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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국기 [오노 후유미] 1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01

by Casey,Riley 2023.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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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上) 1장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상)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1 장
 
- 1 -
 칠흑같은 어둠이었다.
 그녀는 그 안에 꼼짝않고 서있었다.
 어디에선가 물방울이 수면에 떨어지는 소리가 높게 울렸다. 가는 소리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마치 깜깜한 동굴 속에 있는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어둠은 깊고 넓게 퍼져있었다. 그 하늘도 땅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엷은 홍련의 불빛이 나타났다. 어둠의 저편에 불이라도 붙은 듯이, 홍련의 빛은 모습을 바꾸며 춤춘다.
 붉은 빛을 등지고 무수히 많은 그림자가 보였다. 이형(異形)의 짐승 무리였다.
 그들은 말 그대로 도약하면서, 불빛 쪽에서 이쪽으로 다가온다. 원숭이에, 쥐에, 새가 있다. 갖가지 종류의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모두가 도감에서 보았던 모습과 조금씩 달랐다. 게다가 어느 것도 전부, 원래의 몇 배나 크다. 붉은 짐승과 검은 짐승과 푸른 짐승이.
 앞발을 뻗으며, 빠른 걸음으로 달려온다. 간혹 도약하고, 공중을 선회하며, 마치 활기찬 축제의 행렬과도 같았다. 활기차다고 말하자면 활기찬 것도 사실이고, 굳이 축제라고 하자면 축제임에도 틀림없다.
 이형의 생물들은 희생자를 목표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산제물을 피의 축제에 바칠 환희에 날뛰며 접근해 온다.
 그 증거로 살의가 폭풍처럼 불어닥쳐 온다. 무리의 선두까지는 이미 사백미터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모두가 크게 입을 벌리며,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환성을 지르고 있는 것만은 표정으로 알 수 있다. 목소리도 발소리도 없이, 그저 동굴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만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그녀는 다가오는 그림자를 그저 눈을 크게 뜨고서 바라보고 있다.
 --저것들이 도착하면, 살해당할 거야.
 그것을 알고 있어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아마도 갈갈이 찢겨서 먹혀버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다. 설령 몸이 움직여준다고 해도 도망갈 곳도 없고 싸울 방법도 없다.
 몸 속에서 혈액이 역류하는 것을 느낀다. 그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파도소리와도 비슷했다.
 보고 있는 사이에, 거리는 삼백미터 정도로 좁혀졌다.
 
 요코는 튕기듯이 일어났다.
 관자놀이에 땀이 흘러내리는 느낌과 함께, 눈이 굉장히 시린 것을 느낀다. 당황해서 몇 번이고 눈을 깜박이고, 그러고서야 겨우 깊게 숨을 내쉬었다.
 「꿈......」
 혼잣말을 한 것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제대로 확인하면서 자신을 달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그건, 꿈이야.」
 꿈에 지나지 않아. 설령 그것이, 요즈음 한달 내내 계속해서 꾸고 있는 꿈이라고 해도.
 요코는 천천히 고개를 흔든다. 방안은 두터운 커튼 때문에 어두웠다. 머리맡의 시계를 보니 일어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몸이 무겁다. 손도 발도 움직이려면 어딘가에 들러붙은 듯한 저항감을 느낀다.
 그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한 달 정도 전부터였다.
 최초에는 그저 어둠밖에 없었다. 높게 울리는 물방울 소리가 들리고, 새까만 어둠 속에 자신이 그저 혼자 서있었다. 불안하고 불안해서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다.
 어둠 속에서 홍련의 불빛이 보인 것은, 똑같은 꿈을 사흘동안 연속해서 꾼 뒤였다. 꿈속의 요코는 빛이 있는 곳에서 무서운 것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저 어둠 속에 빛이 있다, 그뿐인 꿈에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고, 닷새 뒤에는 그림자가 보였다.
 최초에는 붉은 빛 속에 떠오른 얼룩같이 보였다. 며칠동안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이에, 그것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뭔가의 무리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며칠이 더 걸렸고, 이형의 짐승들이라는 것을 알게된 것은 그로부터도 며칠 뒤의 일이었다.
 --그렇게.
 요코는 침대 위에서 인형을 바싹 끌어안았다.
 --이젠 저렇게까지 가까이.
 한 달 동안 지평선에서부터 짐승의 무리는 다가오고 있다. 아마도 내일이나, 모레에는 요코가 있는 곳에 닿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난 어떻게 되는거지.
 그렇게 생각하다 요코는 머리를 저었다.
 --그건 꿈이야.
 설령 한 달이나 계속되고 있다고 해도, 더욱이 매일 조금씩 진행되어가는 꿈이라고 해도, 꿈은 꿈일 뿐이다.
 뒤풀이해서 말해봐도 불안이 떠나지 않는다. 심장은 급하게 뛰고, 귀속에서 혈액이 흐르는 소리가 파도처럼 들려온다. 호흡은 거칠어져 있고, 심하게 목이 말랐다. 잠시동안 요코는 매달리듯이 인형을 껴안고 있었다.
 수면부족과 피로로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교복으로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뭔가를 하는 것도 다 귀찮아서, 대충 얼굴을 씻고 부엌으로 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싱크대에서 아침 준비를 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벌써 일어났니? 요즘은 빨리 일어나는구나.」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요코를 돌아본다. 얼핏 던진 시선이 요코에게 멈추더니, 금방 딱딱하게 표정이 변했다.
 「요코, 또 빨개진 거 아니니?」
 일순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고 있던 요코는 퍼뜩 놀라서, 당황하며 머리를 손으로 쥐었다. 평소때라면 깔끔하게 땋고서 부엌에 얼굴을 비쳤지만, 오늘 아침은 자기 전에 땋은 머리를 풀고 빗어두었을 뿐이었다.
 「조금만 염색해보면?」
 요코는 고개를 저었다. 풀려진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뺨을 간지럽혔다.
 요코의 머리카락은 붉은 색이다. 원래부터 색이 옅은데다가 햇빛을 쐬어도 수영장에 들어가도 곧 색이 옅어져버린다. 등까지 올만큼 머리를 기르고 있지만, 기를수록 머리 끝부분의 색이 옅어진다. 그때문에 정말로 탈색한 것 같은 색이 되어버렸다.
 「아니면, 더 짧게 잘라본다던가.」
 요코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다.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머리를 땋는다. 정확히 세갈래로 나누어 땋자 조금은 색이 짙어져 보인다.
 「대체 누굴 닮은걸까......」
 모친은 눈살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도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정말로 원래부터 그런 거냐고. 그러니까 염색하라고 했잖니.」
 「염색은 금지잖아요.」
 「그럼 확 짧게 잘라보면? 그러면, 조금은 눈에 띄지 않게 될거야.」
 요코는 고개를 숙인다. 모친은 커피를 타면서 차가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여자애는 청순한 게 제일 좋은거야. 눈에 띄지 않게 얌전히 있어야지. 일부러 남의 눈에 띄려고 하는 건 아닌가, 따위로 의심받는건 부끄러운 일이야. 네 인간성까지 의심받는 거니까.」
 요코는 묵묵히 식탁보를 바라본다.
 「그 머리를 보고서 불량한 애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그렇게 오해받는 건 싫지? 돈 줄테니까, 집에 올 때 자르고 와라.」
 요코는 몰래 한숨을 쉬었다.
 「요코, 듣고 있니?」
 「......네.」
 대답하면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우울한 빛깔의 겨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2월도 중반, 아직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 2 -
 요코가 다니고 있는 곳은 평범한 여학교였다. 여학교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특징도 없는 사립학교. 부친이 완고하게 고집한 학교였다.
 요코는 중학교때 성적이 비교적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더 높은 레벨의 학교를 노리고 있었고, 담임도 다른 학교를 강하게 권했지만 부친은 양보하지 않았다. 집에서 가깝고, 분위기가 나쁘지도, 역으로 화려하지도 않은 것이 마음에 든 듯 했다.
 처음엔 연합고사 성적표를 보며 아깝다고 생각하던 모친도 곧 부친의 의견에 찬성했다. 양친이 납득해버리면 요코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조금 떨어진 곳에 교복이 마음에 드는 학교가 있었지만, 교복 때문에 떼를 쓰는 것도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묵묵히 거기에 따랐다. 그때문이었는지, 입학해서 1년이 지나가는 학교에는 지금도 특별히 애착이 없었다.
 「안녀엉-」
 요코가 교실에 들어가자,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2, 3명의 여자애들이 요코를 향해 손을 들고 있다. 그 중 한 명이 다가왔다.
 「나카지마상, 수학 프린트 풀었어?」
 「응」
 「미안-. 보여줘.」
 요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가에 있는 자신의 자리에 가서 프린트를 꺼냈다. 몇 사람의 여자애들이 책상 주변으로 모여들어, 재빨리 그것을 베끼기 시작한다.
 「나카지마상은 착실하구나. 과연, 반장.」
 요코는 애매한 표정으로 웃는다.
 「정말, 그래. 난 숙제 따위 싫어서 금방 까먹어버려.」
 「응, 응. 해보려고 해도 잘 모르겠고. 괜히 시간만 들고, 금방 잠들어버려. 머리좋은 사람은 좋겠다.」
 「이런 거, 금방 끝내버리겠지?」
 요코는 당황해서 고개를 젓는다.
 「그, 그런거 아냐.」
 「그럼, 공부가 좋은거구나.」
 「설마.」
 요코는 웃었다.
 「우리집은, 엄마가 엄해서.」
 그건 사실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말해두는 편이 거슬리지 않는다.
 「자기 전에 하나하나 체크하니까, 정말 싫어.」
 모친은 오히려 요코가 공부하는 것을 싫어한다. 성적 따위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학원에 다닐 시간이 있으면 가사를 배우라는 것이 어머니의 바램이었다. 게다가 착실하게 공부하는 것은 공부가 좋아서가 아니다. 그저, 선생님에게 꾸중듣는 것이 무서워서였다.
 「히야아, 열성엄마네.」
 「응. 공부, 공부, 시끄러워서.」
 「알어, 알어. 우리집도야. 사람 얼굴만 보면 공부, 공부. 자기는 그렇게 공부가 좋았나, 싶어.」
 「그렇구나.」
 왠지 안도하면서 요코가 끄덕일 때, 여자애들 중 하나가 작게 말했다.
 「아, 스기모토다.」
 교실에 한 명의 소녀가 들어오는 참이었다.
 금방 전원의 시선이 그리로 모였다가 곧 흩어졌다. 싸늘하게 그녀를 무시하는 공기가 흐른다.
 그 학생을 무시하는 것이 최근 반년동안 반에서 해오고 있는 '놀이'였다. 그녀는 그런 반의 분위기를 주눅든 눈으로 둘러보면서 깊게 움츠린다. 주저주저하면서 요코 쪽으로 걸어와 왼쪽 자리에 앉았다.
 「나카지마상, 안녕.」
 갑자기 말을 걸어와서 요코는 순간 대답할 뻔 하다가, 당황하며 그것을 얼버무렸다. 언제인가 무심결에 대답을 했다가 나중에 다른 아이에게 비난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못들은 척 했다. 주변에서 큭큭 웃는 소리가 들린다.
 웃음거리가 된 쪽은 상처입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지만, 그래도 계속 요코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것을 느끼면서, 요코는 옆 아이의 대화에 맞장구를 쳤다. 무시당하는 그녀가 불쌍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모두의 눈밖에 나면 다음엔 자신이 피해자가 된다.
 「저.........나카지마상.」
 옆에서 주저하며 말을 걸어왔지만, 요코는 여전히 못들은 척 했다. 고의로 무시하는 것은 괴롭다. 하지만 요코는, 어떻게 해야할지 알지 못한다.
 「나카지마상.」
 그녀는 참을성 있게 몇 번이고 부른다. 그때마다 주위의 말소리가 멈추면서, 마침내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이 그녀 쪽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요코도 그 이상 무시할 수 없어서, 주눅든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상대에게 눈을 돌린다. 시선은 돌렸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저.......수학 예습 했어?」
 그녀의 주저하는 목소리에, 요코의 주위에 있던 아이들이 큭 웃었다.
 「....일단은.」
 「미안하지만, 보여줄 수 없을까?」
 수학선생은 지명할 학생을 미리 얘기해둔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그녀 차례라는 것이 생각났다.
 요코는 친구들에게 눈을 돌린다. 모두 아무 말없이, 똑같은 눈빛으로 그에 답했다. 모두가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요코는 씁쓸한 기분을 삼켰다.
 「아직, 고쳐야 할게 있어서.」
 완곡한 거절은 관객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하다. 바로 한마디씩 해온다.
 「나카지마상, 친절하네-.」
 너무 소극적이야, 라고 질타하는 소리다. 요코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다른 학생이 거기에 동의한다.
 「나카지마상, 확실히 말하면 좋을텐데.」
 「응, 응. 너 따위가 말을 걸면 폐가 된다고.」
 「세상에는 확실하게 말해두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하는 바보가 있으니까.」
 요코는 뭐라 대답해야할지 몰라 고민했다. 주변의 기대를 저버릴 용기는 없지만, 또한 옆자리에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급우에게 더 심한 말을 던질 용기도 없었다. 요코는 곤란한 듯이 웃었다.
 「.......으-음.」
 「정말 나카지마상은, 사람이 좋다니까. 그러니까 저런 누군가 따위가 기대려고 하는 거잖아.」
 「나, 일단은 반장이고......」
 「뻔히 지명받고서도 안해온 쪽이 나빠. 그런 녀석 뒤치다꺼리까지 해줄 것 없어.」
 「그럴까.」
 「그래. 우선---」
 그 학생은 잔인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스기모토 따위에게 노트를 빌려주면, 노트가 더러워지잖아.」
 「아, 그건 곤란할지도.」
 「그지?」
 왓 하고 다시 모두가 웃어댄다. 함께 웃으면서 요코는 곁눈으로 옆자리의 기색을 살핀다. 깊게 움츠리고 있는 소녀는,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스기모토상에게도 책임은 있어.
 요코는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다. 누구든 아무런 이유도 없이 피해자로 정했을 리가 없다. 피해자가 된 것에는 그녀에게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터였다.
 
- 3 -
 --하늘도 땅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높다란 공동에 물방울 소리가 울린다.
 요코는 그 어둠 속에 서있었다.
 얼굴을 돌린 쪽에, 엷은 홍련의 불빛이 보인다. 그 빛을 등지고 무수히 많은 짐승들이 움직이고 있다. 이형의 짐승떼가 날뛰며 다가오고 있다.
 무리와 자신 사이의 거리는 이제 이백미터 정도밖에 없다. 이형의 짐승들의 거대함 때문에, 그것은 매우 가까운 거리로 보인다. 웃는 듯이 입을 벌린 커다란 원숭이의 붉은 털이 빛을 반사하며, 도약할 때마다 꿈틀거리는 근육의 움직임이 보인다. 벌써 이만큼밖에 남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수도, 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커다랗게 눈을 부릅뜨고, 접근해오는 무리를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달린다. 도약한다. 퉁기듯 달려온다. 뿜어내고 있는 살기는 돌풍처럼 숨이 막혔다.
 --일어나지 않으면.
 저것들이 도달하기 전에, 꿈에서 깨지 않으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눈을 뜰 방법을 알 수 없다. 뜻대로 일어날 수 있었다면, 애초부터 그렇게 했을 것이다.
 미동도 못하고 보고 있는 사이에, 거리는 어느새 반으로 좁혀졌다.
 --일어나야 해.
 갑작스레 초조가 밀려왔다. 몸 속에서 소용돌이치며 피부를 뚫고 나올 것만 같다. 거친 호흡과 빨라지는 고동에, 혈액이 흐르는 소리가 파도소리처럼 들린다.
 --어떻게건, 여기서 도망가지 않으면.
 그렇게 생각한 순간, 갑자기 머리 위의 기척을 느꼈다. 살기가 요코를 짓누르며 덥쳐오고 있었다. 요코는 꿈속에서 처음으로 몸을 움직여, 머리 위를 올려다 보았다.
 갈색의 날개가 보였다. 억센 갈색의 다리와, 무서울 정도로 예리한 큰 발톱을.
 도망간다는 생각마저 떠올릴 틈이 없었다. 일순 몸 속의 파도가 강하게 밀어닥치며, 요코는 비명을 질렀다.
 
 「나카지마상!」
 요코는 갑자기 자리에서 도망쳤다. 도망가는 것만을 절실히 바란 나머지, 무심결에 몸이 그것에 따라버렸다. 도망치고 나서야 간신히 주변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질렸다는 표정의 여선생과, 마찬가지로 벙 찐 표정의 학생들. 한박자 늦게 와그르르 웃기 시작했다.
 핫, 숨을 들이키면서, 요코는 새빨개졌다.
 잠들었던 것이다. 요즈음 꿈 때문에 잠을 잘 못자서, 항상 졸리웠다. 계속 수면부족이었기 때문에 수업중에 조는 일도 꽤 있었지만, 꿈까지 꾼 것은 처음이었다.
 발끈 화내며 선생님이 다가왔다. 왜인지 요코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필이면, 하며 요코는 입술을 깨물었다. 요코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에게 평판이 좋았지만, 아무리 말을 잘 들어도 이 선생님하고만은 잘 지낼 수가 없었다.
 「...정말로.」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영어 교과서로 요코의 책상을 내리쳤다.
 「수업중에 조는 학생이라면 많지만, 잠꼬대까지 할만큼 깊이 자는 녀석은 처음이다.」
 요코는 고개를 숙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넌 학교에 뭐하러 온거야? 잠이라면 집에서 자면 될 거 아냐. 수업이 싫으면, 억지로 올 것도 없을텐데.」
 「........죄송합니다.」
 선생은 교과서 모서리로 책상을 친다.
 「아니면, 그렇게나 밤놀이하느라 바쁜거냐?」
 학생들이 와그르르 웃었다. 동정하지도 않고 웃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는, 친구들의 모습도 섞여있었다. 들으라는 듯한 웃음소리가 왼쪽에서도 들려왔다.
 여선생은 가볍게, 하나로 땋아서 등으로 늘어뜨린 요코의 머리카락을 당겼다.
 「이거, 원래부터 이렇다고?」
 「....네.」
 「그래? 내 고등학교때 친구 중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애가 있었지, 이런 머리색이었는데. 왠지 그애가 생각나.」
 그렇게 말하며 선생은 웃었다.
 「뭐, 그 사람은 너와는 달리 탈색한 거였지만. 3학년 때 권고퇴학 당했지. 지금은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나. 그리운걸.」
 교실 여기저기서 큭큭거리는 웃음소리가 난다.
 「---그래서? 수업을 받을 생각은 있는거니, 없는거니?」
 「....있습니다.」
 「그래? 그럼 계속 서있어라. 그럼 깨어있을테지?」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 비웃는 듯한 웃음을 띄우며 교단으로 돌아갔다.
 서있는 채로 수업시간 내내, 교실에는 큭큭거리는 웃음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요코는 그 날 방과후, 담임의 호출을 받았다. 아마도 영어시간의 일이 귀에 들어간 듯 했다.
 직원실에 호출되어, 어떻게 하고 있는 거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밤에 놀러 다니는 거겠지, 라고 말하는 선생도 있고 말이야.」
 중년의 담임은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찌푸린다.
 「어떻게 된거지? 뭔가 밤늦게까지 못 잘만한 사정이라도 있는거냐?」
 「.....아뇨.」
 그런 꿈 얘기를 다른 사람한테 할 수는 없다.
 「밤늦게까지 TV라도 보는거냐.」
 「아뇨, 저.........」
 요코는 당황하며 둘러댔다.
 「중간고사 성적이 떨어져서......」
 담임은 완전히 납득한 듯 하다.
 「아아, 그런거라면 미안하구나. 그래서였나. ---하지만, 나카지마.」
 「네.」
 「아무리 집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도, 정작 수업을 듣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
 「죄송합니다.」
 「사과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나카지마는 오해받기 쉬우니까. 결국 그 머리색이 눈에 띄니까 그런거다. 그것, 어떻게 안되겠니?」
 「오늘, 자르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그렇게 말하며 담임은 끄덕였다.
 「여자애니까 싫겠지만 그러는게 널 위한거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염색한 거라느니, 노는 애라느니 말하는 선생님도 있고 말이야.」
 「네.」
 담임은 요코에게 손을 흔든다.
 「자, 그럼 가도 좋으니까.」
 「예. 실례했습니다.」
 요코는 고개를 숙인다. 그 때였다. 등뒤에서 목소리가 난 것은.
 
- 4 -
 「.....찾았다.」
 목소리와 함께 희미하게 바다 냄새가 났다.
 담임이 놀라서 요코의 뒤쪽을 봤고, 요코도 뒤돌아섰다.
 요코의 뒤에는 젊은 남자가 서있었다. 전혀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당신이다.」
 남자는 똑바로 요코를 보며 말했다. 아마도 이십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순간 아연해질만큼 기묘한 남자였다. 옷자락이 긴 기모노같은 옷을 걸치고 있다. 무표정한 얼굴에 머리는 무릎에 닿을 정도로 길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묘한데다 머리색은 완전히 밝은 금색이었다.
 「누구야, 당신.」
 담임이 수상쩍다는 듯이 묻는다. 남자는 거기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더더욱 사람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요코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서, 깊게 머리를 숙인 것이다.
 「......계속 찾았사옵니다.」
 「나카지마, 아는 사이냐?」
 담임이 질문하자, 완전히 멍하게 있던 요코는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너무나도 이상한 사태에, 요코는 물론 담임 역시 제대로 반응할 수 없는 듯 했다. 곤혹한 기분으로 바라보자, 남자는 일어섰다.
 「부디 저와 가주십시오.」
 「하아......?」
 「나카지마, 뭐냐, 이 녀석은.」
 「모르겠습니다.」
 묻고 싶은 것은 요코 쪽이었다. 도움을 청하며 담임을 보았다. 직원실에 남아있던 다른 교사들이 의아한 듯이 모여들었다.
 「뭐야, 너는? 교내는 관계자 말고는 출입금지다.」
 담임이 마침내 거기에 생각이 미친 듯 강하게 나가자, 남자는 무표정하게 담임을 돌아보았다. 조금도 움츠러든 기색이 없었다.
 「당신에게는 관계없소,」
 차갑게 내뱉고서 주위에 몰려든 교사들을 둘러본다.
 「당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러나십시오.」
 너무나도 위풍당당한 행동에 모두가 놀라고 있다. 마찬가지로 놀라고 있던 요코를 남자가 다시 보았다.
 「사정은,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어쨌거나 저와 함께 가주십시오.」
 「실례지만,」
 누구시죠. 라고 요코가 물었을 때,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타이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듯한 어조의 목소리에,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이 기묘한 남자의 이름인지도 모른다.
 「뭔가.」
 눈썹을 찌푸리며 돌아보는 방향에는, 어디에도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서인지도 모르게, 다시 한번 목소리가 울렸다.
 「추격자가. 따라와 버린 것 같습니다.」
 가면처럼 무표정하던 얼굴이 처음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묵묵히 끄덕이면서 요코의 손목을 붙잡았다.
 「실례를. --이 곳은 위험합니다. 이쪽으로.」
 「위험......이라니.」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냉정하게 말을 잘라버리는 말투에 요코는 무심결에 몸을 움츠렸다.
 「곧 적이 옵니다.」
 「.............적?」
 갑자기 불안해져 반문할 때였다. 바로 곁에서 다시 목소리가 울렸다.
 「타이호.왔습니다.」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아도, 역시나 말하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교사들이 뭔가를 말하려고 한 때와 동시였다.
 ----뒤운동장 쪽의 유리창이 깨진 것은.
 
 깨진 것은 요코 곁의 창문이었다. 그대로 눈을 꽉 감아버린 요코의 귀에 유리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담임의 목소리에 요코가 눈을 떠보자, 교사들은 유리가 깨진 창으로 뛰어와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큰 개천을 마주보고 있는 창문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 들어왔고, 그와 함께 뭔가 비린내같은 냄새가 섞여있었다. 마루에는 유리조각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요코가 비교적 창가에 가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리조각을 뒤집어쓰지 않은 것은, 남자가 방패가 되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질문하는 요코에게, 남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위험하다고 말씀드렸건만.」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요코의 팔을 잡았다.
 「이쪽으로.」
 강한 불안을 느꼈다. 붙잡힌 팔을 빼내려고 했지만, 남자는 절대로 놔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세게 잡아당긴다. 발버둥치며 비틀거리는 요코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끌어당기는 남자를 제지한 것은, 담임이었다.
 「이건, 네 짓인가?」
 남자는 차가운 시선으로 담임을 보았다. 냉정하고 용서가 없는 목소리였다.
 「당신에게는 관계없어. 물러나 있으시오.」
 「뭐냐, 넌. 우리 학생에게 무슨 짓인가? 바깥에 한 패라도 있는거냐?」
 남자에게 노성을 지르고는 요코를 노려본다.
 「나카지마, 어떻게 된 일이냐?」
 「...모르겠습니다.」
 묻고 싶은 것은 요코 쪽이었다. 고개를 흔드는 요코를 남자가 끌어당긴다.
 「어쨌거나, 이곳은.」
 「싫어요.」
 이런 식으로 오해받는 것은 두려웠다. 이런 남자와 한 패라고 생각되어지면. 몸을 비틀며 남자의 팔을 떨쳐냄과 동시에, 또 한번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타이호.」
 한층 긴장한 목소리였다. 교사들은 누가 말하는지 확인하려는 듯 주변을 돌아보았다. 남자는 눈에 띄게 얼굴을 찌푸렸다.
 「정말 고집스럽군.」
 내뱉듯이 말하며, 남자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뭐라고 반응할 틈도 없이 요코의 발을 붙잡았다.
 「항상곁을떠나지않으며충성을다할것을서약합니다.」
 빠른 속도로 말하고서, 바로 요코를 노려보았다.
 「허락한다, 라고.」
 「에?」
 「목숨이 아깝지 않으십니까! --빨리 허락한다고 말씀하십시오.」
 강하게 밀어붙여져, 얼떨떨한 상태로 요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한다......」
 바로 남자가 취한 행동은 요코를 멍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한 박자 늦게, 주위에서 어이없어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너희들!」
 「무슨 생각이냐!」
 요코는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이 얼굴도 모르는 남자는 고개를 숙여, 붙잡은 요코의 발에 자신의 머리를 대었던 것이다.
 「뭐....」
 하는거에요, 라고 말하려던 요코는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갑자기 심한 현기증이 들었다. 자신의 속에서 뭔가가 폭발해 나오는 듯한 감각에 일순 눈앞이 새까매졌다.
 「나카지마! 어떻게 된거냐?!」
 얼굴이 새빨개진 담임이 화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 것과 동시였다.
 쿵, 하는 낮은 땅울림같은 소리와 함께 뒤운동장을 향해 나있는 모든 유리창이 모두 새하얗게 흐려졌다.
 
- 5 -
 그 순간, 마치 대량의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다.
 산산히 깨진 유리조각들이 예리한 빛을 뿜으며 수평으로 날아들어왔다.
 얼결에 눈을 꽉 감으며, 팔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그 팔에, 얼굴과 온몸에 무수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엄청난 소리가 났었을 테지만 요코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자갈이 부딪혀오는 듯한 감촉이 멈춘 것을 확인하고 눈을 뜨자, 교무실은 유리 파편으로 온통 빛을 뿌려놓은 듯이 보였다. 모여있던 교사들이 그대로 웅크리고 있다. 요코의 발치에는 담임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라고 말을 걸면서 그의 온몸에 무수히 많은 유리 파편들이 박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제서야 교사들이 내고 있는 신음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요코는 놀라서 자신의 몸을 살폈다. 바로 담임의 옆에 서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코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그저 놀라고 있던 요코의 발목을 담임이 붙잡았다.
 「너.....뭘 한거냐.」
 「전, 아무것도.」
 담임의 피투성이가 된 손을 떼어낸 것은 그 남자였다.
 「가십시다.」
 그 남자 역시 상처 하나 없었다.
 요코는 고개를 저었다. 따라갔다가는 정말로 한패라고 생각해 버릴 것이다. 그런데도 손을 잡힌 채 마침내 발을 뗀 것은,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적이 온다, 라는 말에는 현실감이 없다. 그것보다도 부상자들로 가득하고 피냄새가 나는,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이 무서웠다.
 
 교무실을 뛰쳐나오자마자 달려오던 교사와 마주쳤다.
 「무슨 일이야?!」
 초로의 교사는 언성을 높이며, 요코의 옆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요코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남자는 손을 들어 교무실을 가리켰다.
 「치료를. 부상자가 있습니다.」
 그 말만을 하고서 요코의 손을 당긴다. 등뒤에서 교사가 뭐라고 외쳤지만, 뭐라고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딜 가는거에요?」
 요코가 말을 꺼낸 것은, 남자가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려고 할 때였다. 어쨌거나 이곳을 떠나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래층을 가리키는 요코의 팔을, 남자가 위로 당겼다.
 「그 쪽은 옥상......」
 「됐으니까, 이쪽으로. 저 쪽에서 맞으러 올 겁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이쪽에 있어봤자 오히려 폐가 됩니다.」
 「폐라뇨?」
 「관계없는 사람들이 말려드는 걸 바라십니까.」
 남자는 옥상으로 나가는 문을 열고, 요코의 손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관계없는 사람이 말려든다는 것은, 요코는 관계가 있다는 말인 것일까. 이 남자가 말한 「적」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묻고 싶었지만 왠지 겁이 났다.
 손을 붙잡힌 채로 반쯤 비틀거리며 옥상으로 들어섰을 때, 등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녹슨 금속이 긁히는 듯한 소리에, 요코는 등뒤로 시선을 돌렸다. 막 빠져나온 문 위에 그림자가 보였다.
 갈색의 날개. 독기어린 부리를 크게 벌린 채, 흥분한 고양이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길이 5미터 정도는 될법한 큰 새였다.
 --저것은.
 뭔가에 꽉 붙잡힌 듯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것은, 꿈속에서 봤던.
 건물 지붕에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짙은 살기가 뿜어나오고 있었다. 저녁이 가까와지면서, 하늘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커튼처럼 깔린 구름 위로,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이 붉은 빛을 던지고 있었다.
 매처럼 생긴 그 새에는 뿔이 있었다. 고개를 흔들며 크게 날개짓하자, 기분나쁜 냄새가 나는 바람이 확 끼쳐왔다. 꿈속에서처럼, 요코는 그저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조의 몸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가볍게 하늘로 날아올라, 공중에서 다시 한번 날개짓을 하고서는 갑자기 날개의 각도를 바꾸었다.
 덥치려는거야, 라고 요코는 멍한 상태에서 생각했다. 큰 다리가 똑바로 요코를 노리고 있었다. 갈색의 털이 나있는 다리에는, 압도당할 정도로 크고 예리한 발톱이 보였다.
 요코가 자세를 바로잡을 틈도 없이, 새의 몸체가 요코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는 것마저도 불가능했다.
 요코의 두 눈은 크게 뜨여있었지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곧바로 자신의 어깨에 둔한 충격이 덮치는 순간에도, 그것이 자신의 어깨로 파고드는 발톱 때문이라고만 겨우 납득했다.
 「효우키!」
 어딘가에서 소리가 들리며, 눈앞에 검붉은 색이 퍼졌다.
 --피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요코는 마침내 눈을 감았다. 상상했던 것보다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죽는다는 것은 훨씬 더 무서운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정신차리십시오!」
 큰 소리와 함께 어깨를 흔들려지고서야 요코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남자가 요코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등에는 콘크리트 바닥이 닿아있었고, 왼쪽 어깨로 딱딱한 철망이 느껴졌다.
 「정신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요코는 황급히 일어났다. 아까 자신이 서있던 장소로부터 꽤나 떨어진 장소에 쓰러져 있었다.
 높은 울음소리와 함께, 문 앞에서 새가 날개를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날개짓을 할 때마다 강한 바람이 분다. 새의 발톱은 옥상의 콘크리트에 묻혀 있었다. 발톱이 깊게 바닥에 박혀버려 날 수가 없는 듯 했다.
 새는 강하게 머리를 흔들고 있었고, 그 목을 붉은 짐승이 물고있는 것이 보였다. 암적색의, 표범처럼 보이는 짐승이었다.
 「......무슨.」
 요코는 비명을 질렀다.
 「뭐에요, 저건!」
 「그래서 위험하다고 말씀드렸건만.」
 남자는 요코를 일으켜 세웠다. 요코는 한순간 남자와 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새와 짐승은 격렬하게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카이코.」
 남자에게 불려진 듯이, 콘크리트 바닥에서 한사람의 여자가 나타났다. 마치 수면위로 떠오르듯이, 깃털에 싸인 여자의 상반신이 나타났다.
 여자는 새의 날개처럼 생긴 두 팔로 한 자루의 검을 안고 있었다. 보검, 이라는 말이 어울릴 듯한 우아한 검집의 검이었다. 손잡이는 금, 칼집도 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보석처럼 보이는 돌을 늘어뜨린, 구슬장식이 달려있는 그 검은 어떻게 봐도 전투에 쓰는 물건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의 팔에서 검을 받아들었다. 손에 쥔 그것을 곧바로 요코에게 내밀었다.
 「.......에?」
 「당신의 것입니다. 이것을 사용하십시오.」
 요코는 남자와 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제가요? 당신이 아니라?」
 남자는 불쾌한 듯한 표정으로 검을 요코에게 들이밀었다.
 「저는 검을 휘두르는 취미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엔, 당신이 그 검으로 도와주는 거잖아요?!」
 「유감스럽게도 검을 쓸 줄 모릅니다.」
 「그런!」
 손안의 검은 보기보다도 무겁다. 하물며 이것을 휘두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저도 모른다구요!」
 「얌전히 죽어줄 생각이십니까.」
 「아니...」
 「그럼, 그것을 쓰십시오.」
 요코의 머리 속은 혼란할 뿐이었다. 죽고싶지 않다는 사념만이 강하게 떠오른다.
 그렇다고는 해도 검을 들고 싸울 용기는 없다. 그런 힘도 기량도 있을 턱이 없다. 검을 들라고 외치는 소리와 가능할 리가 없다고 외치는 소리. 양극단의 명령 사이에서 요코는 제 3의 행동을 저질렀다.
 검을 던져버린 것이다.
 「무슨----어리석은!」
 남자의 목소리에는 경악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새를 향해 요코가 던져버린 검은, 목표의 근처에도 닿지 못했다. 휘두르는 날개 끝을 살짝 스치며 거조의 발치에 떨어졌다.
 「.......어쩌면 저렇게. --효우키!」
 혀차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말투였다.
 남자의 말에 새의 날개에 발톱을 박고 있던 암적색의 짐승이 새에게서 떨어졌다. 곧바로 몸을 숙여 떨어진 검을 물고, 화살처럼 요코 쪽으로 달려왔다.
 검을 받아들면서 남자는 짐승에게 물었다.
 「버틸 수 있겠나.」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놀랍게도 대답을 한 것은, 틀림없이 효우키라고 불린 암적색의 짐승이었다.
 부탁한다, 라고 짧게 말하고 남자는 말없이 대기하고 있던 여자에게 말했다.
 「카이코.」
 여자가 끄덕인 순간, 작은 돌이 날아왔다.
 거조가 바닥에 박힌 발을 빼내며 콘크리트 조각들이 튄 것이었다.
 비상하려는 거조에게 붉은 짐승이 덤벼든다. 어느새 전신을 드러내어 공중에 떠있던 여자가 거기에 가세했다. 여자의 다리는 인간의 것과 똑같은 형태였지만 깃털에 쌓여있었고, 게다가 긴 꼬리가 있었다.
 「한쿄. 쥬사크.」
 아까 남자의 부름에 여자가 나타났던 것처럼, 두 마리의 거대한 짐승이 나타났다. 한 마리는 큰 개와, 한 마리는 비비와 닮았다.
 「한쿄,여기를 맡기겠다. 쥬사크,이 분을.」
 「어의(御意).」
 두 마리의 짐승이 고개를 숙였다.
 끄덕이며, 남자는 등을 돌렸다. 주저없이 펜스를 향해 걸어가면서, 스르륵 형태가 사라져갔다.
 「......그런! 기다려요!」
 그렇게 외쳤을 때였다. 비비와 닮은 짐승이 팔을 뻗쳤다.
 요코의 몸을 잡고, 가부도 묻지 않은 채 품에 안았다. 요코는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무시한 채 비비는 요코를 품에 안고서, 바닥을 박차고 펜스 밖으로 도약했다.
 
