랑감 노대왕이 친히 간택 장소에 나와 보니, 햇병아리 같은 처녀들이 지정한 자리에 얌전을 빼고 앉아들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방석을 비켜나 바닥에 앉아 있다.
  "그대는 왜 지정한 자리를 비워두고 거기에 앉았는고?"
  "예! 아비 이름이 거기 있사온대 어찌 감히 올라앉으오리까?"
  당시 제도로 처자의 아버지 벼슬과 이름이 방석 끝에 써 붙여 있어서 올라앉으면 깔고 앉는 꼴이 됐던 것이다.
  임금은 그 대답을 대견하게 여기면서 여럿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깊을꼬?"
  지명받은 처녀마다 혹은 산이 깊다 하고 혹은 물이 깊다 하며 대답하는 중 방석을 비켜 앉은 그 처녀에게 물었더니 사람의 마음이라고 대답한다. 그래 그 까닭을 물었다.
  "물건의 깊이는 잴 수 있으되, 사람의 마음은 그 깊이를 헤아릴 길이 없나이다."
  상감은 아마 속으로 '요것 봐라'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으로 또 물음을 던졌다.
  "이 세상에서 무슨 꽃이 가장 좋은고?"
  어떤 처녀는 해당화다, 어떤 색시는 모란, 복사꽃이다 제각기 다르게 대답하는 중에 예의 처자를 지명하였다.
  "목화꽃인 줄로 아옵니다."
  "그건 왜지?"
  "예! 다른 꽃은 한때 좋은 데 지나지 않사오나, 목화는 온 백성을 따뜻하게 옷 입혀주는 공이 있사옵니다."
  때마침 밖에서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에 위에서는 즉흥으로 또 한마딜 물으셨다.
  "저 월랑(원채에 딸려 있는 곁채 건물)의 기왓골을 헤아려 알 수 있을꼬?"
  처녀들은 모두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하나, 둘, 셋. 넷 세고 있는데, 이 처자만은 상감이 자꾸 자기만 유의해보시는 것 같아 부끄러웠던지 고개를 그냥 다소곳이 숙이고 앉았기에 짓궂게 또 한번 지명해 보았다. 그랬더니 몇 십 몇 줄기라고 딱 맞춰낸다. 한층 귀여운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서 알아냈는고?"
  "예! 낙수가 떨어져 패인 구멍을 헤어서 알았나이다."
  상감은 그만 눈이 휘둥그래져 감탄하였다. 그리하여 이 15세 된 처녀는 일약 왕비로 뽑혀 국모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분이 바로 정순왕후 김씨인데 아버지 한구공은 충청도 서산의 가난한 선비였다. 아기딸 세 살 적에 서울로 이사했으나 간택에 뽑혔을 때도 말이 벼슬이지 조정의 마련없는 말단직책에 매어 있던 터라, 남산골 그의 오막살이 게딱지 같은 초가에는 이제 쨍하고 볕이 든 셈이었다.
  부원군을 봉하고 집을 옮기고... 그것은 차차 얘기고, 우선 궁중에서 내관(상궁나인)이 파견되었다. 왕비 후보인 처녀의 의복을 지어서 보내드려야 되겠어서 그래 의양(의복 치수)을 재고자 처녀를 앉혀놓고 앞품, 섶 길이, 화장(소매넓이) 등등을 쟀다.
  "아가씨, 이제 뒤품을 재게 잠깐 돌아앉아 주십시오."
  그랬더니 요 조그만 아가씨(겉으로 보아 가난한 집 계집애) 말 좀 들어  보라.
  "그대가 돌아가면 안되겠는가?"
  파견돼 나온 늙은 나인은 그만 아찔하였다.
  이런 실수가 어디 있담! 체통을 몰라도 분수가 있지. 누구더러 멋대로 돌아앉아라 마라, 당키나 한 소린가? 늙은 상궁은 그만 고개를 떨구었다.
  "황공하여이다."
 대혼 절차를 마치고 궁중에 들어가니 누가 뭐래도 당당한 중전마마다. 그런데 상감께서 노욕이라야 할지 노망드셨달지 그 몸에서 소생을 바라시는 거다. 그래 내의원을 시켜 부지런히 포태하기에 좋다는 약을 지어 보내시었다. 그러나 나이 어린 왕비는 사태를 옳게 안다. 당신보다 7년이나 연장이신 세손(뒤의 정조)이 계시지 않은가? 이런 환경에 자신이 아기를 낳아  놓으면 또 한번 사단이 일 것은 뻔한 일이라, 중전은 그 약을 받아서 달여 올리면, 매번 젓수신 척하고 몰래 쏟아버리었다. 궁중의 평온을 위하여는 그 길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아니할 말로 할아버지 같은 상감을 모시고 청춘을 보낸 이 왕비는 순조 4년 회갑을 맞던 해 세상을 떠났다. 관향은 뒷날 서가로 이름을  떨친 추사 김정희가 그 가문이다. 탄강하신 동네 이름을 따서 세간에서 '한다리마마'라고 부르는 분이다. 능침은 영조 대왕과 함께 원릉을 봉해 현재 동구릉 안에 들어있다.

    훌륭한 자손을 줄줄이 두려면
  선조 대왕은 공주 하나에 옹주가 아홉 분이나 되었다. 그중의 어떤 분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새로 며느리를 맞게 되었을 때 얘기다. 임금님의 외손자가 장가드는 잔칫날이라, 위에서도 한껏 기뻐 상류층의 부인들은 모두 모여 즐기라는 특명이 하달되었다.
  옛날에는 남편이 출세하면 부인에게도 거기 맞게 칭호를 내렸다. 1품재사의 부인이면 정경부인, 정3품 당상관의 마누라님은 숙부인의 첩지를 받는 법이라, 서로 부를 적에도, "정부인(2품관의 아내), 어서 듭시오"하는 식으로 호칭하였다.
  그런 상류층 여인들이 모두 모였으니, 그 현란하기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집안에서 누군가가 중국 사신을 다녀오면, 그때마다 그곳 사치품이 바리바리 실려왔다. 그런 것을 못 만져보는 계층 앞에서 흐르리 하르리 차려입고 "네가 고우냐? 내가 더 고우냐?" 으스대는 게 사뭇 요새말로 패션쇼 같다.
  거기다 국내에서는 나지 않는 값진 향료를 향낭에 넣어서 차고 값진 노리개를 줄줄이 늘여차고 구경하기에 정신을 못 차릴 판이다.
  아무리 나라에서 하사한 넓고 큰 부마댁이라도 온종일 사람들로 벅적벅적하는데, 저녁 나절 느직이 두 사람이 매는 보교(가벼우라고 포장으로 꾸민다) 한 채가 대문, 중문을 거쳐 안마당 깊숙이까지 들어온다.
  "원 저런? 저런 보잘것없는 가마가 예까지 들어오다니?" 귀인 행차에는 나무로 짜서 곱게 장식해 넷이서 메는 사인교를 타는 법이라, 모두의 눈길이 쏠렸다. 앞채를 쳐들자, 반백이나 넘은 노부인이 그것도 무명저고리에 베치마 차림으로 나타나는데, 아니 공주님(옹주님이었는지도 모른다)이 신을 거꾸로 신고 쫓아 내려가 부액해 모시고 올라와 대접이 극진하다.
  물론 안방 아랫목에 모셔 앉히고 잔칫상을 올렸는데, 일변 공주님과 대화하며 수저를 놀리며 잡숫는 양을 보니 역시 점잖으신 댁 부인답다. 상을 물리고 나서 일어서려고 하니 공주가 말린다.
  "정경부인! 다른 부인들도 와 계시고 하니 좀더 앉아 한담이라도 하지 않으시고..."
  "아니야요, 댁의 대감이 약원도제주(임금이 편치 않아 병중일 때 정승 중에서 임시로 앉는 책임자 자리)로 새벽부터 입궐해 계시고..."
  '아니 저런? 정경부인이요, 약원도제주라니? 그런 어떤 정승의 부인이실꼬?'
  "큰 아이가 정원에 나아가 있고, 작은애가 승지로 입직해 있으니 이 늙은이가 있어야 저녁상을 드려보낼 것이라, 자갸(공주나 옹주를 이렇게 부름)를 이렇게 뵈오니 반갑고 기쁩니다마는 그만 물러가야겠으니 이해해 주셔와요."
  '아니 작은아들이 승지라? 그러면 월사(이정구) 상공의 부인 아니셔? 아이고머니나! 그런 줄도 모르고.'
  모두가 각자의 몸에 넘치는 사치한 물건을 걸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워 어쩔줄을 몰라 했다는 그런 얘기다.
  두 분 아드님은 백주 명한, 현주 소한의 형제분으로, 맏이는 이조판서, 아우는 참판까지 하였으며, 백주의 아드님 일상도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대제학에 뽑혀 드물게 보는 명문으로 치는 가문이다.
  이렇게 검소하고 남자들의 식사는 꼭 몸소 돌보아야 하는 가풍이 이런 훌륭한 자손을 줄줄이 두게 된 연유일 것이다.

    물고기가 전해준 사랑 편지
  동아방송의 '유쾌한 응접실'이라는 프로에 단골 손님으로 양주동 박사가 계속 출연하면서 많은 화제를 남겼는데, 한번은 이야기 제목으로 '짝사랑'이라는 것이 제시되었다.
  예에 따라 아나운서의 능란한 솜씨로 얘기가 진행됐는데, 양주동 박사 차례가 돌아오자 그는 전에 없이 흥분한 어조로 그 유창한 열변의 포문을 열었다.
  "사랑이란 주는 것이지 받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바란다면 그거야 욕심이지 어디 사랑이겠는가. 주고받는 것이라면 그것은 상거래지 어떻게 신성한 사랑의 범주에 넣어서 말할 수 있겠는가?
  진정한 사랑이라면 그것은 짝사랑이라야 된다. 과거에 이름난 사랑의 예를 들어보자. 나라가 망하려고 할 때 이름 있는 애국자는 모두가 스스로의 목숨을 바쳤지만 그들은 거의가 나라의 은혜를 풍족하게 받은 이들이 아니다.
  독립투사 윤봉길 의사 같은 이는 잃은 나라의 일을 깊이 모른다. 뼈에 사무치는 망국의 설움도 피부로 느끼지는 못했을 정도의 연배가 아닌가? 이봉창 열사도 왜놈 사회에 섞여 살아 조선말을 거의 잊어버린 상태에서 애국단에 뛰어들었다.
  사랑이란 주는 것, 그렇지 아니하고는 못 배기겠는 불덩이 같은 그것이라야 된다.
  내가 학문의 길에 정진한 것도 계산을 떠나서 한 일일 뿐이다. 이두와 향가라는 우리 문화유산을 왜놈이 앞질러 칼질을 하다니? 나는 침식을 잃고 덤벼들었지요.
  너무 떠들었습니다. 이만 그치겠습니다."
  그런 사랑을 무슨 불장난같이 여기다니?
  그래서 하늘이 아는 순진한 사랑 이야기를 한 토막 소개하련다.
  요새로 치면 고등고시 준비를 위해 한 젊은이가 강릉에 와서 묵었다. 그곳 특유의 훤칠하게 자라 줄지어 선 솔밭 사이로 비단처럼 펼쳐진 푸른 바다가 백설 같은 파도를 육지로 향해 펼쳐보인다. 울창한 숲 안쪽으론 거의 기복 없이 들판이 열리고 병풍처럼 막아선 태백산맥은 특히 해떨어지는 광경이 일품이다.
  그곳 지형의 특징으로 솔밭 안쪽으로는 거울 같은 호수가 열리고, 그 앞으로 따라가며 솔밭이 이어지는데 솔밭을 뒤로하고 연못을 향해 오손도손 부락은 형성되며, 생활이 안정된 고장이라 기와집도 심심치 않게 섞여 있다.
  젊은이는 그중 한 집에 처소를 정하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사나이로 세상에 났으면 과거를 거쳐 입신출세하여 부모님까지 후세에 빛나게 해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럴 때 참참이 책을 덮고 눈을 쉬는 것은 오히려 다음 공부를 위해 피로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어느 하루, 청년이 창문을 열고 하염없이 연못에 떠도는 흰 구름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 저런?" 늘씬하게 잘생긴 처녀 하나가 그릇을 들고 솔밭을 걸어 물가 펑퍼짐하게 생긴 자연석에 앉아 그릇의 밥을 집어서 던져줄 적마다 잉어들이 좋아라고 달려들어 받아먹는다. 그러기를 한동안 하더니 처녀는 일어서서 돌아가는데 어엿한 그 태도, 그 몸매, 어쩌다 옷자락을 고치노라 고개를 돌리는데 오! 그 얼굴! 청년은 그만 황홀하였다.
  다음날 그무렵 또 내다보니, 옳지 저 집이로구나! 처녀가 나타나 전일과 똑같이 고기떼에게 밥을 주고...
  이튿날도 또 그 다음날도 청년은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그러다가 결심을 하였다. 있는 글재주를 다해 편지를 썼다.
  "첫눈에 반해 어쩔 줄을 모르겠으니 무슨 도리를 차려야겠소이다."
  처녀가 나타나기 전에 늘 앉는 자리에 조약돌로 눌러놓고 그가 다녀간 뒤 나아가 보니 쪽지가 안 보인다. 의젓도 하여라! 남이 알세라 눈에 안 띄게 슬그머니 치마폭에 싸 가져간 것이겠지. 이튿날 처녀가 다녀간 뒤에 나아가 보니 자기가 했던 대로 쪽지가 놓여 있다. 가지고 돌아와 허겁지겁 읽었다.
  "유능한 수재가 와 계시다는 것은 일찍이 들어 알고 있사온대, 이만 짝 사람을 그쯤 여겨주시니 고맙기 그지 없사오나 한낱 아녀자에게 구애되어 자칫 대장부 앞날에 장애가 되어서는 아니 되겠으니 고향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뜻대로 과거에 오르시면 부모님의 명을 받들어 쫓으오리니."
  "그 말씀 고맙습니다. 소저의 높으신 뜻을 따라 떠나가오니 부디 저버리지 말아 주시길..."
  돌 위에 글을 남기고 청년을 홀홀히 돌아와 자택에서 공부에 열중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청년은 집을 나서서 장터 구경을 갔다.
  "원! 저렇게 큰 잉어가?"
  청년은 그 생선을 사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손수 칼을 들어 비늘을 긁고 배를 갈랐다. 효심 많은 그인지라 손수 조리하여 부모님 상에 올리려는 정성에서다. 그런데 별일도 다 있지. 고기 뱃속에서 비단 쪽에 쓴 글이 나왔다.
  "당신께서 떠나신 뒤 부모님이 서둘러 다른 곳으로 혼인을 정해 아무 날로 날짜까지 받았으니 이를 어찌하오리까? 나에게 여러 해 밥 얻어먹은 물고기나 내 마음을 알아서 전하여 줄지."
  청년은 그 편지를 들고 부모님께 들어가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부모님도,
  "고기 뱃속을 통해 편지가 오다니? 오냐 가거라."
  쾌히 승낙해주셨다.
  청년은 집에서 기르던 천리마를 끌어내 타고 네 굽을 모아 달렸다. 말의 전신이 땀으로 젖어 숨을 헐떡이며 달려들었을 때, 웬 놈팽이 하나가 하인의 팔밀이를 받으며 문간을 들어서고 있었다.
  "잠깐만!" 청년은 곧장 안마당으로 뛰어들며 두 팔을 벌려 의식의 진행을 막고 고기 뱃속에서 나온 편지를 드리며 일장 연설을 하였다.
  색시 집에서도 이런 기이한 일은 듣다가 처음이라. 처녀가 딱한 사정을 써서 물에 던진 것을 대장 잉어가 집어삼키고 자진하여 어부의 낚시를 물었는데, 워낙 큰 잉어라 좋은 값을 받으려고 서울로 가져가고, 두 사람의 티없는 사랑 사연에 하늘이 감동하여 그것은 청년의 가정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런 희한한 일은 고금에도 없을 것이다."
  색시 집에서는 정했던 신랑을 잘 일러서 보내고 둘은 정식으로 예를 치러 청천백일하에 떳떳한 부부가 되어 대망의 입신출세를 뜻대로 하고 해로하며 잘살았다.
  그들의 유적이 지금 강릉에 양어지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데, 연전에 그곳 향토사학자에게 물으니 물이 말라버렸다고 한다.

    북에는 평양의 계월향이 최고
  고대소설이나 야담에서 절개 있는 기생이름을 들자면, 북에는 평양의 계월향, 남에는 진주의 논개를 드는 것이 상식이다.
  계월향은 임진왜란 때 평양의 기생으로 노류장화의 몸이라, 적의 선봉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 막하에 있으면서 평양성을 함락시켜 거드럭거리는 용맹한 장수(소서비로 알려져 있으나 본명은 아닌 듯하다)에게 붙잡혀 그의 시중을 드는 신세가 되었다. 가만히 있으면 호의호식하고 없는 것 없이 지내겠지만 그는 의기 있는 이 나라의 아가씨였다.
  하루는 한껏 아양을 떨어 그의 환심을 사고 하소연하는 것이다.
  " 장군님? 저는 이렇게 장군의 괴임을 받아 행복하게 지냅니다만, 저의 가족들이 성 밖 난민 중에 섞여 고생하고 있으니 불러들여서 밥 한끼라도 배불리 먹여주었으면 좋겠사와요, 예? 장군님."
  "그러냐? 요 예쁜 것아! 그게 네 소원이라면 그리하려무나."
  당시 김응서라고 무과에 장원급제한 용감한 청년이 별장으로 다시 조방장으로 기용되어 어이없이 빼앗긴 평양성을 되찾으려고 동료들과 보통문 밖에 둔 치고 있었는데, 구지레하게 민간인 차림을 하고 피난민들 틈에 기어 성 밖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입을 딱 벌리고 병장기를 들고 성 위로 왔다 갔다 하는 적군을 멍청히 바라보고 섰으니 누가 보아도 정신나간 사나이 같다.
  그때 녹의홍상으로 화사하게 차린 젊은여자가 적군 틈을 헤치고 성가퀴(성 둘레에 몸을 숨기고 활을 쏘도록 쌓은 구멍 뚫린 얕은 담)께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저희들 주장의 애인이니 막을 놈도 없고, 우리 백성 중에서 이런 소리도 들렸다.
  "저런 죽일 년이 있나? 아무리 천한 기생의 몸이기로 적에게 붙어 호강을 해?"
  그러나 김 군관만은 달랐다. 적이 부산포로 상륙하여 승승장구해 쳐 올라올 제 둘이는 조용히 만나 얘기한 것이 있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됐는데 가만히 앉아 죽을 수는 없지 않아요? 고기값 이라도 해야지!"
  계집은 적병을 밀치고 성가퀴 위로 상반신을 들어내며 김을 찢는 듯한 목소리로 거듭해 외쳤다.
  "우리 오라버니 어디 계슈?"
  "오! 월향이냐? 나, 예 있다."
  원래 목소리대로라면 천지가 진동하겠지만 일부러 맥빠진 목소리로 응답하였다.
  "오라버니 얼마나 고생하셨소? 우리 장군께 얘기해서 같이 있자고 했으니 이걸 타고 올라오셔요."
  성 위에서 내려주는 줄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보고 정체를 모르는 이는 아마 무척 욕했을 것이다.
  "장군님! 저의 오라버니여요. 여러 날 굶었다는군요. 밥 먹여서 쉬게 하고 올라올게요."
  "오냐 오냐, 아암 그래야지."
  푸짐하게 차린 음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서, 둘은 의견을 모아 여자는 저녁상에 적장에게 술을 한껏 권해 먹였다. 의자에 벌렁 기대어 코를 드르렁드르렁 고는데, 화경 같은 두 눈깔을 부릅뜨고 양손에 칼을 뽑아들었으니 도무지 모를 일이다.
  "버릇이 그래요. 자고 있는 것이니, 자! 어서."
  김응서는 여자가 구해다 준 칼을 뽑아들고 살금살금 다가가 내리쳤다. 워낙 능숙한 솜씨라 목은 단칼에 떨어졌는데, 그래도 두 칼을 차례로 던져 하나는 천장에 꽂히고 나머지는 기둥에 깊이  박혔다고 기록에는 나와 있다.
  상투를 쳐들어 화로 재에 눌러 피를 멎게 해 허리에 차고, 그곳을 떠나려니 여자가 매달린다.
  "제발 나를 데리고 가주셔요."
  혼자 몸도 안전하게 빠져  나갈지 말지 한데, 연약한 여자를 데리고? 두고 오면 영락없이 놈들 손에 죽을 거고...
  망설이는 양을 보자 여자는 눈을 꼭 감으며 부탁하였다.
  "놈들에게 당하느니 당신 손에 깨끗하게 죽겠어요."
  차마 못할 짓이건만 김응서는 아직 피가 뚝뚝 흐르는 그 칼을 휘둘렀고, 여인은 비명 한마디 없이 합장한 자세로 고꾸라졌다.
  이리하여 평양 수복에 세운 공로로 김응서는 경상병사로 승진하였고, 난이 끝난 뒤 사명대사와 함께 일본에 사신으로 가 화의를 성립시켜 선무 일등공신에 올랐다.
  그 뒤 광해군 때 이르러 명나라는 국세가 날로 기울고 만주에서 일어난 누루하치의 새 세력이 뻗쳐오자, 약한 자의 설움으로 비굴하게도 등거리 외교를 펼치게 되니 죽어나는 건 당사자들이다.
  명나라의 요청으로 군사를 내어 지원할 제 부원수로 심하 전투에 나섰으나, 불리하거든 '기회를 보아 항복하라'는 은밀한 지시에 따라 도원수 강홍립은 고지식하게도 항복했다. 김응서는 대의를 내세워 끝까지 항전하다 붙잡혀 놈들의 옥중에서 6년을 썩어야 했다.
  그 동안에도 적정을 탐지해서 비밀문서를 만들어 노끈을 꼬아 물건을 매어서 던지는 수법으로 본국에 연락하기를 오래 하다가 발각되어 심양에서 죽음을 당하였다.
  계월향에 대하여는 달리 포상한 기록이 없으나, 논개의 경우처럼 평양 기생들 사이에서 추모 행사가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호조의 서리라면 문턱이 닳는데
  우리나라에서 처음 대동법을 실시해 나라에서 세금 걷는 법을 일신하게 고쳐서 유명한 잠곡 김육 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그에게 좌명, 우가의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두 분 다 명석한 두뇌에 성실한 근무 태도로 많은 공적을 남긴 분들이다.
  두 분 중 맏이 귀계 좌명공댁 하인으로 최술 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컸다. 그러나 대단한 어머니여서 아들을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하게 키워 내놓았다.
  그 어머니의 그 아들로 똑똑하고 사리에 밝으며 또 글도 제법 알아서 귀계가 호조판서가 되자 서리로 부리기로 하였다. 호조란 요즘으로 치면 재무부와 같은 곳으로 나라 살림을 총괄하는 곳이라, 속을 알지 못하는 놈은 무슨 부정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에 마음놓고 임명해 쓰기가 어려운 곳이다.
  하루는 그 어머니가 판서댁으로 찾아왔다.
  "그놈의 구실을 떼어서 내쳐주십시오."
  "남들은 시켜달라고 문턱이 닳게 드나들며 졸라대는 자린데, 할멈은 무엇이 부족해서 그런 자리를 마다하는고?"
  "그래서 하는 말씀이옵니다. 대감! 이 늙은 것이 일찍 홀로 되어 가난하여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면서도 저놈 하나 사람답게 키워내려고 무진 애써 왔사온데, 이놈이 글씨를 반듯하게 쓴다는 재주 하나로 대감 눈에 띄어 구실을 얻어 다달이 타는 요(봉급의 옛말)로 밥을 먹게 되었사옵니다.
  그런데 어느 부잣집에서 놈이 재상댁에 공역 사는 것을 보고 사위를 삼았습지요. 그래 그 아이가 요새 제 처가에서 기거하고 있는데, 글쎄 이런 말이 들려오지 뭡니까?
  하루는 반찬 투정을 하면서 '이렇게 맨 생선국을 끓여놨으니, 이런 반찬으로 어떻게 밥을 먹으라는 거여?'
  제놈이 배 곯지 않게 된 지가 며칠이나 됩니까? 불과 십여 일 사이에 저따위로 사치하고 방자한 생각을 갖게 되다니... 오래도록 재물 다루는 관청에 두었다가는 큰일 났겠습니다. 호조라면 큰 돈 만지는 마을(관청이라는 말의 옛말)이 아니겠습니까? 저 따위로 마음씨를 쓰다가는 그 마음이 저도 모르게 나로 커져 끝내는 죄를 저지르고 말 것이라, 늙은 것이 놈의 형벌 받아 죽는 꼴은 차마 못 보겠어서 그러는 것이옵니다.
  대감께서 갸의 글씨 재주를 아껴 떼어보내기 싫으시거든, 그저 저희식구들 주리지나 않게 몇 말 곡식으로 먹여 살려 주시면 되옵니다. 제발 덕분에 저놈이 건방진 생각을 못 갖도록 단단히 신칙해 부려주셨으면 하옵니다."
  대감은 할멈의 하소연을 듣고 한참만에 고개를 끄덕이었다.
  "알았네, 할멈의 소원이니 내 들어줌세. 그리고 할멈의 아들이니까 잘해낼 거야."
  그 어머니의 소원대로 나날이 생활용품을 대어 주어 살림을 시켜 주었다.

