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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by Casey,Riley 2020.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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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전담변호사는 형사 재판에서 변호인이 꼭 필요한 사건이지만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을 피고인으로 만난다. 형사 법정에 선 피고인은 돈이 없어도 변호인의 도움을 충분히 받을수 있어야 한다는 헌법상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잘못한 개인에 대한 처벌 그 너머 취약 계층의 변하지 않는 현실은 여전히 가혹하다. 실형을 받은 전력이 있으면 단순 절도도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이른바 ‘장발장법’ 위헌 결정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저자는 아무도 귀 기울 이지 않는 이들의 말을 듣고, 그들을 둘러싼 가족과 소외된 이웃과 우리 사회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 저자 정혜진 
 
국선전담변호사.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영남일보 기자로 15년 일했다.
법학전문대학원이 개원하던 2009년 강원대학교에서 법 공부를 시작, 졸업 후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 원을 거쳐 수원지방법원에서 6년째 일하고 있다. 기획 취재를 좋아하던 기자 시절, 신문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모아 『태양도시』,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 『골목을 걷다』(공저)를 펴냈다. 국선전담변호사로 일하며 피고인이라 불리는 약 2천 명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법의 언어로 풀어서 말하고 쓰며 변호사의 길을 배워가고 있다. 
 
▣ Short Summary 
 
형사 재판에서 피고인이 변호인을 스스로 구하지 못했을 때 법원에서 피고인에게 붙여주는 변호인을 ‘국선 변호인’이라고 한다. 국선변호인 중에는 국선전담변호사도 있고, 그렇지 않은 변호사도 있다. 국선전담변호사는 국선 사건만 하도록 각급 법원장이 위촉하는 변호사로, 원칙적으로 일반 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는 게 일반 국선변호사와 다르다. 이 직업은 2004년에 생겼다. 그때만 해도 변호사 자격증만 가지고 있으면 사건이 굴러들어오던 시절이라 국선 사건은 변호사들이 당번처럼 돌아가며 담당했다.
그러다 보니 변론을 무성의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피고인 사건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가 위태롭게 되자 대법원은 국가가 일정한 수입을 보장해주면서 국선변 호만 전담하는 변호사를 따로 선발하기로 했다. 2006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된 이 제도는 그 도입 취지에 걸맞게 국선변론의 수준을 대폭 끌어올렸다. 
 
2014년, 나는 어쩌다 국선전담변호사가 됐다. 이 직업은 국가에서 월급을 받지만 국가가 아니라 국가를 상대로 법정에 서는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만 당사자로부터 돈을 받지 않는 덕분에 당사자에게 휘둘리지 않는 독특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아마도 이 ‘이중적 독립 성’ 덕분에 변론의 수준이 높아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국선변론의 수준을 높인 이중적 독립성이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예컨대 시간의 한계가 있다. 국선전담변호사는 피고인이 기소돼 1심 선고를 받기까지, 아니면 1심 결과에 불복해 항소심 재판을 하는 동안, 아주 잠깐의 시간을 함께할 뿐이다. 일반 변호사야 의뢰인을 위해 당장 현장에 달려가 증거를 확보할 수 있지만, 나는 사건이 벌어진 지 3~4개월, 대개 6개월이나 1년 후, 어떤 경우는 거의 10년이 지나서야 그 사건을 만나기도 한다. 변호인이 관여할 수 있는 시간의 공백으로 인해 아무것도 해볼 수 없어 좌절하게 되는 사건 수가 점점 늘었다. 
 
영역의 한계도 있었다. 법은 형사, 민사, 행정, 심지어 기소와 불기소를 뚜렷하게 구별해놓았지만 사람 들의 삶에는 그런 경계가 없다. 범죄는 형사 재판에서 다루는데 그 범죄와 관련해 현실에서 일어나는 법적 사안은 형사 재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내가 변호하는 이들은 형사 재판에서 다루지 않는, 하지만 그 사건과 관련이 있는 법률문제를 마주하고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아주 간단한 사안이 아니면 나는 도울 수 없다. 매달 새로운 25건 내외의 사건이 차곡차곡 들어와 내 시간과 에너지를 원하고 있 
 
- 2 -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는데 본연의 임무가 아닌 ‘서비스’에 우선순위를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피고인과 국선변호인이라는 관계는 일반적인 의뢰인과 변호사의 관계와는 달리 재판이 있는 동안 잠깐 만났다가 재판이 끝나면 작별 인사도 없이 헤어지고, 대부분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만나는 동안 에는 가족에게도, 아주 친한 친구에도 털어놓지 못하는 극히 사적인 부분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그 범위는 변론을 위한 것까지로 극히 한정된다. 일반 국선변호사에게는 피고인이 나중에 의뢰인이 될 가능 성도 있지만, 국선전담변호사는 수임이 금지돼 있어 맡은 사건에만 최선을 다할 뿐이지 당사자와 관계를 넓힐 노력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 이 일을 하면서 보고 들은 범죄 안팎의 풍경은 너무나 작고 사소하고 조각난 것들이었다. 사건의 본질이 흐릿해질 즈음에 비로소 시작되는 아주 짧은 만남을 반복하면서 수면 아래 저 깊은 삶의 실체를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을 쓴 이유는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가 별로 전해지지 않아 서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직업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조각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을 테다. 빙산의 일각과도 같은 이 사소한 이야기도 분명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차례 
 
