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조론
이면우
역사가 주는 선물 IMF
- 외세침략이 있어야 단결하는 민족 -
18세기 후반 조선조의 집권층은 당쟁과 공리공론으로 소일하였다. 왕조는 부패하였고 목민관들
의 수탈은 극에 달하여 국민들은 소출의 8할을 세금으로 빼앗겼다. 농민은 농촌을 떠나 유랑하였
으며 민심은 흉흉하였다. 당시 일군의 실학자들은 농지개혁을 주장하였고, 양반과 중인들의 생산
활동을 권장하였으며, 과거제도를 개혁하여 실용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정당한 요구는 집권층에 의해 말살되었으며, 실학파 학자들은 모두 참형을 당하거나 귀양살이로
일생을 마감하였다. 세종대왕 이후 400년만에 나타난 모처럼의 국가발전 방안이 이를 주도해야
할 집권층의 필사적인 방해로 무산되었다.
왜 역사가 주는 선물인가?
100년이 지난 19세기 중엽, 탐관오리의 폭정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동학운동을 일으켜 국가
개혁을 시도하였다. 농사만 짓던 농민들이 관군에 대항하여 일어선 것이다. 그러나 전라도 고부에
설치되었던 이들의 집강소는 일 년이 채 못되어 폐쇄되었고, 녹두장군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군은
그들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참형을 당하였다. 그 후 조선조는 쇠락의 길을 걸었고, 대한제국을 거
쳐 한일합병으로 이어졌다.
1866년 재너럴 셔먼 호가 강화도에 나타나 우리에게 수교를 요구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동경만에는 흑선을 타곤 온 페리 제독이 일본에게 문호개방을 요구하였다. 일본의 집권층은 서양
문물을 배우는 국가발전의 기회로 흑선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우리는 쇄국의 길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또다시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는 IMF라는 제2의 흑선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지원의
대가로 시장개방과 기업의 인수합병을 요구하고 있다. 200년 전의 탐관오리들은 농민을 수탈하였
고, 100년 전의 집권층 대신들은 나라를 팔아 넘겼으며, 오늘의 엘리트 관료들은 30여 년 동안 피
눈물 나도록 노력을 기울여 얻은 경제발전을 망치고 IMF에 급전을 요구하였다. IMF가 우리를
침략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IMF를 불러온 것이다.
IMF는 우리 조상의 얼이 우리에게 베푸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여야 한다. IMF가 없었다
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조선조 집권층이 실학파들을 처형했던 것이나 대한제국 대신들이 나라를
팔았던 것과 유사한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200년만에 처음으로 현시를 정확하게 파악할 기회
가 온 것이다. 실상을 알았으니, 이제 대책을 시급히 세우고 결연한 의지로 문제를 풀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국가경제가 파탄이 나면 어떻게 되는가? 얼마 전에 국제 포럼에서 만난 동남아지역 국가의 장
관은 원망이 많았다. 부패정권으로 경제파탄이 난 후 약 400만명의 국민이 세계 각국으로 일거를
찾아 나섰다고 하였다. 이들 중에서 2만 5,000명이 객지에서 죽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정식으
로 보고되었다고 한다. 미처 보고되지 않은 실제 피해자 수는 몇 배가 넘을 것이다. 피해자 가족
들이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속수무책이라고 하였다. 그 정부는 대책이 없는 것이다. 잘 살지
못한다고 업신여기고 상대방 국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인권옹호단체
도 별 도움이 안 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죽을 줄 알면서도 결사적으로 해외로 나가려
는 국민이 증가한다는 것이었다. 남녀노소가 자원해 나가는 21세기형 정신대인 것이다. 죽을 위험
을 무릅쓰고 왜 나가는가?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1975년부터 시작된 위기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필자는 1986년부터 우리 국가산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떠들고 다녔다.
발설하지 않고 혼자 생각한 것은 이보다 훨씬 이전이다. 1992년 <W이론을 만들자>라는 책자에
서 우리 국가경제가 십면초가에 둘러싸여 있다고 보고하였고, 1995년 출간된 <신사고 이론20>에
서는 우리나라가 열 개의 악순환 고리로 얽혀 있어 폭포수에 쓸려 내려가는 것 같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1960년대에 시작된 국가재건운동과 새마을운동은 전쟁으로 초토화된 상황에서 잘 선택한 정책이
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975년경부터 우리 산업의 틀을 바꿨어야 옳았다. 기술도입과 단순모방
만으로는 발전에 한계가 있는 법이고, 값싼 임금이나 풍부한 노동력, 가격경쟁력도 우리의 전유물
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구호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지 않은가?
1975년까지는 선진국의 산업여건과 우리의 욕구가 묘하게 맞아 떨어졌고, 중국과 동남아 후발
국들도 긴 잠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하였을 때이다. 우리와 경쟁적으로 발전하던 홍콩은 금융과
서비스로, 싱가포르는 세계무역으로, 대만은 부품산업으로 각각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적군 없
는 곳으로 진격하는 셈이었고, 저임금 양산조립은 한국에게 보장된 독무대였다.
조선조의 목민관과 중인들이 계속 농민의 희생을 강요했듯이, 오늘날의 관료와 기업인들은 고
임금-저효율이 해소되어야 문제가 풀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다시 전 국민에게 허리띠를 졸라매
라고 한다. 허리띠만 졸라매면 국가위기가 해소되는가? 1975년식 사고방식을 가진 관료들이 시야
에서 사라져야 위기극복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국민소득은 1만달러였으나 이제 우리의 실질소득은 5,000달러
미만이다. 30년 넘게 걸려 어렵게 이룬 1만달러의 꿈이 불과 며칠만에 깨진 것이다. 우리의 산업
구조는 국민소득 3,0004,000달러인 동남아 제국과 비슷하며, 우리의 정신상태는 1,000달러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먹이사슬의 공생관계는 견고하다.
1997년 10월에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 창립기념일에 동료교수와 학생들로부터 강연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왜 자꾸 우리나라가 위기라고 하는지 설명해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반도
체를 공부하는 기술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국가위기를 반도체 회로(MPU)로 표현하여 설
명하였다.
그림에 나타났듯이 정통성이 결여된 독재정권의 집권층은 권력과 금권정치로 일관하였다. 돈이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정부의 관료는 정치인과 관계가 좋아야 한다. 발탁과 등용, 승진과 영전에
서 실력 있는 정치인과의 교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업인은 끊임없는 사업확장을 위해서 금융지원과 차관도입이 필요하였다. 이런 일들은 정치인
과 관료의 도움 없이는 될 수 없었다. 금융인은 은행경영보다 정치인과 관료들이 창밖에서 알려
주는 대출지시 신호(Window Guidance)를 잘 따라야 했다. 임명권자 아닌가?
국가연구소는 불어나는 연구소 살림에 필요한 연구비를 더 따내기 위해서라도 구하가 앞서는
그림자 같은 연구(Shadow Research)에 몰두하였다. 대학은 학생 정원을 더 늘려 받기 위해 잘못
된 교육정책에 순응하였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슬이 시퍼런 사람에게는 친절하며, 넘어진
사람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준엄하였다. 이것이 부패의 구조이고 먹이사슬의 공생관계이다. 이와
같은 공생관계 때문에 잘못된 관행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부정으로 일관하였다. 간촉 미처 숨
기지 못해 노출되었던 문제도 곧 잘 될 것이라는 낙관론으로 일관하였다. 공생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재원을 낭비하였고, 시간을 끌며 사태를 호도하여 문제를 악화시켰
다.
반도체연구소의 교수와 학생들의 표정이 심각하였다. 한 젊은 교수가 물었다. 이렇게 반도체 회
로같이 꽉 짜인 구조가 개선되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하냐고. 그때 필자가 한 대답은 듣기 민망한
내용이다. 몇 군데가 큰 소리를 내며 망하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야 우리가 문제의 심각성을 이
해할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IMF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IMF가 없었다면 그나마 이만큼 현실을 파악하고 국가
의 장래를 진심으로 걱정할 수 있었겠는가? 어려운 처지를 당했을 때, 체념하면서 차라리 잘 됐
다고 각오를 다진다는 고사성어가 있다. 흔히 전화위복이라고 하며, 위장된 축복(blessing in
disguise)이라고도 표현한다.
부산스러운 반응
IMF 이후 한탄과 자조의 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외채를 갚자
고 한다. 그러나 외채는 어떻게 갚는가? 돈을 벌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수출밖에 방법이 없다.
허리띠만 졸라매면 수출도 늘어나는가?
외채상환에 관한 요즈음 논의는 마치 교통사고 현장에서 이미 부서진 차 값을 어떻게 보상하겠
냐고 논쟁하는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이 빠졌다. 사고로 중상을 입은 부상자를 후송하고, 치료하고,
재활훈련을 거쳐 다시 생활인으로 복귀시키는 방법이 더욱 중요한 것 아닌가?
IMF를 접하는 우리의 반응은 반신불수 환자같이 한쪽만 움직이는 것이다. 나라를 움직이는 수
레에는 두 개의 바퀴가 있다. 한 바퀴는 경제이고 다른 바퀴는 산업경쟁력이다. 경제가 한 집안살
림에서 `가계부 작성`에 비유된다면 산업경쟁력은 `가계의 수입원 창출`에 해당될 것이다. 부서진
차체의 수리비를 갚아 나가는 과정을 경제라고 본다면, 부상자 치유는 `산업경쟁력` 회복방안이
될 것이다.
정신 없이 추락하고 있는 수출을 늘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다른 한 수레바퀴를 보강하며 산업
경쟁력을 새로이 키우는 길밖에 없다. 그러니 우선 모두가 힘을 아끼면서 냉정한 시각으로 사태
를 파악하여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발전의 뜻을 새로이 정의하고(Redefine), 새로이 초점
을 맞추며(Fefocus), 발전방향을 새로이 가늠하고(Reorient), 새로운 길을 다시 찾아 나서야 하며
(Research), 정부와 기업의 조직을 새로 구축하고(Restructuring), 정책과 사업내용을 혁신
(Reengineering)하여야 한다. 이와 함께 국가 분위기를 쇄신하는 부활정신(Revival)과 국민의 역
동적 기운(Revitalization)을 북돋아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 30년간 눈을 감고 달리며 치닫는 과정에서 체
내에 널리 퍼진 모든 악습과 폐해를 일시에 떨치고, 허망한 경제지표와 부질없는 통계숫자에 현
혹되어 허덕여야 했던 나래를 잠시 접고 다시 땅으로 내려앉아야 한다(Regrounding).
고스톱을 하다가 파투가 나면 우리 민족은 어떤 조치를 취하는가? 패를 많이 모아 놓은 기득권
자가 제아무리 큰 소리로 불평을 하더라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두말없이 화투를 새로 섞는
다(Reshuffle).
우리 산업의 전통
_꽃들은 어디로 갔나?-
미국의 피트 시거(Pete Seeger)라는 가수가 만든 노래 중에 `꽃들은 어디로 갔나?`라는 반전가
요가 있었다. 국내에서는 킹스턴 트리로(Kingston Trio) 중창단이 불러 유행하였다. 꽃다운 젊은
이들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 무덤으로 가는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비탄스러워하는 가사이다.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세계시장 곳곳에서 경쟁력을 잃고 시들어 가고 있는 우리 산업의 전
통을 풍자하는 것 같다.
허리띠만 졸라매면 수출이 증가하는가?
미국시장에서 우리 수출품이 차지하는 시장점유율 변화를 보면 우리 산업이 밀려나는 속도를
짐작할 수 있다. 1988년도에 우리 제품은 미국 시장에서 4.6%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1997년 6월
조사자료에 의하면 2.6%에 그치고 있었다. 절반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대미 수출액을 보면 1995년 241억달러였던 것이 1996년에는 216억달러로 감소하였다. 같은 기
간 중에 중국은 우리의 절반도 안 되는 2%에서 시작하여, 1997년 중간집계에 의하면 6.5%에 도
달하였다. 중국은 세 배 넘게 약진을 했고 한국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변이 없다면 이와
같은 하락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특히 1996년 이후의 대미수출 내용을 보면 급격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OECD 가입을 축
하할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는 세계 10대 교역국에 들어가는 것을 자축하였다. 그러나 요즘은 교
역물량이 세계 20위로 순식간에 급락하였다. 실패한 경제로 자주 거론되던 남미국가 수준으로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연말에 무역흑자가 24억달러나 났으니 이제부터는 좋아질 것이라는 정신
나간 기사도 보았다. 이렇게 모를 수가 있는가?
한국제품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우리나라의 산업들도 한때 세계시장에서 2등까진 올라갔던 꽃들이 많이 있었다. 백화점, 쇼핑센
타마다 한국제품이 없으면 제품을 진열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한때 세계 2등
의 꽃들이었던 우리 산업은 어떻게 되었나?
1970년대에 가발산업은 세계 2등 수준까지 올라갔으며 목재합판, 섬유와 함께 3대 수출품목이
었다. 1970년에 목재합판 수출은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숫자인 1억달러 가까이까지 올랐다. 부산의
웬만한 연안은 모두 이 목재회사들의 하치장이었다. 목재회사들이 부산 바닷가에 있던 부동산만
꽉 잡고 있어도 국내 1위 재벌기어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토록 기세좋게 나가던
가발산업, 물건이 모자라 못 팔던 목재합판산업은 1978년 이후 급격한 시장감소를 보였다. 가발,
목재회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1980년대는 면방과 봉제산업이 세계 2등까지 올라갔다. 1960년대 중반 자료에 의하면, 국내 10
대 재벌 중 4대 재벌이 면방재벌, 2대 재벌이 목재재벌이었다. 60년대에 10대 재벌에 포함되었다
면, 그간의 경제성장 추세로 보아 지금쯤은 세계 100대 기업 수준은 되었을 만한지 않는가? 봉제
완구는 1980년대 후반부터 매년 23%의 감소세를 보이며 줄어들었고, 부가가치가 높았던 의류 수
출은 매년 10%씩 감소하여 왔다. 반면에 부가가치가 낮은 직물류 수출만이 증가하고 있다. 면방
업계도 국내 최대 수출산업의 자리를 내놓은 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새로운 고급사 개발에 소홀
하였고, 가공기술 개발에 투자하지 않았으며, 낡은 서리로 가격경쟁력만을 강조하다가 이제는 사
양산업으로 잘못 분류되어 사기마저 떨어져 가고 있다. 옷을 산더미같이 만들어 수출하던 본제회
사, 국내산업의 가장 큰 기둥역할을 담당하던 면방회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1990년대에 사라진 꽃들은 무엇인가? 90년대 초까지 신발은 단연코 세계 2등의 자리까지 올라
갔다. 우리 신발은 1990년에 44억달러를 수출하였으나 1995년에는 16억달러가 채 못되는 정도에
그쳤다. 5년만에 매년 20%씩 감소하여 크기가 3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자전거산업은 어떤가?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우리 자전거는 미국과 캐나다 자전거시장의
15%를 점유하였다. 90년대 초반에는 연간 130만대 수출을 자랑하던 공장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공
장은 1995년에 이르러 30만대 채우기에도 급급하였고, 1996년에는 한 대의 자전거도 수출하지 못
하였다. 이에 비해 대만과 중국산 자전거의 북미시장 점유율은 93%로 급격한 증가를 보였다. 한
때 세계시장을 이끌어 나가던 자전거 산업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꽃들의 퇴장을 보며 느끼는 우리 한민족 산업의 전통은 무엇인가? 세계 2등까지는 거품을 물고
다리에 쥐가 나도록 기어 올라가는데, 2등만 되면 하체가 풀어지면서 방황하다가 이윽고 화면 밖
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끈기 있는 민족이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수출산업들도 별도의
혁신적, 필사적 조치가 없다면 기어코 이 전통을 이어갈 것이다.
사라질 꽃들은 무엇인가?
2000년에 사라질 산업은 무엇인가? 현재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산업 중에서 사라지는 것이 나올
것이다. 철강, 전자, 반도체, 자동차가 남아 있다.
철강산업의 경기지표가 흐리다는 것은 신문 보도를 잘 아실 것이다. 조강생산력은 가히 세계적
이나 중국과 동남아의 제철소 건설이 줄을 잇고 있다.이들의 추격을 피하려면 고부가-특수강 생
산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할 텐데, 일본이 지키고 있는 이 분야로의 진출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전자산업은 어떤가? 가전제품의 대미 수출을 보면, 컬러 TV는 전년도에 비해 약 30%가 감소
되었고, VCR은 43%, 음향기기는 약 10% 감소하였다. 이미 상당 부분이 사라진 것이다.
반도체는 어떠한가? 세계 시장점유을 1위를 자랑하던 반도체회사의 수익률은 1년 사이에 93%
나 감소되었다. 아마도 국제시장 여건의 급격한 변화를 이유로 들 것이다. 천수답 농사를 짓고 있
는 셈이다.
미국시장에서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고, 한국은 메모리 시장을 장악하
고 있었다. 1997년 생산량 통계를 보면, 미국의 마이크론사는 16메가 D램에서 2억 6,000여 만개를
생산하였다. 세계 1위를 달리던 국내 반도체회사는 2억 2,000만개 생산에 그쳤다.
가격을 보면 더욱 심각하다. 16메가 D램의 나라별 가격을 보면, 한국은 5달러로서 개당 가격 6
달러인 일본 업체보다는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요즘 생산규모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 대만의 4.5달러보다 비싸고, 미국에서 새로이 부상하는 마이크론사의 4달러보다 가격경쟁력
이 훨씬 떨어지고 있다.
메모리 시장에서 3대 대규모 회사는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업계의 불문율도 깨질 전망이다. 마
이크론사는 이제 높은 가격경쟁력과 크기가 대폭 축소된 제품으로 전세계 메모리 시장에 급격히
침투할 것이다.
1995년 미국시장의 2.2% 차지했던 한국산 자동차는 1997년 점유을 1.8%에 그치고 있다. 필자는
1997년 4월에 미국 출장을 갔다가 그곳에 사는 교포로부터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들었다. 1만
8,999달러짜리 가격표가 붙어 있는 일본 자동차를 사러 들어가면, 판매원이 3,999달러를 나중에
돌려주겠다(Rebate)고 제안한다고 하였다. 그 옆 대리점에 있는 한국산 자동차의 정가는 1만
7,000달러로 일제보다 싼 듯하지만, 한 푼도 못 돌려주기 때문에 결국 한국산 자동차보다 일본 자
동차가 2,000달러 싼 셈이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한국 자동차는 1만 7,000달러, 평판이 좋고 고장이 없는 일본 자동차는 1만
5,000달러인 셈이다. 미국 소비자들은 어떤 차를 고를 것인가? 애국심이 투철한 교포들은 값이 비
싸더라도 국산을 살 것이다. 그러나 미국 소비자들은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한때 무서운 기세로 세계시장을 휩쓸고 다녔던 우리 산업의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가발과
목재, 면방과 봉제는 모두 어디로 갔나? 어느 곳을 가더라도 산같이 쌓여 있던 우리 신발과 자전
거는 모두 어디로 갔나? 이제 남아 있는 철강, 전자, 반도체, 자동차산업 중에서 사라질 것은 또
무엇인가? 이렇게 남아 있는 산업마저 모조리 사라지고 나면, 우리는 그때 무엇을 할 것인가?
고여 있는 물은 썩는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 1980년 이후 임금인상 투쟁이 전 산업에 퍼지면서 우리의 유일한
장점이던 저임금은 점차 고임금으로 올라갔고, 높은 생산성을 자랑하던 산업현장은 잦은 파업과
작업의욕 상실 때문에 저효율로 떨어졌다. 저임금-고효율이었던 우리 산업이 고임금-저효율로 바
뀐 것이다. 정부와 산업계는 마땅히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싱가폴도 1980년대 초에는 우리와 비슷한 운명이었다. 값싼 가전제품을 조립하던 싱가포르는
임금상승과 생활수준의 향상이 이루어짐에 따라 국제경쟁력이 나날이 떨어지고 있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우리와는 정반대의 조치를 취하였다. 즉, 임금이 상승하여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가전업
계에 4%의 기술세를 추가로 물리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가뜩이나 경쟁력이 떨어져 운영이 어려
운 업체에 기술세를 추가로 물렸던 것이다. 기업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로 나타났다. 첫째, 기술
세를 낼 수 없는 기업들은 재빨리 업종전환을 서둘렀다.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기술세를 내느니
차라리 연구개발을 하겠다고 하면서 신제품개발과 사업구조 조정에 열을 올렸다.
우리나라 정부는 어떻게 하였는가? 가격경쟁력이 떨이지면, 싱가포르 정부는 기술세를 추가로
부과함으로써 기업의 체질을 강화시켰고, 우리정부는 각종 지원정책을 남발하였다.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니, 업종전환을 고려하던 기업인들도 돈 받는 재미를 잊을 수 없어 그것을 보류하였다. 연
구개발에 열을 올렸어야 할 기업들도 정부에서 돈을 안 주면 절대로 연구하지 않게 되었다. 버티
고 있으면 정부가 연구비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산학협동 연구를 하다가 보면 적은 예산으로도
추진될 수 있는 연구개발 과제가 많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정부에서 지원이 나오면 착수하겠
다고 하였다. 마치 정부가 강력히 요청을 해서 할 수 없이 기업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발언이었다.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여 망했다고 분개하는 기업인도 보았다. 싱가포르 기업인들은
우리를 어떤 눈으로 보겠는가? 과연 누구의 회사인가?
대만은 1980년 정보산업 육성책에 관한 근본적인 체계를 확립하였고, 기업인들에게 핵심부품
개발을 유도하였다. 우리는 대규모 국책연구소 단지를 만들었고, 대만은 대규모 기업단지룰 만들
었다. 싱가포르와 대만은 1980년대 초반부터 이미 산업구조의 틀을 거의 강제적으로 전환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있었으나, 우리는 `정부의 지원을 대폭 늘여야 한다`며 변신을 미루었고, 온몸으로
병이 퍼져 나가는 것을 방치하였다.
생각을 고쳐야 한다
오늘날 현실은 어떤가? 홍콩과 싱가포르는 1만달러 소득 이후 10여 년만에 2만달러 소득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흔히 아시아에 네 마리의 용이 있다고 하였다. 세 마리 용은 모르겠으나 우리는
애시당초 용이 아니었다. 용이 남의 제품을 모방하는가? 용이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헤매는가?
이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세 마리 용은 일찍이 시장을 개방하여 자립능력을 키우고자 꾸준
히 변신을 강조하였고, 망할 기업은 가능한 빨리 망하게 하는 정책을 전개하였다. 우리는 어떠하
였나? 세계 진출은 정부가 돕는 경우에만 하였고, 국내시장에 집착하면서 해묵은 국산품 애용 구
호에 의존하였고, 공정한 해외시장 경쟁을 외면하였다. 기업이 망하면 정부의 책임이며, 손해가
나는 기업은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이상한 발상을 하게 되었다. 환자인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장기간의 집중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가 된 것이다.
야생화만이 살아 남는다
사라진 꽃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변화하는 요인에 대한 대책을 소홀히 하였고, 핵심역량이었
던 가격경쟁력이 무너지는 것을 방관하였다. 시장의 여건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위기를 맞을
때마다 경기가 풀리기만을 기다렸다. 사양산업의 배경에는 시장경제의 원리가 무시되었다. 국내시
장의 보호는 기업의 국제경쟁력 약화로 이어졌고, 경쟁력이 약해지면 정부에 의존하였다. 사라지
는 꽃들은 온실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우리 제조업은 작년에 1,000원어치를 팔아 10원도 안 되는
이익을 남겼다. 이런 사업을 도대체 왜 하는가? 이제 온실 속에서 나와 비바람이 몰아치는 국제
경쟁 속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
사라진 꽃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세계 제일을 꿈꾸는 기업만이 살아 남을 수 있
으며, 정부에 의존하고, 국산품 애용을 강요하고, 가격경쟁력에 의존하는 기업은 모두 사라지는
꽃이 된다는 것이다.
이제 주위를 둘러보고 앞으로 사라질 꽃들에 대한 본격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 피
어 있는 꽃들이 명심해야 되는 사항은 무엇인가? 앞으로도 수출단가는 계속 하락할 것이며, 달러
강세에 따른 추가 인하압력도 드세어질 것이다. 유일한 활로는 무엇인가? 정부에 의존하지 말아
야 한다. 품질이 나빠도, 가격이 비싸도 국산품이니까 애용해야 한다는 협박을 중지하여야 한다.
독특한 발상을 선도하여야 하고 높은 가격을 받아야 하며, 후발 경쟁국이 추격을 포기하도록 계
속 전진해 나가야 한다.
온실 속의 꽃은 국제시장에서 죽는다. 야생화만이 살아 남는다.
현자의 행진
-세속의 현자들이 이끄는 나라-
필자는 4~5년 전부터 주위의 젊은이들에게 세속적인 현자를 멀리하라고 이르고 다닌다. 불교의
가르침에 현자의 도리를 알려 주는 계율이 있다. 눈을 가려 사악한 것을 보지 않고(See no evil),
귀를 막고 사악한 소리를 듣지 않고(Hear no evil), 입을 막고 사악한 말을 하지 않는(Speak no
evil)노승의 그림이나 조각품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현자의 모습이 왜곡되어 잘못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현자들은 어떠한
가? 본인이 책임질 위험이 있는 일은 보지 말고(See no risk), 본인이 부담스러운 처지에 놓일 가
능성이 있는 일은 듣지 말며(Hear no risk), 개인의 영달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은 아예 발설하지도
말라(Speak no risk)는 원칙에 충실하고 있다.
세속의 현자들이 이끄는 나라
우리 사회의 현자들은 시류에 민감하다. 원만한 대인관계를 강조하며 원칙보다는 처세능력을
가장 큰 덕목으로 강조한다. 이들은 목숨이 길고 관운이 끈질기다. 지난 30년 간 그들은 칠전팔기
의 투지를 불태우며 권좌를 드나들었다.
정부의 관료들은 현자이다. 제아무리 국가의 존망에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이라도 본인에게 부담
스러운 내용은 외면한다. 상사가 저지르는 부조리는 못 본 척하고, 민원이 죽 끓듯 해도 부처가
책임질 일은 못 들은 척하며, 관료사회의 잘못된 관행도 본인에게 이익이 없으면 지적하지 않는
다.
기업에도 현자들이 많다. 위험한 일, 불확실한 일, 책임질 일들은 모두 안건에서 보류한다. 다음
회의의 안건으로 미루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회의의 결론이 없을 수야 없지 않은가? 그래서
회의록에는 여러 부서의 의견을 청취하였고, 좋은 제안이 많이 있었고, 모두 힘을 합쳐 더욱 잘
하다고 결정하였다고 기록한다. 현자들인 것이다.
기업체의 회장 중에도 현자가 많다. 몇 번이나 방향을 제시했는데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그런데 한 가지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카리스마가 있고, 과감한 결단력과 휘몰아치는
추진력으로 무장한 회장 아닌가? 못 본 척 못 들은 척 묵묵부답인 기업의 현자들을 왜 그냥 보고
만 있는가? 회장도 현자이기 때문이다.
언론에도 현자들이 많이 있다. 사방에 취재원이 널려 잇고, 각계 각층을 두루 섭렵하는 기자들
이 우리의 외환보유고가 고갈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청문회에 오랫동안 오르내렸던 사
안, 정부-은행-재벌의 정경유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고 한탄하는 사설도 보았다. 왜 미리
말하지 못하였는가? 아마도 현자의 원칙(Speak no risk)에 위배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근의 외환 위기사태로 경제관료 중에도 현자들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국가의 위기상황에
서도 국민에게 보고될 내용이 여러 차례 수정되어 발표되었다. 회의록이 누설되었다고 신경질적
인 반응을 보였다. IMF라는 일개 금융기관이 들어오니까 현자들의 행진이 난조를 보이기 시작하
는 것이다. 외국들도 이제는 우리나라 현자들의 행세를 관심 깊게 보고 있다. 외국 언론들은 현자
의 지배가 끝나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더 많은 깜짝 놀랄 일들이 비밀 뒤에 쌓여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현자들의 구호행진
현자들은 구호를 좋아한다.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현자들이 좋아하는 구호는 무엇인가? 대개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는 합심전력, 둘째는 일치단결, 셋째는 일사불란이다. 우리가 자주
듣는 구호가 아닌가?
합심전력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정보혁명이 일어나고 국제화시대가 전개되며,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이 시점은 급류타기를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급류에 휩쓸려 내려가는 배에서 합
심전력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합심전력하겠는가? 그저 두 주먹에 힘을 주
면서 긴장만 하고 있을 것 아닌가?
일치단결이란 무엇인가? 변혁의 시대를 맞아 모든 것이 제각각의 특성을 가지고 다양하게 변하
는데, 우리가 어떻게 일치단결할 수 있겠는가? 전원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모여 움츠리고만 있을 것이다.
일사불란이란 무엇인가? 사방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들이 우리를 일제히 공격하는 시대이
다. 우리가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면 어떻게 되는가? 아마도 전멸할 것이다.
결국 현자들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의장대일 것이다. 합심전력하고, 일치단결하고, 일사불
란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구호를 좋아하는가? 이런 구호를 외치고 있으면 별다른 대책
없이도 시간을 때우며 국민을 바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자들은 결단의 시기에 대처하는 방법을 깨닫고 있다. 중대한 사안의 대책을 발표하는 정부보
고에서 자주 인용되는 현자들의 구호가 있다. “사태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겠다”고 한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미치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 우선은 가만히 있겠다”는 말일 것
이다. 가만히 있겠다고 말하면 국민들이 우습게 보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사태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겠다” “상대방의 행동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좌시하지 않겠다고 하
더니 결국은 누워서 잠들어 버리고,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하더니 잠시 후에는 자리를 피해
버리는 것이다.
현자들은 매우 신중하다. 위험부담이 있는 일은 결정을 계속 보류한다. 옛말에 “돌다리도 두들
겨 보고 건넌다”는 것이 있다. 매사에 신중하란 뜻일 것이다. 현자들에게는 다르게 들린다. “돌
다리이기 때문에 더욱더 두들겨 보아야 한다”로 해석한다. 그러나 외국기업이 시작해서 잘 되는
사업, 국제시장에서 잘 팔리는 제품만은 의외로 과감하게 추진한다. 안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안
전해 보이지만 살아날 수 없는 길인 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에서 하지 않은 일은 할 엄
두조차 내지 않는다.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현자의 종류
필자는 얼마 전에 출간한 책자에서 우리 사회의 현자의 종류를 대략 세 가지로 분류한 적이 있
다.
첫째, 경력형 현자가 있다. 이들은 여러 부서를 두루 섭렵하였고 대과 없이 모든 부서의 임무를
마쳤다. 경력형 현자의 목표는 무엇인가? 어느 한 자리에 취임하는 즉시 그 다음 자리로 옮길 준
비를 하는 것이다. 과거에 추진하였던 업무를 평가할 필요도 없고, 무리하며 새로운 사업을 전개
할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에는 경력형 현자가 제일 많다.
