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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팝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by Casey,Riley 2023.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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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팝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임진모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 음반으로 보는 팝과 록의 역사
 임진모 지음
  TOP ALBUMS
  Timeless Classics
  Golden oldies
  Big Hits but Second Bests

  톱 앨범 100장의 해설과 비판(Timeless Golden Oldies. Big but Second
Bests)

  대중음악은 시대를 반영한다. 또한 대중음악은 음반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
형식과 내용을 구체화한다. 따라서 음반에는 단순히 한 아티스트나 그들의
음악뿐 아니라 그가 몸담고 있는 시대와 대중의 정서가 담겨있다. 음반만큼 그
시대상황과 직결되어 있는 수단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팝으로 표현되는 영미 사회의 대중음악에 50년대 중반 로큰롤이 기습적으로
침투하고부터, 기본적으로 로큰롤은 영미, 유럽사회의 당시 지배문화와 전통에
대한 거부정신으로 잉태된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록(후대의 발전된 로큰롤)은 거뜬히 팝음악의 주류로 등장했으며,
특히 젊음의 음악이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청춘들을 열광시킬 수 있었다.
록의 주체가 젊은이들이고 보면 그들 음반에 자신들이 처한 시대의 정서가 배여
있음은 물론, 기존사회의 가치 및 제도에 대한 저항이 표출되는 탓에 피상적인
시대 반영을 넘어 진보와 개혁정신이 새겨 있기도 하다. 이 책이 록 음반을
중심으로 엮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50년대 이후 록음반에는 경이로울 만큼 그 시대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여기 소개되는 음반은 모두 순응의 자세에서 나왔든 저항정신에서 돌출되었든,
그 모두 시대상황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들이라는 판단에 기초하여 선정되었다.
아이젠하워대통령 시절 10대들의 정신적 상황을 말해주는 척 베리의 음반 (척
베리 정상에 서다), 케네디 시절의 이상주의와 민권운동을 대변한 밥 딜런의
(프리휠링), 미국의 히피정신을 농축한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초현실의
밑바침)과 비틀즈의 (서전트 패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68년 대대적 시위에
나선 '뉴 레프트'의 혁명성을 기타로 대변한 지미 헨드릭스의 (경험했나요)
등이 보기가 될 것이다.
  70년대 초 존 레논의 (플레스틱 오노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달의 어두운
저편), 70년대 중반 영국경제 실패의 산물로 펑크록 운동에 불을 당긴 섹스
피스톨즈의 (네버 마인드 더 볼록스), 80년대 중반에도 월남전이 아직
'살아있는 과거'임을 밝힌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미국에서 태어나), 역시
레이건 보수시대에 대한 반격으로 태어난 트레이시 채프먼의 데뷔앨범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앨범들과 달리 반 시대적인 차원에서, 혹은 생산력 발전의 혜택인
풍요 속에서 무비판적이고 상업적인 속성을 드러낸 작품들이 있다. 이런
음반들도 나름대로는 대중들의 정서를 많이 반영하고 있다. 70년대 말
디스코열기를 가속화시킨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 사운드트랙, 레이건
보수시대의 산물인 마이클 잭슨의 (드릴러), 90년대의 영화(보디가드)
사운드트랙 음반이 여기 해당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앨범 백장은 결코 명반만의 나열이 아니다. 명반이란 흔히
예술성(완성도와 창조성)을 사회성(메세지와 정서의 사회반영성)보다 우위에
두며 그 가치가 매겨진, 이른바 베스트 앨범을 말한다. 이 책은 시대성이
반영되고 그 사회성을 떠안고간 음반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때로 록과 팝의
세계에서 명반으로 거론되는 것들이 빠져있다. 마돈나의 (처녀처럼)이 끼어있는
대신 밴 모리슨의 (문댄스)가 제외된 것은 '100선'이라는 수록 앨범수의 제한
때문임과 아울러 이러한 사회성(시대성) 우선의 편집방침이 적용된 탓이다.
  그러나 탐미주의적 경향에 치우친 음반이면서 명반으로 인정되는 앨범도.
결국은 팝 및 록의 예술성에 기여하는 관계로 후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하다. 따라서 이 책은 예술성이 탁월하면서 정상의 평론가들이 손꼽는
명반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단지 '명반'만의 100선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한다. '시간의 세례'를 거쳐 고전으로 자리를 굳힌 명반(Timeless
Classics or Oldies)을 중심으로 비록 명반의 반열에 끼긴 어렵지만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인기앨범(Big Hits but Second Bests)에 이르기까지, 통칭하여 톱
앨범 100선을 묶은 것이다.
  명반 리스트는 음악을 듣는 사람, 특히 비전문가에겐 필수적이라는 생각에
영, 미 비평가들이 선정한 명반 차트를 부록으로 실었다. '빌보드' '롤링 스톤'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 '크림' '피플'등 유수의 팝(록)전문지와 대중연예지가
뽑은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명반 리스트이다. 본고장의 상황을 파악하는
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선정은 시대와 밀접하다는 점
때문에 삽입시켰다.
  한편 앨범을 선정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로 국내 지명도 및 인기도를
고려했다. 우리는 팝과 록을 수용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 앨범이
어떻게 다가왔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70년대에는 전파매체의 대중음악 프로만
하더라도 팝송이 가요의 그것보다 많을 정도로 팝이 우세했던 시절이었고 그에
따라 많은 팝송 팬을 양산하던 때였다. 이 책에 70년대의 앨범이 가장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영향을 참조했다는 사실이 영미의 록과 팝의
역사를 훑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가능한 한 국내에서 인기 있었던, 동시에
본고장에서도 우대받은 앨범을 중심으로 선정했음을 밝힌다. 록과 팝의 역사에
대한 개괄이 목적인 만큼 소탐대실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 올바른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MBC FM '2시의 데이트'의 작가로 활동하는 이달원씨는 이 책을 만드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주었다. 그는 실질적인 기획자로서 앨범 선정에 동참했으며,
특히 방송의 경험을 살려 '국내 영향'을 놓치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 주었다.
  아카펠라 그룹 '인공위성' 음반편곡자 김영식씨와 언더그라운드 기타연주자
권용진씨 등은 이 책에 소개되는 음반들의 음악적 요소(사운드, 선율, 연주)와
관련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역서'존 레논'의 공역자인 동료 전찬일씨는 적잖은
영감을 제공하면서 책의 틀잡기에 공헌한 바 크다.
  상업적 측면에선 기대치가 낮음에도 오히려 보통책 몇 권의 제작비를 흔쾌히
투자해주신 창공사 유태준 사장, 문장 및 표현 하나하나 그리고 세심한
편집으로 '좋은 책' 만들기에 헌신해주신 곽영진 실장과 남석희씨께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94년 8월 10일 임진모

    목차
  저자 서문
    50년대
  척베리 (척베리, 정상에 서다: Chuck Berry is on top)
  엘비스 프레슬리 (골든 레코즈: Golden records)
  버디 할리 (버디 할리의 빅히트 선집: (Buddy Holly's greatest hits)
    60년대
  밥 딜런 (프리휠링: Freewheelin')
  비틀즈 (플리즈 플리즈 미: Please please me)
  오티스 레딩 (오티스 블루: Otis blue)
  밥 딜런 (다시 찾은 하이웨이 61: Highway 61 revisited)
  비틀즈 (러버 소울: Rubber soul)
  비치 보이스 (펫 사운드: Pet sounds)
  롤링 스톤즈 (여파: Aftermath)
  도어즈 (The Doors)
  비틀즈 (서전트 페퍼즈 론리 하츠 클럽 밴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제퍼슨 에어플레인 (초현실의 밑받침: Surrealistic pillow)
  마마스 앤 파파스 (네가 너의 눈과 귀를 믿을 수 있다면: If you can believe
your eyes and ears)
  벨벳 언더그라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 앤 니코: Velvet underground and
Nico)
  아레사 프랭클린 (10년간의 골든 레코드: Ten years of gold)
  벤 모리슨 (천체 주간: Astral weeks)
  지미 핸드릭스 익스피리언스 (경험했나요: Are you experienced)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일어서!: Stand!)
  크림 (불의 바퀴: Wheels of fire)
  비틀즈 (화이트 앨범: the Beatles: White album)
  블러드 스ㅇ 앤 티어즈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Child is father to the
man)
  무디 블루스 (지나간 미래의 날들: Days of future passed)
  킹 크림슨 (크림슨 왕의 궁전에서: In the count of the Crimson King)
  닐 영 (모두들 이곳이 아무데도 아닌 것을 알고있다: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
  비틀즈 (에비 로드: Abbey Road)
  밴드 (The Band)
    70년대
  제니스 조플린 (진주: Pearl)
  사이먼 앤 가펑클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Bridge over troubled water)
  크로스비, 스틸즈, 내시 앤 영 (데자 뷰: Deja Vu)
  크리던스 글리어워터 리바이벌 (코스모의 공장: Cosmo's factory)
  존 레논 (플라스틱 오노 밴드: Plastic Ono Band)
  캣 스티븐스 (소작인을 위한 홍차: Tea of the tillerman)
  산타나 (아브락사스: Abraxas)
  올맨 브라더스 (필모어이스트 실황공연: Live at Fillmore East)
  제임스 테일러 (귀여운 아이 제임스: Sweet baby James)
  캐롤 킹 (융단: Tapestry)
  T. 렉스 (일렉트릭 전사: Electric warrior)
  마빈 게이 (무슨 일이지: What's going on)
  롤링 스톤즈 (스티키 핑거즈: Sticky fingers)
  후 (후의 다음: Who's next)
  데릭 앤 더 도미노스 (레일라와 그밖의 조화된 사랑노래들: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전람회의 그림: Pictures at an exhibition)
  예스 (프래자일: Fragile)
  돈 맥클린 (아메리칸 파이: American pie)
  레드 제플린 (레드 제플린 4집: Led Zeppelin 4)
  데이비드 보위 (지기와 화성에서 온 거미의 흥망성쇄: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딥 퍼플 (머신 헤드: Machine head)
  엘튼 존 (굳바이 옐로 브릭 로드: Goodbye Yellow Brick Road)
  마이크 올드필드 (튜블러 벨즈: Tubular bells)
  스티비 원더 (말하는 책: Talking book)
  핑크 플로이드 (달의 어두운 저편: Dark side of the moon)
  밥 말리 (라이브!: Live!)
  제프 벡 (블로우 바이 블로우: Blow by blow)
  크라프트베르크 (방사능: Radioactivity)
  퀸 (오페라의 밤: A Night at the opera)
  브루스 스프링스틴 (달아나기 위해 태어나: Born to run)
  보스턴 (보스턴: Boston)
  이글스 (호텔 캘리포니아: Hotel California)
  플리트우드 맥 (소문: Rumours)
  섹스 피스톨즈 (네버마인드 더 볼록스: Never Mind The Bollocks...Here is
the Sex Pistols)
  영화 사운드 트랙 (토요일 밤의 열기: Saturday Night Fever)
  에릭 클랩튼 (슬로우 핸드: Slow hand)
  빌리 조엘 (이방인: The stranger)
  스틸리 댄 (에이자: Aja)
  잭슨 브라운 (허공의 질주: Running on empty)
  바클리 제임스 하비스트 (곤 투 어쓰: Gone to earth)
  핑크 플로이드 (벽: The wall)
    80년대
  클래시 (런던의 부름: London Calling)
  스콜피언즈 (사랑 운전: Lovedrive)
  휴먼 리그 (데어: Dare)
  토토 (토토 4집: Toto 4)
  마이클 잭슨 (드릴러: Thriller)
  폴리스 (동시공재: Synchronicity)
  신디 로퍼 (비범한 여자: She's so unusual)
  컬쳐 클럽 (컬러 바이 넘버즈: Colour by numbers)
  프린스 (심홍색 비: Purple rain)
  브루스 스프링스틴 (미국에서 태어나: Born in the USA)
  왬 (메이크 잇 빅: Make it big)
  마돈나 (처녀처럼: Like a virgin)
  다이어 스트레이츠 (전우: Brothers in arms)
  폴 사이먼 (은총의 땅: Graceland)
  피터 가브리엘 (소우: So)
  유투 (여호수아 나무: Joshua tree)
  데프 레퍼드 (히스테리: Hysteria)
  조지 마이클 (Faith)
  R.E.M (그린: Green)
  트레이시 채프먼 (트레이시 채프먼: Tracy Chapman)
  건즈 앤 로지스 (파괴에의 욕망: Appetite for destruction)
  미드나잇 오일 (디젤과 먼지: Diesel And Dust)
  퍼블릭 에니미 (우릴 저지하려면 수백만 국민이 있어야 한다: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
  스팅 (...태양 같은 것은 없다: ...Nothing like the sun)
   90년대
  M.C.해머 (해머 그들을 마음상하게 하지 말아요: Please Hammer don't hurt
'em)
  마이클 볼튼 (영혼의 공급자: Soul provider)
  시네드 오코너 (난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원치 않아요: 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
  필 콜린스 (하지만 진지하게: ...But seriously)
  니르바나 (신경쓰지 마: Nevermind)
  보이즈 투 멘 (쿨리하이하모니: Cooleyhighharmony)
  에릭 클랩튼 (언플러그드: Unplugged)
  영화 사운드트랙 (보디가드: the Bodyguard)
    권말 부록 (미, 영 세계 유명지의 베스트앨범선)
  1. '빌보드'지 선정
  2. '롤링 스톤'지 선정 1
  3. '롤링 스톤'지 선정 2
  4. '타임'지 선정 1
  5. '타임'지 선정 2
  6. '피플'지 선정
  7. '크림'지 선정
  8.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지 선정


      50년대

  1. Chuck Berry (Chuck Berry is on top)
  2. Elvis Presley (Golden records)
  3. Buddy Holly (Buddy Holly's greatest hits)

    50년대

 1. Chuck Berry (Chuck Berry is on top)
 2. Elvis Presley (Golden records)
 3. Buddy Holly (Buddy Holly's greatest hits)

    로큰롤의 시작...아이젠하워 시대의 관통
    척 베리 (척 베리, 정상에 서다: Chuck Berry is on top)

 Almost grown. Carol. Maybellene, Sweet little rock & roller. Anythony
boy. Johnny B Goode. Little Queenie. Jo Jo gun. Roll over Beethoven.
Around and around. Hey Pedro. Blues for Hawaiians(59년)

 "흑인 사내가 이같은 컨추리풍의 노래를 쓰다니 믿을 수가 없다."
 체스레코드회사 레너드 체스 사장은, 1955년 척 베리가 제출한 데모 테잎에
들어있는 (아이다 메이: Ida May)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노래는 1939년 컨추리가수 로이 애컵 등이 부른 전통의 컨추리송 (아이다
레드: Ida red)에 영감을 받아 척 베리가 만든 곡이었다. (아이다 메이)는
(메이블린: Maybellene)으로 제목이 바뀌어 그해 발표되었고 전미 싱글차트
5위에 오르는 히트를 기록했다. 이 곡으로 시작된 그의 히트 행진은 1960년까지
무섭게 계속되었다.
 그는 흑인이었지만 백인 컨추리 냄새가 나는 노래를 잘 썼다. 그것이 바로
로큰롤(rock and roll)이었다. 로큰롤은 태동 당시 흑인음악의 범주에서 사용된
말이기는 했으나 성분상으로는 흑인음악인 '리듬 앤 블루스'와 백인음악인
'컨추리 앤 웨스턴'이 혼합된 것이었다.
 로큰롤은 이처럼 흑백의 음악을 포괄해 인종의 색깔을 제거했기 때문에 대중적
성격을 갖출 수 있었고, 오늘날 영, 미권 대중음악을 이끌어가는 주도적
장르로서 위치를 굳혔다.
 척 베리는 그 로큰롤을 창조한 초기 거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록의
전신인 이 로큰롤의 연주 및 곡쓰기의 전형을 확립, 후대 록의 진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가 없었다면 60년대의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와 같은 록그룹은
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척 베리, 정상에 서다)는 그가 현대 록음악에 남긴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는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그에게 세 번째가 되는 이 작품은 체스레코드사를
통해 1959년 출반되었다.
 여기에는 기념비적인 싱글 (메이블린)을 비롯, 그의 골든 레퍼토리인 (쟈니 비
굿: Jonny B, Goode)과 (롤 오버 베토벤: Roll over Beethoven)이 수록되어
있다. 비틀즈의 리메이크로 유명해진 (롤 오버 베토벤)과 (쟈니 비 굿)의
도입부에는 훗날 록 기타연주자들의 모델이 된 연주가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척 베리는 기타 연주에 있어서 일반적인 4박의 개념과 주법을 깨는
폴리 리듬을 도입했으며 슬라이드와 복음 주법을 제시해 록 기타주법의 길을
열었다.
 (쟈니 굿 비)은 이와 함께, 50년대 중반 고리타분한 아이젠하워시대에 살던
10대 청소년들의 꿈을 요약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쟈니 비 굿이라는 시골소년이 살고 있었죠. 그는 읽거나 쓰는 것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기타는 아주 잘 쳤지요... 쟈니의 어머니는 말했죠.
언젠가는 너도 청년이 되어 밴드를 이끌 거야. 그럼 너를 보러 먼곳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너의 음악을 듣게 될 거야.

 그는 당시 청소년의 심정을 기막힐 정도로 잘 짚어내 노래에 싣는 천재적
작사능력을 보였다. 이 음반에 수록된 (리틀 퀴니: Little Queenie)를 통해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1926년생인 그가 30세를 전후로 '적지 않은'
나이에 이같은 10대 지향의 노래를 썼다는 사실은 또한번 우리를 놀라게 한다.
 (성인이라오: Almost grown), (캐롤: Carol)은 당시 히트되지 않았지만,
경탄을 자아낼 만큼의 세련미와 정교함을 추구하는 그의 비범한 작품 제조능력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서 록의 클래식으로 승격되었다. 척 베리의 또다른 음악적
특색으로 지적되는 '업템포 부기'(템포가 빨리 전개되는 춤형태)는, 우리
귀에도 익은 멜로디 (엔서니보이: Anthony boy)란 노래에서 맛볼 수 있다.
 앨범의 우수성을 일궈낸 일등공신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노래하고 기타친 척
베리이지만 세션맨의 힘도 컸다. 피아노의 쟈니 존슨, 베이스의 윌리
딕슨(유명한 블루스맨), 드럼의 프레드 빌로우, 재스퍼 토마스 등의 연주는 척
베리의 기타와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다. 그룹 롤링 스톤즈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는 그를 면밀히 연구한 결과, "그의 박력있는 기타연주 스타일이 이
앨범에 등장하고 있는 자니 존슨(Johnny Johnson)의 피아노 연주에 영향을
받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 앨범은 분명 그의 전성기를 수놓은 독집 음반이지만 (록큰롤 음악: Rock
and roll music) (달콤한 16세: Sweet little sixteen) (날 잡지 못할 거야:
You can't catch me) 등 그의 대표작이 빠져 있어 그를 완전히 파악하기엔
부족한 점이 없지 않다. 이 때문에 많은 평론가들은 그의 히트곡을 모두 수록한
2장짜리 콜렉션 음반 (척 베리의 황금10년: Chuck Berry's golden decade)을
그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앨범으로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

    목소리로 흑백을 결합한 로큰롤 슈퍼스타의 진면목
    엘비스 프레슬리 (골든 레코즈: Golden records)

 Heartbreak hotel.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 Don't be cruel.
Hound dog. Anyway you want me. Love me tender. Love me. Too much. All
shook up. That's when your heartaches begin. Loving you. Teddy bear.
Jailhouse rock. Treat me nice(58년)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를 빼놓고 로큰롤을 논할 수는 없다.
 평자들은 흔히 로큰롤의 효시를 53년 빌 헤일리의 (광인: Crazy man
crazy)으로 보거나, 역시 빌 헤일리의 노래인 55년 (하루종일 록을: Rock
around the clock)을 최초의 로큰롤 히트곡(또는 효시곡)으로 정의한다. 록이
그렇게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정작 차트나 방송에서 그 시대를 풍미하기 시작한
것은 RCA빅터레코드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가 발표되면서부터였다. 미국
전역에 록 열풍을 일으킨 노래는 8주간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점령한 (상심의
호텔: Heartbreak hotel)이었다. 이 노래로써 그는 로큰롤의 제왕이 되었다.
 (상심의 호텔)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적인 보컬 능력, 이를테면 흑인
'리듬 앤 블루스'와 백인 '컨추리 앤 웨스턴'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장 잘 드러낸 대표곡이었다. 엘비스는 '목소리로' 흑백음악의 혼합이 가져온
로큰롤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신문의 한 자살 기사에 착상하여 매 액스턴과 토미 더든이 작사, 작곡한
(상심의 호텔)은, '난 너무 외로워 죽을 지경'이라는 가사를 실음으로써
아이젠하워 시대의 10대들이 겪고있는 따분함과 소외를 폭발시키는 뇌관 역할을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실로 아이젠하워 시대에 '10대의 반란'을 야기한
주동자였다.
 이후에 그의 차트 활동은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롭고 눈부시게 전개되었다.
(너를 원해, 너를 요구해, 너를 사랑해: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는 차트 3위(56년5월), (잔인해서는 안돼: Don't be cruel)는
1위(56년8월), (하운드 독: Hound dog)은 2위(56년8월), (러브 미 텐더: Love
me tender)는 1위(56년10월), (난 흔들려요: All shook up)는 1위(57년3월),
(테디 베어: Teddy bear)는 1위(57년6월), (교도소의 록: Jailhouse rock)
1위(57년10월) 등으로 히트 퍼레이드는 계속되었다. 이 앨범은 RCA빅터사
초창기에 발표한 이같은 로큰롤 클래식을 모아놓은 작품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58년 3월 군에 입대하여 2년간 복무한 후 중대한 변화를
겪게 된다. 기성세대에게도 어필하는 노래를 불러 10대들에게만이 아닌
'국민가수'로서의 위치를 구축한 것이 그것인데, 그 때문에 로큰롤의 냄새는
급격히 퇴색하고 말았다. 그래서 60년 7월의 (지금 아니면 안돼: It's now or
never)와 같은 노래로 젊은 세대보다는 기성세대의 기호에 맞춘 스탠다드
경향으로 빗나간(?) 점이 돌출한다. 매니저인 톰 파커 대령의 지시에 의한
이러한 이미지 변화는 잇단 영화 및 뮤지컬 출연으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은 엘비스의 군입대를 계기로 한 변화 이전의 '가장
엘비스적이고 가장 로큰롤적인 노래'를 담았다는 데 작품적 가치를 보유한다.
 (잔인해서는 안돼)와 (하운드 독)은 같은 싱글의 앞뒤 곡으로 모두 인기차트를
석권해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그리고 가장 빅히트한 싱글로 기록되고 있다.
(잔인해서는 안돼)는 그가 평소 좋아하던 리듬 앤 블루스 아티스트 오티스
블랙웰이 쓴 곡으로 엘비스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곡이라고 한다. 이
곡의 히트 이후 엘비스는 오티스 블랙웰의 또 다른 곡을 열망했는데 그리하여
만들어진 곡이 (난 흔들려요) 였다. 이 두 노래는 모두 비교적 빠른 템포로
전개되지만 흑인의 작품인 관계로 자연히 흑인 감성(feel)이 스며있는데
엘비스의 그 소화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엘비스는 사실 '흑인 블루스를 잘 부르는 백인가수'를 요구하던 시대적 요청에
의해 탄생한 스타였다. 선 레코드사의 샘 필립스 사장은 엘비스에게 그
가능성을 발견했고, 몇 곡을 발표케 하여 지명도를 올린 후 3만5천달러를 받고
RCA빅터사로 넘긴 것이다.
 (그것은 네 마음의 고통이 시작될 때야: That's when your heartaches
begin)는 그가 선 레코드사 계열인 '멤피스 레코딩 서비스'에 들러 (나의 행복:
My happiness)과 함께 어머니 생일선물로 취입한 곡으로 이 앨범에 수록된
유일한 RCA 이전의 레퍼토리이다.
 (하운드 독)은 엘비스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곡이었는데, 회사측은 이 곡이
그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져 팬들이 그 특유의 선정적 포즈를 연상하기만
한다면 분명히 히트할 것으로 확신했다. 회사측의 예측은 적중했다.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저음을 과시하고 있는 (러브 미 텐더)와 (널 사랑해:
Loving you)는 각각 엘비스가 출연한 동명타이틀 영화의 삽입곡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그의 영원한 걸작 (러브 미 텐더)는 영화제작자들까지도
감동시켜 '레노 형제들'이란 영화의 원제목마저 바꾸게 해버렸다.
 (날 사랑해주오: Love me)는 이 앨범 수록곡 가운데 유일하게 싱글로 발표되지
않은 곡으로 56년 11월 EP판을 통해 소개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트 6위
및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영화 '널 사랑해'에 타이틀곡과 함께 삽입된 (테디 베어)는 10대 시장과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곡조를 지녀 엘비스 자신도 빅히트를 점친 곡이었다.
(교도소의 록)과 (날 잘 다뤄줘요: Treat me nice) 역시 영화 '교도소의 록'에
삽입된 곡으로, 엘비스의 상표인 광풍이 몰아치는 듯한 파워를 실감케 하고
있다.
 존 레논은 "엘비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아무것도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라고 실토한 바 있다. 그를 위시한 무수한 후배 록가수들이 왜 그토록
엘비스처럼 되려고 몸부림쳤는가를 알려주는 단서가 이 앨범에 들어있다. 그
단서는 엘비스의 명성이었고 그 명성은 엘비스의 환상적인 노래솜씨가 가져다준
것이었다.
 (그림 설명): 히프를 흔드는 엘비스의 전형적인 '로큰롤 포즈'.

    로큰롤의 세련화를 이룩한 안경잽이 스타의 모든 것
    버디 할리 (버디 할리의 빅히트 선집: Buddy Holly's greatest hits)

 Peggy Sue. That'll be the day. Listen to me. Everyday. Oh, boy. Not fade
away. Raining in my heart. Maybe baby. Rave on. Think it over. It's so
easy. It doesn't matter anymore. True love ways. Peggy Sue got
married(74년)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 로큰롤의 사운드는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상태였다. 갓
태어난 로큰롤은 '위대한 천재' 버디 할리를 만나 원시성을 벗고 세련된
음악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그는 로큰롤이 누구나 쉽게 납득할 수 있는
팝음악임을 제시했다.
 그의 음악에는 낭만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로큰롤이 가지는 도전적이고
변화무쌍한 특성을 전혀 훼손하지 않고 그 틀 안에서 '록의 친화력 획득과
성숙'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는 록의 이론가로 통한다. 그때까지 존재한 록 주변의 여러 음악, 즉 리듬
앤 블루스, 컨추리, 로커빌리, 흑인 영가 등을 종합해 록의 체계를 정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거기에 텍사스(그의 고향)와 인접한
멕시코의 영향을 흡수한 소위 '텍스 멕스'(TexMex) 사운드 경향을 선보이기까지
한 거대한 소화력의 소유자였다. 그것은 기존 사운드의 통일을 뜻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아요: Not fade away)는 그의 흑인리듬 소화력을
확인시켜주는 대표적인 곡이었다. 여기에 나타나는 기타 리듬은 흑인음악 리듬
앤 블루스의 거인 보 디들리(Bo Diddley)의 트레이드 마크, 즉 머리카락을
자르듯 '썰어낸' 리듬을 수용했다. 청취자들이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은 '연주자가 흑인임에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57년 그와 그의
그룹 크리케츠(Crickets)가 뉴욕 아폴로극장에서 연주했을 때 객석에서는
놀랍다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이 앨범은 그가 22세의 나이로 요절하기 전까지 발표한 노래 가운데
클래식만을 골라 엮은 걸작 모음집이다. 14곡이 수록된 이 음반은, 여러 음악의
통합을 성취해 낸 그의 공헌을 대체적으로나마 더듬어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적
가치를 지닌다.
 앨범은 버디 할리 히트곡집으로 타이틀이 붙어있지만 실은 그의 발표작과
크리케츠의 히트곡을 한꺼번에 실은 것이다. (페기 수: Peggy Sue) (레이브 온:
Rave on) 등은 버디의 개인 명의로 된 히트곡이지만 (댓일 비 더 데이: That'll
be the day)나 (오, 소년아: Oh, boy) 등은 크리케츠 이름으로 발표된
노래들이었다.
 버디 할리가 이처럼 양다리를 걸친 것은 노련한 매니저 노먼 페티의 전략에
의한 결과였다.
 노먼 페티는 데카 레코드사 소속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크리케츠를
부룬스윅 레코드사에, 버디 할리는 코랄 레코드사에 각각 계약시키는 방법으로
새출발을 꾀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브룬스윅이 데카의 자회사였기 때문에
데카의 법적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브룬스윅에서의 첫 히트곡 (댓일 비 더
데이)는 사실 데카를 위해 만든 곡) 할리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크리케츠를
내건 것이었다.
 (댓일 비 더 데이)는 57년 싱글 차트를 강타, 3위까지 올랐고 22주간이나
차트에 머무는 빅히트를 기록했다. 생동감이 넘치지만 절제된 사운드의 이
곡에서 깨끗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기타는, 펜더 스트레토캐스터라고 하는 그가
널리 퍼뜨린 전기기타였다.
 (페기 수)는 버디 할리 특유의 딸꾹질 창법과 신음에 가까운 보컬을 들려주는
곡이다. 그가 록 팬들에게 전하려 했던 것은 보컬 방식에 있어서는 규칙적이
아닌 '불규칙에 의한 멋'이었고(노래 도중 갑자기 가성을 쓴다거나 저음으로 뚝
떨어뜨리는 것), 가사에 있어서는 드러냄보다는 감춤이었다. 그 감춤을 통해
그는 록 평론가 조나단 코트가 표현했듯이 '아주 귀하고 진실한 사랑'을 찾으려
했다. 그는 소년 같은 순수성으로 록의 성숙을 이룩한 것이었다.
 그가 록계에 끼친 영향력은 그의 노래가 무수히 리메이크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입증된다. 롤링 스톤즈의 미국 차트데뷔곡이 할리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아)였고, 린다 론스태드는 할리 작품의 단골 리메이크꾼으로 (사랑에 빠지긴
너무 쉬워: It's to easy)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It doesn't matter
anymore)를 히트시켜 재미를 보았다. 비틀즈는 그의 곡을 연주하며 실력을
연마하여 훗날 최고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64년 비틀즈를 위시한 영국 록그룹의 '미국 침공'시에 들여온 음악은, 58년
영국 순회공연 때 그곳 젊은이들에게 비트(beat) 열풍을 일으킨 바로 버디
할리의 음악 그것이었다. 그는 미국보다 영국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아
영국에서는 '버디 할리 주간'이 선포되기도 했다.
 버디 할리를 정의해줄 업적은 너무도 많다. 그는 자신이 만든 곡으로 성공한
최초의 백인 록가수였다. 일반적인 록 밴드의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이라는 라인업을 가르쳐준 것도 그였다. 또한 그는 전기기타 팬더
스트래토캐스터를 대중화시켰고 록 반주에 최초로 현을 사용했다.
 이 모든 것을 이 앨범에서는 체험할 수 있다.
 앨범을 통해서 알 수 없는, 그가 남긴 주요한 공헌이 또 있다. 버디 할리는
안경을 쓴 수줍은 인상으로 무대에 선 유일한 록스타였다.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꼭 미남은 아니어도, 반드시 섹시한 매력을 갖추지 않았더라도 로큰롤 스타가
될 수 있음을 그는 증명했다. 버디 할리는 이 점에 있어서도 록의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버디 할리의 출현이 엘비스의 등장과 맞먹는 비중으로 록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 50년대에 활동하다 59년에 죽은 버디의 위 싱글을 모은 이 편집앨범은
74년에 출반했다.
 (사진 설명): 버디할리(왼쪽의 안경 쓴 이)가 이끈 초기 로커빌리 그룹
크리케츠.

    60년대
 1. Bob Dylan (freewheelin')
 2. Beatles (Please please me)
 3. Otis Redding ( Otis blue)
 4. Bob Dylan (Highway 61 revisited)
 5. Beatles (Rubber soul)
 6. Beach Boys (Pet sounds)
 7. Rolling Stones (Aftermath)
 8. Doors (the Doors)
 9. Beatles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0. Jefferson Airplane (Surrealistic pillow)
 11. Mamas and Papas (If you can believe your eyes and ears)
 12. Velet Underground (Velvet Underground & Nico)
 13. Aretha Franklin (Ten years of gold)
 14. Van Morrison (Astral weeks)
 15. Jimi Hendrix Experience (Are you experienced)
 16. Sly and The Family Stone (Stand!)
 17. Cream (Wheel of fire)
 18. Beatles (the Beatles: White album)
 19. Blood Sweet and Tears (Child is father to the man)
 20. Moody Blues (Days of future passed)
 21. King Crimson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22. Neil Young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
 23. Beatles (Abbey Road)
 24. The Band (the Band)

    60년대 정신의 해오름... 그것은 저항
    밥 딜런 (프리휠링: Freewheelin')

 Blowin' in the wind. Girl from the north country. Masters of war. Down
the highway. Bob Dylan's blues. A hard Rain's a-gonna fall.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Bob Dylan's dream. Oxford town. Talkin' World War 3
blues. Corrina. Honey. just allow me one more chance. I shall be
free(63년)

 밥 딜런(Bob Dylan) 이전에도 분명히 포크는 있었고, 저항음악은 존재했다.
그러나 그는 포크에 활력과 중요성을 부여하여 전면적인 포크붐을 일으켰고,
영, 미권 대중음악에 저항정신을 일깨웠다.
 대중음악, 특히 록음악이 60년대에 걸쳐 저항적 메시지를 견지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밥 딜런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저항과 관련해 일컬어지는 이른바 60년대 정신(Sixties Spirit)의
효시이자 중심에 위치한다. 포크 중흥뿐 아니라 그와 같은 60년대 정신의
출발을 알린 것이 다름 아닌 이 앨범이다. 밥 딜런은 이 음반으로 포크의
대중화를 이룩했고 프로테스트(protest) 정신을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 널리
전파했다.
 밥 딜런이 활약하던 시기의 미국은 하버드대학 출신의 젊고 의욕적인 대통령
케네디가 통치하던 시절이었다. 케네디의 뉴 프론티어(New Frontier)와 그에
따른 민권운동 지원에 고무된 당시의 젊은이들은 인종 평등과 반전을 외치며
일제히 밥 딜런의 프로테스트 음악을 경청했다.
 딜런의 프로테스트 송은 당시의 행동주의 포크가수 필 오크스나 톰 팩스튼과
마찬가지로 방금 터진 사건에 대한 구체적 이슈를 다루었다.

 굽은 길을 지나 옥스포드 타운, 그는 문에 도달했으나 들어갈 수 없었지. 그의
피부색 때문이지. 친구여, 그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나. (옥스포드 타운: Oxford
town)

 이 노래는 62년 9월 옥스포드의 미시시피대학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제임스 메레데스라는 흑인 공군제대병이 그 대학에 등록하게 되자
보수적인 인종주의자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양상은 주방위군과 케네디의
국립경호대 사이의 대결과 치달았다. TV를 통해 대학생들에게 인종분리를
종식하고 메레데스를 받아들이라는 연설을 한 케네디 대통령은, 인종주의자의
폭력으로 2명이 사망하자 즉각 해병대를 파견하여 메레데스를 보호했다. 62년과
63년 공민권 획득운동이 미국 동부 전역에 걸쳐 폭발했을 때 밥 딜런은 이처럼
포크로 민권운동을 펼쳐나갔다.
 그가 집착한 또하나 테마는 전쟁에 대한 반대였다.

 영원히 폐기될 때까지 포탄은 얼마나 전장을 날아야 하나. 주위를 외면키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이 고개를 돌려야 하나.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아는 대답: Blowin' in the wind)

 이 노래는 전세계 대학가에 포크 붐을 일으키며 반전가요의 표상이 됐으며
톤을 낮춰 팝화한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 Mary)의 노래로 빅 히트,
작곡자인 딜런의 이름을 알리는 데 결정적 열할을 했다. 여기서 못본 척 고개를
돌리는 사람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냉전의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혀 전쟁에
광분하는 권력층과 무기상을 가리킨다.
 (전쟁의 도사들: Masters of war)은 바로 그들의 위선을 고발하는 작품.
 
 그대들은 다른 이들이 발사하도록 방아쇠를 죄어주지. 사망자가 늘어만 갈 때
그대들은 뒷전으로 물러나 주시하지. 젊은이들 피가 흘러 진흙에 묻힐 때
그대들은 맨션에 숨어만 있지.

 62년 10월에는 피그만사건에 의해 촉진된 '쿠바 미사일 위기'가 있었다. 미
공군에 의한 피그만 공습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미국과 케네디의 위신은 크게
손상되었다. 당시 후르시초프 서기장은 쿠바에 미사일 기자를 건설, 무력을
강화시키려 했고 미국의 첩보 비행기가 그 증거를 포착하자 두 강대국은 13일간
팽팽히 맞서면서 전면전의 위기에 봉착했다. 소련이 미사일 시설을 모스크바로
철수시키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재앙은 비켜갔지만 이 사건이 미국 국민에게
미친 공포와 충격은 대단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3차대전의 개시'로 여겼다.
 (강한 비가 내릴꺼야: A hard rain's a-gonna fall)는 미사일 위기가 초래한
공포를 노래한 곡이었다.

 난 천둥소리를 들었어. 그것은 고함치며 경고를 던졌지. 세상을 덮어버릴
파도의 격량을 들었어... 시궁창에서 죽은 시인의 노래를 들었어. 미궁에 빠져
울고있는 광대의 소리를 들었지.

 밥 딜런이 그려낸 3차대전의 현장은 소름끼친다.

 난 낙진대피소의 벨을 누르고 머리를 기울이며 소리쳤지. "땅콩을 줘. 난 지금
배고파"하며. 총탄이 날아왔고 잽싸게 도망쳤지... 핫도그점 코너에서 난 어떤
남자를 보고 "안녕하슈, 여긴 우리 둘밖에 없군" 했지. 그는 갑자기 소리치더니
날아가버렸어. 날 공산주의자라 생각한 거야. (3차대전의 블루스: Talkin'
World War 3 blues)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애청된 (두번 생각하지 마, 괜찮아: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와 (북극에서 온 소녀: Girl from the north)는 러브송이다.
이같은 현실 비참여적 노래를 배치함으로써 앨범의 균형과 예술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 앨범은 록 부문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 작품이다. 통기타와 하모티카,
그리고 딜런의 거친 목소리만이 존재하는 전형적인 포크음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기 로큰롤에 매료되어 있었던 딜런은 곧바로 포크와 록의 요소를
결합한 포크록을 창시하며 록 세계로 들어갔다. 악기로 말하면, 통기타를
버리고 일렉트릭기타를 쥔 것을 의미하는 그의 충격적 전향은 록분야에서는
환영을 받았으나 전통 포크진영으로부터는 '배신자'라는 오명을 안게 되었다.
 그는 포크록으로 변신하면서 정치적 행동주의와 저항을 포기하고 내적 탐구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미 많은 록가수에게 저항정신을
아로새기고 난 뒤였다. 그의 저항성은 그가 아닌 딴 가수들에 의해 계속되어
나갔다.

    비틀매니아의 서곡을 울린 역사적 데뷔음반
    비틀즈 (플리즈 플리즈 미: please please me)

 I saw her standing there. Misery. Anna(go to him). Chains. Boys. Ask me
why. Please please me. Love me do. P.S. I love you. baby it's you. Do you
want to know a secret. A taste of honey. There's a place. Twist and
shout(63년)

 1963년 3월 발매되어 존, 폴, 조지, 링고가 리버풀의 네마리
딱정벌레(beetle)가 아닌 영국의 전국적 그룹임을 과시한 이들의 첫 LP. 이
앨범이 발표된 63년 한 해 동안 영국에서는, 단순 음악관련 해프닝을 훨씬
뛰어넘는 사회적 현상이 그들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비틀매니아'가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리버풀의 캐빈 클럽에서 비틀즈(the Beatles)가 공연할 때도
소녀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소리치며 춤을 추어댔다. 그러나 전국 순회연주를
하던 이 무렵 아주 격렬한 집단 히스테리가 발생, 마침내 저널리스트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 해
10월부터 3개월 사이 하루 걸러 한번 정도로 비틀즈 스토리가 전국 일간지의
일면을 장식하게 되었다.
 단 하룻동안 11시간만에 녹음을 마친 이 앨범은,비틀매니아(Beatlemania:
비틀즈 현상) 출현의 시발을 보여줬다는 점 외에 장차 명반들을 쏟아낼
대중음악사상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콤비 존-폴의 작업방식과 재능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귀중한 음반이다.
 이들은 영국차트 정상을 차지함으로써 비틀즈의 입지를 공고히 해준 두번째
싱글곡 (플리즈 플리즈 미: please please me)와 그들 콤비의 첫 결실로서
영국차트 17위(미국 '빌보드'지엔 늦게 소개되어 64년4월 네 번째로 차트1위
기록)의 (날 사랑해주오: Love me do)를 포함, 여덟 곡의 창작곡을 선보였다.
이것은 기존 곡들을 리메이크하거나 다른 작곡가의 노래를 단순히 부르거나,
또는 미국의 히트곡들을 가져다 부르는 것이 관례인 당시의 영국 음악판도에선
가히 혁명적인 일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난 그녀가 서있는 것을 보았지: I
saw her standing there) 같은 곡은 학창시절 무단결석을 하며 폴의 집에서 두
사람이 지었다지만, (이유를 물어봐요: Ask me why) (어떤 곳이 있었지요:
There's a place) (P.S. 난 널 사랑해: P.S. I love you) 등 대부분의 오리지널
곡들은 순회공연 중 썼다는 사실.
 그들의 경이적 독창성은 그러나 여섯 곡의 기성곡들을 선택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팻 분 같은 유명가수들의 노래 대신 슈렐즈의
(연인이여 그건 바로 너야: Baby, it's you), 그리고 레논과 메카트니가
자신들의 모델로 삼았단 게리 고핀-캐롤 킹 콤비가 쓰고 쿠키즈가 부른
(체인즈: Chains), 존의 파워넘치는 남성적 가창력으로 앨범을 끝맺는 아이슬리
브라더즈의 (춤추며 소리지르라: Twist and shout) 등, 영국의 음악팬에겐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자신들의 애창곡을 부른 것이었다. 이 가운데 (춤추며
소리지르라)는 창작곡이 아닌데도 이듬해 전미 차트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무명이었던 '캐번'시절의 이 곡들이 명실상부한 로커인 초기 비틀즈의
이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이 앨범은 빛을 발한다.
 (플리즈 플리즈 미)의 성공에 뒤이어 비틀즈는 64년에 들어서자 (나는 네
손목을 잡고싶어: I want to hold your hand)를 외치며 미국을 '침공'했고 이어
세계정복의 길로 나아갔다.
 그들을 시발점으로 연이어 롤링 스톤즈, 후, 데이브 클락 파이브, 허먼스
허미츠, 애니멀즈 등 영국의 무수한 로큰롤 그룹들이 미국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미국의 팝음악 관계자들은 그 현상을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이라 표현했다.
 영, 미간의 음악적 벽을 허물어버린 비틀즈는 이와 함께, 작곡자와 가수로
나뉘어있던 음악계를 결합시켜 가수 겸 작곡자, 즉 싱어송라이터의 체제를
구축했고 음악 소비자로 하여금 싱글 아닌 앨범을 구입하게 해 '앨범 시대'를
여는 계기를 마련했다. 록음악은 비틀매니아에 의해 새로운 장을 열게 된
것이다. 이 앨범은 그 '위대한 비틀매니아의 시작'을 알린 실로 록역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림 설명): 63년 영국을 휩쓴 비틀즈 선풍은 이듬해 미국도 정복, 세계적
열풍을 야기시켰다.

    60년대 흑인정신이 표출된 '소울 음악'의 교본
    오티스 레딩 (오티스 블루: Otis blue)

 Ole man trouble. Respect. Change gonna come. Down in the valley. I've
been loving you too long. Shake. My girl. Wonderful world. Rock me baby.
Satisfaction. You don't miss your water(65년)

 미국 조지아주 메이컨 출신인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의 지향점은 자신의
고향이 배출한 위대한 로큰롤 가수 리틀 리차드처럼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멤피스레코드사 계열의 스택스 스튜디오에서 레코딩을 하게 되면서, 그의
노래는 리차드의 강한 로큰롤로부터 흑인 특유의 짙은 소울(soul)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의 노래는 '소울 발라드'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흑인음악의 용어가 리듬 앤 블루스에서 소울로 바뀌게 된 것은 60년대
중후반의 사회상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65년 뉴욕의 할렘 폭동, 67년
디트로이트 폭동은 흑인의 권리쟁취를 위한 과격한 욕구분출이었다. 이때
흑인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새로이 등장한 용어가 바로 '소울'('흑인영혼
'흑인정신')이었다. 대부분의 흑인들은 그들의 반인종차별 투쟁과 소울이라는
말을 동격시했다. 당시 동시다발적으로 팝계에 출현한 제임스 브라운, 레이
찰스, 윌슨 피켓, 아레사 프랭클린, 그리고 오티드 레딩이 대표적인
소울가수들이었다. 소울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흑인민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65년 발표된 (오티스 블루)는 이같은 흑인의 권리신장 요구와 소울발현의
촉매제 열할을 했다. 오티스 레딩의 음악과 이 앨범은 따라서 60년대 후반의
소울 열기와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다. 그의 자작곡인 (존경: Respect)과
(변화는 올 것이다: Change gonna come)는 그같은 소울의 경향을 대표한다.
거기에는 이전엔 찾아볼 수 없던 흑인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배어있다.
 (존경)은 특히 '레이디 소울'(Lady Soul)의 칭호를 얻은 아레사 프랭클린이
불러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더욱 유명해졌는데, 60년대의 소울 음악과
흑인민권운동 물결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소울의 걸작들이 총망라되어 있다는 평을 듣는 이 음반은 대중적으로도 성공해
4개의 히트 싱글이 쏟아져 나왔다. (존경) 외에도 (흔들어라: Shake) (만족할
수 없어: I can't get no satisfaction) (지금 멈추기엔 너무 오랫동안 그대를
사랑했어요: I've been loving you too long)가 잇따라 히트했고 영국에서는
(나의 여자: My girl)도 싱글로 발표되어 인기를 누렸다. 이 가운데 롤링
스톤즈의 오리지널 (만족할 수 없어)는 소울과 록이 훌륭히 양립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기존 체제에 대한 대항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의
공통점을 지닌 두 장르는 이후 자주 결합하여 어깨동무 사이로 발전해갔다.
 앨범수록곡 중 우리나라에서는 단연 (지금 멈추기엔...)이 사랑을 받았다.
오티스 보컬의 짙은 호소력과 끌어당기는 듯한 분위기가 압권인 이 노래는 그
특유의 스타일(소울 발라드) 때문에 발라드 취향이 강한 국내팬들의 줄기한
애청곡이 되었다.
 그러나 67년 12월 불의의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면서 그의 활동은 종막을
고했다. 26세의 요절이었다. 그의 이른 죽음이 한편으로 이 앨범의 가치를 더욱
높여 주었는지도 모른다.
 사망 직후에 발표된 (만의 부두에 앉아: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는
전미 싱글차트 정상에 오르는 빅히트를 기록했다.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소울 발라드 필(feel)이 전편을 수놓은 이 노래는 그의 노래 가운데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곡과 (부드러움을 실행해 봐요: Try a little tenderness)는 이 음반에
수록되어 있진 않지만 오티스의 팬이라면 놓쳐서는 안될 작품이다. 뒷 노래는
그의 전매특허-스탠다드를 비비꼬일 만큼 느리게 재해석해 부르는 것-를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일부 평론가들은 그를 '소울의 왕'(King of soul)이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앨범이 역사상 가장 훌륭한 소울 앨범 중 하나로 간주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림 설명): 오티스 레딩

    대중음악 가사의 혁명... 포크와 록의 결합
    밥 딜런 (다시 찾은 하이웨이 61: Highway 61 revisited)

 Like a rolling stone. Tombstone blues. It takes a lot to laugh. It takes
a train to cry. From a buick 6. Ballad of a thin man. Queen Jane
approximately. Highway 61 revisited. Just like Tom Thumb's blues.
Desolation row(65년)

 록평론가 데이브 마시는 이 앨범을 밥 딜런(Bob Dylan)의 작품 가운데
최고라고 추켜 세우며 "이때쯤의 그의 영향력은 너무도 확산되어 정말 수천의
사람들이 그의 언어 하나하나에 매달리는 실정이었다"고 말했다.
 65년 8월 딜런의 전성기 때 발표된 이 앨범이 가지는 의의는 바로 데이브
마시가 지적한 언어, 즉 가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딜런은 이 앨범을 통해
순간의 감각에 영합하는 하루살이 같은 팝송의 노랫말을 그야말로 성경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록평론가 짐 오도넬의 표현처럼 이 무렵 그의
가사는 마치 '운율(비트)을 지닌 게티스버그연설'처럼 록계에서 곡 만드는
사람의 두뇌를 해방시켰다(노래로 읊은 민주주의의 이정표!).
 딜런의 언어는 감상자의 가슴을 찌르는 통렬함을 지녔고 초현실적이었으며,
이전의 대중가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철학적 깊이를 간직했다. 정확히 해독이
어려울 만큼 난해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례로 여기 수록된 (여왕 제인: Queen Jane approximately)에서의 제인이
혹시 연인관계로 소문난 존 바에즈가 아니냐는 추측이 등장했고, 한 뉴욕시민은
'(폐허의 거리(Desolation row)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를 지하신문에 내기도 했다.
 밥 딜런은 데뷔와 동시에 (바람만이 아는 대답: Blowin' in the wind) (시대는
변한다: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전쟁의 도사들: Masters of war)와
같은 저항가요로 양심세력을 이끈 시대의 표상이었다. 젊은 지성인들은 그의
가르침에 따라 반전을 부르짖고 기존체제와 기성세대에 대항했다. 얼마후 그는
이같은 정치성을 스스로 부정하며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였으나 '내적 성찰에
의한 의식혁명'을 주장하는 심원한 저항을 드러내 보였다. '딜런' 하면
떠오르는 어휘가 되어버린 프로테스트(protest) 기조는, 따라서 이 작품에서도
계속 유지되었다.
 이 계열의 노래로는 (구르는 돌처럼: Like a rolling stone)과 (깡마른 사람의
노래: Ballad of a thin man)가 해당된다. 그의 생애 최고 히트곡이 된 앞의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 잃을 것도 없다'는 노랫말고 함께 벌거벗겨진
자연인이 되기를 권유하면서 기성의 해체를 역설한다. (깡마른 사람의 노래)
역시 기성세대에 대한 순전한 비아냥이다. 이 곡에는 시위대 피켓의 슬로건이
되기도 한 '여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요,
존스씨?'라는 유명한 구절이 들어있다. 여기서 존스는 혹시 존슨대통령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등장했는데, 딜런은 "당신은 그를 알고 있지만 그
이름으로는 아니다"라고만 언급, 특정인을 거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사를
떠나서 이 두 곡은 음악적으로도 탁월한 걸작들이다.
 타이틀에 사용된 하이웨이61은 그의 고향인 미네소타 유리치의 북쪽에서
미네아폴리스, 세인트루이스, 멤피스를 거쳐 뉴 올리언즈까지 달리는
고속도로를 가리킨다. 어린시절 꿈을 안겨준 이 도로를 내검으로써 그는
'과거로 돌아가서 미래를 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회고조의 앨범제목과
다르게 전체적인 분위기는 쾌활하며, 예를 들면 (폐허의 거리)는 제목답지 않게
친근하고 밝은 멜로디로 다가온다. 연주의 측면에서는 당시 무명이었던 마이크
볼룸필드와 알 쿠퍼가 각각 기타와 오르간 세션(session: 반주)에 나선 것이
눈에 띈다. 이미 시작된 포크에 록을 접목한 이른바 '포크록'이 이 앨범에서
만개하고 있다.
 영미 록계의 평론가들이 이 앨범을 일제히 걸작으로 손꼽는 이유는 이 작품이
당시 딜런에게 자의건 타의건 요구되었던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저항의 기조, 깊이있는 노랫말, 록과 포크의 결합이 그것이었다. 록
역사에 딜런이 남긴 발자취를 한꺼번에 더듬어볼 수 있는 실로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이 앨범은 국내에서도 출시되었다.

    비틀즈의 변신... 소녀팬에서 성인에게로
    비틀즈 (러버 소울: Rubber soul)

 I've just seen a face. Norwegian wood. You won't see me. Think for
yourself. The word. Michelle. It's only love. Girl. I'm looking through
you. In my life. Wait. Run for your life(65년)

 록평론가들은 그렉 쇼는 비틀즈 음악의 우수성을 논하면서, 그 원인으로
기존의 모든 음악을 받아들여 자기스타일화한 스폰지 같은 흡수력을 지적했다.
그는 그들이 버디 할리, 척 베리, 엘비스 프레슬리의 50년대 초기 로큰롤뿐만
아니라 60년 미국에 존재했던 모타운의 리듬 앤 블루스, 서프 뮤직, 필
스펙터의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 음악을 포괄하여 독창적인 비틀
뮤직을 창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렉 쇼가 하나 놓친 것이 있다. 바로 밥 딜런의 포크음악이다. 64년
'미국 침공'으로 천하통일을 이룩한 비틀즈는 당시 미국 청년들을 사로잡은 밥
딜런의 포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사실 딜런도 비틀즈에 끌리긴 마찬가지여서
후에 포크와 비틀즈식 록을 섞은 포크록을 창안하게 된다). 특히 자의식이
강했던 존 레논에게 메시지가 두드러진 포크는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전까지 비틀즈의 음악은 로큰롤의 본질에 충실하긴 했지만 가사는 남녀간
애정을 소재로 한 시시콜콜한 사랑타령에 머물러 있었다. 비틀즈는 10대
팬들에게 행여 거리감을 줄지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밥 딜런처럼 '뭔가
무게있는 노랫말'의 음악을 하고자 했다. 사랑을 노래하더라도 거칠고
드러내놓는 내용보다는 애매모호하고 감추어진 측면을 묘사하고 싶었다. 그들은
변화를 원했던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비틀즈의 초기 걸작 (러버 소울: Rubber soul)이 탄생했다.
폴 매카트니는 제목에 별다른 뜻이 없다고 했지만 '고무 정신'이라는
의미부터가 이전의 음반들과는 달랐다.
 비틀즈는 이 앨범에서 어떠한 싱글도 커트(별도의 '도너스판'을 제작,
발표)하지 않았다. 팬들에게 앨범 전체를 하나의 음반으로 받아들여 달라는
요구였다. 사실 처음부터 이 앨범은 싱글 개념을 거부하고 하나의 앨범이라는
구상하에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러버 소울)은 비틀즈 4인의 그룹 결속력이
최고로 발휘된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수록곡의 가사를 초기작과 비교해보면 금방 차이가 발견된다.

 난 무언가 얘기할 거야. 너도 이해하겠지. 그럼 그것을 말할 테야. 난 네 손을
잡고 싶어. (네 손을 잡고싶어: I want to hold your hand)

 지나간 사람들과 일에 애정을 잃지 않고 난 가끔 멈추어 그들을 생각할테야.
삶 속에서 너희들을 더욱 사랑할 거야. (내 삶에서: In my life)

 앞곡은 64년 2월 미국 데뷔곡이고 뒷곡은 65년 12월에 발표된 이 앨범의
수록곡이다. 평론가 그레일 마커스의 표현처럼 (러버 소울)에 보이는 사랑은
초기곡에서는 제거되었던 '살아있는 사랑'이었다. 거친 힘은 표면 아래로
숨었다. 가사는 다의적이어서 그 의미를 자꾸 되새기게끔 하고 있다.
 이 앨범의 노래들 가운데 최고의 트랙은 (여자: Girl)이다. (내 삶에서(삶
속에서))와 함께 존 레논이 쓴 이 곡은 앨범의 백미로 꼽히는데, 사랑의
가변성에 대한 사려깊은 반성을 담았다.

 그녀는 젊었을 때 명성이 쾌락을 가져온다는 얘기를 들었을까. 남자가
여가시간을 갖기 위해 등 부숴지게 일해야 한다고 할 때 그 말을 이해했을까.
그가 죽었을 때도 여전히 그 얘길 믿을까.

 이 노래에서 '걸(여자)'이 종교일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존 레논의 종교에
대한 시각이 담겨진 노래라는 것이다. '여자=종교'로 대입하여 가사를
음미해보면 내용이 꽤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만약 그렇다면, 종교란
괴로움의 바다에서 우리를 건져주지만 그 효과는 순간적이며 인격의 파탄과
황폐화라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해석이 도출된다.
 그 무렵 존은 종교(특히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이 음반이 발표되고
얼마 후 그는 실제로 런던 '이브닝 스텐더드'지 모린 클리브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기독교 신앙은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종적을 감추고 움츠러들
것이다. 더 이상 논쟁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는 지금 예수보다 더 인기가
있다(We are more popular than Jesus)"라는 충격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것이 일반적 사랑이든 종교이든 초기 곡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폴 매카트니는 여전히 뛰어난 선율의 노래를 잘 썼다. (난 막 얼굴을 봤어:
I've just seen a face)나 그래미상을 수상한 (미셸: Michelle) 등이 그러하다.
역시 폴이 대부분을 쓴 (난 너를 뚫어지게 보고 있지: I'm looking through
you) (넌 날 보지 못할 거야: You won't see me)는 경쾌하면서도 매력적인
리듬을 지니고 있는데, 뒷곡은 훗날 앤 머레이가 다시 불러 히트했다.
 (스스로 생각하라: Think for yourself)는 레논-매카트니 콤비의 벽을 넘어 이
앨범에서 해리슨이 작곡해 부른 유일한 곡이다(링고 스타는 곡을 쓰지 못했다).
조지 해리슨이 위력을 발하는 부분은 역시 기타연주인데, (노르웨이의 숲:
Norwegian wood)에서는 기타 비슷한 인도의 전통악기 시타르(sitar)를 도입해
연주했다. 다소 실험적인 이 노래는 시타르 연주 뿐 아니라 종전과 다른, 약간
음산하며 전위적인 곡조로 많은 록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영감에 가득차 있으며 새롭기 그지없는 이 앨범은 밥 딜런의 영향이 컸다. 이
영향하에 4인의 특별한 결합을 통해 '우수한 곡들'을 한데 모아놓는 결실을
맺었다. 팝 관계자들 중 일부가 다른 앨범을 접어두고 이 작품을 비틀즈의 최고
음반으로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러버 소울)로 그들은 틴에이저 지향의
그룹에서 탈피하여 전무후무한 팝그룹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 앨범으로
자신감을 얻은 그들은 곧바로 (리볼버)라는 또 하나의 걸작앨범을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롤링 스톤즈와 비치 보이스도 (러버소울)에 충격을 받고 각각
독창적인 앨범 (여파: Aftermath)와 (펫 사운드: Pet sounds)를 내게 되었다.
 이같은 사실 외에 다른 것에서 '비틀즈의 위대성과 위대한 음악의 시작'임을
예시할 별도의 사례를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서프 음악'의 종언... '스튜디오 음악'의 개가
    비치 보이스 (펫 사운즈: Pet sounds)

 Caroline no. Wouldn't it be nice. You still believe in me. That's not me.
Don't talk. I'm waiting for the day. Let's go away for a while. Sloop John
B. God only knows. I know there's an answer. Here today. I just wasn't
made for these times(66년)

 윌슨 삼형제 브라이언, 칼, 데니스와 사촌인 마이크 러브, 그리고 이들의
친구인 알 자딘으로 구성된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트레이드 마크는
서프음악(Surf Music)이었다. 그들은 60년대 초반 저 유명한 (서핀 유에스에이:
Surfin' USA)를 비롯, (파도를 타자: Catch a wave) (서프하는 아가씨: Surfer
girl) 등 캘리포니아 해변과 태양을 무대로 서프의 즐거움을 담은 낭만적인
노래를 가지고 팝계를 강타했다.
 그룹의 실세로서 천재적 재능의 브라이언 윌슨은 그러나 가벼운 서프 음악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64년 말 신경쇠약 증세로 그룹을 잠시 떠난 그는
서프음악과 결별하기로 다짐하고 새 모습을 보이기 위해 작곡, 편곡, 녹음에
열중했다. 당시 그는 비틀즈를 상당히 의식하고 있었다. 작곡에 있어서나
기술적으로나 비틀즈보다 나은 앨범을 만들고 싶어했다. 구체적 목표는
비틀즈의 (러버 소울)을 타도하는 것이었다.
 66년 5월에 발표된 (펫 사운즈)는 이같은 브라이언의 욕구에 따라 만들어졌다.
따라서 그것은 비치 보이스라는 그룹의 작품이라기보다는 브라이언 개인작품에
가까웠다. 음반 수록곡 어떤 것에도 이전의 비치 보이스 색깔은 배어나오지
않았다. 곡은 훨씬 느려졌고 작사가 토니 애서의 지원을 받은 노랫말은
자기성찰의 분위기로 흘렀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브라이언은 필 스펙터가 창안한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 기술을 빌어 더빙반복으로 소리를 두껍게
했고 종소리, 경적소리, 외침 등 효과음을 많이 응용했다. 그것은 곧바로
레코딩계에 일렉트로닉 물결을 일으키는 기술적 개가였다.
 이렇게 해서 나온 (캐롤라인 노: Caroline no) (그것이 좋지 않은가요:
Wouldn't it be nice) (신만이 알지: God only knows) (슬룹 존 비: Sloop John
B) 등은 사이키델릭하고 복잡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훗날 이 노래들은 록의 고전이 되었다. 특히 프렌치 호른과 썰매방울 소리를
깔며 칼 윌슨이 부른 톡쏘는 맛의 노래 (신만이 알지)는, 비틀즈의 폴
메카트니로부터 "이제까지 쓰여진 노래 가운데 최우수곡"이라는 격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캐피톨 레코드사는 이 음반을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브라이언이 돈만 낭비하고 좋은 앨범을 내놓지 못했다고 불평했고 오히려
뒤이어 나온 비치 보이스 히트곡집의 음반홍보에 주력했다. (펫 사운즈)가
보기드문 걸작이었으면서도 대중적으로 크게 어필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슬룹 존 비)와 (그것이 좋지 않은가요)는 전미
싱글차트 톱10위에 올랐으며, (슬룹 존 비)의 경우는 우리말로 개사되어 널리
애청되었다.
 이 작품의 진가는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나타났다. 레코딩 종사자들은 이
앨범을 통해 스튜디오 자체가 하나의 음악도구라는 사실을 배웠다. 평론가들은
지금도 이 앨범을 시대를 앞서간 60년대의 몇 안되는 컬트음반(cult album)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브라이언 윌슨은 이 앨범으로써 실험적 음악자세와 비범한 작곡 솜씨를
인정받았다. 비치 보이스가 짧았던 서프음악의 유행을 뛰어넘어 반짝 그룹으로
그치지 않고 '록의 전설'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순전히 이 앨범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라이언은 비치 보이스의 이미지를 거의 바꾸어 버렸지만 한 가지는 그대로
남겨두는 지혜도 발휘했다. 그것은 비치 보이스가 록계에 남긴 음악유산으로
얘기되는 바로 그들만의 절묘한 화음이었다. 위험에 가까운 실험 속에서도
그들의 환상적인 보컬 하모니는 충분히 구제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슬롭 존
비) (그것이 좋지않은가요)가 그러했다. 브라이언 윌슨은 남들과 구별되는 비치
보이스의 자랑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사진 설명): 그룹의 주역 브라이언 윌슨.

    비틀즈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 2등 록밴드의 1등 작품
    롤링 스톤즈 (여파: Aftermath)

 Paint it black(영국 Mothers little helper). Stupid girl. Lady Jane. Under
my thumb. Doncha bother me. Goin' home. Flight. High and dry. Out of time.
It's not easy. I am waiting. Take it or leave it. Think. What to do(66년)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을 주도한 쌍두마차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는 1964년부터 로큰롤의 왕관을 놓고 불꽃튀는
대권경쟁을 벌였다. 두 그룹은 영국 인기차트 1위와 2위를 번갈아 차지하며
치열하게 다투었지만 늘 상호 선린관계를 유지했다.
 그들은 서로 배웠다. 서로 어떤 음악을 하는가 주시하며 상대편이 내놓는
신곡을 열렬히 청취했다. 그러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한 예로 비틀즈는
롤링 스톤즈의 65년 히트곡 (만족할 수 없어: I can't get no
satisfaction)에서 키스 리처드가 발로 작동하는 퍼즈박스에 주목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작품에 활용했다. 한편 롤링 스톤즈의 브라이언 존스가 66년 넘버원
송 (검게 칠하라: Paint it black)에서 사용한 인도악기 시타르는 비틀즈 (러버
소울)의 수록곡 (노르웨이의 숲)으로부터 착상한 것이었다.
 롤링 스톤즈는 인기 면에서 비틀즈에 뒤져 언제나 2위에 만족해야 했지만
실력에 있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의 밴드로 군림, 끊임없이 비틀즈를
위협했다.
 영국에서 66년 4월(미국에서는 66년 6월)에 발표된 (여파: Aftermath)가 바로
그들을 위대한 록그룹으로 부상시켜준 앨범이었다. 또한 음반의 타이틀처럼
팝계에 많은 '여파'를 일으킨 문제작이기도 했다.
 (검게 칠하라)만 봐도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앨범은 비틀즈의 (러버
소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우선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Mick Jagger)와
키스 리처드(Keith Richard) 콤비가 이 앨범을 만들 때의 출발점이 "우리도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처럼 앨범 전체를 우리의 창작곡으로 하자"는 것이었다는
사실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키스와 믹은 성공리에 그 작업을 완수했다.
 두 사람은 이와 함께 (여파)에서 여러가지 시도를 감행한다. 롤링 스톤즈는
여기서 전매 특허인 검둥이음악, 즉 리듬 앤 블루스만이 자신들 음악의 전부가
아님을 선언한다. 그들은 리듬 앤 블루스만 파고들어서는 결코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듯했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여파)는 그들의 판단이 옳았음을 입증했고 최강의
전천후 그룹으로서 영생하려는 그들의 목표에 근접시켜주었다. 롤링 스톤즈는
이 앨범으로 리듬 앤 블루스 그룹으로부터 진정한 로큰롤 밴드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 앨범은 무엇보다 믹과 키스 콤비를 그룹의 간판으로 부각시켰다. 둘이
만들어낸 앨범의 수록곡 (검게 칠하라) (꽉잡힌 그녀: Under my thumb)
(한심스런 여자: Stupid girl) (레이디 제인: Lady Jane) (그것을 잡든가
아니면 놔두어라: Take it or leave it) (아웃 오브 타임: Out of time) 등은
멜로디 구성, 편곡, 진행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한 곡들이었다.
 특히 믹은 이 앨범의 일등공신이었다. 매 곡마다 그 곡에 맞는 보컬을
구사하는 타고난 재능을 과시했다. 발라드한 (레이디 제인)과 업템포인 (꽉잡힌
그녀)에서 보여주는 보컬 톤의 현격한 차이는 놀라운 것이었다. 폴 에반스가 쓴
'롤링 스톤즈 앨범가이드'는 "이 앨범에서 초기 믹의 보컬을 특징지워 주었던
리듬 앤 블루스 스타들에 대한 미숙한 시늉은 새롭고 역설적인 개성 표출에
자리를 내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와 키스 리처드는 작곡자 명부에 브라이언 존스와 빌 와이먼이 끼는 것을
마다했지만 이 앨범이 청취자의 주목을 글 수 있었던 밑거름은 밀려난 두
사람의 악기연주 및 편곡이었다. 특히 브라이언 존스는 그룹의 실질적 리더답게
다양한 악기의 시도로 앨범에 광채를 더했다. (검게 칠하라)의 시타르, (레이디
제인)의 덜시머, (꽉잡힌 그녀)의 마림바 등 악기구사는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Goin' home)가 당시로는 꽤 긴 12분의 대작으로
나타난 것도 음악공간을 보다 넓게 사용하려는 그의 과감한 실험의 결과였다.
이러한 노력이 이 작품을 당시 '혁신적인 방법'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한
밑거름이었다.
 비틀즈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그들과 엄격히 차별성을 띠려는 지극히 롤링
스톤즈적인 색깔이 이 앨범에 나타난다. 그것은 여자를 깔보는 경향이었다.

 내 손에 잡혔지. 전엔 날 거부했던 여자. 내 손에 쥐었지. 전엔 날 깔보던
여자. ...바뀌었지. 그녀는 이제 내 맘대로야. (꽉잡힌 그녀)

 저 한심스런 인간을 봐. 그녀가 머리를 물들이든 어떤 색깔의 옷을 입든
중요친 않아. 그 여잔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족속이야. (한심스런 여자)

 이것이 바로 롤링 스톤즈가 노린 악동 이미지였다. 그들은 나쁜 인상을
의식적으로 강조하여 반체도권적인 인물로 비쳐지도록 하면서 비틀즈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불량, 반항, 거만함, 퇴폐, 그리고 외설과 같은 나쁜 요소들이 모두 그들의
것이었다. 그들은 또한 집요하게 그러한 이미지를 끝까지 밀고 나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악동의 이미지가 바로 롤링 스톤즈를 30년 이상
활동하게 한 에너지였다.

 * 참고로, (검게 칠하라)는 미국판 앨범에 수록되어 있고 영국판에는 그것이
없는 대신 (마더스 리틀 헬퍼: Mather's little helper)가 실려있다.
 (그림 설명): 이 앨범을 만들 때인 65년 그룹의 모습. 왼쪽부터 믹 재거, 빌
와이먼, 찰스 와츠, 브라이언 존스, 키스 리차드.

    체제에 온몸으로 달려든 반항아의 숭고한 의식
    도어즈 (The Doors)

 Break on through(to the other side). Soul kitchen. The crystal ship.
Twentieth century fox. Alabama song(whisky bar). Light my fire. Back door
man. I looked at you. End of the night. Take it as it comes. The end(67년)


 그들의 노래는 문학적이면 간결하나 무섭다. 그들은 곡 형식에 대한 아무런
부담감이 없이 팝에서 시가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짐
모리슨(싱어)과 로비 크리거(기타), 레이 만자렉(오르간), 존 덴스모어(드럼)의
4인조 그룹 도어즈는 당시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휘몰아침 히피즘과 반전,
그리고 록 혁명이라는 사회적 영향과 결탁한 독특한 컬러의 사운드로 록계에
또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그것의 집적된 결과물이 1967년 1월 발표된 바로 그들의 데뷔앨범이었다. 기존
가치의 총제적 전환(기성 문화, 정치, 성질서로부터의 '완전한'자유)을 사랑과
평화라는 모토로 주창한 히피즘의 우산 아래 도어즈가 위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접근방식은 좀 달랐다. 그들은 사랑보다는 증오를, 평화보다는 폭력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왜곡된 현실사회에 대항했다. 도어즈의 음악이 무서웠다
함은 바로 이 점에서 연유한다.
 그들은 현실참여 대신 '현실탈출'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도어즈의 음악이
정치적이었으면서도 그다지 정치적으로 비치지 않았던 것은 이같은 방식
때문이었다.
 우리 사랑은 화장용 장작더미가 되는 거야. 자 어서와 내 불을 밝히라구. 이
밤을 불지르는 거야. (내 불을 밝혀주오: Light me fire)

 현실 탈출을 통해 그들은 일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새 세계'로 향하고자
했다. 짐 모리슨은 당시 "세상에는 그 진상이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잇는데 그 사이에 있는 것이 도어즈"라고 말했다. 도어즈라는 그룹 이름이나
음악 모두가 그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로 나아가는 문이었고 그 문을 열면
새로운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를 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머리곡 (딴 쪽으로
헤치고 나가라: Break on through to the otherside)에서 '딴 쪽'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앨범에서는 가장 문제시된 곡 (종말: The end)은 '알려진 사실'만이
존재하는, 규율과 억압의 기존 사회질서에 역행한다는 의미에서 현실탈출의
극단을 드러내고 있다. 11분에 걸쳐, 아들이 어머니에게 품는 이성애, 즉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는 쇼킹한 문제를 다룬 것이었다.

 아버지, 난 당신을 죽이고 싶어. 어머니 난 당신을 밤새 사랑하고 싶어. 그건
가슴 시리도록 당신을 자유롭게 하지.

 패륜아라는 지탄도 있었지만 "의식의 흐름이 심안에 포착된 재임스 조이스적인
팝"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프로듀서 폴 로스차일드는 이 곡을 녹음하던 때를
회상하면서 '록 레코딩의 가장 완벽한 순간중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그는
"녹음할 당시 짐 모리슨은 마치 샤먼(무당)이 된 듯한 분위기에 휩싸였으며
몰아의 경지로 빠져들어갔다"로 술회했다.
 실제로 이 앨범을 녹음할 때, 분위기를 북돋우기 위해 촛불을 켰고 향을
피웠다고 한다. 따라서 이 음반은 음향기술에 의한 여과가 거의 없는 순수한
의식의 산물 그 자체였다. 그것으로 짐 모리슨은 '청각적이면서 또한 시각적인
하나의 강력한 심리 드라마'를 연출해내는 데 성공했다.(음악이 마음 속에
하나의 의식의 수표면 위로 떠오르는, 더 나아가 실제 보이는 것만 같은 환상적
경지를 상상해 보시라.-편집자)
 짐 모리슨 의식 거행은 때로 오만하고 광기가 넘쳐흘렀으며 독을 토해내듯
거침 없었다. 그의 보컬은 차라리 한 마리 짐승에 가까웠다. (딴쪽으로 헤치고
나가라) (내 불을 밝혀주오) (그것이 올 때 잡아라: Take it as it comes) 등의
앨범 대표곡들이 그 전형인데, 거기에 나타나는 짐 모리슨의 야수적 외침은
바로 기존 사회에 대한 통렬한 절규이다.
 하지만 곡을 구성하는 데 있어 자칫 한 가지 틀에 곡조를 가두지 않을 만큼
도어즈는 자유로움으로 충만했다. (수정의 배: The crystal ship)는 웬만한
발라드 뺨칠 만큼 부드러운 선율을 획득하고 있어 (난 너를 봤어: I looked at
you)는 마치 미끄럼을 타는 듯 곡 진행이 신나고 순조롭다.
 이와 함께 블루스맨 윌리 딕슨의 작품이며 하울링 울프의 것으로 유명한 (백
도어 맨: Back door man)으로 도어즈는 자신들의 음악적 뿌리가 흑인 블루스에
있음을 밝힌다. (알라바마 노래: Alabama song)는 서사극을 확립시킨
마르크시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작곡가 쿠르트 바일의 오페라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 베를린 지하운동이 제재가 된 곡으로, 도어즈는 동명의 노래에
그들의 대담성과 이데올로기적 색깔을 깔았다.
 도어즈, 특히 짐 모리슨이 당시 마약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앨범
전체적으로는 마약음악, 이른바 애시드 록(acid rock)의 느낌이 강하다. 레이
만자렉의 반복적이고 잘 훈련된 오르간 연주는 한층 사이키델릭한 환상을
고조시킨다.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배 불을 밝혀주오)는 당당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앨범도 밀리언 셀링을 기록했다. 그리하여 히피의 축제로
상징성을 부여받은 기간인 1967년 여름, 이름자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을 수놓은 작품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도어즈와 그들의 최고 걸작인 이 앨범은 젊음의 사회변혁 욕구와 반전이
일궈낸, 사랑의 여름이라는 시대상황의 심장부에 위치한다. 따라서 그같은
시대성을 간과한 채 이 앨범을 파악한다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

    히피 '사랑의 여름'의 음악적 완성... 팝사상 최고의 명반
    비틀즈 (서전트 페퍼즈 론리 하츠 클럽 밴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Getting better. Fixing a hole.
She's leaving home. Being for the benefit of Mr.Kite. Within you without
you. When I'm sixty-four. Lovely Rita. Good morning good morning.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reprise). A day in the life(67년)

 60년대 중반은 사이키델릭(psychedelic) 시대였다. 사이키델릭운동은 '약물'
'동양종교' '사랑' '평화' 등의 추구를 통해 기존가치의 전반을 부정하는
반문화적 움직임이었다.(반문화, 즉 Counter Culture는 문화에 반하는 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반문화'에서 문화란, 지배문화 지배이데올로기
제도권문화 기성문화 기성가치 중산층문화 등을 포괄하는 주류적인 문화를
뜻한다.-편집자)
 이 가운데 특히 약물은, 대중문화의 일부 진영(특히 록계)에서 단순히 환희를
맛보자는 취지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로 안내하는 '의식방해'의 수단으로
신봉되었다. 당시 그들을 사로잡은 마약은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라는 것이었고 가운데 어휘 '애시드'가 그들의 성격을 규정짓는
용어로 선택되어 사이키델릭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히피의 근거지인
샌프란시스코 애시드록(Acid rock) 그룹들은 LSD 환각경험을 통한
의식해방으로서 인류애, 공동체의식, 그리고 사랑을 부르짖었으며 67년 7-8월을
이른바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으로 이끌었다.(일반용어로 '환각적'이란
의미를 갖는 사이키델릭은 문학, 음악, 미술 등 분야에선 '사이키델릭의'로
번역한다.-편집자)
 사이키델릭, 애시드, 그리고 '사랑의 여름'으로 채색된 그 시절을 관통한
대표적 작품은 비틀즈의 최고걸작 (서전트 페퍼즈 론리 하츠 클럽 밴드)였다.
67년 6월에 발표된 이 앨범은 최고 그룹의 작품답게 순식간에 팝계를 석권했고
'사랑의 여름' 찬가가 되어, 부패한 사회로부터 탈출키 위해 몸부림치던 젊은
세대의 열띤 지지를 받았다.

 수요일. 날이 샌 새벽 5시 조용히 침실문을 닫고... 밖을 나선 그녀는
자유롭게 되었지. 그녀가 집을 떠나는 거야. ...놓인 편지를 집어든 엄마는
낙심하여 아빠를 보며 울었지. 우리 애가 사라졌다며. 왜 이런 경솔한 짓을
했을까. 어째 그 애가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는가. 홀로 외로이 살겠다더니
그녀는 집을 떠난 거야. 오랜 세월이여 안녕... (그녀가 집을 떠나네: She's
leaving home)

 비틀즈는 이 곡으로 기존 사회로부터 빠져나오려는 젊은 세대의 탈출심리를
대변했다. 그것과 함께 사이키델릭 시대의 특성인 동양종교에 대한 새로운
해석, 특히 인도불교의 선사상은 지배종교인 기독교이데올로기의 대안으로
각광받았다. 조지 해리슨이 작곡한 (너 안에 너 밖에: Within you, without
you)가 그것을 담아냈다. 실제로 조지는 이 무렵 인도사상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비틀즈는 무엇보다 (서전트 페퍼...)의 분위기를 애시드로 채색해
놓았다. 비틀즈라는 부담감과 짜여지고 한정된 삶은 그들로 하여금 환각작용에
의한 출구를 열망케 했다. 그들은 이 앨범을 만들면서 진짜로 LSD를 복용했고
폴 매카트니는 공개적으로 그 점을 시인했다.
 앨범의 주요곡들이 대부분 애시드와 관련을 맺고 있다. 환각적 분위기가
압권인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먼즈: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의 앞자를 때면 공교롭게도 LSD였다. 그러나 이 곡을 쓴 존 레논은
당시 4살이었던 아들 줄리안이 집에 가져온, 또래집단의 그림을 소재로
삼았다며 억측을 부인했다.
 (친구로부터 조그만 도움을 받아: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에서
'친구'도 다름아닌 환각제 LSD가 아니냐는 오해가 뒤따랐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즉각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사이키델릭의 시대적
특성으로 인해 그 관련성을 믿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삶에서의 하루: A day in the life)는 보다 직접적이었다. 존 레논이
대부분을 쓴 이 곡은 직설을 피한, 다소 과장된 어휘배열로 모호함을
자아내면서 극도의 환상적인 세계를 연출했다.

 그는 차 안에서 환각에 빠져버렸지. 그는 불빛이 바뀌었다는 걸 알지 못했어.
많은 사람이 서서 응시했지. 그들은 그의 얼굴을 전에 본 적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가 상원의원 출신인지를 알아채지 못했어. ...난 너에게 환각을 일으키게
하고 싶어.

 '난 너에게 환각을 일으키게 하고 싶어'(I'd love to turn you on) 부분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환각 경험이 암시였다. 이 곡은 BBC방송국으로부터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 곡은 오케스트레이션의 웅장함과 후반부의
복잡한 사이렌소리, 차경적 등의 효과음으로 이전의 대중가요에서 접할 수
없었던 오묘함이 가득했다. 그것은 혁신이었다. 존 레논이 스스로도 완벽한
작품이라 말한 이 곡은 흔히 비틀즈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카이트씨를 위해: Being for the benefit of Mr.Kite)와 (굿모닝 굿모닝:
Good morning good morning)을 포함, 앨범의 주요 레퍼토리가 존 레논의 영감에
따른 곡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했고 또한 그만큼 그 곡들의 높은 약물암시성
때문에 많은 비난이 그에게 쇄도하기도 했다. 존은 (서전트 페퍼...)로
66년도작 (리볼버)에서부터 보여준 반제도적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
 하지만 앨범의 조타수는 폴 매카트니였다. 비치 보이스의 (펫 사운즈)에 일대
충격을 받은 그는, 중추개념(central concept)으로 수록곡을 이어가는 '컨셉트
앨범'을 구상했고 또한 혁신적인 느낌의 사운드를 창출하고자 했다. 폴의
야심은 "모든 앨범을 뛰어넘는 진정한 걸작음반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예순네 살이 될 때: When I'm sixty four) (사랑스런 리타: Lovely Rita)
(픽싱 어 홀: Fixing a hole) (그녀가 집을 떠나네) 등을 써서 앨범의 예술성을
높이는 데 기둥 역할을 했다. 심지어 이 앨범이 비틀즈의 이름을 내걸고는
있지만 실은 폴의 첫 솔로작품이라고 규정한 비평가도 있었다.
 앨범이 발표된 후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인기차트 정상 정복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만 6백만장 이상이 팔려나갔다. '타임'지는 "유럽과 미국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혁명화시키는 데 기여한 온화한 무정부주의를 놓치지 않으면서
그들은 좀더 높은 예술적 지평으로 올라갔다"고 평했다. '팝의 예술성'이야말로
(서전트 페퍼...)로 비틀즈가 얻은 최고의 수확이었다. 인기뿐 아니라 음악의
완성도 획득에 있어서도 그들은 이제 무적이 되었다.
 작곡가 노엘 로뎀은 (그녀가 집을 떠나네)를 가리켜 "슈베르트가 쓴 작품에
필적하는 곡"이라고 칭송했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평가는 그 이상으로
(서전트 페퍼...) 수록곡 전체를 슈만의 작품과 견줄 정도였다. 앨범의 높은
예술성은 곧 '로큰롤 음악도 교양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순수음악인들도
비틀즈를 들었으며 이 앨범을 음악의 진보의 측면에서 하나의 역사적
출발점으로 기록하는 아량을 베풀었다. 비틀즈에 의해 록과 대중음악은 클래식
진영으로부터의 유서깊은 멸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호평이 전부인 것은 아니었다. '뉴욕 타임즈'는 그해 67년 '현실과
동떨어진 소재로 나열된 그저 그런 작품'으로 평가절하했고 적지않은 평자들이
"시의적절함 때문에 팝음악의 기념비적 작품이 될지는 몰라도 그들의 가장
훌륭한 창작품은 아니다"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루 리드는
심지어 "들을 때마다 역겨움을 주는 앨범"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93년 12월 호주의 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언'의 데이비드 브리얼리 기자의
악의에 찬 논평은 흥미롭다. 그는 (서전트 페퍼...)에 대해 "전체적 접근이
결여된 마구잡이식 노래모음에 불과하며 그 점과 관련해서도 변변치 못한
수준"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면서도 그 대부분의 책임은 폴에게 돌렸다.
"이렇게 작품이 형편없게 된 것은 앨범에 허용된 폴의 엄청난 자유 때문이며
그에 따라 폴은 엄청난 쓰레기를 생산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많은 팝관계자들은 이 앨범을 음반기술 측면에서도 획기적 작품이라고
평하는 등 극찬을 이어간다. 팝송의 일반틀을 과감히 부수어 교차리듬(cross
rhythms)을 믹스했고 바하부터 스톡하우젠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작곡가들이 쓴
클래식 연주악기를 활용,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은 웅장함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프로듀서 조지 마틴과 함께 비틀즈는 '우주 시대'(Cosmic Age)의
무수한 전자음향 효과를 살려냈고 테잎을 역회전하거나 속도를 다양하게
조절하여 믹싱하는 갖가지 신기술을 총동원했다.
 앨범커버 자체도 전설이 되었다. 오려낸 그림들과 마릴린 몬로, 칼 마르크스,
아인시타인, 아라비아 로렌스, 에드가 알런 포우... 그리고 비틀즈 자신들의
얼굴을 모아놓은 표지는 파격적이었고, 비틀즈 철자를 마리화나 수풀에
새겨넣어 히피시대 사랑의 상장인 '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를
내비친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 앨범의 가치는 바로 자켓에서부터 시작되는 '시대의 포착'에 있었다.
재치있는 콜라쥬나 컨셉트(기획 의도) 모두가 세대간의 긴장과 '단층화된
60년대의 고독감'에 기초한 것이었다. 부조리에 대한 그들의 놀라운 민감성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시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날카롭다.
 60년대가 여기에 있고 고독, 탈출, 동양종교 그리고 마리화나, LSD가 지배한
사이키델릭 시대정서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랑과 평화의 도드라진
주창은 발견되지 않는다. 제퍼슨 에어플레인이나 그레이트풀 데드에 나타나는
사회성과 정치성이 빠져있는 것이다. 비틀즈는 그 부분까지 짚는 것은
'소화불량'을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예술성에의 집착 때문에
비틀즈는 이처럼 잃은 것도 없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이 앨범의 거의 유일한,
그리고 커다란 약점이다.

    히피 '사랑의 여름'의 정치적 표현
    제퍼슨 에어플레인 (초현실의 밑바침: Surrealistic pillow)

 She has funny cars. Somebody to love. My best friend. Today. Comin' back
to me. 3/5 of a mile in 10 seconds. D.C.B.A.-25. How do you feel.
Embryonic journey. White rabbit. Plastic fantastic lover(67년)

 당신은 사랑할 사람을 원치 않나요. 사랑할 사람이 필요치 않나요. 누군가
사랑하고 싶지 않으세요. 사랑할 사람을 찾는 게 좋을 거에요.

 제퍼슨 에어플래인(Jefferson Airplane)이 67년 히트시킨 이 (사랑할 사람:
Somebody to love)이 의도하고 있는 바는 통속적인 연애가 아니라 '사랑이
충만한 사회' 그것이었다. 노랫말이 어떤 의도에서 쓰여졌던 무관하게, 이
노래는 그 무렵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 애시베리 구역에서 가장 열렬히
애청되고 불려진 히피(Hippie)의 찬가였다.
 히피의 거점이었던 헤이트 애시베리 지역의 젊은이들은 제도권과 기성세대를
향해 의도적으로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부르짖었다. 그들은 부의 축적이
최고목표였던 기존사회의 가치는 철저히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부와 개인주의가 아닌 공동체, 경쟁이 아닌 화합, 전쟁이 아닌 평화, 그리고
사랑이 기존을 대체하는 새로운 사회의 가치들이었다. 제퍼슨 에어플레인은 퀵
실버 메신저 서비스, 그레이트풀 데드와 함께 히피의 가치를 가장 적극적으로
대변한 대표적인 샌프란시스코 록밴드였다.
 이 앨범은 그야말로 히피가 대표하는 새로운 세대의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농축하고 있는 작품이다. 차트에서 이례적 성공을 거둔 두 기념비적인 싱글
(사랑할 사람)(차트 5위)과 (화이트 래빗: White rabbit, 차트 9위)을 수록하고
있으며 67년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을 완벽하게 수놓았다.
 65년 결성된 이후 그들은 레코드 회사의 잇단 스카웃 제의를 거절하고
무료공연에 충실했다. 반제도권이라는 이념 때문이었다. (초현실의 밑받침:
Surrealistic pillow)은 그러한 제도권진입 사절의 그룹이념을 깨고
RCA레코드사와 '66년 계약 후 두번째 선보인 앨범으로, 제퍼슨 에어플레인이
공연을 통해 갈고닦은 실력이 고스란히 발휘되었다. 머릿곡 (그녀는 멋진 차를
가지고 있지: She has funny car)와 (10초 5분의 3마일을: 3/5 of a mile in 10
seconds) 등은 이미 공연에서 자주 연주한 레퍼토리였기 때문에 단번에
녹음되었다. 녹음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실황을 전달하려는 것
또한 자연적 상태를 동경한 히피들의 전형적 마음가짐이었다.
 샌프란시스코 록을 가리켜 흔히 사이키델릭 록 혹은 애시드 록으로 부른다. 그
지역 록그룹들이 모두 환각제, 특히 LSD와 깊숙이 관련을 맺은 데 기인한다.
그들이 마약을 가까이 한 것은, 그냥 좋아서가 아니라 '의식을 해방시켜주는
수단'으로도 여겼기 때문이었다. 히피와 샌프란시스코 록밴드들은 환각제를
복용하여 깨달음을 얻게 되면 '새로운 세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굳게
믿었다.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화이트 래빗)은, 바로 LSD의 예찬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란 동화의 세계에 비유되어 펼쳐진 노래였다. (네 머리를 채우라: Feed
your head)의 클라이막스 부분의 노랫말은 대놓고 환각상태의 체험으로 팬들을
안내하고 있다. 록평론가들은 이 노래를 '최우수 LSD록' 작품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앨범 수록곡 중 (디 시 비 에이 25: D.C.B.A.-25)나 연주곡 (태아의 여행:
Embryonic journey) 등도 의문의 여지없는 LSD관련 노래들이다. (디 시 비 에이
25)의 영자는 코드를 가리키며 뒤의 25라는 숫자는 'LSD 25번'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 밴드가 몸소 실천한 공동체정신은 '노래 부르기'에서 나타난다. 여걸
그레이스 슬릭, 마티 볼란, 폴 켄트너가 한 노래에서 함께 리드 솔로를 맡아
마치 합창을 하듯 듣기좋은 보컬 하모니를 구사하고 있다. 그들은 명성을
배격하여, 밴드 멤버들 가운데 누구도 튀지 않도록 '공동 노력'을
중시했다(하지만 그룹의 히트작인 (사랑할 사람)과 (화이트 래빗)은 그레이스
슬릭의 단독 보컬이었다).
 함께 기식하며 우정을 과시했던 애시드록 동지인 그레이트풀 데드의 리더 제리
가르시아(Jerry Garcia)가 음반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공동체 구현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 제리 가르시아는 이 앨범을 제작할 당시 (조형된
환상의 연인: Plastic fantastic lover)과 (내게로 돌아와요: Comin' back to
me)에서 통기타를 쳤을 뿐 아니라 대부분 곡의 음악 고문역할을 맡는 사실상의
프로듀서였다.
 60년대 말, 이 앨범만큼 샌프란시스코 록의 미학과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함께 소화시킨 작품은 없다. 1967년 록의 상황을 논할 때 그것이야말로 이
앨범의 진정한 의의라고 할 것이다.

