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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에서의 문화의 의미

by Casey,Riley 2023.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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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정치학에서의 문화의 의미












1. 머 리 글

정치학은 문화를 연구하기 위한 학문은 아니다. 그러나 문화라는 삶의 거의 모든 
형식을 포괄하는 범주는 어떠한 학문도 피해갈 수 없으며 정치학 또한 문화와 부
단히 접촉하고 나름대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얘기해 왔다. 그러나 정치학의 경우 
문화와의 관계가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근대서구의 정치논술이 
태어나고, 한때 번창하고, 변신하고 나아가 지금의 복잡한 정체(正體)를 갖게 된 
것은 문화와의 끈질긴 인연 때문이었으며 어쩌?
???인류학
등의 학문분야에서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정치학자들의 공도 컸
을 것이다.
영어권에서 문화(culture)라는 말을 ‘땅을 간다’, ‘농사짓는다’는 원래의 의
미 외에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옥스포드 사전에 의하면 17세기 영국의 정치사상가 홉
스(Hobbes, Thomas)였다. 한편 처음으로 사회과학에서 의미하는 문화의 여러 요소
에 대하여 사회과학적으로 논의한 사람 역시 18세기 중반의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
스키외(Montesquieu, Baron de)였다. 정치학과 문화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초보적 
사실은 ‘문화’라
역사와 더불어 이와 연관된 정치학의 기구한 운명을 여
실히 드러낸다. 홉스가 『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한 차례 사용한 ‘문화’(c-
ulture)라는 말은 현대 사회과학적 의미가 아니라 인간이 오성(悟性)과 이성에 이
르는 육체적, 지적 양육이라는 뜻으로, 오히려 일상용어에서 ‘문화가 있다’, ‘
문화가 없다’, ‘높은 문화 수준’ 등의 말에서 의미하는 양육과 가까운 의미라 
할 수 있다. 한편 몽테스키외는 1748년에 출판된 『법의 정신』(L?sprit de lois
)에서 기후, 토양, 일반적 정신, 도덕, 관습, 상업, 종교 등이 법에 미?
향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몽테스키외는 ‘문화’(culture)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았지
만 19세기 후반 타일러(Tyler, Edward B.) 이후 현대 사회과학에서의 문화개념의 
내용을 법과 정치와 연관지어 최초로 논한 것이다. ‘문화’에는 아직도 두 가지 
다른 뜻이 존재하며 이 중 전자는 17세기부터 사용되어 왔다. 후자의 경우 그 내
용은 18세기 중엽부터 논의되어 왔지만 그러한 요소들이 ‘문화’라는 말의 또 다
른 의미로 정착된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다. 근대 정치사상은 이러한 ‘문화’의 교
묘한 역사에 휘말려들어 기구한 운명을 ?
 아직도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정
치학도로서 정치학에서 연구하는 문화에 대하여 논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
며 정신적으로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은 정치학에서 또는 사회과학에서 문화를 앞으로 어떻게 연구해야 한다는 방
향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방향이 제시되기 위하여는 오랜 천착이 
있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 시점에서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역사적으로 
정치학과 문화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논하고 현재 정치학에서 문화를 논하는 방법
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는 것이면 족하다. 어쩌면
 정치학자로서 문화를 
생각해 오며 답답하게 느껴 왔던 부분을 토로하는 넋두리가 될지도 모른다. 우선 
다음 절에서는 근대서구의 정치이론과 문화의 본질적 관계를 논의하고, 다음 셋째
절에서는 근대의 과학적 정치학(political science)에서 다루는 정치문화(politica-
l culture)와 근래에 제시된 신베버주의(neo-Weberianism)의 문제점들을 토론할 것
이다. 이러한 연후에야 맺음말에서 정치학에서 문화를 새로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
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 근대 정치사상과 문화

마키아벨리(Michiavelli, Niccolo`)?
근대서구의 정치논술은 중세의 붕
괴에 의하여 즉, 문화의 중요한 부분인 종교, 기독교 교회가 사회통제 능력을 상실
하며 등장한 르네상스의 대혼란에서 살아남고 새로운 질서와 문명을 창출하려는 노
력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는 단초는 다름 아닌 폭력의 조직화와 경제적 사용이었고 
현실적으로 당시 정권은 중앙집권적 조직과 강력한 군대를 양성하며 근대국가의 
모습을 이루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폭력으로 하여금 질서와 문명을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는 흉악한 폭력을 미화할 언어를 만들어야 했고 근대서구 정치

근대국가는 다름 아닌 이 폭력을 정당화하는 체계적 언어와 행위인 것이다. 16세
기 후반 프랑스의 보댕(Bodin, Jean)이 발명한 주권(sovereignty)의 이론은 조직적
폭력을 행사하는 왕권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보댕에 따르면 주권이란 ‘절대적이며
영속적 권력’이며 이는 신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주권은 신의 순수한 너그러움에 
의해 주어진 이상 아무런 의무도 없으며 신 외에 아무에게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댕은 이러한 주장을 당시에 풍미하던 로마법의 전통과 단절하여 유태법
을 원용하여 정당화하였고 결국 왕권은 기독
?신교적 절대적 신이 그의 모
습을 본딴 대리인을 통하여 직접 다스리는 정당한 통치라는 것이었다. 나아가서 보
댕은 주권을 정치논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다시 말하면 정치논술은 공동체의 정
의나 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절대적 권력을 정확한 장소에 현실로 만들기 위한 일

었다.