- 6 -
 비비는 지붕에서 옥상으로, 옥상에서 전신주로, 경이적인 도약을 반복하면서 바람처럼 달렸다. 요코가 그 난폭한 도약에서 해방된 것은 거리를 벗어난 해안, 항구를 면한 공터에서였다.
 비비는 안고 있던 요코를 지면에 내려놓고, 요코가 숨을 가누고 있는 사이에 말없이 사라졌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주위를 둘러볼 때, 해변에 쌓인 거대한 방파제의 구조물 사이에서 빠져나오듯이 보검을 든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무사하십니까.」
 요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기증이 들기는 하지만, 그건 비비에게 안겨있는 동안 멀미를 했기 때문, 그리고 차례차례로 일어나는 상식을 벗어난 사태들 때문이라고 자각하고 있었다.
 허리에 힘이 빠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왜인지 눈물이 흘렀다.
 「울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요코는 어느새 자신의 곁에 한쪽 무릎을 꿇은 남자를 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물어보고 싶어 남자를 올려다보았지만, 남자는 설명해 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요코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남자의 태도는 너무나 냉담해서, 감히 질문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무릎을 감싸안았다.
 「.....무서웠어.」
 중얼거리는 요코에게, 남자는 강한 어조로 뱉어내듯이 말했다.
 「무슨 느긋한 소리를 하고 계시는 겁니까. 곧 추격해 올겁니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을 여유는 없습니다.」
 「쫓아.......와요?」
 놀라서 쳐다보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죽이지 못하셨으니까, 어쩔 수 없지요. 효우키들이 발을 묶고는 있지만, 아마도 오래는 못 버틸 겁니다.」
 「그 새말인가요? 그 새는 뭐죠?」
 「코쵸우.」
 「코쵸우라뇨?」
 남자는 경멸하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
 「그 새 말입니다.」
 요코는 몸을 움츠렸다. 그런 설명으로는 알 수가 없어, 라는 항의의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당신은, 누구죠? 왜 도와주는 거죠?」
 「저는 케이키입니다.」
 짧게 말을 끊어버리고, 그 이상의 설명도 없었다. 요코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타이호라는게 이름이었던게 아닌가, 라고 묻고 싶었지만 도저히 물을 수 있을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런 정체모를 남자에게서 도망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교실에 가방과 코트를 놔둔 채였다. 도저히 혼자서 가방을 가지러 돌아갈 용기가 나질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괜찮으십니까?」
 멍하니 웅크리고 앉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렇게 물어왔다.
 「괜찮으냐니요?」
 「이제 출발해도 괜찮겠느냐고, 여쭈었습니다.」
 「출발이라니, 어디로?」
 「저쪽으로.」
 저쪽이라는 것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요코로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멍하게 서있는 요코의 손을 남자가 잡았다. 팔을 잡아당겨지면서, 이게 몇 번째인걸까 라고 생각했다.
 「.........잠깐만 기다려줘요.」
 「그럴 틈은 없습니다.」
 남자는 딱딱하게 말한다.
 「이미 충분히 기다렸습니다. 이 이상의 여유는 없습니다.」
 「어디로 가려는 거죠? 얼마나 걸리는데요?」
 「똑바로 가면, 편도로 하루.」
 「그런, 곤란해요.」
 「무슨.」
 비난하는 듯이 말하는 것을 듣고, 요코는 또다시 몸을 움츠렸다. 어쨌거나 가보자-라고 생각하기에는, 남자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편도로 하루라는 것 역시 요코에게 있어서 논할 여지도 없었다. 부모님께 뭐라고든 말하고 가야하는 건 아닐까. 완고한 양친이, 요코가 혼자서 어디론가 가는 것을 용납할 리가 없다.
 「..........안되겠어요.」
 왠지 울고 싶었다. 어느 것 하나 요코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이 남자는 아무 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런데다가, 그렇게 무리한 요구를 무서운 얼굴로 강요하는 것은.
 울어버리면 또다시 책망을 들을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그저 무릎을 꽉 안은 채로 입을 다물고 있을 때, 또다시 그 목소리가 들렸다.
 「타이호.」
 남자는 공중을 바라보았다.
 「코쵸우인가.」
 「예.」
 흠칫, 하고 요코의 등줄기를 오한이 타고 흘렀다. 그 새가 쫓아온 것이다.
 「..........도와줘요.」
 남자의 팔을 붙잡자, 남자는 요코를 돌아보았다. 손에 쥔 검을 내밀었다.
 「목숨이 아깝다면, 이것을.」
 「하지만 난, 이런 것 쓸 줄 몰라요.」
 「이 검은 당신밖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제겐 무리에요!」
 「그럼 힌만을 빌려드리겠습니다. --죠유우.」
 이름을 부르자 지면에서 한 남자의 얼굴이 반쯤 나타났다.
 바위로 만들어진듯한, 어두운 안색의 남자로 푹 들어간 눈은 피처럼 붉었다.
 스르륵 땅속에서 빠져나온 얼굴 아래에는 몸체가 없었다. 반투명의 젤리같은 것이 해파리처럼 흐물거리고 있을 뿐이다.
 「................에에?!」
 작게 비명을 지르는 요코를 놔두고, 그것은 땅 속에서 미끄러지듯이 나와서, 똑바로 요코를 향해 날아왔다.
 「싫어!」
 도망가려는 요코의 팔을 케이키가 붙잡았다.
 몸부림치며 도망가려고 애쓰는 요코의 목 뒤에, 뭔가 무거운 것이 올라왔다. 그 목이 올라온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차갑고 물컹거리는 것이 교복의 옷깃 안으로 스며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요코는 비명을 질렀다.
 「싫어! 떼줘요!」
 자유로운 한팔을 아무렇게나 휘두르면서 등의 물체를 떼어내려 하자, 케이키가 그 팔마저 붙들었다.
 「그만둬! 싫어!」
 「말귀가 어둡군요. 침착하십시오.」
 「싫어! 싫다구요!」
 차갑고 끈적한 액체같은 것이 등에서 팔을 따라 기어간다. 동시에 목 뒤를 강하게 무엇인가가 눌러대는 것을 느끼며, 요코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무릎이 풀리며 주저앉아 앞뒤없이 남자의 팔을 뿌리치려 몸을 비틀다가, 팔이 자유로와지자 그대로 넘어져버렸다. 반쯤 패닉을 일으키면서 양손으로 목 뒤를 훑었지만 이미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뭐죠? 뭐에요?!」
 「죠유우가 빙의한 것 뿐입니다.」
 「빙의라뇨?」
 요코는 온몸을 양손으로 훑었다. 몸 어느 구석에도 그 끔찍한 감촉은 느껴지지 않는다.
 「검을 쓰는 법은 죠유우가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쓰십시오.」
 냉담하게 말하며 남자는 검을 내밀었다.
 「코쵸우는 빠릅니다. 그것만이라도 죽여놓지 않으면, 또 추격당하게 됩니다.」
 「그것....만이라도?」
 만이라도, 라는 것은 그밖에도 쫓아오는 것들이 있다는 말인 것일까. 마치 그 꿈속의 광경에서처럼.
 「난......못해요. 그것보다도, 아까의 죠유우인가 힌만인가 하는 괴물은 어디로 간거에요?!」
 남자는 요코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왔다.」
 
- 7 -
 요코가 돌아보기도 전에 등뒤에서 높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을 올려다보려는 요코의 손안에 억지로 검이 쥐어졌다. 그것에도 상관않고 요코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등 뒤쪽의 상공에 날개를 크게 펼친 거조가 낙하해오는 모습이 보였다.
 비명을 질렀다. 도망갈 수 없어, 라고 순간 생각해버렸다.
 도망가는 것보다도 낙하해오는 새 쪽이 빠르다. 검 따위는 쓸 줄도 모른다. 저런 괴물과 대치할 용기 따위는 없다. 몸을 지킬 방법이 없다.
 굵은 다리와 날카로운 발톱이 시야에 가득히 들어왔다.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눈앞에 하얀 빛이 달리고, 뭔가 격렬한 소리가 났다. 바위끼리 부딪히는 듯한 소리를 내며, 도끼처럼 중량감있는 발톱이 얼굴 바로 앞에서 멈췄다.
 막은 것은 검, 검을 검집에서 반쯤 뺀 상태로 눈앞에 들어올리고 있던 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양팔이었다.
 뭐야? 라고 자문해볼 틈도 없었다.
 요코의 팔이 남은 칼날을 빼면서, 그 기세 그대로 코쵸우의 발을 베어나갔다.
 붉은 핏방울이 흩어지고, 따뜻한 것이 요코의 얼굴에 튀었다.
 요코는 망연할 수 밖에 없었다.
 절대로 검을 휘두르는 것은 요코 자신이 아니다. 손발이 멋대로 움직이며, 낭패한 듯이 부상하려는 코쵸우의 한 쪽 다리를 베어 떨어뜨린다.
 또다시 선혈이 튀어오르며 얼굴을 더럽혔다. 미끌거리는 것이 턱에서 목을 타고, 옷깃 안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 감촉에 요코는 몸을 떨었다.
 요코의 발은 피벼락을 피하려는 듯이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공중으로 도망쳐간 거조는, 곧 태세를 고르고 다시 한번 돌격해왔다.
 그런 새의 날개를 베어들어가며, 요코는 자신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보려 했지만 차갑고 끈적거리는 감촉이 몸을 조종하는 것을 느낀다.
 - 그거야. 그, 죠유우인가 하던 괴물.
 날개를 다친 거조가 비명을 지르며 땅으로 떨어졌다.
 시야에 들어온 거조를 보며, 요코는 깨달았다.
 그 죠유우라는 괴물이 자신의 수족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몸을 가누려는 듯이 날개를 퍼덕이고 있던 거조는, 거대한 두 날개를 기는 듯이 움직이며 요코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요코의 몸은 거침없이 움직이며, 가볍게 방향을 틀어 새의 몸을 깊게 베었다.
 따뜻하고 끈적거리는 피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손에는 뼈와 살이 베어지는 끔찍한 감촉이 남았다.
 「싫어!」
 입만은 요코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었지만, 몸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피가 온몸에 튀는 것도 상관없이, 지면에 떨어져 몸부림치는 코쵸우의 날개를 깊숙히 찌른다. 관통한 검을 그대로 당기며 커다란 날개를 찢었다.
 그대로 요코의 몸은 발꿈치를 중심으로 돌며, 비명을 지르며 피거품을 물고 있는 머리를 향했다.
 「싫어......그만!」
 거조는 넘어진 채로 상처입은 날개를 크게 휘두르고 있었지만, 이미 새의 날개는 자신의 몸을 다치게 할 수 없었다.
 요코의 팔은, 소리를 내며 바람을 일으키는 새의 날개를 가볍게 피하며 몸체를 꿰뚫었다. 와락 눈을 돌리려 했지만, 부드러운 저항감과 함께 무언가를 찢어발기는 감촉이 손에 느껴졌다.
 그 검을 뽑아내자마자 다시 휘두르며, 주저없이 목을 향해 휘두른다. 목뼈에 닿아 검이 멈췄다.
 다시 한번 피로 미끌거리는 살덩어리에서 검을 뽑아 휘둘러, 붉게 물든 목을 이번에는 완전하게 떨어뜨리고서 아직도 경련을 계속하고 있는 날개에 대고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서야 손발의 움직임이 멎었다.
 요코는 비명을 지르며 다시 한번 검을 집어던졌다.
 
 방파제 끝에 몸을 걸치고, 요코는 토했다.
 흐느껴 울며 바다 속에 잠겨있는 구조물을 기어내려가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지금은 2월 중순이고, 바닷물이 살을 에이도록 차갑다는 사실은 전혀 염두에 없었다. 어쨌거나 온몸에 뒤집어쓴 피를 씻어내 버리고 싶었다.
 정신없이 물을 끼얹고서 한참 뒤 겨우 진정되자, 물 속에서 기어나오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몸이 떨려왔다.
 느릿느릿 방파제를 기어올라와, 다시 한번 소리높여 울었다. 공포와 혐오감에 울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목이 쉬도록 울다가, 울 기력도 다했을 즈음 케이키가 입을 열었다.
 「이제, 갈까요.」
 「.........무슨......」
 멍하니 얼굴을 들었지만, 케이키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이걸로 추격자가 끝인게 아닙니다. 곧 다음 녀석이 쫓아오겠죠.」
 「........그래서?」
 신경 한구석이 마비된 것 같았다. 추격자라는 단어에서 공포를 느끼지도, 남자를 정면에서 노려보면서 위축되지도 못했다.
 「추격자를 모두 상대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저와 함께 가실 수밖에 없습니다.」
 요코는 무감각하게 말했다.
 「싫어.」
 「분별없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이제 더는 싫어. 난 집에 갈거야.」
 「집에 돌아가신다고 해도, 절대로 안전하지 않습니다.」
 「상관없어, 어찌되건. 추우니까 집에 갈거야. ............괴물을 떼줘.」
 남자는 요코를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요코 역시 지지않고 그 눈을 마주보았다.
 「내 몸에 붙어있는 거잖아. 죠유우인가 하는 괴물을 떼줘.」
 「그것은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필요없어. 난 집에 갈거니까.」
 「이 어리석은!」
 남자의 노성에, 요코는 눈을 크게 떴다.
 「죽어버리는건 곤란합니다. 싫다고 말씀하신다면, 억지로라도 모셔가겠습니다.」
 「멋대로 말하지 말아요!」
 요코는 소리쳤다. 남에게 소리를 질러본 것은 기억하는 한 이것이 태어나서 처음이었지만, 일단 소리를 질러버리자 몸속에 기묘한 고양감이 흘렀다.
 「내가 무슨 짓을 했다는거야! 난, 집에 갈거야. 이런 일에 말려드는건 더 이상 싫어. 어디에도 안가. 집에 갈거야!」
 「지금은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내밀어진 검을 요코는 난폭하게 손으로 밀쳤다.
 「난 집에 가고 싶어! 당신이 멋대로 하게는 안해!」
 「위험하다고 말씀드렸건만, 못 알아들으시는 겁니까!」
 요코는 희미하게 웃었다.
 「위험해도 상관없어. 당신하곤 관계없잖아.」
 「관계없는게 아닙니다.」
 남자는 낮게 말을 뱉고서 요코의 등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고도 없이 등뒤에서 두 개의 하얀 팔이 뻗어와 요코의 팔을 잡았다.
 「무슨 짓이야?!」
  돌아보자, 최초에 검을 들고 나타났던 새같은 여자였다. 여자는 요코의 팔을 붙잡고 억지로 검을 안게 하고서, 그대로 얽어매듯이 감싸안았다.
 「놔줘!」
 「당신은 저의 주인입니다.」
 요코는 케이키를 올려다 보았다.
 「주인?」
 「주인의 명령이라면 어떠한 것이라도 듣겠지만, 당신의 목숨이 걸려있습니다. 지금은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선은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여, 사정을 들으신 후에도 돌아가고 싶다고 말씀하신다면 반드시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내가 언제부터 당신의 주인이라는 거에요? 멋대로 나타나서, 아무런 설명도 없이 멋대로 끌고 오고! 억지부리지 말아요!」
 「설명드릴 여유가 없습니다.」
 케이키는 싸늘한 시선으로 요코를 향했다.
 「저로서도 이런 주인은 사양하고 싶지만, 이것만큼은 제 뜻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주인을 버리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관계없는 사람들을 말려들게 하는 것만큼은 절대로 피해야 합니다. 싫다고 하신다면 억지로라도 모셔가겠습니다. --카이코.그대로 모셔라.」
 「싫어! 놔줘요!」
 케이키는 요코를 돌아보지 않는다.
 「한쿄.」
 부름을 받고 붉은 털의 짐승이 그림자에서 나타났다.
 「떨어져서 날아오거라. 피냄새가 옮는다.」
 그리고 효우키,라고 불리어 거대한 표범같은 짐승이 모습을 나타냈다. 여자는 요코를 감싸안은 채로 그 등에 올라탔다.
 저편에서 마찬가지로 한쿄에 올라타고 있는 남자를 향해 요코는 소리쳤다.
 「농담하지 말아요! 집에 돌려보내줘! 적어도 저, 괴물만이라도 떼어줘요!」
 「별로 방해가 되지는 않을텐데요. 죠유우가 붙어있는 것 뿐, 뭔가를 느낄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기분나빠요! 떼줘요!」
 죠유우,하고 요코 쪽을 향해 남자가 명했다.
 「절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말고, 없는 것처럼 행동하라.」
 여기에 대해 대답은 없었다.
 케이키가 끄덕이자, 요코를 태운 짐승이 일어섰다. 갑자기 자신을 안고 있는 여자가 달라붙어옴과 동시에, 짐승은 소리도 없이 도약했다.
 「.......싫다니까!!!」
 요코의 외침을 무시하고 짐승은 저항없이 공중을 향해 뛰어올랐다.
 마치 천천히 하늘을 헤엄치는 것처럼 고도가 높아져간다. 지면이 시야에서 멀어져 가고 있지 않았더라면, 멈춰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짐승의 움직임은 부드러웠다.
 짐승은 하늘을 달린다. 마치 꿈을 꾸는 듯이 지상은 멀어져가고, 날이 저문 시가지의 모습이 보였다.
 
- 8 -
 하늘에는 얼어붙은 수많은 별들이, 땅에는 도시의 윤곽을 만드는 무수한 불빛들이.
 짐승은 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공중을 헤엄치듯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날아간다. 왜인지 바람을 가르는 느낌이 들지 않아 그다지 빠른 것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등뒤의 야경이 멀어져가는 스피드를 보면 얼마나 빠른 속도인지 알 수 있다.
 아무리 소리쳐도 대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종국엔 애원까지 해봤지만, 대답은 없다.
 어두운 바다 위라 높이를 짐작할만한 것이 보이지 않아 높이에 대한 공포는 크지 않았지만, 대체 어디로 끌려가는지에 대한 공포는 컸다.
 짐승은 똑바로 넓은 바다를 향해 날아갔다. 케이키를 태운 또 한 마리의 짐승의 모습은 근처에 보이지 않는다. 케이키의 말대로 떨어져서 가는 것이리라.
 천천히 등줄기가 풀리는 듯한 느낌이 퍼지기 시작해, 요코는 겨우 소리지르는 것을 멈췄다. 일단 포기해 버리고나자, 마음껏 사지를 뻗으며 허공을 달려가는 짐승의 모습은 마음 든든했다. 등뒤로 돌려진 여자의 팔이 차가운 몸을 녹여준다.
 요코는 눈치를 보다가, 마침내 등뒤의 여자에게 물었다.
 「저......쫓아오나요?」
 몸을 약간 비틀며 물어보자, 여자는 끄덕였다.
 「예, 추격해오는 요마가 여럿.」
 여자의 목소리는 굉장히 부드러웠다. 그것에 요코는 안도했다.
 「당신들은.......누구죠?」
 「저희들은 타이호의 종입니다. ---모쪼록, 앞을. 떨어지시면 책망을 듣습니다.」
 「.......응.」
 요코는 마지못해 앞쪽을 향했다.
 시계에 비치는 것은 어두운 바다와 어두운 하늘, 옅게 빛나는 별들과 파도, 하늘 높이 얼어붙은 달, 그것이 전부였다.
 「검을 잘 잡으십시오. 절대로 몸에서 떼지 않으시도록.」
 그 말에 요코는 겁을 먹었다. 또 아까처럼 구역질나는 전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건가.
 「......적이 오나요?」
 「쫓아오고 있지만 효우키쪽이 빠릅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그럼?」
 「만에 하나라도, 검이나 검집을 잃어버리시면 안됩니다.」
 「검과, 검집?」
 「그 검은 검집과 떨어지면 안됩니다. 검집에 달려있는 구슬은 당신의 몸을 지켜줄 겁니다.」
 요코는 팔 안의 검을 보았다. 검집에는 장식용 끈같은 것이 달려있고, 그 끝에 탁구공 크기의 푸른 돌이 달려있었다.
 「이것?」
 「네. 추우시다면, 구슬을 쥐어보십시오.」
 시키는대로 손으로 쥐어보자, 손바닥으로부터 부드럽게 온기가 스며왔다.
 「....따뜻해.」
 「상처나 병, 피로에도 도움이 됩니다. 검도 구슬도 극히 귀중한 비보.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으시도록.」
 끄덕이며 다음의 질문을 생각하려는 찰나, 갑자기 짐승의 고도가 낮아졌다.
 새까만 바다에 하얀 달이 그림자를 비치고 있었다. 파도 위에 비추어진 그 그림자가, 무서운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다는 그 기세에 눌리듯 거품을 뿜고 있었다.
 더 내려가자, 수면이 끓어오르듯이 물기둥을 뿜으며 거칠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짐승은 그 거칠어진 바다 위에 빛나고 있는, 원형의 빛 안으로 날아들어 가려하고 있었다. 그것을 깨닫고 요코가 비명을 질렀다.
 「난 수영 못해요!」
 하얀 팔에 매달리자, 여자는 부드럽게 요코를 안고 있는 팔에 힘을 더했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 말을 이을 틈은 없었다. 수면이 눈앞에 다가와, 요코는 비명을 질렀다.
 
 빛 속으로 날아들어간 순간, 수면에 부딪히는 충격을 각오했지만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소용돌이치던 파도의 물보라도, 차가운 물의 감촉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빛 속으로 녹아들어 가듯이, 꽉 감은 눈꺼풀 너머로 은백색의 빛이 느껴질 뿐이었다.
 얇은 천이 얼굴에 스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자, 그곳은 빛의 터널이었다. 적어도 요코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소리도 없고 바람도 없다. 그저 투명한 빛만이 가득 차있을 뿐.
 저 발 아래에는, 달처럼 생긴 하얀 원이 어둠을 가르고 있었다. 그 표면에 커다란 파문이 생겨있는 것이 눈에 띄였다.
 「뭐죠........저거.」
 물속을 유영하듯이 나아가는 방향에는 발 밑과 마찬가지로 둥근 빛이 보였다.
 머리 위쪽에 보이는 빛의 원반이 저 아래쪽에 빛을 뿌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저 발 아래 입구 쪽에서 위쪽을 향해 빛을 뿌리고 있는 것일까. 어느쪽이라고 해도, 그것이 출구라면 이 터널은 굉장히 짧다.
 반짝거리는 빛 속을 순식간에 달려서, 요코를 태운 짐승은 둥근 빛 속으로 뛰어들었다. 또다시 얇은 천이 온몸에 스치는 듯한 감촉과 함께 빠져나온 곳은 바다 위였다.
 갑자기 청각이 돌아왔다. 날카롭게 빛을 반사하는 수면, 시선을 들자 그 광경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들어갔을 때처럼, 새까만 바다 위의 달그림자에서 요코들은 빠져나온 것이었다.
 바다 저편에는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어두운 바다가 달빛을 받으며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만이 보였다.
 달의 그림자에서 나온 것과 동시에, 짐승을 중심으로 커다란 파도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졌다. 수면은 점점 끓어오르며 폭풍이 치는 것처럼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파도가 칠 때마다 물방울이 흩날리는 것을 보면, 무서울 정도로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의 바람이 불지 않던 짐승의 주변에도 천천히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머리 위로 구름이 흐르기 시작했다.
 짐승은 고도를 높이며 허공을 달린다. 거칠어진 바다 위에 비춰진 달 그림자가 작은 점으로 멀어질 즈음, 갑자기 여자가 말했다.
 「효우키.」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에 요코는 여자를 돌아보았고, 그녀의 시선을 쫓아 뒤쪽을 바라보았다. 밤바다 위에서, 하얀 달그림자로부터 무수히 많은 검은 그림자들이 뛰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빛나는 것은 하늘 높이 떠있는 달과 그 그림자뿐, 그마저도 지워버리듯 구름이 끼기 시작해, 마침내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새까만 어둠이.
 하늘도 땅도 구분이 가지 않는 어둠 속에 홍련의 불빛이 보였다. 달 그림자가 비치던 쪽이었다. 그 희미한 불빛은, 불꽃이라도 타고 있는 듯이 흔들거리며 춤춘다.
 그 빛을 등지고 있는 수많은 그림자가 보였다. 이형의 짐승 무리였다.
 그들은 정말로 춤추는 듯이, 불빛에서 이쪽을 향해 달려온다. 원숭이에, 쥐에, 새가 보인다. 붉고, 검고, 푸른 짐승들이.
 요코는 얼어붙었다.
 「저것은......」
 저것은. 이 광경은---.
 요코는 비명을 질렀다.
 「싫어! 도망쳐요-!」
 여자의 손이 달래듯이 요코를 흔들었다.
 「그럴 겁니다. 모쪼록 안심하시길.」
 「싫어!」
 여자는 요코의 몸을 낮추었다.
 「효우키를 꽉 붙잡으십시오.」
 「당신은?」
 「조금이라도 녀석들의 발을 묶어 놓겠습니다. 효우키를 꽉 붙잡고, 절대로 검을 놓지 마십시오.」
 요코가 끄덕이는 것을 보고, 여자는 팔을 놓았다.
 그대로 새까만 하늘을 박차며 뒤쪽을 향해 뛰어간다. 황갈색 무늬가 있는 등이,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요코의 주변엔 어둠 이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요코를 흔들기 시작했다.
 「효.......효우키상.」
 요코는 등에 낮게 엎드린 채로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라도.」
 「도망갈 수 있어요?」
 「글쎄, 어떨까요.」
 극히 긴장감없는 목소리로 대답하고서,
 「위! 주위를!」
 「에?」
 위를 올려다본 요코의 눈에 희미한 붉은 빛이 비추어졌다.
 「고유우가.」
 짐승이 말을 꺼내며 동시에 몸을 돌려 옆으로 뛰었다. 그 옆으로 무서운 속도의 무엇인가가 달려들어 온다,
 「왜? 어떻게 된거죠?」
 효우키는 공중을 좌우로 도약하면서 급속히 고도를 낮추었다.
 「검을. 복병이. 포위당했습니다.」
 「그런!」
 소리지르는 요코의 눈앞에 있는 어둠 속에서, 천천히 붉은 빛이 나타났다. 그 빛을 등지고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보인다. 춤추듯이 다가오고 있는, 뭔가의 무리가.
 「싫어! 도망쳐요---!」
 검을 쓰고 싶지 않아, 그렇게 생각한 순간 뭉클, 하고 발을 차가운 것이 쓰다듬는 느낌이 들었다.
 짐승에 타고 있는 요코의 양 무릎이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효우키의 몸을 잡는다. 차가운 것이 등을 따라 흐르고, 요코의 상체를 억지로 효우키의 등에서 떨어뜨려 일으켜 세운다.
 손이 멋대로 전투의 준비를 시작한다. 양손을 효우키에게서 떼고서, 검을 검집에서 뽑아들고 검집을 등쪽, 스커트의 벨트에 끼웠다.
 「.....싫어, 그만!!!」
 오른손이 검을 들었다. 왼손이 효우키의 갈기를 꽉 쥔다.
 「제발, 그만해요!!」
 다가오는 무리와, 다가가고 있는 효우키, 양쪽 모두 질풍처럼 돌진해 교차했다,
 효우키는 이형의 무리들 사이로 뛰어든다. 당연히 덤벼들어오는 짐승을, 요코의 손이 베어 쓰러뜨린다.
 「싫어!!!」
 요코는 눈을 감았다. 소리지르는 것과 눈을 감는 것만이 요코의 뜻대로 될 수 있었다.
 살아있는 것을 죽여본 일 따위 있을 리가 없다. 과학 시간에 해부를 할 때에는, 똑바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그런 자신에게 살생 따위를 요구하다니.
 검의 움직임이 멎었다. 효우키의 목소리가 울린다.
 「눈을 감지 마시오! 그래서는 죠유우가 움직일 수 없어!」
 「싫어!」
 덜컥, 목이 뒤로 젖혀질 정도로 강하게 짐승이 옆으로 도약했다.
 전후좌우로 흔들리면서, 요코는 눈을 꽉 감고 있었다. 살육 따위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는걸로 검이 멈춰진다면, 절대로 눈을 뜨지 않을거야.
 효우키가 강하게 왼쪽으로 돌았다.
 갑자기, 벽에라도 부딪힌 듯한 충격을 느꼈다. 개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짧은 외침을 들으며, 요코는 화들짝 눈을 떴다. 눈 앞에는 새까만 어둠 뿐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생각할 틈도 없이, 효우키의 몸이 크게 기울면서 양 무릎 사이에서 털의 감촉이 사라졌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요코는 공중으로 내던져졌다.
 경악하며 크게 뜬 눈에 돌진해오는 멧돼지 같은 짐승이 보였고, 곧 오른손에 살을 베는 무거운 느낌이 왔다. 요코의 귀에 꽂힌 것은 짐승의 포효와 자신의 비명.
 그것을 최후로, 모든 감각이 어둠 속으로 추락해 갔다.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上) 2장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상)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2 장
 
- 1 -
 거친 파도가 치는 모래사장이었다.
 정신이 들자, 요코는 바닷가에 쓰러져 있었다.
 요코가 쓰러진 장소에서 파도가 모래를 쓸고 있는 곳까지는 조금쯤 거리가 있었지만, 파도의 기세는 격렬했다. 물보라가 요코의 얼굴에 쏟아져, 그것때문에 정신이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개를 들었다. 큰 파도가 몰아쳐, 모래 위로 쏟아진 물이 쓰러져있는 요코의 손끝을 적셨다. 이상하게도 차가운 느낌은 들지 않았기에, 요코는 그대로 거기에 누워있었다. 파도가 치는대로 손을 내버려뒀다.
 진한 바다 냄새가 난다. 바다 냄새는 피냄새하고 비슷하구나, 라고 요코는 멍하니 생각했다. 사람의 몸 속에는 바닷물이 흐르고 있다. 그러니까, 귀를 기울이면 몸 속에서 파도소리가 난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큰 파도가 쳐 요코의 무릎까지 물이 밀려올라왔다. 파도에 밀린 모래가 요코의 무릎을 간지럽힌다. 짙은 바다 냄새가 났다.
 멍하게 발끝을 보고 있던 요코는, 쓸려가는 바닷물에 붉은 색이 섞여있는 것을 깨달았다. 시선을 바다 쪽으로 돌린다. 잿빛의 바다와 잿빛의 하늘이 펼쳐져 있을 뿐, 붉은 색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또 파도가 밀려왔다. 쓸려가는 물은 역시나 붉다. 붉은 색이 퍼지는 곳을 바라보다가, 요코는 눈을 크게 떴다.
 「......아.」
 붉은 색은 자신의 발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파도에 씻기는 발끝에서, 정강이에서, 붉은 색이 흘러나오고 있다.
 당황해서 양손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자세히 보자 손도 발도 새빨갛고, 교복까지 검붉은 색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요코는 작게 비명을 질렀다.
 -- 피다.
 전신이 뒤집어쓴 피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 양손은 새카맣게 보일 정도로 붉게 변해있었고, 가볍게 손을 쥐어보자 역시나 끈적거렸다. 살짝 만져보자, 얼굴도 머리도 모두 끈적거리는 것에 뒤덮여 있었다.
 요코의 비명과 동시에, 다시 한번 높은 파도가 쳤다.
 이번엔 몸을 일으킨 요코의 주변까지 물이 밀려왔다. 밀려오는 파도의 색깔은 탁한 회색으로, 쓸려가는 물에는 붉은 색이 섞여있다.
 바닷물로 자신의 두 손을 씻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닷물의 색은 피 그 자체였다.
 파도가 쳐올 때마다 바닷물에 손을 씻었다. 씻어도, 씻어도, 손은 하얀 색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새 물은 주저앉아있는 요코의 허리에까지 올라와 있다. 허리 주위에서 붉은 색이 퍼져나가며 주변의 수면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서서히 넓게 퍼져나가고 있다. 회색 뿐이던 풍경 속에서, 붉은 색은 더욱 선명했다.
 문득 요코는 자신의 손이 변한 것을 깨달았다. 새빨간 손을 눈앞에 들어 올렸다.
 「.........어떻게...」
 자세히 뜯어보다, 그제서야 변화를 깨달았다. 손등에 무수히 많은 균열이 생겨 있었다.
 「뭐야....?」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조그만 붉은 색의 파편들이 떨어졌다. 바람에 날려 바다 쪽으로 날아간다.
 작은 파편이 벗겨진 속에서 나타난 것은, 소량의 붉은 털이었다. 매우 짧은 털들이 작은 틈새로 빽빽하게 나있다.
 「설마.....」
 가볍게 손을 문질렀다. 바삭거리며 파편이 떨어져 나와, 붉은 털들이 나타났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파편이 떨어지며, 그 대신 붉은 털이 나타난다.
 거친 파도에 씻기어, 너덜너덜하게 찢어진 교복 조각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속에 보이는 것도 역시나 붉은 털이었다. 바닷물이 그 털을 씻어낸다. 붉은 색이 녹아나가며, 이윽고 주변은 모두 새빨갛게 물들어갔다.
 흉기처럼 예리한 손톱. 붉은 털. --마치 짐승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거짓말!」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말도 안돼. 어째서 이런.
 교복이 찢어져 드러나 있는 팔은, 기묘한 형태로 비틀려 있다. 그것은 개나 고양이의 앞발처럼 보였다.
 --괴물의 피.
 --분명, 그 피 때문이야.
 괴물의 피를 뒤집어쓰고, 몸이 변해가고 있다.
 --괴물이 되는거야.
 (그런, 말도 안돼.)
 --싫어.
 「싫어----------!!!!」
 외침은 들리지 않았다.
 요코의 귀에는 거친 파도소리와, 한 마리 짐승의 포효만이 들려왔다.
 
 --요코가 눈을 뜬 것은, 창백한 어둠 속이었다.
 숨을 들이쉰 순간, 온몸이 아팠다. 특히 가슴이 심하게 아파왔다.
 두손을 화들짝 들어올리고, 요코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손에는 긴 손톱도, 붉은 털도 보이지 않았다.
 「...................」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 것인지 원인을 생각해보려 하자, 점점 기억이 되살아났다. 당황해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온몸이 경직된 것처럼 뻣뻣해서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천천히 몇 번 숨을 쉬고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심호흡을 거듭하는 사이 통증이 조금씩 가셨다. 상반신을 일으킨 요코의 몸에서 소나무 잎이 후두둑 떨어졌다.
 --소나무.
 확실히 소나무 같았다. 주변은 소나무 숲, 머리 위를 올려다보자 부러진 가지의 하얀 단면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저기로 추락한 듯 했다.
 오른손은 지금도 확실하게, 검의 손잡이를 꽉 쥐고 있다. 잘도 놓치지 않았구나, 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자신의 몸을 살폈다. 용케도 다치지 않고 살았구나 싶었다. 작은 상처는 수없이 있었지만, 부상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게다가 몸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요코는 천천히 등뒤를 살폈다. 스커트의 벨트에 꽂혀 잃어버리지 않고 남아있던 검집을 빼들고, 거기에 검을 끼웠다.
 하얀 안개가 옅게 흐르고 있다. 날이 새기 직전의 싸늘한 공기가 떠돌고 있었다.  파도 소리가 울려온다.
 「그래서 그런 꿈을 꿨구나......」
 전신에 뒤집어 쓴 기분나쁜 피의 감촉과, 억지로 괴물과 싸워야 했던 기억, 그리고 파도소리.
 「....최저야.」
 중얼거리며, 요코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주변은 해안에 흔히 있는 소나무 숲처럼 보였다. 근처에는 바다가 있고, 날이 밝기 전. 그리고 자신은 죽지도 않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상처도 입지 않았다. --그것이 요코가 얻은 정보의 전부였다,
 숲에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아마도 근처에 적은 없는 것이리라. 그리고---근처엔 우리 편도 없다.
 해면에 비추인 달그림자에서 빠져나왔을 때, 달은 하늘 높이 걸려있었다. 지금은 새벽녘. 그만큼의 시간이 흐르도록 자신이 혼자서 방치되어 있었다는 것은, 케이키 일행과도 어긋나버린 것이 틀림없다.
 --미아가 되었을 때는 움직이지 말 것.
 요코는 조그맣게 입속에서 되뇌었다.
 분명 케이키일행이 찾으러 와 줄 것이다. 그렇게나 대단하게 지켜준다고 말했으니까. 어설프게 움직였다가는 오히려 어긋나버릴 우려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몸을 가까운 나무기둥에 기대이며, 검집에 달린 구슬을 쥐어보았다. 여기저기의 아픔이 천천히 사라져갔다.
 이상하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 한 번 구슬을 보아도, 그냥 돌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유리같은 광택의, 매끈한 푸른빛이다. 파란 비취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구슬을 꽉 쥔다. 그렇게 앉아있는 동안 점점 눈이 감겨왔다.
 눈을 감은 채 깜박 잠들어 버렸던 듯, 요코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주변은 옅은 빛으로 가득차 이른 아침으로 변해 있었다.
 「늦네.......」
 그들은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자신을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해 두는 것인가. 케이키는, 카이코는, 효우키는.
 요코는 망설이며 입을 떼었다.
 「죠유우...상.」
 아직도 자신의 몸에 붙어있을 터였다. 그리 생각하며 말을 걸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자신의 몸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아도, 어디에도 죠유우가 있는 느낌은 없다. 검을 휘둘러야 할 때가 아니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상대였기에, 떨어져 나간건지 어쩐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있나요? 케이키상 일행은 어떻게 된거죠?
 몇 번을 물어보아도, 아무런 대답도 기척도 없다.
 불안이 머리 속을 채웠다. 혹시나 케이키일행은, 요코를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추락하기 직전에 들은 비명이 돠살아났다. 적들 틈에 남겨져버린 효우키는 무사한 것인가.
 불안해서 몸을 일으켰다.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러대는 몸을 달래며 일어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주위는 소나무 숲, 바로 오른쪽에 숲이 끝나는 것이 보였다. 어쨌거나 저기에 가보는 것 정도는 위험하지 않으리라.
 숲 밖은 울퉁불퉁한 황무지였다. 회갈색의 땅 위에 낮은 관목이 드문드문 나있다.
 그 앞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절벽의 저편으로 새까만 바다가 보인다. 어제 저녁 보았을 때도 까만 색이었지만, 그건 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날이 샌 지금에 와서도 저렇게 검게 보이는 것은, 바다의 색 자체가 짙기 때문이겠지.
 요코는 끌려가듯이 절벽 끝을 향해 걸었다.
 백화점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정도로 까마득하게 높다. 그 곳에서 바다를 보며, 요코는 한동안 넋을 잃고 있었다.
 높이 때문이 아니다. 충격을 먹은 것은, 발 아래에 펼쳐져 있는 이형(異形)의 바다 때문이었다.
 바다는 한없이 검은 색에 가까운 곤색으로 보였다. 수면에 잠겨있는 절벽의 선을 눈으로 더듬어 내려가 보았지만, 물에 색이 있다거나 해서가 아니다. 물은 오히려 무서울 정도로 맑다.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바다의, 심해에 서려있는 어둠이 투명한 물 때문에 보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빛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깊은 바닥을 그대로 내려다보는 듯한 감각.
 그 바다 속 깊은 곳에 작은 빛이 모여 있다. 그것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래알 정도로 보이는 빛이 점점이 박혀서, 혹은 모여들어 옅은 빛의 덩어리를 만들고 있었다.
 --별같아.
 현기증이 들어 요코는 절벽에 주저앉았다.
 그것은 틀림없이 우주의 경관이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별과 성단과 성운, 그런 것들이 자신의 발 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여기는 내가 모르는 곳이다.
 돌연 떠오른 사고. 직시하려 하지 않았던 것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멈출 수가 없었다.
 이곳은 요코가 알고있는 세계가 아니다. 이런 바다 따위, 요코는 알지 못한다. 틀림없이 요코는 다른 세계에 떨어져버린 것이다.
 --싫어.
 「거짓말....?」
 여기는 어디이며, 어떤 곳인가. 위험한 곳인가, 안전한 곳인가. 이제부터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죠유우, 상.」
 요코는 눈을 감고 소리를 질렀다.
 「죠유우!부탁해요, 대답해줘!」
 몸 속에는 파도같은 소리 뿐. 빙의해 있는 자의 대답은 없었다.
 「아무도 없나요?! 누군가, 도와줘요!!」
 하룻밤이 지나 버렸다. 집에선 어머니가 굉장히 걱정하고 계시겠지. 지금쯤 아버지는 굉장히 화내고 계실 것이 분명했다.
 「.......갈거야...」
 중얼거리자 눈물이 흘렀다.
 「나, 집에 갈래.......읏.」
 일단 흐르기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다. 요코는 무릎을 안고 고개를 묻었다. 소리높여 울기 시작했다.
 