    반 사회적 히피시대에 흐른 낭만과 추억
    마마스 앤 파파스 (네가 너의 눈과 귀를 믿을 수 있다면: If you can
believe your eyes and ears)

 Monday, monday. Straight shooter. Got a feelin'. I call your name. Do you
wanna dance. Go where you wanna go. California dreamin'. Spanish Harlem.
Somebody groovy. Hey girl. You baby. In crowd(66년)

 60년대 중반부터 전개된 '히피와 사이키델릭 시대'에 록을 꺼린 사람들은
사회성(정치성)보다는 낭만을 요구했다. 그들에겐 사회성이 강하고 과격한
연주를 하는 록밴드보다 부담 없이 귀에 솔솔 들어오는 팝그룹이면 족했다.
 마마스 앤 파파스(Mamas and Papas)는 히피시대의 그러한 음악적 허점을
정확히 파고들어 대성공한 역사적 그룹이었다. 그들은 히피 정서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은 가운데 사이키델릭 사운드 아닌 보편적 포크팝으로 그 시절
팝계에 낭만적 발자취를 남겨놓았다.
 지금 40대 이상의 중장년층 치고 66년의 빅히트 송 (캘리포니아의 꿈:
California dreaming)이 제공한 추억을 새기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러했지만 미국 본토 사람들이 이 곡에 품는 애정은 남달랐다.
거기엔 반사회적(?)인 히피 시절의 한쪽에 둥지를 튼 서정성이 있었다. 또한
영국 그룹이 활개치고 있던 시절의 미국 그룹의 노래라는 점이 더욱 미국인에게
자존심을 높여주었다. 록 기고가 릴리안 록슨은 이렇게 술회한다.
 "우린 그때 모두 영국음악에 깊숙이 빠져있었다. 이 노래를 듣게 되었을 때 난
현기증이 났다. 그 곡은 '명랑한 충격'으로 우리를 다시 홈 베이스로
되돌려주었다."
 대중적이었지만 히피정신의 숨결도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룹 이름과
성원부터가 히피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인 공동체정신을 실천하고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버린 멤버 캐스 앨리엇은 "마마스 앤 파파스란 이름은
'마마들은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파파들은 밖에 나가 고양이 먹을 것을 사오는'
식의 가정적 협동정신에 따라 지었다. 실제로 우리는 어느 정도 공동체 타입의
생활을 영위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룹의 음악조종자인 존 필립스(John Phillips)는 히피시대의 송가가 된 스콧
맥켄지의 히트송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SanFrancisco - Be sure
to wear flowers in your hair)의 작곡자였다. 존 필립스와 그의 그룹이
'플라워 파워'(Flower Power)에 소속되어 있었음을 말해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또 존과 스콧 두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의 히피 거점인 헤이트 애시베리
지역에서 열렸던 몬터리 팝 페스티벌을 주관하기도 했다. 마마스 앤 파파스도
이 축제에 참가하여 이미 획득한 명성을 더욱 굳게 다졌다.(플라워 무브먼트,
플라워 파워에서의 플라워는 단순한 꽃의 의미가 아니라 자연, 사랑, 평화를
상징하는 아름답고 강한 꽃의 의미로 쓰였다.-편집자)
 이 음반에는 기념비적 싱글인 (캘리포니아의 꿈)(차트4위)과 (월요일, 월요일:
Monday, monday, 차트1위)이 수록되어 있다. 이밖에 비틀즈곡을 완전 새롭게
해석한 (네 이름을 부른다: I call your name)가 돋보이며, (네가 가고싶은
데로 가라: Go where you wanna go) (춤추고 싶으세요: Do you wanna dance)
(헤이 걸: Hey girl) (유 베이비: You baby) 등도 특유의 보컬하모니를 살린
듣기 좋은 포크 소품들이다. (월요일...)('월요일이 너무 좋은데 월요일은
출근날이다') (네가 가고싶은...) 역시 히피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다.
 그룹의 전성기는 짧았다. 66--67년 사이에 차트 5위 안의 싱글을 여섯 장이나
냈지만 존 필립스의 약물중독, 그와 미셸 질리엄과의 이혼 등 내부의 악재가
겹쳐 68년 해산하고 말았다.
 존 필립스는 회상하기를 "우린 그 2년간 너무나 즐거웠다. 정말 남아있는
재미가 더이상 없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사이키델릭과 히피 시대의 낭만에
모든 것을 바쳤다. 이 앨범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그림 설명): 전성기의 마마스 앤 파파스.

    히피를 향한 '비트 수절파'의 조롱... 전위적인 록
    벨벳 언더그라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 앤 니코: Velvet Underground &
Nico)

 Sunday morning. I'm waiting for the man. Femme fatale. Venus in furs. Run
run run. All tomorrow's parties. Heroin. There she goes again. I'll be
your mirror. The black angel's death song. European son(67년)

 히피 이전의 비트(Beat)라는 것이 있었다. 50년대 중반 뉴욕 일대에서 싹튼 이
비트족은 미국 사회의 일반적 가치를 무시하고 샌프란시스코의 노스 비치
등지에서 하릴없이 방랑을 일삼던 '반사회적'인 부류였다.
 "그들은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위대한 나라 미국에 대해, 수백달러짜리 양복과
양장을 구입하기 위해 직장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컬러 TV나 교외의
별장 또는 파리여행 등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작가 버튼 울프는 비트를 이렇게 설명하고 그들을 부르즈와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사람들로 분석했다. 비트들은 미국 사회의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삶의
목표를 비웃으면서 공원을 거닐거나 해변의 태양 아래 누워 오후를 보내거나
멕시코에 자전거 여행을 다니곤 했다. 밥 딜런도 한때 이러한 비트
제네레이션의 생활방식에 매혹됐던 사람이었다. 그의 히트곡 (구르는 돌처럼)은
바로 비트 형태를 포크록 리듬에 이입시킨 곡이었다.
 비트족은 반문화를 주창했다는 점에서 히피의 원조가 되는 셈이었다. 50년대
말 정부의 탄압에 의해 꼬리를 내린 비트는 60년대 중반에 등장한 사이키델릭
운동에 발맞춰 부활되었다. 비트는 히피의 태동과 함께 상당수가 그 속으로
편입되었지만 히피가 갖는 사회참여적 성격을 사양하고 개인적인 비트의
순수성을 고집한 수절파도 있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는 히피의 극성기에 비트족의 본질을
그대로 지키면서 그것을 록으로 표현한 그룹이었다. 전위예술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지휘 아래 결성된 이 그룹은, 비트 시인 루 리드(Lou Reed)와
아방가르드 클래식 앙상블에서 활동하고 있던 존 케일(John Cale)을 주축으로
한 4인조 라인업으로 외롭게 비트의 정신을 표출했다.
 이 앨범은 히피와 플라워 파워(Flower Power)의 순진성을 향해 던지는, 비트의
비아냥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현실과 멀찍이 떨어져 개인적인
관심사에 묻혀있는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그만큼 개인집착적이고 파괴적이며
'전위적'이었다. 히피와 샌프란시스코 록밴드들이 '외적 사회혁명'을
추구했다면 비트와 뉴욕의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내적 개인혁명'을 추구했다.
 록역사는 이 작품을 비트의 아방가드르(전위) 정신과 록 음악이 결합된
'혁명적인' 음반으로 정의한다. 비틀즈의 (서전트 페퍼...)와 또다른 면에서
록음악의 새장을 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운드로 볼 때는 곡마다 변화가 극심해 빠른 것과 느린 템포의 곡이 뒤섞여
있는 가운데 전체적으로 생경하고 음침하다. (서전트 페퍼...)처럼 세련미가
묻어나오지는 않지만 '처음 들어보는 듯한' 극단의 신선미가 있다. 테크니컬한
정확성보다는 즉흥성이 강조되어 있고 (모피의 비너스: Vinus in furs)와 (검은
천사의 사가: The Black Angel's death song) 등에서 보이는 윙윙거리는
일렉트로닉 소음이 전위적임을 느끼게 한다.
 루 리드는 앨범의 사운드를 '부패한 30년대 베를린 풍경'으로 빗대면서 "그
거리의 한 장면을 그려보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된 곡은, 암시 수준을 넘어 과감한 노출로 비상한 관심을 모은 마약
테마의 (난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어: I'm waiting for the man) (헤로인:
Heroin) 두 곡이었다.

 헤로인은 나의 아내이며 나의 삶이야. 헤로인이 내 피에 실려있을 때, 그 피가
내 머리로 솟구칠 때, 난 죽고싶을 만큼 기분 좋아지는 것을 신께 감사드리지.
(헤로인)

 노골적인 약물의 찬양은 많은 청취자들에게 혐오감을 주었으며 플라워 파워에
이끌린 웨스트 코스트의 언론으로부터 '퇴폐적 전형'으로 매도당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이 외에도 대중가요사상 최초로 가학-피학성
음란증(세더매조키즘)을 다뤄 또한번 록계를 놀라게 했다.

 주권자여, 그를 용서하지 말아요. 여인이여, 그를 대려 그의 정신을 치료해
줘요... 거리의 불빛에 환상을 갖는 죄악을 무너뜨려요. 그녀가 입게 될 의상을
내버려요. (모피의 비너스)

 전위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듣기에 어렵지는 않다. (일요일 아침: Sunday
morning) (숙명의 여인: Femme fatale) 등은 통속적인 팝송의 맛이 서려있고,
코러스가 매력적인 (그녀가 다시 가네: There she goes again)에도 즐거운
흥취가 살아있다. 독일 출신의 금발미인으로 당시 배우였던 니코(Nico)는
(숙명의 여인) (모든 내일의 파티: All tomorrow's party) (난 너의 거울일
거야: I'll be your mirror) 등 세 곡에서 부드럽고 진지함에 넘치는 보컬을
들려줘 앨범의 대중적 친화력을 높여주는데 공헌했다. 사생활이 신비의 베일
속에 가려있던 그녀는 앤디 워홀의 적극적 추천에 따라 앨범 작업에 참여했고
당시 루 리드의 여자친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67년 (서전트 페퍼...)와 같은 해 발표되어 가장 '영향력 있는' 음반으로 함께
꼽히면서도 비틀즈의 음반과는 다르게 대중의 인정을 받는 데는 실패했다.
지금까지 겨우 40만장이 팔려나갔을 뿐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그깟
판매실적과는 전혀 무관하게 그 진보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93년 그들이 재결합했을 때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펑크 록, 아트 록, 컬리지 록, 그런지 록, 뉴웨이브 록, 미니말리스트
록(minimalist rock) 그것들 모두가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함께 시작되었다."
 바로 이와 같은 언급이 이 앨범의 가장 확실한 '가치확인'이 될 것이다.
 (사진 설명): 존 케일이 없던 초기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모습으로, 왼쪽에서
두번째가 루 리드.

    디트로이트 폭동 속에 울려퍼진 '레이디 소울'
    아레사 프랭클린 (10년간의 골든 레코드: Ten years of gold)

 I never loved a man(the way I love you). Respect. Baby, I love you.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Think. See saw. Spanish Harlem. Rock
steady. Day dreaming. Angel. Until you come back to me(That's what I'm
gonna do). Something he can feel(78년)

 1967년 여름은 '사랑의 여름'으로 결부되지만 디트로이트 흑인폭동으로 얼룩진
'비극의 여름'이기도 했다. 그해 7월 자동차공업도시 디트로이트에서는 분노한
흑인들과 정부군이 대치하는 살벌한 내전상태가 야기되었다.
 이 경천동지의 사태는 급진적 흑인운동을 폭발시킨 계기를 제공했고
흑인음악의 주류를 사회의식으로 무장된 '소울'로 변화시켜 놓았다. 사회개혁및
반전운동 물결이 거세지면서 록음악이 정치성을 띠었듯 흑인의 리듬 앤
블루스도 강성의 소울로 바뀌게 된 것이었다.
 뉴욕 할렘(64년), 로스앤젤레스 와츠(65년)에 이은 디트로이트의 흑인폭동에
때맞춰 소울은 '블랙 파워'를 상징하는 음악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백인들도
비록 흑인의 것이었지만 강한 자극을 전달하는 소울음악을 애청하기 시작했다.
67년 백인지배의 미국사회는 갑자기 흑인 소울의 광풍이 휘몰아쳤다.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이 바로 '소울의 미국사회 공습'을 가한
선두주자였다. 오티스 레딩,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샘 앤 데이브(Sam
and Dave) 등도 이 시기에 각광받은 소울스타였지만, 대중적 호응에 있어서는
아레사 프랭클린을 따를 수 없었다. 그녀는 '소울의 여왕'(Queen Of Soul)
'레이디 소울'(Lady Soul)이라는 영예로운 칭호의 주인공이었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67년 백인들에게 흑인들에 대한 존경을 요구했다. 그래서
부른 (존경: Respect)은 오티스 레딩이 두해 전 부른 것이었으나 그녀에게
'해석'이 넘어오면서 디트로이트 사태와 맞물려 의미가 배가되었다. 이 곡은
디트로이트의 빈민가가 화염에 불타오르면서 성난 흑인시위대의 찬가로까지
불렸고, 드디어는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등극했다. 이 해 아레사는 이
노래말고도 (널 사랑하는 방식으로 누굴 사랑하진 않았어: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 (당신을 사랑해: Baby I love you) (넌 날 자연스런
여자로 느끼게 해: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등 총 4곡을
싱글차트 톱10에 진입시켰다.
 이로써 그녀는 백인들에게 소울의 대변인으로 이미지를 굳혔으며, 68년 초
디트로이트 시장 제롬 카바나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이 음반은 기념비적인 67년 히트작들을 비롯, 아레사 프랭클린이 76년까지
10년간 어틀랜틱 레코드사에서 발표한 골든 레퍼토리를 모아놓은 앨범이다.
그녀의 전성기를 수놓은 소울의 걸작들을 접할 수 있으며 '소울의
다이너마이트'라는 또 하나의 별명만큼 폭발적인 그녀의 가창력을 확인할 수
있다.
 콜롬비아 레코드사에 소속되어 있다가 실적을 올리지 못한 후에 어틀랜틱사로
이적한 67년부터 그녀는 히트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생각해봐: Think)와, 차트 톱10 내에 진입하지 못했음에도 밀리언 셀러가 된
(시소: Seesaw)는 68년도 발표작이다. 차트4위까지 오른 (생각해 봐)는
아레사가 직접 가사를 쓴 것으로, 특히 노래 중 그녀가 '자유'(freedom)를
목놓아 외치는 순간을 듣는 이로 하여금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정신을 풀어해쳐 자유로와지라... 자유, 자유를 갖자. 자유, 자유, 지금 당장
자유를 달라.

 (스페니시 할렘: Spanish Harlem)은 벤 이 킹(Ben E. King)의 60년 오리지널로
아레사가 리메이크하여 71년 차트2위까지 올랐으며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록 스테디: Rock steady)도 같은 해 발표되어 9위에 올랐으며 (공상: Day
dreaming)은 72년에 차트5위를 차지했다. (록 스테디)와 (공상)은 또한
아레사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로 남의 것만 불러 히트시키는 가수라는
이미지를 불식시켰다.
 (천사: Angel)와 (그가 느낄 수 있는 것: Something he can feel)은 각각 73,
76년의 발표작으로 수록곡 대부분의 프로듀서가 제리 웩슬러(Jerry Wexler)인
것과 달리, 앞의 것은 퀸시 존스(Quincy Jones)와 아레사 프랭클린, 뒷곡은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가 프로듀스했다. 두 곡의 예외가 있긴 하나,
아레사가 60년대 말 소울의 맛과 멋을 정의하는 데 어틀랜틱의 베테랑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의 힘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아레사의 경이적인 가창력은 가스펠에 기초한 생동감으로부터 샘솟는
것이었다. 음의 높낮이, 템포, 호흡 등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도 깊은
가스펠의 필(feel)을 유지하는 능력은 도무지 사람이 하는 것으로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 록 평론가 존 랜도(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매니저가 된 사람)는 후일 '롤링 스톤'지에 "그녀는 다채로운 무드, 템포,
언어, 스타일을 포괄할 수 있음을 입증했으며, 더구나 그것의 최고 수준을
고수하고 있다"고 썼다.
 다른 사람이 이미 부른 곡을 리바이블해 철저히 자기 것으로 만든 데서 그녀의
탈월한 '곡 해석력'이 드러난다. 오티스 레딩의 (존경)과 벤 이 킹의 (스페니시
할렘)이 그 증거이다. 오티스 레딩은 아레사가 (존경)을 부른 것을 듣고 경악한
나머지 "난 내 노래를 잃어버렸어. 저 여자가 내 곡을 빼앗아갔어"라며 허탈해
했다.
 (넌 날 자연스런 여자로 느끼게 해)는 캐롤 킹과 게리 고핀 콤비의 작품으로,
다시 한번 그녀의 경계선 없는 무한한 음폭과 숨죽이는 보컬파워를 확인시켜준
걸작이다. 정말 이 노래는 우리를 자연스러운 청취자로 느끼게 한다.
 아레사는 증명했다. 잘 만들어진 악보보다 잘 부르는 가수가 위대하다는 것을.
즉 노래의 최종적인 해석자는 다름아닌 가수라는 사실을. 그리하여 그녀는
소울, 그리고 팝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 이 앨범이 78년에 발표되었는데 60년대로 분류한 것은 아레사가 60년대
소울의 부흥과 관련해 그 정점에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히피시대에 불쑥 던져진 탐미주의자의 음악
    밴 모리슨 (천체 주간: Astral weeks)

 Astral weeks. Beside you. Sweet thing. Cyprus Avenue. Young lovers do.
Madame George. Slim slow rider(68년)

 1968년 11월, 록 음악이 히피즘과 반전의 물결을 주도하며 세상을 향해 소리
높이 있을 때 그와 달리 지극히 내면적인 성격의 음반 하나가 록계에 툭
던져졌다.
 그것은 주술을 부르듯 신비로웠고 내성적인 분위기로 충만했으며 고뇌의
흔적이 가득했다. 블루스의 처연한 고통과 고대 켈트족의 흥취를 합친 듯
'고통의 향기'로 나타나 한편으로 어두웠고 한편으론 밝은 느낌이었다. 다른 록
밴드들이 이데올로기에 봉사하고 있던 시절 이 음반은 예술의 향취를 흩날리고
있었다.
 록음악 관계자들, 그 가운데서 비평가들은 이 음반을 듣고 깜짝 놀랐다.
록음악의 틀을 이탈하지 않고 이처럼 잘 만들어진 탐미적 예술작품을 일찍이
접해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즉각 이 음반의 가치를 파악했고
지금도 록평론가들 사이에서 이 음반은 '록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앨범' 중
하나로 빠짐없이 지목된다.
 작은 체구에 과묵한 밴 모리슨(Van Morrison)은 록계의 이방인이었다.
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인 그는 60년대 중반 그룹 뎀(Theme)을 조직해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를 연주했다. 블루스에 심취한 그의 포부는 미국에 가서 음악적
욕구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그룹이 해체되고 67년 솔로로 (갈색 눈의 소녀:
Brown eyed girl)를 히트시킨 그는 마침내 소망의 첫 단계를 실현, 미국의
메이저인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천체 주간)은
여기서 나온 그의 첫 앨범이었다.
 임시 연주(반주), 즉 세션은 뉴욕의 '모던 재즈 쿼텟'의 멤버 코니
케이(베이스)를 비롯해 제이 벌라이너(기타), 리차드 데이비스(베이스), 존
페인(호른), 워렌 스미스 주니어(퍼쿠션) 등 베테랑 재즈 연주자들이 맡았다.
재즈맨들이 대거 기용된 것은 록 세션맨들이 시간을 질질 끄는 데 반해 그들은
빨리 자기 임무를 끝내 '비용절감'을 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션은 놀랍게도 이틀만에 끝났다. 재즈맨들은 당시 밴 모리슨이 누구인지도
말랐고 서로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았다. 녹음시에도 모리슨은 차단된
부스(소녹음실)에서 혼자 노래했다. 심지어 재즈맨들은 그의 노랫말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천재 주간)은 그 무렵 연인이자 나중에 비밀 결혼한 미국여성 자넷
플래닛에게 바치는 곡이었다. 그는 (발레리나: Ballerina)와 (젊은 연인들처럼:
The way young lovers do)도 그녀를 위해 만들었다. 하지만 비평가의 귀가 쏠린
노래는 신비의 인물을 탐구하는 듯한 스토리송 (마담 조지: Madame
George)였다. 그것이 누군가의 추측대로 늙은 매춘부에 대한 노래인가에
관계없이 9분25초의 대곡인 이 노래는 이전 팝음악에서 찾을 수 없는
가슴저미는 환상을 제공하고 있다.
 수록곡 대부분은 밴 모리슨이 자넷 플래닛과 떨어져 3개월간 고향 벨파스트에
머물던 시절에 쓰여졌다. (사이프러스 가로수길: Cyprus Avenue)에는 그때의
체험이 투영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정서가 어릴 적 고향에서 축적된 흥분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뚜렷이 인지하고 있었다.
 이틀만에 후다닥, 그것도 가수와 세션맨과의 감정교류 없이 세련된 편곡과
연주의 흥취를 이뤄냈다는 것은 실로 경이적이다. 모리슨은 과정상의 문제점을
들어 자신이 바라던 바가 앨범에 잘 반영되지 않았다고 불평을 토로하기도
했다.
 본인의 욕심과 무관하게 이 앨범은 분명 록음악이 나아갈 예술적 지평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그것은 비틀즈의 (서전트 페퍼...) 앨범과 함께 록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록평론가 레스터 뱅즈는 이 앨범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어둠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속죄의 흔적, 타인의 고통에 대한 궁극적 연민,
그리고 순수한 아름다움과 신비스런 외경을 보호하려는 태도, 그런 것들이 이
앨범을 관통해 흐르고 있다"
 대중들은 이 앨범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해하기를 꺼려했다.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까지 이 명반은 25만장이 채 팔리지 않았다.

    50년대

 1. Chuck Berry (Chuck Berry is on top)
 2. Elvis Presley (Golden records)
 3. Buddy Holly (Buddy Holly's greatest hits)


    로큰롤의 시작...아이젠하워 시대의 관통
    척 베리 (척 베리, 정상에 서다: Chuck Berry is on top)

 Almost grown. Carol. Maybellene, Sweet little rock & roller. Anythony
boy. Johnny B Goode. Little Queenie. Jo Jo gun. Roll over Beethoven.
Around and around. Hey Pedro. Blues for Hawaiians(59년)

 "흑인 사내가 이같은 컨추리풍의 노래를 쓰다니 믿을 수가 없다."
 체스레코드회사 레너드 체스 사장은, 1955년 척 베리가 제출한 데모 테잎에
들어있는 (아이다 메이: Ida May)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노래는 1939년 컨추리가수 로이 애컵 등이 부른 전통의 컨추리송 (아이다
레드: Ida red)에 영감을 받아 척 베리가 만든 곡이었다. (아이다 메이)는
(메이블린: Maybellene)으로 제목이 바뀌어 그해 발표되었고 전미 싱글차트
5위에 오르는 히트를 기록했다. 이 곡으로 시작된 그의 히트 행진은 1960년까지
무섭게 계속되었다.
 그는 흑인이었지만 백인 컨추리 냄새가 나는 노래를 잘 썼다. 그것이 바로
로큰롤(rock and roll)이었다. 로큰롤은 태동 당시 흑인음악의 범주에서 사용된
말이기는 했으나 성분상으로는 흑인음악인 '리듬 앤 블루스'와 백인음악인
'컨추리 앤 웨스턴'이 혼합된 것이었다.
 로큰롤은 이처럼 흑백의 음악을 포괄해 인종의 색깔을 제거했기 때문에 대중적
성격을 갖출 수 있었고, 오늘날 영, 미권 대중음악을 이끌어가는 주도적
장르로서 위치를 굳혔다.
 척 베리는 그 로큰롤을 창조한 초기 거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록의
전신인 이 로큰롤의 연주 및 곡쓰기의 전형을 확립, 후대 록의 진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가 없었다면 60년대의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와 같은 록그룹은
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척 베리, 정상에 서다)는 그가 현대 록음악에 남긴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는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그에게 세 번째가 되는 이 작품은 체스레코드사를
통해 1959년 출반되었다.
 여기에는 기념비적인 싱글 (메이블린)을 비롯, 그의 골든 레퍼토리인 (쟈니 비
굿: Jonny B, Goode)과 (롤 오버 베토벤: Roll over Beethoven)이 수록되어
있다. 비틀즈의 리메이크로 유명해진 (롤 오버 베토벤)과 (쟈니 비 굿)의
도입부에는 훗날 록 기타연주자들의 모델이 된 연주가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척 베리는 기타 연주에 있어서 일반적인 4박의 개념과 주법을 깨는
폴리 리듬을 도입했으며 슬라이드와 복음 주법을 제시해 록 기타주법의 길을
열었다.
 (쟈니 굿 비)은 이와 함께, 50년대 중반 고리타분한 아이젠하워시대에 살던
10대 청소년들의 꿈을 요약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쟈니 비 굿이라는 시골소년이 살고 있었죠. 그는 읽거나 쓰는 것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기타는 아주 잘 쳤지요... 쟈니의 어머니는 말했죠.
언젠가는 너도 청년이 되어 밴드를 이끌 거야. 그럼 너를 보러 먼곳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너의 음악을 듣게 될 거야.

 그는 당시 청소년의 심정을 기막힐 정도로 잘 짚어내 노래에 싣는 천재적
작사능력을 보였다. 이 음반에 수록된 (리틀 퀴니: Little Queenie)를 통해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1926년생인 그가 30세를 전후로 '적지 않은'
나이에 이같은 10대 지향의 노래를 썼다는 사실은 또한번 우리를 놀라게 한다.
 (성인이라오: Almost grown), (캐롤: Carol)은 당시 히트되지 않았지만,
경탄을 자아낼 만큼의 세련미와 정교함을 추구하는 그의 비범한 작품 제조능력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서 록의 클래식으로 승격되었다. 척 베리의 또다른 음악적
특색으로 지적되는 '업템포 부기'(템포가 빨리 전개되는 춤형태)는, 우리
귀에도 익은 멜로디 (엔서니보이: Anthony boy)란 노래에서 맛볼 수 있다.
 앨범의 우수성을 일궈낸 일등공신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노래하고 기타친 척
베리이지만 세션맨의 힘도 컸다. 피아노의 쟈니 존슨, 베이스의 윌리
딕슨(유명한 블루스맨), 드럼의 프레드 빌로우, 재스퍼 토마스 등의 연주는 척
베리의 기타와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다. 그룹 롤링 스톤즈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는 그를 면밀히 연구한 결과, "그의 박력있는 기타연주 스타일이 이
앨범에 등장하고 있는 자니 존슨(Johnny Johnson)의 피아노 연주에 영향을
받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 앨범은 분명 그의 전성기를 수놓은 독집 음반이지만 (록큰롤 음악: Rock
and roll music) (달콤한 16세: Sweet little sixteen) (날 잡지 못할 거야:
You can't catch me) 등 그의 대표작이 빠져 있어 그를 완전히 파악하기엔
부족한 점이 없지 않다. 이 때문에 많은 평론가들은 그의 히트곡을 모두 수록한
2장짜리 콜렉션 음반 (척 베리의 황금10년: Chuck Berry's golden decade)을
그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앨범으로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

    목소리로 흑백을 결합한 로큰롤 슈퍼스타의 진면목
    엘비스 프레슬리 (골든 레코즈: Golden records)

 Heartbreak hotel.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 Don't be cruel.
Hound dog. Anyway you want me. Love me tender. Love me. Too much. All
shook up. That's when your heartaches begin. Loving you. Teddy bear.
Jailhouse rock. Treat me nice(58년)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를 빼놓고 로큰롤을 논할 수는 없다.
 평자들은 흔히 로큰롤의 효시를 53년 빌 헤일리의 (광인: Crazy man
crazy)으로 보거나, 역시 빌 헤일리의 노래인 55년 (하루종일 록을: Rock
around the clock)을 최초의 로큰롤 히트곡(또는 효시곡)으로 정의한다. 록이
그렇게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정작 차트나 방송에서 그 시대를 풍미하기 시작한
것은 RCA빅터레코드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가 발표되면서부터였다. 미국
전역에 록 열풍을 일으킨 노래는 8주간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점령한 (상심의
호텔: Heartbreak hotel)이었다. 이 노래로써 그는 로큰롤의 제왕이 되었다.
 (상심의 호텔)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적인 보컬 능력, 이를테면 흑인
'리듬 앤 블루스'와 백인 '컨추리 앤 웨스턴'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장 잘 드러낸 대표곡이었다. 엘비스는 '목소리로' 흑백음악의 혼합이 가져온
로큰롤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신문의 한 자살 기사에 착상하여 매 액스턴과 토미 더든이 작사, 작곡한
(상심의 호텔)은, '난 너무 외로워 죽을 지경'이라는 가사를 실음으로써
아이젠하워 시대의 10대들이 겪고있는 따분함과 소외를 폭발시키는 뇌관 역할을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실로 아이젠하워 시대에 '10대의 반란'을 야기한
주동자였다.
 이후에 그의 차트 활동은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롭고 눈부시게 전개되었다.
(너를 원해, 너를 요구해, 너를 사랑해: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는 차트 3위(56년5월), (잔인해서는 안돼: Don't be cruel)는
1위(56년8월), (하운드 독: Hound dog)은 2위(56년8월), (러브 미 텐더: Love
me tender)는 1위(56년10월), (난 흔들려요: All shook up)는 1위(57년3월),
(테디 베어: Teddy bear)는 1위(57년6월), (교도소의 록: Jailhouse rock)
1위(57년10월) 등으로 히트 퍼레이드는 계속되었다. 이 앨범은 RCA빅터사
초창기에 발표한 이같은 로큰롤 클래식을 모아놓은 작품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58년 3월 군에 입대하여 2년간 복무한 후 중대한 변화를
겪게 된다. 기성세대에게도 어필하는 노래를 불러 10대들에게만이 아닌
'국민가수'로서의 위치를 구축한 것이 그것인데, 그 때문에 로큰롤의 냄새는
급격히 퇴색하고 말았다. 그래서 60년 7월의 (지금 아니면 안돼: It's now or
never)와 같은 노래로 젊은 세대보다는 기성세대의 기호에 맞춘 스탠다드
경향으로 빗나간(?) 점이 돌출한다. 매니저인 톰 파커 대령의 지시에 의한
이러한 이미지 변화는 잇단 영화 및 뮤지컬 출연으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은 엘비스의 군입대를 계기로 한 변화 이전의 '가장
엘비스적이고 가장 로큰롤적인 노래'를 담았다는 데 작품적 가치를 보유한다.
 (잔인해서는 안돼)와 (하운드 독)은 같은 싱글의 앞뒤 곡으로 모두 인기차트를
석권해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그리고 가장 빅히트한 싱글로 기록되고 있다.
(잔인해서는 안돼)는 그가 평소 좋아하던 리듬 앤 블루스 아티스트 오티스
블랙웰이 쓴 곡으로 엘비스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곡이라고 한다. 이
곡의 히트 이후 엘비스는 오티스 블랙웰의 또 다른 곡을 열망했는데 그리하여
만들어진 곡이 (난 흔들려요) 였다. 이 두 노래는 모두 비교적 빠른 템포로
전개되지만 흑인의 작품인 관계로 자연히 흑인 감성(feel)이 스며있는데
엘비스의 그 소화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엘비스는 사실 '흑인 블루스를 잘 부르는 백인가수'를 요구하던 시대적 요청에
의해 탄생한 스타였다. 선 레코드사의 샘 필립스 사장은 엘비스에게 그
가능성을 발견했고, 몇 곡을 발표케 하여 지명도를 올린 후 3만5천달러를 받고
RCA빅터사로 넘긴 것이다.
 (그것은 네 마음의 고통이 시작될 때야: That's when your heartaches
begin)는 그가 선 레코드사 계열인 '멤피스 레코딩 서비스'에 들러 (나의 행복:
My happiness)과 함께 어머니 생일선물로 취입한 곡으로 이 앨범에 수록된
유일한 RCA 이전의 레퍼토리이다.
 (하운드 독)은 엘비스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곡이었는데, 회사측은 이 곡이
그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져 팬들이 그 특유의 선정적 포즈를 연상하기만
한다면 분명히 히트할 것으로 확신했다. 회사측의 예측은 적중했다.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저음을 과시하고 있는 (러브 미 텐더)와 (널 사랑해:
Loving you)는 각각 엘비스가 출연한 동명타이틀 영화의 삽입곡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그의 영원한 걸작 (러브 미 텐더)는 영화제작자들까지도
감동시켜 '레노 형제들'이란 영화의 원제목마저 바꾸게 해버렸다.
 (날 사랑해주오: Love me)는 이 앨범 수록곡 가운데 유일하게 싱글로 발표되지
않은 곡으로 56년 11월 EP판을 통해 소개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트 6위
및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영화 '널 사랑해'에 타이틀곡과 함께 삽입된 (테디 베어)는 10대 시장과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곡조를 지녀 엘비스 자신도 빅히트를 점친 곡이었다.
(교도소의 록)과 (날 잘 다뤄줘요: Treat me nice) 역시 영화 '교도소의 록'에
삽입된 곡으로, 엘비스의 상표인 광풍이 몰아치는 듯한 파워를 실감케 하고
있다.
 존 레논은 "엘비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아무것도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라고 실토한 바 있다. 그를 위시한 무수한 후배 록가수들이 왜 그토록
엘비스처럼 되려고 몸부림쳤는가를 알려주는 단서가 이 앨범에 들어있다. 그
단서는 엘비스의 명성이었고 그 명성은 엘비스의 환상적인 노래솜씨가 가져다준
것이었다.
 (그림 설명): 히프를 흔드는 엘비스의 전형적인 '로큰롤 포즈'.

    로큰롤의 세련화를 이룩한 안경잽이 스타의 모든 것
    버디 할리 (버디 할리의 빅히트 선집: Buddy Holly's greatest hits)

 Peggy Sue. That'll be the day. Listen to me. Everyday. Oh, boy. Not fade
away. Raining in my heart. Maybe baby. Rave on. Think it over. It's so
easy. It doesn't matter anymore. True love ways. Peggy Sue got
married(74년)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 로큰롤의 사운드는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상태였다. 갓
태어난 로큰롤은 '위대한 천재' 버디 할리를 만나 원시성을 벗고 세련된
음악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그는 로큰롤이 누구나 쉽게 납득할 수 있는
팝음악임을 제시했다.
 그의 음악에는 낭만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로큰롤이 가지는 도전적이고
변화무쌍한 특성을 전혀 훼손하지 않고 그 틀 안에서 '록의 친화력 획득과
성숙'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는 록의 이론가로 통한다. 그때까지 존재한 록 주변의 여러 음악, 즉 리듬
앤 블루스, 컨추리, 로커빌리, 흑인 영가 등을 종합해 록의 체계를 정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거기에 텍사스(그의 고향)와 인접한
멕시코의 영향을 흡수한 소위 '텍스 멕스'(TexMex) 사운드 경향을 선보이기까지
한 거대한 소화력의 소유자였다. 그것은 기존 사운드의 통일을 뜻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아요: Not fade away)는 그의 흑인리듬 소화력을
확인시켜주는 대표적인 곡이었다. 여기에 나타나는 기타 리듬은 흑인음악 리듬
앤 블루스의 거인 보 디들리(Bo Diddley)의 트레이드 마크, 즉 머리카락을
자르듯 '썰어낸' 리듬을 수용했다. 청취자들이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은 '연주자가 흑인임에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57년 그와 그의
그룹 크리케츠(Crickets)가 뉴욕 아폴로극장에서 연주했을 때 객석에서는
놀랍다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이 앨범은 그가 22세의 나이로 요절하기 전까지 발표한 노래 가운데
클래식만을 골라 엮은 걸작 모음집이다. 14곡이 수록된 이 음반은, 여러 음악의
통합을 성취해 낸 그의 공헌을 대체적으로나마 더듬어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적
가치를 지닌다.
 앨범은 버디 할리 히트곡집으로 타이틀이 붙어있지만 실은 그의 발표작과
크리케츠의 히트곡을 한꺼번에 실은 것이다. (페기 수: Peggy Sue) (레이브 온:
Rave on) 등은 버디의 개인 명의로 된 히트곡이지만 (댓일 비 더 데이: That'll
be the day)나 (오, 소년아: Oh, boy) 등은 크리케츠 이름으로 발표된
노래들이었다.
 버디 할리가 이처럼 양다리를 걸친 것은 노련한 매니저 노먼 페티의 전략에
의한 결과였다.
 노먼 페티는 데카 레코드사 소속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크리케츠를
부룬스윅 레코드사에, 버디 할리는 코랄 레코드사에 각각 계약시키는 방법으로
새출발을 꾀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브룬스윅이 데카의 자회사였기 때문에
데카의 법적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브룬스윅에서의 첫 히트곡 (댓일 비 더
데이)는 사실 데카를 위해 만든 곡) 할리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크리케츠를
내건 것이었다.
 (댓일 비 더 데이)는 57년 싱글 차트를 강타, 3위까지 올랐고 22주간이나
차트에 머무는 빅히트를 기록했다. 생동감이 넘치지만 절제된 사운드의 이
곡에서 깨끗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기타는, 펜더 스트레토캐스터라고 하는 그가
널리 퍼뜨린 전기기타였다.
 (페기 수)는 버디 할리 특유의 딸꾹질 창법과 신음에 가까운 보컬을 들려주는
곡이다. 그가 록 팬들에게 전하려 했던 것은 보컬 방식에 있어서는 규칙적이
아닌 '불규칙에 의한 멋'이었고(노래 도중 갑자기 가성을 쓴다거나 저음으로 뚝
떨어뜨리는 것), 가사에 있어서는 드러냄보다는 감춤이었다. 그 감춤을 통해
그는 록 평론가 조나단 코트가 표현했듯이 '아주 귀하고 진실한 사랑'을 찾으려
했다. 그는 소년 같은 순수성으로 록의 성숙을 이룩한 것이었다.
 그가 록계에 끼친 영향력은 그의 노래가 무수히 리메이크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입증된다. 롤링 스톤즈의 미국 차트데뷔곡이 할리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아)였고, 린다 론스태드는 할리 작품의 단골 리메이크꾼으로 (사랑에 빠지긴
너무 쉬워: It's to easy)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It doesn't matter
anymore)를 히트시켜 재미를 보았다. 비틀즈는 그의 곡을 연주하며 실력을
연마하여 훗날 최고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64년 비틀즈를 위시한 영국 록그룹의 '미국 침공'시에 들여온 음악은, 58년
영국 순회공연 때 그곳 젊은이들에게 비트(beat) 열풍을 일으킨 바로 버디
할리의 음악 그것이었다. 그는 미국보다 영국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아
영국에서는 '버디 할리 주간'이 선포되기도 했다.
 버디 할리를 정의해줄 업적은 너무도 많다. 그는 자신이 만든 곡으로 성공한
최초의 백인 록가수였다. 일반적인 록 밴드의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이라는 라인업을 가르쳐준 것도 그였다. 또한 그는 전기기타 팬더
스트래토캐스터를 대중화시켰고 록 반주에 최초로 현을 사용했다.
 이 모든 것을 이 앨범에서는 체험할 수 있다.
 앨범을 통해서 알 수 없는, 그가 남긴 주요한 공헌이 또 있다. 버디 할리는
안경을 쓴 수줍은 인상으로 무대에 선 유일한 록스타였다.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꼭 미남은 아니어도, 반드시 섹시한 매력을 갖추지 않았더라도 로큰롤 스타가
될 수 있음을 그는 증명했다. 버디 할리는 이 점에 있어서도 록의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버디 할리의 출현이 엘비스의 등장과 맞먹는 비중으로 록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 50년대에 활동하다 59년에 죽은 버디의 위 싱글을 모은 이 편집앨범은
74년에 출반했다.
 (사진 설명): 버디할리(왼쪽의 안경 쓴 이)가 이끈 초기 로커빌리 그룹
크리케츠.

    60년대
 1. Bob Dylan (freewheelin')
 2. Beatles (Please please me)
 3. Otis Redding ( Otis blue)
 4. Bob Dylan (Highway 61 revisited)
 5. Beatles (Rubber soul)
 6. Beach Boys (Pet sounds)
 7. Rolling Stones (Aftermath)
 8. Doors (the Doors)
 9. Beatles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0. Jefferson Airplane (Surrealistic pillow)
 11. Mamas and Papas (If you can believe your eyes and ears)
 12. Velet Underground (Velvet Underground & Nico)
 13. Aretha Franklin (Ten years of gold)
 14. Van Morrison (Astral weeks)
 15. Jimi Hendrix Experience (Are you experienced)
 16. Sly and The Family Stone (Stand!)
 17. Cream (Wheel of fire)
 18. Beatles (the Beatles: White album)
 19. Blood Sweet and Tears (Child is father to the man)
 20. Moody Blues (Days of future passed)
 21. King Crimson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22. Neil Young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
 23. Beatles (Abbey Road)
 24. The Band (the Band)

    60년대 정신의 해오름... 그것은 저항
    밥 딜런 (프리휠링: Freewheelin')

 Blowin' in the wind. Girl from the north country. Masters of war. Down
the highway. Bob Dylan's blues. A hard Rain's a-gonna fall.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Bob Dylan's dream. Oxford town. Talkin' World War 3
blues. Corrina. Honey. just allow me one more chance. I shall be
free(63년)

 밥 딜런(Bob Dylan) 이전에도 분명히 포크는 있었고, 저항음악은 존재했다.
그러나 그는 포크에 활력과 중요성을 부여하여 전면적인 포크붐을 일으켰고,
영, 미권 대중음악에 저항정신을 일깨웠다.
 대중음악, 특히 록음악이 60년대에 걸쳐 저항적 메시지를 견지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밥 딜런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저항과 관련해 일컬어지는 이른바 60년대 정신(Sixties Spirit)의
효시이자 중심에 위치한다. 포크 중흥뿐 아니라 그와 같은 60년대 정신의
출발을 알린 것이 다름 아닌 이 앨범이다. 밥 딜런은 이 음반으로 포크의
대중화를 이룩했고 프로테스트(protest) 정신을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 널리
전파했다.
 밥 딜런이 활약하던 시기의 미국은 하버드대학 출신의 젊고 의욕적인 대통령
케네디가 통치하던 시절이었다. 케네디의 뉴 프론티어(New Frontier)와 그에
따른 민권운동 지원에 고무된 당시의 젊은이들은 인종 평등과 반전을 외치며
일제히 밥 딜런의 프로테스트 음악을 경청했다.
 딜런의 프로테스트 송은 당시의 행동주의 포크가수 필 오크스나 톰 팩스튼과
마찬가지로 방금 터진 사건에 대한 구체적 이슈를 다루었다.

 굽은 길을 지나 옥스포드 타운, 그는 문에 도달했으나 들어갈 수 없었지. 그의
피부색 때문이지. 친구여, 그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나. (옥스포드 타운: Oxford
town)

 이 노래는 62년 9월 옥스포드의 미시시피대학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제임스 메레데스라는 흑인 공군제대병이 그 대학에 등록하게 되자
보수적인 인종주의자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양상은 주방위군과 케네디의
국립경호대 사이의 대결과 치달았다. TV를 통해 대학생들에게 인종분리를
종식하고 메레데스를 받아들이라는 연설을 한 케네디 대통령은, 인종주의자의
폭력으로 2명이 사망하자 즉각 해병대를 파견하여 메레데스를 보호했다. 62년과
63년 공민권 획득운동이 미국 동부 전역에 걸쳐 폭발했을 때 밥 딜런은 이처럼
포크로 민권운동을 펼쳐나갔다.
 그가 집착한 또하나 테마는 전쟁에 대한 반대였다.

 영원히 폐기될 때까지 포탄은 얼마나 전장을 날아야 하나. 주위를 외면키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이 고개를 돌려야 하나.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아는 대답: Blowin' in the wind)

 이 노래는 전세계 대학가에 포크 붐을 일으키며 반전가요의 표상이 됐으며
톤을 낮춰 팝화한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 Mary)의 노래로 빅 히트,
작곡자인 딜런의 이름을 알리는 데 결정적 열할을 했다. 여기서 못본 척 고개를
돌리는 사람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냉전의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혀 전쟁에
광분하는 권력층과 무기상을 가리킨다.
 (전쟁의 도사들: Masters of war)은 바로 그들의 위선을 고발하는 작품.
 
 그대들은 다른 이들이 발사하도록 방아쇠를 죄어주지. 사망자가 늘어만 갈 때
그대들은 뒷전으로 물러나 주시하지. 젊은이들 피가 흘러 진흙에 묻힐 때
그대들은 맨션에 숨어만 있지.

 62년 10월에는 피그만사건에 의해 촉진된 '쿠바 미사일 위기'가 있었다. 미
공군에 의한 피그만 공습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미국과 케네디의 위신은 크게
손상되었다. 당시 후르시초프 서기장은 쿠바에 미사일 기자를 건설, 무력을
강화시키려 했고 미국의 첩보 비행기가 그 증거를 포착하자 두 강대국은 13일간
팽팽히 맞서면서 전면전의 위기에 봉착했다. 소련이 미사일 시설을 모스크바로
철수시키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재앙은 비켜갔지만 이 사건이 미국 국민에게
미친 공포와 충격은 대단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3차대전의 개시'로 여겼다.
 (강한 비가 내릴꺼야: A hard rain's a-gonna fall)는 미사일 위기가 초래한
공포를 노래한 곡이었다.

 난 천둥소리를 들었어. 그것은 고함치며 경고를 던졌지. 세상을 덮어버릴
파도의 격량을 들었어... 시궁창에서 죽은 시인의 노래를 들었어. 미궁에 빠져
울고있는 광대의 소리를 들었지.

 밥 딜런이 그려낸 3차대전의 현장은 소름끼친다.

 난 낙진대피소의 벨을 누르고 머리를 기울이며 소리쳤지. "땅콩을 줘. 난 지금
배고파"하며. 총탄이 날아왔고 잽싸게 도망쳤지... 핫도그점 코너에서 난 어떤
남자를 보고 "안녕하슈, 여긴 우리 둘밖에 없군" 했지. 그는 갑자기 소리치더니
날아가버렸어. 날 공산주의자라 생각한 거야. (3차대전의 블루스: Talkin'
World War 3 blues)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애청된 (두번 생각하지 마, 괜찮아: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와 (북극에서 온 소녀: Girl from the north)는 러브송이다.
이같은 현실 비참여적 노래를 배치함으로써 앨범의 균형과 예술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 앨범은 록 부문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 작품이다. 통기타와 하모티카,
그리고 딜런의 거친 목소리만이 존재하는 전형적인 포크음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기 로큰롤에 매료되어 있었던 딜런은 곧바로 포크와 록의 요소를
결합한 포크록을 창시하며 록 세계로 들어갔다. 악기로 말하면, 통기타를
버리고 일렉트릭기타를 쥔 것을 의미하는 그의 충격적 전향은 록분야에서는
환영을 받았으나 전통 포크진영으로부터는 '배신자'라는 오명을 안게 되었다.
 그는 포크록으로 변신하면서 정치적 행동주의와 저항을 포기하고 내적 탐구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미 많은 록가수에게 저항정신을
아로새기고 난 뒤였다. 그의 저항성은 그가 아닌 딴 가수들에 의해 계속되어
나갔다.

    비틀매니아의 서곡을 울린 역사적 데뷔음반
    비틀즈 (플리즈 플리즈 미: please please me)

 I saw her standing there. Misery. Anna(go to him). Chains. Boys. Ask me
why. Please please me. Love me do. P.S. I love you. baby it's you. Do you
want to know a secret. A taste of honey. There's a place. Twist and
shout(63년)

 1963년 3월 발매되어 존, 폴, 조지, 링고가 리버풀의 네마리
딱정벌레(beetle)가 아닌 영국의 전국적 그룹임을 과시한 이들의 첫 LP. 이
앨범이 발표된 63년 한 해 동안 영국에서는, 단순 음악관련 해프닝을 훨씬
뛰어넘는 사회적 현상이 그들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비틀매니아'가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리버풀의 캐빈 클럽에서 비틀즈(the Beatles)가 공연할 때도
소녀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소리치며 춤을 추어댔다. 그러나 전국 순회연주를
하던 이 무렵 아주 격렬한 집단 히스테리가 발생, 마침내 저널리스트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 해
10월부터 3개월 사이 하루 걸러 한번 정도로 비틀즈 스토리가 전국 일간지의
일면을 장식하게 되었다.
 단 하룻동안 11시간만에 녹음을 마친 이 앨범은,비틀매니아(Beatlemania:
비틀즈 현상) 출현의 시발을 보여줬다는 점 외에 장차 명반들을 쏟아낼
대중음악사상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콤비 존-폴의 작업방식과 재능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귀중한 음반이다.
 이들은 영국차트 정상을 차지함으로써 비틀즈의 입지를 공고히 해준 두번째
싱글곡 (플리즈 플리즈 미: please please me)와 그들 콤비의 첫 결실로서
영국차트 17위(미국 '빌보드'지엔 늦게 소개되어 64년4월 네 번째로 차트1위
기록)의 (날 사랑해주오: Love me do)를 포함, 여덟 곡의 창작곡을 선보였다.
이것은 기존 곡들을 리메이크하거나 다른 작곡가의 노래를 단순히 부르거나,
또는 미국의 히트곡들을 가져다 부르는 것이 관례인 당시의 영국 음악판도에선
가히 혁명적인 일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난 그녀가 서있는 것을 보았지: I
saw her standing there) 같은 곡은 학창시절 무단결석을 하며 폴의 집에서 두
사람이 지었다지만, (이유를 물어봐요: Ask me why) (어떤 곳이 있었지요:
There's a place) (P.S. 난 널 사랑해: P.S. I love you) 등 대부분의 오리지널
곡들은 순회공연 중 썼다는 사실.
 그들의 경이적 독창성은 그러나 여섯 곡의 기성곡들을 선택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팻 분 같은 유명가수들의 노래 대신 슈렐즈의
(연인이여 그건 바로 너야: Baby, it's you), 그리고 레논과 메카트니가
자신들의 모델로 삼았단 게리 고핀-캐롤 킹 콤비가 쓰고 쿠키즈가 부른
(체인즈: Chains), 존의 파워넘치는 남성적 가창력으로 앨범을 끝맺는 아이슬리
브라더즈의 (춤추며 소리지르라: Twist and shout) 등, 영국의 음악팬에겐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자신들의 애창곡을 부른 것이었다. 이 가운데 (춤추며
소리지르라)는 창작곡이 아닌데도 이듬해 전미 차트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무명이었던 '캐번'시절의 이 곡들이 명실상부한 로커인 초기 비틀즈의
이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이 앨범은 빛을 발한다.
 (플리즈 플리즈 미)의 성공에 뒤이어 비틀즈는 64년에 들어서자 (나는 네
손목을 잡고싶어: I want to hold your hand)를 외치며 미국을 '침공'했고 이어
세계정복의 길로 나아갔다.
 그들을 시발점으로 연이어 롤링 스톤즈, 후, 데이브 클락 파이브, 허먼스
허미츠, 애니멀즈 등 영국의 무수한 로큰롤 그룹들이 미국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미국의 팝음악 관계자들은 그 현상을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이라 표현했다.
 영, 미간의 음악적 벽을 허물어버린 비틀즈는 이와 함께, 작곡자와 가수로
나뉘어있던 음악계를 결합시켜 가수 겸 작곡자, 즉 싱어송라이터의 체제를
구축했고 음악 소비자로 하여금 싱글 아닌 앨범을 구입하게 해 '앨범 시대'를
여는 계기를 마련했다. 록음악은 비틀매니아에 의해 새로운 장을 열게 된
것이다. 이 앨범은 그 '위대한 비틀매니아의 시작'을 알린 실로 록역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림 설명): 63년 영국을 휩쓴 비틀즈 선풍은 이듬해 미국도 정복, 세계적
열풍을 야기시켰다.

    60년대 흑인정신이 표출된 '소울 음악'의 교본
    오티스 레딩 (오티스 블루: Otis blue)

 Ole man trouble. Respect. Change gonna come. Down in the valley. I've
been loving you too long. Shake. My girl. Wonderful world. Rock me baby.
Satisfaction. You don't miss your water(65년)

 미국 조지아주 메이컨 출신인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의 지향점은 자신의
고향이 배출한 위대한 로큰롤 가수 리틀 리차드처럼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멤피스레코드사 계열의 스택스 스튜디오에서 레코딩을 하게 되면서, 그의
노래는 리차드의 강한 로큰롤로부터 흑인 특유의 짙은 소울(soul)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의 노래는 '소울 발라드'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흑인음악의 용어가 리듬 앤 블루스에서 소울로 바뀌게 된 것은 60년대
중후반의 사회상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65년 뉴욕의 할렘 폭동, 67년
디트로이트 폭동은 흑인의 권리쟁취를 위한 과격한 욕구분출이었다. 이때
흑인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새로이 등장한 용어가 바로 '소울'('흑인영혼
'흑인정신')이었다. 대부분의 흑인들은 그들의 반인종차별 투쟁과 소울이라는
말을 동격시했다. 당시 동시다발적으로 팝계에 출현한 제임스 브라운, 레이
찰스, 윌슨 피켓, 아레사 프랭클린, 그리고 오티드 레딩이 대표적인
소울가수들이었다. 소울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흑인민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65년 발표된 (오티스 블루)는 이같은 흑인의 권리신장 요구와 소울발현의
촉매제 열할을 했다. 오티스 레딩의 음악과 이 앨범은 따라서 60년대 후반의
소울 열기와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다. 그의 자작곡인 (존경: Respect)과
(변화는 올 것이다: Change gonna come)는 그같은 소울의 경향을 대표한다.
거기에는 이전엔 찾아볼 수 없던 흑인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배어있다.
 (존경)은 특히 '레이디 소울'(Lady Soul)의 칭호를 얻은 아레사 프랭클린이
불러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더욱 유명해졌는데, 60년대의 소울 음악과
흑인민권운동 물결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소울의 걸작들이 총망라되어 있다는 평을 듣는 이 음반은 대중적으로도 성공해
4개의 히트 싱글이 쏟아져 나왔다. (존경) 외에도 (흔들어라: Shake) (만족할
수 없어: I can't get no satisfaction) (지금 멈추기엔 너무 오랫동안 그대를
사랑했어요: I've been loving you too long)가 잇따라 히트했고 영국에서는
(나의 여자: My girl)도 싱글로 발표되어 인기를 누렸다. 이 가운데 롤링
스톤즈의 오리지널 (만족할 수 없어)는 소울과 록이 훌륭히 양립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기존 체제에 대한 대항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의
공통점을 지닌 두 장르는 이후 자주 결합하여 어깨동무 사이로 발전해갔다.
 앨범수록곡 중 우리나라에서는 단연 (지금 멈추기엔...)이 사랑을 받았다.
오티스 보컬의 짙은 호소력과 끌어당기는 듯한 분위기가 압권인 이 노래는 그
특유의 스타일(소울 발라드) 때문에 발라드 취향이 강한 국내팬들의 줄기한
애청곡이 되었다.
 그러나 67년 12월 불의의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면서 그의 활동은 종막을
고했다. 26세의 요절이었다. 그의 이른 죽음이 한편으로 이 앨범의 가치를 더욱
높여 주었는지도 모른다.
 사망 직후에 발표된 (만의 부두에 앉아: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는
전미 싱글차트 정상에 오르는 빅히트를 기록했다.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소울 발라드 필(feel)이 전편을 수놓은 이 노래는 그의 노래 가운데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곡과 (부드러움을 실행해 봐요: Try a little tenderness)는 이 음반에
수록되어 있진 않지만 오티스의 팬이라면 놓쳐서는 안될 작품이다. 뒷 노래는
그의 전매특허-스탠다드를 비비꼬일 만큼 느리게 재해석해 부르는 것-를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일부 평론가들은 그를 '소울의 왕'(King of soul)이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앨범이 역사상 가장 훌륭한 소울 앨범 중 하나로 간주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림 설명): 오티스 레딩

    대중음악 가사의 혁명... 포크와 록의 결합
    밥 딜런 (다시 찾은 하이웨이 61: Highway 61 revisited)

 Like a rolling stone. Tombstone blues. It takes a lot to laugh. It takes
a train to cry. From a buick 6. Ballad of a thin man. Queen Jane
approximately. Highway 61 revisited. Just like Tom Thumb's blues.
Desolation row(65년)

 록평론가 데이브 마시는 이 앨범을 밥 딜런(Bob Dylan)의 작품 가운데
최고라고 추켜 세우며 "이때쯤의 그의 영향력은 너무도 확산되어 정말 수천의
사람들이 그의 언어 하나하나에 매달리는 실정이었다"고 말했다.
 65년 8월 딜런의 전성기 때 발표된 이 앨범이 가지는 의의는 바로 데이브
마시가 지적한 언어, 즉 가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딜런은 이 앨범을 통해
순간의 감각에 영합하는 하루살이 같은 팝송의 노랫말을 그야말로 성경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록평론가 짐 오도넬의 표현처럼 이 무렵 그의
가사는 마치 '운율(비트)을 지닌 게티스버그연설'처럼 록계에서 곡 만드는
사람의 두뇌를 해방시켰다(노래로 읊은 민주주의의 이정표!).
 딜런의 언어는 감상자의 가슴을 찌르는 통렬함을 지녔고 초현실적이었으며,
이전의 대중가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철학적 깊이를 간직했다. 정확히 해독이
어려울 만큼 난해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례로 여기 수록된 (여왕 제인: Queen Jane approximately)에서의 제인이
혹시 연인관계로 소문난 존 바에즈가 아니냐는 추측이 등장했고, 한 뉴욕시민은
'(폐허의 거리(Desolation row)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를 지하신문에 내기도 했다.
 밥 딜런은 데뷔와 동시에 (바람만이 아는 대답: Blowin' in the wind) (시대는
변한다: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전쟁의 도사들: Masters of war)와
같은 저항가요로 양심세력을 이끈 시대의 표상이었다. 젊은 지성인들은 그의
가르침에 따라 반전을 부르짖고 기존체제와 기성세대에 대항했다. 얼마후 그는
이같은 정치성을 스스로 부정하며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였으나 '내적 성찰에
의한 의식혁명'을 주장하는 심원한 저항을 드러내 보였다. '딜런' 하면
떠오르는 어휘가 되어버린 프로테스트(protest) 기조는, 따라서 이 작품에서도
계속 유지되었다.
 이 계열의 노래로는 (구르는 돌처럼: Like a rolling stone)과 (깡마른 사람의
노래: Ballad of a thin man)가 해당된다. 그의 생애 최고 히트곡이 된 앞의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 잃을 것도 없다'는 노랫말고 함께 벌거벗겨진
자연인이 되기를 권유하면서 기성의 해체를 역설한다. (깡마른 사람의 노래)
역시 기성세대에 대한 순전한 비아냥이다. 이 곡에는 시위대 피켓의 슬로건이
되기도 한 '여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요,
존스씨?'라는 유명한 구절이 들어있다. 여기서 존스는 혹시 존슨대통령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등장했는데, 딜런은 "당신은 그를 알고 있지만 그
이름으로는 아니다"라고만 언급, 특정인을 거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사를
떠나서 이 두 곡은 음악적으로도 탁월한 걸작들이다.
 타이틀에 사용된 하이웨이61은 그의 고향인 미네소타 유리치의 북쪽에서
미네아폴리스, 세인트루이스, 멤피스를 거쳐 뉴 올리언즈까지 달리는
고속도로를 가리킨다. 어린시절 꿈을 안겨준 이 도로를 내검으로써 그는
'과거로 돌아가서 미래를 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회고조의 앨범제목과
다르게 전체적인 분위기는 쾌활하며, 예를 들면 (폐허의 거리)는 제목답지 않게
친근하고 밝은 멜로디로 다가온다. 연주의 측면에서는 당시 무명이었던 마이크
볼룸필드와 알 쿠퍼가 각각 기타와 오르간 세션(session: 반주)에 나선 것이
눈에 띈다. 이미 시작된 포크에 록을 접목한 이른바 '포크록'이 이 앨범에서
만개하고 있다.
 영미 록계의 평론가들이 이 앨범을 일제히 걸작으로 손꼽는 이유는 이 작품이
당시 딜런에게 자의건 타의건 요구되었던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저항의 기조, 깊이있는 노랫말, 록과 포크의 결합이 그것이었다. 록
역사에 딜런이 남긴 발자취를 한꺼번에 더듬어볼 수 있는 실로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이 앨범은 국내에서도 출시되었다.

    비틀즈의 변신... 소녀팬에서 성인에게로
    비틀즈 (러버 소울: Rubber soul)

 I've just seen a face. Norwegian wood. You won't see me. Think for
yourself. The word. Michelle. It's only love. Girl. I'm looking through
you. In my life. Wait. Run for your life(65년)

 록평론가들은 그렉 쇼는 비틀즈 음악의 우수성을 논하면서, 그 원인으로
기존의 모든 음악을 받아들여 자기스타일화한 스폰지 같은 흡수력을 지적했다.
그는 그들이 버디 할리, 척 베리, 엘비스 프레슬리의 50년대 초기 로큰롤뿐만
아니라 60년 미국에 존재했던 모타운의 리듬 앤 블루스, 서프 뮤직, 필
스펙터의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 음악을 포괄하여 독창적인 비틀
뮤직을 창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렉 쇼가 하나 놓친 것이 있다. 바로 밥 딜런의 포크음악이다. 64년
'미국 침공'으로 천하통일을 이룩한 비틀즈는 당시 미국 청년들을 사로잡은 밥
딜런의 포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사실 딜런도 비틀즈에 끌리긴 마찬가지여서
후에 포크와 비틀즈식 록을 섞은 포크록을 창안하게 된다). 특히 자의식이
강했던 존 레논에게 메시지가 두드러진 포크는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전까지 비틀즈의 음악은 로큰롤의 본질에 충실하긴 했지만 가사는 남녀간
애정을 소재로 한 시시콜콜한 사랑타령에 머물러 있었다. 비틀즈는 10대
팬들에게 행여 거리감을 줄지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밥 딜런처럼 '뭔가
무게있는 노랫말'의 음악을 하고자 했다. 사랑을 노래하더라도 거칠고
드러내놓는 내용보다는 애매모호하고 감추어진 측면을 묘사하고 싶었다. 그들은
변화를 원했던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비틀즈의 초기 걸작 (러버 소울: Rubber soul)이 탄생했다.
폴 매카트니는 제목에 별다른 뜻이 없다고 했지만 '고무 정신'이라는
의미부터가 이전의 음반들과는 달랐다.
 비틀즈는 이 앨범에서 어떠한 싱글도 커트(별도의 '도너스판'을 제작,
발표)하지 않았다. 팬들에게 앨범 전체를 하나의 음반으로 받아들여 달라는
요구였다. 사실 처음부터 이 앨범은 싱글 개념을 거부하고 하나의 앨범이라는
구상하에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러버 소울)은 비틀즈 4인의 그룹 결속력이
최고로 발휘된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수록곡의 가사를 초기작과 비교해보면 금방 차이가 발견된다.

 난 무언가 얘기할 거야. 너도 이해하겠지. 그럼 그것을 말할 테야. 난 네 손을
잡고 싶어. (네 손을 잡고싶어: I want to hold your hand)

 지나간 사람들과 일에 애정을 잃지 않고 난 가끔 멈추어 그들을 생각할테야.
삶 속에서 너희들을 더욱 사랑할 거야. (내 삶에서: In my life)

 앞곡은 64년 2월 미국 데뷔곡이고 뒷곡은 65년 12월에 발표된 이 앨범의
수록곡이다. 평론가 그레일 마커스의 표현처럼 (러버 소울)에 보이는 사랑은
초기곡에서는 제거되었던 '살아있는 사랑'이었다. 거친 힘은 표면 아래로
숨었다. 가사는 다의적이어서 그 의미를 자꾸 되새기게끔 하고 있다.
 이 앨범의 노래들 가운데 최고의 트랙은 (여자: Girl)이다. (내 삶에서(삶
속에서))와 함께 존 레논이 쓴 이 곡은 앨범의 백미로 꼽히는데, 사랑의
가변성에 대한 사려깊은 반성을 담았다.

 그녀는 젊었을 때 명성이 쾌락을 가져온다는 얘기를 들었을까. 남자가
여가시간을 갖기 위해 등 부숴지게 일해야 한다고 할 때 그 말을 이해했을까.
그가 죽었을 때도 여전히 그 얘길 믿을까.

 이 노래에서 '걸(여자)'이 종교일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존 레논의 종교에
대한 시각이 담겨진 노래라는 것이다. '여자=종교'로 대입하여 가사를
음미해보면 내용이 꽤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만약 그렇다면, 종교란
괴로움의 바다에서 우리를 건져주지만 그 효과는 순간적이며 인격의 파탄과
황폐화라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해석이 도출된다.
 그 무렵 존은 종교(특히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이 음반이 발표되고
얼마 후 그는 실제로 런던 '이브닝 스텐더드'지 모린 클리브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기독교 신앙은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종적을 감추고 움츠러들
것이다. 더 이상 논쟁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는 지금 예수보다 더 인기가
있다(We are more popular than Jesus)"라는 충격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것이 일반적 사랑이든 종교이든 초기 곡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폴 매카트니는 여전히 뛰어난 선율의 노래를 잘 썼다. (난 막 얼굴을 봤어:
I've just seen a face)나 그래미상을 수상한 (미셸: Michelle) 등이 그러하다.
역시 폴이 대부분을 쓴 (난 너를 뚫어지게 보고 있지: I'm looking through
you) (넌 날 보지 못할 거야: You won't see me)는 경쾌하면서도 매력적인
리듬을 지니고 있는데, 뒷곡은 훗날 앤 머레이가 다시 불러 히트했다.
 (스스로 생각하라: Think for yourself)는 레논-매카트니 콤비의 벽을 넘어 이
앨범에서 해리슨이 작곡해 부른 유일한 곡이다(링고 스타는 곡을 쓰지 못했다).
조지 해리슨이 위력을 발하는 부분은 역시 기타연주인데, (노르웨이의 숲:
Norwegian wood)에서는 기타 비슷한 인도의 전통악기 시타르(sitar)를 도입해
연주했다. 다소 실험적인 이 노래는 시타르 연주 뿐 아니라 종전과 다른, 약간
음산하며 전위적인 곡조로 많은 록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영감에 가득차 있으며 새롭기 그지없는 이 앨범은 밥 딜런의 영향이 컸다. 이
영향하에 4인의 특별한 결합을 통해 '우수한 곡들'을 한데 모아놓는 결실을
맺었다. 팝 관계자들 중 일부가 다른 앨범을 접어두고 이 작품을 비틀즈의 최고
음반으로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러버 소울)로 그들은 틴에이저 지향의
그룹에서 탈피하여 전무후무한 팝그룹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 앨범으로
자신감을 얻은 그들은 곧바로 (리볼버)라는 또 하나의 걸작앨범을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롤링 스톤즈와 비치 보이스도 (러버소울)에 충격을 받고 각각
독창적인 앨범 (여파: Aftermath)와 (펫 사운드: Pet sounds)를 내게 되었다.
 이같은 사실 외에 다른 것에서 '비틀즈의 위대성과 위대한 음악의 시작'임을
예시할 별도의 사례를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서프 음악'의 종언... '스튜디오 음악'의 개가
    비치 보이스 (펫 사운즈: Pet sounds)

 Caroline no. Wouldn't it be nice. You still believe in me. That's not me.
Don't talk. I'm waiting for the day. Let's go away for a while. Sloop John
B. God only knows. I know there's an answer. Here today. I just wasn't
made for these times(66년)

 윌슨 삼형제 브라이언, 칼, 데니스와 사촌인 마이크 러브, 그리고 이들의
친구인 알 자딘으로 구성된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트레이드 마크는
서프음악(Surf Music)이었다. 그들은 60년대 초반 저 유명한 (서핀 유에스에이:
Surfin' USA)를 비롯, (파도를 타자: Catch a wave) (서프하는 아가씨: Surfer
girl) 등 캘리포니아 해변과 태양을 무대로 서프의 즐거움을 담은 낭만적인
노래를 가지고 팝계를 강타했다.
 그룹의 실세로서 천재적 재능의 브라이언 윌슨은 그러나 가벼운 서프 음악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64년 말 신경쇠약 증세로 그룹을 잠시 떠난 그는
서프음악과 결별하기로 다짐하고 새 모습을 보이기 위해 작곡, 편곡, 녹음에
열중했다. 당시 그는 비틀즈를 상당히 의식하고 있었다. 작곡에 있어서나
기술적으로나 비틀즈보다 나은 앨범을 만들고 싶어했다. 구체적 목표는
비틀즈의 (러버 소울)을 타도하는 것이었다.
 66년 5월에 발표된 (펫 사운즈)는 이같은 브라이언의 욕구에 따라 만들어졌다.
따라서 그것은 비치 보이스라는 그룹의 작품이라기보다는 브라이언 개인작품에
가까웠다. 음반 수록곡 어떤 것에도 이전의 비치 보이스 색깔은 배어나오지
않았다. 곡은 훨씬 느려졌고 작사가 토니 애서의 지원을 받은 노랫말은
자기성찰의 분위기로 흘렀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브라이언은 필 스펙터가 창안한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 기술을 빌어 더빙반복으로 소리를 두껍게
했고 종소리, 경적소리, 외침 등 효과음을 많이 응용했다. 그것은 곧바로
레코딩계에 일렉트로닉 물결을 일으키는 기술적 개가였다.
 이렇게 해서 나온 (캐롤라인 노: Caroline no) (그것이 좋지 않은가요:
Wouldn't it be nice) (신만이 알지: God only knows) (슬룹 존 비: Sloop John
B) 등은 사이키델릭하고 복잡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훗날 이 노래들은 록의 고전이 되었다. 특히 프렌치 호른과 썰매방울 소리를
깔며 칼 윌슨이 부른 톡쏘는 맛의 노래 (신만이 알지)는, 비틀즈의 폴
메카트니로부터 "이제까지 쓰여진 노래 가운데 최우수곡"이라는 격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캐피톨 레코드사는 이 음반을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브라이언이 돈만 낭비하고 좋은 앨범을 내놓지 못했다고 불평했고 오히려
뒤이어 나온 비치 보이스 히트곡집의 음반홍보에 주력했다. (펫 사운즈)가
보기드문 걸작이었으면서도 대중적으로 크게 어필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슬룹 존 비)와 (그것이 좋지 않은가요)는 전미
싱글차트 톱10위에 올랐으며, (슬룹 존 비)의 경우는 우리말로 개사되어 널리
애청되었다.
 이 작품의 진가는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나타났다. 레코딩 종사자들은 이
앨범을 통해 스튜디오 자체가 하나의 음악도구라는 사실을 배웠다. 평론가들은
지금도 이 앨범을 시대를 앞서간 60년대의 몇 안되는 컬트음반(cult album)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브라이언 윌슨은 이 앨범으로써 실험적 음악자세와 비범한 작곡 솜씨를
인정받았다. 비치 보이스가 짧았던 서프음악의 유행을 뛰어넘어 반짝 그룹으로
그치지 않고 '록의 전설'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순전히 이 앨범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라이언은 비치 보이스의 이미지를 거의 바꾸어 버렸지만 한 가지는 그대로
남겨두는 지혜도 발휘했다. 그것은 비치 보이스가 록계에 남긴 음악유산으로
얘기되는 바로 그들만의 절묘한 화음이었다. 위험에 가까운 실험 속에서도
그들의 환상적인 보컬 하모니는 충분히 구제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슬롭 존
비) (그것이 좋지않은가요)가 그러했다. 브라이언 윌슨은 남들과 구별되는 비치
보이스의 자랑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사진 설명): 그룹의 주역 브라이언 윌슨.

    비틀즈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 2등 록밴드의 1등 작품
    롤링 스톤즈 (여파: Aftermath)

 Paint it black(영국 Mothers little helper). Stupid girl. Lady Jane. Under
my thumb. Doncha bother me. Goin' home. Flight. High and dry. Out of time.
It's not easy. I am waiting. Take it or leave it. Think. What to do(66년)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을 주도한 쌍두마차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는 1964년부터 로큰롤의 왕관을 놓고 불꽃튀는
대권경쟁을 벌였다. 두 그룹은 영국 인기차트 1위와 2위를 번갈아 차지하며
치열하게 다투었지만 늘 상호 선린관계를 유지했다.
 그들은 서로 배웠다. 서로 어떤 음악을 하는가 주시하며 상대편이 내놓는
신곡을 열렬히 청취했다. 그러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한 예로 비틀즈는
롤링 스톤즈의 65년 히트곡 (만족할 수 없어: I can't get no
satisfaction)에서 키스 리처드가 발로 작동하는 퍼즈박스에 주목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작품에 활용했다. 한편 롤링 스톤즈의 브라이언 존스가 66년 넘버원
송 (검게 칠하라: Paint it black)에서 사용한 인도악기 시타르는 비틀즈 (러버
소울)의 수록곡 (노르웨이의 숲)으로부터 착상한 것이었다.
 롤링 스톤즈는 인기 면에서 비틀즈에 뒤져 언제나 2위에 만족해야 했지만
실력에 있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의 밴드로 군림, 끊임없이 비틀즈를
위협했다.
 영국에서 66년 4월(미국에서는 66년 6월)에 발표된 (여파: Aftermath)가 바로
그들을 위대한 록그룹으로 부상시켜준 앨범이었다. 또한 음반의 타이틀처럼
팝계에 많은 '여파'를 일으킨 문제작이기도 했다.
 (검게 칠하라)만 봐도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앨범은 비틀즈의 (러버
소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우선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Mick Jagger)와
키스 리처드(Keith Richard) 콤비가 이 앨범을 만들 때의 출발점이 "우리도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처럼 앨범 전체를 우리의 창작곡으로 하자"는 것이었다는
사실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키스와 믹은 성공리에 그 작업을 완수했다.
 두 사람은 이와 함께 (여파)에서 여러가지 시도를 감행한다. 롤링 스톤즈는
여기서 전매 특허인 검둥이음악, 즉 리듬 앤 블루스만이 자신들 음악의 전부가
아님을 선언한다. 그들은 리듬 앤 블루스만 파고들어서는 결코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듯했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여파)는 그들의 판단이 옳았음을 입증했고 최강의
전천후 그룹으로서 영생하려는 그들의 목표에 근접시켜주었다. 롤링 스톤즈는
이 앨범으로 리듬 앤 블루스 그룹으로부터 진정한 로큰롤 밴드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 앨범은 무엇보다 믹과 키스 콤비를 그룹의 간판으로 부각시켰다. 둘이
만들어낸 앨범의 수록곡 (검게 칠하라) (꽉잡힌 그녀: Under my thumb)
(한심스런 여자: Stupid girl) (레이디 제인: Lady Jane) (그것을 잡든가
아니면 놔두어라: Take it or leave it) (아웃 오브 타임: Out of time) 등은
멜로디 구성, 편곡, 진행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한 곡들이었다.
 특히 믹은 이 앨범의 일등공신이었다. 매 곡마다 그 곡에 맞는 보컬을
구사하는 타고난 재능을 과시했다. 발라드한 (레이디 제인)과 업템포인 (꽉잡힌
그녀)에서 보여주는 보컬 톤의 현격한 차이는 놀라운 것이었다. 폴 에반스가 쓴
'롤링 스톤즈 앨범가이드'는 "이 앨범에서 초기 믹의 보컬을 특징지워 주었던
리듬 앤 블루스 스타들에 대한 미숙한 시늉은 새롭고 역설적인 개성 표출에
자리를 내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와 키스 리처드는 작곡자 명부에 브라이언 존스와 빌 와이먼이 끼는 것을
마다했지만 이 앨범이 청취자의 주목을 글 수 있었던 밑거름은 밀려난 두
사람의 악기연주 및 편곡이었다. 특히 브라이언 존스는 그룹의 실질적 리더답게
다양한 악기의 시도로 앨범에 광채를 더했다. (검게 칠하라)의 시타르, (레이디
제인)의 덜시머, (꽉잡힌 그녀)의 마림바 등 악기구사는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Goin' home)가 당시로는 꽤 긴 12분의 대작으로
나타난 것도 음악공간을 보다 넓게 사용하려는 그의 과감한 실험의 결과였다.
이러한 노력이 이 작품을 당시 '혁신적인 방법'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한
밑거름이었다.
 비틀즈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그들과 엄격히 차별성을 띠려는 지극히 롤링
스톤즈적인 색깔이 이 앨범에 나타난다. 그것은 여자를 깔보는 경향이었다.

 내 손에 잡혔지. 전엔 날 거부했던 여자. 내 손에 쥐었지. 전엔 날 깔보던
여자. ...바뀌었지. 그녀는 이제 내 맘대로야. (꽉잡힌 그녀)

 저 한심스런 인간을 봐. 그녀가 머리를 물들이든 어떤 색깔의 옷을 입든
중요친 않아. 그 여잔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족속이야. (한심스런 여자)

 이것이 바로 롤링 스톤즈가 노린 악동 이미지였다. 그들은 나쁜 인상을
의식적으로 강조하여 반체도권적인 인물로 비쳐지도록 하면서 비틀즈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불량, 반항, 거만함, 퇴폐, 그리고 외설과 같은 나쁜 요소들이 모두 그들의
것이었다. 그들은 또한 집요하게 그러한 이미지를 끝까지 밀고 나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악동의 이미지가 바로 롤링 스톤즈를 30년 이상
활동하게 한 에너지였다.

 * 참고로, (검게 칠하라)는 미국판 앨범에 수록되어 있고 영국판에는 그것이
없는 대신 (마더스 리틀 헬퍼: Mather's little helper)가 실려있다.
 (그림 설명): 이 앨범을 만들 때인 65년 그룹의 모습. 왼쪽부터 믹 재거, 빌
와이먼, 찰스 와츠, 브라이언 존스, 키스 리차드.

    체제에 온몸으로 달려든 반항아의 숭고한 의식
    도어즈 (The Doors)

 Break on through(to the other side). Soul kitchen. The crystal ship.
Twentieth century fox. Alabama song(whisky bar). Light my fire. Back door
man. I looked at you. End of the night. Take it as it comes. The end(67년)


 그들의 노래는 문학적이면 간결하나 무섭다. 그들은 곡 형식에 대한 아무런
부담감이 없이 팝에서 시가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짐
모리슨(싱어)과 로비 크리거(기타), 레이 만자렉(오르간), 존 덴스모어(드럼)의
4인조 그룹 도어즈는 당시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휘몰아침 히피즘과 반전,
그리고 록 혁명이라는 사회적 영향과 결탁한 독특한 컬러의 사운드로 록계에
또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그것의 집적된 결과물이 1967년 1월 발표된 바로 그들의 데뷔앨범이었다. 기존
가치의 총제적 전환(기성 문화, 정치, 성질서로부터의 '완전한'자유)을 사랑과
평화라는 모토로 주창한 히피즘의 우산 아래 도어즈가 위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접근방식은 좀 달랐다. 그들은 사랑보다는 증오를, 평화보다는 폭력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왜곡된 현실사회에 대항했다. 도어즈의 음악이 무서웠다
함은 바로 이 점에서 연유한다.
 그들은 현실참여 대신 '현실탈출'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도어즈의 음악이
정치적이었으면서도 그다지 정치적으로 비치지 않았던 것은 이같은 방식
때문이었다.
 우리 사랑은 화장용 장작더미가 되는 거야. 자 어서와 내 불을 밝히라구. 이
밤을 불지르는 거야. (내 불을 밝혀주오: Light me fire)

 현실 탈출을 통해 그들은 일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새 세계'로 향하고자
했다. 짐 모리슨은 당시 "세상에는 그 진상이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잇는데 그 사이에 있는 것이 도어즈"라고 말했다. 도어즈라는 그룹 이름이나
음악 모두가 그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로 나아가는 문이었고 그 문을 열면
새로운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를 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머리곡 (딴 쪽으로
헤치고 나가라: Break on through to the otherside)에서 '딴 쪽'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앨범에서는 가장 문제시된 곡 (종말: The end)은 '알려진 사실'만이
존재하는, 규율과 억압의 기존 사회질서에 역행한다는 의미에서 현실탈출의
극단을 드러내고 있다. 11분에 걸쳐, 아들이 어머니에게 품는 이성애, 즉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는 쇼킹한 문제를 다룬 것이었다.

 아버지, 난 당신을 죽이고 싶어. 어머니 난 당신을 밤새 사랑하고 싶어. 그건
가슴 시리도록 당신을 자유롭게 하지.

 패륜아라는 지탄도 있었지만 "의식의 흐름이 심안에 포착된 재임스 조이스적인
팝"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프로듀서 폴 로스차일드는 이 곡을 녹음하던 때를
회상하면서 '록 레코딩의 가장 완벽한 순간중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그는
"녹음할 당시 짐 모리슨은 마치 샤먼(무당)이 된 듯한 분위기에 휩싸였으며
몰아의 경지로 빠져들어갔다"로 술회했다.
 실제로 이 앨범을 녹음할 때, 분위기를 북돋우기 위해 촛불을 켰고 향을
피웠다고 한다. 따라서 이 음반은 음향기술에 의한 여과가 거의 없는 순수한
의식의 산물 그 자체였다. 그것으로 짐 모리슨은 '청각적이면서 또한 시각적인
하나의 강력한 심리 드라마'를 연출해내는 데 성공했다.(음악이 마음 속에
하나의 의식의 수표면 위로 떠오르는, 더 나아가 실제 보이는 것만 같은 환상적
경지를 상상해 보시라.-편집자)
 짐 모리슨 의식 거행은 때로 오만하고 광기가 넘쳐흘렀으며 독을 토해내듯
거침 없었다. 그의 보컬은 차라리 한 마리 짐승에 가까웠다. (딴쪽으로 헤치고
나가라) (내 불을 밝혀주오) (그것이 올 때 잡아라: Take it as it comes) 등의
앨범 대표곡들이 그 전형인데, 거기에 나타나는 짐 모리슨의 야수적 외침은
바로 기존 사회에 대한 통렬한 절규이다.
 하지만 곡을 구성하는 데 있어 자칫 한 가지 틀에 곡조를 가두지 않을 만큼
도어즈는 자유로움으로 충만했다. (수정의 배: The crystal ship)는 웬만한
발라드 뺨칠 만큼 부드러운 선율을 획득하고 있어 (난 너를 봤어: I looked at
you)는 마치 미끄럼을 타는 듯 곡 진행이 신나고 순조롭다.
 이와 함께 블루스맨 윌리 딕슨의 작품이며 하울링 울프의 것으로 유명한 (백
도어 맨: Back door man)으로 도어즈는 자신들의 음악적 뿌리가 흑인 블루스에
있음을 밝힌다. (알라바마 노래: Alabama song)는 서사극을 확립시킨
마르크시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작곡가 쿠르트 바일의 오페라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 베를린 지하운동이 제재가 된 곡으로, 도어즈는 동명의 노래에
그들의 대담성과 이데올로기적 색깔을 깔았다.
 도어즈, 특히 짐 모리슨이 당시 마약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앨범
전체적으로는 마약음악, 이른바 애시드 록(acid rock)의 느낌이 강하다. 레이
만자렉의 반복적이고 잘 훈련된 오르간 연주는 한층 사이키델릭한 환상을
고조시킨다.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배 불을 밝혀주오)는 당당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앨범도 밀리언 셀링을 기록했다. 그리하여 히피의 축제로
상징성을 부여받은 기간인 1967년 여름, 이름자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을 수놓은 작품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도어즈와 그들의 최고 걸작인 이 앨범은 젊음의 사회변혁 욕구와 반전이
일궈낸, 사랑의 여름이라는 시대상황의 심장부에 위치한다. 따라서 그같은
시대성을 간과한 채 이 앨범을 파악한다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

    히피 '사랑의 여름'의 음악적 완성... 팝사상 최고의 명반
    비틀즈 (서전트 페퍼즈 론리 하츠 클럽 밴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Getting better. Fixing a hole.
She's leaving home. Being for the benefit of Mr.Kite. Within you without
you. When I'm sixty-four. Lovely Rita. Good morning good morning.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reprise). A day in the life(67년)

 60년대 중반은 사이키델릭(psychedelic) 시대였다. 사이키델릭운동은 '약물'
'동양종교' '사랑' '평화' 등의 추구를 통해 기존가치의 전반을 부정하는
반문화적 움직임이었다.(반문화, 즉 Counter Culture는 문화에 반하는 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반문화'에서 문화란, 지배문화 지배이데올로기
제도권문화 기성문화 기성가치 중산층문화 등을 포괄하는 주류적인 문화를
뜻한다.-편집자)
 이 가운데 특히 약물은, 대중문화의 일부 진영(특히 록계)에서 단순히 환희를
맛보자는 취지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로 안내하는 '의식방해'의 수단으로
신봉되었다. 당시 그들을 사로잡은 마약은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라는 것이었고 가운데 어휘 '애시드'가 그들의 성격을 규정짓는
용어로 선택되어 사이키델릭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히피의 근거지인
샌프란시스코 애시드록(Acid rock) 그룹들은 LSD 환각경험을 통한
의식해방으로서 인류애, 공동체의식, 그리고 사랑을 부르짖었으며 67년 7-8월을
이른바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으로 이끌었다.(일반용어로 '환각적'이란
의미를 갖는 사이키델릭은 문학, 음악, 미술 등 분야에선 '사이키델릭의'로
번역한다.-편집자)
 사이키델릭, 애시드, 그리고 '사랑의 여름'으로 채색된 그 시절을 관통한
대표적 작품은 비틀즈의 최고걸작 (서전트 페퍼즈 론리 하츠 클럽 밴드)였다.
67년 6월에 발표된 이 앨범은 최고 그룹의 작품답게 순식간에 팝계를 석권했고
'사랑의 여름' 찬가가 되어, 부패한 사회로부터 탈출키 위해 몸부림치던 젊은
세대의 열띤 지지를 받았다.

 수요일. 날이 샌 새벽 5시 조용히 침실문을 닫고... 밖을 나선 그녀는
자유롭게 되었지. 그녀가 집을 떠나는 거야. ...놓인 편지를 집어든 엄마는
낙심하여 아빠를 보며 울었지. 우리 애가 사라졌다며. 왜 이런 경솔한 짓을
했을까. 어째 그 애가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는가. 홀로 외로이 살겠다더니
그녀는 집을 떠난 거야. 오랜 세월이여 안녕... (그녀가 집을 떠나네: She's
leaving home)

 비틀즈는 이 곡으로 기존 사회로부터 빠져나오려는 젊은 세대의 탈출심리를
대변했다. 그것과 함께 사이키델릭 시대의 특성인 동양종교에 대한 새로운
해석, 특히 인도불교의 선사상은 지배종교인 기독교이데올로기의 대안으로
각광받았다. 조지 해리슨이 작곡한 (너 안에 너 밖에: Within you, without
you)가 그것을 담아냈다. 실제로 조지는 이 무렵 인도사상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비틀즈는 무엇보다 (서전트 페퍼...)의 분위기를 애시드로 채색해
놓았다. 비틀즈라는 부담감과 짜여지고 한정된 삶은 그들로 하여금 환각작용에
의한 출구를 열망케 했다. 그들은 이 앨범을 만들면서 진짜로 LSD를 복용했고
폴 매카트니는 공개적으로 그 점을 시인했다.
 앨범의 주요곡들이 대부분 애시드와 관련을 맺고 있다. 환각적 분위기가
압권인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먼즈: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의 앞자를 때면 공교롭게도 LSD였다. 그러나 이 곡을 쓴 존 레논은
당시 4살이었던 아들 줄리안이 집에 가져온, 또래집단의 그림을 소재로
삼았다며 억측을 부인했다.
 (친구로부터 조그만 도움을 받아: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에서
'친구'도 다름아닌 환각제 LSD가 아니냐는 오해가 뒤따랐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즉각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사이키델릭의 시대적
특성으로 인해 그 관련성을 믿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삶에서의 하루: A day in the life)는 보다 직접적이었다. 존 레논이
대부분을 쓴 이 곡은 직설을 피한, 다소 과장된 어휘배열로 모호함을
자아내면서 극도의 환상적인 세계를 연출했다.

 그는 차 안에서 환각에 빠져버렸지. 그는 불빛이 바뀌었다는 걸 알지 못했어.
많은 사람이 서서 응시했지. 그들은 그의 얼굴을 전에 본 적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가 상원의원 출신인지를 알아채지 못했어. ...난 너에게 환각을 일으키게
하고 싶어.

 '난 너에게 환각을 일으키게 하고 싶어'(I'd love to turn you on) 부분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환각 경험이 암시였다. 이 곡은 BBC방송국으로부터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 곡은 오케스트레이션의 웅장함과 후반부의
복잡한 사이렌소리, 차경적 등의 효과음으로 이전의 대중가요에서 접할 수
없었던 오묘함이 가득했다. 그것은 혁신이었다. 존 레논이 스스로도 완벽한
작품이라 말한 이 곡은 흔히 비틀즈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카이트씨를 위해: Being for the benefit of Mr.Kite)와 (굿모닝 굿모닝:
Good morning good morning)을 포함, 앨범의 주요 레퍼토리가 존 레논의 영감에
따른 곡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했고 또한 그만큼 그 곡들의 높은 약물암시성
때문에 많은 비난이 그에게 쇄도하기도 했다. 존은 (서전트 페퍼...)로
66년도작 (리볼버)에서부터 보여준 반제도적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
 하지만 앨범의 조타수는 폴 매카트니였다. 비치 보이스의 (펫 사운즈)에 일대
충격을 받은 그는, 중추개념(central concept)으로 수록곡을 이어가는 '컨셉트
앨범'을 구상했고 또한 혁신적인 느낌의 사운드를 창출하고자 했다. 폴의
야심은 "모든 앨범을 뛰어넘는 진정한 걸작음반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예순네 살이 될 때: When I'm sixty four) (사랑스런 리타: Lovely Rita)
(픽싱 어 홀: Fixing a hole) (그녀가 집을 떠나네) 등을 써서 앨범의 예술성을
높이는 데 기둥 역할을 했다. 심지어 이 앨범이 비틀즈의 이름을 내걸고는
있지만 실은 폴의 첫 솔로작품이라고 규정한 비평가도 있었다.
 앨범이 발표된 후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인기차트 정상 정복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만 6백만장 이상이 팔려나갔다. '타임'지는 "유럽과 미국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혁명화시키는 데 기여한 온화한 무정부주의를 놓치지 않으면서
그들은 좀더 높은 예술적 지평으로 올라갔다"고 평했다. '팝의 예술성'이야말로
(서전트 페퍼...)로 비틀즈가 얻은 최고의 수확이었다. 인기뿐 아니라 음악의
완성도 획득에 있어서도 그들은 이제 무적이 되었다.
 작곡가 노엘 로뎀은 (그녀가 집을 떠나네)를 가리켜 "슈베르트가 쓴 작품에
필적하는 곡"이라고 칭송했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평가는 그 이상으로
(서전트 페퍼...) 수록곡 전체를 슈만의 작품과 견줄 정도였다. 앨범의 높은
예술성은 곧 '로큰롤 음악도 교양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순수음악인들도
비틀즈를 들었으며 이 앨범을 음악의 진보의 측면에서 하나의 역사적
출발점으로 기록하는 아량을 베풀었다. 비틀즈에 의해 록과 대중음악은 클래식
진영으로부터의 유서깊은 멸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호평이 전부인 것은 아니었다. '뉴욕 타임즈'는 그해 67년 '현실과
동떨어진 소재로 나열된 그저 그런 작품'으로 평가절하했고 적지않은 평자들이
"시의적절함 때문에 팝음악의 기념비적 작품이 될지는 몰라도 그들의 가장
훌륭한 창작품은 아니다"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루 리드는
심지어 "들을 때마다 역겨움을 주는 앨범"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93년 12월 호주의 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언'의 데이비드 브리얼리 기자의
악의에 찬 논평은 흥미롭다. 그는 (서전트 페퍼...)에 대해 "전체적 접근이
결여된 마구잡이식 노래모음에 불과하며 그 점과 관련해서도 변변치 못한
수준"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면서도 그 대부분의 책임은 폴에게 돌렸다.
"이렇게 작품이 형편없게 된 것은 앨범에 허용된 폴의 엄청난 자유 때문이며
그에 따라 폴은 엄청난 쓰레기를 생산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많은 팝관계자들은 이 앨범을 음반기술 측면에서도 획기적 작품이라고
평하는 등 극찬을 이어간다. 팝송의 일반틀을 과감히 부수어 교차리듬(cross
rhythms)을 믹스했고 바하부터 스톡하우젠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작곡가들이 쓴
클래식 연주악기를 활용,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은 웅장함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프로듀서 조지 마틴과 함께 비틀즈는 '우주 시대'(Cosmic Age)의
무수한 전자음향 효과를 살려냈고 테잎을 역회전하거나 속도를 다양하게
조절하여 믹싱하는 갖가지 신기술을 총동원했다.
 앨범커버 자체도 전설이 되었다. 오려낸 그림들과 마릴린 몬로, 칼 마르크스,
아인시타인, 아라비아 로렌스, 에드가 알런 포우... 그리고 비틀즈 자신들의
얼굴을 모아놓은 표지는 파격적이었고, 비틀즈 철자를 마리화나 수풀에
새겨넣어 히피시대 사랑의 상장인 '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를
내비친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 앨범의 가치는 바로 자켓에서부터 시작되는 '시대의 포착'에 있었다.
재치있는 콜라쥬나 컨셉트(기획 의도) 모두가 세대간의 긴장과 '단층화된
60년대의 고독감'에 기초한 것이었다. 부조리에 대한 그들의 놀라운 민감성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시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날카롭다.
 60년대가 여기에 있고 고독, 탈출, 동양종교 그리고 마리화나, LSD가 지배한
사이키델릭 시대정서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랑과 평화의 도드라진
주창은 발견되지 않는다. 제퍼슨 에어플레인이나 그레이트풀 데드에 나타나는
사회성과 정치성이 빠져있는 것이다. 비틀즈는 그 부분까지 짚는 것은
'소화불량'을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예술성에의 집착 때문에
비틀즈는 이처럼 잃은 것도 없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이 앨범의 거의 유일한,
그리고 커다란 약점이다.

