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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국기 [오노 후유미] 3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01

by Casey,Riley 2023.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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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上) 프롤로그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상)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프롤로그
 
 눈이 내리고 있다.
 크고 무거운 눈송이가 가라앉듯이 내려오고 있었다.
 올려다보면 새하얀 하늘, 거기에 회색의 옅은 그림자가 무수히 스민다. 얼룩지는 것처럼 시야를 가로질러, 눈으로 좇다보면 어느새 하얗게.
 그는 어깨에 하나하나 내려앉는 눈을 보았다. 솜털같은 결정이 보일 정도로, 크고 무거운 눈송이였다. 차례차례로, 어깨에서 팔로, 그리고 새빨갛게 변한 손바닥에 멈추고는 물색이 되어 녹아버린다.
 눈의 백색보다도, 그의 입김 쪽이 시리도록 하얗다. 어린아이 특유의 가느다란 목을 돌리자, 움직임을 따라 하얀 입김이 움직이며 눈에 하얗게 박힌다.
 그가 거기에 서있은지도 한 시간이 지났다.
 작은 손도 그대로 드러난 무릎도, 익은 것처럼 새빨갛게 되어 이미 감각이 없다. 비벼봐도 안아봐도 차가울 뿐, 그래서 언젠가부터 멍하니 서있었다.
 북쪽 안마당이었다.
 좁은 정원의 구석에는, 쓰지 않는 오래된 창고가 서있다. 토벽에 생긴 균열이 몹시 적막해 보였다.
 삼면은 본채와 창고, 다른 한 면은 토벽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바람도 없이 그저 춥기만 한 이 계절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원수라고 불릴만한 것도 없다. 여름이 가까워지면 범부채꽃이 피지만, 지금은 그대로 노출된 지면이 하얗게 변해갈 뿐이었다.
 (고집센 애구만.)
 할머니는 간사이에서 시집을 왔다. 지금도 고향의 사투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울기라도 하면 귀엽기라도 할 것을.)
 (어머님, 그렇게 심하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느가 어리광을 받아주니께, 고집센 애가 되는기다.)
 (하지만.)
 (요즘 젊은것들은 애 키울줄을 몰라. 애는 조금 엄하다 싶게 키우는게 딱 쓸만한거여.)
 (하지만, 어머님. 감기가 들어버리면.)
 (애는 이정도 눈으로 감기따위 안 든다. --솔직하게 사과할 때까지, 집에는 안들일 거니께.)
 그는 그저 못박힌 듯이 서있었다.
 처음엔, 화장실 바닥에 물을 엎지르고서 닦지 않은게 누구인가 하는, 그런 별 것 아닌 문제였다.
 동생은 그라고 말하고, 그는 자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전혀 기억에 없는 일이었으므로, 그렇게 정직하게 말했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할머니로부터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자기가 범인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솔직하게 말하고 사과하면 되는기여.)
 할머니가 엄하게 말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아니라고 되풀이할 수 밖에 없었다.
 (느가 아니면, 뉘라는 기냐.)
 범인을 몰랐기 때문에,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왜 이리 고집이 센기여.)
 계속해서 들어왔기에, 그는 어린 나름대로 자신이 고집센 것이라고 납득하고 있었다. 「고집」이라는 말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은 「고집센」 아이이고, 그러니까 할머니는 자신을 미워하는 거라고, 그렇게 납득하고 있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던 것은 곤혹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용서를 빌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할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째야 좋을지 알 수 없어서, 그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복도가 가로로 뻗어 있었다. 복도의 큰 유리창 저편은 다실(茶室)의 장지문. 반만 유리가 끼워져 있는 곳으로, 다실에서 할머니와 어머니가 말다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이 싸움을 하는 것은 견딜 수 없다. 언제나 반드시 엄마가 지고서, 정해진 것처럼 목욕탕 청소를 하러 간다. 거기서 엄마가 남몰래 우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 또 우는걸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멍하니 서있었다.
 조금씩 발이 저려왔다. 한쪽 발에 체중을 실으면, 무릎이 삐걱거리며 저려왔다. 발끝의 감각이 없다. 그래도 무리하게 움직여보자, 차갑고 예리한 통증이 달렸다. 무릎에서 녹은 눈이 차가운 물방울이 되어, 정강이를 타고 흐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어린 나름대로 무거운 한숨을 쉴 때였다.
 갑자기 목에 바람이 닿았다. 쌩쌩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굉장히 따뜻한 바람이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군가가 그를 불쌍하게 생각해서, 문을 열어준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창은 꽉 닫힌 채였다. 복도가 아닌 방에 면한 유리창은, 온기에 흐려져 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본다. 따뜻한 공기는 지금도 그를 향해 불어오고 있었다.
 그는 창고 옆으로 눈길을 주다가, 깜짝 놀라 두눈을 크게 떴다.
 창고와 토벽 사이의 좁은 틈에서, 하얀 것이 뻗어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팔로 보였다. 두 팔의 위쪽까지 맨 살을 드러내놓고 있는 하얗고 매끄러운 팔이, 창고 뒤에서 뻗어나온 것이었다.
 팔의 주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창고 뒤에 숨어있는 거겠지, 라고 생각했다.
 굉장히 이상했다.
 창고와 벽의 사이에는 정말로 아주 좁은 틈밖에 없다. 좁은 틈 사이에 들어가버린 야구공을 잡을 수 없어서, 동생이 울고 있던 것이 어제 일이었다. 그나 동생처럼 작은 몸으로도 그 틈에는 팔밖에 들어가지 않았다.보기에는 어른의 팔 같았지만, 대체 어떻게 그 틈에 들어가 있는걸까.
 팔꿈치 아래가 헤엄치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손짓하며 부르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서, 그는 발을 내딛었다. 얼어붙고 마비된 무릎이,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뻑뻑했다.
 겁먹지 않았던 것은, 따뜻한 공기가 그쪽에서 흘러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추웠고, 정말로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기에 불리우는 대로 걸었다.
 눈은 이미 지면을 덮어, 그의 조그만 발자국이 남을 정도로 쌓여있었다.
 새하얀 하늘은 흐린 먹물같은 색으로 변해있었다.
 짧은 겨울해가 저물려 하고 있었다.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上) 1장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상)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1 장
 
- 1 -
 생명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아는 자는 없다. 하물며 인간이 아닌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생명도 의식도, 어느 순간 갑자기 그녀 안에 나타났다.
 눈을 뜬 순간, 그녀는 하얀 가지 아래에 있었고, 머릿속에는 단 한마디의 단어밖에 없었다.
 --타이키(泰騏).
 몸을 일으키는 사이 그 단어가 온 머릿속을 가득 채워 흘러넘치며, 동시에 그녀는 모든 것을 파악했다.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
 --타이키.
 그것은 반신을 일으키는 사이에도, 그녀의 뇌리를 가득 채우고 몸안에 방울져 흐르고 있었다.
 마치 방울져 흐르는 물방울을 몸 속 깊은 곳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녀는 일으킨 상체를 돌렸다. 고개를 들고, 눈을 감았다.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 아직 젖어있는 머리카락 사이로 녹아들어 갔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발을 움직여보자, 발끝에 축축한 땅과 금색의 조각이 닿았다.
 조각은 바로 조금전까지 그녀를 싸고 있던 껍질이었다. 땅이 빨아들인 수분은, 바로 조금전까지 껍질 안에 차있던 것이었다. 그녀는 바로 조금전에 껍질 속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그녀를 품은 금색의 알은, 가지에서 떨어져 깨어졌다.
 그녀는 알의 조각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시선을 들었다. 눈앞에는 하얀 가지. 백은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나뭇가지는 머리 위로 뻗어, 먼 상공에서 튼튼한 암반으로 빨려들어 갔다.
 가지에는 몇 개인가, 금색의 과실이 혹처럼 열려있었다. 그것은 아직 생명을 얻지 못한 알인 것이라고, 자신도 조금전까지 저렇게 열려있었던 거라고, 그녀는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면서 이해하고 있었다.
 --타이키.
 그녀는 사지에 힘을 주며 일어섰다. 또, 눈물이 흘렀다.
 눈물은 처음으로 바깥 공기에 노출된 눈동자를 지켜주기 위한 반사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뜨거울 정도로 따뜻한 것이 흘러 떨어지는 감촉을, 단 하나의 단어가 몸 속을 흘러내리는 감촉이라고 느꼈다.
 타이키, 타이키라고 계속해서 부르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똑바로 일어서자 머리카락이 가지에 걸려있었다. 그녀는 땅을 밟은 사지와는 다른 두 개의 팔로 그것을 풀었다.
 
 「깨어난 것 같구나.」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와, 그녀는 음성이 난 쪽을 보았다.
 주변은 어둡고. 머리 위의 가지들만이 새하얗게 인광을 발해 하얗게 빛난다.
 어둠에 눈이 익자, 그것이 거대한 동굴 안이라는 것을 알았다.
 거대한--너무나도 거대한 반구형의 동굴, 중앙에 하얀 가지가 늘어져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를 둘러싸듯이 늘어져 있는 것은 가지가 아닌 뿌리였다. 그것은 암반을 뚫고, 얼마나 되는지 짐작도 할 수 없을만큼 높은 천장의 중앙에서, 그녀의 발치까지 빈틈없이 가늘게 갈라지며 뻗어있는 것이었다.
 흐음, 하고 근처에서 소리가 들렸다.
 「훌륭한 여괴(女怪)로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았다.
 이번에는 쉽게 발견했다. 그녀의 발치에,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곳에 허리가 굽은 노파가 서있었다.
 노파는 일어선 그녀의, 가슴 정도의 키였다. 마른 가지 같은 팔을 한껏 뻗어, 노파는 그녀의 젖은 등에 흐트러져있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여자에,」
 말을 이으며 뺨을 쓰다듬는다.
 「머리는 물고기,」
 가볍게 팔을 두드린다.
 「상체는 인간.」
 등에 둘려진 손이 가볍게 허리를 두드렸다.
 「하체는 표범. 꼬리는 도마뱀이야. 잘 섞였구나.」
 윗허리와 아랫허리 사이의, 조금 긴장해 있는 언저리를 노파가 가볍게 눌렀다.
 「자, 그렇게 울지 말거라. ---따라오렴.」
 이끌리는 대로 그녀는 걸었다. 걸을 때마다 눈물이 흘러넘쳐 마른 땅에 얼룩을 만들었다.
 천천히 오랜 시간동안 동굴을 가로질러, 천장의 암반이 만드는 곡선과 발치의 흙이 만나는 곳에서 계단을 발견했다.
 「산시, 로 하자.」
 노파가 겨우 입을 열었다.
 「산(汕), 시(子)다. 널 이제부터 산시라고 부르자.」
 그녀는 말없이 좁고 어두운 돌계단을 올라가면서, 노파의 말을 듣고 있었다.
 「성은 하쿠(白)다. 이것은 봉산(蓬山)에 열린 여괴에게 정해진 것.」
 크게 굽어진 돌계단을 오라가자, 갑자기 빛이 보였다.
 「성을 내리는 것은 너의 사명이 무겁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 기억해 두도록.」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무거운 것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 무게를 다시금 가슴속에 새기며 묵묵히 돌계단을 오르자, 문득 시야가 열렸다. 어느새인가 넓어지기 시작한 계단이, 정면에 넓은 사각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녀는 발을 멈췄다.
 올려다본 곳에 있는 그 구멍에서, 엷은 푸른색의 높은 하늘과,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눈부신 흰 가지가 보였다. 보이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겨우 멎은 눈물이 다시 흘렀다.
 노파가 등을 두드렸다.
 「자, 가게.」
 그녀는 달려나갔다. 막 깨어났을 뿐인 다리로 처음으로 달렸다.
 돌계단을 올라 햇빛 속으로 뛰어올라, 찌르는 듯한 빛에 눈물을 흘리며 똑바로 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그녀는 뿌리에 열렸다. 길고 가느다란 뿌리에 비해, 나무는 낮고 두터웠다. 이끼가 낀 암반 위, 하늘을 등지고 가지를 뻗은 나무의, 하얗고 하얀 가지에는 금색의 과실이 한 개 열려 있었다.
 「타이키.」
 처음으로 그녀의 목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가 열린 뿌리와, 그대로 일치하는 위치에 그 과실은 있었다., 아직 자그맣고, 양손으로 감쌀 수 있을 정도의 크기밖에 안되었다. 햇빛이 아직 마르지 않은 예민한 피부를 찌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그 열매를 양손으로 안고 뺨에 대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타이키.」
 산시는 이 세계에 생을 얻은 것이다.
 
- 2 -
 세계의 중앙에 황해(黃海)가 있다.
 바다라고는 해도 물은 없다. 거기에 흐르는 것은 시간과 바람뿐. 그 외에는 끝없는 사막과 끝없는 수해(樹海), 또는 일면의 늪지가, 또는 바위산이 펼쳐져 있을 뿐인 토지였다.
 그 황해의 중앙에 유난히 높게 이어진 산들이 있다. 다섯 개의 준봉이 복잡하게 들어선 그곳을, 오산(五山)이라 부른다.
 중앙의 높은 산을 숭고(崇高), 주변 사방에 이어진 산을 각각 봉산(蓬山), 화산(華山), 곽산(雨+佳山), 항산(恒山)이라 불린다. 봉산은 그 옛 이름을 태산(泰山)이라 했지마느 흉사가 있을 때마다 개명하여 최근 천년동안은 봉산이라 불리고 있다.
 오산은 서왕모(西王母)의 산이라고 말해지며, 봉산은 왕부인(王夫人)의 산이라고 말해진다. 남은 네 산의 주인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확실치 않다. 그 진위야 어쨌건간에, 오사는 여신(女神), 여선(女仙)의 토지였다.
 오산은 어느 것이나 하늘을 뚫을 정도로 높은 산이었지만, 기슭에 펼쳐져 있는 황해와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없다. 녹색과 바위와 물, 그것만이 복잡기괴한 지형을 만들면서 이어져 있을 뿐, 거기에 끊임없이 바람이 분다.
 단지 봉산의 중턱에, 봉로궁(蓬盧宮)이라 불리는 작은 궁전이 있다. 여기가 봉산에서--혹은 오산에 사는 자들의 유일한 거처였다.
 
 「어라, 양귀비인가.」
 테이에이(禎衛)는 중얼거리며, 몸을 굽혔다.
 샘물에 양귀비 꽃잎이 몇 개 떠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테이에이에게서 두어발 떨어져 샛길을 걷고 있던 요우카(蓉可)도 따라서 발을 멈췄다. 맑은 물의 표면에, 붉은 꽃잎의 색이 아름다웠다.
 「앵속원(罌粟苑)의 꽃일까요.」
 요우카의 물음에, 테이에이는 끄덕이며 꽃잎을 건졌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거겠지. --오늘은 묘한 바람이 부는구나.」
 요우카도 또한 끄덕이며, 머리 위를 올려다 보았다.
 봉산은 바위산이었다. 특히 이곳 봉로궁이 있는 고지대는, 이끼가 낀 기암들로 뒤덮여 미로의 양상을 이루고 있다.
 기암은 그 이름에 걸맞게 기묘한 형태로 불안정하게 우뚝 솟아, 그 높이는 낮은 것이라도 사람 키의 세 배는 되며, 기암의 사이를 누비면서 뚫려있는 샛길은, 간신히 여자 두 명이 어깨를 마주하고 걸을 수 있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샛길의 도중에 말을 멈추고, 테이에이는 샘에 떠있는 양귀비의 꽃잎을 정성스럽게 건져내었다.
 그녀는 여선의 한 사람이었다. 18, 9세의 아가씨로 보이지만, 여선의 외견을 믿어서는 안된다. 어떠한 사정으로 언제 승선했는지, 그녀 자신도 이미 기억하고 있지 않다. 그정도로 오랜 동안, 봉산에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오십명 근처의 여선중에서도 테이에이만큼 봉산에 오래 있었던 여선은 없다.
 반대로, 요우카는 가장 신참인 여선이었다. 나이는 열 여섯, 극히 평범한 농가의 딸로 태어났지만 어떤 이유인지 속세에 융화되지 못하고 열 셋의 나이에 승선의 서약을 하고, 오곡을 끊고 서왕모의 사당에 다니기를 삼년, 마침내 원을 성취하여 오산으로 불려 올라왔다.
 따라서 요우카는 봉산에서 지낸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숭고산에서의 수행을 마치고, 봉로궁으로 옮겨온 것이 반 달이었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오늘의 바람은 뭔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보통은 부드럽게 샛길을 흐르는 바람이, 오늘만은 강하고 빠르다. 기암의 상공으로 불어오르는가 싶으면 기암을 타고 내려오며 휘몰아친다. 하늘의 모양도 뭔가 맑지 않다. 엷은 구름에도 상관없이, 무거운 것이 늘어져있는 듯한 느낌을 숨길 수 없었다.
 「뭔가의 전조일까요.」
 요우카의 물음에, 테이에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오늘 아침의 팔괘에는, 뭔가가 일어날 것 같은 괘는 나오지 않았었지만. --어쨌거나 물을 길어라.」
 「예.」
 요우카는 가지고 온 물통에 샘물을 길었다.
 샘의 이름은 해동천(海桐泉)이라고 한다. 기암의 뿌리를 쓸어내듯이 솟아나는 샘의, 그 위에 걸치듯이 뻗어있는 암벽 위에는 해동화(海桐花) 나무가 무리지어 있다.
 봉로궁에 있는 샘은, 물론 이것 하나만이 아니다. 몇 개의 샘이 있는지 세어보는 바보같은 자는 없었지만, 이름이 필요할 정도로 있는 것은 확실했다.
 봉산에는 계절이 없다. 꽃은 연중 피고 진다. 지금도 해동화가 작고 하얀 꽃을 떨어뜨려, 샘의 수면에 물거품처럼 떠있다. 물에는 해동화의 향기가 스며, 해동천의 물을 긷는 물통에는 언제인가부터 해동화의 향기가 날 정도였다.
 해동화의 향기가 나는 물은, 봉로궁 안에 있는 대진묘(大眞廟)에서 봉산의 수호신인 왕부인의 목상을 닦는데에 쓰인다.
 해동화의 꽃을 피하며 물을 길어올려 대진묘로 가려고 발을 내딛는 요우카를, 테이에이는 웃으며 불러세웠다.
 「어디로 가려는거지?」
 「에? ----부인의.......」
 테이에이는 소리높여 웃었다.
 「묘는 그쪽이 아니야. 아직 길을 외우지 못했는가?」
 요우카는 세갈래로 갈린 샛길을 둘러보다가,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그런 것 같습니다.」
 봉산은 기암과 무수히 갈린 샛길로 미로와 같았지만, 실제 미궁과 다름없었다.
 바른 길을 알고 있는 것은 봉로궁에 사는 이들뿐이었다. 여기에 사는 여선들만이 무수히 갈려진 길 중에서 바른 길을 찾아, 세탁을 하는 냇가로, 목욕을 하는 연못에, 물을 긷는 샘으로 갈 수 있다. 또는 작지만 햇볕이 잘드는 들판으로, 화원으로, 채소밭으로. --단, 요우카처럼 봉산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여선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왜 이렇게, 복잡한걸까......」
 요우카가 한숨을 쉬면서 내뱉은 혼잣말에, 테이에이는 웃었다.
 「봉산공(蓬山公)을 지키기 위한거니까. 다소의 불편은 참으시게.」
 미로는 침입자에 대한 방어였다.
 기암의 위로는 인마가 출입할 수 없다. 요수라면 그것도 가능하겠지만, 봉로궁에는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요마가 들어서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기암의 사이를 누비는 샛길은 좁다. 봉로궁을 방문하는 이들은 승기(乘騎)-탈 것을 버리고, 반드시 걸어서 들어오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 발 안으로 들어오면, 길은 말 그대로 미로가 된다.
 높은 기암은 시야를 가로막는다. 흠뻑 습기를 머금고 있는 이끼로 뒤덮인 기암의, 그 사이를 달리는 샛길에는 돌이 깔려 있어, 무수하게 갈린 샛길과 무수히 많은 터널에서 앗하는 사이에 방향을 잃어버릴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봉로궁을 숙지하는 자만이 길을 잃지 않고,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무가 자라는 고지대에 닿을 수 있는 것이다.
 「아아, 역시 그렇군요.」
 미로의 안에 숨겨진 것은 사신목(捨身木), 사신목에 열리는 것은 기린이었다.
 이 세상에는 인간도 짐승도 그 밖의 것들도 각각 하얀 나무에 열리지만, 기린이 열리는 나무는 이곳 봉산에 있는 사신목이 유일했다.
 봉산은 기린이 태어나는 성지, 봉로궁은 기린을 위해 존재하고ㅡ 그곳에 사는 여선도 또한 기린을 위해 존재한다. 기린은 봉산의 주인이다. 그러므로, 봉산공(蓬山公)이라 부른다.
 테이에이는 끄덕였다.
 「기린을 맡는 책임은 무겁지. 하지만 그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어. 태과(泰果)가 깨어나면 요우카도 시중을 도와주시게.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테이에이의 말에 요우카는 눈을 빛냈다.
 「제가 돌볼 수 있는 건가요? 정말로?」
 사실, 요우카는 조금 불만이었다.
 봉산의 여선들의 임무는 기린을 모시는 것으로, 그 이외의 일은 잡용에 지나지 않는다. 봉산에는 지금 어린 기린이 있지만, 요우카는 너무나 신참이기 때문에 그 기린에게 관여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테이에이는 웃었다.
 「우선, 길을 외우지 않으면.」
 「예.」
 요우카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신목에는 바로 며칠전 기린의 열매가 하나, 열렸다. 태과라 불리는 열매였다.
 요우카는, 지금은 아직 자그마한 과실을 생각한다.
 태과가 익어 기린이 깨어날 때까지는 열 달. 막 태어난 기린은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작은 기린의 곁에서 돌보며 시중을 든다. 그것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또 어디에선가 양귀비 꽃잎이 날아와, 샘의 수면에 춤추며 떨어졌다.
 