프롤로그 빙산의 일각에서 본 풍경 
 
1장 그에게도 가족이 있다 각자의 시간 / 아이들의 편지 / 당당한 거짓말이 그리워질 때 / 미처 하지 못한 말 / 아버지와 아들 
 
2장 그날 이후 삶이 바뀌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은 기적 / 이러려고 대한민국에 왔나 / 생과 사 / 장발장법, 그 뜻밖의 인연 어떤 소나기 
 
3장 재범은 늪과 같아 예견된 조우 / 죄는 미워도 미워지지 않는 선수 / 중독의 굴레 / 나도 피해자라고요 
 
4장 변론의 처음과 끝, 소통 그들의 변호인 / 뫼비우스의 띠 / 주제넘은 상담 / 좋은 국선, 나쁜 국선 
 
5장 법과 사람 사이 무죄가 부끄러울 때 / 일명 자뻑 변론의 종말 / 돈과 국선의 상관관계 / 이웃집 아줌마의 가르침 
 
에필로그 사소하고 조각난 이야기를 넘어 
 
- 3 -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그에게도 가족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 새벽 4시 무렵 112로 신고가 접수됐다. “패싸움이 난 거 같아요. 아, 우린 그냥 차 타고 지나가는 사람 인데 신고하는 겁니다.” 같은 장소에서 여러 사람의 신고가 이어졌다. 구급차가 필요해 보인다, 남자 여럿이 누군가를 패고 있다, 흉기는 없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순찰차가 여덟 대나 출동했다. 가해자 들은 첫 순찰차가 도착하기 전에 줄행랑을 치고 없었다. 
 
이 도시에서 쌍벽을 이루는 두 폭력 조직 말단 행동대원들끼리 붙은 싸움이었다. 눈을 마주쳤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시비를 건 게 발단이 됐다. 5대 2로 수가 열세인 쪽이 흠씬 두들겨 맞았다. 경찰이 주변 CCTV, 목격자들이 휴대폰으로 찍은 영상, 피해자들 진술을 종합해 가해자 다섯 명을 밝혀낸 건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쯤 후였다. 
 
경찰 수사가 시시각각으로 조여오고 있다는 걸 ‘선수들’이 모를 리 없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에게 치료비를 다 물어주고 합의금도 충분히 줄 테니 상해진단서는 제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피해자 들도 폭력 조직에 몸담고 있다 보니 알 거 다 아는 처지인지라 가해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가해자 들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을 때는 이미 합의서까지 제출돼 있었다. 구속영장 심사에선 다섯 명 중 집행유예 결격자인 두 명에 대해서만 영장이 발부됐다. 폭력 조직 구성원들끼리 싸움이었지만 각목이나 야구방망이 같은 위험한 물건을 들진 않았다는 점과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피해 배상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참작했던 것 같다. 스물네 살의 그에 대해서는 영장이 기각됐다.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수사 기록에 있는 조직 계보를 보니 그는 말단 중에서도 말단이었다.
가해자들을 특정하느라 XX파 행사 사진이 동원됐는데, 그중 몇몇 사진에 등장한 그의 오른팔에 문신이 있었고 전형적인 소위 ‘깍두기’ 외모였다. 그런데 범죄경력조회를 보니 의외로 전과는 물론 소년보호사 건도 전혀 없었다. 마음이 가벼웠다. 청소년기는 말썽 없이 보내고 뒤늦게 나쁜 물이 든 경우인 것 같았다. 피해자도 합의를 했고, 형사 재판을 받는 것도 처음이니 실형이 나올 위험은 없었다. 징역형의 집행유예 기간이 좀 길게 나올 수는 있겠지만 본인도 실형만 안 나오면 만족할 일이다. 자책 사건인 데다 합의까지 했으니 국선변호인에겐 말하자면 ‘거저먹는’ 건이다. 
 
재판 날짜를 보니 주말을 껴서 고작 나흘이 남아 있었다. 보통 재판 전 한 달, 늦어도 일주일 전에는 사건 기록을 받아야 상담을 여유롭게 할 수 있는데, 어쩌다 국선변호인 선정이 늦게 된 사건이라 직원도 급하게 기록을 복사해왔다. 공소장에 적힌 그의 주소를 보니 사무실이 있는 곳과 거리가 꽤 있는 다른 도시다. 사안도 간단하고, 변론기일이 바로 코앞이어서 방문보다는 전화 상담이 서로에게 편할것 같았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당사자가 말을 더듬거리며 본인의 아버지가 변호사님을 뵙고 싶어 하니 지금이라도 아버지와 함께 찾아오겠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별 거 아닌 사건인데 상대방이 하도 절절하게 말해 나는 조금 무안해하며 서둘러 그날 오후로 상담을 잡았다. 
 
