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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엄마의 책장

by Casey,Riley 2020.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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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울고 싶고, 엄마도 안아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육아와 살림에 지칠 때면 저자는 책을 펼쳤다. 그리고 글을 썼다. 이 책은 아내와 엄마로 살아가는 저자가 독서를 통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의 기록이다. 그리고 닦아놓은 자리에 누군가 앉았으면 한다. “엄마라는 이름이 버거운 당신, 여기 앉으세요.” 
 
엄마의 책장 
 
 
▣ Short Summary 
 
『엄마의 책장』은 네 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책장은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린 ‘나’를 만났다. 단란한 가족 안에 숨어 있던 아픈 가족사를 고백한다. 두 번째 책장은 ‘아내’로서의 이야기이다. 화성과 금성, 서로 다른 두 개의 우주가 만나 날마다 부딪히고 깨지며 서로를 알아간 시간에 대해 썼다. 
 
세 번째 책장은 ‘엄마’로 사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밖에서 제법 예의 바르고 따뜻하다. 하지만 집에서는 소리를 지르고 별 것 아닌 일로 화를 냈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모습이다. 육아로 인해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픔도 컸지만 덕분에 ‘나’를 만났다. 네 번째 책장은 앞으로 되고 싶은 ‘나’에 관한 글이다. ‘작가’라는 타이틀이 멀어질수록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이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읽는 날로 꽉 채워질 미래에 대해 얘기한다. 
 
▣ 차례 
 
프롤로그_ 엄마의 자리 
 
첫 번째 책장_ 엄마도 아이였어 1. 이야기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2. 들키고 싶은 돌멩이 3. 할머니에게 가는 두 가지 길 4. 끝마다 시립니다 5. 마음이 마음에게 하는 일 6. 어린 나는 울고 있었다 7. 그곳에 가면 오래된 내가 있다 8. 아버지라는 남자 poem_ ‘나’의 깊이가 ‘너’의 깊이다 
 
두 번째 책장_ 아내가 되기까지 1. 어쩌다 순애보 2. 당신을 사랑하기로 했다 
 
- 2 - 엄마의 책장 
 
3. 그 후로 오래오래 4. 농부의 아내로 산다는 것 5. 너무나 다른 별 6. 나의 부러움, 그의 외로움 7. 나를 오해하다 8. 흐린 날, 내 마음의 지도 poem_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세 번째 책장_ 엄마도 울고 싶다 1. 육아서에서 길을 잃다 2. 모두 퇴근하면 엄마는 출근한다 3. 내 안의 오랜 소녀 4. 어디 울 곳이 없었다 5. 시간을 먹고 아이는 자란다 6. 꽃을 외우다, 꽃을 배우다 7.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8. 아이의 말 poem_ 해는 짧고 삶은 그립다 
 
네 번째 책장_ 엄마의 봄날 1. 실패해도 인생은 계속된다 2. 관성의 법칙 3. 책 ‘익는’ 중 4. 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5. 나에게 이르는 여행 6. 누구나 사랑받고 싶다 7. 꽃을 꺾지 않다 8. 보는 아이에서 읽는 어른으로 poem_ 지나간 날들, 지나가지 않은 날들 
 
에필로그_ 다만 오늘 여기 
 
- 3 - 엄마의 책장 
 
  
엄마도 아이였어 
 
마음이 마음에게 하는 일내 말의 역사: 언젠가 남편이 말했다. 처가에 가면 “아니”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다들 습관처럼 쓰는데 자신은 생소하다고. 생각해보니 나는 “그게 아니라…”라는 말을 밥 먹듯이 듣고 자랐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여느 아이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엄마에게 쏟아냈다. “오늘 뒷자리 애가 책상 자꾸 앞으로 밀어서 힘들었어.” “누가 자꾸 나 놀려. 걔 너무 싫어.”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그게 아니라…”로 시작해 다른 아이 편을 들었다. ‘공감으로 들어줄 때는, 상대를 돕기 위해 문제해결 방안 이나 부탁을 들어주는 쪽으로 관심을 돌리기 전에, 상대방이 충분히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하다. -마셜 B.로젠버그, 《비폭력대화》’ 
 