둘째, 인격형 현자이다. 이들은 담당업무의 근본 기능보다는 원만한 인간관계의 구축에 주력한
다. 상사에게 인정받고 부하직원들에게 존경받고자 행동한다. 사리를 따지기 전에 포용력을 강조
하고,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너그러움을 중요시한다. 인격형 현자들이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조직의 훈훈한 분위기이다. 시급히 척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같이 쌓여 있는데도 인화단결만이 위
기극복의 열쇠라고 주장한다.
셋째,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필요하지만, 가장 찾기 힘든 그룹이 기록형 현자이다. 이들은
수선스럽고 분위기 파악을 못하며, 주변에 있는 현자들의 체면을 손상시킬 일들을 많이 만들어
낸다. 그래서 세속의 현자들은 기록형 현자를 싫어한다. 독단적이라고 비난하고 공격적이라고 흠
집을 내며 조직문화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많이 벌이다 보면 그 과정에서
실수도 있을 것이고, 어려운 일을 추진하다 보니 실패하는 일도 간혹 있을 것이다. 그러면 때를
기다리던 세속의 현자들이 일시에 공격한다. 비리 내용을 매스컴에 흘리고, 익명으로 투서하며,
감사원에 제보한다.
열 가지 일을 해서 아홉을 성사시키고 하나를 실패한 사람을 가차없이 처단하는 것이다.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은 실수할 리가 없다. 실패한 적도 없고 실수한 적도 없는 사람들은 현자클럽
을 만들어 회원을 모집한다. 주변의 대세가 이러다 보니 망설이며 주위를 살피던 신진기예들도
하나둘 노회한 현자클럽에 합류하기 시작한다.
늘어나는 현자의 대열
대학생들은 졸업하면서 현자가 된다. 이들은 대기업 일류회사를 선호한다. 왜들 그렇게 한정된
대기업으로만 몰려드느냐고 물었더니 안정된 직장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국내에 안정된
직장이 있는가? 고등학생들도 현자가 되고 싶어한다.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왜 이 대학을
택했냐고 물어 봤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대학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탓할 내용은 아니지만 어린
현자인 것이다.
우리 모두가 현자가 되어가다 보니 현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우직한 사람들은 낙오자로 취급될
것이다. 주변머리 없는 성격의 부적격자, 성격파탄자, 편협한 이상주의자로 낙인이 찍힐 것이다.
그들의 부인과 자녀도 존경을 보류할 것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답답하게 사느냐?”고 질책할
것이다.
이러한 현자의 행진이 지속되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첫째, 국가 경쟁력이 날로
쇠퇴해질 것이다. 둘째, 후발 모방의 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셋째, 상식이 통용되지 않고 체
념하는 내용이 많아질 것이다. 이와 함께 현자들의 숫자는 더욱 무서운 기세로 늘어날 것이다. 이
렇게 사회 곳곳이 현자들로 꽉 차면 우리나라는 소리없이 공중분해되고 말 것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일전에 청문회에 나왔던 사람은 자신의 상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에 출두하였다. 검찰의
추궁을 이기 못한 그는 상사의 비리를 인정하고 풀려났다. 집에 돌아온 그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끝내 자살을 하고야 말았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 그는 현자의 계율을 위반하였던 것이다(Speak no risk). 보
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할 말이 있어도 벙어리인 척했어야 하는데 저간의 사정을 말
해 버린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스스로 고발했어야 할 일을 수사기관의 조사에서 피치못해 말한
것에 자책감을 느껴 끝내 목숨을 끊고야 만 것이다. 현자들이 이끄는 우리 사회는 이만큼 상식이
마비된 것이다.
외국에서 공부할 때 의과대학 실험실에서 뇌의 활동상태를 관찰한 적이 있다. 뇌에 산소공급이
중단되면 약 4분 후에 부패가 시작되고, 6분이 지나면 부패로 인한 후유증이 생긴다. 현자들의 행
진이 너무 오래 지속된 것은 아닌가? 부패한 부분이 너무 커진 것은 아닐까?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이 단절되는 것은 신경마비이고, 시급한 국가과제의 추진을 보류하는 것
은 동맥경화증, 이러한 위기상태에서도 자구노력을 외면하는 것은 뇌졸증이다. 현자들이 이끄는
나라를 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현자의 행진을 중단시켜야 한다.
선진국의 현자를 본받으라
선진국의 현자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언뜻 보아 현자같지가 않다. 보는 대로 지적하고, 듣는
대로 수정하며, 말하는 대로 행동한다.
인텔사의 앤디 그로브 회장은 “경쟁사가 나서기 전에 우리가 우리 회사 제품을 죽여야 한다”
고 강조한다. 우리 기업에 보편화된 맹신적 애사심이 결여된 발언이다. 인텔사가 개발한 첨단 반
도체 부품은 당분간 경쟁상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잘 팔린다고 안주하고 이익이 좀 난다고 도
취되어 쉬다 보면, 기회를 노리던 경쟁사가 어느 순간에 덤벼들지 않겠는가? 앤디 회장은 이것이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경쟁사가 시도조차 하기 전에 잘 팔리는 자사제품을 남보다 먼저 죽이고
그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일을 반복한다.
재너럴 일렉트릭사의 잭 웰치 회장은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의 유형을 네 가지로 분류하였다.
가장 바람직한 경영자는 변화를 추구하면서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는 유형이다. 이러한 경영자가
이끄는 기업은 변혁의 시대에도 여전히 큰 성장을 보여 줄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은 변화를 강조
하기는 하지만, 주어진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는 유형이다. 조직의 구성원으로는 연명할 수 있을지
모르나 유능한 경영자는 아닐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은 변화는 싫어하지만 목표만큼은 꼭 달성하
는 유형이다. 이런 경영자가 맡고 있는 회사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양의 길을 걸을 것이다. 네
번째 유형의 경영자는 변화도 거부하고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는 유형이다. 누가 보더라도 이들은
부적격자로 판정이 날 것이고 도태될 것이므로 큰 걱정이 없다
잭 웰치 회장 밑에서는 첫번째 유형의 현자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 한국의 현자들은 대개 세
번째 유형에 속할 것이다. 변화를 거부하고 가치관은 취약하지만, 눈에 잘 보이는 목표만큼은 수
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성한다. 그러나 그들은 꼭 달성할 수 있는 것만을 목표로 삼을 것이
다.
현자가 아닌 사람을 고용하라
현자들로 둘러싸인 국가의 위기는 어떻게 극복하는가? 멕시코는 금융파탄의 위기를 맞자, 경제
부처를 관장하고 있던 현자들을 무시하고 우직한 사람 세 명을 금융감독원에 기용하였다. 이들은
먹이사슬에 가담한 적도 없고 관행에도 익숙하지 않으며, 오래된 공조관계에서 제외되었던 인물
들이다. 이들은 금융감독원에서 상식대로 일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18개 은행 중 10개 은행이
외국인 손에 넘어가거나 국내 은행에 합병되었다. 사전예고 없이 30여 명의 감사요원을 대형 은
행에 투입하여 경영정상화를 법대로 점검하였다.
현자가 아닌 사람들이 국가위기를 구한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하면 될 것이다.
기업의 자존심 경쟁
- 화전민 마을의 잡화상 -
사방이 옥수수밭으로 둘러싸인 미국 아이오와 주에는 독일 후예들끼리 모여 살면서 옛날 독일
스타일을 고집하며 살아 가는 아마나(Amana)라는 관광마을이 있다. 모든 것이 고풍스러운 이곳
시골마을에서 뜻밖에도 `아마나`라는 상표를 붙인 고급 가전제품이 만들어져 전세계에 공급된다
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필자는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공단을 이루며 큰 공장과 높은 사무실로 위용을 자랑하
는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은 이 시골마을의 협동조합만도 못하지 않는가? 우리 재벌기업들이야말로
화전민 마을의 잡화상 아닌가/
재법기업은 잡화상 같다
아마나 상표는 냉장고, 오븐, 세탁기 등에서 최고의 가격과 수익성만을 고집하고 있다. 마을 협
동조합이 주축이 되어 첨단기술 개발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구소에 맡기고, 디자인은 세계적인
대가에게 의뢰하며, 각종 부품도 유명한 부품회사에서 만들어 공급한다. 그럼 아마나 마을 사람들
이 하는 일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세계 최고급 제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농한기를 틈타 온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내 물건을 만들 듯이 정성을 쏟아 꼼꼼히 조립하는 협동정신을 고집한다고
하였다. 마을사람들의 숫자도 한정되어 있고, 일할 수 있는 기간도 일정하므로 많이 만들 수는 없
어서 항상 주문이 밀려 있다고 하였다.
답답한 생각이 들어서 공장을 증설하지 그러냐고 되물었더니, 딱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필자를
흘겨보며 대답했다. 그렇게 되면 협동심이 부족한 외부사람들이 많아져 불필요한 관리인원이 늘
어나고 제품이 품질도 문제가 되어, 결국 현재보다도 이익이 줄어들 것이라고 하였다. 미국 시골
에 있는 마을조합에 가서 창피를 당한 셈이다.
이 마을을 방문한 필자는 여러 가지 면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회사도 없고 공장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 최고급 가전제품을 만들어 전세계에 공급한다. 주문량이 밀려 있으니 마케팅 비용도 없
고, 접대비도 없고, 항상 물건이 모자라니 창고도 필요없고, 재고관리 전산프로그램도 없다. 생산
품목도 일정하다. 남들이 뭘 만들든지 상관하지 않고 늘 만들던 물건만을 항상 최고의 품질로 만
들로 높은 가격을 받는다.
옥수수밭을 태워 농사를 짓는 미국 화전민 마을은 한 가지 제품으로 세계시장을 여유 있게 상
대한다. 우리나라 재벌 그룹은 화전민 마을에서 온갖 물건을 다 모아 놓고 마을사람들을 상대로
잡화상을 운영한다.
잡화상의 자존심 경쟁
우리 화전민 마을에는 유명한 잡화상들이 많이 있다. 이 잡화상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자존심
때문에 경쟁도 치열하다. 마을에서 대접을 받으려면 잡화상의 크기가 가장 중요하다. 큰 잡화상이
아니면 마을에서 알아주지 않는다. 화전민 신문마다 매년 마을의 30대 잡화상 명단을 공개한다.
좁은 화전민 마을에서 여러 잡화상들이 벌이는 경쟁은 필사적이다. 이웃마을에는 져도 좋으나
같은 마을의 옆집 잡화상에는 절대로 질 수 없다고 다짐한다. 수입을 할 때는 다투어 비싼 값을
제시하고, 수출을 할 때는 마을 잡화상끼리 가격경쟁이 붙는다.
정부는 큰 잡화상을 중심으로 정책을 수립한다. 큰 잡화상이 망하게 되면 작은 잡화상이 망한
것보다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잡화상이 클수록 실직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니 망하는 것을 방
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망하면 마을도 망할 것이다. 그러니 큰 잡화상은 살려야 한다. 이
런 논리로 이제까지 유지해 왔다.
그러나 큰 잡화상이 살아나면 빚을 갚을 것인가? 자금의 여유가 생기면 빚을 갚기보다는 또 다
른 잡화를 취급할 것 아닌가? 화전민 마을이 개방되면 마을의 잡화상은 흔들릴 것이다.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잡화상들을 외국기업이 헐값으로 인수할 것이다.
잡화상 주인 중에는 한 가지 잡화에 몰두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집중하려고 했더니
면장, 이장이 화를 내는 것이다. 같이 밥 먹자고도 안 하고, 화전민일보 인물동정란에도 기사가
나지 않으며, 서당을 마친 학생들도 무조건 큰 잡화상만으로 몰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도 결국에
포기하고 크기를 경쟁하는 시류를 따랐을 것이다. 마음 속의 가훈은 무엇인가? 일단 커야 이야기
가 된다. 크면 대접받는다. 크면 더 커질 수 있다.
프로 바둑기사들과 싸우는 아마추어 바둑인
바둑 동호인이 많은 회사는 정상의 프로 바둑기사를 초청하여 회사에서 선발된 아마추어 바둑
동호인 30~40명과 한꺼번에 대국하는 행사를 벌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프로 9단격인 마이
크로소프트(Microsoft)와 경쟁하는 세계 각국의 군소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30~40명의 바둑 동호인
과 같다. 한 명의 프로기사가 30~40명의 아마추어 기사를 상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화전민
마을의 잡화상은 각 아마추어 바둑기사가 전세계 30~40명의 프로 바둑기사와 한꺼번에 대결하는
것과 같다. 모든 것을 걸고 하는 무한경쟁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화전민 마을 아마추어 기사의
전적이 대략 짐작되지 않는가?
미국에도 잡화상은 많다. 디즈니(Disney)라는 잡화상은 사업다각화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그들
은 핵심역량을 중심으로 인접분야로만 선별적으로 확장한다. 이렇게 확장을 계속한 디즈니사는
잡화상인데도 취급하는 잡화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잡화상도 알고 보면 천차만별
인 것이다.
한 아이를 정성을 들여 키우는 집과 형편은 생각하지 않고 입양을 계속하여 자녀가 30~40명쯤
되는 집이 있다고 생각하여 보자. 어느 집 자녀가 부모의 관심을 더 많이 받을 것인가? 우리 마
을 회장들도 한 계열, 한 회사, 한 제품에만 모든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이다. 가지가 많은 나무이다 보니 바람 잘 날이 없어서 이렇게 된 것이다.
화전민 마을의 구호경쟁
화전민 마을에는 구호가 많다. 모두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겠다고 한다. 그러나 자존심은 있어
서 구호의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세계 초우수 기업, 초일류 기업, 초우량 기업 등이 자주 쓰이고,
세계에서 단 하나의 기업이 되겠다는 당찬 구호도 보았다. 그래서 마을 담벼락마다 구호로 가득
찬 것이다.
화전민 마을의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마을 서당도 덩달아 구호를 붙인다. 한 서당에서 세계 10
위권 대학에 진입하겠다고 했더니, 그 옆의 서당은 겁도 없이 세계 5위권 대학이 되겠다고 하였
다. 필자가 속해 있는 서당은 세계 800위라고 들었다.
구호가 많이 붙은 것을 보면 착잡한 생각이 든다. 빈 깡통이 소리가 크고 빈 수레가 덜컹거린
다는 말도 있다. 겁이 많은 개가 자주 짖는다. 싸움을 잘 하는 개는 소리 없이 물지 않는가?
자사보유시장에 의존한다
해외에서 보는 우리 재벌의 특징은 무엇인가? 우선 냉혹한 기업운영방식과 전광석화같이 계약
을 선점하는 기동력을 보고 놀란다. 회장이 결정만 하면 충직한 돌격대가 공격을 시작한다. 금융
차입은 정부가 보장하고, 내부시장도 국가가 보호한다. 국민들은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캠페인에
적극 참여한다. 서구의 기업인이 보면 가히 환상적인 기업여건이다. 누구라도 이런 여건 하에서는
재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동시에 이런 생각들도 하고 있다. “한국의 재벌기업과 경쟁
해서 이기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다.”
정부의 지원과 내수시장 보호막 속에서 지내다 보니 과잉보호 현상이 나타났고, 공정한 경쟁에
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 땅 짚고 헤엄치기를 즐겼고 위험부담을 극력 회피하였다.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만 타고 다닌 격이며, 심판이 적극 편들어 주는 경기에만 출전한 것이다.
불확실한 것은 회피하고 신규사업 진출 시에는 사전에 이미 판매가 보장된 자사보유시장(Captive
Martet)에 집착하였다.
자사보유시장이란 무엇인가? 매출이 보장된 시장, 즉 사원 가족, 협력사 가족이 어쩔 수 없이
관계사 제품을 사는 시장을 칭한다. 수출입 물량이 많으면 무역회사를 차리고, 공장을 짓게 되면
건설회사를 만들고, 본사 사옥관리를 위해 용역회사를 세우고, 전산작업이 많아지면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들고, 직원들의 해외출장이 잦아지면 여행사를 차리고, 광고지출이 많아지면 광고회사를
세운다. 결재하는 액수가 많아지면 신용카드 회사를 세우고, 접대할 일이 많아지면 음식점을 내
고, 체류하는 방문객이 많아지면 호텔을 세운다. 회장의 취미가 신규 사업대상이 되고, 이웃 잡화
상이 새로 판매하는 물건이 있으면 우리도 팔아야 직성이 풀린다.
잡화상의 고민
선진국의 기술을 가져다 모방하는 회사는 아무리 규모가 커도 이류회사이다. 그 이류회사 밑에
많은 부품회사, 협력회사가 있다. 이류회사의 지시를 받고 부품을 만드는 계열회사, 이곳에 납품
을 하는 협력회사는 아무리 잘 되어도 삼류회사일 것이다. 현재 이류쯤 되는 계열사도 종가의 지
시를 따르다 보면 결국 삼류회사로 전락할 것이다.
이제 IMF시대에 잡화상의 고민은 무엇인가? 잡화상 계열사 중 돈을 버는 곳은 평균적으로 5분
의 1이다. 5분의 1이 돈을 벌어서 나머지 5분의 4를 도와 준다. 사업다각화가 도를 지나친 것이
다. 돈 버는 회사에 있는 사원들은 사기가 떨어질 것이다. “벌면 뭐하냐? 저것들이 다 갖다 쓰는
데.” 돈을 못 버는 회사의 사원들은 뻔뻔하다. “자기네 어려울 때 도와 준 게 누군 줄 아냐?”
신규사업 진출 때 도와 주었기 때문이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모두 다 불만이다. “아껴 쓰면 뭐하나”, “돈 벌면 뭐하나”하는 생각도 들 것이다.
모두들 사업규모를 줄이고 계열사를 정리해야 된다고 외치고 있다. 그런데 얼마를 포기해야 할
지 통 감이 안 잡힌다. 먼저 계열사별로 예상수익보다 소요비용이 높은 사업장은 어디인가 보면
되지 않은가? 가까운 시일내에 돈을 벌 승산이 있느냐? 밑 빠진 독, 금이 간 독에는 절대로 물을
붓지 않겠다. 경영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잭 웰치 같았으면 최소한 소요비용이 높은 계열사
80%는 보지도 않고 정리했을 것이다. 잭 웰치는 의심할 것이다. “혹시 한국 잡화상은 돈을 잃어
도 자기 돈이 아니기 때문에 저런 짓을 하는 것은 아닐까?”
화전민 마을의 잡화상들은 빚이 많다. 몸집 키우기에 열중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30대 잡화
상의 부채비율은 자기자본의 400~450%이다. 인텔, 소니, IBM 등 세계적인 기업의 부채비율은
30~50%이다. 대만은 100% 미만이고, 일본은 200%이다.
빚이 많다 보니 이자부담도 높다. 일본은 매출액의 1.3%가 이자부담으로 나가고, 대만은 2.2%
를 쓴다. 한국의 이자부담률은 5.6%이다. 일본 이자부담률의 4배, 대만의 2.5배를 이자로 내는 셈
이다. 이렇게 이자를 많이 내고 장사가 되는가? 손해를 보기 십상일 것이다.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제 화전민 마을 시장이 개방되면 바깥마을 사람들이 온갖 잡화를 들여올 것이다. 각종 금융
혜택과 차관보증도 힘들어질 것이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도와 줄 수 없으니 어쩌면 좋겠는가?
이제 화전민 마을의 잡화상의 협력과 공존을 위한 `잡화상 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대기
업은 경쟁은 치열하게 하지만 게임의 법칙을 지킨다. 관련산업의 대기업들이 자존심을 자제하면
서 구성한 조합이 있다. 조합에서는 서로의 이익을 해치는 과당경쟁을 하지 못하도록 조정한다.
일본과 기술협약을 하려는 우리 기업이 일본 대기업들끼리 경쟁을 시켜 가격을 깎으려 해도 도무
지 경쟁에 응하지 않는다.
크기 경쟁을 포기한 화전민 마을의 잡화상은 이제 무엇을 대상으로 새로이 경쟁을 벌일 것인
가? 병적인 경쟁심을 버리고 해외의 기업사냥꾼에게 먹히기 전에 우리끼리 인수, 합병을 먼저 추
진하는 것이 이익이다. 우리 마을에서의 독점권을 포기하고 다른 마을에 많이 팔 생각에 몰두해
야 한다. 창의적 노력을 많이 하는 30대 잡화상 명단을 만들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대통령
이 오찬에 이들만을 초대하여야 한다. 매추 규모가 큰 잡화상 주인들은 아니꼽겠지만, 일단 창의
적 노력을 시작할 것이다. 부가가치가 높은 기업, 제품 이미지가 좋은 기업, 국제화가 잘 된 기업,
미래지향적 기업의 순위로 기업평가서를 새로이 만들어 발표하여야 한다. 기업의 크기만으로 평
가하다 보니 모두 커지기만 하지 않았는가?
일부 잡화상 주인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 방식대로 운영하겠다며 집념을 불태우다 망할 것
이다. 일부는 이꼴 저꼴 보기 싫다고 은퇴를 선언할 것이다. 대부분의 잡화상들은 결정을 보류하
며 우왕좌왕하다가 망할 것이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변신에 노력한 일부 잡화상은 살아 남을 것
이다.
제조업의 현주소
- 우리 제조업은 단봉낙타 모양을 닮았다 -
산학협동 연구에 종사하면서 궁금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우리 제조업의 특징은 무엇인가, 장
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하려면 어떻게 추진해야 할 것인가? 10여 년 전부터
이 문제에 골몰하다가 드디어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제조업에 단봉낙타이다.
우리 제조업은 단봉낙타와 같다
제조업은 그림에 나타난 바와 같이 대략 10단계의 업무를 거쳐 진행된다. 즉, 기술정보, 상품기
획, 연구개발, 설계, 설비계획, 부품조달, 생산, 판매기획, 판매, 사후관리(After Service)단계로 구
성되어 있다.
그 동안 우리 제조업은 상품기획과 연구개발은 해외기술의 도입에 의존하였고, 판매 및 사후관
리단계는 외국 바이어(buyer)들에게 기대어 왔다. 우리 손으로 직접 담당하였던 것은 생산부분이
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생산기술은 낙타 등의 가장 높은 중앙 부분이고, 전반부의 기
술정보 - 상품기획 - 연구개발과 후반부의 판매기획 - 판매 - 사후관리는 낙타 등의 양쪽 끝과
같이 아직도 낮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제조업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최단기 응급처방은 무엇인가?
첫째, 취약한 상품기획 기능은 상품기획 전문가의 단기양성계획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집중
적인 교육훈련과 일선 상품기획 업무를 병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미래지향적 상품기획 조직이 즉
시 운용되어야 한다.
둘째, 허망한 첨단기술을 구가하면서 실제로는 모방에 심취했던 역기술(Reverse Engineering)연
구를 중단하고 상품기획 기능의 발전은 우리가 가장 취약했던 `연구의 필요성`을 남보다 먼저 파
악하는 기능을 강화시켜 줄 것이다. 연구의 필요성만 먼저 찾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창의적 발상
에 주력하고 해외 첨단기술의 조합, 해외 전문가 활용을 주도하는 새로운 형태의 연구개발체제를
확립하므로써 연구개발 주도국가로 단기간 내에 도약할 수 있다.
셋째, 독자적 상품기획과 창의적 연구개발의 주도권이 확보되면,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생산기
술과 양산설비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대형 엔진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건축
물 폐자재를 부수는 망치와 금광에서 금맥을 찾아내는 망치는 같은 망치라 할지라도 그 가치가
하늘과 땅의 차이인 것이다.
이와 같은 전략을 시급히 추진한다면, 우리 제조업은 위기를 넘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까운
시일 내에 새로운 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 왜 이런 처방이 나오게 되었는지 그 배경이 궁금할 것
이다. 이제 기술정보, 상품기획과 연구개발 측면을 중심으로 우리 제조업의 현주소를 파악하여 보
자.
기술동향 - 더듬이가 없는 곤충
기술동향 파악은 먹이를 찾아 헤매는 곤충의 더듬이에 해당된다. 더듬이가 없는 곤충은 어떻게
되는가? 스스로 먹이를 찾지 못하니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에 국내 2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의 기술정보 수집
을 위한 시스템 구비는 약 50% 수준이고, 기술정보의 활용 수준은 약 30%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듬이가 작동될 확률이 30% 정도인 곤충인 셈이다. 적기의 출현을 알려 주는 레이더의 작동비
율이 약 30%이면서 창공을 지켜야 하는 것과 같다.
우리 기업들은 해외전시회를 상품정보 파악의 가장 중요한 기회로 삼는다. 그러나 전시회에서
나온 제품은 이미 기술정보, 상품기획, 연구개발, 설계, 설비계획이 대충 끝났을 것이며, 부품조달
도 상당한 수준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니 전시회에 가서 처음 본 신제품은 10단계 중에서 이미 6
단계가 지난 후에야 뒤늦게 우리에게 선보이는 것이다. 100m 경주에 비유하자면, 잘 뛰는 선수가
이미 60m쯤 뛴 다음에 뒤늦게 서두르는 것과 같다.
남의 것을 본 후에 신제품을 개발하자니, 독자적인 연구개발이나 자체적인 설계보다는 선발기
업에서 기술과 공정을 도입하려고 할 것이다. 시장에 빨리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선진기업에서
는 잘 팔릴것 같은 물건은 이전하지 않을 것이고, 시장에서 한물간 구형 모델은 연구개발비와 금
형제작 비용까지 포함된 높은 가격을 부를 것이다. 물건이 팔리는 대로 로열티도 지불해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경쟁에 지도록 결정된 셈이다.
상품기획 - 삼불가 이론
우리 산업은 이제까지 본격적으로 상품기획을 해 본 적이 없다. 선진기업에서 만든 제품을 도
입하고 모방설계를 하였으며, 세계시장에서 소비자 구매욕이 입증된 상품만을 골라 뒤늦게 기획
에 착수하였다. 그러니 독자적인 상품기획은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셈 아닌가? 요즘 들어 상품
기획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집중적인 교육훈련에 착수하여야 하며, 해외의 일류급 실무진과
공조협력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필자는 산학협동으로 하이터치 연구를 추진하면서 아직까지 없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려고 노
력하여 왔다. 1989년에 만든 입체형 컴퓨터 키보드는 손목의 피로를 근본적으로 덜어 주는 제품
이다. 1993년에 출시되어 1조원 이상 팔린 맥킨토시 키보드보다 4년 앞선 상품기획이었다. 그러나
이제까지 이런 제품을 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부결되었다. “그렇게 좋은 키보드라면 왜 IBM에
서 아직까지 개발하지 않았겠는가?” 남의 것을 모방만 해 왔기 때문에 남이 안 한 것은 만들면
큰일나는 줄 아는 것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고려 조정의 명을 어기고 회군하는 이유로 사불가 이론을 내세
웠다. 대략,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공격해도 되는가, 농번기인데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내보내도
되는가, 북벌을 하면 남쪽에서 왜구가 침략하지 않겠는가, 여름 습한 날씨에 아교가 녹아 활을 못
쏘게 되지 않겠는가 등이었다. 출전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필자는 산학협동을 추진하며 삼불가 이론을 만들었다. 신제품 개발을 위한 상품기획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기업의 관리자들이 세 가지 문제점을 이유로 개발을 기피함을 말
한다.
첫번째 반대 이유는 가격상승 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능을 붙이면, 제품원가가 올라가
고 판매가도 높아질 것이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테니 신제품을 만들어도 많이 팔리지 않을 것
이다.
두 번째 항의는 양산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직육면체로 만든 제품의 모서리를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게 곡면으로 처리하자고 하면 벌떼같이 반대하였다. 현재 직육면체 제품으로도 공정의
생산성이 낮아서 고민인데, 곡면으로 바꾸면 생산성이 더욱 저하될 것이라고 하였다.
세 번째 문제는 무엇인가? 신뢰성을 보장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새로운 기능이 첨가되면 부품
이 늘어나고, 따라서 고장날 확률도 늘어날 것이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제품도 고장률이 높아서
걱정인데, 부품의 수가 늘어나면 고장이 더욱 잦아질 것 아닌가? 그러므로 신뢰성에 문제가 있으
니 그만두자고 하였다. 결국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때마다 세 가지 이유를 대면서 신제품 개발은
불가하다고 하였다. 이것이 삼불가 이론이다.
그렇다면 삼불가 이론이 가리키는 최종 목적지는 무엇인가? 우리나라 제품은 마르고 닳도록 새
로운 기능을 붙일 수가 없을 것이다. 가격이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양을 예쁘게 만들 수도
없다. 양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신기능도 포기하여야 한다. 부품이 더 소요될 것이고 고장도
더 잘나게 되니 문제가 아닌가? 삼불가 이론을 두고 격론을 벌인 후 필자는 경영진에게 제안하였
다.
“삼불가 이론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우리의 현실을 잘 나타내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삼불가 이론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자.” 임원들이 되물었다. “이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겠는가?” 필자는 대답하였다. “아예 제품을 만들지 말고 회사문을 닫아라.”
연구개발 - 난지도연구소
필자는 정부의 국책연구소와 대기업의 종합연구소를 방문하면서 국내 연구소의 고민을 알게 되
었다.
우리 연구소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첫째, 수만 평의 대지 위에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둘째, 수
천평의 건물을 자랑하고 있다. 셋째, 수백명의 연구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좋은 날을 택하여
연구소 개소식을 거행한다. 성공을 기원하며 성대한 출범식을 갖는 것이다.
모든 것이 구비된 이 연구소에 오직 한 가지가 빠져 있다. 연구소의 명명백백한 연구목표가 없
다. 연구목표가 없으니 수백 명의 연구원을 모집할 때 일반적인 선발기준을 따랐을 것이다. 해당
분야를 전공한 자, 학벌이 석사 이상인 자, 해외유학 경험이 있는 자 등이 선발대상이었을 것이
다.
연구소가 출범하면 정부의 고위층 혹은 기업의 회장이 격려차 연구소를 방문할 것이다. 연구소
소장들은 긴장할 것이다. 무엇을 보여 줄 것인가? 급한 김에 이들은 결론을 낼 것이다. 우선 열심
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자. 열심히 일하자니 무언가 바쁘게 보여야 할 것이고, 바쁜 일을 하
다 보니 본연의 연구와는 관계 없는 쓸데없는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연구소 소장들은 연구원들에게 지시할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연구대상을 적어 내라고. 수백 명
의 연구원들은 제각각 본인들이 제일 잘 아는 내용을 강조할 것이다. 연구소의 간부들은 모든 분
야에 연구비를 지급할 것이다. 고급인력을 뽑아 놓고 놀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해서 수백
명의 연구원이 동시에 전 분야에 걸쳐 다발적, 평행적 연구를 시작할 것이다. 필자는 이런 연구소
를 `난지도 연구소`라고 부른다.
필자가 방문한 선진국의 명문 연구소는 우리와는 판이한 과정을 거쳐 성장하였다. 연구과제를
선정하기 전에는 한 명의 연구원도 뽑지 않았다. 한 명의 연구원을 뽑으면, 그 연구원이 다음 과
정의 연구에 필요한 연구원을 찾아 사방을 수소문하였다. 즉, 성공하는 연구소의 특징은 작게 시
작하고 건물도 없으며, 연구원을 공모하지도 않는다. 특히 연구소 개소식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
는다. 연구목표도 미처 찾지 못한 채 벌판에 우람한 건물을 짓고, 수백 명이 모여 원근 각처에서
내빈을 초청하여 한날 한시에 출범을 축하하는 연구소는 거의 틀림없는 난지도 연구소가 될 것이
다.
