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 (1504∼1551)
조선시대의 여류 화가이자 문인으로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진사 명화의 딸로서, 감
찰 이원수의 아내이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경문을 공부하였고 효
성이 지극하여 칭송이 자자했다. 글을 잘 지었고, 바느질, 자수는 물론 시, 그림,글씨에도
뛰어난 재주를 발휘하였다. 특히 그림은 안견의 영향을 받았으며, 부드러우면서도 세밀한
기법으로 우리 나라 제일의 여류 화가로 손꼽히고 있는데, 풀,포도,풍경,곤충 등이 그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자녀 교육에도 남달리 노력하여 인자하고 현명한 어머니와 어진 아내로
서 거울이 되어 왔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작품에도 자리도 , 산수도 , 초충도 , 연로도 등
이 있다.
1. 예술하는 마음
마루에서 인선은 언니와 실뜨기를 하며 놀다가 쟁반같은 달을 우러르며 귀엽게 노래를 불
렀다. 인선은 이때 열 살이었다. 대청에선 30대 중반의 여인과 이 집의 종 넙적이가 송편을
빚고 있다.
오늘은 팔월 열나흗날 밤이다. 윤기 나는 나무 쟁반에는 예쁘게 만들어진 송편이 가지런
히 놓여져 있다.
넙적이는 송편을 빚다가 문득 말했다.
아씨의 송편은 정말 예뻐요. 끝이 외씨 버선처럼 조붓하고 갸름하잖아요.
아씨라고 불린 여인은 미소를 지었을 뿐 대꾸를 하지 않았다. 살결이 눈처럼 희고, 널찍한
이마에 눈썹은 그린 듯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오똑한 콧날에 꼭 다문 입술은 강한 긍지와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쯧쯧......, 웬 수다가 그리도 많으냐.
이 댁 안주인 최씨 마님은 입맛을 다셨다. 넙적이는 호랑이 마님의 한마디에 목을 움츠리
며 아씨에게 히죽 웃어 보였다.
대청에선 앞쪽으로 야산이 보였다. 넙적이가 입을 다물자 너무도 조용하여 소나무의 솔바
람 소리가 무슨 음악처럼 들렸다.
인선은 졸린지 하품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딜 가셨어요?
지금쯤 경포대에서 친구분들과 약주를 드시며 달 구경을 하시겠지.
인선의 할머니는 최 참판의 둘째 따님으로 이사온이란 분에게 시집갔다.
이사온은 강릉의 동북방 20리 쯤의 북평 마을에 터를 잡고 집을 지었는데 뒤꼍에 검은 대
(오죽)가 우거져 있다 하여 오죽헌이라 불렀다.
그러니까 오늘은 너도 할머니하고 자자. 할아버지께서 약주를 잡수고 늦게 돌아오시면
너도 싫을 테지?
싫어요. 전 엄마하고 자겠어요,
호랑이 마님이라 모두들 무서워하는 최씨 마님은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넌 별난 아이로구나.
인선은 물론 여자 아이였으나, 평소 사랑방에서 할아버지와 잤다. 그것은 할아버지께 인선
이 글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평은 등성이 하나를 넘으면 거울처럼 맑은 경포가 있고 경포대와 한송정 같은 명소가
있다.
지금, 마을 우물가에서 아낙네 서넛이 김장배추를 씻으며 수다를 떨고 있다.
돌이 엄마, 글세 또 따님이래요.
누가 말이죠?
또 따님이라면 알 만하잖아요. 이 생원댁 아씨말고 또 누가 있겠어요.
저런! 그렇듯 착하고 어지신 아씨인데 따님만 다섯씩 낳다니!
아씨도 그렇지만, 마님은 또 얼마나 서운하실까?
이사온은 슬하에 딸 하나밖에 두지 못했으니 바로 인선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이다. 인선,
즉 사임당의 어머니이고 율곡의 외할머니인 이씨 부인은, 조선 왕조 제9대 성종 11년(1480)
강릉 외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이씨 부인은 결혼할 나이가 되자 한양에 사는 신명화에게 시집을 갔다. 혼인하여 얼마 동
안은 한양 시가에 올라가 있었다. 그러나 친정 어머니 최씨의 병환으로 강릉에 내려왔던 것
이다. 그리고는 한양에 다시 가지 않았는데, 이씨 부인이 부모에게는 단 하나의 딸이었기 때
문이다.
이씨 부인은 주로 친정에서 살면서 딸만 다섯을 낳았다. 인선은 그 중 둘째 딸로 조선 왕
조 제10대 연산군10년(1504) 10월 29일에 태어났다. 그리고 그 밑으로도 계속 딸만 낳아 집
안은 시름에 잠겨 있었다.
이렇게 노닥거리다가 이 많은 배추를 언제 다 씻겠어요.
돌이 엄마는 그러면서 문득 우물 둔덕을 바라보더니 쉿! 하며 손가락을 입술에 대었다.
우물 둔덕에는 사철 푸른 상록수가 심어져 있었다. 상록수 뒤로 길이 나있어 윗마을과 아랫
마을이 통한다.
우물 앞으로 논이 펼쳐져 있다. 미나리 꽝의 잘라 낸 포기가 아직도 파릇파릇했다.
쉿! 생원댁 작은 아씨께서 오세요.
인선은 남장을 하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는 아들도 없고 손주도 없어서인지 어
려서부터 똑똑하고 예뻤던 인선에게 곧잘 남장을 시켰다. 그리고 천자문 도 가르쳤다. 요즘
엔 인선의 학식이 높아져 통감 을 윗마을 김 진사에게 배우고 있었다.
그러나 인선은 공부도 잘했지만 어머니를 닮아 손재주가 있었다.
인선은 늙은 하인을 데리고 우물 가까이에 이르자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할아범, 하늘이 몹시 파랗잖아? 그런데 어머니의 치마처럼 쪽빛도 아니고 파랑도 아닌
저런 빛깔은 뭐라고 하면 좋을까?
네?
하인 목 서방은 갑작스런 인선의 말에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쩌면 저렇게 파랄 수 있을까?
그야 하늘이 파랗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죠. 마치 동해의 물빛이 파아란 것처럼
요.
그러나 인선은 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무언가 곰곰이 생각했다.
초겨울의 하늘만큼 파랗고 해맑은 것은 없으리라. 더욱이 공기 좋은 시골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푸르름이란 뭐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알름답다. 그렇지만 인선은 그 아름다움에만
넋을 잃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저런 빛깔을 낼수 있을까?
물론 인선은 아직 자기 마음 속의 그런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없었다.
아름답다는 느낌과 아름다운 것을 자기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 그것은 예술의
마음이다.
인선은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한 번 질문하기 시작하면 어째서 그렇지? 하고 끝
까지 캐물었다. 지금도 같았다.
할아범은 하늘빛과 바다빛이 같다고 아까 말했잖아. 바다에 가 본 일이 있어?
인선은 바다 가까이에 살고 있지만 아직 바다 구경을 하지 못했다. 할머니나 어머니가 여
자란 필요없이 집밖에 나다니면 안 된다고 늘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인은 무슨 엉뚱한 질문이라도 나올까 겁을 내고 있다가, 그거라면 대답하기 쉽다는 듯
신바람이 나서 말했다.
그러믄요, 아가씨. 쇤네는 동해 바다도 서해 바다도 다 구경하였지요.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동해가 가장 아름답고 정말 바다답죠.
어떻게?
인선의 눈이 갑자기 반짝 빛났다.
네?
어떻게 아름답지? 동해 바다가?
네, 그것 말입니까. 그야 동해는 바닷물이 더 맑고 더 푸르답니다.