    도둑놈이 업어간 색시
  옛날에 어떤 사람이 서울에서 사업으로 큰돈을 벌어 상당한 가문에 장가를 들었는데, 금의야행이지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행차를 거창하게 차려 가지고 고향으로 근친 길을 떠났다.
  천리준총 좋은 말에 건장한 하인에게 경마 잡혀 거드럭거리며 올라탔다. 색시가 탄 사인교는 두 패를 질러 번갈아 메게 했다. 또 남자하인과 계집종들을 줄줄이 말에 타게 하고 집을 실은 복마마저 여럿 따랐으니, 풍악만 안 잡혔지 어느 관원에 못지 않은 호화로운 행차였다.
  온종일 행역 끝에 어느 산 어귀 마을에서 여장을 풀었다.
  저녁식사도 끝나고 이제 막 잠자리에 들려는 참인데, 컹컹컹 개 짖는 소리가 연방 나더니 방문이 환하게 비치는 게 심상치 않아 열어봤더니 화적떼였다.
  몇 놈이 횃불을 추켜들었고 어깨가 떡 벌어진 청년 하나가 장검을 허리띠에 지르고 섰는데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준수하게 잘생겼다.
  "밤중에 놀라게 해 미안 하외다. 이 골 안 산채의 주인인데 물건엔 욕심이 없소. 도둑놈이라고 어느 놈이 딸을 줘야지? 노형, 내행을 데리고 계신데 나한테 양보하고 가시오. 양민이야 다시 장가들면 그만 아니오."
  말은 부드러우나 안 들으면 죽일 것이고 대항할 만한 힘은 없고. 그러기로 갓 장가들어 한없이 귀여운 새색시를 내준달 수도 없고, 안 내줄 재간도 없고. 우두망찰 서 있는데 등뒤에서 색시가 속삭인다.
  "까딱하단 당신 다치셔요. 내 순순히 가는 것이 상책이니 그저 꽉 참으시고..."
  윗방으로 가 얼마를 버스럭거리더니 의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장옷 쓴 아래로 일용품을 챙겨들고 다소곳이 방문을 나서지 않는가?
  도적은 자신들이 차려  가지고 온 가마의 앞문을 열어 앉게 한 뒤 졸개들이 메고 일어선다.
  대장이 앞으로 나서며,
  "좋은 친구를 만나 선선히 내주셔서 고맙소이다."
  그리곤 손짓을 하니까 졸개 하나가 가져온 보따리를 마루에 쿵하고 내려놓는다.
  "그것 가지면 족과평생 할 것이니 과히 섭섭하겐 생각 마시오."
  일행의 불빛이 멀어지자 신랑은 방바닥에 엎드려 어깨를 들먹이며 울었다.
  "아! 이 일을 어쩌면 좋으랴?"
  그러는데 누가 어깨를 흔들기에 보니 자기 색시다.
  "나 여기 이렇게 있어요!"
  "!?"
  "윗방에 가 산월이 년을 꾀었지요. 너는 나한테 있어 봤자 문서 안 빼주면 생전 가도 남의 종 신세를 면치 못해. 저 남자 따라갔다가 적당한 시기에 생업을 바꾸게 하면 그땐 너도 의젓한 부잣집 부인이라구요. 그랬더니 순순히 따라갔지 뭐여요. 도둑놈이 꼭 뭐 나라야 된다고 했나요?"
  무사히 범의 굴을 벗어난 일행은 고향에 돌아와 도둑이 주고 간 천량까지 합쳐서 대를 이어 잘살았다.

    부인에게 절하는 남편
  어떤 사람이 장가라고 들었는데, 여자가 어찌나 못됐는지 이것을 바로잡고자 타일러도 보고 얼러도 보았으나 효험이 없자 이젠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때려도 두들겨 패도, 마지막엔 지겨울 정도로 조져대도 효력은커녕 점점 더 악독하게 대항해오자 그만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다가 수법을 완전히 달리해보았다. 말은 꼭꼭 공대말로만 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으레 큰절을 한 번 하고, 어디 출입하겠으면 또 큰절을 하고는 "다녀오겠습니다"인사를 하고, 돌아와서도 큰절을 하였다.
  부인의 기색이 좋지 않은 듯하면 두 번, 세 번 절하여 기분이 풀릴 때까지 때로는 열 번이라도 하여, 이러기를 닷새, 여흘, 보름 계속해 조금도 게을리 않으니 난처해진 것은 부인이다.
  그래도 남편인데 그의 절을 앉아 받을 수도 없고 맞절하기도 어색하여 입이 닳게 말려도 듣질 않는다. 그저 밥을 먹다가도 일어나 절하고, 자다 말고 한밤중에도 일어나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절을 해대니, 때로는 웃음이 터져 나와 배길 수가 없다.
  나중에는 부인 쪽에서 꾀를 내어 일찍 일어나 기다렸다가 남편이 일어나 앉기가 무섭게 먼저 절을 하였다. 그러면 남편이 질겁을 해 맞절을 하고, "세숫물을 놓았습니다" 하고 절을 하면."고맙습니다"하고 맞절을 하고, "진지 잡수십시오" 하고 절을 하면 마주 절을 하면서 "잘 먹겠습니다"하고, 그렇게 밤낮도 없이 두 내외는 절하기에 바빴다. 하도 서로 절하다 보니 잠자리에 들 때쯤이면 굽히지도 못할 정도로 허리가 아프다. 그러는 동안에 둘은 상의를 하였다.
  "손 짚는 것만은 그만두고 허리 구부리는 것으로 대신합시다."
  "허리 구부리는 것도 이젠 그만두고 반갑게 씽긋 웃는 것으로 대신 합시다."
  "웃는 것도 그만두고 이젠 그저 화평한 얼굴로 대하기로 합시다."
  "이젠 그저 찡그리지나 맙시다."
  "서로 욕이나 맙시다."
  "때로 나무라기는 하더라도 손찌검만은 하지 맙시다."
  이리하여 정상적인 가정으로 돌아왔는데, 하루는 일어나는 길로 남편이 또 절을 한다. 부인의 그 버릇이 또 조금 고개를 들 기미가 보인 것이다. 그래 열심히 서로 절하고 제자리로 돌아오면 다시 화평한 나날을 즐기며 아들딸 낳고 잘살았다고 한다.

    큰마누라와 작은마누라의 차이
  어떤 사나이가 큰마누라가 늙어가니까 젊은 첩을 하나 얻어들였다. 큰집으로 작은집으로 왔다갔다하니 남 보기에 팔자가 늘어진 것 같다.
  작은마누라네에 가 누웠으면 머리맡에서 영감 늙은 게 보기 흉하다고 센 머리칼을 뽑아내었다. 큰마누라한테 가면 영감이 어서 늙어야 첩년이 갈 거라고 매양 검은 머리털만 골라 뽑는다. 그래서 오래지 않아 머리가 무르팍같이 되어 버리더란다.
  첩을 들이고는 춘추로 보약 몇 제씩은 늘 지어다 먹었다.
  작은마누라에게 가면 언제든지 약 달인 분량이 똑 같은데, 큰집에서는 툭하면 한 대접씩 됐다, 어떤 때는 태워 붙여 눈꼽 만한 분량이다.
  한번은 버선이 헤어져서 큰마누라에게 볼을 박아 달랬더니 다 꿰매고 나서 마지막 매듭을 이로 물어 끊는다.
  '저 더러운 것을 이로 끊을 기분이 날까?'
  영감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작은마누라 집엘 가다 양지쪽 바위에 앉아 버선을 벗고 주머니칼을 꺼내어 볼 박은 것을 말끔하게 떼어내었다.
  작은집에 닿는 길로 마누라 무릎을 베고 누워 볼을 박아달라고 내밀었다. 박는 솜씨야 누군들 다르랴마는 마지막 매듭 끊는 모양을 보자는 것이다.
  그랬더니 다 꿰매고 나서 남은 실밥을 가위로 싹 자른다. 물론 자른 자리야 깨끗하지만...
 '네년이 입에 댈 용기는 안 나는 게로구나.'
  약을 달여 들여왔다. 늘 그 분량이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어깨를 투덕거리며,
  "큰집의 그 미련한 것은 약 분량이 노상 많았다 적었다 해! 요것 모양 일매지게 못하고... 그런데 너는 어떻게 분량이 이리 일매지냐?"
  "많으면 따라 버리고 적으면 물 타지 뭐."
  '오냐, 네 속을 내 다 알았다.'
  이튿날 영감은 담뱃대 하나를 들고 첩의 집을 나섰다.
  '너는 너 갈 데로 가라. 나는 나 갈 데로 가마.'

    독종 마누라 만난 사내가 평생 고생한다지만
  악종이 따로 있다더니, 어떤 사람이 여편네를 얻어 사는데 이게 천하의 독종이라 타일러도 얼러도 때려도 듣질 않는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야 하는 거라지만 정말 못 참겠다.
  하루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밖에 나간 끝에 쇠고기를 두어 근 사서 재어가지고 돌아왔다. 그랬더니 아침에 나갈 때 골났던 것이 그동안에 풀리기는커녕 갑절이나 악독을 떨며 덤벼든다.
  "오냐! 잘한다. 내 오늘은 네년을 잡아먹고 말 테다."
  "그래, 잡아먹어라, 잡아먹어! 아드득아드득 네놈한테 먹히기가 소원이다. 잡아먹어라!"
  남자는 계집을 걸어서 넘어뜨리고, 미리 준비한 빨랫줄로 뒷결박을 지었다. 대들보에다 뒤도 돌아보지 못하게 대롱대롱 매달아놓고는 칼을 찾아서 썩썩 가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숯내를 피우면서 불을 피웠다.
  그는 여자의 속옷을 찢고 맨살을 찬 수건으로 문질렀다.
  "이년, 살이 쪄서 볼기살이라도 연하겠지."
  그러고는 쇠끝으로 찌익 그었다.
  "이런! 근반 턱이나 떨어졌네."
  양념 무친 쇠고리를 적쇠에 올려놓고 구우니, 맛있는 냄새가 풍긴다. 그래 놓으니 제아무리 독한 여자라도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것을 확인하고 남자는 집을 나갔다. 행랑어멈이 여자의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들어와 묶은 것을 끄르고 들어다 뉘었다. 물을 뿜고 주물고 해서 정신이 들자 여자는 울었다.
  "어머니! 나 그저 살았수? 어멈, 내 볼기에 살이 그저 붙어 있나 좀 봐 주구."
  "아이구, 얘야! 네 신랑이 얼마나 착한 사람이라고? 너한테 칼이야 댔겠니?"
  "그럼 내 살이 떼어 구운 게 아닌가요?"
  "아니다, 아니다. 그냥 한번 죽었던 걸로 치고 제발 좀 유순해져라, 유순해져! 죽었던 셈만 치고..."

    일가 댁 반 재산 덜어온 새 며느리
  가난이 유죄라더니 농촌에서 자라 역시 가난한 농가로 시집온 색시가 3일 만에 이남박을 들고 양식을 내달라니까, 시어머니가 고래를 외로 꼬고 눈물을 짓는다.
  "양식? 없다."
  새 며느리는 동네 안 일가 댁 중 어느 댁이 제일 부유하게 사느냐고 물어 시동생을 앞세우고 찾아갔다.
  "아직 집안일(신혼하면 일가끼리 불러서 인사하는 일)도 안한 사입니다마는, 산 입에 거미줄 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농사지어 갚을 것이니 양식 좀 돌려주십시오."
  "내 몇 말 내려보낼게 먼저 가거라."
  "무슨 말씀이십니까? 모맥이라도 햇곡이 나려면 앞으로 몇 달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 먹을 걸 한몫 주셔야지 날마다 끼니마다 꾸러오라하십니꺼?"
  "그럼 한몫 얼마나 줬음 좋겠느냐?"
  "나락으로 열닷 섬은 주셔야 되겠습니더."
  '야! 대단한 색시다. 그러나 어디 보자.'
  "내 내려보낼게 먼저 가거라."
  "아닙니더, 하인들 안동해 지워가지고 내려갈랍니더."
  남정네를 총동원해 열닷 섬을 지워서 행렬을 이뤄 내려보냈는데, 집에 닿더니 지휘를 해도 시원스럽게 한다.
  "자, 이리들 내려놓이소. 식전 아침 힘든 일시키고 그냥 돌려보내는 인심은 없는 법이라, 번갈아 한 절구 찧어 아침해 자시고들 가이소."
  색시가 한 섬을 열어보아 먼저 양식을 떠내주고 나머지 섬을 차례로 비집어보더니, 그중 하나를 열자 흠칫 놀라는 몸짓이다. 그리고는 장정들을 시켜 봉당에다 넉 섬을 나란히 놓고, 그 위에다 넉 섬, 다시위에 석 섬, 그위에 두 섬, 그 위에 두 섬, 이렇게 쌓더니 깜짝 놀라던 섬을 맨 위에 올려놓고 돌아서는데, 얼굴이 자못 엄숙하다.
  장정들이 하는 일이라 순식간에 찧어내 아침을 푸짐하게 먹여서 돌려보냈는데, 제일로 궁금한 게 양식 내어준 집에서다.
  돌아온 일꾼더러 경위를 물으니, 볏섬을 하나하나 비집어보더니 흠칫하고 놀라며 볏섬 쌓은 맨 꼭대기에다 모셔놓더라는 얘기라, 주인은 얼굴이 해쓱해졌다.
  '우리집 업이 그리 간 게로구나.'
  그래 횡하니 달려가 다른 걸 대신 줄 테니 맨 위의 섬만은 돌려달라고 하였다.
  "아아들 장난도 아이오, 뭘라꼬 그럽니꺼?"
  아니다. 두 섬 줄게 바꾸자. 안돼? 열 섬 줄게 바꾸자... 나중엔 논밭뙈기 모두 해 전 재산의 반을 내주기로 하고 그 볏섬을 찾아 왔다.
  "업을 남의 집에 주다니?"
  새며느리 들어오자 금시발복으로 살림을 일으킨 이 집에선 얼마 뒤 조용한 틈을 타서 시어머니가 물었다.
  "너 업이 든 것을 어떻게 용하게 알았니?"
  "업이 무슨 업 입니꺼? 그냥 한번 그래 본 것 뿐이제."
  "?!"

    남의 사람이 잘 들어와야 집안 잘되지
  어떤 동네에 삼형제가 사는데, 형제간 우애가 극진하다고 온 동네에 칭송이 자자하다. 온 면이 알고 동네에서 모범이라고 표창까지 받은바 있다.
  하루는 제사 이튿날인데, 남자들은 모두 벌로 직장으로들 나가고 삼동서가 모여 앉아 공론을 한다.
  도대체 남자 형제들끼리 우애가 끔찍하다고 그렇게들 떠들며, 우리 삼 동서 정리가 갸륵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으니, 우리 한번 석 달을 기한하고 장난을 좀 쳐보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전략을 단단히 꾸며 가지고 헤어져갔다.
  먼저 둘쨋집에서 닭을 잡았다. 저넉상에 닭국을 대하자, "이거 형님댁에도 좀 보내드렸소? 걔도 좀 오라고 해서 같이 먹었으면..."
  그러는데 부인의 표정이 시무룩한 채 대답이 없다. 그리고 한참만에 입을 연다.
  "흥! 그럴 줄은 나도 안다우. 그저께 제사지내고도 큰댁에서 무엇 떡부스러기 하나 싸주신 줄 아슈? 또 작은 아주버님도 그렇지! 일전엔 온 가족 데리고 통닭 쪄가지고 소풍들 갔더랍니다. 우리 애 앓고 일어나 비실비실하는 거 하나 끼워주었다고 어느 하늘에 벼락친답니까?"
  "어어, 다 까닭이 있겠지. 여자란 사람이 집안에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냐. 애들이 자라서 보고 하는데..."
  어쩌고 하다 그 날은 그러고 말았겠다.
  이렇게 하기를 세 집에서 번갈아 해놓으니, 사흘만 못 봐도 서로 찾던 것이 아이들조차 서로 잘 안 다니게 되었다. 만나도 별로 할말이 없어 덤덤히 앉아 하늘만 쳐다보다 헤어지곤 한다.
  동서끼리는 낮이면 모여 앉아 전략 결과를 서로 얘기하면서 우스워 죽겠단다. 그러다가 기한의 석 달이 찼다.
  둘쨋집, 셋쨋집에서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큰댁엘 놀러 가진다.
  "오다 보니 무슨 날인지 기름 냄새를 풍기면서 음식을 장만하는 눈치던데, 아이들 데리고 구질구질하게 얻어 먹으러나 온 것 같으라고 무엇하러 가?"
  오히려 남자쪽에서 그러는 것을 서둘러 억지로 끌고가 세 집이 한 방에 모였다. 그리고 음식상을 둘러앉아 둥서끼리의 음모(?)를 폭로하였다.
  배를 움켜쥐고 웃기에는 너무나 엄숙한 이야기였다.
  어느 봄날, 시아버지가 며느리들의 마음씨 쓰는 것을 볼 양으로 콩한 움큼씩을 나눠주었다. 그리고는 아무말 없이 있다가 꼭 1년이 지난 뒤에 셋을 불러 앉혔다.
  "그때 그 콩 어떻게 했니?"
  큰며느리의 대답이다.
  "그 날 저녁 진지에 두어 드린 게 그거여요."
  "둘째 애는?"
  "언제 내놓으라 하실지 몰라서 그냥 곱게 간직하고 있어요."
  셋째며느리가 아무 말 않고 방을 나가더니, 한 말 턱이나 되는 콩자루를 갖고 들어온다.
  "그 즉시 밭에 심었더니 이번 추수에 이만큼 났사와요."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애고대고 곡산장 눈물 나서 못 보고
  재담이라면 글자 그대로 재치있는 말놀음이다. 그 나라 말을 제대로 하는 사이에서나 통하는 한계가 있는 반면, 외국인에게도 이것을 매개로 우리말에 친근감을 갖게 할 수도 있는 일면이 있다.

  앉은 고리 동고리
  달린 고리 문고리
  뛰는 고리 개고리

  집안에서 어른들이 아기를 데리고 흔들면서 들려주시던 말놀음이다. 아마 나 어려서도 들으며 잘랐을 것이다. 이처럼 '고리'라는 끝말에 윗말을 붙여 '방고리, 귀고리, 갈고리' 등의 말을 만들어내듯이, 다른 말에도 이처럼 윗말을 붙여 꾸미면 더 많은 것을 만들어 보탤 수 있을 것이다.
  차차 커서 글방에 다니게 됐을 때, 통감을 배우는 선배들이 이런 소리를 들려주었다.

