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영화,리뷰,

수필 나는 또 앞을 보고 [마루야마 겐지]

by Casey,Riley 2023. 5. 27.
반응형

   나는 또 앞을 보고,그곳을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필) 
       마루야마 겐지

   '일반적으로 그 사람은 재능을 갖고 있다'는 표현을 흔히 쓴다.
그러나 나는 갖고 있다는 표현이 이상하기만 하다. 예컨대 평균적 
인 인간-이 말 또한 이상하지만-이 가령 열 가지 조건을 갖고 
있다고 가정할 때, 재능 있는 인간은 열하나나 열두 가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명백한 착각이다. 예술적인 재능에 관하여 
문제 삼을 경우에는 여덟이나 아홉밖에 갖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것 
이 오히려 앞뒤가 맞다. 다시 말해 평균적인 인간보다 조건이 한두
가지 정도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결함이 있는 인간이란 뜻이다.
   알기 쉽게 나를 예로 들어보자. 나는 우선 협조라는 걸 모른다.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심각하리만큼 결여돼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회성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나는 샐러리맨이
되지 못했다. 이 세상에 다행히 소설가란 직업이 있었기에 망정이
지, 만약 없었다면 지금쯤 무엇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을까.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협조할 줄 모르는 성격은 자아가 지나치게 강하며 모든 일을 자 
기 마음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성에 안 차하는 외톨이다. 이런 유형 
의 인간은 주위 사람들과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는 사이에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다 떠나고 만다. 만일 그런 태도가 그릇되지 
않다 하더라도 타협하지 않는 생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렇 
게 된다. 한없이 고독하다.
   고독하니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나 놀이에 열중하는 방향으 
로 치닫는다. 내게 그것은 소설이고 오토바이며 낚시이다. 다만 그 
런 인간들 중에서도 내가 좀 색다른 것은.결코 나약하지 않은 자
세로 그 길로 나아갔기 때문이리라. 고독하니까 외롭고, 외로우니 
까 비슷한 인간을 구하여 친구로 만들고, 그와 늘상 붙어다니면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나날을 나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나
라는 사나이는 결코 타인과 순조롭게 사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홀로 외로운 길을 질주하리 란 결의를 굳혔다. 외로움과 정면대결하
기로 작정한 것이다.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십여 년간 내 가슴의 태반을 차지한 갈등
은 외로움과의 결투가 아니었을까. 고독한 길을 인내와 더불어 힘 
차게 걸어가는 동안, 내가 세운 최종적인 목표는 스스로 선택한 삶
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힘을 체득하는 것이었으리라.우격다짐 같 
은 말투와 당돌한 행동은 나 자신에 대한 질타인 동시에 격려였는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지금은 그다지 무리를 하지 않아도, 억지를 부리지 않 
아도. 강한 척하지 않아도,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일상적으로 강
한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자각한다. 확실하게 느
낄 수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소설가들이 종종 빠져드는 값싼 나락으로 빠지 
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스럽다. 이제야 비로소 말할 수 있지만 '물
흐르듯 사는 편이 훨씬 편하다'고 중얼거리며 흔들린 적이 몇 번이
나 있었다. 그러나 생각만 했을 뿐 실행하지는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돌아다니는 것도 그만두고,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며칠이고 이불 속에서 지냈다. 누구도 만나지 않 
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불을 끈 방에서 잠만 계속 잤다. 그럴 때 
는 잠자기가 나의 일처럼 보였다. 나는 죽은 사람처럼 오로지 잠만 
잤다.
   한 며칠쯤 그렇게 보내고 나면.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회복 
되었다. '물 흐르듯'이란 도피적인 사고는 홀연히 사라지고 대신 
척추 한가운데 에서 뜨거운 에너지가 분화 직전의 화산처럼 용솟음
쳤다. 그 순간 나는 '이런 나야말로 진정한 나'라고 믿었다. 나는
잠을 자며 진정한 나 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이 지난 십여 년 사이에 몇 차례나 있었다. 나는 그 뜨거운 
에너지를 미래 지향적인 삶에 쏟아부었다. 한눈을 팔거나 다른 데 
힘을 쏟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변했다.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었
다. 고독이니 외로움이니 하는 것들을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되 
었으니,웬만한 일은 그저 일상처럼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어떤 편집자가 내게 이런 말을 하였다. "당신 같은 소설
가라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그 편집자가 보기에, 소설가는 보통
사람보다 약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약함이 소설가의 재능이라는 
것이다. 나약한 인간이 쓴 소설을 접한 독자는 소설 속에서 자기보
다 나약하고 별볼일 없는 인간을 발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
게 내버려둬라. 건너편 기슭에 도달하고 나서 그들에게 웃음으로
되돌려주면 된다.
   만약 내가 '인간이 어떻게 살든 그건 당사자 마음이다'와 같은 
범상한 잣대를 갖고 있었다면 펜을 쥘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내
가 이토록 강압적으로 소리치는 까닭은 내가 해냈는데 당신들이
못할 리가 없다'는 신념 때문이다.
   청춘이란 달콤한 향기에 취해 천국 같은 나날을 보내는 젊은이
들도 많다. 그들이라고 전혀 고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강을 건너려 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평생 건너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건너지
않으면 불필요한 고뇌가 항상 따라다닌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고
뇌의 횟수와 내용은 오히려 나날이 불어난다. 젊음에 부여된 그칠 
줄 모르는 체력과 한결같은 기력은 놀기에 전념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강을 끝까지 건너라고 있는 것이다.
   언제든 그 강을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오산이다.