- 3 -
 「양귀비인가.」
 갑자기 말을 걸어와, 테이에이는 꽃잎을 건지던 손을 멈췄다. 등뒤를 돌아보자, 해동천 근처의 해동궁이라고 불리는 건물에서 한 여자가 나오는 참이었다.
 요우카는 여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나이는 짐작할 수 없다. 젊은 듯 하면서, 이미 중년이 넘은 듯도 했다. 입고 있는 것도, 몸에 착용한 장신구도, 여선이 걸치는 것과는 수준이 다르다. 신분이 높은 여자라는 것은 상상할 수 있지만.
 「--현군.」
 테이에이가 당황하며 그 자리에 엎드려, 요우카도 놀라며 그에 따랐다.
 나타난 것은 봉로궁에 사는 여선의 장, 천선옥녀(天仙玉女) 벽하현군(碧霞玄君)--교크요(玉葉)였던 것이다.
 「앵속원의 꽃이 바람을 타고 온 것이옵니다.」
 테이에이가 답하자, 교크요는 맑은 얼굴을 기암 사이의 하늘로 향했다.
 「묘한 바람이 부는구나.」
 「예.」
 교크요는 조금, 가는 눈썹을 좁히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지만, 곧 시선을 내려뜨려 요우카를 향했다.
 「요우카라고 했던가. --봉산은 익숙해졌는지?」
 요우카는 말을 걸어오자 낭패해 버렸다.
 아직 하계에 있을 때, 교크요는 전설 속에밖에 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정도로 거리가 있는 여신인 것이다. 말 그대로 구름 위의 인간과 만나서 말까지 걸어오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예.」
 「아직 길은 헤맵니다만.」
 테이에이가 웃음을 머금으며 말하자, 요우카는 새빨갛게 되었다.
 교크요는 소리내어 맑게 웃었다.
 「그건 신참의 숙명이지. 그렇게 말하는 테이에이도 옛날에는 꽤나 헤맸을 정도니. 곧 익숙해질 것이네.」
 요우카가 언뜻 테이에이를 바라보자, 테이에이는 거리낌없이 웃고 있다.
 「정말로. --저보다도 훨씬 기억력이 좋습니다. 수고를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해줍니다.」
 교크요는 웃었다.
 「그거, 대단하구나.」
 요우카는 더욱 얼굴을 붉혔다.
 「마, 말도 안됩니다. 아직도 야단만 들을 뿐이고---」
 「익숙해질 때까지는 야단듣는 것도 숙명인게야. 낙심하지 말도록.」
 「--예.」
 깊게 고개를 숙여 이마를 땅에 대는 요우카를 보며 교크요는 미소지었다. 마찬가지로 미소지으며 젊은 여선을 바라보는 테이에이에게 눈을 돌렸다.
 「그런데, 대(戴)의 여괴가 깨어났다던가.」
 「그렇사옵니다.」
 교크요는 보통 봉로궁에는 없다. 문득 어디에선가 나타난다. 평상시에는 어디에 있고,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테이에이는 알지 못했다. 이상하게 생각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일개 여선이 탐색할만한 일이 아니다.
 「이름은?」
 「산시입니다.」
 「그, 산시는 어디에?」
 「사신목 아래에. 한순간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테이에이가 말하자, 교크요는 활짝 웃었다.
 「언제나 그렇기는 하지만, 여괴는 정이 깊은 것이니라.」
 테이에이도 또한 웃었다.
 기린에게는 부모가 없다. 부모의 대신을 맡는 것이 여괴로, 이것은 사신목의 뿌리에 열린다. 기린의 열매가 가지에 열리면 하룻밤에 깨어나, 그 뒤부터 열 달간 기린이 깨어날 때까지 가지 아래에서 익어가는 과실을 지켜보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쪽이라고?」
 여괴만이 이제 태어날 기린의 성별을 알고 있다.
 「타이키인 듯 하옵니다.」
 「그런가.」
 수컷은 기(騏), 암컷은 린(麟), 국성을 붙여 호로 삼는 것이 예로부터의 법칙이다. 현재, 사신목에 열려있는 것은 대국의 기, 국성은 「태(泰)」, 그러므로 「타이키(泰騏)」라 불리운다.
 교크요는 한번 끄덕이고서, 사신목으로 이르는 길을 올라갔다. 테이에이와 요우카가 그를 전송하며 깊게 고개를 숙일 때였다.
 돌연, 대기가 진동했다.
 휘말리는 듯한 기세로 돌풍이 샛길을 지나갔다.
 소리를 낼 틈도 없이, 테이에이는 그대로 쓰러졌다. 마찬가지로 쓰러진 요우카가 비명을 질렀다.
 땅이 흔들린다. 땅의 울림은 기암에 울리며, 미궁이 기분나쁜 포효를 울렸다.
 「무슨.....」
 요우카의 낭패한 목소리에, 테이에이는 답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단순한 태풍도 지진도 아니다. 단순히 그런 것일 뿐이라면, 분명히 팔괘에 예언이 있었을 터이다. 우선, 단순한 천변지이라면, 천신여신의 힘에 의해 몇겹으로 보호되고 있는 이 봉산에 일어날 리가 없다.
 「현군, 어서 궁 안으로.」
 어쨌거나 수장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으면, 이라고 생각하며 테이에이가 돌바닥에 손톱을 세우며 간신히 얼굴을 들자, 교크요는 하늘을 우러르며 못박힌 듯이 서있었다.
 어느틈엔가 하늘이 새빨갛게 변해있다. 붉은 비단을 몇 겹이고 늘어뜨린 것처럼, 붉은 기운이 흔들거리며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식(蝕)인가.........!!!」
 교크요는 땅울림이 계속되는 대지에는 상관치 않고, 하늘에 춤추는 극광을 노려보았다.
 그 돌풍에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과연 여신인 것이라고 말해야 할까. 그럼에도 테이에이에게는 그에 감탄하고 있을만한 여유가 없었다.
 「식--」
 대기가 비틀리며, 몸부림치고 흔들리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때마다 머리 위에서 붉은 기운이 불온하게 꿈틀거렸다.
 붉은 기운의 틈으로 희미하게, 신기루처럼 뭔가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것은 바다 저편에 길게 펼쳐진 대지의 환상이었다.
 「그런----」
 이 세계의 것이 아닌 토지가, 접근해오려 하고 있다.
 가늘고 가련한 해동화 꽃이, 돌풍에 휘말려 떨어지며 돌팔매처럼 테이에이에게 쏟아졌다.
 「아아-----태과가 있는데....!!!!!!!」
 
- 4 -
 하얀 가지 아래에 몸을 엎드린 채, 축축한 이끼가 피부를 간지럽히는 것을 느끼며 산시는 멍하니 가지의 열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타이키가 들어있는 열매는 열 달이면 익는다.
 열 달 후에는, 저 태과에서 산시의 주인인 기린이 깨어나는 것이다. 익은 열매를 따는 그 순간을 생각하면, 산시의 몸은 뜨거운 눈물로 가득찬다.
 기쁘게, 자랑스럽게, 흘러넘치는 감정들로 가득차 광택이 나는 금색의 열매를 올려다보고 있을 때, 돌연 그것이 덮쳐왔다.
 산시는 처음에, 무엇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대기가 비틀린다. 거칠게 파도치며 부서져 간다. 천을 끄는 것처럼 붉은 기운이 하늘에서 춤추기 시작한다. 온몸이 떨려오는 공포를 느끼고, 간신히 「식(蝕)」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벌떡 일어난 산시의 발을 돌풍이 휩쓸었다. 절대로 바람에 흔들릴 리가 없는 하얀 가지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비명을 지르며 산시는 가지에 매달렸다. 가지를 붙잡고 바람을 거슬러가며 몸을 일으키자, 바람에 뒤엉킨 가지에 엉켜버린 머리카락이 뽑혀나갔다. 그런 고통에 마음을 쓸 여유는 없다. 지키지 않으면, 절박한 마음으로 올려다본 시선의 끝에서 공기가 비틀렸다.
 「....타이키!」
 불어닥치는 바람이 온몸을 때렸다. 비틀어지며 구부러진 대기가 더욱 왜곡되며, 그것이 가지를 삼키는 것이 보였다.
 「그만........!」
 작은 금색의 열매가 왜곡된 틈에 말려들어 간다. 열 달 뒤, 산시가 자신의 손으로 딸 때까지는 절대로 가지에서 떨어질 리가 없는 열매가, 가지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누가!!!」
 가지에 쓸려 피투성이가 된 팔이 열매를 쫓는다. 손끝과 금색의 열매 사이는 절망적일 정도로 멀었다.
 「누가, 멈춰줘-------!!!!」
 산시의 외침은, 온 힘을 다해 뻗은 손끝에서 끊겼다.
 금색의 열매는 왜곡된 틈 사이로 그 모습을 감추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타이키를 부르는, 그 외에 발한 최초의 소리는 비명이었다. 허무할 뿐인 비명이었던 것이다.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그것은 끝났다.
 산시는 망연하게 하얀 가지를 올려다보았다.
 거기에는 이미 금빛은 보이지 않았다.단 한 개 뿐이던 과실은 사라져버렸다.
 「산시....!」
 사방에서 목소리가 울리며, 많은 여선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가정 먼저 산시의 곁에 달려온 것은 교크요였다.
 「아아......산시.....」
 산시는 그녀가 내민 따뜻한 손에 매달렸다.
 처음엔 이름을. 그리고, 비명과 외침을. 그리고 산시의 목에서 흘러나온 것은 오열이었다.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교크요는 막 깨어난 여괴를 끌어안았다. 무참하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상처투성이가 된 온몸을 쓰다듬었다.
 「하필이면 기린이 열린 때에.」
 팔 안의 여괴는 절규하고 있었다. 열 달 내내 나무 아래에서 떠나지 않을 정도로, 여괴의 기린에 대한 사랑은 깊다. 그런 기린을 눈앞에서 잃은 아픔은, 상상하고도 남았다.
 「괜찮다.」
 여괴의 등을 두드렸다.
 「그렇게 울지 말거라, 산시. ...반드시 기린을 찾아내겠다.」
 중얼거리며, 스스로에게 들려주듯 되풀이한다.
 「가능한 빨리, 그대의 품에 타이키를 돌려줄 수 있도록.」
 「현군.......」
 말을 걸어온 테이에이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모든 나라에 주작을 날려, 지급히 식의 방향을 조사하라.」
 「알겠습니다.」
 「달이 뜰 때까지, 급히. 여선을 모아 문을 열 준비를 하라.」
 「예, 즉시.」
 여선이 뿔뿔히 흩어져 간다. 교크요는 허탈하게 시선을 올렸다.
 몇 번이고 둘러보아도, 하얀 가지에 금색의 열매는 보이지 않았다.
 
 식은 황해의 서편에서 일어나,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지켜지는 오산의, 더욱 수호를 받는 봉로궁의 꽃은 한송이도 남기지 않고 떨어졌다. 식이 통과한 모든 나라에서는 심각한 피해가 보고되었으나, 봉산의 여선들에게 있어서는 그런 것들은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기린일 뿐이었다.
 --문제는, 식의 왜곡 사이로 삼켜진 과실이 어디로 가버렸는가 하는 것이었다.
 식은 이 세계와,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은 세계를 잇는다. 이 세계의 바깥을 봉래라 부르며, 곤륜이라 부른다. 한쪽은 세계의 끝에, 또 한쪽은 세계의 그늘에 위치한다고 전해진다.
 그 진위는 어쨌건간에, 그곳은 사람은 갈 수도 볼 수도 없는 이계인 것이다. 식과, 달의 주력을 이용해서 열리는 오강(吳剛)의 문만이 그 두 세계를 연결할 수 있다.
 세계는 허해라 불리우는 바다에 싸여있다. 동으로 흘러간 식이라면, 태과는 허해를 건너 세계의 끝--봉래에 흘러간 것이겠지.
 사람으로는 선너갈 수 없는 세계이지만, 여선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교크요의 지시 하에, 많은 여선이 허해에 열린 문을 넘어 태과를 찾으러 갔지만, 태과의 행방은 조금도 알아낼 수 없었다.
 --기린을, 잃어버린 것인가.
 
 그 날로부터 오랫동안, 봉산의 동쪽, 황해의 동쪽을 떠도는 산시의 모습이 목격되었다.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上) 2장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상)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2 장
 
- 1 -
 요우카는 진주화(珍珠花)의 길을 빠져나왔을 때, 산시를 만났다.
 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작고 둥근 광장은, 부드러운 녹색의 풀로 덮여있었다. 주변의 기암의 사면에는, 매달린 것처럼 진주화가 피어있다. 길 위에 피어있는 한 그루는 하얀 꽃가지를 주렴처럼 늘어뜨리며 출구에 피어 있었다.
 그 꽃의 주렴을 살짝 젖혔을 때, 요우카는 사면을 내려오는 산시를 발견한 것이다.
 요우카는 해동천의 물이 들어있는 물통을 발치에 내려놓았다.
 인마는 다닐 수 없는 기암 위를, 여괴는 가볍게 달려간다. 사면 위에서 산시가 내려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지만, 정작 그 산시의 모습을 보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산시, 어서 와.」
 여괴는 미로를 넘어 동쪽을 떠돌아다닌다. 일단 나가면, 길면 한 달 정도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무엇을 위한 여행인지는, 봉로궁의 여선들 모두가 알고 있다. 지쳐버릴 정도로 떠돌아다니다가, 여괴는 극도로 지친 얼굴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마침 잘됐다. 물을 길어오던 참이니까, 거기 앉아.」
 요우카가 말하자 산시는 얌전히 표범모양의 다리를 접고, 진주화 아래에 새하얀 몸을 눕혔다.
 「이번에는 길었네. 황해 끝까지 갔던 거야?」
 가능하다면 황해를 지나 금강산을 넘어 더욱 동쪽까지 가고 싶지만, 어떠한 생물이라도 금강산을 넘을 수는 없다.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다.
 「자, 마셔.」
 물통을 입가에 대어주자, 산시는 얌전하게 물에 입을 대었다.
 한참동안 물을 마시고 얼굴을 들자, 물통을 내리고 소매에서 꺼낸 천을 물에 담그었다. 가볍게 물을 짜내고, 다리에 대어주었다. 천을 대어주는 손으로도 그 다리에 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아, 이렇게 부어서.」
 천으로 발톱 끝을 감싸듯이 해주자, 산시는 동그란 눈을 감았다. 머리를 진주화 더미에 가볍게 기대이자, 그 무게로 눈처럼 꽃잎이 떨어졌다.
 여기에 있던 진주화는 한 번 뿌리째 뽑혔었다. 단 한 그루도 남지 않았었다.
 --이미 십 년 전의 일이다.
 「기분 좋아? 너무 멀리 나가지 말아.」
 산시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랬던 일이기에 요우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큰 식이 있었다. 그나마 오산에서는 지형이 변하는 일은 없었지만, 오산 바깥에서는 지형이 크게 변했다. --그리고 하얀 나무의 열매는 떨어져 버렸다.
 여괴는 비명을 지르며 오열했고, 그 이후 산시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다.
 요우카는 네 다리를 정성스럽게 식히면서 닦아주었다.
 「아직 아프지? 냇물에 가서 식히고 와.」
 그렇게 말하고는, 완전히 미지근해진 물을 그곳에 부어버리자, 산시는 일어서서 걸어갔다.
 산시가 터벅터벅 걸어가는 쪽에는 냇가가 없다. 그녀는 하얀 나무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요우카는 그것을 알 수 있었지만, 굳이 불러 세우지는 않았다.
 요우카도 산시의 기분을 잘 알 수 있다.
 기린의 나무에 작은 열매가 달리고, 그것이 깨어나면 시중을 들어주는 것을 허락 받았다.
 하계에서는 인간이 기린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승선해서 봉산으로 불려 올라와 처음으로 요우카에게 내려진 책임 있는 임무였어야 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보는 기린이어야 했다.
 그 열매는 쓸려가, 기린을 위해 준비된 요우카의 양손은 허공을 쥐었다. 산시가 먹여 기를 대상을 잃어버린 유방이--사람의 형태를 한 상체의 가슴에는 어린 소녀처럼 조금 부푼 흔적밖에 없다. 유방은 표범의 형태를 한 하체 쪽에 있었다--불어 오른 것처럼, 요우카의 가슴속에도 또한 갈 곳을 잃은 아픔이 남아있었다.
 과실이 쓸려간지 십 년. 어느 여선도, 이제 타이키가 돌아올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한다. 분명히 곧 새로운 태과가 사신목에 열릴 거라고. 그것은 잃어버린 기린이 이계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그렇게 말한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산시가 지금껏 동쪽을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요우카 역시 타이키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무사를 기원하며, 자잘한 물건을 준비하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기린에 대해서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공부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산시의 기분은 아플 정도로 잘 알 수 있었고, 산시 또한 여선들과는 깊이 관계하지 않으면서도 요우카에게만은 친밀하게 대해 주었다.
 발을 끌 듯이 하며 떠나는 하얀 등을 전송하고서, 요우카는 물통을 안아 올렸다.
 물을 다시 긷기 위해 발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진주화의 가지들을 헤치고 길에서 여선 한 명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쪽에 산시가 오지 않았었나?」
 요우카는 방금 산시가 돌아간 갈림길 쪽을 바라보았다. 이미 산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나무쪽으로 갔는데요.」
 「당장 쫓아가 주지 않겠어?」
 「저는, 물을.」
 「현군의 부르심이다.」
 요우카는 눈을 크게 떴다.
 「타이키의 행방을 찾았어.」
 
- 2 -
 요우카는 산시를 쫓아, 교크요가 기다리는 백구궁(白龜宮)으로 향하게 했다.
 봉로궁의 건물은, 어느 것이나 정자, 혹은 암자 같은 주거로 되어있다. 바람이라면 기암이 막아준다. 게다가 원래부터 기후가 좋은 산, 더위나 추위와는 인연이 없다. 그저 비와 이슬을 가릴 수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요우카는 샛길을 달려, 흰 돌계단을 대여섯단씩 뛰어오르며 마찬가지로 흰 돌이 깔린 궁의 마루에 달려들어갔다. 마침 테이에이도 궁 안으로 달려오는 참이었다.
 「산시를 데리고 왔습니다.」
 요우카는 그 넓은 팔각형의 마루 위에 엎드렸다. 의자에 앉아, 등뒤의 난간에 기대어있던 교크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우카의 곁에 엎드린 테이에이가 얼굴을 들었다.
 「죄송합니다만, 태과가 발견되었다고.」
 「안(雁)의 기린이 발견해주었다.」
 「그럼, 정말로 타이키가 발견된 것입니까?」
 그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봉산의 어느 여선도, 이미 포기하고 있었다. 봉산의 역사상, 10년이나 지나서 돌아온 기린의 예는 없었다. 과거, 봉래에 쓸려갔던 기린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길었어도 5년 정도면 발견되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은 테이에이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파격적인 숫자였다.
 「아마도. .....일단 저쪽에 건너가서 태과(胎果)가 되면 모습이 변하지만, 기린에게는 기린의 기척이 보인다고 하지. 그래서 제국의 기린에게 부탁해서 허해를 건너 타이키를 찾아달라고 부탁해두었지만, 오늘 겨우 대답이 있었다.」
 식에 쓸려간 과실은, 이국의 여성의 태내에 정착한다. 그것을 태과(胎果)라고 칭한다.
 「연 타이호(延臺輔)이십니까?」
 교크요는 유리를 깎아 만든 부채를 입가에 대며 웃었다.
 「연 타이호는 때때로 허해를 건너 다니는 모양이야. 만일 찾는다면 연 타이호일거라 생각했었지만, 역시나 그렇게 되었네.」
 기린이 자주 먼 곳으로 나다니는 것은 칭찬 받을만한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뭐라 비난할 수도 없는 것이리라.
 「봉래에서 기린을 발견했다고 하네. 지금 소재가 명확하지 않은 기린은 타이키뿐이니, 타이키임에 틀림없겠지.」
 「.........예.」
 그렇다면 정말로 기린이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면, 당장 여선을 모아서---」
 말을 꺼내는 테이에이를 교크요가 제지했다.
 「되었다.」
 「하오나.」
 교크요는 고개를 돌리고, 테이에이와 요우카의 등뒤에 멍하니 서있는 산시를 향했다. 부채를 책상 위에 놓고서, 똑바로 양손을 뻗는다.
 「......산시. 이리로.」
 산시는 천천히 교크요의 가까이로 걸어갔다.
 「반드시 찾아주겠다고 말한 것은, 거짓이 아니었지?」
 교크요는 산시의 손을 잡았다.
 「조금 늦어버렸지만, 용서해주게.」
  그렇게 말하며 산시의 손을 두드렸다.
 「사신목의 뿌리에 문이 있다. 가서, 이번에야말로 그 손으로 따오는 거야.」
 산시의 동그란 눈에 점점 눈물이 고였지만, 그녀는 울지 않았다. 즉시 몸을 돌려 그대로 달려나갔다.
 교크요는 질주해 가는 하얀 여괴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백구궁을 뛰어나가는 산시가 샛길을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테이에이를 향해 밝게 웃었다.
 「겨우 봉산에 축제의 계절이 오겠구나.」
 
 산시는 달렸다. 태어난 이래, 자신의 보금자리로 정해진 나무 뿌리로 달려가자 굵은 기둥의 곁에 한 사람의 젊은 여성이 서서 그 발치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둥글고 하얀빛을 뿜고 있는 장소가 있다.
 이미 여선들이 모여있었다. 지켜보고 있는 그녀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산시는 똑바로 여자를 향해 달려갔다.
 사신목은 벼랑의 위, 거대한 바위 위에 서있다. 잔뜩 이끼가 덮인 바위의, 나무 뿌리에서 한 발 정도 떨어진 곳에 여자는 서있었다.
 발치에는 은빛의 고리가 떨어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것은 단순한 고리가 아닌, 한 마리의 뱀이었다. 백은의 비늘을 가진 꼬리 두 개의 뱀이 둥글게 몸을 돌리고, 한 쪽의 꼬리를 물고서 원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뱀이 만드는 원의 안은 엷게 빛나고 있다. 동그란 빛이 그리로 쏟아지는 것으로도, 이끼 아래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도 보였다.
 산시가 발을 멈추자, 그녀는 미소지으며 우미한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왼손에는 뱀의 한 쪽 꼬리가 감겨 있었다.
 「산시, 로군요.」
 산시는 그녀를 보고, 뱀이 만드는 빛의 고리를 훔쳐보았다, 양손을 벌린 정도의 고리 저편은 하얀 어둠이었다. 옅은 빛의 길이 이어져 있는 바닥에, 둥근 구멍이 뻥 뚫려있었다. 뚫린 구멍 사이로 보이는 것은 낯선 양식의 건물과 정원 같은 공간과, 금색의 둥근 빛뿐이었지만 산시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타이키.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빛이 타이키인지 아닌지만은 착각하지 않는다.
 「들어가세요. 단, 절대로 제 손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말한 여자는 산시가 아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녀의 손을 쥐고, 산시는 빛 속으로 들어갔다. 차디찬 공기가 불어왔다. 길의 출구에는 진주화의 꽃봉오리가 피어있는 것처럼, 하얗고 차가운 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빛 속에 최후의 발까지 들이자, 둥실 하고 떠오르는 느낌이 들면서 위아래의 감각이 소멸되었다. 공중을 떠도는 듯이 길의 출구를 향해 한 발을 내딛은 산시의 등뒤에, 여자가 따라서 내려왔다.
 「자. 나아갈 수 있는 데까지 가세요.」
 산시는 걷기 시작했다. 출구를 향해, 산시가 나아갈 수 있는 한 끝까지 걸어나가 팔을 뻗었다.
 시계 가득히 펼쳐져 있는 풍경은, 하얗고 차가운 꽃들이 춤추는 검은 공기 속에 금색의 둥근 빛이 떠있었다. 단지 그것만이 보였다.
 빛은 잘 보면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산시의 눈에는 그것이 한 개의 과실처럼 비춰졌다. 본래대로라면 10년도 전에 산시가 하얀 가지에서 땄어야 했을 과실. 가슴에 안을 정도의 크기로, 윤이 나는 금빛으로---.
 산시의 손가락은 힘껏 뻗어있지만, 금색의 과실에는 닿지 않는다. 여자의 손을 쥔 속에 힘을 더하며, 상체를 뻗고 손을 휘저으며 차가운 공기를 헤집자 과실 쪽에서 산시의 손에 닿는 곳으로 흘러왔다.
 --얼마나 이 순간을 꿈꿔왔던가.
 산시는 손끝에 닿은 그 과실을 꽉 붙잡았다.
 가까이로 잡아당기자, 그 과실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산시의 품속으로 쓸려들어 왔다.
 
- 3 -
 그가 하얀 손의, 바로 근처까지 걸어가자 하얀 손은 망설임 없이 그의 손목을 쥐었다.
 차가운 피부에, 그 손의 촉감은 굉장히 따뜻했다.
 창고와 토벽 사이의 좁은 공간에 어떻게 사람이 숨어있는 것인지,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었지만 근처까지 간 순간 주변의 풍경이 명확하지 않게 되었다. 마치 눈동자에 수막(水膜)이 쓰여지기라도 한 것처럼, 풍경이 흐릿하게 물들면서 모든 것의 윤곽이 사라져버렸다.
 무심결에 주변을 더듬으려 뻗은 손목을 붙잡히자, 갑자기 몸이 떠오르는 감각이 들면서 스르륵 어딘 가로 빨려들어 갔다.
 빨려 들어간 곳은 새하얀 공간이었다. 색이 없는 안개 같은 것이 짙게 차있고, 어떤 곳인지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왜인지 하늘하늘한 구형(球形)의 장소로 느껴졌다.
 그곳은 훨씬 따뜻했고, 더욱 따뜻한 바람이 어디에선가 불러오고 있었다.
 발치에는 딱딱한 바닥의 느낌이 없었다. 그런가 하면 부드러운 것을 밟고 발을 지탱하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구름 위에 선다면 이런 느낌이 들까, 라고 생각했다.
 아주 가까이에서 인기척이 나면서 누군가가 그의 손을 꽉 잡아왔지만, 기분 탓인지도 모른다.
 잠시 멍하니 있자, 그의 손목을 쥔 손이 그를 어디론가 끌었다. 이상하게도 무서운 기분은 들지 않았기에, 얌전하게 손을 끄는 대로 맡겨두었다.
 아주 짧은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하늘하늘하게 잡아 끌리며, 이윽고 수면에 얼굴을 내는 것처럼 갑작스럽게 바깥으로 나왔다.
 돌연 햇빛을 받게 되어, 그는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눈앞에 있는 것은, 본 적도 없는 나무의 새하얀 기둥이었다. 그것은 마치 순백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기둥은 굵고, 그럼에도 그다지 높지 않아 하얀 가지는 크게 가로로 뻗어서 가지 끝을 늘어뜨리고 있다.
 그 가지의 저편에는 기묘한 풍경이 보였다. 녹색을 한 이상한 모양의 바위가 연이어 있다. 멀리 모여있는, 익숙하지 않은 차림의 여자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기묘했던 것은, 그의 손을 쥔 여자의 모습이었다.
 여자는 반은 인간으로, 반은 호랑이나 표범처럼 보였다. 얼굴은 묘하게 미끈거리며, 동그란 눈이 감정의 표현이 없는 색을 띄며 열려있다. 무서워할 법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무섭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다정한 눈이라고 생각했다.
 「......타이키.」
 반인반수의 여인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단어인지, 그로서는 알 수 없었고, 하물며 그것이 그녀가 십 년 만에 입에 담은 말이라는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타이키.」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머리를 쓰다듬고, 동시에 동그란 눈에서 눈물이 흘러 넘쳤다,
 그는 왠지, 언제나 어머니에게 하듯이 손을 쥐고서 그 얼굴을 훔쳐보았다.
 「슬픈 일이 있었어?」
 그가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요, 라고 말한다기보다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는 듯한 몸짓이 어머니의 그것과 매우 비슷했다.
 「.......타이키? 그 아이가?」
 목소리가 들려와, 그는 간신히 나무 주위에서 기묘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그러는 걸까, 라고 생각하고 있자 한 사람의 여자가 다가왔다.
 「.......진귀한 일이로고.」
 「누구?」
 여자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는 교크요라 합니다. ........이런 머리카락을 보는 것은 몇 백년 만인지.」
 그녀는 그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흑기린이다. 정말로, 진귀한 일이로고.」
 「뭔가, 이상한가요?」
 그는 눈앞에 있는 여자에게가 아니라, 자신의 손을 쥐고 있는 반인반수의 여자 쪽을 향해 올려다보았다. 이미 그의 속에서, 이 여자 쪽이 자신이 의지해야할 존재라는 것을 이유는 모르지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말없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물론, 이상하지 않고 말고. 경사로운 일이오.」
 눈앞의 여자는 말한다.
 「저쪽에서 태어났다면 이름이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타이키라 부르겠소.」
 「타이키? 왜요?」
 「그렇게 정해져있으니까, 이지요.」
 「여기는 어디에요? 저는 마당에 있었을 텐데요.」
 그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하게 동요할 정도로 자란 것도 아니었다.
 「이 곳은 봉산. 타이키가 있었어야 할 장소.」
 「잘...모르겠어요.」
 「곧 알게되겠지요. --이것은, 산시. 하쿠 산시라 하오. 그대를 돌봐줄 것이오.」
 그는 곁의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산시......」
 그리고서 교크요는, 시선을 옆으로 향했다.
 「이쪽은, 염 타이호(廉臺輔).」
 하얀 나무의 기둥 곁에, 금발의 여자가 서있었다. 그가 교크요의 시선을 따라 그녀를 보자, 마침 하얀 뱀이 스르륵 팔에 감기며, 은색의 팔찌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뱀에게는 두 개의 꼬리가 있고, 그것이 팔찌에 은색의 사슬로 이어진 반지로 변하는 것처럼도 보였지만 당황하고 있었으므로 확실한 것은 아니다.
 「감사를 표하시게. 타이키를 맞으러 산시를 보내기 위해, 귀중한 보물을 빌려주셨으니까.」
 그는 온화하게 미소짓는 여자를 올려다보고, 또다시 산시에게 눈을 돌렸다. 산시가 고개를 끄덕였기에, 시키는 대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저 미소짓고 있었다. 그것을 만족스러운 듯이 바라보다가 갑자기 교크요가 일어섰다. 발을 돌려, 떠나가려 한다.
 「저.....교크요......상.」
 「타이키. 사마, 입니다.」
 그는 산시를 올려다보았다.
 「....사마,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산시의 말은 이상하리 만치 망설여지지 않았다. 타이키, 라는 귀에 익숙하지 않은 단어로 불리워도, 산시의 입에서 나오면 자신의 이름이라는 것을 완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교크요사마, ......여러 가지 것들이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드는데요.」
 그로서는 자신의 곤혹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교크요는 그저 웃고 있었다.
 「곧 익숙해질 것이니, 차차 산시에게 물어보시게.」
 그는 산시를 올려다보았다. 산시는 미소지었다. --표정이 적은 얼굴이라서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미소짓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네.」
 그가 산시의 손을 꽉 쥐자, 그 이상으로 강하게 대답이 돌아왔다.
 
