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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빙점 [미우라 아야코] 01

by Casey,Riley 2023.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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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아야코


그는 1922년 4월 25일, 일본 최북단의 섬  홋카이도(北海道)의 아사히카와(旭川)에서 태어났
다.
1939년 아사히카와 시립여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아사히카와 서소학교 교사를 7년  동안 
지냈다.
1946년 건강상의 이유로 교단을 떠남과 동시에 폐결핵으로 인한 척추카레라이스가 발병하여 
13년 동안의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문학에 대한 열정은 불태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48년 2년, 선배인 마에가와 다다시라는 선배를 만나 그로부터 따뜻한 인간애를 
느끼면서 사랑의 연습을 시작하였으나 하늘의 질투인지는 모르지만 그도 결핵을 앓아  저세
상으로 가게 되고, 아야코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같은 기독교 신자인  2년 연하의 미우라 
미쓰요(三浦光世)와 1959년 재결합을 하게 된다.
결혼 후 지금의 남편 미우라 미쓰요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끊임없이 문학에 대한 열
정을 불태우던 중 1962년 《태양은 지지 않는다》라는 작품이 응모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한
다. 그후 1964년 아사히 신문 창립 85주년 기념  1천만엔 현상소설 공모에 《빙점》이 당선
되어 일본 문단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후로도 《양치는 언덕》, 《사랑하며 믿으며》, 《빙점Ⅱ》 등 수많은 작품을 그리스도교
적 사랑과 믿음을 바탕에 두고 글을 썼다.
그후 1982년 5월 직장암 수술을 받은 후에도 《미우라 아야코의 작품집》, 《북극의 일기》, 
《성서에서 살펴본 인간의 죄》  등을 출간하였으며, 현재(1997. 7.  30.) 파킨소니즘에 의한 
수전증 때문에 집필을 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남편 미쓰요의 대필에 의해서 힘들지만 작품 
활동을 하고있다.

작품에 나오는 주요 인물


쪾쓰지구치 게이조(迂口啓造) : 쓰지구치 병원의 원장.
쪾나쓰에(夏枝) : 쓰지구치 게이조의 아내.
쪾도루(徹) : 쓰지구치 게이조의 아들.
쪾루리코(ルリ子) : 사이시에게 피살된 게이조의 딸.
쪾요코(陽子) : 게이조의 양녀로 작품 속의 주인공.
쪾사이시 쓰치오(佐石土雄) : 루리코의 살해범.
쪾무라이 야쓰오(村井立靑夫) : 쓰지구치 병원의 안과의사. 나쓰에가 유혹됨
쪾다카키 유지로(高木雄二郞) : 쓰지구치의 의대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 산부인과 의사.
쪾후지오 다쓰코(勝尾辰子) : 나쓰에의 친구인 독신녀. 무용가.
쪾쓰가와(津川) 교수 : 나쓰에의 아버지이며, 게이조의 북해도  대학병원의 내과교수로 게이
조의 은사.
쪾마쓰사키 유카코(松崎由番子) : 쓰지구치 병원의 여사무원. 원장을 짝사랑함.
쪾쓰기코(次子) : 쓰지구치집의 가정부.
쪾기다하라 구니오(北原邦雄) : 도루의 친구. 요코를 사랑함.
쪾사키코(味子) : 무라이의 아내.

제1장  적

제1장 




바람 한 점 없다. 동쪽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뿌릴  것 같은 먹구름이 낮게 드리워
져 태양빛에 반사되어 붙박이처럼 꼼짝도 않고 있다.
스트로부스 소나무 숲의 그림자가 땅에 선명하고  짧게 드리워져  마치 소나무의 그림자가 
살아 있는 것같이 너무 새까맣고, 어쩐지 기분 나쁘게 헐떡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사히카와 시 교외 가쿠라마치의 송림 바로 곁에 위치한, 양식과 일식 스타일을 섞어 지어
진 쓰지구치 병원장의 저택이 너무나도 적막하고 쓸쓸하게 보인다. 이 집 근처에는 겨우 두
세 채의 집이 있을 뿐이었다.
멀리서 축제의 축포가 울렸다.
1946년 7월 21일, 여름 축제의 오후가 조금 지나서였다.
쓰지구치 집 응접실에는 쓰지구치 게이조의 처인 나쓰에와 쓰지구치 병원 안과의사인  무라
이 야쓰오가 아까부터 입을 다문 채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축
축이 배어 나올 것 같은 무더위였다. 
갑자기 무라이가 아무 말도 없이 일어서서 문 있는 쪽으로 가더니 문고리를 잡았다. 
오랜 침묵 속에 잠겨 있던 나쓰에에게 덜크덕 하는 소리는 몹시 크게 들렸다. 
이때 나쓰에는 무심코 눈을 치켜떴다. 윤기가 나는 눈동자에  긴 속눈썹이 그림자를 드리우
고 있고, 오똑하게 선 콧날에는 기품이 배어 있었다. 감색 바탕의 잠옷에 피부가 고운  백색 
얼굴이 마치 설국(雪國)의 여자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나쓰에는 등을 돌린 채로 서 있는 무라이의 장신의  흰 양복차림을 쳐다보면서 미소지었다. 
얌전하고, 단정한 나쓰에의 입술은 방긋 웃으면 의외로 섹시하게 보였다. 이렇게 보이는  것
은 단지 그녀가 26세의 젊은 여자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까부터 무라이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가를 나쓰에는  알아차리고 있었다. 나쓰에는 그 
말을 기다리는 표정으로 그와 같은 자신을 의식하면서 여행중인 남편 게이조의 약간 신경질
적이지만 다정한 눈을 떠올렸다.
2월의 일이었다.
나쓰에는 난로의 재를 버리다가 재가 눈에 들어가 무라이에게 진찰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후부터 무라이는 나쓰에를 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가 물론 원장 부인인 나쓰에를 몰랐
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얼굴을 정면에서 마주보는 것도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관심을 갖는 것조차 어려운,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런 나쓰에가 무라이의 환자가 되었던 것이다.
수술대 위에서, 나쓰에의 각막에 박혀 있는 아주 작은 석탄가루를 제거하고 안대를 걸쳐 주
고 나자, 무라이에게는 전에 없는 이상한 기쁨이 느껴졌다.
“이놈이 범인이군요.”
무라이는 나쓰에에게 핀셋 끝에 집혀 있는 작은 석탄가루를 보여 주었다.
“잘 안 보이는데요, 너무 작아서.”
수술대 위에 한 손을 짚은 자세로, 나쓰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하면 보이시겠지요?”
무라이는 흰 화장지에, 핀셋을 문질러  바르듯이 하여 석탄가루를 옮겼다. 이것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볼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것을, 무라이는 의식하고 있었다.
“어머, 이렇게 작은 것이었네요. 너무나 아파서 전 아주 큰 티끌이 들어갔을 거라 생각했었
어요.”
안대를 걸쳐서 외눈이 된 나쓰에는 원근의 구별이  잘 되지 않았지만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조그만 석탄가루를 응시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볼을 가까이 하고, 오랜 시간 그 석탄가루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보름 
정도 나쓰에는 통원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그녀의 눈은 치유가 빠른 편이어서, 더 이상 치료할 필요가 없었지만, 무라이는 아무 말  없
이 치료를 계속했다.
“이제는 괜찮겠어요?”
어느 날 나쓰에가 물었더니 무라이는 애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암실에서 한 번 더 진찰해 보았으면 하는데요…….”
암실은 좁았다.
마주보고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무릎이  맞닿았다. 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무라이는  천천
히, 오랫동안 진찰을 했다.
진찰이 끝나자 무라이는 금방이라도 나쓰에를 집어삼킬 것처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러한 무라이의 진지한 표정에, 나쓰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동시에, 가슴 속에서 무엇인
가가 치밀어 올라왔다. 이상하게도 상쾌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나쓰에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
다.
“대단히 감사했습니다.”
나쓰에가 인사를 하고 일어서려 했다.
이때 일어서는 나쓰에의 손을 무라이가 살며시 잡았다.
“가지 마세요.”
나쓰에는 무라이의 어린애 같은 말투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쓰에는 얌전하게 눈을 
내리깔고는, 무라이의 손을 살짝 떼고서 암실을 나왔다.
그러고 나서부터 무라이는 때때로 쓰지구치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러나 쓰지구치의 두 아이, 도루와 루리코에게는 별로 말을 걸지 않았다.
“무라이 씨는 어린애를 싫어하시는 것 같군요.”
언젠가 나쓰에가 말했다. 게이조가 잠깐 용무로 자리를 떴을 때였다.
“어린애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무라이는 조금 비꼬듯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의 표정이 허무하게 보였다.
“사실 애들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사모님의 애들은 싫습니다. 싫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저주
하고 싶은 존재라고나 할까요.”
“어머! 저주라니…… 그런 말을…….”
“사모님이 아이를 낳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나쓰에를 그리워하는 무라이의 마음 씀씀이에 나쓰에는 감동했다. 
지금 문 앞에 서 있는 무라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쓰에는 한 달 전쯤 들었던 무라이의  말
을 회상하고 있었다.
멀리서 또 다시 축제의 5단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문 손잡이를 잡은 채로, 무라이가 되돌아 보았다. 그의 넓은 이마에는 촉촉하게 땀방울이 젖
어 있었다.
약간 얇은 입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듯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나쓰에는 무라이의 말을 
기다렸다.
그 말을 기다린다는 것이 유부녀인 그녀에게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금은 알고 싶지 않
았다.
“나쓰에 씨는 왜 나에게 결혼을 권합니까?”
무라이의 내동댕이치듯한 격한 말투에 긴 침묵이 깨지자, 나쓰에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면
서 옆의 그랜드 피아노에 몸을 기대었다.
“사모님!”
무라이는 피아노에 기대어 있는 나쓰에에게 다가갔다.  나쓰에는 의자에서 일어서서 재빠르
게 뒤로 물러났다.
“사모님, 당신은 잔인한 분이세요.”
무라이는 나쓰에의 앞을 가로막아서듯이 하면서 다가갔다.
“내가 잔인하다구요?”
“그래요, 잔인해요. 당신은 조금 전에 나에게 결혼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훨씬 전부터 나의 기분을 당신은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무라이는 테이블 위의 사진을 보았다.
나쓰에가 권했던 사진의 여성은,  아카시아 나무에 기대서서 웃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활짝 
웃는 순진한 얼굴의 아가씨였다.
무라이는 시선을 나쓰에에게로 돌렸다. 남자치고는 너무나 아름다운 눈동자였다. 그 눈에 가
끔 허무해 보이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질 때가 있었다.
그 어두운 그림자에 나쓰에는 매력을 느꼈다. 지금 무라이는  약간 거칠고 어두운 표정으로 
나쓰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쓰에는 그런 무라이의 품으로 쓰러져 버릴 것 같은 자신을 감
지하고서 눈을 내리깔았다.
나쓰에는 무라이에게서 이렇듯 노골적인 사랑 고백을 받을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생각
하고 있었다.
오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도, 무라이에게 결혼을 권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를 확실히 알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쓰에는 버들가지 같은 아름다운 손을 모아 기도하듯 가슴  언저리로 가지고 갔다. 나쓰에
의 그 몸동작이 요염해 보였다.
“나쓰에 씨.”
무라이는 흰 횟가루가 발라진 벽을 등지고  있는 나쓰에의 앞을 막아서서 나쓰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무라이의 손의 온기가, 유가타를 통해서 나쓰에의 전신으로 퍼졌다.
“안돼요. 이러시면 화내겠어요, 나.”
이때 무라이의 얼굴이 덮치듯이 나쓰에에게로 다가갔다.
“무라이 씨, 내가 쓰지구치의 아내인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나쓰에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나쓰에 씨, 하루 종일 당신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요. 당신을 잊을 수만 있다면……  나는 
잊고 싶어요! 잊을 수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는 괴로워해 왔습니다.” 
무라이의 손이 나쓰에의 어깨를 거세게 흔들었다.
그때였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분홍색 옷에 흰 앞치마를 두른 루리코가 아장아장 걸어 들어왔다.
무라이는 당황해서 두세 발짝 나쓰에로부터 떨어졌다.
“엄마, 왜 그래?”
3살짜리 루리코에게도, 이 두 어른의 모습이 심상치 않게 보인 것일까. 루리코가 크게 뜬 눈
으로 무라이를 노려보았다.
“엄마를 괴롭히면 아빠에게 이를 거야!”
루리코는 그렇게 말하면서 작은 손을 벌리고 달려가 나쓰에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무라이와 나쓰에는 무심히 얼굴을 마주보았다.
“루리코, 엄마는 말이야, 선생님과 중요한 할 이야기가 있어. 루리코는 착한 아이지? 자, 그
럼 밖에 나가 놀고 있거라.”
나쓰에는 허리를 조금 굽혀서 루리코의 양 손을 쥐고 가볍게 흔들었다.
“싫어. 나는 무라이 선생이 싫어!”
루리코는 무라이를 똑바로 쳐다봤다.
어린애다운 악의없는 응시였다.
무라이는 얼굴을 붉히며 나쓰에를 쳐다봤다.
“루리코!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돼. 무라이 선생님은, 엄마하고  중요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지 않았니? 착하지, 요시코네 집에 가서 놀고 있거라.”
나쓰에는 무라이보다도 한층 더 얼굴을 붉히고 루리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쓰에는 무라이의 사랑을 거절하려면 지금 루리코를 무릎에 안아 올려야만 한다고  생각했
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싫어, 엄마도 싫어! 어느 누구도 루리코하고는 놀아 주지 않아.”
루리코는 획 하고 등을 돌리고 응접실을 뛰어나갔다. 앞치마를  뒤로 둘러 묶은 나비모양의 
매듭이 등 뒤에 귀엽게 흔들렸다. 나쓰에는 불러 세울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무라이와 단 둘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 루리코를 다시 불러 
세울 수가 없었다.
복도를 달리는 귀여운 발소리가 부엌문으로 사라졌다. 무엇인가 마음에 걸리는 발소리였다.
“용서하세요, 루리코가 실례된 말을 해서요…….”
그러나 루리코의 등장으로 두 사람 사이는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아니에요. 어린이란 정직하지요.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민감한 법이지요.”
무라이는 서 있는 채로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당신은 내 아이를 싫어하시는군요.”
“싫어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도루나 루리코나 이상하게 생각하기만 하면 무엇인가 신
경질적인 느낌이 들고, 또 게다가 부리부리한 눈이라든가…… 원장님을  꼭 닮은 것도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아요. 나는 이  두 아이가 원장님과 나쓰에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견딜 수 없는 어떤 감정을 느끼며, 때론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울 때가 있어요.”
무라이는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끄고, 양 손을 바지 주머니에  깊숙이 넣은 채 정열적인 시
선으로 나쓰에를 주시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 얽혔다.
이때, 나쓰에가 먼저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렸다.
그녀는 조용하게 피아노 앞에 앉아서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피아노를 치려는 것은 아니었
다. 양 손을 가볍게 피아노 위에 올린 채로 나쓰에는 나직히 말했다.
“돌아가 주시지 않겠어요?”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남편도, 일하는 가정부 쓰기코도, 루리코도  없는 집 안에서 무슨 사
건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쓰에의 몸은 그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
나 나쓰에는 그러한 자신이 무서웠다.
나쓰에의 말을 듣자 무라이는 가벼운 미소를 띠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그녀의 뒤에 섰
다.
“나쓰에 씨.”
그는 뒤에서 피아노 건반에 놓여진 나쓰에의 흰 양 손을 위에서 꽉 눌렀다.
피아노에서 쾅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이때 무심코 뒤돌아본 나쓰에의 볼에 무라이
의 입술이 닿았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마음에 없는 말이었다. 무라이는 말없이 나쓰에의 어깨를 안았다.
“정말 이러시면 곤란해요.”
무라이의 입술을 피하려고, 나쓰에는 턱을  깊숙이 옷깃에 파묻었다. 입술을 피하지  않는다
면,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책임을 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 이러시면 안됩니다.”
나쓰에의 얼굴을 위로 향하게 하려고 애쓰던 무라이는 세  번이나 거절당하자, 몸을 구부리
고 나쓰에의 볼에 입맞추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완강한 몸짓으로 무라이를 거부했다.
무라이의 입술은 나쓰에의 볼을 조금 스쳤을 뿐이었다.
“알았습니다. 그렇게도 저를 싫어하고 계셨다니…….”
무라이는 나쓰에의 거절에 창피를 당했다고 생각하고, 획 하고 문을 열고 현관으로  나갔다. 
나쓰에는 멍하니 일어섰다.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닌데…… 왜 그걸 모르지? 내가 거절했던 것은 아양을 부리는 태도였
고 장난이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나쓰에는 어떤 상황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28세밖에 되지 않은 무라이가 그러한 것을 알아차릴 리 만무했다.
나쓰에는 일부러 무라이를 전송하러 가지 않았다. 가지 못하게 해버릴 것 같은 자신이 무서
웠던 것이다.
무라이의 입술이 닿았던 볼에, 그녀는 살짝 손을 대 보았다. 무라이로부터 키스를 받은 볼이 
마치 보석처럼 귀중하게 생각되었다. 가슴을 꽉 조이는 것 같은 감미로운 느낌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6년이 지난 지금, 처음으로 외간 남자의  키스를 볼에 받았다는 것이 나쓰에
의 감정을 흥분시켰다. 
나쓰에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녀의 예쁘고 포동포동한 손가락이 피아노를 연주했다. 
쇼팽의 ‘즉흥환상곡’이었다.
나쓰에는 점차로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지긋이 눈을 감고  취한 것처럼 계속해서 피아
노를 치기 시작했다.
마침 이 무렵, 어린 루리코의 신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돌연, 피아노 줄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나쓰에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몸을 흠칫 
떨었다.
“피아노 줄이 끊어질 정도로 열중해서 치다니…… 상당히 열심이시군.”
어느 사이엔가 출장갔던 남편 게이조가, 여느 때처럼 다정하게 웃는 얼굴로 뒤에 서 있었다.
“어머, 오늘이었어요?”
나쓰에는 당황했다. 원래 게이조의 귀가는 내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볼이 붉어진 채 벌떡 일
어서는 나쓰에의 모습이 요염해 보였다.
게이조는 나쓰에의 홍조를 띤 얼굴이나, 당황하는 몸짓이 자신의 갑작스런 귀가를 기뻐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아무 말 없이 서 계시기만 할 거예요? 그러고 보면 당신은 정이 없는 분이세요.”
나쓰에는 게이조의 목에 희고 포동포동한 양  팔을 휘감으며 게이조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
다.
방금까지 무라이 야쓰오를 생각해서 상기된 자신의 얼굴을 게이조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
기 때문이었다.
게이조는 문득, 평상시와 다른 행동을 하는 나쓰에의 모습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이제까지
의 나쓰에는 자진해서 게이조의 목을 안는 따위의 애정 표현을 한 일이 없었다.
“더워요.”
그러나 게이조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쓰에의 등에 팔을 감았다.  게이조는 원래 학자 타입
으로, 신경질적이지만 심술궂거나 모난 점은 거의 없었다.  차분하고 온순한 성격이었다. 정
말로 신뢰할 수 있는 믿음직스러운 남편이었다.
나쓰에는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으면서, 차츰 마음의 평온함을 찾아가고 있었다.
무라이에의 욕정이 꿈틀거렸던 아까를 생각하면, 지금은 그때의 감정이 거짓말 같기만 했다.
‘역시 내 남편 쓰지구치가 제일 좋아.’
그렇게 생각했다. 나쓰에는 게이조를 사랑하고 있었다.  의사로서도, 남편으로서도 존경하고 
있었다. 아무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무라이와 둘이 있는 것이 그렇게 좋은지 몰라.’
나쓰에는 그것이 불가사의했다. 지금 이렇게 해서 남편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다시 무라이를 만난다면 어떻게 될지 자신이 없었다. 억제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자신의 피 
속에 흐르고 있는 것을 나쓰에는 느꼈다.
‘엄마를 괴롭히면, 아빠에게 일러줄테야!’
문득, 아까 루리코가 했던 말을 생각하고, 나쓰에는 섬뜩함을 느꼈다.
“피곤하지 않아요?”
루리코의 귀가가 될 수만 있다면 늦기를 바라면서 나쓰에는 남편을 쳐다 보았다.
“응,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없는 동안에 당신이 얼마나 외로웠겠어.”
게이조는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듯이 정답게 나쓰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의 긴 생머리가 기분좋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게이조는 나쓰에의 머리에 턱을 댄 채
로 무심코 테이블 위를 보았다. 
순간, 게이조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테이블 위에 커피잔과 잿떨이가 있었다. 재떨이에 있
는 담배꽁초를 게이조는 눈으로 세었다. 여덟 개비까지는 셀 수가 있었다. 
게이조는 냉정하게 나쓰에를 밀어냈다. 남편의 이러한 낌새에 나쓰에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
았다.
“루리코는 어디 간 거야? 도루도 쓰기코도 없잖아.”
게이조의 엄한 시선은, 아직까지도 테이블 위에 머물러 있었다. 게이조의 냉담한 시선과  엄
격한 표정에 얼어붙은 나쓰에는 무라이의 방문을 이야기할 기회를 놓쳐 버렸다.
“도루는 쓰기코가 데리고 영화보러 갔어요. 루리코는 집 주위에서 놀고 있을 거예요.”
“들어오면서 못 보았는데 무슨 소리야?”
어린 루리코까지 밖으로 내쫓고 아무도 없는 이 방에서, 도대체 이 담배꽁초의 주인하고 무
슨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게이조는 탐색하는 듯한  눈초리로 계속해서 재떨이의 담배꽁
초를 주시했다. 그러면서 우리집에 온 놈이 누구였던가를 나쓰에가  먼저 말해 주기를 속으
로 바라고 있었다.
게이조는 피아노에 한 손을 댔다.
도미솔, 도미솔, 도미솔, 손가락은 똑같은 건반만 반복해서 치고 있었다. 왠지 견딜 수가  없
었다. 나쓰에는 갑자기 불편해진 남편에게 점점 더 무라이의 방문을 말하기 어려웠다.
도미솔, 도미솔, 도미솔……. 
탕, 하고 큰 소리를 내며 게이조는 피아노 뚜껑을 닫았다. 마침 나쓰에가 재떨이와 커피잔을 
치우는 중이었다. 한순간 게이조와 나쓰에의 눈이 마주쳤다.
찰가닥 하고 소리가 날 것 같은 시선이었다.
나쓰에가 먼저 눈을 딴 곳으로 돌리고 방을 나갔다. 게조이는 문을 나가는 나쓰에를 바라보
며 방문객에 관해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 나쓰에가 수상하게 느껴졌다.
“손님이 왔었소?”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물을 수도 있었는데…… 이미 시간적으로 늦어 버렸다.
사실 담배꽁초와 커피잔을 처음 보았을  때 집에 누가 왔다 갔노라고  한 마디만 했더라면, 
두 사람은 서로 의심의 구렁텅이에서 헤메이지 않아도 되는데, 게이조는 망설이다가 이러한 
시간을 놓쳐 버린 것이다.
“무라이일까, 다카키일까?”
그가 없는 동안에 집에 올 남자 손님이라면, 이 두 사람 이외에는 없었다. 
다카키 유지로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삿포로 종합병원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게이조의 학
창시절 친구로 나쓰에를 신부로 맞이하고 싶다고 자기의 은사인 나쓰에의 아버지에게  청원
을 한 적이 있었다.
나쓰에의 아버지 쓰가와 교수는, 귀신이라고까지 일컬어질  만큼 내과에서는 유명한 의사였
다.
“나쓰에는 이미 시집갈 곳을 정해 두었네.”
거절당한 다카키는,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쓰지구치입니까? 그녀석이라면 나는 단념하겠어요. 그러나 다른 놈
이라면 절대로 단념할 수 없습니다.”
라고 큰 소리로 고함쳤다고, 게이조는 나쓰에로부터도 또 다카키 본인으로부터도 들었다. 
다카키는 게이조와는 대조적으로 이목구비와 생김새가 뚜렷한 호탕한 남자였다.
그는 불쑥 삿포로에서 이곳 병원으로 게이조를 찾아와,
“이제부터 너의 미인 마누라를 유혹하러 가려는데, 괜찮겠나?”
하는 등 진한 농담을 하는 독신 남자였다.
다카키가 찾아왔었다면 별로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다카키는 깔끔한 성품으로, 나쓰에에 관
한 한 이미 잊고 있는 것 같았다.
다카키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전문 분야가 아닌 유아원의 촉탁의사 노릇을 하며,
“나는 말이야,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어린애만은 얼마든지 있어.”
라며 제법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다. 
‘다카키는 오늘 삿포로에서 몇 시간 전에 만나고 왔다.  그렇다면 방문객은 역시 무라이일
까?’ 
게이조는 불안해졌다. 
‘무라이가 왔다갔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양심에 가책을 느낄 만한 무슨 일인가가 있
었단 말인가?’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창밖의 스트로부스 소나무숲을 보고 있었다. 
‘참, 다쓰코 씨일지도 몰라. 그 사람도 담배를 피우지.’
부잣집 외동딸인 다쓰코는 나쓰에와는 26살 동갑으로 여학교 시절부터 친구이고, 일본 무용 
사범이었다.
‘그녀는 응접실에는 들어오지 않아.’
게이조는 초조하게 혼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부엌문 쪽에서 가정부 
쓰기코와 도루의 무언가 말하고 웃는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화관에서 돌아온 것일까?’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게이조는 응접실을 나와 식당방으로 갔다. 나쓰에와 쓰기코는 부엌에 
있는 모양이고, 도루는 식당방의 소파에 엎드려 있었다.
“아빠, 언제 왔어? 아빠, 나 미국 군인이 될까봐.”
“왜?”
게이조는, 오늘 방문객이 무라이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도루의 옆에 앉았다.
“응, 미국 군대는 말이야, 아주 용감해. 기관총을 따따따 하고 쏘니까, 적이 퍽퍽 쓰러져 죽
어 버렸어.”
“응, 전쟁 영화를 보았구나.”
게이조는 역겨운 얼굴이 되었다.
“적은 모두 죽었어. 하지만 죽는다는 것은 어떤 거야? 죽으면 언제 움직이지?”
“죽으면 움직일 수 없지.”
“아빠가 주사를 놓아 주면 움직여?”
“아니야, 아무리 주사를 많이 놓아도 움직이지 않아. 죽으면  식사도 할 수 없고, 이야기도 
할 수 없어요.”
“응…… 그렇다면 죽는다는 건 싫어. 하지만 적은 죽어도 좋아. 그런데 적이 뭐야, 아빠?”
“적이라는 것은 말이야…… 설명하기 곤란한데…….”
전쟁중에 게이조는 3개월 정도 중국  천진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근무 도중 
늑막염에 걸려 곧바로 전역이 되었으므로, 짧은 기간 동안의  군병원 생활로는 전쟁을 실감
할 수 없었다. 단지 풍경이나 여성의 풍속에서 이국적인 정서를 느꼈지만, 그 하늘 아래  어
딘가에 처절한 전쟁이 있다고 하는 것조차 게이조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아사히카와에 돌아와서는 함재기가 한두 번 날아오더니  종전을 맞았다. 원래 학생시절부터 
반전(反戰) 사상을 가지고 있던 게이조는,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적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
지 않았다. 그러므로 도루가 적이 무엇인지 물어도 대답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건 말이다. 적이라는 것은, 가장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대를 말한단다.”
5살의 도루가 알아듣기는 어려운 말일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게이조는 자신의 말에 쓴
웃음을 지었다.
“루리코가 적이야?”
언제나 남매는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던 도루였다.
“아니, 루리코는 너의 여동생이야. 적이라는 것은, 얄미운 사람이라는 말이야. 즉, 심술궂게 
대하거나, 못살게 구는 사람을 말하지.”
“아, 시로를 말하는구나. 시로가 적이지?”
하면서 도루는 이웃집 아이의 이름을 댔다.
“설명하기 정말 어렵군. 시로는 친구지 적이 아니야.”
게이조는 웃었다.
“여하튼 아주 사이가 나쁜 사람을 말한단다.”
“사이가 나쁜 사람과 왜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도루는 귀엽게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옛날에 말이야, 예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말씀하시기를 적과는 사이좋게 지내
야 한다고 가르치셨어.”
게이조는 예수가 말한 ‘너의 적을 사랑해라.’라는 말을 상기하고 있었다. 
학창시절의 일이었다. 쓰가와 교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자네들은 독일어가 어렵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진단이 어떻다든가, 하고 불평들을 하고 있
지만 말이야, 나는 무엇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그리스도의 ‘너의 적을  사랑해라.’라는 
말만큼 어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네. 대개의 일은 노력하면 할 수 있지.  그러나 
자신의 적을 사랑한다는 것은 노력만으로는 할 수 없어요. 노력만으로는…….”
나쓰에의 아버지는 귀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내과의사 중 최고였고,  인격도 웬만큼 쌓은 사
람이었기 때문에 몹시 슬픈 표정으로 말한 그 말은 게이조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학생인 
게이조의 입장에서 보면 쓰가와 교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강의할 때에 어떠한 연유로 쓰가와 교수가 그렇게 말한  것이었는지, 원만한 사람에게도 적
이 있어서 고민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던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
적과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들은 도루는  무엇인가 헷갈리는 듯한 얼굴을 하고  부엌으로 
갔다. 배가 고픈지,
“엄마 먹을 것 좀 없어?”
하고 어리광부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게이조는 적이라는 말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문득 무라이  야쓰오의 질투가 날만큼 
아름다운 눈을 생각해냈다. 그러자 예기치 않게 살의(殺意)에 가까운 감정이 그의 가슴을 스
쳐갔다.
‘적이란 가장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대이다.’라고  방금 도루에게 말했던 자
신이 우스웠다. 지금까지 고지식하고 착실하게 살아온 게이조와 어쩐지 자포자기 하고 있는 
것 같은 허무주의적인 성향의 무라이와는 어딘가 성격이 맞지  않았다. 그러면서 왠지 마음
에 걸리는 존재였다.
‘오늘 내가 없는 사이에 나쓰에와 무라이가 무슨 일이라도 있었다면…… 나쓰에가 왜 갑자
기 나에게 달려들어 안겨 왔을까? 지금까지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언제나 조
용히 피아노를 치는 나쓰에가, 왜 그렇게 피아노 줄이 끊어질 때까지 심하게 쳤을까? 왜 손
님이 왔었던 일을 말하지 않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만약 상대가 무라이라
면…….’
게이조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의 생활을  위협하는 놈에게 관용을 베풀 
수는 없었다.
‘적이란 사랑을 해야 할 상대가 아니라, 싸워야 할 상대라고 도루에게 말했어야 했다.’
게이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2층의 서재로 올라갔다.

제2장  유 괴

제2장 

유  괴


“루리코 아가씨가 늦는군요, 사모님.”
감자를 깎고 있던 쓰기코가 일손을 멈추었다.
“글쎄 말이야, 평상시보다 조금 늦는군. 쓰기코, 감자 깎는 일이 끝나면 나가서 찾아봐.  하
긴, 어차피 요시코의 집에서 놀고 있을텐데, 뭐.”
나쓰에는 루리코에 대해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빠에게 이를 거야!’
하고 무라이에 대한 반감을 온몸으로 나타냈던 어린 루리코의 귀가가 조금이라도 더 늦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루리코를 데리러  갔던 쓰기코는, 어찌된 영문인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5시 30분에 가까웠다. 그러나 7월의 5시 30분은 아직도 대낮같이  밝았
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네.”
다 만든 마요네즈를 찬장에 넣고 있을 때 쓰기코가 돌아왔다.
“사모님, 루리코 돌아왔어요?”
“아직 안 돌아왔어. 요시코의 집에 있지 않았어?”
“네, 오늘은 2시경에 돌아가서는 오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2시경이라면?”
나쓰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2시라면 루리코가 응접실에  들어왔을 때가 아닌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3살짜리 루리코가 어디에 가 있다는 말인가?
“선생님 싫어, 엄마도 싫어, 아무도 루리코하고는 놀아주지 않아.”
그렇게 말했던 루리코의 말이, 지금에 와서야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때 귀여운  발소리
가 났다.
‘휴우, 이제야 루리코가 돌아오는구나. 안심했다.’ 
그러나 그 발소리는 루리코의 것이 아니었다. 볼이 붉은 요시코였다.
“이거 루리코가 잊어버리고 놓고 갔어요.”
하고 내밀었던 것은 나쓰에가 만들어준 50cm 정도 크기의 인형이었다. 나쓰에는 그것을 보
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인형을 받자 마자 나쓰에는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주목나무의  생
울타리 옆에서 조금 전 쓰기코와 함께 루리코를 찾으러 나갔던 도루가 멍하니 서 있었다.
“엄마, 나 배고파. 루리코는 아무리 찾아도 없어.”
“그럼 쓰기코 누나에게 밥을 달라고 해서 먹어.”
하고는 나쓰에는 요시코의 집 쪽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어머, 아직도 안 보여요?”
소학교 선생님으로 있는 요시코의 어머니가 앞치마로 손을 닦으면서 나왔다.
“시범림은 찾아보셨습니까?”
“아니요, 아직. 그 아이 혼자서는 좀처럼 숲속에 들어가지 않아요.”
“하지만 시범림은 어린아이들의 놀이터인걸요.”
요시코의 어머니는 게다를 아무렇게나 신고 먼저 뛰기 시작했다. 나쓰에는 게이조에게 알리
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될 수만 있다면 게이조에게 알리지 않고서 루리코를 찾
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자기 집 주목나무 생울타리 옆으로 달려나가 시범림 안으로 들
어갔다. 들어가 보았더니 시범림은 쥐죽은 듯 조용하고 애들의 목소리도, 모습도 볼 수 없었
다. 
이 시범림은 아사히카와 영림국 관할의 국유림으로 북해도에서 가장 오래된 외국  침엽수를 
주로 한 인공림이었다. 총면적이 18.42헥타르  정도이고, 소나무와 독일가문비, 구주적송  등 
나무가 열대여섯 종류나 되고, 그 나무의 종류에 따라 큰 숲을 이루고 있었다.
시범림에는 관리인이 쓰고 있는 오래된 집과, 지붕이 붉은 창고가 있었다. 쓰지구치의  집은 
이 시범림 입구에 있는 키가 큰 스트로부스 소나무 숲으로  정원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 집
은 아름다운 주목나무 생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으며 낮은 문으로 꾸며졌고, 붉은 양철지붕의 
2층 양옥과, 파란 양철지붕의 단층 건물로 이루어진 견고한 집이었다.
이 시범림을 300미터 정도 통과하면, 이시카리 강의 지류인 비에이 강가에 이른다.
얼음을 녹인 듯한 맑은 강물 저쪽에는, 스키장으로 이용되는 이노자와 산이 보이고, 저 멀리 
동쪽으로는 다이세쓰 산으로 이어지는 도카치다케의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 매우 아름답다.
아이들은 숲속에서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을 하다 싫증이 나면, 비에이 강에서 수영을 하기도 
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그러나 오늘은, 아사히카와의 여름축제를 구경하러 갔는지 숲속에는 인기척이라고는 없었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있는 숲속은 어두컴컴했다.
“루리코!”
“루리코!”
나쓰에는 딸아이의 이름을 큰소리로 외쳐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나쓰에는 겁이 났다.
이때 관리인이 숲속의 자기 집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원장 사모님, 무슨 일입니까?  오늘은 이상하게 아이들이  숲속에  놀지 않은 것  같은데
요.”
그는 언제나 친절하게 루리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사내였다. 나쓰에와 요시코의 어머니
는 얼굴을 마주보았다.
요시코의 어머니는 가만히 있지 못하겠는지, 독일가문비숲 쪽으로 달려갔다. 나쓰에는 선 채
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숲속에서 산비둘기의 나직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싫어, 엄마도 싫어. 아무도 루리코하고는 놀아주지 않아.’
라고 했던 루리코의 말이 자꾸 생각나, 나쓰에는 비틀거리면서 걷기 시작했다. 좀처럼  햇빛
이 들지 않는 숲속의 길은, 습기가 차  축축하고 부드러웠다. 그 흙 위를 걷자 불안감이  발 
밑에서부터 위로 스며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쓰에는 움푹 패인 곳으로 들어서자  무엇인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까마귀의  시체였다. 
죽은 까마귀의 깃털이 그 주위에 널려 있었다. 나쓰에는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숲속에는 저녁놀이 지고 있었다. 마치 안개가 끼어 있는 것 같은 흐린 빛이었다. 나무  사이
를 넘어서 비스듬하게 내려쪼이는 석양놀은 여기저기에 줄무늬를 만들고 있었으나, 그 줄무
늬마저도 어슴푸레 희미하게 보였다.
“루리코가 없다는 거요?”
나직하지만 엄한 게이조의 목소리였다.
나쓰에는 움찔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루리코가 언제부터 보이지 않았소?”
나쓰에는 벌벌 떨면서 게이조를 보았다. 남편은 생전 처음 보는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쓰에는 이렇게 무서운 얼굴 표정을 하고 있는 남편을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무서운 얼굴을 하는 것은 싫어요.”
지금까지의 나쓰에라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무라이와의 관계가 
어쩐지 꺼림직했고, 루리코의 행방을 모르기 때문에 나쓰에는 무기력하게 우물거렸다.
“2시가 지났을 무렵일 거예요.”
“왜 나에게는 찾으라고 말하지 않았소?”
나쓰에는 눈을 지긋이 감은 채로 그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와 축제 구경이라도 간 것이 아닐까?’
나쓰에는 이런 생각이 스치자 퍼뜩 얼굴을 들었다.
무라이가 루리코를 축제에 데리고 갔을지도 모른다.
‘이만큼 찾아서 눈에 띄지 않는다면, 혹시 그럴지도 몰라.’
루리코가, 
‘무라이 선생도 싫어.’
라고 말했지만, 어린아이니까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리 하지 않았겠는가!
루리코는 원래 사람을 잘 따르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무라이가 이리 오너라,  하고 
손을 내밀자 기꺼이 따라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만 왜 무라이는 사전에 한 마디 상
의도 하지 않고 루리코를 데리고 갔을까?
“무라이는 너무해요.”
무심코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던 나쓰에에게,
“뭐, 무라이? 무라이가 어떻다는 거요?”
게이조는 나쓰에의 이 말에 울컥 울화가 치밀었다.
“사실은 오늘 무라이 씨가 와서…….”
“무라이가 찾아왔었단 말이오? 당신은 한 번도 그런 말을 안  했잖아. 어째서 말하지 않았
소?”
“어째서라니요……?”
탐색하는 것 같은 게이조의 눈을 보자 나쓰에는 화가 났다.
“잊고 있었어요. 무라이 같은 사람이 온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런가?”
게이조의 말이 도중에서 끊겼다. 나쓰에의,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에 게이조는 분노
와 질투심이 불끈불끈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게이조는 자신을 억제했다. 그것은 그의 성격 탓이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 좋아. 그건 그렇고 무라이가 돌아간 시간은 몇 시지?”
“당신이 집에 돌아오시기 15분이나 20분 전이었어요. 틀림없이 무라이 씨가 루리코를 데려 
갔을 거예요.”
나쓰에는 무라이가 루리코를 데리고 축제를  보고 있는 장면을 상상하고  안도감을 느꼈다. 
무라이는 게이조가 내일 돌아온다고 알고있었다. 나쓰에와는  그래서 그런 식으로 헤어졌지
만, 밖에서 놀고 있는 루리코를 축제에  데리고 가서 구경시켜 준 다음, 자연스럽게  저녁에 
집으로 오기 위해서 루리코를 데리고 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거, 루리코하고 좋은 친구가 되었어요.”
하고 나쓰에를 놀라게 할 작정인지도 몰랐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한 마디 양해만이라도 구했다면 이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었을텐데, 
하면서 나쓰에는 게이조를 따라 숲을 나왔다.
“정말로 무라이가 데리고 간 것일까?”
숲을 나오자, 게이조가 반신반의의 얼굴을 하고 나쓰에를 뒤돌아보았다.
“어머, 어찌된 영문이에요?”
숲 입구에서 얼굴을 마주보고 있던  게이조와 나쓰에는 요시코의 어머니가  가문비나무숲의 
샛길에서 나오는 것을 보자, 말했다.
“이거, 걱정을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집에 왔던 손님이 축제에  데리고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이렇게 찾아봐도 없으니  틀림없이 그럴지도 모
르겠어요. 나는 혹 유괴가 아닐까, 생각하고 걱정했거든요.”
“유괴라니요?”
설마 하는 듯 게이조는 살짝 웃었다. 웃는 것을 보고,
“왜 있었잖아요. 몇 사람이나  유괴된 사건이. 일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고약한  일만 자
꾸……. 하지만 루리코가 그렇지 않다니 다행이에요.”
그렇게 말하고 요시코의 어머니가 떠나자,  나쓰에는 또 왠지 불안해졌다. 집에  돌아왔더니 
식사를 끝마친 도루가 피곤했던지 식탁 옆에서 자고 있었다.
무라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무라이는 집에 없었다.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는군요.”
나쓰에는 무라이가 혹시 집 부근까지  루리코를 업고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정신없이 밖으로 나가 보았다. 여름 해는 길었다. 7시가 지났는데도 바깥은 아직 밝았다.
키 큰 옥수수 잎이 바삭바삭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무라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집에 들어서자 게이조가 초조한 표정으로 식탁 앞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식사할까요?”
“아니, 됐어. 식사보다는 경찰에 전화를 해야겠어.”
게이조는 나쓰에를 질책하고 욕을 퍼붓고 싶은 생각을 억제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화기
를 집으려고 했을 때, 요란스럽게 벨이 울렸다.
“틀림없이 무라이 씨일 거예요.”
나쓰에의 말에 게이조는 잠깐 자기의 아내를 뒤돌아보면서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나쓰에 씨?”
무라이의 목소리였다.
‘나쓰에 씨가 뭐야! 언제부터 이렇게 친해져,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나쓰에 씨라고 부
르게 되었지?’
게이조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보세요, 전화를 주셨다고 하던데요, 화내고 계신 것 아니지요? 오늘은 정말로 실례가 많
았어요…….”
무라이는 나쓰에가 수화기를 귀에 대고,  꼼짝도 않고 듣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대를 나쓰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목소리였다.
“…….”
“나쓰에 씨? 여보세요, 들립니까? 역시 아무 대답도 않는 것을  보니까 화가 많이 나신 거
군요?”
무라이가 말했다.
게이조는 뒤에 서 있는 나쓰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화기를 건네 주었다.
“역시 화내고 계시는군요?”
게이조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던 전화 내용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나쓰에는 
숨을 죽였다.
“여보세요, 아까는 실례했습니다. 저, 루리코가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시죠?”
나쓰에는 되도록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옆에 있는 게이조를 의식해서인지 목소리
가  필요 이상으로 더 굳어졌다.
“네? 루리코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말을 들은 나쓰에의 얼굴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무라이는 루리코를 데리고 있지 않았다.
“루리코가 안 보입니다.”
“언제부터 보이지 않습니까?”
무라이와 단둘이 있던 그때, 루리코는 응접실을 나가 이제까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저…….”
우물거리더니 나쓰에는 게이조를 보고 나서 말했다.
“모르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요. 실례했습니다.”
무라이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나쓰에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무라이도 모른다는 거요?”
게이조는 당황했다. 무라이가 모른다면 루리코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게이조는 멍
하니 서 있는 나쓰에를 밀어제치듯이  하여, 수화기를 들자마자 경찰을 불렀다.  어린아이가 
없어져서 신고한다고 하니까,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이  아주 한가한 어조로 경찰
은 대답했다.
“올해 축제는 미아가 작년보다 두 배 가까이나 늘었어요. 오늘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니, 우리 아이는 길을 잃을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게이조는 경찰의 무심한 말에 화가 나서 재빠르게 경위를 설명했다.
“혼자서 시내쪽으로라도 나간 것이 아닐까요?”
“글쎄, 평상시에는 이 주변에서만 놀았지, 멀리까지는 간 적이 없습니다만.”
“평상시에는 어떻든간에 오늘은 축제니까요. 이웃집 누군가 근처의 아이가 나가는 것을 보
고, 루리코가 따라갔을 수도 있겠지요.”
축제 때문에 경계를 하느라 인원이 부족했던지 피곤한 목소리였다.
“혹 유괴된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서요.”
자기의 입에서 나온 유괴라는 말이 흉기처럼 게이조의 가슴을 후벼왔다.
“유괴입니까?”
잠깐 말을 멈추고 나서 경찰이 물었다.
“목격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 말을 듣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러면 전화나 무엇인가로 협박이라도 받았습니까?”
“아니요.”
“아마 길을 잃지 않았나 생각되는데요.”
일단 담당에게 연락해 놓겠다는 말을 남긴 채 경찰의 전화가 끊어졌다.
“만일 유괴를 당했다면 누군가의 눈에 띄었겠죠. 한낮이었는걸요.”
나쓰에는 가냘프게 부정했다.
“그러나 이 숲을 빠져나가 제방을 따라가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길 쪽으로 나갈 수
가 있단 말이야.”
게이조의 목소리가 어두웠다.
경찰에 일단 신고는 했지만, 게이조도 나쓰에도 불안은 점점 더 심해질 뿐이었다.  경찰만을 
의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게이조는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당직 의사가 놀라서,
“바로 누군가를 보내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게이조도 나쓰에도, 부엌에서 빨래하는 쓰기코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조그마한 소리에도 움찔 하고 어깨를 떨고 일어나는 나쓰에를,  게이조는 불쾌한 듯 응시하
고 있었다.
게이조는 나쓰에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자기의 출장중에, 나쓰에가 무라이를 만났
다는 것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집에는 게이조뿐만 아니라 쓰기코도, 도루도, 루리코
도 아무도 없질 않았는가. 단둘이서 만나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그것은 마치, ‘남자를 끌
어 들여서…….’라는 음란한 말로 형용되는, 그러한 느낌을 갖게 했다.
더구나 그러는 동안에 어린 루리코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게이조는 일단 입을 열면 한없이, 마구 호통칠 것 같은  자신을 감지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
었다. 고함을 지르는 것을 게이조는 가장 수치스럽고 경멸하는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잠시 후, 병원에서 중년 인부  두 사람과 젊은 외과 의사인  마쓰다, 그리고 무라이가 왔다. 
이미 밖은 캄캄해져 있었다.
“정말…… 미안해요.”
게이조는 고개는 숙이고 있었지만, 무라이를 향해서 살기 띤 눈초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쓰에와 쓰기코를 집에 남겨두고, 일행은 회중전등을 손에 들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숲속의 
나무 하나하나가 갑자기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서 어쩐지  기분이 나빴다. 회중전등을 어두
운 쪽을 향하여 비추면, 거기에 누군가가 우뚝 서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런 시간에 루리코가 숲속에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숲속에서 루리코를 찾는 것이 헛수고처럼 느껴졌다.
게이조는 문득, 무라이가 루리코 있는 곳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가슴을 스쳐서, 
갑갑한 마음에 걸음을 멈추었다.
드디어 강가에 이르렀다.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고 하늘에는 맑은  별들이 넓게 펼쳐져 있었
다.
‘혹시 루리코가 강에 빠진 것은 아닐까?’
평소에도 숲속에 잘 들어가지 않는 루리코가, 이 강까지 혼자서 왔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게이조는 발길을 돌려서 다시 숲속으로 들어갔다. 전등을 비추자, 불빛 속에 키가 큰 남자가 
나타났다. 게이조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무라이였다.
무라이의 창백한 얼굴이 아주 기분 나쁘게 보였다.
“깜짝 놀랐어요.”
무라이 쪽도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미안하오.”
게이조는 자기의 놀라움을 숨기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무라이 자네, 오늘  내가 없는 동안에  우리 집에 왔다면서?  무슨  용무가 있어서  왔던
가?”
그러나 무라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회중전등으로 자신의 발 밑을 비추었다.

시범림 근처 일대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코스까지 밤새 수색하고 모두가 피곤에 젖어 쓰지구
치의 집에 돌아왔을 무렵에는, 벌써 3시가 지나고 있었다. 바깥은 여름이어서 벌써 동이  트
기 시작했다. 나쓰에는 되풀이해서 어제의 일을 생각하고는 자신을 책망했다.
‘그때, 내가 루리코를 무릎에 안아 올렸으면 좋았을 것을…….’
작은 손을 벌려서 나쓰에를 감싸 안던 루리코의 가련한 자세가 떠올랐다. 아무 일도 없었다
면 지금쯤 루리코는 이 이불  속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작은 
붉은 꽃무늬의 이불에 귀여운 베개가 주인을 기다리듯이 있을 뿐이었다.
‘엄마도 싫어.’
하고 말했을 때의 루리코의 외로움을 생각하면 나쓰에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캄캄한 밤에 루리코는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쉴새없이 눈물이 흐르는 눈을 들어 밝아오는 밖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어 숲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쓰에는 
결혼했던 때를 떠올렸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게이조의 집에서 첫날  밤을 지냈을 때였다. 게이조의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그의 집에는 게이조의 아버지와 여동생, 그리고 가정부 아주머니까지 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당시 게이조는 대학 연구실에 있었으며 새 집은 삿포로에 있었다. 신혼여행
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 집에 들렀었다. 그날 밤은 폭풍우가 세차게 몰아치고 있어, 숲의 나
무들이 마치 입이 있는 것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서 바람은 더욱더 거세게 몰아쳤다. 숲은 잉잉 하고 땅 밑에서부터 무엇
인가 들끓는 것 같은 무서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때 나쓰에는, 이 폭풍이 자신의 결혼 생활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
하여, 무심코 게이조의 가슴에 매달렸었다.
나쓰에는 지금 그때의 무서운 예감이  맞아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피아노 줄이 
갑자기 끊어졌던 것도 불길한 징조가 아니었던가, 하고 그녀는 겁을 먹었다. 나쓰에는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쳐왔지만, 지금까지 피아노 줄이 끊어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루리코가 응접실에 들어왔을 그때로 시간을 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 미모라든가 재산은 물
론, 자기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치겠노라고 나쓰에는 생각했다. 이러한 일은 바로 13시간  전
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금 한 번만 더 루리코가,
‘엄마, 왜그래?’
하고 응접실에 들어왔던 그때로 시간을 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 단단히 가슴에 꽉 껴안아서 
절대로 루리코를 떼놓지 않을 텐데.
‘그러나, 그때라도 안아줄 수가 있었어. 그때라도 말이야…….’
눈물이 쏟아졌다. 그런데 왜,
‘밖에서 놀고 있거라.’
하고 쌀쌀하게 말했을까. 그때 나는 루리코하고 함께 있는 것보다는, 무라이하고 함께  있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나라는 여자라고, 나쓰에는 자신을 욕했다. 
천벌을 받았다는 느낌이 나쓰에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남편  이외의 남자에게 정을 주
는 그 순간에 그렇게도 신속하게 벌이 내려졌단 말인가.
‘어떻게든지 그때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까?’
어떤 책에, ‘지나가 버린 시간만은 신이라도 되돌릴 수 없다.’고 쓰여져 있었던 것을 나쓰
에는 기억해냈다.
긴 의자에 앉아 있는 무라이의 멍하니 담배를 피우고 있는 얼굴이 이상하게도 음탕하고 건
전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루리코를 밖으로 내보냈던 것이 저 남자하고 있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나쓰에는 자기 자신의 바보스러움이 후회되어 견딜 수 없었다.  끝끝내 게이조와 나쓰에 그
리고 무라이 세 사람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시계가 5시를 쳤다. 벌써 태양은 떠 있었다. 쓰
기코는 일어나서 부엌에서 딸가닥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현관문을 심하게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게이조도 나쓰에도 무라이도 의자에서 
후다닥 일어섰다. 게이조가 맨 먼저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문을 열자 장화를 신은 남자가 서 있었다. 이 지역 특정 우체국장이었다.
“댁의 딸 루리코가 죽어 있어요.”
하고 말하는 우체국장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리고 이가 딱딱 마주칠 만큼 심하
게 몸을 떨고 있었다.
“죽어 있어요? 어디에…….”
“강가에, 지금 낚시하러 가서 보았소.”
게이조는 지난 밤 현관 입구의 마루 옆에 놓아 두었던 왕진가방을 눈깜짝할 사이에 옆에 끼
고서 집을 뛰쳐나갔다. 나쓰에는 게이조보다 먼저 뛰어 나갔다. 무라이는 잠자고 있는  마쓰
다와 두 사람의 심부름꾼을 두들겨 깨웠다.
게이조는 숲속으로 달려갔다. 강가까지 수백 미터의 길이 백 리나 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죽어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자기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괜찮아. 죽지는 않았을 거야. 기절해 있을 뿐일 거야.’
루리코를 품에 안고 올 일을  상상하면서 게이조는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죽었을 거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단지 믿을 수 있는 것은, 지금 희미하게나마 유지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루리코의 생명의 불
꽃이 정말로 꺼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어디에서 나쓰에를 앞질렀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숲을 빠져나와서 강가의 작은 길을 달
렸다.
얕은 여울을 날듯이 하여 건너자, 강가의 돌에 발이 걸려서 몇 번이나 넘어졌다.
강 저쪽에 흰 물체가 팔락거리고 있었다.
“저기 있다!”
게이조는 아침 태양빛에 하얗게 빛나는 천을 향해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리면서 달려갔다.
꿈속에서 무엇인가에 쫓기고 있을 때와 같이 답답할 정도로  발걸음이 느렸다. 가까이 가니
까 희게 빛나는 천은 루리코의 앞치마였다.

제3장  루리코의 죽음

제3장 

루리코의 죽음


루리코는 땅에 엎어진 채 쓰러져 있었다. 조그마한 등에 흰 앞치마의 끈이 나비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루리코!”
무릎을 꿇고 안아 올려서 얼굴을 봤다. 얼굴이 아주 창백했다. 그러나 루리코가  죽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맥을 짚어 보았다. 그러나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아, 맥이 뛴다!”
그러나 그 맥은, 금방 달려왔던 게이조 자신의 손가락 끝의 맥이었다. 급히 달려온 무라이가 
손을 펴서 감고 있는 루리코의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동공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루리코는 핏기 없는 입술을 약간  벌리고 있었다. 겨우 들여다보이는 입  속으로 벌레 먹은 
치아가 애처롭게 보였다. 게이조는 멍하니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때 게이조의 몸에 부딪치듯이 나쓰에가 루리코의 몸을 껴안았다.
“내 딸 루리코! 루리코!”
나쓰에는 루리코의 이름을 부르며 세게 흔들었다.
“아니, 이게 뭐죠?”
외과의 마쓰다는 쭈그리고 앉아서 루리코의 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원장님! 목이 졸려져 있어요. 이것 보세요.”
마쓰다가 외쳤다. 루리코의 목에는 확실히 목을 졸라 죽인 흔적이 있었다.
“살해되었단 말인가? 루리코가……?”
게이조는, 루리코가 살해되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심장마비든가, 다른 어떤 이유
로 인한 급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왠지 막연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피살되었다구요?”
나쓰에는 외침과 동시에 앞으로 푹  고꾸라지듯이 넘어졌다. 이때 무라이가  민첩하게 손을 
뻗어서 나쓰에를 부축했다.
‘선생님 싫어, 엄마도 싫어, 아무도 루리코하고는 놀아주지 않아.’
하고 말했던 루리코의 말을 나쓰에는 다시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라이의 무릎에서 정신을 잃어버린 나쓰에를 보아도 게이조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별안간 머릿속이 멈춰 버린 것같이 멍해졌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음
속 어딘가에는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왠지 모르게 
평온한 느낌도 들었다. 그것은 너무나 허망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이조는 지금까지 수십 명 인간의 죽음을 보아왔다. 그러나  그 어느 죽음보다도 루리코의 
죽음은 현실감을 띠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지금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멍하
니 하늘을 쳐다보았더니, 흰구름이 천천히 떠가고 있었다.
‘오늘도 무척 덥겠구나.’
게이조는 이런 것을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무심코 시계를 보았다. 이는 임종시에는 무심코 시
계를 보는 의사로서의 습관 때문이었다.
“6시 5분이군.”
그가 나직히 중얼거렸을 때 가정부인 쓰기코,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주위에 모여들었던 근
처 여자들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리고, 계속해서 어른들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무서웠
던지 도루의 넘어갈 듯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도루가 울고 있군.’
게이조는 퍼뜩 제 정신이 들었다.
그제서야 루리코의 죽음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부터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
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단지 털썩 하고 강가에  주저앉아 
있을 뿐이었다. 마쓰다가 루리코를 살짝 강가에 눕히는 것도, 나쓰에를 무라이하고 다른  누
군가가 부둥켜안고 데리고 가는 것도, 멍하니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원장님.”
살피듯이 게이조를 보고 있던 마쓰다가 그를 불렀다.
“응…….”
“경찰에 연락했으니까, 곧 올 겁니다…….”
“…….”
“원장님.”
“…….”
“원장님, 경찰에게…….”
“아, 정말 미안해.”
게이조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붕 떠있는 것 같은 자기의 동작이 느리다는 것을 느끼면서, 게이조는 루리코의 손을 살그머
니 잡았다. 작고 찬 손이었다.
“죽었어.”
자신의 손가락은 따뜻하게 살아있는데 피부 한  겹을 사이에 두고 루리코의 손가락이  차게 
죽어 있었다. 이러한 현상이 게이조에게는 너무나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죽었어.”
게이조는 또 다시 중얼거렸다. 내 아이가 살해되었다는, 있을 수 없는 비참한 현실에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그는 알지 못했다. 결혼한 이후 그들 두  사람의 장래에 이처럼 무서운 날
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게이조는 처음으로, 미래의 불안함이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루의 울음소리가 멀어졌다. 게이조가 뒤돌아보니까 쓰기코에게 어깨를 안기어서, 흑흑  흐
느끼면서 사라져 가는 도루의 모습이 보였다.
“누가 죽인 것일까?”
게이조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중얼거렸다. 무엇 때문에, 도대체 누가 아무 죄도 없는 루
리코를 죽였단 말인가. 게이조는 증오심으로 온몸의 피가 일제히  모공을 통해서 뿜어져 나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아침부터 쨍쨍 내려쪼이는 태양을 쳐다보았다.
‘이 태양 아래, 누군가 루리코를 죽인 놈이 있다. 그 놈은 지금,  어딘가에서 살아 있을 것
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게이조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미국의  비행기 편대가 조를 짜서, 게이조
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머리 위를 소리를 내면서 지나갔다. 비정한 소리였다.