17세기 중반 홉스(Hobbes, Thomas)는 보댕의 주권이론을 합리적인 근거에서 정당
화하였다. 홉스는 주권은 신이 직접 주셨다는 보댕식의 신법(神法)에 근거시키지 
않고 신이 우주를 창조한 자연법(自然法)에 근거하여 설명하였다. 권력(power)은 
신?
모든 인간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며 폭력뿐만
이 아니라 명예, 명성 등 여러 요소를 포괄한다. 권력은 인간사회의 본질적 요소이
며 따라서 신이 창조하고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인간은 자연상태
(the state of nature)에서 ‘폭력적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 인간의 삶은 비참하
고 야만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자 인간들은 어느 날 ‘이성의 순간’에 이르러 서
로 ‘계약’을 맺어 군주를 세우고 그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하기로 합의하였다
는 것이다. 이로써 권력(power)은 물리학의 힘(force)의 ?
더불어 근대서구의
사회와 우주를 창시하였다. 홉스는 사회를 주권을 정점으로 한 권력의 그물망으로 
제시하였고 모든 권력의 존재 근거는 자연법, 결국 신의 우주 창조의 원리였다. 
이른바 합리적 논리체계임을 자처하는 근대서구의 정치이론은 사실 문화의 중요한
부분인 기독교 교리, 특히 신교적(新敎的) 교리에 근거하는 것이다. 신이 주신 썩
지 않는 불변의 절대적 권력은 합리적 형식논리의 조건이었다.
전술하였듯이 18세기에 중반 몽테스키외는 현재 우리가 문화의 정의에 포함시키는
많은 요소들을 法을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 ?
括막?제시하였다. 데카르트
(Decartes, Rene?의 이성에 저항하는 경험주의에 근거한 그의 논지는 인간은 이성
적이기 이전에 감정적인 존재이며, 인간의 감정을 유발하는 각종 체액(humour, bil-
e, etc.)을 촉진하는 기후, 토양의 요소와 아울러 종교 및 인간관계의 요소는 법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몽테스키외는 이러한 요소들이 
법을 결정짓고 이성이 합리적 법을 형성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
만 장애물이 되며 현실적으로 이러한 요소에 의하여 다양한 법체제를 갖춘 정치체
가 존재하게
것이다. 결국 서구의 법은 비교적 이성이 이러한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만든 합리성을 갖춘 법이라는 것이다.
정치사상에서 문화의 요소들을 처음으로 적극적인 차원에서 논한 사람은 누구보다
도 루소(Rousseau, Jean-Jacques)였다. 루소는 당시의 사회를 타락한 것으로 보았
고 그 핵심은 ‘따지는’ 이성, ‘세고 재는’ 이성, 즉 상업주의 문화였다. 인간
은 본래 자유롭게 태어났으며 따라서 자연상태의 인간은 게으르고 평화로왔다. 그
러나 역사의 여러 과정을 통하여 특히 재산이 사회제도로 정착하며 인간은 서로를 
노예화하게 되었?
甄? 이러한 역사의 악순환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 첫째, 
새로운 사회계약이며 둘째, 자연을 통한 인간의 새로운 교육이었다. 그의 사회계
약론은 인간이 해방되기 위하여는 자연상태의 모든 자연권을 서로 완전히 포기하여
공동체에 기탁하여 완벽한 유기체적 공동체를 만들어 ‘주권’으로 하여금 국민들
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루소는 이러한 방법으로 ‘정의와 
공리(公利)’의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며 이렇듯 국민들이 주권을 형성하는 것을 
해방의 길로 제시하였다. 국민들이 하나가 되는 것은 ‘따지는’ 이성에
??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성 특히 동정심(piti?와 양심(conscience)에 근
거하여 가능하며 이를 바탕으로 일반의사(volonte?ge쳌e쳑ale)가 표출될 수 있으
며 따라서 사회는 공통의 습속과 동질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몽테스키외
가 이성의 장애물로 제시한 요소들은 도리어 이성이 발휘되어 노예상태를 벗어나는
기본적 조건으로 제시된 것이다. 결국 루소는 몽테스키외의 논지를 받아들여 이를 
다시 뒤집은 셈이며 루소는 문화의 제 요소들을 인간 해방을 위한 국가를 형성하
는 질료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애정의
사상은 곧 독일에 전파되어 헤르더(H-
erder, Johann Gottfried von)에 의하여 언어, 풍속, 혈연으로 이루어진 ‘민족’ 
개념을 형성하였다.
 프랑스 혁명 이후 19세기는 민족주의(nationalism)의 시대였다. 특히 독일의 민
족주의는 프랑스식의 ‘시민’에 근거한 보편적 민족주의에 대항하여 언어, 습속, 
혈통의 공통성을 근거로 한 독특한 ‘민족’(Volk) 개념을 개발하고 거대한 게르
만 민족을 만들어 1871년 통일을 이루었다. 나아가서 이러한 독일식 민족주의는 인
종주의적 배타적인 형태로 발달하여 전세계로 전파되어 민족주의의 ?
?活?
이루었다. 근대 정치이론은 역사적으로 18세기 후반에 ‘문화’를 포섭하면서 19
세기 후반에 엄청난 실질적인 힘을 얻은 셈이었다. 그러나 정치논술이 민족주의를 
통하여 이렇듯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을 얻자 구조적인 변화가 초래되었다. 정
치논술은 민족주의로 피지배계급의 삶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여 그들의 힘을 동원하
게 되자 이제 지식층과 지배계급의 제한된 영역을 벗어나 피지배계급의 목소리를 
듣고 결국 그들에게 정치논술의 발언권을 부여한 셈이었다. 문화의 주제는 정치논
술의 주체와 대상을 모두 변화시켰고
?결과로 인간의 인간에 의한 지배, 
정치현상 자체가 피지배자의 입에서 문제로 제기되었다.