- 4 -
 「----산시, 산시. 그 아이를 잘 보여줘.」
 「이쪽으로 오시지요, 타이키. 옷을 드리겠습니다.」
 「옷보다 물을. 그보다 복숭아가 좋을까.」
 「자두건 배건.」
 교크요가 팔찌의 여자와 함께 그 곳을 떠나자마자, 여선들에게 휩싸여서 타이키는 당황해버렸다.
 여선들의 웃는 얼굴을 보면 환영받고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어쨌거나 상황이 보통이 아니다. 산시의 손을 꽉 쥐고서, 팔에 매달리듯이 하자 여선들이 요란스럽게 떠들었다.
 「어머나, 그렇게 산시만 찾지 말아요.」
 「산시도 혼자 차지하면 안 돼.」
 「타이키, 이쪽으로 오시지요.」
 보다못한 테이에이가 여선들에게 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난리 쳐서는, 타이키도 곤란하겠지. 조금은 삼가고, 산시에게 맡겨두시게나.」
 그렇게 말하고 테이에이는 곁에 서있는 요우카를 돌아보았다.
 「궁에 모시고 가게. 로천궁(露艸+西宮)이 좋겠지.」
 테이에이는 이 젊은 여선이 계속 타이키를 위해서 그 궁의 준비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요우카는 감격한 표정으로 테이에이를 바라보다가, 깊게 고개를 숙였다.
 요우카는 천천히 아이의 앞에 나아갔다.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춘다. 타이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잘 돌아오셨습니다. 마음속 깊이 축하드립니다.」
 타이키는 자신을 지키듯이 어깨에 둘려졌던 산시의 팔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부드럽게 등을 밀어져, 무릎을 꿇은 여자와 마주했다.
 「당신은, 누구세요?」
 「요우카라 하옵니다.」
 「요우카사마는.....」
 말을 꺼낸 순간, 주변의 여자들이 갑자기 웃었다. 요우카도 또한 웃음을 띄웠다.
 「요우카, 라고 불러주십시오. 타이키께서 사마라고 부르는 것은, 현군만으로 족합니다.」
 「현군?」
 「교크요사마 말입니다.」
 타이키가 산시를 올려다보자, 산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타이키도 납득했다.
 「그럼, 요우카. --요우카는 어떤 사람이에요? 왜 저는, 돌아온 게 되는 거죠?」
 「저는 이 봉산에 사는 여선이옵니다. 그리고 타이키는, 이 봉산의 주인. 타이키는 여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타이키는 눈을 크게 떴다. 한동안 요우카를 바라보았다.
 「.....여기에서 태어났다고.......?」
 「예.」
 요우카는 끄덕였다.
 「말하자면, 이곳이 타이키의 집인 것입니다.」
 「하지만.....」
 말을 꺼내려는 타이키를, 요우카는 고개를 저으며 제지했다.
 「타이키는 계속 행방불명이셨습니다. 천변지이에 휩쓸려, 이국으로 쓸려가 버리신 것입니다. 정말로.....오랫동안 찾았사옵니다.」
 그리고서 요우카는 기쁜 듯한, 간절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오랫동안 걱정했습니다. 겨우 돌아오시게 된 것만으로, 이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잘 돌아오셨습니다.」
 타이키는 가만히 요우카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러면 나는, 우리 집 아이가 아니었던 거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가슴속으로 꽂혔다.
 할머니가 자신을 싫어했던 이유도, 자신이 어딘지 이상하고, 그 때문에 주위에서 왠지 껄끄럽게 대했던 이유도, 이 한마디로 모두 설명되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그는 가족과 잘 지내는 것이 불가능한 아이였다. 그 자신은 잘 지내고 싶다고 언제나 바라고 있었고 그럴 생각으로 행동해왔지만, 그럼에도 그와 가족의 사이에는 어떻게 해도 메울 수 없는 골이 존재했다.
 같은 연령의 아이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그도 자신이 주워온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 적은 많았다. --그리고, 그것은 역시 사실이었던 것이다.
 「.....혹시, 산시가 내 진짜 엄마야?」
 산시와 요우카를 번갈아 바라보았지만, 두 사람은 함께 고개를 가로 저었다.
 「산시는 타이키의 종입니다. 타이키의 시중을 들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저는 단순한 여선, 타이키가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자잘한 일들을 하는 것이 임무입니다.」
 「그럼, 내 진짜 엄마는 어디에 있는 거에요.....?」
 요우카는 머리 위의 가지를 올려다보았다.
 「타이키는 이 나무에 열린 열매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천제가 은혜를 내리신 것입니다.」
 타이키는 하얀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백은의 가지에는 열매는 물론, 꽃도 잎사귀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아직 생명의 탄생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요우카의 그 말에도 큰 저항을 느끼지 않았다.
 분명--이라고 타이키는 생각했다--계절이 되면 이 가지 가득히 빨간 열매가 열리겠지. 아마도 커다란 열매에, 그것을 가르자 그 안에 자신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왠지 기묘한 탄생이라고 생각되었지만, 그는 자신이 일종의 이단이라는 것을 이유 없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 역시 출생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납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였구나.)
 자신은 주워온 아이였으니까, 할머니에게 미움받고 어머니에게 부담을 주었던 것이다.
 나무열매에서 태어났으니까, 어떻게 해도 할머니와 양친이 기뻐하도록 행동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진짜 엄마아빠는 없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에게는 처음부터 부모가 없는 것이다.
 그 생각은 점점 가슴 안쪽에 가라앉아, 처음부터 있었던 확신처럼 그곳에 자리잡았다. 거짓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뭔가의 착각이라고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굉장히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요우카가 묻자, 입술을 꽉 다문 채 고개를 가로 저었다. 산시가 위로하듯이 팔을 감아왔기에, 있는 힘껏 산시의 몸에 매달렸다.
 --알아버렸어.
 (난 우리 집 아이가 아니었어.)
 많은 기억의 단편이 뇌리를 스쳤다. 화만 내던 할머니. 아버지의 질책. 그는 어떻게 해도, 두 사람의 기대에 부응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 때문에 할머니나 아버지와 언쟁하는 것이 끊이지 않았고, 언제나 최후에는 혼자서 숨어서 울고 있었다. 꾸중을 듣는 것은 동생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동생은 자신이 꾸중듣는 것이 그의 탓이라며 화를 내었다.
 --곤란합니다, 라고 젊은 교사는 말했다.
 그녀는 그를 곤란한 듯한 눈길로 보았다.
 (역시 이 나이에,  친구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깊게 주름진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왜 친구도 안 만드는기냐.)
 (어머님, 틀려요. 이 아이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거에요.)
 (그기야, 지 성격에 문제가 있으니께 그렇제. 왜 제대로, 친구들하고 잘 지내질 않는기야.)
 (형은 겁쟁이니까 안 끼워주는걸.)
 (느는 입 다물으라. 느는 느대로, 기도 약하고 괴롭힘만 당하고. 에미가 제대로 하질 않으니께 애들이 모두 이 모양인기라. 제대로 애 좀 키울 수 없겄냐.)
 (어머님, 하지만---)
 할머니의 질책은 결국 언제나 어머니를 향하면서 끝난다. 그리고 어머니는 혼자서 우는 것이다.
 (왜 넌, 그 모양이냐.)
 아버지가 한숨을 쉬시면, 뭐라고 대답해야 했었던 걸까
 (할머니한테 꾸중듣지 않도록, 좀 제대로 할 수 없겠니.)
 --죄송해요, 라고 사과하는 것밖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형 때문에, 또 나까지 꾸중들었잖아. 형이 할머니를 자꾸 화나게 하니까, 나까지 언제나 힘들다구.)
 --미안, 하고 사과만 할 뿐.
 그 나름대로 노력해보아도, 조금도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왜 잘 되지 않는 걸까,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존재가 가족 전부를 불쾌하게 만드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만 없다면 가족들은 원만하게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언제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그랬던 거야.)
 자신이라는 이질적인 존재가 있으니까.
 (난 우리 집에 있으면 안되었던 거야.)
 돌이켜보면 그곳은, 따뜻하기만 했던 장소같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굉장히 좋았다. 할머니와 동생이 그리웠다.
 그가 조금만 더 애썼더라면, 모든 것이 원만하게 되어 아무도 화내거나 울지 않고서도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고도 생각하지만.
 (하지만 이제, 난 두 번 다시 집에 돌아갈 수 없어.)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향수가 아니라, 애도의 눈물이었다.
 그는 이미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上) 3장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상)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3 장
 
- 1 -
 「일어나셨습니까....?」
 산시의 목소리가 들리고, 타이키는 눈을 비볐다. 깜짝 놀라 눈을 뜨고서, 한동안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얀 돌로 된 천장이었다. 유백색의 돌에는 무언가의 도안이 새겨져 있었다. 네 구석에는 새의 조각이 보이고, 풀과 꽃들이 복잡하게 얽히며 천장의 중앙에 있는 둥근 도안을 둘러싸고 있다. 색은 칠해져있지 않지만, 그 대신 여러 가지 색의 돌이 박혀있다.
 「저 새는 무슨 새?」
 손가락을 뻗어 사방에 새겨진 새 중 한 마리를 가리켰다.
 「글쎄요...........」
 곤란한 듯한 목소리에, 흐음, 하고 중얼거렸다. 새의 이름이 알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어제, 다 컸으면서 심하게 울어버렸던 것이 생각나서, 조금 어색했던 것뿐이었다.
 「지금, 몇 시?」
 마음을 다잡고, 산시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았다. 작은 방--이라고는 해도, 그의 공부방보다 조금 작은 정도일 뿐이다--의 마루 가득히 예쁜 색의 이불이 깔려있고, 세 방면의 벽에는 쿠션과도 베개와도 닮지 않은 것들이 놓여있었다. 하얀 돌로 만들어진 벽의 위쪽 반에는, 작은 돌을 박아 넣어 뭔가의 수목이 그려져 있었다.
 한 쪽만 벽이 없다. 그 대신에 천이 몇 겹이고 늘어져 있다. 지금은 천이 걷혀져 있고, 그곳에 산시의 모습이 있었다.
 산시는 곤란한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난,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되죠? 학교에 안가도 되나요?」
 타이키는 이미, 자신의 생활이 크게 변해버린 것을 이해하고 있다. 눈을 뜨고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한 뒤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는. 그런 생활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직감하고 있었다.
 「뭘 하면 되죠?」
 「아무것도.」
 그렇게 말하고, 산시는 고개를 저었다.
 「일어나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걸 보면 이대로 자고 있어도 일어나도, 어느 쪽이어도 상관없는 듯 하다. 그것이 얼마동안만 허락되는 특별한 상태인 것인지, 아니면 이 상태가 계속 이어지는 것인지, 그것은 알 수 없었지만.
 「일어날께요.」
 타이키는 작은방의 안쪽에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산시가 일어나고서, 그제야 이 작은 방이 마루에서 한 단 높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커튼의 저편에는, 조각이 새겨진 작은 문이 몇 개고 늘어서 있었다. 열려있는 부분에서, 그 저편의 다른 방이 보였다.
 타이키는 흥미 깊게 자신이 있는 작은 방을 보고, 저쪽 방을 비교했다. 어제는 나무 아래에서 부끄러울 정도로 울어버리고,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그래서 자신이 옮겨진 방이 어떤 방인지, 조금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은 방은 굉장히 침착해지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저편에 보이는 방도, 기분 좋아 보이는 방이었다. 저쪽 방에는 벽이 없는 듯 했지만, 그 대신에 흰 돌의 난간이 있고 그 바깥에는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에 이끼로 뒤덮인 바위가 벽처럼 서있었다. 암벽과 건물의 틈으로 들어온 빛이 방안까지 들어오는 것이 재미있었다.
 산시가 물병과 대야를 들고 작은 방 안으로 돌아왔다. 한 단 낮은 부분의, 한쪽에 있는 테이블에 그것을 놓고 타이키를 부른다. 데굴데굴 이불 위를 구르듯이 산시의 곁으로 다가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렇게 말하자, 산시는 미소지으며 타이키에게 이불 끝에 앉도록 지시했다. 얌전히 앉았다. 자신이 알몸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특별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산시도 요우카도 그밖에 여자들도, 타이키가 알고 있는 어떠한 옷과도 틀린 옷을 입고있었기에, 여기에서는 전과 같은 차림은 안 되는 거겠지, 라고 생각했다.
 알몸이어도 춥지 않다. 그렇다고 더운 것도 아니다. 여기는 지금 딱 기분 좋은 계절인 걸까.
 산시가 조금 이상한 방법으로, 얼굴을 씻겨주었다. 굉장히 작은 아이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부끄러웠지만,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대야를 가지고 나간 산시가, 이번에는 옷을 안고 돌아왔다. 그것은 할머니가 입는 기모노와 조금 비슷하게 생각되었다.
 옷을 입혀주는 사이에도, 산시는 계속 말이 없었다. 산시는 원래 말이 적다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다지 거북하지는 않다. 옷을 입히고, 손을 잡은 채 옆방으로 가자 방의 한가운데에는 아침 식사가 차려진 테이블이 있고 요우카가 그 곁에 서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요우카.」
 말을 걸자, 요우카는 기쁜 듯이 웃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푹 쉬셨는지요?」
 「네. --요우카가 아침을 만들어 준 거에요?」
 「아니요,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이 있습니다.」
 타이키는 놀랐다.
 「그럼 혹시, 청소를 하는 것도 맡은 사람이 있는 거에요?」
 「그렇사옵니다. --자, 식기 전에 식사를 드시지요.」
 마지 부잣집 아이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아이를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요우카에게 하얗고 긴 젓가락을 넘겨받고서, 그것을 손에 쥐었다.
 익숙하지 않은 요리를 둘러보고서, 요우카와 산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요우카랑 산시는 안 먹어요?」
 「산시는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저는 먼저 마쳤습니다.」
 「하지만, 난 혼자서 이렇게 많이 못 먹어요.」
 테이블 위에는 크고 작은 접시들이 몇 개고 늘어서 있다.
 「남기셔도 상관없습니다.」
 「혹시, 제가 늦잠 자버려서 모두 밥을 먹어버린 건가요?」
 요우카는 웃었다.
 「산시는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 생물이니까요. 설령 식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타이키와 함께 들 수 있는 신분이 아닙니다.」
 타이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분, 이라는 단어는 알고 있지만 납득하기가 어려운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같이 밥먹을 수 없나요? 늦잠자지 않아요?」
 「그렇사옵니다.」
 타이키는 곤란해져서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여기에서는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예?」
 타이키는 곁에 서있는 요우카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거, 이상한 거 같아요. ...........에에...그러니까....」
 머리를 짜내며 말을 찾는다.
 「늦잠을 잔 벌로 혼자서 먹는 거라면 참을 수 있지만. 혼자도 아닌데 혼자서 밥 먹는 거, 이상한 거 같아요. 분명히 같이 먹는 쪽이 맛있을 거에요.」
 어머나, 라고 중얼거리며 요우카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 한쪽에 있는 칸막이 저편에 말을 건다. 아마도 그 뒤쪽으로도 방이 있는 듯 했다.
 「--잠시 쉬고 이쪽으로 오세요. 타이키가 아침식사에 초대하십니다.」
 
- 2 -
 아침식사 뒤, 요우카는 바깥을 안내해 주었다.
 산시의 손을 잡고서 건물 밖으로 나간다. 타이키는 잠시 놀라 서있었다.
 건물에는 완전히 외벽이 없다. 출입구에도 칸막이가 세워져 있을 뿐, 문도 대문도 없었다. 세 단 뿐인 돌계단이 샛길을 향해 이어져 있고, 정원도 문도 없다. 돌계단의 앞은 조금 넓지만, 방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앞에 이런 기암의 벽면이 마주하고 있었다.
 기암은 높고, 쭉 우러러보지 않으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세 방향으로 뻗어있는 샛길이 기암에 싸여, 길이라기보다는 공터로 보였다. 빌딩 사이의 좁은 공터에 서있으면, 이런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등뒤를 돌아보자 지금 막 나온 건물만이 낮아, 정말로 빌딩 사이에 조용히 숨겨진 집처럼 보였다.
 「.........이상한 곳이네요.」
 타이키가 곰곰이 생각하다 중얼거리자, 요우카는 웃었다.
 「그렇사옵니까?」
 「이런걸 물으면 굉장히 이상하겠지만, 여기는 어디죠?」
 요우카는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는 봉산입니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기린은 어떻게 자신의 곤혹을 표현해보려, 말을 찾는다.
 「우리 집 근처는 아닌 것 같은데요. 우리 집에서 얼마나 먼 곳인지, 궁금해서. --여기는 일본의 어디에요? 아니면 외국인가요?」
 말은 외국어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 굉장히 틀려서 일본의 어디인가 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아니면, 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와버린 건가요?」
 장롱을 빠져나간 것처럼.
 요우카는 조금 곤란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굉장히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눈앞에 있는 것들 모두가 현실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데도,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현실과는 다른 기분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현실」이란 것은 무엇인지, 무엇이 「현실」인 것인지도 완전히 알 수 없게 되어버려, 타이키는 한숨을 쉬고서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넓은 곳은 없어요?」
 「있습니다. 안내해드리지요.」
 그렇게 말하며 걸어나가다가, 요우카는 등뒤의 건물에 눈을 향했다.
 「이곳은 로천궁이라고 하옵니다. 타이키가 거하시도록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제 집인 거네요.」
 「예. 나중에 이곳에 익숙해지시고서, 다른 마음에 드는 궁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사해도 상관없어요?」
 요우카는 경쾌하게 웃었다.
 「상관없고 말고요. 타이키는 봉로궁의 주인, 좋으실 대로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타이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좁은 샛길을 지나, 완만한 오름길과 터널이 교차하는 분기점까지 왔다.
 「그게.....잘 모르겠는데요.」
 「네?」
 「봉로궁이라는 게, 여기를 말하는 건가요?」
 「그렇사옵니다.」
 「왜 제가 주인이 되는 거죠?」
 타이키는 마음속 깊이 곤혹을 느끼고 있었다. 요우카도 그렇고 산시도 그렇고, 다른 여선들도 타이키보다 훨씬 나이가 위인데다, 그중에도 교크요에게는 무언가 위엄같은 것이 있다. 그 여자들을 모두 놔두고, 자신이 주인이라고 말해지는 이유도 모르겠지만, 어떻게 생각해봐도 그것은 불합리한 일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요우카는 조금 곤란한 듯이 미소지었다.
 「타이키가 기린이시니까 그렇습니다.」
 「기린,이 뭐죠?」
 「어제의, 그 나무에서 태어난 것이 기린입니다.」
 팟, 하고 가슴속에 밝은 것이 비쳤다.
 「그럼, 저 말고도 똑같이 태어난 애들이 있는 거네요.」
 「예, 지금은 타이키를 제외하고 열 하나.」
 「저까지 열 둘?」
 「그렇사옵니다. 어제 만나셨던, 렴 타이호도 기린이십니다.」
 「팔찌의 사람?」
 「그렇사옵니다.」
 「어제 그 사람하고, 또 만날 수 있나요?」
 요우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렴 타이호는 이미 돌아가 버리셨습니다.」
 굉장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그렇게 울고 울다가 잠들지만 않았으면, 여러 가지 얘기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나요? 만날 수 있나요?」
 요우카는 웃었다.
 「이미 모두 나라로 내려가셨습니다만, 타이키도 나라로 가시면 만나실 수 있고 말고요.」
 「내려가요?」
 「왕을 고르시고, 봉산을 내려가시면.」
 「왕--. 임금님이 있는건가요?」
 「예. 타이키의 주인이 왕이십니다.」
 「주인?」
 「기린은 왕을 고르고, 왕에게 봉사하는 존재. 그때가지 타이키를 맡는 것이 봉산의 역할입니다.」
 --분명히, 라고 타이키는 생각한다.
 분명 자신은 임금님이 있는 곳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임금님의 나라에서 일하게 되는 건지, 그것이 결정될 때까지 여기에 있게 되고, 어쩌면 수행이라던가 뭔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전망이 열리고, 타이키는 어제부터 계속 느껴왔던 불편한 기분이 조금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제가 그런 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어머나, 라고 중얼거리며 요우카는 소리내어 웃었다.
 「하실 수 있고말고요. 타이키는 기린이시니까.」
 「기린은 임금님이 있는 곳에서 일을 하는 거에요?」
 「그렇습니다.」
 「그럼, 다른 기린들도?」
 끄덕이며, 요우카는 손가락을 꼽았다.
 「이곳에는 나라가 열 둘 있습니다. 각각, 왕이 한 명씩으로 열 두 명. 기린도 열 둘, 한 사람의 왕에 한 사람의 기린.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헤에....」
 「하지만, 지금은 왕이 열 한 분밖에 없습니다. 북동의 나라, 대국(戴國)의 임금님은 10년도 더 전에 돌아가셔서, 다음 왕이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대국의 기린은?」
 요우카는 웃으며, 타이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나?」
 「그렇사옵니다. 타이키는 대국의 기린, 그러니까 『타이키』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왕은 이제부터 타이키가 고르십니다. 누구를 왕으로 할 것인지를 정하기 위해서, 기린은 있는 것이니까.」
 타이키는 눈을 깜박거렸다.
 「그런, 중요한 일을 제가 결정해도 되나요?」
 요우카는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타이키밖에 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 여기가 상원(桑園)입니다.」
 