하늘처럼?
인선의 질문은 세밀했다. 아직 보지도 못한 동해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더욱 눈을 빛낸다.
하인은 마음 속으로 큰일났구나 싶었다.
하늘빛과 바다빛은 조금 다르죠.
아까는 같다고 했잖아?
그야.......
늙은 하인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우물에서 배추를 씻던 아낙네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야 모두들......, 그저 파랗다고 하니까, 쇤네도 그렇게 말했습죠.
답답하기만 하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하늘과 바다의 빛깔이 다르다면 어떻게 다르냐
하는 거야. 할아범은 바다를 보았다면서 그것 하나 가르쳐 주지 못해?
늙은 하인은 마침내 울상이 되었다. 누구나 파랗다 하면 그 이상 더 묻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듯 어떻게 파랗지? 하고 물으면 대답을 하기 어렵잖은가.
아가씨, 쇤네는 무식해서 더 말씀드릴 수 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아씨마님이나 생원 나
으리께 물어 보세요.
우물을 지나고 작은 등성이를 넘어서 조금 가면 솔밭속에 아담한 기와집이 나타난다. 인
선의 외가이다.
솟을대문을 지나 대청 앞으로 가자 인선의 외조부와 외조모가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할
아버지 옆에서 물레질을 하고 있다.
인선은 댓돌에 올라서며 맑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다녀왔습니다.
오냐, 오늘도 글을 열심히 배웠느냐?
외조부 이사온은 손녀가 귀엽기만 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네.
어디, 내 앞에서 오늘 배운 대목을 읽어 보아라.
싫어요. 할아버지는 칭찬보다도 트집만 잡는걸 뭐.
인선은 그대로 방에 들어가려다가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했다. 어제부터 어머니가 몸
이 편찮다면서 딴채에 자리를 펴고 누웠던 일이 생각났다.
아니 그것보다도 인선의 귀에 가냘프게나마 응애, 응애 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할아버지, 어머니가 아기를 낳았어요?
그렇단다.
어머나? 남자 동생이에요, 여자 동생이에요?
이 생원은 그 말에 대꾸도 않고 획 얼굴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 아직도 댓돌 아래에서 허
리를 굽히고 있는 하인에게 호통을 쳤다.
차 서방, 뭘 아직도 꾸물거리고 있나? 어서 밭둑에 나가 오동나무나 심게.
영특한 인선은 외할아버지가 화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겨울이 가고 어느덧 봄도 지나 초여름이었다. 인선은 요즘 새로운 일이 하나 생겼다. 외할
아버지가 안마당에 못을 파고 잉어를 구해 넣었기 때문이다.
인선은 틈만 나면 못 속에서 노니는 잉어를 관찰했다.
어떠냐, 마음에 드니?
네.
그렇다면 다행이다. 사다 놓은 보람이 있으니.
그런데 할아버지, 잉어도 수염이 있네요, 이 잉어도 할아버지처럼 나이가 많은가 보죠?
원 녀석도!
그런 며칠 뒤의 일이다. 인선은 밤에 잠을 자다가 첨벙 하는 소리에 문득 잠이 깼다. 잉어
가 못에서 세차게 뛰어오르다 그만 밖으로 떨어졌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선은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자리에서 살짝 빠져나와 대청으로 나왔다. 시간이 얼마쯤
됐는지는 모르지만 달이 휘영청 밝았다. 댓돌 위의 신을 찾아 신고 뜰로 내려섰다.
그때, 인선은 뒤꼍으로 통하는 샛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왜, 문이 열려 있을까?
인선은 이끌리듯이 샛문을 지나 안채의 벽 모퉁이를 돌았다. 그 순간, 인선은 발이 얼어붙
은 것처럼 우뚝 서 버렸다.
장독대 옆, 터줏자리 앞에 희끄무레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 소복한 여인은 터주님 앛
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수없이 절하며 빌고 있었다. 어머니였다.
이상하다, 뭘 빌고 계실까?
인선은 살며시 돌아섰다. 어머니다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튿날 아침, 인선은 연못의 잉어를 보고 있었다.
인선아! 인선아! 아침 먹기 전에 공부를 해야 하지 않니?
할아버지는 아까부터 인선을 불렀으나 인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늘은 저 애가 웬일일까? 잉어에게 병이라도 생겼나?
할아버지가 못가로 다가왔다.
잉어도 별 탈이 없구나. 그런데 너는 그렇듯 매일 보면서 싫증도 나지 않니?
할아버지는 잉어를 매우 소중하게 기르고 있었다. 먹이도 아침 저녁으로 직접 주었다.
잉어도 그것을 알고 있어 할아버지 발 소리만 들려도 벌써 수면에 떠올라 입을 뻥긋거린
다.
자아, 그만 글 읽으러 가자. 그러다가 네 어머니가 알면 종아리 맞겠다.
할아버지는 재촉했으나 인선은 잉어를 물끄러미 바라 볼 뿐 좀처럼 말이 없었다. 그러다
가 불쑥 말했다.
잉어는 힘이 좋다면서요?
물고기 가운데 제일일지도 모르지.
그래서 등용 이란 말이 생겼군요.
뭐? 등용?
책에서 배웠어요. 중국 황하 상류에 좁은 여울이 있고 폭포가 있대요. 잉어는 그 폭포수
를 따라올라가 마침내 용이 된대요.
아니, 네가 그 말을 알고 있다니 기특하구나. 그러니까 등용이란 크게 출세한다는 뜻도
된다.
할아버지는 손녀의 말이 너무도 대견스러워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할아버지는
인선이 울고 있는 것을 알고 깜작 놀랐다. 샛별 같은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니, 너 울고 있지 않니? 어머니에게 무슨 야단이라도 맞았니?
인선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폭발하듯이 조그만 가슴에 담아 두었던 생각을 모두 털어
놓았다.
할아버지, 부탁이에요. 어머니께 잉어를 약으로 쓰도록 해 주세요. 잉어는 보약이 된다잖
아요! 네? 할아버지.
인선은 터주님에게 비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난 뒤 밤새도록,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못
가에 쪼그리고 앉아 내내 어머니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 얼굴은 어린 인선이가 보아도 늘 핼쑥하고 핏기가 없었다.
어머니는 어디가 아프실까? 할머니처럼 어머니도 아프기 때문에 터주님께 빌고 계셨을
거야.
네? 할아버지. 그 대신......, 그 대신 제가 잉어를 그려 할아버지께 드리겠어요.
네가 잉어의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벌써 한 달도 넘게 보았는걸요.
알았다, 네 마음이 갸륵하구나.
할아버지도 마침내 승낙했다. 인선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 때였다.
나리마님, 아씨마님! 한양 서방님이 오십니다요.
차 서방이 뛰어들며 외쳤다. 그 뒤를 따라 아버지 신명화는 벌써 대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인선의 아버지 신명화는 평산 신씨로 자는 계흠, 호는 송정이다. 멀리 고려 왕건 태조의
충신이던 장절공 신숭겸의 18대손이다.
인선도 평소 아버지 생각을 가끔 했다. 인선은 외조부. 외조모 그리고 어머니도 좋았지만
역시 아버지가 가장 좋은 것 같았다.
어렸을 적 기억이지만, 언제나 조용하기만 한 집에 아버지가 오면 갑자기 활기가 넘쳤다.
사랑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고,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도 많은지 밤
늦도록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도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사랑방에 술상을 내보내기에 바
빴었다.
그런데 지금 인선은 왜 그런지 아버지에게 반갑게 달려갈 수가 없었다.
아버지, 오셨어요!