이 시대에 이르러 이성과 교양을 양육한다는 의미의 문화(culture)라는 점잖은 말
은 현대의 사회과학에서 의미하는 어떤 민족의 삶의 모든 형태 즉, 무비판적, 습성
화된, 비이성적 모든 이질적 요소를 포함하는 쓰레기통으로 변하였다. 문화는 한편
으로 높은 교양을 의미하면서도 독특한 비(非)보편적 삶의 여러 양태들을 정당화한
것이다. 근대 정치논술의 비극은 이러한 이성에 이르기를 거부하는 비보편성에 기
독교의 신과 이성에 의하여 정?
물÷?절대적 권력의 근거를 부여하였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19세기 후반 민족주의에 따른 대중동원의 추세에서 다시 계급 
갈등이 첨예화하였고 더욱이 이데올로기(ideology) 이론의 등장은 전통적 정치논
술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문화의 주제가 민족주의 정치논술을 상대화했다면 이데
올로기 이론은 모든 정치논술의 타당성 자체를 부정하였다. 정치언어는 한편으로는
이상주의화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권력을 추구하는 현실주의로 양분되었다. 이러한 
양편의 논리는 모두 정당화의 이념으로 보여지고 이상주의는 위선으로 현실주의는
?
 등장하였다. 모든 정치논술이 무의미해진 상황은 허무주의(nihilism), 행
동주의의 모태였다. 이제 인간은 진리를 말하는 짐승이 아니었다.
 권력과 주권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서구의 정치사상은 이성(reason)과 같이 태어
났고 그 모태는 문화의 일부인 종교였다. 그러나 18세기에 등장한 문화적 요소들에
대한 논술의 주제는 인식론적 의미에서 인간에게 이성이 왜 어떠한 과정에서 형성
되지 못하는가의 문제였다. 말하자면 데카르트적(Cartesian) 이성에 대한 경험의 
변명이었다. 몽테스키외가 기후, 토양 외에 문화적 요소를 말하던 같은
?동
일한 요소들은 정신병 특히 히스테리(hysteria)의 본질적 원인으로 논의되고 있었
다. 후일 ‘문화’라는 사회과학 개념에 주된 부분으로 포섭된 요소들은 결국 포괄
적 삶의 ‘현실’로 서구철학이 설정한 이성에 대한 반대항인 셈이었다. 정치사상
에서 ‘현실주의’가 ‘이상주의’에 반대되는 것은 이러한 이념적 맥락에서 이루
어진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화적 요인들은 근대서구의 ‘이성-미침의 연관’(reas-
on-madness nexus) 사이의 공간에 유동적인 요소로 제기된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17세기에 문화의 요소인 종교교리의 ?
抉봇?근거한 정치이론이 다시 18세
기 후반에 비이성의 문화요인을 포섭했다는 것은 어쩌면 고전적 비극에서 이미 익
숙한 얘기다. 그가 동침한 상대는 바로 그의 어머니였고 이 사실은 한 세기 후에 
밝혀진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정치이론은 대혼란 속에서 이상과 이념 그리고 민
주주의와 폭력 등 수많은 이질적인 요소에 휩싸이고 되었고 결국 그의 정당성은 완
전히 부인되었다. 그러자 근친상간의 벌로 근대의 정치논술은 이른바 ‘과학’이 
되어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앞을 못 보고 떠돌게 되었다.


3. 현대 정치학의 문화연구

♡천?과학으로서의 정치학(political science)은 정치사상이 처한 위
기로부터의 탈출구였으며 전통적 정치사상의 전통이 비교적 약했던 미국에서 발달
하였다. 이른바 ‘시카고 학파’는 이 운동의 기수였다. 단적으로 과학적 정치학의
출발은 인간 사회의 권력현상을 ‘남의 일처럼’, ‘애정도 증오도 없이’ 주어진 
현상으로 보고 관찰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실주의의 철학적 기초는 바로 문화
론부터 출발하여 이데올로기 이론에서 명문화된,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 아니다.?
??명제였다. 인간의 진실은 이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활동, 노동, 
투쟁에 있으며 지식은 인간의 직관적, 지적 행위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소외시킨 ‘과학적 방법론’으로만 가능하다는 19세기 말의 철학적 흐름은 정치에
대한 논술의 형태를 바꾸게 되었다. 과학적 정치학은 허무주의의 제도화에 다름 아
니었다.
정치현상을 진정으로 ‘남의 일’로 보기 위하여는 대상의 형식적 객체화(objecti-
fication)를 필요로 하였다. 19세기 전반까지의 정치논술은 사회계급간의 거리를 
두고 합리성을 유지하였지만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이러한 거리가 유지될 수 없었
다. 더욱이 자?
 사회에 대하여 얘기해야 하는 전통을 지닌 정치학의 경우 
인류학(anthropology)처럼 전혀 생소한 땅에 가서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
개울 건너’ 엿보듯 관찰할 수도 없었다. 정치학의 과학화는 심리학(psychology)과
행태과학(behavioral science)의 범례를 따라 이루어졌다. 첫째, 자신이 사는 사회
전체에 대한 관찰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개인을 분리하여 관찰하였고, 둘
째, 과학적 방법론을 통하여 이상적 지식 주체를 형성함으로써 가능하였고 이는 자
연스럽게 행태주의(behaviorism)로 귀결되었다. 행태란 한 마디로 ?
tion)에
서 의미(meaning)를 제거한 외부 관찰에 의해 포착되는 모습을 지칭하며 따라서 의
미의 언어는 들을 가치가 없다는 관념과 객체화의 논리와 같이 연유되는 것이었다.
