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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느끼는 오감재즈

by Casey,Riley 2020.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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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초보자도 쉽게 재즈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게 하는 재즈 입문서다. 재즈 거장 27 인을 한식과 접목하여 재즈의 기본 소양 및 재즈에 대한 직관적 감성을 열어주고, 아울러 재즈와 연계된 미국사를 통해 인문학적 지식을 제공한다. 저자는 재즈를 자기만의 감성으로 이해하고 일상 속에서 밥 먹듯 가까이한다면 재즈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온몸으로 느끼는 오감재즈 
 
 
  
▣ Short Summary 
 
재즈는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음악 장르인 만큼, 한국에서도 재즈를 하는 뮤지션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하지만 재즈 감상자의 수는 그다지 늘지 않아 공급자와 수요자의 갭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흔히 재즈 하면 보통 딱딱하고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에 재즈의 세계에 입문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재즈만큼 자유롭고 흥겨운 음악 장르는 드물다. 
 
이 책은 초보자도 쉽게 재즈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게 하는 재즈 입문서다. 재즈 거장 27인을 우리 한식과 접목하여 재즈의 기본 소양 및 재즈에 대한 직관적 감성을 열어주고, 아울러 재즈와 연계된 미국사를 통해 인문학적 지식 또한 제공한다. 저자는 재즈를 자기만의 감성으로 이해하고 일상 속에서 밥 먹듯 가까이한다면 재즈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참고로 이 책은 2014년 ‘서울재즈원더랜드’라는 융복합문화페스티벌을 통해 미국 재즈 100년사를 강의와 공연으로 엮어 6개월간 총 24회 진행했던 ‘전진용의 오감재즈’의 내용을 토대로 집필한 것으로, 재즈에 대한 쉽고 친근한 접근, 재즈의 직관적 이해를 돕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 차례 
 
Prologue 
 
Part 1 오감재즈란?
재즈란 무엇인가? / 오감재즈의 탄생 / 재즈, 한식으로 맛보다 / 재즈를 알면 미국이 보인다 / 오감재즈 감상 가이드 / 오감재즈 활용 가이드 
 
- 2 - 온몸으로 느끼는 오감재즈 
 
Part 2 맛으로 떠나는 재즈 여행 01 한 뚝배기 하실래예: 구수한 뉴올리언스재즈 1800~1925년 뉴올리언스재즈 / 구수한 청국장, 루이 암스트롱(1901-1971) 
 
02 풍악을 울려라, 파티타임: 달콤한 스윙재즈 1920~1930년 시카코재즈, 스윙재즈 / 얼큰하고 걸쭉한 육개장, 콜먼 호킨스(1904-1969) / 우유 빛깔 설렁탕, 레스터 영(1909-1959) 
 
03 춤추고 노래하자: 빅밴드와 재즈 보컬 1930~1945년 캔자스시티재즈, 스윙재즈 / 전라도 한정식, 듀크 엘링턴(1899-1974) / 경상도 한정 식, 카운트 베이시(1909-1986) / 달콤한 떡과 한과, 베니 굿맨(1909-1986) / 비 오는 날 막걸리와 파전, 빌리 홀리데이(1915-1959) / 반갑다 친구야! 소주와 삼겹살, 엘라 피츠제럴드(1917-1996) / 눈 오는 날 와인과 치즈, 사라 본(1924-1990) 
 
04 핫 뜨거 뜨거 핫: 매운 비밥 1940~1954년 비밥 / 후끈 달아오르는 비빔냉면, 찰리 파커(1920-1955) / 쫄깃쫄깃 화끈한 돼지갈 비, 디지 길레스피(1917-1993) / 못생겨도 맛좋은 아귀찜, 셀로니우스 몽크(1917-1982) / 팔색조 같은 김치, 마일스 데이비스(1926-1991) 
 
05 냉정과 열정 사이: 시원한 쿨재즈, 매콤한 하드밥 1950년대 쿨재즈, 하드밥 / 시원한 물냉면, 쳇 베이커(1929-1988) / 고소하고 담백한 콩국수, 데이브 브루벡(1920-2012) / 맑고 투명한 수정과, 빌 에반스(1929-1980) / 로맨틱한 과일 화채, 스탄 게츠(1927-1991) / 매콤하고 달콤한 자반고등어조림, 소니 롤린스(1930- ) / 힘이 불끈 양념장어구이, 아트 블래키(1919-1990) / 동해 바다 꽃게탕, 호레이스 실버(1928-2014) 
 
06 자유로 가는 길: 프리재즈, 보사노바 1960년대 프리재즈, 보사노바 / 명상과 함께하는 사찰 음식, 존 콜트레인(1926-1967) / 낭만 바다 조개탕,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1927-1994) 
 
07 비비거나 녹이거나: 퓨전재즈, 컨템퍼러리재즈 1970년대 퓨전재즈 / 디지로그 회덮밥, 허비 행콕(1940- ) / 융합의 삼국 통일 잡채, 웨더 리포트 (1970-1986) / 1980년대 포스트모던재즈와 그 이후 / 예술과 상업의 멜팅 팟 죽, 팻 메시니(1954-) 
 
Epilogue 부록 - 기본 재즈 용어 정리 / 재즈가 더욱 생생히 다가오는 재즈의 시대별 영화 리스트 / 오감재즈의 배경 스토리, 서울재즈원더랜드 / 서울재즈원더랜드 2014 출연진 리스트 / 재즈계 거장 29인을 재현한 대한민국 대표 재즈 뮤지션 
 
- 3 - 온몸으로 느끼는 오감재즈 
 
온몸으로 느끼는 오감재즈 
 
 
오감재즈란? 
 
재즈란 무엇인가?
재즈는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유럽인들의 신대륙 식민지 개척으로부터 그 씨앗이 발아했다. 신대륙에 플랜테이션 산업을 위한 농장을 건설했는데, 그곳에 무한 노동력을 제공해줄 튼튼한 일꾼이 필요했 다. 결국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강제로 끌고 와 노예로 착취했는데, 이로써 재즈의 슬픈 역사가 시작된다. 당시 유럽계 백인(스페인인, 프랑스인 등)과 흑인 사이의 혼혈아가 태어나는데, 이른바 ‘크리 오요(Criolle, 프랑스어로는 크리올(Creole))’들은 훗날 재즈 발전에 중심 역할을 한다. 
 