- 4 -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상담실에 들어왔다. 부자가 같이 목수 일을 하는데 급히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버스로 두 시간 거리를 한달음에 왔다고 했다. 아들은 사진에서 본 대로 덩치가 좋았다. 반팔 티에 검은 쿨토시를 꼈는데, 토시 밖으로 삐져나온 팔뚝에 요란한 문양의 문신이 슬쩍 보였다. 아버지는 검게 그을린 얼굴에 깡마른 몸집, 선량한 인상으로 아들과 극적으로 대비됐다. 둘 다 긴장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 분위기를 조금 풀어볼 요량으로 아버지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아들이 말썽 피워 속 많이 상하셨죠. 재판까지 받는다니까 걱정돼서 같이 오신 거예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눈물을 글썽이며 주섬주섬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내 쪽으로 내밀었다. “저 때문에 애가 이렇게 돼서…. 너무 죄송합니다.” 서류를 보니 어느 구치소장의 출소증명원이다. 징역 1년 6월을 복역하고 가석방돼 출소한 지 1년쯤 지나 있었다. 
 
아버지는 제조업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수십 년을 잘 운영해왔는데 어느 순간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다.
때마침 정부가 지원하는 저금리의 기업 자금이 있다고 해서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대출금만 있으면 자금경색을 해결하고 재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격요건이 까다로워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한두 가지 요건을 맞출 수 없었다. 급한 마음에 요건을 모두 갖춘 것처럼 서류를 꾸며 몇억 원의 정책 자금을 대출받았다. 일은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고, 아버지는 결국 그 돈을 갚지 못했다. 은행에서 상환 독촉을 받던 중 가짜 서류로 대출받은 일이 들통나버렸다. 
 
“제가 돈 못 갚고 한참을 도망 다녔습니다. 그때 아내가 너무 힘들어해서 할 수 없이 이혼도 했어요.
제가 1남 1녀를 뒀는데 딸애는 출가한 상태라 이 얘만 데리고 공사장에 숨어 살았습니다. 공사장에서 목수 일을 저와 같이 배웠어요. 그동안 그럭저럭 살면서 별 고생 없이 컸는데 공사장이 얼마나 힘들겠 어요. 그래도 저 따라다니며 열심히 일했거든요.” 공사장 인근 허름한 여관을 전전해도 아들은 별 불평이 없었지만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수 없었다. 한 1년을 도망 다니다 아버지는 경찰에 자수하고 구속됐다. 은행을 속여 대출받았다는 사기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교정기관에서 모범수로 생활했는지 형기 종료를 6개월 정도 남기고 가석방으로 나온 것이다. 
 
“제가 징역 살면서 얘를 못 챙겨줬어요. 이혼하고 아내는 먹고살기 위해 시장에서 난생처음 노점 장사를 했는데 그때 건강이 너무 안 좋아졌어요. 먹고사는 것도 힘든데 몸까지 아프니까 엄마도 얘를 못챙겼고요. 징역에서 나와 보니 이번 사건 주범인 애랑 어울리면서 무슨 조직에 있더라고요, 걔가 우리 아들이랑 고등학교 운동부 동기라 제가 잘 알아요. 그 조직에서 아들놈 빼 오려고 무지 애를 썼어요.
처음에는 말을 좀 듣더라고요. 타일러서 다시 목수 일을 같이했는데, 어느 날부터 일도 안 하려고 하고, 집에도 안 들어오고, 예전과는 다르게 말을 잘 안 듣더라고요.” 
 
공동피고인 중 한 명인 ‘걔’는 다른 폭력 사건으로 받은 집행유예 기간에 이 사건이 터져 구속돼 있었다. 아들은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이 사건으로 아들은 경찰서 유치장에 이틀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싸운 것도, 유치장에 갔던 것도 몰랐다. 어느 날 저녁, 갑자기 아버지가 일하는 현장에 찾아온 아들이 유치장에서 나오는 길이라면서 아버지를 붙잡고 눈물을 쏟아냈다. 자기는 그곳에 이틀만 있어도 죽을 것 같던데, 아버지는 어떻게 그 생활을 견뎠느냐고 말하면서. 
 
아버지가 다시 눈물을 훔쳤다. 아들이 체포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던 때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내가 일부러 어색한 미소를 띠며 아들에게 물었다. “그런 데 처음 가봤죠? 유치장 에서 뭐가 그렇게 힘들던가요?” 아들은 아버지만큼 말을 잘하지 못했다. “그냥, 갇혀 있으니까….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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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가 얼마나 걱정할까, 여자친구가 얼마나 걱정할까…. 답답해 죽겠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요.” 폭력 조직 행동대원이 된 경위를 묻자 몇 달은 활동한 게 맞지만 지금은 탈퇴했다며 더 이상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구속 심사를 할 때 당시 국선변호인이 ‘확실히 탈퇴한 게 맞다’고 변론 해준 덕에 구속을 면할 수 있었단다. 아버지도 아들이 유치장에 다녀온 후로 달라졌다고 했다. 
 