나는 엄마에게 공감 받고 싶었다. 엄마는 왜 그랬을까. 문득 결혼 직후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매일 술에 취해 주정을 늘어놓는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를 피해 고모 댁으로 나섰던 할머니, 그런 부모에 게서 사랑받지 못한 아버지, 그들 모두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의 지친 내면에는 “그랬구나”, “속상하지?” 같은 말이 담길 공간이 없었다. 말그릇이 작았던 셈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말은 엄마를 닮았다. “아니”라는 말은 내 나이만큼 자라서, 누군가의 마음을 괴롭힌다. “이거 할까?”라는 남편의 질문에 “아니”라고 반대부터 하고, 아이들의 의견은 듣기도 전에 “아니”라고 고개를 흔든다. 나는 들을 때보다 말할 때가 더 많았고, 상대의 비방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다. 필요 없는 말은 잘 늘어놓지만 정작 분명하게 말해야 할 상황에서는 물러나곤 했다. 말은 그저 내 생각과 느낌을 전하는 도구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김윤나의 《말그릇》을 통해 새롭게 알았다. 말이 곧 사람이고, 노력임을. 
 
나의 말그릇 다듬기: 말그릇 다듬기 여정에 나섰다. 먼저 내 감정을 돌아보았다. 나는 종종 가슴에 솟구쳐 올라오는 무언가를 느꼈는데(출현), 보통 속상한 감정이었다(자각). 상황을 잘 넘기기도 했지만 (보유), 상대가 편한 경우 화를 냈다(표현). 돌이켜 보면 나는 기분이 나쁘면 나쁜 대로 표현하는 분위기 속에서 컸다. 누구나 그렇게 자신의 감정과 말을 여과 없이 표출하며 사는 줄 알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나는 사람 사이의 관계보다 목표를 더 중요하게 여기며,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목표 지향’과 ‘완벽주의’를 삶의 공식으로 삼아, “아니”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다. 문득 깨달았다. ‘그런데 사실 그 말은 속상함의 겉옷이었구나.’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아니”라며 굳은 표정으로 화를 냈지만, 실은 속상했던 것이다. 속상한 감정이 ‘화’라는 겉옷을 입고 뒤돌아 울고 있으니 잘 못 알아볼 수밖에. 
 
‘목표’와 ‘완벽’으로 가득차 있던 내 삶에 ‘육아’라는 휴지기가 왔다. 첫째 두 돌 무렵 둘째가 태어나자, 육아가 고된 일 같았다. 아이와 함께 눈 떠 하루 종일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밤중 수유까지 하는 삶의 시간표가 무한 반복됐다. 
 
- 4 - 엄마의 책장 
 
묵직한 소리와 함께 깨알 같은 레고 부품들이 침대 밑이며 옷장 아래로 산산이 흩어졌다. 잠시 후 아이는 ‘으앙’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미워! 다 엄마 때문이야!”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곧이어 감정을 가르쳐줄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분에 못 이겨 울어제끼는 아이를 품에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들, 속상하지… 지금 아들은 속상한 거야.” - 김윤나,《말그릇》(62쪽) 
 
바나나를 먹기 좋게 잘라주면 껍질을 엄마가 깠다고 울고, 이불을 덮어주면 이불이 구겨졌다고 우는, 모든 것이 엄마 탓인 시기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아이를 안아주지 못했다. ‘미운 네 살’을 보내며 이유 없이 떼를 쓰는 첫째와 밤낮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둘째 모두를 헤아리기에 내 그릇이 너무 작았다. 
 