- 3 -
 타이키가 봉산의 생활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기묘한 옷차림, 기묘한 생활습관, 야채밖에 먹지 않는 식사.
 이상한 것은 수없이 많았지만, 그런 것들에 구애될 정도로 어른은 아니다. 불쾌한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그것들 모두가 전혀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타이키는 어려움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단 한가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던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모습이 변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여기에 있는 거울은 집에 있던 것만큼 명료하게 모습을 비춰주지 않지만, 상이 흐릿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아무래도 자기가 아닌 사람처럼 생각되어서 견딜 수가 없다.
 원래부터 곰곰히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습관은 없었기에, 어디가 어떻게 달라져버린 건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어떤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하얀 안개로 가득찬 길을 지나올 때에 뭔가 변화가 일어난 듯 했다.
 자신이 처한 입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이해했다. 여선들이 가까이에서 모든 시중을 들어준다는 것,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 적당한 시간에 잠들고 그 사이에 무엇을 할 필요도 없이 봉산을 돌아다니며 지내는 것, 산시나 여선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며, 여기에서의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쌓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 자신에게 요구되는 전부라는 것.
  따뜻하게--그런 중에도 긴장하며 타이키를 지켜보던 여선들도, 곧 그 긴장을 풀었다.
 「처음엔 어떻게 되는지 걱정했었지만.」
 말리화(茉莉花) 위에 펼쳐진 마른 천을 털면서 여선 중 하나가 말했다. 말리화의 향기가 진하게 퍼졌다.
 「어쨌거나, 10년도 넘게 봉산을 떠나있던 기린은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
 요우카는 함께 천을 털면서, 가볍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몇 년을 떨어져 있건간에, 기린은 기린인걸요. 변할 리가 없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마찬가지로 천을 털고 있던 다른 여선이 소리내어 웃었다. 개킨 천은 말리화의 향이 옮겨져 좋은 냄새가 났다.
 「역시나 봉래에서 자랐으니 이상한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뭐, 나쁜 쪽으로 이상한 건 아니니까 상관없지만.」
 요우카는 개킨 천을 쌓던 손을 허리에 대었다.
 「묘하다느니 말하는 건 넘겨들을 수 없네요.  그거야, 봉래에서 자란 기린보다 우리들이 마음 편하겠지만, 기묘하기는커녕 고마운 일이 아닌가요?」
 주위에서 옷을 거두던 몇 사람의 여선들이 와그르르 웃었다.
 「요우카는 정말로 기린 편이네.」
 「기린 편인게 잘못됐나요.」
 발끈해하는 요우카의 주변을 여선들이 둘러쌌다. 춤추듯이 다가오며 요우카의 발치에 천을 쌓고는 재빨리 멀어져 간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테이에이도 또한 웃었다.
 「그렇게 요우카를 괴롭히지 말게.」
 본래, 봉산의 여선은 명랑했다. 게다가 기린의 시중을 들기 위해 있는 것이므로, 바로 그 기린이 없으면 왠지 의기소침하게 지낸다. 하물며 바로 얼마 전처럼 기린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면, 그런 여선들도 근심하게 되는 것이다.
 기린이 언제나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봉산에 기린이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기린이 없으면 물긷는 것도 세탁도 베짜기도 모두가 자신들만을 위한 것, 보람이 없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여선이나 완전히 들떠버린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선에게 있어서 기린은 사랑스럽다. 어느 기린이나 사랑스러운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현재 함께 있는 기린이 가장 사랑스러운 기분이 들어버린다. 실제로 말하자면, 여선들 중 누구도 요우카를 비웃는 것이 아니다. 오십여 명 가까이 있는 여선들 모두가, 타이키가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요우카를 들어 「기린 편」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여선보다 타이키와 친밀한 젊은 여선을 조금 시샘하는 척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요우카!」
 어린아이 특유의 맑은 음성이 울렸다.
 여선이 모두 손을 멈추고, 목소리가 난 쪽을 보았다. 좁은 샛길을 빠져나와, 태이키가 광장으로 달려오고 있는 참이었다.
 「숨겨줘, 숨겨줘.」
 타이키는 거친 숨을 쉬며 말한다. 요우카에게 뛰어들어, 등뒤로 숨었다.
 「타이키도 요우카 편이네.」
 「정말.」
 여선들은 웃으며 말하고는, 가지고 있던 천을 쌓아올리는 대신에 타이키에게 뒤집어씌웠다. 말리화 풀숲과 요우카의 사이에 숨은 작은 몸은, 앗 하는 사이에 천들로 감춰져 버렸다.
 여선들이 큭큭 웃고 있자, 기울어진 햇살이 갑자기 가려졌다. 기암의 위에 하얀 모습이 보이며 여괴가 광장으로 내려왔다. 그를 향해 모두는 동쪽 샛길을 가리켰다.
 「저쪽이야, 산시.」
 「타이키라면, 저쪽으로 갔어.」
 「날 넘어뜨릴 것 같은 기세로.」
 저마다 여선들이 말했지만, 산시는 절대로 타이키를 놓치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 똑바로 요우카를 향해 다가가, 등뒤의 천더미를 걷어올린다. 고개를 움츠리며 숨어있던 타이키가, 얼굴을 들며 크게 숨을 쉬었다.
 「....역시 찾았구나.」
 산시의 앞다리를 안듯이 하며,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아직 숨이 거칠어져 있다.
 산시는 그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서, 발에 안은 옷들을 여선들에게 넘긴다. 여선들이 웃었다.
 「산시의 눈을 속이려 하다니, 무리에요.」
 「그런 것 같네.」
 웃으며 말하는 뺨은 상기되어 있다. 산시의 앞다리에 몸을 기대이며, 포(袍)의 옷깃을 헐겁게 하는 어린이를 모두가 웃으며 지켜보았다. 지금까지 봉산에 있던 어느 기린보다도, 타이키는 한눈에도 사랑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은 전원이 타이키 편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린의 머리카락은 보통은 금색을 띄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머리카락이 아니라 갈기이지만, 타이키의 그것은 강철의 색을 하고 있었다. 보통 기린이 아니라는 증거이지만, 그것이 특별히 소중하게 생각되어 견딜 수가 없다.
 「물로 씻고 오세요. 곧 저녁이니까.」
 기린은 여선보다도 훨씬 고위의 생물이었다. 그럼에도 시중을 들다보면 자신의 아이같이 생각되어져, 자연히 말투가 풀려버린다. 여선의 수장인 벽하현군마저 그리 되어버릴 정도이니, 그녀들을 책망할 수 있는 이가 있을 리 없었다.
 「다행히, 갈아입을 옷이라면 여기 얼마든지 있어요. 여기 일이 끝나면 데리러 갈테니까요.」
 「응.」
 고개를 끄덕이며 타이키가 일어섰다.
 「산시, 가자.」
 타이키의 손을 끌며 걸어가는 산시를, 여선들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가장 타이키 편인건 산시네.」
 「정말로.」
 끄덕이기는 했지만, 분한 것은 아니다. 여선과는 달리, 산시는 타이키만의 것이다. 그것을 제치고서라도, 화낼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녀들은 운이 좋다. 마침 저녁 전에 타이키와 만날 수 있었다. 식사 직전에 만난 이가, 타이키의 식사에 동반한다. 그것이 최근 생긴 봉산에서의 새로운 불문율이었다.
 
- 4 -
 마른 옷을 개키고서, 아직 햇볕 냄새와 말리화 향기가 나는 타이키의 옷 한 벌만을 따로 들고서, 요우카는 냇가로 향했다.
 로천궁에 가까운 연못으로 향하는 샛길을 돌자마자,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연못에서는 타이키가 산시의 꼬리를 쫓아, 물밑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높게 들어올린 꼬리를 잡으려다가 물로 쓰러진 타이키는, 수면에서 얼굴을 들다가 요우카들이 오는 것을 깨닫고 손을 흔들었다.
 「데리러 왔습니다.」
 「고마워.」
 여선들 중 한 명이 기슭에 천을 펼쳤다. 물에서 올라온 타이키가 그 위에 서자, 다른 여선이 팔에 펼쳐든 천으로 작은 몸을 닦아주었다.
 「내가 할께.」
 「타이키는 등을 잘 못닦으니까, 안됩니다.」
 말을 뱉은 그녀는 하얀 신체에서 물방울을 닦아간다. 타이키는 자기 일을 남이 해주는 것을 미안해하지만, 요는 누구든 타이키를 만지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여선이 옷을 입혀주고, 요우카가 머리를 닦아주었다.
 「이제, 괜찮아.」
 「아직 머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집니다.」
 타이키는 천 사이에서 빠져나온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그것은 검은 색도 은색도 아닌 기묘한 색으로 변해 있었다.
 「머리, 너무 길지 않아?」
 「아직 짧습니다.」
 타이키는 깜짝 놀라 요우카를 올려다보았다.
 「기르지 않으면 안되는거야? 여자애처럼?」
 「더 이상 자라지 않을 때까지 기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다듬는 정도는 하지만요.」
 「자르면 안돼?」
 「전변(轉變)했을 때에 보기싫은 모습이 되고 싶으시다면, 좋으실대로.」
 「......전변?」
 요우카는 대략 물기가 마른 머리카락을 빗어주었다.
 「타이키는 기린인걸요. 기린의 형태로 될 수 있습니다.」
 「기린의 모습이라니. 그거, 동물인 기린?」
 「그렇습니다.」
 타이키는 생각에 잠겨버렸다.
 자신은 실은 기린이라고 들었지만, 「기린」이라는 것은 단순히 나무열매에서 태어난 인간을 말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요우카의 지금 말을 들어보면, 그것뿐인 것이 아닌 듯 하다.
 「난, 실은 동물인거야?」
 이것은 조금 곤혹스러운 사태였다. 사람 역시 동물의 일종이지만, 조금 의미가 다르다.
 「그렇고말고요.」
 「언젠가 만났던, 렴 타이호도?」
 「물론입니다.」
 타이키는 더욱 곤혹해버렸다.
 늑대인간처럼 기린으로 변신하는 걸까. 늑대가 되는건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기분이 들지만, 기린이 되서 그렇게 목이 길어져 버리면 이상한 기분이 들 것이 틀림없다.
 --이 시점에서, 타이키는 기린이라는 생물을 아직 오해하고 있는 채였다.
 웃으며 타이키와 여선들을 지켜보고 있던 테이에이는, 완전히 혼동에 빠져버린 표정을 짓고 있는 타이키를 눈치채고 아아, 하고 중얼거렸다.
 「타이키는 전변한 적이 없으니, 잘 모르시는군요. --타이키의 머리카락은. 우리들의 머리카락과는 틀려요. 그것은 갈기이니까.」
 타이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기린에게는 갈기가 있다.
 테이에이는 타이키를 손짓으로 불러, 이마의 중앙, 머리카락 언저리에 가까운 곳을 살짝 만졌다. 뭔가 굉장히 기분이 나빠져, 침착할 수 없는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
 「--여기에 아주 조금, 솟아오른 부분이 있지요.」
 그렇게 듣고 당황해서 손가락으로 더듬어 보았다. 확실히, 쓰다듬어봐야 알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솟아오른 부분이 있었다.
 「이것이 뿔. 뿔은 기린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곳이니까 소중하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 기분 나쁜 느낌이 있었겠지요? 만지는 것이 싫다는 느낌.」
 「........조금.」
 「무리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기린은 뿔을 만지는 것을 싫어하는 생물이니까. 자라고 나면, 더 싫어지게 됩니다. 절대로 만지지 못하게 하게 되지요. 설령 그것이 산시라고 해도.」
 --그러고 보니, 라고 타이키는 생각했다. 자신은 원래부터 이마를 쓰다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머니라고 하더라도, 왠지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그럼, 역시 난 기린이구나.」
 「물론입니다.」
 요우카는 질린 듯이 말을 잘랐다.
 「전변하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겁니다, 분명.」
 「전변이라는 거 어떻게 하는데요?」
 타이키가 묻자, 요우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군요. 태어났을 때부터 계속 봉산에서 자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알게 되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어느 정도로 자랄 때까지, 기린은 기린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요. --봉래에서는, 기린이라도 태어났을 때부터 인간의 모습을 한다고 했죠?」
 「기린이 된다는 거.....기분 나쁘지 않을까?」
 「전변을 싫어하는 기린은 없으니까, 그다지 기분 나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하지 않아?」
 「조금도 이상하지 않고 말고요.」
 그렇게 말하며 요우카는 타이키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타이키는, 보통 기린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보통의 기린은 렴 타이호처럼 금색의 갈기를 하고 있으니까. 타이키는 흑기린이십니다. 흑기린은 귀하다는 듯 해요. ...빨리 요우카에게 보여주십시오. 강철의 색이 이렇게나 아름다우니, 분명히 아름답겠지요.」
 「하지만 어떻게 되는 건지, 상상도 안가.」
 「그렇군요.......」
 요우카는 숨을 쉬었다.
 「저로서도,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저는 기린이 아니니까, 전변을 해본 적도 없는 걸요. --혹시 기회가 있으면, 현군께 여쭤보겠습니다.」
 「응......」
 아직 뭔가 석연치 않은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타이키를 바라보면서, 테이에이는 내심 눈썹을 찌푸렸다. 십 년 이상의 오랜 기간동안, 사람으로서 살아온 타이키는 과연 전변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교크요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정작 그 교크요는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게다가, 타이키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테이에이는 무언가를 말하며 웃고 있는 타이키와 요우카에게서 시선을 피하며, 불안한 기분으로 저물기 시작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행히 춘분은 지났지만, 하지에는 확실하게 사람들이 온다.
 --전변할 수 없는 불완전한 기린이, 왕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통합 홈도 그럭저럭 만들어지고 있고, 번역은 진행되고, 날씨는 나날이 더워지고, 이렇게 2001년도 반 이상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성우에 빠져서 성우 소모임에 들게된 것이 작년 11월쯤이니까, 대략 9개월이 경과하고 있군요. 그 때만해도, 이렇게나 빠져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일본어는 일취월장, 오지편향도는 나날이 UP, 남자의, 특히 성인 남자의 목소리에서 색기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소득이라면 소득일까요. 십이국기를 볼모삼아 제가 좋아하는 성우도 퍼뜨려볼까 싶기도 합니다.(웃음)
 오늘의 안주는 하야미 쇼. 요즘 더욱 불타고 있습니다. 이 성우라면 '절애'의 난죠 코지가 대표격으로, 그 역 밖에 모른다는 분들도 많지만 하야미상의 역은 더 멋진 것이 많습니다. 불꽃의 미라쥬의 나오에가 있고, 사이버 포뮬러의 나이트 슈마하가 있고, 최근의 어둠의 후예의 무라키 의사가 있지요. 매력적인 저음에 어른의 색기가 흘러 넘치는, 「성인 남자」의 목소리입니다. 대개 만화나 소설 원작에서 「매력적인 목소리」로 표현되는 인물의 캐스팅에는 단골처럼 출연하시죠.(웃음)(いつも抱かされたい聲だと思いますが,そんなはしたないことなんて言えるはずないんでしょ.でも,彼(の聲)への愛情は深くなるいっぺん.本當に素晴らしい聲です.攻めも受けもシリアスもギャグももう最高!!! かっこいい! かわいい!! もう!!)
 지금 듣고 있는 것은 「창룡전-신기루도시」 드라마시디. 하야미상은 첫째 류도 하지메 역을 맡으셨습니다. 그나......드라곤전대 류도 파이브??;;;;; 드라마시디의 보너스 트랙으로 전대물이 등장하는 경우는 간간히 있지만......죽이는군요.; 그러고보니 하야미상도 참여하신 성우전대(笑) 샤인즈맨도 한 번 들어봐야 하는데.(하지만 역시나, 성우 전대물 중에서 제일 뒤집던 것은 세기말전대 달링 파이브였다죠.)
 십이국기 3장을 번역하다가 든 생각. 저 여선들, 모두 쇼타콘이군요.;;;; 홀딱 벗고 천진난만하게 물놀이를 하고 난 타이키를......만지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다니.(쿵) 위험해요, 위험합니다. 분명히 본문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要は誰もが泰騏に觸れていたくてたまらない」. 觸る는 분명히 만지다, 손에 닿다 라는 뜻이죠. 아무리 고민해봐도 저 쇼타콘 여선들의 음습한 욕망을 순화시킬 길이 없어, 결국 그렇게 번역합니다.(웃음)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上) 4장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상)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4 장
 
- 1 -
 타이키는 타박타박 샛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목적이 있어서 걷고 있는 것도 아니니, 길을 살피며 걷고 있지 않았지만 산시가 있으면 길을 잃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애초에, 타이키 역시 자신이 사는 로천궁 주변 말고는 완전히 길을 모르는 것이었다.
 정처없이 걷고 있다가, 갑자기 샛길의 앞을 막는 문이 보였다. 문은 꽉 닫혀져, 완전히 길을 차단하고 있다.
 그것이 봉로궁의 끝이었다. 로천궁에서 여기까지는 똑바로 와도 상당히 시간이 걸릴 터이니, 놀랄 정도로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있었던 듯 했다.
 「...............」
 타이키는 한숨을 쉬었다. 문에는 내측에서 빗장이 질려 있을 뿐, 열려고만 한다면 손쉽게 열 수 있겠지만 문 밖에는 절대로 나가지 않도록 여선들에게 가르침 받아왔다.
 그대로 돌아갈 기분도 들지 않아, 타이키는 등뒤를 돌아보았다. 말없이 뒤를 따라오던 산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산시, 위에 데려다 줘.」
 산시는 고개를 끄덕이고, 타이키를 안아들었다. 보통의 여자라면 안기 힘들 정도로 타이키는 이미 자랐지만, 외견만큼 무겁지는 않다. 선골(仙骨)이라는 것이 있어, 타이키는 굉장히 가벼운 것이다. 그래서 산시는 어려움 없이 타이키를 안아 올려, 가볍게 암벽을 뛰어 기암의 위를 향해 올라갔다.
 바위 위에서 내려다본 봉로궁은 미로 그 자체였다.
 군데군데 파랗게 빛나는 것은 수많은 궁의 지붕, 미로의 안쪽에는 하얀 나뭇가지가 햇빛을 받아 빛나는 것이 보였다.
 타이키는 산시에게 안긴 채, 한동안 그쪽을 바라보았다.
 위쪽에서 본 봉로궁은 부채모양을 하고 있다. 가장 안쪽에 있는 동쪽의 고지대에 사신목이 있고, 그 뒤는 없다. 깎아지른 듯한 단애에, 얼마나 되는 지도 알 수 없는 높이 아래에는 걷는 것마저 곤란할 정도로 복잡한 기암지대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 고지대를 꼭지점으로, 미궁은 극히 완만하게 내려오며 그 폭이 넓어진다. 무수히 많은 갈림길은 선회를 반복하며, 마침내 하나의 샛길로 모이고, 그 길이 갑자기 문으로 막히면서 미궁이 끝나는 것이다.
 미궁의 북쪽은 험준한 산이었다. 절벽을 이루고, 첨탑을 이루며 머나먼 높은 곳까지 달려가는 산은, 산시라 하더라도 오르기가 힘들다.
 동쪽은 단애로, 북쪽은 절벽으로 지켜져, 봉로궁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문을 지나 복잡하기 짝이 없는 미로를 제대로 통과할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그리고, 타이키는 산시의 팔을 내려와 기암의 정상에 서서, 등뒤를 돌아보았다.
 미궁의 밖, 남쪽과 서쪽으로 더욱 뻗어 내려가며 광대한 미로가 이어져 있다.
 바깥의 미로와 안의 미로는 복잡하게 꾸며져,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보아도 어디까지가 안이고 어디까지가 밖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바깥의 미로는 안의 미로와 비교해서, 훨씬 이해하기가 쉽다. 길의 폭도 넓고, 여기저기에 점재하는 광장도 훨씬 넓다. 아무렇게나 걸어도 태양의 위치만 파악하고 있으면, 여기까지 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둘러보다가, 타이키는 꽤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기암 아래에 녹색 유약의 광채를 발견했다.
 「산시, 저건 뭐야?」
 손으로 가리키자, 산시 또한 동그란 눈을 그쪽으로 향했다.
 「보도궁(甫渡宮).....」
 산시는 중얼거렸다.
 「.....흐음.」
 타이키는 기암 위에 앉았다.
 한동안 녹색의 미궁을 내려다본다. 기암의 외에는 빠른 바람이 불고 있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눈 닿는 곳에 바다라고는 보이지 않는데도, 바다 냄새가 났다.
 「.....왜 그러십니까?」
 한동안 바람을 맞고 있자, 산시가 조용히 물어왔다. 산시가 이런 식으로 말을 걸어오는 일은 드문 일로, 자신이 그만큼 생각에 잠겨있었던 것이겠지.
 타이키는 다시, 바깥의 미로를 더듬고 있던 시선을 올려 산시를 보았다.
 「산시는 전변해서 그런 모습이 된 거야? 아니면, 처음부터 그런 모습이었어?」
 산시는 타이키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여괴는 전변하지 않습니다. 전변할 수 있는 것은, 그 힘이 심상치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흐음.」
 「모습을 바꾼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요마 중에서도 전화(轉化)하는 것이 있지만, 그런 요마는 왕의 힘과도 대등할만한 마력이 큰 것.」
 「요마?」
 「요력을 지니고, 하늘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것을 요마라 부릅니다.」
 「여괴도 요마야?」
 산시는 고개를 저었다.
 「여괴는 사람과 요마의 사이에 위치하는 것. 인요(人妖)라고도, 요인(妖人)이라고도 부릅니다. 봉산에서 태어난 여자만을 특별히 여괴라 부르는 것이지만.」
 「그럼...기린은 요수(妖獸)?」
 산시는 타이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정으로 웃었다.
 「요력을 지닌 것만은 확실합니다만. --아니요, 기린은 요수라 부르지 않습니다. 기린은 신수(神獸)라 부르는 것이지요.」
 「왜?」
 「이 세상에서 기린보다 높은 것은 신과 왕뿐. ......더 제대로 얘기하자면, 이 세상에서 타이키보다 신분이 높으신 분은 태왕(泰王)과 서왕모 사마, 천제 밖에 없습니다.」
 「.....잘, 모르겠어.」
 산시는 몇 번이고 타이키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그러면, 이렇게 기억해 두십시오. 서왕모도 천제도 아래 세상과는 관여하지 않으시는 분. 감히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타이키보다 높으신 분은 태왕 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교크요 사마는, 나보다 훨씬 높은 게 아냐?」
 「교크요, 라고 성함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신분이 대등하기 때문입니다. 사마, 라고 존칭을 하는 것은 그것이 예의에 맞기 때문입니다.」
 「어렵네.」
 「어려우십니까?」
 「응.」
 타이키는 발치의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한참을 바람을 마시다가, 산시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전변을 할 수 있게 될까?」
 산시는 타이키의 조금 침울한 옆얼굴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그것은 타이키가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힘. ........필요해지면, 반드시 생각날 것입니다.」
 「그럴까....」
 타이키는 눈을 깔았다.
 요즈음, 여선이 흑기린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경우가 많아졌다. 타이키로서도 여선들이 자신에게 애정을 듬뿍 쏟아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가능하다면 전변해서 그녀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 방법을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타이키는 그저, 느긋하게 지내시면 되는 겁니다.」
 「.........응.......」
 산시의 팔에 얼굴을 대었을 때였다.
 보도궁 쪽의 미로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산시. 사람이 있어.」
 산시도 그쪽을 보고서 끄덕였다.
 「향을 올리는 여선입니다. 보도궁의 제단에 꽃과 향을 바치러 간 것입니다.」
 「여선하고 같이 돌아갈까, 산시?」
 기암의 위에서 아래의 샛길까지, 타이키로서는 내려갈 수 없다. 일어선 산시의 팔에 안기려 하는 찰나, 산시가 큿, 소리를 내며 얼굴을 들었다.
 「....왜 그래?」
 타이키가 묻는 순간이었다. 산시의 모습이 가느다란 균열에 빨려들어 가듯이 사라졌다.
 「산시?」
 「거기서 움직이지 마십시오.」
 목소리만이--그것도 굉장히 긴장한 목소리가--어딘지 알 수 없는 주변에서 들려왔다.
 타이키는 바위 위에서 몸을 굳혔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산시가 험악한 표정을 하는 것도, 저런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상한 힘을 보이는 것도. 무언가--봉산에 오고서 처음으로, 뭔가가 일어난 것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면서, 타이키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가늘게 튀어나온 돌에 매달려, 사라진 산시가 어디엔가 보이지 않을까 뻗은 목에 뭔가가 스쳤다.
 「...........에?」
 무언가가 얼굴의 옆을 스치고 날아온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연이어, 바위에 매달려있던 양손에 뭔가가 감겨오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강한 힘으로 양손을 끌어당겨져, 기암의 정점에서 바깥을 향해 몸이 기우는 것을 느꼈다.
 아주 잠깐 사이에 타이키의 눈에 잡힌 것은, 자신의 양손에 감긴 가는 쇠사슬과, 그 끝에 달린 추.
 몸이 공중으로 날아간다.
 --누군가에 의해, 바위에서 끌어내려 떨어진 것이다.
 