  통감을 외우다 불통을 해서
  담배통으로 대갈통을 얻어맞고
  부아통이 터져 담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왕퉁이가 눈퉁이를 쏴서
  눈퉁이가 퉁퉁 부었다.

  이런 것은 곧잘 수수께끼로 이어져서,

  개가 개를 물고 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뭐냐?
  각이 각을 지고 각으로 들어가는 것이 뭐냐?

하는 식으로 발전한다.
  답은 다음과 같다.

  솔개가 조개를 물로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것.
  총각이 청각을 지고 여각으로 들어가는 것.

  청각은 김장 때 시원한 맛이 나라고 넣는 해조이고, 여각은 해산물 등을 맡아서 팔아주는 도가를 이르는 말이다.
  글자를 약간 알게 되자 이런 것도 얻어들었다.

  오동 열매 동실 동실,
  보리 뿌리 맥근 맥근,
  가을 고기 추어 추어.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형은 이런 것도 일러주었다.

  풍취 엽 팔푼이요,
  조비 지 이월이라.

  잎이 너푼너푼하니까 합해서 8푼이고, 새가 날아가자 가지가 한달한달하니까 2월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지명을 가지고 하는 재담도 알게 되었다.

  청주 안주는 대구요,
  상주 장단은 곡성이다.

  뒤에 중학 과정에서는 선배들이 채록해온 자료를 정리하다가 장타령에서 이런 것을 발견하여 지금까지 외우고 있다.

  애고대고 곡산장 눈물이 나서 못 보고
  색시 많다 안악(아낙네)장 곁눈질하노라 못 보고
  먼지 많다 재령(재, 먼지)장 눈을 못 떠서 못 보고...
  그 얘기를 어디서 했더니, 고장마다 그런 유의 재담이 없는 곳이 없다는 얘기였다.
  필자는 서울에서 보통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학교 수는 많지 않았다.

  인현(지금의 광희)학교에 가 이년 저년하고 욕했더니
  주교(뒤에 방산)학교에 가서 죽여 죽여 하고 대들어서
  재동 학교에 가 재판을 받아
  매동 학교에 가서 매를 맞고,
  어의동(지금의 효제)학교에 가서 어이어이 울었다.

    뜻이 높은 기생은 불러야 갑니다
  한문 소양 있는 분들은 대부분 기억하고 계실 것이다.

  요강 대야 빙구리
  사과 포두 생강정

  어떤 신랑을 따라간 문장 후행이 무슨 소리를 하든 글귀로 옮기어 칭찬하였는데,

  천장에 거무집이요
  화로에 접불래라.
  국수는 한사발이요
  지령은 반종지라.

 했다는 것이며, 한 발짝 더 나아가 이런 것도 있다.

  문성은 모기소리요
  신기는 조개기운이다.

  재미있는 글귀는 모조리 김삿갓이 지었다고 하는데, 버드나무 개울가로 하늘거리며 걷고 있는 여인을 보고, 동자를 시켜 '류' 한 자를 써 보냈더니, '어'자로 답장을 보내와서 빙그레 웃더란다.
  류(석류나무 류로 석류나무유를 새기면, 큰 선비인데 어째서 놀지 않으려 하오).
  어( 고기잡을 어로 고기목불어를 새기면, 뜻이 높은 기생은 스스로 말하지 않습니다).
  즉 "부르셔야 갑지요"라는 말로, 그래서 김삿갓이 좋아한 것이다.
  한번은 국립중앙도서관엘 갔더니, 만물박사 담당자가 여러 책을 찾아도 모르겠다면서 나에게 묻는다.
  "차죽이 무언지 혹 아셔요?"
  "그거 장난으로 물어온 것이니 욕해 주시오. 차죽피죽(자죽피죽: 이대로 저대로),차음죽(풍차죽: 바람부는 대로), 피타죽(물결치는 대로) ... 그러는 것인데, 어디 아나 보자고 그랬을 거요."
  자리에 앉아 고서를 뒤적이던 노학구들도 처음 듣는 듯 모두 신기해하였다.
  필자가 중국에 머물고 있을 때 그곳 동학들에게 이렇게 써 보였더니 아무도 못 새겼다.
  "난애도가."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 우리 식으로 읽은 것이다.
  "난초 난 언덕에 복사도 심을까?"
  "문이라이."
  "모기문 턱이 헌데나 다르리?"
하는 것이 있지만 멋에 있어서 상대가 안된다.
  한자 관계는 그쯤하고 순 우리말로 된 것에 이런 것도 있다.

  창으로 창을 찔러
  창에 구멍이 났으니
  창 구멍이냐 창 구멍이냐?

  눈으로 눈을 때려
  눈에서 물이 나니
  눈 물이냐 눈물이냐?
  연배층에 있는 분들은 많이 기억하실 것이다.

    참빗 사요 참 비싸
  "부산까라 마산까라 왔다까라 싯다까라."
  한창 뇌까렸으면서도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유래는 이러하다.
  일본인이 처음 몰려왔을 때 통역 수입이 짭짤하겠다 싶으니까 어중이떠중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을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당신은 어디서 왔소?" 물었더니 이렇게 답하더라는 것이다.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통역을 빈정거려 놀리는 말이기도 하였다.
  그에 이어 농촌에서는 이런 유의 객설이 한때 유행하여 그것이 통째로 작가 이기영의 작품에도 올라 있다.

  일본말을 잘한다면서...
  에에또, 토끼똥가 소합완데시까라네.
  쇠똥가 젬병데시까라네.
  말똥가 수수팥단지데시까라네.

  물론 놈들의 모든 행동이 아니꼬와서 생긴 것이다.

  1. 일본놈, 2. 이등박문이, 3. 삼천리강산을 먹으려고, 4. 사방을 둘러보니, 5. 오사를 할 놈이, 6. 육혈포맛을 보고 싶어, 7. 칠십이나 넘어서, 8. 팔자에 없는 만주길을 나섰다가...
  필자가 처음 교사로 나갔던 1938년 전국 각지에서 하 널리 유행하여 비자 문서로 금지하라는 시달이 내렸던 동요이다.
  그런 중에도 최근 윤봉길 의사의 전기를 읽다가 발견하고 새삼 기억에 되살아나는 것이 있다.

  되놈은 왔다가 되갔는데
  왜놈은 왔다가 왜 안 가노?

  당시 만주땅으로 야반도주하듯이 옮겨가는 사람들 가운데 뇌까리던 노래가 있다.

  논마지기 쓸 만한 건 신작로로 들어가고
  사내자식 쓸 만한 건 감옥소 가고
  기집애녀 쓸 만한 건 신마치 가고...

  모두가 을씨년스럽고 짜증스럽던 시절의 자탄이다.
  낯선 외국인과 사이에 빚어진 말거리도 심심치 않게 있다. 미국 군인이 들어와 영어 하는 것이 신기했을 때 "안다스탠드 모른다스탠드"가 일상어처럼 유행하였고, "사바사바"는 저들 사병들 입에서 번져 전란중 폭 넓게 퍼졌으며, 말더듬이가 "해브 노"소리를 해야겠는데 "해해해해 해보노"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유행하였다.
  어떤 할머니가 유원지에 가서 팔려고 계란을 삶아서 이고 가는데, 뒤에 키가 9척 같은 미국인이 따라오면서, 머리에 인 계란을 까먹고 있지 않은가?
  놀라서,
  "에그머니?"
  했더니, 그 사람이 지갑을 꺼내면서 그러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에그 먹었으니 머니 드려야 합니다."
  외국인들의 한국말 이야기대회에 자주 나오는 화제가 있다.
  "사과 사셔요 사과."
  소리치면서 지나가는 사람 뒤에서 다른 사람이 큰 
소리로 외친다.
  "빗 사요 비싸."
  빗을 파는 장사꾼이었는데 사과장수가 화를 냈다.
  "왜 남의 사과 자꾸만 비싸다고 하는 거요?"
  "내 그럼 안 그럴게."
  다시,
  "사과 사셔요 사과."
  그랬더니 따라가면서 외쳤다.
  "참빗 사요 참 비싸."

    인연이 없으면 저년이라도 있겠지
  광복이 되자 서울시내 유서있는 중학교에 근무했는데, 어느날 오후 늦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동료 한 분이 쓴웃음을 짓는다.
  "에잉! 나 오늘 큰 실수했네. 방금 전화에서 장 선생님 계시냐고 하기에 무심코 '돌아가셨습니다' 했더니 상대방이 깜짝 놀라는 거야. '언제 돌아가셨습니까?' 하기에 퇴근하셨다고 했더니 후유 하고 한숨 쉬면서 그러지 않아? 여러 해 만주에 가 있다 돌아온 사람인데 모교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 걸었다가 작고하신 줄 알고 놀랐다는구먼!"
  이런 실수는 곧잘 있을 수 있다.
  선배 한 분이 학생들 상대로 하는 라디오 연설에서 "앞을 보고 걸으시오, 뒤를 보지 말고..." 해서, 다음 번 만났을 때 항의를 하였다.
  "선배님! 똥 안 누고 어떻게 삽니까?" 상대방은 한참 어리둥절하다가 내 설명을 듣고 나서야 웃었다.
  이런 말은 말 쓰이는 습관의 차이에서 오는 웃음거리다.
  최근 있었던 일이다. 어느 점포에 갔다가 주인이 없기에 물었더니 "딸 혼인에 쓸 이불 맞추러 가셨어요" 하기에 우스갯말을 던져주었다.
  "이제 사위하고 어련히 잘 맞추려고 엄마가 나서고 야단이야!"
  한번은 다방엘 갔는데 아주 건장한 체격의 처녀가 다가와 주문을 받는다.
  "차 드릴까요?"
  "여기를 찰래? 요기를 찰래? 너무 세게 차지는 마라."
  아가씨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동료들과 어울려 한동안을 계속해 웃는 것이었다.
  친구 하나는 동료 교수의 외로운 형편을 동정해서랄까 사고무친이라고 했다가 혼이 났다. 내가 왜 사고뭉치란 말이냐고 버럭버럭 대드는 데 혼이 났다는 것이다.
  하 이런 화제를 즐기니까 친구 하나가 일러준다. 어떤 점쟁이집에 총각 하나가 궁합을 보러 와서 인연이 있어서 살게 될까 하고 물으니까 점쟁이 말이 걸작이다. "인연이 없으면 저년이라도 있겠지" 하더라는 것이다.

    아버님, 구립니다.
  어떤 신랑이 글방엘 여러 해 다녔다고 들었는데, 사뭇 아무것도 모르는 맹문이다. 갓 혼인한 신부가 잠자리에서 물었더니 털어놓는다.
  "그놈의 선생이 만날 때리기만 했지, 뭐 가르쳐준 게 있어야지. 이것봐. 이렇게 종아리 맞은 자리가 흉터로 남아 있지. 그놈의 훈장 죽이고 싶어."
  색시는 이튿날 건장한 식구의 굵고 잘 생긴 똥자루 두엇을 골라 꾸덕꾸덕 말려서 기름먹인 종이에 여러 겹을 쌌다. 그것을 다시 좋은 종이로 포장을 예쁘게 해서 신랑을 주며 말했다.
  "가거든, 고마움을 잊지 못해 조그만 선물을 가져왔노라며 이것을 드리고 곧장 돌아와야 되는 거여요."
  선생님은 옛 제자의 심방을 받고 감격스러웠다. 매양 때리기만 하던 선생이라 이렇게 일부러 찾아와 주기는 처음이었던 모양이다. 그래 큰아들을 불렀다.
  "사당에 천신드리고 나서 집안식구끼리 골고루 나눠 먹도록 해라."
  아들은 갓을 내려서 쓰고 사당엘 들어서서 골고루 신주 덮개를 열었다. 그리고는 제상 위에 그것을 놓고 포장한 것을 뜯었다. 한켜 한켜 마치 양파 꺼풀 벗기듯 벗겨 들어가니 이런 변이 있나?
  얼핏 그것을 거두어 안고 돌아서 나오는데 멋모르는 아버지가 당황하여 묻는다.
  "뭐기에 그러니?"
  사당 안에서는 속세에서 쓰는 말은 못쓰는 법이어서 똥은 '찌'라는 예스러운 말을 써야 하는 법이다.
  "아버님, 찝이다."
  "찌긴 뭘 쪄? 굳었더라도 그냥 조금씩 나눠먹지?"
  "글쎄 아버님, 찝니다."
  버선발인 채 두엄자리까지 달려가 퍽하고 팽개쳤는데, 훈장은 그래도 미련이 있어 따라와 말한다.
  "고집도 부린다. 찌기는 뭘 찐다는 말이야?"
  팽개치는 것을 보고는 주춤주춤 그리로 갔다. 거기서 지팡이 끝으로 종이를 뒤척거려 안의 것을 보고 했다는 얘기다.
  "한 지가 얼마가 됐기에 이렇게까지 변했누?"
  이 얘기를 퇴직교사들 모임에서 했더니, 동지 하나가 한술 더 뜬다.
  위와 똑 같은 얘긴데 선물로 가져간 것이 깡통에다 인분을 담고 납땜을 한 것이다. 제자가 돌아간 뒤 그것을 며느리에게 주었더니 한 귀퉁이를 떼고 냄새를 맡아보고서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버님, 구립니다."
  "굴이야? 굴이면 좋지. 이가 없어 다른 것은 못 먹는데, 고마운 일이다. 절반은 젓 담그고 나머지는 저녁상에 나눠놓으렴."
  "아버님, 구립니다."
  "굴이면 좋다니까 그러네."

    소같대요. 그런데 뿔이 없어요
  어떤 사람이 과일전엘 들어서서 자기 입은 옷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것이 무엇이오?"
  "옷이오."
  "예, 왔소이다."
  다음은 잣을 까서 수북이 담아놓은 것을 보고 물었다.
  "이것이 무엇이오?'
  "잣이오"
  "그렇소? 고맙소이다."
  잔뜩 움켜 먹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쓰고 있는 갓을 가리켰다.
  "이것이 무엇이오?"
  "갓이오"
  "예! 가겠소이다."
  필자 소학교 시절 한창 유행한 우스개다.
  어떤 사람이 장터에서 떡판을 차려놓은 앞에 가서 개피떡(본래는 갑피떡, 흔히 말하는 바람떡)을 사서 먹는데, 떡 파는 여인이 옷 단속을 제대로 못해서 묘한 곳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다.
  "쑥 좀 넣었으면 좋겠다!"
  "바빠서 쑥을 미처 못 뜯었어요. 내 다음 번엔 쑥 넣어 드릴게요."
  도회지 사람들은 실무에 쫓겨 우리 멋을 잊은 지 오래다. 시골 흙과 땀냄새 풍기는 고장에서는 일상에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옛날 건물의 낮은 문을 들어서다가 머리를 받치든지 하면, 
  "그것 받곤 안 팔겠다는데도..."한다.
  머리로 받는 것과 값을 받는 것을 같이 쓴 말이다.
  악의 없는 장난으로 곯려주고 나서 속은 상대를 노리는 말이 있다.
  "소 같대요. 그런데 뿔이 없어요."
  아니면 이런다.
  "저 앞 고개로 소가 넘어갔네그려!"
  누가 넘어졌다고 하면 하는 말이다.
  "알맞추 지지. 왜 너무 져 가지고 그래?"
  뼈가 부러졌다고 하니까 이런다.
  "힘이 모자라면 질까? 왜 부러져?"
  아버지 병환이 위독하신데 아는 의사라곤 장씨밖에 없다. 작은 아들이 큰형한테 의논을 한다.
  "장 의사를 부를까요?"
  형은 객지에 가 있다 돌아와서 그 의사를 모른다. 펄쩍 뛰면서 호통친다.
  "이놈아! 아버지가 들으시면 섭섭하시라고..."
  장의사로 들었던 것이다.
  같은 직장 친구 하나가 음질을 앓았는데, 가족이 알까보아 숙직날 밤 친구를 불러 주사를 맞아서 고쳤다. 다음날 그가 찾아왔기에 내가 먼저 보고 일렀다.
  "여보! 이여송이 왔소."
  "이여송이라니?"
  "임진란 때 도와준 친구지 누군 누구야?"
  그는 말을 않고 눈을 부옇게 흘겼다.
  경기 광주의 남광우씨 일문은 알려진 집안이다. 그런데 그 문중의 숙질간이 술을 먹고 장바닥에서 멱살잡이를 하고 싸우는 것을 보고 노인 하나가 뇌까렸다.
  "곧은골 남가도 망했군! 장바닥에서 저게 뭐하는 짓들이야?"
  "뭐! 남남끼린데 어때?"
  내가 그 문중 친구들을 놀려주려고 지어낸 얘기다.
  서울 북촌에서 활문사라는 출판사를 하던 분의 성명이 양재기였다. 또 삼각동 보습꽂이에서 함석태라는 이가 치과병원을 차리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사교계에서 이런 말이 유행하였다.
"깨진 양재기에는 함석테를 씌워라."
  이렇게 우리말을 충분히 알아야만 되는 얘기는 외국인 상대로는 통하지 않는 안타까움도 있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일상회화에서 올바른 말을 일부 비뚤어뜨려서 상대방이 새겨들어야 알 수 있게 하는 장난기서린 표현을 두고 곁말을 쓴다고 한다. 그런 유의 말은 듣고 되묻는 것이 아니라 "어금니가 튼튼치 못해서요", 또는 "도장포를 미처 차리지 못했습니다" 한다. 그러나 그 자체가 벌써 곁말이다. 어금니로는 새김질을 하고 도장을 파듯이 새겨야 알아듣겠는데, 그것을 못하겠노라는 소리다.
  "아이고, 배 아파."
  "사촌이 땅을 샀나? 왜 배가 아파요?"
  "요놈! 곁말 좀 작작 써라."
  "rut말(둥겨를 담은 말)을 쓰면 눈깔이 멀게요?"
  "고얀놈 같으니. 한 말(한 마디의 말)이나 져 봐라."
  "한 말 지면(등에 지면)가볍고 두 말지면 무겁습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단다."
  집안 망할 징조라는 뜻이다.
  "벙어리 집은 장맛이 꿀맛 같겠네."
  이쯤이면 말 다했다.
  이렇게 그 속성부터가 점잖지 못한 때문에 어른이 그런 유의 표현을 하더라도 "재담이 좀 과하십니다."고 해야 옳은 대립이 되는 것이다.
  흔히 쓰는 것으로 이런 것들이 있다.
  "이놈의 방 보게, 발길질을 하네."
  차다는 얘기다.
  "거 오리 방석 좀 주구려."
  오리가 깔고 앉는 거라면 연못의 물인 때문에 먹을 물 좀 달라는 소리다.
  설렁탕 집에서 밥을 먹다가 주고받는 말이 있다.
  "아주머니, 오늘 바람이 제게 불지요?"
  "아이구, 죄송합니다."
  바람이 세니까 날아 갈까보아 묵직 하라고 돌멩이를 넣었느냐고 빈정거리는 소리다.
  시골 음식점에서 식사를 시키고 기다리다 지쳤는데, 한 사람이 변소엘 가노라 뒤꼍에 다녀오더니,
  "이제 담바고타령이야."한다.
  내가 의아해서 물었더니 일행 중의 한 분이 되묻는다.
  "이 선생! 색시집에 다니며 약주 안 자셔봤구랴?"
  옛날 색주가라 하여 접대부를 두고 술을 파는 집에서는 어느 정도 술이 돌면 으레 장구를 치고 소리를 돌려가면서 하였는데, 건달들은 이런 것을 '지까다비가 나게 논다'고 하였다. 지까다비는 일본식으로 만든 노동화로, 농사꾼의 신발이라 신이 나게 논다는 얘기다.
  첫 노래로 누가 양산도를 한가락 부르면, 다음 그 노래를 받을 사람이 후렴을 따라 부른다. 배구로 치면 날아오는 볼을 보고 "마이 볼"하는 것이나 같다. 그리하여 다음 차례 가사 한가락을 부르고 나면 후렴을 또 다른 사람이 받아서 본 노래를 부르고 하는데, 몇 바퀴 돌아 양산도 곡조로는 더 부를 것이 없이 되어, 청춘가로 옮겨 부르고 싶을 때 한 사람이 "돌려라 돌려라아 청춘가로 돌려라". 그리고 나서 "이팔이 청춘에 소년몸 되어서..."하고 목청을 뽑는 것이다.
  필자 젊었을 때 이런 모임에서 장난삼아 "삼팔이 청춘에..."로 고쳐불렀더니, 연상의 동료 한분이 "육팔이 청춘에..."로 받아불러서 모두 웃었다. 이젠 구구 가지고는 다 부를 수 없이 됐으니 불역딱호아! 얼마나 딱한 일인가?
  노래를 돌려 부르다 바닥이 나서 다음 '담바고타령'을 하고 싶으면, 그때는 "시작일세 시작일세 담바고타령이 시작일세, 고야고야 담바고야 동래나 울산 담바고야..."이렇게 이제야 음식 만들기를 시작했다는 뜻으로 한바퀴 돌려서 표현한 것이다.