가볍게 절을 했지만 서먹서먹한 느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어머니를 너무나 골똘히 생각하다가 갑자기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한 달쯤 있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갔는데 인선은 그 동안 날마다 틈나는 대로 잉
어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 인선은 열심히 잉어를 그리고 있었는데 문득 누군가 뒤에서 그림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인선은 얼른 그림을 감췄다.
할아버지로부터 얘기 들었다. 어머니를 그렇게 생각하다니 효녀로구나. 어디, 아버지에게
도 그림을 보여 주지 않겠니?
싫어요.
인선은 자기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고생만 시키고 혼
자 한양에만 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싫다면 할 수 없구나. 그런데 왜 잉어를 그리고 싶어 졌니? 잉어 말고도 산도 있고 달도
있고 꽃도 있으며 새도 있는데.......
전통적인 동양의 그림은 산수화로 대표된다. 그러나 대체로 세 가지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산수화로, 산을 그리면 거기엔 물이 따른다. 산은 보통 바위로 나타내는데 소나
무가 있고, 신선인 듯 싶은 노인이 곁둘여진다. 또 소나무엔 학이 앉아 있고, 기러기가 날거
나 달이 그려진다.
두 번째는 인물화로, 요즘 말로 초상화이다. 이런 인물 그림은 사당에 걸어두기 위해 그려
졌는데 영정 이라고 불렸다.
세 번째는, 화조화로, 꽃과 새를 대조시킨 그림이다. 이런 것도 어떤 정해진 틀이 있었다.
예를 들어 소나무와 황새, 매화꽃과 두견새, 꽃과 나비 등이다.
이렇게 세 가지가 동양화의 큰 흐름인데 인선은 좀더 색다른 소재를 고른 셈이었다. 그래
서 아버지도 궁금하게 여겨 물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불쌍해서요!
아버지로선 너무나 뜻밖인 인선의 대답이었다. 그러나 한번 열린 인선의 말은 거침이 없
었다.
아버진 미워요...... 어머닌 터주님께 빌며 울고 있었어요. 틀림없이 할머니처럼 어딘가 아
프셔서 우셨을 거예요. 그래서 할아버지께 잉어를 약으로 어머니께 해드리라고 부탁드린 거
예요. 그리고 할아버지가 잉어를 사랑하시니까......, 제가 대신 잉어를 그려 드리는 거예요.
인선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는 딸의 작은 어깨를 안아 주며 말했다.
그랬었구나.
어른들에겐 아이들이 모르는 그들만의 걱정이 있는 것이다. 이씨 부인은 딸만 다섯을 낳
았다.
여자로서 아들을 낳지 못하여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못하면 큰 죄다.
인선의 어머니 이씨 부인은 그런 생각을 하며 터주에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던 것이며, 아
들을 낳지 못한 자신이 서글퍼서 울었던 것이다.
남편과 떨어져 사는 이씨 부인은 가족이 함께 모여 즐겁게 살기를 바랐다. 인선의 아버지
신명화는 그 동안 폭군 연산군이 정치를 하는 아래에서는 벼슬을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인선이 세 살 때 중종 반정 이 일어나 연산군이 쫒겨나자 신명화도 과거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한양으로 다시 떠나는 날, 외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장인어른, 이제는 세상도 바뀌었으니 과거라도 볼까 합니다.
암, 그래야지, 잘 생각했네.
아버지는 인선이 열세 살 때 소과에 응시하여 진사과에 급제했다. 그리고 벼슬길에 나가
라고 권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사양하고 계속 글읽기로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이것은 나중
의 일이다.
아버지가 떠나고 난 다음 날, 어머니는 인선을 불러 앉히고 말했다.
아버지께선 떠나실 때 너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다. 열심히 공부하고 그림도 많이 그
리라고. 이다음에 오실 때에는 너에게 참고가 될 좋은 그림을 구해 갖고 오신다고 약속하셨
다. 너도 기쁘겠지?
인선은 이 말을 듣자 아버지가 단번에 좋아졌다. 그렇게 일러주는 어머니의 얼굴도 행복
한 것처럼 느껴져, 인선의 마음은 더욱 기뻤다.
어머니는 또 이렇게 말했다.
우선 네 그림 공부를 위해 좋은 화첩을 구해다 주마. 시골이라 좋은 화첩이 있을지 모르
겠다마는...... 그런데 인선아! 그림 공부만 해서는 좋은 규수가 될 수 없다. 서예. 바느질. 자
수, 무엇이고 빼놓을 수가 없구나.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지금까지 하고 있는 글공부와 그림
공부 말고도 글씨 공부를 시작하여라.
이리하여 글씨 공부를 시작한 인선은 글씨에도 그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음을 알았
다.
행서. 초서. 해서, 그리고 전서와 예서도 있었다. 인선은 글씨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시 또한 인선이 좋아하는 학문이었다. 시를 배우려면 옛사람들의 시를 먼저 배워야 했다.
외조부 이 생원은 총명한 손녀에게 당송팔가문 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이 책은 당나라와
송나라 때의 뛰어난 시인 한유. 유종원. 구양수. 왕안석. 증공. 소순. 소식. 소철, 이렇게 여덟
사람의 시를 모은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시경 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시경은 공자님께서 엮으신 것이다. 공자님이 살아 계셨을 무렵 중국은 여러나라로 갈라
져 노래가 각각 달랐지. 그 때의 노래를 모은 것이 시경이다.
어느덧 인선은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높은 학문을 갖게 되었다.
2. 행복한 소녀
외할머니는 해수병이 있어 잦은 기침을 했다. 어머니는 그런 할머니의 시중을 드느라고
늘 바빴다. 또 아직 어린 동생들의 치다꺼리도 해 주어야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리 바빠도 꼭 인선에게 그날 배운 것이 무엇인지 물어 보았다.
네, 어머니. 오늘은 재미있는 것을 배웠어요.
무엇인데?
맹자라는 성인이 있었대요.
맹자는 공자의 버금가는 성인으로 알려진 유교의 대학자다. 맹자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덕으러 인(어짐). 의(의로움). 예(예의). 지(슬기)를 강조했다.
어머니는 인선이 그런 맹자 를 배웠다고 하자 몹시 대견스러웠다.
맹자도 훌륭했지만 그의 어머니도 훌륭하다고 해요.
어째서?
어머니는 인선이가 하려는 이야기를 벌써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물었다. 인선은 신바람이
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맹자는 어머니 혼자의 힘으로 키워졌지요. 그런데 맹자의 집은 묘
지 가까이 있었대요. 그래서 어린 맹자는 밤낮 무덤에 사람을 파묻는 일만 보았기 때문에
노는 것도 무덤 파는 인부의 흉내만 내더래요.
저런!
맹자의 어머니는, 안 되겠다, 다른데로 이사를 가야지 하며 이번에는 시장 근처로 집을
옮겼대요. 그랬더니 맹자는 밤낮 장사꾼 흉내만 내면서 놀았지요. 어머니는, 여기도 안 되겠
다,하며 다시 글방 근처로 옮겼어요. 그러자 맹자는 제삿상을 차려 놓고 절하는 흉내를 내면
서 놀았대요.
음, 재미있구나. 그런데 그것이 무슨 가르침인지 알고 있니?
어머니는 내가 그것도 모르는 줄 아세요? 맹모 삼천의 가르침(맹모 삼천지교)이지 뭐예
요.
맞았다. 그런데 인선아, 맹자가 왜 제삿상을 차려 놓고 절하는 흉내를 냈을까. 까닭은 알
겠니?
인선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거기까지는 미처 몰랐다.