어느 날 거울 속에 기름 낀 머리에 늘어진 옷을 입은 내가 서 있었다. 그 무렵 나도 모르게 ‘지겹다’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무엇엔가 불만에 가득찬 첫째가 읊조리듯 그 말을 따라했다. 둘째도 ‘대박,’ ‘어 이없어’와 같은 말을 쓴다. ‘다섯 살 아이가 뭐 저런 말을 쓰지?’ 생각해보니 모두 내가 뿌린 말의 씨앗 이다. 돌이켜보면 아이에게 처음 “사랑해”라는 말을 건넬 때 참 어색했다. 내 입술이 너무 차가워 그말을 담을 수 없었던 탓일까. 처음 배우듯 아기 앞에서 몇 번이고 “사랑해”, “고마워”, “보고 싶었어”라는 말을 되뇌었다. 그런데 애써 건넨 좋은 말을 제치고, 무심코 내뱉은 말이 아이 마음속에 뿌리내렸 다. 
 
다른 말의 세상: 나와 달리 남편의 말은 온화하다. 남편 집안의 말이 그렇다. 말을 할 때 상대를 존중 하고, 일이 어긋나도 서로 나무라지 않는다. ‘아,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구나.’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말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았다. 오히려 굳어진 나의 말이 불쑥 튀어나와 갈등을 일으켰다. 말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고 노력도 하는데, 쉽게 나아지지 않으니 지치기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사실 그때 나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 여행이었다. 말은 마음을 따라 자라는데, 마음을 보지 못했으니 늘 제자리였다. 
 
감정은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다가도 누군가가 그 이름을 불러주면 재빨리 짐을 정리하고 떠난다. - 김윤나,《말그릇》(195쪽) 
 
밤 깊도록 이불 속을 뒤척일 때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여러 생각을 만난다. 어지럽게 뒤엉킨 생각의 실타래를 따라가 만난 것은 누군가의 말이다. “뭐가 달라?”라며 차갑게 내 말을 자르던 말투, “그것도 몰라”라며 나를 한심하게 보던 눈빛까지. 그제야 ‘아, 내가 그 말 때문에 아팠구나. 그래서 이렇게 마음이 복잡했구나.’ 깨닫는다. 상처받은 말은 안아주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다. ‘속상했지? 힘들었겠 다.’ 달래주니 머릿속을 휘젓던 말들이 잠잠해지고, 그제야 잠이 온다. 
 
아내가 되기까지 
 
너무도 다른 별결국 감정싸움: 주위에 분명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관계가 틀어진 부부가 많다. 싸움의 시작은 술, 돈, 부모, 자녀 등 다양하지만, 끝은 서로에 대한 무시와 경멸로 비슷하다. 글은 문자 그대로 전달되지만, 말은 언어와 함께 비언어적 요소ㅡ몸짓, 표정, 분위기, 억양ㅡ까지 함께 전한다. 대부분 부부 관계는 
 
- 5 - 엄마의 책장 
 
이 지점에서 무너진다. 부부싸움은 종종 주제를 잃은 채 “왜 그런 식으로 말해?,” “소리 지르지 마,” “그 눈빛은 뭔데” 같은 비언어적 요소로 옮겨 간다. 결국은 감정싸움이다. 
 
나는 부정적인 감정에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나에게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주말 나 홀로 육아이다. 평일에는 비교적 수월한 육아를 하지만, 주말은 반대다. 농부 남편은 토요일에 바쁘다. 못자리, 모내기 같은 여러 일손이 모여야 하는 일은 토요일에 한다. 일요일도 마찬가지인데, 교회 봉사를 하는 남편은 오후 서너 시까지 그곳에 묶여 있다. 함께 교회에 가지만 아이 둘은 언제나내 몫이다. 어느 날 눌렀던 감정이 터졌다. 친정은 왜 이렇게 멀지, 교회 봉사는 육아 휴직도 없나, 왜두 아이는 당연히 내 몫일까. 나는 남편에게 언제까지 이래야 하냐며 따졌다. 사실 그를 몰아세울 뿐뾰족한 답은 없었다. 
 