    일본 포대기는 아니고
  제가 나이가 많다고 쭈적거리는 친구에게 하는 말이 있다.
  "이건 끝물 오인가?"
  오이는 끝물이 지면 자라기도 전에 늙어 꼬부라지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앞에서 썼지만 곁말은 점잖은 것이 못된다. 그렇건만 의외의 장소에서 뜻밖의 사람이 한 마디 던졌을 때는 좌석의 분위기가 헝클어져서 좋다. 시무감사를 나온 사람에게 "왜요?"하고 반문했더니, 나이많은 이 시의원 하는 소리 좀 보라.
  "일본 포대기는 아니고 왜요야?"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교사를 신축했다기에 갔더니, 평소 말 없던 한 전직교사가 안내하는 교감에게 묻는다.
  "일본 아주머니도 있나요?"
  "!?"
  "옥상이 있느냐는 말이지 무어야?"
  신구 직원은 한데 어울려 한참을 웃었다.
  한번은 고향엘 다니러 가다가 버스 안에서 농사꾼 영감 한 분을 만났는데, 정류장에서 내리더니 길가 가게에 들어가 지게를 찾아서 지고 나온다. 고추를 따서 푸대에 담아지고 왔다가 고추만 싣고 가 넘기고 온 것이다.
  "거기다 의관을 벗어놓으셨구먼요!"
  일행은 모두가 웃었다. '농사꾼은 지게가 의관'이라는 속담이 있기 때문이다. 옛날엔 의관을 않고는 길을 나서지 못했는데, 지게만 지면 어디에나 갈 수 있대서 하는 소리다.
  노인 한 분을 사귀었는데 상당한 연배이기에 인사삼아 자녀는 몇이나 두셨느냐고 물었더니, "처남의 생질이 하나 있었는데 전란 때 앞서 갔어요."
  처남의 생질? 찬찬히 따져보면 답이 나온다.
  질녀의 약혼식이 있었는데, 우리편 가족들을 소개하고 나서 나는 그랬다.
  "내가 누구라고 말하기 전에 신랑에게 부탁이 있소. 이담에 벌초 좀 잘해주게나."
  사돈댁 가족들은 모두 쑤군거렸다. "처삼촌이지 뭐야?" 처삼촌묘 벌초하듯 한다는 속담이 있기 때문이다.
  이 방면의 아주 차원 높은 예가 하나 있다. 시골집 사랑엔 과객이 심심치 않게 들었는데, 한번은 젊은 승려가 한 분 묵게 되었다. 회심곡이라도 시키면서 놀자고들 하였는데, 이 승려가 저녁상을 물리더니 얘기책을 들고 소리 높여 읽는데 제법 유식하다. 그런데 윗목에서 말꾼 한 분이 초저녁부터 잠이 들어 코를 고는데 소리랑 곡조가 대단하다.
  승려가 얘기책을 엎어놓고 나아가기에 소피보러 갔는가 했더니, 한참만에야 되돌아와 벗어놓았던 바랑을 집어들며 합장을 하고 좌중을 향해 인사를 했다.
  "만첩청산이올시다."
  나아가 이웃의 다른 사랑을 들여다봤더니, 교양 있는 젊은 축이 모여 있어 그리로 옮겨가면서 한 소리다.
  노인들이 모이는 우리 사랑의 영좌님은 웃으면서 평하였다.
  "그놈 한번 멋쟁이다. 자네들 지금 한 말 뜻 알아들었나? 제비가 첫머리에서 뭐라고 했어? '만첩청산 늙은 범이 살진 암캐를 물어다 놓고, 이는 빠져 못 먹고서 으르렁으르렁 어른다.' 저 사람 코 고는 소리가 호랑이 으르렁거리는 소리 같아 여기선 못 자겠다는 얘기야."

    새댁, 배에 땀띠 안 났소?
  어떤 젊은이가 갓 혼인해 마악 첫 정이 들만큼 됐을 때 밑천을 다 날리고 노름때가 꾀죄죄하게 올라 빈털터리 되어 돌아왔다.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을 텐데 그래도 색시가 부엌에 있다. 겸연쩍은 생각이 들어서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집구석이라고 하 여러 날 비워뒀었으니, 오늘 저녁엔 꼬옥 끌어안아 주어야겠군!"
  그래도 아무 응답이 없다.
  "땔나무도 없는 모양인데 나무나 한 짐 해다 줘야겠군!"
  그랬더니, 그제서야 핼끔 내다보면서 말한다.
  "낼까지 땔 나무는 있어."
  "그래그래! 그런 게 좋은 얘기야."
  나는 응석삼아 한 마디 더 했다.
  "어느 시골 동네서 봄에 시집 온 색시가 초여름께 처음 대동 우물에 나왔는데, 동네 수다스런 할머니 중에서도 왕초 되는 할멈이 넌지시 묻는 거여요.
  '새댁, 배에 땀띠 안 났소?'
  색시는 손에 들었던 그릇을 놓쳐서 깨뜨리고 저희집으로 도망갔다가 가을 들어서야 모습을 드러냈다는구먼요."
  선생은 아무런 말씀을 않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다.
  수당 교장을 모신 자리에서 내가 앞 뒤 딱 맞아떨어져서 그야말로 배꼽이 빠질 지경의 얘기를 한 자루 했더니 핀잔을 주신다.
  "그거 얘기라고 틀려 먹었네! 술자리에서 얘기가 길면 누가 끝까지 들어줘야지. 내가 한 마디 할 테니 들어봐." 하시면서 선생이 들려준 얘기다.
  어떤 포수가 산에 가 사냥을 하다가 해가 설핏해서 돌아오는데, 어느 동네 뒤 오리나무 숲 사이 맑은 시냇가를 지나오려니까 다 자란 처녀 하나가 물가에서 무언지 정신없이 빨고 있다. 그래 엉큼한 생각이 들어서 총에다 알을 끼고 뛰어갔다.
  "요년! 산중에서 천년 묵은 여우가 도섭해서 사람의 탈 쓰고 나왔으니 총 받아라!" 처녀가 깜짝 놀랐다.
  "왜 이러십니까? 나를 여우라니요?"
  어쩌구 하는데 꼭 붙잡고 다른 짓을 하고 말았다.
  누구에게 얘기도 못하고 지내는데, 한번은 겨울철 동무 포수들과 주막에 모여 앉았으려니까 늙은 포수 하나가 들어서면서 얘기를 한다.
  "나는 오늘 산에 다녀오다 이상한 일을 당했어. 아무 동네 뒤 맑은 냇가 있잖아? 마악 지나오는데 밉지 않게 생긴 색시 하나가 나서며 부르지 않아?
  '여보셔요, 포수님 포수님. 내가 여운데요, 천년 묵었어요.'"
  이 얘기를 어느 자리에서 했더니 명랑작가 유호씨가 받는다.
  "프랑스의 어느 농가에서 기른 돼지가 성숙해서 암내를 내기에 접을 붙여올려고 리어카에다 올려놓고 밧줄을 동여맸구려! 잡으러 가는 줄로 알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데 동네가 다 시끄러워요. 등성이 너머까지 끌고 가 접종을 시켜서 도로 싣고 왔는데, 점심 먹이를 조합해가지고 가 보니 놈이 축사에 없지 않아요?
  '아버지! 돼지가 우리 안에 없어요.'
  웬일이냐고 부자가 두루 찾으니까 헛간에 놓인 리어카 위에 가 드러누워 있더라나요?"
  같은 구조의 얘기는 달리도 흔하다.
  프랑스의 어느 귀족이 오랜만에 집에 있는데 '쨍그렁'하고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나기에 달려가보니 홀에 장식해놓은 도자기를 처녀 하인이 깨뜨린 것이다.
  "이년! 왜 조심하지 못하고 그랬느냐!"
  거기서 해오는 식으로 무릎에 엎어놓고 볼기짝을 때리는데, 갑자기 엉큼한 생각이 들어 딴 짓을 하고 말았다.
  며칠 뒤 또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으려니 '쨍그렁'한다. 또 고년이 깨뜨린 것이다.
  이와 똑같은 얘기가 일본에서는 어른 앞에서 방귀 뀌는 것으로 되어 있다.

    화류계의 불문율
  반상의 구별이 분명했던 시절, 어떤 선비가 길에 나섰다. 보니 읍내 사는 기생이 죽어 줄무지 상여가 나가는데, 그렇지 않은 가문의 친구 아들이 그 틈에 끼여서 줄을 메고 있는 것이다. 그만 부아가 치밀어서 녀석의 아비를 찾아갔다.
  "그래, 기생년 죽은 행상을 자네 아들이 메고 설치니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그 모양인가?"
  마주 분해할 줄 알았더니,
  "그래?"
한마디 하고 말 뿐이어서 허탈한 기분으로 그 집을 나왔다.
  저녁때 그 집 아들이 벌겋게 볕에 그을러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보던 책을 내려놓고 묻는다.
  "너!기생 죽은 데 줄무지를 메었더라며?"
  "예."
  조금도 수삽해하는 기색이 없다.
  "어느 쪽을 메었데?"
  "앞채를 메었어요."
  "그렇다면 몰라도..."
  기생이 죽으면 평생에 번거롭게 지내던 몸이라고, 꽃상여를 꾸며서 상여꾼들이 메는 것이 아니라 건달들이 메고 농악대를 앞세우고 춤을 추면서 나아가 십자진 거리 곁에 묻는 법이다. 이것을 줄무지라고 하는데, 여느 상여 모양 키 순서로 메는 것이 아니라 떼어먹은 순서대로 메는 것이 화류계의 불문율이었다. 앞채를 메었으니까 다행이지 뒤채를 메었더라면 그 호걸 아버지한테 한 대 얻어맞았을 것이다.


      선조의 외증조부는 아직도 가난해

    인생 칠십에 골이 히잉 하다더니
  일본인들 책에, 저희나라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고 겸연쩍어서 웃은 것을 서양인이 모욕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주먹을 휘둘렀다는 얘기가 몇 군데 나온다. 민족에 따라 감정의 발로가 다르다는 얘기다. 이것을 읽은 뒤로 주의하여 보았더니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다룬 영화에서, 신병으로 뽑혀간 외국소년이 소총을 다루다가 오발을 하고는 고개를 움츠리고 웃는데, 교관도 씽긋하며 눈만 한번 흘겼지 달리 오해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아니하였다. 앞서 일본인이 폭행당한 데는 달리 복합된 요인이 있었겠지 실수하고 웃었대서 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얘기는 바뀌어, 내가 미국에 대해 부러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 넓은 국토와 풍부한 부존자원만은 아니다. 그들은 진취를 가치의 최고로 여기는 때문에 셋만 모여도 토론을 한다. 그들이 신문을 정독하고 부지런히 신간서를 읽는 것도 남과의 토론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 자기 주장을 내세워 논쟁에서 이기자면 어쩔 수 없이 모가 서고, 그것은 곧장 감정으로 연계 발전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들 사회에서는 정색하고 할 대화에도 곧잘 웃음을 섞는다.
  어찌 보면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그런 대화를 그들은 유쾌하게 주고 받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 얘  기를 어느 자리에서 하며 우리의 생활은 진담과 농담의 구분이 분명한데 저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더니, 미국 가서 공부하고 온 제자 하나가 맞장구를 친다. 자신이 그곳 연구반에서 공부할 때, 많은 분량의 보고서거리를 놓고 어쩔 줄을 몰라 하니까 동급생 하나가 다가와 어깨를 탁 짚으며 그러더란다.
  "코끼리를 먹어라."
  '그 큰 코끼리를 어떻게?'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더니 씽긋 웃는다.
  "한 점씩 먹어라."
  한 점 한 점 저며 먹는다면 코끼리 아니라 맘모스라도 먹을 것이다. 저도 모르게 같이 웃고 났더니 마음이 착 가라앉아서 많은 양의 보고서였건만 그날 밤 안으로 다 해낼 수 있었다고 그는 얘기한다. 이렇게 저들은 유머가 생활 켜켜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생활이 매우 유쾌해 보인다.
  그렇게 분방한 그들의 태도가 우리하고는 너무나 동뜨게 느껴지는 경우가 곧잘 있다.
  남의 나라 지도자를 쳐들기가 좀 미안하지만, 미국의 닉슨이 아이젠 하워 대통령 밑에 부통령으로 있었을 때 한국을 방문했는데, 정부에서는 그 당시 명동에 있던 국립극장에서 그를 국빈으로 모셔 연극을 상연하여 감상케 하였다.
  연극 진행 도중 무대장치가 뭉그러져 내리며 그 위에서 연기하던 배우들이 바닥으로 나동그라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닉슨은 그 큰 입을 함박만큼 벌려 "합 하하하" 폭소를 터뜨리며 손뼉을 치고 무릎을 두드려 유쾌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옆의 사람들을 연신 건드리며, 저렇게 재미있는 것을 보고 왜 안 웃느냐는 식이었다. 그런데 배석했던 한국의 고관이랑 부인들은 얼굴 표정 하나 안 바꾸고 그냥 오두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확실히 동서양 생활감정 발로의 다른 점이다.
  웃음에는 무기로서의 기능이라는 일면이 있다. 한 예를 들어, 어린이들이 어른 흉내를 내고 놀고 있을 때 어른이 그것을 보고 웃으면 울음을 터뜨린다. 또 하찮은 일이라도 대중 앞에서 핀잔주거나 빈정거리며 웃었을 때 그 원한은 뼈에 사무친다. 흔히 서양 사람만이 인격을 존중하는 양 떠드는 축이 있으나, 교양의 정도 차이는 있을지라도 우리나라 사람은 남의 불행이나 실수를 보고 웃지 않는 교양을 누구나가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말한다.
  "무엇을 보고 웃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인간됨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점잖음의 정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하겠는데, 자칫 딱딱해질 분위기에서 엉뚱하게 한마디 던짐으로써 전체를 부드럽게 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언동을 '멋있다' 또는 '재미있다'하고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은 '싱겁다'고 그런다.
  한번은 동국대학교에 봉직하는 친구의 출판기념회엘 갔더니, 당시 여든의 고령인 퇴경 선생이 일어서 축사를 하는데 허두를 이렇게 꺼내었다.
  "어떤 사람이 인생 칠십 고래희라는 문자를 잘못 알고,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아 옛말 하나 틀린 것 없데. 인생 칠십에 골이 히잉하다고 하더니, 아 칠십을 넘고 보니 그게 사실이네그랴!'
  내 나이 금년 팔십이올시다마는, 아직 힝할 정도는 아니니 늙은이가 어떻게 다 나왔나 인사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하여서 모두의 마음은 헝클어지고 다음 말씀에 귀가 솔긱해졌었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만약에 그 자리가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이 반반 섞여 있는 자리라면 걸맞지 않았을 것이고, 또 그런 말을 사실로 받아들인 사람이 좌석에 있어도 공기는 어색했을 것이다. 유머의 또 다른 일면이라 하겠다.

    함양군수가 삼국사기 읽다가
  조선 전기에 점필재 김종직이라는 재주있는 학자가 있었다. 그가 경상남도 함양의 군수로 가 있을 때 일이다. 진상으로 바치는 품목에 차가 들어 있었는데, 군에서는 생산되지 않아, 다른 고을에 가 사다 바치는 괴로움을 겪고 있는 것을 알았다. 사실 진상이라면 그 고장 소산으로 일정한 양을, 세금을 대신해 상납하는 제도였다.
  그가 하루는 삼국사기를 읽다가, 신라 때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보내와서 지리산 밑에 심게 했다는 기사를 읽고는 생각하였다.
  '이 고을도 지리산 협곡에 위치해 있으니 혹시라도 그때 것이 남아 있지나 않을까?'
  그래 고을 안의 나이먹은 이들에게 묻고 또 더듬어 찾게 한 결과, 엄천 북쪽 대밭 속에서 몇 무더기를 발견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래 그 땅 가까이 차밭을 일구게 하였더니 잘 퍼져서 몇 해 안에 많은 생산을 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까지의 원님들은 무엇을 했더란 말인가? 그 오랫동안에 얼마나 많은 군수가 거쳐갔으며, 그 모두가 글하는 사람들이라 그 가운데는 '삼국사기' 한번 안 읽은 사람이 없었겠는데 이것을 생산시켜 민생의 도움을 준 분이 선생 한 분뿐이었다니! 역사에 이름을 남길 분은 역시 다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말했더란다.
  "천재는 아무것도 아니할 때 무척 많은 일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천재는 글자대로의 타고난 재주가 아니라, 아흔아홉의 노력 위에 하나의 영감이 작용해 훌륭한 일을 이뤄낸 사람을 말한다. 그들은 매사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주의 깊은 관찰과 열의로 남이 못한 생각을 해낸 것이다.
  그런 이는 성실하게 노력한 분이지, 기발한 착상을 추구하는 이는 아니었다. 따라서 우리도 그들을 본받아 노력한다면, 천재가 하는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선조 임금의 외증조부는 아직도 가난해
  조선 전기에 안탄대라는 분이 있었다. 집이 무척 가난하였더라니 물론 공부도 넉넉히 못했을 것이다. 그의 따님이 어떤 연줄로 궁에 들어가 중종의 후궁이 되어 왕자를 낳아 창빈을 봉했으니 일신의 영예가 비할 데 없다. 하건만 이 양반의 몸가짐이 남달리 검속해서 이웃집의 어린애가 찾아와 야단을 쳐도 나무라는 법없이 그저 조용히 사죄할 뿐 다른 말이 없었다. 혹 누가 왕자님의 외할아버지라고 하든지 하면, 그저 손을 저어 막고 더욱 송구스러워할 따름이었다.
  아예 문을 굳게 닫고 글자 그대로 두문불출, 아무도 만나지 않으며 지냈다. 이윽고 조정에서는 창빈의 둘째 아드님 덕흥군(뒤의 덕흥대원군)의 소생이 들어가 왕통을 이으니 곧 선조 대왕이요, 안공은 왕의 외증조할아버지라, 더할 데 없이 귀한 지위에 올랐다.
  그럴수록 그는 빈천했을 때의 마음이 변치 않아 몸에 주사니옷(명주옷)을 걸치는 법이 없었다. 늘그막에 시력을 잃어 앞을 못 보게 됐는데, 선조께서는 어른께 대한 대접으로 초구(담비 모피로 된 갖옷)를 하사하고 싶으니 그의 고상한 뜻을 꺾기 어려워 사람을 시켜 의사를 떠보게 하였다.
  "위에서 담비 웃옷을 지으셨는데, 공께 내리오시면 감히 안 입지 못하실 거외다."
  그랬더니 아니나다를까,
  "천한 출신으로 그런 옷을 입는 것도 죽을 죄요, 왕명을 어기는 것도 죽을 죄니, 어차피 죽을 바에는 내 분수나 지키면서 죽으오리다."
  왕은 기왕에 준비한 초구를 내리시면서 강아지 털을 바친 것이라고 속여서 입게 했더니 손으로 어루만져 감격하면서 그러더란다.
  "대궐의 강아지는 종류가 다르던가? 어쩌면 이렇게 곱고도 보드라울꼬?"