그것은 배움의 바탕이 예의에 있기 때문이란다.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께 인선은 아침
저녁으로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인사를 하겠지.그것도 예의지만, 우
리를 낳아 주시고 오늘을 즐겁게 살도록 해 주신 조상님을 받드는 것도 예의란다. 이런 예
의를 모르는 사람은 짐승이나 다를 것이 없다.
네, 어머니. 그러니까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것도 예의겠네요?
이날, 인선은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운 느낌이었다. 그 가운데 학문을 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어머니의 말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감명을 주었다.
무슨 학문이고 학문에 대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너는 요즘 글씨 공부를 하고 있겠지?
그런데 글씨 잘쓰는 사람은 붓 탓을 하지 않는다. 는 이야기를 알고 있니?
아니오. 어머니, 그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중국의 당나라는 학문과 예술이 크게 발달한 시대였다. 이무렵 서도의 대가로 구양순과
저수량이 있었다. 그런데 저수량은 좋은 붓이나 먹이 없으면 글씨를 쓰려고 하지 않았단다.
어느날 친구인 우세남이 저수량을 찾아왔다. 우세남도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라 저수량이
물었단다.
여보게, 내 글씨와 구양순의 글씨를 비교할 때 어느 쪽이 더 명필일까?
구양순은 종이나 봇에 관해 불평을 말하는 일이 없고 어떤 종이나 붓이라도 가리지 않고
글씨를 쓴다네. 그런데 자네는 아직도 종이나 붓에 얽매여 있으니 도저히 구양순은 못 따르
네.
이 말에 저수량은 얼굴이 빨개졌단다. 알겠니? 정말 명인은 붓이나 종이 같은 것에 불평
을 말하지 않는 법이란다.
우리나라의 명필로서 어떤 분이 계실까요?
글세, 신라 때의 고운 최치원 같은 분이 훌륭한 명필이셨지. 고운은 열두 살 때 당나라에
유학하여 열일곱 살 때 그 곳 과거에 장원 급제를 하셨다는구나.
그럼 신라에는 과거 제도가 없었나요?
없었지.
고운은 당나라에서 벼슬을 하다가 스물여덟 살 때 신라로 돌아오셨다. 사람들의 그의 재
주 시험하려고 엉뚱한 질문을 했단다.
해와 달은 하늘에 걸려 있는데, 하늘은 어디에 걸려 있지요?
그러자 고운은 이렇게 대답했다.
여보시오, 산과 물은 땅 위에 얹혀 있는데 그 땅은 무엇에 얹혀 있소? 당신들이 내 물음
에 먼저 대답한다면 나도 그 물음에 대답하겠소.
인선은 그 이야기를 듣자 활짝 웃었다.
그밖에 다른 명필은 없나요?
없긴 왜 없겠느냐? 고운보다 몇십 년 앞선 분으로 김생이란 명필이 계셨지. 그분은 어려
서부터 글씨에 대해선 천재였단다. 그럼에도 그 분은 여든 살을 사시는 동안 일생을 통하여
오직 글씨 공부만 하셨다고 하더라.
어머나!
그분이 바로 우리나라 서도의 시조이시다.
그렇다면 그분은 어떻게 글씨를 배웠지요? 처음 시작한 분이라면 스승님도 없을 게 아녜
요!
그야 혼자 익히셨겠지. 그분은 단풍잎을 따서 글씨연습을 하셨는데 나중에는 샘물이 먹
물로 시커멓게 변할 정도였다고 하더라.
그밖에 다른 분은 없나요?
안평 대군이란 분이 계시지. 그분은 왕족이셨는데 어찌나 글씨를 잘 쓰셨던지 중국의
사신이 우리나라에 올 때마다 그분의 글씨를 받아가서는 보물처럼 여겼다고 하더라.
인선은 그림 공부도 계속했다. 언젠가 할머니가 인선의 그림을 보고 칭찬했다.
오, 이것은 산수화로구나. 정말 잘 그렸다. 소나무에 황새가 앉아 있고......
인선은 뽐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일부러 다르게 말했다.
아니에요, 잘 못 그렸어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한 마디 했다.
허허, 그러고 보니 맘에 차지 않는다는 뜻이로구나. 암, 그래야만 하는 거다.
인선은 이상했다. 일부러 못 그렸다고는 했지만, 사실은 자기도 잘 그렸다고 생각했던 것
이다.
인선아, 너는 지금 네가 그린 그림을 잘 못 그렸다고 말했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중
요하다. 왜냐하면 자기의 모자람을 아는 사람은 더욱 노력하여 발전시킬 수가 있는 거란다.
알겠니, 내 말을?
네.
허허, 정말 알았단 말이지? 그래, 어떻게 알았단 말이냐?
저는 그림 그리는 것도 글 배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할아버지도 언젠가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글이란 한이 없는 것으로 죽을 때까지라도 다 배울 수 없는 것이라고요. 그러
니까 그림도 그럴게 아녜요.
정말 기특한 대답이구나. 맞았다. 맞았어! 바로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다.
인선은 이때, 전부터 마음먹었던 청을 하리라 생각했다.
할아버지.
오냐.
상을 주셔야지요.
상? 그래, 내가 깜빡 잊고 있었구나. 줘야지, 물론 줘야지. 그렇게 훌륭한 대답을 하였는
데 상을 주고말고. 그런데 무슨 상을 줄까?
인선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을 깜빡거린다.
어서 말하렴. 이 할아버지의 상이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아뇨.
인선은 무언가 결심을 한 듯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 부탁이 있는데요. 할아버지께서 어머니께 꼭 말씀해 주셔야 해요.
부탁? 어머니에게 할 부탁이라면, 할머니께 부탁하지 않고......
사실은요, 바다 구경을 하고 싶어요.
뭐라고?
어머니는 바다에 가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바다는커녕 경포 호수에 가도 안 된다고 말
씀하셨어요. 할아버지, 어머니께 말씀해 주세요. 바다에 간다고 다 위험 한 것도 아니고 여
자라고 해서 못 갈 것도 없잖아요!
글세, 어머니가 안 된다고 하면......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면 어머니도 승낙하실 거예요.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갑자기 외할머니가 엄한 말투로 꾸짖었다.
여자가 글이나 그림, 글씨를 배우는 것은 어진 아내로서 부덕을 배우기 위해서다. 바느
질, 음식 솜씨......, 그 외에도 여자가 배울 것은 너무도 많아. 그러나 뭐든지 어느 정도만 알
면 되는 것이다.
할머니는 바다의 색깔을 보려는 내 마음을 어떻게 아셨을까? 그러나 꼭 보고 말 테야.
인선은 이제 열세 살. 요즘은 윗마을 김진사 댁에도 가지 않는다. 더 배울 것도 없어서였
지만 인선도 나이가 들어 바깥 출입을 삼가는 것이 좋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
다.
인선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희고 가벼운 구름들이 산을 넘어 서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봄도 멀지 않았다.
그 때 인선의 눈길이 문득 한 곳에 멈췄다.
저 사람 할아범 아냐? 저기서 뭘 하고 있을까?
인선은 그리로 달려갔다. 목 서방은 밭둑의 오동나무를 도끼로 찍고 있었다.
인선의 외할아버지는 손녀가 태어날 때마다 밭둑에 오동나무를 다섯 그루씩 심었다. 따라
서 밭둑에는 오동나무 스물다섯 그루가 나란히 심어져 있었다.
저건 언니의 오동나무가 아니야? 그런데 그것을 왜베지?
생원님은 아가씨들이 자라서 시집을 가게 되면 자롱이나 반닫이를 짜 주시려고 심은 것
이죠.
그럼 언니가 시집을 가?