특허출원의 허상
연구개발과 상품기획과정에서 많은 특허등록이 일어날 수 있다. 요즈음 국내기업도 특허출원의
건수는 많아졌으나, 세계 각국에서 수수료를 받는 특허는 많지 않다. 연말이 되면 기업의 특허출
원을 대행해 주는 특허변리사의 사무실은 철야작업을 계속한다. 연말에 출원건수 목표달성을 위
해 각 기업에서 한꺼번에 특허출원을 제출하기 때문이다. 특허출원도 연말 목표가 있는가?
산학협동을 하면서 기업의 연구원들이 밤늦게까지 남아 제안내용을 작성하는 경우를 자주 보았
다. 대단히 열성적이라고 생각하고 그 내용을 물어 보았다. 그 연구원이 밤늦게 남아 있는 이유는
`어떻게 사면 한 가지 제안내용을 잘게 잘라서 5개 내지 10개의 제안으로 만들 수 있느냐`를 연
구하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쓸데없는 데 노력을 낭비하냐고 물었더니, 회사가 제안내용의 가치는
따지지 않고 한 건당 얼마씩의 보상금을 주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제안제도는 난지도인 것이다.
무엇이든 국산화할 수 있다
연구소의 연구성과 중에 국산화 개발에 성공했다는 성공사례가 많다. 해외에서 수입하던 제품,
설비, 부품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하였다면 발전의 징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
분치 않다. 선진국보다 얼마나 더 좋아졌느냐를 따져야 된다. 국산화 개발에 성공한 연구 중에서
국제시장가격의 5~10배가 넘는 경우도 보았다. 왜 이토록 국산화에 열을 올리는가? 국산화에 성
공했다고 하면 윗분들이 좋아하고 매스컴에서도 대서특필하기 때문이다.
제조현장은 조율이 안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설계수준은 그 동안 상당한 발전을 해 왔으니, 최적설계 개념이 없다. 연구소에서
설계하는 연구원은 1만분의 1 정밀도를 고수한다. 세계적 수준의 정밀도를 자랑하고 싶기 때문이
다. 부품을 조달하는 구매담당자는 1,000분의 1 수준의 부품을 구입한다. 부품원가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정작 라인에서 쓰는 공구와 계측장비는 10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다. 생산라인은 장비
구입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회로간격이 매우 좋은 기판을 납땜하는 공정에서 끝이 넙적하고 무딘 납인두로 작업을 하는 것
을 보았다. 납땜을 할 때마다 항상 불량이 나도록 되어 있었다. 제대로 된 인두를 쓰라고 하였더
니, 국산품 공구를 이용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정밀한 외국제 인두는 살 수 없다고 하였다.
연구소에서부터 조립공정에 이르기까지 최적설계의 개념이 있었다면 불필요한 시간과 경비를
줄이면서 품질도 향상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1만분의 1짜리 설계, 1,000분의 1짜리 부품구입보다
더 시급한 것은 100분의 1짜리 공구의 구입이었다. 담당관리자는 연구소와 생산부서 간의 장벽이
높아서 당분간 개선이 안 될 것 같다고 하였다.
독자적인 설비제작 능력이 있어야 한다
설비는 가장 취약한 부분 중 하나이다. 선진국에서 기술을 도입하면 설비도 외국에서 구입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생산효율이 95~100%로서 선진국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여기에 서계기술은 80%쯤 될 것이고, 설비기술은 취약하여 선진국의 10% 수준이라고 보아야 한
다.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생산수율로 따져 본 95% 이상인가, 설계수준
인 80%인가, 아니면 설비수준인 10%인가?
세계시장에서 선진국 기업과 신제품 경쟁을 전개하려면 10%로 보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외국
의 반도체 설비업체가 견제를 하면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은 경쟁에서 질 것이기 때문이다.
핵심부품으로 우리 경쟁력을 조절한다
핵심부품을 선진국에 의존하다 보니, 선진기업은 우리나라의 생산계획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
을 것이다. 핵심부품을 주문한 갯수만 보면 되지 않겠는가?
1980년대 초에 경험하였던 내용을 소개하겠다. 선진국의 부품업체는 국내 산업의 품질을 좌우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영상제품의 핵심부품인 영상소자는 대개 A, B, C, D의 4등급으로 나누
어져 있었다. 선진국의 전자업계는 해외수출품에는 A급, 내수제품에는 B급 부품을 사용하며, C급
과 D급은 그때그때의 여건에 따라 한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에 번갈아 공급하고 있었다. 만일 한
국 전자제품의 품질이 국제시장에서 호평을 받으면 부품을 C급에서 D급으로 하향조정하고, 시장
경쟁력이 너무 떨어지면 다시 C급 부품을 주었다.
우리 제품은 일회용품
사후서비스(After Service)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이다. 바이어에 의존하는 체제를 유
지히다 보니 유통망이 없다. 유통망이 없으니 물건이 고장났을 때 고쳐 주는 사후서비스망이 있
을 리 없다. 그러니 한국제품은 사서 처음 고장날 때까지 밖에 쓰지 못하는 제품이다. 한국제품을
한 번 사서 고장난 경험이 있는 해외 소비자들은 다시는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한 번 고장나
면 끝나는 일회용품이기 때문이다.
시급한 대책 - 독자적 상품기획과 창의적 연구개발
결국 단봉낙타 이론이 제시하는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방안은 무엇보다 동향을 파악하는 곤충의
더듬이 기능을 시급히 확보하여 독자적인 상품을 개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동향과 시장추
세에 통달하여야 되며, 소비자 기호를 체계적으로 파악하므로써 소비자를 선도하고 시장을 창출
하는 상품기획 능력이 우수하여야 한다. 상품기획은 제조업의 성패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
이다.
또한 우리 연구소는 이제까지 남의 것을 보고 그대로 베끼는 역개발 연구를 포기하고 창의적인
연구개발을 시도해야 한다. 우리가 창의적인 발상만 주도할 수 있다면, 요소요소에 필요한 첨단기
술은 전세계 연구소를 대상으로 얼마든지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이제까지 우리는 첨단기술이 비
싼 것으로 여겨 왔으나, 사실은 매우 싸다는 점을 새로이 인식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왜 비싼 기술료를 지불하였는가? 남이 만든 제품기술을 통채로(System
Package) 사 왔으니까 비싼 것이지 요소기술을 따로 사면 매우 싸다. 마치 같은 음식이라도 고급
음식점에서 먹으면 비싸고, 시장을 봐서 집에서 만들면 싸게 먹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생산기술은 우리나라 제조업 부문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부문이다. 여기에 창의적인 연구개발
과 독자적인 상품기획 능력만 가미된다면, 우리가 보유한 거대한 양산설비는 우리 손으로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고부가 신제품을 공급하느라 밤을 새워야 할 것이다.
결국 제조업의 살 길은 무엇인가? 포기하여야 산다.
기업의 업무절차
- 꽃마을 회의는 결론이 없다 -
우리 산업이 1960년대 이후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 것은 그 시대에 활약했던 기업인들이
한 가지 사업에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대기업 회장들의 회고록을 보면, 사업 초기에는 현장의 사
정을 손금을 보듯이 알고 있었다. 생산이 시작되면 아예 공장에서 거주하였으며, 애로공정은 물론
이고 말단 신입사원의 이름까지 훤히 알고 있었다. 당시에 사원으로 일했던 역군들은 칭찬도 회
장 면전에서 받았고 질책도 그 자리에서 받았다. 고생은 말할 수 없이 많이 하였으나 보람과 성
취감이 충만하였다.
그 후 계열회사가 늘어나면서 회장은 신규사업 진출과 계열사 간의 협력 등 큰 업무에 주력하
게 되었고, 개개 회사의 업무에는 시간을 할애할 수 없게 되었다. 요즘 들어 자율경영에 관한 구
호가 한창이지만, 사안이 예민한 경우와 위험부담이 클 경우에는 업무의 추진이 지연되며 토의가
반복된다. 회장이 직접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업무가 많아지자, 기업의 경영진은 구성원의 의견종
합과 관리체제의 확립을 위해 모든 업무의 진행이 직급별, 부서별로 전기회로같이 얽혀있는 결재
과정을 구축하였다. 직급별로 결재를 받는 과정은 직렬회로와 같고, 여러 부서 담당자가 둘러앉아
토의하는 위원회는 꽃모양을 닮았다. 꽃마을인 것이다.
직렬회로 - 입력은 많으나 출력은 없다
우리 기업의 의사결정은 절차와 양식이 복잡하다. 담당사원이 기안을 하면 대리가 결재하고, 대
리는 과장에게 보고하며, 과장은 부장에게 결재를 받는 절차를 거쳐 임원, 사장에게까지 전달된
다. 그림에 나타난 바와 같이 직렬회로인 것이다.
직렬회로의 특성은 무엇인가? 가령, 사원이 기안한 내용을 상급자가 결재할 확률이 90%라고
가정하여 보자. 이 업무가 20명의 결재 참여자를 거쳐 사장의 결재를 맡을 때까지 살아 남을 확
률은 0.9의 20제곱, 즉 0.1에 불과하다. 즉 90점짜리 입력이 반복되어 진행되면서 최종 출력점수는
10점으로 떨어지는 파괴적인 시스템이다.
만일 결재과정에서 어느 한 사람이 보류를 시키면 그 일은 무한정 지연되고, 한 사람만 반대하
여도 그 사안은 안개속으로 사라지기 십상이다. 또한 한 사람이라도 해외출장중이거나 연수교육
에 참여하고 있으면 피치못할 지연이 반복하면서 시기를 놓쳐 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직렬
로 연결된 결재과정을 따라가며 발생하는 업무의 지연과 내용의 변질은 꽃마을을 맞아 더욱 악화
된다.
업무를 추진하다 보면 관련 부서가 모여 공동으로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가 많다. 각 부서의
실무자로 구성된 실무회의, 부서장끼리 구성한 협의회, 관련 임원들이 최종적으로 토의하는 운영
위원회 등이 이러한 성격의 회의이다. 필자는 신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위원회에
참석할 기회가 많았다.
산학협동과정에서 신제품이 개발되면 관련부서 회의로 회부된다. 같이 모여서 검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연구소에서는 양산설계 가능성을 검토하고, 생산부서에서는 설비현황과 부품조달
을 따져 보며, 영업부서에서는 예상 판매량을 산출한다. 개인적으로는 신제품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던 관리자들도 일단 회의장에 들어서면 태도가 달라진다.
부서의 실무자는 회의에 참석하는 부서대표에게 업무가 늘어나지 않도록 부서의 입장을 잘 대
변해 달라고 부탁한다. 부서의 책임이 늘어날 사안은 함부로 양보하지 말아 달라고 주의한다. 위
험부담이 있는 업무는 신중하게 결정하자고 의견을 종합한다. 소속부서로부터 이런 지침을 받고
나온 부서대표들이 모인 회의는 진행이 순조롭지 못하다.
연구소에서는 `우리가 한 것이 아니다(Not Invented Here : NIH)`라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나서
지 않으며, 생산부서는 현재 라인에서 생산되고 있는 제품의 목표 생산량의 달성도 힘겹다고 호
소한다. 판매부서는 이와 비슷한 제품이 없어 파내예측을 할 수 없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결론을
얻지 못해 필자가 최고경영자를 찾아가 하소연하면, 관련 부서회의에서 문제점 제기가 많은 것을
보니 아주 확실한 신제품은 아닌 것 같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꽃마을인 것이다.
꽃마을의 규범
꽃마을에서는 발언의 순서가 일정하다. 핵심부서의 직급이 높은 사람이 제일 먼저 발언한다. 지
원부서에서 나온 직급이 낮은 사람은 되도록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활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모두들 발언 순서에 신경을 쓰면서 실무자의 의견 청취보다 상급자의 의중을 헤
아리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한다.
꽃마을에는 상부상조 정신이 강하다. 지난번 회의때 상대부서의 사정을 우리가 이해하였듯이
이번에는 우리 부서 입장을 지원해 달라고 부탁한다. 상대부서 의견을 무시하고 너무 밀어부치면
사후에 부작용이 생긴다. 필지가 개발한 신제품을 보류시키는 데 성공한 사업부장은 득의양양하
였다. 회장에게 보고해도 별수없다고 하였다. 그는 회장의 지시사항도 일 년 간이나 보류시킨 적
이 있다고 전적을 자랑하였다.
꽃마을 회의에는 결론이 없다
꽃마을에는 회의가 많다. 복잡한 시내교통 상황에서 본사와 공장을 왕복하다 보면 하루 일과가
끝나기 십상이다. 바쁘기는 얼마나 바쁜가? 정신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되는 일은 없다. 꽃마
을 회의의 결론은 “우리 모두 해 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자”이다. 꽃마을에 참석했
던 간부들은 귀가 길에 생각할 것이다. `이래 가지고는 안 되는데...`.
그래서 꽃마을에는 들어가는 안건은 많아도 나오는 결론이 없다. 꽃마을에만 들어가면 모두 나
오지 않는 것이다. 회의가 시작될 때는 단순해 보이던 토의사항도 회의가 끝날 때쯤이면 훨씬 더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서로 좋은 분위기에서 시작된 회의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굴을 붉히게
된다.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실락원(Lost paradise)이다. 필자가 경험한 꽃마을은 수없이 많다. 필
자는 1년 내내 꽃마을을 돌다가 지쳐서 신제품 개발을 포기한 경우도 많았다.
꽃마을 회의의 규범이 군작전회의에서 채택된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아무리 기다려도 특
공대 지원자가 없을 것이다. 작전담당 지역을 서로 맡지 않으려고 미룰 것이다. 현재 주둔지역을
떠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작전회의의 결론은 어떻게 날 것인가? 출전을 보류하며 필승
을 다짐하는 군가를 힘차게 부르고 해산할 것이다. 지휘관도 작전회의 결과에 수긍할 것이다. 왜
냐하면, 그 부대의 상급 지휘관은 출전 횟수는 따지지 않고 패전 횟수만을 따져 처벌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와 같은 꽃마을 회의가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축구단에서 열렸다면 어떤
이야기가 오고갈까? 최종수비를 맡은 골기퍼는 수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하여 그가 책임질 수 있
는 수비와 책임질 수 없는 수비를 엄격히 구분하려 할 것이다. 최전방 공격수는 코너 킥을 할 때
자신에게 공을 너무 자주 보내지 말아 달라고 호소할 것이다.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미들라인 진
영은 뛰어다니는 면적이 너무 넓으니 공격진과 수비진이 담당지역을 조금씩 더 넓혀 달라고 할
것이다.
리모콘 경영
기업에서는 꽃마을 회의가 반복되고 있는데, 왜 대표팀에서는 꽃마을 회의가 있을 수 없는가?
기업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빠져 있고, 대표팀에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여야겠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기업의 회장은 돌봐야 할 계열회사가 많아서 회
의에 일일이 참석을 못 하고 있고, 축구팀 감독은 맡은 팀이 하나밖에 없어서 항상 회의를 주재
하기 때문이다.
왜 마이크로소프트, 재너럴 일렉트릭, 인텔사에는 꽃마을 회의가 없을까? 빌 게이츠, 잭 웰치,
앤디 그로브 회장은 무슨 시간이 그리 많아서 회의마다 참석하는가? 주력하고 있는 회사 업무 이
외에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왜 우리 대기업 회장들은 세계 초일류기업의 회장들보다 더
바쁜가? 왜 꽃마을 회의는 끝없이 진행되는가?
잡화상이 되기 전에는 꽃마을이 없었다. 회의내용을 회장이 직접 챙겼고, 여러 사람을 불러 따
로 의견을 물었고, 머뭇거리는 사람은 독려하였고, 그래도 안 되면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하였다.
꽃마을은 최고경영자가 현장을 떠나 리모콘으로 경영을 지휘할 때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마을이
다.
꽃마을의 대책은 무엇인가?
우리 대기업의 의사결정 관행을 비평한 외국학자는 이를 우산살 같다고 비유하였다. 시급한 의
사결정이 우산살에서 즉시 처리되지 못하고, 모든 우산살을 거친 후 중간에 있는 우산대까지 갔
다 와야 되기 때문이다. 외국기자 중에 우리 기업을 마치 자기가 친 거미줄에 갇힌 거미 같다고
표현한 사람도 있다. 하도 복잡하게 거미줄을 치다보니 거기에 갇혀 버린 것이다. 갇힌 거미를 어
떻게 구출할 것인가?
잡화상의 직렬회로와 꽃마을의 폐단을 없애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직렬회로를 단축하고
꽃마을을 철거해야 한다.
외국의 일류기업들은 어떻게 꽃마을 회의를 진행하는가? IBM은 의사결정단계의 80%를 줄였
고, 참여인원을 50% 감축했다. 모든 주요 안건은 회장이 직접 주재하는 11인 위원회에서 결정하
였다. 직렬회로가 짧아지고 꽃마을이 축소된 것이다.
크라이슬러사의 아이아코카 회장은 35명의 부사장을 2명으로 줄이고, 부서 간의 높은 장벽은
플랫폼(Platform)이라는 단일 개발팀을 만들어 이 팀에서 모든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도록 함으로
써 깨트렸다. 직렬회로와 꽃마을을 동시에 철거한 것이다. 아이아코카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는 무
조건 2시간 내에 가부의 결정이 나야 한다. 섬광이 번쩍이듯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도시바(Toshiba)의 최고 히트 상품인 노트북 컴퓨터를 개발한 AD1 그룹은 2주마다 신규사업을
선정하여야 한다. 선정된 신규사업은 3개월마다 전사 임직원에게 발표하여야 하고, 그 자리에서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 추진하라는 결론도 나고 기각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보류되
는 사안은 없다.
우리 기업은 먼저 새로운 회의록을 작성하여야 한다. 회의록에는 회의내용을 쓸 필요가 없다.
다만 몇 번 회의해서 몇 번이나 결론이 났는지, 결론이 난 것 중에 “한번 추진해 보자”고 결정
한 횟수와 “문제가 많으니 포기하자”고 결정한 횟수만 적으면 된다. 물론 보류한 내용은 없어
야 한다. 그러나 이것도 효과적인 대책은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직렬회의와 꽃마
을 회의만 없어진다면 쾌속진군이 이루어질 것이다. 축구대표팀의 감독이 작전회의를 직접 주재
하듯이 기업의 경영전략회의도 회장이 직접 주도하면 모든 것이 풀린다. 기마민족의 후예인 우리
들은 목적이 뚜렷하고 목표만 확실하다면 노도같이, 질풍같이 전진할 것이다.
회장들이 직접 나서기만 한다면, 우리 산업은 2~3년 이내에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세계시장을
또다시 휘저을 것이 분명하다.
모방의 후유증
- 경영철학도 베낀다 -
수년 전부터 국내기업에 경영혁신 열풍이 불어닥쳤다. 리엔지니어링, 리스트럭처링, 다운사이징,
권한이양, 학습조직, 벤치마킹 등 새로운 용어가 수없이 지상에 오르내렸으며, 해외 석학의 초청
강연과 국내 전문가들의 해외연수도 줄을 이었다. 이와같이 갑자기 경영혁신 영풍이 불어닥친 이
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해외 일류기업들이 경영혁신을 추진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으니, 우리도
경영혁신을 하여 성과를 내어 보자는 생각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남의 기술을 모방해 오던 습성
이 몸에 베이다 보니 경영철학까지도 모방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경영혁신의 필요충분조건
필자는 그 동안 기업에 나가 강연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기업의 경영혁신이 그 본래의
뜻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잘못 추진되고 있으며, 그렇게 추진하면 결국은 실패할 것 같다는
내용의 호소를 반복하였다. 왜 하는 일마다 부정적인 비판을 하며 초를 치냐고 반발할지 모른다.
이렇게 호소한 이유는 잘 안 될 것 같기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것인지 다른 뜻은 없었다.
현 시점에서 볼 때, 우리 기업들이 그 동안 추진하였던 경영혁신은 총체적으로 실패하였다고 보
는 것이 타당하다.
왜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겠다. 경영혁신을 추진하였던 기업들에게
그 동안 추진한 성과가 무엇이냐고 물어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최고경영층의 강력한 후원을 확인
하였고,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며, 큰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를 거
론하는 경영혁신은 모두 실패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최고경영층이 강력히 후원했다는 것은 실패의 전주곡이다. 경영혁신에 성공한 선진기업의 공통
점을 보면 하나같이 회장이 직접 선도하였다. 후원을 한 것이 아니다. 설서 큰 변화를 느끼는 공
감대가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성공한 것은 아니다. 경영혁신은 정신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변화
가 일상업무에 적용되고, 이로부터 실적을 얻을 수 있어야 경영혁신 축에 낄 수 있을 것이다.
공감대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개혁이 지연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원래 개혁은 공감대가 형성
된 후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 소수의 지도자 그룹이 시범을 보이고, 관망하여 망설이던 사람들도
동참하도록 계기를 만들고, 그 계기로부터 공감대를 뛰어넘는 구심점을 창출하는 것이 경영혁신
이다.
공감대가 부족하다며 경영혁신을 지연하는 것은 고지점령을 명령받은 중대가 부대원의 공감대
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투정하면서 고지점령을 계속 뒤로 미루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사기는 싸
우면서, 전우가 다치면서, 실패를 반복하고 좌절을 극복하면서 오르는 것이다. 전투를 보류하며
기다린다고 해서 사기가 올라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경영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필요충분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경영
혁신의 필요조건은 위기의식이다. 무엇이 위기인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제까지는 큰 문제
가 없었으나 지금과 같은 조직과 방식으로는 앞으로의 사업환경에서 살아 남기 힘들다는 것을 깨
닫는 것이다. 경영혁신의 내용은 미래의 산업여건을 전제하여야 그 윤곽이 드러날 것이며, 새로운
산업구조의 틀 안에서 구상되어야 한다. 경영혁신은 새로운 조직과 인력배치를 대전제로 하고 있
다. 그러므로 현재의 경영여건을 염두에 두면서 추진하는 경영혁신은 실제로는 경영혁구이다.
우리 기업들은 다가올 산업사회에 대한 예측을 등한히 한 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업무만을 자
꾸 개혁하려고 한다. 국내 대기업의 경영혁신 중에서 시장개방이 완전히 이루어졌을 경우를 가정
하여 추진된 것이 있는가? 정보혁명이 전개되어 사업분야의 틀이 온통 뒤바뀔 것을 예견하여 경
영혁신을 준비한 적이 있는가? 앞으로 3년 후 또는 5년 후에 어떤 사업의 어떤 분야에서 어떤 제
품을 가지고 어떻게 세계시장에 진출할 것인지 모르고 있지 않은가?
이와 같이 추진되는 경영혁신은 먼저 여러 가지 신설부서를 만든다. 경영혁신 추진팀도 만들
것이고 경영혁신 촉진위원회도 생길 것이다. 조직을 혁신하자며 여러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이
다. 반면에 혁신의 대상이 되는 낡은 구조의 혁신은 없어지지 않는다. 혁신이란, 현재의 조직구조
와 업무대상, 업무절차를 철저히 무시하고 새롭게 이 사업을 전개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원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기존 부서, 기존 절차, 기존 사업분야를 감안하면서 구상하는 혁
신은 혁신이 아니다. 경영혁신을 강조하는 회장이 위기임을 반복해 강조하면서도 직접 나서서 주
관하지 않는 것을 보면 대단한 위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경영혁신의 충분조건은 안 하면 죽는다는 점이다. 한 미국기업의 회장은 위기의식을 강조하기
위하여 열차 앞에 선 임원 11명의 모형을 제작하여 각 임원에게 선물하였다. 인형에는 임원 각자
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상황을 보면 달려오는 열차에 곧 치어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임원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회장이 추진하는 경영혁신에 참여하지 않으면 나는 죽겠구나! 경영혁
신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죽지 못해 마지못해 하는 것이다.
왜 경영혁신은 필사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는가? 험한 산을 등반할 때 등반대장은 등반대를 어
떻게 인도하는가? 등반길이 험하다 보니 예기치 못한 사고도 많이 겪었을 것이다. 부상당한 사람,
몸이 아픈 사람도 생겼을 것이다. 만일 이 등반대장이 모든 사정을 헤아리며 등반일정을 조정한
다면, 그 등반대는 조난을 당하여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등반대장은 많은 사람이 반대하더라도 일정대로 떠나야 한다. 뒤에 남은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
다. `일행을 놓치고 여기에 쉬고 있어도 살아 남을 수 있겠는가?` 남아 있으면 틀림없이 죽는다는
생각이 들어야 힘을 모아 죽기 살기로 일행을 뒤따라 갈 것이다. 이것이 경영혁신이다. 경영혁신
은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뒤에서 몰고 가는 것이 아니고, 회장이 맨 앞에서 선도하면서 또 낙오
자들에게 동참과 죽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하면서 계속 전진하여야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명심하여야 할 경영혁신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경영진은 경영혁신에 소극적이다
해외에서 성공한 경영혁신 사례의 특징을 보면, 회장을 제외한 경영층은 매우 소극적이었거나
혁신을 기피하였다. 왜 경영자는 경영혁신을 싫어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해외 경영
혁신 사례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반적으로 경영자들은 자율보다는 지시를 선호한다. 자율은 여러 가지 신경쓸 것이 많고
책임질 일이 많지만, 주어진 지시사항을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은 실패에 대한 큰 부담이 없는 법
이다. 실패하였더라도 지시대로 잘 추진하였다고 보고하면 될 것이다.
둘째, 경영자들은 안정된 현상을 유지시키려고 노력한다. 변화가 많으면 이것저것 추스를 것이
나 실패할 요인도 많으며, 불확실한 일을 계속 담당하여야 하는 것이다.
셋째, 경영진들은 오래된 것을 선호한다. 오래된 것일수록 부하직원보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많으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전문가 대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경영혁신에 가장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가장 저항을 보일 계층이 경영진들이다. 이 경영
진들이 경영혁신을 주도해 나가는 현상을 좀더 극단적으로 비유한다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
고 잘 보관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서양에도 이와 비슷한 속담이 있다. 서양식
표현으로는 죄수에게 교도소 열쇠를 맡기고 잘 관리하라고 하는 것이나 같다고 한다.
내키지 않는 일을 맡은 경영진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초조할 것이다. 무언가 표시를 해야
되니 가장 가시적인 일부터 시작할 것이다. 우선 회사의 입구와 사무실, 식당에 경영혁신의 적극
적 추진을 강조하는 구호를 내붙인다. 그 다음에는 가장 중요한 평가가 내려지는 일은 무엇인가
생각할 것이다. 안 하면 죽는 것은 무엇인가? 연말 매출목표 달성인 것이다. 매출목표 달성에 정
신 없이 바쁜 와중에 경영혁신을 추진할 여력이 있겠는가? 그러나 추진을 안 할 수도 없으니 주
기적으로 경영혁신 성과 보고회를 열 것이다. 보고회의 결론으로 “전원이 힘을 모아 경영혁신에
적극 동참하자”고 훈시할 것이다. 그리고는 즉시 연말 매출목표 달성에 모든 관심을 쏟는 것이
다.
필자는 기업을 방문하여 경영혁신에 관해 토론할 기회가 많이 있었다. 대기업 중에는 제너럴
일렉트릭의 잭 웰치 회장이 추진한 경영혁신을 모델로 삼고 적극 추진하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필자는 잭 웰치같이 추진하면, 우리 기업들의 경영혁신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잭
웰치는 경영혁신과정에서 현재 세계 일등이거나 가까운 장래에 세계일등이 될 가망성이 있는 기
업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모두 없애 버렸다. 만일 어느 대기업에서 잭 웰치식 경영혁신을 추진한
다면, 현재 세계 일등인 사업이 없고 가까운 장래에 그렇게 될 회사도 없으니 그 기업은 순식간
에 공중분해될 것 아닌가? 경영혁신의 출발선부터 다른 것이다. 그러니 배울것도 없지 않은가?
<표> 해외 일류기업의 경영혁신 사례
1. GE
가. 경영혁신 내용 : 세계 일류기업이 아닌 것은 모두 처분 (300개 사업부 - 13개 사업본부)
2. Chrysler
가. 경영혁신 내용 : 회장이 노조위원장과 협력, 일품백조 제품(Minvan)으로 성공
3. 3M
가. 경영혁신 내용 : 4년 이내 개발된 신제품으로 매출액의 30% 달성
4. Interl
가. 경영혁신 내용 : 두 연구소가 경쟁적으로 신제품 개발 (산호세, 오리건 주)
5. Disney
가. 경영혁신 내용 : 혁심 경쟁력 분야 중심으로 사업 전개
6. Microsoft
가. 경영혁신 내용 : 신기술, 복합제품으로 시장선점 전략에 집중
공통점 : 회장주도, 독창적 발상과 독특한 제품, 핵심 사업에 몰두
일류기업, 초일류기업의 허상
경영혁신 목표는 급변하는 경영여건에서 계속 살아남고 세계적인 기업이 되고자 지속적인 발전
을 도모하는 것일 것이다. 경영혁신을 추진하는 어느 기업 임원들에게 왜 경영혁신을 추진하느냐
고 물었더니, 세계 일류기업이 되고자 경영혁신을 추진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되물었다.
세계 일류기업이란 무엇이냐? 매년 매출액이 늘고 수익성이 좋은 사업을 하는 것이 일류기업이
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마피아같이 매년 영업실적이 늘어나는 조직을 본
적이 있는가? 마피아는 지역쟁탈전에서 이기기만 하면 매출액이 순식간에 2~3배로 늘어난다. 수
익성이 좋은 사업의 예도 들었다. 브루나이 왕국의 볼키아 국왕은 브루나이 유전에서 나오는 원
유의 80%를 제몫으로 챙긴다.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사업의 주인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
도 마피아를 보고 세계 일류기업이라고 하지 않고, 브루나이의 국왕을 보고 세계 일류기업의 경
영자라고 하지 않는다.
만일 경영철학을 추진하는 근본적인 동기가 해외 선진기업이 큰 이익을 냈기 때문에 하는 것이
라면, 그 경영혁신은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할 것이다.
경영혁신을 통하여 시장점유율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운 기업도 있다. 그래서 그 기업에 가서
인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인텔은 전세계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인텔사
는 어떻게 시장점유율을 높였는가? 경영혁신 덕택에 높아진 것이 아니다. 일상업무를 혁신적으로
하고, 경쟁상대가 없는 혁신제품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경영혁신을 추진한 해외기업들은 기업 고유의 경영철학에 투철하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철학이
있어야 경영혁신이 시작되며, 철학에 근본을 두어야 경영혁신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 일류기업인가? 일류기업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누구보다도
먼저 새로운 사업분야를 개척하고 최고 혹은 최초의 기술과 상품을 내야 한다. 즉, 창조하여야 하
는 것이다. 둘째, 창조하고 성공한 그 기업을 모방한 다른 기업들도 덩달아 돈을 벌어야 한다. 즉,
이류기업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일류기업의 충분조건은 보고 따라하는 아류들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 세계 일류기업이 있는가?