 머리에서 열이 날 정도로 울고서야 요코는 얼굴을 들었다. 울고 싶은만큼 울고서 조금은 침착해졌다.
 천천히 눈을 떠본다. 눈 앞에는 우주처럼 보이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상해.」
 밤하늘을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 물속에서 성운이 천천히 회전하고 있다.
 「이상하고...예뻐.............」
 겨우 침착해진 자신을 자각했다.
 요코는 넋을 잃고 물 속의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 2 -
 태양이 중천에 뜰 때까지, 요코는 거기서 바다를 보고 있었다,
 이곳은 대체 어떤 세계이고, 어떤 장소인걸까.
 이 쪽으로 올때는 달그림자를 넘어서 왔지만, 그 자체가 굉장히 이상하다. 달그림자를 잡는다니, 석양을 잡는다는 것 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일텐데.
 케이키와, 그 주변에 있던 이상한 짐승들. 요코의 세계에는 그런 짐승이 없다. 틀림없이 그것들은 이쪽 세계의 생물이겠지. --거기까지는 이해가 가지만.
 케이키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요코를 여기로 데려온 것일까. 위험하다고 말하며, 지켜주겠다고 했지만 요코는 이렇게 방치되어 있다.
 케이키일행은 어떻게 된걸까. 그 적은 대체 어떤 자이며, 무슨 이유로 요코를 습격한 것일까. 그것들이 전부 꿈과 똑같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애초부터, 요코는 왜 한달씩이나 그런 꿈을 꾸었던 것일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해가 가지 않는 일 뿐으로, 머리 속이 엉켜버릴 것만 같았다. 케이키와 만나고서부터는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로, 요코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케이키가 원망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요코의 사정은 묻지도 않은 채, 정체모를 세계로 억지로 끌고왔다. 케이키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곳에 올 필요도 없었고 괴물-이라고는 해도 생물을 죽이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더더욱 자신이 처한 상황이 곤란하게 생각되었다.
 --왜 내가 이런 꼴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거야.
 요코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전부 케이키탓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괴물에게 습격당한 것까지도 케이키때문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교무실에서 들었던 목소리는 「따라와 버렸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케이키는 '적'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꼭 요코의 적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요코는 괴물들의 적이 될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다.
 요코는 케이키의 주인이라고 했다. 그것이 모든 것의 원인이었던 듯한 생각이 든다. 요코가 케이키의 주인이기 때문에, 케이키의 적에게 공격당했다. 그 적에게서 몸을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두르지 않으면 안되었고, 이런 곳에 오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지만, 요코에게는 그의 주인이 되었던 기억 따위 전혀 없다.
 주인으로 불릴 이유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케이키의 오해이거나 멋대로 생각해버린 것이겠지.
 케이키는 「찾았다」고 말했었다. 분명 그는 주인을 찾고 있었고, 뭔가 중대한 착각을 범해버린 것이다.
 「뭐가, 지켜준다는거야.」
 요코는 작은 목소리로 그를 저주했다.
 「전부, 당신 탓이잖아.」
 
 요코는 짧아졌던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할 때쯤에야 몸을 일으켰다. 여기에 앉아서 계속 케이키를 비난하고 있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요코는 좌우를 둘러보았다. 절벽은 어느 쪽으로도 끝이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 소나무 숲으로 돌아왔다. 코트는 없었지만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이곳은, 요코가 살고 있던 곳보다는 기후가 따뜻한 듯 했다.
 그다지 울창하지도 않은 숲은, 태풍이라도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부러진 가지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곳을 지나가자, 늪이 펼쳐져 있었다.
 「..............?」
 자세히 보니, 그곳은 늪이 아니라 진흙탕에 뒤덮인 논이었다. 군데군데 수면에 곧은 논두렁이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작은 키의 녹색 식물이 진흙탕 위로 고개만 간신히 내밀고, 모조리 쓰러져 있다.
 눈닿는 곳은 모조리 진흙탕 천지로, 멀리 떨어진 곳에 인가가 조그만 마을을 이루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너머에는 가파른 산이 있었다.
 전봇대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멀리 보이는 마을에도 전선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고, 건물 옥상에 안테나 같은 것도 없었다.
 지붕에는 검은 기와가, 벽은 황색의 토벽으로 보였다. 마을을 둘러싸는 듯이 낮은 키의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지만, 대부분이 쓰러져 있었다.
 이상한 풍경이나 건물이 있을 것을 각오하고 있던 요코는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금 분위기가 틀리지만, 왠지 기운이 빠질 정도로 일본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시골 풍경과 닮아 있었다.
 안도하며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자, 소나무 숲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몇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형태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다지 괴물같은 실루엣은 보이지 않는다. 논에서 작업이라도 하고 있는 듯 했다.
 「잘됐다....」
 무심결에 말이 흘러나왔다. 처음 그 바다를 보고서 완전히 낙담해버렸었지만, 이 풍경은 그렇게까지 이상하지 않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듯 하지만, 그 점을 무시하면 일본의 어딘가에 있을 법한 마을이었다.
 요코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먼 곳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이 주저되기는 하지만, 요코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말이 통할지 어떨지, 문득 의문이 들었지만, 어쨌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안된다.
 두려운 기분이 들었지만 힘을 내어, 요코는 입속에서 되뇌었다.
 「사정을 설명하고, 케이키일행을 못봤는지 물어보자.」
 어쨌거나 요코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어떤게건 걸을만한 논두렁을 찾아, 요코는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그들이 절대로 일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갈색 머리의 여자에, 빨간 머리의 남자가 있다. 굉장히 케이키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얼굴 생김이나 체격은 전혀 백인같지 않은데도, 저 머리색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그것만 빼면 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다.
 입고 있는 것은 기모노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옷으로, 남자들은 모두 긴 머리를 묶고 있었지만 그 외에는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다. 그들은 삽같은 것을 들고 논두렁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는 듯 했다.
 작업을 하고있던 남자들 중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요코를 보고서 주변 사람들을 가볍게 툭툭 쳤다. 뭔가 말을 하고 있었지만, 특별히 낯설은 소리로는 들리지 않았다. 거기에 있던 여덟 명 정도의 남녀가 요코 쪽을 보자, 요코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밖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곧 서른 살 전후의 남자 한 명이 논두렁으로 올라왔다.
 「.......너, 어디서 온거냐.」
 일본어를 듣고, 요코는 내심 안심했다.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생각했던 것만큼 지독한 상황은 아닌 듯 했다.
 「절벽 쪽에서 왔는데요.」
 다른 사람들은 손을 멈추고, 요코와 남자를 지켜보고 있다.
 「절벽 쪽....? ........출신은.」
 도쿄입니다, 라고 말하고 요코는 입을 다물었다. 사정을 말한다, 고 간단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과연 정직하게 사정을 얘기하면 믿어줄 것인가.
 요코가 망설이고 있는 새, 남자가 다시 한번 물어왔다.
 「묘한 차림인데.....설마 바다에서 온거냐.」
 그것은 사실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사실에 가까웠기 때문에 요코는 끄덕였다.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과연, 그런거였나. 이거 놀랍군.」
 남자는 비꼬는 듯한 웃음을 띄우고, 요코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납득하는 몸짓을 지었다.
 무례한 눈빛으로 노려보다가, 요코의 오른손에 시선을 멈췄다.
 「쓸만한 것을 갖고 있군. 그건 뭐지?」
 손에 들고 있는 검을 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받은건데요.」
 「누구에게.」
 「케이키라는 사람입니다.」
 남자는 요코의 곁까지 다가왔다. 요코는 무심결에 한 발 물러섰다.
 「네겐 무겁겠는데. ---이리 넘겨라. 내가 맡아주지.」
 요코는 남자의 눈빛에 조금 겁을 먹었다. 친절한 뜻으로 말하는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검을 가슴에 안고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여기는 배랑이다. 남에게 뭔가를 물으려면, 그런 요란한 물건은 내려놔야 하는 거 아닌가. 그걸 내놔.」
 요코는 다시 뒤로 물러섰다.
 「몸에서 떼면 안된다고 했어요.」
 「내놔.」
 강요하는 말에 요코는 겁을 먹었다. 싫어요, 라고 말할 수 있을만한 패기도 없었기에 주저주저하며 검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는 검을 뺏어들 듯이 받아들고서, 검을 곰곰이 바라보았다.
 「대단한 세공인데. 이걸 준 남자는 부자인가보군.」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뭐야, 카이캬크인가.」
 「맞아. 봐, 엄청난 물건이다.」
 남자는 웃으며 검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왜인지 검은 검집에서 뽑히지 않았다.
 「장식품인가. --뭐, 됐어.」
 남자는 웃으며 검을 허리띠에 꽂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팔을 뻗어 요코의 팔을 붙잡았다. 요코가 비명을 지르는 것도 상관않고, 남자는 난폭하게 요코의 팔을 비틀었다.
 「......아파! 놔줘요!」
 「그렇게는 안돼. 카이캬크는 현지사(縣知事)에게 보내게 정해져 있어.」
 웃으며 말하고, 남자는 요코는 밀었다.
 「자, 걸어라. 뭐, 나쁘게는 하지 않을테니까.」
 남자는 요코를 억지로 걷게 하면서, 주변의 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누가 도와줘. 데려가자.」
 --팔이 아프다. 이 남자는 어떤 사람인가. 어디에 데려가려는 것인지 불안했다.
 마음속 깊이 놔주기를 바랬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손발에 차가운 감각이 지나가며 요코는 남자의 손을 뿌리쳤다. 팔이 멋대로 뻗어 남자의 허리에 꽂힌 검을 검집 채 뽑았다. 크게 뛰어서 뒤로 물러섰다.
 「....네놈.」
 위협하는 남자에게 주위 사람들이 소리쳤다.
 「조심해, 검을---」
 「뭐, 저건 장식품이다. 이봐, 계집. 얌전히 이리로 와.」
 요코는 고개를 저었다.
 「.....싫어.」
 「억지로 끌려가고 싶으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이리와.」
 「.....싫어요.」
 멀리서도 사람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남자가 한 발 내딛었다. 요코의 손은 검을 검집에서 빼어들었다.
 「아니?!」
 「가까이 오지마.......오지 말아요.」
 말문이 막힌 듯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요코는 뒤로 물러났다. 몸을 돌려 달아나려고 하자, 뒤에서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오지마!」
 돌아서서 쫓아오는 남자들을 확인하자마자, 몸이 멋대로 움직이며 그 자리에 멈춰섰다. 몸을 보호하듯이 검을 들어올린다. 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다.
 「그만......!」
 뛰어드는 남자를 향해 검이 움직인다.
 「죠유우, 멈춰!」
 --안돼, 그것만은 절대!
 칼끝이 선명하게 호를 그렸다.
 「사람을 죽이지마!!」
 그렇게 외치며 굳게 눈을 감았다. 뚝, 팔의 움직임이 멎었다.
 동시에 강한 힘으로 끌어당겨져 쓰러졌다. 누군가가 올라타 검을 빼앗았다. 아픔보다도 안도의 눈물이 흘렀다.
 「귀찮은 년.」
 난폭하게 걷어차였지만 아픔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억지로 일으켜 세워져, 두 명의 남자에게 양팔을 뒤로 잡혀 비틀렸다.
 저항할 마음은 없었다. 그저 마음 속으로, 움직이지 말아줘, 라고 죠유우에게 빌었다.
 「마을에 끌고 가. 그 이상한 검도 함께다. 그대로 현지사에게 보내.」
 어떤 남자가 말했는지, 눈을 감고 있던 요코는 알 수 없었다.
 
- 3 -
 그들에게 끌려, 요코는 논 사이를 가로지르는 좁은 길을 따라 걸었다.
 15분 정도 걷자 나타난 것은, 높은 벽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아까 보았던 부락은 몇 채 정도의 집이 모여있는 정도였지만, 이곳은 높이가 4미터 가까이 되는 벽이 거리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고, 네 방향마다 한 개씩 큰 문이 있다. 굉장히 튼튼해 보이는 문이 안쪽을 향해 열려있고 그 안쪽은 붉게 칠해져 있으며, 뭔가 그림이 그려진 벽이 보인다. 벽의 바로 앞에는 왠지 모르겠지만 아무도 앉아있지 않은 나무 의자가 한 개 놓여있었다.
 요코는 등을 떠밀려 마을로 들어섰다. 붉은 벽을 돌자 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 거리의 풍경은, 어딘가에서 본 듯하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건물의 분위기가 동양적이기 때문이리라. 하얀 회반죽의 벽, 검은 기와 지붕,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수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친근감이 들지 않는 것은, 사람의 기척이 전혀 없기 때문이 틀림없다.
 문에서 정면으로 넒은 길이, 좌우로는 좁은 골목이 뻗어있었지만 사람의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건물은 1층 건물들로, 길 쪽으로 높은 처마와 하얀 벽들이 이어져 있다. 그 벽은 일정 간격으로 끊어져, 그 사이로 작은 정원을 끼고 있는 건물이 보였다.
 어느 집도 크기로는 별 차이 없이, 건물의 외관도 세부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무기질적인 느낌이었다.
 집들은 창이 열려있고, 바깥을 향해 열어젖힌 창문을 대나무로 고정시켜 놨지만 창문이 열려있는 것이 오히려 수상할 정도로 마을에는 사람의 기척이 없었다. 거리에도 집에도 개 한 마리 보이질 않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정면의 넓은 도로는 기껏해야 100미터 정도, 그 끝에는 광장이 보였다. 하얀 석조에 선명하게 채색된 건물이 보였지만 그 선명한 색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좌우의 좁은 길은 30미터 정도에서 직각으로 꺾어져 있었고, 막다른 끝은 마을의 외벽. 골목 저편에서도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언뜻 둘러보아도 높은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검은 기와지붕 너머로 마을의 외벽이 보인다. 시선을 둘려보면, 외벽의 전체를 관찰할 수 있었다. 외벽은 가늘고 긴 사각형을 그리고 있었다.
 질식할 것 같이 좁은 마을이었다. 넓이는 아마도, 요코가 다니고 있던 학교의 반에도 미치지 않으리라. 마을의 크기에 비해 외벽이 너무나도 높다.
 마치 수조 안에 있는 것 같다, 라고 요코는 생각했다. 커다란 수조 바닥에 잠들어있는 폐허같은 거리였다.
 
 요코는 정면에 보이는 광장을 둘러싸듯이 서있는 건물 안으로 끌려갔다.
 그 건물은 차이나타운의 건물을 생각나게 했다. 붉게 칠해진 기둥, 선명한 빛깔의 장식, 그런데도 어딘가 위화감이 드는 것은 마을의 분위기와 마찬가지였다. 건물 안에는 가늘고 긴 복도가 일자로 통해있었지만 매우 어두웠고, 마찬가지로 사람의 기척이 없었다.
 요코를 끌고 온 남자들은 뭔가를 상담하면서 요코를 툭툭 치며 걷게 하다가, 마침내 작은 방 안으로 밀어넣었다.
 요코가 갇힌 방의 인상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감옥이었다.
 바닥은 기와같은 타일이 깔려있었지만, 군데군데 깨지거나 빠져있는 것들이 많았다. 벽은 그을리고 금이 가있는 토벽으로, 천장 근처에 작은 창이 하나, 거기에는 격자가 끼워져 있었다. 문은 하나. 그 문에도 격자가 끼워진 창이 나 있었고 그 너머로 문앞에 서있는 남자들이 보였다.
 나무로 된 의자와 작은 책상이 하나씩, 다다미 한 장 크기의 상이 있었고 그것이 가구의 전부였다. 상 위에는 두꺼운 천이 깔려 있다. 아마도 이것이 침대인 듯 했다.
 여기는 어디이며 어떤 장소인가. 나는 이제부터 어떻게 되는 것일까.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감시자에게 그것을 물어볼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남자들 쪽에서도 요코에게 말을 걸 생각은 없는 듯 했다. 침대에 앉아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건물의 안에 인기척이 느껴진 것은 상당히 시간이 흐른 뒤였다. 문 앞에 누군가가 다가오고, 감시자가 교체되었다. 새 감시자는 두 명의 남자로, 검도의 호구같은 파란 가죽갑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경비원이나 경찰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지만 갑옷을 입은 남자들은 험악한 눈초리로 요코를 노려보았을 뿐, 말을 걸어올 리가 없었다.
 얼마나 심한 일이건 간에,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 동안은 차라리 낫다. 내버려둔 채로 있는 것이 불안하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몇 번인가 바깥의 병사들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했었지만, 두려워서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뭐라고든 외쳐버리고 싶어질 정도로 긴 시간이 지난 뒤, 해가 지고 감옥 안이 완전히 캄캄해질 때쯤 세 명의 여자가 찾아왔다. 선두에 서서 불을 들고 있는 백발의 노파는, 언젠가 영화에서 보았던 고대 중국풍의 옷을 입고 있었다.
 드디어 누군가와 만나게 되었다는, 그리고 그것이 무서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사실에 요코는 안도했다.
 「너희들은 물러나거라.」
 노파는 이런저런 것들을 들고서 함께 들어온 여자들에게 명령했다. 두 여자는 짐을 상위에 내려놓고, 깊게 절하며 감옥을 나갔다. 노파는 그것을 지켜보면서 책상을 침대 곁으로 끌어당겨 램프같이 생긴 촛대를 책상 위에 놓고, 물이 들어있는 통을 올려놓았다.
 「어쨌거나, 얼굴부터 씻으시게.」
 요코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얼굴과 손발을 씻었다. 손은 검붉게 더럽혀져 있었지만 씻고나자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요코는 지금에 와서야, 손발이 납덩이처럼 무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죠유우때문이겠지. 요코의 능력을 넘어서는 움직임을 몇 번이고 거듭한 탓에, 전신의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가능한 천천히 손발을 씻었지만, 자잘한 상처에 물이 스며들어 따가왔다. 이변을 깨달은 것은, 머리를 감기 위해 등뒤로 땋여진 머리를 풀고서였다.
 「..............이거, 무슨.」
 요코는 눈을 의심하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요코의 머리는 빨갛다. 특히 머리 끝 쪽은 탈색한 것 같은 색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땋은 것을 푼 머리는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그 머리의 색.
 이 이상한 색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것은, 빨간 색이었다. 피에 물든 것처럼 진한 빨간 색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빨간 머리라는 단어가 있기는 하지만, 이 색은 도저히 빨간 머리라고 부를 수 없다. 있을 리가 없는 색. 이렇게나 이상한.
 요코의 몸이 떨려왔다. 자신이 짐승이 되는 꿈에서 보았던, 그 붉은 털빛과 똑같은 색이었다.
 「왜 그러는가?」
 노파가 물어와, 머리색이 이상해졌다고 답했다. 노파는 요코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는거지?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데. 드물긴 해도 멋진 빨간색인데.」
 노파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요코는 교복 주머니를 뒤졌다. 거울을 끄집어내어, 완전히 진홍색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머리를 확인하고, 다음 순간 거기에 비치는 타인의 모습을 발견했다.
 요코는 일순,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손을 들어 주저주저하며 얼굴을 쓰다듬어, 그 움직임에 따라서 거울 속의 인물의 손도 움직이는 것을 보고서야 그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경악에 빠졌다.
 --이건 내 얼굴이 아냐.
 머리 색깔이 변한 것 때문에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것은 다른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의 미추는 대단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의 얼굴로 바뀌어버린 자신, 햇빛에 그슬린 듯한 피부와 짙은 녹색으로 변해버린 눈동자였다.
 「이건, 내가 아냐....!」
 당황하며 소리지르는 요코를 바라보며, 노파는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지?」
 「이런거, 내가 아냐!!!」
 
- 4 -
 이성을 잃은 요코의 손에서, 노파는 손거울을 빼앗았다. 매우 침착한 태도로 거울을 들여다보고서, 그것을 요코에게 돌려주었다.
 「거울이 일그러진 건 아닌 듯 하군.」
 「하지만, 전 이런 얼굴이 아니에요.」
 그러고보니, 목소리도 뭔가 달라진 기분이 든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짐승도 괴물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 당신의 모습이 변했다는 거겠지.」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에 요코는 노파를 올려다 보았다.
 「......어째서....」
 말을 뱉고서 요코는 다시 한 번 거울을 보았다. 자기가 보여야 할 바로 그곳에 다른 사람이 보인다는 것은 매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글쎄. 그건 나로서는 모르겠네만.」
 노파는 그렇게 말하며 요코의 손을 잡았다. 팔에 나있는 상처에, 뭔가를 적신 천을 대었다.
 거울 속의 자신은, 잘보면 약간 낯익은 구석이 남아있었다. 정말로, 아주 조금이기는 하지만.
 요코는 거울을 내려놓고서, 앞으로 두 번 다시 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거울만 들여다보지 않으면 자신이 어떤 얼굴인지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머리는 거울이 없어도 보이지만, 그건 염색한 셈 치면 참을 수 있으리라. 별로 자신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었다던가 했던 건 아니지만, 이 변화를 또다시 직시할 용기는 요코에게 없었다.
 「난 잘 모르겠지만, 그런 일도 간혹 있는 게지. 그대로 마음을 가라앉히면 익숙해질게야.」
 노파는 상에서 물통을 내려놓고, 대신에 커다란 사발을 올려놓았다. 떡같은 것이 들어있는 스프가 들어있었다.
 「들게. 부족하면 더 있으니까.」
요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저히 식사를 할 기분이 아니었다.
 「......먹고싶지 않은가?」
 「예에......」
 「조금만 입에 대보면, 의외로 배가 고팠었다는 걸 알게 될게야.」
 요코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노파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긴 물통처럼 생긴 토기에서 차를 따라주었다.
 「저쪽에서 온 거겠지?」
 노파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물었다. 요코는 시선을 들었다.
 「저쪽?」
 「바다 건너편. 쿄카이를 건너서 왔을텐데?」
 「............쿄카이가 뭐죠?」
 「절벽 아래의 바다 말이네.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바다.」
 그것을 쿄카이라고 부르는건가. 요코는 그 단어를 머리 속에 새겨두었다.
 노파는 책상 위에 종이를 펼쳤다. 벼루가 들어있는 상자를 올려놓고, 붓을 들어 요코에게 건네었다.
 「자네, 이름은?」
 요코는 당황하면서 붓을 받아, 이름을 썼다.
 「나카지마(中島), 요코(陽子)입니다.」
 「일본의 이름이군.」
 「.......여긴 중국인가요?」
 요코의 질문에 노파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는 교국(巧國)이다. 정확히는 교주국(巧州國)이지.」
 노파는 다른 붓을 들어 글자를 써내려간다.
 「여기는 순주부(淳州符) 양군(楊郡), 노강향(盧江鄕) 전현(木+眞縣) 배랑(配浪). 난 배랑의 장로다.」
 써내려간 글자는 일본의 한자와 조금 다른 모양이었지만 한자임에는 틀림없었다.
 「여기에서는 한자를 쓰나요?」
 「쓰고말고. 자네는 몇 살인가?」
 「열여섯입니다. 그럼, 쿄카이는 한자가...?」
 「허해(虛海)라고 쓰지. ---직업은?」
 「학생입니다.」
 요코가 대답하자, 노파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말은 통하는 것 같군. 글자도 읽을 수 있는 듯 하고. 저 묘한 검 말고는 뭘 가지고 있지?」
 질문을 받고서, 요코는 주머니 속을 확인했다. 손수건과 빗, 손거울과 학생수첩, 망가진 손목시계,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들을 늘어놓자, 노파는 어떤 의미인지 한숨을 내쉬며 책상 위의 물건들을 옷자락 속에 집어넣었다.
 「.......전, 이제부터 어떻게 되는거죠?」
 「글쎄... 그런건 윗사람들이 결정할 일이니까.」
 「제가 뭔가 나쁜 짓이라도 한 건가요?」
 마치 죄인같이 대하고 있었다. 노파는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야. 그저, 카이캬크는 현지사에게 보내는 걸로 정해져 있으니까.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주시게.」
 「카이캬크?」
 「바다 쪽에서 온 사람. 해객(海客)이라고 쓰지. 허해의 동쪽 너머에서 오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네. 허해의 동쪽 끝에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있다더군. 누가 확인해본 건 아니지만, 실제로 해객이 흘러오는건 사실이니까, 아마도 그런거겠지.」
 노파는 요코를 바라보았다.
 「일본의 인간이 때때로 쇼쿠에 휘말려서 동쪽 해안으로 흘러오곤 한다네. 바로 자네처럼. 그걸 해객이라고 부르지.」
 「쇼쿠?」
 「먹다(食)에 벌레 충(蟲)자를 붙여서 쓰지. 그래, 태풍같은 거야. 태풍과는 달리 갑자기 시작해서, 갑자기 끝나. 그 뒤에 해객이 흘러오는거고.」
 노파는 곤란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
 「대개는 시체지만. 해객은 살았건 죽었건 간에 위로 보내게 되어있어. 위쪽의 높은 사람들이 자네를 어떻게 할지를 결정할게야.」
 「......어떻게 할지, 라뇨?」
 「해객이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몰라. 여기에 살아있는 해객이 흘러왔던 것은 내 조모님이 살아계실 때 이후로 처음이니까. 그 해객은 현청으로 보내지기 전에 죽었지. 자네는 살아서 여기까지 오게 된거고. 운이 좋았던게야.」
 「저어......」
 「뭔가?」
 「여기는 대체, 어디죠?」
 「순주(淳州)다. 아까 여기에.」
 지명을 적었던 곳을 가리키는 노파를 제지했다.
 「그게 아니에요!」
 놀란 노파를 향해 요코는 말했다.
 「전, 허해 따위 몰라요. 교국이라는 나라 따윈, 이름도 들어본 적 없다구요. 이런 세계, 몰라. 여긴 어디냐구요!?」
 곤란한 듯이 한숨을 쉴 뿐, 노파는 요코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돌아갈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없어.」
 너무나 쉽게 돌아오는 대답에, 요코는 양 주먹을 쥐었다.
 「없다뇨!?」
 「사람은 허해를 건널 수 없는게야. 오는건 가능해도 가는건 불가능해. 여기에서 저쪽으로 간 인간도, 그쪽으로 돌아간 해객도 없어.」
 노파의 말이 가슴 밑바닥에 내려앉을 때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돌아갈 수 없어요? 그런 바보같은!」
 「무리라네.」
 「하지만, 전.」
 눈물이 흘렀다.
 「부모님이 계신다구요. 학교에도 가지 않으면 안되요. 어젯밤엔 외박해버렸고, 오늘은 무단결석에......분명히 모두들 걱정하고 있을 거고.」
 노파는 서먹서먹하게 시선을 돌린다. 일어나서, 주변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포기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전, 이런 곳에 올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요!!!!」
 「해객은 모두 그렇지.」
 「모든게 저쪽에 있어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아. 그런데 돌아갈 수 없다고!? 난......」
 그 이상은 말이 나오질 않았다. 소리내어 울기 시작한 요코와는 상관없이, 노파는 방을 나갔다. 가져왔던 물건들을 도로 가져가고, 열쇠를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감옥 안에는 요코뿐. 촛대까지 들고 가버려 한줄기 빛도 비치지 않았다.
 「집에 가고 싶어......!!」
 일어서 있는 것마저 힘들어, 침대에서 몸을 웅크렸다. 그대로 소리내어 울다가, 끝내는 지쳐서 기절하다시피 잠들었다.
 꿈은, 꾸지 않았다.
 
- 5 -
 「일어나라.」
 요코는 두드려 깨워졌다.
 울다 지친 눈꺼풀이 무겁게 느껴졌다. 굉장히 눈이 시렸다. 피로와 굶주림으로 심한 탈력감을 느꼈지만, 뭔가를 먹고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감옥에 들어와 요코를 깨운 남자들은, 요코의 몸을 밧줄로 가볍게 묶었다. 그대로 건물 밖으로 끌려나오자 광장에는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마리의 말에 화물을 실은 마차가 연결되어 있었고, 그 마차에 억지로 태워진 채 주위를 둘러보자 광장 여기저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요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제 보았던 폐허같은 마을 어디에 숨어있었던 것일까.
 모두가 동양인같아 보였지만, 머리색이 다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서인지, 한층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모두가 호기심과 혐오가 뒤섞인 표정이었다. 정말로 호송되어가는 죄인같다고 느꼈다. 눈을 뜨고서 정신이 들 때까지의 그 짧은 시간동안, 모든 것이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바랬다. 그것은 요코를 난폭하게 일으켜 세우는 남자의 손에 의해 깨져버렸지만.
 옷매무새를 가다듬을 틈도, 얼굴을 씻을 틈도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바다에 뛰어들었던 상태 그대로인 교복에서는 심하게 냄새가 나고 있었다.
 남자 한 명이 요코의 옆에 앉고, 다른 한 사람이 말의 고삐를 잡았다. 그것을 보면서, 요코는 멍하게 목욕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 속에 몸을 담그고, 향기로운 비누로 몸을 씻고서. 깨끗한 속옷과 잠옷으로 갈아입고, 내 방 침대에서 자고 싶다.
 눈을 뜨면 엄마가 만들어준 밥을 먹고서 학교에 간다.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쓸데없는 수다를 떨면서. 그러고보니 화학 숙제를 반밖에 못했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도 반납해야 하는데. 어제는 좋아하는 드라마를 하는 날이었는데 놓쳐버렸다. 엄마가 녹화해놨으면 좋겠는데.
 허탈하게 그런 생각들을 하며,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요코는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다. 얼굴을 훔치고 싶었지만 두 손이 뒤로 묶여있어 그것마저 할 수 없었다.
 --포기할 수 밖에 없어.
 그런 말은 믿지 않아. 케이키도 돌아갈 수 없다고는 말하지 않았었다.
 영원히 이대로라니---그럴 리가 없다. 뭔가 갈아입지도, 얼굴을 씻지도 못하고, 범죄자같이 취급받으며 밧줄에 묶여 더러운 마차에 태워져서. 확실히 요코는 성인군자처럼 선량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할 만큼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머리 위를 지나 뒤로 사라져가는 문을 바라보면서, 요코는 묶인 팔을 움직여 어깨로 빰의 눈물을 훔쳤다. 옆에 앉아있는 30대 정도의 남자는 가슴에 보퉁이를 끌어안고서 담담하게 경치를 보고 있다.
 「저...어디로 가는건가요?」
 주저주저하며 요코가 말을 걸자,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말을 할 수 있는건가.」
 「네. ........전 이제, 어디로 가는건가요?」
 「어디라니. 현청이다. 현지사에게 데리고 가는거지.」
 「그러고서는 어떻게 되는거죠? 재판이라던가, 그런걸 하는건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죄인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네가 좋은 해객인지, 나쁜 해객인지 확실해질 때까지 어딘가에 갇히게 되겠지.」
 남자가 내뱉은 말에, 요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좋은 해객과 나쁜 해객?」
 「그렇다. 네가 좋은 해객이라면 적당한 사람이 네 후견인이 되어서 적당한 장소에서 일하며 살게 된다. 나쁜 쪽이라면 유폐, 아니면 사형.」
 요코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등골에 식은 땀이 흐른다.
 「......사형?」
 「나쁜 해객은 나라를 멸망시킨다. 네가 흉조라면 목을 베겠지.」
 「흉조라뇨?」
 「해객이 전란이나 재해를 끌고 오는 일이 있다. 그럴때는 빨리 죽여버리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하니까.」
 「그런걸 어떻게 구분하죠?」
 남자는 비웃음을 지었다.
 「한동안 갇혀있다보면 알게돼. 네가 오고서, 이후로 나쁜 일이 벌어지면 네가 흉조인거다.」
 남자는 위험한 눈빛으로 요코를 노려보았다.
 「넌 흉사를 몰고온 듯 하지만.」
 「.............그런.」
 「네가 왔던 그 식(蝕)으로 얼마나 많은 논이 진흙에 가라앉았다고 생각하나. 배랑의 올해 수확은 전멸이야.」
 요코는 눈을 감았다. 아아, 그래서였구나. 그래서 난 죄인처럼 취급받은 거였나.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 요코는 흉사의 전조인 것이다.
 두렵다. 절실하게 두렵다. 죽는다는 것은 두렵다. 살해당하는 것은 더더욱 두렵다. 이런 딴 세계에서 죽게 된다고 해도, 누구 하나 아쉬워하며 울어주지 않을 것이다. 시체만이라도 집에 돌아가는 것마저 불가능한 것이다.
 --왜 이렇게 된거지.
 도저히 이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는 믿을수가 없었다. 그저께만 해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집을 나섰었다. 어머니에게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인사했다. 언제나처럼 시작해서, 언제나처럼 끝났어야만 했을 하루. 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어버린 것일까.
 마을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서는 안되었던 것일까. 처음부터 절벽에서 가만히 있었어야 했던 것일까. 요코를 이 세계로 끌고 온, 그 일행들과 떨어져서는 안되었던 것일까.
 하지만 요코에게는 선택의 여지따위 없었다. 케이키는 억지로라도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괴물에게 쫓겨서, 요코 역시 어떻게 해서든 몸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마치 뭔가의 함정에 빠져버린 것만 같다. 너무나 당연하게 보였던 그 아침은 이미 뭔가의 함정에 걸려있었고, 그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자신을 옭아매어 왔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벗어날 수가 없었다.
 --도망가야해.
 요코는 안절부절하며 날뛰고 싶어지는 것을 겨우 억눌렀다. 실패했다간 끝장이다. 도망가려다가 실패했을 때는, 어떤 짓을 당하게 될지 알 수 없다. 기회를 살피며, 어떻게 해서건 이 궁지를 빠져나가지 않으면.
 요코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맹렬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강렬하게 뭔가를 생각했던 일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청까지는 얼마나 걸리나요?」
 「마차로 반나절 정도일까.」
 요코는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태풍이 지나간 뒤처럼 맑고, 태양은 바로 머리위에 걸려있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 어떻게건 도망갈 기회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 현청이 어떤 곳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마차보다는 도망가기 힘들겠지.
 「제 짐은 어떻게 되었죠?」
 남자는 수상하다는 듯이 요코를 보았다.
 「해객의 물건은 함께 현청에 보내게 정해져있어.」
 「검도?」
 남자는 더더욱 수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경계하는 것이다.
 「.....물어서 어쩔거냐.」
 「그건 소중한 물건이에요.」
 등뒤에서 가볍게 주먹을 지었다.
 「저를 붙잡았던 남자가, 굉장히 갖고싶어 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 사람한테 도둑맞은게 아닌가 해서.」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돼. 멀쩡히 들어있다.」
 「정말 그럴까요. 그건 그냥 장식품이긴 해도, 굉장히 비싼 거에요.」
 남자는 요코의 얼굴을 보고서, 무릎 위의 보따리를 열었다. 그 안에서 선명한 빛을 뿜으면서 보검이 나타났다.
 「이게 장식품이라고?」
 「그래요.」
 적어도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요코는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가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제발, 빠지지 말아줘. 마음속 깊이 빌었다. 농지에서 마주쳤던 남자는 빼지 못했었다. 케이키는 그 검은 요코밖에 쓸 수 없다고 말했었다. 어쩌면 요코 이외의 사람은 검을 뽑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남자가 손에 힘을 주었다. 손잡이는 검집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헤에. 정말로 장식품이군.」
 「돌려주세요.」
 요코가 말하자 남자는 비웃었다.
 「현청에 바쳐야 한다고 말했을텐데. 게다가 목이 떨어지고 나면 필요없잖아.」
 요코는 입술을 악물었다. 이 밧줄만 없었어도 되찾을 수 있었을텐데. 혹시나 죠유우가 어떻게 해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무리 힘을 주어봐도 밧줄은 물론 끊어지지 않았다. 괴력이 생겼을 리 없는 것이다.
 어떻게든 밧줄을 끊고 검을 되찾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흘러가는 풍경 속에서 금색의 빛을 발견했다.
 마차는 산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가 심어져 있는 어두운 숲속에서, 낯익은 색을 발견한 요코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 오싹, 하며 죠유우의 기척이 피부를 타고 흘렀다.
 숲속에 사람이 서있었다. 긴 금색의 머리카락과 하얀 피부, 긴 소매의 기모노같은 옷.
 --케이키.
 요코가 마음 속으로 외친 것과 동시에, 확실히 요코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타이호.
 