    히피 '사랑의 여름'의 정치적 표현
    제퍼슨 에어플레인 (초현실의 밑바침: Surrealistic pillow)

 She has funny cars. Somebody to love. My best friend. Today. Comin' back
to me. 3/5 of a mile in 10 seconds. D.C.B.A.-25. How do you feel.
Embryonic journey. White rabbit. Plastic fantastic lover(67년)

 당신은 사랑할 사람을 원치 않나요. 사랑할 사람이 필요치 않나요. 누군가
사랑하고 싶지 않으세요. 사랑할 사람을 찾는 게 좋을 거에요.

 제퍼슨 에어플래인(Jefferson Airplane)이 67년 히트시킨 이 (사랑할 사람:
Somebody to love)이 의도하고 있는 바는 통속적인 연애가 아니라 '사랑이
충만한 사회' 그것이었다. 노랫말이 어떤 의도에서 쓰여졌던 무관하게, 이
노래는 그 무렵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 애시베리 구역에서 가장 열렬히
애청되고 불려진 히피(Hippie)의 찬가였다.
 히피의 거점이었던 헤이트 애시베리 지역의 젊은이들은 제도권과 기성세대를
향해 의도적으로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부르짖었다. 그들은 부의 축적이
최고목표였던 기존사회의 가치는 철저히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부와 개인주의가 아닌 공동체, 경쟁이 아닌 화합, 전쟁이 아닌 평화, 그리고
사랑이 기존을 대체하는 새로운 사회의 가치들이었다. 제퍼슨 에어플레인은 퀵
실버 메신저 서비스, 그레이트풀 데드와 함께 히피의 가치를 가장 적극적으로
대변한 대표적인 샌프란시스코 록밴드였다.
 이 앨범은 그야말로 히피가 대표하는 새로운 세대의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농축하고 있는 작품이다. 차트에서 이례적 성공을 거둔 두 기념비적인 싱글
(사랑할 사람)(차트 5위)과 (화이트 래빗: White rabbit, 차트 9위)을 수록하고
있으며 67년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을 완벽하게 수놓았다.
 65년 결성된 이후 그들은 레코드 회사의 잇단 스카웃 제의를 거절하고
무료공연에 충실했다. 반제도권이라는 이념 때문이었다. (초현실의 밑받침:
Surrealistic pillow)은 그러한 제도권진입 사절의 그룹이념을 깨고
RCA레코드사와 '66년 계약 후 두번째 선보인 앨범으로, 제퍼슨 에어플레인이
공연을 통해 갈고닦은 실력이 고스란히 발휘되었다. 머릿곡 (그녀는 멋진 차를
가지고 있지: She has funny car)와 (10초 5분의 3마일을: 3/5 of a mile in 10
seconds) 등은 이미 공연에서 자주 연주한 레퍼토리였기 때문에 단번에
녹음되었다. 녹음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실황을 전달하려는 것
또한 자연적 상태를 동경한 히피들의 전형적 마음가짐이었다.
 샌프란시스코 록을 가리켜 흔히 사이키델릭 록 혹은 애시드 록으로 부른다. 그
지역 록그룹들이 모두 환각제, 특히 LSD와 깊숙이 관련을 맺은 데 기인한다.
그들이 마약을 가까이 한 것은, 그냥 좋아서가 아니라 '의식을 해방시켜주는
수단'으로도 여겼기 때문이었다. 히피와 샌프란시스코 록밴드들은 환각제를
복용하여 깨달음을 얻게 되면 '새로운 세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굳게
믿었다.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화이트 래빗)은, 바로 LSD의 예찬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란 동화의 세계에 비유되어 펼쳐진 노래였다. (네 머리를 채우라: Feed
your head)의 클라이막스 부분의 노랫말은 대놓고 환각상태의 체험으로 팬들을
안내하고 있다. 록평론가들은 이 노래를 '최우수 LSD록' 작품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앨범 수록곡 중 (디 시 비 에이 25: D.C.B.A.-25)나 연주곡 (태아의 여행:
Embryonic journey) 등도 의문의 여지없는 LSD관련 노래들이다. (디 시 비 에이
25)의 영자는 코드를 가리키며 뒤의 25라는 숫자는 'LSD 25번'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 밴드가 몸소 실천한 공동체정신은 '노래 부르기'에서 나타난다. 여걸
그레이스 슬릭, 마티 볼란, 폴 켄트너가 한 노래에서 함께 리드 솔로를 맡아
마치 합창을 하듯 듣기좋은 보컬 하모니를 구사하고 있다. 그들은 명성을
배격하여, 밴드 멤버들 가운데 누구도 튀지 않도록 '공동 노력'을
중시했다(하지만 그룹의 히트작인 (사랑할 사람)과 (화이트 래빗)은 그레이스
슬릭의 단독 보컬이었다).
 함께 기식하며 우정을 과시했던 애시드록 동지인 그레이트풀 데드의 리더 제리
가르시아(Jerry Garcia)가 음반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공동체 구현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 제리 가르시아는 이 앨범을 제작할 당시 (조형된
환상의 연인: Plastic fantastic lover)과 (내게로 돌아와요: Comin' back to
me)에서 통기타를 쳤을 뿐 아니라 대부분 곡의 음악 고문역할을 맡는 사실상의
프로듀서였다.
 60년대 말, 이 앨범만큼 샌프란시스코 록의 미학과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함께 소화시킨 작품은 없다. 1967년 록의 상황을 논할 때 그것이야말로 이
앨범의 진정한 의의라고 할 것이다.

    반 사회적 히피시대에 흐른 낭만과 추억
    마마스 앤 파파스 (네가 너의 눈과 귀를 믿을 수 있다면: If you can
believe your eyes and ears)

 Monday, monday. Straight shooter. Got a feelin'. I call your name. Do you
wanna dance. Go where you wanna go. California dreamin'. Spanish Harlem.
Somebody groovy. Hey girl. You baby. In crowd(66년)

 60년대 중반부터 전개된 '히피와 사이키델릭 시대'에 록을 꺼린 사람들은
사회성(정치성)보다는 낭만을 요구했다. 그들에겐 사회성이 강하고 과격한
연주를 하는 록밴드보다 부담 없이 귀에 솔솔 들어오는 팝그룹이면 족했다.
 마마스 앤 파파스(Mamas and Papas)는 히피시대의 그러한 음악적 허점을
정확히 파고들어 대성공한 역사적 그룹이었다. 그들은 히피 정서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은 가운데 사이키델릭 사운드 아닌 보편적 포크팝으로 그 시절
팝계에 낭만적 발자취를 남겨놓았다.
 지금 40대 이상의 중장년층 치고 66년의 빅히트 송 (캘리포니아의 꿈:
California dreaming)이 제공한 추억을 새기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러했지만 미국 본토 사람들이 이 곡에 품는 애정은 남달랐다.
거기엔 반사회적(?)인 히피 시절의 한쪽에 둥지를 튼 서정성이 있었다. 또한
영국 그룹이 활개치고 있던 시절의 미국 그룹의 노래라는 점이 더욱 미국인에게
자존심을 높여주었다. 록 기고가 릴리안 록슨은 이렇게 술회한다.
 "우린 그때 모두 영국음악에 깊숙이 빠져있었다. 이 노래를 듣게 되었을 때 난
현기증이 났다. 그 곡은 '명랑한 충격'으로 우리를 다시 홈 베이스로
되돌려주었다."
 대중적이었지만 히피정신의 숨결도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룹 이름과
성원부터가 히피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인 공동체정신을 실천하고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버린 멤버 캐스 앨리엇은 "마마스 앤 파파스란 이름은
'마마들은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파파들은 밖에 나가 고양이 먹을 것을 사오는'
식의 가정적 협동정신에 따라 지었다. 실제로 우리는 어느 정도 공동체 타입의
생활을 영위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룹의 음악조종자인 존 필립스(John Phillips)는 히피시대의 송가가 된 스콧
맥켄지의 히트송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SanFrancisco - Be sure
to wear flowers in your hair)의 작곡자였다. 존 필립스와 그의 그룹이
'플라워 파워'(Flower Power)에 소속되어 있었음을 말해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또 존과 스콧 두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의 히피 거점인 헤이트 애시베리
지역에서 열렸던 몬터리 팝 페스티벌을 주관하기도 했다. 마마스 앤 파파스도
이 축제에 참가하여 이미 획득한 명성을 더욱 굳게 다졌다.(플라워 무브먼트,
플라워 파워에서의 플라워는 단순한 꽃의 의미가 아니라 자연, 사랑, 평화를
상징하는 아름답고 강한 꽃의 의미로 쓰였다.-편집자)
 이 음반에는 기념비적 싱글인 (캘리포니아의 꿈)(차트4위)과 (월요일, 월요일:
Monday, monday, 차트1위)이 수록되어 있다. 이밖에 비틀즈곡을 완전 새롭게
해석한 (네 이름을 부른다: I call your name)가 돋보이며, (네가 가고싶은
데로 가라: Go where you wanna go) (춤추고 싶으세요: Do you wanna dance)
(헤이 걸: Hey girl) (유 베이비: You baby) 등도 특유의 보컬하모니를 살린
듣기 좋은 포크 소품들이다. (월요일...)('월요일이 너무 좋은데 월요일은
출근날이다') (네가 가고싶은...) 역시 히피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다.
 그룹의 전성기는 짧았다. 66--67년 사이에 차트 5위 안의 싱글을 여섯 장이나
냈지만 존 필립스의 약물중독, 그와 미셸 질리엄과의 이혼 등 내부의 악재가
겹쳐 68년 해산하고 말았다.
 존 필립스는 회상하기를 "우린 그 2년간 너무나 즐거웠다. 정말 남아있는
재미가 더이상 없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사이키델릭과 히피 시대의 낭만에
모든 것을 바쳤다. 이 앨범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그림 설명): 전성기의 마마스 앤 파파스.

    히피를 향한 '비트 수절파'의 조롱... 전위적인 록
    벨벳 언더그라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 앤 니코: Velvet Underground &
Nico)

 Sunday morning. I'm waiting for the man. Femme fatale. Venus in furs. Run
run run. All tomorrow's parties. Heroin. There she goes again. I'll be
your mirror. The black angel's death song. European son(67년)

 히피 이전의 비트(Beat)라는 것이 있었다. 50년대 중반 뉴욕 일대에서 싹튼 이
비트족은 미국 사회의 일반적 가치를 무시하고 샌프란시스코의 노스 비치
등지에서 하릴없이 방랑을 일삼던 '반사회적'인 부류였다.
 "그들은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위대한 나라 미국에 대해, 수백달러짜리 양복과
양장을 구입하기 위해 직장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컬러 TV나 교외의
별장 또는 파리여행 등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작가 버튼 울프는 비트를 이렇게 설명하고 그들을 부르즈와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사람들로 분석했다. 비트들은 미국 사회의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삶의
목표를 비웃으면서 공원을 거닐거나 해변의 태양 아래 누워 오후를 보내거나
멕시코에 자전거 여행을 다니곤 했다. 밥 딜런도 한때 이러한 비트
제네레이션의 생활방식에 매혹됐던 사람이었다. 그의 히트곡 (구르는 돌처럼)은
바로 비트 형태를 포크록 리듬에 이입시킨 곡이었다.
 비트족은 반문화를 주창했다는 점에서 히피의 원조가 되는 셈이었다. 50년대
말 정부의 탄압에 의해 꼬리를 내린 비트는 60년대 중반에 등장한 사이키델릭
운동에 발맞춰 부활되었다. 비트는 히피의 태동과 함께 상당수가 그 속으로
편입되었지만 히피가 갖는 사회참여적 성격을 사양하고 개인적인 비트의
순수성을 고집한 수절파도 있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는 히피의 극성기에 비트족의 본질을
그대로 지키면서 그것을 록으로 표현한 그룹이었다. 전위예술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지휘 아래 결성된 이 그룹은, 비트 시인 루 리드(Lou Reed)와
아방가르드 클래식 앙상블에서 활동하고 있던 존 케일(John Cale)을 주축으로
한 4인조 라인업으로 외롭게 비트의 정신을 표출했다.
 이 앨범은 히피와 플라워 파워(Flower Power)의 순진성을 향해 던지는, 비트의
비아냥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현실과 멀찍이 떨어져 개인적인
관심사에 묻혀있는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그만큼 개인집착적이고 파괴적이며
'전위적'이었다. 히피와 샌프란시스코 록밴드들이 '외적 사회혁명'을
추구했다면 비트와 뉴욕의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내적 개인혁명'을 추구했다.
 록역사는 이 작품을 비트의 아방가드르(전위) 정신과 록 음악이 결합된
'혁명적인' 음반으로 정의한다. 비틀즈의 (서전트 페퍼...)와 또다른 면에서
록음악의 새장을 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운드로 볼 때는 곡마다 변화가 극심해 빠른 것과 느린 템포의 곡이 뒤섞여
있는 가운데 전체적으로 생경하고 음침하다. (서전트 페퍼...)처럼 세련미가
묻어나오지는 않지만 '처음 들어보는 듯한' 극단의 신선미가 있다. 테크니컬한
정확성보다는 즉흥성이 강조되어 있고 (모피의 비너스: Vinus in furs)와 (검은
천사의 사가: The Black Angel's death song) 등에서 보이는 윙윙거리는
일렉트로닉 소음이 전위적임을 느끼게 한다.
 루 리드는 앨범의 사운드를 '부패한 30년대 베를린 풍경'으로 빗대면서 "그
거리의 한 장면을 그려보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된 곡은, 암시 수준을 넘어 과감한 노출로 비상한 관심을 모은 마약
테마의 (난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어: I'm waiting for the man) (헤로인:
Heroin) 두 곡이었다.

 헤로인은 나의 아내이며 나의 삶이야. 헤로인이 내 피에 실려있을 때, 그 피가
내 머리로 솟구칠 때, 난 죽고싶을 만큼 기분 좋아지는 것을 신께 감사드리지.
(헤로인)

 노골적인 약물의 찬양은 많은 청취자들에게 혐오감을 주었으며 플라워 파워에
이끌린 웨스트 코스트의 언론으로부터 '퇴폐적 전형'으로 매도당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이 외에도 대중가요사상 최초로 가학-피학성
음란증(세더매조키즘)을 다뤄 또한번 록계를 놀라게 했다.

 주권자여, 그를 용서하지 말아요. 여인이여, 그를 대려 그의 정신을 치료해
줘요... 거리의 불빛에 환상을 갖는 죄악을 무너뜨려요. 그녀가 입게 될 의상을
내버려요. (모피의 비너스)

 전위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듣기에 어렵지는 않다. (일요일 아침: Sunday
morning) (숙명의 여인: Femme fatale) 등은 통속적인 팝송의 맛이 서려있고,
코러스가 매력적인 (그녀가 다시 가네: There she goes again)에도 즐거운
흥취가 살아있다. 독일 출신의 금발미인으로 당시 배우였던 니코(Nico)는
(숙명의 여인) (모든 내일의 파티: All tomorrow's party) (난 너의 거울일
거야: I'll be your mirror) 등 세 곡에서 부드럽고 진지함에 넘치는 보컬을
들려줘 앨범의 대중적 친화력을 높여주는데 공헌했다. 사생활이 신비의 베일
속에 가려있던 그녀는 앤디 워홀의 적극적 추천에 따라 앨범 작업에 참여했고
당시 루 리드의 여자친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67년 (서전트 페퍼...)와 같은 해 발표되어 가장 '영향력 있는' 음반으로 함께
꼽히면서도 비틀즈의 음반과는 다르게 대중의 인정을 받는 데는 실패했다.
지금까지 겨우 40만장이 팔려나갔을 뿐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그깟
판매실적과는 전혀 무관하게 그 진보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93년 그들이 재결합했을 때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펑크 록, 아트 록, 컬리지 록, 그런지 록, 뉴웨이브 록, 미니말리스트
록(minimalist rock) 그것들 모두가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함께 시작되었다."
 바로 이와 같은 언급이 이 앨범의 가장 확실한 '가치확인'이 될 것이다.
 (사진 설명): 존 케일이 없던 초기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모습으로, 왼쪽에서
두번째가 루 리드.

    디트로이트 폭동 속에 울려퍼진 '레이디 소울'
    아레사 프랭클린 (10년간의 골든 레코드: Ten years of gold)

 I never loved a man(the way I love you). Respect. Baby, I love you.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Think. See saw. Spanish Harlem. Rock
steady. Day dreaming. Angel. Until you come back to me(That's what I'm
gonna do). Something he can feel(78년)

 1967년 여름은 '사랑의 여름'으로 결부되지만 디트로이트 흑인폭동으로 얼룩진
'비극의 여름'이기도 했다. 그해 7월 자동차공업도시 디트로이트에서는 분노한
흑인들과 정부군이 대치하는 살벌한 내전상태가 야기되었다.
 이 경천동지의 사태는 급진적 흑인운동을 폭발시킨 계기를 제공했고
흑인음악의 주류를 사회의식으로 무장된 '소울'로 변화시켜 놓았다. 사회개혁및
반전운동 물결이 거세지면서 록음악이 정치성을 띠었듯 흑인의 리듬 앤
블루스도 강성의 소울로 바뀌게 된 것이었다.
 뉴욕 할렘(64년), 로스앤젤레스 와츠(65년)에 이은 디트로이트의 흑인폭동에
때맞춰 소울은 '블랙 파워'를 상징하는 음악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백인들도
비록 흑인의 것이었지만 강한 자극을 전달하는 소울음악을 애청하기 시작했다.
67년 백인지배의 미국사회는 갑자기 흑인 소울의 광풍이 휘몰아쳤다.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이 바로 '소울의 미국사회 공습'을 가한
선두주자였다. 오티스 레딩,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샘 앤 데이브(Sam
and Dave) 등도 이 시기에 각광받은 소울스타였지만, 대중적 호응에 있어서는
아레사 프랭클린을 따를 수 없었다. 그녀는 '소울의 여왕'(Queen Of Soul)
'레이디 소울'(Lady Soul)이라는 영예로운 칭호의 주인공이었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67년 백인들에게 흑인들에 대한 존경을 요구했다. 그래서
부른 (존경: Respect)은 오티스 레딩이 두해 전 부른 것이었으나 그녀에게
'해석'이 넘어오면서 디트로이트 사태와 맞물려 의미가 배가되었다. 이 곡은
디트로이트의 빈민가가 화염에 불타오르면서 성난 흑인시위대의 찬가로까지
불렸고, 드디어는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등극했다. 이 해 아레사는 이
노래말고도 (널 사랑하는 방식으로 누굴 사랑하진 않았어: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 (당신을 사랑해: Baby I love you) (넌 날 자연스런
여자로 느끼게 해: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등 총 4곡을
싱글차트 톱10에 진입시켰다.
 이로써 그녀는 백인들에게 소울의 대변인으로 이미지를 굳혔으며, 68년 초
디트로이트 시장 제롬 카바나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이 음반은 기념비적인 67년 히트작들을 비롯, 아레사 프랭클린이 76년까지
10년간 어틀랜틱 레코드사에서 발표한 골든 레퍼토리를 모아놓은 앨범이다.
그녀의 전성기를 수놓은 소울의 걸작들을 접할 수 있으며 '소울의
다이너마이트'라는 또 하나의 별명만큼 폭발적인 그녀의 가창력을 확인할 수
있다.
 콜롬비아 레코드사에 소속되어 있다가 실적을 올리지 못한 후에 어틀랜틱사로
이적한 67년부터 그녀는 히트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생각해봐: Think)와, 차트 톱10 내에 진입하지 못했음에도 밀리언 셀러가 된
(시소: Seesaw)는 68년도 발표작이다. 차트4위까지 오른 (생각해 봐)는
아레사가 직접 가사를 쓴 것으로, 특히 노래 중 그녀가 '자유'(freedom)를
목놓아 외치는 순간을 듣는 이로 하여금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정신을 풀어해쳐 자유로와지라... 자유, 자유를 갖자. 자유, 자유, 지금 당장
자유를 달라.

 (스페니시 할렘: Spanish Harlem)은 벤 이 킹(Ben E. King)의 60년 오리지널로
아레사가 리메이크하여 71년 차트2위까지 올랐으며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록 스테디: Rock steady)도 같은 해 발표되어 9위에 올랐으며 (공상: Day
dreaming)은 72년에 차트5위를 차지했다. (록 스테디)와 (공상)은 또한
아레사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로 남의 것만 불러 히트시키는 가수라는
이미지를 불식시켰다.
 (천사: Angel)와 (그가 느낄 수 있는 것: Something he can feel)은 각각 73,
76년의 발표작으로 수록곡 대부분의 프로듀서가 제리 웩슬러(Jerry Wexler)인
것과 달리, 앞의 것은 퀸시 존스(Quincy Jones)와 아레사 프랭클린, 뒷곡은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가 프로듀스했다. 두 곡의 예외가 있긴 하나,
아레사가 60년대 말 소울의 맛과 멋을 정의하는 데 어틀랜틱의 베테랑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의 힘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아레사의 경이적인 가창력은 가스펠에 기초한 생동감으로부터 샘솟는
것이었다. 음의 높낮이, 템포, 호흡 등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도 깊은
가스펠의 필(feel)을 유지하는 능력은 도무지 사람이 하는 것으로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 록 평론가 존 랜도(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매니저가 된 사람)는 후일 '롤링 스톤'지에 "그녀는 다채로운 무드, 템포,
언어, 스타일을 포괄할 수 있음을 입증했으며, 더구나 그것의 최고 수준을
고수하고 있다"고 썼다.
 다른 사람이 이미 부른 곡을 리바이블해 철저히 자기 것으로 만든 데서 그녀의
탈월한 '곡 해석력'이 드러난다. 오티스 레딩의 (존경)과 벤 이 킹의 (스페니시
할렘)이 그 증거이다. 오티스 레딩은 아레사가 (존경)을 부른 것을 듣고 경악한
나머지 "난 내 노래를 잃어버렸어. 저 여자가 내 곡을 빼앗아갔어"라며 허탈해
했다.
 (넌 날 자연스런 여자로 느끼게 해)는 캐롤 킹과 게리 고핀 콤비의 작품으로,
다시 한번 그녀의 경계선 없는 무한한 음폭과 숨죽이는 보컬파워를 확인시켜준
걸작이다. 정말 이 노래는 우리를 자연스러운 청취자로 느끼게 한다.
 아레사는 증명했다. 잘 만들어진 악보보다 잘 부르는 가수가 위대하다는 것을.
즉 노래의 최종적인 해석자는 다름아닌 가수라는 사실을. 그리하여 그녀는
소울, 그리고 팝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 이 앨범이 78년에 발표되었는데 60년대로 분류한 것은 아레사가 60년대
소울의 부흥과 관련해 그 정점에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히피시대에 불쑥 던져진 탐미주의자의 음악
    밴 모리슨 (천체 주간: Astral weeks)

 Astral weeks. Beside you. Sweet thing. Cyprus Avenue. Young lovers do.
Madame George. Slim slow rider(68년)

 1968년 11월, 록 음악이 히피즘과 반전의 물결을 주도하며 세상을 향해 소리
높이 있을 때 그와 달리 지극히 내면적인 성격의 음반 하나가 록계에 툭
던져졌다.
 그것은 주술을 부르듯 신비로웠고 내성적인 분위기로 충만했으며 고뇌의
흔적이 가득했다. 블루스의 처연한 고통과 고대 켈트족의 흥취를 합친 듯
'고통의 향기'로 나타나 한편으로 어두웠고 한편으론 밝은 느낌이었다. 다른 록
밴드들이 이데올로기에 봉사하고 있던 시절 이 음반은 예술의 향취를 흩날리고
있었다.
 록음악 관계자들, 그 가운데서 비평가들은 이 음반을 듣고 깜짝 놀랐다.
록음악의 틀을 이탈하지 않고 이처럼 잘 만들어진 탐미적 예술작품을 일찍이
접해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즉각 이 음반의 가치를 파악했고
지금도 록평론가들 사이에서 이 음반은 '록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앨범' 중
하나로 빠짐없이 지목된다.
 작은 체구에 과묵한 밴 모리슨(Van Morrison)은 록계의 이방인이었다.
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인 그는 60년대 중반 그룹 뎀(Theme)을 조직해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를 연주했다. 블루스에 심취한 그의 포부는 미국에 가서 음악적
욕구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그룹이 해체되고 67년 솔로로 (갈색 눈의 소녀:
Brown eyed girl)를 히트시킨 그는 마침내 소망의 첫 단계를 실현, 미국의
메이저인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천체 주간)은
여기서 나온 그의 첫 앨범이었다.
 임시 연주(반주), 즉 세션은 뉴욕의 '모던 재즈 쿼텟'의 멤버 코니
케이(베이스)를 비롯해 제이 벌라이너(기타), 리차드 데이비스(베이스), 존
페인(호른), 워렌 스미스 주니어(퍼쿠션) 등 베테랑 재즈 연주자들이 맡았다.
재즈맨들이 대거 기용된 것은 록 세션맨들이 시간을 질질 끄는 데 반해 그들은
빨리 자기 임무를 끝내 '비용절감'을 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션은 놀랍게도 이틀만에 끝났다. 재즈맨들은 당시 밴 모리슨이 누구인지도
말랐고 서로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았다. 녹음시에도 모리슨은 차단된
부스(소녹음실)에서 혼자 노래했다. 심지어 재즈맨들은 그의 노랫말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천재 주간)은 그 무렵 연인이자 나중에 비밀 결혼한 미국여성 자넷
플래닛에게 바치는 곡이었다. 그는 (발레리나: Ballerina)와 (젊은 연인들처럼:
The way young lovers do)도 그녀를 위해 만들었다. 하지만 비평가의 귀가 쏠린
노래는 신비의 인물을 탐구하는 듯한 스토리송 (마담 조지: Madame
George)였다. 그것이 누군가의 추측대로 늙은 매춘부에 대한 노래인가에
관계없이 9분25초의 대곡인 이 노래는 이전 팝음악에서 찾을 수 없는
가슴저미는 환상을 제공하고 있다.
 수록곡 대부분은 밴 모리슨이 자넷 플래닛과 떨어져 3개월간 고향 벨파스트에
머물던 시절에 쓰여졌다. (사이프러스 가로수길: Cyprus Avenue)에는 그때의
체험이 투영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정서가 어릴 적 고향에서 축적된 흥분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뚜렷이 인지하고 있었다.
 이틀만에 후다닥, 그것도 가수와 세션맨과의 감정교류 없이 세련된 편곡과
연주의 흥취를 이뤄냈다는 것은 실로 경이적이다. 모리슨은 과정상의 문제점을
들어 자신이 바라던 바가 앨범에 잘 반영되지 않았다고 불평을 토로하기도
했다.
 본인의 욕심과 무관하게 이 앨범은 분명 록음악이 나아갈 예술적 지평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그것은 비틀즈의 (서전트 페퍼...) 앨범과 함께 록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록평론가 레스터 뱅즈는 이 앨범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어둠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속죄의 흔적, 타인의 고통에 대한 궁극적 연민,
그리고 순수한 아름다움과 신비스런 외경을 보호하려는 태도, 그런 것들이 이
앨범을 관통해 흐르고 있다"
 대중들은 이 앨범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해하기를 꺼려했다.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까지 이 명반은 25만장이 채 팔리지 않았다.

    로큰롤의 시작...아이젠하워 시대의 관통
    척 베리 (척 베리, 정상에 서다: Chuck Berry is on top)

  Almost grown. Carol. Maybellene, Sweet little rock & roller. Anythony
boy. Johnny B Goode. Little Queenie. Jo Jo gun. Roll over Beethoven.
Around and around. Hey Pedro. Blues for Hawaiians(59년)

  "흑인 사내가 이같은 컨추리풍의 노래를 쓰다니 믿을 수가 없다."
  체스레코드회사 레너드 체스 사장은, 1955년 척 베리가 제출한 데모 테잎에
들어있는 (아이다 메이: Ida May)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노래는 1939년 컨추리가수 로이 애컵 등이 부른 전통의 컨추리송 (아이다
레드: Ida red)에 영감을 받아 척 베리가 만든 곡이었다. (아이다 메이)는
(메이블린: Maybellene)으로 제목이 바뀌어 그해 발표되었고 전미 싱글차트
5위에 오르는 히트를 기록했다. 이 곡으로 시작된 그의 히트 행진은 1960년까지
무섭게 계속되었다.
  그는 흑인이었지만 백인 컨추리 냄새가 나는 노래를 잘 썼다. 그것이 바로
로큰롤(rock and roll)이었다. 로큰롤은 태동 당시 흑인음악의 범주에서 사용된
말이기는 했으나 성분상으로는 흑인음악인 '리듬 앤 블루스'와 백인음악인
'컨추리 앤 웨스턴'이 혼합된 것이었다.
  로큰롤은 이처럼 흑백의 음악을 포괄해 인종의 색깔을 제거했기 때문에
대중적 성격을 갖출 수 있었고, 오늘날 영, 미권 대중음악을 이끌어가는 주도적
장르로서 위치를 굳혔다.
  척 베리는 그 로큰롤을 창조한 초기 거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록의
전신인 이 로큰롤의 연주 및 곡쓰기의 전형을 확립, 후대 록의 진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가 없었다면 60년대의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와 같은 록그룹은
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척 베리, 정상에 서다)는 그가 현대 록음악에 남긴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는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그에게 세 번째가 되는 이 작품은 체스레코드사를
통해 1959년 출반되었다.
  여기에는 기념비적인 싱글 (메이블린)을 비롯, 그의 골든 레퍼토리인 (쟈니
비 굿: Jonny B, Goode)과 (롤 오버 베토벤: Roll over Beethoven)이 수록되어
있다. 비틀즈의 리메이크로 유명해진 (롤 오버 베토벤)과 (쟈니 비 굿)의
도입부에는 훗날 록 기타연주자들의 모델이 된 연주가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척 베리는 기타 연주에 있어서 일반적인 4박의 개념과 주법을 깨는
폴리 리듬을 도입했으며 슬라이드와 복음 주법을 제시해 록 기타주법의 길을
열었다.
  (쟈니 굿 비)은 이와 함께, 50년대 중반 고리타분한 아이젠하워시대에 살던
10대 청소년들의 꿈을 요약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쟈니 비 굿이라는 시골소년이 살고 있었죠. 그는 읽거나 쓰는 것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기타는 아주 잘 쳤지요... 쟈니의 어머니는 말했죠.
언젠가는 너도 청년이 되어 밴드를 이끌 거야. 그럼 너를 보러 먼곳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너의 음악을 듣게 될 거야.

  그는 당시 청소년의 심정을 기막힐 정도로 잘 짚어내 노래에 싣는 천재적
작사능력을 보였다. 이 음반에 수록된 (리틀 퀴니: Little Queenie)를 통해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1926년생인 그가 30세를 전후로 '적지 않은'
나이에 이같은 10대 지향의 노래를 썼다는 사실은 또한번 우리를 놀라게 한다.
  (성인이라오: Almost grown), (캐롤: Carol)은 당시 히트되지 않았지만,
경탄을 자아낼 만큼의 세련미와 정교함을 추구하는 그의 비범한 작품 제조능력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서 록의 클래식으로 승격되었다. 척 베리의 또다른 음악적
특색으로 지적되는 '업템포 부기'(템포가 빨리 전개되는 춤형태)는, 우리
귀에도 익은 멜로디 (엔서니보이: Anthony boy)란 노래에서 맛볼 수 있다.
  앨범의 우수성을 일궈낸 일등공신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노래하고 기타친 척
베리이지만 세션맨의 힘도 컸다. 피아노의 쟈니 존슨, 베이스의 윌리
딕슨(유명한 블루스맨), 드럼의 프레드 빌로우, 재스퍼 토마스 등의 연주는 척
베리의 기타와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다. 그룹 롤링 스톤즈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는 그를 면밀히 연구한 결과, "그의 박력있는 기타연주 스타일이 이
앨범에 등장하고 있는 자니 존슨(Johnny Johnson)의 피아노 연주에 영향을
받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 앨범은 분명 그의 전성기를 수놓은 독집 음반이지만 (록큰롤 음악: Rock
and roll music) (달콤한 16세: Sweet little sixteen) (날 잡지 못할 거야:
You can't catch me) 등 그의 대표작이 빠져 있어 그를 완전히 파악하기엔
부족한 점이 없지 않다. 이 때문에 많은 평론가들은 그의 히트곡을 모두 수록한
2장짜리 콜렉션 음반 (척 베리의 황금10년: Chuck Berry's golden decade)을
그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앨범으로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

    목소리로 흑백을 결합한 로큰롤 슈퍼스타의 진면목
    엘비스 프레슬리 (골든 레코즈: Golden records)

  Heartbreak hotel.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 Don't be cruel.
Hound dog. Anyway you want me. Love me tender. Love me. Too much. All
shook up. That's when your heartaches begin. Loving you. Teddy bear.
Jailhouse rock. Treat me nice(58년)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를 빼놓고 로큰롤을 논할 수는 없다.
  평자들은 흔히 로큰롤의 효시를 53년 빌 헤일리의 (광인: Crazy man
crazy)으로 보거나, 역시 빌 헤일리의 노래인 55년 (하루종일 록을: Rock
around the clock)을 최초의 로큰롤 히트곡(또는 효시곡)으로 정의한다. 록이
그렇게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정작 차트나 방송에서 그 시대를 풍미하기 시작한
것은 RCA빅터레코드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가 발표되면서부터였다. 미국
전역에 록 열풍을 일으킨 노래는 8주간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점령한 (상심의
호텔: Heartbreak hotel)이었다. 이 노래로써 그는 로큰롤의 제왕이 되었다.
  (상심의 호텔)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적인 보컬 능력, 이를테면 흑인
'리듬 앤 블루스'와 백인 '컨추리 앤 웨스턴'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장 잘 드러낸 대표곡이었다. 엘비스는 '목소리로' 흑백음악의 혼합이 가져온
로큰롤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신문의 한 자살 기사에 착상하여 매 액스턴과 토미 더든이 작사, 작곡한
(상심의 호텔)은, '난 너무 외로워 죽을 지경'이라는 가사를 실음으로써
아이젠하워 시대의 10대들이 겪고있는 따분함과 소외를 폭발시키는 뇌관 역할을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실로 아이젠하워 시대에 '10대의 반란'을 야기한
주동자였다.
  이후에 그의 차트 활동은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롭고 눈부시게 전개되었다.
(너를 원해, 너를 요구해, 너를 사랑해: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는 차트 3위(56년5월), (잔인해서는 안돼: Don't be cruel)는
1위(56년8월), (하운드 독: Hound dog)은 2위(56년8월), (러브 미 텐더: Love
me tender)는 1위(56년10월), (난 흔들려요: All shook up)는 1위(57년3월),
(테디 베어: Teddy bear)는 1위(57년6월), (교도소의 록: Jailhouse rock)
1위(57년10월) 등으로 히트 퍼레이드는 계속되었다. 이 앨범은 RCA빅터사
초창기에 발표한 이같은 로큰롤 클래식을 모아놓은 작품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58년 3월 군에 입대하여 2년간 복무한 후 중대한 변화를
겪게 된다. 기성세대에게도 어필하는 노래를 불러 10대들에게만이 아닌
'국민가수'로서의 위치를 구축한 것이 그것인데, 그 때문에 로큰롤의 냄새는
급격히 퇴색하고 말았다. 그래서 60년 7월의 (지금 아니면 안돼: It's now or
never)와 같은 노래로 젊은 세대보다는 기성세대의 기호에 맞춘 스탠다드
경향으로 빗나간(?) 점이 돌출한다. 매니저인 톰 파커 대령의 지시에 의한
이러한 이미지 변화는 잇단 영화 및 뮤지컬 출연으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은 엘비스의 군입대를 계기로 한 변화 이전의 '가장
엘비스적이고 가장 로큰롤적인 노래'를 담았다는 데 작품적 가치를 보유한다.
  (잔인해서는 안돼)와 (하운드 독)은 같은 싱글의 앞뒤 곡으로 모두
인기차트를 석권해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그리고 가장 빅히트한 싱글로
기록되고 있다. (잔인해서는 안돼)는 그가 평소 좋아하던 리듬 앤 블루스
아티스트 오티스 블랙웰이 쓴 곡으로 엘비스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곡이라고 한다. 이 곡의 히트 이후 엘비스는 오티스 블랙웰의 또 다른 곡을
열망했는데 그리하여 만들어진 곡이 (난 흔들려요) 였다. 이 두 노래는 모두
비교적 빠른 템포로 전개되지만 흑인의 작품인 관계로 자연히 흑인
감성(feel)이 스며있는데 엘비스의 그 소화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엘비스는 사실 '흑인 블루스를 잘 부르는 백인가수'를 요구하던 시대적
요청에 의해 탄생한 스타였다. 선 레코드사의 샘 필립스 사장은 엘비스에게 그
가능성을 발견했고, 몇 곡을 발표케 하여 지명도를 올린 후 3만5천달러를 받고
RCA빅터사로 넘긴 것이다.
  (그것은 네 마음의 고통이 시작될 때야: That's when your heartaches
begin)는 그가 선 레코드사 계열인 '멤피스 레코딩 서비스'에 들러 (나의 행복:
My happiness)과 함께 어머니 생일선물로 취입한 곡으로 이 앨범에 수록된
유일한 RCA 이전의 레퍼토리이다.
  (하운드 독)은 엘비스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곡이었는데, 회사측은 이 곡이
그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져 팬들이 그 특유의 선정적 포즈를 연상하기만
한다면 분명히 히트할 것으로 확신했다. 회사측의 예측은 적중했다.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저음을 과시하고 있는 (러브 미 텐더)와 (널 사랑해:
Loving you)는 각각 엘비스가 출연한 동명타이틀 영화의 삽입곡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그의 영원한 걸작 (러브 미 텐더)는 영화제작자들까지도
감동시켜 '레노 형제들'이란 영화의 원제목마저 바꾸게 해버렸다.
  (날 사랑해주오: Love me)는 이 앨범 수록곡 가운데 유일하게 싱글로
발표되지 않은 곡으로 56년 11월 EP판을 통해 소개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트 6위 및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영화 '널 사랑해'에 타이틀곡과 함께 삽입된 (테디 베어)는 10대 시장과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곡조를 지녀 엘비스 자신도 빅히트를 점친 곡이었다.
(교도소의 록)과 (날 잘 다뤄줘요: Treat me nice) 역시 영화 '교도소의 록'에
삽입된 곡으로, 엘비스의 상표인 광풍이 몰아치는 듯한 파워를 실감케 하고
있다.
  존 레논은 "엘비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아무것도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라고 실토한 바 있다. 그를 위시한 무수한 후배 록가수들이 왜 그토록
엘비스처럼 되려고 몸부림쳤는가를 알려주는 단서가 이 앨범에 들어있다. 그
단서는 엘비스의 명성이었고 그 명성은 엘비스의 환상적인 노래솜씨가 가져다준
것이었다.
  (그림 설명): 히프를 흔드는 엘비스의 전형적인 '로큰롤 포즈'.

    로큰롤의 세련화를 이룩한 안경잽이 스타의 모든 것
    버디 할리 (버디 할리의 빅히트 선집: Buddy Holly's greatest hits)

  Peggy Sue. That'll be the day. Listen to me. Everyday. Oh, boy. Not fade
away. Raining in my heart. Maybe baby. Rave on. Think it over. It's so
easy. It doesn't matter anymore. True love ways. Peggy Sue got
married(74년)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 로큰롤의 사운드는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상태였다. 갓
태어난 로큰롤은 '위대한 천재' 버디 할리를 만나 원시성을 벗고 세련된
음악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그는 로큰롤이 누구나 쉽게 납득할 수 있는
팝음악임을 제시했다.
  그의 음악에는 낭만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로큰롤이 가지는 도전적이고
변화무쌍한 특성을 전혀 훼손하지 않고 그 틀 안에서 '록의 친화력 획득과
성숙'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는 록의 이론가로 통한다. 그때까지 존재한 록 주변의 여러 음악, 즉 리듬
앤 블루스, 컨추리, 로커빌리, 흑인 영가 등을 종합해 록의 체계를 정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거기에 텍사스(그의 고향)와 인접한
멕시코의 영향을 흡수한 소위 '텍스 멕스'(TexMex) 사운드 경향을 선보이기까지
한 거대한 소화력의 소유자였다. 그것은 기존 사운드의 통일을 뜻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아요: Not fade away)는 그의 흑인리듬 소화력을
확인시켜주는 대표적인 곡이었다. 여기에 나타나는 기타 리듬은 흑인음악 리듬
앤 블루스의 거인 보 디들리(Bo Diddley)의 트레이드 마크, 즉 머리카락을
자르듯 '썰어낸' 리듬을 수용했다. 청취자들이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은 '연주자가 흑인임에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57년 그와 그의
그룹 크리케츠(Crickets)가 뉴욕 아폴로극장에서 연주했을 때 객석에서는
놀랍다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이 앨범은 그가 22세의 나이로 요절하기 전까지 발표한 노래 가운데
클래식만을 골라 엮은 걸작 모음집이다. 14곡이 수록된 이 음반은, 여러 음악의
통합을 성취해 낸 그의 공헌을 대체적으로나마 더듬어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적
가치를 지닌다.
  앨범은 버디 할리 히트곡집으로 타이틀이 붙어있지만 실은 그의 발표작과
크리케츠의 히트곡을 한꺼번에 실은 것이다. (페기 수: Peggy Sue) (레이브 온:
Rave on) 등은 버디의 개인 명의로 된 히트곡이지만 (댓일 비 더 데이: That'll
be the day)나 (오, 소년아: Oh, boy) 등은 크리케츠 이름으로 발표된
노래들이었다.
  버디 할리가 이처럼 양다리를 걸친 것은 노련한 매니저 노먼 페티의 전략에
의한 결과였다.
  노먼 페티는 데카 레코드사 소속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크리케츠를
부룬스윅 레코드사에, 버디 할리는 코랄 레코드사에 각각 계약시키는 방법으로
새출발을 꾀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브룬스윅이 데카의 자회사였기 때문에
데카의 법적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브룬스윅에서의 첫 히트곡 (댓일 비 더
데이)는 사실 데카를 위해 만든 곡) 할리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크리케츠를
내건 것이었다.
  (댓일 비 더 데이)는 57년 싱글 차트를 강타, 3위까지 올랐고 22주간이나
차트에 머무는 빅히트를 기록했다. 생동감이 넘치지만 절제된 사운드의 이
곡에서 깨끗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기타는, 펜더 스트레토캐스터라고 하는 그가
널리 퍼뜨린 전기기타였다.
  (페기 수)는 버디 할리 특유의 딸꾹질 창법과 신음에 가까운 보컬을 들려주는
곡이다. 그가 록 팬들에게 전하려 했던 것은 보컬 방식에 있어서는 규칙적이
아닌 '불규칙에 의한 멋'이었고(노래 도중 갑자기 가성을 쓴다거나 저음으로 뚝
떨어뜨리는 것), 가사에 있어서는 드러냄보다는 감춤이었다. 그 감춤을 통해
그는 록 평론가 조나단 코트가 표현했듯이 '아주 귀하고 진실한 사랑'을 찾으려
했다. 그는 소년 같은 순수성으로 록의 성숙을 이룩한 것이었다.
  그가 록계에 끼친 영향력은 그의 노래가 무수히 리메이크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입증된다. 롤링 스톤즈의 미국 차트데뷔곡이 할리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아)였고, 린다 론스태드는 할리 작품의 단골 리메이크꾼으로 (사랑에 빠지긴
너무 쉬워: It's to easy)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It doesn't matter
anymore)를 히트시켜 재미를 보았다. 비틀즈는 그의 곡을 연주하며 실력을
연마하여 훗날 최고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64년 비틀즈를 위시한 영국 록그룹의 '미국 침공'시에 들여온 음악은, 58년
영국 순회공연 때 그곳 젊은이들에게 비트(beat) 열풍을 일으킨 바로 버디
할리의 음악 그것이었다. 그는 미국보다 영국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아
영국에서는 '버디 할리 주간'이 선포되기도 했다.
  버디 할리를 정의해줄 업적은 너무도 많다. 그는 자신이 만든 곡으로 성공한
최초의 백인 록가수였다. 일반적인 록 밴드의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이라는 라인업을 가르쳐준 것도 그였다. 또한 그는 전기기타 팬더
스트래토캐스터를 대중화시켰고 록 반주에 최초로 현을 사용했다.
  이 모든 것을 이 앨범에서는 체험할 수 있다.
  앨범을 통해서 알 수 없는, 그가 남긴 주요한 공헌이 또 있다. 버디 할리는
안경을 쓴 수줍은 인상으로 무대에 선 유일한 록스타였다.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꼭 미남은 아니어도, 반드시 섹시한 매력을 갖추지 않았더라도 로큰롤 스타가
될 수 있음을 그는 증명했다. 버디 할리는 이 점에 있어서도 록의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버디 할리의 출현이 엘비스의 등장과 맞먹는 비중으로 록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 50년대에 활동하다 59년에 죽은 버디의 위 싱글을 모은 이 편집앨범은
74년에 출반했다.
  (사진 설명): 버디할리(왼쪽의 안경 쓴 이)가 이끈 초기 로커빌리 그룹
크리케츠.

     60년대
  1. Bob Dylan (freewheelin')
  2. Beatles (Please please me)
  3. Otis Redding ( Otis blue)
  4. Bob Dylan (Highway 61 revisited)
  5. Beatles (Rubber soul)
  6. Beach Boys (Pet sounds)
  7. Rolling Stones (Aftermath)
  8. Doors (the Doors)
  9. Beatles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0. Jefferson Airplane (Surrealistic pillow)
  11. Mamas and Papas (If you can believe your eyes and ears)
  12. Velet Underground (Velvet Underground & Nico)
  13. Aretha Franklin (Ten years of gold)
  14. Van Morrison (Astral weeks)
  15. Jimi Hendrix Experience (Are you experienced)
  16. Sly and The Family Stone (Stand!)
  17. Cream (Wheel of fire)
  18. Beatles (the Beatles: White album)
  19. Blood Sweet and Tears (Child is father to the man)
  20. Moody Blues (Days of future passed)
  21. King Crimson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22. Neil Young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
  23. Beatles (Abbey Road)
  24. The Band (the Band)

      60년대 정신의 해오름... 그것은 저항
    밥 딜런 (프리휠링: Freewheelin')

  Blowin' in the wind. Girl from the north country. Masters of war. Down
the highway. Bob Dylan's blues. A hard Rain's a-gonna fall.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Bob Dylan's dream. Oxford town. Talkin' World War 3
blues. Corrina. Honey. just allow me one more chance. I shall be
free(63년)

  밥 딜런(Bob Dylan) 이전에도 분명히 포크는 있었고, 저항음악은 존재했다.
그러나 그는 포크에 활력과 중요성을 부여하여 전면적인 포크붐을 일으켰고,
영, 미권 대중음악에 저항정신을 일깨웠다.
  대중음악, 특히 록음악이 60년대에 걸쳐 저항적 메시지를 견지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밥 딜런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저항과 관련해 일컬어지는 이른바 60년대 정신(Sixties Spirit)의
효시이자 중심에 위치한다. 포크 중흥뿐 아니라 그와 같은 60년대 정신의
출발을 알린 것이 다름 아닌 이 앨범이다. 밥 딜런은 이 음반으로 포크의
대중화를 이룩했고 프로테스트(protest) 정신을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 널리
전파했다.
 밥 딜런이 활약하던 시기의 미국은 하버드대학 출신의 젊고 의욕적인 대통령
케네디가 통치하던 시절이었다. 케네디의 뉴 프론티어(New Frontier)와 그에
따른 민권운동 지원에 고무된 당시의 젊은이들은 인종 평등과 반전을 외치며
일제히 밥 딜런의 프로테스트 음악을 경청했다.
 딜런의 프로테스트 송은 당시의 행동주의 포크가수 필 오크스나 톰 팩스튼과
마찬가지로 방금 터진 사건에 대한 구체적 이슈를 다루었다.

 굽은 길을 지나 옥스포드 타운, 그는 문에 도달했으나 들어갈 수 없었지. 그의
피부색 때문이지. 친구여, 그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나. (옥스포드 타운: Oxford
town)

 이 노래는 62년 9월 옥스포드의 미시시피대학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제임스 메레데스라는 흑인 공군제대병이 그 대학에 등록하게 되자
보수적인 인종주의자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양상은 주방위군과 케네디의
국립경호대 사이의 대결과 치달았다. TV를 통해 대학생들에게 인종분리를
종식하고 메레데스를 받아들이라는 연설을 한 케네디 대통령은, 인종주의자의
폭력으로 2명이 사망하자 즉각 해병대를 파견하여 메레데스를 보호했다. 62년과
63년 공민권 획득운동이 미국 동부 전역에 걸쳐 폭발했을 때 밥 딜런은 이처럼
포크로 민권운동을 펼쳐나갔다.
 그가 집착한 또하나 테마는 전쟁에 대한 반대였다.

 영원히 폐기될 때까지 포탄은 얼마나 전장을 날아야 하나. 주위를 외면키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이 고개를 돌려야 하나.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아는 대답: Blowin' in the wind)

 이 노래는 전세계 대학가에 포크 붐을 일으키며 반전가요의 표상이 됐으며
톤을 낮춰 팝화한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 Mary)의 노래로 빅 히트,
작곡자인 딜런의 이름을 알리는 데 결정적 열할을 했다. 여기서 못본 척 고개를
돌리는 사람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냉전의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혀 전쟁에
광분하는 권력층과 무기상을 가리킨다.
 (전쟁의 도사들: Masters of war)은 바로 그들의 위선을 고발하는 작품.
 
 그대들은 다른 이들이 발사하도록 방아쇠를 죄어주지. 사망자가 늘어만 갈 때 
 그대들은 뒷전으로 물러나 주시하지. 젊은이들 피가 흘러 진흙에 묻힐 때
 그대들은 맨션에 숨어만 있지.

 62년 10월에는 피그만사건에 의해 촉진된 '쿠바 미사일 위기'가 있었다. 미
공군에 의한 피그만 공습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미국과 케네디의 위신은 크게
손상되었다. 당시 후르시초프 서기장은 쿠바에 미사일 기자를 건설, 무력을
강화시키려 했고 미국의 첩보 비행기가 그 증거를 포착하자 두 강대국은 13일간
팽팽히 맞서면서 전면전의 위기에 봉착했다. 소련이 미사일 시설을 모스크바로
철수시키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재앙은 비켜갔지만 이 사건이 미국 국민에게
미친 공포와 충격은 대단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3차대전의 개시'로 여겼다.
 (강한 비가 내릴꺼야: A hard rain's a-gonna fall)는 미사일 위기가 초래한
공포를 노래한 곡이었다.

 난 천둥소리를 들었어. 그것은 고함치며 경고를 던졌지. 세상을 덮어버릴
파도의 격량을 들었어... 시궁창에서 죽은 시인의 노래를 들었어. 미궁에 빠져
울고있는 광대의 소리를 들었지.

 밥 딜런이 그려낸 3차대전의 현장은 소름끼친다.

 난 낙진대피소의 벨을 누르고 머리를 기울이며 소리쳤지. "땅콩을 줘. 난 지금
배고파"하며. 총탄이 날아왔고 잽싸게 도망쳤지... 핫도그점 코너에서 난 어떤
남자를 보고 "안녕하슈, 여긴 우리 둘밖에 없군" 했지. 그는 갑자기 소리치더니
날아가버렸어. 날 공산주의자라 생각한 거야. (3차대전의 블루스: Talkin'
World War 3 blues)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애청된 (두번 생각하지 마, 괜찮아: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와 (북극에서 온 소녀: Girl from the north)는 러브송이다.
이같은 현실 비참여적 노래를 배치함으로써 앨범의 균형과 예술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 앨범은 록 부문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 작품이다. 통기타와 하모티카,
그리고 딜런의 거친 목소리만이 존재하는 전형적인 포크음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기 로큰롤에 매료되어 있었던 딜런은 곧바로 포크와 록의 요소를
결합한 포크록을 창시하며 록 세계로 들어갔다. 악기로 말하면, 통기타를
버리고 일렉트릭기타를 쥔 것을 의미하는 그의 충격적 전향은 록분야에서는
환영을 받았으나 전통 포크진영으로부터는 '배신자'라는 오명을 안게 되었다.
 그는 포크록으로 변신하면서 정치적 행동주의와 저항을 포기하고 내적 탐구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미 많은 록가수에게 저항정신을
아로새기고 난 뒤였다. 그의 저항성은 그가 아닌 딴 가수들에 의해 계속되어
나갔다.

    비틀매니아의 서곡을 울린 역사적 데뷔음반
    비틀즈 (플리즈 플리즈 미: please please me)

 I saw her standing there. Misery. Anna(go to him). Chains. Boys. Ask me
why. Please please me. Love me do. P.S. I love you. baby it's you. Do you
want to know a secret. A taste of honey. There's a place. Twist and
shout(63년)

 1963년 3월 발매되어 존, 폴, 조지, 링고가 리버풀의 네마리
딱정벌레(beetle)가 아닌 영국의 전국적 그룹임을 과시한 이들의 첫 LP. 이
앨범이 발표된 63년 한 해 동안 영국에서는, 단순 음악관련 해프닝을 훨씬
뛰어넘는 사회적 현상이 그들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비틀매니아'가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리버풀의 캐빈 클럽에서 비틀즈(the Beatles)가 공연할 때도
소녀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소리치며 춤을 추어댔다. 그러나 전국 순회연주를
하던 이 무렵 아주 격렬한 집단 히스테리가 발생, 마침내 저널리스트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 해
10월부터 3개월 사이 하루 걸러 한번 정도로 비틀즈 스토리가 전국 일간지의
일면을 장식하게 되었다.
 단 하룻동안 11시간만에 녹음을 마친 이 앨범은,비틀매니아(Beatlemania:
비틀즈 현상) 출현의 시발을 보여줬다는 점 외에 장차 명반들을 쏟아낼
대중음악사상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콤비 존-폴의 작업방식과 재능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귀중한 음반이다.
 이들은 영국차트 정상을 차지함으로써 비틀즈의 입지를 공고히 해준 두번째
싱글곡 (플리즈 플리즈 미: please please me)와 그들 콤비의 첫 결실로서
영국차트 17위(미국 '빌보드'지엔 늦게 소개되어 64년4월 네 번째로 차트1위
기록)의 (날 사랑해주오: Love me do)를 포함, 여덟 곡의 창작곡을 선보였다.
이것은 기존 곡들을 리메이크하거나 다른 작곡가의 노래를 단순히 부르거나,
또는 미국의 히트곡들을 가져다 부르는 것이 관례인 당시의 영국 음악판도에선
가히 혁명적인 일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난 그녀가 서있는 것을 보았지: I
saw her standing there) 같은 곡은 학창시절 무단결석을 하며 폴의 집에서 두
사람이 지었다지만, (이유를 물어봐요: Ask me why) (어떤 곳이 있었지요:
There's a place) (P.S. 난 널 사랑해: P.S. I love you) 등 대부분의 오리지널
곡들은 순회공연 중 썼다는 사실.
 그들의 경이적 독창성은 그러나 여섯 곡의 기성곡들을 선택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팻 분 같은 유명가수들의 노래 대신 슈렐즈의
(연인이여 그건 바로 너야: Baby, it's you), 그리고 레논과 메카트니가
자신들의 모델로 삼았단 게리 고핀-캐롤 킹 콤비가 쓰고 쿠키즈가 부른
(체인즈: Chains), 존의 파워넘치는 남성적 가창력으로 앨범을 끝맺는 아이슬리
브라더즈의 (춤추며 소리지르라: Twist and shout) 등, 영국의 음악팬에겐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자신들의 애창곡을 부른 것이었다. 이 가운데 (춤추며
소리지르라)는 창작곡이 아닌데도 이듬해 전미 차트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무명이었던 '캐번'시절의 이 곡들이 명실상부한 로커인 초기 비틀즈의
이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이 앨범은 빛을 발한다.
 (플리즈 플리즈 미)의 성공에 뒤이어 비틀즈는 64년에 들어서자 (나는 네
손목을 잡고싶어: I want to hold your hand)를 외치며 미국을 '침공'했고 이어
세계정복의 길로 나아갔다.
 그들을 시발점으로 연이어 롤링 스톤즈, 후, 데이브 클락 파이브, 허먼스
허미츠, 애니멀즈 등 영국의 무수한 로큰롤 그룹들이 미국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미국의 팝음악 관계자들은 그 현상을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이라 표현했다.
 영, 미간의 음악적 벽을 허물어버린 비틀즈는 이와 함께, 작곡자와 가수로
나뉘어있던 음악계를 결합시켜 가수 겸 작곡자, 즉 싱어송라이터의 체제를
구축했고 음악 소비자로 하여금 싱글 아닌 앨범을 구입하게 해 '앨범 시대'를
여는 계기를 마련했다. 록음악은 비틀매니아에 의해 새로운 장을 열게 된
것이다. 이 앨범은 그 '위대한 비틀매니아의 시작'을 알린 실로 록역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림 설명): 63년 영국을 휩쓴 비틀즈 선풍은 이듬해 미국도 정복, 세계적
열풍을 야기시켰다.

    60년대 흑인정신이 표출된 '소울 음악'의 교본
    오티스 레딩 (오티스 블루: Otis blue)

 Ole man trouble. Respect. Change gonna come. Down in the valley. I've
been loving you too long. Shake. My girl. Wonderful world. Rock me baby.
Satisfaction. You don't miss your water(65년)

 미국 조지아주 메이컨 출신인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의 지향점은 자신의
고향이 배출한 위대한 로큰롤 가수 리틀 리차드처럼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멤피스레코드사 계열의 스택스 스튜디오에서 레코딩을 하게 되면서, 그의
노래는 리차드의 강한 로큰롤로부터 흑인 특유의 짙은 소울(soul)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의 노래는 '소울 발라드'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흑인음악의 용어가 리듬 앤 블루스에서 소울로 바뀌게 된 것은 60년대
중후반의 사회상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65년 뉴욕의 할렘 폭동, 67년
디트로이트 폭동은 흑인의 권리쟁취를 위한 과격한 욕구분출이었다. 이때
흑인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새로이 등장한 용어가 바로 '소울'('흑인영혼
'흑인정신')이었다. 대부분의 흑인들은 그들의 반인종차별 투쟁과 소울이라는
말을 동격시했다. 당시 동시다발적으로 팝계에 출현한 제임스 브라운, 레이
찰스, 윌슨 피켓, 아레사 프랭클린, 그리고 오티드 레딩이 대표적인
소울가수들이었다. 소울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흑인민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65년 발표된 (오티스 블루)는 이같은 흑인의 권리신장 요구와 소울발현의
촉매제 열할을 했다. 오티스 레딩의 음악과 이 앨범은 따라서 60년대 후반의
소울 열기와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다. 그의 자작곡인 (존경: Respect)과
(변화는 올 것이다: Change gonna come)는 그같은 소울의 경향을 대표한다.
거기에는 이전엔 찾아볼 수 없던 흑인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배어있다.
 (존경)은 특히 '레이디 소울'(Lady Soul)의 칭호를 얻은 아레사 프랭클린이
불러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더욱 유명해졌는데, 60년대의 소울 음악과
흑인민권운동 물결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소울의 걸작들이 총망라되어 있다는 평을 듣는 이 음반은 대중적으로도 성공해
4개의 히트 싱글이 쏟아져 나왔다. (존경) 외에도 (흔들어라: Shake) (만족할
수 없어: I can't get no satisfaction) (지금 멈추기엔 너무 오랫동안 그대를
사랑했어요: I've been loving you too long)가 잇따라 히트했고 영국에서는
(나의 여자: My girl)도 싱글로 발표되어 인기를 누렸다. 이 가운데 롤링
스톤즈의 오리지널 (만족할 수 없어)는 소울과 록이 훌륭히 양립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기존 체제에 대한 대항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의
공통점을 지닌 두 장르는 이후 자주 결합하여 어깨동무 사이로 발전해갔다.
 앨범수록곡 중 우리나라에서는 단연 (지금 멈추기엔...)이 사랑을 받았다.
오티스 보컬의 짙은 호소력과 끌어당기는 듯한 분위기가 압권인 이 노래는 그
특유의 스타일(소울 발라드) 때문에 발라드 취향이 강한 국내팬들의 줄기한
애청곡이 되었다.
 그러나 67년 12월 불의의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면서 그의 활동은 종막을
고했다. 26세의 요절이었다. 그의 이른 죽음이 한편으로 이 앨범의 가치를 더욱
높여 주었는지도 모른다.
 사망 직후에 발표된 (만의 부두에 앉아: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는
전미 싱글차트 정상에 오르는 빅히트를 기록했다.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소울 발라드 필(feel)이 전편을 수놓은 이 노래는 그의 노래 가운데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곡과 (부드러움을 실행해 봐요: Try a little tenderness)는 이 음반에
수록되어 있진 않지만 오티스의 팬이라면 놓쳐서는 안될 작품이다. 뒷 노래는
그의 전매특허-스탠다드를 비비꼬일 만큼 느리게 재해석해 부르는 것-를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일부 평론가들은 그를 '소울의 왕'(King of soul)이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앨범이 역사상 가장 훌륭한 소울 앨범 중 하나로 간주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림 설명): 오티스 레딩

    대중음악 가사의 혁명... 포크와 록의 결합
    밥 딜런 (다시 찾은 하이웨이 61: Highway 61 revisited)

 Like a rolling stone. Tombstone blues. It takes a lot to laugh. It takes
a train to cry. From a buick 6. Ballad of a thin man. Queen Jane
approximately. Highway 61 revisited. Just like Tom Thumb's blues.
Desolation row(65년)

 록평론가 데이브 마시는 이 앨범을 밥 딜런(Bob Dylan)의 작품 가운데
최고라고 추켜 세우며 "이때쯤의 그의 영향력은 너무도 확산되어 정말 수천의
사람들이 그의 언어 하나하나에 매달리는 실정이었다"고 말했다.
 65년 8월 딜런의 전성기 때 발표된 이 앨범이 가지는 의의는 바로 데이브
마시가 지적한 언어, 즉 가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딜런은 이 앨범을 통해
순간의 감각에 영합하는 하루살이 같은 팝송의 노랫말을 그야말로 성경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록평론가 짐 오도넬의 표현처럼 이 무렵 그의
가사는 마치 '운율(비트)을 지닌 게티스버그연설'처럼 록계에서 곡 만드는
사람의 두뇌를 해방시켰다(노래로 읊은 민주주의의 이정표!).
 딜런의 언어는 감상자의 가슴을 찌르는 통렬함을 지녔고 초현실적이었으며,
이전의 대중가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철학적 깊이를 간직했다. 정확히 해독이
어려울 만큼 난해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례로 여기 수록된 (여왕 제인: Queen Jane approximately)에서의 제인이
혹시 연인관계로 소문난 존 바에즈가 아니냐는 추측이 등장했고, 한 뉴욕시민은
'(폐허의 거리(Desolation row)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를 지하신문에 내기도 했다.
 밥 딜런은 데뷔와 동시에 (바람만이 아는 대답: Blowin' in the wind) (시대는
변한다: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전쟁의 도사들: Masters of war)와
같은 저항가요로 양심세력을 이끈 시대의 표상이었다. 젊은 지성인들은 그의
가르침에 따라 반전을 부르짖고 기존체제와 기성세대에 대항했다. 얼마후 그는
이같은 정치성을 스스로 부정하며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였으나 '내적 성찰에
의한 의식혁명'을 주장하는 심원한 저항을 드러내 보였다. '딜런' 하면
떠오르는 어휘가 되어버린 프로테스트(protest) 기조는, 따라서 이 작품에서도
계속 유지되었다.
 이 계열의 노래로는 (구르는 돌처럼: Like a rolling stone)과 (깡마른 사람의
노래: Ballad of a thin man)가 해당된다. 그의 생애 최고 히트곡이 된 앞의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 잃을 것도 없다'는 노랫말고 함께 벌거벗겨진
자연인이 되기를 권유하면서 기성의 해체를 역설한다. (깡마른 사람의 노래)
역시 기성세대에 대한 순전한 비아냥이다. 이 곡에는 시위대 피켓의 슬로건이
되기도 한 '여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요,
존스씨?'라는 유명한 구절이 들어있다. 여기서 존스는 혹시 존슨대통령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등장했는데, 딜런은 "당신은 그를 알고 있지만 그
이름으로는 아니다"라고만 언급, 특정인을 거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사를
떠나서 이 두 곡은 음악적으로도 탁월한 걸작들이다.
 타이틀에 사용된 하이웨이61은 그의 고향인 미네소타 유리치의 북쪽에서
미네아폴리스, 세인트루이스, 멤피스를 거쳐 뉴 올리언즈까지 달리는
고속도로를 가리킨다. 어린시절 꿈을 안겨준 이 도로를 내검으로써 그는
'과거로 돌아가서 미래를 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회고조의 앨범제목과
다르게 전체적인 분위기는 쾌활하며, 예를 들면 (폐허의 거리)는 제목답지 않게
친근하고 밝은 멜로디로 다가온다. 연주의 측면에서는 당시 무명이었던 마이크
볼룸필드와 알 쿠퍼가 각각 기타와 오르간 세션(session: 반주)에 나선 것이
눈에 띈다. 이미 시작된 포크에 록을 접목한 이른바 '포크록'이 이 앨범에서
만개하고 있다.
 영미 록계의 평론가들이 이 앨범을 일제히 걸작으로 손꼽는 이유는 이 작품이
당시 딜런에게 자의건 타의건 요구되었던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저항의 기조, 깊이있는 노랫말, 록과 포크의 결합이 그것이었다. 록
역사에 딜런이 남긴 발자취를 한꺼번에 더듬어볼 수 있는 실로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이 앨범은 국내에서도 출시되었다.

    비틀즈의 변신... 소녀팬에서 성인에게로
    비틀즈 (러버 소울: Rubber soul)

 I've just seen a face. Norwegian wood. You won't see me. Think for
yourself. The word. Michelle. It's only love. Girl. I'm looking through
you. In my life. Wait. Run for your life(65년)

 록평론가들은 그렉 쇼는 비틀즈 음악의 우수성을 논하면서, 그 원인으로
기존의 모든 음악을 받아들여 자기스타일화한 스폰지 같은 흡수력을 지적했다.
그는 그들이 버디 할리, 척 베리, 엘비스 프레슬리의 50년대 초기 로큰롤뿐만
아니라 60년 미국에 존재했던 모타운의 리듬 앤 블루스, 서프 뮤직, 필
스펙터의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 음악을 포괄하여 독창적인 비틀
뮤직을 창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렉 쇼가 하나 놓친 것이 있다. 바로 밥 딜런의 포크음악이다. 64년
'미국 침공'으로 천하통일을 이룩한 비틀즈는 당시 미국 청년들을 사로잡은 밥
딜런의 포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사실 딜런도 비틀즈에 끌리긴 마찬가지여서
후에 포크와 비틀즈식 록을 섞은 포크록을 창안하게 된다). 특히 자의식이
강했던 존 레논에게 메시지가 두드러진 포크는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전까지 비틀즈의 음악은 로큰롤의 본질에 충실하긴 했지만 가사는 남녀간
애정을 소재로 한 시시콜콜한 사랑타령에 머물러 있었다. 비틀즈는 10대
팬들에게 행여 거리감을 줄지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밥 딜런처럼 '뭔가
무게있는 노랫말'의 음악을 하고자 했다. 사랑을 노래하더라도 거칠고
드러내놓는 내용보다는 애매모호하고 감추어진 측면을 묘사하고 싶었다. 그들은
변화를 원했던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비틀즈의 초기 걸작 (러버 소울: Rubber soul)이 탄생했다.
폴 매카트니는 제목에 별다른 뜻이 없다고 했지만 '고무 정신'이라는
의미부터가 이전의 음반들과는 달랐다.
 비틀즈는 이 앨범에서 어떠한 싱글도 커트(별도의 '도너스판'을 제작,
발표)하지 않았다. 팬들에게 앨범 전체를 하나의 음반으로 받아들여 달라는
요구였다. 사실 처음부터 이 앨범은 싱글 개념을 거부하고 하나의 앨범이라는
구상하에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러버 소울)은 비틀즈 4인의 그룹 결속력이
최고로 발휘된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수록곡의 가사를 초기작과 비교해보면 금방 차이가 발견된다.

 난 무언가 얘기할 거야. 너도 이해하겠지. 그럼 그것을 말할 테야. 난 네 손을
잡고 싶어. (네 손을 잡고싶어: I want to hold your hand)

 지나간 사람들과 일에 애정을 잃지 않고 난 가끔 멈추어 그들을 생각할테야.
삶 속에서 너희들을 더욱 사랑할 거야. (내 삶에서: In my life)

 앞곡은 64년 2월 미국 데뷔곡이고 뒷곡은 65년 12월에 발표된 이 앨범의
수록곡이다. 평론가 그레일 마커스의 표현처럼 (러버 소울)에 보이는 사랑은
초기곡에서는 제거되었던 '살아있는 사랑'이었다. 거친 힘은 표면 아래로
숨었다. 가사는 다의적이어서 그 의미를 자꾸 되새기게끔 하고 있다.
 이 앨범의 노래들 가운데 최고의 트랙은 (여자: Girl)이다. (내 삶에서(삶
속에서))와 함께 존 레논이 쓴 이 곡은 앨범의 백미로 꼽히는데, 사랑의
가변성에 대한 사려깊은 반성을 담았다.

 그녀는 젊었을 때 명성이 쾌락을 가져온다는 얘기를 들었을까. 남자가
여가시간을 갖기 위해 등 부숴지게 일해야 한다고 할 때 그 말을 이해했을까.
그가 죽었을 때도 여전히 그 얘길 믿을까.

 이 노래에서 '걸(여자)'이 종교일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존 레논의 종교에
대한 시각이 담겨진 노래라는 것이다. '여자=종교'로 대입하여 가사를
음미해보면 내용이 꽤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만약 그렇다면, 종교란
괴로움의 바다에서 우리를 건져주지만 그 효과는 순간적이며 인격의 파탄과
황폐화라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해석이 도출된다.
 그 무렵 존은 종교(특히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이 음반이 발표되고
얼마 후 그는 실제로 런던 '이브닝 스텐더드'지 모린 클리브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기독교 신앙은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종적을 감추고 움츠러들
것이다. 더 이상 논쟁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는 지금 예수보다 더 인기가
있다(We are more popular than Jesus)"라는 충격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것이 일반적 사랑이든 종교이든 초기 곡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폴 매카트니는 여전히 뛰어난 선율의 노래를 잘 썼다. (난 막 얼굴을 봤어:
I've just seen a face)나 그래미상을 수상한 (미셸: Michelle) 등이 그러하다.
역시 폴이 대부분을 쓴 (난 너를 뚫어지게 보고 있지: I'm looking through
you) (넌 날 보지 못할 거야: You won't see me)는 경쾌하면서도 매력적인
리듬을 지니고 있는데, 뒷곡은 훗날 앤 머레이가 다시 불러 히트했다.
 (스스로 생각하라: Think for yourself)는 레논-매카트니 콤비의 벽을 넘어 이
앨범에서 해리슨이 작곡해 부른 유일한 곡이다(링고 스타는 곡을 쓰지 못했다).
조지 해리슨이 위력을 발하는 부분은 역시 기타연주인데, (노르웨이의 숲:
Norwegian wood)에서는 기타 비슷한 인도의 전통악기 시타르(sitar)를 도입해
연주했다. 다소 실험적인 이 노래는 시타르 연주 뿐 아니라 종전과 다른, 약간
음산하며 전위적인 곡조로 많은 록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영감에 가득차 있으며 새롭기 그지없는 이 앨범은 밥 딜런의 영향이 컸다. 이
영향하에 4인의 특별한 결합을 통해 '우수한 곡들'을 한데 모아놓는 결실을
맺었다. 팝 관계자들 중 일부가 다른 앨범을 접어두고 이 작품을 비틀즈의 최고
음반으로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러버 소울)로 그들은 틴에이저 지향의
그룹에서 탈피하여 전무후무한 팝그룹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 앨범으로
자신감을 얻은 그들은 곧바로 (리볼버)라는 또 하나의 걸작앨범을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롤링 스톤즈와 비치 보이스도 (러버소울)에 충격을 받고 각각
독창적인 앨범 (여파: Aftermath)와 (펫 사운드: Pet sounds)를 내게 되었다.
 이같은 사실 외에 다른 것에서 '비틀즈의 위대성과 위대한 음악의 시작'임을
예시할 별도의 사례를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서프 음악'의 종언... '스튜디오 음악'의 개가
    비치 보이스 (펫 사운즈: Pet sounds)

 Caroline no. Wouldn't it be nice. You still believe in me. That's not me.
Don't talk. I'm waiting for the day. Let's go away for a while. Sloop John
B. God only knows. I know there's an answer. Here today. I just wasn't
made for these times(66년)

 윌슨 삼형제 브라이언, 칼, 데니스와 사촌인 마이크 러브, 그리고 이들의
친구인 알 자딘으로 구성된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트레이드 마크는
서프음악(Surf Music)이었다. 그들은 60년대 초반 저 유명한 (서핀 유에스에이:
Surfin' USA)를 비롯, (파도를 타자: Catch a wave) (서프하는 아가씨: Surfer
girl) 등 캘리포니아 해변과 태양을 무대로 서프의 즐거움을 담은 낭만적인
노래를 가지고 팝계를 강타했다.
 그룹의 실세로서 천재적 재능의 브라이언 윌슨은 그러나 가벼운 서프 음악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64년 말 신경쇠약 증세로 그룹을 잠시 떠난 그는
서프음악과 결별하기로 다짐하고 새 모습을 보이기 위해 작곡, 편곡, 녹음에
열중했다. 당시 그는 비틀즈를 상당히 의식하고 있었다. 작곡에 있어서나
기술적으로나 비틀즈보다 나은 앨범을 만들고 싶어했다. 구체적 목표는
비틀즈의 (러버 소울)을 타도하는 것이었다.
 66년 5월에 발표된 (펫 사운즈)는 이같은 브라이언의 욕구에 따라 만들어졌다.
따라서 그것은 비치 보이스라는 그룹의 작품이라기보다는 브라이언 개인작품에
가까웠다. 음반 수록곡 어떤 것에도 이전의 비치 보이스 색깔은 배어나오지
않았다. 곡은 훨씬 느려졌고 작사가 토니 애서의 지원을 받은 노랫말은
자기성찰의 분위기로 흘렀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브라이언은 필 스펙터가 창안한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 기술을 빌어 더빙반복으로 소리를 두껍게
했고 종소리, 경적소리, 외침 등 효과음을 많이 응용했다. 그것은 곧바로
레코딩계에 일렉트로닉 물결을 일으키는 기술적 개가였다.
 이렇게 해서 나온 (캐롤라인 노: Caroline no) (그것이 좋지 않은가요:
Wouldn't it be nice) (신만이 알지: God only knows) (슬룹 존 비: Sloop John
B) 등은 사이키델릭하고 복잡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훗날 이 노래들은 록의 고전이 되었다. 특히 프렌치 호른과 썰매방울 소리를
깔며 칼 윌슨이 부른 톡쏘는 맛의 노래 (신만이 알지)는, 비틀즈의 폴
메카트니로부터 "이제까지 쓰여진 노래 가운데 최우수곡"이라는 격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캐피톨 레코드사는 이 음반을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브라이언이 돈만 낭비하고 좋은 앨범을 내놓지 못했다고 불평했고 오히려
뒤이어 나온 비치 보이스 히트곡집의 음반홍보에 주력했다. (펫 사운즈)가
보기드문 걸작이었으면서도 대중적으로 크게 어필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슬룹 존 비)와 (그것이 좋지 않은가요)는 전미
싱글차트 톱10위에 올랐으며, (슬룹 존 비)의 경우는 우리말로 개사되어 널리
애청되었다.
 이 작품의 진가는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나타났다. 레코딩 종사자들은 이
앨범을 통해 스튜디오 자체가 하나의 음악도구라는 사실을 배웠다. 평론가들은
지금도 이 앨범을 시대를 앞서간 60년대의 몇 안되는 컬트음반(cult album)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브라이언 윌슨은 이 앨범으로써 실험적 음악자세와 비범한 작곡 솜씨를
인정받았다. 비치 보이스가 짧았던 서프음악의 유행을 뛰어넘어 반짝 그룹으로
그치지 않고 '록의 전설'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순전히 이 앨범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라이언은 비치 보이스의 이미지를 거의 바꾸어 버렸지만 한 가지는 그대로
남겨두는 지혜도 발휘했다. 그것은 비치 보이스가 록계에 남긴 음악유산으로
얘기되는 바로 그들만의 절묘한 화음이었다. 위험에 가까운 실험 속에서도
그들의 환상적인 보컬 하모니는 충분히 구제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슬롭 존
비) (그것이 좋지않은가요)가 그러했다. 브라이언 윌슨은 남들과 구별되는 비치
보이스의 자랑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사진 설명): 그룹의 주역 브라이언 윌슨.


    비틀즈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 2등 록밴드의 1등 작품
    롤링 스톤즈 (여파: Aftermath)

 Paint it black(영국 Mothers little helper). Stupid girl. Lady Jane. Under
my thumb. Doncha bother me. Goin' home. Flight. High and dry. Out of time.
It's not easy. I am waiting. Take it or leave it. Think. What to do(66년)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을 주도한 쌍두마차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는 1964년부터 로큰롤의 왕관을 놓고 불꽃튀는
대권경쟁을 벌였다. 두 그룹은 영국 인기차트 1위와 2위를 번갈아 차지하며
치열하게 다투었지만 늘 상호 선린관계를 유지했다.
 그들은 서로 배웠다. 서로 어떤 음악을 하는가 주시하며 상대편이 내놓는
신곡을 열렬히 청취했다. 그러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한 예로 비틀즈는
롤링 스톤즈의 65년 히트곡 (만족할 수 없어: I can't get no
satisfaction)에서 키스 리처드가 발로 작동하는 퍼즈박스에 주목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작품에 활용했다. 한편 롤링 스톤즈의 브라이언 존스가 66년 넘버원
송 (검게 칠하라: Paint it black)에서 사용한 인도악기 시타르는 비틀즈 (러버
소울)의 수록곡 (노르웨이의 숲)으로부터 착상한 것이었다.
 롤링 스톤즈는 인기 면에서 비틀즈에 뒤져 언제나 2위에 만족해야 했지만
실력에 있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의 밴드로 군림, 끊임없이 비틀즈를
위협했다.
 영국에서 66년 4월(미국에서는 66년 6월)에 발표된 (여파: Aftermath)가 바로
그들을 위대한 록그룹으로 부상시켜준 앨범이었다. 또한 음반의 타이틀처럼
팝계에 많은 '여파'를 일으킨 문제작이기도 했다.
 (검게 칠하라)만 봐도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앨범은 비틀즈의 (러버
소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우선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Mick Jagger)와
키스 리처드(Keith Richard) 콤비가 이 앨범을 만들 때의 출발점이 "우리도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처럼 앨범 전체를 우리의 창작곡으로 하자"는 것이었다는
사실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키스와 믹은 성공리에 그 작업을 완수했다.
 두 사람은 이와 함께 (여파)에서 여러가지 시도를 감행한다. 롤링 스톤즈는
여기서 전매 특허인 검둥이음악, 즉 리듬 앤 블루스만이 자신들 음악의 전부가
아님을 선언한다. 그들은 리듬 앤 블루스만 파고들어서는 결코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듯했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여파)는 그들의 판단이 옳았음을 입증했고 최강의
전천후 그룹으로서 영생하려는 그들의 목표에 근접시켜주었다. 롤링 스톤즈는
이 앨범으로 리듬 앤 블루스 그룹으로부터 진정한 로큰롤 밴드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 앨범은 무엇보다 믹과 키스 콤비를 그룹의 간판으로 부각시켰다. 둘이
만들어낸 앨범의 수록곡 (검게 칠하라) (꽉잡힌 그녀: Under my thumb)
(한심스런 여자: Stupid girl) (레이디 제인: Lady Jane) (그것을 잡든가
아니면 놔두어라: Take it or leave it) (아웃 오브 타임: Out of time) 등은
멜로디 구성, 편곡, 진행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한 곡들이었다.
 특히 믹은 이 앨범의 일등공신이었다. 매 곡마다 그 곡에 맞는 보컬을
구사하는 타고난 재능을 과시했다. 발라드한 (레이디 제인)과 업템포인 (꽉잡힌
그녀)에서 보여주는 보컬 톤의 현격한 차이는 놀라운 것이었다. 폴 에반스가 쓴
'롤링 스톤즈 앨범가이드'는 "이 앨범에서 초기 믹의 보컬을 특징지워 주었던
리듬 앤 블루스 스타들에 대한 미숙한 시늉은 새롭고 역설적인 개성 표출에
자리를 내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와 키스 리처드는 작곡자 명부에 브라이언 존스와 빌 와이먼이 끼는 것을
마다했지만 이 앨범이 청취자의 주목을 글 수 있었던 밑거름은 밀려난 두
사람의 악기연주 및 편곡이었다. 특히 브라이언 존스는 그룹의 실질적 리더답게
다양한 악기의 시도로 앨범에 광채를 더했다. (검게 칠하라)의 시타르, (레이디
제인)의 덜시머, (꽉잡힌 그녀)의 마림바 등 악기구사는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Goin' home)가 당시로는 꽤 긴 12분의 대작으로
나타난 것도 음악공간을 보다 넓게 사용하려는 그의 과감한 실험의 결과였다.
이러한 노력이 이 작품을 당시 '혁신적인 방법'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한
밑거름이었다.
 비틀즈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그들과 엄격히 차별성을 띠려는 지극히 롤링
스톤즈적인 색깔이 이 앨범에 나타난다. 그것은 여자를 깔보는 경향이었다.

 내 손에 잡혔지. 전엔 날 거부했던 여자. 내 손에 쥐었지. 전엔 날 깔보던
여자. ...바뀌었지. 그녀는 이제 내 맘대로야. (꽉잡힌 그녀)

 저 한심스런 인간을 봐. 그녀가 머리를 물들이든 어떤 색깔의 옷을 입든
중요친 않아. 그 여잔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족속이야. (한심스런 여자)

 이것이 바로 롤링 스톤즈가 노린 악동 이미지였다. 그들은 나쁜 인상을
의식적으로 강조하여 반체도권적인 인물로 비쳐지도록 하면서 비틀즈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불량, 반항, 거만함, 퇴폐, 그리고 외설과 같은 나쁜 요소들이 모두 그들의
것이었다. 그들은 또한 집요하게 그러한 이미지를 끝까지 밀고 나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악동의 이미지가 바로 롤링 스톤즈를 30년 이상
활동하게 한 에너지였다.

 * 참고로, (검게 칠하라)는 미국판 앨범에 수록되어 있고 영국판에는 그것이
없는 대신 (마더스 리틀 헬퍼: Mather's little helper)가 실려있다.
 (그림 설명): 이 앨범을 만들 때인 65년 그룹의 모습. 왼쪽부터 믹 재거, 빌
와이먼, 찰스 와츠, 브라이언 존스, 키스 리차드.


    체제에 온몸으로 달려든 반항아의 숭고한 의식
    도어즈 (The Doors)

 Break on through(to the other side). Soul kitchen. The crystal ship.
Twentieth century fox. Alabama song(whisky bar). Light my fire. Back door
man. I looked at you. End of the night. Take it as it comes. The end(67년)


 그들의 노래는 문학적이면 간결하나 무섭다. 그들은 곡 형식에 대한 아무런
부담감이 없이 팝에서 시가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짐
모리슨(싱어)과 로비 크리거(기타), 레이 만자렉(오르간), 존 덴스모어(드럼)의
4인조 그룹 도어즈는 당시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휘몰아침 히피즘과 반전,
그리고 록 혁명이라는 사회적 영향과 결탁한 독특한 컬러의 사운드로 록계에
또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그것의 집적된 결과물이 1967년 1월 발표된 바로 그들의 데뷔앨범이었다. 기존
가치의 총제적 전환(기성 문화, 정치, 성질서로부터의 '완전한'자유)을 사랑과
평화라는 모토로 주창한 히피즘의 우산 아래 도어즈가 위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접근방식은 좀 달랐다. 그들은 사랑보다는 증오를, 평화보다는 폭력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왜곡된 현실사회에 대항했다. 도어즈의 음악이 무서웠다
함은 바로 이 점에서 연유한다.
 그들은 현실참여 대신 '현실탈출'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도어즈의 음악이
정치적이었으면서도 그다지 정치적으로 비치지 않았던 것은 이같은 방식
때문이었다.
 우리 사랑은 화장용 장작더미가 되는 거야. 자 어서와 내 불을 밝히라구. 이
밤을 불지르는 거야. (내 불을 밝혀주오: Light me fire)

 현실 탈출을 통해 그들은 일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새 세계'로 향하고자
했다. 짐 모리슨은 당시 "세상에는 그 진상이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잇는데 그 사이에 있는 것이 도어즈"라고 말했다. 도어즈라는 그룹 이름이나
음악 모두가 그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로 나아가는 문이었고 그 문을 열면
새로운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를 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머리곡 (딴 쪽으로
헤치고 나가라: Break on through to the otherside)에서 '딴 쪽'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앨범에서는 가장 문제시된 곡 (종말: The end)은 '알려진 사실'만이
존재하는, 규율과 억압의 기존 사회질서에 역행한다는 의미에서 현실탈출의
극단을 드러내고 있다. 11분에 걸쳐, 아들이 어머니에게 품는 이성애, 즉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는 쇼킹한 문제를 다룬 것이었다.

 아버지, 난 당신을 죽이고 싶어. 어머니 난 당신을 밤새 사랑하고 싶어. 그건
가슴 시리도록 당신을 자유롭게 하지.

 패륜아라는 지탄도 있었지만 "의식의 흐름이 심안에 포착된 재임스 조이스적인
팝"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프로듀서 폴 로스차일드는 이 곡을 녹음하던 때를
회상하면서 '록 레코딩의 가장 완벽한 순간중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그는
"녹음할 당시 짐 모리슨은 마치 샤먼(무당)이 된 듯한 분위기에 휩싸였으며
몰아의 경지로 빠져들어갔다"로 술회했다.
 실제로 이 앨범을 녹음할 때, 분위기를 북돋우기 위해 촛불을 켰고 향을
피웠다고 한다. 따라서 이 음반은 음향기술에 의한 여과가 거의 없는 순수한
의식의 산물 그 자체였다. 그것으로 짐 모리슨은 '청각적이면서 또한 시각적인
하나의 강력한 심리 드라마'를 연출해내는 데 성공했다.(음악이 마음 속에
하나의 의식의 수표면 위로 떠오르는, 더 나아가 실제 보이는 것만 같은 환상적
경지를 상상해 보시라.-편집자)
 짐 모리슨 의식 거행은 때로 오만하고 광기가 넘쳐흘렀으며 독을 토해내듯
거침 없었다. 그의 보컬은 차라리 한 마리 짐승에 가까웠다. (딴쪽으로 헤치고
나가라) (내 불을 밝혀주오) (그것이 올 때 잡아라: Take it as it comes) 등의
앨범 대표곡들이 그 전형인데, 거기에 나타나는 짐 모리슨의 야수적 외침은
바로 기존 사회에 대한 통렬한 절규이다.
 하지만 곡을 구성하는 데 있어 자칫 한 가지 틀에 곡조를 가두지 않을 만큼
도어즈는 자유로움으로 충만했다. (수정의 배: The crystal ship)는 웬만한
발라드 뺨칠 만큼 부드러운 선율을 획득하고 있어 (난 너를 봤어: I looked at
you)는 마치 미끄럼을 타는 듯 곡 진행이 신나고 순조롭다.
 이와 함께 블루스맨 윌리 딕슨의 작품이며 하울링 울프의 것으로 유명한 (백
도어 맨: Back door man)으로 도어즈는 자신들의 음악적 뿌리가 흑인 블루스에
있음을 밝힌다. (알라바마 노래: Alabama song)는 서사극을 확립시킨
마르크시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작곡가 쿠르트 바일의 오페라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 베를린 지하운동이 제재가 된 곡으로, 도어즈는 동명의 노래에
그들의 대담성과 이데올로기적 색깔을 깔았다.
 도어즈, 특히 짐 모리슨이 당시 마약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앨범
전체적으로는 마약음악, 이른바 애시드 록(acid rock)의 느낌이 강하다. 레이
만자렉의 반복적이고 잘 훈련된 오르간 연주는 한층 사이키델릭한 환상을
고조시킨다.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배 불을 밝혀주오)는 당당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앨범도 밀리언 셀링을 기록했다. 그리하여 히피의 축제로
상징성을 부여받은 기간인 1967년 여름, 이름자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을 수놓은 작품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도어즈와 그들의 최고 걸작인 이 앨범은 젊음의 사회변혁 욕구와 반전이
일궈낸, 사랑의 여름이라는 시대상황의 심장부에 위치한다. 따라서 그같은
시대성을 간과한 채 이 앨범을 파악한다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


    히피 '사랑의 여름'의 음악적 완성... 팝사상 최고의 명반
    비틀즈 (서전트 페퍼즈 론리 하츠 클럽 밴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Getting better. Fixing a hole.
She's leaving home. Being for the benefit of Mr.Kite. Within you without
you. When I'm sixty-four. Lovely Rita. Good morning good morning.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reprise). A day in the life(67년)

 60년대 중반은 사이키델릭(psychedelic) 시대였다. 사이키델릭운동은 '약물'
'동양종교' '사랑' '평화' 등의 추구를 통해 기존가치의 전반을 부정하는
반문화적 움직임이었다.(반문화, 즉 Counter Culture는 문화에 반하는 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반문화'에서 문화란, 지배문화 지배이데올로기
제도권문화 기성문화 기성가치 중산층문화 등을 포괄하는 주류적인 문화를
뜻한다.-편집자)
 이 가운데 특히 약물은, 대중문화의 일부 진영(특히 록계)에서 단순히 환희를
맛보자는 취지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로 안내하는 '의식방해'의 수단으로
신봉되었다. 당시 그들을 사로잡은 마약은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라는 것이었고 가운데 어휘 '애시드'가 그들의 성격을 규정짓는
용어로 선택되어 사이키델릭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히피의 근거지인
샌프란시스코 애시드록(Acid rock) 그룹들은 LSD 환각경험을 통한
의식해방으로서 인류애, 공동체의식, 그리고 사랑을 부르짖었으며 67년 7-8월을
이른바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으로 이끌었다.(일반용어로 '환각적'이란
의미를 갖는 사이키델릭은 문학, 음악, 미술 등 분야에선 '사이키델릭의'로
번역한다.-편집자)
 사이키델릭, 애시드, 그리고 '사랑의 여름'으로 채색된 그 시절을 관통한
대표적 작품은 비틀즈의 최고걸작 (서전트 페퍼즈 론리 하츠 클럽 밴드)였다.
67년 6월에 발표된 이 앨범은 최고 그룹의 작품답게 순식간에 팝계를 석권했고
'사랑의 여름' 찬가가 되어, 부패한 사회로부터 탈출키 위해 몸부림치던 젊은
세대의 열띤 지지를 받았다.