작은 아가씨께선, 그럼 모르고 계셨나요?
목 서방은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인선은 정말 모르고 있었으나 할아범에게 모른다
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목 서방의 다음 말은 인선에게 더욱더 놀라운 일이었다.
큰아가씨께서 덕수 장씨 집안의 도련님과 정혼을 하셨답니다.
그래.
인선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심드렁하게 대꾸는 했으나 갑자기 숨이 꽉 막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기쁜 소식이 있습지요. 서울 서방님께서 과거에 급제하시어 진사 어른이
되셨답니다요.
정말?
그러믄요. 그래서 서방님이 곧 내려오신다는 기별도 있었고, 큰아가씨의 정혼도 이루셨다
는 말씀이 있었지요.
발길을 돌려 집으로 뛰어가는 인선의 뺨으로 두 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너무 하셔! 그런 기쁜 소식을 어쩌면 나한테는 조금도 내비치질 않으
셨을까? 나를 어린애로만 아시는 거야......
그러나 인선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생각이 또 달라졌다. 여자로서의 마음가짐이 생각났
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너도 이제 열 살이 넘어 벌써 열세 살이구나. 그렇다면 여자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네
가지 행실을 알아야 한다.
네.
그 네 가지 행실이란 부덕. 부언. 부용. 부공을 말한다.
1)부덕: 여자로서 덕이 있어야 한다는 말. 여자가 재주나 총명도 필요하지만 그런 것을 밖
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덕이다.
2)부언: 여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인데,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 본디 말이 낳은 것이
여자의 천성이다. 그러나 말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3)부용: 여자의 얼굴이란 뜻. 기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거나 그것을 얼굴에 나타내어
선 안 된다.
4)부공: 여자로서 남편을 돕고 시부모님을 섬기는 일이다.
덕이라 하면 퍽 어려운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여자로서 행동이 정숙하고 몸가짐
이나 옷매무새가 항상 단정하면 그게 바로 덕이다.
네.
또 음식을 먹거나 잠을 잘 때에도 가장 여자다워야 한다. 음식을 먹을 때 소리를 내거나
말을 하면 안 된다. 잠을 잘 때에도 이불을 걷어차거나 하면 얼마나 보기 흉하겠느냐? 그리
고 여자가 길을 걸을 때, 사내들 마냥 성큼성큼 걸어서도 안 된다. 걸음을 좁게,안을 향해
밟듯이 하면서 걷는다. 또 길에서 외간 남자를 만나게 되면 반드시 길 한 옆으로 비켜서서
부끄러움을 나타내며, 그가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여자로서 지켜야 할
일이며 그것이 절로 갖추어져야 부덕이라고 한다.
어머니는 그렇기 때문에 언니의 정혼도 말씀해 주지 않으셨을 거야.
인선이는 어머니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섭섭한 마음을 돌렸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와 계셨다. 더욱이 신명화는 진사가 되어 돌아왔기 때문에 집안
이 잔칫집처럼 들떠 있었다. 인선은 아버지에게 인사하러 작은 사랑으로 나갔다.
인선은 긴 치맛자락을 조심스럽게 끌며 작은 사랑 방 문 앞에 이르러 그 툇마루에 얌전히
앉으면서 말했다.
아버지, 인선이에요.
오냐, 어서 들어오너라.
인선은 방문을 조용히 열었다가 다시 조용히 닫았다. 모든게 절도가 있고 침착했다.
아버지, 절 받으세요.
아랫복 보료에 앉아 작은 두루마리로 된 족자를 보고 있던 아버지는 몸을 고쳐 앉으며 인
선의 절을 받았다.
인선이 절을 하고 윗목에 얌전히 앉자 아버지는 대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인선이도 이제는 완연한 요조 숙녀로구나. 그래, 그 동안 학문은 많이 늘었
느냐?
네, 통감 도 다 떼었고, 요즘에는 논어 와 시경 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몹시 놀란 표정이었다.
거참, 내가 없는 동안 여학자가 되었구나. 아무튼 장한 일이다. 자, 약속한 선물을 가져왔
다.
그리고 옆에 놓았던 족자를 인선에게 건네 주었다. 인선은 그 족자를 받아들고는 넋을 잃
은 듯이 들여다보았다.
어떠냐, 마음에 드느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도저히 이런 그림을 못 그릴 것 같습니
다.
낙관을 보아라. 뭐라고 씌어 있지?
네, 현동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세종 대왕 때 사람으로 이름은 안견이다. 안평대군으로부터 꿈에 세종께서 신선과
노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림을 그려 바쳤는데, 그것이 몽유도원도 란다. 이 때문에 왕
을 가까이 모시는 호군이 되었지. 인평대군과는 몹시 가까이 지내면서 그분의 각별한 사랑
을 받았다.
인선은 안견의 그림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아버지, 이 그림 제게 주신는 거예요?
아니다. 네게 선물이라고 했다마는 어떤 대감댁에서 빌려 온 것이다. 소중히 간수했다가
내가 서울로 올라 갈 때 돌려 다오.
인선은 족자를 들고 아버지 앞을 물러나왔다.
아버지가 집에 있으니 집안엔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때마침 정월이었다.
뒤곁에서 동생들이 널뛰기를 하고 있다. 인선은 따뜻한 툇마루에 앉아 바느질을 했다. 그
옷은 아버지가 며칠 후면 다시 한양으로 갈 때 입고 가실 옷이다. 바느질 솜씨가 있는 인선
이 그 일을 맡았다. 저녁때 식구들이 모두 큰 방에 모였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딸들도 모두
활짝 핀 꽃처럼 웃고 있었다.
아버지 신명화는 얌전히 앉은 딸들을 둘러보더니 부인을 돌아다보며 말했다.
우리 집에 봄이 왔나 보구려
아버지는 껄걸 웃으며 한양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윽고 인선이 불쑥 말했다.
그런데 아버지. 저는 바다 구경을 꼭 하고 싶어요.
옆에 있던 어머니가 인선을 나무라듯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부인과 딸의 얼굴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어머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아이는 벌써 몇 년 전부터 바다 구경을 하고 싶다고 철없이 조르곤 했지요. 그 때마
다 어머님께서도 야단을 치시고 저도 안 된다고 했지만, 그이야기를 지금 또 꺼내는 거랍니
다.
아버지, 저는 그저 바다를 구경하고 싶은게 아니에요. 언젠가 가을의 하늘을 보고서 할아
범에게 물었더니 하늘빛과 바닷빛이 다같이 파랗다는 거예요. 하지만 제가 직접 볼 수 있다
면 분명히 조금은 다를 거예요. 아버지 허락해 주세요. 네?
부인, 어머니께서 반대하신다니 경포라도 구경시켜 줍시다. 경포는 물론 바다와는 다르지
만, 인선이의 그림에는 큰 도움이 될 거요.
머리에 쓰개치마를 쓴 인선의 뒤를 목 서방이 따르고 있다.
아가씨를 모시고 바깥 나들이를 하게 된 것이 얼마만 입니까요?
이것도 아버지께서 할머니와 어머니께 부탁해서 가까스로 나온거야.
솔밭 길을 걸으면서 그들은 말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할아범.
인선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묻는다.
아까 아버지께서 적곡 구경이나 하라고 그러셨는데 그게 뭐지?
조개 줍는 것을 말하지요.
조개를?
이제 아가씨께서도 호수에 가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따뜻한 봄날이었다. 이미 나무에는 새싹이 돋고, 새가 한 마리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그들
을 보고서 놀라 날아 갔다.
비탈길을 얼마쯤 올라가자 눈앞이 환히 트이면서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졌다.