그렇다면 초일류는 무엇인가? 국적과 사업분야를 막론하고 전세계 일류기업들이 그 기업의 새
로운 사업분야 개척과 독특한 경영철학을 본받아서 큰 이익을 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초일류로 분류될 수 있는 기업은 전세계에 몇 개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에는 없다.
설렁탕 이론 - 다 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필자는 우리 기업들이 경영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을 보면서 설렁탕 이론을 개발하였다. 우리가
식당에 가서 설렁탕을 시킬 때 흔히 따귀 빼고 기름 빼고 달라는 주문을 많이 한다. 우리네 경영
혁신 추진팀이 좋아하는 설렁탕은 조금 다르다. 설렁탕을 주문할 적에 따귀 빼고, 기름 빼고, 국
물 빼고, 밥 빼고 달라고 한다. 남는 것이 무엇인가?
왜 설렁탕 이론이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겠다. 제너럴 일렉트릭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300여 개의 사업부를 13개 부문으로 축소하였다. 경영혁신을 추진함에 있어 제너럴 일렉트릭이
한 것처럼 하자니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가? 1,2등을 하는 회사만 남기고 모두 처분하자니 세계적
인 일류기업이 없어서 따라할 수가 없다. 그래서 따귀를 빼는 것이다.
IBM같이 한꺼번에 12만명을 감원하자니, 우리네 정서에 맞지 않아서 보류한다. 기름을 뺀 것이
다. 포드자동차가 세계적인 히트 차종을 냈던 개발과정을 도입하자니, 첨단기술과 첨단부품의 수
배가 어려워서 포기한다. 국물을 뺀 것이다. 크라이슬러와 같이 경영혁신을 추지하자니, 우리 회
장의 일하는 스타일이 너무 다르다. 아이아코카 회장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경영혁신에 달라붙었
으나 우리 회장은 그럴 수 없지 않은가? 이제 밥을 뺀 것이다. 이렇게 다 빼고 나면 설렁탕에 남
은 것은 무엇인가?
경영철학부터 만들자
왜 국내에서 추진하는 경영혁신이 모두 정체된 채 표류하고 있는가?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
는 베꼈기 때문이다. 설계도를 베끼고, 공정을 베끼고, 부품을 베끼고, 디자인을 베끼다 보니 경영
혁신도 베껴서 추진하면 되는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옆자리에 앉은 학생의 답안지를 베끼
면서 그 학생의 이름까지 그대로 베끼는 것과 같다.
경영혁신 성공의 요체는 무엇인가? 독특한 경영철학이다. 남의 철학을 베껴 대면서 추진하는
경영혁신이 성공할 것 같은가? 마치 일류가수의 히트곡만 흉내내는 밤무대의 모창가수가 세계 일
류가수의 꿈을 불태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세계적인 가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무
엇보다도 먼저 남이 부른 노래는 따라 부르지 말아야 한다. 자기 특성에 맞는 신곡만을 불러야
하며 쉽사리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자기의 노래만을 고집하여야 한다.
남의 기술, 남의 제품을 너무 오랫동안 베끼다 보니 남의 경영철학까지 모방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조건 베끼지 말아야 한다.
가치혼동의 말기증세
- 가격경쟁력만이 살 길인가? -
작년 초에 한 경영자 모임에서 기업경영에 도움될 이야기를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당시 우리
주변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던 구호는 “가격경쟁력만이 살 길이다”였다. 그래서 강연 중
에 가격경쟁력을 강조하는 정부관료와 기업 경영자는 머리에 총상을 입은 사람들 같다고 지적하
였다.
왜 총상을 입은 사람 같다고 했는가? 제품은 가격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좋은 물건을 값싸게
공급하는 것은 모든 기업인의 꿈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만들고 있는 제품은 이미 가격경쟁력
을 따질 단계를 지난 지 오래된, 열악한 여건에 있기 때문이다.
기업활동에서 가능한 한 끝까지 피해야 할 상황이 경쟁사와 가격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왜냐하
면, 가격경쟁이란 최후의 승자 하나만이 남을 때까지 출혈하면서 벌여야 하는 죽음의 경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들 나서서 죽음의 경기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고 한다. 과연 우리가 노력한
다면 가격경쟁력으로 살아날 길이 있는가?
시장에서 가격경쟁으로 승부를 내려면 이익이 나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팔아야 할 것이
다. 우리 제조업은 이익을 얼마나 내고 있는가? 표 `기업의 순이익 비교`에 나타난 바와 같이 마
이크로소프트사는 100원을 팔면 30원, 인텔은 28원, 닌텐도는 16원이 남는다. 우리 제조업의 이익
은 100원을 팔아 1원도 채 안 남는 0.9원이다. 그러니 가격경쟁을 계속하려면 이제부터는 손해를
보고 팔아야 할 판이다.
<표> 기업의 순이익 비교 (연도; 1997)
1. 마이크로 소프트 매출액 대비 순이익(%) : 30.4
2. 인텔 매출액 대비 순이익(%) : 28.3
3. 닌텐도 매출액 대비 순이익(%)
4. 국내 제조업 평균 매출액 대비 순이익(%) : 0.9
왜 이렇게 이익이 안 나는가? 우리 제품은 제조원가가 높은 반면에 판매가는 낮기 때문이다.
가격경쟁을 거론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왜 원가가 높은가? `가격경쟁력의 허상`에 정리한 바와
같이 우리 제조업은 5고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5고에 시달리는 제조업
먼저 금리부터 살펴보자. 우리 제조업의 금융비용은 5.6%이다. 100원을 팔면 5.6원이 이자로 지
출된다. 이는 일본 제조업의 평균 금리부담 1.3%보다 네 배가 높고 2.2%인 대만의 2.5배이다. 앞
으로 제조업의 금리부담은 더욱 높아질 것이고, 가격경쟁력은 더욱더 멀어질 것이다.
금리부담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우리 기업들이 빚은 많이 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의 자
기자본비율은 17%에 불과하다. 이는 54%인 대만의 3분의 1수준이고, 33%인 일본의 절반 수준이
다. 기업 운영을 위해 남의 돈을 가져다 쓴 부채비율이 300~450%인 것이다. 이익을 많이 낸 인텔
의 부채비율은 30%, 소니는 50%이다. 즉, 우리 기업들은 인텔이 지불하는 이자의 15배, 소니의 9
배에 해당하는 이자부담을 안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부동산 가격을 보면 어떤가? 우리나라의 땅값은 국내 총생산액의 5.4배이다. 땅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일본은 총 생산액의 3.5배, 작은 섬나라인 대만은 3.3배이다. 같은 크기의 공장을 짓고 같
은 물건을 만든다면, 땅값에 투자하는 비용이 일본보다 1.5배, 대만보다는 1.7배나 높은 셈이다.
마치 땅값이 비싼 강남대로의 빌딩에 고급점포를 차려 놓고 강냉이를 튀겨 파는 사람이 시골 한
적한 공터에서 강냉이를 튀기는 사람과 가격경쟁을 하겠다고 나선 꼴이다.
물류비용은 가격경쟁력이 있는가? 우리나라의 총 물류비용은 약 61조 5천억원이다. 이를 환산
하면 100원짜리 물건을 팔면서 이 중에 18.7원을 배달료로 쓰는 셈이다. 국내 총생산액과 비교한
물류비용의 비율은 17.5%이다. 이 수치는 미국 총생산액 대비 10.5%의 1.6배, 일본 8.8%의 2배가
된다. 미국과 일본보다 배달료가 1.6~2배 비싼 것이다. 모든 면에서 남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이
면서 가격을 더 낮추어야만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차츰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는
가?
<표> 가격경쟁력의 허상
1. 한국
가. 금리부담(%) : 5.6
나. 부동산 가격(GNP 대비: 배): 5.4
다. 물류비용 (국내총생산 대비: %): 17.5
라. 기술료(매출액 대비: %): 5~15 지불
마. 임금(달러/시간): 7.4
2. 경쟁국
가. 금리부담(%) : 일본 1.3, 대만 2.2
나. 부동산 가격(GNP 대비: 배): 일본 3.5, 대만 3.3
다. 물류비용 (국내총생산 대비: %): 미국 10.5, 일본 8.8
라. 기술료(매출액 대비: %): 미국- 첨단기술 로열티 수입, 일본- 제품기술 로열티 수입, 대만-
부품기술 로열티 지불(5!7)
마. 임금(달러/시간): 일본 11~23.6, 홍콩 5, 대만 5.8 싱가포르 7.3
3. 비고
가. 금리부담(%): 일본의 4배, 대만의 2.5배
나. 부동산 가격(GNP 대비: 배): 일본의 1.5배, 대만의 1.7배
다. 물류비용 (국내총생산 대비: %): 미국의 1.5배, 일본의 2배
라. 기술료(매출액 대비: %): 미국, 일본- 기술료 수입, 대만, 싱가포르 기술료 낮음
마. 임금(달러/시간): 일본 임금의 1/3~2/3, 일본 생산성의 1/2, 실질임금은 일본과 동등
문제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선진국에서 기술을 도입하면서 약속한 로열티(Royalty)를 내
야 하는 것이다. 이동통신과 멀티미디어 제품은 매출액의 약 15%를 선진국 협력사에 내야 한다.
100원짜리 제품을 팔면 그 중에서 우선 15원이 외국회사에 로열티로 지불되도록 약정된 것이다.
우리의 주력산업들은 모두 이런 수준의 로열티를 내고 있다. 대만도 미국과 일본에 기술료를 내
지만, 부품산업에 주력하기 때문에 대략 우리의 3분의 1에서 2분의 1정도만 내는 수준이라고 보
면 된다.
임금은 어떤가? 우리 근로자는 시간당 7.4달러를 받고 있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가 넘는 싱가포
르 근로자가 받는 7.3달러보다도 높다. 대만의 작업자가 받는 5.8달러와 비교하면 30%가 높고, 시
간당 90센트를 받는 중국과 비교하면 8배나 높다.
우리보다 임금이 비싼 것으로 알려진 일본과 비교하면 어떤가? 한 예로 자동차산업에 근무하는
한국 근로자의 연봉은 대략 3만달러로 집계된다. 반면에 도요타 자동차의 평균연봉은 4만 4,000달
러이다. 그러나 도요타자동차의 생산성은 우리보다 2배가 높으므로, 생산성을 고려한 일본 근로자
의 연봉은 2만 2,000달러이다. 그러므로 일하는 효율을 감안하면, 우리 근로자는 일본 근로자보다
36%를 더 받고 있다.
결국 우리 제조업의 임금은 선진국 일본보다도 높고,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월등히 높은 홍콩,
싱가포르, 대만보다 높으며, 우리 제품과 경쟁하는 중국에 비하면 8배나 높다. 우리나라 일건비가
제일 비싸지 않는가?
이제 요약하여 보자. 우리 기업은 경쟁국보다 2.5~4배의 높은 이자를 내고, 1.5~1.7배 비싼 땅에
공장을 짓고, 미국과 일본보다 1.5~2배 비싼 물류수송비를 내고 있다. 물건을 하나 팔 때마다 기
술도입에 따른 5~15%의 로열티를 내야 한다. 인건비는 중국보다 8배, 홍콩이나 대만보다 30%가
비싸며, 생산성을 고려한 실질임금은 일본과 유사한 수준이다. 경쟁국보다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이
비싸다. 가격경쟁력만이 살 길인가? 맑은 정신에서 하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이제 우리 제품은 당면한 판매가격 구조의 문제점을 분석하여 보자. 100원짜리 물건을 팔면 이
자로 5.6원, 물류비용으로 18.7원, 기술료로 15원이 그 자리에서 나간다. 100원이 순식간에 60원으
로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다 비싼 토지비용과 높은 임금을 감안하여 10원쯤 빼면 다시 50원으로
내려간다.
반면에 이자는 이자 1.3원, 물리 8.8원, 기술료 3원으로 87원이 남는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 제
품이 팔릴 때마다 가만히 앉아서 받는 로열티 수입이 있다. 우리가 미국, 일본에 지불하는 기술료
15원 중에서 일본이 10원쯤 받는다고 가정하면, 그들에게는 97원이 남게 될 것이다. 토지비용과
일금은 우리와 똑같이 10원을 뺀다고 하더라도 87원이 남는다. 같은 공장에서 같은 물건을 만들
어 똑같은 가격인 100원에 팔았더니, 일본은 87원이 남고 우리는 50원이 남는 것이다.
일본과 가격경쟁을 하려면 일본보다 싸게 팔아야 할 것이다. 해외 수출전선에서 다년간 온갖
물건을 수출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일본제품과 가격으로 경쟁하려면
그보다 적어도 20~30%는 더 싸게 팔아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거래를 잘 하여 일본보다 20%
싸게 판다고 가정하여 보자. 일본이 100원에 팔면 87원이 남을 것이다. 우리는 80원에 팔아야 하
므로, 100원에 팔았을 때 남은 50원에서 또다시 20원을 뺀 30원이 남는다. 30원은 제조업에서 거
의 재료비에 해당하는 금액이며, 전기수도료와 설비 감가상각비는 물론이거니와 관리비와 간접비
용, 광고비와 판매비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금액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은 이제까지 어떻게 버티어 왔는가? 내수시장을 보호하면서 국내가격을
높게 받아 연명해 온 것이다. 국내가격을 높게 받아 연면해 온 것이다. 마치 친척들에게는 비싼
값을 받고 일반에게는 싼 값에 물건을 파는 것과 같다. 이 사람의 구호는 무엇이겠는가? “친척
들이 내 사업을 살려야 한다.”
`경쟁력 10% 올리기`란 구호도 있었다. 경쟁력을 10% 올릴 수 있는가? 외국 금융기관이 이자
의 10%를 감면해 주지 않을 것이고, 로열티를 10%씩 깎아 주는 선진기업도 없을 것이다. 부동산
과 물류비용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임금경쟁력밖에 남은 것이 없다.
임금을 10% 깎으면 어떻게 되는가? 시간당 7.4달러를 받던 것이 6.7달러로 줄어들 것이다. 그
러나 중국의 임금보다 7.4배, 홍콩과 대만보다 16% 높으며, 일본의 실질임금과 대동소이하다. 이
렇게 되면 무슨 효과가 있는가? 80원에 팔아서 30원 남던 것이 31원 남을 것이다. 별 차이가 없
지 않은가? 경쟁력 10% 올리기는 해답이 아니다.
가격경쟁력만이 살 길이라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임금이 중국 수준으로 낮
아져야 하므로 월급이 8분의 1로 줄어들어야 한다. 일본, 대만과 경쟁하여야 하므로 부동산 값도
지금의 절반으로 떨어져야 한다. 기업의 이자부담도 일본, 대반 수준으로 4배쯤 떨어져야 한다.
물류수송비용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야 이야기가 된다. 서울-부산에 소요되는 통행시
간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단축되어야 하고, 창고 보관비도 일제히 반으로 내려야 한다. 마음먹
었다고 되는 일인가?
끝까지 건드릴 수조차 없는 부분도 있다. 아무리 제아무리 가격경쟁력을 강조한들 선진국이 우
리로부터 받는 로열티를 싸게 받을 것 같은가? 이제 왜 가격경쟁력으로는 살아 남을 수 없는지
이해될 것이다.
운동경기에서 우리 팀이 계속 실점을 하면 관중들은 작전을 바꾸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우리의
과거 작전은 가격경쟁력이었으나, 모든 면에서 중국은 물론이고 대만, 홍콩, 싱가포르와도 상대가
될 수 없는 열세이다. 또한 높은 기술료를 지불하는 한 일본과의 경쟁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이
제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가격결정권만이 살길이다- 창의적 제품의 고가전략
그렇다면 새로운 작전개념은 가격을 높여서 받을 수 있는 가격결정권을 확보하는 길이다. 우리
제품은 얼마를 더 받아야 경쟁이 되는가?
높은 금리를 보완하기 위하여 4%, 물류비용을 상쇄하기 위하여 8.5%, 로열티 지불 15%를 더한
값, 즉 27.5%가 더 비싼 가격을 책정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비싼 땅값과 높은 인금을 감안한다면,
일본보다 최소 30%가 더 비싼 제품을 만들어야 `가격경쟁력`이 생길 것이다. 즉 우리 산업의 경
쟁력을 강화하려면, 가망 없는 원가절감에 매달리지 말고 가격인상 방안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야 한다. 가격을 올리려면 어떻게 하는가? 가격결정권이 있어야 한다. 가격결정권은 어떻게 확보
할 수 있는가?
가격경쟁력을 분석하여 얻은 우리의 결론은 무엇인가? 지금 이 산업구조로는 경쟁이 안 된다.
가격경쟁이 안 되기 때문이다. 높은 금리를 지불하고도 장사가 되는 사업을 찾아야 한다. 지가가
높으면 고층의 공장을 짓든가 땅값이 싼 나라로 가든가, 이도저도 안 될 경우에는 포기하여야 한
다. 물류비용이 높으면 해외에서 생산을 하든가 아니면 부피가 작은 제품 쪽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로열티를 내는 제품은 기술료를 내고도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비싼 가격의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론보다 최소한 30%를 더 비싸게 받아야 할 것이다.
제품가격을 높이고도 물건을 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부가(High Touch)제품이라면 가격을 인상할 수 잇을 것이다. 독특한 제품은 비싸도 팔릴 것
이다. 경쟁상대가 없는 제품도 가격인상이 가능하다.
이제 우리가 맑은 정신을 되찾아 채택하여야 할 올바른 구호는 무엇인가? “가격결정권만이 살
길이다.”
가격결정권은 어떻게 획득하는가? 우리 산업의 패러다임(Paradigm)을 바꾸어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이유
- 구공탄집, 솜틀집은 어디로 갔나? -
우리 주변에는 산업여건이 악화되거나 수출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복음을 전하는 예언가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낙관적으로 경기를 전망한다. 올해 하반기에는, 내년 상반기에는 경기가 풀릴
것이라는 것이다. 대개 이런 예언가들은 산업현장에 가 본 적도, 수출 일선에서 일해 본 적도 없
는 책상물림인 경우가 많다.
작년 초 신문사에서 1997년 하반기에는 경기가 풀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데 기술자가 보는
견해는 어떠냐고 물어 왔다. 필자는 기고문에서 산업의 패러다임, 즉 우리 산업구조의 틀을 바꾸
지 않는 한 상반기든 하반기든 상관하지 않고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로 구공
탄집과 솜틀집의 예를 들었다.
구공탄집, 솜틀집의 고민
미국을 비롯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는 우리 산업은 마치 도시가스에 밀려 설자
리를 빼앗긴 구공탄집, 캐시밀론 이불에 밀려 자취를 갖춘 솜틀집의 운명에 비유될 수 있다. 새로
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대에 구공탄집, 솜틀집에 살아 남는 방법은 무엇인가? 구공탄을 10%
더 찍으면 살아나는가? 솜틀집의 고임금-저효율이 해소되면 회생되는가?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연탄을 배달하던 손수레는 LPG 가스를 배달하는 오토바이로 바뀌었
다. 혼수감 장만을 위해 솜틀집을 방문하던 부모들은 캐시밀론 이불가게를 찾는다.
패러다임 변화의 구체적인 예는 우리 기억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여름철에 성시를 이
루던 동네 얼음가게는 냉장고의 보급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진 것이다. 신문지를 잘라서 봉투를 만들어 팔던 시절도 있었다. 밤새워 봉투를 만들면 새로
나온 비닐봉지를 이길 수 있는가? 우마차를 끌던 마부와 소가 일치단결하면 용달차를 당할 수가
있는가? 주변에서 구공탄집, 솜틀집, 얼음집, 부업주부, 마부들까지 일찍이 경험하였던 패러다임의
변화를 왜 우리 산업은 깨닫지 못하는가?
필자는 비슷한 시기에 미국 학회에서 산업구조의 틀이 대전환을 이루고 있음을 마차경주
(Harness Race)와 폴로(Polo경기의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과거의 산업구조는 눈을 가리고 정해
진 선을 따라 무작정 달리기만 하면 이길 수 있었던 마차경주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러나 정보혁
명이 펼쳐지고 있는 요즘의 산업구조는 마차경주가 아니다. 폴로경기인 것이다.
폴로경기의 특징은 무엇인가? 마차경주에서는 눈을 가리고 달리기만 하면 되었으나, 폴로경기
에서는 눈을 크게 떠야 할 뿐 아니라 전후좌우를 쉴새없이 두리번거려야 한다. 마차경주에 임하
는 기수는 말에 채찍을 가하면 이길 수 있었으나, 폴로경기에서는 끊임없이 방향전환을 하며 출
발과 정지를 반복하여야 이길 수 있다.
우리 산업은 1960년대 초반부터 양적 성장을 지속하여 왔으나, 산업구조의 틀을 발전시키는 일
을 미루며 안주와 정체를 계속하였다. 저임금-양산조립과 가격경쟁력에만 의존하는 달리기 경주
에 재미를 붙인 것이다.
필자가 산업현장에서 느꼈던 바에 의하면, 1975년부터 독자적인 연구개발체제를 정착시키고 세
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중소기업을 육성하였어야 했다. 그러나 대기업에 치우친 육성정책으
로 중소기업은 바람직한 성장을 하지 못하였다. 산업이 성장할수록 기술의존도는 심화되었고, 기
술 무임승차에 중독되면서 연구개발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때쯤부터 내수시장은 단계적으로 개
방하여 경쟁력 있는 산업구조로 바꿔 나갔어야 했다. 이렇게 하였으면 1990년경부터는 싱가포르,
홍콩, 대만을 능가하는 강건한 산업구조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쯤 국민소득이 2만
5,000달러를 구가하였을 것이고, 외화보유고는 2,000억달러를 넘었을 것이다.
구공탄집, 솜틀집을 걷어치웠어야 했는데, 동장이 나서서 편을 들고 동회의 예산을 몰아 주면서
구공탄집, 솜틀집을 연명시켰다. 이제 철 지난 산업구조로 제아무리 생산성을 높여도 근본적인 해
결책이 될 수 없을 것이고, 파장터에서 제아무리 목청을 높여 가격경쟁력을 강조하여도 회생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온 동네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구공탄집, 솜틀집을 꼭 살려내야
만 하는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패러다임 전환이 어려운 이유
그 동안 구공탄을 팔아 큰 이익을 보아 왔던 사람에게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으니 도시가스 시
대에 대비해야 하다고 하면 쉽게 결정하겠는가? 평생 솜을 틀며 산 사람에게 머지않아 캐시밀론
이불의 시대가 온다고 하면 즉시 대책을 세울 것인가? 패러다임의 전환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
게 되어 있다.
왜 패러다임의 전환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가? 패러다임 전환에서 가장 큰 장애요소는 기존 산
업구조를 포기하기가 수월치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주도하던 산업육성 체제를 민간이 주도하는 정책으로 선뜻 바꾸
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던 일을 놓기가 어디 쉬운가? 정부가 모든 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발상
도 쉽게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나누어 주는 재미가 있지 않은가? 지원을 중지하면 문전성시를 이
루던 발길도 끊일 것이다. 내수시장의 보호막을 거두고 국제 시장경쟁체제로 선회하는 일도 결단
이 쉽지 않을 것이다. 망하는 기업이 너무 많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기업도 힘들 것이다. 가격경쟁력보다 더 손쉬운 시장경쟁이 있겠는가? 기술도입보다 더 빠른
상품개발이 있겠는가? 내수시장도 좀더 준비한 후에 개방해야 되지 않겠는가? 투명경영에 신경쓰
다 보면 결단의 효율과 사업추진의 가속도가 떨어지지 않겠는가? 갑자기 이렇게 바꾸면 적응할
수 없지 않은가?
국민들도 난감할 것이다. 정부도 개혁하고 개업도 혁신해야 되지만 내 직장만은 보장해 줘야
되지 않겠는가? 그동안 모르고 지내다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 책임은 아니지 않는가? 나도 고쳐야
할 점은 있지만, 어디 나 혼자만 잘못 한 일인가? 차질 없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없는가?
이 모든 난관을 뚫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결정하였더라도 실행이 어려울 것이다. 마차경주와 폴
로경기의 예를 들어 보자. 눈을 가린 채 일직선으로만 뛰던 말에게 갑자기 눈가리개를 풀고 좌우
로, 앞뒤로 공을 쫓아다니라고 하면 할 수 있겠는가? 마차경주 기수에게 순간적인 출발과 급격한
방향전환이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고 하면 잘 할 수 있겠는가?
사회 전반에 요구되는 변화
마차경주와 폴로경기의 예를 들어 사회 전반에 요구되는 변화를 생각하여 보자. 우선 말의 재
훈련 방안이 필요하고, 선발기준이 바꾸어야 할 것이다. 기수도 체력조건이나 운동적성이나 기초
체력에 관한 선발기준이 바뀌어야 될 것이다. 장비 또한 대폭 바뀌어야 하며, 경기규정도 새로이
국제규정에 맞게 고쳐 이해하고 훈련해야 한다. 관객도 달라질 것이다. 세계시장의 대상 수요자가
달라지고 수출 대상 지역이 달라지며 경쟁상대도 달라질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에 부응하는 교
육, 훈련체제가 새로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도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도 산업계를 능가하는 구공탄집, 솜틀집인 셈이다.
황폐했던 1960년대에 소수의 엘리트 관료들이 소수의 대기업을 집중 육성하는 정책으로 오늘날의
문제점이 야기된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정부는 정보혁명-국제화-자유무역의 다원적인 국제경
쟁에서 국가산업을 주도할 기본지식도 경험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정부의 패러다임 개혁과정에서 명심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잘 모르는 것에 관여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열심히 일하지 않아 망하는 기업은 망하도록 놔 두어야 국가가 발전한다. 정의와 보
편적인 상식에 부합하는 일을 추진하여야 한다. 이제 정부의 자금지원이 기업의 육성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고쳐야 한다. 각종 통계자료와 보고-보도체제를 일신하여 국제적으로 신뢰를 얻어
야 한다. 지난 30년의 악습과 구태를 탈피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야 한다. 이 시점에서 정부
가 가장 중요한 가치관으로 삼아야 할 원칙은 정부의 역할에 대한 집념보다는 자유경쟁을 위한 `
포기의 미학`일 것이다.
선진국의 경영혁신 내용을 보면, 대통령이 주도하지 않는 개혁은 모두 실패하였다. 선진기업에
서 수행한 경영혁신의 예를 보면, 예외 없이 최소 40%의 조직과 인력을 새로 정리하고 이들의
재활방안과 교육훈련을 지원하였다. 기업의 모범이 되어야 할 정부는 이러한 수준을 능가하는 솔
선수범의 정신을 보여야 할 것이다.
패러다임 전환 대책
패러다임 전환은 어떤 전략으로 추진되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패러다임 전환이 어렵다
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성공하는 경우보다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기업이란 무엇인가? 업을 일으키는 것이다. 일으킨 사업은 어떻게 유지하는가? 끊임없이 패러
다임의 전환을 반복하여야 한다. 한때 세계시장을 풍미하던 가발과 목재, 면방과 봉제, 신발과 자
전거도 변화하는 시장여건과 발전하는 소비자 취향, 제조원가 상승을 무시하고 과거의 틀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전환에 실패하였던 것이다.
세계적인 일류기업들이 경영혁신과정에서 기존의 체제를 철저히 부정하고 원점으로 돌아가 사
업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였던 것도 패러다임의 전환을 추구하였기 때문이
다. 우리는 과거의 성공에 심취하다 보니 화전민 마을의 잡화상이 되었고, 모방에 심취하다가 단
봉낙타가 되었다. 국내 경영혁신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도 패러다임의 전환을 목적으로 삼
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가격경쟁력이 헛된 구호임을 강조하였던 것도 원점에서 냉정한 시각
으로 오늘날의 여건을 실사하자는 뜻에서였다.
이제 정부, 기업, 국민이 구상하여야 할 패러다임 대전환(Great Shift)의 방향은 어떻게 설정되
어야 하겠는가? 우리의 대책은 세 가지 개념 축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첫번째 축은, 첨단기술의 발전과 정보통신 혁명의 전개에서 대전환의 목표를 설정하여야 한다.
정보혁명은 현존하는 모든 산업분야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농업혁명이 완결되고 산업혁명으
로 전이되면서 도로와 교통, 도시의 기능이 발전하였다. 이제 정보혁명시대를 맞아 물류의 흐름과
함께 정보의 도로, 지식의 교통수단, 지혜의 도시 개념이 생성될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단축되며
과거의 희망사항이 미래의 현실로 연결되고 현존 산업과 신규산업이 조화를 이룰 것이다. 사람의
업무가 조정되고 활동내용과 대상이 변화되며, 생활양식과 소비자 취향이 바뀔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구공탄집, 솜틀집, 얼음집 주인이 도시가스와 캐시밀론 이불과 냉장고의 출현을 눈
여겨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정보혁명시대는 약 5배의 새로운 사업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주인 없
는 사업분야로의 진출 기회가 5배 늘어난 것이다.
두 번째로, 국제화시대의 특성을 전환의 축으로 삼아야 한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는 한정된 인
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수시장을 포기하고 국제화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 경제발전
의 한계를 예언한 미국의 학자는 인구가 2억명만 되면 국제화에 소홀해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단
언하였다. 우리도 수출에 전력하기는 하였으나 내수시장에 대한 애착을 끊지 못하였던 것이다.
국제화시대는 새로운 개념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것을 모방하면서 우리도 그것을 할 수 있다
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한 부분만을 창조하여도 국제화를 도모하면 세
계 일류가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세 번째 축은 국가발전의 새로운 개념 정립에서 찾아야 한다. 국가의 비전이 위기극복을 목표
로 하여서는 곤란하다. 그간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새로운 발전을 다짐하는 도약의 기회로 받아들
여야 한다. 대기업, 중소기업을 구분하지 말고,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저간의 책임을 규명하려 하
지 말고 오직 도전과 발전과 미래의 기회만을 생각해야 한다. 지난날의 시행착오를 한국 고유의
발전 노하우(Know-how)로 승화시켜야 한다. 대규모 양산설비를 전세계의 신제품 양산공장으로
바꾸어야 한다, 규정과 관습을 일소하고 창의와 도전으로 바꾸어야 한다.
정보혁명의 시대적 전기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찾고 국제화시대에서 밖으로 향하는 전기를 맞으
며, 경제지표와 통계숫자에 얽매이던 국가발전 방향을 새로운 비전으로 무장해야 한다. 희망적인
징조도 보인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공동으로 연구하는 `중소기업 모임(New Paradigm Club)`이
자연스럽게 결성되고 있으며, 자발적으로 전환을 주도하려는 기업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구공탄집
과 솜틀집이 고집을 꺾기 시작한 것이다.
구공탄집과 솜틀집은 고목나무이다. 패러다임 대전환의 세 가지 축을 염두에 두며 고목나무의
소생방안에 지혜를 모을 때이다.