    대나무 그린 서양사람
  조선 전기에는 중국 명나라와 국교가 유례없이 도타워 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서로 오갔다. 그중에 최립(호는 간이)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뛰어난 글재주를 인정받아 자주 명나라에 드나들며 그곳 명사들과 많이 교유하였다.
  그가 중국에 갔을 때 그곳 문장가 중에도 제1인자로 명서 높던 왕세정(호는 주산인)의 서재를 찾았더니, 마침 서양사람 하나가  찾아와 대나무가 그려진 병풍 위에 서문을 지어 달라고 청하는 것이었다.
  엄주가 지어 놓을 테니 아무날 다시 오라고 승낙하자, 폐백을 드리는데 마차로 한 대분이나 되는 부피였다. 글이나 서와 같은 점잖은 예술품에 대한 사계는 예의 갖춰 피륙으로 하는 것이 예사라, 진귀한 물품이나 직접 돈으로 내더라고 으레 폐백이라고 한다.
  지정한 날짜에 간이가 먼저 찾아가 왕세정의 지은 글을 구경하니, 도도하게 천여 자에 이르는 대문장이었다.
  시간이 되어 정작 부탁한 서양인이 와서 보더니 자못 실망한 눈치라 주인이 물었다.
  "왜 글이 마음에 차지 않아서 그러는가?"
  "천만에요. 감히 어찌 그런 생각을 하오리까마는, 죄송한 말씀이오나 글을 부탁드리러 올 적에 저의 아비가 이르던 말을 미처 여쭙지 못한 것이 죄송해서 그럽니다. '이 대 그림 병풍은 우리집 보물이다. 네가 갖고 중국에 가거든 다른 이는 말고 꼬옥 왕 선생이 지으신 글로, 또는 제일가는 명필의 글씨를 받아서 가져오되 화폭의 여백이 한자로 스물다섯 자밖엔 더 들어갈 수 없으니 그리 알고 부탁드리라' 하였는 것을 지난 번에 잊고 미처 말씀드리지 못하여서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게 되어 죄송하옵고, 이제 다시 부탁 말씀 드리려 하니 감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러하옵니다."
  왕엄주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세상에 어디 글자 수 헤어가며 글짓는 이가 있단 말인가? 다시 짓지는 못하겠노라."
  먼젓번 예물로 들여놓은 물건들을 도로 내어주려 하니, 서양인도 그럴 수는 없다고 굳이 사양하고, 사태는 아주 재미있게 벌어졌다.
  예술인들 사이에는 꼿꼿한 오기가 살아 있고, 또 속에 품은 재주가 소리 없이 고개를 쳐드는 법이다. 최립은 번개같이 영감이 떠올라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스물다섯 자 서문이 무에 그리 어려워서 그러십니까?"
  그 당시 외국에 나가는 우리 사행들은 소매 없는 남철릭을 입고 품수에 맞는 색깔의 술띠를 흉복통에 띠며, 붉은 빛깔의 주립으로 무관의 평사복 차림을 하는 것이 법이다. 서양인은 이 낯선 차림의 이 방인을 무척 기이한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주인이 너그러이 웃으면서 소개한다.
  "이 분은 이웃나라 조선에서 온 분인데, 문장 실력이 대단한 분이외다. 최공! 한 번 지어 보시구려."
  간이는 분을 집어들자 그 자리에서 스물다섯 자 문장을 단번에 써내려갔다. 이런 때 섣부른 통역을 중간에 넣고 하느니 이와 같이 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서양사람으로서 대나무를 그린 이가 있으니
  비 맞은 대는 축축한 맛이 나고
  안개에 서린 것은 희미해 보이며
  눈을 이고 있는 대는 추운 느낌이 드는데
  바람에 불리고 있는 대는 소소하니 금방이라도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구나.
  주인이 무릎을 치며 감탄을 한다.
  "조오타! 정말 실감이 나는 좋은 글이다. 내 재준 가지곤 어림도 없소이다."
  서양사람도 감탄하여 마음에 들어 하고, 이제는 어떻게 명필을 구할까 하고 망설이는 눈치라, 일동은 또 한번 서로 보고 웃었다.
  "왕오군의 필법을 쏙 뽑은 신필이 여기 있는데, 누굴 찾소이까?"
  동행했던 한석봉을 시켜 써서 내주니 서양인은 좋아서 가지고 돌아갔다. 그리고는 왕세정이 서양인에게서 예물로 받은 것을 간이와 석봉에게 주려고 했다. 굳이 사양했으나 막무가내라. 하는 수 없이 받아서 동행했던 일행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옥견이 솜씨 같다이
  세종 대왕은 아드님이 많아서 정실인 왕비에게서 낳은 대군이 8형제고, 후궁들 몸에서 10형제를 두었다.
  맏이인 세자 몸에서 첫 손자를 보았으니 이분이 뒷날 비극의 주인공인 단종이다. 의당 유모를 들여야겠는데 가뜩이나 복잡한 궁중에 새 사람을 들였다가 그 떨거지들마저 뛰어들어 설치는 날이면 더욱 골치아프겠어서 대왕은 다른 방책을 세웠다. 당신 후궁들 중에서 젖흔한 이로 봉보부인을 사맞. 그리하여 뽑힌 분이 혜빈양씨다. 한남,수춘,영풍의 세 왕자를 낳아 받쳤는데 영풍군이 아직 강보에 있고 유도도 흔해서 이분께 맡긴 것이다. 그러니까 단종은 영풍군과 같은 무릎에 앉아 양쪽젖을 갈라 자시는 기연을 맺어 위의 두 왕자와도 자연 친형제처럼 섞여 자라게 된 것이다.
  세종이 승하하시고 문종마저 단명사히자, 둘째 왕자 수양대군의 야심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공사가 혜빈 양씨의 세력을 꺾는 일이라, 맏이인 한남군은 죄를 씌워 경상도 함양으로 귀양을 보내고, 막내 영풍군이 하필이면 박팽년의 사위라, 선위하던 날 어머니와 함께 현장에서 박살을 당해 묘소마저 없다. 가운데 수춘군은 시세를 비관하고 식음을 전폐하여 그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이 소란통에 한남군의 아들 흥안군도 폐족이 되어 가산을 적몰당하고 거리로 쫓겨났으니, 당당한 왕손이건만 때를 잘못 만나 처량한 신세가 된 것이다.
  옛날엔 가장 손쉽고 그래서 또 가장 비참한 직업이 짚신장수였다.
  겨울에도 물 안 때는 움파리에 모여앉아 힘들어 다른 일은 못하고 짚신을 삼아 팔아서 연명하는데, 대개는 의지할 데 없는 홀아비 늙은이나 불구자들이 이 일에 종사하였다. 그렇게 만들어낸 짚신을 10켤레씩 모아 거래했는데 그 솜씨에 따라 값에 차등이 날 것은 물론이다.
  흥안군도 밥은 먹아야 살겠어서 이 틈에 끼어들었는데, 흥안군의 아들 옥견이라는분이 짚신 솜씨가 좋아 자안에 이름이 났다. 그래 건달들이 기생에게 선물은 해도 '옥견이 솜씨'의 짚신이라야 환심을 샀다. 그러니 그의 영업도 번영했을 것이다.
  그런 중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바뀌었다. 중종조에 이르러 일찍이 세조손에 희생된 모든 분의 명예를 회복할 제, 한남군과 아버지 흥안군의 지위도 복구되고, 이미 중년의 솜씨좋은 짚신장순 옥견도 회천정을 봉행 정 3품 창선대부로 발바닥에 흙을 묻히지 않는 신분이 되었다. 사모품대로 위의를 갖추어 구종 별배를 앞뒤에 거느리고 사인교를 타고 출입하는 어엿한 지위로 되돌아간 것이다.
  엊그제까지 받던 천대를 생각할 때 얼마나 뽐내어 자랑하고 싶으랴만 그게 아니다. 받던 천한 직업에 종사하면서도 공력을 들여 남 다 못해 내는 솜씨를 발휘하던 그 성실한 사람됨은 바탕부터가 가르다.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더니 하인 견마 집히고 거리에 나왔다가라도, 옛 동업자를 만나면 반드시 내려서 손을 잡고 반겼다. 굳은살도 안 빠지 예전의 그 손이언만 옛 동료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높은 되신 처지에 우리 같은 것을..."
  그들은 감격의 눈물을 지었다.
  그뿐이 아니라 존장 어른을 뵈면 길에서도 절을 했다. 상대방이 미안해서 눈에 뛰면 미리 숨어버릴 형편이다. 관대차림으로 지나가다가도 시간만 허락하면 주막에도 함께 들렀다.
  "어이구!아게 누구셔? 우리 같은 거 집에 다 오시다니..."
  "무슨 말씀을? 옛날의 옥견이가 그 옥견이지 어디 간답니까?"
  "아이구 사위스러워라. 그러나저라나 앉으실 데도 만만치 않고 무어 차려놓은 게 있어야지..."
  "옛날 그대로가 좋아서 온 사람이니 수선 너무 떨지 말구. 자! 어서..."
  이 인정미 넘치는 이야기는 광해군 때 문장가 유몽인의 ??여우야담??에 실려서 전하며, 이런 얘기도 덧붙이고 있다.
  구분 자손으로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난 의성군이라는 있었다. 마침 손님과 장기판을 가운데 놓고 앉았는데 장기 만든 솜씨가 일품이라는 곁의 친구가 집어보고 감탄하며 무심코 한다는 말이, 
  "거 참 잘 만들었다. 마치 옥견이 솜씨 같아이."
  "?!"
  내 주변이라고 출세하고 성공한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쓸데없는 허세가 들씌웠을 때는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다. 지위 높고 재산이 많아 인정미가 가신다면, 그까짓 지위나 재산. 조금도 부럽지 않다. 된장찌개 한 가지라도 인정이 담겼어야 제 맛이 나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상대
  옛날 무기에 쇠뇌라는 것이 있다. 총대 같은 나무 대 끝에 활을 장치해 바짝 당기어서 틀에 걸어가지고 목표물을 겨냥해 걸쇠를 당겨 퉁겨서 쏘는 무기다. 활처럼 목표물을 보고 나서 당기는 것이 아니라 재어서 가지고 있다 쏘게 되니까 효율이 훨씬 뛰어나다.
  수나라 양제가 30만 대병을 거느리고 침공해온 것이 고구려 영양왕 23년이다. 견디다 못해 고구려는 항복하겠노라고 사신을 보냈는데, 양제가 그들을 배 안으로 맞아 왕이 올린 항복 문서를 막 읽는데 따라갔던 사람 중의 하나가 품 속에 감춰가지고 간 조그만 쇠뇌로 양제의 가슴 복판을 쏘아 맞췄다. 그 때문에 관통했을 것이고, 이런 장난감 같은 조그만 것이라면 살촉에 무서운 독약을 발라 의당 죽었을 것인데 거기 대해선 기사가 없다.
  화약이 발명되기 전이라 전쟁무기의 연구 개량은 각 국이 모두 쇠뇌나 사다리차 또는 거북이차 같은 성을 공격하는 무기에 힘을 쏟았다.
  신라가 오랫동안의 거국적인 노력 끝에 삼국을 통일한 이면에는 이런 방면의 많은 연구가 있었을 것은 물론이다.
  백제와 합동하여 한강 연안을 수복하고는 백제의 세력을 내몰아 서쪽 해안에 진출하여 당과 손잡을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원교군공, 먼데 나라와 손잡아 가까운 곳을 협공해 치는 역사적인 수법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넘어뜨리는 데 성공했으니, 동상이몽이라고, 같은 침대에 자면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더니, 두 나라 사이가 그 꼴이다. 당나라가 신라 좋으라고 군대를 풀었을리 만무하고, 신라도 동족의 나라를 이민족에게 팔아먹으려는 뜻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좋은 체 갖은 교태를 다 부려 그들 눈앞에 노랑수건을 흔들어야 했으니 딱한 노릇이다.
  문무왕 9년 백제를 멸한 지 6년째요, 고구려가 지도에서 사라진 바로 이듬해다. 그해 겨울 당나라 사신이 임금의 조서를 갖고와 전하고, 쇠뇌 만드는 기술자로 구진천을 데리고 돌아갔다. 사손이라고 현령 정도의 과히 높지는 않아도 그 방면의 기술자 중대를 이끄는 장쯤 되었을 것이다.
  너희 나라 방식으로 어디 목노를 한번 만들어 보라는 명령을 받고 한 대를 만들어 바쳤는데 화살이 30보밖에 안 나간다. 보라면 두 발자국 곧 한 칸 길이가 된다. 30칸 거리면 50m, 이까짓 거 가지고는 실전에 소용이 안된다.
  "듣자하니 너희 나라에서는 쇠뇌가 1천 보를 능히 간다던데, 겨우 30보밖에 안 나가는 것은 어인 일인고?"
  당나라 황제의 물음을 받고 그는 아주 공손히 대답하였다.
  "글께올시다. 아마 재료가 같지 않아서 그런가 싶사옵니다. 만약에 본국에서 재목을 가져온다면 만들 수 있을지... 여기 재료 가지고는 도무지..."
  머리를 긁적긁적 했는지는 미처 모르겠으나, 황제는 그의 말을 따라 신라에 기별하여 재목을 들여오게 하였다. 그 동안 몇 달 좋이 걸렸을것이니 술밥 거저 얻어먹고 편히 지냈을 밖에.
  신라에서는 복한이라는 대내마 지위에 있는 사람을 시켜 재목을 실려보냈다. 나라 사이의 일이라 좋은 재료로 곧 많이 보냈을 것이니 구진천은 다시 깎고 맞추는 일을 해야 했다.
  여러 날 걸려 완성된 것을 쏘아보니 이젠 겨우 60보밖에 안 나간다.
  넉넉히 잡아 100m 거리니 야전이고 공성이고 별로 큰 효과가 없다.
  재료가 틀려 그렇다더니 너희 나라에서 들여왔는데 왜 이 모양이냐고 까닭을 물으니까, 겉으로는 겸손한 체 자못 유들유들하게 대답한다.
  "글쎄올시다. 신도 그 까닭을 모르겠사와요. 아마도 재목이 바다를 지나오는 사이 습기를 먹어서 그런 거나 아닌지..."
  당나라 사람들이라고 그 켯속을 짐작 못할 이가 없다. 재주를 다 내놓도록 어르고 달래고 별짓을 다 하였지만 소용 없었다. 정작으로 재주를 다해 천 보는 몰라도 화살이 그 절반만 나가도 당시로서는 신예의 위력있는 무기다. 그것이 누구를 겨냥하게 될 것이냐를 잘 아는 그이기에 고양이로 치면 발톱을 끝내 내보이지 않은 것이다.
  하기야 너희 나라하고는 친교가 있는 사이 아니냐? 또 신라같이 산이 첩첩한 나라에서는 별 소용 안 닿고, 서역으로 평야를 달려 오랑캐를 치려는 것이니, 그 방면 책임자를 시켜주마, 좋은 집을 주마, 홀몸으로 가 있을 테니 장군의 딸로 장가를 들여주마, 무슨 유혹인들 없었겠는가?
  어떤 협객은 말하였더란다.
  "아무것도 싫다는 놈처럼 다루기 힘든 상대는 없다."
  술과 계집과 재물도 지위도, 세속에서 귀히 치는 것에 어느 하나도 나는 싫다니, 이런 귀찮고 괴로운 상대가 어디 있나? 먼저 수나라 양제를 저격한 일행도 단 한 사람 살아 돌아가진 못했을 것이다. 목숨조차 싫다는 독종들이니 애먹었을밖에. 구진천에겐들 얼마나 위협이 따랐으랴? 서역 원정에 병정으로 딸려보낼 테다, 병신을 만들어 놓겠다, 죽이겠다...그래도 꼼짝 않았으니 신라왕이 좋은 신하 둔 것을 부러워 했을 게다.
  맹자는 말씀하였다.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의 도를 행하여서 부귀로도 그를 더럽히지 못하고, 빈천으로도 그의 뜻을 돌려놓지 못하며, 위무로도 굽히지 못할 때, 이를 대장부라 한다."
  일개 활 만드는 기술자로, 만리 타국에서 고향땅 가족들을 그리며 외로이 말년을 보냈을 그의 심경을 생각해 보면 감회가 깊다.

    배주부가 알아본 글씨
  주인공 되는 조모라는 분은 물론 상당한 벼슬자리에 있고, 또 처신이 고결하여 사회의 칭송을 받는 분이었다. 그가 하루는 오래간만에 한가한 시간이 생겨 하인 하나만을 데리고 나귀를 몰아 대문을 나섰는데, 사실은 어디라고 뚜렷한 목표도 없이 심심하니까 그저 바깥 구경이나 할까 하고 그래서 나섰을 뿐이다.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연전에 작고한 매형 생각이다. 촉망받는 분이었는데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가 혼자된 누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바느질품으로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고 계산 터이다.
  "옳지! 게나 가 보아야겠다."
  그래도 살던 끝이라 아담하게 꾸민 집의 중문을 들어서니 그댁 하인이 알아보고 반색을 한다.
  "마님! 사직골 나리께서 행차하셨사와요."
  옛날 법에 조관이라고 하여 양반이 하는 나라벼슬은 정1품부터 종9품까지 9품수에 정과 종이 있어 18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6품 이상은 정.종 품수 안에 다시 두 계층이 있어서 모두 30계단이다.
  정3품은 동반일 경우 통정대부와 통훈대부로 갈리고, 서반을 절충장군과 어모장군으로 나누어서, 통정대부와 절충장군은 같은 정3품이면서도 당상관이라 하였고 나머지 둘은 당하관 품계였다.
  정2품 이상일 때는 대감이라는 칭호를 올리고, 종2품과 정3품의 당상관을 영감이라고 불렀으며, 그 이하는 모조리 나리라 하는 법이었다. 그러니까 벼슬 지위가 높으면 젊은 영감도 있게 마련이나, 당상관에 오르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구 어쩐 일이셔? 동생이 우리 집엘 다 납시니."
  누님의 영접을 받으며 대청에 올라서 보니, 잘 정돈된 안방 방바닥엔 중국에서 들여온 좋은 비단이 이제 옷을 마르려고 펼쳐져 있다.
  "동생, 잠깐 앉아 계시게. 내 장국상 차릴 테니. 그동안 심심하더라도 잠깐 앉아 계셔야겠네."
  앞치마를 두르며 호들갑을 떨고 뜰에 내려서 갔는데, 동생 되는 나리는 딴 생각이 들었다. 방안을 휘 둘러보니 매형이 쓰던 문방구가 그냥 있는데, 아껴 쓰던 용연도 그대로다. 얼른 잡아당겨 물을 붓고 먹을 갈았다.
  "이크! 알맞은 크기의 붓도 그냥 있고..."
  말이 장국상이지 오랜만에 찾아온 동기를 대접하려고 점심상 차리는 덴 시간이 적지 않게 걸렸다. 그게 오히려 다행이지. 나리는 잘 갈린 먹을 붓에 찍어 공글렸다. 그리고는 예의 중국 비단을 폭 맞춰 방바닥에 깔아 폈다.
  슬쩍 안마당의 기척을 살피고 나서 팔을 걷어붙이고 무릎걸음으로 비단 앞에 섰다. 고문진보나 문장궤범에 실린 글은 달달 외우는 터라 그중의 좋은 글 하나를 책을 보지 않고 웅얼거렸다. 붓끝은 사뭇 바람을 일구어 행초 섞어가며 써 내려가는데, 얘기쟁이 표현마따나 소맷자락에서 비파 소리가 날 지경이다.
  "아이구, 저걸 어쩌나?"
  점심상을 마루에 놓으며 소스라쳐 놀라는 누님을 "쉬이잇!" 손을 저어 제지하고, 여울에 흐르듯 용트림치며 내려가는 필세에 누님도 혀를 내둘렀다. 동생이 명필이라는 말을 들어왔지만 참으로 놀랍다. 마지막 서명까지 하더니, 이마에 솟은 땀을 소맷자락으로 닦아올리면서 물러나 서서히 훑어본다. 그리곤 히죽이 웃는다.
  "누님! 모처럼의 바느질감을 버려놨으니 어떡하우?"
  "얘 칠복아. 이것 갖고 종로 육주비전 배주부에게 갖다 주고 이와 똑같은 비단으로 한 필, 그리고 돈을 줄 테니 쌀과 나무를 사서 지워가지고 오너라."
  방엔 글씨가 마르지 않은 채 있어서 점심상은 마루에서 받았다.
  "역시 우리 누님이셔. 술도 마련하셨구려! 글씨를 쓰고 나서 컬컬하니 그냥 이 공기에다 부어주슈."
  연거푸 몇 잔을 들으키고 다른 음식도 걸신들린 사람 모양 탐스럽게 자셔 치웠다.
  "동생! 식성은 변하지 않으셨네그랴?"
  "그게 아니어요. 흥이 나서 글을 쓰고 나니 이렇게 먹히는 거지요."
  퇴침을 끌어당겨 하인 칠복이가 돌아왔는데 아, 이게 다 뭐지? 쌀이 몇 섬, 나무가 바리바리... 그것만이 아니다. 마루가 쾅 하도록 돈도 한짐을 내려놓았다.
  나리가 일어나 앉아 싱그레 웃었다.
  "역시 배주부가 알아보는군!"
  그뒤로 나리는 누님에게 졸리고 배주부에게 부대끼었다. 그때 그런 글씨 다시 한번 써달라는 거다.
  "그런 글씨가 그렇게 쉽게 써지나요?"
  

      잘못 들어온 재산

    무식쟁이 사위의 때늦은 결심
  조선 초기 세종 때 문신인 양성지의 손자로 연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에 얽힌 얘기다. 젊어서 탁형불기 하였다했으니 아마 상당한 왈가닥이었던 모양이다. 그만한 명문에 났으면서도 글공부를 안한데다가 40세가 되어서야 학문을 시작했다 하니, 아마도 무언가 크게 인생의 방향을 틀어놓을 만한 커다란 충격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하여간 커다란 결심을 하고 발분하여 북한산 중흥사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만약에 문장을 이루지 못한다면 손을 펴지 않으리라."
  왼손을 오므려 주먹을 꽉 쥐고 잠자는 동안에도 펴질 않았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듯이 그까짓 결심 며칠이나 가랴 할지 모르나, 이 분만은 그게 아니다.
  한 일 년 공부 끝에 문리가 확 틔었다 했으니 대단한 속성이다. 시 또한 격이 높아서 한번은 그의 장인께 보냈는데,
  책상머리에 등빛이 어둡고
  벼루에는 물빛이 말갛습니다.
  관성(붓)은 내 바라는 바요
  겸하여 저선생(종이)도 바라옵니다.
  달리 말하면'의당 밝아야 할 책상머리가 어둡다 했으니 초 좀 달라는 얘기고, 벼루물은 까매야 하는 것인데 말갛다니 먹이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붓도 바라는 것이지만 아울러 종이도 좀 보내 주십시오' 했으니 문방사우라면 본래 먹 . 붓. 벼루와 종이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벼루 대신 초를 써넣어서 이 모두를 보내달라는 얘기다.
  무식쟁이였던 사위 솜씨로 지어서 써보낸 이 멋진 시를보고 그의 빙장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소망하는 물품과 함께 장난으로 글 한 줄을 써보냈다.
  양씨 선비가 사십에사 산당에서 독서하니 아아 늦었도다.
  이것이 널리 알려져 당시의 멋진 얘기로 전하였다.
  그 뒤 중종 19년에 과거 급제하여 결심했던 목적을 달성하고, 그제사 굳어진 주먹을 펴니 손톱이 자라 손바닥까지 파고들었더라고 한다.
  물론 벼슬길에 나아가 순조로이 승진을 거듭하는 사이 소신껏 일했다. 대사헌으로 있을 때는 김안로.채무택.허항등 권세를 잡아 농간부리던 무리들을 따져서 벌주어 조정 공기를 맑게 하고 그 공로로 좌찬성에까지 올랐다. 중종 37년에 별세했다 하니 18년 동안에 한 일이라 늦게 시작한 벼슬길이었지만 그의 공적은 다른 사람이 평생을 걸려도 못 다할 일을 해냈다 할 만하다.
 