- 6 -
 「멈춰요!」
 요코는 마차에서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케이키!도와줘!!!」
 옆의 남자가 요코의 어깨를 붙잡고 눌러 앉혔다.
 「이봐.」
 요코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마차를 세워요. 아는 사람이에요!」
 「네가 아는 사람이 여기 있을 리가 있나.」
 「있었어요! 케이키였어! 제발, 멈춰요!!」
 돌아보자, 금색 빛은 이미 멀어져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확실히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람의 곁에 또 한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람은 머리에서부터 사신과도 같은 어두운 색의 천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 어떤 동물을 데리고 있다는 것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케이키!」
 외치며 뛰어내리려는 요코를 남자가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고서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이미 금빛은 보이지 않았다. 서있던 장소는 아직도 보인다. 거기에 서있던 인물이 모습을 감춰버린 것이다.
 「케이키!?」
 「적당히 해!」
 남자가 난폭하게 요코를 끌어당겼다.
 「어디에 사람이 있다는 거냐. 그따위로 속여보려고 해도 안 넘어가!」
 「있었어요!」
 「시끄러워!」
 남자의 노성에 요코는 몸을 움츠렸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마차 위에서 차마 포기하지 못하고 시선만을 뒤로 던졌다. 역시나,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왜.
 케이키라고 생각한 순간 들려온 목소리는 분명 죠유우의 것이었다. 그 사람은 케이키임에 틀림없다. 동물의 모습도 보였다. 케이키일행은 무사했던 것이다.
 --그럼 왜, 도와주지 않는거야?
 혼란된 채 미친 듯이 주변을 훑어보았다. 어딘가에 한번 더, 그 금빛이 보이지는 않을까.
 그때, 시선을 향한 숲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요코는 바로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고, 옆의 남자도 얼굴을 그 쪽으로 향했다.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였다. 어딘가에서 어린 아기가 울고있는 것이 들려왔다.
 「어이.......?」
 울음소리가 나는 방향을 가리키며 남자가 말을 건 것은, 그때까지 말없이 마차를 몰고있던 남자에게였다. 마차를 몰던 남자는 요코들을 돌아보고서, 고삐를 휘둘렀다. 말의 속력이 빨라졌다.
 「아기가...」
 「상관하지마. 산 속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나면 가까이 가지 않는게 좋아.」
 「하지만, 왜...」
 아기는 목이 터져라 울어대기 시작했다. 사람이 못본척 지나가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듯한, 절박한 소리였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보려는 듯 마차에서 몸을 내밀고 있는 남자에게, 마차를 모는 남자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무시해. 산 속에서 인간을 먹는 요마는, 어린아이같은 울음소리를 낸다.」
 요마라는 단어에 요코의 몸이 긴장했다.
 남자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숲과 마부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다. 마부는 굳은 얼굴로 다시금 고삐를 휘둘렀다. 양쪽의 숲 때문에 그늘져있는 언덕길을, 마차는 크게 흔들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한순간, 케이키가 자신을 돕기 위해서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죠유우의 느낌이 강해지며, 전신이 긴장하고 있었다. 도저히, 도우러 와준거라고 단순히 기뻐할 수가 없었다.
 응애애, 아기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그것은 분명히 다가오고 있다. 그 소리에 응답하듯, 다른 쪽에서도 울음소리가 난다. 여기저기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와, 마차 주위를 둘러싸인 듯, 언덕길에 울음소리가 울려왔다.
 「히익......」
 남자는 몸을 경직시키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질주하는 마차의 속도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 듯이, 소리는 계속해서 다가오고 있다. 아기가 아니다. 어린애일 리가 없다. 요코는 몸을 비틀었다.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며, 몸 속에 무엇인가가 충만해온다. 그것은 죠유우의 기척이 아니라, 파도소리를 내는 무엇인가였다.
 「밧줄을 풀어줘요!」
 남자는 눈을 크게 뜬 채로 요코를 바라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습격당하면 몸을 지킬 수 있어요?」
 낭패한 듯한 표정으로 역시 고개를 흔든다.
 「밧줄을 풀고 그 검을 내게 넘겨줘요.」
 마차를 포위한 울음소리는, 서서히 그 반경을 좁혀오고 있다. 말은 질주한다. 마차는 타고 있는 사람들을 떨쳐버리려는 듯이 몇 번이고 크게 덜컹거렸다.
 「빨리!!」
 요코가 노성을 지르자, 남자는 튕겨지듯이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커다란 충격이 덮쳐왔다.
 심하게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서야, 요코는 마차가 전복했다는 사실을 겨우 깨달았다. 숨이 막히고 가볍게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을 겨우 참으면서 주변을 보자, 말도 마차도 완전히 옆으로 넘어져 있었다.
 옆에서 함께 떨어진 남자가 머리를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그 상황에서도 남자는 보퉁이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숲에서 들려왔다.
 「제발! 밧줄을 풀어줘요!」
 그렇게 소리지를 때, 말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해서 시선을 돌리자 말 한 마리를 검은 털의 큰 개들이 덮치고 있었다. 개는 무서울 정도로 턱이 발달해 있다. 입을 벌리자 얼굴이 두 개로 갈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코끝만이 새하얗다. 그 새하얀 코끝이 일순간에 붉게 물들었다. 남자들이 비명을 지른다.
 「이걸 풀고 검을 넘겨줘요!」
 남자에게는 이미 요코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했다. 허둥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퉁이를 꽉 끌어안은 채, 한 팔을 허공에 휘저으면서 언덕을 뛰어내려간다.
 남자의 등을 향해 숲 속에서 몇 마리의 검은 짐승이 뛰어나왔다.
 남자의 몸과 검은 짐승의 그림자가 교차한다. 짐승이 땅에 내려서자 그 뒤에 못박힌 듯이 서있는 남자가 남겨졌다.
 --아니, 서있는 것이 아니다. 남자의 몸에는 이미 머리와 한 쪽 어깨가 없었다. 다음 순간 남자의 몸이 쓰러졌다. 분수처럼 분출하는 선혈이 포물선을 그리며 주변에 붉은 핏방울을 뿌렸다. 요코의 뒤쪽에서 말이 날카롭게 울었다.
 요코는 마차에 몸을 붙였다. 어깨에 뭔가 닿아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아까의 마부였다.
 그는 요코의 뒤로 묶인 손을 붙잡았다. 단도를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도망가. 지금이라면 저 옆을 지나갈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며 마부는 일어섰다. 요코를 묶고 있던 밧줄이 풀렸다.
 마부는 요코를 일으켜 세우고서, 언덕 아래를 향해 떠밀었다. 언덕 위에는 쓰러진 말에 개들이 무리지어 있다. 언덕 아래에는 쓰러진 남자에게 몰려있는 개. 시체 위에 잔뜩 몰려든 검은 짐승을, 조금 떨어진 곳에 구르고 있는 남자의 목이 바라보고 있다.
 이 끔찍한 살육에 몸을 움츠리고 있던 요코와는 관계없이, 구속이 풀린 몸은 전투의 준비를 시작했다. 근처의 돌멩이들을 주워모았다.
 --이런 돌멩이로 뭘 할 수 있다는거야.
 요코의 몸이 일어섰다. 언덕 아래를 향해 걸어간다. 살이 찢기는 끔찍한 소리를 내고 있는 짐승의 무리들 사이에서, 그 소리에 맞춰 흔들리는 남자의 발이 보이고 있었다. 눈이 짐승의 수를 센다. 하나, 둘, ......, 다섯, 여섯.
 요코는 무리에 다가간다. 주변의 아기 울음소리는 이미 잦아들고, 지금은 뼈를 씹어먹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갑자기 개 한 마리가 고개를 들었다. 본래 하얀 색이었던 코끝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 그 개가 말을 걸기라도 한 듯이, 차례차례로 다른 개들이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해.
 요코의 몸은 빠르게 내닫기 시작했다. 최초로 덤벼드는 개의 콧잔등에 돌이 명중한다. 물론 그런 것 따위로 쓰러뜨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짐승의 발을 한순간 멈추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무리야.
 무리가 물러난 뒤에는, 이미 인간의 원형이 남아있지 않은 남자의 시체가 남겨져 있었다.
 --여기서 죽는거야.
 잡아먹히는 거다, 저렇게. 저 턱과 이빨에 갈갈이 물어 뜯겨서 고깃덩어리가 되고, 그 고깃덩어리마저 먹혀버리는 거다.
 그런 절망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돌멩이로 개들을 물러나게 하면서 요코는 달렸다. 움직이기 시작한 죠유우를 멈출 방법은 없다. 가능한 죠유우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의식을 집중하며, 적어도 아픔을 느낄 여유가 없기를 빌 수밖에 없었다.
 달려가는 요코의 발로, 팔로, 등으로, 둔한 충격과 예리한 아픔이 차례로 일어났다.
 도움을 바라며 급하게 등뒤를 뒤돌아본 요코의 눈에, 단도를 마구 휘두르면서 달려가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마부는 요코와 정반대의 숲을 향해서 뛰어들어갔다. 풀숲을 헤치는 순간, 무언가가 그의 몸을 나뭇그늘 아래로 끌고 들어갔다.
 왜 저쪽으로, 라는 의문이 든 것과 동시에 자신이 미끼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망가는 요코가 습격당하는 사이에 자신은 숲 속으로 도망칠 생각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남자의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남자는 요마에게 습격당했고, 요코 역시 무사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손 안의 돌이 다 떨어졌다. 이미 인간의 형체가 남아있지 않은, 남자의 시체까지는 세발짝.
 맨손이 오른쪽에서 덮쳐오는 요마의 콧잔등을 쳐냈다. 발목이 무엇엔가 콱 붙들리는 감각을 느끼고 겨우 발을 빼내어 앞쪽을 향해 도망친다. 등에 둔한 충격이 덮쳐오면서 그대로 앞으로 쓰러져, 머리부터 남자의 시체에 쓰러져 박혔다.
 --싫어.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마음속 어딘가가 심하게 마비되어, 아주 옅은 혐오감이 들 뿐이었다.
 몸이 일어나면서 뒤를 향해 태세를 갖추었다. 이 괴물에게 노려보는 것이 통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지만, 의외로 개는 고개를 수그리며 시선을 피하려 했다. 그렇다고해서, 언제까지나 그것이 지속될 리가 없다.
 요코는 오른손을 시체 밑으로 집어넣어, 엎드린 시체의 고깃덩어리 밑을 뒤졌다.
 남자가 눈깜짝할 새에 시체로 변했던 광경이 되살아났다. 시간이 없다. 녀석들이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은 한순간에 끝나버린다.
 손끝에 딱딱한 것이 잡혔다.
 요코에게는, 손안으로 검의 손잡이가 뛰어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아......아아.
 생명줄을 붙잡았다. 검집 채로 남자의 시체 밑에서 빼내려고 했지만, 왜인지 반쯤 보이다가 검집이 더 움직이질 않는다. 검과 검집을 떨어뜨려서는 안된다고 들었었다. 하지만.
 요코는 망설일 틈도 없이 힘껏 검만을 잡아 뽑았다. 검 끝으로 구슬을 묶은 줄을 끊고, 구슬을 손 안에 꽉 쥐었다. 구슬을 쥐는 것과 동시에 개가 움직였다.
 그것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오른손이 움직이고 검날이 달렸다.
 「으아..........아아아아!!!!!!」
 말이 되지 않는 비명이 목을 찢었다.
 덮쳐오는 개를 좌우로 베어내며, 포위망이 열린 틈으로 달려나갔다. 계속해서 쫓아오는 짐승을 베면서, 온힘을 다해 그 자리를 벗어났다.
 
- 7 -
 요코는 굵은 나무기둥에 몸을 기대이며 주저앉았다.
 언덕을 내려오다 도중에 산으로 뛰어들어,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걸어온 것이 여기였다.
 땀을 닦으려 팔을 들자, 교복은 피에 젖어 무겁게 늘어져 있었다. 얼굴을 찡그리며 상의를 벗어, 그걸로 검을 닦고, 닦아낸 검날을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언젠가 일본사 수업때에, 일본도로 벨 수 있는 것은 몇 명이 한계라고 들었던 적이 있다. 흠집과 피의 기름기 때문에 쓸 수 없게 된다고. 혹시나 검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걱정되었지만, 천으로 닦아내고 보자 검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이상해.」
 요코밖에는 뽑을 수 없다는 것도 그렇고, 묘한 검이었다. 처음 받아들었을 때는 무겁다고 생각했지만, 검집을 빼고 나면 굉장히 가벼웠다.
 요코는 예리한 검광을 되찾은 검을 벗어낸 교복으로 감았다. 그것을 품안에 꽉 끌어안고, 한동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검집을 거기에 남겨두고 와버렸다. 되찾으러 가야 하는걸까.
 검집과 검을 떨어뜨려서는 안된다고 들었지만, 그건 검집에도 뭔가 의미가 있다는 말일까. 아니면, 검집에 구슬이 달려있기 때문일까.
 땀이 식자 교복 아래에 받쳐입었던 티셔츠만으로는 추워졌지만, 다시 피에 젖은 옷을 걸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자 온몸이 아파왔다. 팔도 다리도 상처투성이였다.
 티셔츠의 소매에는 이빨자국이 수없이 나있다. 아래로 피가 흘러 하얀 천이 새빨갛게 물들어있다. 치마는 찢어져버렸고, 다리에도 무수하게 많은 상처가 보였다. 대부분의 상처에서 아직까지도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 남자를 일순간에 죽여버렸던 송곳니에 당한 상처치고는 놀랄 정도의 경상이라 다행이었다.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 경상일 리가 없다. 그러고보니 교무실의 유리창이 깨졌을 때도 주위의 선생님들은 큰 부상을 입었는데도 요코만은 무사했었다. 짐승의 등에서 땅으로 떨어졌을 때에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긁힌 상처밖에 없었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자신의 모습까지 변해버린 마당에 그런건 고민할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요코는 숨을 내쉬었다. 한숨처럼 숨을 쉬면서, 자신의 왼손이 꽉 주먹을 쥐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굳어있는 손바닥을 펴자 파란 구슬이 굴러나왔다. 다시 한번 구슬을 쥐어보자, 그곳으로 통증이 빨려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구슬을 쥔 채 반쯤 잠들었다가, 눈을 떠보자 여기저기의 상처는 이미 말라붙어 있었다.
 「.........이상해.」
 지끈지끈 온몸을 침식하던 고통은 사라졌다. 피로가 옅어진 것을 느낀다. 확실히 이것은, 잃어버려서는 안될 물건이다. 요코에게는 한없이 고마웠다.
 아마도 이게 연결되어 있으니까 검집을 잃어선 안된다고 했던 거겠지.
 교복에서 스카프를 풀러, 검으로 가늘게 찢었다. 그것을 단단하게 꼬아서 구슬에 나있는 구멍에 걸고, 목에 걸어보자 딱 좋은 길이였다.
 구슬을 목에 걸고서 요코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사면에 이어진 숲 속이었다. 해는 이미 저물었고, 나뭇가지 아래에는 어둠이 떠돌기 시작한다. 방향도 알 수 없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좋을지도 알 수가 없었다.
 「.......죠유우.」
 등에 의식을 집중하며 말을 걸어보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부탁이니까, 뭔가 말해요.」
 역시 대답은 없다.
 「이제부터, 어떻게해야 하죠? 어디에 가서 뭘 해야하는거에요?」
 어디에서도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분명히 있을텐데도, 자신의 몸에 의식을 집중해봐도 그가 있는 느낌을 찾을 수 없었다. 희미하게 낙엽이 지는 소리가 들려와, 주변이 더욱 조용하게 느껴졌다.
 「나,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요코는 쓸모없는 혼잣말을 계속했다.
 「난 이 세계의 일은 아무 것도 몰라. 그래서 나한테 뭘 하라는 거죠? 사람이 사는 곳으로 나가면 또 붙잡히겠죠? 붙잡히면 죽을거 아니에요. 아무도 만나지 말고 계속 도망가면, 그걸로 뭔가 되는건가요? 어딘가에 문이라도 있어서, 그 문을 찾아서 열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가요? 그런건 아니잖아.」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데도, 뭘 해야 좋을지를 알 수가 없다. 여기에 주저앉아 있어봤자 무엇 하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디로 가야하는 건지도 알 수 없다.
 숲 속은 급속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불을 밝힐 방법도, 오늘 잠을 잘 장소도,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접근하지 않고, 사람이 없는 곳만을 헤메는 것은 무섭다.
 「나한테 어쩌라는 거에요. 적어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것만이라도 알려줘!」
 그래도 대답은 없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케이키는 어떻게 된거고! 아까 있던건 케이키죠?! 왜 모습을 감춘거야. 왜 도와주지 않았던 거냐구요. 네? 왜?!」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만이 들려왔다.
 「부탁이니까, 아무 말이나 해줘요.......」
 방울방울 눈물이 흘렀다.
 「.......돌아가고 싶어.」
 원래 있던 세계를 좋아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떠나고 나니, 더할 수 없이 그리워 눈물이 나온다. 다시 한번 돌아갈 수 있다면 뭐든지 할거야. 돌아가면 두 번 다시 떠나지 않아.
 「집에......가고 싶어.」
 어린애처럼 훌쩍거리면서, 문득 생각했다.
 어떻게든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 현청에 끌러가지도, 저 짐승들에게 잡아먹히지도 않았다. 이렇게 살아서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고 있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잘된 일일까?
 --고통이라면......
 떠오르려는 생각을, 고개를 흔들며 애써 떨쳤다. 그것을 생각하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분명 지금으로선 어떤 말보다도 설득력이 있다. 요코는 무릎을 꽉 끌어안았다.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묘하게 날카로운 노인같은 목소리가, 요코가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던 바로 그것을 웃으며 말해왔다.
 「고통이라면, 한순간에 끝났을텐데.」
 
 요코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오른손은 검의 손잡이를 꽉 쥐고 있다. 숲속은 이미 밤이었다. 가까스로 나무줄기와 잡초를 분간할 수 있을 정도의 빛밖에 없었다.
 그 속에 희미하게 불빛이 있었다. 요코가 앉아있는 곳에서 2미터 정도 지점. 잡초 속에서 푸른 인광을 발하는 것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을 확인한 요코는 가볍게 숨을 들이켰다.
 도깨비불처럼 빛을 발하는 털로 뒤덮인, 원숭이였다. 높게 자라있는 잡초 사이에서 고개만 내밀고서, 요코를 바라보며 웃기라도 하는 듯이 잇몸을 내보이고 있다.
 원숭이는 깔깔대며 귀에 거슬리게 웃었다.
 「잡아먹혀 버렸으면, 잠깐이었을텐데 말야-」
 요코는 둘둘 말린 교복 안에서 검을 빼들었다.
 「...........당신, 누구?」
 원숭이는 더욱 높게 웃었다.
 「나야 나지-. 바보같은 계집, 도망 따윌 치다니. 그대로 잡아먹혀 버렸으면, 고통스럽지 않게 끝났을텐데 말이야--」
 요코는 검을 고쳐잡았다.
 「정체가 뭐야?」
 「난 나라니까아. 네 편이라구. 너한테 좋은 걸 가르쳐주려는 참인데.」
 「.....좋은 것?」
 원숭이의 말은 순순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죠유우가 긴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 적은 아닌 듯 했지만, 수상한 모습도 그렇고 도저히 정상적인 생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넌 못 돌아가.」
 딱 잘라 말하는 것을 듣고 요코는 원숭이를 노려보았다.
 「닥쳐.」
 「못가. 절-대로 무리다. 애초부터 돌아갈 방법 따윈 없어. ---더 좋은걸 가르쳐줄까?」
 「듣고 싶지 않아.」
 「가르쳐준다니깐. 넌, 속은거야.」
 깔깔거리며 원숭이는 크게 웃었다.
 「속....았다고?」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보같은 계집애다, 안그래? 넌 처음부터 함정에 빠졌던거라구.」
 요코는 숨을 삼켰다.
 --함정.
 케이키의? 케이키의!?
 검의 손잡이를 붙잡은 손이 떨려왔지만, 부정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짚이는 데가 있겠지? 넌, 이 쪽으로 끌려왔어. 두 번 다시 저쪽으로 돌아갈 수 없는 함정이었던거야.」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에 꽂혀왔다.
 「그만!!!!」
 무심결에 검을 휘둘렀다. 마른 소리와 함께 베인 풀이 춤춘다. 요코가 아무렇게나 휘두른 검은 원숭이에게 닿지 않았다.
 「그렇게 귀를 틀어막아도 사실은 바뀌지 않아. 그런 것 따위 잘난 듯이 휘두르고 있으니까 죽을 꼴을 보는거다.」
 「그만해!」
 「모처럼 좋은걸 갖고 있는데, 좀 더 제.대.로. 쓰는게 어때? --그걸로 목을 휙 긋는거야.」
 깔깔거리며 원숭이는 하늘을 향해 크게 웃었다.
 「닥쳣!!!」
 검을 휘두른 곳에 원숭이는 없다. 아주 조금 뒤로 물러나, 여전히 목만 내밀고 있다.
 「괜찮겠어-? 날 베어버려도? 내가 없어지면 넌 말을 걸 상대도 없다구?」
 핫. 요코의 눈이 커졌다.
 「내가 뭐 나쁜 짓이라도 했냐구. 이렇게나 친절하게, 너한테 말까지 걸어주고 있잖아.」
 요코는 이를 악물었다. 굳게 눈을 감는다.
 「불쌍하게도. 이런데까지 끌려와서는.」
 「......어떻게 해야해?」
 「어떻게도 못해.」
 「....죽는건 싫어.」
 그것만은 정말로 무섭다.
 「멋대로 하도록 해. 나도 네가 죽기를 바라는건 아니라구.」
 「어디로 가야하지?」
 「어딜 가도 마찬가지야. 사람에게도 요마에게도 쫓겨다닐 뿐이니까.」
 요코는 얼굴을 감쌌다. 또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울 수 있는 동안에 울어두라구. 곧 눈물 따위도 말라버릴 테니까.」
 날카로운 목소리로 깔깔거리며 원숭이는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멀어져가는 것을 들으며, 요코는 얼굴을 들었다.
 「--기다려!」
 혼자 남겨지고 싶지 않아. 설령 정체도 모를 상대라고 해도, 이런 곳에 혼자서, 말할 상대도 없이 남겨지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얼굴을 들었을 때 원숭이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새까만 칠흑 속에서 날카로운 웃음소리만이 언제까지고 울리고 있었다.
 
- 8 -
 --고통은 한순간에 끝난다.
 그 말은 가슴 속 깊이 가라앉아, 어떻게 해도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요코는 몇 번이고 무릎 위에 놓인 검에 시선을 던졌다.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한 빛을 반사하면서, 딱딱하고 차가운 것이 가로로 놓여있다.
 --고통은...
 사고가 거기에서 멎었다. 고개를 흔들어 떨쳐내려고 해도, 어느 틈엔가 거기로 돌아와있다.
 거기서 나아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한 채, 요코는 가만히 검날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을 때, 요코의 눈이 커졌다.
 천천히, 어둠 속에서 하얀 검날의 형태가 떠오른다. 손에 쥐고 검을 가려보았다. 스스로 발하는 빛으로 예리하게 반짝이기 시작한 검은, 양 날 사이의 거리가 가운데 손가락 길이 정도였다. 검에 이상한 빛이 감돌자, 요코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무언가가 비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기 얼굴일거라고 납득하려다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검에 무언가가 비치고 있는 것은 확실했지만, 그건 요코의 얼굴 따위가 아니었다. 검날을 가까이 대고 유심히 살펴보자, 그것은 인영(人影)이었다.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다.
 높게 물소리가 울렸다. 동굴 속에서 수면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 들은 기억이 있다. 검에 비춰진 인영은 눈을 의심하고 있는 사이 점점 선명해진다. 파문을 그리던 수면이 물소리와 함께 가라앉으면서 영상이 확실하게 맺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람이었다. 여자가, 어딘가의 방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것을 본 요코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고였다.
 「.......엄마.」
 거기에 비치고 있는 것은 어머니. 요코의 방이 틀림없었다.
 흰 바탕에 아이보리색 무늬가 들어간 벽지, 작은 꽃무늬의 커튼, 패치워크의 침대커버, 책장 위의 인형, 책상 위의 『긴 겨울』.
 어머니는 서성거리며 주변의 것들을 만지고 있다. 책을 들고 페이지를 넘겨봤다가, 책상 서랍을 열고 안을 보았다가, 침대에 걸터앉아 한숨을 쉰다.
 (엄마......)
 어머니는 몹시 초췌해 보였다. 어두운 안색에 가슴이 아파왔다.
 분명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거다. 저쪽에서 떠나온지도 이미 이틀 지났다. 단 한번도 저녁식사 준비에 늦어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어디에 가는지 알리지 않고 나가본 적도 없었다.
 그 주변의 것들을 조금씩 만져보고 있던 어머니는, 그대로 침대에 주저앉아 벽에 기대어진 인형을 들고 가볍게 톡톡 쳤다. 그리고 그것을 어루만지다가,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엄마!」
 마치 눈앞에 있는 듯한 모습에, 요코는 그대로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른 순간 영상이 사라졌다. 제정신으로 돌아와 눈의 초점을 맞춰보았지만, 거기엔 한자루의 검 뿐. 이미 빛도 사라지고, 검날에는 아무런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다.
 「------뭐였지.」
 지금의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마치 현실처럼 리얼하게 보였다.
 요코는 다시한번 검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아무리 검을 응시해도, 더이상 영상은 볼 수 없었다. 물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물방울 소리.
 퍼뜩 기억이 났다.
 그것은 꿈속에서 들었던 소리였다. 한달 내내 계속되었던 그 꿈 속에서는, 언제나 높은 물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그럼, 지금 본 환영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 요코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나자, 더욱 돌아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요코는 원숭이가 사라진 쪽에 시선을 던졌다.
 돌아갈 수 없다고, 함정이라고. ...그것을 인정해버리면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다.
 함정이 아냐. 아까 케이키가 도와주지 않았던 것도 자신을 내버려둔 것이 아니다. 분명 뭔가 사정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아니, 애초부터 확실하게 얼굴을 봤던 것도 아니다. 그게 케이키라는 것 자체가 요코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분명히, 그럴거야.」
 케이키와 닮기는 했지만 그건 케이키가 아니었다. 이곳의 인간들의 머리색은 여러 가지이다. 금발을 보고 케이키라고 생각했지만 확실하게 얼굴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러고보면 그 사람은 케이키보다 조금 키가 작았던 것도 같았다.
 「그래, 그랬던거야.」
 그건 케이키가 아니야. 케이키가 나를 버리는 일 따위 있을 리 없어. 그러니까 케이키만 찾으면 분명히 돌아갈 수 있어.
 굳게 굳게 검의 손잡이를 쥐었을 때, 갑자기 등골에 스르륵 하는 느낌이 지나갔다.
 「죠유우?」
 몸이 제멋대로 일어났다. 검을 상의에서 꺼내어, 자세를 고쳐잡는다.
 「......무슨?」
 대답이 없을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물어보면서, 요코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심장 고동이 빨라진다. 파사사, 잡초를 헤치는 소리가 정면에서 들려왔다.
 --뭔가가 온다.
 곧 들려온 것은 으르렁거리는 소리였다. 개가 무언가를 위협할 때에 내는 소리.
 --그것들.
 마차를 덮쳤던 것들일까?
 상대가 뭐건간에, 이렇게 어두워서는 불리하다. 요코는 그렇게 생각하며 등뒤를 힐끗 바라보았다. 어딘가 조금이라도 더 밝은 곳으로 가고 싶다. 발을 가볍게 내딛자 스르륵 하는 감촉이 그것을 도왔다. 요코는 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등뒤에서 뭔가 커다란 것이 잡초를 헤치며 돌진해오는 소리가 들렸다.
 요코는 어두운 숲속을 내닫는다. 추격하는 쪽의 발이 상당히 빨랐음에도 붙잡히지 않았던 것은, 어쨌거나 그렇게 기민한 상대는 아니었기 때문인 듯 했다.
 나무 사이를 지나가며 달리자 좌우로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때때로 나무에 부딪히는 소리마저 들린다.
 빛이 보이는 방향으로 달려, 요코는 숲에서 빠져나왔다.
 산중턱의, 나무가 없는 공터였다. 새하얀 달빛을 받아 눈 아래에 펼쳐진 산들이 한눈에 보인다. 평야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혀를 차면서 뒤로 돌아 태세를 갖추었다.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커다란 그림자가 숲에서 뛰어나왔다.
 그것은 소와 비슷했다. 전신에 긴 털이 뒤덮여, 숨을 쉴 때마다 털이 거꾸로 서고 있었다. 마치 개같은 소리로 낮게 으르렁거렸다.
 경악도 공포도 느끼지 않았다. 심장 고동은 빠르고 숨은 타는 듯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형의 것에 대한 두려움은 옅어져 있었다. 죠유우의 기척에 주의를 기울인다. 몸 속에서 파도소리가 느껴진다. 이 이상으로 피를 뒤집어쓰는 건 싫은데, 따위의 생각이 태평하게 들었다.
 어느새 달은 하늘 높이 떠 있었다. 청량한 달빛을 받아 검이 더욱 새하얗게 빛났다.
 그 하얀 검날이 일순간에 새까맣게 물들며, 세 번째 공격으로 거대한 괴물은 옆으로 쓰러졌다. 가까이 다가가 숨통을 끊는 사이에, 주변의 어두운 숲속에서 붉게 빛나는 눈들이 모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밝은 곳을 찾아 걸으면서, 셀 수도 없이 덮쳐오는 요마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긴 밤 내내 몇 번이고 습격을 받으며, 괴물은 역시나 밤에 출몰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순간도 쉴 수 없었다는 건 아니지만, 구슬의 힘을 빌려도 피로가 쌓여간다. 인기척도 없는 산길에서 빛마저 없을 때는 검을 땅에 꽂으며 지팡이 대신으로 짚어도 걷기가 힘들었다.
 밝아지기 시작하자 습격도 잦아들어, 아침 햇살이 비칠 즈음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대로 길가에서 쓰러져 잠들어버리고 싶었지만, 남에게 발견되면 위험하다. 무거운 손발을 끌며 길가의 숲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산길에서 그렇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장소에 부드러운 풀밭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검을 끌어안고 쓰러지듯이 잠들었다.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上) 3장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상)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3 장
 
- 1 -
 저녁 무렵에 눈을 떠, 정처도 없이 걷다가 하룻밤 내내 싸우면서 보낸다. 풀밭에서 잠들며, 먹을 것은 얼마 없는 나무열매 뿐. 그렇게 사흘을 보냈다.
 굉장히 피곤했기 때문에 아무데서나 잠들수는 있었지만, 그보다도 배고픔이 심했다. 구슬을 쥐고 있으면 어쨌거나 굶어죽는 일은 없는 듯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복이 채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위 속에 몸을 갉아먹는 벌레가 무수히 살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나흘째가 되어서야 목적도 없이 걷는 것을 단념했다.
 뭔가 -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 돌파구가 없을지 생각하며 계속 걷다가, 그저 걷기만 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케이키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 찾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해객이라는 것이 들통나면 또다시 붙잡혀, 똑같은 일이 되풀이될 것이 틀림없다.
 요코는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어딘가에서 적어도 입을 것을 손에 넣을 필요가 있다. 옷만 바꿔입어도, 한눈에 해객이라는 것이 들통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옷을 손에 넣는 방법이었다.
 이 세계의 통화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요코에게는 가진 돈이 없다. 살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정되어 있다. 검으로 위협해서 뺏던가, 또는 훔치던가.
 옷에 대해서는 훨씬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도둑질을 할 용기가 없었다. 나흘 내내 목적도 없이 산속을 헤메이다 겨우 결심이 섰다.
 자신은 살아남지 않으면 안된다. 별로 사람을 죽이고 시체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도 아닌데. 주저하고 있다가는 언젠가 한계가 온다.
 요코는 큰 나무그늘에서 멀리 보이는 작은 촌락에 시선을 주었다. 가난해 보이는 집들이 계곡 사이의 분지에 밀집해 있다. 태양은 아직 높이 떠있었고, 멀리에 보이는 논에 인영(人影)이 있다. 주민들은 분명 논일에 한창 바쁘겠지.
 마음을 굳히고 주저하며 숲을 나왔다. 집락에서 가장 가까이에 보이는 집으로 다가가 보았다. 담장같은 것은 없고, 주변은 작은 밭으로 둘러싸여 있다. 검은 기와지붕, 반쯤 벗겨진 하얀 토벽. 창문같아 보이는 구멍이 나있었지만, 유리는 끼워져있지 않다. 덧문같은 문짝이 달려있었지만, 모두 열려있는 채였다.
 요코는 주변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건물에 다가갔다. 최근엔 어떤 괴물을 마주쳐도 떨리지 않았었는데, 이를 악물지 않으면 턱이 떨려오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살짝 창에서 안을 들여다보자, 작은 공간에 가마솥과 테이블이 있는 것이 보였다. 부엌인 듯 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귀를 기울여봐도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발소리를 죽이며 벽을 따라 걷다가, 우물 근처에 문같은 것을 발견하고 손을 뻗었다. 문짝을 당겨보자 아무런 저항없이 열렸다.
 숨을 죽이고 안을 살펴보며, 정말로 집안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가볍게 숨을 내뱉고, 요코는 집안으로 들어섰다.
 다다미 여섯장 정도 크기의 토방이었다. 소박하지만 「집」의 냄새가 난다. 사방에 벽이 있고 가구가 있고 가재도구가 있다. 겨우 그정도의 것이 눈물나도록 그리웠다.
 이 방에 있는 것은 책장 몇 개 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요코는 단 하나 있는 문으로 다가간다. 살짝 열어보자 안쪽은 침실같았다. 그 때 감옥에 있었던 것보다 조금 나은 침대가 방 양쪽에 하나씩 있고, 책장과 작은 탁자, 큰 나무상자가 놓여있다. 어쨌거나 이 집에 있는 방은 이 두 개가 전부인 듯 했다.
 창이 열려있는 것을 확인하고, 요코는 방안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제일 먼저 책장을 확인하고, 별것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나무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천 종류의 것들이 가득 들어있었지만 옷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방안을 둘러봐도 그밖에 옷이 들어있을만한 가구는 없다. 이 천들 안쪽에 반드시 있을거라고 판단하고 위에서부터 차례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큰 TV 정도 크기의 상자를 다 비웠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잡다한 것을 넣어둔 작은 상자 몇 개와 침대의 시트, 얇은 이불, 요코로서는 도저히 입을 수 없는 아이옷들 뿐이었다.
 옷이 없을 리가 없는데, 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방을 둘러보았을 때 옆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요코는 말 그대로 펄쩍 뛰었다. 한순간에 심장고동이 빨라진다. 휙 창문 쪽을 돌아보았지만, 창문까지는 굉장히 멀게 느껴졌다. 문밖의 사람에게 눈치채이지 않고 거기까지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보였다.
 --들어오지마.
 가벼운 발소리가 옆방에서 울리고, 갑자기 침실의 문이 열렸다. 결국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던 요코는 상자 앞에 잔뜩 천을 흐트러뜨린 채로 망연하게 서있었다. 반사적으로 검의 손잡이를 쥐려다가, 그만두었다.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으니까 도둑질까지 하러 들어왔다. 그렇다고는 해도, 검으로 위협하는건 간단한 일이지만 상대가 겁을 먹지 않으면 결국 검을 쓰게 된다. 사람을 향해 검을 휘두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것이 운명이라는 거겠지. 요코는 살아남기 위한 도박에서 진 것이다.
 --고통은 한순간에 끝난다.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오려던 여자는 경련하듯이 몸을 떨며 굳어버렸다. 중년쯤으로 보이는 체격좋은 여자였다.
 도망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말없이 서있었다. 굉장히 침착해진 자신을 깨달았다. 붙잡혀서 현청으로 보내지고, 거기서 받아야할 형벌을 받는다. 그것으로 모두 끝나게 된다면, 굶주림도 피로도 모두 잊을 수 있는 것이다.
 여자는 요코와 발치에 흩어진 천들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겨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집엔 훔칠만한 물건이 없어.」
 요코는 여자가 소리를 지르는 것을 기다렸다.
 「.....아니면 옷? 옷이 필요한거야?」
 요코는 곤혹한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여자는 그런 요코의 모습에 안심했는지 방안으로 들어왔다.
 「옷이라면 이쪽이야.」
 여자는 요코의 곁을 지나 침대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침대에 펼쳐진 이불을 걷어올리자, 침대 아래에 서랍이 보였다.
 「그 상자에는 안쓰는 물건 뿐이야. 죽은 아이의 옷이라던가.」
 그렇게 말하며 서랍을 열고, 그 안의 옷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어떤 옷이 좋겠어? 내 것밖에 없긴 하지만.」
 여자는 요코를 돌아보았다. 요코는 두눈을 크게 떴다. 대답을 못하자 여자는 마음대로 옷을 펼치기 시작한다.
 「딸이 살아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어느 것도 당신한테는 짧겠네.」
 「..............왜.」
 힘없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자가 돌아보았지만, 요코는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여자는 조금 굳은 얼굴로 웃음을 지으며, 옷들을 펼치는 것을 계속했다.
 「당신, 배랑에서 왔지?」
 「.........네...」
 「해객이 도망쳤다고, 큰소동이야.」
 요코는 입을 다물었다. 여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머리가 굳은 녀석들이 많아서 말야. 해객이 나라를 망친다느니, 나쁜 일이 일어난다느니. 식(蝕)이 일어난 것까지 해객이 저질렀다고 말하고 있으니 우스워서 말야.」
 여자는 요코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당신, 그 피는 어떻게 된거지?」
 「산 속에서...요마가.....」
 그 이상 말이 나오질 않는다.
 「아아, 요마에게 습격당한거로군. 최근에 늘었어. 용케도 무사했네.」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일어섰다.
 「어쨌거나 앉아요. 다친 데는 없고? 뭔가 제대로 먹고 있었어? 안색이 안 좋네.」
 요코는 그저 머리만 흔들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어쨌거나 뭔가 먹을걸 줄테니까. 더운물로 몸도 좀 씻고. 옷은 그 다음에 생각하자.」
 여자는 허둥지둥 옆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계속 움직이지 못하는 요코를 문가에서 돌아보았다.
 「당신, 이름은?」
 대답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주르륵 눈물이 흐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불쌍하게도.」
 따뜻한 손이 요코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불쌍하게도, 힘들었구나.」
 억누르고 있던 것들이 한순간에 터져나와, 오열이 되어 목을 찢었다. 그 자리에 태아처럼 웅크리고 앉아 소리내어 울었다.
 