고목나무의 소생방안
-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 -
요즈음 전 국민이 뭉쳐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생각과 새로운 미래를
위한 다짐 앞에 당연히 전 국민이 뭉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위기는 원래 뭉쳐서는 안 될
일들이 뭉쳐 지내왔기 때문에 야기된 것도 많다.
정치인과 관료도 뭉쳤고 금융인과 재벌 그룹도 뭉쳤다. 재벌그룹마다 산하 계열사가 뭉쳐 있고,
우리 기업끼리 벌이던 해외에서의 가격경쟁도 뭉쳤기 때문에 오늘의 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일상
업무에서도 무슨 일이 생기면 뭉칠 것만을 강조하였고, 반론을 싫어하였고, 대책을 마련하기도 전
에 뭉치기를 종용하였다. 대학도 공생의 논리로 뭉쳐 있고 연구단지도 굳게 뭉쳐 있다. 그러고 보
니 매스컴도 뭉쳐 있다. 대출부정, 친인척 사건, 외화보유고의 고갈 등 일련의 위기사슬의 연쇄폭
발 과정에서, 사방에 취재원을 두고 각계 각층을 만나는 기자들이 국가위기를 감지하지 못하였을
리가 없다. 못본 척하기로 뜻을 모으고 뭉친 것 아닌가?
세상이 눈부시게 변해 가는데, 우리 사회는 뭉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선호한다. 우리의 생
각도 굳게 뭉쳐 있다. 정부, 기업의 구성원들도 뭉쳐 지내고 젊은 학생들도 뭉쳐서 한 목소리를
내고, 우리의 가치관도 뭉쳤다. 이렇게 뭉쳐 지내다 보니 사고는 경직되고 가치관도 획일적이며,
창조와 모험이나 도전은 이탈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지금은 흩어지는 시대이다. 동서 냉전체제가 무너졌고, 자유무역의 새로운 체제에서 세계 각국
은 미래로 흩어지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밖에서는 자유무역, 국제협력, 다국적기업, 기
업의 인수합병으로 새로운 이합집산이 반복되는데, 우리 화전민 부락은 과거의 틀에 묶어 있으면
서 뭉쳐야 될 일이 너무 많다.
지나치게 뭉쳤기 때문에 생긴 피해는 무엇인가? 중국의 대미 수출량은 이미 우리의 3배를 넘었
고, 우리와 경쟁하던 홍콩과 싱가포르는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었다. 대만은 외환보유고 1,000억
달러에 접근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는 위기를 맞고 있다. 이것이 그 동안 뭉쳐 지냈던 결과이다.
한국의 기적을 본받으려던 나라들은 시급히 국가정책을 수정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유명한 고목
나무가 된 것이다.
고목나무-뭉치면 죽는다
뭉치는 것이 도가 지나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선진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뭉친 곳은 죽었
다.
미국의 자동차 도시인 디트로이트는 뭉쳐 지내다가 고목나무가 되었다. 자동차산업 초기에 불
붙었던 창의적 사고와 모험적 경영철학은 그 성장과 병행하여 점차 퇴색되었다. 협력업체가 만들
던 부품은 이익이 증가함에 따라 자동차업체가 직접 만들게 되었고, 창의적인 연구개발보다는 설
비투자에 집중하였다. 양산효율에 집착하면서 신기술과 신소재의 적용을 기피하였다. 흩어져 있던
창의적 연구집단과 부품회사가 자동차회사로 뭉쳤던 것이다. 디트로이트는 점차 고목나무로 변하
였고, 경직된 고목나무 옆으로 일본과 유럽의 자동차산업이 약진하였다. 이제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은 뭉쳐 지내던 것의 폐해를 뒤늦게 깨닫고 전세계로 흩어지고 있다.
1980년 초만 하더라도 MIT 대학 인근의 128번 도로(Route 128)는 첨단 벤처산업의 요람이었
다. 중형 컴퓨터 업체들이 이곳에서 잉태되어 속속 세계시장으로 확장을 계속하였다. 이들의 성장
배경에는 IBM 등 대형 컴퓨터 연구소에서 흩어져 있던 연구요원들의 활약이 컸다. 당시 이곳에
서 생산되었던 중형 컴퓨터는 전세계의 시장을 풍미하였으나, 이들도 중형 컴퓨터를 중심으로 너
무 뭉쳐 지내다가 고목나무가 되었다.
흩어지면 산다
성숙된 체제로부터 탈피하여 흩어진 것이 성공으로 이루어진 사례는 수없이 많다. 마이크로소
프트는 중대형 전용 소프트웨어로부터 흩어져 개인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세계 초일류기업
이 되었다.
전세계 영화산업을 장악하고 있던 헐리우드는 TV의 출현으로 수세에 몰리자 사방으로 흩어졌
다. 헐리우드에서 흩어진 영화인들은 자존심을 버리고 TV용 영화제작으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
였다. 헐리우드는 이제 새로운 영상산업으로 더욱더 흩어짐을 계속하고 있다.
세계 최대기업임을 자랑하는 재너럴 모터스(GM)는 안프레드 슬로안(Alfred Sloan) 회장 시절에
세계 최초로 경영효율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세계 초일류 기업의 자리를 굳혔던 것이다. 회사
의 규모와 경영철학에서 세계 최고의 지도자임을 자처하던 GM은 외부 전문인력의 활용을 등한
히 하였고, 내부의 조직과 기능을 뭉치는 데 주력하였다. 이제 GM은 일본과 유럽 자동차의 추격
에 시달리고 있으며, 수익성은 포드와 크라이슬러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GM도 드디어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GM은 아시아와 중남미에 설비배치와 공정순서가 똑같은 네 개의 쌍둥이 공장을 동
시에 건설하여 혁신적인 동시생산-동시관리체제의 확립을 서두르고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연이은 히트 상품을 만들어 내는 3M도 흩어지는 것을 상품기획의 주요 전
략으로 삼고 있다. 3M사는 이익을 많이 내는 주력상품에만 의존하지 않고 4년 이내에 개발된 제
품으로 전체 매출액의 30%를 달성하여야 한다. 다른 회사들이 시장에서 성공한 한 제품에 매달
려 뭉쳐 지내고 있을 때, 3M은 흩어져서 매년 신제품을 만들어 내야 살아 남을 수 있는 경영전
략을 채택한 것이다.
히트 차종의 빈곤으로 고전하던 포드의 연구진은 자존심을 버리고 전세계로 흩어져 각국 소비
자들로부터 호평 받는 차종 100개를 선정하였다. 포드자동차의 전통적 개발방법을 버리고, 흩어져
있던 전세계의 자동차 개발전략을 모은 것이다. 이 연구의 결과로 개발된 토러스(Taurus)라는 자
동차는 단시간 내에 포드사의 시장점유율을 11%나 향상시켰다. 포드사 연구진이 뭉쳐서 개발할
때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기록이다.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도 흩어졌기 때문에 오늘의 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1990년 실리콘
밸리는 거의 와해되었다. 미국 정부의 국방비가 대폭 삭감되면서 4만명의 고급 연구인력이 일시
에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이들은 국방비가 다시 증액될 때까지 뭉쳐서 기다리지 않았고 각자
흩어져 살 길을 찾아 나섰다. 그들이 흩어졌기 때문에 오늘날의 실리콘 밸리가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 역사에도 본의 아니게 흩어졌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낸 일들이 많이 있다. 조선조 때에는
끝없는 당쟁으로 수많은 선비가 귀양살이를 했다. 귀양을 갔으니 먹고 살 길이 막막했을 것이고,
그곳 마을 사람들이 보기에 딱했을 것이다. 마을사람들은 양식을 건네며 자식교육을 부탁하였다.
귀양지로 유명했던 곳은 예외 없이 서당이 많이 섰으며 교육이 발달하였다. 귀양지 부근 주민들
의 예술적 자질이 높은 경우도 많으며 농업, 축산업, 어업도 큰 발전을 이루었다.
흑산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던 실학자 정약전은 김의 양식방법을 개발하였고, 흑산도 어류의 희
귀상태에 대한 그의 연구는 오늘날의 과학기술로 보아도 대단한 수준이라고 들었다. 만일 조선조
때에 한양교도소를 크게 지어 모든 반대파를 한군데로 뭉쳐 수용했다면, 깊은 산속과 외딴 섬에
서 살던 주민들은 교육, 문화, 예술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을 것이다.
흩어지면 일류기업이 된다
세계 초일류기업의 문화는 흩어지는 것을 강요하고 있다. 세계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의 90%
를 점유하고 있는 인텔사의 기업문화도 흩어지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인텔의 연구소는 두 군데
로 나뉘어 있다. 한 연구소는 산호세에 있고 다른 연구소는 오리건 주에 있다.
같은 회사 소속의 연구소이다 보니 인사교류가 있고 정보교류도 있을 법한데, 이 두 연구소는
그 대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 연구소에서 신제품을 만들어 내면, 다른 연구소에서는 밤
을 새면서 개발한 새로운 신제품을 공격한다. 한 연구소에서 만든 신제품을 다른 연구소에서 재
빨리 죽이는 것이 인텔의 경영전략이다. 생긴 지도 오래되었고 그 동안 이익도 많이 냈기 때문에
이제 인텔도 고목나무가 될 때도 되었는데, 계속 싹이 돋아나고 가지가 퍼져 나간다.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앤드 그로브 회장은 2년마다 사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불만을 자세히 적어 내도록 요구한다. 불
만사항 중에는 인텔의 기업풍토에 어긋나는 내용도 있고, 직급과 업무질서를 뒤엎는 무례한 요구
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자유분방한 불만사항은 회사의 운영에 즉시 반영된다. 뭉칠 만하면 흩어
지게 만들고, 정상인이 될 만하면 또다시 미쳐 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심성을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흩어지는 것을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 소풍가서 가장 기다
려지는 순간은 언제인가? 선생님이 `해산`하라는 소리를 할 때이다. 가장 싫은 순간은 언제인가?
`집합`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이다. 우리는 흩어지라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뛰고, 뭉치라는 소리
를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민족이다. 훈련소에서 생활할 때도 가장 즐거운 순간은 `해산`이었
고, 가장 답답한 기분이 들 때는 `집합`이었다. 우리는 흩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어떻게 흩어져야 사는가?
그 동안 뭉칠 것만을 강요당해 왔던 우리는 어떻게 흩어져야 하는가?
정부와 기업은 그간의 정경유착 관계에서 벗어나 흩어져야 한다. 연구소는 철 지난 연구과제,
낡은 연구조직으로부터 흩어져야 한다. 대학은 유구한 전통과 긴 역사의 사슬에서, 정보통신 혁명
시대를 맞아 변함없는 학칙과 학과의 대열로부터 흩어져야 산다. 온 국민이 책임져야 된다고 노
래를 부르는 정부의 합창단도 흩어져야 하고, 회사가 어려우니 합심전략하자는 훈화의 행진도 흩
어져야 한다.
대기업은 자존심 경쟁대열에서 흩어져야 한다. 대기업의 계열사들도 흩어져야 산다. 계열사는
자사시장(Capative Market)으로부터 흩어져야 한다. 합심전략하자는 훈화의 행진도 이제 그만하
고 흩어져야 한다. 사원들은 맹목적인 애사심 구호를 버리고 흩어져야 한다. 품질과 성능과 가격
을 무시한 채, 우리 것이기 때문에 아껴야 한다는 국산품 애용 구호도 이제는 흩어져야 한다.
대기업의 본사 사옥도 흩어져야 한다. 그곳은 특성과 분야가 다른 회사에 근무하는 임직원들을
한군데에 모아 놓고 가장 오래된 규범과 전통적 가치만을 강요하는 곳 아닌가? 고목나무가 묘목
들에게 고목나무의 생리를 가르치는 셈이다.
종합연구소도 흩어져야 한다. 다양한 사고가 요구되는 곳에 관리효율만을 강조하는 연구관리
지침이 적용되고 있지 않는가? 연구원들의 유니폼 행진도 이제는 흩어져야 한다. 유니폼은 획일
적인 동류의식을 조성하는 데는 효과적일지 모르나 창의적 사고를 진작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문
화의 부산물이다.
기업의 중앙연수원도 흩어져야 한다. 계열의 특성이 살아 날 만하면 모아 놓고 획일적인 대표
사상을 주입하는 곳 아닌가?
제너럴 일렉트릭, 인텔과 모토롤라는 사원들에게 끊임없이 흩어지는 방법을 가르쳐서 세계 초
일류가 되었다. 뭉칠 것만을 강조해 오던 우리 사회도 이제는 흩어지는 문화를 연구하여야 한다.
만일 우리 사회가 계속 뭉칠 것만을 강요한다면, 우리의 어린 묘목들은 채 자라나기도 전에 고목
나무가 되고 말 것이다.
국내기업 중에 흩어지는 전략을 구사하는 회사가 있다. 뭉쳐 있던 임직원을 흩어지라고 강요한
다. 그리고 전세계로 흩어져 나가고 있다. 한 군데 뭉쳐 있던 공장을 나누어 여섯 군데로 분산시
켰다. 가만히 있으면 죽을 것 같으니까 흩어지라고 하였다.
한국형 이합집산 모델
이제 몇몇 국내기업들도 흩어지는 방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기존체제로 새로운 국
내외 시장의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궁금해진 것이다. 이의 한 방안으로
흩어지는 전략이 제시되고 있다.
<표> 한국형 이합집산 모델
1. Pot 1
가. 조직형태: 기존형태
나. 조직 규모(%): 95
다. 경영이념: 전략적 관리
라. 담당기능: Pot 2에서 개발된 사업의 시장 진출
마. 운영 특성: 기존운영체제
바. 비유: 전투 사단 지역 점령
2. Pot 2
가. 조직형태: 신규형태
나. 조직 규모(%): 5
다. 경영이념: 창의적 개발
라. 담당기능: 신규사업 창출, 국제협력, 시제품 개발
마. 운영 특성: 독자적 추진체제
바. 비유: 특공대 거점확보
필자는 `두 항아리 제도(Two Pot System)`를 우선 제안한다. 기존의 기업운영체제를 큰 항아
리(Pot 1)로 하고, 이보다 훨씬 작은 새로운 항아리(Pot 2)를 만들어 이원적 제도로 흩어지는 것
이다.
큰 항아리(Pot 1)에서는 기존인력과 현행 운영체제를 유지한다. 작은 항아리(Pot 2)에서는 소수
의 전문인력을 채용하여 조직의 유연성을 극대화하고, 일상업무의 제약 없이 큰 항아리 조직의
차세대 사업을 집중적으로 개척한다. 작은 항아리 조직은 소수의 연구팀을 운영하고 세계적 연구
소와 협력체제를 구축하며, 몇 개의 중소기압과 연계하여 시제품 개발 및 소규모 생산체제를 구
비하여야 한다. 작은 항아리 조직은 큰 항아리의 5~10% 규모로 시작하며 소수정예의 조직 구성
원이 차세대 기술, 미래상품, 신규사업을 구상하고 이의 시범적 전개를 담당한다. 작은 항아리에
서 성공가능성이 확인되면 큰 항아리 조직으로 이관하는 시스템이다.
이 두 항아리 제도는 한국적 경영여건과 우리의 기업풍토를 고려해 볼 때 가장 성공할 가능성
이 높은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비교하자면, 두 항아리 제도는 고목나무가 스스로 소생하기를 기다
리는 것은 가망이 없는 일이고 고목나무를 포기할 수도 없으니, 기력이 남아 있는 고목나무와 과
실의 수확이 많은 묘목이 서로의 장점을 공유하며 활력을 되찾는 한국적 경영철학이다.
회생하기 위한 노력을 거부하는 고목나무의 삭정이는 어떻게 치는가? 망설이고 안타까워하며
애처로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치는가? 그냥 치는 것이다.
국제화의 과제
-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가야 한다 -
옛 속담에 “이불 속에서 활개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마치 비닐하우스 안에서 밖을 내다
보며 좋은 소견으로 이것저것을 추측하려는 사람들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하다 보면 외국인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다. 평소에 외국인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
게 생각하던 터였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였다.
국제회의에서 만난 홍콩의 한 은행장은 필자가 잘 아는 기업인을 가리켜 `한국인치고는 도전적
`이라고 하였다. 그의 은행을 찾는 한국기업인들은 대부분 위험부담이 적고 큰 수확을 거둘 수 있
는 사업만을 찾는다고 하였다. 우리 기업인들이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말일 것이다. 워싱턴에서
만난 경제학자는 자신이 만났던 정부관리를 평하며 `한국인치고는 솔직한 편`이라고 하였다. 그는
비판을 싫어하는 관료들을 많이 만나 보았을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온 연구소장은 그와 토론하였
던 교수의 이름을 대며 `한국인치고는 토론에 적극적`이라고 하였다. 좀처럼 토론에 참여하지 않
는 한국대표들을 많이 보았나 보다. `한국인치고는`이란 무엇인가? 이들이 보는 한국인의 초상은
어떠한가?
한국인의 초상
미국친구의 부탁으로 한국을 방문한 그쪽 기업인을 안내한 적이 있었다. 그의 눈에는 교통법규
를 위반하는 차량이 많이 띄었나 보다. 그는 한국같이 잘사는 나라가 왜 사회의 기본계약을 지키
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위대한 한국인이라는 장식을 붙인 차가 지나가자, 그는 그 뜻을 물
었다. 필자가 그 뜻을 설명한 직후, 차 안의 젊은이는 침을 뱉으며 담배꽁초를 창밖으로 던졌다.
그가 본 위대한 한국인은 공중 위생도덕이 부족하였다.
시내 호텔 앞에서 택시 바가지요금에 항의하던 한 외국인은 필자에게 “이 나라를 찾아온 외국
인을 이런 식으로 대하면 한국은 크게 발전하지 못할 것”이란 말을 운전기사에게 통역해 달라고
하였다.
국제회의에서 자주 만났던 미국인 교수는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
웠다고 하였다. `나`의 생각은 이야기하지 않으며, `국가`와 `경제발전`에 관한 발언이 대화의 대
부분을 차지하더라고 하였다. 한국인같이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은 처음 보았다고 하
였다.
유럽에서 온 대학생 연수단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한국인의 인상이 어떠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하였다. 그간 한국인을 많이 만나 보지 못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이 대답에
만족스러워하지 않고 자꾸만 반복해 묻길래, 한국인의 첫인상은 매우 좋으며 모두 친절하다고 칭
찬하였더니 그제서야 흡족해 하더라는 것이다.
한강에 있는 다리가 무너지던 해에 서울에서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필자는 미국인 노교
수 부부와 다리를 건널 기회가 많았다. 잠수교를 지날 때 뒷자석에 앉았던 노교수가 부인을 감싸
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안심시켰다. “여보, 이 다리는 안전한 다리라고 들었소.”
한국을 소개하는 관광책자를 독파하고 온 친구가 있었다. 그는 터널을 지날 때마다 긴장하였다.
소개책자에서 터널 속은 공기가 나쁘니 되도록 지나지 말라고 써 있었기 때문이다. 물을 마실 때
에도 이 물은 괜찮으냐고 물었다. 우리는 외국을 여행할 때 여러 가지 유의사항을 듣는다. 터널은
공기가 나쁘
고 최근에 다리가 무너진 곳이 있으며 식수오염도가 높은 나라에 간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
는가?
미국행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의류 수입업자와 장시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사업가
로서 한국인을 대하기가 매우 벅찬 상대라고 하였다. 그와 오랜 관계를 가진 한 의류회사가 약속
한 날짜에 물건을 납품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그 이유를 알아봤더니 주문량이 밀려 그보다 나중
에 계약한 회사에 먼저 납품하였다는 것이다. 항의 하였더니 오랜 친분관계가 있는 사이여서 이
해해 줄 줄 알았다고 하더란다. 그는 물었다. “한국인들은 친분이 두터우면 사업상의 계약을 소
홀히 생각하는가?” 우리 기업이 30년 동안 단골이 없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였다.
해외에서 핵심부품을 수입하여 제품을 만들어 팔던 회사는 로열티를 적게 지불하고자 제품 매
출액을 낮게 책정하였다. 상대 기업에서는 수입해 간 핵심부품의 숫자가 있으니, 매출액이 이만큼
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만일 매출액이 정말로 적었다면 재고로 남아 있는 핵심부품의 수를 세
어 보자고 하였다. 그 회사는 실제 매출액에 대한 로열티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고 문
제를 해결하였다.
유럽 전자전시회에서 만난 외국회사의 임원은 한국기업에서 파견된 관람자가 전시장에 들어오
면 기장한다고 하였다. 전시된 물건을 이리저리 만져 보면서 험하게 다루기 일쑤이며, 장식품을
떼어가는 경우도 많다고 하였다.
오랜 친분이 있는 외국인 기자는 한국기업인을 보고 해적같다고 하였다. 다른 나라에서 개발하
여 소비자 시장에서 성공한 기술만을 골라 이전을 호소하고는 뒤돌아서서 가격경쟁으로 그 회사
를 공격하곤 한다고 하였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는가? 반성하며 겸손해질 필요는 없는가? 국제화시대에 우리와 협력하고
자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 것인가?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인의 초상은 어떠한가?
국제화 수준 - 비닐하우스
우리 기업들의 국제화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필자가 들었던 단편적인 일화를 몇 가지 소개하
고자 한다.
무역업을 하는 미국회사 회장은 우리 기업인들의 성격이 조급하다고 하였다. 상대방을 알고 싶
어 여러 가지 이야기를 건네 보았으나, 대화에는 관심이 없고 자꾸 계약체결로 이야기를 몰아 가
더라고 하였다. 믿을 만한가, 같이 사업을 할 만한 사람인가가 궁금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계약에
만 온 신경이 쏠려 있는 것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벤처회사 사장과 장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 방문했던 기
업의 회장을 일요일에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회장은 여러 명의 임원을 대
동하고 정장 차림으로 방문하였다. 반바지를 입고 있던 그는 당황하였을 것이다. 그의 부인이 손
님들이 앉을 의자를 나르는데도 모두 서서 보고만 있었다고 하였다. 미국 관습으로는 도왔어야
했다. 회장을 중심으로 한쪽으로만 앉으려고 하였고, 앉는 순서도 직급을 따르더라고 하였다. 경
직된 사람들로 비추어졌을 것이다. 회장이 이야기하는 것을 임원들이 받아 적더라고 하였다. 백
번도 더 들었을 이야기인데 왜 적는가? 이야기를 받아 적으니 조심스러워서 말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겠더라고 하였다. 미국경찰은 현장에서 잡힌 범인에게도 인권보호 차원에서 말조심을 하지
않으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경고하지 않는가.
디트로이트에 있는 회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회장과 함께 7명의 임원이 회사를 방
문하였는데, 회장 이외에는 별로 말이 없다라고 하였다. 꽤 궁금했을 것이다. 경호원들인가? 그
회장은 자랑이 대단하였다. 그러나 남의 기술과 설비로 값싼 제품을 많이 판 것이 무슨 큰 자랑
인가. 그 회장은 합작의 조건으로 경영권을 요구하였다. 사업계획을 물었더니 “기어코 성공시키
고야 말겠다”고만 하더란다. 의지는 강한데 비전이 없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는 정중히
합작추진을 거절하였다고 한다.
세르파와 사파리 안내인
해외지사는 국제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해외지사는 어떻게 운영하여야 할 것인
가?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등반가는 그의 등반기술이 제아무리 좋더라도 네팔인 세르파의 안내와
조언을 따른다.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사냥꾼은 그의 사냥기술이 제아무리 좋더라도 사파리 안내
인의 도움을 받는다. 이것이 국제화의 지혜이다. 아무리 경영능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해당지역 전
문가의 조언을 듣지 않고 우리 관습만을 주장한다면, 그 기어의 국제화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회장과의 대화를 기록하려던 임원들, 일요일에 정장 차림으로 가정집을 방문한 사장단은 현지
인 전문가로부터 미국의 생활관습에 대해 조언을 받았더라면 훨씬 더 좋은 상담결과를 얻었을 것
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마치 화전민 마을의 비닐하우스에서나 통용되는 관습이 바깥세상에서도
통할 줄 알았다가 망신을 당한, 우리의 국제화 수준에 얽힌 사연들이다.
비닐튜브,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한때 해외관광이 부쩍 늘었다. 관광객들은 김포공항에서 모여 좌석을 나란히 배정받고, 목적지
에 도착하여 마중나온 한국인 안내인을 만난다. 교포가 운영하는 호텔에 투숙하고, 한국음식점에
서 식사를 하고, 교포의 가게에서 선물을 산다. 이들의 기념사진을 보면 온통 한국인 관광객뿐이
다. 이런 관광을 수십 번 반복한다고 하더라도 그곳의 생활관습과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겠는가?
필자는 이런 관광을 `비닐튜브 관광`이라고 부른다. 비닐튜브 속을 지나며 바깥세상을 대충 훑어
보고 오기 때문이다. 비닐튜브 출장이라는 것도 있다.
해외교포들이 모여 사는 곳의 식품점에 가 보면 주변가게보다 조금씩 비싸다. 동포들끼리 돕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다른 교포에게 물어보았다. 억울하지 않느냐? 그는 커튼
가게를 하는 사람인데 피장파장이라고 하였다. 그 식품가게 주인이 와서 커튼을 맞추면 그도 더
비싸게 받는다고 하였다. 그곳 사람들과 주고받으며 뿌리를 내려야 할 것 아닌가? 이민을 갈 때
비닐하우스도 가져간 것이다.
국제화 모내기 운동
국제화는 왜 필요한가? 혼자의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교류가 필요하며, 교류가 성
립되려면 서로 주고받는 것, 사고 파는 것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인기 있는 교류 대상인가? 해외언론이 보는 한국은 어떠한가? 부정부패가 만연
하였고, 관료는 정직하지 못하며, 통계보고는 믿음직스럽지 않다. 각료들은 너무 자주 바뀌어 이
름조차 외우기 힘들다.
기업경영은 투명하지 못하고 시장원리가 적용되지 않으며, 계약의 이행 여부도 확실치 않다. 내
수가격보다 싼 수출품은 덤핑 의혹을 받는다. 남의 것은 사지 않고 자기 것만 팔고자 한다.
현자의 행진을 비판하면 외세의 간섭이라고 흥분하고, 화전민 마을을 지적하면 국산품 애용운
동이 벌어진다. 외국회사와 협의는 많아도 결정되는 사안은 드물다. 꽃마을이 연장된 것이다. 외
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는 상대하기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이다. 만나서 부담스러운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안 만날 것이다.
국제화에 대비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한가? 국제화의 대책수립은 지엽적인 영어교육으로 대체
되었다. 국제화란, 남의 것을 인정하면서 우리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주는 것은 없으면서 받으려
고만 하는 억지는 통용될 수 없다. 과거에는 경제력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돈이 없다는 것을
전세계가 알고 있지 않은가? 만일 줄 것이 없이 받으려고만 한다면, 이는 국제협력이 아니라 국
제구걸이며, 구걸은 모욕과 멸시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산업구조와 마찬가지로 사고의 패러다임도 대전환을 이루
어야 한다. 비닐하우스의 모판을 들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올 가을 수확을 꿈꾸며 국제화의 모내
기에 착수하는 것이다. 모내기 운동은 다음의 3대 원칙 아래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첫번째 원칙은 우리의 일상생활이 국제사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명심하는 것이다.
정부, 기업,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이 우리가 과연 협력할 만한 대상인가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
이다.
두 번째 원칙은 국제화의 개념을 새로이 정립함으로써, 모든 구성원들이 국제사회에서 그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교류할 수 있도록 국제감각을 연마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도 남에게 줄 것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고받
을 것이 있어야 국제화가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의 민족성은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하고 잠들어 있는 창의성을 일깨워야 한
다. 이제 비닐하우스를 나서야 한다.
민족서의 재발견
-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야 한다 -
세계 어느 민족을 한반도에 옮겨 놓는다 하더라도 지금의 우리들보다 더 잘 하지는 못할 것이
다. 심성을 비판하고 자조적으로 비하하고 기를 죽이면서 남을 모방하라고 몰아치면 잘 할 민족
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의 민족성을 바라보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던 것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옷은 단추
를 끼우면 끼울수록 더욱 더 비뚤어지기 마련이다. 이제 잘못 끼워진 모든 단추를 풀고, 차분한
마음으로 첫 단추를 다시 끼워야 한다.
우리를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속담 중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란 말이 있다. 무엇
이 잘못되었는가? 친척들이 사촌과 나를 자꾸 비교하면서 나의 능력을 의심하는데 불편해 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어디 우리만 그렇겠는가? “남이 잘되면 모두 다 따라한다”는 이야기도
우리를 비하하는 말같이 들린다. 어디 우리만 그런가? 전 세계의 기업인들이 초일류기업을 따라
하고자 온갖 노력을 하고 있지 않은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야 한다.
보통 남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을 보고 성격탓이
라는 결론을 내린다. 습관을 고치기 힘드니, 그 성격을 인정하라는 뜻일 것이다.
개인의 성격도 바꾸기 힘든데, 우리가 민족성을 바꿀 수 있겠는가? 민족성을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들었다. 민족성이 개조할 대상인가?
다른 민족들은 고유의 특성을 존중하고 미화하고 승화시키는 노력을 철저히 하여 왔다. 왜 우
리만 자조적으로 비관하고 자학하면서 남의 떡만을 부러워하는가?
우리 지도계층이 민족성을 파악함으로써 국가발전을 도모하고자 한 적은 있는가? 조선조 때 외
세의 침략에 시달리던 왕이 대신에게 물어 보았다. “사방에서 광풍이 몰아칠 때 어떻게 가옥을
보존할 수 있겠는가?” 즉 외세의 침략을 앞두고 국가를 보존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었을 것이
다. 대신이 응답하였다. “사방의 문을 열어 놓고 광풍이 쇠잔하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외세가
침략하면 문을 활짝 열어 주고 스스로 힘이 빠져 물러날 때까지 기다리자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난리만 나면 국가의 지도계층은 피신을 서둘렀나 보다. 그 동안 백성들이 겪는 고생은 어떠하였
을 것인가? 민족성의 파악은커녕 국가의 존망조차 방관하는 철학을 가졌던 것이다.
근세의 역사는 어떠한가? 조선조의 지도계층은 당쟁에 여념이 없었고, 구한말 대신들은 나라를
팔아넘기는 논리의 개발에 열중하였다. 식민지 시절은 우리의 특성과 심성을 말살하고 비하시키
는 데 집중하였던 시절이다. 해방 후에는 사회혼란과 전쟁으로 민족성을 돌아볼 틈이 없었다.
1960년대 이후는 독재의 효율과 경제발전논리가 모든 가치관을 압도하였다. 지도계층은 현자로
대체되었고, 화전민 마을은 자존심 경쟁에 여념이 없었다. 국가의 비전은 소득증대 구호뿐이었고,
소득증대와 함께 사회적 갈등과 가치관의 혼동도 증폭되어 왔다. 민족성을 생각해 볼 겨를이 있
었겠는가?