그 곳에 축대가 쌓여 있고 다락마루가 꾸며져 있었다.
이 경포대는 고려 때 지어진 것이다.
누대에 올라 호수를 굽어보던 인선은 깜짝 놀랐다. 호수에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인선은 감히 다락마루까지 올라오지 못하는 할아범을 뒤돌아보며 물었다.
저것이 적곡하는 사람들이야?
네.
적곡이란 양식 마련이란 뜻이다. 그런데 조개를 잡아 양식을 마련한다는 뜻이 인선에겐
신기했다. 할아범이 설명했다.
경포 호수엔 전설이 있어요.
어떤?
옛날 이 곳에 돈 많은 구두쇠 영감이 살고 있었답니다. 곳간이 열두 개나 있었고 흰쌀이
가득 쌓여 있엇지요. 하루는 중이 동냥을 왔습니다. 그러자 구두쇠 영감은 너 같은 녀석에
겐 줄 쌀이 없으니 이것이나 받아라. 하며 바리때에 똥을 퍼 주었어요.
어머나, 그런 나쁜 사람이......
중은 순순히 그것을 받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 갑자기 천둥 벼락이 치더니 땅
이 꺼져 호수가 되며 열두 곳간의 쌀은 모두 조개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저렇게 조개를 줍는 거야?
네, 그렇습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흉년이 들면 조개가 많이 잡히고, 풍년이 들면 조개
가 적게 잡힙니다. 게다가 경포에서 잡히는 조개는 맛이 달고 요기가 제법 됩니다. 그래서
적곡 조개라는 말이 생겼지요.
인선은 시선을 먼 곳으로 돌렸다. 파랗게 넘실거리는 동해가 보일 것만 같았다. 그 바다는
아침 햇살을 받아 파랗다고 하기보다 아른거리는 은빛이었다.
아버지의 말이 생각났다.
그렇게도 바닷빛이 궁금하냐?
네.
바닷빛은 말이다, 같은 것 같으면서도 여러 가지로 바뀐다. 하늘빛 역시 같은 파아란 하
늘이면서도 보기에 따라서는 다를 수가 있지 않느냐?
네, 그것은 그래요.
그러니까 그런 변화 무쌍한 빛깔은 솔거나 안견이라도 네가 만족할 만큼은 그려 내지 못
할 거다.
지금 인선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림은 어떤 빛깔 하나를 전체와 조화시켜 돋보이는 데 있지 않을까?
인선은 문득 생각난 듯이 목 서방에게 물었다.
할아범은 이 경포대에 자주 왔었나요?
오다뿐인가요! 생원 어르신네를 모시고 오기도 하고 한양 서방님을 모신 일도 있지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도 바다를 구경하러 오신 적이 있어?
목 서방은 잠시 말이 없었다.
대답해 봐. 내가 좀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 그래.
생원 어른이나 한양 서방님께선 친구분들과 약주를 드시러 오시지요. 지금은 호수가 별
것 아니지만 철 따라 좋은 경치가 있습니다.
어떤?
쇤네로선 얻어들은 말이지만 경포와 솔밭, 푸른 물에서 떼지어 노니는 고니, 추석 달맞이
는 절경입지요.
인선은 그 말만으로도 만족했다. 직접 보지 않더라도 머릿속에 벌써 그런 풍경들이 상상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아가씨! 뭘 하고 계십니까?
목 서방이 놀란 얼굴로 외쳤다. 솔밭의 작은 오솔길이었다.
아가씨! 아가씨가 그러시면 제가 마님께 야단을 맞습니다."
인선은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목 서방이 기겁을 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
다.
인선은 말라붙은 쇠똥 가까이에 쭈그리고 앉아 무엇인가 열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인선은
말라붙은 쇠똥이 저절로 움직이자 깜짝 놀랐다. 그래서 호기심이 생겨 가만히 살펴보았는데
괴상하게 생긴 시꺼먼 벌레가 그밑에서 기어나오지 않는가.
할아범, 이 벌레는 무슨 벌레지?
쇠똥구리라고 합죠. 그러나 그런 것은 알아서 무엇합니까요? 징그럽고 더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인선은 그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쇠똥구리는 쇠똥을 먹고 살아?
목 서방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주위에 사람들이 없기에망정이지, 이런 것을 누가 보
았다면 어떤 소문이 날 것인가.
이 생원댁 둘째 따님은 개구쟁이 사내녀석처럼 쇠똥을 갖고 논대요.
만일 이런 소문이 난다면 목 서방은 무사히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런 매질이나
야단이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목 서방은 인선을 몹시 아끼고 자랑으로 여겼다. 아마 인선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기꺼이 바쳤으리라.
글세, 아가씨, 그런 것을 아셔서 무엇 하려고 그러십니까?
할아범, 신기하지 않아? 어머나, 쇠똥구리가 쇠똥을 굴리고 있어.
사임당의 그림으로 풀벌레 그림 이 있다. 그 그림에는 곤충의 생태가 놀랍도록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잠자리가 있고 벌이 날고 땅바닥에는 죽은 벌레가 뒹굴고 있다. 그리고 개미와 딱정벌레
의 모습도 보인다.
인선은 호기심이 많고 알고자 하는 지식욕이 남들보다 뛰어났는데 그것은 모두 관찰 과
연결되는 것이다.
사임당은 또한 잉어를 곧잘 그렸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자리도 가 있다. 이것은
자줏빛이 감도는 잉어이다.
잉어는 그 몸빛이 검정색이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냥 검정색이 아니라 자줏빛
이 섞여 있다.
사임당이 먹으로 그 빛깔을 어떻게 나타냈는지 정말 감탄할 뿐이다.
또 사임당의 그림으로 갈대와 기러기와 백로가 줄을 선 모습, 물오리가 여뀌 풀숲 기슭에
서 노는 그림 등이 전하는데 이것도 경포 호수와 관계가 있다.
사임당은 그런 것들을 그림으로써, 어떤 자연의 모습을 그리는데 그치지 않았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통한 생명의 신비를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다.
3. 하늘도 감동하다.
신사년 정월, 인선의 나이 열여덟 살이었다. 한양의 하인이 편지를 가져왔다.
어머니는 그 편지를 다 읽고 나자 잠자코 인선에게 건네 주었다. 인선은 가슴이 두근거렸
다. 무엇인가 자기에 관련되는 일이 씌어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부인 보시구려
연세 높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게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시오. 나는 요
즘 세상에 좀 수상한 일이 있어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참이여. 그러나 이 곳에는 아무 일도
없으니 안심하시오. 그리고 우리 인선의 정혼 문제인데, 나는 그애를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소. 언제까지나 곁에 두고 싶은 마음 간절하오. 하지만 그럴 수도 없는 일이고, 또 마침
마땅한 사윗감으로.....
아버지 편지에 세상이 수상하다고 씌어 있는데 무슨 뜻일까요?
글세, 기묘사화로 많은 선비들이 해를 입으셨다는 말씀이겠지. 그러나 안심하라고 하셨으
니 별일이야 없겠지. 그보다도 네 정혼을 하신 모양이니, 기쁘지?
인선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워할 것 없다. 아버지께서 어련히 아시고 정혼을 하셨겠느냐. 편지에 사위 되는 사
람의 집안과 사람됨을 자세히 적어 놓았으니 읽도록 하여라.
그런데 정혼이고 뭐고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인선의 외할머니가 병석에 눕고
몹시 위독했다.
외할머니가 마침내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싸늘해진 시체를 붙잡고 슬피 울다가 몇 번이
고 정신을 잃었다.