또한 의미를 문제삼지 않는 이상 이해(understanding)란 의미 없는 것이며 이러한 
연구는 다만 예측(prediction)의 게임으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방법론에 따라 초
기의 정치학은 행태주의 심리학의 이론과 방법론에 의존하게 되었다. 2차세계대전 
이전의 행태주의 초기 단계에서 정치학은 문화를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문화가 정치학의 연구대상으로 1960년대 초?
?것은 이른바 비교정치(compa-
rative politics)의 맥락에서였다. 비교정치는 물론 학문의 자연스러운 영역일 수 
있으나 실제로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세계질서의 형성이라는 실질적인 국가정
책의 일환으로 각광받게 되었다. 냉전 상황에서 미국은 신생독립국을 친미, 자유주
의 정권으로 만들어야 했고 나아가서 이러한 질서의 안정성을 위하여는 국민의 동
의와 참여에 근거한 민주주의로 조직되도록 해야 한다는 정책목표를 수립하였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신생국의 민주화의 길잡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여겨진 비교정
치연구를 적?
 지원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 나라들의 정치를 이해하기
위하여 각국의 특수성을 넘어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틀(framework)이 필요하
였고 1950년대 초에 제시된 이스턴(Easton, David)의 정치체계(political system)
이론은 오랫 동안 정치학의 파라다임이 되었다. 이러한 틀을 준거점으로 바람직한 
민주주의적 방향으로 정치가 변화되는 과정을 ‘정치발전’(political developmen-
t), 더욱 포괄적으로는 사회문화 전체가 변화되는 과정을 ‘근대화’(modernizatio-
n)라 하였다. 나아가서 비교정치에서 정치문화론이 등장한 것?
의 세계질서 
형성의 경제주의적 낙관주의가 좌절되면서 경제발전과는 달리 정치적 민주화는 독
자적인 차원의 문제라는 점이 인식되면서부터였다. 단적으로 “왜 어떤 나라들은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미국처럼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
이 이러한 연구로 시도된 것이며 이에 그간 여러 인접학문에서 발달된 이론들이 원
용되었다. 정치체계론은 사회학에서 파슨스(Parsons, Talcott)가 정립한 사회체계
론(social system)을 원용하여 사회체계의 하위체계(sub-
system)로 제시되었고 정치문화에 대한 실질적인 영감은
?Ruth Benedict)
를 위시한 민족성론(民族性論)에서 얻었다. 일본인 포로들에 대한 관찰에서 얻어진
베네딕트의 연구와 정치문화론의 역사적 맥락은 가히 정치문화론의 성격을 드러내
는 것이다.
1963년에 출판된 알몬드와 버바(Almond, Gabriel & Verba, Sidney)의 『시민문화?
?Civic Culture)는 정치문화론의 대표적 저서였다. 여기에서 정치문화는 일반적으
로 다음과 같이 정의되었다. 즉, 정치문화란 “정치과정(political process)에 질
서와 의미를 부여하고 정치체제(political system)내의 행태를 지배하는 기저의 가
정과 규칙을
?일련의 태도, 믿음, 그리고 감정”을 뜻한다. 또한 이 정치
문화는 “정치적 이상(political ideals)들과 정치체를 움직이는 규범을 포함한다.
정치문화는 그리하여 정치에서의 심리학적(心理學的), 주관적(主觀的) 차원들의 집
합적인 형태로 발현된 것이다.” 나아가서 정치문화연구는 “정치 이데올로기, 민
족적 에토스(ethos)와 정신, 그리고 국민적 정치심리 그리고 민족들의 본질적 가치
” 등의 오래된 개념들을 좀더 명쾌하고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덧붙이고 있다. 정치문화에 대한 연구는 결국 행태주의의 연장?
도되었고 방
법론적인 목표는 행태주의와 정치체계론의 통합의 시도였으며 이론적으로는 심리학
적 이론으로부터 사회학적 이론을 연관시키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형태의 정치문화연구에 대한 비판은 수없이 쏟아졌는데, 그 중 가장 중요
한 부분만 몇 가지 논의해 본다. 이러한 설문지와 인터뷰를 통한 행태주의적 관찰
의 현실적인 첫 번째 문제는 연구의 가설이 제대로 세워졌는가의 문제이다. 정치문
화의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지적된다. 첫째, 정치의 범위와 기능, 둘째, 
권력과 권위의 개념, 셋째, 정치적 통합, 넷째, 정치?