낯선 환경으로 끌려온 흑인들은 매일 중노동에 시달렸고 갖은 고통과 핍박을 받았다. 그들은 스스로 치유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 수단이 바로 음악이었다. 흑인들부터 나온 이 새로운 음악은 이후 남북전쟁과 노예해방,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등을 거치면서 뉴올리언스의 크리오요를 주축으로 점차 발전한다. 한마디로 이 음악은 백인의 전통적 유럽음악에서 온 멜로디, 하모니, 악기와 흑인 특유의 리듬감과 감성이 결합된 것이다. 요컨대 재즈는 흑인 특유의 리듬감인 엇박자에서 오는 스윙감, 자유로운 즉흥연주, 그리고 작곡자보다는 연주자의 개성에 초점을 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은 재즈 서적 혹은 인터넷상에서 ‘재즈’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제 조금 다른 각도에서 ‘재즈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재즈의 본질은 ‘불확실성과 불안정을 즐기는 예술’이다. 재즈에서는 확실한 것이 없다. 혼돈과 질서의 경계, 모호함과 정확함의 경계에 서서 또 다른 모호함을 추구하는 예술이다. 그래서 특히 불확실성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현재 시점에서 재즈의 의미는 남다르다. ‘오감재즈’는 이 시대 재즈의 남다른 의미를 찾는 과정 속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감재즈는 ‘머리와 귀’로 재즈를 듣는 것이 아니라, ‘몸과 가슴’으로 재즈를 느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제 오감재즈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오감재즈의 탄생 현대인은 건조하다. 특수 직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감각과 감성보다는 생각 속에 갇혀 살기 때문이 다. 보이는 게 다요, 들리는 게 전부라고 생각한다. 저마다 제한된 인식 체계, 어찌 보면 세뇌당하거나 스스로 만든 자기만의 틀 속에 갇혀 사는 것이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오감을 느낄 기회는 줄어들고 서서히 박제되어 마침내 그 기능이 퇴화할 것이다. 그러면서 삶은 점점 더 건조해지고 결국 이것은 감정의 노화로 연결되기 쉽다. 감정의 노화는 곧 몸의 노화로 직결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언제나 간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좋은 솔루션이 된다. 좋은 음식이 입으로 먹는 보약이라면, 좋은 음악은 귀로 먹는 보약이다. 특히 재즈는 다양한 장르와 깊이를 가지고 있기에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감각과 감성을 일깨우는 데 전혀 모자람이 없다. 이 믿음은 오감재즈의 탄생 배경이 된 한 일본 식당에서의 나의 경험 때문에 생겨났다. 
 
- 4 - 온몸으로 느끼는 오감재즈 
 
미국 유학 시절, 나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잇쵸’라는 일본 식당에서 2년 넘게 일했다. 그곳의 아르바이트생 대부분은 나와 같은 처지였는데, 이들 모두 재즈를 공부했기에 근무 시간에는 늘 재즈 음악을 틀어놓았다. 우리 식당은 비밥, 쿨재즈, 하드밥, 라틴재즈 등 늘 재즈가 흐르는 레스토랑으로 소문이 났다. 우리는 비밥을 들으며 텐동을 만들고 라틴재즈를 들으며 카레라이스를 만들었다. 손님이 돌아가고 우리끼리 늦은 점심이나 저녁을 먹을 때도 쿨재즈나 보사노바 등 늘 재즈와 함께했다.
그러다 보니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살짝 열린 감각의 틈새로 재즈가 점차 들어온 것이다. 
 
다시 말해, 식당에 울려 퍼지는 재즈가 청각 외에 다른 감각기관으로 인지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식당 주방이라는 곳은 원래 시종일관 오감을 자극하는 곳이다. 갖가지 식재료와 요리의 색감은 물론이고 우동 육수 끓이는 소리, 고소한 튀김의 냄새, 다양한 종류의 양념 맛과 향, 생선과 고기 같은 갖은 식재료를 썰고 다듬는 과정에서 손끝과 손바닥에 닿는 특유의 촉감 등 오감을 건드리는 다채 로운 향연이 펼쳐진다. 여기에 다양한 재즈가 조미료처럼 더해져서 오감의 자극이 극대화된 것이다. 
 
재즈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그전에는 재즈를 들을 때마다 재즈 리듬과 화성 분석, 재즈 뮤지션과 앨범에 대한 지식을 생각하면서 들었다. 그러나 잇쵸에서 일하면서부터는 이런 지식에 대한 강박관념을 벗어던지고 재즈의 다양한 맛 그 자체를 오감으로 즐기게 되었다. 귀국 후, 나는 재즈 공연과 페스티벌 기획 그리고 재즈를 테마로 한 출판과 강좌 등을 해왔는데, 나는 재즈를 더 쉽고 재미있게, 직관적으로 바로 이해하고 즐길 방법이 없을까를 늘 궁리했다. 그러다가 일본 식당에서 오감으로 재즈를 느끼며 행복해했던 기억을 바탕으로 오감재즈를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그때는 일본 음식을 통해 재즈를 느꼈다면, 이번에는 한식을 통해 좀 더 직관적으로 재즈를 체험하게 하려 한다. 
 
재즈, 한식으로 맛보다 재즈는 밥상이다: 어떻게 하면 재즈를 아주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까? 수년 동안 숱한 고민과 시도, 실패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 가장 쉽게 직관적으로 재즈의 맛을 느끼게 할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한식’과 ‘오감의 자극’이다. 2014년, 나는 ‘서울재즈원더랜드’라는 융복합문화페스티벌을 통해 미국 재즈 100년사를 강의와 공연으로 엮어서 6개월간 총 24회 진행했다. 이때 재즈 해설에서 ‘오감재 즈’라는 타이틀로 24인 재즈계 거장의 음악 세계를 24개의 한식으로 비유하여 쉽게 풀어내었다.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매우 좋았다. 
 