 수요일. 날이 샌 새벽 5시 조용히 침실문을 닫고... 밖을 나선 그녀는
자유롭게 되었지. 그녀가 집을 떠나는 거야. ...놓인 편지를 집어든 엄마는
낙심하여 아빠를 보며 울었지. 우리 애가 사라졌다며. 왜 이런 경솔한 짓을
했을까. 어째 그 애가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는가. 홀로 외로이 살겠다더니
그녀는 집을 떠난 거야. 오랜 세월이여 안녕... (그녀가 집을 떠나네: She's
leaving home)

 비틀즈는 이 곡으로 기존 사회로부터 빠져나오려는 젊은 세대의 탈출심리를
대변했다. 그것과 함께 사이키델릭 시대의 특성인 동양종교에 대한 새로운
해석, 특히 인도불교의 선사상은 지배종교인 기독교이데올로기의 대안으로
각광받았다. 조지 해리슨이 작곡한 (너 안에 너 밖에: Within you, without
you)가 그것을 담아냈다. 실제로 조지는 이 무렵 인도사상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비틀즈는 무엇보다 (서전트 페퍼...)의 분위기를 애시드로 채색해
놓았다. 비틀즈라는 부담감과 짜여지고 한정된 삶은 그들로 하여금 환각작용에
의한 출구를 열망케 했다. 그들은 이 앨범을 만들면서 진짜로 LSD를 복용했고
폴 매카트니는 공개적으로 그 점을 시인했다.
 앨범의 주요곡들이 대부분 애시드와 관련을 맺고 있다. 환각적 분위기가
압권인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먼즈: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의 앞자를 때면 공교롭게도 LSD였다. 그러나 이 곡을 쓴 존 레논은
당시 4살이었던 아들 줄리안이 집에 가져온, 또래집단의 그림을 소재로
삼았다며 억측을 부인했다.
 (친구로부터 조그만 도움을 받아: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에서
'친구'도 다름아닌 환각제 LSD가 아니냐는 오해가 뒤따랐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즉각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사이키델릭의 시대적
특성으로 인해 그 관련성을 믿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삶에서의 하루: A day in the life)는 보다 직접적이었다. 존 레논이
대부분을 쓴 이 곡은 직설을 피한, 다소 과장된 어휘배열로 모호함을
자아내면서 극도의 환상적인 세계를 연출했다.

 그는 차 안에서 환각에 빠져버렸지. 그는 불빛이 바뀌었다는 걸 알지 못했어.
많은 사람이 서서 응시했지. 그들은 그의 얼굴을 전에 본 적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가 상원의원 출신인지를 알아채지 못했어. ...난 너에게 환각을 일으키게
하고 싶어.

 '난 너에게 환각을 일으키게 하고 싶어'(I'd love to turn you on) 부분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환각 경험이 암시였다. 이 곡은 BBC방송국으로부터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 곡은 오케스트레이션의 웅장함과 후반부의
복잡한 사이렌소리, 차경적 등의 효과음으로 이전의 대중가요에서 접할 수
없었던 오묘함이 가득했다. 그것은 혁신이었다. 존 레논이 스스로도 완벽한
작품이라 말한 이 곡은 흔히 비틀즈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카이트씨를 위해: Being for the benefit of Mr.Kite)와 (굿모닝 굿모닝:
Good morning good morning)을 포함, 앨범의 주요 레퍼토리가 존 레논의 영감에
따른 곡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했고 또한 그만큼 그 곡들의 높은 약물암시성
때문에 많은 비난이 그에게 쇄도하기도 했다. 존은 (서전트 페퍼...)로
66년도작 (리볼버)에서부터 보여준 반제도적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
 하지만 앨범의 조타수는 폴 매카트니였다. 비치 보이스의 (펫 사운즈)에 일대
충격을 받은 그는, 중추개념(central concept)으로 수록곡을 이어가는 '컨셉트
앨범'을 구상했고 또한 혁신적인 느낌의 사운드를 창출하고자 했다. 폴의
야심은 "모든 앨범을 뛰어넘는 진정한 걸작음반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예순네 살이 될 때: When I'm sixty four) (사랑스런 리타: Lovely Rita)
(픽싱 어 홀: Fixing a hole) (그녀가 집을 떠나네) 등을 써서 앨범의 예술성을
높이는 데 기둥 역할을 했다. 심지어 이 앨범이 비틀즈의 이름을 내걸고는
있지만 실은 폴의 첫 솔로작품이라고 규정한 비평가도 있었다.
 앨범이 발표된 후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인기차트 정상 정복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만 6백만장 이상이 팔려나갔다. '타임'지는 "유럽과 미국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혁명화시키는 데 기여한 온화한 무정부주의를 놓치지 않으면서
그들은 좀더 높은 예술적 지평으로 올라갔다"고 평했다. '팝의 예술성'이야말로
(서전트 페퍼...)로 비틀즈가 얻은 최고의 수확이었다. 인기뿐 아니라 음악의
완성도 획득에 있어서도 그들은 이제 무적이 되었다.
 작곡가 노엘 로뎀은 (그녀가 집을 떠나네)를 가리켜 "슈베르트가 쓴 작품에
필적하는 곡"이라고 칭송했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평가는 그 이상으로
(서전트 페퍼...) 수록곡 전체를 슈만의 작품과 견줄 정도였다. 앨범의 높은
예술성은 곧 '로큰롤 음악도 교양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순수음악인들도
비틀즈를 들었으며 이 앨범을 음악의 진보의 측면에서 하나의 역사적
출발점으로 기록하는 아량을 베풀었다. 비틀즈에 의해 록과 대중음악은 클래식
진영으로부터의 유서깊은 멸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호평이 전부인 것은 아니었다. '뉴욕 타임즈'는 그해 67년 '현실과
동떨어진 소재로 나열된 그저 그런 작품'으로 평가절하했고 적지않은 평자들이
"시의적절함 때문에 팝음악의 기념비적 작품이 될지는 몰라도 그들의 가장
훌륭한 창작품은 아니다"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루 리드는
심지어 "들을 때마다 역겨움을 주는 앨범"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93년 12월 호주의 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언'의 데이비드 브리얼리 기자의
악의에 찬 논평은 흥미롭다. 그는 (서전트 페퍼...)에 대해 "전체적 접근이
결여된 마구잡이식 노래모음에 불과하며 그 점과 관련해서도 변변치 못한
수준"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면서도 그 대부분의 책임은 폴에게 돌렸다.
"이렇게 작품이 형편없게 된 것은 앨범에 허용된 폴의 엄청난 자유 때문이며
그에 따라 폴은 엄청난 쓰레기를 생산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많은 팝관계자들은 이 앨범을 음반기술 측면에서도 획기적 작품이라고
평하는 등 극찬을 이어간다. 팝송의 일반틀을 과감히 부수어 교차리듬(cross
rhythms)을 믹스했고 바하부터 스톡하우젠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작곡가들이 쓴
클래식 연주악기를 활용,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은 웅장함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프로듀서 조지 마틴과 함께 비틀즈는 '우주 시대'(Cosmic Age)의
무수한 전자음향 효과를 살려냈고 테잎을 역회전하거나 속도를 다양하게
조절하여 믹싱하는 갖가지 신기술을 총동원했다.
 앨범커버 자체도 전설이 되었다. 오려낸 그림들과 마릴린 몬로, 칼 마르크스,
아인시타인, 아라비아 로렌스, 에드가 알런 포우... 그리고 비틀즈 자신들의
얼굴을 모아놓은 표지는 파격적이었고, 비틀즈 철자를 마리화나 수풀에
새겨넣어 히피시대 사랑의 상장인 '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를
내비친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 앨범의 가치는 바로 자켓에서부터 시작되는 '시대의 포착'에 있었다.
재치있는 콜라쥬나 컨셉트(기획 의도) 모두가 세대간의 긴장과 '단층화된
60년대의 고독감'에 기초한 것이었다. 부조리에 대한 그들의 놀라운 민감성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시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날카롭다.
 60년대가 여기에 있고 고독, 탈출, 동양종교 그리고 마리화나, LSD가 지배한
사이키델릭 시대정서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랑과 평화의 도드라진
주창은 발견되지 않는다. 제퍼슨 에어플레인이나 그레이트풀 데드에 나타나는
사회성과 정치성이 빠져있는 것이다. 비틀즈는 그 부분까지 짚는 것은
'소화불량'을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예술성에의 집착 때문에
비틀즈는 이처럼 잃은 것도 없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이 앨범의 거의 유일한,
그리고 커다란 약점이다.


    히피 '사랑의 여름'의 정치적 표현
    제퍼슨 에어플레인 (초현실의 밑바침: Surrealistic pillow)

 She has funny cars. Somebody to love. My best friend. Today. Comin' back
to me. 3/5 of a mile in 10 seconds. D.C.B.A.-25. How do you feel.
Embryonic journey. White rabbit. Plastic fantastic lover(67년)

 당신은 사랑할 사람을 원치 않나요. 사랑할 사람이 필요치 않나요. 누군가
사랑하고 싶지 않으세요. 사랑할 사람을 찾는 게 좋을 거에요.

 제퍼슨 에어플래인(Jefferson Airplane)이 67년 히트시킨 이 (사랑할 사람:
Somebody to love)이 의도하고 있는 바는 통속적인 연애가 아니라 '사랑이
충만한 사회' 그것이었다. 노랫말이 어떤 의도에서 쓰여졌던 무관하게, 이
노래는 그 무렵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 애시베리 구역에서 가장 열렬히
애청되고 불려진 히피(Hippie)의 찬가였다.
 히피의 거점이었던 헤이트 애시베리 지역의 젊은이들은 제도권과 기성세대를
향해 의도적으로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부르짖었다. 그들은 부의 축적이
최고목표였던 기존사회의 가치는 철저히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부와 개인주의가 아닌 공동체, 경쟁이 아닌 화합, 전쟁이 아닌 평화, 그리고
사랑이 기존을 대체하는 새로운 사회의 가치들이었다. 제퍼슨 에어플레인은 퀵
실버 메신저 서비스, 그레이트풀 데드와 함께 히피의 가치를 가장 적극적으로
대변한 대표적인 샌프란시스코 록밴드였다.
 이 앨범은 그야말로 히피가 대표하는 새로운 세대의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농축하고 있는 작품이다. 차트에서 이례적 성공을 거둔 두 기념비적인 싱글
(사랑할 사람)(차트 5위)과 (화이트 래빗: White rabbit, 차트 9위)을 수록하고
있으며 67년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을 완벽하게 수놓았다.
 65년 결성된 이후 그들은 레코드 회사의 잇단 스카웃 제의를 거절하고
무료공연에 충실했다. 반제도권이라는 이념 때문이었다. (초현실의 밑받침:
Surrealistic pillow)은 그러한 제도권진입 사절의 그룹이념을 깨고
RCA레코드사와 '66년 계약 후 두번째 선보인 앨범으로, 제퍼슨 에어플레인이
공연을 통해 갈고닦은 실력이 고스란히 발휘되었다. 머릿곡 (그녀는 멋진 차를
가지고 있지: She has funny car)와 (10초 5분의 3마일을: 3/5 of a mile in 10
seconds) 등은 이미 공연에서 자주 연주한 레퍼토리였기 때문에 단번에
녹음되었다. 녹음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실황을 전달하려는 것
또한 자연적 상태를 동경한 히피들의 전형적 마음가짐이었다.
 샌프란시스코 록을 가리켜 흔히 사이키델릭 록 혹은 애시드 록으로 부른다. 그
지역 록그룹들이 모두 환각제, 특히 LSD와 깊숙이 관련을 맺은 데 기인한다.
그들이 마약을 가까이 한 것은, 그냥 좋아서가 아니라 '의식을 해방시켜주는
수단'으로도 여겼기 때문이었다. 히피와 샌프란시스코 록밴드들은 환각제를
복용하여 깨달음을 얻게 되면 '새로운 세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굳게
믿었다.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화이트 래빗)은, 바로 LSD의 예찬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란 동화의 세계에 비유되어 펼쳐진 노래였다. (네 머리를 채우라: Feed
your head)의 클라이막스 부분의 노랫말은 대놓고 환각상태의 체험으로 팬들을
안내하고 있다. 록평론가들은 이 노래를 '최우수 LSD록' 작품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앨범 수록곡 중 (디 시 비 에이 25: D.C.B.A.-25)나 연주곡 (태아의 여행:
Embryonic journey) 등도 의문의 여지없는 LSD관련 노래들이다. (디 시 비 에이
25)의 영자는 코드를 가리키며 뒤의 25라는 숫자는 'LSD 25번'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 밴드가 몸소 실천한 공동체정신은 '노래 부르기'에서 나타난다. 여걸
그레이스 슬릭, 마티 볼란, 폴 켄트너가 한 노래에서 함께 리드 솔로를 맡아
마치 합창을 하듯 듣기좋은 보컬 하모니를 구사하고 있다. 그들은 명성을
배격하여, 밴드 멤버들 가운데 누구도 튀지 않도록 '공동 노력'을
중시했다(하지만 그룹의 히트작인 (사랑할 사람)과 (화이트 래빗)은 그레이스
슬릭의 단독 보컬이었다).
 함께 기식하며 우정을 과시했던 애시드록 동지인 그레이트풀 데드의 리더 제리
가르시아(Jerry Garcia)가 음반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공동체 구현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 제리 가르시아는 이 앨범을 제작할 당시 (조형된
환상의 연인: Plastic fantastic lover)과 (내게로 돌아와요: Comin' back to
me)에서 통기타를 쳤을 뿐 아니라 대부분 곡의 음악 고문역할을 맡는 사실상의
프로듀서였다.
 60년대 말, 이 앨범만큼 샌프란시스코 록의 미학과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함께 소화시킨 작품은 없다. 1967년 록의 상황을 논할 때 그것이야말로 이
앨범의 진정한 의의라고 할 것이다.


    반 사회적 히피시대에 흐른 낭만과 추억
    마마스 앤 파파스 (네가 너의 눈과 귀를 믿을 수 있다면: If you can
believe your eyes and ears)

 Monday, monday. Straight shooter. Got a feelin'. I call your name. Do you
wanna dance. Go where you wanna go. California dreamin'. Spanish Harlem.
Somebody groovy. Hey girl. You baby. In crowd(66년)

 60년대 중반부터 전개된 '히피와 사이키델릭 시대'에 록을 꺼린 사람들은
사회성(정치성)보다는 낭만을 요구했다. 그들에겐 사회성이 강하고 과격한
연주를 하는 록밴드보다 부담 없이 귀에 솔솔 들어오는 팝그룹이면 족했다.
 마마스 앤 파파스(Mamas and Papas)는 히피시대의 그러한 음악적 허점을
정확히 파고들어 대성공한 역사적 그룹이었다. 그들은 히피 정서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은 가운데 사이키델릭 사운드 아닌 보편적 포크팝으로 그 시절
팝계에 낭만적 발자취를 남겨놓았다.
 지금 40대 이상의 중장년층 치고 66년의 빅히트 송 (캘리포니아의 꿈:
California dreaming)이 제공한 추억을 새기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러했지만 미국 본토 사람들이 이 곡에 품는 애정은 남달랐다.
거기엔 반사회적(?)인 히피 시절의 한쪽에 둥지를 튼 서정성이 있었다. 또한
영국 그룹이 활개치고 있던 시절의 미국 그룹의 노래라는 점이 더욱 미국인에게
자존심을 높여주었다. 록 기고가 릴리안 록슨은 이렇게 술회한다.
 "우린 그때 모두 영국음악에 깊숙이 빠져있었다. 이 노래를 듣게 되었을 때 난
현기증이 났다. 그 곡은 '명랑한 충격'으로 우리를 다시 홈 베이스로
되돌려주었다."
 대중적이었지만 히피정신의 숨결도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룹 이름과
성원부터가 히피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인 공동체정신을 실천하고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버린 멤버 캐스 앨리엇은 "마마스 앤 파파스란 이름은
'마마들은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파파들은 밖에 나가 고양이 먹을 것을 사오는'
식의 가정적 협동정신에 따라 지었다. 실제로 우리는 어느 정도 공동체 타입의
생활을 영위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룹의 음악조종자인 존 필립스(John Phillips)는 히피시대의 송가가 된 스콧
맥켄지의 히트송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SanFrancisco - Be sure
to wear flowers in your hair)의 작곡자였다. 존 필립스와 그의 그룹이
'플라워 파워'(Flower Power)에 소속되어 있었음을 말해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또 존과 스콧 두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의 히피 거점인 헤이트 애시베리
지역에서 열렸던 몬터리 팝 페스티벌을 주관하기도 했다. 마마스 앤 파파스도
이 축제에 참가하여 이미 획득한 명성을 더욱 굳게 다졌다.(플라워 무브먼트,
플라워 파워에서의 플라워는 단순한 꽃의 의미가 아니라 자연, 사랑, 평화를
상징하는 아름답고 강한 꽃의 의미로 쓰였다.-편집자)
 이 음반에는 기념비적 싱글인 (캘리포니아의 꿈)(차트4위)과 (월요일, 월요일:
Monday, monday, 차트1위)이 수록되어 있다. 이밖에 비틀즈곡을 완전 새롭게
해석한 (네 이름을 부른다: I call your name)가 돋보이며, (네가 가고싶은
데로 가라: Go where you wanna go) (춤추고 싶으세요: Do you wanna dance)
(헤이 걸: Hey girl) (유 베이비: You baby) 등도 특유의 보컬하모니를 살린
듣기 좋은 포크 소품들이다. (월요일...)('월요일이 너무 좋은데 월요일은
출근날이다') (네가 가고싶은...) 역시 히피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다.
 그룹의 전성기는 짧았다. 66--67년 사이에 차트 5위 안의 싱글을 여섯 장이나
냈지만 존 필립스의 약물중독, 그와 미셸 질리엄과의 이혼 등 내부의 악재가
겹쳐 68년 해산하고 말았다.
 존 필립스는 회상하기를 "우린 그 2년간 너무나 즐거웠다. 정말 남아있는
재미가 더이상 없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사이키델릭과 히피 시대의 낭만에
모든 것을 바쳤다. 이 앨범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그림 설명): 전성기의 마마스 앤 파파스.


    히피를 향한 '비트 수절파'의 조롱... 전위적인 록
    벨벳 언더그라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 앤 니코: Velvet Underground &
Nico)

 Sunday morning. I'm waiting for the man. Femme fatale. Venus in furs. Run
run run. All tomorrow's parties. Heroin. There she goes again. I'll be
your mirror. The black angel's death song. European son(67년)

 히피 이전의 비트(Beat)라는 것이 있었다. 50년대 중반 뉴욕 일대에서 싹튼 이
비트족은 미국 사회의 일반적 가치를 무시하고 샌프란시스코의 노스 비치
등지에서 하릴없이 방랑을 일삼던 '반사회적'인 부류였다.
 "그들은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위대한 나라 미국에 대해, 수백달러짜리 양복과
양장을 구입하기 위해 직장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컬러 TV나 교외의
별장 또는 파리여행 등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작가 버튼 울프는 비트를 이렇게 설명하고 그들을 부르즈와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사람들로 분석했다. 비트들은 미국 사회의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삶의
목표를 비웃으면서 공원을 거닐거나 해변의 태양 아래 누워 오후를 보내거나
멕시코에 자전거 여행을 다니곤 했다. 밥 딜런도 한때 이러한 비트
제네레이션의 생활방식에 매혹됐던 사람이었다. 그의 히트곡 (구르는 돌처럼)은
바로 비트 형태를 포크록 리듬에 이입시킨 곡이었다.
 비트족은 반문화를 주창했다는 점에서 히피의 원조가 되는 셈이었다. 50년대
말 정부의 탄압에 의해 꼬리를 내린 비트는 60년대 중반에 등장한 사이키델릭
운동에 발맞춰 부활되었다. 비트는 히피의 태동과 함께 상당수가 그 속으로
편입되었지만 히피가 갖는 사회참여적 성격을 사양하고 개인적인 비트의
순수성을 고집한 수절파도 있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는 히피의 극성기에 비트족의 본질을
그대로 지키면서 그것을 록으로 표현한 그룹이었다. 전위예술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지휘 아래 결성된 이 그룹은, 비트 시인 루 리드(Lou Reed)와
아방가르드 클래식 앙상블에서 활동하고 있던 존 케일(John Cale)을 주축으로
한 4인조 라인업으로 외롭게 비트의 정신을 표출했다.
 이 앨범은 히피와 플라워 파워(Flower Power)의 순진성을 향해 던지는, 비트의
비아냥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현실과 멀찍이 떨어져 개인적인
관심사에 묻혀있는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그만큼 개인집착적이고 파괴적이며
'전위적'이었다. 히피와 샌프란시스코 록밴드들이 '외적 사회혁명'을
추구했다면 비트와 뉴욕의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내적 개인혁명'을 추구했다.
 록역사는 이 작품을 비트의 아방가드르(전위) 정신과 록 음악이 결합된
'혁명적인' 음반으로 정의한다. 비틀즈의 (서전트 페퍼...)와 또다른 면에서
록음악의 새장을 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운드로 볼 때는 곡마다 변화가 극심해 빠른 것과 느린 템포의 곡이 뒤섞여
있는 가운데 전체적으로 생경하고 음침하다. (서전트 페퍼...)처럼 세련미가
묻어나오지는 않지만 '처음 들어보는 듯한' 극단의 신선미가 있다. 테크니컬한
정확성보다는 즉흥성이 강조되어 있고 (모피의 비너스: Vinus in furs)와 (검은
천사의 사가: The Black Angel's death song) 등에서 보이는 윙윙거리는
일렉트로닉 소음이 전위적임을 느끼게 한다.
 루 리드는 앨범의 사운드를 '부패한 30년대 베를린 풍경'으로 빗대면서 "그
거리의 한 장면을 그려보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된 곡은, 암시 수준을 넘어 과감한 노출로 비상한 관심을 모은 마약
테마의 (난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어: I'm waiting for the man) (헤로인:
Heroin) 두 곡이었다.

 헤로인은 나의 아내이며 나의 삶이야. 헤로인이 내 피에 실려있을 때, 그 피가
내 머리로 솟구칠 때, 난 죽고싶을 만큼 기분 좋아지는 것을 신께 감사드리지.
(헤로인)

 노골적인 약물의 찬양은 많은 청취자들에게 혐오감을 주었으며 플라워 파워에
이끌린 웨스트 코스트의 언론으로부터 '퇴폐적 전형'으로 매도당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이 외에도 대중가요사상 최초로 가학-피학성
음란증(세더매조키즘)을 다뤄 또한번 록계를 놀라게 했다.

 주권자여, 그를 용서하지 말아요. 여인이여, 그를 대려 그의 정신을 치료해
줘요... 거리의 불빛에 환상을 갖는 죄악을 무너뜨려요. 그녀가 입게 될 의상을
내버려요. (모피의 비너스)

 전위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듣기에 어렵지는 않다. (일요일 아침: Sunday
morning) (숙명의 여인: Femme fatale) 등은 통속적인 팝송의 맛이 서려있고,
코러스가 매력적인 (그녀가 다시 가네: There she goes again)에도 즐거운
흥취가 살아있다. 독일 출신의 금발미인으로 당시 배우였던 니코(Nico)는
(숙명의 여인) (모든 내일의 파티: All tomorrow's party) (난 너의 거울일
거야: I'll be your mirror) 등 세 곡에서 부드럽고 진지함에 넘치는 보컬을
들려줘 앨범의 대중적 친화력을 높여주는데 공헌했다. 사생활이 신비의 베일
속에 가려있던 그녀는 앤디 워홀의 적극적 추천에 따라 앨범 작업에 참여했고
당시 루 리드의 여자친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67년 (서전트 페퍼...)와 같은 해 발표되어 가장 '영향력 있는' 음반으로 함께
꼽히면서도 비틀즈의 음반과는 다르게 대중의 인정을 받는 데는 실패했다.
지금까지 겨우 40만장이 팔려나갔을 뿐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그깟
판매실적과는 전혀 무관하게 그 진보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93년 그들이 재결합했을 때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펑크 록, 아트 록, 컬리지 록, 그런지 록, 뉴웨이브 록, 미니말리스트
록(minimalist rock) 그것들 모두가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함께 시작되었다."
 바로 이와 같은 언급이 이 앨범의 가장 확실한 '가치확인'이 될 것이다.
 (사진 설명): 존 케일이 없던 초기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모습으로, 왼쪽에서
두번째가 루 리드.


    디트로이트 폭동 속에 울려퍼진 '레이디 소울'
    아레사 프랭클린 (10년간의 골든 레코드: Ten years of gold)

 I never loved a man(the way I love you). Respect. Baby, I love you.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Think. See saw. Spanish Harlem. Rock
steady. Day dreaming. Angel. Until you come back to me(That's what I'm
gonna do). Something he can feel(78년)

 1967년 여름은 '사랑의 여름'으로 결부되지만 디트로이트 흑인폭동으로 얼룩진
'비극의 여름'이기도 했다. 그해 7월 자동차공업도시 디트로이트에서는 분노한
흑인들과 정부군이 대치하는 살벌한 내전상태가 야기되었다.
 이 경천동지의 사태는 급진적 흑인운동을 폭발시킨 계기를 제공했고
흑인음악의 주류를 사회의식으로 무장된 '소울'로 변화시켜 놓았다. 사회개혁및
반전운동 물결이 거세지면서 록음악이 정치성을 띠었듯 흑인의 리듬 앤
블루스도 강성의 소울로 바뀌게 된 것이었다.
 뉴욕 할렘(64년), 로스앤젤레스 와츠(65년)에 이은 디트로이트의 흑인폭동에
때맞춰 소울은 '블랙 파워'를 상징하는 음악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백인들도
비록 흑인의 것이었지만 강한 자극을 전달하는 소울음악을 애청하기 시작했다.
67년 백인지배의 미국사회는 갑자기 흑인 소울의 광풍이 휘몰아쳤다.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이 바로 '소울의 미국사회 공습'을 가한
선두주자였다. 오티스 레딩,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샘 앤 데이브(Sam
and Dave) 등도 이 시기에 각광받은 소울스타였지만, 대중적 호응에 있어서는
아레사 프랭클린을 따를 수 없었다. 그녀는 '소울의 여왕'(Queen Of Soul)
'레이디 소울'(Lady Soul)이라는 영예로운 칭호의 주인공이었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67년 백인들에게 흑인들에 대한 존경을 요구했다. 그래서
부른 (존경: Respect)은 오티스 레딩이 두해 전 부른 것이었으나 그녀에게
'해석'이 넘어오면서 디트로이트 사태와 맞물려 의미가 배가되었다. 이 곡은
디트로이트의 빈민가가 화염에 불타오르면서 성난 흑인시위대의 찬가로까지
불렸고, 드디어는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등극했다. 이 해 아레사는 이
노래말고도 (널 사랑하는 방식으로 누굴 사랑하진 않았어: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 (당신을 사랑해: Baby I love you) (넌 날 자연스런
여자로 느끼게 해: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등 총 4곡을
싱글차트 톱10에 진입시켰다.
 이로써 그녀는 백인들에게 소울의 대변인으로 이미지를 굳혔으며, 68년 초
디트로이트 시장 제롬 카바나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이 음반은 기념비적인 67년 히트작들을 비롯, 아레사 프랭클린이 76년까지
10년간 어틀랜틱 레코드사에서 발표한 골든 레퍼토리를 모아놓은 앨범이다.
그녀의 전성기를 수놓은 소울의 걸작들을 접할 수 있으며 '소울의
다이너마이트'라는 또 하나의 별명만큼 폭발적인 그녀의 가창력을 확인할 수
있다.
 콜롬비아 레코드사에 소속되어 있다가 실적을 올리지 못한 후에 어틀랜틱사로
이적한 67년부터 그녀는 히트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생각해봐: Think)와, 차트 톱10 내에 진입하지 못했음에도 밀리언 셀러가 된
(시소: Seesaw)는 68년도 발표작이다. 차트4위까지 오른 (생각해 봐)는
아레사가 직접 가사를 쓴 것으로, 특히 노래 중 그녀가 '자유'(freedom)를
목놓아 외치는 순간을 듣는 이로 하여금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정신을 풀어해쳐 자유로와지라... 자유, 자유를 갖자. 자유, 자유, 지금 당장
자유를 달라.

 (스페니시 할렘: Spanish Harlem)은 벤 이 킹(Ben E. King)의 60년 오리지널로
아레사가 리메이크하여 71년 차트2위까지 올랐으며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록 스테디: Rock steady)도 같은 해 발표되어 9위에 올랐으며 (공상: Day
dreaming)은 72년에 차트5위를 차지했다. (록 스테디)와 (공상)은 또한
아레사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로 남의 것만 불러 히트시키는 가수라는
이미지를 불식시켰다.
 (천사: Angel)와 (그가 느낄 수 있는 것: Something he can feel)은 각각 73,
76년의 발표작으로 수록곡 대부분의 프로듀서가 제리 웩슬러(Jerry Wexler)인
것과 달리, 앞의 것은 퀸시 존스(Quincy Jones)와 아레사 프랭클린, 뒷곡은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가 프로듀스했다. 두 곡의 예외가 있긴 하나,
아레사가 60년대 말 소울의 맛과 멋을 정의하는 데 어틀랜틱의 베테랑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의 힘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아레사의 경이적인 가창력은 가스펠에 기초한 생동감으로부터 샘솟는
것이었다. 음의 높낮이, 템포, 호흡 등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도 깊은
가스펠의 필(feel)을 유지하는 능력은 도무지 사람이 하는 것으로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 록 평론가 존 랜도(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매니저가 된 사람)는 후일 '롤링 스톤'지에 "그녀는 다채로운 무드, 템포,
언어, 스타일을 포괄할 수 있음을 입증했으며, 더구나 그것의 최고 수준을
고수하고 있다"고 썼다.
 다른 사람이 이미 부른 곡을 리바이블해 철저히 자기 것으로 만든 데서 그녀의
탈월한 '곡 해석력'이 드러난다. 오티스 레딩의 (존경)과 벤 이 킹의 (스페니시
할렘)이 그 증거이다. 오티스 레딩은 아레사가 (존경)을 부른 것을 듣고 경악한
나머지 "난 내 노래를 잃어버렸어. 저 여자가 내 곡을 빼앗아갔어"라며 허탈해
했다.
 (넌 날 자연스런 여자로 느끼게 해)는 캐롤 킹과 게리 고핀 콤비의 작품으로,
다시 한번 그녀의 경계선 없는 무한한 음폭과 숨죽이는 보컬파워를 확인시켜준
걸작이다. 정말 이 노래는 우리를 자연스러운 청취자로 느끼게 한다.
 아레사는 증명했다. 잘 만들어진 악보보다 잘 부르는 가수가 위대하다는 것을.
즉 노래의 최종적인 해석자는 다름아닌 가수라는 사실을. 그리하여 그녀는
소울, 그리고 팝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 이 앨범이 78년에 발표되었는데 60년대로 분류한 것은 아레사가 60년대
소울의 부흥과 관련해 그 정점에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히피시대에 불쑥 던져진 탐미주의자의 음악
    밴 모리슨 (천체 주간: Astral weeks)

 Astral weeks. Beside you. Sweet thing. Cyprus Avenue. Young lovers do.
Madame George. Slim slow rider(68년)

 1968년 11월, 록 음악이 히피즘과 반전의 물결을 주도하며 세상을 향해 소리
높이 있을 때 그와 달리 지극히 내면적인 성격의 음반 하나가 록계에 툭
던져졌다.
 그것은 주술을 부르듯 신비로웠고 내성적인 분위기로 충만했으며 고뇌의
흔적이 가득했다. 블루스의 처연한 고통과 고대 켈트족의 흥취를 합친 듯
'고통의 향기'로 나타나 한편으로 어두웠고 한편으론 밝은 느낌이었다. 다른 록
밴드들이 이데올로기에 봉사하고 있던 시절 이 음반은 예술의 향취를 흩날리고
있었다.
 록음악 관계자들, 그 가운데서 비평가들은 이 음반을 듣고 깜짝 놀랐다.
록음악의 틀을 이탈하지 않고 이처럼 잘 만들어진 탐미적 예술작품을 일찍이
접해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즉각 이 음반의 가치를 파악했고
지금도 록평론가들 사이에서 이 음반은 '록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앨범' 중
하나로 빠짐없이 지목된다.
 작은 체구에 과묵한 밴 모리슨(Van Morrison)은 록계의 이방인이었다.
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인 그는 60년대 중반 그룹 뎀(Theme)을 조직해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를 연주했다. 블루스에 심취한 그의 포부는 미국에 가서 음악적
욕구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그룹이 해체되고 67년 솔로로 (갈색 눈의 소녀:
Brown eyed girl)를 히트시킨 그는 마침내 소망의 첫 단계를 실현, 미국의
메이저인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천체 주간)은
여기서 나온 그의 첫 앨범이었다.
 임시 연주(반주), 즉 세션은 뉴욕의 '모던 재즈 쿼텟'의 멤버 코니
케이(베이스)를 비롯해 제이 벌라이너(기타), 리차드 데이비스(베이스), 존
페인(호른), 워렌 스미스 주니어(퍼쿠션) 등 베테랑 재즈 연주자들이 맡았다.
재즈맨들이 대거 기용된 것은 록 세션맨들이 시간을 질질 끄는 데 반해 그들은
빨리 자기 임무를 끝내 '비용절감'을 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션은 놀랍게도 이틀만에 끝났다. 재즈맨들은 당시 밴 모리슨이 누구인지도
말랐고 서로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았다. 녹음시에도 모리슨은 차단된
부스(소녹음실)에서 혼자 노래했다. 심지어 재즈맨들은 그의 노랫말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천재 주간)은 그 무렵 연인이자 나중에 비밀 결혼한 미국여성 자넷
플래닛에게 바치는 곡이었다. 그는 (발레리나: Ballerina)와 (젊은 연인들처럼:
The way young lovers do)도 그녀를 위해 만들었다. 하지만 비평가의 귀가 쏠린
노래는 신비의 인물을 탐구하는 듯한 스토리송 (마담 조지: Madame
George)였다. 그것이 누군가의 추측대로 늙은 매춘부에 대한 노래인가에
관계없이 9분25초의 대곡인 이 노래는 이전 팝음악에서 찾을 수 없는
가슴저미는 환상을 제공하고 있다.
 수록곡 대부분은 밴 모리슨이 자넷 플래닛과 떨어져 3개월간 고향 벨파스트에
머물던 시절에 쓰여졌다. (사이프러스 가로수길: Cyprus Avenue)에는 그때의
체험이 투영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정서가 어릴 적 고향에서 축적된 흥분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뚜렷이 인지하고 있었다.
 이틀만에 후다닥, 그것도 가수와 세션맨과의 감정교류 없이 세련된 편곡과
연주의 흥취를 이뤄냈다는 것은 실로 경이적이다. 모리슨은 과정상의 문제점을
들어 자신이 바라던 바가 앨범에 잘 반영되지 않았다고 불평을 토로하기도
했다.
 본인의 욕심과 무관하게 이 앨범은 분명 록음악이 나아갈 예술적 지평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그것은 비틀즈의 (서전트 페퍼...) 앨범과 함께 록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록평론가 레스터 뱅즈는 이 앨범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어둠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속죄의 흔적, 타인의 고통에 대한 궁극적 연민,
그리고 순수한 아름다움과 신비스런 외경을 보호하려는 태도, 그런 것들이 이
앨범을 관통해 흐르고 있다"
 대중들은 이 앨범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해하기를 꺼려했다.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까지 이 명반은 25만장이 채 팔리지 않았다.



    시위대학생의 고통 대변한 기타천재의 블루스혁명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경험했나요: Are you experienced)

 Purple haze. Manic depression. Hey Joe. Love or confusion. May this be
love. I don't live today. The wind cries Mary. Fire. Third stone from the
sun. Foxy lady. Are you experienced? (67년)

 1967년과 68년 사이키델릭이 대중매체를 지배하고 있던 당시 미국의 젊은
대학생과 흑인들은 일제히 거리로 뛰쳐나와 반전과 사회개혁을 부르짖었다.
베트남 전쟁, 그리고 2차대전 후 처음 실시된 제비뽑기식 징병제도에 한층
분노한 젊은이들은 민주학생동맹(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 등을
결성, 잇단 거리투쟁으로 기득권자들을 위협했다. 청년들의 과격화로 인해
대중음악의 흐름도 바뀌어 대세는 사이키델릭 록에서 영, 미 기타 영웅들의
강한 하드록으로 이양되었다. 그런데 그들의 하드록은 기본적으로 흑인음악인
블루스를 토대로 하고 있었다. 경찰 최루탄에 눈물을 흘린 시위현장의
젊은이들은 피압박인종인 흑인과 입장의 유사함을 확인하면서, 블루스를
재평가하게 되었고 동시에 자신들의 과격성과 보조를 맞춘 하드록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강하고도 슬픈' 음악이 필요했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는 기타 하나로 당시 젊은이들의 이같은 고통과
투쟁성을 대변했다. 그는 고통받는 젊은이들을 위해 '슬피 우는' 기타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정말 그의 기타는 그냥 연주된 것이 아니라 울어댄 것이었다. 그는
'고통으로 눈물을 흘리는' 일렉트릭기타로 60년대 록음악을 최고 정점에
올려놓았다.
 (경험했나요: Are you experienced)는 그의 기타 사운드가 '혁명'의 소산임을
일깨워 주었다. 그런 느낌의 기타소리는 혁명적인 주법에 의해서만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펜더 스트레토캐스터' 기타만 고집한 그는 앰프와 기타
사이의 피트백(feed back)방식을 도입하여 악기 고유의 서스테인을 극복했다.
그는 피드백을 통해 앰프와 기타 사이에 '사운드의 이음' 이라는 전무후무한
효과를 창조했으며 와와페달(wahwah pedal)을 사용하여 기타 톤의 미세한
변화를 그려내는 완벽한 기타예술의 경지를 연출했다.
 (롤링 스톤)지는 이 앨범을 가리켜 "여기서 지미 헨드릭스는 펜더
스트레토캐스터를 통해, 피드백이 노래할 수 있고 앰프가 고통으로 흐느끼는
4차원의 세계로 청취자들을 초대하고 있다"고 표현하였다. 그리하여 동료
연주자 빌리 콕스의 말처럼 그는 '블루스의 혁명화'를 이룩했다.
 수록곡 모두가 일렉트릭 블루스의 고전이며 록의 클래식이다. (퍼플 헤이즈:
Purple haze) (헤이 조: Hey Joe) (불: Fire) (사랑 아니면 혼돈: Love or
confusion) (조울증: Manic depression) (써드 스톤 프롬 더선: Third stone
from the sun) 등등...
 그는 기타를 사용하여 연주에 혼을 불어넣었으며 상상력을 동반케 하는
사운드의 새로운 형식을 창조했다. 목소리는 또한 어떠한가. 보컬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던 그는 스스로 자신을 '1.5불짜리 보이스를 지닌 밀리언달러
기타리스트'라 했다. 이 앨범을 녹음할 때도 아무도 보이지 않은 별도의
소녹음실에서 노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기타와 맞물려
나름대로의 흐느낌을 간직, 그의 기우처럼 커다란 하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노랫말에는 딜런의 영향이 나타난다. 따라서 직접적인 사회참여성 가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당시 사회에 대한 비관적 시각이 두드러지며
환각체험을 표현하는 도발성이 꿈틀거린다. (퍼플 헤이즈) (헤이 조) (써드
스톤 프롬 더 선) 과 앨범 타이틀곡 (경험했어요)는 약물 관련곡이며 (사랑
아니면 혼돈) (난 오늘 살고있지 않아: I don't live today)는 딜런형 비관이
실려있다. 기타만큼 무게있는 가사와 보컬은 평론가 리처드 골드스타인으로
하여금 "스탈린을 제외하곤 지미 헨드릭스 이상으로 주의를 끈 사람은 없다."는
섬뜩한 극찬을 낳게 했다.
 마약관련 곡들, 그리고 커버에 나타난 멤버들의 복장과 타이틀 자체는 앨범의
시대적 배경이 사이키델릭이 풍미하던 때임을 말해주는 단서들이다. 이 때문에
평자들은 여기에 나타난 그의 음악을 '사이키델릭과 영^5,25^미 기타리스트들의
하드록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다. "이 앨범에 헤비메틀(하드록의 새이름)의
원형이 나타난다"는 평가가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룹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는 지미 외에 미첼(드럼), 노엘
레딩(기타)으로 짜여졌다. 스튜디오 전체를 활용하여 기타 오케스트레이션을
펼치는 데 나머지 두 사람의 도움도 결정적이었다. 그들로 인해 앨범의
'다층적인' 사운드가 완성될 수 있었다.
 지미 헨드릭스는 기타의 천재라는 말 외에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다. 실험과
도전으로 폭발적인 음을 비롯한 다양한 기타사운드 효과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분명 그는 천재였다. 70년 9월 18일 그가 죽었을 때 에릭 클랩튼은 하루종일
울었다. 스스로 기타의 신이라고 여기며 뻐기고 있던 자신에게 충격을 가한
천재의 사망이 너무도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지미 헨드릭스는 실로 일렉트릭 록기타의 듣는 방법이나 연주하는 방식을
바꾸어버린 인물이었다. (LA 타임즈)지는 90년 "그는 지금도 위대한 아티스트로
하여금 관련 일렉트릭기타 음악을 판단하도록 하는 준거점" 이라고 했다.
 도어즈의 키보드 주자 레이 만자렉은 같은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기타연주는 짐 모리슨의 가사가 그랬던 것처럼 '집합적 무의식'을
두드렸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를 천재로 추앙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진짜로 천재였기 때문이다."
 록 팬들은 그를 접한 이후로 뒤에 나타난 연주자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지금까지 그의 사운드를 낡은 기념품으로 내려앉히는
혁신적인 무엇을 창조하지는 못했다.
 (그림 설명): 지미 헨드릭스와 그룹 익스피어리언스(왼쪽이 노엘 래딩,
오른쪽이 미치 미첼)

    시대정신을 업은 흑인 최초의 사이키델릭 사운드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일어서! : Stand!)

 Stand!.  Don't call me nigger. whitey. I want to take you higher.
Somebody's watching you. Sing a simple song. Everyday people. Sex machine.
You can make it if you try(69년)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and The Family Stone)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나 미국에서는 활동 당시 최고 인기를 누렸고 팝역사에서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요한 그룹이다. '록의 황금기'인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반까지 활동한 그들은 이 기간에 다섯 곡의 차트 톱10 싱글을 발표하며
대중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얻었다. 
 록평론가들이 이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흑인 그룹 최초의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구사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흑인 가수나 그룹하면 '모타운식
소울' 또는 '리듬 앤 블루스'가 연상되기 마련인데 사이키델릭 음악을
내걸었다는 것은 시선을 끌 소지가 충분했다.
 사이키델릭 시대에 사이키델릭을 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지만 우선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음악은 강한 친화력을 내뿜었고 그러면서도
독특했기에 남다른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와와 기타사운드에 이펙트를 입혀
만들어낸 사이키델릭 무드는 분명 유별난 데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록 역사의 주요그룹'으로 자리잡게 해준 것은 그들의 메시지에
이입된 시대정신이었다. 그들을 논할 때 활동기간, 흑인그룹이라는
출신성분말고도 샌프란시스코라는 활동무대는 매우 중요하다. 그 시기의
샌프란시스코라 하면 사이키델릭과 '반 사회적' 히피의 본거지를 뜻하는
특수성이 있지 않은가.
 그룹의 리더인 실베스터 스튜어트(Sylvester Stewart) 는 샌프란시스코 일대의
유명 방송국 디스크 쟈키였다. 방송일을 하면서도 그는 시대상황을 직시하고
있었다. 음악 및 악기감각의 탁월함을 살려 팝그룹을 조직, 사회혁명의 정신을
설파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그가 전부 쓴 그룹 노래에 흑인으로서의
평등요구와 자기결정의식이 돌출 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넌 너무 오래 앉아 있었지. 영원히 주름만 질 거야. (일어서! :Stand!)

 노력하면 할 수 있어. 좀더 세게 밀어봐. 좀더 깊이 생각해봐. 일부러 하려
하지마. 실망스러워. 자 모두 함께! (노력하면 할 수 있어: You can make it if
you try)

 (니그로라 부르지 마. 흰둥이들아: Don't call me nigger. whitey) 에서는
제목이 노랫말의 전부일 만큼 줄기찬 반복으로 백인 지배세상에 삿대질을 하고
있다. 13분 47초의 긴 연주곡 (섹스 기계: Sex machine)와 (난 너를 황홀케
하고 싶어: I want to take you higher)는 각각 곡조와 노랫말로 자신들이
사이키델릭 그룹임을 천명한다.(당연히 실베스터 스튜어트는 마약을 과도하게
복용, 나중 치유불능의 상태에까지 도달한다).
 (롤링 스톤)지는 그들을 "사이키델릭한 자기 표현과 제임스 브라운의 고도로
훈련된 리듬 추진력이 결합된 그룹"이라며 "그것은 경이적인 결론이었다"고
일컬었다.
 '반문화'적 시대를 관통하는 순수하고 유토피아적인 주장은, 간간이 보이는
대중성이 강한 음악과 함께 그룹의 음악이 범상치 않음을 말해준다.
 이 앨범은 69년 발표된 그들의 3집이며 6집인 (폭동 진행 중: There's a riot
going on)과 함께 그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앨범에서 (매일의 인간:
Everyday people) 은 차트 1위를 차지했고 타이틀곡 (일어서!)는 22위에
랭크되었다.

    악기예술의 진수...헤비메틀에 불을 당기다
    크림 (불의 바퀴:Wheels of fire)
 White room. Sitting on top of the world. Passing the time. As you said.
Pressed rat and warthog. Politician. Those were the days. Born under a bad
sign. Deserted cities of the heart. Crossroads. Spoonful. Train time.
Toad(68년)

 사이키델릭 록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록이 정치적 경향을 드러내고 있던 것과
달리, 영국의 그룹들은 록의 음악성을 향한 끝없는 탐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들은 비틀즈가 세워놓은 예술적 전통을 유지하면서 미국의 블루스를 혼합시켜
나갔고, 그 속에서 '악기예술의 진수'를 캐내는데 열중했다.
 크림(Cream)은 그 가운데 최강의 전력을 갖춘 팀이었다.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 '드럼의 마왕' 진저 베이커, '베이스의 귀재' 잭 브루스는 67년
악기연주에 관한 한 자신들이 지상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고 이 그룹을
결성했다.
 그들은 유명그룹 출신의 명연주자 집단이라는 록사상 최초의 '슈퍼그룹'답게
스튜디오가 아닌 무대에서 진가를 발휘했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빠르고
즉흥적인 연주실력을 뽐냈다. 다른 밴드들이 비틀즈 모방에 광분하고 있을 때
그들은 정교하고도 파워넘친 현장의 록을 추구해간 것이었다. 일반 그룹과는
다른 이러한 것들로 인해 크림은 곧바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팝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들은 블루스록에 재즈를 도입한 진보적인 록을 선보이면서 한편으로는
'헤비메틀 최초의 원형' 을 제시했다. 67년 이후 영국에는 비틀즈 추종자들
못지않게 크림을 모방하려는 수많은 무리들이 생겨났다.
 (불의 바퀴)는 그들의 마지막 앨범으로 전작 (디스라엘리 기어즈: Disraeli
Gears)와 함께 레드 제플린을 위시한 무수한 그룹들에게 이정표를 제시해준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무대'에 상응하는 음악을 들려주진 못했다지만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던 연주의 충격을 이 음반은 전달하고 있다.
 더블인 이 앨범의 한 장은 스튜디오 녹음이었고 다른 한 장은 샌프란시스코
필모어 공연장의 실황을 담았다. 전자는 우수한 팝넘버를 끼워넣어 상업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특징. (하얀 방:White room)은 블루스 록, 그리고 팝이
절충된 완벽한 예였다. 이 곡은 빌보드 싱글차트 톱10에 랭크되는 히트를
기록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지: Those were the days ,  메리 홉킨 곡이
아님)와 (불길한 징조로 태어나: Born under a bad sign)도 팝적인 색채가
엿보이고 있다.
 록의 곡 만들기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과시하려는 듯 (프레스드 랫 앤 워톡:
Pressed rat and warthog)은 이색적인 사이키델릭 록이었고 (시대가 시대인
만큼) (네가 말했듯이: As you said)는 무드있는 테크노 록이었다. 연주의
도사들 답지 않게 테크노를 구사했다는 점에서 이 앨범을 평가절하하는
팝관계자들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헤비메틀로서 보다 순수한 (디스라엘리
기어즈)에 찬사를 돌리기도 한다.
 다른 한장은 (교차로: Cross roads) (스푼풀: Spoonful) (기차시간: Train
time) (토드: Toad) 등 총 4곡의 실황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들 연주의
진면목이 나타난다. 언제나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는 에릭 클랩튼이지만 여기서
그는 기타야말로 베토벤의 표현처럼 '미니 오케스트라'임을 증명했다. (토드)의
경우는 진저 베이커의 드럼이 돋보이는 곡인데 도저히 멈출 것 같지 않은
빠르고 절묘한 즉흥적 드러밍을 펼쳐보이고 있다. 베이스가 '도사'의 손에
들어가면 어떤 연주가 전개되는가, 그것이 이 라이브 레코드에서 잭 브로스가
맡은 몫이었다.
 잭 브루스가 노래를 했지만 크림에는 리드싱어가 중요하지 않았다.
악기지상주의가 가져온 자신감 때문이거나 '믹 재거처럼 뛰어다니고, 짐
모리슨처럼 보이고, 로드 스튜어트처럼 소리내는' 자신들 같은 천재가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크림과 이 앨범의 또 다른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림 설명): 크림의 면면들. 왼쪽부터 진저 베이커, 잭 브루스, 그리고 에릭
클랩튼.

    비극이 깃든 최강그룹의 창작예술 완결편
    비틀즈 (화이트 앨범: the Beatles: White album)
 
 Back in the USSR. Dear prudence. Glass onion. Obladi oblada. Wild honey
pie. The continuing story of Bungalow Bill.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Happiness is a warm gun. Martha my dear. I'm so tired. Blackbird. Piggies.
Rocky Raccoon. Don't pass me by. Why don't we do it in the road. I will.
Julia. Birthday. Yer blues. Mother's nature's son. Everybody's got
something to hide except me and my monkey. Sexy Sadie. Helter skelter.
Long long long. Revolution 1. Honey pie. Savoy truffle. Cry baby cry.
Revolution 9. Good night(68년)

 비틀즈의 무한한 능력을 뽐낸 음반이다. 총 30곡이 수록된 활동 당시 그들의
유일한 더블앨범으로 비틀즈의 천재성을 확인시켜주는 데 이 앨범 이상가는
작품은 없다.
 천재성이란 다름아닌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콤비의 곡 쓰는 능력을 가리킨다.
그만큼 이 앨범은 두 사람이 만든 좋은 곡들의 모음집으로서 가치를 발휘한다.
(오브라디 오브라다: Obladi oblada) (나는 원하리: I will) (줄리아: Julia)
(행복은 따뜻한 총: Happiness is a warm gun) (소련에서: Back in the USSR)
(생일: Birthday) (블랙 버드: Black bird) (내사랑 마타: Matha my dear) 등
어떤 곡도 정작 싱글로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존, 폴 콤비의 일정한 틀을 깨는
다채로운 선율감각에 힘입어 당시 다른 가수 어떤 싱글보다 인기를 누렸다. 이
점 때문에 (리버 소울) 이후 가장 우수한 곡들로 수놓은 앨범이라는 평을
듣는다.
 다만 (리버 소울)이 비틀즈의 그룹 결집력이 강했을 때 나온 작품이라면, 이
앨범은 공동체의식이 크게 떨어진 가운데 4명의 멤버들이 제각각 실력을 과시한
음반이라는 데 중요한 차이가 있다. 실제로 비틀즈 4명 모두 자기가 쓴 곡을
녹음할 때 나머지 멤버들은 백업 뮤지션, 이를테면 세션맨으로 전락해버렸다고
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비틀즈라는 그룹의 앨범이 아니라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4명의 옴니버스앨범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하다.
 이 앨범을 녹음하던 68년 봄은 비틀즈에게 중대한 변화가 초래된 때였다. 그
전해인 67년 7월 '제5의 비틀' 인 관리자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약물과용으로
사망해 버린 것이었다. 매니저의 죽음으로 비틀즈의 헤게모니는 폴 매카트니로
넘어갔고(브라이언이 살아있었을 때는 존이 강했거나 적어도 존과 폴이 힘의
균형을 이뤘다) 이에 따라 폴과 나머지 멤버들 간에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이로써 그룹의 구속력은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었다.
 또한 이 무렵 비틀즈는 인도의 신비주의 명상모험에 그다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실망한 채 짐을 챙겨 돌아온 뒤였다. 그들이 존경했던 인도의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의 탐탁치 않은 여신도와의 관계를 목격하고는 그간의 환상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이리하여 이 앨범에는 인도에서의 경험과 이후의 환멸에 관해
쓴 (디어 프루던스: Dear prudence) (섹시 새디: Sexy Sadie) (럭키 라쿤:Lucky
Racoon) 등의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앨범 제작의 일등공신은 리더십을 장악한 폴 매카트니였다. 그는 (블랙 버드)
(내사랑 마타-마타는 그의 애완견 이름) (나는 원하리) (오블라디 오블라다)
(소련에서) 와 같은 뛰어난 멜로디의 수작들을 써 '천재적 팝예술가'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늘 그래왔지만 앨범의 '듣기 좋은' 곡들은 거의
그가 작곡한 것들이었다. 어느 하드록 그룹의 노래보다 하드한(시끄러운)
사운드를 들려줄 (헬터 스켈터: Helter Skelter)를 만들어 부른 이도 그였다.
 예술성을 추구한 나머지 폴이 잃을 수밖에 없는 사회성은 존 레논이 보완하고
있다. 그룹보다는 필생의 여인 요코와의 사랑에 빠져든 존 레논은 잠재된
의식이 폭발하면서 이때부터 사회의식이 깃든 곡을 내놓기 시작해 바로 직전
싱글로 내놓았던 (혁명: Revolution)을 색다르게 편곡한 (혁명 1편) (혁명
9편)으로 그같은 '비틀즈의 약점'을 커버했다. 연주곡인 (혁명 9편)은 비틀즈곡
가운데 가장 길고(8분 15초) 가장 시끄러운 곡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행복은
따뜻한 총) (글래스 오니온: Glass onion) (나는 지쳤어: I'm so tired)에서
초기곡들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강한 자기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조지 해리슨은 당시 우정을 싹틔우고 있던 에릭 클랩튼의 기타솜씨를 빌린 (내
기타가 부드럽게 울 때: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를 비롯, (롱 롱 롱:
Long long long) (사보이 트러플: Savoy truffle) (피기즈: Piggies) 등 총
4곡을 선보여 '존과 폴만이 전부가 아님'을 인정받았다. 링고 스타도 (나를
지나쳐버리지 말아요: Don't pass me by)를 작곡, 마침내 송라이터로 데뷔했다.
 희대의 살인범 찰스 맨슨이란 자는 70년대 연쇄살인을 저지르기 전 이 앨범의
수록곡 (헬터 스켈터) (피기즈) (혁명) 등을 반복적으로 청취했다고 한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긴 하지만 곡스타일과 노랫말이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라 하겠다.
 비틀즈가 설립한 애플렐코드사 제작 첫 앨범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것이었다. 600만장의 판매고와 앨범차트
1위라는 높은 실적은 일단 길조의 스타트처럼 보였다.
 하지만 첫발을 내디딘 후 펼쳐진 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비틀즈의 종막'으로
가는 길이었다. 걸작앨범이라는 영광 뒤에는 이러한 불길한 징조가 도사리고
있었다.

    60년대말 록의 핵분열로 나타난 재즈록 명반
    블러드 스ㅇ 앤 티어즈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Child is father to the
man)
 
 Overture. I love more than you ever know. Morning glory. My days are
numbered. Without her. Just one smile. I can't quit her. Meagan's gypsy
eyes. Somethin' goin' on. House in the country. The modern adventures of
Plato. Diogenes and Freud. So much love/ underture(69년)

 1960년대의 불꽃이 스러져갈 무렵 록음악은 핵분열을 일으키며 다양화의 길로
들어선다. 이때 일렉트릭 록블루스에 대한 반동으로 각광받은 포크, 컨추리
외에 클래시컬 록과 재즈 록(Jazz rock)이란 장르가 출현한다. 60년대 말
태동하여 70년대 초반 팝계를 뒤흔든 이 음악들은 메시지를 가급적 멀리하고
차분함과 더불어 대중음악 밖의 장르와 결합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했다.
 이 가운데 재즈록은 말그대로 '록+재즈'의 형태로서 '혼합' 이란 의미의
퓨전(fusion)의 움직임이었다. 악기로 볼 때 기타, 드럼의 록악기와 트럼펫,
플뤼겔 혼, 트럼본과 같은 금관악기의 공존체제로 가동되는 스타일이었다. 이와
같은 특성 때문에 재즈록은 브라스 록(brass rock)이라 불리기도 했다.
 시카고(Chicago)와 블러드 스ㅇ 앤 티어즈(Blood sweat and tears)가 록계에
재즈록이라는 새 단어를 탄생시킨 주역들이었다. 두 그룹 중에서 비록 인기
면에서는 뒤졌지만 재즈록의 원조라는 영예를 지키며 팝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주인공은 블러드 스ㅇ 앤 티어즈였다. ('피땀과 눈물' 이란 그룹명이
매우 인상적이다.-편집자)
 그들의 데뷔앨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가 '첫 재즈록 밴드의 첫 재즈록
음반'으로 영광을 누린다. 음악을 듣기 이전에 그룹의 구성원만 살펴봐도
이들이 재즈록을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가 있다. 그룹의 주축은 알
쿠퍼(키보드)와 스티브 카츠(기타)로, 이들은 바비 콜롬비(드럼)와 함께 그룹
'블루스 프로젝트' 출신의 록뮤지션이었다. 그러나 짐 피엘더(베이스)를 제외한
나머지 랜디 브레커, 제리 웨이스, 딕 홀리건, 프레스 립슬러스는 모두
재즈뮤지션으로 트럼펫, 트럼본, 플뤼겔혼, 색소폰 등 금관악기를 연주했다.
록진영 4인과 재즈진영 4인이 수적평등을 이루며 결합했음이 나타난다.
 리더 알 쿠퍼(Al Kooper)가 대부분의 곡을 쓴 이 앨범은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인원과 장비의 우세가 빚어낸 '오케스트라 사운드' 속에 재즈록의 광채를 담은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모닝 글로리: Morning glory) (내 목숨은 얼마남지
않았어: My days are numbered) (그녀를 떠날 수 없어: I can't quit her) 등
수작들이 실려있으며 (그녀 없이는:Without her), 랜디 뉴먼의 오리지널 (단
한번의 미소:Just one smile), 게리 고핀과 캐롤 킹 콤비 작품인 (너무 많은
사랑: So much love) 등 재즈록으로 재해석한 곡들도 새로운 맛을 선사하고
있다. (서곡:Overture) 과 (마무리곡: Underture)을 앨범 시작과 끝에 배치,
한편의 작품으로 일관성을 부여하려는 흔적 또한 앨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 앨범의 꽃은 6분에 가까운 대작 (나는 당신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당신을 사랑하지요: I love you more than you'll ever know) 일
것이다. 블루스 프로젝트란 그룹 출신답게 블루스의 짙은 내음이 퍼져 나오는
이 곡은 우리 정서에 맞는 그 진득한 때문에 국내 다운타운가에서도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이 곡은 블루스의 여왕 재니스 조플린의 격정적 삶을 소재로
했다).
 블루스의 분위기가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은 앨범이 나온 때인 68년이 '블루스
시대'였기 때문이다. 추세를 놓쳐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웅지와 다르게 앨범의 판매실적은 좋지 않았고 히트싱글도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곧바로 알 쿠퍼가 떠나버렸고(데이비드 클레이튼 토마스로
교체) 트럼펫 주자 랜디 브레커, 제리 웨이스도 작별을 고해 류 솔로프, 척
윈필드로 바뀌었다. 그룹의 지주인 알 쿠퍼가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블러드 스ㅇ
앤 티어스는 흔들리지 않고 이듬해인 69년 세 곡의 밀리언 셀러를 기록, 마침내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 앨범은 대중정서를 장악하기엔 그 재즈록 퓨전의 시도가 한 템포 빨라
실패했는지도 모른다. 대중음악의 경우 너무 앞서는 것은 때로 실패를 부른다.
더러 훗날 명반이라는 영광으로 보상받기는 하지만.

    록의 왕성한 식욕... "이제 그 대상은 클래식"
    무디 블루스 (지나간 미래의 날들: Days of future passed)
 The day begins. Dawn. down is a feeling. The morning. another morning.
Lunch break. peak hour. The afternoon. forever afternoon. time to get
away. Evening. the sun set. The night. nights in white satin(68년) 

 클래식과 록의 융합, 어찌보면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물과 기름의 사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서로 조화를 이루었을 때 가장 완벽한 형태의 팝
음악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60년대 말 영국에서 등장한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 뮤지션들은 바로 이 문제, 즉 클래식과 록 음악의
융합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시도했고, 그 결과 클래식 음악도
팝음악화할 수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 후 70년대
들어와서는 굳이 프로그레시브 아티스트가 아니더라도 여러 팝가수에 의해
클래식의 많은 명곡들이 팝음악화되었고 한걸음 더 발전해서 이제는 저명한
클래식 오케스트라나 성악가들이 팝음악을 연주하거나 노래한다.
 1967년 첫선을 보인 무디 블루스(Moody Blues)의 (지나간 미래의 나날들: Days
of future passed)은 바로 클래식과 록을 본격적으로 융합한 첫 번째
팝음반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한 가수에 의해 유명 클래식곡의
멜로디를 인용해 만들어진 히트곡은 있었으나 무디 블루스처럼 한 장의 앨범
전체를 창작에 의한 클래식과 연계시켜 만들어낸 작품은 이 앨범이 최초라고 불
수 있다. 특히 이 앨범은 단일곡이 모인 음반이 아니라 앨범 전체의 곡들이
어떤 유기적인 관계를 가진 것으로 컨셉트(concept) 앨범의 '완벽한 효시'격
음반이었다.
 1967년 당시 영국의 데카 레코드사에서는 클래식을 록그룹에 연주시켜
클래식과 록의 접목을 시도하려고 마땅한 록그룹을 찾고 있었다. 이때 마침
멜로트론(mellotron)이라는 악기를 사용, 새로운 음의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던
무디 블루스를 발견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무디 블루스는 본격적인 클래식과
팝의 융합을 시도하게 되었다.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에서 악상을 빌려와
록과 클래식의 접목을 시도한 이 작품은 무디 블루스의 음악 프로듀서 토니
클락의 총지휘로 클래식과 팝의 완전한 조화를 이루기 위해 피터 나이트 지휘
런던 페스티발 오케스트라가 협연했다. 열흘간에 걸쳐 마치 라이브음반을
녹음하는 것과 같은 형태로 레코딩되었다.
 날이 밝아오는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를 7개의 부문으로 나누고, 여기에 신세계
교향곡의 멜로디를 인용해 그룹의 멤버인 저스틴 헤이워드를 비롯 존 로지와
레이 토마스가 작곡을 주로 맡았다. 이 작품은 무디 블루스의 생동감 넘치는 록
연주와 런던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의 클래시컬한 사운드가 서로의 장, 단점을
보완해가며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무디 블루스는 과거에 대한 향수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며
미래의 가망성에 대해서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바쁜 현대인의 하루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옴니버스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각각의 곡이 하나의 주제를 나타내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이
주제들이 앨범 곳곳에서 함수관계에 놓이면서 하나로 조합되어 나타나, 앨범
전체가 하나의 통일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무디 블루스는 이후의 앨범에서도
각각의 곡들이 하나의 유기적인 관계를 맺도록 앨범을 구성하였는데, 이러한
면은 이들 이후에 등장한 여러 프로그레시브 그룹들에게 하나의 규범이 되었다. 
 그리고 (지나간 미래의 나날들)을 더욱 빛내주었던 것은 그룹의 멤버인 그램
애지의 서정적인 시낭송을 꼽을 수 있다. (하루의 시작: The day begins) 중
서곡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밤: The night) 부분에서 낭송되어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이 서정시는 음반을 록오페라의 경지로까지 끌고 가려했던
그룹의 흔적이 엿보인다.
 이 앨범의 대표적인 곡이라면 7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하얀 비단에
쌓인 밤들:Nights in white satin)이다. 아직까지도 국내에서 올타임
리퀘스트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곡은, 처음엔 영국 차트에서만 명함을
내밀었지만 5년이 흐른 1972년에 미국 차트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전형적인
지각 히트인 셈이었다. 당시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오른 이 곡은 미국의
어는 라디오 방송 DJ가 자신의 프로그램 시그널로 사용하면서 차츰 알려지기
시작해 대중들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또한 그들의 골든 레퍼터리 (화요일
오후:Tuesday afternoon) 역시 싱글로 발표되어 인기를 모았다(68년 차트
24위).
 이 앨범은 프로그레시브 부문 최초의 컨셉트 앨범으로, 그리고 클래식과 록
음악의 선을 무너뜨리면서 팝 음악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그러나 그것은
록의 클래식에 대한 인사였지 화학적인 결합의 수준은 아니었다. 완벽한
'클래시컬 록'이 아닌 무드있는 팝음악일 뿐이었다.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지나야 했다.

    클래시컬 록으로서의 초대, 프로그레시브 시대의 개막
    킹 크림슨 (크림슨 왕의 궁전에서: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21st century schizoid man(including "Mirrors"). I talk to the wind.
Epitaph(including "March for no reason" and "Tomorrow and tomorrow").
Moonchild(including "The dream "and" The illusio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including "The return of the fire witch" and "The dance of
the puppets") (69년)
 
 우드스탁 제전으로 절정을 치달았던 록의 응집력은 70년대 개막과 함께 급격히
해체되면서 여러 다양한 '혼합형의 록'으로 가지를 치며 뻗어 갔다.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라 시각도 달라져버린 당시의 록 청취자들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록이 요구되었다. 달갑지 않은 월남의 전쟁터에 끌려가고
켄트주립대학의 참상에 좌절하며 알타몬타의 비극에 위축된 그들은 실업률의
증가(69년 3.5%에서 70년 6.2%로), 달러시세의 폭락, 연방정부의 공공지출삭감
및 신용대출 제한 등으로 나타난 또 한차례의 시련('경기후퇴')을 맞아야 했다.
암담한 사회현실과 경기침체의 공포가 그들을 엄습하면서 그들이 듣는 음악
스타일도 갑자기 바뀌어버렸다.
 그들의 가라앉은 기분과 그에 따른 '보수적 정서'를 반영한 음악 가운데
하나가 클래시컬록(classical rock) 이었다. 포크, 컨추리록, 재즈록, 글램록
등과 함께 록의 핵분열로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클래시컬록은 그런 보수화의
분위기를 업고 각광받기 시작했다.
 클래시컬록은 말 그대로 록과 클래식을 합친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그 양식을
본격 선보인 록그룹은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이 이끈 영국그룹 킹
크림슨(King Crimson) 이었다. 로버트 프립은 60년대의 불꽃이 꺼져가던 69년
말 클래식기타의 테크닉과 록사운드를 결합한 매우 실험적인 앨범 (크림슨 왕의
궁전에서)를 발표했다.
 그와 그렉 레이크(베이스), 마이크 가일즈(드럼), 이언 맥도널드(키보드),
피트 신필드(신서사이즈)는 이 앨범으로 록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클래식이
무난히 서로 용해될 수 있음을 알리며 클래식컬록의 패턴을 제시했다.
 65만명의 관객이 운집한 런던 하이드 파크 공연에서 롤링 스톤즈를 백업하며
팝계에 등장한 그들의 이 데뷔일범은 신선한 충격을 야기시켰다. 클래식과 록의
절충이라는 단순한 묘사를 뛰어넘어 거기에는 명암, 고저, 깊이, 시적인 가사에
의한 '색채'가 존재했다. 청취자들은 그것이 색채있는 음악(colorful
music)임을 느끼며 가장 앞서있는, 즉 진보된 사운드라는 사실 또한 확인했다.
그것이 이른바 프로그레시브록(progressive rock)이란 것이었다.
 (묘비명:Epitaph), (난 바람에게 말한다:I talk to the wind), 그리고
타이틀곡 (크림슨 왕의 궁전에서)는 록 팬들의 진보적 사운드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다. 특히 (묘비명) 은 심오한 가사와 웅장한 연주로 우리 팝
팬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안겨주었다.

 아무도 규칙을 마련해놓지 않을 때 지식은 치명적인 벗. 내가 본 인류의
운명은 바보들의 손아귀에 있지. 내가 깨어지고 부서진 길을 따라 기어갈 때
혼란이 묘비명이 될 거야.

 킹 크림슨은 여기서 미래의 정신적 타락에 대한 우려를 표출한다. 그 엄숙한
비관은 동시에 그들이 60년대를 깡그리 잊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들은 영국에서 싱글로 발표해 고전이 된 곡 (21세기 정신 분열증 환자:21th
Century schizoid man)에서도 미래의 불안, 파괴를 비관적으로 묘사했다. 이
곡에는 60년대말 미국을 강타한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영향이 엿보이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60년대 정서에 매달려 있었다. 두 발을 60년대 땅에 박고 두
손을 70년대를 향해 치켜올린 것이었다.
 그 70년대는 킹 크림슨의 시야처럼 외형적 진보와 부피 팽창 뒤에 갈등과
혼란이 숨어있었다. 프로그레시브의 선구자인 킹 크림슨은 다가올 70년대가
진보의 시대이면서 한편으로 긴장의 시대임을 간과하고 있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노래한 음유시인의 순수한 절규
    닐 영 (모두들 이곳이 아무데도 아닌 것을 알고있다: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

 Cinnamon girl.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 Round and round. Down by
the river. The losing end. Running dry(Requiem for the Rockets). Cowgirl
in the sand (69년)

 록계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새 음악 '컨추리록'(country rock)은 1968년
그램 파슨즈(Gram Parsons)와 '미국의 비틀즈'라 불린 버즈(Byrds)가 함께 만든
(로데오의 연인: Sweetheart of the Rodeo)으로 꽃피기 시작한다. 같은 68년은
또한 비슷한 컬러였으나 너무 일찍 싹이 나는 바람에 꽃을 피우지 못한 신화적
그룹 버팔로 스프링필드(Buffalo Springfield)가 사라진 해이기도 했다. 버팔로
스프링필드가 시도한 컨추리록, 이를테면 '포크를 기초로 컨추리 색채를 융합한
록'은 70년대 들어와서야 비로소 보편화될 수 있었다.
 버팔로 스프링필드의 두 주역은 해산 후 '잔재'를 주워 서로 다른 길을
모색하면서 컨추리록에 기여했다. 스티븐 스틸즈(Stephen Stills)와 닐 영(Neil
Young)이 바로 그들이었다. 스틸즈는 곧바로 버즈 출신의 데이비드
크로스비(David Crosby), 할리스(Hollis) 멤버였던 그래이엄 내시(Graham
Nash)와 함께 '크로스비, 스틸즈 앤 내시'를 결성했고, 닐 영은 솔로활동에
들어갔다.
 (모두들 이곳이  아무데도 아닌 것을 알고있다)라는 제목의 이 앨범은 69년
봄에 발표된 닐 영의 두 번째 작품이다. 크로스비 스틸즈 앤 내시가 어쿠스틱
사운드를 바탕으로 고음을 잘 사영하고 변화가 심한 약간 빠른 템포의 '목소리
록'을 한 반면, 그는 자신의 백밴드와 함께 하드한 일렉트릭 사운드를
추구했다.
 닐 영의 매력은 하드록을 방불케하는 강렬한 기타연주와 흐느끼는 듯한
하이톤의 보컬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써 '어디엔가 숨어버렸지만 반드시
존재하는' 인간의 진실성을 찾으려 했다. 그가 처해있던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고귀한 것은 지고지순한 마음일 것이었다. '도덕의
붕괴'라는 문제점을 안고있던 그 무렵 닐 영의 이같은 간구의 메시지는 일대
경종을 울렸다.

 이봐요, 모래 위의 카우걸이여. 여기는 당신 마음대로인 곳인가요. 내가 잠시
머무를 수 있나요. 그리고 당신의 아름다운 미소를 볼 수 있나요. 남편 성을
따게 될 만큼 나이가 들어 수많은 사람이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똑같지
않은가요. 이런 게임을 당신이 하고싶도록 만드는 건 당신 속의
여자기질이겠지요. (모래 위의 카우걸: Cowgirl in the sand)

 10분이 넘는 이 곡은 (강가 아래에서: Down by the river) (런닝 드라이:
Running dry)와 함께 이 앨범의 중추를 이룬다. 이 세 곡은 앨범의 가치를
드높은 '고감도' 트랙으로 제고시켜, 전세계 록 청취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우리나라에도 마찬가지여서 70년대 내내 다운타운가의 음악다방에는 이 세
곡의 신청엽서가 끊이질 않았다. 닐 영의 이후 앨범들로는 (골드 러시 이후:
After the gold rush), 너무도 유명한 (황금의 마음: Heart of gold)이
수록되어 있는 (풍작: Harvest), (포 스트롱 윈즈: Four strong winds)가
들어있는 (컴즈 어 타임: Comes a time) 등도 각광을 받았지만, '트로이카'
레퍼토리가 담긴 이 앨범만큼 우리 골수팬들의 귀를 사로잡지는 못했다. 당시
닐 영의 팬들은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지성인들이 대부분인 것도 특기할
만했다.
 비올라연주(바비 노트코프)에 의해 처연함이 고조된 (런닝 드라이)는 그의
백밴드 그룹이었던 '로케츠(Rockets)를 위한 진혼곡'이란 부제를 달고있다.
로케츠는 소멸된 후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로 명칭이 바뀌는데, 이 앨범은
전설이 돼버린 백밴드 크레이지 호스와 만든 첫 앨범이기도 하다.
 닐 영은 세련미를 갖춘 스타일리스트로 정평이 나있다. 그의 노래가
지성인들의 애청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 의해 닐은 '고독한
음유시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거친 들판을 외롭게 걸으며 타는
목마름으로 진실과 순수를 찾아헤매는 닐 영의 참된 멋이 이 앨범에 있다.

    비틀즈 해산의 미니 오페라적 파티
    비틀즈 (애비 로드: Abbey Road)

 Come together. Something. Maxwell's silver hammer. Oh! darling. Octopus's
garden. I want you. Here comes the sun. Because. You never give me your
money. sun king. Mean Mr. Mustard. Polythene pam. She came in through the
bathroom window. Golden slumbers. Carry that weight. The end (69년)

 비틀즈는 소실점에 다가가고 있던 막바지 상황에서도 또 하나의 명반을
추가한다. (애비 로드)는 비틀즈란 그룹이 희미하게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때의
마지막 기획작품이었다.(먼저 기획된 (렛 잇 비)가 출시는 이보다 늦어
기록상으로는 마지막 발표작이 된다). 이 앨범은 비틀즈의 해산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 더할 나위없이 소중한 의의를
부여받는다.
 노래 곳곳에서 해산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너는 너의 몫을 주지않고 있어:
You never give me your money) (황금의 오수: Golden slumbers) (그 짐을
져라: Carry that weight) 등은 이미 제목에서부터 '종말의 날'을 차분히
준비하는 인상을 풍긴다. 이 앨범의 마지막 곡이 (종극: The end)인 것도
우연이란 느낌을 배제해버릴 만큼 암시적이다.

 그리고 결국 네가 받은 사랑은 네가 한 사랑과 같게 되는 거야.

 그것은 비틀즈를 두고 하는 얘기였으며 "우리는 60년대의 대변이었다"라고 한
폴 매카트니의 언급을 전제하면 '60년대와 비틀즈의 관계'를 빗댄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어찌 됐든 이 앨범은 (태양이 오네: Here comes the sun)부터 마치 메들리처럼
쭉 연결되는 B면에 매력이 존재한다. 그것은 이제껏 어느 그룹도 시도해보니
않은 한 편의 '팝 오페라'였다.
 비틀즈를 좋아하는 평자들은 B면을 통해 (서전트...) 앨범 이후 또 한번의
'거룩한 시도'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늘 시대정서와 조류를 한 템포 앞서가는
비틀즈의 천재적 창조력에 감탄하고야 만다.
 폴과 그의 음악적 후원자인 프로듀서 조지 마틴(George Martin)이 주체가 되어
기획을 도맡았다. 비틀즈의 리더로 확고히 떠오른 폴은 앨범의 기획을 비롯해
녹음 및 반주구성 등 제작의 모든 것을 주도했다. B면의 핵심으로서 '천상의
우아한 선율조화'의 밑거름인 발군의 작곡재능도 모조리 그가 창출한 것이었다.
그는 보컬마저 이 앨범에서 최고 상태를 과시하고 있다.
 B면에 존 레논이 쓴 (선 킹: Sun king)과 (폴리텐 팸: Polythene pam)이
기어있긴 하지만 그것은 중간다리 역할에 그치고 마는 수준이다. 존은 (그녀는
너무 무게있어: She's so heavy)로 알 수 있듯이 요코의 품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 갔고, 지신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모여라: Come together)와 같은
사회지향적인 노래에 치중했다. 하지만 (모여라)는 싱글차트 1위를 차지, 존이
건재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존 스스로도 B면을 평가저하했지만, 폴이 마법을
발휘한 B면 전체보다 (모여라) 하나가 더 가치있다고 보는 비평가들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폴은 폴다웠고 존은 존다웠다면, 상대적으로 조지는 가장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그가 쓴 (섬 씽: Something)과 (태양이 오네: Here comes the sun)는
이 앨범의 어떤 곡보다도 흡인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그만큼 대중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았다. (모여라)와 한 싱글로 묶여서 발표된 (섬씽)은 차트 3위까지
진출했다.
 조지의 이러한 비상은 그가 해산 후, 간판이었던 존과 폴에 못지 않은 작품을
내게 되리라는 예측을 가능케 했다. 그에게 해산이 갖는 의미가 다름아닌
'태양'이라는 점에서 희비의 쌍곡선이 그려진다. 노블티 송 (옥토퍼스의 정원:
octopuss's garden)을 쓴 링고 스타도 자신의 작곡솜씨가 괄목상대하고 있음을
알렸다.(novelty song이란 '유행을 포착한 노래'란 뜻.-편집자)
 비평가 폴 에반스의 묘사처럼 비틀즈의 종말은, 시대정신이 그들의 창작에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60년대가 막을 내리면서 찾아왔다. 70년대에 들어 이미
비틀즈는 역사와 전설이 되어 있었다.

    "컨추리로 돌아가자" 미국 역사의 음악적 스케치
    밴드 (the Band)

 Across the great divide. Rag mama rag. 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 When you awake. Up on cripple creek. Whispering pines. Jemima
surrender. Rockin' chair. Look out Cleveland. Jawbone. The unfaithful
servant. King Harvest(has surely come) (69년)

 이 앨범은 60년대 말 새 기류를 형성하며 급부상한 컨추리록(country rock)의
결정판으로서 의의를 인정받는다.
 양심을 내세운 청년세대의 움직임이 집단행동화되며 과격한 양상을 띤 60년대
말은, 사회적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혼란한 시기였다. 69년의 그 유명한
우드스틱 페스티벌은 젊음의 사회, 정치적 요구와 록 음악이 의기투합한
한마당이었다.
 록이 그처럼 현실사회를 향해 강경한 주장을 토하고 있었을 때, 한쪽에서는
그에 반하여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는 복고적 움직임이 한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것이 컨추리록이었다.
 (타임)지는 1970년 컨추리록을 "미국의 가장 불안정한 시기에 대한 총체적
반작용으로서의 한 징후"로 분석했다. 이를테면 순수하고 고결한 과거로
회귀함으로써 부패한 현실사회로부터 도피하려는 음악적 접근방식이라는
것이었다.
 그룹 밴드(the Band)의 이 앨범이 그러한 새로운 음악사조를 대변하며
컨추리록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앨범이 발매된 시기가 69년 9월로 우드스탁
제전이 막 끝나고나서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밴드의 멤버들은 다른 록 가수들이
반전과 평화를 외치고 있던 시점에, 페스티벌이 열린 지역으로부터 그리
멀지않은 곳에서 세상에 초연한 자세로 이 앨범을 녹음했다. 남들이 현실을
적극 논하고 있을 때 지척에서 그들은 과거를 얘기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 앨범은 곧 60년대의 격렬한 일렉트릭 록이 시들고 70년대는 컨추리록이
주도하는 시기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그러나 그것이 꼭 반동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방식이 달랐지, 그 가치체계는 상통했기 때문이었다. 일렉트릭 록은
현실참여, 컨추리록은 현실도피의 길을 각각 취했을 뿐, 현실사회를 왜곡된
것으로 보는 시각은 동일했다.
 수록곡 가운데 싱글로 발표된 (잡목 숲의 시내에서:Up on the cripple
creek)는, 제목에서 이미 현실과 유리된 컨추리의 경향이 드러난다. (밤마다
올드 딕시를 떠올리네: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은
남부연맹(남북전쟁 때 남부동맹에 참가한 11개 주의 연합)의 한 군인이 패배를
체험하며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해있는 상황을 스케치했다. 구슬픈 목소리로
음산함을 전달하는 이 곡은 슬픔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비극미의 적정이다. 이
노래는 또한 포크의 여왕 존 바에즈가 불러 전미 베스트 셀러를 기록하기고
했다.
 (로키산맥을 넘어: Across the Great Divide)와 (랙 마마 랙: Rag mama
rag)에는 프론티어 시절 어메리카인들의 꿈과 좌절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젊은 시절엔 포부가 있었지. 의지를 새겨놓기도 했어. 그러나 마음이 변했지.
더 나은 것을 위해... 난 그녀를 죽였지. 로키산맥 너머로 모자를 집어들고 말
타는 거야. 신부도 구하고. (로키산맥을 넘어)

 마지막 곡 (풍작이 들 거야: King Harvest)는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의
메시지를 걷어버리려는 듯 풍요를 약속한 미국을 묘사하고 있다.

 풍작이 들 거야. 가뭄의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지. 거기에 난 대부분을
의지하지. 비 내리게 하는 자여, 말을 듣고 있나요. 부디 농작물이 자라나게
하소서. 내가 밑바닥에 처해 있는 한...

 이 앨범에는 근세사를 살았던 미국인의 정서가 농축되어 있다. 로키산맥,
캘리포니아, 클리블랜드, 남부 미시시피 등과 같은 지명이 폭넓게 등장하면서
역사적 사실성도 확보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을 얘기하고 있는 까닭에
앨범제작을 주도한 리더 로비 로버트슨(Robbie Robertson)은 앨범타이틀로
'미국'을 고려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비평계가 이 앨범을 주목하는 것도 바로 자기들의 과거사를 되살리게 하는
친밀감 때문이다. 그만큼 음악뿐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다분히 '미국적'인
음반이다. 이로 인해 우리 팝 팬들에게는 다소 친밀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70년대

 1. Janis Joplin (Pearl)
 2. Paul Simon and Art Garfunkel (Bridge over troubled water)
 3. Crosby. Stills. Nash and Young (Deja vu)
 4.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Cosmo's factory)
 5. John Lennon (Plastic Ono Band)
 6. Cat Stevens (Tea for the tillerman)
 7. Santana (Abraxas)
 8. Allman Brothers (Live at the Fillmore East)
 9. James Taylor (Sweet baby james)
10. Carole King (Tapestry)
11. T. Rex (Electric warrior)
12. Marvin Gaye (What's going on)
13. Rolling Stones (Sticky fingers)
14. The Who (Who's next)
15. Derek and The Dominos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song)
18. Don McLean (American pie)
19. Led Zeppelin (Led Zeppelin 4)
20. David Bowie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21. Deep Purple (Machine head)
22. Elton John (Goodbye Yellow Brick Road)
23. Mike Oldfield (Tubular bells)
24. Stevie Wonder (Talking book)
25. Pink Floyd (Dark side of the moon)
26. Bob Marley (Live!)
27. Jeff Beck (Blow by blow)
28. Kraftwerk (Radioactivity)
29. Queen (A night at the opera)
30. Bruce Springsteen (Born to run)
31. Boston (Boston)
32. Eagles (Hotel California)
33. Fleetwood Mac (Rumours)
34. Sex Pistols (Never mind the bollocks)
35. Movie Soundtrack (Saturday night fever)
36. Eric Clapton (Slow hand)
37. Billy Joel (The stranger)
38. Steely Dan (Aja)
39. Jackson Browne (Running on empty)
40. Barclay James Harvest (Gone to earth)
41. Pink Floyd (The wall)

    백인 블루스 시대를 밝힌 '못난 처녀'
    재니스 조플린 (진주: Pearl)

 Move over. Cry baby. A woman left lonely. Half moon. Buried alive in the
blues. My baby. Me and Bobby McGee. Mercedes Benz. Trust me. Get it while
you can(71년)
 
 68년과 69년의 팝계에는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유행이 퍼졌다. 흑인의
블루스를 백인이 노래하고 연주하는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이른바 화이트
블루스(white blues)였다.
 미국의 남부지방(특히 텍사스) 출신의 젊은 가수와 연주자들이 그 움직임을
주도했다. 그들은 당시 크게 유행한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에 의존하지 않는 순수
블루스를 전하면서 '블루스 중흥기'를 일구어냈다.
 자니 윈터, 지지 탑, 스티브 밀러, 캔드 히트, 올맨 브라더스 등이 팝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 블루스 리바이벌 시기에 활약한 면면들이었다. 그러나
텍사스 출신의 작고 '못생긴' 처녀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을 빼놓고
화이트 블루스를 얘기하기란 불가능하다.
 텍사스 포트 아더에서 태어난 재니스 조플린은 어렸을 적부터 못난 외모
때문에 놀림만 받고 자라난 수줍은 계집애였다. 오스틴 소재의 텍사스
대학재학시절에도 그녀는 학생들 사이에서 '캠퍼스의 가장 못생긴
남자'(남자라는 것이 더 모욕이었다)로 뽑힐 만큼 견디기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성장기의 이런 기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녀는 텍사스대학뿐 아니라 자신을 따돌린 고향 텍사스와도 이별하고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히피의 수도'였던 거기서 그는 사이키델릭 밴드 인 빅
브라더 앤 홀딩 컴퍼니(Big Brother and the Holding Company)의 리드싱어로
활약했다.
 그러나 그녀의 지향점은 사이키델릭 록이 아닌 남부의 블루스였다. 그녀는
블루스에 살고 블루스에 죽기고 작정했다. (블루스에 생매장되어: Buried alive
in the blues)는 그녀의 블루스에 대한 투신의 징표였다.
 블루스는 그녀에게 있어서 감정의 출구였다. 지금까지 겪은 고통과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울부짖는 그녀의 목소리에 실려 마치 급류의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도저히 가수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여성지 (보그)는 "재니스 조플린, 그려가 입을 떼는 순간
노래부르기의 역사는 사기임이 드러났다"라고 썼다. 이 앨범에 수록된 (무브
오버: Move over)와 (반달: Halfmoon)에서 거칠고 쉰, 때로는 '음란'하기까지
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재니스 조플린은 그 고통에 찬 블루스로 당시 거리투쟁에 나선 젊은이들의
안타깝고 괴로운 심정을 대변했다. 미 역사상 가장 대학생들의 시위가 많았던
그 때, 젊은이들의 심정이 다름아닌 블루스였다. 지미 핸드릭스가 기타로
청춘들의 투쟁성을 반영했다면 재니스는 목소리로 그것을 대신해준 것이었다.
 그녀는 67년 6월 전설적인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 무대와 68년 빅브라더 앤
홀딩 컴퍼니의 앨범 (칩 드릴즈: Cheap thrills)로 일역 스타덤에 오른다.
솔로로 독립하면서 블루스에 혼신을 다한 그녀는 이때 블루스 싱어로서뿐
아니라 '무절제한 향락주의자'로도 이름을 날리게 되면서 비극을 자초한다.
그녀는 공공연히 무수한 남자와 성관계를 갖고 있다고 밝혔으며(실제 그랬다)
폭음과 환락을 마구 즐겼다. 자신의 인생을 망치게 될 것이라는 주위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술에 흠뻑 취하는 것이야말로 못난 내게
알맞는 행위"라고 응수하곤 했다.
 그녀의 행각은 절망의 기분, 그 이상이었다. 한 친구는 "그녀는 가장 행복한
순간에마저 불행했다."라고 증언한다. 마침내 그녀는, 70년 헤로인 중독사로
한많은 생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인생 막판 그녀는 비교적 행복한 상태였다. 세스 모르건이란 버클리
대학생과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녹음작업을 마친 앨범 (진주: Pearl)에 만족해
했다. 이 앨범에는 소울풀(soulful)한 발라드의 기조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
무렵 주변의 권고를 수용해 무지막지한 블루스열창 일변도에서 벗어나
소울발라드를 시도, 팬층의 확대를 꾀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앨범에서 가장 잘 알려진 트랙은 (나와 바비 맥기: Me and Bobby McGee),
컨추리 작곡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만들어준 이 곡은 그녀가 죽고나서
곧바로 싱글차트 정상을 정복했다.
 포트 아도 학창시절 이래 그녀는 고통받는 영혼이었다. 그녀는 섹스행각,
약물중독 등 행복한 여자 흉내를 통해 지신의 불행을 가리고 또 쫓아버리려
했다. 블루스의 역할도 바로 그것이었다.
 자유기고가 필립 제이콥스는 90년 저서 (로큰롤 천국)에 이렇게 적었다.
 "그녀의 고통스런 외침은 단지 노래부르기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그것은
귀신쫓기 의식이었다."
 그녀는 요동치는 라이브에서 언제나 최고였다. 그러나 라이브가수로서의
파워를 실감나게 살린 그녀의 앨범은 없다. 죽기 직전 작업을 끝낸 유작앨범
(진주)만이 비교적 거기에 근접해 있을 뿐이다.

    혼란한 시대를 얘기한 정돈된 팝음악
    사이면 앤 가펑클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Bridge over troubled water)

 Bridge over troubled water. El condor pasa. Cecilia. Keep the customer
satisfied. So long, Frank Lloyd Wright. The boxer. Baby driver. The only
livng boy in New York. Why don't you write me. Bye bye love. Song for the
Asking(70년)

 사이먼 앤 가퍼클(Simon and Garfunkel)이 팝의 본고장인 구미에서 인기나
영향력 측면에서 가수서열상 열손가락에 낀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비틀즈,
롤링 스톤즈, 밥 딜런 등 기라성 같은 거목의 반열에 끼기는 어렵고 기껏해야
밥 딜런의 우산 아래 성장한 인기 절정의 포크팝 그룹으로 분류될 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의 사정은 판이하게 다르다. 70년대를 걸쳐 국내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고 무수한 곡들이 골든 팝송으로 사랑받았으며, 음반도매상
집계에 따르면 비틀즈보다 더 많이 팔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70년대로
국한할 때 국내 팝가수 랭킹 1위는 단연 사이면 앤 가펑클이었던 셈이다.
 이 앨범에는 그 명 듀엣의 골든팝송 3곡이 실려있다. 바로 타이틀곡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Bridge over troubled water), (엘 콘도 파사: El condor
pasa)그리고 (권투 선수: The boxer)이다. 국내에서 방송금지된 빠른 템포의
(시실리아: Cecilia)와 (안녕 내사랑: Bye bye love)도 만만치 않게 인기를
누렸다. (엘 콘도 파사)의 경우는 영미 팝송에서 맛보기 힘든 남미적인 정취가
오히려 우리 취향에 가까워 애청되었고, 에벌리 브라더즈(Everly Brothers)의
오리지널을 각색해 자신들의 '음악적 뿌리'를 시사한 (안녕 내사랑)은 경쾌한
로커빌리의 통기타 리듬으로 우리에게 어필했다. (복서)는 폴 사이먼이 녹음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등 가장 신경써 만든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국내에서도
가히 '팝의 스탠다드'로 인식될 만큼 널리 불리워졌다.
 그러나 가장 성공적이었으며 비평가의 찬사가 쏠린 곡은 뭐니뭐니 해도 (험한
세상...)이었다. 우정과 자기희생이라는 사회적 테마를 담고 있는 이 곡은 마치
가스펠을 연상시키는 종교적인 경건함으로 클래식을 방불케하는 수준을
과시했다. 아레사 프랭클린, 에리브 프레슬리를 비롯한 많은 대 가수들이 이
곡을 부르기 위해 덤벼들 정도였다. 훌륭한 곡을 쓴 폴 사이먼(Paul Simon)의
능력도 능력이었지만 이 노래에서 아트 가펑클(Art Garfunkel)의 보컬은 가히
성악가도 두려워할 만큼의 빼어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곡조, 가사, 보컬 등
그야말로 대중가요의 3박자가 완벽히 어우러진 곡이었다.
 그러나 수록곡에서 나타나는 두 콤비의 조화와는 반대로 당시 두 사람의
관계는 갈등을 겪고있는 시점이었다. 음악적 견해차이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았으며, 앨범 만드는 순간에도 가펑클은 영화 '캐치
22'의 로케차 4개월간 멕시코로 떠나기도 했다. 가펑클은 훗난 "이 앨범을
마치면 오랫동안 다시 일하지 못하게 될 것임을 사이먼도 알고, 나도 알고
있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안녕, 프랭크 로이드 라잇: Solong Frank Lloyd
Wright)과 (왜 내게 편지 쓰지 않는거지: Why don't you write me)는 그런 두
사람의 파트너십이 곧 깨질 것이라는 느낌을 시사하는 곡이었다.
 (롤링 스톤)지에 따르면 (험한 세상...)은 가펑클이 사이먼에게 "가성을 잘
쓰는 네가 부르지 그래"하며 권했으나 "아냐, 너를 위해 만든 곡이야"라고 말해
가펑클이 응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곡을 누가 부를 것인가를 두고 두
사람이 다투었다는 후문도 있다. 나중 빅히트하고 나서 사이먼은 자신이 직접
부르지 않은 것에 대해 땅을 치며 후회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 사이먼이
가펑클을 위해 만든것이 아니라 아레사 프랭클린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기록도
있다.
 결국 듀엣은 깨지고 말아 이 앨범을 끝으로 둘은 각각 솔로활동에 들어갔다.
(험한 세상...)을 부르면서도 사이먼 앤 가펑클은 '험한 관계의 다리'가 될
마음가짐은 없었던 것이다.

