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 기도를 올리고 싶었지만 벌려진 두 다리 사이에서 벌어지
고 있는 일들이 너무도 혼란스러워 메이지는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
다. 그녀는 팔꿈치로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는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어디 좀 봐요.
기다렸지만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다만 힘들어하는 숨소리만 들려
오고 있었다. 앞이마에 맺혔던 땀방울이 콧마루를 타고 눈 속으로 흘
러들어왔다. 그녁는 벗겨진 어깨를 들어올려 땀방울을 흄쳐내며 머리
를 좌우로 돌리곤 다시 뒤로 젖혀 보았다. 목덜미의 통증이 너무도 심
했기 때문이었다. 고통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통
올 덮고 있는 누런 이불 아래로 노파의 곱슬곱슬한 회색 머리칼을 내
려다보았다.
[설마 그게 옷걸이는 아니겠죠?그떻죠?
노파가 고개를 들었다.
[진정해요.
탁하고 낮은 목소리였다. 곧이어 골초들 특유의 밭은기침이 튀어나
왔다. 양 허벅지 안쪽으로 노파의 축축한 숨결이 전해 오자 메이지는
무릎을 꿈틀거렸다. 그러자 발목을 묶고 있던 딱딱한 가죽끈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걱정 말아요.
마저 말을 내뱉고 노파는 마치 배관공이 개수대 밑으로 들어가듯 디
시 작업에 들어갔다. 찌들은 담배 냄새. 사팔뜨기 눈, 더러운 셔츠에
손에는 연장을 들고. 여기에다 손전등만 하나 갖추면 영락없는 배관공
이었다.
메이지는 다시 머리를 테이블 위로 젖히곤,목에 걸린 금 목걸이'
매단 반지를 살며시 만져 보았다. 알몸의 백열 전구가 그녀의 얼굴 비
로 위에서 작렬하고 있었다.
'오.신이시여.꿔든지 제게 암시를 주시옵소서......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톨는 이제, 눈의 망막 위에 펼=
진 무지갯빛 섬광을 쫓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십니까'
눈이라도 콱. 멀어 버릴까요?' 대답을 기다리며 전구를 노려보았다
그것은 마치 태양처럼 지속적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따뜻한 손가락들이 그녀의 깊은 살 속으로 파고들어왔다.그리곤
가 날카롭고 차가운 것이....... 그녀의 등이 갑자기 활처럼 휘어졌다
목구멍에서는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고, 손톱은 테이블을 덮고 있는
워 커튼 위에 새겨진 데이지꽃 속으로 깊이 박혔다. 그녀는 가까스트
상체를 지탱하고선 급히 숨을 몰아쉬며 땀에 전 커튼으로부터 손이
끄러지지 않도록 긴장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뭘 사용하고 있는 거예요?
노파는 잠시 손을 멈추곤 걱정스레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런 질문=
그 이전에도 여러 번 들어 본 것처럼. 두 눈을 천천히 깜박거리며. 3
파는 그 도구를 메이지의 몸 속에서 빼쌔어 곧추세웠다. 부젓가락 =
았다. 메이지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그것은 대략 30센티미터 정5
의 철사줄이었는데 바나나처럼 약간 휘어진 한쪽 끝은 망치로 두들?
펴서 주걱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반대편 끝에는 전선용 테이프가 감
겨져 손잡이 구실을 하고 있엇다. 검은 칠은 오래 전에 거의 다 벗겨져
서 한때 그것이 옷걸이였다는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
다. 어쨌든 몸 속으로 들어오리라는 상상이 불가능할 만큼 의외의 물
건이어서 메이지는 놀라움에 정신이 아뜩해졌다.
[그저 내가 쓰는 도구일 뿐이라우. 자, 뒤로 누워서 마음을 편히 가
져 봐요.
노파는 다시 그 도구를 이불 아래로 가져 가더니 작업을 재개했다.
[라디오나 듣지 그러우.
졸라대는 아이에게 바쁜 엄마가 건성으로 얘기하는 투였다.
메이지는 머리를 눕히고는 팔뚝으로 눈두덩을 가렸다.'오, 제발 하
느님. 이번 한 번만, 한 번만 살려 주세요. 그러면 다시는 남자와 씩스
따위는 하지 않겠어요. 맹세합니다.'흘껏 전구를 보았다. 불빛은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계시는 내리지 않을 것인가. 그래, 실망할 것도 없
지. 벌써 한 달 전에도 이런 맹세를 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가슴 언저리에서 목걸이에 매달아 놓은 반지를 들어서는 음
라으로 새겨진 유리 장식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날개를 접고 손
에는 칼을 든 채 한 발로 악마의 무시무시한 머리통을 밟고 서 있는 천
사상이 새겨져 있었다. 마이크가 이 반지를 그녀에게 준 것이 백 년쯤
은 된 듯 까마득한 과거의 일 같았다. 이제 남은 수술비 20달러를 마
련할 때까지 이것을 담보로 맡기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 반지를
영영 꼿 찾게 될까? 안 돼. 안 돼지.'이것은 그녀가 지닌 유일한 귀중
품이엇다, 결코 그녀의 몸에서 떼어 낼 수 없는.......
고녀는 목 가운데 움푹 패인 곳에 반지를 올려놓곤 손으로 쓰다듬으
며 두 눈을 감았다. 도대체 어쩌다 이런 아수라장에 빠지게 되었는지
다시 한 번 되뇌었다.
이런 결과가 되기까지는 그녀 스스로도 수백 가지의 원인을 제=
셈이었다. 배란기에 관계를 가졌고. 바비 자식의 시도 때도 없는 코
에 응했고,콘돔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미리 발견하지 못했고 아
그놈이 한 번 쓴 콘돔을 또 쓴 건 아닌지. 끝없는 일련의 상상에 그
는 그만 피곤해졌다. 스스로를 나무라는 데도 진력이 났다. 이젠 치
리 생각을 넓혀 그녀 자신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뭔가 거다
힘의 탓으로 돌리는 게 마음이 편할 듯했다.
생각을 그런 쪽으로 전개시키자 해답이 분명해졌다. 나치스 놈들
었다. 만일 그놈들만 없었더라면 마이크는 징집되지도 않았을 테.
오마하 해변에 상륙해서 프랑스의 어느 질척한 도로 위베서 총을 멎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녀 역시 스물네 살의 청상 과부
남겨지지도 않았을 터였다. 히틀러만 아니었다면, 마이크의 빈자리
메우기 위해, 또 그렇고 그런 본능의 충족을 위해 새 남편이나 직업
같은 뭔가 희망 있는 일을 찾아 헤매다가 바비 같은 작자와 어울리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참 놀랍지 않은가? 찰리 채플린 식의 콧수염
기른 불알 반쪽짜리 독일 인간이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와 남편을
어 가서는 죽여 버렸고, 결국에는 그녀카지도 지금처럼 부엌 테이
위에 너부러져 있게 만들다니 말이다.
골반 언저리에서 뭔가 생소한 감각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그녀
테드 아저씨가 빈 병 속에 배를 만들어 넣던 것을 떠릿속에 떠올렸
'그래, 게임이나 해보자. 실제로 닥친 육체적 고통, 아니면 그 고통
대한 상상.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지독한 것일까?' 생각을 전개시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숨을 한 번 깊이 들이마시곤
녀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그 숨에 실어 토해 내려 했다. 아돌프 히틀=
그건 원인이 되지 못한다. 메이지 네 자신이 문제다. 네 스스로 이
든 난장판을 초래한 것이다. 비난의 화살은 너 흔자 맞아야 하며 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눈에서 손을 떼고는 부엌 선반 위에 얹힌 갈색의 필코
(} 라디오를 쳐다보았다. 글렌 밀러 악단의 {진주의 선율>이막
떵너고 있었다. '아하! 신께서 이제야 언질을 주시는군.'지금 흘러
나오는 저 음악은 그녀가 딸, 레이웰을 임신했을 때 밤이면 듣곤 했었
던 바로 그 노래였다.'송심해라, 메이지. 다시는 실수하지 말거라.'
그때 또 한 차례의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골반에 전해져 왔다. 이어서
가래 끓는 기침이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토해졌고 본능적으로 그녀의
허벅지가 다시 오므라들었다. 바로 그 순간에 왜일까? 그녀의 머릿속
에 지네만큼 커다란 세균의 모습으로 리스테린 패스트 푸드 광고가 떠
올랐다. 그러자 프렌치 프라이와 초콜릿 셰이크 맛에 대한 느낌이 목
구멍을 알알하게 만들며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또 한 차례 가래 끓는 기침이 그녁의 피부에 토해졌으나 이번에는
움찔거리지 않았다. '재밌군 ' 사람은 얼마나 빨리 환경에 익숙해지는
지. 그녀는 오자크의 호숫가에서 보냈던 마이크와의 신혼 여행을 떠올
렸다. 요금을 선불로 지불했기 때문에 포기하고 떠나 버릴 수 없었던
그 거지 같은 방. 첫날밤. 침대 속에서 바퀴벌레를 발견하고는 기겁을
해서 밤새 불을 밝혀 놓고 그 밤이 거의 다 새도록 오래된 잡지를 보았
던 일. 그러나 수영과 일광욕, 그와의 사랑나누기에 빠져 며칠을 보내
고 난 후에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잠을 푹 잘 수 있게 되었고, 바퀴벌레
쫑은 과자 부스러기마냥 손으로 툭 쳐서 침대 밖으로 청겨 버리게끔
되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빠르게 환경에 적응하고 대처할 수 있는지,
그때도 그녀는 놀랍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녀의 친구 아나벨만 해도
그렇다. 늘 밤을 꼬박 새우고도 아침이면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에 아
침식사로 따뜻한 오트밀을 준비해 주지 않던가.
'아, 내 친구 아나벨. 그녀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겠는
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오로지 조금만 더 참아 내는 것이리라.'
녀는 속으로 되뇌었다. '몇 분만 더 견뎌 내서 이 지옥 같은 시련만
겨내고 나면 내일 아침에는 사랑스런 어린 딸에게 푸딩을 만들어 =
또 곰 세 마리 노래도 불러 줄 수 있으리라.'
그녀는 눈을 감고 자기집 부엌의 이모저모를 머릿속에 그려 보있
다리미판, 라디오, 얼룩이 앉은 오븐_ 심지어 설탕과 버터 그리고
킹 파우더의 냄새까지도 맡을 수 있었다.
이제 노파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결정적인 순간이 코앞에
쳐 있는 것이다. 자궁으로 통하는 통로를 찾아내서 조심스럽게
천천히 배 모양으로 생긴 아기집 속으로 꼬챙이를 밀어 넣어야 할
간이 된 것이다. 일단 꼬챙이를 삽입하고 나면, 그것을 앞뒤로 움=
며 회전시킬 것이다. 그래서 자궁 내벽을 꼬챙이 끝에 달린 주걱]
긁어 내어 수정란을 깨뜨려 버리든지 아니면 최소한 그 수정란을
버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출혈이 되도록 여자의 몸을 손상시켜야
는 것이다.
시술 원리는 간단했지만 그 행위는 완전한 사이비였다.모든 여?
자궁과 자궁 경부가 다 같은 구조는 아닌 것이다. 게다가 노파가 이
을 마지막으로 해 본 것이 꽤 여러 해 전이었다. 나이도 일흔넷쯤 5
보니 손놀림이나 감각이 예전같지 못했다. 노파가 지금껏 해온 횟=
앞으로의 횟수를 합치면 족히 수백 차례는 될 터였지만. 실상은
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노파는 자기가 하는 짓에 대해 전혀 전문=
지식이 없는 상태였다. 무슨 짓을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다
여자의 자궁 내벽에 상처가 나고 그곳이 배설물이 묻은 꼬챙이에
해 오염이 되면 패혈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과 너무 세게 =
대서 자궁에 깊은 상처라도 입히게 되면 그 여자는 다시 아기를 ?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 정도가 노파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여=
쿰
몸 깊은 곳 어딘가에 동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걸 건드려
터뜨린 적은 없었고 지금 이 경우에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 아! 이따
금씩 자신에게 시술받은 여자들에게 돌발적인 문제가 생겼다는 뒷얘
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아가씨들 중 몇이 몸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
가게 됐다는 애기들이었다.
그러나 의사라고 별 뾰족한 수가 있을소냐? 노파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이 그녀 나이 스무 살 때였고, 그 후로 경찰에 붙들려 간 것이 고작
세 번뿐이었다. 한 번 재판을 받았지만 도대체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서
야 하는지조차 노파는 알 수 없었다. '천딴의 말씀이올시다, 나으리님
들. 저 자신은 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셈이고 그것은 자라가
공인하는 명명백백한 사실이올시다. 경찰들도 인정하고 있는 일이지
요,' 그러니까 이제 노파가 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그 시술을 한 번 더
베푸는 것이었다. 한 잔 쭉 들이키고. 출혈을 유발시키고 나서. 이 아
가씨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집안 잡일을 끝내면 되는 것이었다.
노파는 목제 의자 아래의 장판을 더듬어서 위스키잔을 집어 들이켰
다. 한편으로는 아가씨를 주시하면서 카우보이인 양 손등으로 입가를
쓰윽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는 잔을 바닥에 내려놓고 더러운 키친 타
월을 집어서는 앞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찍듯이 흠쳐냈다. 콧물이 흐르
자 그것도 역시 그 타월로 닦아 내고는 그것을 목뒤로 걸쳐 맸다 그
목덜미로부터. 옛날 한여름 밤에 자기 남편이 차가운 맥주로 그녀의
목 뒤를 부드럽게 문질러 주던 때가 생각났다. '아, 지금 당장 차가운
맥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면.'
노파는 타월을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노안에 맺힌 땀인지 이슬인지
를 눈을 껌벅여 떨궈 내고는 목제 의자를 10여 센티미터쯤 높혀 올리
곤 고정시켰다. '오. 하느님 ' 노파가 일생에서 증오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순간이었다 '피해 갈 수만 있다면. 안 돼지, 회피할 일이
아니야. 계속하자구.'
숨죽인 기침을 한 차례 내뱉곤 노파는 브래지어 끈을 느슨하게
다. 자, 이제 준비가 되었다.
노파는 자신의 손가락들을 검경()으로 삼아 철 꼬챙이를 '
히 앞으로. 위로 억자의 자궁으로 통하는 질속으로, 아니 정확히 밀
자궁길이라는 통로 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천천히. 천천히, 노
는 여자의 살 속으로 꼬챙이를 깊이 삽씹시켰다. 그렇지, 그렇지.
천천히 하자구. 노파는 돌출된 자궁 경부를 니심반처럼 생긴 것이리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따라서 꼬챙이가 계속 안으로만 들어간디
그 중심부는 열려 있는 동공 같은 것이어야만 했다. 노파는 우선 북
으로 방향을 잡았다. 꼬챙이를 위쪽으로 각지게 잡고는 넌지시 밀
넣어 보았다. 그런데 그것이 조금 들어가다가 멈췄다. 지금까지는
아. 노파는 꼬챙이를 2.5센티미터 가량 뒤로 당겼다가 동쪽으로 빙
을 돌려서 다시 밀어 넣었다. 이번에는 더 깊숙이 삽입했다. '휴. 김
좋군 수월하게 풀릴 것 같은걸,' 다시 꼬챙이를 뒤로 약간 당겼디
남쪽으로 밀어 보았다. 전혀 무리가 없었다. 이번엔 서쪽으로 밀어
았다.그런데
전혀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흐흠.서쪽으로 방향이 층분히 잡히지 않은 모양이군.' 노파는 꼬
이를 빼고는 바닥에서 군용 전등을 집어 들어서 손가락으로 여자의
을 벌리고는 질구에다 바짝 가져다 댔다. 자궁 경부를 눈으로 확인
보고 싶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노파는 전둥을 내려놓고 철 꼬챙이
다시 삽씹하고는 여자의 오른편을 향해 탐침을 시작했다.
'어서 어서 들어가라.'
그러나 꼬챙이는 들어가질 않았다.
용을 쓴 탓인지 좌골 신경에 압박이 가해지면서 히프가 저려 오
노파는 신음을 토하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넥 그러세요?
[오, 아무것도 아니라오, 아가씨. 모두 다 잘 돼가고 있다우.
가만히 앉아 통증이 가시기를 기다리며 노파는 도대체 뭘 어떻게 해
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선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켰다.
여자의 몸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점검해 볼 길이 없었다. 노파는 꼬
챙이를 빼냈다.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다 된 거예요?
[아니, 아직 아니라우. 잠자코 누워 있어요.
노파는 오른손을 최대한 작게 말아 쥐었다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손
마디 뼈와 힘줄까지 아파 왔다. 그러고 나서 그 손을 여자의 몸 속으로
밀어 넣었다. 여자에게서는 별반응이 없었는데 그것이 노파에게는 이
상할 게 없었다. 대부분 계집애들이란 이 정도 물건쯤은 충분히 받아
들이게 마련이란 생라에서였다. 노파는 자신의 손가락을 펴서 깊숙이
밀어 넣었다.
여자의 몸뚱이가 경직되었다.좀더 들어가자 요동이 일기 시작했다.
노파는 다시 주먹을 쥐어 보았다.
[아악!도대체.으윽,뭐 하는 거예요?
골반 뼈만 무사히 지나 부드럽고 넉넉한 중앙 부위에만 이르면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는 것을 노파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계집애는 뭐
람! 팔뚝까지 다 들어가도 신음소리 한 번 없던 계집애들도 있었는데
이 애는 왜 이래?'
[오 하느님, 제발 그 -만!
노파는 얼굴을 찌푸리며 밀어붙여 보았다
[그만, 그만!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노파의 양 손목을 움켜쥐었다. 노파는 주먹을
뽑고는 여자의 손가락을 하나씩 풀어 내려놓았다.
[하느님, 오! 휴, 이제 살겠어요. 이젠 좀 살겠어요.
여자의 음성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노파는 바닥에서 더러운
을 집어 들고는 여자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색시, 아기 낳아 본 적 있다고 했지?
노파가 넌지시 말을 건냈다 메이지는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제왕절개로 낳았지.그렇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반응을 떠보았다. 노:
마치 자동차 정비 기술자가 손에서 기름때를 문질러 닦듯 손가락'
피를 닦아 내며 여자의 하복부를 응시했다.
[색시는 이 아기집에 상당히 문제가 있었어.그렇지?
노파는 타월을 바닥에 던지며 말을 이었다.
[확실한 거 한 가지는 말야. 색시한테 이런 짓을 해놓은 작자가
단언하건대, 남편은 아닐 거라 이거지.
사실, 남편과의 정상적인 관계에서 임신이 됐다면 지금 누워 1
또래의 여자가 이런 식의 시술을 받고자 나설 리는 만무했다.
노파는 일어서서 여자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부드럽게 들=
는 여자의 양 허리쯤에 내려놓았다. 여자의 눈은 흠씬 젖어 있었고
바닥에 눌려 있었던 탓인지 얼굴의 광대뼈 부분이 창백하= 질려 =
다. 여자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노파를 올려다보았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나요?
[그렇소,색시.아직은.......
[도저히 더 이상은 못 견디겠어요.
[가만 좀 있어 봐요, 색시.
노파는 더러운 이불 자락의 한끝을 들어서 여자의 눈물을 닦아 =
는 곤죽이 되어 버린 머리께를 토닥여 주었다.
[잠깐만 정신차리고 있어 봐요.순식간에 끝날 테니 말이오.
노파는 여자의 왼손을 들어올려 찬찬히 주무르고선 가죽 벨트 위에
내려놓고는 버클을 채웠다. 오른손도 마찬가지로. 여자는 고개를 좌우
로 틀며 손목을 움직였다.
[나를 또 움켜잡을까 봐 이러는 거라우.
[묶여 있고 싶지 않아요. 목걸이에 손이 닿질 않는단 말예요_ 꼬여
있다구요.
그녀의 목걸이는 반지 부분이 어깨 아래에 짓눌려 금줄과 함께 살을
파고들 듯 깊게 박혀 있었다. 노파는 목걸이를 벗겨 자기 목에 걸치고
반지 부분은 셔츠 주머니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일하는 데 걸리적 거리
면 안 되니카.
[내가 이걸 돌려 줄 때는 말이지, 그때는 모든 악몽이 다 지나간다
음이 될 거유.
노꽈는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는 윗주머니를 더듬어 담뱃갑을 꺼
냈다. 아주 익숙하게 담뱃갑을 아래로 튀기듯 흔들어 담배 한 개비를
담뱃갑에서 반 남짓 튀어나오게 했다. 노파는 입술을 가져 가 담배를
뽑아 물었다. 그리고는 불을 당겨 붙이고 고개를 뒤로 기울이며 담배
연기를 길게 토해 냈다. 노파는 두 모금을 목마른 듯 거푸 빨아대고는
의자 아래로 손을 뻗어 내려 빈 위스키잔에 불붙은 담배를 어슷하게
걸쳐 놓았다.
노꽈의 양 어깨가 푹 꺼져 들어갔다.이제 달리 방도가 없었다.
옷걸이 꼬챙이를 손에 쥐고서 여자의 양 무릎을 벌리고는 다시 한
번 쇠꼬챙이를 여자의 몸 속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꼬챙이 끝의 주
걱이 노파 생각으로는 자궁 경부 같은 뭔가를 건드렸다. 노파는 그 물
체 주위를 가볍게 찔러 보고는 산로()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지점으로 꼬챙이를 옮겨 갔다. '그래 아무렴 마땅히 그래야지. 그
않을 수가 있나.'
노파는 손을 아래로 뻗어 잔 위에 놓았던 담배를 집어 들고는 ='
막으로 깊이 한 모금 들여 빨고는 빈 위스키잔 속에 꽁초를 비벼 꼈1
그러고 나선 담배 연기를 뿜으며 쇠꼬챙이를 아기집을 향해 전'=
켰다. 여자는 몸을 움찔했지만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그렇지, 0
제대로 들어왔군. 딱딱한 자궁의 벽이 철사를 통해 자신의 손으로
해 줄 진동을 기다리며 노파는 꼬챙이를 조금 더 깊숙이 밀어 넣었
이제 2센티미터. 1센티미터만 더. 조금만 더 들어가면 자궁벽을 =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부딪혀 오는 것이 없는 꽹한 공간이었다.
노파는 팔뚝으로 앞이마의 땀방울을 흠쳐냈다. '괜찮아. 아무렴
직 덜 들어가서 그래 ' 노파는 꼬챙이를 더욱 깊숙이 밀어 넣었다.
마나 깊이 삽입되었는지 자신도 잘 모를 지경인데도 여전히 걸리는
없었다. 어쨌든 밀어 넣는 동작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느낌상으=
충분히 들어간 게 분명한데......
노파는 그 상태에서 꼬챙이를 움직여 긁어대기 시작했다.
[기분이 이상해요.
여자가 말했다.
[거의 다 됐수. 색시.
노파는 몇 분을 계속 긁어대고 나서는 꼬챙이를 서서히 빼냈다
홍빛이 비쳤다. 좋은 징조였다. 노파는 다음의 상태를 지켜보았다
음엔 노파의 기대대로 졸졸 흐르는 실오라기 같은 핏줄기가 보솟
그러던 것이 양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여자는 체
으로 피를 응고시키는 능력이 부족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어쩌면
여자닝.......
이제는 피의 흥수였다. 여자의 맥이 뛰는 것에 맞춰 분출되어 나오
는 피는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아니 이런 !'
노파는 코 밑에 배어 나온 땀방울을 손가락으로 흄쳐냈다. 그러자
코 밑으로 붉은 콧수염이 선명히 그어졌다. 노파는 그 더러운 타월로
자신의 앞이마를 흠쳐내고는 이어서 그것으로 여자의 다리 사이를 틀
어 막았다.
[꿔가 잘못됐나요?
여자가 물어 왔다.
[아무것도 아니야, 색시. 피가 좀 나와서. 그것도 염려 마우. 원래
피가 나오게 돼 있다우.
노파는 여자의 음부에 틀어막은 타월을 힘주어 눌렀다. 여자의 몸에
서 펑펑 쏟아져 나오고 있는 핏물의 열기가 전해져 왔다. 노파는 일단
그 더러운 타월 쪼가리를 여자의 몸 속으로 있는 힘껏 밀어 넣고는 일
어서서 욕실로 갔다. 전등을 켜고 수도꼭지를 틀고 손을 가져다 대니
손에 묻은 피가 소용돌이치는 붉은 샘을 이루며 하수구로 빨려 들어갔
다. 더러운 물잔이 눈에 띄자 물을 가득 담아 들고는 떨면서 입가로 가
져 갔다. 노파는 물 한 모금을 들이키고 나서 잔을 내려놓은 후 자신의
손을 살펴보았다. 핑크멎이 감도는 깨끗한 손이었다. 노동을 아는 여
인의 손. 이전에 수도 없이 보아 온 자신의 손이었다. 셀러리를 씻을
패 설거지할 때, 손주를 목욕시킬 때 황홀하게 빛나던 손이었다. 떨고
는 있었지만 깨끗해 보였다. '오. 빌어먹을.'깨끗한 손이었다.
노파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코 밑의 한 줄기 핏자국에 잠시 화들
짝놀랐다가는 젖은 손가락으로 황급히 닦아 내고 수건을 갖다 댔다
버쩌자고 이런 일을 맡았단 말인가?'
노파는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물었다.
'분명히 너는 그녀에게 요즈음 몇 년간 통 그 일에 손을 댄 적
다고 말했지. 그러나 그녀는 막무가내였어, 안 그래? 신경 쓰지 =
그녀는 독신이고 백인인 데다 젊은 애인걸, 너는 최선을 다했어.'
노파는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밀아서 입에 물고는 불을
다. 폐부가 아릿해질 때까지 유황과 담배 연기를 한껏 들이마시.
거울에 대고 천천히 내뿜었다.
'네 꼴을 봐. 너는 너무 늙었어.'
부엌 쪽의 적막이 오히려 노파를 정신 나게 만들었다. 노파는 -
울 무늬 물컵을 집어 들고는 부엌 테이블로 향했다.
여자는 핏물 속에서 몸을 떨며 누워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흘=.
온 피는 테이블을 타고 떨어져 부엌 바닥까지 폭 넓게 피바다를 =
고 있었다. 고개는 한옆으로 꺾인 채였고 시선은 방을 가로질러
한 지점에 못박혀 있었다. 노파는 물잔을 여자의 바싹 마른 입술
져다 주었으나 여자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
[레이.......
여자가 힘없이 응얼거렸다
[내 말 잘 들어요. 겁낼 것 없다우.
=1 0? ....... 좀.
노파는 여자의 팔을 가죽끈에서부터 풀어놓고는 머리를 받쳐서
을 조금 마시게 했다.
[레이가 누구유. 색시?색시를 이 지경으로 만든 바로 그놈이유?
여자의 턱을 타고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런 놈은 잊어버려 그놈은 여기에 없다우.
노파는 여자의 입을 닦아 주었다.
[남자들은......, 남자들이란 것들은.이곳엔 없수.
노파는 이불을 당겨 여자의 목 밑까지 덮어 주고는 손을 꼭 쥐어 주
었다. 경련이 전해져 왔다. 처음엔 가벼운 진동 정도였으나 곧 격렬한
요동으로 바뀌었다. 여자의 몸이 뉘어진 테이블은 여자의 몸 움직임이
격렬해지자 마구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노파가 여자의 팔을 부여잡고 진정시키려고 애쓰고 있는 그 순간에,
뻐걱 부억문이 열리며 작은 얼굴이 하나 안을 들여다보았다. 여섯 살
이나 됐을까? 주근깨가 송송 박여 있고 긴 머리에
한 커다란 눈을 담은 어린 계집아이의 얼굴이었다.
걱정과 불안이 가득
[엄마?
젊은 여자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레이.
그녀는 힘없이 우물거리며 두 팔을 뻗었다. 어린 여자아이는 부엌
조리대 옆에 붙어 서서 자기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상황을 이해해 보
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가 무엇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아
이는 그저 모든 것이 겁이 나 떨고 있을 뿐이었다.
뭔가를 말하려는 듯빌이의 입이 움찔거렸다.
[쉬-.지금은 얘기할 때가 아냐.잠자코 있거라.
노파의 말을 듣고 아이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대신 엄마가 힘없이
뻗은 팔을 향해 마치 발레리나처럼 발끝으로 조심조심 다가가 엄마의
손바닥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 엄마의 손아귀는 아이의 기대와는
달리 아이의 손가락을 감싸 쥐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글리세린처럼 광택 없이 및나는 갈색의 깊은 눈이었다.
[엄마?
아이는 꿩가 설명을 갈구하는 얼굴로 노파를 향했지만 아무런 응답
이 없자 다시 엄마를 쳐다보며 눈썹을 치켜 올린 채로 엄마에게서 어
떤 생명의 숨결이 느껴지기를 기다렸다.
엄마의 손가락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가볍게 엄
손을 툭 쳐보았다.
[일어나. 엄마.
아이는 다시 한 번 엄마의 손을 건드려 보았다. 이번에는 좀더
게.
[엄마,장난 그만 해.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아이는 엄마의 팔을 부여잡고 발작
로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제발 일어나.
순식간에 아이의 주근깨투성이 얼굴이 팽팽해지더니 급기야 울
터뜨렸다. 바로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끊겨져 버린 엄마의 숨결]
여잡기라도 하려는 듯 엄마의 손을 꽉 쥔 채 아이는 울부짖기 시
다.
노파는 앞이마를 젊은 여자의 가슴께에 떨군 채 아이의 울부짖-
힘없이 듣고 있었다.
[아, 이런.
노파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이걸로 모든 게.......
밸
'
[박사님은 어디 계십니까?
스피커 폰으로부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직도 수술중이신데.
피브 창 박사가 대답했다.
[제기랄.
목소리가 홀러나왈다.
[그녀가 수술을 끝내고 도와주러 올 때까지
버텨야 해. 환자의 백혈
구 수치는?
창박사가 물었다.
[굉장히 높습니다.
[정확한 수치를 말해 봐.
창 박사는 차분하게 요구했다
[죄송합니다. 30,000입니다.
피브 창 박사, 그녀는 조지 워싱턴 대학병원 연구실의 한 어두운 방
안에서 컴퓨터 데스크 앞에 앉아. 멀리, 아주 멀리 떨어진 수술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음성으로 보고받고 있었다. 텔레미터를 통해 창
박사의 책상 위에 놓인 여러 대의 모니터로 환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정보들이 전송되고 있었다. 그녀는 키보드를 두드려 가며 환자의
과 혈압 지수, 호흡 상태. 체내의 산소 포화도 그리고 그 밖의 사=
을 점검해 보았다.
[체온이 40.도라?좀 낮출 수 있겠어?혈압은 잡힌 것 같고.
그녀는 키를 두드리며 계속 스크린을 살폈다.
90에, 50입니다. 괜찮은 것 같아요. 지금 복부를 살펴보는 중=
다.
[딱딱한가?
[돌덩이 같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제가 과연 제대로 수술을 할 수 있을는지.
초조함이 잔뜩 배인 한숨이 스피커 폰을 통해 새어 나왔다.
[물론 할 수 있어. 수술하는 동안 내가 계속 모니터를 지켜볼게
창 박사는 그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 싶었다.
[네,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레이헬 박사님을 가능한 한 빨리
주세요.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계실 거잖아요.
그 시간 창 박사의 방에서 복도를 따라 아래쪽에 위치한 제14=
실에서는 레이웰이 다른 환자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었다. 사방에 ?
된 커다란 수술용 램프들이 환자의 절개된 몸을 환히 비추고 있었
그 주위로 마치 제단 앞에 모인 푸른색 옷을 입은 수도자들처럼
켈의 수술팀이 빙 둘러 모여 서 있었다
석션펌프(일종의 흡입 세척기)와 레이저 메스가 분주히 작동팽뜬
운데, 생명의 보존이라는 의학의 절대 명제를 실천하려는 의사들이
두 고개를 숙인 채 목소리를 낮추곤 미끄러운 라텍스 장갑을 낀 =
로 소명을 다하고 있었다.
지금 그들은 환자의 섬유낭에 콩팥을 이식했고 그것의 상태를 숨죽
여 가며 지켜보는 중이었다. 신장의 색깔은 신선한 피를 받자 서서히
강낭콩같이 붉어졌다.
[잘됐어요, 여러분.
레이웰 박사가 수술용 마스크를 낀 채 말했다.
[이제 수술한 자리를 봉합하세요.
레이챌은 젊은 의사들에게 뒤처리를 맡기곤 수술대에서 물러나 세
면실로 갔다 세면대 앞에 서서 철벅거리는 라텍스 장갑을 벗어 쓰레
기통에 버리고 손을 씻은 뒤 그녀는 나무 의자에 잠시 앉았다. 6시간
동안 선 채로 이식 수술팀을 지휘하느라 피곤했다. 그녀는 의자 팔걸
이에 놓인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벽에 걸린 시계에 눈길을 주었다.
시 20분.
시간이 없었다. 다들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녀는 일어나서 수술용 모자만 남기고 옷을 다 벗은 뒤 샤워실로
갔다. 2분 가량의 샤워가 원기를 어느 정도 회복시켜 주었다. 라커 룸
으로 돌아오면서 그녀는 모자를 벗고 고개를 흔들어 자신의 빨간 머리
카락을 흐트러뜨렸다. 그리고 옷장의 금속 문을 열고는 바닥에 타월을
던진 뒤 옷을 입기 시작했다
레이렐은 고혹적인 얼굴에 우아하고 늘씬한 몸때를 지니고 있었다
그 덕분에 실제 나이인 쉰네 살보다 10년은 더 젊게 보였다.그러나 그
녀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느낄 수 있는 특징은 바로 그녀의 독특한
개성이었다
그녀는 어느 장소에서건. 무슨 일을 하건 주변 사람들의 경탄을 자
아낼 만한 도전적 성취욕과 카리스마적인 기질을 발산해 냈다. 지금처
럼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채 젖은 타월을 발로 딛고 서 있을 때조차
도
짜
따라서 그녀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녀를 비난하는
람들까지도 그녀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점만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녀는 옷을 다 입고 라커 문에 달린 거울을 보며 머리를 몇 번 =
넘겼다. 그러다가 눈 밑에 패인 주름을 보고 멈칫거렸다. 환자들 =
에서야 물론 그녀로부터 수술을 받는 것이 너무나도 다행스러운 =
었지만 이런 속도로 일하다가는 그만 쓰러질 지경이었다. 머리빗을
자리에 가져다 놓으면서 그녀는 잠시 '강의를 취소할까.'하는 생2
했다. '기운을 내.'그녀는 혼자말을 했다. '모여서 기다리고 있을
람들을 생각해 봐. 생각을 가다듬어.'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쉬며
룸을 나섰다. 그러는 틈에 자신의 호출기 메시지 란과 건전지를 =
하는 것을 깜박 잊어버리고 말았다. 호출기에는 긴급한 전문이 와
었으나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연구실로.피브 창 박사에게 급히 연락 바람.연구실.
그녀는 생기 발랄하게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병원 사무장인 =
페티븐이 그녀에게 달려왔다
[축하해요!
그는 불을 안 붙인 파이프를 입에 문 채로 말했다. 그는 그녀를 1
안기 위해 팔을 들어 올렸다가 그러지 않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
는지 대신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안녕하세요,조지.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는 그들 옆쪽으로 브라보 제스처를 그리
웃고 지나가는 간호사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표창장 사본을 가지고 왔어요.
복도를 따라 걸으며 조지가 말했다 백악관 쟈누로
있는 어떤 '
1
가 팩스로 보네 준 것이었다. 그녀는 월
등을 두드리고는 계속 기운차게 걸었다.
베이터에 올라탔다. 체어를 타고 지나가는 환자의
그들은 구석을 돌아 빈 엘리
[한번 들어 보세요.
그가 말했다.
[장기 이식의 영역을 넓힌 비범한 창의력과 인류를
학적 봉사의 길을 창안한 업적을 기리는 바입니다.
위한 새로운 의
[멋지군요.
그녀가 말했다
[그게 전부요?고작 '멋지다'뿐이오?
[난 칭찬받는 데 익숙하지 않아요.조지.
그녀는 시계를 보더니 확실을 기하려는 듯
로비로 가는 단추를 한
번 더 눌렀다.
[오늘 아침 나에게 전화한 용건이 이거였어요?
엘리베이터는 아래층을 향하고 있었다.
[당신이 시상을 거부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소.
러부한다고요? 아니에요. 난 그저 시상식 날 아침에
다고 했을 뿐이에요.
거기갈 수 없
[아니,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자유의 메달을 받는 것보다 더 중대한
일이 있단 말이오?
[없어요. 수술만 빼면요.
엘리베이터가 멎고 문이 열렸다. 그녀가 먼저 내렸다
래체,무슨 수술인데요?
그가 물었다. 그녀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계속 걸었다.
[이식 수술이에요,조지. 몇 주 동안 계획했던 거예요.
그는 뭔가 말하려는 듯 파이프를 입에서 떼었으나 그녀는
구석을돌
아 강의실로 서둘러 움직였다.
[이봐요. 레이.
그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했다.
[이 메달이 병원 재정 충당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나는 당=
그것을 마피아한테서 받는다 해도 상관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우=.
원의 영웅이 너무 바빠서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나눌 수 없다면 ;
어떻게 되겠소?
그녀는 강의실 문 앞에 서자 동정 어린 시선으로 그를 보며 웃=
지금까지 그녀는 그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 왔다. 연구비에 대힌
란이 있을 때면 그녀 편에 서서 노력해 주었고, 여느 사무 직원처
시콜콜 따지고 들지도 않았으며, 그녀가 실험 절차나 세로운 의'
때문에 병원 감사실과 대럽하고 있을 때는 심적인 지원을 해주기크
다. 그는 병원 관료였다. 때론 너무나 정치적이고 신경질적이기도
다. 그러나 그는 대체적으로 좋은 사람이었고, 그녀는 그런 사람
테 나쁘게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강의실 문 손잡이를 꽉 쥐었다.
[걱정 마세요. 해결책을 강구해 볼 테니까요.
조지는 앞니에다 파이프를 대고 톡톡 두드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고 들어 보세요. 표
문구 가운데 맨카인드( : 인류, 또는 남성)를 휴먼카인드(
: 인간)로 바꿔 줄 수 있겠어요?
[그거야 뭐 어려운 일이 아니죠.
그녀는 강의실로 들어가 중앙 통로를 거쳐 연단으로 걸어갔다. ;
의 모습이 나타나자 수군거리던 소리가 잦아들더니 이윽고 조용
다. 그녀가 연단까지 걸어가는 동안 청중들 속에서 박수갈채가
나왔다. 연단 앞에 선 그녀는 미소를 띠었고 강의실은 다시 조용
1
다
[고맙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학생 여러분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전 여러분들에게 그다지 큰 도움
이안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학기에 시험지 채점을 하지 않거든요
"?".
피브 창은 심전도 모니터를 검사했다.맥박이 1분에 40회였다.
[혈액 공급에 무슨 문제가 있어?
빕녀는 스피커 폰에 대고 물었다.
[네 개의 주변 혈관과 중앙 혈관을 열었습니다.그리고 방금 환자에
게 네거티브 0형 혈액을 8단위 주입했습니다.
스피커 폰이 대답했다.
[대체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거야?복부는 다 절개한 거야?
창박사가 물었다
[거의 다 됐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스피커 폰의 목소리가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6번 포스터. 창 박시님. 텔레미터로 보시기엔 환자 상태가 어떻습
니까?
[버티고 있는 것 같은데.......
창박사가 모니터를 보면서 말했다. 그녀는 수술팀이 방해받지 않고
일을 하게 하기 위해 조용히 앉아 있었다.
[다 열었습니다.
마침내 스피커 폰의 목소리가 말했다.
[어때?
[엉망진창입니다.꼭 건포도 젤리를 잔뜩 부어 놓은 것 같아요.
다량 출혈이었다. 스펀지와 석션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환자의 맥박이 3며로 느려졌다.
[아니. 이런 ! 이거예요. 내장이 부풀어올라 있어요. 커다란 똥 덩
리처 럼.
[말 조심해 !
창 박사가 날카롭게 외쳤다.
[이 스피커 폰에는 보안 장치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걸 모르나?
[어디 보죠, 오, 이걸, 이걸 어떻게 말해야지? 내장이 탈장되=
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겠어요?
창 박사는 잠시 멈칫했다.
[탈장?그러면 내용물이 비었다는 거야?
[예 그렇습니다. 파열되어 찢어졌고 속에 있는 것들이 죄다
나왔어요.
창 박사는 스피커 폰에 대고 손가락을 두드렸다.
[우물쭈물하지 마.주혈관을 죄어!
정적이 흘렀다.
[죄었습니다.
[맥박이 28이야.
창 박사의 음성이 뻑뻑거리는 위험 신호 사이로 울려 퍼졌다.
[혈압이 너무 낮아.
60에, 60에.
스피커 폰의 목소리가 당황한 채 더듬거렸다. 또 하나의 급한 =
리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습념
젠장, 레이챌, 레이잴 박사님은 왜 아직 소식이 없는 거죠?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비비의 간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하셨으니까 여쭤 보는 건
데요, 다른 동물들의 장기를 이식 수술에 사용하는 데 있어서 어떤 한
계가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윤리적인 한계입니까?아니면 기술적 한=1입니까?
레이웰이 물었다.
[둘다요.
[곤란한 문제부터 살펴보도록 합시다. 윤리적 측면 말이죠. 히포크
라테스 선서는 환자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원칙은 2000년 전만큼이나 오늘날에도 합당한 것입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히포크라테스는 현대의 약리학. 생화학. 유전공학 등의
의학 기술들이 이루어 낸 성과를 다룰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죠. 오늘
날 의사가 한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서 어떤 위험을 감수하기를 꺼려한
다면.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해낼 수 있는 의학 기술의 진보를 외면
한다면 과연 그의 처사가 올바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부득이
한 경우 어떤 환자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면 과연 그 행위는 올바른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릇된 행동이었을까요. 그리고 오늘 아침 제가
한 이식 수술이 부당한 것입니까? 동물의 장기라고 꺼리지 마십시오.
우리가 인간의 장기를 밭에서 재배하여 생산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
리고 동물들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을 식인 습관의 현대화된
형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들은 기술적인 측면만큼이나
어덥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문제에 당면하여 나는 말하겠습니다.
윤리적인 문제들은 크게 괘념할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그때 강의실의 뒷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중앙 통로를 서둘러 니
고 있는 것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간호사였다 그녀는 다음 호
연설을 이어 가려다 잠시 멈추었다. 간호사는 연단으로 올라와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레이웰은 놀란 표정으로 건전지가 나간 호출기를 더듬었다.
고개를 들어 청중들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급히 가봐야 할 일이 생겼군요.
[교수님이 아침에 수술하신 신장 이식 환자 때문입니까?
한 학생이 물었으나, 레이챌은 대꾸 없이 서둘러 문 밖으로 나=
[그는 이단맥 리듬을 타고 있어.
창 박사가 스피커 폰에 대고 말했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
레이챌이었다. 레이챌은 어둡게 조명된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다.
[상태가 어때?
그녀는 흔들의자를 끌어당기며 물었다 창 박사는 그녀에게
간략하게 설명했다.
레이챌은 키보드를 두드려 모니터에 나타난 환자의 혈액 내 가
유량을 살펴보고는 말했다.
[산소,환자는 산소가 필요해.
[지금 공급중입니다.
스피커 폰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00퍼센트 산소, 최대 호흡률로.
잠시 침묵이 계속되다가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반응이 없습니다. 힘들 것 같습니다.
[안 돼,좀더 해보자구.
레이웰이 소리쳤다 그녀와 창 박사는 먼 곳에서부터 텔레미터로 전
송되고 있는 상황 모니터에 눈길을 모았다. 수술팀은 조용히 일을 하
고 있었다. 순간 환자의 심장박동을 나타내는 심전도의 삐삐거리는 소
리가 멎었다.
[전기 층격기를 가져 와!
허둥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충격을 줘 ! 300줄( '에너지의 절대 단위).
리!
모두들 뒤로 물러서, 빨
전기 충격이 환자의 가슴에 들어가 심장을 자극하자 일시적으로 텔
레미터를 통해 삐 소리가 들려 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직도 반응이 없습니다.
[군소리 말고 다른 조치를 취해 봐!
레이챌이 말했다.
[내부 심근 경색이군.
약간의 소동에 이어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다른 응급 조치도 지금 하는 증입니다.
레이텔과 창 박사는 심장 근육 속으로 바늘이 찌르고 들어가는 모
습, 주사기에서 흘러나오는 에피네프린 따위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니터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수술실에서
솔러나오는 목소리는 음절 단위로 끊겨 들렸다. 환자를 살리려고 심혈
을 기울이는 것 같았다,
수술팀은 그리고도 2욘간 더 진행했다. 조용히 달그락거리는 의료
기들의 소음 사이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들은 더 버텨 보
려고 했으나 모든 필시적인 시도는 실패하고 말앗다. 마침내,
모니터에서 나는 단조로운 소리만이 남았다. 그것은 조종() 소리
.
처럼 퍼지며 의사들에게 그들은 신이 아니라 무기력한 인간이라는
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 있었다. 레이챌은 제어 스위치를 눌러
니터를 꼈다.
양쪽 스피커 폰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빌어먹을!
수술팀 쪽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당신들은 최선을 다 했어요.
레이챌이 말했다.
저쪽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거기 다들 괜찮아요?
레이챌이 재차 물었다. 수술실에서 낮게 두런대는 소리가 나더니
답해 왔다.
[예, 괜참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
요. 실제 원인은 수술 과정이었어요. 장기의 품질이나 이식 수술의
론이 아니에요. 우리가 처음으로 간장 이식 수술을 했던 70년대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이 일을 가볍게 넘겨 버리자는 애기가 아
요. 다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레이챌이 말했다.
[나중에 이야기해요, 레이.
목소리가 말했다.
전화선이 딸깍 끊겼다.
창 박사는 레이챌이 가느다갈 갈색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는
보았다. 그녀는 신경이 곤두서 있을 때만 담배를 피웠다 그녀는
터에다 대고 연기를 내뿜었다. 마치 모니터에도 잘못이 있었드힌
이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창박사가 조용히 물었다. 그녀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레이챌은 생각에 잠겨서 뺨에 손가락을 대곤 톡톡 두드렸다.
[우선 로마에 전화를 해서 델피나에게 알려야겠어. 그러고 나서, 확
신할 수는 없지만,원래의 계획대로 처리하자.......
창 박사는 눈을 치켜 뜨며 말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냉정해야 해. 네가 난감해하는 모습은 절대로 보
이지 마.
색 매클라우드 의원은 운동복 차림에 에어 슈즈를 신고 왼뺨에는
도하다 베인 상처 위에 티슈 조각을 붙인 채 욕실에서 나왔다. 그는
두운 방안에 잠시 서 있었다. 침대에서 잠들어 있는 여인을 깨우=
않았나 하는 우려에서였다. 전혀 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 =
그녀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긴 갈색 머리를 베개 위에 아무떻?
흐트러뜨린 채로 빅토리아는 모로 누워 있었다. 잠들어 있을 때조=
이 비벌리힐스 출신의 영리한 여인은 사랑스럽고도 지적으로 보였
잭은 침대 끝머리를 돌아, 읽다가 팽개쳐 둔 의회록 뭉치늘 넘어
의 잠자리 옆 테이블로 조용히 가서 앉았다. 빅토리아로부터 시=
떼지 않은 채, 뚜껑 대신 게리 라슨의 퐁자 만화책을 덮어 놓은 =
단지를 집어 올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올리브 하나를 꺼내 입에 =
후 음료수 캔을 집어 들었다 빅토리아는 여전히 아무런 기척이
다. 그녀가 올리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지=
잠들어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었다.
그는 다 마신 캔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욕실문 앞으로 걸어가,
설주를 가로질러 설치해 놓은 철봉에 매달렸다. 턱걸이를 열 번 =
하고 나서는 발목을 머리 위까지 들어올려 스펀지로 댄 신발의 코
분을 철봉에 걸고. 몸을 천천히 아래로 낮추며 양팔마저 축 늘어뜨린
채 거꾸로 매달렸다. 피가 머리로 몰렸다. 그는 눈을 감았다. 잠시 시
간이홀렀다
몇 시나 됐을까? 빅토리아 옆에 있는 디지털 시계는 4시 35분을표
시하며 붉게 빛나고 있었다. '미친 짓이야.'그는 생각했다. '옛날 일
로 인해 잠 못 이루고 한밤중에 깨어 있다니 더 끔찍한 것은 이 빌어
먹을 몽유병 증세야. 이젠 25년이나 지났어 이미 깃난 일이야. 잊어버
=야 해.'
그는 다시 눈을 감고 전날의 일을 되씹어 보았다. 의사당까지 택시
를타고 사무실에 도착해서 보좌관 벤 제이콤스가 시급하다고 분류해
놓은 우편물을 검토했다. 그러고 나서 개인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필요
가 있는 편지들에 사인을 해서 보냈고, 뉴스 스크랩을 훌어보았다. 그
후엔 메모를 검토하고 아침 뉴스를 시청한 뒤 전날 왔던 전화들에 대
해 답신을 보냈다
8월 중순경 의회가 휴회하기 전까지는 유권자들과 로비스트들을 만
나서 밀고 당기는 머리 싸움을 해야 했다. 10시쯤 되어서는 입법 보좌
관을 대동하고 의사당을 지나 상원을 향해 가면서 그날 아침 상하뭔
합동 청문회에서 증언을 하기로 되어 있는 증인들에 대한 간략한 브리
핑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오난다가의 민주당 위원장. 누구더라? 아무
튼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연례 만찬에서 연설해 달라는 그의 요청을
수락하겠다는 통보를 했다. 시러큐스는 그의 지역구인 맨해튼에서 멀
리 떨어져 있었지만 몇 년 후 상원의원에 출마하자면 오난다가의 표밭
을 다져 놓을 필요가 있었다. 어쨌든 오난다가는 시러큐스 지역에 있
으니카. 시러큐스. 시러큐스. 바로 그 사건이 벌어졌던 곳이었다. '빌
어먹을 또 시작이군.'
그는 의식을 죄고 있던 고삐를 풀고 생각이 제멋대로 풀어져 나가게
내버려 두었다. 지난 몇 주 동안 계속 꾸어댔던 꿈들이 푸가(;
럼 반복되면서 뇌리에 연이어 떠올랐다, 상황만 다를 뿐 주제는
나 똑같은 꿈들. 오늘 밤 꿈에는 그 여인이 언제나처럼 팔에 꾸러
끼고 얼굴 가득 고뇌의 빛을 띤 채로. 파도 치는 바닷가의 제방
서 있었다. 빽빽한 밀밭을 헤쳐 나가듯이 힘들게 그쟈에게 다가
마침내 가까워지자 그녀는 제방 끝에서 떨어져 파도 속으로 사라]
렸다. 팔에는 여전히 그 아기를 안은 채로.
그는 눈을 떴다. 시계의 숫자는 4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햇멎은 닫혀진 커튼 사이로 곧 새어 들어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잠들기에는 너무 늦게 된다. 그는 몸을 일으켜 철봉을 잡고 발을
후 유연하게 내려서서 신을 벗고는, 빅토리아를 깨우지 않도록 조
면서 침대로 올라가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시곤 시트를 어깨까=
어올려 덮었다. 그리고 그의 하루 일과의 첫번째 순서인 워싱턴
시간대에 맞춰진 자동 텔레비전 타이머가 그와 빅토리아를 깨우?
까지 한 시간 가량 더 잠을 청해 보기로 했다.
잭은 눈을 감고 전신의 긴장을 풀었다, 그의 몸은 회색및 바다
순조롭게 떠가고 있었다. 버려야 할 기억들이 물에 씻기면서 햇'
하얗게 탈색되다가 사라져 갔다.
=는 이제 거의 수면 상태로 들어갔다.
아침 6시였다. 12월이라 아직 어두웠다. 잭은 아직도 로베르티
신발 수선 가게 건너편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청바]
머니에 손을 집어 넣고 가죽점퍼를 걸친 어깨를 웅크렸다. 이슬1
진눈깨비로 바뀌고 그것이 눈발로, 그 눈이 다시 비로 바뀌는 것]
켜보면서 그렇게 한 시간을 서 있었다.
우유, 도넛, 소다를 실은 배달 트럭들이 지나쳐 가고 신문사 트
길모퉁이에 뉴욕 데일리 뉴스 뭉치들을 떨어뜨렸다. 버스도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번 지나갔다. 하지만 경찰 순찰차는 단 한 대도 눈에
띄지 않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길을 건너면서 그는 모든 변수를 생각해 보았다. 로베르티니 영감은
언제나 금전등록기 뒤켠에다 그 상자를 놓아두곤 했었지만 그것은 여
름의 일이었다. 상자가 아직도 그곳에 있을 확률이 있을까? 그는 팔을
문질러댔다. '아니야, 아니야.' 문제는 그게 아니다. 과연 그 상자를
흄쳐내기 위해 저 가게로 숨어 들어갈 것이냐. 그것이 문제인 것이었
다. 그는 경찰이 없나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폈다. 없었다. 보이는 차라
곤 헤드라이트를 켠 채 길 건너편에 주차된 빨간색 폰티악뿐이었다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배터리만 소모하고 있었다. '훌륭한
차로군!'
갈등이 이어졌다. '그래, 이건 도둑질이 아니다. 잠시 빌리는 것뿐
이야. 다음 주쯤엔 아마 이 돈을 되돌려줄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딸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만약 영감님도 지금 내 처지를 안다면
이해하고 용서해 줄 거야. 그 노인은 워낙 괴짜니카 감사의 쪽지가 적
힌 익명의 돈 봉투를 받고 나서야 돈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지도 몰라.
어쩌면. 만약. 빌어먹을, 아무래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잭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 위해 눈을 깜박거리다가 크게 떴다. 양
쪽 발도 번갈아 구르며 피를 돌게 했다. 만약 잡힌다면 모든 것이 끝장
이다. 대학도. 직업도, 미래도. 루보프네 집에서 벌렸던 포커판처럼 위
험률은 높은데 승산은 거의 없고 결과 또한 안 좋은 모험인 것이었다.
앵거스 브로디와 한 판 벌렸을 때는 그렇게 쉼게 돈을 긁어모았던 이
마법의 양손에 도대체 무슨 저주의 주문이 걸렸기에 그날은 그렇게 쫄
딱 털리고 말았던가? 재능이 아니라 돈이 필요했다. 어디 포커라는 것
이 닫순히 기술만 있으면 다 되는 게임이던가? 운과 타이밍, 패돌리
기. 모든 것이 중요했다. 한 달 내내 불운의 연속이었다. 물론 계속 '
때가 있듯이 또 연속 잃을 때도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버스가 한 대 멈춰 섰다. 결정을 해야 했다. '여기서 빠져 나가.
도짓은 네가 해야 할 게임이 아냐. 그리고 오늘 밤엔 운도 안 따라
것 같아.'
그는 버스를 향해 달렸다. 막 문이 닫히려 할 때 버스에 올라탔=
버스는 출발했고 그는 동전 박스 앞에 서서 26센트짜리 동전을 찾;
위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동전을 커냈지만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
동전은 운전석 밑으로 굴러갔다
[놔둬. 다음 정류장에서 내가 꺼낼 테니까.
잭은 몸을 구부려 동전을 주운 후 박스에 집어 넣었다.
[고마워.
운전기사가 말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네. -
잭은 자리를 잡고 앉아서 턱을 팔에 괸 채 차창 밖을 내다봤다. 지
에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느리게 걷고 있었으며, 아직 열지 않은 가:
들은 삭막하고 생동감이 없어 보였다. 의상실; 자물쇠 가게, 미장
잡화점. 이발소. 담배 가게들 모두 다 그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거창
이름들을 갖고 있었다. 천국 카페.이상적 세탁소,매혹적,고'
한.원조 등등. 여긴 브루클린이다.다저스팀을 마약에 팔아먹_
옆집에 강도짓을 하러 들어가는 그런 곳이다. 천국? 분명 그떻지.
러니 내가 지금 강도짓을 포기하고 떠나는 게 아닌가?
그는 시계를 봤.다. 한 시간 후면 그레이하운드 버스 대합실에서 '
다리고 있는 하니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버스는 멈춰 서서 승객 한 사람을 태우고 다시 출발했다. 무심코
밖을 보다가 차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생각을
다. 입매와 턱 언저리가 특히 그랬다.
잭은 몇 시간 전에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아버지는
멜빵을 어깨에서 풀어놓은 채 낡아빠진 안락의자에 앉아 잠들어 있었
다. 무릎에는 성경책이 펼쳐져 있었고, 앞에 있는 오래된 탁자 위에는
반쯤 두다 만 중국식 장기판이 놓여 있었댜. 잭은 아버지를 깨워서 속
마음을 털어놓고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루보즈 장의사 집에서 금요일
마다 열리는 포커 게임을 하러 가야 했다.