루리코의 장례식이 끝나고 10일 정도 지났다. 일찌감치 병원에서 돌아왔던 게이조는 2층 서
재의 책상에 기대어 루리코에 관한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누가 루리코를 죽였을까? 무엇 때문에 죽였을까?’
사건 이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생각했던 일을, 지금 또 반복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장례식 때였다. 분향을 올리려고 무라이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일어
섰다. 그때 게이조는 무심코 무라이를 보았다. 한순간이었지만  무라이가 범인이 아닌가, 하
고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게이조는 지금 그때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서재 창으로부터 키가 큰 스트로부스 소나무숲이 10미터 정도 앞에 보였다.
게이조는 어두운 나무 숲속에서 꼼짝도 않고 눈을 돌린 채로 그 숲속의 오솔길을 범인의 손
에 끌려서 아무것도 모르고, 저항도 하지 않고 따라갔을 루리코를 회상하고 있었다. 그 범인
이 무라이일 것이라는 생각이 또 들었다. 장신의 무라이가 루리코의 손을 끌고 등을 구부리
고 걸어가는 모습을 게이조는 상상했다.
‘그놈 말고 누가 루리코를 데려 간단 말인가.’
그렇게는 생각해도, 무라이가 루리코를 살해한 이유를 찾아내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무라이가 범인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무라이의 희고 큰 손
이 루리코의 목을 조르는 모습까지 눈에 선했다.
그러한 장면을 생각하고 있을 때, 밖의 창문으로 노란색 풍선이 둥실둥실 떠오르는 것이 보
였다. 고무풍선은 흰 실을 끌고 한들한들  바람에 나부끼듯 창을 스쳐 지나갔다. 이와  같은 
광경을 보면서, 게이조는 갑자기 눈물이 복받쳐 올라서 책상 위에 엎드렸다. 노란색  풍선이 
가련한 루리코의 영혼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루리코를 잃은 슬픔이, 10일이 지난 지금  비로
소 몸 구석구석까지 깊이 배어드는 것 같았다. 아내인  나쓰에도, 아들 도루도, 화려한 양옥
집도, 원장이라는 지위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렸다 해도 이보다는 슬프지 않을 것 같
았다. 3살짜리 루리코가 어두컴컴한 숲 저쪽 강가에서 어느 놈인가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생
각이 들자, 루리코가 가련해서 견딜 수  없었다. 게이조는 이를 악물고 소리를 죽여서  울었
다.
그 사건 전날의 아침 일이었다. 루리코는 출장가는 게이조의 손에 평상시처럼 매달렸다.
“아빠 손은 정말 커.”
루리코는 자신의 작은 손을 게이조의 손에 포개면서 말했다.
그때 게이조는 투명한 루리코의 손에서 문득 불행한 예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장면이 
아버지와 루리코의 마지막 이별의 장면이 되었던 것이다.
“아빠 손은 정말 커.”
그에게 있어서 그것이 루리코의 짧은 일생의 최후의 말이 되었다. 게이조는 눈물을 닦던 손
수건을 잠시 눈에 대고 있다가, 얼굴을 들고 꼼짝 않고 자기 손을 뚫어지게 보면서, 이 손으
로 루리코를 구할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손이 크기만 할 뿐 아무런 쓸모도 없는 손
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빠 손은 정말 커.”
라고 말했던 루리코는, 아버지의 손이 믿음직하게 생각되었을까, 아니면 다만 크다는 놀라움
뿐이었던 것일까.
게이조의 이 손에는 루리코와의 추억이 그리 많지 않았다.  느긋한 기분으로 루리코를 안아
올렸던 일이 과연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하고 게이조는 회상하고 있었다.
루리코는 1943년 봄, 전쟁중이어서 병원이 가장 어려울 때 태어났다. 게이조의 아버지는  사
람이 부족하여 과로로 쓰러지셨고, 그때 28세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때부터 게이조가 병원 
경영을 맡아서 운영하기 시작했다.
전쟁중이었으므로 의사도, 간호사도, 약품도  그리고 식량도 모두  부족한 가운데, 게이조는 
병원을 잠시 폐쇄할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종전이 되면서 예금이 봉쇄되고, 화폐개혁으로 
이내 병원 경영은 더욱 곤란해졌다. 20년 동안이나 이  병원에서 근무했던 사무장의 수완이 
아니었더라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때 사무장은 아름다웠던 병원
의 정원을 감자 밭으로 만들고 입원환자에게는 스스로 식사를  해결하도록 했다. 그래서 그
때 병원 안팎이 좀 더러워졌었다.
이때, 게이조도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까지 일하는 것으로 인원 부족을 보충하지 않으
면 안 되었다. 그러므로 마음  고생이 많던 그때 느긋하게 루리코를  안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겨우 3살까지밖에 살 수 없었던 루리코의  삶에 전쟁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던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게이조는 루리코를 안은 일이 거의 없었던  자신의 양 손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인 자신의 이 손에  안기는 일이 적었던 루리코가,  어떤 이유에서였던지 이세상과의 
인연이 적고 행복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 어리고 가는 목이 어느 놈인가에 의해서 졸려  죽은 것을 생각하면, 게이조는 큰 
소리로 울부짖고 싶었다.
‘루리코를 살해한 범인의 손은 어떤 손일까?’
자꾸 무라이 생각이 났다. 그러나 병원에서 만나는 무라이는 사건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
었다. 
게이조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라이를 의심하는 것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
섰다. 아래층에서 자고 있는 나쓰에를 위로해 주기 위해서였다. 나쓰에는 루리코가 죽은  이
래 거의 병상에 누워 있기만 했다.
의자에서 일어선 채로, 게이조는 잠시 망설였다. 그날  무라이와 나쓰에가 한방에 있으면서, 
루리코를 뜨거운 햇볕 아래로 내쫓았다는 것을 잊을 수가  없었다. 게이조는 나쓰에를 책망
하고 싶었다. 또 힐책하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오늘까지 꾹 참고 견디어 왔다. 
왜냐하면 루리코가 죽은 후 나쓰에는 계속해서 병상에 누워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루리코가 불쌍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감정이 북받쳐 올라와 흥분되어
서 울었던 것이다. 지금처럼 나쓰에가  미웠던 적은 없었다. 강가에서 나쓰에는  무라이에게 
안기듯이 기절했다. 그와 같은 일을 이제 와서 게이조는 질투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마누라
를 얻고 난 이후부터, 본디 선천적으로 질투심이 많은 게이조의  질투심이 더 커지는 것 같
았다.
평소에도 외출에서 돌아온 나쓰에의 얼굴이 평상시보다 생기가 돌고 있으면 밖에서 무슨 일
이 있었을까, 하고 게이조는 의심이 의심을 낳게 해서 괴로워지는 수가 많았었다.
“몹시 생기가 돌고 있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하고 마음 가볍게 한 마디 물어 볼 수도 있으련만,  조금이라도 나쓰에를 의심했던 일로 해
서 자기 혐오에 빠져 물어 볼 수 없어져 버렸다. 나쓰에는 또 그녀대로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 입이 무거운 데가 있어서, 그것이 때로는 게이조를 괴롭게 했다. 게이조는 또 다시  루
리코가 피살되었던 날, 나쓰에와 무라이 두 사람만이 응접실에  있었던 일에서 생각이 떠나
질 않고 있었다.
“직접 하지는 않았어도 무라이와 나쓰에가 루리코를 살해한 셈이 되는 것이다.”
게이조는 소리를 내어 이렇게 말하고서 서재를 나왔다. 바로 계단을 내려오면 복도가  있고, 
오른쪽에는 응접실, 식당방, 부엌 그리고 막다른 곳에 부엌문이 있고, 복도의 왼쪽에는 일본
식 응접실과 침실이 있었다. 그  외 또 저쪽에는 넓은 툇마루가  ‘ㄱ’자로 되어서 가정부 
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게이조가 침실에 들어가자, 나쓰에는 일어나서 문쪽으로 등을 향하고 앉아 있었다. 게이조가 
방에 들어왔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나쓰에는 꼼짝도 않고 숲 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쓰에!”
게이조의 날카로운 소리에 타올천으로 만든 잠옷을 입은 나쓰에의 어깨에서 뜻밖에  흰나비
가 날아올랐다. 그것은 나쓰에의 어깨 한 부분이 흰나비가 되어서 날아오르는 것 같은 이상
한 현상이었다.
나비는 망설이듯이 두세 번 방안을 왔다갔다 하더니, 방을  가로질러서 밝은 정원으로 나갔
다.
“나쓰에!”
게이조의 목소리가 조금 다정스러워졌다. 증오심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나쓰에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띄게 말라붙은 나쓰에의 어깨에서  흰나비가 춤을 추고 올
라오는 것을 봤던 순간, 의외로 애정이 가슴 가득히 퍼지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나쓰
에 또한 깊은 슬픔 속에서 무라이하고의 일을 후회하고 괴로워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게이조는 루리코를 생각할 때마다 무라이와 나쓰에에 대한 증오심이 깊어지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그 나쓰에가 몹시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가련하기도 했다. 불러도 
여전히 꼼짝도 않고 숲 쪽을 본 채로  무슨 생각엔가 빠져 있는 나쓰에의 슬픔이 게이조의 
가슴에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여보, 나쓰에.”
다시 한 번 나쓰에를 불렀을 때, 식당방의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자,
“와다 순경입니다. 게이조 씨, 범인을 찾았어요.”
라는, 루리코의 사건으로 친숙해진 와다 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범인이요? 찾았다구요?”
게이조는 무라이의 이름을 언뜻 떠올렸다.
게이조는 자신의 목소리가 상기되는 것을  느꼈다. 다리가 부서질 정도로 후들후들  떨렸다. 
동시에 와다 형사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네? 뭐요?”
“아, 여보세요, 전화감이 멀군요. 들립니까?”
“여보세요, 들리네요, 범인이 누구지요?”
“사이시 쓰치오인데요, 사토(佐藤)의 사 자에 돌  석 자를 쓰는 사이시 쓰치오라는  남자를 
알고 있습니까?”
무라이는 아니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게이조는 무라이의 이름이 들리는 것은 아닌가,  생
각하고 있었다. 마음의 어딘가에서 무라이가 범인일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랬으면 좋겠
다고 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가 어긋나자 한순간 게이조는 멍한 느낌이 들었
다.
“사이시 쓰치오?”
어딘가에서 한 번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많은  환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짐작가는 곳이 있는가 하고 물으면, 있는 것 같기도 하여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혹시 아는 사람인가요?”
게이조의 대답이 없자 와다 형사는 조금 서둘러서 물었다.
“아니요…….”
혹은 한 번이라도 진찰했던 적이 있는 환자인지도 몰랐다.
“모르겠어요.”
게이조는 말하고 나서도 선뜻 단념을 못하고, 어쩌면 진찰했던 환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
다.
“전혀 모르시겠습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여하튼 직업이 직업인 만큼 일단 병상일지를 조사해 보고 나서 대답하
겠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시 쓰치오라는 사람은 어디 사람입니까? 지금 어디에 있어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 동안에 게이조는 본 적이 없는 그 남자에게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증오
심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게이조는 증오 때문에 급격히 몸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그  남자에게 달려들어 목을 
졸라 죽여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봤자 아무 죄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죄책감
이 수반되지 않는 살의(殺意) 때문에 수화기를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실은요, 사이시 쓰치오는 죽었어요.”
“죽다니요?”
게이조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방금 그놈을 힘껏 목졸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가?
“죄송합니다만, 그놈은 유치장에서 목을 매 죽었어요.”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한…….”
농담하지 마라, 하고 게이조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놈은 어째서, 무슨 원한이 있어서 루리코를 죽였단 말입니까?”
“삿포로에서 전화로 알려왔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만, 알게  되면 곧 알려 
드리겠습니다.”
게이조는 수화기를 귀에 댄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잠시 후, 게이조는 전화가 이미 끓어져 있
는 것을 알고는 느릿느릿 식당방을 빠져 나왔다.
‘왜, 루리코는 사이시 쓰치오라는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살해당했을까?’
여전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왜 루리코는 그 남자를 따라서 강가에까지 갔을까?’
게이조는 아무래도 그날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집 안에는 단지 무라이하고 나쓰에 두 사람만이 있었다. 쓰기코와 
도루가 없으면, 적어도 루리코만이라도 옆에 앉혀 놓고 있을 정도의 교양이 있어야 하지 않
겠는가? 아무도 없는 집 안에 남편  이외의 남자를 끌어들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
가.
“루리코는, 같이 상대만 하여 주면 하루종일이라도 집에 있을 수 있어요.”
전에 나쓰에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루리코를  집 안에서 놀고 있으라고 했더라
면 좋았을 텐데, 왜 밖으로 나가라고 했을까. 루리코를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의 손에  끌려
가게 놓아둔 것은, 무라이하고 나쓰에, 두 사람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범인 사이시 쓰치오라는 남자는 원래부터 미웠다. 하지만 그 미운 상대에게, 게이조는 한 마
디의 말도 하지 못하고 범인은 스스로 자살을 해 버렸다.  이렇게 된 바에는 무라이하고 나
쓰에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만이 게이조의 기분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침실에 돌아와 보니, 나쓰에는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복도를 사이에 둔 식당방에서의 전화를 듣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나쓰에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물끄러미 앉아 있기만 했다.
‘정말 범인에 관해서 알고 싶지 않은 것일까?’
증오의 눈으로 나쓰에를 쏘아보던 게이조는 불안해졌다. 너무나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나쓰
에를 다시 보았던 게이조는 움찔했다. 아까부터 같은 자세로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그 모
습은, 살아 숨쉬는 모습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게이조는 거칠게 목단꽃 색깔로 된  이불
을 밟고서 나쓰에의 어깨를 안았다.
“나쓰에!”
그녀를 불러보았다.
그녀의 눈은 죽은 사람의 그것보다 더 공허해 보였다.
“여보, 범인을 알았어!”
게이조가 그렇게 말했으나, 나쓰에는 힘없이 고개만 갸우뚱했다.
“범인이 죽었어.”
나쓰에는 느린 동작으로 게이조를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정원 쪽으로 돌리면서,  그렇
게 얼빠진 사람처럼 보였던 눈이 이상하게도 빛나기 시작했다.
“아, 저기, 저기에 루리코가 있어요.”
정원 쪽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면서 나쓰에는 비틀비틀 일어섰다.
“이 바보!”
게이조는 발버둥치는 나쓰에를 꼭 껴안았다.
“루리코 있는 곳으로 가게 해줘요. 저봐, 저 나무 아래에 루리코가 놀고 있잖아요.”
게이조는 나쓰에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나쓰에, 미쳤어? 루리코는 죽었어. 죽었단 말이야. 정원에 있을 리가 없잖아.”
마치 다른 사람처럼 바싹 말라 버린 나쓰에의 어깨를, 게이조는 힘껏 껴안았다.

제4장  불  빛

제4장 

불  빛


범인이 자살한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게이조는 그 일주일 동안 몇 번이고 신문을 반복해서 
읽고, 지금도 서재의 책상 위에 신문을 펼쳐 놓고 있었다.
황금빛 저녁놀이 서서히 보라색으로 변해가고, 숲에서는 까마귀가 떼를 지어 소란스럽게 울
고 있었다.
‘루리코를 살해한 범인, 유치장에서 목을 매 자살.’
4단 제목의 큰 활자를 보기만 해도, 게이조는 가슴이 아팠다.
“자살할 정도라면, 루리코를 죽이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게이조는 쓸쓸하게 중얼거렸으나, 신문에서 눈을 딴 곳으로 돌릴 수가 없었다.

아사히카와 시 교외 가구라 읍 의사인 쓰지구치 게이조 씨의 장녀 루리코(3세)가 교살된 사
건을 수사하고 있던 삿포로 경찰서는 8월 2일 오후, 삿포로 시내에서 용의자 아사히카와 시 
교외 가구라 읍 날품팔이인 사이시 쓰치오(28세)를  체포, 사이시는 루리코 살해를 자백  직
후, 그 경찰서 유치장 독방에서 입고 있던 셔츠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삿포로 경찰서는 2일 아침, 사이시가 묵고 있던 이사미  여관 주인 나가사카 시치로 씨로부
터 ‘어린아이를 동반한 거동이 수상한 남자가 묵고 있다.’는 통보를 받고, 오후 3시  지나
서 사이시가 외출하는 것을 기다려서 불심검문을 했더니 날쌔게 도주했으나, 행인의 협조로 
곧 경찰에 체포되었다.
맨 처음 사이시는,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도망쳤을 뿐이었다.’고  말했었는데, 
‘밤에 잠을 잘 때 가위에 눌려 잠꼬대를 했다던데?’라는 추궁을  받자 지난 7월 21일, 아
사히카와 시 교외의 비에이 강가에서 루리코를 살해했던 일을 자백했다.

아래층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Come, Come everybody, how do you do, and how are you.”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유행하기 시작한, 영어로 된 동요를 도루가 부르고 있었다.
게이조는 루리코가 도루와 이 노래를 함께 연약한 목소리로  부르던 것을 회상했다. 금세라
도 루리코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게이조는 약간 풀이  세게 먹여진 유가타의 가슴 부
분을 조금 벌리고서 신문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사이시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28세인 그
의 나이보다는 더 늙어 보이는, 약  35~6세 정도로 보였다. 사이시는 멍하게 어딘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았고 고개를 숙이지도 않고 있었다. 그러나 우람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무엇인
가 힘이 빠진 것 같은 슬픈 느낌의 표정이었다.
얼굴은 의외로 단정한 편이고, 눈썹이 짙고 수려한 이마  언저리에는 지적인 느낌조차 감돌
았다. 약간 두터운 입술 주위가 어벙한 느낌이었으나, 막노동을 하고 있었다는 경력이  이러
한 생김새와는 어울리지가 않았다.
‘이놈이 루리코를 죽였던 놈인가.’
게이조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적의와 미움을 갖고 뚫
어지게 보아도 범인의 얼굴에는 흉악한 곳이 없었다. 루리코가  이놈의 손에 끌려갔다고 해
도 이놈의 인상으로 보아서는 사실일 것 같지가 않았다.
사진 아래에 ‘범인 사이시가 걸어온 길’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범인 사이시의 걸어온 길>
사이시의 말에 의하면, 사이시는 동경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양친을 관동 대지진 때 일시에 
잃어버리고, 아오모리 현에 있는 백부의 농가에서 자랐고, 1934년의 대흉작으로 16세 되어서 
북해도의 노동판에 팔려, 그후 노동판을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1941년에 입대하고, 중부 중
국에서 전투에 참가해 거기에서 부상을 입고 제2육군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며, 종전 직전에 
삿포로로 왔다. 그후 일용직 일꾼으로서 아사히카와 시 교외 가구라 읍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했다. 내연의 처 고도는 여자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사망했다.

게이조는 기사를 암송할 정도로 몇 번이고 되풀이 해서 읽었다. 
루리코의 아버지 쓰지구치 게이조는 ‘경찰에서 전해 들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다.’고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기사도, 반복해서 읽을 때마다 슬펐다.
저녁놀은 이미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게이조는 어둑해져 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와다  형
사가 해 주었던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갓난아이를 남겨두고 아내가 죽었기 때문에,  어린아
이를 키우는 데 가장 곤란했던 것은 젖이었지요. 게다가 기저귀도 갈아 주어야 했고, 기저귀 
빨래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겠지요. 더욱이 일하러 나가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우
니 아이가 깩깩 울어도 어찌할 수가 없었지요. 다행히도 셋방을 들고 있던 집주인 아주머니
가 친절해서, 어린아이를 따뜻한 물로 목욕을 시켜주기도 했지요. 그날은 축제 날이라  계속
해서 다니던 도로공사가 쉬게 되었다고 합니다.
너무 더운 날이어서 아이도 어지간히 지쳐 있었습니다. 에이, 어린아이 같은 거 놓아두고 수
영이나 하러 가자고 생각하고 집을 뛰쳐 나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침 게이조 씨의 집 앞
을 지나가고 있을 무렵, 바로 그때 게이조 씨 집  뒷문으로 루리코가 달려 나왔다고 말하더
군요. 그때 사이시는 자기 아이도  이 나이 정도만 되었더라면 생각하고  가는 길을 멈추어 
섰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루리코도  멈춰 서서 사이시를 쳐다보았습니다.  귀엽구나. 냇가에 
갈까? 하고 말했더니, 응, 하고 대답하고는 바로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냇가에 가니
까 축제 때문인지 아무도 없고, 루리코는 쓸쓸해져서 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이시도  수
영할 생각으로 옷을 벗고 있었는데, 루리코가 갑자기 엄마를  찾으며 끈질기게 울었다고 합
니다. 하여튼 이와 같은 사실은 마미야 형사가 사이시에게서 들었다고 들려준 이야기인데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로 어지간히 피곤해 있고, 신경이 쇠약해졌는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자
신의 아이뿐 아니라 남의 집 아이까지도  울면 너무나 한심하다고 생각되어 자기도  모르게 
발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위협할 작정으로 목에 손을 대고 잠깐 있었는데, 곧바로 축 늘어졌기 때문에 놀라서 
도망쳤다고 말하더군요. 사이시는 자백 후 심히 피곤한 얼굴로  마누라가 죽고 나서 20일간
이나 제대로 잠을 자지 않았다며  낮잠을 자게 해 달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의 갑작스런 
자살은 아마도 발작적인 행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와다 형사가 이야기했던 내용들이 신문에도 쓰여 있었다.
“지나가는 악마에게 걸린 격이군!”
게이조는 낮게 중얼거렸다.
‘만일, 루리코가 1분  후에 집을 나왔더라면,  범인 사이시와 마주치는  일은 없었을  텐데
…….
루리코는 운이 없었던 것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아니, 사이시에게 있어서도 역시 불운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루리코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도 살인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게이조는 ‘우연’이라는 것이 주는 무서움에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
다.
정신이 들어보니, 방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아까부터 숲에서 시끄럽게 울고 있던  까마귀
들도 조용해졌다.
게이조는 전기 스탠드의 스위치를 눌렀다.
‘엄마를 찾으며 루리코가 울었기 때문에…….”
하고 말했던 와다 형사의 이야기를 회상하자, 게이조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되
었다.
‘엄마하고 루리코가 울부짖고 있을 때, 나쓰에 너는 무라이하고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
야?’
게조이는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있는 나쓰에가 원망스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루리코가 나무 아래서…….”
하고 나쓰에가 손가락질하고 있을 때, 게이조는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정신분열증일지도 모른다.’
순간,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과 친숙해지기 어려운 나쓰에의 성격으로 미루어 정신분열증이 될 가능성이  없다
고는 말할 수 없었다.
선배인 정신과 의사 모리 씨의 진단에 의하면,
“심한 정신쇠약이지요. 신경쇠약이라도 환상을 수반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입원해서 전기 
쇼크  치료를 받으면 아마 반 달 정도면 퇴원할 수 있을 겁니다.”
라고 말해서 게이조는 안심했다. 루리코의 환상이 보일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을까, 라고 생
각하니 나쓰에가 가엾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게이조는 그렇게 될 때까지 괴로워했던 나쓰에를 마음속으로 계속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접 행동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루리코를 죽인 것은 너하고 무라이다.’
게이조는, 마음속에서 줄곧 그들을 비난했던 자신이 지독하게 냉혹한 인간으로 생각되었다.
지금은 모든 것을 용서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서로 이해하고, 세 사람이  사이좋
게 지내리라고 그는 생각을 새롭게 했다.
나쓰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회복이 빨라, 의사도 놀랄 정도였다. 정신도 빨리 원상태로  되었
다. 식욕도 좋아지고 조금씩 살도 찌기 시작하는 나쓰에를 보자 게이조는 왠지 그녀의 순조
로운 회복을 솔직하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의외로 강인한 정신이다. 용케도 미치지 않고 있을 수 있었구나.’
하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게이조는 아직 나쓰에를 용서하지 않은 자신을 깨닫자, 자기가 싫
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전기 스탠드 주위를 날고 있는  큰 나방을 오랫동안 주시하던 게
이조는 얼마 후에 다시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밉기는 밉지만, 생각해 보면 사이시도 가련한 사내로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때였다.
“아빠, 쓰기코 누나하고 이웃집에서 놀다와도 돼?”
아래층에서 도루의 소리가 들렸다.
“아, 하지만 너무 늦기 전에 돌아와야 해.”
게이조는 도루와 놀아주지도 못하고, 요즘은 저녁식사도 허둥지둥  먹고 2층 서재에 틀어박
혀 버리는 자신을 깨닫게 되었다.
‘도루도 쓸쓸하겠다.’
그렇게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놀아줄 기분이 아니었다.
게이조는 사이시에 관한 일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겨우 16세때부터 감옥방이라고 불리워
지는 중노동판에 팔려서 그렇게 심한 고생을 했다고 생각하니 고아인 사이시가  가련하기도 
했다.
게이조는 노동자들이 거의 알몸뚱이에 붉은 혼도시 하나만을 걸치고 도로공사를 하고  있는 
것을 학생시절에 여행지에서 보았던 적이  있었다. 저것이 인간이란 말인가, 하고  생각되는 
무서운 얼굴의 십장이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너무나 가혹한  노동 때문에 참지 못하고 
탈출하면, 총을 가진 십장들이 군용견 여러 마리와 함께 탈주하는 사람을 쫓고, 운이 나빠서 
잡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로 물속에 거꾸로 처박혀지기도 하고, 등을 부젖가락으
로 지진다는 이야기도 그때 들었었다.
홋카이도나 사할린에서 철도, 도로, 하천의 공사 등을 할 때는 일하기 전에 미리 임금을  받
고 중노동을 하며, 모든 건설이 이 일꾼들의 희생에 의해서 준공되었음을 게이조도 알고 있
었다. 때문에 범인이기는 하여도 사이시가 16세 때, 백부에 의해서 중노동판에 팔려  갔다는 
것에는 동정심이 일었다.
‘그 노동판에서 일하다 군대에 입대하고, 또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고…… 그렇다면 무엇인
가, 이 사람은 자유로운 사회라는 것을 정말로 모르는 것이 아닌가.’
게이조는 사이시를 밉다고만 생각했을 뿐, 오늘처럼 그의 과거를  동정했던 적은 거의 없었
다. 결혼하고 일 년이 지났을까 말까해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어린아이를 놓아두고 
아내가 죽어 버린 사이시의 마음의 삭막함을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이시가 루리코를 죽일 생각은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노동을 하고, 또 군대 생활을 한 사이시의 손은 너무나
도 힘이 센 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조절해서 힘을 쓴다는 것조차 잊었을지도 모른다.
게이조는 ‘살해되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사이시의 실수였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증오심에 불타 죽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 무서운 손으로, 힘을 다하여 목졸라 죽였
다면, 루리코가 너무나 불쌍했다. 사이시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는 생각지 않았으므
로 그 당시의 루리코는 공포가 적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아버지
로서 견디기가 쉬웠다. 
“아무도 없어요? 도둑 들겠네요.”
아래층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게이조는 유가타의 깃을 여미면서 말했다.
“누구세요라니, 누구세요가 다 뭡니까?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네. 다쓰코의 목소리도 몰라
주다니…… 빨리 내려 오세요.”
상가에, 무례할 정도로 밝은 목소리였다. 다쓰코는 나쓰에의 학창시절 친구이다.
“이거, 다쓰코 씨에게는 대적할 사람이 없군요.”
게이조는 구원을 받은 듯한 심정으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문이란 문은 다 열어 놓고 혼자서 2층에서 무엇을 하는 거예요? 쓰기코와 도루는 어디 갔
어요? 나쓰에의 옷을 몽땅 훔쳐가 버릴까 보다.”
다쓰코는 웃지도 않고, 불단 앞에 앉아 게이조를 쳐다보았다.
“그때는 친절하게도 와주셔서 참으로…….”
게이조가 무릎을 꿇고 단정하게 양  손을 짚자, 다쓰코는 흑백의 세로  줄무늬로 된 여자의 
홑옷 소매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면서,
“난 이런 게 정말 싫어요. 이 집은 나쓰에도, 주인  양반도, 다 같이 깍듯한 인사치레를 한
단 말이야. 그렇게 모르는 사람 대하듯 서먹서먹한 태도로 말이에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에게는 실례가 된다는 것쯤은 알아야 할 텐데…….”
하고는 게이조에게 담배를 권했다. 그녀는 지긋이 눈을 감고 담배를 피우면서, 목소리를  낮
추어 말했다. 동정심이 깃든 목소리였다.
“큰일났군요.”
게이조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쓰코는 잠시 눈꺼풀을 누르고 나서 재차 시원시
원하게 말했다.
“그래요, 큰일이에요. 큰일이라고 하는 말은 바로 이런 때  쓰는 거지요. 루리코는 죽어 버
리고, 나쓰에는 바보가 되었어요.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일은 어디에도 없지요. 지금 나쓰에
에게 다녀오는 길이에요. 어제 오늘 주인양반이 문병을 오지  않았다면서 다녀 가게 해달라
고 하더군요. 나쓰에는 건강한 것 같던데요.”
하나야기류(花柳流)의 예명(藝名)을 스승으로부터 얻은 다쓰코는, 고운 손놀림으로 담뱃재를 
떨었다.
“도루는 어디 갔나요?”
“쓰기코하고 이웃에 놀러갔어요.”
“도루도 쓸쓸하겠네요. 그런데 주인양반은 어때요?”
다쓰코는 ‘어때요?’하는 대목만은 상냥하게 말했다.
친숙해 보이는 둥근 얼굴에 확실하게 만들어진 쌍거풀의 눈이 싱싱하게 보였다.
“다쓰코 씨, 오늘은 천천히 놀다 가십시오.”
게이조는 손아랫사람처럼 이야기했다.
다쓰코 앞에 있으면 왠지 자신의 마음이 너무 솔직하게 되는 느낌이었다. 다쓰코는 그 말에
는 대답하지 않고 딴 말만 했다.
“백중(百中)인데도 오늘 밤은 너무  서늘해요. 툇마루 유리문을  닫아야겠어요. 주인양반도 
거들어 주세요.”
고운 발놀림으로, 어두운 복도로 나가는 다쓰코의 뒷모습을 게이조는 바라보고 있었다. 활짝 
열려 있는 툇마루의 문을 닫자, 갑자기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밤이 깊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쓰코는 게이조가 차를 끓여 오자, 다리를 옆으로 꼬고 앉아서 말했다.
“사흘 전에 말이에요, 삿포로에 갔다가 니시무라 다방에서 다카키 씨를 만났어요. 쓰지구치 
씨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묻고 안 됐다는 말을 하더군요.  그 사람이 안됐다는 말을 하니
까, 좀 마음이 안 좋았어요.”
“아, 다카키는 잘 있습니까?”
“여전히 건강해요. 그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내내 건강하고 튼튼해서, 밉살스럽게 보일  정
도의 사람이지요. 요 얼마 전에는 대단히 밉살스러운 말을 했었어요.”
이상하게도 다쓰코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했습니까?”
“무슨 말을 들어도 괜찮겠어요?”
다쓰코는 잠시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 들어보지 않으면…….”
“그렇지요, 당신들은 친구 사이니까 말하겠어요. 다카키 씨가 유아원이라던가에 촉탁  의사
로 있다면서요? 그런데 거기에 범인의 아이가 맡겨져 있다고 해요.”
게이조는 자기 무릎에 날아온 조그마한 나방을 화장지로 잡으면서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 말을 들으니까 시(市)  유아원에 범인의 아이가 맡겨졌다는  와다 형사의 
말이 생각나는군요. 맞아, 다카키가 관계하고 있는 유아원이지요.”
“그가 묘한 인연이라고 말하더군요. 이제부터가 정말 밉살스러워요. 쓰지구치놈 말이야, 너
의 적을 사랑해야 한다고, 자주 학창시절에 주문처럼 말하고 다녔는데 말이야, 설마, 아무리 
그렇다 해도 범인의 아이를 맡아서 기른다고는 말하지 않겠지, 라고 말이에요.”
불단에 놓여 있는 루리코의 사진으로  게이조의 시선이 저절로 돌아갔다.  루리코는 흰옷을 
입고 약간 허리를 구부리고서 무슨 꽃을 내밀면서 웃고 있었다. 바로 일어서서 이쪽으로 달
려올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사진이었다.
“바보 같은! 범인의 아이를 맡다니, 그런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어요?”
하고, 입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말을 게이조는 하지 않았다. 언젠가 도루가,
“적이 뭐야?”
하고 물어 왔을 때,
“적이란 가장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상대란다.”
라고 말했던 자신의 말이 회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게이조를 보고 
다쓰코가 위로하듯이 말했다.
“다카키 씨에게, 그것이 친구에게 할 말이냐고 크게 꾸짖어 주었어요. 너의 적을 사랑해라, 
라고 말하고 있었을 때는 쓰지구치  씨에게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  않은가? 라고 말했더니, 
다카키 씨가 쓰지구치라는 사람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확실한 인물이라고  말하더군
요.”
게이조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쓰코도 아무 말 없이 차만 마셨다. 침묵이 계속되자  게이조는 
갑자기 ‘지금 우리집에는 다쓰코와 나 단 두사람뿐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카키는 묘하게도 나를 과대평가해요. 나는 적의 아이를 맡을 만한 인물이 아니에요.”
이 집에서 다쓰코하고 단둘이서만 있다고 깨닫자, 게이조는 침묵이 두려웠던지 말을 꺼냈다.
“그래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겉보기에는 성인군자 같지만, 성인군자란 대수롭지도 않은 
도깨비 같은 부류예요. 성인군자라고  해서 모든 것을 너무  믿으면 곤란해요. 조심해야 해
요.”
다쓰코가 그녀와 단둘이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신을 눈치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도깨비라는 표현은 너무 심해요. 하기는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니까요.”
게이조는 쓴웃음을 짓고 나서,
‘정말 사이시의 아이를 맡아 볼까?’ 
하고 한순간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스쳐가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아무리 그렇기로 사이시의 아이를 어떻게 기를 수가 있단 말인가?’
“왜 그래요? 왜 벌레 씹은 얼굴을 하지요?”
일그러진 표정을 한 게이조에게 다쓰코가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게이조는 아무렇지도 않
은 듯이,
“아니, 이 사건으로 친한 사이가 된 와다 형사가, 불쌍한 것은 생후 얼마 되지 않는 사이시
의 아이라고 말했어요. 엄마의 죽음도, 아빠가 목을 매고  죽었다는 것도 모르고, 젖만 먹으
면 잔다고 합디다.”
“그래요? 그거 참 불쌍하군요.”
“다쓰코 씨도 불쌍하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화가 치밀었어
요. 와다 형사에게도 말했지만, 살해된 루리코가 몇 배나 더 불쌍하지 않습니까?”
“물론, 루리코도 불쌍하지요. 불쌍한  정도가 아니지요. 너무 비참한  걸요. 하지만, 범인의 
아이 역시 불쌍해요.”
“그럴까요?”
게이조는 석연치 않은 얼굴이 되었다.
“만일 루리코가 엄마, 아빠도 없이 혼자서 살아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다쓰코에게 그런 말을 듣자,  게이조는 어린아이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은 혼자서 죽어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사이시의 아이도 불쌍하게 여겨졌다.
“만일 루리코였더라면 불쌍했겠지요.”
“만일, 자신의 아이였다고 한다면, 또는 만일 자신이었다고  한다면…… 하고 말하듯이, 하
나하나 계산하지 않고 사물을 판단할  수가 없겠지요. 인간이란 기준이 되는  자가 몇 개나 
있으니까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공평하게 생각하면 사이시의 아이도 불쌍하지요.”
그러나 게이조에게는, 와다 형사나 다쓰코처럼 단순하게 불쌍하다고 단언할  수 없는 그 무
엇이 가슴에 남아 있었다.
‘사이시의 아이를 맡아 볼까?’
하고, 아까 일순간이라도 생각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마음속에 떠오른 
한순간의 생각이, 이제 그를 괴롭히고 나쓰에도 괴롭히는 일이 되리라고는 그때까지는 꿈에
도 알 수가 없었다.

제5장  석  양

제5장 

석  양


게이조의 병원은 아사히카와 시 교외에  있었다. 양조장을 경영했던 할아버지가, 땅값이  쌀 
때 약 3천 평 이상의 땅을  사두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사치스러울  정도로 넓다란 대지에 
병원을 지었다. 병원의 현관은 대문으로부터 60미터 정도 들어가야 있었다.
언젠가 다카키가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쓰지구치의 아버지는, 환자들이 사용하기에는 불편하게 건물을 지으셨어. 아이구, 맙소사! 
간신히 병원문까지 도착했는데, 이게 뭐야. 현관까지 다시 10리나 더 가야 되다니……. 환자
란, 한 발짝이라도 적게 걷기를 바라거든.” 
피로에 지쳐서 돌아올 때는 게이조도 다카키의 말이 실감날 때가 있었다.
2미터 정도 높이의  단단한 화강암 문기둥에는 파출소 간판만큼 큰 널빤지에 ‘쓰지구치 병
원’이라는 빛바랜 먹글씨의 간판이 걸려 있었다. 이곳도 집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주목나
무 생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전에는 문에서  보면 병원이라기보다는 박물관이라는 느낌
이 더 들었었다. 그것은 굵은 느릅나무와 밑에서 셋으로 갈라진 키 큰 계수나무 등 큰 나무
들이 넓은 잔디밭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탓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아름다운 잔디밭도 여기저기 파헤쳐져서 감자밭으로 변해 있어 박물관이라고
는 말하기 어려우나, 그래도 넓다란 푸른 대지는 시내를  지나온 사람에게는 상쾌함을 주었
다. 느릅나무도 계수나무도 마가목도 물론 심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일부 베어내고  남아 
있는 나무였다. 
“여기에, 곰이 올라가 갉아 먹었던 흔적이 있단다.”
게이조는 어렸을 때 병원의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곧이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무렵, 여기는 정원이라기보다는 숲과 같았다고 게이조는 기억하고 있다.
병원은 I자형으로 지어져 있었다.
게이조의 아버지는 맨 처음 외과의사였으나 환자들이 다른 병도 진찰해 달라고 요청해 오면
서부터 어느 과라도 보아주는 일반의사처럼 되어 버렸다. 그래서 1930년, 여기 병원으로  옮
겼을 때 외과에 내과, 안과, 이비인후과를 병설하고 새로운 병원 경영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
했다. 
‘세월은 참으로 빨리 지나가는 법이다. 루리코가 죽은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게이조는 석양이 밝게 비치는 병원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게이조가 복도에서 약국 앞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아, 죄송합니다.”
안에서 갑자기 뛰어나와 게이조에게 부딪힌 사람은 마쓰사키 유카코였다. 그녀는 작지만 새
까맣고 둥그런 눈과 작은 입술에 무엇인가 필사적인 표정을 담고 순식간에 달려 나갔다. 게
이조는 종종걸음으로 사무실 쪽으로 사라져 가는 유카코의 날씬하고 연약한 뒷모습을  바라
보았다.
“무슨 일이지?”
유카코가 뛰쳐나온 문틈으로 갈색병이 늘어놓아져 있는 약장이 보였다. 게이조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가에 서 있던 무라이가 흰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게이조를 보
고 가벼운 웃음을 띠었다. 무라이의 가벼운 웃음은 이 방을 뛰쳐나갔던 유카코의 진지한 표
정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게이조는 지독히 불쾌했다. 나쓰에와 무라이가 자신의 집 응접실에  단둘이 있었던 일이 다
시 생각났던 것이다.
‘그때도 이놈은 이런 기분나쁜 웃음을 띠우고 있었겠지?’
게이조는 말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무라이의 얼굴에서는 가벼운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 잘 왔을 리는 없었다.
“그렇습니까?”
일부러 게이조는 얼빠진 대답을 했다. 무라이는 흰 가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
며 말했다.
“원장님께 의논드릴 일이…….”
“무슨 일입니까?”
게이조는 아까부터 고조되어 오던 불쾌감을 억누르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었다.
무라이가 이 병원에 온 지 2년이 되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개인적으로 상담을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상담하겠다는 말인가?’
게이조는 어쩐지 불안해졌다.
“뭐, 여기서는 상담하기가 그러니까 내 방으로 가시죠.”
게이조가 먼저 일어서서 복도로 나갔다. 
“원장님, 바쁘시지 않습니까?”
무라이는 게이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면서 물었다.  무라이의 키는 게이조보다 5센
티 정도 더 컸다.
“별로 바쁘지 않아요, 괜찮아요.”
게이조는 온화한 어조로 대답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보기 싫은 놈에게는, 보기 싫은 것처럼 말을 하면 좋으련만.’
하고 자기 자신에 대하여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녁놀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키 큰  포플러나무 아래의 잔디밭에 쭈그리고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남자 입원 환자의 모습이 창 너머로 보였다.
원장실의 문을 열자, 저녁 햇살을 받은 방은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
원장실이라고 해도 겨우 5평 정도의 방이고, 창에는 흰 커튼이 한쪽으로 묶여 있었다.
창가에는 커다란 마호가니나무로 만든 책상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타이프라이터와 현미경, 
버너 등이 게이조처럼 고지식하게 보일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벽에 꽉 채워지게 걸려 있는 아사쿠라 리키오(朝倉力男)의  설경이 원장실다운 분위기를 자
아내고 있었다.

“사모님께서 퇴원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이제 완쾌되신 겁니까?”
무라이는 긴 다리를 쭉 뻗고서 의자에  앉았다. 어딘가 피곤해 보였다. 여름의 저녁  햇살이 
뜨거웠다. 
게이조는,
“덕분에 괜찮아요.”
하고 커튼을 잡아 당기면서,
‘무엇이 덕분이었다고 나는 말했는가?’
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바람이 불어서 커튼이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원장님, 우리 병원 사무원으로 있는 마쓰사키 유카코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라이는 넓은 이마에 드리워진 머리카락을 긴 손가락으로 쓸어 올리면서 말했다. 
“어떻게라니……?” 
게이조는 말을 더듬거렸다. 무라이의 상담이  마쓰사키 유카코에 관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상당히 좋은 아이지 않습니까?”
게이조는 재빨리 대답했다. 
“좋은 아가씨라구요?” 
무라이는 하나하나 단락을 짓듯이 말하고는 피식 웃었다. 무라이가 웃자, 게이조는 조금  당
황했다.
마쓰사키 유카코는 한 마디로 ‘좋은 아가씨’라고 단언할 수  있는 아가씨가 아니었다. 유
카코는 웨이브 진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길게 등에 드리우고,  언제나 천천히 걸어다니는 아
가씨였다.
병원 복도에서도 사무실에서도 공원에서도 산보하고 있는 것 같은 걸음걸이로 걸었다.
오늘처럼 복도를 달리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 아가씨였다. 그리고,
“원장님, 이 환자의 입원비에 관한 일입니다만…….”
등등 진료 카드를 들고 게이조의 몸에 닿을 정도로 서 있을 때도 있었다. 복도를 걸어갈 때
도 남이 보기에는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가깝게 붙어 있을 때가 많았다. 이럴 때
마다 게이조는 놀랐다. 그러나 그와 같은 행동을 유카코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으
며, 같은 여자에게도, 나이 든 사무장에게도, 그와 똑같이  바싹 달라붙어 걸어가는 것이 몇 
번인가 눈에 띄었던 적이 있었다.
유카코가 선천적으로 요부가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의 유
카코는 언제나 비누로 얼굴을 막 씻은 것 같은 청결감이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게이조를 보고 무라이가 다시 한 번 피식 웃었다. 
“그 계집아이는 원장님에게 홀딱 반해 있어요.”
무라이의 말에 게이조는,
‘속임수 쓰지마!’
라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온화하게 말했다. 
“그 아가씨하고 결혼하려는 게 아닌가요?” 
“그 아가씨하고 결혼을요? 내가요?” 
무라이는 입술을 약간 벌리고 빈정거리듯이 웃었다. 
“저는 결혼 같은 거 하지 않아요.”
“그럼 마쓰사키 유카코는 어떻게 하지?”
“글쎄요, 그 아이하고 저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그 아이는, 정말로 원장님을 좋아하
기 때문이지요.” 
게이조에게는 무라이가 몹시 불성실하게 생각되었다. 
“의논할 것이 마쓰사키에 관한 일인가요?”
“아니요, 의논할 일은 제 건강에 관한 일입니다.”
“당신의 건강에 관해서라고?”
놀란 게이조가 직업적인 눈빛으로 무라이를 응시했다. 무라이는 갑자기 슬픈 표정으로 게이
조의 시선을 받았다.
“원장님, 저 결핵 같습니다.”
“결핵이라니?”
순간, 게이조는 요사이 환자로 가득 찬 안과 대기실을 떠올렸다.
무라이에게는 이상하게도 환자가 많이 따랐다.  요사이는 더 인기가 있었다. 미남인  데다가 
인간 관계가 원만하다는 것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무라이의 손재주는, 과장해서  말하자면 
과히 천재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수술도 아주 잘했다. 무라이가 이 병원에서 2년 동안 근
무했던 성과가 이제 나타나는 중이었다.
‘지금, 무라이를 쉬게 하면 병원 경영은 더욱 어려워지겠지.’
게이조는 무라이의 건강보다도, 병원 경영에 관한 일을 더 걱정 하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폐인가요?”
“네, 올봄부터 가끔 식은 땀이  나곤 했었어요. 미열도 이따금  있었습니다만, 대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각혈을 조금 했을 뿐입니다.” 
“각혈을 했다고요?”
속으로 ‘꼴 좋다.’라고 부르짖고 싶은 냉혹한 생각이 들었다. 
“약간입니다. 잇몸에서 나오는 피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담 검사를 해  보
았더니 폐결핵 2기라고 하더군요.” 
‘공동이 있구나.’
게이조는 등골이 오싹했다. 1946년경의 의학으로는,  공동이 있는 결핵은 거의 다  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늘은 왠지 무라이가 단정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폐결핵  발견에 
의한 쇼크 탓일는지도 모른다.
결핵 2기라면 더 이상 근무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였다. 
“바로 X-선 사진을 찍읍시다.”
게이조는 다시 핏기가 없는 무라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내과 의사로서 부끄러운 생
각이 들었다.
“네, 그래서 말인데요, 병원도 바쁜데 죄송하지만 도야(洞爺)에 가서 요양하고 싶습니다.” 
‘그래, 멀리 도야로 가 버리면 당분간은 나쓰에하고 만날 일은 없겠지.’
게이조는 그렇게 생각하니 무라이의 발병이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병원 경영
면에서 보면 심한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난 지 겨우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의사를 구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웠다. 
‘당분간 안과는 폐쇄하는 수밖에 없겠군. 안과에 입원되어 있는 환자도 퇴원시켜야겠지. 그
러나 이 남자가 아사히카와에서 없어져 준다면 오히려 다행한 일이 아닌가.’
이러한 엇갈린 생각 속에서 게이조는 무라이가 받은 충격을 헤아릴 수는 있어도 동정은 할 
수 없었다. 무라이는 게이조에게 있어서, 루리코를 죽음에 이르게 한 한 사람이었다. 더욱이 
공범자는 자신의 처인 나쓰에였다.
“도야로 가는 것은, 사무장을 시켜서 수속을 밟게 하지요. 이 병원에서는 안정되지 않을 것
이고, 아사히카와는 추워서 요양하기에 적합하지가 않으니까요.”
게이조는 말만은 친절하게 했다.

제6장  불꽃놀이

제6장 

불꽃놀이


나쓰에가 퇴원하고 난 후로는 집안이 눈에 띄게 깔끔해졌다.
“사모님, 그렇게 일을 하셔도 괜찮을까요?”
쓰기코가 걱정할 정도로 나쓰에는 부지런히 일을 했다.
“몸을 움직이고 있는 편이 좋아요. 그래야만 모든 고통을 잊을 수 있으니까…….”
원래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나쓰에는 기둥도 복도도 신경질적으로  자주 닦았다. 남들의 눈
에는 쓰지구치의 집도 이제는 본래의 평화로운 생활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쓰에는 아들 
도루가 너무 졸라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직도 밝은 툇마루  끝에서 불꽃놀이를 하고 있었
다. 게이조는 목욕을 하고 나서  유가타를 걸친 채 툇마루의 등나무  의자에 앉아서 정원을 
보고 있었다.
“루리코가 마가목 아래에…….”
나쓰에가 손가락질했던 마가목은, 쭉 곧은 줄기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어서, 집 안에 앉아서
는 가지 끝을 볼 수 없었다.
10미터는 됨직한 높이였다. 그 옆에 초봄부터 잎이 붉은 들단풍이 태양에 비쳐서 한층 빨갛
게 보였다. 연못가의 위령선나무의 보랏빛꽃이 저녁 햇살을 받아서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것
을 바라보면서 게이조는 전쟁으로 오랫동안 정원 손질을 하지 못했음을 생각했다.
‘병원 경영을 한숨 돌릴 때까지는 정원 손질이 어렵겠군.’
게이조는 다시 무라이의 발병으로 병원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양중이라도 급료는 주어야 할 것이다.’
일단 후임 의사에 관해서는 사무장과 상의해서 물색하기로 했다. 이러한 일을 몇 번이고 나
쓰에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말을 꺼내려 했으나 게이조는 꾹 참았다.
나쓰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사실 무서웠다.
게이조는 도루하고 불꽃놀이를 하고 있는 나쓰에의 옆 얼굴을  보았다. 새까맣고 긴 속눈썹
이 아름다웠다.
커다란 슬픔을 겪고 나쓰에는 한층 원숙한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으
나, 그래도 미소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나쓰에가 문득 게이조를 쳐다보았다. 남편이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고 상냥하게 미소를 짓
자 딴 사람처럼 입술이 요염하게 보였다. 육감적이었다.
‘저 입술을, 무라이는 알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게이조는 불타는  질투를 느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말할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던 말이 무심코 입에서 나와 버렸다.
“무라이가 도야로 가게 되었소.”
나쓰에가 움찔 하고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내 손에 들고 있는 불꽃을 보았다.
“그래요?”
조용한 음성이었다. 왜인지, 언제 출발하는지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아무런 반응도 없는 나쓰에에게 게이조는 의혹을 가졌다.
‘도야에 간다고 하면 결핵이냐고 놀라 물을 만도 한데…….’
“않돼요, 엄마. 그렇게 손을 움직이면 불이 붙지 않는걸.”
도루의 말에, 게이조는 나쓰에의 손이 떨리고 있음을 알았다. 이때 게이조의 눈이  험상궂게 
빛났다.
“도루야, 더 어두워지면 불꽃놀이를 하자. 이렇게 밝은 곳에서는 별로 재미가 없구나.”
나쓰에의 말에 도루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게 해요.”
“쓰기코 누나가 감자를 캐고 있구나. 도루도 도와 주어야지.”
“감자? 와, 재미있겠다.”
도루는 불꽃을 놓아두고 부엌문을 통해서  뒤뜰로 나갔다. 나쓰에는 툇마루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무라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불꽃놀이를 그만두어 버린 나쓰에를 게이조는 초조한 
눈빛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나쓰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게이조가 묻자, 나쓰에가 얼굴을 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응석을 부리는 것 같은 말투로 나쓰에는 게이조를 응시했다. 하얀 목이 눈에 띄었다.
“글쎄…….”
무라이에 관한 일인가, 라고는 말하기 어려워서 게이조는 들고 있던 부채를 조용히 놓았다.
나쓰에는 게이조의 옆에 와서 앉더니 느닷없이 말했다.
“저, 나 여자아이가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뜻밖이었다.
“여자아이?”
“네, 여자아이를 갖고 싶어요. 조그마한 여자아이를…….”
‘나쓰에는 왜 무라이에 관한 일을 물어보지 않을까? 무라이가 왜 도야에 가는지 묻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것은 묻지 않고, 돌연 여자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을 꺼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자기의 아내이지만 나쓰에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아무 상관도 없는 행동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여자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던 말도, 나오는 대로 그냥 지껄이는 말 같았다.
“여자아이를 갖고 싶건, 남자아이를 갖고 싶건 당신은 이제 아이를 낳을 수 없지 않소?”
“어머, 그런 얘기가 아니에요.”
나쓰에의 흰 볼이 붉어졌다. 나쓰에는 루리코를 출산한 후 가벼운 늑막염을 않아서,  피임수
술을 받았던 것이다.
“도루와 루리코만 있으면, 아이는 더 필요없어요.”
나쓰에는 유순한 것 같으면서도 일단 말을 꺼내면 굽히지 않았다. 아직 젊은 몸인데 아이를 
출산할 수 없다는 것은 남편으로서 어쩐지 서운하고 배신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나쓰에가 루리코를 잃은 지  49일도 지나지 않은 지금, 여자아이를  갖고 싶다는 말을 
꺼내니까,
“당신은 이제 아이를 낳을 수 없소.”
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어요. 하지만 입양은 할 수 있잖아요. 루리코라고 생각하고 기르겠
어요.”
애원하는 듯한 말투였다.
“여자아이를 갖고 싶다니, 루리코가 죽은 지 아직 49일도 지나지 않았소.”
“그렇군요. 그러니까 쓸쓸해요. 나, 미칠 것같이 쓸쓸해요. 손이 많이 가는 어린 여자아이라
도 기른다면, 어떻게든 모든 걱정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게이조는 아직 나쓰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라이가 도야에 간다고 했는데도, 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자아이를 갖고 
싶다고 한다. 설마 무라이가 없어진 쓸쓸함을 어린아이에게서 구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게이조는 사람의 마음이 항상 논리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의 기분을 잘 모르겠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직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가 
아닐까?”
“아니요. 나, 벌써 신경쇠약은 다 낳았어요.”
나쓰에는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렇지만, 쓸쓸해서 미칠 것 같다는 것은 나쓰에 당신이 지쳐 있다는 거요.”
“누구라도 어머니라면 저와 같은 심정일 거예요. 쓸쓸하고 슬퍼서  미칠 것 같다고 생각할 
거예요. 당신은 일이 있으니까 시름을 잊어 버리고, 이제 눈물 같은 거 흘리지 않겠죠.”
나쓰에는 눈물을 흘렸다. 게이조는 나쓰에의 눈물을 보자 입을 다물었다. 신경쇠약의 재발을 
생각하면 나쓰에를 자극하는 일은 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자아이를 기르고 싶다구요. 나, 여자아이를 갖고 싶어요. 여보, 소원이에요.”
‘외로움을 잊기 위해서 아이를 기르다니! 뭐, 아이가 장난감인 줄 아나…….’
게이조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게이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나쓰에가 말에 열을  올렸
다.
“여보, 평생에 한 번 할까말까 한 부탁이에요. 여자아이라면,  차차 그 아이가 루리코 같은 
생각이 들 거예요. 루리코라고 생각하고 기른다면, 아마도 죽은 루리코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을 거예요.”
게이조는 여자아이 같은 건 보고 싶지도 않았다. 특히 루리코하고 같은 나이 또래의 여자아
이를 보면,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루리코 또래의 
여자아이를 보면 당황해서 황급히 눈을 딴곳으로 돌리고 지나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이 무렵의 나쓰에는 여자아이를 보면 구멍이 뚫릴 정도로 주시하고, 허리를  구부려 
말을 걸기도 하고 껴안기도 했다.
그리고는 곧 정신을 차린 듯 비틀거리면서 그 장소에서 사라지는 것을 게이조도 몇 번인가 
목격했다.
게이조는 나쓰에의 그런 심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자란 이렇게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있을까?’
“여보, 소원이에요. 루리코의 49제가 지나면 어린아이를 데려 오고 싶어요.”
게이조는 나쓰에의 아버지 쓰가와 교수의 온화하신 모습이 떠올랐다.
나쓰에는 아버지의 어느 한 곳도  닮은 곳이 없었다. 죽은  어머니가 나쓰에하고 닮았을까? 
쓰가와 교수님도 그 점에 있어서 나처럼 괴로움을 당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서 게이조
는 나쓰에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 말이야, 나쓰에, 이제 여자아이 같은 거 보고 싶지 않은데…….”
게이조는 온화하게 말했다. 나쓰에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얘긴지는 잘 알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여자아이를 갖고 싶은걸요.”
나쓰에도 여자아이를 보는 것이 사실 괴로웠다. 하지만 루리코하고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를 
보면, 말을 걸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여자아이들 중에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루리코와 닮은  것이 반드시 있었다. 그것은 귀
엽게 이지러진 충치라든가, 비단과 같은 촉감의  피부, 햇빛에 타는 것 같은 냄새를  풍기는 
머리, 그리고 어린 말투 등이었다.
그들 여자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죽은 내 아이를 한 번  만나고 싶다는 강한 모성의 바
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와같은 바람은, ‘보는 것도 괴롭다.’고 하는 그러한 괴로움을 초월하는 소망이었다.
어떻든 닮은 것 중에서 루리코의 모습을, 몇 만 분의  일이라도 좋으니까 나쓰에는 보고 싶
었다.
아주 조금만 닮았어도 나쓰에는 그것에 집착했다.
여자아이를 기르고 싶다는 소원이 게이조에게는 엉뚱하게 생각되어도 나쓰에에게  있어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떠한 형태로라도 좋으니까 나쓰에는 또 한  번 루리코를 만나고 싶
었다. 그리고 그것은, 루리코를 죽게 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는 생각도 했다.
나쓰에는 게이조에게 자신의 심정을 충분히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부모라
면, 게이조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른다는 것이, 나쓰에의 입장에서 보
면 더 이상하게 생각되어졌다.
나쓰에는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은 눈초리로,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정원을 보고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게이조는 다시 불안해졌다.
‘또 정신이 약간 돌아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타협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애를 데려 온다고 해도, 동물의 새끼를 하나 데려 오듯이 그렇게 아무렇게나 데려올 수는 
없잖소. 아무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어머, 정말이에요? 한 번 생각해 주시겠어요?”
“그래…….”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다카키 씨에게 물어봐 주세요. 그분, 유아원에 관계된 일을 하시잖아요.”
“다카키 말인가?”
게이조는 지난 밤에 다쓰코하고 한 이야기를 생각했다.
“네, 틀림없이 다카키 씨라면 상담에 응해 주실 거예요.”
“응, 그렇군.”
“참, 이제 수박이 차가워졌을 텐테.”
부엌으로 가는 나쓰에의 뒷모습을 보며 게이조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허리가 남달리 날씬한 유가타를 입은 나쓰에의 뒷모습은 항상 보아오던 남편의 눈에도 굉장
히 요염해 보였다.
“맛있을 것 같아요.”
나쓰에가 큰 접시에 담은 수박을 손님방의 테이블 위에 놓고 게이조를 불렀다.
“유아원에 있는 불행한 아이를 기르는 것이, 죽은 루리코를  위해서 명복을 빌어주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나 말이에요, 루리코가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하고 아주 소중하게 
기르겠어요.”
게이조는 수박을 먹으면서,
‘이제 와서 무엇을 어떻게 한다 해도, 죽은 루리코는 결코 살아 돌아오지 않을거야.’
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 본 아내의 요염한 뒷모습은, 또 다시 무라이를 연상시켰다.
무라이와 나쓰에가 그날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게이조는 확실히 알고 싶었
다.
무라이가 도야에 간다고 말했는데, 그 말에 대해서는 한 마디  대답이 없는 것이 어딘가 미
심쩍었다.
나쓰에가 나가서,
“도루, 쓰기코, 수박 먹어.”
하고 부엌문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상냥한 목소리였다. 나쓰에가 옆에 와서 앉자  게이
조는 참지 못하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무라이가 폐결핵에 걸렸대. 각혈도 하고 말이야.”
나쓰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폐결핵 특효약이 지금은 없으니까,  도야처럼 기후가 좋은 곳에서  대기 안정요법을 하는 
것이 제일 좋겠지.”
도루가 달려 들어왔다.
“와, 잘 익었네!”
“손 깨끗이 씻고 와요.”
나쓰에는 도루에게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네.”
도루는 들뜬 목소리로 대답하고 세면장으로 달려갔다. 나쓰에는 다시 침묵하고서 고개를 숙
였다.
“도야에 가 있으면 문병가기도 힘들 거야. 당신, 그 동안에 병문안하러 가지 않겠어?”
그러나 나쓰에는 게이조를 쳐다보며, 어린애들이 하듯이 고개를 저었다.
“가지 않겠소?”
게이조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네.”
“하지만 문병을 가는 것이 원장의 아내된 도리가 아닐까?”
“네…… 하지만…….”
나쓰에는 간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역시 그날 무슨 일인가 있었던 것이다.’
게이조는 한 방 얻어 맞은 것 같은 생각으로 나쓰에를 주시했다.
‘무라이한테 가고 싶지 않은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쓰기코와 도루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도루, 감자 많이 캤니?”
도루에게 수박을 집어 주면서 미소짓고 있는 나쓰에에게 게이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루, 산보나 갈까?”
수박을 먹고 나자 게이조가 일어서며 말했다.
“정말로요?”
도루는 좋아서 손뼉을 쳤다. 게이조는 천진난만하게 기뻐하는 도루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
루리코 사건 이후로 도루가 얼마나 쓸쓸한 나날을 보냈는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이다. 불꽃을 가져 오너라.”
“와, 신난다!”
도루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렇게도 신나니?”
게이조는 도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이 아이만이라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
하고 절실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도 같이 가요.”
도루가 나쓰에의 손을 잡아 끌었다. 나쓰에가 대답하기도 전에 게이조가 말했다.
“엄마하고는 다음에 같이 가거라. 아직 몸이 완쾌되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아까 무라이에게 병문안 가라고 해도 순순히 응하지 않았던 나쓰에를 게이조는 아니꼽게 여
기고 있었다.
게이조는 그 기분 전환을 위해 산보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가시면, 어두워져야 돌아오시겠네요.”
쓰기코가 회중전등을 게이조에게 건네 주며 말했다.
“다녀오세요.”
나쓰에는 게이조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게이조는 숲속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루리코 사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무서워요, 아빠.”
도루는 시범림 쪽으로 가는 것을 알고, 잡고 있던 게이조의 손을 놓고 뒷걸음질을 쳤다.
“바보같이 뭐가 무섭단 말이야. 아빠가 함께 있잖니.”
게이조는 도루의 손을 잡아 끌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숲에는 붉그스레한 저녁놀이 떠 있었다. 높은 스트로부스 소나무  가지 끝이 바람에 흔들리
고 있었다.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있다기보다 많은 스트로부스 소나무가 빙빙 하늘을 휘젖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디까지 갈거야, 아빠?”
“강가까지.”
“강가까지?”
도루는 겁이 났는지 게이조의 손을  꼭 잡았다. 게이조는 잡고 있던  도루의 손을 흔들면서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저녁놀이 희미해지고 해가 져서…….”
도루도 게이조를 따라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조금 가니까, 통나무다리가 물이 말라 버린 조그마한 냇가에 걸쳐져 있었다.
‘이 길을, 이 다리 위를, 루리코는 범인의 손에 이끌려서 걸어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뿐,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눈물이 앞을 가려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도루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혼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의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게이조
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자 조금 높은 제방이 나왔다.
‘루리코 혼자서는 이 제방을 오를 수 없었겠지. 범인의 손에 끌려서 올라간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안겨서 올라갔던 것일까?’
게이조는, 루리코에 관한 일이 생생하게 생각되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산보하러 오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왠지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제방 가득 노란 달맞이꽃이  피어 있
었다.
제방을 내려가자 또 숲이 있었다. 독일 가문비나무 숲이었다. 낮에 와도 이 숲은 무언가  기
분나쁜 느낌이 들었다. 
해가 지기 전의 숲속은 꽤 어두컴컴했다. 나무 사이로 황금색 하늘이 무척 멀리 보이고,  산
비둘기 울음소리가 나직히 들렸다.
“도깨비가 나올 것 같아, 아빠.”
도루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괜찮아. 도깨비 같은 건 어디에도 없어.”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게이조도 왠지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유령이라도 나올 것 같은 느
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령이라도 좋으니까 루리코가 그 부근 소나무 아래에 서 있어 주었으면, 하
고 생각했다.
자기 집 정원에서, 그것도 한낮에 루리코의 환상을 보았던  나쓰에의 모성애가 얼마나 대단
한 것인지 게이조는 그제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쓰에도 루리코를  사랑하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에 게이조는 갈등을 느꼈다.
게이조는 루리코가 죽은 이후,  나쓰에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하고  냉정했던 자신을 되돌아 
보았다.
루리코가 다녔던 숲속을 걸어 가면서  게이조는 순수해지는 것 같았다.  숲속을 가로지르자 
붉은 저녁놀의 하늘이 펼쳐져 있고, 거기에 비에이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가를 따라서 샛길이 하나 있었다. 게이조는 도루를 등에 업고 조릿대가 울창하게 있는 길
을 밀어 헤치면서 앞으로 나갔다.
한참 가자 얕은 여울이 나왔다.
게다를 벗고 유가타의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조그마한 강 가운데 있는 모래섬을 건넜다.
“여기가 루리코가 죽어 있었던 곳이에요, 아빠.”
도루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손가락질을 했다. 게이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루의 어깨에 
손을 얹고서, 루리코가 죽어 있던 강 주위를 천천히 걸었다.
이 길을 넘어지기도 하고 구르기도 하면서 정신없이 달려갔던 40일 전의 일이 회상되었다.
두 사람은 자갈이 많이 있는 모래밭에 앉았다.
“까… … 마… … 귀… … 왜 우는가, 까마귀는 산에… ….”
거기까지 노래하던 게이조는,
“도루야, 이 노래를 알고 있니?”
하고 물었다. 그 이상 노래를 계속하면, 또 눈물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응, 몰라요, 난.”
그렇게 말하고 도루는 게이조의 곁을  떠나서 강을 향해 돌을 던졌다.  혼자서 돌을 던지는 
도루의 모습이, 저녁 햇살을 받아서 마치 그림처럼 보였다.
저녁해가 반짝반짝 빛나는 강을 향해 도루는 질리지도 않는지 돌을 던지고 있었다.
게이조는 담배를 입에 물고 성냥을 켰다. 조금 강한 강바람  속에서 몇 번인가 성냥불을 켜
고 있는 동안에, 게이조는 자신의 몸 속에서도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강가에서, 바로 이곳에서 루리코는  살해되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와 있을 정도라면, 
왜 그 당시 여기에 와서 살리지 못했을까?’
아무리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을 게이조는 반복해서 생각했다.
어떤 이유였든지간에, 3년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루리코의  생명을 빼앗아 간 것은 너무나
도 끔찍했다. 여기에서 루리코가,
“엄마, 엄마.”
하고 울고 있었던 것을 상상하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밉구나!”
지금처럼, 사이시가 밉게 생각되었던 적은 없었다. 게이조는 이를 악물고, 그러한 미움을 참
았다. 몸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떨렸다.
“아빠, 아빠도 돌을 던져 보세요.”
도루가 불렀다.
“응, 이제 조금 있다가 같이 돌팔매질하자.”
“좋아, 아빠에게 지지 않을 거야.”
도루는 기를 쓰고 대여섯 개의 돌을 주워 모았다.
해가 막 지려고 하는 순간, 타오르는 것같이 흔들거리던 태양이 어느 사이에 산너머로 사라
졌다.
갑자기 강바람이 차가워졌다. 그때 게이조는  언젠가 이러한 저녁이 한 번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그때였었다.’
게이조는 지겨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이 강가였었다.’
게이조가 17, 8세 때의 여름이었다. 이 근처에 살고 있는 8살 정도의 어린아이를 데리고, 이 
강으로 수영을 하러 온 적이 있었다. 수영이 끝나고 돌아가려고 할 때, 주위에는 아무도  없
었다. 저녁해를 등지고서 강변의 버드나무가 거무스레하게 보이면서 바람이 불지 않는지 움
직이지도 않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강가가 묘하게도 게이조의 마음을 흔들었다. 게이조는 애써 자연스럽게 여자아
이를 무릎 위에 끌어 안고서,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돼.”
라고 협박하듯이 나직이 말했다. 여자아이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꼼짝도 않고  게이조만 
주시하고 있었다. 울지도 않았다.
그 이후, 그 여자아이는 게이조의 얼굴을 보면 도망치게 되었다. 그 아이가 여학교에 입학하
였을 무렵, 대학생인 게이조는 시내에서 우연히  그 아이를 스쳐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여학생의 표정에 나타난 냉소를  게이조는 잠시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 게이조는 그 
아이가 몹쓸 병에라도 걸려 죽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고 죽일 수만 있다면 죽이고 싶다고조차 생각했었다.
‘범인인 사이시하고 나하고, 어느 만큼의 차이가 있을까?  사이시는 여자아이를 보고 추한 
열정을 느끼지 아니하였고, 나는 여자아이를 보고 추한 열정을 느껴서 안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사이시는 나보다는 좋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라도, 그 당시 그 아이가 울부짖
었다면 목을 졸랐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게이조는 고개를 숙였다.
‘의학박사인 쓰지구치 게이조도, 살인범인 사이시 쓰치오도 결국은 똑같은 것이다.’ 
게이조는 그런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어지럽혀 견딜 수가 없었다.
“다쓰코 씨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게이조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
라는 다카키의 말을 회상하면서 게이조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정말로 다카키는, 게이조가 사이시의 아이를 맡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
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신뢰하는 다카키를 배반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배반해도, 다
카키만은 배반하고 싶지 않았다.
학창시절, 게이조의 하숙집에 와서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하다노 세이이치가 쓴 좮시간과 
영원좯이라는 책을 보고 다카키는 순진하게 감탄했었다.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 뭐가 그리 재미있다고……. 너는 머리도 좋고, 품행도 단정해. 
나는 여자를 보면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너는 아무래도 그렇지가 않은 것이, 너를 보면 다
른 사람과 조금 틀린 데가 있는 것 같아.”
게이조에게도 젊은 여성은 자극적인 존재임에 틀림이  없었다.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
만 속으로는 끙끙 앓고 있었다.
사실 그는 다카키 같은 성격이 부러웠었다.
다카키는 쓰가와 교수의 딸이었던 나쓰에에게 열정을 품고, 자못  그답게 쓰가와 교수와 직
접 단판을 지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쓰가와 교수에게 보기좋게 거절을 당한 그는, 
“나쓰에가 쓰지구치 이외의 남자하고  결혼을 한다면, 나는 절대로  그녀를 단념하지 않겠
다.” 
라고 다카키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동기생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
한 일도 있고 해서, 게이조는 나쓰에와  더욱 가깝게 되었고,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칠  수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런 만큼 게이조로서는 다카키를 배반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다카키와의 우정이기도 하
고, 고집이기도 했으며, 어떤 낭만이기도 했다.
‘정말로 범인의 아이를 맡아서 길러 볼까?’
며칠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 다시금 가슴을 스쳐갔다.
‘내 아이를 죽인 범인의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이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게이조는 마음의 한구석에서 다카키의 박수를 기대하고 있는 자신을 천박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일단 그렇게 생각하고 나자, 고지식한 게이조로서는 어디까지나 깊이 파고들어 생각
해 볼 문제라 생각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주위는 차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빠, 빨리 불꽃놀이해요.”
도루는 게이조의 무릎을 흔들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어깨를 바싹  붙여 강바람을 막으며 성
냥을 그었다. 몇 개비나 성냥을 낭비하여 겨우 불을 붙이자, 불꽃이 아련하고 가느다랗게 휘
날렸다.
그것은 루리코의 짧은 생명을 연상케 하는 희미하고도 가련한 빛이었다.