    웨스트 코스트 컨추리록의 집대성
    크로스비, 스틸즈, 내시 앤 영 (데자 뷰)

 Carry on. Teach your children. Almost cut my hair. Helpless. Woodstock.
Deja vu. Our house. 4 + 20. Country girl. Everybody I love you(70년)

 60년대 말 증폭된 사운드의 에너지 록이 주름잡고 있었을 때 캘리포니아에서는
록의 방향이 어느 한쪽으로만 흐르고 있었다. 컨추리 록이었다.
 관객들에게 어느 때보다 크고 격정적인 록의 경험을 전한 그룹 후(the Who)나
엠시 5(MC5)와 달이, 캘리포니아 진영의 일부 음악인들은 그러한 음악의 분노와
광기를 싫어하는 수요층이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그쪽의 팬들은 60년대
초반의 조용한 포크에 변함없는 애정을 지킨 사람들, 아니면 세심한 음악적
기호로 인해 일렉트릭 열기를 거부한 사람들이었다.
 69년에 이르러 크로스비, 스틸즈 앤 내시가 등장하면서 미국 서해안쪽의
음악과 음악팬들은 활기를 찾게 되었다. 그들은 이른바 웨스트코스트
사운드(West Coast Sound)라 불리는 유니크한 사운드로 록음악 조류의 변화를
재촉했다.
 그들 음악의 으뜸 요소는 캘리포니아와 비치 보이스가 유산으로 물려준 '보컬
하모니'였다. 지미 헨드릭스의 재산이 일렉트릭 기타였다면 그들은 목소리를
살림밑천으로 내세운 것이었다. 비치 보이스의 위세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던
상황에서 크로스비, 스틸즈 앤 내시는 팝대중 관심의 초점을 '목소리의 무한한
가능성'쪽으로 다시 돌려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목소리야말로 신이 내려준
최고의 악기임을 천명했다.
 하지만 그들은 컨추리 또는 포크 그룹이 아닌 엄연한 록 그룹이었다. 그것도
거물 록그룹이었다. 데이비드 크로스비는 버즈, 스티븐 스틸즈는 버팔로 스프링
필드, 그래이엄 내시는 할리즈 출신으로 이미 록에 정통한 사람들이었다. 70년
이 트리오에 역시 버팔로 스프링필드의 기타리스트였던 닐 영이 가세하면서
그룹의 록사운드는 한층 강화되었다.
 이 앨범은 그렇게 하여 짜여진 크로스비, 스틸즈, 내시 앤 영이 발표한 유일한 
스튜디오 앨범이자 기념비적인 명작이다. 일렉트릭 기타에 의한 블루스록과
정반대에 위치하는 어쿠스틱 사운드와 보컬 하모니가 이 슈퍼 그룹과 이 음반이
갖는 생명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록 팬들의 주목을 받게된 또 하나의
키포인트는, 이후에 등장하는 제임스 테일러나 캐롤 킹과 같은 포크가수와는
다르게 '60년대 록의 향취와 정신'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음반에 있지는 않지만 그들은 70년대 포크 싱어송라이터와 달리
켄트주립대학 사태를 다룬 정치적 성향의 (오하이오: Ohio)를 발표, 결코
현실에 무관심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이 앨범에도 그 곡처럼 직설적이지는
않지만 현실과 유착된 작품들이 적지않다.
 대표적인 노래는 69년8월에 있었던 젊음의 향연 우드스탁제전을 기린
(우드스탁: Woodstock)일 것이다.

 그는 길을 따라 걷고 있었지. 난 어디고 가는 건가 울었어. 예스더의 농장으로
가 로큰롤 밴드에 합세하러 간다더군. 정신을 해방시키러 말야. 우리는 최초로
'한 사람들' 이야. 우리는 황금이야.

 영화 '멜로디'에도 삽입된 (네 자식들을 가르치라: Teach your children)는
변화의 가장 궁극적 대안이 교육임을 암시하는 곡이다. 당시 가치의 총체적
전환을 열망했던 히피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히피의 찬가로도
불리워졌다.

 너는 홀로서야 해. 살아가는 너의 방식을 가져야만 해. 이제 네 자신이 되는
거야. 왜냐하면 과거는 단지 안녕이니까. 네 자식들을 잘 가르쳐야해. 아버지
건강은 서서히 나빠지고 있어.

 흡사 닐 영의 솔로작품인 듯한 (어찌할 수가 없어: Helpless)는 아무리 외쳐도
가망없어 보이는 사회상에 절규하듯 희망의 상실을 조래하고 있다.
 닐 영은 많은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룹이 전에 보여주었던 순수성을
약간 파괴하는 역기능의 요소를 발휘하기도 했다. 사실 트리오 특유의 보컬
하모니가 그의 무거운 일렉트릭 록기타에 다소 묻혀버리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유명 그룹의 멤버가 모였으면서도 '개성 발현'보다는 '하나의
스타일'로 만족했던 그룹의 균형이 흔들려버린 것이었다. 스티븐 스틸즈도
"(데자 뷰)에서 어느 정도 해냈지만 닐 영이 나타나면서 전체적 힘의 밸런스가
바뀌어버렸다"라며 그 점에 동의했다.
 이 음반은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고급 록 팬들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너의 자식을 가르치라) (어찌할 수가 없어) (우리 집: Our house) (계속하라:
Carry on)가 우리 팬들의 골든 애청곡이었다. 이 곡들은 어쿠스틱 분위기와
보컬 하모니, 그리고 투명한 록기타 사운드에 민감한 우리 정서와 일치, 유독
사랑을 받았다. 이 앨범은 최근 CD로 발매되었다.

    월남전을 바라보는 미국 젊은이들의 소리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코스모의 공장: Cosmo's factory)

Ramble Tamble. Before you accuse me. Travelin'band. Ooby dooby. Lookin'
out my back door. Run through the jungle. Up around the bend. My baby left
me. Who'll stop the rain.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 Long as I can
see the light (70년)

 이 음반은 1970년 확대일로의 월남전 소용돌이 속에서 발표되었다. 여기에는
당시 미국 젊은이들의 전쟁에 대한 시각과 그것이 그들에게 미친 환경적 정서가
각인되어 있다.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제비뽑기식 징병은 미국
청년들에게 공포와 불안을 몰고왔고 이로인해 그들 사이에선 반전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우리에게 CCR이란 약칭으로 잘 알려진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은 그런 젊은이들의 심정을 예리하게
포착해 이 앨범에 담아냈다.
 (누가 비를 멈추게 할 것인가: Who'll stop the rain)는 전쟁에 대한 강한
회의가 표출된 곡으로 여기서 비는 바로 월남전을 상징했다. (정들을 뚫고
달려라: Run through the jungle)는 아예 전쟁 현장으로 감상자를 데려가
총소리의 악몽을 전하는 또 하나의 강도 센 반전가요였다.
 이런 현실에 처한 젊은이들의 사고와 행위가 정돈되어 있을 리 없었다. 비탄과
탈출심리, 그리고 그런 세상에 살기를 사절함으로써 잉태된 떠돌이꾼 정서가
돌출된다. (램블 탬블: Ramble tamble) (순회하는 밴드: Travelin' Band) (굽은
길을 지나: Up around the bend)에 그런 기분이 스케치되어 있다.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은 이런 테마를 결코 무거운 연주로 실어 나르지
않았다. 그들의 사운드는 단순하고 부담없는, 경쾌한 로큰롤이었다. 그룹의
중추인 존 포거티(John Fogerty)는 컨추리풍의 초기 로큰롤인 로커빌리에
시카고 블루스를 화학적으로 결합, 매우 독특한 사운드를 일궈냈다. 그는
그것을 미국 남부지방의 흙냄새가 물씬한 토속음악이라하여 스왐프 뮤직(swamp
music)이라고 이름붙였다. 로커빌리로 인해 전체적으로 경쾌한
비트음악이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블루스가 밑바닥에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처럼 블루스 밴드임을 이 앨범에 명확히 못박고 있다.
(우비 두비: Ooby Dooby) (연인이 떠났다오: My baby left me) ( 네가 날
꾸짖기 전에: Before you accuse me) (풍문으로 들었소: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 등 4곡은 기존의 블루스를 리메이크한 것들이다. (연인이
떠났다오)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데뷔곡 (괜찮아요 어머니: That's all right,
mama)의 원작자인 블루스맨 아더 크러덥의 작품이며 (풍문으로 들었소)는 마빈
게이의 68년 넘버원 히트곡이다. 11분이 넘는 이 곡은 그룹이 해체된 이후인
76년 싱글로 발표되어 차트에 등장했다.
 존 포거티는 대중의 정서뿐 아니라 음악적 취향도 꿰뚫고 있었다. 대중들은
쉽고 듣기편한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을, 이 때문에 '쉽게' 포장된 그들의
음악은 대중들에게 쉽게 먹혀들어갔다.
 이 음반이 나올 즈음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은 비틀즈가 부럽지 않을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포거티 자신도 이 작품을 '모든 면에서
정점' 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시대를 반영했고 음악의 완성도를 획득했으며
대중들의 인정도 받는 등 이 앨범은 모든 부문에서 성공했다. 
 이 앨범에는 3장의 빅히트 싱글이 들어있다. 그것은 모두 양면으로 되어
있었는데 (순회하는 밴드) (누가 비를 멈추게 할 것인가)는 차트 2위, (굽은
길을 지나) (정글을 뚫고 달려라)는 4위, (뒷문을 주시하며: Lookin' out my
back door) (빛을 볼 수 있는 한: Long as I can see the light)은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가운데 (누가 비를 멈추게 할 것인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커다란 인기를 누렸다. '반전가요의 꽃'이 된 이 노래는 78년 
영국 '프리 시네마 운동'의 기수였던 카렐 라이즈 감독의 영화에 소재와 제목을
제공하기도 했다. (정글을 뚫고 달려라)와 (순회하는 밴드)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81년과 82년 전미 순회공연의 레퍼토리가 되어 다시 인기를
모은바 있다. 미국의 현실을 까발리기로 유명한 그가 그들의 노래를 부른 것은
당시 그들의 노래가 자기 것처럼 미국의 현실을 조명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의 멤버는 존 포거티 외에 그의 친형인 톰
포거티, 스튜 쿡, 도우그 클리포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앨범 타이틀의
'코스모'는 스튜 쿡의 별명이다.

    70년대 서방체재의 모순에 진지한 접근
    존 레논 (플라스틱 오노 밴드: Plastic Ono Band)
 
 Mother. Hold on. I found out. Working class hero. Isolation. Remember.
Love. Well well well. Look at me. God. My mummy's dead(70년)

 비틀즈와 60년대를 함께 간 존 레논(John Lennon)의 모든 것을 투명하게
그려낸 앨범이다. 순수한 그의 영혼이 담겨 있고 솔직하며 강렬한 메시지가
전편에 번득인다. 어디까지나 자신을 발가벗기는 1인칭 다큐멘터리이지만
그것은 세상을 향한 절규이기도 하다.
 이 솔로 음반이 나온 시기는 비틀즈 해산 직후인 70년, 그가 비틀즈 말기부터
드러내 온 급진적 사고를 사랑과 평화라는 모토 아래 노골적으로 실천에 옮기던
때였다. 그는 이무렵 이피(Yippie)라는 이름의 신좌익과 손잡고 일련의 정치적
이벤트에 적극 가담했다. 그를 이 같은 투사로 몰고 간 이념적 토대가 바로 이
앨범에 노출되어 있다. 그리하여 닉슨 정부에게 위험인물로 인식되어 비자연장
신청이 기각되고 치열한 법정투쟁이 전개되는 등 존의 계속된 고난을 예약하고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포크풍의 걸작 (노동계급의 영웅: Working class hero)에서 그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들추어내고(그들은 가정에서 너를 기분 상하게 하고 학교에서
너를 때리지. 네가 똑똑하면 너를 증오하고 명청하면 무시하지), 상황의 돌파를
위해 노동계급의 영웅이 될 것을 천명한다. 이어지는 노래 (소외: Isolation)와
(기억하라: Remember)도 이와 연장선상에서 파악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단편들이다.
 존은 자신이 부모없이 자란 유년기의 불행도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왜곡이 가져온 결과로 보았다. 자전적 스토리인 (어머니: Mother)나
(우리 어머닌 죽었지요: My mummy's dead)가 앨범의 처음과 마지막에 배치된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 같은 수미상관이 이 작품의 컨셉트
앨범으로서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러한 각성 뒤에는 자연히 과거와의 작별이 따랐다.

 헤어 크리시나는 아무것도 아냐. 아무 할 것도 없으면서 너를 미치게 하지. 네
눈을 꿰뚫어볼 교사는 없지. 난 알았어. (난 알았어: I found out)

 신과 현실사회의 우상도 과거의 얘기일 뿐 지금의 그에게는 무의미한
허상이다. (신: God)에서 레논은 '신이란 우리의 고통을 측량하는 개념일 뿐'
이라고 못박는다.
 그는 이 곡을 통해 '난 이제 다시 태어났다'고 선언한다. 존의 변모된
'현재'는 이처럼 존재규명과 자각을 통해 획득된 것이다. 이 앨범에 일관되어
흐르는 테마는 바로 성찰이요, 깨우침이요, 앎이다.
 꽤나 눈총을 받았던 오노 요코와의 사랑조차도 통속적인 눈먼 사랑이 아닌
'앎'을 토대로 한다. (사랑: Love)이란 노래에서 묘사되었듯, 사랑은 레논에게
'우리가 무언가 될 수 있음을 아는 것' (Love is knowing we can be)을
의미했다.
 노랫말과 그것이 전달하는 바가 무엇이든 관계없이 음악적으로도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수록곡은 모두가 의심할 여지 없는 수작들이다. 어느 곡도
인기차트의 상위권을 점령하진 못했으나 어떤 노래들보다 널리 알려졌으며
대중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어머니)나 (사랑)은. 바로 뒤 발표된
또다른 걸작 (이매진: Imagine)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그 시절 손꼽히는
리퀘스트 팝송이었다.
 (사랑)과 더불어 (노동계급의 영웅)은 아름다운 멜로디의 노래로서, 레논이
필생의 라이벌 폴 매카트니 못지않은 비범한 선율감각의 소유자임을 말해주고
있다. 종소리로 시작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광기서린 (어머니)또한 레논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골든 레퍼토리이다.
 록음악 해설가 로버트 힐번은 이 앨범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역사와 도덕 시간에 배운 위인들의 어떤 저서보다도 진실을 전해주는 다시없는
소중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이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감상자'들의 몫이다.

    조용한 시대에 우뚝 선 한 기인의 진솔한 주장
    캣 스티븐슨 (소작인을 위한 홍차: Tea for the tillerman)

 Where do the children play?. Hard headed woman. Wild world. Sad Lisa.
Miles from nowhere. But I might die tonight. Longer boats. Into white on
the road find out. Father and son. Tea for the tillerman (70년)

 그리스 핏줄을 이어 스티븐 조르지오라는 이름으로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캣
스티븐스(Cat Stevens)는 간구의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었다. 그는 70년대 초반
싱어송라이터 붐의 개화에 크게 기여한 타고난 작곡가겸 가수 중 한 사람으로
록역사에 기록된다.
 그러나 그는 내면세계의 탐구로 흐른 딴 싱어 송라이터들과 달리 60년대 말
(난 총을 가질거야: I'm gonna get me gun)를 발표하는 등 과격한 입장을
노출하기도 했으며, 누구보다도 센 액센트로 자신의 강경한 입장을 개진한
노래를 했다. 그는 60년대의 정서가 와해된 시점에서도 고집스럽게 '사회에
부탁의 말씀을 잃지 않으며' 자신의 시각을 밀고 나갔다.
 그의 묘사는 감성적이기도 했지만 직설적이었다. 노래 스타일도 기타를 강하게
내세우면서 보컬 코러스를 강조하는 좀 독특한 스타일이었으며 동양적 분위기를
풍겼다. 노랫말과 곡 스타일이 모두 별났으며 미국사람들이 판치던
싱어송라이터들 가운데 거의 유일한 영국인이란 점부터가 특이했다.
 이 앨범은 70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그의 모든 것이 아로새겨진 그의 최고
걸작이다. 그는 이 앨범으로, 폐결핵에 걸려 잠시 은둔에 들어간 뒤에 다시
돌아와 막연한 팝스타로부터 진지한 싱어송라이터로 변신했음을 천명했다.
 그의 비범한 가사는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되는 (실제적인 여자: Hard headed
woman), (잔인한 세상: Wild world), (슬픈 리자: Sad Lisa) 3곡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기서 캣 스티븐스는 한 여자의 인생역정을 통해, 순수성을
파괴시키는 자본주의가치 지배의 사회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무사고적인 황폐한
인간들을 리얼한 언어로 공박하고 있다.

 난 실제적인 여자를 고대하고 있어. 나를 나 자신으로 만들어줄 여자를. 그
여자를 찾게된다면 아무도 필요하지 않을거야. (실제적인 여자)

 떠나시겠다니 잘 가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래요. 그러나 거기에서는 좋은
것들도 나쁘게 변해버려요. 연인이여, 잔인한 세상이에요. 미소로 넘어가긴
힘들어요. (잔인한 세상)

 그녀는 머리를 들고 내 셔츠에 눈물을 흘리지. 그녀는 무척 마음상했음에
틀림없어. 무엇이 널 처참하게 했는지 말해봐요. 문을 열어요. 어둠에 숨지
말아요. 그댄 어둠에 갇혀있어요. 날 믿어요. 슬픈 리자여. (슬픈 리자)

 감성적인 선율의 (슬픈 리자)는 국내에서도 꾸준히 애청되었다. (잔인한
세상)은 자메이카 레게스타 지미 클리프가 리메이크해 영국차트 10위권에
진출했고 93년에는 그룹 미스터 빅이 다시 불러 알려졌는데, 이 앨범의 가치를
한층 드높인 곡이었다.
 (아버지와 아들: Father and son)에는 70년대의 세대간 갈등과 긴장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아버지: 변화의 시간이 아니야. 그냥 쉬고있거라. 넌 젊고 아직 알아야할게
많아. 여자를 찾아 정착하렴.
 아들: 항상 똑같은 얘기로군요. 말하고 싶은 순간에도 난 듣기만 하도록
명령받고 있어요. 저기 길이 있고 난 떠나야만 해요.

 그는 거침없었다. 그러나 음악은 감상에 부담을 주지 않는 애절함으로
가득했다. 마치 영화적이었다. 이 곡은 영화 '혁명 러시아'(Revolussia)의
삽입곡이었고 또다른 수록곡 (그러나 난 오늘밤 죽을 지도 몰라: But I might
die tonight)는 영화 '딥 엔드'(Deep end)에 삽입되었다. 그는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캣 스티븐스는 70년대 말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유셉 이슬람'(Yusef
Islam)이라는 인물로 바뀌어 팝계에서 공식 은퇴했다. 그는 공식석상에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89년 루시디 사형선고를 동의하고 이란-이라크전에
포로로 억류된 회교도의 석방 협상과 걸프전 때 이라크를 지지하는 것으로 잠깐
뉴스에 등장했다. 그는 정말 기인이었다.

    절충주의의 소산 '라틴록'의 정체
    산타나 (아브락사스: Abraxas)

 Singing winds. crying beasts. Black magic woman/Gypsy Queen. Oye Como Va.
Incident at Neshabur. Se a cabo. Mother's daughter. Samba pa ti. Hope
you're feeling better. El nicoya (70년)

 "우리는 그것 앞에서 힘쓰며 내부로부터 얼어버리기 시작했다. 우린 그 그림을
수상쩍게 생각했고, 그것을 꾸짖었고, 그것과 성교했고, 그것에 기도했다. 우린
그것을 어머니라 불렀고 그것을 매춘부와 암캐라 불렀고, 그것을 우리 연인이라
불렀고 그것을 아브락사스(Abraxas)라 불렀다"
 이 앨범의 자켓 뒷면에 쓰여있는 글이다. 독일자가 헤르만 헤세의 명작
(데미안)의 한 구절인데, 산타나는 친절하게 그 출처까지 자켓에 밝히고 있다.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생의 욕구는 그처럼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이 아브락사스다"
 (데미안)에 묘사된 아브락사스는 최고의 신인 동시에 악마이며, 사람이면서
짐승이며, 남자이면서 여자고 알려져있다. '기타의 거장'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na)는 아브락사스의 이같은 변증법적 개념을 음악에
적용시킨 독특한 음악세계를 가꾸어냈다.
 아브락사스가 이중적 성격을 함축하듯 라틴 리듬과 록음악을 섞은 소위
'라틴록'(Latin rock)을 처음 선보인 것이었다. 그는 라틴음악과 록음악 어느
쪽으로도 무게 중심이 쏠리지 않도록 자신을 그 중간의 위치에 못박았다.
 라틴록은 70년대초 새로이 생성된 록의 일파였다. 사이키델릭과 하드한
록블루스가 60년대말을 휩쓸면서 정점에 달했던 록은 '변화한 새시대의 기류'에
무너져 70년대 들어 구심점을 잃어버렸다. 그러면서 록은 테두리 밖을 넘보며
새로운 장르와 잇따라 결합하면서 분화작용을 일으키게되었다. 라틴록 또한
그때 등장한 재즈록, 클래시컬록, 컨추리록 등과 함께 출현한 일종의 뉴 록(New
rock)이었다.
 카를로스 산타나는 이를 통해, 폐허가 된 60년대 '웨스트 코스트 록운동'의
잿더미속을 빠져나와 생존할 수 있었다. 원래 블루스로부터 영향받은 그는
60년대 말 샌프란시스코에서 활약했고 우드스탁 페스티벌에도 참여, 전설적인
(소울 희생: Soul sacrifice)의 연주를 들려주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워블루스 록음악의 추락을 감지한 그는 곧바로 '환경적응'을 위해
라틴록을 새롭게 시도했다. 1947년 멕시코에서 태어난 그임을 감안할 때
라틴록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음악실험이었다.
 그 시도는 성공했다. 이 음반의 수록곡 검은 마법의 여인(Black magic
woman)과 오이 코모 바(Oye Como Va)는 싱글로 발표되어 각각 차트 4위 13위에
랭크되는 히트를 기록했다. 두곡은 지금도 라틴록의 고전으로 인정받는다.
 라틴록이 절충주의의 소산이듯 그룹 산타나(자신의 이름을 그룹명으로
내걸었다)의 멤버 6인은 멕시코인 3명, 미국인 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음반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미국 팝계의 싱글이 아닌 (삼바 파 티: Samba
Pa Ti)가 쥐고 있었다. 카를로스 산타나가 작곡한 이 연주곡은 무드에 민감한
우리 팝 팬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안겨주었고 우리 정서와 라틴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는 것을 실증해주었다.
 (서커스)지는 "티토 푸엔테(멕시코 음악인)와 그룹 크림이 만난 결과가
산타나였다"라며 "그것은 록이 결코 한계에 머무르지 않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기록했다. 이 잡지의 지적처럼 경계를 허문 것은 뜻깊었지만 그
결과물인 라틴록은 너무 '부담없는 음악'이라는 인상을 풍긴 점도 없지 않았다.
록은 '엘리베이터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음악'을 체질적으로 거부한다. 카를로스
산타나는 기타의 대가로 이후에도 계속 위세를 지켜나갔지만 이 앨범과 같은
성공을 반복하지는 못했다. 부담 없다는 것이 바로 산타나의 약점이었다.

    "블루스는 미국인에 의해" ... 남부지방 록의 진면목
    올맨 브라더즈 (필모어이스트 극장 공연실황: Live at Filmore East)

 Statesboro blues. Done somebody wrong. Stormy Monday. You don't love me.
Hot 'lanta. In memory of Elizabeth Reed. Whipping post (71년)

 60년대 말 록계는 영국의 기타리스트들이 판을 쳤다.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 제프 백 같은 천재 기타주자는 두 사람의 미국산 기타영웅이 등장하기
전까진 오로지 영국만이 배출하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록 기타 연주에
있어서 미국의 자존심을 살려주었다. 한 사람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였고 다른 한 사람은 듀안 올맨(Duanne Allman)이었다.
 듀안 올맨은 에릭 클랩튼의 록 클래식 (레일라: Layla)에 참여, 발군의
기타연주를 들려준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의 슬라이드기타 연주는 록 음악사에
하나의 신화로 추앙된다. 그는 한 시간 이상을 한 코드의 진행으로 솔로연주를
하는 능력의 소유자였으며 반복적 패턴으로 치는 일반 록 기타주자와는 달리
반복없이 무한히 복잡하면서도 균형을 유지하는 출중한 연주실력을 과시했다.
록 평론가 레스터 뱅스는, "그로 인해 올맨 브라더즈(Allman Brothers)는 그
즉흥연주가 재즈 뮤지션의 그것에 정당하게 비견될 수 있는 몇 안되는 록그룹
중 하나가 됐다"라고 추켜세웠다.
 올맨 브라더즈는 듀언 올맨의 걸출한 슬라이드기타 연주로 록계에 하나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록 평론가들이 이름 지어준 미국 남부의 록, 즉 서던
록(Southern rock)이었다.
 그들은 남부해안(Gulf Coast) 지방의 펑키한 블루스에 음악적 뿌리를 두었다.
하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남부지방의 음악적 영향, 이를테면 재즈 소울
컨추리(사실 슬라이드 기타는 컨추리에서 많이 사용된다) 등을 모두 흡수했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의 바탕 위에서 올맨 브라더즈는 록에 가스펠을 심는 데
성공했다. 가스펠의 분위기야말로 이 그룹의 독창적인 것이었다.
 올맨 브라더즈를 '가장 미국적인 록그룹'이라 일컫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당연히 토양이 다른 영국의 블루스 기타주자들이 놓칠 수밖에 없는 토속
블루스의 진정성을 과시했다.
 이 앨범은 올맨 브라더즈를 '서던 록의 창조주'로 치솟게 한 결정적인
음반이었다. 이와함께 당시 록 팬들에게는 실황공연의 교과서와 같은 음반으로
인정받는 작품이기도 했다.
 이 음반은 71년 3월 뉴욕 필모어이스트(Fillmore East) 극장에서의 역사적
실황공연을 녹음한 것이다. 록 음악 전문공연장이었던 필모어 이스트는 당시
유명 프로모터 빌 그레이엄(Bill Graham)이 설립한 극장으로 60년대 록 음악의
산파역할을 했던 곳이다.
 더블 앨범이지만 수록된 곡은 모두 7곡이다. 티 본 워커(T. Bone Walker)의
(강풍의 월요일: Stormy Monday)과 같은 기존의 블루스도 싣고 있으나 이
앨범의 핵심은 12분 46초짜리 연주곡 (엘리자베스 리드를 기념하여: In memory
of Elizabeth Reed)와 LP 한 면을 채운 22분의 대곡 (휘핑 포스터: Whipping
Post)라 할 수 있다. 앞의 곡은 디키 베츠, 뒷곡은 그렉 올맨이 각각 썼다.
 그렉 올맨은 듀안의 친동생으로 두 형제는 올맨 조이스, 아워글래스란 그룹을
거쳐 1969년 올맨 브라더즈를 결성했다. 이 둘 외에 배리 오클리가 베이스,
디키 베츠가 기타, 버치 트럭스와 제이모 조안슨이 드럼을 연주했는데 기타 두
명, 드럼 두 명이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멤버구성을 취했다.
 뛰어난 연주실력으로 올맨 브라더즈는 블루스란 고정화되고 전통적인 음악을
그처럼 실험적이고 대담한 것으로 바꾸어놓는 '기적'을 창조할 수 있었다.
 당시 올맨 브라더즈가 주목받은 것 역시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들려준 미국 최남부지방(Deep south)의 진득한 블루스는 당시
미국 청년세대의 고통스런 정서와 잘 맞아떨어졌다. 올맨 형제들은 따라서
시대가 탄생시킨 블루스 영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룹은 이 기념비적인 라이브 앨범으로 록 역사에 발자취를 깊게 새겼지만,
잇단 불행으로 영속적인 인기는 누리지 못했다. 그룹의 대들보인 듀언 올맨이
필모어 이스트 공연 7개월 후인 71년 10월29일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고,
이듬해 베이스주자 베리 오클리도 같은 오토바이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후
그룹은 그렉 올맨과 디키 베츠가 주축이 되어 활동을 계속했지만 기둥이 흔들려
버린 탓에 좋은 작품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올맨 브라더즈의 업적이 함께 소멸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나 마샬 터커 밴드(Marshall Tucker Band) 같은,
이후에 등장한 남부 록밴드에게 음악적 패턴을 제시했다. 위력은 떨어졌지만
그들에 관한 한 여전히 '채권자'인 셈이었다.
 듀언 올맨은 이 라이브의 명연주를 남긴 채 24세라는 나이에 요절했다. 천재는
신의 시기로 인해 일찍 저 세상으로 간다는 속설은, 록스타의 잇단 사망의
비보가 날아든 70년대 초의 경우엔 확실히 사실이었다.

    60년대의 흥취를 마감시킨 조용한 70년대의 '자장가'
    제임스 테일러 (귀여운 아이 제임스: Sweet baby James)

 Sweet baby James. Lo and behold. Sunny skies. Steamroller. Country road.
Oh, Susannah. Fire and rain. Blossom. Anywhere like heaven. Oh baby, don't
you loose your lip on me. Suite for 20 G(71년)
  
 음악 팬들은 70년대를 맞이하자, 마치 60년대와 선을 그으려는 듯 애청하던
노래스타일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폭발하는 격정적 일렉트릭기타 록사운드에
열광했던 그들은 갑자기 그것에 등을 돌리고 조용한 통기타 연주의 포크에 뒤를
맡기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히트차트는 솔로 가수들이 들려주는 '자장가' 판이
되었다.
 그것은 새로운 록(New rock)이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 뉴 록의 기수로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를 꼽고 그를 1971년 3월1일자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이 앨범은 당시 2백만장 이상이 팔려나갔고 2년간이나
앨범차트에 머무는 히트를 기록했다. 또한 싱글 (불과 비: Fire and rain)가
전미 싱글차트 3위에 오르면서 그래미상 5개부문 후보로 지명되었다.
 이 앨범이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 무렵
젊은이들의 정서를 예리하게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젊은 세대는 극도의
허탈감에 빠져 있었다. 폭력으로 얼룩진 알타몬트 공연과 켄트주립대학 사태로
좌절감에 빠진 그들 사이에서 사회변혁 의지는 눈에 띄게 퇴조했다. 민권과
반전운동의 양심적 분노는 정치적 냉담으로 바뀌어 갔다. 사람들은 침묵하기
시작했고 자기를 되돌아보게 되었으며, 음악도 조용한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제임스 테일러의 '자장가'는 바로 그 새로 발견한 자신에 대한 예민한 선율의
성찰이었다. 그의 어휘사전에는 베트남전, 혁명, 우리와 같은 낱말이 사라지는
대신 그 지리에 고향길, 햇빛, 아침이슬, 그리고 나같은 용어들이 들어앉았다.
그것은 자기표현을 내밀한 언어의 시로 짠 형태였다.
 제임스 테일러는 이와 같은 비사회적인 것들과의 동화를 통해 또다른
개념에서의 '고통받는' 젊은이들의 초상을 그려냈다. 사회기류가 변화하면서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는 약물중독, 좌절, 소외, 자살 충동, 실패한 삶과 같은
'고급스러운 중산층적 고통'이 휘몰아쳤다. 그것에 빠져 침울해 있을 때 제임스
테일러는 그들의 친구가 되어 자장가를 들려주며 그들을 어루만져주었다.

 짙은 녹색과 파랑이 내가 선택한 색깔이야. 꿈속으로 스며들게 해주세요.
귀여운 아이 제임스에게 자장가를... (귀여운 아이 제임스: Sweet baby James)

 그 역시 실제로 헤로인 복용에 찌들어 9개월간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1968년 그가 애플레코드사에서 첫 레코드취입을 마쳤을 때 그와 사귀던
여자친구가 자살했으나, 친구들은 그가 너무 마약에 병들어 소식조차 전해주지
않았다.

 내게 냉담해 주세요, 내가 멈출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해요. 새로운 나를 봐야
해요. 내몸은 아프고... (불과 비: Fire and rain)

 제임스 테일러의 음악에는 3가지 사조가 화학적으로 혼합되어 있다. 컨추리의
콧소리와 함께 블루스의 우울함이 깔리면서 포크의 간결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의 음악은 출현 시점에서뿐만 아니라 형태적 측면에서도 (타임)지가 말하는
'뉴 록'이다. (시골길: Country road) (화창한 하늘: Sunny skies) (천국과
같은 어디에서: Anywhere like heaven) 등의 노래도 그 같은 3가지 특별한
결합이 빚어낸 우수작들이다. 하지만 어떤 곡도 특유의 조용한 무드를 벗어남이
없이 전체적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오 수잔나: Oh Susannah)만 딴 사람 (스테픈 포스터)의 작품일 뿐 나머지는
모드 제임스 테일러가 썼다. 그 또한 이시기를 수놓은 작곡가 겸 가수(Singer
songwriter) 가운데 한 사람임을 말해준다.
 이 앨범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주인공은 다름아닌 여성 싱어송라이터 개롤
킹이다. 제임스 테일러와 교분이 두터웠던 그녀는 나중 그의 최대 히트곡이 된
(당신은 친구가 있어요: You've got a friend)를 작곡해 주었고 본인도
독집앨범 (융단: Tapestry)으로 대 성공을 거두었다.

    독신자들의 빈자리를 노린 여류작곡가의 예리한 감성
    캐롤 킹 (융단: Tapestry)

 I feel the earth move. So far away. It's too late. Home again. Beautiful.
Way over yonder. you've got a friend. Where you lead. Will you love me
tomorrow?. Smackwater Jack. Tapestry.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71년)

 정치적 행동주의의 급작스런 후퇴를 몰고 온 70년대 초 가치관의 변화는
한편으로 전통적 가족개념의 붕괴를 가져왔다. 당시 베이비붐 세대들이
무엇보다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 결혼제도였다. 71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34%의 응답자가 "결혼은 낡은 제도"라고 답했다.
60년대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사회전반의 가치와 제도에 대한 불신이 축적되어
잉태된 결과였다.
 이혼한 부부가 속출했고 많은 미혼 남녀들이 결혼을 거부한 채 '홀로서기'를
고집했다. 독신자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에
따라 젊은이들 간에는 결혼실패와 실연에 따른 고독과 소외감이 팽배했다.
 70년대 초반 잇따라 등장한 포크 가수들은 이런 젊은이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제임스 테일러가 그러했고 캐롤킹(Carole
King)이 그러했다.

 네가 침울하거나 고민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나 이것도 저것도 다 엉망일
때 눈을 감고 행각해봐요. 당장 내가 나타날테니까. 그대 깜깜한 밤에라도
환해지려면 그냥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돼요. 당신은 친구가 있어요.
(당신은 친구가 있어요: You've got a friend)

 제임스 테일러가 불러 빅히트한 이 곡의 가사에서도 느낄 수 있듯, 이 노래의
작곡자이기도 한 캐롤 킹은 실연자 독신자 이혼남녀의 마음 한 구석에 휭하니
불고 있는 공허함을 달래주는 여러 노래들을 불러 환영을 받았다. 캐롤 킹의
이름으로 발표되어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른 그녀의 출세작 (너무 늦었어요:
It's too late) (멀리 떨어져: So far away) 역시 실연을 데마로 한 노래였다.
 사실 그녀부터가 이혼녀였다. 이 앨범은 60년대 여러 히트곡을 만들며 함께
했던 작고 동료이자 남편인 게리 고핀(Gerry Goffin)과 헤어지고서 새로운
결혼생활에 들어간 후 만들어진 음반이었다.
 (융단)이 상업적으로 대성공한 것은 캐롤 킹 자신이 속했던 시대의 조류와
맞아떨어진 측면이 강했지만 여성 싱어송 라이터로서 그녀의 뛰어난 음악적
감각을 간과할 수 없다. 최상의 경지에 이른 작곡기량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그녀는 그 곡들에 '여러 계층의 다양한 사람이 나누는 사랑
우정 인생'을 묘사한 가사를 붙여, 잔잔한 피아노 반주에 실어 실감나게
전달했다.
 이 앨범은 당시까지 발표된 여성 가수의 음반 가운데 가장 실적이 뛰어나 여러
가지 기록을 남겼는데 우선 15주간이나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올랐다. 이
기록은 70년대 발표된 수많은 앨범 중 1위인 플리우드 맥의 (소문), 2위
비지스의 (토요일 밤의 열기)에 이어 3위에 해당하는 성적이었다. 그리고
앨범차트에 무려 302주간 머무른 기록 역시 역대 팝 앨범차트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순위였다. 또한 판매 면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 당시
1,200만장(75년까지는 1,500만장)이라는 엄청난 양의 음반매출을 기록했다. 또
71년 그래미상에서 '올해의 앨범' 및 '최우수 팝 여성가수'상을, 그리고
싱글히트곡인 (너무 늦었어요)로 '올해의 레코드' (당신은 친구가 있어요)로
'올해의 노래'상을 각각 받았다.
 이 노래 외에도 (지구가 움직이는 걸 느껴: I feel the earth move) (스맥워터
잭: Smackwater Jack)도 인기를 끌었으며 아레사 프랭클린에게 준 (넌 나를
자연스런 여자로 느끼게 하지: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도
색다르게 불러 눈길을 모았다.
 (융단)은 60년대 말의 마약, 반전 등의 혼란된 시대를 보내면서 굴절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 젊은이들의 황폐해진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었다. 또한
음악적으로 싱어송 라이터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준 앨범이기도 했다.
 여러가지로 성과를 거둔 앨범이었다.

    '보는 새대'에 발맞춘 관능적인 글램록 음반
    T. 렉스 (일렉트릭 전사: Electric warrior)

 Mambo sun. Cosmic dancer. Jeepster. Monolith. Lean woman blues. Bang a
gong(Get it on). Planet Queen. Girl. The motivator. Life's a gas. Rip off
(71년)

 60년대 말 영국 런던에는 마크 볼란(Mark Bolan)이라는 이름의 기괴한 모습을
한 기타리스트가 불쑥 나타났다. 그는 스티브 툭과 함께 듀엣 티라노사우러스
렉스(Tyrannosaurus Rex)를 결성하여, 그룹명처럼 신화에 나오는 동물아니면
요정들을 소재로 한 다분히 동양적인 가사의 노래를 불렀다.
 스티브 쿡은 곧 미키 핀으로 교체되었고 그룹 이름도 간단히 티 렉스가
되었다. 그리고 (하얀 백조를 타고: Ride a white swan)로 시작된 화려한 히트
퍼레이드를 펼쳤다. 그들은 곧 10대의 우상으로 부상했다.
 록 역사는 흔히 그를 관능적인 로큰롤로 일컬어지는 글램록(Glam rock)의
선구자로 규정한다. 글램록은 관능적인 만큼 시각적, 극적 요소가 강조되어
글리터(glitter)라는 용어와 혼용되었으며 때로 양성적인 분위기를 빚어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마크 볼란은 이 부문의 톱스타로 군림한 데이비드 보위와
동일선상에 위치하며 실제로 두 사람은 초창기에 함께 활동한 적이 있었다.
 둘 모두 60년대 팝스타에서 볼 수 없었던 여성적 색깔, 화려한 의상과 충격적
분장 등을 내세웠지만 데이비드 보위가 공상과학 소재를 다룬 것에 비해 마크
볼란은 과거 지향성을 드러내 조금은 차이를 보였다.
 글램록 또는 글리터 록은 60년대 격동기를 거쳐 새로이 움트고 있던 '나
세대'(Me decade)라는 의식변화에 발맞춰 출현했다. 개인주의 경향이 과도하게
표출되어 시각 중시와 양성적 표현으로 나타난 그에 따른 만연된 소비풍조의
사회적 환경이 록계에 미친 결과였다. 티 렉스가 어필한 것도 그같은 변화의
영향이 컸다.
 무명에서 이미 벗어난 그들의 인기는 71년 10월 이 음반이 발표될 무렵
'렉스매니아'(Rexmania)로 증폭되었다. 당시 그들을 향한 어린 록팬들의 환호는
대단한 것이었다. 73년 아마추어 감독이던 비틀즈의 링고 스타는 자신의 영화
'부기를 위해 태어나'(Born to Boogie)에 그 열기를 다큐멘터리로 묘사하기도
했다.
 음반 제목에 일렉트릭이란 말이 붙은 것은 당시 볼란이 처음으로
일렉트릭기타의 믹스를 선보인 데서 비롯되었다. 앨범의 사운드쪽 매력은
전적으로 그 일렉트릭기타가 제공하고 있다. 그것이 창조해낸 리듬은 단번에 티
렉스를 떠올리게 할 만큼 특징적이었고 그들만의 고유상표가 되었다.
 그런 일렉트릭기타의 리듬이 주는 맛을 대표하는 (겟 잇 온: Get it on)은 이
음반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곡. 미국에서는 (뱅 어 공: Bang a gong)으로
타이틀이 바뀌어 발표되었고 싱글차트 10위까지 오르는 히트를 기록했다.
 초기 노래들이 보여준 신비성은 다소 퇴색했으나, 이 곡을 포함해 (비석:
Monolith) (우주 무용수: Cosmic dancer) (유성의 여왕: Planet queen) 같은
곡은 여전히 일반인들에겐 괴이한 느낌을 주었다. 때로 외설스러운 어휘들이
담긴 이 곡들의 노랫말은 '나 세대'의 의식을 반영, 당시 젊은이들의
자기본위적 사고와 병적인 자기집착 증세가 낳은 도취적인 애정표현으로
가득찼다.

 너의 자극은 너무 달콤하고 너의 진동은 내 발을 달아오르게 하지. 나 너의
사랑을 원하는 흡혈귀야. (지프스터: Jeepster)

 이 곡은 일렉트릭기타의 리듬과 새가 지저귀는 듯한 마크 볼란의 보컬이,
변화와 균형이 있는 곡 전개와 멋지게 결합된 걸작이었다.
 그러나 티 렉스의 호시절은 결코 길지 않았다. 변덕스런 10대들은 곧 그를
버렸고 끈질기게 두드린 미국 팝계의 문도 끝내 열리지 않았다. 77년 그는
재기를 시도하던 와중에서 애인이 몰고가던 자동차가 나무를 들이받는 사고로
숨졌다. '팝계의 귀공자'는 그렇게 안타까운 생을 마쳤다.
 (그림 설명): 77년 30세의 나이에 요절한 마크 볼란.

    '미국병'의 진단을 통해 모타운에 덤벼든 아티스트의 용기
    마빈 게이 (무슨 일이지: What's Going On)

 What's going on. What's happening brother. Flyin' high. Save the
children. God is love. Mercy mercy me. Right on. Wholly holy. Inner city
blues (71년)

 "당신 말야, 오늘 신문 봤어? 켄트주립대학에서 죽은 학생들에 대한 기사
읽었지? 켄트사태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잠도 못자고 계속 울기만 했다니까.
이제 달이라든지 유월 어쩌구하는 3분짜리 노래를 부르는 건 싫어."
 마빈 게이는 이렇게 말하면서 모타운 레코드사의 작곡가인 알 클리블랜드와
레날도 벤슨이 (무슨 일이지: What's going on)를 써가지고 왔을 때 예전처럼
신변잡기식 노래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때 그의 관심은 바로 월남전에 쏠려있었다. 자신의 친동생 프랭키가
파월장병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반전시위를 하던 켄트주립대학 학생들이
진압군의 MI소총에 맞아 죽은 비극적 사태에 더욱 충격을 받은 마빈 게이는,
'개과천선'하여 이제부터는 사회의식을 담은 노래를 하기로 작정했다.
 그는 점점 사그러져가고 있는 흑인정신을 되살리고 싶었다. 고통을 노래하고
기전에 저항하는 위대한 소울을 그는 잊지 않았다. 마빈 게이의 걸작 (무슨
일이지: What's going on)는 그렇게 하여 탄생되었다. 그것은 실로 그 시점
미국이 안고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고뇌하는 한 인간의 35분짜리 명상이었다.

 어머니, 너무 많은 당신들이 울고 있어요. 형제여. 너무 많은 그대들이 죽고
있어요... 전쟁이 해답은 아냐. 사랑만이 증오를 무너뜨릴 수 있지. 여기에
사랑을 건넬 길을 찾아야만 해. (무슨 일이지)

 이 노래를 잇는 (형제여 무슨 일이야: What's happening, brother)는 바로
동생 프랭키가 베트남에서 겪은 체험을 기초로하고 있다. 이 두 곡이 주제의
측면에서 앨범 전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마빈 게이는 (시내의 블루스: Inner
city blues)에서 도시 빈민가 흑인들의 곤궁을 묘사했고 (내게 자비를: Mercy
mercy me)에서는 파괴되어가는 환경, 즉 공해를 노래했다. (어린이를 살리자:
Save the children)는 미래가 없는 세상에 대한 비탄이다. 소재가 광범위하지만
'고통'이라는 핵심 테마와는 모두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음반이
'흑인아티스트 최초의 컨셉트앨범'으로 평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무거운 성격을 드러내고 있으니 모타운 회사측의 마음에 들리가
없었다. 베리 고디사장은 그 당시 레코드 구매자들이 사회비평의 음반은 원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타이틀송이 히트하고 있는데도 그는 4개월이나 앨범
출시를 유보했다. "빨리 풀어. 안그러면 다시는 당신들을 위해 음반
안만들테니까. 이건 내 마지막 경고야." 마빈 게이는 회사측 태도에 광분했다.
 그러나 승리자는 마빈 게이였다. 앨범은 출반하자 마자 승승장구해 소울
차트에는 정상, 팝차트에도 10위권에 진입했다. 뿐만 아니라 타이틀곡을 비롯,
(시내의 블루스) (내게 자비를) 등 3개의 히트 싱글이 터져나와 모두 차트
톱10위에 랭크되었다. 앨범의 판매고는 8백만장에 달해 모타운 사상 가장
잘팔린 음반(그때까지)으로 기록되었다.
 마빈 게이의 승리는 저절로 얻은 것이 아니라 투쟁의 소산이기도 했다. 신념을
갖고 자기 주장을 관철해 모타운 회사의 스탭을 물리치고 자신 스스로
프로듀스한 음반을 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전까지 모타운은 소속 작곡가난
기획자들이 음반게작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마빈 게이와 이 앨범이 갖는 또
하나의 업적은 그 같은 판도를 뒤엎고 회사로부터 '아티스트의 자유'를
쟁취했다는 데 있다.
 사운드의 측면에서도 이 앨범은 모타운 사운드의 획기적 전환을 초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콩가(쿠바의 전통음악0의 연주가 전체에 깔리면서 스트링과
함께 유연하게 삽입된 색스폰, 은은하면서 두꺼운 보컬 하모니가 주도하는
제3세계적 음악, 그리고 재즈와 가스펠의 분위기는 미들템포의 리듬과 함께
전에 없던 스타일이었다. 마빈 게이는 이렇게 하여 모타운의 새로운 70년대
사운드를 개척하는 위업을 쌓았다.
 그는 이 앨범(71년 5월 발표)으로 60년대 록과 소울 가수들이 보여준 사회적
양심이 여전히 꿈틀대고 있음을 알렸다. 나중 이 앨범을 듣고 그에게 "당신은
누구보다 훌륭한 성직자"라고 칭송하며 그 점에 동의한 사람은 흑인목사 제시
잭슨이었다.

    롤링 스톤즈적인 70년대의 해석 ... 마약과 퇴폐
    롤링 스톤즈 (스티키 핑거즈: Sticky fingers)

 Brown sugar. Sway. Wild Horses. Can't you hear me knocking. You gotta
move. Bitch. I got the blues. Sister morphine. Dead flowers. Moonlight
mile(71년)

 비틀즈가 사라지면서 자동적으로 세계 제일의 록 밴드로 자리를 물려받은 롤링
스톤즈는 이 앨범과 함께 70년대 상큼한 '새출발' 축포를 쏘아올렸다.
새출발이란, 상처로 얼룩진 로스앤젤레스의 알타몬트(Altamont) 사태를
극복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독자레이블인 '롤링 스톤즈' 레코드사를 설립한 것을
의미했다.
 69년 12월 알타몬트 공연은 롤링 스톤즈가 무료공연을 개최하면서 관람질서
우지를 위해 모터사이클족인 '지옥의 천사들'(Hell's angels)을 고용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많은 관객들이 그들에게 몽둥이질을 당하고 급기야 흑인청년
하나가 칼에 찔려 죽는 비극을 야기시켰다. 한 관객은 "24시간 동안에 우리는
한 곳에서 우리사회의 총체적 문제들-혼잡, 폭력, 인간성 말살-을 목격했다"고
비통해 했다. 저널리스트 랄프 글리슨은 그 사건을 가리켜 '선동자가 없었던
범죄'라며 록 공연이라는 본질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롤링 스톤즈의 잘못은
별로 없었으나 도덕적 책임이 상당부분 그들에게 돌아갔다. 이 비극적 사태는
60년대 청년문화와 카운터컬쳐 속에서 피어난 사회변화의 한가닥 희망마저
옥죄어버린 '60년대의 종말'로 기록되고 있다.
 롤링 스톤즈는 그러나 알타몬트의 충격에 움추러들지 않았다. 70년대의 개막과
함께 더욱 힘찬 날개짓을 하며 비상을 거듭했다. 이 앨범이 바로 그런 '드높은
기상'을 떨친 작품이었다. (롤링 스톤)지는 "모든 사람을 당황시킬 방법을 찾은
화려하리 만큼 자신만만한 앨범의 위력을 업고 70년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며
(스티키 핑거즈)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타임)지도 '탁월한 가사의 비행과
우아한 하층민 발라드로 이뤄진, 피에 굶주린 로큰롤 앨범'으로 극찬했다. 
 하지만 이 앨범은 '일말의 반성'을 기대할 만한 건전한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막후 실력자 앤디 워홀이 디자인한 앨범 커버부터가
기성세대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청바지 입은 남자의 허리아래에 시선이
다가닿을 수 있도록 자켓을 포장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계집: Bitch)과 같은
곡은 (꽉잡힌 그녀: Under my thumb)이래 그들이 견지해온 '여자 깔보기'
전통을 계승한 것이어서 역시 비판을 받았다.
 (타임)지의 칭송을 얻은 노랫말도 상당수가 마약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갈색
설탕: Brown suger) (누이 모르핀: Sister morphine) 등 노래 제목에서 이미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누이 모르핀)은 당시 믹 재거의 연인이었던 마리안느
페이스풀(Marianne Faithful)을 두고 만든 노래로 추측되었는데 들은 그 무렵
상습적으로 마약에 취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티키 핑거)는 따라서 70년대 초반이 약물복용이 젊은 세대 사이에 유행처럼
번진 '퇴폐(decadence)의 시대'임을 예시했다. 이 때문에 이 레코드는 흔히
'퇴폐적 롤링 스톤즈를 대표하는 전형적 앨범'으로 기록되고있다.
 69년 사망한 브라이언 존스를 대체한 '존 메이욜 블루스브레이커즈' 출신의
기타리스트 믹 테일러가 발군의 연주실력을 만천하에 떨친 음반이기도 하다.
(문라잇 마일: Moonlight mile) 등에서 보인 그의 연주는 이전까지 롤링
스톤즈가 선사해주지 못한 웅장함을 확충해, 그 없이 롤링 스톤즈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 (문라잇 마일)과 (시스터 모르핀) (죽은 꽃: Dead
flowers) 등 뒷부분 곡들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앨범을
걸작으로 떠받쳐준 밑반찬의 역할을 했다.
 발표작마다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명반으로 꼽히지만, 그들의 다른 어떤
앨범보다도 우수한 곡들이 많다. 실로 위대한 그룹의 위대한 앨범이다.

    반항적인 모드정신과 신시사이저 감각의 조화를 획득한 이정표
    후 (후의 다음: Who's Next)

 BaBa O'Riley. Bargain. Love ain't for keeping. My wife. Song is over.
Getting in tune. Going mobile. Behind blue eyes. Won't get fooled again
(71년)

 그룹 후(the Who)는 비틀즈, 롤링 스톤즈에 이어 60년대 '영국의 미국침공'
(British Invasion of America)이다. 그들은 전후 영국사회의 소외가 야기시킨
'젊음의 질풍노도'를 대변한 소위 모드족(Mods)의 정서를 소화하며 등장했다.

 사람들은 우리를 억누르려 한다. 단지 우리가 그들 눈에 추워보이는 곳을
돌아다닌다는 이유 때문에, 늙기전에 죽고 싶다.

 모드의 찬가가 된 65년 (나의 세대: My generation)란 곡으로 충격파를 던진
그들은 중산층과 기성세대의 가식적인 정치나 철학을 난도질하며 새로운 세대의
갈망을 노래했다. 과격과 벗하며 정치, 사회적 성향을 노골화했던 만큼 후는
강성의 파괴적인 로큰롤을 특징으로 했다. 로저 달트리는 마음껏 소리쳤으며
피트 타운센드는 일반코드를 산산조각내어 기타를 연주했고 존 엔트위슬은
베이스를 치기보다는 후려갈겼으며 키스 문은 포악한 드러밍으로 일관했다.
키스 문의 마치 부수는 듯한 사정없는 드럼은 콘서트 때마다 기타를 부러뜨리는
피트 타운센드의 행위와 함께 후의 상징이 되었다.
 후는 그러한 토대 위에서 69년 사상 최초의 록 오페라 (토미:Tommy)를
연출했다. 우드스탁의 살인적 록음악 열기 속에서 거둔 예술적 성과로 평가되는
그 오페라로 후는 가장 진보적인 록 그룹으로 치솟아올랐다.
 그러나 후는 (토미)의 영광이 베푼 기쁨과 곧바로 이별해야 했다. 어쩌면 어떤
한계같이도 보인 그 작품을 초월하는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그들을 옥죄었다. 가위눌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로 후는 공상과학적 앨범
'라이프하우스'(Lifehouse)의 제작을 시도하지만 데모테잎이 프로듀서로부터
거절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기획을 맡았던 타운센드는 크게 좌절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고 곧 서광이 비쳤다. 새로운 건반악기 A.R.P
신시사이저가 눈에 띈 것이었다. 타운센드는 '라이프하우스'를 위해 써ㄴ은
곡들을 토대로 거기서 시도하려고 했던 실황 록(live rock)을 신시사이저
기술을 동원해 실현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걸작 (후의 다음: Who's
next)이 탄생되었다.
 독창성이 발휘된 타운센드의 신시사이저 기술은, 앨범에 '신시사이저가 용해된
최초의 록음반'이라는 영예를 가져다주었고 70년대의 감각을 놓치지 않는
기민한 그룹이라는 인상도 심어주었다. 또한 '라이프하우스'의 생생한 라이브
맛은 경이적이었다. 그것으로 후는 '후다움(과연 후답다!)을 상실하지 않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와 함께 후가 갖는 '복잡한 고조, 예리한 가사, 광대한 연주'도 그대로
보존되어 시대의 감각에 굴복한다는 느낌의 싹을 베어버렸다.
 (바바 오릴리: Baba o'Riley)는 한때 타운센드의 교사였던 인도의 신인 메헤르
바바와 타운센드에게 신시사이저 영감을 불어넣어준 톰 오릴리 두 사람의
이름을 합친 제목으로 위의 세가지 특징 중 복잡한 곡조를 대표한다. 이 곡은
전미 싱글차트 15위에 오르는 준 히트를 쳤다. (울지마: Don't cry)는 후의
모드시절 반항정신을 상징하며('눈을 들어올리지마, 온통 10대의 황무지야'),
역시 싱글로 발표되어 34위까지 오른 (다시 조롱당하지 않으리: Won't get
fooled again)는 후의 격정적인 연주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곡이다.
 그러면서도 (푸른 눈 밑에: Behind blue eyes)는 , 임전무퇴의 뻣뻣한 전선에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깃들게 해 탄력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멜로디가 있어
듣기에 부담없는 전형적인 감상용이다.
 (노래가 끝났다: Song is over)는 광포함과 부드러움을 병렬시킨 아주 긴
곡으로, 이 앨범의 유일한 단점으로 얘기되는 '지나친 간결'을 그나마 커버해준
곡이다.
 이 앨범의 강점은, 후의 기본기를 놓침 없이 당시로는 하이테크인 신시사이저
연주를 실어넣었다는 데 있다. 어리숙한 미래에 대한 집착이 아닌, 현재의
위치에서 가능성 있는 미래에 손짓함으로써 이 앨범은 록 역사상 또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비틀즈와 같은 '멜로디 감수성'을 워낙 멀리하다보니 한국의 팬한테 후는
록매니어를 빼놓곤 별로 인기가 없는 그룹이다. 그러나 모드 정서의 대변,
최초의 록오페라, 신시사이저 실험 등으로 본고장에서는 하나의 획을 그은
역사적 밴드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그곳에서도 인기로는 늘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에 뒤졌지만 어떤 면에선 록 정신과 가장 부합된 그룹이었다.
 결점이라면 딱 하나 있었다. 82년까지 무려 17년이나 오랫동안 활동을
계속했다는 점이었다. 성숙을 미끼로 '늙기전에 죽고 싶다'는 캐치프래이즈를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한 여인에게 바친 기타예술의 극치
    데릭 앤 도미노스 (레일라와 그밖의 조화된 사랑노래들: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songs)

 I Looked away. Bell bottom blues. Keep on growing.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 I am yours. Anyday. Key to the Highway. Tell  the
truth. Why does love got to be so sad?. Have you ever loved a Woman.
Little wing. It's too late. Layla. Thorn tree in the garden(71년)

 67년 미국 순회공연을 가지면서(크림 시절) 에릭 클랩튼은 히피의 사조인
'플라워 파워'에 다시 공감을 받긴 했으나 관심은 사회보다 주로 기타예술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는 기타를 하나의 독립된 악기로 보고 그것이 펼쳐보일 수
있는 음악세계만을 향해 질주해갔다.
 또하나 그의 관심이 있었다. 바로 조지 해리슨의 아내 패티 보이드(Patti
boyd)를 향한 관심이었다. 그는 절친한 친구 조지와 예술적 교류를 나누다가
그녀를 본 후 억제할 수 없는 짝사랑의 미궁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당시 종교에
깊이 빠진 조지를 자기 품으로 되돌리려 했던 패티 보이드는, 남자의 질투심을
조장하기 위해 에릭 클랩튼에게 고의적으로 추파를 던졌다. 기타는 알았지만
여자는 쑥맥이었던 순진한 에릭은 패티를 미치도록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에게로 돌아갔고 가엾은 에릭은 사랑의 패자라는 충격을 안아야
했다.
 그 비참한 심정이 바로 (레일라: Layla)를 탄생시키게 한 것이었다. 그는
여인에게 버림받았지만 기타를 버릴 수는 없었다. 보상받지 못한 사랑의 고통을
송두리째 이 곡에 쏟아부었다. 목숨을 담보하고 치는 듯한 신들린 기타 연주는
어쩌면 필연적이었다. 그것은 기타를 통한 사랑의 예술적 승화였으며, 에릭
클랩튼의 기분과는 반대로 그의 연주 경력에 있어서 최고 절정의 순간이기도
했다. (레일라는 페르시아신화에 나오는 미모의 여성으로 패티 보이드를 상징한
것.-편집자)
 두 장짜리 앨범 (레이라...)는, 구렁텅이에 처한 데릭(Derek, 에릭 클랩튼을
지칭)이 만든 '슬픈 영혼'의 로큰롤 서사시였다. '그밖의 조화된 사랑의
노래'라는 부제를 달고있는 이 음반의 수록곡은 고뇌로 가득차 있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을 저미게 한다. (여인을 사라해 본 경험이 있나요: Have
you ever loved a woman) (네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아무도 너를 알지 못한다:
Nobody knows when you're down and out)라는 곡 제목에 이미 음반에 담긴
정서가 노출되어 있다. 그것들은 가슴으로 오열하는 듯한 슬픈 블루스였다.
 (레일라)를 70년대 최고의 록 클래식으로 탄생시킨 사람은 에릭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마이애미의 올맨 브라더즈 콘서트에서 듀언 올맨을 목격하고
그를 이 음반 녹음작업에 초빙했다. (레이라)의 앞 부분을 장식하는 용솟음치는
슬라이드 기타연주의 주인공은 듀언 올맨이었다. 기타의 두 천재 에릭과 듀언의
결합으로 이 곡은 완벽한 기타예술의 경지를 연출할 수 있었다. 에릭 자신도 이
곡을 뛰어넘는 연주를 재창조할 수 없었다.
 또한 여기서 그는, 자신이 존경해 마지 않았던 '델타 블루스의 전설'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의 (헛된 사랑: Love in vain)을 부분적으로 인용했다.
하지만 그는 블루스양식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어 록의 차원으로 끌어
올리는 대진전을 이룩했다. 그의 기타에 관한 열정은 유아 독존을 포기하게
하는 자세를 낳아 지미 헨드릭스의 (작은 날개: Little wing)를 재해석함으로써
기타 라이벌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도록 했다. 지미 헨드릭스는 실로 그에게
영혼의 동지였다.
 이 음반을 만들 무렵 그가 마약에 찌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그는
패티에게 딱지맞고 낙담하여 약물, 특히 헤로인에 빠져들고 말았다(이때 마약은
너무도 흔해 신문 가판대에서 구입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멤버 전원이
스튜디오 세션을 하는 동안 고개를 떨군 채 카페트에 뻗어버린 때도 있었다.
 데릭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도미노스(the Dominos)는 바비 휘트록(키보드), 칼
래들(베이스), 짐 고든(드럼)이 그 라인 업, 에릭 클랩튼이 크림 시절 이후 첫
솔로 앨범을 만들 때 잠시 어울렸던 듀엣 '엘라니 앤 보니'의 백밴드
멤버들이었다.
 이들과 함께 에릭은 이 앨범에서 음악과 사랑의 영혼을 부르고 있다. 블루스의
영혼과 보답받지 못한 사랑의 영혼을, 많은 청춘들이 '레일라 영혼의 의식'에
기꺼이 가담하여 황홀경을 만끽했다. 그리고 그 작품이 보기드문 걸작임을
알았다. 이 곡은 71년 싱글로 발표되었을 때는 주목받지 못했으나(51위) 1년이
흐른 뒤 차트 10위에 오르는 작은 이변을 낳았다.

    클래식의 품에 안긴 사회성 잃은 록의 현주소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전람회의 그림: Pictures at an exhibition)

 Promenade. The Gnome. Promenade. The sage. The old castle. Blues
variation. Promenade. The hut of Baba Yaga. The curse of Baba Yaga. The
hut of Yaga. Medley, the great gates of Kiev. The end, nutrocker(71년)

 킹 크림슨을 떠난 그렉 레이크, 나이스(Nice) 출신의 키스 에머슨, 아토믹
루스터(Atomic rooster)에서 활동한 칼 파머, 그룹 출신의 이들 3인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우연한 기회에 만난 것은 69년이었다.
 그들은 킹 크림슨이 열어놓은 길을 따라 클래시컬 록을 구사하는 그룹을
결성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리하여 탄생된 그룹이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and Palmer)였고 그 트리오는 70년 클래식 모티브로 가득찬
데뷔앨범을 내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클래식의 분위기를 살짝  덧입히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아예 클래식을
통째로 록의 완벽한 실체를 제시하고자 했다. 트리오의 핵심 키스 에머슨은
이미 바하의 (브란덴부르크 콘체르토: Brandenburg concertos)와 같은 클래식
레퍼토리를 록으로 해석하는 등 록과 클래식의 융합작업에 심취해 있었다.
 그의 그룹은 이를 물리적 조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으로 상승시키면서 광채와
공포의 단계로까지 몰고갔다. 그 결정체가 71년 발표한 (전람회의 그림)이었다.
이는 주지하다시피 러시아의 음악가 무소르그스키의 작품, 이 클래식 대작을
록으로 둔갑시키려는 시도 자체가 혁신적인 발상이었고 과감한 용기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들은 가사까지 붙였고(그렉 레이크), 라이브로 연주해 음반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들은 당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이 그랬던
것처럼 실황무대를 통한 극적 요소에 소홀하지 않았는데, 일례로 키스 에머슨은
무대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칼로 피아노를 찌르며 격하게 연주하기도 했다. 록의
예술성을 탐구하면서도 록의 또다른 본질인 '현장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었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예술성은 키스 에머슨의 건반에서 창출되었다. 그는 
그룹의 핵심이며 생명이었다. 그는 키보드로 '구부리고 휘고 뒤틀린' 사운드를
들려주며 건반예술의 경지를 연출했다.
 그가 사용한 건반은 무그 신시사이저(Moog synthesizer)라는 것이었다. 70년
10월 올림피아에서 개최된 제16회 국제 오디오.뮤직 페어에서 미국의 로버트 A.
무그박사가 개발한 무그 신시사이저를 접한 그는 그것으로 웅대한 스케일의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이로써 킹 크림슨 클래시컬 록을 창출할 수
있었다. (전람회의 그림)은 실로 키스 에머슨의 무그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이 앨범은 영, 미 팝차트 톱10에 진입하는 성공을 거두었고 그와 함께
클래시컬 록 또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시장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가 예시한 것은 클래식까지 삼켜버리는 '록의 왕성한
식욕'이었다. 세분화라는 미명하에 사회성을 잃고 방황하는 록은 그것으로
예술성을 소유하는 대진전을 이룩하지만 사실은 '록의 위안거리'이기도 했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대진전... 예스 맨의 예술성
    예스 (프래자일: Fragile)

 Roundabout. Cans and brahms. We have heaven. South side of the sky. Five
percent for nothing. Long distance runaround. The fish. Mood for a day.
Heart of the sunrise (72년)

 킹 크림슨에 의해 다져진 록과 클래식의 우정은 예스(Yes)라는 그룹의
출현으로 '결혼'의 단계로까지 진보했다. 이제 클래시컬한 록은 그들에 의해
'진보적 록'(progressive rock)이란 이름의 기치를 내걸게 되었다.
 60대 말부터 시작된 록의 세분화 과정에서 잉태한 클래시컬 록이
프로그레시브로 불리게 되면서 록은 '사회성의 바깥활동'을 멈추고 '음악의
내적 탐구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록의 예술성은 더욱 넓게 확산되었고, 그와
동시에 록은 사회성과는 다른 예술성이란 또 하나의 힘을 갖추게 되었다.
 영국그룹 예스는 그런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들이
주선한 록과 클래식의 결혼은 설령 클래식의 입장에서는 지옥에서 거행된
혼례식이었는지는 몰라도 록의 시각에서는 '계급과 출신성분이 다른 두 음악의
감동적 웨딩마치'였다. 예스는 두 음악이 '언밸런스의 밸런스'임을 분명히
했다.
 그들은 록의 '외형적 보수'의 틀을 깨면서 그 과업을 수행했다. 척 베리의
로큰롤과 달리 3개의 코드는 예스와 같은 대 서사시를 쓰는 그룹에겐 충분하지
않았다. 그들은 복잡한 편곡, 이색적인 절분화된 리듬, 우아한 3성부의
보컬화음 등 과감히 전통적 양식에서 벗어난 음악을 내놓았다. (타임)지는
그들과 같은 복잡하고 교양있는 사운드로 인해 "이제까지 갇혀있던 록음악의
세계에 조금은 햇빛이 들고 있다"고 평했다.
 (프래자일: Fragile)은 그러한 '록음악 형식의 혁명'을 웅변하는 앨범이었다.
여기 수록된 (깡통과 브람스:Cans and Brahms)는 브람스의 교향곡 제4변 E단조
작품 98변에서 발췌, 멤버 릭 웨이크먼(Rick wakeman)이 편곡했다. 이 곡에서
그는 원곡의 각 악기부분을 키보드 연주로 바꾸었다. 스트링 부분은
전자피아노로, 목관악기 파트는 그랜드피아노로, 금관악기 부분은 오르간으로,
리드(reed)부분은 전자하프시코드로, 콘트라버순은 신시사이저로 대신했다.
 이 앨범을 만들 당시의 예스 멤버는 존 앤더슨(보컬), 릭 웨이크먼(키보드),
빌 브루포드(드럼), 스티브 하우(기타), 크리스 스콰이어(베이스) 등 5인,
얇지만 맑은 음색의 존 앤더슨(Jon Anderson)과 기타천재 스티브 하우(Steve
Howe)가 그룹의 자랑이지만 이 앨범을 돋보이게 한 주인공은 '클래식으로
훈련된' 건반의 귀재 릭 웨이크먼이었다. 이 앨범부터 참여한 그는 (우회로:
Roundabout)와 (일출의 마음: Heart of sunrise)에서 탁월한 키보드실력을
과시, 그가 아니면 예스는 완전한 밴드가 될 수 없음을 확인시켰다.
 이미 71년도의 전작 (예스 앨범:The Yes album)으로 미국시장에서 가능성을
타진한 그들은 같은 해 말 발표한 이 4번째 앨범으로 드디어 미국정복에
성공했다. 전미 앨범차트 3위까지 오르는 빅히트를 기록했으며 (우회로)는
싱글차트 13위까지 올랐다. 이 곡은 지금도 클래시컬록의 명곡으로 꼽히고
있다. 이 음반은 지난 81년 라이선스로 출시되어 예스 앨범 가운데서는 가장
널리 알려진 앨범이기도 하다.

    70년대 가수의 60년대에 대한 비판적 집착
    돈 맥클린 (어메리칸 파이: American pie)

 American pie. Till tomorrow. Vincent. Crossroads. Winterwood. Empty
chairs. Everybody loves me, baby. Sister Fatima. The grave. Babylon(72년)

 여름의 땀 투성이에 헬터 스켈터(Helter skelter), 새들은 낙진 보호소로
날아갔지, 8마일 높이(Eight miles high), 그리고 빠르게 추락했지, ...
상사들(sergeants)이 행진곡을 연주하는 동안 우리 모두 춤추었지만 기회는
얻지 못했지. 선수들이 판을 쥐어버렸기 때문이야. ... 거기서 우린 한곳에
있었지, 세대는 허공에 빠졌지, 다시 시작할 시간을 남기지 않은 채, ...
화염이 희생적 의식을 밝히기 위해 밤으로 높이 솟아올랐을 때 난 기쁨에
웃고있는 사탄을 보았지, 음악이 죽은 그 날에.

 이와같은 가사의 (어메리칸 파이: American pie)는 모호한 언어들 투성이다.
분명한 것은 '음악이 죽은 그 날'(The day the music died)이 록 초기의 거인
버디 할리가 죽은 59년 2월3일을 가리킨다는 사실에 불과하다. 그는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찬 어휘들로, 이날 이후 60년대 전체의 시대상황과 변화를
묘사했다.
 돈 맥크린(Don McLean)의 60년대를 보는 시각은 부정인지 긍정인지 확실치
않다. 하지만 미국을 상징한다는 '파이'와 이별을 고하고 있다(Bye bye Miss
American pie), 여기에 착안하면 이 노래는 '미국 사회와 음악계 실상에 대한
조용한 비판'이 된다(가사에서 비틀즈나 버즈 노래를 허상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이 곡을 버디 할리에게 바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메리칸 파이)는 병들어가고 있는 미국에 대한 노래이다. 이 은유를 통해서
나는 미국의 흥망성쇄를 노래하고 있고 개인적으로 이 곡은 70년대 전체에 대한
나의 견해이다."
 그러나 그는 자세한 곡 해설을 회피했다. "60년대에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라며 "그 의미에 관해 말하거나 논하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반동적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고 반대로
좌익이라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이 노래는 역사적으로 '60년대의 정리'라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열광적인
그 시대를 떠나보내면서 70년대는 이 곡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곡은 72년 신년벽두에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라 4주간 정상을
지켰으며 같은 제목의 앨범도 정상을 차지했다.
 런닝 타임이 무려 8분 27초나 되는 긴 곡이어서 45회전 싱글의 앞뒷면으로
나뉘어 수록해야 했다. 대부분의 라디오 방송국은 그러나 이 곡의 강렬한
이미지에 끌려 앨범에 수록된 전 곡을 방송했다. 위대한 곡은 싱글의 3분짜리
벽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이 곡은 증명해주었다.
 (어메리칸 파이)는 또한 당시 붐을 이룬 싱어송라이터를 재평가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제임스 테일러, 조니 미첼, 해리 닐슨, 캐롤 킹, 칼리 사이먼,
랜디 뉴먼, 폴 사이먼 등 이 시기에 활동하던 가수겸 작곡가 사단에 그가
가세하면서 그들은 팝계의 대세를 장악하게 됐다. 반복하지만 음악인들의
내면적 탐구로 나타난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흐름은, 언뜻보기에 록이 아닌 것
같으면서 진짜 록을 만들려 하던 '극히 예민한' 싱어 송라이터들의 대거
등장이었다. 돈 맥클린은 (어메리칸 파이) 한 곡으로 그 물결에 역사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욱 사랑받는 레퍼토리는 그의 또 하나의 '클래식'인
(빈센트: Vincent)였다. 천재화가 반 고호의 생을 노래한 이 곡은 감미로운
선율에 회화성이 어우러져 팝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까지 널리 사랑받았다.
구미인들에게 (어메리칸 파이)가 앨범의 대표작이었지만 우리에겐 무조건
(빈센트)가 앨범의 꽃인 셈이었다.

 * (어메리칸 파이)는 올리버 스톤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저 유명한 반전영화
'7월4일생'('89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의 삽입곡이기도 하다. -편집자

    포드 백악관에도 울려퍼진 헤비메틀의 클래식
    레드 제플린 (레드 제플린 4집 앨범: Led Zeppelin 4)
 
 Black dog. Rock and roll. The battle of evermore. Stairway to heaven .
Misty mountain hop. four sticks. Going to California. When the levee
breaks (72년)

 (레일라)와 더불어 70년대 록의 최고작품으로 꼽히는 명곡 (천국으로 가는
계단: Stairway to heaven)이 수록된 레드 제플린의 대표작. 서양에서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헤비메틀의 전형으로 인식된 유명한 앨범이기도 하다.
 지미 페이지(기타), 로버트 플랜트(리드 보컬), 존 폴 존스(베이스), 존
본햄(드럼)의 영국그룹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은 사실 69년 두 번째
앨범으로 이미 헤비메틀의 형식미를 완성시켰다. 따라서 통산 4번째가 되는 이
앨범(71년 겨울 발표)이 록 역사에 차지하는 명목상의 가치는 없다.
 그러나 록 대중에게 끼친 영향과 관련하여 이 앨범이 누리는 '실질 가치'에
견줄 레드 제플린(아니 모든 록그룹)의 다른 앨범을 선뜻 제시하기는 어렵다.
록 음악 중에서도 하드록의 지망생들은 무조건 이 앨범을 들어야 했고 또
배워야 했다. 그들은 이 '헤비메틀의 교과서'로부터 헤비메틀의 기타, 드럼과
창법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로큰롤: Rock and roll)만 하더라도 20년이
훨씬 흐른 오늘날도 많은 그룹들이 그것에 따라 연주하고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블랙 독: Black dog)과 (로큰롤)은 미국에서 싱글로 발표되어 각각 15위,
47위를 차지했다. 물론 두드러진 성적은 아니었다. 그런데 싱글과 달리 앨범은
차트 2위까지 오르고 7백만장이 팔려나가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거기에는 어느 정도의 '신비'가 더해진 까닭이었다. 다름아닌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그 신비를 창조했다. 레드 제플린은 이 완벽에 가까운 곡을 결코
싱글로 커트하지 않는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그들은 히트곡이 되어 매력이
닳아버리는 것을 피해 이 곡의 영속적 어필을 원한 것이었다. 적전은 적중했다.
대중들은 싱글로 나오지 않음으로써 신비의 보호막에 싸인 이 곡의 마력에
너도나도 끌렸고 거기서 헤비메틀의 예술성을 만끽했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의 일등공신은 물론 당대 최고의 록 보컬리스트로 떠오른
로버트 플랜트였지만 지미 페이지의 기타 플레이 또한 절대적이었다. 특별한
기교를 배제하고 전통적인 기타주법을 고수하는 그는 이 곡을 위시한 몇몇
수록곡에서 어쿠스틱기타와 일렉트릭기타를 혼용, 부담없는 기타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메틀 속에서 포크의 맛이 도드라진 이유가 여기에 존재한다.
 그는 메틀 기운이 넘치는 (포 스틱스: Four sticks)에 어쿠스틱기타를
깔아놓았고 조니 미첼에 바치는 곡 (캘리포니아로 가서: Going to
California)는 전체를 어쿠스틱기타로 채색, 한 편의 포크를 완성해냈다. 영국
포크의 여왕인 샌디 데니를 초대하여 만든 (배틀 오브 에버모어: The battle of 
evermore)에서는 심지어 컨추리 악기인 만돌린 연주를 선보이기도 한다. 철저한
블루스라곤 (둑이 무너질 때: When the levee breaks)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 앨범이 히트된 이후 1975년에 이르러 어떤 록 밴드도 감히 레드 제플린의
인기를 추월하지 못했다. 앨범 6장이 동시에 차트에 올랐으며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의 공연 티켓은 4시간만에 완전 매진되는 폭발적 장세를 자랑했다.
심지어 백악관에서도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울러퍼졌으며 제랄드 포드
대통령의 딸들은 TV 딕 카벳 토크쇼에 출연, 가장 ㅊ아하는 그룹이 레드
제플린이라고 털어놓아 전국적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록역사의 명작인 (천국으로 가는 계단)은 대부분 로버트 플랜트가 노랫말을
썼는데 즉석에서 착상했고 그것들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레드
제플린을 위시한 영국 그룹들이 록의 예술성에 집착하고 있었음에 대한 명백한
증거이다. 그들은 미국의 사이키델릭 밴드처럼 록의 사회성에 헌신하지 않았다.
그들은, 70년대의 록이 다분화 물결 속에서 사회 아닌 음악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변화를 앞장서 실천하고 있었다.
 (그림 설명): 이 음반 제작 당시의 그룹. 왼쪽에서 두 번째가 로버트 플랜트,
세 번째가 지미 페이지.



    자극을 원하는 70년대 자극적 록의 상징...글리터록
    데이비드 보위 (지기와 화성에서 온 거미들의 흥망성쇄: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Five years. Soul love. Moonage daydream. Starman. It ain't easy. Lady
stardust. Star. Hang on to yourself. Ziggy stardust. Suffragette city.
Rock'n'roll suicide(72년)

 70년대 초반 미국의 사회분위기는 60년대의 그것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사회변혁의 '미몽'에서 깨어난 대학생들은 시위전선에서 물러나 더 이상 사회에
고함지르지 않았다. 베트남전쟁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고 보수주의자 닉슨이
민주 진영의 열망에 반하여 72년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지쳐버린 젊은이들은 극도로 실망한 채 학교로 자신에게로 돌아갔다.이윽고
60년대 반전및 인권운동의 기류는 사그러들고 개인주의 시대의 문이 열렸다.
마침 경제가 호황국면을 맞이하자 사람들은 안락과 소비중심의 생활패턴에
빠져들었고 젊은 세대는 마약과 섹스에 탐닉했다. '자기로 좁혀진 세계'에
살게된 사람들은 자신에게 충격을 줄 자극을 원하고 있었다.
 머리좋은 영국가수 데이비드 보위는 이런 시대특성을 간파하여 자극을 바라는
수요자들에게 자극적인 음악과 무대를 공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것이
글리터 록이었다.(gitter는 명사로 '현란','휘황찬',의 의미가 있으며 글리터
록은 glam rock이라고 한다). 그에게 통신 다섯번째가 되는 이 음반은 당시의
사회 적상황이 잉태시킨 글리터 록의 결정판이었다.
 그는 자극을 원하는 세대를 위해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매우 쇼킹한 이미지의
인물을 창조했다. 지기 스타더스트는 빈스 테일러라는 무명가수의 이야기에
기초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로서 다름 아닌 보위 자신이었다. 믹
론슨(기타),트레버 볼더(베이스),믹 우드먼세이(드럼)로 구성된 밴드의 명칭도
지기 이미지에 맞춰 '화성에서 온 거미들'(the Spiders from Mars)로 붙였다.
 지기는 방탕하고 스타덤에 굶주렸으면 양성적인 이미지였다. 그는 자신을
지기에 맞추어 외계인 의상. 오렌지색으로 물들인 머리. 붉게 칠한
입술.곤충처럼 그린 아이세도우 등 파격적인 모습을 하고 무대에 섰다. 그는
이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지금 충격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극단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새로운 이미지 창조에 집착한 그는 심지어 72년 초 (멜로디 메이커)지와의
인터뷰에서 "난 현재 게이이며 전부터 게이였다."라고 했다.(동시에 이성애를
겸하는 양성애자이기도 하다. 마치 마돈나처럼- 편집자)
 음반도 지기를 중심으로 각 노래를 이와 연관시켜 통일성을 부여했다.이를
테면 이 앨범도 당시 크게 유행한 '컵셉트 앨범'가운데 하나였다.
 (로큰롤 자살: Rock'n roll suicide)과 (5년간: five years)은 지기의 운명을
다루었으며 (별사람: Srarman) (달시대의 백일몽: Moonage day-dream)등은
지기의 공상과학적 이미지를 살린 노래이다. (데이비드 보위가 공상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69년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에 의한 우주시대 도래의 영향이
컸다). 지기의 양성적 칼라는 (여성 참정의 도시: suffragettecity)와 (여성
스타더스트: lady Stardust)에 나타난다.
 글리터 록이라고는 하지만 번쩍이는 화려한 의상과 야한 화장 등 분위기가
그럴 뿐이지 전형적인 로큰롤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제프 벡의 영향을 받은
믹 론슨(Mick Ronson)의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기타연주에 전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이다. 그는 스트링 편곡에서도 재능을 발휘했다. 사운드로 볼 때
(지기...)는 전형적인 '기타 록' 앨범이다.
 11곡 가운데 10곡을 쓴 보위의 작곡 솜씨 또한 발군이다. 곡에 따라 톤과
음역을 잘 조절해가는 그의 보컬도 좋다.
 보위는 당시 영국 순회공연을 통해 지기의 이미지를 확실히 심었다. 그러나
그것이 팬들의 과열반응을 유발하면서 비난을 받게 되자. 73년 7월 지기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모습을 바꾸어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지기 콘서트를 관람한 청소년들의 뇌리에 깊이 박힌
이후였다. 그들은 후에 지기의 쇼킹한 이미지를 되살린 펑크록을 창조했다.
펑크록의 젊은이들은 지기의 외적 충격은 수용했으나 그의 메시지는 결코
배우지 않았다.

    가장 시끄러운 사운드...가장 인기있던 하드록 음반
    딥 퍼플 (머신 헤드:Machine head)

 Highwaystar. Maybe i'm a Leo. Pictures of home. Never before. Smoke on
the water. Lazy. Space truckin(73년)

 1970년대 초반 세분화된 록 가운데 두드러진 또 하나의 양상은 하드록 또는
헤비메틀의 발전이었다. 60년대 말 싹이 트기 시작해 70년대 들어서 개화한
하드록은 이 무렵 젊은이들의 자극적 정서에 의해 록의 주류로 성장했다. 또
아티스트 고유의 개성에 따라 다양화의 길로 접어들어 갔다.
 이때 하드록의 왕자 자리를 놓고 패권다툼을 벌인 그룹이 딥 퍼플(Deep
Purple)과 레드 제플린이었다. 두 그룹은 73년에서 76년까지 한치의 양보도
없는 불꽃튀는 경쟁을 벌이면 하드록의 정립에 크게 기여했다. 딥 퍼플은 레드
제플린이 멤버교체 없이 견고한 4인조 비행을 계속한 반면 팁 내부의 잇단 갈등
표출로 멤버의 면면들이 끊임없이 바뀌었다. 이것이 레드 제플린보다 수명이
짧았던 이유였지만 한편으로 그 멤버들간의 부조화 때문에 더욱
'인상적인'밴드로 기억되기도 했다.
 딥 퍼플의 최고 걸작이라고 하는 이 음반이 나올 당시의 멤버 구성은 존
로드(오르간),리치 블랙모어(기타), 이언 페이스(드럼),로저 글로버 (베이스),
이언 길런(보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이 있을 때가 흔히 '딥 퍼플의
2기'로 일컬어진다. 딥 퍼플이 다른 하드록 밴드와 차별화되었던 것은 클래식을
공부한 존 로드의 다이내믹한 건반 연주였다. 그 때문에 초기 딥 퍼플의 음악은
클래식한 냄새가 상대적으로 강하게 표출되었다.
 그러나 이 음반 당시 그룹의 구심력이 리치 블랙모어로 쏠리는 감도 없기
않았다. 그의 박진감 넘치는 기타 플레이는 하드록의 형식을 제시한 음반으로
평가되는 (딥 퍼플 인 록: Deep Purple in rock)에서 이미 전면에 나타나면서
그룹의 음악성을 주도했다.
 영, 미권 팝시장을 강타한 싱글 (물위의 연기: Smoke on the water)에서 그가
보인 간단하지만 압권인 기타 리프(riff)는 훗날 등장한 록 기타 연주자들이
가장 많이 연주한 악절이 되었다. 이 곡은 이언 길런의 작품으로 이 음반을
녹음하던 곳인 스위스 몬트뢰의 빌딩에서 실제 겪은 화제를 소재로 하여
썼다.제네바 호숫가에 위치한 그 몬트뢰 카지노빌딩에서 프랭크 자파의 공연이
벌어졌을 때, 불이 나면서 타오른 연기가 그의 눈에 '물위의 연가'로 비쳐진
것이었다.
 이 곡은 73년 전미 싱글차트 4위에 올랐고 골든 디스크가 되었다. 그러나
앨범이 영국차트 정상을 차지해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는지 이 곡은
영국에선 싱글로 커트되지 않고 미국에서만 발표되었다. 그래서 딥 피플이 미국
그룹이라는 오해를 낳기도 했다.
 이 곡은 또한 발표 당시 국내에서도 곧바로 인기를 얻었는데 이는 다른 하드록
그룹의 어떤 곡보다 가장 빠르게 국내에서 어필한 것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딥 퍼들이 레드 제플린보다 먼저 알려졌고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인기도 앞섰다.
 우리나라에서 딥 퍼플 인기의 레드 제플린에 대한 우월은 (하이웨이 스타:
Highway star)로 증명된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이 곡은
하드록의 표본적인 곡으로 지금까지도 국내팬들의 뇌리에 박혀있다 귀를 째는
듯한 이언 길런의 샤우트 창법이 청취자를 사로잡는 이 곡은 하드록 팬뿐
아니라 일반 팬들도 좋아했고 많은 사람들이 고고장에서 이 곡에 맞춰 격렬하게
춤추곤 했다.
 딥 퍼플은 교향악적이 코드 변환과 오케스트라와 같은 다이내믹한 사운드로
'드라마틱하면서도 짧은 하드록'을 들려주었다. 이와 함께 '사운드의 볼륨'도
두드러졌다. 브리티시 메틀의 전형이 된 그룹 레드 제플린, 유라이어 힙,블랙
사바스를 통틀어 딥 퍼플이 가장 소란하게 들렸던 것은 그 소리의 덩치
때문이었다. 75년 기네스북은 공식적으로 딥 퍼플을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그룹(World's loudest group)로 기록했다.
 (그림 설명): 레드 제플린과 하드록의 왕좌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딥
퍼플.

    70년대의 대표적인 팝록의 클래식
    엘튼 존 (굿바이 옐로 브릭 로드: Goodbye yellow brick road)

 Funeral for a friend. Love lies bleeding. Candle in the wind. Benny and
the jets. Goodbye yellow brick road. The song has no title. Grey seal.
Jamaica Jerk off. I've seen that movie too. Sweet painted lady. ballad of
Danny Bailey. Dirty little girl. All the girls love Alice. Your sister
can't twist(but she can rock'n'roll).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Roy Rogers. Social Disease Disease. Harmony(73년)

 70년대의 개막과 함께 인기차트에 등장한 '작은 거인' 엘튼 존(Elton John)에
팬들에게 접근한 방식은 매우 예리한 것이었다.
 음악은 멜로디가 풍부한 팝, 이른바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확립한 선율적
전통을 따르되 무대연주나 의상 등 음악 외적인 부문에 있어서는 데이비드
보위의 '지기' 같은 충격을 구사하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외형 또는 무대연출이 그에겐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공연과
공식석상에서 그는 첨단유행의 안경, 굽높은 구두, 때론 중성적이기까지한
요란한 의상을 하고 나타났다.피아노 연주는 파격적이고 격렬하기 그지없었다.
제임스 테일러,잭슨 브라운, 캐롤 킹과 같은 포크계열 가수의 침울하고
고통스런 분위기와 사뭇 대조적이었다.
 그가 데이비드 보위의 글리터 이미지를 응용한 것은 70년대가
개인주의시대임을 직시한 결과였다. 더구나 자신 역시 개인주의사회의 한
평범한 구성원이라는 사고는 그 길로 가야할 것을 재촉했다.
 "내가 왜 그런 의상연출을 하는가, 웃기기 위해서다. 그렇게 하면 관객들은
낄낄거린다. 그러나 더 깊은 진자 이유가 있다. 나의 아버지는 엄격했고 따라서
난 마음에 들지않는 옷을 입어야 했다. 난 기회가 생길 때마다 다른 극단으로
치닫곤 했다. 내가 어렸을 때 더 많은 자유를 누렸다면 내 의상은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음악 내용도 다분히 '70년대적'이었다. 엘튼 존은 음악의 사회성을 신뢰하지
않았다. 탁월한 감성의 작사자 버니 토핀(Bernie Taupin)과 짝을 이루면서 그는
정치적 성향의 노래와는 담을 쌓았다. 그는 "정치적 음악은 영향력이 없다.
세상을 바꾸려 했던 60년대 가수들을 보라 삶은 여전히 똑같지 않은가"라고
했다.
 노랫말은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으로 가득찼다. 버니 토핀은 사회를 떠난
개인적인 문제들에 집착하면서 공상을 얘기했고 엘튼 존은 즐겁게 그의 공상을
팬들에게 전달했다.
 그의 생애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앨범에 전체적으로 흐르는 내용 또한
그러했다. 그것은 버니 토핀의 현재 기분이나 심정을 반영한 수준에
불과했다.(이 무렵 토핀의 상황은 비통했던지 비극적 테마가 주를 이뤘으며 그
중에는 여자기피증의 기류가 불거진 것들도 있었다).
 엘튼 존을 70년대의 최고의 가수로 비상시켜준 것은 그의 비범한 작곡
솜씨였다.그는 대중들이 선율이 중시된 노래를 선호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만큼 뛰어난 멜로디를 샘솟듯 뽑아내는 괴력을 발휘했다. 음악
접근방식은 실험적인 데이비드 보위와 엄격히 차별화한 것이다.
 그는 버니 토핀의 가사를 받아 한 곡을 완성하는 데 15분 이상 소요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자랑하기도 했다. (굿바이 옐로 브릭 로드)는 그의 그런
천부적이고 왕성한 곡 생산능력을 과시한 작품이었다. 73년 발표된 이 음반은
그 해 두 번째 내놓은 것이었고 또 무려 18곡을 수록한 두장짜리 앨범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평론가들로부터 더러 '음악적 과소비'를 자행하고 있으며
오만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런 지적에 전혀 동요되지 않고 이 앨범에 열렬한 애정을
표했다. 앨범은 전미 차트정상에 올랐고 출시 전에 이미 싱글커트된
(토요일밤은 싸움하기에 좋아: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에 이어
타이틀곡 (굿바이 옐로 브릭 로드) (베니와 제트기: Benny and the jets)등
인기싱글도 터져나왔다. (굿바이 옐로 브릭 로드)는 우리 팬들에게도 애청곡이
되었고, (친구의 장례식: Funeral for a friend) 은 그 특유의 클래식한
편곡으로 팝 매니아들이 즐겨 찾은 곡이었다.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밟은 (베니와 제트기)의 뒷면에 수록된 (바람 속의
촛불: Candle in the wind)도 눈길을 끌었던 곡. 전설적인 여배우 마릴린
먼로에게 바치는 이 노래를 싱글 뒷면에 넣었던 것은 그녀를 숭앙하는 미국
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였다. 엘튼 존도 이 노래를 마음에 들어해 "내가 쓴
곡 가운데 연주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 유일한 곡"이라고 했다.
 실로 이 앨범은 가장 엘튼 존답고 가장 팝적인 음반이다.그 자신도 "애들에게
팝음악에 대해서 얘기해주려 한다면 이 앨범을 들려주라"고 자화자찬하여
'팝앨범의 결정판'으로 못박기도 했다. 그의 선율감각은 어쨌든 대중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팬들은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콤비 이후 처음으로
멜로디의 천재를 만날 수 있었다.
 (빌보드)지는 79년 엘튼 존의 음악을 가리켜 이렇게 평했다.
 "키작고 뚱뚱한 그는 그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록음악 속에 동화시켜
자신의 음악세계로 농축해냈다. 우리는 다른 곡들이 음악적인 아닌가를 알기
위해서라면.그가 만든 (너의 노래: Your song) (베니와 제트기) (토요일밤은
싸움하기에 좋아)등과 비교해보아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빌보드)지의 격찬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이 앨범은 말해준다.