- 2 -
 「잡았다!」
 굵은 음성이 크게 울려,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바위 위에서 추락해서, 나와서는 안된다고 말해진 바깥으로 나와버린 것이 한순간에 생각났다. 왜 떨어지게 된건지를, 다시 한 번 반추하려는 순간 굵은 비명이 들렸다. 쓰러진 채로 시선을 향하자, 공중에 점점이 붉은 물방울이 튀는 것이 보였다.
 (......피같아.)
 생각한 순간, 갑자기 타이키의 체온이 내려갔다. 순식간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봉산에 오고서는 떠올릴 일이 없었던 자신의 버릇을 떠올렸다.
 ---그게, 어떻게 해도 안 되는걸.
 자신이 상처를 입어도 그렇게는 느끼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는 것을 보면 무섭고 무서워서 숨이 멎어버릴 것 같아진다.
 눈을 감고 싶었지만, 눈꺼풀까지 얼어붙어 눈도 감을 수 없었다. 숨을 쉬는 것도 잊어버린 자신의 몸 속에, 심장 고동만이 극한까지 치달아 올라간다. 초점을 잃은 눈 안에 붉은 핏방울이 흩어지던 순간이 계속 떠올랐다.
 --바위 위에 서있었다.
 무언가가 손에 감겨서, 끌어내려 떨어졌다.
 뭔가의 감촉은 지금도 양손에 있다. 철사처럼 가는 쇠사슬이다.
 바위에서 떨어진 것이라는 것은 이해했다.
 떨어져서, 자신은 지금 바위투성이의 지면 위에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등 아래의 바위에 드러누워 몸을 젖힌 상태로--누워있다.
 여기저기에 돌출부가 있는 저 바위에서 떨어져, 게다가 저 높이에서 추락했으면서 상처가 없을 리가 없지만, 자신이 상처를 입었는지, 아니면 기적적으로 가벼운 상처로 끝났는지는 타이키 자신도 잘 알 수 없었다.
 그저 심장 고동만이 빨라지며, 손발의 끝이 얼어붙는 것처럼 차가워지는 것만을 느낀다. 그런데도 머리는 열이 나는 것처럼 멍해져서, 새빨간 피 색이 스며들어 지워지질 않는다. 너무나도 선명한 색에,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눈앞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도--이해할 수가 없었다.
 머리를 한번 흔들면 괜찮아 질 것 같은데도, 눈을 깜박이는 것마저 불가능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인 걸까. 아까 보았던, 피 색 때문인 걸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 괴물이!!」
 굵은 외침이 들려와, 겨우 눈에 잡히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남자, 였다.
 커다란 남자로, 한쪽 손에는 폭이 넓은 도(刀)를 쥐고 있다.
 그리고 그 검을 휘두르는 앞에 있는 것이 산시였다.
 「인요 따위에게 쓰러질 내가 아니다! 썩 황해로 돌아가!!!」
 도가 올라갔다가, 무서운 기세로 떨어진다.
 (----산시!!!)
 순간 지른 비명은 소리가 되지 못했다.
 호를 그린 하얀 도가 산시를 스쳐 지나갔다. 산시의 손이 뻗어, 남자의 목젖을 할퀴었다. 새하얀 손가락이 붉은 것으로 젖는다. 한박자 늦게, 칼끝이 스치고 지나간 산시의 팔에서 붉은 것이 쏟아졌다.
 (--------그만!!!!!!)
 순간 눈이 감겼다. 그대로 두 번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처럼 강하게 눈을 감았다. 이미 자신이 숨을 쉬고 있는 것인지, 심장이 뛰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대로 눈을 감고 있고 싶었지만, 갑자기 양손이 잡아당겨져 너무나 놀라 눈을 뜨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간신히 타고 있던 바위 위에서 다시 떨어졌다.
 등을 심하게 부딪히고 신음소리를 낼 틈도 없이 팔을 잡아당겨 일으켜 세워져, 다시금 눈을 뜨자 공중에 잡아당겨진 자신의 팔이 보였다. 가는 쇠사슬에 묶여, 그 쇠사슬은 남자가 도를 쥔 손의 반대쪽 팔에 이어져 있었다. 남자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어깨와 팔꿈치가 빠지는 것처럼 아파왔고, 땅에 질질 끌리는 하지가 바위 표면에 부딪혔다.
 「뭐야, 넌.」
 남자는 한쪽 손을 산시에게 향하면서, 타이키를 봤다. 잔뜩 화가 난 표정이었다.
 「그 머리는 뭐야.」
 질책하는 듯이 말해도, 타이키로서는 대답 따위 할 수 없었다.
 남자는 덤벼드는 산시를 아무렇게나 도로 떨쳐내며, 발길질을 했다. 또 산시의 하얀 몸에 붉은 것이 흘렀다.
 남자는 다시 타이키를 흘낏 보고서, 험악한 얼굴을 더욱 일그러뜨리며 소리를 질렀다.
 「꼬마, 너, 기린이 아닌 거냐!!!!」
 --기린? 물론, 기린이다. 누구나 그렇게 말해.
 --그렇게 대답해도 되는 걸까.
 --그보다도, 산시가.
 --그보다도.
 (아아.....저렇게 피가.......)
 남자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상체가 팔과 함께 끌려갔다.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안쪽에서 무너져내릴 듯한 기분이.
 「에에잇, 분명히 기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꼬마라니 유감이군. 거기다 인요까지 어슬렁거리고!」
 남자를 향한 산시의 팔을 도의 반사광이 스쳤다. 또다시 붉은 핏방울이 흩어졌다. 뒤로 뛰어서 피한 산시를 향해 발을 내딛는 남자에게 끌려져, 바위 모서리가 타이키의 가슴에 부딪혔다.
 「인요 주제에, 어떻게 봉산에 들어온거냐! 지금 처단해주마!!」
 휘두르는 도는 산시를 스치고 바위에 부딪힌다.
 (.......산시.)
 하얀 몸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산시, 도망가........!)
 --적어도 그렇게, 외칠 수만 있다면.
 
- 3 -
 「---그만두십시오!!」
 갑자기, 비명처럼 높은 목소리가 울려, 타이키는 눈을 크게 떴다.
 「무슨----이 무슨 짓을!!」
 「타이키!!!」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시야에 새파랗게 질린 여선의 얼굴이 날아들어 왔다.
 「이런-----너무해, 타이키!!!!!!」
 여선이 달려오자, 양손이 풀렸다. 그 순간 눈물이 흘러 넘쳤다. 따뜻한 손에 안겨 세워져 좋은 향기가 나는 팔에 안기자,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무슨 난폭한 짓을!! ---산시, 멈춰!」
 「너희들이 기르는 개냐! 썩 물러나게 해!」
 「물러나는 것은 그쪽이다, 이 무례한 것!」
 일갈하는 목소리에 타이키는 얼굴을 들었다.
 그것은 테이에이의 목소리로 들렸지만, 그렇게 굳은 테이에이의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 남자도 놀라 테이에이를 보고 있었다. 산시는 처절한 표정으로 남자를 노려보고 있다.
 「--산시, 멈춰요. 피로 더럽혀지면 타이키의 곁에 갈 수 없습니다. 그게 싫으면, 마음을 진정시키도록.」
 산시에게 그렇게 말한 테이에이는 고개를 들고 남자를 노려보았다.
 「이 봉산에서, 감히 타이키에 대해, 그 무슨 참혹한 짓인가.」
 「타이키?」
 남자는 한 여선에게 매달려 있는 아이를 보았다.
 「그러면 역시, 저 꼬마--아니, 저 아이가 타이키인가.」
 「그렇고말고. 옛부터 봉산에 있는 어린 존재는 봉산공 뿐. --그래서, 그 봉산공에 대해 그처럼 무례하고 참혹한 짓을 한 이유를 묻고 있소.」
 남자는 만면에 웃음을 띄웠다.
 「타이키! 역시! ---내가 잡았다!」
 발을 내딛는 남자를 향해, 테이에이는 경고하듯이 팔을 들어올렸다.
 「대답은!? --곁에 다가오는 것은 상관없소. 우선 이유를 말씀하시오.」
 「내가 잡았다! 이, 내가!」
 「대답하시오. 아니면, 이 봉산의 여선의, 신선의 힘을 그 눈으로 보고 싶은 것인가.」
 남자는 씩 웃어보였다.
 「나는 대국(戴國) 마후(馬候)의 사구대부(司寇大夫), 고손(西+胡孫)이라 하오. 봉산에 타이키 귀환의 소식을 듣고 왔소.」
 「보도궁에서는, 고손이라는 자의 승산을 허락하지 않았소.」
 「아아....그거 미안하게 되었소. 마음이 조급해서, 우선 봉로궁을 보려고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은 사과 드리오. 하지만---내가 잡았다.」
 「잡았다, 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타이키를 잡은 거다. 예의를 차리지 않고, 봉산을 방문하는 절차를 무시한 무례는 사과드리오만, 내게 타이키를 넘겨주시지.」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크게 웃었다.
 「내가 태왕이다!」
 타이키는, 자신을 안고 있는 여선이 떨고있는 것을 느꼈다. 그 떨림이 전해지는 듯이, 서있던 테이에이 역시 어깨를 떨었다.
 「이---어리석은 것이!」
 너무나도 격렬한 일갈에, 남자가 반걸음 물러섰다.
 「대국 마주는 이렇게나 어리석은 자에게 사구대부의 지위를 내린 것인가!!」
 남자는 다시 반걸음 물러섰다.
 「타이키를 무엇이라 생각하나. 황공하게도 봉산공을, 황해에 사는 요수와 똑같이 생각한 건가! 어리석은 것에도 정도가 있다! 태왕이라고?! 배가 아플 지경이로다. 하늘의 벌을 받아 벼락에 맞기 전에, 썩 물러가거라!!」
 「하지만----」
 「닥쳐! 그 이상, 그 천한 입을 놀린다면, 하늘을 대신해 이 몸이 그대를 여덟 조각으로 찢어놓아도 상관하지 않겠는가!」
 남자는 말을 잃고, 입을 멍하니 벌린 채 서있었다.
 타이키를 안은 여선이 일어섰다. 정성스럽게 팔에 감긴 쇠사슬을 풀어주었다.
 사슬이 조이고 있던 곳을 쓰다듬고, 뺨을 쓰다듬으며 머리를 쓸어주고, 지금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타이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불쌍하시게도. 얼마나 무서우셨겠어요. ....지금, 궁으로 모셔 드리겠습니다.」
 「.......산시가.」
 곁에 초연하게 서있는 산시를 보자, 여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안됩니다. 산시는 놔두십시오. .........자.」
 지금 일어난 사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산시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상처투성이가 된 것은 알 수 있다.
 상처는 심하지 않지만, 고맙다고 말하고 상태를 물으며, 치료를 해주고 싶은데도 피투성이가 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심장을 쥐어뜯기는 느낌이 들었다. 산시 쪽에서 짙은 피 냄새가 나면서, 도저히 몸이 움직이질 않아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계속 미련을 남기며, 안아 올리는 대로 몸을 맡겼다. 몸의 여기저기가 아파서, 한 걸음씩 흔들릴 때마다 울고 싶었다.
 
 요우카와 만난 것은, 문을 들어서고 조금 뒤였다.
 달려온 여선들은 타이키의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타이키를 안은 여선에게 사정을 묻고, 반 정도가 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 무슨.......비천한 것이........!」
 요우카는 토해내듯이 말하고서, 문 쪽을 노려보았다. 다시 수심에 가득찬 표정으로 타이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불쌍하게도. 무서우셨지요. 괜찮으십니까.」
 「......산시가.」
 이해했다는 듯이 요우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산시는 괜찮고말고요. 여괴의 상처는 깊어 보여도 곧 낫습니다. 그보다도 타이키의 상처는.」
 「모르겠어.」
 「어쨌거나, 궁으로 돌아가시어요. ......산시는 부정을 씻고 나서, 궁으로 돌아올 겁니다. 걱정 없으니까요.」
 그제서야 타이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얼굴 하지 마세요. 어쩔 수 없습니다. 기린은 피를 싫어하는 생물입니다. 피의 냄새를 맡은 것 만으로도 병에 걸리는 기린도 있으니까요.」
 「그런......거야? 다른 기린도 이래?」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타이키가 그렇게 마음 아파하실 일이 아닙니다. 산시가 돌아오면 상처를 치료해주지요.」
 「........응.」
 요우카를 향해 손을 뻗자, 요우카가 안아 올려 주었다.
 거기에서 로천궁까지의 길을, 모여든 여선들에게 번갈아 안겨 돌아왔다.
 
- 4 -
 로천궁 내의 침실에서, 요우카는 큰 대야에 담은 약탕에 타이키를 앉혔다.
 온몸을 검사하듯이 정성스럽게 몸을 씻어주면서, 타이키에게 사정을 물었다. 얘기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어리석은 것이, 라고 욕을 퍼부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타이키는 솔직히 말해서, 잘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불안한 듯이 올려다보는 타이키에게, 요우카는 미소지어 보였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춘분이 지났다고 방심했습니다. ...용서해 주시어요.」
 「요우카 때문이 아냐.」
 「아니요. 이건 분명히 말해두지 않은 제 실책입니다. ......정말로 큰 상처가 없어서 잘됐어요. 분명 산시가 바위에서 떨어진 타이키를, 훌륭하게 지켜준 것이겠지요. 돌아오면 위로해 주십시다.」
 「.......응.」
 「그리고, 약속해 주십시오. 두 번 다시, 혼자서--산시가 있더라도, 여선이 없을 때에 바깥에 나가서는 안됩니다. 아니, 부디 바깥에 가까이 가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문 쪽으로 안갈께.」
 타이키가 말하자, 요우카는 끄덕였다. 천을 양손에 펼쳐, 약탕에서 나와 그 안에 몸을 쌌다.
 요우카는 타이키를 그대로 안아 올려, 침실 안쪽의 침상으로 데려갔다. 이불의 위에 내려놓고서, 살짝 작은 몸을 닦아주었다.
 「..........기린은 왕을 선택합니다.」
 「어떻게? 임금님은 임금님의 아이가 되는 게 아니야?」
 「아니요. 왕은 기린이 선택하여 왕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잘, 모르겠어.」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기린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런 것입니다. 왕을 선택하는 것은 천제입니다. 하늘의 가장 높으신 분이, 여러 사람들의 인품을 비교해서 가장 왕에 합당한 사람을 정하는 것입니다.」
 「........흐음.」
 「천제는 그것을 기린에게 전합니다. ......그렇다고 천제가 귓속말을 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기린이 아니면 알 수 없습니다. 기린이라면 반드시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조그만한 기린이라도, 분명히 왕을 선택하니까요.」
 「........응.」
 「이제부터, 봉산에는 자신이야말로 왕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올라옵니다. 타이키와 만나서, 타이키에게 선택받기 위해서.」
 「오늘.......그 사람처럼?」
 요우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키의 머리카락을 닦은 천을 놓고서, 그 대신 속옷을 입혀주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올 것입니다. 이제부터..........그렇군요, 하지를 지나면.」
 「왜, 하지야?」
 「봉산은 황해의 중앙에 있습니다. 보통 황해에 사람은 출입할 수 없습니다. 단, 문이 네 개 있어서 네 문 중 어느 것이건 지나면 황해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 네 문은, 춘분과 추분, 하지와 동지에 한 개씩 밖에 열리지 않습니다.」
 사문(四門)이 열리는 날을 안합일(安闔日)이라 한다. 그 때 외에는, 각각의 문은 굳게 수호되어 진다.
 「하루만?」
 「하루만 입니다. 정오부터 다음날 정오까지. --타이키가 돌아오시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춘분이었으니까, 승산하는 자들은 시간이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방심하고 있던 저희들이 멍청했어요. 부디 용서해 주시어요.」
 「.....으응.」
 「그 남자는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았었겠지요. 본격적으로 사람이 올라오는 것은 하지를 지나고서가 될 것입니다.」
 「......흐음.」
 「사문에서 여기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반달은 걸리니까, 한 번 들어오면 다음에 문이 열리는 날까지 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봉산을 뜻하는 자들은 보도궁의 주변에 천막을 치고 돌아갈 때까지 시간을 보냅니다. 황해에는 요마와 요수가 있지만, 봉산에는 들어올 수 없어 안전하니까요. 그건, 수많은 사람들로 마을을 이룰 정도랍니다.」
 「그렇게 많이? 나, 정말 알 수 있을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반드시 하늘의 계시가 있을 테니까, 알 수 있습니다. 천계(天啓)가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왕이 될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응.」
 「단, 그 중에는 오늘의 그 남자처럼 큰 착각을 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도 있습니다. 기린을 붙잡는 자가 왕이라던가, 어쨌거나 기린에게 잘 보이면 될 것 아닌가 따위로, 틀린 것을 믿고 있는 난폭한 것들이요.」
 「그래서, 봉로궁은 미로 안에 있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기린이 태어났다고 듣고서 기린을 납치하려 숨어 들어오는 자도 있을 정도니까요.」
 「.............흐음.」
 「그 때가 오면, 우리들이 바깥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때까지는 혼자서 밖에 나가지 말아주시어요. 설령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알았어.」
 요우카는 웃으며 타이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천계가 내리면, 기린은 왕의 앞에 엎드립니다. 왕 이외의 자에게는 절대로 평복하거나 하지 않는 생물이지만요. --천제나 서왕모의 사당에서도, 기린만이 평복하지 않아도 되도록 정해져 있을 정도입니다.」
 「헤에.....」
 「그리고서, 절대로 곁을 떨어지지 않고, 절대로 명령에 거스르지 않겠다는 서약을 합니다. 곁을 떠나지 않으며, 칙명에 등돌리지 않고, 충성을 바칠 것을 서약합니다, 라고.」
 「응.」
 「왕이, 허락한다, 라고 말씀하시면 왕의 발에 이마를 댑니다. --뿔을 대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그 사람은 왕이 됩니다. 타이키가 고른 분이라면, 태왕(泰王)이라 부르게 됩니다. 대국의 왕을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타이키는 그 이후, 태 타이호(泰台輔)라 불리게 됩니다.」
 「복잡하네.」
 귀찮다는 듯이 말하는 타이키에게, 요우카는 웃었다.
 「그렇습니까? --왕을 고르면, 봉산의 더 위로 올라갑니다. 위에 서왕모의 사당이 있습니다. 타이키는 그 곳에 왕을 모시고 갑니다.」
 「어떻게? 산시도 못 가는걸.」
 요우카는 더욱 웃었다.
 「그 때가 되면, 저절로 길이 열립니다. 사당에 올라 천칙(天勅)을 받고, 그리고서 대국으로 내려가시는 것입니다. --천칙은 어떤 것이냐고 물으시면 안됩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기린과 왕뿐이니까요.」
 「응.」
 「예쁜 구름이 봉산에서 대국까지 걸립니다. 구름에 타고, 대국에 내려가시게 됩니다.」
 「....그래서?」
 「그래서?」
 요우카는 타이키를 돌아보았다. 아이는 불안한 듯한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그리고서, 어떻게 돼? 혹시, 나는 대국에서 사는 거야?」
 「물론, 그렇습니다.」
 「그럼, 요우카하고 못 만나?」
 타이키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산시하고도? 테이에이도, 다른 여선들도?」
 어머, 하고 중얼거리고, 요우카는 이불 위에 앉아있는 타이키를 꼭 안았다.
 「그렇군요. .......만나는 일은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산시는 곁을 떠나지 않으니까. 계속 타이키와 함께입니다.」
 「왕을 고르지 않고 있는 건 안돼?」
 「왕을 선택하는 것이, 기린의 중대한 사명입니다.」
 가는 팔로 다시금 끌어안으며, 요우카는 아이의 등을 쓰다듬는다.
 「훌륭한 기린이 되어서, 훌륭한 왕을 고르십시오. 우리들은, 봉산에서 타이키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계속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봉산은 기린을 기르는 장소이니까, 한 번 떠난 기린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좋다. 여선들의 양손은 언제나, 새로이 태어난 기린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타이키가 알 필요는 없는 일이다.
 「타이키가 훌륭하게 임무를 이루어 내시는 것이, 저희들의 단 하나의 바람입니다.」
 타이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려고 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 5 -
 마침내, 달력상으로 여름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달력상으로, 라는 것은 봉산은 애초부터 기후의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지가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에는 황해의 남서쪽에 있는 영곤문(令坤門)이 열린다.
 「타이키, 머리를 땋아드릴까요?」
 테이에이는 말을 걸었다. 냇물 바닥의 조약돌을 주우려고 수면에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는, 몇 번이고 귀찮은 듯이 머리를 쓸어 올리는 타이키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응.」
 타이키는 말하며, 냇가에 있는 바위에 앉았다. 테이에이는 허리띠에 달린 장식 끈을 풀어, 그것으로 강철 빛의 머리카락을 땋아준다. 끝을 다듬어가며 기른 머리는, 이미 등에 걸려있다. 그래도 아직, 묶기에는 부족한 듯이 느껴진다.
 「앞머리만이라도 자르면 안 돼?」
 「절대로 꼭, 이라고 말씀하신다면 바라시는 대로 잘라드리겠습니다만. 그 대신에, 나중에 후회하셔도 모릅니다.」
 「이만큼 있으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타이키의 귀찮다는 듯한 말에, 가볍게 웃었다.
 「기린이 되었을 때, 그대로의 길이로는 안됩니다. 보기 싫은 길이가 될 겁니다. 타이키의 머리는 아직도 길어가고 있으니까, 분명 이걸로는 짧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기린이 되어보면 확실해질텐데.」
 「시험해보지 않아도 저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자, 어서.」
 첨벙, 소리를 내며 물 속으로 돌아간 타이키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본다.
 「사이린(齋麟)의 얘기를 아시나요?」
 「사이린? 아니.」
 「옛날옛날, 굉장히 멋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이린이 있었습니다.」
 「린, 이니까 재국(才國)의 여자애인 거네.」
 「그렇습니다. 그 사이린이 여선의 머리를 부러워해서, 머리를 땋아달라면서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해요.」
 「여선처럼 땋았어? 비녀를 꽂고?」
 테이에이가 바느질을 하면서 끄덕였다.
 「그렇고말고요. --기름을 칠해 빗질하고, 잘 땋아서 색색가지의 비녀로 장식한 것까지는 좋았습니다만, 갑자기 저녁이 와서 한 발 먼저 전변해서 궁으로 돌아가려고 했더니 갈기를 땋은 채. 목이 뒤로 젖혀져서, 똑바로 될 수 없었다고 해요.」
 가볍게 타이키가 웃어버렸다.
 「....아팠겠네.」
 「그렇고 말고요. 타이키도 조심하시어요. 땋은 채로 기린이 되어서, 아프면 안되니까요.」
 「네에.」
 큭큭 웃는 타이키에게 웃어주면서, 테이에이는 손가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마주의 고손이라는 남자가 나타난 이래, 타이키의 주변에는 반드시 2, 3명의 여선이 따라다니게 되었다. 여괴는 위험하다 싶으면 타이키를 지키는 일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생물이므로, 때로는 무익하게 피를 흘려 오히려 타이키를 상처 입힌다.
 사실 그 날도 한 번의 목욕으로는 피 냄새가 가시지 않은 것을, 타이키가 여선에게 말하지 않고 언제나처럼 산시가 침상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해버려, 결국 다음날 열이 나는 소동이 되어버렸다.
 (.......사령이 있으면 좋을 텐데.)
 테이에이는 가슴속으로 중얼거렸다.
 산시 혼자서는 타이키를 지키기에 손이 모자란다.
 10년의 세월이 원망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런 때이다.
 오산을 둘러싸는 황해는 요마의 소굴이다. 본래라면 조금씩 황해의 기슭을 돌아다니면서, 기린은 요마를 굴복시켜 사령으로 만들어 간다. 우선은 오산의 기슭에서, 기슭에 모여있는 작은 것들을 장난처럼 절복(折伏)시켜서, 쓸데도 없는 요마를 모으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타이키에게는 그 시간이 없어.........)
 게다가, 본인으로서도 요마를 절복 시키는 방법 따위 알 리가 없겠지. 테이에이 역시 가르쳐줄 수 없다. 그것은 기린이 태어나서부터 알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그 반만이라도 빨리 돌아왔더라면.
 기린은 동물 모습으로 태어난다. 5년 정도는 그 모습 그대로로 뿔도 없다. 말도 하지 못하고, 여선의 의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병아리 같은 존재인 것이다.
 병아리는 나는 방법을 알지 못하지만, 기린은 태어날 때부터 하늘을 달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기린의 새끼는 여괴만을 따르며, 오산을 제멋대로 뛰어다니며 요마를 모아서 논다. 여괴의 젖만을 먹고 자라며, 상처에도 피의 부정에도 강하다.
 5년 정도--개인차는 있지만--지나면, 때때로 인간의 모습이 되어, 인간의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얼마 되지 않아 인간과 짐승을 빈번하게 오가게 되며, 어느 날 이마에 뿔의 선단이 나타난다. 그것과 동시에 젖을 떼고, 완전한 인간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기린은, 보통은 젖을 뗀 순간부터 전변의 방법도 절복의 방법도 알고 있다. 누구에게 배울 필요가 없다. 뿔이 완전히 자라날 때까지 성수라고는 부르지 않지만, 기린으로서의 능력은 모두 갖추어져 있다. 그러니까, 깃발이 걸리는 것이다.
 기린이 젖을 떼면, 고국--실제로 그 곳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부른다--에 소식이 전해져, 각 사당에 기린기(騏麟旗)가 오른다. 봉산에 기린이 있으니, 곧 왕의 선정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기린기를 보고, 자신이야말로 왕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봉산을 올라온다.
 테이에이는 한숨을 쉬었다.
 타이키는 이미 병아리가 아니다. 귀환한 날에 고국-대국에는 기린기가 걸렸다.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해봤자 통하지 않는다. 왕은 선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전변은 할 수 있는 것이 당연, 자신의 몸을 지킬 사령은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
 「.......어떻게 해야할까.」
 테이에이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는지, 타이키가 얼굴을 들었다.
 물어보는 듯한 표정에, 테이에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말하지 않는 편이 좋다. 전변의 건처럼, 쓸데없이 타이키를 고민하게 할 뿐이다. 어차피 여선들 중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니까.
 겨우 예전의 원기를 되찾은 타이키를, 또다시 침울한 얼굴을 하게 하고싶지 않다.
 요우카에게서 왕을 선택하면 봉산에는 돌아올 수 없다고 듣고서, 타이키는 굉장히 기가 죽어버렸다. 하지가 오는 것이 걱정되는 듯 하여, 보고 있는 여선들이 어쩔 줄 몰라할 정도였다.
 하지에 올라오는 사람들 사이에 왕이 있다고 만은 할 수 없다, 몇 번의 계절동안 올라오는 자들 사이에서 왕을 찾다가, 몇 년이나 지내버리는 기린도 있다고, 너무나 왕이 나타나지 않아 애탄 나머지 스스로 봉산을 뛰어나가 왕을 찾아낸 기린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겨우 안정된 듯 했다.
 「뭔가를 한다면 지금이지만........」
 다행히 지금은 보도궁의 주위에 사람이 없다. 춘분의 안합일에 시간이 맞은 것은 저 고손뿐인 듯 했다.
 그 고손도, 여선에게 심하게 책망 당한 후 물도 식료도 받지 못하는 극히 냉담한 취급에 질려 봉산을 내려가 버렸다. 나라에 돌아가기 위해 영곤문 근처에서 문이 열리는 안합일까지 기다리겠지만, 요마와 요수로부터 몸을 지키면서 계속하는 야영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간신히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안합일에 들어온 자들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겠지만, 테이에이에게는 동정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것도 하지까지. 하지를 지나면, 보도궁 주변은 언제나 사람이 있는 상태가 된다. 바로 지금 황해에 데려가 요마와 대치시키면 절복의 방법을 생각해낼지도 모르지만, 새끼기린에 비해 타이키는 이미 야생의 강인함을 잃고 있다. 만에 하나, 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시킬 수 없다.
 「테이에이, 고민이 있어?」
 말을 걸어와 얼굴을 들자,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타이키가 테이에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요.」
 「내가 뭔가, 걱정시키는 거야?」
 테이에이는 미소지었다. 여선들을 걱정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기린뿐이라는 것을 이미 타이키는 이해하고 있다. 그 총명함이 기쁘고, 여선의 우울함을 눈치채어주는 따뜻함이 사랑스럽다.
 「말도 안됩니다.」
 「하지만.」
 「바느질이 지겨워졌을 뿐입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전 이런 것에 서툴러서요.」
 「나도 도울까?」
 「어라어라, 그거 감사합니다. 하지만, 타이키가 테이에이보다 바느질을 더 잘 해버리면, 저는 얼굴을 숨기고 행방을 감출 수밖에 없습니다. --신경쓰지 말고 놀고 계시어요.」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테이에이는 생각했다.
 --적어도, 다른 기린에게 만나게 해줄 수만 있어도 좋으련만.
 기린이라면, 여선도 산시도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을 가르쳐줄 수 있을 것이 틀림없는데.
 