제7장  초 콜 릿

제7장 

초 콜 릿


‘무라이의 병문안을 갈 수는 없어.’
나쓰에는 게이조가 산보하러 나간 후에 불단 앞에서 루리코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
다.
무라이가 도야에 가는 것을 게이조에게 들었을 때, 이상할 정도로 몸이 떨렸다. 무엇 때문인
지는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동정도, 슬픔도 아니었다.  나쓰에는 지금 남을 동정하는 것보
다, 자신이 동정받고 싶었다.
‘그날, 무라이 씨가 찾아 오지만 않았어도 루리코는 살해되지 않았을 텐데…….’
나쓰에는 그때 루리코를 밖으로 내보냈던 것이 자기였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책임을 
무라이에게 전가하고 싶었다. 모든 것을 무라이의 탓으로 돌려  버리고 마음의 부담을 덜고 
싶었다. 이러한 일이 얼마나 자기 편한 쪽으로만 생각하는 독선인가, 나쓰에는 깨닫지  못했
다.
‘그때, 무라이 씨의 정에 끌려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 루리코의 죽음이라는 부당한 벌을 받
을 정도의 나쁜 짓이었던가.’
가벼운 입맞춤을 받은 것에 비해 이러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나쓰에는 
생각하고 있었다.
루리코를 잃고 나서 처음으로 나쓰에는 ‘무사(無事)’하다는 것, 아무 일도 없는 그날 그날
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날 이후, 게이조가 다정함을 잃고, 차가운 말투로 자신을 대하는 것도 나쓰에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날, 무라이 씨가 그러한 말을 하지만 않았어도…….’
나쓰에는 자신이 무라이의 사랑 고백을 고대했던 것을 잊고  있었다. 자기에게 불리한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모든 것을 무라이의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무라이 씨도 조금은 고통을 당해야 해.’
나쓰에는 자기만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
함으로써 나쓰에는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동물일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갑자기 등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났다.
놀라서 뒤돌아보았더니, 배낭을 우측 어깨에 걸친 남방셔츠 차림의 다카키가 서 있었다.
“아, 아……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어머, 다카키 씨, 어서 오세요.”
“내일이면 9월인데, 오늘은 굉장히 더웠지요? 쓰지구치는 어디 갔어요?”
다카키는 털썩 하고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도루를 데리고 산보하러 나갔어요.”
“산보 말입니까?”
다카키는 옆에 놓아 두었던 배낭의 끈을 풀었다. 그  보따리를 거꾸로 했더니, 위스키, 초콜
릿, 버터 등이 몽땅 다다미 위에 쏟아졌다.
“어머!”
산더미 같은 초콜릿을 보고 나쓰에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전등 불빛을 받아 금색, 
은색의 포장지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놀랐습니까?”
다카키가 만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네…… 하지만, 어떻게 해서 이렇게…….”
“어떻게 해서라니요?”
“요즘 보기 드문 귀한 물건을 많이 가져 오시다니……. 어떻게 된 일이에요?”
나쓰에가 낮게  중얼거리듯 물었다.
“산부인과 의사의 슬픈 부수입이지요.”
“네?”
나쓰에는 의아스러운 얼굴을 하고 다카키를 보았다.
“양공주가요, 미국 사람과 좋아 지내다가 슈빙게(임신)해서 찾아왔어요”
나쓰에도 슈빙게샤프트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의학 상식은 있었다.
“기어서라도 도망칠 수 있는 것이라면 또  몰라도 뱃속에 들어 있어서 도망치지도  숨지도 
못하는 것을 죽이죠. 달이 찬 중절아는 쟁반 위에서 흑흑거리며 중얼거리듯이 울고  있어요. 
아무 죄도 없는 걸 죽이니, 그건 틀림없는 살인이지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무엇인가를 알아차린 것 같은 다카키는 입을 다물었다.
“어머!”
나쓰에의 크게 뜬 눈이 순식간에 눈물로 가득찼다.
“이거, 못할 소리를 했나 보군요. 참으로 나는 눈치가 없는 놈이에요.”
나쓰에에게 못할 말을 해버렸구나, 하고 다카키가 미안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고서,
“나쓰에 씨, 차 한잔 주세요. 아니 물이라도 좋아요.”
하고 초콜릿을 싼 은박 포장지를 뜯고서 입에 넣었다.
나쓰에가 쟁반 위에 컵을 받치고 들어왔다.
“끔찍한 일이군요.”
나쓰에는 이제 눈물 짓지 않았다.
“그런 얘긴 이제 그만 둡시다. 그런 죄 받을 짓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데,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아요. 하지만 그동안에 이러한  일들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아무
렇지도 않게 생각되는 내 자신을 생각하면 정말로 서글퍼져요.”
다카키로서는 숙연한 말투였다.
“저, 다카키 씨, 부탁이 있어요.”
“나에게 말입니까?”
다카키는 나쓰에의 깊이 생각하는 것 같은 눈매에 놀라서 당황하며 말했다.
“네, 들어 주시겠어요?”
“글쎄, 이야기를 들어 보아야 알지요.”
“나, 아이를 갖고 싶어요.”
“뭐요? 어린애 상담이라면 당신의 남편하고 해야지요.”
“싫어요.”
나쓰에는 볼을 붉히면서 말을 이었다.
“여자아이를 얻고 싶어요.”
“얻고 싶다니요? 왜…….”
“너무 쓸쓸해서요. 루리코라고 생각하고 여자아이를 기르고 싶어요.”
“그만 두세요. 루리코라고 생각하고 길러도 루리코는 아니잖아요.”
다카키의 목소리가 엄해졌다.
“어린아이를 갖고 싶으면 낳으면 될 거 아니에요?”
다카키는 쌀쌀하게 말했다.
“하지만…… 낳을 수 없는 걸요.”
나쓰에는 고개를 숙였다.
“…….”
“피임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다카키는 두툼한 눈썹을 치켜 올리면서  무엇인가를 생각하듯이 어두워진 정원으로  시선을 
보냈다.
“네, 그러니까 당신이 촉탁을 맡고 있는 유아원에서, 여자아이를 소개받고 싶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라면 몰라도 얻어서까지 기를 필요는 없어요. 고생스러워요.”
“알아요. 하지만 너무 허전해서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아요.”
“허전하다는 것은 이해가 가요. 하지만 그러한 허전함은 세월이 지나가면 조금씩 잊혀져요. 
그러나 데려온 아이는 세월이 지나면 커지지요. 잘 기르면 좋지만, 뭐, 잘 기른다 해도 보통 
고생스러운 일이 아니에요.”
“다카키 씨는 꼭 경험이 많은 사람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비록 총각이지만 갓난아이를 수없이 많이 보아 왔지요.”
“그건 그렇지만……. 다카키 씨는 어째서 결혼하시지 않았어요?”
“나쓰에 씨에게 버림받았기 때문이죠.”
“또 그런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건 벌써 옛날 일이잖아요.”
“총각으로 있는 이유는요, 손금이 혼자 살라는 팔자이기 때문에 어찌할 방법이 없어요.”
다카키는 유쾌한 듯이 웃었다.
“다카키 씨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데가 없군요. 여전히 농담도 잘하시고.”
“참, 그렇지, 나쓰에 씨의 손금을 봐 드리지요.”
다카키는 손을 내밀어서 나쓰에의 손을 잡았다.
‘이 손이 무라이 씨의 것이었다면 이렇게 허물없이 내밀지 않았을 것이다.’
나쓰에는 다카키에게는 아무런 경계심도 생기지 않았다.
“허, 이 손금이 바로 미인선이고…….”
다카키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싫어요.”
“잠깐 기다리세요. 이 선이 결혼선이에요. 이런, 쓰지구치와 이별하는 편이 좋다고 나와 있
어요.”
다카키는 힐끗 나쓰에를 보고 웃었다.
“이 선은, 어린애를 하나 얻을 선이군요.”
“ 정말이에요?”
“네, 확실히 귀여운 여자아이를 얻을 수 있다고 나와 있어요. 이 선이 있는 것을 보면 의외
로 나쓰에 씨도 바람기가 있는데…….”
그렇게 말하고 다카키는 손을 놓았다.
“바람기의 상대는 병이 난 것 같아요.”
“네?”
나쓰에는 엉겁결에 다카키를 보았다.
“무라이는 바람둥이지만, 당신에게만은 진심으로 대했던 것 같아요. 오늘 무라이를  문병하
고 왔어요.”
무라이는 다카키의 먼 친척이었다.
“여러 남자들이 사랑하고 싶어했던 여자를 데리고 살아서 게이조도 마음 편할 날이 없겠군
요.”

“야아, 다카키, 자네 언제 왔나?”
게이조는, 산보하러 갈 때와는 정반대로 기분좋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도루가 게이조의 등에 업혀 자고 있었다.
나쓰에는 도루를 살그머니 받아 안고서,
“선물을 이렇게 많이 받았어요.”
하고 불단 앞의 초콜릿더미를 게이조에게 가리켰다.
“웬 초콜릿이 이렇게 많지?”
“그리고 위스키랑, 버터도 받았어요.”
“이거, 참으로 고맙군.”
게이조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위스키는 오늘 밤에 마시세나. 자네 한 사람에게만 주는 것은 너무 아까워.  죠니워커니까 
말이야. 나쓰에 씨는 주무세요. 나는 미인이 싫어. 미인의  얼굴을 보면서 술을 마시면 뒤끝
이 좋지 않아.”
다카키는 제멋대로 말을 했다.
“여보, 다카키 씨에게 갓난아이에 관한 일을 부탁했어요”
게이조는 상냥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골치를 앓고 있어.”
하고 다카키를 보았다. 하지만 곧 나쓰에 쪽을 향해서,
“뒷일은 쓰기코에게 시킬 테니까, 당신은 먼저 자도록 해요.”
“하지만…….”
“아니, 아직 얼마 동안은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으면 안돼. 벌써 9시나 되었어.”
“그러면 아이에 관한 일은 당신이 부탁해 주세요.”
하고 나쓰에가 2층으로 올라가자, 쓰기코가 내준 삶은  옥수수를 안주로 다카키와 게이조는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했다.
“옥수수 맛이 좋군.”
“쓰기코가 농촌 출신이기 때문에, 옥수수나 감자 같은 걸 맛있게 삶지.”
“그것 참 좋겠구먼.”
다카키는 뜨거운 옥수수에 버터를 발라서 입속으로 가득 집어넣고 나서 맛있다고 외쳤다.
“자네는 옛날부터 그런 것을 좋아했었지.”
게이조는 옥수수 알을 손가락으로 뜯으면서 말했다.
“너란 놈은, 옛날부터 덥석하고 물어  뜯으면서 먹는 맛을 몰라.  여전히 한 알씩 먹고  있
군.”
사방은 조용했다. 벌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다카키가 온 것은 장례식 이후로 처음이었다.
“별일 없는가?”
“뭐?”
“자네 괜찮은가 말이야.”
“괜찮아. 그럭저럭 살아가지.”
“무라이가 결핵이라면서? 자네에게 폐를 끼치게 되었군.”
“아니야. 내가 오히려 미안하지. 병이 나게 될 정도로 심하게 일을 시킨 것 같아서  마음에 
가책이 되고 있어.”
“뭘 그래? 그놈의 몸이 망가졌다면, 그건 계집질 때문에 몸이 망가진 거야.”
“계집질 때문이라고? 무라이가?”
“그럴 거야, 마작도 하고.”
“일은 잘했는데…….”
“그놈은 없는 편이 나아, 자네를 위해서도.”
“왜 그래? 무라이가 없으면 병원이 곤란해. 환자를 많이 보거든.”
“그런대로 무라이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러나 여자 관계가 좋지 않네.”
다카키는 위스키를 한꺼번에 꿀꺽 하고 마셨다.
“과연 죠니워커구먼. 어디서 이 술을 가져왔지?”
“부수입이야. 매춘부의 두목이 주었네. 아까 나쓰에에게 깜박 잊고 인공유산에 관한 이야기
를 해버렸어. 이야기를 듣고 나쓰에가 울었어.”
“아직은 그런 자극적인 말을 하면 곤란해.”
“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그 의논이라면 남편하고 상의해라,  하고 말해 주었어. 
내 아이(유아원의 아이)라도 갖고 싶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다카키는 태연하게 말했다.
“어떻게 된 건지 나도 모르겠네.”
“쓰지구치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여자아이 같은 건 보기도 싫어.”
“그럴 테지. 여자아이를 얻고 싶다니, 나쓰에 씨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걸까?”
“여자는 참으로 알 수 없는 동물이야.”
“네 마누라도 여자잖아.”
“부부라는 것은, 살아가면 갈수록 모르는 부분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 오랜 세월 동안  살
아서 정이든 자기 집에, 아직 자기가 모르는 방이 있는 것 같은 그러한 기분 나쁜 불가사의
한 데가 있단 말이야. 가령 나쓰에는, 루리코 또래의 여자아이를 안기도 하는데…… 나는 그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돼.”
“여자는 자궁으로 생각을 한다지? 하긴 남자도 머리로  생각하는지, 어디로 생각하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야.”
다카키는 그렇게 말하고서, 큰 눈을 힐끗 뜨면서,
“어린애를 데려 오는 짓 따위는 그만 둬.”
하고 말했다.
“……. “
게이조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하더니, 들고 있던 컵을 내려 놓았다.
“왜 그래? 아주 심각한 얼굴을 하고 말이야.”
“아니, 조금 생각할 일이 있어서 그래.”
“뭐야?”
다카키가 캐묻자 게이조는 조금 망설이더니 결심이나 한 것처럼 얼굴을 들고,
“자네가 관계하고 있는 유아원에 범인의 아이가 있다고 하던데…….”
“…….”
다카키는 의아한 표정으로 게이조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다쓰코 씨로부터 들었어.”
“…… 아아, 그래, 그래. 그 아가씨 무서운 사람이야. 나,  다스코 씨에게 호되게 꾸지람 들
었어. 내가 말이야, 쓰지구치란 놈, 학창시절에 ‘너의 적을 사랑해라.’라는 말을 언제나 주
문처럼 외우고 다녔는데, 설마 범인의 아이를 맡아서 기를  수는 없겠지, 하고 말했었어. 그
랬더니 그것이 친구에게 할 말이냐고 마구 꾸짖는 거야.”
그때, 2층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우리가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렸을까?”
다카키는 고개를 움츠리고 2층을 가리켰다.
“나쓰에에게는 들리지 않았겠지. 나쓰에는 학생 때 자네도 잔 적이 있던 그 방에 있어.”
“아, 현관 위 그 방 말인가? 그 방이라면 큰소리로 불러도 들리지 않았었지.”
“괜찮아. 쓰기코의 방도 별채니까.”
“그렇지만, 범인에 관한 이야기는 조용조용히 말해. 자극해서는 안될 테니까.”
활발한 것처럼 보여도 때로는 다카키가 게이조보다 세심한 때가 있었다.
“응…….”
“뭐야?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래.”
“설마, 범인의 아이를 맡는다든지 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야, 그것에 관한 일이야.”
“어이, 그만 둬! 이 사람아, 농담하지 마!”
“진심이야.”
“…….”
기가 막힌다는 듯이 다카키는 게이조의 얼굴을 물끄러미 다시 보았다.
“기가 막히지? 나도 처음에는 그러한 일을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더군. 아까도 루리코가 
살해되었던 강가까지 갔었네. 루리코가 죽은 후 처음으로 갔었는데,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
도로 범인이 미웠어.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미웠네.”
“그렇겠지. 그렇게 미운 놈의 아이를 맡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렇지? 하지만 말이야, 밉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몰라. 생각해 보면 미워한다는 
것도 바보 같은 이야기 아닌가. 내 아이가 살해된 슬픔에다가 풀 길이 없는 증오를 갖고 평
생을 살아가야 하다니 말일세. 내 일생을 이렇게 괴로움을 당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인
가, 하고 생각해 보았네. 달리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면  범인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네. 미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기막힌 생각을 가진 놈이군. 너 같은 고지식한 놈에게는 함부로 말도 못하겠다.”
다카키는 온 힘을 다하여 턱에 나 있는 수염을 하나 뽑았다.
“그만 둬, 그만 둬. 범인의 아이를 맡다니…… 바보 같은 말 그만해.”
다카키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던 무릎을 흔들었다.
“그럴까?”
“그럴까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야. 세상에  누가 자기 아이를 죽인  범인의 자식을 기르는 
바보가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너, 화풀이로 그 범인의  아이를 데려다가 학대하려고 
하는 거야?”
“농담하지 마라. 착실하게 기를 거야.”
“지금은 너도, 나쓰에 씨도 제 정신이  아니야.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거야. 첫째로 너는 여자아이 같은 건 보기도 싫다고 말했어. 입에 침도  마르기 
전에 그 아이를 맡겠다는 말을 꺼내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아. 게다가 자네, 나쓰에 씨가 자
네의 그런 생각을 이해하고 허락해 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나쓰에 씨에게 어떻게 말을 꺼
낼 작정이야?”
‘아, 그렇다. 나쓰에를 위로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게이조는 또 다시 깊은 상념에 잠겼다.

제8장  비온 후

제8장 

비온 후


무겁고 낮게 깔린 먹구름이 숲을 덮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아.”
외출에서 막 돌아온 나쓰에는 문을 들어서려다 말고 하늘을 쳐다 보았다.
크림색에 밝은 푸른 색의 줄무늬가 있는 옷을 입고 주홍색  띠를 한 나쓰에의 모습이, 흐린 
하늘 아래 두드러질 정도로 화려하게 보였다.
부엌문을 열자 엷은 색의 스웨터를 입은 쓰기코가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 어서 오세요.” 
쓰기코가 말했다. 나쓰에는,
“손님이 오셨냐?”
하고 쓰기코에게 물었다.
“예, 무라이 선생이 오셨어요.”
“무라이 선생이 오셨어?”
나쓰에는 너무 놀라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쓰기코, 차를 드려. 곧 갈 테니까.”
“네, 알았습니다.”
무라이가 도야의 요양소에 간다는 말을 듣고 나서 반 달  정도 지났다. 그러나 나쓰에는 아
직 무라이에게 문병가지 않았다.
쓰기코가 쟁반을 들고 부엌으로 되돌아왔다.
“도루는 어디 있어?”
나쓰에는 자기의 아이라 하더라도 좀처럼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상냥하고 온화한 
말투가 나쓰에의 아름다움에 품위를 더해 주고 있었다.
“사가베 씨의 집으로 그림 연극을 보러 간다고 했는데, 데려 올까요?”
쓰기코는 창 너머로 하늘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글쎄…….”
사가베의 집까지는 약 300미터 정도 되었다.
“금방 비가 내릴 것 같아요, 사모님.”
“그렇구나.”
나쓰에는 무라이와 두 사람만이 집에 남는 것이 망설여졌다.
“곧 다녀오겠습니다.”
“그럼 빨리 갔다 오너라.”
우산을 들고 쓰키코가 나가자, 나쓰에는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무라이가 있는 응접실에 들어가는 것이 왠지 내키지 않았다.
루리코가 피살된 날, 무라이에게 볼에 키스 받았던 일이 꺼림칙하게 생각되었다.
옛날과 마찬가지로 쓰키코도 도루도 없이 무라이하고 둘만 집에  있는 것이 너무 불안했다. 
쓰기코하고 도루가 돌아올 때까지 무라이를 기다리게 해두고 싶은 생각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유리문이 덜커덕 덜커덕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곧 쓰기코 하고 도루가 돌아오겠지.’
무라이를 기다리게 한 채,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있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쓰에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긴장하고 있는 탓인지 평소보다 약간 창백한 피부가 오히려 
나쓰에의 얼굴 윤곽을 뚜렷하게 보이게  했다. 불안한 것처럼 크게 뜬  눈이 나쓰에 자신이 
보아도 아름답다고 생각되었다.
일어서면서 잠깐 뒷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고 나쓰에는 결심을 한 듯 복도로 나갔다.
게이조가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토요일이기 때문에 보통  때보다 빨리 돌아올 것이
었다.
무라이를 만나는 것은 루리코 장례식 이후 처음이었다. 루리코가 살해된 지도 2개월이 지났
다.
응접실의 문 앞에 서서 나쓰에는 호흡을 조절했다.
조용히 문을 열어 보았더니 거기에 있어야 할 무라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기분이 나빠서 집으로 돌아가 버렸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쓰기코가 
갖다 놓아둔 찻잔도 없었다.
‘쓰기코가 혹시나 객실로 안내한 것은 아닐까?’
친한 손님만 안내하는 객실인데, 무라이를 그쪽으로 안내하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라이
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그냥 거실로 가 버릴까도 생각했다.
그때, 객실에서 무라이의 헛기침 소리가 났다.
다시 생각해 보고 객실의 미닫이문을 열었더니, 흑단의 탁자 앞에 무라이가 단정히 앉아 있
었다.
“부재중에 찾아 뵙게 되어 실례했습니다.”
무라이는 가만히 방석을 밀치면서 인사를 했다. 약간은 점잔을 빼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아니요, 저야말로 모처럼 오셨는데 기다리게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낯설은 무라이의 태도에 당혹함을 느끼면서도 속으로는 안심했다.
“몸이 편찮으시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한 번도 병문안을 가지 못해서…….”
무라이는 그다지 여윈 것 같지 않았다.
“문병받을 정도는 아닙니다만, 몸이 조금 불편해서 쉬기로 했습니다.”
무라이는 서먹서먹한 표정으로 예의바르게 말했다. 나쓰에는, 문병을 가지 않았던 자신의 무
정함을 무라이에게서 책망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 어서 편히 앉으십시오.”
“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무라이는 나쓰에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라이는 이제 나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의지할 곳 없는 나쓰에는 편안하게 말을 붙일 수 없는 듯한 무라이의 차가운 표정이 서운하
게 느껴졌다.
루리코가 살해된 이후 무라이가 너무나 싫어졌던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라이를 만
나는 것이 너무 싫다고 생각했었다.
나쓰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남에게 냉대를 받은 적이 없었다. 어느 누구라도 나쓰에의 환심
을 사기 위해 상냥하게 굴었다. 무라이도 전에는 그런  부류의 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역시, 
그렇게 해야 했다.
무라이의 돌변한 태도에 나쓰에는 점차 마음의 평정을 잃어갔다. 가장 심한 모욕을 받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툇마루의 유리문 너머로, 나뭇가지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내일 도야로 가기 때문에 인사차 방문했습니다.”
무라이는 정원으로 시선을 돌린 채 정중하게 말했다.
“어머, 내일이요?”
나쓰에는 자신의 목소리에 교태가 섞여 있음을 느꼈다.
무라이의 냉정한 태도가 문병을 가지 않은 나쓰에에게 화가 나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돌연, 양철 지붕에 후두둑 후두둑 작은  돌멩이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쏴 하고 소리를 내고 비가 오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이 땅에 박혔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땅을 파헤치고  거기에 은색의 물보라가 치
고 있었다.
툇마루의 유리문을 씻어 내리는 것 같은 굉장한 비였다.  유리문이 심하게 달가닥거리며 바
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지독한 비군요.”
나쓰에의 목소리가 양철 지붕을 후려치는 빗소리 때문에 잘 들리 지 않았다.
나쓰에는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폭우가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면 도루가 돌아
올 수도 없고 게이조도 어딘가에서 폭우를 만나 못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자 불안하
여 안절부절했다. 정원이 갑자기 연못처럼 보였다.
나쓰에는 무라이가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굉장한 폭우에 정신이  빠져 있었다. 그게 불찰이
었다.
무라이가 어느새 나쓰에의 어깨에 손을 올려 놓고 있었다. 너무 놀라 손을 뿌리치려고 했을 
때 바로 귓전에서 무라이가 말했다.
“사모님, 용서해 주세요.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몰라요.”
“아니요, 그러지 말고 놓아 주세요.”
바람이 미친 듯이 유리문을 흔들었다.
“못 놓겠어요.”
무라이는 필사적이었다.
“제발 부탁이에요, 놓아 주세요.”
나쓰에는 쓰기코를 밖으로 내보낸 것을 후회했다.
“죽어도 못 놓겠어요.”
애원하는 나쓰에를, 무라이는 금방이라도 집어 삼킬듯이 꼼짝도 않고 주시하고 있었다.
“루리코가 죽었던 날의 일을…….”
거기까지 말한 나쓰에의 눈에는 순식간에 눈물이 넘쳐 흘렀다.
“그럼 이제 와서 그때의 일들을 생각해 내라는 말입니까?”
무라이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루리코가 죽었는데도…….”
어째서 무라이는 이러한 행동을 할까, 하고 나쓰에는 말하고 싶었다.
“루리코를 살해한 것은, 우리 두 사람이 아닙니다.”
나쓰에를 안은 무라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 놓아 주세요, 놓아 주세요.”
나쓰에는 무라이를 뿌리치려고 발버둥쳤다.
“나쓰에 씨, 제발 조용히 해주세요. 결코 나쁜 짓은 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놓아 주세요. 게이조가 곧 돌아옵니다.”
“상관 없어요, 원장같은 거.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해서라도  가까이서 
당신을 보고 싶어요.”
“마지막이라니요?”
“…….”
갑자기 무라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반짝이는 작은 돌이 떨어지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것이 눈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쓰
에는 무라이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던 것을 그만 두었다.
빗소리가 한층 더 심해졌다.
“나쓰에 씨, 당신은 쌀쌀맞으면서도 정다운 분이세요.”
어느 사이엔가 나쓰에도 무라이의 등으로 손을 올려 놓았다.
“나쓰에 씨!”
무라이는, 나쓰에의 흰 목덜미에 강하게 키스를 했다.

“엄청난 폭우였어. 길이 웅덩이처럼 패인 곳도 있어.”
밤 늦게 집에 돌아온 게이조는 잠옷으로 갈아 입으면서도 계속해서 폭우에 대해 말했다.
“저, 오늘 무라이 선생이 오셨어요. 인사하러 말이에요!”
나쓰에는 무라이의 눈에서 뚝뚝 떨어지던 눈물  방울을 회상했다.왠지 ‘무라이’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이었다.
나쓰에의 산뜻한 말솜씨에, 게이조도 솔직하게 말했다.
“내일 떠난다고 했지?”
“네, 내일이라고 했어요.”
루리코가 살해되고 나서는 무라이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겹다고 생각했던  나쓰에였
다. 그러나,
“나는 결핵 환자이기 때문에…….”
하면서 입술에 키스하지 않고, 목에다 키스를 하고 가 버린 무라이를 생각하면, 자기를 사랑
해 주는 진심에 감동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은 당신의 얼굴만 한 번  보고 돌아갈 작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엉거주춤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심한 폭우가 나의 처음의 결심을 지키지 못하게 해 버렸던 것입
니다.”
무라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나쓰에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그 세찬 비가 우리 두 사람의 관계에 또 다시 하나의  사건을 
만들었구나, 생각했다.
“아이를 언제 데려 올까?”
먼저 잠자리에 들었던 게이조가 상냥하게 말했다.
“어머, 데려와 주시겠어요?”
게이조가 벗어 놓은 옷을 옷걸이에 걸면서 나쓰에가 말했다.
“응,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는데 당신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데려와도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 그런데 말이야, 마음이 변해서 그만 두기로 했소.  요사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
지 않는 것 같아서 말이야.”
“아니에요, 나는 일단 생각한 것이면 좀처럼 단념하지 않아요.”
나쓰에는 게이조에게 등을 돌리고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
“한 번 생각했던 일은 절대로 잊어버린 적이 없고 단념하지도  않는 데는, 참으로 닮은 데
가 있는 부부군.”
“네, 다쓰코도 그렇게 말했어요.  하지만 부부는 그다지 닮지  않는 것이 좋다고들  하더군
요.”
나쓰에는 얼굴만 게이조 쪽으로 보면서,
“다카키 씨가 언제 아이를 소개해 주실는지 몰라 무척이나 기다려져요.”
“응, 우선 내가 먼저 보러 갔다 올게.”
게이조는 엎드린 채로 이불 속에서 나쓰에의 옷 갈아입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쓰에는 기모노 위에 잠옷을 살짝 걸치고 빼내듯이 기모노를 벗고 재빠르게 잠옷 띠를 맸
다.
그때였다. 고개를 숙인 나쓰에의 목덜미에 게이조의 시선이 머물렀다. 목덜미에 보라색의 반
점이 두 개, 선명하게 자국이 나 있지 않은가.
그것이 무엇인지 게이조는 알고 있었다. 무라이가 찾아와서 아내인 나쓰에하고 지냈던 시간
을 상상했다.
“뭐야, 그 반점은?”
하고 호통치고 싶은 생각을 게이조는 꾹 참고 견뎌냈다.
화가 나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자신을 게이조는 억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큰 소리로 
나쓰에를 호통치기 시작하면 그 성질난 목소리가 자신의 노여움에 더욱더 연쇄반응을  일으
킬 것 같아서 무서웠다.
게이조는 때때로 송곳, 가위, 칼을 보기만 해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발작적으로 자신이 그것
들을 흉기로 사용해 버릴 것 같아 자신이 두려워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보통때도 끝이 날카로운 물건들은 책상서랍에  넣어 두거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놓아 두었다.
“여보, 다카키 씨가 있는 곳에 가 주시겠어요?”
게이조는 대답하지 않았다. 꼼짝도 않고 눈을 감고 있었다.
“어머, 벌써 주무세요?”
중얼거리듯이 말하고, 나쓰에는 자기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모처럼 무라이하고의  서먹서먹한 관계도  잊어버리고 사이좋게  지내려고  생각했었는데
…….’
게이조는 더더욱 나쓰에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루리코가 살해된 일에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면 목에 키스 마크를 붙이는 따위의 짓은 
결코 하지 않아야 옳았다.
‘나쓰에, 그러고도 네가 루리코의 엄마야?’
게이조는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갈기갈기 잡아 찢겨진 가슴에서  정말로 피가 뚝뚝 떨어
질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나쓰에가 불을 껐다
어둠속에서 게이조는 나쓰에가 있는 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까 나쓰에의 목덜미에서 봤던 보라색의 반점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나쓰에와 무라이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무슨 짓을 했을까, 생각하니 여러 가지 모습이 멋대
로 상상되었다. 그렇게 상상하면서 머릿속에서 그려본 아내의 모습은 너무나 음란했다.
깊은 절망감이 게이조를 덮쳤다.
루리코는 살해되고, 나쓰에는 간음을 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억척같이 나는 일을 해야 하는 걸까?’
갑자기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생각되었다. 평소에 긍지를 갖고   있었던 의사로서의 생활도 
공허하게 생각되었다.
새로운 환자가 오면 소변검사, 혈액검사, 진단, 처방, 처치를 해주고 며칠이 지나면  그 환자
는 완치된다. 그러나, 치료해도 치료해도 계속해서 새로운 환자가 발생한다.
강가 모래밭에 돌을 쌓은 것 같은 공허함이었다. 게이조는  환자의 생명을 구해주는 의사로
서의 긍지를 오늘 밤에는 가질 수 없었다.
다만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은 허탈감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아내인 나쓰에의 배신
이, 게이조의 살아가는 희망의 빛을 빼앗은  것이다. 희망의 빛을 잃고 바라보는 모든  것은 
암흑이었다.
‘나쓰에를 죽여 버리고, 나도 함께 죽어 버릴까?’
그러면서 게이조는 차갑게 누워 있는 나쓰에와 자신의 시체를 상상했다.
지금 상황으로 게이조는 나쓰에를 충분히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들 도루를 죽이는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도루  혼자만을 이 세상에 남겨 놓고 죽는  것은 더군다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많은 환자를 거느리고 있는 병원 원장인 게이조가 지금 갑자기 자살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
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책임이 많든 적든, 사회인으로서 게이조에게도 책임이 지워져 있었다.
‘나쓰에! 왜 그런 짓을 했어?’
보라색의 반점을 목에 붙인 채로 지금 옆에서 자고 있는 나쓰에를 게이조는 어떻게 하면 좋
을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를  얻어다 주나 봐라.’
게이조는 나쓰에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녀가 바라는 대로 아이를 얻어서라도 다시 평화로
운 가정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쓰에가 기뻐할 것 같은 일은 무엇 하나 해주고 싶지 않았다.
“범인의 아이를 떠맡다니, 그런 바보 같은 일은 하지 마라. 무엇보다도 그러한 일을 나쓰에 
씨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라고 언젠가 이야기했던 다카키의 말이 회상되었다.
‘그렇다! 느닷없이 그 말을 꺼내 보자. 범인의  아이라는 말만 들어도 나쓰에는 놀라서 미
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바로 미쳐 버린다면 게이조의 생활이 위협을 받게 된다.
‘그렇다! 의논하지 않고 데려오는 것이다. 나쓰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귀여워하겠지. 비밀은 
어떻게 해서든지 지켜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기른 아이가  어느 날인가 범인의 아이라는 
것을 알았을때, 나쓰에는 도대체 어떻게 될까? 귀여워하며  기른 만큼 정신적으로도 충격이 
크겠지. 사랑하여 기른 아이가 루리코를 죽인 범인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쓰에는 
자신의 지나간 수십 년 동안을 얼마나 분하게 여길까? 그러나, 그렇게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범인의 아이는 귀염받고 자랄 것이다. 너의 적을 사랑하라고 했던 나의 시도가 여하튼 이루
어진 것이다. 원수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기른 게이조 자신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기른 
나쓰에보다 몇 배나 더 괴로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을 잘라내고, 뼈를 깎는 인내로 참아야 
한다. 진상을 알았을 때, 나쓰에가  발을 동동 구르고 분하게 여겨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게이조는 나쓰에의 놀라고 슬퍼하고 원통해 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게이조는 지금, 자신의 마음 밑바닥에 어두운 동굴이 입을 크게 짝 벌리고 있는 것 같은 공
포심을 느꼈다.
‘최고로 사랑해 주어야 할 아내에게, 도대체 나는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이러한 무서운 생각은 자신의 마음 밑바닥에 입을 벌리고 있는 아주 컴컴한 동굴로부터 솟
아 오르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아무리 마음속이라지만 밑바닥이 있는 동안에는 아직은 괜찮은 편이다.  깊이를 알 수 없
는 이 구멍 속에서, 상상도 하지 못한 더욱더 무서운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구멍은 자신에게도, 나쓰에에게도, 어느 누구의 가슴속
에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이조는 어젯밤의 결심이 흔들리기 전에 일을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침식사 후에 게이조는 나쓰에에게 말했다.
“오늘은 다카키한테 갔다올게, 일요일이니까.”
“어머, 좋아라.”
반갑다는 듯이 나쓰에는 자신의 볼을 양 손으로 감싸 쥐었다. 나쓰에가 그런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게이조의 눈에도 나쓰에가 앳되고 순진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무라이와의 사랑이 나
쓰에에게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나도 함께 가면 안돼요?”
“이야기가 잘되면 전화를 할게. 적당한 아이가 없을지도 모르니까.”
나쓰에의 흰 목덜미에 남아있는 보랏빛 반점을 게이조는 오늘 아침에도 보았다.
‘나는 환자 이외에는 여자의 손을 한 번도 잡아 본 적이 없다. 일도 잘하고, 상냥하기도 한 
나를 왜 나쓰에는 배반했을까?’
신혼 때 무심코 키스한 것이 흔적이 남아 혼이 난 적이 있는 게이조는 그 후로는  조심스러
워졌다. 목이나 목덜미에 가볍게 입술을 갔다댔을 뿐이었는데도 나쓰에는 기분좋은 듯이 눈
을 지긋이 감았다. 그 표정을 무라이에게도 보여주었던 것인가, 라고 생각하자 게이조의  가
슴은 아침부터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나쓰에는 자신의 목에 있는 키스 마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있어요. 루리코의 것을 쓰면 되니까. 그러니까 전화를  주
시면, 언제라도 뛰어갈게요. 가능한 한 영리하고 귀여운 아이를 부탁해요.”
나쓰에의 예쁜 입술을 게이조는 보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배신했던 입술이었다.
무라이의 어디에 그 입술을 갖다 대었을까, 상상만해도 괴로웠다.
“아주 혈통이 좋을 것 같은 아이를 얻어다 주겠어.”
게이조는 기분좋은 듯이 대답했다.
‘그렇다. 오늘은 무라이가 떠나는 날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자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게이조는, 
“무라이를 삿포로까지 내가 전송해 주겠어. 당신도 역까지는  나와 주겠지?”
나쓰에는 살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전송해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아?”
눈을 내리깔고 있는 나쓰에의 마음속을 생각만 해도 게이조는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 같
았다.
“네…… 하지만…….”
미지근한 대답이었다. 나쓰에는 행주로 식탁의 어느 한곳을 힘껏 닦으면서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전송하는 거지, 나쓰에?”
다소 나무라는 듯이 게이조가 말하자, 나쓰에는 얼굴을 들고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왜 그래?”
“내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일을, 병원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잖아요. 왠지  부끄러워
서…….”
게이조는 나쓰에의 교묘한 핑계에 말없이 식탁 앞을 떠났다.

제9장  회전의자

제9장 

회전의자


무라이는 지난 밤 또 각혈을 했는지 도야로 출발하는 것이 연기되었다. 정말로 각혈을 했는
지 안 했는지는 모르지만 게이조는 무라이가 아사히카와에 있으려고 구실을 만드는 것이 아
닌가, 하고 생각되어 불쾌해졌다. 혼자서 삿포로에 도착한 게이조는 역에서 다카키에게 전화
를 걸었다. 다카키는 병원에 나가고 없었다.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어, 쓰지구치 아냐? 어찌된 일이야?”
하고 다카키는 여전히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게이조도 마음이  누그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
었다.
“잠깐 만나고 싶은데…….”
“만나고 싶다고 나에게 전화를 주는 놈은, 너 같은 사내녀석들뿐이다. 오는 김에 아주 예쁜 
처녀라도 데리고 오너라!”
“그래, 알았네.”
게이조는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아서 그렇게 말했다. 다카키는 전화기가 부서져라 큰소리로 
웃고서 다시 말했다. 
“볼일이 있어서 왔나?”
“응, 그냥 와 봤어.”
전화로 아이에 관한 일이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인가……? 아무튼 병원까지 오게. 일요일인데도 오후에 수술이 있네. 내가 너무 바
쁘네.”
전화기를 놓고 게이조는 고반칸(五番館) 앞에서 전차를 탔다.
아카시아 가로수가 아름다운 삿포로는 언제 보아도 게이조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학생 때, 이 거리를 나쓰에 하고 걸었었는데…….’
학생인 게이조가 긴머리를 늘어뜨린 나쓰에하고 걸어가면, 나쓰에의 아름다움에 뒤돌아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게이조는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는 나쓰에하고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자
랑스럽고, 자기처럼 행복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 나쓰에에게 나는 배신을 당한 것이다.’
다카키의 목소리와 가로수의 푸르름에 마음이 누그러진 게이조는그런 생각을 하자 다시  마
음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나쓰에를 얻고,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자신이 너무
나 어리석게 여겨졌다.
‘사이시의 아이를 기르겠다고 말하면 다카키는 무엇이라고 말할까? 요전의 상황으로  보아
서는 아마 절대로 반대하겠지.’
별로 희망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너의 적을 사랑하라는 말에는 결국 승복하고 말겠지.’
그렇지만 다카키는 그런 말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게이조는 나쓰에 역시 범
인과 마찬가지로 용서해주고, 사랑해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자신을 배신한 
아내는, 게이조에게 있어서는 적 이상의 존재였다. 
무라이에 대해서도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게이조는  처음부터 무라이가 사랑스럽고 믿음직
한 상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쓰에는 달랐다. 고지식한 게이조에게 있어서 나쓰
에는, 어떠한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가장 사랑하는  존재였다. 그러한 아내의 배신은, 무
라이와 범인에 대한 미움보다 강했으며, 또한 복잡했다. 배신한 아내는 적보다도 잔인한  존
재였다.
그것은 살아가려는 온갖 힘을 송두리째 마르게 하고 무력하게 했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범
인이나 무라이는 아직 자신의 마음속을 황폐하게 할 만큼의 상대는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
었다.
“출장인가?”
문을 확 열어젖히고 다카키가 응접실로 들어서며 물었다.
둥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회전의자가 두 개 있을 뿐인  조그마한 방이었다. 흰 가운을 입
고 있으니까 다카키도 의사처럼 보였다. 학생시절에 친구들이 다카키에 대하여 인물평을 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다카키는 의사 타입이 아니야. 옛날 같으면 번수원(幡隨阮)의 수문장을 했
으면 적격이야.”
“아니, 지적이니까 그래도 보스 기질이 있는 영화감독이면 어떨까?”
“뭐야?, 저 녀석은 곰이야. 독일어를 잘하고, 또 창을 잘하는 곰이야.”
게이조와 다카키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잘 맞았다. 다카키에게 무슨  말을 들어도 마음이 통
하는 따뜻함을 게이조는 느끼고 있다.
“9월이 끝나가니, 왠지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 들어.”
담배를 피우면서 다카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응, 벌써 10월이야. 또 눈이 오겠지.”
“정말 그렇군. 금년에는 스토브를  다시 사지 않으면 안되겠어.  스토브는 어떤 것이 좋은
가?”
“글쎄, 그런 것은 자네 어머님이 더 잘 알고 계실걸세.”
“우리 어머님은 잘 몰라. 너도 스토브 같은 건 모르지?  어릴 때부터 페치카만 사용했으니
까. 나 같은 가난한 사람은 그렇지 못하지.”
다카키는 좀처럼 무슨 용무냐고 묻는 기색이 없었다. 게이조는 차라리 이대로 아무 말도 하
지 않고 돌아갈까도 생각했다. 걸어오면서 잘 생각해 보니까, 루리코를 살해한 범인의  딸과 
한지붕 아래서 지낸다는 것이 지극히 힘든 일일거라고 생각되었다.
‘하루이틀이 아니다. 적어도 앞으로 20년은 아버지로서  딸로서 한지붕 아래서 살아가야만 
한다.’
그와 같은 현실을 게이조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이것을 택할 것이냐, 저것을 택할 것이냐에 따라서 나의 일생은 완전히 달라져 버리
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게이조는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무라이는 도야로 갔나?”
무라이라는 이름이 지금처럼 아프게 게이조의 가슴을 찌른 적은 없었다.
“오늘 출발할 예정이었는데, 각혈을 해서 연기된 것 같더군. ”
“저런! 그것 참 안됐군.”
다카키는 생각하는 듯이 두터운 눈썹을 여덟 팔자로 만들었다. 
‘무엇이 안됐어? 정말 안된 사람은 나야.’
게이조는 나쓰에의 목에 선명히 박혀 있던 키스 마크를 생각했다. 
‘나쓰에는 알아차리지 못했어도 무라이는 목에 키스 마크가 남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왜 무라이는 나쓰에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키스 마크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우리 부부의 갈등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자 게이조는 무라이로부터 정면 도전을 받은 것 같아서 불쾌해졌다.
“무슨 볼일이 있었는가?”
거북해 하는 게이조를 보고, 다카키는 목덜미를 북북 긁으면서 물었다.
“응.”
게이조는 아직 망설이는 마음이었다.
“아이를 데려오라고, 나쓰에 씨가 자네를 너무나 못살게 굴지?”
다카키는 생글생글 웃었으며 물었다.
게이조는 고개를 끄떡였다.
“나쓰에 씨에게 의외로 고집스러운 데가  있구나. 옛날에는 긴머리를 늘어 뜨리고,  새하얀 
얼굴을 가진 귀여운 여학생이었어. 얌전한 것처럼 보였지. 처음 봤을 때 이 사람도 말을  할
까, 생각했었지.”
다카키는 옛날을 그리워하는 듯이 말했다.
“참 말씨가 상냥한 여자였는데.”
“아니, 말씨도 천성도 다른 여자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나쓰에는 상냥하지. 아이를  갖고 
싶다고 못살게 구는 것도, 말하자면 다정하기 때문이야.”
“그렇게 생각하나?”
다카키가 나쓰에에 대해서 후한 평가를 하는 것이 게이조의 입장에서는 못마땅했다. 
‘나쓰에가 무라이하고 정을 통하고 있는 것 같아.’라고 한다면  다카키는 어떤 얼굴을 할
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상냥하지 않다는 말투군그래?”
다카키는 불만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아니야, 상냥해.”
‘누구에게도 상냥해. 특히 무라이에게 말이야.’
다카키는 대체로 남들을 높이 평가하는 버릇이 있었다. 단순하게 사람을 믿는 데가 있었다.
“나쓰에 씨도 함께 아이를 보러 왔다면 좋았을 텐데. 일단 둘이 먼저 보러 갈까?”
삿포로까지 나왔던 게이조를 보고, 오늘은 다카키도 아이를 데려가는 일에 대해서는 반대를 
하지 않았다.
“아니, 아이는 보지 않아도 좋아.”
“보지 않아도 좋다고?”
다카키는 한순간 의아스럽다는 듯 게이조를 보았다.
“나에게 전적으로 일임한다는 말인가? 특출나게 귀여운 아이가 있기는 하네.”
다카키는 기쁜 듯이 눈을 반짝거렸다.
“아니, 전에 이야기했던 애 말이야. 사이시의 아이를 데려가고 싶어.”
게이조는 말해 버리고 나자, 오히려 속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게이조의 뇌리에는  보랏
빛의 키스 마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사이시의 아이? 그 범인의 아이 말이지? 자네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거야? 그렇다면 나
는 관계하지 않겠네.”
다카키는 회전의자를 획 돌리면서 게이조를 외면했다.
“무엇 때문이지?”
게이조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뭣 때문이라니? 빌어먹을!”
다카키는 다시 의자를 게이조 쪽으로 향하면서 양 발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팔짱을 끼었
다. 쏘아보는 것 같은 다카키의 시선을 게이조는 잘 참아냈다.
“도대체 그 아이를 맡아서 어떻게 할 작정이야? 가령  살인자의 아이라 할지라도, 그 아이
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어. 그 아이도 살아가야 할 권리는 충분히 갖고 있는 거야.”
“그래, 그러니까 내가 기르겠다는 거야.”
게이조는 미소지었다.
“나는 솔직히 자네의 생각을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해.  여하튼 말해 두지만 
말이야, 나는 자네처럼 수재는 아니지만 패기는 있는 놈이라고. 살인범의 아이건 귀족의  아
이건, 맡은 이상 갓난아이의 생명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마음가짐은 있는 놈이야. 세상에 누
가 좋아서 자신의 딸을 죽인 놈의 아이를 기를 수가 있을까? 나는 자네가 그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할까봐 걱정이 되어 잠이 오지 않는다네.”
“그야, 그럴 테지. 그런 일을 생각하는 바보는 아마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테니까. 그
러나 그런 짓을 하는 바보가 이 세상에 한 사람 정도는 있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게이조는 정말로 본인이, 이와 같은 바보가 될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쓰에를 괴롭히기 위해서 맡는 것만은 아닌 것같이 생각되었다.
“어허! 골치 아픈 녀석이구먼.”
다카키는 이렇게 말하면서 다소 감탄하듯 게이조를 보았다.
“그래. 자네가 볼 때는 시시하고 아니꼬운 인간이겠지. 쓰가와 교수님과 같은 인격자조차도 
적을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씀하셨지 않은가.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
겠네. 그런데 말이야, 요전에도 말했지만 범인을 평생 증오하고 살던가, 아니면, 적을 사랑하
라는 말을 생애의 과제로 하고 더불어 살아가느냐, 이 두  가지 중에 선택할 수밖에 방법이 
없어. 미워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비참한 것이야.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싶
어.”
“…….”
다카키는  팔짱을 낀 채로, 말 없이 천장을 노려보는 것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필사적인 기분을 자기 딸이 살해되어 보지 않는 사람은   알 수 없을 거야.”
“너의 적을 말인가……? 너, 교회에 다닌 적 있었지? 자네, 기독교 신잔가?”
“아니야, 신자는 아냐. 선교사에게 영어를 배우러 학생 때 2년 정도 교회에 다녔던 적이 있
었어. 그래도 그때의 뭔가가 희미하게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
“30살이나 되었는데 그런 말을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구먼. 하긴 너란 놈은 원래 배꼽 밑에 
있어야 할 것이 없는 듯한 얼굴을 하고 사랑이나 영원  따위를 운운하던 놈이었어. 배꼽 아
래에 있어야 할 것이 있다는 증거로 아이를 둘이나 만든  지금도, 아직도 적을 사랑해야 한
다고 말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구먼.”
다카키는 웃지도 않고 그렇게 말하고서, 게이조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가 돌연 무엇인가 알았다는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테이블 위에  얹어 놓았던 발을 
마루 위에 내려 놓고 말했다.
“좋아? 알았어! 아니 잘은 모르지만 말이야, 쓰지구치 게이조라는 인간을 일단 한 번 믿어 
보자. 그런데, 나쓰에 씨도 물론 알고 있겠지?”
사이시의 아이를 맡는 일을 나쓰에도 알고 있다는 다짐을  받아내는 다카키 앞에서, 게이조
는 볼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자못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고 자신도 범인의 아이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쓰에에 대한 감정은 다카키에게 말할 수 없었다.
“범인의 아이를 기르는 목적은 나쓰에를 괴롭히는 데 있어.”
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나쓰에의 목에 남아 있는  보랏빛의 키스 마크가 뚜렷하게 떠
올랐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나쓰에 씨에게는 비밀이구나?”
하고 다카키가 묻자, 게이조는 고개를 끄떡였다.
“비밀인가? 그렇다면 나쓰에 씨는 가엾게도 범인의 아이인지도 모르고 그 아이를 기른다는 
것인가?”
다카키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좌우로 의자를 빙빙 돌렸다.
“응, 그 사람  신경을 아직  자극하면 안되니까. 지금  이런 말을  끄집어낸다면, 기절하겠
지?”
“그야 당연하지. 기절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상대하지는 않을 것 같네. 어느 
누가 자네처럼 바보스러운 일을  생각할까? 나쓰에 씨는  귀여운 여자아이를 갖고 싶겠지? 
아마도 그럴 거야. 루리코 대신으로 생각하고 기르고 싶을 테니까 말이야.”
“그래. 하지만 어차피 기르는 것이라면  이런 때 사이시의 아이를 기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루리코의 죽음이 큰 의미를 지니게 되니까 말이야. 나쓰에도 바보는  아니
야. 언젠가 내 의도를 알았을 때, 결국은 기뻐해 줄 것이라 생각하네.”
“흥, 정말 그럴까?”
다카키는 그렇게 말하고서 눈을 감고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게이조는 자신
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해왔다. 사람들  사이에 너무나 정직한 사람이라고 
알려졌었다. 설마, 이렇게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
다.
‘의외로 나같이 소심한 사람은 작은  거짓말은 못해도 큰 거짓말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른
다.’
“쓰지구치!”
다카키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왜?”
“자네는 부부 사이에 이런 큰 비밀을 만들면서까지도 범인의 아이를 맡고 싶은 거야?”
“그럴지도 몰라. 나에게 있어서 그 아이를 기르는 것은 평생의 과제니까 말야. 아무리 비밀
이라고 해도 언제까지나 영원히 비밀로 할 생각은 없네. 시기를 봐서 이야기를 하면 나쓰에
도 이해해 주리라 생각해.”
거짓말이었다. 생각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가? 너란 놈은 정말로 잔혹한 일을 하고 있구나. 나쓰에  씨는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귀여워하겠지. 그래도 좋단 말이냐?”
“그러한 일도, 나 나름대로 생각하고 결심해 왔던 것이네. 우리 두 사람 부부 사이의  문제
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자신이 있다는 듯이 게이조는 말했다.
게이조의 자신이 있는 듯한 말투에, 다카키는 힐쭉 웃고서 다시  의자에 앉았다.
“좋아, 자네가 거기까지 생각했다면, 나는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겠네.”
“이해해 주는 거지? 정말 고맙네.”
“잘은 모르겠네. 자네와 나는 사람됨이 틀려. 너는 바보가 서너 개 붙은 것 같은 착한 놈이
야. 사실 자네의 생각이 잘 납득이 가지  않아. 그러나 내가 납득을 하든 않든 나는  자네를 
믿네. 믿는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과는 다른 거라네.”
믿는다는 말을 듣고 게이조는 그 말에 대해 뭐라 답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게이조, 이렇게 된 이상 비밀은  절대로 지키는 편이 좋을 거야. 나쓰에  씨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마. 범인의 아이라도 살아갈 권리가 있네. 출생의 비밀은 절대로  지켜주어야 
하네.”
“그래, 알았어. 잘 지킬게.”
“나쓰에 씨에게 절대로 말하지 마!”
“절대로 말하지 않겠네.”
“도루가 크더라도 말하지 말게.”
“물론이네.”
“사이시의 아이에게도 말하지 않겠지?”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닌가.”
“나에게는?”
“너에게? 자네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아니 나는 몰라. 오늘로서 나는 잊을 거야. 그러니까  나에게도 말하지 마. 너 자신에게도 
말이야. 범인의 아이라고 털끝만치도 생각하지 마. 얻어온 아이라고도 생각하지 마. 너희 부
부의 아이야. 알았지?”
“알았네.”
“자네는 남자야. 절대로 이 비밀은 지켜 주길 바라네.”
“단단히 다짐을 받는군. 나를 믿지 않는 것인가?”
“아냐, 나는 간단명료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까다로울 때는 누구보다  까다롭
네. 비밀은 지키겠지?”
“알았네. 지겹구나. 그만 해라.”
너무 다짐을 하니까, 뭔가 지금도 비밀이 새 버리는 것 같아서 조금은 불안했다.
“다카키, 자네도 아무에게 말하지 않겠지?”
“당연하지.”
“무라이에게도 말하지 않겠지.”
“그놈에게 뭣 때문에 말해?”
무라이로부터 비밀이 샐 것 같은 불안감이 문득 게이조의  가슴을 스쳤다. 다카키는 의자를 
삥 하고 한 번 돌리고 나서 일어서더니, 게이조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잠시 동안 방 안을 왔다갔다 하더니, 갑자기 걸음을   멈추면서 무뚝뚝하게 말
했다.
“또 한 마디 하겠는데, 아이는 사랑으로 키우지 않으면 자라지  않아!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아이를 귀여워할 거라고 약속해다오. 비밀을 지키는 일과 귀여워해 주는 일, 이 두  가지
를 꼭 약속해 주게나.”
“알았네. 약속하겠네.”
시원스럽게 대답하는 게이조의 말에 다카키는 겨우 안심한 얼굴로,
“유아원의 아이들을 데려가는 사람들은 참 많아. 그때마다 나는 불안하다네. 하지만 지금처
럼 불안한 적은 없었네. 바로 적에게 넘겨주게 되었으니 말이야.”
다카키는 농담처럼 말을 내뱉고는 웃어 버렸다.