얼마 전, 이 문제로 또 흔들렸다. 두 아이가 일요일 아침부터 싸웠다. 눈 뜬 순간부터 눈만 마주치면 누나가 뺏었다고, 동생이 때렸다고 이르고 따졌다. “안은산이 먼저 때렸어.” “누나가 놀렸어.” 현명한 판사 노릇도 한두 번, 매번 서로의 생각과 입장을 헤아리기가 힘에 부쳤다. 둘을 데리고 교회에 갈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했다. 심심하고 시끄러운 아이들은 예배의 경건함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건에 대한 구체적 감정은 대부분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평가에 따라 좌우된다. 감정 반응이 긍정적인 쪽인지 부정적인 쪽인지 결정하는 것은 사건 자체이지만 감정 반응의 구체적 내용과 강도를 결정하는 것은 사건에 대한 개인의 평가이다. - 래리 트랩, 《결혼 건축가》 
 
니체도 고통은 해석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단순히 고통을 겪은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해석된 고통을 앓았다. ‘내 마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고통은 타인에 대한 질책으로 뻗어나갔다. 아무리 간절해도 내 힘만으로 어쩔 도리가 없으면, 인정해야 했다. 내 의지 너머의 것을 어떻게 해보겠다고 발버둥쳐 봤자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서로 다른 사랑의 언어: ‘중국어와 영어가 다르듯이 당신의 사랑의 언어가 배우자의 사랑의 언어와 다를 수 있다. 당신이 영어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한다 할지라도 당신의 배우자가 중국어만 아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게리 채프먼,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22쪽)’ 
 
남편과 나는 분명 서로 사랑한다. 하지만 표현 방식이 달라 종종 오해했다. 게리 채프먼은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에서 저마다 사랑을 느끼고 표현하는 사랑의 언어가 있다고 말한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다섯 가지 중 하나이다. 처음에는 ‘함께하는 시간’이 나의 사랑의 언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함께하는 시간’이 줄거나 없다고 해서 속상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남편이 나에게 상처를 준 순간에 대해 생각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가 나의 생각과 행동을 부정할 때, 내잘못을 지적할 때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순간 자존심 때문에 화조차 못 냈지만, 그 작은 균열로 오랫 동안 아팠다. 나의 사랑의 언어는 ‘인정하는 말’이었다. 
 
남편에게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를 설명하고 어떤 것이 자신의 언어인지 물었더니 단번에 ‘봉사’라고 답했다. 생각해보니 남편은 늘 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날 널어놓은 빨래가 가지런히 소파 위에 놓여 있었다. 아침 먹고 아이 둘 어린이집 보낼 준비에 이방 저방 뛰어다니다 보 
 
- 6 - 엄마의 책장 
 
면, 어느새 식탁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그는 분담한 집안일은 거르지 않고 매일 최선을 다한다.
그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나는 남편을 위해 점심을 차리고, 커피를 내리고, 빨래를 하는 것을 사랑의 표현이라 여기지 않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 했을 뿐. 대신 나는 이렇게 사랑을 표현했다. “여보, 늘 고마워요.” “얘들아, 아빠 같은 사람은 정말 세상 어디에도 없단다.” 인정하는 말로 그를 격려하고 다른 이들에게 칭찬했다.
하지만 그런 표현이 내 생각만큼 그에게 의미 있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사랑에 빠지는 감정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허구다. 심리학자인 도로시 테노브 박사는 사랑에 빠질 때 나타나는 현상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결혼한 부부들을 연구해보니 로맨틱한 사랑에 사로잡힌 기간은 평균 2년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게리 채프먼,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37쪽)’ 
 
스승의 날, 수업 시간에 문학 교수가 말했다. “사실 스승의 은혜 노래에서 스승은 가르친 게 아무것도 없어요.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이걸 듣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어요. 참된 게뭐고, 바른 게 뭔지 그걸 안 가르치고 만날 참되고 바르거라 말만 하면 뭐해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 였다. 모든 추상적인 말들이 다 그렇다. 사랑, 진리, 평화 같은 말은 구체적으로 풀지 않으면 공허하다.
이 책에서 말한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는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다. 
 