내가 재즈 해설에 한식을 가져온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재즈에 대한 쉽고 친근한 접근을 위해서이 다. 둘째, 재즈의 직관적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재즈를 상당 시간 공부하거나 들어야 비로소 이해할수 있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어느 정도 감은 잡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이라면 뼛속 깊이 한식의 맛을 이미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음식과 음악: 어떤 특정 대상물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내 감각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그것을 접하는 기회가 많을수록 유리하다. 그런데 재즈와 재즈 뮤지션은 횟수와 집중도에서 떨어진다. 그렇다면 밥상은? 살아오면서 매일 삼시 세끼 접해왔기에 그 횟수에서 압도적이다. 또한 밥상이라는 구체적 대상을 오감으로 매일 체험해왔기에 맛있다, 맛없다, 맵다, 달다, 짜다 등을 누구나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낯선 재즈의 맛을 아주 친숙한 한식의 맛으로 연결시켰다. 재즈에 대한 청각의 맛을 한식이 제공하는 미각과 후각의 맛, 그리고 시각의 이미지, 촉감 또는 식감으로 치환한 것이다. 
 
- 5 - 온몸으로 느끼는 오감재즈 
 
재즈 편성의 구조 - 한 상 차림: 다음을 보자. ‘① 밥-드럼 연주(리듬) ② 국-베이스 연주(베이스라인과 그 리듬) ③ 김치-주 테마 멜로디 연주 ④ 반찬A-각 악기의 솔로(Solo): 돌아가면서 맛 자랑을 한다. 연주자들이 자신의 개성과 실력을 선보이는 즉흥연주 ⑤ 반찬B-각 악기의 콤핑(Comping): 연주 자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솔로 연주를 하는 동안 다른 연주가가 서포트해주는 보조 연주’ 
 
한국인의 밥상 기본 토대는 밥, 국, 김치다. 여기에 다양한 반찬을 곁들여 더 다채롭고 풍부한 맛을 낸다. 재즈도 똑같다. 밥과 국이 궁합이 맞으면 마치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본격적인 식사를 하기 전에 토대를 만들어주는데, 이 역할이 바로 드럼과 베이스이다. 재즈 밴드의 연주를 들을 때맛있는 연주, 즉 좋은 연주인지의 여부는 우선 드럼과 베이스의 일체감으로 판단한다. 
 
다음은 김치인데, 김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반찬의 일종이지만 다른 반찬과는 격이 다르다. 그만큼 밥상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다. 재즈에서 김치란 주 테마가 되는 멜로디다. 재즈가 기본적으로 즉흥연주이기 때문에 이 멜로디를 연주하지 않으면 무슨 곡인지 알 수 없다. 한마디로 곡의 정체성을 나타나게 해주기 때문에 즉흥연주를 할 때의 멜로디와는 차원이 다른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다음에 각 반찬이 기본 토대 위에 더해져서 맛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 한마디로 반찬들이 돌아가면서 맛 자랑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 악기별로 돌아가면서 하는 즉흥연주(Solo, Improvisation)와 이 즉흥연주를 뒷받침해주는 ‘콤핑’으로 솔로 연주의 배경이 되는 보조 연주다. 보통 코드(Chord)를 다양한 보이싱(Voicing, 코드에는 여러 구성음이 있는데, 이런 음들의 순서를 달리함에 따라 그 포지션에 따른 다양한 색감의 사운드가 나오는데 이를 보이싱이라고 함)으로 리드미컬하게 연주함으로써 리듬과 화성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사실, 전 세계에 수많은 음식이 있겠지만 우리 한식만큼 재즈 무대를 연상시키는 식사방식은 없다.
우리는 밥을 한 술 뜰 때마다 즉흥적으로 여러 반찬을 조합해서 맛의 하모니를 창조해낸다. 밥상 위를 재즈 무대라고 보고 밥과 국, 김치, 그리고 각 반찬을 재즈 연주자들의 악기 연주로 본다면 밥 먹는 행위가 바로 재즈 무대에서 벌어지는 재즈 연주와 똑같다. 우리 한국인은 매일 삼시 세끼의 맛을 즉흥적으로 창조해내고 있는 타고난 재즈 연주가인 것이다. 
 
재즈를 알면 미국이 보인다 미국에 대한 우리의 보편적 이미지와 느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개 할리우드 영화가 만들어낸 이미지거나 잠시 머물렀던 미국의 특정 지역 혹은 개인적 경험에 따른 단편적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
나 또한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기 전에는 미국에 대한 단편적인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5년간 유학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재즈를 알아가면서 지금껏 몰랐던 미국의 다양한 모습, 역사, 그리고 지역별 차이에 대해서 조금씩 눈떴다.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재즈가 인종과 문화 간의 융합을 그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재즈사와 연계된 미국사, 그리고 세계사를 알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지역에 따라 발달된 재즈 장르나 재즈 뮤지션들의 출생지, 성장 환경을 통해 미국의 다양한 주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감재즈 감상 가이드 재즈 레시피: 재즈가 만들어질 때는 어떤 시간적ㆍ공간적 배경 속에 백인과 흑인의 만남에 의해 진행 되고, 그 재즈를 창조하는 재즈 뮤지션 자신의 성향과 인간관계 등을 포함해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 6 - 온몸으로 느끼는 오감재즈 
 
따라 특유의 개성적인 재즈가 탄생한다. 따라서 오감재즈는 이 네 가지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는데, 재즈의 종류와 그 파생 과정을 정리하면 아래 왼쪽 그림과 같다. 
 
재즈를 우선 굵직한 장르만 보면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는 것과 같이 ‘뉴올리언스재즈 - 딕시랜드재즈 - 스윙재즈 - 비밥 - 쿨재즈 - 하드밥 - 프리재즈 - 퓨전재즈’ 순으로 발전해왔다. 그림에서 오른쪽에 있는 장르가 흑인 성향이 강한 재즈이고, 왼쪽에 있는 장르가 백인 성향이 강한 재즈이다. 하지만 처음 보는 재즈 장르의 이름이 낯설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리 자세히 설명한다 해도 그 장르의 차이와 느낌이 쉽게 와 닿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각 재즈 장르를 반복해서 들려주어도 역시 구분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가요, 팝 등의 음악 구조와 감상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에게는 재즈의 구조와 어법 등 그 자체가 매우 생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감재즈에서는 이 다양한 재즈의 느낌을 입맛으로 바꾸어보았다. 아래 오른쪽 그림을 보면 각 재즈 장르의 하단에 그 맛이 표시되어 있다. 
 