잭은 아버지와 자신의 고민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다른 일들에 관해서도 별로 대화가 없었다, 그래서 잭은 언제
나 아버지에 게 섭섭한 마음을 가졌었다. 그러나 한편 아버지의 처지를
혜아려 보면 섭섭해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누라는 죽고 줄줄이
아들 다섯만 딸린 가난한 스코틀랜드 계 이주민으로. 교사의 꿈을 당
장의 빵을 위해 브루클린 조선소의 막노동 자리와 바꿀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남자였다. 만약 그도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면 역시 말
수가 없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잭은 주머니에서 돈을 커내 다시 세어 보았다. 55달러 그대로였다
빌어먹을, 프레디 앤티콜리, 그를 생각하자 잭은 떠리끝이 쭈뻣해졌
다. 몇 시간 전. 집에서 나와사_는 그 길로 곧장 프레디와 만났었다. 프
레디는 로마노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식당 유니폼
차림으로 지배인의 눈치를 살펴 가며 잭에게 사정 얘기를 들려줬다.
그의 장인이 그들 부부와 그들의 갓난아기, 이렇게 세 식구를 내쫓아
버리는 바람에 프레디는 그만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고 했다. 당장 들
어가 살 한 칸짜리 사글세방이라도 마련하기 위해서 식당의 금전등록
기에 손을 댔던 것이었다. 그는 잭의 손에 꼬깃꼬깃 접은 55달러를 쥐
어 주면서 누가 눈치채기 전에 흄친 돈을 도로 가져다 놓아야 한다며
어떻게든 세 배로 불려 달라고 통사정을 해댔다. 식당에서 일을
서 부업으로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해야만 세 식구 입에 풀칠을 해.
아이를 위해 종이 기저귀라도 사다 줄 수 있다고 거의 울먹이며
연했었다. 헤어지면서 프레디는 이렇게 덧붙였다.
[잭. 열일곱 살에 결흔해서 아이까지 딸린 가장이 된다는 것이
나 비참한 일인지 넌 모를 거야.
그러나 잭도 잘 알고 있었다. 여자애를 일단 임신시키고 나면
은 외길이 되어 버리고 만다. 학교를 그만두고 힘든 노동판을 기
려야 한다. 장인이 마련해 주지 않는 턱시도를 빌려 입고 결혼식1
리고 힘들고 더러운 나락 속에서 일생을 허우적거리다가 천천히 _
가는 것이다.
식당문 앞까지 배응 나온 프레디는 그에게 행운을 빌며 기도하는
농을 지어 보였다. 애처롭도록 유치했다. 빌어먹을, 더 이상 그는
알고 있던 프레디 앤티콜리가 아니었다. 피멍투성이의 몸을 끌고도
교 미식 축구의 슈팅 기록을 갱신했던 스타 플레이어, 입가의 미=
너무도 여유로워 보이던 옛날의 같은 반 친구 프레디 앤티콜리가
었다.
'그떻다. 만일 크게 한 건 올리지 못한다면
프레디의 처량했던 ]
은 바로 가까운 앞날의 내 모습일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는 벌떡 일어서서 버스 통로 가운데 1
스테인리스 손잡이를 쥐었다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려야 했다. 머
에서는 정반대가 되는 두 개의 격언이 서로 다톰질을 하고 있었다.
'항아리가 무거울 때는 결코 그 안을 꽉 채우지 말라.'
포커판에서 얻은 지혜가 집으로 가라고 재촉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버스기사의 말이 일을 저질러 보라고 층동질했다.
두 가지 생각은 팽팽한 균형을 이루며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 킴비의 귀저기를 사고 있는 프레디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끼 꾄분 전. 잭은 다시 로베르티니 가게 맞은편에 돌아와 있었다
거리를 뛰어서 왔기 때문에 땀이 흐르고 있었고 가슴도 뻐근했다.
숨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양심과는 충분히 싸웠고 이제 억기
서발을 뺄 수는 없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이제 몇 분 후면 여기저기서 가게
들이 문을 열기 시작할 터였다. '아직도 가능해. 이전에 포커판에서 연
속적으쯔 돈을 왕창 긁어모은 적이 있었지. 행운이었어. 이번에도 그
런 운이 찾아 줄지 누가 알겠어?' 게다가 돈이 꼭 필요한 다른 중요한
일도 하나 있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잭은 길가에서 끝이 뾰족한 나무막대 하나와 쓰레기통을 뒤져서 찾
은 젖은 신문지를 들고는 가게를 향해 길을 건녔다. 여전히 켜진 채로
있는 붉은 폰티악의 헤드라이트 불멎은 희미해져 있었다. 가게 입구는
=!날 구두들,고무 구두창들 그리고 키위 구두약을 선전하는 낡은 광
고판이 전시된 두 개의 유리 진열창 사이로 12미터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그를 볼 수 있는 건 그들이 정확히 문에서
정반대쪽에 있을 때만 가능했다.
그는 눅눅한 신문지를 펼쳐서 3센티미터 정도만 남겨 놓고는 문짝
의 아래 틈으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나무막대를 수술용 메
스처럼 쥐고서는 열쇠 구멍으로 밀어 넣고 걸리는 것이 없어질 때까지
혼들어댔다.
열쇠가 문 안쪽으로 떨어졌다.
그는 열쇠가 윙겨나가지 않기를, 또 젖은 종이가 찢어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신문지를 자기 쪽으로 조심조심 끌어당겼다. 긴장되고 초조
한 시간이 홀렀다. 신문지가 문 밑으로 거의 다 당겨져 나왔을 즈음에
야 드디어 열쇠가 나타났다. 열쇠는 신문 0면의 제일 위쪽, 경찰
신입생들 앞에서 훈화를 하고 있는 경찰청장 사진 바로 위에 얹=
떴다. 사진에 나와 있는 경찰 배지가 섬뜩하기는 했지만 크게 놀
는 않았다. 미신이나 불길한 징조 때문에 여기서 일을 멈출 수는
다. 기왕에 시작한 일이었다.
잭은 일어서서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버스도 경찰도.
열쇠를 구멍에 밀어 넣고 돌렸다. 문이 열렸다. 맙소사. 가게 안]
편없이 어질러져 있었다. 이 일이 끝나면 영감에게 좀 깨끗이 해
장사하라고 해야지.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기름 냄.
코를 자극했다.몇 달 전만 해도 그는 이 가게의 충실한 종업원이=
불을 켤까? 그러면 지나던 사람이 그를 보더라도 의심하지 않을
다. 그런데 가게 안에 사람이 있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 아닌가? ;
그냥 놔두자. 가로등 빛만으로도 층분해. 그는 문제의 신발 상자?
으리라고 예상했던 곳으로 곧장 걸어갔다. '옳거니.'상자는 바로 _
에 있었다. 잭은 상자를 열고 노란색 영수증 밑을 들췄다. 지폐 더?
정리되지 않은 채로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행운은 결국 그를
지 않았다.
그는 0달러와 5달러짜리로 0달러를 세어서 미수금 영수증
옆에 있는 봉투를 하나 집어, 그 속에 넣은 후 점퍼 주머니에 집어
었다. 그러고 나서 조심스럽게 나머지 돈들을 상자에 넣고 선반에
려놓았다.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잭은 문 앞에 서서 잠시 바깥쪽의
척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몸이 빠져 나가기에 충분할 만큼만 문을 열었다. 그렇게
진짜 강도가 된 것 같았다. 잭은 가게를 나와 문을 닫았다. 문을 =
고 나서 열쇠를 문 아래로 밀어 넣었다. 아마 로베르티니 영감은
채지 못할 것이다. 중력의 법칙에 의해 저절로 떨어졌다고 생각
지. 워낙에 칠칠맞은 노인네니까.
두 개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다가왔다. 경찰일까? 그는 꼼짝 않고 인
도에 섰다. 푸른색 포드였다. 운전사는 운전대에 응크리고 앉아 앞 유
리에 맺힌 서리를 닦아 내며 빠르게 그를 지나쳐 갔다.
이윽고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그는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불빛이 꺼져 가는 폰티악을 지나치
면서 걸음을 늦추며 멈춰 섰다. '빌어먹을, 너 왜 이러니? 하지마. 이
정도변 이미 행운을 충분히 시험한 셈이잖아.'
그떻게 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뇌까리면서도 잭은 자신이 뭘
할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거리 이쪽저쪽을 살폈다. 거리 한 켠에 우산을 눌러쓴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다른 쪽에는 출근하는 사람이 몇 명 보였다. 잽싸게 움
직인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잭은 폰티악 운전석 쪽으로 걸어
가 문을 당겼다. 또다시 운이 좋았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주위를
살핀 후 그는 라이트를 꼈다. 운이 좋다면 차를 움직일 만큼의 충분한
기름이 남아 있을 것이다. 역시 기름은 충분했다. 그러나 모험은 피했
다.
잭은 차에서 내려왔다.경찰이 그를 붙들어서는 흠친 돈을 발견하고
감옥에 보내 버리는 장면을 떠올리며 가만히 서 있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들키지 않고 남의 돈을 흠치는 데 성공했고 남의 눈
에 띄지 않게 좋은 일도 하나 해냈다.
'이제 연속된 불운은 막을 내린 거야.'
잭은 그레이하운드 버스 정류장을 향해 뛰었다. 서두른다면 시간은
층분했다.
이제 곧 사랑하는 하니를 만날 것이다.
이상한 것은 그 남자가 새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점에 대
서 굳이 의심을 품을 것까지는 없었다. 옷 위로는 총알 구멍도 없고
자국도 없었다. 하지만 '바주카 조'윌슨 형사는 직업적 본능으로 뭔
석연치 않은 사건의 낌새를 느꼈다. 그는 검시를 의뢰하기로 했다
윌슨이 해부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한쪽 켠에서 등을 돌리고
서 풀어헤친 가운에다가 손을 북북 문질러 닦고 있는 사람이 있었디
[랜디 박사님이십니까?
그 사람이 윌슨을 돌아보는 순간 윌슨은 내심 놀랐다. 그는 언=
검시관들이란 소름 끼치는 용모를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긴
리, 눈 밑에 움푹 패인 주름, 굽은 등. 그러나 이 남자는 그렇지
다. 영화 배우처럼 말쑥했다. 30대 중반에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
다. 각진 턱에 적당한 키. 준수한 외모. 그리고 파깔 핀으로 꽂은 =
타이까지. 어찌 보면 보험회사를 출입하는 손해사정인처럼 보였다.
보조원들은 시체를 해부용 탁자 위에다 아무렇게나 부려 놓고는
가 버렸다. 노동절 주말인 데다 5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내일은 휴일입니다. 시체를 냉각기 속에 며칠 보관해 두면 어=
습니까틴
랜디가 말했다.
이 시체를 오늘 위스콘신 애비뉴의 데어리 퀸
데,팬지 지금 곧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뒤쪽에서
발견했는
[흐음 그래요.좋습니다.
'마음씨 좋은 검시관이군!' 윌슨은 생각했다
랜디는 시체 쪽으로 걸어갔다
[어떤 점이 관심을 끌지요. 경사?
[윌슨입니다. 겉 보기에 그는 평범한
집 없는 떠돌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입고 있는 옷을 좀 보세요.
그는 재킷 주머니를 만졌다. 호주머니를 꿰맨 실을 뜯어내지도 않은
상태였다.
랜디는 소매를 만져 보았다.
[새 옷을 입은 사람은 죽지 않는다 이겁니까?
예리한 질문이었다.
[글쎄요.
랜디는 주먹 쥔 손으로 철제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는 가운을 여미고 라텍스 장갑과 소매 보호대를 낀 다음 해
부대 위의 도구들을 정돈했다. 스트라이커 톱, 핀셋, 가위 그리고 깊고
날카로운 외과 수술용 메스 등등
[됐어요, 이제 어디 봅시다.
랜디가 말했다.
윌슨은 몸을 숙여 시체를 보았다.
[양손에 굳은살이 단단히 박여 있군요
는 직업을 가졌었나 보죠?
아마 도끼 같은 것을 휘두르
랜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팔꿈치 경련을 조사하려는 듯
팔을 들어 보았다. 근육은 오한 때문에 뻣뻣해져 있었다.
=1421 '=5=
[이 사람은 죽은 지 24시간도 안 됐어요.
두 사람은 시체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코트를 벗기고 랜디는 넥
타이를 풀다 말고 매듭을 살펴보려고 동작을 멈췄다.
[왼손으로 맨 매듭이군요.
그는 죽은 남자의 셔츠에서 단추를 풀고 벗겨 냈다. 시체는 깨끗한
횐 티셔츠 차림이 되었다. 랜디는 남자의 팔을 들어 찔러 보기도 하고
이두근을 비롯한 여러 근육들을 꽉 잡아 보기도 하더니 말했다.
[도끼를 다룬 게 아니라 펌프질을 해온 것 같아요.
그는 시체의 손가락 근육도 만져 보았다.
[이상하네. 이 사람은 오른손잡이인 것 같은데.
그는 휴대용 올림포스 녹음기의 스위치를 올렸다
[백인 남성, 30세에서 35세 사이,
그는 시체의 신발끈에 매달린, 채 떼내지 않은 상표 딱지를 툭 쳤다
75센티미터, 68킬로그램, 얼굴, 목, 머리 부위에 눈에 띄는 외싱
음.
그는 녹음기를 끄고 가위를 집어 들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
없
가 말했다.
[해부하는 것을 본 적이 있소?
[예. 있습니다.
윌슨은 자신의 청바지와 지저분한 흰 운동화 쪽으로 시선을 내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 랜디는 가위 끝을 남자의 티셔츠 아래에 넣고 ]
부위에서부터 잘라 나가기 시작했다
[괜찮겠어요?
[문제없습니다.
밸
윌슨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해부 장연을 백'번도 넘게 참관=
베테랑들도 때로는 나자빠진다는 것을 얘기로 들어 알고 있었다 경
활초기부터 시체 해부라니, 재수도 더럽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면 티셔츠가 찢겨져 나가고 있었다.
싹둑, 싹둑......
잠시 후 뭔가가 시체의 맨가슴에 나타났다.
처가 아니었다,
베인 상처였다. 할퀸 상
깊고 커다갈 상처.
싹둑,싹둑.
떼인 자국이 어깨에서부터 가슴 중간까지 나 있었다. 윌슨은 낭떠러
지 끝에 서서 밑을 내려다보듯 거리를 두고 시체 위로 몸을 굽히고 관
찰을 했다.
[꿔죠?
랜디는 아무 말 없이 가위질을 계속 해나갔다. 티셔츠가 완전히 잘
려져 나가자 자형의 커다란 칼자국이 나 있는 몸통이 드러났다. 두
개의 자국이 양 어깨에서 시작되어 흉골까지 내려와 합쳐져 하나가 된
뒤. 배꼽 주위를 지청으로 돌아 아랫배 중간까지 내려가 있었다. 싱
처는 평범한 면실로 야구공 꿰매듯 길게 한 땀으로 봉합되어 있었다
랜디는 그 봉합선의 매듭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수술대 위에 설치된 실
패에 감겨 있는 수술용 실타래를 쳐다보았다.
[호오, 이거 흥미로운데.
그는 혼자말을 했다.
[뭐가요?
윌슨이 물었다.
[이 남자는 이미 한 차례 해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윌슨은 손가락 마디로 윗입술에 묻은 땀을 닦았다. 뭔가 설명을 구
하려고 랜디의 얼굴을 응시했지만. 그는 작업에 몰두한 채 미동도 하
지 않고 서 있었다. 윌슨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파란색 작업복 셔
츠의 윗단추를 풀었다. 나자빠지지 않고 온전하게 숨을 쉬며 두
로 서 있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용기를 내어
않는 시선을 시체의 상체에 고정시켰다.
방안은 고요했다. 수술용 램프의 필라멘트가 머리 위에서 지3
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시체를 잠시 관찰한 다음 랜디는 남자의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
밑에서 먼지 부스러기를 떼어 냈다. 그러고 나서 시체의 벨트를
바지를 벗겼다. 팬티는 입고 있지 않았다.
랜디는 녹음을 시작했다.
[아래쪽으로는 상처가 없다. 눈에 띄는 해부 자국은 음경까지
져 있다.
그는 카메라를 들어 시체의 전신 사진을 찍었다. 그런 다음 윌
도움을 받아서 시체를 뒤집어 놓고는 뒷모습도 사진에 담았다. 그
그 시체를 다시 똑바로 뉘인 후, 검시를 하기 위해 가슴 부위가 들
록 고무 받침대를 어깨와 등뼈 사이에 괴고서. 해부대 바로 위로
이 비치도록 램프의 위치를 고정시켰다. 그러고 나서 불빛을 받
뜩거리는 가위날을 시체의 왼쪽 어깨를 꿰매 놓은 첫번째 봉합선
가져다 댔다. 싹둑, 실이 풀리며 피부가 헤지기 시작했다.
싹둑. 싹둑. 싹둑.
오른쪽 어깨의 실도 잘라 나갔다. 마침내 양 어깨에서부러 명]
위까지 이어진 두 개의 해부 자국의 봉합이 다 풀어져 나갔다. 한
그 남자의 가슴팍이었던 부분이 이제는 자 모양의 널판으로 분
었다. 랜디는 그 자의 꼭지점 부분을 잡아채더니 마치 편지 봉
입구를 열 듯 위쪽으로 벗겨 냈다.
윌슨은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그만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제기랄.
믹
그는 눈을 굴리면서 중얼거렸다. 그의 눈과 뺨은 혈액 순환이 안 태
따끔거렸다.
랜디는 시체를 바라보았다.흉골이 연골 조직과 만나는 접합부에 톱
자국이 나 있었다. 그는 흐느적거리는 가슴판을 뜰어올리고 몸을 앞으
로 숙여 녹음기를 집어 들었다
[횡경막은 이미 잘려 나가고 없음.
그러고 나서 가위를 다시 집어 들고 심장을 싸고 있는 인대와 혈관
을 잘라 내기 위해 가슴에 난 구멍으로 가져 가다가 그만 멈췄다.
심장을 보호하는 반 투명한 기낭이 이미 절개된 후 호치키스로 봉해
져 있었던 것이다.
[희한하게 해부했네요.
랜디가 말했다.
윌슨으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금
몸을 앞으로 굽혀서 팔꿈치를 수술대 모서리에 대고 턱을 괸 채로 시
체의 발끝만 열심히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를 보고 랜디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는 메스로 기낭을 쭈욱 짼 뒤. 두 손을 담그더니 시체의 심장을 들
어냈다. 윌슨은 그것을 힐끗 보았다. 그것은 겨자처럼 노란 지방층으
로 뒤덮인 닭가슴처럼 보였다. '노랗다? 에라이.'이 남자의 심장이 적
십자 마크처럼 빨갛지 않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는 꼿
꼿이 일어서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한번 보세요.
랜디가 그의 손에 심장을 건네주었다.
윌슨은 마지못해 그 말에 따랐다. 검은 점이 있었다
[그게 뭐죠?
[지진 자국이죠.
떨
'촬
[무엇 때문에 지져요?
[피를 뽑기 위해서죠. 태운 자국은 표면을 소독하기 위한 것입
다.
너무나 끔찍해서 윌슨은 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랜디는
부대 한쪽 끝의 선반을 가리키며 그것을 시체의 맨 허벅다리 위에
쳐 놓으라고 말했다. 윌슨이 시키는 대로 선반을 갖다 놓자 랜디는
장을 그 위에 올려놓고는 다시 시체 부검에 몰입해 들어갔다. 그는
미 뒤집어 놓은 가슴판을 시체의 얼굴이 덮일 정도로 바싹 걷어 올
뒤 램프의 조명 각도를 재조정하고서는 다시 시체의 몸통에 양손을
셔 넣어 이번에는 허파를 들어냈다. 그러고 나서 그 푹신푹신한 호
빛 나는 장기를 선반 위에 올려놓고는 절단면이 넓은 메스로 단번
반쪽으로 가르고서 조직에 어떤 이상이 있는지 주물러 가며 확인을
다.
그러는 동안 랜디의 입술이. 자신의 네 살짜리 딸이 무엇에 열중
때면 늘 그렇듯이 위쪽으로 말려 올라가 있는 것을 윌슨은 보았다
[그게 윌니까?
거무죽죽하고 조잡한 줄무늬였다.
[탄소 알갱이입니다.
랜디가 말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입니까?
[아니면,도시 거주자이죠.
[그것 때문에 죽은 겁니까?
그의 어조는 정말로 그랬으면 하는 바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
랜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시체의 가슴 속을 헤집으며 대동맥
관찰했다. 갑자기 그가 멈칫했다.
[점점 더 이상해지는군.시체는 제혈된 상태입니다.
[제혈요?
[피가 뽑혔다고요. 피뿐만 아니라 체액도 다 뽑혔어요.
그는 가위를 남자의 푸르스름한 피부에 대고 자 상처의 흉골부터
복부까지의 일자 부위를 한 땀씩 자르기 시작했다. 윌슨은 일부러 눈
을 가릴 정도로 손을 들어 코 언저리를 긁어댔다 랜디는 윌슨이 꽤나
용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냄비에 볶아 놓은 고기 요리에 생기는 주름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는 도움이 될까 싶어 친절하게 충고했지만 그 말이 윌슨의 속을
오히려 더 뒤집어 놓았다. 마지막 봉합선을 제거한 뒤 랜디는 시체 위
로 몸을 굽히고 절개된 상처 속으로 양슨을 집어 넣어 살가더을 잡아
벌렸다. 핑크색, 회색, 황갈색 등의 기관들이 불빛에 비쳐서 미끈덩미
끈덩 출렁거리고 있었다. 내장을 살펴보던 랜디는 갈비뼈 아래까지 손
을 깊숙이 집어 넣고 더듬어 보았다. 갑자기 그의 표정에 당혹한 및이
역력히 나타났다.
[아니? 이런.
[꿔 잘못됐습니까?
윌슨이 물었다.
[간, 간이오.
[그게 어떻게 됐는데요?
[없어요.
윌슨은 시체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랜디는 돌아보지 않았다.
[어디 가세요?
[토할 만한 그룻이 어디 없을까요?
윌슨은 땀을 홀리며 말했다. 랜디는 머리를 들었다.
[카운터에 없으면 옆방에 있을 겁니다. 어떻게든 참아 낼 수만 있다
면 옆에 계속 있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도대체 어찌된 영문=
모르겠거든요, 증인이 되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윌슨은 가다 말고 돌아서서 해부 탁자의 한쪽에 양팔을 뻗어 걸]
머리를 그 사이로 숙였다. 마치 차를 미는 듯한 자세였다.
[어질어질하면 바닥에 앉아 보세요.좀 도움이 될 겁니다.
랜디가 말했다.
[네.그러죠]
윌슨이 증얼거렸다. 바로 그가 원하던 바였다
랜디는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소장과 위를 연결해 주는
()들을 절단하고는 암갈색 창자를 밖으로 당겨 끄집어내면서 ?
붙어 있는 지방을 얇게 저며 내기 시작했다. 약 9미터는 됨직한 =
가 둘둘 말린 채 시체 곁에 쌓여 가는 것을 윌슨은 반은 넋이 나간
로 보면서, 그 모양이 마치 조그만 서커스 차 안에서 그 안에 다 =
있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숫자의 어릿광대들이 줄줄이 나]
광경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똑바로 일어서서 랜디가 녹=
에 대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관자놀이에서부터 흐르는 땀=
를 씻어 냈다. 랜디는 녹음 작업을 마치고 나서 기계를 탁자에 내=
고는 윌슨의 안색을 살폈다.
[오! 아직 계셨군요.
[네. 그럭저럭 버티고 있습니다.
윌슨은 코트 주머니를 더듬어 풍선껌을 하나 꺼내서는 포장지외
스갯소리를 적은 종이 쪽지를 찢어 버리고는 씹기 시작했다.
랜디는 연결 조직을 좀더 잘라 낸 뒤 비장을 꺼냈다.그러고 나]
는 췌장과 위를 한꺼번에 들어내어 선반에 놓았다. 그리고는 가=
위를 가르고서 그 내용물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서는 불빛에 비추
며 손가락으로 휘휘 헤집어 보았다. 담즙과 음식 찌꺼기. 그리고
1내로 갖추고 있는 해산물 등등이 들어 있었다.
히소한 이 사람이 미국인임에 틀림없다는 것은 알겠는데요.
니는 말했다.
왜죠?
음식물을 제대로 씹지도 않고 넘겨 버리는 게 미국 사람들 특징 아
=니까?
랜디는 왼쪽 신장을 피막으로부터 벗겨 내 천칭 위의 얇은 금속판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오른쪽 신장도 그렇게 했다.
[간이나 신장은 조심스럽게 다뤄야 돼요.
그는 말했다.
[저울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지기 십상이니까요.
윌슨은 불빛 아래에서 흔들리고 있는 금속 팬을 응시했다. 신장 파
이!그는 생각했다. '신장 파이() 라고?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정말 미치겠군.'
이제 작업은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직장으로부터 결장을 절단해
낼 준비를 하면서 랜디는 대장에서 가장 큰 부분인 맹장이라 불리우는
주머니를 들어올렸다. 그때 무엇인가가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것 봐라?
옆면에 봉합선이 또 나 있었다.
그는 가위로 봉합을 뜯고 손을 안으로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그만
얼어붙어 버렸다.
[세상에, 이게 뭐야?
윌슨은 껌 씹기를 멈췄다. 그의 눈이 화등잔만큼 크게 떠졌다. 랜디
는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의 물체를 끄집어냈다 아직 제대로 분간하기
는 힘들었지만 대충 사람의 형체를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팔, 다리
머리통이 달려 있었다. 랜디는 그것의 다리를 붙잡고 들어올렸다.
인형이었다. 플라스틱 인형.
[절 놀리시는 겁니까?
윌슨이 놀랐던 마음을 가다듬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랜디는 그것을 앞뒤로 돌려 보다가 배 중앙부에 난 땅콩알 크기
검은 구멍을 살펴보려고 멈췄다. 그는 새끼손가락으로 구멍을 만져
고 인형을 귀로 가져가 흔들어 보았다. 뭔가가 덜그럭거렸다.
그는 인형을 철제 격자판에 올려놓고 초승달 모양의 메스를 집어
는 목 주위를 깨끗하게 절단한 뒤 머리를 뽑고 몸통을 거꾸로 기울
다. 뭔가 작은 물체가 떨어지면서 금속판에 부딪치며 튀어 올랐다.
는 그것을 핀셋으로 집어 올려서 확대경으로 검사했다.
[부러진 연필 같은데....... 옆면에 ' ......'라는 철자만 남아
군요.
그는 그것을 인형의 배에 난 구멍에 대 보았다,딱 들어맞았다.
[누군가 연필심으로 인형 배 부분에 구멍을 뚫었군요.그 와중에
필은 부러져 버렸고.
그는 인형을 집어 들고 다시 한 번 거꾸로 뒤집어 보았다.이번
빨갛고 노란 아스피린 캡슐이 카운터에 떨어졌다. 그는 그것을 핀섯
로 집어 들고 전등 밑으로 가져간 뒤 조심스럽게 열었다. 약가루 디
꼭꼭 접힌 종이가 나왔다. 행운의 과자를 쪼개면 나오는 메시지
크기였다. 그는 그것을 집어 들어 조심스럼펠 결친 후, 절단판 위어
핀으로 꽂았다. 뭔가가 씌여 있었다. 연필로 쓴 글씨였다.
두 사람은 글씨를 읽어 보려고 고개를 숙이다 그만 서로쉭 머
부딪쳤다.
'인형을 가지시오.'
텔레비전의 자동 타이머는 정확히 6시 30.빔에 켜졌다. 마치 신이 정
보 매체의 힘에 굴복한 나머지. 수닭의 울음소리와 떠오르는 태양 대
신에 아침 방송의 커피 광고로 새 아침이 밝았음을 알려 주는 꼴이었
다.
[오늘의 날씨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이곳 워싱턴에 클레이 데통령과 그의 안브 보좌관.......
잭은 눈을 끔벅이며 텔레비전을 보면서 손을 빅토리아의 잠옷 안으
로 밀어 넣어 그녀의 따뜻한 등을 쓰다듬었다.
[일어날 시간이야.
그얼는 고무 밴드처럼 기지개를 켰다.
[깨어났어요.
그리고는 유연하게 다시 원래 자세로 되돌아갔다. 그는 침대 가운데
에 앉아서 머리를 긁으며 텔레비전을 보았다. 20대 중반쯤 됐을까?적
갈색 머리의, 미모의 옇기자가 워싱턴 경찰국 계단에서 마이크를 손에
든 채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올리 맥코믹입니다. 어제 뉴욕 출신 남자 한 명이 이
곳 워싱턴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시체의 신원은
가석방중인 죄수 멜빈 쉬버스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에 의하면 그는
석방 조건으로 맨해튼의 보호 감호소에서 잔여 형기를 채우던 중
월 전부터 실종 상태였다가 어젯밤 위스콘신 애비뉴 데어리 퀸에서
체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특히 기자의 관심을
는 것은 사건의 괴기성에 있습니다. 부검중에 밝척진 바에 의하면
체에는 간이 온데간데없고, 대신 뱃속에 아기인형이 하나 들어 있=
고 합니다.
빅토리아는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 되었다. 그녀는 어느새 침대 중
에 앉아 담요로 다리를 감싼 채 곁눈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어떤 추측들을 하고 있죠?
앵커가 물었다.
[공식적인 것은 없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나눠 본 뉴욕 경찰청의
떤 경사의 말에 따르면, 쉬버스는 12년 전 뉴욕 퀸즈에서 낙태 진로
를 폭파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었답니다. 그와 그의 공
은 의사와 10대 환자를 살해한 죄로 일급 살인죄를 선고받았다고 힙
다.
빅토리아는 탁자를 더듬어 그녀가 전날 밤 읽다 만 법률 서류 위
놓여 있는 안경을 찾아 썼다.
[경찰측은 용의자를 파악하고 있습니까?
앵커가 물었다.
[아직은요. 이곳과 뉴욕의 경찰들이 단서를 잡으려고 노력중입
다.
잭은 침대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아 나와 목욕탕으로 향했다.
는 가다가 말고 문가에 멈춰 서서 빅토리아에게 뭔가를 물어 봤으
그녀는 멍하니 허공만 응시하고 있었다.
[뭐 잘못된 거 있어?
그가 물었다.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이상한 이야기잖아요.
러가?살해된 병원 폭파범?
그는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거지.
그녀는 벌거벗은 채로 욕실로 따라 들어와서는 그의
었다. 하지만 그는 별반응이 없었다.
엉덩이를 꼬집
[아,오늘 아침엔 영 기운이 없는 댑쇼.
잭이 샤워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잠도 설쳤고 말야.
그녀는 머리핀을 집어 물고 머리 위로 머리카락을 틀어 올린 뒤 핀
으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왈다.
[또 꿈을 꼈나 보죠?
[응.
그는 샤워 물줄기에 얼굴을 디밀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 때문에 또 그런 꿈을 있나 봐.
[그게 사실이라면 나도 악몽을 떴어야 하잖아요?
그녀는 다리에 비누를 칠했다.
그는 샴푸를 한 움큼 손바닥에다 쏟아 내 머리에다 문질렀다
[저 말이야, 감정적으로만 말고 이성적으로 이 문제를 한번 따져 보
자구.
[무슨 문제 말이에요. 악몽요, 아니면 결혼요?
그녀는 플라스틱 면도칼로 길어진 다리의 털을 깎았다
. [아니면 뭔가 다른 문제인가요?
[자꾸 그럴 거야,빅토리아?
땜
그는 얼굴로 홀러내리는 샴푸 거품 사이로 그녀를 흘껏 쳐다보=
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어.
[지금 당장 그 이야기를 커내야 돼요?
[서로에게 빠져 있고. 잘 어울리는 한 쌍이지. 최소한 중요한 1
있어서는 말이야.
[중요한 면이라니요?
[중요한 건 뭐든지 다. 이를테면 정치성 같은 거.
[남자와 여자는 같은 정치관을 가질 수 없어요.
그녀는 자신의 다리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했다
[우리는 역사를 공유하고 있어.
그가 말했다.
[우리는 동거해 왔잖아.음 -,3년인가?
4년이에요.
[나쁘진 않았어. 그렇지?
그들은 자리를 바꿔 이번에는 그녀가 샤워기 밑으로 들어갔다.
[내가 말했지, 나쁘진 않았다고.그렇지 않아?
[아주 좋았죠.
그녀는 물줄기를 얼굴에 맞으면서 탬다.
[명심해. 나 그 말 분명히 들었다구.
그는 샤워기 앞에 선 채로 새삼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그녀의
을 감상했다. 만일 그가 만화가였다면. 그는 그녀를 여자 플라스틱
(만화 주인공)으로 그려 냈을 것이다. 긴 팔과 다리. 늘씬하게 빠진
리, 가늘고 긴 손가락들 그리고 머리카락, 마치 바람결에 나부끼는
큰 풀잎처럼 모든 부위가 시원스럽게 쭉쭉 빠졌고 게다가 유연하?
지 한 몸매였다.그는 머릿속에 차곡차곡 담아 둔 인상 깊었던 그=
=을 곱씹어 보았다. 몬티셀로 부근의 어느 모텔에서, 덮개 달린
. 위에서 오리털 이불을 둘둘 말고 있던 색정적인 모습,요트의 갑
판에서 태양및에 부신 눈을 가늘게 뜨고 올라오던 때, 그 잔주름 하나
없이 보기 좋게 볕에 그을린 작은 가슴, 멕시코 어느 바닷가에서 마사
지를 받던 모습. 겉모습은 버드나무처럼 한없이 부드럽지만 그 속마음
은 강철처럼 굳건한 여인, 그녀는 걸어다니는 모순 덩어리였다. 그리
고 그것이 바로 그녀의 커다란 매력 가운데 하나였었지. 하나였었지?
사! 또 되풀이하는군. 패 자꾸만 그녀를 과거 시제 속에서 생각하게
되는 걸까? 이미 헤어진 상태인 것처럼, 벌써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그는 샤워실에서 나와 빅토리아가 화장대 위에 놓아둔 커다란 수건
을 집어 들고는 구두를 닦듯 등을 문질러 닦았다. 그녀는 물을 잠그고
밖으로 나와 빗이로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
[뉴스 볼륨 좀 높일까요?
그녀가 침실로 걸어가며 물어 왔다
[그래.
세면대 앞에 서서 그는 낡은 비누컵 안쪽을 면도솔로 문지른 뒤 얼
굴에 비누 거품을 칠하고는 플라스틱 면도기를 찾았다. 세면대 위에는
없었다. 그는 세면대 밑에 달린 서랍을 열고 잡동사니를 뒤졌다. 호텔
에서 준 비누 한 토막과 살이 절반쯤 빠져 달아난 빗 따위가 전부였다
[면도칼 어딨어?
그가 외쳤다.
샤워기 쪽에요. 내가 그걸로 다리 털을 깎았잖아요.
[그렇군.
그가 응얼거렸다.
[당신 이미 면도한 줄 알았어요.
그녀가 소리쳤다
[어젯밤에 말예요.
그는 면도칼을 찾아 가지고 와 세면대 앞에 다시 섰다. 몸을 앞
숙여 거울을 보면서 그는 면도칼을 살결에 대고 밀었다.
'결흔하면 아무 때나 섹스를 할 수 있잖아.
그는 열린 문을 통해 말했다. 그들 사이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수도 있었겠지만 섹스만은 문제삼을 수가 없었다. 섹스는 그것이
단순한 쾌락말고도 그들이 바쁜 일정을 미뤄 놓고 오랫동안 서로(
열중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그녀도 결코 =
만은 반박할 수 없을 터였다
[그건 논점에서 벗어나 있어요. 결혼했든 안 했든 당신은 즐기]
잖아요.
'하! 저 여자에게는 아무리 그럴 듯한 논리라도 늘 반박의 여=
있단 말씀이야.'
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결혼하면 좀더 멋들어지게 즐길 수 있지 않겠어?
그는 간밤에 난 상처 주위를 조심스럽게 면도하면서 말했다. 그
부터는 아무런 대꾸도 튀어나오지 않았다.그것도 일종의 반론이=
장단이 안 맞는군. 정말 장단이 안 맞아.
그는 면도를 끝내고 침실로 걸어 들어가. 그녀가 가장 좋애드는
셔츠를 입고 그 위에 70년대 풍의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는 것을 ]
다. 티셔츠 앞면에는, 한 쪽 지느러미에는 밀짚모자를 들고 다른 =
대나무 지광이를 든 채로 바다 밑바닥을 따라 웃으며 자전거를 =
가는 암수한몸의 참치가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엔 '여자는 물고=
게 자전거가 필요한 정도만큼만 남자를 원한다.'라는 글귀가 적혀
었다. 그게 그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만들었다. '남자가 그렇게 불=
한가, 여자에게?'
그는 재빨리 옷을 입고 아래층 부억으로 걸어내려와서는 텔레비전
을 켜고 아침 신문을 카운터에 펼쳐 놓은 뒤 냉장고를 뒤져 아침상을
차려 냈다. 안초비 페이스트, 롤빵, 캔 하나. 그는 음식을 먹으면서 신
문 머릿기사들을 죽 훌었다. 몇 분 뒤, 빅토리아가 계단을 내려와 다가
와서는 잭이 먹고 있는 음식들을 보며 말했다.
[오. 잭.
그녀는 동정과 혐오가 반씩 배어 있는 어투로 말했다. 그리고는 그
= 뺨에 난 상처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오,당신 진짜로 많이 아팠겠군요.그렇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 빨리.
그녀가 재촉했다.
[늦었어요.
그는 신문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뚜컹도 열지 않은 안초비 페이스
트를 냉장고에 도로 집어 넣었다. 그는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제랄도
리베라를 보았다.
[오늘 초대 손님은 게이 생활을 하다가 성전환 수술을 받고 레즈비
언이 된.......
그는 버튼을 눌러 꼈다.
그들은 잠시 떰춰 서서 아침마다 늘 하는 그들만의 =1임을 시작했
다.
[난,여섯 !
그는 한 손으로 다른 손을 안 보이게 감싸며 말했다.
[음. 난 넷이에요.
그녀도 그처려 하며 말했다.
하나, 둘, 셋. 짠!
둘은 동시에 감춰져 있던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펼쳐져 있는 손
락은 두 손을 합쳐 모두 다섯 개였다. 그 둘은 피식, 웃으면서 손비
을 마주쳤다.
후덥지근한 9월 중순의 아침이었다. 그들은 택시를 타고 조지브
을 지나 국회 쪽으로 가면서 서로의 일정을 비교해 가며 간단한
기를 나누었다. 잭은 그가 입안한 '낙태 허가 법안'에 대한 청문호
공동의장을 맡고 있었고,넥토리아는 미 변호사 협회에서 연설을
로 되어 있었다. 법률 상담소(대개 ''라 불리웠다.)의 공동소=
로서 그녀는 폭행당한 여성들을 보호하는 최근 법률의 보완 조항=
관한 대담을 요청받은 상태였다. 그녀는 눈으로 연설문 원고를
나갔다.
잭은 창 밖을 보다가 한 무리의 아이들이 손에는 점심 도시락을
고 단정히 빗은 머리에 말간 얼굴로 스쿨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
보았다. 빅토리아는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그에게 확=
밝혀 왔다 그것은 그녀의 생리적 본능과 그녀가 기억할 수 있는 힌
래 전부터 해온 관찰에 의한 선택이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훨더하?
않았다. 말쑥하고 귀여운 아이들이 무릎에 앉아 노는 것도 마다=
않았다. 언젠가 그는 그녀가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었다.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흔히들 얘기하는 모성애가 드러난 ]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는 혹시 조만간 상황만 적절히 주어진다면 =
가 마음을 바꿔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기도 했었다.
[우리가 결혼해서는 안 될 이유 하나만 대봐.
그가 말했다.
그녀는 무릎에 연설문을 내려놓았다.
[간단해요. 결흔은 노예 상태처럼 느껴져요.
[동거는 안 그떻고?
[네 그렇지 않아요. 왜 그런지 결혼이라는
이점을 더욱 증가시키는 것 같아요.
것은 남자와 여자의 차
[그렇다면, 여자와 여자 사이는 어때?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뭣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거죠?
[아무것도 아니오.
유감스럽게도 늘 꺼림칙하게 여겨 왔던 얘기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
는 빅토리아의 가장 친한 친구인 레이챌 레드패스를 머릿속에 떠올렸
지만 지금 그런 주제를 커내서는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무슨 차이를 말하는 거지?
그는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젖히고 그가 진실로 알고 싶어 묻는 건
지 확인하려 했다.
[당신이 이야기를 커냈잖아.
[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실례를 듣고 싶으세요?몇 가지 애기해 드리지요.
그녀는 잠깐 생각을 하느라 말을 멈췄다.
[스틱스 딕키와 포커를 하는 거 말예요.
[이봐, 빅토리아, 여긴 워싱턴이야. 어떤 안건을 놓고
뻤어는 사람들은 언제나 낮에는 박터지게 싸우다가도
로 어울려 휴식을 취하지. 그런 걸 보고 문명화됐다고들
겠소? 서로 의견이
밤이 되면 서
하는 거 아니
[내가 보기엔 적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일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진
닐에 가까워요.
'아 그래.'그는 생각했다. '적이라.'
그녀가 남자들을 대하는 태도에는 깊은 이중성이 있다는 것은 부
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남성 험오성향은 그녀와 그녀의 아
지. 스디븐 윈터스 박사 간의 갈등 관계에서도 어느 정도 비롯된 것
겠지만 주된 원인은 바로 그녀의 직업이었다. 그녀는 여자들이 절뚝
리며 상담소로 들어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15년 동안 보아 왔다.
서는 안 될 위험한 결혼의 함정에 빠져서 샌드백처럼 두들겨 맞고
두르는 칼날에 당하는 여자들을 5년 동안 보아 온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염증을 내면서도 방치할 수 없다는 모종의 죄팟
때문에. 현대판 나썽 환자 수용소 같은 법정이라는 성역을 주고는
들이 사라져 버리기를 바라는. 그런 광경을 지켜보며, 여성 피해='
을 돌보아 온 15년이었다. 그 15년 동안,고통받는 여성들의 만신칭
가 된 자존심이 그녀의 혈관 속으로 옮겨 와 분노의 혈류가 되어 흐
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잭을 사랑했고 그를 필요로 하고 신뢰했다.룩 오래 접해
고 존경하게 된 다른 남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녀는
자들을, 일에 지친 노동자들이 복지기금을 운운하는 부도 직전의 1
을 바라보는 그런 눈초리로 보았다. 즉, 의심하는 것이었다.
잭은 말했다.
[포커는 전쟁이 아냐, 빅토리아. 몇 사람이 모여 카드를 돌리고
고 떠드는 놀이라고. 여자들도 해봐야 하는 건데.
[억자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같
모여 노는
대해 더 잘 알아요.
그녀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고 후회하는 눈치였
, 섶
.는 그 말을 홀려 들었다
[그럼 카드 놀이 하는 것말고 좀더 확실한 차이점이 또 뭐 없소?
녀는 다시 연설문 초고에 시선을 돌렸다.
[당신 신발요.
든대체 어디에 팽개쳐 놓았는지 알 수 없도륵 침대 옆이고 욕실이고
엔데나 벗어 놓은 그의 신발을 무심코 밟아서 발목을 삐고 화가 치
'.'! 어 올랐던 경험이 그녀에게는 몇 번 있었다.
앞으로 잘 정돈할게.
[아뇨,당신은 그러지 않을 거예요.
[왜?
[왜냐하면 그것이 사소한 일이기 때문이에요. 남자들은 사소한 일
에는 신경을 안 써요.
그는 그녀를 보고 웃었다.
[기가 막히군 뭐가 진짜 문제야?
그녁는 그를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진짜 알고 싶으세요?
[난 진짜로 알고 싶소,
[알고 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있으세요?
그는 거짓으로 고뇌에 찬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곁눈질로 쳐다보았
다.
[노력해 보겠소.
[화장실 변기 시트요.
그녀는 다시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입가에 웃음기가 언뜻 비쳤다.
[아하! 변기 시트 ! 이런 내가 어떻게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지. 세
워져 있는 변기 시트를 보고 열 받지 않을 정도로 진화된 여성이 어디
있겠는가. 두 성()간의 생물학적 차이의 상징인 것은 두말하면 잔
소리일 테고, 남성들의 무신경의 본질이며 성적 우월주의와 거만함=
표상이라.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겠지. 그러나 이것 보라구. 그건 =
이지. 오히려 여성들의 남성에 대한 지나친 피해망상증이 아닐까.
즘 여자들 좀 보라구. 똑똑하고 정력적이지. 대통령에 출마하고 철]
수선 작업도 하고 제트기를 조종하는가 하면 -16도 능숙하게 다
줄 알잖아. 외과의사들. 가정주부들, 교사들. 철강 노동자들, 그래 =
똑똑한 여자들이 변기에 앉기 전에 시트가 내려져 있는지 세워져 있
지 확인해 볼 재치도 없단 말인가. 어쨌든 변기 시트 얘기는 고맙쑨
그게 없으면 우리는 논쟁을 벌일 만한 주제도 없을 테니카.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러나 잭은 이번에는 그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의 미소]
택시는 레이낸 빌딩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런 사소한 문제는 제쳐 두고.
그가 입을 떼었다.
[만일 정말 커다란 문제점 때문에 당신이 부대낀다면 결혼 애긴
어 두지.
택시는 롱워스 빌딩 전면의 장외 주식시장 앞에서 멈췄다. 운전기
는 앞만 쳐다보면서 아무 말도 못 들은 척하고 있었다. 잭은 요금을
르려고 주머니를 뒤졌다. 빅토리아는 연설문 초고를 내려놓았다.
[진심이었죠.그떻죠틴
그녀가 말했다.
[뭐,결혼하지 말자는 얘기 말이야?
[아뇨. 결흔하자고 졸랐던 것 말이에요. 당짬은 지금 이대로의 나
참아 낼 수가 없는 거예요.그떻죠?
[그래서 당신은 기분이 어떻소?
[화났죠.피로한 데다 여러 가지 일들로 정신도 없어요.
[무슨 일들?
[몰라요. 그냥 여러 가지 일들이.......
[변호사치고는 모호한 대답이군. 그래, 요즘 뭣
봐]
때문에 괴로운 거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열었다.
[난 당신이 일을 그만두거나 걱정하는 것을 윙치 않아. 다만. 난 가
족을 갖고 싶어, 당신과 함께 가정을 꾸리고 싶단 말이야. 물론 결혼
올란 게 어느 정도 고충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소.
그녀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결국 당신이 그게 부담스러워 끝내 거부한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누균가 당신의 자리에 들어오게 되겠지.
그는 그우가 움찔하는 것을 보았다. '제길, 왜 이런 말을 했지?'
[난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당신과 결혼하고 싶지도 않아요.
[아니면 아기를 갖는 것이 싫다는 뜻이겠지.
그는 운전기사에게 20달러를 건네주며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오. 하지만 난 당신이 우리의 이런 생활
을 계속 지탱할 수 있을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구료.
그녀의 풀죽은 얼굴이 그의 기분을 더욱 엉망으로 만들었다.
[자,그만.우리가 이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다룬 것 같군,
그가 말했다.
[조금씩 잇장을 굽히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봅시다.
[오,이런,마치 토크 쇼 사회자 같은 말투로군요.
[이건 사람들이 결흔 생활을 지키기 위해 쓰는 방법이오.
그녀는 고개를 흔들고 눈을 감았다.
[속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나도 그래, 간단한 거 하나 빼고는.
그는 가능성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담배를 끊는다면, 스틱스 딕키와 포커 놀이를 하는 것을
만두지.
그녀는 한숨을 토해 냈다.
[포커와 담배를 끊는다. 활기 없는 결혼을 향한 일보 전진이로
2_.
운전기사는 잭에게 거스름돈을 주었다.그는 팁을 준 다음 25센트
리 동전을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
[연설 끝내고 나한테 전화해서 경과를 알려 주구료.
그는 택시에서 내려 문을 닫았다.
그녀는 동전을 들여다보았다.
[이걸로는 안 되겠는데요,
그녀가 말했다.
[뭐 잘못되었소?
[이건 25센트짜리가 아니에요.
그는 차창 문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자세히 동전을 살펴보았다. 그
은 '수잔 . 앤터니'은화였다.
[어떻게 이런 게 걸리지 않고 유통되는 거지?
[당신네 남자들이 여성을 기념하는 돈을 만들 때 너무 작게 만들
서 그렇죠.
택시 운전기사가 돌아보았다
[제 수집 앨범에는 없는 거군요, 탐나는 탭쇼.
운전기사가 정곡을 찔렀다는 듯이 잭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1
칵니사는 계속 말을 이었다.
"- 번 중에 한 번은 사람들이 그걸 되돌려줄 겁니다. 나머지 절반
데 진짜 25센트짜리인 줄 알고 받는다는 말씀입죠.
"! 토리아는 웃었다.
렇겠군요.
녀는 감정을 넣어 말하곤 창문을 닫았다.
' 은 그 은화를 다시 받아 주머니에 넣곤 계단을 올라 사무실로 갔
엘리엇 랜디는 실험실 카운터 위에 팔꿈치를 기댄 채 칼라 사진첩
검토하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누군가가 그를 향해 걸어_
는 것이 보였다.
[안녕하세요.몰리 맥코믹이에요.뉴욕의 - 기자예요.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환영을 보고 있는
했다. 스물다섯쯤 됐을까? 여인은 치렁치렁한 적갈색 머리에 짙은 '
색 눈동자와 어린 사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깨끗한 피부는 약
그을린 구릿빛을 띠고 있었고 콧날 주위에는 주근깨의 흔적이 희미
게 보였다. 치아에는 모랫멎이 약간 섞여 섹시함을 더해 주었다. 오
맙소사. 제아무리 여러 형태의 인간 피부를 다뤄 본 법의학자라도
히 마주칠 수 없는 기막힌 모습이었다. 그녀가 다가오자 그는 본능
으로 나비넥타이를 바르게 했다.
[엘리엇 랜디입니다.
악수를 하며 그가 말했다.
[오늘 아침 텔레비전에서 당신을 본 것 같은데요?
[아마 그럴 겹니다. 쉬버스 살해 사건을 취재중입니다,
[쉬버스 살인 사건 말이군요.
[살허와 살인이라.......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차이가 꿔죠?
[즉, 피해자 입장에서 볼 때 살해란 다른 사람의 의도적인 계획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때 쓰이는 단어지요. 반면 살인이란 계획에 의했
든사고에 의했든 그저 포괄적으로 다른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뜻합니다. 당장은 쉬버스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어요_ 그래서
아직까지 사인( ) 은 '미결이라고 분류되어 있지요.
그가 미소를 지었다.
[뉴욕에서 왔다고 했죠?
[네, 워싱턴에서는 자매 회사인 에서 일해요.
뱃속에 장난
감 인형이 든 채 워싱턴에서 발견된 뉴욕 사람의 시체는 두 곳 모두에
서 인기 있는 뉴스거리죠.
[전에도 살인사건을 맡은 적 있습니까?
[아뇨......, 그런데 선생님이 알고 계신 것 중에서 뭔가 말씀해 주실
수 있는 게 있을는지요?
그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붙박혔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진행중인 수사에 관해서는 언론에 말할 수 없다
것뿐입니다.
[좋아요. 이해하겠어요. 제가 들은 대로 선생님께 말해 볼게요. 제
는
가 잘못 알고 있는 점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는 게 어떻겠어요?
그는 미소를 지었다.
[당신,신참이죠.그렇죠?
그녀는 불쾌한 표정이었다.
[제가 꿔 틀린 말 했나요?
[아니에요.그저 낡은 수법이길래.
[좋아요.그럼 전 부당하게 선생님을 이용하진 않겠어요.
고집이 세면서도 순진하고 아름다웠다.
[잠깐만요.
그는 문으로 걸어가서 열려져 있던 문을 닫고는 카운터로 돌아왔다.
그녀는 메모장을 커내고 말문을 열었다.
[경찰에 따르면 쉬버스는 가석방 상태에서 뉴욕에 있는 술집에.
일하며 나머지 형기를 채우고 있었답니다. 43번가에 있는 '윙스'라=
곳이었죠.
[알고 있어요.
[그가 어떻게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왔는지 알고 있나요?
[모릅니다.몇 달 전에 실종됐었다는 것밖에는.
[그리고는 위스콘신 애비뉴에서 발견되었구요.
[맞아요.
[새 옷을 입은 채.
[그래요.
그녀는 메모를 했다.
[사인이 꿔죠?
그는 그녀를 보고 씩 웃었다.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만을
질문하겠다고 했잖소_ 그의 사=
을 알고 있소틴
[물론 모르죠.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 치즈 경연 대회나 요들송 부르기 대회 같은 것을 취재하는 데0
익숙해 있어서요. 제가 너무 서툰가요?
'웅""".
그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밸
[그런 질문은 돌려서 하는 거예요. 예를 들자면 이미 알려진 아기
인형 갈은 것에 대해 물어 보는 겁니다.
[좋아요. 자. 얘기해 주세요. 랜디 박사첨.
[엘리엇이라고 불러요.
[좋아요. 저도 몰리라고 해주세요. 자 말해 주세요. 엘리엇 장난감
인형이 쉬버스의 사인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이제 좀 낫군요. 이제야 게임이 공정해지는 것 갈군요.
[알겠어요. 답이 뭐죠?
[아무 관계도.
[아무 관계도 없다고요?
[그래요.
[사실대로 얘기하자면 그의 직접적인 사인이 되지 않은 것들만을
애기해 줄 수밖에 없군요.
니를테면?
[관상 동맥 발작, 심장마비. 암, 총격 이런 것들이오.
[혹시,추측하고 계시는 것이라도?
[오, 옛날에 나를 가르쳐 주신 병리학 교수님께서는 말씀하곤 하셨
죠 '정확해야 할 때는 결코 추측하지 말라.'고.
[정확할 필요는 없잖아요. 아직까지는.
그녀는 손을 뻗어 커다란 링이 세 개 달린 사진첩을 만졌다. 그 사진
은 시체 부검 때 찍어 놓은 사진들을 스크랩해 둔 것이었다
[시체 부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지금 한번 보겠어요?
[못할 것도 없죠. 그런데 또 다른 제안을 하나 해도 되겠어요. 생각
이 떠오를 때마다 제가 질문을 하는 건 어때요? 선생님 허락 없이는
그 대답을 보도하지 않겠어요. 다른 기자가 똑같은 정보를 얻었을 때
?
만 빼구요.
[이것부터 시작합시다.
그가 그녀 앞에 사진첩을 내밀며 말했다. 그는 '멜빈 쉬버스'리
표시된 탭이 있는 표지를 펼친 후 페이지를 빠르게 넘겼다. 뭔지 알
볼 수 없는 살색의 형체들이 보였다. 그녀는 그가 넘기기를 멈췄을
펼쳐진 페이지에 스크랩된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지만 무엇을
은 사진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이건 멜빈 쉬버스의 복부강이에요.
그가 말했다.
[이거 보여요?
그는 핑크색의 두꺼운 스파게티 가락 같은 것을 가리켰다.
[이건 장골()동맥이에요. 실제 크기는 제 새끼손가락 정도
기가 될 거예요. 여기 봐요. 이건 잘려졌어요.
[잘렸다구요?
[마치 가위로 고무 호스를 자른 것 같아요.똑바르고 깨끗해요.
[그게 그의 사인인가요?
[글쎄요.아마 1차로 해부됐을 때 잘려진 것 같아요.
차 해부라니요?
중요한 것을 누설하고 말았다는 자책 때문에 랜디의 얼굴이 약간
어졌다.
[누군진 몰라도 어떤 전문가가 우리가 하기 전에 먼저 그의 몸을
부했다는 말이에요.
[그거 참 섬뜩하네요.안 그래요?누가 그렇게 했을까요?
[모른다니까요.
[한번 추측해 보세요,
그는 그녀에게 예의 병리학 교수의 말씀을 상기시킨 후. 다음 시
? =넘어갔다.
그걸 한 사람은 그의 몸에 펌프로 물을 집어 넣어서 그의 혈액과
,, '을 빼냈어요.
[그건 또 왜죠?
그녀가 덧붙였다.
[맙소사, 앵무새처럼 종알대고 있군요, 제가.
[나도 영문을 모르겠어요. 다만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을 가지고 검
사니 꿔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쉬버스의 혈액 검사를 불가능하게 하기 위한 조치로군요?
[그럴 거예요.
그녀는 기다랗고 동그란 손톱으로 금속 카운터를 두들겼다.