인선도 슬피 울었다. 동생들도 따라 울었다. 인선은 죽음이란 것을 처음으로 보았던 것이
다. 그 슬픔이란 책으로선 배울 수 없었던 삶의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인선은 통곡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가 무남 독녀로 상제가 된 지금, 자
기가 동생들을 보살펴 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어머니, 너무 상심 마십시오. 어머니가 그러신다고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살아 오실리 없
지 않습니까.
인선은 슬픔을 억누르며 어머니를 위로했다.
외할머니의 병환이 무겁자 어머니는 한양으로 하인을 급히 보내었다.
서방님, 강릉의 노마님이 위독하십니다.
신 진사는 강릉 처가집 하인의 급한 연락을 받자 즉시 길을 떠났다.
마음은 급했지만 말길은 더디기만 했다. 그는 장모 최씨가 이미 세상을 떠난 것도 모르
고 먼 길을 재촉했다.
한양을 떠난 지 이틀 만에 여주에서 최씨 부인의 별세 소식을 비로소 들었다.
신 진사는 한동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가 중얼거렸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는 풀었던 행전을 다시 치고 짚신 끈을 졸라맸다.
아니, 서방님. 왜 이러십니까?
곧 떠나련다.
이 밤중에 말입니까?
한 발이라도 빨리 가고 싶다. 세상 뜨신 것을 몰랐다면 또 모르겠지만, 안 이상 한가하게
잠을 잘 수 있겠느냐?
자식이 그 어버이의 죽음을 지켜 보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장례식이 있기까지는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강릉은 여기서 몇백 리나 됩니다요.
고단하다면 너희들은 쉬었다가 뒤따라오너라. 나 혼자서라도 먼저 가야겠다.
신 진사는 걸으면서 꾸벅꾸벅 졸았다. 음식도 잘 먹지 않았다.
이렇듯 무리를 하는 바람에 병이 났다. 횡성을 거쳐 운교에 이르렀을 때에는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온 몸에 열까지 높았다. 그런데도 그는 쉬지 않았다.
진부를 지나 창두의 내은산에 이르자 보는 사람마다 그를 말렸다.
큰일납니다. 제발 쉬었다 가세요.
아니 괜찮소.
그는 계속해서 횡계까지 갔었는데, 여기선 마침내 피까지 토했다.
하인들은 그를 억지로 주막집에 눕혔다. 그러나 그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는 즉
시 하인들을 재촉했다.
빨리 가자, 빨리. 제발 나를 업어서라도 데려다 다오.
이 때 강릉 사람 김순효가 그것을 보고 급히 이씨 부인에게 알려 주었다.
어머니 최씨의 초상을 치른 뒤 곧바로 이씨 부인은 외사촌 동생 최수몽과 딸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딸들까지 데리고 나선 것은 기별해 준 사람이 신 진사의 병이 아주 위독하다고 전했기 때
문이다. 만일의 경우,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 보게 하기 위한 비장한 마음에서였다.
그 동안 남편은 하인들에게 업혀 대관령을 내려와 구산까지 왔다. 구산은 바로 강릉 못
미처인데 거기까지 이르자 신 진사는 아주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하인들은 놀라며 방을 얻어 눕힌 다음 급히 의원을 불렀다. 의원은 진맥을 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어허, 틀렸어, 이제 어째 볼 도리가 없네.
그 곳에 이씨 부인과 딸들이 도착했다.
하인들은 어쩔 줄을 몰라 허둥거렸고, 같은 말을 몇번씩 되풀이했다. 이윽고 이씨 부인은
눈물을 거두고 침착하게 말했다.
아직 돌아가신 것은 아니니 집으로 모셔야 한다.
그 때 함께 갔던 최수몽이 말했다.
누님, 억지로 모셨다가는 큰 불행을 볼지도 모릅니다. 여기는 묵기도 불편하니 매형을 우
선 우리 최씨의 재실로 옮깁시다.
그들은 들것에 신 진사를 뉘고 강릉 고을 안 조산에 있는 최씨의 재실로 갔다.
조산으로 옮기자 그는 얼마 뒤 의식이 겨우 깨어났지만 얼굴은 시커멓게 변한 데다가 계
속 말도 못 하고 피를 토했다.
여기서도 의원을 불러 왔지만 그들 역시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아예 진맥도 않고 그대
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남편을 살려야 한다.!
이씨 부인은 곧 목욕 재계를 했다. 목욕 재계란 깨끗이 몸을 씻고 마음을 가다듬어 부정
한 짓을 피하는 일이다.
그리고 부인은 조상의 무덤앞에 나가 빌었다. 그것은 예사 기도가 아니었다. 부인은 꼬박
일곱 날, 일곱 밤을 눈 한 번 붙이는 일 없이 빌었다.
말이 일곱 날 일곱 밤이지, 그 어려움이란 웬만한 정성과 결심 없이는 안 된다. 졸립고 피
로하고 어지러워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이씨 부인은 참았다. 자기의 다리를 꼬집기도 하고
날카로운 것으로 쿡쿡 찌르기도 했다.
이런 7일 기도 는 잠깐 동안이라도 제단 앞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시중은
전부 인선이 맡아서 했다.
인선은 어머니의 수척한 얼굴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가냘픈 모습이 안타까웠다.
어머니, 그러시다가 어머니마저 병이라도 나서 쓰러지시면 어떻게 해요?
인선은 어머니를 말리고도 싶었지만, 어머니의 정성에는 오직 고개만 수그러질 뿐이었다.
그러나 7일 기도 역시 보람이 없었다. 어머니 이씨 부인은 절망하지 않았다. 정신을 가다
듬고 다시 목욕 재계를 한 다음 조그만 단도를 하나 가슴에 간직하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거기엔 인선의 외고조 최치운의 산소가 있었다. 이씨 부인은 그 산소 앞에 향불을 피워
놓고 조상께 빌었다.
이 때의 기도는 뒷날, 율곡이 열여덟 살 때 외할머니에 대해 기록한 이씨 감천기 에 나와
있다.
하늘이시여! 착한 이에게 복을 주고 악한 이에게 벌을 내리심은 하늘의 이치입니다. 그러
나 저의 남편은 지조를 지켜왔고, 그릇된 행동이란 조금도 없었으며 모든 몸가짐이 착하기
만 했습니다.
하늘이시여! 만일 신이 계시다면 마땅히 모든 선악을 살피실 터이온데 이제 어찌하여 이
같은 무서운 벌을 내리시옵니까? 저도 또한 어버이를 봉양하느라 남편과는 16년 간이나 떨
어져 살았습니다. 게다가 저는 이제 막 어머님을 여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조차 위독하게
되었으니 외로운 몸이 장차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 의지하란 말입니까?
이어 이씨 부인은 단도로 왼손 가운뎃손가락 둘째 마디를 끊어 들고 하늘을 우러르며 또
빌었다.
기도를 마치자 부인은 재실로 내려왔다.
이윽고 하늘도 감동했음인지 검은 구름이 모여들고 우레와 번개가 치며 비가 쏟아졌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인선은 아버지의 머리맡에 가 앉았다. 인선도 병간호에 지쳐 있어 깜빡 졸았다. 그 잠깐
조는 사이, 꿈을 꾸었다.
하늘에서 대추 크기의 약이 내려오고 있었는데, 어디서 신선이 나타나 그 약을 아버지 입
에 넣어 주고 있지 않은가.
인선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러자 아버지가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내일이면 내 병이 나을 거다.
네?
같은 방에 있던 최수몽이 놀라서 물었다.
아니,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이제 막, 신선이 가르쳐 주셨네.
신 진사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루가 지났다. 식구들은 모두 아버지의 주위에 둘러 앉아 지켜 보고 있었다.