서른을 넘으면 절대로 건널 수 없다. 건너고 싶어도, 이미 체력이 
따라오지 않는다. 그 다음은 변명할 말을 찾으며 늙어가든지,아니 
면 얕은 개울물에 발이나 담그고 빠진 척하며 즐기는 도리밖에 없 
다.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나는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그만 
쓰기로 한다. 할말은 다 했다. 나로서는 이것이 독자들을 위한 유일
한 서비스였다. 동시에 나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게 되었다. 그러 
나 뒤돌아보는 일을 언제까지 고 계속할 수는 없다. 나는 앞을 보고
그쪽을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좁은 방의 영혼 (단편 소설)
       마루야마 겐지
 
창 밖에는 진짜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결이 곱고, 거의 소리가 나지 않는다. 
오후가 되자, 맑게 갠 하늘에서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제일 많이 내릴 때에도 해는 여전히 내리쬐고 있었고, 소낙비가 쏟아질 때 
처럼 먼 곳이 뿌예지며 경치가 번지는 일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 나비가 한 마리 유리창 바깥쪽에 달라붙어 있었지만, 지금은 
 하얀 넉 장의 날개를 접고 창틀 가에 조용히 숨어 있다. 
 젖어서 떨어질 염려는 없다. 
 나는 침대에 일어나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비를 바라보며 혀를 달래가면서 뜨거운 수프를 먹었다. 
 수프에는 언제나 다진 파슬리가 흩어져 있었다. 
 이 병원은 아주 크고 설비도 완벽하며, 시내를 벗어난 야트막한 산 꼭대기에 있다. 
 4층은, 이 방 외에는 전부 비어 있다. 
 내가 있는 곳은 제일 가장자리 방으로, 반 년 전부터 요양하고 있다. 
 우리들의 방은, 침대를 두 개 집어 넣기에는 다소 좁지만, 양지만은 더할 나위 없이 밝다. 
 내가 창 쪽이고, 복도 쪽 침대에는 중년 남자가 누워 있다. 
그는 나보다 13살이나 연상인데, 똑같은 침대에서 3년 동안이나 지내고 있다. 
 그 사이 무척 많이 수척해졌고, 피부는 발바닥만큼이나 하얗다. 
그리고 이마가 아주 넓어서 얼굴의 반을 차지하고 있고, 그 부분만이 윤기가 난다. 
 지금도 궁상맞은 얼굴로 수프를 훌쩍훌쩍 먹고 있다. 
 검은 테가 낀 눈으로 , 가끔 이 쪽을 쳐다본다. 
 나는 급성이고, 그는 만성이다. 
 "아직도 오고 있나?" 
 중년남자가 물어 왔다. 
 다 먹은 것이다. 
 "그쳤어요." 나는 상대방을 보지 않고 대답했다. 
 "깡통 귤이라도 드시겠어요?" 
 "미안하네,늘"이라고, 그가 말했다. 
 "괜찮아요"라고 나는 말했다. 
 "저도 주시는 걸 얻어먹는걸요." 
 나는 내 배에 올려 놓은 점심상을 보았다. 
 아직 반도 먹지 않았다. 
 부드러운 것뿐이라 신생아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수저를 놓았다. 
 그리고 등뒤로 손을 뻗어 호출 단추를 눌렀다. 
누를 때마다, 아래층에서 정말로 부저가 울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기까지 1층 부저가 들릴 턱이 없다. 
다만 단추를 누를 때마다 항상 그런 느낌이 드는 것 뿐이다. 
내가 단추를 눌렀을 때, 중년 남자는 자기 손목시계에 힐끗 눈길을 주었다. 
 그리고 나서 식기를 침대아래에 내려놓고, 진지한 얼굴로 다시 시계를 지켜 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소리가 나고, 4층에서 멈추었다. 
 이쪽을 향해서 간호원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노크 소리가 나고, 곧장 문이 열렸다. 
 "끝나셨어요, 식사는?"라고, 간호원이 말했다. 
 그녀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 
 웃으면 아주 예쁘다. 
 아직 한번도 그녀가 화를 내거나 무뚝뚝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올 가을에는 은행원과 결혼하기로 되어 있다. 
 "정확히 3분 걸렸어." 
 중년 남자가 말했다. 
 이마가 넓은 얼굴을 그녀에게 돌리고, 손바닥에 올려 놓은 손목시계를 보인다. 
  "저런, 저런."애교 많은 간호원은 말했다. 
 "다음에는 좀더 빨리 올게요." 
 그는, 자기나 나 어느 쪽인가가 호출 단추를 누르면, 간호원이 올 때까지의 시간을  반드시 
쟀다. 
 주치의가 회진할 때도 똑같아서, 의사가 3층을 돌아서 이 방문을 열 때까지의 시간을 재곤 
했다. 
 간호원은 두 사람의 식기를 치우기 시작하다, 내가 남긴 음식을 보았다. 
 "안돼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전부 먹어야지요." 그리고 나서 내 가슴께에 흩어진 빵가루를 작은 브러시로 꼼꼼하게 털
어냈다. 
 그녀가 가까이 오면 좋은 냄새가 났다. 
 나는 그 냄새도, 그녀의 웃는 얼굴도 좋아했다. 
 그녀가 브러시를 사용하고 있는 동안, 중년 남자는 심각한 눈초리로 그녀의 허리께를 뚫어
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걸 보면, 나는 언젠나 화가 치밀었다. 
 "또 깡통 좀 따 주시겠어요?" 
 내가 부탁했다. 
 "네, 네." 그녀는 브러시를 주머니에 집어 넣고 말했다. 
 "오늘은 어느 걸로 할까요?" 
 중년 남자는 그녀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은 채 였다. 
 "어떤 게 남아 있는지 봐 주실래요?" 내가 말했다. 