 

 
 슬슬 밝혀지는 기린의 생태. 기린의 비밀을 밝힌다!!! 편입니다.(웃음)
 이번의 안주는 시오자와상. 오늘은 성마전과 110번...을 들었습니다. 시오자와상의 목소리는 언제 어떤 역을 듣고 있어도 아련한 슬픔이 뒤따릅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에 대한 애정이라는 것, 참으로 흐를 곳이 없이 쌓여만 가는 물 같습니다. 가슴속에 이렇게 그분에 대한 감정이 쌓여있는데, 풀 수도 흐를 수도 없는 마음은 그대로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여만 갑니다. 제가 그분의 존재를 깨달은 것은 이미 시오자와상의 사후였어요.
 시오자와상의 최대의 매력은, 경이로울 정도의 배역 흡수력입니다. 가장 멋진 역이라면 아이노 쿠사비에서의 이아손 사마겠지요. 공을 시키면 무한강공이 되고, 수를 시키면 여왕절수가 되며. 아방한 역을 시키면 더할나위 없이 귀여워지고, 악역을 시키면 한없이 나쁜놈이 될 수 있는 것이 그분의 강점입니다. 이아손사마(아이노 쿠사비)와 클라비스사마(안제리크), 아~루(궁극초인 아~루)와 카자마 신(에어리어88)이 모두 동일인물의 성대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하야미상의 목소리가 허리로 온다면, 시오자와상의 목소리는 그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전신으로 옵니다. 듣고 헤롱헤롱, 메로메로, 반짝반짝 하다가도 다음 순간 울고 싶은 기분이 되지요. 그분은 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110번...의 프리토크에서, 시오자와상은 웃고 계시는군요. 저 부드럽고 잔잔한 목소리로, 웃고 계십니다. 왜 웃느냐 하면......이름을 밝힐 수 없는 모 성우분이 「남자가 '갈' 때 '읏'은 이해가 가는데 대체 '아'는 왜 나오느냐...」는 화두를 꺼내면서 녹음실 내가 뒤집어졌기 때문입니다.(苦笑)(힘내요, 미도리카와!!!) 그러나, 왜 이 110번의 씬은 미키X미도리카와 뿐인겁니까.; 약속이잖아요. 공과 사이가 안좋은 재수없는 남자가 수에게 관심까지 표했다면, 당연히 한번은 시오자와상이 미도리카와상을 덮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때 미키가 달려와 미도리카와를 구하고!!!(어느새 막 부르고 있다) 시오자와상은 잔뜩 이야미를 퍼붓고!!! 그러는게 약속인데! 왜!!!!< -요는 시오자와상의 씬이 없는 것이 아쉬운 듯< - 이노우에상도 없었다< - 그만해!
 (크흠) 그렇게나 빨리 그분을 보내버린 것이 아쉽고 분합니다. 아직 조금 더, 조금 더 오래 계시면서 더 많은 역을 해주시기를 바랬습니다. 더 많은 목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계단이 미워요....... T_T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上) 5장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상)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5 장
 
- 1 -
 「--교크요사마!」
 타이키가 소리를 지른 것은, 로천궁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때였다.
 겨우 다섯 개의 방밖에 없는 궁의, 안에 들어선 교크요는 등뒤에 금발의 젊은이를 동반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테이에이는 엎드리면서 마음 속으로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교크요는 충분히 생각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보지 못한 사이에, 의젓해졌군요.」
 교크요는 웃으며 타이키의 머리를 쓸었다.
 「꽤나 갈기가 기셨소. 평안하게 지내셨는지?」
 「네.」
 대답하고서 타이키는, 교크요의 등뒤에 있는 젊은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봉산에서 남자를 보는 것은, 언제인가의 고손이래 처음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신기했다.
 「이쪽은 경 타이호(景台輔).......케이키이시오.」
 타이키는 눈을 크게 떴다.
 「기린,인가요?」
 교크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키는 한동안, 무표정하게 인사하는 케이키를 올려다보았다.
 왠지 차가와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기린과 만날 수 있는 것이 기뻤다. 실제로, 타이키는 자신이 기린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 기린이 어떤 것인지 아직껏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교크요는 여선들을 둘러보았다.
 「로천궁은 떠들썩하군요.」
 요우카가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타이키가 혼자서 식사하시는 것을 꺼려하셔서......」
 교크요는 웃었다.
 「괜찮소. 지금, 봉산의 주인은 타이키. 타이키가 좋을대로 하시면 됩니다.」
 「예.」
 「경 타이호가 한동안 체류하시도록, 궁을 준비하시오.」
 「알겠습니다.」
 절하는 여선들을 둘러보고, 교크요는 타이키의 손을 잡았다.
 「무례한 자에게 험한 짓을 당했다고 하셨던가요. 말도 안 되는 재난이었습니다. 상처는?」
 「없습니다.」
 「그거 잘되었군요.」
 웃으며 교크요는 타이키를 앉혔다. 케이키에게도 눈으로 앉도록 지시했다.
 「경 타이호는 타이키 전에 봉산에 계시던 분.」
 「그렇습니까?」
 타이키는 케이키를 보았지만, 표정없는 시선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두 분은 같은 봉산에서 태어나신, 말하자면 형제와 같은 사이. 경 타이호는 한동안 봉산에 계실 것이니, 타이키도 경 타이호를 형이라고 생각하시고 여러 가지를 배우도록 하세요.」
 「네.」
 타이키는 웃으며, 케이키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경 타이호는 점심은 드셨나요?」
 「....예에.」
 「차라도 드시겠어요?」
 「사양하겠습니다.」
 타이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경 타이호는 어느 궁에 묵으실 건가요?」
 「이전 이곳에 머물 때에는, 자련궁(紫蓮宮)에 있었습니다.」
 「그럼, 궁으로 가시겠어요? 저도 함께 가도 될까요?」
 「모쪼록.」
 일어서는 케이키를 따라서, 타이키도 일어섰다. 케이키의 뒤를 쫓아서 걸어가다가, 교크요를 뒤돌아보았다.
 「교크요사마는 한동안 계실 건가요? 아니면, 용무가 있으신가요?」
 교크요는 웃었다.
 「특별히 용무는 없으니, 타이키만 괜찮으시다면 저녁이라도 함께 하도록 할까요.」
 「네!」
 기쁜 듯이 웃으며, 서둘러 케이키를 쫓아가는 타이키를 교크요도 여선들도 미소지으며 전송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고서, 테이에이는 주저하는 듯이 교크요에게 말했다.
 「무례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말해보게.」
 「죄송합니다만, 경 타이호는 대하기 편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분. ....그.....타이키와는.」
 전부를 말하지 못한 채, 교크요가 소리높여 웃었다.
 「확실히 경 타이호는 딱딱한 분이지.」
 테이에이는 입을 다물었다. 케이키는 봉산에서 태어나, 바로 얼마 전까지 이곳 봉산에 살고 있었으므로, 성격은 잘 알고 있다. 부정하는 것이 예의겠지만, 공교롭게도 테이에이는 그 말을 부정할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언젠가의 연도 있으니 렴 타이호에게 부탁할까도 생각했었지만. 련(漣)은 지금 한창 소란스러워서, 쉽게 타이호를 빌려올 수가 없네. 예전에도 무리하게 부탁했었던 것이니.」
 렌린(廉麟)의 고국, 련에 전란이 있다는 소식은 테이에이도 듣고 있었기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경 타이호가 가장 나이가 가까우시지. 나라가 큰일인 것은 경 타이호도 마찬가지이지만, 타이호는 타이키와 어울리면서, 조금은 타이키의 다정함을 배우는 것이 좋을 것이야.」
 테이에이는 매우 곤란한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예.」
 교크요는 가볍게 웃다가, 갑자기 웃음을 거뒀다.
 「......경 여왕은 조금 생각에 빠져버리기 쉬운 성품이시지. 경 타이호가 저래서는, 오히려 경 여왕을 몰아붙이게 될 뿐이야. 타이키의 부드러운 성품을 조금은 보고 배워주면 좋겠네만.....」
 테이에이는 말없이 절했다.
 봉산의 밖에서도, 근심의 씨는 끊기지 않는 듯 하다.
 
- 2 -
 타이키는 함께 따르는 여선들과 함께 케이키를 쫓아 걸었다.
 어른인 케이키를 쫓아가는 것은, 타이키에게 있어서 쉬운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물며 케이키가 조금도 걸음을 늦춰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련궁에 도착했을 때에는 완전히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자련궁도 로천궁과 큰 차이가 없는 구조였다. 케이키는 궁에 들어가, 잠시동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각각의 방을 걸어다니며 실내를 살펴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돌아와 기뻐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타이키는 말없이 따랐다.
 한 바퀴 궁내를 걷고서, 케이키는 안쪽 공간의 의자에 앉았다. 타이키 역시 말없이 곁에 서있었다.
 가구는 있지만, 걸개나 장식품 등은 모두 치워져 있다. 그런 것들을 들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여선들에는 신경쓰지 않고, 케이키는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완전히 존재가 잊혀진 듯 해서, 타이키는 왠지 침착해질 수가 없었다. 케이키의 표정을 보면 말을 거는 것도 주저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있는 것도 방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굉장히 긴장해버렸기 때문에, 여선이 테이블 위에 다기를 갖추어 내어왔을 때에는 마음이 놓였다.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차라도 드십시오.」
 여선이 말하며 케이키에게 찻잔을 내밀었다.
 「그렇게 말없이 계시면, 타이키가 곤란해하십니다.」
 「아아.......」
 겨우 그 존재를 생각해낸 듯이, 케이키는 타이키를 보았다.
 「이거, 실례.」
 표정이 없는 얼굴로 가볍게 인사한다.
 「저........제가 방해가 되나요? 그러면, 돌아갈께요.」
 주저주저하며 물어본 타이키에게 대답한 것은, 케이키가 아닌 여선이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자, 타이키도 차를 드시어요.」
 의자를 권해주었기에, 주저하면서 앉았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은 변함없다.
 「에에......저기, 경 타이호는 어디에 사세요?」
 「경(慶)입니다.」
 「경국은 어떤 나라죠?」
 케이키는 감정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동쪽의 나라입니다.」
 그것만 말하고 입을 닫아버렸기 때문에, 타이키로서는 경국이 어떤 나라인지 완전히 알 수 없었다.
 「경 타이호도 봉산에 계셨지요?」
 「그렇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계속인가요? 저는, 얼마 전에 여기에 왔지만요.」
 「태어났을 때부터입니다.」
 「언제까지 계셨나요?」
 「2년 전까지입니다.」
 「그럼, 2년 전에 임금님을 선택하신 거네요.」
 「왕과 만난 것은 작년의 일입니다.」
 아아, 하며 타이키는 중얼거렸다.
 「그럼, 2년 전에 임금님을 찾으러 봉산을 나간 건가요?.」
 「그렇습니다.」
 「저...........」
 타이키는 꽃향기가 나는 차를 들여다보았다.
 「임금님을 고른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요우카는 천계가 내린다고 말하지만, 전 잘 모르겠어서...」
 케이키의 대답은 한없이 냉담했다.
 「그 때가 되면 압니다.」
 「저도 실수하지 않고 왕을 고를 수 있을까요?」
 「고를 수 있습니다. 기린은 그런 생물이니까요.」
 「천계가 어떤 것인지, 몰라도 괜찮은가요?」
 「천계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왕과 만나면, 어떤 것인지 알게 됩니다.」
 「실수로 다른 사람을 왕으로 골라버리거나, 임금님을 놓쳐버리는 일은 없나요?」
 「그럴 리 없습니다. 왕에게는 왕기(王氣)가 있으니까.」
 「왕기?」
 케이키는 무표정하게 끄덕였다.
 「왕의 기운입니다. 풍격이라고 말해도 좋겠습니다만. 어쨌거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저는 평범한 기린하고는 다르다는 것 같지만, 그래도 알 수 있을까요? 보통의 기린과는 고르는 방법이 다르거나 하지는 않을까요?」
 「저는 흑기린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르겠습니다.」
 「........하아.......」
 타이키는 완전히 곤란해져 버렸다. 이마에 희미하게 땀이 흘렀다.
 그렇게나 기린과 만나고 싶었는데도, 그 기린이 눈앞에 있지만 조금도 앞으로 나아간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은 왜인걸까.
 「경 타이호는 봉산을 내려가서, 어떻게 임금님을 찾으셨어요?」
 눈앞에 있는 인간 중에서 누군가를 고르는 것은 어쨌거나,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대를 찾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은 아니었을까.
 「왕기에 의지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왕기가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보는 건가요?」
 「왕기는 본인이 눈앞에 있지 않아도, 막연하게나마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기가 있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그것 역시, 타이키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경 타이호는 전변하실 수 있겠네요.」
 「전변할 수 없는 기린은 없습니다.」
 「저는 못해요. ......어떻게 하는지를 몰라서....」
 케이키는 타이키를 보았다. 그 눈은 선명한 색채를 띠고 있었다.
 「손을 올리는 데에 그 방법을 묻습니까? 걷는 방법을 따로 배웁니까?」
 「아니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전변의 방법을 물어봐도 답할 수 없는 데다, 대답을 한다고 하여 알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네......」
 타이키는 몸을 움츠렸다. 그러면 자신은, 이대로 평생 전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침묵이 이어졌다. 케이키 쪽에서 말을 걸어올 생각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타이키는 일어섰다. 굉장히 산시를 만나고 싶었다.
 「.........방해해서 죄송했습니다.」
 고개를 숙이자, 말없는 인사가 돌아왔다.
 「저녁식사 때 뵐 수 있을까요?」
 「교크요사마는 그럴 생각이셨으니까.」
 「네. ........정말로, 귀찮게 해서 죄송했습니다. 실례합니다.」
 「예.」
 절하고 발을 돌렸다. 서둘러 궁을 빠져나오고 싶었지만, 밖으로 나올 때까지 견딜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가는 돌계단을 밟기도 전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괴롭고 한심해서, 발을 멈췄다. 뒤따라 나오던 여선이 부르는 것이 들렸다.
 「타이키.......」
 어깨에 손을 얹어온다. 그 손의 온도와 무게에 한층 괴로워졌다.
 「난 기린이 아닌지도 몰라.」
 「그럴 리가 없습니다.」
 부드러운 손으로 안아온다.
 「기린이라고 해도, 모자란 기린인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타이키.」
 「분명히 그런거야.」
 타이키는 여선에게 매달렸다.
 「미안해요......」
 --이렇게 모자라서.
 애정을 받기만 할 뿐.
 무엇 하나, 기대에 응할 수 없어서.
 
- 3 -
 --왜 그렇게, 한심한 애가 나온 기냐.
 할머니는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괜찮아, 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쓰다듬어주는 손은 여선의 손과 똑같은 온도였다.
 (할머니가 말하는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지금 이대로, 다정한 아이로 있어주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엄마는, 그걸로 기뻐.)
 그렇다면, 왜 어머니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울어야 했던 걸까.
 미안해요, 라고 말하면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웃으며,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것이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여선도 똑같은 말을 하며, 타이키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따뜻한 손으로 타이키의 손을 끌고, 로천궁에 데려다 주었다. 요우카도 테이에이도, 마찬가지로 위로해 주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고말고요. 전변할 수 있건 아니건 타이키가 기린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조금도 신경쓸 일이 아닙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정말로, 경 타이호도 어른스럽지 못하다니까.」
 (할머니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이란다.)
 「그렇게 울지 말아요. 전변할 수 없어도, 조금도 상관없으니까.」
 (사과하지 않아도 돼.)
 「그렇고말고요. 타이키가 그렇게 걱정할만한 일이 아니에요.」
 산시도 또한,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쓰다듬고서 그 손으로 안아 올려주어, 타이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조금 밖에 다녀올까요? 저녁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이 한층 괴로웠다. 따뜻한 손도 부드러운 목소리도, 더욱 괴로웠다.
 「다녀오세요, 타이키.」
 그리 말하며 요우카는 포를 한 벌 걸쳐주었다.
 「저녁식사 때에는 돌아오세요. 오늘은 현군도 함께 식사를 하실 듯 하니, 분명 떠들썩해질 겁니다.」
 요우카가 전송해주고, 산시에게 안겨 궁을 나서도 역시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경 타이호도, 곤란하십니다.」
 자련궁을 방문해 온 교크요는 한숨을 쉬었다. 케이키는 곁에서 말없이 있었다.
 「.....타이키는 아직 어리시오. 그런 것을, 울려버려서는.」
 「괴롭힌 것처럼 말해지는 것은 본의가 아닙니다.」
 「알고 있고 말고요. ......그래도, 조금 다르게 말할 수도 있지 않았겠소.」
 「진실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전변의 방법 따위, 물어보아도 답할 수가 없습니다.」
 교크요는 더욱 한숨을 쉬었다.
 「그 말하는 태도가, 냉담하다는 겁니다. 타이키는 불행하게도 오랫동안 봉래에서 지내셨소. 경 타이호처럼 대해서는 곤란합니다. 좀 더..........」
 「그렇다면 같은 봉래 출신의 연이 있는, 연 타이호에게라도 부탁드리면 좋을텐데요. 저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케이키.」
 교크요는 주의를 주었다.
 「저는 케이키에게 부탁드린 것이오. 케이키에게도 타이키에게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저는--」
 「케이키의 고민을 모르는 교크요라 생각하십니까.」
 자르듯이 말하자 케이키도 한숨을 쉰다. 고국에 남겨두고 온 왕을 생각했다.
 케이키의 주인은 극히 평범하게 자라난 상인의 딸. 좋게 말하자면 섬세한 여성이다. 나쁘게 말하자면, 기가 너무 약하다. 옥좌를 지탱해 나갈 수가 없다. 날이면 날마다 위축되어, 정무도 포기하고 왕궁 깊숙히 숨어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꾸짖어도 격려해도 조금도 좋아지지 않을 뿐 아니라, 명약하게 케이키를 꺼려하며 대면하는 것을 피하려는 모습마저 보인다.
 「경 타이호는 절대로 틀린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방법이 반드시 최선의 방법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으시오.」
 케이키는 조금 화가 났다. 왜 정론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인가.
 「우선은,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 주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타이키는 솔직한 성품을 가진 분. 그 분을 겁먹게 하는 태도로는, 경왕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다시금 케이키는 한숨을 쉬었다.
 
 「타이키는 어디에.」
 샛길을 걷다가 만난 여선에게 묻자, 여선은 등 뒤, 봉로궁의 바깥쪽을 가리켰다.
 「사향의(麝香艸+宣)의 동산에. --너무 타이키를 괴롭히지 말아주십시오.」
 길을 물을 때마다 똑같은 잔소리를 듣게 되어, 케이키는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럴 생각은 없어.」
 「생각은 없어도, 경 타이호의 말씀은 차가우십니다.」
 「신경쓰겠소.」
 그 이외의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우울한 기분으로 기암의 사이로 난 샛길에 다다라, 만나는 여선들마다 잔소리에 비난을 던지는 것을 들으면서 사향의가 피어있는 광장으로 나왔다.
 케이키는 잠시 멈춰 섰다. 황색의 꽃이 점점이 피어있는 사이에, 하얀 여괴가 사지를 꺾고 앉아있다. 그 표범의 몸체에 기대이듯이 움츠리고 있는 타이키를 발견했다.
 이상한 기린이라고 생각했다.
 기린이라는 것만은 틀림없었지만, 갈기의 색이 다른 것 때문에 계속 위화감을 씻을 수가 없다.
 위화감의 근원은 다른 곳에 있었다. 케이키는 어린아이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작은 몸체도 가느다란 손발도, 마치 다른 생물 같아 익숙해질 수가 없다. 특히 지금처럼 어깨를 움츠리고 동그랗게 되어있으면, 뭔가 가슴속이 불편해서 침착하지 못한 기분이 되는 것이다.
 말을 걸까 말까 망설이고 있자, 먼저 여괴가 시선을 돌려왔다. 그것을 깨달았는지, 타이키도 또한 뒤돌아본다. 깜짝 놀라 짙은 색의 눈을 크게 뜨고서, 당황한 듯이 소매로 얼굴을 훔쳤다. 일어서서, 깊게 머리를 숙인다.
 「.......아까는 죄송했어요.」
 「아니요.」
 말을 꺼내고서는 당황해서 말을 고른다.
 「이쪽이야말로, 미안하오. 저는 말하는 것이 차가워서.....」
 「아니요.」
 타이키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어떻게 저런 가느다란 목으로 머리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일까,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제가 모자라서 그래요.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아니..... --곁에 앉아도 좋을까요.」
 「모쪼록.」
 케이키가 곁에 앉자, 타이키도 그 자리에 앉았다. 케이키는 대기하듯이 몇 발 물러서 절하는 여괴를 보았다.
 「타이키의 여괴입니까?」
 「네. 산시라고 합니다.」
 「훌륭한 여괴로다.」
 말하자, 타이키는 눈을 깜박였다.
 「여괴에도 좋고 나쁜게 있나요?」
 「없지는 않습니다. 산시처럼 많은 짐승이 섞인 것일수록, 좋은 인요라 하지요. --산시, 몰러나 있어도 좋다. 타이키에게는 내가 함께 있을 것이니.」
 케이키가 말하자, 산시는 깊게 절하고 샛길 쪽으로 향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케이키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좋은 인요이지만, 아직 힘이 해방되지 않았군.」
 중얼거리자, 타이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갈기가 닿아 사향의가 흔들렸다.
 「타이키의 힘이 해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여괴는 주인과 연이 깊습니다. 기린이 아프면 함께 병드는 것입니다.」
 「저는......아픈 건가요?」
 「그것은 예일 뿐입니다. --하지만, 병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가까울지도 모르겠군요.」
 「그런가요.....」
 고개를 푹 숙이는 아이를 보고, 케이키는 숨을 토했다. 도저히 침착할 수가 없는 것이다.
 