 * 굿바이 옐로 브릭 로드(Yellow Brick Road)는 굳이 번역하자면 '노란 벽
돌담길'이여 안녕! 가사의 의미 맥락상 제목을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는 것이
좋다.-편집자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만든 기념적 연주앨범
    마이크 올드필드 (튜블러 벨즈: Tubular bells)

 Tubular bells , Tubular bells 2(73년)

 예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등의 프로그레시브 음악에 충격받은 70년대
초반의 록 청취자들은 73년 또하나의 기념비적 프로그레시브 앨범을 대하면서
넋을 잃고 만다.
마이크 올드필드(Mike Oldfield)라는 이름의 젊은이에 의해 만들어진 (튜블러
벨즈)가 그것이었다. 그 앨범은 만든 사람에서부터 음악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새로웠다.그래서 모든 것이 경이였다. 새로움에 주려있고 진보적인
것을 열망했던 당시의 청취자들에게 그 앨범은 더할 나위없는 최적의
음악선물이었다.
 마이크 올드필드는 신인이었다. 음반 레이블 버진(Virgin)도 신생
레코드사였다. 문화제국을 꿈꾸던 사업가 리차드 브랜슨(Richard Branson)이
설립한 버진레코드사의 처녀작이 이 앨범이었다.또한 가수의 목소리라고는 일체
다기지 않은 오로지 연주만으로 레코드 앞뒷면을 채운 앨범이라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새로움이 주는 경이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그 음악은 소리의 향연이라 할
만큼 '감정이 배인' 온갖 효과음과 '마치 무슨 말을 하는 듯한'악기연주로
충만했다.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스케일이 사운드였다.
 또 그 환상의 사운드는 여럿이 아닌 마이크 올드필드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다한 것이었다. 이 앨범은 만들기 전 2년여를 두문불출한 그는 '1인
밴드'로 분하여 1천회 이상의 오버더빙을 통해 그 음악을 완성했다. 그 점이
경이 중의 경이었다. 더구나 제작 당시 그의 나이가 19세라는 점(53년생인 그는
72년 이 앨범을 레코딩해 이듬해 발표했다) 또한 사운드의 완성도와 비교하여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결과는 물론 대성공이었다. 연주 앨범은 팝 앨범차트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는
관례는 이 앨범과 무관했다. 앨범은 영국 앨범차트 정상에 등극했으며 무려
5년간 차트에 머물렀다. 그의 두번째 앨범(허제스트 리지: Hergest ridge)도
1위를 차지했는데 그 앨범을 1위자리에서 끌어내린 앨범 또한 (튜블러
벨즈)였다.
 이 앨범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레코드 앞면 일부가 발췌되어
73년 당시 최고 흥행을 기록한 윌리엄 프레드킨 감독의 공포영화
'엑소시스트'(Exorcist)에 삽입된 데서 비롯되었다.그것은 싱글로도 발표되어
빌보드 싱글차트 당당 7위에 오르는 히트를 기록했다.이와 함께 이 싱글로
마이크 올드필드는 74년 그래미상 '최우수 기악 작곡'부문을 수상했다.영화와
싱글에 힘입어 앨범은 미국에서 3백만장이 팔려나갔으며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1천2백만장이 팔려나갔다.
 여동생 샐리와 포크록 듀오로 활동하다 케빈 에이어즈(kevin Ayers)밴드에서
기타를 치며 재능을 인정받은 마이크의 천재성이 낳은 결과였다.
 이 앨범은 지명도가 축적되면서 70년대에 걸쳐 차트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92년에는 뒷면 (튜블러 벨즈2)를 개작해 만든 앨범이 다시 영국차트
1위를 정복했다.이 앨범이 영원불멸의  명반임을 재확인시켜 준 뚜렷한
증거였다.

    전자작곡으로 빛나는 '아티스트 자주권'의 산물
    스티비 원더 (말하는 책: Talking book)

 Superstition. Gig brother. Blame it on the sun. Lookin'for another pure
love. I believe.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 Maybe your baby. You and
i. Tuesday heartbreak. You've got it bad girl(72년)

 마빈 게이의 노선을 곧바로 뒤쫓은 모타운의 가수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였다.그는 마빈 게이가 회사측과 투쟁하여 아티스트의 자유를 이양받은
것에 감명받아, 자신도 이제부터는 회사측의 기획과 지휘보다는 '자기의.자기에
의한. 자기를 위한' 음반을 만들고자 했다.
 1971년 21세기가 된 그는 모타운 사상 가장 거액의 소속금을 받고 계약을
체결하면서 '선구자' 마빈 게이에 자극받아 자기 작품에 대한 완벽한 통제권을
회사측으로부터 넘겨받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 초 (내 마음의 음악) 앨범으로
'홀로서기'의 첫 발걸음을 뗀 그는 같은 해 10월 이 음반을 내면서 '모타운
하의 스티비 원더'가 아닌 '스티비 원더하의 모타운'임을 세상에 통보했다.
 자기가 하고싶은 대로 음악을 만든 작품인 만큼 여기서 그가 보여주는
창조성과 예술적 성숙은 놀라운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 우선 맹인의 핸디캡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전곡의 자작곡(작사는 일부 시리타 라잇,이본느 라잇이
했다)이라는 점부터 경탄할 만하다.
 스티비 원더는 마빈 게이의 전철을 밟았지만 방향은 달리 갔다. 그는 사회성이
강한 노래보다는 자기 생활체험과 사랑을 써가는 데 포커스를 맞추었다.물론
(빅 브라더: Big brother)와 같은 노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팬들에게
널리 사랑받았던 (너는 내 인생의 햇빛: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을
비롯, (화요일의 상심:Tuesday heartbreak) (또 다른 순수한 사랑을 찾아서:
Lookin'for another pure love)등 수록곡 다수가 사랑이나 이별과 관계된
곡들이 있다.
 그것은 분명 '상업성에의 고려'였다. 그는 언제나 '팔리는 노래'를 염두에
두었다. 따라서 무거운 테마나 현실참여의 경향을 비켜나면서 대중적인 가사의
노래로 팬들의 친화력을 확보하려 했다. 이런 판매에의 겨냥은 70년대말까지
스티비 원더의 사고로부터 분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앨범에 담긴 사랑노래가 억지로 짜낸 것만은 아니었다. 이 무렵
그는 아내였던 시리타 라잇과 막 이혼한 처지였다. 그는 내부의 고통으로 인해
바깥세상에 눈돌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흑인폭동의 고향 디트로이트 출신의
흑인이라는 사실을 무색케 하는 이같은 비사회성에 약점을 느꼈던지 그는
곧바로 이듬해인 73년 대중적 경향 외에 사회, 정치적 문제를 다룬 앨범
(내부시각: Innervisions)을 내놓게 된다(비평가들이 이 앨범을 그의 최고
걸작으로 꼽는데는 이 점도 작용한다).
 이 앨범의 진면목은 사운드에 있다. 그 사운드는 바로 무그 신시사이저에 의한
것이었다. 이때 갓 유행하기 시작한 신시사이저는 당시로는 신선하기 이를 데
없는 사운드의 매력을 이 작품에 공급해주었다. 말콤 세실과 로버트 마굴레프의
앨범 (영시:Zero time)에 충격받고 나서 신시사이저에 매료된 스티비 원더는
세실과 마굴레프를 끌어들여 신시사이저 기술을 체득한 뒤 이 앨범을 무그
사운드로 채색해놓았다. 스티비 원더는 이 앨범을 프로듀스했을 뿐 아니라 무그
신시사이저를 직접 연주했다.
 무그 신시사이저의 맛을 가장 잘 소화한 노래는 뭐니뭐니해도 싱글차트 1위를
점령한 (미신:Superstition)이었다. 이 앨범에서는 보기 드문 날카로운
가사('악운의 7년. 과거에 묻힌 좋은 일들. 네가 이해하지 못할 것을 믿게
된다면 너 고통받을 거야, 미신은 길이 아니야')에 실은 몰아내는 리듬엔
블루스의 진행은. 특정 카테고리로 한정하기에는 너무도 놓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원래 이 곡은 제프 벡(Jeff Beck)에게 주기 위해 만든 곡이었으나 주변의
권고로 스티비 원더 노래로 발표되어 제프 벡을 당황케 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그림 설명): 맹인 천재음악인 스티비 원더

    '70년대의 신경증'을 록으로 소화한 프로그레시브 음악의 걸작
    핑크 플로이드 (달의 어두운 저편: Dark side of the moon)

 Speak to me. Breathe in the air. On the run. Time. The great gig in the
sky. Money. Us and them. Any colour you. Brain damage. Eclipse(73년)

 실질적인 최초의 사이키엘릭 밴드, 스페이스 록밴드, 초현실적이면서도
지성적인 면모를 갖춘 최초의 록그룹, 소위 씨어터 록(theater rock)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명밴드 등 핑크 프로이드에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그러나 오늘날 탁월한 사운드와 무대연출을 결합시킨 명실상부한 '프로그래시브
록'(progressive rock)의 선두주자로서 그들을 자리매김시켜준 것은 뭐니뭐니
해도 73년 3월에 발매된 9집 앨범 (달의 어두운 저편: Dark side of the
moon)이었다.
 흔히 핑크 플로이드 음악의 결정판이라고 평가되는 이 앨범은 70년대 중반이후
디스코가 서구 음악계를 휩쓸기 전, 70년대에 불었던 프로그래시브 열풍의
성숙기를 상징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이 음반은 발표 당시 영국 차트에서 레드
제플린 앨범을 정상에서 끌어내리지는 못했지만 이후 301주간 차트를 점령하는
대기록을 수립하여 1등 못한 설움을 말끔히 씻었다(더구나 미국에서는 15년간
7백주 넘게 빌보드 차트에 랭크되어 차트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알란
파슨즈 프로젝트의 주인공 알란 파슨즈(Alan Parsons)가 엔지니어링을 한 이
앨범의 웅장한 전자사운드는 음악팬들, 특히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진보적
지성인들을 크게 매료시켰다. 이 때문에 80년대 중반가지 그들은 가장 주목할
록 그룹 내지 가수로 주저없이 핑크 플로이드를 지목했다.
 핑크 플로이드가 그러나 이들 지성인들로부터 그토록 절대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스테레오 효과 등으로 창출해낸 진보적 사운드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운드 못지않게 가사 또한 진보적이었다. 싱글로 히트된
(시간:Time)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현대사회의 소외와
스트레스, 조울증, 파라노이아(편집증)를 주요 테마로 채택한 것이었다.
 (달의 어두운 저편)이라는 제목처럼 핑크 플로이드는 현대 사회의
'어두운'측면에 초점을 겨냥했다.그들은 신경질적이고 병적인 현대인의 심리를
포착함과 동시에 이러한 역기능의 원인제공자인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돈 그것은 죄악이야. 공평하게 나눠가지라구. 허나 내 몫은 빼앗지 말라구.
말들을 하지.돈은 오늘날 모든 악의 뿌리라고,하지만 임금인상을 요구해도
그들이 아무것도 내주지 않는다는 건 놀랄 일이 아니야. (돈:Money)

 우리나 그들이나 결국 평범한 인간들이지. 우리나 너나. 그것이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라는 걸 아무도 모르지. 배후에선 "전진"이라 소리지르고 전위 부대는
죽음을 맞지. 장군은 앉아 지도상의 경계를 이리저리 옮기고 있지(우리와
그들:Us and them)

 현금출납등록기 소리가 녹음된 (돈)은 자본주의 병폐에 대해 냉소적이며
후자는 인권을 유린하는 최악의 폭력인 전쟁에 대한 조롱이었다. 로저
워터스(베이스), 데이비드 길모어(기타), 릭 라이트(키보드),닉 메이슨(드럼)은
'현대사회의 압력'을 음반의 컨셉트로 설정하면서 엔지니어 알란 파슨즈에게는
'록의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실험'을 요구했다. 이 앨범은 그 두 가지 사고가
결코 상호배타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 점이 바로 앨범이 거둔 소중한
결실이었다.
 (시간) (돈) 외에 (창공의 위대한 쇼: The great gig in the sky) (신경손상:
Brain damage)등도 프로그레시브 록의 대표작으로 매니아들의 선택을 받았다.
 대중음악에서 보기 힘든 '수준높은 메시지'와 '아방가르드(전위)적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결합이야말로 핑크 플로이드만의 재산이었다. 작사, 작곡 담당자이자
음악감독으로 그룹의 나침반 구실을 한 로저 워터스는 이 음반으로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 그룹의 방향을 결정했다. 무게중심이 그에게 기울면서 갈등의
요소가 싹트긴 했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그들은 좋은 음반을 계속 내놓았다.
그들은 75년 9월 또 하나의 명반 (네가 여기 있다면: Wish you were here)과
77년 1월 (동물:Animals)에 이어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음반을 내니,
다름아닌 79년 12월의 (벽: The wall)이었다.

    레게 음악의 매력, 레게 공연의 위력
    밥 말리 (라이브!:Live)

 Trenchtown rock. Brunin'and Lootin'. Them belly full(but we hungry).
Lively up yourself. No woman no cry. I shot the sheriff. Get up stand
up(75년)

 밥 말리(Bob Marley)는 70년대 초반 자메이카의 토속음악인 레게(reggae)를
영미 팝게에 소개한 인물이다. 이후 '레게 = 밥 말리'라는 등식이 전세계
대중음악계에 확립되었다. 레게가 그에 의해 영미 팝계에 유입되자 70년대 중반
에릭 클랩튼, 폴 사이먼, 클래시, 10CC, 보니 엠, 이글스 등 영미의 팝스타들이
다투어 레게를 자신들의 레퍼토리로 채택했다. 밥 말리는 레게를 대중화,
세게화시켰고 영미 팝음악게에서 성공한 유일한 제3세계 음악으로 레게가
자리잡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
 그는 레게음악만 들려준 것이 아니라 자메이카 흑인들의 궁핍한 생활상을
묘사하고 그것을 가져온 영, 미 자본주의 억압적 통치를 고발하는 내용의
노랫말을 함께 실어날랐다. 이 음반에 수록된 노래 전부가 이런 메시지로부터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어서 말리는 전세계 흑인들의 단결을 부르짖으며
권리투쟁을 이끌었고 희망이 땅인 아프리카로 돌아가자고 설득했다. 레게가
가지는 진정한 가치는 이같은 저항적 측면이었다. 그것은 결코 흥겨운
댄스음악이나 흥얼거리는 오락음악이 아니었다.
 (라이브!)는 그가 레게를 통한 세계정복의 자신감이 충만하던 시절인 75년
발표되었다. 말리는 이미 데뷔작인 (불을 붙여라: Catch a fire ^5.23^73년)에
이어 (버닝:Burnin', 73년) (나티 드레드:Natty dread, 74년)등 일련의 걸작을
내놓아 주목받고 있었다.
 이 앨범은 75년 7월 두 차례 가진 런던의 라이시움 볼룸에서의 콘서트 실황을
녹음 , 편집한 것이다. 공연 레퍼토리는 (버닝)과 (나티 드레드)에서 각각
3곡을 뽑았으며 새 노래 (트렌치 타운 록:Trench town rock)을 섞어 7곡으로
구성했다.
 이 음반은 매력은 라이브 레게 콘서트의 경이적이라 할 만한 걱정과 흥분에
있다. 스테이지와 객석의 일체감은 더할 나위없이 훌륭하며 공연장의 한쪽
지붕이 열린 관계로 더워진 실내는 관중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이같은
열기는 백업 밴드인 웨일러스(the Wailers)의 무아도취적 연주와 적절히
파고드는 3인조 여성코러스 아이-쓰리스(I-Threes)가 뒤섞어 빚어낸 것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좋은 노래를 들려준 밥 말리의 힘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리지널과 다르지만 라이브 해석이 가지는 독특하고 오묘한 맛을 확실하게
느끼게 해준다.
 이런 점에서 이 앨범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여성이여 울지말아요: No woman
no cry)일 것이다. (나티 드레드)에 수록된 원곡보다 훨씬 길게 연주된 이
노래는 말리의 호소력, 자유분방하고 환상적인 리듬기타와 베이스 연주, 주선율
커버해주는 여성코러스가 어우러져 탁월한 라이브의 흡인력을 발산하고 있다.
공연장에 찾아온 자메이카 관중들은 이 노래를 듣고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레게그룹 써드 월드(Third World)의 한 멤버는 "이 노래를 들으면
자메이카인들은, 옛날 슬퍼도 희망을 찾으러 달려가던 때가 생각나게 되어
눈물을 흘린다."고 코멘트하기도 했다

 우리가 트렌치타운에서 관청의 뜰에 앉아 위선자를 응시하던 대가 기억나네.
이 위대한 미래를 앞두고 그같은 과거를 잊을 수는 없어. 눈물을 말려요.
여성이여 울지 말아요...(여성이여 울지말아요)

 공연장은 비록 런던이지만 말리가 객석을 끌고가는 곳은 트렌치타운이었다.
말리는 자메이카의 킹스턴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곳에서 자라났다. 공연
사회자의 "트렌치타운의 체험을!"이라는 말과 함께 첫 곳 (트렌치타운 록)이
울려퍼지는 것은 이와 관련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외 (방화와 약탈:Burnin' and lootin') (기운을 내요:lively up yourself) 
(일어나 서요: Get up, stand up)그리고 에릭 클랩튼이 리메이크해 차트
1위까지 올린 (난 보안관을 쏘았어:I shot the sheriff)등도 '정통 레게'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클래식(고전)이다. 그것들은 또한 라이브의 클래식이기도
했다.

    재즈록의 내음이 깃든 일렉트릭 록 기타의 교본
    제프 백 (블로우 바이 블로우: Blow by blow)

 You know what i mean. She's woman. Constipated Duck. Air blower.
Scatterbrain. Cause we've ended as lovers. Thelonius. Freeway Jam. Diamond
dust(75년)

 제프 백(Jeff Beck)은 60년대 중반 그룹 야드버즈(Yardbirds)를 거쳐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제프 벡 그룹'을 결성하여 활동할 때만 해도 흑인 블루스에
미쳐 있었다. 모두 야드버즈 출신으로서 그와 더불어 '세계 3대 록 기타'로
불리는 에릭 클렙튼, 지미 페이지처럼 엄연히 그의 기타 출발은 블루스였다.
명반으로 꼽히는 제프 백 그룹 시절의 (진실:Truth)에서 그는 블루스의 전설인
윌리 딕슨(Willi Dixon)의 (넌 나를 흔들었지:You shook me)와 하울링
울프(Howling Wolf)의 (넌 미신을 믿지 않아:I ain't superstitions)등 블루스
고전을 재해석하여 연주했다.(이 그룹에서 보컬을 맡은 사람이 샤우트 창법으로
제프 백과 함께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로드 스튜어트였다.)
 그러나 70년대로 들이시면서 그의 흥미는 서서히 재즈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재즈 분야에서나 록 부분에서 공히 상대쪽 쟝르에 호기심을 품고
상호교차의 의지 속에 출현하여 유행을 타고 있던 재즈록(Jazz rock)이
그것이었다. 그는 특히 존 맥러플린이 이끄는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John
McLaughlin and Mahavishnu Orchestra)의 재즈록이 퓨전에 영감을 받아 거기서
새로운 음악적 개념을 구상해냈다.
 2년여의 공백을 뚫고 그가 75년 발표한 앨범 (블로우 바이 블로우)는 이리하여
블루스 사운드와는 질감이 다른 재즈록의 내음이 강하게 퍼져나왔다. 하지만
항상 변화를 찾아온 그에게 재즈록은 하나의 정점을 의미하기도 했으나
'예술성으로 지배된 시대의 정서'가 개입한 결과인 것도 사실이었다.
 출신이 록기타리스트인 관계로 재즈와 록의 접목을 꽤했다지만 무게중심과
밑바닥에 흐른 것은 어디까지나 록이었다.그는 (블로우 바이 블로우)로
록기타가 다다를 수 있는 최상의 단계에 도달했다는 평을 받기에
이르렀다.기타연주를 록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것이었다. 라이벌 지미 페이지는
이 앨범을 '기타주자의 귀감이 될 레코드'라고 칭송했다. 에릭 크랩튼이 바로
후에 선보인 앨범 (에릭 클랩튼이 여기 있습니다: E.C. was here) 또한 이 앨범
없이는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한 비평가도 있었다.(당시 영국의 기타
영웅들이 얼마나 록의 예술성 추구에 깊이 몰입해 있었는가 알 수 있다)
 이 앨범에는 정말 골 기타리스트로서 필수적인 테크닉, 센스, 필링들로 꽉
태워져 있다. 보컬은 전혀 없이 제프 벡의 기타를 축으로 드럼, 베이스, 키보드
등 악기로만 편성된 연주음반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가리켜 '일렉트릭 록 기타
연주의 교본'이란 평이 등장한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비틀즈의 오리지널을 각색한 (그녀는 여자: She's a woman)에서 그는 토킹
사운드(talking sound)기법으로 '보컬 없이 기타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인지시키려 했다. 무드를 살린 몽상적인 4분의 5박자 곡 (다이아몬드 더스트:
Diamond dust)로는 멜로디 라인과 기타 톤을 절묘하게 융합시켜 일렉트릭
록기타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한 (스케터브 레인:Scatterbrain)은
강하게 밀어부치는 일렉트릭기타의 액센트를, 스티비 원더의 고전인 (슬픔의
연인들:Cause we're ended as lover)은 존경하는 선배 기타리스트 로이
부캐넌(Roy Buchanan)의 특기이기도 한 '바이얼린 톤'을 선사하고 있다. 그는
주법에 있어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준 로이 부캐넌에게 실제로 (슬픔의
연인들)을 헌상했다.
 알렉트릭 기타의 모든 것이 여기 있다. 누가 뭐래도 기타주의 아닌
'기타예술가'가 꽃피워낸 사운드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림 설명): 영국출신 3대 록기타리스트 중 하나인 제프 벡의 기타연주에는
혼이 깃들어있다는 평을 듣는다.

    산업시대에 탄생한 사업 음악
   크라프트베르크 (방사능: Radioactivity)

 Geiger counter. Radioactivity. Radioland. Airwaves. Intermission. News.
The voice of energy. Antenna. Radio stars. Uranium. Transister. Ohm sweet
ohm(75년)

 (가이거 계수기:Geiger counter) (방사능: Radioactivity) (방사능 지역:
Radioland) (전파: Airwave) (열차단: Intermission) (뉴스: News) (에네르기의
소리: The voice of energy) (안테나:Antenna) (전파성:Radio star)
(우라늄:Uranium) (트랜지스터:Transister) (옴, 즐거운 옴:Ohm sweet ohm).
 이것은 전파공학용어의 나열이 아니다. 엄연히 노래제목이다.
 이러한 노래를 만든 주인공을 독일 뒤셀도르프 출신의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랄프 후터와 플로이언 슈나이더 두 사람이 주축이
된 그룹으로 크라프트베르크라는 이름은 발전소(Power plant)을 의미한다.
 72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그들의 사운드는 전세계 팝계에 신선한 충격을
몰아왔다. 우리에게도 그들의 음악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크라프트베르크의
75년도 발표작인 이 앨범의 타이틀곡 (방사능)은 사운드의 충격을 던지며
우리의 전파매체와 다운타운가를 휩쓸었고 이어서 (안테나도 청취자들을
사로잡았다. 두 노래는 선율위주 팝송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들 아니 세계의
음악 팬들의 청각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진보적 사운드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다.
 크라프트베르크는 자신들이 서있는 시대적 환경의 특성을 알고 있었다. 독일의
공업도시인 뒤셀도르프에서 자라난 그들 눈에 목격된 70년대는 산업화가 극을
달리고 있던 시대였다. 클래식 음악광이었던 그들은 전자 메커니즘 환경에
살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음악을 표현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그들은 라디오의 콜시그널, 혼신되는 무전사운드, 중복되는 테잎을 음향효과로
응용했으며 과학기술의 시대를 살아가는 만큼 또 그것을 대변하는 음악이이
만큼 최신 전자판(electronic pat)으로 사운드를 창조했다. 그들은 기타의
자리에 대신 신시사이저를 앉힌 것이었다.
 청취자들을 더욱 경악시켰던 것은 방사능과 무전의 '보이지 않는 흐름'을
인간의 감정에 이입시켜 현대인의 감정교류로 그려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발상의 대전환이었다.

 방사능이 너와 내가 숨쉬는 대기에 잇다. 퀴리부인이 발견한 방사능이
멜로디로 바뀌고 있다. (방사능)

 비평가들은 크라프트베르크를 '산업음악(Industrial music)의 선구자'로
규정한다. 더러는 음악을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하며 아트록의 범주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들은 이 앨범 외에 74년 (아우토반: Autobahn, 그들의
최고 걸작으로 인정받는다.), 77년 (유럽횡단특급: Trans Europe Express),
78년 (인간기계:The man machine), 81년 (컴퓨터 세계:Computer world) 등을
발표했다.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더욱 인정받아 82년에는 (인간기계)에 수록된
곡 (모델:The model)이 뒤늦게 영국에서 빅 히트, 독일인 최초로 영국 싱글차트
정상을 밟는 영광을 차지했다.
 그들의 음악은 순간적 호기심으로 바래버리지 않고 데이비드 보위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더 나아가 80년대 초반 휴먼 리그 등의 신시사이저 팝그룹 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후예들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단순한
'신시사이저의 마법사'로부터 '일렉트로닉 음악 과학자'로 그 위치가 크게
격상되었다.
 (그림 설명): 크라프트베르크가 음반작업을 하고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로 결정화된 '허무의 오페라'
    퀸 (오페라의 밤: A Night at the opera)

 Death on two legs. Lazing on a sunday afternoon. I'm in love with my car.
You're my best friend. '39, Sweet lady. Seaside Rendezvous. The prophet's
song. Love of my life. Good company. Bohemian Rhapsody. God save the
Queen(75년)

 무명에서 갓 벗어난 세계로 도약을 꾀하고 있던 그룹 퀸(Queen)을 일약 월드
그룹으로 부상시켜준 앨범마다 76년 세계적 히트를 기록했고 국내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모았다.
 그들의 4번째가 되는 이 앨범이 성공하게 된 것은 앞선 3장의 전작들에 일관된
하드록의 경향에서 벗어나 덜 시끄럽고 우아한 사운드로 전향, 대중성을 기했기
때문이다. 초기 퀸의 음악은 데이비드 보위가 깃대를 꽂은 글렘 록의 흔적이
있는 데다 특화된 하드록도 아니어서 비평가나 수요자들로부터 시선을 끌지
못했다.
 '영국의 우물안 개구리' 퀸은 그러한 음악을 가지고는 미국으로 점프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충격요법을 동원한 전무후무한 사운드의 음악을 선보이기로
했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기존 하드록에 보컬 하모니를 살린 '오페라틱 터치'를
가미했다.
 그 결정체가 바로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였다. 이 곡은
감상적인 멜로디로 어필했지만 흡사 오페라를 연상케 하는 중간 파트의 합창을
청취자들을 압도했다. 곡을 쓴 프레디 머큐리를 축으로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 3인이 교차하여 빚어낸 보컬의 융합은 예술의 극치를 느끼게 환상적인
무드를 자아냈다. 짙은 허무가 깃든 가사 또한 음악의 형식 못지 않은 자극을
던졌다.

 모든 사람이여 안녕. 난 떠나야만 해. 너를 뒤로 남기고 진실과 부딪칠 거야.
엄마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난 때로 태어나지 않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누구든 알 수 있어. 아무것도 내겐 중요치 않아.

 이 곡은 오랫동안 국내에서 방송금지 되었다.(금지 이유란, 가사내용 중 '한
사나이를 쏘았다.'는 대목 때문인데 이는 시, 가사류에 대한 교양이나 상상력이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다.- 편집자)
 주목받은 만큼 지탄도 뒤따랐다. 나약한 내용의 노랫말. 오만한 진행.순수함을
억누른 과장된 곡조 등 모든 부분에서 9보헤미안 랩소디)는 바로 이어 태동된
펑크(punk) 진영의 공격 표적이 되었다. 이와 함께 백미를 이룬 오페라적
부분은 많은 오버더빙을 완성한 것이어서 실황에서는 완전 재현이 어려웠던
약점으로 작용했다. 평크록 가수들의 시각에서는 '소탕해버려야 할 모든 것을
안고있는 사이비 록'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중들이 이 곡의 매력에 끌려 영국에서는 싱글차트
정상, 미국에서는 9위에 오르는(전미 첫 톱10) 히트를 기록했다. 특히
그때까지는 유행하지 않았던 홍보용 뮤직비디오를 동원한 덕분에 영국차트에서
무려 9주간 1위를 고수했으며,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사망한 후인 91년
말에 다시 영국차트 1위를 점령, 신세대들로 사로잡았다.
 국내에서는 외국 차트와 무관하게, 아름다운 선율과 발군의 프레디 머큐리
보컬이 담긴 (내 일생의 사랑: Love of my life)이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다.
퀸의 많은 히트작이 유행에 따라 사라진다 해도 이 노래와 (보헤미안
랩소디)만은 살아남아 우리사이에서 널리 애청될 것이다.
 4옥타브 이상의 고음역을 자랑하는 타고난 가수 프레디 머큐리가 쓴 곡들
(보헤미안 랩소디) (내일은 사랑) (해변의 만남:Seaside rendezvous)은 이
앨범의 중심을 이룬다. 하지만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의 (39년)과 드럼주자
존 디콘이 쓴 (너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You're my best friend, 빌보드 차트
16위)도 그 못지않게 좋다.
 (그림 설명): 그룹의 두 주역인 프레디 머큐리(왼쪽)와 기타주자 브라이언
메이.

    '로큰롤의 미래'는 월남전이 '살아있는 과거'임을 예고한다
    브루스 스프링스틴 (달아나기 위해 태어나: Born to run)

 Thunder road. Tenth avenue freeze-out. Night. Backstreets. Born to run.
She's the one. Meeting across the river. Jungleland(75년)

 75년 마침내 베트남전이 막을 내렸다. 패전국이 된 미국인의 가슴 속에는
허탈과 좌절 그리고 도피의 정서가 스며들었다. 대중음악은 그러나 착취당하고
있는 서민과 노동자들의 기분을 담아내는 것을 사양했다. 메시아 없는 전자
댄스음악과 막 태동된 디스코. 복잡한 프로그레시브 음악이 마치 지금은 '좋은
세상'이라고 얘기하듯 활개를 쳤다. 록은 후퇴하고 있었다.
 거기에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은 반기를 들었다. 그는 록계의
사조와 유행의 파도타기에 실망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고자 했다.
그런 사고의 토대 위에 이 앨범이 만들어져 나왔다.
 팝계는 오랜만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의 음악은 정통 록이었고 더구나
60년대식 저항이 깃든 진짜 록이었기 때문이었다. (타임)과 (뉴스위크)도
똑같이 놀랐다. 두 시사주간지는 동시에 미국판 표지인물로 그를 다뤄 그
쇼크를 대서특필했다. (타임)의 경우는 그를 '록의 새로운 센세이션'이라고
격찬했다.
 브루스는 이 앨범에서 미국 노동자들이 생활상에 포커스를 겨냥했다. 그는
그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간직하고 살아가기는커녕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음을 알렸다. 서민대중들은 혼란, 일상적 권태, 사랑의 상실,
도피의식 등으로 포위되어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이 도시는 당신의 등뼈를 갉아먹는다오. 그것은 죽음의 올가미요 살인장치야.
우리는 젊을 때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요.(달아나기 위해 태어나: Born to run)

 그들은 한밤중 거리에서 너의 이름을 부른다. 너의 졸업식 가운은 그들 발에
밟혀 누더기가 된다. 새벽 오기 전 외롭고 찬 기온에 당신은 엔진소리가
부르릉거리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현관에 갔을 때 그들은 바람타고 가버린다.
자 메리여 타라. 패자만이 가득한 이곳. 이기기 위해 난 이곳을 빠져나간다.
(천둥의 길: Thunder road)

 희망 없는 그들이 사는 곳은 (얼어버린 10번가:Tenth Avenue freeze-out)요, 
(정글:jungle land)이었으며 오로지 (뒷가지:Backstreets)에서나 신명나게 달릴
수 있었고 (밤:Night)이라야 제대로 호흡할 수 있었다. 그들은 탈출해야 했고
도망쳐야 했다.
 그의 현실스케치는 참담한 것이었지만 솔직했다.그는 현재의 과감한 지적을
통해 미래의 부푼 꿈을 제시했다.그의 메시지에서 사람들은 절망 아닌 참신한
희망을 얻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이 앨범을 통해 일약 '노동자의 대변인'으로 급성장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그의 음악을 이해했고 그의 의견에 수긍했다. 앨범은 차트
3위까지 진출했고 1백만장 판매를 돌파했다(지금가지 4백만장). 그는
대중적으로 성공하고 이미지 메이킹도 성공하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순식간에 그는 록계의 두목(Boss)이 되었고 록의 장래가 그로부터 설계되기
시작했다.앨범 출시되기 전해였던 74년, 그의 공연을 보고 록비평가 존 랜도는
흥분하여 기사에 '난 로큰롤의 미래를 보았다.그의 이름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다."라고 썼다. 그의 안목은 정확했다. 바로 이듬해 그의 예측이
실현된 것이었다.
 존 랜드의 언급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심혈을 기울여 이 앨범을
만들었다(그러나 작업은 완성도에 집착한 브루스 스프링스틴 때문에 수개월이
걸렸으나 존 랜도가 직접 녹음에 참여하면서 속도감 있게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사로 인기몰이 해주고 작업에도 기여한 존 랜도는 이 앨범 이후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매니저가 되었다.
 브루스는 '가창은 로이 오비슨 같고 사운드는 필 스펙터 같은' 앨범을 원했다.
흐느낌이 강한 로이 오비슨 같은 보컬이 되지는 않았으나 필 스펙트의 '사운드
벽'방식 적용에는 성공했다. 앨범의 사운드가 풍성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는 이 앨범으로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미국 내의 스타였다.세계적인
스타가 되기 위해선 좀더 세월이 흘러야 했다. 이로부터 9년이 지나서야 그를
월드스타로 만들어준 (미국에서 태어나: Born in the USA)가 나왔다.

 * 브루스는 영화 '필라델피아'의 주제가로서, 필라델피아 거리에 빗대어
도시사회의 비정함을 노래한(The Streets of Philadelphia: '94 아카데미
주제가상수상)을 불러 또다시 그의 건재함을 보여주었다.-편집자

    기술로 짜낸 엘리트 공학도의 정교한 스튜디오 록
    보스턴 (Boston)
 More than a feeling. Peace of mind. Foreplay/long time. Rock & roll band.
Smokin'. Hitch a ride. Something about me. Let me take you home
tonight(76년)

 47년생 탐 숄츠(Tom Scholz)는 미국의 매사추세츠의 명문 MIT공대의 기계공학
서사 출신. 졸업시 평균학점이 5.0 만점에 4.8이었던 수재였다.
 졸업 후 그는 '밤과 낮'이 다른 생활을 했다. 낮에는 매사추세츠 소재
유력회사의 산업디자인 부서에서 근무했고 밤에는 보스턴의 노스 서킷 일대에서
활약하던 록밴드 멤버가 되어 기타를 연주했다. 그러면서 그는 12트랙 콘솔 등
녹음시설은 구입해 자기집 지하실에 스튜디오를 꾸려놓고 음악작업에 몰두했다.
 이 때가 71년이었고 그로부터 4년 뒤 그는 아예 직장을 때려치웠다.
이중생활을 청산하고 음악으로 '업종전문화'를 꾀하기 위해서 였다. 이리하여
그를 축으로 브래드 ㄷ프(보컬), 배리 구드로(리드 기타), 프랜 시핸(베이스),
시브 해시언(드럼)로 구성된 5인조 그룹 보스턴(Boston)이 탄생되었다.
 탐 숄츠가 만든 데모 테잎은 에픽 레코드사에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고
그리하여 출반된 데뷔앨범은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앨범은 9백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실적을 쌓았고 싱글 (느낌이상으로: More than a feeling)가 빌보드
차트 5위까지 올랐다. 특히 앨범은 팝사상 '가장 많이 팔린 데뷔방법'으로
기록되었다.
 그들의 사운드는 청취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너무도 정교했고 빈틈없이
악기 연주가 맞아들어 갔고 기술적으로 다른 밴드의 사운드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뛰어 났기 때문이다.
 탐 숄츠는 공학도답게 온갖 스튜디오 시설의 효과를 응용하여 모든 악절의
연주를 꼼꼼히 체크했고 원하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일일이 '찍어'가며
녹음하여 이 음반을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어떠한 흠집도 묻어나오지 않는
기술적 완벽을 이 음반에 구현했다. 기계에 의존하여 나타난 그 완벽은 '과연
라이브로 재현해낼 수있느냐'는 우려를 낳을 적도의 완벽이었다. 지나친 기술적
경향과 관련해 탐 숄츠는 다음과 같이 대변했다.
 "기술은 어떤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사람들은 이미
그것의 먹이로 떨어져버렸다.구매자들은 사운드가 어디서 나오는지. 어떻게
그것을 응용했는지 전혀 이해하지 않고 단지 나가서 어떤 사운드를 구입할
뿐이다."
 기술시대를 살아감에 따라 이미 기술의 보편성이 확립된 상태에서 그것을 굳이
들추어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보스턴의 사운드는 하드하고 무거운 록의 경향을 풍겼지만 또한 멜로디가
넘치고 하모니를 강조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이를테면 기계적이라고 해서
차갑지 않고 오히려 푸근한 느낌이었다. 이것이 보스턴 사운드의 강점이었고
'대중의 인정'을 획득한 요인이기도 했다.(느낌 이상으로)외에 싱글로 발표된
(오랫동안: Long time, 22위) (마음의 안정: Peace of mind, 38위)등 수록곡
대부분이 '시끄럽지만 듣기 좋은'록이었다.
 이후에도 78년 (뒤돌아보지 마: Don't look back)에서 이어 그들은 8년의
공백을 뚫고 86년 새 앨범 (세번째 무대: Third stage)를 발표, 다시 한 번
'보스턴 현상'을 야기시켰다. 그리고 90년대엔 로열티 문제로 탐 숄츠와
CBS레코드사가 법적 공방을 벌여, 2천만 달러의 손해배상 지급이라는 숄츠의
승소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그룹은 얼마 안있어 소멸되어버렸다. 보스턴은 매우 적은 앨범(3장)을
내고도 록 역사에 굵은 자취를 남긴 그룹이었다.
 (그림 설명): 맨 왼쪽이 그룹의 정교한음악을 창조한 탐 숄츠.

    긴장의 70년대와 탐욕의 80년대, 그사이 자리한 록의 이정표
    이글스 (호텔 캘리포니아: Hotel California)

 Hotel California. New kid in town. Life in the fast lane. Wasted time.
Wasted time(reprise). Victim of love. Pretty maids alf in a row. Try and
love again. The last resort(77년)

 앨범 (호텔 캘리포니아)는 그룹 이글스를 세계적인 밴드로 격상시킨 음반으로,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6년 2월 발표된 이 음반은
캘리포니아 해변가에서 서 있는 호텔을 국가에 대한 은유로 사용하면서
미국인들의 70년대식 욕망추구 과정을 진솔하게, 한편으론 비판적으로 다양하게
표현해냈다. 그럼으로써 '70년대식 미국의 꿈과 좌절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이 음반의 끝곡인 (마지막 유원지: Last resort)에서는,
캘리포니아가 원주민 인디언의 '침실' 위에 성립되었다는 역사적 비극성을
지적하며 '캘리포니아 = 파라다이스'라는 이미지를 부정하고 있다. 이 앨범의
타이틀곡인 (호텔 캘리포니아)는 이글스의 세 명의 기타리스트 중 조 월시(Joe
Walsh)와 돈 휄더(Don Felder)가 펼치는 환상적인 기타 연주와 완벽한 컨추리록
사운드로 인해 현재까지도 웨스트 코스트를 대표하는 록음악으로 각광받는다.
 이글스는 이 앨범에서 자신들의 과거 음악성과는 약간 다른 면을
내비친다.초창기 웨스트 코스트(서부 해안)의 푸른 하늘을 상징하듯 밝고
경쾌한 사운드와 단순 명료한 기사를 전달했던 것에서 탈피, 한차원 높아진
음악 스타일과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재조명하는 가사를 담은 것이었다.앨범
커버의 사진에서 상징하고 있듯이 어둡고 신비적인 면이 엿보이고 있는데, 당시
이글스의 멤버들이 추구했던 것 역시 이러한 것이었다. 사실 캘리포니아는
'아메리카 드림'의 상징적인 장소인 동시에 미국의 여러가지 병리현상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곳이다. 예를 들면 미국 범죄사상 명성이 높았던 찰스 맨슨
패밀리(마피아 조직)에 의한 당시의 인기 여배우 샤론 데이트의
피살사건(69년)은 병든 토지로서의 캘리포니아를 단적으로 입증한 사건이었다.
또한 옛부터 이곳에는 기괴한 신흥종교 집단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존재했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이글스는 캘리포니아를 단 한번도
찬양한 적이 없었다고, 얼마전 이글스의 드러머였던 돈 헨리(Don Henry)가 밝힌
바 있다.하지만 이글스의 음악은 (호텔 캘리포니아)의 환상적인 가사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캘리포니아를 꿈과 동경의 땅으로 오인케 하였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많은 음악관계자나 이글스 멤버들조차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앨범 (호텔 캘리포니아)는 당시 제 20회 그래미상에서 '올해의 레코드'상을,
싱글 (마을에 나타난 이방인: New kid in town)으로 '최우수 편곡'상을
수상했다. 또한 이 앨범에서는 세 곡의 노래가 싱글로 컷트되어 히트하였는데,
우선 차분한 멜로디와 리듬이 인상적인 (마을의 이방인)이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랐고 이어 (호텔 캘리포니아)가 역시 1위, 그리고 쾌속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고속도로 의 인생: Life in the lane)이 11위에
랭크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싱글 히트곡의 영향 때문인지, 앨범 역시
8주간 차트 1위에 올랐고 또 무려 107주간이나 차트에 머무는 기록을 세웠으며
9백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고를 세웠다.
 이와 같은 상업적 성공 때문에 이 앨범을 두고, 록 평론가들은 "그룹 이글스의
앨범 중 가장 재미있는 음반은 아니지만 가장 실속있고 내용있는 작품"이라
말하고 있다. 한편으로 음악적인 측면에서 "이글스의 영감과 통찰력은 가끔
불타오르곤 하는데 이 앨범이 바로 그러한 앨범"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
통찰력이란, 자신들의 70년대가 '60년대 이상주의'와 '80년대 탐욕주의' 사이의
'긴장과 갈등'의 시대라는 사실을 간파한 것을 의미하고 있다.
 76년 그룹에 새로이 가입한 조 윌시라는 탁월한 기타리스트의 영향으로
본격적인 록 사운드를 구사하게 된 것이야말로 이 앨범 사운드 측면의 진정한
가치였다. 이글스는 이 앨범으로 이전의 허약한 사운드에서 탈피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그러나 (호텔 캘리포니아)의 과중한 대중적 호응은 이글스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역기능도 발휘해 이후 그들은 동수준의 걸작을 생산하지
못했다.

    시장을 움켜쥔 기업화된 팝록의 결정판
    플리트우드 맥 (소문:Rumours)

 Second hand news. Dreams. Never going back again. Don't stop. Go your own
way. Songbird. The chain. You make loving fun. I don't want to know. Oh
daddy. Gold dust woman(77년)

 순식간에 1천 2백만장이 팔려나가면서 78년 (토요일밤의 열기) 사운드 트랙
앨범이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된
역사적인 음반. 그러나 한 아티스트의 앨범으로는 83년 마이클 잭슨의 (드릴러)
전까지도 영예로운 그 기록을 유지했다.
 록 무대 밤에서는 그다지 유명한 그룹이 아니면서 또한 디스코 물결을 등에
업은 (토요일방의 열기)처럼 시대 유행을 탄 앨범도 아니면서 그 같은 신기원을
이룩했다는 점은 실로 경이적이다. 록 서클 안에서는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와 함께 70년대의 메인스트림 록(mainstream rock)을 정리하는
중요한 음반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그룹 역사(1967년 결성)에 비해서는 '기각'
성공이라는 점도 앨범의 가치를 높여주었다.
 이 앨범은 무엇보다도 (토요일의 열기)와 더불어 70년대 록음악을 '기업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업적을 쌓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그 무렵 웬만한 록
레코드는 가뿐히 1백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었다.78년 '포브스'지
7월호는 "최근 연예계에 큰 돈이 있는 곳은 레코드"라고 진단했다.팝은
바야흐로 '음악산업'으로 변질되어가고 있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이 앨범을 만들 당시 프리트우드 맥(Fleetwood Mac) 멤버
5명 중 4명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는 사실 린지 버킹햄과 스티비
닉스의 애정전선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부부인 존과 크리스천 맥비도 파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긴장이 내재된 속에서 걸작음반이
탄생된 것이었다.

 너를 사랑하는 것은 올바른 일은 아니야. 내가 느끼는 거들을 어찌 바꿀 수
있겠어. 너에게 나의 세계를 주었으면 해 그러나 네가 내게서 그것을 취할 수
없는데 어찌할텐가. 너의 길을 가야해. (너의 길을 가라:Go your own way)

 그댄 이기는 것이 뭘 뜻하는지 모르지. 내려와서 날 다시 봐. 한번 깨지고
두번 깨지고 난 다시 되돌아가지 않을테야. (다시 되돌아가지 않으리:Never
going back again)

 이 노래들은 장미빛이 제거된 멤버들 간의 생기류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전체적으로는 결코 감상이나 자기연민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기운차면 사려깊은 분위기를 내뿜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앨범
성공의 추진력으로 작용한다.(체인: Chain)은 멤버 전원이 작곡에 참여한
노래로 역경에 직면한 가운데에서도 단결의 지혜가 발휘된 대표적인
곡이다.또한 앨범 전체에 강조된 다양한 리듬의 절묘한 조화를 축약하고 있는
곡이기도 한다 .이 곡이 대표하듯 듣기좋은 웨스트코스트록의 매끄러운
리듬이야말로 이 앨범 수록곡들의 최대의 강점이었다.
 내면적 고통과 관계없이 멤버 세 사람이 펼쳐보인 작곡능력은 찬란한 빛을
발한다.스티비 닉스가 쓴 (꿈: Dreams), 크리스천 맥비의 (멈추지 말아요:
Don't stop)와 (넌 사랑을 재미있게 하지: You make loving fun), 린지
버킹햄의 (너의 길을 가라) 등 모두가 발군의 작곡 실력이 낳은 수작이었다. 이
네 곡은 전부 전미 싱글차트 톱 10에 진입하는 차트사상 초유의 쾌거를 올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앨범은 다운타운가에서 이례적 호응을 얻었다. 빌보드의
인기곡들 외에도 (오 아빠: Oh daddy)와 (송버드: Songbird)가 꾸준히 인기를
끌었다. 한 장이 앨범이 이처럼 '좋은 곡들의 모음'으로 구성되기란 흔치않은
일었다.
 (그림 설명): 믹 플리트우드, 존 맥비, 린지 버킹햄, 스티비 닉스, 크리스천
맥비(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힘빠진 록에 반성을 촉구한 펑크록의 충격
    섹스 피스톨즈 (네버 마인드 더 볼록스: Never Mind The Bollocks... Here
is the Sex Pistols)

 Holidays in the sun. Bodies. No feelings. Liar. Good save the Queen.
Problems. Seventeen. Anarchy in the U.k. Submission. Pretty vacant. New
York. E.M.I(77년)

그것은 통쾌하고 후련한 카운터 펀치였다. 당시 팝계를 제패하고 있던
'제도권'의 아늑한 음악은 그 일격에 고목처럼 쓰러지고 말았다. 그것은
혁명이었고 그 주체는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였으며 76년과 77년 영국은
그들과 그들의 음악인 펑크의 세상이 되었다.
 펑크(punk)는 베이비붐 세대가 듣고 있었던 세련되고 기업화하고 있던
록음악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 원조인 섹스 피스톨즈는 "제도권의 록은 죽은
음악이며 그렇다면 그것은 록일 수 없다."고 소리쳤다. 록은 절대로 고급에
길들여지거나 차분해서는 안되며 기업적 형태에서 물들서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음악은 차라리 소음이었다.(기타리스트 스티브 존스는 자신의 기타
사운드를 '소음의 벽'이라 했다). 고삐풀린 광기의 에너지였고 신랄한 공격과
오만불손한 언어들을 마구 쏘아댔다. 그들의 모든 것이 이 한장의 음반에
담겨있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이 유일한 앨범으로 록이 생리적으로 보유한
청춘의 폭발성과 기존 기성에의 저항을 재생시켰다는 섹스 피스톨즈의 업적을
확인할 수있다.
 섹스 피스톨즈의 혜성 같은 출현은 다름아닌 영국의 시대상황이 부른 것이었다
70년대 중반 영국의 경제는 노동당 정부의 정책실패로 실업률이 1백 20%까지
치솟는 등 파탄지경에 달했다. 고용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한 젊은이들은
분노했고 허탈해했다. 펑크는 바로 그 분노의 에너지를 토해내는 출구였고 섹스
피스톨즈는 그 기수가 되어 '반역집단'으로 부상한 것이었다
 일자리가 없는 ㅈ은이들에게 아름다운 사랑노래와 고급스런 록은 의미가
없었다. 이 때문에 그룹의 리더 자니 로튼은 "실업자들에게 러브송은 필요가
없다"고 외쳤다.섹스 피스톨즈는 기껏 사랑 또는 자신들의 문제만을 노래하는
롤링 스톤즈나 후 같은 '부자그룹'과 그들에 의해 움직이는 시스템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들은 대중음악계뿐 아니라 제도권의 모든 것과 싸웠다.
 76년 발표되어 영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대영제국의 무정부상태:Anarchy in
the UK)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반그리스도요, 무정부주의자라고 천명했다 이
싱글을 발표한 EMI 레코드사는 이같은 도발적 이념을 문제삼아 그들과의 계약을
해제했다(그들은 곧바로 A&M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었으나 역시 깨졌고
신생레코드사인 버진에 의해 구제되어 음반을 출반하게 된다).
 역시 문제작인 (신은 여왕을 구해준다: Good save the Queen)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영국 왕실과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노골적인 비아냥이다. (태양의
휴일: Holidays in the sun)과 (멋지고 한가하고: pretty and vacant)는 이런
분노를 가져오게 한 원인 즉 실업을 소재로 다뤘다. 이 4곡의 노래는 싱글로
발표되어 영국 차트를 강타했다.
 나머지 곡들도 대부분 기존체계와 제도권에 대한 공격 일색이다. 제도권은
(거짓말쟁이: Liar)에서 믿을 수 없는 거짓말쟁이로 비하되고 (문제들:
Problems)에서 '문제는 우리가 아니고 우리에게 일자리도 주지 못하는 썩어빠진
너희들'도 욕먹는다. (뉴욕: New York)은 미국에 대한 적의 (이엠아이: EMI)는
바로 자기들을 버린 제도권 기업에 대한 한풀이성 조롱이다. 노랫말 점잖은
체면으로는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마구난무하다.
 이 앨범이 발표되고 몇 달 후인 78년 1월 미국공연을 마친 자니 로튼은
그룹해체 소식을 발표했다. 그와 폴 쿡(드럼),스티브 존스, 시드
비셔스(베이스) 4인의 '악동 스토리'는 그것으로 끝났다. 시드 비셔스는 애인
살해혐의로 재판받는 도중 자살하여 펑크에 '순교'했다.
 섹스 피스톨즈는 (17: Seventeen)에서 '우린 소음을 좋아하고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라고 했다.그들은 펑크를 선택하여 원기를 바란 일부 록계와 젊은
세대의 선택을 받았다. 또한 이 앨범은 많은 록 평론가들로부터 70년대 최고의
록음반 중 하나로도 선택을 받았다.
 (그림 설명): 그룹의 상징인 '악동' 자니 로튼.

    "팔리는 것이 최고" 디스코와 상업음악의 열기
    사운드 트랙 (토요일 밤의 열기: Saturday night fever)

 Staying alive. How deep is your love. If i can't have you(Yvonne
Elliman). Fifth of Beethoven(Walter Murphy). jive Talkin'. K-Jee(MFSB).
Calypso Breakdown(Ralph McDonald). More than a woman(Tavares). Night
fever. Boogie shoes(KC & the Sunshine band). Disco inferno(Trammps). You
should be dancing. Open Sesame(Kool & the Gang). More than a woman.
Manhattan skyline/Night on disco mountain/Salsation(David Shire)(78년)

 가장 극렬한 저항을 내뿜은 펑크록이 영국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70년대 말
미국에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음악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새로운 흑인 음악
디스코(Disco)가 그것이었다.
 디스코는 멜로디와 가사를 최대한 줄이고 연속적인 비트를 강조한 단순하지만
신나는 전형적인 댄스뮤직이었다.75년부터 서서히 붐을 이루기 시작한 디스코는
이러한 강점 때문에 순식간에 미국이란 거대한 땅덩어리를 삼켜버렸다.모든
계층과 연령층이 디스코의 리듬에 열광했다.
 영국에는 펑크의 깃발 아래 혁명의 구호가 휘날리고 있을 때 미국인들은
디스코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희희낙락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상황이
달라도 그렇게 다를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영, 미간의 사회,  경제적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영국이 경기침체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 반면 미국은 호황국면을 유지하고
있었다. 더구나 각종 사회적 혼란에 원인 제공을 한 월남전도 끝난 상태였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중들은 그저 들어서 즐겁고 춤추기 좋은 음악을 원하게
되었다. 음악적으로는 사이키델릭 록, 프로그레시브 록, 하드록 등 무거운
주제의 "골치아픈 음악은 더이상 듣기 싫다."라는 공감개가 퍼져 있었다.
디스코는 당시 미국의 이와 같은 국민 정서와 맞물려 부상하게 된 것이었다.
이로 인해 노골적인 상업성의 경향을 피할 수가 없었다.
 많은 가수와 평론가들이 반기를 들게 된 것은 당연했다. 당시 브로드웨이
가수인 멜바 무어는 "우리는 지금 대량 소비시대의 통조림 식품과 같은 음악에
있어서의 맥도널드 시대에 처해있다."라고 개탄했으며, 앨버트 골드만은
"디스코는 예술이 아니라 소비지향의 상품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지의 록 비평가 로버트 힐번은 강한 톤으로, "엘비스는
우리들의 삶에 신념을 불어넣어 주었고 60년대 록 가수들은 사랑의 고통을
노래했다. 그러나 디스코는 매춘집의 밤과 같이 일시적인 전율일 뿐이다."라며
혹평했다. 하지만 비판의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룡'디스코는 음악을
시도하는 등 '무서운 현실'에 타협했다.
 1977년 9월 발표된 한 디스코영화의 동명 사운드트랙 음반 (토요일 밤의 열기:
Saturday Night Fever)는 바로 디스코 열풍을 전세계로 확산시킨 앨범이었다.
RSO레코드사의 사장 로버트 스틱우드가 제작한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는 당시
무명배우였던 존 트래볼타를 일약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창조해냈고 음악을 맡은
비지스(Bee Gees)를 '디스코 음악의 황제'로 탄생시켰다.
 이 음반은 팝 음악사에 사운드트랙 앨범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갖가지
기록을 쏟아냈다. 가장 많이 팔린 음반(2500만장), 여러 곡을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랭크시킨 앨범(4곡), 비지스의 맏형인 배리 깁의 4연속 넘버원 히트기록
작성, RSO레코드사의 5연속 넘버원 히트 기록 등.
 비지스는 거뜬히 팝계 정상에 등극했다. 현대판 '마이더스 터치'로 비유될
만큼 그들은 '발표곡=빅히트' 퍼레이드를 펼치며 돈을 긁어모았다. 70년대 말
팝계는 깁(Gibb) 형제들의 것이었다.
 발라드한 분위기의 소프트 록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들은
70년대 중반 갑작스레 디스코로 전향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리듬 앤
블루스의 펑키(Funky)한 성격에 특유의 멜로디를 부여한 그들의 디스코는 일반
흑인 디스코와는 달리 여기에 드럼 비트를 강조한 매우 힘찬 것이었다.
디스코가 정작 흑인 음악이었으면서도 백인인 비지스가 그 물결을 주도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춤의 향연으로 이끈 비지스 디스코의 대표작 (밤의 열기: Night
fever) (스테잉 얼라이브: Stayin' alive)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How
deep is your love)등이 모두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배리 깁이
만들어줘 비지스 곡들처럼 차트 1위를 차지한 이본느 엘리만의 (내가 널 가질
수 없다면: If I can't have you)도 실려있다.
 (토요일 밤의 열기)는 70년대 말 팝계를 강타한 디스코의 정체와 음악을
가늠하기에 적절한 앨범이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이 앨범을 명반으로 치지는
않는다. 많이 팔린 만큼 '팔리는 음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높은 판매고가
때론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을 때가 있는데 가엾게도 (토요일 밤의 열기)는 그
사례에 끼어 있다. 작품성을 희생시킨 음반의 종말(?)이란 원래 그런 법이다.

    (원더풀 투나잇)으로 대표되는 '기타 영웅'의 연가
    에릭 클랩튼 (슬로우 핸드: Slow hand)

 Cocaine. Wonderful tonight. Lay down sally. Next time you see her. We're
all the way. The core. May you never. Mean old frisco. Peaches and diesel
(77년)

 더러 (레일라) 이후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에릭 클랩튼 (Eric
Clapton)이 그룹 시절 발표한 작품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되는 77년
음반이다. 많은 비평가들이 이전에 그가 보여주었던 힘과 설득력이 여기서는
거의 발휘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눈감은 채 느긋하게 연주하면서도
살아 꿈틀대던 특유의 충만했던 힘이 왠지 사라진 듯한 것은
사실이었다.(슬로우 핸드는 느린 블루스를 잘 친다고 해서 붙여진 에릭의
별명.- 편집자)
 그렇지만 이 앨범은 무시해버리지 못할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에릭
클랩튼이 이 앨범으로 슬럼프에서 탈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싱글(누워요 샐리: Lay down, Sally)가 1백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앨범도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등 이 앨범은 오랜만에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또한
그는 당시 고질적인 약물중독에서 막 헤어나고 있었다(물론 곧바로
알콜중독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아티스트로서나 사생활에 있어서나 그는 이
시점을 계기로 기력을 완전히 회복했다.
 그쪽 사정이야 어찌됐든 우리에게 (슬로우 핸드)는 잊혀질 수 없는 앨범으로
남아있다. 라디오나 디스코장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울려퍼지고 있는 발라드
(원더풀 투나잇: Wonderful tonight)이 바로 여기에 담겨있는 까닭에서다. 에릭
클랩튼의 곡 가운데 국내 인기랭킹 1위가 이 곡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연인들에게는 특히나 안성맞춤인 노래였다. 많은 청춘들이 이 곡에 연정을
실어 사랑하는 대상에게 띄워보냈다. 에릭 클랩든은 (레일라)에 이어 다시
'필생의 연인' 패티 보이드를 향해 곡을 바쳤다. 그때 패티는 남편 조지 해리슨
곁을 떠나 에릭 클랩튼과 동거중이었다. 따라서 실연의 고통이 짙게 배인
(레일라)와 달리 이 곡은 마침내 '쟁취한 사랑'의 기쁨을 담고 있었다(그와
패티를 향한 사랑은 결실은 이뤄 이 곡이 히트하고 난 이듬해인 79년 둘은
백년가약을 맺게된다).
 곡도 좋지만 (원더풀 두나잇: 오늘밤 그대는 정말 멋져)의 맛은 기타가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확히 곡조에 맞는
'기타 톤'을 잡아낸 솜씨는 역시 대가인 그만이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이 곡 외에 국내 금지곡인 (코카인: Cocaine)과 8분 42초의 대작 (마음 속:
Core)이 앨범으로서의 체면을 뒷받침해준 수작들로 꼽힌다. 에릭 클랩튼 공연의
단곡 메뉴인 (코카인)은 최면적인 리듬 필(feel)의 소지자로 에릭에게 많은
영향을 준 기타주자 J.J. 케일이 써준 곡으로 80년대 초반 영국에서 다시
발표되어 인기를 누렸다. (비루한 늙은 프리스코: Mean old Frisco)는 블루스맨
아더 크러덥의 오리지널로 에릭 자신의 음악적 뿌리가 블루스임을 명시하는
곡이다.
 수록곡 전체적으로 어딘가 모르게 중량감이 부족하다. 연주는 물론이거니와
곡조, 노랫말 모두 느낌이 가볍다. 이 앨범은 디스코와 팝에 가위눌린 탓인지
특유의 생동감을 잃어버린 70년대 말 록의 실상을 대변했다. 그 무렵 록은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에릭 클랩튼부터가 그러했다.
 (그림 설명): 실제의 (Layla)이자 (Wonderful tonight)의 주인공인 패티
보이드와 함께.

    도시의 이방인이 남긴 반 시티뮤직
    빌리 조엘 (이방인: The stranger)

 Movin'out. The stranger. Just the way you are. Scenes from ltalian
restaurant. Vienna. Only the good die young. She's always a woman. Get it
right the first time. Everybody has a dream(77년)

 60년대 말부터 활동을 시작한 빌리 조엘(Billy joel)의 초기음악은 놀랄 만큼
시끄러운 하드록이었다. 록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는 제임스 테일러의
포크가 판치던 시절에 아틸라(Attlia)라는 록 밴드를 이끌며 엉뚱하게 하드한
사운드를 구사한 것이었다. 이후 솔로로 전향하여 발표한 음반들도 그
시절만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야성적인 노래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75년도
발표작 (거리인생의 세레나데: Street life serenade)와 다음 해 선보인
(턴스타일: Turnstiles)은 결코 많이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비범한
스토리 텔러이며 멜로디가 좋은 곡을 쓰는 재주꾼임을 인정받는 소득을
거두었다.
 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미국에는 시티 뮤직(City music)이라는 이름의
'도회지 음악'이 강세를 띠기 시작했다. 보즈 스캑스(Boz Scaggs)의 앨범(실크
디그리즈: Silk degrees)로 대표되는 시티 뮤직은 커다란 대저택의 창가에 서서
술잔을 들고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는 성인용이자 부르주아적 성향의
음악이었다. 그 사운드는 질감이 부드러운, 소프트 앤 멜로(soft and mellow)의
경향을 나타냈다.
 빌리 조엘은 이때부터 (피아노 맨: Piano man)의 히트를 거울삼아 도회지풍의
음악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면서도 그는 '가장
도시적인'뉴욕의 정서를 그리워하는 노래를 부르곤했다(그는 뉴욕의 롱
아일랜드 빈민가에서 출생했다).
 77년 그는 뉴욕의 중심지 맨하탄으로 돌아왔다. 때는 바야흐로 시티 뮤직의
시절이었다. 그해 (이방인)이 세상에 나왔다. 어떤 평론가는 '이 무렵 세상은
이 앨범을 받아들일 준비가 미리 되어 있었다."고 말했다.뉴욕을 노래하는
뉴욕인. 이 구비조건부터 성공은 이미 따논 당상인 듯했다.
 이같은 도시적 느낌을 준 곡은 (있는 그대로: Just the way you are) (그녀는
항상 여자야: She's always a woman)였고 무엇보다 이방인이라는 앨범의
제목이었다.사람들은 막연히 이 앨범이 외로운 도시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시티 뮤직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도회지 사람의 고독을 달래주기는 커녕 되레 도시인의
굴레된 태도와 가식을 매질하는 진중한 가사의 노래들이었다.

 새로운 패션을 시도하지 말아요. 당신의 헤어칼라를 바꾸지 말아요. 난 현명한
대화를 원치 않아요. 난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해요. (있는 그대로)

 게다가 타이틀 곡은 전주의 분위기만 그럴 뿐 알맹이는 명쾌한 로큰롤이었다.
그것은 소프트 앤 멜로의 시티뮤직도, 디스코도 아닌 다시 말해 '유행을
거스르는' 스타일이었다. 싱글로 발표된 (밖으로 나가요: Movin'out) (착한
사람들만이 젊어서 죽지: only the good die young)도 스트레이트한 록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거물 프로듀서 필 레이먼(Phil Ramone)은 이 앨범에서도 세션맨을 많이 쓰지
않는 자못 불가사의한 고집을 부렸다. 때묻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매력을
노랜 이러한 접근방식은, 당시의 레코드 치고는 진기하게도 직선적 감각이
넘실거리는 음반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앨범은 뜻밖으로 3백만장 이상 팔려나가는 공전의 빅 히트를 쳤다. (있는
그대로)는 79년 제 21회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부문을
수상했다. 당시 디스코와 비지스가 주름잡던 시점에서 그래미의 핵인 두 부문을
따낸 것은 이변이었고 쾌거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있는 그대로)와 (이방인)은
다운타운가를 휩쓸었다.
 시대의 조류와 유행의 허를 찌른 역공이 가져온 결과였다.

    상업화된 팝록에 물든 고급스런 듀오의 빛바랜 영광
    스틸리 댄 (에이자: Aja)

 Black cow. Aja. Deacon blues. Peg. Home at last. I got the news.
Josie(78년)

 70년대 말 펑크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을 때 록은 팝의 경향을 띠면서 한층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앨범판매 실적을 쌓아갔다. 심지어 롤링
스톤즈와 로드 스튜어트는 극단적인 디스코 리듬을 채용하기도 했다.
 그것이 팝록(Pop rock)이었다. 비지스, 이글스, 플리트우드 맥으로 대표되는
팝록은 '록의 부드러움'을 내걸어 대중들에게 어필, 천문학적인 수량의 앨범을
파는 데 성공했다.
 스틸리 댄(Steely Dan)도 마찬가지였다. 도널드 페이건(Donald Fagen)과 월터
베커(Walter Becker)의 듀오 그룹인 스틸리 댄은 빠른 템포의 재즈 비밥,
미묘한 선율, 복잡한 편곡, 단조의 곡 구성, 두꺼운 보컬하모니를 합체시켜
스탠다드 팝록의 공식을 제시했다.
 그 구체적 표현이 78년을 강타한 이 앨범이었다. 음반은 '팝록답게' 1백만장
이상 팔려나갔다. 72년에 데뷔하여 이 음반을 통산 6장의 앨범을 낸 그들에게
첫 밀리언 셀러, 즉 플래티넘 레코드였다.
 스틸리 댄은 이전에도 히트 싱글을 발표하면서 주목받았으나 이 앨범은 여전히
언더그라운드에 머물러 있던 그들을 대중적 스타로 끌어올려주었다. 컷트
발표된 3개의 싱글도 모두 준수한 히트를 기록했다. (펙: Peg)은 차트 11위,
(디콘 블루스:Deacon blues)는 19위, (조시:Josie)는 22위를 차지했다.
 재즈의 분위기를 풍긴 그들의 음악은 신비롭고 묘한 맛을 냈다. 가사는 제대로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 만큼은 은밀했고 곡조와 사운드로 쉽게 다가오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언덕 위에서 사람들은 결코 응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밴얀나무 밑의 중국음악. 여기 바다 위에 멋진 목장이 있다. 에이자. 값싼 내
춤을 끝낼 때 난 네게로 달려간다. (에이자:Aja)

 음악과 노랫말 모두 지적 세련미를 지녀 그들은 록 매니아와 대학생들에게
유독 인기를 누렸었다.이 때문에 그들의 전작 5장의 앨범도 후일 전부
골드(50만장 판매)를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전작들에 퍼져있는
이러한 고급스런 맛을 줄이고 좀더 '쉽고 빠른' 느낌의 음악으로 앨범
(에이자)를 단장, 마침내 팝대중을 장악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음악이 난해하다 하여, 데모 테잎을 전해주면 레코드사로부터 줄줄이
퇴짜를 맞았던 그들의 초기 불우시대를 감안해 볼 때 놀라운 성장이었다.
그러나 초기의 세상을 냉소하는 듯한 노랫말과 대중을 의식치 않은 '멋진
독선'이 사라진 채 대중성에 경사됐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들을 좋아했던
팬들에게는 핀잔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월터 베이커와 도널드 페이건은 60년대 중반 뉴욕주의 바드대학 재학시절 만나
72년 팀을 결성했다. 스틸리 댄이란 그룹명을 윌리엄 버로우의 소설 (벌거벗은
오찬: The naked lunch)에 등장하는 성구에서 따라왔다고 한다. 두 사람은 함께
작업한 사람들을 계속 바꿔가며 앨범을 제작했는데, 73년 두비 브라더즈로 간
제프 백스터(페달-스틸 기타)와 짐 호더(드럼)이 재적시 발표한 (황홀한
카운트다운:Countdown to ecstasy) (프레첼 로직:Pretzel logic)이 흔히
명반으로 손꼽힌다.
 (에이자)는 성공과 함께 두 사람의 창작력을 고갈시키는 폐단을 초래했다.
그들은 1980년 (가초:Gaucho)를 내놓고 또 한차례 신화를 재현해 보였으나
두드러지리 만치 신선미가 떨어져 있었다. 그들은 이듬해 해산을 선언했다.
 (그림 설명): 그룹의 축인 도널드 페이건.

    카터시대 기업화된 풍토에서 피어난 진지한 서정성
    잭슨 브라운 (허공의 질주: Running on empty)

 Running on empty. The road. Rosie. You love the thunder. Cocaine. Shaky
town. Love needs a heart. Nothing but time. The load-out/Stay(78년)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은 원래 저항 포크가수로 팝계에 입문했다. 40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태생인 그는 60년대 중반 밥 딜런, 피트 시거 풍의
민권운동가요를 부르며 저항적 자세를 견지했다.
 70년대가 되어 뉴욕에서 LA로 활동터전을 옮긴 그는 시대의 정서가 바뀌자
딜런식 프로테스트를 포기하고 제임스 테일러, 조니 미첼, 린다 론스태드와
같은 개인적 주제의 포크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70년대의
대표적인 웨스트 코스트의 작곡가겸 가수로 부상했다.
 그는 가수로서보다 작곡가로 먼저 알려졌다. 탐 러시, 자니 리버스, 니코
그리고 이후에는 린다 론스태드, 이글스 등의 그의 곡을 불러 히트시키면서
뛰어난 작곡 재능을 인정받게 된 것이었다. 린다 론스태드의 (물위에서 록을 :
Rock me on the water), 이글스의 첫 톱10 히트곡 (걱정 말아요:Take it
easy)가 그가 작곡한 것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72년 데뷔앨범에서 (내 눈을 고쳐줘요: Doctor my eyes)를
싱글차트 8위에 랭크시키며 가수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잇따라 내놓은 음반
(모두를 위하여: For everyman), 74년 (천국에도 늦었어: Late for the sky),
76년의 (위선자: Pretender)등도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
수작 앨범으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위선자)는 사랑하는 아내 필리스의 자살
이후에 발표된 앨범으로, 깊은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심오한 내용으로
팝매니어들을 감동시켰다.
 그의 매력은 바로 인생을 진지하게 조망하는 심오함에 기저한다. 저항적
노랫말에서부터 인생문제로 귀착한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가정, 운명, 사랑,
명예 등 인생전반에 대한 주제에 깊이 천착하여 70년대 지성인들의 '드러나지
않는 우상'으로 그 위치를 다졌다. 카터시대의 기업화된 팝 풍토에서 너무도
인간적인 그의 노래는 '신선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의 다섯 번째가 되는 이 앨범은 78년 차트 상위권을 장식하면서 그를
매니어의 우상에서 대중의 우상으로 '드러나게 한' 음반이었다. 그는 전작들의
소재의 연장선상에서 서서, 한층 인생에 밀착하여 획득한 짙은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았음을 반영한 타이틀곡 (허공의 질주: Running on empty,
차트11위)를 비롯한 (흔들리는 마을: Shaky town) (길:The road) (천둥이
좋지:You love the thunder)등 대부분의 곡들이 동화되지 않는 인생의 무상함을
표출했다.
 앨범 구성상의 특이함도 눈길을 끌었다. 스튜디오가 아닌 스테이지.
순회공연이 버스. 모텔 룸. 등 현장에서의 실황으로 음반을 짰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공연 위주'의 아티스트라는 것을 인식시키려 했다.
 이 앨범은 우리에게도 널리 사랑받았다. 여기에 수록된 접속곡 (떠돌이 생활/
머물러요: The load-out/Stay)는 본고장에서도 크게 히트했지만(차트 20위)
국내 다운타운가에서도 가히 폭발적 인기를 모았다. 이 때문에 우리에게는
'잭슨 브라운=The load-out/Stay'가 되었다. 이 곡이 인기를 얻으면서 그의
전작들이 뒤늦게 모두 라이센스음반으로 소개될 정도였다.
 데이비드 린들리가 보컬에 참여한 이 곡은, 잭슨 브라운의 애절한 보컬과
린들리의 흥이 조화를 이루면서 팝송으로서는 이례적인 서정성을 드러내
신비감마저 자아내고 있다.
 70년대 말 대학생 등 우리 팝팬들의 절대적 인기를 누린 곡이 수록된
음반으로서 그 시절 그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우리에게는 분명한 명반이었다.
 (그림 설명): 잭슨 브라운

    우리의 절대적 호응얻은 (Poor man's blues)등 수록
    바클리 제임스 하비스트 (곤 투 어쓰: Gone to earth)

 Hymn. Love is like a violin. Friend of mine. Poor man's moody blues. Hard
hearted woman. Sea of Tranquility. Spirit on the water. Leper's song.
Talking me higher(77년)

 존 리즈(기타), 스튜어트 월스텐홈(키보드), 레스 홀로이드(베이스),
멜프리차드(드럼) 등 네 영국인으로 짜여진 버클리 제임스 하비스트(Barclay
James Harvest)는 69년 '하비스트' 레이블과 레코딩 계약을 체결하면서
음반활동을 시작했다. 하비스트는 EMI레코드사 산하의 막 창설된 레이블로 당시
록계의 새로운 움직임이었던 프로그레시브록을 전문적으로 겨냥한 회사였다.
 유럽 전역에서 차츰 인기를 얻게 된 그들은 로버트 갓프로이가 이끄는 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영국 순회공연을 나서는 등 '클래식한 분위기의
록'을 중점적으로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레이블의 성격, 공연의 스타일은 곧 그들이 프로그레시브록을 지향하는
그룹임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클리 제임스 하비스트의 음악은 자신들의
터전인 영국이나 미국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채 언제나 예스, 애머슨
레이크 앤 퍼머 등과 같은 유명 프로그레시브 밴드의 그늘에 묻혀있었다.
영국을 제외한 유럽에서나 인기를 누렸을 따름이었다.
 그들의 통산 아홉번째 작품인 이 앨범 역시 팝의 본고장인 영, 미에서는
히트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성공적이었고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는 85만장의 판매실적을 쌓았다.
 다른 나라의 상황과 무관하게 이 앨범은 우리 팝팬들로부터는 절대적 호응을
얻었다. 다름아닌 (가엾은 사내의 무드있는 블루스: Poor man's moody blues)가
여기에 수록되어 있는 까닭이었다.

 내가 널 그리워했던 그 수많은 밤들. 끝이 없던 그 수많은 밤들. 너를 부르며
단지 친구를 원하던 그 모든 시절들. 이제 네 눈은 내가 오래 전 그리워하던
아름다움으로 빛나지. 난 진정 너를 사랑하는 줄 알아. 하지만 더 이상 말할 수
없어. 왜냐하면 난 네가 필요하고, 널 원하고, 널 사랑하니까

 '난 네가 필요하고, 널 원하고, 널 사랑하니까-'(Cause I need you, yes i
want you, yes i love you-)의 이 마지막 소절은 팝송을 모르는 사람들도
흥얼거리게 하는 친화력으로 다가왔다. 많은 프로그레시브 그룹의 사운드들이
우리에게 '차가움'을 전해준 반면 바클리 제임스 하비스트의 이 곡만은
'따뜻함'을 제공해주었다. 그럼으로써 이 곡은 그들의 존재를 결정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들의 음악은 심포니 스타일이었고 기타와 키보드 주자간의 분위기를
점증시키는 복잡한 상호작용(interplay)과 치밀하게 구성한 보컬 화음으로
특징화되었다. 유행의 자극성과 기교넘친 음향효과를 배제한 것도 두드러진
부분이었다. 그 '단순함'(가사도 마찬가지였다)이 부담없는 멜로디와 함께
감상적인 우리들의 가슴을 파고들이 진한 여운을 남긴 것이었다.
 국내에서 이 노래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하던 때는 79년으로 디스코 음악이
다운타운가를 주름잡던 시절이었다. 디스코가 복잡한 프로그레시브의 대안으로
각광받았던 시대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곡은 디스코가 체질적으로 싫은
팬들의 편애를 받았다. 팝송이 영미 유행음악으로서 거기서 유행을 타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들에게는 늘 이 곡처럼 세월에 관계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이 어필했다. 이 앨범에 수록된 (찬가: Hymn),
(사랑은 바이얼린 같아요: Love is like a violin)가 함께 우리 팬들에게
애청된 이유도 께끗한 분위기의 선율 때문이었다.
 1982년 그들은 베를린에서의 노천 공연실황을 녹음한 (사람들을 위한 콘서트:
A concert for the people) 앨범을 내어 다시 이름을 드높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팬들은 여전히 그들을 외면했다. 그러나 그때도 우리의
전파매체에는 꾸준히 그들의 노래가 울려퍼져 나오고 있었다.

    벽으로 상징되는 현대 사회의 단절과 위기
    핑크 플로이드 (벽: The wall)

 In the flesh. Thin ice. Happiest days of our lives. Another Brick in the
wall(part 2). Mother. Goodbye blue sky. Empty spaces. Young lust. One of
my turns. Don't leave me now. Another Buick in the wall (part 3). Goodbye
cruel world. Hey you. Is there Anybody out there?. Nobody home.
Comfortably Numb. Show must go on. Run like hell. Waiting for the worms.
Stop. The trial. Outside the wall(80년)

 인간 내면의 의식세계를 깊이 파고들어 음악으로 표출하려 무던히 애썼고 그
결과 완성도 높은 완벽한 사운드의 앨범과 환상적이 스테이지 구성을 통해
끊임없이 충격을 던져온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그들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벽이라는 상징물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역설한
저항그룹'이었다. 이렇듯 79년 12월 통산 열두번째로 발표된 더블앨범 (벽: The
wall)은 플로이드 앨범의 정점이며 의식의 완결편이었다.
 핑크 플로이드는, (달의 어두운 저편)에서 현대사회의 밝은 쪽보다 어두운
면을 바라보았다면 (벽)에서는 그 어두움의 근원을 발견했다. 그 벽은 획일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사고요, 폭력의 가장 극악한 형태인 전쟁이었으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자유의사를 차단하는 현대사회의 소외와 잔인성이었다. 결국
플로이드는 벽이라는 단절과 폐쇄의 상징으로 현대사회에 내재되어있는 모둔
억압적 요소에 대한 거부를 한편의 사회 드라마로 엮어낸 것이었다.
 이 억압요소 가운데 가장 큰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은 획일성을 조장. 강제하는
교육제도였다. 그것을 담고 있는 곡이 싱글 커트된 (벽 속의 또다른 벽돌 2부:
Another brick in wall, part2). 이 곡은 발매 5일만에 34만장이 팔렸고 80년
1월 빌보드 1위를 차지한 뒤 4주간이나 정상을 지켰다. 미국 음악
저작권협회(ASCAP) 선정 1980년말 팝 올차트에서도 앨범 부분과 마찬가지로
1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아마도 대중음악사상 교육을 소재로 다룬
최초의 곡일 이 싱글은 그러나 '우린 교육이 필요치 않아요... 선생님, 우릴
제발 내버려 둬요!'라고 절규하듯 외치는 어린이들의 코러스 부분 때문에 일부
매스컴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나라에서도 방송및
음반발매 금지처분이 내려지기도 했다(우리나라에서도 전면금지되어 90년이
돼서야 빛을 보았다). 그러나 구미 각국에서는 이 곡의 인기에 힘입어 앨범
(벽)이 2개월만에 1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80년이 끝날 무렵엔 1천만
장을 돌파하는 위력을 과시했다.
 교육제도를 비판한 또다른 노래 (우리 생의 가장 행복한 시절: The happiest
of our lives)에 따르면 가장 즐거웠던 때는 학교에 가 선생님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기 전이다. 또 폭력으로 얼룩진 현대의 초상은 '겁에 질린
사람들을 보았는가. 폭탄이 투하되는 소릴 들었는가. 화염은 사라져도 고통은
남아 스멀거리지' 라는 내용의 (푸른 하늘이여 안녕:Goodbye blue sky)에
그려지고 있다.
 앨범 (벽)은 82년 (엔젤하트) (버디) (미시시피 버닝) 등의 명장 알란 파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됨으로써 또다시 주목을 끌었다. 영화의 사운드 트랙이
아니라 영화의 이미지트랙으로서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현란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충격'을 선사하는 영화 '벽'은 뛰어난 영상과 함께 핑크 플로이드
음악의 힘을 느끼게 해주면서 여전히 영화, 음악팬들이 즐겨찾는 레퍼토리로
남아있다. (영화사에서 길이 언급될 이 충격적 영상은 국내에선 뒤늦게
비디오와 LD로 출시되었는데, 꼭 LD로 감상할 기회를 가져보시도록.-편집자)
 그러나 앨범 (벽)은 플로이드의 작품이라기보다는 그룹의 리더인 로저의
독집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른 멤버 데이비드 길모어, 릭 라이트, 닉
메이슨의 의견은 거의 배려치 않았고 독단적으로 작업을 진행했으며 작사,
작곡을 비롯한 모든 부분에서 전횡을 거듭했다. 그는 하지만 (벽)을 자신의
자서전으로 전락(?)시키는 가운데에서도 한편의 '드라마'로 연출해내는 역사적
과업을 성공리에 수행했다. 따라서 (벽 속의 또다른 벽돌 2)를 비롯해 (푸른
하늘이여 안녕) (산 몸으로: In The Flesh) (어머니: Mother) (편안히 마비된:
Comfortably numb), 그리고 라이브에서 더 진가가 발휘된 (런 라이크 헬: Run
like hell) 등 좋은 곡들이 눈에 띄지만 개별곡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수록곡들을 파악해야 한다.
 최고히트, 최대판에 앨범이라는 영광 뒤에는 해산의 기운이 감도는 '어두운
그늘'이 그들을 뒤덮었다. 결국 로저와 데이비드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었고 그
와중에 릭 라이트가 탈퇴, 3인조로 낸 (마지막 커트: The Final Cut, 83년)를
마지막으로 그룹은 와해되고 말았다. 나중에는 로저가 그룹을 뛰쳐나왔고 릭
라이트가 다시 들어와 '로저 없는 핑크 프로이드'로 재탄생된다.
 (벽) 이후의 진행상황은 실망스럽지만, 흔들리기 직전 그들은 록역사에 길이
남을 '음반 드라마'를 내놓음으로써 팬들의 용서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앨범은 팝 역사에 획은 그은 것이 사실이요 록계에 남긴 위대한 유산임에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곡 구성 등에서 보여지는 다소간의 취약성 때문에
명반이나 걸작으로 분류하는 데 어려움이 없진 않다.



    80년대

 1.Clash (London Calling)
 2.Scorpions (Lovedrive)
 3.Human League (Dare)
 4.Toto (Toto 4)
 5.Michael Jackson (Thriller)
 6.Police( Synchronicity)
 7.Cyndi Lauper (She's so unusual)
 8.Culture Club (Colour by numbers)
 9.Prince (Purple rain)
 10.Bruce Springsteen (Born in the USA)
 11.Wham! (Make it big)
 12.Madona (Like a virgin)
 13.Dire Straits (Brothers in arms)
 14.Paul Simon (Graceland)
 15.Peter gabriel(So)
 16.U2 (Joshua Tree)
 17.Def Leppard(Hysteria)
 18.George Michael (Faith)
 19.R.E.M (Green)
 20.Tracy Chapman (Tracy Chapman)
 21.Guns N' Roses (Appetite for destruction)
 22.Midnight Oil (Diesel and dust)
 23.Public Enemy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hold us back)
 24.Sting (...Nothing like the sun)

    80년대 저항의 개막축포... 펑크의 완성
    클래시 (런던의 부름: London Calling)

 London calling. Brand new Cadillac. Jimmy jazz. Hateful. Rudie can't fail. Spanish
bombs. The right profile. Lost in the supermarket. Clampdown. The guns of Brixton.
Wrong'em Boyo. Death or glory. Koka kola. The card cheat. Lover's rock. Four
horsemen. I'm not down. Revolution rock. Train in vain(80년)

 '1980년대에도 펑크(punk)의 저항의식은 살아있다.' 클래시(Clash)의 걸작앨범 (런던의
부름)이 팝음악 역사에서 가지는 가치는 바로 그것이었다.
 클래시는 80년 신년벽두에 발표한 이 두 장짜리 음반을 통해 80년대 저항음악의 개막
축포를 쏘아올렸다. 4인조 영국그룹 클래시는 록계 '최후의 성난 밴드' 라는 사명감을
갖고 활동해왔다. 섹스 피스톨즈가 사라지고 없는 텅빈 저항의 황무지에 깃발을 휘날리며
'우리는 여전히 투쟁한다' 고 엄숙히 선서했다.
 서방사회를 보는 그들의 시각은 명료하다. 영미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 사회는 이미
중심부부터 부패했으며, 세상은 종말을 맞이하여 선과 악이 최후의 결전을 벌일 날이
임박했다는 것이다. 선진영의 마지막 보루임을 자처한 클래시는 이 앨범으로 원기를 잃은
록을 향하여 똑바로 정신차리라는 경고장을 날렸다. 그리하여 록이 지녀야 할 사회성으로
가득한 이 앨범의 메시지는 80년대 팝계에 소멸되어가는 듯한 사회의식 재현에 불을
당겼다.
 종말의 진원지는 자신들의 위대한 대영제국의 수도 런던이었다. 런던은 실상 인종간의
갈등, 높은 실업률, 산재한 폭력 및 약물중독 등의 사회악으로 인한 중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혁명적 상황이 그곳에 돌출되어야 했다.

 런던은 부른다. 꿈꾸는 듯한 시골을. 이제 전쟁은 선포되었고 투쟁이 벌어진다. 런던은
부른다. 지하세계를. 모든 소년 소녀여. 교실로부터 나오라. 런던은 부른다. 이제
'우리'를 믿지 말라며. (런던의 부름)

 클래시의 메시지는 분노였고 그것은 (억압:Clampdown)에서 폭발한다.

 살아있는 영혼을 가지고 태어난 이는 억압에 협조하지 않지. 벽을 걷어차. 정부는
몰락하고 있으니까. 어찌 그것을 거부할텐가. 분노하라. 노여움은 힘이 될 수 있다.

 (스페인 전쟁: Spanish bombs)도 투쟁을 예찬하기는 마찬가지다. 테러리스트의 지중해
폭탄투하 사건에 대한 라디오 뉴스에 착상해 쓰여진 이 곡은, 1939년 스페인 내전시
독재자 프랑코 대통령과 싸운 민중의 항쟁을 소재로 끄집어냈다. 그 민중들은 클래시에게
있어 '자유의 투사'를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디스코 카지노의 스페인 주일. 자유의 투사들이 그 언덕에서 전사했지. 그들은 붉은
깃발을 노래했고 검은 옷을 입었지. 그러나 그들이 죽은 뒤 그것은 모키버드의
언덕이었어... 언덕의 중턱은 "민중을 해방하라"고 울려퍼지는데 난 39년 그 날의 반향을
들을 수 있는가.

 (브릭스턴의 총:The guns of Brixton)은 훨씬 구체적인 이슈를 취급하고 있다. 이
노래는 런던 브릭스턴 구역의 자메이카 흑인빈민폭동에 대한 정부의 과잉진압을 비판한
것이다. 투쟁의식의 고취를 위한 것임에는 변함이 없다.

 법이 유린당했을 때 너흰 어찌할 것인가. 도로에서 총맞아 죽을 건가. 아니면 사형수로
대기할 것인가.

 클래시는 이처럼 병든 사회가 창출한 절망과 소외에 대한 단편들을 잇따라 수록하고
있다.

 그는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주지. 하지만 자유를 위해서는 아니야. 그것은 가증스러워.
아무 곳에도 갈 수 없음은 정말 은혜로운 거야. (가증스러운: Hateful)

 이는 마약중독자의 시점에서 바라본 마약중독의 고백적 서술이다. 그것이야말로 왜곡된
사회가 잉태한 고독과 절망의 산물임에 분명하다.

 난 천장 위에 사는 사람들이 소리높여 싸우는 것을 듣는다. 그 소음을 듣는 것이 내
최초의 감정이며 나를 둘러싼 전부였지... 술 한병을 비우고 나면 난 조금 자유로움을
맛보지. (슈퍼마킷에서: Lost in supermarket)

 이와같은 하층민 의식이 없었다면 클래시의 저항은, 그리고 그 환상적인 로큰롤은
탄생할 수 없었을 터이다. 조 스트러머(싱어)와 함께 그룹의 '쌍돛대'인 믹 존스가
체험한 피폐된 주변환경과 고된 삶이 클래시를 받쳐준 원동력이었다. 클래시는 시로 병든
사회 속의 젊은 혈기와 양심에 의해 로큰롤이 나래를 펼쳐간다는 록 역사 고금의 진리를
다시금 일깨웠다.
 클래시는 그러한 고통을 딛고 일어선다.

 부자가 매일매일 처량한 삶을 영위한다는 게 사실이라면 가난한 자들의 삶은 무엇인가.
할 말이 없다. 난 깨지고 내동댕이처졌다. 하지만 난 쓰러지지 않는다. (난 쓰러지지
않아: I'm not down)

 중요한 것은 이렇듯 강렬한 메시지를 클래시는 거친 펑크로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펑크의 세련화'를 꾀했다. 기존의 펑크는 너무도 생경하고 시끄러워 청취층의
저변확대를 기하기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클래시는 느끼고 있었다. 또한 메시지
전달이라는 목표를 유효하게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더욱이 펑크에 대한 일반적인 거부감을
누그러뜨려야 했다.
 클래시가 착수한 작업은 기존의 장르와 펑크를 결합해 순화된 사운드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런던의 부름)에는 레게, 리듬 앤 블루스, 제3세계음악, 재즈,
그리고 경쾌한 맛의 파워 팝이 펑크와 벗하며 넘실대고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코스모폴리탄 사운드' 였으며 '미리 듣는 월드뮤직'이었다.
 엄격하게 말하면 그것은 섹스 피스톨즈와 같은 오리저널 펑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클래시는 (런던의 부름)으로 '펑크를 예술적 경지로 승화시키는' 절대적 수확을
거두었다. 그들에 의해 펑크는 일시적 유행으로 끝쳐버릴 위험으로부터 구출되었다.
 앨범을 듣는 순간 록음악 청취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큰 부담 없이 탄력적인
사운드로 일관하고 있는 펑크록의 새로운 맛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구애받지 않으려는 그들의 음악태도는 옳았다.