〉湧?지위, 다섯째,
결과의 평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정적 차원을 포함한다. 이러한 종류의 가설들은 
‘직관적’으로 즉, ‘날림으로’ 세워졌다는 비판은 그래도 정치문화론을 옹호해
보려는 행태주의적 입장에서 제기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들은 미국의 민주주의 
정치제도에 대한 통속적 이론에서 무비판적으로 빌려 온 것이며 각 나라 문화의 
특이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세운 그야말로 태평양 건너에서 상상한 모습에 
불과한 것이다. 단적으로 이러한 가설들은 연역적으로 정치문화연구의 목적으로 
제시한 미시적 차원의 개인
행태와 거시적 차원의 정치체계를 연관시키려는
시도를 그대로 반영한다. 즉, 정치문화란 간단히 말해서 정치체계 모델의 각 부분
에 대한 개인들의 태도에 다름 아니다. 우선 무엇보다 독자적인 ‘하위문화’(sub-
culture)로서의 ‘정치문화’(political culture)라는 대상체의 설정은 정치문화론
의 지적 적빈(赤貧)을 드러낸다. 정치가 사회의 다른 영역 즉 경제, 종교 등으로부
터 분화(differentiation)되어 세속적(secular)인 영역으로 성립되는 것은 근대서
구 정치의 특징적인 현상이며 이러한 특정한 문화현상에서 일반 가설을 도출한
痼?문화에 대한 무식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나아가서 이러한 정치문화이론은
분화된 세속적 정치가 발달된 정치라는 시대착오적 사회진화론에 근거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정치문화론이 이전에 문화적 요소의 등장과 같은 맥락에서 이
루어졌음을 확언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정치문화론은 다름 아닌 이전의 정치사상의 
문화론의 ‘비이성’의 옛 망령이 돌아온 것이다. 스스로 ‘문명’임을 자처하는 
미국의 민주주의와 ‘고급문화’임을 자처하는 과학적 정치논술은 신생 ‘야만’
국들에서 다시 ‘비이성’을 발견한 것이다. 바
??이유에서 많은 사람들은 
정치문화론이 등장하자마자 ‘유레카!’를 외쳤고, ‘정치문화’라는 말은 정치학
자 외에 모든 지식인 층에서 세계정치의 모든 비민주적 현상을 설명(?)하는 전가의
보도로 쓰여졌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의 문제가 단순히 이론의 체계적 연구로 해결될 수 없음은 다
음의 행태주의 방법론 자체의 문제에서 드러난다. 문제는 개인화를 통하여 정치문
화의 분석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말하자면 문화란 사회적으로 존재하며 개인은 
문화의 주체도 단위도 아니다. 정치문화론자들도 정치문화연구는 심리학적 차원
繡峠纛?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으로 고립된 응답자가 솔직히 대답할 것인
가, 무책임하게 아무런 대답이나 할 것인가, 진실을 숨길 것인가, 또는 설문지나 
인터뷰를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기회로 삼을 것인가는 사회문화가 규정하는 사항
일 수도 있다. 즉, 개인으로서의 행동과 표현은 문화가 규정하는 영역일 수 있으며
이러한 경우 연구자는 문화에 기만당하게 된다.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 응답자 개인
을 다루는가에 따라 현격한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베네딕트(Benedict, 
Ruth)의 고전적 연구는 전쟁포로 상태에 있는 일?
?관찰함으로써 일본인들
이 포로라는 상태에서 보인 특이한 행태를 일본의 특이한 문화로 제시하였다. 푸코
(Foucault, Michel)는 『성의 역사』에서 서구인들은 심문의 역사를 통하여 ‘고백
하는 짐승’이 되었다는 것이다. 비서구인들은 설문조사나 인터뷰의 과정에서 고백
의 해방감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고, 결코 고백하지 않을지도 모르며 고백이란 전
혀 다른 상황에서만 가능할 수도 있다.
이러한 행태주의적 정치문화론의 문제는 객체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으며 과학적 
방법론이 연구자 자신에게 갖는 의미 즉, 주체에도 존재한다.
법론이란 본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알고 있다고 느끼는
것을 인식, 증명하거나 어떤 이론을 논박하기 위한 것이다. 엄격히 말해서 과학방
법론 자체는 지식을 획득하는 행위가 아니다. 초기의 실증주의(positivist) 사회과
학자들의 문제의식은 이론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고 그들의 방법론은 너무 많은 이
론들을 청소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들의 세계관은 몇 개의 간단한 대이론이 상부에
존재하고 중간권의 이론이 그 밑에 있고 다시 하위의 이론들을 만들어 이론의 피라
미드를 조직하는 것이었다. ?
 이론이란 도구에 불과하였고 그들은 이론의 
처형자들이었다. ‘이론은 논박 가능(refutable)하여야 한다.’는 실증주의의 대
명제는 이론가들에게 ‘모두 형틀에 대고 목을 늘려라.’는 명령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연구에 가설로 쓰이는 명제는 마르크시즘(Marxism)과 같이 
없애고, 복수하고자 하는 이론이 아니면 어느 기존의 이론에서 밀수한 것이던지, 
어떤 과정을 통하여 얻은 편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학방법론은 편견을 체계
화한다. 과학방법론은 문화연구의 어떤 단계에서 사용할 수는 있지만 과학방법론을
믿
연구를 진행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최근에 부상하는 부르디외(Bourdieu
, Pierre)의 문화연구는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연구가 성공
한 배경은 인터뷰 전에 준비된 이론적 연구와 일상생활의 민감한 관찰에 있었던 것
이며 통계수치는 다만 자신과 독자들에게 그의 이론의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한 도
구에 불과했다. 과학방법론은 단적으로 특이한 문화적 ‘게임’의 일부이다.
1960년대의 정치문화론은 결국 ‘헌 술을 새 부대’에 담은 것에 불과하다는 강평
은 정당한 것이었다. 과학적 방법론은 이데올로기 이론의 ?
따른 것이었다. 
전통적인 정치논술의 타당성이 부정된 상황에서 논술의 새로운 권위를 시도한 것
이며 결코 새로운 전에 논의되지 않았던 발견을 하자는 시도였다고 볼 수는 없다. 
새로운 권위를 되찾는 방법은 주체와 객체의 거리를 명시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하
여 과학적 방법론이 동원된 것이다. 과학적 정치학의 일차적인 목표는 전통적 정치
논술을 부정했던 이론들에 복수하는 것이었다. 정치문화론은 ‘야만’과 ‘비이성?