제10장  9월의 바람

제10장 

9월의 바람


다카키와의 이야기가 매듭지어지자, 곧바로 나쓰에에게 전화를 했다. 곧바로 전화를 하지 않
으면, 마음이 변할 것 같아서 불안했던 것이다.
전화는 약 1시간 후에야 겨우 통화할 수 있었다.
“바로 가겠어요.”
나쓰에는 나쓰에대로, 또 게이조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같이 
아이에 관해서는 장황하게 묻지도 않았다. 
다카키가 수술실에 있는 동안, 게이조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병원을 
나와서, 아카시아 가로수 아래를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녔다. 가끔  아카시아 잎이 떨어졌다. 
하늘은 낮고, 흐려 있었다. 무슨 배급을 받는 것인지,  길가의 상점 앞에 사람들이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그 행렬 속에서 조그마한 여자아이를 보았을 때, 게이조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루리코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머니에게 손이 잡혀 있는 그 아이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어디인가를 가리키고 있었
다. 갸름한 목덜미에서부터 뒷머리가 납작한  모양이 꼭 루리코를 닮았다. 게이조는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은 느낌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아사히카와에 돌아가면 루리코가 집 앞에서 놀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곧 강가
에 죽어 있던 루리코의 모습이 선명하게 눈앞에 떠올랐다.
‘루리코는 살해되었다. 그 범인의 아이를 맡아서 기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도저
히 불가능하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 그럴까 절대로 불가능한 일일까? 범인의 아이를 사랑
할 수는 없는 것일까?’
게이조는 나쓰에의 몸에 남아 있는 키스 마크를 연상했다. 질투로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나쓰에에게 사이시의 아이를 기르게 해야 해!’
게이조는 어느덧 큰길 벤치에 앉아 있었다. 큰 짐을 짊어진 군복차림의 남자가 햇빛에 그을
린 싱싱한 얼굴로 게이조의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쌀이나 그 비슷한 것을 파는 암매상인 
것 같았다.
그 사람 뒤로 따라오던 낡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허리를 구부리고 잽싸게 무언가를 땅에서 
주웠다. 잠시 손으로 주운 물건을 털더니 입에 물었다. 담배꽁초였다. 게이조는 눈을 딴곳으
로 돌렸다.
‘이러한 모습은 전쟁에 패한 비참한 세상살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 자신은 한 
사람에 대한 미움과 비통함 속에 빠져 있다.’
게이조는 벤치에서 일어나자,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나쓰에의 도착 시간을 알 수 없었다. 
알았다 하더라도, 게이조는 마중나갈 기분이 아니었다.
바바리 코트의 주머니에 손을 푹 집어넣고서 게이조는 천천히 걸었다. 9월 중순이어서 산보
하기에 조금 차가운 날씨였다.
시계탑의 종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나쓰에가 과연 사이시의 아이를 마음에 들어할지 모르겠군. 사이시의 아이는 여위고 빈약
한 원숭이 같은 아이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게이조는,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진척될지 어떨지 걱정이 되었다.
바람이 쏴 하고 먼지를 말아올리고서, 바짓자락에 엉키는 것처럼 불고 지나갔다.

나쓰에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7시가 지나고 있었다. 해는 벌써 져 있었다.
“지금 아이가 올거야.”
어린아이 일로 유아원에 가 있었던 다카키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다카키의 말솜씨에, 마치 갓난아이가 혼자서 아장아장 걸어서 들어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
다. 무심코 나쓰에는 미소를 지었지만 게이조는 웃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오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철렁 하고 크게 한 번 치더니, 그대로 심장이 멈춰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쓰에 씨, 귀여워해 주시겠죠?”
“어떻게 생긴 아이예요?”
“나쓰에 씨보다 미인일는지도 몰라요.”
고개를 숙이듯이 앉아 있는 게이조를 보면서 다카키는 생긋 하고 웃더니,
“쓰지구치, 기운이 없어 보여. 싫으면 그만 둬.”
“아니야…….”
게이조는 가냘프게 웃으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당신이 보고서 결정해요.”
나쓰에는 게이조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 둬.”
다카키는 라디에이터에 걸터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도대체 어떤 사람의 아이인가요?”
“나쓰에 씨, 부모를 찾아내려고 하지 말아요. 누구의 아이라 하더라도 상관하지 말아요. 자
기 이외에는 부모는 없다고 그렇게 생각해 주지 않으면 곤란해요.”
“하지만…….”
“유아원에 있는 아이는 누구라도 불행을 짊어지고 태어나는 것이에요.  자랑할 수 있을 정
도의 부모는 애당초 없는 거예요.”
“하지만 부모가 누구인가만은 알고 싶어요.”
마치 오빠에게 응석이라도 부리는 듯한 어조였다.
“그럼, 이 기회에 사실대로 말해 버릴까?”
이때, 게이조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카키를 보았다.
다카키는, 
“아버지는 의학박사 쓰지구치 게이조, 어머니는 미인으로 소문난 쓰지구치 나쓰에.”
라고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싫어요,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그런가? 그럼 아버지는 학생이고, 어머니는 유부녀 사이에서 태어난 불행한 아이예요.  이
만하면 되겠지요?”
다카키는 나쓰에를 조롱하듯이 말했다.
“다카키 씨는 알고 봤더니 나쁜 사람이군요?”
“나쁜 사람은 그쪽이에요. 나는 유아원의 규칙대로 할 뿐이에요. 부모의 신원을 알려 줄 수
는 없습니다. 그 대신, 부모도 자기 아이의  행방을 알 수 없는 게 우리 유아원의  규칙이에
요. 하지만 염려하지 마세요. 그 아이는 귀신의 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뱀의 아이도 
아니니까 말이에요. 훌륭한 사람의 아이라고 생각하세요. 사람의 아이라면 대개 50보  100보 
차이니 걱정하지 말아요.”
다카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게이조를 힐끗 보고서,
“어떻게 할 거야, 쓰지구치. 아이를 하나  얻는다는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러면 
즐거운 얼굴을 해야지, 자네 얼굴 표정이 왜 그 모양인가?”
이때 노크 소리가 나더니, 마치 쟁반  같은 둥근 얼굴의 간호사가 들어왔다. 바로  뒤이어서 
모포에 쌓인 갓난아이를 안은 보모가 조용히 들어왔다. 다카키는 보모로부터 갓난아이를 받
아 안았다. 많이 해 본 솜씨였다.
신경질적으로 생긴 보모는, 인사를 까딱 하더니 문을 열었다.
“아, 가지 말고 대기소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이 사람들이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되돌려 보낸다고 했으니까 말이야.”
보모가 나가자, 나쓰에는 다카키의 옆에 바싹 다가앉아서 갓난아이를 들여다보았다.
“어머! 귀여워. 참으로 예쁜 눈썹을 하고 있군요.”
나쓰에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서, 다카키로부터 그 아이를 받아 안으려고 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려 보내.”
다카키는 갓난아이를 안은 채로 야유하듯이 말했다.
나쓰에는 다카키를 가볍게 노려보더니,
“자, 엄마에게 오렴.”
하고 손을 뻗쳐서 자기의 품으로 옮겨 안았다. 데려 가려고 작정한 말투였다. 
“어머, 애가 웃고 있어요. 몇 개월 되었지요?”
“3개월 되었다고 하던가……?”
“3개월이요? 당신도 보세요. 아주 귀여운 아이예요.”
게이조는 의자에 앉은 채로 담배를 피웠다. 사이시의 아이를 보는  것이 무서웠다.
“봐요, 또 웃고 있어요.”
나쓰에가 게이조의 옆으로 다가왔다. 게이조는 두려운  심정으로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
다. 의외로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이였다. 게이조는 신문에서 보았던 사이시의 얼굴을 연상해 
보았다.
눈썹이 짙고 이마가 수려한 것이, 사이시를 쏙 빼다박았다. 갓난아이답지 않게 진한  눈썹과 
더부룩한 머리카락이 게이조에게는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가야, 너의 아빠야. 귀엽지요?”
갓난아이의 눈은 사람의 눈이라기보다는 동물의 눈과 흡사했다. 아빠라고 말한 나쓰에의 말
이, 어쩐지 게이조의 마음에 걸리는 것을 알아차려 버린 것 같은 무심한 눈이었다.
‘나는 이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야!’
눈썹 주위가 너무나도 사이시와 닮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쓰에가 어린아이를 마음에 
들어하는 모습을 보고서, 게이조는 심술궂은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아이의 이름이 뭐였지요?”
“스미코라든가…… 일단 이름은 지어져 있는 것 같아요.”
“스미코라구요? 귀여운 이름이지만, 우리가 이름을 다시 지어요. 네?”
“스미코도 좋아.”
게이조는 귀찮은 듯이 대답했다.
“아니요, 새롭게 이름을 짓겠어요. 우리들의 아이인걸요. 자, 이번에는 아빠에게 안겨요.”
나쓰에는 게이조에게 갓난아이를 내밀었다.
“괜찮아, 안지 않아도. 이렇게 작은 것을 안으면 떨어뜨릴 것 같아 무서워.”
게이조는 손이 나가지 않았다. 다카키가 생긋 웃고서,
“나쓰에 씨, 기르기 어려우면 언제라도 돌려 보내 주세요. 나쓰에 씨는 의붓자식이라고  학
대를 하지 않겠지만, 쓰지구치는 그럴 수도 있어요.”

차를 타고 나서도 나쓰에는 갓난아이에게 이야기를  걸기도 하는 등 평상시와는 달리  말이 
많아졌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나쓰에는 노이로제로 입원해 있어서 사이시의 사진이 실려 있는  신문을 보지 못했다. 보았
다고 해도 설사 지금에 와서 자기의 무릎에  안고 있는 이 아이가 사이시의 아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아사히카와에 돌아갈 기차가 있던가?”
“없어요. 벌써 9시 가까이 되었는걸요.”
“아니, 서두르면 9시 몇 분인가의 기차는 탈 수도 있어.”
“여보.”
나쓰에는 목소리를 죽이고 몸을 옆으로 갔다댔다.
“뭐야?”
“저, 여관을 잡아주시지 않겠어요?”
“서두르면, 탈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나는 돌아가지 않을래요.”
“나는 병원 일 때문에 가야 해.”
게이조는 시계를 봤다. 그러한 게이조를 무시하듯이,
“저, 거기를 돌아서 시계탑 옆의 마루소 여관 앞에 세워 주세요.”
나쓰에는 운전사에게 이야기했다.
“웬일이야? 피곤해?”
“네, 약간.”
그러나 피곤한 얼굴은 아니었다. 나쓰에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게이조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차가 멈추었다. 요정과 같이 공을 들여서 지어 놓은 여관이었다.
게이조는 막차 시간을 걱정하면서도 함께  차에서 내렸다. 방에 들어서자, 나쓰에는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은 눈으로 게이조를 쳐다봤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요?”
게이조는 다시 손목시계를 보았다.
“용서하세요. 나는 당분간 아사히카와에 돌아가지 않겠어요.”
“뭐라고?”
‘설마 헤어지자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이때 무라이의 얼굴이 눈에 떠올랐다.
‘만약에 말이야…….’
게이조는 나쓰에를 보았다. 게이조의 격한 표정에 나쓰에는  약간  두려운 듯이 갓난아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왜 돌아가지 않겠다는 거요? 내가 싫어진 거요?”
“어머!”
나쓰에는 반은 기가 막히고, 반은 안심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싫어요? 당신을 싫어할 까닭이 없잖아요?. 나는 이 아이  때문에 당분간 아사히카와에 돌
아가지 않고, 삿포로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그런 것도 몰라주는가, 하고 나쓰에는 기가 막혀 하는 것 같았다. 나쓰에는 지금 갓난아이에 
관한 일로 머리가 꽉 차 있어서, 게이조에 관한 일 따위는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없을 것이
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말이야, 왜 이 아이 때문에 삿포로에 머물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요?”
“지금 이 아이를 데리고 아사히카와에 돌아가 보세요. 데려온  아이라는 것이 곧 탄로나지 
않겠어요? ”
“사실이 그런걸. 데려온 아이라고 알려져도 괜찮지 않아?”
게이조가 생각하기에 알려져서 곤란한 것은 그 아이의 출생에 대한 비밀이었다.
“어머, 끔찍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아이가 불쌍해요.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하지만 데려온 아이라는 것을 숨길 방법이 없지 않소.”
“아니요, 있어요. 저 말이에요, 어린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배에다 천을 감
고 있었어요. 경사스러운  일이라고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임신한  걸로 생각하고  말이에
요.”
놀란 게이조는, 나쓰에의 띠 언저리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나쓰에는 방석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갓난아이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여행지에서 7개월 정도 된 아이를 출산한 것으로 해두면 되잖아요.”
“이 아이는 벌써 3개월이나 지났잖아? 곧 소문이 날거야.”
“그래서 당분간 아사히카와에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거예요. 2개월 정도  여기에 머무르고 
있겠어요.”
게이조는 시계를 보았다. 도저히 마지막 열차는 탈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쓰에, 바보 같은 짓하지 말아요. 2개월이 지나면 이 아이는 생후 5개월이 되어 버려. 어
느 누구라도 바로 알아 버리게 돼요.”
게이조는 웃었다. 그러나 나쓰에는 기가 죽지 않았다.
“아니요, 2개월이 지나면 11월도 반은 지나게 되고,  그러면 그때는 추워지겠지요. 이 아이
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어요.”
“만일 당신이 아이를  낳았다고 사람들이 축하해 주려고 집에 오면,  그때는 어떻게 할 작
정이오?”
“당분간은 감기에 걸렸다든가, 아니면 다른 데가 아프다던가 하고 누구에게도 아이를 보여
주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이 아이는 루리코 대신에 태어났는지, 발육이 상당히 좋다고 여러 
사람들에게 말해 두겠어요. 3월경까지 어떻게든지 속이겠어요.”
“하지만 말이야, 3월이 되면 생후 6개월이 될 텐데, 이 아이는 9개월이 되오.”
“그 정도가 되면 어떻게든 속일 수 있어요. 틀림없이 속일 거예요. 쓰기코와 도루에게 아이
를 낳았다고 말씀해 주세요. 이 아이가 커서 부모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너무 불
쌍해요. 그렇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속여 보이겠어요.”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본 적이 없었던 갓난아이에게 이렇게도 모성이 생길 수가 있을
까?’
게이조는 자기와 똑같은 사람인 여성이라는 것이 매우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그러한 이유로 적어도 2개월은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나쓰에는 어린아이가 자고 있는 얼굴을 싫증내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 정도로 이 아이가 귀여운가?”
게이조는 한숨을 쉬었다.
“어머, 당신은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제 방금 이 아이를 처음 보았는데 귀엽고 뭐고 할 게 있겠소.  어처구니가 없구먼.”
“어머, 저는 아이를 데려오려고 작정했을 무렵부터 귀엽다고 생각했는걸요”
“얼굴만 보고 말이오?”
게이조는 어쩐지 맥이 풀려 다다미 위에 드러누웠다.
나쓰에는 하녀가 놓고 간 차를 게이조 옆으로 옮겨 놓고 나서 잠시 얼굴을 붉히고,
“여자는 뱃속에 갓난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그  아이가 귀여운 법이에요. 남자
란 자기 아이가 태어나도 당분간은 아버지 같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이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마음 먹었던 때부터 이 아이를 낳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게이조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상냥함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기묘한  상냥함이 남자에게는 
없다. 이것이 모성애라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며 게이조는 나쓰에를 바라보았다.
‘아니, 오히려 자기애라는 것일까?’
나쓰에의 이 모성애를 닮은 상냥함이 게이조에게는 몹시 비사회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자
칫 잘못하면 무섭게 냉혹한 것으로 일변하는 것이 그 속에 숨겨져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2개월 동안이나 팽개쳐  버릴 나와 도루를  그녀는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
까?’
오늘 밤, 그 숲 옆의 넓은 집에 쓰기코와 도루 둘만이 있다고 생각하자, 나쓰에가  갓난아이
에게 보여주는 정열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이상할 정도의 정열이, 루리코의 죽음에서 온 
슬픔과 회환에서 비롯된 것임을 게이조는 알지 못했다.
‘이 아이가 사이시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나쓰에는 어떻게 될까?’
게이조는 엎드린 채로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남편으로서 용서받을 수 없
는 잔인한 상상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쓰에의 하얀 목덜미에, 어느덧 게이조의  시선
이 머물러 있었다. 어제의 키스 마크가 색이 연해진 채로 아직 남아 있었다.
“신고, 출생신고는 태어난 곳에서 한다지요?”
나쓰에의 말에 게이조는 말없이 일어나 앉았다.
“출생신고? 출생신고를 한단 말이오?”
“당연하지요. 이 아이는 호적이 없다고 다카키 씨가 말씀하셨어요. 지금 낳은 것으로  하고 
곧 신고하지 않으면…….”
‘그렇다! 호적이라는 문제가 있었군!’ 
게이조는 자신의 멍청함에 놀랐다.
“출생신고를 해도 낳은 것은 아니잖아.”
범인 사이시와 꼭 닮은 눈썹을 가진 아이를 게이조는 눈여겨보았다.
“아니요, 낳았어요. 내가 낳은 것이에요. 자기 자식으로 키운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닌가
요?”
게이조는 당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쓰에의 마음에 잠재되어  있는 열정을 게이조는 알
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심할 줄은 몰랐다.
‘사이시의 아이라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호적에 루리코를 죽
인 놈의 아이를 올릴 수는 없다.’
창 너머로 보이는 시계탑이 달빛에 파랗게 떠오르는 것같이 보였다.
“여보, 이름을 뭐라고 지어서 신고할까요?”
“스미코라든가 하는 이름이 있지 않소?”
“싫어요. 남이 지은 이름은……. 저 루리코라고 지으면 안되겠어요?”
“루리코? 농담하지 말아요!”
저도 모르게 게이조의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루리코 대신이라고 생각하고 키우고 싶은걸요.”
나쓰에의 볼을 타고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신이 나서 갓난아이를 안기도 하고 볼을 대기도 하는 나쓰에에게, 죽은 루리코를 벌써 잊었
는가, 하고 마음속에서 몇 번이나 힐책하고 있었던 게이조는, 나쓰에의 말씨와 눈물에  당황
했다.
나쓰에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소리없이 울었다. 무엇인가를 참고 있는 것처럼, 나쓰에는 
그렇게 목소리를 죽이고 울었다.
“루리코는 루리코일 뿐이오. 다른 이름을 짓는 것이 좋겠소.”
게이조는 다정하게 말했다. 나쓰에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닦았다.
“사실은 말이오, 이 아이는…….”
게이조는 아무 말없이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말을 꺼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게이코는 어떨지 몰라? 당신의 이름에서 첫글자를 따서 말이에요.”
‘농담하지 마.’
“게이코도 좋지만, 다른 이름이 없을까?”
“그럼 태양의 양(陽)자를 따서 요코라고 지으면 어때요? 제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이름
이에요. 어딘지 모르게 밝고 친근감이  느껴지거든요.”
나쓰에는 아직도 울음섞인 목소리였다.
“요코가 좋겠군. 태양처럼 밝게 자란다면 더 좋겠고.”
이름 따위는, 루리코나 게이코가 아니라면 무엇이라도 상관없었다.
“요코로 정할까요? 기뻐요.”
“응, 이름은 아무래도 좋지만, 그보다 나쓰에, 이 아이를 돌려 보내는 편이 좋지 않겠소?”
“어머! 어째서 그런 심술궂은 말씀을 하세요?”
“사실은 이유가 있소.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 말 잘 들어요.”
나쓰에는 겁에 질린 것처럼 한순간 게이조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자고 있는 갓난아이를 이
불째 껴안고 머리를 저었다.
“싫어요, 요코를 돌려 보내지 않겠어요. 누구에게도 보내지 않겠어요.”
이제 방금 지은 요코라는 이름을 나쓰에는 너무 쉽게 입에 올렸다. 그것을 깨닫자, 게이조는 
한층 더 나쓰에가 기분 나쁘게 생각되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말이야…….”
“아니요, 돌려 보내지 않겠어요. 비록 어떤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지, 요코?”
게이조의 말을 거세게 가로막고, 나쓰에는 갓난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게이조는 자신과 도루 이외의 사람에게  나쓰에가 키스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약간 
긴 하얀 목덜미를 드러내고 갓난아이에게 키스를 하는 그 모습에서 게이조는 무라이에 대한 
나쓰에의 교태를  상상했다.
‘루리코가 피살된 그날, 나쓰에 너는 도대체 무라이하고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
리고 어제도 염치없이 또 무슨 짓을 한거야!’
목덜미에 엷게 남아 있는 키스 마크를 노려보듯이 주시하면서 게이조는 일어섰다.
‘나쓰에! 그 아이는  사이시의 딸이다.  사이시와 꼭 닮은  딸이다. 마음껏  귀여워해 보아
라.’
“농담이오, 나쓰에. 정말로 기를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 보았소.”
“어머, 나쁜 사람! 아까 돌려 보낸다고 해서 너무 놀랐어요.”
“미안하오. 여하튼 나는 돌아가겠소.”
게이조는 옷걸이에서 코트를 집어들었다.
“하지만 기차가 없는걸요.”
“택시로 돌아갈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택시 요금이 굉장히 비쌀텐데…….”
“나쓰에, 쓰기코와 도루 단둘이서 집을 지키고 있어.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택시비가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나쓰에의 앞으로의 숙박료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게
이조는 말하고 싶었다.
게이조의 날카로운 말투에 기가 죽어서,
“도루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은 이미 잠자리에들 시간이에요. 잠이 들면 쓸
쓸하지는 않잖아요”
‘혼자서 자고 있는 도루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불쌍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게이조는 갑자기 불안에 휩싸였다.
‘혹시 지금쯤 어린 도루의 신상에 루리코처럼 불행이 닥친 것은  아닐까?’
게이조는 숲 옆에 있는 집이 떠올랐다.
‘사이시의 아이를 돌보고 있는 동안에,  아무도 없는 집에 또 무슨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출생신고를 부탁해요.” 
게이조는 자신의 등뒤에서 코트를 입혀 주던 나쓰에에게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급히 방을 
나왔다. 나쓰에의 얼굴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제11장  마음의 동요

제11장 

마음의 동요


아침식사가 끝나자 게이조가 말했다.
“쓰기코, 오늘 아침은 상당히 추운 것 같구나.” 
“네,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아요.” 
“설마, 10월 16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눈이야 오겠니. 그래도 동복을 꺼내주지 않을래?”
“네, 그렇게 하겠어요.”
쓰기코는 자신없이 대답을 하고 나서, 게이조에게 물었다.
“저…… 겨울옷을 넣어둔 상자가 골방에 있어요, 아니면 양복 장 위에 있어요?”
“글쎄, 쓰기코는 어디에 있는지 몰라?”
“죄송합니다. 옷가지는 일체 사모님께서 챙기시기 때문에요. 하지만 찾아 보겠습니다.”
쓰기코는 미안하다는 듯이 2층의 골방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게이
조는 아직 정돈이 되지 않은 식탁 앞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자, 신문.”
도루가 신문을 건네주며 게이조의 옆으로 바싹 다가왔다. 
“허, 어제 가와가미에 첫눈이 왔구나.”
신문을 펴고 게이조가 말했다.
“눈이 왔어? 가와가미는 어디야?”
“언젠가 우리 함께 소운쿄에 갔었던 적이 있지? 큰 목욕탕이 있던  곳 말이야. 바로 그 옆
의 도시야.”
“아사히카와에는 언제 눈이 오지요?”
“글쎄…… 아사히카와에는 대개 10월 20일은 지나야 눈이 오니까, 앞으로 열 밤만 더 자면 
눈이 오겠지.”
“와, 좋아라. 눈이 오면 엄마도 돌아오시겠죠?”
“그럼.”
“애를 낳으면 엄마 배가 아프겠네요?” 
“그래.”
“갓난아이는 배꼽 있는 데가 팡 하고 갈라져서 나오는 거지요?”
“…….”
“아프겠다. 엄마가 불쌍해요.”
“…….”
“불쌍하죠. 그렇죠?” 
“도루가 더 불쌍해.”
“왜요? 나는 배가 아프지 않은데요.”
“엄마가 없으니까 쓸쓸하지?”
“응, 쓸쓸하기는 하지만…….”
출근 시간이 걱정되어 게이조는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그때 쓰기코가 거실로 들어왔다.
“이상해요. 동복을 찾을 수가 없어요.”
“없어?”
“동복 상자 다섯 개가 다 비어 있어요. 혹시 도둑 맞은 건 아닐까요?”
“설마, 도둑이야 들었겠니? 혹시 양복장에 있지 않을까?”
“아니요, 양복장엔 춘추복밖에 없어요.”
“그것 참 이상하군.”
게이조는 이쑤시개를 신경질적으로 사용하면서, 점차로 화가 나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뭐, 쓰기코의 잘못이 아니야. 계절이 바뀔 무렵인데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지 않
은 나쓰에가 나쁘지.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상하구나. 진짜로 도둑맞은 것이 아닐까?”

평상시보다, 조금 늦게 게이조는 집을 나섰다. 밖은 생각했던 것보다 춥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내에게 버림받은 것 같은 외로움이 뼛속까지 시리게 만들었다.  구두를 신고 있는데 옷을 
찾았다며, 쓰기코가 황급히 달려왔다. 하지만 병원에는 아침식사를 굶고 간 기능검사를 기다
리고 있는 환자가 있었기 때문에 게이조는 춘추복을 입은 채로 집을 나섰다.
나쓰에는 성격이 꼼꼼해서, 어디에 무슨 옷이 있는지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전
이 되어 아주 컴컴한 속에서도 필요한 옷가지를 꺼낼 수가  있었다. 그렇게 꼼꼼한 만큼 좀
처럼 다른 사람의 손에 살림을  맡기는 일이 없었고, 특히 옷가지  같은 것은 쓰기코조차도 
눈에 띄게 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처럼 입을 옷을 곧바로 찾아내지 못한다든가 따위의 일은 전에 없었다. 그런 만큼 
게이조는 더욱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한 시간에 한 대씩 있는  버스가 이미 떠나버린 후
인 것 같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로군.’
게이조는 쓴웃음을 짓고 나서 할 수 없이 걸어가기로 했다. 
널찍한 길 저쪽에 높은 낙엽송이 길을 따라 우거져 있고,  또 한쪽에는 낮은 목조집들이 늘
어서 있었다. 게이조는 빗자루질한 흔적이 있는 깨끗한 집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 집의 
처마에 단무지를 만드는 무가 깨끗하게 씻겨 새끼로 엮어져서 매달려 있었다. 무는 겨울 아
침빛에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올해는 우리집만 무를 말리지 않는 것 같군.’
자동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조용한  길이었다. 게이조는 배추를 산더미처럼  실은 짐마차를 
앞질렀다. 천천히 내딛는 말발굽 소리가  한가롭게 울려 퍼졌다. 말발굽 소리에  외로워졌던 
게이조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동복이 아니라도, 스웨터만 있으면 겨울을 날 수 있다.’
낡은 군복차림에 군화를 신은 청년이 스쳐지나 갈 때, 게이조는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는다
는 것이 왠지 귀찮게 여겨졌다. 국민 대다수가 옷가지를 가지고 쌀을 바꿔 먹고, 간신히  살
아가고 있는 시대였다. 
“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
느닷없이 뒤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뒤돌아 보았더니, 마쓰사키 유카코였
다, 그녀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똑바로 게이조를 쳐다보았다.
“저런, 자네 집이 이쪽이었던가?”
“아니요.”
유카코의 어깨에 드리워진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친구 집에서 잤어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 시작했는데 유카코가 곧 걸음을 멈추어서서,
“어머, 예뻐!”
하고 말굽에 편자를 박는 대장간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말을 매  두는 네 개의 통나무 기둥
이 서 있을 뿐 가게에는 아무도 없었다.
“뭣이 예뻐?”
“불 말이에요.”
어두컴컴한 가게 안에는 쇠를 달구는 불이 빨갛고 투명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불꽃이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까요?”
깃을 세운 초록색의 바바리 코트  속으로 휜 스웨터가 들여다보였다. 눈  한 번 깜박거리지 
않고 대장간의 불을 바라보고 있는 유카코를 내버려두고, 게이조는 걷기 시작했다. 
“선생님, 불꽃이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까요?”
유카코는 흰 마포로 만든 운동화를  신고 소리 없이 다가와서, 그가  언제나 하는 버릇대로 
게이조의 곁에 바싹 달라붙어서 나란히 걸었다.
“글쎄?”
게이조는 유카코에게서 떨어졌다. 
“타고 있기 때문일까요? 타 버리면 곧 재가 되고 연기가 될  텐데요. 그 다음 순간에 곧바
로 없어져 버린다는 것 때문에 저렇게 아름다운 걸까요?”
유카코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더니 다시 게이조에게 달라붙었다.  게이조는 곧바로 한 발짝 
오른쪽으로 비껴 걸었다. 
“선생님, 불꽃이라는 것은…….”
“마쓰사키 양.”
“네.”
유카코의 조그만 입술 사이로 새하얀 치아가 빛났다.
“유카코 양, 좀 떨어져서 걸을 수 없어?”
“어머!”
유카코는 귓불까지 새빨갛게 물들었다.
“죄송합니다. 이걸 어쩌죠? 어째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요? 언제나  사람들에게 주의를 받
는데도…….”
잠시 동안 유카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게이조의 뒤를 따라 걸었다. 최대한 조심해서  걷
고 있는 느낌이 가련해서 게이조는,
“함께 나란히 걸어가도 좋아. 떨어져서만 걸어가 준다면.”
하고 뒤를 돌아보았더니, 유카코는 눈물을 글썽이며 걷고 있었다. 게이조는 놀라서 물었다.
“왜 울지?”
게이조는 아침부터 여자가 우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언젠가 무라이에게서 들었던 말이 문
득 가슴을 스쳤다. 
“마쓰사키 유카코는 원장님을 좋아하고 있어요.”
중심가로 들어섰다. 잡화상, 식당, 철물점, 약국, 시장 등이 길 양쪽에 낮은 차양을 내밀듯이 
늘어서 있었다. 대장간은 여기에도 있었다. 거리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사모님께서 아이를 낳았다지요?”
속눈썹은 아직도 눈물에 젖어 있었으나, 그런 상태에서도 유카코는 웃고 있었다.
“그래.”
“무라이 선생이…….”
유카코는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고 머뭇거렸다. 
“무라이가 뭐?”
아침의 화제로서는 무엇인가 개운치 않은 것 같아서 게이조는 걸음을 재촉했다. 
유카코는 발소리도 내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따라와서,
“무라이 선생이 하는 말이, 원장 사모님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무라이한테 문병하러 갔었나?”
게이조는 언젠가 병원 약국에서 유카코가 무라이와 단둘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유카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게이조는 유카코가 고양이 같은 계집년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사이엔가, 유카코는 또 게이조의 어깨에 바싹 기대고 걷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었다. 아무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쓰에가 집을 비운 지 한 달이나 지났는
데도, 게이조는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이 쓸쓸함에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쓰기코는 대개 부
엌에 있었고, 주인의 귀가를 반길 정도로 자상하지 못했다.
도루는 나쓰에가 없는 집이 쓸쓸해서, 저녁 때까지 밖에서 놀고 있었다.
“아니, 웬 신발이지?”
검은 하이힐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양장을 한 여자 손님이 누구인지 짐작가는 사람이 없
었다. 
‘마쓰사키 유카코일까?’
오늘 아침, 유카코의 눈물이 생각났다. 
그때, 미닫이가 열리고,
“주인양반, 의외로 일찍 퇴근하셨군요?”
하고 말한 사람은 뜻밖에도 검은 V자형 스웨터에 회색 타이트 스커트를 입은 다쓰코였다. 
“놀랐어요.”
게이조는 거실로 들어갔다.
“왜요?”
“왜라니요, 다스코 씨의 양장 입은 모습을 처음 보니까요.”
다쓰코는 균형이 잘 잡힌 가는 다리를 가볍게 꼬고 소파에 앉았다. 
“이런 차림을 양장이라고 하나요? 스웨터를 입었을 뿐인데요.”
“정말 처음 보는 옷차림인데요.” 
“어처구니가 없군요. 아무리 나쓰에에게 홀딱 반했다고는 하지만, 나의 스웨터 입은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시다니…….”
다쓰코는 표정이 풍부한 눈을 빙그르르 굴리고서 가볍게 노려보았다.
“아니, 처음이에요. 확실히!”
게이조는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의자에 앉았다. 다쓰코의 뒤로 땋아올린 머리 모양에서부터 
풍만한 가슴 주위까지를 힐끗 보고나서 말했다.
“역시 처음보는데요.”
“그래요? 그럼 나는 긴 소매옷을 입은 채로 테니스를 쳤다는 말씀인가요?”
“아! 그래.”
그제서야 게이조는 웃기 시작했다.
“뭐예요, 이제 와서 겨우 생각해 내다니!”
“아니, 그건 여학생 시절에 그렇게 입고 테니스를 했지  않습니까? 어른이 되고 나서 양장 
차림은 정말 처음 보는데요.”
항상 보아왔던 일본의복차림의 다쓰코와는 딴 사람 같았다. 미소년  같은 산뜻한 느낌이 들
었다. 
“아무튼 잘 오셨습니다.”
“부인이 안 계셔서 쓸쓸해 견디기 어렵다는 표정이군요. 그 얼굴 표정 말이에요.”
“뜻밖에 삿포로에서 아이를 낳아서 말이에요.”
하고 게이조가 말했다.
다쓰코는 고개를 숙이고 담뱃재를 털면서 아무 말도 듣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침 그때 도루가 밖에서 놀다가 돌아왔다. 스웨터를 입은 다쓰코를 보더니 깜짝 놀라서 말
똥말똥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내 곧 달려들어 다쓰코의 손에  매달리며 작은 다리를 다쓰코
의 아름다운 다리에 감았다. 다쓰코가 말했다.
“도루야, 오늘 밤은 아줌마하고 같이 잘까?”
“아줌마랑 함께 자요? 정말로요?”
도루는 너무 기쁜지 다쓰꼬에게서 떨어져서 다다미 위를 떼굴떼굴  굴렀다. 도루는 이 기쁨
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주무시고 가시겠습니까, 다쓰코 씨?”
약간 들뜬 듯이 게이조가 말했다. 
“내가 여기서 자고 간다고 해서 선생님까지 즐거워할 것은  없잖아요. 나쓰에가 하루쯤 도
루를 데리고 집에서 잠을 자 달라고 부탁을 해서, 별도리가 없군요.”
다쓰코는 남이 고마워하면 언제고 꼭 자기 탓이 아니라는  듯이 무뚝뚝해졌다. 게이조는 그
런 점이 다쓰코답다고 생각하며 싱긋 웃었다.
저녁식사 때 쓰기코가 생선의 뼈를 발라내고 살만을 접시에 담아서 도루 앞에 놓았다. 그러
자 다쓰코가 재빨리 도루에게 물었다.
“도루, 너 지금 몇 살이지?”
“다섯 살.”
“혼자서 생선 못 먹니?”
“응, 나는 못 먹어.”
“왜 못 먹어?”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까.”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까 못 먹는다고?”
“응, 뼈가 목에 걸리니까.”
“걸리지 않는다면 먹을 수 있니?”
“응, 하지만 무서운걸.”
“도루, 마구 먹지 말고, 잠시 동안 혀 위에 생선을 얹어 놓은 다음, 뼈가 있는지 없는지 살
펴봐. 알겠지?”
다쓰코는 일부러 뼈가 있는 데를 도루의 입에 넣어 주었다. 
“알겠지?”
“알겠어요.”
“뼈를 살짝 뱉어내는 거야.”
“네.”
도루는  그날 저녁식사에서  자기 스스로 생선뼈를 발라 먹었다. 
게이조는 나쓰에를 생각했다. 나쓰에는 뼈를 발라낸 생선을 가시가  있나 없나 하나하나 살
펴서 도루의 밥 위에 얹어 주었다. 나쓰에에게는 다쓰코와 같은 엄격함이 없었다. 
“도루, 생선이 웃는 걸 본 적이 있니?”
“생선이 웃다니요, 아줌마?”
“웃고말고, 그렇죠?”
다쓰코는 게이조를 쳐다보았다.
“글쎄.”
“바쇼(芭蕉) 선생님께서, 가는 봄이 아쉬워 새는 울고 생선  눈에는 눈물이라고 했는걸. 울 
정도라면 웃을 수도 있을 거야.”
다쓰코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게이조는 전등불이 여느 때보다 밝은 것같이 생각되었다. 오랜만에 가정의 단란함을 맛보는 
듯도 했다. 그러나 왠지 마음이 차분해지지는 않았다. 
‘나쓰에가 있어야 할 곳에 다쓰코가 있다.’
그것에 대한 위화감 때문일까, 생각하며  게이조는 다쓰코를 보았다. 다쓰코는 밝고  활달했
다. 그러다 문득 게이조는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쓰코는 식기를 희미한 소리조차도  내
지 않고 식탁에 놓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크게 웃으면서도 식기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기막힌 솜씨였다. 게이조는 다쓰코라는 사람이 달리 보이는 느낌이었다.

도루를 재우고 나서 다쓰코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미안해요. 주제넘게 굴어서요.”
하고 의자에 앉자마자 사과했다.
“뭐가 미안하단 말입니까?”
“도루에게 생선을 혼자 먹게 해서요.” 
“아니, 오히려 고마워요. 나쓰에는 엄하지 않아 너무 응석받이로만 키워요.”
“하지만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의 교육 방침이 있는걸요. 양해를 얻는 것이 원칙이지요.”
그녀는 잠시 후회하는 기색을 보이고 나서,
“오늘 일어난 일은 용서해 주시는 거죠?”
하고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그런데 이왕 참견한 김에 한 가지 더 말할 것이 있어요.”
“뭡니까?”
게이조는 다쓰코가 무슨 말을 꺼낼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침부터 아가씨와 사이좋게 걸어다니면 안돼요.”
“아침부터?”
“오늘 아침, 머리가 긴 아가씨와 걷지 않았어요?”
게이조는 마쓰사키 유카코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고, 무의식중에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어디서 보셨습니까?”
“글쎄요, 하지만 나쓰에에게서 감시까지 부탁받은 것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나 
그 아가씨는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요.”
“정말로 이상한 여자입니다.”
하면서 게이조가 누구에게라도 몸을 비벼대는 유카코의 버릇을 말했다,
“그래요? 뭐랄까, 하지만 그 아가씨가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인상이 나쁘지는 않았어
요.”
“그렇습니까?”
“그렇습니까라뇨? 금세 기쁜 듯한 표정을 하시네요.”
다쓰코가 게이조를 가볍게 노려보았다. 
게이조는 문득 유카코로부터 들은 무라이의 말이 떠올랐다. 나쓰에의 피임수술은 어느새 병
원 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자기가 낳았다고 우겨대도 남들이 믿을 리가 없다.’
다스코도 물론 그 일을 알고 있을 것이다. 조금 전 갓난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다쓰
코는 못 들은 척하고 있었다. 그러한 행동이 자신에 대한 동정심이었다는 것을 깨닫자, 게이
조는 부끄러워졌다.
“아이에 관한 얘긴데요…….”
그가 정색을 하고 말하자 다쓰코는 곧바로 알아차리고서,
“괜찮아요. 나쓰에가 낳았다고 말했는걸요.”
“하지만 수술을 해서…….”
“피임수술은 했다고 해도 잘못되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하지만 나쓰에는 바보예요.  7개월
만에 아이를 낳았느니, 자기를 닮아 있다느니,  하고 기를 쓰고 변명을 늘어 놓으니  말이에
요. 정말이지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다 나오더군요. 듣는 쪽에서 속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딱한 노릇이에요. 루리코 일로 너무 충격이 컸나 봐요. 상당히 뼈에 사무치듯이  괴로웠겠지
요. 루리코 대신이라고 생각하고 기르겠다고 몇 번이고 편지에 쓰여져 있던걸요.”
다쓰코는 차를 끓이면서 조심스럽게 진심을 말했다.
‘이 사람도 설마 범인의 자식을 데려왔다는 사실은 모르겠지.’
게이조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키우기는 해도 어떤 아이로 자라날지…….”
하고 혼자말처럼 말했다. 다쓰코는 게이조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면서,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느 아이 말이오?”
“그 범인의 아이가 다카키 씨가 관계하고 있는 유아원에 있지 않아요?”
“아, 네.”
게이조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이 사람은 다카키로부터 모든 사실을 들은 것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나쓰에에게 곧 알
려지겠군.’
“제대로 자랄지 모르겠어요.”
“글쎄요?”
그는 태연하게 말하고 나서 농담처럼 한 마디 덧붙였다. 
“그 범인의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건 어떨까요?”
다쓰코는 입술 언저리에까지 가지고 갔던 찻잔을 잠깐 멈추고서 말했다.
“데려올 수 없을 거예요, 쓰지구치 씨는.”
다쓰코의 말에 게이조는 속으로 안심했다. 
“다쓰코 씨라면 데려다 키울 수 있겠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생각도 못할 일이에요.”
“그런가요? 다쓰코 씨 같은 사람이라면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그처럼 잘난 체하지 않아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는걸요.”
게이조는 딱 하고 매로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럴까요? 그러나 절대로 키울 수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나는 할 수 없어요. 내 자식을 살해한 범인의 아이를 사랑해 주며 키운다든가 하는 거 말
이에요. 만약 어느 누구라도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다면, 아마 이 세상은 좀더 살기  좋은 세
상이 되어 있을 거예요.”
“나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한두 사람쯤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나는 인간을 그렇게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의 자식조차 제대로  키우기 힘든 
세상이며, 때론 자신의 부모조차도 귀찮아하는 인간들이 수두룩한걸요. 나는 인간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아요.”
“여전히 냉정하시군요. 그런 상태로 결혼해서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면 어떻게 할까요?”
“잘 모르겠어요. 머리를 풀어헤치고 소동을 피우든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칼로 푹  찔러 
버리든가 하겠지요. 아니면 인간이니까 한두 번 실수할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의외로  관대
한 면을 보여주든지…… 당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어요.”
“당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까? 과연 그렇겠군요.”
‘나쓰에가 무라이하고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도 관용을 베푸는 상냥한 남편
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완전히 변해 버렸다.’
“난 남자니까 여자의 마음을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다쓰코  씨도 남자에게 마음이 흔들린 
적이 있었어요?”
“다쓰코 씨도가 뭐예요?”
다쓰코가 웃다가 담배 연기가 코로 들어갔는지 기침을 했다.
“실례했습니다.”
“그런 말씀하시는 건 정말 실례예요. 나는 남자에게 빠져 있어요. 우등생 여자하고  이야기
하는 것보다 낙제생 남자하고 이야기하는 편이 훨씬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언제, 어떻
게 될지 누가 알겠어요?”
“정말입니까? 다쓰코 씨가 그렇다면 나쓰에도 어떤 계기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겠군요. 
아니, 벌써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르겠군요.”
게이조는 농담처럼 말하면서 다쓰코의 속을 떠보았다. 
“계속 쓰잘 데 없는 말만 하시는군요. 그런 말을 스스럼 없이 하다니 게이조 씨, 다시 보아
야겠어요.”
다쓰코는 둥근 무릎을 껴앉고 게이조를 쳐다보았다.
‘어쩌면, 다쓰코는 무라이하고 나쓰에의 일을 알고 있지 않을까?’
다쓰코는 모든 사건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느낌이었다.
“다스코 씨는 어딘가 어른스러운 데가 있어요. 춤을 춘다든가 할 때보면 아주 차분해 보이
거든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그거, 칭찬하시는 거예요? 감사하다고 인사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요. 미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니, 남들이 듣기에 별로  좋지 않은 말씀만 하시는군요.  시집가는 데 지장  있겠는데
요.”
그러더니 획 하고 일어서서,
“주무세요, 게이조 씨.”
하고는 싱긋 웃고서 2층으로 올라갔다.
게이조는 왠지 피로해서 자리에 들자마자 잠으로 빠져 드는 것을 느꼈다. 그때 방의 미닫이 
문이 조용히 열렸다.
“다스코 씨……?”
게이조가 고개를 쳐들자  볼에 여자의 머리카락이 닿았다.
‘아아, 다스코 씨로구나.’
게이조가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아니에요. 저 유카코예요.”
여자가 몸을 바싹 붙여왔다. 여자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어째서, 신을 신고 있어?”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발을 벗어야지.”
그래도 여자는 잠자코 있었다. 게이조는 유카코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어 꽉 껴안았다.  그러
자, 그 여자는 어느 사이엔가 나쓰에로 변해 있었다.

제12장  흙 묻은 장화

제12장 

흙 묻은 장화


다쓰코가 게이조의 집에서 묵고 간  지도 10일 정도 지났다. 현관문을  열자 집안 분위기가 
왠지 전과는 달랐다. 사람들 소리가 시끄럽게 났다.
“여보, 어서 와요!”
문이 열리자 나쓰에가 갓난아이를 안고 나타났다.
“왜 이리 빨리 왔어?”
게이조는 기쁨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나쓰에도 집이 그리웠을  거라고 생각하니 언짢은 기
분은 조금도 없었다.
“네. 요코에게 먹일 젖을 좀처럼 구하기가 어려워서요.”
“기차가 붐벼서 고생하지는 않았소?”
“네. 하지만 집에 가면 우유가 바로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쁜 나머지 견딜 수가 없
어서 급히 집으로 돌아왔어요.”
“…….”
“게다가 여관 생활도 너무 경비가 많이 들고, 무엇보다도  추워지면 페치카가 있는 우리집
이 요코에게 제일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보세요. 애가 많이 컸지요. 잘 울지 않아 키우기가 아주 쉬워요.”
“…….”
“정말이에요. 좀처럼 울지 않아요.”
나쓰에는 요코를 게이조의 손에 건네주려고 했다. 게이조는 화가  난 얼굴로 나쓰에를 주시
했다.
“여보, 이 집에 처음으로 요코가 왔어요. 안아 주세요.”
나쓰에는 그제야 겨우 게이조의 불쾌한 모습을 알아차리고, 요코를 어린이용 침대로 데려갔
다. 이 침대는 도루와 루리코가 쓰던 침대였다.
‘당신은 요코에게만 관심이 있고, 도루와 나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거요?’
게이조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일어섰다.
게이조는 나쓰에가 바로 자기를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쓰기코, 아저씨 옷 갈아입으시는 것 좀 도와 드려라.”
하고 말하는 나쓰에의 목소리에 불끈불끈 화가 치밀었다.
전에 나쓰에는 게이조의 옷 갈아입는 것을 옆에서 거들어 주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
다.
“나쓰에 좀 불러와.”
게이조는 옷장에 손을 대려고 하는 쓰기코에게 말했다.
“저, 지금 기저귀를 갈아 주고 계셔요.”
쓰기코는 난처한 듯이 말했다. 게이조는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이 온몸에 퍼져가는 느낌이 들
었다.
“끝나면 오라고 전해 줘.”
게이조는 우뚝선 채로 말했다.
“요코, 요코.”
도루가 기쁜 듯한 목소리로 아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안돼. 요코는 잠자고 있단다.”
나쓰에가 부드럽게 도루를 타이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게이조는 언제 나쓰에가 올지 몰라 초조한 마음으로 꼼짝도 않고 옷장 앞에 서 있었다.
“오랫동안 불편을 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용서해 주세요.”
밤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나쓰에는 집을 비워 두었던 점에 대하여 사과를 했다.
“응.”
‘뭐야, 이제 와서야 그런 말을 하다니 괘씸하군.’
게이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쓰에의 사과하는 말 한 마디에 이제까지 마음속에  응어리
졌던 것이 맥없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불이 조금 축축하군요. 내일 잘 말리겠어요.”
게이조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서 나쓰에가 말했다.
“조금 야윈 것 같아.”
“그래요?”
“응, 아냐. 자세히 보니까 그렇지도 않구나.”
“당신은 살이 조금 찐 것 같은데요.”
나쓰에의 목소리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래,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는 증거지.”
나쓰에가 낮게 웃었다.
“뭐가 우스워?”
“당신은 바람 같은 건 피우지 않아요.”
“나 같은 놈은 바람도 피울 수 없다고 깔보고 있군.”
“바람을 피우라고 해도 못 피울 분이세요, 당신은.”
“절대적으로 신뢰하는군.”
무라이의 긴 손가락이 이상하게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게이조는 강하게 나쓰에를 끌어안았
다.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는 것인가, 때때로 숲에서 나뭇가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둘이 
껴안고 있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렀다.
“역시 페치카는 따뜻하군요.”
나쓰에도 게이조도 땀이 났다.
“여보, 며칠 전 다쓰코가 우리집에서 하루 저녁 자고 갔다지요?”
“그래, 도루가 아주 기뻐하던데. 양장을 하고 왔더라구.”
“어머, 다쓰코가요? 웬 일이지요?”
“심경에 변화가 온 것인지도 모르겠어. 다쓰코 씨는 기모노를 입어도 잘 어울리는데,  양장
도 참 잘 어울리더라구.”
“…….”
“각선미도 아주 좋아 보였어. 가늘지도 않고 그렇다고 굵지도 않고.”
“…….”
“다리가 예쁘더군. 발목에 탄력도 있고 말이야. 아마도 무용을 해서 그런가봐.”
“다쓰코는, 그럼 어디에서 잠을 잤어요?”
“2층에서 도루하고 잤지.”
“…….”
“왜 그래?”
“당신, 다쓰코가 그렇게도 예뻤어요?”
“아아, 다쓰코 씨의 각선미와 표정은 그만이었어.”
“그런 말씀하시면 싫어요.”
“…….”
“싫어요.”
“바보같이…….”
게이조는 나쓰에의 눈꺼풀에 입술을 댔다. 나쓰에는 아무 말 없이  게이조의 가슴에 손가락
으로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무슨 소리일까?”
툇마루의 유리문에 불어오는 희미한 바람소리에, 게이조도 나쓰에도 고개를 들고 귀를 기울
였다.
“아, 눈이 오는 소린지도 모르겠어요.”
“눈? 그럴지도 모르겠군.”
나쓰에는 살짝 자기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며,
“요코의 생년월일을 몇 일로 해서 호적에 올렸어요?”
하고 물었다. 게이조는 무심코 입술을 삐죽거렸다.
“…….”
“몇 일 날로 신고했는지 잊으셨어요?”
“응…….”
“너무 태평하시군요.”
나쓰에는, 게이조가 당연히 출생신고를 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게이조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갓난아이를 데려온 지도 벌써 40일이  지났다. 출생신고를 지금껏 하지  않았다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출생신고를 하려면 의사의 증명서가 필요했다. 게이조는 의사로서의 자신의  지위
를 이용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일 뿐, 그것 때문에 신고가 늦은 것은 아니었다.
“생일을 모르면 곤란해요.”
“그런가? 지금 당장 알 필요가 없지 않소.”
“하지만 언제 낳았느냐고 사람들이 물을 때 모른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당신은 그 아이를, 당분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을 작정이오?” 
“네. 40일 전에 태어났다고 할 거예요. 제가 낳은 아이로 하려면,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날
짜가 맞지 않아요.”
“4개월 이상된 아이가 40일이라고? 그건 무리야. 남이 보면 거짓말이라고 할 거요.”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겠어요.”
“…….”
“여보, 요코는 울거나 보채지 않죠?”
정말로 요코는 울지 않았다.
‘사이시는 이 아이의 울음소리에 시달려서 신경쇠약에 걸렸다고 들었는데…….’
게이조는 나쓰에의 아이 키우는 방법이 능숙하다고 생각했다. 새삼스럽게 남자와 여자의 차
이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우유를 데워 와야겠어요.”
나쓰에는 잠옷 위에 가운을 걸치고 부엌으로 나갔다.
게이조는 착잡한 심정으로, 방 한쪽 구석의 유아용 침대를 보았다.
‘나는, 이 아이를 키울 작정으로 데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코, 하고 입밖에 내어 부
르는 것조차 할 수 없다. 도저히  나쓰에를따라갈 수가 없다. 나쓰에는 이 아이가  사이시의 
아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야. 알고 있다면  결코 맡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이 한겨울을 
나쓰에는 밤에 일어나 우유를 만들고, 기저귀를 빨기도 하고,  너무나 힘들 것이다. 나는 그
것을 다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나쓰에가 불쌍
하지 않은가? 나쓰에는 무라이하고 둘이서만 있기 위해서,  루리코를 밖으로 내보냈던 것이
다. 지금, 나쓰에는 당연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쓰에가 우윳병을 손에 감싸듯이 하고서 들어왔다.
“여보, 역시 눈이에요. 벌써 많이 쌓였어요.”
“응.”
게이조는 졸리는 듯 돌아 누웠다.