[도대체 왜 살인자는 피살자의 시체를 남의 눈에 띄도록 방치해 놓
았을까요? 죽인 후 해부하고 데어리 퀸 앞에 갖다 버릴 수 있었다면
왜 그냥 시체를 묻어 버리지 않았을까요? 시체가 없으면 범죄도 밝혀
지지 않을 거잖아요?
[그렇지요.
그는 새로운 사진을 넘겼다.
[경찰은 살인자가 시체가 발견되길 원했다고 생각하더군요.
[발견되길 원했다고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요, 이를테면 '산부인과 병원을 폭파하면
이렇게 죽는다.' 이런 거 말예요.
그팅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정보는 어디서 입수했어요,돈을 주고 사기라도 했나요?
[그런 셈이죠.오늘 아침 신문 머릿기사를 봤으니카요. 당신도 신문
보고 날 찾아온 것 아닌가요.
그녀는 카운터에 올려놓은 팔꿈치 위에 턱을 괴고 사진 속의 혈관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다음에는 뭘 할 거죠?
[검사요.
[어떤......?
[조직 검사요. 뭔가 흥미 있는 게 피 속에 있었다면 아직도 뇌에 님
아 있을 거예요. 췌장이나 다른 기관에도.
[어떻게 검사하죠?
[불행히도 그건 어려운 질문이군요. 톡스에 샘플을 보내서 어떤 =
나오는지 봐야겠어요. 그러나 그 친구들도 고생 좀 할 거예요. 무얼
는지 모르는 상태라면 어둠 속에서 사격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그녀는 사진첩의 페이지를 넘겼다.
[그게 뭐죠?
[확대 사진이에요.
[무엇의 확대 사진인가요?
[당신이 알고 싶어할지 모르겠군요.
[어서요. 엘리엇, 난 기자예요.
[기자들도 잘 익숙하지 않은 거예요.
그녀는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우린 협상을 했다고 생각하는데요.그게 뭐예요?
[치핵이에요. 치질에서 오죠.
[오!
그녀는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또 다른 쪽에서 잡은 사진도 보여 드릴까요?
[오, 됐어요.
[시체 부검은 치즈 전시장과 많이 달라요. 그렇죠?
그는 그녀를 놀리며 말했다.
그녀는 애송이로 불리는 게 싫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의 치핵을 두
?나볼 만큼은 아니었다.
[언제쯤이면 실험 결과가 나오죠?
[세균 감염 여부는 며칠이면 되고, 중독증 여부는 좀더 걸리겠죠.
그녀는 다음 사진을 살폈다.
[봐도 되겠죠?
[물론이죠.
[맙소사,이게 뭐죠?
몰리는 페이지를 넘기다 놀라 소리켰다. 그건 마치 수의사에게 검사
고 있는 개처럼 라텍스 장갑을 킨 손에 의해 입이 벌려진 쉬버스의
사진이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내가 그의 입을 벌겆죠.
그녀는 오른쪽 송곳니가 있어야 할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 자리
는비어 있었다.
[랴간 이상하지 않아요?
러가요?
[송곳니가 빠진 어른이라니?
[모르겠어요.폭탄 던진 범죄자니까 뭐 특별한 점이 있어야겠죠.
그녀는 웃었다
[범죄자는 외모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그는 안경을 고쳐 썼다. 솔직히 빠진 송곳니에 관한 부분은 그도 무
심히 지나친 것이었다
그녀는 또 다른 페이지를 넘겼다.
[계속 봐도 괜찮겠지요?
[자요,이 확대경을 사용해요.
그녀는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며 인체 내부 기관의 확대 사진을 살펴
보았다. 하지만 자신이 보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성 미카엘 학교 때로 돌아가 아이들이 우표 수집한 걸 보는 기분'
네요.
그녀가 페이지를 넘기며 말했다.
[오. 맙소사.
그녀는 놀라서 구부렸던 상체를 퍼뜩 폈다. 그녀 앞에는 내장이
째로 꺼내진 쉬버스의 사진이 있었다. 저며 낸 돼지고기가 아니라
째로 도축된 돼지 그 자체였다. 그녀는 그가 그 페이지를 넘겨줄 때
지 외면하고 있었다.
[자세한 사진이 여기 또 있어요.
그챠의 시선을 다시 사진첩으로 불러오기 위해 그가 말했다. 그녀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당신은 지금 인체의 횡단면을 보고 있어요. 이건 피부고 이건 근
이에요. 여기 이 층은 지방이에요.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녀의 윗입술에 땀이 맺혔다.
[이것 좀 써도 될까요?
그녀는 티슈를 가리켰다.
그는 그녀에게 티슈 상자를 건네주었다
[잠깐 앉지 그래요?혈색이 좋지 않군요.
그건 틀린 말이었다.
[사실 당신은 얼굴이 창백해지고 나니까 더 아름다워 보이는군요
[난 정말 괜찮아요. 이번 페이지만 넘어가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녀는 얼굴의 땀을 닦아 냈다.
[다른 단서는 없나요?
티슈 상자를 쳐다보면서 그녀가 물었다.
[몇 가지 더 있다고 확신해요.그걸 찾아야 해요.
=.어진 간처럼요?
[그렇죠.
그녀는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제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
디. 그가 시계를 보았다.
[제가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은 것 같군요.
그녀가 말했다.
[천만에요. 또 오셔서 좀 도와주세요,
그녀는 골격 절단용 톱을 보면서 말했다.
[그떻게 말할 때는 좀 웃어 봐요, 네?
그는 웃었다. 그녀도 웃엇다. 뺨에 홍조가 일었다.
그들은 문까지 걸어나가서 악수를 나눴다. 의례적 인사를 넘어 조금
01라도 더 오래 손을 잡고 싶어하는 태도가 서로에게 있었다.그의 짙
은 갈색 머리카락이 어린 소년의 떠리카락처럼 이마 위로 내려왔다
자기도 모르게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나비넥타이를 바로잡아 주었
[오, 고마워요.
얼굴을 약간 붉히며 그가 말했다
[많이 삐뚤어졌죠?
[아뇨.단지 그러고 싶어서.
몰리가 가고 나자 그는 낡은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리자 몇 초 후 목소리가 응답해 왔다.
[뉴욕 교정국()입니다.
[전 워싱턴의 의료 검사관 엘리엇 랜디 박사입니다. 어떤 전과자의
치과 기록에 대해 알고 싶어 전화했습니다. 담당자와 통화를 좀 할 수
있을까요?
제노비아는 열쇠를 자물쇠에 밀어 넣고 돌려서 문을 열었다. 님편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의 얼굴 위로 텔레비전 화면의 불빛이 어른
고 있었다. 그녀는 성경책과 열쇠 꾸러미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프를 켰다.
[어머나, 이게 다 웬 거예요?
테이블 위에는 5달러, 10달러, 20달러짜리 지폐들이 아무렇게나
북이 쌓여 있었다. 르보이드 데이비스는 들고 있던 보드카 병을 ?
였다. 그녀는 남편의 목구멍을 타고 술이 넘어갈 때 병 속에서 생=
는 공기 방울을 지켜보며 서 있었다. 르보이드는 술병을 내려놓고
내를 쳐다보았다. 흐릿한. 붉게 층혈된 눈빛이었다.
[일자궈를 얻었어.
그녀는 그를 빤히 쏘아보았다.
[이봐, 이런 제기랄, 당신 지금 무슨 생각 하고 있는 거야?
[무슨 생각 하냐구요?몇 달 동안 땡전 한 푼 안 가져다 주다기
자기 이런 큰돈을 들고 들어왔으니 내게 무슨 생각이 들 것 같아요
르보이드는 소파 팔걸이에 등을 기댔다.
[이보라구, 그건 현찰이야. 당신이 싫다면 누구 다른 사람에게 =
릴 거야.
갖고 싶었다. 아니 꼭 필요했다. 그러나 제노비아는 알고 있었다. 그
들이 사는 곳은 동북부 워싱턴의 파크 매너 테라스.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였다. 마약 거래가 아니고서는 이런 목돈은 구경할 수도 없는 곳
이었다.
너디에 취직했어요?
[이런 젠장. 돈이 좋으면 군말 없이 챙겨 두고 싫으면 암말 말고 가
만 내버려둬. 하여튼 입 좀 닥치라구.
그는 한 쪽 팔로 버티고 몸을 일으켜 세우고서 한바탕 퍼붓고는 다
11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았다.
러러운 돈은 갖지 않겠어요.
이런쌍! 이봐. 우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애 하나를 데리고 쓰레
기 더미 속에서 살고 있어. 그런데 둬라구? 남편이 기를 쓰고 돈을 벌
1오니까 한다는 말이.갖고 싶지 않아요?햐......
그는 소쏴에서 일어나 테이블로 걸어갔다. 제노비아는 돈을 쳐다보
았지만 그걸 건드리고 싶은 마음은 일지 않았다. 그는 손을 그녀의 떠
리에 올려놓고 그녀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제기랄,당신이 조금은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사탕발림할 필요 없어요.르보이드.
제노비아는 그렇게 쏘아붙였지만 많이 수그러져 있었다.
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탕발림이 아니라는 거 알잖아.
그는 다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어쩌면 그
[당신은 내 여자야.
[흥,당신 여자는 도대체 몇 명이나 되요?
그는 기분이 언찮은 듯햇다.
[우리 잠시라도 서로에게 다정할 수는 없을까?
제노비아는 아무 말도 없었다
[우리에게 아기가 태어난 이후로 당신은 달라졌어. 그 아이 때문
에.
[그만, 그만 해요! 그 아이의 영혼은 깨끗해요. 제발. 그렇게 말하
지 말아요. 들을지도 모르니까, 알겠어요?
[그 앤 정상이 아니야. 우리에겐 정상인 아이가 괼요해. 정상인 아
이를 갖게 된다면 지금과는 좀 달라질 거야.
[어떻게 달라져_?
대답을 구하는 듯 그녀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미소를 지은
후 그녀의 등을 만지며 돈을 쳐다보았다
[저거 가질 거지?
제노비아는 마른 침을 삼켰다. 남편은 제대로 집에 붙어 있는 사림
이 아니었다. 언제나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였다. 이 돈이 올바르게
돈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도 때로는 정직한 적도 있었고
생각해 보면 자신도 남편을 너무 의심만 하고 매몰차게 대해 오지 =
았던가. 하느님은 알아주시겠지....... 낮에는 교회 관리인으로 일하]
밤에는 독학사 학위를 따려고 공부해야 했으므로 딸 사라를 돌보아 =
는 아래층 여자에게 사례비도 줘야만 했다 그렇다.그녀는 그 돈을 ]
쓸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돈을 쳐다본 후 결심한 듯 말했다.
[밀린 석달 치 집세를 줘야겠어요. 전부 600달러예요.
그녀는 60달러를 세어서 가지런히 쌓아 두고 나머지 400달러는
이블 가장자리로 밀어내 버렸다. 마치 자기 돈은 깨끗하고 그의 돈=
더럽다는 듯이. 그리고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사실을 말해 줘요. 르보이드, 이 돈 어디서 났죠?
물론 진실된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
=다보며 말했다.
때병대 본부의 창구 직원으로 취직했어. 일주일에 29달러씩 만기
로했어.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를 믿고 싶었다.그리고 믿어 버렸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들어 팔에 안았다. 그녀는 잠시 그가 하
는대로 내버려 두었다. 오래간만에 느껴 보는 남자의 단단한 육체였
[이리 와
?는 그녀의 얼굴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외면하려 했지만두 입
술이 마주칠 때카지 놔주지 않았다. 키스는 길고 끈적했다. 그는 손을
그녀의 등으로 가져가 번쩍 들어 안아서 소파 앞의 맨바닥에 내려놓았
다. 그리곤 그쟈의 치마를 허리께까지 말아 올리곤 손을 뻗어 속옷을
잡아 내렸다.
[안 돼요.
그녀는 키스를 하다 말고 말했다.
[배란기예요.
[걱정 마.
그는 일어서서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빛나는 은박지 상자를 하
니 꺼내 들고는 그녀의 눈앞에 대고 흔들어 보였다.
그가 바지를 벗는 동안 그밤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콘돔의 상
자가 뜯어지는 소리. 몸을 더듬는 그의 손길. 그 손길이 골반에서 멈추
더니 엉덩이를 감싸쥐고 바닥 위로 약간 들어올렸다. 그들이 막 시작
하려 할 때 문 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 누구세요?
숨을 헐떡이며 그녀가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둘은 븐격적으로 사
랑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때 또 한 차례 노크소리가 들렸다. 르보이
가 소리쳤다.
[꺼져 !
드 [쉬 ! 사라가 깨겠어요,
그들은 다시 사랑에 열중했다. 그리고 몇 분 후 르보이드는 그녀:
몸 위에서 구르듯이 떨어져 내려왔다. 제노비아는 숨을 몰아쉬며 가'
히 누워 있었고 르보이드는 무릎이 아픈지 연신 문질러댔다. 그는 ;
쁜 숨을 가다듬고 나서 일어나더니 청바지를 입고 테이블로 걸어가
는 40달러를 집어 들엇다.
[곧 돌아올게.
그는 빗을 들어 머리를 빗은 후 문가로 걸어갔다. 제노비아는 한
팔을 짚어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요?
그때 무엇인가 뜨듯한 게 다리 사이에서 천천히 흐르고 있는 것
느껴졌다. 그녀 앞의 마룻바닥에서 콘돔 상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장은 뜯겨져 있었지만 콘돔은 사용하지 않은 채로 돌돌 말려 있었1
그녀는 문가에 서 있는 르보이드를 보았다.
[망할 자식 ! 르보이드!
그녀는 신발을 집어 던졌다. 그는 몸을 구부렸고 신발은 문에 부
혔다. 그는 문을 쾅 닫고는 도망가 버렸다.
[돌아와!
그녀는 소리쳤지만 들리는 것은 콘크리트 바닥에서 울리는 구두
창 소리뿐이었다. 그녀는 일어섰다. 르보이드보다는 자신에게 더
났다.'만일 임신한다면. 오! 신이여, 도와주소서.'
그녀는 욕실로 걸어들어가서 나머지 옷을 모두 벗어 버렸다. 한=
물줄기에 몸을 맡기던 그녀는 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
재빨리 온몸의 물기를 닦고는 옷걸이에서 가운을 찾아 걸치고 현=
로나갔다.
[르보이드? 당신이에요?
[응.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자물쇠를 돌렸다.
[말할 게 있어요.
문을 열며 그녀가 말했다.
[꿔냐면.
그녀의 말이 끊겼다. 르보이드가 아니었다. 낮선 사람이 스키 마스
크를 쓴 채로 서 있었다. 검은 파카에 청바지, 부츠를 신고 검은 장갑
을 끼고 있었다. 그는 털모자에 난 구멍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
고 있었다, 그녀가 놀라 문을 닫으려 했지만 문을 밀쳐대는 남자의 완
강한 힘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그녀가 뒤로 물러섰고 남자는 안으로
들어와서 문을 잠갔다. 그녀는 가운을 단단히 여미면서 남자의 마스크
를 주시했다. 숨을 쉴 때마다 마스크가 들쑥날쑥했다.
남자는 주떠니에 손을 집어 넣더니 검은색 물체를 커냈다. 찰콰, 하
는 소리가 들리더니 번뜩이는 칼날이 드러났다. 남자는 칼 쥔 손을 위
아래로 흔들며 옷을 벗으라는 시농을 했다.
제노비아는 가운을 더 단단히 여며 쥐곤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따.
그러다가 옷 광주리에 걸려 비틀거렸다. 남자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
왔다. 제노비아의 몸이 벽을 타고 주르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안 돼요.
그녁는 얼굴을 양손 사이에 파묻고 온몸을 마치 계란처럼 등글고 탄
탄하게 말았다. 남자는 그녀 앞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제노비아는
사내가 마음을 바꾸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바지 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바지를 발 밑에 떨어뜨리고는 그녀 앞에 무릎
을 끓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의 양 발목을 움켜잡아 옆으로 벌리더니
그녀의 다리를 자기의 허리 둘레에 감았다.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
자는 그녀의 얼굴을 때리며 머리채를 잡아 쥐고는 목에 칼을 들이=
다. 그녀는 악쓰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내는 무릎걸음으로 다?
와서 그녀의 몸통을 자기 쪽으로 알맞게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머리와 육체 속에 공포와 고통이 가득 차 올랐다. 사내는 ]
스런 욕지거리를 뱉어 가며 형언키 어려운 강한 힘으로 그녀의 몸 =
깊은 곳을 구석구석 공격해 들어왔다. 마침내 사내의 광란에 가까,
격정이 그녀에게로 옮아 왔다. 얼마 후 그들은 정신을 가누면서 잠]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러고 나서 남자는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이 =
연히 일어나서 바지를 입고는 테이블 위에 쌓아 놓은 600달러를 집=
들고는 나가 버렸다.
제노비아는 양 무릎을 가슴으로 끌어당겨 안고는 모로 누운 채로 ]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정신을 가다듬어 보려고 애썼다. 자신을 공=
했던 미친 개의 광기에 자신마저도 순간적으로나마 휩쓸려 버렸다
그때 그녀의 어깨에 와닿는 손길이 있었다. 그녀는 악을 쓰며 놀
일어났다. 사라가 온 얼굴 가득히 의아한 빛을 띤 채 몸을 웅크리고 '
었다. 제노비아는 어린 딸을 잡아채듯 끌어안고는 다독거렸다.
[도대체 그 여자는 뭘 얻고자 하는 거요?
내통령은 질문을 던지면서 20구경 레밍턴 장총을 어깨에 대고 연습
차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쭈욱 총구를 휘두르며 겨냥을 해봤다. 그리
고는 총을 내려서 탄창을 열고 놋쇠가 입혀진 선홍색의 총알을 밀어
\었다.
시번 일은 특별 검사로부터 시작해 제시 라파엘까지. 남의 일에 참
견하기 좋아하는 모든 작자들에 의해 이미 조사가 끝난 일 아니오틴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각하. 그녀가 처음 제게 접근했을 때 저는
당장 제 사무실에서 꺼져 버리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의 애기를 들어 보는 것이 옳을 성싶었
습니다. 각하의 층실한 벗으로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만일 그녀가 뭔
가 터뜨릴 만한 것을 갖고 있다면 거기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딕키 상원의원은 대통령의 질문에 답하는 증에도 카키색 탄띠에서
탄창을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고는 손제간을 부렸다.
[그 여자는 나에 관해 터뜨릴 만한 것을 갖고 있지 않소.그녀가 그
렇다고 떠들고 다닌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오. ,
대통령은 말을 마치자마자 총을 들어올려 개머리판을 뺨에 붙이고
는 외쳤다.
[당겨 !
10미터쯤 떨어진 곳에 서 있던 해군 소위 한 명이 버튼을 누르자 오
른 켠에 세워져 있던 목조 망루에서 노란색 모형 비둘기가 날아올
다. 대통령은 목표물을 총구로 쫓아 조준하여 사격을 했지만 빗나가]
말았다. 모형 비둘기가 2미터 정도 떨어진 잔디밭에 떨어지며 깨=
다. 대통령은 귀마개를 벗으며 콘크리트 사대(말)를 내려왔다.
[당신 차례요.
상원의원, 라마 딕키 3세( ). 이름자 뒤에 붙
세 개의 작대기 때문에 '스틱스'라고 불리우는 그는 좀을 재며 사대]
올라가 총을 쏠 준비를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27년 경력의 =
원의원으로서 그는 상원의 가장 영향력 있는 거물 중의 하나였다. =
관 임명안을 통과시키는 려사위원회의 의장이자, 민주당 상원 선거?
금 위원회의 위원장인 그는 낙태 반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대외적]
로 확실히 표명함으로써 반 낙태 운동가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
며, 그 점에 있어서 그와 입장이 상반되는 잭 매클라우드 하원의원.
함께 수태권과 그 의무에 관한 상하원 합동 위원회의 공동의장을 맡:
있었다.
민주당 상원의원으로서 그는 자기당 출신의 대통령과 긴밀한 업]
적 유대 관계를 맺고 있기는 했지만 워낙에 골수 보수주의자인 탓
가끔씩 대통령과 엇갈린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딕키는 사대에 서.
다리를 벌리고 사격 자세를 취했다. 그는 대다수의 성공한 남부 출
정치가들처럼 자기가 지닌 매력과 지락과 힘을 정치에 응용하는 술
를 익히고 있었다.
그는 먼지 하나 날리지 않고도 사람을 2미터 땅 아래에 파묻을
을 정도로 술수가 능한 사람이라고 불리었다. 남부와 북부. 경계선
올뻐서는 그쪽에 맞춰 피에르가르뎅을 입었고, 그 아래에서는 또
사람들의 기호에 맞도록 헐렁한 바지에 셔츠를 입는 사람이었다.
?탕 내려가서는 자신이 자란 작은 농가를 자랑스럽게 얘기했고
오면 한때 토머스 제퍼슨의 별장이기도 했던 으리으리한 저
서 두 번째 부인과 함께 종종 호화판 파티를 열어 손님들을 초대
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유권자들과 나무 그늘 아래서 얘기
즐겼지만 워싱턴에서는 호사스런 식당에 승마. 섹스 그리고 도박
즐겼다.
담배 산업의 열렬한 옹호자로서 역대 어느 상원의원보다 더 많은 담
배농가를 살렸으며 동시에 더 많은 애연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
인이면서도 막상 그 자신은 삶에 대한 강한 애착 때문에 결코 담배를
=우지 않는 인물이었다.물론 상황이 그것을 요구할 때는 빼놓고.
'상황이 요구하는 일은 한다.'라는 말이야 말로 스틱스 딕키를 적절
묘사한 표현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철통 같은 원리 뭔칙과 엄격한
도덕성을 표방하는 그로서도 가끔은, 그러니까 상황이 필요로 한다면
손톱만큼 작은 규모에서부터 타이탄 트럭만큼 엄청난 것에 이르기까
지 쏴고들 수만 있다면 모든 상황의 허점 -순진한 유권자들과 경
솔한 언론들은 그것을 스캔들이라 부른다.-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
이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그는 이를테면 바퀴가 18개 달린 대형 트
레일러를 몰고 대통령의 허점을 향해 공격해 들어가고 있는 셈이었다
[문제는 저...... 제가 보기에는 상황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
을 것 같습니다.
그는 최대한의 효과를 노리며 일부러 뜸을 들여가며 말을 마치고는
카키색 조끼 안에서 한 다발의 서류를 꺼내어 대통령에게 건네주었다.
[그녀의 얘기를 빌리면 이 건은 각하께서 그녀와 둘이 만나 저....
그 상황을 타개해 나갈 방려을 모색하면서 나눴던 대화의 사본이
고.......
[그 여자가 내가 자기와 만난 적이 있다고 말하던가?
종이 뭉치를 움켜쥐며 대통령이 말했다.
[두 번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선거 기간중에.
그는 사각()을 줄이기 위해 자신의 엽총 총신의 조리개와 가
좌를 조절했다.
[아무래도 그 여자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은 건네받은 사본을 읽기 시작했다. 스틱스는 엽총을 좌
빠르게 움직이며 스윙 연습을 하는 골퍼처럼 연습 동작을 했다. 총
뺨에 대고 팔꿈치는 뒤로 뺀 채 무게 중심을 앞으로 내디딘 왼쪽 발
에 실었다. 무릎은 약간 구부린 상태였고 노란색 선글라스가 개]
판에 거의 닿아 있는 자세였다.
[당겨.
그가 고함쳤다. 기계가 소리를 내며 모형 비둘기를 망루 밖으로
사했다
-펑!
목표물이 공중에서 부서졌다.
그는 탄창을 열어 연기를 내고 있는 탄피를 제거한 후 주머니
또 다른 탄약을 꺼냈다. 연속으로 세 번을 명중시켰다.
[이게 누구이건. 난 아냐.
사본을 도로 건네주며 대통령이 말했다.
그들은 다음 사격 장소로 이동했다.
[난 그녀를 만난 적이 없네. 적어도 비밀리에는.
대통령은 노리쇠를 당겼다.
냄"
[제기랄. 스틱스. 그 여잔 나의 열렬한 후원자들 중 하나일 뿐이야
돈을 모금해 주었지.
그는 자세를 추스리고 겨냥한 후 소리쳤다
[당겨 !
또 빗나갔다.
[빌어먹을.
그는 흔들리고 있었다. 가책을 느꼈지만 어떻
영원히 묻어 버려야만 했다.
게 해서든 이 사건을
그를 괴롭히고 있는 그 사건은 바로 그를 지금 미합중국의 대통령으
로서 있게 만들어 준 결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2년 전, 대통령 선거 열기가 고조에 달해 있을 즈음 현직 대통령으
로 재선이 확실시 됐던 공화당의 월터 스톤에 대한 악성 루머가 나돌
았다. 그 루머에 따르자면. 그는 베트남 전쟁 당시 자유 베트남 공수
특전단의 그린베레 고문관으로 근무하면서 1968년, 처참했던 '다우닌
마을 학살 사건'에 비밀리에 관여했었다는 것이었다. '지빠귀' 중위가
그의 암호명이었다는 구체적인 내용도 덧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 루머의 진위를 확인할 아무런 증거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언론에 의해서도 그저 흔히 있을 법한 해프닝으로 치부되어 유야무야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던 중 선거를 며칠 앞둔 시점에서 급기야 사
건이 터져 버렸다. 베트남에 파견되기 전 포트오드에서 실시됐던 모의
전투 훈련에서 월터 스톤이 실제로 '지빠귀'라는 암호명을 사용했다는
내용이 담긴 국방부 문서가 육군 비밀 기록실에서 도난돼 뉴욕 타임
즈1에 유출된 것이었다.
그 스캔들은 월터 스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고 대권 도전자였
던 민주당 상원의원 존 클레이는 그 덕분에 근소한 차이로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선거가 끝난 후에도 커
다란 골칫거리로 남게 되었다. 월터 스톤은 분을 참지 못했다. 비록
난당한 문서에는 '지빠귀'라는 그의 암호명이 명시되어 있었지만,
것은 포트오드에서의 일이었고 자신은 다우닌 학살과는 아무런 관
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다음 해 1월 20일까지의 잔여 임기
안 총력을 기울였다.
그는 특별 검사를 임명해서 국방부 문서 도난 사건을 포함하여
사건 전반에 걸친 수사를 지시했다. 그러나 월터 스톤의 기대에도
구하고 이렇다 할 실마리를 잡지 못한 검사는 보고서 한 장만 제출
고는 수사를 종결지어 버렸다. 물론 그 사건으로 인해 기소된 사람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 나서 2년이 흐른 지금. 그 사건은 세인들의 기억에서 잊혀
가고 있었다. 물론 대학원생들의 논문이나 음해성 출판물에는 가끔
소재로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는 전혀 위협이 될 수가 없었1
아니, 적어도 클레이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대통령의 극비 군사기록 절도 사건에 관계했다고 생각히
사람이 있단 말이오?
대통령이 물었다.
[아니면 내가 그 여자와 함께 음모를 꾸였다고 하거나?
[바로 그 여자가 그렇게 애기하던군요. 자기가 국방부에 근무히
있었기 때문에 그 서류에 접근할 수 있었고 각하의 절대적 지지자엿
때문에 그 짓을 저질렀다고요.
[공직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가끔 절박해질 때가 있지. 하지만 난
렇게 비열할 정도로 절박하지는 않았어.
스틱스의 눈을 들여다보며 대통령이 말했다.
[그러한 내용을 특별 검사에 게 말했습니까?
스틱스가 물었다
[그랬소.
쩌약도 하셨습니까?
[물론이지.
딕키는 대통령이 다시 자기 눈을 쳐다보길 기다렸다.
[잘못 말씀하시지나 않았나 해서 재차 여쭤 보는 것입니다,각하.
스틱스는 선글라스를 벗어서 햇빛에 비춰 보았다.
[도난당한 문서를 언론에 넘기는 건 사소한 일입니다.
덴즈에 묻은 지문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헌법 제 1수정 조항으로 그 정도 행위는 보호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서를 하고 나서 거짓말이라. 그건 큰 문젯거리가 될 수도 있
는 것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끊고 대통령을 쳐다보았다.
[탄핵을 당할 수도 있는 문제죠, 각하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대통령은 아무 말 었이 탄창을 점검했다. 그리곤 외쳤다.
[당겨 !
표적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았다. 연속 일곱 번째 오발이었다, 그는
빈 탄창을 털어 버리고 재장전을 하고서 다시 발사했다. 비둘기가 날
았고 또 한 차례의 빗나간 총성만이 울려 퍼졌다.
그 둘은 아무런 대화 없이 다음 사대에서 사격을 계속했다. 당기라
는 고함과 목표물을 날리는 기계음 그리고 표적의 폭발 소리만이 간간
이 짙게 드리운 정적을 맬 뿐이었다. 대통령은 다음 사대에 오르면서
스틱스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매우 모호한 질문이었다. 그 협약에 관해서일까? 아니면 자신의 서
투른 사격 솜씨에 관해서일까? 스틱스는 섣불리 굴지 않고 신중히 대
답함으로써 대통령을 안달나게 하고 싶었다.
느
[표적을 보시는 방법에 문제가 있습니다. 표적이 각하 쪽으로 날
올 때는 그 위를 쏘고, 멀어져 갈 때는 그 아래를 쏘셔야 합니다.
대통령은 허공에 가상의 목표물을 그리며 연습삼아 한 발을 쏘았다
[당겨!
총이 불을 뿜더니 목표물이 박살났다.
연속해서 세 차례를 명중시키고 그는 사대에서 물러섰다.
[그래서,그 여자가 내게 원하는 게 꿔요?돈인가?
[아닙니다. 돈도 아니고 일자리도 아니고 한 번 터뜨려서 유명해 !
자는 생각도 아닙니다. 복수할 생각은 더욱 없는 것 같고요. 하여튼 _
런 목적을 갖고 있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요?그럼 뭔가 분명히 원하는 게 있기는 있단 애기가 되는군
[그떻습니다. 확실히 있더군요. 그러나 각하께서 추측하시기는
어려운 일일 겁니다.
스틱스는 그쯤에서 애기를 중단하고 사대에 섰다. 아버지가 그러
지. 누구나 중요한 문제에 직면해서는 사색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분은 그 시간을 '배움의 시간이라고 부르셨어.
그는 마지막 목표물을 명중시킨 후 대통령과 함께 그 다음 사대
걸어갔다.
[아예 처음부터 그런 여인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상황을
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만.
대통령은 아무런 동요의 내색 없이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그,
실상 그는 막 뤼어 오르려는 송어의 신세와 다를 바 없었다. 노련한
끼 낚시꾼인 스틱스가 그런 결정적인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한 가지 중대한 결단을 내리시는 겁니다 각하께서 국가를 위
고심 끝에 내리신 결단이 우연히도 정말 우연히 바로 그 여자가
는 바와 같다면 어떠시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각하는 한 여자의 =
못 이겨 우를 범하시는 게 아니라 각하께서 서약하신 신성한 대통
본연의 직무를 쫓아서 정당한 일을 행하시는 셈이 되지 않겠습니
? 제가 그녀를 은밀히 만나서 원하던 것을 주겠다고 말해 주면 그만
_. 그녀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것을 주는 것이지요,그런 건 상관없
않겠습니까? 각하께서는 결백한 상태로 남고 그 여자는 행복해지
고 그리곤 깨끗이 끝나는 겁니다.
[일석 이조라.......
대통령이 말했다
러희 고향 마을에선 그런 것을 가지고 아무도 뭐랄 사람이
다.
없습니
대통령은 콘크리트 사대로 올라서려다 말고 손에 총을 든 채 스틱스
에게로 몸을 돌렸다.
이라요 스틱스! 여긴 아무것도 구애받을 것이 없는 장소이니 내
솔직히 말하겠소. 나는 그 사건과 연관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겠소. 명심해 두시오. 당신이 그 여자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그럴듯하게 호도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을 것이오. 알아듣겠
소!숨길 것이 없으니 공갈도 없소. 따라서 해결 운운하지 마시오.
[알겠습니다. 각하.
[그럼 됐소.
대통령은 총의 안전 장치를 잠그고 개머리판을 땅에 대곤 총신을 나
무걸이에 걸쳐 놓았다. 그러고 나서 선글라스를 벗더니 입에 가져다
대곤 입김을 불어 가며 안경알을 닦았다.
[우리가 지금 밀실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줄 아시오? 내 얘기는
공정하고 신성한 미합중국 대통령의 본분에 대한 것이오. 나는 그 여
자로부터 흄쳐낸 서류를 전해 받지도 않았고 또 그걸 언론 쪽으로 흘
려 버리지도 않았소. 그게 바로 엄숙한 선서하에 내가 특별 검사에게
했던 애기요.
[네. 잘 알겠습니다.
스틱스는 호되게 꾸중을 들은 아이의 표정이 되었다.
대통령은 다시 안경을 썼다.
[내가 대통령이라는 직분을 이용해서 어떠한 것이 됐든 공정치 !
한 협상을 한다면 난 천벌을 받을 것이오. 더군다나 이런 새빨간 거'
으로 가득 찬 음모와 협상을?천만에.
[각하! 절 믿어 주십시오. 협상을 하시라고 제안드렸던 것은 결.
아니었습니다.
스틱스는 자신이 너무 성급하게 공격헤 들어갔던 것을 뼈저리게
회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스틱스의 팔을 붙들고 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자,수영이나 합시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각하께서 괜찮으시다면 전 수영보다는 잭 디
엘즈나 한잔.......
대통령은 그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발걸음을 이미 캠프 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인 통나무 집, 아스펜으로 돌리고 있었다. 스틱스는 =
못해 총을 걸이에 걸고 그 뒤를 쫓아갔다.논쟁도 논쟁 나름이지 =
따위를 가지고 대통령과 신경전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통나무 집에 들어서자 곧장 수영장 탈의실로 갔다. 스틱]
대통령이 옷을 벗는 동안 수영복을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여긴 우리말고 아무도 없소.
대통령이 저러는 데야 뭐, 스틱스도 알몸이 되었다. 대통령은
도 가운도 없이 풀 가로 가서는 곧장 다이빙해 들어갔다. 잠시 후
속에서 솟구쳐 올라오더니 외쳤다.
[어서 들어오라구!
첨벙.
등그렇게 퍼져 가는 횐 물거품을 남기며 스틱스도 풀에 뛰어들었다
대통령은 스틱스가 숨을 쉬려 물 밖으로 목을 내밀고서 얼굴의 물기를
흠쳐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래, 이제 어쩔 수 없다.'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스틱스 저자가 저떻게 노골적으로 도전해
들어오는 것을 보면 뭔가 감을 잡긴 잡았군. 조금 전에 떠벌렸던 위선
인 일장 연설이야 어떠랴, 비공식적으로 둘이 나눈 얘긴데 잊어버리
면그뿐 아닌가?
대통령과 스틱스는 물 밖으로 머리만 내놓고는 마주보며 개헤엄을
쳤다. 이윽고 둘 사이의 거리가 1미터도 채 안 되게 가까워졌을 때 대
통령이 물을 뱉어 내며 풀 바닥에 발을 디디고 섰다.
[좋아, 내 다 털어놓지. 도난당한 문서, 위증. 탄핵 이런 따위는 다
집어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구. 이 일을 덮어두는 조건으로 바바
라가 원하는 게 정확히 꿔요?
[그녀는 애브너 티투스가 미합중국 대려원장에 임명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놀란 눈을 깜박거리고만 있었다.
[모두 기럽해 주십시오.
서기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법정에 모인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다. 이
브너 티투스 판사는 옆문으로 들어와서 발판을 올라와 130킬로그램0
나 나가는 몸을 천천히 낮춰 커다란 가죽 의자에 앉았다. 도대체 왜
런 거물급 판사가 이런 재판을 주재하게 됐을까? 빅토리아는 의구심=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피고인측 테이블에 앉아서 서류를 검토하]
있는 티투스를 지켜보았다. 그의 얼굴은 마치 시험 때문에 너무 오
동안 공부해 온 학생처럼 하얗다 못해 거의 창백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관심을 는 건 그의 외모가 아니었다.물론 예심 =
사와 항소심 판사가 자리를 바꿔 제판을 주재하는 것은 흔히 있어 1
일이었다. 그렇지만 지적이고 야심만만한, 더군다나 보수주의 계열 1
에서 가장 유력한 대법원장 후보로 꼽히고 있는 티투스 같은 거물'
지방려원에서, 그것도 0(일시적 낙태 금지명령)사건을 주재하겠
고 저렇게 버티고 앉아 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뭔가 흑막이 있는
만 같았다.
그녀는 자기 옆에 앉아 있는 제노비아 데이비스를 바라보며 확신
찬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재판관 티투스로 말미암아 뭔가 안 좋은 쪽
로일이 풀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결코 내비치지 않았다.
틀 전,제노비아가 찾아와 겁탈당한 사실과 임신에 대해 털어놓았
을때 빅토리아는 그녀가 단순히 낙태 시술을 허가받고자 온 것으로만
지레 짐작했었다. 그런데 자초지종을 들으니, 이미 임신 22주째에 접
든 이 여자에 게 있어선 낙래 허가 여부만이 아니라 가정을 지키는
=도 소중한 관심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그렇게 시일을 끌었는
지를 꿀었을 때, 제노비아는 고통스러워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
다고 고백했다.
그녁는 뱃속에 든 아기가 강간범의 씨앗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밤
마다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이유없는 복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그 태아가 르보이드의 아이라 할지라도 낳을 수 없었
다. 또 하나의 아이를 키우기에는 너무도 고단한 밞이었다. 죄없는 아
하나 때문에 그녀가 덤으로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도 무겁게만 느
졌던 것이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의 임신이 절반은 사고로 나머지 절반은 신의뜻
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회개하지 않은 죄값일
수도 있겠지만, 필시 르보이드가 마약을 거래하고 벌어 온 돈을 덥석
어 버린 죄에 대한 벌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굳어졌다.
[하나님은 모든 걸 알고 계십니다.
고백의 말미에 그녀는 이렇게 덧불였다.
빅토리아는 제노비아가 성경책을 만지작거리며 털어놓는 애기를 동
정 어린 표정을 지으며 끝까지 잠자코 들어 주었다. 기도와 걱정으로
헛되이 여러 주일을 보내던 제노비아가 빅토리아를 찾은 것은 새로운
결심 때문이었다. 만일 자신의 임신이 강간범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하늘의 벌이 아니라 단순히 끔찍한 사고였던 것이고, 그렇지 않고 르
보이드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그들의 딸, 사라의 부족함을 채워 주
기 위한 하늘의 배려라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는 것이었다.
정박아인 그녀의 딸, 사라를 키워 오면서 그녀는 아이의 부족힘
모두 자신의 탓으로만 돌려 왔다. 신이나 불운 혹은 남편. 그 무엇
탓도 아니고 오로지 자신이 책임져야 할 운명으로 알고 살아왔던 것
다. 어쨌든 현재 상황으로서는 솔로몬 왕일지라도 아기의 임자를 기
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생각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아니
쩌면 태어난 후일지라도 그 아기가 누구의 씨앗인지 그녀로서는 알
리가 없을 것 같았다. 더구나 아기의 운명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면
기의 정확한 아빠를 알게 된다는 것이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낳게
것도 같았다. 어쨌든 아직은 뱃속에 있는 아기에 불과했다. 문제될
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사라를 사랑했다. '또 다른 아이라고 사랑 못할 것도
않은가? 하지만 내 삶은? 행복은? 그런 따위를 생각한다는 것 자
너무 이기적인 것일까? 오! 하나님. 제가 결정짓기에는 너무도 어=
문제입니다.'
제노비아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던 중 냉정을 되찾고 곰곰이 생2
본 결과, 오직 두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지긋지긋한 임=
단 하루도 더 참아 낼 수 없다는 것이 한 가지였고, 나머지 하너밉
저히 낙태 수술은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극도로 대럽되는 이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선 제노비아가 어떤
유에서 도움을 청해왔는지 빅토리아는 알고 싶었다.
그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더 늦기 전에 낙태가 가능
를 어서 알아보라고 무엇인가가 머릿속에서 재촉했기 때문에 빅]
아를 찾게 되었다고 제노비아는 설명했다
할 말을 다 마치고 제노비아는 가방 속을 뒤져서 몇 장의 법률 '
를 꺼내어 빅토리아에게 건냈다. 빅토리아는 그 서류를 검토했다
?공고. 르보이드가 제출한 탄원서. 그리고_ 이게 뭐지? 0(일시
낙태 금지명령)?
그것은 제노비아의 남편이 {붉은 장미회}의 무료 법률 지원을 받아
더 얻어낸 명령서로서, 골수 보수주의자로 자타가 공인하
프란시스 맥카시 지방려원 판사의 서명이 기입되어 있었다
그 명령은 법률적 관점에서 블 때 완전한 법안이 아니기 때문에 만
낙태를 원한다면 즉시 상고를 해서 그것을 철회시킬 수 있다는 점
빅토리아는 알려 주었다.
[어떻게 하겠어요?
빅토리아가 물었다.
[아기를 죽이지 않고 임신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그것은 진지한 요청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고뇌 어린 감상이 섞인 애
원이엇다.
그녀는 제노비아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만일 낙태를 원한다면 즉시 소송을 걸어야 했다.
22주 된 태아는 생존 능력이 있는 인간으로 인정받을 만한 단계에
거의 와 있는 것이다. 24주가 지난 태아에 대한 낙태 시술은 워싱턴에
서는 법적으로 금하고 있었고 다른 지역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24주
가지나면 자신도 태아를 죽일 수 없다고 제노비아는 말했다
사실상, 그녀는 법원에서 허락하지 않는다면 22주째인 지금도 낙태
수술을 받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저 공권력에 대한 단순
한 복종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낙태 금지명령을 신의 뜻으로
옇기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법원이 낙태를 허락한다면 그것은 그래야
한다는 신의 계시인 것이고,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그러지 말
아야 한다는 신의 계시로 생각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 애브너 티투스 판사 앞에 그들은 앉아 있었다. 애브너에 비하
면 프란시스 맥카시 판사는 오히려 애송이에 속했다. 비범하고 신임이
있으며 유명하고 깔끔한, 대법원의 거물급 판사. 그러나 빅토리아가
보기에는 신의 뜻을 전달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녀는
최근에 법정에서 티투스와 마주섰던 기억을 상기해 보았다. 변론을 하
고 있는 동안 내내 그녀를 조롱해 댔고, 그녀의 항소를 기각시키며 비
꼬는 판결문을 발표해서 다시 한 번 국내 제일의 반 낙태 법관의 면모
를 과시했던 그였다.
2년 전의 일이었다
디투스가 신장 이식 수술을 받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일어난 일이었
기 때문에 그녀는 기억할 수 있었다. 당시 티투스의 이식 수술을 집도
한 의사는 바로 레이챌이었다. 그 사건으로 그녀와 레이잴의 사이가
한동안 벌어졌었기 때문에 그녀는 더욱 또렷이 기억할 수 있었다
당시. 빅토리아는 레이웰을 심하게 몰아세웠다. 그저 슬쩍 메스를
단 한 번만 실수로 미끄러뜨려 주면 레이챌이 신장 이식 수술을 통해
일평생 살려낼 수 있는 환자보다 훨씬 더 많은 여자들의 삶을 구해 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이었다. 물론 억지가 섞인 비열한 생각이었지
만 그래도 레이웰이 그 이식 수술에 성공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꽤 시
간이 흐른 지금에도 빅토리아는 그 일만 생각하면 웃음기가 가셨다.
티투스 판사는 눈길을 들어 빅토리아를 찾았다.
[윈터스 양?
빅토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판장님. 저는 이 문제가 아주 단순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법
률적 견지에서 볼 때 지금 이 자리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일시적 낙=
금지명령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영구 낙태 금지란
논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거기서 말을 끊었다. 판사는 안경 너머로 그녀를 쳐다보
[그게 전부입니까?
[필요한 건 그뿐입니다, 재판장님. 아시다시피 워싱턴에서 시행되
는려률에는 낙태 시술에 남편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조항이 들어 있지
않으며. 설사 그떻다 해도 그러한 조항들은 헌법에 의거해서 즉시 폐
기되거나 아니면 신중히 재고해 봐야 할 사항입니다.
티투스 판사는 페이지를 넘겼다
[헌법 자체가 아버지에게 자기 아이의 낙태를 막을 권리를 준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볼합리하다고 생각함니다, 판시닙. 물론 그러한 입장을 지지할 만
한판줴도 없습니다.
[윈터스 양. 판례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어떤 안건의 판례도 있을
수 없지 않겠습니카? 판례가 여기. 이 법정에서 새로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빅토리아는 격앙되는 감정을 달랬다. 티투스는 그녀와 그녀의 의뢰
인이 재판이 끝난 후 법정 밖에서 승리의 환호성을 올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려는 작심을 이미 단단히 하고 있는 듯했다.
[찬사님. 우선 제 의뢰인의 남편인 르보이드 데이비스는 이 법정에
설 자격이 없습니다. 도대체 그가 보호받아야 할 려률적 이익이 애초
에존재하는지 저는 알 수가 없군요.
[윈터스 양. 나는 당신 같은 여껀 옹호주의자일지라도 아이의 아버
지가 아이에 관해 이해 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인정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물론 인정합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이해 관계입니까?아내와 함
께 임신에 대해 토론하다가 법의 올가미를 이용해서 부인의 정당한 권
리 행사를 금지시키는 것 말씀입니까?그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기의 려률적 이익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소?
[지금 이 사안에서 아기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재판장님. 수정란
있을 뿐입니다.
판사는 제노비아를 보았다.
[생명을 지닌 신성한 알 아닌가요?그렇죠?
[글쎄요. 재판장님 22주 된 태아는 아씩은 생명체라고 보기 어렵
니다.
[논점을 회피하는 게 아닙니까? 태아가 헌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
가 아닌가는 제5, 제6수정 조항의 의미에서 볼 때 태아에 게 생명이
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맙소사. 티투스는 정말 제노비아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릴 모양이
다. 분명, 빅토리아가 상고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도 저러는
셈이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지금 저지시켜야 했다
그녀는 르보이드가 아버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지적함으로
그의 권리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겁탈당한
실이 드러나게 된다. 당연히 제노비아가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결과
다. 수정란으로 주제를 삼아서 계속 싸워야 했다.
[판사님, 아버지가 태아에 대한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
우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만, 그 권리가 어떤 종류의 것인
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러한
우에는.
[좋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그녀의 말을 가로막으며 티투스가 말했다.
[낙태 금지명령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 전에, 청문회를 열자는 요
이군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분명 쉬운 일이었다.
= 변호인은 범정에서 헌법상의 이해 관계 문제에 대해 연설
준비를 하십시오. 어느 시점에서부터 태아를 생명체로 보느냐에 판
문제 말입니다.
그게 바로 요점이었다.
티투스는 필시 성명이 어느 시점에서부터 시작하느냐 하는 문제를
다 뒤져 보았을 터였다. 그리고 이미 층분한 자료를 준비하고 있
상태일 것이었다.
대법원장으로 가는 포석으로써 자신의 확고한 법철학과 지적인 탁
1. 과시할 기회로 삼고. 나아가 판례를 만들어 낙태 금지 법안을
치키는 초석으로 삼기 위해 그녀의 청문회 요청을 옳다구나 하고
것이었다.
괘찝했다.그러나 사실이 그러했다
이벤스 씨, 10일 이내에 청문회를 열 준비를 하시오, 그리고 일시
=낙태 금지명령은 그 시점까지 계속 유효합니다.
티투스는 서기에게 말했다.
대판장님 일은 너무 길다고 생각합니다. 제 의뢰인은 이미 임신
한지 22주나 되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 너무나 촉박하게 가
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티투스는 안경 너머로 빅토리아를 쳐다보았다.
[변호인이 지금 본 범관에게 한 제안의 진의를 잘 모르겠군요. 평소
엔 그렇게도 간청해 대던 '연기 신청'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리는
데요?
빅토리아는 서류철을 덮었다.
[우린 우리 의뢰인의 최대의 편익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재판장
님.
[흐흠, 당신은 늘 그렇게 해 왔잖소?
그녀는 서류가방을 집어 들고 법정을 나섰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맴돌고 있었다.
'메스가 조금만 빗나갔더라면
엘리엇 랜디는 전화기를 통해 몰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멜빈 쉬버스의 치아가 하나 빠져 있었던 거 기억나요?
그가 물었다.
[그런데요?
몰리는 연필과 노트를 집어 들었다.
[그의 치과 기록에 의하면. 고름이 들어찬 충치가 있었지만 가석방
피었던 시점까지는 뽑지 않은 상래엿어요. 그는 이빨 뽑는 걸 무서워
했답니다. 그걸 건드리지도 못하게 했대요. 만약 뽑는다면 소송을 걸
다고 을러대기까지 한 모양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서 이가 뽑혔을까요?
[잘 모르겠어요.다만 스스로 원해서 뽑은 것 같진 않아요.
[그가 고문을 받았다고 생각하나요?
[그건 너무 지나친 비약이고요. 부검 결과로 보면 고문의 흔적은 엉
어요.
몰리는 노트에 작은 별 모양을 그려 가며 랜디의 이야기가 이어지기
를 기다렸다. 랜디가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그를 납치한 사람들의 동기가 아무래도 의학적인
데 있는 것 같아요.
[예?납치요?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죠?
[추측이죠. 그 사진들 기억나요?세상에 자기 몸을 그렇게 걸레쪽처
럼 찢어대라고 자발적으로 나설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이봐요, 엘리엇. 아무래도 당신 신경과민인 것 같아요.
[물론 때때로 신경이 예민해지기도 하지만, 추측하는 정도로 그떻
게 되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그가 납치된 원인이 의학적인 데 있
거가 뭐지요?
고 추측할 만한 근
[이빨이에요. 보통의 의사들은 고름이 들어찬 이를 가진 환자를 수
술하길 꺼려해요. 세균이 수술 부위까지 감염시킬 위험이 크기 때문
죠.
[훌륭한 추측이군요.
[아직 칭찬받기는 일러요. 그가 어떤 수술을 받았는지 수술이 무=
때문이었는지 밝혀 낸 다음에는 또 모르겠지만.
[났가 수술을 받았다는 건 어떻게 알아내셨죠?
[이전에 내가 말한 적이 있었죠? 쉬버스는 이미 해부되었던 상태1
다는 것 말이에요. 그런데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해부되기 이전에 =
술을 한 차례 받았다는 것입니다. 뭘 위한 수술이었는지 잘 모르겠
만 흉골에서 골반에 이르는 부위을 절개하고 이루어진 수술이 틀림
어요. 그러고 나서 그 수술 자국을 그대로 따라서 칼집을 내어 해부
해버렸어요. 그리고 다시 꿰매 버린 거지요. 절개선 양쪽 모두에 작
봉합 매듭 자국이 있었던 것 기억나요?
[그건 해부할 때 생긴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럴 가능성은 없어요, 몰리 ]
[왜 그렇죠틴
은 사람의 상처는 아물지 않거든요.
하
'? 침묵이 홀렀다.
번데 말이죠. 앞서 받은 수술 자국 바로 위를 다시 절개해 버린
= 젼까요?
은 모르겠지만 내 추측으로는 앞서 했던 수술 사실을 감추려고
던 것 같아요. 심지어 내부에 남아 있는 봉합선까지 없애 보려고
흔석이 있어요.
몸 안에 있는 꿰맨 자국은 자연히 없어지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이 어떤 종류이냐에 달려 있죠. 위장을 봉합하는 커트 실은 며칠
체내의 신진 대사로 인해 녹아 없어져 버리죠. 텍슨 실은 그보다
더오래 걸리고 근육을 봉합하는 데 쓰이는 나일론 실은 끝까지 그대
로남아 있게 된답니다.
몸 안에 있는 꿰맨 자국과 이전에 받았던 수술 자국을 없앤다?몰리
는 점점 흥미로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도대체 그는 어떤 수술을 받았다는 얘기죠?
[그걸 알 수만 있다면 모든 실마리를 풀 수 있게요.
[혹시 간이 아닐까요?
[간요?
[없어진 간 말예요. 누군지 쉬버스의 간을 들어내는 수술을 먼저 했
다 이겁니다.
[여자의 육감인가요?
[아니에요, 엘리엇.
[간을 들어내려면 얼마만큼 절개를 해야 하는지 알고나 하는 얘기
워?
[당연히 그걸 꺼낼 수 있을 만큼은 커야겠지요.
[그래요. 아주 크고 깊게 절개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엘리엇 감춰져 있다는 그 수술 자국을 통해서
간을 들어낸 것 아니겠어요? 아마 그랬을 거예요. 그랬다가 어떤 연유
에선지 다른 간을 집어 넣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요?그래서,
[흐음.그래서요?
[과연 간이 없어도 사람이 살 수 있을까요?
[음,스포크 박시넙께 한번 여쭤 봐야겠군요.
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무슨 생각 하고 계세요?
몰리가 물었다.
[전체적인 것.
[네?
[우선 다시 한 번 쉬버스의 시체를 검사해 봐야겠어요.
[엘리엇.뭐에 대해 더 살펴블 거예요?
몰리는 기다렸지만 그는 대당하지 않았다.
[흥미 있는 게 발견되면 전화 주실 거지요?
[그럴 순 없을 것 닫군요.
엘리엇이 말했다
[네?
[그럴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어요. 전화할 수 없어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왜죠? 우리가 정한 규칙을 제가
어겼나요?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맞아요. 우린 잘 해내고 있어요. 그래서 전화로 말씀드릴 수 없
는 겁니다. 얼굴 보면서 얘기하고 싶어요. 저녁 식사 하면서.......
으
흐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잭은 접견실에 도착했다. 먼저 온 사람들에게
=! 사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가 보니 행정 보좌관인 벤 제이롭스가 기다
=고 있었다.
[오늘 처리해야 할 일이 뭐지?
말끔하게 정리된 신문철과 편지들을 보며 물었다. 국회가 다시 개원
하는 9월 중순의 의사당은, 납세자들로부터 묻혀 온 꽃가루를 모아다
가 자신들의 지역구로 꿀을 실어 나르는 정치가라는 벌들이 모인 거대
한 백색의 벌통 같았다.
[지역구 일입니다. 최근에 사회보장 기금을 대폭 삭감해 버리는 바
람에 대통령의 해외원조 정책에 관한 항의 서한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의원님은 분 후에 세 개의 모임에 참석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여자가 전화를 해서는 쓰레기 좀 치워 달라고 부탁하면서 한사코 전화
를 끊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아직도 수화기를 붙들고 있을 겁니다.
[하! 어떤 여자가 국회의원에게 쓰레기 좀 치워 달라고 한다?
[뉴욕 시 위생국에 알아보라고 했더니 그렇게 높은 데 가서 알아볼
문제가 아니라나요.
잭은 이마를 문질렀다. 제이콤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제
이롬스는 평소와 다름없이 어리석은 유권자들을 잘 다뤄 주고 있다.
정치라는 것은 숨겨진 의제를 찾는 낚시와 같은 것이다. 가능성을 헤
아리며 바람을 체크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제이콤스는 그런 바람몰이
에 능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빗나가는 일 없이 무난하게 일을 처리해
왔다. 그러한 점이 그를, 마치 성직자와 같이 약간 고루하지만 아주 신
뢰할 만한 사람으로 인식시켰다. 잭은 그를 매우 좋아했고 깊이 고마
워하고 있었다
[엘리 그레이브스는 해마다 다음 해에 물 먹일 상하원 의원을 0명
씩 선정하는 데 금년도 1위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잭은 편지에 서명하는 손길을 늦추지 않은 채 대꾸했다.
[자네가 그 명단에 있다면 항상 1위겠군.
[그는 의원님을 쫓고 있어요. 심각한 문잽니다.
[늘 하던대로 기자회견을 열 테지?
[네. 2주 정도 후에요_ 게다가 바로 의원님의 뉴욕 지역구 사무=
앞에서 개최한답니다.
잭은 고개를 들었다.
[호오! 그자가 그토록 나에게 신경을 써준다면 나도 그냥 넘어갈
없지. 어디 멋지게 한번 출연해 볼까?
제이롬스는 잭의 이야기가 진담인지를 추측하려고 애썼다. 잭 의-
은 늘상 모험을 즐겨 왔다.
[엘리 그레이브스와 게임을 하길 원하신다면 오늘 오후 청문회에
하십시오.
그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딕키 의원에게서 전화 왔었습니다. 목요일 밤에 포커하리 오실
냐고 묻던데요.
잭은 빅토리아와의 약속을 생각했다.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전헤.
[정말이세요?
딕키 상원의원은 신중하게 선별해서 손님을 초대하끈 했다. 일단초
거절하고 나면. 그 후 갑자기 일정이 바뀌었다 해서 불쑥 나타날
수는 없었다.
[정말이야,
[윈스턴 씨가 전화했었습니다. 그분이 제안한 기금 모금 건에 대해
의원님이 시장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셨으면 하던데요. 죽은 멜빈 쉬버
스에 관한 의원님의 질문에 대해 귀뜀해 줄 것도 있답니다.