??확인하는 행위였고, 정치문화를 운운하는 것은 설명이 아니라 그저 결정론적 
단언에 불과하였다. 사회화
ization)의 문제도 이러한 상황을 개선할 여지
는 없다. 근대 정치사상이 비극적 운명을 안고 문화를 보았다면 1960년대에 과학적
정치학은 과학방법론의 본질적 제약으로 말미암아 문화를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정치학자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은 끝나지 않았고 행태주의적 정치문화론이
실패하자 다른 방향에서 문화의 연구가 시도되었다. 새로운 선택은 역사로 돌아가
는 것이었다. 즉, 개인화를 통한 연구가 실패하자 정치학자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 냉정한 마음으로 거리를 갖고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역사의 시점에 설정하여 관
찰을
눼? 이러한 움직임은 결국 1970년대에 ‘신베버주의’(neo-Weberiani-
sm)로 나타났다. 신베버주의란 정의하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간단히 베버(Weber, Ma-
x)의 연구에서 몇 가지를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행태주의자들에 반대하여 역사가 주요한 연구대상이 된다는 점이 가장 큰 특
징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서 행태주의적 비역사적 비교정치연구에 반대하여 많은 
학자들은 정치행태는 결국 민족국가의 제도와 조직이 역사적으로 형성하는 것이며
국가의 형성과 발달이 연구의 일차적 대상이 되어야 한
痼潔駭? 따라서 베버
가 제시한 지배(Herrschaft, domination)사회학의 틀에 따라 국가조직의 발달은 중
요한 연구대상이 되었다. 또한 국가 외에 사회적 행위자의 역사적 형성의 문제가 
주요 연구대상으로 제기되었다. 전형적으로 사회 계급집단이 어떠한 과정으로 단
일한 행위주체가 되는가에 대한 연구는 마르크시스트적 계급론에 반대되는 시각에
서 활발히 진전되어 왔다.
신베버주의에 대한 비판은 일차적으로 그들은 베버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선 
틸리(Tilly, Charles)를 비롯하여 그들의 분석은 베버와 같이 다면적인 시각을 ?
?않고 오히려 베버에서 자의적으로 몇 가지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신베버주의자들은 실제로 국가관료주의의 발달, 노동자조직, 농민조직을 설명하는 
데 있어 주로 ‘자원’(resources)을 중심으로 접근하였다. 이 자원이란 주로 인
력, 재정 등의 물질적인 또는 물질화된 요소를 포함하며 이러한 방식의 객체화의 
목적은 경제학적 틀로 객관적인 차원에서 합리적 전략적 분석을 가능하게 하기 위
함이었다. 문제는 당연히 이러한 방법으로 대상을 설정하는 것은 문화적 측면을 사
장하고 베버의 합리성을 경제학 논리로 귀착시키는
? 즉 ‘자원’을 대상으
로 삼은 것은 베버의 방법론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보다 확실한 경제학적 형식논
리로 확실성을 기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베버주의 연구에서 경제적 측면이 부각되
고 문화적 측면이 희생된 것은 행태주의의 문제와 유사한 문제라 보여지며 아직 신
베버주의는 행태주의의 ‘과학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이다.
나아가서 신베버주의자들은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 베버의 경우와는 달리 역사적 
방법론을 따른다. 역사학은 엄격한 사료(document)의 취급과 사용을 근거로 그의 
과학적 확실
洋磯? 역사학을 따른다는 것은 한편 역사학으로부터 확실성
의 도움을 받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사료의 존재 여부에 따라 접근 가능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역사학 방법론은 사료가 존재하지 않다거나 신빙성이 결여되
는 분야는 접근할 수 없으며 접근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료
가 말하는 바가 다른 사료가 없다면 바로 지배적인 현실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결
국 문화의 연구에 있어서 역사학 방법론의 문제는 과학방법론의 문제 못지않게 심
각한 한계를 드러낸다. 사료란 어떤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개인적 ?
도의 요구
에 따라 특정한 목적을 갖고 남에게 특히 후대에 보여 주려고 쓴 것이며, 따라서 
문화의 산물이며 오히려 ‘문명’적인 것이다. 사실 경험적으로 어느 사회에서도 
대부분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은 기록되지 않는다. 일상적 삶은 기록만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은 역사학의 미신이다. 현재에도 기록되는 정부의 문서나 대중 매체의 
뉴스나 또는 어떤 개인의 일기나 우리의 삶의 지배적 모습이라 볼 수는 없으며 다
만 모습의 일부일 뿐이다. 많은 경우 중요한 문서는 의도적으로 파기되기도 한다. 
결국 역사 방법론에 의한 역사연구?
회의 일부, 그들이 후대에 보여 주려고
했던 부분만을 보게 되는 것이며 이는 문화연구라기보다는 문화의 전시적 부분 또
는 찬란한 문명연구로 귀착된다. 신베버주의자들의 역사를 통한 문화연구는 사실 
문화연구라기보다는 
문명연구에 가까우며 문명연구 중에도 고고학적 상상력과 미학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신베버주의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왜 베버가 당시에 자신의 특이한 방
법론을 개발하게 되었는가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베버가 당시 역사학자
들과 논쟁을 벌이고 다시 경제학자와 논쟁을 벌이고, 역사학
 방법론을 모
두 거부하고 결국은 이상형(ideal type)을 만들고 감정이입(empathy)를 동원하는 
애매모호한 독창적 방법론으로 귀착한 이유는 ‘문화’라는 연구대상의 특수성을 
고려한 때문이었다 보여진다. 베버의 사회과학 방법론에 대한 연구는 그간 수없이
많았지만 결국 지적 유희에 머물렀고 그 애매함을 이유로 아무도 현실적으로 적용
한 사람은 없었다. 신베버주의자들 또한 베버의 방법론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
고 결국 과학적, 역사학적 방법론을 선택함으로 인하여 문화라는 특수한 대상을 제
대로 관찰할 수 없었다. 재삼 ?