- 2 -
 「이걸로 갈아입어.」
 여자는 칸막이의 뒤에서 하얀 옷을 건네주었다.
 「여기서 잘거지? 우선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요코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여자는 훌쩍거리는 요코를 달래주고서, 작은 콩이 들어간 죽을 쑤어주었다. 그리고는 큰 대야에 더운물을 붓고 목욕준비를 해줬다.
 오랫동안 고통을 호소하고 있던 굶주림이 가라앉고, 뜨거운 물에 몸을 씻고서 깨끗한 잠옷을 입고서야 겨우 인간으로 돌아온 듯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목욕을 하고서 칸막이에서 나와, 요코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요코는 이 여자에게 도둑질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똑바로 바라보니 여자의 눈은 파랬다. 그 벽안(碧眼)이 부드럽게 웃었다.
 「괜찮아, 그런 것쯤. 그보다 뭔가 따뜻한 거라도 들어요. 이걸 마시고 오늘밤은 푹 자면 돼. 이불을 내줄테니까.」
 「죄송합니다.」
 「괜찮다니까. 그보다, 저......미안하지만 검은 치워뒀어. 하도 심장에 안좋아서...」
 「네. ...죄송합니다.」
 「사과할 건 없고. 그런데, 이름을 모르는 채였지.」
 「나카지마 요코입니다.」
 「역시 해객의 이름은 이상하구나. 난 타츠키라고 불러.」
 「타츠키?어떤 한자죠?」
 달저(達姐)라고 여자는 테이블에 글자를 썼다.
 「그런데 요코는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지?」
 요코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타츠키상, 케이키라는 사람을 모르시나요?」
 「케이키?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지만. --사람을 찾는건가?」
 「네.」
 「어디사는 사람? 교국(巧國)의?」
 「이쪽 세계의 사람이라고밖에는......」
 타츠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것만으로는... 적어도 어느 나라의 어디쯤인지, 그정도라도 알지 않으면.」
 요코는 몸을 움츠렸다.
 「전, 이쪽 세계의 일은 아무것도 몰라서......」
 「그렇겠지.」
 그렇게 말하며 타츠키는 잔을 권했다.
 「여기에는 나라가 열둘 있어. 이 곳은 그중에서도 남동쪽의 나라지. 교국이라는.」
 요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뜨는 쪽이 동쪽인가요?」
 「그렇지. 그리고 여기는 교국의 동쪽이야. 오증(五曾)이라고 하지. 여기에서 북쪽으로 열흘쯤 걸으면 높은 산이 나와. 그 산 너머가 경국(慶國)이고.」
 요코는 타츠키가 책상 위에 써내려간 글자들을 지켜보았다.
 「배랑(配浪)은 동쪽 해안에, 여기에서 쭉 동쪽이야. 도보로 닷새쯤이지.」
 전혀 파악이 안되던 것이 조금씩 잡혀오기 시작해서, 마침내 하나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교국은 어느 정도 크기일까요?」
 타츠키는 곤혹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했다.
 「어느 정도냐고 물어도... 그렇군, 이 교국을 동서로 끝에서 끝까지 걸으면 석달쯤 걸릴까.」
 「.......그렇게나?」
 요코는 눈을 크게 떴다. 걸어서라는 시간의 단위는 잘 파악할 수 없었지만 도쿄도를 횡단한다고 해도 일주일은 걸리지 않으리라.
 「그거야, 그런거지. 적어도 하나의 나라니까. 남북으로 걸어도 그정도는 걸려. 다른 나라에 가려면 산이나 바다를 건널 수 밖에 없으니까, 네 달 정도의 여행이 되겠지.」
 「그리고 열 두 나라......」
 「그래.」
 요코는 눈을 닫았다. 자신이 이유없이 모형같은 세계를 상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광대한 장소에서, 단 한 명의 인간을 찾으라는 건가. 아무런 단서도 없이 케이키라는 이름만으로. 그저 이 세계를 일주하는 것만으로도 4년은 걸릴텐데.
 「그 케이키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이쪽 세계의 사람이라는 것 밖에. 저를 이쪽으로 데려온 사람입니다.」
 「데려왔다고?」
 「네.」
 「헤에, 그런 일도 있구나.」
 타츠키는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드문 일인가요?」
 「난 별로 아는 게 없어서 말야.」
 타츠키는 쓴웃음을 지었다.
 「해객에 대해서는 잘 몰라. 해객이라는 거 자체가,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가요.」
 「그래. --어쨌거나, 그 사람은 보통 인간이 아니겠지. 우리들로선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신이던가 선인(仙人)이라던가, 인요(人妖)라던가......」
 요코는 깜짝 놀라 타츠키를 바라봤다. 타츠키는 웃음을 띄웠다.
 「저쪽에 간다던가, 사람을 데려온다던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보통사람이 아니라면 신선이나 요마라는 얘기가 되겠지.」
 「요마가 있다는 건 아는데......신이나 선인도 있나요?」
 「있어. 우리들하고는 연이 없는 위쪽 세상이지만. 신도 선인도 위에서 살아. 아래에 내려오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위?」
 「하늘 위. 아래에서 사는 선인도 없는 건 아니지만. 주후(州候)가 그렇지.」
 요코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타츠키는 쓴웃음을 지었다.
 「각각의 주에는 영주가 한사람씩 있어. 여기 순주(淳州)에는 순후(淳候)가. 왕에게 주후로 임명받고 순주를 다스리고 있어. 주후쯤 되면 보통사람이 아냐. 불로장수에 신통력도 가지고 있지. 뭐, 딴 세계의 인간인거야.」
 「그럼, 케이키도 그런 사람인걸까요?」
 「글쎄.」
 타츠키는 더욱 씁쓸하게 웃었다.
 「선인이라고 하면, 나라의 높은 관리들도 선인이지만 왕궁에서 일하는 심부름꾼도 모두 선인이야. 사람은 하늘 위로 갈 수 없지. 왕궁은 위에 있으니까, 그렇게 되는거야. 왕은 신의 일족이고. 선인은 왕이 임명해. 그밖에 자기 힘으로 승선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개 속세를 떠난 사람들이고. 어쨌거나 사는 세상이 다른데다 만나는 일도 없어.」
 요코는 타츠키의 말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단단히 새겨넣었다. 어떤 지식이라도 중요했다.
 「바다에는 용왕이 있어서 바다를 다스린다고도 하지만, 정말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고. 정말로 용국(龍國)이 있는거라면 그곳의 인간들도 보통사람은 아니겠지. 그것말고 요마 중에서도 인간의 형태로 변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지. 인요(人妖)라고 불러. 대개는 사람과 닮았을 뿐이지만 개중에는 보통 사람과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변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더군.」
 타츠키는 말을 이으며 토기에서 식어버린 차를 따랐다.
 「이세상 어딘가에 요마의 나라가 있다고도 하지만, 정말인지는 몰라. 사람과 요마는 결국 다른 세계의 생물이니까.」
 요코는 몸을 움츠렸다. 정보는 늘었지만, 사태는 더욱 혼돈에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케이키는 인간이 아니라고 한다. 그럼, 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한쿄나 카이코나, 그 기묘한 짐승들은 요마의 일종이겠지. 그렇다면 케이키도 인요인걸까.
 「저.......효우키라던가, 죠유우라는 요마가 있나요?」
 타츠키는 이상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요마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왜 그러지?」
 「힌만이라던가.」
 타츠키는 조금 의아해하는 듯 했다.
 「빈만(賓滿)이겠지. 전쟁터나 군대에 나타나는 요마야. 몸이 없고, 눈이 붉은 색이라지. --왜 그런걸 알고 있는거지?」
 요코는 조금 몸을 떨었다. 그럼, 죠유우는 빈만이라는 요괴인거다. 그것이 지금도 자신의 몸에 빙의해 있다.
 그런 것을 말하면 타츠키가 기분나빠 할 것 같아 요코는 그냥 고개를 저었다.
 「......코쵸우라던가.」
 「코쵸우.」
 몸을 움직여, 타츠키는 고조(蠱雕)라고 썼다.
 「뿔이 있는 새야. 사람을 잡아먹는 흉폭한 녀석이지. 고조는 왜?」
 「습격받았어요.」
 「말도 안돼. 어디에서.」
 「저쪽에서...... 고조에게 습격받고 도망쳐 왔어요. 저나 케이키를 노리고 온 것 같았고...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쪽으로 올 수 밖에 없다고, 케이키가 말해서.」
 「그런게 있을 수 있는건가.」
 타츠키는 낮게 말했다. 요코는 무거운 한숨을 쉬고 타츠키를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한가요?」
 「이상해. 어딘가의 산에 요마가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이쪽 사람들한테는 큰 일이야. 애초에 요마라는 것은 사람이 사는 곳에는 잘 나타나지 않아.」
 「그런...가요?」
 눈을 크게 뜨는 요코에게 타츠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엔 왜그러는지 늘었지만. 위험해서 해가 지면 밖에도 나가질 않아. 고조같은 흉폭한 것이 나타났다간 대소동이야. 하지만...」
 타츠키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요마란건 맹수같은 거라서 특별히 누군가를 노리거나 하지 않아. 게다가 일부러 저쪽까지 갔다니.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 --요코는 어쩌면, 뭔가 큰 일에 말려들어버린게 아닐까.」
 「그런건가요.」
 「나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말야. 최근에 요마가 많아진 것도 그렇고, 어떻게 생각해도 느낌이 안좋은데.」
 타츠키의 불안한 목소리에 요코까지 불안해져왔다. 산에 요마가 있는 것도, 요마가 사람을 덮치는 것도 이쪽에서는 당연한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대체, 난 어떤 일에 휘말려버린거지?
 생각에 잠긴 요코를 달래려는 듯 타츠키가 밝게 말했다.
 「그런 어려운 일은 우리가 생각해봤자 어쩔 수 없으니까. 그보다, 요코는 이제부터 뭔가 예정이 있어?」
 질문에 요코는 고개를 들었다. 타츠키의 얼굴을 보고서 고개를 가로로 흔들었다.
 「......제가 할 수 있는건 케이키를 찾는 것 뿐이에요.」
 설령 케이키가 요마라고 해도, 그들이 요코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을거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려면 시간이 걸려.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은 아닐텐데.」
 「..........네.」
 「어쨌거나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잖아? 여기에 있어주는 것도 좋지만 동네 사람들한테 발견되면 또 현청에 끌려가게 될거야. 친척 아이라고 말하면 통하겠지만, 오랫동안은 무리야.」
 「....그런 폐를 끼칠 수는 없어요.」
 「동쪽에 하서(河西)라는 도시가 있는데, 거기에 우리 어머니가 있어.」
 요코는 타츠키를 돌아보았다. 타츠키가 웃었다.
 「여관을 하고 있지만 말야. 어머니라면 사정을 들어도 현청에 고발하거나 하지는 않아. 고용해줄거야. --일할 생각은 있어?」
 「네.」
 요코는 즉시 끄덕였다. 케이키를 찾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겠지. 그렇다면 어딘가에서 살아갈 장소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 요마와 싸우는 밤도, 먹을 것도 없이 노숙하는 나날도, 가능하다면 이제 끝내고 싶었다.
 타츠키는 웃으며 끄덕였다.
 「훌륭하구나.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냐. 그밖에 일하고 있는 것도 마음착한 애들 뿐이고, 분명 마음에 들거야.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을까?」
 「예, 괜찮습니다.」
 잘됐다며 타츠키는 웃었다.
 「그럼 잘자요. 느긋하게 쉬고. 혹시라도 내일 일어나서 여행이 힘들 것 같으면 한동안 여기 있어도 괜찮으니까.」
 요코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깊게 깊게 머리를 숙였다.
 
- 3 -
 이쪽의 침대는 상 위에 얇은 이불을 펼쳐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잠들었던 요코는 한밤중에 눈을 떴다.
 방 반대편의 침대를 보자 마음씨착한 여자는 깊게 잠들어 있었다. 침대 위에 일어나 앉아 무릎을 안자 깨끗한 피부에 깨끗한 잠옷이 스치며 사락거렸다.
 아무 소리도 없는 심야, 창의 덧문을 닫아놓은 방안은 어두웠다. 무거운 문과 두터운 벽에 둘러싸여, 소동물이 내는 소리에 잠을 방해받는 일도 없다. 공기도 평온하게 가라앉아, 사람이 자는 곳이라는 느낌이 더욱 새삼스러웠다.
 요코는 침대를 내려가 부엌으로 향했다. 책장 위에 얹어두었던 검을 꺼냈다.
 한밤중에 일어나있는 것이 그 짧은 시간동안 습관처럼 되어, 언제나 검을 쥐고 있지 않으면 이유없는 불안을 느꼈다. 의자에 걸터앉아 타츠키에게 받은 새 천으로 감싼 검을 품에 끌어안고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타츠키의 어머니가 여관을 하고 있다는 하서라는 도시까지는 걸어서 사흘 거리라고 들었다. 거기에 가면 요코도 이 세계에 머물 곳을 가질 수 있다.
 일을 해본 경험은 없지만, 불안보다도 기대가 컸다. 타츠키의 어머니는 어떤 사람일까. 거기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지붕 아래에서 잠자고 아침에 일어나, 낮에는 일하고 밤에 잠든다. 일하고 있는 동안에는 일 외의 것을 생각할 틈이 없겠지. 어쩌면 저세계의 집에 돌아가는 것도, 케이키를 찾는 일도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겨우 발붙일 곳을 찾은 요코는 멍하니 눈을 감았다.
 이마에 대고 있던 천뭉치 아래에서 맑고 높은 소리가 난 것은 그때였다.
 요코는 당황해서 검을 보았다. 칭칭 감아둔 천 아래에서 엷은 빛이 나오고 있었다. 주저하며 천을 풀자, 검이 언젠가의 밤처럼 옅게 빛나고 있었다. 검날에는 흐릿하게 작은 그림자가 비쳤다.
 힘겹게 눈의 초점을 맞춰보자, 상이 뚜렷해졌다. 마치 영화라도 보는 것처럼 요코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요코 자신의 방이었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이 리얼했지만 절대로 현실은 아니다. 계속해서 동굴 안에 울리는 듯한 물방울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검날에 보인 것은,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요코의 방안을 괜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머니는 방안을 걷다가 서랍을 빼어보고, 책장을 건드린다. 뭔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그런 일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몇 번째인가 정리장의 서랍을 당기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나타났다.
 「어이. 목욕.」
 아버지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
 어머니는 찌릿 시선을 돌리고는, 다시 서랍을 닫았다.
 「......하세요. 목욕물은 받아놨으니까.」
 「갈아입을 옷은.」
 「그정도는 꺼내 입어요.」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가시가 들어있었다. 그에 답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도 가시가 들어있었다.
 「이런데서 꾸물거리고 있어도 어쩔 수 없다구.」
 「꾸물거리는게 아니에요. 일이 있다구요. 갈아입을 옷 정도는 스스로 꺼내입어요.」
 아버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요코는 제발로 나간거야. 이런데서 언제까지고 서성거려봤자, 돌아올 리가 없어.」
 (나갔다고?)
 「나간게 아니에요.」
 「가출한거야. 학교에 묘한 남자가 데리러 왔다고 했잖아. 게다가 바깥에도 한패가 있어서, 유리창을 깼다고. 요코는 남들 몰래 이상한 놈들과 사귀고 있었던거야.」
 「그런 애가 아니에요.」
 「당신이 눈치채지 못했던 것뿐이겠지. 그 애 머리도, 실은 염색했던 거 아냐?」
 「틀려요.」
 「아이가 불량한 패거리에 들어가서 결국 집을 나가버리는 일은 흔한거야. 얼마뒤에 가출했다가 질리면 돌아오겠지.」
 「그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에요. 전 그렇게 기른 적 없어요.」
 노려보고 있는 어머니를 아버지가 마주 노려봤다.
 「어느 부모나 그렇게 말하지. 학교에 들이닥친 남자도 머리를 염색했었다니까, 아마도 그런 녀석들과 사귀고 있었을거야. 그 애는 그런 애였던거라구.」
 (아버지, 틀려요.......!)
 「심하게 말하지 말아요!」
 어머니의 말에는 원망이 담겨있었다.
 「당신이 뭘 안다는거죠?! 일, 일, 하면서 아이의 일은 전부 나한테 밀쳐놨던 주제에!」
 「다 알고 있어. 아버지니까.」
 「아버지? 누가?」
 「리츠코.」
 「회사에 가서 돈만 벌어오면 아버지에요? 딸이 행방불명되었는데도, 회사를 쉬면 안된다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런 사람이 아버지라고요? 그런 아이였다, 라니. 요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멋대로 말하지 말아요!」
 아버지는 화내기보다도 당황하고 있었다.
 「좀 진정해, 바보같이.」
 「전 침착해요. 이제까지 이렇게나 침착해진 적은 한번도 없을 정도로. 요코가 큰일을 당했는데, 내가 정신차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당신한테는 당신이 할 일이 있잖아. 진정하고 있는거라면, 할 일은 해놓고나서 걱정하라구.」
 「......갈아입을 옷을 내놓는게 할 일인가요? 아이의 걱정보다도 우선하지 않으면 안되는 대단한 일이에요!? 당신이라는 사람은 자기 일밖에 생각하지 않아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 입을 다물고 있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런 아이였다, 라구요? 그 아이는 언제나 착한 아이였어요. 말대답을 한 적도 없고 반항한 적도 없어. 얌전하고 솔직한 아이에요. 걱정을 끼친 적 따위, 한번도 없었어. 나한텐 뭐든지 얘기해줬어. 가출 같은걸 할 애가 아니에요. 그 아이는 집에 불만따위 없었으니까요.」
 아버지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요코는 가방도 학교에 남겨둔 채였다구요!? 코트도 두고 갔어요. 그런게 어떻게 가출인가요! 뭔가 있었던 거에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구요!」
 「그래서 어쨌다는건가.」
 어머니의 눈이 크게 열렸다.
 「어쨌다는거냐뇨?」
 아버지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뭔가 사건에 휘말렸다고 한들, 그래서 당신이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경찰이 알아서 할거야. 우리가 여기서 우왕좌왕한다고 요코가 돌아올 것 같아?」
 「뭐에요, 그런 말투는!」
 「사실이잖아! 아니면 전봇대에 전단이라도 붙일까? 그런 짓을 하면 요코가 돌아오나? --확실하게 말해줄까.」
 「그만.」
 「가출이 아니라 뭔가의 사건에 휘말린거라면, 요코는 이미 살아있지 않아.」
 「그만해요!!!!」
 「뉴스를 보면 알 것 아냐. 이런 경우에 살아서 돌아온 일이 있어? 그러니까 가출이라고 말해주는거 아냐!」
 어머니가 쓰러져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힐끗 보고는 난폭한 발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아버지, 어머니.......)
 보고 있기가 너무나 괴로웠다.
 눈앞이 흐릿해져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자 뺨에 눈물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눈을 뜨자 시야는 맑아져 있었고, 이미 환영은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것은 빛을 잃은 한자루의 검. 이미 빛이 사라진 검을 요코는 힘없이 내려놓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 4 -
 「.....난 안죽었어.」
 차라리 죽는 것이 훨씬 나은 상황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쨌건 살아는 있다.
 「가출 같은거, 하지 않아......」
 얼마나 집에 돌아가고 싶은지. 얼마나 부모님과 집이 그리운지.
 「아버니랑 어머니가 싸우는 거, 처음 봤네.......」
 요코는 테이블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차례차례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바보같아........」
 지금 본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데.
 요코는 몸을 일으켜, 눈물을 닦으며 검을 천으로 쌌다. 이것은 아무래도 검이 보여주는 환영인 듯 했다. 진위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진실임에 틀림없다는 직감이 들었다.
 가만히 견딜 수 없어 일어났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별로 가득했지만 요코가 알고 있는 별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애초부터 별자리 관측 같은 취미는 없었다. 그러니 어쩌면 요코가 알아보지 못하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우물 곁에 주저앉았다. 차가운 돌의 감촉과 시원한 밤바람이 조금 기분을 풀어주었다. 무릎을 끌어안고 웅크리고 있자, 등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귀에 거슬리는 기분나쁜 목소리였다.
 「돌아갈 수 없어.」
 천천히 등뒤를 돌아보자, 우물 위에 푸른 원숭이의 머리가 보였다. 마치 목이 잘려 돌 위에 놓여있는 것처럼, 몸이 없는 목만이 돌 위에서 웃고 있었다.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건가? 넌 돌아가지 못해. 돌아가고 싶지? 어머니와 만나고 싶겠지? 아무리 원해도 못 돌아가.」
 요코는 손을 움직였지만, 검을 가지고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말했었잖아. 네 목을 베는거다. 그러면 편해질테니까. 사랑하는 것들도 절실한 것들도, 모두 끝난다니깐.」
 「난 포기안해. 반드시 돌아갈거야. 그게 한참 뒤의 일이라고 해도.」
 깔깔거리며 원숭이가 웃었다.
 「좋을대로 해. --또 가르쳐줄게 있는데.」
 「듣고싶지 않아.」
 요코는 일어섰다.
 「괜찮을까나, 안들어도? 저 여자는 말야-.」
 「타츠키상........?」
 돌아선 요코를 향해 원숭이는 이를 내보였다.
 「그 여자, 신용하지 않는게 좋아.」
 「뭐야, 그건.」
 「네가 기대하고 있는 만큼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거지. 다행이잖아, 밥에 독이 안들어있어서.」
 「적당히 해둬.」
 「널 죽이고 갖고있는 것을 뺏거나, 널 살려두고 팔아치우거나, 거기서 거기라구. 그걸 고마워하고 있다니. 물러, 무르다구.」
 「말도 안돼.」
 「난 친절하게 알려주는 거야? 아직도 모르겠나? 여기에 네 편 따위 절대 없어. 네가 죽어도 신경도 안써. 오히려 살아있는 쪽이 걸치적거리니까.」
 요코는 원숭이를 노려보았다. 원숭이는 깔깔 웃으며 그에 답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고통은 한순간에 끝난다고.」
 크게 웃으며, 원숭이는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너한테 나쁜 말은 안해. 베어버리라구.」
 「무슨......」
 「저 여자를 죽이고, 돈을 뺏어서 도망쳐버려. 포기못하고 살아볼 생각이라면, 그러는게 낫다구.」
 「적당히 해둬!」
 미친 듯이 깔깔깔 웃으며, 원숭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언젠가의 밤처럼, 귀를 찌르는 웃음소리만이 멀어져간다.
 요코는 그쪽을, 그저 계속해서 노려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억하심정인걸까.
 --안 믿어,
 저런 괴물의 말 따위 절대로 믿지 않아.
 
 다음날 아침, 요코는 고개를 흔들며 눈을 떴다.
 눈을 뜨자 그곳은 허름한 방 안으로, 체구가 큰 여자가 곤란하다는 듯이 요코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일어났어? 피곤하겠지만, 어쨌거나 일어나서 밥 좀 들어요.」
 「...죄송합니다.」
 요코는 서둘러 일어났다. 타츠키의 표정을 보니, 꽤나 깊이 잠들어있었던 듯 했다.
 「사과할 것 없어. 어때? 떠날 수 있겠어? 아니면 내일 떠날까?」
 「괜찮습니다.」
 몸을 일으키며 대답하자, 타츠키는 웃으며 자신의 침대를 가리켰다.
 「입을 것은 저기. 어떻게 입는지 알겠어?」
 「아마도......」
 「모르겠으면 부르고.」
 타츠키는 옆방으로 사라졌다. 요코는 침대에서 내려와, 그녀가 챙겨준 옷을 집어들었다.
 끈으로 묶는 발목 길이의 치마에 짧은 기모노같은 블라우스, 마찬가지로 짧은 상의의 셋트였다. 처음 입어보는 의복은 왠지 불안한 느낌이었다. 몇 번이고 몸을 추스르며 옷을 걸치고 부엌으로 나가자, 테이블 위에는 아침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어머나, 잘 어울리네.」
 타츠키는 스프가 든 큰 그릇을 테이블에 놓으며 웃었다.
 「조금 짧은가. 젊었을 때 옷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뇨, 전혀. 감사합니다.」
 「내가 입기엔 좀 화려해서, 슬슬 다른 사람한테 줄까 생각중이었어. ----자, 밥먹자. 제대로 먹어둬요. 이제부터는 상당히 걸어야 하니까.」
 「네.」
 요코는 끄덕이고서 고개를 숙이고, 테이블에 앉았다. 젓가락을 손에 잡을 때, 한순간 어젯밤 원숭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지만 현실감을 느낄 수 없었다.
 --좋은 사람이야.
 숨겨준 것이 들통나면 처벌을 받을텐데도, 정말로 잘 대해준다. 의심했다가는 벌을 받을 것이다.
 
- 5 -
 점심때 쯤 타츠키의 집을 나섰다.
 그곳에서 하서까지는 놀랄 정도로 즐거운 여행이었다. 처음엔 사람과 마주칠 때마다 움찔했지만, 타츠키의 말대로 머리를 물들인 덕인지 누구 하나 요코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는 것을 알게된 후로는 여기저기서 사람과 만나는 것이 즐거워지기까지 했다.
 고대 중국같은 분위기였지만 살고있는 사람들은 여러 타입이었다. 얼굴은 누구나 동양인처럼 보였지만 머리나 피부색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피부색은 백인같은 하얀색부터 흑인같은 검은색까지 있었으며, 눈 색은 검은색부터 물색까지 제각각, 머리색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개중에는 보라색이 섞인 붉은색부터 백청색까지, 심한 경우엔 염색이라도 한 것처럼 일부만 색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처음엔 기묘하게 생각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익숙해지고나니 변화가 있어서 재미있다. 단지, 케이키같은 완전한 금발은 보이지 않았다.
 의복은 고대 중국풍, 남자는 상의와 짧은 바지, 여자는 긴 스커트가 기본인 듯 했다. 때때로, 동양풍인건 확실하지만 어느 나라, 어느 시대라고도 말할 수 없는 복장을 한 여행자 그룹이 있었지만, 그들은 유랑예인(旅藝人)이라고 타츠키가 가르쳐줬다.
 요코는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길은 타츠키가 가르쳐주고, 식사 조달부터 여관 수배까지 모두 그녀가 해주었다. 물론 요코에게는 돈이 없으므로 전부 타츠키가 지불하는 것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길을 걷다가 말하자, 타츠키는 호쾌하게 웃었다.
 「난 참견꾼이라서. 신경쓰지마.」
 「아무런 보답도 할 수 없어서.」
 「뭐, 오랜만에 어머니하고 만나는걸. 당신 덕분이야.」
 그렇게 말해주는 마음씀이 고마웠다.
 「타츠키상은, 오증으로 시집오신건가요?」
 「아니. 거기로 배치된거야.」
 「배치?」
 타츠키는 끄덕였다.
 「스무살이 되면 나라에서 땅을 받아. 내가 받은 땅이 거기였다는 거지.」
 「스무살이 되면, 누구나 받는 건가요?」
 「그래. 누구든지. --남편은 옆집에 사는 할아범이야. 예전에 아이가 죽고나서 헤어져버렸지만.」
 요코는 웃음짓는 타츠키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러고보니 죽은 아이가 있었다고 말했었다.
 「......죄송해요.」
 「신경쓰지마. 내가 모자란거야. 모처럼 얻은 아이를 죽게 해버렸으니.」
 「그런.」
 「아이는 하늘에서 내려주는거야. 하늘이 도로 데려갔다는 건 나한테는 맡겨둘 수 없었다는 거겠지. 뭐, 인간이 덜 된거니까 어쩔 수 없어. 아이가 불쌍하지만 말야.」
 요코는 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애매하게 웃었다. 타츠키는 조금 쓸쓸하게 보였다.
 「당신 어머니도, 지금쯤 분명 슬퍼하고 있겠지. 빨리 돌아갈 수 있으면 좋을텐데.」
 요코는 끄덕였다.
 「.........네. 하지만, 돌아갈 수 있을까요? 배랑의 장로님은 돌아갈 수 없다고.」
 「올 수 있었으니 갈 수도 있겠지, 분명.」
 요코는 눈을 깜박였다. 그늘없는 밝은 웃음이 정말로 기뻤다.
 「.........그렇군요.」
 「그래. --아아, 저기다.」
 삼거리에서 타츠키는 왼쪽을 가리켰다. 길 모퉁이에는 언제나 작은 석비(石碑)가 세워져있고, 목적지의 이름과 거리가 새겨져 있었다. 거리의 단위는 '리(里)'를 쓰는 듯 했다. 그 석비에는 「성(成) 5리」라고 새겨져 있었다.
 일본사 시간에 배운 지식으로는 1리는 4킬로였지만, 이쪽의 1리는 훨씬 짧다. 길어봤자 수백미터 정도이리라. 5리라면 그렇게 멀지 않다.
 경치는 그다지 풍요롭게 보이지 않았지만, 한적하고 아름다웠다. 땅은 기복이 많고, 산은 높고 험준하다. 멀리 보이는 산 중에는 구름을 뚫을 정도로 높은 산도 있었지만 눈이 쌓여있지는 않았다. 하늘은 왠지 낮아보였다.
 이쪽은 도쿄보다도 한발 먼저 봄을 맞은 듯 했다. 논두렁에는 작은 꽃들이 피어있다. 요코가 아는 꽃도 있고 모르는 꽃도 있었다.
 그런 전원풍경 여기저기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집락을 이루고 있다. 그것을 「촌(村)」이라고 한다고, 타츠키가 가르쳐주었다. 농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사는 집이라고. 한참을 걷자,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조금 큰 집락이 나왔다. 그것을 「리(里)」라고 부르며 근교의 사람들이 겨울동안 지내는 곳이라고 한다.
 「겨울에는 다른 계절과 사는 장소가 다른건가요?」
 「겨울엔 농지에 있어봤자 별 수 없으니까. 겨울에도 '촌'에서 지내는 괴짜들도 있지만, '리'로 들어오는 쪽이 사람들이 있어서 즐거워. 게다가 '리'쪽이 안전하고.」
 「두터운 벽이 있어서 그렇군요. 역시 요마에 대비한 건가요?」
 「요마는 그렇게 쉽게 마을을 덮치거나 하지 않아. 오히려 내란이나 짐승에 대비하는 거지.」
 「짐승?」
 「늑대라던가, 곰 말야. 이 주변에는 없지만 호랑이나 표범같은 것이 나오는 곳도 있어. 겨울이 되면 산에 먹을 것이 없으니까 사람이 사는 곳으로 내려오지.」
 「겨울동안 살 집은 어떻게 하죠? 빌리나요?」
 「그것도 스무살이 되면 나라에서 내려줘. 대개는 팔아치워버리지만. 촌에 가있는 동안 상인에게 빌려주는 경우도 있고, 팔아버리고 겨울에만 집을 빌리는 게 보통이지.」
 「헤에....」
 거리는 모두 높은 성벽으로 지켜지고 있다. 거리의 입구는 한 개 뿐으로, 거기에는 튼튼한 문이 있다. 문에는 문지기가 있어 출입하는 여행자들을 감시하고 있다.
 평소에는 문지기들은 그저 문을 지키고 있을 뿐이지만, 이라고 타츠키가 말했다. 여행자들 중, 특히 붉은 머리의 젊은 여자가 불려세워지는 것을 보니 배랑에서 도망친 해객에 대한 경계인 듯 했다.
 문을 들어서자 집들이 밀집해있고, 종횡으로 이어져있는 길에는 가게가 늘어서 있다. 거리에는 부랑자가 많았다. 거리의 내벽 아래에는 텐트같은 집들이 들어서 있고, 거기 살고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누구나 땅을 받을텐데, 왜 저렇게?」
 요코가 벽 아래를 가리키자 타츠키는 미간을 찌푸렸다.
 「저건 경국(慶國)에서 도망온 사람들이야. 불쌍하게도.」
 「도망?」
 「경국은 지금, 나라가 어지럽거든. 요마나 전쟁을 피해서 도망쳐온 사람들이 저렇게 모여있는 거야. 따뜻해졌으니까, 이제부터는 더 늘겠지.」
 「이쪽에도 내란이 있군요.」
 「있고말고. 경국만이 아냐. 북쪽의 대국(戴國)도 그렇지. 대국은 더 심하다던데.」
 요코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이쪽에 비하면 일본은 평화로운 나라였다. 여기에는 전란이 있고, 게다가 치안이 훨씬 나쁘다. 짐은 한순간도 몸에서 떼어놓을 수 없었다. 인상이 안좋은 남자가 시비를 걸어오는 경우도 흔했고, 그런 남자들에게 둘러싸이는 일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타츠키가 호쾌하게 욕을 퍼부으며 요코를 지켜주었다.
 그런 때문인지, 사람들은 절대로 밤에 여행하지 않는다. 거리의 문은 밤에는 닫히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다음 마을에 도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가려면 적어도 네 달은 걸린다고 하셨죠?」
 「그렇지.」
 「걷는 것 말고 여행할 방법은 없나요?」
 「말이나 마차를 타는 방법도 있지만. 그런건 돈있는 녀석들 얘기고. 나한테는 평생 무리일지도.」
 이쪽은 요코가 아는 세계에 비해 굉장히 가난하다. 자동차는 물론, 가스나 전기도 없다. 수도도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단순히 문명의 발전이 늦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쪽에는 석유나 석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주원인일거라고, 얘기를 들으면서 추측했다.
 「그럼 어떻게 다른 나라의 일을 알 수 있죠? 타츠키상은 경국이나 대국에 가본 적이 있나요?」
 설마, 라며 타츠키는 웃었다.
 「교국(巧國)을 떠나본 적은 없어. 농사꾼은 긴 여행은 별로 안하니까. 농지가 있는걸. 다른 나라의 얘기는 예인에게 듣지.」
 「예인? 유랑예인에게?」
 「그래. 예인 중에는 온세계를 돌아다니는 무리가 있어. 연극 중에는 소설이라는게 있어서, 어디 나라에서는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라고 들려주지. 여러 나라의 얘기나, 다른 지방의 일을 말야.」
 「헤에....」
 요코가 살던 세계에서도 아주 옛날에는 영화관에서 뉴스를 했다고 하던, 그런 것인가 싶었다.
 어떤 것이건, 의문을 풀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뻤다. 요코는 이 세계의 일을 어느것 하나 알지 못한다. 모르는 채였다면 두렵고 불안했겠지만, 곁에 친절한 사람이 있고 하나씩 설명을 해주니 오히려 재미있었다.
 