“변호사님, 제가 출소한 지 이제 한 1년쯤 됐습니다. 지금 월세방에 얘 데리고 살고 있고, 얘 엄마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 있어서 그나마 의료비를 지원받아 혼자 살고 있어요. 올해 말까지는 허름한 집이라도 방 두 개짜리 전세를 얻으려고 지금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아들 내외 결혼하면 방 한 칸을 주고 그렇게 네 식구가 모여 살아봤으면 합니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어떻게 만났느냐고 물었더니 수줍은 듯 씩웃고는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여자에게 참 참하다고, 전셋집 얻어서 같이 살자고 했더니 좋다고 했다며 은근히 예비 며느리 자랑을 했다. 아버지는 자기가 없는 사이에 아들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좀 빗나갔지만 지금은 공사판에서 다시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다면서 잘 부탁한다고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재판 과정 등에 대해 설명하고 상담을 마무리하면서 더 궁금한 게 있느냐는 나의 말에 아들은 같이 싸운 애들이 다 같이 재판을 받느냐고 물었다. “그럼요. 이게 한 사건이에요. 다섯 명이 한 자리 에서 재판받고 선고도 한꺼번에 하죠.” 아들은 뭔가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나는 법정에서 보자며 그들을 보내고 빠르게 변론서면을 썼다. 
 
아버지의 마음, 아들의 마음: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아들의 전화가 여러 번 왔다고 직원이 전했다.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거리가 먼 데도 불구하고 꼭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이번엔 아들 혼자서 왔다. 그러더니 어제는 아버지가 옆에 계셔서 말 못 했다며 입을 뗐다. “같이 재판받는 걔, 있잖아요. 아버지는 제가 걔 때문에 잘못됐다고 하셨는데 법정에서 그 말씀은 안 하시면 안 되나요?” “둘 사이에 무슨 일 있어요?” “그건 아니고요…. 그냥 제가 잘못한 거니까. 걔 탓이라고 할 수 없고, 걔에 대해 나쁜 말 하면 걔도 저를 나쁘게 말할 것 같고. 그냥 제가 잘못한 거니까 굳이 그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아버지는 착한 아들이 친 엄청난 사고에 대해 합리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자신의 징역살이 탓으로, ‘착 한’ 아들이 ‘친구를 잘못 만나’ 잠시 일탈했을 뿐이라고 믿고 싶은 건데 아들은 그게 아니라 그저 자기가 잘못한 거라고, 그 말을 바로잡고 싶단다. 큰 덩치, 화려한 문신, 턱 밑에 선명한 칼자국을 가진 20 대 남자가 보기보다 순진하다. “진짜 그 얘기 하려고 온 거예요? 다른 할 말은 없어요?” “네….” “같이 재판받는 다른 피고인 욕을 내가 왜 하겠어요? 본인이 잘못을 반성하는 거랑 이후로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만 이야기 할 거니까 그런 걱정할 필요 없어요.” 아들은 고맙다며 몇 번이나 꾸벅 인사를 하고 갔다. 
 
제1회 변론기일, 다섯 명이 모두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한다고 해서 변론을 마치기로 했다. 다섯 명에게 각각 다른 국선변호인이 선정됐는데, 다들 열심히 몇 분씩 구두 변론을 했다. 나는 “오늘 제출한 서면 원용합니다”라고 한마디만 했다. 아버지의 감옥살이를 다른 공동피고인들에게 알릴 이유도 없었고, 아들의 불필요한 걱정을 잠재우려면 구두 변론을 안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였다. 
 
사무실에서 오후 재판을 준비하는데 또 전화가 왔다. 검사가 구형을 많이 해서 겁먹었나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오늘 감사하다고 전화드렸습니다. 변호사님이 다른 사건을 이어서 하고 계셔서 법정에서 
 
- 6 -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는 인사 못 드리고 왔어요. 아버지도 꼭 인사를 드리라고 하십니다.” 아들은 그새 말솜씨가 꽤 는 것같았다. 
 
사무실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에 아파트 공사 현장이 있다. 길 건너에 함바집이 있어서 식사 시간이 되면 인부들이 떼 지어 그 앞 횡단보도를 건넌다. 종종 차를 몰고 퇴근할 때 빨간불 신호에 걸려 횡단보도 앞에 서 있곤 한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차 안에서 그들을 본다. 다들 땀에 흠뻑 젖어 늘 지친 표정이다. 얼굴이 좀 까무잡잡한 외국인 인부들도 꽤 많다. 어느 날 횡단보도 풍경을 보다가 목수 아버지와 아들을 고용한 사장님이 재판부에 제출해달라고 보낸 탄원서가 생각났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해서 공사 현장에 외국인들이 대부분인데 그는 참 열심히 일한다며, 좀 잘못한 게 있더라도 선처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문득 아들은 유치장에서 나오던 날의 마음가짐 그대로 성실하게 일하고 있을지, 아버지는 네 가족이 살 조그만 집 하나 마련할 만큼 돈을 모았을지 궁금해졌다. 
 
변론의 처음과 끝, 소통 
 
좋은 국선, 나쁜 국선 국선변호인을 바꿔달라고 하는 피고인들이 가끔 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변호인이 국선이라 성의가 없고 자백을 강요한다는 불만을 품는 게 가장 대표적이다. 
 