처음 잘못 끼워진 단추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우리의 민족성
을 돌아볼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토끼와 경주한 거북이
필자는 W이론에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가 경제개발을 시작한
1960년대는 선진국의 3D현상이 고조되었던 시기이다. 선진국은 경제성장으로 근면성이 퇴조하였
고 어려운 일을 기피하였으며, 공해산업을 해외로 이전하려던 움직임이 있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
는 경제성장을 이루려는 국가목표를 세웠고, 풍부한 노동력과 근면한 국민성이 조화를 이루면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토끼는 그간의 경제성장에 만족하면서 거북이의 행진을 방관하였다. 당시 중국을 비롯한 동남
아 제국은 아직 긴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거북이들이었다. 우리의 경쟁자는 대만, 홍콩, 싱가포르
였으나, 이들이 추구하던 발전방향은 우리의 대규모 양산조립과는 다른 축을 갖고 있었다.
토끼는 잠자고 있었고, 다른 거북이들은 방향을 달리하던 경주에서 우승하였던 것이다. 이제 토
끼는 새로운 경기규칙을 만들며 맹렬한 기세로 달리고 있다. 토끼가 제정하는 새로운 경기규칙은
정보혁명, 자유무역과 무한경쟁이 강조되는 장애물경기인 것이다.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경쟁국들
도 잠에서 깨어난 지 오래이다. 선진국의 질주와 개발도상국의 추격 속에서 그간의 성취감에 휩
싸여 허세를 부리다가 오늘의 우기를 맞은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에서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였던 바는 토끼가 잠에서 깨어나고 중국과 동
남아 제국이 경기에 참여하기 시작한 1975년경부터 우리도 독자적인 경기종목을 만들었어야 한다
는 점이다. 토끼가 제정하는 게임의 법칙 아래서는 거북이는 영원히 이길 수 없다. 거북이는 자신
의 특성을 토대로 하여 머리와 사지를 몸속에 집어놓고 절벽 밑으로 구르는 경기를 주도했어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잘못 선택한 경기종목에 집착하였던 것이다.
소와 쥐를 동경하던 벌
소-쥐-벌의 우화도 설명하였다. 풍부한 고급인력, 막대한 예산, 장기간의 연구개발을 거쳐 첨단
기술을 주도하는 미국은 황소로 표현하였다. 황소가 개발한 첨단기술을 제품기술로 슬기롭게 응
용하는 일본은 소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쥐로 표현하였다.
우리는 어떤 동물인가? 정부와 대학, 출연연구소는 한정된 고급인력과 부족한 연구예산으로 첨
단기술이 개발을 꿈꾸며 소를 흉내내고자 하였다. 산업계는 일본의 익숙한 관습과 언어소통의 장
점,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점을 활용하고자 쥐의 전략을 따랐다. 결과는 어떠하였나? 미국을 동경
하면서 일본을 본받자는 소모적인 줄다리기가 계속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소의 구호를 따라 외치
고 쥐의 행동을 흉내내는,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병든 동물이었다.
간혹 질문을 받는다. 미국과 일본 중에 어느 쪽을 본받는 것이 우리에게 이익이었겠는가? 필자
의 답은 둘 중 그 어느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고유의 전략을 개발하였어야 했다. 생각해 보
라. 풍부한 지하자원과 우수한 두뇌로 무장한 2억 7,000만명의 미국과 투철한 지도자와 철저한 장
인정신으로 무장한 1억 3,000만명의 일본을 모방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척박한 자원과 일천한 산
업구조 4,600만명의 적은 인구를 가진 우리가 미국, 일본과 같은 전략을 채택하면 무슨 효과가 있
겠는가?
우리는 황소나 쥐가 아니라 온 동산을 날아다니는 벌이 되었어야 했다. 우리는 두 코치 사이를
오가며 바쁘게 지냈으나, 정작 필요한 경기기술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셈이다.
사역견이 되고자 하였던 사냥개
산학협동 연구를 진행하면서 우리 민족의 심성은 사냥개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냥
개는 목표가 설정되기 전까지는 질주하는 법이 없다. 사방을 둘러보며 탐색을 계속한다.
우리의 연구원들도 처음부터 열심히 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목표가 불확실하였던 연구 초
기에는 관심이 흩어졌고 방황하였으며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 그러나 탐색기간을 거쳐 연구목표
가 설정되면 소극적이던 연구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지지부진하던 연구는 순식
간에 질주로 변하였다. 마치 목표를 발견한 사냥개가 사력을 다해 질주하는 것과 같았다.
연구결과 개발된 신제품은 꽃마을 회의에 회부되기 마련이다. 꽃마을 회의에서 부정적인 평가
와 비관적인 전망으로 매도를 다한 후에는 실의에 빠지기는커녕 예기치 못했던 단결이 이루어졌
다. 사냥개의 집념이 표출되면서 역전극이 시작된 것이다. 제각각 나돌던 사냥개들이 팀워크를 이
루기 시작하는 것이다.
목표달성을 위한 질주가 시작되면 지도자의 역할이 없어진다. 지도하거나 관리하지 않고 도와
주지 않아도 각자가 알아서 뛰는 것이다. 마치 끈이 풀린 사냥개의 질주를 연상시킨다. 먹이를 찾
은 사냥개가 주인에게 이끌리며 달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반면에 일본의 저력은 사역견의 특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지도자는 솔선궁행과 책
임감으로 무장되어 있다. 합의를 거쳐 결론을 도출하면, 전원이 단결하여 그 목표를 성취한다. 철
저히 모방하고 쉴새없이 개선하며 끊임없이 노력한다.
사역견은 사역견의 장점이 있고 사냥개는 사냥개의 특성이 있다. 사냥개가 사역견의 장점을 소
화할 수 있겠는가? 설사 배웠다고 하더라도 사역견같이 잘 할 수 있겠는가? 야성의 돌파력을 자
랑하는 공격수가 차분하고 성실한 수비수의 덕목을 흉내내고자 한 것이다.
경기종목, 코치, 포지션을 잘못 택하였다.
토끼-거북이, 소-쥐-벌, 사냥개-사역견의 토론에서 우리가 깨달은 점은 무엇인가? 거북이는 토
끼가 주도하는 경기에 참여하여서는 이길 수 없다는 점이다. 경기종목을 잘못 선택하였던 것이다.
제아무리 황소의 풍채와 쥐의 슬기가 부럽더라도 벌은 벌의 길을 가야 한다. 코치 선정이 잘못되
었던 것이다. 사냥개와 사역견의 비유에서 강조하는 바는 사냥개는 사냥을 하여야 그 가치를 인
정받으며, 사역견의 장점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공격 포지션을 맡을 선수가 수비 포
지션을 맡은 것이다.
동물을 예로 들어가며 찾아낸 지혜는 무엇인가? 우리 민족성의 재발견을 위한 실사가 모든 일
에 앞서 진행되었어야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경황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부질없이 구시만
반복하면서 헛된 노력을 낭비하여 온 것이다.
세계 각국의 최고 운동선수들을 모아 놓았다고 하더라도 경기종목을 잘못 선정하고 코치도 잘
못 선택하고 포지션도 뒤바뀐 채 경기를 진행하였다면 이길 수 있겠는가? 이기는 방법은 무엇인
가? 우리의 민족성을 새로이 발견함으로써 적성에 맞는 경기를 찾아내는 노력을 최우선으로 진행
하여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민족성의 재발견-사주 이론
우리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가? 우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우리의 심성을 장점으로
활용해야 한다. 남이 해서 잘 되면 모두 다 따라하는 것도 발전의 실마리로 채택하여야 한다.
이제 이 두가지의 민족심성을 발화시킬 수 있는 점화장치가 필요하다. 점화장치는 무엇인가?
잠들어 있던 창의성을 일깨우는 것이다.
<표> 민족성의 재발견
1. 민족성의 비유: 토끼-거북이
가. 문제점: 경기종목 선택
나. 대책: 새로운 경기 개발
2. 민족성의 비유: 소-쥐-벌
가. 문제점: 코치 선정
나. 대책: 독자적 경기기술 개발
3. 민족성의 비유: 사냥개-사역견
가. 문제점: 포지션 배정
나. 대책: 운동적성에 따른 포지션 파악
우리의 창의적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 어떤 연쇄반응이 일어나는가? 우리 이웃의 사촌들이 배가
아프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고는 잘 되는 우리를 보고 모두 다 따라할 것이다. 우리는 모방을 잘
하지 않는가? 우리같이 오랫동안 모방만을 연습한 민족이 전세계에 또 있겠는가?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남의 것만을 모방하던 우리가 창의적 결실을 놓고 우리끼리 모방을 시
작하는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보면, 모방만 할 것 같던 한국에서 창의적인 결실이 분출하기 시작
하는 것이다. 그들도 배가 아플 것이고, 우리의 성공을 지켜보다가 따라할 것 아닌가? 세계 각국
이 배우고 따르면 바로 그것이 일류 선진국 아닌가?
성공의 성취감은 우리의 사냥개 본능을 자극할 것이다. 과거의 경제성장을 능가하는 새로운 질
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의 창의적 결실을 질시하며 망설이던 국가들도 우리를 모방하기 시작
할 것이다. 선진국을 향한 발전속도가 가속되며 우리의 신바람이 발동할 것이다.
이것이 사주 이론이며,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창의적 노력을 통해 결실을 얻
으면, 둘째로 사촌이 땅을 샀을 때 배가 아픈 심성이 되살아날 것이다. 셋째, 남이 잘 되면 모두
따라하는 우리의 본능이 발동할 것이다. 넷째로 우리를 보고 따라하는 주변국들이 늘어날 것이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주 이론이다.
이제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 잠들어 있던 우리 민족의 창의성을 일깨우는 것이 그것이다.
창의적 사고
- 창의가 모방보다 쉬운 10가지 이유 -
우리는 매우 창의적인 민족이라고 배웠다. 그렇다면 세종대왕 이후 600여 년 동안 국가 차원에
서 창의적인 노력을 해 본 적은 몇 번이나 있는가?
세종대왕은 동래현의 노비였던 장영실을 발탁하여 벼슬을 주고 과학기술 문물의 꽃을 피웠다.
그러나 당시의 집권세력들은 공주의 가마를 잘못 만들었다고 그에게 누명을 씌워 모함하였고, 그
는 그 동안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결국 곤장을 맞고 쫓겨났다. 18세기에 과학기술 중흥을 주장하
였던 실학파 학자들은 모두 귀양살이를 하였거나 참형을 당하였다. 실학의 중요성을 인정하였던
정조도 어쩔 수 없었다.
우리 민족은 창의성이 높다. 지방관청의 노비였던 장영실도 일할 여건을 만들어 주자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 않았는가? 실학파들도 농업, 어업, 축산업에서 서양문물을 능가하는 창의적인 제도
를 많이 제안하였다. 그러나 창의의 싹이 돋을 때마다 이를 권장했어야 할 집권층들이 나서서 방
해하였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민족의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었겠는가? 만일 여러분의 자
식들이 창의적 재능을 보였다면 어떻게 했겠는가? 자식을 사랑하는 차원에서 적극 말렸을 것이
다.
창의적 노력이 필요한 다섯 가지 이유
이제 우리는 그 동안 눌려왔던 민족의 창의성을 분출하기에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우
리가 맞고 있는 이 시대는 정보혁명과 자유무역이 동시에 전개되는 급변기이다. 급변기에는 모든
위상이 뒤바뀌는 법이다. 뒤쫓던 사람이 앞서가던 사람보다 더 유리할 수도 있는 시점이다. 새로
운 시대를 맞아 우리들의 창의력을 부채질하는 다섯 가지 여건을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이제 우리는 모방할 수도 없다. 기술의 발전속도가 완만하였던 산업혁명시대에는 고정표
적이 많았다. 산업혁명 후반부에 제조업 시장을 석권하였던 일본은 고정표적을 잘 쏘는 선수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시대에는 이동표적이 많아지는 법이다. 일본의 산업경쟁력이 주춤거리는 것도
이동하는 표적은 모방과 개선의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창의적 노력이 불가피한 이
유도 여기에 있다. 모방할 대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둘째, 단절의 시대, 급변의 시대는 우리에게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개인의 자
유분방한 생각과 흩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심성이 우리의 창의적 사고에 가속도를 붙일 것이
기 때문이다.
셋째, 정보시대는 새로운 산업을 필요로 하고 있다. 미래사회의 전개는 지금보다 약 5배가 더
넓어진 사업영역을 제공할 것이다. 깃발만 들고 다니며 꼽고, 새끼줄만 갖고 다니며 울타리를 쳐
놓으면 우리 것이 되는 기회의 시대이다.
넷째, 새로운 영역이 전개되는 시대에는 한 가지의 고유영역만 보유하고 있어도 국제협력이 가
능하다. 전세계에 줄 것이 있는 나라는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에서 안전을 보장받는다.
다섯째, 우리 산업은 세계적인 대규모 양산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의 생산활동은
바이어의 주문대로 만들던 주문생산체제(OEM)였다. 그러나 대규모 양산설비와 창의성이 합쳐진
다면, 우리가 만든 신제품은 전세계 바이어들이 우리로부터 판매권을 얻어내는 독특한 주문판매
체제(Original Brand Manufacturing: OBM)를 구가할 것이다.
창의적 결실을 맺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사고를 혁신하고 발상을 전환하여야
한다. 사양산업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사양기업만이 있을 뿐이다. 첨단기술이 첨단제품을 만
드는 것이 아니며, 창의적 사고가 첨단제품을 만드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창의성의 증거
필자는 우리의 창의적 자질을 증명하고자 1980년부터 창의성이 강조되는 고부가제품(High
Touch Product) 개발을 추진하여 왔다. 산학협동으로 진행된 연구과정에서 필자는 우리 젊은이들
의 창의적 자질이 매우 높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하였다. 다음의 몇 가지 증거를 예시하고자
한다.
1982년에 운전자의 체형에 따라 최적 운전자세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운전석을 개발하였다. 이
운적석은 세계 최초로 컴퓨터가 내장된 의자이며, 파리-다카르간을 달리는 국제자동차대회에서
경주용 운전석으로 추천되었다.
1988년에 개발된 인공지능형 TV, 음성인식 전자렌지, 리모콘으로 작동되는 자주형 진공청소기
는 뉴욕 타임스에서 21세기형 미래상품으로 선정되었다.
1989년에 피로의 피로를 덜어 주는 파도 모양의 키보드도 개발되었다. 4년 뒤에 미국회사에서
이와 비슷한 키보드를 만들었는데, 출시 후 첫 해에만 1조원이 넘는 매출액을 기록하였다.
1990년에는 3세 어린이가 쓸 수 있는 유아용 컴퓨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다. 이 제품은 국
내 유치원에서 유아들의 교육용으로 큰 호응을 얻었으며, 세계 컴퓨터 전시회에 소개되어 8개국
으로부터 수출의뢰를 받았다.
1994년에는 레저 스포츠 인구를 겨냥한 혁신적인 캠코더를 개발하였으며, 이 제품은 디자인전
에서 수상하였다.
1995년에 세탁물 종류와 양에 따라 세탁봉의 높이가 조절되는 새로운 개념의 세탁기를 개발하
였다. 이 제품은 출시 3개월만에 시장점유율을 8% 높였으며, 1996년 히트 상품으로 선정되었다.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에서 조리대가 상하로 움직이는 전자렌지도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다. 이
제품은 단기간에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였으며, 높은 가격을 받으며 수출이 늘어나고 있다.
1996년 개발된 정수기는 1997년 히트 상품으로 선정되었으며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는 물량이
늘어나고 있다. 이 정수기는 우리가 가격결정권을 갖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익을 내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 제품보다 더 높은 이익률을 내고 있다.
1996년에 개발된 새로운 개념의 사계절용 에어컨은 여러 방에서 번갈아 쓸 수 있으며 설치도
매우 간편하다. 이 제품이 개발된다면 동남아 시장에서만도 약 5조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
된다.
1997년 반도체회사와 공동으로 개발한 멀티미디어용 반도체 소자는 1품 20조원의 매출액을 올
릴 것으로 추정되었다. 필자는 이와 비슷한 개념의 제품이 미국에서 2000년을 목표로 개발되고
있음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표> 기술이란 무엇인가?
기술 + 필요성 파악 능력(Demand) + 파악된 기술의 공급 능력(Supply)
이러한 제품개발에 참여한 연구원들은 해외유학의 경험도 없고 석박사 학위도 없으며, 명문대
출신들도 아니었다. 이렇게 개발된 제품들은 필자의 전공과도 관계가 없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점은 기술의 필요성을 남보다 먼저 찾아내는 일이었다.
필자가 한 일은 젊은이들의 심성을 자극하면서 더이상 남의 것을 모방하지 말자, 선진국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자, 선진국보다 비싼 제품을 만들자고 강조한 것뿐이다. 우리 젊은이들은 신바람
나게 연구하였으며 폭발적인 창의성을 시위하였다. 분위기만 만들어 주면 이렇게 결실이 많이 나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제까지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창의적 결실을 자주 접하지 못하였는
가?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시도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 필자의 원고작성을 돕고 있던 대학원생과 우연히 방문한 제자가 황당한
제안을 하였다. 왜 창의가 모방보다 쉬운지 알기 쉽게 열 가지만 이유를 대보라는 것이었다. 이렇
게 해서 경황없이 나온 것이 창의 십계명이다.
창의 십계명
1. 모방은 남의 그림자를 똑같이 따라하려고 하는 것과 같고, 창의는 거울 앞에서 마음놓고 온
갖 동작을 표현하는 것과 같다. 어느 것이 더 쉬운가?
2. 모방은 시작은 쉽지만 뒤로 갈수록 어려워지고, 창의는 시작은 어렵지만 뒤로 갈수록 쉬워진
다.
3. 모방은 하면 할수록 주위로부터 멸시를 바게 되나, 창의는 반복할수록 주위의 존경을 받게
된다.
4. 모방은 큰돈으로 시작해야 하지만, 창의는 무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다.
5. 모방은 따라하는 사람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하지만, 창의는 경쟁자가 없으므로 하는 일마다
일등이다.
6. 모방은 하면 할수록 로열티 지불액이 늘어나지만, 창의는 하면 할수록 로열티 수입이 많아진
다.
7. 모방은 하면 할수록 찾아다니며 사정할 사람이 많아지지만, 창의는 하면 할수록 찾아와서 사
장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8. 모방은 신문사를 찾아가 광고비를 내야 게재되지만, 창의는 돈을 내지 않아도 신문사에서 제
발로 찾아와 대서특필해 준다.
9. 모방은 게으른 사람의 체면을 유지해 주는 제도이고, 창의는 부지런한 사람이 보람을 느끼게
해 주는 제도이다.
10. 모방은 제아무리 큰 노력을 들이더라도 결국은 망하지만, 창의는 한 가지만 잘 되어도 성공
한다.
이상의 십계명은 제자들 앞에서 체면을 지키기 위해 급조한 내용이다. 속담 중에 “하나를 가
르쳐 주면 열을 안다”는 것이 있다. 필자가 열 가지를 열거하였으니, 여러분들도 잠시 똑똑한 학
생이 되는 셈치고 창의가 모방보다 쉬운 100가지 이유를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떤가?
창의를 억압하는 관리제도
우리의 기업구조는 창의적인 사람이 배겨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는
미국에서 자동차 조립공정에 참여하여 일한 경험이 있다. 조립공정이란 무엇인가? 헨리 포드는
급증하는 자동차 수요에 부흥하고자 켄베이어를 이용한 조립공정을 설치함으로써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하였다. 포드가 만든 조립공정은 작업자의 숙련도가 높더라도 이를 반기지 않으며, 오히려 비
숙련공의 평균수준에 맞추어 운영되는 생산방식이다. 즉 남보다 일을 빨리하는 것도 원치 않고
남보다 일을 늦게 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관리효율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기업의 관리제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남보다 창의성이 높은 사람도 원치 안고 평균 수
준보다 낮은 사람도 허용하지 않는다. 창의성이 높은 사람은 새로운 생각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의 관리체제는 이를 원치 않는다. 창의적 제안내용이 직렬회로를 거치고 꽃마을 회의에 회부
될 것을 걱정하는 상사는 “쓸데없는 생각말고 시키는 일이나 잘 하라”고 면박을 줄 것이다. 창
의력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창의적 노력을 포기하고 시키는 일만 하거나 좌절하고 회
사를 떠날 것이다.
결국 국가의 집권층은 창의적인 싹이 솟아날 때마다 이를 억압하였고, 기업의 관리층은 창의보
다는 관리효율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을 소개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매우 창의
적인 민족이다. 이제 잠자고 있는 우리의 창의력을 폭발시키기 위하여 어떠한 대책이 수립되어야
하는가?
창의의 구현 - 가상연구소
무엇보다도 먼저 고목나무의 소생방안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흩어져야 한다. 관리효율을 강조
하는 큰 항아리(Pot 1)와 창의성을 강조하는 작은 항아리(Pot 2)로 분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항아리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급하는 가상연구소(Virtual Institute)를 만들어야 한다.
왜 가상연구소라고 하였는가? 첫째, 새로운 기술과 신규사업을 상상하며 창조하여야 하는 연구
소이기 때문이다. 둘째, 미래사회에서 요구되는 기술의 필요성을 남보다 먼저 파악해야 하기 때문
이다. 셋째, 한 제품으로 조단위의 매출을 목표로 하는, 즉 1품 100조, 1품 50조, 1품 10조원의 상
품을 남보다 먼저 상상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크라이슬러사는 일반주택의 낮은 차고에도 들어갈 수 있는 미니밴을 개발하여 1품 100조의 히
트상품을 만들었다. 필립스사는 3개의 날이 동시에 돌아가는 면도기를 창안하여 1품 30조가 넘는
제품을 개발하였다. 스와치사는 손목시계 하나로 1품 20조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으며, 소니사는
게임기로 1품 10조의 매출을 자랑하고 있다.
이제 기업과 대학은 가상연구소의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 전국의 가상연구소에서 개발된 창의
적인 아이디어는 한국형 벤처산업을 창출하는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한국형 벤처 모델
- 실리콘 밸리를 넘어 난장터로 -
해외출장을 갈 때마다 새로이 부상하는 선진국 벤처산업의 동향을 배우고자 하였다. 예전에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1991년에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를 방문하면서 불현듯 우리도 벤처산업
을 육성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이 든 것은 벤처산업의 수많은 성공담에 감동
을 받았다기보다는 필자가 속한 대학 부근의 고시촌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스탠포드대학-실리콘 밸리와 서울대-신림동 고시촌
스탠포드(Stanford) 대학이 있는 실리콘 밸리는 폭 15km, 길이 50km의 협소한 지역이다. 이 지
역에는 수많은 첨단 벤처기업들이 빽빽하게 입주해 있다. 이들은 미래를 연구하며 정보사회의 신
천지를 개척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성공하면 정보혁명이 가속되고 산업구조가 변혁된다.
서울대가 있는 신림동은 고시촌이다. 고시촌에 입주한 젊은이들은 과거를 연구한다. 육법전서를
외우고 판례를 암송한다. 이들이 성공하면 치안이 유지되고 송사가 해결된다.
실리콘 밸리의 젊은이들은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여러 사람들과 만난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
과 온갖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노력에 몰두한다. 신림동 젊은이들은 사람 만나는 것을 적극 자제
하며 독방에서 홀로 공부한다. 개인의 실력을 연마하며 고유의 정보를 비망록에 기록한다.
스탠포드 대학의 석박사 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졸업 후에는 지도교수와 긴밀한 협력연구를 수
행한다. 신림동에서는 수업을 소홀히 하며 고시촌에 상주하고 교수와 단절된 생활을 계속한다.
실리콘 밸리의 식당과 카페에는 벤처 사업가(Venturist)와 벤처 투자가(Venture Capitalist)들이
모여 온갖 정보를 교환한다. 신림동의 순대집과 노래방에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고시생들이
모여든다.
실리콘 밸리의 젊은이들은 가슴이 울렁거린다. 추진하고 있는 일이 성공하면 미래사회가 앞당
겨 전개되기 때문이다. 고시촌의 젊은이들은 가슴이 답답하다. 열 번만에 합격한 선배도 있고 단
번에 합격한 후배도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 밸리는 미래를 꿈꾸며 창조하는 사회이고, 신림동 고시촌은 과거를 들추어 가며 현재를
지키려는 사회이다.
실리콘 밸리는 금광을 찾아 서부로 모여들던 개척자의 후예들이 모인 곳이고, 신림동 고시촌은
고사와 법도를 중히 여기던 조선조 선비의 후예들이 모인 곳이다.
이것이 고시촌을 연상하며 벤처산업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 배경이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
각하는가? 우리 젊은이들도 미래를 향한 벤처산업에 투신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실리콘 밸리의 비결
벤처란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가 있으나 높은 위험부담 때문에 기존의 기업이 선뜻 착수하기 어
려운 사업을 말한다. 나서는 사람이 없으니, 성공을 자신하는 경우에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직
접 추진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국내 벤처 열풍의 몇 가지 걱정스러운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실리콘 밸리의 벤처 사업가
는 이론적 배경이 탄탄하다. 이들이 내는 아이디어는 석박사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얻는 경
우가 많다. 따라서 졸업 후에도 지도교수와 긴밀히 연락한다.
우리 대학에서 벤처 설명회가 열리면 700~800여 명의 참관자가 강당을 메운다. 이들 대부분은
대학 재학생이며 신입생들도 많다. 설명회를 듣고 이론적 기반 없이 곧 벤처를 시작하겠다고 마
음먹으면 어쩔 것인가?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한 벤처 사업가들은 대부분이 차고나 골방, 창고에서 연구를 시작하였다.
우리 주변에는 벤처 사업가들에게 대형 단지 내에 연구실을 제공하겠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연구실을 제공한다고 벤처산업이 육성되는 것은 아니다. 야심적인 계획을 세우고 벤처산업을 육
성하려던 동남아의 한 정부도 벤처단지를 만들어 놓았으나 실패하였다. 입주자들이 모두 떠났기
때문이다.
실리콘 밸리는 혼자의 힘으로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저금통을 뜯고 애인의 도움을 받으며, 부
모와 친척들의 주머니돈을 지원받는다. 꼭 성공할 것 같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 정부는 아이디
어가 미처 완성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지원을 해 주겠다고 한다. 아이디어가 없는 사람들도 덩
달아 지원을 요청할 것이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벤처 아이디어를 투자가에게만 보여 준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위
원회에서 심사한다. 정말로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여러분은 공모에 응할 것인가? 안 할 것이
다.
실리콘 밸리의 유명한 투자가들은 두꺼운 사업계획서를 싫어한다. 유명한 벤처 투자가들 중에
는 계획서를 5페이지 이내로 작성하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바쁘기 때문이다. 실적이 좋은 투
자가들이 선호하는 투자액은 200~300억원 규모이다. 연간 매출액이 1조원 정도는 되어야 관심을
보이며 흥분할 것이다. 투자여부 결정을 15분만에 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모험정신이 부족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모험사업을 심사한다.
벤처사업 축에 끼려면 미래형 사업이어야 하고 세계시장을 겨냥해야 한다. 부품의 국산화, 소프
트웨어의 한글화 등은 내수시장을 겨냥한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이다.
벤처 열풍이 일자, 대기업도 사내에 벤처클럽을 육성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기준으로는 위험
부담 때문에 채택하기 힘든 사업을 벤처라 하지 않았는가? 큰 성공을 거두기 힘들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과열되고 있는 벤처 열풍을 보면 걱정되는 일이 많다. 벤처마저도 겉으로 나타
난 실리콘 밸리를 모방하는 것은 아닌가? 학생들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는 소식도 걱정스럽다. 유
망하다니까 모인 것 아닌가? 자금을 지원한다니까 관심이 생긴 것은 아닌가? 모두 다 모이니 나
도 한 번 가 보자는 사람은 없는가?
정부가 벤처자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을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정부는 해외의 성공사례를
다시 한 번 조사해 보기 바란다. 실리콘 밸리는 정부가 지원을 중단한 이후에 성공하였다. 정부가
지원하여 성공한 벤처산업이 있는가? 젊은이들을 상대로 제2의 난지도연구소를 만드는 것은 아닌
가?
수업시간에 개발한 1조원 벤처사업
필자는 1997년 8월부터 대학원 학생들에게 벤처사업을 추진해 보자고 제안하였다. 첫 수업시간
에 대학원생들에게 말하기를 “학기 말에 학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 사업이 성공하면 배당금
도 받을 것이다”고 하였다. 대학원생들이 한 번 해 보자고 하였다. 필자가 대학교수가 된 이래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본 적이 없다.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벤처 아이디어가 나왔다. 학기말인 12월 말에는 시제품도 완성
되었다. 이 벤처제품은 상표 인지도가 높은 9개의 세계 일류기업과 사업화가 논의되고 있다. 그들
이 추정한 연간 매출액은 1조원이 넘는다.
이 사업이 성공한다면, 대학원생의 숙제를 채점하였던 박사과정 학생은 매년 수억 원의 배당금
을 받게 될 것이다. 그가 낸 아이디어가 많았기 때문이다. 숙제를 뒤늦게 제출하곤 하던 석사과정
신입생도 매년 1억원이 넘는 배당금을 받게 된다. 회로설계도의 작성을 돕고 부품을 구하러 청계
천을 뒤지던 대학 2학년생들도 수천만 원의 배당을 기대하고 있다. 디자인을 담당한 미대 학생도
작업수당을 적게 받을 테니, 성공하면 배당금을 달라고 하였다. 새로 입학한 대학원생들도 새로운
벤처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벤처 네트워크-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학생들과 개발을 추진하면서 벤처의 성공요인은 무엇인가를 생각하여 보았다. 필자는 공장장
출신 동창생에게 기술적 타당성을 물어 보았고, 해외에 있는 졸업생에게 정보수집을 의뢰하였다.
실리콘 밸리에 있는 벤처 투자가 친구에게는 유사한 아이디어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를 물어보았
다. 들어 본 적이 있다고 하였으면 당장 그만두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절실하게 느꼈던 점은,
벤처사업이 성공하려면 각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세계적인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다.
옛 속담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것이 있다. 벤처 아이디어는 구슬에 해당된
다. 그러나 구슬 자체가 큰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고, 여러 구슬이 조화를 이루며 연결되어 목걸
이가 되었을 때 비로소 큰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벤처는 400m 계주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그가 기여할 수 있는 부
분이 한정되어 있다. 만일 이 사람이 모든 일을 혼자 하려고 한다면 그 아이디어는 죽을 것이다.
즉 400m 계주의 한 주자는 그 다음 주자에게 재빨리 바톤을 넘겨주어야 한다. 벤처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회로설계 전문가에게, 판매기획 전문가에게 그 개념을 이전해야 한다. 기술정보와 해외
투자 동향의 수집도 전문가와 협력하여야 한다. 시제품이 완성되면, 산업 디자이너와 광고기획자
의 조언도 필요하다. 성공 후 보상 분배를 이행하기 위하여 변호사도 참여해야 한다. 400m 계주
가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한국형 벤처모델의 필요성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필자는 한국형 벤처모델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의 첫 단계로
서 전국의 대학, 전문대학의 모든 교수와 학생들은 `벤처 네트워크(Frontier Network)`를 만들어
야 한다. 이 네트워크는 국내외 대학은 물론이거니와 해외 벤처 투자가들과도 교류하여야 할 것
이다.