 "아마 이젠 별로 없을 겁니다." 
 그녀는 쭈그리고 앉아 내 침대 밑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상자를 뒤적였다. 
그 모습을 또 중년남자가 보고 있다. 
 그 눈초리는 거의 무의식 상태로, 그가 천장을 보고 있을 때나 같은 눈초리였다. 
 내가 노려 봤지만, 그는 언제나 태연자약했다. 
 뻔뻔스럽게도 잘도 그런 짓을 할 수 있군, 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저 말이죠." 그녀가 침대 아래에서 말했다. 
 "귤이 두 개, 파인애플이 두 개. 그게 다예요." 
 "귤로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일어서서, 깡통을 들고 레테르가 있는 쪽을 나한테 보였다. 
 "급한 건 아니니까요." 내가 말했다. 
 "아, 그리고 둘로 나누어 주세요." 
 "알아요"라고 그녀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번에는 옆 침대로 가서, 그가 흘린 음식찌꺼기를 털어준다. 
 만일 그 녀석이 그녀에게 무슨 짓이라도 한다면, 큰 소리로 욕지거리를 해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겹쳐 놓은 식기 위에다 깡통을 올려 놓고, 그녀는 방에서 나갔다. 
 한 번 출혈하기 시작하면 지혈이 될 때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우리들은 칼 종류는 못 
만지게 되어 있다. 
 중년 남자는 일 주일에 한 번만, 수염을 깎기 위해서 전기면도기를 사용했다. 
 식사 때마다, 나는 언제나 딱딱한 사과가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잇몸을 다치기 때문에, 그것도 금지사항이었다. 
 그는 이 쪽을 보고 있었다. 
 말을 걸기 전에, 나는 반대쪽 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말이 많은 데에는 넌더리가 난다. 
 잽싸게 내 시선을 붙잡기만 하면, 영락없이 말을 걸어온다. 
 게다가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내가 그 사실을 지적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처음에 여기 들어 왔을 때, 조금 기분 나빠하더라도 일일이 맞장구 같은 걸 치지 말았어야 
했다. 
 덕분에, 알고 싶지도 않은 남의 일을 ,흥신소의 신상조사보다 더 상세히 알게 되었다. 
 나도 내 이야기를 꽤 해야만 했다. 
 지금은 두 사람 다, 30년 간이나 함께 살아온 부부처럼, 상대방 일이라면 무엇이든 알고 있
다고 믿고 있다. 
 어쨌든 지금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베개를 높게 하고, 발아래께의 벽을 보고 있었다. 
 점심식사 뒤에는 이 자세가 제일 편했다. 
 벽에는 위쪽은 흰색이고, 아래쪽은 엷은 녹색인 벽지가 발라져 있었다. 
 3일 전까지 그 자리에는 달력이 걸려 있었다. 
 매달 사진이 바뀌는, 아무 데에나 있는 흔한 달력이다. 
 이 달의 사진은 어딘가 외국의, 물에 둘러 싸인 성터였다. 
 나는 그 사진이 마음에 들었었다. 
 아침이 되면 중년 남자는 달력 있는 데까지 가서, 매직잉크로 지나간 날짜에 덧칠을 했다. 
 그러나 3일 전 아침, 주치의가 와서 그것을 보았다. 
 날짜에 신경을 쓰면 몸에 해롭다고 하면서, 그는 간호원에게 그 달력을 떼게 했다. 
그래서 중년 남자는 노트에 달력을 그려서 매일 아침 지우고 있다. 
비는 완전히 개었다. 
나는 손을 뻗어, 유리창을 밀어 올렸다.   
차가운 기운이 천천히 들어 왔다.   
요즈음 낮에는 담요 한 장만 덮으면 된다.   
아래층에서는, 화단이 있는 가운데 마당이 소란스러뤄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비교적 경증인 환자들이 간호원들하고 배구의 토스놀이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층이 너무 높아서, 여기에서는 마당의 소동을 볼 수 없다.   
공이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모두가 동시에 와 하고 웃고, 그것이  얼마간 
이어졌다. 
 "안 오는군."   
중년 남자가 중얼거렸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저 빌어먹을 게, 안 올 작정이야." 그는 먼젓번보다 크게 말했다.   
"그런 여자라고."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자넨, 어떻게 생각해?" 그가 물어 왔다.   
"오리라고 생각해?"   
"글쎄요."라고 나는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오시겠죠."   
"어떨지." 그가 말했다.   
"올 생각이면 벌써 왔지." 
"이제 곧 오시겠지요."라고 나는 말했다.   
"이젠 자야 되겠어요."   
그는 얘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서, 남의 사정 같은 것은 상관하지 않았다.   
"괜찮다니까요.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내가 말했다.   
"이제 곧 오셔요."   
"알게 뭐야." 그가 말했다.   
"지난 달에도 , 지지난 달에도 오셨잖아요?"   
"아아......"   
"꼭 오실 거예요."   
"한 시간도 더 지났어." 그는 손바닥에 올려 놓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빌어먹을, 안 올 생각이야."   
"그만 잡시다."   
"그년은 남편을 속일 작정인 거야." 그가 말했다.   
"이제 오십니다."   
"위로 같은 건 안 해줘도 돼.  어차피 안 올걸,뭐." 그가 말했다.  본격적으로 떠들기 시작할 
작정인 것 같다.   
"자네는 아직 젊어서 , 여자일 같은 건 전혀 모른다고."   
"괜찮습니다, 몰라도."   
"하여튼, 내 말 들어."   
"자겠습니다."   
"여자란......"   
"그 얘기라면 전에도 들었습니다. 자, 이제 자겠습니다."   
"아니." 그가 말했다.   