 타츠키의 보호를 받는 여행은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고, 그렇게나 괴롭게만 느껴졌던 세계는 굉장히 신기하고 흥미깊은 세계로 변모했다.
 매일 밤마다 기묘한 환상이 나타나고, 집이 그리워져 침울해지면 그 파란 원숭이도 나타나서 요코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괴로운 기분은 계속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마을을 나서면 신기한 것들로 가득할뿐더러, 타츠키는 더할나위 없을 정도로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구슬의 힘을 빌리면 계속 걷는 것도 힘들지 않았다. 밤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제대로 된 여관에서 잘 수 있다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고향을 떠나있는 것은 괴로웠지만, 적어도 지금은 친절한 보호자가 곁에 있어준다. 운좋게 만나게 된 행운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6 -
 사흘간의 여행은 금세 끝나고, 요코는 조금 아쉬운 기분이 되었다. 사흘째에 도착한 하서의 거리는, 강가에 큰 건물들이 서있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쪽에 와서 처음으로 보는, 도시다운 거리였다.
 「헤에.... 크군요,」
 문을 지나가면서 주위를 둘러보는 요코를 바라보며 타츠키가 웃었다.
 「이 주변에서 하서보다 큰 거리라면, 향청이 있는 탁구(拓丘) 정도밖에 없어.」
 향이라는 것은 현보다 한단계 넓은 행정구역인 듯 하다. 그게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는 잘 알 수 없다. 타츠키도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하는 듯 했다. 관청이라고 하면 리의 리청(里廳), 조금 커봤자 현청(縣廳), 그 이상의 용무는 없는 듯 했다.
 문을 들어서자 거리에는 크고 작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마을들과는 달리, 가게의 규모도 크고 호화로워, 마치 챠이니즈 타운을 연상시켰다. 큰 건물의 창에는 유리가 끼워져있는 것이 인상깊었다. 저녁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여행자들이 모여들 시간이 되면 사람들로 혼잡해질 것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렇게 활기있는 거리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자, 조금이지만 기분이 좋았다. 어디에선가 살 수 있다면 리(里)여도 상관은 없지만, 활기찬 도시 쪽이 더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타츠키는 큰거리에서 꺾어들어, 소규모의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지역으로 발을 향했다. 어디나 할 것 없이 적막한 풍경이었지만, 그럼에도 번화한 것은 변함없었다. 처마를 마주한 건물들 중, 타츠키는 비교적 번듯한 가게로 들어섰다.
 녹색 기둥이 선명한 3층 건물이었다. 큰 문을 들어서자 1층은 넓은 식당이었다. 화려한 내부를 둘러보는 요코를 놔두고, 타츠키는 손님을 맞으러 나온 종업원같은 남자를 붙잡았다.
 「주인 좀 불러주겠어? 딸인 타츠키가 왔다고 하면 알거야.」
 남자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안으로 사라졌다. 타츠키는 그것을 바라보며 요코를 근처의 테이블에 앉혔다.
 「여기에 앉아있어. 뭐라도 들고. 여기 음식은 꽤나 맛있으니까.」
 「........괜찮을까요?」
 지금까지 들어가봤던 어떤 여관이나 식당보다도 더 큰 가게였다.
 「상관없어. 어머니가 낼테니까. 뭐든지 좋은 걸로 들어.」
 그렇게는 말해도, 요코는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른다. 그것을 눈치챈 타츠키는 웃으며, 종업원을 불러서 두세개의 음식을 주문했다. 점원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가려는 참에 가게 안쪽에서 노파가 나타났다.
 「어머니.」
 타츠키는 일어나 웃음을 띄웠다. 노파가 기쁘게 웃으며 그에 답했다. 요코는 두 사람을 지켜보며, 마음좋아보이는 사람이라고 안도했다. 저 여자가 주인이라면 그렇게 괴로운 일은 없겠지.
 「요코는 여기에서 기다려줘. 난 어머니하고 얘기하고 올테니까.」
 「네.」
 요코가 고개를 끄덕이자 타츠키는 웃으며 어머니의 곁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은 서로 등을 두드리며 마주 웃고,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요코는 그저 웃는 얼굴로 그들을 전송하고, 타츠키가 두고간 짐을 곁에 두고서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어쨌거나 지금 가게 안에 여자점원은 없는 듯 했다. 테이블 사이를 뛰어다니는 점원들은 모두 남자로, 손님들도 남자가 많았다. 그 중 몇사람인가가 요코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것을 깨닫고, 왠지 안절부절해졌다.
 조금 뒤 들어온 남자 네 명이 요코 옆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는 노골적으로 야비한 시선을 던져왔다. 뭔가를 수군거리며 웃는 것이 굉장히 기분나빴다.
 가게 안에 시선을 돌려봐도 타츠키가 돌아오는 기색은 없다. 한동안은 얌전히 참고 있었지만, 네 명 중 한 명이 일어나서 요코 쪽으로 걸어오려는 것을 인식한 순간 참을 수 없어 일어서버렸다.
 말을 걸려는 것을 무시하고 요코는 점원을 붙잡았다.
 「저......타츠키상은 어디로 가셨나요?」
 점원은 냉담하게 안쪽을 가리켰다. 들어가봐도 괜찮을지 어떨지를 고민하다가, 요코는 짐을 안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부의 좁은 복도를 걸어가자, 아마도 가게 안채같은 곳으로 나왔다. 왠지 꺼림칙해서 안으로 걸어들어 가보자 예쁜 조각이 새겨진 문이 조금 열려있었고 안을 가리듯이 세워진 칸막이 저편에서 타츠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겁먹을 것 없다니까요.」
 「하지만 너, 그 수배된 해객이잖아.」
 요코는 발을 멈췄다. 노파는 아마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 갑자기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역시 해객은 써주지 않는걸까.
 부탁드립니다, 라고 고개숙여 빌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런건 너무 나서는 짓이겠지. 그렇다고 가게로 돌아가기는 불안했다.
 「해객이 어때서. 어쩌다 이쪽으로 쓸려와버린 것 뿐이잖아. 나쁜 일이 일어난다느니, 그런 헛소리를 엄마도 믿는거야?」
 「....그런게 아니라, 관청에 들통났다가는.」
 「입다물고 있으면 모른다구. 저 애도, 스스로 말할 리가 없고. 그렇게 생각해보면 흔히 없는 기회잖아? 얼굴도 예쁘게 생겼고, 나이도 딱 맞으니까.」
 「하지만...」
 「출신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손님 받는 법만 조금 가르치면 바로라도 가게에서 쓸 수 있을걸. 그런걸 겨우 이정도에 넘겨주는건데. 왜 그렇게 망설이는거야.」
 요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타츠키의 말은 뭔가 이상했다. 남의 얘기를 훔쳐듣는 건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귀에 조용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파도소리와도 비슷한, 조용한 소리.
 「하지만 해객은......」
 「뒷탈이 없으니까 좋잖아. 부모나 형제가 찾아와서 난리칠 일도 없고. 처음부터 없는 인간이나 마찬가지니까, 여러 가지 귀찮은 것도 없잖아?」
 「.......그래서, 저 애는 정말로 여기서 일할 생각이 있는거냐?」
 「있다고 본인이 말했어. 난 여관이라고 분명히 말했다구. 심부름 정도일거라고 착각하고 있는거야, 저 애가 바보인거고.」
 요코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뭔가 굉장히 이상하다. 「저 애」라는건 자신의 얘기겠지. 그런데도 지금껏 자신을 부를 때 담겨있던 온기를,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어떻게 된걸까. 목소리의 주인이 타츠키가 아닌 듯 했다.
 「하지만.」
 「녹색 기둥은 창녀집인게 당연하잖아. 그런 것도 모르는 쪽이 나쁜거야. --자, 계산해서 돈을 넘겨요.」
 요코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저 짐을 꼭 끌어안은 채 충격을 견뎠다.
 저 원숭이는 뭐라고 말했던가. 왜 자신은 그 충고에 조금 더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걸까.
 충격때문인지, 분노때문인지, 몸이 떨려올 정도로 심장 고동이 빨라졌다. 억누르고 있던 호흡이 뜨겁게 목을 태우며, 귀가 멍멍할 정도로 파도소리가 울렸다.
 그런 것이었던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천뭉치를 꽉 쥐었다.
 곧 힘이 빠지며, 그 대신 발을 돌려 바깥으로 향했다.
 빠르게 입구를 나서며 다시 한번 올려다본 가게는, 기둥에서부터 대들보, 창틀까지 모두 녹색으로 덮여있었다. 그 선명한 외관에, 요코는 겨우 깨달았다. 팔에는 타츠키의 짐을 안고 있는 채였지만, 돌려주러 돌아갈 생각은 물론 들지 않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2층의 창문이 열렸다. 발코니처럼 되어있는 창문의 장식이 달린 난간에 기대어, 한 여자가 밖을 바라보았다. 요염한 색의 기모노는 단정치 못하게 옷깃이 열려져, 몸이 드러나 있었다.
 요코는 다시금 몸을 떨었다. 혐오감이 밀려왔다. 올려다보는 시선을 깨달은 듯 요코를 내려다보던 여자는, 비웃는 듯한 웃음을 흘리며 창을 닫았다.
 
- 7 -
 「아가씨.」
 누군가 말을 걸어와, 요코는 황급하게 시선을 건물 2층에서 떼었다. 가까이에 서있는 것은, 아까의 네 명 중 한사람이었다.
 「너, 여기 사람인가?」
 「아니에요.」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듯한 말투가 되었다. 대답한 후 발을 돌리려는 요코의 팔을 남자가 붙잡는다. 위치를 바꾸어 앞을 가로막듯이 섰다.
 「아니라니, 너. 여자가 이런데에 밥먹으러 오겠나.」
 「일행이 이 가게 주인과 아는 사이에요.」
 「그 일행은 어딜 간건데? 너, 팔려온거 아냐?」
 남자의 손이 턱에 와닿자, 요코는 힘껏 뿌리쳤다.
 「틀려요. 손대지 말아요.」
 「고집이 세구만.」
 남자는 웃으며 붙잡은 팔을 당겼다.
 「이봐, 나랑 어디로 한 잔 하러 가지 않을래?」
 「싫어요. 손 놔줘요.」
 「실은 팔려온거지? 도망가려는 걸 못 본 척 해줄 수도 있다는 거다. 응?」
 「나는.」
 요코는 남자의 팔을 혼신의 힘으로 뿌리쳤다.
 「이런데서 일하지 않아요. 팔려온 것도 아니라구요.」
 말을 내뱉고 그 자리를 떠나려는 요코의 어깨를 남자가 다시 붙잡았다. 몸을 틀어서 도망치며, 다시 붙잡히기 전에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사람은 몸 속에 바다를 품고 있다. 그것이 지금, 격하게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껍질을 깨뜨리고, 눈앞의 남자에게 그것을 쏟아붓고 싶은 충동.
 「만지지마.」
 팔을 휘두르자 검에 말려있던 천이 풀렸다. 남자가 흠칫 하는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이봐......」
 「다치고 싶지 않으면, 비켜.」
 남자는 요코와 검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다시금 비웃음을 지었다.
 「그런걸, 네가 다룰 수 있겠어?」
 요코는 말없이 검을 들었다. 주저없이 검 끝을 남자의 목으로 향했다.
 이것은 발톱이다. 요코가 갖고있는 예리한 흉기.
 「꺼져. 빨리 가게로 돌아가. 친구들이 기다리잖아?」
 가까이에서 누군가 비명을 지르는 것이 들렸지만, 요코는 돌아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 사람이 오가는 길 한복판에서 검을 빼들면 소동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지금은 겁이 나지 않았다.
 남자는 몇 번이고 요코와 검 끝을 번갈아 보다가,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몸을 돌려 가게 안으로 달려들어가는 찰나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저 애! 저 애를 잡아줘!」
 시선을 돌리자 입구에서 소리지르고 있는 타츠키의 모습이 보였다. 요코의 속에 참을 수 없는 무언가가 퍼져나갔다. 그것은 꿈속에서 보았던, 새빨간 것이 바다로 퍼져나가는 것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도망친거야! 잡아줘!!!!」
 토할 것 같은 혐오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선량한 얼굴로 요코를 속였던 타츠키에 대한 것, 혹은 바보같이 속아넘어간 자신에 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게 안에서, 주변에서 사람이 모여들었다. 요코는 망설임없이 검을 빼들었다. 손안에서 검의 손잡이를 돌리며, 크게 검을 휘둘렀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 끝낼 수 있을까 어떨까, 그것은 이미 죠유우에게 맡겨져 있었다. 적어도 요코는 지금, 붙잡힐 바에는 사람을 죽이게 되더라도 상관하지 않을만큼 흥분해 있었다.
 --이 세계에 요코의 편 따위는 없는 것이다.
 도움의 손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감사하며, 간신히 만나게 된 행운에 감사했다. 그것은 마음 속으로부터의 감정이었기에, 토하고 싶어질 정도로 분했다.
 돌진해오는 남자들을 확인하자, 스르륵 하는 느낌이 팔다리를 기었다. 극히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이며 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붙잡아줘!!! 큰 손해야!!」
 히스테릭하게 소리지르는 타츠키의 외침에, 그녀를 돌아보았다. 속인 자와 속은 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막 뭔가를 외치려 하던 타츠키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겁먹은 듯이 두, 세걸음 물러섰다.
 그것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돌진해오는 남자들을 향해 태세를 갖췄다. 한 사람, 두 사람과 몸을 스치며, 세 사람째를 검날로 쳤다.
 어느새 모여든 사람들로 장벽이 생겨 있었다. 그 두터운 장벽을 보고 요코는 가볍게 혀를 찼다. 이 포위를 정말로 아무도 죽이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을까.
 「누가!! 사례는 할테니까! 붙잡아줘!!!!」
 타츠키가 발을 내딛었을 때였다.
 인파의 뒤쪽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모두가 휙 시선을 향하자, 앗하는 사이 비명이 섞인 소란이 퍼져왔다.
 「뭐야?」
 「도망이래.」
 「아니, 저쪽말야.」
 화악, 인파가 흐트러졌다.
 거리의 저편에서, 인파가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비명을 지르면서 뭔가로부터 도망치려는 듯이 앞을 다투어 달려오고 있다.
 「---요마.」
 팍, 요코의 손이 반응했다.
 「요마가.」
 「바후쿠.」
 「도망쳐!!!!」
 순식간에 사람들이 흩어졌다.
 도망치는 인파 속으로 요코도 뛰어나갔다. 곧 등뒤에서 비명이 울리고, 사람들을 쓰러뜨리며 달려오는 짐승이 보였다.
 거대한 호랑이였다. 마치 사람과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 얼굴은 이미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주변의 가게로 뛰어들어가는 사람들을 피하며 요코는 달렸다.
 곧 거리가 좁혀져,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멈춰섰다.
 요마의 머리가 인면(人面)이라는 사실에 주저하면서도 검의 손잡이를 쥐고 태세를 갖췄다. 돌풍같은 속도로 돌진해오는 호랑이를 피하면서 혼신의 힘으로 검을 휘둘렀다.
 소리를 내며 선혈이 튀었지만, 상대를 베는 순간에 눈을 피하지만 않으면 그것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쪽 다리를 베어 옆으로 넘어진 짐승의 큰 몸체를 피하며, 요코는 달려나갔다. 다시금 몸을 일으켜 쫓아오는 짐승을 검으로 베고, 뛰어서 피하며 골목을 달렸다.
 큰길에 이르렀을 즈음,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비켜요!!!!」
 외치는 요코의 목소리와, 등뒤에서 달려오는 짐승의 모습에 사람들이 흩어졌다. 그리고.
 「...........에엣?!」
 그 틈에서, 요코는 금색의 빛을 발견했다.
 사람들의 저편, 멀리 있어서 얼굴은 알아볼 수 없다. 천천히 바라보고 있을 여유는 없었지만, 지금의 요코는 금발이 이쪽에서는 드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케이키!!!」
 아무런 생각없이 그 모습을 쫓아갔지만, 앞다투어 도망가는 사람들의 흐름이, 앗하는 사이에 금색을 삼켜버렸다.
 「케이키!?」
 갑자기 어두워졌다. 큰 호랑이가 요코의 머리 위를 뛰어넘고 있었다.
 요마는 도망치는 인파 위로 떨어졌다. 큰 앞발 아래에 깔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길이 막히자 요코는 몸을 돌렸다.
 --케이키?아니면.
 생각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쫓아오는 짐승을 다시 한번 크게 베어내며, 사람들의 혼란에 섞여 하서를 빠져나갔다.
 
- 8 -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한밤중, 교차로에 서있는 석비 위에 파란 원숭이의 머리가 나타났다.
 하서를 나선 요코는 조금 헤메이면서 길을 나아갔다.
 다시 혼자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요코에게는 결과적으로 뺏은 셈이 되어버린 타츠키의 짐이 있다.
 짐에는 타츠키의 여벌 옷과 지갑이 들어 있었다. 지갑 안에는 여관도 식사도 최저의 것으로 한다면 한동안은 여행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 있다. 그 돈을 쓰는데에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 않는다.
 「충고해줬더니 말이야아. 바보같은 계집애라니까.」
 요코는 원숭이를 무시했다. 말없이 걸어가자, 미끄러지듯 푸른 인광을 뿌리며 머리가 따라왔다. 계속 날카롭게 옷는 원숭이를, 요코는 시야에 두지 않았다. 속아넘어갔던 자신이 바보였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원숭이의 말을 듣고싶지 않았다.
 그리고 원숭이의 존재보다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하서에서 보았던 금발의 인물과 거리 한가운데에 나타난 요마의 일이었다.
 --요마는 사람이 사는 곳에는 안나오는 게 아니었던가.
 적어도 타츠키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 건 드문 일이라고.
 --요마는 낮에는 나오지 않는게 아니었던가.
 저녁때, 혹은 한낮. 요마가 그 시간대에 나타난 것은 하서에서의 호랑이, 마차를 습격했던 개같은 요마들, 학교에 나타난 고조, 그뿐이었다.
 --반드시 그곳에 케이키가 있던 것은 왜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원숭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그러니까 너는, 속았던거라구.」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냐!」
 「맞다니까아-. 잘- 생각해보라구. 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응?」
 요코는 입술을 깨물었다. 케이키를 믿겠다고 결심했다. 믿지 않으면 의지할 것이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도, 자꾸만 의심이 생겨난다.
 「넌 속았던거야. 홀라당 속아넘어갔다니까. 그녀석한테.」
 「틀려.」
 「그렇게 고집부리고 싶은 기분은 알겠는데 말이야. 그게 사실이면 곤란할테니까.」
 원숭이는 그렇게 말하며 크게 웃었다.
 「케이키는 고조로부터 지켜줬어. 케이키는 내 편이야.」
 「그래? 이쪽에 오고 나서는, 하나도 안도와주잖아? 그때만 그랬었다는 거 모르겠어?」
 요코는 원숭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설마, 저쪽의 일을 이 원숭이는 알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는 듯한 말투가 이상했다.
 「그 때라니?」
 「저쪽에서-, 고조에게 습격당했던 때.」
 「왜, 그 때의 일을 당신이 알고 있는거지?」
 원숭이는 날카롭게 웃었다.
 「나는 네 일이라면, 뭐든지 알고 있다구. 네가 케이키를 의심하고 있는 것도, 그것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도 말야. 믿고 싶지 않겠지-. 그녀석에게 속아버린거야.」
 요코는 시선을 피하며 어두운 길을 바라본다.
 「그런게 아냐.」
 「그러면, 왜 도와주러 오질 않지?」
 「뭔가 사정이 있는거야.」
 「어떤 사정이 있을까아? 너를 지켜준다는게 아니었던가? --자--알 생각해보라구. 함정이야, 그렇지? 알 수 있잖아?」
 「학교에서는 어쨌든, 그 뒤 두 번은 확실히 얼굴을 본 것도 아냐. 그건 케이키가 아니었을거야.」
 「금발이 그밖에도 있던가?」
 --듣고싶지 않아.
 「죠유우도, 케이키라고 알아봤던 게 아니었나?」
 왜, 죠유우를 알고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바라보는 시선과, 원숭이의 비웃는듯한 시선이 마주쳤다.
 「난 뭐든지 알고 있지. 그렇게 말했을텐데.」
 타이호,라는 목소리가 떠올라서, 요코는 고개를 저었다. 그 한마디에 담겨있던 경악의 울림을 요코는 잊을 수 없다.
 「---틀려. 뭔가 오해가 있었을거야. 케이키는 적이 아냐.」
 「그럴까나-? 정-말로 그럴까나? 그렇다면 좋겠는데 말이야...」
 「시끄러워!!!」
 소리치는 요코를 보고 크게 웃더니, 원숭이는 속삭였다.
 「이봐, 이런 생각 안들어?」
 「듣고싶지 않아.」
 「.......케이키가 너한테 요마를 보내고 있는거야.」
 요코는 멈춰섰다. 눈을 크게 뜨며 응시하는 요코를, 원숭이는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쳐다본다.
 「.......그럴 리 없어.」
 원숭이는 폭소했다. 미친 듯이 깔깔거리며 계속 웃었다.
 「그럴 리 없어!!!」
 「왜 그럴까나.」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잖아!」
 「그럴까-?」
 원숭이는 일그러진 웃음을 띄우고 있다.
 「케이키가 왜 그런 짓을 한다는거야? 고조에게서 지켜준건 케이키였다구? 이 검을 주고, 죠유우를 빙의시켜줬어. 덕분에 난 살아있잖아.」
 깔깔거리며 원숭이는 그저 웃고 있다.
 「날 죽이고 싶었다면 그 때 내버려뒀으면 좋았을거야.」
 「스스로 습격해놓고, 그것을 도와주면서 동료가 된다. 그런 방법도 있기는 한데 말야.」
 요코는 입술을 꽉 물었다.
 「그래도, 죠유우가 있는 한, 그렇게 간단하게는 당하지 않아. 나를 죽이고 싶다면 죠유우를 데려가던가 뭔가를 했을거야.」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닌지도.」
 「그럼, 뭐가 목적?」
 「글세. 그런 것 쯤 곧 알게 될거야. 이제부터는 습격이 계속될테니까.」
 요코는 그 웃음을 띈 얼굴을 부릅뜨고 노려보다가,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돌아가지 못해.」
 목소리가 따라왔다.
 「너, 돌아갈 수 없어. 넌 여기서 죽는거야.」
 「싫어.」
 「그렇게까지 싫어할 일도 아니잖아? --고통은 잠깐이면 끝난다니까.」
 「시끄러워!!!」
 요코의 외침은 밤의 암흑속으로 사라져 갔다.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上) 4장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상)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4 장
 
- 1 -
 파란 원숭이만을 길동무로 데리고서, 정처도 없는 길을 그저 배랑에서, 하서에서 멀어지기 위해 이틀동안 걸었다.
 어느 거리나 문의 경비가 삼엄해져서, 여행자의 확인이 철저해졌다. 어쩌면, 배랑에서 도망친 해객이 하서에 있었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작은 마을에는 출입하는 여행자들의 수도 적어서, 인파에 끼어들어 문을 통과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어쩔수 없이 길을 따라서 야영을 계속하며, 사흘째에는 크고 견고한 성곽에 둘러싸인, 하서보다도 몇 배나 큰 거리에 도착했다. 문에 걸려있는 탁구성(拓丘城)이라는 현판으로, 그곳이 향청이 있는 거리라는 것을 알았다.
 탁구에서는 문 밖에까지 가게들이 늘어서있었다.
 어느 거리나 성벽의 바깥에는 농지가 펼쳐져있을 뿐이었지만, 탁구에서는 문앞과 성벽 아래에 텐트를 친 장사꾼들이 모여서 노천시장을 이루고 있었다. 성벽을 둘러싸는 길은 물건을 사고파는 이들로 붐비고 있었다.
 허름한 텐트 안에, 모든 것들이 있었다. 문앞의 길을 걷다가, 요코는 기모노를 쌓아놓은 텐트를 발견하고 문득 생각이 나서 헌 남자옷을 샀다.
 젊은 여자 혼자서 하는 여행에는 트러블이 따른다. 죠유우의 도움이 있었기에 도망치는 것은 손쉬웠지만, 처음부터 트러블에 말려들지 않을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
 요코가 산 옷은, 굵은 삼베와 비슷한 첫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무릎정도 길이의 소매가 없는 상의와 짧은 바지의 셋트로, 농부들이 흔히 입는 옷이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이나 경국(慶國)에서 도망쳐온 난민들 중에서는 여자도 입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거리에서 멀어져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약 반 달 사이에 몸의 곡선이 완전히 사라져버려, 남자 옷을 입어도 그다지 위화감은 없었다.
 지방이 빠져버린 몸을 보고서, 요코는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팔도 다리도 가혹한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빈약하면서도 근육이 생겨 있었다. 집에 있을 때는 체중계에 신경쓰면서 유지하지도 못하는 다이어트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 우스꽝스러웠다. 갑자기 푸른 색깔이 눈에 떠올랐다. 쪽빛에서 조금 밝은 감(紺)색. 청바지 색이다. 요코는 계속 청바지를 입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소풍때 공원경기장에 가게 되었다. 소풍을 가면 남자애들과 여자애들로 편을 나누어 시합을 하기로 되어, 스커트는 편하게 움직일 수 없어서 어머니를 졸라 청바지를 사왔지만 그것을 본 아버지가 화를 내었다.
 (아빠는 여자애가 그런 차림을 하는걸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모두들 입는걸요.)
 (그렇게 싫은거다. 여자애가 사내녀석같은 차림을 하고, 남자 말투를 쓰는건 보기 흉해. 아빠는 싫다.)
 (하지만, 시합이 있어요. 스커트로는 져버린다구요.)
 (여자애가 남자를 이겨서 어디에 쓰려고.)
 하지만, 이라고 말하려는 요코를 어머니가 말렸다. 어머니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요코도 아버지께 사과하렴.)
 아버지의 말대로, 가게에 반품하러 갔다.
 (돌려주는거, 싫어.)
 (요코, 참아라.)
 (왜 아버지한테 사과하는거야. 난 나쁜 일 안했어.)
 (너도 나중에 시집가보면 알게 된단다. 이렇게 하는게 제일 좋은거야......)
 그때 기억을 떠올리고 요코는 조금 웃었다.
 지금의 자신을 본다면 아버지는 분명 굉장히 싫은 얼굴을 하겠지. 남자옷을 입고 검을 휘두르며, 여관을 잡을 수 없으면 야숙도 한다. 그런걸 알게되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화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니까, 아버지는.
 여자아이는 청초하고 귀여운 것이 제일. 순종적이고 솔직한게 좋다. 너무 얌전하다 싶을 정도로 내성적이면 충분. 똑똑하지 않아도 좋고, 강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요코 자신도 계속 그렇게 생각해왔지만.
 「그런거, 거짓말이야......」
 얌전하게 붙잡혔어야 했다는 건가. 타츠키에게 팔려가는게 좋았다는 건가.
 요코는 천으로 감은 검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조금이라도 요코에게 패기가 있었더라면, 애초부터 케이키를 만났을 때에도 좀 더 강한 태도로 나갔어야 했다. 적어도 무엇을 위해서, 어디에 가는 것인지, 목적지는 어디이며 언제 돌아올 수 있는지, 최소한의 것은 들어두어야 했었다.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헤맬 일도 없었다.
 강하지 않으면 무사할 수 없다. 머리도 몸도 한계까지 사용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살아남는다.
 살아남아서, 반드시 돌아간다. 그것만이 요코에게 허락된 바램이었다.
 
 입고있던 옷을 타츠키의 여벌 옷과 함께 헌옷가게에 가져가자 소액의 돈과 바꿔주었다.
 그것을 쥐고, 요코는 인파에 섞여 문을 들어갔다. 위사(衛士)에게 불러세워지지는 않았다. 거리의 안쪽으로 들어간다. 문에서 멀어질수록 숙박료가 싸진다는 것을 타츠키와의 여행에서 들어 알고 있었다.
 「꼬마, 뭘로 할거냐.」
 들어선 여관에서 그렇게 질문을 받고, 요코는 조금 웃었다. 여관은 대개 식당과 겸업을 한다. 들어가면 우선 주문을 묻는 것이 보통이었다.
 요코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식당의 분위기를 보면 여관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이 여관은 좋지는 않지만 그렇게 나쁘지도 않은 듯 했다.
 「묵을 수 있을까요.」
 여관의 종업원은 요코를 수상하다는 듯이 보았다.
 「너 혼자냐?」
 요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전이다. 돈은 있겠지.」
 요코는 말없이 지갑을 들어보였다. 여관은 후불이 보통이었다.
 통화는 금속으로, 네모난 것과 동그란 것이 몇 종류 있고 네모난 것 쪽이 가치가 높다. 단위는 아마도 '전(錢)'인 듯 했고 주화에는 각각 금액이 새겨져 있었다. 금화와 은화도 있는 듯 했지만, 지폐는 보이지 않았다.
 「뭔가 필요한가?」
 남자가 묻자 요코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여관에서 무료 서비스는 우물을 사용하는 정도였고 목욕을 하는데에도 차를 마시는데에도 돈이 필요했다. 그것을 타츠키와의 여행에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식사는 문전의 노점에서 마치고 왔다.
 남자는 무뚝뚝하게 끄덕이고는, 가게 안을 향해 외쳤다.
 「어이, 숙박이다. 안내해.」
 안쪽에서 나온 노인이 그에 답해 고개를 숙였다. 노인은 웃지도 않고 요코에게 시선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스스로 여관을 잡을 수 있던 것에 안도하며 요코는 노인을 따라갔다.
 
- 2 -
 안에 있는 계단을 올라, 노인은 4층으로 올라갔다. 이쪽의 건물은 대부분이 목조로, 큰 거리에는 3층 건물이 많다. 이 여관은 4층건물인 듯 했다. 그런만큼 천장이 상당히 낮아서, 요코가 가볍게 팔을 들면 닿을 정도였다. 타츠키같이 체구가 큰 사람이라면 몸을 움츠릴 수 밖에 없겠지.
 안내받은 방은 작은 크기였다. 다다미 두 장 정도의 면적으로 바닥에는 타일이 깔려있었고, 안에는 천장에서 내려오는 선반이 있고 거기에 얇은 이불이 몇 장 들어있는 것이 보인다. 침대가 없는 걸로 보아 바닥에 이불을 펴고 자는 거겠지.
 방안은 선반 때문에 무릎을 꿇고도 몸을 구부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일어서면 다다미 한 장, 잘 때는 다다미 두 장 크기라는 말이 된다. 타츠키와 묵었던 여관은 천장이 높고 침대도 테이블도 있는, 작지만 깔끔한 방으로, 요금은 두사람 분이 오백전이었던 듯 했다.
 치안이 나쁘기 때문이리라. 이런 여관이어도 문에는 안팎에서 열쇠를 사용해서 열어야 하는 자물쇠가 확실하게 달려있었다. 그 열쇠를 요코에게 넘겨주고 돌아서려는 노인을 불러세웠다.
 「죄송합니다. 우물은 어디죠?」
 요코가 말을 걸자, 노인은 튕기듯이 돌아서며 두 눈을 크게 떴다. 한참동안 뚫어지게 요코를 보고 있었다.
 「저.......」
 들리지 않았던걸까, 싶어서 똑같은 말을 다시 하는 요코에게, 노인은 눈을 크게 뜬 채로 말했다.
 「일본말이구먼......」
 그렇게 말하며, 노인은 복도를 빠르게 되돌아왔다.
 「........자네, 일본에서 왔는감?」
 대답하지 못하는 요코의 팔을 노인이 붙잡았다.
 「해객인감? 언제 여기에 왔능겨? 어디 출신이여? 다시 한번만 말해주지 않을랑가?」
 요코는 그저 눈을 깜박이며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부탁이니께 말 좀 해주소. 내는 벌써 사십년동안 일본말을 못들어봤는기라.」
 「저......」
 「내도 일본서 왔다 안하나. 앙? 일본말 좀 들려주소.」
 노인의 주름 사이에 파묻힌 눈에 점점 투명한 것이 고이기 시작했고 요코 역시 울고싶은 기분이 되었다. 이 무슨 우연인걸까. 다른 세계에 말려들어버린 인간들이, 이 커다란 거리의 한 구석에서 만나다니.
 「할아버지도 해객인가요?」
 노인은 끄덕였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계속해서 끄덕이면서, 말도 나오지 않는 듯 했다. 마디진 손가락이 요코의 팔을 꽉 쥐며, 그 손아귀의 힘에 그의 지금까지의 고독이 보이는 듯하여 요코도 그 손을 마주잡았다.
 「.........차.」
 떨리는 목소리로 노인이 중얼거렸다.
 「차 어떤가?」
 요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차라도 마시지 않을랑가. 쬐께뿐이지만, 엽차가 있으니께. 쬐께만 기다리면............앙?」
 「.........감사합니다.」
 
 노인은 조금 뒤 찻잔을 두 개 들고 왔다. 방에 들어섰을 때 그의 눈은 새빨개져 있었다.
 「.......그리 좋은 차는 아니지만서도.」
 「감사합니다.」
 우러나오는 녹차의 향기가, 새삼 반가웠다. 살짝 입에 머금는 요코를 바라보면서, 그는 요코의 정면에 있는 상에 걸터앉았다.
 「엄청 반가워서말이여, 꾀병을 부리고 일을 쉬어버렸지 않능가. ....총각, 아니면 처녀인가. 이름이?」
 「나카지마, 요코입니다.」
 그런가, 라며 노인은 눈을 깜박였다.
 「내는 마츠야마 세이조여. ......이보게 아가씨, 내 일본말 묘하지 않응가?」
 요코는 내심 고개를 갸웃하며, 끄덕였다. 사투리가 심하지만, 그럭저럭 알아들을 수는 있다.
 「그런감.」
 노인은 정말로 기쁜 듯이 웃었다. 그러다가 울음섞인 웃음이 되었다.
 「어디서 났능가?」
 「태어난 데 말인가요? 도쿄입니다.」
 세이조는 찻잔을 잡았다.
 「도쿄? 그럼, 도쿄는 아즉 있능기가?」
 「네?」
 반문하는 요코에도 상관없이, 그는 웃옷 소매로 뺨을 훔쳤다.
 「내는, 고치(高知) 출생이여. 이쪽에 왔을 때는 구레(吳)에 있었구먼.」
 「구레?」
 「히로시마의 구레여. 아능감?」
 요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예전에 배웠던 지리수업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들어본 적은 있는 것도 같은데요.」
 노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군항(軍港)이 있고, 무기공장이 있었지. 내는 항구에서 일했구먼.」
 「고치에서 히로시마로요?」
 「그려. 엄니 친정이 구레 쪽이여. 7월 3일의 공습때 집이 불타버려설랑, 숙부님 댁에 맡겨졌지. 공밥을 먹을 수는 없으니께 일을 한건디, 공습이 닥쳐서. 항구에 들어왔던 배가 홀랑 가라앉지 않았능가. 그 혼란 틈에 바다에 빠져버린겨.」
 그것이 2차 세계대전 때의 얘기라는 것을, 요코는 깨달았다.
 「.....정신이 들어보니 허해인겨. 바다에서 표류하던 걸 사람들이 구해줬지.」
 노인이 입에 올리는 「허해(虛海)」는 조금 액센트가 달랐다. 음도 「쿄카이」보다는 「코카이」에 가까웠다.
 「그런......가요.」
 「그 전에도 몇 번이고 공습이 있지 않았능가. 공장도 다 불타부리고, 군항이었어도 배는 있지만 쓸만한 것이 아니었제. 우선, 세토우치해와 스오우해는 어뢰 투성이라서 지나다닐 수가 없었구먼.」
 요코는 그저 맞장구만 쳤다.
 「3월에는 도쿄가 대공습으로 허허벌판이 되버렸고, 6월에는 오오사카도 마찬가지 꼴이었제. 루손도 오키나와도 함락되서, 솔직히 이길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던겨. .......졌능감?」
 「.......네.」
 노인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그랬구먼......계속 그거이 마음에 걸려서 말이여.」
 요코로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요코의 양친은 전후세대로, 전쟁에 대해서 말해줄만한 조부모도 없었다. 먼 옛날의 이야기이다. 교과서나 영화, TV에서만 보았던 세계.
 그래도 노인이 얘기하는 세계는 이쪽 세계만큼이나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확실하게 이미지가 잡히지는 않지만, 귀에 익은 지명이나 역사를 듣는 것은 기뻤다.
 「도쿄는 아직 있능가. 역시 미국의 속국이 되었능감?」
 「말도 안돼요.」
 요코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노인 역시 두눈을 크게 떴다.
 「그래. ......그랬나. 그런데, 아가씨, 그 눈은 어떻게 된건가?」
 요코는 일순 어리둥절하다가, 자신의 녹색으로 변한 눈동자를 얘기하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이건 별로.」
 말을 멈추자 노인은 고개를 수그리며 좌우로 저었다.
 「아니, 아니. 말하고싶지 않으면 상관없구먼. 내는 꼭, 일본이 미국의 속국이 되부러서라고 생각했으니께. 아니라면 상관없으니께.」
 분명 이 노인은 자신이 끝까지 지켜볼 수 없었던 조국의 운명을, 먼 이세계의 하늘 아래서 계속 걱정해왔던 것이리라. 고국이 어떤 운명을 맞을지 알 수 없는 것은 요코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떠나온 시기가 시기인만치 노인의 걱정은 깊었음이 틀림없다.
 이런 세계로 떨어져버려, 그것만으로도 이렇게나 괴로운데 거기에 이 노인은 40년이라는 시간동안 고국의 걱정까지 해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폐하는 무사하신가?」
 「쇼와천황 말인가요? 그건, 네......무사하셨어요. 이미 죽...」
 죽었습니다, 라고 말할 뻔 하다가 당황하며 요코는 말을 바꾸었다.
 「돌아가셨지만요.」
 노인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깊게 고개를 수그리며 소매로 눈가를 눌렀다. 요코는 망설이다가, 둥글게 웅크린 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노인이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에, 끊임없는 오열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렇게 뼈가 만져지는 등을 쓸고 있었다.
 