 과학적, 역사학적 방법론은 지식의 타당성
을 얻기 위한 논쟁이라는 특수한 상호 교신 행위를 위한 도구이며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은 아닌 것이다.


4. 맺 음 말

역사적으로 문화의 연구는 단순히 과학적 호기심으로 이루어져 온 것은 아니었고 
현재에도 중대한 사회적 실천의 문제를 함의한다. 위에서 근대 정치사상의 옛 이
야기를 길게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측면을 정치학의 운명을 빌어 보여 주기 위함이
다. 현재 문화연구를 논하는 것은 의도하지 않는다 하여도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실천적 함의를 갖는다.
정치는 문?
 또한 정치학도 문화의 일부이다. 특히 후자는 서구 문명 
특유의 ‘고급문화’의 일부이다. 그러나 어떤 사회에서는 정치와 정치학이 자신
이 스스로 문화의 일부임을 거부하고 사회 밖에, 신의 세계에 있다고 착각한다. 정
치권력이 신의 세계와 연관되는 것은 흔히 있는 현상이지만 정치에 대하여 말하는 
정치사상까지 신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근대서구의 특이한 문화현상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근대서구의 정치와 정치사상은 이러한 환각에서 태어났다. 이상은 새로
운 기독교 교리를 통하여 권력과 주권을 만들고, 다시 사상은 ‘자연?
발견하
는 이성을 대표하고, 신의 존재는 이성의 존재를 통하여 증명되었다. 서구에서 정
치가 ‘세속적’(secular)이라 함은 교회로부터 분리되어 이성과 같은 영역에 있다
는 뜻일 뿐이다. 서구의 정치와 정치사상을 갓 수입한 우리 사회는 이제 막 이 환
각을 즐기려는 판이다. 주권론은 정치권력으로 하여금 일신교의 절대적 신의 영역
에, 인간 사회 밖에 존재하도록 하였고 이성은 이에 대하여 논하는 사람들, 모든 
지식인들로 하여금 또한 보통 인간과는 다른 절대적 능력을 갖고 있다는 착각을 
주었다. 신의 세계에서 이성의 눈으로
상의 모든 복잡다단한 세계는 한 눈
에 들어오며 ‘문화’라는 개념 아닌 개념은 이러한 세계의 지평선의 이름이었다. 
근대 정치사상의 비극은 신이라는 착각 속에서 문화의 현실로 내려와 모두에게 신
성의 안수(按手)를 내렸다. 그러자 온 사회는 모두 사회 밖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
고 절대권력의 광란을 일으키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서구의 지성인들이 ‘신의 죽
음’을 내심 기대하며 동시에 두려워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였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염두에 두고 아직도 우리에게 ‘문화의 연구’는 환희의 순간을 일깨우고 
있으며
돈關?이러한 역사의 재래(再來)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에 들어와 정치학이 다시 이승을 떠나기 위해 과학적 방법론의 도움으로 
눈높이에서 문화를 보려 하였을 때 문화를 볼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화라
는 엄연한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은 매일매일 느끼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문화’
라는 포괄적 지평은 인간 경험의 눈높이에서는 관찰할 수 없는 것이다. 보편적 의
미에서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솔직하고 소박하게 이러 저러한 요소
들을 나열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현학적 ‘이성’에 의하여 체계(syst
망?st-
ructure) 등의 휴리스틱(heuristic)한 차원에서만 가능하며 이러한 추상적 구조물
에 대한 연구는 당연히 구체성을 가질 수 없고 그러한 지적 작업의 의미 또한 불분
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편적 의미를 떠나 특정한 사회의 문화에 대한 관찰은 
직관적인 차원에서 늘 있는 정당한 경험이다. 외국 사회에서 느끼는 이질적, 외국
에 오래 살다 돌아왔을 때의 ‘재발견’의 경이 등은 문화의 현실형을 일깨우는 경
험이다. 이러한 특정한 문화의 관찰은 민족지(ethnography)로 체계화되었다. 불행
하게도 정치학의 경우 전통적으로
사는 사회에 대하여 말하는 영역에서 또
한 아직도 권력론을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학적 관점의 현실에서 이러한 차원의 문
화관찰은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정치학이 이런 식의 직관에 의존하여 문화
를 논하게 되면 그 첫 번째 길은 민족주의나 ‘민족개조론’에 다다르며 이를 보편
적으로 다른 사회에 적용할 경우 정치문화론이 보여 주었던 문명의 자위행위나 역
으로 열등의식으로 귀결될 뿐이다. 정치학자가 문화를 보려 했을 때 역사로 돌아간
것은 합리적인 해결책이었고 또한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역사에서도 민족

은 불가능하며 다시 ‘문화’라는 포괄적 개념은 쉽게 ‘문명론’이나 ‘
야만론’으로 귀결된다.
현대의 정치학은 대단히 복잡하게 구조되어 있고 일정한 방법론으로 규정되어 있
지도 않다. 역사적으로 정치학은 독자적인 이론을 개발한다기보다는 늘 주변학문의
이론이나 방법론을 밀수해 왔다. 단적으로 정치학은 마음만 먹으면 여러 도구를 동
원하여 못할 것이 없으며 그래도 여전히 정치학의 울타리에 머무를 수 있다. ‘문
화’라고 하여 정치학자가 못할 이유는 없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정
치학에서의 문화연구가 문제
다고 반성하고 다시 문화를 진지하게 연구하기
로 한다면 현실적으로 ‘문화란 무엇인가?’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러
나 경계할 것은 이 질문은 수백 번 반복되어 왔고 정치학뿐만 아니라 인류학자들도
수없이, 헛되이 던졌던 질문이었다는 것이다. 문화라는 연구대상을 어떻게 잘 접근
할 수 있도록 다시 정의하는가의 문제는 용어의 역사적 성격상 쉬운 문제가 아니며
어쩌면 일상적으로 사회과학에서 그간 써 온 양태를 고려할 때 반드시 바람직한 일
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단 모든 인간의 삶의 양태를 포괄하는 문화개념은 불?