제이콤스가 방을 나간 후 잭은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번호를 누르
고 윈스턴이 받기를 기다렸다.
윈스턴 존스와는 플랫버쉬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한바탕 주먹다짐을
한 후, 지금까지 절친한 친구로 지내 오고 있었다. 윈스턴은 잭보다는
두 살이 많았지만 실독증(독서장애) 때문에 2년 연속 유급을 당한 특
수반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영사기 돌리는 것을 배웠고 한편으론 학교
농구팀의 대표 선수로 뛰기도 했다. 키가 크고 마음씨 좋은 흑인인 그
는 운동을 좋아하고 유머 감각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잭과 유사했고,
델종들 간에 느끼는 호감으로 인해 서로 더욱 친밀해졌다
그들은 졸업 후에도 서로 연락을 끊지 않았다. 윈스턴은 프로 농구
팀데서 뛰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1972년카지 레이커스팀에서
활약하다 은퇴했다.
잭은 하원의원 경선에 나섰을 때, 윈스턴에게 선거 운동을 거들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윈스턴은 술집을 차릴 만큼의 돈을 모을 수
있게 해준다면 동참하겠다는 조건을 걸엇고, 그에 대해 잭은 자기 지
역구 내에서 술집을 연다면 그렇게 해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그러
자 윈스턴은 또 잭이 첫번째 선거에서 고배를 들더라도 재도전해야 한
다는 조건을 덧붙였고 이에 질세라 잭은 윈스턴이 자신의 선거 운동을
총괄해 준다면 그러겠노라는 조건을 붙였다.
그리고 거기다가 윈스턴이 뭐라고 또 조건을 덧붙였고. 하도 많이
제시하고 조건을 달고 하다 보니 이제는 둘 다 어떤 조건을 붙였었는
지. 또 어떤 사항이 중요했었는지를 다 기억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
침내 잭은 하원의원에 당선되었고 그의 지역구인 맨해튼의 이스트 43
번가에서 윈스턴은 '잉스'라는 술집을 열었고. 그곳은 가출옥한 범죄
자들의 보호감호소 기능도 담당했었다. 잭은 자신의 뉴욕 사무실을 윙
스와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
윈스턴이 전화를 받자 둘은 남자 친구들끼리 으레 그러듯이 몇 마=
욕지거리부터 주고받은 후 본론으로 들어갔다.
[네가 죽은 멜빈 쉬버스한테 관심을 갖고 있다던데?
[응, 그에 대해 아는 게 뭐 좀 있어?
[많지는 않아. 그는 우울한 표정에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어. 하지=
이렇다 할 문제는 없었지. 사라지기 전까지 여기서 한 6개월 정도 ]
냈었는데 떠난 건 정말 멍청한 짓이었지. 한 달만 더 채웠다면 그는 ?
유의 몸이 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참, 그를 ?
대로 알고 있던 친구는 이기뿐이었다네.
[이기가 누구지?
[이그나티우스 핏트, 억기 살던 젊은 친군데
시켜 줬지.
내가 배달 센터에 취'
'아기인형 살인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잭이 물었다
[모르겠어. 그건 왜?
잭은 대답하지 않았다.
[설마 날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그냥 궁금해서 물어 봤어.그를 찾을 수 있겠어?
?고
[굼1.
친군 아직도 우리 가게에 자주 들르니까 왜? 그애한테 꿔 볼일
[잘모르겠어. 그냥 어떤 직감이.
윈스턴은 중얼거렸다.
[횐등이들이란.
[뭔가를 조사해 봐야 할지도 몰라.
[뭔 조사해?
윈스턴이 물었다.
띠봐,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잭은 인정하기 싫었지만 대답했다.
[브루클린.
윈스턴은 특유의 꿍 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이봐, 또 그 빌어먹을 일이야. 넌 그때 고등학생이었어. 네가 그 조
그만 신발 가게에서 도둑질한 일은 어떤 기록에도 올라 있지 않다구.
잭이 걱정하는 것은 그 일이 아니었다. 잭을 괴롭히는 것은 애당초
그 가게를 털게끔 만든 웠인이었다. 그리고 윈스턴은 그것을 알고 있
었다.
[야, 이 답답한 친구야. 그녀에게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확
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뭘 그래?
그건 사실이었다. 하니에 대해서 그는 일부밖에 알지 못했다. 그렇
다 하더라도 요즈음 자꾸만 떠오르는 그녀에 대한 기억 때문에 잭은
괴로움을 겪고 있었다.
[어쨌든 알아보라구, 알았어?혹시 누가 옛날 이웃집들을 기웃거리
며 돌아다니는지 알아보라구.
잭은 윈스턴이 투덜대는 소리를 무시해 버리고 말을 계속했다
[이건 다른 일인데. 내가 2주 후에 그레이브스의 기자회견에 니짓즌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허. 나 원 참! 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네. 너 그게 말이나 되는 ]
리냐?
[으음.
그건 잭이 뭔가에 동의하지 않을 때 즐겨 쓰는 방법이었다. 윈스=
말했다.
[우리 앞에 열 개의 문이 있다고 치자. 그 중 아홉 개 문에는 '확=
한 성공이라고 쓰여 있는데 넌 '재앙이라고 쓰여진 단 하나의 문
열어제치는 셈이야. 그런데도 사람들은 널 보고 모험을 즐기는 용감
남자라고 칭송하지. 만일 내가 그 문을 선택한다면 그들은 저 자식 '
지 멍청하다 그럴 거야. 나 참, 사실 난 이런 일에도 열받고 있다구.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군.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애기는 거의 언;
나 올바른 평가이긴 하지.
[야. 이런 쭉일 놈!
[이번 주말에 보자구.
[엘리 그레이브스는 잊어버려. 나랏님들이 내리시는 나랏돈이나
가져 오라구. 감호소 운영비는 통 만져 보지도 못하는데 남들은 내
돈을 허비한다고들 수군거린단 말이야.
잭은 전화를 끊고 편지 더미를 향해 눈을 들었다. 윈스턴 말이 옳
그를 포함해 워싱턴 정가의 모든 사람들은 편집증 환자들이다. 그
브루클린을 머릿속에서 떨쳐 버리고 다음 모임을 위한 준비를 했다.
제이룸스가 들어왔다.
[시간 좀 있으십니까?
[그럼 무슨 일인가?
[뉴욕 경찰청의 노먼 플라스키 형사와 워싱턴 경찰국의 조 윌슨 형
라에 와 있습니다.
[무슨 일로?
[아기인형 안에서 동강난 연필 조각이 발견됐다는 얘기 기억하시
[그런데?
[그 연필 위에 새겨진 .'가 무얼 뜻하는지 알아냈답니다.
....,.?
히원닙의 이름, 매클라우드() 라는 철자의 끝부분이랍니
다
==은 필통에서 파란색 연필 하나를 집어 들었다. 연필의 앞부분에는
하얀색 글씨로 자신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잭이 방문객들
에게 나누어 주는 홍보용 연필이었다.
[의원님 거예요.
므
할리 문은 앉은 자세로 무릎을 달달 떨어대며 정오 뉴스를 보고 1
었다. 드디어 그가 기다리던 보도가 시작되었다. '아기인형 살인사건
메스꺼운 방송국 놈들, 저런 끔찍한 사건을 자극적인 제목으로 선전
대다니.
그의 친구 멜빈 쉬버스가 수갑을 찬 채로 경찰차 뒷좌석에 떠밀
처박히는 오래된 장면이 방영되었고 이어서 그들 둘이 함께 폭파해
린 병원도 잠깐 비춰졌다. 그 다음엔....... 아, 드디어 나왔군. 자신
모습이었다. '멜빈 쉬버스의 공번' 악명 높은 할리 문이 수갑을 찬
로 법정에 들어서고 있는 장면이었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그의
습은 스스로에게도 퍽이나 생소했다 매우 젊고 성실해 보이는 모습
었다. 코트에 넥타이, 짧은 구레나룻에다 머리까지 단정하게 빗더
겨져 있었다. 물론 변호사의 지시대로 단장한 차림이었지만. 그 모
은 예수님을 위해, 낙태 시술을 행하고 있는 병원을 폭파한 사람이
기보다는 유능하고 성실한 보이 스카우트 대원처럼 보였다.
보도 기자는 할리 문이 현재 뉴욕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딸깍, 그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그리고는 짭짤한 크래커를 입 안에 밀어 넣
방안을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진정하라구, 할리.
문가에 서서 그를 지켜보고 있던 윈스턴이 말했다. 윙스의 총관리자
윈스턴은 몇 달 전 멜빈 쉬버스가 사라져 버린 이후로 할리 문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 왔다. 멜빈 쉬버스가 종적을 감춘 이후 신경과
증상을 보여 오던 할리 문은 멜빈이 시체로 발견되자 심각한 편집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몇몇 특별한 날에 퀸즈 가에 있는 집에서 하룻
밤을 보내는 것을 제외하고는 윙스에서 기거해야 한다는 것이 그에게
붙여진 가석방 조건이었다.
오늘이 바로 그런 특별한 날인데 윈스턴이 그의 머리를 산란하게 만
들었다.
[공원에나 산책 나가 보지 그래? 콘서트가 있어서 불꽃놀이 준비를
하고 있다던데.
윈스턴은 그를 진정시켜 볼 요량으로 그떻게 권했다. 할리는 이를
꽉다문 채 질끈질끈 물어대서 턱 관육을 씰룩거리며 윈스턴의 충고를
듣고 있었다. 그리곤 일언반구도 없이 문을 향해 걸었다. 집 밖으로 니
선 그는 뜨겁고 매캐한 공기를 들이쉬며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4번
가를 이리저리 훌어보았다. 세 명의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지나갔다. 그는 결국 센트럴 파크로 나가 보기로 결심했다.
그때 갑자기 그날 밤 있을 거라던 불꽃놀이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졌
다.머리 위에서 터지는 4.5킬로그램의 폭죽......, 폭약......, 폭탄.그
는 갑자기 숨이 막혀 오는 걸 느꼈다. 그리곤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서
퀸즈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길을 건너서 그랜드 센트럴 역이 있는 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길모퉁이에는 찌그러진 밤색 밴 한 대가 역
시 서쪽을 향해 인도에 바싹 붙어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푸른색 연기가 낡은 배기통을 탁탁 때리며 풀풀 뿜어 나오고 있었고
천천히 열리는 것이었다. 차 안에는 두 사람이 의자에 걸터앉아
그들의 얼굴을 보려고 눈을 크게 떠보았지만 알아볼 수가 없
그들은 나일론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러나 손에 썬 반
소총은 가리지 않고 있었다. 그 둘 중 하나가 할리 문의 미간을
총구를 겨눴다 할리 문의 입이 벌어졌다. 아랫입술에 잠깐 붙어
담배가 떨어져 나갔다. 다른 한 사람이 검은 장갑을 낀 손가락을
향해 까딱거려서 차에 타라는 신호를 보냈다. 할리 문의 손은 반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누구? 나?
[그래. 할리, 너 !
그는 잠시 동안 총구를 바라보며 바짝 얼어붙은 채로 서 있었다. 누
주변에서 이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또 저들이 어떻
=1 자기 이름을 알고 있는지 생각을 굴리면서 이게 웬 날벼락인가 하
는 심정이었다. 총알이 장전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력도 없
다.그는 차에 올라탔다.
1=
옛날에는 여기 어딘가에도 화합의 분위기가 싹텄던 적이 있었을 =
이다. 잭은 상원 청문회장 대기실에 서서 보좌관이 준비한 엘리 그=
이브스의 프로필을 읽고 있었다. 그는 공동으로 기초한 임신중절 보=
법에 대해 증언할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레이브스가 이 법=
에 반대할 걸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잭은 자신과 그의 공통점이 ]
시 없을까 찾아보았다. 그러나 자료를 아무리 흄어봐도 공통점이란
아볼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둘 사이의 차이는 피상적인 것이 =
니었다. 사소한 일부터 비중 있는 일까지, 형식적인 면이나 내용 모]
에서 둘은 너무도 판이했다.
그레이브스는 아간 학교를 나왔고 잭은 다른 사람의 재정적 도움
받긴 했지만 그래도 예일 대학을 졸업했다. 잭은 미식 축구와 럭비
좋아했다. 그레이브스는 몸싸움이 심한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았다.
레이브스는 날생선을 싫어했으며 잭은 아침에도 스시(일본식 생선
밥)를 즐겼다. 잭은 진화론을 믿었고 그레이브스는 아담과 이브의
조론을 신봉했다.
그레이브스는 가난이 성격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잭은 그건
무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잭은 성사 가능성이 희박한 일일지
필요하다면 실천에 옮기는 스타일이었지만, 그레이브스에게는 어
없는 일이었다. 그레이브스는 성생왈을 신성한 것이라고 믿지만
단지 인간 생활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둘은 외모면
큰 차이를 보였다. 잭은 큰 키에 호리호리하고 근육질 체격인
그레이브스는 땅딸막하고 딱 벌어진 체격에 호전적이었다. 성
정치관, 종교 등 모든 면에서 둘은 물과 기름, 흑과 백의 양 극단
달리고 있었다.
위원회 행사 요원 하나가 문을 열고 머리를 들이밀고는 청문회의 시
알렸다. 잭은 {붉은 장미회}의 막대한 재력에 관한 자료를 좀더
내려갔다. 커다란 영향력과 의회 내 동조 세력을 많이 확보한, 워
가장 거대한 정치활동 조직 중 하나였다. 젝은 브리핑할 서
류를 돌돌 말아서 서류통에 넣었다, 자, 이제 전투 준비는 다 갖춘 셈
조 워털루의 나폴레옹과 웰링턴, 하이눈의 무법자들과 게리쿠퍼,
국회 의사당의 그레이브스와 매클라우드.
[감사합니다, 의장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권리를 위해 싸
우는 한 사람으로서 이 위원회에 나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 기
뽑니다.
그레이브스가 마이크에 대고 얘기했다.
[잘오셨습니다.그레이브스 씨.
잭이 말했다. 그는 그레이브스가 영아 살인자. 무신론자 그리고 대
원. 대충 이런 순서로 조목조목 비난을 토하는 성명서를 낭독하는
=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그레이브스의 발언이 시작된 지 채 1분
도 못 되어서 잭은 마치 전기 발전기처럼 그들의 오랜 적대감이 밀물
처럼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잭은 가죽 의자에 파묻고 있던 자세를 고
= 잡으며 침착하자고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코브라와 몽구스가 서로
싸우지 않고 지나갈 수는 있어도,우리의 싸움은 결코......
그는 보좌관들이 작성한 그레이브스의 프로필을 계속 읽어 내려갔
다. 서른일곱 살의 나이에 {붉은 장미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엘리 그
레이브스는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낙태 반대론자 중 한 명이었
다. 워싱턴에서 성공하는 데 많은 고생을 했을 것 같지만. 혈통에 관계
없이 힘이 지배하는 하원에서는 그는 발이 넓었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
사하고 있었다. 그는 골목 뒷전에서나 모여 응성거리던 볼품없던 <붉
은 장미회}를 국내에서 가장 큰 반 낙태 운동단체로 키워 냈다.
그는 텔레비전 화면발을 잘 받았고, 열정적이고 유능한 연설가이기
도 했다. 여기에다, 모든 정치 운동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 즉 시간과
지지표, 노동력. 돈 등을 기부하도록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데 있어서
도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정서가 메말라 있고 유머 감각이
없어 보이는 반면. 필요하다면 아기를 덮친 트럭의 바퀴를 들어올릴
수 있는 사나이의 힘에 버금가는 지적이고도 저돌적인 강렬함을 풍?'
는 인물이었다. 독설과 모호함. 회의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소=
을 다해 나가는 선교사처럼 진정한 신념가였다.
또, 그는 목표를 성취하는 데 필요하다면 어떤 일도 마다 않고 해=
는 사람이었다. 바로 그러한 성취욕에 대해 잭은 잘 알고 있었다. 많]
사업가와 운동 선수들, 그 자신을 포함한 워싱턴의 정객(꽈)들에?
서 공통적으로 보억지는 기질인 것이었다.
잭이 그레이브스를 혐오하듯이 그레이브스 역시 그러했다. 그레=
브스 입장에서 보자면 매클라우드 의원은 그가 증오하는 워싱턴의 ]
악한 점을 한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워싱턴의 정치판, 찌푸
날씨. 막후에서의 음모, 괜한 허세. 이 모든 것들이 언제나 잭과 연:
지어지면서 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레이브스는 워싱턴을 경멸했다. 독이 든 지혜의 우물물을 마시_
니 차라리 무지의 목마름을 참고 견디는 게 더 낫다는 신념으로 워
모든 정치 술수들을 보고 배우길 거부했다. 워싱턴의 해결 방식
협상'이라는 단어는 그의 사전에 없었다. 비중 있는 모든 사안에
그는 협상을 거부했으며 특히 양심과 관계되는 일에 있어서는
완강했다. 잭 매클라우드가 그레이브스의 신상 명세를 거의 다
내려갔을 즈음, 그레이브스가 매클라우드 의원에게 질문을 헤도
씨를 요청하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자신에게 총부리가 겨눠졌다는 것을 알고 잭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바짝 세웠다. 그레이브스가 물었다.
[선천적으로 기헝인 데다가 깊은 병에 걸린 네 명의 아이를 이미 출
산한 경험이 있는 어떤 임산부가 낙태 시술을 받고자 한다면 거기에
한 의원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낙태시키는 데 합당한 경우라 말하고 싶군요.
[그떻게 말하실 줄 알았습니다. 축하합니다, 의원님. 당신은 베토벤
을 유산시켰군요.
그레이브스는 변호사인 제레미 하켓의 옆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잭
은 뺨이 떨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격전을 감지한 방청객들은 조용했
다. 잭은 앉은 몸을 곧추세우며 반격을 개시했다.
[정말 비극임에 틀림없군요. 거의 볼프강 슈바르츠의 죽음과 같을
정도로 비극적이군요.
그레이브스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한 마리의 개가 다른 한 마리의
개를 향해 탐색전을 펼치고 있는 양상이었다.
[죄송하지만 의원께서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군요.
[전 가장 위대한 작곡가인 볼프강 슈바르츠를 말하고 있습니다. 베
토벤과 같은 시대에 살며 모든 장르의 음악을 섭렴한 사람이죠.
그레이브스는 하켓을 쳐다보았다. 하켓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
[의원님. 잘 이해하지 못하겠는데요.
[전 오히려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레이브스 씨. 귀
하는 하마터면 베토벤의 음악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무
척 비통해하시는 것 같은데.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훌륭한 볼프강 슈
바르츠의 음악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군요.
[전혀 그 존제를 모르는데 어떻게 그것을 아쉬워할 수 있겠습니
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먹기서 하나의 작은 논점을 이끌어 낼 수가 있
겠군요. 그렇죠?그레이브스 씨?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제 애기를 마저 들어 주시지요. 베토벤처럼
볼프강 슈바르츠도 비참하리만치 불구인 네 명의 형과 누나가 있었습
니다. 그래서 슈바르츠 부인이 볼프강을 수태했을 때 그녀는 어려운
결단에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또 하나의 기형아를 세상에 내놓는 위험
을 무릅쓸 것이냐, 아니면 이미 낳은 아이들로 층분할 것이냐? 하느님
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필요 없는 고동을 1
청하고 싶지 않았기에 볼프강을 낙태시켯고 또 한 차례 그녀를 덮쳤1
지도 모를 비극을 모면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은 물론 그의 위
한 음악을 모르게 되었죠.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것은 비극이라고 =
수는 없죠. 당신이 지적하셨다시피 모르는데 뭘 아쉬워하겠습니까?
그레이브스는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의원께서는 그런 작위적인 이야기가 베토벤을 유산시키
걸 정당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만약 떼토벤의 어머니가 나에게 그녀의 불구인 아들 네 명에 대
애기하고 나서 다섯 번째 아이를 유산시킬 건지 물어 본다면 어떻
할까요?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은 없었지만. 어쨌든, 결정권은 그
게 있다고 애기할까요?
[예.
[그떻습니다. 난 그녀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레이브스는 손가락으로 증인석 책상을 두들겼다.
[그래서 당신은 그녀에게 루드비히 판 베토벤을 죽이는 권한을 주
?'누 건가요?
[누군가가 기쁨에 반하는 슬픔의 예감과 고통에 반하는 예술적 재
그 둘 중 어느것이 더 무겁고 어느것이 더 가벼운지를 결정해야 한
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감히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서겠습니까? 아이의
어머니말고는 말입니다.
[난 그런 결정은 그녀가 임신하도록 만든 하느님이 하신 것이라 생
각합니다. 당신이 그러한 결정권을 인간에게 주려 한다면. 의원님, 묻
습니다. 베토벤의 아버지는 어떤가요?그의 선택권은 중요하지 않나
요!
[물론 고려되어야지요. 그러나 남편과 아내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
는다면 둘 중 한 명만이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 결정껀은 여자에
=1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의원님. 투표권은 셋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당신은 태아
를 잊고 있습니다.
[태아는 어떤 식으로 투표하죠?
그레이브스는 무척 놀랐다.
[물론 생존함으로써 투표하게 되는 거죠.
잭이 말했다.
[왜, '물론'이라고 얘기하시는 거죠? 만약 태아가 스스로 투표권을
행사할 만큼 층분히 영리하다고 가정한다면 또한 무엇에 대해 자기가
.
투표권을 행사하는지도 알고 있다고 가정해야 되지 않을까요?단지 자
신의 생존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질에 관한 것을 말입니다. 그리
고 자신의 어머니와 가족의 삶도 포함되고요.
그레이브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래요, 구태의연한 삶의 질에 관한 논쟁이군요. 그것은 법으
로 인정해 달라는 살인 즉. 낙태에 대한 세상에서 가장 큰 구실이 되
죠. 의원께서는 베토벤이 살았던 삶의 질이 그가 살아 남았음에 대힌
간어치를 다 채우지 못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당신이 보나 내가 보나 그의 삶은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
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가족에게 얼마만한 희생이 요-
됐는지, 감히 이 자리에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과 예술이 대럽한다면 삶이 앞선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밞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구요? 당신은 베토벤 부인
생명을 죽이도록 종용할 것입니다. 살리는 게 아니라요!
[난 어머니의 삶에 관해 애기하는 것이지 베토벤의 갊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해 얘=
그레이브스는 윗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미심쩍으면서도 화난 표
이었다.
[이런 일들이 당신의 양심을 괴롭게 하지는 않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괴롭습니다. 하지만 만약 내가 한 여인에게 _
녀의 의지에 반해서 아기를 낳도록 강요한다면 이것은 그때 느낄 가
의 반도 안 될 겁니다.
잭은 그레이브스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레이브스 씨. 당신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레이브스는 잭을 노려보았다.
[그건 내가 말할 문제가 아닙니다.그건 하느님께 달렸어요.
[오 이봐요. 그레이브스 씨. 당신은 항상 하느님하고만 노는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선거에 참여하십니까?
[물론이죠.
[레스 입사.
그레이브스는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둬라구요?
잭은 연필을 꽉 쥐었다.
'영리하다. 잭. 너는 정말 머리가 좋아.'
[레스 입사. 변호사 용어죠. '사건의 전모가 저절로 드러난다.'는
뜻이죠.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의원님. 저와 같은 보통 사람은 당신이
말씀하시는 삶의 질을 걱정하느라고 바빠서 미처 라틴 어를 배우지 못
했습니다.
[그런 뜻으로 던진 얘기가.......
[당신의 그 죽은 언어는 영아 살인자에게나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
각합니다만, 당신이 라틴 어를 배우는 동안 우린 생명과 인간 존엄에
=해 배웠습니다. 우린 분명히 당신이 알지 못하는 뭔가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수정란이 생기게 되면 그걸 존중하고 건드리지
말아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예일 대학을 나오신 당신의 말대로
하자면, 레스 입사죠.
'빌어먹을, 저 놈이 날 쥐어뜯고 있군.'
[그레이브스 씨, 난 그러한 주장에는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동의할 수 없겠는데요.
[당신의 배경을 고려해 보고, 의원님, 난 당신이 동의하리라는 기대
는처음부터 안 하고 있었습니다.
그레이브스의 비아냥 속에는 잭을 섬뜩하게 하는 날카로움이 깃들
여 있었다.
[제 경력에는 어떠한 비밀도 없습니다. 그레이브스 씨. 귀하가 내
배경에 관해서 뭘 알고 있단 말씀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군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 알고 있습니다. 의원님.
그레이브스는 차갑게 말했다. 잭은 혈압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 그
는 그레이브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진 못했지만, 그의 말이
협박임을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권위를 내세워 위압
적으로 그를 뭉개 버리는 것은 비열한 행동일 것이다. 그보다는 그레
이브스의 상용 수단인 정공범()으로 되받아 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생각을 정리한 잭이 운을 뻤다.
[질문할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여기 워싱턴에서 죽은 채 발견된 범
인이 당신이 사는 퀸즈에서 살았다고 뉴스에서 보았는데요.
잭은 서류를 펼쳤다.
[여기 있군요. 멜빈 쉬버스. 1980년 퀸즈 병원을 폭파한 혐의로 ?
소되었습니다.혹시 그가 <붉은 장미회}의 회원이었는지 확인해 주=
수 있겠습니까?
그레이브스는 얼굴을 붉히며 왼손 주먹을 쥐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의원님. 당신의 질문 의도를 잘 모르겠군요.
[제 질문의 목적은 그저 사실을 밝히자는 겁니다. 자, 말해 보시조
그레이브스 씨. 당신은 증언을 하러 여기 나왔는데, 지금은 혹시 낙
시술 병원을 폭파한 쉬버스의 범행을 옹호할 생각이라도 드신 건;
요?
그레이브스의 눈이 실룩거리기 시작했다.
[전 그런 행위를 부추키지 않습니다, 의원님. {붉은 장미회}는
상 모든 종류의 폭력 행위를 지탄해 왔습니다. 특히 아무런 방어 능
없는 수정란에 대한 낙태론자들의 무자비한 폭력을요. 그러한 일은
중단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몸을 떨어 가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제 나름대로 쉬버스에 대한 기사를 분석해 본 바에 의하면,낙태론
아기를 죽이는 정도로 그치지 않는 것 같던데요.
이번엔 잭이 발끈했다.
[나는 그저 쉬버스의 사인을 밝히는 위원회에 제공할 만한 정보가
.?에 관해 물었을 따름입니다. 예를 들자면 고의적으로 낙태론자
= 범죄처럼 보이고자 음모를 꾸민 반 낙태 열광주의자에 의해 살해되
생각하진 않습믹까?
그때 딕키 상원의원이 끼여들었다.
[존경하는 저의 이념적 동지와 공동의장께서 허락하신다면 잠시 휴
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20분 후에 속개하겠습니다.
그는 의사봉을 두드려 논쟁의 끝을 알렸다. 잭은 브리핑 서류를 집
들고 옆문으로 나섰다. 그리고 대기실을 지나 의사당을 향해 길을
8녔다. 의사당 진입로에 접어들면서 그는 팔을 뻗어 위대한 전사, 앤
드류 잭슨 대통령 동상의 발을 건드렸다. 그것은 그가 곤경에 처했을
=, 아니면 그가 기초한 법안에 대한 표결 시한이 다가을 때마다 행하
곤 하는 작은 미신적인 의식이었다. 그는 하원 복도에 들어서서 수위
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인사를 건옜다.
'당신의 배경을 고려해 보고......
그레이브스의 목소리가 머리에 맴돌았다,
'난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을 알고 있어.'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무얼 더 안다는 건가?
하니가 비행기 날개에 매달린 채 울부짖고 있었다. 세찬 바람에 딸
기멎 머리카락이 얼굴 주위를 감싸며 마구 헝클어져 날리고 있었다.
그는 비행기문 옆을 한 손으로 부여잡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다른 한
팔을 하니에게로 내뻗었다.
[내 손을 잡아!
그녀가 한 손을 뻗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날개 끝을 잡고 있던 다른
한 손이 미끄러져 나갔다. 그러자 그녀가 허공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낙하산 줄을 잡아당?1
그러나 그녀가 등에 맨 것은 낙하산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기 포=
기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기가 들어 있었다. 저 아래 회색멎 바다=
향해 곤두박질 치며 떨어져 가면서도 아기의 두 눈은 그를 또렷이 =
다보고 있었다
잭은 잠에서 깨어났다.다시 욕실 세면대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
했다. 열린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촬괄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물을
그고 침대로 갔다. 빅토리아는 모로 누워 잠들어 있었다 그는 이불 '
으로 들어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꼭 감은 망막 위로 떠오르는 하니 오코너의 영상을 떨쳐 버
수가 없었다. 내 첫사랑, 하니.
그도 다른 남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첫사랑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
옛날엔 그토록 견딜 수 없었건만 이제는 그저 아릿아릿하기만 한
히 상처도.......
가죽점퍼를 벗어제친 채 운동화를 터덜거리며 잭이 뛰어 들어갔을
그레이하운드 버스 정류장 입구 위에 걸린 시계는 정확히 7시 반을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뻗어 로베르티니 신발 수선 가게에서 흄쳐낸 돈이 든
봉투를 커냈다. 하니에게 보여 줄 작정이었다.
주차장 모통이에서는 출발 준비를 갖춘 버스들이 웅응거리고 있엇
다. 잭은 그 앞으로 달려갔다. 가열되는 엔진의 소음 속에서 배기 가스
를 들이마시며 버스들의 앞유리에 걸린 표시판을 확인했다.
해리스버그 행이라고 쓰인 버스가 한 대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스 위로 뛰어올라 통로를 따라 자리에 앉아 있는 얼굴들을 옳어 나
갔다.
하니는 없었다.그는 몸을 구부려 창 밖으로 대합실 쪽을 내다보았
다. 틀림없이 그녀가 헐레벌떡 달려들어오리라. 그러나 그녀의 모습은
렷이질 않고 대신 그녀와.씨장 친한 친구인 지니 앤더슨이 대합실의
신문 가판대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차에서 내려 대합실로 걸어들어갔다
[하니는 어디 있지?
[맙소사, 이 꼴이 둬예요?햐니가 이걸 전해 주라고 하더군요.
그밤는 그에게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 속에는 붉은 색 장미가
그려진 핑크색 편지지가 들어 있었다.
사랑하는 잭.
이걸 네가 받는다면, 그러니까 네가 거기 나왔다면......
약속을 지키지 봇해서 미안해.
잭.
우리 부모님이 아셨어.
부모님은 내가 아기를 낳을 때까지 고모댁에 나를 맡겨 두기로
하셨대. 해리스버그로 간다고 말씀드렸더니 노발대발하셨어.
엄마는 중절 수술 받다가 죽으면 어쩌겠냐고 비명을 올리셨고
아버진 날 임신시킨 놈을 찾아내서 당장 죽여 버리겠다고 고함을
지르시는 거야.
엄마는 내가 1옥의 불구덩이에 빠질 거라고 그러셔. 난 말이
야, 설사 그렇게 된다 해도 괜찮아. 그리고 누가 아기 아버지인지
결코 얘기 안 할게.
부모님은 너를 의심하고 계시지만 죽어도 얘기 안 할 거야.
약속해.잭.
벌써 네가 보고 싶어.
사랑해.
-하니
추신 ;
밑에 '추신이라고 써 있었지만 그저 빈칸이었다. 잭은 편지에서
을 메지 않은 채 물었다.
[하니는 지금 어디에 있어?
[난 몰라요.하늘에 맹세코.
그녀는 그가 손에 쥐고 있는 봉투에 눈길을 주었다. 로베르티
가게에서 흄쳐낸 돈 봉투엿다
= 뭐죠?
는 봉투 귀퉁이에 찍힌 상호를 알아보고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
갸웃거렸다.
르티니 가게에서.......
그는 그제서야 깨닫고 봉투를 점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무슨 짓을 한 거예요?
[하니 고꼬가 어디 사시지?
시러큐스에. 하지만 난.
씨러큐스 어디?
낍녀는 눈을 굴렸다.
[잭하고 자꾸 만나게 되면 일만 더 어렵게 될 뿐이라면서 연락하지
전해 달갯어요. 꼭 편지하겠대요.
잭은 서성댔다.
4월이면 모든 게 끝난대요. 그러면 그녀도 돌아을 거예요.
그는 마치 지니 때문에 일이 잘못된 것이라는 듯이 그녀를 쏘아보씻
는걸어나갔다.
그의 처진 등에 대고 지니가 소리쳤다.
[잠 좀 자요,몰골이 말이 아니에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사박사박 차갑고도 깊게.
버스의 속도가 점점 늦추어지더니 급기야 서버리고 말았다.
기사는 승객들에게 잠깐만 앉아 있으면 다시 출발할 수 있다고 말했
다. 체인을 감은 버스가 지나쳐 갔다. 자신의 몸뚱이의 열기로 꽁꽁 얼
어붙은 길을 녹여 버리고 싶었다. 하니가 브루클린을 떠난 건 1크월이
었다.그리고 지금은 2월.
8주간을 헤어져 있는 것이다.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고는 도저히 견
딜 수가 없었다. 물론 그 동안 그 둘 사이에 연락이 완전히 두절된 =!
아니었다. 매주 금요일 잭이 루보프네 집으로 포커를 하러 가기 직'
인 음시 정각이면 하니가 식당의 공중 전화로 그에게 전화를 걸어 쳤
다. 잭은 그녀에게 전화 걸 돈을 보냈다. 하니의 부모님들이 그녀에=
오는 모든 편지를 가로채 압수해 버리라고 고모에게 단단히 당부해 =
었지만 잭과 하니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사서함 우편이
는 것을 아마 몰랐으리라.
'멍청한 스코틀랜드 인보다 더 멍청한 것이 영리한 아일랜드 인
그는 고집불통 삼촌의 말을 떠올렸다. 참 세상일이라는 것이 우스1
한때는 다른 사람들을 놀려대며 지껄였던 그 말이 이제는 자기 자=
의 우스꽝스런 처지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될 줄이야. 그네들의 영(
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불운은 잭과 하니의 실낱 같은 연결고리마저
어 버리려는 듯 몰아쳐 왔다
잭은 포커판에서 가진 돈을 모두 날렸다. 지금 타고 있는 버스비:
꾸어서 지불한 것이었다. 로베르티니 가게에서 흠쳤던 돈을 그날 밤
되갖다 놓은 것이 한편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눈보라로 인해 아풀리아 역 근처에서 버스가 멈췄다. 가죽점퍼와
은 운동화 차림으로 잭은 차에서 내렸다 혹시 기다리다 지친 하니
그가 도착하기 전에 떠나 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이스트 시러큐
에 있는 블루훼일 식당을 향해 북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맙게
지나가던 제설차가 그를 태워 주어 약속 장소로부터 반 마일쯤 되
내려 주었다.
식당에 들어섰다.눈의 반사열에 그을린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있었다,
하니는 거기 있었다.
기다리다 지쳐 그만 일어서려고 코트를 걸치고 있는 참이었다. 고녀
모습에 일순 현기증을 느꼈다. 당혹스러웠다. 첫눈에 임산부라는
알 수 있었다 잭을 본 하니는 그의 목을 얼싸안고 품안으로 바싹
들어왔다. 키스는 하지 않았다. 잭은 어쩐지 불편한 느낌이 들었
하니는 코트를 벗어 버리고 자리에 앉았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어색했다 전화와 편지로 주고받던 은밀하고 달콤한 얘기 대신,
어떻고 소금 그릇이 어떻고. 시시콜콜한 것들에 대한 얘기만 튀
지난 몇 주 동안 그는 하니와의 재회를 상상해 왔었다. 부드럽게 서
안고서 해변에 누워 따뜻한 황금빛 모래 위에 서로의 이니설을
락으로 그려 보는 그런 재회여야 했다.물론 2월의 시러큐스 블루
일 식당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사랑에 빠
진모든 사람들이 한 번씩은 느껴 보듯이 감미로운 사랑의 환상은 냉
흑한 현실을 언제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주문한 음식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향한 채 앉아 있었다. 눈
은 마주치고 있었지만 영흔은 떨어져 있었다. 잭은 그가 알고 있었던
헤어지기 전의 하니 모습을 되찾아 줄 만한 것이 없나 둘러보았다. 주
크박스가 하나 있었다. 잭은 센트를 집어 넣고 바비 골드스보로의
{하니>를 틀었다.
하니,
난 널 그리워 해.
난 이제 옛날의 내가 아닌걸.
너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오.하니,
그럴 수만 있다면
낮고 감미로운 노랫소리였다
하니는 부드러운 핑크빛 입술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그런 모습에
그는 몸 가운데서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딱딱하던 분위기가 깨졌다. 이내 그들은 그들이 '어린 시질
이라고 부르는 오래 전의 일들을 애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요즘 학교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코니 클랩은 아직도 젖꼭지를 드러낸 채로 기숙사를 어슬렁거리는지.
치어리더들은 잘 해내고 있는지. 윈스턴은 잘 잇는지. 그런 질문들을
잭은 억지로 참아 내면서 대답해 주었다. 그는 뭔가 그 이상을, 무엇인
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가 늘 그리워했던 뭔가를 기대했다
<하니}가 세 번을 더 연주되고 있는 동안 코코넛 크림 파이 두 조각
을 먹고 나서야 그녀는 테이블을 가로질러 손을 뻗었다. 그는 그 손을
잠깐 쥐었다가 그녀 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리곤 그녀에게 키
스를 했다. 그러나 하니는 재빨리 포옹을 풀어 버렸다. 그는 또다시 ?'
분이 상했다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잭을 달랬다.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나누기에는 집에서 너무 가까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 배 만져 보고 싶어?
그녀가 물어 봤다
(그러고 싶진 않았다.)
[물론이지.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손이 자연스레 뻗어지는 것에
놀랐다.
닙외는 그가 내민 왼손을 잡아서 자신의 부풀어오른 배 위에 가져다
[가끔 아기가 발길질하는 걸 느낄 수 있어,
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그런 느낌이 전해져 오질 않았다
자신의 아기와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 게 충실하자고 약속한 그들의 사랑이 위협당하고 있는 느낌이
그리고 프레디 앤티콜리의 소췌한 모습이 떠올랐고 그가 그토록
=워해 오던 뻔한 인생의 길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아니야. 아니야. 이 아이를 어디다 양자로 줘버리고 나면 우리 둘에
게는 아무런 걱정거리도 없게 될 거야.'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
했다. 그는 하니의 배 위에서 손을 떼었다.
[마음에 걸려?그래?
하니가 물었다
[아기 말이야? 정확히는 모르겠어.
그는 그녀의 표정을 살피고 나서 다시 말했다.
[그래,괴로워.
그녀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 역시 그래.
웨이트리스가 레몬 파이를 한 조각 가져 왔다.
하니는 파이 한조각을 포크로 잘라 내어 집어 들었다. 그리고 두 사
람은 마음 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무슨 소원을 빌었어?
하니가 물었다.
[네가 집에 돌아오고 모든 일이 '어린 시절쩌럼 되게 해달라고 빌
제 흔의 믈=다 사쯔
었어. 그리고 내후년에는 우리 둘 다 장학금을 받아서 대학에 가게 해
달라고. 넌 뭘 소원했니?
[말할 수 없어.
[왜?
[너무 메스껍거든.
[뭔데?
그녀는 잭이 얼마나 알고 싶어하나 보기 위해 그의 눈을 살폈다.
[콘돔.
그녀는 포크를 들어 파이를 쪼아대다 그를 보았다.
[기분 상하지 않았어. 잭?
[그게 네가 원하는 거라면 괜찮아.
[페서리도 같이 쓸 거야.
[한 번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파이 한 조각을 더 잘라 냈다
그에게 한 입 먹여 주곤 자신도 먹었다.
어느덧 시계 바늘은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니는 6시까지는 집'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손을 맞잡은 채로 나란히
아 헤어져 있었던 동안의 아팠던 기억들을 서로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
며 따뜻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이제 더 늦게 되면 아주 곤란한 지=
에 빠지게 될 거라고 하니가 마지못해 운을 떼고서야 잭은 그녀를
으로 돌려보낼 마음이 들었다.
두 연인은 외투를 걸치고 식당문 앞에 나와 섰다.
추웠다.
잭은 코트의 앞섶을 열고 그녀를 안으로 끌어당겨 꼭 안앗다.
그녀의 작은 떠리가 그의 턱 밑에 닿았다.
[널 데리고 집으로 가고 싶다.
[나도 그러고 싶어.
[진심이야. 하니. 우리 집에서 함께 살 수 있잖아. 정 안 되면 지니
같이 있든지.
하니는 잭을 빤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자기, 날 정말 보고 싶었구나, 그치?
[응. 그럼. 그리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넥,내가 걱정됐어?
[그냥. 뭔가 하긴 해야 되는데 어쩔 수도 없고. 하여튼 걱정이 돼.
하니는 잭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둘은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
[자긴 참 좋은 사람이야. 이젠 가야 돼.
그리곤 작별 키스를 하려고 얼굴을 들었다. 처음 만나면서부터 그렇
=1 하고 싶었지만 작별의 선물로 남겨 두려고 참았던 것처럼 그녀의
1스는 깊고 강렬했다. 부드러운 그녀의 혀가 잭의 입 안으로 들어왔
다. 그는 그 전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것이 바로 그가 고대하고 그리
하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몸을 떨며 살며시 식당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곤 창가
에 서서 밖에 있는 잭을 바라보았다. 잭은 주먹을 쥐고 창문을 두들겼
다. 그녀가 앞으로 몸을 기대 왔다. 그리곤 호호 입김을 불어 서리를
끼게 하곤 유리창에 손가락으로 조그마한 하트를 그렸다. 그리고 다정
한 눈빛으로 '사랑해'라고 입모양을 지었다. 늘 그랬었다. 그녀가 나
=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면 잭은 온몸의 피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
꼈었다.
[나도 널 사랑해.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덧붙였다.
[언제까지나.
시
나
프
초대받은 사람들은 조지아 산() 횐 대리석이 깔린 현관을 지나 ?
슈윈의 명곡들을 연주하고 있는 해병 군악대의 경쾌한 음악소리를 =
으면서 백악관 본관의 로비로 들어섰다. 거기서부터는 말쑥한 선남=
녀들이 마치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대열을 이루어 넓은 복도를 지
연회장인 이스트 룸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여자들은 =?
치까지 감싸는 장갑을 끼고 있었고 남자들은 검정색 타이를 매고 있!
다. 침착해 보이는 얼굴들 뒤에는 선택받았다는 우쭐함이 깃들여 있-
뿐 겁먹거나 지레 기죽은 표정들은 찾아블 수가 없었다. 이윽고 접.
실에 이르러서는 쌍쌍이 짐짓 위엄 있는 자세로 서서 나지막이 이야
를 나누며 이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남자와
사를 나눌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성함을.......
푸른 제복에 붉은 머플러, 황금색 견장을 두른 멋들어지게 생긴
병이 대통령 곁에 서서는 허리를 굽혀 가며 일일이 신원을 확인했1
그러면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다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나지믹
목소리로 그 해병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신저
=통령은 미소를 지어 보이곤, 다시 그 다음 손님과 악수를 했다,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대통령은 손님들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들릴 듯 말 듯한 낮
목소리로 영부인에게 속삭였다.
[브라운 대법원장이 곧 죽을 것 같애.
그는 웃으며 또 다른 손님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멋진 밤이죠?
[그래서요?
영부인이 조용히 대답했다.
, 저기 에밀리 존슨이 오는군요. 화장품을 또 처발랐어요. 저
?' 껴안길 좋아한다니까.
영부인은 손을 흔들며 미소지었다.
에밀리가 웃으며 다가왔다.
[티투스가 유력해 보여.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안녕하세요. 에밀리. 오 아름다워요!
[안녕하세요.각하. 만나서 반가워요.
[당신 왼쪽 어깨에 에밀리 존슨의 화장품이 잔뜩 묻었어요.
[이제 낙태에 대한 논쟁은 끝낼 때가 되었어.-안녕하시오?-
대법원에 다시 정치적 균형을 잡아 줘야 해.-짐.만나서 반갑소.-
=투스는 뛰어난 사랍이야. 게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대법원
장을 임명하는 것뿐이잖소. 그 후엔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알아서 하
8 그뿐이지. 뭘.
[안녕. 사만다. 아기는 어때요?-하지만 당신도 그가 낙태에 관
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잘 알고 있잖아요?-오!정말 아릅다운 장
꽃이군요.
[아니. 난 몰라.- 오, 상원의원. 만나서 반갑구려. 크랜달 부인
.
정말 만나서 반갑습니다.-대법원은 의외의 일투성이야.얼 워런을
보라구. 보수 공화당 주지사썼지만 이제는 열렬한 낙태 지지론자가 돼
있잖아.
[당신 미쳤군요.-패터슨 씨? 어머, 죄송합니다, 피터슨 씨. 백
악관에 온 걸 환영해요.-왜 그걸 지금 나한테 얘기하는 거죠?
[그가 저기 오는군.-좋은 구두네요!-도움이 좀 필요해,매
기.-제리 ! 만나서 반가워요.
[난 퍼스트 레이디예요.-존.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군요.-
본디오 빌라도의 아내가 아니라구요.
해병이 몸을 돌려 애브너 티투스 판사를 소개했다
[티투스 판사님. 잘 오셨어요.
대통령이 말했다.
[뵌게 되어서 기뽑니다. 각하.
악수를 나누며 판사가 인사했다,
[저녁 식사 후 시간 좀 냅시다.
[기꺼이 그러겠습니다.
판사는 그 뚱뚱한 몸을 한 발짝 왼쪽으로 움직여 영부인에게 손
뺍었다.
[티투스 판사님.오셔서 기뽑니다.
그녀는 옷으며 말했다.
[본디오 빌라도?전에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지만 나더러 본
오 빌라도라고 한사람은 없었어.
그는 턱시도를 벗어 탈의실 옷걸이에 던진 후 널따란 침실에 있
부인의 드레싱 룸을 가로질러 신경질을 부리며 넥타이를 풀기 시겨
다.
'본디오 빌라도라니. 빌어먹을.'
그는 왼쪽 신발을 조급하게 벗다가 놓쳐 버리고 말았다
[내가 크랜달 같았으면 당신 기분이 좋았을 거0':.
그는 침실에다 대고 소리쳤다. 로드아일랜드 출신의 상원의원 로버
크랜달은 구닥다리 자유주의자였다.
[맙소사! 그 작자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라면 대법관 자리 하나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팔아먹을 위인이잖아요.
대통령은 바지의 지퍼를 내렸다.
[아니야. 아니라구 그 인간은 대려원을 통째로 팔아꺽을 놈이야.
그는 속옷을 벗어 버리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홴지 초췌하게 느껴졌다. 아닌게아니라 짧고 억센 수염이 벌써
돋아 나 있었다. 그는 칫솔에 치약을 짜 바르고는 양 입가로 거품이 넘
쳐 흐르도록 심하게 양치질을 했다. 물론 그 자신도 대법웠장에 낙태
반대론자를 임명하는 것이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쩌
란 말인가? 티투스는 뛰어난 인재이고 정치적인 면에서도 전혀 문제
삼을 빌미가 없는 인물인걸.
어찌 됐든 이 넓고 복잡한 나라에서 낙태를 허용하느냐, 못 하느냐
가 유일한 논쟁이 될 수도 없는 것이고 대통령 스스로도 이제 낙태 문
제라면 신물이 났다. 안 그래도 대통령은 낙태 지지론자들이 낙태라는
사안에 대해 보여 주고 있는 정치적 행태에 적이 짜증이 나 있었다.
만약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광범위한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다면 왜
낙태 보장 범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그자들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말로만 떠들어대는 허퐁쟁이들이다.
아니. 설사 지지를 얻고 있다 해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약해 빠
진 겁쟁이들에 불과할 뿐이다.
그들을,종 죄어야 해. 의원이라는 작자들이 려률 제정은 뒤로 제쳐
놓고 대신 대법관 임명에나 매달려 아옹다옹하다니 그러나 그건 그들
의 문제지 그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그 자신도 당장 발둥에 불이 떨
어진 상태에 처해 있지 않은가?
그는 한 번 더 거울을 들억다보았다. 날아온 소환장을 받는 대통령,
터지는 플래시. 저녁 뉴스의 헤드라인, 즐비하게 늘어선 마이크 앞의
특별 검사. 탄핵 청문회, 신랄하게 파고드는 상원의원. 거울에 비친 그
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빌어먹을! 티투스를 대법원장에 임명하는
데 있어서 가부를 따지는 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칫솔을 유리컵에 떨구고
는 수건으로 입 언저리를 닦아 냈다. 그리고는 문 밖에다 대고 고함을
질렀다.
[당신은 본디오 빌라도를 우습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최소한 그는
정치에 있어서 최우선되는 법칙만은 알고 있었어. 혹시 당신은 잊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바로 '생존'이라는 거야. 생존!
그는 욕실의 불을 꼈다.
[꿈많은 자유주의자들조차도 현직에서 물러나 볕좋은 캘리포니아의
어느 대학에서 지난날에 대해 강연이나 하게 되는 날이 오면 자신들이
한 푼의 가치도 없었다는 걸 다들 잘 깨닫게 된다는 얘기요.
자신의 침대 곁의 꼬마 전구를 제외하고는 실내의 모든 불이 커져있
었다. 매기는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었다. 잠이 든 것 같았다. 그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양손을 머리에 괴었다.
조금 후. 그는 몸을 돌려 그녀 쪽으로 꼼올 웅크렸다. 마치 스푼 두
개가 포개진 듯한 자세였다.
[치워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는 그녀를 꼭 껴안고 움직이지 않았다.=
녀도 가만히 있었다.
그
할로겐 램프의 불멎이 얼굴을 환히 비추는 가운데서 잭은 낙태 보장
의사본 한 부를 손에 쥐고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몰리
맥코믹이 앉아 있었다. 보도 기자로서 방송가의 샛별로 떠오르고 있는
빕녀는 낙태 법안이 아닌 다른 문제에 대해 잭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수첩에서 얼굴을 들고 한 차례 더 질문을 던졌다
[뉴욕 경찰 당국이 중점적으로 혐의를 두고 있는 가정 가운데 하나
는 급진적 낙태 옹호론자들이 멜빈 쉬버스가 병원을 폭파해 버린 데
한 보복으로 그를 살해했다는 것인데 의원님께서는 그러한 일이 가
능하다고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낙태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코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살인은 그들의 행동 양식에 어긋나는
일이죠. 오히려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광적인 반 낙태주의자들
=소행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저로서는 간과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게 된 데에는 어떤 근거가 있으신지요?
[자! 지금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한번 보세요. 광신적
반낙태주의자들에 의해 의사들이 총격을 받고 병원들이 폭파되고 있
잠습니까?
몰리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카메라가 멈추고 불이 꺼졌다. 그녀는 실크 블라우스에서 마이크를
떼어 냈고 카메라맨은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잭은 그녀를 지켜보았
다. 섹시했다. 그것도 단순한 섹시함이 아니라 뭔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잭을 사로잡았다. 그랬을 리가 없는데도 전에 만났
었던 것 같은 친근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그가 쳐다보고 있다는 것
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낙태 문제를 취재하고 있는 기자라면 구미가 당길 만한 사건을 하
나 알고 있소.
[어떤?
[어떤 부인에 관한 건데 그 남편이 임신 중절 수술을 반대하고 있
소.
[그가 그럴 껀리가 있나요?
[없지요. 하지만 그러고 있다오. 법원에서 일시적 낙태금지 명령판
결을 얻어냈거든요. 그 사건과 연관해서 영구낙태 금지법안에 대한 청
문회 일정도 잡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몰리는 작은 취재용 수첩을 철쳤다. 잭이 말을 이었다.
[냅률 상담소를 하는 빅토리아 윈터스에게 전화해 보시오. 사건명
은 '데이비스 대 데이비스'입니다.
몰리는 구두를 고쳐 신고 일어났다. 그리고 가죽 핸드백을 집어.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원님. 궁금한 점이 생기면 =
화드려도 되겠습니까?
[언제든지.
[아. 참. 이건 다른 일인데, 의원님의 청문회에서의 발언..내용을
혹시 그 애기가 다시 거론되면 참고하시라고 드리는 말씀인
베토벤의 어머니는 베토벤 전에 아이를 하나 더 낳았어요. 넷이 아
=.
[그래요?그걸 어떻게 알고 있소?
[웨스트버지니아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알고 있죠.
그녀는 자신의 손을 잡은 잭의 손을 풀끄는 떠났다. 아무 말 없이 지
= 잭을 뒤로 한 채.
빅토리아는 사무실로 들어가기 위해 의뢰인 대기실을 지나다가 한
자를 보았다. 실의에 빠진 듯한 여자는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 옆에
는그녀의 아이들이 칭얼대며 엄마의 팔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아무리
잡아당겨도 엄마가 그걸 느낄 정신이 아니라는 걸 아이들은 알지 못
했다, 빅토리아는 한 무더기의 전화 메모를 집어 들고 사무실로 들어
갔다. 그리곤 곧장 수화기를 들고 레이챌에게 전화했다.
[제노비아 데이비스 청문회에 참석할 수 있겠어요?
[난 거의 매일 수술이 있어.
[이번에는 당신이 꼭 쐴요해요. 대신 수술을 맡아 줄 사람을 찾아볼
수 없을까요?
[노력해 볼게.오늘 아침 신문 봤어?
[아직. 왜요?
[브라운 대법원장이 더 이상 오래 갈 것 같지 않아.
통화를 하면서도 빅토리아의 손가락은 계속해서 메모지의 페이지를
넘겼다.
[진정해요.대통령이 낙태 반대론자를 임명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건 정치적 자.살이에요.
[그냥 생각일 뿐인데. ...... 내가 왜 빅토리아에게 그걸 부탁하고 있
.?
는지 이해하고 있지?
빅토리아는 그 말을 무시했다.
[청문회의 정확한 일정이 잡히면 전화할게요.
빅토리아는 다음 차례의 의뢰인을 만나 보기 위해
전화를 끊었다
스틱스 딕키는 상원 회의실 옆에 붙어 있는 방 두 개짜리 개인 사무
자물쇠에 열쇠를 밀어 넣었다. 그러고 나서 문을 열고 엘리 그레
1브스와 게이로드 젠킨스 목사를 안으로 안내했다. 젠킨스 꼭사는 현
재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 정치위원회의 의장이었다. 미국 상원에는
모두 100명의 의원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이렇게 특별한 개인
사무실을 제공받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스틱스 정도의 연륜은 있어
야 이러한 최상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자웽의 소파와 안
릭한 의자들. 작은 스텐드 바와 같은 잘 차려진 바.케이블 와 비디
오 디코더에 각각 연결되어 있는 두 대의 텔레비전 등. 이 모두를 조화
롭게 꾸민 넓은 회의실과 그 옆으로 책상. 더블 베드 그리고 주방 시설
을 갖춘 또 하나의 방이 딸려 있었다.
그 두 개의 밀실은 한 편으로는 비중 있는 사안들 이를테면. 어떤 법
=네 대한 찬성표를 모은다든지, 혹은 예산안에 대한 타협을 이끌어
낸다든지, 또는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를 하거나 그것을 깨부셔
버린다든지 하는 등등의 일들을 꼬의하고 지휘하는 데 안성맞춤인 공
간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보다 사소한 일들. 즉 술을 마신다든지. 낮
잠을 자거나 잠깐 누워서 빈둥거린다든지, 기부금에 대한 협상을 한다
든지 등등을 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안락한 장소였다. 스틱스는 '이
은신처가 연방 관리들에 의해 도청되고 있지 않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느냐?' 는 의심 어린 질문들을 로비스트들로부터 여러 차례 받았었
다. 그때마다 스틱스는 자신만만하게 이렇게 답변해 주곤 했다.
[이것들 보시오. 대부분의 상원의원들은 정직하다오. 설사 개중에
정직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누가 여봐란듯이 드러내 놓고
일을 처리하겠소?다 배려가 되어 있는 게지. 하하.
그 대답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했다. 스틱스는 젠킨스 목사에게 술을
권했다, 몇 잔을 홀짝거린 뒤 목사는 텔레비전을 켜놓고 앉아서 카드
패를 섞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요지경 세상'이 방영되고 있었다.
스틱스는 엘리 그레이브스를 옆 방으로 안네했다. 둘만의 밀담이 시
작되려는 순간이었다. 일단 그는 냉장고에서 맥주 캔 하나를 꺼내 엘
리에게 건네주고, 자신의 잔에다가는 잭 다니엘즈를 넘치도록 붓고는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두 시간 전, 그는 엘리와 애브너 티투스를 점심에 초대해서 상원의
원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런데 그 만남의 목적이 순조롭게 풀려 나
가질 않앗었다. 그래서 엉킨 실 타래를 풀기 위해 지금 엘리를 이 밀실
로 데리고 들어온 것이었다. 엘리 그레이브스는 방안을 서성거렸다.