게리 채프먼은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를 시작으로, 자녀, 10대, 싱글, 이혼 등 다른 여러 사례에 대한 책도 출간했다. 모든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같다. 아이에게 적용하면 의미가 보다 분명해진다. 아이를 칭찬하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이를 위해 봉사하고, 아이를 안아주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사주는 모든 일이 삶으로 녹아든 사랑의 표현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 싱글인 친구가 말했다. “남자는 결혼해서 밥 해주고 빨래해줄 엄마 찾는 거잖아.” 그래도 결혼은 해볼 만하다고 할까 하다가 입을 닫았다. 성 상품화, 페미니스트 연예인의 자살 이야기까지 나오면 한국 남자는 벌레가 된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속사정을 알기 전에 쉽게 판단했다. 생각해보면 그 시작은 나에 대한 오해였다. 나는 내가 이렇게 고집 세고 속 좁은 사람인지 몰랐다. 남편만 틀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로의 우주가 바닥까지 추락했다 지표를 찾으며, 우리는 서로를 알아갔다. 차갑게 “됐어!”라며 고개 돌리고, 무표정하게 지나쳤던 날들, 소란스런 싸움 속에서 관계는 여물었다. 
 
이러한 사랑은 노력과 훈련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만일 배우자의 삶이 나의 노력에 의해 풍성해진다면 나 또한 정말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낄 것을 알고, 열심히 배우자의 유익을 위해 노력 하고자 하는 선택이다. -게리 채프먼,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41쪽)’ 
 
남편은 감정에 예민하고, 사람 관계에 신경을 쓰며, 일의 과정에 집중한다. 반면 나는 감정에 둔하고, 관계보다 일을 우선시하며, 과정보다 목표 중심적이다. 우리는 다르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남편을 위해 커피를 볶고 내리고, 골뱅이를 무치고, 국수를 삶는다. 몸이 피곤해 하기 싫은 날도 있지만, 말보다더 진한 사랑의 표현이다. 연애 시절, 운전하는 남편의 높은 콧날을 보며 ‘잘생겼네’ 가슴이 뛰었지만, 이제는 “아빠랑 놀자”라며 아이를 데리고 나갈 때 더 설렌다. 음식물 쓰레기를 가지고 나가는 남편의 
 
- 7 - 엄마의 책장 
 
뒷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poem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으니 영원히 함께하리라.
죽음의 흰 날개가 그대들의 날들을 흩어 버릴 때에도 함께 있으리라.
그렇다, 신의 말 없는 기억 속에서도 그대들은 함께 있으리라.
그러나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는 그대들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리지만 줄은 서로 따로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으니. 
 
-칼릴 지브란, <결혼에 대하여> 
 
장범준이 노래했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 남편이 말했다. “네 머릿결이 스칠 때마다 홍삼 냄새가 나.” 아이를 낳고 홍삼 샴푸를 쓰기 시작했다. 선물로 받았는데 탈모 방지도 되고 좋았다. 지인 결혼식에서 멋진 턱시도를 입은 신랑이 축가로 ‘꽃길만 걷게 해줄게’를 불렀다. 부러 웠지만 한편으로 웃겼다. ‘인생이 어떻게 꽃길만 있을까. 오르막길이라면 모르지.’ 남편은 밤마다 트레 이닝복 차림으로 ‘오르막길’을 부른다.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에 만나 오른다면~” 나는 아이를 씻기며 ‘그게 삶이지, 그럼’ 고개를 끄덕인다. 결혼 8년 차 부부의 모습이다. 
 