- 3 -
 「......미안하구먼.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져서.」
 요코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몇 년인가?」
 「에?」
 반문하는 요코를 노인은 표정을 읽기 힘든 눈동자로 바라본다.
 「대동아전쟁이 끝난거이?」
 「확실히......1945년이라고.....」
 「쇼와(昭和)?」
 「에에.....또...」
 요코는 곰곰이 생각하면서, 시험공부를 하면서 암기했던 연표를 억지로 끄집어내었다.
 「쇼와20년같은데요.」
 「쇼와20년?」
 노인은 요코를 응시했다.
 「내가 여기로 온 것도 20년이었능디. 20년 언제였나?」
 「8월.......15일이었다고.」
 노인은 주먹을 꽉 쥐었다.
 「8월? 쇼와20년 8월15일?」
 「네....」
 「내가 바다에 빠졌던 거이 7월24일이었구만.」
 노인은 요코를 노려보았다.
 「겨우 보름 아닌가!!」
 요코는 그저 고개를 숙였다.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잠자코, 노인이 울먹이면서 전쟁 때문에 자신이 잃었던 것들을 말해주는 것을 계속 듣고 있었다.
 한밤중이 가까워질 즈음, 노인은 요코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가족은, 집은. 어떤 집이었는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는가. 질문에 답하는 것은 조금 힘들었다. 여기에 요코가 태어나기도 전에 쓸려와서 돌아가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부정할 수 없이 가슴을 저며왔다.
 요코 역시 이렇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 평생 돌아가지 못하고 이 이세계에서 힘없이 목숨을 이어가는 것인가. 적어도 해객끼리, 만날 수 있었던 것만은 행운일지도 모른다. 노인이 그저 혼자서 살아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조금은 행복한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무슨 짓을 했다는겨.」
 노인은 책상다리를 한 무릎에 팔꿈치를 기대며 머리를 싸안았다.
 「동료도 가족도 잃어버리고, 이런 이상한 곳에 왔네. 어차피 공습때에 죽는건가고도 각오했었지만, 겨우 보름 뒤에 끝난거냐고. 겨우, 보름 뒤에.」
 요코는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면 좋은 세상이 왔을거인디, 배불리 먹어보지도 못하고, 아무런 낙도 없는 채로 이따위 세계로 와버리고.」
 「그렇네요.....」
 「차라리 공습때 죽는 편이 나았을 것 같구먼. 이런 정체도 모를, 지리도 모르고 말도 모르는, 이따위 곳에서.........」
 요코는 눈을 크게 떴다.
 「.....말을, 모른다?」
 「난 완전히 모르겠구먼. 지금도 제대로는 말을 못혀. 그래서 이런 일자리밖에 없능겨.」
 그렇게 말하며 이상하다는 듯이 요코를 보았다.
 「아가씨는 알겠능가?」
 「네.......」
 요코는 노인을 응시했다.
 「일본어라고 생각했어요.」
 「말도 안돼.」
 노인 역시 아연한듯한 표정이었다.
 「절대로 일본말이 아니여. 일본말을 들어본 거이, 내 혼잣말 말고는 오늘이 처음이구먼. 어디 말인지, 전혀 모르겠능겨. 중국말하고 비슷한 것도 같지만, 아마도 다를것이여.」
 「한자를 쓰던데요?」
 「쓰지. 기래도, 중국말은 아니여. 항구에는 중국사람도 있었지만서도, 이런 말이 아니었다 앙카나.」
 「그럴 리가 없어요.」
 요코는 혼란되는 것을 느끼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저는 여기에 와서, 한번도 말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없어요. 일본어 말고는 알 턱이 없는걸요.」
 「가게 사람들이 말하는 것도 알겠던가?」
 「네.」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자네가 들었던 말은 일본말이 아니여. 여기에는 일본말을 할 줄 아는 놈은 없으니께.」
 이것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인 것인가. 요코는 혼란에 빠졌다.
 자신은 확실히 일본어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본어가 아니라고, 노인은 말한다. 계속 들어왔던 언어와 노인이 하는 말은, 아무런 차이도 없이 들렸었는데.
 「여기는 교국(巧國)이죠. 아름다운(巧) 나라(國)라고 쓰는.」
 「그렇지.」
 「우리들은 해객(海客)이고, 허해(虛海)에서 왔어요.」
 「맞아.」
 「이 거리에는 향청(鄕廳)이 있어요.」
 「향청? 향성(鄕城)을 말하는건가, 향(鄕)을 말하는건가?」
 「현청(縣廳) 같은 거라고.」
 「현청?」
 「현지사(縣知事)가 있고.」
 「현지사라는 건 여기에는 없구먼. 현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현정(縣正)이여.」
 그런, 하고 요코는 중얼거렸다.
 「전 계속 현지사라고.」
 「그런 것은 없다니께.」
 「사람들은 겨울에는 리(里, 현재 요코는 '사토'라는 일본식 훈독임)에 살고, 봄이 오면 촌(村)으로 돌아가요.」
 「겨울에 사는 곳이 리(里, 노인은 음독인 '리'로 읽음). 봄에 사는 곳은 로(盧).」
 「하지만, 저는.」
 노인은 요코를 노려보았다.
 「자네, 대체 정체가 뭐여?」
 「전......」
 「자네는 내하고 같은 해객이 아니구먼. 내는 계속 이 이국에서 혼자였네. 전쟁중의 일본에서, 말도 관습도 모르는 장소로 떨어져서 이 나이가 되도록 마누라도 자식도 없이, 말 그대로 외톨이여.」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요코는 필사적으로 원인을 찾으려 했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지금껏 보고 들은 현실 속에서 단서가 될만한 것은 없었다.
 「최악에서, 최악으로 왔구먼. 왜 전후에, 우리들의 희생 위에서 편하게 살아왔던 자네가, 여기에 와서까지 그렇게 편하게 되능가!」
 「모르겠어요!」
 요코가 외쳤을 때, 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 무슨 일이십니까.」
 노인은 당황해서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고, 요코는 문쪽을 보았다.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래요? 다른 손님들도 계시니까요.」
 「조용히 하겠습니다.」
 문 밖에서 멀어져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요코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런 요코를 노인은 험악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지금 것도 알겠능가?」
 말을 얘기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요코는 끄덕였다.
 「..........네.」
 「지금 것은 이쪽의 말이여.」
 「저는....어느쪽 언어로 말하고 있었죠?」
 「일본말로 들렸구먼.」
 「하지만, 저 사람한테 통했어요.」
 「그런 거 같구먼.」
 요코는 언제나 단 한가지 언어밖에 말하고 있지 않았다. 언제나 들려오던 것도 단 한가지 언어였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자네는, 해객이 아니여. 적어도 보통 해객은 아니여.」
 해객(카이캬크)이라는 음은 억양 뿐이 아니라, 요코가 익숙한 음과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자네, 어떻게 말을 알 수 있는건가?」
 「모르겠어요.」
 「모르는건가.」
 「전 전혀 모르겠어요. 왜 제가 여기에 오게 된 건지, 왜 할아버지하고 제가 다른건지.」
 왜 모습이 바뀌어 버렸는지, 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다시 한 번 딱딱한 느낌이 되어버린 머리카락을 만졌다.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는지.」
 「내도 찾아봤네. 답은 돌아갈 수 없다, 이것 뿐이여.」
 말을 뱉고서, 그는 마른 소리로 웃었다.
 「돌아갈 수 있었으면 훨씬 옛날에 돌아갔구먼. 뭐, 돌아가봤자 고립무원이지만.」
 그는 낙담한듯한 요코를 보았다.
 「....아가씨는 어디에 갈꺼잉가?」
 「갈 곳은 없어요. --한가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뭔디?」
 「할아버지는 붙잡히지 않으셨나요?」
 「붙잡혀?」
 세이조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다가, 뭔가 생각해낸 듯 했다.
 「....그런가, 여기는 해객을 붙잡는건가. 아니, 내는 아니여. 내는 경국(慶國)에 흘러갔으니께.」
 「--에?」
 「해객을 대하는 건 나라에 따라서 다른 것 같구먼. 내는 경국에 도착해서, 거기서 호적을 얻었구먼. 작년꺼지능 경국에 있었는디, 왕이 죽고 나니께 나라가 혼란해져서. 도저히 살수가 없어서 도망쳐온겨.」
 요코는 거리에서 보았던 난민들을 떠올렸다.
 「....그럼, 경국에서라면 도망다니지 않아도 되나요?」
 세이조는 끄덕였다.
 「그런거이지. 하지만 지금은 못 가. 내전이 있어서,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여. 내가 살고있던 촌은 요마한테 습격당해서 반이 죽었능겨.」
 「요마? 내전 때문이 아니고요?」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요마가 나타나제. 요마만이 아니여. 가뭄에 홍수, 지진. 나쁜 일들만 생기제. 그래서 도망쳐왔네.」
 요코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경국이라면 쫓기지 않아도 된다. 이대로 교국에서 도망다니는 것과 경국에 가보는 것, 어느 쪽이 안전한걸까. 생각에 잠기자 세이조가 말을 이었다.
 「여자는 훨씬 전부터 도망나왔었제. 왕이 무슨 생각인지, 온 나라에서 여자를 쫓아내설랑은.」
 「설마.」
 「정말이여. 수도인 효천(曉天)에서는 남아있던 여자는 사형당했다고 하더만. 애초에 별로 쓸만한 나라도 아닌 차에, 그걸 기회로 도망나온 사람도 많을 것이여. 안가는 편이 나을 것구만. 거기야 이미 요괴 소굴이니께. 한때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도망왔었는디, 요즘은 그것도 팍 줄었구먼. 아마도 국경을 넘을 수가 없을것이여.」
 「그런.......가요.」
 중얼거리는 요코에게 세이조는 자조하듯이 웃어보였다.
 「일본의 일은 물어봐도 모르지만, 이쪽 일이라면 갈쳐줄 수 있구먼. ....내는 이쪽 인간이 되어버렸으니께.」
 「그런.」
 세이조는 웃으며 손을 들었다.
 「교는 경에 비하면, 훨씬 나은 나라니께. 그려도 해객을 잡는다면, 나아봤자 소용없겠구먼.」
 「할아버지, 전.......」
 세이조는 웃었다. 반쯤 울음이 섞인 웃음이었다.
 「알고말고. 아가씨한테는 아무런 잘못도 없어야. 알고는 있는디도, 뭔가 견딜 수가 없구먼. 괜히 화를 내서 미안허이. 도망다녀야 한다니, 아가씨 쪽이 훨씬 큰일인데 말이여.」
 요코는 그저 고개만 저었다.
 「내는 일하러 돌아가야 허니께. 아침밥 준비가 있어서 말이여. --조심하게.」
 그 말만을 남기고 그는 밖으로 빠져나갔다.
 요코는 세이조를 불러세우려다 그만두고, 안녕히 주무세요, 라고만 말했다.
 
- 4 -
 장에서 엷은 이불을 꺼내서, 요코는 거기에 누워 한숨을 쉬었다. 오랜만에 이불 위에서 잘 수 있는데도, 굉장히 눈이 시렸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잘 알고 있다.
 왜 요코는 언어 때문에 곤란을 겪지 않았던 걸까. 혹시 자신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어있을지 상상도 할 것 까지도 없다. 하지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여기에서 쓰이는 말이 일본어가 아니라면, 요코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문밖의 사람과 대화했을 때, 요코는 대체 어떤 말을 쓰고 있었던걸까. 그것이 노인에게는 일본어로 들렸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쪽의 언어로 들린다--.
 노인이 말하는 이쪽의 단어는. 조금 음이 이상하게 들렸다. 그것까지도 기묘하게 생각된다. 게다가, 현지사라는 단어는 없다고 한다. 그러면 계속 요코가 들어왔던 현청이니 현지사니 하는 말들은 대체 뭐였던걸까.
 요코는 낮은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번역되고 있다.
 요코가 듣고 있는 언어는 어딘가에서 뭔가에 의해 요코가 이해할 수 있도록, 상황에 맞춰 번역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죠유우?당신인가요?」
 자신의 등뒤를 향해 중얼거린 말에, 물론 대답은 없었다.
 
 언제나처럼 안자락에 검을 품고 잠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 방 구석에 놔둔 요코의 짐이 사라져 있었다.
 요코는 퍼뜩 일어나 당황하며 문을 확인했다. 문에는 확실하게 열쇠가 걸려있었다.
 가게 점원을 붙잡고, 사정을 얘기했다. 문과 실내를 이상하다는 듯이 확인한 종업원들은 요코를 험악한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그런 짐이 정말 있었나?」
 「있었어. 그 안에 지갑이 들어있어. 누군가에게 도둑맞았다구.」
 「하지만, 열쇠가 걸려있었는데.」
 「여벌 열쇠는?」
 요코가 묻자 남자들은 더욱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가게 사람이 훔쳤다고 말하고 싶은거냐.」
 「애초에 그딴거 없었던거 아냐? 처음부터 트집을 잡아서 도망갈 생각이었겠지.」
 남자들은 요코에게 다가왔다. 요코는 천천히 검의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아냐.」
 「어쨌거나 방값을 지불해주실까.」
 「지갑을 도둑맞았다고 했잖아.」
 「그딴 소리 해봤자 관청에 끌려갈 뿐이다.」
 「잠깐만 기다려.」
 요코는 천을 풀려다가, 퍼뜩 생각나 남자들에게 말했다.
 「어제의 할아범을 불러줘.」
 문득 떠오른 것은 그에게 중재를 부탁하자는 생각이었다.
 「할아범?」
 「경국에서 온 마츠야마라는.」
 남자들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 녀석이, 왜?」
 「불러줘. 그 사람이 짐을 봤었어.」
 남자들 중 하나가 문 앞에 버티고 서서, 등뒤의 젊은이에게 턱짓을 했다. 젊은이가 복도를 달려내려간다.
 「왼손에 든 짐은 뭐지?」
 「여기에는 돈이 없어.」
 「내가 확인해주지.」
 「할아범이 오고 나서.」
 내뱉듯이 말하자, 남자는 수상하다는 듯이 요코를 바라보았다. 곧 시끄러운 발소리를 내며 젊은이가 돌아왔다.
 「없어.」
 「없다고?」
 「짐도 없어. 그 할아범, 나가버렸는데.」
 문에 서있던 남자는 혀를 찼고, 요코는 그 소리에 이를 악물었다.
 --그 사람이다.
 그, 노인이 한 것이다.
 요코는 눈을 감았다. 같은 해객마저, 요코를 배신하는가.
 요코가 전후의 풍족한 시대에 자란 것을 용서할 수 없었던 걸까, 아니면 언어를 아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던 걸까. 아니면, 애초부터 이럴 셈이었던 걸까.
 동포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노인도 그렇게 생각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타츠키에게 속고나서, 요코에게는 이 나라의 인간을 믿을 용기가 사라졌었다. 그런데 같은 해객인 세이조까지 배신한 것이다.
 씁쓸한 것이 치밀어 올랐다. 분노가 요코 안에서 거친 바다의 환영을 불러일으킨다. 그럴때마다 자신이 짐승으로 변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요코는 파도에 흔들리는대로 토해내었다.
 「그녀석이 훔친거야.」
 「그 놈은 떠돌이다. 분명 여기가 마음에 안든 거겠지.」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 짐을 내놔. 돈될만한게 있는지 없는지, 내가 봐주지.」
 요코는 손잡이를 꽉 쥐었다.
 「.......난 피해자야.」
 「이쪽도 장사라서 말야. 공짜로 묵게해줄 수는 없다.」
 「그쪽의 관리가 나쁜거잖아.」
 「시끄러. 그걸 내놔.」
 남자가 다가오자, 요코는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둘둘말린 천과 팔을 풀었다. 작은 창에서 들어오는 빛이 검날에 반사되었다.
 「네, 네놈.」
 「.........거기서 비켜. 나는 분명히 피해자라고 말했어.」
 젊은이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고, 혼자 남겨진 남자가 어쩔줄 몰라하며 우왕좌왕했다.
 「꺼져. 돈이 필요하면, 녀석을 잡아.」
 「........처음부터 이럴 속셈이었지.」
 「아니라고 말했잖아. 할아범을 붙잡아서, 짐 안에서 대금을 받으라구.」
 검을 앞으로 내밀자 남자가 물러선다. 검을 더 내밀자 두세발 물러서더니, 남자는 당황하며 기어가듯이 도망쳤다.
 요코는 그 뒤를 쫓듯이 달려나갔다.
 젊은 남자가 부른 것이겠지. 달려오는 몇 사람을 검으로 위협하면서 여관에서 밖으로 뛰어나왔다. 골목길을 꺾어돌며 달렸다.
 팔이 굉장히 아파왔다. 그 노인이 절실하게 붙잡았던 장소가.
 두 번 다시는 남을 믿지 말라는, 이것은 그 교훈인 것이다.
 
- 5 -
 그때부터 또다시 야영이 계속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특별한 일 없이 어떻게 다음 거리에는 도착했지만, 어차피 소지금이 없으니 여관에서 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식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 문 안으로 들어가 난민들처럼 성벽 아래에서 잘 수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성문에는 위사가 지키고 있었고 요코로서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견딜수가 없었다.
 
 여기에 내 편은 없다. 아무도 자신을 돕지 않는다.
 여기에 요코에게 허락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속임당하고 배반당할 것을 생각하면, 요마를 검으로 베어가며 노숙을 하는 쪽이 훨씬 낫다고 느껴졌다.
 
 옷을 갈아입고 나서는 여자로 보이지 않게된 대신, 나이보다 어리게 보이는 일이 많아졌다. 이쪽은 치안이 나쁘다. 표정이 험악한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오는 일이 몇 번인가 있었고, 사람을 향해서 검을 휘두르는 것에 대한 주저도 완전히 사라졌다.
 낮에는 지나치는 사람들에 주의하면서 걷고, 밤에는 요마와 싸우며 걷는다. 밤에 잠들었다간 요마의 습격을 받을 수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밤에 이동하고 낮에 잠드는 생활이 되었다.
 길가에 붙어있는 촌락에서는 먹을 것을 파는 집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낮에 한정된 일로 무엇보다 요코에게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식사를 하는 일도 당연한 듯이 없어졌다.
 몇 번이고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혐오감을 억누르면서 일거리를 찾아보았지만 많은 난민들이 유입된 거리에는 일자리가 없다. 별 힘도 없어보이는 어린애라면 더더욱 고용해줄 리가 없었다.
 
 요마는 밤마다 나타나며, 때로는 낮에도 나타나 요코를 힘들게 했다. 피로와 기아는 끊임없이 요코를 괴롭혔다. 그 이상으로 요코를 궁지에 모는 것은, 검이 보여주는 환영과 푸른 원숭이였다.
 어머니가 울고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푸른 원숭이는 죽는 쪽이 나을 거라면서 계속 유혹했다. 그래도 어머니의 모습을, 자신이 살고 있던 장소를, 하다못해 보기라도 하고싶다는 욕망에 이길 수 없었고, 하다못해 누군와건 말을 하고싶다는 욕망에도 이길 수 없었다.
 검이 보여주는 환영이 나타나는 것은 반드시 한밤중으로, 그것은 요코의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에 반응한다. 검이 이상한 힘을 나타내는 것이 어쩌다가 밤이었던 것인지, 애초부터 밤에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밤인지는 요코로서도 알 수 없다.
 요마의 습격이 끊이지 않아 고향을 생각할 여유마저 없는 밤은 온몸이 힘들었고,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밤은 마음이 괴로웠다. 검이 빛을 발하건 말건 무시해버리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가능할만큼 마음이 굳지 못했다.
 그렇게 요코는 오늘밤도 인광을 뿌리기 시작하는 검을 바라보고 있다. 요마에게서 도망쳐 숨어들어온 산 속, 등을 하얀 나무에 기대고 있다.
 깊은 산속에서 때때로 보이는 이 하얀 나무는, 요코가 알고있는 어떤 나무와도 닮은 점이 없었다. 나무껍질은 대개 순백색으로, 줄기의 지름은 집 한 채 정도가 되는 것까지 있었지만 높이는 낮다. 가장 위의 가지는 아무리 높아도 2미터를 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잎사귀가 없는 가지는 땅에 늘어질 정도로 낮고, 가늘지만 굉장히 단단해서 검으로도 자를수가 없었다. 마치 하얀 금속으로 만들어진 나무에 가까웠다. 가지에는 노란색의 나무열매가 달려있었지만, 용접이라도 된 듯이 단단히 붙어있어 떼어낼 수가 없었다.
 하얀 가지는 밤눈에도 환하게 눈에 띄인다. 달빛이 있으면 한층 하얗게 빛나 요코의 마음에 들었다.
 가지는 낮지만 그것을 제치고 줄기쪽으로 기어들어가면 뿌리부분에는 앉아있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있다. 하얀 나무의 아래에 있으면 이유는 모르지만 요마의 습격이 뜸했고, 야수의 습격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기에는 더할나위가 없었다.
 그 나무 아래에 숨어들어, 줄기에 등을 기대고 요코는 검을 보고 있다. 탁구(拓丘)에서 해객 노인과 만난지 열흘 이상이 지나있었다.
 검은 옅은 빛을 발하고, 그 빛을 받은 근처의 가지들이 하얗게 빛난다. 나무 열매는 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당연하게 어머니의 모습을 기다리고 있던 요코의 눈앞에, 여러 사람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비쳤다.
 많은 사람들. 검은 옷. 젊은 여자. 넓은 방과 늘어선 책상.
 --교실의 풍경이었다.
 교실에는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쉬는시간의 풍경이었다. 깔끔하게 빗은 머리와 다림질된 교복. 청결한 하얀 피부. 그것을 보고 있는 자신과의 대비가 우스워서, 자조의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카지마, 가출했다더라.」
 익숙한 친구의 목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잡담이 요코의 귀로 흘러들어왔다.
 「가출?? 거짓말--.」
 「정말이라니까. 나카지마 어제 학교 안나왔잖아. 그거, 가출이었대. 어제 저녁에 나카지마네 엄마가 전화해와서 깜짝 놀랐어,」
 (상당히 이전 일이구나.........)
 「진짜 놀랄 일이네.」
 「반장이 말야?」
 「역시, 얌전한 애일수록 뒷구멍으로 뭘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거잖아.」
 「그럴지도.」
 더욱 웃음이 나왔다. 내가 처해있는 상황도 모르면서.
 「잘은 모르겠는데, 학교에 묘한 사람이 데리러 왔었다나봐. 그게, 되게 위험해보이는 남자였다던데?」
 「남자아-? 와아!」
 「그럼, 사랑의 도피 아냐?」
 「그럴 수도 있겠네. 저 봐, 교무실의 유리창이랑, 전부 깨뜨렸잖아. 그거 나카지마의 동료가 한거래.」
 「정말?」
 「저기, 어떤 남자?」
 「잘은 모르겠는데. 머리를 길게 길러서 탈색한 사람이었다던데? 질질 끌리는 이상한 차림에.」
 「나카지마, 실은 헤비메탈 했던거야?」
 「그랬는지도.」
 (케이키......)
 요코는 그 소란을 앞에 두고, 마치 망령처럼 미동도 할 수 없었다.
 「역시 말야. 그 머리도 절대 염색한거라고 생각했었어.」
 「원래부터 그렇다고 했잖아.」
 「거짓말인게 뻔해. 원래부터 그런 색이 될 리가 없잖아.」
 「그래도-, 교실에 가방이랑 코트가 있었다고 하던데.」
 「에? 뭐야 그건.」
 「어제 아침에 모리즈카가 발견했대.」
 「정말로 사랑의 도피잖아? 몸 하나만 가지고...라는거.」
 「바아보. 하지만 그건 가출이라기보다 실종이라고 해야하는 거 아냐?」
 「무섭다.....」
 「조금 있으면 역 앞에 포스터 붙거나 하는거 아냐?」
 「입간판 세우고, 길거리에서 나카지마네 엄마가 전단 나눠주고?」
 「우리 아이를 찾아주세요, 하면서?」
 「무책임한 소리 하지마, 너희들.」
 「하지만, 나하곤 상관없는걸.」
 「어차피 가출이고.」
 「응, 응. 의외로 그런 우등생이 실은 탈선해있거나 한단말야.」
 「냉정하구나. 너, 나카지마하고 꽤 사이좋았었잖아.」
 「그거야, 얘기나 하는 사이였지.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 그 애 별로 안좋아해.」
 「나도 그래. 우등생 티나 내고.」
 「그치--.」
 「뭐가 부모님이 엄하셔서야. 넌 그렇게 귀한집 딸이냐? 싶고 말야.」
 「맞아맞아. 뭐, 숙제는 꼬박꼬박 해오니까 쓸만했지만.」
 「아아, 정말. 오늘도 수학 프린트, 하나도 안했어 실은.」
 「아. 나도--.」
 「잠깐만, 누구 해온 사람 없어?」
 「나카지마 정도가 아니면, 없을걸.」
 「요코쨔---앙, 제발 돌아와줘--」
 와그르르, 밝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갑자기 그 안온한 풍경이 흐려졌다. 점점 이그러지며, 형태가 사라져간다. 눈 깜짝할 틈에 시계가 맑아졌지만, 이미 요코의 눈앞에는 빛을 잃은 검날밖에 보이지 않았다.
 
- 6 -
 요코는 검을 내려놓았다. 굉장히 무겁게 느껴졌다.
 친구라고 부르던 이들 누구 하나도, 실은 친구가 아니라는 것쯤 마음속 어딘가에서 알고 있었다.
 인생 속에서 정말로 짧은 한순간, 좁은 감옥안에 갇혀있는 사람들끼리 어깨를 맞대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진급해서 반이 갈리면 잊어버린다. 졸업하고 나면 만날 일도 없다. 대개는 그런 것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해도, 눈물이 흘러나왔다.
 껍데기뿐인 관계라고, 분명 어디에선가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어쩌면 그 안에서, 뭔가의 진실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거다.
 할 수 있다면 교실로 뛰어들어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면 그애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어딘가 먼 세계의, 평화로운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도 분명, 고민이나 고통은 있겠지. 일찍이 요코가 그랬었듯이. 그렇게 생각하자 왠지 우스워져서, 요코는 지면에 드러누워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
 이 세계의 모든 것에서 떨어져 혼자서, 외톨이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자신. 절실하게 고독을 느꼈다.
 부모님과 싸웠을 때, 친구들과 멀어졌을 때, 그냥 감상에 괜히 기분이 가라앉을 때, 외롭다고 중얼거렸던 자신의 말이 정말로 어리광처럼 느껴졌다. 돌아갈 집이 있고, 절대로 적이 되지는 않을 사람들이 있고 기분을 북돋워주는 것들이 있었으며, 설사 그런 것들을 모두 다 잃게 된다고 하더라도 곧 새 친구를 만들 수 있었다. 그것이 껍질뿐인 친구라고 하더라도.
 그 때,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기분나쁜 소리가 났고 요코는 몸을 움츠린 채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돌아갈 수 없다니깐.」
 「시끄러워.」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으면 해보라니까. 돌아가봤자 누구 하나 널 기다리고 있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잖아. 넌 기다리기만 하는 쓸모없는 인간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원숭이는 검의 환영과 뭔가 관계가 있다. 푸른 원숭이가 나타나는 것은 언제나 검의 환영이 나타난 직후였다. 특별히 위해를 가하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듣고싶지 않은 것들을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로 지껄이고 갈 뿐이다. 그래서일까, 죠유우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엄마가 있는걸.」
 언젠가 환영으로 본, 인형을 쓰다듬으며 울고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친구라고 불렀던 동급생 중에 진정한 친구가 없다고 해도, 어머니만은 진정 요코의 편인 것이다. 한층 그리움이 솟아 가슴이 아팠다.
 「엄마, 울고 있었어. 그러니까 난 언젠가 반드시 돌아갈거야.」
 원숭이는 날카롭게 웃었다.
 「그거야, 모친이니까. 아이가 없어지면야 슬프겠지.」
 「....뭐야, 그건.」
 요코가 고개를 들자, 짧은 풀로 덮인 지면의, 팔을 뻗으면 닿을듯한 거리에 푸르게 빛나는 원숭이의 머리가 있었다.
 「별로 네가 없어져서 슬픈게 아니라는거지. 자기 아이가 없어진게 슬프고, 그런 자신이 불쌍한 것 뿐이야. 그런것도 모르는거냐?」
 가슴을 꿰뚫렸다. 요코로서는 반론할 수 없었다.
 「설령 애가 네가 아니라고 해도, 훨씬 글러먹은 자식이라고 해도 모친은 슬퍼하는거야. 그런 생물이니까말야.」
 「닥쳐.」
 「무서운 얼굴 할 것 없잖아. 난 사실을 얘기하고 있는 것 뿐이라구?」
 깔깔 귀를 찌르는 듯한 소리로 원숭이는 크게 웃었다.
 「오랫동안 길렀던 가축하고 똑같은 거야. 기르다보면 정이라는게 붙으니까. 안그래?」
 「닥쳐!!!」
 몸을 일으키며 검을 잡았다.
 「어이구, 무서워라.」
 원숭이는 그래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부모가 그리워? 그런 부모라고 해도?」
 「듣고싶지 않아.」
 「알고말고. 넌 집에 돌아가고 싶은 것 뿐이야. 부모하고 만나고 싶다 따위가 아니잖아. 따뜻한 집과 내 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겠지.」
 「......뭐?」
 깔깔 원숭이는 웃는다.
 「부모라면 배신할 걱정이 없을까? 정말로 그런걸까? 사육주(飼育主) 같은거 아냐.」
 「무슨.」
 「넌 개나 고양이하고 똑같은거라니까. 얌전히 귀여움받는 동안에는 괜찮지만, 주인의 손을 물거나 집을 어지르거나 하면 끝이야. 뭐, 녀석들한테도 세상 눈치라는게 있으니까 널 내쫓거나 하지는 못하겠지만 말야. 다른 사람들만 입다물고 있으면, 아이를 목졸라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부모따위 얼마든지 있는 법이니까.」
 「말도 안돼.」
 「그래, 말도 안돼지?」
 원숭이는 악의에 가득찬 눈을 크게 떠보인다.
 「녀석들은 아이를 귀여워하는 자신이 뿌듯한거다. 확실히 바보같은 소리지. 아이를 그리워하는 부모라는 걸 연기하고 있는 자신이 아주 자랑스러운거야.」
 「..........이...!!」
 「너 역시 그렇잖아, 안그래?」
 요코는 검의 손잡이를 쥔 손을 멈췄다.
 「착한 아이인 척 하는게 즐겁지 않았어? 부모의 말을 듣는게, 부모가 옳다고 생각해서였나? 거슬렸다간 쫓겨날 것 같아서, 주인의 기분에 맞추고 있었던 것 뿐이잖아.」
 요코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쫓겨날까봐 걱정했던 것은 아니지만, 혼나는 것, 집안의 공기가 무거워지는 것, 원하는 것을 사주지 않는 것, 벌을 받는 것, 그런 것들에 대한 걱정으로 어느새인가 양친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자신을 알고 있었다.
 「네가 착한 아이라는 건 거짓말이야. 착한 아이 따위가 아니라, 버려지는 것이 두려워서 부모한테 편한 착한 아이인 척 하고 있었던 것 뿐이겠지. 부모가, 좋은 부모라는 것도 거짓이야. 좋은 부모 따위가 아니라, 뒤에서 손가락질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대로 하고 있었을 뿐. 거짓말쟁이끼리 배신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 어차피 넌 부모를 배신할거야. 부모 역시 반드시 널 배신해. 인간이라는 것은 모두 그런거야. 서로가 거짓을 말하면서 배신하고 배신당하는 것의 연속인거지.」
 「......이, 괴물이.」
 한층 더 높게 원숭이는 웃었다.
 「말하는게 꽤 늘었잖아. 그렇고말고, 난 괴물이다. 그래도말야, 난 정직하니까아. 거짓말은 안해. 나만이 널 배신하지 않아. 아쉽구만, 이런 내가 가르쳐주는건데.」
 「닥쳐!!!!」
 「못돌아가. 죽는 쪽이 나아. 죽을 용기가 없다면, 훨씬 낫게 살아보지 않겠어? 그걸로 말야.」
 원숭이는 요코가 들고있는 검을 보았다.
 「훨씬 솔직하게 말이지. 네 편은 없어. 적뿐이다. 케이키 역시 적이니까 말야. 배가 고프지? 제대로 된 생활을 원하지? 그걸 쓰란 말야. 그걸로 사람을 살짝 협박해서 말야---」
 「시끄러워!」
 「어차피 이녀석도 저녀석도 더러운 돈밖에 갖고있지 않아. 조금만 돈을 뺏으면, 훨씬 제대로 살 수 있는데 말야.」
 깔깔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거기엔 이미 아무 것도 없었다. 어둠 속에 웃음소리만이 멀어져간다.
 요코는 땅에 손톱을 세웠다. 갈고랑이처럼 휘어진 손가락 사이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7 -
 요코는 길을 헤메이고 있었다. 탁구를 떠난지 며칠 째인지, 아니, 애초에 집을 떠난 것이 며칠째인지 세어보려 해도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이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요코 자신도 알 수 없었을 뿐더러 이미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해가 지면 검을 움켜쥐고 일어선다. 적이 오면 싸운다. 아침이 오면 잘 곳을 찾아 잠든다. 오직 그것만이 의미없이 계속되었다.
 구슬을 꼭 쥐고, 검을 지팡이로 삼아 일어나는 것이 당연해졌다. 적이 없으면 주저앉는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발이 질질 끌린다. 사람의 기척이 없으면 말이 아닌 신음만이 흘러나왔다.
 기아는 몸 안에 뿌리를 내려 마침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요마의 시체를 잘라내어 봤지만, 이상한 썩은내가 나서 도저히 입에 댈 수가 없었다. 드물게 만나는 야수를 잡아서 그것을 입에 대었을 때는, 이미 몸이 고형물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어있었다.
 
 몇날인가의 밤이 지나고, 새벽을 맞았다. 길에서 조금 떨어져 산으로 들어오다가,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긴 경사면을 굴러 떨어지면서, 될대로 되라는 기분이 되어 거기에서 잠들었다. 잠들기 전에 주위를 둘러보는 것마저 하지 않았다.
 죽은 듯이 잠들었다가, 눈을 떠보자 어떻게 해도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주위는 나무그늘이 옅게 드리워진 숲속의 구덩이로, 이미 해가 기울어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대로 이런 곳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으면 요마의 먹이가 될 뿐이다. 한두번의 습격이라면 죠유우가 억지로라도 싸워주겠지만, 그 이상이 되면 아마도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겠지.
 요코는 땅에 손톱을 세웠다. 어떻게해서든, 적어도 길까지 나가지 않으면.
 적어도 길로 나가서 누군가의 도움을 구하지 않으면, 여기에서 죽게될 뿐이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이 갔다. 목에 건 구슬을 찾는다. 그것을 필사적으로 꽉 쥐어도, 검을 지팡이 대신 땅에 버티는 것마저 불가능했다.
 「도움따위, 없다니까.」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 요코는 그리로 시선을 향했다. 해가 지기 전에 그 목소리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걸로 겨우 편해지겠구만.」
 요코는 가만히 원숭이를 바라본다. 왜 이런 시간에 나타난 것일까, 그것만을 멍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길까지 기어나간다고 해도, 어차피 누군가에게 붙잡힐 뿐이야. 도움이라고 하자면 도움일지도 모르겠구만. 그녀석이 한번에 죽여줄지도 모르니까 말야.」
 확실히 그렇구나, 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면? 너무나 절실한 소원이기에 더더욱, 도움 따위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된다. 길까지 나가봤자 도움의 손길은 없다. 혹시 누군가가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요코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겠지. 더럽고, 부랑자같은 모습에 얼굴을 찌푸리고 가버릴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노상강도 정도일까. 요코에게 다가와 훔칠만한 것이 없는지 찾아보고, 검을 빼앗아 가겠지. 어쩌면 확실하게 숨통을 끊고 가줄지도 모른다.
 이 나라는 원래 그런 곳인거다, 라고 생각하다가 요코는 문득 깨달았다.
 이 원숭이는 요코의 절망을 먹기위해 찾아오는 것이다. 깨달음을 방해하는 요괴처럼 요코의 마음에 숨겨진 불안을 자극하며, 요코를 절망시키기 위해 나타난다.
 작은 수수께끼가 풀린 것이 기뻐서, 요코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그것에 힘을 얻어 몸을 뒤집었다. 팔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포기하는게 낫지 않겠어?」
 「...시끄러워.」
 요코는 검을 땅에 꽂았다. 무너질 듯한 무릎에 힘을 주어, 비명을 질러대는 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꽉 쥐고 몸을 지탱했다. 일어서려고 했지만, 균형을 잃었다. 이렇게나 몸이 무거웠었던가. 마치 지면을 기어가며 살아가는 동물같다.
 「그렇게까지 살고 싶은거냐. 살아서 무슨 좋은 일이 있지? 응?」
 「....돌아갈거야.」
 「그렇게 힘들어해봤자, 그렇게해서 살아남아봤자 돌아가지 못한다니깐.」
 「난 돌아갈거야.」
 「돌아가지 못해. 허해를 건널 방법도 없잖아. 넌 이 나라에서, 배신당하며 죽어가는거야.」
 「거짓말.」
 이 검만이 의지할 수 있다. 요코는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가했다. 의지할 것도 매달릴 것도 없다. 단지 이것만이, 요코를 지켜준다.
 --그리고.
 이것만이 희망이다. 이것을 요코에게 건네준 케이키는, 두 번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케이키만 만날 수 있다면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케이키가 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그건 생각해선 안돼.
 「정말로 도와줄까나?」
 --그래도.
 이대로 아무런 실마리도 없이 떠돌고 있는 것보다, 케이키가 적이건 아군이건간에 그를 만나보는 것 이외에 방법이 있을리 없다. 케이키를 만나서 왜 그가 요코를 이 세계로 데려왔는지, 돌아갈 방법은 있는지 없는지, 물어보고 싶던 것을 모두 물어보고 말리라.
 「돌아가면,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응? 돌아가면 그걸로 모두 잘되는건가?」
 「.......닥쳐.」
 알고 있다. 돌아간다고 해서, 이 나라의 일은 악몽이었다고 잊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전대로 살아가는 것 따위 가능할 리가 없다. 게다가, 돌아간다고 해서 이 모습이 원래대로 돌아가준다는 보장이 있는 것일까. 그렇게 되지 않으면 '나카지마 요코'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생각이 짧아. 질릴 정도로 바보다, 넌.」
 깔깔 웃으며 멀어져가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요코는 다시 한번 몸을 일으켰다.
 왜인지는 스스로도 모른다. 바보같다고, 생각이 짧다고 느낀다. 그래도 여기에서 포기할 정도라면, 훨씬 전에 포기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요코는 자신의 몸을 떠올렸다. 상처투성이에 피와 진흙으로 더럽혀진 채. 누더기같은 꼴이 되어버린 옷가지에서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기분나쁜 냄새가 났다. 그래도 이런 것 따위에 상관없이 지켜온 목숨인데, 간단히 포기해버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죽는 편이 나았다고 말할거라면, 애초에 학교 옥상에서 고조에게 습격당했을 때에 죽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분명, 죽고싶지 않아서는 아니다. 그렇다고 살고싶어서도 아니다. 그저 요코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돌아간다. 반드시 그 그리운 장소로 돌아간다. 거기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그 때 생각해도 되는 일이다. 돌아가기 위해서는 살아있어야 하니까, 목숨을 지킨다.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지 않다.
 요코는 검에 기대어 일어섰다. 경사에 다다라, 잡목이 우거진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완만하고 짧은 거리인데도, 이렇게나 오르기 힘든 언덕을 요코는 알지 못했다.
 몇 번이고 발이 미끄러지면서, 쓰러질 것만 같은 자신을 다그치며 위쪽을 향한다. 겨우 고생 끝에 뻗친 손에 길의 가장자리가 닿았다. 손톱을 세우고 길에 기어올라간다. 신음을 내며 도로로 몸을 끌어올려, 평탄한 지면 위에 굴렀을 때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산길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요코는 무심코 쓴웃음을 지었다.
 --타이밍 한번 죽이는군.
 이 세계는 요코가 얼마만큼 증오스러운 것일까.
 산길에서 가까워지는 소리는, 어린아기의 울음소리와 매우 비슷했다.
 