[왜 여기로 절 데려오셨죠?마치 숲속의 오두막집으로 여행 온 기분
인데요?
[긴장 풀라구. 우리 아버님께서도 가끔 말씀하시곤 하셨지. 땔감
나 쉽게 구하려고 오두막집에 오는 건 아니라고 말이야.
[알지 못할 소리 그딴 하시고 요점으로 들어갑시다.
스틱스는 위스키를 들이켰다.
[당신 오늘, 하마터면 큰일낼 뻔 했어.무슨 소리인지 알겠소?
[아뇨.모르겠는데요.좀더 자세히 설명해 줘 보세요.
좋아. 내 설명해 주지. 우선 당신이 티투스를 호되게 몰아붙였잖
어떤 식으로 낙태 법안에 대해 투표할 것인지 밝히라고 말이오. 그
대법관이라는 지위에 있으면 몇 가지 특정 사항에 대해서는 공공
의사 표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어야지.
넥요? 꿔가 어떻습니까? 그가 늘상 떠벌리고 다니는 것처럼 진짜
낙태주의자라면 솔직하게 드러내 놓고 낙태 허가 법안에 부표를 던
말못할 이유가 없잖아요?
판국에 구태여 떠들고
[주변에서 다들 그렇게 하리라고 믿고 있는
필요까진 없지 않겠소?
[난 그 사람에게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그건 또 왜?
[말하는 폼이 대학 교수 같아요. 너무 복선을 깔고 있단 말입니다.
[맙소사! 이봐. 엘리. 당신 말에 따르자면 표준말을 쓰는 사람은 다
복선을 깔고 애기하는 사람이 되겠군. 애브너 티투스는 우리 편이오.
[만약 그가 대법원장이 되는 데 제가 한몫 거들어 드린다면 약속한
=로 내가 원하는 것을 줄지 나는 그게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를 믿겠소? 계약서라도 쓰게 할까?물론 그는 낙태
=가 법안에 반대표를 던질 거요. 그러나 그것은 나중 일이고 지금 당
장은 그가 주재하고 있는 낙태에 관한 재판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를주목해 보면 되지 않겠소?
엘리는 전쟁 포로처럼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좋습니다. 제가 또 뭘 잘못했죠, 의원님? 툭 까놓고 애기해 주시
죠]
러렇다니까.엘리,당신은 너무나 직선적이고 다혈질인 게 탈이오
=투스는 당신이 자신의 대법원장 임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너무 심하게 티투스를 다그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
소. 그리고 내 한 가지 더 얘기하겠는데, 당신이 당신 주장을 조금만
굽히고 그에게 숨돌릴 여유를 준다면 그는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당신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도 남을 사람이오.
스틱스는 다시 술을 한 모금 흘짝였다
[이를테면?
[그건 내게 맡기시오.
그레이브스는 머리를 내저었다
. .또 저러는군 복선을 깐 워싱턴 식
대화법이야.'
스틱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말이오, 대체 당신은
떠들어댄 거요?
왜 섹스에 관해 그렇게 열을 올리고
[꿔 잘못된 것 있습니까?만약 사람들이 혼외 정사하는 걸 막을 수
있다면 낙태. 에이즈, 포르노 같은 것들은 모두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
어요.
기반을 넓히고 싶어하는 줄
[이런 참! 엘리, 난 당신이 정치적
고 있었는데. 되레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잖아.
그 말에 엘리는 발끈했다.
[의원님같이 다채로운 식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충격적일
지만 내 사전에 나와 있는 섹스란 곧 생식만을 의미합니다.
게 확실
스틱스가 되받아 치고 나왔다.
[섹스는 모든 걸 의미해. 눈을 크게 뜨고 주의를 한번 둘러 봐. =
래, 영화, 텔레비전, 쇼, 옷. 차, 음식......, 섹스와 관계없는 건 이
라 안에서 찾아볼 수가 없어. 그건 당신의 망상이야. 그러니 청교도;
럼 섹스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고 돌격해 들어가기 전에 한번 더 생;
해 보란 말이야.
기는 것말고 우리의 공통점
[스틱스,가끔씩 포커 게임을 함께 즐
대체 뵘니까?
[동맹 !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셋이 될 수도 있지. 정치적 연합 없이
아무것도 얻어질 게 없소,
[하지만 묄 위한 동맹이죠?당신이 신봉하는 게 대체 윌니까?
아주 오랫동안 그런 질문을 들어 보지 못한 까닭에 스틱스는 잠시
당황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대답은 '권력' 그리고 '승리'였다. 하지만
솔직히 그렇다고 대답해 버리면 그레이브스를 화나게 할 것이었다. 그
레이브스에게는 낙태 행위를 종식시키는 게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 때
문에 그것을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하고야 말 이상주의자였다.
반면에 스틱스는 어떤 정치적 행위의 결과로서 얻어지는 특별한 개
개의 이익보다는 정치 괴정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정
치가였던 것이다. 따라서 꿔라고 대답을 해야 할 것인가? 어떤 공통된
목적을 위해 그 둘이 손을 잡아야 한다고 애기할 수 있을 것인가? 스
스는 한동안 문제점을 분석한 뒤, 상황이 절대적으로 요구할 때만
취하는 평소에는 드문 결단을 내렸다. 솔직해지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엘리 솔직히 말하지 사실, 난 여자들이 낙태를 하든 안 하든 거기
엔 관심이 없어. 세상엔 이미 굶어 죽어 가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거
든. 하지만 낙태 건에 관한 한 내 당신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지. 우
= 둘에게 있어서 엄청나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는 것이 그 이유
야.
[돈에 관한 말씀입니까?
[물론 돈도 중요하지.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야. 뉴딜 정책 이후로
의회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이 득세하고 있어. 특히 우리 당에서 더욱 그
렇고. 이제 상황을 뒤집어 버릴 때가 된 거야. 그러려면 몇 가지 핵심
적인 이슈가 필요한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낙태 문제인 것이야. 이제 미
국은 작게는 사람들의 침실에서부터 크게는 대법원까지 모두 다 변화
되어야 할 시점에 와 있소. 이 시점에서 당신이야 말로 젊고 열정적인
국민의 지도자라 아니할 수 없소. 당신과 당신의 동료들은 여성 해방
운동가들로부터 별도움을 받지 않고도 (남녀 평등에 관한 헌법 수
정안)를 깨뜨렸고 많은 주 의사당(호)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
고 있잖소. 이제 당신의 권위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을 능가할 정도요
90년대 말쯤이면 얼마나 많은 의원들이 당신의 입김에 따라 졍우될지
상상할 수도 없겠지. 당신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는 거요.
엘리는 기분이 우쭐해졌다.
[그떻다면 문제가 뭐죠?
[아무런 문제도 없지만 너무
성급히 굴지 말고 침착하게 처신해 주
길 바랄 뿐이오.
그레이브스는 인상을 상면서 빈 캔을 싱크대 아래로 던졌다.
[스틱스. 나도 한마디 해야겠어요. 난 그런 말 듣는 데 정말 질렸어
요. 당신은 내게 워싱턴의 유능한 위선자가 되는 방법을 강의하고 =
어하는 것 같은데, 좋습니다. 하지만 우린 전쟁중이라구요. 알겠어요'
우리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고 상대편에 밀리고 있
요. 전쟁을 하려면 군대가 있어야 하고 그 군대를 움직이려면 명령]
내려야만 합니다. 당신네 정치가들이 파티나 하면서 주고받는 그런 ]
의 방법으로는 군대를 움직일 수 없어요, 사람들을 자극시켜야만 한
구요.
스틱스는 경외심과 경멸이 교차되는 눈길로 그를 보았다.세상을 '
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종류의 열성분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문에 경외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일수록 길을 잘못 든다면
상을 어지럽게 만들 위험 요소가 되기 쉽다는 걸 알기 때문에 경멸
다. 그러나 그는 그레이브스가 필요했다. 그의 추종자, 재력, 그가
수 있는 표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작자가 침착하게 일을 처리
방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득이 되기보다는 큰 골칫거리가 될 거라
것을 알고 있었다. 스틱스는 위스키를 한 잔 더 들이키고 책상에 기
[난 노스캐롤라이나의 농가에서 자랐지. 시골에서 산 적이 있나?
그레이브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내가 짤막한 농촌 이야기 한 토막 들려 주지.
그레이브스는 배부르게 옥수수를 먹은 돼지처럼 심드렁하게 눈을
1다. 그는 사람들이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요점을 직선적으
로 얘기하는 뉴욕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스틱스는 그가 조급해한다는
알아채고는 맥주 캔 하나를 냉장고에서 더 꺼내 그의 손에 쥐어 주
[내가 어렸을 때 우리는 일요일마다 닭고기를 먹었어.그냥 닭장에
서 꺼내 목을 비틀어 잡는 게 아니라 나와 형제들과 친구들이 '위로 쏜
화살'이라는 게임을 해서 닭을 잡았지.흑시 들어 본 적 있나?
[없습니다.
[그 게임은 이렇게 하는 것이었어. 모든 사람이 활과 화살을 들고
게임에 참가해서 그 중 한 사람이 헛간 마당 한가운데서 발 밑에 옥수
수 알갱이를 흩뜨려 놓으면 곧 닭들이 뒤뚱대며 몰려와서는 머리를 위
아래로 움직이며 모이를 쪼게 되지. 그 사이에 사람들은 화살을 당겨
곧장 위를 겨냥하고 셋을 센 후 활시위를 놓는 거야.
스틱스는 잠시 말을 끊고는 술잔을 들어올렸다.
[이제 예닐곱 개의 화살이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다가 몇 초 뒤면 방
향을 바꾸어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하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닭을 유인
해 낸 사람은 거기서 빠져 나와야겠지. 그러나 황급히 뛰쳐나오면 닭
들이 놀라 모두 도망치게 될 테니까 조심해야 되지 않겠어?
그는 또다시 말을 끊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그레이브스로부터 질문
을 유도하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지요?
그레이브스가 물어 왔다.
[조심스럽게 걸어나와야지 발끝으로 살금살금.
[그 다음에는요?
[대부분의 경우 허방을 짚게 되지만 끈기 있게 오랫동안 계속하고
나면.......
그는 두 손가락을 맞청겨서 '딱' 소리를 내며 말했다.
[닭고기 요리를 먹게 되지.
[닭을 맞춘 것이 누구의 화살인지는 어떻게 구별하죠?
[바로 그거야. 그걸 뭐하러 구별해?
그는 그레이브스가 자신의 애기의 감을 잡았는지 알아보려고 흘=
눈치를 살폈다.
[그 게임의 목적은 닭을 잡자는 거지,누가 그걸 맞췄는지 밝히자=
게 아니니까.
스틱스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는 엘리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내가 말하는 걸 이해하겠나?
그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게이로드 젠킨스가 심각한 표정으
얼굴을 들이밀었다.
[의원님, 문라에 아름다운 아가씨가 한 명 와 있는데요. 만나기
약속이 돼 있다고 하는군요.
스틱스는 시계를 보았다. 시간 가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
[아가씨를 거실로 안내하고 잠시 기다리라고 해주게. 젠킨스.
그는 일어나서 그레이브스에게 몸을 돌렸다.
[개인적 용무가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네.
그레이브스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쉬운 말로 훈계하지 그래요?
[훈계가 아니지, 엘리. 우린 그저 애길 나눴을 뿐이야.
그레이브스는 더 열받은 표정이었다. 스틱스는 다시 한 번 시간을
하고 책상에 몸을 기댔다
니보게. 케네디 암살 사건을 한번 생각해 봐. 사람들은 아직도 하
오스왈드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찾기 위해 범퍼 카처럼 좌충우돌
있잖아.
[그러면 배후에 아무도 없었다는 말씀입니까?
[이런. 이런. 누군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또 아무도 없다고
지도 않아. 내가 아는 건 누군가가 오스왈드가 그 일을 저지르
도록 부추겼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 누군가를 찾아낼 수는 없다는 거
지.
[왜 그렇죠?
래냐하면 그러한 일을 한 사람은 '위로 쏜 화살 놀이를 하고 있었
71때문이지.
그레이브스는 당황하는 것 같았다.
[그가 군중 속에 있는 한 사람이었다 해보세.배후의 조종자가 제일
먼저 생각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대통령을
죽일 수 있을까에 대한 궁리가 아니었겠나? 해답은? 물론 '위로 쏜 화
살이지. 서로가 상대방의 존재를 모르게끔 잘 단도리해 놓고 미친놈
= 놈을 여기저기 배치해 놓는 거지. 왜 그런 사람들 있잖나, 대통령을
미워하는 자들, 세상을 구원해 보겠다는 구세주 콤플렉스를 가진 자
들.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정도만 알고 있는 멍청이 등등 말이
야.
[그 다음엔 뭘 하는 거죠? 그들을 세뇌시키나요?
[아니. 아니야. 그런 꼭두각시 애기는 <마지막 황제} 같은 영화 속
에서나 있을 법한 애기지. 그건 너무 위험하고 흔적도 많이 남게 돼.
그가 삘은 사람들은 이미 대통령을 죽이고 싶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
지할 필요가 있지. 그가 할 일은 일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있는
가 확인하는 것뿐이야, 총. 망원경. 비행기표 같이 약간의 돈과 적당한
힘만 있으면 마음대로 얻을 수 있는 것들 말이야. 지문이 남지 않은 물
건들, 그거면 돼. 그는 그들을 발사해 놓고 발소리를 죽이고 도망가 버
리면 그걸로 끝이지.
[하지만 1들 중 하나가 대통령을 죽일 거라는 걸 어떻게 압니까?
[물론 알 수 없지.
스틱스는 술을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들이 시도를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판국인걸?하지만 그런들 어
쩌겠나? 해봤지만 실패할 수도 있고 아니 어쩌면 잡힐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미 일에서 손을 떼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보스를 누가, 무
슨 수로 추적해서 찾아낼 수 있겠나?
[승패는 운에 맡기고 무작정 행동한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바로 그거야. 그게 바로 이 게임의 묘미지. 대부분 허탕을 치겠지
만 쏘아 올린 화살들 중 하나에 만약 행운이 따른다면 어떻게 될까:
빗맞지도 않고 한 발이 명중하게 될 때. 그러면 뭘 얻은 셈이 되겠나?
[오스왈드!흔적 하나 없이.
스틱스는 미소를 지었다.
[경찰이 현장 사진 등을 내보이며 배후 인물을 지목하라고 오스
드를 고문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진 속에는 마피아의 보스도, 마구'
카스트로도, 아니 그 밖의 누가 됐던 그 누구의 얼굴도 찍혀져 있지
았겠지. 애초에 오스왈드 자신이 모르고 있는 걸 어쩌겠나? 그는 _
누구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 의해 위로 쏘아 을려진 하나의 화샬
으니까.
중럽적 입장을 취하고 있던 사람을 설득해서 자신의 주장에 찬성표
던지도록 유도했을 때 보았던 것과 똑같은 표정을 스틱스는 그레이
' 얼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그레이브스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티투스는 오늘 오후 비행기로 뉴욕에 갈 예정이라던데. 당신이 그
동행하면서 좀더 그를 알게 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네.
그레이브스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 엘리. 이제 젠킨스 목사가 어떻게 하고 있나 한번 볼까? 오래
전에 배운 건데 말이야. 위스키와 아름다운 여인이 있는 곳에는 절대
로목사 혼자 있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잠깐만요!
그레이브스는 스틱스의 앞으로 걸어와 그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
바람에 컵 속의 잭 다니엘즈가 튀겼다.
니 게임에서 난 뭐가 되는 겁니까?활 쏘는 사람인가요?아니면 화
살인가요?
스틱스의 이마에 힘줄이 불끈 섰다. 미국의 상원의원은 거칠게 다루
지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특히 자신의 직무실에서는. 그는 넥다이
에 묻은 술을 털어 냈다. 그리고 그레이브스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입
을 열었다. 한층 낮게 깔리는 목소리였다
[이것 봐. 엘리. 당신은 아까 전쟁중이라고 말했지. 내 한 가지 일러
두겠는데, 어떤 전쟁에서든지 아군의 손실도 따르게 마련이오. 당신이
그들 중 하나가 되느냐 마느냐는 당신이 게임의 방법을 터득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오.
그는 누가 보스인가를 확실히 깨닫게 해주려는 듯 팔을 들어 그레이
브스를 옆으로 밀쳐 냈다. 그리고 거실로 걸어들어가며 사랑스러운 약
속 상대를 맞이하기 위해 굳었던 표정을 풀고 그 특유의 싱긋 웃음을
얼굴에 피워 올렸다. 엘리 그레이브스는 그가 방을 나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일 끝내고 지퍼 올리는 걸 잊지 말라구요.
그는 크게 소리질렀다.
갸
므
엘리 그레이브스는 비행기에 앉아서 기내 잡지를 뒤적였다. '고기
맬 더 잘 만드는 법'. '버뮤다에서 겨울 테니스를'. '골프 스윙을
는 법'
그는 표지를 덮어 버렸다.삶과 죽음의 문제들이 넘치고 있는데 이
사소한 것들에 잉크를 쏟아 붙고 있다니, 역겨웍다. 그는 옆자리로
돌려 책을 읽고 있는 티투스에게 말을 걸었다,
[네 친구인 제레미 하켓이 부인의 임신 중절 수술을 막아 보려는 한
소송 대리인을 맡고 있지요.
' 데이비스 대 데이비스'건 말이오?
[어떻게 생각하세요?
[불행히도 난 특정 사안에 대해 뭐라 얘기할 수 없는 입장이오.
그레이브스는 마치 레몬을 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티투스는 고쳐
앉고서 책을 내려놓았다.
득붉은 장미회}에 관해 좀더 말해 봐요. 혼전 성관계말고 당신들의
장기적인 정치적 의제는 무엇이지요?
[낙태 금지 법안을 통과시키고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는 거죠.
모든 사람이 그게 불가능하다고들 하지만 난 가능하다는 걸 알아요.
수많은 미국인이 영아 살해에 대해 분노하도록 해야 해요. 이 끔찍한
작태를 중지시켜야 합니다.
[어떤 식으로?
[쉽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낙태에 익숙해져서 이젠 그런 문제에
는 면역이 되어 있죠.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면 정말 누구 머리통이라
도 날려 버려야 하는 세상 아닙니까?
[상징적인 행동은 어때요? 병 속에 든 태아라든지 뭐 그런 것들
이오.
[그건 안 될 말씀이에요.방송국이나 신문은 그런 것들은 보여 주=
하지 않을 겁니다.
[왜요?
[시청자들 속 뒤집어 놓을 일 있냐고 그럴 겁니다. 혐오감을 유발
다 이겁니다.
그레이브스는 웃고 나서 말을 이어 갔다.
[자유주의자들은 참 대단한 작자들이에요. 텔레비전과 영화를 통
서는 인간에게 알려져 있는 온갖 종류의 학살을 다 보여 주면서도
작 현실에서 자행되고 있는 엄청난 대량 학살에는 콧방귀도 끼질 않
요.
[다큐멘터리를 내보내는 건 어떻겠소?
드소리없는 절규}라는 다큐멘터리를 시도해 본 적이 있죠. 보셨_
지 모르겠지만. 모두들 너무 노골적이라고 평했습니다. 아니 노골
이 아니면 어떻게 표현합니까? 그런데. 석션머신에 의해 온몸이 갈
갈기 찢겨져 나가는 기분이 어떨까 하는 걸 볼 수 있을 만큼의 배짱
가진 건 방송 평론가들뿐이더군요. 그럴지라도 텔레비전을 통해 센
이션을 일으키는 시도는 계속 추진해 볼 사항입니다.
[이를테면?
완전히 아기의 모습을 갖춘 78개월 된 태아가 낙태되는 장면을
'' " "' 담아 보면 어떨까 생각해 왔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도 방
거절하기가 힘들 겁니다.
[그렇게 해보지 그러셨소?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조작된 거라면 아무도 그 따
연극을 방영하려 하지 않을 게고. 진짜라면 누가 카메라 촬영을 허
='습니까?낙태 당사자가 생명력을 갖춘 태아가 살해되는 것을 비
테이프에 담도록 가만 내버려 두겠습니까?
[그러니까 쩍기만 하면.방송국에선 그걸 방영해 줄 거라 이거죠?
테. 몇 군데 푸른 점으로 가리긴 하겠지만, 뭔지 분간할 수 있을 정
해놓고 내보낼 겁니다.그떻지 않겠습니까?
티투스는 생각에 잠긴 듯 대답이 없었다.
레이챌 레드패스는 정시에 수술실로 들어서서 손을 씻고 수술 준비
를 마켰다. 그러나 수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질 않았다. 그녀의 팀원들
이 이제서야 수술대 위에 시트를 깔고 수술 램프를 점검하고 살균한
지혈기 따위를 정리하느라 분주히 작업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이웰은 짜증이 났지만 그들의 스케줄이 너무나 빡빡하다는 것을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꾹 눌러 참았다. 그런데 실험용 개
와 실험실 직원마저도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개는 어디 있지?
그녀의 질문에 모두 다 주위를 둘러보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회
가 치밀어 오른 그녀는 시계를 보더니 벽에 붙은 수술 기록 카드를 ='
어 쥐고는 수술실을 나와 버렸다. 그녀는 비상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
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병원의 실험용 동물들을 키우고 있는 커다
사육장이 있었다. 거기서 그녀는 가쁜 숨결을 가다듬기 위해 잠시 .
있었다.
'천천히 해. 사람들을 너무 닦달하고 있잖아. 너 자신까지도 말0
야.'
사육장 안은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마치 모든 동물들의 우리가 비0
것 같았다. 그녀는 입구에 걸려 있는 재갈을 집어 들고는 카드에
있는 번호를 확인하고 나서 그 번호가 적힌 우리 앞으로 다가갔
철사를 엮어 만든 우리 속에는 졸린 듯한 얼굴을 한, 갈색과 횐색
섞인 평범한 개 한 마리가 누가 왔는지 보려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녁는 우리의 문을 열고 개의 콧잔등으로 손을 뻗었다. 개에게 재
씌울 준비를 하며 자신은 왜 한 번도 실험용 동물을 되살린 적이
, 왜 항상 자신이 수술실에 들어오기 전에 팀원들 중 한 명에게
윽 마취시키게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실험에 쓰이는 동물들은 언제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명들이었다.
그녀는 개의 검고 충직한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개는 꼬리를 흔들
따뜻하고 부드러운 척로 그녀의 손등을 활았다 가슴이 아려 왔다.
모르게 그녀는 무릎을 끓고 두 손으로 개의 머리를 싸안았다.
그녀의 얼굴을 찮으려는 듯 코를 앞으로 내밀었다. 어릴 때 키우
강아지가 생각났다.
그녀는 바닥에 앉으며 개가 무릎 위로 올라오게 했다. 그리고는 부
드럽게 가슴까지 개를 당겨 안았다. 그녀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아
름다운 순간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낡은 리놀륨 마루 위에 앉아 그녀
=강아지 비글과 놀던 모습들....... 얼룩이 묻어 있던 오븐의 따뜻한
느낌....... 돌돌 말린 계피 굽는 냄새
방안에는 돈 맥크린의 노랫소리가 부드럽게 깔리고 있었다. 사제가
띠에게 축복을 내리듯 부드럽게 다림질감에 물을 뿌리던 엄마, 다리
미에서 나오던 하얀 수증기. 그을린 듯한 면 옷감 냄새.......
창문 사이로 햇빛이 비스듬히 새어 들어오는 나른한 오후, 벽에는
그녀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버지의 군복 입은 사진이 걸려 있고,
엄마가 읽어 주는 천덕꾸러기 위니>를 듣고 있던 작은 소녀가 있었
다 그 소녀의 손은 무언가를 잡으려고 뻗고 있었다. 그게 무엇이었을
까?무엇을 그렇게도 잡고 싶었을까?
레이챌은 추억의 베일이 완전히 걷히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 전에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곳인 엄마의 겨드랑이 밑부분, 그 부
드럽고 시원했던 느낌의 아련한 기억을 단 한 순간이라도 더 오래 느
껴 보기 위해 품안의 개를 가까이 끌어안았다. 엄마의 부드러운 자장
가 소리를 들으면서 졸음에 겨워 무거워진 눈꺼풀을 비비며 조금이라
도 더 가까이 엄마의 옆구리에 매달리던 어린 소녀. 잠이 깨면 요술같
이 침대로 옮겨져 있던 그 아쉬움의 기억들......
레이웰은 개의 등에 뺨을 얹고 부드럽게 흔들었다. 누구를 위해서인
지 또 무엇을 위해서인지 알지 못할 눈물이 뺨을 타고 홀러내렸다. 그
녀는 흐느끼고 있었다.
엘리 그레이브스는 비행기에서 내려 우산을 대신해 쓰려고 신문을
그리고는 퀸즈 가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까지는 택시를 탔다. 차
멈추고 요금을 내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그는 신문에서 작
머릿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퀸즈의 낙태 반대주의자들 수감
96명의 시위자들은 퀸즈 낙태시술 병원에 대한 불법 침입과 질
서 문란죄로 체포되어 오늘 수감되었다. 자신들을 '이름없는 남
자 아기'와 '이름없는 여자 아기'라고 주장하는 시위자들은 보석
도 신청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진짜 이름도 밝히지 않고 있으며
지문 채취를 거부하며 버티고 있다. 이 집단의 변호사인 아놀드
제임스는 수감된 시위자들이 '태아를 배신하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겠다.'라는 굳은 결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운전기사가 잔돈을 건네 왔다
[가져요.
그는 신문에서 그 기사를 찢어 냈다.
사무실에 들어선 그레이브스는 레인코트를 입은 채 책상 뒤에 섰다.
마닐라 봉투로 싼 우편물이 배달되었나 보려고 우편물 더미를 뒤져 보
았다. 오늘은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
상 서랍을 열고 녹색 바인더를 꺼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
놓고 읽기 시작했다.
그의 변호사인 제레미 하켓이 들어오며 문을 닫았다. 그레이브스는
그를 쳐다보지 않은 채 말했다.
[매클라우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네. 기자회견을 위해 생각을 '
리하고 있었지. 내가 없는 동안 배달된 녹색 편지 없었나?
그는 계속 읽어 나갔다. 하켓으로부터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는 ]
개를 들었다.
[새로 온 건 없습니다.
하켓이 대답했다
[기자회견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와야 할 텐데.
하켓은 언짤은 표정이었다
[당신은 날 신경과민으로 만들고 있어요. 엘리.
[유능한 변호사는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지.
[심각해요. 비방의 결과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당신은 문 틈으로 들어오고 있는 익명의 허튼소리에 근거해서
인()을 비난하고 있어요.
[허튼소리가 아니야, 제레미. 진실이야, 매클라우드의 지난날이지
[물론 그 친군 그렇게 얘기하죠.
그레이브스는 노트를 덮고 의자에 풀썩 앉았다. 그러자 입고 있
레인코트가 예복처럼 주위에 쫙 펼쳐졌다. 그는 발을 들어 책상 위
올렸다.
[이 녹색 편지들을 누가 보내고 있느냐는 중요치 않아. 중요한
,
계속 파헤쳐대면서 우리에게 가져다 주고 있는 정보, 그 자체란
.. 그 동안 매클라우드에 관해서 그가 우리에게 준 정보는 모두
임이 입증됐다구. 지금카지는 아주 좋았지.
얼굴도 드러내지 않고 흑색 투서나 해대는 자의 말을 어떻게 액면
로 받아들일 수 있단 말입니까?
[진정하라구. 난 확인해 보지 않은 정보는 절대로 써먹지 않을 거라
아 참. 그런데 장의사 집에서 있었던 매클라우드의 미친 짓에 대해
좀 구체적인 걸 알아냈어?
[녹색 편지에 적혀 있던 대로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앵거스 브
라는 사람을 찾으려 했지만 아직까지는.......
하켓은 손수건으로 그의 벗겨진 이마를 흄쳤다.
[월요일까지는 그를 꼭 찾으라구,알겠지?
[틀림없이 그렇게 하긴 하겠는데 말이죠. 내가 그를 찾아낸다고 해
벌써 25년 전 이야기니까. 그가 말하는 내용을 반드시 확인하셔야
합니다.
[그를 찾기나 하라구, 이용하느냐 마느냐는 내 문제야.
[당신의 변호사로서 말하는 겁니다. 국회의원은 공인이에요. 앞뒤
를 가리지 않고 함부로 덤비다간 고소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레이브스는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제레미. 어서 찾아보기나 하라구. 알겠어?
하켓은 머리를 저으며 문을 향해 돌아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겠지만 여기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않
겠어요.
그레이브스는 그가 나가는 걸 무표정하게 지켜보았다.
[대체, 변호사란 작자들이 하는 일이 뭐람.
그는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눌렀다.
[수감중인 '이름없는 남자 아기'라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변호사 말
야, 이름이 뭐라 그랬더라? 아! 아놀드 제임스. 그와 연락이 닿았나?
가능한 한 빨리 그와 만나 보고 싶은데.
그는 전화를 끊고 신문에서 찢어 낸 기사를 보았다.
경찰에게 이름을 알려 주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겠다? 이런 시침돌
아니면, 어디서 '위로 쏜 화살'을 골라내랴?
.
몰리 맥코믹과 엘리엇 랜디는 조그만 촛불에 붉은 체크 무늬 식탁보
깔려 있는 위스콘신 애비뉴의 어떤 식당에서 단둘만이 남도록 늦게
마주앉아 있었다. 웨이터가 보기에는 그 둘은 바쁜 하루 일과를
,고 성공으로 가는 사다리의 중간쯤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 그저 흔
히오는 젊고 재능 있는 한 쌍이었다. 정치와 야망과 직업을 사랑하지
만, 결코 서로에 대한 사랑은 없는 그런 두 젊은 남녀로 보였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저 남자는 뭔가 달랐다. 여자에게 포도주를 따
라주는 모습이라든지 특히, 여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누군가가 새 간을 그에게 이식하려 하지도 않았고 그걸 감추려고
란을 떼어 낸 것도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지요?
[간 이식을 한 흉터는 대개 커다란 역자 모양이죠.하지만 그에겐
그런 흉터가 없었어요. 게다가 그의 간에 어떤 이상이 있었다는 증거
가 없어요.
[당신이 그를 해부했을 땐 이미 간이 사라지고 없었는데 어떻게알
았죠?
[공막이 노랗지 않앗어요.
[공막이라뇨?
[눈의 흰자위요. 황달기가 없었다는 얘기죠. 톡스 연구소의 실험 결
과. 포도당 불균형도 발견할 수 없었답니다. 포도당 불균형은 간이 손
상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증거가 되죠. 그리고 그의 심장이 심각한
알코을 중독으로 확장되거나 상처를 입지도 않았어요. 그의 혈관이 유
별나게 깨끗하지도 않았구요.
[난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알코올은 용매의 일종이죠 다량의 알코올은 혈관 내벽에 낀 노폐
물을 녹일 수도 있어요. 또한 작은 혈관을 파괴시키는 혈관 수축제이
기도 하죠. 그래서 주정뱅이들은 코가 빨개지는 겁니다.
[정말이에요?
[맞다니까요.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그의 간이 어떻게 된 거예요?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누군가가 그걸 커내 갔어요.
그녀는 그럴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아주 소름 끼치는 말이군요.
[난 워싱턴에서 간 이식 수술을 하고 있는 병원이란 병원엔 모조리
전화했었어요. 간 기증자들은 모두 다 신원이 파악돼 있더라구요. 그
래서 국럽 장기 기증소에까지 전화해 봤지요. 혹시 익명으로 기증된
간이 있나 해서요. 그런데 그런 건 없다는 대답이었어요.
[그럼 한번 같이 생각해 봐요. 이식하려고 그러지 않았다면 대체 흠
친 간을 어디다 쓰려는 걸까요?
그는 그녀의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덜 익힌 송아지 요리 맛이 어떴어요?
그녀는 눈을 굴렸다.
[고마워요. 엘리엇. 당신은 마치 내가 식인종이나 된 듯한 말투로군
그는 그녀의 성미를 돋구는 게 재미있었다, 그녀는 뒤로 물러앉아서
프 끝을 식탁에 톡톡 윙기면서 물었다
[혈액 검사에서는 꿔가 나왔어요?
[알 수 없는 화학 합성물 한 가지말고는 모든 게 정상이었어요.
[그게 뭘까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극소량의 물질이죠. 그떻게 특별한 건 아니에요.
[더 검사해 볼 수 없나요?
[물론 가능하죠. 하지만 내가 전에도 말했듯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 못한다면 그건 도박이에요. 특정한 합성물을 검사해 보고 그것을
하인하거나 없앨 수는 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할 수
는 없는 노릇이고 뭘 얻어냈는지 알 수도 없어요. 아직까지 실험실은
그게 자연히 생성된 것인지 아니면 인위적인 것인지도 구별 못하고 있
다구요.
[상상력을 한번 동원해 보세요. 네?
[음...... 그렇지, 상상력을 동원해 보니, 이제 그만 일어서서 춤추
러 갈 시간인 것 같은데요.
엘리 그레이브스는 수표장에서 수표 한 장을 찢어 내고는 잉크를 말
리기 위해 입김을 불어 낸 후. 서류가 뒤덮인 책상 위로 아놀드 제임스
에게 건네주었다. 아놀드는 그것을 훌어본 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감사합니다.그레이브스 씨.
[그거면 충분하겠소?
[그렇고말고요, 이거면 명단에 있는 모든 '이름없는 남녀 아기'들을
보석으로 내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은 용감한 사람들이지만 이제
감옥을 나와 집에 돌아갈 때가 되었군요, 자. 이제 보답으로 제가 해드
릴 일을 말씀해 주시죠.
그레이브스는 일어섰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는 악수를 나누고 그곳을 떠나려다가 마치 이제 막 생각이 났다는
듯이 멈춰 섰다.
[사실은 당신이 해줬으면 하는 일이 하나 있긴 있습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더니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
놀드는 그것을 받아 들고 안경을 꺼내 썼다. 커다란 글씨가 타이프5
있는 (붉은 장미회}의 편지지였다.
폭파 면허 소지자 구함
뉴욕 퀸즈에 {붉은 장미회>의 전국 본부를 새로 짓기 위한 폭
파 기술자 모집. 닿윌 20일 금요일 저녁 8시에 퀸즈 가 1662번지
에 있는 {붉은 장미회>사무실에서 지원자 면접.
낙태 반대론자 환영 !
니걸 당신 고객들에게 좀 전해 주십시오. 어쩌면 그들 중 적격자가
모르니까요.
[잠깐만 쉽시다. 좋아요?
[좋습니다.
[자요, 할리. 땀좀 닦고 똑바로 누워 봐요. 기분이 어때요?
[초조합니다.
[아직도 잠이 오질 않나요?
[깊이 잠들진 못해.
[니코틴 금단 현상이에요.
[그게 아니에요.내가 잠을 못 자는 이유는.......
[잠시만 조용해요.심장 박동 좀 들어 봐야겠어요.
.......
[차가워요.
[미안해요 언제부터 심장 잡음이 있었죠?
[어릴 때부터죠.류머티스 열 때문이에요.
[다흔 문제는 없나요?
[오, 이봐요, 이젠 제발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 좀 하
주세요.
[잠깐만 그대로 누워 있어요. 뭐 좀 봐야 하니까. 아프지 않아요?
[별로요.
[앞으로는 윗몸일으키기를 좀더 많이 해요.
[좋아요.하지만,왜죠?
[어디 손 좀 봅시다. 이건 왜 이떻죠?
[처음 일을 하기 시작하면 항상 물집이 생기죠. 하지만 곧 군살로
변하면서 괜찮아져요.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장캅을 사용하도록 해요. 입 좀 벌려 봐요
아_,해봐요.치료하지 않은 충치나 곪은 이빨 있어요?
[어 -어.
[엑스레이 찍을 때 검사를 한 번 더 해야 해요. 자, 여기
주 잘 드러나내요.
정맥이 아
[일을 해서 그렇죠, 여보세요. 알고 싶은 게 있는데.
[주먹 쥐세요!
[어휴 _.왜.내 피가 그떻게 많이 필요하죠?당신들 멜빈에게서
도 피를 뿜았나요? 멜빈은 검사를 받고 나서 죽은 게 확실해요_ 그렇
죠?
[멜빈 쉬버스에 대해서는 애기하지 맙시다 자, 긴장을 풀어요. 두
팩만 더 뽑으면 끝나요. 그러는 동안 나한테 얘기나 들려 줘요.
[무슨 얘기요?
[당신이 하고 싶은 무슨 얘기든지요,당신의 삶에 관한 거라든가.
[별로 말할 게 없어요.멜빈과 나는 퀸즈에서 자라서 같은 동네에서
같은 교회를 다녔고 같은 여자를 쫓아다녔죠. 우린 모든 걸 같이했어
요.
[병원을 폭파하는 것까지 말이죠.
[네.
[그=1 당신들이 날 납치한 이유인가요?
[잠깐만 그대로 있어요.
[당신도 알겠지만 그 일로 난 이미 감옥에 갔다왔어요. 내 교정 상
담원은 원하지 않는다면 폭파 사건에 관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요.
[당신의 교정 상담원 말이 맞아요.
.......
[난 그저 한 가지가 궁금할 뿐이에요.
[오, 그게 뭐죠? 얼마나 폭탄이 컸나? 아니면 폭탄이 터질 때 병원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
[왜 그랬는지 궁금해요.
[왜 했냐고요?
.......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죠. 무고한 아기들이 죽는다고 생각해 봐
요. 그건 하느님의 섭리에 어긋나는 겁니다.
[하느님을 위해 사람을 죽였다는 뜻인가요?
[예.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식은 아니에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당신은 나와 멜이 완전히 돌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
[좋아요. 이제 다 끝났어요 앉아도 좋아요.그 솜을 팔에 잠깐 대고
있어요. 그 다음에 샤워해도 좋아요.
[그 다음엔 뭘?텔레비전을 보나요?
[뭐든지 해도 좋아요. 텔레비전, 비디오. 책 여긴 감옥이 아니
까.
[여긴 감옥보다 더 으스스해요. 최소한 거기서는 왜 그곳에 있어0
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산책을 한 번 더 해도 될까요?
[담장에서 떨어져 있는다면 상관없어요.팔목은 괜찮아요?
[예 괜찮아요. 땅에 부딪힌 건 엉덩이니까.
[덕분에 이제 3000볼트 전압이 어떤 건지 충분히 알았죠? 6시에 돌
오겠어요.저녁 식사로 뭘 갖다 줄까요?
[글쎄요.옥수수나 좀 가져다 줘요.알갱이만 말고 속대째로요.
[알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난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신선한 야채가 좋았어요.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래서 이떻게 건강한 걸 거예요.
[잠깐만! 난 당신 질문에 대답했어요. 이제 내가 물어 볼 차례예
요,
[묄?
[간단히 예. 아니오만 하면 되요. 네?
[할리, 질문이 꿔예요?
[당신들 날 죽일 건가요?
[날 봐요. 할리, 거기말고 여기, 내 눈을 봐요. 내가 당신을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자. 말해 봐요.
[당신들 중 몇 명이나 다이너마이트를 다루어 보았습니까?
그레이브스는 붉은 장미회>본부의 사무실 회의 탁자의 상석에 버
티고 앉아 있었다. 그레이브스 앞 간이 의자에 앉아 있던 일곱 명 가운
데 넷이 손을 들었다.
[그럼 그게 위험하다는 것도 알겠군요.
[제대로만 다룬다면 그떻지도 않습니다.
앞줄에 앉아 있던 호리호리한 남자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약간 기울이고 한 쪽 팔을 옆 의자의 등받이에 올려놓고 있었다. 황길
색 작업용 부츠를 신은 발을 위아래로 까닥거리고 있었다.
[어떤 종류의 일을 했었죠?
그레이브스가 물었다.
[저와 여기 있는 제 조수는 아마 열 건 가량의 폭파 작업을 했을 =
니다.
그는 고개를 움직여 체크 무늬 셔츠를 입은 한 남자를 가리켰다.
[최소한 열 군데죠.
체크 무늬 셔츠의 남자가 말했다. 그레이브스는 그 남자를 쳐다보1
다. 20대 중반 정도에 키가 작고, 갈색 턱수염에 뿔테 안경을 셌으
?'시팀 모자를 이마 아래로 쭉 눌러 쓰고 있었다.그는 그레이브스
마주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레이브스는 그들에게 땜플릿을 나눠 주고 그들이 읽는 걸 지켜보
서 말했다.
[계약자의 이름은 뒷장에 있소. 리만 폭파회사. 여러분들이 낙태를
하는 사람이라 유리하면 유리하지 피해를 입지는 않을 겁니다. 그
니 지원할 때 이 괭플릿을 가져 가도록 해요. 그리고 내일 오후 2시
에 애틀랜틱 가에 있는 여성 건강 센터 앞에서 집회를 가질 거라는 거
지 말아요. 같이들 나와서 좀 도와줘요. 전단도 좀 가져 가고, 리만
회사측에 당신들이 거기 있었다는 걸 확인시켜 주세요.
사람들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뿔테 안경을 쓴 사람만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는 양팔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상체를 구부린 채 무
릎 사이로 집어 넣은 양손의 손가락들을 먹이를 씹고 있는 상어의 아
가리처럼 오무렸다 폈다 하고 있었다.
[질문 있소?
그레이브스가 그에게 물었다.
듣지 못한 듯 그는 팽플릿을 계속 읽고 있었다. 그레이브스는 호기
! 에 그에게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자 패출리( ) 오일의 향긋
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보통 코를 가진 사람이라면 느끼기 힘들 만
큼 희미하게 풍기는 냄새였다. 하지만 그레이브스에게는 전기 충격만
큼이나 강렬한 것이었다. 어린 시절. 샌프란시스코의 그의 집에서는
늘 은은한 패출리향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그러니
까바로 몇 해 전 매시의 향수 진열대 앞에서도 이 냄새를 맡곤 했었
다,
'매시 -, 걸핏하면 이성을 잃고 날뛰면서 향수병들을 바닥으로
쓸어 버리던......
[렘플릿이 볼 만한가?
회상에 빠져 있던 그레이브스는 마음을 가다듬고 나서 물었다.
[전 그 동안 회장님 하시는 일들을 쭈욱 지켜보았어요. 회장님을 도
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요?
그레이브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일 집회에 나올 건가?
[예,하지만 그건 제가 드리려는 도움이 아닌데요.
그레이브스는 당황한 것 같았다.
[아놀드 제임스.......
젊은 사내가 말했다. 그레이브스는 손가락을 마주 뭘겼다.
[아하! 자넨 내가 보석으로 석방시킨 '이름없는 남자 아기'중의 한
명이군.
[우리 중 일부는 아직도 경찰에 이름을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잘했어요.잘했어.
이 사내야말로 완벽한 적임자였다,
[우리 모두는 이름을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죠.
그는 손을 뻗어 악수를 청해 왔다.
[제 이름은.......
그레이브스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안 돼요. 약속을 어기면 안 돼지.
그레이브스는 사내의 배짱을 한번 시험해 보기 위해 그의 눈을 똑=
로 쳐다보았다. 사내는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마주 쳐다보았다. '
로 쏜 화살'그를 쏘아 올리곤 빠져 나가자.
그는 사내를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가 리만 폭파 회사의 사장에게 ]
파 기술자를 한 명 소개하겠다고 전화했다.
그의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인상이라고 말했
20대 중반의 나이에 턱수염을 기르고 뿔테 안경을 썼으며 다저스
모자를 십고 있는 남자....... 리만은 그의 경력에 대해 물었다.그레
= 자기도 잘은 모르겠지만 충분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만일
'=지 않다면 훈련 좀 시켜 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그는 어
게 해서든 그 사내에게 폭파 회사의 일자리를 얻어 주고 싶었다.
그레이브스가 전화를 끊었다.
[됐소.
그 남자와 그레이브스는 문을 향해 걸었다. 게시판에 이르렀을 때
그레이브스가 걸음을 멈췄다.
[여긴 앞으로 있을 집회를 게시해 놓는 곳이라네. 또 의회에서 벌
고 있는 일들. 아니면 구인 광고 그런 것들을 걸어 놓기도 하지.
그는 사내가 턱수염을 쓸어 모으며 곁눈질로 공고를 보고 있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음내킬 때면 언제든지 들러서 둘러보라구. 관심 있는 걸 찾을지
도 모르니까. '절호의 기회'라는 걸 알고 있겠지?
'절호의 기회'라는 말을 꺼내고 나서 그레이브스의 얼굴이 붉어졌
다. 앞으로 그가 사내를 부추겨서 저지르게 할 일에 대해 너무 경솔하
게 솔직했나 싶어서였다. 그러나 젊은이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의 변
화도 없었다. 그레이브스의 솔직한 표현이 오히려 남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은밀한 효과를 가져 왔던 것 같다.
그 남자는 공고를 다 읽고 나자 문을 나섰다.
[이보게.
그레이브스가 그를 불러 세웠다.
[다음 주 월요일,내 기자회견이 있는데 거기 한번 나와 보겠나?
[무슨 내용이죠?
그레이브스는 좀더 직선적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국회의원들 가운데서 악질적인 태아 살인자 명의 명단을 발표하
려고 하네. 우리들이 늘 파멸시키고자 하는 놈들이지.
그렇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선거에서는 패배시킬 수 없는 사람
들이었다. 따라서 다른 방법으로 없애 버려야만 했다.
[그 명단에는 누가 올라 있죠?
[제1위가 우리에겐 가장 큰 골칫거리네. 하원의원
11. 그를 알고 있나?
잭 매클라우드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본 적 있습니다.
그레이브스는 그 사내가 조금 더 이야기하기를 기다렸다. 자신이 그
에게 뭘 원하는지를 그가 이해했는지 궁금했다. 자기와 이 사내가 제
대로 궁합이 맞는 궁수와 화살의 관계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
다.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레이브스는 그의 표정을 읽어 낼 수가
없었다. 사내의 속마음은 턱수염 속에 감춰져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이
,위로 쏜 화살이 이미 스스로 발사되어 공중을 날고 있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그레이브스는 꿈에서조차 알 수가 없었으리라.
[거기 가겠습니다.
그 사내가 말했다.
사내는 자기 차에 타서는 문을 닫고 어둠 속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
다. 잠시 후 실내등을 켜고 백미러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았다. 그는
턱수염을 한 번 쓰다듬더니 야구 모자와 뿔테 안경을 벗어 뒷좌석에
있는 낡은 서류가방 속에 집어 넣었다.
녹색 종이들이
그러고 나서 그는 바인더를 꺼내 펼쳤다. 그 속에는
치도록 들어 차 있었다. 그 종이들 위에는 여러 해 전으로 거슬러 올
이야기들이 손글씨로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페이지를 넘겨서 뒤쪽의 깨끗한 종이 위에 무언가를 적고 나더
바인더를 덮고 그것을 서류가방 맨 위에 집어 넣었다. 가방 속에는
기사 스크랩과 언론 배포 자료가 그득했다. 그 모든 것이 단 하나
주제에 관한 것들이었다.
'하원의윈, 잭 매클라우드.'
즈
빅토리아는 피고측 변호인석에 앉아 청문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면
서 연필 뒤에 달린 지우개로 노란색 법률 용지를 가볍게 두드리고 있
었다. 그녀는 시계를 보고 나서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셨다
주위를 둘러싼 무거운 공기는 방안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
다. 어디선가 나는 기침소리. 가방을 여닫는 소리, 그리고 그녀의 의뢰
인 제노비아의 영혼까지도 그 속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마치 애
브너 티투스의 려정 안에서는 중력의 법칙도 통하지 얍는다는 것을 증
명이나 하듯이 무겁고 답답한 분위기였다
빅토리아는 연필을 놓고 제노비아를 쳐다보았다. 수수한 임신복 치
림에 철테 안경을 끼고 잔뜩 부풀어오른 배 아래로 간신히 나온 무릎
에 성경책을 올려놓고 있는 그 모습은 실제 나이인 32세보다 훨씬 =
늙어 보였다. 읽고 있던 성경이 시편 27장으로 넘어갔다
'주는 나의 빛이요, 구세주시니 내가 누구를 겁내리. 주는 내
인생의 성채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
통로 맞은편 원고인석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둘 중 하나는 ]
.대기 고티저
하켓이었다, 낙태 반대 운동을 수호하는 번뜩이는 갑옷을 입은
척 짐짓 폼을 잡고 앉아 있었지만, 빅토리아의 눈에는 우스꽝
복장의 대머리 살인 청부업자로 보였다
나머지 한 사람은 물론 르보이드 데이비스였다. 그는 제레미 하켓
자리에 푹 꺼지듯 앉아 있었다 셔츠의 앞섶을 풀어헤치고 양팔은
로 돌린 채 얼굴은 자기 아내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와 마찬
_=. 그 역시 그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빌고 있었다.
.는 잔사가 자기 아내로 하여금 '정상적인'아기를 낳도록 판결해 주
71를 바랐다.비록 첫딸은 비정상적이었지만
열은 모랫및 머리에 진지한 표정의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옆
문으로 들어와 중앙으로 걸어가더니 판사석 앞에 있는 걸상에 앉았다
!토리아는 고개를 흔들며 흔자말로 뭐라고 중얼거렸다.그녀 뒤에 앉
있던 레이헬이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속삭였다
[뭐, 잘못됐어?
빅토리아도 몸을 뒤로 젖혔다.
[저 여자가 누군지 알아요?
레이챌은 그 질문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왜 그런 걸 묻지?
[그녀는 티투스의 법률 보좌관이에요. 이름은 페퍼 루미스.
[그래?그래서?
[그녀가 등장한 건 나쁜 뉴스예요.
레이챌은 아무 말도 없이 뒤로 물러나 앉았다
려정의 앞문이 열렸다.
[기럽 !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일어났다. 티투스 판사가 들어
왔다, 검은 관사복에 넓적한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숱 많은 긴 눈썹
이 평소에도 찌푸려져 있기 때문에 재판중이 아니더라도 그는 판시써
럼 보였다.
그는 덴트만큼 커다란 판사복을 웅덩이를 건너는 여자가 치마를 들
어올리 듯 걷어 들고 발판에 올라서서는 육중한 몸을 의자에 앉혔다.
[개정합니다.
법원 서기의 선언에 모두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십니까?
티투스는 인사를 한 뒤 페퍼 루미스가 건네준 서류철에 초점을 맞췄
다
[재판장님.
빅토리아가 말했다.
[잠시 앞으로 나가도 되겠습니까?
[여긴 배심원이 없소, 변호인 그냥 말씀하시오.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개인적인 데다가 굉장히 민감한 사안입니
다.
티투스는 그녀더러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했다. 빅토리아와 제레미
하켓은 판사석으로 걸어갔다. 법원 속기사가 의자에 앉아 속기를 할
준비를 했다. 빅토리아가 말했다
[재판장님,이 소송은 데이비스 씨가 태아의 아버지로서 어떤 권리
가 있다는 주장을 해옴에 따라 열린 것입니다. 만일 그에게 그런 펀리
가 없다면 이 법정은 열릴 필요가 없을 젓입니다.
[계속하시오.
티투스가 말했다.
[우리는 데이브스 씨의 청원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힙
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우리는 태아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하켓은 놀란 눈치였다.
[무슨 말씀입니까?
빅토리아가 말했다.
[제 의뢰인이 임신을 하게 되던 날, 그녀는 강간을 당했습니다. 우
태아의 아버지가 그녀의 남편인지 아니면 강간범인지 아직 단정
수가 없습니다.
티투스 판사는 하켓 쪽을 돌아보았다.
[당신은 이 사실에 관해 아는 게 있었소?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만일 데이비스 부인이 강간을 당했다고
차는 게 맞다면, 왜 즉시 낙태 수술을 받지 않고 이렇게 오랫동안
불편한 임신 상태를 끌어 왔을까요? 저는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켓이 조롱조로 말했다.
[말하자면.......
티투스가 말했다. 하켓은 그 말을 가로막으며 빅토리아에게 물었다.
[언제 그 일이 일어났다고 말씀하셨죠?
[그들이 마지막으로 성교를 했던 바로 그날 일어났습니다. 4월 5
일,'세금의 날'이죠.그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고요.
[재판장님.제 의뢰인과 상의할 시간을 좀 주시겠습니까?
하켓이 말했다.
[좋도록 하시오.
하켓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르보이드 데이비스와 낮은 소리로 이야
기하기 시작했다. 빅토리아도 제노비아에게 돌아가 판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오, 이런 ! 그러면 내가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
거예요?
빅토리아는 제노비아의 팔을 잡았다,
[난 그렇게 못해요.
제노비아가 말했다. 빅토리아는 하켓이 판사석으로 가는 것을 보고
자기도 다시 다가섰다, 하켓이 말했다
[재판장넘, 제 의뢰인은 지금 제기된 강간 문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가 태아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권
리를 박탈당하기 전에 증인의 진술을 들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
다.,
[증인에게 무엇을 묻겠다는 거죠?
빅토리아가 물었다.
[문제의 그날 밤. 데이브스 씨는 내내
해서는. 콘돔이 찢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집에 있었고. 콘돔 문제에 대
[어이가 없군요.
빅토리아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의 의뢰인을 증인석에 앉혀 놓고 이야기를 들어 봅
시다.
하켓이 요구했다,
[제판장님, 저는 제 의뢰인이 증인석에 서서 또 한 차례의 강간을
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어떤 상황하에서도 그런 일은 옳=
않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태아의 아버지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낙태
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켓 씨의 요구는 부당
니다,
[그건 옳지 않습니다. 제 의뢰인은 단지 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만이 아니라 아버지가 누구이든 간에 태아의 핀리를 위해서도 소손
걸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아가 누구의 자식이냐에 관계없이 삽
서는 안 되는 하나의 독럽적인 인격체임을 믿습니다.
켓이 말했다. 빅토리아는 주머니에서 휴대용 달력을 꺼냈다
[오늘은 닷월 22일입니다. 이것은 4월 1일이 정확히 22주 하고도 6
전이라는 뜻입니다. 범은 24주가 되기 전에는 낙태를 할 수 있도록
'? 있습니다.
[재판장님. 생명의 시작이 언제냐 하는 문제가 아직 결론이 나 있지
상태입니다. 우리는 생명이. 임신된 바로 그 순간에 시작된다고
니다. 생존 능력을 척도로 보더라도.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생
력을 갖는 시기는 점점 더 임신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
우리는 이 태아가 즈금 당장에도 생존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이고
[니다.
하켓이 열변을 토했다.
티투스는 빅토디아를 쳐다봤다.
[당신이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나는 당신에게 생명의 시작이 언제인
가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도록 요구했었소,미즈() 윈터스.
[예, 물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다만, 먼저 하켓 씨 의뢰인의 도움
이 쐴요합니다. 친자 확인에 관해서 말씀입니다. 만일 그가 태아의 아
지가 아니라는 것이 입증된다면 이 소송 자체의 당위성에 대해 의문
이 제기될 것입니다.
[무엇을 원하는 겁니까?
하켓이 빅토리아에게 물었다.
[혈액 표본입니다.
빅토리아가 말했다
하켓은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 르보이드와
상의하기 시작했다. 빅토리아는 그가 돌아올 때까지 판사석 앞에 서서
기다렸다.
[데이비스 씨는 그런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재판장님.
하켓이 돌아와서 말했다.
[왜 안 된다는 겁니까?
빅토리아가 물었다.
[그가 말하길 그것은 그의 신체를 침탈하는 짓이랍니다.
빅토리아는 천장을 쳐다보았다. 하켓은 말을 이었다.
[저로서는 애초에 강간당했다는 주장이 의심스럽군요, 그러나 실제
로 그런 일이 있었다 해도 그건 중요치 않은 문제입니다.
[중요하지 않다고요? 그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
까?
빅토리아가 말했다.
티투스는 손을 들어서 빅토리아를 제지하고 하켓에게 말했다.
[당신이 좀 양보해야 할 것 같소.
하켓은 연필을 돌리면서 잠시 생각하더니, 할 수 없다는 듯이 입을
떼었다.
[좋아요.좋아. 혈액 표본을 제공하지요.
[그리고 닥터 레이헬을 증인으로 세우는 데 어떤 이의도 제기하진
않겠죠?
빅토리아가 하켓에게 물었다.
하켓은 레이챌과 티투스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레이챌이 집도힌
신장 이식 수술에 의해 티투스는 새 삶을 찾게 되었고 수술 이후로크
정기적으로 레이챌에게 건강 진단을 받아 오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가 원한다면 레이챌을 증인으로 세우는 =
대한 이의를 얼마든지 제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속셈은 헌
데 있었다. 그녀를 증인석에 앉혀 놓고 반대 심문을 통해서 철저하?
묵사발을 만들어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의 없습니다.