며 위에서 필자가 여러 번 시사하였듯이 착각에 빠진 이성의 눈으로 본 광대한 부
정적 인간현실의 지평의 이름이며 따라서 인간의 이성이 착각에서 깨어나면 볼 수 
없는 그림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사실 정치학자가 연구해야 하고 또 연구하고 있는 문화의 문
제는 너무나 많다. 우선은 문화의 중요한 일부로서의 정치란 도대체 무엇인가? 정
치이론이란 무엇인가?하는 자신을 반성하는 문제는 영원한 과제이다. 근대국가란 
어떻게 이룩된 것인가? 사회계급은 어떻게 구조되어 있으며 어떠한 경우에 정치 
행위자로 성립되는가? 또
 공동체의 내부에서 중앙과 마을의 수준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의 문제도 중요한 연구대상이다. 나아가서 대중문화의 문제는 현
대 사회를 이해함에 있어 결정적인 분야라 할 수 있다. 특히 대중문화는 스스로 저
급문화임을 자처하는 특수한 분야로서 그간 정치학에서는 다루어 오지 않던 분야이
다. 그러나 이 문화의 연구는 ‘문화’론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재편이 없이는 끝
없는 미로를 해매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앞서 논했듯이 이성이란 문화현상이다. 
따라서 이와 대칭되어 등장한 ‘문화’의 논의 또한 문화가 낳은 문화적 현?
중적 문화현상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문화의 연구’란 문화가 낳은 문화에 
대한 학문이라는 문화현상, 즉 희한한 문화현상이며 이러한 논리는 끝없이 진행된
다. ‘문화’라는 역사적으로 등장한 말은 ‘이성’과 짝을 이루어 한 쌍의 마주보
는 거울같이 ‘문화’라는 틀 속에 끝없이 대상을 재생산하는 ‘요술 거울’인 것
이다. 이 거울에 비친 상에 대한 연구는 평생이 모자라며 수없는 ‘립 반 윙클’을
만들어 낼 죽음의 게임일 뿐이다. 모든 것이 문화라는 ‘문화론 제국주의’는 사실
‘경제학 제국주의’와는 다른 쳇바퀴 속에
是?딜레마일 뿐이다. 이러한 악
순환을 벗어나는 문제는 끝없이 펼쳐지는 상의 연구가 아니라 거울 자체를 이해하
는 문제일 것이다.
정치학이 할 수 있는 문화연구에 대한 일은 우선 ‘문화’라는 말이 갖는 위험 요
소를 제거하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분석이 가능하도록 ‘문화’라는 범주를 분해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려면 ‘문화’라는 주제를 만들어 낸 근대서구
의 이성과 권력의 개념이 붕괴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권력론을 기반으로 이
루어진 현대의 정치학은 본질적으로 재편되거나 사라져야 하며 근대서구 철?
치사상에 대한 본질적 이해와 반성은 정치학자가 해야 할 첫 번째 문화연구이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성의 붕괴는 당혹스러운 과학의 문제와 방법론의 문제를 제기
한다. 위에서 수 차 지적했듯이 경험적으로 확실성을 추구하기 위한 과학방법론의 
선택은 문화라는 특정한 대상을 사장시켜 왔다. 나아가서 이론적으로 과학은 근대
서구 철학의 탄생 이래 문화의 중요한 일부이며 따라서 문화연구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인 것이다. 문화연구는 과학의 문화가 우리 사회의 지식의 영역에서 벌이는 
논박의 ‘게임’에 규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
??대한 연구는 대부분 비과
학적 언어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반드시 비과학적 언어
만을 사용해야 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이에 얽매이지 않고 과학
방법론을 사용하는 지성의 자유가 실현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문화연구의 전제로서
의 이성의 붕괴란 이성을 빼고 멍청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에서 소외시
켜 만든 형식적, 도구적 이성을 넘어서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과학방법론을 폐기한다고 해서 문화의 연구가 무슨 말이나 동일하게 취급
되는 자유방임의 상태를 상정하기는 어
방법론의 문제 즉, 새로운 연구의 길
잡이를 세우는 문제는 오랜 연구의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근래의 많은 문화의 
부분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방법론 아닌 방법론’들을 제기하여 왔다. 말하자면 
실증주의 방법론과는 다른, ‘요리 책’ 같이 취급할 수 없는, 따라가기도 어렵고
, 따라간다고 하여도 같은 수준의 업적이 나올 보장이 없는 그런 종류의 방법론들
이 여러 학문분야에서 제기되어 왔다. 예를 들어 베버의 방법론, 계보학(genealogy
), 해석학(hermeneutics), 고고학(archaeology) 등의 방법론은 실증주의적 방법론
과는 ?
?방법론이며 사실 천재나 구사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보장 없는 
방법론들이 과학방법론에 대항하여 제기되어 왔다. 과학을 넘어간다는 것은 지식
에 있어서 인간의 위치를 되찾는 것이며 문화연구에는 필수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새로운 종류의 지식의 기준에 대한 문제는 문화연구가 이루어야 할 궁극적
인 업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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