아침 일찍부터 도루가 요코의 침대를 들여다보려고 방으로 들어왔다.
“요코, 요코, 까꿍!”
도루는 귀여운 목소리로 있는 힘을 다하여 요코를 어르고 있었다.
아기가 한 사람 늘었을 뿐인데, 이렇게 집안이 떠들썩하게 되는 것인가, 하며 게이조는 이불 
속에서 엎드린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도루, 아이가 귀엽니?”
“응, 귀여워. 요코는 루리코보다 귀여워, 루리코보다 귀여워요.”
“루리코보다 귀여워?”
“응, 울지 않는걸.”
게이조는 자기도 모르게 담뱃재를 요 위에 떨어뜨렸다.
도루가 소년이 되거나 청년이 되어서 만일 요코의 출생을 알았을  때, 도대체 어떻게 될 것
인가를 생각하며 게이조는 도루를 응시했다. 신경질적으로 조금 미간을 찌푸리는 버릇이 있
는 도루가 청년으로 성장했을 때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도루는 게이조를 
많이 닮았다. 정의감이 강한 청년인 도루가 쉽게 상상되었다.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평생 원망을 받을 짓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
게이조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일어나 앉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아이를 남에게 주어 버려야 한다.’
“도루, 엄마 좀 불러오너라.”
“네.”
도루가 방을 나갔다.
“무슨 일 있어요?”
앞치마를 두른 나쓰에가 들어왔다. 게이조는 잠옷을 입은 채로 똑바로 앉아 있었다.
불쾌한 듯한 남편의 모습에 나쓰에는 조금 놀라서 물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할 수 없을까?”
“네?”
나쓰에는 게이조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가 있으니까 귀찮아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어머, 푹 주무시지 못하셨군요. 용서하세요.”
나쓰에는 공손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요코는 별로 울지 않는걸요. 그런데도 주무시는데 방해가 되었군요.”
“울지 않는 아이는 어쩐지 기분이 나빠. 여하튼 귀찮은 기분이 들어.”
“그러면 오늘밤부터 요코하고 저하고 2층에서 자도록 하겠어요.”
나쓰에는 게이조의 말을 거역하지 않았다.
“나는 이 아이의 숱 많은 머리카락이랑, 짙은 눈썹, 울지도 않는 것 모두가 싫소.”
“어머, 당신은 요코의 좋은 점만 싫어하시는군요.”
“모든 것이 비위에 거슬려요. 다카키에게 돌려 보내도록 해요. 다행히도 아직 호적에는  올
리지 않았으니까.”
순간, 나쓰에의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당신! 아직도 호적에 올리지 않았어요?”
요코를 돌려 보낸다는 말보다도 아직 호적에 올리지 않았다는 말이 나쓰에에게는 더 충격이
었다.
“그래, 아직 안 올렸어.”
“지독한 분이군요! 너무해요.”
나쓰에의 핏기없는 입술이 경련을 일으켜 파르르 떨렸다. 나쓰에는 날카롭게 게이조를 쳐다
보았다. 그 눈매에 게이조는 질려 버렸다. 지금까지 게이조는 나쓰에의 이러한 예리하고  차
가운 눈을 본 적이 없었다. 나쓰에는 게이조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요코를 감싸듯이 안고는 
침대 옆에 앉았다. 그 모습은 온몸이 오싹할 정도로 요기가 감돌고 있었다. 게이조는 나쓰에
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이때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게이조는 평소 나쓰에의 상냥함에 익숙해져  있었다. 나쓰에의 약간 고집이 센  것이라든가, 
일단 말을 꺼내면 양보할 줄 모르는 방자함조차도 게이조에게는 아직 귀엽게 생각되는 여자
다운 점이었다. 고집이나 심술을 부릴 때도 나쓰에의 말씨나  태도에는 상냥하고 달콤한 데
가 있었다.
“여보, 소원이에요. 이렇게 부탁드리겠어요. 저는 이 아이를 키우고 싶어요.”
상냥하고 조용하게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하는 나쓰에에게 게이조는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양보하면서도 기분은 언짢았다. 지금   보여준 나쓰에의 냉정함은 따뜻한 피와 눈물과는 전
혀 인연이 없는 것이었다. 게이조는 루리코가 죽은  이후, 나쓰에를 미워했다. 무라이로부터 
받은 애무의 흔적을 그 흰 목덜미에서 보고 죽이려고 생각한 일조차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내에 대한 애정의 변형된 모습이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쓰
에로부터 받은 차가운 느낌은 그렇지 않았다. 증오만을 온몸에 받고 있는 것 같아서 게이조
는 고통스러웠다. 자신은 나쓰에를 미워하면서도 나쓰에가  자기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기를 
바랐다. 존경받고 사랑받고 싶었다.
이윽고 나쓰에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갔다.
‘요코를 돌려 보내자는 말이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가져와 버렸군.’
게이조는, 침대 가까이 다가가서 요코를 초조하게 들여다보았다. 요코는 웃으며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듯 목구멍에서 소리를 내었다.
‘나는 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을, 인간으로서 일생의 과제로 삼았다.’
사이시를 닮은 눈썹 언저리를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자신을 돌이켜 보았다.
‘사랑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게이조는 유리창 너머로 첫눈이 내려 있는 정원을 바라다보았다.  새하얀 눈이 때때로 안개
처럼 바람에 휘날렸다.
‘나는 이 아이를 진정으로 평생 사랑하려고 하는 것일까?’
요코라는 이름을 입밖에 내서 부르는 일조차 게이조는 할 수 없었다. 사이시의 일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이 아이에게는 아무런 죄도, 책임도 없다.’ 
도리상으로는 알고 있어도 안아줄 기분은 나지 않았다. 웃는  요코에게 마주 웃어줄 수조차
도 없었다.
“식사하세요, 아빠.”
방문 앞에서 도루가 불렀다.

나쓰에는 굳은 표정으로 식탁 앞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게이조가 밥공기를 내밀어
도 얼굴을 들지 않았다. 도루가 게이조에게 물었다. 
“아빠, 파파가 아빠라는 말이야?”
“그래, 그렇단다.”
“어째서 파파라고 하지?”
“담배를 파파 하고 피우기 때문이지.”
쓰기코하고 도루는 웃었으나, 나쓰에는 험한 눈매를 힐끗 치켜올렸을 뿐 웃지 않았다. 
“그러면 말이에요, 엄마라는 말은 어째서 마마라고 하지요?”
“엄마는 밥을 지어주기 때문이야.”
“그러면 쓰기코 누나가 우리집에서는 엄마겠네.”
게이조와 쓰기코는 또 다시 소리를 내어 웃었다. 하지만  나쓰에는 냉랭하게 게이조의 말을 
받았다. 
“도루야, 파파도 마마도 다 영어야. 밥을 지으니까 마마라고 하는 것은 아니야.”
“응, 하지만 담배를 파파 하고 피우니까  파파이고, 밥을 지으니까 마마라고 하는 편이  더 
좋아요.”
도루는 게이조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런 것은 엉터리야, 도루.”
나쓰에는 도루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게이조는 기분이 나빠서 식사를 부랴부랴 끝내고 옷을 갈아입으러 일어섰다. 나쓰에가 따라
왔다.
“괜찮아, 혼자서 갈아입겠소.”
그러나 나쓰에는 아무 말 않고  게이조의 뒤에서 와이셔츠를 입혀 주었다.   그리고는 손을 
그대로 게이조의 어깨에 얹고 말했다.
“요코를 돌려 보낼 수는 없어요. 만일 돌려 보낸다면, 전 죽어 버리겠어요.”
게이조는 겨우 안심했다. 나쓰에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보다는, 날카로운 말투로 책
망하는 편이 훨씬 마음 편했다.
“미안해. 잠이 부족해서 그랬어.”
나쓰에는 무릎을 꿇고 평상시처럼 게이조에게  양말을 신기고 있었다. 양말을  돌돌 밖으로 
말아서 게이조의 발 끝에서 양말을 신기고  다음은 말았던 양말을 원상태로 되돌리면  되었
다. 신기는 쪽도, 신는 쪽도, 오랜 세월에  익숙해져 호흡이 꼭 맞았다. 40일 만에  나쓰에의 
동그란 넓적다리 위에 발을 올려놓고 양말 시중을 받자, 게이조는 새삼스럽게 이런 것이 부
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양말을 신는 호흡이 딱 맞는다고 해도, 지금 두 사람의 마음은 어딘가 잘 맞지 않
는 것 같았다. 부부가 밤에 서로  사랑하는 것도 이렇게 양말을 신으면서 보조를  맞추듯이, 
말하자면 숙련으로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게이조는 생각했다.
‘진실한 부부의 결합이란, 육체 이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서로 마음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들이 지금 성생활 이외에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
는가?’
“왜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셨어요?”
나쓰에는 게이조가 벗어 놓은 두터운 잠옷을 개면서 물었다.
“왜 신고를 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곤란해. 너무 바빠서 그랬어.”
“바쁘시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때로부터 벌써 한 달이나 지났는걸요.”
“그렇소…….”
게이조는 바쁘기 때문에 일을 처리할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늘 당장 처리하겠소. 하지만, 오늘 처리하겠다고  생각하면서 
너무 바빠 정신을 차리고 보면 벌써 하루가  다 지나 버린 후였소. 참, 시간은 빨리도  가더
군.”
“당신은 원래 착실하고 꼼꼼하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쓰에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별 관심없이 내팽개쳐 두려고는  생각하지 않았소. 병원이라는 데가  아픈 사람을 
다루는 곳이니까, 이런 일 저런 일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고, 좀처럼 예정대로 무슨 
일이든지 할 수가 없거든.”
“바쁘신 줄은 알겠지만, 30분 정도만 시간을 내시면 되잖아요?”
나쓰에는 전에 없이 강한 어조로 말 끝을 올렸다.
“모르는 소리! 병원이라는 곳은  30분은커녕, 점심을 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쁜 곳이
오.”
“…….”
“오전은 외래를 보고, 오후는 병실을 돌고, 그 사이 틈이 있으면 왕진을 하지. 더욱이 청진
기를 갖고 있다고 해서 다 의사는 아니니까 말이야.”
“…….”
“사무장이랑, 다른과 의사들이랑, 약사, X-선 기사 등의 말도 들어 주지 않으면 안돼, 게다
가 간호사의 애정 문제, 환자 신상에 대한 상담까지 들어주어야 하는 사정이오. 내가 시간나
기를 모두 기다리고 있소.”
고개를 숙이고 듣고 있던 나쓰에가 얼굴을 들었다.
“어머, 그렇게 바쁘세요? 그것, 큰일이군요. 나는 당신이  그렇게 바쁘시게 지내는 줄 몰랐
어요. 용서해 주세요.”
나쓰에는 기분이 나쁠 정도로 상냥하게 사과하고 나서 말했다.
“잘 알았어요. 제가 오늘 신고하러 가겠어요.”
게이조는 뜻밖에 구제라도 받은 것 같은 착잡한 마음으로 말했다.
“그렇게 해준다면…… 좋겠소.”
하지만, 나쓰에에게 출생신고를 맡기는 것이 게이조의 본심은 아니었다.
그는 기적이 일어나서 요코를 어딘가로 보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었다.
‘맡아서 기를 수는 있어도 호적에 올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게이조는 현관으로 나갔다. 장화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빠의 장화는 정말 길어.”
도루의 목소리에 게이조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쓰에에게 말했다.
“이 눈길에 당신이 나가는 것은 무리요. 내가 오늘 나가는 김에 동사무소에 들렀다 갈테니
까 병원에 조금 늦는다고 전화를 해줘요.”
“어머, 당신이 가주시겠어요?”
나쓰에는 곧 밝은 표정이 되어 말했다.
“그래, 일단 병원에 출근하면 개인적인 일로 외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야.”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너무 주저하면 나쓰에가 요코의 신상에 어떤 의심을 갖게 될까봐 게
이조는 그것이 두려웠다.
“미안해요, 바쁘신데 이런 일까지 부탁해서…….”
게이조는 나쓰에의 상기된 목소리로 전송을 받으면서 집을 나섰다.  게이조는 지난 밤에 내
렸던 첫눈 온 길을 천천히 걸었다.
‘요코를 사랑하는 일을 일생의 과제라고 나는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게이조는 분수를 모르고, 너무나 큰 문제를 떠 맡아 버린 것을 후회했다.
‘사랑한다면, 호적에 올리는 일을 이렇게 망설일 리가 없다.’
게이조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버스를 타고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서  길을 횡단하려 했을 때
였다.
소리도 없이 한 대의 지프가 게이조의 코 앞을 스치듯이 달려 지나갔다,
“헤이!”
달려가는 지프 속에서, 아직 소년티가 가시지 않은 미군 병사가 싱긋 웃었다.
게이조는 요코의 문제로 정신을 잃고 있어서, 잘못하면 지프에  치일 뻔했던 자신이 쓸쓸하
게 느껴졌다.
게이조는 동사무소의 낡은 문기둥 옆에 서서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다.
‘내가 요코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또 눈이 조금씩 휘날리고 있다. 게이조는 추워서 오버 깃을 세웠다.
‘나의 본 마음은 요코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나쓰에에게 범인의 아이를 키우게 하고 싶
었던 것이다. 나를 배신하고, 무라이와 정을 통한 나쓰에 때문에, 그날 루리코는 살해되었다. 
나는 그러한 나쓰에가 요코의 출생을  알고 괴로워할 날이 오는 것을  기대하고, 이 아이를 
맡아 기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사이시의 아이인 것을 알고 기르는  나의 고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그것은 각오했던 바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요코를 기르는  나쓰
에를 보는 것만으로 나는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이다. 나쓰에의 부정을 일시의 마음의 방황으
로 생각하고 어떻게 해서든 용서할 수 없을까? 한 번은 나도 용서한 셈이다. 루리코의 죽음
에 미칠 것 같은 정도로 슬퍼했던 나쓰에를 나는 용서했었다. 하지만 정말로 루리코의 죽음
을 슬퍼했다면 두 번 다시 무라이의 품에 안길 리는 없다.’
게이조는 동사무소 앞을 왔다갔다 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 번도 나쓰에 이외의 여자를 취한 적이 없다.  여자 환자는 나는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라이도, 내가 나쓰에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나
를 나쓰에와 무라이가 배반한 것이다.’
나쓰에의 흰 목덜미에서 본 보라빛의 흔적은 지금도 게이조의 마마음 깊은 곳에 새겨져 있
었다.
‘어쨌든 호적에는 올려야겠지.’
게이조는 동사무소의 기둥에 기대어 섰다.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 모습을 다카키가 본다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 생각하고 게이조는 자
신이 부끄러워졌다.
“뭐야, 그것이 쓰지구치 게이조의 참 모습인가? 자네가 말했던 너의 적을 사랑하라던 것은 
정말 웃기는 소리다. 적보다는 차라리 자네 마누라를 사랑하는 것이  어때? 자네는 바보 같
은 남자네.”
마치 다카키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았다.
‘나는 바보다. 내 아이를 살해한 그  범인의 아이를 맡아서, 그 아이에게 재산까지  나누어 
주다니……. 너의 적을 사랑해라, 하는 글자  수는 겨우 여덟 자이다. 그러나  이 여덟 자가 
얼마나 엄청나고 거창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게이조는 자신이 완전한 바보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요코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바보가 이 세상에 한 사람쯤은 있어도 좋겠지.’
하고 다카키에게 말했던 자기 자신의 말을 회상했다.
‘이왕 바보가 되는 김에 나쓰에의 부정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일까?’
갑자기 눈 앞에 택시가 멈추어 섰다. 택시 문이 열리고,
“원장님, 오랫만입니다.”
하고 내리는 사람을 보았더니, 무라이였다.
긴 속눈썹이 평상시보다 더 새까맣고 아름답게 보였다. 조금  야위어 보였기 때문인지도 몰
랐다.
“오랫만이군. 돌아다녀도 괜찮소?”
“별로 괜찮지가 않아 곧 도야로 떠나려 합니다.”
무라이는, 문을 연 채였지만 차에서 내리지는 않았다.
“그 이후로 각혈은 하지 않았소?”
게이조는 무라이의 붉은 입술을 보았다.
‘저 입술이 그 흔적을 남겼던 것이다!’
“요사이 각혈은 하지 않습니다. 제가 병원까지 바래다 드리지요. 원장님.”
“아니, 지금 난 여기에 출생신고를 하러 왔네.”
게이조는 무라이의 입술에서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릴 수가 없었다.
“아아, 그랬군요. 축하드립니다.”
무라이의 볼에 비꼬는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원장님, 사모님은 아이를 낳을 수 없을 텐데요…….”
무라이는 그러한 말을 유카코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축하할 일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네.”
“네?”
“실은, 나쓰에가 피임수술을 해서 염려없다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역시, 그런 수
술도 실패하는 경우가 있나 보더라구.”
무라이의 비웃는 듯한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 곧 가볍게 입술을 깨물고 의심스러운 듯이 게이조를 쳐다보았다.
“여자아이이기 때문에 나쓰에는 더 좋아했어.”
무라이는 분명하고 역력하게 실망의 빛을 보였다.
“자, 그럼 몸조심하시오.”
게이조는 무라이를 등뒤로 하고 돌아서서 성큼성큼 동사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출생신고를 하고 나자, 이상하게도 하루종일 마음이 차분해졌다. 오랫만에 기분좋게 일할 수 
있었다.
‘출생의 비밀을 지킬 것, 요코를 사랑할 것!’
다카키하고의 두 가지 약속을 생각하면서, 게이조는 어두워진 길을 급하게 걸어갔다.
아침에 온 눈이 녹아서, 목이 긴 장화에 붙은 진흙이 무거웠다. 집이 가까워짐에 따라  게이
조의 마음은 다시 안정을 잃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은 것 같은 초조한 고독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스타트 라인에 선 
마라톤 선수와도 같은 긴장감을 느꼈다.
“여보, 출생신고 하셨어요?
하면서 나쓰에는 현관으로 달려 나오겠지, 하고 생각했다.
“신고라니?”
시치미를 딱 잡아 떼고 싶은 기분이었다.
“나쓰에, 출생신고를 했소.”
하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요코의 입적 때문에 자신이 얼마만큼 망설이고 
고민했는가를 나쓰에는 알지 못했다.
‘앞으로도 얼마만큼 요코에 관한 일로, 나는 괴로워할 것인가? 출생의 비밀을 끝까지 지킨
다는 한 가지 일만 가지고도 얼마만큼  신경을 쓸 것인가? 하지만 나는  이 길을 선택했다. 
여하튼 어떠한 고통도 혼자서 꾹 참고 견디어 보겠다!’
게이조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현관문을 열었다.
피아노로 단련된 나쓰에의 귀는 민감했다. 나쓰에는 문이 열림과  동시에 언제나 마중을 나
왔다. 그러나 오늘은 나쓰에도 다른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집 안에서 웃음 소리가 났다.
“출생신고하고 왔어.”
라고 말할 작정이었던 게이조는, 기세가 꺾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게이조는  또 
다시 우울해졌다. 게이조는 진흙투성이의 무거운 장화를 벗었다. 진흙이 손에 많이 묻었다.
거실에는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복도를 사이에 둔 침실에서 밝은 웃음소리가 났다.
“어머, 알아보나봐. 도루, 다시 한 번 손을 흔들어 봐.”
나쓰에의 목소리였다. 게이조는 미닫이문을 조금 열고 살짝 들여다보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
도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게이조는 왠지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나쓰에가 요코를 안고, 도루하고 쓰기코가 옆에서 요코를 들여다보고 있다. 게이조는 미닫이 
문 앞을 떠나 오버를 입은 채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또 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
‘루리코에 관한 일을 모두가 잊은 것일까?’
게이조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강가에서 죽은 루리코를 안아 
일으켰던 때의 일이 회상되었다.
‘가엾게도, 한밤내내 루리코는 그 강가에 엎드린 채 죽어 있었다.’
또 다시 와, 하고 웃는 소리가 온 집 안에 퍼지자, 게이조는 벌떡 일어서서 침실의 미닫이를 
드르륵 열었다.
“뭐야? 시끄러워! 루리코가 죽은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뭐가 그렇게  즐겁다는 거
야!”

제13장  호  수

제13장 

호  수


“정말 세월이 빠르군.”
게이조와 나쓰에는 호수가 보이는 높은 언덕에 세워진 정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호수는 하늘의 푸른 빛이 반사되어 너무나 아름다웠다.
“뭐가 말이오?”
게이조는 아까부터 호수 저쪽에 선명하게 단풍이 들어있는 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앞에 보이는 산 정상은 밀짚모자를 얹어놓은 것처럼 산 모습이 진기했다. 흰구름이 한 조각, 
가을의 태양빛을 받아서 빛나고 있었다.
“요코 말이에요, 벌써 7년이나 되었어요.”
“응, 나도 지금 그 일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야.”
게이조의 집 식구들은 모두 시코쓰 호수로 놀러나왔다.
“엄마.”
멀리서 부르는 요코의 밝은 목소리에  나쓰에는 앉은 채 뒤돌아 보았다.  흰 스웨터에 검은 
반바지를 입은 호리호리한 도루와 크림색의 스웨터에 갈색 스커트를 입은 요코가 나란히 달
려왔다.
“엄마, 아빠, 이것 좀 보세요. 이렇게 도토리를 많이 주웠어요”
요코는 흰 손수건에 싼 도토리를 게이조와 나쓰에 사이에 펴 보였다.
“어머, 많이 주웠구나, 요코.”
“으응, 아니야. 나 혼자서 주운 게 아니야. 그렇지 오빠?”
“응, 그래.”
도루는 어린 시절의 버릇대로, 약간 미간을 찌푸리고 게이조를 보았다. 게이조는 요코가  펼
쳐 놓은 도토리를 힐끗 보고 다시 호수로 눈길을 보냈다.
“엄마도 주우러 가지 않을래요?”
요코는 게이조에게 신경쓰지 않고 천진난만하게 나쓰에의 무릎에 손을 올렸다.
‘눈이 어쩌면 저렇게 예쁜지 몰라!’
나쓰에는 날마다 보는데도 하루에 한 번은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무엇인가 끊임없이 타오
르고, 그러면서도 남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깊은 눈이었다.
“이제 도토리는 충분하니까 그만 줍자.”
“요코, 이번에는 낙엽을 주울까?”
도루가 말했다. 도루는 키가 게이조의 어깨를 넘었지만, 아직 앳되고 변성기도 되지 않았다. 
“아이, 좋아라. 낙엽을 주워서 책갈피에 끼워 두어야지.”
고무공처럼 뛰어오르듯 요코는 벌써 달리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요코는 행동이 참 재빨라.”
나쓰에는 7년 전과 얼굴이나 모습이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다만 말과 태도가 한층 침착해
졌다.
“그래.”
게이조는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리는 모터 보트를 보면서  대답했다. 그는 7년 전보다 머
리가 약간 벗어졌고, 살도 조금 쪘다.
“당신은 아직도 요코의 아빠가 되지 못하는군요.”
나쓰에는 게이조가 좀처럼 요코의  아버지다워지지 않는다고 핀잔했다.  나쓰에한테 핀잔을 
들으면 게이조는,
“그래? 이 정도면 충분히 아버지다운 거 아닌가?”
하고 능청을 부렸다.
“방금 요코가 주워 온 도토리를 그저 쳐다보기만 했잖아요.”
“…….”
“학교 문제만 하더라도…….”
말을 하다 말고 나쓰에는 입을 다물었다.
아래 선착장에서는 유람선 출항 안내를 알리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학교에 관한 일도…….”
나쓰에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전에 두 사람은 요코를 집에서 가까운 가쿠라 소학교에  보낼 것인가, 아사히카와 예술대학 
부속 소학교에 보낼 것인가에 대해서 언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나쓰에는 부속 소학교에 보
내는 것이 좋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게이조가 반대를 한 것이다. 
“일부러 집에서 먼 곳으로 보낼 필요는 없어요. 가쿠라 소학교도 그만하면 괜찮은 곳 아니
오?”
“아니에요. 예술대학 부속학교는 학부형도 교육에 열성적이고, 아이들 성적도 좋아요.”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가 있으면 곤란한가?”
“하지만 교육은 환경이 중요해요. 학부형이  다함께 정성을 다하고, 아이들도 성적이  좋은 
곳이 좋은 환경 아닌가요?”
나쓰에는 요코의 일이라면 언제나 시원시원하게 의견을 제시했다.
“그런가?”
게이조는 내키지 않는 듯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래요. 너무 가난한 집 아이들도 다니지 않고…….”
“그래? 그렇다면 역시 이쪽 학교로 보낼 수밖에 없겠어.”
게이조는 선언하듯 잘라 말했다.
“어머, 어째서 제 말을 이해해 주시지 않는 거죠?”
“…….”
“능력이 없는 아이는 격려해 주면 되지 않소. 가난한 집의 아이는 부잣집 아이보다 대체로 
자립심이 강하지. 요코는 그런 점을 본받아야 해요. 몸이 약한 아이에게는 다정하게 대해 주
고, 그러면 되지 않겠소?”
“…….”
“누구에게라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교육의 근
본이고, 인간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모든 악의 근본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던 적이 있
소. 여러 형태의 가정 형편에서 자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교육상 더 좋지 않겠소? 대학
도 소위 명문일수록 엘리트 의식이 강해서 다른 사람을 바보 취급하지 않소.”
“알았어요. 어떠한 사람이라도 거부하지  않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당신은 
요코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시는군요.”
게이조는 호수를 바라보면서 나쓰에가 싸늘하게 웃던 그때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당신은 요코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시는군요.”
하는 나쓰에의 말에 게이조는 할 말을 잃었다. 게이조는  어떻게 해서든지 요코를 사랑해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안아 주는 일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
었던 것이다. 사이시의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일
생 동안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요코를 
더 안을 수가 없었다.
요코가 겨우 3살 정도 밖에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나쓰에의 무릎에서 요코는 그림책
을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읽어 주었던 그림책이었기  때문에 나쓰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랬더니 요코가,
“손에 점점이 뭐야?”
“뭐? 요코, 글씨를 읽을 수 있니?”
놀란 나쓰에는 그림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 글자는 뭐야?”
“노.”
“이것은?”
“우.”
“그럼, 이것은?”
나쓰에의 목소리가 점점 흥분되었다.
“후.”
요코가 어느 사이엔가 글자를 익혔던 것이다.
나쓰에는 저도 모르게 요코를 힘껏 껴안고, 요코의 볼에  얼굴을 비비면서 게이조에게 말했
다.
“여보! 요코가 글씨를 읽을 수 있어요.”
게이조는 신문을 보고 있는 채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루리코도 도루도, 그 나이 때는 아직 글자를 읽지 못했어. 글씨 같은 건 학교에 갈 무렵이
든가, 학교에 가고 나서 배워도 되잖아!”
“어머!”
“나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나쓰에는 그때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게이조를 보았다.
“당신이란 사람은 참으로 냉정한 사람이에요. 저는 당신과 헤어질 수는 있어도 요코하고는 
절대로 헤어질 수 없어요.”
나쓰에의 말은 농담이 아닌 진심인 것 같았다.
그러나 게이조는 그때도,
“영리하구나, 요코.”
하고 말하는 것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일도 할 수 없었다.
요코는 말도 다른 아이보다 빨리 배웠다. 더욱이 어린 아이들이  쓰는 말투는 거의 쓰지 않
았다.
“아버지, 다녀오세요.”
“아버지, 지금 돌아오세요?”
요코는 매일 나쓰에에게 안겨서 말했다. 그러나 게이조는 요코의  그 시원시원한 말씨가 오
히려 신경에 거슬렸다.
‘오늘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안아 주어야지. 머리도 쓰다듬어 주어야지.’
게이조는 이렇게 생각하고 집에 돌아와도, 요코만 보면 반사적으로 벌레씹은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요코는 그러한 게이조에게도 아무런 꺼리낌없이 대했다. 일학년이 된 지금에도, 여전
히 뛰어와서 아빠를 마중하여 주었다.
요코는 남의 악의조차도 선의로 받아들이는  불가사의한 성격이 천성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것 같았다.
“여관으로 돌아갈까요?”
유람선을 보고 있던 나쓰에가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날씨가 조금 흐려졌군.”
아까까지만 해도 파랗던 호수가 미묘하게 변해서, 약간 검푸른 색깔로 변했다.
두 사람이 일어서는 것을 보고 도루와 요코가 달려왔다.
“아…… 피곤해.”
요코가 숨을 헐떡이면서 나쓰에의 손을 잡았다.
“피곤을 느낄 정도로 달리면 안돼요.”
나쓰에는 맨 처음에 루리코 대신이라고  생각하고 요코를 길렀다. 그러나  점차로 루리코도 
이렇게까지 귀여웠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도 싫어, 선생님도 싫어. 아무도 루리코하고는 놀아주지 않는단 말이야.”
라고 말하던 루리코의 마지막 말이 때때로 위협하듯이 나쓰에의 마음을 스쳤다. 나쓰에에게 
있어서, 이 이상으로 가슴을 찌르는 말은 없었다. 루리코에 대한 기억은 귀엽다기보다는  가
련했다. 그래서 슬프고, 아프고, 괴로웠다. 하지만 요코에 대해서는 꼭 책임을 져야 할  필요
는 없었다. 타인의 손에 의해  길러지지 않으면 안될 요코의 운명이  단지 가엽다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게다가 요코는 절대로,
“엄마도 싫어, 선생님도 싫어.”
라고 말하고서 밖으로 달려나가는 일이 없었다. 밖에서 놀아도  언제나 요코만큼 맑은 목소
리를 가진 아이는 없었다.
게이조가 머리를 쓰다듬어 준 적이 없어도 개의치 않았으며,  남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처럼 
개나 고양이조차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요코는 곧잘 집 주위의 커다란 개 등에 올라타서,
“자, 걸어라, 이 망아지야.”
하고 노래를 했다. 요코의 모습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를 자아내게 하였다.
“피곤하면 여관에 가서 목욕하자.”
“나, 또 모터보트를 타고 싶어요.”
도루가 심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벌써 두 번이나 탔잖아?”
“한 번만 더 타고 싶어요.”
도루는 입을 삐죽거렸다.
“오빠, 목욕탕에서 수영하지 않을래?”
“그래.”
도루는 이상하게도 요코의 말을 거의 거역하는 적이 없었다.  그런 사실이 게이조에게는 왠
지 마음에 거슬렸다. 두 사람은 손을 서로 꼭 붙잡고서 달려갔다.
게이조와 나쓰에도 걷기 시작했다.
“사이좋게 지내니까 다행이에요.”
게이조는 그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무라이가 죽을 뻔했던 모양이야.”
하고 불쑥 화제를 돌려서 말했다.
“네?”
나쓰에는 땅 위에 나와 있는 느릅나무 뿌리에 발이 걸려서 비틀거렸다.
“어제 다카키가 그러는데, 자연기흉(自然氣胸)을  일으켰다고 하더군. 그것은  아주 고통이 
심해. 늑막강(肋膜腔)에 공기가 자꾸자꾸 들어가게 되서 폐를 압박하기 때문이야.”
“무섭군요.”
“여기서 택시를 타고 도야까지 문병이나 가 볼까?”
무라이를 문병하자는 말을 듣자 나쓰에의 얼굴 표정이 어두워졌다.
“요양소에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가겠다는 거예요?”
나쓰에는 무라이보다 지금은 도루와 요코가 더 소중했다.
“어린아이들을 병실까지 데려가지 않으면 되잖소? 당신도 한 번은 문병을 가는 것이 좋겠
소.”
게이조는 7년이 지난 지금도 무라이와 나쓰에와의 일을 한  번도 잊지 않았다. 다만 생각하
는 횟수가 적어졌을 뿐이었다. 게이조는 꽤 먼 옛날의 사건이라도, 그 당시처럼 선명하게 회
상할 수가 있는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 때로는 그 당시보다  더 한층 심한 감정에 휩싸이기
도 했다. 게이조의 가슴속에는, 추억을  언제까지나 신선하게 유지하는 그 무엇인가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무라이를 생각할 때면 항상 마쓰사키 유카코가 연상되었다.
‘그 아이는 왜 이제까지 독신으로 있을까?’
그러나 생각하면 독신으로 지내는 것은 유카코만이 아니었다. 다카키도, 다쓰코도 여전히 독
신이었다.
다쓰코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부동산만해도 상당했다. 게다가 그녀에겐  무용과 
돈이 있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다쓰코의 독신 생활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카키도 이제 38세가 된다.’
그러나 게이조는 독신인 다카키에게 약간 부러움을 느끼고도 있었다.
“무라이의 요양소에는 당신 혼자 다녀 오세요. 도루가 차멀미를하니까 무리예요.”
“그렇군.”
게이조는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여관에 도착했다. ㄷ자 형태로 지어진, 짜임새 없이 넓기만한 여관이었다.
도루와 요코가 현관 앞의 마당에서 돌차기를 하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니 숯불이 빨갛게 피어 있었다.
“엄마는 목욕 안 할거야.”
두 사람 중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나쓰에가 말했다.
“왜 그래요?”
도루와 요코가 양쪽에서 나쓰에에게 매달렸다.
“엄마가 조금 피곤하구나.”
나쓰에는 게이조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괜히 왔군.”
게이조는 쓴웃음을 지었다.
“버스에 시달려서 그런지 2, 3일 동안은 몸 컨디션에 영향이 있을지도 몰라요.”
도루와 요코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게이조를 따라서 방을 나갔다.
나쓰에는 테라스 창 너머 호수를 바라보면서, 문득 4, 5년 전의 일을 머리에 떠올렸다.
도루가 소학교 2학년 때의 일일 것이다. 그날은 10월 27일로 요코의 세 번째 생일날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쓰에는 요코와 목욕을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그때 도루가,
“나도 목욕할래요.”
하고 목욕탕의 유리문을 열었다.
그 후에 일어난 사건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생각되어 나쓰에는 견딜 수가 없었다.
도루는 가냘픈 몸매로 유리문을 밀어제치듯 하며 목욕탕 안으로 들어왔다.
“도루, 금방 아빠하고 목욕했잖니?”
나쓰에는 꾸짖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또다시 추워졌는걸요.”
그 당시의 도루는 2학년이기는 했지만 같은 나이 또래에 비하면, 몸도 마음도 어렸다.
“요코, 오빠가 안아 줄게.”
도루는 언제나 욕조 안에서 요코를 안고 싶어 했다.
“응.”
요코는 순순하게 포동포동하고 귀여운 손으로 도루의 목을 감았다. 나쓰에는 몸을 씻으면서, 
욕탕 안의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애를 낳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날씬한 허리가, 나쓰에의 하체를 한층 더 풍만하게 보이게 
했다. 둥그런 넓적다리 위를 비누 거품이 천천히 흘러 내렸다.
“요코는 오늘부터 3 살이야.”
“이만큼?”
요코는 조그마한 손가락 세 개를 도루의 눈앞에 내보였다.
“오빠는 몇 살?”
“8살이야”
“요코는 혼자서 들어갈 거야.”
욕조에는 요코가 혼자서 설 수 있도록 층계가 나 있었다.
“그래, 좀더 안아 줄게.”
도루는 좀처럼 요코의 손을 놓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요코는 내 색시야.”
그 소리를 듣고 나쓰에는 자기도 모르게 씻던 손을 멈추었다.
“응, 색시가 될게.”
요코는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나쓰에는 이런 추운 달밤에 정말로 요코를 낳은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루리코가 겨울에 태
어났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도루의 말에 나쓰에는, 청년이 된 도루가 다시 똑같은 말
을 어머니인 자기에게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쓰에는 평생 요코가 자신의 친딸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도루의 아내가 
된 요코를 상상하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았다.
“내 아내는 요코야.”
목욕을 끝낸 도루는 즐거운 듯이 게이조에게 말했다.
“그래?”
게이조는 듣고 있던 라디오를 껐다.  게이조의 눈매가 무서워졌다. 게이조는 침착하게  말했
다.
“도루야, 너도 이제 2학년이니까 내 말 잘 들어 두어라. 요코는 너의 여동생이야. 여동생은 
절대로 너의 아내가 될 수 없는 거야.”
“왜 그렇죠?”
“그런 것은 크면 알게 된다.”
“싫어요. 요코는 나의 색시예요”
도루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바보 같은 놈!”
게이조의 손이 번개처럼 날아서 도루의 뺨을 후려쳤다. 게이조는 아직 한 번도 사람을 때려 
본 적이 없었다. 얻어 맞은 도루는 놀라서 멍하니 게이조를 쳐다보았다. 왜 자기가 뺨을  맞
았는지 알지 못했으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도 알지 못했다.
“여보! 아이가 한 말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나쓰에의 말에 도루는 와, 하고 울기 시작했다.
“아니야. 이러한 말은 어릴 때 분명히 해두어야 해. 알겠니, 도루야. 요코는 너의  누이동생
이야. 어떠한 일이 있어도 너의 색시가 될 수는 없는 거야.”
나쓰에는 게이조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다. 남편이 왠지 이상하게 생각되어
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도루, 지금 네가 아버지에게 맞은 것을 어른이 되어도 잊지 말아라. 단단히 기억해 둬!”
게이조가 왜 그렇게 심하게 꾸짖었는지  나쓰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매로 키운 이 
두 아이에게 만일의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치고는 정도가 너무 심한 것 같았다.
그때 게이조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도루하고 요코가 만일 진짜 남매간이 아닌 것을 알고, 연애라도 한다면……. 그리고  요코
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면…… 상상 이상으로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무슨 일
이 있어도 요코는 나쓰에의 딸이라고 우겨야 한다.’
게이조의 이런 생각을 물론 나쓰에가 알 리 없었다.
‘그로부터 4년이란 세월이 흘렀군.’
나쓰에는 여관 목욕탕에 있는 도루와 요코를 생각하고 있었다.  무라이가 죽을 뻔했다는 얘
기를 듣고서도, 나쓰에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아무런 절박한 감정도 솟아오르지 않았다.
무라이가 요양소로 들어간 뒤 7년 동안  나쓰에는 도루와 요코에 관한 일로 마음을  빼았겨 
왔다. 무라이에 관한 일은, 나쓰에에게 있어 일시적인 마음의 동요에 지나지 않았다. 나쓰에
에게는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사람을 언제까지나 사랑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사랑해 주
니까 사랑한다는 유치함이 나쓰에에게는 있었다. 특히, 무라이와의 추억은 루리코의  죽음과 
연관이 있어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나쓰에에게는 역시 남편인 게이조가 가장 믿음직스러웠다.  그것은 게이조에 대한 사랑이기
보다는, 오히려 이기적인 감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쓰에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고  있었
다.
넓은 여관은 조용했다. 건너편 방에서 단체 손님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나쓰에가 묵고 있
는 방까지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과연 산속의 호수에 온 느낌이군.’
나쓰에는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다. 병원의  경영도 더욱 순조로워졌다. 지금의  나쓰에에게는 
아무런 불만도 없었다.
가벼운 발소리가 났다. 요코였다.
“엄마, 이제 괜찮아요?”
달려온 요코를, 나쓰에는 싱긋 웃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끌어 안았다. 목욕을 하고 난 요코의 
몸냄새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나쓰에는 가볍게 눈을 감았다.  긴 속눈썹이 희미하게 떨렸다. 
나쓰에는 언제까지나 이러한 행복이 계속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제14장  눈 보 라

제14장 

눈 보 라


눈은 몇 번이고 내리고 녹는 것을 반복하더니 어느덧 봄의 해빙기를 맞아 바닥에 조금씩 깔
려 있었다.
12월 초의 일이었다. 출근한 게이조가 원장실의 문을 열자,
“야!”
하고 안에서 소리가 났다. 다카키였다. 그는 보기 드물게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깜짝 놀랐잖아? 이렇게 일찍부터 웬일인가?”
“샤리(斜里)에서 돌아오는 길일세.”
“샤리? 여동생이 살고 있는 곳이지 않은가?”
“으응, 바로 그 여동생의 큰아들 장례식을 치르고 오는 중이야.”
“어허, 무슨 병으로?”
“으응, 말이 끄는 썰매에 치여서 그리 됐어.”
“그것 참 안됐군. 어쩌다가 그랬나?”
“여동생이 샤리의 안쪽에 살지! 거기는 말 썰매가 자주 다니고 있는 곳이야.”
“그것에 치인 것인가?”
“눈보라가 휘몰아칠 때,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름길로 온 모양이야. 눈보라 때문에  얼
굴도 들 수 없었던 것 같아. 얼굴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눈보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을 
거야. 말의 옆구리에 부딪쳐서 나뒹굴었다네.”
“참으로 불쌍하게 되었군. 그 애가 몇 학년이더라?”
“아직 1학년이야. 너무 불쌍해.”
다카키는 담배를 피워 물며 계속해서 말했다.
“아, 자네 집의 1학년짜리 아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요전에 시코쓰  호수에 놀러 왔을 
때 보고 싶었었다네.”
“어린 아이에게는 변함없이 잘해주는구만. 그때 나쓰에가, 자네 병원에 가면 요코를 데려온 
당시가 생각나서 싫다고 해서 말이야. 그래서 전화로 실례했던 것일세.”
“지난해 봄에 만나고는 한 번도 보지 못했구먼. 어때, 1학년이 되니까?”
“응, 보고 가게나. 나쓰에를 닮았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네만, 요사이는 얼굴이 둥그래졌
어. 어린아이의 얼굴이란 몇 번이고 변하는 건가봐.”
‘눈썹만은 그래도 여전히 사이시를 닮았다네.’ 
게이조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아, 요코는 예쁜 처녀가 될걸세. 그 아이가 나를 뚫어지게 보면 대장부인 나조차도 가슴 
언저리가 이상해지는 느낌이 들어.”
“응, 나쓰에도 자랑이 대단해. 밖에 데리고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도 귀엽다는 말을 할 정
도니까 말이야.”
“어허! 장래가 기대되는 아이군.”
“게다가 어딘가 초연해 있는 것 같은 아이라네. 주위 사람들의  기분이 좋건 나쁘건 그 아
이는 상관하지 않는다네.”
게이조의 말에는, 정말 자식이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듯한 느낌이 배어 있었다.
다카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 미인인 자네 마누라와 귀여운 요코를 만나러 갈까?”
긴 복도를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어갔다.
“그럼.”
“응.”
눈 위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다카키가 멀어져 갔다.

“나쓰에 씨, 큰일났소! 쓰지구치에게 큰일이 일어났소.”
다카키가 쓰지구치의 현관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나쓰에가 나와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잘 오셨어요! 어서 올라오세요.”
나쓰에는 미소지었다.
“아니, 쓰지구치가 큰일났다는데 놀라지 않아요?”
다카키가 계면쩍은 듯이 머리를 긁었다.
“놀라지 않아요.”
객실에는 햇살이 가득히 비추어 따뜻했다.
“다카키 씨는 학생시절과 조금도 달라진 게 없어요. 언제였더라, 다카키 씨가 학생시절이었
는데, ‘쓰가와 교수님께서 방금 연구실에서 쓰러지셨다.’며 뛰어 들어오신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바로 그때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쓰러진 사람은 어디의 쓰가와  선생님이냐?’하
고 안에서 얼굴을 내미셨지요.”
“그때는, 제가 더 놀라서 쓰러질 뻔했어요. 참으로 혼이 났었죠.”
“그 이후 다카키 씨가 ‘큰일났다.’고 하면 별로 놀라지 않게 되었어요.”
두 사람은 얼굴을 맞대고 웃었다. 다카키는 내 놓은 방석을 밟고 툇마루에 서 있었다.
“이 집은 숲이 옆에 있어서 좋죠? 추운 아침이면 정말로 아름답겠어요?”
“네, 나뭇가지에 서리가 끼어서 온 숲이 얼음 빙판처럼 아름다워요. 식물이라는 느낌이  들
지 않는 비정한 아름다움이에요”
“나무가 조금 줄어 들었나 봐요? 왠지 숲이 밝아진 것 같군요.”
“들어보세요. 들리지요?”
귀를 기울이자 뭔가 단단한 것을 두들기는 소리가 맑게 울려 퍼졌다.
“나무를 찍는 도끼 소리예요.”
“듣기 좋은 소리군요. 그러나 아까워요. 학생시절에는 이 숲의 컴컴하고 스산한 느낌이  참 
좋았었는데…….”
다카키는 방으로 돌아와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몇 시 기차로 오셨어요?”
다카키는 나쓰에에게 샤리에서 장례식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말해 주었다.
“인간의 목숨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에요. 무라이는  자연기흉으로 자칫하면 죽을 뻔했었
는데, 그후 거짓말처럼 원기를 회복하고 점점 건강해지는 모양이에요.”
“그것 참 잘 됐네요.”
나쓰에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받았다.
“다쓰코 씨는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2, 3년 아니, 4, 5년은 만나지 못했어요.”
“어머! 그렇게 만나시지 않다니……. 여전하시군요.”
“언제였더라? 혼자 사는 것이 너무 귀찮다며 다쓰코  씨에게 결혼하자고 말했더니, 다카키 
씨 같은 분하고 결혼하게 되면, 더욱 따분해질 것 같다고 거절당한 적이 있었어요.”
“어머 다쓰코도 참…….”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된 여자예요? 염문도 들리지  않고, 나 같은 사람은 남자축에도 
넣어주지 않는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담담하니 말이에요.”
이때,
“다녀왔습니다!”
하고 부엌쪽에서 요코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코의 목소리에 다카키는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물듯이 하고 귀를 기울였다.
“엄마, 어디 계세요?”
거실 있는 쪽에서 요코의 목소리가 났다. 다카키가 물었다.
“쓰기코는 없습니까?”
“예, 갑자기 결혼을 해버렸어요.”
나쓰에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쓰기코는 갑자기 혼담이 오가더니 가을에 결혼을 했다. 그 후로는 가정부를 두지 않았다. 그
런데 다행히도 쓰기코가 집 근처에 살림을  하고 있어서 이런 일, 저런 일을  잘 돌봐 주고 
있었다.
나쓰에와 요코가 들어왔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요코를 보고 다카키가 말했다.
“허, 닮았구나.”
“네?”
문득 나쓰에는 다카키를 보았다.
“꼭 닮았다. 엄마를 아주 닮았구나.”
다카키는 나쓰에의 의심에 찬 눈초리를 밀어내듯이 마주쳐다 보았다.
“어디, 아저씨가 한 번 안아볼까?”
다카키가 손을 펼치자, 요코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바로 다카키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
는 다리 속으로 작은 허리를 푹 집어 넣었다.
다카키는 눈을 지긋이 감고 볼을 비벼댔다. 요코는 다카키의 수염 난 얼굴을 싫어하는 기색
도 없었다.
“요코, 학교에 다니니까 재미있냐?”
“대단히 재미있어요.”
“대단히 재미있어? 좋겠구나. 선생님 이름은 뭐지?”
“와타나베 미사오 선생님이에요.”
“남자냐, 여자냐?”
“여자 선생님이에요. 눈이 크고 매우 상냥해요.”
“누구하고 함께 앉아 있지?”
“미와 마사코하고요.”
“좋은 아이니?”
“얼굴도 예쁘고, 목소리도 상냥하고, 공부도 잘하지요.”
“앞에 앉아 있는 아이는 누구지?”
“사사이 이쿠와 요네쓰 도요코예요.”
“이쿠는 어떤 아이지?”
“글씨도 잘쓰고, 피부 색깔도 곱고, 영리한 아이예요.”
“그럼, 도요코는 어때? 나쁜 아이인가?”
“나쁘지 않아요.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떠들지도 않는걸요.”
“아니, 그렇다면 어떻게 된 거야?”
다카키는 나쓰에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요코의 반에는 나쁜 아이가 없구나.”
“있을지도 모르지만, 모르겠어요.”
“안되겠는데, 이렇게 순진해 가지고는……. 요코, 좀더 말썽꾸러기가 되어야겠구나.”
“전 말썽꾸러기예요, 나무도 타는걸요.”
“어허, 여자아이가 나무에 오르다니, 그거 좋은데.”
“상당히 잘 타요. 원숭이같이 잘 타지요.”
“그래? 그런데 말이야, 요코, 엄마하고 아빠하고 어느 쪽이 더 좋으냐?”
다카키는 요코의 얼굴을 뒤에서 들여다보았다.
다카키의 질문에 다른 뜻은 없었다. 그러나 나쓰에는 왠지 불안함을 느꼈다. 
“두 사람 다 똑같이 좋아요.”
요코는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내가 이렇게 사랑해 주고 있는데…….’
나쓰에는 약간 불만스러웠다.
요코가 다카키 앞에서 어머니를 더 좋아한다고 말해 주었으면  싶었다. 요코의 말에 나쓰에
는 어머니로서 감동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나쓰에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요코는 식사를 끝
마치고, 스키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좋은 아이군요.”
“모두 당신 덕분이에요. 저, 너무 행복해요.”
“행복하십니까?”
한순간, 다카키의 눈이 번쩍 빛났다.
“네, 정말로 내가 낳은 것같이 생각돼요.”
다카키는 묵묵히 차만 마실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번 찾아뵙고 싶다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나쓰에는 머뭇거렸다.
“뭐지요? 어려운 이야기라면 그만두었으면 합니다.”
다카키가 선수를 쳤다.
“…….”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어려운 이야기는 그만두라면서요.”
“그랬군요. 하지만 다카키가 멋있는 남자라고 말해 주면 들어주겠어요.”
“아직도 그런 농담을 하세요.”
나쓰에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무시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뭐지요? 말씀해 보세요.”
“요코에 관한 얘기예요. 저렇게 성품도 머리도 얼굴도 나무랄 데가 없잖아요. 그래서  가끔 
저 아이의 부모는 어떤 분일까, 그것이 궁금해져요.”
다카키는 흑단 테이블 위에 팔로 턱을 고이고 있었다.
“그 아이의 부모는 제 눈앞에 있어요.”
“또, 그런…….”
“그런이고 저런이고 간에 아까 나쓰에 씨가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정말로 당신이 낳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지만…….”
“부모를 알아서 어쩌겠다는 겁니까? 됨됨이가  좋은 아이를 얻어서 죄송하다고 돌려  보낼 
참인가요?”
“어떻게 그런…….”
“처음부터 쓰지구치에게 확실하게 말해 두었습니다. 얻어온 아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자
기 자식처럼 생각하라고요. 요코에 관해서는  나도 일체 모르는 것으로  생각해 달라고까지 
했습니다. 그것으로 됐지 않습니까, 나쓰에 씨.”
지붕의 눈이 땅을 울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정원으로 떨어졌다. 눈보라가 마치 안개처럼 아
름답게 피어 올랐다.

제15장  돌 팔 매

제15장 

돌 팔 매


다카키가 다녀간 지 2, 3일이 지났다.
“요코, 옷 좀 잠깐 입어 보렴.”
그날밤 나쓰에는 설날에 입힐 요코의 스웨터 뜨개질을 다 끝마쳤던 참이었다.
“네.”
소파에 기대어 동화책을 읽고 있던 요코가 얼굴을 들었다. 아이의 얼굴이 약간 핼쓱해져 있
다. 그러나 나쓰에는 완성된 흰 스웨터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느라 요코의 얼굴색을 알아차리
지 못했다. 
요코는 입고 있던 옷을 벗으려고 하다가, 무심코 얼굴을 찌푸렸다.
“어머, 어찌된 일이야? 어디가 아프니?”
“아뇨, 아무 데도 아프지 않아요.”
요코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으나, 옷을 벗는 손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나쓰에는 요코의 옷 벗는 것을 도와 주면서,
“어디 근육이라도 다친 것 아니니? 엄마에게 보여주지 않을래?”
“아무데도 다치지 않았어요.”
요코는 조금 뒷걸음질쳤다. 그 얼굴색이 평상시보다 맑지 않은 것을 알고, 나쓰에는  당황해
서 이마에 손을 대 보았다.
“열은 없는 것 같군.”
다시 나쓰에는 자신의 이마를 요코의 이마에 대어 보았다.
“요코, 어디 아프니?”
공부를 하고 있던 도루가 획 하고 뒤돌아 보았다.
“이상한데…… 역시 팔을 다쳤나 보구나. 자, 손을 위로 올려 보렴.”
요코는 입술을 꽉 다물고 양 손을 올리려고 했지만, 왼손이 잘 올라가지 않았다.
나쓰에는 당황해서 내복을 살짝 벗겨 보았다. 그와 동시에 나쓰에는 비명을 질렀다.
“어머, 어찌된 일이야, 요코?”
요코의 통통하게 살이 쪄 있는 흰 어깨가 거무티티하게 멍들어서 부어올라 있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가엽게도…….”
“야, 이건 너무 심한걸. 어찌된 일이니?”
도루도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왜 이렇게 되었는지.”
“네가 모를 리가 없지 않니? 이 정도로 심한 상태라면.”
나쓰에는, 요코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누구한테 얻어 맞은 것 아니니?”
도루는 마치 자기 자신이 아픈 것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
요코는 도루를 향해서 웃어 주려고 하다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나쓰에는 요코에게 잠옷을 입혀 주면서,
“왠지 얌전하게 책을 읽고 있다고 생각했다. 매일 스키를 타러가던 녀석이.”
라고 말하고 요코의 이렇게 심한 상처도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못써. 상처를 입었으면 빨리 말을 해야지.”
“네.”
요코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나쓰에의 어깨에 볼을 비볐다.
“여보, 요코 진찰 좀 해주세요. 상처를 입었어요.”
나쓰에는 2층을 쳐다보면서 게이조를 불렀다.
“뭐야? 상처를 입었어?”
게이조가 2층에서 반문했다.
“어깨가 거무티티하게 부어 있어요.”
게이조가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는 상처를 보자마자,
“이거 너무 심하잖아? 타박상이군. 자칫하면 어깨에 금이 갔을지도 모르겠구나. 아프지?”
하고 요코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조금요.”
“이 정도라면 조금 정도의 통증이 아닐 텐데…….”
게이조는 나쓰에를 뒤돌아 보며 말했다.
“당신, 몰랐었어?”
약간은 책망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미안해요. 요코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몰랐어요.”
“그러고 보니 저녁식사 때도 눈치를 채지 못했군. 요코,  누구한테 얻어 맞았니, 아니면 어
디에서 다친 것이니?”
게이조는 요코의 참을성이 강함에 놀라면서도, 왠지 초조해졌다.
“몰라요.”
“모르다니? 그럴 리 없다. 누구한테 맞은 거지?”
요코는 밝은 표정으로 게이조를 쳐다 보았다. 게이조는,
“아플 때는 아프다고 해야 한단다. 나쓰에, 지금 곧 차를 불러.”
게이조는 약간 화가 난 듯이 말했다.
외과 의사인 마쓰다가 게이조의 병원 뒤쪽에 살고 있었다. X-선 사진 결과, 뼈에 이상은 나
타나지 않았다.
“위험했었군요. 이 정도면 상당히 아팠겠는데요.”
마쓰다는 호인다운 웃는 얼굴을 하고서 요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보다시피 울지도 않아요.”
게이조는 다시 어이없는 기색으로 요코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참을성이 많은 따님이시군요.”
“뭐랄까요, 신경계통의 환자 같아요.”
농담조로 말했던 자신의 말에, 게이조는 뜻밖에도 독기를 느꼈다.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자, 나쓰에와 도루가 달려나와 맞이하여 주었다.
“어때요? 뼈는 이상 없어요?”
“응, 다행히 이상은 없었어.”
“어머, 다행이다, 요코.”
나쓰에는 저도 모르게 큰 한숨을 쉬었다.
“요코는 바보구나”
도루가 표정없는 얼굴로 말했다.
“바보라고? 왜 그렇게 생각하지?”
게이조는 갑자기 피로가 쏟아져 소파에 쓰러지듯이 앉았다.
“바보가 아니에요. 요코는 정말로 훌륭해요. 실은 말이에요, 여보 …….”
하고 말을 이으려는 나쓰에의 말을 가로막듯이 도루가 흥분해서 말했다.
“이오란 놈, 이번엔 내가 때려 줄 거야!”
“뭐야, 어떻게 된 거지?”
게이조는 도루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도루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게이조가,
“어떻게 된 일이야?”
“저, 실은 아까 한동네에 사는 이오 씨의 부인이 니사오를 데리고 사과하러 오셨어요. 후미
오가 요코에게 돌이 들어 있는 눈뭉치를 던져서 그렇게 되었다고요. 응, 요코, 그렇지?”
요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러한 사실이 있었으면서도 후미오는  부모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옆집의 
스스무 씨가 그 광경을 목격했더라구요.”
“응, 그래서 어떻게 됐어?”
“스스무 씨 말에 의하면, 요코가 아주 아픈 듯이 잠시  꼼짝도 않고 쭈그리고 앉아 있더라
고 하더래요. 그래서 너무 놀라서 사과하러 오셨다고요.”
게이조는 무심결에 요코의 얼굴을 보았다.
잠시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고 하는 요코의  아픔이, 게이조의 몸에 
스며드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신경 계통의 환자인 것 같다.’고 말했던 조금 전의 분별없는 자기의 말이 회상되었다.
“요코, 어째서 그런 일을 말하지 않았니?”
게이조의 목소리가 상냥했다.
“후미오가 꾸지람을 들을까 봐서요.”
“나쁜 짓을 한 아이는 꾸중을 들어도 하는 수 없어.”
“하지만 후미오는 저에게 색종이를 주었는걸요.”
감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요코는 진심으로 그때의 후미오의 다정함을 잊지 못하는 것 같
았다.
“어머, 요코!”
나쓰에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도루는 요코가 불쌍하다고 말하면서, 분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날 밤, 게이조는 좀처럼 잠이 들지 못했다.
‘나는 사소한 다른 사람의 말조차도, 며칠 동안이나 마음에 걸려서 원망하는 때가 있지. 그
런데 이 7살짜리 요코에게는 따라갈 수가 없군.’
게이조는, 요코가 기어다니기 시작할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게이조는 볼일이 생겨서 촛불을 들고 건넛방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잠을 자고 있어야 할 요코가 어둠 속을 혼자서 기어다니고 있었다.
게이조를 보고는 싱긋 웃더니 다시 기분좋게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 게이조는 어쩐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생후 7,  8개월짜리 아기가 어둠 속에서 울지
도 않고 기어다니는 것이, 어쩐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 당시의 요코와 오늘 사건의 요코를 게이조는 결부시켜서  생각해 보았다. 요코는 천성적
으로 공포라든가 악의를 지니지 않고 태어난 것같이 생각되었다. 
‘남의 증오를 짊어지고 태어났으면서도 참으로 이상한 아이로구나.’
게이조는 한숨을 쉬면서 돌아 누웠다.
“당신도 잠이 오지 않아요.?”
나쓰에가 말했다. 게이조는 요코에 대한 자신의 감동을 나쓰에가 모르기를 바랐다.
“아아, 잘 수가 없어.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아.”
나쓰에는 그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여보, 요코는 굉장한 아이예요.”
하고 말했다.
그러나 나쓰에의 말에 게이조는 맞장구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아이는 말이에요, 남을 미워할 줄 모르는 아이예요.”
‘사이시의 자식이 남을 미워한다든가 할 자격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요코에 대한 감동이 금세 식어 버렸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빠른 마음의 
변화였다.
‘누구의 자식이든, 그 아이에게는 죄가 있을 수 없다. 훌륭한 것은 훌륭하다고, 왜 나는 솔
직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여보.”
“왜 그래?”
“요코의 부모는 정말로 어떤 분들일까요?”
“…….”
“아마도 우리들보다는 훨씬 훌륭한 분일 거예요?”
“훌륭한 인간이 왜 자기 자식을 남에게 넘겨 주었을까?”
“하지만 누구라도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루리코를 죽인 놈의 딸이야.’
게이조는 그렇게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억제하고서 재차 잠을 청하려고 돌아 누웠다.
그때 문득, 게이조는 요코가 정말로 사이시의 자식일까, 하고 의심하게 되었다. 다카키를 믿
고 있는 한, 이 점에 대해서 의심을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게이조는 벌떡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러세요?”
나쓰에도 놀라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아니, 뭐 좀 찾아 볼 것이 갑자기 생각나서 말이야. 당신 먼저 자구려.”
게이조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서재에 들어가자, 책상 좌측에 있는 맨 밑의 서랍을 열었다. 서랍 밑바닥에는 네겹으로 접어
진 신문이 3부 들어 있었다. 모두가 루리코의 살인사건에 관한 기사가 실린 신문이었다.  게
이조는 그 중 한 장을 펼쳐서 책상 위에 놓았다. 거기에는 사이시의 얼굴 사진이 실려 있었
다. 게이조는 사이시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음.”
게이조는 저도 모르게 신음했다. 지금까지는 요코의  눈언저리만 사이시를 닮았다고 생각했
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머리 모양이나 얼굴 윤곽까지 꼭 닮아 있었다.
게이조는 다카키를 의심했던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잠시 얼굴에 경련을 일으켰다.
“여보.”
게이조를 부르는 나쓰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며,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났다.
게이조는 당황해서 신문을 서랍 속으로 던져 넣었다.