물론 이 맛의 비유는 주관적인 나의 관점이다. 그러나 일단 각 재즈 장르의 기본적인 느낌이나 그 차이를 직관적으로 바로 이해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재즈 감상은 어렵지만 입맛은 우리에게 이미 친숙하기 때문에 추상적이지 않게 그 느낌은 파악할 수 있다. 이로써 재즈의 낯선 불편함이 사라지면 그때부터 각 재즈 장르에 대한 자신만의 느낌과 감성을 찾아 나아가도 늦지 않다. 이런 식으로 재즈를 접근하면 복잡한 재즈의 생성 원리와 구조를 좀 더 명쾌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단편적 재즈 지식이 아니라 재즈 발전사를 당시 시대와 공간적 배경, 경제와 사회문화적 배경과의 연결 고리를 통해 파악함으로써 인문학적인 소양과 통찰력도 키울 수 있다. 
 
맛으로 떠나는 재즈 여행 
 
한 뚝배기 하실래예 (구수한 뉴올리언스재즈) - 1800~1925년 뉴올리언스재즈 ㉠ 미국 산업화 진행, 신흥 강국으로 부상 ㉡ 주요 키워드: 대항해시대, 남북전쟁, 산업혁명, 제1차 세계대전 ㉢ 주요 인물: 에이브러햄 링컨, 토머스 에디슨, 라이트 형제, 존 록펠러, 앤드루 카네기, 헨리 포드, 찰리 채플린 
 
래그타임: 래그타임(Ragtime)의 어원은 ‘ragged time(흩뜨려놓은 리듬)’이고 재즈의 시초라고 볼 수있다. 1890년대 중반에서 1910년대에 걸쳐 발전했는데, 한마디로 ‘흑인 스타일로 연주하는 피아노음 악’이다. 쇼팽, 리스트와 같은 클래식, 행진곡, 폴카 등 19세기 백인음악과 흑인의 리듬감이 섞인 음악으로, 미국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즉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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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없었고 미리 짜인 작곡 형태였기에 재즈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표 음악가로는 1868년 텍사스에서 태어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스콧 조플린이 있다. 
 
뉴올리언스 재즈: 1900년 무렵 뉴올리언스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집합소였다. 따라서 영국 민요, 스페인 춤, 프랑스 발레음악, 오페라, 행진곡, 다양한 유럽음악이 혼재되어 있었다. 게다가 항구도시 였던 탓에 아프리카에서 노예 시장으로 끌려온 여러 부족의 흑인들도 있었다. 뉴올리언스는 자유스럽고 상호 교류가 활발한 분위기였다. 특히 1897년경부터 지정된 스토리빌(Storyville)이라는 홍등가는 술과 도박, 매춘 등으로 뱃사람, 군인, 떠돌이, 악사들의 천국이었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와 업소및 길거리에서 연주되는 음악 등이 뉴올리언스재즈의 태동 배경이다. 초기 뉴올리언스재즈 리듬은 유럽의 행진곡 리듬과 비슷해서 2박과 4박에 강세인 스윙감이 아직 등장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 마칭 밴드(Marching Badn)나 서커스 밴드와 비슷했다. 대표 뮤지션으로 젤리 롤 모턴, 루이 암스트롱, 킹올리버, 키드 오리, 시드지 베셰, 버디 볼든, 벙크 존슨, 뉴올리언스 리듬 킹즈 등이 있다. 
 
딕시랜드재즈: 딕시랜드재즈는 백인의 감성으로 연주하는 재즈 음악을 말한다. 뉴올리언스재즈가 구수한 맛이라면 딕시랜드재즈는 고소한 맛이랄까? 원래 ‘딕시’란 노예제 폐지를 반대하며 1861년 미국 연방을 탈퇴한 남부의 11개 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1920년대에는 흑인의 재즈를 뉴올리언스 재즈, 백인의 재즈를 딕시랜드재즈라고 불렀지만, 1940년대 이후부터는 한데 묶어 전통재즈로 부르고 있다. 대표 뮤지션으로 백인으로 구성된 오리지널 딕시랜드재즈 밴드가 있다. 
 
구수한 청국장, 루이 암스트롱(1901-1971) <재즈, 한식으로 맛보다>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은 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에 아주 깊고 구수한 맛을 물씬 풍기며 다가온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랑과 치유의 유산균이 가득한 것 같다. 그의 얼굴을 보면 투박한 오지그릇이 연상된다. 청국장은 투박한 뚝배기에 담아서 먹어야 제 맛이다. 루이의 걸쭉한 목소리는 역시 그의 뚝배기 같은 얼굴로 불러야 어울린다. 
 
<재료> 백인과 흑인의 비율은 20:80 정도다. 재즈의 초기 단계로, 흑인이 주도했고 아직 백인의 참여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루이 암스트롱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밴드들이 집단 즉흥연주의 성향이 강했 다. 그러나 루이가 본격적으로 개인의 즉흥연주와 스캣(Scat, 입으로 하는 즉흥연주)을 시작함으로써 재즈의 기본 틀이 갖춰진다. <주요 음악 장르> 뉴올리언스재즈, 스윙 
 
미스터 재즈의 탄생: 재즈의 진화는 ‘재즈의 축소판’인 루이가 시도한 것을 수많은 음악인이 모방하면서 이루어졌다. 1971년 7월 6일 루이 암스트롱이 사망했을 때 듀크 엘링턴이 말했다. “미스터 재즈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루이 암스트롱입니다. 그는 재즈의 축소판입니다.” 루이는 루이지애나주 뉴올 리언스에서 공장 노동자인 아버지와 하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그것도 어머니가 16세의 미혼모 였고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을 버렸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유년기 시절의 루이는 하루도 바람 잘날이 없는 말썽꾸러기였다. 그는 새해 전야 축제 때 의붓아버지의 공포탄을 가지고 놀다가 잘못 발사 되는 바람에 소년원 신세를 지게 된다. 그때 우연히 소년원 안에 있는 밴드에 들어가는데, 이것이 코넷(cornet, 초기 재즈에 주로 쓰였던 금관악기)을 배우는 계기가 된다. 
 