변호사와 의뢰인의 일반적인 관계에 비춰 보면 국선변호인과 피고인의 관계는 좀 독특하다. 형사 재판을 받는다는 것이 대개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상당히 심각한 일이므로 자신이 의지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좋은 변호사를 찾기 위해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나서서 여러 노력을 한다. 그런데 국선변호인은 법원에서 정해주니 자기 의사대로 선택할 수 없다. 인생 중대지사에 조력자로 선정된 전문가가 자기 말을 잘 들어주지도 않고 자기 뜻대로 해주지 않으니 피고인은 속이 탄다. 변호사 비용을 내지도 않으니 국선변호인에게 당당하게 다양한 요구를 하기도 힘들다. 반대로 국선변호인은 당사자에게 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사건을 다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조언을 듣지 않고 법과 재판 현실을 무시하면서 고집만 피우는 당사자에게는 쓴소리도 눈치 보지 않고 한다. 국선변호인은 최대한 유리한 판결이 나올 수 있도록 조언하는 건데 피고인은 자백을 강요한다고 여기거나, 국선이라 성의가 없거나 귀찮아서 하는 말로 생각하기 쉽다.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 나를 ‘나쁜 국선’으로 기억할 피고인 중에 가장 먼저 M이 떠오른다. 40대 불구속 피고인(변호인이 필수로 있어야 하는 사건은 아닌 사건)이었는데, 1심에서 무죄 주장을 했지만 유죄 판결을 받고 항소한 사건이었다. 내 생각엔 법률가 100명에게 물어보면 100명이 다 ‘1심 결론이 맞다’고 할 만한, 항소기각이 뻔해 보이는 사건이었다. 
 
M은 상담을 위해 처음 사무실에 찾아와서 “이렇게 훌륭한 변호사님이 제 국선변호사라니 정말 영광입 니다”하며 내게 거의 90도로 인사했다. 그 무렵 헌법재판소에서 이른바 ‘장발장법’에 대한 위헌 결정을 했고 몇몇 신문에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한 국선변호인이라며 나에 관한 기사를 실었는데, 그가 그걸 읽은 모양이었다. 언론에 그려진 나는 생계형 절도범과 같은 소외된 계층의 범죄자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변호사이자 잘못된 법률과 기소에 대항해 분연히 일어나 이를 바로잡은 정의의 사도였고, 쏟아지는 찬사에는 “국선변호인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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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변호사였다. 그런데 그 훌륭한 국선이 그에게는 냉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건 안 될 사건이에요. 제가 지금까지 설명 드렸잖아요. 1심에 유죄로 판단한 게 맞다고 봐요. 항소 심에서 결론이 바뀔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M은 전혀 수긍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몇번이고 내게 물었다. “신문에 나온 그분 맞습니까?” 결국 설득이 안 돼서 그의 주장대로 무죄 변론을 하기로 하고, 1회 변론기일에 그가 원하는 증인을 신청했다. 재판장이 “그 증인이 나와서 피고인이 원하는 말을 한다고 해도 공소사실과는 별개의 문제 아닌가요?”라고 했다. 내가 피고인에게 여러 차례 설명했던 바로 그 말이다. 하지만 피고인이 그렇게 해달라는데 어쩌랴. 
 
“재판장님, 사실심 마지막 기회고, 그 증인이 사실대로만 증언해주면 피고인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고 피고인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으로서는 달리 다른 증거방법이 없고 이게 유일하게 신청하는 증거방법이니 꼭 채택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속마음과는 달리 그 증인이 꼭 필요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재판장은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증인을 채택해줬다. 다음 기일을 증인신문기일로 진행하기로 하고 마무리했다. 법정 밖으로 나온 M이 내게 재판이 어떻게 될지 물었다. 나는 그렇게 설명했는데도 말이안 통하는 그가 너무 한심해서 “이건 안 되는 사건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하고 쏘아붙였다. 
 
며칠 뒤 M이 국선변호인을 바꿔달라고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 탄원서에 적힌 나는 그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는 데다, 그 말도 너무나 큰 소리로 해서 그의 고막을 떨어지게 한 사람이었다. 재판장은 국선변호인을 바꿔달라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는 변호인 없이 혼자 재판을 받았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결론은 항소기각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 S 사건은 M 사건과 정반대 상황이 벌어진 경우였다. 마약 전과가 수두룩한 마약범 S에게 나는 무려 일곱 번째 국선이었다. 1심에서 국선변호인이 두 번 바뀌어 세 명의 변호사가 거쳐 갔고, 피고인만 항소한 항소심에서 두 달 만에 세 명의 국선변호인 선정 결정과 취소 결정이 있고 나서 이 사건이 내게 왔다. 
 
1심 첫 번째 국선은 본인 의사와 달리 법정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한다고 말했다고, 두 번째와 세 번째 국선은 구치소 접견에서 본인 말은 안 들어주고 자백을 강요했다고 갈아치웠다. 항소심 첫 번째 국선, 즉 그의 네 번째 변호인은 우연히 1심 두 번째 변호인과 같은 변호사여서 취소됐고, 다섯 번째 국선은 원하는 증거 신청에 대해 계속 부정적인 의견을 말했다는 이유로 바뀌었다. 내 직전에 선정된 여섯 번째 국선은 변호사 본인이 절대 마약 사건은 안 맡는다고 해서 취소됐다. 재판부가 이렇게까지 여러 번국선을 바꿔준 이유는 S가 구속 피고인이어서 변호인 없이 진행할 수 없는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건의 다섯 번째 국선은 나와 같은 사무실을 쓰면서 친하게 지내는 K였다. 그 사건이 내게 왔다고 했더니 자신은 그로부터 협박 편지까지 받았다며,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다. 속으로는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더라도 한 시간이 걸리든 두 시간이 걸리든 다 들어주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구치소에 접견을 갔다. 
 