제16장  격  류

제16장 

격  류


그날은, 방안에 햇볕이 가득히 들어와서 땀이 날 정도였다. 너무 더워서 12월  중순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날씨가 따뜻하니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야.’
얼어 붙으면 좀처럼 열리지 않던 창도 오늘은 너무 쉽게 열렸다.
나쓰에는 먼지를 털면서, 오랫만에 피아노를  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  깊숙이에서 
음악이 울려 퍼지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손가락 끝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견디기 어려운 충
동을 느꼈다. 이런 일은 루리코가 죽은 이후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피아노는 그 사건 이
후 닫아 놓은 채로 놓여 있었다. 챙 하고 끊어져 버린 피아노  줄의 어쩐지 기분 나쁜 금속
성이 곧 루리코의 죽음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이제 슬슬 쳐 볼까? 그로부터 7년 동안 한 번도 피아노를 치지 않았는걸.’
나쓰에는 요코에게도 피아노를 가르쳐 주고 싶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피아노를 치기로 마음을 결정하자, 먼지털이를 들고 있던  손이 신기할 정도로 율동적
으로 움직였다. 청소가 끝나자, 나쓰에는 창문을 닫았다.
서재는 다다미 8장 크기의 양식 방이었다. 입구의 반 칸과, 창 한 칸을 제외하고 벽면은  전
부 서가였다.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의학서적이랑, 게이조가 수집해  놓은 독일어와 프랑스어의 문학서
적도 적지 않았다. 
꼼꼼한 게이조는 나쓰에에게도 책상 위는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한 아름이나 되는 큰 지구본과 조금 색이 바랜 청색 갓을 쓴 전기스탠드, 그리고 통나무 배 
모양을 한 아이누족이 만든 목각 펜 접시가  붙박이처럼 언제나 꼭 같은 장소에 놓여 있었
다. 일기장이 펜 접시 옆에 단정히 놓여져 있는 것도  결혼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대
로였다.
게이조는 소학교 3학년 때부터 일기를 쓰고 있었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서 써
왔다.
“일기를 3년 동안 계속해서 쓰는 사람은, 장래 뭔가를 이룩할 인간이다. 10년간이나 계속해
서 쓴 인간은 이미 뭔가를 이룩한 인간이다.”
라는 누군가의 말을 인용해서 다카키는,
“그렇다면 쓰지꾸치란 놈은, 너무나 엄청난 일을  할 놈이라는 말이 되는군. 알고 보면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할 것 같지도 않지만 말이야.”하고 놀렸던 적이 있었다.
게이조는 일기를 독일어와 영어를 섞어 거의 메모 형식으로 간결하게 써 놓았다.
신혼시절에 나쓰에는 이따금 게이조의 일기를 훔쳐 보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나쓰에의 마음을 흐트러지게 하는  것도, 즐겁게 해줄 것 같은 것도  전혀 
써 있지 않았다. 그래서 점차로 남편의 일기에 무관심하게 되었고, 그 이후 전혀 손 대는 일
도 없어졌다. 일기장은 언제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펜 접시와  마찬가지
로, 나쓰에에게는 다만 거기에 놓여져 있는 물건에 불과했다.
그 일기장을 몇 년만에 펴 본 것은, 지금 나쓰에의 마음이 즐거움으로 들떠 있었던 탓일까.
나쓰에는 일기장을 폈다.

○월 ○일 ○요일 맑음
약국 외무사원 2명 내방. 약품에 관한 건. 간호사 가이모리 양 결혼 때문에 사의를 표명.
○월 ○일 ○요일 흐림
영양사와 입원환자 대표가 급식에 관해서 간담했다. 성과 있음.
○월 ○일 ○요일 눈보라
요사히 X-선 사진 현상이 서투르다. 기사에게 주의를 줄 것.

나쓰에는 이렇게 쓰여진 메모 형식의  일기장을 읽으면서 미소지었다. 남편의  일기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글씨체나 글쓰는 형태 등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
문득 나쓰에는 일기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생각에 잠겼다.
‘왜 게이조는 나와 아기에 관한 일을 일기에 쓰지 않는 것일까?부인과 어린아이보다 일이 
더 좋은 것일까?’
나쓰에는 게이조가 그런 남편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7년 전 루리코가 죽었을 때, 게이조는 
나쓰에에게 차갑고 심술궂고 모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게이조는 역시 상냥한 남편이었다. 
물론 나쓰에는, 게이조가 사이시의 자식을 맡아서 기르는 것  때문에 애써 다정하게 대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게이조는 속을 알 수 없는 남자야.”
꼭 한 번 아버지 쓰가와 박사가 말한 적이 있었다.
“마음속을 알 수 없다는  것은, 그 만큼 자신을  잘 다스리고 있다는 것도  되겠지만 말이
야…….”
그때, 나쓰에의 아버지는 덧붙이듯이, 
“언제나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도, 의외로  병원의 일만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을지도 모른다.” 
라고 말했었다.
그만큼 큰 병원을 경영하고 있는 남편에게, 자식을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인지도 
모른다고 나쓰에는 생각했다.
그러나 여자는 청소를 할 때나 바느질할 때나 세탁을 할 때나 물건을 살 때도, 가족에 관한 
일을 잠시도 잊지 않는다.
나쓰에는 남자가 처자식을 생각할 때는 도대체  언제인가 하고 일기를 훌훌 넘기면서  보았
다. 아무리 읽어 보아도 10년 전의 일기하고 꼭 같은 형식으로 쓰여져 있었다.
반은 어처구니 없고, 반은 감탄하면서 일기장을 케이스에 넣으려고 할 때였다. 케이스  속에
서, 접어진 종이 조각이 책상 위로 떨어졌다. 무심코  주워서 펴 보았더니, 병원에서 사용하
는 두터운 양면괘지에 씌어진 게이조의 편지였다.
나쓰에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그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방 안 가득 비춰드는 햇살이 
없었다면, 어쩌면 읽지 않고 그대로 넣어 버렸을지도 모르는 편지였다. 
게이조는 한 점 한 획을 소홀히 하지 않고 꼼꼼한 글씨로 정연하게 써놓았다.
읽는 동안에 나쓰에의 얼굴색이 변했다. 책상 옆에 서서 읽고 있던 나쓰에는, 주루룩 허물어
지듯이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숨을 죽이고 읽고 있던  나쓰에의 입이 희미하게 움직
였다. 그러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다카키, 요전에 자네가 샤리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들렀을 때, 말해 버릴까 생각했었네. 하지
만, 역시 말하지 못했네.
이런 일을 아무한테나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너무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자네에게 사정 이야기를 들려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네.
나는 괴롭네.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네.  요코가 벌써 7살이네. 7년이라는 세월은,  어쩌면 
긴 세월이 아닐지도 모르네. 그러나 나에게는 실로 길고 괴로운 시간이었네. 도대체  어떻게 
자식을 살해한 범인의 아이를, 뭣 때문에 맡을 마음이  되었던 것일까. 다카키, 나는 루리코
가 그 강가에서 죽어 있던 모습을 결코 잊을 수가 없네. 루리코의 그 모습을 생각하면 나는 
요코가 너무 밉네.
‘너의 적을 사랑하라.’를 나의 일생의  과제로 알고 살아가겠다고, 그때 뻔뻔스럽게  나는 
자네에게 말했네.

처음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나쓰에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남편이 무엇을 말하
고 있는 것일까, 하고 나쓰에는 재차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이 쓰여져 있는가를 알았을 때 마룻바닥에 흘러 내리듯이 주저앉아 버렸던 것이
다.

나도 어떻게든지 요코를 사랑하려고 생각하고 노력도 했네.
이러한 생애를 보내는 인간이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은가, 하고 나는 나의 생활방식을 긍
정해왔네. 솔직히 말해서 요코는, 기분이 나쁠 정도로 착한 마음으로 가득찬 아이일세.
이러한 아이의 몸 속에 살인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생각만 하면, 도대체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그 아이의 머리
를 쓰다듬을 수가 없었네. 아무리 노력해도 손이 그 아이의 머리에 가지 않았네. 그것은  생
리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의 뿌리 깊은 혐오감 때문이었네.
그런데, 요전에 드디어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버렸네.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어서 오세요.”
하고 달려온 요코의 머리를 무심코 나는 쓰다듬어 버렸네. 그러나 그 후부터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네. 나는 반사적으로 루리코의 죽은 모습을 회상해 보았네. 요코를 귀여워하면  과연 
죽은 루리코가 기뻐할까,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견딜 수가 없어졌네.
말하는 김에 고백할 일이 있네.
나는 ‘너의 적을 사랑해라.’를 나의 방패로 삼았던 추악한 사나이였네.
자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면서 말일세.
요코를 맡아 길렀던 것은, 실은 나쓰에를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네. 나쓰에에게  사이시
의 아이를 기르게 하겠다는 잔인한 생각이 있었던 것을, 지금 자네에게 고백하겠네.
다카키, 나쓰에는 7년 전에 나를 배반했었네. 루리코가 살해되었던 날, 나쓰에는 무라이하고 
둘이서만, 한방에 있었던 것이네.
두 사람이 거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가, 상상만 해도 지금 가슴이 끓어 오르는 것 같네. 
더구나, 나쓰에는 그 후로도 무라이하고  내통하고 있었네. 물론, 그  장면을 목격했던 것은 
아니네. 다만 무라이가 우리집에 왔던 그날 밤, 나는 나쓰에의 목덜미에서 키스 마크를 보아 
버렸던 것이네. 두 사람이 무슨 짓을 했던 것일까?
무기력한 나는 왜 키스 마크가 나 있는지 캐물을 용기가  없었네.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었
음에도, 알 용기가 없었네. 
그 이후로 내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를 자네는 모를 거야. 차라리 나쓰에를 죽이고 함께 죽
어 버릴까도 생각했었네. 여하튼, 나는 요코를 사랑하기 때문에 맡았던 것은 아니네.
사이시의 아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기르는 나쓰에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네. 후에 
사이시의 아이인 것을 알고, 발버둥치는 나쓰에를 보고 싶었던 거야. 사이시의 딸 때문에 일
생을 망쳤다고 분하게 여기는 나쓰에를 보고 싶었던 것이네.
다카키, 결국 나라는 놈은…….

편지는 여기서 끊어져 있었다.
더 써서 보낼 작정인 편지인지, 보내는 것을 그만둔 편지인지는 알 수 없었다. 군데군데  글
씨가 번져 있었다. 이것은 게이조의 눈물자국인지도 몰랐다. 
나쓰에는 망연실색한 채로 마룻바닥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무슨 이유도 없이, 갑자기  소녀
시절에 갔던 도마마에의 바다가 눈앞에 떠올랐다.
눈썹처럼 떠있던 데우리, 야기시리 두 개의 섬 사이에 석양이 저물어 가는 광경이었다.
나쓰에는 머리가 마비되어 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쓰에의 하얗게 마른 입술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이렇게 무서운 일이…….”
나쓰에는, 게이조의 사랑을 이날 이때까지 꼭 믿고 있었다. 게이조의 사랑을 의심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밤 놀이 한 번 가지 않고, 어떤 여자와 바람 피운다는 소문 한 번 들어 본 
적이 없는 남편이었다.
나쓰에는, 사실 무라이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기는 했었다.  그러나, 게이조를 버리고 무라이
의 곁으로 갈 만큼 절실한 감정은 아니었다. 무라이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비록 게이조에게 
알려진다 해도, 그다지 책망당할 일이 아니라고 나쓰에는 생각했다. 그러므로 자신은 남편에
게 사랑받고 있는 행복한 여자라고 꼭 믿고 있었다.
설마 남편이 7년이나 전부터 자기를 미워하고, 사이시의  아이를 기르게 하리라고는 생각지
도 않았다.
‘거짓말이야. 요코가 사이시의 아이라니…….’
게이조의 편지에 일단은 놀랐지만, 요코가 살인범의 자식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설
사 어떠한 일이 있어도, 루리코를 죽인 사이시의 딸을 맡을 수는 없었다.
‘게이조는 루리코의 아버지인데 어떻게 이런  편지를 쓸 수 있을까?’ 나쓰에는  게이조의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하지만 편지에 거짓말이 씌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자신의 목덜미에 키스 마크가 있었던 것을 나쓰에는 처음으로 알았다.
‘그저 입만 맞출 뿐이었는데도…….’
그러나 만일 게이조가 다른 여자에게서 키스 마크를 목에 남긴 채 돌아왔다면, 자기는 게이
조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나쓰에는 게이조의 분노와 고
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쓰에는 키스 이외의 일은 없었다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구체적인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
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를 죽여 버리고 함께 죽을려고 생각했다는 게이조의 고뇌 속에서 게
이조의 사랑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고르고 골라서 루리코를 살해한 사이시의 자식을 기르게 한 게이조를 나쓰
에는 용서할 수 없었다.
‘요코가 사이시의 아이라니…….’
나쓰에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맑고 현명하고 그리고 온순한 아이가 사이시의 아이일 리가 없다 …….’
요코의 맑은 눈 속에 불꽃처럼 타오르는 이상한 영롱함을 나쓰에는 생각했다.
‘거짓말이야!’
나쓰에는 마치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처마에서 물방울이 끊이지 않고 흘러 떨어졌다. 어딘가에서 지붕  위의 눈이 떨어지는 소리
가 들렸다
‘꿈인지도 몰라.’
나쓰에는 3번이나 편지를 다시 읽어 보았다. 무라이와 자기의 일을 눈치채고서, 한 번도  게
이조는 직접적으로 자기를 힐책했던 적이 없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
금까지 지내온 게이조를 생각하면, 나쓰에는 지난 7년 동안의 밤의 생활이 소름끼치도록 역
겨웠다.
‘무라이의 키스를 목덜미에 받았을 뿐인데 루리코가 살해되고, 게다가 살인범의 아이를 나
는 아무것도 모른 채 기르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벌을 받지 않으면 안될  만큼 나쁜 일을 
한 것일까?’
나쓰에는 귀여운 요코를 마음속에 그렸다.
‘거짓말이야. 뭔가 잘못된 것이야.’
나쓰에는 지금 요코가 어떤 사형수, 아니 누구의 딸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이
시의 딸만은 안되었다.
‘루리코의 생명을 빼앗아간 사람의 딸이라면, 이 이상 맡아서 기를 수는 없어. 루리코가 앉
아야 할 자리에, 어떻게 사이시의 아이를 앉게 할 수가 있을까?’
요코가 병이 나서, 몇날 밤 잠도 자지 않고 간병했을 때도, 게이조는 입을 다물고 주시만 하
고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자 나쓰에는 몸에서 피가 말라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남편은 내가 요코의 출생을 알고 얼마나 한탄하고, 슬퍼하고, 분하게 여길지를 기
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나쓰에는 이제야 겨우 자기에 대한 남편의 증오가 가슴에 직접 와 닿았다.
악몽과 같은 느낌이 갑자기 현실로 나타났다. 나쓰에의 마른 눈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디를 
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꾹 숨을 죽이고, 나쓰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다만 남편
인 게이조가 미웠다.
루리코 대신이라 생각하고 심혈을  기울여서 사랑했던 것은 요코가  아니었던가, 그 요코가 
루리코를 살해한 사이시의 딸이었던 것이다. 나쓰에는 꼼짝도 않고  숨을 죽이고 있는 동안
에, 자신이 무서운 마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되었다. 그 정도로 게이조
가 미웠다.
단정한 미모인 만큼, 표정을 잃어버린 나쓰에의 얼굴은 가면처럼 어쩐지 기분나빴다. 그러자 
돌연 가면처럼 보였던 나쓰에의 얼굴이 크게 변했다. 눈을 크게 뜨고서, 아랫입술을 피가 나
올 정도로 꽉 깨물었다. 창백했던 얼굴이 갑자기 순식간에  충혈되어 붉어졌다. 그 순간, 허
덕이듯이 어깨가 크게 움직이고 나쓰에는 마루 위에 엎드려 쓰러졌다.
“루리코,  아이구!”
온 힘을 쥐어 짜내는 것 같은 비통한 울음소리였다. 루리코를  죽인 사이시의 딸인 줄도 모
르고 요코를 사랑하고 길렀던 것을, 뭐라고 루리코에게 빌어야 좋을지 몰랐다.
7년 전에는 죽은 루리코를 껴안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비통했다.
“용서해라, 루리코.”
게이조가 자기의 이 슬픔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자 나쓰에는 이중  삼중으로 
괴로웠다.
‘그렇게 귀여운 요코가 사이시의 자식이라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어느 사이엔가 나쓰에도 믿고 있었다. 
‘이제 요코하고도 이별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쓰에는 눈물이 나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친자식인  루리코보다도 
더 귀여워하며 기른 요코였다. 사별보다 더 괴롭다고 나쓰에는 생각했다.
‘다카키 씨도 요코가 사이시의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슨 원한이 있어서 다카키 씨
까지도…….’
다카키가 요코의 친부모에 관해서 언급하면 화제를  딴 데로 돌린 이유를 지금에서야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게이조가 출생신고를 주저했던 이유도, 요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않
았던 이유도 지금에야 비로소 알았다
‘남편도, 다카키 씨도, 그리고 요코도 모두 나의 곁을 떠났어.’
갑자기 나쓰에는 지독한 고독감에 휩싸였다.
‘이제는 도루와 다쓰코뿐이다.’
언젠가 도루가, 요코를 자기의 신부라고 말해서 게이조에게 심하게 얻어 맞은 적이 있었다.
사이시의 딸인 요코와 도루가 결혼하는 것을 게이조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나쓰에는 알
았다. 물론 호적은 남매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법률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더라도 부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었다. 
‘도루에게는 요코를 진짜 여동생이라고 계속해서 믿게 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수  없이, 
나는 요코의 어머니로서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구나. 그렇지 않으면 진실을  도루에게 털어 
놓아야 할까?’ 
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도루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쓰에는 상상을 할 수 없었다. 나쓰에
는 너무 울어서 부운 눈을 찬물로 몇 번이고 식혔다. 마비되어 버릴 정도로 차가운 물이, 나
쓰에의 마음까지도 차게 해버리는 것 같았다.
눈을 식히자마자 나쓰에는 화장대 앞에 점잖게 앉았다. 결혼한 이후 이 거울로 나쓰에는 자
신의 모습을 비추어 왔다.
‘설마 이러한 생각으로 거울 속의 자신을 보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
다.’ 
자기 자신도 섬뜩할 정도로 유난히 빛나는 눈이, 꼼짝도 않고 자기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ぞ꼬〈  그 눈을 들여다보듯이 하고 평상시보다 더 정성을 들여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요코를 더 이상 키울 수는 없어. 그렇다고 그렇게 귀여워하면서 길렀던 아이를 갑자기 떼
어 놓는다면 세상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세상 사람들은 어떻든간에 도루가 들어주
지 않을 거야. 만일  요코가 진짜 여동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도루는  뭐라고 할
까?’
나쓰에는 아까부터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여 생각했다.
거울 속의 자기를 노려보듯이 하면서, 나쓰에는 화장을 했다.
‘요코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울었던 일을 남편에게는 절대로 눈치채게 해서는 안된다.’
나쓰에는 눈썹을 약간 길게 칠하고, 루즈도 평상시보다 정성들여 칠했다.
‘쓰지구치는 진실을 아는 날, 내가 슬퍼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절대로 
이성을 잃어버린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화장을 하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화장은 여자의 무기일지도 모른다고 나쓰에는 생각했다.
‘쓰지구치는 무라이와의 일을 용서하지 않고,  사이시의 아이를 기르게 했다. 나도  이제는 
절대로 그러한 쓰지구치를 용서하지 않겠어.’
무라이와의 사이를 오해해서 괴로워한다면, 오해하게 내버려두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요코를 
적어도 게이조의 앞에서는 지금까지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몸도 마음도 쓰지구치를 배반해 버리겠어.”
나쓰에는 거울 속의 자신에게 맹세하듯이 소리를 내어서 대담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는 
묘하게 힘이 가득 차 있었다. 언젠가 반드시, 게이조를 배신하고야 말리라 생각했다.
문득 무라이 야쓰오의 슬픈 듯한 허무한 표정이 떠올랐다. 의외라고 느낄 정도로 그가 그리
워졌다.
‘7년이나 만나지 않았군.’
무라이의 넓은 이마며 긴 손가락, 앞으로 약간 구부정한 큰 키, 그 모든 것이 그리웠다. 7년 
동안이나 잊은 것같이 지내 왔는데 이상할 정도로 그리웠다.
‘요코를 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루리코 대신이라고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기르고 있었
기 때문이야.’ 
그 기르던 아이가 사이시의 딸이었구나, 생각하니 나쓰에는 또다시 가슴이 들끓었다.
“지금 돌아 왔어요.”
평상시와 같은 밝은 요코의 목소리였다. 나쓰에는 숨을 죽였다.
목이 바싹 말랐다. 침을 삼키려고 했다. 그러나 침이  나오지 않았다. 나쓰에는 화석처럼 몸
이 굳어져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미닫이가 열렸다. 가방을 짊어진 요코의 웃는 얼굴이  거울
에 비쳤다.
“어머, 예뻐. 어디 갈 거야, 엄마?”
요코는 달려들어 나쓰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요코는 나쓰에의  어깨에 볼을 비비면서 거
울에 비치는 나쓰에를 향해 웃기 시작했다.
‘요코다. 어제와 똑 같은 요코다.’
나쓰에는 찬찬히 거울 속의 요코를 뚫어지게 보았다.
요코는 평상시와 다른 나쓰에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나쓰에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엄마, 어디 아파요?”
‘이 아이의 애비가 루리코를 죽였단 말인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게이조의 편지를 읽었던 것이, 마치 꿈처럼 생각되었다.
“어찌된 일이에요? 병이 났어요?”
그렇게 말하고 정말로 걱정하듯이 나쓰에를 쳐다보던 요코의 손을 잡고 나쓰에는 말했다.
“요코!”
나쓰에의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나쓰에는 요코의 볼을 양 손에 끼고서,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모양이 좋은 진한 눈썹, 
끊임없이 반짝이는 것 같은 검은 눈동자, 약간 얇지만 예쁜 입술.
‘이 아이에게 무서운 피가 흐르고 있다니…….’
“어찌된 일이에요, 엄마?”
나쓰에의 기색은 요코에게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요코는 고개를 조금 갸우뚱하고,
“놀러 나가도 돼요?”
하고 일어서려고 했다.
그때였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을까, 나쓰에 자신도 몰랐다. 갑작스럽게 뭉클한 감정이 나쓰
에의 양 손에 모아졌다.
“요코! 엄마하고 같이 죽어 버릴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쓰에의 손이 요코의 목을 감았다.
“싫어, 싫어.”
요코가 허우적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요코의 눈에 공포의 빛이 스쳐가는 것을, 나쓰에는  보
았다.
“싫어, 싫어.”
요코가 재차 소리를 질렀다.
“죽는 거야. 둘이서…….”
두 사람이 죽어 있는 것을 보고,  낭패해 하는 게이조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쓰에는  뭔가에 
신들려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황홀한  생각으로, 나쓰에는 점차로 요코의 목을 잡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게이조의 경악한 얼굴, 망연하게 서 있는 얼굴과 울고 있는 도루가 생각났다.
“앗!”
저도 모르게 나쓰에는 손을 놓았다.
요코는 입에서 거품을 뿜고 있었다. 그리고 숨을 거둘 것처럼  꽥 하고 목구멍에서 큰 소리
를 내더니 울기 시작했다.
“아아, 요코.”
나쓰에는 저도 모르게 요코를 끌어 안았다. 요코도 나쓰에에게 꼭 달라 붙어서 울었다.
‘아무 죄도 없는 아이에게, 도대체 나는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것인가?’
나쓰에는 자신이 했던 일을 깨닫자 무서움에 몸이 떨려서 견딜  수 없었다. 어떠한 일이 있
어도, 자신이 사람을 살해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쓰에와 요코는 서로 껴안고 울었다. 요코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거의 울어본 적
이 없는 요코였다. 그런 만큼 흑흑 흐느껴 울고 있는 요코가 다른 사람같이 생각되었다.  나
쓰에는 사과할 말도 위로할 말도 없었다.
‘요코는 오늘 일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른이 된 요코가 어떤 생각으로 오늘의 이와같은 사건을 회상할 것인가, 하고 생각하니 나
쓰에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윽고, 나쓰에는 점심을 준비하러 부엌으로 나갔다. 뭔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서, 현실
감이 따르지 않는 걸음이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식사준비를 끝내고 거실로 돌아오자, 요코는 목에  손을 대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말할  수 
없이 쓸쓸한 표정이었다. 나쓰에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요코, 용서해라.”
하고 손을 잡았다.
요코는 울어서 부운 눈으로, 똑바로 나쓰에를 쳐다 보았다.
“엄마, 왜 화가 났어요?”
“화난 거 아니야. 틀림없이 엄마는 꿈을 꾸고 있었어.”
“일어나 있어도 꿈을 꾸어요?”
요코의 목소리는 어리광이 없었다.
“그래, 어른은 잠을 자지 않아도 꿈을 꿀 수 있는 거야.”
나쓰에는 허둥지둥 대답했다.
“하지만 꿈속에서 왜 나를 죽이려고 했어요?”
“어머! 죽이려고 하다니…….”
틀림없이 요코의 목에 손을 댔을  터였다. 하지만 죽이려고 했다고 힐책당하니까,  나쓰에는 
눈물짖지 않을 수 없었다.
‘미웠던 것은 아니야.’
나쓰에는 7살짜리 요코에게 할 말이 없었다.
‘요코가 게이조와 도루에게 오늘 일을 말할까?’
나쓰에는 뭔가에 쫓기는 것 같은, 변명할 길이 없는 자신의 입장을 생각했다.
“요코, 아버지랑 오빠에게는 말하지 마. 부탁이야.”
나쓰에는 자기의 말이 비참하게 생각되었다.
요코는 의아스러운 듯이 나쓰에를 보았다.
“엄마에 관한 일이라면, 저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어요.”

제17장  다  리

제17장 

다  리


그날, 나쓰에는 게이조의 귀가를 대기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게이조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
이고 있었다.
“오늘밤도 조금 쌀쌀하군.”
저녁때 귀가한 게이조는 평상시처럼 아무렇게나 가방을 건네주고서 현관 마루에 걸터  앉았
다. 털실로 짠 양말을 신고 있었으므로, 장화는 간단하게 벗겨지지 않았다. 나쓰에는 허리를 
구부리고 장화를 벗고 있는 게이조의 등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나는 이렇게 매일 부랴부랴 맞이하러 나와 있었던 것인가!’
나쓰에는 화가 난 표정을 눈치채이지 않도록, 게이조가 벗어  놓은 구두를 천천히 가지런하
게 정리했다.
“웬일이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게이조는, 언제나 맞이하여 주는 요코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왜 요코가 없느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어깨가 조금 뻐근해서요.”
나쓰에는 어깨 언저리에 손을 대고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자연스러운 몸짓이었다. 나쓰에는 
속으로 겨우 안심했다. 자기의 목소리가 평상시와 달리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쓰에는 끝까지 요코의 출생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척하기로 마음 먹었다.
가장 타격을 주는 방법으로, 게이조에게 보복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거실에도 요코는 없었다. 게이조는 허둥대며 방을 여기저기 둘러 보았다.
“아버지, 이제 돌아오세요?”
하면서 2층에서 도루가 내려왔다.
“그래, 방금 왔어.”
게이조는 도루의 뒤에서 요코가 내려오는 것 같아서, 오버를 입은 채로 서 있었다.
“옷 안 갈아입으세요?”
“아아.”
게이조는 요코가 이제까지 한 번도  자신의 마중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이제야 
새삼스레 깨달았다. 동시에 자기의 냉정함도 반성하게 되었다.
요코가 없는 것이 이렇게 걱정이 된다는 것도 게이조에게는 의외의 일이었다.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있는 동안 내내 게이조는 요코의 일에 관해서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래서, 자칫하면 사나워지는 나쓰에의 시선을 알아차릴 겨를도 없었다.
거실로 돌아오자, 도루가 의아스러운 듯이 물었다.
“요코는 어디 갔어요?”
“방에서 책을 읽고 있지 않을까?”
나쓰에도 아까부터 요코가 거실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아무리 밝고 씩씩
한 요코라도, 오늘 일어난 일은 어린 마음에 상당한 자극이 되었음에 틀림 없었다.
“엄마에 관한 일이라면, 저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어요”
라고 말했던 요코의 말에, 나쓰에는 감동했다. 그와 동시에 마음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이상해. 요코가 보이지 않아.”
요코의 방으로 찾으러 갔던 도루가 책망하듯이 나쓰에를 보았다.
“뭐?”
나쓰에의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뭐, 요코가 없어? 설마 루리코의 전철을 밟는 건 아니겠지?”
게이조의 말에 도루가 신경질적인 시선을 보냈다. 게이조는 도루의 예민한 감수성을 무시하
고 있던 것을 알아차리고, 아차싶었다.
“아직 밖에서 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동안에 돌아오겠지. 그보다 배가 고파.”
게이조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식탁 앞에 앉았다.
“네.”
나쓰에는 우울한 표정을 했다.
낮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하는 게이조는 도루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말을 건넸다. 
“걱정할 것 없어.”
게이조의 말에 나쓰에는 분통이 터졌다.
‘역시 요코는 사이시의 딸이야. 남편이 이렇게까지 냉담한 것을 보면 말이야.’
나쓰에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게이조의 밥공기를 손에 들었다.
‘내가 요코를 걱정하면, 남편은 속으로 즐거워하겠지? 그렇다고  냉정하게 있으면, 아마도 
의심할 것이 분명해.’
나쓰에는 안절부절했다.
‘요코의 신상에 만일 어떤 일이 일어난다면…… 만일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쓰에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는 것 같아서, 볼일이 있는 듯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요코, 어디에 있니? 빨리 돌아오렴. 엄마가 나빴어.’
나쓰에는 요코의 목에 손을 댔던 일을 생각하자, 요코가 가엾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
날카로운 도루의 목소리에, 나쓰에는 당황해서 눈물을 닦았다. 거실로 돌아오자 도루는 게이
조를 내려다보듯이 식탁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엄마, 요코 얻어 왔어요?”
도루가 덤벼들 듯이 말했다. 게이조와 나쓰에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마주 보았다.
“왜 그런 소리를 하지?”
게이조가 부드럽게 말했다.
“요코는 엄마가 낳았어. 달이 떠있는 추운 밤에 낳았어. 도루, 왜 그래?”
나쓰에도 상냥하게 말했다. 요코가 사이시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지금, 도루와 요
코는 친남매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지만 요코가 이렇게 어두워져도 돌아오지 않는데도, 아버지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식사
를 하고 있잖아요.”
“어두워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5시 반밖에 되지 않았어.  요코는 똑똑한 아이야. 미아는 되
지 않아.”
게이조는 여전히 조용하게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요코에게 상냥하게 대해 준 적이 없잖아요.  요코를 한 번도 안아주지도 
않았구요. 요코가…… 요코가 불쌍해요.”
도루는 반은 우는 듯한 얼굴로 게이조를 노려보았다.

요코는 옥색의 오버 위에 빨간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집을 나갔을  때가 오후 3시 
정도였다.
집을 나가서 어디로 가겠다는 목표도 없었다. 자기의 저금통을 열쇠로 열고, 돈을 모두 가지
고 나갔다. 좌우간 버스를 타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요코는 자기의 목을 조르려고 했을 때의 
나쓰에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왜 나를 죽이려고 했을까?’
그 점을 요코는 알 수가 없었다. 요코는 나쓰에의 모든 것이 좋았다. 매일 아침 머리를 빗겨 
주는 것도 좋았다. 
언제나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좋았고, 고상하고 상냥한 말투도 참 좋았다. 웃고  있을 
때의 입 언저리가 어린 마음에도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설거지할 때의 뒷모습도 좋았고, 걸레질할 때의, 시원시원한  몸동작도 좋았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요코!’하고 불러줄 때, 약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참으로  무어라 말할 수 없
을 정도로 좋았다.
나쓰에만 곁에 있으면, 쓸쓸한 것도 무서운 것도 없었다.
후미오에게 돌팔매를 맞았을 때도, 그렇게 괴롭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게이조의  냉정함이 
요코의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운 적이 없었던 것도, 나쓰에의 사랑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
었다. 그러한 나쓰에가 요코의 목을 졸랐던 것이다.
그 당시의 왠지 신들린 것 같은 나쓰에의 얼굴을 요코는 정말로 무섭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믿어왔던, 그리고 가장 의지했던  어머니인 나쓰에가, 이제까지 자기에게는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무서운 모습을 보였을 때, 요코의 마음속에서도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나쓰에가 싫다는 것보다도, 다만 무서웠다.
지금까지 요코는 컴컴한 곳에서도, 큰 개를 보았을 때도 무섭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
만 오늘의 나쓰에의 무서움은, 어린 요코에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것이 있었다.
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잘 모르면서 피살되는 무서움을 요코는 알아버렸다.
요코는 가구라 농협 앞에서 버스를 탔다.
아사히카와로 가기 위해서는 다리를 하나 건너지 않으면 안되었다.
버스가 그 다리 위를 건널 때, 요코는 난생 처음으로 ‘쓸쓸하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 혼자서 아사히카와에 나간 적은 없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겨울의 냇물은 거무
스레했다.
버스의 창에 이마를 대고 요코는  밖을 내다보았다. 다리 아래의 사무라이  부락의 어떤 집 
창에 빨간 천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것이 어쩐지 요코에게는 쓸쓸하게 보였다.
저 빨간 천은 무엇일까? 머플러 일까,  하고 요코는 생각했다. 다리를 건너니까  아사히카와 
시내가 나왔다.
버스가 드디어 마루이 백화점 옆에 멈추었다. 언제나 나쓰에와  왔을 때 내리는 정류장이었
다. 요코는 거기에서 내렸다. 그러고 나서어디로 가야 좋을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졌다. 길을 건너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  휩싸여 요코는 아사히카와 역 
쪽을 향해서 걸어갔다.

요코는 줄줄이 사람들이 나오는 개찰구의 울타리에 기대어, 지금  막 도착하는 기차를 보고 
있었다.
기차의 창에, 흰옷을 입은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요코를 보고 미소지었다. 다정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 같애.’ 
그 여자 옆에 앉아있던 남자가 뭔가 말했다. 여자는 웃으면서 자주 고개를 끄덕였다.
요코는 그 사람이 다시 한 번 이쪽을 볼까, 하고 꼼짝도 않고 그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기차의 발차 벨이 울렸다. 그러나 그 사람은  두 번 다시 요코 쪽을 보지 않았다.  남자하고 
뭔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 기차는 떠났다. 기차가 떠난 저쪽 구내에는 검은 화차가 멈춰 
있었는데, 눈이 하얗게 덮인 큰 원목이 잔뜩 실려 있었다.
‘어머니같이 상냥한 분이야.’
요코는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하는 화차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무슨 일이지?”
역무원이 요코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요코는 고개를 숙인 채로, 다시 시내 쪽으로 걸어갔다.
마루이 백화점 앞으로 되돌아왔을 때,
‘무용수 아줌마의 집으로 갈까?’
하고 요코는 생각했다.
다쓰코를 요코는 ‘무용수 아줌마’라고 불렀다. 요코는 다쓰코를 생각하자, 갑자기  기운이 
솟았다. 다쓰코의 집은 6가 10번지에 있기 때문에 약 1킬로 정도 걸어가면 되었다.
다쓰코의 집은 길에서 한 칸 정도 들어가면 탄탄하게 지어진 목조로 된 2층 건물이었다. 약
간은 거무스레해진 간판에 ‘하나야기류의 후지오 연구소’라고 먹으로 글씨가 크게 써  있
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현관을 들어가면 곧게 한 칸 폭의  복도가 있고, 막다른 곳에 이르면 연습장이었다.  복도의 
우측에는 화장실, 부엌, 욕실이 있고, 좌측에는 데리고 있는 제자 두 사람의 방과 거실이 있
었다.
다쓰코의 방은 2층에 두 칸이 있었지만, 2층으로 올라가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거실은 다다미 열 장 크기의 방이었다. 이 거실은 항상 재미있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춤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학교 선생님, 의사, 은행원,  상점 주인, 신문기자 등 잡다한 직업을  가진 
남자들이 할 일 없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틈만 있으면 찾아왔다.
다쓰코가 있든 없든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뒹굴기도 하고, 창문틀에 앉기도 하는 등 자기의 
마음에 드는 곳에 제멋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 잡담을 했다. 그 중에는 바둑을 두는 사람, 술
을 마시는 사람, 밥을 짓는 사람도 있어 자기 집인지 남의 집인지 알 수 없었다.
“쌀이 떨어졌어.”
라고, 누군가가 말만 하면 다음 날, 누군가가 가지고 와서 벌써 쌀통에는 쌀이 가득했다.
이 거실에서는 니체, 피카소, 사르트르, 베토벤 등이 친한 친구처럼 화제에 올랐다. 
연습이 없을 때면 다쓰코도 기둥을 등지고 팔짱을 낀 채로 그들의 대화를 듣곤 했다.
다자이 오사무가 죽었을 때, 만난 적도 없었던 그를 위해서 이  방에서 밤을 지새웠던 적도 
있었다. 
다쓰코는 여기에 모인 사람들을 ‘거실의 패거리’라고 부르고 있었다.
술이 되었든 안주가 되었든, 누가 얼마라고 하는 분담도 하지 아니하고, 자연스럽게  모아진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이었다. 그들은, 
“발이나 깨끗이 닦고 올라와요”
하는 다쓰코의 듣기 거북한 꾸지람을 들으면, 칭찬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기도 하고,  수줍어
하기도 하는 남자들이었다.
가끔 요코를 데리고 나쓰에가 방문하면, 안면이 있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도 박수로 맞아 주
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별로 신경쓰지도 않고,
“자유라는 것이 정말로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것일까?”
라는 등의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나쓰에는 이러한 다쓰코의 거실 분위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요코는  왠지 이렇게 활기찬 느
낌이 좋았다.
“실례합니다.”
하는 격식을 차린 인사는 누구도 하지 않았다. 마치 자기  집처럼 편안한 얼굴을 하고 들어
왔다. 정돈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불문율 같은 것이 있었다.
다쓰코를 독점하지도 않았고, 연습장을 함부로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제자들에게는 말을 걸지도 않았고 목례만 했다.
그날, 요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는 곧 바로 연습장으로 갔다. 연습
이 없는지 다쓰코 혼자서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데리고 있는 제자 두 사람이 전축 옆에 단정히 정좌하고 앉아서, 다쓰코의 움직임에 따라서 
고개를 움직이고 있다. 요코가 들어가도 말도 걸지 아니하고 다쓰코는 열심히 춤을 추고 있
었다.
요코는 무슨 춤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검정 바탕에 은색의 버들잎 무늬가 그려진 무용복
차림의 다쓰코가, 어린 마음에도 아름답게 생각되었다. 
음악이 멈추었다. 곧 옆으로 와줄까,  하고 요코는 조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음악이 
다시 울리자 춤을 추기 시작함과 동시에 다쓰코의 몸에 다른 영혼이 가볍게 들어가는 것 같
은 이상한 인상을 받았다. 요코는 그것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춤을 
추고 있는 다쓰코의 표정이 때로는 엄하고 때로는 상냥하고 때로는 얼빠진 것처럼 변화하는 
모습이 요코에게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나서, 또 세 번 정도 같은 춤을 추고 난 후, 그때서야 겨우 다쓰코는 무대에서 내려왔
다.
“엄마는?”
다쓰코는 쌀쌀맞게 물었다.
다쓰코는 요코가 귀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냉정하게 말할 때는 정을 억제
할 때의 다쓰코의 표정이었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고, 천성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집에 계세요.”
“그럼 요코 혼자서 왔니?”
“그래요.”
“그래?”
왜 혼자서 왔느냐고 묻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요코의 등에서 가방을 벗겨냈
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야?”
“집에서 왔어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요코의 말에 다쓰코는 크게 웃었다.
“뭐야, 그럼 가출을 했단 말이야? 너, 건방지구나. 요코, 너 일학년이지?”
“그래요.”
“그래요라니, 황당하구나. 일학년짜리의 가출이라. 그것 참 재미있는데!”
다쓰코는 웃으면서 거실로 들어갔다. 네다섯 명의 남자들이 뒤돌아 보았다.
“뭐가 유쾌해요, 다쓰코 씨?”
“이 일학년짜리가 가출을 했어요”
“반항정신이 충분하네요.”
“제법이야.”
남자들이 손뼉을 쳤다.
요코는 영리한 것 같은 눈을 크게 뜨고 인사를 했다.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들은 거야?”
고등학교 국어 선생인 이치가와가 요코에게 물었다.
“꾸중 듣지 않았어요”
“뭐야? 꾸중 듣지 않았는데 가출을 했단 말이야?”
요코는 오늘의 나쓰에의 얼굴을 회상하고 있었다.
다쓰코는 별로 요코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요코는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냈다. 밖은 점점 어두워졌다.
“심심하지 않아?”
꼭 작은 인형처럼 생긴 다쓰코의 제자가 물었다. 요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긋  웃었다. 
다쓰코는 보고도 보지 않은 척하고 있었다.
저녁식사 때, 데리고 있는 제자가 삼각형  모양의 주먹밥과 찐 계란을 갖고 왔다.  아사쿠사 
김 냄새가 향기롭게 코를 찔렀다. 
바둑을 두고 있는 두 사람의 남자만이 남아 있고, 다른 패거리들은 모두 돌아갔다.
“요코의 어머니가 걱정하고 있겠는걸. 다스코 씨, 요코의 엄마에게 어서 전화를 걸어요.”
패거리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어리석은 소리 말아요. 엄마란 항상 걱정하는 게 일이지요. 그러니까 걱정하게 내버려  두
세요.”
“다스코 씨가 하는 말은 모두 그럴 듯하게 들리니, 참 이상해.”
“어린아이가 집을 나오는 것은, 그만큼 부모에게도 나쁜 점이 있다는 말이에요. 부모도  걱
정하면서, 자신이 나빴다든가, 저렇게 했으면 좋았다든가, 반성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걱정
을 하도록 내버려 두어요.”
다쓰코는 샤미센의 줄을 늦추면서, 요코를 보고 살짝 웃었다.
“이 아이는 말이야.”
다쓰코는 요코를 눈으로 가리키면서,
“지금까지 바보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언제나 생긋 생긋 웃고만 있었어요. 조
금도 성질을 내는 법이 없었는걸요. 성질을 내지 않는 인간은, 왠지 정직하지 못한 것  같아
서 나는 싫어요.”
밤색 스웨터를 입은 고등학교 선생님이신 이치가와 씨가 요코를 찬찬히 바라보고 나서 입속
으로, 
“화내지 않는 인간은 정직하지 못하다.”
하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오늘은 가방을 어깨에 메고 와서는 우리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라고 했지 않아
요? 마음에 들어요. 이 아이는 머리가 좋지만, 사람은 머리가 좋기만 해서는 별것이  아니란 
말이야. 줏대가 있어야지.”
“다쓰코 씨는 또 터무니없이 줏대가 너무 강해서 탈이지. ”
바둑판을 옆으로 치우고 이치가와가 일어섰다. 요코는 처음으로 엄마 곁을 떠났는데도 쓸쓸
한 표정도 짓지 않고, 다쓰코의 방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밤 9시가 지났을 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왔구나.”
다쓰코는 싱긋 웃고 수화기를 들었다. 나쓰에의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다쓰코? 나야.”
“나라구? 무슨 일이야?”
“저, 요코가 없어졌어.”
“그래?”
“일단…… 경찰에 신고는 했지만 어떡하면 좋을까?”
“어떡하다니? 왜 요코가 없어졌다는 거야?”
“만약, 요코도 루리코처럼 된다면…….”
나쓰에의 목소리가 흐느껴 우는 목소리로 변하는 것을 듣고 다쓰코는, 
“요코는 여기에 와 있어.”
하고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가볍게 혀를 찼다.
“어머! 정말이야? 지독한 다스코, 왜 빨리 나에게 알려 주지 않았어? 너무해, 너무해.”
나쓰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다쓰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보세요, 다쓰코, 듣고 있어?”
“지독한 사람, 지독한 사람이라고 들리고 있어.”
“어머, 나쁜 사람이야. 나 지금 곧 찾아가도 괜찮겠어?”
“지금은 곤란해. 아침 연습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나지 않으면 안되니까. 요코는 지금  자
고 있는걸. 어디로도 도망가지 않을 거야. 내일 보내 줄게.”
“하지만 요코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안심하고 잘 수가 없는걸.”
“요코는 말이야,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  않았으니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냐?”
“…….”

“지난밤,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었어.”
아침 식탁에서 다쓰코가 요코에게 말했다.
“그래요?”
요코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이 다쓰코의 얼굴을 보았다.
“엄마가 걱정해서 울고 있었어.”
“울고 있었어요? 엄마가요?”
요코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이 젓가락질을 멈췄다.
“울도록 내버려두는 게 좋아요. 그런 엄마는 말이야.”
다쓰코는 눈웃음을 쳤다.
“울었다면 불쌍해요.”
“하지만 요코를 화나게 했지 않아?”
요코는 자기가 얻어온 아이라는 것을 알고 집을 나온 것은  아닌가 하고, 다쓰코는 지난 밤
부터 그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꾸지람을 들은 것은 아니에요.”
“그럼, 왜 아줌마 집으로 와 버렸어?”
“…….”
요코는 어제의 일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러나 나쓰에에게 목이  졸렸던 일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꾸지람을 듣지 않았는데도, 말하지 않고 집을 나왔다는 것이 이상하구나.”
‘역시 요코는, 자기가 얻어온 아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는지도 모른다.’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요코의 모습에 다쓰코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아니요, 오늘 돌아가겠어요.”
맑고, 밝고, 분명한 목소리였다.
“오빠하고 싸웠니?”
“싸우지 않았어요.”
“친구들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었니?”
“아무 말도 듣지 않았어요.”
“그래?”
다쓰코는 요코의 눈을 들여다보듯이 하며 물었다.
“요코, 아버지 좋아?”
“좋아요.”
“엄마는 어때, 좋아?”
“좋아요.”
다쓰코는 요코의 눈에 희미한 그늘이 지는 것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빠는 어때?”
“너무 좋아요.”
요코는 방긋 웃었다.
‘도대체 이 아이는 왜 집을 뛰쳐나온 것일까?’ 
평상시라면 다쓰코는 꼬치꼬치 캐묻는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코처럼 천진난만한 성질
을 가진 아이가 집을 나온 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원인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밝혀두고 싶었다.
‘나쓰에에게 듣는 편이 손쉽지 않을까?’
식사를 끝낸 다쓰코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줌마, 우리 엄마 좋아요?”
요코의 눈이 진지했다.
“글쎄…….”
다쓰코는 요코의 진지한 눈에, 성실하게 대답하여 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요코의 엄마는 나도 좋아한단다. 하지만 싫은 데도 조금은 있어.”
“전부 다 좋지 않아요?”
“인간은 누구라도 좋은 점이랑, 나쁜 점이 있는 법이야.”
“아줌마도 그래요?”
“그야, 물론이지.”
“하지만 아줌마는 전부 좋은걸요.”
“네가 나를 기쁘게 해주는구나.”
다쓰코는 정말로 기쁜 듯이 웃고는 다시 말했다.
“하지만 말이야, 자신이 어떤 사람이 좋다고 생각해도 그 사람이 반드시 좋은 사람은 아니
란다. 그 반대로, 싫은 사람도 꼭 나쁜 사람은 아니거든.”
“왜요, 어째서요?”
“싫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더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야.”
‘일학년짜리 요코에게는 어려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군.’
다쓰코는 담배를 피우면서 어떻게 설명할까, 하고 궁리했다.
“잘 모르겠어요.”
“요코, 잘 들어봐. 누구든지 싫어해서 남의 욕만 하고 있는 사람이 요코의 친구 중에도  있
겠지. 그렇지? 그럴 때는, 그러한 욕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야.”
요코는 꾸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요코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좋아하지?”
“응, 대개 좋아요. 아줌마는?”
이러한 질문을 받고 다쓰코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줌마도 누구나 좋아하지. 하지만 그 경우는 그 사람들이  아줌마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
기 때문이지. 인간이란 별로 영리한 동물이  아니야. 그렇게 친절한 사람이 조금 싫은  일을 
하면 금방 싫어지게 되는걸.”
요코는 눈을 깜박깜박했다.
“요코도 엄마가 언제나 다정하게 해주다가도, 단 한 번 싫은  일을 하게 되면 싫어지게 될
지도 모르지 않니?”
저도 모르게 요코가 크게 꾸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줌마는, 어제의 일을 전부 알고 있는 것 같아. 정말이야. 엄마는 쭉 나에게 상냥하게 대
해 주었어. 그리고 싫은 일은 어제 꼭 한 번 있었는걸.’
요코는 갑자기 나쓰에가 그리워졌다.
“인간은 조금 싫은 일을 참지 않으면 안 된단다. 싫은  일이 있을 때마다 아줌마의 집으로 
왔다가, 또 이 아줌마의 집이 싫어지면 이번에는 어디로 가지? 거기도 싫고 여기도 싫고, 그
러면 점점 갈 곳이 없어진단다. 그래서 사람은 자살을 하기도 하는가봐. 자살한다는 것이 무
엇인지 알고 있니?”
“알고 있어요. 자살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독을 마시고 죽어 버리는 것이지요.”
다쓰코는, 일학년짜리 요코를 상대해서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자신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여하튼, 조금 싫은 정도의 일은 참아야만 해.”
“아줌마도 싫은 일이 있어요?”
요코가 반문했다.
“그럼 있지. 싫은 일이랑 슬픈 일도.”
다쓰코의 얼굴이 문득 어두워졌다.
다쓰코는 지난 밤 나쓰에의 전화하는 상황으로 보아서는 아침 일찍이 요코를 데리러 올 줄 
알았다. 그러나 7시가 지났는데도 전화조차 오지 않았다.
다쓰코는 나쓰에가 어떻게 하룻밤을 지냈는가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나쓰에는 요코의 행방을 알고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요코가 다쓰코에게 어제 일어났
던 일을 고자질했다고 생각하자, 부끄러워서 몸이 움츠러드는 것 같았다.
“요코가 얻어온 아이예요?”
하고 예리하게 물어 보았던 도루의 말도, 결국은 요코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을 나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나쓰에는 그 일에도 화가 치밀어 올라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도루 때문에 사이시의 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요코를 지금과  같이 키우지 않으면 안된다
고 생각하니까, 게이조에 대한 미움이 더욱 커지는 것 같았다.
어디에도 보낼 수 없는 요코를 생각하자 자신과 도루의 장래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린것이 벌써부터 가출을 하다니…….’
그 밝고 꾸밈성이 없는 요코의 마음 깊숙이에 무엇인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나쓰에는 하룻밤 사이에 요코에 대한 마음의 거리가 생겼다.
그와 같은 나쓰에의 심정을 다쓰코는 물론 알 리가 없었다.  나쓰에가 식사 준비를 하고 있
는 동안에 밖에 차 멈추는 소리가 났다.
“요코다!”
창을 열고 밖을 보고 있던 도루가 현관으로 뛰어나갔다. 하룻밤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나쓰에
는, 눈 아래가 조금 거무스레해서 험상궂은 표정이 되어 있었다.
“어머, 다쓰코, 폐를 끼쳐서 미안해.”
맞이하러 나온 나쓰에는 머리를 숙였다.
“엄마!”
요코가 신발를 내팽개치듯이 벗어던지고 나쓰에의 허리를 꼭 감싸 안았다.
“요코.”
그것은 어제밤 나쓰에가 미워하고 있었던 요코가 아니었다.
나쓰에는 저도 모르게 요코를 껴안고서 눈물을 머금었다. 도루가  집어삼키듯이 그 두 사람
의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착, 착, 착, 착.”
다쓰코는 연극의 막이 끊어질 때 치는 딱따기 소리를 입으로 흉내내면서 싱긋 웃었다.
이 집에 어제 이후로 무슨 일이 생기기 시작했는지 알지 못하는 다쓰코에게는 다만 감동적
인 연극의 한 막에 지나지 않았다.