- 4 -
 케이키가 한동안, 말의 실마리를 찾고 있었다. 아이는 완전히 입을 다물고 움츠리고 있었다.
 「--아까는 왜 울게 되셨는지, 여쭤 보아도 좋을까요.」
 무례한 질문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교크요는 타이키의 심정을 이해하라고 했다.
 「....죄송합니다.」
 작은 기린은 몸을 움츠리려 했다.
 「사과를 받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유를 여쭤보고 싶은 것입니다.」
 타이키는 몸을 움츠렸다.
 「.......제가 한심해서요.」
 「왜?」
 「이대로 계속 전변할 수 없는 걸까, 싶어서. 여선은 모두 제가 전변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데.」
 「여선이 그렇게 신경쓰이십니까?」
 물어보자, 기운 없이 얼굴을 든다.
 「네. 모두 저렇게나 잘해주는데. 저는 기린이니까 봉산에 사는 것을 허락 받고, 게다가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주고 있는데도 기린다운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적어도 그 보답으로 모두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데, 그런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한심해서....」
 말하고 있는 사이에 또다시 눈물이 속눈썹에 맺혔다.
 「울지 마십시오. 또 제가 여선들에게 꾸중을 듣습니다.」
 타이키는 눈을 깜박거렸다.
 「경 타이호라도 여선들에게 꾸중을 듣는 건가요?」
 「그렇고말고요. 여선들은 기린에 대해서는 망설이지 않습니다.」
 그리 말하자, 타이키는 조금 웃었다.
 「여선을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들은 타이키의 시중을 들기 위해 있는 자들. 타이키가 여선의 주인이니까요.」
 「하지만......」
 중얼거리다가 타이키는 다시금 움츠렸다.
 「저는 여선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모든 것을 돌봐주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어요.」
 「타이키는 이상하시군요.」
 「그런가요.......」
 또다시 움츠러드는 목소리에 케이키는 당황했다.
 --정말, 교크요는 뭘 생각하고 있는 건가. 그러니까 자신은 맞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책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네.....」
 고개를 끄덕이더니, 타이키는 멍하니 말을 이었다.
 「저는, 집에서도 그랬어요」
 「집?」
 「네. 봉래의 집에서도. .......할머니도 엄마도, 기쁘게 해드릴 수가 없었어요. 언제나 실수만 하고, 할머니를 화나게 하고 엄마랑 아빠한테 한숨만 쉬게 했어요.」
 타이키는 봉래로 쓸려갔다. 그 식이 있던 때를 케이키도 기억하고 있다. 그 때, 케이키 역시 봉산에 있었으니까.
 「산시가 맞으러 와서 봉산으로 오고, 제 진짜 집은 봉로궁이라고 듣고서, 그래서였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진짜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뭘 해도 안되었던 거라고. ...........하지만, 봉로궁에서도 마찬가지에요. 누구도 저를 꾸중하거나, 저 때문에 울지는 않지만 역시 저는 아무도 기쁘게 해줄 수 없어요. 때때로 제가 정말은 기린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혹시라도 기린이 아니라면, 전 봉로궁에 있으면 안되요. 집에 있으면 안되는 거하고 똑같이.」
 케이키는 겨우 타이키가 10년 가까이 살아온 장소를 떠나온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케이키마저, 봉산을 떠나는 것이 왠지 괴로웠었다. 케이키보다 작은--이렇게나 쉽게 울어버리고 낙담하는 생물이라면, 분명 힘들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타이키는 기린에 틀림없습니다.」
 「그런가요?」
 「기린은 기린을 알 수 있습니다. 타이키는 확실하게 기린의 기운이 있습니다.」
 타이키는 케이키를 올려다보았다.
 「금색의 빛 같은 것. 확실하게 보이니까 알 수 있습니다.」
 타이키는 우선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고, 이어서 케이키의 주변을 응시했다.
 「저에겐......안보여요.」
 「그것은, 타이키의 힘이 아직 해방되어있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타이키는 기린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럼--, 제가 봉산에 있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닌 건가요? 기린다운 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도?」
 「잘못된 게 아닙니다.」
 잘됐다, 라고 중얼거리며, 타이키는 또다시 눈을 깜박였다.
 「.......혹시, 타이키께서는 봉래의 집이 그리우신 것입니까?」
 「......네. 때때로. 여선들에게는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모친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만......어머님을 사랑하십니까?」
 경왕은 죽은 어머니를 굉장히 그리워했다. 집을 그리워하며, 때때로 평범한 여자로 돌려보내 달라고 케이키를 질책했다.
 「경 타이호도 엄마가 없어요?」
 「기린에게는 보통, 없습니다.」
 「그럼, 저는 운이 좋은 거네요.」
 「그 대신에, 여괴와 여선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타이키에게는 어머니가 계셨지요. 역시 만나고 싶으신 겁니까?」
 타이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깊게 몸을 움츠릴 뿐이었다.
 「여선들을 신경쓰지 마십시오.」
 케이키가 말하자, 작게 끄덕였다.
 「하지만, 전 우리 집 아이가 아니니까, 어쩔 수 없어요......」
 「그런가.....」
 「여선은 저렇게 잘해주니까, 쓸쓸하다고 하면 벌받을 거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까요.」
 「물론, 그렇고 말고요.」
 타이키는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무릎을 안고, 얼굴을 묻는다. 케이키는 완전히 당황해버렸다. 역시 이것도, 자신이 울려버린 게 되는 걸까.
 「저.......타이키.」
 「.......죄송해요.」
 그리 말하며 그 작은 몸을 더욱 작게 움츠려버려, 더욱 곤란해져 버렸다. 강철빛의 머리카락이 내려오며, 가는 목이 드러나 추워 보였다. 무릎을 꽉 안은 어깨도, 더할 나위 없이 추워 보여 안절부절한 나머지 손을 대었다.
 「죄송해요.......」
 다시금 사과해와 곤혹했다.
 「사과할 필요는 없소.」
 그렇게 말하자, 소리 높여 울기 시작했다. 여선들이 해주던 것처럼 안아주자, 케이키에게 매달려온다. 슬퍼하고 있으니 불쌍하게 생각되는 것이 당연한 것일 텐데,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생각된다. 쓰다듬어주자, 한층 강하게 매달려 왔다. 오열하는 사이에 말이 섞인다.
 「...........집에.....가고 싶어.......」
 「그렇겠지요.」
 「엄마가......보고 싶어......」
 그것을 들으며, 이 작은 기린은 정말로 쓸쓸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 5 -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석양이 운해에 반사되어 복잡하게 빛난다.
 짙은 그림자와 강한 석양이 교차하는 미로를 케이키의 손을 잡고서 걸으면서, 타이키는 고향을 생각한다.
 미로에서 노는 것은 즐겁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생활에도 이미 익숙해졌다. 처음부터 친구들과 노는 것은 서툴렀기 때문에, 같은 연배의 아이가 없는 쓸쓸함에도 적응이 빨랐다.
 산시도 여선도 친절하다. 여기에서는, 격노한 할머니에게 꾸중듣는 일도, 그것을 보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싸우는 것을 볼 일도 없다. 그 뒤에 엄마가 울면서, 그 날 밤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는, 그런 광경을 보는 일도 없었다. 양친이 싸운 뒤에 아버지에게 불려가, 한숨 섞인 질책을 듣는 일도 없다.
 여선은 돌아왔다, 고 말한다. 자신이 본래 있어야 할 장소로 돌아왔다는 것에 의문을 품어본 일은 없었다. 여선은 따뜻하다. 매우 환영해 주었다. 한없이 다정하게 대해준다. 타이키가 돌아온 것을 마음속으로부터 기뻐해 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있어야 할 곳이 아니었던 장소를 그리워하는 것은, 여선들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문득 문득 떠올리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오래된 집의 복도는 미로보다도 즐거운 장소였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당은 미궁의 어떤 광장보다도 예쁜 곳이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선에게 둘러 싸여있는 것보다도, 학교 교정에서 어느 그룹에도 끼지 못하고 멍하니 동급생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때가 훨씬 즐거웠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선들 중 누구보다도, 산시보다도 가족들 족이 다정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지금은 저녁시간일까. 어머니와 할머니, 동생이 식탁을 둘러싸고 있을까. 아버지는 몇 시에 돌아오실까. 일찍 돌아와서 큰 등을 씻고 계실까.
 떠올려보면 모든 것이 애절하고 사랑스러웠다.
 마당의 자양화는 피었을까. 할머니는 양산을 꺼냈을까. 싸우고 난 어머니는 혼자서 목욕탕으로 갔을까. 동생은 밤중에 혼자서 화장실에 다니고 있을까.
 --조금이라도 나를 생각해 주고 있을까.
 잊혀지는 것은 슬프다. 잊혀지지 않고, 오히려 없어진 것을 기뻐하고 있다면 더욱 슬프다. 없어진 것을 슬퍼하고 있다면, 더욱 슬프다.
 「..........타이키.」
 지금이라도 울 것 같은 자신을 깨닫고, 타이키는 당황해서 눈을 깜박거렸다.
 「네.」
 「잠시 자련궁으로 들르지 않겠습니까?」
 타이키는 케이키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케이키의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지만, 타이키의 손을 쥔 큰손은 따뜻했다.
 「하지만, 교크요사마가.」
 「조금만 입니다.」
 「........네.」
 케이키는 똑바로 자련궁으로 향하더니, 맞으러 나온 여선들에게 물러가 있도록 지시하고 안의 침실로 타이키의 손을 이끌었다. 동쪽에 있는 작은 정원의, 안에 막혀있는 암벽에 저녁 해가 비쳐 이끼가 복잡한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이 반사되어, 방안의 모든 것이 석양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케이키는 타이키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고 손을 놓더니, 방의 중앙에서 가볍게 얼굴을 들고 눈을 감았다. 뭔가가 일어나려는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틈도 없이 그것은 시작되었다.
 이상한 영상이라도 보는 것 같았다. 케이키의 모습이 흔들리더니, 녹았다. 그것은 어딘가에서 보았던 유리나 금속이 녹는 광경과 매우 비슷했다. 녹은 덩어리가 선명한 금색으로 빛나며, 여기저기가 끌려나가는 듯이 뻗어 나왔다. 뻗어 나온 그것이, 마치 옷이라도 뒤집는 것처럼 내측에서 반전하며, 소리를 낼 틈도 없이 순식간에 한 마리의 짐승으로 변했다.
 「.......아.」
 아주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짐승의 몸에 걸려있던 의복이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짐승이 조금 들고있던 고개를 내리고는, 타이키를 돌아보았다.
 보라색의 눈동자는 변함이 없다. 금발의--갈기의 색도 변함이 없다. 목은 결코 길지 않았다. 말보다도 화사한 인상으로, 사슴과 닮아있었다. 따뜻한 황색의 몸에 무늬가 있었지만 그것은 등 뿐으로, 그것도 무늬라기보다는 각도에 의해 색이 바뀌는 체모가 복잡하게 뒤섞여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기린.」
 그것은 조금도 「기린」과--동물원의 기린과 닮은 곳이 없었다. 완전히 다른 생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얼굴은 말만큼 길지는 않고, 사슴과 비슷했다. 이마에는 가지가 난 뿔이 있었기에, 한층 더 그런 인상을 받았다. 단지 그 뿔은 사슴보다 짧고, 한 개밖에 없었다. 하얗다기보다는 금색이 섞인 진주빛으로, 석양빛을 받아 담홍색의 광택을 띄고 있었다.
 부드럽고 유연하게 굽어있는 목에 나있는 금색의 갈기는, 케이키의 머리가 무릎에 닿도록 길었던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짧아져 있다. 그 만큼 가늘어져, 미약한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금색의 불꽃이라도 불타고 있는 듯 했다.
 말같은 발굽, 꼬리는 길어 사슴과는 다르다. 꼬리가 가늘어 말과도 다르지만, 소보다는 긴 털이 풍성해서, 말과 소의 중간정도로 보였다.
 「........경 타이호. 이것이..........기린인가요.」
 「그렇습니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틀림없는 케이키의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왔다.
 「훨씬 다른 생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렇습니까?」
 곁으로 다가가 보자, 큰 생물이었다. 화사한 인상은 있지만, 말보다도 조금 가는 정도일까. 매끈한 털결을 만져보고 싶었지만, 케이키라고 생각하자 그것도 주저되었다.
 「.....이렇게 예쁜 생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망연하게 서있자, 케이키 쪽에서 머리를 숙여 코끝을 대어왔다.
 「마음에 드십니까?」
 「네.」
 스스로도 뺨이 홍조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도, 이렇게 될까요?」
 「흑기린이니까, 색은 다르겠지만.」
 「그렇........군요.」
 이런 짐승이 되는 것은, 어떤 기분이 들까.
 「역시 앞다리는 손 같은 느낌이 드나요?」
 「아니요. 앞다리는 앞다리입니다. 전변하면, 어딘가 완전히 바뀌어 버리니까.」
 「뿔도 꼬리도?」
 「꼬리는 그다지 의식하지 않습니다만. 뿔은 뿌리부분에 불이 붙은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만큼 기가 모여있는 것이니까요. --그렇군요, 전변할 때에는 이마에 기를 집중하는 듯한 느낌은 듭니다.」
 타이키는 조금 케이키의 흉내를 내어 눈을 감고 이마에 의식을 집중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타이키는 숨을 토했다.
 「........갑자기 되는 건 아니네요.」
 「서두르지 마십시오.」
 「네. --분명 이 모습이라면, 발도 빠르겠네요.」
 「예에. 게다가 기린은 황해 속에서도 하늘을 달립니다. 바람을 타면 어떤 새보다도 빠르지요. 그럴 생각이 되면, 이 세상을 한바퀴 도는 것도 가능합니다.」
 「....봉래에도 갈 수 있나요? 먼 동쪽 끝에 있다고 들었지만.」
 「갈 수 있습니다. 바라신다면.」
 타이키는 눈을 깜박였다.
 이렇게나 예쁜 짐승이 되어, 온 세계의 하늘을 뛰어 다니는 건 얼마나 기분 좋을까. 게다가, 전변하는 것만 익히면 정말로 쓸쓸하고 견딜 수 없을 때에, 살짝 집을 훔쳐보고 오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타이키만 싫지 않으시다면, 내일은 등에 태워드리겠습니다.」
 「정말요?」
 「예에. --자, 먼저 궁으로 돌아가십시오. 교크요사마가 기다리시겠지요. 저도 곧 가겠습니다.」
 「네.」
 타이키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경 타이호, 감사합니다.」
 







 

 
 --작은 몸체도 가느다란 손발도, 마치 다른 생물 같아 익숙해질 수가 없다. 특히 지금처럼 어깨를 움츠리고 동그랗게 되어있으면, 뭔가 가슴속이 불편해서 침착하지 못한 기분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저런 가느다란 목으로 머리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일까,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울지 마십시오. 또 제가 여선들에게 꾸중을 듣습니다.」
 --타이키는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무릎을 안고, 얼굴을 묻는다. 케이키는 완전히 당황해버렸다. 역시 이것도, 자신이 울려버린 게 되는 걸까.
 
 ............케이키, 귀엽지 않습니까?!?!?!! 어린 아기를 안아들고 어찌할 바 모르며 허둥거리는 남자를 볼 때 느끼게 되는 기분이겠지요. 저 케이키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겁니다.> .<
 그러나, 최근에 번역을 하며 다시금 책을 넘겨보다가 기절해 버렸습니다. 케이키가 타이키를 데리고 자련궁에 데려가는 부분 말입니다. 그것이 갑자기 흔한 싸구려 야오이의 첫 ---씬 설정과 상당히 겹쳐버리는 겁니다.;(기린가지고 커플링하지마!!!;)
 
 「타이키.」
 지금이라도 울 것 같은 자신을 깨닫고, 타이키는 황급히 눈을 비볐다.
 「잠시, 우리 집에 들렀다 가지 않겠어?」
 「응?」
 타이키는 케이스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왠지 목소리만은 굉장히 부드러웠다.
 「하지만.......너무 늦으면....」
 「잠깐이면 되니까. 커피라도 마시고 가지 않겠어?」
 「............」
 케이스케는 타이키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듯, 자신의 맨션을 향해 핸들을 돌렸다.
 그의 맨션은 시부야에 위치한 고층 빌딩의 상층부에 있었다. 모 정치가의 숨겨둔 자식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중략).......소리를 지를 틈도 없이 그것은 시작되었다.(후략)
 
 ........죄송합니다.;;;;;; ㅠ_ㅠ 다시는 안할께요.;;;;;; 이런 말 해봤자 안 믿으시겠지만, 전 야오이를 잘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야오이에 대한 저의 인상이라는 거지, 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중얼중얼)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上) 6장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상)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제 6 장
 
- 1 -
 「한때는 어떻게 되려는지 걱정했지만.......」
 요우카는 바늘을 쥔 손을 멈췄다. 타이키는 봉산에 오고서 조금 자랐다. 옷도 새로 지었지만 옷단이나 소매를 내어야 하게 되었다.
 「결국 경 타이호와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함께 바늘을 움직이고 있던 여선도 웃었다. 요우카도 또다시 웃었다.
 케이키가 기린이 되어 보여주었다고 말하며, 궁으로 달려들어 오던 때의 타이키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다음날에는 등에 태워주겠다고 했다며, 완전히 흥분해버려 한밤중까지 잠들지 못하고, 다음날 바람에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린 채 돌아온 뒤에는 더욱 흥분해서 침상에 들여보내는 것도 큰일이었다.
 「현군이 하시는 일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이지.」
 여선 중 한 사람이 말하며, 큭큭 웃었다.
 「최근 경 타이호가 타이키의 흉내를 내어 마음을 써주신다네. 놀랍다고 할까, 이상하다고 할까.」
 「정말로. --무뚝뚝한 얼굴은 그대로지만.」
 케이키는 봉산에 오래 있었다. 그런만큼 여선은 거침이 없다.
 「그것만은 때가 지나버렸으니까 어쩔 수 없지.」
 「맞아.」
 가벼운 웃음이 광장에 일어났다.
 그 때 샛길을 뛰어오는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어서오세요.」
 「다녀왔습니다.」
 달려온 타이키는 긴 머리가 엉켜, 그리고도 하얀 얼굴을 빛내고 있다. 양옆에 두 마리의 요마를 데리고 있다, 한 마리는 산시, 한 마리는 한쿄(班渠)라 하는, 케이키의 사령인 요마이다.
 「오늘은 어디까지?」
 「화악(華岳)에 데려다 주셨어요. 이상한 새가 많이 있었어요.」
 그 웃는 얼굴을 보며, 요우카도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타이키는 완전히 케이키를 따르는 모양이었지만, 여선들 중 누구도 케이키를 따르는 아이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거 잘되었네요.」
 「내일은 황해에 데려다 주신대요. 절복을 보여주기로 약속하셨어요.」
 「어머나.」
 요우카가 말을 잇지 못하자, 한쿄가 웃는다.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들이 모시고 있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케이키의 사령이 붙어 있으니까, 걱정은 없다. 끄덕이면서도, 요우카는 어딘가 불안함을 느꼈다. 과거, 황해에서 목숨을 잃었던 기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요마는 사람도 기린도 상관않고 덮치는 것이다.
 「.....자, 목욕을 하고 오세요. 저녁식사를 하셔야지요.」
 「네에.」
 끄덕이면서, 타이키는 산시와 한쿄를 돌아보았다.
 「가자.」
 두 마리의 요마를 데리고 달려가는 타이키를 전송하며, 요우카는 바느질거리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무슨 일이지요?」
 요우카가 자련궁으로 가자, 막 케이키가 자련궁의 샘에서 올라오는 참이었다. 이 골짜기에서 나오는 물이 한 단 내려가, 궁의 앞에 있는 연지(蓮池)에 흘러간다.
 「타이키를 황해에 데려가신다고요.」
 「그건가.」
 귀찮다는 듯이 말하며, 케이키는 물기를 머금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별 일 없을 거요. 타이키의 몸은 몇 중으로 사령들에게 보호받습니다.」
 「하지만.」
 케이키는 쓴웃음을 지었다.
 「여선은 타이키를 아끼시는군요.」
 「타이키는 나이는 열 살입니다만, 기린으로서는 어리십니다.」
 「그렇게만 말하고 있을 수도 없소.」
 케이키는 궁의 입구를 흐르는 연지를 내려다보았다.
 「하지까지는 이미 반달도 남지 않았소.」
 요우카는 고개를 떨구었다.
 「아까 영곤문을 보고 왔지만, 이미 모여든 자는 오십 기를 넘는 모양.」
 「그렇게나?」
 케이키는 끄덕였다.
 「대(戴)와 영곤문은 정반대 방향이니, 몇 기 없으리라고--어쩌면 아직 승선하는 자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어쨌거나 기린기가 오르는 것을 기다리며 사문을 도는 자들이 상당히 있었던 듯 하오.」
 기린기가 오르건 말건, 가장 가까운 안합일에 사문을 넘기 위해 금강산의 주변을 도는 자들이 있다. 평범한 말을 타고 있어서는 각 안합일마다 사문에 닿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하지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보도궁까지 올라오리라.
 「어떻게건 하지까지 사령을 갖게 해주고 싶소.」
 나야말로 왕이라며 믿는 구석이 있어 사문을 넘는 자들이므로, 그런 만큼 성격도 거칠다. 적어도 일의 도리를 알고 있다면 걱정할 일도 없겠지만, 그런 인간들은 자칫하면 도리를 모르고 날뛰어버리는 일이 많으므로 곤란한 것이다.
 케이키는 말을 이었다.
 「저도 언제까지나 나라를 비워둘 수 없는 데다, 아직 경(慶)은 안녕하지 못합니다.」
 「.....경 타이호야말로, 타이키에게 꽤나 다정하시군요.」
 요우카가 웃으며 말하자, 케이키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지 않으면 또, 괴롭힌다고 책망할 테니까.」
 「과연 그럴까요?」
 웃고서 요우카는 절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상처 따위 입히지 않습니다. 만나는 여선들마다 잔소리를 해대서는 견딜 수 없으니.」
 「그 말씀, 확실하게 기억해 두겠습니다.」
 