그러자 티투스가 빅토리아에게 말했다
[증인을 호출하시오.
레이헬의 전문가로서의 자격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기 위해 빅토리
아는 원고도 준비하지 않은 채 기억을 더듬어 가며 레이챌의 약력을
우선 소개했다.
[레이헬 양은 세인트 루이스 워싱턴 대학과 시카고 의과대학을 모
두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피츠버그 대학병원의 외과의사로 근무할
때는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외기판 이식학을 발전시키는
데 조력했습니다. 생리학, 해부학, 신경학을 전공하면서 별도로 생화
학. 약리학, 분자 생물학 등을 독학하며 자신의 모든 의학적 지식을 응
용하여 면역 억제제 개발에 주력하였습니다. 피츠버그 시절, 비비 원
숭이의 신장을 인간에게 이식했을 때 일어나는 거부 반응을 막아 주는
강력한 면역 억제제인 ' 506' 전문가인 피브 창 박사를 만났습니
다. 그 둘은 함께 조지 워싱턴 대학병원에 외과 연구팀을 신설했습니
다. 그들은 실험적 차원에서의 동물 장기 이용 이외에도 최근 무뇌아
(빼)의 장기를 활용하는 데에도 주력을 해오고 있는 바,언제 생명
이 시작되느냐에 관한 질문에 가장 타당한 조언을 해줄 증인으로, 본
변호인이 레이챌 양을 지목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빅토리아와 레이웰의 우정은 10년 전, 그들의 첫만남에서부터 비롯
되었다. 그 둘이 처음 만났던 곳은 그들과 같은 일벌레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인 애리조나의 어느 온천이었다, 빅토리아로서는
그녀의 30회 생일 선물로 부모넘이 보내 준 여행이었고. 반면 레이챌
은 당시 43세의 나이에 과로와 흡연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그녀의 주치
의에게 등을 떠밀려, 이른바 건강 요양을 온 셈이었다. 그 둘 모두 워
싱턴에 살고 있었지만 그 전까지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었다.
여행의 첫날, 등산 도중에 너무나 힘이 들어 잠시 쉬려고 어느 바위
엔가 우연히 함께 앉았다가 서로 말을 나누게 되었다.
그들은 담배, 커피. 설탕, 버터 롤빵. 더러운 공기, 초콜릿, 컴퓨터
스크린, 과로 등등 그들의 몸이 그토록 형편없어지도록 만든 모든 것
을 하나씩 주워섬겨 가며 앞으론 다 끊어 버리겠다고 맹세했다. 그러
고 나서 숨을 좀 가다듬은 뒤 서로의 얼굴에서 '지키지 못할 맹세를 또
하는군.' 하는 표정을 읽어 내곤 자지러지게 웃고 말았다. 그들은 즉시
서로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침 체조 시간에는 각자의 고향과 직업에 관해서 애기를 나누었고
산책을 하면서는 남자와 정치에 관해 얘기했다 에어로빅 시간에는 여
자와 여자의 몸에 관해서 얘기했고, 드러누워 화산재 진흙 마사지를
하면서는 법률과 판사들 주름 펴는 수술 따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
다. 그들은 서로의 불룩한 아랫배를 보며 약물. 다이어트, 에스트로겐
(여성 호르몬) 등에 대해 토론했고, 요가 시간에는 신의 성별이 무엇일
까를 거론했고 빅토리아의 긴 손톱도 화제로 삼았다. 레이켈은 외과의
사라 짧은 손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빅토리아의 긴 손톱을 부러워
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진정한 우정이 싹트게 된 것은 알몸으로 사우나
에 앉아 땀을 흘려 가며 서로의 진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서부터였다. 가슴 속에 묻어 둔 야망과 개인적인 욕망 그리고 변신에
대한 환상과 비젯살에 대한 공포 등등, 그러고 나서는 마치 오랜 결혼
생활을 해온 부부처럼 상대방 이야기의 참뜻을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일주일 간의 여행 마지막 날, 충분한 휴식으로 원기를 회복한두 사
람은 첫째 날 도전에 실패했던 산행을 다시 해보기로 결정했다. 정오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바위에 도달했다. 그들은 그 정
만족하고 올라왔던 방향과는 달리 산기슭을 따라 곧장 온천으로
가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길을 잃크 말았다.
한 시간을 헤맨 끝에 황량한 분지에 다다른 그들은 가문비 나무와
. 나무 숲에 들어섰다.두 사람은 지치고 더러워졌으며 다리는 상처
"이었다. 온천 건물은커녕, 보이는 것이라고는 탄목숲과 황토흙뿐
,다.
두 사람은 레이챌이 작은 플라스틱 병에 담아 온 생수를 나눠 마시
산골 지리에 무식한 자신들을 욕해 가며 띄약볕 속에서 길을 찾
혜매고 다녔다. 시들한 농담을 나누기도 하고, 공동 묘지 주변을 지
때는 휘파람도 불어 봤고. 혹시 불한당이 숨어 있지 않나, 방울뱀
소리가 들리지 않나 주의하면서 그들은 한참을 헤맸다.
마침내 4시쯤 되어서는 완전히 탈진하여 맨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얼굴은 햇볕에 까맣게 그을폈고, 마음 속엔 걱정이 그득 차을
랐다. 해가 질 때까지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한다면 이 산중에서 어떻
게 밤을 보낼 것인가? 치명적일 수도 있는 차가운 밤 공기. 육식 들짐
승, 독침을 쏘는 벌레들. 둘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면서 불안에 몸을 떨
었다.
레이챌은 물병을 빅토리아에게 건네주었다.물은 병 바닥에서 찰랑
거리고 있었다. 빅토리아는 단지 한 모금만을 마시고는 다시 레이챌에
게그것을 돌려 주었다. 레이챌은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을 마셨다.
다행히 이제 태양의 기세는 많이 수그러져 있었다. 그 둘은 쉬면서
사심 없는 이야기들을 오랫동안 나누었다. 마침내 그들은 벌떡 일어서
서 자신들의 위치를 어림짐작으로 파악하고 태양을 나침반 삼아 다시
한번 길을 찾아나셨다.
6시 무렵, 그들은 드디어 온천으로 돌아을 수 있었다. 그들은 저녁
을 건너뒤어 버리고 샤워를 하고는 침대로 들어가 단잠을 실컷 잤다.
그날 밤 늦게 그들은, 아직도 여기저기 쑤시긴 했지만, 호텔 복도에 걸
린 커다란 관광 안내 지도 앞에서 다시 만나 하루 동안 헤매고 다녔던
길을 흡족한 기분으로 한번 주욱 훌어 보았다 그러고 나서 라운지로
가서는 일주일만에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둘은 무사귀환을 축하하고
우정을 약속하며 축배를 들었다.
워싱턴에 돌아온 후, 그들은 섬유질 다이어트나 에어로빅 따위에 대
해서는 곧 잊어버렸지만. 서로의 존재만은 잊지 않았다. 둘은 그날 황
무지에서 서로를 위해 조금씩 아껴 먹던 그 생수의 맛을 결코 잊어버
릴 수가 없었다. 이제 10년이 흐른 지금카지도 그들은 서로의 가장 친
한 친구 사이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레이랠의 경력 소개를 끝내고 빅토리아는 그녀에게 다가가 마음을
좀더 가다듬으라고 했다. 빅토리아는 레이챌이 입씨름에 있어서 대단
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반대 심문을 했다
가 보기 좋게 한 방 맞고 나가떨어졌던 어떤 변호사가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의견은 다른 사람들의 사실보다 더 무게가 있는 것 같아보
인다'고.
그러나 그녀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증언중에 약간 경솔하다는 것이
바로 그 약점이었는데, 특히 지쳐 있을 때면 더욱 그런 경향이 있었다
불행히도 지금 레이웰은 이식 수술을 끝내느라고 24시간을 꼬박 뜬눈
으로 보낸 상태였다. 빅토리아는 레이챌이 집에서 충분히 잠을 잤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든든했다.
잠시 후, 빅토리아가 질문을 던졌다.
[생명이 어느 시점에서 시작되죠?
레이헬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인간의 생명은 두뇌를 비롯한 인체의 각종 기관들을 층분히 제어
수 있을 정도로 뇌간()이 형성되면 시작됩니다. 뇌간은 임신
내지 주쯤 형성됩니다.
빅토리아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한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레이웰이
할 때 보여 준 권위에 무게를 더 해주었다.
[이상입니다. 재판장님.
레이켈은 증인석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하켓이 먼저 일어났다.
[당신이 방청석으로 돌아가 앉기 전에. 레드패스 양, 한두 가지 간
"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요.
그는 노란 법률 몽지를 탁자에 내려놓더니 연필을 손에 들고 될 수
한 천천히 증인석 쪽으로 걸어왔다.
[자,레드패스 양......,
[닥터라고 불러 주시면 좋겠군요.
그녀가 말했다.
[좋습니다. 자. 닥터 레드패스. 괜찮으시다면 생명이 언제 시작되는
지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간
단한 거니까요.
[인간의 생명은 뇌간이 형성되면 시작됩니다. 그것은 임신 24주경
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당신은 '인간리 생명이라고 말했습니다.다른 동물들의 경우는 틀
립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차이가 왜 나는지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 소송은 사람에 대한 것인 줄 알고 있는데요.동물이 아니고.
하켓은 씩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안 했다.
,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러나 영장류에 관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얘기해 드릴 수 있습니
다. 저는 그게 전공이니까요.
[그렇게 해주신다니 고맙습니다, 닥터. 자,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생명의 기원을 결정하는 데 두뇌를 척도로 삼으십니까? 왜 저. 이를
테면 심장이 척도가 될 수 없겠습니까?
[심장은 펌프일 뿐입니다. 모든 유기체는 펌프를 갖고 있죠. 개. 고
양이, 뱀, 도마뱀 그리고 변호사까지도요.
관중석에서 누군가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레이챌은 움직이지
않았다. 빅토리아하고 시선이 마주칠까 두려워서였다. 그녀는 빅토리
아가 노려보는 것을 안 보고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확신하지는 마십시오.
하켓이 싸늘하게 말하는 통에 레이챌이 허리를 폈다. 하켓은 잠시
걷다가 멈춰 섰다.
[어떤 점에서 두뇌가 그떻게 특별한 겁니카?
[두뇌는 인간이 그것으로부터 진화된, 이를테면 인간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조류(이끼 따위의 식물)와 구별짓는 요소입니다. 두뇌는 인
간만이 지닌 독특한 특성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
리의 기본적인 인체 기능과, 우리의 행동. 우리의 도덕. 우리의 창의
력, 우리의 정신 등등 인간을 수많은 살아 있는 유기체들 가운데서 독
특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요소들을 조절하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 구절을 인용하자면 두뇌는 우리에게 영혼을 불어넣어 줍니다.
하켓은 입술을 실룩거리며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 어째서 두뇌가 아닌 심장을
열렬히 찬양해 왔다고 생각하십니까?심지어 성경에서도 말입니다.
[그거야 책을 쓰는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과학보다 로맨스를 좋아하죠.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하켓은 손바닥에다 연필을 뚜드리며 말했다 그는 텅 빈 배심원석
다가갔다.
[그러면 그것은 당신의 전문가적 견해 가운데 하나입니까?
[아닙니다. 그건 그저 관찰 결과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해
선당신도 동의하는 바가 아넙니까?
레이챌은 반대 신문을 하는 변호사에게 오히려 질문을 던져 위기를
모면하는 습관이 있었다.
[우리는 지금 심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는데요.
하켓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심장은 문학적 가치가 굉장히 콤니다. 하지만 의학적
인 견지에서 생명의 문제를 바라본다면 심장은 인간에게만 독특한 기
능을 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작용은 두뇌에서 일어납니다.
레이켈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두뇌가 형성되기 전에 태아는 어떤 상대라고 생각하십니
까?
[그때의 태아는 인간이 아닌 일반적인 유기체와 다를 바 없는 비성
숙 유기체입니다 생각할 수도 없고. 자기 조절 능력도 없고 숙주(기생
하는 생물이 의지하는 생물)가 없으면 혼자서 살 수도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생존 능력이 없다'는 거지요?
[맞습니다.
[임신 24주에는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24주 ' 이후'라고 해야 맞습니다 ]
[좋습니다. 그때까지는 태아는 이를테면 개나 고양이하고 전척 다
를 게 없습니까?
[그렇습니다.잠재력을 제외한다면요.
[잠재력이라고요?
[개나 고양이는 사람이 될 수 없지만 태아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
것이죠. 물론 아직 사람은 아니지만요.
레이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마치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처럼. 하켓은 적절한 답을 찾느라 한동안 생각
에 잠겨 있었지만 이내 그 문제를 건너뛰었다. 레이챌은 안심한 기색
을보였다
하켓이또 물어 왔다.
[당신은 인간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태아가 뇌간이 형
성되기 이전이라도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말하자면
태아가 자생 능력이 생기기 전에라도 말이죠.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잠재력은 출생 때까지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닙니
까?
[맞습니다.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반드시 충족되야지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어머니의 동의입니다.
하켓은 동요되려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쓰느라 바닥을 쳐다
보면서 변호사석 쪽으로 걷다가 멈춰 서서 레이챌을 돌아보았다.
[당신은 어머니가 동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태아는 꿔
란 말입니까?만일 그것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뭐라고 말할까요?
[좋은 질문이군요. 하켓 씨. 태아가 말을 할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러
면 태아는 자생 능력이 있는 것이고 그 생명은 보호받아야 하겠지요.
그 전에는 어머니가 태아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그녀가 애초에 임신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처럼요.
하켓은 판사석 앞으로 다가갔다.
[자, 또다시 그러한 결정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관한 문제로
게 되는군요.레드패스 양.저는 당신이 왜 모든 생명을 -비
그것이 '잠재적'으로 인간이 될 생명이라 하더라도 -보호하려고
않는지에 대해 관심이 가는군요. 흑시 당신은 그런 잠재적 생명
,너무 많다고 느끼시는 것은 아닙니까?
레이웰은 탄식조로 말했다,
[인구 괴핑은 확실히 문젯거리죠.
빅토리아는 레이챌에게 하켓의 수작에 말려들지 말라고 전하고 싶
열심히 시선을 던졌으나 레이켈은 하켓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잠재적 생명이 어떤 식으로 너무 많이 존제하는지 말씀해 주시겠
습니까?
[그것은 종의 진화 방식입니다. 난자도 많고 정자도 많습니다. 당신
도 거기에 -그녀는 그의 가랑이 사이를 눈으로 가리켰다.-
4500만 명의 마기를 지금 당장에라도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갖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터뜨린 웃음소리에 레이챌이 중얼거리듯 덧붙인 다음 말
이 묻혀 버렸다. 하켓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네?뭐라고 하셨죠?
그가 물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녀가 대답했다.
[꿔라고 말햇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레이챌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 아닐 수도 있고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켓은 얼굴을 붉혔다.
[그런 모욕을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시다니 참 훌륭한 분이십니다.
[재판장님.......
빅토리아가 말했다. 그러나 티투스 판사는 손을 저어
그녀를 앉게
했다. 하켓은 팔짱을 끼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이 세상에 너무 많은 잠재적 생명이 존재한다는
뜻이로군요.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아기를 만들어 나가다가
는 다음 세기 말엽쯤이 되면 지구는 일요일에 열리는 슈퍼볼
이 될 겁니다.
경기장란
레이잴은 천장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2100년쯤 되면 우주 식민지가 생긴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레이챌은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솔직히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군요. 하지만 그걸 언급
하시는 것을 들어 보니 당신은 전반적인 낙태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이미 강구해 놓으셨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무슨 뜻이죠?
하켓이 물었다.
[인간이 화성에 발을 들여놓을 때까지 당신이 반 낙태를 지지한다
면 저도 그때까지는 낙태를 지지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켓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터무니없다는 듯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
[닥터 레드패스!
티투스 판사가 끼여들었다.
[법정은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오.
[죄송합니다, 재판장님. 당신이 제 항변을 어떻게 평하시든지 간에
제 마음 속에는 승소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티투스는 알약을 하나 까서 입에 털어 넣었다.
레이챌이 다정하게 말했다.
[재판장님. 당신이 무엇인가를 복용하는 모습을 본 게 이번이 두 번
요.그게 무엇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묻지 마시오.
그가 말했다.
[저는 아까부터 당신의 피부 상태도 지켜 봤습니다.
[고맙소. 의사 선생. 예약은 이미 했잖소.
[제가 보기엔 지금이 바로 검진받을 때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때 하켓이 끼여들었다.
[다시 시작할까요?요약하자면 당신은 잠재적 생명이 너무 많기 때
문에 보호받을 수 없고, 이 행성이 곧 인간투성이가 될 테니 낙태만이
지구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거로군요.
[그것은 당신의 말이지,내 생각이 아닙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의 입장을 스스로 요약해 주시겠습니까?
[수태한 수정란을 낙태시켰다고 여성를 박해하는 것은 몽정한 남자
를박해하는 것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무지스러운 짓입니다.
하켓은 손바닥에 연필 두드리는 짓을 그만두었다
[뭣 좀 물어 봅시다, 닥터.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당신은 임신한 억성
들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죠?
레이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의사입니다. 하켓 씨. 저는 모든 종류의 죽음과 고통을 봐왔
고 제가 아는 한, 여자에게 원치 않는 임신 상태를 강요하는 것은 악성
종양을 키우라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사회와 태아가
공모하여 그녀를 인질로 잡아 두는 것과 같습니다.비단 9개월 동안만
이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서요. 만일 그잘가 베이루트 어딘가에 붙잡
혀 있는 인질이라면 우리는 납치법들을 죽여서라도 그녀를 풀어 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사실 저는 당신네, 반 낙태주의자
들이 그런 흉악한 납치범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용기가 있는지 의심
스럽습니다만 어쨌든 임신한 여자의 낙태 문제가 대두되면 그와는 반
대로 마치 인질범들이 꼬든 권리를 갖고 있고 그녀가 자유롭게 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수술대 위에서 목숨을 거는 길밖에 없다는 식으로
우리 모두 가만히 앉아서 그녀의 생존에 대해 입씨름이나 벌이고 있는
꼴이잖습니까?그건 야만적인 행위입니다.
하켓은 레이챌 앞에 서서 미소를 지었다.
[음, 굉장히 극적이군요. 닥터 레드패스.
니까?
하지만 그 모든 게 사실입
'당신은 임신한 적이 없어서 몰라요,
그녀가 말했다
[그건 그렇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해보셨습니까?
하켓의 질문은 레이켈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단지 제가 말한 것이 정확하다는 사실만을 밝히고 싶습니다.
그녀의 뺨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빅토리아가 일어섰다.
[이의 있습니다, 재판장님. 우리는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다는 한=
를 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 한계를 오래 전에 넘었소. 내 개인적으로는 이 =
제에 대해서는 논쟁의 범위를 크게 허용해 주고 싶군요. 하지만 이=
선을 그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재판장님. 증인이 먼저 개인적인 임신을 거론한 것입니다. 제가 =
니고요.
하켓이 항변했다.
[그래요.하지만 그녀는 임신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당신은 그렇지
따라서 그녀의 발언은 원론적인데 반해 당신의 질문은 개인
= 관한 것이었소. 그 질문은 부적절하오. 이의를 받아들이겠소.
하켓은 선 채로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변호사석으로 돌아갔다.
[재판장님, 5분간 휴정을 요청합니다.
군중들.이 응성거렸다. 레이챌은 증인석에서 내려와 빅토리아와 제
테로 갔다. 그들은 법정을 나와 복도에 섰다.
[주의하라고 했잖아요,
빅토리아는 레이챌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심각하게 생각 말라구.
레이챌이 대답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죠킵
제노비아가 물었다. 그제서야 빅토리아와 레이챌은 제노비아가 옆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빅토리아가 말했다.
[결국은 티투스 아니면 다른 판사가 낙태법에 굴복하고 당신에게
낙태를 허락할 거예요.
제노비아는 흔란스러운 듯 보였다.
[판사가 법에 따르지 않을 수도 있나요,어떻게 그럴 수 있죠?
[잠깐만요.
레이챌은 제노비아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빅토리아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으며 양어깨를 약간 들어 보였다.
[뭐라고 답해 주지?
빅토리아 역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궁리하다가 제노비아의 손에
들려진 성경책을 보면서 되물었다.
쫑
[제노비아,다윗이 어떻게 신을 거역했지요?
[맞았어.
레이웰이 맞장구쳤다.
(다윗은 군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해 임신시키고는 같은 닐
우리아를 동침시켜 자신의 죄를 모면하고자 했으나 우리아가 이를 거
부해 밧세바의 임신은 곧,다윗의 죄로 드러난다.-편집자 )
레이챌은 부드럽게 제노비아의 팔을 한번 툭 치고는 빅토리아를 제
노비아에게 들리지 않을 만한 거리까지 끌고 가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티투스가 오늘 증으로 판결을 내릴 것 같니?
[그러지 않을 것 같아요. 하루 이틀 중으로는 판결을 내리지 않을
거예요?
[그럼 언제?
[너무 늦어서 낙태고 꿔고 생각할 수 없게 됐을 때 비로소 판결을
내릴 게 분명해요.
보석상은 누가 보고 있지는 않나 어깨 너머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것 때문에 말썽이 생길지도 모르겠는데요. 주화를 이런 식으
처리하면.
그는 밑 부분에 동전이 달린 금줄을 들어올려 검은 벨벳천 위에 올
려놓았다
[마음에 드십니까?
잭은 2주 전 택시 운전기사에게서 받은 은화를 집어 들고는 확대경
으로 그것을 살펴보앗다.
수잔 . 앤터니의 오른쪽 옆얼굴의 입술 부분 앞에 자가 새겨져
있었다. 마치 '빅토리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끔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동전은 잘 닦벅 있었고 둘레에는 가는 금 테두리를
둘렀다. 테두리 한쪽에 고리를 달아서 금줄과 연결할 수 있게 되어 있
었다
[됐습니다.
잭이 말했다. 보석상이 벨벳 상자를 찾는 동안 그는 수표에 이서를
했다.
[다이아몬드 반지는 필요 없습니까?1
보석상이 물었다.
[의원님, 제 경험으로 말씀드리는 건데
1아몬드 반지를 더 좋아하죠.
[알고 있소.보통의 여자들은 그렇죠. 말입죠. 대개의 여자들은 다
잭이 벨벳 상자를 집으며 말했다.
.
그는 주차장 한가운데 서서 마치 콜럼버스가 갑판 위에 서서 육지를
찾는 모습 마냥 한 손으로 눈 밑에 그늘을 만들어 주퀴를 둘러보고 있
었다. 아스팔트 도로 한쪽 끝에는 애틀랜틱 가에 위치한 산부인과 병
원의 뒷문이 보였고, 반대쪽으로 20미터 떨어진 곳에는 녹슨 철망 열
타리와 키 큰 잡초로 둘러싸인 목조 가옥이 있었다.
그는 뿔테 안경을 벗고 다저스팀 야구 모자를 들어올렸다. 소매로
턱수염을 닦은 뒤 병원 쪽으로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은 집회를 위해
꼬인 군중들을 지나. 임시 무대로 쓰일 트럭을 지나켰다. 병웠 뒷문에
서 67미터쯤 되는 곳에 이르자 그는 멈춰 서서 모자를 쓰고 지붕을
응시했다.
'신이여, 도와주소서. 저는 혼자서는 이 일을 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 지붕 위의 배기관을 바라보는 동안 이
봐요!'하는 외침소리가 들려 왔다. 발 아래를 보고 나서야 그는 자기
가 '낙태는 살인과 마찬가지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밞고 있다는 것
을 알아차렸다, 20대 중반쯤 된 사내가 무릎을 레고 그것을 설치하고
있었다. 다저스팀 모자를 쓴 사나이는 발을 뒤로 빼면서 사과를 했다.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집회에 참석하십니까?
청년이 물어 왔다.
[예, 그런 셈이죠.
청년은 일어서서 손을 덥석 내밀었다.
[빌리 배니스터요.
다저스 모자를 쓴 사나이는 턱수염에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
도 손을 내밀면서 이름을 밝혔다.
[베네딕트요, 알프레드 베네딕트.
[사람들이 당신을 꿔라고 부릅니까, 알프레드, 혹은 알?
[아니오.그저 '에그즈'라고들 부르죠.
배니스터는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런 말 듣고도 아무렇지 않아요?
에그즈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디 출신이죠?
배니스터가 물었다.
[어느 곳이든 다 고향일 수도 있고 전부 아닐 수도 있소. 당신은 직
업이 꿔요?
[건축업입니다.일이 있을 때만요.
배니스터가 대답했다. 에그즈는 동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집회가 시작되었다. 엘리 그레이브스가 트럭 위에 올라가 찌직거리
는 마이크를 잡고 군중들에게 인사했다. 모두들 조용히 그의 애기에
귀를 기울였다.
에그즈 베네딕트와 빌리 배니스터는 서로의 직업과 가족에 대해1'
얘기를 나누었고 화제가 낙태에 이르러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
청난 분노를 표출시켰다.
군중 속에서 함성이 올라 그들의 주의를 잠시 빼앗았다
[저 살인 공장은.......
그데이브스가 마이크에 입을 대고 병원을 가리키며 외쳤다
[지금 막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야기만으로는 안 됩
이제 우리가 옳다고 믿는 신념을 위해서 행동해야 할 때가 온 것
다.
모두들 환호성을 올리며 외쳤다.
[테아 살해에 맞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며 빌딩 주위를 에워쌌다. 반 낙
태주의 데모대는 바리케이드를 앞에 두고 점점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경찰이 메가폰을 통해 데모대에게 다른 사람들이 병원에 들어가는 것
을 막는 일은 위법 행위라고 경고했다
에그즈와 배니스터는 그들과는 약간 거리를 두곤 지켜보고 있었다,
[저 대열에 참가합시다.
배니스터가 말했다. 그는 피켓의 물결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러
나 에그즈가 그의 팔을 붙잡아 제지시켰다
[왜 그래요?
배니스터가 물었다.
에그즈는 군중들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나는 이미 항의 시위는 해봤소. 이젠 뭔가 다른 일을 해봅시다,
그는 배니스터를 데모대로부터 끌어냈다. 아스팔트 도로의 한쪽 끝
에 다다르자 그는 둥을 돌려 주차장 주위를 따라 걸었다. 마침내 군중
들의 함성소리가 희미해졌다. 주차라 옆 뒤뜰에는 그의 시선을 끄는
뭔가가 있었다. 그곳에는 작은 그네와 가을 낙엽이 소복히 쌓여 있는
마당이 있었다. 그는 유심히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마치 느
껴 보지 못한 추억의 창틀에 얼굴을 바짝 밀어붙이고 있는 듯했다.
'이런 곳에서의 삶은 어떤 걸까? 이런 집에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낮은 자장가를 들으며 낮잡을 즐길 수 있는 아이는 얼마나 복받은 아
이일까?'
너무도 간절히 생각하다 보니 목이 칼칼해 왔다.
'옷을 다리고, 연속극을 보고, 잠자는 아기에겐 포근한 자장가처럼
들리는 라디오의 멜로 드라마를 듣는 어머니, 일요일 오후면 낡았지만
편안한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스포츠 신문을 펼쳐 놓고 텔례비전에
서 풋볼 게임을 즐기는 아버지, 그건 어떤 느낌일까? 그런 부모와 함
께 산다는 건.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사랑받는다는
것은 대체 어떤 느낌일까?'
그는 수염 밑의 피부가 간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열기가 뺨을 타
고 올랐다. 그만의 독특한 체취인 패출리향이 발산되었다
[무엇을 찾고 있는 겁니까?
배니스터가 물었다,
[당신은 직업이 필요하죠?
에그즈가 물었다.
[그래서요?
배니스터가 되물었지만 에그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주차장 갓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는 뭔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두 채의 작
은 집 사이로 난 좁은 길과 그 옆에 있는 주차장 뒤쪽 인도에서 그는
비로소 뭔가를 찾은 것 같았다.낙태 시술 병원 옆에 위치한
슈퍼마켓으로 통하는 지름길이었다. 에그즈의 눈은 거리로 통하는 좁
은 길을 쭈욱 훌었다. 그러고 나서 병원 주차장 건너편을 힐끗 보았다.
[폭파 작업을 해본 적 있소?
그가 물었다.
키 큰 화분 뒤에 살짝 가리워진 채로 애브너 티투스 판사는 나무 벽
을 향해 앉아 2인용 테이블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건강
을 염려해서 항상 고기는 멀리했다. 그러나 지금 그가 두 접시째 먹어
치우고 있는 파스타에는 페스토 소스가 뿌려져 있어서 스테이크보다
오히려 지방이 많은 셈이었다.
그의 주위에는 한담을 나누는 연인들, 거래를 하는 상인들, 등등해
서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먹고 마셔대고 있었다. 마치 국민학교 댄스
파티에서 소외된 아이 닫은 기분을 느끼면서도 그는 소음과 옷음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 즐거웠다.
식사를 마치자 그는 탁자 램프 아래에 책을 커내 놓고 읽기 시작했
다. 표지에는 '빅토리아 시대의 관습려 제2권'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
었다. 제목으로 봐서는 딱딱하기 그지없을 그 책을 티투스는 마치 서
스펜스 소설이라도 되는 듯이 몰입하여 안경 킨 눈으로 열심히 글자를
더듬어 나갔다. 웨이터가 길다란 마티니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 와 방
해가 안 되도록 조용히 놓았다 티투스는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고맙네.달라스.
[뭘요,판사님.
..
웨이터는 간단히 대담하곤 가버렸다
한 페이지를 더 읽은 뒤 그는 책을 덮어 놓고 술잔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올리브가 꽂힌 이쑤시개로 술잔을 휘휘 젓고 나서는 올리브
를 입에 넣고.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씹어댔다. 그러면서 그는 주위에
서 들려 오는 데화의 내용을 상상해 보았다. 한쪽에서는 어떤 부부가
결흔기념일을 자축하고 있었고. 저쪽에서는 변호사가 의뢰인과 상담
을 하고 있었다. 또 한쪽 구석에서는 정부 관리가 기자에게 기밀을 누
설하고 있었다. 저 건너편에서는 어떤 아버지가 얼굴이 일그러진 아들
을 달래고 있었다. 화난 아들을
티투스는 소금 뿌린 아몬드를 집어먹고 입가심으로 술을 한 모금 마
셨다. 그는 조끼 즈머니에서 금장식 시계를 꺼내 열어 보곤 탁 하고 다
시 닫았다.그리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
웨이터가 다가와서 물었다.
[뭐 또 필요한 것 없으십니까,판사닙?
[없네 달라스. 이걸 다 마신 뒤에 집으로 곧 갈 참이네. 집에 늦겠
.
[우리 같은 늙은 기혼자들에게는 그렇군요.
웨이터가 말하면서 웃었다.
[가족들은 어떤가?
티투스가 물었다.
[좋습니다, 판사님. 다들 건강합니다. 댁은 어떠신지요?
티투스는 책을 두드렸다.
[이게 내 가족이라네. 이거하고 블랙스톤뿐이지. 하지만 그놈은 자
기만 아는 고양이야.
웨이터는 가죽 표지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흘끗 보더니 물었다.
[음 -,판사님 이런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되려면
년이나 걸릴까요?
티투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보기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다네.
웨이터는 티투스와 마티니 그리고 두꺼운 가죽 표지 책을 뒤로 하고
'렸다. 티투스가 책장을 막 넘기려고 하는 순간 책 속의 알맹이가
'1에서 툭 빠져 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의자를 뒤로 물리고 재
1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러느라 그의 얼굴이 벌개졌다. 그는 그것
다시 가죽 표지 속에 끼워 넣었다.
그러고 나서 조끼를 끌어당겨 배를 가리고는 넥타이의 매듭이 흐트
러지지나 않았나 다시 확인을 한 다음 달라스가 놓고 간 레몬향 나는
타월을 펼쳤다. 그것으로 얼굴을 닦는 동안 틈틈이 주변 사람들을 살
펴보았지만 아무도 자신의 작은 비밀을 눈치챈 것 같진 않았다. 그는
, 냉정을 되찾고 편안해졌다. 위엄이 그득한 재판관으로 돌아온 것
이었다.
술을 한 모금 더 마시고는 가죽 표지를 열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
다. 겉표지 속에 들어 있던 책 알맹이의 제목은 스테판 킹의 대증 소
선 [빛나는 것들]이었다.
빅토리아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레이챌을 쳐다보았다.
[연구소예요. 혈액형 검사를 마쳤대요. 역시 르보이드는 아버지가
아니래요.
레이웰은 축 늘어졌다.
빅토리아는 손가방을 탁자에 내려놓고 일어나 떠날 준비를 했다. 그
들은 국회 산부인과 병원에 있는 캐시 키낸의 사무실에 있었다. 레
챌은 전공에 관련된 자료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냐. 케분 전에 법원 서기가 내 탄원서를 잃어버렸=
요.
빅토리아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런 일이 전에도 일어났었니?
[응, 하지만 이번에는 괜지 냄새가 나는데요. 아무래도 제노비아;
데려와서 낙태 수술을 받게 해야 할까 봐요.
그녀는 전화번호부와 수첩을 손가방 속에 넣었다.
[앉아 봐. 빅(빅토리아의 애칭). 난 네가 려정 모독죄로 소환당하
것을 원치 않아.
빅토리아는 벽에 기대어 섰다.
[좀 앉아서 이 문제를 충분히 생각해 봐.
레이챌이 다시 한 번 채근했다.
[그 동안 쭉 생각해 봤어요. 난 리투스가 이번 일을 교묘하게 해결
버리도록 내버려둘 수가 없어요. 제노비아가 끝없이 당하고 있는
보는 것도 이젠 지쳤어. 그이는 직업을 가질 수도 없어요. 그녀는
승에 빠져 있고 그녀의 가엾은 딸은 이유도 모르면서 겁에 질려
도대체 이런 일을 어떻게 방관할 수 있단 말예요?
레이챌은 빅토리아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너는 휴식이 필요해.
빅토리아는 눈을 감았다.
[며칠만 더 기다려 봐, 빅. 단일 그때까지도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면. 좋아. 그때는 그자의 꿍꿍이속이 뭔지 명백하게 드러날 테니까 말
01야.
그녀는 레이챌을 보았다.
[티투스가 르보이드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면 어쩌지요?
[이제 우리는 르보이드가 태아의 아버지가 아니란 사실을 알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하켓은 누가 진짜 아버지든 간에 자기는 태아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티투스는 그런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는 말하지
않았잖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자들이 승소한다고 해도 아직 끝장난 게
아냐. 항소심에서 그를 이길 수 있어. 제노비아는 낙태권을 따낼 거야.
그리고 티투스가 혹시라도 대려원장에 임명을 받게 되면 우리는 그를
물 먹일 수 있는 엄청난 증거를 이번 사건을 롱해서 얻게 되는 셈이
지,
[굉장히 그럴듯한 전략인데. 레이.
그녀는 진지하게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네가 성급히 다른 조치를 취하려고 들지만 않
는다면 말야.
빅토리아는 레이챌을 잠시 노려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문을
열고 나가며 말했다.
[레이, 미안해요. 하지만 난 마음을 결정했어. 캐시한테 내가 제노
비아를 한 시간 안에 데려오겠다고 말해 줘.
제노비아 데이비스는 아파트 문을 열었다. 빅토리아는 그녀의 눈 밑
에 패인, 못 보던 깊은 주름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윈터스 양, 여기는 웬일이시죠?
[좋은 소식이에요.
빅토리아가 말했다. 그녀는 정직한 어조를 띠려고 노력했다.
[판사가 당신더러 낙태를 하라고 판결했어요. 어서 짐을 꾸리세요
우리는 지금 떠나야 해요.
[맙소사, 전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사라도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
지 않았고요.
[시간이 없어요.
빅토리아가 말했다 그녀는 제노비아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언제 그런 판결이 났죠?
제노비아가 물었다.
[조금 전에요. 자, 서두르세요.
빅토리아는 그녀의 눈길을 피하면서 말했다. 제노비아는 가만히
있었다.
[왜 판사가 마음을 바꼈죠?
빅토리아는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혈액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르보이드는......, 태아의 아버지가 아
--.
제노비아는 코개를 떨구고 손으로 배를 만져 보았다. 그녀는 의자로
앉았다. 빅토리아는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것 때문에 판결이 쉽 게 난 거죠.
제노비아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짐을 꾸리세요.
제노비아는 천천히 일어나 침실로 갔다. 빅토리아는 아랫집으로 내
=가 그 집 여자에게 하룻밤 동안 사라를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 노비아가 누구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당부
도 잊지 않았다. 몇 분 후 제노비아가 화장품이 든 가방, 옷걸이에 걸
면 드레스 그리고 성경책을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빅토리아는 누
가 보고 있지는 않나 주위를 살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제노비아를
차로 데려갔다.
그들은 국회 병원 차고에 당도해 차를 시멘트 기둥 옆에 세워 놓았
다. 빅토리아는 먼저 차에서 내려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본 뒤 제노
비아를 지하 엘리베이터로 데려갔다. 그들은 곧장 층으로 올라갔다.
레이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딨의 표정이 밝지 못했다.
[일이 좀 있었어.
[뭔데요?
[티투스의 법원 서기 알지? 페퍼 루미스.
[응.
[그녀가 방금 전화를 해왔어.
빅토리아는 당혹스러뒀다.
[뭣 때문에요?
[그녀 애기로는 만일 법원의 판결이 나기
가 낙태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도우려 한다면
한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할 것이라더군. 전에 제노비아 데이비스
법령을 고의적으로 위반
[농담이죠?
빅토리아는 어안이 벙벙했다
[누가 고자질했을까?
레이챌이 어깨를 으쓱했다.
[거기에 관해선 아무 말도 없었어,
빅토리아가 당혹을 금치 못하면서 제차 물었다
[어떻게 그녀가 여기로 전화를 했지?
레이챌은 제노비아 쪽을 돌아보았다. 그것은 제노비아가
는 사실을 빅토리아에게 환기시키려는 암시였다.
곁에 있다
제노비아가 말했다_
[판사가 이미 수술을 받아도 좋다는 판결을 내렸다면서요?
얼굴이 붉어진 빅토리아는 그녀의 팔을 잡아 끌고 대기실로 데리
가 의자에 앉혔다.
[끝장을 보고 말겠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레이챌에게 돌아왔다.
[세상에, 난 방금 제노비아한테 신용을 다 잃고 말았어요.
[꼭 그런 건 아냐.내가 잘 이야기할게.
빅토리아는 소용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레이챌이 말했다.
[티투스가 어떻게 안 것 같아?
[모르겠어요.
[그의 추측이었을까?
넥토리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실 전에 몇 번 비슷한 일이 있긴 있었어요. 임시 낙태 금지댑안
)에 계류중인 내 의뢰인 몇을 수술받도록 한 적이 있었거든요.
요. 그런 일이 이번에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는 티투스가
킨 짓일 거예요, 오! 하느님, 여자들의 삶에 콰여드는 저 혐오스러
운남자들을 어떻게든 해주소서.
그녀는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버렷다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뭔가 조치를 취해야지.
[됐어요,됐어.레이 그만....... 그만.
레이챌은 잠시 동안 빅토리아가 마음껏 짜증을 부리도록 내버려 두
었다. 그러고 나서 빅토리아 옆에 나란히 앉아서 그녀의 무릎 위에 자
기손을 얹었다.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나를 따돌리려 하지 마.
[나는 아무것도 꺼릴 게 없어요. 레이. 당신이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고 또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일에 대해 얘기
할 때가 아니잖아요.
레이챌은 눈썹을 껑긋하고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시고는 긴 한숨
을 내뱉었다.
[그래 모든 일에는 적당한 때가 있는 법이지.
빅토리아는 제노비아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
히 짐을 꾸리고 있었다. 레이챌은 제노비아에게 다가갔다.
[겁먹지 말아요. 그리고 빅토리아를 이해해 주세요. 그녀는 그저 법
이 곧 당신에게 허락할 권리를 미리 행사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했을
뿐이니까요.
제노비아는 실망이 가득 담긴 멍한 눈을 한 채. 몸을 약간 구부리고
는 고개를 혼들었다.
[전 집에 가고 싶어요.
레이잴은 팔을 똘려 그녀를 안았다. 그리고 귀에다 이렇게 속삭였
다.
[내게 묘책이 있어요. 나만 믿어요. 그저 조용히 내가 하자는 대로
만 하면 되는 거예요. 전화할게요. 알았죠?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요.빅토리아한테도요.
빅토리아는 거실 소파에 앉아 11시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앉
은 채로 주방에 있는 잭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몇 분 전에 돌아외
넥타이를 풀곤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먹을 것을 꺼내고 있었다. 겨지
소스를 친 훈제 청어 한 토막과 시나몬 스낵 시리얼, 허시 키세스 초=
릿 한 아름 그리고 영양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 싱싱한 당근 한 개를 ?
냈다 당근은 물기가 빠져 있었고 씻겨져 있지도 않았다.
빅토리아는 그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았지만_너믓나 지쳐 있=
기 때문에 말다틈할 마음마저 내키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려정에]
낼어졌던 일을 설명해 주고 다음 날 아침 항소심을 청구해야 할 것
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소식들에 관해서도 말했다. 새로 온 직
그녀의 동업자 실비아 킹스턴 브라운이 승소한 일, 캘리포니아에서 '
버지가 전화를 건 일 등등.
잭은 맥주 캔을 들고 거실로 가 한 쪽 다리를 그녀의 다른 한 쪽
릎에 올리고 앉았다. 그는 빅토리아의 살이 몸에 닿자 긴장을 느꼈
한 차례의 격정을 치른 끝에 우울해지는 밤이 또 그들을 기다리고
었다. 너무 지쳐서 일을 제대로 치룰 수 없을 때면 늘 그랬다.
뉴스에서 나오는 '자신을 압시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콜레스테를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저거 보여요?
그녀가 말했다.
[당장 다이어트든 꿔든 하지 않으면 당신은 동맥이 막혀 책랙댈 수
밖에 없다구요.
그는 캔을 내려놓고 그녀의 발을 만지작거렸다.
[당근은 이제 그만 먹겠어.
그녀가 으르렁거렸다,
[당신 괴 검사 스케줄을 잡아 놓을 거예요.알았어요?
[언제?
[국회 병원의 캐시 키낸한테 부탁할 거예요. 잠깐 쉬는 시간을 이용
해서 다녀을 수 있을 거예요.
[알았어.
그는 대답하면서 계속 그태의 발목을 주물러댔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델레비전을 보았다. 지역 뉴스 시간에는 그
의 손이 그녁의 종아리에 가 있었고, 스포츠 뉴스 때는 무릎 언저리를
더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예전 같
았으면 날씨 예보가 나오기 전에 이층으로 올라가곤 했는데 오늘은 그
렇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계속 그녀를 애무했다.
[티투스 건으로 낙심했군.그떻지?
[이 소송, 저 소송 다 똑같아요.
[며칠 동안 어디론가 도망쳐서 꼭꼭 숨어 지내 볼까?
그녀는 싫다고도, 좋다고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뭐라셔?
그가 물었다
그녀는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대답했다.
[다음 주에 워싱턴에 오시는 길에 함께 저녁 식사나 하고 싶으시대
요.
자동차 광고가 화면에 비쳤다. 차가 물 응덩이를 통과하는 모습이
슬로 모션으로 보였다
[괜찮겠어요?
[나야 좋지. 당신은 어때?
[저도요. 아버지를 뵌고 싶어요.
몇 분 후 뉴스가 끝났을 때 그의 손은 어느새 그녀의 허벅지 부근까
지 올라가 더듬고 있었다. 그는 한 차례 기지개를 켜고는 이층에 올라
가 자겠다고 말했다.
그챠는 곧 뒤따라가겠다고 대답하고는 눈을 감아 버렸다.
그는 잠시 후 텔레비전을 끄고 램프도 하나만 남기곤 다 꼈다. 그녀
는 곧 올라오겠다고 말했지만 그녁의 불편한 심사를 고려한 그는 면이
불을 가져와 그녀에게 덮어 주고는 그녀의 긴 목에다 키스를 해주었
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가 위층으로 올라간 뒤 그녀는 오른손을 펼치고 엄지손가락 아레
의 도톰한 부분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상처의 흔적도 남아 있
지 않았다. 너무도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녀는 모로 누워 소파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생각해 보자, 아빠
와 나, 둘 모두가 순수하던 시절. 아빠의 멋진 모습들을. 내 나이 열 살
이었고 아빠가 거인같게만 느켜졌던 그 해변의 여름날들을....... 졸업
식 날의 기억은 잊어버리자. 아니, 아니, 기억해 봐.'
빅토리아는 전신이 비치는 거울 앞에 서서 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
할 연설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연습하고 있었다.
......그래서. 베트남의 시체 더미로부터 와트 시의 폭동으로 인힌
폐허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처한 이 흔란의 시대에 우리들, 1972년 졸
업생들은 황금의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그녀는 그쯤에서 멈춰서는 모자와 가운 그리고 그 아래 받쳐입은 드
레스를 살펴보고는 검은색으로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다
른 클래스의 연사들은 하얀 옷을 입고 나와 성인이 된 것에 대한 감상
느낌과 학교 생활 및 클래스의 말썽꾸러기들에 대한 일화로 장식
농담들을 늘어놓을 것이다. 그것은 좋은 관행이었다. 그떻지만 그
녀는 시대 상황에 걸맞게 무게가 있는 연설을 할 의무가 있다고 느꼈
다. 그러려면 검은색이 도움이 되리라.
그녀는 연설문을 한 번 들여다보고는 거울을 쳐다보면서 잠시 끊었
던 다음 부분부터 기억을 더듬어 연설을 해나갔다.
[운명은 우리를 불사조로 만들었고 우리는 잿더미에서 일어나 일어
버린 평화와 평둥의 원칙을 재건할 것입니다.
그녀는 시계를 들여따보았다. 제한 시간이 거의 끝나갔다. 마지막
몇분
[그래서. 친애하는 동기생 여러분. 우리들은 달라집시다.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의 말씀을 받들어 설령 폭력이 우리에게 가해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폭력으로 되갚지 맙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
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할 때 우리는 신세계 창조에 도움이 될 진
정한 개혁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연필을 집어 들고 '개혁'을 '혁명'으로 고쳐 썼다.그녀는 자
기 철학의 핵심이며 연설의 주안점인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
다.'는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 그녀는 머리를 매만지고 연설문 노트를
집어든 뒤 가운을 펄럭거리며 문 밖으로 나섰다. 조금 있다가 어떠니
가 하이힐을 딸깍거리며 대리석 계단을 내려왈다
[아버지는 어디 계시죠?
빅토리아가 물었다. 그녀는 들뜬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환자를 돌보고 계시단다.이따가 오실 거야.
빅토리아는 실망스러워 입을 벌리곤 눈동자를 굴렸다. 비벌리힐스
의 성형외과에는 언제나 손님이 많았다.
[걱정 말아라. 졸업식이 시작되기카지는 한 시간은 족히 남았으니
까. 아버지도 행사에 결코 늦으시려 하진 않으실 거야.
빅토리아는 어머니의 팔짱을 끼고 넓은 차고로 걸어갔다. 서둘러 걷
느라 가운 자락을 밟아 버리는 바람에 가운의 아랫단을 꿰맨 실이 조
금 튿어졌다. 그녀는 어머니더러 먼저 차에 가 있으면 테이프를 찾아
가운을 여미고 곧 뒤따라 가겠다고 말했다.
빅토리아는 야자나무가 드리워진 통로를 지나 아버지의 방 세 개짜
리 진료실로 달려갔다. 뒷문은 곧장 검사실로 통했다. 그녀는 환자가
있을 때는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놀만큼은 상황
이 상황이니만큼 아버지가 이해해 주실 거라고 믿었다.
그녀는 부드럽게 노크를 했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녀는 다시 노크를 하고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렸다. 문이 열렸
다. 아버지는 빅토리아가 가운 어깨에 넣을 솜뭉치를 찾느라 아침에
들른 뒤 문을 잠가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안으로 들이밀
었다 불은 켜져 있었다.
[아빠?
그녀는 나직이 불러 봤다.하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주위는 조용했다. 아버지는 다른 방에서 횐
자를 돌보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녁는 문 옆에 있는 카운터에 연설문 노트를 내려놓고는 롤 테이끄
를 조금 뜯어내 가운의 터진 자리에 붙였다. 그녀는 테이프를 제자
에 갖다 놓다가 스테인리스 쟁반에 얹힌 메스를 보았다. 그녀는 그=
을 집어 들고 전등 불멎에 칼날을 비춰 보았다. 느낌이 좋았다. 썩 =
들 것 같았다. 그녀는 아빠가 메스를 어떻게 잡고 다루는지, 가르쳐 =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메스로 무엇을 자를 때는 화가가 붓질을 하듯 신증하게, 하지만 단
호하게 살 속으로 밀어 넣어야 해.'
빅토리아가 열 살이 되자. 아버지는 여러 가지 수술 사진들을 크여
주었고 닭. 다람쥐, 추수 감사절의 칠면조 따위를 이용해서 메스를 사
용하는 방며을 익히도록 도와주었다 그녀는 그런 일이 금방 좋아졌
고 동물들이 흘리는 피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자기 역시도 자라서
성형외과 의사로 활약하게 되는 날을 상상해 보았다. 비벌리힐스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 스타들의 얼굴을 만들어 주는 의사. 그것은 바로 현
재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늘 그녀의 눈에는 거인이었고 돈을
헤아려 볼 필요도 없는 부자이면서도, 불 타는 집에서 아이들을 구해
낸 적도 있는 슈퍼맨이었다. 대학 진학을 앞둔 시점에서도 아버지와
떨어져 그를 그리워하게 될 일이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녀는 시계를 보았다.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셨다. 그녀는 서둘러
문 쪽으로 가 메스를 테이블에다 놓곤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았다. 한
손으로 졸업식 모자를 움켜쥐고 복도를 지나 차고로 달려갔다. 메르세
데스 벤츠가 시동이 걸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뛰어올라 타자 차는 3차선 도로를 타고 거리로 내달렸다.졸
업식장으로 가는 동안 그녀는 졸업 연설을 단조로운 어조로 재빨리 응
얼거렸다. 그러다 한 군데에서 막히자 그녀는 무릎을 쳐다보았다.
[오, 이럴 수가, 연설문 노트를 잊고 왔어요!
어머니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암송하는 거 보니까 노트가 없어도 될 것 같은데,뭐.
[아네요,필요해요!
그녀는 시계를 봤다.
[돌아가야 해요!
어머니는 주유소 앞에서 유턴을 해서 차를 돌렸다. 차고에 닿자 빅
토리아는 차에서 내려 집을 향해 달렸다. 야자나무 통로를 거쳐 검사
실로 내려가 문의 손잡이를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만 얼어붙
어 버렸다.
아버지는 진료대 끝에서 그녀에게로 비스듬히 등을 돌리고 서 있었
다. 머리는 아래로 숙인 채였고 양손으로는 그의 앞에 있는 무엇인가
를 잡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서 누가 왔는지를 알아 보고는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형언키 어려운 표정이 그녀로
하여금 놀람과 두려움에 떨게 했디
[아빠?
그녀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가자 아버지 앞에 무릎을 끓고 앉아 있는
젊은 여자가 보였다. 여자의 머리는 아버지의 바지 지퍼 부근에 가 있
었고 그녀의 벌어진 입은 출렁다리처럼 흔들거리는, 핑크빛을 띤 묵직
한 가닥으로 아버지의 사타구니와 이어져 있었다.
여자 역시 무척 놀랐던지 두 눈이 튀어나을 만큼 휘둥그래져 있었고
입술은 창백하게 부풀어올라 있었다. 그런 그녀의 머리통을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성형외과 의사의 손이 쓰다듬고 있었던 것이다. 침대에서
는 아내를 사랑스럽게 안아 주었고, 아기였던 자신을 안아서 얼러 주
고. 그 아이를 목욕시키고, 소녀가 된 딸을 끌어안던 바로 그 손이었
다. 여자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빅토리아는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고개가 푹 꺾여졌다, 얼
굴은 붉어져서 땀카지 홀리고 있었다. 그는 주섬주섬 셔츠 자락을 바
지 속으로 집어 넣고는 지퍼를 올렸다.
그녀는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층격을 받았다. 입이 바싹 마르고
뺨이 화끈거렸다. 철쟁반 같은 것이 걸린 듯 목이 막혀 왔다.
지킬 박사가 하이디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늘 거인으로만 알
[우리가 지금 어디 있는 거죠?
[방안이에요.
[저 기타 누가 치는 거예요?
[루 리드.왜 듣기 좋아요?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이에요
[마음을 편히 먹고 들어 봐요.
[채혈( ) 은 다 끝났나? 안넝
[누구죠?
,할리.
[의사와요.
[무슨 의사요?
벗겨 줘요,제발.
이제 눈가리개를 좀
난 당신이 의사인 줄 알았는데
[우리는 함정에 빠졌어요.
[조금 전에 의사라고 한 사람은요?
[모두 한통속이에요.
[누가 또 여기 있죠? 무슨
제발 좀 보게 이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깊게 들이쉬어 봐요.
눈가리개 좀 풀어 쥐요.
[알게 될 거예요. 자, 숨을
'=왜? 무슨 일이죠?
[숨을 쉬어요.
[흐 -읖.휴 -유,흐.읖.피.유.
[좋아.그대로 있어요. 편안히 하고.
[휴 -,저게 뭐예요?
[꿔 말예요?
[저 목소리요.
[어떤 거?
[내 옆에서 나는 소리 말예요! ,
[당신 옆에는 아무도 없어요, 할리 -.
[아냐, 뭔가 있어. 바로 여기!
[팔을 내려 -.
[어떤 여자가 뭐라고 말하는 걸 분명히 들었단 말이야.
준비가 되었다는. 잠깐만.
[할리 -. 자기가 뭔가
[너 지급껏 날 속였지?
[드러누워, 할리 -.
[당신네들 미쳤어 ! 난 다기서 나가겠어.
[손목을 더 꽉 죄어!
[이런, 제길 ! 아프다구! 내 손목을 자를 셈이야?
[가슴!가슴도 묶도록!
[할리. 내 말 들어요.
[마취 시작!
[진정해요, 할리.
[놔줘. 제발 !
[안정제를 얼마나 주사했지?
20밀리그램.
[안정제가 필요한 건 너야, 내가 아니라구!
[제발. 할리, 진정해.
[이거 치워 ! 숨을 못 쉬겠어.
[숨쉴 수 있어요. 이건 마스크야. 숨쉴 때 뀔요한 거지. 자. 깊이, 천
천히 들이마셔요.
[숨을 쉴 수가 없어.
[좋아. 아주 좋아,좋았어 할리?내 말 들려요?
[이럴. 수 없어. 너희들. 지금 날.
[계속 이야기해_. 할리.
[이 개새끼...... 할.수. 없어.
[뭘 할 수 없다고?
.......
[할리, 안 들려. 뭘 할 수가 없어?할리!
[수면 상태로 돌입했습니다.
[좋아,시작하자구.
[전극은 언제 꽂죠?절단하기 전인가요 다음인가요?
[절단 후.
.......
[메스.
.......
[기록에는 이렇게 적어. 그는 '이 개새끼. 할 수 없어.'라고 말한 게
니라 '이 개년, 할 수 없어.'라고 말한 거야. 알겠지.
[으흠-.
.......
[호흡은 괜찮아 보이는군.
[할리 문을 안다는 그 친구에 대해 말해 줘.
잭은 윙스에 있는 윈스턴의 사무실에 앉아 자기가 이야기하고 있는
젊은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기 핏트야.
윈스턴이 말했다
20대 중반쯤 됐을까?수줍음이 많고. 여기 친구들이 흔히 그렇듯이
친구도 별로 없어. 배달 일을 하기 전만 해도 집도 없는 떠돌이였지.
할리 문하고 한동안 한 방에서 기거했어.
그때 열린 방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젊운이가 서
있었다. 밝은 갈색 머리에 슬픈 표정의 얼굴이었다. 바지 자락은 클럽
으로 여미고 어깨에 맨 가방이 엉덩이까지 쳐져 있었다. 도시로 올라
온 허클베리 핀처럼 어리숭한 게 마치 10대처럼 보아줄 수도 있는 모
습이었다. 다만 두 눈이 좀 특이했다. 깊게 자리잡은 뭐랄까, 불꽃이
튀기는 듯한 그런 눈이었다 그 눈이 젊은이를 나이 들어 보이게 했다.
특히 왼쪽 눈꺼풀에 박인 조그만 점이 그를 신경질적이고도 호기심 많
은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이 친구가 이기 핏트야.
윈스턴이 서로를 소개했다.
[이기, 이분이 매클라우드 의윈넘이시네.