- 8 -
 쇄도해온 것은, 언젠가 산길에서 요코를 덮쳤던 검은 개의 무리였다.
 무거운 검을 휘두르며 그 대부분을 쓰러뜨렸을 때에는 이미 전신이 피투성이였다.
 뛰어들어오는 한 마리를 베어버리고, 요코는 무의식중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왼쪽 종아리에 깊게 물린 상처가 있다. 다리가 마비되어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발목 아래의 감각이 둔하다.
 새빨갛게 물든 발을 흘깃 보고서, 산길에 남아있는 적을 확인한다. 아직 한 마리가 남아있다.
 최후에 남은 한 마리는, 이미 쓰러뜨린 다른 요마들보다 훨씬 컸다. 체력도 명확하게 차이가 나, 이미 두어번 칼질을 했는데도 조금도 반응이 없었다.
 그 짐승이 몸을 낮추는 것을 확인하고, 요코는 검의 손잡이를 고쳐쥐었다. 손에 익은 검이, 검 끝을 드는 것마저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 심한 현기증이 든다. 의식은 이미 혼탁해져 있다.
 도약해오는 그림자를 향해서 검을 휘두른다. 벤다라기보다도, 검을 아무렇게나 향하는 형태였다. 죠유우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이제는 그저 검을 휘두르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검에 맞고서, 검은 그림자가 땅에 쓰러졌다. 곧바로 일어나서 다시 뛰어오는 짐승의 콧잔등을 향해 어쨌거나 검을 찔렀다.
 검 끝이 짐승의 안면을 찢었지만, 그 대신 예리한 발톱이 요코의 어깨를 찢었다. 충격으로 검을 떨어뜨릴 뻔하다가 간신히 받아들고, 짧은 외침과 함께 쓰러진 그림자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기세에 휩쓸려 함께 앞으로 넘어지면서, 간신히 짐승의 머리를 치는데 성공했다.
 검은 까만 모피를 찢고 그대로 땅에 박혔다. 검 끝이 박힌 지면에 검붉은 선혈이 떨어진다.
 쓰러진 요코도 움직일 수 없었지만, 마찬가지로 넘어진 적도 움직이지 않았다.
 서로의 거리는 겨우 2미터쯤, 서로가 방심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상대의 정황을 살핀다. 요코의 검은 땅에 박힌 채. 상대도 피거품을 물고 있다.
 한동안 서로 바라보다가, 요코가 먼저 움직였다.
 힘없는 손으로 간신히 손잡이를 다시 쥐고, 땅에 박힌 검에 체중을 지탱하며 몸을 일으켰다.
 한박자 늦게 상대도 몸을 일으켰지만, 다시 옆으로 쓰러졌다.
 무겁디 무거운 검을 겨우 들어올리고, 무릎을 좁혔다. 양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적은 머리를 들고 낮은 신음소리와 함께 피거품을 뿜었다. 다리가 약하게 땅을 긁었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양손으로 버티는 검의 무게를, 짐승의 목을 향해 그대로 떨어뜨렸다. 피의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검날이 털가죽에 박히고, 동시에 발톱을 세운채로 사지가 경련했다.
 다시금 피거품을 뿜은 짐승이, 그와 함께 뭔가를 중얼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거운 검을 다시 한번, 혼신의 힘을 다해 떨어뜨렸다. 이번에는 경련마저 하지 않았다.
 
 검이 목에 반쯤 박힌 것을 보고서, 요코는 그제서야 손잡이를 놓았다.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머리위에는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한동안 하늘을 노려보며 거칠게 숨을 쉬었다. 옆구리가 불에 타는 것처럼 아파왔다. 숨을 쉴 때마다 목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팔도 다리도, 마치 절단된 것처럼 감각이 없었다.
 구슬을 쥐고 싶었지만, 손 끝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배멀미라도 하는 듯한 현기증을 견디면서,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었다. 하늘 한 쪽의 구름이 옅은 암적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심한 토기가 밀려 올라왔다. 머리만 겨우 기울여, 그대로 토했다. 심한 냄새가 나는 위액이 뺨에 흐른다. 가빠져오는 호흡과 함께 빨려 들어와, 목이 콱 막혔다. 반사적으로 엎드려, 심하게 기침을 했다.
 --살아남았다.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기침을 하면서, 머릿속에서 그것만을 되풀이하며 간신히 호흡이 가라앉았을 때, 요코는 작은 소리를 들었다.
 --흙을 밟는 소리였다.
 「...........!」
 아직 적이 있었던 건가 싶어서 퍼뜩 고개를 들었지만, 시야가 회전한다. 눈앞이 새까맣게 되어 지면에 고개를 묻었다.
 일어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잠시동안에 현기증이 이는 시야에 들어왔던 것을 잊을수는 없었다.
 --금색.
 「-----케이키!!!」
 땅에 얼굴을 묻은 채 소리쳤다.
 「케이키잇!!!」
 --역시, 너였나.
 --네가, 이 요마를.
 「이유를 말해!」
 바로 가까이에서 발소리가 났다. 요코는 고개를 들었다.
 가까스로 올린 시선에 처음 들어온 것은 선명한 색의 기모노. 그 다음으로 들어온 것은 금색의 머리.
 「.......왜.」
 이런 짓을, 이라고 나오려던 말은 소리가 되지 못했다.
 몸을 뒤로 젖히듯이 올려다본 상대의 얼굴은, 케이키의 것이 아니었다.
 「..........아--」
 케이키가 아니다. 여자, 였다.
 그녀는 가만히 요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요코는 눈을 크게 뜬 채 그 눈을 마주보았다.
 「누구........?」
 금발이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요코보다 열 살 정도 연상인 듯 했다. 선이 가는 어깨 위에, 선명한 색의 큰 앵무새가 앉아있었다.
 슬픔을 담은 표정이 매우 아름다와 보였다. 요코가 올려다본 얼굴에는 지금이라도 울어버릴 듯한 표정만이 있었다.
 「누구......야.」
 쉬어버린 목소리로 물어보았지만, 여자는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맑은 눈에 조용히 눈물이 고였다.
 「뭐.......?」
 그녀는 눈을 천천히 깜박였다. 투명한 눈물이 뺨에 흘러내린다.
 의외의 일에 말을 잃은 요코의 눈앞에서, 여자는 고개를 돌렸다. 바로 곁에 있는 짐승의 사체에 눈길을 향하고, 잠시동안 비통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한 발을 내딛었다. 시체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요코는 그것을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말도 나오지 않고, 아직 몸도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을 일으키려는 노력이라면 아까부터 하고 있었지만,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여자는 살짝 손을 뻗어 짐승을 만졌다. 손 끝에 붉은 것이 묻는 순간, 무언가 뜨거운 것에라도 닿은 듯이 손을 움츠렸다.
 「당신, 누구에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손을 뻗어, 이번엔 짐승에 꽂힌 채인 검의 손잡이를 잡고 잡아당겼다. 빠져나온 검을 지면에 두고, 짐승의 머리를 무릎 위에 안아들었다.
 「당신이 그것을 보낸거야?」
 여자는 말없이 무릎 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비싸보이는 기모노에 흠뻑 피가 묻었다.
 「지금까지의 요마들도?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는거야.」
 여자는 짐승의 머리를 안은 채 고개를 저었다. 요코가 눈썹을 찌푸렸을 때, 여자의 어깨에 앉아있던 앵무새가 날개를 퍼덕였다.
 「죽여.」
 날카로운 말을 꺼낸 것은 분명히 그 앵무새였다. 요코는 핫하고 시선을 향했고, 여자 역시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어깨에 앉아있는 앵무새를 보았다.
 「죽여버려라.」
 여자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못합니다.」
 「죽여라. 숨통을 끊어버라는 거다.」
 「.....용서를! 그것만은 할 수 없습니다!」
 여자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의 명령이다, 죽여라.」
 「못합니다!!!」
 앵무새는 크게 날개를 퍼덕이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한바퀴 선회하고서, 지면에 내려앉았다.
 「그러면, 검을 빼앗아.」
 「이 검은 이분의 것. 그런 짓을 해도 소용없습니다.」
 여자의 목소리에는 애원하는 울림이 있었다.
 「그러면, 팔을 베어라.」
 앵무새는 날카로운 소리로 외치며, 땅에 내려앉은 채로 날개를 퍼덕였다.
 「그정도는 해야지. 팔을, 베어라. 검을, 쓸 수 없게, 만들어.」
 「......할 수 없습니다. 우선, 저는 이 검을 쓸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써라.」
 앵무새는 크게 부리를 벌렸다. 부리 안쪽의, 둥근 혓바닥보다 더 안쪽에서 뭔가 빛나는 것이 보였다.
 요코는 눈을 크게 떴다. 앵무새는 검고, 윤이 나는 막대기 같아 보이는 것을 토해내었다. 경악하는 요코의 눈앞에서, 계속 토해낸다. 1분 정도 걸려서 완전히 토해낸 그것은, 까만 검집이 채워진 일본도같은 검이었다.
 「이것을.」
 「부탁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여자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앵무새는 다시금 날개를 퍼덕였다.
 「해!」
 목소리에 얻어맞은 듯이, 여자는 얼굴을 감쌌다.
 요코는 발버둥쳤다. 어떻게해서든 일어나서 도망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도 손가락으로 땅을 헤치는 것 정도가 다였다.
 여자는 눈물로 젖은 얼굴로 요코를 돌아보았다.
 「.....그만해.」
 요코의 목소리는 자신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늘었다.
 여자는 앵무새가 토해낸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짐승의 피로 얼룩진 손이 검집을 뺐다.
 「그만. .....당신, 누구야.」
 저 앵무새의 정체는 무엇인가. 저 짐승은 어떻게 된 것인가. 왜 이런 짓을 하는거야.
 여자는 가볍게 입술을 깨물었다. 아주 가느다란, 용서해줘요, 라는 말을 요코는 들을 수 있었다.
 「....부탁이야, 그만둬.」
 여자는 검 끝을, 흙을 긁고 있는 요코의 오른손으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여자는, 지금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안색이었다.
 지켜보고 있던 앵무새가 날아올라 요코의 팔에 내려앉았다. 가는 발톱이 피부에 박힌다. 왜인지, 마치 바위라도 내려앉은 듯이 무겁다. 쫓아버리고 싶었지만, 전혀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앵무새가 외쳤다.
 「해라!」
 여자는 검을 휘둘렀다.
 「그만해에!!!!」
 혼신의 힘으로 팔을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힘을 잃은, 무거운 팔이 움직이는 것보다도 여자가 칼을 내리치는 것이 더 빨랐다.
 고통이 아닌, 그저 충격만이 있었다.
 자신의 운명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충격이 고통으로 변하기 전에, 요코는 의식을 잃었다.
 
- 9 -
 심한 통증에, 요코는 의식을 되찾았다.
 퍼뜩 눈을 뜨고 자신의 팔을 확인하고서, 요코는 거기에 꽂혀있는 검을 발견했다.
 처음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흐린 하늘을 향해 똑바로 서있는 한 자루의 검.
 순간, 고통에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검은 요코의 오른손을 지면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얇은 검날이 깊게 요코의 손등에 박혀 있었다. 거기에서 퍼져나오는 고통이 머리를 향해 치밀어 오른다.
 살짝 팔을 움직여 보았지만, 찢어지는 듯한 아픔에 비명을 질렀다.
 현기증과 고통을 견디며 몸을 일으켰다. 땅에 고정된 손을, 그 이상 아프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떨리는 왼손을 뻗어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눈을 감고, 이를 악물고서 그것을 뽑았다. 전신이 경련할 정도의 격통이 흘렀다.
 뽑아낸 검을 던져버리고, 상처입은 손을 가슴에 안으며, 요코는 짐승의 시체가 누워있는 사이를 굴렀다. 비명은 소리가 되어 나오질 않는다. 격심한 고통과 함께 맹렬한 토기가 치밀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왼손으로 가슴을 뒤진다. 구슬을 쥐고 끈을 끊었다. 꽉 쥔 구슬을 오른손에 가져다 대었다. 이를 악물고 신음하며 간신히 구슬을 손에 대고 몸을 웅크렸다.
 보석의 기적은 요코를 구했다. 통증이 금방 사라져갔다. 한참동안 그렇게 짧은 호흡을 하며 견디다가 몸을 일으켰다.
 구슬을 상처에 댄 채, 살짝 오른손의 손가락을 움직여보려 했으나 손목 아래에는 감각이 없었다. 어쨌거나 왼손으로 오른손에 구슬을 쥐게 했다.
 지면에 쓰러진 채, 요코는 오른손을 끌어안았다. 살짝 눈을 뜨고 하늘을 보자, 구름은 아직도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정신을 잃고 있던 것은 굉장히 짧은 시간인 듯 했다.
 그 여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왜 이런 짓을 한걸까. 생각하고 싶은 것은 산더미같이 있었지만 도저히 머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어쨌거나 손을 더듬어 요코 자신의 검을 찾아, 손잡이를 쥐고서 검과 오른손을 품에 안고, 한동안 그렇게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향하자, 작은 어린아이가 못박힌 듯이 서있었다. 여자아이는 등뒤를 돌아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엄마.」
 여자가 달려왔다.
 
 아이는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어머니도 순박해 보였다. 가난한 차림으로, 큰 짐을 등에 지고있는 여자였다.
 아이도 어머니도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을 하며 달려왔다. 짐승의 시체를 넘어갈 때, 기분나쁜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요코는 미동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쓰러진 채 모녀가 달려오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다행이다, 라고 일순 생각했지만 그것은 곧 불안이 되었다.
 요코는 지금,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했다. 심한 고통은 사라졌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미 체력은 바닥나 있었다.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니까 더욱, 기쁨보다도 불안감이 든다. 왠지 얘기가 너무 잘 흘러가는 것 같지 않은가.
 「...어떻게 된 거야, 괜찮아?」
 어린아이의 작은 손이 요코의 이마를 쓸었다. 어머니 쪽은 요코를 안아 일으켰다. 천 너머로 전해져오는 체온이 왠지 굉장히 기분나쁘게 느껴졌다.
 「대체 어떻게 된거야? 이녀석들에게 습격당한거야? 상처가 심하니?」
 그렇게 말하며 어머니 쪽은 요코의 오른손에서 시선이 멎었다. 작게 비명을 질렀다.
 「.....어머나, 이런. 잠시만 기다려.」
 여자는 기모노의 소매를 뒤졌다. 얇은 수건을 꺼내어, 그것으로 요코의 오른손을 눌렀다. 아이는 등에 지고있던 작은 짐을 내리고, 거기에서 대나무로 된 통을 꺼냈다. 그것을 요코에게 내민다.
 「오빠, 물, 먹어?」
 요코는 순간 주저했다. 이유없는 불안을 느꼈다.
 짐 속에 들어있었다는 것은, 아이 본인이 마시기 위한 물이라는 말이겠지. 그렇다면 독이 들어있을 리가 없다. 내밀때까지도 독을 넣는듯한 기색은 없었다.
 그렇게 자신에게 납득시키고서 고개를 끄덕이자, 작은 두 손으로 뚜껑을 연 물통을 요코의 입가에 대어주었다. 미지근한 물이 목구멍을 지나며, 금방 숨이 편해졌다.
 모친이 요코에게 물었다.
 「혹시, 배가 고파?」
 지금은 공복을 느끼고 있지 않지만, 자신이 굶주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요코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얼마동안 못먹은거야?」
 숫자를 세는 것이 귀찮아서, 요코는 입을 다물었다.
 「엄마, 빵 남은거 있어.」
 「아아, 안돼 안돼. 그런건 삼킬 수 없어. 엿을 꺼내오렴.」
 「응.」
 아이는 어머니가 내려놓은 짐을 뒤진다. 바구니 안에 크고 작은 항아리가 들어있고, 거기에서 아이가 그릇에 물엿을 떠내었다. 몇 번인가 이런 짐을 지고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물엿을 파는 행상인 것이겠지.
 「여기요.」
 이번에는 주저없이, 그것을 왼손으로 받아들었다. 입안에 머금은 엿은 굉장히 달게 느껴졌다.
 「여행중인거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
 요코는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거니와, 거짓말을 꾸밀 기력도 없다.
 「세상에, 요마에게 습격당하고도 용케 무사했네. ---설 수 있겠어? 곧 해가 져. 산기슭의 마을까지는 조금만 더 가면 되니까. 거기까지 걸을 수 있겠어?」
 요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을에 갈 생각이 없다고 말할 셈이었지만, 모친은 움직일 수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아이를 돌아보았다.
 「교크요, 마을까지 달려가서 사람을 불러오렴. 시간이 없으니까, 전속력으로.」
 「웅.」
 「괜찮습니다.」
 요코는 몸을 일으켜 모녀를 보았다.
 「감사했습니다.」
 내뱉듯이 말하고, 요코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길을 돌아 가파른 경사면의 반대편을 향한다.
 「잠시만, 어디로 가는거야?!」
 그런 것, 요코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기다려. 곧 해가 질거야. 산에 들어갔다간 죽어.」
 요코는 천천히 길을 걸었다. 걸을 때마다 오른손이 아파왔다.
 「같이 마을로 가자.」
 사면은 굉장히 가팔라, 이것을 오르려면--더군다나 한손을 쓰지 못하는 상태로 오르려니 전신의 뼈가 부서지는 듯 했다.
 「우리들은 행상이라서, 바크로우까지 가는 길이야. 수상한 사람이 아니니까. 적어도 리(里)까지만이라도. 응?」
 요코는 길에 뻗어있는 나뭇가지에 손을 뻗었다.
 「잠시만, 당신!!」
 「왜 그렇게 발끈하는거죠.」
 요코가 돌아서자 여자는 이상하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움직이려던 아이까지 곤란한 듯이 요코를 보고 있다.
 「놔둬주세요. 아니면, 제가 리까지 같이 가면 뭐라도 생기나요?」
 「그런게 아니잖아! 이미 해가 진다구! 상처도---」
 「알고 있습니다. ....서두르는게 좋아요. 어린애도 있으니.」
 「잠시만......」
 「전, 익숙하니까요. ---엿 감사합니다.」
 곤란한 듯이 요코를 보고 있던 여자는, 단순히 친절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아닐수도 있었다.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믿어보고싶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고생하며 사면을 한 단 오르자, 아래에서 요코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바라보자 아이가 양손을 내밀고 있다. 한 손에는 물이 든 죽통과, 다른 손에는 갈색의 물그릇을 쥐고 있었다. 거기에는 물엿이 가장자리까지 가득 담겨있었다.
 「가지고 가. 아까것만으로는 부족할테니까.」
 요코는 모친을 보았다.
 「하지만.」
 「괜찮으니까. --자, 교크요.」
 아이는 한껏 발을 딛고 요코의 발치에 그것을 놓았다. 그러고서 몸을 돌려 짐을 짊어지고 있는 어머니에게 돌아갔다.
 요코는 멍하니, 아이가 짐을 짊어지는 것을 보았다. 어떻게 반응해야할지를 알지 못하고, 모녀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면서 언덕길을 내려가는 것을 묵묵히 보고 있었다.
 모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요코는 죽통과 물그릇을 집어들었다. 왜인지 무릎이 풀려버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분명 이걸로 된거야.
 저 모녀가 정말로 선량한 사람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리에 도착하고 나면 태도를 바꿀지도 모르고,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요코가 해객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관청에 고발하겠지. 괴롭지만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용해서는 안된다. 기대해서는 안된다. 멍청한 기대를 했다가는 아픈 꼴을 본다.
 「도와줬을지도 모르는데.」
 또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코는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함정이었을지도 몰라.」
 「이제 두 번다시는 도움이 없을지도 몰라.」
 「전혀 도움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 몸과 손으로, 오늘밤을 넘길 수 있을까나.」
 「어떻게건 되겠지.」
 「따라갔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야.」
 「이걸로 됐어.」
 「너는 말이야, 단 한번의, 최초이자 최후의 살 기회를 버려버린거야.」
 「----닥쳐!」
 돌아보며 검을 휘두른 곳에 원숭이의 목은 없었다. 깔깔대는 웃음소리만이 사면 위의 잡초 사이로 사라져갔다.
 요코는 이유없이 길을 돌아보았다. 석양이 지기 시작하는 길에 조금씩 어둠이 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10 -
 그 밤은 그때까지중 가장 가혹한 밤이었다.
 이미 체력은 떨어졌다. 비는 차갑게 체온을 빼앗는다. 사람에게는 괴로운 밤인데도 요마들은 오히려 활발해지는 듯 했다.
 젖어버린 옷이 움직임을 방해한다. 이미 둔해져버린 온몸은 조금도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오른손은 어떻게건 감각이 돌아왔다고는 해도, 조금도 힘을 줄 수가 없었다. 그 손으로 검을 쥐는 것은 한없이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비 때문에 손이 미끄러진다. 주위는 새까만 암흑으로 적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게다가 덮쳐오는 요마들은 작은놈들이었지만 수가 많았다.
 진흙속에 넘어지고 피를 뒤집어쓰며, 자신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잔뜩 젖었다. 그것마저도 비가 씻어내려가면서, 그와 함께 최후의 힘마저 쓸려나갔다. 검은 점점 무거워졌고, 죠유우의 기척은 옅어져갔다. 움켜잡은 검끝은 적과 마주칠때마다 점점 아래로 쳐져간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몇 번이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새벽을 기다렸다. 싸우면서 보내는 밤은 언제나 짧게 느껴졌었지만, 오늘밤만은 적이 끊이지 않는데도 무섭도록 길게 느껴진다. 몇 번이고 검을 떨어뜨리고, 다시 주워올릴 때마다 상처투성이가 되어, 마침내 새벽이 되었을 때 하얀 나무가 보였다.
 가지 아래에 굴러 넘어지면서 딱딱한 가지에 상처를 입었다. 쫓아오던 적의 기척이 멎었다. 가지 아래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 멀리 떨어져 기회를 보는 듯 했지만, 마침내 빗속으로 사라져갔다.
 적의 기척이 사라졌을 때, 마침내 동이 트고 나무 그림자가 비치기 시작했다.
 「..........살았..........다............」
 요코는 숨을 내쉬었다. 어깨로 숨을 쉬는 요코의 입에 빗물이 흘러들어왔다.
 「빠져......나...왔......어......」
 진흙투성이가 된 상처가 쓰라렸지만, 그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한참을 누운 채 숨을 고르고, 하얀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더욱 밝아오는 것을 기다렸다. 호흡이 가라앉고 나자 심한 한기를 느꼈다. 하얀 가지는 비를 막아주지 못한다. 빠져나가 어딘가에서 비를 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필사적으로 구슬을 쥔다. 손끝을 덥혀주는 기묘한 힘에 목숨을 걸고 견뎌보려고 생각했다. 혼신의 힘으로 몸을 뒤집어, 기어서 나무 밑을 빠져나와, 어쨌거나 내리막을 향해 움직여본다. 젖은 풀들과 진흙 때문에 기어가는 것은 생각외로 편했다.
 가능한 길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이동해야 하지만, 빛이 없는 한밤중, 적에게 쫓겨다니면서 얼마나 산속으로 들어왔는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구슬을 쥐고서 검에 기대어 일어섰다.
 상처를 입었다는 자각이나 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디가 아픈건지 잘 모르겠다. 한발 내딛을 때마다 무릎이 꺾이는 것을 버티지 않으면 안되었다.
 반쯤 기면서 경사면을 내려가다가, 도로로는 생각되지 않는 좁은 길과 마주쳤다. 바퀴자국도 보이지 않고, 마차가 지나갈만한 넓이도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계였다. 무릎을 꿇고, 나무껍질에 손톱을 세우며 몸을 버티려고 했지만 손이 움직이질 않았다.
 질퍽거리는 길 위로 머리부터 떨어져, 그 후로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손안에 굳게 구슬을 쥐고 있었지만, 거기에서 부드럽게 전해져오는 온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빨려들어오는 것보다 비에 쓸려나가는 쪽이 컸다. 그것은 드디어 구슬의 기적이 소용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데서 죽는걸까.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웃음이 나왔다.
 같은반 친구들 중에서, 객사하는 것은 자기 뿐이겠지.
 다른 세계의 인간들이다. 그애들은 언제라도 돌아갈 집이 있고 지켜주는 가족이 있으며, 절대로 굶주리는 일이 없는 미래가 약속되어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했다. 여기가 한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한계까지 버텨서 주어진 상이 이런 편안한 죽음이라면, 견딜 가치는 있었는지도 모른다.
 빗소리에 섞여 맑은 소리가 울려왔다. 눈을 들자 뺨의 바로 옆에 떨어진 검이 옅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지면에 얼굴을 묻은 요코의 눈에는 검날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로 흐릿한 그림자가 보였다.
 --나카지마는,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담임선생님이 앉아있다. 거기가 어딘지는 잘 알 수 없다.
 「나카지마는 얌전하고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적어도 담임으로서는, 그렇게나 착한 학생은 없었죠.」
 담임은 누군가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그 상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굵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행실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었다는 듯 하던데요?」
 「모르겠습니다.」
 「모르시나요.」
 담임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카지마는 그림으로 그린듯한 우등생이었으니까요.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혹시나 탈선하지는 않았는지, 신경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묘한 남자가 학교에 들이닥쳤다고 했죠?」
 「그렇습니다만. 왠지 요코도 그 남자와는 면식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어땠는지는,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왠지 요코는 속을 알 수 없는 구석이 있었으니까요.」
 「속을 알 수 없다구요?」
 담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다른 얘기일까요. 잘은 얘기할 수 없지만. 나카지마는 말이죠, 우등생이었습니다. 반의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있었지요. 양친과의 관계도 좋은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있을 리가 없어요.」
 「......호오?」
 「제가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되는 거겠지만, 교사는 교사의 입장을 강요하고, 친구는 친구의 입장을 강요합니다. 부모는 부모의 입장에서밖에 얘기하지 않지요. 누구나 자기 멋대로 이상을 만들고 억지로 그것을 강요하는 겁니다. 그 삼자의 의견이 일치하는 일 따위 있을 리 없습니다. 교사와 부모의 기대로 한다면, 학생들이 보기에는 마음이 안차겠지요. 누구한테나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맞춰주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라고는 생각하지만, 나카지마는 누구하고도 원만하게 지내는 대신, 어느 누구와도 특별하게 지내지 못했지요. 누구한테나 거슬리지 않게 행동할 뿐, 그 이상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어떠십니까?」
 담임은 또다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진심을 말하자면 말입니다, 교사로서는 다소 손이 가고 눈을 뗄 수 없는 학생쪽이 귀여운 겁니다. 저는 나카지마를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분명 졸업하고 나면 잊어버렸겠지요. 십년 뒤에 동창회가 있어도,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나카지마가 고의로 그런 행동들을 해온건지, 단순히 착한 아이로 있으려는 것이 너무 지나쳐버린 것인지는 저로서도 알 수 없습니다. 고의로 그런 행동들을 해온 것이라면, 모르는데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는 상상도 할 수 없지요. 고의가 아니었다면, 그런 자신을 깨닫게 되었을 때 굉장히 허탈함을 느낄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대체 무엇인걸까, 허탈하게 생각하다가 홀연 모습을 감춘다, 그런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코는 망연하게 담임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흐려지다가, 그 대신 소녀 한 명이 나타났다. 요코와 비교적 사이가 좋던 학생이었다.
 「자네는 나카지마와 사이가 좋았다고 들었네만?」
 목소리가 묻자 소녀는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별로. 특별히 사이가 좋았던건 아닌데요.」
 「그래?」
 「그거야, 학교에서는 얘기도 좀 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학교 밖에서 만나는 것도 아니고, 서로 전화하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그런 일도 있기는 했지만 그런거 그냥 같은 반 애들하고 사귀는 정도 뿐이었어요.」
 「그렇군.」
 「그러니까, 저한테 그 애 일을 물어도 전 몰라요. 별거없는 얘기밖에 한 적 없고.」
 「그 애를 싫어했었나?」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었지만, 특별히 착한 애도 아니었어요. 뭐랄까, 언제나 적당히 얘기를 맞춰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요. 싫지는 않았지만, 재미없었으니까.」
 「흐음?」
 전 싫었어요, 라고 잘라서 얘기한 것은 다른 소녀였다.
 「나카지마는 팔방미인(일본에서 팔방미인은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인다)이었는걸요.」
 「팔방미인?」
 「네. 우리가 누군가의 욕을 하고 있으면 말이죠? 그럼 고개를 끄덕여요. 그렇구나, 하면서. 하지만 그애가 우리 욕을 하고 있으면 거기에도 끄덕인다구요. 누구한테나 착한 얼굴만 보이면서, 그래서 싫었어요.사이가 좋았다니, 말도 안돼요. 수다떨기에는 좋았지만. 무슨 말을 해도 끄덕여주니까요. 그것뿐이에요.」
 「---흐음.」
 「그러니까, 가출이라고 생각해요. 그 애가 남들 모르게 이상한 사람들하고 사귀면서, 그녀석들도 교사들도 같은반 애들도 모두 바보다, 헛소리하지마, 따위 소리를 하고 있었다고 해도 놀라지 않아요. 그럴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 그런 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었는걸요.」
 「뭔가의 사건에 휘말린 것일 가능성도 있네만.」
 「그런거라면, 몰래 어울리던 녀석들하고 뭔가 문제가 있던거 아닐까요. 저하곤 관계없어요.」
 전 정말 싫었어요, 라고 말한 것은 또다른 소녀였다.
 「그게, 솔직하게 말하자면 없어져서 후련해요.」
 「자네는, 반에서 이지메를 당하고 있었다고?」
 「네.」
 「나카지마도 한패였나?」
 「네. 모두와 어울려서 저를 무시하고, 그래도 자기는 착한애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어요.」
 「....흠?」
 「다른 애들이 저한테 심한 말을 하잖아요? 그럴 때 나카지마상은, 적극적으로는 어울리지 않아요. 언제나 '난 이런거 곤란한데'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그런거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과연.」
 「혼자만 착한 사람인 듯 행동하면서, 저를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죠. 하지만, 다른 애들을 말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더 화가 나요.」
 「그러겠지.」
 「가출이건 유괴건, 저하고는 관계없어요. 나카지마상은 가해자고, 저는 피해자였으니까. 그런 사람 따위한테 동정하는, 나카지마상같은 위선자는 되고싶지 않아요. 저를 의심해도 상관없어요. 전 나카지마상이 싫었고, 그 사람이 없어져서 기뻐요. 이게 진심이니까요.」
 그런 애가 아니에요, 라고 말한 것은 어머니였다. 기운없이 어딘가에 주저앉아 있다.
 「착한 아이였습니다. 가출따위 할 애가 아니에요. 불량한 사람들과 사귈 아이도 아니에요.」
 「하지만, 나카지마상은 가정에 불만이 있었던 것 같던데요.」
 어머니는 눈을 크게 떴다.
 「요코가? 그럴리 없어요.」
 「동급생들에게 꽤나 불평했던 것 같습니다. 양친이 엄격해서, 라고.」
 「그거야 때로는 야단치거나 하기도 하지만, 부모니까 당연한 거 잖아요? 아뇨, 그럴 리가 없어요. 그 애는 불만이 있는 눈치는 조금도.」
 「그럼, 가출할만한 이유는 집히는게 없나요?」
 「없습니다. 그런 것, 있을 리가 없어요.」
 「학교에 요코양을 찾아왔다는 남자에 대해서도 집히는 데가 없고요?」
 「없습니다. 그런 사람하고 사귈만한 애가 아니에요.」
 「그럼, 왜 사라진걸까요?」
 「학교에서 돌아오다가라던가, 누군가에게--」
 「유감이지만, 그런 증거는 없습니다. 요코양은 교무실에서 그 남자와 함께 나가서, 그대로 어딘가에 갔다고 생각됩니다. 특별히 무리하게 끌려갔다던가, 그런 것도 아닌 듯 합니다. 친한 것 같았다고 말하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만.」
 어머니는 몸을 움츠렸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요코양은 말했다는 듯 하지만, 설령 면식이 없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뭔가 관계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공통의 지인이 있다던가. 일단 수사는 해보겠습니다만......」
 「요코가 정말로 집에 대해 불평을 했었나요?」
 「그런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얼굴을 감쌌다.
 「불만이 있는 걸로는 보이지 않았어요. 가출할만한 아이도, 남몰래 나쁜 친구들을 사귈 아이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상한 사건에 말려들만한 아이도 아니라고.」
 「아이라는 것은, 애시당초 부모에게 진심을 보이지 않는 거니까요.」
 「다른 집의 얘기를 들으면서, 요코는 얼마나 착한 아이인가, 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해봤어야 했었던걸까요.」
 「어린애는 부모님이 바라는대로 자라주지 않으니까요. 저희집 애들도 손쓸 수 없는 말썽장이들입니다.」
 「그렇군요...... 그 애는, 착한 아이처럼 지내면서 부모를 적당히 속여넘기고 있었던거군요. 저희들은 완전히 거기에 속아버려서. 아이를 믿고 있었던 것이 실수였어요.」
 (엄마, 아니에요......)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에요, 라고 소리도 나오지 않은 채 입만을 달싹이자, 홀연 환상이 사라졌다.
 주위는 그대로 물웅덩이, 요코는 얼굴을 진흙에 반쯤 파묻은 채, 이미 일어설 여력도 없다. 요코가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 따위, 어느 누구도 상상도 못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멋대로들 말하는 것이다.
 이런 세계에 버려져서, 굶주리고 괴롭고 상처 투성이가 되어, 이제 일어서는 것마저 할 수 없게 되어. 그래도 돌아가고싶다고, 그것만으로 이를 악문채 견뎌왔는데. 진실을 말하자면, 요코가 고국에서 가지고 있었던 것은 이런 인간관계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디로 돌아갈 생각이었던걸까.
 기다려주는 사람따위 없는데. 요코의 것이라고는 무엇 하나 없고, 남들은 요코를 이해하지 않는다. 속이고, 배반한다. 그것만은 저쪽이나 이쪽이나 아무런 차이도 없다.
 --그런 것쯤은 알고 있었어.
 그래도 요코는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이상하게도 웃겨서, 큰소리로 웃어보고 싶었지만 비에 얼어붙은 얼굴은 조금도 웃어주지 않았다. 울고싶은 기분도 들었지만, 눈물은 말라있었다.
 --이제 됐어.
 이제, 어찌되건 상관없는 일이다. 곧 모든 것이 끝날테니까.
 
1권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上)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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