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장이 가관이었다. 체포가 위법이다. 증거가 모두 위법하게 수집됐다. 자백할 때까지 검사가 모든 접견을 금지시켜 자백을 안 할 수 없었다는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지만, 그의 사건 기록에서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고 볼 여지는 없었다. 게다가 검사 앞에서 자백해놓고 이제 와서 그걸 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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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이라고 하니 다른 국선들도 어이없어했을 것이다. 내가 일곱 번째 국선변호인이 아니었다면 그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그 주장이 먹히리라고 생각하세요? 증거가 빤한데 그렇게 부인하다간 형만 더 올라가요.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는 게 좋을 거예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속마음과는 다르게 그의 말에 전혀 토를 달지 않고, 여러 번 접견해서 그가 원하는 모든 증거 신청을 해줬다. 재판장도 그가 갈아치운 국선변호인 수를 생각해서인지 신청한 증거를 다 받아줬다. 
 
반전은 변론 종결 즈음에 일어났다. 그가 주장한 내용 중 수사기관에서 자백할 때까지 접견 금지를 시켰다는 사실이 문서제출명령에 대한 회신으로 증명된 것이다. 회신된 경찰서 공문에는, 피고인에게 접견을 허용하면 공범과 말을 맞출 수 있으니 검찰 송치 때까지 모든 접견을 금지한다고 돼 있었다. 유치장에 갇힌 10일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한 피고인은 검찰로 송치된 후 그동안의 ‘부인’ 주장을 버리고 ‘자백’을 했다. 피고인은 그제야 가족을 접견할 수 있었다. 그러니 ‘자백해야 가족을 만나게 해준다고 해서 허위로 자백했다’는 그의 말이 신빙성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 회신을 받아보고 나도 아찔했다.
정말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나 싶기도 했다. 그는 마약 투약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기소됐는데, 그중 일부는 무죄로 판단돼 1심 판결이 파기될 게 확실했다. 
 
그에게 회신 서류를 보여주던 날, 국선을 숱하게 갈아치우면서 재판부도 꼼짝 못 하게 했던 그 못 말리는 ‘초진상’이 눈물을 쏟아냈다. “변호사님만 제 말을 들어주고 믿어줬습니다. 제 말이 증명됐으니 이젠 어떤 벌을 받아도 여한이 없습니다. 항소기각 돼도 괜찮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는 나를 완벽하게 오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믿지 않았다. 내가 그의 말을 들어준 건 단지 내가 일곱 번째 국선 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이었다. 
 
그 후에 L의 항소심 사건을 맡았다. 그 사건의 1심 국선이 S로부터 협박 편지까지 받았던 ‘나쁜 국선’ K였다. 구치소에 접견을 갔더니 그 피고인이 K 얘기를 했다. “K 변호사님과 같은 사무실 쓰시죠? 사무실 주소가 같더라고요. 그 변호사님, 진짜 훌륭하신 변호사님이더라고요. 잘 계시나요?” 항소심 국선 에게 1심 국선을 욕하는 피고인들은 많아도 칭찬하는 경우는 드물다. K 변호사가 피고인 말을 잘 들어 주면서도 말 안 되는 주장을 하는 피고인 설득도 잘하고, 일을 열심히 한다는 거야 나는 잘 알고 있었 지만, 피고인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훌륭하다고 느꼈는지 궁금했다. 
 
“제가 벌을 피해보려고 처음에 부인했거든요. K 변호사님이 처음에 오셔서 제 말을 듣더니 여러 증거를 보여주시면서 ‘이런 증거가 있는데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겠느냐’, ‘이 사람은 이해관계 없는 3자인데 일부러 당신한테 불리하게 말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 하면서 설명을 자세히 해주시더라고요. 저는 국선변호인이 제 맘대로 안 해주고 자꾸 불리한 증거를 보여주고 하니 마음에 안 들어서 나중에 변호 사를 선임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K 변호사님 말씀이 다 맞았어요. 변호사님이 내신 변론요지서도 항소심에서 기록 열람 신청해서 봤는데, 저에게 유리하게 엄청 잘 써주셨더라고요. 사선변호사는 K 변호사님보다 훨씬 못했어요. 제가 뭐라고 하면 그대로 주장만 해줬지 설득 같은 게 없었어요. 변론서도 K 변호사님이 쓰신 내용 그대로 베꼈더라고요. 제가 미쳤죠. 훌륭하신 국선변호사님을 못 알아보고 돈까지 들여서 사선변호사를 샀으니…. 에휴.” 
 