    그렇게도 유난을 떨더니
  조선 중기 광해군 때 활약하다가 인조반정 후에 잡혀서 죽은 대문장가에 유몽인이라는 분이 있다. 서예에도 뛰어난 재주를 보였고, 설화를 모아 어우야담이라는 책을 엮었는데 어우는 그의 별호다.
  이 책 가운데 채록되어 있는 얘기로 주인공을 소개하면서,
  "연운의 자는 태공이니 거부장자라."하였는데, 별로 들어보지 못하던 성이다.
  예쁜 딸이 하나 있어서 남달리 사랑스러워 그에 걸맞는 미남자를 구해 사위를 삼겠다고 화공을 고용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의 몽타주를 하나 그려냈으니, 그리는 동안 아마 잔소리깨나 했를 것이다.
  얼굴은 둥글지 않고 옳지! 옳지! 그 정도로 갸름하게, 광대뼈가 너무 나와서는 못쓰고, 눈귀는 올라가서도 안 되고 처져서도 못쓰며, 눈은 봉의 눈으로 인자하게, 코끝을 뭉둑해야 하고...
  웬만하면 유난한 주문에 화공은 붓을 팽개쳤을 것이다.
  주인은 한다 하는 부자라 사례금도 듬뿍 받았겠다, 하여간 진땀을 빼며 잔소리를 머리가 희도록 들은 끝에 한 남자를 꾸며 그려서 당대에 둘도 없을 미남자로 창출해 내었다.
  이 그림을 표구해 족자로 꾸며서 대문 위에 걸고 광고하였다.
  "꼴 이렇게 생긴 남자가 있거든 찾아오라. 사위를 삼으리라,"
  그런 미남자가 쉽게 나타날 리 없다. 날마다 지나가는 이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 한다 하는 총각들이 찾아와 봤으나 스스로 제 얼굴과 비교해 보고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들 갔다.
  수염을 길게 드리운 점잖은 노인이 지나가다가 그 기림을 보고 놀라며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면서 "도련님 여기는 웬일로 와 계시옵니까?"하고는 바짝 다가가 자세히 보더니 또한번 뇌까린다.
  "왜 아무런 대답이 없으신가 했더니, 이런 제에기 그림이야? 그렇기로 신통도 하지, 우리 댁 도련님을 어쩌면 이렇게 쏙 빼놓은 것처럼 그려놓았을까?"
  물론 지키던 하인은 곤두박질을 쳐서 주인에게 들어가 그 사실을 고하고, 주인도 마음이 황홀해서 그 하인에게 뒤를 밟아가 어디사는 뉘댁인가를 확인해오도록 일렀다. 그리하여 혼담이 오가고 정혼이 되어 이제 예만 치르면 될 단계다. 이면엔 곡절이 있다. 이 댁 신랑이라는 것이 사실은 병신이라, 병신도 이만저만 흉칙한 게 아니었다. 한 눈은 멀고 다리 하나는 절며 한 팔을 쓰지 못하고, 낯이 고석매(속돌로 만든 맷돌)처럼 얽은데다가 검기는 왜 그리 검은지? 그렇건만 묘하게도 재산은 남부럽지 않게 많아서 부자로 소문이 난 가문이다. 
  그래 한다 하는 중매쟁이를 매수하여 혼처를 구했다가 납폐까지 하고도 되돌아온 것이 3번이요, 중매할멈이 욕먹고 쫓겨 돌아오기를 수없이 한 그런 상대다. 
  물론 부모는 애가 닳아 무당에게 묻고 장님에게 가 점치면, 예외없이 미인에게 장가들 거라고 하여서 그것만을 믿고 차일피일하기 실로 몇 해더냐? 신랑의 나이 30세하고도 여덟이 되고 말았으니. 그런데 그 집 하인 중에 능글맞은 자가 아마 주인에게 은혜도 많이 받았던지 멋진 연기로 혼인을 성사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연극으로 치면 서막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길일이 다가와 주인은 재물을 흩어 하인이랑 동네 사람의 입을 막았다. 신랑은 분장하여 날이 어둑어둑할 무렵 길차려 떠나는데, 얼굴에는 분을 두껍게 바르고 옷을 흐르리하르리 겹쳐입어 저는 다리는 목발로 괴고 팔을 소매 속에 팔짱끼어 의젓하게 내세웠다. 
  초례청에 들어서 부축을 받으며 저하여 예를 마치고, 이제 신방에 들어 색시와 마주앉아 상우례를 시킬 차례인데 일대 이변이 일어났다. 
  사랑채 지붕 위에 전신이 활활 불꽃으로 덮인 거인이 나타나 주홍같은 입을 열어 외쳐대는 것이다. 
  "네 이노옴! 장자야 나오너라. 나는 동쪽 늪을 오래도록 지켜온 화룡이니라. 내 혼자 지내기 쓸쓸하여 너의 딸로 배필을 삼으려 점찍었었는데 내 뜻도 물어보지 않고 딴 놈에게 주어? 이미 남의 것이 된 이상 심청이와 놀겠다. 네 이놈! 신랑의 눈을 멀게 하리라."
  신랑이 벌떡 일어났다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다리를 거머쥐고 나자빠졌다. 
  "이노옴! 그걸로 내 분이 풀릴 줄 아느냐? 네놈의 팔을 부러뜨려 놓으리라."
  신랑이 외발로 솟구쳐 일어섰다가 모접이로 쓰러지는데 억지로 일어앉는 것을 보니 한 팔이 벌써 뒤틀어젔다.
  "어이 후련하다. 그렇기로 네 내놈의 얼굴을 그냥 둘 줄 알았더냐? 너의 얼굴을 얽고 칠을 하노라."
  온 집안이 난가가 되고, 장모랑 식구들이 마당에 내려서서 손이 발이되도록 빌고, 화룡은 불꽃 타오르는 양팔을 들어 위협하는 자세를 짓고는 지붕 너머로 소리없이 사라졌다.
  망연실색한 가족들은 잠깐 사이에 볼썽 사나운 병신이 돼 되린 신랑의 몰골을 보고 눈물지었다.
  "화룡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을 이꼴로 만들어 놓는단 말인가?"
  "그래도 얘야, 용에게 시집간 것보다야 낫지 뭐냐? 용과 산다면 그것은 물에 빠져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얘기지 뭐냐?"
  이리하여 유난을 떨뎐 연 부자는 어이없이 병신사위를 보고도 체념해야만 하였다.

    제주도로 유배 간 광해군의 어느날
  조선 왕조에서 폐출되어 임금 자리를 쫓겨난 인물로 광해군이 있다.
  그는 임진왜란 때 신세도 졌고, 역대로 평화롭게 사귀어온 명나라의 세력이 날로 기울어가고, 만주족 청의 세력은 나날이 강성해지는 틈바구니에서 등거리 양면 외교로 고식적이나마 잘 버티어온 완조의 주인고이다.
  그런 그가 사생활에는 엉망이어서 하필이면 선왕의 후궁인 개시를 사랑하여 수령방백이 그녀의 손에 좌우되고, 동기간인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심지어는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하여 아무리 계모라도 폐모하기에 이르자 뜻있는 이들이 군사를 일으켜 능양군을 세우고 왕위에서 몰아내니 이른바 인조반정이다.
  이렇게 왕위에서 폐출되었어도 호칭에는 군을 붙였는데, 세조에게 밀려난 단종도 복위되기 전 노산군으로 불리었고, 연산군은 나면서부터 세자라 폐위와 함께 주어진 칭호이었으며, 광해군은 본래의 군호가 그것이었다. 이렇게 군으로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실덕하여 왕노릇한 것도 없고 세자로 있던 것도 아니라 해도 선왕의 아들인 것만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지라, 왕자로서의 예우만은 지키는 체통이었던 것이다.
  그분들의 최후도 단종은 목을 졸려 비명에 돌아간 분이니까 말할 것도 없고, 연산군은 폐위 강봉되어 강화 교동으로 귀양갔다가 오래지 않아 더위에 곽란으로 급서하였다 하는데, 향년 33세이니 아무래도 타살의 혐의가 짙다. 아무튼 그의 묘는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데 묘역을 꾸민 석물이랑 그래도 왕자의 예묘를 갖추고 있다.
  광해군은 선조 8년에 태어나 1608년부터 15년간 왕위에 있다가 밀려나 인조 19년까지 생존했으니 그런 대로 천수를 다했다 하겠다.
  그 사이에도 공신들 사이에서는 슬쩍 해치워 버리자는 공론도 있었으나, 모진 목숨을 부지하여 처음에는 가오하도에서 귀양살이하다가 다시 제주도로 유배되었는데, 그야말로 볼일 다 본 터에 대접이 온전할 까닭이 없다.
  어느날 이상하게도 전에 없이 공궤가 깨끗하고 좋아져서 폐주는 이런 말을 하였다.
  "이렇게 처우가 달라졌을 제는 아마도 전일 나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이 제주목사로 왔는가보이."
  그랬더니 따라와 모시고 지내는 늙은 궁녀가 그런다.
  "그렇진 않을 것이옵니다."
  "그것을 그대가 어찌 아노?"
  "생각해 보십시오. 마마께서 재위하시는 동안 신하들 승진이나 보직을 모두 궁인들의 말이나 듣고 처리하셨사온대, 그렇게 뒷구멍이르 손을 써서 출세한 사람이라면 제 밑이 구려서라도 일부러 마마께 박하게 굴어 전혀 그렇지 않았던 양으로 꾸밀 것이옵니다. 그런 용렬한 인간들이 어떻게 감히 마마를 특별히 정성껏 받들어 모시겠습니까? 아마 옳은 가문에서 바로 배운 공자가 도임해 왔을 것이옵니다."
  뒤에 차차 알아보니 새로 취임한 목사는 이시방으로 반정공신 중에도 원훈인 이귀의 둘째 아들이요, 자신도 형 시백과 함께 정사 이등공신에 오른 사람이다. 말하자면 광해군을 내어쫓은 가문이요 장본이다.
  그가 제주목사로 와보니 광해군이 거기 안치돼 있어 주방에다 단단히 이른 것이다.
  "비록 실수는 했어도 왕자요, 십여 년이나 임금으로 받들던 분이다. 추호라도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니라."
  그러다가 광해군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바닷길이 하 멀어 일일이 중앙에 품해 지시를 기다릴 길이 없다. 곧장 섬 안의 관원들을 데리고 소복하고 들어가 친히 수시 걷고 염습까지 말끔히 하여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아마 망인도 영혼이 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나는 못된 놈의 꼬임에 빠져 어머니도 폐했는데, 이미 왕의 몸도 아닌 나를..."
  이 사실이 알려지자 대간은 무슨 일이고 트집잡아 따지는관원인지라 멋대로 처사한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모두들 잘한 일이라고 공론이 돌아서 부사하였다.
  그는 뒤에 벼슬이 호조판서에까지 올랐고 시호를 충정이라 하였으며 자소도 크게 번창하였다.
  그가 수습한 광해군의 묘소는 현재 남양주군 진건면 송릉리에 부인과 함께 모셔 있다.

    제 돈 제가 삼켰는데 무슨 큰일이라고
  조선 왕조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차례로 치르고, 그 상처가 조금 아물기 시작할 무렵부터 조정의 기강은 썩기 시작했다. 외척이라고, 첫 번째 임금에게는 처가이지만 다음 대부터는 외가가 되고 진외가가 되는 가문에서 조정의 처사를 간섭하기 시작해 그들은 국사에 앞서 자기네 가문에 이익될 일부터 생각하였다. 가장 쉽게 돈생기는 길이 매관매직으로 벼슬 자리를 파는 일이다.
  서울의 명물이라면 좀 미안하지만 정수동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남다른 재간이 있었지만 가문이 낮아 듯을 펴지 못하고 지내던 사람이다.
  그가 사귀던 대감이 누구에게 돈 2만 냥을 먹었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상했다.
  "그 분만은 그렇지 않을 사람으로 알았는데..."
  하루는 대감댁을 심방했더니, 그 집 행랑 사는 하인 내외가 우는 어린 것을 붙잡고 쩔쩔 맨다.
  "왜들 그러나?"
  "글세 돈을 삼켰지 뭡니까? 가지고 놀라고 엽전 한 닢을 줬더니 입에 넣었다가 그만 삼켜버려서..."
  "그게 누구 돈이지?"
  "그야 녀석에게 줬으니까 제놈 돈입지요."
  "그래!"
  사랑에까지 들리도록 목청을 돋우어서 떠들었다.
  "염려 말게. 주인대감은 남의 돈 2만 냥을 삼켰어도 끄덕 없는데, 제돈 한 푼 먹은 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물론 주인이 들었고, 그는 부끄러워서 그 돈을 원 임자에게 돌려주고야 마음이 후련해졌다고 한다.
  그럴 무렵에 경기도 포천에 원님 하나가 왔다. 이 자가 정사를 돌보는 것은 둘째고 돈 나올 구멍부터 눈여겨 살폈다. 그러고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긁어들였다.
  이런 것을 예 어른들은 갈퀴질이라고 하였다.
  이러다간 포천 고을에 기둥뿌리도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 쑤군쑤군 사방에서 공론이 일었다.
  "이 자를 어제까지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단 말인가?"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전갈이 통하여 온 고을 안이 뜻을 모았다. 그대로 들고 일어나 소란을 피우면 이를 민요라 하여, 폭행.약탈에 살상으로까지 번지는 수가 있으나, 여기는 이웃 영평과 함께 양반고을로 치는 곳이다. 그래 아주 조용히 원님이라는 자를 집어다 내버리기로 하였다.
  둥우리라고 닭 키우는 제구가 있는데, 놓아 먹이는 닭이 올라가 달걀도 낳고 품어서 병아리를 까도록 그냥 위가 열려 있는 것이 있고, 닭을 산 채로 넣어 장터까지 지고 가는 상자같이 생긴 두 종류가 있다. 둥우리에 넣어 지고 간 닭은 장터 바닥에 누구나 보게 말뚝을 박고 발목을 매어놓고 팔았다.
  사람 타는 가마를 닭의 둥우리처럼 새끼줄로 결어서 메고 들어가, "원님 둥우리 타시오." 하는 날이면 꼼짝없이 타야 하고, 그러면 여럿이 메고 가서 지경 밖에다 팽개치는 것을 둥우리 태운다고 하여 조정에서 파면당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게 큰 망신을 당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갈퀴질의 명수인 원님은 둥우리를 타고 서울 가까운 양주 지경 축석령 고갯마루 땅바닥에 팽개쳐졌다. 그런데 이 자가 울어도 시원치 않을텐데, 맨바닥에 주저앉은 채 하늘을 쳐다보면서 껄껄거리고 웃는 것이 아닌가?
  "저거! 너무 충격이 커서 아주 미쳐버린 거 아냐?"
  군중 가운데 하나가 다가가서 물었다.
  "원님! 무엇이 우스워서 그리 웃소?"
  "너희들 못난 짓 하는 것이 하도 우스워서 웃는다."
  "단신 신세는 이제 끝장인데, 우리가 무엇이 못났단 말이요?"
  "야 이 사람아! 이 안 남는 장사를 누가 한다던가? 내가 이 고을 원을 5천 냥 주고 사서 해왔는데, 어제까지 모두 만 냥을 거둬들였으니 이제 남은 임기 동안 좀 옳은 정사를 펴보려고 했는데, 그 동안을 못 참아서 나를 둥우리 태워? 며칠 안 있어 만 냥 밑천 들인 원님이 부임해올 것이니, 그땐 갈퀴질커녕 나올 게 없으면 쇠스랑을 들고 파서 라도 거둘 것이니.., 그렇다고 못 견디어 또 내다 버리고..."
  여럿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중의 하나가 웃옷을 훌렁 벗어서 탁탁 털어 바닥에 깔았다.
  "이리로 올라 앉으십시오."
  일행 중에서 제일로 긴 장죽을 가져다 담배를 재었다.
  "이거 대라곤 시원치 않습니다마는..."
  원님은 군말 않고 그것을 받아물고, 백성이 붙여 올리는 대로 뻑뻑 빨았다. 그리곤 새삼스레 꾸며가지고 온 사인교를 타고 다시 동헌으로 들어갔다.
  요사이 선거철을 앞두고 부패했느니 어쩌니 공론들이 많다니까 한 사람이 내뱉듯이 말한다.
  "별것들을 다 가지고 야단들이네. 옛날 모양 둥우릴 태울 것도 없고, 간단하지 않아? 안 찍어주면 그만 아닌가배!"
  이제 우리도 깨일 만큼 깨였다. 우습게 보았다간 큰코 다칠 것이다.
 
    하인이 먹다 남긴 음식 핥아먹는 상전
  조선 효종의 다섯째 따님 숙정공주에게 정재륜이라는 분이 장가들었다. 동래 정씨 명문의 영의정 양파 상공의 아들로 장래를 촉망받는 인재였으나, 임금의 사위라는 신분 때문에 벼슬길에도 오르지 못하고, 젊어서 상배했건만 재취가 허용되지 않아 가정의 낙도 누리지 못한 분이다.
  동일한 예로 영의정을 지낸 문장가 상촌의 아들 신익성은 장래 장원급제하여 영의정까지 오를 것이라고 기대되던 인재였는데 선조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동양위에 봉해진 뒤로 아무것도 못하게 되어, 이를 딱하게 여겨 과거에서 장원을 뽑는 도시관을 시켜서 위로했다고 전하는 분이다.
  정재륜 역시 동평위라는 지위로 인해 평생을 한가히(?)
보낼 수 있었던 때문에 eu가를 이용해 뛰어난 문재로 그가 일상을 보고 듣고 한 일을 적어 모은 동평견문록에는 많은 교훈될 얘깃거리들이 풍부하게 실려서 전한다.
  그 가운데 하나로, 조막동이라는 건방진 하인의 얘기가 있다. 이 자는 관청에 매인 종의 신분으로 늙은 사람인데 사람 좋은 부마대감께 털어놓아 얘기했던 모양이다.
  이때나 그때나 권세를 믿고 행패부리는 아랫도리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는 작태다. 부관
이랬으니까 관청의 상전인 벼슬아치였겠는데, 그런 분을 모시고 길을 닦으러 나서면 공사장 근방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쯤 당시로서는 다반사였다.
  물론 공사장 일은 배정된 인부들이 맡아 하고 이 자는 주제 넘게 감독한답시고 그들을 들볶고 돌아다녔겠는데, 근처 백성 집에다 음식을 시켜서는 배부르도록 먹고 취하도록 마시관 하였다. 그리고는 일부는 남겼다가 저희 상전이 저녁때 컬컬해할 때쯤 갖다 드린다는 것이다.
  "글세, 출출하던 참에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의당 차려나올 명목이 없는데 웬 거냐고 한마디쯤 물어보심직하건만 통 없사와요. 저희들이 먹다남긴 것이지만 겉보기엔 멀쩡합지요. 달게 싹 핥아 잡숫는 꼴을 지켜보곤 속으로 웃지요. 그런데 말씀이야요, 그런 일이 있은 뒤로는 이놈에게 약간의 잘못이 있어도 꾸지람을 못하시지 뭡니까?"
  관청의 양반이 하는 직분은 승진을 함에 따라 자주 바뀌는데, 이런 아랫도리 하인이나 중간충의 실무 맡은 이속은 평생을 두고 바뀌는 법이 없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그들은 상관쯤 갖고 놀다시피 한다.
  "그런데 말씀이야요, 대감마님! 수십 년 그러는 동안에 딱 거절하시며 안 잡숫는 분을 한두 분 뵈었는데, 옳게 정신이 살아계신 분입지요. 그리고 달게 자시는 분일수록 뒷구멍으로 알아보니까 다 그렇고 그렇고 해서 그 자리에 오르신 분이더군입쇼."
  사람을 사귀다 보면 자기 몇 대조가 무슨 지위의 어떠어떠한 벼슬을 했노라고 자랑하는 이를 가끔 보는데, 웃기는 얘기다. 무능해 터져서 앉았다만 왔는지, 아니면 탐관오리로 백성들의 원망을 사서 쫓겨왔는지도 모를 그런 벼슬한 것을 가문의 자랑으로 여기느니, 그 분의 행적을 옳게 알아서 미관말직이라도 자랑할 것을 골라서 얘기해야 그게 옳은 가문 자랑이 될 것이다. 
    잘못 들어온 재산 
  조선 중기에 인조반정의 중추적인 일을 한 승평부원근 김류는 성격이 몹시 거칠었다.
  자기 아버지 김여물이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의 부장으로 같이 싸우다 전몰하였고, 또 아직 위에 오르기 전의 인조와 연줄이 닿아서 반정에 참획하였던 신입과 총애가 두터웠는데, 그럴수록 몸을 낮추어 겸손하고 사생활에 검소해야 하는 법인데 그는 그렇질 못했다.
  내가 세운 공으로 지위가 높아 이만큼 사는데 누가 나를 어쩌랴 하는 식으로 살았으니 점잖은 행신은 아니다. 거기다 누가 무어 갖다 주는 것을 좋아해서 어떤 내관이 그 댁에 갔다가 직접 본 얘긴데, 안에서 부인이 물건을 받고는 물목을 언문으로 적어 하인을 시켜 내어보내며 이러이러한 소청이라 전갈하면, 그 뇌물로 바친 분량을 보아 피륙 같은 거 백 필에 차지 않던지 핼 때 대단히 화를 내더라는 것이다.
  "요런 적은 물건을 갖고 어떻게 어른께 바친단 말이냐?"
  그래 대궐 같은 집을 짓고 호화롭기 한이 없는 생활을 하기에 어떤 사람이 보다 못해 충고하였더니 그 하는 소리 좀 보라.
  "내가 주상을 도왔기에 위에서 자리를 오르셨는데, 나라고 이 정도 못하고 산단 말인가?"
  후에 같은 혁명동지이면서 공로에 비해 보답이 적다는 불평을 품고 이괄이 반란을 일으켜 쳐올라올 제, 예비검속으로 잡혀 갇힌 조정의 고관이 기자헌. 김원량등 49인이나 되었다. 이들의 처리를 놓고 역시 반정 원훈인 이귀와 의견이 상치되었다. 이귀의 주장은 그들이 모두 놓은 벼슬을 거친 점잖은 분들이라내응하거나 그런 짓을 할 분들이 아니니 살려두자는 것이고, 김류는 한번 터뜨린 터에 싹 쓸어 없애버려야 마음을 놓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조정의 공론이 김류의 의견 쪽으로 기울어 결국 49인의 원로들은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떼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이 자리에 참석했다 나온 권첩 이라는 분이 한 말이 있다. 
  "승평은 반드시 뒤끝이 없을 게고, 연평은 후손이 번창하리라."
  뒤에 사실로 그리되었다.
  여러 해 뒤 그동안 미묘한 관계에 있던 청나라와 사이가 벌어져 드디어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조정에서는 강화도로 피난하기로 하고 누구면 능히 지켜낼 것이냐고 했더니, 김류는 자기 아들 경징을 추천하고 다른 고관들은 그리 잠자코 원로대신이 하는 대로 따랐다. 
  적이 신속하게 쳐들어와서 왕의 일행은 강화도로 들어가려다 못하고, 광주의 남한산성으로 옮겨가 거기서 추운 겨울 동안을 농성해야  했던 것은 다시 얘기 않는다.
  씨는 못 속인다고, 그런 환경에서 제 아비 하는 양을 보며 자란 김경징은 왕실보다도 저희집과 보화를 옮기기에 바빴고, 강화에 들어 마시며 질탕히 놀다가 힘 한번 못 써보고 함락되어 어이없는 비극을 당하고 만다. 
  전례에 없이 창피한 화약을 맺고 조용해지자 김경징은 죄를 물어 약사발을 받아야 했으니, 제아무리 나는 새도 떨구는 아비 배경이 있어도 이것만은 도리가 없었다. 외아들을 꺾어도 목숨이 질겨 김류는 그후로도 조정에 남아 다시 영의정을 지내는 등 지위를 유지하다 나이 많아서 세상을 떠났다. 
  그 뒤 효종 때 인평대군이 이미 권력을 잃어 쓸모없이 된 그의 큰 집을 빌려 쓰자고  했더니, 회똑회똑 외롭게 살아남은 손자가 듣질 않아서 다른 죄목을 씌워 귀양을 보내는데, 저의 할아버지 신주를 모시고 가는 것을 보고 모두 그랬다.
  "승평이 죽어서도 귀양을 가네그랴!"
  그러나 그의 자손 백련이라는 분은 좀 달랐다. 조상 덕분에 다섯 고을의 원을 하고 물러나 스슬호 오출이라고 하였는데 활달하면서도 약간 세상을 비꼬아 보는 성격이었다.
  발필주라는 분이 은일로 뽑혀 이조판서자리에 있을 때, 그의 댁에 가 앉았다가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자반뒤집기를 하였다. 어쩌면 좋으냐니까, 다른 약은 소용없소 꼭 순금을 백비탕에 끓여 먹어야 되는데 구할 길이 없다고 한다. 박 판서가 자기 망건의 금관자를 떼어서 달여 먹였더니 여전히 아프다면서 하는 소리 좀 보라.
  "그거 겉만 금이지 속은 구리인가 보구려!"
  슬그머니 실속에 지나친 명성을 빗대어 욕해준 것이니 많은 행동이 그러하였다.
  엄청난 유한을 물러받아 살림이 요부했는데, 물론 승ㅎ평이 당대에 긁어 모은 것이라 매양 말하기를,
  "이거 모두 옳게 들어온 재산이 못돼."
  하고는 닥치는대로 헤프게 쓰고는 돌아보지도 않았으니, 조상 덕분에 살면서도 그 조상이 한 짓을 모두 부담스럽게 여긴 것이다.
  그러면서 자탄조로 시를 지어 불렀다.
  많은 벼슬아티는 천지간에 활개치고 다니건만, 
  오출 나만은 푸서리 사이에서 나직이 읖조리노라.
  그 많은 재산을 흩어 다 날려버리고는 말년에 충청도 보은의 한 토글 속에서 살다가 세상을 끝냈다. 