루이는 곧 이 밴드의 마스터가 되었고 출소 후에 본격적으로 악기 연주를 한다. 그리고 당시 뉴올리 언스를 대표하는 최고의 코넷 연주자였던 킹 올리버에게 레슨을 받는다. 이후 1918년 킹은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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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를 트롬본 주자 키드 오리에게 맡기면서 루이를 소개해주고 시카고로 떠난다. 키드 오리는 1912 년에서 1919년까지 뉴올리언스재즈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루이가 초기에 함께 연주했던 주요 재즈 뮤지션이다. 루이는 뉴올리언스에 남아 연주하면서 경력을 쌓는다. 
 
시카고에 진출하다: 시카고로 이주한 킹 올리버는 크리오요로 구성된 6인조 ‘킹 올리버 크리올 재즈 밴드’로 순회공연을 하며 인기를 끌다가 1922년 링컨 가든스에 정착해서 장기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후 킹은 남부에서 실력파 연주자를 불러들이는데 루이에게도 러브콜을 보낸다. 그렇게 시카고에 입성한 루이는 킹과 함께 코넷을 연주하는데, 메인은 킹이었고 루이는 세컨드였다. 루이는 이 밴드에서 인생의 두 번째 반려자를 만난다.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문 편곡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릴 하딘이다. 그녀는 루이의 곁에서 코칭과 격려를 해주며 그가 음악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내조한다. 
 
루이 암스트롱 덕분에 킹 올리버 크리올 재즈 밴드는 인기 절정을 맞이하지만, 릴은 루이에게 밴드에서 벗어나 자립할 것을 중용한다. 마침내 1924년, 루이는 플레처 핸더슨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는 다. 플레처는 당시까지 생소했던 서구 클래식 오케스트라 편곡을 재즈 연주에 도입함으로써 재즈 빅밴드 형식을 최초로 만들어낸 뛰어난 편곡자이자 연주자였다. 그는 루이 암스트롱, 콜먼 호킨스, 돈레드먼과 같은 명연주자들을 데리고 혁신적인 빅밴드 스타일로 뉴욕에서 명성을 얻는다. 
 
루이는 플래처 헨더슨 악단에서 킹 올리버의 밴드보다 한 차원 높은 편곡을 경험하면서 음악적으로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이루고, 악기도 코넷에서 트럼펫으로 바꾼다. 그러나 여전히 릴은 남편이 더이상 사이드맨으로 있지 말고 자신의 밴드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루이 역시 헨더슨이 자신에게 노래할 기회를 주지 않자 1년 만에 플레처 핸더슨 악단을 나와서 시카고로 내려간다. 
 
재즈의 꽃을 피우다: 시카고에 왔을 때 마침 루이에게 음반 제의가 들어온다. 루이는 이에 조건을 제시하는데, 함께 연주할 멤버는 루이 본인이 선택한다는 것과 자신이 보컬로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이조건은 수용되었고 본격적으로 루이의 시대를 활짝 여는 ‘핫 파이브(Hot Five, 후에 핫 세븐으로 바뀐 다)’가 탄생한다. 릴이 피아노를 담당하고 뉴올리언스에서 함께 연주했던 키드 오리 외 옛 동료들이 참여하여 첫 앨범 〈핫 파이브〉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 앨범을 시작으로 루이는 그동안 갈고 닦은 모든 내공을 쏟아 부으면서 ‘재즈의 정석’을 정립해간다. 
 
재즈 역사의 선구자로서 루이가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당시 많이 쓰이던 코넷에서 트럼펫으로 전환한 것을 시작으로 재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스윙 리듬과 즉흥연주, 그리고 스캣을 정착시킨 것이 다. 그는 유럽음악의 도구인 코드ㆍ기보법(음악의 고저장단, 가락이나 리듬을 일정한 부호나 글 또는 기타 방법으로 표시하는 법)을 도입했고, 솔로 연주 역시 교회음악이나 아프리카의 리듬 등을 섞어 블루스의 블루노트를 첨가했다. 그렇게 재즈의 즉흥연주가 그로 인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스캣 또한 루이가 처음으로 시도하고 또 완벽한 모델까지 만들어낸다. 
 
대공황시대와 그의 전성시대: 루이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대공황이 발생한다. 당연히 재즈 뮤지션도 직격탄을 맞았다. 재즈 뮤지션 대다수는 공사장 노동자, 구두닦이, 세탁업 등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이때부터 루이는 미국을 떠나 유럽 순회공연을 시작 한다. 1932년, 루이는 런던과 파리에 영웅적인 환대를 받으며 입성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3년 뉴딜정책을 실시해서 조금씩 경제가 회복되었고 이에 따라 재즈계에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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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히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다시 말해 스윙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루이도 이 빅밴드의 열풍에 합류했다. 루이는 킹 올리버 밴드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던 루이스 러셀이 만든 오케스트라에 반주자 로서 장기간 계약함으로써 자신의 밴드처럼 활용한다. 또한 영향력 있던 매니저 조 글레이저와도 손잡는다. 이때부터 파죽지세로 수십 장의 음반을 히트시키고 수많은 영화에도 출연한다. 이 무렵 루이 암스트롱이 노래하고 연주하던 그것이 곧 재즈의 정석이 되었으므로 수많은 뮤지션이 그를 모방했다. 
 
부활, 노장은 죽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재즈가 모던재즈로 전환기를 겪을 때 루이는 구시대의 음악인으로 취급되어 잠시 주춤한다. 그러나 그는 지속적으로 뉴올리언스 스타일에 기반한 연주와 노래를 선보였고 TV 쇼에도 단골로 출연했다. 1940년 후반에는 전통재즈의 리바이벌 붐이 불면서 다시 소규모 밴드 스타일로 돌아온다. 1949년 루이는 《타임》 커버에 재즈 뮤지션으로는 처음 등장하 면서 국제적인 명사가 되었다. 1963년 루이는 서울 워커힐 호텔 개관식 기념 공연으로 한국을 방문 했고, 4월 8일부터 22일까지 2주간 공연을 했다. 이때 루이 공연의 게스트로 등장한 이는 윤복희였 다. 
 