나와 K 변호사는 전적으로 ‘나쁜 국선’도, 전적으로 ‘좋은 국선’도 아니었다. 피고인과 의사소통이 얼마나 잘되느냐에 따라 ‘좋은 국선’이 되기도, ‘나쁜 국선’이 되기도 했다. 핵심은 결국 소통이었다. 
 
법과 사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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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국선의 상관관계 “피고인, 직업이 회사원이라고 했죠? 어떤 회사인가요?” 증인신문이 끝나자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물었다. 뭔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증거조사를 하면서 직업을 다시 확인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재판장은 제1회 공판기일에서 재판에 출석한 사람이 피고인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름과 연령, 직업과 주소를 확인한다. 재판 도중 다시 직업을 묻는 일은 흔치 않다. 피고인이 식재료 유통회사에 다닌다고 하자 재판장이 다시 묻는다. “월급을 얼마나 받나요?” 그 질문을 듣고야 감이 왔다. 
 
개인의 취향: 그날 증인신문에서 호화로운 펜션 사진 여러 장을 제시했다. 파티 동호회 카페에서 만난 젊은 남녀 몇 명이서 바다가 보이는 그 펜션에서 파티를 하며 놀았는데 내 피고인이 그날 처음 만난 여성에게 강제로 입을 맞추었다고 강제추행으로 기소된 사건이었다. 대리석 바닥, 이국적 분위기가 물씬 나는 러그, 화려한 샹들리에, 홈시어터 장비, 세련된 가죽 소파와 침구, 그리고 푸른 바다가 보이는 전망까지, 드라마에서나 봄직한 고급 펜션이었다. 재판장은 파티 장소 사진을 처음 보고, 그런 고급 펜션을 빌려 파티를 할 정도의 피고인이 왜 국선변호인 선정 청구를 했나 의아했던 모양이다. 난 속으로 배시시 웃었다. ‘재판장님, 곧 아시게 되겠지만 이 피고인 돈 없는 거 맞아요. 실업급여 132만 원 받으 면서 저런 파티를 했대요.’ 나도 피의자신문 조서에 있는 문답으로 그 사실을 알았다. 
 
문: 재산이 얼마나 되나요?
답: 제 명의로 된 재산은 없고요. 실업급여 132만 원 받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월급을 200만 원 정도 받았습니다. 
 
저런 데서 파티를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나도 궁금했다. 그래서 그와 처음 상담할 때 슬쩍 물어 봤다. “파티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엔분의 일 내는 거니까 돈이 그렇게 많이 드는 건 아닙니다.
서울서 호텔이나 와인 바 빌려서 파티하는 거랑 별 차이 안 납니다.” 그의 답은 내게 아무런 정보가 되지 못했다. 나는 호텔에서도, 와인 바에서도 파티를 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는 ‘실업급 여를 받으면서 호화로운 펜션 파티를 했다’는 데에 거리낌이 있거나 모순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개취(개인취향)’이니 존중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형사 재판에서 국선변호를 받는다고 하면 돈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개는 그렇다. 모아둔 돈 한 푼 없는 실업자의 상태에서도 당당하게 파티를 즐긴 그도 ‘돈이 없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이정도는 그래도 봐줄 만하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재산이나 소득이 상당한데 국선변호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선으로 시간 끌기: 업무상 횡령으로 재판을 받던 40대 남자가 있었다. 동업하던 중 거래처에서 받은 물품 대금을 꿀꺽했다. 그를 고소한 그의 동업자는 재판 때마다 한 무리의 ‘어깨들’을 거느리고 재판을 방청했다. 그는 돈을 갚겠다고 하면서 계속 시간만 끌었다(못 갚는 건지 안 갚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변론 종결하던 날 오전 10시 재판이었는데, 그가 11시 반에 법정에 갈 거라고 사무실에 전화를 남겼다. 동업자 일행이 조폭인데 아무래도 자기를 해칠 것 같다며 그들이 다 돌아간 뒤에 온다는 것이었다.
직원에게 문자로 이 사실을 전달받고 참 가지가지 한다고 생각했다. 
 
피고인이 오지 않아도 변호인은 일단 출석해야 하니 10시에 맞춰 법정으로 갔다. 법정 앞에 동업자 일행이 잔뜩 앉아 있었다. 나를 알아보고는 동업자가 “걔, 안 와요?”라고 물었다. 나는 시큰둥하게 “저도 몰라요” 했다. 재판장이 내게 피고인은 무슨 일로 출석하지 않았는지 물으셨지만 동업자 일행이 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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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에 있어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 답이 최선이었다. 재판장은 다음에도 불출석하면 영장을 발부한다며 재판을 몇 주 뒤로 연기했다. 동업자 일행은 허탈한 표정으로 나갔다. 
 