남편은 나를 먼저 좋아했고,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는 언제나 사랑을 주고, 어떤 일도 이해해주는 사람 이었다. 결혼 후 한참 지나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채우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을 꿈꾸고 있는 내가 보였다. 칼릴 지브란이 말했다.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그런데 그의 잔과 빵을 받기만 바랐다. 아마 그는 텅 비었을 것이다. 그도 사랑과 이해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남편은 야구를 좋아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 남편은 야구를 보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스마트폰으로 틈틈이 보더니, 이제는 거실 텔레비전으로 모두 함께 본다. 두 아이도 경기 규칙을 제법 안다. 일곱 살, 다섯 살 아이들이 “박병호, 홈런!”이라며 뛸 듯이 좋아하고, “아, 삼진 당했어”라며 고개를 숙인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이 “어제 졌어”라고 말할 때면 무슨 큰일이 난 사람 같다. 야구가 뭐라고. 딸아이가 말했다. “아빠, 요키시처럼 수염 길러 봐.” 열흘쯤 수염을 길렀지만 그 느낌은 나지 않았다. 노트북을 삼성과 LG 중 어떤 걸로 살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들이 말했다. “키움 걸로 사.” 
 
- 8 - 엄마의 책장 
 
제부가 작년에 기아 팬 은퇴 선언을 했다. 하지만 제부는 여전히 기아 경기를 보고, 관련 뉴스를 검색 한다. 좋아하던 야구팀을 바꾸는 것은 부모를 바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남편이 말했다. “나는 야구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키움을 좋아하는 거야.” 남편은 메이저리그의 선발 투수보다 키움의 불펜 투수가 더 좋단다. 키움이 왜 좋냐는 질문에 남편이 답했다. “난 키움을 알아. 그들의 경기 매너, 마음 가짐 모두 좋아.” 누군가에 대해 알게 되면 쉽게 돌아설 수 없다. 
 
사랑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그리고 있는 동그라미가 너무 삐뚤빼뚤해요. 당장 지우고 나처럼 다시 그려요.” 상대의 그림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최근 한 고등학생 연인을 보고 놀랐다.
사생활이 전혀 없는 교제를 하고 있었다. 상대의 휴대폰을 검열하고, 서로 SNS 비밀번호까지 알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사랑일까 집착일까. 사랑한다면 한 걸음 떨어져야 한다. ‘아, 이런 사람이구 나.’ 있는 모습 그대로 알아가야 한다. 
 
결혼 생활도 연애와 비슷하다. 약속하지 않아도 매일 만나는 아주 길고 지루한 연애. 남편과 나는 가끔 싸우고, 더 깊이 사랑하며, 서로를 알아갔다. 남편은 안다. 내가 어느 지점에서 화를 내는지, 무엇에 활짝 웃는지 말이다. 나도 안다. 남편이 어떤 점을 불편해하고, 또 어느 순간 고마워하는지 말이다.
결혼 초 꿈을 꾸면 나는 싱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꿈에서도 그가 내 남편이다. 무의식이 그와 결혼 하는 데 5년이 걸렸다.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이 그릇 위로 떨어졌다. 도자기는 도자기와 부딪치면 금이 간다. 어느 날 그릇을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멀쩡했다. 낙차가 더 컸는데 도자기는 나무 위에서 깨지지 않았다. 내가 도자기 라면 남편은 나무 바닥이라고 해야 할까. 남편은 내가 쨍그랑 떨어져도 나무처럼 받아준다. 덕분에 나는 다치지 않는다. 그의 가슴에 찍힌 상처의 자국이 이제 조금씩 보인다. 
 