 * 이 앨범에서 싱글로 발표되어 히트된 곡 (트레인 인 베인: Train in vain)은
자켓목록에 기입되어 있지 않다. 음반에는 수록되었지만 커버자켓이 완성되고 나서
뒤늦게 녹음했기 때문에 곡목을 써넣을 수 없었던 것이다.

    탈주범의 가슴도 식힌 메틀 발라드의 힘
    스콜피언스 (사랑운전: Lovedrive)

 Loving you sunday morning. Another Piece of Meat. Always Somewhere. Coast to
coast. Can't get enough. Is there anybody there. Lovedrive. Holiday(80년)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난지도 얼마 지나지 않은 그해 10월. 서울 한복판에서는
난데없는 탈주범 사건이 터져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지강헌을 위시한 탈주범들은
경찰의 수사망을 교묘히 피하다가 10월 16일 어느 가정집에 들이닥쳐 인질극 소동을
벌였다. 이 사건은 당일 자기들끼리 의견다툼을 벌이다 서로 총을 쏴 자살하거나 끝내는
경찰로부터 사살되면서 막을 내렸다.
 그 가운데 '이 시대 마지막 시인'으로 자처한 주범 지강헌 등은 인질극을 벌이는 와중에
'유전무죄, 무전유죄' 라는 당시 세태를 예리하게 헤집는 말을 남겨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그는 또 자살시도 바로 직전 노래를 듣고싶다며 인질가족에게 테잎을 반입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이 노래를 들으며 유릿날로 목을 찌르는 무저항 상태에서 아무런
확인과정 없이 무참히 사살되었다.-편집자)

 널 데리고 멀리 갈 테야. 넌 휴일을 좋아하잖아. 너의 고통을 사랑과 교환해야지. 네가
어이 있든 간에, 널 데리고 멀리 갈 테야... 태양을 기다리며 넌 이름없는 섬으로
가겠지. 태양을 기다리며 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섬에서 환영받겠지. (휴일: Holiday)

 이 곡은 죽음을 부른 휴일의 인질극 속에 울려퍼짐으로 해서 '화제의 팝송'으로 다시금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거기엔 그처럼 잔인한 추억이, 탈주범이 아니라 우리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게끔 한 사건의 흔적이 묻어있다.
 (휴일)은 탈주범 사건이 터지기 9년전인 79년 독일출신의 헤비메틀 밴드
스콜피언스(Scorpions)가 부른 노래였다. 그들에게 7집이 되는 바로 이 앨범에 수록되어
80년대 초반부터 우리 팝 팬들로부터 널리 사랑받는 팝송이기도 했다.
 지금도 활약중인 스콜피언스는 클라우스 마이네, 루돌프 솅커, 마이클 솅커 등 독일인
5인으로 1971년 결성된 노장 그룹. 마이클 솅커가 데뷔음반 직후 그룹을 떠나 다소
흔들리긴 했지만, 마이네의 울부짖는 '게르만적' 보컬과 루돌푸 솅커의 강렬한 깁슨기타
연주로 74년 (무지로 날다:Fly to the rainbow). 75년 (무아지경:In trance) 등 하드록
클래식을 낸 그룹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평소 갈망해왔던 미국 정복은 이후에도 상당기간
이루지 못했다.
 독일과 일본 밖에서는 크게 주목받는 데 실패한 그들에게 미국 진출의 서광을 비춰준
앨범은 바로 이 작품이다. 80년 이 앨범이 전미 앨범차트에 오르면서 서서히 그들도
미국시장에 명함을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나 록 역사에 있어서, 이
앨범이 어떤 획을 그었다든가 하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의 수록곡인 (휴일)과 (항상 어디엔가에: Always
somewhere)는 84년도 곡 (아직도 널 사랑해: Still loving you)와 함께 국내 팬들에게는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클라우스 마이네의 보컬과 무거운 록발라드 속에 흐르는 꽤
한국적인 선율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곡들로 인해 스콜피언스의 앨범들은 이후에도 미국의 빌보드차트 현황과 전혀
관계없이 국내에서는 늘 잘 팔려나갔다. 이 점과 관련해서 80년대 들어서는 미국
인기차트와 무관한 유럽의 팝송들이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는데, (빌보드)지를 신주단지
모시듯하는 관행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과 관련 일단 반가운 현상이었다.

    "일렉트로닉과 콤퓨터 시대"... 전자시대에 찾아낸 낭만
    휴먼 리그 (데어: Dare)

 The things hat dreams are made of. Open your heart. The sound of the crowd.
Darkness. Do or die. Get carter. I am thr Iaw. Seconds. Love action(I believe in
love). Don't you want me(81년)

 1980년대 개막과 함께 동시에 들어선 영국의 대처, 미국의 레이건 보수정권시대의
팝음악은 70년대 음악과 커다란 차이가 나타났다.
 때는 커피든 오디오든 버튼만 누르면 되는 전자산업의 만능시대였으며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이 중요시되는 시대였다. 이른바 일렉트로닉 전성기 였고 비디오 시대였다. 대중음악도
따라서 외적 형태(일렉트로닉)나 가수의 외모가 노랫말과 음악성보다 우선시되었다.
 1980년대 초반 전자음악(electronic music)의 유행을 몰고온 것은 영구 그룹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사운드를 신낭만주의(New Romantics)라 일컬었다. 거기에 바로
전세대의 펑크(뉴 웨이브까지 포함)가 갖는 분노의 메시지는 자취를 감추었고 핑크빛
낭만의 소리로 질퍽했다. 그것이 대처리즘의 보수적 사회분위기에 휩쓸린 당시 영국
청년들의 대체적인 정서였다.
 이무렵 뉴로멘틱 운동의 선두주자들은 듀란듀란(Duran Duran), 스팬도 발레(Spandau
Ballet), 소프트 셀(Soft Cell), 디페쉬 모드(Depeche Mode)등이었고 데이비드 보위도
잠시후 그 물결에 가세했다. 그러나 미국정복에 가장 먼저 성공하여 뉴로멘틱 팝의 길을
닦은 주인공은 휴먼 리그(Human League)라는 그룹이었다.
 필 오우키(Phill Oakey)가 이끈 6인조 영국 셰필드 출신의 이 그룹은 일렉트로닉팝
시대의 본질적 특성을 함축했다. 우선 그들은 재래식 악기를 모두 치워버렸다. 그룹엔
드러머, 베이스주자, 기타리스트가 없었고 가수를 빼고는 신시사이저 연주자들뿐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전통적인 키보드 신시사이저 대신 롤랜드 마이크로 콤포저
시퀀서(sequencer)를 앉혀 드럼연주를 컴퓨터로 '찍어' 만들어냈다. 드럼비트가 칼로
잰듯 정확하게 맞아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음악'이 드디어 선을 보이게 된
것이었다.
 필립 오우키는 82년 (뮤지션)지에 "우린 아마추어들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드러머를
고용하지 않고도 리듬을 만들어낼 기술이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자신들 스스로 프로음악인이 아니라고 공언하면서도 그들은 82년 미국 데뷔앨범 (데어:
Dare)로 "비틀즈처럼 넘버원 레코드를 갖고 싶어했던" 꿈을 실현했다.
 (롤링 스톤)지는 89년 "(데어)는 80년대 모든 수준에서 록을 침투하고 있던
일렉트로닉의 공습을 위한 길을 깔아놓았다"고 정리했다. 싱글 (나를 원치 않나요:Don't
you want me)는 가뿐히 전미 싱글차트 정상을 점령, 미국시장이 적극적으로 신시사이저
팝을 수용하려들고 있음을 반증했다. 얼핏 신시사이저하면 떠오르는 몰인간성과 차가움을
극복하고, '멜로디와 리듬만 좋다면 신시사이저도 통한다'는 사실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미국 청취자들은 당시 (나를 원치 않나요)를 들으면서 컨추리 음악으로 착각할
만큼 정겨움을 느꼈다.
 사실 그들의 지향점도 '팝화된 신시사이저 사운드의 완성'이었다. 휴먼리그는 77년
결성되어 일렉트릭 사운드의 선구자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뒤를 쫓았으나,
80년대 들어 거기에 팝적 색채를 덧칠하게 되었다. (데어)앨범의 프로듀서인 마틴
러센트(Martin Rushent)는 "나는 크라프트베르크가 아닌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것,
이른바 팝적인 일렉트로닉 앨범을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재미있는 것은 휴먼 리그가 자신들을 섹스 피스톨즈와 연계시켰다는 점. 그들은 섹스
피스톨즈가 그랬듯이 연주를 잘하는 것보다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연주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의 로큰롤 과정을 두고 보더라도
음악인으로서의 자질(musicianship)보다는 마음가짐(attitude)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휴먼 리그의 이같은 자세는 자신들의 대중적 사운드에는 걸맞지 않았지만 뜻밖의 진지한
입장 개진이었기에 눈길을 끌었다. 그런 만큼, 노래도 의식의 무풍지대가 아닌 날카로운
사회적 시각이 도사리고 있었다.
 (초: Seconds)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에 관한 노래였고 (군중의 소리: Sound of
crowd)는 순응의 정서에 대한 질타였으며 (어둠: Darkness)은 병든 사회가 빚어낸
편집증을 다루었다. (하느냐 죽느냐: Do or die)또한 침묵의 종식에 대한 요구였으며
만만하게 인식된 (나를 원하지 않나요)도 실은 망각풍조가 팽배된 현실에 대한
일침이었다.

 내가 널 만났을 때 넌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었지. 내가 널 데려와 가꾸어 돌려놓았지.
그래서 새사람을 만든 거야. 5년이 지난 지금 넌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지. 성공이 네겐
노무 용이했지. 그러나 이렇게 서게해준 사람이 나라는 걸 잊지마. 난 너를 옛날로
되돌릴 수 있어. (나를 원하지 않나요)

 평범하지 않은 직설적 표현은 그들을 단연 뉴로멘틱 운동그룹진영 가운데 돋보이도록
해주었다. 휴먼 리그는 음악하는 입장과 노랫말로 자신들이 백퍼센트 대중성지향
그룹만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했다. 그러나 그들의 '신시사이저 만능주의'와
'컴퓨터음악 시도'는 음악인으로서의 기본적 자질과 관련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것은 음악을 편리하게 만드는 것이지 음악의 전부여서는 곤란했다. 이 점에서
그들에겐 결코 롱런할 수 없는 그룹이라는 숙명이 드리워져 있는 셈이었다. 그들의
본질은 당연히 많은 반발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신시사이저와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휴먼', 즉 인간이라고 그룹명을 내건
점부터 비위가 거슬린 사람들을 위시하여 표출된 반발이었다.

    연주인들이 일궈낸 1980년대의 현대적 사운드
    토토의 (토토 제4집:Toto 4)

 Rosanna. Make believe. I won't hold you back. Good for you. It's feeling. Afraid
of love. Lovers in the night. We made it. Waiting for your love. Africa(82년)

 이 음반은 전적으로 가수 아닌 연주인이 거둔 쾌거였다. 그룹 토토(Toto)의 멤버들 만큼
화려한 연주경력을 갖고있는 록밴드는 드물다. 6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는 이들은 멤버
전원이 레코딩 스튜디오 연주인(세션맨) 출신으로 다양한 연주 테크닉과 말로 표현키
어려울 정도의 고난도 연주를 과시했다. 그리고 음악의 완성도 면에 있어서도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실력을 구사하고 있는 팀으로, 한가지 색깔의 음악보다 여러 형태의
다양한 음악을 혼합하여 이를테면 록음악의 스펙트럼 역할을 했다.
 이들이 처음 데뷔했을 때만 하더라도 많은 음악관계자들은 이들의 그룹 결성을 매우
무모한 사실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세션맨 출신의 그룹들이 그동안 팝음악계에서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뮤지션들은 악기연주 테크닉은 매우
뛰어나긴 해도 독창성이 떨어진다. 매일 다른 가수의 악보만 보고 연주를 하다가 정작
자신의 곡을 만들었을 때, 아무래도 창의성이나 아이디어가 부족한 면을 노출시키기
때문에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그룹 토토는 이같은 예측을 깨고
음악적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과시하는 동시에 대중적으로도 크게 히트하는 '이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1982년 발표된 토토의 4번째 앨범 (토토 4)는 이들이 자신들의 초기 음반에서
보여주었던 거칠고 딱딱한 스타일에서 벗어나 매우 정리가 잘된 느낌의 완벽한
크로스오버(crossover)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또한 시대를 초월한 연주기법을 동원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음악성을 구사하고 있다. 이 앨범에는 토토의 멤버 6명 외에도
여러 뮤지션이 참여하고 있는데, 우선 드럼과 키보드를 맡고 있는 제프 포가로(Jeff
Pogaro)와 스티브 포가로가의 아버지 조와 동생 마크가 연주를 도와주었다. 그밖에도
유명한 섹소폰 주자 톰 스코트(Tom Scott)를 비롯해서 그룹 시카고(Chicago)의 트럼본
주자인 지미 펭코우(Jimmy Penkow), 이글스의 베이스 주자였던 키모시 비 슈미트(Timothy
B. Schumit)가 백그라운드 보컬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사운드의 화려함을 기하기 위해
제임스 뉴턴이 지휘하는 마틴 포트 오케스트라가 참여하여 앨범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주고있다.
 화려하면서도 완벽한 사운드로 인해 '세계 팝음악의 집대성'이라는 격찬을 받은 이
앨범에서는 다섯 곡의 노래가 히트했다. 빌보드 싱글차트 2위에 오르면서 당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로잔나: Rosanna), 이 그룹의 첫 넘버원 히트곡인
(아프리카: Africa) 그리고 잔잔한 피아노 반주로 시작되는 발라드 (망설일 수 없어요: I
won't hold you back)가 차트 10위에, 그리고 (메이크 빌리브: Make believe)가 30위에,
(당신을 기다리며: Waiting for your love)가 73위에 각각 오르며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이 음반은 앨범차트에 82주간 머무르면서 3백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듬해 거행된 제25회 그래미상에서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등
당시로서는 최다 수상기록인 7개 부문의 상을 휩쓸며 당대 최고의 그룹으로 각광을
받았다.
 이 앨범이 이렇듯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뛰어난
음악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지닌 그룹 토토의 빼어난 음악적 재능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스티브 루카서 (Steve Lukather)라는 초일류 기타리스트의 연주 테크닉, 그리고 데이빗
패치(David Paich)의 은은한 키보드. 화려한 면은 없지만 묵묵히 베이스를 연주하는
데이빗 헝케이트(David Hungate), 그리고 바비 킴블(Bobby Kimbell)의 보컬 등이
혼연일체가 되어 하나하나의 노래를 완성해 낸 데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 역시 한올의 티는 있는데, 그것은 너무나도 완벽한 음악을 추구하다
보니 다소 인간적인 체취가 덜하다는 점이었다. 80년대 록과 팝음악은 때로 전자 사운드
및 스튜디오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을 나타내 감상자들로 하여금 싫증을 유발하기도
했다. 토토 역시 그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백인들도 사로잡은 흑인음악(?)의 상업적 결실
    마이클 잭슨 (드릴러: Thriller)

 Wanna be startin' somethin'. Baby be mine. The girl is mine. Thriller. Beat it.
Billie Jean. Human nature. P. Y. T. (Pretty young thing). The lady in my life(82년)

 백인음악과 흑인음악의 높은 벽을 허물며 팝 음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최고
스타의 최고 앨범(?)이다.
 일반적으로 흑인들의 음악은 팝의 역사에 있어 항상 실력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냉대와 멸시를 받아왔다. 특히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드릴러)이전
흑인 음악은 '블랙 뮤직'차트에서 각광을 받으면서도 정작 일반 팝차트에서는 괄시받기
일쑤였으며, 80년대 들어와 (빌보드)지 앨범차트에 오른 흑인 가수의 음반이라곤
'디스코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던 도나 섬머의 (라디오에서: On the radio)뿐이었다.
그렇다고 흑인 가수들의 노래나 음반이 상업적으로 뒤떨어지거나 음악적으로 수준이
낮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팝 음악계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백인이었고 그들에
의해 흑인 음악은 상대적으로 외면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달랐다. 이 음반은 발표된 후 얼마 되지 않아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싱글차트에서도 단연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비트 잇: Beat
it)과 (빌리 진: Billie Jean)이 모두 1위를 차지했고, 폴 매카트니와 함께 노래한
(그녀는 나의 것: The girl is mined)이 2위에, 그리고 (드릴러)가 4위에 올랐다. 또한
(뭔가 시작하고 싶어요: Wanna be startin' somethin')가 5위에, (인간성:
Human-nature)이 7위에, (귀여운 당신: P.T.Y.-Pretty young thing)이 10위에 오라
팝음악사상 한 장의 앨범에서 가장 많은 톱10 히트곡(7곡)을 탄생시킨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이 앨범은 총 122주간 앨범차트에 머무는 동안 앨범차트 1위를 무려
37주간 고수했으며 미국내에서만 2,20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했다.
전세계적으로는 3,500만장이 팔린 것으로 집계되어 기네스북은 이 음반을 '단일
앨범으로는 가장 많은 판매고를 거둔 레코드'로 기록했다. 마이클은 84년 1월에 거행된
제11회 어메리칸음악상 시상식에서 7번씩이나 시상대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고, 한 달
후인 2월 28일 그래미상 시상식에선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등 8개 부문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제도권상을 싹쓸이했다(이 역시 그래미사상 최다 수상기록).
 '흑인음악'의 거장 퀸시 존스(Quincy Jones)가 마이클 잭슨과 함께 프로듀스해 앨범
곳곳에 뛰어난 음악적 감각과 새로운 시도를 풀어헤쳤다. 그는 특히 사운드 면에 있어서
백인 팝 뮤지션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의 탁월한 음악세계를 연출해냈다. 그는
청취자들을 '흑인 음악의 신세계'로 안내했다. 이와함께 밴 헤이런, 데이비드 포스터,
그룹 토토의 멤버들이 가세했고, 타이틀골 (드릴러)에서는 공포영화의 대가인 빈센트
프라이스가 무시무시한 목소리를 드려주는 등 게스트 뮤지션부터 초호화판이었다.
 이 음반의 대성공은 83년 미국의 시대상이나 정치상황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마이클의 개인주의, 청교도적 절제, 비사회성, 그리고 가족중시의 가치는 당시 레이건
공화당의 통치이념과 잘 맞물렸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록음악의 '마약 신화'에
물들어있지 않고 사회성이나 정치성이 배제되어있는 마이클 잭슨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에 내심 박수를 쳤다. 잭슨이야말로 그들 눈에 바람직한 청년, 또는 모범적인
흑인인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마치 자신이 피터 팬인 양 생활하고 있는 '어른아이'
마이클에게서 현실세계의 비판이나 정치의식이 표출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마이클의 음악은 또한 인종을 건너뛴 이른바 크로스오버(crossover)였다. 백인들도 그의
음악을 듣고 흥겨워했고 바다건너 동양에서까지 그의 음악은 많은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마이클 댄스뮤직의 성격은 비난받을 소지 또한 다분했다.
(드릴러)의 히트 이후 '흑인음악'진영에서는 "마이클 잭슨은 흑인이 아니고 검은 백인
즉, 하얀 깜둥이 또는 까만 흰둥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사실 그의 음악에서는
예전의 흑인음악, 즉 리듬 앤 블루스나 소울이 일반적으로 보유했던 그들만의 고통이나
한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상업적 성과를 위해 흑인 고유의 정신을 희생시킨 가운데 획득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흑인들이 이 음반을 거들떠보지 않았으며, 권위있는 팝비평가들 또한 이
앨범을 걸작(명반)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뉴웨이브 최대의 대중적 성과
    폴리스 (동시공재: Synchronicity)

 Synchronicity 1. Walking in your footsteps. O My God. Mother. Miss Gradenko.
Synchronicity 2. Every breath you take. King of pain. Wrapped around your finger.
Tea in the Sahara(83년)

 1977년과 78년 영국 펑크의 폭풍에 곧바로 이어진 펑크의 붕괴('뉴 웨이브'의 태동)는
펑크의 파워와 에너지를 따르던 그룹들을 혼란케 했다. 이른바 포스트 펑크(post
punk)시기에 처한 그들은 생존을 위해 어떤 대안을 찾아야 했다.
 앤디 서머즈, 스튜어트 코펄랜드 그리고 스팅으로 구성된 트리오 폴리스(Police)는
78년말 결성 당시 구사했던 펑크의 순수성을 포기하고 그것에 자메이카의 레게 및 재즈
칼라를 믹스한, 다분히 팝적인 음악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것은 펑크를 팝화하는 일종의
개량적 조치였고 그들의 이름을 알려준(록산: Roxanne)은 그런 움직임을 상징한
곡이었다.
 스팅은 말한다.
 "난 기회주의자다. 난 거친 펑크와 끔찍하게 상업화된 록 사이의 공백을 보았다. 그
가운데의 깨끗하고 단순한 것을 보았다. (록산)이 그것이다. 단순하고 꾸밈없지 않은가.
그 곡은 (네버마인 더 볼록스)의 에너지가 없는 게 사실이지만 상업적 록도 아니다. 바로
그 중간에 위치한다."
 폴리스의 기회주의적 '뉴 웨이브'는 80년대 들어 막대한 성공을 창출했다. 그들의
음악은 개량된 팝이었지만 레게, 재즈 등 여러 장르를 섞은 혼합사운드의 독특한 매력을
소지, 영미 록계를 석권할 수 있었다.
 83년 선보인 이 앨범으로 이미 자리잡은 그들의 인기는 순식간에 폭발했다. 첫 싱글
(너의 숨결마다: Every breath you take)는 8주간 빌보드 차트 1위를 고수했으며 동시에
이전에 나온 앨범 4장이 모두 차트에 재등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비틀즈의 전설적인
공연장 뉴욕의 시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그들의 무대는 무려 7만여명의 관객이 운집했다.
 이 앨범의 성공요인은 싱글에서 과시한 스팅의 허스키 보이스도 힘이 컸지만 '팝펑크
테두리 내에서 펼쳐진 실험적 경향'이었다. 물론 그 실험의 주체는 그룹의 실세
스팅(Sting)이었다.
 그는 사운드와 메시지 양 부문에 걸쳐 의미있는 실험을 선보였다. 그는 긴장감 넘치는
자신의 테너, 제3세계 분위기를 내는 코펄랜드의 미묘한 드럼, 마치 톱니같이 날카로운
서머즈의 기타를 동원해 어느 그룹에서도 목격할 수 없는 유니크한 무드를 살려냈다.
실험의 목적은 뉴 웨이브 사운드의 완성이었고 스팅은 마침내 이 작품에서 그것을
실현해냈다.
 그러나 앨범을 만들기 전해에 그는 7년간 살아온 프랑스배우 출신의 아내 프란시스
토멜티와 이혼하는 아픔을 겪고 있었다. 그는 괴로움을 실은 채 자메이카로 날아가서
'007' 시리즈의 작가 이언 플레밍의 고가를 찾아, 그가 제임스 본드 소설을 쓴 바로 그
책상에서 (너의 숨결마다) (고통의 왕: King of pain) (네 손가락에 싸여: Wrapped
around your finger) 등을 작곡했다. 그는 또한 이미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의 '집단적 무의식'과 '동시공재' 이론을 따라 거기서 하나의 이미지를 착상.
자신의 고통과 고뇌를 새롭게 해석했다. 앨범 타이틀이 된 동시공재는 스팅에 따르면
'논리적 연관이 없이 연관을 맺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스팅은 이를 통해 한 개인의
고통과 외부 세계가 무의식 세계에서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나중 "나는 고통과 혼란에 처해있을 때 걸작을 만들어낸다"고 고백했다.
결론적으로 그의 이혼과 고통, 삶의 고뇌가 이 앨범을 명반으로 만든 밑거름이 된
것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스팅의 실험적 자세는 이 앨범을 폴리스의 마지막 작품으로 그치게 한
원인이 되었다. 그는 결국 팝이 돼버린 폴리스를 버리고 젊었을 때부터 품었던 재즈의
꿈에 굶주려 홀로서기를 모색한다. 스팅의 변신을 알리면서 폴리스는 86년 해산했다.

    사운드,메시지,이미지의 절묘한 조화가 가져온 상업성
    신디 로퍼 (비범한 여자: She's so unusual)

 Money changes everything. Girls just want to have fun. When you were mine. Time
after time. She bop. All Through the night. Witness. I'll kiss you. He's so
unusual. Yeah yeah(83년)

 마돈나가 등장하기 전 팝계 최고의 여가수는 신디 로퍼(Cyndi Lauper)였다. 그러나
마돈나는 80년대 중반의 팝계를 강타한 '우먼 파워' 열풍을 주도하면서 불꽃튀는
인기경쟁을 벌였다.
 1983년 가을 발표한 그녀의 데뷔앨범은 이듬해 팝차트를 주름잡으며 발표한 5장의
싱글이 모조리 차트 5위권에 진입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가수가 되려고 고교를
중퇴하고 이류 그룹의 싱어로 뉴욕 야간업소를 전전하던 불우시대는 그것으로써
마감되었다.
 그녀의 경이적인 스타덤은 사운드, 메시지, 이미지 이 세가지 요소의 절묘한 조화가
가져온 결실이었다. 신디의 음악은 신나는 펑크(punk) 록의 미학과 팝적 감성을 혼합한
것으로 나무랄 데 없는 대중성을 갖추었다. 특히 팝적인 색채는 60년대 초반 '걸 그룹
시대'의 상표인 필 스펙터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두꺼운 신시사이저 편곡에 의해
이루어졌다.(로네츠, 슈렐즈, 크리스탈즈 등 'girl group'들이 위세를 떨치던 한때
프로듀서 필 스펙터는 아주 입체적이면서도 '덩치 큰' 사운드를 연출해냈다.-편집자 )
 이와 같은 사운드를 전달하는 주체가 귀엽고 엉뚱하며 때로는 와일드한 이미지의
여성이라는 점 또한 히트 가능성을 배가시켰다. 마돈나 같은 미인은 아니면서도 시선을
장악하기에 충분한 의상, 분장, 헤어스타일, 제스추어 등 그녀의 유니크한 이미지는
성공의 절대적 요소였던 것이다.
 이와 함께 신디 로퍼는 음악 이미지뿐 아니라 노랫말에 있어서도 앨범 타이틀처럼
'비범한 여자'임을 밝혔다. 가사가 결코 상투적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녀가 달아오르네: She bop)는 남성잡지를 보고 자위하는 여성을 묘사함으로써 여성의
자기 성욕충족을 정당화했다. 표현의 대담성 때문에 이 곡은 나중 '학부모들의
음악보존협회'(PMRC)로부터 외설가요로 비판받아야만 했다. (소녀들은 단지 재미를
원해요: Girls just want to have fun)는 성적 자유에 대한 좀더 진지한 접근이었다.

 난 아침 해가 뜰 때 집에 오죠. 엄마는 언제 정신 차릴래 하며 꾸중하신다. 사랑하는
엄마, 우린 운좋은 사람들이 아니에요. 한밤중 전화가 걸려온다. 아빤 네 인생이 뭐가
되겠냐며 고함치신다. 아빠는 항상 1등이시죠. 그러나 여자애들은 단지 재미있길 원해요.

 그녀는 이러한 주장을 마돈나처럼 야한 노출행위와 옐로우 보이스로 펼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무게와 진지함이 있었기 때문에 여성지 '미즈'는 84년말 신디로퍼를 커버로
내걸고 '올해의 여성'가운데 한 명으로 신청했다. 여성지 '글래머' 또한 12월호에 '내년
여성 지위향상에 공헌할 것으로 보이는 7인의 여성'으로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제랄딘
페라로 등과 함께 신디 로퍼를 지목했다.
 신디 로퍼는 음악성과 사회적 영향력에 있어서 마돈나에 비해 분명히 우세했다.
MCA레코드사 어빙 애조프 사장은 85년 '타임'지에 "신디 로퍼가 마돈나보다 아티스트로서
한수 위"라고 말했다. '빌보드'지 편집자 롤 그레인 또한 "마돈나는 6개월만에
비즈니스계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녀의 이미지가 음악에 비해 월등하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그의 예측은 빗나가버렸다. '비범한 여자'와 '물질적인 여자'의 게임에서 승리의
여신은 물질적인 여자 마돈나에게 미소를 던졌다. 신디 로퍼는 이후 이 앨범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한 반면 마돈나는 지금도 막강한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80년대부터 팝계는
음악이 아니라 이미지 세일이 통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이른바 대형 가수들에게는
반드시 비디오적 조건, 심지어 흥행사적 기질이나 탁월한 '언론 플레이' 솜씨도
구비되어야만 했다.
 (그림 설명): 신디 로퍼는 귀엽고 깜찍한 이미지로 성공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여장 남자의 당당한 주장
    컬쳐 클럽 (컬러 바이 넘버즈: Colour by numbers)

 Karma chameleon. It's miracle. Black money. Changing everyday. That's the way(I'm
only trying to help you) Church of the poison mind. Miss me blind. Misery man.
Stormkeeper. Victims(83년)

 마이클 잭슨의 (드릴러)는 마이클 매니아와 함께 '모타운 소울'의 부활을 몰고왔다.
대서양 저편의 영국가수들도 즉각 소올풀(soulful)한 노래가 현재 팝계에서 가장 잘 먹힐
수 있는 스타일임을 간파했다. 보이 조지의 컬처 클럽, 유리스믹스, 왬 등이 모타운식
소울을 내걸며 미국 침공을 성공적으로 이끈 주역들이었다. 그들에 의해 팝음악의 주류
또한 뉴로멘틱 무브먼트의 신시사이저 팝에서 '팝화된 소울'로 넘어갔다.
 그중 컬처 클럽(Culture Club)은 마이클 잭슨의 바로 뒤를 이어 (드릴러)와 인기 정상을
바톤터치한 그룹이었다. 음반 (Colour by numbers)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룹의
상징인 보이 조지 (Boy George)는 '뉴스위크'지의 표지인물로 등장했다. 스스로 '성의
개척자'임을 자부한 그는 여장차림과 인형과도 같은 '미모'로 인해 84년,85년 매스컴의
표적이 되어 집중적으로 카메라 플래시를 받았다. 그만큼 그와 컬처 클럽에게는 비디오적
측면이 중요하게 대두되었다.
 그 시절이 '오디오 + 비디오 '의 이른바 AV시스템이 지배한 시대였음을 누구도 그들만큼
잘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는 비디오에 대한 강한 자신감으로 동시대 뮤지션 프린스를
"공중머리의 통으로 떨어진 난쟁이 같은 인물"이라고 비아냥댔고 마돈나를 두고 "마릴린
먼로에 그녀를 비교하는 것은 소피아 로렌과 버스의 후미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고
비꼬기도 했다.
 그들의 음악은 '타임'지는 '모든 팝음악을 집어넣은 포켓'으로 설명했다. 여러 음악의
영향을 골고루 흡수해 그들만의 것으로 빚어냈다는 지적이었지만 그 음악 성격은 때로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재창조 차원이 아닌 모방, 즉 '표절'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한 보이 조지의 주장 또한 당당했다.
 "표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휘 중의 하나다. 컬처 클럽은 현대음악에 있어서 표절의
가장 진지한 형태이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임을 실증하듯 그들의 표절행위는 '발군의 재해석'으로
나타났다. 보이 조지는 (그것은 기적 : It's a miracle)의 경우 길버트 오설리반의 곡
멜로디를 빌어왔다고 자인했다. 이밖에 (사악한 정신의 교회: Church of the poison
mind)는 스티비 원더의 (초조한: Uptight)과 유사했고 (숙명의 변덕자: Karma
chameleon)는 제임스 테일러의 (편한 남자: Handy man)을 연상시켰으며 (그런거야:
That's the way)는 엘튼 존 노래풍이었다. 보이 조지는 컬처 클럽의 음악을 한마디로
'이미테이션 소울'(imitation soul)이라 칭하기도 했다.
 이같은 후안무치의 비도덕적 행각에도 불구하고 앨범은 우수작으로 인정받는 의외의
성과를 올렸다. '타임'지는 이 음반을 84년 팝 베스트10 앨범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가벼운 팝소울을 선호한 시대의 혜택이 그만큼 크게 작용한 것이었다.
 컬처 클럽은 "우리는 훌륭한 공식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그룹들은 분명 그것에 착상하여
성공했다. 틀림없이 왬(Wham!)이 그러했다"며 자신들의 지대한 영향을 강변했다. 그
공식이 무엇이든 간에 또 후세에 어떤 영향을 미쳤든지 간에 그들은 유행 음악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86년 이후 인기가 급전직하. 이듬해 해산을 선언하고 말았다. 보이
조지는 93년 영화 '크라잉 게임'의 주제가 (Crying game)를 히트시키기까지 재기하는 데
7년 이상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잭슨주의를 따른 백인적 흑인스타의 천재성
    프린스 (심홍색 비: Purple rain)

 Let's go crazy. Take me with U. Beautiful ones. Computer blue. Darling Nikki. When
Doves cry. I would die 4 U. Baby I'm star. Purple rain (84년)

 마이클 잭슨의 (드릴러)가 팝계에 남긴 유산의 '백인적인 흑인음악'이라야 어필한다는
것이었다. 크로스오버로 표현된 그의 모타운 소울음악은 흑백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인종적 색채가 모호해지긴 했지만 어쨌든 흑인 음악에 냉담하던 백인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1984년은 이같은 '(드릴러)의 룰'에 의거한 흑인 슈퍼스타가 잇따라 출현하여 팝계를
완전히 장악한 해였다. 라이오넬 리치, 티나 터너, 레이 파커 주니어, 그리고 프린스가
그 면면들이었다.
 이 가운데 대중적으로 또 음악적으로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는 '미네아 폴리스의 작은
거인' 프린스(Prince)였다. '서커스'지는 84년을 '헤비메틀의 부활과 후레시한 프린스의
해'로 결산했다. 그는 82년의 앨범 (1999)로 이미 비평가의 찬사와 대중적 성공을 함께
얻은 바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세계인의 머리에 새겨놓은 결정적 슈퍼스타덤을
안겨준 것은 백밴드인 레볼루션(Revolution)과 함께 만든 바로 이 앨범이었다.
 이 음반은 그해 1천만장이 팔려나가 프린스로 하여금 마이클 잭슨의 '황제'자리를
위협하게 할 만큼 막강한 위력을 과시했다. 음악성은 오히려 마이클 잭슨보다 한수 위로
판가름날 정도였다. 모타운 소울을 기초로 한 댄스음악인 마이클의 것과는 달리 그의
음악은 펑키(Funky)한 소울과 록을 뒤섞은 매우 파워풀한 것이었다. 마치 통통 튀듯
탄력적이었고 짙었으며 강렬했다. 이 앨범에서 쏟아져나온 3장의 빅히트 싱글 (비둘기가
울때: When doves cry, 1위), (미쳐 버립시다: Let's go crazy, 1위), 글고 타이틀 트랙
(심홍색 비: Puple rain, 2위)가 모두 그러했다. 또한 그가 작사, 작곡뿐 아니라 기타,
드럼, 피아노를 마스터한 전천후 뮤지션이라는 사실은 한층 그의 위치를 격상시켜
주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섹스를 부각시킨 에로틱한 가사였다. 하지만 이 앨범에는 그 점이
표면화되지 않고 슬그머니 숨어버렸다. '롤링 스톤'지는 전작들의 특징을 이룬 노골적인
섹슈얼리티를 약화시킨 것이 이 앨범의 대성공을 가져다준 또하나의 이유라고 지적했다.
 한 곡은 예외였다. 그것은 '난 그녀를 호텔로비에서 만났지. 잡지를 보고 자위를 하고
있었지...'라는 내용의 노랫말로 시작하는 곡 (사랑하는 니키: Darling Nikki)였다.
그런데 이 한 곡이 당시 상원의원 앨버트 고어의 부인 티퍼 고어의 레이다에 정통으로
걸려들었다. 티퍼 고어는 외설스런 대중가요의 척결을 위한 단체 '학부모
음악보존협회'(PMRC)의 회장이었다. PMRC는 85년 "수많은 팝송이 청소년의 정서를 좀먹고
있다"며 대표적인 노래 중의 하나로 이 곡을 지목했다. 당시 레이건시대의 보수적
분위기를 반영한 이 사건으로 록은 또 한차례 매스컴 비판의 도마위에 오르는 수난을
당해야 했다.
 하지만 결코 그것이 프린스의 이미지를 손상시키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목이 쏠리고
그가 대단한 뮤지션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심어주는 계기로 작용했다. 영화 '심홍색 비'의
사운드트랙이었던 이 음반이 아카데미 음악상 사운드트랙 부문을 수상했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그의 음악은 충격적이었다. 질리게 할 만큼 반복되는 파워기타의 리듬 패턴과 야수처럼
번득이는 보컬은 경탄을 자아낼 만큼 높은 수준을 자랑했다. 마치 그룹 후(the Who)같은
연주의 약동감,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같은 보컬의 힘찬 에너지는 당시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흑인 감성(feel)이 결여된 것은 사실이었다. 이와
관련해 프린스는 "난 하나의 특정 문화풍토에서 성장하지 않았다. 난 펑크도 아니고 리듬
앤 블루스 가수도 아니다. 난 백인이 많은 미네소타의 중산층 출신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음악이 백인들에게 먹히는 것은 당연했다. 성분상 기본적으로 백인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림 설명): 프린스는 마이클 잭슨보다 실적에서는 뒤졌으나 음악적으로는 더욱 평가를
받았다.

    보수시대의 절정기에 나타난 월남전 노래
    브루스 스프링스틴 (미국에서 태어나: Born in the U.S.A.)

 Born in the USA. Cover me. Darlington county. Working on the highway. Downbound
train. I'm on fire. No surrender. Bobby Jean. I'm goin'down. Glory days. Dancing in
the dark. My hometown(84년)

 그것은 값진 승리였다. 이와 같은 록 레코드가, 게다가 강렬한 메시지로 점철된 앨범이
잭슨 열룽에 바로 이어 선풍적 인기를 모았다는 것은 얼핏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83년과 84년 잭슨의 (드릴러)로부터 차트 대권을 이양받으며 85년
팝계를 완전히 독점했다. 그러나 두 대작의 성격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마이클 잭슨의
것은 '미국이 좋다'는 보수적 이데올로기가 깔린 데 반해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의 작품은 '지금 미국이 병들어있다'는 뼈아픈 지적을 가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앨범에 관통하고 있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시각은 힘찬 록 사운드와 달리 시종일관
우울한 것이었다. 그는 베트남전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참전용사의 고통, 파괴돼버린
고향 등 빛바랜 '아메리칸 드림'을 앨범의 테마로 살았다.
 그는 이전 앨범들 (달아나기 위해 태어나: Born to run) (강: The river) (네브라스카:
Nevraska)에서 굳힌 '노동자들의 대변자' 위치를 이 앨범에서도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
더구나 앨범의 발매 시기는 레이건 보수 이념이 절정에 달한 84년 6월이었다. 그런데도
이 앨범이 (드릴러) 못지 않은 폭발적 인기를 구가한 것은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미국에서만 이 앨범은 천백만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싱글차트 10위권에 진입한 노래도
무려 7곡이나 되었다. 싱글차트 역사상 신기록이었다. 이처럼 이 작품이 엄청난 호응을
얻게된 것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우선은 댄스음악과 테크노팝이 우글거리던 팝음악
시장에 파워풀한 록앨범의 전형으로서 신선함을 제공, 대중을 사로잡았다는 분석이다.
 사실 (고속도로 현장에서: Working on the highway) (미국에서 태어나: Born in the
USA) (날 감싸주세요: Cover me) 등에서 보이는 로큰롤만이 가지는 다소 거친 듯한
샤우트(정서 넘치는 외침) 창법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원한 맛을 주었다.
 히트싱글이 많았다는 것이 증명해주고는 있지만 워낙 듣기 좋은 노래들로 채워져 있는
것도 성공의 주된 요인이었다. 첫 싱글로 발표된 (어둠속에서 춤추며: Dancing in the
dark)는 댄스를 충동시킬 만큼 매끄러운 진행을 보이고 있는 (나는 타오르고 있어요: I'm
on fire)나 (나의 고향: My hometown)은 마치 포크발라드를 듣는 듯 부담없는 음악감사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분석은 앨범의 사회적 영향과 관련된 부분이다.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베이붐 시대의 정서를 예리하게 파고들어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
그들로부터 지지를 받게 됐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들은 바로 60년대 학창시절에 더 나은 세상을 열망하며 반전 데모에
참여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 꿈과 순수성을 상실해버렸고
사회와 직장과 가정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바로 그들에게
과거를 되새기게 하는 동시에 현재의 미국 상황에 대해 생각하도록 유도한 작품이었다.

 방은 어둡고 침대는 비어있네. 난 긴 휘슬 소리를 들으면서 무릎을 끓었네. 머리를
던지며 울어 버렸지. (하행열차: Downbound train)

 이는 불경기로 인해 직장과 아내를 잃어버린 한 노동자의 좌절을 그린 노래였다.
 (영광의 시절: Glory day)은 왕년(고교시절)의 야구스타와 결혼했다. 이혼한
'교내여왕'을 등장시켜 과거와 너무도 달라진 현실의 참담함을 노래하고 있다.

 길가 술집에서 어느날 밤 그를 봤지. 난 들어가고 그는 나오던 참이었어. 우린 다시
들어가 앉아 술잔을 나누었지 그러나 그가 얘기한 건 지나가 버린 영과의 시절이었어.
우린 앉아 옛시절에 대해 얘기했지... 그녀가 말하더군. 울고싶은 심정이라고. 그리곤
영광의 시절을 회상하더니 깔깔 웃었어.

 가슴을 찌르는 샤우트(shout)의 타이틀 곡 (미국에서 태어나)는 노동자가 된 어느
월남전 용사의 극단적 삶을 다루었다.

 고향에 돌아와 제련소에 일자리를 얻으러 갔지. 고용자는 나더러 재향군인회에 가보라는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냐며. 난 미국에서 태어났어. 난 미국에서 태어났어...

 팝 관계자들은 이 노래의 제목과 코러스의 반복적 외침으로 인해 미국 찬가로 오해된
것이 앨범이 누린 폭발적 인기의 또다른 요인으로 분석한다. 실제로 이 노래는
LA올림픽(소련이 참가하지 않은 채 미국이 오랜만에 종합우승을 차지했다)과 맞물려
'신애국주의 열풍'을 자극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팝 역사상 메시지가 가장 잘못
인식된 노래가 다름아닌 이 곡인 셈이다.
 펜실베니아 주의회의 코리얼 스트븐스 위원은 그 무렵 그를 '로큰롤의 보스(Boss of
rock'n roll)로 공식 지명하기 위해 주의회에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로써 진짜 록계의
'보스'가 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후련한 로큰롤 사운드와 통렬한 노랫말은 60년대
사회의식이 80년대로 살아 꿈틀거리고 있음을 알렸다. 그는 록의 본질과 매력을 동시에
팬들의 뇌리에 심은 보기드문 80년대 중반의 저항가수였다. '뉴스위크'지는 75년에 이어
10년이 흐른 85년 그를 다시 커버 스토리로 다루며(이번에는 미국관이 아닌 세계판)
그에게 '가장 위대한 로큰롤러'라는 타이틀을 붙여주었다.
 이 앨범이 그렇게 만들어주었다.
 (그림 설명): 백밴드인 E 스트리트 밴드와 함께 열정적으로 공연에 임하고 있다.

    흑인음악으로 미국시장 석권한 미남 백인 듀오의 빅히트작
    왬! (메이크 잇 빅: Make it big)

 Wake me up before you go-go. Everything she wants. Heartbeat. Like a baby.
Freedom. If you were there. credit card baby. Careless Whisper(84년)

 듀오 왬(Wham!)의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는 런던 교외의 히트 포드사이어 고교
동창생이다. 79년 함께 음악하기로 뜻을 모아 81년 왬으로 공식 출범했다. 펑크 또는
뉴웨이브의 시대였으나 어린 그들은(모두 63년 생) 디스코에 더 집착했다. 그들은
디스코장에서 (토요일밤의 열기)사운드트랙에 맞춰 춤추다가 마주쳤고 그리하여
'춤동지'로 가까와졌다.
 조지 마이클은 운 좋게도 디스코로부터 흑인음악의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마이클
잭슨의 (드릴러)열풍이 83년을 휘몰아치면서 '소울의 부활'이 대대적으로 야기되었을 때
왬은 보이 조지와 마찬가지로 음악적 스타일 면에서 이미 차후의 성공을 보장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1982년 그들은 영국에서 (영건: Young guns), (악동: Bad boys)과 같은 곡으로 인기
차트를 주름잡으면서 세계진출의 길을 텄다. 마침내 84년 두번째 앨범인 이 작품으로
미국에서 그들의 인기를 폭발했다. 그들은 틴에이저 대상의 백인 듀오답지 않게
흑인음악의 냄새가 배인 디스코풍 팝으로 미국시장을 석권한 것이었다. 미국의 흑인들도
그들의 음악에 거부감이 없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이 앨범은 잘 팔렸다.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 음악이 백인들에게 어필한 것과 같이 왬의 음악은 흑인들도 따라 불렀다.
 조지 마이클은 84년 네 곡의 넘버원 히트를 기록하겠다고 큰소리쳤다. 그의 호언장담은
허풍이 아니었다. 여기 수록된 (고-고하러 가기 전에 날 깨워요: Wake me up before you
go-go), (빗나간 속삭임: Careless whisper),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 Everything she
wants) 세 곡이 모두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점령했고 (자유: Freedom)도 톱 10에
올랐다.
 그 가운데 단연 백미는 잔잔한 도입부분, 부드러운 기타, 짜릿하고 중량감있는 섹스폰
연주에 조지 마이클의 소올풍 보컬이 조화를 이룬 (빗나간 속삭임)이었다.

 난 다시 춤추지 않겠어. 죄의식으로는 리듬이 잡히지 않아. 가장하려해도 네가 바보가
아님을 알지. 친구를 속일 만큼 어리석지 말았어야 했는데. 기회의 낭비였어. 고거처럼
사랑 없이는 다시 춤추지 않으리.

 댄스광 또는 플레이보이가 유희의 도구로 여긴 상대로부터 이별을 선언당한 후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 각성과 다짐이 담겨있다. 내용 속에는 그와 동시에 그들의 정서가
댄스플로어에서 배태되었다는 사실이 엿보인다. 그들은 댄스음악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
'80년대 청년들'이었다.
 차트 1위라는 실적 외에 이 노래는 왬의 조지 마이클이 천부적 작곡재능의 소지자임을
청취자들에게 굳게 심어주었다. 그것은 팝계의 소득이기도 했다. 그가 비록 틴에이저
구매계층을 겨냥한 곡을 썼지만 작곡 실력만은 동시대 누구보다도 뛰어나다는 것은 이후
발표된 곡으로 확실해졌다.
 '마이더스 듀오' 왬의 행진은 공식 해체된 86년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조지 마이클은
왬의 이미지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막연히 팝스타가 된다는 환상에서 깨어나 의식있는
노래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88년 첫 솔로앨범 (신념: Faith)를 내면서 그러한 '입장의 변화'를 구체화시켰다.
그 노래들은 왬 시절의 어린애 같은 음악이 결코 아니었다.
 (그림 설명): 조지 마이클(왼쪽)과 앤드류 리즐리. 그들은 서방가수 최초로 중국 공연을
갖기도 했다.

    탐욕의 80년대 정서를 꿰뚫은 '섹시 뮤직'
    마돈나 (처녀처럼: Like a virgin)

 Material girl. Angel. Like a virgin. Over and over. Love don't live here. Dress
you up. Shoo-bee-doo. Pretender. Stay(85년)

 1985년은 마돈나의 해였다. 그녀는 신나는 댄스음악으로, 성인잡지 '플레이 보이' '펜트
하우스' 동시 누드사진 폭로와 같은 장외 핫뉴스로 점잖은(?) 팝계를 철저히 굴복시켰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보이 토이(Boy Toy)'라 쓰인 벨트, 배꼽을 드러낸 레이스
의상, 헝클어뜨린 머리 등은 '마돈나처럼 되고자 하는 10대 소녀들' 이른바
워너비(wanna-be)족을 양산했다. 그들뿐 아니라 기성세대들도 오랜만에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빌린 '섹스 여신'의 육탄 공세에 기꺼이 신선을 집중했다.
 여가수로서 그녀가 소지한 무기는 가창력이 아니라 발레수업으로 가꾼 몸매와 마치 창녀
같은 행위가 선사한 '시각적인' 것들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듣는 음악이 아닌 '보는
음악'의 시대임을 그녀는 간파했다. 마돈나를 스타로 키워준 매개체는 당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뉴미디어 M-TV였다. 음악 전문 유선방송사 M-TV는 누구보다
비디오적 조건이 우수한 그녀의 섹스 이미지를 빠르게 팬들에게 전달해주었다.
 대담하게 자신의 육체를 내세우는 것이 그렇다고 스타덤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만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마돈나는 그러한 '인력 활용'을 통해 성적 자유를 주장하는 수준으로까지
그 정당성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많은 여성들에게 성의 자유를 만끽하고 성적 암시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려는 메세지를 설파했다.

 그대는 날 강하게 하고 대담하게 만드네. 그대의 사랑은 공포와 추위를 녹여주지요.
마치 내가 처녀인 것처럼. 생전 처음 내몸에 손길이 닿은 듯...(처녀처럼: Like a
virgin)

 이 앨범의 타이틀곡이 의미하는 바는 명료하다. 이 노래에 따르면 아무리 많은
남자관계를 가졌어도 마음만 처녀면 곧 처녀인 것이며 따라서 처녀처럼 생각하면
그만이라는 얘기가 된다. (처녀처럼)의 빅히트는, 마돈나로 하여금 흥행수표처럼 보증된
'섹스'만을 10년 넘게 물고 늘어지게끔 그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마돈나의 성공은 80년대의 시대적 특성도 크게 작용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어떤 남자는 내게 키스하고, 어떤 남자는 날 껴안지. O.K야. 그런데 그들이 적당한
크레딧(credit)을 주지 않는다면 난 가버리지. 그들은 사정하고 간청하지만 기쁨을 얻을
자격이 없어. 빳빳한 현찰을 가진 사내라야 항상 '되는 남자'지. 왜냐하면 우린 물질적
세계에 살기 때문이야. 난 물질적인 여자야. (물질적인 여자: Material girl)

 이 LP의 A면 첫곡에 배치하여 작품의 성격을 대변하기도 하는 이 노래는 실로 레이건과
대처의 보수정책이 낳은 금전만능 및 기회주의의 철학을 압축한다. 마이클 잭슨처럼
마도나 역시 당시의 보수이념에 의해 위력을 발휘한 스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명프로듀서인 나일 로저스(Nile Rogers)의 역량이 돋보인 음반이기도 하다. 그는 첨단의
스튜디오 기술력을 동원하여 현대적이면서 매우 상업적 색채가 강한 댄스음악을
만들어냈다. '상업성의 부여'가 이같은 음반의 핵심이므로 일단 그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나일 로저스는 70년대 말 디스코 그룹 쉭(Chic)의 리더였던 사람. 그가
프로듀스한 작품인 만큼 수록곡 (처녀처럼) (물질적인 여자) 등에 디스코 리듬이 깔리는
것은 당연했다. 마돈나는 '음악으로도'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고독한 기타 영웅이 본 80년대의 안타까운 현실
    다이어 스트레이츠 (전우: Brothers in arms)

 So far away. Money for nothing. Walk of life. Your latest trick. Why worry?. Ride
across the river. The man's too strong. One world. Brothers in arms (85년)

 마돈나의 댄스음악과 마이클 잭슨, 티나 터너, 프린스의 크로스오버 블랙 뮤직이
범람하던 때에 록음악으로 인기차트를 기습한 음반이다.
 85년 발표된 이 앨범은 발표되자마자 영, 미 팝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상업적으로
대성공했다. 특히 영국에서는 2천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려 '영국의 팝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수록곡들이 컨추리 분위기의 록을 바탕으로 한 가운데 기타주자이자 리더인 마크
노플러(Mark Knofler)가 새롭게 선보인 재즈 및 팝적인 색채가 가미되어 상업성을 구비한
것이 특색. 이 점이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의 골수팬들을 실망시킨 원인이
됐다.
 하지만 상업성이 짙다는 이유 때문에 당시 앨범 중에선 드물게 노래에 내재된 강한
메시지가 가리워져버린 측면이 없지 않았다. 마크 노플러도 이와 관련 "강렬한 성격의
록음악이었지만 너무 많이 팔리는 바람에 콘플레이크인 양 가볍게 취급되어 버렸다"라고
불평했다.
 노래의 테마는 사실 매우 심각하다. 동료가수 스팅(Sting)의 도움을 받은 빌보드
싱글차트 1위곡 (불로소득: Money for nothing) 만 하더라도, 저질 록가수들이 예쁘장한
얼굴만 믿고 M-TV에 나와 돈버는 세태에 대한 통렬한 일침이었다. 80년대 보수적
대중음악은 음악성보다 비디오적 조건을 비롯한 음악 외적인 부분이 지나치게 강조되었다
(마돈나와 보이 조지가 대표적)는 사실을 이 곡을 통해 캐낼 수 있다.

 귀걸이하고 화장을 한 저 호모 같은 애를 봐요. 여보세요 저건 그의 진짜 머리에요. 저
호모 같은 애가 자가용 제트기도 있답니다. 저 호모 같은 애가 백만장자에요. (불로소득)

 타이틀 곡 (전우: Brothers in arms)는 죽어가는 한 군인의 상황을 통해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실을 비판했으며, 전범자의 고백을 담은 (그 남자는 너무 강해: The man's too
strong)도 한가지였다.

 텔레비전에서 대책을 구할 순 없지요. 낡고 똑같은 뉴스에 불과하지. 그들은 조화로운
하나의 세계로 가는 길을 못찾지. 암울을 치유할 수 없는 거야 (하나의 세계: One world)

 이 곡에서 알 수 있듯 왜곡되고 편의주의가 활개치는 현대사회에 던지는 비판의
목소리가 전체 줄거리를 이어가고 있다.
 이 앨범의 성공요인으로 또한 중요한 것은 그의 탁월한 기타연주였다. 그는 픽(pick)을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이른바 '핸드 픽킹'주자로 유명하다. 핸드 픽킹은 픽
주범에 비해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정교한 선법을 구사하는 데 강점을 보이고, 더불어
화음과 복선율이 많은 곡을 연주하기 좋은 주법으로 알려져 있다. 마크 노플러는 앨범을
통해 이러한 주법의 장점을 고스란히 살려냈다. 하지만 그의 연주가 그저 부드럽고
유연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기타의 대가답게 곡에 따라 강하고 자극적인
선율(불로소득)을, (왜 걱정을: Why worry)과 같은 유연하고 아름다운 아르페지오 선율을
고루 연주하는 다채로운 능력을 과시했다. 또한 마크 노플러는 이 앨범 제작시 13개의
사잉한 키보드를 활용(멤버 앨런 클라크와 가이 플래처의 더블 키보드시스템 포함),
다분히 멜로디를 의식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너무도 가난해 술집을 전전하며 다져진 마크 노플러의 보컬 또한 곡조와 뛰어난 조화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주간 대중지 '피플'은 86년 그의 목소리가 밥 딜런과 레너드 코헨의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다면서 "이 앨범의 가장 감동적인 악기는 마크 노플러의
목소리"라고 평할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정감어린 그의 보컬이 인상적인 (왜 걱정을)이 유난히 인기를 끌었으며
(너무 멀리 떨어져: So far away) (인생노정: Walk of life), 그리고 게스트 색소폰주자
마이클 브래커의 감수성이 빛나는 (너의 최신 기교: Your latest trick)등 거의 전곡이
고루 사랑받았다.

    UN제재도 뚫고 아프리카 리듬을 찾아간 가수의 '월드 뮤직'
    폴 사이먼 (은총의 땅: Graceland)

 The boy in the bubble. Graceland. I know what I know. Gumboots. Diamonds on the
soles of her shoes. You can call me AI. Under African skies. Homeless. Crazy love
Vol 2. All around the world or the myth of fingerprints(86년)

 이 음반이 나온 때는 1986년. UN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문화, 경제 보이콧을 선언한
때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제재를 받게된 것은 그 나라의 전통적인 흑인차별정책,
이른바 아파르트헤이트 때문이었다.
 그런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폴 사이먼 UN의 시책을 어기고 과감하게 남아공으로
날아들어갔다. 그의 목적은 그곳의 음악인들과 함께 음반을 취입하는 것이었다.
 반 아파르트헤이트 진영은 분노했다. 아무리 그의 의도가 순수하다 할지라도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로 간다는 것은 UN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결국 그것은 백인 지배층에의
협조를 의미한다는 주장이었다. 가나의 UN대사 제임스 빅터 게보는 "폴 사이먼이
남아프리카로 간다는 것은 아파르트헤이트에 무릎을 꿇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게보 대사의 논리는 이러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지정된 백인호텔에서 투숙할 것이고
백인들 돈쓰는 식으로 돈을 쓰게 될 것이다. 그 돈은 핍박받는 원주민이 아닌 백인들
수중으로 들어갈 것 아닌가. 이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이 그곳에 가선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폴 사이먼(Paul Simon)의 입장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남아공행이 '선 시티'(Sun
City)에서 연주하는 것이 아닐진대 왜들 난리냐는 투였다(실제로 그는 두차례 남아공측의
선 시티 연주 초청을 딱 잘라 거절했고 앨범을 만든 뒤 공연수익금을 UN 및 남아공의
흑인 자선단체에 기증했다).
 오히려 앨범이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을 위한 투쟁에 기여하게 된다고 그는 반박했다.
그는 앨범내용에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정치적 견해가 드러나있지 않다는
비판에 다시 직면하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물론 나의 음악은 정치를 피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의 음악이 암시하는 것은
확실히 정치적이다. 난 드러내놓고 얘기하는 것보다 나와 같은 접근이 더욱 강력한
정치적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부담없이 나의 음악을 접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남아공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느끼게 될 것 아닌가."
 앨범 (은총의 땅)은 이러한 논란의 과정을 거쳐 탄생되었다. 이 음반은 우선
음악팬들에게 미지의 아프리카 리듬의 우수성을 전파하는 데 공헌했다. 사람들이 남아공
토속음악으로부터 받은 인상은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와 비슷하긴 했으나 훨씬
원초적이고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지성적 음악인' 폴 사이먼의 작품답게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과시하여 그래미 올해의
앨범부문을 수상했고 그 덕분에 판매도 호조, 빅히트 싱글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백60만장이 팔려나가는 등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폴 사이먼의 남아공행에 대한 찬반과 무관하게 이 앨범에 쏠린 관심은 분명히
팝대중들로 하여금 남아공의 토속음악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의 잔혹성을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승리자는 폴 사이먼인 셈이었다.
 자신이 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것을 감수하게 할 만큼 용기를 내도록 만든 것은
84년. 그에게 건네진 (검부츠:어코디언음악 히트곡 2집-Gumboots: Accordian Jive hits
Vol 2)라는 카세트였다. 정체도 모르면서 폴 사이먼은 그것이 주는 멜로디에 끌려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나중 그는 그 검부츠가 므바캉가(mbaqanga)라는 남아공
스웨토의 거리음악인 것을 알게 되었다.
 사이먼은 급기야 남아공의 프로듀서인 힐튼 로센탈과 접촉했고 직접 요하네스버그로
날아가 그곳의 토속음악인 에아 마체카, 제네랄 엠디 시린다 앤 가자 시스터즈, 그리고
보요요 보이즈 등 3그룹과 손잡고 레코딩 작업에 착수했다. 타오 애마 마체카는 (거품의
소년: Boy in the bubble)에, 제네랄 엠디 시린다 앤 더 가자 시스터즈는 (난 내가 안는
것을 안다: I know what I know), 보요요 보이즈는 (검부츠: Gumboots)에 각각 독특한
리듬과 하모니를 들려 주었다.
 남아공 세션을 마친 뒤 기악 트리오인 레이 피리(기타), 바기티 쿠말로(베이스), 아이삭
므찰리(드럼)와 함께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그들의 도움속에 (은총의 땅: Graceland),
(아프리카의 하늘 아래: Under African skies)를 녹음했다. (아프리카의 하늘 아래)에는
린다 론스태드가 싱어로 참여했다. 서방 음악인으로는 그녀 외에도 로스 로보스(Los
Lobos)가 가세해 앨범에 로큰롤적인 요소를 불어넣는 데 기여했다(나중 로스 로보스는
작곡에 자신들의 이름을 뺐다고 폴 사이먼을 고소하려 했다).
 눈에 띄는 곡은 무반주 합창, 즉 아카펠라 송인 (집없는 사람들: Home less). 사이먼,
그리고 남아공 아카펠라 그룹인 레이디스미스 블랙 맘바조의 리드싱어 조셉
샤바랄라(Joseph Shabalala)가 공동작곡한 이 노래는 사이먼의 가사와 줄루(Zulu족)
언어의 하모니가 완벽하게 결합된 이 앨범의 꽃이다. 이와함께 남아공 흑인들의 고된
삶을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앨범 수록곡 가운데 가장 정치적이기도 하다.

 강풍이 우리집을 파괴하고 많은 사람이 죽는다. 오늘밤 네가 당할 수도 있다. 우린
집없는 사람들이야. 달빛은 심야의 호수에 잠들고...

 (은총의 땅)은 무엇보다 알려지지 않았던 아프리카 음악을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제3세계 음악을 일컫는 '월드 뮤직'의 붐속에서 그것은 음악팬들을
부분적으로나마 영, 미권 팝음악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러나 서방인이 주체가 되어 아프리카 음악을 소개한 것이 과연 진정한
'월드뮤직'(제3세계음악)인가는 의문으로 남는다. 더불어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점에
'오로지 음악에 가치를 두고' 제재망을 뚫고 음반을 완성한 행위가, 그 우수성으로 인해
칭찬만 받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재고해 볼 여지는 있다.


    80년대 사람들과 그 정신에 대한 다각도 분석
    피터 가브리엘 (소우: So)

 Red rain. Sledgehammer. Don't give up. That voice again. In your eyes. Mercy
street. Big time. We do what we're told (86년)

 수록곡 (슬레지해머: Sledgehammer)가 영미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동시에 널리
알려진 앨범이다. 상업적 성공으로 인지도가 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빅
히트를 목적으로 만든 것 같지 않은 느낌을 줄 만큼 '생경한 곡조'와 '신경쓰게 하는
테마와 착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앨범에 일관되어 흐르는 것은 80년대와 그 시대 사람들의 정신상태에 대한 다각도
분석이다. 그러면서 80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을 슬쩍 끼워넣고 있다.

 난 내 길을 걷지. 난 성공하고 있지. 난 보여야만 해. 실제보다 훨씬 더 크게... 내
차는 커지고 있어. 내 집도 커지고 있어. 내 눈도 커지고. 내 입도 내 배도 커지고 있어.
내 은행구좌도. 바로 때는 왔어. 때는 왔어. (빅 타임:Big time)

 이 곡은 80년대 사람들의 과잉욕구에 대한 조롱이다. 그는 동시대 사람들의 자아를
지배적 자아와 복종적 자아로 보고, 둘 모두를 피해야할 극단으로 주장한다. '밀그램의
37'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곡 (우린 들은 것을 하지: We do what we're told)는 (빅
타임)이 지배적 자아를 상징하는 것과 반대로 복종적 자아를 묘사하고 있다. 이 곡은 한
대학의 교육효과 실험을 모델로 했는데 그 실험은 교사의 전기충격 형태의 교육법이
학생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해롭다고 인식된 극단적 형태가 교육효과 전달을
가져온다는 얘기인데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은 '배우는 자의 복종적 자아'가
자져올 극단적 결과를 우려하고 있다.
 복종적 자세에 대한 피터 가브리엘의 거부감은 (포기하지 말아요: Don't give up)에도
나타난다. 이 곡은 미국 사진작가 도로디어 랜지가 찍은 공항기 사진에 영감을 얻어
파업중인 영국의 탄광노동자들을 위해 쓰여졌다.

 ...그러나 당신들이 져버리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포기하지 말아요. 친구가
있잖아요. 당신들은 아직 진 것이 아니에요. 포기하지 말아요 난 당신들이 해낼 수
있음을 알아요.

 영국의 최고 여가수 케이트 부시(Kate Bush)와 듀오로 부른 이 곡은 드높은 서정성
때문에 국내에서도 인기를 누렸다.
 당시 그의 '피지배'에 대한 관심은 제3세계의 음악을 가리키는 월드 뮤직에 대한
헌신으로 절정을 이뤘다. 이미 82년 '음악예술과 무용의 세계' (World of Music Arts and
Dance, WOMAD) 페스티벌을 조직, 영미음악을 넘어 제3세계 음악에 투신했으며 유명한 곡
(비코: Biko,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시인겸 운동가로 인종분리주의자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실제 남아프리카 공화국 현지음악인과 함께 레코딩한 것이었다. 따라서
피터 가브리엘은 80년대 중반 위세를 떨친 '월드 뮤직' 붐의 주역으로 리틀 스티븐, 폴
사이먼, 데이비드 번(그룹 토킹 헤즈의 리더) 등과 같은 선상에 위치한다. 이 앨범의 (네
눈에: In your eyes)에서 그는 세네갈의 유명가수 유수누두르(Youssou N'Dour)를 초청,
게스트 보컬로 참여시켰다.
 피터 가브리엘은 이후 마틴 스콜세즈 감독의 영화 '예수 최후의 유혹'의 사운드트랙
앨범을 제작하는 등 활동을 계속했으나 이 음반의 신화(2백만장 이상 판매)를
재창조하지는 못했다. 그의 관심은 성공적인 앨범을 만드는 것이 아닌 WOMAD 활동에
쏠려있었다. 피터 가브리엘은 현실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업적 가치가 전부였던
80년대 팝계의 '괴짜'였다.
 그리고 이 앨범은 때로 괴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80년대 저하의 대변인이 남긴 위대한 족적
    유투 (여호수아 나무: Joshua Tree)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With
or without you. Bullet. Running the Standstill. Redhill Mining town. In God's
Country. Trip through your wires. One tree hill. Exit. Mothers of the disappeared
(87년)

 양심적 저항의 불모지였던 80년대의 팝계에 횃불을 밝힌 '아일랜드 십자군'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앨범. 이 음반을 접한 미국 뉴 저지주의 한 여성은 "그들은 먼저 내 마음의
문을 음악으로 열어주었고 그 음악은 내 마음의 문을 세계로 열어주었다"고 말했다.
 유투(U2)는 80년대의 팝계를 '탐욕과 상업성'의 수렁에서 건져 록은 여전히 정치성,
사회성과 담을 쌓지 않고 있다는 점을 실천했다. 그것은 60년대 록 음악이 구축한
저항정신의 복원이었고 계승이었다. 89년 말 (LA 데일리 뉴스)지는 80년대 팝 음악을
결산하면서 "트레이식 채프먼, 미셜 쇼크트, 유투 등은 60년대 저항음악의 유산을
물려받은 신예들로서 '의식의 물결'이 80년대 팝계를 수놓았다"고 논평했다. 과격하지
않으나 누구보다 예리했던 그들의 사회비평은 대처와 레이건 보수이념 통치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다시금 양심을 꿈틀거리게 했고 그 때문에 언론과 대중들 모두로부터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87년 발표된 이 음반은 이미 널리 알려진 유투를 일약 월드스타로 부상 시켜주었다.
전세계적으로 천2백만장이 팔려나갔고 (너와 함께, 너 없이: with or without you) (난
아직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지: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두
곡은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점령했다. 때맞춰 거행된 그들의 월드투어는 가는 곳마다
매진 사례를 거듭했으며 라디오는 그들 노래 방송으로 북새통이었다. (타임)지는
"레코드판매, 공연, 라디오방송 등 모든 면에서 87년은 그들의 것이었다"고 기술했다.
 이미 전작 (전쟁: War, 83년) (잊혀질 수 없는 불: The unforgettable fire, 86년)에서
드러난 그들의 창작력과 탐구적인 자세는 이 (여호수아 나무)로 집대성된다. 여기에는
유투 '양심의 소리'외에 한층 깊어진 '영혼의 울림'이 있다.

 난 전투기가 아이가 잠든 진흙 오두막집을 가로질러 조용한 도시의 거리를 지나는 것을
본다. 벽을 통해 우린 도시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미국이 밖에 있다. 미국이 밖에 있다.
(푸른 하늘에 총탄을: Bullet the blue sky)

 이 곡은 미국의 중미 국가에 대한 내정간섭을 꼬집는 정치적 성향의 노래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관심은 헤로인 과용의 황폐화를 지적한 (조용하기 위해 달리는: Running to
stand still). 미국에 대한 기대와 안타까움을 담은 (신의 나라에서: In God's country),
민중의 피폐된 삶을 은유적으로 그린 (붉은 언덕의 탄광촌: Red hill mining town)에
잇따라 반영되었다(국내 라이센스 음반 발매시 이 곡들은 모두 삭제되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이 앨범의 전부가 아니었다. 무언가 탐구하는 듯한 영적인 느낌의
노래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난 가장 높은 산을 올라갔지. 들판을 가로질러 달렸지. 난 뛰었고 기었지. 이 도시의
벽을 기어오르기도 했지. 오로지 그대와 함께 하려고. 그러나 난 아직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어. (난 아직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지)

 이러한 종교적인 성향은 (너와 함께 너 없이) (거리들에 이름이 안붙은 곳: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에서도 나타난다. 거기에는 삶에 대한 심도있는 접근자세가 배어
있었다. 이 때문에 "이 앨범은 뛰어난 스테이지 가수이자 작사가인 리더 보노(Bono)의
완숙해진 노랫말의 승리"라는 평가를 낳았다. 동료인 기타리스트 디 에지(The edge)는
그를 '작사가라기보다 차라리 시인'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보노는 실제로 이 앨범에서
'언어의 깊이를 희생시키지 않고' 3,4분짜리 곡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농축시키는
능력을 과시했다.
 그의 지향점은 '현실 지적'과 '기독교적 사랑을 통한 구원'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허황됨이 없이 실제적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루리드는 유투를 '위대한 노래,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로 규정하면서 "유투는 팝그룹이 아니다. 그들은 현실을 위해
여기에 존재한다"고 칭송했다.
 음악도 한층 성숙해졌다. 전작들에는 영국 펑크가 갖는 폭발적 파워가 넘쳐흘렸고 실상
그로부터 느껴지는 스트레이트한 이미지가 그들의 재산이었다. 그들은 클래시 론큰롤이나
메시지를 새긴 노랫말이나 그 모두를 섹스 피스톨즈와 클래시 같은 펑크 밴드로부터
전수받았다.
 그러나 이 음반에서는 그 같은 펑크적 사운드의 특성은 퇴색하고 당시 미국 블루스에
빠져있었던 보노의 영향 때문인지 블루스적 느낌(feel)이 많이 가미되었다. 또한 템포
또한 상당히 느려졌다. 육중함과 기타에 의한 '사운드의 벽'(wall of sound)은
여전했지만 포효하는 록 사운드는 뒷자리로 물러났다. 앨범의 종교적인 느낌은 노랫말뿐
아니라 이러한 곡조 및 연주의 변화에도 기인한다. 영국 펑크의 격정적인 연주를
못마땅해 했던 미국이 그들에게 아낌없는 호의를 베풀어준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이처럼 입장은 변화없이 일관되게 견지하면서도 사운드는 계속 바꾸어간 것이 유투의
특성이기도 했다. 이 앨범의 '순화된' 사운드는 전자음악의 귀재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그의 캐나다 친구 다니엘 라노이스(Daniel Lanois)에 힘입은 바 컸다. 두
프로듀서는 사운드의 세련미를 구현하는 데 최대 역점을 두었다.
 이 앨범은 미국 차트에서 9주간 1위를 고수했고 이듬해 88년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사람들은 항상 유투를 세계 최고의 언더그라운드 그룹으로 인식해왔다.
사실이지만 이젠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라고 말한 유투의 매니저 폴 맥기니스의 공언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림 설명): 맨 앞이 그룹의 싱어이자 간판인 보노.

    팝메틀의 절정, 한쪽 팔 드러머의 개가
    데프 레퍼드 (히스테리: Hysteria)

 Woman. Rocket. Animal. Love bites. Pour some sugar-on me. Armageddon it. Gods of
war. Don't shoot shotgun. Run riot. Hysteria. Excitable. Love and affection(87년)

 1984년부터 광풍처럼 다시 솟구친 헤비매틀은 과거의 그것과는 현저한 차이를 드러냈다.
그것은 조악함이 많이 제거된, 훨씬 팝적인 헤비메틀, 이른바 팝메틀(pop-metal)이었다.
밴 헤일런(Van Halen), 본 조비(Bon Jovi)같은 그룹들이 다름아닌 팝메틀로 엄청난 앨범
판매실적을 기록할 수 있었다. 팝메틀이란, 80년대 팝계의 특성인 상업성이 헤비메틀에도
침투하여 잉태된 새로운 메틀 형식이었다.
 팝메틀이 80년대에 떨친 파죽지세의 기세는 영국그룹 데프 레퍼드(Def Leppard)의
대분투로 절정에 달했다. 그들이 거둔 앨범판매고는 본 조비 마저도 초월, 그들로부터
팝메틀 왕관에 대한 '소유권 이전'을 강요했다.
 그들의 83년 앨범 (방화: Pyromania)는 7백만장이 팔려나가 팝메틀이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그들의 행진은 그 정도의 실적을 창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4년 뒤에 발표한 이 앨범은 전작의 규모를 뛰어넘어 당시 9백만장, 지금까지
천5백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전대미문의 신화를 창출했다. 앨범뿐 아니라 싱글도 두각을
나타내 수록곡 4곡 (내게 설탕을 입혀주오: Put some sugar on me), (사랑의 상처: Love
bites), (여자: Woman), (아마게돈 잇: Armageddon it)이 모두 전미 싱글차트 5위권에
진입했다.
 이러한 상업적 성공은 멤버들, 그리고 81년부터 그들의 프로듀서인 로버트 랜지(Robert
Lange)의 미국시장을 진출하려는 끊임없는 노력과 그에 따른 '사운드의 개조'가 가져온
결실이었다. 로버트 랜지는 용모가 뛰어나고 드물게 보컬하모니가 우수한 그들에게
팝적인 감각을 부여, 팜메틀 사운드의 완성을 종용했다(83년 기타주자 피트 윌리스는
이러한 대중지향에 반발하여 그룹을 떠났다). 그룹의 간판인 싱어 조 엘리엇은 심지어
자신들의 사운드를 '멜로디 좋은 로큰롤'이라 정의했다. 가사 또한 메틀의 속성인
기존가치의 해체, 또는 사회정치적 측면과 엄격히 유리되었다. 그들에겐 술, 여자,
노래에 대한 예찬이 전부였다. 그것은 현실참여를 꺼린 80년대의 록음악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히스테리)에는 (방화)로 이미 확립된 팝메틀의 경향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하드록,
블루스, 팝, 펑크(funk)가 절묘한 혼연일체를 보이면서 '듣기좋은 메틀'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이와함께 드러머 릭 앨런이 교통사고로 왼쪽 팔을 절단하고 난 뒤 재기하여 오른팔
하나로 드럼을 연주해 만든 앨범이라는 사실 또한 메틀팬의 동정심을 자극, 판매를
촉진시킨 요소로 작용했다. 비극에 굴하지 않으려는 그의 집념에 감동한 스텝진들은
그에게 특별히 주문해 만든 드럼세트를 제공했고 릭 앨런은 피땀어린 연습으로 마침내
핸디캡을 극복하여 앨범 제작에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데프 레퍼드는 (방화)에 이어 이 앨범으로 '앨범 2연속 5백만장 판매'의 기록을 수립한
최초의 밴드가 되었다. 그리고 80년대에 가장 성공한 메틀밴드로 기록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것은 릭 앨런의 승리였고 팝메틀의 개가였다.

    "어린 시절이여 안녕" 틴에이저 우상의 찬란한 변신
    조지 마이클 (믿음: Faith)

 Faith. Father figure. I want your sex(part 1 & 2). One more try. Hard day. Hand to
mouth. Look at your hands. Monkey. Kissing a fool(87년)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은 듀엣 왬(Wham!) 해산 후 완전히 이미지를 바꾸어버릴
작정을 했다. (고-고 하러 가기 전에 날 깨워요: Wake me up before you go-go) 같은
노래를 부른 청소년 상대의 버블검 이미지로부터 완전 탈피하고 싶었다. 우선 외모부터
새로운 접근을 시도, 찢어진 청바지와 기름바른 머리, 그리고 덥수룩한 얼굴로 소년 아닌
'섹시한 청년'으로 재탄생했다. 노랫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왬 시절 틴에이저걸 팬이
많았다는 부담 때문에 메시지 있는 곡을 쓸 수 없는 것에 늘 불만을 토로해왔다.
 이 앨범에 수록된 (나는 섹스를 원해요: I want your sex) (너의 손을 보라: Look at
your hands) (몽키: Monkey)는 달라진 조지 마이클을 말해주는 노래들이었다. 이 곡들은
각각 에이즈시대에 있어서의 일부일처제, 배우자 폭력, 마약중독의 공포라는 사회적
소재를 취급했다.
 이제 이 같은 변화를 팬들이 이해하겠느냐 하는 문제만 남았다. 더구나 그룹 멤버로서
인기를 구가한 사람은 솔로 독립시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팝계의 묘한 징크스 또한 그의
'홀로서기'가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우세하게 했다. 하지만 그가 첫
솔로앨범 (믿음:Faith)을 발표했을 때 그러한 우려는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믿음)은 발표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미 앨범차트에서 동시에 1위를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으며 그 여파를 몰아 전세계적으로 천사백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 앨범에서는
총 4곡의 히트싱글이 쏟아졌는데 타이틀곡인 (믿음)이 싱글 차트 1위, 소울풍의 (보호자:
Father figure) 1위, 비슷한 느낌의 (한번만 더: One more try)역시 1위, 그리고 영화
'비버리힐의 형사2'의 삽입곡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 I want your sex)가 2위를
기록했다. 왬의 해산에 실망하고 있던 틴에이저 팬들의 얼굴에 다시금 화색이 돌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왬의 시대는 갔지만 대신 조지 마이클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작곡가이자 가수로서의 그의 역량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왬 시절 그는 이미 당대 최고
히트싱글 (빗나간 속삭임:Careless whisper)을 작사, 작곡, 노래해 전세계 팬들에게 그의
능력을 알린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첫 솔로 앨범 (믿음)에서 그는 앨범 수록곡
10곡(국내에서는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가 금지곡판정을 받아 총 9곡이 실려있다)
모두를 작사, 작곡, 편곡, 노래함은 물론 전곡의 프로듀싱까지 담당했다. 그의 이러한
능력에 비추어 88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그의 타이틀곡이 '올해의 노래' 부문을 수상한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저명한 '아이보 노벨로 작곡상' 심사위원들도
그에게 최고 작곡상을 선사하는데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의 인기비결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만의 독특한 보이스 칼라와 가슴을 녹여버릴
듯한 창법이다. 앨범 수록곡의 전체적인 기조가 디스코풍의 로큰롤임에도 불구하고
(보호자)나 (한번만 더), (어리석은 입맞춤: Kissing a fool), (다른 모퉁이: A
different corner)등은 영혼을 뒤흔들어 버릴 소울 창법을 구사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당시 영국 백인으로는 드물게 리듬 앤 블루스 차트에 등극하는 면모((보호자)는 R&B
싱글차트 1위를 차지)를 과시하면서 그가 흑인음악에도 정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또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러한 소울풍의 노래들은,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진
곡에 큰 성원을 보내는 국내 팬들에게 크게 어필하여 '조지 마이클 신드롬' 을 자아낼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1963년 영국 런던 태생의 조지 마이클은 그의 뛰어난 재능을 80년대 최고의 10대
우상(teen idol) 왬을 통해 발현하더니 솔로로 나서 그의 첫 앨범 (믿음)을 통해
메카트니, 레논 콤비, 엘튼 존, 배리 깁을 잇는 영국 출신의 위대한 작곡가군단의 커다란
줄기임을 다시금 만천하에 공개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80년대의 팝 시장은 미국의 마이클 잭슨과 영국의 조지 마이클, 이
'두 마이클'에 의해 평정되었고 전세계 십대들은 이들에게 광분했다.

    메시지 복원을 의미하는 얼터너티브 록의 청사진
    R. E. M. (그린: Green)

 Pop song 89. Get up. You are the everything. Stand. World leader pertend. The
wrong child. Orange crush. Turn you inside out. Hairshirt. I Remember California.
Untitled song(88년)

 1980년대에 걸쳐 미국 록계에서 가장 영향력을 떨친 그룹의 '지위 굳히기'를 실현해 준
앨범. 심리학 책 (급격한 눈운동: Rapid eye movemant)에서 그룹명을 딴 알 이 엠 (R. E.
M.)은 80년대 초반 등장할 때부터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83년 (말더듬: Murmur)
앨범은 비평가들의 이례적 찬사를 받는 등 지명도와 관계없이 록계의 대형
언더그라운드그룹으로서의 위치를 구축했다. 그들이 인정받게 된 것은 음악의 분위기와
스타일에 있어서 '느낌은 과거, 외형은 진보'라는 독특함 때문이었다. 보수적인 미국
남부 조지아주 애턴스 출신인 이들은 동시대 록의 규범을 따르지 않고 60년대 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버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룹의 음악은 따라서 복고적인 색채를 띠었다. 알 이 엠은 포크와 컨추리 요소를
팝으로 용해시켜 한편으로는 밝고 한편으로는 어두운 획기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전통 속에서 진보를 찾아낸' 그들의 음악은 다름아닌 요즘 상용되고 있는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이었던 것이다.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대중화에 성공한
얼터너티브의 청사진을 제시한 그룹이 이 앨범의 주인공 알 이 엠이었다. 그들이 록
역사에서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는 이유가 '얼터너티브 선구자'라는 바로 이 점에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많은 록 밴드들은 알 이 엠이 구축해놓은 스타일(작곡 및
연주)로부터 얼터너이브 유형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후대의 그룹들은 또한 알 이
엠으로부터 얼터너티브의 본질을 이루는 또 하나의 요소인 메시지를 배웠다. 알 이 엠의
메시지는 현대의 인간소외와 억압적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발이 특징인데, 알 이 엠
및 얼터너티브록이 '60년대 정신'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기서 도출된다.
 (그린)앨범에서도 사회고발적 내용이 도처에 산재한다. 환경보전을 위한 앨범타이틀부터
시작하여 (오렌지 공격: Orange crush)는 월남전에 사용된 제초재 에이전트 오렌지를
노래했고 (난 캘리포니아를 기억합니다: I remember California)는 어두운 현실에 의한
인간의 파멸을 연대적으로 다루었다. 전작들에서 보인 냉소적 주장보다 훨씬 직설적이고
솔직하다.

 난 가사의 세계 지도자. 이제 내 인생이요. 그리고 나의 시대이다. 난 알맞다고 여긴
것만 행하는 자유를 누려왔다. 이제 내가 구축해놓은 벽을 깨부숴야 할 시간이 왔다.
(가상 세계지도자: World leader pretend)

 레이건, 부시로 이어진 공화당 보수정부가 그들의 마음에 들 리 없었다. 그룹의 리더
마이클 스타이프(Micheal Stipe)는 88년 11월 대통령선거전 때, 그리고 후일
캘리포니아주 대학신문에 민주당후보지지 광고 ('부시의 선전에 현혹되지 말라. 모두
투표에 참가하자. 깨끗한 한표를 던지자. 듀카키스! 그에게로')를 게재했고 (그린)
앨범을 투표당일에 발매했다. 이와 같은 솔직한 의견개진과 고발정신 때문에 마이클
스타이프와 알 이 엠은 유독 미국 대학가에서 절대적 인기를 누린 것으로 알려졌다.
 앨범의 곡은 전작 보다 훨씬 더 대중지향적이어서 (89년 팝송: Pop song 89) (일어서:
Stand) (너는 전부: You are the everything) (가상의 세계지도자)등 다수의 수록곡이
듣기에 수월하다. 이것이 앨범이 차트에 등장한 지 한 달만에 밀리언셀러가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였다. 싱글로 발표된 (일어서)는 빌보드 싱글차트 6위까지 오르는 빅히트를
기록했다.
 '낯선 그룹'의 '낯익은 음악'을 통한 성과였다.
 (그림 설명): REM(오른쪽이 리더 마이클 스타이프)은 90년대를 강타하고 있는 이른바
얼터너티브 록을 일찍부터 구사한 효시격 그룹이다.

    레이건 보수 시대를 향해 던진 통기타의 저항
    트레이시 채프먼 (트레이스 채프먼: Tracy Chapman)

 Talkin'bout a revolution. Fast car. Across the lines. Behind the wall. Baby can i
hold you. Mountains O'Things. She's got her ticket. Why?. For my lover. If not
now... For you(88년)

 트레이시 채프먼은 이 음반으로 두 가지 사실을 증명했다. 하나는 '흑인도 포크 음악을
할 수 있다.' 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포크는 영원하다'는 사실이었다.
 이 앨범은 흑인 무명가수에 의한, 오랜만에 들어보는 포크음악이라는 점에서 주의를
집중시켰으며 그리고 88년을 석권하면서 팝계에 신선한 충격을 몰고왔다. 그녀로 인해
포크가 백인의 전유물이라는 통설은 무너졌다. 그녀에 따르면 "포크는 앵글로 색슨계
흐름도 있지만 아프로(afro)계 전통도 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미국의 흑인가수들은 랩 또는 댄스음악을 했다. 그런데 트레이시 채프먼은
추세를 거역하고 포크를 시장에 내놓았다. 그녀가 포크를 한데는 충분한 동기가 있었다.
그녀는 무엇보다 흑인동포들의 참담한 현실을 노래하고 싶었다. 그녀가 어렸을 적부터
보아온 것은 인종차별과 그에 따른 흑인들의 절대적 박탈과 좌절뿐이었다. 이런 비참한
상황을 담아낼 수 있는 음악은 당연히 '유서깊은 저항음악' 포크일 수밖에 없었다.
채프먼은 스스로도 "포크음악은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이슈를 다뤄온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앨범은 사회적, 정치적 테마의 앨범이다. 80년대 미국의 흑인이 처한 상황을 먼저
알아야 대부분 수록곡들의 이해가 가능하다. 81년 출범한 레이전 행정부는 반공을 기치로
한 정치, 외교부문은 물론 경제정책에 있어서도 보수주의 신념을 강요, 작은 정부가
되겠다는 취지 아래 사회복지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흑인의 대다수인 하층민은 이에 따라
길거리로 내쫓겼으며 궁핍한 생활을 영위해야 했다.
 이 앨범은 이에 대한 분노이다. 싱글로 빅히트한 (고속자동차: Fast car)는 소외계층의
처절함이 편의점에서 일하는 처녀의 얘기로 펼쳐진다. 처녀는 '오늘밤 떠나는 거야.
아니면 이렇게 살다 죽을 수밖에 없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처절함은 가지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다. (벽 뒤에서: Behind the wall)에서는 또한 폭력이 하층민을 괴롭히고
있음을 강조한다. 가난에 울고 폭력에 멍드는 이 비참한 현실은 궁극적으로 인종차별이
야기시킨 것이다. (선을 가로질러: Across the lines)가 그것을 짚어내고 있다.
 이 앨범은 이렇게 레이건이 그토록 자랑한 '아메리칸 드림'의 어두운 이면을 축약해
냈다. 이것이 이 작품이 가지는 소중한 가치이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는 길은 결국 혁명이다. 채프먼은 감히 (혁명에 대해 얘기하며:
Talkin'bout a revolution)를 노래한다. 이 앨범이 말하고자 하는 키 포인트가 이 곡에
잘 함축되어 있다.
 오락과는 거리가 먼 이 같은 사회성은 채프먼 자신의 세대에게도 적중했지만, 과거
변화를 꿈꾸며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이제는 중년과 중산층이 된 베이붐 세대에게도
경종을 울렸다. 이 앨범은 기성세대로 하여금 60년대 포크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고
희석화된 양심을 되살려 꿈틀거리게 했다.
 앨범 전체가 맑고 순수하기 그지없다. 채프먼의 낭랑한 콘트랄토와 청아한 통키타연주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운드가 단순하지는 않다. 베이스의 레리 클레인, 스틸 키타의 에드
블랙, 퍼커션의 폴리너 다 코스타, 일렉트릭 피아노의 데이비드 라플램 등 연주자들은
포크연주 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쟁쟁한 사람들이다. 탁월한 베이스 연주로 앨범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래리 클레인은 조니 미첼의 단골 세션파트너였고 데이비드 라플램은
60년대 밴드 (잇츠 어 뷰티플 데이: It's A Beautiful Day)의 멤버였다. 이들은 앨범의
사운드를 건실하고 수준있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앨범은 전세계적으로 1천만 장 이상이 팔렸다. 채프먼은 이 앨범으로 최우수신인가수
부문을 포함, 그래미상 3개부문을 수상했다. 그것은 포크의 승리였다.

    "팝 메틀의 죽음, 하드록의 부활"
    건즈 앤 로지스 (파괴에의 욕망: Appetite for destruction)

 Welcome to the jungle. It's so easy. Nighttrain. Out ta get me. Mr, Brownstone.
Paradise city. My Michelle. Think about you. Sweet child O'Mine. You're crazy.
Anything goes. Rocket Queen(88년)

 1980년대 초, 중반에 극성을 부리던 팝화된 헤미베틀, 즉 팝메틀은 80년대 말이 되면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떵떵거리던 밴 헤일런, 본 조비, 데프 래퍼드, 트위스티드
시스터, 그리고 LA메틀밴드 모틀리 크루, 래트 등의 위력은 이 시기 들어 현저히
떨어졌다.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는 팝메틀의 퇴조 속에서 훨씬 강력한 하드록을 들고나와
성공을 거둔 그룹이었다. 이들의 87년도 첫 앨범 (파괴에의 욕망)은 1년이 지나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에 올랐다. 계속된 공연, 그리고 그들 스타일과 정반대의 낭만적인 곡
(달콤한 나의 연인: Sweet child O'mine)이 싱글차트 1위를 점령한 데 힘입어 나타난
현상이었다.
 1989년에 이르러 그룹의 인기는 천정부지로 치솟아 이 앨범이 차트 정상을 지키는 동안
새 앨범 (거짓말: GN'R Lies)이 5위권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동시에 두 앨범이 차트
톱5위 안에 랭크된 것은 74년 짐 크로치 이후 15년만의 쾌거였다. 짐 크로치는 사망으로
그것을 일궈냈지만 건즈 앤 로지스는 살아생전(?) 그 위업을 창조했다.
 활화산처럼 터진 이같은 대중적 호응으로 그들은 팝메틀의 죽음과 함께 하드록의 부활을
선포했다. 89년 말까지 두 앨범의 판매고가 천2백만장을 돌파했다는 점이 그러한 추세의
이양이 가시화되고 있음을 뒷받침해주었다. 이제 메틀계의 왕관은 본 조비에서
그들에게로 넘어갔다.
 건즈 앤 로지스는 펑크적 색채를 가미함으로써 하드록의 파워을 내뿜었다. 섹스
피스톨즈의 허무주의와 롤링 스톤즈, 에어로스미스의 거만함을 수용하여 그들은 '쇼크'를
던졌고 그 충격요범의 효율성을 만끽했다. 이 앨범의 모든 부분이 충격을 야기시키기
위해 기획되었다.
 첫번째 쇼크요법은 앨범 자켓의 일러스트레이션에 나타났다. 로보트가 여인을 강간하는
소름끼치는 그림을 앨범 커버로 디자인한 것이었다. 당연히 논란을 불렀고 많은 레코드
소매상들이 이 앨범 진열을 거부, 충격을 완화시킨 현재의 커버로 디자인을 바꿔야 했다.
이로써 그들은 80년대 록계의 대표적 악동(bad boy) 그룹으로 부상했다.
 1970년대의 선배악동 섹스 피스툴즈의 니힐리즘과 파괴성을 닮은 노래내용도 두말할
나위없는 쇼크였다.