"아직 얘기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듣고 싶지 않아요." 내가 말했다.   
"자넨만한 나이에, 나는 이미 여자를 알았다고."   
나는 담요를 머리 위까지 끌어올렸다.   
중년 남자는 일부러 들리도록 크게 떠들어 댔다.   
"그 다음을 얘기해 볼까?" 그가 말하고, 웃었다.   
나는 담요 속에서 화를 내고 있었다.   
잇달아 그는 아까 그 간호원을 가지고 천박한 농담을 했다.   
나는 자칫하면 악을 쓸 뻔 했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지, 속을 알 수가 없었다. 미친게 아닌가 생각했다.   
간호원이 들어왔다.   
나는 담요를 뒤집어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온 것을 몰랐다.   
이웃 사나이는 입을 다물었다.   
"자, 자, 왜 그래요?"   
나는 담요를 젖히고, 그녀를 보았다.   
귤이 담긴 접시를 건네 주었다.   
그는 벌써 먹기 시작하고 있었다.   
"7분 25초 정도이구먼."   
"나잇살이나 먹어가지고." 내가 말했다.   
"그만 둬요." 그녀가 말했다.   
두 개의 침대 사이에 서서, 우리 둘이 귤을 먹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 집사람 아직 안 왔습니까?" 이웃이 물었다.   
"아직 안 오셨어요?" 그녀가 말했다.   
"아직입니다."   
"이제 곧 오시겠죠."   
"안 올겁니다." 그가 말했다.   
"왜요?"   
" 글쎄, 그 년은 겨우 한 달에 한 번인데도 남편이 보고 싶지 않은가 보죠."   
"저런, 그럴 리가 있어요? 정말 좋은 사모님이시던데." 그녀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조금 아까 버스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어요." 
  "웃기는군." 그가 말했다.   
"정말 웃기는 얘기군. 버스 같은 거야 매일 제 시간이 되면 오죠. 거기에 그 년이 타고 있는
지 어떻게 압니까?"   
"어머나, 그 년이라니. 정말 좋은 사모님이시던데."   
"상대하지 마세요." 나는 두 사람이 오래 얘기하는 것이 싫었다.   
"그저 말하고 싶은 것 뿐이라니까요."   
"......올 게 뭐야."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귤을 입에 가득 집어 넣었다.   
볼에 살이 없어서 혹이 되었다.   
"...... 안 온다고."   
"오신 것 같네요." 그녀가 말했다.   
우리 셋은 하던 동작을 멈추고, 복도 쪽에 귀를 기울였다.   
"다른 사람이야......" 중년 남자는 일부러 얼굴을 찡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틀림없어요."나는 말해주었다.   
"잘 알면서."   
중년 사나이의 부인이 들어 왔다.   
엇갈리면서 인사를 건네고, 간호원은 나갔다.   
부인은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도 고개를 숙였다.   
목도 팔도 굵은 여자로, 남편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인다.   
실제로는 둘이 동갑내기이다.   
그런데도 훨씬 더 늙어 보인다.   
손에는 여느 때의 종이 봉투와 겨울코트를 함께 들고 있다.   
종이봉투 속에는 갈아 압을 옷이 한 달 치 들어 있다.   
두 사람한테 방해가 되지 않게, 나는 담요를 뒤집어 쓰고 등을 돌렸다.   
부인이오면 언제나 그렇게 했다.     
저녁식사 때까지 할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읽을 만한 것은 다 읽어 버렸다.   
등 뒤에서 두 사람이 나지막한 소리로 얘기하고 있다.   
언제나 남자 쪽이 말이 많다.   
들을 생각이 있으면, 이야기 내용을 알 수 있었지만, 흥미가 없다.   
돈 얘기와 아이 이야기 뿐이다.   
문득 잡지의 현상퀴즈 풀이를 계속하려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손을 뻗어서 책을 집으려고 하자,  위에 음식물이 가득 찬 직후라서, 선반까지의  몇십 
센티가 귀찮아졌다.   
그러자 현상 퀴즈를 풀고 싶지 않은 이유가 차례차례 떠올랐다.   
설혹 퀴즈에 당첨된다 해도, 자동차 같은 걸 타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이대로 꼼짝 않고 가만히 있기로 했다.   
유리 창의 위치가 침대 높이여서, 그다지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옆폭이 있어서, 시야 가득히 바깥이 내다 보였다.   
오래 누워 있으면, 등에 등창이 생겼다. 이것만은 막을 수가 없다.   
조심해서 , 아래쪽에 닿는 몸의 위치를 늘 바꾸어도 등창이 생기는 것이었다.   
허리께에 작은 것이 세 개 생기려고 하고 있었다.   
거기에 손을 대면 언제까지고 긁게 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만지지 않기로 하고 있었
다.   
중년 사나이가 등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온통 등창 투성이였고, 전에 생겼다가 나은 부분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은 등 뒤에서 두 사람이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낮잠을 잘 수가 없다.   
부인은 내 잠을 방해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지만,밤에 푹 잤니까, 상관 없다.   
다만 할 일이 없을 뿐이다.   
부인은 갈아 입을 옷을 꺼내고, 대신 빨랫거리를 종이봉투에 담고 있다.   
남편이 하는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거나, 짧게 대답하고 있지만, 어차피 대충 흘려듣고  있을 
게 뻔하다.   
나는 어떻게든 시간을 때우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입원한 그날부터,시간은 언제나 내 눈 앞에 늘어져 있었다.   
이제는 여기 시간을 학교시간에 맞추어 보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시간은 지독히 길어졌다.   
입원하기 바로 직전에 본 영화 장면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될 수 있는대로 자세히, 새로 세밀하게 떠올려 본다.   