모두 외출한 후 나쓰에와 다쓰코는 페치카 옆에 마주 앉았다.
“벌써부터 싫어하다니, 어머니로서 자격이 없는 것 아냐? ”
다쓰코는 요코의 기운을 북돋아 주려는 듯이 밝게 웃었다. 거무티티해진 눈 주위랑, 왠지 침
울해 보이는 나쓰에의 모습에 다쓰코는,
‘직접 낳은 자식처럼, 걱정하고 있었구나.’
라고 생각되어 깊이 감동하고 있었다.
“요코도 가출할 정도로 컸다고 생각하니까, 믿음직스럽지 않아?”
“…….”
“요코는 정말로 믿음직스러운 아이야. 무엇  때문에 아줌마의 집으로 왔냐고  물어 보아도 
눈곱만큼도 꾸지람을 들었다고 말하지 않았는걸.”
“…….”
의심스러운 듯이 나쓰에는 다쓰코를 보았다.
“엄마에게 꾸중을 들었느냐, 도루하고 싸움이라도 했느냐고 물어 보아도, 누구하고도  싸우
지 않았고, 꾸지람도 듣지 않았다고 했어.”
“…….”
“일학년짜리가 가출을 해서 감탄했지만, 고자질이랑 험담도 하지 않는 아이인 것에도 조금 
놀랐어.”
다쓰코의 말이 거짓인 것 같지는 않았다.
나쓰에는 요코의 목에 손을 댔던 어제의 모습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문득 ‘살인 미수’라는, 흔히 신문기사에 보이는 문자가 크게 다가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다쓰코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나쓰에는 몰래 안심했다.
“계집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조잘조잘 남의 험담을 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 같은데, 도대체 
그 아이는…….”
‘어떤 부모의 자식일까?’
다쓰코는 무심코 입에서 그 소리가 나올려고 했다.
7년 전, 나쓰에가 요코를 낳았다고 했을 때부터 다쓰코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 주었던 것
이다.
“좀 바보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너무 영리한 것인지…….”
“글쎄, 어떤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
나쓰에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하간 요코라는 아이는 생각이 깊은 아이 같아. 머리도 영리하고, 줏대도 확실하게  갖고 
있는 아이야.”
“그렇지도 않아…….”
다쓰코가 요코를 칭찬하는 말에, 나쓰에는 점차 마음이 무거워졌다.
요코가 어제의 사건을 다쓰코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에 나쓰에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
다. 그러나 지금은 솔직하게 모든 일을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었다.
“주인양반도 걱정 많이 했지?”
“그랬겠지.”
‘사이시의 자식을 뭣 때문에 걱정하겠어?’
“나쓰에, 피곤해 보이는구나. 잠을 설쳤어? 요코를 어제 돌려 보낼 걸 그랬나?”
다쓰코는 나쓰에의 우울한 표정을 다만 피로해서 그렇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제18장  파란 불꽃

제18장 

파란 불꽃


“원장 선생님, 어떻게든 설 전에 퇴원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입원환자의 이와같은 호소는, 매년 12월이 되면 꼭 몇 번씩 듣는 소리였다.
오늘도 세 사람의 환자로부터 그와같은 애원을 들은 게이조는 뭔가에 쫓기는 것 같아서 금
세 지쳐 버렸다.
일이 끝났는데도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 기분도 나지 않고  해서, 원장실에서 멍하니 담배를 
손에 들고 있었다.
피곤한 원인이, 입원 환자에 관한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난밤에 한잠도 자지 않은 것  같
은 나쓰에의 침울한 표정이 어느 사이엔가 게이조의 머리에 확실하게 떠올랐다.
‘그토록 요코를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나쓰에가 요코의 출생을 알았다고는, 게이조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요코가 허락도 받지 않고 다쓰코의 집에 갔던 원인을 게이조는 나쓰에의 말대로 믿고 있었
다.
“내가 오늘 조금 심하게 요코를 꾸짖었어요. 나에게 심하게  꾸지람을 당했던 일이 전에는 
없었기 때문에 슬퍼졌는지도 모르겠어요.”
나쓰에는 그렇게 게이조에게 말했던 것이다.
게이조는 요코가 다쓰코의 집에서 잠자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난 이후부터는 안심했다. 그보
다도 도루가, 
“요코는 데려온 아이인가요?”
하고, 아버지인 자기를 강하게 책망했던 일에 마음이 상했다.
‘도루와 요코는 어떤 일이 있어도 친남매로서 지내지 않으면 안된다.’
게이조는 새삼스럽게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그리고 도루에게 의심을 갖게 했던 태도를 
버리고, 더욱 요코의 아버지답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잠자리에서 몇 번이고 스스로를 
일깨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게이조의 마음은  도루의 예리한 말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쓰에가 요코의 출생을 알아버린 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더욱이 오늘 아침 돌아온 요코가 나쓰에에게 달라붙어 두 사람이 서로 껴앉고 있는 것을 게
이조는 보았다.
그때 게이조는,
‘정말로 진짜 모녀 같다. 이렇게 나쓰에는 요코를 사랑하고 있다. 만일 요코가 사이시의 아
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하고 생각했다. 
어제 나쓰에가 알아 버렸던 일을, 게이조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게이조
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나쓰에를 생각하자, 사이시의 아이를 기르게 한 자신의 잔인함
을 다시 한 번 책망당하는 느낌이었다.
피로가 병원의 일 탓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더욱더 게이조는 집에 돌아가는 것이 마음
에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겨우 결심하고 돌아가려고 생각하고  일어섰을 때 전화벨이 울렸
다.
수화기를 들자,
“삿포로의 다카키 씨로부터 전화입니다.”
하고 교환수가 말했다.
“아, 쓰지구치인가?”
수화기를 통해 여전히 씩씩한 다카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아, 잘 있었나? 뭔가 급한 일이라도 있는가?”
“흥, 달갑지 않다는 말투로군. 용무없는 전화라고 하는, 멋진 전화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구
나.”
매우 기분좋은 다카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끌리는듯이 게이조도 미소지었다. 피곤이 풀리는 것 같았다.
“잘 지내지?”
다카키가 물었다.
“아, 잘 있고 말고.”
“잘 있다고 해도 어차피 너는 활기에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겠지. 병원은 어때?”
“응, 덕분에 너무 잘 되고 있지.”
“잘 되고 있다니 다행이지만, 어쩐지 의사나 중이 잘 되는 것이  언짢단 말이야.”
“…….”
“하긴, 잘 된다고 해봤댔자 건강보험 환자로는 창고를 지을 만큼 벌지 못하겠지.”
“아아, 중노동이야. 오늘은 내과의 외래만 해도 400명 가까이 왔어.”
다카키는 지금까지 삿포로에서 전화를 걸었던  적이 없었다. 게이조는 무슨  용무로 전화를 
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400명이라니? 7시간에 400명이라면, 한 시간에 60명을 봤단 말인가?  한 사람당 1분 꼴이
군.”
한 통화 끝나는 신호가 들렸다.
“아니, 내과의 외래는 두 사람이 보고 있어. 주사랑 투약만 하는 재래환자도 있으니까, 1분
에 한 사람을 진찰하는 것도 아니지.”
게이조의 고지식한 대답에 다카키가 웃고서 말을 이었다.
“변함이 없는 놈이구나. 그런데, 어때? 안과의 진료기구는 어디에 팔아넘겨 버렸나?”
게이조는 희미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야, 아직 있는걸.”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전화했어.”
일없이 전화했다는 말을 다카키는 이미 잊고 있는 것 같았다.
“무라이란 놈이 봄에 퇴원할 모양이야. 그놈, 지금 삿포로에  잠깐 와 있지. 개업하는 것은 
아직 빠르겠지? 몸은 어떻든 돈이 없거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먼저 자네에게 의논해 보고 싶었네. 다시 안과를 열기가 힘들겠지만.”
곧바로는 대답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벌써 그렇게 좋아졌나?”
“그런 모양이야. 가을에 자연기흉이 일어나서 자칫 죽을 뻔했었지? 재미있는 것은, 그것 때
문에 항생제로 치료하여 작아진 공동이 메워져 버렸어.
“아아, 때때로 있는 예이지.”
“요사이 2년 정도는 무균이었고, 살도 쪄서 말이야, 퇴원 이야기가 몇 번인가 나올  정도였
다네. 자연기흉의 덕택으로 끝마무리가 잘 된 것 같아. 억세게 운이 좋은 놈이지, 무라이 말
이야.”
“…….”
“아무튼 생각해 보게. 곧바로 대답할 수 없을 테니까.”
“그래, 사무장하고 의논해 보지.”
수화기를 놓자, 게이조는 이상하게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밖은 캄캄해졌다.
등불이 비추는 곳만이, 눈이 내리는 것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 춤을 추고 있는 듯이 눈이 난무하고 있었다.  게이조는 조금 전의 전화가 다카
키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게이조는 그러한 일이 쓸쓸했다. 조금 전 전화로는 다카키다운 솔직함이 없었다. 별  용건이 
없는 전화라고 생각하고 말하고 있는 동안에 이야기에 말려든 것 같아서 뒷맛이 개운치 않
았다. 그것은 배신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게이조는 중요한 일일수록 입밖에 내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카키의 호탕하고 담백 솔직한, 뱃속까지 보일  것 같은 솔직함에 게이조는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그런 다카키가 오늘은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끄집어 내지 않았던 일에 더없는 실망감을 느
꼈다.
무라이의 일인 만큼, 그것이 이상하게도 게이조에게는 씁쓸했다.그러나 반면, 위안받는 생각
도 있었다.
한 가지의 말을 하는데도 말할까,  말까하고 항상 우물쭈물 생각하고 고민하는  게이조였다. 
그러한 게이조 입장에서 보면, 언제나 생각했던 것을 거침없이 말하고, 남을 두려워하지  않
는 남자로 보이는 다카키에게, 때로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일도 있는가 하고 생각하자, 다
카키와 게이조와의 인간의 차이가 좁아진 것 같아서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다카키는 솔직하게 무라이를 써달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무라이하고, 나쓰
에의 일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러한 일을 알면서도 무라이의 복직을 바라는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게이조는 오버를 입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아주 가까운 거리에 사무원인 마쓰사키 유카코가 서 있었다.
“웬일이지?”
유카코의 둥글고 작은 눈이, 달라 붙을 것 같은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저…… 무라이 선생 같은 사람은 돌아오시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서 무라이의 동정을 이 아이는 알고 있을까?’
“무라이로부터 편지라도 받았나?”
언제나 한 점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은 격렬한 유카코의 눈빛이 갑자기 흐려졌다.
게이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카코와 함께 원장실로 들어왔다.
“편지 같은 건 받지 않았어요.  조금 전에 교환실에 놀러 갔다가  교환원인 하루코가 잠깐 
자리를 뜨는 동안에 대신 봐 달라고  해서요…….”
“그때 다카키로부터 전화가 온 건가?”
“네.”
“그래서, 도청을 했다는 건가?”
“네.”
유카코는 주눅든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한 짓을 하다니…… 못써! ”
‘이 아가씨는 무라이의 애인일까?’
게이조는 서 있는 채로 유카코를 내려다 보았다.
“원장님, 무라이 선생은 돌아오지 않겠지요?”
“글쎄, 어떻게 될까?”
유카코는 게이조를 쳐다보며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원장 선생님, 원장 선생님은 아무 것도 모르고 계십니까?”
“아무것도 모르냐니, 도대체 무슨 일을 말야?”
유카코는 게이조의 말에 꼼짝도 않고 입술을 깨물었다. 불쌍할 정도로 작은 입술이었다.
전등빛에 유카코의 긴 머리카락이 일부분만 금발의 머리처럼 반짝여 보였다.
“원장 선생님, 모르셨어요? 무라이 선생은 원장 선생님의 사모님을 좋아해요.”
“그래서?”
게이조는 의자에 앉았다.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라니요? 원장 선생님은 상관이 없으세요?”
게이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버너에 불을 붙였다.
파란 불꽃이 조용하게 흔들렸다.
“커피 한잔할 텐가?”
“커피 같은 거 마시고 싶지 않아요.”
유카코는 화난 것처럼 말했다.
“자네는 무라이를 좋아했었나?”
게이조의 물음에 유카코는 찬찬히 게이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허물어지듯이 의자에 앉더
니, 어깨를 부르르 떨면서 울기 시작했다.
“왜 그래?”
게이조는 무슨 의미의 눈물인가, 하고 황당해 하고 있었다.
“야단났군.”
‘남들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게이조는 초조한 듯이 말했다.
“울지 마!”
약간 강한 어조로 말하자, 유카코는 의외로 솔직하게,
“네.”
하고 대답하고 얼굴을 들었다.
‘언젠가 출근 도중에 이 아이가 울었던 적이 있었다. 이 아이는 울보가 아닌가. 도대체  무
엇 때문에 내 앞에서 울었을까?’ 
게이조는 버너의 불을 껐다.
유카코는 꼼짝도 않고 고개를 숙인 채로 손수건을 눈에 대고 있었다.
“아직도 울고 있는 거야?”
“아니요.”
유카코는 손수건을 무릎 위에 놓고 게이조를 쳐다보았다.
젖은 눈이 웃음을 띠기 시작했다. 천진난만한 느낌이 들었다. 
‘이 아이는 지금 몇 살일까? 적어도 26, 27세는 되었을 것이다.’
“왜 울었지? 그러면 내 입장이 곤란해지잖아.”
유카코는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미안해요. 하지만 무라이 선생을 좋아하느냐고, 그렇게 말씀하신걸요.”
“…….”
‘무라이를 좋아해서 울었을까, 싫어해서 울었을까?’
게이조는 이 처녀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어떻든 돌아가. 울게 해서 미안해.”
게이조는 상냥하게 말했다.
“네.”
유카코는 잠깐 고개를 숙인 채로 서 있다가 말했다.
“무라이 선생을 돌아오지 않도록 해 주세요.”
‘무라이는 오게 될지도 모른다.’
반사적으로 무라이의 복귀가, 게이조에게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예
감과 비슷한 것이었다.

제19장  흰  옷

제19장 

흰  옷


설도 지나고, 어느새 2월로 접어 들었다.
달력상으로 보면 봄이 왔어도, 영하 20도를 넘는 날이 몇 번인가 있었다.
“3월 3일 여자아이들의 축제날 말이에요.”
요코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나쓰에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래.”
나쓰에는 화장대 앞에서 피부 손질을 하고 있었다.
“저 학예회에 나가요.”
“그래?”
나쓰에는 쌀쌀맞게 대답하고서, 거울 속 자신의 얼굴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게이조가 지난 밤에 무라이가 4월부터 다시 쓰지구치  병원으로 돌아온다고, 나쓰에에게 알
려 주었다.
게이조는 사무장에게 안과를 다시 열고, 무라이를 복귀시키는 일을 의논하고 있었다. 사무장
은 의외로, 
“그렇습니까? 무라이 선생이 돌아옵니까?”
하고 기뻐했다. 무라이의 이전의 성적을 사무장은 잊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무라이가 폐결핵에 걸렸을 무렵, 안과는 외래환자도 입원환자도 넘칠 만큼 활기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쓰지구치 병원은 내과, 외과, 이비인후과만으로도 충분하게 해나갈 수가 있었
다. 너무 바쁠 정도여서 무라이의 복귀를 위해서 일부러 안과를 개설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
가 그 때문에 병실을 안과에 나눠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안과의 일을 알고 있는 간호사도 
없었다.
‘구태여, 새삼스럽게 안과를 열 필요는 없다.’고 일부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도 냈다. 무라
이를 알고 있는 의사는 외과의 마쓰다뿐이었다. 대부분의 간호사도 무라이를 알지 못했다.
7년 전에 병으로 쓰러진 무라이에 대해서 원장이 지나친 온정을 베푼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
었다. 그러나 내과 의사는 안과를 두는  것을 찬성했다. 고혈압, 당뇨병, 바제도우씨병  등은 
안과의사의 협조가 필요했다.
병원이 잘 되어가고 있는 지금, 약간의 경제적인 부담이 있어도 개설을 단행해야 한다는 사
람도 있었다.
게이조도 내과 의사로서 안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꼭 무라이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게이조는 학생시절부터 다카키 앞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카키만큼 게이조를 칭찬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의젓한 병원장이 되어 있는 지금도, 게이조는 다카키에게 언짢은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나쓰에와 무라이의 사건을 다카키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더 한층 무라이의 
복귀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다시 무라이하고 나쓰에가 가깝게 지내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이 없지도 않았다. 그러나 7년 반이라는 세월이, 게이조의 불안을 조금은 적게 만들었다.

“엄마, 저는요, 학예회에 흰 옷을 입고 춤을 출 거예요.”
 요코는 열심히 거울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쓰에의 모습을 이상한 듯이 바라보면서 말했
다.
“흰 옷?”
나쓰에는 별다른 관심도 없이 대답하였을 뿐이었다.
‘무라이 씨가 돌아왔을 때, 나는 7년 전과 조금도 변해  있어서는 안 된다. 아니, 오히려 7
년 전보다 더 젊고 아름다워져 있어야 한다.’
나쓰에는 손거울을 얼굴 가까이 갖다댔다.
코 밑에 희미하게 한 줄의 옆주름이 보였다. 나쓰에는 그것을 살그머니 손가락으로 눌러 보
았다.
“엄마.”
“…….”
나쓰에는 손바닥으로 가볍게 볼을 두드렸다. 살결은 고왔다. 그러나 탄력이 없는 것 같은 느
낌이 들었다.
요코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지 어떤지 알지 못해 나쓰에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엄마, 흰옷을 만들어 주실래요?”
“흰옷이라니?”
나쓰에는 재차 손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코 밑에 희미하게 나타난 주름에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요코가 사이시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로부터 3개월이 지났다.  나쓰에의 요코에 대한 
기분은 크게 변해 있었다. 이전에는 자랑스럽게만 여기고 있었던 요코의 천진난만하고 밝은 
성격조차도, 지금은 철면피 같다고 여겨졌다.
도루가 신경질적으로 게이조와 나쓰에의 표정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표면상으로  나타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전에는 생선을 먹을 때 제일 큰 것을 요코에게 주기도 하였는데,  지
금에 와서는 어느 사이엔가 가장 작은 것을 주고 있었다.
도루와 게이조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곳에서는 나쓰에의 요코에 대한 태도는 크게 변해 있었
다.
이전에는 요코가 부르면 만사를 제쳐 놓고 요코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한 것이 
지금에 와서는 겉치레가 되었다.
요코를 위해서 뭔가 해야 한다는  기분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나쓰에도  요코는 사실 아무 
죄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끔 요코가 루리코를 죽이고 시치미를  떼고 있는 얼굴로 쓰지구치 집에  파고들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엄마, 3월 3일까지예요.”
“3월 3일? 뭐?”
나쓰에는 무라이가 아사히가와로 돌아오는 것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남편은 나를 배신했어. 이번에야 말로, 나도 남편을 배신해야지.’
게이조를 괴롭히기 위해서는 무라이에게 접근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나쓰에
는 알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요코를 길러왔어.’
그렇게 생각하고, 나쓰에는 요코를 뒤돌아 보았다.
요코가 방긋 웃기 시작했다.
“만들어 주실 거죠, 엄마?”
“뭘 만들어?”
“어머, 흰 옷 말이에요.”
“왜?”
요코는 나쓰에가 자신의 말을 아무것도 듣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저 말이에요, 축제의 학예회에 나가요. 흰 옷을 입고 춤을 추기로 했어요.”
“학예회에서 춤을 춰?”
나쓰에는 처음으로 요코를 향해서 돌아앉았다.
“네, 흰 옷을 입구요.”
“모두 똑같은 옷을 입냐?”
“만들어 입지 못하는 사람도 괜찮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그래, 만들 수 없는 사람도 있겠구나. 몇 사람이 춤추지?”
“이시하라 스미와 노구치…….”
요코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여섯 사람이요.”
“그래?”
나쓰에는 재차 거울 속을 들여다보며 눈썹 주위를 가볍게 맛사지하고 있었다.
“만들어 줄 거죠, 엄마?”
“…….”
‘학예회에 흰 옷을 입고 나갈 애가 요코여서는 안된다. 죽은 루리코여야 한다.’
나쓰에는 요코에게 흰 옷을 만들어 줄 기분이 들지 않았다.
“3월 3일에 입는 거지?”
“네.”
요코는 기쁜 듯이 거울 속의 나쓰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흰 옷이면 어떤 옷이어도 상관 없니?”
“흰 스웨터에 흰 스커트, 흰 양말이어야만 해요.”
“흰 스웨터에 흰 스커트, 흰 양말이라구? 알았다.” 
나쓰에는 기모노의 소매를 팔까지 걷어 올리고, 유액을 듬뿍 문질러 발랐다. 흰 피부가 손바
닥에 달라붙는 것 같았다. 나쓰에는 만족스러운 듯 팔을 가볍게 쥐었다.
“엄마도 학예회에 와 주실 거죠?”
“글쎄.”
이번에는 목덜미에 콜드크림 맛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요코는 아무 말 않고 나쓰에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엄마의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을 요코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갈 수 있으면 가지. 밖에 나가 놀고 있거라. 엄마는 바쁘니까 말이야.”
나쓰에는 목덜미 맛사지에 쉴새없이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쓸쓸하게 방을 나가는 요코의 모습을 거울 속에서 나쓰에는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남편 때문이야. 어느 어미가 자신의 딸을 살해한  놈의 자식을 기를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요코를 친딸이라고 생각하고 길러왔어. 이 분함, 원
통함을 도대체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어느 사이엔가 거울 속에 보이는 나쓰에의 눈이 눈물로 젖어 있는 것을 나쓰에 자신도 모르
고 있었다.

“배고파요. 엄마, 뭐 먹을 것 없어요?”
도루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마자 소파에 드러 누워서 나쓰에에게 말했다.
나쓰에는 손수 만든 도넛을 접시에 수북이 담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조금 늦었구나.”
“네, 학예회 무대를 만드느라 늦었어요. 6학년이라 하는 일이 많아요.”
“수고했구나.”
“내일, 엄마도 보러 오시는 거죠?”
“글쎄, 엄마는 바쁜걸.”
“하지만 요코가 춤을 추는걸요. 구경하러 오세요.”
“…….”
도루는 도넛를 집을 때마다 수건으로 손가락을 닦았다.
“요코는 춤을 잘 춰요.”
“그래?”
“손뼉을 치는 것도, 고개를 숙이는 것도 아주 예뻐요.”
“그래?”
“모두 흰 옷을 입을 거예요. 오늘부터 모두 흰 옷을 입고 춤을 추었어요. 하지만 요코만 다
른 옷을 입고 있었어요.”
“…….”
“요코도 내일은 흰 옷을 입고 갈 수 있지요?”
“물론이지!”
순간, 당황해서 대답한 나쓰에의 표정으로부터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것처럼, 도루는 
도넛을 집어먹던 손을 멈추었다.
“어째서 오늘은 입혀 주시지 않았어요?”
“학예회 때 입으면 되잖아.”
“흰 옷은 있어요?”
나쓰에는 조금 망설이더니,
“오늘 다 만들 거란다.”
“오늘?”
도루는 인상을 찌푸리며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뭐라구요? 아직 만들지 않았다는 건가요? 어디에 부탁했어요, 엄마?”
도루의 눈이 뭔가를 살피듯이 나쓰에를 쳐다봤다.
“아사히 빌딩의 다케다 씨야. 오늘 배달해 주실 거야.”
“그래요?”
도루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깨끗하게, 수건으로 닦고 있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도루.”
“네, 알았어요.”
도루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요코 혼자서만 흰 옷을 입고 있지 않으면 도루가 뭐라고 화를 내겠지?’
나쓰에는, 그러나 변명할 핑계를 준비하여 두었다.
‘다케다 씨가 깜박 하고 잊어버렸다든가, 어딘가에서 잃어버렸다고 하면 되겠지.’
도루의 감정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나쓰에는 요코가  ‘엄마’하고 부르는 
것조차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기분이 되었다.
일부러 옷을 새로 맞추어 줄 기분은 들지 않았다. 요코  혼자만이 다른 옷을 입고 학예회에 
나오는 괴로움을 맛보아도 좋다고, 나쓰에는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아사히 빌딩의 다케다 옷감부에는, 도루도 언젠가 나쓰에를 따라 갔던 적이 있었다.
도루는 요코의 옷을 찾으러 가려고 자전거를 타고 길로 나갔다. 빨리 요코를 즐겁게 해주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아사히카와 역 앞의 아사히 빌딩은, 쓰지구치 집으로부터 4킬로 정도 떨어져 있었다.
다케다 옷감부는 이 건물의 2층에 있었다. 도루는 계단을  하나씩 건너 뛰듯이 하여 재빨리 
2층으로 올라갔다. 손님이 4, 5명 있고, 여점원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도루는 
갑자기 창피한 생각이 들어서 진열되어  있는 옷감을 쳐다보았다. 각양각색의  봄철 옷감이 
천장으로부터 흘러내리듯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때, 점원 한 사람이 도루에게  다가와서 미소지었다. 손님을 따라온 어린애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도루는 약간 딱딱한 표정으로 여점원에게 말했다.
“저, 쓰지구치라고 하는데요, 부탁해 놓았던 옷은 만들어져 있습니까?”
“쓰지구치 씨? 잠깐 기다려 주세요.”
장밋빛 볼을 한 여점원은 상냥하게 말하고 장부를 펴 보았다.  도루가 본 적이 없는 얼굴이
었다.
“쓰지구치 씨는 1월부터 옷을 맞추지 않은 것 같은데요? 잠깐 기다려 주세요. 지금 주인에
게 물어보고 올게요.”
도루는 왠지 불안했다.
‘분명히 아사히 빌딩의 다케다 씨라고 말했는데…….’
그때, 양재용 자를 목에다 늘어 뜨린 여주인이 다가왔다.
“어머, 쓰지구치 씨의 아드님 아니세요? 주문해 놓은 옷을 찾으러 오셨다구요?”
“네.”
일본 사람 같지 않게 생긴 여주인은, 눈을 크게 뜨고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어떤 옷을 맞추었더라?”
“흰 옷입니다”
“흰 옷이라구요? 확실히 댁에서는 금년에 한 번도 오시지 않은 것 같은데!”
하고 여주인은 약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집에 전화를 해서 물어봐 줄까요? 어딘가 다른 상점일지도 모르잖아요.”
도루는 둔기로 머리를 얻어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괜찮아요. 제가 잘못 알았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뭐라고 말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도루는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도루는 자전거에 뛰어오르자 힘껏 페달을 밟았다.
‘엄마가 거짓말을 했어!’
도루는 분노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으면서,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해는 이미 저물고, 3월의 저녁 바람은 차가웠다. 눈녹은 물이 아스팔트 위에 얇게  얼어붙어 
있었다.
평상시의 도루라면 신경질적이고 매사에 조심스러웠다. 얼은 아스팔트길이 얼마나 미끄러지
기 쉽고 위험한가를 모를 리가 없었다. 지금처럼 무턱대고 자전거를 달리게 하는 일도 없었
다.
‘요코, 가엽게도 내일 무엇을 입고 학예회에 나갈까?’
도루는 자신이 차의 왕래가 많은 길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엄마는 정말…….’
도루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슬퍼졌다. 
‘아름답고 상냥하고 고상한 어머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도루는 그런 어머니를  마음속으로 은근히 자랑스러워 했다.
그러한 어머니가 왜 거짓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엄마는 우리 엄마가 아니야.’
그때 도루는 2가의 교차점에 접어들었다. 신호가 빨간불로 변했다. 도루는 미처 그것을 알아
차리지 못했다. 
‘엄마는, 왜 옷을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 그 정도의 돈이라면…….’
눈물을 손등으로 막 씻으려는 찰나였다.
“끼익!”
급브레이크 소리가 났다.
푸른 신호를 진행하던 트럭이 도루의 바로 앞에 멈춰섰다.  앗, 하고 생각하는 순간, 자전거
가 옆으로 미끄러지면서 넘어졌다.
“신호등이 안 보이느냐? 이 바보 같은 놈아!”
트럭 운전사는, 사람을 치이지 않은 것에  안심하고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길이 얼어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도루는 넘어지기만 했지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만일 넘어지지 않고 그대로 트럭에 부딪혔더라면 큰 상처를 입었을 뻔했다.
도루는 다친 무릎을 어루만지면서 일어섰다. 자전거 핸들이 휘어져서, 말을 듣지 않았다.
비틀비틀 자전거를 밀고 사람들의 눈을 피하듯이 인도로 들어갔다.
‘벌을 받은 거야.’
걷고 있는 동안에 무릎의 통증이 더 심해졌다.
‘엄마가 요코의 옷을 만들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벌을 받은 거야!  만약 내가 여기서 트럭
에 치어서 죽었다면, 그것은 도대체 누구의 탓일까?’
도루는 아픈 다리를 질질 끌었다.
‘요코는 이도란 놈에게 돌팔매를 맞고서도 그렇게 거무스레하게 부어올라 있었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않고 이대로 있을 순 없어.’
핸들이 말을 듣지 않는 자전거는 무거웠다.
5리나 되는 길을 도루는 엄마에 대하여 화가 치밀어 올라서 느릿느릿 걸어갔다.
겨우 집에 돌아갔을 때, 나쓰에는 밖에 서서 도루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도루야, 넘어졌구나. 상처가 나지 않았니?”
도루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 않고, 과장해서 더 절룩거리며 걸었다.
“어머, 자전거도 부서지고…… 다친 데를 보여주지 않을래?”
“…….”
“이렇게 어두워질 때까지 밖에 있으면 위험해요. 일찍 돌아와야지.”
“엄마! 내가 아사히 빌딩에 갔다 왔어.”
도루는 자전거를 내던지며 말했다.
“아사히 빌딩에 갔다 왔어.”
하는 도루의 말이 나쓰에의 귀를 울렸다. 나쓰에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어두운 것이 다행이
었다. 나쓰에는 도루가 내팽개친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면서,
“어디에 갔다 왔다고?”
“아사히 빌딩에 갔다 왔어.”
“어머, 옷을 찾으러 갔다 왔니? 그래, 수고했구나.”
“…….”
도루는 앞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게이조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도루는 무릎을 다친 것말고도 손에 긁힌 상처를 입고 
있었다. 나쓰에가 걱정이 되어서 묻는 말을 도루는 분노로 떨리는 입술을 깨물고, 일체 대답
하지 않았다.
“오빠의 귀는, 오늘은 일요일인 거야?”
요코가 도루를 위로하듯이 말을 걸어도, 도루는 무뚝뚝하게 입을 꼭 다물고 전혀 입을 열지 
않았다.
“왜 그래? 도루, 그렇게 다리가 아프다면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돼.”
나쓰에는 도루의 노여움의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했다.
“다리 같은 거 아무래도 좋아요.”
도루는 반항적인 어조로 말했다.
“어째서 화를 내고 있지? 응, 도루? 아사히 빌딩에 가서 옷은 어떻게 했어? 찾아오지 않았
잖아?”
“가지고 올 수가 없잖아요.”
“어머, 어째서?”
“엄마는 거짓말쟁이!”
도루가 울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야? 엄마를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다니…….”
나쓰에는 온화하게 말했다.
“다케다 씨에게 요코의 옷 같은 건 애초부터 부탁해 놓지 않았잖아요.”
“어머! 다케다 씨가 그렇게 말했니?”
나쓰에는 정말로 놀란 것처럼 말했다.
“올해는 한 번도 어머니가 다케다 씨에게 오지 않았다고 아줌마가 말했어요.”
나쓰에의 태도에 도루는 어쩐지 이유를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어머, 엄마가 키가 가장 큰 점원에게  부탁하고 왔어. 주인 아주머니가 아직 점포에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도루를 화나게 해서는 큰일이라고 생각한 나쓰에는 거짓말을 거듭했다.
“키가 큰 사람?”
“그래, 도루 너의 오버를 만들었을 때, 치수를 재 주셨던 분 말이야.”
“아아, 그 사람 말이에요? 계시지 않는 것 같던데요. 그리고 장부상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
았고요.”
도루는 그 이상 어머니를 의심할 정도의 기분은 아직 갖고 있지 않았다.
“어머, 야단났네. 그 점원이 잊어버렸는지도 몰라.  요코, 어떻게 할까? 내일 입어야 할  흰 
옷을 아직 만들지 않은 것 같은데…….”
“흰 옷을 만들지 않았어요?”
요코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는구나. 야단났는걸.”
나쓰에는 요코가 학예회에 나가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요코 혼자만 다른 색깔의 옷을 입는다면, 너무 불쌍해.”
도루는 위로해 줄 방법이 없는 것 같은 얼굴로 요코를 보았다.
“엄마, 요코는 무슨 옷을 입고 가지?”
요코가 얼굴을 들었다. 나쓰에를 책망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글쎄.”
‘자기 혼자만이 옷이 갖추어져 있지 않는데도, 이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요코는 요 며칠 동안 학예회에 입고 갈  옷이 만들어지는 것을 즐겁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
다.
“하지만 모두 흰 옷이잖아. 요코 혼자만 다른 옷을 입는다면 부끄럽겠지?”
도루는 몹시 난처해 하고 있었다.
“나는 부끄럽지 않아.”
“어머, 부끄럽지 않니? 요코는 부끄럽지 않다고 해도, 엄마는 부끄러운걸.”
나쓰에는 요코가 조금도 난처한 표정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다.
“엄마는 부끄러워요?”
“그래. 모두 똑 같은 옷인데 요코만 다른 옷이라면, 엄마가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니?  어째
서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 하고 궁금해 할 거야.”
“그래, 쓰지구치의 어머니를 깍쟁이라고 놀릴지도 모르지.”
“어머, 어쩌죠?”
“돈이 있는데도 만들어 주지 않았다고 모두들 깍쟁이라고 놀릴 거야.”
도루는 요코가 옷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농담을 했다.
“정말이야. 요코도 부끄럽겠지?”
나쓰에는 어떻게든 요코가 부끄럽게 여겼으면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깍쟁이가 아니잖아요. 나는 부끄럽지 않아.”
“꼭 같은 옷을 입지 않아도 좋아?”
“네, 저는 말이에요, 다른 사람과 똑같은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
도루는 감탄한 것처럼 요코의 얼굴을 주시했다.
나쓰에는 안절부절하면서,
‘내일 학예회 때가 되면, 요코도  기가 죽을 것이 뻔한 일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직 
일학년 생이라 어려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고 생각했다.
“배 고파요.”
옷 같은 거 잊어버린 것처럼 말하는  요코가 나쓰에에게는 심히 뻔뻔스럽게 생각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요코는 혼자서 새빨간 비로드 옷을 입고 거실로 나왔다.
요코는 흰 옷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집을 나섰다.
등교 도중에 도루가 말했다.
“불쌍하구나, 요코. 빨간옷을 입어서 부끄럽지 않니?”
도루는 아침이 되자, 다시 요코에 관한 일이 걱정 되었다.
“이 빨간 옷도 예뻐. 학예회에 나가서 열심히 춤을 추는 것이 기쁜걸.”
요코는 정말 기쁜 것 같았다.
벨이 울리고, 실내 운동장에 학생들이 모였다. 운동장의 정면에 무대가 만들어져 있고, 무대 
옆의 붉은 양탄자 층계에 병아리 인형이 장식되어 있었다.
도루는 요코가 걱정이 되어서 일학년 생들이 있는 쪽을  보았다. 일학년 학생들은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앞줄에 앉아 있었다.
다시 벨 소리가 나자 선생님과 학부형들이 줄줄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엄마가 오셨을까?’
도루는 엄마가 보러와 준다면 요코도  기뻐 하겠지, 하고 생각하고 학부형석을  바라보았다. 
나쓰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요코도 사실은 흰 옷을 입고 싶었을 거야.’
하고 생각하니 도루는 왠지 점점 슬퍼졌다.
‘엄마가 와 주셨으면…….’
도루는 기도하는 기분으로 나쓰에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 번째의 벨이 울리자, 박수가  터졌
다. 그리고 검은 색으로 된 막이 열리자, 무대의 중앙에 1학년짜리 남자 아이가 혼자 서  있
었다.
곤색 양복에 흰 깃을 밖으로 낸  일학년생은 양 손을 앞으로 뻗고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그 아이는 꾸벅 절을 하고 넓적다리 주위를  북북 긁었다. 관객이 와, 하고 웃는 소리가  났
다. 그 아이는 무엇 때문에 관객들이  웃는지도 모르고, 막 뒤에 있는  선생님을 보았다. 또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아이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잊고 있는지 아무 말 않고 무대의 한가
운데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막 뒤에 있는 선생님을 보았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 남자아이는 개회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엄마는 아직 오지 않았을까?’
도루는 무대에서 눈을 돌려서 학부형석에서 엄마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
요코 팀의 ‘눈이 펄펄’과 ‘어깨동무 샛길’은 프로그램 세 번째에 있었다.
‘요코 혼자만이 빨간 옷이다.’
도루는 역시 그 일이 걱정되었다. 도루가 일어서서 요코의  담임 선생님인 와타나베 선생님
에게 갔다.
선생님 주위에는 같은 옷을 입은 여자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선생님.”
“왜 그러니? 아, 요코의 오빠로구나.”
선생님은 기분이 좋은 듯 상냥하게 말했다.
“요코가 흰 옷을 입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렇게 말했던 순간, 도루는 눈물이 앞을 가려 주위가 잘 보이지 않았다.
“어머, 도루, 울고 있니? 선생님이 나빴어. 흰 옷이 아니라도 괜찮아. 모두가 학예회 때  새 
옷을 만든다고 해서 기왕이면 흰 옷으로 하면 좋겠다 생각했지.”
선생님은 몇 번이고 사과하고 도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요코 혼자…….”
도루는 선생님이 부드럽게 대해 주니까 왠지 더 슬퍼졌다. 그래서 더 한층 흐느끼며 울었다.
“오빠, 나는 열심히 춤출 거야.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요코가 단호하게 말했다.
도루는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닦았다.
드디어 요코 팀의 차례였다. 도루는 입술을 꽉 깨물고 단단히 주먹을 쥐고, 아직 열리지  않
은 막을 주시하고 있었다.
자신의 일처럼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불쌍하구나, 요코가 불쌍해.’
드디어 벨이 울리고, 막이 스르르 열렸다.
도루는 무심코,
“아, 아.” 
하고 소리쳤다.
새하얀 옷을 입은 여섯 명의 학생들 한가운데 요코의 붉은 옷이 타오르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눈이 펄펄 싸락눈이 펄펄…….”
음악 소리가 나자, 요코 혼자서 눈속에서 춤추고 있는 것처럼 눈에 띄었다.
요코 혼자서 빨간옷을 입도록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생각이 되었다. 도루는 저도 모르
게 방긋 웃었다.
붉은 옷 때문인지 요코가 가장 능숙하게 보였다. 요코는 손뼉을 쳐도, 고개를 한 번  돌리는 
것도 어딘가 다른 학생들보다 귀엽게 보였다.
“저 빨간 옷 입은 아이, 귀엽구나.”
“저 아이가 쓰지구치의 여동생이지?”
“그래, 쓰지구치보다 훨씬 귀엽구나.”
“공부도 사내 아이들보다 잘한다던데?”
도루는 주위에서 소근소근 서로 이야기하는 소리에 더욱 자랑스러워졌다. 무대 위의 요코는 
생긋생긋 웃으면서 힘껏 춤을 추고 있다.
‘잘했어, 요코.’
도루는 왜 자기가 울었던가, 생각하고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어쩌면 저렇게 귀엽지?”
“그렇게 귀여우면, 네 색시로 삼아라.”
“바보 같은 녀석!”
장난치는 목소리도 도루에게는 즐거운 소리로 들렸다.
“저 빨간 옷을 입은 아이, 얻어온 아이라지?”
같은 반 6학년짜리 여학생의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때, 도루는 깜짝 놀라 귀를 쫑긋 세웠다.
“어머, 정말이야?”
“엄마가 그러는데, 쓰지구치 병원의 여자아이는, 아빠도 엄마도 닮아 있지 않기 때문에  틀
림없이 얻어온 아이라고 했어.”
소근소근 서로 속삭이는 목소리가 도루에게는 무섭고 확실하게 들렸다.
‘역시 그런 것인가?’
무대 위의 요코팀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도루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도루는 교문 앞에서 요코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밝은 햇살 아래서 눈이 빙수처럼 녹아 
있었다. 도루는 갑자기 어제 다친 무릎이 아픈 것처럼 맥이 풀렸다.
‘요코가 얻어온 아이라서 엄마가 옷을 만들어 주지 않은 것일까?  그렇다. 다케다 씨의 점
원이 잊었다고 했지만, 엄마는 분명히 거짓말을 한 거야. 그 때문에 오늘 학예회를 보러  오
시지 않았어. 하지만 엄마는 요코를 매우 귀여워하지 않았던가.’
도루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요코를 귀여워해 주지 않았는걸. 역시 얻어온 아이일는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얻어온 아이라 하더라도 귀여워하는 사람도 있었잖아. 정말로 요코가 얻어온 아이라
면, 너무 불쌍해.’
요코가 자기의 친동생이 아니라는 것은, 도루에게는 매우 쓸쓸한 일이었다.
‘저렇게 귀여운 여동생은 어디에도 있지 않아.’
그때,
“오빠” 
하고 요코가 현관에서 달려왔다.
“오빠, 나 기다렸어?”
“응, 요코가 가장 잘했어!”
“그래? 고마워.”
“빨간 옷이 아주 귀여웠어.”
도루는 ‘아주’라는 부분에 힘을 주어 말했다.
두 사람은 눈이 녹아 있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귀여웠어? 좋았어?”
요코는 순진하게 기뻐했다.
“엄마가 보러 왔어?”
“엄마?”
도루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 하고 망설였다.
보러오지 않았다고 하면, 요코가 너무 가엽게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관객이 가득 차 있어서 오셨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어.”
“그래?”
요코는 별로 관심도 갖지 않는 것처럼,
“어머, 솔개가 날고 있어.”
하고 숲쪽의 하늘을 가리켰다.
“정말 그렇구나.”
도루는 학예회를 보러 오지 않은 엄마가 신경이 쓰였다.
“왜 그래, 오빠? 아직도 다리가 아파?”
“응.”
“내가 업어 줄까?”
“바보야, 너는 나를 업을 수가 없어”
도루는 미소지었다.
길모퉁이에 왔을 때였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어.”
쌓아 놓은 목재 뒤에서 검은 코트를 입은 다쓰코가 나타났다.
“어머, 아줌마…….”
도루와 요코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요코, 참 잘했어.”
“아줌마, 보고 있었어요?”
도루와 요코는 다쓰코 아줌마의 양쪽에서 손을 잡고 매달렸다.
“물론, 보고 있었지.”
다쓰코는 요코의 손을 세게 흔들고 나서, 손을 잡은 채로 걷기 시작했다.
“요코가 학예회에 나가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하고 도루가 물었다.
“그럼, 알고 있었고 말고.”
“어떻게요?”
“아줌마는 천리안이거든.”
“천리안이라는 게 뭐예요?”
요코가 물었다.
“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볼 수 있다는 거야.”
“어머, 굉장한 아주머니시군요.”
도루는 다시 시무룩해져서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도루, 무슨 일 있니?”
“네?”
“걸음걸이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아. 다리가 아프니?”
“다리가 아픈 것보다 재미가 없어요.”
“왜? 뭐가 재미가 없단 말이냐? 요코가 그렇게 춤을 잘 추는 것을 보고도 재미가 없어?”
“그것은 재미있지만요.”
“그럼 무엇이 재미없단 말이야?”
“그냥 재미가 없어요.”
“욕심쟁이야. 세상이라는 것은 한 가지 기쁜 것이 있으면 대단한 거야. 아줌마는 맨날 재미
있는 날뿐이야.”
“그래요?”
“도루는 평생 재미없다, 재미없다 하며 살아가는 성미지?”
“하지만 재미가 없을 때는 어쩔 도리가 없는걸요.”
“그래? 만일 도루가 백 엔을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생각하지?”
“손해보았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요코는 어떻게 생각해?”
“백 엔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니까 모르겠지만, 훨씬 전에 십 엔을 잃어버린 적은 있어요.”
“그때 어떻게 생각했어?”
“누군가가 주워서 기뻐했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가 주워서 기뻐했겠다구?”
“누군가가 기뻤다면 좋은 거 아니예요? 거지가 주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말이야, 잃어버리면 손해잖아. 기쁘지 않아, 나는.”
“도루, 십 엔을 떨어뜨리면, 정말로 십 엔을 잃어버린  것이니까 손해본 거야. 게다가 손해
다, 손해다라고 생각한다면, 더욱 손해잖아.”
“아, 그렇군요.”
“백 엔을 잃어버리면 백 엔어치 즐겁게 생각하면 되는 거야. 이 백 엔이 아니라 백 엔이라
서 다행이구나, 하고 말이야. 어떤 사람이 죽을 정도로 배가  고파 있는데, 그 백 엔 덕택으
로 목숨을 건지고, 그리고 나서 점점 좋은 일만 생겨난다고 생각해봐. 얼마나 다행이니?“
“그렇다면 다리를 다쳤다면 손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되겠군요?”
“그래.”
“그럼, 만약에 말이에요, 내가 얻어온 아이였다면, 어떻게 생각하면 좋죠?”
다쓰코는 도루의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도루의 말은 들은 체 만 체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도루, 너는 얻어온 아이가 아니지 않니? 그러한 일은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겠구나.”
‘이 아이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십 엔이나 백 엔을 잃어버렸다는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에 부딪혀 있다.’
“그러니까 만약이라고 했잖아요.”
“그렇구나. 정말로 난처하고 슬퍼지겠구나.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요코는 하늘을 날아가는 솔개에게 정신이 팔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는 것 같았
다. 다쓰코는 조금 안심한 듯이 말을 이었다.
“…… 그렇게 곤란한 일이 정말로 나타날 것인가, 잘 생각해 보는 거야.”
“혼자 생각하는 거예요?”
도루는 어쩐지 불안해서 물었다.
“아무래도 큰일이라면 부모나 선생님에게 의논하는 것이  좋겠지만, 어른이 되면서는 누구
에게도 의논할 수 없는 일에 부딪히는 경우도 생긴단다.”
다쓰코는 자기가 너무나 경박하게 생각되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은 경박하고, 
단순한 처세술을 휘두르고 살아왔다고 생각하니까  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언젠가 요코가 
자기 집에서 묵었을 때,
“언제나 다정하게 해주다가도 한 번 싫은 소리를 듣게 되면 곧바로 싫어져 버리는 것이 사
람의 마음이란다.”
하고 요코에게 가르쳤던 것도,  처세술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은 그 ‘싫다고  하는 
것’에도 여러 가지 질이 있다는 것을, 그때 자신은 느끼지 못했다.
다쓰코는 도루의 말에 너무나 놀라 지금 쓰지구치 집에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있는 중인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나쓰에가 학예회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도, 도루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
았다.
그러나 신경을 쓰기 시작하자 연말에 요코가 가출을 했던 일도, 그 다음날의 나쓰에가 이상
하리 만큼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쓰코는 새삼스럽게 쓰지구치 집에 숨겨져 있는 위기를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세상에 흔히 있는 ‘친부모 자식간이 아닌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
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요코가 사이시의 아이라는 것을, 물론 다쓰코도 모르고 있었다.
“아, 드디어 그 솔개가 숲 저쪽으로 가 버렸어.”
요코가 다쓰코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때까지 뭔가를 생각하고 있던 도루가 말했다.
“남에게 의논을 할 수 없을 때에는 누구에게  의논을 해야 할까?  하느님에게? 하지만 신
이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한 번도 본 적이 없단 말이야.”

제20장  치  장

제20장 

치  장


4월, 도루는 중학교 1년생, 요코는 소학교 2년생이 되었다.
‘드디어, 내일 무라이가 온다.’
저녁식사 후 게이조는 소파에 기대어, 무라이가 온다는 이야기를  나쓰에에게 언제 알려 줄
까, 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나쓰에는 부엌에서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도루는 중학교의 새로운 교과서에 흥미가 붙어서, 요즘 매일 방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고 있
었다.
요코는 거실에서 동화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주위는 조용했다.
어딘가 남의 집 대문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봄이구나.”
게이조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나쓰에가 앞치마를 벗으면서 거실로 들어왔다.
“어머, 2층에 계실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여기 계셨군요?”
“응.”
게이조는 나쓰에를 보았다. 요즘들어 나쓰에의 살결이 아름다워진 것이, 이상하게도  신경이 
쓰였다. 물론 봄이 된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나쓰에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라이와의 재회에 대비하여 매일 정성들여 피부 손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게이조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나 나쓰에의 만져보고 싶은, 곱고 매끈매끈한 피부를 의식하자, 무라이에게는 다시 만나
게 해주고 싶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반면, 무라이와 나쓰에의 재회의 순간을 자신의 눈으로 
확실하게 보고 싶은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요코, 가서 자거라.”
게이조 앞에서는 나쓰에도 요코에게 다정했다. 요코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 남의 말이 들리
지 않았다. 그런 줄 알고 있으면서도 나쓰에는 마음속으로 대답을 하지 않는 요코에게 초조
함을 느꼈다.
“아직 7시 30분 밖에 되지 않았어. 지금부터 자는 것은 너무 빨라요.”
“알았어요.”
“오늘 다카키에게서 전화가 왔었소. 무라이가 내일 오후  2시 50분에 아사히카와에 도착한
다고 하더군.”
나쓰에는 고개를 숙이고 차를 끓이고 있다. 그래서 나쓰에의 눈빛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요?”
“당신도 함께 마중나가는 것이 좋겠는데…….”
“그러죠.”
나쓰에의 목소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게이조는 약간은 안심했다.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나와 사무장, 그리고 간호부장 에구치가 함께 마중나가기로 했어.”
“다카키 씨도 오세요?”
“올거야. 다카키는 무라이의 뒷바라지를 잘해 주니까 말이야. 일단 자리가 안정되면 무라이
의 마누라 될 사람을 물색해야겠다고 말했어.”
게이조의 말에 나쓰에는 움찔했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쓰에는 그 순간, 입에 손을 대고 억지로 하품을 참듯이 하였다. 그것은 마치, 무라이의 결
혼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나 목욕하러 가겠어요”
나쓰에는 일어서서 방을 나갔다.
게이조는 나쓰에가 방을 나가자 갑자기 불안해졌다.
나쓰에가 무라이를 잊지 않은 것처럼 생각되었다. 만약 8년 전, 무라이의 품에 안겨  있었다
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 결혼 후  처음의 부정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남편을 배반한  일이 
나쓰에의 마음속에서 지워졌을 리가 없다.
‘그렇게 간단하게 무라이를 잊을 수 있을까?’
게이조는 책을 껴안듯이 하고 열심히 읽고 있는 요코를 바라보았다.
‘나쓰에와 무라이의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면, 이 아이를 맡을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
을 것이다. 아마, 영원히 만날 수도 없었을 터인  아이이다. 그런데 적어도 부모와 자식으로
서 한지붕 아래서, 7년이나 8년을 살아오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게이조는 갑자기 요코가 가엾게 느껴지기도 했다.
‘만일 내가 떠맡지 않았다면, 요코는 어떤 집에서 어떤 식으로 자랐을까?’
게이조가 일어섰다.
“요코.”
요코는 그때 마침 책장을 넘기는 참이었다.
“네?”
“벌써 8시야.”
“어머, 정말.”
요코는 시계를 쳐다보고 싱긋 웃었다. 그런 순진한 모습이 게이조의 마음을 자극했다.
“엄마는요?”
“목욕해.”
“그래요?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아버지.”
요코가 복도를 뛰어 나갔다. 목욕하고 있는 나쓰에에게 뭔가 말하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게이조는 2층으로 올라갔다.
“I am a boy. I am a girl.”
게이조는 서재에 들어가려다가 멈추어 서서 영어책을 읽고 있는 도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
였다. 20 몇 년인가 전의 자신의 소년시절이 되살아났다.
단단한 판자와 같은 표지의, 새하얀 영어책을 처음 펼쳤을 때의 기쁨이 어제의 일처럼 머리
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도루가 지금 쓰고 있는 방이, 게이조가 중학교 다닐 때 쓰던  방이었
다. 게이조는 무심코 도루의 방문을 열었다.
“공부하고 있구나.”
게이조가 도루의 방에 들어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도루는 의아한 듯이 뒤돌아 보고 말했다.
“뭐, 볼일이 있으세요, 아버지?”
“아냐, 지금 도루가 영어책 읽는 소리에 아버지의 어린시절이 회상되어서 들어와 봤다.  아
빠도 이 방에서 너처럼 공부를 했거든.”
게이조는 새삼스럽다는 듯이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이러한 게이조의 감개무량함에는 개의치 
않고 도루가 말했다.
“아버지, 나 요사이 어머니가 싫어졌어요.”
“어머니가 싫어지다니? 그거 야단났구나.”
게이조는 온화하게 미소지었다. 속으로는,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반항기라고 하는 것이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도루는 뭔가를 말하고 싶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고 아버지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 요코는 얻어온 아이지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도루?”
“하지만 어머니의 행동이 요코에게는 심술쟁이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어른스러운 표정을 하고서 도루는 사색하듯이 말했다.
“어머니가 요코에게 심술궂게 할 리가 없어. 네가 보다시피 그렇게 귀여워해 주고 있지 않
느냐?”
“그래요? 나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아요. 학예회 때,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옷도 만들어  주
지 않았고…….”
“아아, 그것은 점원이 잊고 있었다고 엄마가 말했잖니.”
“그렇다면, 그건 좋아요. 그러나 학예회 정도는 보러 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다쓰코  아줌
마조차도 보러 오셨는걸요.”
도루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말씨가 조금은 어른스러워지는 경향이 있었다.
“엄마 몸이 불편했던 것은 아니냐?”
게이조는, 나쓰에가 사건의 진실을 알았다고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다.
만일 요코의 출생을 알았다면, 나쓰에는  결코 요코를 집에 그대로 있게  놓아 두지 않았을 
터였다. 게이조에게 뭔가 힐문을 했을  터였다. 여하튼, 이렇게 평온한  나날이 계속될 리는 
없었다. 신경질적인 소년 특유의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고, 게이조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또…….”
도루는 말을 머뭇거렸다.
“그리고 또 뭐지?”
“…….”
도루는 입을 다물었다.
“왜 그래? 말을 하려다 그만 두는 건 나쁜 버릇이야.”
“학예회 때, 같은 반 여자아이들이 요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얻어온 아이라고  말했었
어요.”
“그래? 너는 아버지의 말보다 세상 사람들의 말을 더 믿고 있구나.”
“…….”
“네가 걱정이 되면 동사무소에 가서 조사를 해 보거라. 얻어온 아이라면, 필히 양녀로 되어 
있을 테니.”
게이조는 그렇게 말하면서 도루의 책꽂이를 들여다 보았다.
도루가 획 하고 손을 뻗쳐서 그 중의 한 권을 재빠르게 책상 서랍에 넣었다.
“무슨 책이냐?”
“아무것도 아니예요.”
“아무것도 아니라면 감출 필요가 없지 않느냐?”
게이조가 약간 화난 듯이 말하자 도루는 마지못해 서랍을 열었다.
“뭐야, 문집이잖아? 뭐, 이 정도는 숨길 일도 아니지 않니?”
게이조는 훌훌 목차를 넘겼다.
“6학년 때의 문집이니?”
도루는 대답하지 않고, 힐끗 게이조의 얼굴을 살폈다.
‘강물의 수영’, ‘아사히 산에서의 스키대회’, ‘미술시간’, ‘6학년이 되어서’라는 제
목 속에 ‘살해된 여동생’이라는 글자가 게이조의 눈에 들어왔다.
도루의 이름이 그 아래에 쓰여져 있었다.
“여기서는 읽지 마세요.”
“그래?”
게이조는 일어서서 방을 나왔다.
서재에 들어서자 마자 게이조는 숨을 죽이고 도루의 작문을 읽기 시작했다.

<살해된 여동생>
6학년 2반 쓰지구치 도루
나의 형제는 여동생이 한 사람밖에 없다.
하지만 진짜로 말하면 두 사람이었다.
지금 살아 있다면, 루리코는 아마 3학년이나 4학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1943년 7월 21일은 루리코가 죽은 날이다. 어제 7월 21일 날은 손님들이 모여서 떠들썩했다. 
중도 손님도 모두가 술을 마시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즐거운 것 같았다.
루리코가 죽은 날이 즐거운 것인가, 하고 나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동생 요코가, 
“축제는 떠들썩해서 재미있어.”
하고 크게 기뻐했다.
어제는 아사히카와의 축제였기 때문에, 1학년짜리 요코는 틀림없이  축제라고 생각한 것 같
았다. 그러자 엄마가,
“요코야, 축제가 아니야.”
하고 말하면서,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어머니는 부엌으로 나가기도 하고, 손님과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나는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요코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왜 엄마가 우는 거야?”
하고 요코가 물었다.
“루리코가 죽은 날이니까, 생각이 나서 그러시겠지.”
“훨씬, 아주 훨씬 전에 죽었는데, 왜 울지?”
요코가 이상한 듯이 말했다.
“훨씬 전에 죽었어도, 생각이 떠오르면 슬프지. 게다가 루리코는 숲 저쪽의 강가에서  나쁜 
놈에게 피살당했는걸. 그것이 더욱 슬퍼.”
하고 내가 말하자, 요코는 깜짝 놀라서 얼굴이 새파랗게 되었다.
아버지도 엄마도, 루리코가 피살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요코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요코가 너무 창백한 얼굴을 했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실수했다고 나는  생각
했다. 하지만 사실이기 때문에 말해도 상관없는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루리코는 내가 5살 때 살해되었다. 루리코는 3살이었다. 그때의  일을, 나는 그다지 잘 기억
하지 못한다. 다만 강가에 모여서, 모두가 울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나는 루리코가 피살되었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6학년이
다. 최고학년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번에는 루리코에 관한 일을 다시 한 번 차분히 생각해 볼까, 하고  결심
을 했다.
누가 죽였을까, 범인은 붙잡혔을까, 사형되었을까, 무슨 연유로   루리코처럼 어린아이를 죽
였을까, 도대체 어떤 얼굴을 한 놈일까 등등을 생각했다.
그러자 송충이와 같은 짙은 눈썹을 가진, 눈이 부리부리한 악당의 얼굴이 눈에 떠올랐다.
루리코의 얼굴은 완전히 잊었다. 사진을 불단에 놓아 두었지만, 나는 될 수 있는 한 보지 않
기로 했다. 이따금 보아도 내가 보았던 루리코와는 차이가 있는 것을 느꼈다.
나는 숲속의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오랫동안  루리코에 관한 일과 범인에 관해서  생각해 
보았다.
너무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코가 어딘가로 놀러가 버렸다.
루리코가 피살되었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고 생각하자 나는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그리
고,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천국일까, 지옥일까? 정말로 천국이나  지옥이 있는 
것일까?’
등등을 생각했다.
언젠가의 축제 때 6가에 있는 가설극장을 보았더니 지옥의 그림이 있었다. 바늘산으로 귀신
에게 쫓기어 도망쳐 가다가 죽은 사람의 그림이 아주 기분 나빴다. 하지만 루리코는 지옥에
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나쁜 일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정말로 지옥이 있다면, 범인은 분명히 지옥행이다.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아직 모
른다. 뭔가 갑자기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에, 빨리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도록 어른
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요코가 잉크꽃이랑 빨간 클로버를 많이 따서,
“이 꽃을 루리코 언니에게 줄 거야.”
하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 둘은 숲속의 작은 돌을 여러 겹 쌓아서 묘를 만들었다.
이 묘를 만든 일이 왠지 어린애 장난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요코가 모처럼 꽃을 따왔기 때
문에, 묘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요코는 합장하고 오랫동안 뭔가를 빌고 있었다.
“뭐라고 빌었지?”
하고 물었더니,
“루리코 언니가 빨리 되살아나서 요코랑 같이 놀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어.”
하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뭐야, 바보구나. 루리코는 죽어서 불로 태워져서 뼈가 되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날 수가 없
어.”
하고 말해 주었다.
요코는 시치미 뗀 얼굴로,
“다시 살아날 테니 걱정 마. 백 년이 지나면 말이야.”
하고 말했다.
요코는 아직 일학년이니까, 그러한 바보같은 소리를 해도 도리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피살된 동생이 정말로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요코를 나는 죽은 여동생의 몫까지 귀여워해 줄 작정이다.
게이조는 도루의 작문을 다 읽고 나서, 자기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쉬었다.
게이조는 어릴 적에, 다만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냇물에서 헤엄치기도 하고, 책을 읽기
도 하는 등 별 생각없이 지내왔다. 적어도, ‘한 사람의 여동생은 살해되었다.’, ‘또 한 사
람의 여동생은 얻어온 아이다.’ 등등의 복잡하고, 어두운 그림자는 없었다.
게이조는 새삼스럽게 요코를 맡은 자신이 책망되었다.
‘도루의 장래에 어떠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나쓰에의 부정에 노하고, 사이시의 아이를 기르게끔 하고, 요코를 맡았기 때문에 어두운  그
림자가 지금 쓰지구치의 집 전체를 덮고 있는 것을 게이조는 뼈저리게 느꼈다.
‘결국은 복수하려고 했던 자신이 가장 호되게 복수당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내일 아사히카와에 올 무라이의 일이 걱정되었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었다.
‘왜 나는 무라이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허락했을까?’ 
다카키에게 나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은 자신의 바보 같음이 일을 이렇게 만든 것이었다. 
지금 도루의 작문을 읽고 나서, 게이조는 요코를 길렀던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무라이를 다
시 돌아오게 한 것도 큰 후회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니, 더 한층 자기가 바보스럽
게 생각되었다.
‘요코에 관한 일도, 무라이에 관한 일도, 피하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도 있었던 일이
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게이조는 창에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 푸른색의  무거운 커텐을 조금 열
었다.
‘ㄱ’자 모양으로 된 별채에 요코의 방이  있었다. 요코의 방은 이미 어두웠다.  2학년짜리 
요코가 이렇게 어둠 속에서 혼자서 조용히 잠자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자, 게이조는 요코에
게 용서를 빌고 싶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무라이와 나쓰에가 8년 전 그날, 루리코를 밖으로  내보내지만 않았더라면 루리코는 살해
되지 않았다. 사이시와 루리코도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요코는 친아버지인 사이시하
고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겠지.”
이러한 사건의 발단 원인은, 역시 무라이하고 나쓰에에게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졌다.
어두운 정원에 전기 불빛이 획 하고 비치었다. 게이조 부부의 침실에 불이 켜진 때문이었다. 
나쓰에가 목욕을 끝낸 것 같았다.
나쓰에가 이부자리라도 깔고 있는 것인가, 때때로 검은 그림자가 정원에 흔들렸다.
‘나쓰에는 무슨 생각을하면서, 목욕을 했을까?’
게이조는, 지금 나쓰에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라이뿐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생활로부터 어떻게든 빠져나가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하고 게이조는 도루의 작문을 
다시 보았다.
‘그러니까, 요코를 나는 죽은 여동생 몫까지 귀여워해 줄 작정이다.’
라고 한 끝맺음의 말이 게이조 가슴을 심하게 채찍질했다.
‘정말이다. 요코를 사이시의 딸이라고 알고 있으면서,  자신도, 나쓰에도, 도루도, 진심으로 
요코를 사랑할 수만 있다면 이렇게 멋진 일은 없을 텐데…….’