내가 말했다. “당신 살이 빠지니까 머리숱도 많아 보여.” 그는 앞모습보다 옆모습, 배보다는 날선 콧날이 멋지다. 내가 새로 산 옷을 입고 나오자 남편이 말했다. “그거 있는 옷 아니야?” 남편은 내가 화장을 하고, 돈 벌러 나갈 때 가장 예쁘단다.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아도 서로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 함께한 시간이 우리를 부드럽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만 구속하지 않는다. 같이 노래 하고 춤추지만, 철저히 혼자가 되는 시간이 있다. 서로 자랄 수 있도록, 조금 떨어져 서로를 알아간다. 
 
엄마도 울고싶다 
 
모두 퇴근하면 엄마는 출근한다 하루키와 나는 닮았고 또 다르다. 하루키가 하루에 20매씩 담담하게 원고를 쓰는 동안 나 역시 담담하게 아일랜드 식탁을 치우고 밥을 짓는다. 반 년이 지난 후 하루키에게는 3600매의 원고 뭉치가 남고 내게는 여전히 커다란 아일랜드 식탁이 놓인 주방이 있다. -라문숙, 《전업주부입니다만》 
 
집안일은 엄마의 몫이었다. 더러운 옷이 저절로 깨끗해지고, 어지럽힌 방도 알아서 말끔해졌다. “엄마, 밥 줘” 말하면 저녁상이 뚝딱 차려졌다. 그 시절 나는 라면 물도 못 맞추고, 계란프라이를 만들다가 스크램블로 먹었다. 대신 언제나 책상을 지켰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유일한 인생 과제였다. 그러던 내가 스물여덟에 결혼을 했다.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는 아내, 엄마의 삶이 시작됐 
 
- 9 - 엄마의 책장 
 
다.
어린 시절 “엄마, 나왔어”라며 집에 들어섰을 때 아무도 없으면 속상했다. 상을 받으면, 집에 가서 자랑할 생각에 하루종일 엉덩이가 들썩였다. 그런 유년기를 보내고도, 나는 ‘나’로 빛나고 싶었다. 친구가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라고 말하면 고개를 저었다. 현모양처는 바보 같은 꿈이었다. “남녀 평등시대, 배울 만큼 배운 여자가 결혼하고 집에만 있는 건 인력 낭비야”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내가 전업주부로 5년을 살다니. 
 
대학 시절 과외를 하면서 봤던 맞벌이 가정은 이랬다. 밥솥에는 72시간 된 밥이 있고, 식탁 위에 인스 턴트 음식이 가득했다. 아이는 혼자 통조림과 3분 요리, 컵라면과 삼각 김밥 등으로 저녁을 때웠다.
가끔 용돈을 받으면 치킨이나 피자, 자장면이나 돈가스를 시켜 먹었다. 주로 컴퓨터와 TV, 휴대폰으로 시간을 보냈고, 햄스터나 토끼, 강아지를 키우기도 했다. 집은 지저분했고, 빨래는 산더미였다. 어쩔수 없는 사회 현실이라며 넘기기에 아이는 너무 작고 어렸다. 내가 꿈꿨던 워킹맘의 현실이었다. 
 
3년 전부터 도서관과 초등학교에서 그림책, 글쓰기 관련 강의를 한다. 보통 10시에 출근하고 4시에 퇴근한다. 전업주부와 워킹맘 중간쯤이다. 워킹맘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초과 근무를 할 때면 새벽에 출근을 한단다. 휴일 새벽 6시에 사무실 문을 열면 비슷한 처지의 워킹맘들이 앉아 있다고 했다. 야근보다 새벽 근무가 나은 셈이다. 아이가 아플 때 워킹맘은 죄인이 된다. 회사, 어린이집 모두에게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여야 한다. 
 
얼마 전 나와 비슷한 또래 엄마들과 함께 영화를 봤다. 점심으로 파스타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순간 생각했다. ‘우리 맘충이네. 평일 오전에 이렇게 돌아다니면 맘충이 소리 듣지.’ 커피는 테이크아웃 했다.
4시 유치원 하원 시간에 맞춰 집에 가야 했다. 전업주부는 보통 오전에 만나서 영화 보고 밥 먹고 차를 마신다. 모두 직장에서 바쁘게 일하는 시간이다. 그러면 엄마도 퇴근 시간 이후에 약속을 잡아야 할까. 
 