주춤하던 루이가 화려한 부활의 날개를 펼친 때는 1964년 그의 나이 64세, 황혼기에 접어들 무렵이 었다. 루이는 후대에 자신을 대표하는 불후의 명곡 ‘왓 어 원더풀 월드’를 67세 때 발표한다. 이 곡은 CF와 각종 영화, 드라마 배경으로 쓰여 우리에게 친숙하다. 이후 1971년 7월 6일, 폐암과 심근경색을 앓아왔던 그는 수면 도중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했다. 루이는 재즈의 기본 형식을 완성한 인물이 다. 그러나 단지 ‘위대한 재즈 뮤지션’만으로 그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가 없었다면 재즈도 없었고 재즈가 없었다면 록, R&B, 힙합, 랩 등 현대의 대중음악도 없었을 것이다. 그가 없었다면 20세기에서 21세기로 이어지는 현 시대의 대중음악도 다른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천재성과 탁월한 음악 업적이 인류에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인정받아야 할 것은 그의 인품과 소통 능력이다. 그의 재능을 능가하는 따뜻하고 성실한 인간성은 첨예한 갈등 구조에 놓인 백인과 흑인을 서로 묶게 했고, 국경을 넘어 전 세계 인류를 감동 시켰다. 한마디로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20세기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루이 암스트롱 주요 명연 주곡은 다음과 같다. ‘What a Wonderful World, Hello Dolly, Mack the Knife, It's Been a Long Long Time, When the Saint Go Marching in, La Vie en Rose, Bibbide Bobbide Boo, Nobody Knows the Trouble I've Seen, Give Me a Kiss to Build a Dream On, Saint Louis Blues.’ 
 
핫 뜨거 뜨거 핫 (매운 비밥) - 1940~1954년 비밥 ㉠ 냉전시대 ㉡ 주요 키워드: 제2차 세계대전 종결, 냉전의 시대, 매카시즘 ㉢ 주요 인물: 조셉 매카 시, 잭슨 폴락, 마릴린 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 
 
비밥(Bebop): 캔자스시티에서 시작된 비밥은 이후 할렘의 ‘민턴스 플레이하우스’에서 꽃핀다. 1930년 대부터 상업화된 빅밴드의 스윙재즈에 젊은 흑인 연주자들은 식상함을 느끼고 새로운 음악적 출구를 찾는데, 그 모색 속에서 탄생한 비밥은 복잡한 코드 진행과 역동적인 멜로디, 거칠고 빠른 템포가 특징이다. 스윙이 4박자 위주였던 반면 비밥은 8박자를 기본으로 때로는 16박자까지 쪼개서 연주했다.
음계는 전통적 블루노트인 3음과 7음을 반음 내린 것에다 5음을 반음 내린 것을 추가했다. 이 감5도는 비밥에서 중요한 음이 되고 10년 정도 지나 블루노트의 하나로 정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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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는 재즈가 더 이상 댄스음악이 아니라 감상을 위주로 한 음악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중심에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가 있었다. 처음에는 대중은 물론이고 비평가와 재즈 연주가에 게조차 외면당했으나 서서히 많은 재즈 뮤지션이 비밥의 어법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결국 비밥은 모던재즈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재즈 장르가 되었다. 스윙이 달달한 맛이라면 비밥은 칼칼하고 매운 맛이다.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음악이지만 일단 그 맛을 알면 다른 재즈는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대표 뮤지션으로는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버드 파웰, 셀로니우스 몽크, 맥스 로지 등이 있다. 
 
후끈 달아오르는 비빔냉면, 찰리 파커(1920-1955) <재즈, 한식으로 맛보다> 찰리 파커의 비밥은 비빔냉면의 맛과 비슷하다. 비밥은 불의 음악이다.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보다는 자기주장이 강한 그런 음악이다. 매우 격정적인 리듬과 초고속 템포의 즉흥연주가 특징인데, 총알 잔뜩 장전한 기관단총을 귓가에서 쏘아대는 느낌이다. 그의 연주를 들으면 칼칼한 고춧가루가 사방에 휘날리는 듯하다. 
 
<재료> 백인과 흑인의 비율은 20:80 정도다. 찰리 파커의 비밥은 화려하면서 광폭한 즉흥연주가 압권이다. 악보 따위는 집어치우라고 말할 정도로 찰리는 사전에 짜인 틀 없이 흑인 특유의 야성과 본능, 날카로운 직관이 번뜩이는 동물적 감각으로 연주했다. 흑인 성향이 압도적으로 강한 음악이다. 
 
<주요 음악 장르> 비밥 <주요 연관 인물> 디지 길레스피, 마이스 데이비스, 제이 맥샨, 얼 하인즈, 빌리 엑스타인, 사라 본, 테디 힐, 셀로니우스 몽크, 듀크 조단, 맥스 로치, 케니 도햄, 버드 파웰 
 