잭은 일어나서 손을 내밀었지만 이기는 꼼짝도 안 했다. 얼마를 그
러고 있다가 그는 청바지 주머니에서 손을 커내 수줍게 잭의 손을 맞
다.그의 두 눈은 잭의 눈에 고정돼 있었다
잭은 윈스턴의 책상에 앉았고 이기는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친
근한 어조로 잭이 말문을 열었다.
[할리 문을 안다고 하던데.
[조금요.
이기가 말했다.
[그에 대해 꿔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게 있나?
이기의 음성은 낮았다.
[뭘 알고 싶으시죠?
[아무거나. 음. 그가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 있었나?
[제가 아는 바로는 없었어요. 저만 빼고요.
[멜빈 쉬버스와는 어쨌나?
[그들은 감옥에서 나온 뒤로는 서로 말도 안 나눴어요.
[쉬버스가 사라졌을 때 그가 초조해하던가?
[예, 그랬습니다.,
[쉬버스의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는 어뻤지?
[잘 몰라요, 하지만 당황했을 겁니다,
잭은 몸을 의자 뒤로 젖히고 손을 목 뒤로 가져가 칵지를 꼈다
[엘리 그레이브스가 누군지 알고 있나?
이기는 도움을 구하려는 듯 윈스턴 쪽을 바라보았다.
윈스턴이 말했다.
[이기는 배달원이기 때문에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네. 래서
칫에게 <붉은 장미회>의 동향을 살펴보도록 시켰지. 흑시 엘리 그레
이브스가 기자회견에서 뭐 좀 특낼한 걸 계획하고 있나 알아보기 위해
서 말이야.
그는 이기에게 말을 이으라는 신호로 고개짓을 했다.
[그는 반 낙태론자이고 당신을 싫어합니다.
이기가 말했다.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네 그와 할리 문
사이에 또는 그와 멜빈
쉬버스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카?
[어떤 종류의 연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떤 종류라도 괜찮아. 이를테면, 그들은
친구 사이였나?
서로를 아는가? 그들은
이기는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아는 한, 그렇지 않을 겁니다.
잭은 이기의 표정을 잠시 살펴보았다
그는 윈스턴에게 눈짓을 했다
. 그만하면 충분한 것 갇았다
[고맙네. 이기.도와줘서.
윈스턴은 이기의 팔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제 된 겁니까?
이기가 물었다
[그렇다네.
윈스턴이 말했다. 이기는 밖으로 나가 화장실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향했다. 잭은 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책상 쪽으로 걸어오면서 윈스턴이 물었다. 그는 키가 컸지만 마
몸매는 아니었다. 움직이는 동작은 운동 선수 특유의 유연하고 우아
폼이었다.
[우연의 일치가 너무 많아. 병원을 폭파한 멜빈 쉬버스는 난자당한
체로 발견되었고, 그래서 경찰은 그것이 낙태 지지자들의 소행이라
고 믿고 있는 판에 그놈 뱃속에서 내 이름이 새겨진 연필이 나왔단 말
야.
[넌, 그 연필을 지역구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잖아.
잭이 윈스턴의 말을 무시해 버리곤 말을 이었다.
[ 게다가 그의 공범인 할리 문이 멜빈 쉬버스가 기?. 하다 사라졌던
바로 내 지역구 사무실 옆에서. 그것도 내 선거 매니저가 관리하는 곳
살다가 또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은 뭔가 묘하지 않은가?
[그건 액면 그대로야. 이상도 이하도 아니네. 나까지 편집증 걸리게
만드는구만.
[그레이브스는 나에게 흠집만 만들면 된단 말일세. 윈(윈스턴의 약
=]) 경찰을 끌어들여 질문을 퍼붓게 만들고 그 결과를 언론에 알리는
거지 중상 모략이란 쉬운 일이야.
[이봐, 잭. 경찰은 네 이름이 쓰인 연필 얘기는 언론에 홀리지 않았
어.
[그들이 내 사무실에 나타났는데도?
[그래서?네 사무실에는 별별 사람들이 다 찾아오잖아. 그들이 정복
을 입고 있던가?
잭은 그개를 저었다.
[그 일은 그만 잊어버리고, 우선은 그레이브스의 기자회견이 문젠
데.......
윈스턴이 걸터앉았던 책상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거기에 관해 생각중이네. 윈.
윈스턴은 염소 수염의 끝부분을 쓰다듬었다.
[내가 말했지. 기왕에 거기 나갈 양이면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해.
잭은 가만히 앉아서 본능이 가리키는 방향을 읽고 있었다. 늘 그래
왔듯이 본능은 또 그를 부추겼다.
'싸워. 잭 매클라우드. 싸우라고.'
그는 일어섰다. 행동 방침은 결정된 것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이기는 그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다가가 합
류했다.
기자회견이 열리는 길 가엔 어느새 군중들이 제려 모여 있었다.그
들은 그저 평범한 뉴욕의 구경꾼들과 퀸즈에서 버스를 대절해 올라온
반 낙태주의자들이 이루고 있는 무리 뒤쪽에 섞억서 서 있었다. 한사
내가 해골이 그려진, 몸에 착 달라붙은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커다란 낫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낙태, 무시무시한 죽음의 신'
잭은 얼핏 그 무리의 수를 백 명 가량 된다고 헤아리면서 한편 방송
국 쪽에서도 나왔나를 살펴보았다.
그의 왼켠으로는 어떤 텔레비전 기자와 카메라맨이 있었고 그 옆=
는 두 명의 신문 기자가 서 있었다. 오른쪽을 살펴보너 카메라맨을 =
동한 몰리 맥코믹이 눈에 띄었다, 그녀의 위쪽에는 일순 그의 뇌리
강한 전류 같은 것이 치고 지나갔다.
그가 거기 있었다. 소름 끼치는 모습으로
엘리 그레이브스는 소나무로 짠 관() 위에 을
라서 있었다. 손'
는 확성기를 들고 있었다.
[여퍼분, 곧장 본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태어나지
않은 불쌍한 아이들에게 자행되고 있는 살육 행위에 지대한 공헌을
신 열 분의 국회의원 나리들의 이름을 공개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
다. 이곳이 어디인지 주위를 한번 둘러보시면 누가 명단의 제일 꼭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잭 매클라욱드 하원의원입니다. 겸식권 선택위원회의
공동의장이며 낙태 행위를 보장하는 냅률 . . 111의 제정자, 임신
중절을 위한 기금을 모으는 자이며 태아들의 소리없는 울부짖음을 끝
없이 만들어 내는 인물, 그리고 만일 우리가 여기서 막지 못한다면 장
상뭔 후보가 될 그 사람 말입니다!
[우우우우우-.
[매클라우드 의원에게 고하는 바입니다. 아직 태어나지 못한 세대
들을 대신하여 <붉은 장미회>는 당신의 패배를 위해 몸과 영혼과 재
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선언합니다!
군중들이 박수를 치는 동안 그레이브스의 눈은 분주히 군중들 속에
서 뿔테 안경을 끼고 다저스 모자를 쓴 사내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놀
랍게도 그는 뿔테 안경 대신 잭 매클라우드를 발견했다. 그는 군중들
무리의 뒷 열에 서 있었는데 팔장을 낀 채, 왼쪽에는 윈스턴을. 다른
한 쪽에는 이기 핏트를 데리고 서 있었다.
그들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잭은 증오를 느꼈다. 그레이브스로부터
전해져 오는,그 다음엔 그의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신사 숙녀 여러분. 영광스렀게도 매클라우드 의원님께서 우리와
함께 자리를 해주시고 계십니다.
그는 잭을 가리켰다. 군중과 카메라가 그쪽으로 쏠렸다
잭은 팔장
을 풀었다.
[매클라우드 의원은 살인이라는 행위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죄없고 힘없는 태아 정도는
손쉽게 없애 버릴 수 있겠지만 자기만큼 커다란 사람들은 쉽사리 괴륨
힐 수 없다는 사실을 저자에게 똑똑히 알려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
비
[우 -!
군중들이 소리를 질렀다.소리는 갈수록 커졌다
잭은 조용히 함성을 듣고 서 있었다.
'열심히 지껄여 봐라. 그레이브스. 네 말이 끝나면 내 차례니까.'
함성이 가라앉자 잭은 당연히 또 한 차례의 반 낙태 지지성 발언이
그레이브스의 입에서 튀어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예
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여러분.
그레이브스가 말하자 군중들은 잠잠해졌다
[제 말이 흑시 여러분들을 기분 나쁘게 만들더라도 결코 과장이 아
니라는 점을 알아 주십시오. 과장은 하나도 섞억 있지 않습니다.
그는 마치 그 속에 논박할 수 없는 신성한 제왕의 권위라도 담긴 듯
이 고리가 세 개 달린 한 권의 노트를 머리 위로 쳐들고서는 흔들어 보
였다.
[그리고 사실 저는 제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
습니다. 저는 저 의원나리께서 제게 걸어 올 중상 모략적인 소송에 =
해 어떤 법적인 대응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이라는 단 하나의 =
어만 빼고 말입니다. 그가 소송을 걸어도 저는 악의는 없었다고 변=
하지는 않겠습니다. 사실은 그가 소송을 걸어오기를 바랍니다. 왜냐=
면 지금부터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려 하는 내용을 려정에서
서하에 다시 한 번 외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가 자신]
더러운 부정을 스스로 인정하는 맹세를 하길 바랍니다. 아니면 그
그것을 부정함으로써, 저로 하여금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
위증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지
저는 존경하는 매클라우드 씨가 어떻게 해서 낙태 지지론자, 아니,
아 살해론자가 되었는지 그 까닭을 백일하에 밝히려 하고 있기 때문
니다.
잭은 주위에서 응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많은 눈동자들이 자기를 향
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몰리를 보았다. 그녀는 카메라맨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비디오테이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레이브스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의웠 나리, 저는 당신이 여러 해 전에, 이스트 강 건너편에서 10데
소녀를 임신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짐짓 군중들을 쭉 둘러보았다. 모두들 솔깃한 표정이었다. 군
중의 무리는 어느새 불어나 있었다.
[처음 그것은 평범한 이야기였죠. 혼전 성교, 간음의 결파 뭐 그런
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 결혼하여 아기를 낳게 하는
신의 섭리를 수행하는 대신 무엇을 한 줄 아십니까?
그는 잭을 바라보았다,
[그는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예. 맞아요! 그는 구두 수선 가게를 털
었던 겁니다. 그것도 자기를 고용하고 신뢰해 준 사람이 경영하는 가
게를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의 말에 잭은 진땀이 났다.
[그는 죽음을 위해 지불할 돈을 마련 하고자 했던 겁니다! 바로 그
거예요! 그는 흄친 돈을 가지고 만삭인 억자 친구에게
도록 하려 했던 것입니다!
낙태 수술을 받
옆에 있던 한 남자가 어깨 너머로 잭을 바라보았다.
그레이브스는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미 낙태를 시키기에는 너무 늦은 때였습니다. 안 그래요
매클라우드 씨? 신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걸 알고 있었습니
다. 하지만 당신은 그떻다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죠? 당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죄악을 범하고 만 것입니다.
그는 다시 한 번 군중을 둘러보았다.
[여러분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가 무슨 일을 저질
렀는지 아시겠습니까?
잭은 이를 악물었다.
그레이브스는 군중들 앞에 있는 한 여자의 얼굴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 동안 우리는 낙태주의자들이 태아를 죽이면서 둘러대는 그럴듯
한 변명을 신물 나도록 들어 왔습니다. 그 변명이 무엇이었습니까?
뭐? 어머니를 위해서라고요?그렇습니까?여러분 !
그는 손을 들어 군중들의 반향을 유도했다.
[낙태가 어머니를 구합니까? 그래, 낙태주의자들이 진정으로 어머
니를 구했습니까?아닙니다. 오! 신이시여, 그는 그녀를 죽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잭의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렇습니다!
그레이브스가 외쳤다.
[그는 태아를 죽이려 하다가 그만 그 어머니의 삶카지도 희생시키
고 만 것입니디.
그는 메가폰을 잠시 놓고 헛기침을 해서 목을 한 번 가신 뒤 계속 이
어나갔다.
[선택,그들은 낙태를 그렇게 부릅니다.하지만 죽음을 선택하는 =
우가 어디 있겠습니까?
윈스턴은 잭을 바라보았다.
[웃기지도 않은 짓거리야.그만 가세.
어느세 그들 뒤에도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 있었다.
잭은 그레이브스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그레이브스도 잭을 노려]
면서 약점을 찾고 있었다. 입술을 훌렁 뒤집고 두 눈은 부릅뜬 채였디
그러나 오히려 그런 태도가 약점이 된다는 것을 그는 잊고 있는 듯
다. 반면 잭은 외견상으로는 아무런 표시도 드러내지 않았다.
[자, 이제 여러분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지 저는 잘 알고 있습
니다. 억러분들의 표정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저를 믿으십시
오, 저는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묻고자 하는 커다란 질
문을 말입니다.
그는 귀에다 손을 갖다 대고 군중들의 말을 듣는 시농을 했다.
[아기, 아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렇습니다.
그는 음절마다 끊어 가며, 그때마다 주먹으로 허공을 지르면서 외쳐
댔다. .
[아기는 -.어떻게 -.되었죠?아기의 엄마가 죽었을때아기
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연단 위를 앞뒤로 걸어다니며 손가락으로 자기 입을 가리켰다.
[저는 아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압니다. 하지만 의원 나리한
테서 직접 들으면 더 제미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군중들은 잭을 돌아보고는 길을 터주며 양쪽으로 갈라섰다. 그와 그
레이브스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로 이루어진 다리가 생긴 셈이
었다.
[자, 의원 나리,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
?
잭은 어떻게든 대응을 하려고 애쓰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이제
죠
까지 정치가에게 따라붙는 온갖 호칭을 다 들어 보았다. 그의 활동 영
역이 넓어짐에 따라 그 별명의 농도는 더 짙어져 봤다. 하지만 이번 것
은 혈관을 팽창시킬 정도로 깊은 충격이었다. 그는 연단으로 나가려고
했으나 윈스턴이 팔을 붙잡었다.
[저런 바보 같은 질문에 대답할 필요는 없어.
[염려 마.
그는 그떻게 말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선 비늘딴한 셈
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갑자기 온 뉴욕이 정적에 휩싸여 버린 듯했다.
주위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다. 자동차 소리, 깡통 굴러
다니는 소리, 사이렌 소리 그 아무것도 없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4
분의 3인치 텔레비전 카메라의 베타 캠코더가 자신의 추잡한 비밀을
낱낱이 캐려고 돌아가는 소리라에는 없었다.
그는 한 발 앞으로 나가 멈춰 섰다.
[신사 숙녀 여러분.
그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이 말한 것 가운데 아주 조금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은 거짓말입니다. 저는 43번가 하수도 속에 처박힌 듯한 더러운 거짓
말에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도 얼굴에 나타난 품위를 보니 제
가 그런 더러운 중상 모략에 농락당하기를 기대하치는 않으시는 것 같
군요.
군중들은 아무 반응 없이 그저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
요한 것은 브루클린에서 온 열일곱 살 짜리 소년이 저지른 죄가 아니
기 때문입니다. 저 감동적인 연설가께서는 그지없이 실망하시겠지만.
저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말씀드리자면 너무도 평냄하억 아마 그 얘기
를 들으면서 하품을 하지 않는 사람은 저 자신밖에 없을 겁니다. 사실
저 자신도 하품을 참을 수 있을지 자신하지는 못합니다만,
그는 낄낄거리는 소리라도 뤄어나올 줄 알았으나 군중들에게서=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현재, 이곳에서, 억러분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문제
있어서 제가 어떤 입지를 차지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레이브
씨에게는 그토록 소중한 일이 저에겐 어떤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포함
해서 말입니다.
그레이브스는 뭔가를 말하려고 메가폰을 들었으나 잭이 제지시켰
다.
[뱃속에 든 태아의 운명을 결정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임신한 어머
니뿐입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행동도 아니고 붕주의한 행동도 아닙니
다. 그것은 도덕적인 행위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25년 전 제기
브루클린의 어린 소년이었던 때도 진리였고 오늘날에도 진리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저 사람에게서 저에 관해 무슨 말을 들었든지 간에
내일도 여전히 진리로 남을 것입니다!
윈스턴은 잭의 연설이 언제 끝나야 할지 알고 있었다. 그는 잭의 한
쪽 팔을 끼고는 윙스로 발길을 옮겼다. 야유의 함성이 드높은 와중에
서 미약하나마 박수 갈채도 터져 나왔다.
[저 말은 자신이 한 일을 부인한 게 분명히 아닙니다.
그레이브스는 메가폰에다 대고 소리쳤다
[저것은 범행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나를 고소하시오! 부탁입니다!
날 고소해!
잭과 윈스턴은 군중들을 헤치며 걸었다. 카메라 기자가 어깨에 맨
카떼라의 커다란 렌즈를 들이댔다
[여자 친구가 낙태 수술을 받던 도중 죽었다는 젓이 사실입니까?
어떤 기자가 잭의 얼굴에 마이크를 들이대며 물어 왔다
[그래서 당신이 낙태권을 지지하는 겁.니까?
다른 기자가 외쳤다.
[여자 친구가 누구죠. 의원님?
그들은 새떼처럼 달려들었다.
[그 여자의 이름이 윌니까?
[고소하실 건가요?
잭은 자기의 보조에 맞추어 뒤로 물러나면서 계속 돌아가는 카메라
를 보면서 자신이 화면에 어떻게 비칠는지 상상이 갔다. 대답을 회피
하고 침묵만 지키는 마피아 두목처럼 보이겠지.
[아이가 있습니까능
또 한 사람의 기자가 소리쳤다.
[어머니는 현재 어디 있습니까?아직 살아 있나요?
[아이는 아들입니까, 딸입니까?
[아이 어머니는 어떻게 됐죠?
[아이는 어떻게 됐죠?
어깨 너머로 몰리 맥코믹이 카떼라맨과 함께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
였다. 그가 25년간 스스로에게 던져 왔던 것과 똑같은 그 지긋지긋한
질문을 던져 을 또 다른 한 명의 기자라는 느낌말고는 그녀에게도 별
다른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도대체 아이의 엄마에 게 일어났던 일은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십
프
[임마, 어서. 패 돌려.
루보프 장의사 사무실 주방에는 다섯 명의 일류 포커 선수들이 모여
있었다. 앵거스 브로디, 잭 매클라우드, 보조, 지미 그리고 장의사집
아들 해리스 루보프였다.
지금 막 진짜 도박이 벌어지려는 참이었다. 브로디 앞에는 돈이 수
북이 쌓여 있었다. 그는 스무 살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그가 200달러
를 던져 놓고는 잭에게 도전적인 몸짓으로 단둘이 한판 붙자고 하는
중이었다. 게임의 룰은 간단했다. 각자 단 한 장의 카드만을 뽑아서는
수자? 놀으 쪼이 이기느 것이었다
잭의 마음 속에 갈등이 일었다. 그는 시계를 보았다. 거의 시 0
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니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 시간인 것이었
다. 하니의 출산 예정일은 다음 달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그것은 잭이
시러큐스에 갔다을 왕복 버스표와 사홀 밤 정도의 숙박비 그리고 한
다발의 장미를 구입할 수 있을 만한 현금이 펄요하다는 것을 의미했
다
브로디의 도전을 받아들여서 이기게 된다면, 지금 갖고 있는 것까지
합쳐서 40달러가 된다. 잭의 마음이 동했다. 그러나 만일 패하게 된
다면 단 한 푼도 없는 알거지가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됐어, 안 할래. 그냥 보통때 치던 식으로 놀자구.
그는 볼펜을 집어 들고 손가락 사이에 낀 채 돌리며 말했다.
브로디가 다시 카드를 섞었다.
[그럼 이떻게 하자. 어떤 식으로든 네가 돈을 잃지 않도록 해주지.
네가 이기면 내 돈 200달러까지 다 가져 가고, 만일 진다면 네가 건돈
200달러만 그냥 가져 가라구,그럼 어때?
잭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조건이 뭐지?
[조건은 없어. 내가 이겨도 너는 네 돈은 챙기는 거야. 다만 네가 지
면 아래층에 내려가서 제미를 좀 보면 돼. 그러니까 너는 어떤 경우에
도 손해는 보지 않는 거지.
브로디의 말에 장단을 맞추듯이 지미가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브로디는 농담하는 거야.
해리스 루보프가 손바닥으로 코를 문지르면서 말했다. 잭은 브로
를 노려보았다.
[헛소리 집어치우코 카드나 돌려.
브로디는 짐짓 놀란 척하며 양 손바닥을 펼쳐 밖으로 들어 보이고=
단짝인 지미를 돌아보았다.
[야,지미.쟤가 달알 달린 놈이야,아니야? '
그리곤 다시 잭을 향해 말했다
[좋아,그럼 이렇게 해보자구.농담을 한 대가로 팔러 더 걸게.
그는 던져 놓은 200달러 옆에다 20달러짜리 다섯 장을 세어 밀어 ;
았다.
그 돈 뭉치를 보자 잭의 충동을 잡아매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
나갔다.
[만일 내가 진다면.뭘 하면 되는 거야?.
[대단한 건 아니야.아래층에 가서 총각 파티를 하면 돼.
[자, 친구들. 시작해 보자구.
해리스가 말했다.
그러나 잭은 볼펜을 손가락 사이에 넣고 이리저리 돌리며 계산만 할
뿐, 선뜻 나서질 않았다.
브로디는 떠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카! 저 자식 저거 정말 사람 감질나게 만드네. 좋아, 잭, 내 마지막
으로 한 가지 더 양보하지. 네 깜등이 친구 윈스턴이 어떤 처지에 있는
지 알지? 만일 네가 나와 한판 붙는다면 내 그 깜둥이 자식한테 받을
빚을 깡그리 잊어버려 주지. 그럼 되겠어?
잭은 윈스턴과 브로디의 거래를 잘 알고 있었다. 윈스턴이 녀석에게
돈을 좀 가져다 썼고 대신 그는 세인트 줄리앙스와의 농구 시합에서
일부러 져주겠다고 약속을 해버렸다. 그러나 막상 경기에 임해서는 차
마 그럴 수가 없었다. 윈스턴이 종료 부저와 함께 성공시킨 슛으로 그
의 팀이 2점 차로 승리하게 됐다.
어느 날 오후, 잭이 윈스턴의 집에 놀러 갔다가 브로디가 윈스턴의
등을 타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놈의 깡패 패거리들이 그 둘을 에워
싸고 있었다. 잭이 달려가자, 윈스턴이 갑자기 미친 듯이 악을 쓰며 몸
부림을 쳐댔다. 잭이 가까이 다가서자 브로디는 윈스턴을 풀어 주고는
사과처럼 빨갇 시보레를 몰고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윈스턴은 몸을 털고 일어나서 그간의 시정을 잭에게 이야기해 주었
다. 그러나 왜 그가 미친 듯이 날뛰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
았다,
잭은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있는 브로디에게 물었다
[네가 윈스턴을 깔아뭉갰던 날을 기억하고 있지?그날 대체 네가 무
슨 말을 했길래 그 친구가 그렇게 미쳐 날뛰게 됐는지 얘기해 줄 수 있
겠냐?
브로디는 놀란 표정이 퍼었다.
[흐음. 앵거스 브로디와의 약속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교육시
켜 주고 싶었다. 왜? 너도 내 말을 이해한다면 특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난 네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는걸.
브로디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카드를 쳐다보았다,
[나는 윈스턴에게 녀석의 할아버지가 남부 출신이라는 것을 일러
주었지. 하지만 그 정도 얘기만 해줬다간 그 모자라는 깜둥이 자식이
우리가 서로 평둠하다는 뜻인 줄 오해할까 봐 한 마디 더 해줬어. 우
리 할아버지집 거실 선반 위에 그 자식 할아버지의 머리통이 장식돼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야.
잭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볼펜을 셔츠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카드를 섞어.
[이미 섞었어. 임마.
지미는 패를 떼어 잭 쪽으로 밀었다. 잭은 그 카드를 받아 가지고는
무지개 모양으로 펼쳐 놓았다. 브로디는 잭의 눈을 쳐다보면서 무지가
의 중앙 부분에서 카드를 하나 뽑아 엎어놓은 채로 자기 앞에 가져=
놓았다. 잭이 카드를 뽑으려고 손을 내밀자 브로디가 그의 팔목을 ;=
아 눌렀다.
[카드를 뿜을 때는 내 눈을 봐, 잭.
잭은 2시 방향에서 한 장을 뽑았다. 그도
았다.
카드를 자기 앞에 엎어=
[야, 이것들 봐라. 야, 이건 친선 게임이야. 좀 심하잖아.
뾰
해리스가 말했다.
[닥쳐.
브로디가 말하자 테이블 주위가 잠잠해졌다.
[내가 먼저 뒤집겠다. 잘 봐, 임마.
그는 주저없이 카드를 펼켰다. 다이아몬드 6이었다, 잭의 콧구멍이
넓어지면서 폐 속에서부터 뜨거운 김이 새어 나왔다. 승산은 그에게
있었다.
[밤새 기다리게 할 참이야. 카드를 펴.
브로디가 말했다,
잭이 카드를 뒤집었다. 브로디의 눈이 휘등그래졌다
숫자는 4였다.스페이도 4
신음소리와 휘파람소리가 뒤섞여 터져 나왔다 필쳐진 카드의
[따라 와. 잭.
마룻바닥에 끌리는 의자 다리의 덜그럭대는 소리가
뒀다.
방안을 가득 채
[이것들 보, 아버지가 오시면 우리는 진짜 곤란해져.무슨 말인
지 알아?
해리스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브로디는 손가락으로 해리스를 가리키며 보조에게 말했다,
[해리스가 보기 좋게 묶이고 싶은 모양인데 그렇게 해줘.
그는 돌아서서 모두를 이끌고 아래층 시체 보관실로 향했다. 해리스
는 손을 들어 보조의 행동을 저지시키고는 일행의 뒤를 쫓아갔다.
브로디는 시체실의 철문을 열었다. 포름알데히드 냄새가 치과병원
의 에테르처럼 확 풍겨 나왔다. 잭은 약간 현기증을 느꼈다. 브로디가
천장에 매달린 전둥을 켰다. 전둥은 방 한가운데 놓인 스테인리스 탁
자를 환히 비추며 흔들거렸다.
브로디가 서랍이 빼곡히 들어찬 한쪽 벽으로 가서 여러 서랍 중 하
나의 손잡이에 손을 얹었을 때. 잭도 손을 뻥어 그것을 잡았다. 서랍을
빼내도 그 안은 비어 있을 것이다. 자신은 놀란 척 땀을 닦으며 이떻게
말하면 될 것이다.
'야, 브로디. 겁나서 죽을 뻔했잖아. 이 짓을 또 하느니 차라리 200
달러 잃는 편이 낫겠다.'
그러면 다들 한바탕 낄낄대고는 서로 어깨를 툭툭 쳐가면서 다시 윗
방으로 올라가 카드를 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장난이 아니었다. 브로디는 서랍을 잡아당겨 끌
어냈다. 사람의 시체가 분명한. 횐 천을 덮은 것을 잭은 보았다. 안쪽
끝에는 벌어진 두 발이 삐죽이 드러나 있었고 바깥쪽 끝을 덮은 시트
에는 죽은 여자의 얼굴 윤곽이 흐릿하게 나타나 있었다. 잭은 시체가
일어나 '놀랐지!'하고 외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리 와봐, 잭.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여자와 그 짓을 한다는 건 예
의바른 행동이 아니겠지.
브로디는 무릎을 살짝 굽히고 자신의 사타구니를 만졌다.
잭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꼼
짝도 안 했다. 그는 브로디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가 깔깔대며 바닥을
구르면서 잭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저 표정 좀 봐.' 하고 말하길 기대
했다. 그러나 브로디는 철제 탁자의 한쪽으로 걸어가 지미와 보조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그 둘은 서랍을 완전히 열고 시체를 팔로 안아 올려서 램프 아래에
있는 탁자 위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고 나서 마치 공동 묘지에셔 관을
메주는 사람들처럼 뒤로 물러나 묵묵히 기다렸다. 해리스는 겁에 질려
바라보고만 있었다.시체실의 분위기는 눅눅한 적막으로]가득 찼다.
브로디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곤 시트를 씌운 시체 너머로 연기를
뿜었다. 연기가 퍼지는 동안 그는 딱 소리를 내며 라이터를 닫으며 곰
광내 나는 적막을 캐뜨렸다.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썩 바지 벗어.
잭은 무슨 일아 일어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곧 시계 종이 울리고 깨어나면 그뿐인 꿈이기
를 바라며 서 있었다. 그는 자기를 구원해 줄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
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쳐들어 램프의 줄을 보았다. 손이 미치지 않았다. 그는
주위에 땅을 파는 데 쓰는 연장 따위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해리스의 아버지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으면 했
지딴 주위는 오로지 무거운 침묵뿐이었다.
혹시 브로디를 말려 주지나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다른 친구들을 둘
러보았지만 그들은 전등이 만들어 낸 그림자 속에 숨어 있을 뿐이었
다. 침을 질질 흘려대는 세 명의 노인네들처럼 아드레날린을 분비해
가면서 곧 벌어질 스트럽 쇼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라곤 잭과 브로디밖에 없는 셈이었다. 브로디
는 손가락을 까딱여서 잭에게 테이블 위로 올라가라고 지시했다
[우린 내기를 걸었고 넌 졌어. 잭. 이제 지불을 하셔야지.
[왜 이런 짓을 해야 하지. 이유가 뭐야?브로디.
[넌 졌어.그게 이유야.
브로디가 소리쳤다
[게임하고는 상관없어. 처음부터 음모가 있었어. 그게 꿔지?
잭도 되받아 소리쳤다.
[무슨 음모 임마! 난 그저 네놈이 밉고 싫을 뿐이야!
브로디는 허공에다 헛주먹을 연신 날려대며 으르렁거렸다
잭은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넌 지금 나에게서 뭔가 중요한 것을 빼앗아 가려는 거지? 이건 치
워 버리고 어디 이리 와서 한판 붙어 보자. 응?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치켜 들었다.
그의 모습에 브로디는 약간 흠칫거렸다. 덩치도 크고 주먹다짐에도
능숙한 자신에게 대드는 잭의 기세가 그를 조금은 질리게 했던 것이
다. 잭은 자신이 해냈다고 생각했다. 그는 주먹을 내리고 시체를 내려
다 보았다. 시트 밑으로 시체의 발끝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그는 다가
가서 그것을 다시 덮어 두고는 브로디를 향해 이를 갈았다.
[이 정신병자 같은 새끼 !
잭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브로디의
두 손가락이 마주치면서 '딱' 소리가 울렸다. 지미와 보조가 잭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잭은 일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왼쪽 주먹을 날려 지미의 얼굴을 강타
했다, 지미가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보조는 잭의 등뒤로 뛰어올라 양
팔로 그를 휘감고 한 쪽 다리로는 그의 양 무릎을 눌렀다. 정신을 차리
고 일어난 지미가 잭의 배를 후려갈겼다. 그러고 나서는 잭의 벨트를
잡고 그것을 풀기 시작했다.
해리스가 소리쳤다
[이것들 봐, 진정들 하라구.
잭은 다리 하나를 빼내어 지미의 배를 걷어찼다. 지미가 또다시 ]
가떨어졌다. 잭은 보조의 손아귀로부터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을 쳤다
브로디는 테이블 한 쪽 켠에 서서 스트컵 쇼 반주 음악을 콧노래로
얼거리며 시체를 덮은 시트를 발끝에서부터 위쪽으로 조금씩조금
끌어올리고 있었다.
보조는 잭의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찔러 넣곤 두 손으로 그의 목=
졸랐다. 그리고는 있는 힘을 다해 잭의 얼굴을 바닥에 찧었다. 잭은 빠
져 나올 수가 없었다. 그는 살아 있는 십자가였다. 그는 테이블 앞까지
끌려갔다. 잭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고 머리를 들어 보려고 했
다. 하지만 목을 누르고 있는 보조의 양손 때문에 자신의 발과 지미가
지퍼를 열어 놓은 바지 자락밖에는 볼 수 없었다. 잭은 발을 바닥에 대
고 버텨 보았으나 아무 소용도 없었다. 보조는 밀고 지미는 당기면서
그를 끌고 갔다.
탁자 위에 있는 시체가 잭의 시야에 들어왔다.처음에는 한 쌍의발
과 횐 발목. 파르스름한 허벅지. 볕은 고동색을 띠고 있는 삼각지대.
배를 가로지른 상처, 그 상처를 꿰맨 바늘땀과 시체에 칠한 노란색 방
부제. 좁은 가슴 양켠에 하나씩 자리잡은 부드러운 젓가슴 가느다란
목 딸기빛 떠리. 아름다운 얼굴
[아-악
그 얼굴은...... 바로 하니의 얼굴이었다.
[오! 하느님 맙소사.
잭과 동시에 그녀를 알아본 지미가 나지막이 뇌까렸다.
보조는 잭의 어깨 너떠로 그녀를 알아보고는 잭을 움켜쥐고 있던 손
을 슬그머니 풀었다. 잭은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다, 입은 쩍 벌어지고
눈동자마저 움직이질 않았다. 그의 영혼은 육체를 떠나 허공을 맴돌며
먼 곳에서 이곳의 광경을 지켜보았다. 모든 시간은 정지해 있었다. 그
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
는 시체 쪽으로 손을 뻗어 하니를 만졌다. 신기루가 아니었다
[오, 하느님!
해리스가 중얼거렸다.
[둬야?왜들 이러는 거야?
브로디가 물었다. 그는 하니 오코너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
문에 그녀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뭐야,도대체 꿔야?
잭은 손가락으로 시체에 나 있는 제왕절개 수술 자국을 더듬었다.
[야 뭐 하러 그런 큰 상처를 주무르고 있냐?그 척자 망다리 사이
에 좀더 작은 상처가 있다구. 날 믿어. 그건 꿰매지 않았어.
브로디의 말이 멀리서부터 잭의 귓속으로 천천히 파고 들어왔다. 그
는 브로디를 보자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아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피
도 없는 듯 냉랭한. 연기를 피워 올릴 만큼 끓어오르는, 얼었다, 녹았
다를 반복하는 한 덩어리의 드라이 아이스 같은 그런 정신으로 그는
싸늘하게 내뱉었다.
[난,널.죽 -일 -거-야,
브로디는 놀랐다 그러나 짐짓 태연히 지컬였다.
[누가 날 죽여? 잭, 네가?체 !
잭은 브로디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
서 탁자를 돌아 그에게로 다가갔다.
[난.널,죽 -일 거-야.
[이게 뭐하는 짓이야?
브로디가 외쳤다. 그의 친구들은 또다시 그늘에 서서 지켜보고만 =
걸음을 멈추고 섰다. =
었다. 잭은 브로디 앞 2미터쯤 되는 거리에서
사이에는 이제 아무런 장애물도 없었다.
브로디의 이마에 진땀이 배어 올랐다. 그는 지금 눈앞에 보고 있
이런 종류의 광기를 이전에 한 번 려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광=
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떨어뜨리고 그것을 발로 밟아 꼈다.
사실 그는 한바탕 싸움질을 벌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젠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
잭이 한 발자국 더 다가섰다. 브로디는 체중을 한 쪽 발에 모우고는
가 싸움판에서 흔히 써오던 속임수를 또 써먹으려 했다.
[어?이게 뭐지?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손바닥을 핀 채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자기가 펀치를 날려 한 방에 쓰러뜨릴 수 있을 만큼 잭이 오랫동안
그쪽을 바라보길 바라면서.
그러나 일은 엉뚱하게 돌아갔다. 잭이 그 사이 한 발을 더 내딛고 풋
블에서 킥을 하는 것처럼 세차게 그의 양다리 사이를 걷어찬 것이다.
브로디가 쓰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숨은 목 근처에서 껄떡거리고 튀
어나올 듯 두 눈이 부풀어올랐다. 핏줄이 곤두섰다. 그는 두 손으로 사
타구니를 움켜쥐고는 무릎을 끓은 채 데굴데굴 굴렀다. 잭은 그를 덮
쳐 머리카락을 한 움큼 부여잡고는 머리를 뒤로 렉 잡아당겼다. 그리
고는 다른 한 손으로 셔츠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이빨로 뚜껑을 연
다음 뾰족한 심을 브로디의 오른쪽 콧구멍에 찔러 넣었다. 모두들 얼
어붙었다 잭은 플라스틱 뚜껑을 브로디의 이마를 겨냥해서 뱉어 냈
다.
브로디는 떨리는 손을 들어올려 코를 막고 있는 잭의 팔목을 잡았
다. 잭은 브로디의 머리채를 더욱 세차게 뒤로 잡아당기며 펜을 깊숙
이 밀어 넣었다. 그러자 브로디의 등뼈가 뻣뻣해지면서 양손을 벌벌
떨었다,
보조가 끼여들었다.
[이런 개자식.......
[입 닥쳐 !
잭은 숨을 헐떡거리며 외쳤다
지미가 보조의 가슴에 손을 대고 그를 말렸다. 다시 정적에 휩싸였
다.두 마리의 짐승이 헐떡거리는 소리말고는.......
잭은 몸을 아래로 굽히고 브로디의 귀에 입을 가져 갔다. 그는 숨을
씩씩 거리며 말했다.
[생물 선생님 이름이 피셔였지?
브로디는 대답하지 않았다. 잭은 머리를 확 움켜쥐었다
[으응-.
브로디가 대답했다.
[그가 개구리를 탁자에 핀으로 꽂았던 때를 기억해?
잭은 속삭였다.
[으응-.
브로디의 쉰 목소리가 들렸다.
[개구리의 작은 다리가 떨리면서 퍼덕저리던 것도 기억해?
[으응 -
[선생님이 그 다음에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해?
[아-니.
브로디가 말했다.
잭은 침을 꿀꺽 삼키고 호홉을 가다듬었다.
[네놈이 멍청한 건 이상한 일이 아냐. 넌 학교에서 주의가 산만했=
니까.
브로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네놈이 주의가 산만했었다는 사실은 여기선 중요할 게 1
어. 왜냐하면 어쨌든 내가 다음 이야기를 해줄 테니까. 피셔 선생님-
뜨겁게 달군 핀으로 개구리의 눈을 찔렀지. 그리고는 핀이 뇌에 닿-
때까지 밀어 넣었어.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후 -후.
잭은 입김을 뿜었다.
[다리가 떨리는 것이 멈췄지.
브로디는 쉰 소리를 내면서 잭의 손을 자기 코에서 떼어 내려고 했
다. 그러나 잭은 그의 머리채를 뒤로 잡아당기면서 펜을 더욱 깊이 쑤
셔 박았다. 피가 콧구멍으로부터 쏟아져 나와 그의 뺨을 타고 귓속으
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 안 그러면 내가 지금 당장 너를 그 개구리꼴로 만들
어 주겠어.
브로디는 가만히 누워 피와 점액을 질질 홀리고 있었다. 잭은 이곳
으로 타고 온 버스 안에서 으깨 죽인 바퀴벌레를 생각했다. 그는 눈을
깜박거려서 눈가에 맺힌 땀방울을 떨어 버렸다. 브로디가 곤충처럼 보
였다. 이놈도 그떻게 으깨 버린다면 기분이 얼마나 좋을지도 상상했
다.
그리고 그는 하니를 떠올렸다
[그녀를 다시 넣어 둬.
그는 차갑게 말했다. 다른 세 녀석들이 탁자로 달려가 시트를 그녀
몸에 덮고 시체를 다시 서랍 속에 밀어 넣었다.
[자, 이제 꺼져 !
잭이 말했다.
[제발 그만 해!
지미가 애원했다.
[물러서 !
잭이 주먹에 펜을 쥔 채 소리쳤다. 지미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브로디는 그녀가 네 여잔 줄 몰랐어.
잭은 그 소리룰 듣고 멈칫거렸다. 지미의 얘기가 정곡을 찔렀다
그때, 보조가 도와준답시고 끼여들었다.
[맞아,그리고 그녀는 브로디가 강간하기 전에 이미 죽어 있었어.
그가 꿔하기 전!
이젠 끝이다. 잭의 목근육이 뻣뻣해졌다. 그는 손바닥을 펜 끝에 대
고 브로디의 뇌를 향해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밀어 넣었다.
브로디는 비명을 질렀다. 등은 활처럼 휘어지고 머리는 꺾였다. 피
가 코와 입에서 촬촬 쏟아져 나왔다 그때 펜 끝이 딱딱한 연골막에 닿
는 바람에 끝이 돌아갔다. 그 틈에 브로디는 얼굴을 돌릴 수가 있었다.
그는 잽싸게 잭의 손목을 쳐서 펜을 떨구게 했다.
잭은 왼손으로 펜을 집어 들고 꼭 잡았다. 브로디는 숨을 헐떡이면
서 잭을 꽉 붙들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사냥개의 입 안에 들어간 야생 족
제비가 한 순간이라도 더 자비를 구원항듯이 ...
잭은 피에 젖어 끈적끈적한 펜을 주먹으로 꽉 죄고는 다시 한 번 졍
로디의 콧구멍에 찔러 넣었다. 지금 그는 옳은 일을 하고 있는 중이=
다. 마음이 약해질 필요는 없다.
그는 어떤 각도로 찔러 박아야 가장 효과적일까를 생각하며 펜을 ]
다가 그것의 형체가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
느꼈다. 그는 피 묻은 오른손을 들어올려 눈으로 가져 갔다. 땀을 닦=
다시 보았다, 브로디의 머리 한 쪽도 없어졌다. 그 자리를 희미하게 [
온처럼 빛나는 벌레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에는 한 번도 려어 ]
지 못한 눈의 맹점(돌)현상이었다. 그는 환상을 없애려고 눈을 깜'
거렸으나 눈꺼풀을 닫아도 그것들이 헬리콤터처럼 공중을 떠다니
것이 보였다
그의 집중력은 깨지고 분노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의 감각이 다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이 숨쉬는 소리를 들었고 땀 냄새를
았고, 인간의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맹점이 커짐에 따라 그의 피
차차 식어 갔고, 마음은 차분해졌으며 그의 이성은 자기가 왜 이런
을 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게 되었다. 사태를 저울질해라, 결정을
내려라, 무엇을 할지 경중을 따져 보자.
그는 브로디의 코에서 펜을 빼냈다.
브로디는 무릎을 들어올려 태아처럼 몸을 말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 윌굴었다. 잭은 브로디의 얼굴에 있는 얼룩들을 보았다. 그는 일
어서서 문쪽으로 걸어갔다. 보조와 지미가 브로디 쪽으로 가서 피를
닦으라고 셔츠 자락을 내밀었지만 브로디는 그것을 탁 쳐냈다
[넌 이제 죽은 몸이야, 잭!
그는 언청이같이 쉰 목소리로 외쳤다
[저 여자는 너하고 지냈던 것보다 탁자 위에서 나하고 함께 했던 순
간이 훨씬 더 즐거웠을 ?- 야.
잭은 이미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한 걸음에 두 개씩. 브로디의 말이
탄피처럼 그의 등뒤애 떨어졌다. 그는 주방을 지나 자기 코트로 보이
는 옷을 집어 들고 돈을 챙긴 뒤 뒷문을 주먹으로 두드려 열었다.
주차장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그는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브로디
의 시보레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곳으로 걸어가서 후드에 믐
을 굽히고 토했다. 그리고는 범퍼에 머리를 기대고 잠시 숨을 가다듬
었다
몇 분이 지나자 그는 맹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참을 수 없는 편두
통이 들어차는 것을 느꼈다.
그제서야 그는 왼손에 뭔가가 들려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볼펜이었다. 그는 그것을 자동차 옆면에다 대고는 헤드라이트 쪽으로
북 그어 나갔다. 그러자 그곳에는 찍혀나간 금이 생겼다. 마치 하니의
배에 나 있던 상처처럼. 그는 펜을 던져 버리곤 마구 뛰기 시작했다.
잭이 탄 택시는 시러큐스 중심가에 있는 오난다가 민주당 중앙위원
회 사무실에 당도했다. 그는 거기서 프리츠 올센과 그의 아내 진저를
만나 상원에 입후보할 계획과 다음 달에 있을 위원회의 연례 만찬에서
할 연설에 관해 토론했다
한편 그가 시러큐스에 온 까닭은 개인적인 용무도 있었다.
어쨌든 그는 뉴욕을 벗어났다는 것이 기뻤다. 어제 저녁 뉴스에서는
그레이브스의 기자회견 장면이 보도되었다, 그는 화면에 비친 자기2
모습을 지워 버릴 수가 었었다. 비난을 부인하기 위해 짐짓 미소를 =
으며 거리를 걸어 내려가는 옹색한 모습이었다.
빌어먹을, 이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 것이었다.
위원회 사무실에서의 회합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잭이 막 일어]
려할 때 진저 올센이 물었다.
[만찬에 부인도 모시고 오실 거지요?
[전 결혼 안 했습니다.
[어머나!
그녀의 얼굴이 약간 변했다
프리츠가 그를 도와주려고 나섰다.
[잭은 워싱턴에서 가장 아름답고 재능 있는 변호사와 함께 살고 있
다오. 빅토리아와 함께 오시겠죠. 잭?
[글쎄요.그렇지 못할 것 같은데요.
[음.
프리츠의 안색도 변했다.
잭이 웃었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3주 후에 다시 보지요.
노아의 방주 시대로부터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짝을 짓거나 물에
빠져 죽거나 둘 중 하나다. 그는 건물을 뒤로 하고 차로 향했다.
그 나무로 지은 작은 집은 동부 시러큐스에 있었다. 그 동네는 2차
대전 후에 생겨난 주거 지역이었다. 한때는 산뜻한 마을이었으나 지금
은 그굿에 사는 사람들만큼이나 낡고 헐어 빠진 곳이 되었다. 아이디
오코너는 하니 친할떠니의 동생이었다.
잭이 시러큐스를 찾은 개인적인 용무란 바로 이 87세의 할머니를 만
나 보는 일이었다. 임신기간 동안에 하니는 그녀와 함께 지냈었다. 따
라서 이 할머니야말로 그가 아는 한 하니와 관련된 과거에 대한 비밀
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던 것이다.
사실 잭은 몇 년 전 다른 용무차 시러큐스에 들렸던 길에 이 집을 방
문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집에 아무도 없었고 그 길로 뉴욕
에 돌아와서는 이곳 일을 잊고 지냈었다. 잭은 종이에 적힌 주소를 다
시 한 번 확인하고는 부채꽃 장식이 달린 덧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문이 짤깍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횐 머리에 쪼글쪼글한 얼굴의
할떠니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내밀었다
[오코너 부인이십니까?
그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물었다,
'
[그런데요?
[제 이름은 잭 매클라우드입니다.
[누구요?
[잭 매클라우듭니다.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할머님의 조카손녀인 하니와 브루클린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
습니다.
[메리 테레사요?
[예. 메리 테레삽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메리 테레사는 죽었어요.아이를 낳다가 죽었지요.
그는 잠시 기다렸다. 그녀는 어쨌든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거실로 들어가 재킷의 단추를 끌렀다. 뜨거운 햇볕을 피하?
위해 창마다 차양이 처져 있었다. 그래서 방안엔 그림자가 지고 곰=
내가 났다. 소파와 의자는 낡아빠진 초콜릿색 벨벳으로 씌워져 있었]
팔걸이 부분엔 레이스 달린 인형들이 놓여 있었다. 떡갈나무로 만=
바닥은 반들반들 닦여 있었다 등받이가 높은 흔들의자의 발 놓는 =
분에는 작은 오리엔탈 러그가 놓여 있었다. 그는 소파 끝에 걸터앉1
고 노파는 흔들의자에 앉았다.
[하니의 부모님들이 어디 계시는지 아십니까?
그가 물었다.
[오 이런. 하니의 어머니는 몇 년
전에 플로리다로 이사했다우. '
편이 죽은 직후에 말이우.
[남편이 돌아가셨다고요?
[뉴멕시코에 있는 두쿠마리에서
치어 즉사했다우.
저녁 식사하고 돌아오다가 트럭
[그분은 뉴멕시코에서 어떤 일을 했나요?
그녀는 떵청한 표정이 되었다.
[누구 말이우?
[그녀의 남편이오, 메리 테레사의 아버지, 조지 말입니다,
노파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지는 뉴멕시코에 있지 않았다우. 그건 래리였지.
[조지는 어떻게 됐나요?
[폐렴에 걸려 죽었지. 가만있자, 그게 언제였더라?
그녀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잭은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는 하니
가 이곳에서 숨어 지내는 동안 바로 이 자리에 앉아 그가 보낸 편지들
을 읽으면서, 시계를 보면서. 날짜를 세어 가고 있는 모습들을 상상해
보았다. 둘 다 열일곱 살이던 시절이었다. 언젠가 한 번 그녀의 사망
신고서를 본 일이 있었다. 거기에는 사망 원인이 조산중에 일어난 과
다한 출혈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이외의 사항에 대해서
는, 특히 아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인구 통계국에도 의
뢰를 해보았으나 그갛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성()-자기 성, 그
녀의 성,그녀 고모할머니 성,그녀의 가운데 이름 -을 가진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당시 하니의 부모님들에게서 들었던 얘기가 그가 아이에 관해 얻을
수 있었던 정보의 전부였다. 그들의 얘기로는 아이도 함께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 모두 아주 옛날의 이야기였지만 그는 아직도 이 방안에
서 하니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이야기를 좀 해주시죠.
그가 큰소리로 말했다.
[소리칠 필요 없다우. 내 귀는 아직도 끄떡없다우. 정신이 가끔 오
락가락해서 그렇지.
[저는 메리 테레사가 여기 살았을 때의 일에 관해서라면 뭐든 알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녀가 임신했을 때 말입니다.
아이다는 멍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면서 의자와 함께 흔들거렸다.
[저는 꼬치꼬치 캐묻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만,오코너 부인.
[난 미스예요. 결혼한 적이 없지.
[아. 현명한 분이시군요.
[꿔가 현명하다는 거죠?
그녀는 정신이 완전히 나가 있지는 않았다.
[하니의 아기가 어떻게 됐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메리 테레사의 아이 말이우?
[예, 떼리 테레사요.
[거기에 대해선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우.
[박하차 좀 드실라우?
그가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쓴맛 나는 약용차였다.
[주십시오.
그가 말했다.
[요즘엔 진짜 차를 만들 줄 몰라요. 내가 어렸을 적
이후로는 쭈욱
그래왔지.
=녀는 흔들의자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노파는 장미 잎사귀차
와 민들레 수프 따위를 만드느라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통에 잭이 무
슨 말을 해도 귀에 들리지 않는 듯했다.
몇 분 뒤 노파가 두 개의 찻잔을 들고 거실로 돌아왔다. 하나는 잭1
게 건네주고 나머지 하나는 흔들의자에 앉아 자기의 무릎 위에다 올;
놓았다.
[그러니까 할머니께선 메리가 아기를 가졌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1
는군요?
그는 물었다.
노파는 눈이 가늘어지며 그를 쳐다보았다.
[왜 그런 걸 묻지?
[그녀는 저의 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찻잔 너떠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는 의자 위에서 부드럽게 홈들거렸지만 차도 엎지르지 않았고
정보도 흘리지 않았다.
[그녁의 어머니는 어느 누구도 그 사실에 대해 아는 것을 바라지 않
았다우.
[무엇을요?
[그녀의 어머니는 여러 해 전에 플로리다로 이사했어요.
그것은 노파가 아까 한 말이었다. 그녀는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글쎄,편지 한 퉁 안 한다니까.
[아이가 사내였나요, 계집애였나요?
[난 몰라.
[모르신다고요?
[모른다오.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그래서 그도 가만히 있었다.
[아이를 본 적이 없다우. 그녀의 어머니는 아이가 사산되었다고 했
지.
그녀는 회색 스웨터에서 한 오라기의 잔털을 메어 내 바닥에 버렸
다
[새 스웨터에 이런 게 붙어 있을 게 뭐람.크리스마스 때 받은 건데
이것 좀 보슈.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니면 내 생일 때던가?이런, 잘 모르겠네.
그녀는 찻잔을 바라보면서 부드럽게 흔들거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십니까?
잭이 물었다.
[누구한테?
[아기한테 말입니다.
[무슨 아기?
[메리 테=11사의 아기 말이에요.
제기랄
[사산이었다고요?
그녀는 보푸라기를 또 떼어 냈다.
[말할 수 없다우.
잭의 뺨이 붉어졌다.
[그렇다면 사산이 아니었다고 생각하신다는 겁니까?
[사산이었어요.우리 하니의 아기 -메리 테레사의 아기 -말
이야.
[사산이었다고 믿으십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서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마지막 키드릉
내보일 차례였다.
[제가 그 아기의 아버집니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당신이 아버지라고?맙소사!
그녀는 악상는 소리를 냈다,
이제는 그가 당황스터웠다.
[제가 꿔 이상한 이야기라도 했나요?
[당신도 먼젓번 그치도 다 이상해. 어쨌든 당신네들은 둘 다 아버]
가 아야.
잭은 수상한 낌새를 쳤다.
[그치라뇨?
[며칠 전에 나를 보러 왔던 젊은 친구 말이우. 아니, 몇 주 전이던
가? 어디 보자. 에드나가 나한테 피칸 열매하고 계수나무를 가져 오기
바로 전이었는데.
그녀는 비밀 얘기를 하려는 듯 몸을 앞으로 숙였다. 마침내 중요한
대목이었다. 잭도 노파의 말을 들으려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의사가 나보고 호두 같은 것을 먹지 말라고 했지요.
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참아야지. 아무렴, 노인네에게 호두는 안
좋지. 그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그치'가 누굴까?마음 속으로
상상해 보았다.
[그의 이름이 뭐였지요?
그는 딱딱거리는 억양으로 물었다
[의사?응, 거 이름이 꿔였더라?
[의사말고요, 자기가 아기의 아버지라고 했다던 그 녀석 말입니다.
[말했잖우. 기억이 안 난다고.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잭은 이 사랑스러운 할머니의 앙상한 목을 잡아 비틀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에 대해 뭐든 생각나는 게 없습니까?
그가 물었다.
[음, 그래요, 생각나는군. 그는 바로 여기 있었다우,
[기억나시는 게 꿔죠?
노파는 머리를 뒤로 젖히더니 코앞에서 손뼉을 쳤다.
[그는 아주 멋진 갈색 눈을 갖고 있었지.
그리곤 잭의 눈을 바라보고 나서 말을 이었다.
[마치 당신 눈과 같은 갈색이였어.
지구상에는 30억의 사람들이 갈색 눈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잭의 머
릿속에는 단 한 쌍의 눈동자만이 떠올랐다.
-엘리 그레이브스.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었다우.
그녀는 어깨 너머로 빈 탁자를 보았다
[자, 그게 어디 있더라?
[뭐 말씀이십니까?
[그가 나한테 가져다 준 꽃 말이우. 그렇게 붉은 장미꽃은 본 적도
없었을걸?
붉은 장미.
잭은 목이 다 뻣뻣해 왔다.
[그에게 무슨 말씀을 해주셨지요?
[당신한테 한 거와 똑같은 이야기요. 그는 자기가 하니 아이의 아버
지라고 했다우.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보기엔 하니의 아들이라
그러면 딱 맞겠던걸?
그녀는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아이 아버지가 맞을 거유,그래요.
[어떻게 그걸 아세요?
[그녀하고 똑같이 생겼었지. 코도 똑같고. 혈색도 같았어. 그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더군. 그겨가 어떤 학교에 다녔는지 따위 말이우.
사실 그녀는 치어리더였거든.
[예,알고 있습니다.
맙소사, 고레이브스가 그런 일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자,봅시다.
그녀가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하니가 코니 아일랜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카드 놀이를 얼
마나 좋아하는지 따위를 말해 줬다우. 당신도 카드 놀이 좋아하우?
[가끔요.
그 자식 정말 정보를 많이도 캐가지고 있군.
[당신 어머니가 여기 살았을 때,우리는 카나스타 카드 놀이를 하곤
했었지. 거의 매일 밤.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사람은 메리 테레사의 어떠니겠죠.
안개 같은 것이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메리 테레사의 어머니라고?
잭븐 소파에 걸터앉아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노파를 바라보며 씁
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등을 지고 편히 앉았다.
[미스 오코너?
[음?
[부탁 하나 드려도 됩니까?
[뭐유?
[박하차 한 잔 더 마실 수 있겠습니까?
스
잭은 편두통을 이겨 보려고 '행운의 물레바퀴' 재방송을 보면서 목
욕탕 문설주에 가로질러 놓은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그래도
두통은 가시질 않았다. 빅토리아는 신문의 낱말 맞추기 퍼즐 게임을
하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뭘 알아냈어요?
그녀가 물었다.
이제,빅토리아도 잭과 마찬가지로 하니에 대해 궁금해하게 되었다.
[아니,누군가 내 뒤를 캐고 다니고 있다는 것만 알아냈어.