또한 대학 네트워크는 `중소기업 모임(New Paradigm Club)`과도 협력을 도모하여야 할 것이
다. 공정설비의 활용, 부품의 수배, 시제품 제작과정에서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생들도 중소기업인들에게 핵심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 네트워크는 미래사업 분야를 연구하는 `가상연구소(Virtual Institute)`와 교류하여야 한다.
가상연구소는 대학생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요구되는 분야를 알려 줄 것이다.
고목나무의 소생방안인 `두 항아리 시스템(Two Pot System)`과도 관련을 맺어야 한다. 작은
항아리(Pot 2)는 아이디어의 구현과정에서 새로운 도전대상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리콘 밸리의 투자가들도 이러한 구상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취지가 좋아서가 아니다. 네트워
크가 확대하면 그들의 사업도 번창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리콘 밸리를 넘어서-난장터
과거시험장에 모였던 전국의 선비들은 예상문제와 답안내용을 토론하느라 시끌벅적하였다. 온
갖 기발한 착생과 재치 있는 의견이 교환되었던 난장터인 것이다.
한국형 벤처모델은 난장터의 자유분방한 토론정신을 본받아야 한다. 난장터를 구상하는 우리의
3대 원칙은 무엇인가?
첫째, 실리콘 밸리를 넘어 그 이후의 시대를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실리콘 밸리도 머지않
아 큰 장벽에 부딪힐 것이다. 실리콘 밸리는 정보인프라의 구축과 함께 성장하였다. 인프라가 구
축되면서 실리콘 밸리도 사양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둘째, 난장터는 실리콘 밸리 이후의 패러다임을 제시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중소기업 모임,
두 항아리 시스템, 가상연구소, 세계로 뻗어갈 전국 대학 네트워크가 입주할 것이다. 난장터의 발
전목표는 무엇인가?
셋째, 야성적인 민족성과 민족 고유의 창의성이 난장터에서 어우러지면서 동북아시아 경제권을
새로이 구축하여야 한다.
이제 난장터의 중앙에 서서 국가의 새로운 비전을 생각하여야 한다.
국가의 비전
- 새로운 비전은 자부심의 부활에서 -
매슬로우(Maslow)라는 학자는 인간의 동기를 유발시키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은 배고픈 사람에
게 허기를 모면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1960년대에 우리 나라가 정한 국가적 목표는 “우
리도 한번 잘 살아 보자”라는 한맺힌 구호였다. 보릿고개에 한이 맺혔던 것이다. 배고픔이 가신
후에 국가의 비전(Vision)은 무엇이었나? 경제발전을 통해 선진국이 되는 것이었다. 소득만 증대
되면 선진국이 되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비전치고는 유치했다.
돈에 집착하는 사람은 가치관이 단순하다. 무슨 수모를 당하더라도 돈을 벌고자 할 것이다. 자
존심도 자부심도 없을 것이고 파렴치한 행동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경제발전에 주력하는 정부정책도 단순하다. 부정부패와 먹이사슬을 묵인하는 한이 있더라도 경
제논리에 집착할 것이다. 국가의 자존심도 자부심도 효율의 구호 아래 뒷전으로 밀리고, 국제사회
에서의 신의회복도 다음으로 미뤄질 것이다.
돈 버는 것에 집착하였던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잃은 것이 많음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법이
다. 경제발전에 얽매였던 국가는 그간의 누적된 문제가 심각함을 뒤늦게 깨닫고 당황하기 마련이
다.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경제발전을 이루고자 하였고, 그와 똑같은 이유로 경제가 파탄에 이르렀
다. 잘못된 비전이 국가의 위기를 부른 것이다.
국가위기의 해부도
IMF는 `조상의 얼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감지할 수 없었던 위기
를 알려 준 것이 IMF이다. IMF가 없었다면 여러분들의 연말연시는 얼마나 분주하였을 것인가?
가정에도 여러 가지 위기가 닥치기 마련이다. 때아닌 천재지변으로 가족을 잃는 경우도 있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식구들이 크게 다치는 경우도 있으며, 부모와 자식이 중병에 걸려 온 가족이
가슴아파하는 경우도 있다. 경제문제도 있을 것이다. 이중에서 어떤 문제가 가장 풀기 쉬운가? 경
제문제일 것이다. 더구나 문제를 자초한 원인이 식구들의 반목과 분수를 잊은 행동, 낭비와 허세
때문이라면 이는 자업자득아닌가?
“꽃들은 어디로 갔나”에서는 우리 산업의 역군이었던 기업인들이 한때의 성장에 안주하므로
써 사양의 길로 접어든 고질적인 병폐를 지적하였다. 이러한 병폐가 지속된다면, 현재 우리 산업
구조를 지탱하고 있는 주요 산업들도 그 전철을 밟게 될 것임을 경고하였다.
“현자의 행진”은 우리 역사의 업보가 반복되는 현상으로 해석하였다. 국가발전이 정체되고
표류하였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세속에 물든 현자들의 행진이었다. 마치 연극무대에 등장한 배우
가 자기의 역할이 끝났음에도 무대에서 떠나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이 칠전팔기의 현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역할이 끝난 배우가 퇴장하지 않으면 다음 막이 오를 수 없듯이 국가
도 과거에 머물며 정체되어 온 것이다.
`현자의 행진`과 `화전민 마을`이 알려 준 파국의 행적은 무엇인가? 화전민 마을의 현자와 잡화
상은 공동으로 모의하여 사업을 크게 벌여 왔다. 불성실한 경우도 많았고 방만한 운영도 목격되
었으며, 그로 인한 유실도 많았다. 이제 온 마을이 파산위기에 당면하였다. 마을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은행장 출신의 한 선배는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로써 `선택의 자유에 따르는 결과에 대
한 책임`을 강조하였다. 현자와 잡화상이 초래한 위기에 대한 최우선의 조치는 그들이 책임지는
것이다. 선택의 자유를 즐긴 사람이 결과의 책임을 지는 것이다. 가장 큰 말이 가장 무거운 짐을
져야 할 것 아닌가? 미처 다하지 못한 책임은 마을의 명예를 위하여 우리들이 마무리지을 것이
다. 만일 위기가 생길 때마다 온 마을사람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는 억지가 계속된다면, 100년을
주기로 찾아오는 우리 역사의 업보는 단절되지 않을 것이다.
“제조업의 현주소”와 “꽃마을 이야기”에서는 지도계층이 솔선수범의 정신을 외면하였을 때
만연되는 중간계층의 무사안일을 지적하였다. “모방의 후유증”은 남의 노력에 편승하는 습관이
오래 지속되었을 때 나타나는 병세이다. 모방으로 성장한 산업은 마땅히 창의적 산업으로 변신을
서둘렀어야 함에도 더욱 더 모방에 심취하는 중독증세를 보여 왔다. 마치 몸 안의 독소가 온 몸
으로 퍼져 급기야는 뇌에까지 도달한 격이다.
“가치혼돈의 말기증세”는 혼미한 정신으로 내뱉는 “가격경쟁력만이 살 길이다”라는 구호의
허상을 파헤친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이유”에서는 우리 산업의 위기가 마치 도시
가스와 캐시밀론 이불에 밀려 사라지는 운명이었던 구공탄집과 솜틀집의 고민으로 단언하였다.
그러므로 산업경쟁력 회복을 위한 모든 구상은 패러다임의 대전환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변신을 미루어 정체되어 온 우리 산업의 구조는 `고목나무`에 비유되었다. 큰 고목나무는 살려
야 한다. 세간의 동정론도 이루어질 수 없는 꿈으로 남을 것이다. 회생의 노력을 소홀히 하는 고
목나무는 여하한 도움의 손길이 뻗친다 하더라도 살아 남을 수 없을 것이다. 설사 회생을 위하여
적극적인 노력을 펼친다 하더라도 고목나무의 소생에는 건강한 묘목의 접목이 필수적임을 강조하
였다. 이의 대책으로서 두 항아리 시스템이 제시되었다.
“국제화의 과제” “민족성의 재발견” “창의적 사고”는 국가위기 극복의 기반임을 명시하
였다. 국제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별 생각 없이 자행되는 나쁜 습관들이다. 우
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국제사회에서는 협력대상으로서의 자질을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될 것이다.
진정한 국제화는 서로 주고받을 것이 있을 때 이루어진다. 줄 것은 없으면서 받으려고만 하고, 사
지는 않으면서 팔려고만 한다면, 이는 국제구걸이라고 정의하였다.
“민족성의 재발견”에서는 스스로를 비관하고 자조적으로 비하하면서 남의 것만을 동경하는
우리 주변의 사고방식에 대해 경고하였다. 우리 민족성을 진지하게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
는가? 민족성을 간과하며 추진하는 국가의 모든 노력은 마치 경기종목을 잘못 선택하고, 코치를
잘못 선정하고, 포지션이 뒤바뀐 채 국제경기에 출전하는 셈이다.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창의적 사고”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모방에 길들여진 결과로 파국으로 치달아온 국내산업의
관행을 비판하였다. 우리 민족은 창의력이 있으며, 그 창의력이 점화된다면 당면한 국가위기는 전
례 없는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였다.
세련된 국제화 감각과 다시 찾은 민족성과 창의력의 점화로 이루어질 대역전극은 한국형 벤처
모델을 구축하므로써 활발히 전개될 수 있다. 한국형 벤처모델의 구성요소로서 전극 대학 네트워
크(Frontier Network), 중소기업 모임(New Paradigm Club), 두 항아리 시스템(Two Pot
System), 가상연구소(Virtual Institute)가 구비되어야 함을 제안하였다.
국가비전의 구성요소
이제 새로운 국가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의 비전은 자부심의 부활에서 찾아야 한다. 자부
심의 부활은 몇 가지 철칙을 준수하므로써 이룩될 수 있다.
첫째, 정부는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사회정의와 도덕성을 되찾아야 한다. 기업은 소모적인 자존
심 경쟁을 중단하고 무한경쟁시대에 걸맞은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하여야 한다.
둘째, 국가경영의 고유 철학을 확립하고 역사의식, 고유사상과 문화예술의 창출로부터 산업발전
의 기틀을 마련하여야 한다. 반성하고 겸손하여야 하며, 공생과 호혜를 실행하는 자세를 확고히
하여야 한다.
셋째, 창조를 국가발전의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야 한다. 창조하여야 교류할 수 있으며, 교류하
여야 기여할 수 있다.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가 증가하면서 우리를 흠모하는 주변국가들이 늘어날
것이다. 선진국 진입이 구현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지도자는 반복되는 역사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는 어떻게
끊는가? 솔선궁행하여야 한다. 끝없는 책임과 단장의 고뇌를 자임하여야 한다. 불굴의 집념을 과
시하며 국민의 힘을 북돋워야 한다. 기업의 경영자는 신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선진국보다 먼저
개발하여야 한다. 선진국보다 좋게 만들어야 한다. 선진국보다 싸게 팔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민족 고유의 신바람이 발동할 것이다. 신바람은 새로운 신바람을 낳는다.
국가비전의 요체는 무엇인가? 정의, 도덕성, 공정으로 맑은 사회를 이루고, 허세와 과장의 습성
을 버리고 겸손하고 남을 생각하는 기풍을 진작시키며, 창조하므로써 국제사회에 기여하고, 지도
자의 솔선궁행으로 전 국민의 신바람을 일으켜 한국과 한국인의 자부심을 부활시켜야 한다. 이러
한 자부심의 부활은 전대미문의 민족의 저력을 과시하게 될 것이다.
국가의 비전은 어떻게 달성하는가? 활동의 터전은 어디로 잡을 것인가?
동북아 경제권의 난장터
세계 인구는 58억명을 넘었고 아시아권 인구는 33억명이다. 중국, 일본, 한국이 포진한 동북아
시아는 15억명에 육박하고 있다. 동남아를 연결하는 화교 네트워크는 6,000만명에 접근하고 있다.
동북아시아 경제권은 머지않은 장래에 세계시장의 25%, 아시아 시장의 45%로 부상할 것이다. 우
리의 국가적 비전은 동북아시아 경제권 결성에서 웅비를 시작하여야 한다.
인구 4,600만명의 한국이 12억 4,000만명의 중국, 1억 3,000만명의 일본과 어떻게 대등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인가? 실리콘 밸리 이후의 시대를 겨냥한 새로운 패러다임과 긴 잠에서 깨어나
발화된 우리의 창의성, 야성의 돌파력을 자랑하는 민족성으로 한국형 벤처모델을 구상하는 것이
다.
이들에게 기여할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의 창의력과 우리의 비전이다. 일본의 산업구조는 새시
대를 대비한 재도약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창의력이 필요한 것이다. 중국산업의 성장곡선은 미
구에 우리가 경험한 바 있는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우리가 좌절했던 경험은 중국의 대두와 일본
의 재도약을 위한 발전의 노하우(know-how)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비전은 이들에게
도 필요한 것이다.
잘 될 수 있겠는가? 별 문제 없을 것이다. 미래사회의 새로운 도전과 동북아 경제권의 비상을
통한 지구촌 경제의 환희에 찬 파노라마를 상상하는 동북아의 젊은이들은 국적과 인구와 소득규
모를 따지지 않을 것이다. 순수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창의력, 일본의 기술, 중국의 동남아 유통망이 어우러지면 동북아 경제권은 아시아 경제
권으로 확대될 것이다. 이제 난장터의 혼을 이어받은 한국형 벤처모델의 출사표를 던져야 한다.
1998년에는 중소기업 모임, 두 항아리 시스템, 가상연구소, 전국 대학 네트워크 구성이 완결되어
야 한다. 1999년은 동북아 경제권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완성하는 해이다.
동북아 경제권으로 발진하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소요자원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카드인 야성의 돌파력과 고유의 창의력이다.
그렇다면 현실의 문제인 IMF 위기는 언제 극복될 수 있을 것인가? 부채를 받아내려는 채권자
는 부흥의 조짐을 보일 때 채권행사의 전략을 바꾸는 법이다.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서면, 그들의 채권행사는 우리의 발전전략에 서둘러 합류할 것이다. 외채를 채 갚기도 전에 외채
위기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다.
이것이 난장터의 중앙에 서서 바라본 2000년 한국의 모습이다.
미래로 산책: 어머니와 어린이를 위한 코스
부록1 : 하이터치란 무엇인가?
- 비싸도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드는 비결 -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신제품이 세계시장에 소개되면, 다른 기업들도 곧 유사한 제품을 만들어
치열한 가격경쟁을 벌이기 마련이다. 제일 먼저 제품을 만든 기업은 그 제품을 알아주는 소비자
의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후발업체보다 높은 가격을 받는다. 예를 들어, 워크맨을 세계 최초로 개
발한 소니(Sony)사는 비슷한 성능을 가진 타사의 제품보다 항상 높은 가격을 받고 있다.
우리도 고급제품을 만들자
우리 기업들은 뒤늦게 상품개발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세계시장에서 유명 브랜드보다 훨
씬 싸게 공급하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된다면 한국제품은 세계 어느 시장에서나 가
격이 낮은 아류 제품이라는 인상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악순환인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이
와 같은 악순환에 고생하고 있는 회사의 최고 경영자라면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비록 뒤늦게
소개되었다 하더라도 먼저 개발한 회사의 제품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받는 방법은 없는가?”
산학협동 연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기업들이 이와 같은 문제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게 되
었다. 마치 장기를 둘 때 한 수가 밀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
고자 1980년경부터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약 2년 간의 연구 끝에 후발업체
라고 하더라도 선진업체보다 더 높은 시장가격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개발하였다. 이것
을 하이터치 혹은 고부가가치 제품전략이라고 한다. 남보다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제품만을
개발하겠다는 뜻이다.
하이터치 제품 설계의 원칙
소비자들은 시장에 제일 먼저 소개된 회사의 상표를 가장 강하게 기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워
크맨 하면 뭐니뭐니 해도 소니이며 액정화면이 붙은 캠코더는 아무래도 샤프가 제일 낫게 보인
다. 이와 같은 선발의 이점 때문에 각 기업이 앞을 다투어 신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우리 산업의 경우 기술수준에 한계가 있으므로 당분간 워크맨, 캠코더같이 세계 최초의 신제품
을 시장에 내놓을 확률은 높지 않다. 그러나 비록 뒤늦게 시장에 소개되었다 하더라도 이들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표> 하이터치 제품개발의 특징
1. 개발 환경: 일반적 제품개발
가. 개발 개념: 공학적 접근
나. 개발 범위: 제품
다. 개발 주안점: 성능 개선, 비용 절감
라. 중점 목표: 가격경쟁력 보급률
마. 개발 주체: 개발팀 주도
2. 개발 환경: 하이터치 제품개발
가. 개발 개념: 소비자 관점 접근
나. 개발 범위: 소비자 관점 접근제품, 제품-소비자, 제품-소비자-작업, 제품-소비자-작업-환경
다. 개발 주안점: 잠재욕구 개발, 소비자 편의성, 고부가가치
라. 중점 목표: 가격결정권, 신규/대체수요 촉진, 잠재수요 개발, 가치개념 전환
마. 개발 주체: 소비자 마케팅, 기획 주도, 개발팀 협력
어떤 경우에 선발기업의 신제품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가? 앞서 나온 제품보다 기능이
대폭 확장되었거나 쓰기가 매우 편하든지, 디자인이 더 멋있거나 또는 사용방법이 쉬운 경우에는
먼저 나온 제품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받아도 잘 팔릴 것이다. 이런 것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개
발전략을 하이터치(High Touch), 즉 많은 손질을 가하는 전략이라고 명명하였다.
21세기 미래상품으로 선정된 하이터치 제품
하이터치는 인간의 특성을 공학적으로 연구하고, 이로부터 앞서 나온 제품보다 더 좋은 것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새로운 공학분야이다. 이 연구는 1980년부터 시작되었
는데, 1991년에 뉴욕 타임스에 인정받아 크게 보도된 이후로 이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기법이
다. 최근에는 실리콘 밸리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강연을 요청해 오고 있다.
우리 민족의 창의성이 대단한 수준이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면서 여러분들의 창의적 재능도 역
시 그러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체계적으로 이용하는 하이터치
제품의 개발이 얼마나 쉬운지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와 비슷한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대단히 창의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별것 아닌 생각들을 보고 해
외의 신문과 TV 등에서 대단한 미래상품 개발방법이라고 떠들썩하지 않았는가?
하이터치는 매우 쉽다.
밤늦게 TV를 시청하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던 경우를 여러 번 경험하였을 것이다. 이때 여러분
은 어떤 생각을 하는가? TV방송이 끝나는 시간쯤 되었을 때 `내가 TV를 끄지 않더라도 자동으
로 꺼지는 TV가 나오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훌륭한 하이터치 제품을 개발할 자격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밤늦게 라디
오를 청취할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새벽 2시가 지나도 내가 라디오를 끄지 않으면
저절로 꺼지는 라디오가 나왔으면 좋겠다`든지, 밤 12시가 넘으면 `자동으로 에어컨이 꺼지면 좋
겠다`는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나올 것이다. 이런 것들이 모두 선진국의 신제품보다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창의적인 생각이다.
세계 헤비급 권투선수권 타이틀전을 보면 초반 1,2회만에 KO승을 거두는 선수들이 많다. 여러
분이 그 시합을 꼭 보고자 하였는데,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가 10분이 지난 후에 서둘러 TV를
켰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시합이 끝나서 관중들이 일어서는 장면을 보고 얼마나 아
쉬워했는가? 이런 경우에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2시에 권투시합을 시작하니, 그 시
간이 되면 혹시 내가 잊고 있더라도 자동으로 TV가 켜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9시까지는 KBS를 보다가 9시부터 10시 30분까지는 SBS를 보고, 그
후에는 12시까지 MBC를 보고 자동으로 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모두 하이터치 제품의 설계에 응용될 수 있다.
비록 선진국 일류회사보다 우리가 뒤늦게 개발하였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다른 회사의 TV에는
없는 기능을 10개쯤 붙인다고 생각해 보자. 세계시장 소비자들은 평소의 잠재적 욕구를 반영한
이 제품을 더 비싼 값을 주고라도 사려고 할 것이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는 어떤가?
하이터치는 이런 인간의 잠재적 욕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므로써 다른 일류 선진기업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찾아내어 제품에 반영하는 것을 기본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분야이다. 그 동안 개
발된 사례 중에는 1991년 뉴욕 타임스에 의해 21세기형 미래 제품으로 선정된 제품이 3개 있다.
인공지능형 TV
첫번째 제품은 인공지능형 TV이다. TV를 보다가 피곤해서 옆으로 누우면 시청하기가 불편할
것이다. 이 인공지능 TV는 리모컨만 눌러 주면 여러분이 주워 있는 각도에 따라 화면도 눕는다.
색상도 자동으로 조절하여 준다. 야외에서 지행되는 스포츠 중계를 할 때에는 원색을 강조하므로
써 색깔의 화려함을 더해 주고, 실내장면이 많은 연속극을 볼 때에는 부드러운 색감을 강조하여
준다. 사람의 얼굴이 자주 나오는 뉴스시간에는 얼굴색을 가장 자연스럽게 나타낼 수 있도록 특
수 전자회로가 작동된다.
또한 이 TV는 한쪽 소파에 앉았다가 다른 쪽 소파에 가서 볼 수도 있다. 마치 사람이 고개를
돌리듯이 화면방향을 바꿔 주기 때문이다. TV 본체 밑에는 로보트 장치가 있어서, TV시청이 끝
나면 자기 혼자 방 한쪽 구석으로 이동해 간다. 시청시간을 알아서 자동으로 켜지고, 사전에 선정
한 채널의 프로그램으로 이동해 주며, 정해진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꺼진다.
식구들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가 그날 아침이 되면 스스로 알아서 켜지고, 축하노래를 불러 준
다음 스스로 꺼진다. 먼 곳에 사는 할아버지나 할머니 생신이 되면 축하전화를 해 드리라고 알려
준다. 약속이 있는 날에는 약속시간 2시간 전에 저절로 켜져서 누구를 만나러 떠나라고 경고해
준다. 뉴욕 타임스는 21세기에 크게 유행할 미래형 제품이라고 대서특필해 주었다.
혼자 돌아다니는 진공청소기
자주형 진공청소기(Remocon Vacuum Cleaner)도 미래 상품으로 선정되었다. 이 진공청소기는
처음 사용할 때 밀고 다니면서 방 모양과 크기만 알려 주면, 그 후에는 스스로 방을 돌아다니며
청소할 수 있다. 리모콘으로 조정만 하면 된다. 이 제품이 미래상품으로 선정된 후 뉴욕 타임스의
기자가 짓궂게 물었다. “이렇게 모든 것을 기계가 해 주면 사람이 할 일이 없어지지 않는가?”
필자는 대답하였다. “왜 하필 청소하는 데 힘을 쓰는가? 청소하는 데 쓰는 힘을 아껴 두었다가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데 쓰면 되지 않는가?”
음성을 알아듣는 전자렌지
세 번째 제품은 식구들의 음성을 구별할 줄 아는 전자렌지였다. 전자렌지(Voice-Activated
Microwave Oven)를 사용해 본 분은 불편한 점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전자렌지에 데
울 그릇을 들고 앞으로 가면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릇을 내려놓고, 전자렌지 문을
열고, 다시 그릇을 들어 그 안에 넣은 다음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여러분들도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릇을 들고 앞에 가서 열어~ 하고 말하면 문이 열리
고, 몸을 숙이지 않고도 그릇을 놓기 쉽도록 받침대가 앞으로 자동적으로 나오는 전자렌지가 있
다면 참 좋겠다.` 이 생각을 응용하여 목소리로 “열어” “닫어” 하고 명령하면 알아듣는 전자
렌지를 개발하였다. 식구들 목소리를 알아듣기 때문에 옆집에서 온 친구는 아무리 이야기해도 움
직이지 않는다. 주인을 알아보니 얼마나 기특한가?
이 전자렌지는 조리방법도 음성으로 알려 준다. 처음 음식을 만들 때는 요리책을 보며 만들기
마련이다. 음식을 만들면서 책을 들여다보고 젖은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수고를 피하기 위하여
음성으로 알려 주는 장치를 첨가하였다.
또한 이 전자렌지는 같은 음식을 조리하더라도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조리법을 달리하여 준다.
어떤 사람은 약간 덜 익은 듯한 라면을 좋아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충분히 익힌 후에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소비자의 취향을 이 전자렌지는 일일이 기억하고 있다가
목소리를 듣고 입맛대로 조리에 반영한다.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차세대 TV
이제까지 설명한 내용을 보면, 여러분들은 하이터치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할머니부터 어린이까지 누구나 하이터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이와 비
슷한 생각을 응용하여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제품이 30여 종에 이르고 있다.
이제 여러분에게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 하이터치 제품의 개발 내용을 알려 주고자 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면 잘 적어 두었다가 벤처 사업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표> 하이터치-추세분석
1. 오디오: 모노 음향-스테레오 음향-고출력 증폭기-휴대형 오디오-입체 음향-스피커-이어폰-
오디오와 결합-음성편지, 인터넷, 무선통신
2. 텔레비전: 흑백 텔레비전-컬러 텔레비전-대형 화면-액정 텔레비전-3차원 텔레비전-스크린-
안경-?-??
표(`하이터치-추세분석`)에 나타난 것처럼 오디오 제품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는 모노사운드였
다. TV도 흑백이었다. 모노사운드는 스테레오로 발전하였고, 흑백 TV는 칼라 TV로 개선되었다.
스테레오가 나온 후에는 출력이 좋은 앰프가 소개되었고,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TV는 스크린이
점점 더 커졌다.
소리가 커진 이후 더이상 개선할 대상이 쉽게 눈의 띄지 않자 제품개발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
번에는 들고 다니며 들을 수 있는 워크맨이 개발되었다. TV도 마찬가지로 액정이 달린 소형 TV
가 나와 야구장에 가서 운동경기를 관전하며 TV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한 동안 발전이 없던 오
디오는 서라운드 음향회로가 개발되어 현장에서 실제 듣는 소리와 비슷한 입체감 있는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입체감 있는 소리가 나왔으니, TV는 이제 어떤 발전을 이룰 것인가? 아직 나오
지 않은 신제품 아이디어 아닌가?
TV도 평면화면에서 입체화면으로 변할 것 아닌가? 머지않아 3차원 TV(3-D TV)가 나올 것이
다. 이제 TV에 관한 인간의 잠재적 욕구를 파악한 셈이다. 전자공학자를 찾아가서 좋은 아이디어
가 생겼으니 벤처사업을 하자고 제안하면 되는 것이다.
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스피커가 점점 커지다가 귀에 꽂고 음악을 듣는 이어폰이
나왔다. TV의 경우는 어떻게 될 것인가? 스크린이 점점 커지다가 안경같이 생긴 화면을 쓰면 될
것 아닌가? 신제품 개발도 알고 보면 별것 아닌 것이다.
아직까지 소개조차 되지 않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자. 요즘 오디오 제품은 오디오와
비디오를 함께 조절하는 종합 엠프가 유행이다. TV도 가까운 장래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것을 생각해 낼 수 있다면, 여러분은 세계 최초의 신제품을 만
들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이제 실력 있는 전자회로 설계 전문가만 찾아내면 되는 것이다. 얼
마나 쉬운가? 좋은 생각만 떠오르면 3,4년 안에 세계적인 억만장자가 될수 있지 않은가?
하이터치로 가격결정권을 갖자
필자는 이와 같은 생각을 30년 가까이 계속하면서 수많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다. 자전거 안
장의 불편함도 개선하였고, 식구 중에 누가 탔는지 스스로 알아차리고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컴
퓨터가 달린 운전석도 개발하였다. 1995년에는 절벽을 등반하거나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양 손을 사용하지 않고도 좋은 풍경을 찍을 수 있는 혁신적인 캠코더도 개발하였다.
전화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선진국에서도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기능을 여러분들도 단시간
내에 10개쯤은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장난전화가 오면 무서운 목소리로
주의를 주는 반도체 부품을 붙이면 어떨까? 늦은 밤이 되면 전화를 거는 사람이 누구인지 미리
알려 주는 전화기는 만들 수 없을까?
컴퓨터 키보드도 오래 치면 손목이 아프다. 팔꿈치와 손목의 모양을 해부학적으로 분석하므로
써 아무리 오래 쳐도 손목이 아프지 않은 키보드도 개발하였다. 컴퓨터도 가정에서 어린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쉽게 사용하려면 개선되어야 할 점이 1,000가지도 넘는다고 생각한다. 요즈
음 보급이 확산되고 있는 인터넷도 누구나 쓸 수 있도록 하려면 더욱더 개선되어야 한다. 선진국
에서 신제품이 나오는 대로 이렇게 개선해 버리면, 나중에는 신제품을 개발하기 전에 우리에게
물어올 것이다. 손볼 데가 있으면 가르쳐 달라고. 그때 로열티를 받으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
이터치에서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카운터 펀치(Counter Punch) 전법이다.
1996년에 만든 정수기도 이와 같은 간단한 아이디어를 추가했더니 외국제품보다 훨씬 더 좋게
만들 수 있었고, 높은 가격을 받으며 수출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부엌에 있던 칼도 얼마든지 개
선할 수 있고, 볼펜도 지금보다 훨씬 더 쓰기 쉽고 편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 1997년 8월부터 수
업을 진행하면서 대학원생들과 같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신제품도 따지고 보면 매우 간단한 아이
디어를 모아서 예쁜 목걸이같이 조합하여 놓은 것이다.
오디오의 이퀄라이저 기능은 TV의 화질 이퀄라이저 기능으로 응용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비
디오의 예약녹화 기능은 TV와 오디오에 응용되어 각각 예약시청 기능, 예약청취 기능으로 새롭
게 적용될 수 있다.
창의성을 개발하자
이제부터 무슨 제품이든 간에 더욱더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보아야 한다. 선진국의 고급
제품보다 더 비싸게 받을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이와 같은 생각을 반복하면 이제까지 이 세상
에 없는 신제품도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반도체 회사와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 선진국
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아이디어를 1,000개쯤 생각할 수 있었다. 1,000개의 구슬 같은 아이디
어들을 만든 후에 6개의 구슬(아이디어)을 모아서 목걸이를 만들 듯이 신제품을 개발하였다. 이
신제품은 1품 20조원짜리 제품이다.
여러분들도 관심 있는 제품을 눈여겨보고 생각을 계속하면, 세계에서 가장 좋고, 가장 독특하
고, 가장 모양이 예쁘고, 가장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신제품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무슨 제품부터 시작할지 정해 보자.
미래로 산책: 청소년을 위한 코스
벤처란 무엇인가?
- 변화와 욕망의 경주 -
주위분들로부터 도대체 벤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벤처를 영어사전식으로 표현
하면 모험기업이라고 번역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 모험기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올 것이
다.
벤처란 무엇인가?