    좀더 보챘으면 더 얻어벅는 것을 
  옜날에 지방관이 탐욕을 부리거나 실수가 있으면 백성이 산에 올라가 큰소리로 욕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렇게나 해야 시쳇말로 스트레스가 풀렸던 모양이다.
  원주시에서 서울 쪽으로 가까이 안창이라는 곳이 있는데, 고려 때 굉장히 큰 규모의 절이 있었던 곳이다. 거기서 서울로 오자면 약간 후미진 곳에 묘한 이름을 가진 바위가 하나 있다. 이름하여 '욕바위'. 앞에서 보면 오똑하게 높이 솟았는데 뒤는 등이 져서 그대로 밋밋하게 산으로 연해 있다.
  원주에서 벼슬 살았던 이는 물론이요 그 방향 고을에서 원 그릇하였던 이라면 서울로 돌아갈 때에 반드시 이 목을 거쳐서 가야 한다. 이자가 촌에 내려와서 못된 짓을 많이 하였다면 피해를 입은 사람이 관원의 행차가 지날 때 그 바위 위에 올라서서 낱낱이 조목을 들어서 욕을 퍼부었더라고 한다. 물론 끝에 가서는 갖은 악담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것을 듣고 원님이 화가 나서 "저놈 잡아오라"고 소리치면, 쫓아갈 신명도 안 났을 것이고, 어쩌지 못해 쫓아간대도 밑의 사람이 도달하기 전에 등성이를 타고 뺑소니치면 그만이다.
  본해 욕이란 것은 남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주면 되는 것이고, 악담은 뒤끝이 좋지 않으라고 잘못되기를 비는, 말하자는 일종의 저주다. 그래서 남의 잘못을 욕할지라도 악담은 하지 말라고 일러오는데,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이라면 어떻게 욕만 하고 말 것인가? 자자손손 어떻게 되라는 등 갖은 악담을 늘어놓았을 것이니, 입담 좋은 사람이 그 몫으로 삯 받고 다니면 하는 이도 있었을지 모른다.
  정혁선이라는 분이 청주목사로 내려갔는데, 밤에 어느 넘이 산에 올라가서 걸차게 욕을 해댔다. 물론 새로 도임해갔으니 자신에게 돌아올 욕은 아니었겠지만 속이 상한다. 그것이 여러날 계속되기에 그 고장 출신의 이속을 불렀다.
  "사람이 그럴 리는 없고, 아무래도 우암산 산신이 덧나서 그런 모양이니, 집집마다 10문씩만 거둬서 굿을 하든지 제사를 지내주도록 하라."
  본부 받은 아전 생각에 귀신이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간 그놈을 잡아들이라고 할 판이라, 구역을 갈라 분담해서 돈을 더두고 하라는 대로 기도 행위를 하여서 며칠은 그냥 조용하였다.
  얼마 안 가서 또 그놈이 욕질을 한다. 고요한 밤하늘에 욕하는 소리가 우려퍼지니 멀리까지 들렸을 것이고, 그 중의 몇몇이 아무개놈의 짓이 틀림없다는 지목도 갔을 것이다.
  원님은 또 담당자를 부렀다.
  "산신령이 단단히 노여운 모양이다. 일전의 그것 가지고는 심정이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니, 이번에 갑절씩 거둬서 앞서보다 더 성대하게 치르도록 해라. 얻어먹을 만큼 먹어야 가라앉을 모양이로구나."
  없는 중에 생돈으로 추렴을 내면서 백성들의 원망은 원님보다도 밤중에 소리지른 놈에게로 돌아갔다. 다시 한번 굿판을 차린 뒤로 신령님의 노여움은 식어졌고 원금은 빙시시 웃었다.
  "싱거운 산신도 다 있지, 좀도 보챘더라면 더 얻어먹는 것을."
  이만한 배짱이라면 아마 공사도 변변하게 잘 처리했을 것이다. 섭섭하게도 그의 다른 행적이나 생존기간에 대하 달리 나온 데가 없다.


       허풍쟁이와 바람쟁이

    하늘이 주신 복이지
  남의 집 머슴 사는 사람은 여간해서 그 구렁을 벗어나기 힘든 법이다. 이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데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어떤 총각이 머슴을 살아서 받은 새경을 고스란히 장리놓아 늘리고 다시 모으고 하여 목돈을 마련하였으니, 이제 장가들어 살림을 차릴 판이다. 장에 가서 혼인과 새샐림에 필요한 제구를 장만해 갖고 오는데, 하필이면 고갯마르에서 도둑놈을 만났다.
  몽땅 빼앗기고 생각하니, 이 놈이 딴 데로 갈길이 없고 필시 다음 고개를 넘어야 될 것이라. 산길을 질러가서 목을 잡고 기다리자니 아니나다를까 그 길로 온다. 
  "이놈, 게 섰거라.'
  양쪽 손에 무거운 돌멩이를 들고 뛰쳐나왔을 뿐인데, 놈은 멜빵을 벗어던지고 내튀고 만다. 내 물건 내가 찾았는데 무슨 죄가 되랴고 콧방귀를 뀌며 돌아왔는데, 처소에 와서 끌러보니 상당한 액수의 돈이 더 들어 있다. 다른 데서 훔친 것까지 꾸려가지고 가다가 모두 놓고 간 것이다.
  "이건 하느님이 나를 도운 것이다."
  장사 밑천을 삼아 색시하고 열심히 벌어서 잘살게 되어었다.
  흔히 얘깃거리가 될 만한 사건이다.
    어머니 이사 가요
  시골 산밑의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가난한 가정, 홀어머니가 혼자 몸으로 아들이 이제 장정이 돼 가는데 하루는 산에 나무하러 갔다 돌아와 엉뚱한 소리를 한다.
  "어머니 이사 가요."
  성실한 청년으로 알려져 그것만이 재산인데 여기를 떠나다니?
  사정은 어러하다. 여러 이서 산에서 일을 하는데, 발 아래 고갯길로 지나는 길손의 태도가 우스꽝스럽다. 금시라도 뭐가 나올 것 모양 겁에 질려 휘번덕거리는 양을 보고 일행 중 하나가 그런다.
  "우리 소리 한번 질러 볼까?"
  "아서, 임마! 그러지 않아도 덜덜 떠는데 놀라라구?"
  "장난인데 어때?"
  "이놈 게 섰거라!"
  행객은 기다리기나 했다는 듯이 짐을 벗어던지고 내튀었다. "아니오, 아니오" 소리치며 따라가니까 죽이러 오는 줄 알고 더 잘 달린다. 어이없어 돌아온 여럿은 보따리를 숲속 공터로 가지고 갔는데 그 속에는 상상 못할 만큼ㅂ의 보화가 들어 있었다.
  이럴 땐 혼자서만 제 앞으로 돌아오는 몫을 거절할 수도 없다. 청년은 다소곳이 그것을 갖고 돌아와 어머니께 호소하는 것이다.
  "공것에 맛들이면 어떻게 될지 뻔한데 이러고 있을 때가 못돼요."
  머자는 사뭇 야반도주하듯이 그 동네를 떠나와 생소한 고장에 자리를 잡고 부지런히 일했다. 그날 분배받은 물건은 싸고 또 싸서 신주 모시듯 하고...
  여러 해 뒤인데 하루는 동네 개들이 요란하게 짖더니, 뒤꼭지가 세뺨씩이나 되는 포도군구 들이 들이닥치며 불문곡직하고 청년을 묶어서 앞세우고 다그쳐 물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요. 어머니 그것 갖고 뒤따라 들어오셔요."
  그동안 얼마나 강도질을 했던지 눈자위마저 뒤틀린 옛날 친구들이 고문으로 피투성이가 돼 늘어앉은 앞에서, 청년은 차분하게 그간 살아온 얘기를 하고 어머니가 갖고 온 뭉치를 끌러보였다. 이러하여 오랜때를 벗을 모자는 기를 쭉 펴고 새로운 삶의 길을 펼쳤다.

    제 놈 제 복으로 사는데 뭘 어째?
  가까운 친구끼리 친형제같이 지내면서 동갑내기인 서로의 아들들더러 너희도 아버지들 처럼 서로 돕고 지내야 한다고 누누이 일러왔는데, 딋날 하나는 출세하여 함흥부사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낙방하여 생게조차 막연한 처지에 있었다.
  장성한 딸을 정혼하고 혼수 좀 보태달라 천리를 마다 않고 찾아갔더니 대면도 않고 끌어다 내치어서, 버드나무가 줄줄이 선 냇가에서 한나절을 울다가 남은 돈 몇 닢으로 손칼을 장만해 들고 놈을 다시 찾아나섰다.
  삼문께에 이르자 생각이 휙 돌아섰다. 제 놈 제복으로 사는데 섭섭하게대했다고 죽일 것은 무어며, 그러고 나면 돌아올 게 무엇인가? 싱거운 생각이 들어 돌쳐서 오는데 누군가가 부른다. 머나먼 타향에 아는 이가 있을 리 없어 그냥 걷자니 자꾸 부른다. 그제사 돌아보니 중년의 선비인데, 방으로 불러들여 다정하게 두 손을 잡고는 무수히 치하한다.
  "잘하셨소이다. 내 이래 보여도 귀신을 볼 줄 아는 사람인데, 여기 이렇게 안장 있자니 우우하며 귀신들이 몰려가는 소리가 들려 일어나 내다보니, 노형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귀신떼에게 옹휘되어 관가로 가고 있지 뭐요? '이거 또 큰일나는구나!' 개탄하고 돌아서 앉았자니 이번에는 아름다운 하늘나라 음악이 들려오고 돌아서 나오는 당신 머리에는 오색 구름이 서려 있으니 이거 어쩐일이오? 조상 중에 누군가 무던히도 선업을 쌓은 분이 계시기에 이런 응보가 있지, 애기 좀 들어 봅시다.
  사나이는 서둘러 차려온 밥 한상을 게눈 감추듯 하고 자기 생장시부터의 일을 빼놓지 않고 털어 놓아 애기하면서, 품속에서 새파랗게 간비수를 꺼내 놓았다.
  "이렇게 쭈욱 버드나무 늘어선 자갈밭 말이지?왜 하필 거기 가 울었던고?"
  뉘 알았으리. 거기는 함흥에서 중죄인들 목베어 효시 하는 사형터였던 것이다. 사람은 마음이 흔들리면 마가 드는 법인데, 형벌로 죽은 많은 마귀들이 떼로 달라붙었던 것이다.그것을 떨어 버리다니 조상이 돌밨다고 밖엔 설명할 길이 없다.
  노인의 호의로 며칠을 쉬고 약간 노자를 타 가지고 돌아왔는데, 집에서는 피륙을 들여놓고 혼수옷 짓느라 법석이다. 말할 것도 없이 부사가 보낸것으로 꾸며 노인이 주선한 것이다.
  얘기는 공식대로 풀려 과거에 급제하고, 샌래중에서도 나이든 그를 불러 보고 겪은 세상 물정을 하문하시기에, 자신의 신상을 말씀드렸더니 밀봉한 3장 서류를 들고 돌아와 첫째 봉을 뜯더니 함경도의 암행어사다.
  거지 차림으로 그 노인을 찾아가 흉물을 떨며 이렇게 또사시 빌어먹으러 왔노라 했더니, 새옷 한 벌을 내어줘 갈아입게 하고는 이가 끓는 헌털뱅이를 둘둘 뭉쳐 마당으로 팽개치는데, 저도 모르게 버선발로 뛰쳐나가 집어갖고 들어오니까 빙긋이 웃는다.
  "이 사람! 나를 속일 셈인가? 자넨 지금 그 옷이 필요한 처지에 있어. 출두하더라도 제발 죽이질랑 말게. 섭섭은 했겟지만 놈의 잘못이지 자네마저 따라할 게 무엔가?"
  출두하여 또 한 봉을 떼니 "그냥 눌러앉아 함흥부사 일을 보라"는 어명이었다.
  새 부사는 노인의 지시대로 전관을 옛친구로 대해 행구차려 돌려보냈고, 선업 쌓은 보답으로 자손 번성해 잘살았다. 얘기는 이렇게 풀리는게 공식이다.
  
    삽살개 한 마리가 노름꾼을 감동시키니
  동네에 싱겁고 못된 놈이 있어 목돈을 쥐어볼 양으로 노름에 정신이 팔려 저녁마다 외딴 집으로 찾아갔다. 노르이란 게 오래 하면 판을 차린 집에서 다 먹게 마련인데, 애가 닳아서 따라붙다니 골이 빈 이야기다. 한끗 차에 팔려 오줌통이 터질 지경이 되어서야 일어서 나오니, 집에서 기르는 삽살개가 제 헌 짚신짝을 지키며 쭈그리고 있다가 주인을 보고 일어난다.
  "임마, 왜 있어? 집으로 가."
  쫄래쫄래 가는 뒷모양을 바라보며 눈으로 뒤덮여 은세계를 이룬 위로 보름 지난  달이 한낮같이 휘영청한 경치 아래서 속이 후련하도록 오줌을 누고 돌아왔는데, 또 한차례 오줌이 급해서 나아가 보니 간 줄로만 알았던 저희 개가 여전히 앉았다 일어선다. 이러기르,f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이제는 한쪽으로 달이 지며 날이 새는 새벽길을 눈을 밟으며 돌아오던 이 작자, 저도 모르게 양 뺨으로 눈물이 줄지어 흘렀다. 돈 없앤 게 분해서가 아니다.
  "내가 미친 놈이지, 내가 개만도 못하지. 너 보기가 부끄러워서라도 나 다신 투전목 안 쥔다."
  걷다간 쉬고 몇 발짝 가다간 중얼거리는 주인을 따라 삽살개는 앞을 섰다 뒤따랐다 주위를 맴돌며 들판을 건넜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그는 사실 노름에서 손을 떼었다. 착한 싹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기회를 못 찾아 나타나지 않을 뿐이지.

    선비 체면에 내기 바둑이 웬 말
  늙어서 벼슬을 물러난 어떤 대감이 심심하게 지내는데, 시골서 누가 찾아왔다.
  "잘 왔네. 바둑이나 한판 두세."
  "둘 줄 모릅니다."
  "그럼 골패라도 하세."
  "할 줄 모릅니다.'
  대감은 슬그머니 부아가 났다.
  "그렇다면 고누라도 한판 누세."
  "할 줄 모릅니다."
  "그럼, 뭘 할 줄 아나?"
  "예!밥은 먹지요."
  "!?"

  바둑에 상당한 고수가 고향에 근친을 갔는데, 아버지 친구 되는 분이 판을 내어놓으며 그런다.
  "너 바둑 잘 둔다더구나. 나 한수 일러주련?"
  그래 사양할 수 없어 대국을 했는데, 반판이 채 못 가 호통을 치더라는 것이다.
  "너 내기 바둑으로 배웠구나! 선비 체면에 그 따위 바둑 수를 가지고 어디 내놔? 한참 다시 배워야겠다."

    대중 앞인데 그만함 됐지
  지금은 버스 안에서 담배 피우는 것이 아주 범죄처럼 돼버렸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 얘기다. 서울 다녀오는 버스 안에 늙은이도 여럿 섰는데, 복판에 앉은 한 청년이 폴싹폴싹 담배를 피워대는데 나는 아예 배우질 않은 사람이라 코가 매워서 뱃길 수가 없다. 억지로 억지로 참고 있는데, 옆에 섰던 친구 하나가 입을 연다.
  "여보게 젊은 친구! 두어 모금 빨았음 됐지, 대중 앞이고 하니 이제 그만 끄면 어때?"
  걸걸한 평안도 말씨였는데, 예의 청년은 얼핏 비벼 끄고 말한 이가 노인이자 자리를 비워주고 다음 정류장에서 서둘러 내렸다.
  논어에 이르기를 증자의 말씀으로 "선생님의 길은 충과 서일 따름이다"고 하였다. 충은 자신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고, 서는 용서한다는 글자인데, 상대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것을 말하낟. 그냥 일방적으로 욕했더라면 요새 청소년 기질에 반격당했을지도 모를 일인데, 그 노인은 멋이 있었다. 상대를 이해해 준다는 마음의 여유, 이것이 멋의 원천이다.
  한번은 곁에 섰는 노인이 몸을 못 가누는데, 앞자리에는 젊은이가 눈도 깜짝 않고 버티고 앉아 있다. 나는 예의 장난기가 일어서 한마디 했다.
  "영감! 늙은이가 흔들려 바닥에 쓰러져도 절대로 자리를 안 내주는 청년이 있는데 누군 줄 아슈?"
  "누가 그런 이가 있고?"
  "운전기사야."
  온 찻간이 폭소를 터뜨리자 앉았던 청년은 차가 멈추기가 무섭게 사라졌다. 내가 너무 좀 심했구나 싶어 지금껏 미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부모님 돌아가신 것보다 더합니다
  옛날 어느 시골에서 여름철 한 젊은이가 상처를 했다. 물론 동네 운력으로 초종을 무사히 치르고 나서 다음날 저녁나절 동네 글방으로 인사를 왔다. 모모한 노인이 다 모여 계시니까 한참만에 인사가 됐다.
  "그래! 자네 지금 심정이 어떠한가?"
  선생님이 묻자 젊은이는 당돌하게도,
  "부모님 돌아가신 것보다 더합니다."
  선생님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천장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럴 걸세. 아무쪼록 마음 단단히 먹고 살아야지."
  청년이 허리 굽혀 절하고 물러가자 같이 앉았던 동내 영좌님이 노발대발이다.
  "그래! 자네가 이 동네 청소년을 옳은 기로 인도하겠다고 고용돼 와있는 처니게.., 무어? 젊은놈이 여편네 하나 죽은 것을 가지고 부모님 돌아가신 것보다 더하다니까, 그럴 거라고?"
  선생이라는 이는 눈을 지긋이 감고 한참만에 입을 떼었다.
  "그 말도 그렇긴 하네만, 자네 그놈 집엘 한번 다녀와 보게나."
  영좌님이 순순히 일어나 나서서 한참만에 돌아오는데, 얼굴 가득 범벅이 된 눈물을 닦으려고도 않으며 툇마루에 털썩 걸터앉는다.
  "정말이지 눈뜨곤 못 볼 광경이데, 젖먹이는 똥을 싸 뭉개고 울다울다 목이 쉬었고, 세 살짜리는 간장에 비벼준 밥그릇을 안은 채 봉당에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파리떼는 눈과 입가로 웽 하고... 저 놈이 꼴짐을 지고 송아지를 몰아 지벵 들어섰을 때..."
  "그만 해, 알만하이."
  옆의 영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중학교때 아버지께 들은 얘기다.
  
    창가가 풍류더냐? 시조를 해야지
  졸업을 며칠 앞두고, 그러니까 교복을 입고는 마지막으로 고향에 갔을 때 일이다. 농삿일로 늙어 이미 회갑을 넘기신 아버지는 나의 절을 받고 나자, 담배를 피워 물고 천천히 물으셨다.
  "너 술 한 잔 하니?"
  "석 잔 술은 합니다."
  "호오!"
  무척 대견하다는 시의 어조다.
  "그래 술자리에서 목침돌림으로 차례가 돌아왔을 때, 아무것도 못해서 벌주를 받아먹거나 그렇진 않니?"
  "그렇진 않아요."
  "그래 뭘 하니?'
  "창가를 합니요."
  "예끼 놈, 창가가 풍류더냐? 시조를 해야지. 아니면 경서도 소리나 단가를 한가락 해야 하느니."
곁에 앉았던 어머니가 한마디 하신다.
  "아니, 낼모레면 사회에 나갈 아이한테 왜 하필 그런 얘길 하슈?"
  "곧 사회에 나가겠기에 들려주려는 거요. 너 사람의 몸뚱이 생긴 것을 보아. 속에 뼈가 있고, 거죽은 살과 가죽이 쌌지. 목표를 세워서 한가지 일을 성취시켜 내려는 노력이 뼈대하며, 주위 사람과의 교유는 살과 가죽이야.
  목표를 향해 빳빳이 걷는 것이 좋기야 하지만 그것만 가졌다면 그야 뼈다귀 귀신이지 어디 사람이냐? 한편 이래도 좋고 저해도 좋아 그렁저렁 휭뚱거리고 지낸다면 그야 무골충이지 어디 사람 축에 가니? 제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걸으면 남과 기쁨도 같이 나누며 때론 한잔 어울리기도 하는 이것이 인생이야. 뼈와 살이 알맞게 조화되어야 그게 옳은 인생이니라."
  나는 졸업하자 즉시 객지생활로 들어갔고, 아버지도 수하시지 못하셔서 다시는 그런 교훈의 말씀을 더 듣지 못했다.