비비거나 녹이거나 (퓨전재즈, 컨템퍼러리재즈) - 1970년대 퓨전재즈 ㉠ 자기중심의 시대(개인의 시대) ㉡ 주요 키워드: 요일 쇼크, 컴퓨터 등장, 인권 운동의 쇠퇴 ㉢ 주요 인물: 리처드 닉슨, 헨리 키신저, 파이살 국왕,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퓨전재즈(Fusion Jazz): 1960년대는 록의 전성기였다. 반면 재즈는 죽을 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주 과감하게 적과의 동침으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한 영웅이 등장했으니, 마일스 데이비스였다. 마일스는 재즈에 과감하게 록을 입혔다. 마일스는 재즈에는 잘 쓰이지 않던 일렉트릭 기타, 일렉트릭 베이스, 키보드를 도입하고 심지어 자신의 트럼펫에도 이펙터를 달아 연주하는 등 악기부터 바꿔버린 다. 실험적으로 〈인 어 사일런트 웨이〉에서 그 가능성을 점쳐본 마일스는 마침내 1970년 최초의 퓨전재즈 앨범 〈비치스 브루〉를 선보인다. 재즈와 록의 만남이라는 퓨전 형식이 아직 자리 잡히지 않아 다소 난해했음에도 이 앨범은 50만 장 판매라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퓨전재즈로 화려하게 열어젖힌 1970년은 록이 서서히 저무는 해가 되었다. 그해 4월에 비틀즈가 해체되고 9월에는 지미 핸드릭스, 10월에는 재니스 조플린이 타계하면서 록은 쇠퇴한다. 한편, 마일스 데이비스 빅밴드에서 함께한 사이드맨들이 자신의 밴드로 퓨전재즈계에 대거 등장하며 성공을 거둔 다. 조 자비눌과 웨인 쇼터의 웨더 리포트, 존 맥러플린의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 칙 코리아의 리턴투 포에버, 허비 행콕 등이 바로 그 예이다. 이들에 의해 퓨전재즈계는 세련되어지고 풍성해진다. 
 
디지로그 회덮밥, 허비 행콕(1940- ) <재즈, 한식으로 맛보다> 허비 행콕의 음악은 재즈일까, 팝일까? 재즈를 듣는 것 같기도 하고 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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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장르의 경계선을 그의 음악은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날아 다닌다. 사시미와 비빔밥이 안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이지만 회덮밥이 그 오묘한 맛의 앙상블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허비 행콕은 안 어울릴 것 같은 이질적인 장르를 뒤섞어 독특하면서도 세련된 그만의 감칠맛을 뚝딱 만들어낸다. 
 
<재료> 백인과 흑인의 비율은 50:50 정도다. 그야말로 백인과 흑인의 경계선에 정확히 서 있는 거장을 세 명으로 좁히자면 마일스 데이비스, 듀크 엘링턴, 그리고 허비 행콕일 것이다. 그가 연주하는 하모니에서는 백인적인 세련된 화성 감각이 느껴지고, 리듬에서는 흑인적 야성과 원초적 생명력이 이글 거린다. 이 둘을 자유자재로 연주하고 결합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창의적인 아티스트가 또 있을까! 
 
<주요 음악 장르> 스윙, 하드밥, 퓨전재즈, 컨템퍼러리재즈 <주요 연관 인물> 마일스 데이비스, 콜먼 호킨스, 도널드 버드, 토니 윌리엄스, 웨인 쇼터, 론 카터, 존 스코필드, 스티비 원더, 마이클 브레커, 칙 코리아, 카를로스 산타나, 팻 메시니 
 
천재의 탄생: 1940년 4월, 허비 행콕은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정치 검사관인 아버지를 둔 덕에 경제 적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어머니도 피아노를 다루고 형과 누나도 음악을 하는 환경이었기에 허비도 7세부터 클래식 피아노 레슨을 받는다. 타고난 재능으로 불과 4년 뒤인 11세 때 심포니 오케 스트라와 공연까지 한다. 그 후 누나를 통해 R&B를 접하고 조금씩 재즈에 관심을 갖는다. 
 
공돌이 되다: 허비 행콕은 고등학교 졸업 후 아이오아주에 있는 그리넬 칼리지에 입학하여 전기공학을 전공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타 학교에서 음악 강의를 듣고 음악 콘테스트에 출전하여 입상하는 등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다. 결국 그는 예술학부로 전과해서 예술학사로 졸업한다. 시카고로 돌아온 그는 1960년에 버드하우스 재즈클럽에서 2주간 콜먼 호킨스와 동반 출연하는 행운을 얻는다. 또한 리 모건에 필적하는 스타급 트럼펫 연주자 도널드 버드의 시카고 공연에 우연히 대타로 뛰면서 도널드의 눈에 든다. 1961년부터는 뉴욕에서 도널드 밴드의 정식 멤버 피아니스트로 활약한다. 
 
‘워터멜론 맨’의 히트: 피아노 연주 실력을 빠르게 인정받으면서 1962년 드디어 허비 행콕의 첫 앨범 〈테이킹 오프〉가 블루노트에서 탄생한다. 처음에는 큰 반응을 얻지 못한다. 다만, 그중 ‘워터멜론 맨’이라는 곡을 몽고 산타마리아 밴드가 새로 편곡하여 리바이벌하면서 빌보드 팝차트 10위로 치고 올라간다. ‘워터멜론 맨’은 기본 블루스 패턴이라 연주하기도 쉽고 듣기도 경쾌하여 여전히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허비 행콕의 대표 곡 중 하나다. 허비의 차별성은 흑인임에도 보기 드물게 백인적인 화성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어렸을 적 클래식 피아노를 다룬 백그라운드도 가지고 있었고 재즈를 공부하면서 특히 빌 에반스로부터 클래시컬하면서 서정적인 하모니 감각을 많이 습득했다. 
 
마일스로부터의 러브콜: 어느 날 허비는 자신과 관련된 소문을 듣는다. 바로 마일스가 신인인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마일스의 사이드맨이 된다는 것은 실력과 명성 측면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후 마일스 밴드에 합류한 허비는 그의 음악 인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를 잡는다. 새로 결성된 마일스의 새로운 퀸텟은 드럼의 토니 윌리암스, 베이스의 론카터, 색소폰의 웨인 쇼터, 피아노의 허비 행콕 라인업으로 완성되었다. 이 멤버는 이후 총 6장의 앨범을 발표한다. 마일스와 활동하면서 허비는 마일스의 모드적 기법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퀸텟 앨범 〈메이든 보이지〉를 발표한다. 이는 1940년대 비밥 혁명 이후 포스트모던의 정수 같은 음악이다. 
 