이 짓은 전에도 여러 번 했기 때문에, 잊어버린 장면을 새로 기억해 낼 필요는 없었다.     
다른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할 게 없다.   
학교생활이라든가 친구들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한다.   
그들하고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나는 멈춰 있을 뿐인 것이다.   
가만히 드러누운 채 , 길고 긴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는 두 가지 밖에 없다.   
자버리던가, 깨 있으면 머리를 어딘가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던가 둘 중 하나다.   
뒤에서 둘이 얘기하고 있다.   
잘 수 밖에 없다. 옆으로 누운 자세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눈을 감은 채 똑바로 눕는다.   
내가 귀찮아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부부는 입을 다문다.   
조금 지나자, 남자 쪽이 얘기를 시작했다.   
눈과 머리가 노곤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잘 수 있구나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주위는 자기 전하고 똑같이 밝았다.   
머리가 맑아지기 전에는 다음날 아침인가 생각했을 정도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잠잔 것은 겨우 한 시간 남짓이었다.     
"너란 년은......" 그는 그렇게 말했다.   
"너란 년은......'   
"그만 두세요. 남보기 사나와." 부인이 말했다.   
나는 등을 돌린 채 듣고 있었다.   
"아, 그래. 나는 어차리 꼴사나운 놈이라고."   
"바보 같은 소리만 하고."   
"오고 싶지 않으면 안 와도 돼. 누가 와 달라고 했어?"   
"누가 오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부인 목소리도 높아졌다.   
"조금 늦었을 뿐이잖아요."   
"조금이라고?" 그가 시계를 들어 보이는 것 같았다.   
"1시간하고 15분이야. 이게 조금이야?"   
"다음에는 빨리 올께요. 그럼 됐죠?" 부인이 말했다.   
"뭐야, 그 말투는."   
"당신은 그저 여기 누워 있을 뿐이잖아요?"   
둘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창 밖을 보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3층에서 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됐다고." 그가 말했다.   
부인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됐다니까." 그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나는 웃고 싶었다. 부인은 대답하려고 하지 않았다.   
"좋다고. 난 뒈질 거야. 이제 곧 뒈진다고." 그가 말했다.   
"이제 일주일도 못갈거야."   
나는 턱을 잡아당기고, 웃음을 참았다.   
너무 우스꽝스러웠다.   
소리를 내서 큰 소리로 웃어 주고 싶었다.   
그는 똑같은 말을 지난 달에도 했던 것이다.   
"......거짓말이 아니라고. 닷새나 견딘다면 대단한거지."   
"당신 용태는 선생님한테 다 듣고 있어요."라고 부인이 말했다.   
"나보다 그 따위 바보같은 의사 말을 믿는단 말이야?"   
"네, 믿어요."   
나는 내가 정말로 웃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어졌지만, 웃어줄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했다.  
 
"전보다 훨씬 나빠졌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가 자기 자신을 악화시키고 있다고요."   
부인이 말했다.   
"가겠습니다."   
"가버려."   
"가겠습니다."   
"빨리 꺼져." 그가 말했다.   
부인이 코트를 입고, 빨래를 담은 종이봉투를 집어 든 것을 소리고 알 수 있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지금 말해줘요."   
"분향할 향이나 들고 와."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말했다.   
"...... 조금 더 있다 가."   
부인은 문 쪽을 걸어 갔다.   
"...... 조금 더 있으라니까."그가 말했다.   
"내 얘기를 들으라니까. 아, 저 말이야. 아이들은......"   
탕, 하고 문이 닫혔다.   
나는 몸을 뒤집어 이웃 남자 얼굴을 보았다.   
중년 남자는 엉거주춤 일어나며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나를 보자, 배게에 쿵 하고 머리를 떨
어뜨리고 입을 다물었다.   
부인은 엘리베이터를 탄 것 같았다.   
그는 너무 얘기를 많이 해서 숨소리가 가빠져 있었다.   
나는 헛기침을 했지만, 얼굴이 웃으려다 말고, 굳어진 것을 깨달았다.     
그날은, 저녁식사 때에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내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저녁을 다 먹어치우자, 책을 읽기도 하고 글씨를 쓰기도 하면서 무척 바쁜 척 해 보
였다.   
방의 불이 꺼지고, 자기 표정에 신경쓸 필요가 없어지고 나서도, 그는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이어폰으로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점심 전.   
나는 1층 뢴트겐실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다.   
수술대 비슷한 비닐제 침대에 똑바로 눕혀져 있다. 방은 어둡고 좁다.   
납 유리창 저쪽 편에서 주치의가 들여다 보고 있다.   
그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그런 얼굴이 싫다.   
비장외의 부분은 모두 납으로 덮여 있다. 납판은 배 위에서 서늘하다.   
나는 목을 돌려 여기저기 바라보았다.   
볼 것 따위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도 둘러보았다.   
빨리 기사가 오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한다.   
기사는 벽 저쪽 편에서 주치의와 협의를 하고 있다.   
말소리가 낮아서 어느 쪽이 누구 목소리인지 알 수 없다.   
나는 그쪽을 보고 말을 걸었다.   
야트막하고 무거운 문이 열리고, 기사가 들어왔다. 그도 납판을 댄 가슴받이를 하고 있지만, 
문을 원래대로 닫았다.   
유리창 너머로 주치의의 사인을 보고, 서너 개의 스위치를 차례차례 켠다.   
눈금을 재고 다이얼을 천천히 돌려서, 지시된 세기로 가감한다. 전자관이 따뜻해지면서 가벼
운 윙윙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기사는 다시 한 번 미터를 확인하고 나서, 마이크로폰 형의 방사관을 내 배에 갖다댄다.   