- 2 -
 「--어떻습니까?」
 케이키는 말하며, 토끼와 닮은 생물을 타이키에게 내밀었다.
 황해의 입구이다. 오산의 기슭과 황해의 기슭이 만나는 근처에는, 황무지에 관목이 자랄 뿐. 케이키가 내민 짐승은 귀가 짧은 토끼 같다. --또는, 몸이 가늘고 커다란 쥐 같기도 하다.
 「쟉코? 히소?」
 타이키의 손안에 요마는 얌전히 안겨있다. 부드러운 털결 아래에서 심장이 콩콩 뛰고 있다.
 「쟉코.」
 똑똑하지 못한 말로 대답한 것은, 케이키가 아닌 요마 쪽이었다. 지금 막 케이키가 사령으로 거둔 작은 요마.
 「비서(히소, 飛鼠)라는 것은 요마의 종족의 이름. 이것의 이름은 쟉코입니다. 그렇군요, 작(雀), 호(胡)라는.」
 케이키의 말에 끄덕이며, 쟉코의 목을 간지럽혔다.
 「잘 부탁해.」
 쟉코는 대답하는 대신, 찌익 하고 울었다.
 「아직 말을 잘 못하는걸까.」
 「이렇게 작은 것은, 대부분 말하지 않습니다. 간신히 몇 마디 정도이지요.」
 관목의 아래에서 주위 상황을 살피고 있는 쟉코를 가리킨 것은 타이키였다. 도망가려는 쟉코를 향해 케이키가 무언가를 읊으며, 돌아보는 요마와 마주보기를 잠시. 다시 한 번 케이키가 무언가를 말하며 이름을 부르자마자, 쟉코는 스스로 나아가 케이키의 발치로 다가왔다.
 그것이 절복의 모든 것으로, 훨씬 더 뭔가 긴박한 의식을 상상하고 있던 타이키에게는 기운이 빠질 정도로 간단하게 생각되었다.
 「언제나 이렇게 간단한가요?」
 타이키가 묻자, 케이키는 고개를 저었다.
 「비서는 작은 것이니까 간단히 끝났지만, 큰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주보고서 반나절을 보내는 경우도 있지요.」
 「그렇게나?」
 놀라며 뒤돌아보는 타이키에게, 케이키는 끄덕이며 쟉코를 안아 올렸다. 가볍게 쓰다듬고 한쿄의 등에 태운다. 쟉코는 한쿄의 귀에 주절거렸다.
 「한쿄입니다. 이것을 잡는 것은 꽤나 큰 일이었죠.」
 「헤에.......」
 한쿄는 모르는 척 하며 바위 위에 누워 있는 채, 쟉코가 귀에 주절거리는 대로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냥 서로 노려보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케이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냥 서로 노려보는 것입니다. 이쪽이 정신을 흐트러뜨리면, 요마는 시선을 끊고 도망가버립니다. --또는, 이쪽을 덮쳐오기도 하지요.」
 타이키는 진지하게 끄덕였다.
 「먼저 정신이 흩어지는 쪽이 지는 것입니다. 도망가버릴 만한 작은 것이라면 큰일은 없지만, 상대가 큰 것이라면 마음을 놓는 순간에 목숨을 빼앗기게 되어버립니다. 시선이 맞고서, 이건 안되겠다고 생각된다면 서로 노려보기 전에 도망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상대가 대물(大物)이라면 전변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도망가는 것도 어렵겠지만.」
 「네...」
 움츠러드는 타이키를 보고, 케이키는 당황해서 말을 이었다.
 「걱정 없습니다. 여괴가 시간을 벌어줄 테니까요.」
 「여괴는 위험하지 않을까요.」
 케이키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당할 수 없는 요마가 있으면, 만나기 전에 여괴가 가르쳐 줍니다. 주의하고 있으면, 타이키도 알 수 있게 됩니다. 원래 짐승은 적의 기척에 예민한 것.」
 타이키는 조금 멍해진 채, 곤란한 듯이 웃었다.
 「그런가, 전 짐승이군요. ...........금방 잊어버려요.」
 「잊어버려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네. --쟉코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붙인 거지요?」
 케이키는 쟉코에게 시선을 돌린다. 사령으로서 도움이 될만한 요마는 아니다. 왕궁의 정원에 풀어줄 수밖에 없겠지.
 「제가 붙인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그것이 저 자의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이키는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로 노려보다가 상대가 견디지 못하면, 상대의 패기가 약해집니다.  그 때에 상대의 이름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잘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머릿속에 음이 솟아나옵니다. 그것을 불러주면, 요마는 스스로 발치로 다가옵니다. 이후 두 번 다시, 기린에게 거스르지 않습니다. 기린이 죽어 해방될 때까지는.」
 그렇게 말하며 케이키는 살짝 웃었다.
 「문자는 음차입니다.」
 「뭔가 주문 같은 것을 읊으셨지요?」
 「그런 것은, 없어도 되는 것입니다. 있으면 도움은 되는, 그런 정도의.」
 「하아......」
 석연치 않은 모습의 타이키를 마른 바위 위에 앉힌다. 케이키도 그 곁에 앉았다.
 「요마를 사령으로 거두기 위해서는, 요마와 계약을 맺습니다. --라기보다도, 묶는다고 하는 편이 맞겠지요.」
 「묶는다...」
 케이키는 끄덕였다.
 「요마는 하늘의 섭리에서 벗어난 것. 그것을 하늘의 섭리로 끌어들여, 두 번 다시 나가지 않도록 묶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 사령이 되지요.」
 「......모르겠어요.」
 케이키는 한숨을 쉬었다.
 「죄송해요......」
 사과하는 목소리에 당황하며 케이키는 말을 이었다.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타이키는 모르더라도 무리가 아니니까.」
 「네.....」
 「천제는 이 세상을 만드셨지요. 사람들이 행복하게 되도록, 이 세상의 섭리를 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사람은 죽고 병드는 것인가. 왜 사람을 습격하는 요마가 있으며, 재액이 있는 것인가. --하늘에 깊은 배려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하늘의 배려를 초월하는 일인가. 어느 쪽이라고 한들, 그것은 천제가 『은혜』의 존재로 생각되는 데에 장해가 됩니다.」
 타이키는 한참을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쪽이건 하늘이 하시는 일이니, 헤아릴 수 없지요. 그저, 생이 있으면 사가 있는 것처럼, 하늘이 주재하는 섭리에도 무언가 상반하는 섭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정도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빛과 어둠처럼?」
 「그 예는 매우 좋습니다. 백성을 돕기 위해 우리들 기린이 있고, 기린을 필두로 하는 수많은 요수가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백성을 해하는 요물도 있습니다.」
 「요마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러니까, 섭리 밖의 생물이구나.」
 「그런 겁니다. 타이키가 든 예로 말하자면, 요마는 어둠의 생물. 이것을 사역하게 하기 위해서는 빛 속으로 끌어내어 어둠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묶을 수밖에 없습니다.」
 「네. --하지만, 어떻게?」
 케이키는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그것을 말로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저도 잘은 모릅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저 기백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요마를 내 지배 아래에 두겠다는 강한 의지력. 단지 그것은, 전심으로 강하게 바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케이키가 말하자, 타이키는 굉장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을까요. 기린은 『힘』을 갖고 있는 거라고. 힘의 크기는 기린에 따라 다릅니다. 하지만, 어느 기린이라 하더라도 확실하게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힘이, 기린을 전변시켜요?」
 「예. 그것은 힘이니까, 바램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습니다. 아무리 강하게 염원해도, 가지고 있는 힘이 작으면 별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완력 같은 거네요. 발의 빠르기라던가.」
 「그렇죠. ---그렇습니다.」
 케이키는 살짝 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라며 타이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마를 힘으로 빛 속에 묶는 건, 큰일이 아닌가요? 조금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던가, 실수로 요마를 묶는 힘이 약해지는 일은 없나요?」
 케이키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죄송해요.」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것은 타이키에게는 아직 잔혹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케이키는 그렇게 말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부디 당황하지 말아주십시오. --사령은 기린을 먹습니다.」
 「.........엣.」
 「정확히는 유해를 먹습니다. 사령은 기린을 먹고, 기린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하지요.」
 타이키는 한쿄를 돌아보았다. 한쿄는 큰 머리를 무표정하게 발 사이에 내려놓고서 모르는 척 하고 있다. 그 동작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케이키는 쓴웃음을 지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쿄는 타이키를 덮치거나 하지 않습니다. 기린은 빛의 존재. 요마는 어둠의 존재. 기린이 스스로를 내주지 않는 한,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네....네.」
 「기린은 요마를 힘으로 눌러둡니다. 어둠 속에서 빛 속으로 끌어내는 것입니다. 요마 역시 힘이 있으니, 강한 요마를 끌어내는 것은 그에 걸맞는 힘이 필요합니다. 요마는 끌어내는 힘으로, 기린의 힘을 잽니다.」
 「네.......」
 「그리고, 기린이 죽으면 자신에게 내려진 것을 생각합니다. 사역당할 가치가 있었나 없었나,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건 알 것 같아요.」
 「끌어내는 것에 성공하면, 사역을 거부하는 요마는 없습니다. 그만큼의 힘이 내려지는 것이 약속이니까.」
 「그러니까, 계약인 거군요.」
 「그런 것입니다. --어둠의 생물을 빛 속으로 놔두는 것이므로, 어둠에 돌아가지 않도록 계속 묶어두는 족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수호도.」
 「빛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예. 사령을 묶고, 지키는 족쇄가 『이름』인 것입니다. 기린은 기백으로 요마를 끌어내어, 상대의 이름을 읽어내고 그 이름을 새롭게 내려 자신의 종으로 삼습니다. 요마는 기백으로 기린의 힘을 재고, 이름을 받아 장래 사체를 얻을 권리를 손에 넣습니다. --절복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기린이 죽은 뒤에 시체를 먹고, 새로운 힘을 넣고서 야생으로 돌아가는.....」
 「그 대신 사령으로 종사하는 동안에는 절대로 기린의 명에 거스르지 않습니다. 기린을 지키며, 절대로 상처 입히거나 하지 않지요.」
 타이키는 뚫어져라 한쿄를 바라보았다. 마음 편하던 생물이, 한없이 알 수 없는 생물로 생각되었다. 한쿄는 그런 타이키를 한 번 쳐다보고는, 갑자기 턱을 열었다.
 「........!」
 무심결에 몸을 피한 타이키의 눈앞에서 유유하게 하품을 하고는, 큭큭 웃었다.
 「한쿄.」
 주의를 주며 케이키는 쓴웃음을 지었다.
 「제대로 말하자면, 성장한 기린은 교활한 방법을 씁니다. --타이키는 역(易)을 아십니까?」
 「점치는 거 말인가요?」
 「그렇게 말해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대물을 상대할 때에는, 역이나 둔갑(遁甲), 풍수의 힘을 빌립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오랜 공부가 필요하지요. 여선들에게 물으면 가르쳐 주겠지만, 이것은 하루 이틀에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네.」
 「날을 고르고 지형을 고르며, 방향을 골라 요마를 선택합니다. 사령으로 거둘 요마의 힘이 가장 약해지며, 가신의 힘이 가장 강해지도록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준비가 없으면 요마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주언(呪言)도 그렇습니다. 역이나 둔갑만큼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니 없어도 좋습니다. 있으면 편리하니까 사용하는 것이며, 사용하는 데에 익숙해지면 왠지 안 쓰면 이상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것 뿐.」
 「그럼, 별로 외우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요?」
 「외워보시겠습니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타이키가 끄덕이자, 케이키는 그의 어깨에 손을 대었다. 자세를 똑바로 고쳐준다.
 「우선, 자세를 바로할 것. 이것은 항상 마음에 새기십시오.」
 「네.」
 「기에는 생기(生氣)와 사기(死氣)가 있습니다. 오전은 생기, 오후는 사기. 요마를 절복하려면 생기가 강한 오전 쪽이 좋습니다. 코로 들이마시는 것이 생기, 입으로 뱉는 것이 사기. 반드시 호흡은 그렇게 할 것. 역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숨을 토할 때에는 가능한 조용히 뱉을 것. 이것 역시 언제나 마음쓰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익숙해지지 않으니까.」
 「코로 마시고, 입으로 뱉는거네요.」
 「요마를 피하는 것은 우보(禹步).」
 케이키는 독특한 보법을 보여주었다.
 --요마와 만나, 시선을 맞추는 것을 피하는 것은 고치(叩齒). 특히 오른쪽 이를 악무는 퇴천반(槌天盤)을. 기를 집중하는 데에는 앞니를 울리는 명천고(鳴天鼓)를.
 타이키는 한숨을 쉬었다.
 「나, 제대로 외울 수 있을까.」
 「곧 외울 수 있습니다. 일단 익숙해지려면 연습이 필요합니다만, 그것은 여선들이 가르처 줄 것입니다.」
 「네.」
 「쟉코의 말을 묶은 것은 구자진언. 손을 이렇게.」
 케이키가 시키는 대로 양손을 모은다.
 「이것이 검인. --허리에 몸을 준비하고, 뽑으며 사종오횡(四縱五橫).」
 타이키의 손을 쥐고 움직여 보인다.
 「임병투자개진열전행(臨兵鬪者皆陳烈前行),입니다.」
 「......정말 어렵네요.」
 「조금 연습하면 익숙해집니다. 반드시 똑바로 그리도록 핫비시오. --상대가 패기를 잃으면 주언을 읊지만, 여기에는 역의 지식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이정도로 외워두면 되겠지요. 신칙명칙(神勅明勅), 천청지청(天淸地淸). 신군청군(神君淸君), 불오불탁(不汚不濁). 귀매항복(鬼魅降伏), 음양화합(陰陽和合).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이라고.」
 타이키는 완전히 곤란한 표정으로 케이키를 올려다본다. 케이키는 쓴웃음을 지었다.
 「요마는 복종하며 음양은 화합하기를 율령과 같이 하라.」
 「에에.........네.」
 「그리고 오른손을 머리위로 올려 손바닥으로 천의를 받고, 왼손으로 발치를 가리키며 이름을 부릅니다. 소리만이 쏟아져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문자 자체가 떠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기린의 본성이 알고 있습니다.」
 「네.」
 케이키는 숨을 토했다. 케이키는 어깨가 쳐진 작은 기린의 등을 두드렸다.
 「사기가 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아주 조그만 요마로 한 번 해보십시오.」
 타이키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결국 그의 주언에 발을 멈추는 요마는 한 마리도 없었다.
 
- 3 -
 하지가 왔다.
 산시는 침상에 깊이 잠든 아이를 흔들었다.
 어젯밤--정확히는 오늘 아침 새벽녘까지 황해에 있던 타이키는, 산시의 몸에 팔을 두르고 깊이 잠들어 있다. 무심한 잠든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깨우기가 주저되지만, 슬슬 일어나지 않으면 타이키 자신이 후회할 것이다.
 「타이키, 일어나셨습니까.」
 요우카의 말이 들리고, 커튼이 젖혀졌다. 안을 들여다본 요우카가 쓴웃음을 짓는다.
 「......어라어라.」
 미소지으며 산시를 보았다.
 「어제는 늦게까지 있었나 보구나. ...........어땠지?」
 요우카의 질문에 산시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새벽녘까지 황해를 떠돌았지만, 결국 요마는 잡지 못했다. 케이키와 여선들에게 역을 배웠어도, 요마는 시선을 피하며 도망가버린다. 패기가 부족한 것이라고, 말로는 하지 않지만 케이키도 산시도 알고 있었다.
 「......그래. 많이 낙담하셨겠구나. --불쌍하지만, 깨우지 않으면.」
 산시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한 번 타이키의 몸을 흔들었다.
 「......타이키.」
 요우카는 장막을 활짝 열고 빛을 들어오게 했다.
 「타이키, 일어나십시오. 경 타이호가 돌아가십니다.」
 「...........응........」
 겨우 타이키가 몸을 움직였다.
 「어머나........」
 「아직 어리신 것을.」
 등뒤에서 소리가 나, 요우카도 산시도 당황해 침상의 입구를 돌아보았다.
 「현군.」
 교크요는 부드럽게 웃었다.
 「무리해서 깨우는 것도 오히려 안 좋습니다.」
 「어젯밤에는 늦도록 주무시지 않으셨으니, 이대로 주무시게 하십시다.」
 그렇게 말한 것은 교크요의 등뒤에 서있던 케이케로, 요우카는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타이키, 일어나십시오.」
 「됐소. 그대로 주무시도록 하지요.」
 케이키가 말했으나 요우카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했다가는, 나중에 타이키가 실망하십니다.」
 산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심하게 지쳐 돌아와서도 타이키가 잠들지 못했던 이유를 산시는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강하게 몸을 흔들었다.
 「타이키. .........타이키.」
 세 번 흔들자, 겨우 타이키는 눈을 열었다. 눈부신 듯이 눈을 깜박거리다가, 순식간에 튀어 일어났다.
 「.........타이호는.」
 산시는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계십니다.」
 타이키는 눈을 깜박이고는, 그리고서 웃음을 억누르며 침상을 들여다보는 어른들에게 눈을 돌렸다.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현군께도 타이호께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평소에는 이렇지 않은 분이십니다만.」
 교크요는 웃으면서 요우카에게서 찻잔을 받아들고, 케이키를 바라보았다.
 「타이키가 꽤나 따르시는군요. 잘 되었습니다.」
 케이키는 말없이 있었다.
 「그래서 경 타이호는 도움이 되었는지요.」
 요우카가 애매하게 웃자, 당사자인 케이키가 한숨섞인 소리를 내었다.
 「........저로서는 힘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천부의 힘을 가르치는 것은 어려운 일. .....타이호의 입으로 상세한 말을 해주신 것으로 충분합니다.」
 케이키는 더욱 말없이 앉아있고 교크요가 웃는 가운데, 몸차림을 끝낸 타이키가 산시를 동반하고 들어왔다.
 「실례했습니다.」
 케이키는 찻잔을 식탁에 놓았다. 일어서서 절을 한다.
 「타이키. 작별을 고하겠습니다.」
 케이키를 올려다보는 어린아이의 눈은 새빨갛다.
 「정말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그리 오랫동안 나라를 비울 수 없습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니요. 저야말로, 조금도 좋은 학생이 되지 못해 죄송해요.」
 「그렇지 않습니다.」
 「......건강하세요.」
 「타이키도 평안하시기를.」
 「네.」
 케이키는 뭔가를 견디는 듯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타이키를 바라본다. 살짝 머리에 손을 얹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기린은 하늘이 만드신 것. 천제가 반드시 잘 되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네......」
 「빨리 왕을 만나실 수 있기를. 생국에 내려가시면 허해를 면한 바로 건너편이 경. 또 만날 기회도 있겠지요.」
 그렇게 말하자, 타이키는 작은 손으로 케이키의 소매를 쥐었다.
 「정말로 그런 기회가 있을까요?」
 케이키는 미소지었다. 말 사이로, 만나고 싶다고 말해오는 것이 기뻤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생국에 내려가시거든, 제일 먼저 축하를 드리러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타이키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네.」
 가능하다면 적어도 사령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승산하는 자들과의 대면이 가라앉을 때까지, 곁에 있어주고 싶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이미 충분히 나라를 비웠다. 애초부터 길어도 하지까지, 라고 말해두었던 것이다.
 「......어디에서 돌아가시는 거죠?」
 「백구궁(白龜宮)에서.」
 「궁까지 전송해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한쿄와 쟉코를 부를까요?」
 「네.」
 교크요는 자리에 멈춰 서서, 크고 작은 두 기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타이키는 경 타이호의 사령과도 사이가 좋습니까?」
 「한쿄하고는 많이 놀았는 걸요.」
 「그거 잘 되었습니다.」
 웃고서, 작은 기린의 어깨에 손을 얹은 케이키를 바라보았다.
 「경 타이호에게도 잘된 일입니다. 조금은 남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법을 익히신 듯 합니다.」
 「하지만.」
 타이키는 교크요를 올려다보았다.
 「경 타이호는 처음부터 다정하셨는걸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한 말투에, 교크요와 요우카는 눈을 마주보았다.
 「그러셨습니까?」
 「네.」
 단언하는 말에 교크요는 웃었다. 케이키는 왠지 복잡한 얼굴이었다. 큭큭 소리죽인 웃음이 방구석에 서있던 요우카를 선두로, 여선들의 방에서 흘러나왔다.
 
 --여선은 물론, 교크요마저 예상하지 못했다.
 케이키가 보이는 서투른 다정함 바로 그것이, 경왕 죠카크로 하여금 길을 벗어나도록 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것은 또한 다른 이야기이다.
 
- 4 -
 케이키를 보내고, 타이키는 조금 울적한 기분이었지만, 실제로 침울한 채로 있을만한 여유는 타이키에게 없었다.
 하지 다음날부터, 보도궁에 이르는 길이 내려다보이는 곳을 교대로 여선들이 지키게 되었다. 보도궁에는 성대하게 향이 올려지고, 여선들의 의복은 화려하게 되었다. 궁의 장식도, 타이키의 의복도 더욱 화려한 것으로 바뀌었다.
 --봉산에 축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타이키는 사신목 가까운 곳의 바위 위에 있었다. 미로 안에 있으면 꽃 냄새가 나는 바람이, 기암의 위에 오르면 바다 냄새가 난다. 그것이 굉장히 신기했다.
 남서쪽에서, 무언가가 온다.
 타이키는 전변한 케이키의 등에 타고서 내려다본 황해를 떠올렸다.
 봉산은 기암의 산, 녹색의 기암이 복잡한 모양을 그리며 기슭까지 이어져 있다. 기암이 만들어내는 미로는 한없이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보도궁까지의 길은 하나밖에 없다.
 아득한 긴 세월동안, 무수히 많은 승산의 자들이 뚫어놓은 그 길은 어느새인가 깊게 새겨져 한누에 그것이라고 알아보았다.
 길이 한 개밖에 없기 때문에, 봉산에의 입구도 또한 한 개밖에 없었다. 그 단 하나의 입구를 향해, 세 방향에서 길들이 모여온다.
 길은 황해를 꿰뚫고 있다. 그것 역시 봉산으로 오는 길과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었다. 기암을 가른 인간의 발자국, 험한 사면에 새겨진 발디딤새. 늪이나 개천에 던져넣은 징검다리, 황무지에 서있는 석비. 균열에 걸려있는 쓰러진 나무로 된 다리, 가지를 치고 또 치며 어느새인가 수해를 꿰뚫는 가는 길.
 그런 길들이 황해의 사방, 4개의 문을 향해 뻗어있는 것이다.
 그 중 하나, 남서쪽에 있는 영곤문은 이미 열렸다 닫혔다. 하지에 거기를 넘은 여행자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황해는 요마와 요수들의 본거지이므로, 여행은 절대로 쉽지 않다. 같은 날에 문을 지나온 사람들은 대상(隊商)같은 집단을 이뤄 위험한 길을 서로 지켜가며 찾아온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 용병같은 직업마저 있을 정도라고 들었다.
 「가슴이 두근거려.......」
 옷자락에 싸인 무릎 위에 턱을 기대고서 타이키가 중얼거리자, 곁에 앉은 산시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긴장하지 마십시오.」
 「응.....」
 그것은 예감과도 닮았다.
 놀고 있을 때, 여선에게 간단한 역을 배우고 있을 때, 문득 시선을 들고 남서쪽을 보면 가슴속이 괴로워지는 일이 있다. 그 방향에 영곤문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내고, 뭔가 서늘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심장이 빨리 뛴다.
 절대로 좋은 예감이 아니다. 다가오는 무엇인가가, 무서운 것처럼 생각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나도 잘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고 말고요.」
 산시는 그것밖에 말하지 않았기에, 강한 말보다도 바람소리 쪽이 귀에 남았다.
 「.......저 안에 임금님이 있다고 생각해?」
 「글쎄요.」
 「아직, 없겠지.」
 「계시지 않는 편이 좋으십니까?」
 「응........」
 산시는 무릎을 안은 채 몸을 딱딱하게 굳힌 주인을 바라본다.
 만약에 그 안에 왕이 있어, 봉산을 떠나게 되는 것이 싫은 것인가. 아니면, 시험받는 것이 두려운 것인가.
 어느 쪽이라 해도, 하지를 지나고서 타이키의 긴장은 산시에게도 전해져, 곁에 있는 것이 가슴아플 정도였다.
 승산해오는 자들은 왕으로서의 자신감이 있는 자들, 또는 왕이 되어 마땅하다고 주변의 인간에게 천거된 이들이므로 실제로 다음 왕은 승산하는 자들 중에 압도적으로 많다.
 어쩌면, 타이키는 왕을 맞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지도 모른다.
 기린은 왕을 택하는 것에 의해 일국의 운명을 등에 지고, 왕은 자신이 해나가는 방식에 의해 기린의 등에 진다.
 왕이 길을 벗어나면, 그 보복은 왕을 택한 기린에게 향한다. 왕이 나아가야 할 길을 잘못 짚은 탓에 기린이 병들면, 그 병을 실도라 부른다. 일단 걸리게 되면, 대부분 나을 길이 없는 중병이다. 그러므로 왕은 기린의 생명 그 자체를 쥐고 있는 것이라도 말해도 좋다.
 자신의 운명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두렵지 않을 리가 없다.
 「그렇게 빨리는 오지 않을 거야.........」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하는 말투에, 산시는 입을 다물었다.
 사령도 없을뿐더러 전변도 할 수 없다. 기린이라는 자각 자체가 없다.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므로, 도망가려는 태도를 취한다 해서 타이키를 책할 수는 없다.
 「경 타이호가........」
 타이키는 시선을 남서쪽에서 돌리고 산시를 돌아보았다.
 「말씀하셨잖아. 하늘이 잘 되도록 해주실 거라고.」
 타이키는 다시금 시선을 하늘로 향하고, 어린 나름대로 굳은 표정을 지었다.
 「.............응.」
 기암 위에 빠르게 바람이 지나갔다.
 







 

 
 드디어 바람의 바다 상권이 끝났습니다. 설명이 긴 상권보다는 역시 사건이 많은 후권 쪽이 재미있죠. 타이키의 첫 절복 장면은 긴장감이 대단해서 지금도 가끔 들여다보곤 합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안 뒤에 다시금 읽는 맛도 새롭군요......
 오늘의 안주는 이노우에상. 왜 오지계열만 좋아하냐고 말해도 할말은 없고, 그게 누구냐고 말하면 더욱 할말은 없습니다.(苦笑) 단지 전 성우팬이고, 그런 목소리를 아주 좋아한다는 것뿐이죠.
 이노우에상의 목소리는, 그라비테이션의 유키 에이리, PS용 게임 「머나먼 시공 속에서」의 다치바나노 토모마사, 코우가 윤의 지구인에서 카게츠야, FSS에서 콜러스3세 등입니다. 먼 옛날 캔디캔디에서는 안소니 역을 맡으셨다죠. 대략 역을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다정하고 따뜻하고 매너 바르고 멋진, 삼촌같은 이미지랄까요. 이분의 목소리에서는 어른의 색기라기보다, 어른 남자의 포용력을 느낍니다. 늦은 저녁에 함께 분위기 좋은 칵테일 바에서 데이트 해보고 싶은 목소리, 라는 느낌입니다.(뭐, 개인차는 있겠지만요.)
 뭐라고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이런 종류의 어른남자의 포용력, 이라 느껴지는 목소리가 한 분 더 계십니다. 다나카 히데유키상이죠. 실제로 시오자와상의 사후 시오자와상이 맡으시던 고정배역은 이노우에상과 다나카상이 대략 반분하는 형태로 맡겨졌습니다. 클라비스 역은 다나카상이, 시라토리 역은 이노우에상이, 하는 식으로요. 두 분 모두 목소리도 멋지고 연기력도 탄탄하신 분들이라 불만은 없지만, 역시 가신 분에 대한 애도와 탄식을 멈출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上) 후기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상)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후기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이래저래 『삼국지』게임에다, 중국풍 환타지 육성게임에, 언제 공부가 부족한 것이 탄로날지 몰라 나날이 안절부절하고 있는 오노입니다.
 이 얘기는 화이트하트 문고로 나온 전작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의 속편에 해당합니다. 내용적으로는 다른 이야기로, 그다지 연속된다는 것도 아니고 연대적으로도 전작보다 앞 시대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일단은 속편입니다.
 그린 이유로, 전작을 읽어주신 분께.
 타이키의 말은 마치 잘 통하고 있는 듯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 전작과 마찬가지로 [번역]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귀찮기도 하고(그것이, 뭐라고 하건간에 타이키가 알 리가 없는 한자가 많이 나와버려서), 그것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도 아니기에 그쪽은 빼버렸습니다. 그래도 분명히 [번역]을 상정하고 쓰고있는 것이므로 그렇게 상상해주시길 바랍니다.(독자의 정에 기대는 인간........) 에헤.
 
 전작에서 호평을 받아, 덕분에 속편을 쓸 수 있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더욱 속편을 쓸 수 있으면 좋겠구나~ 라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상하권 세트를 어떻게건 하지 않으면...... 훌쩍.
 하권에서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노 후유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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