[누가요?
[몰라 엘리 그레이브스겠지. 아니면 그 부하들이든지.
' 사람이 하는 짓'이란 뜻으로 가운데 '적'자가 들어가는 다섯 글지
가 뭘까요?
그녀가 물었다.
잭은 허리를 펴며 크게 한 번 숨을 쉬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사회자 패트 샤작이 짐짓 열을 올리며 외쳐=
고 있었다
[네. 있습니다. 자. 세 개나 되는군요.
벨이 울리며 세 개의 자판에 불이 들어왔다.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
다. 잭은 윗몸일으키기를 50회 하고는 몸을 축 늘어뜨리고서 가볍게
신음소리를 냈다.
[휴.저 보조 진행자 바나 화이트는 거꾸로 보니 영 아니올시단걸.
[거꾸로 봐서 제대로 보이는 사람이 어딨엇요? '좌절시키다'를 여
섯 글자로 하면 어떻게 되죠?
'방해하려 하다'아닌가?
대답이 없었다.
'허점을 찌르다'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덩치가 큰 여자가 '' 자를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더 많은 자판에 불이 들어오며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게 그레이브스라는 걸 어떻게 알아요?어쩜, 기자가 그러는 줄도
모르는 일 아네요? 옳지. '사람이 하는 짓'은 '인위적 행위'가 되네
요,
잭은 철봉에서 내려와서 어깨에 수건을 걸치고는 싱크대 약장에서
아스피린이 든 플라스틱 악병을 꺼냈다. 네 알이 남아 있었다. 세 알을
얼른 집어삼키고 다시 약병을 선반에 올려놓았다.
잭이 문 너머로 말했다,
[난 그 동안 하니와 엘리 그레이브스에 대해 너무 집착하고 있었어
노망이 든 할머니까지 만나면서 말이야. 오늘 국회에서 투표할 일이
있었는데 그것까지 깜박했던 것 알아?
' 불성실하다'를 다른 단어로 뭐라고 하죠?네 글자로.
[가로야 ?세로야 ?
[가로요.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요?
[난 세로 퍼즐을 잘 맞히거든.
그녀가 생긋 웃었다.
[내가 잘못 봤네요. 세론데요, 이제 보니.
잭은 샤워기를 틀어 놓고 다시 침실로 갔다
[그래?어디 좀 줘봐.
그녀는 이렇게 제미있는 걸 그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 맞다. 그건 '실수하다'야.
잭이 침대로 올라왔다. 그녀는 신문을 머리 뒤로 감추고는 도전적인
미소를 띠었다. 잭은 몸을 앞으로 굽히면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반칙이에요.
그녀가 다른 손으로 그를 밀었다. 잭은 그녀의 양손을 잡고 꽉 눌렀
다. 그녀는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쳐 보았지만 소용 없어지자 단념하고
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누웠다. 그는 잠시 그녀를 안았다가 놓아주
고는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녀도 신문을 떨어뜨리곤 앙팔로 그를 ;=
싸 안고 키스했다.
잭은 그녀 위로 올라가 천천히 그녀의 잠옷을 위로 말아 올리기 ]
작했다. 허벅지까지 올라갔을 때 그녀가 키스를 멈추었다.
[샤워기를 틀어 놨잖아요.
[함께 샤워하자구.동시에 두 가지를 할 수 있잖아?
[피 ! 제대로 매달려 있지도 못하고 낱말 퍼즐도 못하면서.
[난 다 할 수 있어.그건 '못 하도록 막다'라구.
그녀는 잠시 어리둥절한 것 같았다
' 좌절시키다'를 여섯 글자로 하면 '못 하도록 막다'라구.
그녀가 그를 밀치며 말했다.
[그걸 어떻까 알아냈어요?
[뭐 그렇게 존경스럽게 볼 것까지야 없어.
그는 몸을 굽히며 그녀 목에 키스했다.
[당신은 나와 사랑 게임을 할 때면 늘 낱말 퍼즐을 푸는군요.
[내가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못 한다고 할 때만 그렇지.
그녀는 손을 그의 얼굴로 뻗어서 이마 위에 흐트러진 그의 떠리카락
을 쓸어 넘기면서 짐짓 딴전을 부리다가 잽싸게 그를 밀치며 몸을 일
으켜 세웠다.
[좋다 이거야 !
잭은 일부러 화난 척 볼멘소리를 내뱉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물었다.
[잭.요번이 마지막 기회였던 거예요? 아니죠?
[마지막이었어.
[오 -.그럼, 안 돼요, 잭.
그녀가 아쉬운 듯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딱, 한 번 더 기회가 남아 있지.
욕실문이 화들짝 열리며 잭이 침대로 뛰어오며 그녀를 덮쳤다.
[제 목소리 기억하시겠어요?
[물론이죠.안녕하세요?
[네. 너무 늦게 전화한 거나 아닌지.
[기자한테는 늦은 시간이란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무릎은 어때요?
그가 물어 왔다.
[딱지투성이예요. 그래도 당신이 봤을 때보다는 많이 나았어요. 도
와줘서 고마워요. 이기.
[매일 붕대 바꿔 주는 거 잊지 말아요.
[그럴게요. 그것 땜에 전화하셨어요?
[네.괜찮은지 궁금해서요.
[오,당신 너무 자상하시군요.
[몰리?
[네?
[월요일 날 기자회견장에서 당신을 보고 나서 ? 가지 생각이 떠올
랐어요. 할 수만 있다면 방송국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가 낮은 소리로 웃었다.
[날 보고 있었다구요?그런데 대체 꿔가 그렇게 당신 마음을 잡1
끌던가요? 마이크 들고 하원의원 쫓아다니는 거요? 무릎 까지는 ?
요?
[난 진담이에요. 윈스턴 씨에게 물어 보세요. 난 둬든 열심히 한=
구요. 에이스 심부름 센터 지배인도 보증해 주실 거예요.
[뭘 하고 싶은데요?
[아무거나요.카메라맨 더 필요 없나요?
[필요하지만 그런 건 조합에서 알아서 하는 일이에요. 신청해 놓=
사람들이 많아요. 게다가 당신은 경험도 없잖아요?
'처음부터 경험 있는 사람 있나요? 배우도록 도와맣 준다면 보수
안 받아도 괜찮아요.
[잠깐만요.제1법칙.그런 말은 함부로 하지 말 것. 알겠어요?
[그럴게요.
'재능 개발'이라고 하는 방송국 견습 프로그랩이 있어요. 사람들-
추려 내기 위한 허울좋은 명목이죠. 처음엔 장비나 나르는 막일을
야 되요. 다만 방송국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는 볼 수 있죠. 보수
없어요.
[좋습니다. 심부름 센터 일을 계속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당신
쫓아다니면 되겠군요.
슨에게 한번 얘기해 볼게요.
[고마워요.몰리,정말 고마워요.
[아니에요. 이기. 당신이 먼저 날 도와줬었
잖아요.
에그즈 베네딕트는 불멎이 희미하게 비치는 지하실의 물 웅덩이 속
에 서 있었다.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눈으로는 건물의 기둥을 파헤치고
있는 소형 드릴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이윽고 소음이 멈추고 한침
이 지났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덜덜거리는 소리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구멍이 다 뚫렸어.
드릴공이 말했다. 그 남자는 플라스틱 보안경을 이마 위로 올리'
팔뚝으로 얼굴을 쓱 닦았다. 그리고는 소형 드릴을 시멘트 기등에 ?
대 놓고 계단으로 향했다.
[점심 시간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밀려 있지만 점심은 점심인 것이다. 힘이 있
빌딩이든 꿔든 무너뜨릴 수 있을 게 아닌가?
드릴공과 조수가 계단을 걸어올라가 사라진 후 빌리 배니스터는 ]
네딕트를 보았다. 그는 은빛 연필 모양의 폭파뇌관으로 연결되는 적1
과 녹색의 전선을 정돈하며 주춤거리고 있었다. 베네딕트는 배니스
를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나와 함께 있을 거지?
배니스터는 입술을 활았다.
[그래. 난 준비됐다구.
베네딕트는 폭파뇌관을 박스에 담고 점화 스위치가 있는 신발 상자
크기의 노란멎 나는 장치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곤 전선줄을 벗겨 내
며 말했다.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
배니스터는 체중을 한 쪽에서 다른 쪽 발로 옮겼다
[저 드릴공들이 뻔히 다 알고 있을 텐데 이런 걸 마구 흠쳐내도 될
지 모르겠어.
[냉정히 연습한 대로만 하면 아무 일 없을 거야.
배니스터는 어깨 너머로 계단 쪽을 보았다.
[한 번 더 바깥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베네딕트는 재수없다는 듯이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손을 아래로 뻗
쳐서 그의 바지 무릎의 안쪽 솔기를 힘껏 잡아쳤다.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를 내면서 테이프가 떨어져 나왔다
[오! 이런. 너무 소리가 커 !
배니스터가 소러쳤다.
[내가 다 알아서 한다니까.
베네딕트가 말했다. 그는 솔기를 더 넓게 찢어 벌렸다. 바지 속에는
무릎까지 오는 여성용 나일론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그는 그 속에서
0센티미터쯤 되는 나무막대기를 꺼냈다. 커튼 받침대를 잘라 만든 그
막대기는 갈색 종이로 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제조일자와 함께 '이글
폭약. 페터슨'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끝에는 오트밀 반죽이 발라져 있
었고 가운데 부분에는 뇌관을 잇는 전선과 똑같은 모양의 적색과 녹색
의 전선이 접착제로 붙여져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고서는 제아무리 노련한 폭파 전문가라도 그게 가짜
다이너마이트인지 모를 정도였다. 베네딕트는 배니스터에게 그걸 건
.
네주고는 돌아서서 콘크리트 기둥의 아랫부분에 뚫린 두 개의 드릴 구
멍을 보았다. 그 구멍 속에는 진짜 다이너마이트가 박혀 있었다. 그는
몸을 구부리고서 그 중 하나의 다이너마이트를 뽑아 냈다. 그리고는
어깨 뒤로 손을 뻥어 뒤에 서 있던 배니스터에게 가짜 다이너마이트를
건네받아 빈 구멍에 끼워 넣었다. 배니스터는 진땀을 흘리며 그 광경
을 보고 있었다. 베네딕트는 스타킹 안에 진짜 다이너마이트를 쑤셔
넣고는 떨어졌던 테이프를 다시 주워서 찢어진 무릎께의 안쪽 솔기를
다시 붙여 여였다.
[가짜 다이너마이트로 건물이 제대로 폭파될까?
배니스터가 물었다.
[걱정 말아. 여덞 개 중에서 하나만 바꾼 건데 뭘 그래. 설사 폭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너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계속
수다 떨고 다녀 주면 저 멍청한 드릴공들은 오히려 자기들 실수로 그
런 줄 알고 네 입만 막으려 들 거야.
배니스터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시계를 보았다.
[그자저나 우리도 점심 먹어야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야.
둘은 싱레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계단의 꼭대기에 이르렀다. 태=
이 밝게 비추고 있었다.
베네딕트는 햇멎에 가늘어진 눈을 돌려 배니스터의 안색을 살펐디
긴장되어 있는 표정이었다.
[이봐!나랑 끝까지 함께 할거지?
배니스터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다가 입 속에 분홍빛 알'
을 던져 넣고는 씩 웃으며 친구의 팔을 툭 쳤다,
잭은 장식 촛대 너떠로 빅토리아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빅토리아는 나이프를 집어 들고는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덜 익은 요리이든. 못생긴 웨이터든 어서 불쑥
나타나 자신을 곤궁에서 구해 주기를 기다러고 있었다.
둘은 전에도 여러 번 이런 상황에 맞닥뜨려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잭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아울러 인내심을
가지고 버티면 끝내는 어떤 식으로든 빅토리아가 대답을 해오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담배케이스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
었다. 잭이 촛대를 들어올렸다. 담배의 끝녁분이 발갛게 타 들어갔다.
[당신이 원하는 게 아이라면 왜 날 택했죠?
그녀의 입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당신은 훌륭한 엄마가 될 거야.
[아뇨. 당신도 알 거예요. 끔찍한 엄마가 될 거예요. 난 서랍 속에
애기를 넣어 두고도 잊어버릴 거예요.
[내가 곁에 있으면 괜찮아.
[당신이 늘 곁에 있겠다고요?_
[시간을 낼게,
1
그가 말했다. 그녀에게선 아무 대답이 없었다.
[딸을 낳으면 대통령이 될지도 몰라.
[아니면 정신병자가 될 수도 있겠죠.
[대통령과 정신병자라. 서로 그떻게 동떨어진 인간 유형도 아닌걸.
[운이 좋아서 날 닮는다면 아마 변호사가 되겠죠.
그는 그녀의 미소를 보았다.
[이봐,유전자가 그떻게 나쁠 것 같아?
[내 것은 확실해요.
그녀는 레드 와인을 조금 마셨다.
[난 타고난 변호사였죠. 다른 여자애들이 소꼽장난이나 하고 놀 때
난 하워드 아저씨네 아이스크림 차에 있었죠. 정말 스물여덟 가지 맛
이 진짜 나는지 알아보려고. 물론 아니더라구요.
[상상이 가는군.
그녀는 식기를 가지런히 정돈했다.
[당신에겐 결혼과 아이가 왜 그리 중요하죠?
[모르겠어.그저 그렇게 하는 게 정상적일 것 같아.
[정상에서 벗어난 건 아무것도 없어요. 난 지금 이대로가 정상이에
요. 잭. 당신도 역시 그래요.
[비정상적인 사람들조차 결혼해. 빅.
그녀의 눈가에 웃음기가 언뜻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녀는 담배를 빨다가 기침을 해댔다. 잭이 물잔을 건네주자 물을
마시고는 냅킨을 눈가에 가볍게 댔다
[왜 그래?
그가 물었다
[너무 깊이 빨았나 봐요.
[내 말은 정말 뭣 때문에 당신 요즘 그떻게 우울한 거냐구?
그녀는 빈 접시의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솔직히 나 자신에 대해 회의가 느껴져요.
[농담하는 거야?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문을 이어나갔다
[미안해요. 좀 전에 그 표현은 좀 과장됐어요. 그저 어떤 결정을 하
긴 해야겠는데 그게 힘들어요. 좀 꺼림칙한 게 있거든요.
[우리 둘에 관한 거야?
[그렇기도 하고.아니기도 해요.
[무슨 뜻이지?
그녀는 대답 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는 성급하게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다그쳤다.
[당신 왜 이러는 거야? 새삼스럽게 대화를 회피하고
무슨 일인지 속시원하게 털어놓으라구.
말이야. 제발
그녀는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잭 답답하다는 거 나도 알아요. 조금만 참고 지켜봐 주세요. 네?
그는 소금통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뭐 도와줄 거라도.
[잭.제발, 아무것도 묻지 말아 줘요.
그녀는 그떻게 말하면서 후추통을 만지작거렸다. 소금통을 밀어 놓
으며 그가 입을 뻤다.
[좋아.그 라에 다른 질문은 괜찮지?
[네.바로 그 문제만 말구요.
[알았다구.
[자. 해보세요.
[음. 이를테면 말이야, 이런저런 여건이 된다면 아기를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있어? 만일에 있다면 어떤 상황이면 되겠
어?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맙소사. 잭. 끈질기군요.
[어서.
[딱 한 가지 상황에서라면.
그 말에 그는 귀가 활짝 열리는 것 같았다.
[그 -래?어떤 상황이야 그게?
그노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
데 하는 후회의 빛이 역력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사로잡고 있는가?
그때 웨이터가 다가와 그들 각자에게 메뉴를 건옜다. 그녀는 그걸
펼쳐서는 얼굴을 가려 버렸다. 웨이터는 메뉴에 나와 있지 않은 요리
덫 가지를 일러 주고는 잠시 후 주문을 받으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그들은 말없이 메뉴를 읽고 나서 공동으로 밥값을 내기로 하고는 디
시 대화로 들어갔다.
[이번엔 간단한 질문 하나 할게. 원하는 걸 뭐든지 가질 수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당신은 뭘 갖겠어?
그녀의 입 가장자리가 약간 치켜져 올라갔다.
[현실적으로?아니면 환상 속에서?
[어느 것이든. 당신의 가장 무모한 꿈 말이야.
[아! 환상, 그렇다면 오히려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죠. 당신,
를 잘 알잖아요. 나는 몇 가지 변화를 주고 싶은 게 있어요. 보다 나
세상을 위해서 말이에요.
[맙소사. 빅. 당신은 지금 상처 입은 상태야. 당신은 지금 자신을
이고 있는 거라구. 거기서 뭘 더 하려고 그래?
[그건 내가 결정할 문제예요.
그는 그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묻지 마세요.
그녀는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말을 막아 버렸다.
그는 몸을 앞으로 굽히고 탁자 위에서 턱을 괴었다. 보다 나은 세계
를 만들어 보겠다는 데야 뭐라고 불평을 해댈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더 멋진 세상을 만들겠다면서 그녀 자신을
위해서는 자그마한 행복조차 마다하느냐, 그게 문제였다
그녀에게 개인적 삶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웨딩 케이크, 화목한 가정. 아기 기저귀, 사친회 그 모든 것이 다 끼
여들 틈이 없는 것이다. 그녀는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굳이 잭이 다그치지 않더라도 때때로 그녀 스스로가 회의를 품으면
서도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임신한 의뢰인이 배가 아픈지, 머리카락이
마구 풀어헤쳐지지는 않았는지 늘 걱정하며 그들을 돌보고 어루만져
주어야 했던 것이다.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만일 기저귀 갈아 줄 필요
도 없고 자동차 면허증도 이미 취득한 열 여덟 살짜리 다 큰 아이를 커
다란 황새가 물어다 준다면,그 아이는 그냥 키울지......
잭은 처음부터 이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를 사랑하는 보
통 여자들처럼 그녀도 바컬 것이라고 생각했다. 잭이 궁금해하는 건
뭔가 새로운 것이었다. 요즈음 그녀를 우울에 빠뜨리고 웃음을 빼앗아
갔으며 세상에 대해, 아니면 혹은 누군가에게, 반감을 갖도록까지 만
든 그 웠인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토요일 밤의 영화 관람도 이미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침대 속에서
함께 사랑을 나눈 기억도 까마득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물론 당신을 위해 세상을 바꿔 줄 능력은 없지만 난 우리들의 의견
차이와는 상관없이 당신을 사랑하며 존경하고 있소.
[우리가 똑같다면 생활이 지겨울 거예요.
그 대답이 그의 기분을 약간 호전시켰다.
웨이터가 다시 와서 주문을 받아 갔다. 둘은 큰 잔으로 포도주를 마
셨다
[당신이 결혼이라면 넌더리를 치는 가장 큰 이유가 뭘까? 구속이
오?
[아마, 조금은 그렇겠죠. 하지만 그게 큰 이유는 못돼요.
[모두들 당신이 결혼한 사람처럼 처신하길 기대하고 있어. 아마 나
와 한 짝이라고 늘 생각하고들 있으니까 그런가 봐.
[좀 화나는데요.
[법적으로는 어때?
[남자의 우월감을 높여 주는 그 제도요?물론 그건 괴롭지만 시간이
지나면 바뀌겠죠.
[그렇다면 우리 사이에 섹스가 시들해질까 봐 걱정돼?
[그래요. 걱정돼요. 나보다 당신이 더 그렇게 될까 봐요. 잭 이문
제에는 아무런 해결책이 없어요. 결혼에 관해 생각이 미치기만 하면
캔지 내 자신이 불결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아마 수녀들이 세속=
인 삶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이런 게 아닌가 싶어요. 다른 모든 사람들
에게는 결혼 생활이 어울린다 할지라도 내겐 그렇지 못해요. 난 매
사무실에서 의뢰인들을 만나요. 그들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도
주죠. 하지만 내 스스로는 그걸 원치 않는다구요. 고수머리에 코를 =
어 가며 마루를 청소하고 길가에 널린 매춘부 따위나 걱정하고 남편=
직장에서 감봉 처분이나 받지 않을까 초조해하는 그런 삶들을 살면]
조금씩 죽어 간다면, 맙소사! 어쨌든 아주 위선적이죠? 내가 도움=
줘가며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삶을 내 자신은 살고 싶지 네다1
말이에요.
그녀는 후추통을 만지작거렸다.
[결흔은 각각의 경우가 다 모험과 같은 거야. 마음먹기에 따라 최선
도 될 수 있고 그 반대도 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나도 모든 결혼이 악몽이 아니라는 건 알아요. 단지 내 결혼이 그
떻게나 되지 않을까 그게 두려운 거예요.
[난 매춘부 따위와는 상대 안 할 거야.그래도?
그녀는 그의 천진난만한 대답에 미소로 답하고는 말을 이었다.
[아이 문제만 없다면 어떻게 꾸려 나갈 수 있을 것도 같아요. 그런
데 당신은 아이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잖아요. 난 그 반대구요. 타협할
여지가 없잖아요.
[아마 시간이 지나면 당신 마음도 변할 거야.
[나. 마흔을 넘겼어요. 잭.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구요.
[그러니까 결혼해서 어떻게 되는지 보자구.
그녀는 생긋 옷고는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빨아댔다. 그는 그 태도를
좋은 징조로 받아들였다.
[결심대로라면 벌써 오래 전에 당신과 결혼했어야 했어요. 그나저
나 오늘 밤 우리 이걸 결정해야 하나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몇 달째 이런 상태로 지내 왔다. 너무도
질질 끌고 있는 셈이었다. 그의 마음 속 시계는 허우적대길 그만두고
앞으로 헤쳐 나갈 시간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그때 묘하게도 그의 머릿속에 몰리 맥코믹의 얼굴이 가물거리며 떠
올랐다. 시기적으로 안 좋을 때 방해하는 웨이터처럼 그 모습은 그를
초조하게 했다.
빅토리아는 손을 탁자 너머로 뻗어 그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당신 진정으로 저와 결혼하고 싶어요?
[물론.
[내가 너무 오랫동안 거절해 왔죠?내가 받아들인다면 어떡하시겠
어요튼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손가락으로 수잔 . 앤터니 은화를 확인
했다.
[자, 보여 줄 게 있어.
그가 막 그 동전을 커내려 할 때 웨이터가 전화기를 들고 나타났다
[실례합니다. 윈터스 양이시죠. 급한 전화가 와 있는데요.
그녀는 잭의 손에서 얼른 손을 빼내었다.
[도대체 누구지?
[닥터 레드패스라고 하시던데요.
웨이터가 전화기를 탁자에 놓으며 말했다. 잭은 목걸이를 다시 밀어
넣고 웨이터를 죽일 듯이 쏘아보았다.
[제가 식사중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급하다고 하시더군요. 의사
라며 .....
빅토리아가 수화기를 들었다.
[억보세요.
[네가 이겼어,
레이헬이 말했다.
[무슨 일이에요?
[티투스가 내일 아침에 내릴 판결 말이야. 제노비아의 낙태 금지=
을 해제할 거래.
[어떻게 아셨어요?
[법월에 있는 친구가 그걸 알아냈어. 로 대 웨이드 판례가 위헌이=
는 비난이 있어 왔지만 그 판례가 뒤집힐 때까진 유효한 것 아니겠어
금지령을 해제할 수밖에 없었겠지.
빅토리아는 송화기를 손으로 막고는 잭에게 속삭였다.
[제노비아 사건에서 승소했어요.
그녀는 전화선을 만지작거리며 레이챌의 얘기에 미소를 짓고 있었
다.
[난 지금 별장에 나와 있어. 그런데 말이야, 제노비아와 통화해 보
려고 몇 시간째 노력중인데 그 집 전화가 계속 통화중이야.
[이상한데요. 한 시간 전에 내가 전화했을 때는 아무도 받질 않던데
요.
[그럼 아마 전화 코드를 빼놨나 보지? 식사를 방해하고 싶진 않았는
데 너에게 빨리 알려 주고 싶어서 전화했어. 가능한 한 빨리 제노비아
도 찾아야 되겠고.
[하켓이 그 정보를 입수하게 되면 그 즉시로 상급 법원으로 달려가
서 유보 신청을 얻어낼 거예요.
[그럴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두세 시간요.그에게 유보 명령서를 발급해 줄 만한 판사를 찾는다
고 가정한다면요.
[제노비아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 일단 준비를 시켜 놓으면 아침에
티투스가 판결을 내리자마자 캐시가 수술을 해낼 수 있을 거야.
[곧 갈게요.
빅토리아는 전화를 끊고 잭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야?
[차 타고 가면서 얘기 할게요.
그 둘은 아파트 계단을 올라가며 지린내를 안 맡으려고 호흡을 조절
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6층에 다다라서 빅토리아가 문을 두드렸다.
아무 응답이 없었다.
둘은 잠시 서성거리며 기다렸다. 잭은 다시 노크를 하려다가 손잡이
릴 당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손잡이를 돌리자 문이 열렸
다. 그들은 집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는 전등 스위치를 켰다.
방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소파 팔걸이에는 아프간 솔이 깨끗
이 접혀져 있었고 발털개는 반듯이 펴져 있었다. 세프레라 잊사귀들은
녹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잭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냉장고문 손잡이
에 깨끗이 걸려 있는 새 행주가 보였다. 빅토리아는 침실로 가서 부드
럽게 노크했다
[제노비아?
응답이 있길 기다렸다.
[제노비아. 나예요, 빅토리아, 거기 없어요?
잠시 기다리다가 문을 열었다. 순간 그녀의 몸이 딱딱히 굳어지면서
양손이 벌려진 입으로 올라왔다. 잭이 그녀 뒤로 다가왔다.
제노비아는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하얀 플란넬 속옷 차림에
양손은 평화롭게 가슴 위에 겹쳐져 있었다. 그 몸뚱이를 작은 침실등
이 비춰 주고 있었다.
잭은 빅토리아를 지나 방 안으로 들어가서 침대로 다가갔다. 그리곤
손가락을 제노비아의 목에 갖다 대보았다. 싸늘했다. 잭은 혹시 태아
가 살아 있나 보려고 그녀의 배를 만져 보았다. 그러나 부풀어 있어야
할 그녀의 배는 쑥 꺼져 있었다, 태아가 사라진 것이었다.
[낙태 수술을 받았군.
잭이 말했다.
빅토리아는 얼굴에서 손을 내리고 거실 소파로 걸어가서는 고통'
겨운 늙은 여자처럼 천천히 몸을 굽혀 앉았다.잭은 침대 옆 탁자 위
서 수화기를 들어 경찰을 불렀다. 그러고 나서 수화기를 내려놓다?
제노비아의 성경책을 발견했다 횐 종이가 가운데 끼어 있었다.그=
성경책을 펼쳤다. 제노비아가 다니던 시온 침례교회의 직인이 찍힌 =
지 봉투였다. 그 봉투 밑으로 그녀가 줄을 그어 놓은 시편 구절이 있었
다.
'주여. 저에게 자비를 내려 주소서. 저는 약하옵나이다.'
잭은 봉투를 책 안에 다시 끼워 두고 막 덮으려 하였다. 그 순간 봉
투 끝에 뭔가 글씨가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는 봉투를 불빛
아래로 가져 갔다. 거기에는 검은 잉고로 쓴 메모가 적혀 있었다.
'거절당함. 병원 단 655 -3273'
잭은 잠시 살펴보고는 그것을 뒤집어서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제노비아는 전화를 받고 메모했을 것이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해보았
다. 이성은 그걸 그냥 내버려두라고 했다. 그러나 직감이 그걸 가져 가
라고 재촉했다.
그는 봉투를 코트 안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잭과 빅토리아가 조지라운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밤 11시 15분
이었다. 잭은 조금 전 경찰서에서 사건 현장에서 목격한 바를 진술하
고는 경찰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봤다. 제노비아는 어디서 수술을
받았는가? 그녀의 사인()은 무엇인가? 경찰이라고 알 도리가 없
었다. 그는 가로등 아래의 커브길에 차를 주차시켜 엔진을 끄고는 그
냥 앉아서 그녀가 떤저 움직이길 기다렸다. 마침내 그녀가 문 손잡이
를 잡았다.
[요 몇 시간이 천 년은 된 것 같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내렸다. 두 사람은 현관등으로 어둠을 밝히고
이층 침실로 올라갔다. 잭이 그녀가 이렇게까지 침울해하는 모습을 본
건 3년 전에 딱 한 번뿐이었다.티후아나에서였다.
그때 일어났던 일로 그녀는 정상을 회복하는 데 사흘이 걸렸었다
이번의 충격에서 헤어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르는 일
이었다. 잭은 깍지 낀 양손을 베개 삼아 베고는 쭉 뻗고 누워서 탁자
위의 촛불이 비춰 주고 있는 빅토리아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는 침대 끝에 앉아서 블라우스 단추를 풀고 있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요. 하지만 이건 제 실수였어요.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잭은 보이지 않는 공중 그네를 잡으려는 듯 공중으로 손을 뻗었다.
[당신이 더 이상 뭘 할 수 있었겠어?
[내가 그녀를 낙태시킬 수 있었는데.
[어떻게?
[그녀가 원한 건 허가였어요. 내가 해결해 주었어야 했어요.
[이봐, 빅. 당신이 그녁를 속여서 데려갔지만.
얘기 도중 갑자기 봉투에 적혀 있던 병원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자 잭
은 직감적으로 주머니에 봉투를 넣어 버린 것이 과연 잘한 일이었니
생각하느라고 다음 말을 잠시 잊었다.
[당신은 그러지 않았어. 그걸 다시 시도할 마음은 없었잖아? 그=
지?
[뭘요? 계류중인 임시 낙태 금지법안을 어기고 낙태 시술을 받게
는 거요? 그럴걸 그랬어요. 그랬더라면 이렇게 처참한 결과를 초래
진 않았을 텐데.
[이봐. 신중해야 해. 빅.
[난 신중해요. 내가 어떤 곤란을 당했든지, 최소한 그녀가 뒷골1
돌팔이에게 생명을 잃진 않았었을 텐데. 오! 지금 이 순간 애브너
투스가 얼마나 미운지 이루 말할 수도 없어요,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장으로 향했다.
[전에 당신이 제게 말한 것 기억나요? 사람이 참을 만큼 참아서 폭
발하게 되면 아무것도 억제할 수 없다고 한 말 말이에요. 당신이 옳았
어요. 기꺼이 모험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변화도 불러일으킬 수 없어
요.
그녀의 말은 잭에게 한 것이라기보다는 마치 스스로 어떤 다짐을 히
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가 물었다
[제노비아의 죽음말고 또 꿔가 그렇게 당신을 괴롭히는 거지?
[그거면 충분해요.
[아니야. 전에도 이런 일 겪은 적 있었잖아. 몇 달 전에 제노비아와
비슷한 최후를 맞았던 그 열다섯 살 먹었던 여자애 기억 안 나? 내 말
은 왜 이번 사건이 다른 때보다 더 심하게 당신에게 타격을 주느냐, 그
말이야.
그녀는 스커트를 옷장에 걸었다.
[바로 그게 문제였어요.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일말의 희망마
저도 잃게 되고 나면 바로 어떤 단계에 들어서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단계?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봐,빅, 말해 봐,도대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 거야?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빅토리아가 수화기를 들었다. 레이겔이었다
[나, 방금 들어왔는데 자동응답기 테이프에서 메모를 들었어. 세상
에 어쩌면 이런 일이. 이봐, 빅토리아. 괜찮은 거야?
[네.괜참아요.
[그런 것 같지 않은데.내가 그리 갈까?
[아뇨.
그녀는 송화기를 가리고 낮은 목소리로 잭에게 말했다.
[레이챌이에요.
그는 리모콘으로 텔레비전을 켜고는 뉴스를 듣기 위해 문올 조금 열
어 둔 채 욕실로 들어갔다.
레이헬이 말했다.
[빅토리아,오늘 밤엔 정말 불운에 불운이 겹치는군.
[네.......
빅토리아는 일단 반사적으로 대답했다가 레이챌의 말이 이상해서
되물었다.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제노비아차 애브너 티투스.
[애브너 티투스라뇨?
[오 -이런, 빅, 아직 그 소식을 못 들었나 보구나!
[뭘요?
[브라운 판사가 사표를 냈어. 오늘 밤. 대통령이 티투스를 대려원=
으로 지명했대.
빅토리아의 고개가 푹 꺾였다.
레이챌이 말했다
[이젠 우리가 서로 흉금을 터놓고 그 문제를 의논해야 할 때가 ]
거야.안 그래?
빅토리아는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봐 빅 내 말듣고 있어? 바로 지금이야. 지금 아니면 기회가 1
어.
[내일 애기해요. 레이.
빅토리아는 전화를 끊고 텔레비전을 보았다.
앵커맨 뒤에서 티투스의 사진이 비춰지고 있었다.
[나멘 자식.
녀는 나직이 씹어 뱉었다,
[넌,개 -자-식이야.
잭은 싱크대 옆 서랍에서 빅토리아의 피임약 위에 놓여 있는 치약을
찾아 칫솔에 조금 묻혀서는 입에 물었다. 그는 이를 닦으며 반쯤 열린
문을 통해 텔레비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가 방 건너편에 서
있는 빅토리아를 보았다. 그녀는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서 옷장문에 달린 전신 거울에 비친 자신
의 몸을 살펴보고 있었다. 머리를 약간 갸우뚱하게 수그린 채 양 손가
락을 모두 펴서는 마치 배구공을 잡듯이 벗은 아랫배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것이었다. 임신이라도 했나 미심쩍어 하는 걸까?
그러고 나서는 자전거를 타는 참치 티셔츠를 집고서 양팔을 끼우더
니 머리를 집어 넣는 대신 그 자세 그대로 거울을 등지고 주르르 무너
져 앉아서는 우는 것이었다. 잭은 타월로 몸을 감싸고 욕실에서 나와
텔레비전을 끄고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빅토리아는 올려다보고 나서
그에게로 양팔을 뺄었다. 흔들리는 불빛에, 얼굴에 생긴 눈물 자국이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잭은 그녀의 팔에서 티셔츠를 벗겨 내고는
마주보고 앉아서 그녀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난 너무나 지쳐서 생타이 정리되
질 않아요.
그는 그녀를 보듬어 안고는 실컷 울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몇
분 후 그녀가 얼굴을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눈은 빨갛게 부어 있었고
얼굴은 화장품 얼룩투성이였다. 빅토리아가 쉰 목소리로 입을 메었다.
[당신을 사랑해요. 잭! 그것만은 잊지 말아 줘요. 무슨 일이 일어니
든지 간에요.
그는 당혹한 얼굴 빛이 되어 물었다.
[왜 그래?
그녀의 눈빛은 아까 식당에서 잠시 비쳤던 것과 같은 답답해하는 눈
빛이었다. 뭔가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다는 그런 눈빛. 이제는 럽데
기를 깨부수고 진지해져야 할 때가 되었다.
[들어 봐, 빅.
그녀는 그의 말을 막으려는 듯이 부풀어오른 입술을 그의 입술 위에
포갰다. 그리고는 무릎으로 일어서서 그의 몸을 밀어 바닥에 눕혔다.
[어쩌려고.
[쉬 -이.
그녀는 그에게 키스하면서 그의 몸에 감긴 수건을 벗겨 냈다, 그리
곤 그의 몸에서 중심이 되는 곳 위에 올라타서는 양 다리를 벌렸다. 키
스를 계속 퍼부으며 그의 것을 성나게 만들어서는 천천히. 그리고 정
확히, 그녀의 주름진 살 틈, 깊은 곳으로 그의 몸을 끌어들였다. 그녀
의 상체는 유연하게 활처럼 휘어 꺾였고 풍만한 히프가 보일 듯 말 듯
스프링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몸짓이었다. 얼굴
은 발갛게 상기되고 온몸의 근육은 팽팽하게 당겨졌다. 이내 그녀의
땀 범벅이 된 피부는 소름이 돋아 올라도톨도톨해졌다.
그녀의 온몸은 마치 오일로 씻은 오벤지처럼 불빛을 받아 빛나고 있
었다. 갑자기 그들은 다시 한 번 옛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 이 순
간만이 존재할 뿐 미래는 저만치 비켜서 있었다. 오로지 서로의 몸을
원할 뿐이었다. 그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
뵌의 살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나면 그녀 속에서 또 다른 여인을 민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원시적이고 에로틱하며 램프
의 요정처럼 자신 속에 꼭꼭 감춰 두었던 또 하나의 그녀였다. 일단 =
녀가 잭에게 온몸을 내맡기고 나면 그는 그녀를 상상의 절벽 끝으=
데려가곤 했다. 그녀의 두 눈을 저절로 감기게 하고 천천히 그녀의 =
은 곳을 헤집으며. 마침내 모든 두려움과 망상이 그녀에게서 모두
기어서 사라지고 남는 것이라곤 거친 호흡과 뜨거운 열기와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육체가 될 때까지.
그러고 나서 기다리던 첫번째 경련이 오게 되면 그는 그녀의 양 날
개를 활짝 펴서는 그 중 가장 따사롭고 촉촉한 날개 깃에 키스를 하곤
했다. 그의 그러한 동작은 언제나 그녀를 꿈결 너떠로 던져 넣었고, 섬
세하게 몰입된 절정에 오르는 순간이면 절벽의 벽을 따라 아래로 아래
로 맑고 푸른 공기를 타고 떨어져 내려가게 하곤 했엇다.
그러나 오늘 밤은 그러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감겨져 있었고 얼굴
엔 고통의 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동작을 계속하면서 간간이 터뜨리는 신음소리조차 긴장되고 형식적
인 것으로 들겄다.
[안 되겠어요. 할 수가 없어요.
[아무 생각도 하지 마.
그녀는 눈을 뜨고 그를 보았다.
그가 자기 몸 아래 누워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은 듯한 멍한 눈
빛이었다.
[가만 내버려 둬,마음의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몸을 맡기라구.
그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다시 한 번 그녀의 몸이 부드럽게 출렁이
기 시작했다.
[용서해 주세요.
그녀가 속삭였다.
[아무것도 용서할 게 없어.
그가 나직이 대답했지만 이미 그녀는 사념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녀
의 움직임이 점점 더 빨라졌다. 그녀가 격렬하게 몸을 위아래로 뒤흔
드는 바람에 그의 몸이 위로 위로 밀려 올라가 그의 머리가 옷장 거울
의 아랫부분에 부딪혔다.
.
그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그녀의 말을 떠올렸다.
'더 이상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어요.'
잭은 손을 들어 빅토리아의 목덜미에 얹고 그녀의 머리를 끌어당겼
다. 그녀는 꼬꾸라지지 않으려고 양손 바닥을 거울에 대고 몸무게를
받쳤다. 그녀가 앞으로 고개를 수그리자 마치 펌프 믈에 감기듯이 그
녀의 머리칼이 온통 홀러내려 흥분된 그녀의 얼굴을 가렸다. 잭은 그
녀의 떠리를 곧추세우고 머리카락을 옆으로 빗어 넘겨서 거울 속에 비
친 그녀 자신의 얼굴을 보게 했다. 그녀는 깜짝 놀라 몸 동작을 멈추고
거울 속을 들여다보았다, 입술 위까지 땀방울이 솟아나 흠뻑 젖어 있
는 얼굴이었다. 풀려진 눈은 쾌락이 뒤섞인 번민의 멎을 발하고 있었
다
이제 그는 그녀의 의식 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저항의 벽을 뚫기 위
해 그들만의 육체적 언어로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은
이제 거울에 밀착퍼어서 그녀에게서 토해지는 숨결이 유리 위에 뽀
안개의 얼룩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버티고 있는 마지
성문 앞에까지 몸을 가져다 댔다. 마침내 둘의 몸은 단 한 치의 틈5
없이 완전히 밀착이 되었다. 그녀는 입술을 거울 속의 자신의 입술 =
에 포갠 채 그것이 마치 평생의 첫 키스인 것처럼 그대로 있었다
그러면서 온몸을 타고 밀려오는 전율과 함께 절벽 밑으로 떨어져 1
려갔다. 그녀는 뺨을 거울에 대고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움켜쥐고는
부 깊숙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환희의 소리를 질러댔다 이윽고 그1
의 몸 가운데가 화장되면서 그와 분리되었다. 그는 그녀의 얼굘을
의 목 아래로 당기고 손바닥으로는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눌러 주
쉬라고 말했다.
그녀는 힘을 모아 다시 상체를 일으키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직 아니에요.
그녀는 그의 몸 위에서 부드럽게 움직였다 손에 연줄을 쥐고 드넓
은 초원을 달리는 사람처럼.
그의 몸과 마음은 바람 속에서 높이높이 솟구쳐 올랐다.
마침내 연실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팽팽해졌을 때 그녀는 그
연실을 끊어 버렸다. 그는 무중력 상태의 공기 속으로 날아 올라갔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발산되어 마침내 그의 마음 속에 무의
식의 공간을 휘몰아쳐 가는 바람소리만이 남을 때까지.
잠시 후 둘은 침실 바닥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따로따로 하늘에서 떨어져 땅으로 내려와, 몸을 추스리고, 상한 곳
이 없나 체크해 보며, 무겁게 질질 끄는 듯한 발걸음으로 서로를 향해
걸어가서 마침내 현실이라는 본부에 합류하게 된 두 명의 낙하산병 같
은 모습이었다.
거의 막 잠이 들려는 상태에서 잭은 바닥에서 일어나 침대에서 오리
털 이불을 끌어다가 빅토리아에 게 덮어 주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덮은 채 엎드려 있었다
[깨어 있어?
[네 .
[결혼해 줘 ]
그가 말했다.
그녀의 침묵은 마치 상처 입고 희망 잃은 거인같이 느껴졌다.
[안 돼요.
[왜. 안 돼?
그녀는 팔을 뻗어서 한 손을 그의 머리 위에 얹었다
[공평하지 않아요.
[누구에게?
[누군가에게요.
[또 누구 다른 사람 있어?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바로 이런 것이었어?당신 결론이.
[네.
[그것이 무얼 뜻하는지 알......,
[그만,말 안 해도 알고 있어요.
그가 한참을 무기력하게 침묵을 지켰다.
마침내 잭이 입을 열었다.
[빅. 우린 서로를 그리워하게 될 거야.
[알아요.벌써 그러고 있는 걸요.
전에도 이별을 경험했었다, 따라서 그게 어떤 건지 잭은 잘 알고 있
었다. 이별 직후에는 오히려 희망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되는 법이다. 더
이상 끈끈한 과거지사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이를테면 모든 것이 가능
한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
나 얼마 안 가 그 희망은 우울함으로 바뀌게 된다. 새로운 세상은 이내
의지할 곳 없는 사막처럼 느껴지게 되고 그 적막감과 싸우느라고 한동
안은 힘들어해야 한다. 잭은 지금 그 허전함과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횡단보도엔 빨간 신호등이 들어와 있었다. 이제 길 하나만 건너면
그의 사무실이 있는 빌딩이다. 잭은 멈춰 서서 신호등의 불및이 바뀌
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네 살쯤 먹은 아이 하나가 차도로 몇 발자
국 걸어나갔다. 순간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잽싸게 낚아채서는 인도로
끌어올려 심하게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꾸중을 듣던 아이의
턱이 바르르 떨리더니 두 눈 가득히 눈물이 넘쳐홀렀다. 신호등의 불
빛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잭은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좀 전에 목격한
장면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모성이란 실로 위대한 것이다. 인간을 강하고 쾌활하고 지성 있는
존재로 성장시켜 주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 덕에 우리는 세상을 경험
하고 우주를 탐험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모성이란 한편. 이.땅 위에
일어나는 모든 괴로움의 근원일 수도 있다, 세상을 어둡게 보게 만드
는 모멸감과 손실감을 안겨 주는 그런 모진 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잭은 비서인 피어스와 인사를 나누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책상떠리에 앉아 배달된 우편물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첫번째 편지
를 다 읽기도 전에 손을 뻗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물건 한 가지를 집
어 들었다. 멕시코의 어느 해변에 앉아 있는 빅토리아의 스냅 사진이
었다. 잭은 잠시 망설이다가 책상서랍을 열고 그것을 집어 넣었다.
제기랄! 그녀와 헤어진 지 이제 고작 사흘째였다. 그녀의 영상은 반
갑지 않은 낚싯바늘이 되어 그로 하여금 감상의 바다를 몸부럼치며 허
엄치게 했다. 주위의 모든 것에서 그는 빅토리아를 느끼고 있었다.
어스의 폈원형 손톱에서, 길을 가다 앞에 선 여자의 긴 갈색 머리칼어
서,목욕 가운에 배어 있는 빅토리아의 은은한 체취 속에서......
잭은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다시 우편물 더미를 검토해 나가기 시=
했다. 그러나 세 통 가량 편지를 읽었을카? 어느새 다시 허공을 응]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기운 내자. 잭. 넌 국회의원이야. 정신 차리라구 '
그는 책상서랍을 열고 엎어 놨던 액자를 정면을 보게끔 뒤집어 놓'
다. 그러나 다시 책상 위로 올려놓지는 않았다. 자, 그녀의 얼굴을
번 봤으니 협상을 한 셈이다. 이젠 일을 해야지. 그는 서랍문을 닫
다. 그때 노크소리와 함께 피어스가 스케줄을 상의하러 들어왔다.
[이번 주 딕키 상웠의원 댁의 포커 게임에 가실 건가요?
[아니.
그는 우편물에 정신을 쏟은 채 건성으로 대답해 버렸다
[엘리스 섬의 민주당 기금모금 만찬에 윈터스 양을 동반하실 ?,1
죠?
[아니.......
[네?뭐라 그러셨죠?다른 분하고 가신다구요?
[그래...... 그게 낫겠어.
그는 차갑다 못해 표독스러운 눈길을 느꼈다. 그리고는 발자국소리
와 함께 유별나게 큰소리를 내며 닫히는 문소리를 들었다. 누가 그런
헛소리를 했던가? 여자들은 유대감이 약하다고.
몇 건의 회의와 공청회를 오전 중으로 마치고 잭은 점심을 건너뛴
채 조지타운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몇 가지 물건을 빅토리아의
집에서 가져 오기 위해서였다. 이미 의사당 주변의 연럽 주택에 임시
숙소를 마련해 둔 상태였다. 그곳은 널찍했고 사무실에서도 두 블록밖
에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게다가 캘리포니아 출신의 하원
의원 세 명도 그곳을 거처로 삼고 있었다. 빅토리아와 같이 살 때는 매
주 금요일에만 뉴욕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
는 의사 일정이 특별히 빡빡하지 않은 한 매주 목요일 오후 의회가 휴
원하자마자 뉴욕으로 갔다가 화요일 아침 첫 비행기를 타고 다시 워싱
턴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빅토리아가 그토록 싫어하던 정어리 통조림 몇 개만 있으면 뉴욕 집
에서의 생활은 그런대로 견딜 만하리라고 생각했다. 잭은 옷가지 몇
점과 서류 뭉치, 세면 도구와 앤드류 잭슨의 전기를 대충 꾸려 가지고
는 택시를 타고 돌아와 새로 마련한 숙소에다 풀어놓고 다시 사무실로
나갔다. 거기서 그는 그의 코트 주떠니를 뒤져서 제노비아 데이비스의
성경책 속에서 발견했던 그 봉투를 꺼냈다. 그는 손으로 휘갈겨 쓴 메
모를 유심히 관찰했다.
'거절당함. 병원 야간 556-32?3'
그러나 도대체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거절당함'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는 누군가가 제노비아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녀 남편의 청원이 판사에 의해 기각됐다는 사연을 전해 줬다
는 것일까? '병원 야간'이라는 두 단어는 불법 낙태 시술업자를 가리
키는 말이 아닐카? 그리고 555-3273번은 대체 누구의 전화번호일까?
그는 수화기를 들고 물제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여자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저, 죄송하지만 전화 받는 분은 누구시죠?
[이건 개인 전용 전화예요.도대체 누굴 찾으시죠?
그는 얼른 둘러댔다.
[거기 병원 아닙니까?
[아네요. 잘못 거신 것 같습니다.
[산부인과 아닙니까?
[아닙니다.
전화선 저쪽의 여자의 음성은 변화도 없이 단조로웠다.
[음. 참 이상하네. 거기가 어딘지 말씀해 주실 수 없을까요?
[교환에게 확인해 보시죠.
[이건 공중전화라구요.
[선생님. 지금 선생님께서는 미합중국 법원에 전화를 거신 거예]
병원이 아니구요.
'미합중국 려원?'
[네. 물론이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정공법으로 나가 보자.'
[그럼, 거기가 티투스 판사님 집무실입니까?
[아닙니다. 귀하께서는 지금 티투스 판사님의 법률 서기의 개인용
전화와 연결이 된 겁니다. 그분은 지금 판사님을 따라 법정에 나가 계
십니다. 죄송합니다만 이제 저도 용무를 봐야겠습니다.
'티투스의 법률 서기라고?'
[죄송합니다.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앗다
잭은 봉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티투스의 법률 서기에 관해 그가
아는 바라고는 '멍 청이처럼 창백한 얼굴빛의 여자'라고 빅토리아에게
전해 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판사의 법률 서기가 의
뢰인의 변호사인 빅토리아와 연락을 취하면 취했지 왜 법 규정을 어겨
가면서 제노비아파 직접 통화를 했느냐는 점이었다. 그리고 왜 그녀는
판사가 선포하기 전에 그 곁과를 미리 제노비아에게 일러줬을까? 아니
면 제노비아와 병원에 대해서 의논을? 한밤중에?
게다가 쪽지에 적혀 있던 것이 비록 려률 서기의 전화번호임은 판명
났지만 이 모든 것을 과연 티투스는 전혀 모르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
다면 도대체 그가 꾸미고 있는 일은 무얼까? 그가 실제로 제노비아 데
이비스의 죽음과 알려져 있는 것 이상의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들은 제노비아의 부검 사진첩을 이리저리 들춰 가면서 실험실 데
스크에 서 있었다.
[아주 특종을 잡았군요.낙태와 관련된 살인이라....... 어떻게 된 사
정이죠?
랜디가 물었다.
몰리는 '전들 압니까?' 하는 표정으로 양 미간을 치켜 들었다.
랜디가 말을 이었다.
[방송국 쪽에서는 멜빈 쉬버스에서 할리 문으로 또 엘리 그레이브
스에서 이번 사건까지 당신에게 어지간히도 일을 맡기는군요.
몰리는 신을 벗고는 발가락들을 꼼지락거렸다.
[제노비아 데이비스가 돌팔이 낙태 시술업자에게 수술을 받다가 ?
은 게 확실한 거예요?
[만일 그랬다면 그 돌팔이는 보통 돌팔이가 아닐 겁니다. 고도의 =
련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자예요. 자궁 절개 수술까지 해낸 걸로 ]
자면 말이죠.
[뭘 했다구요?
랜디는 대답 대신 몰리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배꼽에서 수직으로 골반뼈까지 절개된 사진이었다.
[제왕절개 수술 같은데요?
그녀가 말했다
[맞아요. 돌팔이들은 전통적으로 옷걸이 비슷한 작대기를 사용해서
낙태를 시키죠.
[그렇다면 왜 그들이 제왕절개 수술을 해서 낙태를 시켰을까요?
[어쩌면 태아가 너무 커서 그랬을 수도 있죠, 경찰 보고서에 따르자
면 제노비아는 이미 임신 6개월째로 접어들고 있었답니다. 그러나 그
게 직접 사인은 아닌 것 같아요.
[아니면요?
[그녀는 전문 용어로는 ''라고 불리는 다량 출혈로 죽었어요.
[그렇다면 돌팔이한테 시술을 받았으니까 그렇게 된 게 맞네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가끔 정상적인 수술 도중에서도 그런 사고
가 생기거든요. 피가 멈추지 않다가 갑자기 온몸의 혈관 내에서 죄다
쏟아져나와 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요?
[네. 나도 직접 목격한 적이 한 번 있었어요. 레지던트 때였어요. 그
환자는 자궁외 임신이었는데....... 그게 뭔진 알죠?
[자궁 밖에 태아가 자리잡는 거 아니에요?
[네. 대개는 나팔관에 자리잡게 되는 경우가 많죠.
[대개라뇨?
[간혹 수정란이 나팔관을 빠져나가 복부, 이를테면 내장이나 복강
내벽에 착상되는 수도 있거든요.
[자궁 라에서도 수정갈이 살아 있을 수 있나요?
[일단 착상되어 모체와 연결되면 자궁 속에 있는 것과 같아요.
[놀랍군요.그떻다면 자궁이 필요 없겠네요.
랜디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자궁이 가장 안전하죠. 만약에 정상 위치에 있지 않은 태아가 조금
이라도 모체와 홉착이 느슨해지게 되면 혈관이 파괴되고 운이 나쁜 경
우 산모는 과다 출혈로 곧 사망하게 되는 거죠. 어쨌든 그때는 자궁 외
임신이었던 그 먹자의 태아를 의사가 떼어 내는 도중에 엄청나게 출혈
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 맙소사.
[의사는 어디서 출혈이 되는지 찾아보려고 애를 썼겠지만 그건 마
치 터져 버린 상수도관을 귀를 후비는 면봉으로 막아 보려는 것과 같
은 헛수고일 뿐이었어요. 환자가 다량으로 출혈을 하고 있어서 피가
새는 곳을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신속히 터져 나오는 혈액을 막아 낼 수
가 없었던 것이지요.
[너무 끔찍하군요.
[의사는 도움을 청했고 곧 세 사람이 달려들어 지혈을 하기 위해 손
쓸 수 있는 한 모든 혈관을 봉합했죠. 간호원들은 혈액과 이미 응고되
고 있는 핏덩어리 등을 홉입기로 빨아내고요. 모두 다 미친 사람처럼
정신없이 움직였죠.
[그래서 효과가 있었나요?
랜디는 고개를 저었다.
[환자의 온몸을 가제로 싸매다시피했는데도
말더군요,
결국 30분 만에 죽고
[정말 몸서리쳐지는 애기군요. 그러면 제노비아 데이비스에게도 =
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녀는 자딨 외 임신은 아니었어요. 단, 다량 출혈은 있었죠.
[어떻게 아시죠?
[연구소에서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그녁의 혈액 속에는 웅고 작]
을 하는 피브리노겐이 발견되지 않았어요. 의 확실한 징후죠,
[검시에서 뭔가 특이한 게 없었나요?
[없었어요.......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는 진실을 말할 때 울려 나오게 돼 있는 자신
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몰리는 사진첩을 덮고 따져 들었다.
[뭔가 있었죠.그떻죠?
[없었다니까요.
[엘리엇. 당신은 날 속이고 있어요.
랜디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그의 보타이를 만지고 있었다.
[당신은 거짓말이 서투르다구요. 엘리엇. 얘기를 해봐요.
[경찰서 강력계에 먼저.......
[엘리엇
[난 못해요.아직은 아무 말도.......
[기사화시키지 않을게요. 단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을게요.
[안 되겠어요. 몰리 미안해요.
그녀는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나서는 다시 사진첩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몰리.그렇게 아무 말도 없으니까 홴지.......
[당신에게 너무 화가 나요. 엘리엇.
그녀는 사진을 한 장 더 보았딕. 그것은 제노비아가 해부실로 갓 옮
겨졌을 때, 그러니까 랜디가 낙태 시술을 한 작자의 봉합을 풀기 전 찍
은, 그녀의 아랫배 부분의 사진이었다.
[이건 좀 홍미로운데요,
[둬가요?
[봉합선 말예요. 야구공 꿰매는 방법 같은데요. 쉬버스 것과 꼭 같
아요.
랜디가 사진에 눈길을 한 번 주고는 설명을 했다
[환자가 수술중에 죽게 되면 모두 그렇게 꿰매죠.
몰리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단념했다.
[알았어요. 엘리엇. 당신이 이겼어요. 나 갈게요.
[이봐요. 몰리. 커피나 한잔하고 쭙시다.
[엘리엇. 난 뭐 좋아서 이러는 줄 아세요? 나도 커피나 마시고 빈둥
거릴 수만 있다면 좋겠어요. 하지만 에게 제 체면도 있잖아요. 가
끔씩은 여기서 기삿거리를 가져다 줘야 한단 말예요.
그가 보타이를 만졌다. 매듭에서부터 양끝으로, 옆으로 손가락을 미
러뜨리듯 잡아 빼면서.
[다음 번에는 좀더 많은 걸 알려 줄 수 있을 거예요.
[다음에요?좋아요.
일단은 그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상책인 것도 같았다.
그의 보타이는 여전히 1 뚤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걸 똑바로
해주려고 손을 뺄었다.
[당신에게 정말로 화낸 게 아니에요.
[당신은 당신 직무를 수행할 뿐인 걸요. 몰리. 그게 다죠. 뭐.
그녀는 그의 보타이를 바로잡아 주고는 그에게 생긋 웃었다.
[글쎄요. 저도 꼭 기삿거리만을 위해서 여길 자주 찾는 건 아니에
요.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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