그것이 가까이오면 복부 살이 뜨거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느낌뿐인지도 모른다. 방사선이 내 비장에 작용해서  어떤 효과를 내는지 안
다. 나는 그 효과를 무척 신뢰하고 있다.   
약 따위는 믿지 않는다.   
유리창 저쪽에서는, 주치의가 아까보다 훨씬 더 진지한 얼굴로  예의 그래프와 시계를 교대
로 보고 있다.   
나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기사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름기 많은 얼굴이다.코에 땀이 
배어 있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불빛이 차단되고, 유리창에 다른 얼굴이 나란히 선다.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이쪽을 보면서 주치의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아버지가 오면, 이 방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내 건강에 신경 쓰고 있구나, 라고 생각되곤 했
다.   
주치의가 손가락 끝으로 유리창을 톡톡 두드렸다. 기사가 스위치를 껐다.   
"됐나요, 이제?" 내가 물었다.   
"끝났습니다." 기사가 물었다.   
나는 배에 있는 것이 치워지자 일어나서, 납투성이인 방에서 나왔다.   
속옷이랑 파자마를 입고, 아버지한테 간다.   
"어때, 기분은?" 아버지가 물었다.   
"모르겠어."라고 나는 말했다. "선생님한테 물어봐."   
"여쭤봤어."   
아버지는 키가 나와 같다.   
"어떻대?"   
"괜찮대." 아버지가 말했다.   
토요일에는 매주 아버지가 왔다. 직접 차를 몰고, 옷이랑 잡지 그리고 깡통을 잔뜩 갖고  왔
다.   
"기분은 어때?" 아버지가 물었다.   
"이것만은 너밖에 모르니까 말이지."   
"별로 달라진게 없어." 라고 나는 말했다.   
"똑같은 것 같아."   
"그래?" 아버지가 말했다.   
"그건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야.그렇죠? 선생님?"   
"그렇고 말고요." 의사가 말했다.   
나는 두 사람의 얼굴을 고루 쳐다보았다.   
"그럼 , 4층까지 걸어가도 돼요?"   
"안 돼요. 그건." 웃는 얼굴로 간호원이 말했다.   
"역시, 그렇군요." 내가 말했다.   
"좋아지지 않은거죠?"   
"엘리베이터라면 괜찮아." 의사가 말했다.   
"계단은 아직 조금 무리지."   
"하지만 선생님......"   
"괜찮아.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줘. 괜찮다니까."   
"네."   
나는 4층까지 아무의 도움도 받지 않고 걸어가고 싶었지만, 양쪽에서 아버지와 예의 간호원
이 쫓아왔다.   
복도에 나선다. 
  주말에는 환자 가족이랑 방문객 때문에, 현관은 아주 붐볐다. 
  그들이 찾아오면 병원 분위기가 사라졌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가족 아닌 면회인들은 명랑하고 들떠 있어서,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렸다. 우리와 함께 다른 환자들도 탔다. 
  개중에 상태가 좋아보이는 환자 둘이 신나게 떠들어 댔다. 
  샐러리맨이 아니라도, 토요일에는 이런 기분이 되는 법이다. 누구나가 들떠 있었다. 
  4층에 도착했다. 접을 수 있는 침대의자를 든 환자 몇몇이, 옥상으로 통하는 콘크리트  계
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일광욕을 할 필요가 있는 환자들이었다. 
  방앞까지 오자, 간호원은 다른 볼일을 보러 돌아갔다. 나는 계속 지껄여댔다. 
  중년의 사나이는 방에 없었다. 아래층에서 정기 혈액검사를 받고 있는 거다. 
  지금은 그가 없는 편이 좋았다.   
지금까지의 무거운 커튼이 여름용커튼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천이 얇고 나무싹 같은 색이고, 
그리고 저쪽 편 경치가 비춰 보였다.   
마루랑 침대 위랑 복도 쪽 벽이 같은 색으로 물들어서, 어두운 느낌이 사라져 있었다.   
"밝은데."   
아버지가 말했다.   
"참 좋군."   
나는 창가에 가서, 새 커튼을 좌악 젖혀, 한데 모았다. 그것은 아주 가벼운 느낌이었고, 좋은 
냄새가 났다.   
침대에 눕고 싶지 않았다. 창틀을  붙들고, 넓게 펼쳐진 경치를  바라보았다. 창틀을 액자로 
치면 변화무쌍한 풍경화였다.   
사방이 온통 밝고 눈부시고, 봄 햇살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산의 나무들은 가지뿐이었지만, 
울퉁불퉁 넓게 펼쳐진 유채꽃밭은 만개였다.  
아버지는 여느때의 대형 가방에서 깡통을 꺼내서, 침대 아래  있는 나무상자에 옮기기 시작
하고 있었다.   
나는 알맹이가 꽉 찬 깡통이 묵직하게 맞닿는 소리를 들으면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채찍처럼 뻗은 가는 뽕나무 가지는 이미 싹을 부풀리고 있었고,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면
은, 그 부근이 옅은 녹색으로 번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옥상에서는 일광욕을 하는 환자들이 높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쾌활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마당에서는 면회하러 온 사람들이 환자들하고 벤치의 양지 바른 곳에 앉아 있었다.   
아까부터 어떤 여자의 바보 같은 웃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나는 유쾌했다.   
"눕는 게 좋겠어." 아버지가 말했다.   
"괜찮아." 나는 침대 위의 담요를 젖히고, 막 세탁한 시트에 걸터앉았다.   
"오늘은 기분이 좋거든."   
일을 끝낸 아버지는, 내 곁으로 와서 앉았다. 침대 쿠션이 삐거덕거린다.   