그가 늦게라도 온다고 했으니 할 수 없이 기다렸다. 11시 20분쯤 직원에게 연락이 왔다. 그가 법원 주차장에 있는데 혹시 ‘어깨들’과 마주칠까 봐 불안해서 법정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는 거였다. 주차장으로 갔더니 그가 독일제 고급 승용차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 승용차를 가리키며 본인 차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그 좋은 차 앞에 서서 그는 계속 불안해했다. 보다 못한 내가 그에게 말했다. “아까그 사람들 가는 거 제가 봤습니다. 그리고 혹시 마주치더라도 벌건 대낮에, 그것도 법원에서, 국선변호 인이 옆에 있는데 그 사람들이 뭘 어쩌겠어요?” 그제야 그는 나를 따라 법정으로 향했다. 그를 법정으로 데리고 와 연기됐던 재판을 무사히 받았다. 법정을 나서며 “선고일까지 돈 안 갚으면 법정구속될 각오하고 나오셔야 합니다” 했더니 당연하다는 듯 그가 말했다. “어차피 저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새끼한테 돈 주느니 그냥 살고 나와야죠. 검사가 1년 구형했으니 8개월이나 10개월 정도 생각하면 되겠죠?” 
 
폼 나는 차를 몰고 다니면서 남의 돈 고작 몇천만 원 갚지 않고 ‘갚겠다, 갚겠다’ 빈말만 해대는 사람이 그렇게 시간 끌기용으로 국선변호사를 이용하기도 한다. 
 
돈 있어도 국선: 벌금 100만 원의 약식 명령을 받고 정식 재판청구를 한 의사 사모님 사건도 가관이었다. 그 사모님은 남편과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의심되는 여자를 폭행했다는 혐의였다. 남편이 상대와 바람을 피웠는지는 두 사람만 알겠지만(바람을 피웠다 한들 간통죄는 폐지됐으니 국가는 관심 밖이다), 그녀가 하이힐 구두를 벗어 상대 여자의 머리를 때린 장면이 CCTV에 고스란히 녹화돼 있었다. 그녀는 공소사실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고, 자기 남편을 유혹한 그 여자가 나쁜 여자인데 왜 자기가 재판을 받아야 하냐며 법정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재판 진행이 원활하게 되지 않으니 재판부가 국선 변호인을 선정해줬다. 
 
그녀에게 나는 두 번째 국선변호인이었다. 첫 번째 국선은 연세 있으신 남자 변호사였는데 증거 기록을 보고 그녀에게 쓴소리를 한 모양이었다. 남자 변호사라서 여자를 이해해주지 못하니 여자 변호사로 바꿔달라고 그녀가 탄원서를 써냈다. 사무실에서 그녀와 한 시간 반을 이야기했지만 그녀 입장이 때렸 다는 걸 인정한 건지 아닌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고는 거의 매일 귀찮을 정도로 전화를 걸어왔고, 통화가 시작되면 수십 분 동안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다. 그녀의 질문은 사건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거나 이 사건 재판에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내가 사무실에 없을 때는 직원에게 온갖 필요 없는 질문을 해서 직원이 다른 일을 못 할 정도였다. 참다못해 나는 한 소리를 했다. “지난번 사무 실에 방문하셨을 때 제가 사건에 대해 충분히 듣고 상담했잖아요. 이제 남은 건 증인들이 나와서 법정 증언하는 거 듣고 판사님이 유무죄를 판단하는 건데, 이렇게 사무실에 전화를 자주 하셔서 저와 직원 시간을 뺏으면 저희가 다른 일을 못 하잖아요. 그렇게 억울한 게 많으시면 사선변호인 선임하셔서 원하시는 만큼 말씀하세요. 경제적 여력도 되시잖아요.” 
 
그녀는 변호사를 구할 돈이 없다고 했다. 공소장에 있는 주소를 보니 이 지역에서 가장 부촌에 있는, 브랜드만 들어도 누구나 부러워하는 아파트였다. 인터넷에 그 아파트를 검색했더니 그녀가 사는 동이그 아파트에서도 가장 넓은 평수였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사선변호인을 선임할 능력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수임료를 쓰기 싫은 듯했다. 본전(원래 받은 약식 명령의 벌금)이 100만 원인데 변호사를 선임하 려면 최소 그 몇 배는 줘야 한다. 자기가 유죄라는 걸 어느 누구보다 잘 알 테니 굳이 돈 들여 변호사 
 
- 11 -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를 선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최후통첩을 했다. “사선변호인 선임할 여력이 안 되신다니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겠네요. 이제 저희 사무실에 전화는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전화가 사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요. 오히려 저희 일에 방해만 됩니다. 제가 변론 준비는 충분히 해가겠습니다. 꼭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그녀는 자기에게 쓴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된다고 그러느냐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운운했다.
나는 눈 하나 깜짝 않고 “그럼 오늘은 이만 전화를 끊겠습니다” 하며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 일이후로도 그녀가 사무실에 몇 번 더 전화를 했는데, 나는 최후통첩에 충실하게 사무적으로 꼭 필요한 만큼만 응대했다. 결국 그녀는 ‘성의도 없고 사건 파악이 전혀 돼 있지 않으며 상담조차 해주지 않는 변호사’에게는 충분한 조력을 받을 수 없다고 재판부에 탄원서를 써냈고, 그 사건은 세 번째 국선변호 인에게 갔다. 국선변호인 취소 결정문을 받던 날, 재판부와 그 다음 국선변호인에게는 미안했지만 그사건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너무 기쁜 나머지 직원과 얼싸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 12 -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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