 넝마주이나 부자들 다 부와 명성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고들 하지. 그것이 게임이라면
그건 도박이야. 중죄로 다스려야지. 모든 사람이 형기를 치르는 거야. (낙원도시:
Paradise city)

 넌 모든이의 섹시 걸이야. 만족시키기 어렵지. 밝은 빛을 맛볼 수 있겠지만 정글에서
무료로 그렇게는 안될 거야. 정글로 와요. 나의 뱀을 만져요. 난 네 외치는 소리를 듣고
싶어. (정글로 와요: Welcome to the jungle)

 이 두 곡과 당시 성의 액슬 로즈의 약혼녀 에린 에벌리('에벌리 브라더즈'였던 돈
에벌리의 친딸)에게 바치는 노래 (달콤한 나의 연인)이 모두 싱글로 발표되어 히트했다.
쇼크 사운드를 내건 이때 건즈 앤 로지스의 라인업은 액슬 로즈 위에 슬래시(리드 기타),
이지 스트래들린(리듬 기타), 더프 맥카건(베이스), 그리고 스티븐 애들러(드럼)였다.
 악마와도 같은 비브라토의 액슬 로즈가 변화무쌍하게 선보이는 보이스톤이 압권을
이룬다. 선입관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렇게 시끄럽게 들리지 않는 앨범이다.
 (그림 설명): 왼쪽부터 두 번째가 액슬 로즈

    호주 원주민의 실상과 환경공해에 대한 고발
    미드나잇 오일 (디젤과 먼지: Diesel and dust)

 Beds are burning. Put down that weapon. Dreamworld. Arctic world. Warakuna. The
dead heart. Whoah. Bullroarer. Sell my soul. Sometimes. Gunbarrel highway (88년)

 미국에 인디언 문제가 있듯 호주에는 애버리진(Aborigine)문제가 존재한다. 중심을
잃어버린 어메리칸 인디언과 달리 오스트레일리안 애버리진은, 90년대 들어 투쟁을 거쳐
상당부분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해냈다.(오스트레일리아의 토착 원주민을 가리킬 때는
aborigine에서 이니셜을 대문자로 쓴다.)
 이같은 변화가 초래되기 앞서 애버리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발시켜 세계적 이슈로
끄집어내는 데 일조한 대중음악인이 있었다. 미드나잇 오일(Midnight oil)이 바로
그들이며 그 과업의 음악적 표출이 80년 겨울에 발표된 이 앨범이었다.
 미드나잇 오일은 76년 결성된 이래 우라늄 채굴, 무제한의 벌목, 산업시설 및 군기지
설치 등에 따른 호주의 자연파괴와 공해에 주목해왔다. 그러한 관심은 후일 자연파괴의
최대 피해자 호주 원주민에 대한 관심으로 구체화되었다.
 미드나잇 오일은 끊임없이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훼손돼가자 그 속에서 살아온
애버리진을 향해 백인 이주민을 대표해 사죄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와 더불어 백인
이주민들에게는 더 이상의 환경파괴를 중단하고 그 땅의 소유권을 원래의 소유자인
애버리진에게 반환하라는 양심의 소리로 일대 반성을 촉구했다.

 우리는 너희 나를 만들지 않아. 너희 왕을 만들지 않아. 너희 관습을 알지만, 너희 말은
쓰지 않지. 백인이 들어와 우리 모두를 잡아먹었어. (죽은 정신: The dead heart)

 앨범의 성격을 압축하고 있는 이 곡은 신성한 애버리진 구역, 즉 울루루(Uluru)를
반환하는 것에 대한 다큐멘타리적 노래를 써야 한다는 결심으로 만들어낸 선물이었다.
그들은 이같은 노래를 만들기 전 실제로 호주북부의 원주민 지역을 직접 답사했다.
그들이 관찰한 것은 원주민들의 곤궁, 문화적 척박, 그리고 만성화된 침묵이었다.
 이 노래는 나중 호주의 인기차트 1위에 올랐다. 이 곡과 함께 만든 (침대가 타고 있네)
역시 마찬가지로 울루루와 관련된 노래였다.

 때가 왔어. 사실은 사실이야. 그것은 그들의 것. 그것을 그들에게 돌려줍시다!

 미드나잇 오일은 이 두곡을 완성한 뒤 다시 현지방문에 나서 킨토어(Kintore)의
원주민들 앞에서 이 두 곡을 연주했고 토착민들은 그들의 성의에 답하여 자신들의 신성한
부족 의식에 그들의 참여를 허락해주었다. 미드나잇 오일은 인정을 받은 것이었고 그러한
인정은 호주 밖을 넘어 세계로부터도 따냈다.
 시드니에 돌아와서 나머지 9곡을 녹음해 완성한 이 앨범은 미국시장을 강타해 골드를
기록했으며 또한 싱글 (침대가 타고있네)는 인기 팝송이 되기에는 부적당한 소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차트 톱20에 당당히 진출했다.
 전세계적으로는 하드한 사운드를 들려주었지만 금방 귀에 들어오는 멜로디를 위하고
있다는 것이 수록곡들의 특징. 이러한 곡 구성의 뛰어남이 대중적 어필의 결정적 성공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드나잇 오일은 이 앨범을 통해 환경그룹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미국 팝계에는
그들 이후 많은 아티스트들 (돈 헨리, 그레이트풀 테드 등)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돌렸다.
 그들은 이를 통하여 그룹 U2와 함께 보수적인 성격의 음반이 판치고 있던 팝계에
사회의식을 일깨우는데 기여했다. 그것이 이 앨범이 가지는 팝 역사에서의 의의일
것이다.
 그룹의 리더 피터 가렛은 호주의 환경보호단체 ACF(Australian Conservation
Foundation)의 회장을 역임하고 있던 84년 호주의 총선에 '핵감축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정치적 행동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그와 그의 그룹이 이와같은 앨범을 만드는
것은 그리 점치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60년대 정신을 계승한 '갱스터 랩'의 살벌한 파티
    퍼블릭 에니미 (우릴 저지하려면 수백만 국민이 있어야 한다: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

 Countdown to Armageddon. Bring the noise Don't believe the hype. Cold lampin with
flavor. Terminator X to the edge of panic. Mind terrorist. Louder than a bomb.
Caught. can we get a witness?. Show em whatcha got. She watch channel zero?!. Night
of the living Baseheads. Black steel itn the hour of chaos. Security of the first
world. Rebel without a pause. Prophets of rage. Party for your right to fight.
(88년)

 (뉴스위크)지는 92년 10월 미국사회의 여론과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엘리트
100인'을 선정했다. 영화, 레코드, 신문, 방송 등 문화관련 분야의 유력인사들이 고루
지명되었는데 대중음악관계자로는 마돈나, 윈턴 마샬리스, 로버트 모가도(워너뮤직
회장), 러셀 시먼즈(랩음악 프로듀서), 그리고 처크 디(Chuck D.) 등이 끼였다.
 처크 디는 바로 랩그룹 퍼블릭 애니머(Public Enemy)를 이끄는 인물. 리드싱어이자
노랫말을 대분분 쓰는 그룹의 명실상부한 간판이다. 그가 랩가수에 불과하면서 그처럼
문화엘리트에 꼽히는 이유는 당연하다. 흑인들의 거리음악인 랩에 흑인정신을 실어 많은
흑인들에게 자긍심을 일깨워준, 가수 이상의 사회적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흑인들은 그의
주장에 따라 행동하며 그의 노랫말에 통쾌함을 맛본다.
 이 앨범은 그들의 대표작. 88년에 발표되어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흑인 제시 잭슨목사가
부상하던 시기에 회오리를 일으킨 문제작이다. 여기에는 흑인 현실에 대한 자각을
기반으로 한 단결 및 세결집 요구, 투쟁의식 고취, 소요의 정당성, 백인 파워엘리트에의
반발 등 흑인의 항거의식이 총망라되어 있다. (최후의 결전을 향한 카운트다운:
Countdown to armageddon) (마인드 테러리스트: Mind terrorist) (폭탄보다 요란한:
Louder than bomb) (중단없는 저항: Rebel without a pause)등 노래제목을 보라!

 권리, 평등! 우린 그것을 쟁취하러 간다. 이 투쟁의 잔치는 66년에 시작되었지. 흑인을
찬양하는 과격성을 섞어서 말야. 그 때 12시에 어떤 힘이 그것을 잘라내면서
지옥으로부터 출현했지. 그것이 바로 너희들의 정부란 거야. 그것 때문에 우리의 파티가
있는 거지. (투쟁의 권리를 위한 파티: Party for your right to fight)

 처크 디는 이 앨범을, "리얼리즘을 표출한 마빈 게이의 앨범 (무슨 일이지: What's
going on)를 힙합(hip hop)으로 해석하고자 했던 작품"이라 설명했다. 그는 사회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마틴 루터 킹, 말콤 X 등 흑인지도자와 과격한 운동단체 블랙
머슬림(Black muslim)의 리더 루이스 퍼리칸의 이름을 수록곡 곳곳에 등장시키고 있다.
백인에 대한 공격성이 실로 이보다 과격하게 또 무시무시하게 표출된 앨범은 없다.
 음악적으로는 퍼블릭 에니미는 랩이 가지는 '소음'의 성격을 감추지 않고 헤비메틀을
랩과 섞는 등 한층 시끄러움을 증폭시키려 했다. 프로듀서 행크 쇼클리는 '랩의 소음을
확실히 보여주자. 대신 그것에 무언가를 생각해보도록 할 것을 집어넣자'는 기획에 따라
이 앨범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수록곡 (소음을 전달하라: Bring the noise)가 그 점을
말해준다.
 릭 룰빈의 데프 잼 레코드사와 계약하면서 음반을 낸 퍼블릭 에니미는, 직설적인 가사로
인해 87년 데뷔시절부터 '랩의 블랙 팬더스'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갱스터 랩'(gangsta
rap)의 표본그룹이 되었다. 하지만 닐 영의 지적처럼 "60년대 저항음악의 언어를 계승한
랩"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구현, 이 음반(2집)에 이르러서는 백인들에게도 어필하기
시작했다. 과격 속에 흐르는 진실이 공감을 얻게된 것이었다. 너무도 오해되고 있는 랩의
저항의식이 농축된 고부가가치 앨범이다. 여기에선 백인 지배층에 대한 불신을 담은 (그
말을 믿지마: Don't believe the hype)가 싱글로 발표되어 크게 히트했다.

    재즈풍의 고급스런 사운드에 실린 거친 주장
    스팅 (...태양같은 것은 없다: ...Nothing like the sun)

 The lazarus heart. Be still my beating heart. Englishman in New York. History will
teach us nothing. They dance alone. Fragile. We'll be together. Straight to my
heart. Rock steady. Sister moon. Little wing. The secret marriage (89년)

 스팅(Sting)은 솔로로 독립하면서 폴리스 시절의 뉴 웨이브에 대한 폐기처분을
단행했다. 그리고 평소에 갈망했던 재즈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다.
 두번째 솔로음반인 89년의 이 앨범에 이르러 그의 변신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폴리스에게 성공을 가져다준 뉴 웨이브록의 요소는 완연히 퇴조하고 그 자리에 대신
재즈와 제3세계 음악이 들어 앉았다. 그는 록에 더이상 '싱싱한 연료'가 없다고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뮤지션은 록 테두리 바깥의 아프리카 음악, 재즈, 그리고 클래식을
겨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연주를 해준 뮤지션들만 봐도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즈
섹스폰주자 브랜포드 마샬리스, 키보드를 치는 케니 커클랜드, 드럼의 마뉴 캐치,
퍼커션의 미노 시넬루, 그들은 록음악인이 아니었으며 모두 흑인들이었다. 이 때문에
음반이 마치 흑인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작은 날개: Little wing)에서는 질 애반스와 그의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해주고 있고
(그들은 외로이 춤춘다: They dance alone)에는 남미음악의 스타 루벤 블레이즈가
스페인어로 부분 솔로를 담당하고 있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 및 남미의 리듬과 재즈의
분위기가 넘쳐흐른다.
 그러나 더욱 눈에 띄는 부분은 메시지적 측면이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주변과 자기
눈에 목격된 부조리에 덤벼들고 있고, 심지어 (역사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다 : History will teach us nothing)를 통해서는 무심한 역사에도 염증을 내고
있다.
 (뉴욕의 영국인: English man in New York)은 대도시가 강요하는 규범에 대한 반발이
숨어있고 (그들은 외로이 춤춘다)는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다.
압제에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을 옷에 달고 홀로 춤추는 것이 유일한 시위방법이라는 데
착안해 쓴 이 곡은 넬슨 만델라 석방요구 공연, 국제 사면위원회 주최 공연에 참가하는
등 갖가지 저항적 행위를 보여온 스팅의 의식세계를 반영한다.

 이봐요 피노체트씨, 당신은 쓰디쓴 수확물을 거뒀어요. 당신을 지탱해준 건 외자지요.
언젠가 그것이 끝나버리면 고통받는 자에게 줄 임금도 없고 무기를 구입할 예산도 없을
거 아닌가요.

 가사도 그렇고 음악 스타일도 그렇고 얼핏 상업성이 결여된 듯한 이 음반에 애초
레코드사측은 난색을 표명했다. 스팅은 반면 "왜 그렇게 레코드구매층을
무시하는가?"라며 확신을 내비쳤다. 수록곡 (우리 함께해요: We'll be together)가 싱글
톱10에 진입하고 앨범도 플래티넘을 기록, 스팅의 승리로 판가름났다.
 '초호와 캐스트'라는 점에서 압권인 이 앨범에서 돋보이는 곡은 (시스터 문: Sister
moon), 지미 헨드릭스의 오리지널 (작은 날개), 에릭 클랩튼과 마크 노플러가 기타연주를
보탠 (그들은 외로이 춤춘다), 폴리스 시절의 동료 앤디 서머즈가 가세한 (아직도 내
가슴을 두드리네: Be still my beating heart) 등이며 국내에서 특히 호응을 얻은
(뉴욕의 영국인)과 (나약한: Fragile)도 빼놓을 수 없는 곡이었다.
 음반의 사운드는 고급스럽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 지향은 결코 고급쪽이 아니다. 그런
부조화가 어딘지 애석하다는 느낌을 주는 동시에 앨범의 완벽성을 가로막고 있다.
 (그림 설명): 그룹 폴리스를 떠나 재즈적 사운드로 홀로서기에 나선 89년 무렵.



    90년대

 1. M.C. Hammer (Please Hammer don't hurt'em)
 2. Michael Bolton (soul provider)
 3. Sinead O'conner (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
 4. Phil Collins (...But seriously)
 5. Nirvana (Nevermind)
 6. Boyz II Men (Cooleyhighharmony)
 7. Eric Clapton (Unplugged)
 8. Movie Soundtrack (The Bodyguard)

    랩의 대중화로 백인들도 춤추게 한 춤꾼의 출세작
    M.C. 해머 (해머 그들을 마음상하게 하지 말아요: Please Hammer don't
Hurt'em)

 Here comes the hammer. Pray. Have you seen her. Help the children. Let's
go deeper. Dancin' machine. U can't touch this. Yo!! sweetness. Black is
black. On your face. Work this(90년)

 80년대 중반부터 광풍처럼 휘몰아친 랩은 거의 모든 것을 이루어냈다.
흑인들은 랩 없이 살 수 없게끔 되었고 음악도 날로 세련되어 갔다. 랩은 다만
백인들을 사로잡는 문제가 남아있었다. 이를테면 '백인 제도권으로 부터의
인정'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랩은 공격적인 가사와 흑인이 아니면 따라가기 어려운 폭발적인
리듬으로 인해 백인들과 제도권에서 볼 때 정나미가 떨어지는 음악이었다. 이런
까닭에 런 DMC(흑인 트리오) 이후 팝계 전면에 부각되었음에도 음악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환경을 극복하고 랩을 명실상부한
대중음악이 한 장르로 상향 조정함은 물론 랩의 시대가 박두했음을 예고한
래퍼가 있었으니, 바로 춤의 귀재인 해머(M.C. Hammer)였다.
 미국의 야구영웅 헹크아론을 닮았다 하여 해머라는 예명을 얻은 그(행크
아론의 별명이 해머)는 이미 강세를 띄기 시작한 랩에 상업성을 부여했다. 그는
2집인 이 앨범의 성공(2백만장의 판매고) 을 토대로 랩의 대중화에 성공했고
조금 늦게 등장한 백인 랩가수 바닐라 아이스(Vanilla Ice)와 함께 인기의
평행선을 달리면서 랩의 양대산맥을 구축했다.
 그의 랩이 대중적으로 성공하게 된 으뜸 요인은 퍼블릭 에니미나 런 DMC의
'갱스타 랩(gangsta rap)처럼 도발적인 가사를 극소화시키고 친근한 리듬으로
포장하여 부담없는 음악으로 가꾸어놓은 데 있었다. 랩이 갖는
과격인상으로부터 탈피에 성공한 것이었다. 그에 의해 백인과 제도권,
지성인들도 드디어 랩을 가까이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녀를 본 적이
있나요: Have you seen her) 같은 러브송을 랩으로 전환시킨 능력이 가져다준
쾌거였다.
 그의 랩은 과거의 곡들로부터 테마를 도입하여 그것을 반복하면서 강한
리듬감을 살린 것이 특징. 그의 최고 히트곡인 (만질 수 없어요: U can't touch
this) 는 릭 제임스(Rick James) 의 (슈퍼 프렉: Super freak) 중 한 부분을
빌려왔고 (기도: Pray) 는 프린스의 (비둘기가 울 때: When doves cry)를,
(그녀를 본 적이 있나요)는 차이-라이츠(Chi-Lites)의 곡을 도입하였다. 이렇듯
낯익은 곡들을 도입한 까닭인지 소개한 곡들은 싱글로도 두각을 나타내 모두
싱글차트 10위권에 진입하는 히트를 구가하였다. 특히 (그녀를 본 적이
있나요)는 선율의 유려함과 해머의 굵직하고 은근한 래핑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크게 어필했으며 서태지와 아이들, 공일오비등의 음악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래퍼로서 그는 두 가지 필요충분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다. 다이내믹한 춤과
흑인치고는(?) 매우 수려한 얼굴이었다. 잘생긴 사람이 무대 전체를 누비고
다니며 화려한 동선을 만들어낼 때 관객들이 아우성치는 것은 당연했다. 이러한
비디오적 조건 역시 앨범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데 주춧돌이 되었다.
 과격한 노랫말을 뒤로 했다고는 하나 랩의 본질, 즉 흑인의 자부심을 버리지는
않았다. 예컨데 그는 (흑인은 흑인: Black is black)이라는 곡을 통해 마이클
잭슨처럼 흑인정신을 통채로 휴지화하는 일은 거부했다. '참랩' 이 무엇인가
알고 있었던 그는 최소한의 양심은 지켰던 셈이었다.
 독실한 크리스찬이기도 한 그를 (뉴욕타임즈)지는 91년 '미국 연예계에서 가장
열심히 활동하는 뮤지션'으로 일컬으면서 그의 근면, 성실, 그리고 친밀감을
높이 평가했다. 그 밖의 많은 언론이 그의 랩을 '갱스타 랩'과 반대되는
의미에서 '평화주의 랩'이라고 정의내렸다. 랩이 좀 조용해지기를 열망한
보수언론의 입장에서 해머는 정말 너무 반가운 인물이었다.

    대중에 성공하고 비평가에 외면당한 90년대 최초의 슈퍼앨범
    마이클 볼튼 (영혼의 공급자: Soul provider)

 Soul provider. Georgia on my mind. It's only my heart.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 How can we be lovers. You wouldn't know love. When
I'm back on my feet again From now on. Love cuts deep. Stand up for
love(90년)

 90년대 팝계 최초의 슈퍼스타는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이었다.
(빌보드)지는 그를 1990년 최고 작곡가로 선정했다. 또한 그는 같은 해 열린 제
32회 그래미 최우수 남자 팝보컬리스트상을 수상했다. 그는 작곡가로서 또
가수로서 90년대를 여는 첫 해의 팝계를 송두리째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75년 RCA레코드사에서 데뷔앨범을 출반했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이후로도 계속
실패만 거듭, 거의 자포자기했던 그의 과거를 감안한다면 가히 눈부신
성공이었다. 이 앨범에는 표면적인 빅히트 외에 그와 같은 '불우 시대의
청산'이라는 또다른 의미가 숨어있다. 매스컴은 이 감동적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었고 그 때문에 마이클 볼튼과 이 음반은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의 성공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마이클 볼튼의 매니저 루이스 레빈은 그의
87년 앨범 (굶주림: The hunger)으로부터 그의 타고난 소울(soul)적 감수성을
포착했다. 이 작품 이전에 볼튼은 주로 강한 하드록을 필생의 자기 음악으로
삼아왔다. 그러다가 이 앨범을 기점으로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소울 혹은 리듬
앤 블루스로 진로를 수정, 새출발을 꾀한 것이었다.
 팝역사에 자주 목격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백인이면서 흑인음악인 소울을
멋드러지게 구사한다는 사실은 매력이 아닐 수 없었다. (굶주림)으로 그는
백인으로서 소울을 하는, 이른바 '푸른 눈의 소울'(Blue-eyed soul) 가수로
도약의 발판을 다져놓았다.
 볼튼은 이와 함께 이 음반에서 앞으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 중요한
'대중적 어필의 포인트'를 발견했다. 그것은 (만의 부두에 앉아: Sitting on
the dock of the bay) 라는 곡이었다. 이는 오티스 레딩이 68년 히트시킨
소울발라드의 고전을 리메이크한 것이었다. 마치 흑인이 부르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소울의 맛이 가득했다. 심지어 오티스 레딩의 미망인인 젤마도
"만약 남편이 이 노래를 듣는다면 그도 흡족해 했을 것"이라면 감탄할
지경이었다.
 이 곡이 차트에서 호응을 얻게 됨에 따라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이후 신곡을
쓰는 것과 동시에 리듬 앤 블루스나 소울의 클래식을 한두 곡씩 리메이크하게
되었다. 본 앨범 (영혼의 공급자)에서는 레이 찰스의 60년대 히트작이었던 (내
마음의 조지아: Georgia on my mind) 가 그러했다. 이와 같은 경향은 다음
앨범의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When a man loves a woman, 퍼시 슬레지
66년 오리지날)로 이어졌고, 급기야 92년말에는 고전만으로 엮은 앨범
(타임리스 더 클래식: Times the classics)을 출반하기에 이르렀다.
 본작에서는 무려 다섯 곡의 싱글이 발표되어 모조리 각광을 받았다. 볼튼에게
생애 첫 싱글차트 1위의 영광을 안겨준 (당신없이 어떻게 사나요: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를 비롯, (우리가 어떻게 연인이 되겠어요: How
can we be lovers) (다시 일어설 때: When I'm back on my feet again) (영혼의
공급자) (내 마음의 조지아) 등이었다. 특히 (당신없이 어찌 사나요)는 83년
로라 브래니건이 차트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신 곡으로 비로소 '원작자'에 의해
명예가 회복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싱글의 이례적 호소에 힘입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6백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거두는 대기염을 토했다.
 성공의 밑거름은 물론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출중한 그의 능력이었지만
앨범제작에 참여한 여러 슈퍼뮤지션의 활약도 간과할 수는 없다. 전곡을 통해
우아함을 선사하고 있는 색소폰의 선율은 이름만으로도 그 명성이 자자한 케니
지(Kenny G.)의 솜씨이고, 토토(Toto)의 맴버인 스티브 루카서의 리듬 및
리드키타는 앨범 전체에 화려함과 안정감을 선사하고 있다. 호화 캐스트라는
점에서도 이 앨범의 인기정상 구가는 예정된 큐시드 였는지도 모른다.
 대중적 성공을 거둔 사람에게는 늘상 따라붙는 것이지만 특히나 그에게 쏠린
평론가들의 시각은 곱지 않았다. 4옥타브를 넘나드는 그의 고음역 보컬이 분명
탁월한 것임엔 틀림없었지만, 너무 상업적으로 편중된 데다 시원한 맛과는
거리가 있는 답답하고 높기만한 스타일로 일관하고 있는 까닭이다. 비평가들은
이러한 근거를 들어 그가 발표하는 앨범마다 졸작이라고 혹평을 해댔고 (롤링
스톤) 지는 93년 심지어 그를 '최악의 가수'로 선정해 깔아 뭉개기도 했다.
 비평가 집단의 두들겨패기에도 불구하고 그의 상업적 성공은 계속되었다. 그는
앨범의 판매고를 늘상 비평에 견디는 방파제로 자랑스레 내세웠다. 그러나
그것은 가슴시리도록 아픈 구석임에는 틀림없었다.

    장외의 평지풍파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고요한 음악
    시네드 오코너 (난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원치 않아요: 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

 Feel so different. I am stretched on your grove. Three babies. The
emperor's new clothes. Black boys on mopeds. Nothing compares. Jump in the
river. You cause as much sorrow. The last day of our Acquaintance. 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90년)

 88년도 데뷔앨범 (사자와 코브라: The lion and the cobra)에서 보인 공격성을
희석시키고 시네드 오코너는 조용한 모습으로 방향전환을 꾀했다. 그녀는 90년
새 앨범의 첫머리에 10초간 "지금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라는 독백을
실었다.
 부모의 이혼, 비행청소년 선도학교에서의 나날들, 17세때 어머니의 사망 등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분노와 앙갚음으로 깔아놓은 전작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였다. 강렬한 비트의 댄스곡들 대신 신작에는 꽤나 '얌전한' 포크-팝풍
노래들로 채워놓았다. 결혼하여 엄마가 되면서 되찾은 행복이 가져온 듯한
탈바꿈이었다.
 싱글로 빅히트한 (아무것도 당신에 비할 수 없어: Nothing compares to you)만
해도 음침한 무드 속에 아일랜드적인 열정이 숨쉬고는 있지만 고요함 속에
노래가 전개된다. (타임)지는 이 곡을 "가볍고 댄스취향적인 시대에 어울리지
않은, 기괴하고 마법적인 노래" 라고 소개하고 히트 공식에서 벗어난 곡임에도
불구하고 대성공한 것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과거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는 곡조뿐 아니라 노랫말에도 나타났다. 반항적인
가사보다는 사랑, 우정, 삶의 희로애락이 거슬리지 않는 내용으로 그려졌다.
(너무 달라진 느낌이야: feel so different) (난 너의 무덤에까지 묶여있지: I
am stretched on your grave) (넌 너무 많은 슬픔을 주지: You cause as much
sorrow) 등 대다수의 곡들이 그러했다.
 조금 생각해볼 만한 것이라고는 (오토바이를 탄 흑인 소년들:Black boys on
mopeds) 한 곡에 그친다. 이 노래는 니콜라스 클램블이라는 흑인 청년이
친구에게서 오토바이를 빌려타고 다니는 것을, 경찰이 절도행위로 오인하여
격돌하다가 그 청년을 죽이게 된 실제사건을 테마로 했다. 정치색이 강한 이
곡에서 시네드는 소수민족(특히 흑인)을 억압하는 영국과 영국수상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대처 수상이 TV에 나와 천안문사태의 학살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군. 똑같은
명령을 자신도 하달하면서 화내더니 이상하기만 해. 영국은 마담 조지와 장미의
신비한 나라가 아냐. 오토바이를 탄 청년을 죽이는 경찰의 고장이지.

 그런데 LP의 앞면 끝에 숨어있는 이 곡 하나가 차후에 일어날 시네드 오코너
해프닝의 성격을 축약하고 있었다.
 그녀를 '조용한 호수' 같은 여자로 보는 것은 오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장외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저항적인 언동으로 잇단 트러블을 야기시켰다.
저항의 대상은 보수적이고 상업적인 미국 쇼비지니스계였다. 미국의 인기
TV프로 '세터데이 나잇 라이브'에 출연 거절(진행자가 소수 민족과 여성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이유)한 것을 필두로 뉴저지 가든 주립예술관 공연에서의
미국 국가연주 거부, 그래미를 비롯한 제도권상 거부 등 일련의 도발로
권위적인 쇼비지니스계에 찬물을 끼얹어버렸다.
 특히 그래미상 거부는 90년 세계 토픽이었던 걸프전쟁과 관련된 것이어서
충격을 불렀다. 그녀는 미국 연예계가 걸프전 참전 찬성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 분노, 그래미상을 거부함과 동시에 미국 및 미국 음악산업을 싸잡아
맹공했다. 부시 시대의 보수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용기로 시네드는 비난도
많았지만 양심 세력으로부터는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그녀는 이전 88년에도 아일랜드공화국(IRA)을 지지하고 카톨릭 교회를
비판하는 발언으로 주목받은 바 있었다. 이같은 공격성과 도전적 자세로 인해
영국의 팝전문지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는 그녀를 '80년대의 자니로튼'이라
칭하기도 했다(섹스 피스톨즈의 자니와 시네드 모두가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어쨌든 그녀는 프린스의 작품(아무것도 당신에 비할 수 없어)로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19개국 팝차트의 정상을 점령하면서 일약 월드스타로 떠올랐다. 그녀를
주목받게끔 할 만큼 앨범의 음악성도 만만치가 않다.
 아일랜드의 신비적 분위기가 물씬한 곡조, 거기에 맞춰 보컬 톤을 조절하는
시네드의 절제능력, 그리고 세련된 리듬이 돋보인다. 앨범도 앨범이지만
무엇보다 시네드의 '거부 퍼레이드'와 궤를 함께 한 음반이라는 점에서 뜻깊다.
걸프전이라는 예민한 시점, 오로지 상업성만을 앞세운 미국연예계의 보수적
풍토에 맞서 싸운 외로운 전사의 기념비적 작품이기 때문이다.

    당대 최고 작곡가겸 가수가 가르쳐주는 리듬의 환상
    필 콜린스 (하지만 진지하게: ...But Seriously)

 Hang in long enough. That's just the way it is. Find a way to my heart.
Colours. Father to son. Another day in paradise. All of my life. Something
happened on the way to heaven. Do you remember?. I wish it would rain
down(89년)

 역사적으로 영국 록계는 10년 단위로 꾸준히 천재적 선율감각의 소유자를
배출해왔다. 60년대의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콤비, 70년대의 엘튼 존, 그리고
배리 깁이 그 주인공들이었고 80년대에도 두 사람의 천재가 나타나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듀오 왬의 조직 마이클과 필 콜린스였다.
 8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필 콜린스(Phil Collins)는 아트록(art rock)의
거물그룹 제네시스(Genesis)의 드러머 출신. 그는 특유의 가슴을 파고드는
선율감각으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
'어게인스트'의 삽입곡이라든지 (하룻밤만 더: One more night) 등과 같은 빅
히트곡들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선율감각은 동시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친숙한 선율을 뽑아내는 데 남다른 재능을 지닌 관계로 그러한 인식이
굳어졌지만 사실 그에게는 또다른 무기가 하나 있었다. 어쩌면 이 부분이 그의
진짜 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리듬 소화력' 이었다.
 드러머 출신이라는 이점이 가져온 것이기도 하지만 그의 리듬 편곡은 80년대를
통틀어 명실상부한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예컨데 (수수디오:
Sussudio)나 필립 베일리와 함께 부른 (만만한 연인: Easy lover)에서 펼쳐진
그의 탁월한 리듬감과 브라스 편곡을 보라. 이렇듯 물이 오를 대로 오른 그의
리듬 편곡의 정수가 91년을 강타한 이 앨범이 다시금 농축되었다.
 이 앨범은 필 콜린스에게 당대 최고의 리듬형 작, 편곡자임을 다시 한번
확고히 구축시켜 주었다.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거머쥔 (천국에서의 하루:
Another day in paradise)는 수많은 팝관계자로부터 '신의 편곡'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이 곡은 서두에서 깔리는 중후하고 웅장한 저음 스트링과 기타의
세련된 무드, 그리고 그 이후에 곡의 시작을 알리는 키보드의 까랑까랑하고
왠지 우울한 패시지에서 이미 승부가 나 버렸다.
 그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 앨범으로 현대 대중음악에서 리듬편곡의 중요성을
재확인 시켜주었다. 곡 만드는 사람들은 그 때부터 멜로디뿐 아니라 '어떤
리듬을 만들어 구성해야 하는가'하는 고민을 추가해야 했다.
 그의 리듬감각은 딱히 천재의 소산이라 할 수는 없었다. 필 콜린스는 이
앨범의 작업을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북아일랜드를 두루 다니며 그곳의
토속악기와 리듬 패턴을 수집. 이 앨범 곳곳에 적용했다. 그것은 분명 부단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이 앨범에서는 4곡의 히트싱글이 쏟아졌다. (천국에서의 하루) 외에도 (내
생애의 전부: All of my life) (기억하나요: Do you remember) (비가 내리면
좋으련만: I wish it would rain down) 등이 싱글차트 톱 10을 메웠다. 이
곡들은 드높은 서정성으로 인해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소 지나친 듯한 대중 지향성은 그의 약점이기도 했다.
평론가들은 "피터 가브리엘이 제네시스에 구축해놓은 예술적 기품이 그에 의해
망쳐졌다"는 등 애초부터 그에게 비판적이었다. 이 앨범도 그러한 비평가들의
불만으로부터 전혀 벗어나진 못했다.

    언더그라운드 얼터너티브의 대중화를 주도한 순교자의 노래
    니르바나 (신경쓰지 마: Nevermind)

 Smells like teen spirit. In bloom. Come as you are. Breed. Lithium.
Polly. Territorial Pissings. Drain you. Lounge act. Stay away. On a plain.
Something in the way(91년)

 80년대를 무기력하게 살아간 젊은이들은 90년대 들어서 그 분노와 피끓는
욕구를 얼터너티브(alternative)라는 이름의 록음악으로 표출했다.
 '대체' 또는 '대안'의 뜻을 가진 그것은 록 또는 헤비메틀의 일반적인
연주관행을 깨고 안락에 빠져버린 자세를 거부하는 움직임이었다.
 얼터너티브는 주류 록 음악의 상업적 가치기준을 배격하고 기존 사회의
보수성과 제도적 틀을 공격함으로써 록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젊은 음악팬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그리고 90년대 록의 주류로 급부상했다. 얼터너티브의
유행과 열풍은 이처럼 록의 사회참여적 성격을 복원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평가받는 것이다.
 그룹 니르바나(Nirvana)의 92년도작 (신경쓰지 마: Nenermind)는
얼터너티브(본인들은 이 말을 싫어한다) 록을 언더그라운드에서 끌어올려 팝
제도권의 전면에 나서도록 하게 한 앨범이다. 이 레코드가 91년 앨범차트에서
당당 1위에 오른 이후 무수한 얼터너티브 밴드들의 음반이 차트를 잠식.
얼터너티브 세상이 열리게 되었다.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을 축으로 앤디
카우프먼, 데이브 코홀로 짜여진 3인조 그룹 니르바나는 스스로를
그런지(grunge)라 일컬었다. 자유분방함 혹은 체제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이
용어는 니르바나의 출신지역인 시애틀의 록을 상징하면서 펄 잼(Pearl Jam),
(앨리스 인 체인즈: Alice in Chains) 같은 동향의 얼터너티브 밴드에게도
적용되었다. 그런지 록은 70년대 영국 펑크가 갖는 과격성, 도전성,
무정부주의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 특징이다. 앨범 타이틀 '네버마인드'도 섹스
피스톨즈의 명반 (네버마인드 더 볼록스)에서 빌어온 것이었다(커트 코베인은
이 앨범을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잘 프로듀스된 앨범"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그런지를 대표하는 니르바나의 앨범에는 체제의 현실을 부정함으로써
나타나는 아나키즘과 도발이 넘쳐흐르고 있다.

 그는 귀여운 노래를 좋아하는 녀석이야. 따라 노래하기 좋아하지. 그리고 총을
발사하는 것을 좋아하지. 그러나 그것이 뭘 의미하는 지 모르지. (개화: In
bloom)

 니르바나는 평소 "절대 성공을 원치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앨범에는 섹스 피스톨즈식 펑크의 소란 속에 베이 시티
롤러즈류의 팝감각이 용해되어 있는 바람에 대중의 귀가 쏠렸고 '원치 않는'
성공을 맞이하게 되었다. (컴 애즈 유 아: Come as you are)와 같은 곡에서
보이는 멜로디 지향성이 그런 결과를 부채질했다. (신경쓰지 마)가 마이클
잭슨의 (위험한: Dangerous)을 제치고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르자 커트
코베인은 "16위에 있는 거나 매한가지다. 굽실거리는 사람만 더 많아지는
것뿐이다" 라고 시큰둥거렸다.
 커트 코베인은 "이제 로큰롤에는 더 이상 반항도 없다. 난 언더그라운드
뮤직이 주류(main stream)에 영향을 미치고 아이들을 흔들어 깨워 바로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 앨범 후의 성공은 프로듀서 스티브
알비니의 말대로, "니르바나는 히트 레코드를 만들어냄으로써 부에 의존한
음악계의 고위층 깡패 무리를 대량생산"했다.
 이처럼 얼터너티브의 정신이 시나브로 쇠퇴되어가는 것에 커트 코베인의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94년 3월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해버렸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지미 헨드릭스, 브라이언 존스가 모두 27세에
요절했듯 그도 '더 이상의 타락'을 허용치 않기 위해 그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자살의 동기와 무관하게 그는 록음악과 '27세의 순수성'에
순교한 것이 틀림 없었다.
 (그림 설명): 그룹의 리더인 커트 코베인.

    랩에 대한 반발로 끌어낸 90년대판 리듬 앤 블루스와 아카펠라
    보이즈 투 멘 (쿨리하이하모니: Cooleyhigharmony)

 Please don't go. Lonely heart. This is my heart. Uhh ahh. 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 Motownphilly. Under Pressure. Sympin. Little
things. Your love(92년)

 보이즈 투 멘(Boys 2 men)은 90년대 초반 팝계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두 가지
의미있는 일을 해낸다.
 하나는 정통 리듬 앤 블루스의 부흥을 선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카펠라
유행을 야기시킨 것이었다. 서로 유기적인 관계에 있는 이 두 가지 일은 모두
흑인음악의 주류인 랩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것이었으며 바로 그러한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랩은 흑인하층민 음악으로 80년대 레이건 보수시대에 항거하는 흑인의식의
발로이긴 했지만, 빠른 대사와 과격한 리듬을 내걸어 흑인 기성세대와 백인이
좋아하기는 어려운 음악이었다. 10년의 세월 속에서 랩의 유행은 이 때문에
염증을 초래하기도 했다. 청취자들은 랩의 리듬에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그때 보이즈 투 멘이 홀연히 등장한 것이었다. 그들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선율 중심의 흑인 음악 리듬 앤 블루스를 들고나와 '조용한 음악에 주린'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적시타를 날렸다. 그것이 (앤드 오브 더 로드: End
of the road)였다.
 빌보드 싱글차트 연속 13주간 1위를 고수한 이 곡과 별도로 앨범
(쿨리하이하모니)도 92, 93년 팝계를 뒤흔들어 버렸다. 이 앨범은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5백만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이 판매실적은 이보다 더 잘 팔린
음반을 갖고있는 마이클 잭슨, 자넷 잭슨, 프린스 등을 팝가수로 분류해
제외시킨다면(논란의 여지가 있다) 리듬 앤 블루스 가수의 음반 가운데는
최고에 해당한다. 이 앨범은 국내에서도 4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보이즈 투 멘은 이를 통해 리듬 앤 블루스의 중흥, 좁혀 말하면 '모타운
소울'의 재생에 불을 붙였다.
 (앤드 오브 더 로드-이 앨범에 원래는 수록되어있지 않은데 국내판에는
실려있다)와 역시 싱글로 빅히트된 (어제와 안녕하기엔 너무 어려워: 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 (우아: Uhh ahh)가 그러했다. 모두 꿈꾸듯
낭만적인 무드에 넘치는 이 곡들에 보이즈 투 멘은 특유의 빈틈없는 보컬
하모니를 짙게 깔아 놓았다. 그 중 압권은 아카펠라로 만든 (어제와
안녕하기에는 너무 어려워)였다. 모든 악기를 송두리째 거부하는 무반주합창
아카펠라는 이 곡에 의해 전세계적 유행으로 확산되었다. 그것은 대중음악계의
복고 붐과 맞물려 93년 팝무대를 호령했다. 보이즈 투 멘은 그간 끊겼던 흑인
보컬하모니를 되살려 템테이션즈(Temptations)와 포탑스(Four Tops)의 보컬
전통이 90년대에도 계속 이어져가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앨범에다 소울 발라드 외에 첨단 댄스음악도 섞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 그 비율이 반반을 이룬다. 그 댄스음악은 랩이 아니라 90년대식
펑크(funk)라 불리는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이라는 것이었다. 싱글차트
3위에 오른 곡 (모타운필리:Motownphilly)가 그 스타일을 대변하고 있다.
 보이즈 투 멘의 힘은 실로 와냐 모리스, 숀 스톡맨, 마이클 맥커리, 나탄
모리스 등 4명의 멤버가 보여주는 보컬 능력에 있다. 가스펠 풍의 파워풀한
리드 보컬과 그것을 받쳐주는 육중한 백업 보컬, 그리고 거기서 퍼져나오는
환상적인 화음은 구차한 설명을 무색케 한다. '소년에서 성인으로'라는
그룹명에다가 흑인그룹 뉴 에디션(New Edition)을 우상으로 여겨왔다는 그룹
치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 화음이 견고하고 깊다. 아카펠라는 이러한 자신감
속에서 시도하게됐는지도 모른다.
 소울의 역사는 벌써 '모타운 보컬그룹의 전통을 90년대에 이어간 최초의 그룹'
이라는 점에서 그들을 중요한 소울 아티스트로 기록해 놓고 있다. "보이즈 투
멘은 짧은 기간에 너무도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는 흑인음악 전문지
(블랙비트)의 표현처럼, 그들은 2년이 채 안되는 기간에 리듬 앤 블루스의
기운을 차리게 했고 아카펠라 붐도 함께 야기시켰다.
 90년대 소울의 역사는 그들로부터 시작되게 되었다. 이 앨범이 그 찬란한
영광을 잉태시켰다.

    아들의 죽음과 바꾼 언프러그드 열풍의 기폭제
    에릭 클랩튼 (언플러그드: Unplugged)

 Signe. Before you accuse me. Hey hey. Tears in heaven. Lonely stranger.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 out. Layla. Running on faith.
Walkin'blues. Alberta. San Fransisco bay blues. Malted milk. Old love.
Rollin' & tumblin'(92년)

 그의 삶 전체를 들끓게 했던 패티 보이드와 뜻밖의 파경을 맞이한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85년 로리 델 산토라는 이탈리아 출신 여배우와 동거에
들어갔다(패티와는 88년 정식 이혼). 그는 그녀와의 사이에 코너라는 늦둥이
아들을 두었지만 둘의 관계 또한 패티와 마찬가지로 오래가지 못했다.
 91년 봄 그는 델 산토와의 생활을 청산하고 호텔에 투숙해 있다가 비통한
전갈을 받게 되었다. 그녀와 살던 맨하탄 고층아파트 53층에서 가정부가
열어놓은 창문으로 그만 4살짜리 아들 코너가 실족해 떨어져 죽었다는
것이었다.
 슬픔에 잠긴 에릭 클랩튼은 또다시 찾아든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정신적
치료에서 위안을 얻어야 했고 알콜갱생회에 참석해야 했다. 그렇다고 노래와
기타연주까지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는 노래 만드는 것이 자기 치료의
과장이라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 체득했다. 이 무렵 그의 노래는 거의
직설적으로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가사를 담고 있었고 공연 때도 주로 그와
같은 곡을 부르곤 했다.
 그때 M-TV에서 통기타로 연주한 앨범을 만들어 보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플러그를 뽑은 상태, 이를테면 일렉트릭 기타의 소리 증폭을 걷어치우고
어쿠스틱 사운드를 겨냥한 언플러그드(unplugged)를 기획한 M-TV는 유행의
확산을 위해 에릭 클랩튼과 같은 대스타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애초 그는 섭외에 시큰둥했고 매니저가 다른 사람들의 M-TV 실황을 담은
테잎을 건네줄 때도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주변의 줄기찬 권유에 끝내는 그에
응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노래를 만들고 M-TV에 출연하여 연주도 하고 해서
하나의 앨범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에릭 클랩튼은 통기타 연주자 자신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고 여겼던지
"이 음반은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따라서 선뜻 음반 출고에 동의
하지 않았다. 그의 메니저 로저 포레스터는 "우린 그가 승락할 때까지
실질적으로 세 차례나 앨범 출반을 보류해야 했다"고 ㅂ혔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밖이었다. 앨범은 순식간에 날개돋힌 듯 팔려나갔고 2년간
8백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슈퍼히트를 기록했다. 더욱이 놀랍게도 에릭
클랩튼은 93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등 주요 3개부분은 물론 6개부문을 독점해 버렸다. 주요 3개부문 수상은
미국 이외의 가수에게는 처음있는 영광이었다.
 그래미 주최측에서 볼 때 그의 언프러그드 앨범은 상을 몰아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우선 '젊음의 일렉트릭 기타'가 아닌 '성인들의 추억을 자극할 통기타'
작품이라는 사실부터가 보수적인 그래미의 입맛에 딱 맞았다. 더구나 그는
영국인이었다. 그래미상이 너무 미국적이라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던 주최측은
그로부터 벗어날 호기를 붙잡은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그래미측의 주목을 끈 부문은 그의 노래에 '최루성 사연'이
있다는 점이었다. 싱글로 빅 히트한 (천국의 눈물: Tears in heaven)은
다름아닌 에릭 클랩튼이 죽은 아들 코너를 위해 쓴 비가였다.

 하늘에서 널 다시 만난다면 넌 내 이름을 기억할까. 천국에서 널 만난다면 넌
그대로 똑같은 모습일까...

 누가 들어도 공감을 얻을 만한 애틋한 내용이었다.
 에릭 클랩튼은 이 곡의 성공으로 오랜 침묵을 깨고 추억의 스타임을 거부하며
47세의 나이에 재기했다. 이미 티나 터너(Tina Turner)와 보니 레잇(Bonnie
Raiit)에게 듬뿍 상을 안겨주었듯 유난히 '미담에 약한' 그래미측에게 이 곡은
그야말로 최적의 시상감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컴백 성공에 가장 놀란 사람은 에릭 클랩튼 자신이었다. 그는 92년
웨스트우드 원 라디오와 가진 인터뷰에서 "내가 역경을 딛고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얘기'라고 말했다. (천국의 눈물)을
녹음할 당시 "곡이 너무 감상적이고 몇 소절 끝부분이 맘에 안든다. 히트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던 그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꿈 같은 히트가 아닐 수
없었다.
 앨범은 아들 잃은 아픔의 충격으로 인해 슬픈 블루스가 주를 이룬다. 사연을
알면 더욱 애착이 가는 (천국의 눈물)도 그렇거니와 블루스의 고전을
리메이크한 곡이 많다는 사실부터 그러하다. (맥아분유: Malted milk) 와 (걷는
블루스: Walkin' blues) 는 델타 블루스의 명인이자 그의 영원한 우상인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 작품이며, (롤링 앤 텀블링: Rollin' and tumblin')은
시카고 블루스의 전설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본명 McKinley
Morganfield)가 만든 50년대 블루스 스탠다드였다. 에릭이 공연 때 자주 부르곤
하는 (네가 날 꾸짖기 전에: Before you accuse me) 역시 맥다니엘(McDaniel)의
블루스 골든 레퍼토리이며 (헤이 헤이: Hey Hey)는 1910년대부터 활동한 초기
블루스의 거인 빅 빌 브룬지(Big Bill Broonzy) 작품이었다.
 기타의 귀재답게 어쿠스틱 기타가 빚어내는 영롱함이 앨범의 매력. 일반적으로
일렉트릭 기타의 달인들은 예상과 다르게 통기타에 약한데 곡조와 어울리게
통기타의 맛을 살려낸 것은 역시 경지에 도달한 '기타의 신' 만이 할 수 있는
것임을 느끼게 한다. (네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아무도 너를 알지 못하지: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는 데릭 앤 도미노스 시절의
곡이며, (천국의 눈물)에 이어 싱글로 발표된 (레일라: Layla)는 과거 일렉트릭
기타연주를 들은 사람에겐 격세지감의 생소함이 있긴 해도 전혀 기품을 잃지
않은 채 오리지널과는 또다른 맛을 전달해준다.
 이 앨범은 또한 M-TV 기획의 승리였다. M-TV는 언플러그드로서 랩, 헤비메틀,
그리고 테크노뮤직이 대중음악계를 뒤덮고 있어도 그런 음악들을 기피하고 있는
별도의 구매층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에릭의 뒤를 이어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 닐 영(Neil Young), 랩그룹
어레스티드 디벨럽먼트(Arrested Development) 등이 언플러그드 앨범을 잇따라
발표했다. 92년과 93년에는 때아닌 언플러그드 열풍이 세차게 불어닥치면서
전세계 음악계에 복고 붐을 가속화시켰다. 이때부터 팝계에는 완연한 복고의
추세를 탄 음악들이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언플러그드 음악은 팝의 조류 변화 속에서 빛을 발했다. 에릭 클랩튼은
90년대에도 역시 거목이었다.

    90년대 복고무드를 이끌어낸 최고 판매실적의 상업음반
    영화 사운드트랙 (보디가드: the Bodyguard)

 I will always love you. I have nothing. I'm every woman. Run to you.
Queen of the night. Jesus loves me. Even if my heart would break(Kenny G
and Aaron Neville). Someday(Lisa Stansfield). It's gonna be a lovely
day(The S.O.U.L.S.Y.S.T.E.M.). Peace, love and understanding(Curtis
Stigers) Waiting for you(Kenny G). Trust in me(Joe Cocker featuring Sass
Jordan). Theme from the Bodyguard(93년)

 휘트니 휴스턴(Whitney Huston)이 86년 데뷔하면서 취했던 노래 스타일은
모타운 소울의 전통에 따른 약간 빠른 템포의 발라드였다. '미모와 가창력'
이라는 현대의 팝가수 조건을 겸비한 그녀는 그 점을 십분 활용, 스탠다드적
소울을 찾는 고급 관객들을 주요 구매층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모타운풍 소울발라드로 그녀는 각종 찬란한 기록을 잇따라 터뜨렸고
흑인음악의 주도권을 놓고 랩과 세력 싸움을 벌인 리듬 앤 블루스 진영의
대표적 가수로 올라섰다. 런 DMC나 퍼블릭 에니미의 랩이 영원한 언더그라운드
하드 코어라면 그녀는 제도권 흑인음악인 스탠다드 소울의 대변자인 셈이었다.
91년 초 걸프전쟁에 참전중인 미국병사를 격려하기 위해 (미국국가: The star
spangled banner)를 불렀던 사실도 그녀의 애국적 취지와 함께 제도권 가수의
이미지를 말해주는 증거이다.
 제도권 가수라 함은 또한 그녀의 음악에 상업성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고급스런 리듬 앤 블루스 밑바닥에 흐르는 상업성'으로 그녀는
9년속 싱글차트 넘버 원이라는 신기록을 작성할 수 있었고 여가수 최초로
발매와 동시에 앨범차트 정상에 오르는 위업(두번째 앨범 (휘트니)로)을 창조할
수 있었다.
 팝계의 신기록은 거의 그녀의 것이었다. 80년대를 석권한 그녀는 90년대에도
또하나의 찬란한 신기록을 추가했다. 영화 '보디가드'의 삽입곡 (영원히 그대를
사랑하리: I will always love you)가 기록의 주체였고 그 내용은 '빌보드
싱글차트 14주 연속 1위 점령'이었다. 이 기록은 방금전 차트 13주 연속
1위자리를 지켰던 (앤드 오브 더 로드: End of the road)의 보이즈 투 멘을
허탈하게 했다.
 영화 '보디가드' 사운드트랙 앨범은 휘트니 휴스톤의 빅히트 싱글 (영원히
그대를 사랑하리)가 수록됨으로 해서 93년 팝계의 천하통일을 꾸려냈다. 불황의
한복판에서 지금까지 천백만 장의 판매고를 획득했다는 것은 팝계의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지속적으로 앨범차트 상위권에 머물고 있는 이 앨범이 지니는
가치는 그러한 폭발적 판매고와 관련한 부분일 것이다.
 영화의 흥행성공에 발맞춰 떠오른 이 앨범은 상업성의 분위기가 혐오스럽지
않은 수준에서 전편에 살아 숨쉰다. 그리하여 '쉽고 분위기 있으며 귀에 익은
듯한' 노래를 찾는 대중의 구미를 자극하고 있다.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로 크게
히트한 (영원히 그대를 사랑하리) (난 아무것도 가진게 없어요: I have
nothing) (아임 에브리 우먼: I'm every woman)을 비롯하여 케니 G., 애론
네빌, 리자 스탠스필드, 조 카커 등 호화 맴버들이 손을 보탠 곡들 모두가
감상에 무리를 제공함이 없이 청취자를 편안하게 한다.
 이 앨범이 기여한 바가 있다면 랩과의 혈전 속에 서서히 성과를 보인 리듬 앤
블루스로서 팝계의 복고 무드를 불태웠다는 점일 것이다. 랩에 지친
본고장(우리도 포함될 수 있을 것) 사람들에게 이 앨범의 음악은 휴식같은
친구가 되었다. 복고의 경향은 (영원히 그대를 사랑하리)가 컨추리 가수 돌리
파튼의 74년 오리지널을 (아임 에브리 우먼)이 78년 샤카 칸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노래라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곡들은 이후 팝계에 옛곡을
재해석한 노래들이 쏟아져나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많이 팔렸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진 가치일 수 있는 이 앨범이 차후
팝역사에 어떤 음반으로 기록될지는 세월이 좀더 지나야 알게 될 것이다.

    권말부록
   미, 영국 세계 유명지의 베스트앨범선

 1. '빌보드' 선정 (55-79년)
 2. '롤링 스톤' 선정 (80-89년)
 3. '롤링 스톤' 선정 (67-86년)
 4. '타임' 선정 (82-87년)
 5. '타임' 선정 (70년대)
 6. '피플' 선정 (-86년)
 7. '크림' 선정 (55-75년)
 8. 'NME' 선정 (-85년)

 '빌보드' ' 롤링 스톤' ' 크림'은 미국의 팝 전문잡지(주간 및 격주간),
(타임)은 미국의 시사종합지(주간), (피플)은 미국의 대중 시사연계지(주간),
그리고 (NME: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는 유일하게 영국 잡지로서 팝
전문지(주간)이다.
 어떤 음반이 명반인가. 명반의 실체 파악은 음악의 시대적 흐름을 추적하는
가장 빠른 길잡이가 된다. 팝음악의 '본고장인 영, 미의 평론가나 독자들이
선정한 우수레코드 목록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한 자료이다. 그것은
대표적인 아티스트가 누구인가는 물론 록과 팝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도 커다란
도움을 준다. 이와 함께 본고장에서의 명반 목록은 팝 음악을 수용하는 입장인
우리에게도 필수적인 자료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호응을 얻는 앨범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 사이의 것들 사이의 차이점을 파악할 수 있고 한편 우리
대중의 음악적 정서가 어디에 부합하는 가를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본 부록에는 독자들의 록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미국의 팝차트 전문지
'빌보드'와 최대의 권위를 인정받는 록 전문잡지 '롤링 스톤'을 중심으로
'타임' '피플' '크림' 지의 최우수레코드 선정 리스트를 게재했다. 영국의
유명한 팝 전문지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의 선정 결과 영국인들의 록 음악
기호를 알아보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소개했다.
 '빌보드' 지 부분은 1979년 로큰롤 25주년을 맞이하여 미국의 저명한 록평론가
25명으로 하여금 그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록 음반을 선정케 한 것. 전체
통계를 재집계하여 뽑힌 최우수 레코드 23개, 아티스트 26명도 아울러 소개하고
있다. 이 조사에서는 본토의 팝 팬들에게도 생소한 그룹 러브(Love)와 그들의
앨범 (영원한 변화: Forever changes)가 의외로 높은 순위에 올라 있는 것이
이채롭다. 비틀즈가 조사결과 1위를 차지한 이 목록은 55년부터 78년까지의
명반의 정체를 확인하는 데 최적의 자료라 생각된다.
 '롤링 스톤' 지 선정목록은 87년 조사분과 89년 연말특집 조사분 두 가지를
실었다. 전자는 이 잡지가 창간된 67년부터 86년까지 20년간 발표된 음반들
가운데 비평가들이 우수작으로 선정한 록 앨범 100선이며, 뒤의 것은 역시
비평가들이 선정한 80년대의 최우수 록앨범 100선이다. 둘 모두 순위를 매긴
것이 특징.
 '롤링 스톤' 지의 경우 어는 비평가 집단보다도 음반의 시대성에 역점을 두고
있음이 나타난다. 록의 예술성에 소홀하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사회의식이
강한 음반들을 우대하고 있다. 예컨데 반항적인 펑크(punk) 정신을 높게 평가해
'67-68년 최우수 록앨범 100선'에서 섹스 피스톨즈의 (never mind the
bollocks)를 2위, '80년대의 최우수 록앨범 100선'에서 클래시의 (London
calling)을 당당 1위에 올려놓고 있다. 비틀즈의 두 축인 폴 메카트니와 존
레논의 솔로앨범들 중, 저항적인 레논의 작품들이 두 조사에 모두 끼어있는
반면 대중적으로 더 성공한 폴 매카트니의 것은 전혀 없다는 사실도 그
증거이다. 그만큼 앨범의 상업성은 철저히 배격하고 있다.
 '타임'(제이 칵스, 리처드 콜리스 등의 저명한 팝기자가 있다)은 보수적인
측면이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정치성이 강한 작품들을 홀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타임' 지 조사결과의 특징은 특정 아티스트들을 편애한다는 점.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 밥 딜런, 리틀 스티븐, 브루스 스프링스턴, 리처드 톰슨
등이 그 면면들이다. 80년대 베스트 선정자료가 82년부터 87년분까지밖에 없는
것은 그 이전과 이후 해당 연도에는 선정작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6년동안의 자료에 불과하지만 80년대 팝 상황을 체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피플' 지 선정은 87년 것으로 일반 대중잡지이면서도 우선 기획내용이
흥미롭다. "당신이 만약 무인도로 간다면 어떤 록 앨범을 들고 가겠는가"하는
물음을 전제로 당대의 유명 비평가 및 아티스트 총11명에게 좋아하는 순서로
록음반 10개를 추천토록 한 것이다(그러나 더러는 재즈 및 클래시컬한 음반을
뽑기도 했다). 여기서는 밥 딜런과 롤링 스톤즈가 최다지명(7회)으로 공동1위를
차지했고 그 다음이 비틀즈(5회)였다. '타임' 지의 제이 칵스와 '뉴스위크'
지의 짐 밀러 기자가 추천한 음반들 가운데 영국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크림' 지의 선정분은 55년부터 75년까지 해당 연도의 톱 록앨범들이다.
데이브 마시, 레스터 뱅스, 리처드 로빈슨, 벤 에드먼즈 등 당시 맹활약하던 이
잡지의 록 기고가들이 선정한 것으로 '빌보드' 지 조사내용과 일치된 부분이
많이 나타난다. 비평가들의 시각이 꽤나 다양한 것 같아도 명반을 보는 눈만은
거의 엇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 지는 선정목록은 영국의 독자들의 투표로 이루어진
85년 연말에 조사된 것. 당시 영국 팝음악 팬들의 취향을 잘 나타내었다고 볼
수 있다. 마빈 게이의 (What's going on)가 영예의 1위를 차지했는데 그것은
84년 그가 사망했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와 음악 기호의 차이가
크다는 사실은, 우리에겐 비교적 인기없는 펑크록 가수 엘비스 코스텔로와
데이비드 보위의 앨범이 각각 5개, 4개 올라있다는 데서 나타난다. 두 가수는
물론 영국인이며, 전체적으로도 영국 아티스트들의 앨범이 많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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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1. 음반명(타이틀)은 별도의 부호로 묶지 않았다.
 2. 가수(그룹)의 이름은 괄호 안에 영문을 삽입하되, 동일 리스트 2회이상
중복시 그 지명도를 나타내기 위해, 2회째부터는 한글표기만 하였다.
 3. 음반명은 본문과 달리 한 문장(어구)안 각 단어의 이니셜을 대문자로
표기하고(to 부정사 포함), 전치사 관사 접속사는 예외로 하였다.
 4. 90년대의 앨범집계는 자료 미비와 '시간의 세례'를 요한다는 점에서
게재하지 않았다.
 5. 그룹 이름 안에 들어있는 정관사(the)는 한글표기시 대부분 생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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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보드' 지가 뽑은 1955-1979 최우수 록 음반
    록 탄생 25주년 특집기사 '25명의 평론가 선정 록 명반' (25 Top Rock
Critics Pick Their 25 Favorite Rock Records/79년 5월호)에서

 빌 헤일리(Bill Haley)의 앨범 (Rock around the clock: 1955년)을 록의
탄생으로 보는 것에서 연유함.
 두가지 집계(1.25명의 각25장 망라 2.최다빈도 25등이내의 종합집계)로 구분돼
있음.

  1. 25명의 평론가가 뽑은 록 명반(각 25장)

 괄호 속의 45, 즉 (45)는 앨범이 아닌 싱글을 뜻함.(45회전 싱글)
 음반 각 25개는 무순으로 열거된 것.

 MC 파이브(MC5)- Back in The USA
 게스 후(Gress Who)- No Time (45)
 골든 이어링(Golden Earring)- Moontan
 그래이트풀 데드(Grateful Dead)- American Beauty
 그램 파슨스(Gram Parsons)- Love Hurts (45)
 그램 파슨즈- GP
 그레이엄 파커 앤 루머(Graham Parker and the Rumour)- Heat Treatment
 그레이엄 파커 앤 루머- Heat Treatment
 그레이엄 파커 앤 루머- Heat Treatment
 그레이엄 파커 앤 루머- Howlin' wind
 그레이엄 파커 앤 루머- Howlin' Wind
 그레이트풀 데드- American Beauty
 그레이트풀 데드- Live / Dead
 그레일 마커스(Greil Marcus)
 글래디스 나잇 앤 핍스(Gladys Knight & the Pips)- Heard It thru The
Grapevine (45)
 뉴욕 돌스- In Too Much Too Soon
 뉴욕 돌스- New York Dolls
 니코(Nico)- Desertshore 롤링 스톤즈- Let It Bleed
 니코- The Marble Index
 닉 드레이크(Nick Drake)- Five Leaves Leaves Left
 닐 세다카(Neil Sedaka)- Sedaka's Back
 닐 세다카- Neil Sedaka Sings His Greatest Hits
 닐 영- After The Goldrush
 닐 영-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
 닐 영- Tonight's the Night 
 닐 영- Zuma
 다랜 러브(Darlene Love)- Fine, Fine Boy (45)
 다이아나 로스 앤 더 슈프림즈(Diana Ross & the Supremes)- Love Child (45)
 댄 힉스 앤 히스 핫 릭스(Dan Hicks & His Hot Licks)- Where's the Money
 더 밴드- Music From Big Pink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sfield)- Dusty in Memphis
 더스티 스프링필드- Dusty In Memphis
 더스티 스프링필드- Dusty in Memphis
 데드리 나이트셰이드(Deadly Nightshade)- Dance Mr. Big. Dance (45)
 데릭 앤 도미노스(Derek & The Dominoes)- Layla & Other Assorted Love Songs
 데릭 앤 도미노스- Layla & Other Assorted Love Songs
 데릭 앤 도미노스- Layla & Other Assorted Love Songs
 데릭 앤 도미노스- Layla (45)
 데스몬드 데커(Desmond Dekkar)- 007-Shanty Town (45)
 데이브 반 론크(Dave Van Ronk)- Folksinger
 데이브 클라크 파이브- Greatest hits
 데이브 클락 파이브- Glad All Over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The Man Who Sold the world
 데이비드 보위- Low
 데이비드 보위- The Rise and Fail of Ziggy Stardust
 데이비드 보위-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데이비드 보위-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데이비드 프릭(David Fricke)
 뎀/ 밴 모리슨- Here Comes The Night (45) / Astral Weeks
 도어즈(Doors)- the Doors
 도어즈- Morrison Hotel / Hard Rock Cafe
 도어즈- Strange Days
 도어즈- The Doors
 도어즈- The Doors
 도어즈- The Doors
 도어즈- The Doors
 드리프터스(Driffers)- On Broadway (450
 드리프터스(Drifters)- There Goes My Baby (45)
 디온 워윅(Dionne warwick)- You'll Never Get to Heaven (45)
 딕테이터즈(Dictators)- The Dictators Go Girl Crazy
 딥 퍼플- Deep Purple in Rock
 라스베리스(Raspberries)- Go All the Way (45)
 라이 쿠더(Ry Cooder)- Into the Purple Valley
 랜디 뉴만- Little Criminals
 랜디 뉴먼(Randy Newman)- Sail Away
 랜디 뉴먼- Sail Away
 러브(Love)- Foerver Changes 
 러브- Alone Again or (45)   러브- Love
 러브- Forever Changes
 러브- Forever Changes
 러브- Forever Changes
 러브- Forever Changes
 러브- Love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 One from the Road
 레드 제프린- Led Zeppelin
 레드 제프린- Led Zeppelin   롤링 스톤즈- Let It Bleed
 레드 제프린- Led Zepplin
 레먼즈- Rocket To Russia
 레스터 뱅즈(Lester Bangs)
 레슬리 고어(Lesley Gore)- It's My Party (45)
 레슬리 고어- It's My Party (45)
 레이먼즈(Ramones)- Ramones Leave Home
 레이먼즈(Ramones)- Rocket to Russia
 레이먼즈- Rocket to Russia
 레이 찰스(Ray Charles)- What'd I Say (45)
 레이 찰스- Ray Charles at Newport
 레이 찰스- Ray Charles in Person
 레이찰스- The Genius Sings the Blues
 로네츠(Ronettes)- Be My Baby (45)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 Never A Dull Moment
 로라 니로(Laura Nyro)- Eli & the Thirteenth Confession
 로리 갤러거(Rory gallagher)- Live in Europe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45)
 로보트 에이 헐(Robot A. Hull)
 로빈 트라워(Robin Trower)- Bridge of Sighs
 로이 오비슨(Roy Orbison)- Roy Orbison Greatest Hits
 로이 우드(Roy Wood)- Wizzard
 로킹 푸(Rickin' Foo)- Rockin' Foo
 록시 뮤직(Roxy Music)- Country Life
 록시 뮤직- Pyjamarama (45)
 록시 뮤직-Roxy Music   워시본 애시- Argus
 록시 뮤직- Stranded
 롤링 스톤즈- (I Can't Get No)Satisfaction (45)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 Their Satanie Majesties Request
 롤링 스톤즈- Aftermath
 롤링 스톤즈- Aftermath
 롤링 스톤즈- Aftermath
 롤링 스톤즈- Aftermath
 롤링 스톤즈- Aftermath
 롤링 스톤즈- Aftermath
 롤링 스톤즈- Beggar's Banquet
 롤링 스톤즈- Between the Buttons
 롤링 스톤즈- Between The Buttons
 롤링 스톤즈- December's Children
 롤링 스톤즈- England's Newest Hitmakers
 롤링 스톤즈- England's Newest Hitmakers
 롤링 스톤즈- Exile on Main Street
 롤링 스톤즈- Exile on Main Street
 롤링 스톤즈- Get Off of My Cloud (45)
 롤링 스톤즈- Get Yer Ya-Ya's Out
 롤링 스톤즈- It's Only Rock & Roll (45)
 롤링 스톤즈- Out of Our Heads
 롤링 스톤즈- Out Of Our Heads
 롤링 스톤즈- Some Girls
 롤링 스톤즈- Sticky Fingers
 롤링 스톤즈- The Last Time/ Play With Fire (45)
 롤링 스톤즈- The Rolling Stones Now
 루 리드(Lou Reed)- Transformer
 루 크리스티(Lou Christie)- Two Faces Have I (45)
 리오 세이어(Leo Sayer)- Just A Boy
 리차드 멜처(Richard Meltzer)
 리차드 앤드 린다 톰슨- Pour Down like Silver
 리차드 앤 린다 톰슨(Richard & Linda Thompson)- Pour Down like Silver
 리차드 톰슨- Henry the human Fly
 리틀 로저 앤 구스범프스(Little Roger & The Goosebumps)- Gilligan's Island
(45)
 리틀 리차드- 17 Original Hits
 리틀 리차드- His Biggest Hits
 리틀 리차드- Little Richard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 Rip It Up/ Ready Teddy (45)
 리틀 피트(Little Feat)- Little Feat
 린다 론스태드(Linda Ronstadt)- Prisoner in Disguise
 린다 론스태드- Carnival Bear (45)  린다 론스테드- The Dolphins (45)
 린다 론스태드- Long Long time (45)
 린다 론스테드- Heart Like a Wheel 
 마더즈 오브 인벤션(Mother's of Invention)- Freak Out
 마리안 시걸(Marian Segal)- Jade
 마마스 앤 파파스(Mamas and Papas)- If You Can Believe Your Eyes and Ears
 마빈 게이(Marvin Gaye)- What's Going On
 마빈 게이 / 킴 웨스톤(Marvin Gaye / Kim Weston)-  It takes Two (45)
 마빈 게이- Anthology
 마사 앤 밴델라스(Martha & the Vandellas)- dancin's in the Streets (45)
 마사 앤 밴델라스(Martha & The Vandellas)- Heatwave (45)
 마운틴(Mountain)- Mountain Climbing
 마이클 네스미스(Michael Nesmith)- Compilation
 마이클 네스미스(Michael Nesmith)- Compilation
 마이클 데이비스( Michael Davis)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On The Corner
 모비 그레이프(Moby Grape)- Moby Grape
 모비 그레이프- Moby Grape
 모비 그레이프- Moby Grape 
 모음집(Various Artists)- Beach Beat, Vols. 1 & 2 
 모음집- Bubble Gum Music Is the Naked Truth
 모음집- Nuggets
 모음집- Phil Spector's Christmas LP
 모음집- Phil Spector's Greatest Hits
 모음집- Phkl Spector's Greatest Hits
 모트 더 호플(Mott the Hople)- Mott
 모트 더 후플(Mott The Hoople)- All The Young Dudes
 무디 블루스(Moody Blues)- Go Now
 무디 블루스(Moody Blues)- Go Now (45)
 무브(The Move)- Shazam
 무브- Looking On
 미셀 파글리아로(Michel Pagliaro)- Time Race
 미첼 쉬나이더(Mitchell Shnieder)
 미치 코헨(Mitch Cohen)
 미키 앤 실비아(Mickey & Sylvia)- Love is Strange (45)
 바비 퓰러 포(Bobby Fuller Four)- I Fought the Law (45)
 반 다이크 팍스(Van Dyke Parks)- Song Cycle
 반 다이크 팍스- Clang of Yankee Reaper
 밥 딜런(Bob Dylan)- Highway 61 Revisited
 밥 딜런 / 밴드- Before the Flood
 밥 딜런- Ballad Of a Thin Man (45)
 밥 딜런- Blonde On Blonde
 밥 딜런- Blonde On Blonde
 밥 딜런- Blonde on Blonde
 밥 딜런- Blonde on Blonde
 밥 딜런- Blonde on Blonde
 밥 딜런- Blonde on Blonde
 밥 딜런- Blonde on Blonde
 밥 딜런- Blonde On Blonde
 밥 딜런- Blonde On Blonde
 밥 딜런- Highway 61 Revisited
 밥 딜런-Blood on the Tracks
 밥 딜런- Highway 61 Revisited
 밥 딜런-Highway 61 Revisited
 밥 딜런- John Wesley Harding 
 밥 딜런- Like a Rolling Stone (45)
 밥 딜런-Live at the Albert Hall 1966
 밥 딜런- Nashville Skyline
 밥 딜런- One Of Us Must Know (Sooner Or Later) (45)
 밥 딜런- Positively 4th Street (45)
 밥 딜런 앤 밴드(Bob Dylan & The Band)- The Basement Tapes
 밥 말리 앤 웨일러스(Bob Marley & the Wailers)- Natty Dread
 밥 말리 앤 웨일러스- Natty Dread
 밥 말리 앤 웨일러스- Natty Dread
 밥 시거(Bob Seger)- Heavy Music (45)
 배드핑거(Badfinger)- No Dice
 밴드(The Band)- Music From Big Pink
 밴드- The Band
 밴드- The Band
 밴드- The Band
 밴 모리슨(Van Morrison)- Moondance
 밴 모리슨- Aatral Weeks
 밴 모리슨- Astral Weeks
 밴 모리슨- Astral Weeks
 밴 모리슨-Astral Weeks
 밴 모리슨- Astral Weeks
 밴 모리슨- Moondance
 밴 모리슨- Moondance
 밴 모리슨- Moondance 
 밴 모리슨-Saint Dominic's Preview
 밴 모리슨- Tupelo Honey
 밴 모리슨- Veedon Fleece
 버니 웨일러(Bunny Wailer)- Blackheart Man
 버디 할리(Buddy Holly)- Everyday (45)
 버디 할리- A Rock and Roll Collection
 버디 할리- Crying, waiting, Hoping (45)
 버디 할리- It's So Easy (45)
 버디 할리- Rave On (45)
 버디 할리- The Chirping Crickets
 버디 할리- The Complete
 버디 할리- Well All Right (45)
 버디 할리 앤 크리켓츠(Buddy Holy & The Crickets)- Oh Boy!/ Not Fade Away
(45)
 버디 헐리 앤 크리켓츠- 20Golden Greats
 버디 홀리- Legend
 버즈(Byrds)- Goin' Back (45)
 버즈- Eight Miles High (45)    텔레비젼(Television)- Marquee Moon
 버즈- Mr. Tambourine Man
 버즈- Sweetheart Of the Rodeo
 버즈- The Notorious Byrd Brothers
 버즈- The Notorious Byrd Brothers
 버즈- The Notorious Byrd Brothers
 버즈- Younger Then Yesterday
 버팔로 스프링필드- Buffalo Springfield Again
 버팔로 스프링필드- Buffalo Springfield Again
 버팔로 스프링필드- Buffalo Springfield Again
 버팔로 스프링필드- Last Time Around
 벤 모리슨- Astral Weeks
 벤 퐁-토레스(Ben Fong-Torres)
 벨 노우츠(Bell Notes)- I've Had It (45)
 벨몬츠(Belmonts)- Cigars, Acapella, Candy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 Pale Blue Eyes (45)
 벨벳 언더그라운드- Andy warhol's Velvet Underground
 벨벳 언더그라운드- Loaded   후- The Who Sings My Generation
 벨벳 언더그라운드- The Velvet Underground
 벨벳 언더그라운드-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벨벳 언더그라운드- Velvet Underground & Nico
 벨벳 언더그라운드- Velvet Underground & Nico
 벨벳 언더그라운드- White Light / White Heat
 벨벳 언더그라운드- White Light / White Heat
 보니 레이트(Bonnie Raitt)- Give It Up
 보 브루멜즈(Beau Brummels)-Laugh laugh (45)
 보비 퓰러 포어(Bobby Fuller Four)- I Fought the Law
 보스톤(Boston)- More than a Feeling (45)
 보스톤- More Than a Feeling (45)
 보즈 스캑스(Boz Scaggs)- Loan Me a Dime (45)
 볼룸즈(Volumes)- I Love You (45)
 브라이언 페리(Bryan Ferry)- In your Mind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Bom To Run (45)
 브루스 스프링스틴- Born To Run
 브루스 스프링스틴- Born To Run
 브루스 스프링스틴- Born To Run
 브루스 스프링스틴- Born To Run
 브루스 스프링스틴- Born To Run
 브루스 스프링스틴- Born To Run
 브루스 스프링스틴- Born To Run
 브류어 앤 쉬플리(Brewer & Shipley)- Tarkio 
 브린슬리 슈왈츠(Brinsley Schwarz)- The New favorites
 브린슬리 슈왈츠- New Favourites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 Blind Faith
 블러드 스웨트 앤 티어즈(Blood, Sweat & Tears)- Child Is Father to The Man
 블루 오이스터 컬트(Blue Oyster Cult)- Tyranny & Mutation
 비지스(Bee Gees)- Bee Gees First   롤링 스톤즈- Between The buttons
 비지스- Main Course
 비치 보이스(Beach Boys)- Pet Sounds
 비치 보이스- Dance, Dance, Dance
 비치 보이스- Don't Worry Baby (45)
 비치 보이스- Fun, Fun, Fun (45)
 비치 보이스- God Only Knows (45)
 비치 보이스- Good Vibrations (45)
 비치 보이스- I Get Around / Don't Worry Baby (45)
 비치 보이스- Little Deuce Coupe
 비치 보이스- Pet Sounds
 비치 보이스- Pet Sounds
 비치 보이스- Shut Down, Vol,2
 비치 보이스- Smiley Smile 그램 파슨스- GP
 비틀즈(Beatles)-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비틀즈- Abbey Road
 비틀즈- Abbey Road
 비틀즈- Abbey Road
 비틀즈- Abbey Road
 비틀즈- Beaties 4
 비틀즈- Beatles 65 킹크스- The Kink Kontroversy
 비틀즈- Beatles For Sale
 비틀즈- Hey Jude (45)
 비틀즈- Please Please Me
 비틀즈- Please Please Me/ From Me To You (45)
 비틀즈- Revoler
 비틀즈- Revolver
 비틀즈- Revolver
 비틀즈- Rubber Soul
 비틀즈- Rubber Soul
 비틀즈- Rubber Soul
 비틀즈- Rubber Soul
 비틀즈- Rubber Soul
 비틀즈- Second Album
 비틀즈- Second Album
 비틀즈-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비틀즈-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비틀즈-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비틀즈-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비틀즈-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비틀즈-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비틀즈-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비틀즈- Something New
 비틀즈- Something New / Yeah! Yeah!
 비틀즈- There's A Place (45)
 비틀즈- White Album
 비틀즈- White Album
 비틀즈- Yesterday (45)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콤퍼니 /재니스 조플린(Big Brother & the Holding
Company / Janis Joplin)- Cheap Thrills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콤퍼니 / 제니스 조플린- Cheap Thrills
 빅 스타(Big Star)- Radio City
 빌리 조엘-The Stranger 스티비 원더- Fignertips Pt.2 (45) 
 빌 킹(Bill King)
 사운드트랙(Soundtrack / Mick Jagger Plus Various Artists)- Perfomance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 Bridge over Troubled Water (45)
 사이먼 앤 가펑클- Bookends
 새비지 로즈(Savage Rose)- Trvelin'
 샌디 데니(Sandy Denny)- Fotheringay
 샘 쿡(Sam Cooke)- You Send Me (45)
 샘 쿡(Snm Cooke)- You Sind Me (45)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God Save the Queen (45)
 섹스 피스톨즈- Anarchy in the U.K (45)
 섹스 피스톨즈- God Save The Queen (45)
 섹스 피스톨즈- Never Mind the Bollocks
 섹스 피스톨즈- Never Mind the Bollocks...
 셀 카간(Shel Kagan)
 수잔 엘리엇(Susan Elliot)
 슈렐즈(Shirelles)- Tonight's The Night (45)
 슈프림즈(Supremes)- Back in My Arms Again (45)
 슈프림즈- Come See about Me (45)
 스모키 로빈슨 앤 미러클즈(Smokey Robinson & the Miracles)- Ooo Baby Baby
(45)
 스모키 로빈슨 앤 미러클즈- Tracks of My Tears (45)
 스왐프 도그(Swamp Dogg)- Total Destruction to Your Mind
 스탄 수처(Stan Soocher)
 스투지스(Stooges)- Funhouse
 스투지스- I Wanna Be Your Dog (45)
 스트럽즈(Strawbs)- Dragonfly
 스티브 로젠(Steve Rosen)
 스티븐 리어(Steven Rea)
 스티븐울프(Strppenwolf)- Born To Be Wild (45)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Talking Book
 스티비 원더- Music of My Mind
 스티비 원더- Talking Book
 스틸리 댄(Steely Dan)- My Old School (45)
 스틸리 댄(Steely Dan)- Pretzel Logic
 스틸리 댄-Aja 
 스틸리 댄- Royal Scam
 스푸키 투스(Spooly Tooth)- Spooky Two
 스피릿(Spirit)- Spirit
 스피릿- Twelve Dreams of Mr. Sardonicus
 슬라이 앤 패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 Stand!
 시트레인(Seatrain)- Seatrain
 써 더글라스 퀸텟(Sir Douglas Quintet)- Together After Five
 써틴스 플로어 엘리베이터즈(Thirteenth Floor Elevators)- Easter Everywhere 
 씨 씨 알(Creedence Clearwater Revival)- The Best Of (20 Super Hits)
 씨 씨 알- Proud Mary (45)
 씬 리지(Thin Lizzy)- Jailbreak
 아래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 
 아레사 프랭클린- A Natural Woman (45)
 아레사 프랭클린- Respect (45)
 아서 브라운(Arthur Brown)- Crazy World of Arthur Brown
 아이크 앤 티나 터너(Ike & Tina Tuner)- River Deep, Mountain High
 알 그린(Al Green)- Al Green Gets Next to You
 알 그린- You Ought To Be with Me (45) 
 알란 로맥스(Alan Lomax)- Southerm Folk Heritage Series
 알 스튜어트(Al Stewart)- Year of the Cat
 애니멀즈- It's My Life (45)
 야드버즈(Yardbirds)- Shapes of Things (45)
 야드버즈- Rave Up
 에드가 프로즈(Edgar Froese)- Ypsilon and Malaysian Pale
 에머슨, 레이그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 Brain Salsad Surgery
 에벌리 브라더스(Everly Bros)- Bird Dog (45)
 에벌리 브라더즈(Everly Bros.)- History
 엘비스 코스텔로(Elves Costello)- My Aim Is True
 엘비스 코스텔로- My Aim Is True
 엘비스 코스텔로- My Aim Is True
 엘비스 코스텔로- My Aim Is True
 엘비스 코스텔로- This Year's Model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Elvis-TV Special
 엘비스 프레슬리- Blue Christmas (45)
 엘비스 프레슬리- Elvis' Golden Records
 엘비스 프레슬리- For LP Fans Only
 엘비스 프레슬리- Heartbreak Hotel (45)
 엘비스 프레슬리- Hound Dog / Do'nt be Cruel (45)
 엘비스 프레슬리- Sun Sessions
 엘비스 프레슬리- Was The One / Heartbreak Hotel (45)
 엘튼 존(Elton John)- Greatest Hits
 엘튼 존- Goodbye Yellow Brick Road
 엘튼 존- Goodbye yellow Brick Road
 엘튼 존- Rock Of The Westies
 예스(Yes)- Close to the Edge
 예스- Fragile
 예스-The Yes Album
 오 제이스(O' Jays)- Ship Ahoy
 오티스 레딩(Otis Redding)- (Sittin'On) The Dock Of The Bay (45)
 오티스 레딩- (Sittin's) The Dock of The Bay (45)
 오티스 레딩- The Otis Redding Dictonary of Soul
 올맨 브라더즈 밴드(Allman Brothers Band)- At the Follmore East
 올맨 브라더즈 밴드(Allman Brothers Band)- Ramblin' Man (45)
 와일드 체리(Wild Cherry)- Play That Funky Music White Boy (45)
 와일드 추피툴러스(Wild Tchoupitoulas)- Wild Tchoupitoulas
 윙스(Wings)- Band on The Run  후- Tommy
 유 에스 본드(U.S.Bond)- Qrarter to Three (45)
 이글스(Eagles)- One Of These Nights
 이글스- Hotel California
 이글스- Hotel California
 이글스- New Kid in Town (45)
 이글즈- Take It to the Limit (45)
 이기 앤 스투지스(Iggy and the Stooges)- Raw Power
 이기 앤 스투지스- Raw Power
 이기 앤 스투지스- Raw Power
 이기 앤 스투지스- Raw Power
 이노(Eno)- Before and After Science
 이노- Another Green World
 이노- Another Green World
 이노- Before And After Science
 이노- Here Comes The Warm Jets
 이노- here Come The Warm Jets
 이노- Here Come the Warm Jets   닐 영- Zuma
 이언 메츄스(Ian Matthews)- Plainsong
 자니 리버스(Johnny Rivers)- Rewind
 자니 심발(Johnny Cymbal)- Mr. Bass Man (45)
 잭슨 브라운- For Everyman
 잭슨 브라운- Jackson Browne
 잭슨 브라운- Late For The Sky
 잰 앤 딘(Jan & Dean)- Dead Man's Curve (45) 
 잰 앤 딘- Golden Hits, Vol2
 제네시스(Genesis)-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제네시스-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제니시스-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 Lewis)- Great Balls of Fire (45)
 제리 리 루이스- Ole Tyme Country Music
 제리 리 루이스- The Greatest Live Show On Earth
 제리 리 루이스-Whole Lotta Shakin' Goin' On (45)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Live At The Apollo
 제임스 브라운- Live at the Apollo
 제키 드 셰논(Jackie De Shannon)- Jackie
 제토로 툴(Jethro Tull)- Benefit
 제트로 툴(Jethro Tull)- Stand Up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 After Bathing at Baxter's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 After Bathing at Boxter's
 제퍼슨 에어플레인- Volunteers
 제프리 워커(Jeffrey Walker)
 제프 백 그룹(Jeff Beck Group)- Truth
 제프 백 그룹- Blow By Blow
 제프 백 그룹- Truth   제프 백 그룹- Beck-Ola
 젠틀 자이언트(Gentle Giant)- Free Hand
 조니 미첼(Joni Mitchell)- Hissing of Summer Lawns
 조니 미첼- Court And Spark
 조니 미첼- Joni Mitchell
 조안 루소(Joanne Russo)
 조 카커(Joe Cocker)- Joe Cocker
 존 레논(John Lennon)- Plastic one Band
 존 메이율- 에릭 클랩튼(John Mayall with Eric Clapton)- Bluesbreakers
 존 서덜랜드(Jon Sutherland)
 존 케일- Paris 1919
 존 케일- Paris 1919
 좀비스(Zombies)- Odyssey and Oracle
 즈웰즈(Jewels)- Hearts Of Stone (45)
 지노 와싱톤(Gino Washington)- Gino Is a Coward (45)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Electric Ladyland
 지미 헨드릭스- Are You Experienced?
 지미 헨드릭스- Are You Experienced?
 지미 헨드릭스- Are You Experienced?
 지미 헨드릭스- Axis! Bold as Love
 지미 헨드릭스- Electric Ladyland
 지미 헨드릭스- Electric Ladyland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Are You Experienced?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Are you Experienced?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Electric Ladyland
 진 피트니(Gene Pitney)- Every Breath I Take (45)
 짐 아이킨(Jim Aikin)
 짐 크로치(Jim Croce)- Photographs & Memories
 챈텔즈(Chantels)- The Chantels   코ㅅ터즈- Run, Red, Run (45)
 척 베리(Chuck Berry)- Golden Decade
 척 베리- Chuck Berry's Golden Decade
 척 베리- Chuck Berry is On Top
 척 베리- Golden Decade
 척 베리- Johnny B.Goode (45)
 체트 플리포(Chet Flippo)
 치폰즈(Chiffons)- One Fine Day (45)
 칼레이도스코프(Kaledoscope)- Bacon from Mars
 캐롤 킹(Carole King)- Tapestry
 캐롤 킹- Tapistry
 캔 터커(Ken Tucker)
 캡틴 비프하트- Lick My Decals Off. Baby
 캡틴 비프하트-The Spotlight Kid
 커트 로더(Kurt Loder)
 커티스 리(Curtis Lee)- Pretty Little Angel Eyes (45)
 케빈 에이어스(Keven Ayers)- The Confessions of Dr. dream and Other
Stories 
 케이 시 앤 선샤인 밴드(K.C. & the Sunshine Band)- K.C. & the Sunshine
Band
 케이 앤 테리 우즈(Gay & Terry Woods)- Rejoyce
 켑틴 비프하트(Captain Beefheat)- Trouk Mask Replica
 켓 스티븐스(Cat Stevens)- Tea for the Tillerman
 코스터즈(Coasters)- Greatest Hits
 퀵실버 메신저 서비스(Quicksilver Messenger Service)-Quicksilver Messenger
Service
 퀵실버 메신저 서비스- Quicksilver Messenger Service
 크로스비, 스틸즈 앤 내시(Crosby, Stills & Nash)- Crosby, Stills & Nash
 크로스비, 스틸즈 앤 내시- Crosby, Stills & Nash
 크로스비, 스틸즈 앤 내시- Crosby, Stills and Nash
 크리스탈즈(Crystals)- Da Da Ron Ron (45)
 크리스탈즈- He's a Rebel (45)
 크리스탈즈- He's A Rebel (45)
 크리켓츠/ 버디 홀리(Crickets/ Buddy Holly)- The Chirping Crickets
 크림(Cream)- Wheels of Fire
 크림- Desraeli Gears
 크림- Wheels of Fire
 클래시(Clash)- The Clash (U.K.CBS)
 클래시- The Clash
 클래시- The Clash
 클레어렌스 헨리(Clarence Henry)- But I Do (45)
 킹 크림슨-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킹 크림슨-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킹크스(Kinks)- Fane To Face
 킹크스- Arthur (Or Decline and Fail of the British Empire)
 킹크스- Arthur(Or The Decline and Fall of the Birtish Empire)
 킹크스- Face To Face
 킹크스- Face to Face
 킹크스- Greatest Hits
 킹크스- Something Else
 킹크스- The Kink Kontroversy
 킹크스- Waterloo Sunset (45)
 킹크스- waterloo Sunset (45)
 킹크스- Waterloo Sunset (45)
 킹키 프리드맨(Kinky Friedman)- Sold American
 탐 러쉬(Tom Rush)- Circle Game
 탬즈(Tams)- I've Been hurt (45)
 텐 씨씨(10CC)- Sheet Music
 토드 런드렌(Todd Rundgren)- something / Anything
 토비 골드스타인(Toby Goldstein)
 트래픽(Traffic)- Traffic
 트래픽- Traffic
 트레시멘(Trashmen)- Surfin' Bird
 트레픽- Mr. Fantasy
 티 렉스(T-Rex)- Jeepster (45)
 팀 버클리(Tim Buckley)- Starsailor
 팀 하딘(Tim Hardin)- Tim Hadin I
 파운데이션즈(Foundations)- Build Me Up Buttercup
 파이어사인 씨어터(Firesign Theatre)- How Can Yoou Be in Two Places at
Once 
 패티 스미스- Horses
 퍼시 슬레지(Percy Sledge)- when a Man Loves a Woman (45)
 페어포트 컨벤션(Fairport Convention)- Unhalfbricking
 포 탑스(Four Tops)- I Can't help Myself 945)
 폴 리비어 앤 레이더스(Paul Revere & the Raiders)- Kicks (45)
 폴 매카트니 앤 윙스(Paul McCartney / Wings)- Band On The Run
 폴 사이먼(Paul Simon)- There Goes Rhymin' Simon
 폴 사이먼- There Goes Rhymin' Simon
 프랭크 자파(Frank Zappa)- Apostrophe
 프레드 닐(Fred Neil)- Little Bit of Rain
 프렐루드(Prelude)- After the Gold Rush (45)
 프로컬 하럼(Procol Harum)- Shine On Brightly
 프로콜 하럼(Procol Harum)- A Whiter Shade of Pale (45)
 프로콜 하럼- Procol Harum
 프로콜 하롬- Broken Barricades
 프리(Free)- Free at Last
 프리- Free Live
 플래밍고스(Flamingos)- I Only Have Eyes for You (45)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n)- Rumours
 플리트우드 맥- Rumours
 피터 노블러(Peter Knobler)
 핑크 플로이드- Piper at the Gates of Dawn
 할리스(Hollies)- I Can't Let Go (45)
 할리스- Hear! Hear!
 할리스- Sorry Suzanne (45)
 행크 발라드 앤 미드나이터즈(Hank Ballard & the Midnighters)- Spotight on
hank Ballard
 호세 펠리치아노(Jose Feliceano)- Light My Fire (45)
 홀 앤 오츠(Hall & Oates)- Abandoned Luncheonette
 후(The Who)- Tommy
 후- I Can See For Miles (45)
 후- The Who's next
 후- The Who Sell Out
 후- The Who Sell Out
 후- The who Sings My Generation
 후- The Who Sings My Generation
 후- The Who Sings My Generation
 후- Who's Next
 후- Who's Next
 후- Who's Next
 후- who's Next
 후- Who Sell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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