나는 휠체어를 타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 기뻤다.   
남을 만날 때에는 항상 상대방이 내려다 보았지만,오늘은 아버지하고 나란히 앉아 있다.   
방안도 바깥도 아주 밝았다.   
중년 남자는 아직 한참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나는 행복했다.   
"별일 없었어요?" 나는 아버지한테 물어 보았다.   
"없어." 아버지가 말했다.   
"만날 그렇지 뭐."   
"정말은 어떤데?" 내가 물었다.   
예전에는 이런 얘기는 묻고 싶지 않았다.   
"뭐가?" 
  "병 상태." 내가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게 대단한 질문이 아니다. 
  "진짜고 거짓이고 없어." 아버지가 말했다. 
  "여기 있는데 더 나빠질리는 없잖아?" 
  "그건, 그래." 나는 말했고, 마음 속으로도 똑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아버지가 포트로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뜨거운 차를 마시고, 야구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각기 다른 팀을 편들고 있었다. 그래서 얘기가 아주 신나게 진행됐다. 
  나는 얘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도, 퇴원할 때가 가깝다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야구 얘기가 끝난 뒤, 아버지가 물어 왔다. 
  "누구 병문안 온 사람 있어?" 
  "안 와." 내가 말했다. 
  "그래?" 나는 아버지 얼굴을 보지 않았다. 
  "왜?" 
  "응." 아버지가 말했다. 
  "그냥. 누가 왔었나 했을 뿐이야." 
  "괜찮아, 안 와도." 
  "이제 오겠지." 아버지가 말했다. 
  "이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 "라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침대에 올라가서, 드러누웠다. 
  괘종시계가 울렸다. 
  아버지는 알람을 멈추게 하고, 다음 시간으로 바늘을 돌리고 나서, 원래 있던 장소에 놓았
다. 
  나는 종이봉투에서 미레란 정제를 꺼내 아버지가 컵에 따라준 물로 꿀떡 마셨다. 
  정제가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다시 한 번 물을 마셨다. 
  똑바로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멍해져 왔다. 
  "왜 그래?" 아버지가 물었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이제 곧 오겠지." 
  "괜찮아, 안 와도. " 내가 말했다.   
그때 간호원이 문을 열고, 중년 남자를 휠체어로 실어 왔다.   
그는 무척 피곤한 모습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아버지를 보자 뭔가 중얼거렸지만, 침대에 뉘어지고, 얼굴을 복도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얘기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길고 튼튼한 주삿바늘로 등 쪽 골수에서 , 막 생긴 피를 조금 뺀 것이다.   
간호원은 살짝 담요를 덮어 주고, 휠체어를 밀면서 나갔다.   
나는 그녀하고 얘기하고 싶었다.   
"학교에서 통지가 왔어."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요?"   
"일단은, 2학년으로 해두려나봐."   
"......"   
"상관없잖아?" 아버지가 말했다.   
"대학 입시같은 것도 없구 말야."   
"아무래도 상관없어.대학따위." 내가 말했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누구 보고 싶은 사람 없나?"   
"응."   
"와 달라고 부탁할까?"아버지가 말했다.   
중년 사나이는 엎드린 채였기 때문에 폐에 무리가 가서, 가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지 않도록 했다.   
"친구들을 만나는 게 좋지 않을까?" 아버지가 말했다.   
"됐다니까." 나는 화를 냈다.   
"아무도 이런 데까지 오고 싶지 않은 거야."   
그 뒤 아버지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얼마 있다 돌아갔다.   
나는 아버지가 갖고 온 잡지를 집어들고 , 언제나 읽던 연재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해가 지자, 기온이 내려가고, 아직 겨울 기척이 남아 있었다.   
즐거운 토요일은 끝난 것이다.   
    
어두워지자, 우리에게 저녁을 갖다 주고, 창이랑 커튼을 닫기 위해 간호원이 왔다.   
그녀는 병원 앞에 버려진 강아지 얘기를 계속했다.   
나는 그녀 얼굴을 보면서 그 얘기를 듣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치자, 그녀는 커다란 수건을 뜨거운 물로 꼭 짜서 온 몸을 닦아 주었다.   
중년 남자는 얌전하게 있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혈액검사가 끝난 뒤에는 대개 그런 것이다.   
눈이 피곤해졌다.   
나는 책을 덮고, 스탠드를 껐다.   
3층 복도를 오가는 발소리가 점차로 작아졌다.   
시계 소리만이 들리고, 중년 남자는 옆 침대에서 예의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간호원을 생각할 뻔해서, 얼른 그만 두었다.   
가슴이랑 배 살을 집어 보았다.   
잘 접히지 않는다. 또 그녀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낮잠을 자려는 참이었다.   
중년 남자는 어저께 잠자코 있었던 몫을, 오전 내내 쏟아 부었다.   
나는 한 마디도 듣지 않았다.   
그는 지금, 입을 다물고 있다. 그대로 20분만 더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이 방에서 나갈 수가 있다. 오늘은 자고 싶지 않았다.   
"잠들었나?" 중년 남자가 물어 왔다.   
아직도 얘기를 더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가슴속에서 혀를 찼다.   
"이봐." 또 부른다.   
"정말 잠들었나?"   
나는 상대하지 않았다. 잠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더 이상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새 잡지는 구석까지 다 읽어버렸다.하지만 자고 싶지는 않았다.   
시간을 죽이는 방법에는 이것밖에 없었다.   
속임수이든 도피이든 그런 명목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는다.   
반 년 동안 누워 있는 동안에 배운 일인데, 지금은 이 짓을 아주 잘 할 수가 있다.   