모두 집에 오면 엄마는 출근한다. 유치원도 사회생활, 집에 온 아이는 괜히 떼를 쓴다. 손 씻는 것으로 실랑이를 벌이고, 만나자마자 싸운다. 저녁 주문도 제각각이다. “엄마, 나는 달걀프라이 흰자랑 노른자 따로 해줘.”, “삼겹살 까까(비계를 바싹 구운 것) 먹고 싶어.” 저녁 먹는 중에도 “엄마, 물,” “엄마, 케첩,” “엄마, 먹여줘” 식당 종업원이 따로 없다. 먼저 먹이고 식은 밥과 반찬을 먹고 있으면 아이는 놀아달라며 매달려 목을 조른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설거지를 하고, 집안 정리를 한다. 여덟 시, 이제 씻기만 하면 된다. 아이 둘은 신기하게 하루 종일 싸우다가 자기 직전에 너무 오붓한 남매가 된다. 둘째가 “누나야” 부르면, 첫째는 “우리 신비아파트 놀이 하자” 답한다. 아홉 시가 목표지만, 늘 열 시가 다 되어 잠에 든다. ‘애들 재우고 일어나서 마저 글 써야지’, ‘드라마 몰아 봐야지’, ‘인터넷 쇼핑 해야지’ 생각하지만, 일어나면 아침이다. 가끔 새벽에 일어나면 어떻게 알았는지 아이가 “엄마, 엄마” 부른다. 꼼짝 없이 다시 들어가 옆에 누워 있어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엄마로 사는 거 어때?”라고 묻는다면, “좋아”라고 답할 것이다. 육아를 지옥이라고 말하기에 생명은 너무 아름답고 신비하다. ‘사랑스러운 미치광이’라고 할까. 주일을 앞두고 둘째가 갑자기 울먹였다. “나 사람들이 만질까봐 교회 가기 싫어.” 낯가림이 심한 둘째는 누가 인사를 하면 뒤로 숨는다. 내가 말했다. “다 네가 귀여워서 그러는 거야.” 한참을 생각하던 둘째가 말했다. “난 왜 이렇게 귀 
 
- 10 - 엄마의 책장 
 
엽게 태어난 거야?” 귀여움은 아이가 울고, 떼쓰고, 고집 부려도 참고 키우라고 준 신의 선물 아닐까. 
 
어린 시절, 엄마는 원래 엄마로 태어난 줄 알았다. 아기가 왜 우는지 단번에 알아차리고, 똥 냄새쯤은 아무것도 아닌 듯 기저귀를 척척 갈고, 수월하게 목욕시키고 옷도 갈아입히는 원래부터 엄마인 사람 말이다. 하지만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은 없다. 이유 없이 우는 아기를 붙잡고 나도 같이 울었고, 기저귀를 갈다가 똥 세례를 받은 적도 여러 번. 목욕시키려면 우는 아이 앞에서 어쩔 줄 몰랐고, 버둥거리는 아기에게 옷 입히기도 쉽지 않았다. 
 
지하철을 탔다. 백일쯤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잘 놀던 아이가 찡얼거렸다. 엄마는 자리 에서 일어나 발을 이리저리 옮기며 몸을 흔들었고, 아이는 다시 편안해졌다. 그 모습이 꼭 나 같았다.
‘저 사람도 저렇게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구나. 아기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 앞에서 딸랑이도 흔들 어도 보고, 품에 안아도 보고, 젖도 물려보고, 기저귀도 갈아보며, 서로를 알아가겠지.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겠지.’ 나도 매일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다. 
 
  
- 11 - 엄마의 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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