벤처란 남달리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데, 기업이나 주위사람들이 쉽게 이해를 못 하고 믿
어 주지도 않아서 부득이 아이디어를 낸 본인이 직접 추진하는 사업을 말한다. 왜 모험적이라고
하는가?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일반회사에서는 채택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꼭 성공할
것만 같아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에, 취직을 보류하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
는 것이다.
그러나 벤처사업은 사회변혁, 기술혁명, 시장의 반응 등 복잡한 주위여건이 바람직한 조화를 이
루며 아이디어와 맞아 떨어져야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도가 매우 높다.
벤처사업을 추진하는 사람의 가장 큰 욕망은 보편타당성이 낮은 기발한 생각을 독창적인 방법
으로 추진하여 성공시키는 데 있다. 벤처 사업가는 자아구현의 욕망이 매우 강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욕심도 많은 사람들이다. 위험부담이 높긴 하지만, 일단 성공하면 세계시장에서 막
대한 수입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벤처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사회변혁을 추구하며,
이로부터 일확천금을 얻는 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실리콘 밸리를 수차 방문하면서 그곳 벤처 전문가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벤처에 관해
가장 궁금하였던 점은, 왜 이렇게 벤처가 부상하게 되었는지 그 사회적 배경이었다.
벤처는 산업혁명이 종료되고 정보혁명이 전개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에 농업혁명이 완성되고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을 때도 이와 비슷한 변혁이 있었을 것
이다.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시절의 산업의 변환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요즘 부상되고 있는 벤처에
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벤처산업 탄생의 배경-정보혁명
농업혁명이 성숙되었던 시절에는 성공한 사업가의 상징은 거대한 목장과 농장, 넓게 펼쳐진 목
화밭 이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관심도 어떻게 하면 가축의 수를 늘리고 밀과 옥수수, 목화의
수확량을 올리느냐에 있었을 것이다.
농업혁명이 완료된 후에 새로이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생소한 이야기들을 듣기 시
작하였을 것이다. 미래 산업사회를 예언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증기기관
의 중요성을 자꾸 강조하였다. 큰 농장을 운영하고 있던 대지주는 새로운 사업에 관심을 갖고 증
기기관 전문가를 만나 보았을 것이다. 신규사업의 타당성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농장주가 만나 본 발명가는 허름한 창고에서 쇠주전자에 물을 끊인 후, 거기서 나오는 증기를
가리키며 이것이 가장 중요한 혁명이라고 열변을 토하였을 것이다. 대농장주가 어느 정도 이해하
였을 것인가?
그는 공장이란 곳도 방문하였을 것이다. 농장에 있는 대규모 대장간에서 모든 일상용품을 자가
조달하던 그의 눈에는 작고 허름한 공장으로 출근하며 일하는 작업자들이 애처롭게 보였을 것이
다. 그의 대장간만도 못하지 않은가? 그러나 증기기관과 허름해 보이는 공장이 합쳐지면서 동력
을 이용한 새로운 생산방식이 탄생하였던 것이다.
요즈음 우리가 접하고 있는 변화도 산업혁명 초기의 양상(樣相)과 매우 유사하다고 보아야 한
다. 제조업시대에는 대규모의 양산공장과 수만 명의 작업자, 각종 설비를 이용하여 대량생산을 하
였다. 본사의 사옥도 큰 빌딩이고 관리사원도 수천 명을 넘는 경우가 많다.
옛날에 대농장주를 찾아왔던 증기기관 전문가와 마찬가지로 대기업 회장에게 정보 전문가가 방
문할 것이다. 정보 전문가는 회장에게 미래에는 30층 고층사옥보다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잘 만드
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할 것이다. 컴퓨터, 인터넷, 소프트웨어 등은 제조업에 익숙한 사람에게
는 생소한 개념이다. 옛날 대농장주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공장을 손수 만들어 키운 회장은 이해
하기 힘들지 모른다.
마치 농장보다 증기기관의 활용방안이 더 중요한 변화를 이루어 왔던 것처럼 대규모 양산설비
보다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 가치를 발휘할 것이라는 생각에 투철한 사람들이 벌이는 미래형 산업
이 벤처이다.
벤처-두 종류의 동물이 시작한다.
벤처사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윌리엄 휴렛과 데이비드팩커스를 드는 경우가 많다. 스탠포드 대
학을 다니던 두 학생은 지도교수의 성원 아래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성공시켜 오늘날의 휴렛팩커
드(Hewlette-Packard:HP)사를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도 초기 시절부터 협력하
여 애플컴퓨터를 만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와 폴 알렌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동
으로 추구한 아이디어를 사업화하여 성공시켰다.
성공한 벤처 사업가의 사례를 보면,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사업화에 성공한 경우가 많다. 둘
의 성격은 서로 보완적이며 특기도 다르다. 애플컴퓨터의 스티브 잡스는 실력도 대단하였지만 몽
상가였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스티브 잡스가 전개하는 꿈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였다. 마이크로소
프트사의 빌 게이츠도 몽상가이다. 빌 게이츠가 전개하는 상상의 아이디어는 폴 알렌의 컴퓨터
실력으로 현실화되곤 하였다.
남녀가 데이트를 하던 중에 생각한 아이디어가 큰 사업으로 성공한 경우도 있다. 새로운 매니
큐어로 큰 성공을 거둔 한 회사는 남자친구에게 매니큐어 색상이 단조롭다고 불평한 것이 창업으
로 연결되었다. 이들 남녀는 전공학과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여 직접 매니큐어를 만들었고, 미국
연예인들이 이를 애용하기 시작하였다. 이 제품은 1995년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
사업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성공한 벤처사업의 배경에는 성격이 다른 두 명의 모험가가 필요하다. 한 명은 상상력이 풍부
한 몽상가(Visionary)이며, 다른 한 명은 이론적 실력이 강한 사람(Analyst)이다. 이와 같이 성격
이 다른 두 종류의 동물(Two Animals)이 오랫동안 한 가지 생각을 같이 추구하다가 전기불꽃
같은 것이 일어나면 벤처사업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벤처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 벤처는 혼자서도 성공하기 힘들다는 점
이다. 왜냐하면,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아이디어 때문에 이를 이론적으로 다
져가는 과정을 소홀히 할 것이다. 이때 그의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具現)하는 실력 있는 이론가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와 반대로 이론과 실력이 좋은 사람도 혼자서는 벤처사업을 추진하기 힘들 것이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상상력이 부족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리콘 밸리에서 얻은 지혜는 다음과
같다. 즉 벤처를 꿈꾸는 젊은이들은 성격이 다르고 특기가 다르며,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동료를 제일 먼저 찾아야 한다.
제3의 동물이 합류한다.
호흡이 맞는 동료와 아이디어를 개발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받아들여지리
라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시장감각과 경제개념이 있는 제3의 동물이 필요하다. 상상력이 풍부한
몽상가가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실력이 좋은 이론가가 이를 과학적으로 지원해 줄 것이다. 여기에
소비자의 욕구에 정통하고 시장감각이 있는 보부상이 합류하여야 한다.
보부상은 아이디어를 내는 재주도 없고 전문이론에도 밝지 않으나, 아이디어가 구현되었을 때
소비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혹은 시장에서 얼마나 환영받을지를 동물적 육감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질이 있어야 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몽상가가 아이디어를 냈더라도 그 중의 일부만이 이론적 체계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 통계를 잡은 것을 보면, 아이디어 중에 3분의 2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한
다. 이론적으로 증명이 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었다 하더라도, 시장감각을 가진 보부상의 입장
에서 보면 그 중 3분의 1정도만이 타당성이 있는 아이디어이다.
예를 들어,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10개의 아이디어를 내었다고 치면, 그 중에서 3개쯤이 이론
적으로 증명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의 측면에서 본 아이디어는 또다시 3분의 1로 줄어들 것이다.
이제 1개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통과된 아이디어는 투자가를 찾아 나서게 마련이다. 투자가의 종류는 대개 네 가
지로 나뉜다.
각종 투자가가 참여한다.
첫번째 종류는 천사의 기금(Angel Fund)이라고 한다. 왜 천사라고 하는가? 아이디어가 보편타
당성이 없다 보니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꼭 성공할 것 같으니, 여러분 같으면 어
떻게 할 것인가? 예금통장부터 찾을 것이다. 통장에 있는 돈을 다 쓰고 나면 핀잔을 들을 것을
각오하면서 부모형제에게 지원을 요청할 것이다. 부모형제가 더이상 줄 돈이 없으면, 애인과 친구
에게도 손을 벌릴 것이다. 지원요청을 거절하지 못해 천사 같은 마음으로 도와 주었기 때문에 천
사기금이라고 한다.
천사들이 지원하는 돈으로 남들에게 보여 줄 만한 아이디어로 구체화되었을 경우에는 모험사업
을 지원하는 모험투자가(Venture Capitalist)를 찾아가야 한다. 모험 투자가의 사무실에는 하루에
도 몇십 건에서 몇백 건의 벤처사업 계획서가 쌓이기 마련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과거의 실적이
좋고 기금이 많은 벤처 투자가들의 책상에는 특히 많은 사업계획서가 쌓여 있다.
필자가 만나 본 벤처 투자가는 자신에게 오는 사업계획서 중 1%쯤이 눈에 띈다고 하였다. 그
의 눈에 띈 사업계획서 중 실제 투자로 연결되는 것은 10% 정도이다.
10개의 아이디어 중에서 3개가 이론적으로 증명이 되고, 3개의 아이디어 중 1개가 시장성이 있
으며, 이렇게 해서 제출된 투자계획서가 벤처 투자가의 눈에 띄일 확률은 1%이다. 벤처 투자가가
검토한 사업계획서 중 실제 투자로 연결되는 것은 10%이다. 정리하여 보면, 10개의 아이디어 중
에서 실제 투자로 연결될 확률은 0.01%이다. 벤처는 이렇게 확률이 낮은 것이다. 역산하여 볼 때,
한 건의 아이디어가 투자가로부터 인정받으려면 아이디어를 10,000개쯤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벤처 투자가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아 추진한다고 하였더라도 자금이 모자랄 것이다.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면 이때부터 은행이 투자(Bank Fund)를 시작한다. 은행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
하였다고 하더라도 추가지원을 받지 못하여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사업에 성
공하여 주식회사로 상장을 준비하는 과정에 도달하면, 대기업의 투자가 몰려들기 시작한다. 이를
전략기금(Strategic Fund)이라고 한다. 우리가 신문지상에서 보는 벤처의 성공 일화는 대개 전략
기금이 투입된 이후인 경우가 많다.
100만개 중에서 한 개가 성공한다.
이제 다시 계산을 하여 보자. 벤처 투자기금을 받아 성공가능성을 보여 은행기금을 받을 확률
을 10%라고 가정하여 보자. 또한 상장준비가 거의 완료되어 대기업의 기금이 흘러 들어올 확률
을 또다시 10%라고 하여 보자. 이 경우에 벤처 투자기금을 받을 확률이 0.01%였으므로 10%씩
두 번을 곱하면 0.0001%이다.
여기에 소개한 사례를 따라가다 보면 한 개의 벤처 아이디어가 성공할 확률이 0.0001%임을 알
수 있다. 즉, 몽상가가 낸 아이디어 100만개 중에서 한 개가 성공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영화배우를 뽑는다든가 탈렌트를 뽑는다든가 가수를 선발하는 대회를 보는 경우가 있
다. 예를 들어, 한명의 탈렌트를 선발하는 데 100만명의 지원자가 몰려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몽
상가가 낸 벤처 아이디어가 성공할 확률은 100만명의 지원자 중에서 본인이 탈렌트로 뽑힐 확률
과 같은 셈이다. 벤처는 이와 같이 성공확률이 낮은 사업이다.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서 섣불리 나
설 일은 아니지 않는가?
벤처는 네트워크다.
이제까지 벤처사업이 성립되려면 최소 3명으로 구성된 아이디어 팀이 있어야 함을 설명하였다.
이에 덧붙여 천사 같이 기금을 대주는 주위 가족과 친구가 있어야 하고 투자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벤처가 성공하려면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이디어를 낸 벤처 사업가 후보들은 일반
인들이 알아듣기 힘든 말을 많이 할 것이다. 투자가를 찾아다니는 과정에서도 벤처 기업가가 쓰
는 용어를 벤처 투자가들은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벤처가 성공하려면, 사용하는 언어가 다
르고 관심이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이어 주고 통역하며 일이 되게끔 도와 주는 벤처 협력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
우리 주변에서 진행되는 벤처 열풍을 보면,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전문가가 심사하고 한정된 범
위 내에서 예산을 배분하고 지원해 준다. 실리콘 밸리에서 진행되는 벤처 추진절차에 비하면 매
우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벤처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은 실리콘 밸리에서 진행되는 벤처의 절차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
을 것이다. 첫째, 최소한 장기(長技)가 다른 3명 이상이 협력하여야 한다. 둘째, 각자의 아이디어
를 추켜 주고 격려하기보다는 서로 비판을 반복하므로써 아이디어의 자체 선발과정을 엄격히 만
들어야 한다. 셋째, 벤처 투자가를 방문하기 전에 부모와 애인과 친구들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
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내야 1차 관문을 통과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
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확률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벤처 열풍을 보면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다. 벤처설명회에서는 성공사례
만을 집중적으로 안내할 것이다. 벤처사업을 시도하였다가 실패한 사람들은 설명회에서 초청도
안 하거니와 설사 초청하였더라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벤처설명회를 주최하는 사람도 기껏 사람을 모아 놓고 벤처는 실패하기 십상이라는 말을 하지
는 못할 것이다. 자칫 잘못해서 벤처에 대해 잘 모르고 찾아온 학생들에게 벤처는 빨리 시작할수
록 좋고 시작하면 성공확률이 매우 높다는 식의 잘못된 개념을 전달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
다.
어떤 사람이 벤처 기업가인가?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한 벤처 투자회사의 사장은 벤처를 시작하는 젊은이에게 도움말을 해 달
라는 요청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지구상 인구 58억명 중에 100명쯤이 어떤 생각을 한 번
쯤 해 보았을 것이고, 그 중에서 5명 정도가 그 문제를 풀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벤처란, 그 중
에서 `나의 아이디어가 가장 좋다`는 확신이 들 때 조심스럽게 시작하여야 한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은 벤처 사업가의 꿈을 키우기 위해 마음이 맞고 실력이 남다른 동료를 구
하는 일을 제일 먼저 해야 한다. 관심 있는 분야의 이론적 실력을 높이기 위해 공부도 철저히 해
야 할 것이다. 부모와 친구와 애인에게 사업을 설명할 수 있는 발표력을 함양하여야 한다. 벤처
투자가에게 제출할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연습도 게을리할 수 없다.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벤처 투자회사 사장의 조언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리고
꾸준히 벤처 사업가의 꿈을 키워 나가야 한다.
미래로(未來路) 산책 : 기업인을 위한 코스
비전이란 무엇인가?
-가슴이 울렁거려야 발전한다-
회사마다 비전(Vision)을 만드는 것이 유행하였던 적이 있었다. 발전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비
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 회
사의 비전은 무엇으로 정할까? 비전의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인가? “나도 모르게 가슴이 울렁거려
야 한다.”
회사 물건을 많이 팔겠다는 매출목표가 회사의 비전으로 채택되었다면, 이는 실패한 비전으로
보아야 한다. 가슴이 답답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힘들게 지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가슴이 울렁거리는 비전을 만들려면 어떤 내용이 포함되어야 하는가?
비전은 다보탑같이 생겼다.
기업과 공동으로 비전을 만드는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이 연구를 수행하면서 비전에는 필
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할 기본요소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비전의 요소를 알기 쉽게 표현하면 불
국사에 있는 다보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보탑의 가장 크고 묵중한 기단부에 해당하는 비전의 요소는 기백과
투지
이다.
첫째요소 - 기백과 투지
기백을 나타내는 기본정신이란 무엇인가? 세계 초일류 기업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마이크로소프
트사는 회사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 기백을 가장 중요한 발전의 요소로 강조하고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기백을 나타내던 초기의 구호는 “세계의 모든 정보를 손 끝에 가져다 주겠다”였다.
즉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사면 전세계에 있는 모든 정보를 손 끝으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본정신으로 무장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상품기획 전략이 얼마나 맹렬
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회사의 성장과 함께 회사의 투혼(鬪魂)도 바뀌어야 한다. 매출액이 늘어나면서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일반회사와는 전혀 다른 도전대상을 설정하였다. 대개 매출액이 해마다 늘어나는 기업을 보
면, 올해에 매출액이 50%가 늘어났으니 내년에는 매출액을 80% 늘리자, 100% 늘리자는 구호가
채택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매출목표를 숫자로 표시하지 않고 새로운 투
자로 대체(代替)하였다.
“이 세상 모든 책상 위에 우리 제품을 올려 놓겠다”는 것이 새로 만든 도전의 구호였다. 매
출액 증가가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전세계 회사의 사무실마다, 대학의 연구실마다, 각 가정의 책상
마다 자기 회사 제품을 올려놓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투철한 도전정신인가? 회사가 생길 때마다,
가정에서 책상을 새로 구입할 때마다 회사의 제품을 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요소 - 위상
기본정신 다음으로 중요한 비전의 요소는 위상(Status)이다. 위상이란 대략 ‘업계에서의 위치
’쯤
으로 해석하면 된다. 세계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인텔사는 위상을 비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고 있다. 무조건 인텔사는 세계 최고의 위치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인텔사
는 세계 최고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하여 매우 독특한 기업풍토를 보이고 있다.
앤디 그로브 회장은 구성원들에게 “미친놈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
고 있다. 다른 경쟁사의 직원들이 정상적인 생각으로 업무를 추진할 때, 인텔사는 미친 사람이 아
니고는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업무방식만을 강요한다.
인텔사는 시장여건도 별로 개의치 않고 경기전망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경기여건이 좋고 시장
전망이 밝을 때는 어느 회사나 운영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텔사 직원들은 경기여
건이 좋고 경기전망이 밝을 때 가장 긴장하며 지낸다. 경쟁사도 잘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여건이 최악의 상태이고 경기전망이 불투명할 때 인텔사 직원들은 비교적 안심하며 지낸다.
인텔사의 위상을 유지하기 가장 쉬운 여건이기 때문이다.
세계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인텔에게는 경쟁사가 있을 수 없다. 인텔사와 경쟁하던 한
회사는 무덤 앞에 서 있는 비석을 그려놓고, 그 비석에 “인텔이 여기 고이 잠들다(RIP: 'Intel
Inside')"라고 쓴 사진을 회사 곳곳에 걸어 놓았다.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덤비는데도 좀처럼 인
텔을 따를 수가
없었다.
경쟁사가 없는 회사의 직원들은 안주하기 십상이다. 적당히 하더라도 가까운 장래에는 따라올
회사가 없기 때문이다. 앤디 그로브 회장은 이와 같이 안주와 정체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연구소를 둘로 나누고 서로 경쟁적으로 제품을 개발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없는 경쟁자를 억지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세 번째 요소 - 사업영역
위상 다음으로 중요한 비전의 요소는 사업영역(Scope) 이라고 생각한다 영역이란 무엇인가? 어
떤 분야에서 사업을 할까 생각하는 것이다. 모토롤라(Motorola)사는 IC부품을 만들던 회사였다.
IC회사 간의 치열한 경쟁을 지켜보던 봅 갤빈 회장은 반도체 부품에 진출해 있던 회사의 사업영
역을 통신장비의 소비자 시장으로 바꾸었다.
모토롤라는 사업영역을 바꾼 이후에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되는 고도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도 모토롤라가 만든 전화기를 들고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영역을 중요시하는 모토롤
라사는 발전을 지속시키기 위한 전략도 독특한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
작업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도 독특하다. 모토롤라 전화기를 조립하는 작업자들은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다. 월요일에 어린 아기를 돌보아야 하는 주부사원은 그 날은 늦게 출근하고 나
머지 요일에는 일찍 출근하고 싶어 할 것이다. 야구경기 관람이 취미인 작업자는 주말에는 오후
일찍 퇴근하고 싶어 할 것이다. 모토롤라사는 이와 같은 직원들의 다양한 욕구를 들어 주기 위해
다른 회사에서는 보통 3교대로 운영되는 작업조를 8교대로 늘려서 운영하고 있다. 선택의 여지를
대폭 늘려 줌으로써 사원들의 생활편의를 도모하는 것이다.
네 번째 요소 - 목표
사업영역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회사의 목표(Goal)이다. 우리 주변의 기업에서는 흔히 목표하면
매출목표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제너럴 일렉트릭(GE)사의 목표는 특이하다. GE
의 목표는 무조건 세계 제일의 회사가 되는 것이다.
많이 팔든 적게 팔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이익에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위로도 한다.
그러나 일등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잭 웰치 회장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세
계 일등인 회사가 매출액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가? 세계 제일인 회사의 이익률이 경쟁사보다
낮을 수가 있겠는가? 만일 웰치 회장이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파는 회사가 되겠다고 했다면, GE의
사원들은 가슴이 답답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제일의 회사가 되겠다고 하니까 걱정이 앞서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러 기업을 돌아보며 우리 주변에 있는 기업의 비전은 멋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여러 사람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얼핏 생각이 나지 않으면 거기서
더 생각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좋은 비전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 경영자의 가슴은 답답할 것이
다.
잭 웰치 회장도 가슴이 답답하였을 것이다. 매출액을 올리기는 올려야겠는데, 매출액을 올리자
고 한다면 사원들의 가슴이 답답해질 것 아닌가? 해야 할 이야기를 하지 못하니, 회장은 얼마나
가슴이 답답했을 것인가? 그는 오랫동안 고민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깨달았을 것이다. 세계 제
일의 회사가 되겠다고 말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무엇인가? 자랑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이
웃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연상할 것이다. 부인과 아이들도 좋아할 것이다. 그러니 가슴이 뛰지
않겠는가?
다섯 번째요소 - 구성원의 발전과 복지향상
회사의 발전목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구성원의 발전과 복지향상(Career Plan)이다. 사원의 발
전을 위한 비전을 채택하여 세계 제일의 회사가 된 기업도 많다. 청바지를 만드는 리바이스
(Levi's)사는 회사의 최우선 목표를 구성원의 후생복지 향상에 두었다. 리바이스사는 사원과 작업
자들의 모든 희망사항을 수집한다. “회사여건상 이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경기가 좋아
질 때까지 모두 참고 지내자” 등의 궁색한 소리는 절대 하지 않는다.“ 모두 다 반영하겠다고
나서서 주장한다. 얼마나 환상적인 회사인가?
모든 사원들이 희망사항을 적어내면, 이를 종합하고 소요되는 예산을 산출한다. 그리고 사원들
과 같이 협의한다. “이만한 예산이 소요되는데, 얼마는 벌어야 이만큼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사원들이 대답할 차례이다. 사원들의 희망사항이 구현될 순간인데 싫다고 할 리
가 있는가?
이렇게 해서 회사의 성장목표가 경영진과 사원들의 화기애애한 합의 아래 결정되고, 얼마 후에는
그 목표를 초과하는 실적을 올리는 것이다.
모토롤라사도 구성원 복지에 신경을 많이 쓴다. 연간 매출액의 4%를 사원의 교육훈련비에 집
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을 시킬 때에도 회사업무를 위한 내용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사원 본인의 발전을 위한 교육을 강조하고 실제로 그렇게 실행한다. 같은 내용의 교육이라도 얼
마나 다른가? 모토롤라사는 교육을 시킬 때 참석여부를 확인하지 않는다. 모두 다 자기발전을 위
한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에 교육에 빠지지 않고 극성스럽게 참가한다.
여섯 번째 요소 - 고객만족
고객들이 좋아하는 회사는 무한경쟁시대에서도 발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고객들이 막무가내로
성원하여 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우스 웨스턴(South Western) 항공사는 초대형 항공사를 제치
고 가장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다. 보유한 비행기도 적고 항공노선도 일부 지역에 국한된 이
작은 회사가 어떻게 가장 높은 수익률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는가? 이 회사의 모든 목표는 고객
만족(Customer Satisfaction)으로 집중되고 있다.
이 회사의 캘러만 회장은 어떻게 하면 고객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을까에 생각을 집중
한다.그는 인력이 많이 소용되는 예약제도를 없애고 비행장에 나오는 순서대로 표를 살 수 있게
만들었다. 인력이 많이 줄어들었고, 비용절감으로 확보된 예산을 항공료 인하로 연결시켰다. 여행
객 입장에서 보면, 예약에 신경쓸 필요도 없고 다른 항공사보다 항공권도 싸게 살 수 있으니 얼
마나 좋은가?
캘러만 회장은 그의 항공사를 이용하는 여행객들에게 비행기를 타기 전에 간단히 식사를 하라
고 권한다. 간단한 간식도 사 가지고 비행기에 타라고 충고한다. 비행기에서 주는 음식은 가격이
비싸다고 고백한다. 고객들은 충고를 잘 따르고 그의 솔직함에 감사한다.
캘러만 회장은 승무원에게도 독특한 역할을 제시한다. 여행에 지친 여행객들에게 웃음을 선사
하라는 것이다. 여승무원들은 온갖 지혜를 다 짜내어 승객들을 웃기고 즐겁게 만들 생각에 몰두
한다. 안전대피 요령을 설명할 때는 유행가 곡조에 맞춰 대피요령을 설명하고, 그 옆에 서 있는
승무원은 우스꽝스런 동작으로 춤을 춘다. 전 승객이 이륙도 하기 전에 폭소를 터뜨리고, 그 다음
비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들은 여행을 끝내고 가족과 친지들에게 비행기에서 일어났던 재미있는 일화들을 전달할 것이
다. 그 얘기를 들은 가족과 친지들도 그 회사의 비행기를 타고 싶어 할 것이다.
고객들보다 먼저 나서서 원가를 절감하고 쓸데없는 돈을 지불하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마지못해
하던 서비스를 없애 버렸다. 그리고 비행 내내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남보다 싸게
받으면서 가장 많은 이익을 남기는 비결은 바로 고객을 중심으로 회사발전의 목표를 세운 데 있
었다.
일곱 번째 요소 - 사회기여
마지막으로, 이제까지 토론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있다. 기업의 비전에는 사회기여(Social
Contribution) 기능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 주변에서는 수재민에게 의복을 전달하고 회사
근처의 쓰레기를 주으면서 사회기여에 적극적으로 참가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사회기여는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저 회사가 없었더라면 큰일날
뻔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인터넷의 소개와 함께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한 넷스케이프사는 그
비전을 “정보혁명시대를 앞당김으로써 전세계에 기여하겠다”로 정하였다. 그 회사에 다니는 사
원들은 기분이 좋을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이 미래시대를 앞당기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인
텔사는 “우리 제품을 써야 사회가 발전하다”고 강조한다. 마이크로스프트사는 한술 더 뜬다. “
우리가 아니면 정보혁명시대가 늦어 질 것이다” 라고 자부한다.
우리 기업의 비전에도 이런 웅대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면 사원들의 출퇴근할 때 표정이 훨씬
밝을 것이고 업무도 훨씬 보람 있게 느낄 것이다. 간혹 상사로부터 질책을 듣는 일이 있더라도
그리 기분나쁘지 않을 것이다. 전세계 인류를 위해 기여하는데 이 정도 질책쯤이야 감당해야 하
지 않겠는가? 사회기여 정신이 강한 회사의 사원들은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뿌듯한 인생을 살
고 있다.
가슴이 울렁이는가?
만일 여러분이 다니는 회사의 비전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알고 싶으면, 그 비젼을 한 번 마
음 속으로 읽어 보고 얼마나 가슴이 뛰는지 확인하여 보면 된다. 만일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그
회사의 비전은 잘못된 것이다. 가슴이 답답한 채 일을 해서 잘 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만일 여러분이 경영자라면, 회사의 비전을 만들고자 할때 다보탑을 다시 한 번 보기 바란다. 탑
제일 밑의 기단부를 이루는 회사의 경영철학은 어떤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인가? 매출목표는 어느
정도 중요할까? 어떻게 해야 사원들의 가슴이 뛰기 시작할까? 생각이 나지 않으면 경영자의 가슴
이 답답해질 것이다. 한 동안 답답하다가 경영자의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시기가 있을 것이다. 그
때가 회사의 비전을 만들어야 할 때인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비전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요구되는 시대에는 기업의 비전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상상하면서 만들어
야 한다. 해외 일류기업의 경영혁신 과정은 대부분이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GE사는 그룹이 비대해지면서 회사의 수익성이 악화일로에 있었다. 300여 개의 사업부에서 만드
는 제품은 점차 이익이 줄어들고 있었다. 잭 웰치 회장은 300개의 사업부에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구공탄집과 솜틀집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 동안 고민하
던 웰치 회장에게 떠오는 대전환의 기준은 세계 일등이 아닌 것은 모두 없애 버리겠다는 것이었
다. 잭 웰치 회장은 그대로 실행하였다.
만일 세계 일류기업을 기준으로 한 대전환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GE는 어떠한 수준
이었겠는가?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전제하지 않았었더라면 아마도 300개의 사업부 중에 100개쯤
줄였을지 모른다. 반발이 거세면 혹시 50개 사업부쯤 줄이며 타협하였을지도 모른다. 만일 이렇게
하였다면, 오늘날의 GE는 전세계의 초일류기업으로 존경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발상을 바꾸어 비전을 만든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사는 항공사 간의 치열한 가격경쟁 속에서 경영여건이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
다. 보통회사 같았으면 조종사의 수를 줄이고 스튜어디스에게 초과근무를 요구하며, 기내에서 제
공하는 식사를 없애고 원가절감을 하고자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 항공사는 일반
의 상상을 초월하는 비전을 택하였다. 항공료를 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기내 서비스를 대폭 강화
하였다. 다른 항공사들과 정반대의 길을 택하였던 것이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사는 이러한 조치 이후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발전의 배경은 무엇인가? 일
반 여행객들은 자기 돈으로 비행기표를 구입한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출장중에 업무수행이 편
하고 벅찬 스케줄 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편안한 비행이다.
이들은 항공료가 다소 비싸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사에는 전세계를 출장다니
는 기업인들이 몰려든다. 다른 항공노선을 사용하던 기업인들도 스칸디나비아 항공사를 택한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사의 성공은 이용객들의 잠재적 욕구를 회사의 비전으로 연결시켜 얻은 경우이
다.
개인과 가정의 비전을 만들자
만일 여러분들이 사는 데 큰 보람을 얻지 못하거나 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가정에 가족 공통(共通)의 화제(話題)가 없다면, 그 이유는 가족이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직장이 재미없고 회사가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에도 회사의 비전
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까지 비전의 중요성을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그러나 비전이 정말로 좋은 점은 아직 설명
하지 않았다. 비전은 왜 좋은가? 비전만 있으면 하는 일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고 인생의 보람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남이 보기에도 부러울 정도로 무슨 일에 몰두하며 즐겁게 사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좋은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비전의 좋은 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비전의 최대 장점은 무엇인가? 첫째, 비전을 만드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둘째, 비전은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학벌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셋째, 남이 모방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남이 훔쳐갈 수도 없다.
이제까지 하는 일에 만족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지금 당장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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