- 12 - 온몸으로 느끼는 오감재즈 
 
전자악기의 세계로: 허비 행콕이 마일스와 함께하면서 또 하나 새로 접한 것이 전자악기의 세계였다.
허비는 전자악기를 몇 번 연주를 해보고는 곧 무섭게 빠져들었고, 촉이 빠른 허비는 곧 여기에 음악의 미래가 있음을 직감한다. 더욱이 원래 전공이 전기공학이었던 터라 허비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유리했다. 그는 곧 일렉트릭 사운드의 추종자가 된다. 그리하여 마일스가 포스트 밥을 지나서 일렉트릭 재즈로 전향해 나아가는 여정에 허비는 든든한 지원군으로서 함께한다. 이후 허비는 공연 때마다 그지역의 악기상이나 전자 부품 상가를 기웃거리느라 지각하였고, 연습이나 공연할 때 녹음기 등을 무대에 설치해서 녹음해보는 등 전자 장비의 다양한 활용을 연구해나갔다. 이러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대한 그의 끝없는 관심은 훗날 그의 창의력을 증폭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재즈계의 카멜레온,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 마일스의 밴드에서 독립한 뒤 허비는 그야말로 본격적인 카멜레온 같은 음악세계를 펼쳐 나아간다. 아날로그음악에서 일렉트로닉음악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는 홍길동처럼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일렉트로닉 성향이 강한 퓨전재즈 앨범을 내놓고, 또 애니메이션음악을 하거나 퀸시 존스의 일렉트로닉음악 앨범에 참가하 기도 한다. 그러다 1973년에 내놓은 〈헤드 헌터스〉라는 앨범이 대박을 친다. 이 앨범에는 펑키한 리듬감을 기반으로 R&B, 소울, 가스펠을 비롯한 온갖 흑인음악 요소가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전통 재즈 쪽에서는 이단자라 하여 그의 음악을 재즈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일렉트로닉음악 쪽으로 완전히 기우는가 싶더니 언제 그런 음악을 했느냐 싶게 전통재즈 성향인 〈V.S.O.P.〉앨범을 들고 나왔다. 그 퀸텟의 구성원들은 웨인 쇼터, 론 카터, 토니 윌리엄스등 마일스 밴드에 있을 때 함께 한 멤버들이었다. 원래 기존 전통재즈의 관점에서도 수작이 나왔기에 기존 재즈 평론가와 팬들은 “자식 까불더니, 이제 정신 차렸네!” 하며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러나 허비는 그들의 반응에는 관심 없는 듯, 그들 모르게 더 혁신적이고 과감한 일렉트로닉음악을 내놓기 위해 연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제대로 그들에게 한 방 먹일 핵폭탄 같은 음악을 들고 나타난 다. 
 
재즈 혁신가인가, 재즈 파괴자인가?: ‘로킷’이라는 곡을 들으면 “아하, 이 음악이구나!”하고 무릎을 칠것이다. 한창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와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브레이크댄스의 배경음악으로 1980년대 TV나 나이트클럽에서 허구한 날 울려 퍼지곤 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곡은 마치 미래의 사회를 보는 듯, 로봇이 나오는 전위예술 같은 뮤직비디오를 통해 연주곡임에도 이례적으로 MTV상의 5 개 부문이나 수상한다. 
 
그랜드 피아노 앞이 아니라 기타처럼 포터블 키보드를 어깨에 메고 드럼 대신 전자드럼을 치고 소음 같았던 DJ 스크래칭을 멜로디처럼 활용하는 그의 혁신적인 시도에 재즈 팬은 물론 대중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보면 비보이가 탄생하게 된 첫 씨앗을 뿌렸다고 할 만큼 이 앨범은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문을 활짝 열었다. ‘로킷’이 수록된 앨범 〈퓨처 쇼크〉는 결국 1983년 제26회 그래미상 최우수 R&B 연주 부문에서 수상했다. 이 앨범은 평론가들과 대중 사이에서 재즈의 혁신으로 봐야 하는 가, 재즈의 파괴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뜨거운 논쟁으로 시끄러웠다. 
 
1991년 마일스 데이비스가 타계한 후, 허비 행콕은 1994년에 웨인 쇼터, 론카터, 토니 윌리엄스와 함께 새로운 음악의 세계로 자신을 인도한 멘토 마일스에게 헌정 앨범 〈어 트리뷰트 투 마일스〉를 바친다. 그리고 같은 해에 〈디스 이즈 다 드럼〉 앨범을 통해 액시드재즈의 진수를 맘껏 보여준다. 
 
- 13 - 온몸으로 느끼는 오감재즈 
 
1995년 다시 전통재즈로 회귀한 허비 행콕은 이름도 그럴싸한 〈뉴 스탠더드〉를 내놓는다. 이 앨범을 통해 허비는 스티비 원더의 ‘유브 갓 어 배드 걸’, 사이먼 앤 가펑클의 ‘스카버러 페어’,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 프린스의 ‘신전의 도둑들’ 같은 팝음악을 재즈로 재해석해서 연주한다. 이처럼 그는 높은 빌딩숲 사이를 거미줄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처럼 전통재즈와 일렉트로닉 재즈, 재즈와 팝, R&B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예측 불허인 자신만의 창의적인 작품 세계를 지속해 나아간 다. 
 
허비 행콕의 창의력의 원천: 허비 행콕의 끝을 모르는 창의력은 늘 경계선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항상 백인과 흑인의 경계선, 재즈와 팝 등 기타 장르와의 경계선, 전통과 첨단의 경계선에 서 있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고 팽팽 돌아가는 팽이처럼 상하좌우가 만나는 경계선, 그 중앙에 서서 다양한 융합체를 운용하며 줄기차게 새로움을 창조해낸다. 
 
허비 행콕은 지금도 여전히 다양한 장르를 종횡무진 누비는 현역이다. 신인보다 더 신인 같은 참신함 으로 무장한 백발 노장의 현역! 곧 80세를 바라보는 노구이지만, 그를 보고 있자면 ‘음악 장난감으로 이번에는 또 어떻게 세상을 놀라게 할까?’ 하며 늘 궁리하는 장난꾸러기 소년 같다. 허비 행콕 주요 명연주곡은 다음과 같다. ‘Maiden Voyage, Cantaloupe Island, Watermelon man, Dolphine Dance, Chameleon, Butterfly, Driftin, Actual Proof, Rockit, Dis is Da Drum.’ 
 
 
- 14 - 온몸으로 느끼는 오감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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