나쓰에는 속옷부터 기모노까지, 모두 새 것으로 입고 있었다. 무라이가 다시 쓰지구치  병원
으로 돌아오는 것을 알고부터 몰래 만들어 놓았던 것이었다.
하오리의 끈도, 게다도 모두 새 것이었다. 그것이 무라이에 대한 나쓰에의 마음이었다.
게이조의 아내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런 용서받을 수 없는 심정을 새 옷으로 
감싸고, 나쓰에는 역 앞에서 차를 내렸다.
벌써 게이조와 사무장이 와서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쓰에의 모습을 보
자, 사무장은 다리를 조금 끌면서 나쓰에에게 다가왔다.
사무장은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조금씩 절었는데, 서 있을 때는 평범하게 보였다.
나이 든 사무장이 걸으면 이상하게도 위엄이 풍겼다. 겸허하면서도 무게 있게 보였다.
“수고가 많으시군요.”
쓰지구치 병원의 사무장으로 계속해서 근무해온 긍지 같은 것이 사무장을 믿음직한  인품으
로 보이게 했다.
“안녕하셨어요?”
나쓰에는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게이조는 힐끗 나쓰에를 보았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간호부장이 
눈인사를 했다. 나쓰에는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간호부장은 아무 말 않고 미소지었다. 과묵하지만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게이조는 나쓰에가 자신이 본 적도  없는 기모노를 입고, 생기가 넘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짙은 남색의 기모노와 하오리에, 흰 레이스로 만든 숄이  나쓰에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
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쓰에의 아름다움에 압도된 것처럼 몰래  엿보고 있는 것을 게이조도 
알았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군.’
게이조는 나쓰에가 무라이하고 얼굴을 대하는 순간의 눈빛을 단단히 보아 두리라 생각했다.
억제해도 억제할 수 없는 사념이, 자연히 얼굴에 스며나와 있는  것을 나쓰에 자신도 잘 알
았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무라이는 틀림없이 놀랄 것이 틀림없다고 상상하기만 해도 마음이 
들떴다.
‘앞으로 1분 남았어.’
나쓰에는 1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길 수가 없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그 1분이 빨리 지나
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장이 무슨 말을 걸어와도 나쓰에는 대꾸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안절부절하는 나쓰에의 
표정을 게이조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조차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기적이 울리고 기차가 플랫폼으로 힘차게 들어왔다.
“아사히카와, 아사히카와.”
확성기로부터 흘러 나오는 소리에 맞추듯이, 기차는 점차로 속도를 늦추고서 드디어 도착했
다. 나쓰에는 핸드백을 단단히 가슴에 껴안고서, 내려오는 인파를 향해 눈을 번뜩거렸다.
“왔어요. 왔어요.”
사무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으로 나쓰에는 얼굴을 돌렸다. 다카키가 손을 들고서 웃음
짓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무라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카키가 사람들에게 밀리듯이 하여, 그 큰 몸을 옆으로 돌려 개찰구를 나왔다.
‘무라이 씨가 왜 보이지 않지?’
나쓰에는 다카키 주위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무라이의 모습은 정말 보이지 않았다.
“야, 이거 정말로 고맙습니다.”
다카키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 뒤에 살찐 남자를 봤을 때, 나쓰에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무라이였다. 거기
에는 큰 키에 날씬했던, 이전의 무라이는 없었다.
“정말로 이번에는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하는 소리는 무라이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부어오른 것 같은, 윤곽이 희미해진 얼굴에는  무
라이의 이전의 아름다움은 없었다.
얼굴도 어딘가 꾀죄죄해 보였다. 7년 반 동안의 무라이의 생활의 피곤함 같은 것이, 그 얼굴
에 잘 나타나 있었다.
‘나는 이런 남자에게 몸도 마음도 맡기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가?’
나쓰에의 눈에는 실망의 빛이 역력히 흐르고, 그 눈이 싸늘하게 커지는 것을 게이조는 재빠
르게 알아차렸다.
“건강은 괜찮습니까?”
게이조는 자신도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서 무라이에게 말을 걸었다.
“출발 직전에 감기에 걸렸었어요.”
무라이는 게이조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나서, 나쓰에에게로 다가왔다.
무라이는 그리웠다는 듯이 웃기 시작했지만,  나쓰에는 점잖을 빼고, 형식적인 인사말을  했
다.
나쓰에가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은, 이렇게 꾀죄죄한 남자가 아니었다.
나쓰에가 몇 번이고 가슴속에 그렸던 무라이와의 재회는 이런  만남이 아니었다. 더 시적이
고, 더 극적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사모님, 또 무라이가 신세지게 되었어요.”
다카키의 상냥한 목소리에 나쓰에는 제 정신이 들었다.
“저야 말로 신세지게 되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하는 자신이 나쓰에 스스로도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이 남자가 호탕한 척한 얼굴을 하고 게이조와 둘이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었던 그 남자인
가? 사이시의 딸인 것을 알면서도 요코를 나의 손에 넘겨 주었던 것이 이 남자인 것이다.’
일행은 병원 차에 함께 타고 나쓰에 혼자만이 역에 남았다.
차가 멀리 사라지자, 나쓰에는 갑자기 몸도 마음도 피로해졌다.
이럴 때, 남자라면 술을 마실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외로움
에 나쓰에는 힘겨워하고 있었다.
4월의 바람이 옷자락에 휘감기듯이 차갑게 불고 지나갔다.
‘속옷부터 겉옷까지 모두 새 옷으로 바꿔 입고…….’
나쓰에는 자기 자신을 비웃으면서, 지금의 자신이 어디를 간다고  해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
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제21장  환  멸

제21장 

환  멸


점심식사를 한 후 게이조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서,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정원
을 보고 있었다. 그때 노크를 하고 마쓰사키 유카코가 들어왔다. 유카코는 가볍게 인사를 하
는 게이조에게 우편물을 직접 전해 주었다.
“고마워.”
유카코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말없이 가볍게 인사하고 나서 방을 나갔다.
유카코는 굳은 표정으로 게이조의 얼굴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무라이가 4월에 복직하고 나서 5개월이 지났다. 유카코의 게이조에  대한 태도가 눈에 띄게 
변했다. 이전에는 원장실에 올 때마다, 뭔가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 기색이  보였었
다. 게이조의 책상 위의 꽃을 바꾸는 것도 유카코였다.
그러나 무라이가 복직하고 나서 유카코는 한 번,
“원장 선생님, 무라이 선생 같은 사람을 왜 또 우리 병원으로 부르셨습니까?”
하고, 힐난하듯이 물었던 적이 있었다.
“자네에게 인사권은 없다고 생각하네.”
게이조는 부드럽게 대답했던 셈이었는데, 유카코는 감짝 놀라 얼굴을 붉히고,
“죄송합니다.”
하고 의외일 정도로 솔직하게 사과하고 방을 나갔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유카코는 사무적
인 용무 이외에는 입을 열지 않게 되었다.
‘무라이하고는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하고 생각하면서도, 이러한 일을 게이조는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았다.
지금도 우편물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유카코의 태도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무라이가 다시 돌아오고 나서 가장 걱정이 되었던 나쓰에의 신상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무라이는 복직 후 곧 감기가 원인인 가벼운 신장염으로 2주일 정도 쉬었다. 그때 나쓰에는,
“결핵 환자는 역시 약해서 쓸모가 없군요.”
하고 차갑게 말하고서, 아무런 동정도 나타내지 않았다.
“가끔은 놀러 오게.”
하고 게이조가 권유해 보아도 무라이는 이전처럼 쓰지구치의 집을 찾아오는 일이 없었다.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군.’ 
하고 요사이는 게이조도 완전히 안심하고 있었다.
다만 나쓰에가 왠지 기운이 없고, 방의 꽃이 시들어도 갈아 주는 일마저도 잊고 있었다.  난
의 파란 잎에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어도, 나쓰에는  그것을 닦아 주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
았다.
“어디 몸이라도 아픈 것인가?”
하고 물어도 말없이 고개를 흔들 뿐이었고, 말수도 적어졌다.
그래서 게이조는 유카코보다도 나쓰에의 일이 왠지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만일 유
카코의 진짜 생활을 알고 있다면, 게이조도 무관심하게 있을 수는 없을 터였다.
“허, 올해는 교토에서 학회가 열리는군.”
게이조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학회의 안내장을 다시 읽었다. 내과 학회는 9월 30일이었
다.
게이조는 종전 후 병원 경영에 정신을 빼앗겨서 본토에는 아직 가본 적이 없었다. 오랫만에 
학회에 나가 보고 싶다고 게이조는 생각했다. 왠지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나쓰에로부터 
잠시 동안 떨어져 있고 싶은 기분도 있었다.

“9월 말에, 교토에서 학회가 있어.”
집에 돌아온 게이조는 옷을 갈아 입으면서 나쓰에에게 말했다.
“어머, 가실려구요?”
“응, 가을에는 병원도 조금 한가해지니까.”
“그러면 다녀 오세요. 교토는 그때가 가장 좋은 계절이잖아요.”
나쓰에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저도 데리고 가주시겠어요?” 
하고 물었다.
“당신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게이조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나쓰에 옆을 떠나서, 오랫만에  혼자가 
되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가야가사키의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요.”
나쓰에의 아버지인 쓰가와 교수는 정년퇴직 후에 가야가사키에 살고 있었다.
나쓰에의 큰 오빠가 가야가사키에서 도쿄의 병원에 근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루와 요코는 누가 돌보지?”
“쓰기코 부부에게 집을 보아 달라고 부탁해 볼게요.”
“쓰기코도 일이 있을 수 있잖아.”
“그 아이는 부탁한 일을 결코 거절한 적이 없어요.”
지금까지 나쓰에는 한 번 말을 꺼내면 필연코 자기의 의지를 관철시키고 말았다.
게이조는 별도리 없이,
“그럼 함께 가기로 하지.”
하고 말했다.
“어머, 데리고 가 주시는 거예요?”
나쓰에는 오랫만에 기분좋게 웃는 얼굴을 하였다. 그 웃는 얼굴을 보자, 게이조의 마음도 가
벼워졌다.
게이조는 마누라의 기분이 좋고 나쁨에 따라서 좌우되는 자신을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쓴웃
음을 지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은 뜻밖에도 한지붕 아래서 사는 사람의 영향을 가장 강
하게 받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게이조는 생각했다.
어떤 철학자의 ‘불쾌함은 최대의 악이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와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조차도 ‘불쾌한 놈’에게는 지독하게 괴로움을  당했음에 틀림없다. ‘그 불쾌
한 놈’이 그의 아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게이조는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나쓰에는 우울해지면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말을 걸면, 말수 적게 응답은 했다. 말
투 또한 평상시처럼 정중하고, 어조도 다정했다. 그렇지만 자진해서 먼저 입을 열려고는  하
지 않아 게이조는  마음이 무거웠다.
‘언제나 요코처럼 활달하면 좋을 텐데…….’
그러나 나쓰에도 본성이 우울한 것은 아니었다.  뭔가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하고 
싶은 말이 가슴속에 소용돌이치고 있는데도, 그 어느 것 하나도  입 밖에 낼수가 없었기 때
문이었다.
나쓰에는 게이조에게,
“왜 사이시의 딸을 기르게 했어요?”
하고 묻고 싶었다.
도루에게는,
“요코는 루리코를 살해한 범인의 딸이야. 뭣 때문에 그렇게 귀여워해 주는 거니?”
하고 말하고 싶었다.
요코에게는,
“거기는 루리코가 앉아 있어야 할 곳이야. 그 옷은 루리코가 입어야 할 옷이야.”
하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라이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어째서, 당신은 그렇게 어딘지 모르게 초라하게 변해 버린 거예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러나 그 어느 말도, 섣불리 입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말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  자기 자신이, 나쓰에는 누구보다도 
가엾게 생각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한 생각으로 우울증에 빠져 있는 나쓰에의 마음을 게이조가 알 리 없었다.
나쓰에는 가야가사키의 아버지를 무척 만나고 싶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나쓰에에게는 아
버지가 단순한 아버지만은 아니었다. 즉, 아버지도 되고  어머니도 되었다. 그러한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서 나쓰에는 여행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선물, 신발, 가방 등을 차례 차례 사서 
갖추어 놓았다.
왠지 집안에도 활기가 넘쳐 흘렀다.  게이조도 이번에는 나쓰에와의 여행을  즐겁게 하려고 
생각했다. 

드디어 출발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날이었다.
그날, 나쓰에는 시내에 나간 김에 미용실에 들렀다. 미용실을 나오니 벌써 4시 반이  지나고 
있었다.
오랫만의 여행을 앞두고 나쓰에는 조금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를 만난다는 것이, 어
린 시절로 돌아가는 뭔가가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쓰에는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갈까?’
어제부터 쓰기코가 집에 와서 자고 있기  때문에, 식사 준비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이전에 
몇 번인가 게이조를 따라서 갔던 ‘치로루’에 들어갔다.
‘치로루’라는 찻집의 주인은 시인이었다. 그의 시인다운  분위기가 찻집에도 감돌고 있었
다. 약간은 혼잡했지만, 찻집 안은 어딘지 모르게 차분한 느낌이었다.
나쓰에는 큰 종려나무 뒤의 테이블에 앉았다. 나쓰에는 혼자서 다방에 들어간 적이 거의 없
었다. 그러므로 왠지 잘 모르는 거리에라도 온 것 같은 신선한 기분을 느꼈다. 
때때로 나쓰에는 주위의 시선이 자기에게  쏠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나쓰에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미소를 보내고 싶은 대담함을 느꼈다.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필요는 없어.’
가져온 커피에 막 밀크를 떨어뜨리려고 할 때였다.
검은 모자를 눈까지 깊숙이 덮어 쓴 신사가 바로 눈앞의  의자에 앉았다. 나쓰에는 그 신사
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닌 생각하고,
“저…….”
하고 말을 꺼내려다 깜짝 놀랐다. 그는 무라이였다.
다섯 달 전에 아사히카와 역에서  무라이를 마중한 이래, 나쓰에는 한  번도 무라이를 만난 
적이 없었다. 깊숙이 들어간 검은 눈이  나쓰에를 향해 미소짓고 있었다. 무라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담배를 입에 물고,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 모습은 5
개월 전의, 어딘지 모르게 더럽고 지쳐서 부어 있던 그 무라이가 아니었다. 얼굴도 몸도  다
른 사람처럼 야무지고, 옛날보다 휠씬 점잖고 고상하고 아름다운 무라이였다.
“어머!”
나쓰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흰 바바리 코트의 허리띠를 꽉  졸라매고 검은 모자를 쓴 무라이를,  나쓰에는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4월, 아사히카와에 왔을 때의 무라이는 요양소를 막  나와서 운동부족 때문에 살이 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신장염을 앓기 시작하여, 얼굴도  보기 흉하게 부어 있었다. 그
러한 사실을 나쓰에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놀라셨습니까?”
무라이는 약간 빈정거리듯이 미소지었다.
“네. 설마, 이런 곳에서 뵈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렇습니까? 나는 병원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대개 여기에서 커피를 마셔요. 맛있지요, 
이 집 커피?”
나쓰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오늘은 퇴근이 빠르시군요.”
하고 겨우 차분하게 물었다.
“지금은 내과 부속의 안과 의사인 셈이라서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무라이는 입술을 약간 삐죽거리며 웃었다.
“몸은 완전히 좋아지셨어요?”
나쓰에의 말에 무라이는 힐끗 한 번 쳐다볼 뿐이었다. 무라이는 허무한 표정으로, 멍하니 담
배연기를 보고 있었다.
‘내 말에 화가 난 것일까?’
나쓰에는 무라이를 역에서 마중하였을 때의 자신의 차가움을 상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무라이 씨는 너무 꾀죄죄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
나쓰에 자신밖에 통하지 않는 논리였다. 나쓰에는 추한 사람을 싫어했다. 생리적으로 받아들
일 수가 없었다. 
보기 흉한 인간을 보면, 자신의 아름다움이 더럽혀지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그것은 임신중의 어머니가 화재를 보면 붉은 반점이 있는 아이를 낳는다고 하는 믿음과 똑
같은 느낌이었다. 
추한 것에는 동정이 없었다. 추함은, 나쓰에에게 있어서 악이기조차 했다. 그러나 그 냉담함
이 없으면 더욱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나쓰에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반대로, 아름다운 것은 무조건 사랑했다. 아름답게 태어난 나쓰에는, 자기 자신이 우상이
었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것은  나쓰에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쓰에는 거울 앞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반하는 것을 유쾌하
게까지 생각했다. 거기에는 자만이 있을 뿐이었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에게 유혹당하는 한, 타인에 대한 사랑은 생겨나지 않는다. 거울은  눈에 
보이는 것을 비출 뿐 마음을 비출 수는  없었다. 여하튼 나쓰에는, 보기 흉했던 5개월  전의 
무라이를 사랑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쓰에의 말을 빌리면, ‘할 수 없는 일’  이
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쓰에는 눈앞의 무라이로부터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무라이 앞에 커피가 놓여졌다. 
“원장님이 학회에 가신다고 하던데요.”
무라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획 하고 커피잔을 돌리면서 말했다.
“네, 전쟁이 끝난 후 처음이래요.”
“26일에 출발하신다고요?”
“네, 마침 그날이 일요일이니까.”
“함께 가십니까?”
무라이와 나쓰에의 시선이 마주쳤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나쓰에는, 왠지 함께 간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다녀오십시오. 그쪽의 가을은 이곳과는 또 다른 것이 있어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무라이는 생긋 웃었다. 그의 웃음에 나쓰에는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몰
랐다. 자신이 조소당한 것 같기도 하고, 무라이가 스스로 쓴웃음을 짓는 것 같기도 했다.
“바보 같은 말을 했군요. 남의 부인이  그의 남편과 여행을 가든지 말든지, 나는  관계없는 
일인데도…….”
그렇게 말하고 무라이는 다시 웃었다.
나쓰에는 그 말을 가슴속에 되새겼다.  나쓰에의 마음이 차차 괴로워졌다. 여행을  중지하고 
싶어졌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여기에 남편이 온다면……?’
나쓰에는 문득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그때 게이조의 표정을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
행을 그만두고 게이조가 부재중에 남편을 배반해 보고 싶은  유혹도 느껴졌다. 나쓰에는 자
기 자신이 무서워졌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핸드백을 손에 들었다.
“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무라이가 차갑게 웃더니,
“도망가는 것입니까?”
하고 두 번째의 담배를 입에 물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불을 붙이는 표정이, 나쓰에의  마음
을 사로잡았다.
“도망가다니요…… 그런 말씀을…….”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막 뵈었는데, 어떻게 돌아가신다고 말씀하십니까?”
문득, 무라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여전히 냉정하군요, 당신은.”
“…….”
“내가 도야에서 돌아왔을 때, 당신을 보고 아, 아사히카와에 다시 돌아오는 게 아니었는데, 
하고 후회했습니다.”
“…….”
“도야에 있었던 7년 동안, 한 번도 문병하러 와 주시지 않으셨지요? 그것은 그렇다치고, 연
하장 이외에 엽서 한 장도 보내 주시지 않았잖아요.”
“미안합니다. 저는…….”
“건강한 사람은 병자에게 차갑게 대하는 법이지요. 건강한 사람은 바쁘지요. 일을 하고  있
으니까요. 그들은 가끔 누워서 쉬고 싶다고들 하지요. 그들에게 늑골 대여섯 개 정도 잘라내
고 7, 8년 누워 있어 보라고 하세요.”
무라이는 화난 듯이 그렇게 말하고 나서 다정한 눈빛으로,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왠지 당신을 구박하고 있는 것 같군요. 사실은 당신과 
의논할 일이 있어요.”
의논할 일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나쓰에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혹시 결혼에 관한 것이 아닐까?’
“무슨 일이지요?”
“여기에서는 좀…….”
무라이는 주저하다가 담뱃불을 비벼 끄고는,
“나갈까요?”
하고 먼저 일어섰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나쓰에는 무라이와 걷는 것이 처음이었다. 나란히 서니까 무라이의 키가 훨씬 더 큰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러한 나쓰에의 느낌은, 물론 게이조가 기준이었다.
무라이는 나쓰에에게 보조를 맞추고서 천천히 걸었다. 옥수수를 굽는 구수한 냄새가 풍겨왔
다. 길모퉁이에서 옥수수를 파는 남자가 무라이를 보고,
“선생님, 부부 동반이시군요.”
하고 말을 건넸다.
“네.”
무라이는 잠깐 모자에 손을 대고 지나갔다.
“저 옥수수 장사는 내 환자예요.”
무라이가 말했다. 나쓰에는 병원의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좀 불안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구를 만나도 상관없다는 기분도 들었다.
“무엇에 대한 의논이에요?”
어느덧 두 사람은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길을 택해서 걸어갔다.
“2, 3일 내에 의논하러 가겠습니다.”
‘2, 3일 내라면, 나는 여행을 하고 있을 텐데…….’
“안 되겠습니까? 여러 가지로 차분히 들어 주셔야 할 일도 있습니다.”
“결혼 문제입니까?”
나쓰에의 걸음걸이가 늦어졌다.
“…….”
무라이가 멈춰 섰다. 나쓰에도 멈춰 섰다. 무라이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쓰에를 훑어  보았
다. 나쓰에는 그 눈에 대응이라도 하듯이 무라이를 쳐다보면서 여행가는 것을 그만둘까,  하
고 생각했다.
그것은 새로운 장난감을 보면, 지금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내던져 버리는 어린아이의 유치
한 점과 꼭 닮아 있었다. 벨을 울리면서 자전거가 두 사람의 옆을 일부러 거의 스칠 정도로 
지나갔다. 그 사람은 음식을 배달하는 젊은 남자였다.
“언제라도 오세요.”
나쓰에는 걷기 시작했다. 그때 무라이가,
“아차!”
하고 낮게 외치더니,
“그동안에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갑자기 볼일이 생각나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몸을 날리듯이 가볍게 돌아섰다. 나쓰에는 그가 가는  것을 어안이 벙벙해서 바라보았
는데, 무라이는 곧 골목을 돌아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나 나쓰에는 무라이가 유카코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뒤를  황급히 쫓아갔던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나쓰에보다 한발짝 뒤에 게이조가 집에 돌아왔다. 마중나갔던 나쓰에가,
“저 여행가지 않겠어요.”
하고 응석 부리듯이 말하며 게이조를 보았다.
“안 가다니? 어찌된 일이야?”
처음에는 혼자서 여행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게이조도, 날이  지남에 따라서 나쓰에와 둘
이서 여행을 하는 것을 점차로  기대하게 되었다. 그것은 여행하기로  결정하고서 나쓰에가 
명랑함을 되찾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왠지 애들이 걱정되어서요.”
게이조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른 채로 거실로 들어갔다.
“이제 오세요?”
식탁을 차리고 있던 쓰기코와 쓰기코를 돕고 있던 요코가 말했다.
“아아, 수고하는군. 모처럼 집을 보아 달라고 쓰기코에게  부탁했는데, 나쓰에가 여행을 가
지 않겠다고 하는군.”
게이조는 애써 온화하게 말했다. 왠지 나쓰에에게 농락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 화가 났던 것
이었다. 
“어머, 정말이에요, 사모님?”
“응. 애들이 걱정되어서……. 미안해, 쓰기코.”
“나는 좋지만, 아저씨가 실망하셨겠어요.”
쓰기코가 가엾은 듯이 게이조를 보았다.
“그래요. 어머니, 다녀오세요. 가야가사키에서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틀림없이 집을  잘 
지킬게요. 그렇지, 요코?”
“그래요, 사이좋게 집을 볼게요.”
“하지만, 갑자기 가는 것이 걱정이 되어서요. 만일, 아이들에게 병이라도 나면 어떻게 해요. 
그만두겠어요.”
나쓰에는 불안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게이조는 어쩐지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어머니가 애들의 일을 맨 먼저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그런데 뭐야, 지금에  와서 
걱정하다니! 나쓰에는 정말로 멋대로군! 이럴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가지 않겠다고 말했어
야 옳아. 쓰가와 선생님 같은 인격자에게서 어쩌면  저렇게 제멋대로인 사람이 태어났을까? 
부모야 어떻든 요코 같은 아이도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로구먼.’
식사를 하면서 게이조는 속으로 중얼중얼 불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순간, 그러한  자기를 
깨닫고 멋쩍게 도루에게 말했다.
“도루, 선물로 뭘 사다 줄까?”
아이들과는 관계가 없는 일로 불쾌해졌던 일을 게이조는 부끄럽게 생각했다.
“저요? 저는 아무 거나 좋아요. 요코는 무엇이 좋아?”
도루는 어린 요코에게 먼저 물어 보았으면 싶었다. 그러한  도루의 기분이 게이조에게도 민
감하게 전해졌다.
“요코에게는 커다란 인형을 사다 줄까 싶은데, 어때?”
게이조는 젓가락을 놓고, 요코의 얼굴을  들여다보듯이 했다. 나쓰에에 대한 화를  요코에게 
상냥함으로써 풀고 있는 것 같았다.
“당케 셴(고맙습니다).”
요코는 익살맞게 아버지의 말투를 흉내내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제22장  태  풍

제22장 

태  풍


게이조와 나쓰에는 원래 일요일 오전 8시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나쓰에가 함께 가지 
않는다고 결정되자, 게이조는 토요일 오후에 출발하기로 했다.
삿포로에 있는 다카키를 만나고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토요일 오후였기  때문에 도루도 
요코도 나쓰에도 함께 역까지 전송하러 왔다.
“처음이군. 모두에게 전송을 받는 일은.”
열차 안에까지 올라온 자기 가족을 보고 게이조는 만족한 듯했다.
“그래요, 모두에게 전송을 받은 여행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에요.”
나쓰에도 기분좋게 맞장구쳤다.
“아버지, 선물은 아무거나 괜찮다고 말했지만, 역시 주문하는 것이 낫겠죠?”
도루가 수줍은 듯이 말했다.
“그렇게 하는 편이 고맙겠군. 무엇을 살까, 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야. 그래,  뭐
가 좋겠니?”
“저는요, 될 수만 있다면 여기 저기의 그림 엽서와 지도를 가져다 주시면 좋겠어요.”
“그건 아주 쉬운 일이구나.”
“그리고 갔던 곳마다의 흙을 조금 봉투에 넣어서, 어디의 흙이라고 써 주시면 좋겠어요. 물
론 가야가사키 할아버지의 집 흙도 말이에요.”
“허, 토양 공부인가?”
“네, 저는 의사 같은 거 되지 않고, 과학자가 될 거예요.”
“지질학자가 되고 싶은 거야? 뭐, 뭐든지 좋지만, 아버지의 병원을 맡아서 경영해 주지  않
겠니?”
나쓰에도 요코도 두 사람의 대화를 미소 지으면서 듣고 있었다.
“병원은 아버지대에서 끝이에요. 저는 싫어요. 병원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싫어요.”
“그래? 병원은 아버지 대에서 끝인가?”
게이조는 조금 쓸쓸한 듯이 웃었다.
“저, 여보, 15호 태풍은 걱정없을까요?”
“뭐가?”
“연락선 말이에요.”
“괜찮겠지. 위험하면 배는 출항하지 않으니 말이야.”
“아버지, 연락선은 몇 시에 타는 거예요?”
도루가 물었다.
“내일 아침 8시에 삿포로를 출발하니까, 아마 오후 2시 40분일거야.”
“여보, 아버지께 제가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대신해서 사과 말씀 전해 주세요.  틀림
없이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나쓰에는 조금 멋쩍은 듯이 말했다.
발차 벨이 울렸다.
나쓰에가 허둥지둥 기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게이조는 카메라에 담았다. 게이조는 열차의 창
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게이조는 열차의 창에서 언제까지나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제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구나.”
나쓰에가 이렇게 말해도 요코는 열차의 후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
었다.

“모처럼의 일요일인데, 비가 오는군요.”
창에 기대어 오후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도루가 나쓰에를 뒤돌아 보며 말했다.
“정말 그렇구나.”
오늘 저녁 때 방문하겠다는 무라이의 전화를 받고 나서, 나쓰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침에 삿포로를 출발하셨지요? 지금 어디쯤에 가 계실까?”
도루는 나쓰에의 옆으로 와서 앉았다.
“글쎄, 2시 40분에 배가 출발한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이제 슬슬 하코다테를 출발할  무렵이
겠지.”
지금 나쓰에는 게이조의 일에는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그것보다도 무라이의  오늘 방문을 
도루에게 무어라고 말해야 좋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도루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야.’
나쓰에의 키만큼 자란 도루는, 중학교 일학년이라고는 하지만, 무엇이든지 민감한 소년이 되
어 있었다.
“아버지가 탄 배가 설마 태풍을 만나지는 않겠지? 아까 라디오 뉴스에서 태풍이 북해도에 
상륙할 거라 말했었어.”
“아버지는 도루와 마찬가지로 신중한 사람이니까, 위험하다고  생각하시면 배를 타시지 않
을 거야.”
“하긴 그렇군요. 하지만 이번 태풍이 아사히카와에도 영향을 미칠까요?”
“아사히카와 측후소에서 아무 말도 없는 것을 보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구나.”
“아무런 경보는 나와 있지 않지만…….”
“아사히카와에는 태풍다운 태풍이 왔던 적이 없으니까,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마. 그것보다 
좀 곤란한 일이 있어.”
“무슨 일인데요?”
도루가 어른스런 표정으로 진지하게 응해 왔다.
“오늘 저녁에 무라이 선생이 오신다고 해서 말이야.”
“무라이?…… 아아, 저번에 도야에서 돌아오신 선생님 말이에요?”
“응, 그래.”
“뭐하러 오지요?”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
나쓰에는 미리 연막을 치고 있었다.
“중요한 이야기라면 아버지에게 하면 좋을텐데……. 곤란한 일이면 거절하면 되잖아요”
“그렇게도 되지 않으니까 곤란하다는 거지.”
“어머니는 잘 모르는 이야기예요?”
“아니, 나도 아는 이야기란다.”
“그렇다면 와도 곤란할 일은 없잖아요.”
도루는 시원스럽게 말했다.
“그것도 그렇군.”
나쓰에는 도루가 아직도 어린아이인 것에  안심하고 웃었다. ‘게이조가 집에  없는 동안에 
남자가 찾아온다.’는 느낌을 도루는 아직 알지 못했다.  나쓰에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게다
가 무라이가 방문해올 무렵, 게이조는 본토에 건너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나쓰에는 해
방감으로 몸도 마음도 자유로워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저녁때 방문할 것이라던 무라이는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설거
지를 끝내도 무라이는 찾아오지 않았다.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흥분과 달콤한 기대를 나쓰에는 아주 오랫만에 맛보고 
있었다.
나쓰에는 온신경을 곤두세우고, 무라이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갈을 밟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일어서자 개 한 마리가 느릿느릿하게 가로질러 가는 것이 대문의 등 아래로 보였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나쓰에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오시지 않을지도 몰라.’
시계는 7시 반이 지나 있었다.
“어머니, 무라이 선생님이 오지 않는군요.”
도루와 요코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렇구나.”
“약속을 해놓고 오지 않다니, 실례가 아니예요?”
“뭔가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 거겠지.”
변명하는 것 같은 나쓰에의 어조에,
“전화 정도는 걸어 주는 것이 예의가 아닌가요? 나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제일 싫
어요.”
하고, 도루는 쌀쌀맞게 말했다. 요코는 라디오의 만담을 듣고 킥킥 웃고 있었다.
“하지만…….”
말을 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나쓰에는 급한 나머지 다리가 꼬이는 것 같았다. 이렇게 당황할 일이 아닌데, 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쓰지구치입니다.”
“아, 저 무라이입니다. 오늘 찾아뵐 작정이었습니다만, 급한 환자가 생겨서요.”
나쓰에는 온몸의 관절이 빠지는 것처럼, 힘이 쫙 빠졌다.
“녹내장 환자입니다. 긴급을 요하는 환자이기 때문에 전화할 틈이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합
니다.”
“그래요?”
“내일 저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 뵙겠습니다.”
무라이는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내일까지의 하루가, 지금의 나쓰에에게는 무척이나 길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녹내장이  쉽지 
않은 병이라는 것을 나쓰에도 알고는 있었다.
황급히 끊은 전화였지만 전화를 준 것만으로도 무라이가 성실하게 생각되었다.
나쓰에는 갑자기 피곤이 몰려드는 것  같아서 평상시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에 
들자 내일 무라이의 방문이 즐겁게  상상이 되었다. 의논할 말이 있다고  했던 것도 만나기 
위한 단순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여하튼, 나쓰에는 게이조를  배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쓰에는 무라이를 이용해서 게이조를 괴롭히고 싶었다. 그러나 요코를 기르게 했던 분함은, 
그것으로 없어질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게이조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무
라이와 맺어진 자기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지 않았다.
복수라는 이름으로 어쩌면 단순하게 정사를 바라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나쓰에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일이었다. 어느새 나쓰에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세차게 유리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쓰에는 퍼뜩 잠을 깼
다.
‘누구일까?’
캄캄한 속에서 꼼짝도 않고 숨을 죽인 채로 나쓰에는 온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다
시 세차게 유리문이 삐걱거렸다. 온 집안의 유리문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다. 사람은  아니었
다. 바람이었다.
바람이 적은 아사히카와에서 살면서 나쓰에는 태풍을 잊고 있었다. 태풍은 나쓰에가 자기를 
알아차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숲이 웅웅 소리를 내며 소용돌이치는 탁류와 같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문을 두드린 것이 
바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금도, 나쓰에의 공포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폭풍이  불고 
있을 때, 누군가가 침입해 있는 것 같은 불안 때문이었다.
복도가 삐걱삐걱 하고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제 곧 나쓰에의  방에 불쑥 무서운 사람 그림
자가 나타날 것같이 생각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집이 흔들렸다. 몹시 거대한 바람뭉치가  집에 와서 부딪쳤다. 하지만 나쓰에는  태풍보다도 
사람이 무서웠다. 역시 누군가가 집 안에 숨어 있는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웠다.
어디선가 나무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다가 조용해졌는가 싶더니 다시  집이 세차게 
흔들렸다. 나쓰에는 어둠의 공포를 견뎌 내지 못하고 조심 조심 머리맡에 있는 전기 스탠드
에 손을 뻗쳤다. 불이 켜지지 않았다. 그때, 암흑을 자르는 것 같은 예리한 빛이 획 하고 나
쓰에의 손을 비추었다. 번개였다.
다시 깊은 어둠이 깃들자, 넓은 집안이 한층 더 음산하게 느껴졌다. 지붕의 양철이 두세  장 
연달아서 바람에 벗겨지는 소리가 났다. 나쓰에는 회중전등을 가지러 가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때, 뒤에서 미닫이가 획 하고 열렸다. 몸을 움츠렸던 순간,
“엄마.”
하고 도루의 목소리가 났다.
“아, 도루니?”
긴장하고 있었던 몸도 마음도, 순식간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무서운 바람이야, 엄마.”
“정말이야. 이렇게 컴컴한데 어떻게 내려왔니?”
“내 집인걸요. 손을 더듬어서 내려올 수 있었어요. 2층은  바람 때문에 흔들흔들해요. 금방
이라도 집이 획 하고 날아갈 것 같아요.”
나쓰에는  겨우 살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회중전등을 들고 왔다. 어딘가 멀리서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다가 바람에 휩쓸려서 없어졌다.
옷을 걸치고, 나쓰에는 도루와 단단히 손을 잡고 요코의 방으로 갔다.
요코는 깊이 잠들었는지 세찬 바람에도 깨지 않았다. 나쓰에는 축 늘어진 무거운 요코를 끌
어 안고 방으로 돌아왔다.
“엄마, 몇 시예요?”
“이제 1시야. 도루도 여기서 자거라.”
“네, 하지만 라디오에서 태풍의 방향을 들을 수 있을까요?”
“정전으로 라디오를 들을 수 없단다.”
“그런가……. 하지만 휴대용 라디오가 있잖아요. 제가 2층에서 가지고 올게요.”
“요코가 자고 있으니까 이어폰으로 듣거라.”
도루의 이부자리를 옆에 깔고, 나쓰에는  요코를 옆에 눕혔다. 도루는 머리맡에  회중전등을 
켠 채로 라디오 스위치를 켰다.
숲이 울부짖는 소리가 세차게 울렸다고 생각하자, 덜컥 하고 땅이 울렸다.
“나무가 넘어졌을까?”
나쓰에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도루가 큰소리를 질렀다.
“어머니! 큰일났어요. 연락선이 뒤집혔대요.”
“어머!”
이어폰을 뽑자 긴박한 아나운서의 말이 흘러 나왔다.
“…… 돌풍 때문에 배가 옆으로 뒤집히면서  여자와 어린아이 대부분이 갑판에 나올  틈도 
없이 선실이 물에 잠겼으며, 그들의 구조는 절망적인 것 같습니다.  27일 오전 1시, 백 수십 
명이 가미이스마치 나나에가하마 해변가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거센 파
도에 휩싸여 익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쓰에와 도루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설마, 아버지가 타고 있는 배는 아니겠지?”
“아버지는 2시 40분에  하코다테를 출발했을 거야.  지금쯤은 내지에서 기차를  타고 있겠
지.”
두 사람은 다시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22시 26분에 좌초되었다는 연락이 들어오고, 22시 39분에 SOS의 무선이 들어와 있습
니다. 그러나 그후 22시 42분에는 통신이 두절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때 배를 출항시킨 걸까?”
도루가 화난 듯이 말했다.
“설마, 이렇게 되리라고는 몰랐을 거야.”
“하지만 작은 배가 아니잖아요. 웬만한 바람으로는 이렇게 되지 않을 거예요. 많은  사람들
을 태우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조심하지 않았을까요?”
도루는 소년답게,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 태도로 분개했다.
“정말로 죽은 사람들이 불쌍하군. 가족들 마음이 오죽했겠니?”
“불쌍한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예요. 죽은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살아나지 않는걸요.”
방송은 계속되고 있었다.
“……침몰한 연락선 제4편 도야호는 26일 14시 40분 출항할 예정이었습니다만…….”
도루가 외쳤다.
“14시 40분? 엄마!”
나쓰에는 숨을 죽였다.
“14시 40분이라면, 오후 2시 40분을 말하는 거예요, 엄마.”
도루는 무섭게 쏘아보듯이 나쓰에를 봤다.
“하지만…… 하지만 아버지가 예정대로 그 배를 타셨는지 어쨌는지 아직 모르잖아.”
나쓰에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고 있었지만 나쓰에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 2시 40분에 타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엄마.”
“…….”
“빌어먹을!”
도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아버지는 조심성이 있으신 분이기 때문에 태풍이 불 때 배를 타시지는 않았을 거
야.”
나쓰에는 게이조가 그러한 위험을 범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늘에 조금 구름만 끼어
도 우산을 갖고 출근하는 게이조였다.
“그렇지만 타셨을지도 모르잖아요.”
“아니야, 틀림없이 타시지 않았을 거야. ”
“탔어요. 틀림없이 탔어요.”
도루에게 그런 말을 듣자, 나쓰에는 문득 불안해졌다. 26일 아침, 삿포로를 8시에  떠났다면, 
당연히 게이조도 도야호를 탔을 것이다.
‘만일 내가 여행을 취소하지 않았다면, 아사히카와를 26일 8시에 출발했을 것이다.  그러므
로 결코 도야호를 탈 리도 없었을 것이다.’
게이조를 배신하고 싶은 마음으로, 무라이를 만나고 싶어서 여행을 취소했던 나쓰에였다.
“도야호의 승선자 명부를 알려 들리겠습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나쓰에와 도루는 움찔했다. 목이 말랐다. 삼킬 침도 나오지 않았다.
“아시히카와 시 순코쵸…….”
맨 먼저 아사히카와라고 낭독하자, 나쓰에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차례차례 이름이 낭독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이름이 끝날 때 마다, 다음으로 옮겨가는 일 
초가 되지 않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나쓰에는 뭔가에 매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에 매
달려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승선자의 이름은 계속해서 낭독되었다. 게이조의 이름은  좀
처럼 나오지 않았다.
“아아.”
나쓰에는 어느덧 기도하듯이 단단히 두  손을 합장했다. 게이조를 배신하려고  했던 자신이 
그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이렇게 살아있기를 원하는데…….’
원한도 미움도 지금은 없었다. 지금,  혹은 죽어있을지도 모르는 게이조에게 나쓰에는  다만 
살아 있어 주기만을 바랐다. 
“아사히카와 시…….”
그렇게 말하고 나서 아나운서는 기침을 했다. 다음을 낭독할  때까지 나쓰에는 불길한 예감
에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귀를 막고 싶었다. 도루하고 요코를 데리고, 혼자서 살아가야 
할 운명이 피할 수 없을 것같이 생각되었다.
“아사히카와 시 미야시다 도리…….”
게이조는 아니었다.
나쓰에는 손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언제 게이조의 이름이 나올까, 하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괴로웠다. 그렇다고 해서 라디오를 꺼버릴 수도 없었다. 쉴새없이  가슴
을 조여 오는 것 같은 고통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신중한 남편이 탔을 리 없어.’
문득 나쓰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의외로  지금쯤 하코다테의 어딘가의 여관에서  자고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생각해 보면, 돌다리도 두들기고 건너가는 게이조가 폭풍 속에 배를 
탔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도루, 아버지는 괜찮을 거야.”
나쓰에가 그렇게 말했을 때,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들려오고,
“아사히카와 시외 가구라마치 쓰지구치 게이조. ”
하고 낭독하는 소리가, 전류처럼 나쓰에의 몸을 꿰뚫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좋지?”
도루가 외쳤다.
“거짓말! 뭔가가 잘못된 걸 거야!”
나쓰에는 믿을 수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무라이를 생각하면서 누워 있었던 그동안에, 게이조는  바다에 가라앉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자기가 여행을 취소했던 것 때문에 게이조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해요? 아버지가 죽었단 말이에요!”
도루는 나쓰에의 무릎을 흔들었다.
나쓰에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비틀거리면서 일어섰다.
다쓰코에게 전화를 걸까, 하고 생각했다. 수화기를 들었더니, 발신음이 없었다.  전화도 벌써 
끊어져 있었다. 외부와의 단절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나쓰에는 처음으로 알았
다. 가장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전화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나쓰에는 누구에게 도움
을 구할 수도 없었다.
‘승선자의 명부에 이름이 써 있다고 해서, 꼭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출항을 하려다가 하선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제  일어났는지 이부자리 위에 요코가 
앉아 있었다. 요코는 나쓰에를 보자 물었다.
“아버지가 죽었다고? 거짓말이지?”
“거짓말이 아니라니까!”
도루가 격한 어조로 말했다.
기차의 창문에서 얼굴을 내밀고, 언제까지나 손을 흔들고 있던  게이조의 모습이 뚜렷이 떠
올랐다. 현관의 문이 삐걱거렸다. 바람 때문인 것 같지는 않았다. 사람 소리가 들렸다.
‘남편일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리고 나쓰에는 현관으로 나갔다. 그러나 한두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사모님, 사모님.”
사무장의 목소리였다. 문을 열자, 사무장 뒤에 외과 의사인 마쓰다와 무라이의 긴장한  얼굴
이 있었다.
나쓰에는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 
어두운 파도 사이로 사라져가는 게이조의 모습이 보였던 순간,  나쓰에는 정신을 잃고 말았
다.

배는 좀처럼 떠날 기미가 없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가요곡이, 선내를 어쩐지 
들뜨게 하고 있었다.
“어째서 배가 출항하지 않는 겁니까?”
게이조는 옆에 있는 상인 같은 남자에게 물어 보았다.
“화물선 때문이거나, 뭐 그런 거겠지요. 곧 떠나게 될 겁니다.”
남자는 읽고 있던 주간지를 말면서, 상냥하게 대답했다.
“혹시 태풍 때문이 아닐까요?”
“태풍은 에사 쪽을 통과한다고 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여행에 익숙한 모양인 그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아무렇게나 드러 누웠다.
“그럴까요?”
“이 배가 아오모리에 도착하고, 두 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 태풍이 올 모양이니까요.”
게이조는 무사태평한 이 남자의 태도에 끌려서 안심했다. 주위를  둘러 보았더니 양주를 마
시는 사람, 잠자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등 모두 나름대로의 자세로 출항이 늦어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눈치는 보이지 않았다.
바람도 평소와 다름없이 불고 있었다.
열차 안에서 잠을 자지 못한 게이조는, 배 안에서 눈을 붙이려고드러누웠다. 얼마나 잤을까. 
씨름대회의 중계방송이 멀리서 들려오더니, 점점 가까워져서 게이조는 아주 잠을 깼다. 
“여기가 어디쯤입니까?”
게이조는 아까 장사하는 사람처럼 생긴 남자에게 물었다.
“아직 출항하지 않았어요.”
“네? 아직 하코다테란 말입니까?”
게이조는 불안해졌다. 갑판에 나와 보니 아까의 바람도 비도 그쳐 있었는데, 파도의  넘실거
림은 더 커져 있었다. 하늘의 붉은 저녁놀이 아름답다기보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갑판에는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떼 지어 있었다. 어디선가 징소리가 울려 펴졌다. 소년이 징
을 두드리면서 게이조의 옆을 빠르게 지나갔다. 게이조는 다시 2등 선실로 되돌아갔다.
“겨우 출항했군요.”
상냥한 그 남자가 엷은 가죽 꾸러미를  폈다. 큰 주먹밥 4개가 번질번질한  검은 김에 싸여 
있었다.
“하나 드시겠어요? 나는 배 안의 식당은 질색이에요.”
과연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맛있는 것 같았다. 간장이 들어  있는  조미료가 발라진 주먹밥
이 게이조에게는 너무 맛이 있었다. 웬일인지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만들어 주었던 주먹밥
이 생각났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은,  역시 여행에서 오는 어떤 감상인가 하고 
게이조는 생각했다.
이윽고 닻을 내리는 체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게이조는 퍼뜩 정신을 차
렸다.
“닻을 내리는 것 같군요.”
“글쎄요, 알아 볼게요.”
하고 아까 그 남자가 일어섰다.
“태풍인가?”
갑자기 게이조의 가슴이 불안하게 뛰었다. 선창은 이미 어두웠다. 선실이 밝아서 어두운  바
다는 보이지 않았다. 좀 지난 후에,
“방금 해협의 파도가 거세져서, 본선은 항내에 임시 정박하겠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
다.”
하고 확성기를 통해 선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엔진이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게이
조는 말할 수 없이 불안했다.  사람들은 아이구 맙소사, 라는  표정으로, 아무렇게나 눕기도 
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게이조는 그것이 이상했다. 그때 다시 확성기에서 소리가 들렸다.
“손님 여러분에게 여쭙겠습니다. 급한 환자가 생겼기 때문에, 의사선생님께서 타고  계신다
면 이 소년에게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게이조는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게이조는  아버지로부터 엄하게 예의범절을 교육받았
었다. 그것은,
“의사는 언제, 어떤 때라도 의사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책을 하거나 영화를 볼 때를 
막론하고, 의사의 7가지 도구를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한다.”
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지프가 달린 가방 속에서 청진기, 혈압기를 위시하여 주사기, 약제, 소형의 회중전등
까지 모두 들어 있었다.
게이조는 지프가 달린 가방을 가지고 소년을 따라서 3등실로 내려갔다. 낭하처럼 되어 있는 
3등 갑판에는 큰 파도가 창을 때리고 있었다. 
환자는 20살 정도의 살이 찐 처녀였다. 게이조는 자신의 몸으로 처녀를 다른 사람의 눈으로
부터 감싸듯이 하고 진찰했다. 위경련이었다.
게이조는 진통제를 놓고 환자의 상태를 살피기 위하여 그 옆에 앉았다. 처녀는 혼자서 여행
하는 것 같았다.
“대단히 수고하십니다.”
서투른 어조의 낯선 소리가 나기에 게이조가 뒤돌아 보았더니,  외국인이 친근감 있게 웃으
면서 미소짓고 있었다. 그는 ‘대단히 수고하십니다.’라고 말 한 다음에 ‘……고맙게 생각
합니다.’를 연발하면서, 자신을 선교사라고 소개했다.
병자는 통증이 점차로 누그러지는지 게이조에게 수줍게 목례를 했다. 이윽고,  통풍관으로부
터 바람이 불어오고, 물이 그 속을 통해서 흘러들어 왔다.
‘아, 위험하다!’
게이조는 자기도 모르게 지프가 달린 가방을 잡아당겼다. 그때 소년이 물통을 가져왔다.
“파도가 거칠어지는군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일어서려는 기색이 없었다. 소년도 침착했다. 그러
나 게이조는 불안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는 결심하고 지프가 달린 가방을 열었다. 스웨터
를 껴 입고, 그 위에 양복저고리와 바지를 덧입었다. 몸에 걸칠 수 있는 것은 전부  몸에 껴
입었다. 해난(海難)도 산과 마찬가지로 얇은 옷은 금기라고, 게이조가 간호사에게 강의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춥습니까?”
선교사가 말했을 때 배가 좌측으로 크게 흔들렸다. 선반에서  누군가의 보따리에 싼 물건이 
떨어졌다.
배의 동요가 점차로 심해져 왔다.
노파가 털썩 하고 엎드려서 울기 시작했다.
게이조는 자기도 모르게 시계를 보았다. 10시가 조금 안되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선원이 연거푸 소리치면서 뛰어다녔다. 게이조는 처녀에게,
“될 수 있는 한 많이 껴 입으십시오. 피부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주의를 주었다. 배가 다시 크게 요동했다. 긴장된  공기가 선실에 가득 찼다. 게이조는 
병원에 관한 일이 언뜻 머리를 스쳐갔다.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는구나.’
게이조는 등골이 오싹했다. 마침내 동요가 심해지고, 게이조는 벽에 등을 꽉 누르듯이 하고, 
책상다리를 하고 편히 앉았다.
선내 방송의 사인이 들어오자 선실은 아주 조용해졌다.
“이 배는 이제부터 나나에가하마 해변에 좌초합니다만, 위험한 상태는 아닙니다. 그러니 승
객 여러분은 전원 구명구를 착용하고, 그대로 선실에 남아 승무원의 지휘에 따라 주시기 바
랍니다.”
선원이 달려와서 선실의 천장에 매달려 있던 끈을 잡아당겼다.
구명구가 와르르 하고 좌석에 떨어졌다. 사람들은 일제히 구명구에 몰려 들었다. 아무도  입
을 열지 않았고, 단지 눈과 손과 발만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게이조는 왠지 다투어 구명구를 잡을 수가 없었다. 선교사도  그냥 앉아 있었다. 그때, 배가 
30도 정도 기울고, 구명구가 하나 굴러서 선교사의 무릎 쪽으로 왔다.
“자, 어서 먼저 가지시죠.”
선교사는 그것을 게이조의 손에 건네 주었다. 게이조는 순간 주저하다가, 또 한 개의 구명구
가 굴러오는 것을 보고, 인사를 잊고 그것을 착용했다.
‘삐걱’하는 큰 소리를 내더니 배는 모래밭에 좌초되었다. 그러자  생각할 사이도 없이 선
체가 기울면서 순식간에 해수가 선실로 흘러 들었다.
이미 사람들은 배의 좌측 계단에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게이조는 한쪽으로 쏠린 다다미
를 단숨에 기어 올라서 계단 입구로 나갔다. 복도 모양의 3등 갑판으로 올라가자 배가 다시 
크게 90도로 기울었다.
게이조는 벽 위에 서 있는 꼴이 되었다. 또 한쪽의 벽은 머리 위에 있었다.
선창에서 소리가 나더니 또 다시 해수가 흘러들어 순식간에  복사뼈까지 물이 찼다. 전등이 
해수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갑자기 가까이서 여자의 우는 소리가 났다. 위경련을 일으켰던 그 여자였다.
“왜 그래요?”
선교사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구명구의 끈이 끊어졌다고 여자는 울고 있었다.
“그거 큰일 났군요. 내 것을 드리겠습니다.”
선교사는 구명구를 벗으면서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은 나보다 젊어요. 일본은 젊은 사람이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게이조는 자신도 모르게 선교사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게이조는 구명구를 선교사에게 양보
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물이 드디어 배까지 차올랐다. 배까지 물이 잠기자, 오히려 게이조의 마음은 차분해졌다. 문
득 정신을 차려보니 야광충이 무늬처럼 파랗게 빛을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 앞에서 야광충은 비정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돌연 꽝 하는 소리와 동시에 마침내 배가 전복했다. 아주 컴컴했다. 떠 있던 발끝이  마룻바
닥에 닿았다. 머리 위에서 계속해서 물이 흘러 들어왔다.
‘여하튼 배 안이다. 코만 내밀고 있으면 틀림없이 산다.’ 곧 꼼짝도 하지 않고 배  속에서 
머무르려고 결심했다. 하지만 게이조는 누군가에게 발을 잡혀서 넘어질 뻔했다. 배 안에  있
는 것도 위험했다.
부서진 창틀에 손을 뻗치자 몸이 떠올랐다. 게이조는 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검은 바다가 무서웠다. 다시 발을 배 안으로 넣자, 또 누군가가 발을 붙잡았다.
게이조는 용기를 내어 창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검은 활 모양의 선체가 눈 앞에 있었다. 
큰 파도가 선체를 향해 달려 들었다. 선체는 세차게 밀어치는 폭포와 같은 물살에 떠밀렸고, 
게이조는 바다로 내던져졌다. 뒤돌아 보았더니, 의외로 배는 멀리 있었다. 
게이조는 어렸을 때부터 비에이 강가에서 헤엄치며 자랐다. 그래서  물은 그다지 무서운 것
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헤엄칠 수 있다는  것이, 큰 파도 속에서는 별로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게이조는 이미 마음 어딘가에서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것은 조용한 체념과 같
은, 살아날 길이 없는 환자의 임종을 기다리는 마음과도 비슷했다.
그러면서도 몸은 살아나려고 있는 힘을  다했다. 게이조는 될 수 있는  한 손발을 움직이지 
않았다.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 두려워서였다.
파도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하면서 바다 위에 떠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게이조는 파도에 정
신을 빼앗겨 세찬 바람을 알아 차리지 못했다.
높이 올려다 보일 만큼의 큰 파도가 게이조에게 덤벼 들었다. 게이조의 몸은 획 하고 한 바
퀴 돌더니 그대로 바다로 잠겼다.
‘아아, 이것이 나의 최후란 말인가?’
눈꺼풀이 파도에 쓸려 따끔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숨이 막혀 왔다.
‘이젠 끝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순간, 게이조는 다시 바다 위로 떠올랐다.
‘도루!’
다시 파도에 휩쓸리면, 이번이야 말로 최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쓰에!’
나쓰에에 잇따라 무라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무라이와 나쓰에의 얼굴이 파도 사이로 겹쳐졌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게이
조는 죽음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리고는 냉정함을 잃었다.
어느덧 게이조는 손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죽음에 직면한 지금, 지위도, 의학도, 아무것도 쓸
모가 없었다. 죽음에 대하여 게이조는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었다.
지금까지 의사로서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보아왔던 터였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의 죽
음이었다. 자신의 죽음이 아니었다. 지금 게이조는 너무나 무력했다.
“앗!”
게이조는 한 길 남짓한 파도가 덮쳐 오는 것을 보았다. 공포가 전신을 꿰뚫었다. 다음 순간, 
게이조는 한 토막 나무 조각처럼 파도에 휘말려 들어  모습을 감추었다. 게이조는 숨쉬기가 
답답해져서, 의식이 혼탁해지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끝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게이조는 문득 정신이 들었다. 쓱  하고 등이 모래 바닥에 닿았다. 
게이조의 몸은 어느 사이엔가 모래사장에 밀려 온 것이었다.
‘이제 살아났다.’
게이조는 힘이 빠져 쓰러질 것 같은  마음을 추스려, 일어서려고 했다. 이대로 여기에  누워 
있다가는 다시 파도에 휩쓸릴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물을 머금어 무거워진 옷이 몸에 달라 붙어  있었다. 게이조는 신음하면서 일어서려
고 안간힘을 다했다. 자세히 보니까, 바로 옆에 2자 정도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다. 게이조
는 그쪽으로 발길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서지지가 않았다. 허리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이조는 기어서 간신히 콘크리트 
벽을 따라 돌아갔다.
‘아! 살았다!’
그렇게 생각했던 순간에 심한 피로가 게이조를 엄습했다.
‘잠들어서는 안된다.’
게이조는 그러나 어느 사이엔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게이조는 등을 때
리는 차가운 파도에 잠을 깼다. 2자 정도의 콘크리트 벽을 넘어서 파도가 밀어 닥쳤다.
게이조는 어둠 속에서 꼼짝도 않고 눈을 뜨고 있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흰 물건이 2~3
미터 앞에 희미하게 보였다. 흰 구명 보트였다. 그 바로  앞에, 발가벗은 흰 몸이 누워 있었
다. 여자인 것 같았다.
‘죽었구나.’
그러나 불쌍하다든가 무섭다든가 하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잠들어서는 안된다.’
게이조는 구명구를 풀어 머리 밑에 베었다. 자세히 보니 게이조의 주위에 여러 명이 쓰러져 
있었고, 난파된 검은 화물선이 바로 가까이에 보였다. 게이조는 저도 모르게 섬뜩함에  몸을 
떨었다.
‘만약 저 화물선에 부딪혔더라면 죽었을 것이다. 어디 상처는 없는가?’
게이조는 자신의 머리에 손을 댔다. 배에서  썼던 보자기가 머리에 찰싹 달라 붙어  있었다. 
가슴에도 상처는 없는 것 같았다. 팔 어딘가가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나 그것도 어딘
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게이조는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자서는 안된다. 자서는 안된다.’
하며 눈을 크게 떴을 때, 게이조 옆에서 회중전등을 든 사람이 움직였다. 게이조는 손을  뻗
쳤다. 회중전등을 든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치려고 했다.
“살려 주세요.”
게이조의 목소리에, 회중전등을 든 사람이 획 하고 몸을 돌려 불빛을 비추었다. 그러더니 그 
사나이는 가까이 다가와서 게이조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게이조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기차의 차창으로 단풍 든 하코다테 산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는 은빛으로 잔잔했다.
‘살아서 돌아가는구나!’
게이조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로부터 반 달이 지나고 있었다. 게이조는 얼굴과  다리에 
긁힌 상처가 있는 정도였고, 다른 사람보다 회복이 빨랐다. 나쓰에와 외과의사 마쓰다가  달
려왔을 때는 지칠대로 지쳐서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외상이 없었기 때문에 회복
이 빨랐다.
살아서 병원에 운반되고 나서 출혈이 심해서 죽은 사람도 있었다.  세 치나 되는 못이 머리
빗처럼 삐져 나와 있는 나무에 머리를 찔린 사람도 있었다.
게이조는 주먹밥을 주었던 붙임성 있는 남자를 생각해 보았다. 그 남자는 살아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1, 2등실의 손님은 살아남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마음 
좋은 남자도 그 어둠의 바다 속에서 죽었는가, 하고 생각하니, 게이조 자신의 생명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천 수백 명의 사람들이 희생된  가운데서 살아남은 것에 대해 
쓰라림과 동시에 진한 감동을 느꼈다.
‘모두들 살고 싶었던 것이다.’
게이조는 자신이 죽은 사람들의 목숨을 인계받아 살아있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어쩌면 자신의 머리를 꿰뚫었을지도 모르는 못이, 근사한 차이로  다른 사람의 머리를 찌르
지 않았다고는 말할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지금 살아서 돌아가는  것이, 단순히 행운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욱 엄숙하고, 더욱 묵직한 목숨을 얻었다고 생각되었다. 
기차 안에까지 곱게 물들일 것  같던 단풍과 아름다운 호수를 지났다.  새로운 생명을 얻고 
바라보는 경치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어느덧 기차는 해안을 달리고 있었다. 바다 안개가 기어오르듯이 솟아 올랐다. 이윽고  바다 
안개는 그 주위를 젖빛으로 물들이며  자욱히 끼이 있었다. 하늘도 바다도  다만 한 색깔인 
젖빛으로 흐려 보였다.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그 거대한 바다가 있음에도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있
어야 할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의 인생에도 그와 같은 일이 있을 것같이 생각되
어, 게이조는 그것이 두려웠다.
오늘 돌아간다는 것을 게이조는 나쓰에에게 알리지 않았다. 갑자기  돌아가서 기쁘게 해 주
고 싶었던 것이었다. 아사히카와에 돌아가서 게이조는 정말로 후회없이 살고 싶다고 생각했
다. 나쓰에를 사랑하고, 도루를  사랑하고 요코를 사랑하고,  그리고 무라이하고도 사이좋게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차는 히가시무로랑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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