    비오는 날만 새는 방
  어떤 사람이 목수를 시켜서 선반을 하나 맸는데 얼마 안 가 내려앉아서 다음 번 만났을 때 나무랐더니 빙긋이 웃으면서 말한다.
  "무어 물건을 얹었던 게지."
  어떤 사람이 여관에 들었는데, 안내받아 들어간 방에 빗물 흘러내린 자욱이 죽죽 나 있는 것을 보고 하인을 나무랐다.
  "이놈아! 여기는 새는 방 아니냐?"
  "아닙니다. 비오는 날만 샙니다."
  어떤 사람이 산에서 내려오며 풍을 친다.
  "나 방금 길이가 30발이나 되고 굵기가 두 아름 되는 구렁이를 보고 왔다."
  "야 임마! 그렇게 긴 구렁이가 어디 있어? 거짓말이지."
  "아니야, 열 발은 확실히 돼."
  "임마, 그것도 거짓말이다."
  "아니야, 다섯 발은 확실히 되더라."
  "그것도 거짓말이다. 그렇게 긴 구렁이가 어디 있어?"
  "야! 더는 못 줄인다."
  "!?"
  "굵기는 그냥 있는데 더 줄이면 네모난 구렁이가 되게? 그런 구렁이가 어디 있어?"

    허풍쟁이와 바람쟁이
  경상도 허풍쟁이와 서울 바람쟁이가 서로 찾아가는 길에 추풍령에서 마주쳤다. 그중 하나가 냇물이 깊이 소 지은델 들어갔다 나오더니 복숭아 하나를 주며,
  "이거 용궁 잔치에 갔다 가져왔는데 하나 자셔 보려오?"
  "나도 잘 압니더. 그럴거 아이라 나도 가서 하나 얻어오면 되지."
  물에 뛰어들었는데, 잘못해 돌에 부딪쳐 머리에 혹이 생겨가지고 나오면서 이렇게 말한다.
  "금방 하나 줬는디, 왜 이리 또 오느내고 한 대 때려서 이 모양이 돼가지고 나온 기라…."
  "!?"
  예로부터 양산의 통도사는 승려가 많기로 소문이났고, 합천의 해인사는 가마솥이 크기로 이름났으며, 광주의 봉은사는 뒷간이 깊기로 이름이 났었다.
  어느날, 세 곳의 승려가 한자리에 모여 저마다 한 마디씩 저 있는 절의 자랑을 늘어놓았다. 
  먼저 봉은사 승려가 말을 꺼냈다.
  "우리 절의 정랑은 어찌나 깊은지 오늘 대변을 보면 내년 이맘때쯤이나 바닥에 떨어질 거요."
  통도사 승려도지지 않겠다는 듯이 큰소리로 말하였다.
  "우리 절은 생긴 지 천 년이 되지만 아직도 인구 조사를 마치지 못해 정확한 인원수는 모르겠으나, 드나드는 문의 돌쩌귀에서 부서져 나오는 쌀가루가 하루 아침에 서 말 가량은 됩니다."
  다 듣고 난 해인사 승려는 히죽이 웃으며 말하였다.
  "작년 동짓날 밭죽을 쑤는데 솥 가운데 배를 띄우고 팥죽을 젓던 중이 풍파에 불려서 어디론지 가버려 아직까지 소식이 없으나 큰 걱정이외다."
  갑이라는 사나이가,
  "우리 밭에 심은 배추는 글세 기차를 타고 가도 사날이 걸려."
  을도 지지 않고 하는 말이다.
  "우리 집에 있는 통은 군함을 타고 속력을 내어 며칠을 가도 전이 안 보인다우."
  "임마, 그런 통이 어딨어?"
  "이런! 그런 배추를 씻자면 그만한 통은 가져야 하지 않아?"
  곁에서 듣던 병이 끼어든다.
  "우리 뜰의 대나무는 자라서 하늘에 닿았다가 다시 구부러져 자라 내려와서, 이제 땅에 닿았으니까 다시 자라서 올라가느 중이다."
  "야! 자식! 풍 되게 친다."
  병은 질세라 한 술 더 뜬다.
  "이런 제기! 그만한 통을 메우자면 그 정도 대는 가져야지?"
  젊어서 장사로 소문났던 영감님이 자기를 남달리 아껴주던 대감댁을 찾았더니 주인이 반겨 맞는다.
  "아! 영감 왔구려! 그래 요새는 근력이 어떻소? 젊어지는 장사로 이름을 떨쳤는데...."
  "어디 전만 할 수야 있습니까?"
  "전과 같지 않다니? 그래 요새도 힘을 좀 시험해 보셨소?"
  "예! 일전에 팥 두 섬을 돌 위에 놓고 멜빵을 걸어서 져봤습지요."
  "그래 지겠습디까?"
  "그야 졌습지요."
  "그런데 뭐가 전만 같지 않다는 거요?"
  "전에는 지고 일어나겠더니 이젠 일어나지지가 않사와요."
  "!?"
  
    아마 지금도 그저 젓고 있을걸
  옛날엔 소금장수가 얘기 전달에 중요한 몫을 했다.
  어떤 청년 하나가 오쟁이에다 소금을 담아서 지고 가원도의 어느 두메산골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도중에 올라가는 데 한나절, 내려가는 데 한나절 걸리는 하늘에 닿는 높은 고개를 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도 있지, 어떤 영감이 작대기로 바위 밑의 납작한 굴로 휘휘 젓고 안았다가 소리를 친다.
  "여보 여보! 방금 이 굴로 호랑이가 한 마리 들어갔는데, 젓고 있는 손길을 멈추면 그놈이 나와서 나도 당신도 잡아먹을 거야. 그런데 나 지금 똥이 마려워. 그러니 이것 좀 대신 저어 주우."
  무심코 작대기를 받아들고 쭈그리고 앉아 저으면서 보니, 저런 망할 녀석이 있나? 궁둥이를 끼는 척하더니 그냥 허리띠를 동여매고 줄달음을 치는 것이다.
  "이것 큰일났네, 젓는 걸 그만 두고 갈 수도 없고..."
  그래 마음을 차분히 잡아 소금 오쟁이를 벗어서 내려놓고 땅바닥에 펼썩 주저앉아서 작대리를 젓고 있었다. 얼마 후 한 승려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
  '여보 대사, 방금 이 굴로 호랑이가 한 마리 들어갔는데, 이 젓는 손을 멈추면 그놈이 나와서 나도 대사도 잡아먹을 것이오. 그런데 내가 지금 속이 거북해 뒤를 좀 봐야겠으니, 이것 좀 대신 저어 주오. 나 용변보고 와서 교대할 것이니."
  작대기를 내맡기고 저만치 달려와 숨을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나도 속아 보았다. 너 맛 좀 보아라."
  소금짐이고 무어고 내팽개치고 그냥 도망쳤는데, 그런지 4년 뒤의 일이다. 또 다시 소금짐을 지고 그 고개를 넘는데 "아니 저게 뭐야?"
  머리카락이 자라 어깨를 덮은 어떤 사나이가 작대기로 바위밑 굴속을 젓고 있는데, 바로 그때 그 승려다. 그러면서 얘기꾼의 마무리 말이 재미난다.
  "아마 지금도 그저 젓고 있을 거야."
  모두가 어이없이 웃으면, 한마디 더 보탠다.
  "소금 오쟁이 엮은 짚은 썩어 없어졌고, 소금은 그냥 소복하게 남아 있데."

    누가 뭐라거나 말거나 하는 경지에 이르니
  유머 감각이 뛰어난 선배 문학인 한 분과 첫 대면에 저녁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술잔을 같이 나에게 물었다.
  "이 선생 술 잘 하오?"
  "많이 먹음 취합니다."
  "뭐야? 많이 먹으면 취해? 술 맛 나는 친굴세! 어디 한번 많이씩 먹어볼까."
  그 얘기를 어느 모임에서 했더니 동석했던 친구 하나가 경험담을 하나 얘기한다. 아침마다 야채를 리어카에 가득 실어다 시장에 넘기는 할어버지가 있어서 등교길이면 곧잘 언덕길을 밀어 올려주고 그랬는데, 어느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보니 영감님이 빈 수레를 한손으로 끌면서 글을 외우듯 염불하듯 웅얼웅얼 읊조리고 있었다.
  "술아 술아 깨지 마라."
  석양배 한잔으로 거나한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 보이더라는 것이다.
  한학자 김화진 옹은 애주가로도 유명하였는데, 그의 설명을 들으니 술이 거나하다는 것은 "누가 뭐라거나 말거나 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고 하였다.

    벽창호
  오래 전 일이다. 집의 형님하고 성묘차 고향에 갔는데, 동네 사람들과 동행하여 걸으며 보니, 산밑에 원두막의 위층 바닥이 내려앉아서 머쓱하게 네 기둥만 서 있기에 농담삼아 한 마디하였다.
  "저 원두막에 올라 앉았던 사람들 많이 다쳤겠네요. 가까운 데 병원도 없고, 전화가 없으니 자동차를 부를 수도 없고 그저 큰 걱정이었겠네요."
  일행이 모두 웃었는데, 동행 중의 영감 하나가 정색을 하고 돌아다보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인다.
  "사람 올라앉은 채 떨어졌을까봐 걱정들이오?"  
  자기 딴엔 핀잔주는 것 같은 어조다. 이런 친구하고는 농담도 유머도 통하지 않아 그야말로 벽창호다.
  벽창소는 집을 세우고 벽을 칠 때, 통기와 채광을 겸해 일부 외 얽은 위에 벽을 안치고 남겨놓은 부분을 말하는데, 열도 닫도못하고 전혀 융통성이 없다. 그래서 생긴 이름이다.


    시골집의 다급한 사정
  총각이 꼴이 베어 한짐을 잔뜩 지고 송아지를 앞세우고 저녁놀이 발갛게 진 벌판길을 돌아가는 모습은 시골에서 볼 수 잇는 아름다운 정경의 하나이다.
  정작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한가하도 아름다운 것이 못된다. 그런 때 총각은 곧잘 자기 처지를 말한다.
  "해는 넘어가죠, 소나기는 쏟아지고, 송아지는 뛰고, 꼴짐은 넘어오고, 똥은 마렵고, 신발은 벗겨지고, 허리띠는 끌러지니, 이거 어떻게 해야겠소?"
  모두가 쫓기는 가운데 살아가는 실정을 웃기면서 눈물 나도록 호소하는 내용이다.
  이럴 때 집에서 밥을 짓는 아낙네는 이렇게 말했다.
  "불은 타 나오고, 밥솥은 끓어넘고, 방에서 애기는 울고, 널어놓은 나락 멍석에 소나기는 쏟아지고, 똥은 마렵고, 이거 어떻게 해야지요?"
  지금도 시골에서는 아궁이에 밖으로 타면서 나오는 것이다. 모두가 자기 손이 가야 할 일인데 한꺼번에 다 할 수 없어 안타깝다는 뜻이다.
  누가 걸음을 잘 걸어 하루에 백 몇 십리에 걸었다느니, 누구는 점심때 떠나 팔십 리를 걸어서 저녁에 댔다느니들 떠드니까, 한 사람이 그런다.
  "나는 식전에 팔십 리를 걸은 적이 있어."
  "온, 저런! 그래, 식후에 몇리나 갔노?"
  "그냥 목침 찾기에 바빠서."

    굉장한 거인
  강원도 강릉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낳아 떨어진 뒤로 아랫목에서 밥먹고 윗목에 가 똥누고, 어머니가 이웃 장자집에 가서 방아품을 팔아오면 하루 세 때 먹는 것만이 일이다.
  그렁저렁 나이 열댓이나 되니 순진한 어머니도 슬그머니 화가 났다.
  "얘, 이놈아, 너도 염치가 있지. 어미도 이젠 늙어가는데 좀 밖에 나와 일도 배워야 할 거 아니냐?"
  "그걸 누가 몰라요? 옷이 있어야 밖에 나가지."
  그러고 보니 하긴 그렇다.
  허나 어쩌지 몸집이 큰지 자기 형편으로 잠방이 하나 해 입힐 형편이 못돼 하는 수 없이 강릉 부사에게 호소를 했다.
  강릉 부사는 곧 다시 나라에 여쭈어 전국에서 세납으로 올리는 베라는 베, 무명이라는 무명은 다 거두어서 내려보냈다. 그래 강릉에서는 군내의 아낙네를 총동원하여 그 헝겊들을 이어 가지고 몇 달 만에 잠방이 하나를 짓고 나니 자투리 하나 제대로 남은 것이 없다.
  총각이 난생 처음으로 옷이라는 것을 얻어 입어 앞을 가리고, 자아, 이것이 다 나랏님 덕분이라는데 서울로 "고맙습니다"고 치하를 말을 여쭈러 가야겠다는데, 발을 옮겨 디뎌다가는 몇 개 고을이 뭉그러질 판이라, 이거 난처하게 됐다.
  그냥 선 채라도 몸을 굽혀 서울을 들여다보고 인사라도 드려야겠다고 잔뜩 허리를 굽혔더니, 이거 야단났다.
  서울서는 날도 흐리지 않았는데 대낮에 갑자기 깜깜해져 관상감에 알아보니 일식도 아니란다.
  그런 중에도 자세히 보니 몇 십 리만큼씩 눈과 코와 입이 박혔는데 그 무섭게 빛나는 눈, 등골에 소름이 쪽쪽 끼쳐올 지경이다,
  임금님은 일국의 지존이시라 위엄을 가다듬고 좌우에게 물었다.
  "거 어인 놈이뇨?"
  "지난번 전국의 옷감을 거두어 잠방이 해 입히신 강릉의 그놈인 줄 아뢰오."
  "어 무엄한 놈이로다. 누굴 좀 시켜서 저 놈 볼기를 치도록 해라!"
  "예이."
  그리하여 건장한 장정 하나가 뽑히었다. 목에 줄사다리를 걸고 기어올라가 천리준충 좋은 말을 타고 목에서 등을 따라 달리기가 얼마더뇨? 간신히 그 손자 대에 가서 곤장을 높이 들어 볼기를 한 대 딱 때렸다나.

    대감댁 상여를 물리친할멈
  어느 고장에 숫자는 많으나 권력없는 양반들이 자작일촌으로 한 동리를이루어 사는데,서울 사는 판서대감인가 하는 분이 권력으로 동네 뒷등에다 묘를쓰겠다고 왔다.
  "원! 이럴수가?"
 사방으로 연줄을찾아야 닿는데는 없고, 저녁마다 큰사랑에 모여 공론만 분분하다. 행동대를 만들어 상행을 때려 부수자커니, 모두가 길바닥에 누워 막자커니, 별 의견이 다 나왔으나 결론을 못 얻었다. 날짜는 바작바작 다가오고...
  그러던 하루, 동네 어귀에 사는 쭈그렁 할멈 하나가 종가집 사랑으로 찾아왔다.
  "댁에 크나큰 걱정거리가 생기셨다굽쇼?"
  "그러이, 그러나 할멈 알 것은 못돼."
  "아닙니다요. 이 늙은 것이 그것을 막아드리면 상금이나 후히 내리시려는 갑쇼?"
  "할멈이 막아? 막아만 준다면 상금이야 이사람아.., 원하는 대로는 못하더라도 그저 힘닿는 데까지는..."
  그리하여 할멈은 구자금으로 얼마를 타 가지고 상행이 당도하는 그날, 동네 어귀에다 장막을 치고 멍석과 자리를 폈다. 돼지고기를 삶아 눌러서 푸짐하게 차리고, 술을 동이로 걸러놓고...
  상여를 목고 오는 대감짜리는 상당한 저항이 있을 것을 각오해 완력깨나 쓰는 사람을 고용해서 옹위하고 조심조심 다가가는데, 장막친 앞에 하얗게 차려 입은 할멈이 나와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하니 뜻밖의 일이다.
  "어서들 오십쇼. 군정네들 여기서 목도 좀 축이시고, 상주대감께서는 이 이리로 이 돗자리 깔은 데로 앉으시고..."
  유대군이라니 상여메는 사람 빈들빈들한 것은 유명하다.
  주인이 응락할 새도 없이 마목을 버텨 상여를 세워놓고는 술상 앞으로 우루루 달려들 든다.
  할멈은 술을 따라 두 손으로 송손히 상주에게 드리며 치하의 말을 늘어놓는다.
  "천하의 대지 구해 쓰시게 되셨으니 얼마나 경사스럽습니까? 쇤네야 천하고 치마두른 것이 뭘 알겠습니까마는.., 이 못생긴 것의 남편은 도사에게 공부를 해서 명풍 소리를 들었습니다. 북으론 백두산에서 남으로는 제주 한라산까지 안 돌아 다닌 데가 없습니다. 풍수라니 집에 붙어 있을 사이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늘그막에 어느 달밝은 날 한밤중 이런 얘기를 하니 뭡니까 글세. '약삭빠른 괭이가 밤눈이 어둡다더니, 할멈 이것 좀 보게. 삼천리 강토를 메주 밟듯 하면서 글세 천하대지를 코밑에다 두고 몰랐네그랴?' 그러고는 쇤네 손을 끌고 산에 올라가 넌지시 일러주는데, 이번에 댁에서 잡으신 바로 그 자리였사와요."
  상주는 입이 헤 벌어지며 받아 들었던 술잔을 입에 대려다 말고, "그래, 어느 정도 명당이래여?"
  할멈은 휘 둘레를 조심스레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삼대만이면 임금 하나 난다고 합니다요."
  대감은 하마터면 술잔을 엎지를 뻔하다가 내려놓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얘들아! 되돌아가자!"
  그 날로 동네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졌다.
  "무슨 상을 원하느냐굽쇼? 상놈이 뭘 하겠습니까? 그저 댁의 큰산소 대대로 뵤지기나 시켜 주시면, 그저..."
  
    명당에는 팔삭동이가 나게 마련
  풍수의 기술이 높다 하여 명풍으로 소문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숙부가 가난해 못살겠다고 도움을 청하러 왔다. 황 정승댁에서 산소자리를 구해달라고 왔기에 대신 삼촌을 보냇다.
  "크나큰 댁이라 사례도 두둑이 나올 게고.., 우선 며칠 잘 얻어자실 테니 게나 가보시우."
  가래서 가긴 가나 그 방면은 도무지 손방이라, 높은 보우리에서 맥을 타고 내려오면서도 어떻게 모면할지 걱정이 태산같던 중, 상가집 일행이 저만치 처진 것을 기회삼아 도망칠 생각으로 줄달음을 놓았다.
  상제들 쪽에서는 '명당을 발견하면 신들린 것처럼 된다는데' 하고 이들 역시 달려서 쫓아온다. 그러자 발밑을 조심하지 않아 칡사래에 걸리면서 나동그가졌다.
  "어떻습니까? 괜찮습니까?"
  다친 데나 없는가고 묻는 것을 골똘했던 끝이라 저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쓸만합니다."
  "그래요. 용은 무슨 용이죠?"
  '제에기 알게 뭐냐? 칡에 걸려 넘어졌으니...'
  "칡갈룡이오."
  지관 안내하는 사람 중에는 으레 눈 뜬 이가 붙게 마련이다.
  "그렇지요, 건손룡이군요?"
  마침 넘어진 앞 풀섶에서 들쥐가 눈이 동그래 내다본다.
  "좌는요?"
  "쥐좌요."
  "쥐좌면 자좌, 그렇구먼요."
  "득은?"
  물이 어느 편에서 들어오는 게 보이느냐는 얘기다.
  "섶득이오."
  "그렇지, 섶득이면 신득이라."
  "파는요?"
  이 역시 물이 어느 편으로 흘러 빠지냐는 얘기다. 넘어지면서 눈의 불이 번쩍 나던 생각을 하고, 
  "별좌요."
  "그래, 그래, 별좌면 진파렷다."
  "좋습니다. 모두가 수법에 꼭꼭 들어맞습니다. 천하대지여요. 정말 대단한 실력이십니다."
  "!?"
  이리하여 장사를 무사히 치르고 사례도 두둑이 받고 일은 순조로이 끝났다.
  대사를 치르고 나서 온 집안이 모두 피곤해 정신 모르고 자는데, 가짜 지관이야 더 말할 나위 없다. 사처 정한 방에서 마악 잠이 들려 하는데 누가 똑똑 두드린다. 가뜩 혼미 중이라 꿈속만 같았다가 거듭 두드리는 데 놀라 일어나 문을 여니, 한 삼십 되어 보이는 젊은 여인이 주안사을 들고 섰다.
  "죄송합니다. 이댁 맏며느리인데, 아들 하나 낳은 게 팔삭동이라고 집안에서 하대가 대단합니다. 말씀을 잘 하셔서 제가 낯을 들 수 있게 만 해주신다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이튿날, 떠나올 제 그럴 듯하게 꾸며대었다.
  "대지를 얻어 쓰셔서 내 맘이 다 흡족합니다. 비룡상천형에는 팔삭동이가 나게 마련이요, 또 그래야 복입네다만..."
  "팔삭동인 벌써 났는 걸요."
  "그래요? 그거 참 희한한 일입니다. 온 문중의 흥복이십니다."
  돌아와 얼마 안 있어 그 댁에서 상당한 재물을 보내와(물론 맏며느리가 주선한 것이다) 평생을 잘 지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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