눈을 반만 감는다. 완전히 잎이 돋은 뽕나무 밭과 유채꽃의 노란색을 계속 응시한다.   
방해가 되는 소리는 전부 배제하고, 규칙적인 소리에만 청각을 집중시킨다.   
목 아래의 동체가 분리해가는, 여느 때의 느낌이 시작된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두  다리, 배설작용에나 쓰이는 성기, 그 다음
에 긴 소화기관, 잡다한 내장, 뿌연 피, 얽힌 혈관군, 조잡한 살 종류, 뼈. 이 모든 것의 감각
이 사라져 간다.   
드디어 두 개의 눈알만 남았다. 눈알이 되어 베개 위를 구르고 있다.   
희번덕 움직였다.   
그러자 눈알은 각각 둘로 갈라져, 서로 달라붙어 네 개의 날개로 바뀌었다.   
색은 커튼과 같은 엷은 녹색이다.   
나는 나비가 되어 침대를 떠나자, 우선 거울 앞에 가봤다.   
내 모습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날개를 한 번 접고, 그리고 천천히 펼쳐 갔다.   
날개에는 녹색 인분(燐粉)이 구석구석까지 얇게 묻어 있다.   
고상하고 완벽하다, 고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완벽한 것을 좋아한다. 날개가 한 군데라도 파손되어 있으면 전부 싫어진다.   
거울 속을 깊이 들여다 본다.   
빨대는 까맣고 반짝반짝 윤이 나는 가는 관으로 되어 있고, 제대로 감겨 있다.   
그것은 마치 시계용수철처럼 정확하게 말려 있다.   
그렇지만, 거울 속의 자기를 너무 쳐다보아서는 안 된다.   
너무 오래 응시하고 있으면, 결국에는 누구라도 정신이 이상해지는 법이다.   
나는 잠깐 날아서, 거울에서 떨어졌다. 방 끝에서 끝까지 춤추며 돌아다녀 본다.   
마루 위에도 벽에도 천장에도 아무 데에도 내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림자 따위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만날 쫓아다니면, 가끔 그 사실을 깨닫고, 무서워진다.   
그런 일로 골치를 썩히거나 하고 싶지는 않다.   
소리 없이 천장까지 날아오르고, 그리고 형광등 가장자리에 앉았다.   
나는 거기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아래에는, 밤도 아닌데 두 남자가 누워 있었다. 
  양쪽 다 얼굴이 몹시 하얗고, 그 중의 한 사람은 아직 꽤 젊다. 
  또 한 사람은 끊임없이 부스럭 부스럭 몸을 뒤척이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침대가 삐거덕 거렸다. 
  그들은 침대에 가만히 누운 채, 그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낫기를 기다리던 것은 처음  얼마 동안이었고, 지금은 오로지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두 침대 사이에 놓인 다리가 긴 탁자 위에, 유리 화병이 놓여 있다. 
  거기에 내려 앉아, 나는 꽃 중의 하나에 빨대 뿌리를 집어 넣고 꿀을 빨았지만, 금방 토해
냈다. 
  지독한 맛이었다. 
  빽빽이 꽂힌 꽃은 모두 썩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나마 나은 튤립 꽃 속으로 파고 들어가,  얼굴만 내밀고 주위를 둘러 보았
다. 
  사실 이 방의 꽃은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꽃만이 아니다. 방 전체가 썩어가고 있었다. 
  젊은 남자는 꼼짝할 기색조차도 없고,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두 사나이가 내뱉는 숨 때문에, 나의 기문은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켰고,숨쉬기가 괴로웠다.  
 
지금의 나는 이 패들처럼 몰골 사납지도 않고, 통나무처럼 뒹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은 영혼뿐이다.   
처치 곤란한 살코기 덩어리 따위를 끌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넉 장의 날개를 두 번, 세 번 진동시킨 다음에, 나는 단숨에 창 틈새로부터 , 드넓게 펼쳐진 
세계로 뛰어 나갔다.   
순간, 매끄러운 대기의 흐름이 나를 밀어 올려, 높이, 더 높이, 올라갔다.   
상승 기류처럼 빨리 올라간 것이었다.   
현기증이 나고, 촉각이 짤려 나갈 듯이 떨린다.   
속도에 익숙해지자, 아래를 내려다 보아도 뭐가 뭔지 알아볼 수 있었다.   
저 멀리, 산꼭대기를 점하고 있는 하얀 건물이 보였다. 
  그러나 다른 산들은 그보다 더 높고 늘씬하며 잘 생겼다.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는 강 양쪽에는, 평야가 수천 배의 넓이로 펼쳐져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는 예의 불길한 산꼭대기 건물 따위,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뿐더러 관심조차 없다 해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네모난 콘크리트 덩어리의 구멍을 , 하얀 옷을 입은  여자들이라든가 아주 느린 걸음걸이
의 인간들이 들락날락하고 있다. 
  나는 높이 올라갔다. 
  하얀 건물은 작아져 가다가, 끝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바람은 따스하다. 
  녹색 날개를 가볍게 한 번 흔들자, 단숨에 수십 미터 이동할 수 있었다. 
  벌레든 새든 상관없다. 
  내 바로 아래에 와서 , 누군가 내 날개를 햇빛에 비춰 보아 주면 좋을 텐데. 
  그러면, 거기에 바다가 보일 것이 틀림없다, 고 나는 쭉 생각했다. 
 

반응형

'책,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낯익은 얼굴  (0) 2023.05.27
세상사는 이야기  (0) 2023.05.27
실제보다 더 실제적인: 들뢰즈와 가따리에 따른 시뮬라크르  (0) 2023.05.27
신사임당  (0) 2023.05.27
무라카미 하루키  (0) 2023.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