이윽고 아버지가 눈을 번쩍 떴다.
아버지!
인선이 맨 먼저 기뻐 외쳤다.
오, 인선이로구나. 그런데 참 이상한 꿈이었다.
어떤 꿈이었지요?
꿈에 신선 같은 분이 나타나 내 입에 약을 넣어 주며 걱정 말라고 하지 않겠는냐.
어머나, 아버지도 그런 꿈을 꾸셨어요? 저도 그런 꿈을 꾸었는데요.
아버지와 가족들은 모두 놀랐다.
아버지, 지금 기분은 어떠세요?
몸이 가뿐해진 것 같구나. 다만 몹시 시장하다.
그건 아버지께서 오랫동안 진지를 잡수시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딸의 말에 식구들이 오랜만에 웃었다.
어머니는 너무나 기뻐 딸들 뒤쪽에 앉아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그리고 왼손은
부끄러운 듯이 감추는 것이었다.
네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겠구나.
어머니, 이리 오셔서 아버지 손 좀 잡아 주세요.
셋째 딸이 어머니의 손을 끌어당긴 순간, 피에 젖은 헝겊을 감은 손이 나타났다.
아니, 당신 손가락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 병이 나으셨는데 이까짓 손 가락이 무어 대단합니까?
어머니는 빙그레 웃었지만 인선이는 왈칵 울음을 터트리며 어머니 품에 쓰러졌다.
신 진사의 병은 거짓말처럼 빠르게 완쾌되었다. 이 때 신 진사는 마흔 여섯 살이었고 이
씨 부인은 마흔두 살이었다.
이씨 부인이 하늘에 정성껏 기도드려 남편을 살려냈다는 이야기는 강릉 고을의 모든 사람
들을 감격시켰다.
이것이 나라에게까지 알려져 중종 임금은 열녀문과 열녀각까지 내려주었다. 중종23년 (15
28)의 일이다.
아버지 신 진사의 병도 나았고 외조모의 소상도 지나자 인선의 혼인이 서둘러졌다. 인선
이 열아홉살 이던 봄이다.
하루는 신 진사가 인선에게 말했다.
마침내 혼인 날짜를 정했다. 어떤 신랑인지 너도 꽤나 궁금하겠지?
인선은 그 말에 귓볼을 붉히면서 고개를 푹 수그렸다.
너도 이미 알겠지만 덕수 이씨로서 훌륭한 가문의 이름 있는 집안이다.
신랑은 이원수라는 사람으로 자는 덕형인데, 시조 이돈수로부터 헤아려 12대 자손이었다.
이 때 그는 인선보다 세 살 많은 스물두 살이었다.
이돈수는 고려 때, 중랑장까지 오른 사람이다. 중랑장은 정5품의 무관으로 장군다음가는
관직이다.
지금의 개풍군에 있는 풍덕 덕수라는 곳에 처음 생활터전을 잡았기 때문에 덕수 이씨가
되었다.
돈수로부터 4대를 내려오면 윤창이라는 분이 있다. 윤창은 관직의 최고인 정승까지 올라
갔고 부원군의 봉작을 받았었다. 이어 6대인 인범은 벼슬이 정당 문학, 예문관 대제학을 지
냈다. 또7대인 양은 조선 시대에 들어와 공조 참의였고, 8대 명진은 그어머니에 대한 효성
또한 지극했다.
그러나 집안이 워낙 가난하여 학문은 그리 열심히 닦지 못했다. 신 진사는 다만 그의 사
람됨이 착하고, 또 집안이 훌륭하여 정혼했던 것이다.
4. 아들 노릇
혼인날이 정해지고 잔치가 가까워지자 동생들은 인선을 놀렸다.
언니, 시집가면 좋겠네.
애는......
인선은 동생을 살짝 꼬집는 시늉을 했다. 자라면서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는 다정한 자매
였다.
아이 아파!
동생은 달아나면서 노래하듯 놀렸다.
언니는 좋겠네. 연지 찍고 분 바르고 가마를 타고......
인선은 수를 놓고 있었다. 포도송이를 정성껏 한 바늘 한 바늘 수 놓아 갔다.
신랑은 어떤 사람일까?
아버지는 신랑을 칭찬했으나 생전 본 적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몹시 궁금했다.
마침내 혼인날이 되자 서울에서 사는 신랑 이원수는 말을 타고 강릉 처가로 장가들러왔
다.
인선은 부끄러워 신랑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동생들은 야단법석이었다.
언니, 형부가 귀공자처럼 생기셨어
형부는 싱글벙글 웃고 있어. 언니가 예뻐서 좋은 모양이야.
형부는 마음이 좋은 것 같아.
동생들은 이원수에 대해 연신 보고 와서 알려 주었다.
이윽고 혼례도 무사히 치렀다.
며칠 뒤, 아버지는 사위 이원수와 인선을 앞에 불러 앉히고 말했다.
사위, 내 말 좀 들어 보게. 내가 비록 딸을 여럿 두었지만 자네 처만은 내 곁에서 떠나게
하고 싶지 않았네.
네.
그러나 혼인은 인륜의 큰일이기 때문에 내 딸을 자네에게 맡기는 것일세.
네.
그리고 나는 한양과 강릉을 왔다갔다 하면서 살기 때문에 자네 장모가 늘 쓸쓸하고 외롭
게 지내고 있네. 그러니 자네가 우리 집 사위 겸 아들로서 오래오래 이곳에 남아 장모에 대
한 효도를 다해 주기 바라네.
이것은 아버지 신명화의 숨김 없는 마음이었다.
이윽고 신 진사는 한양집으로 올라갔고, 이원수는 처가에 계속 머물렀다.
기쁘고 행복한 날들이 지나갔다. 그러나 사람의 일생이란 반드시 행복만 있는 것은 아니
다. 인선의 삶도 그것과 마찬가지로 기쁨이 있자 슬픔이 찾아왔다. 혼인하던 해 11월 7일,
아버지 심명화가 마흔일곱 살의 나이로 서울 본집에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어머니 이씨 부인의 슬픔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인선을 비롯한 딸들의 슬픔도 그에 못지
않았다.
그러나 인선의 어머니 이씨 부인은 역시 꿋꿋했다. 그 슬픔이 얼마쯤 가시자 말하였다.
이 서방, 자네는 이 길로 자네 처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게.
하지만 장모님께서 혼자 계시니......
무슨 소리, 내 걱정은 하지 말게. 먼저 자네 처를 데리고 가서 사당 참배를 하게나. 그런
다음 자네는 이 아이의 본댁에 가서 조문을 하도록 하게.
이리하여 인선은 열아홉 살인 중종 17년(1522) 눈 쌓인 대관령을 넘어 한양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가마를 타고 인선이 처음으로 대관령을 오르던 날은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그 길은 아버
지 신명화가 수없이 오르내리던 길이었기 때문이다.
가마가 고개 마루턱에 올라섰다. 인선은 멀리 동해 바다를 굽어보았다. 끝없이 푸른 동해
를 보고 있자니 어릴 적 하늘빛과 바닷빛의 차이가 궁금하여 바다를 보고 싶어 애를 태우던
기억이 새삼스러웠다.
며칠 동안의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드디어 한양에 이르렀다. 시가의 사당 참배도 마치고
시어머니 홍씨에게 첫인사를 올렸다.
홍씨 부인은 여러 가지로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 잘 왔다. 색시가 얼마나 똑똑하고 예쁜가 몹시 궁금했는데, 이제 너를 보니 기쁘기
이를 데 없구. 더구나 예의와 재주를 함께 갖추었으니 우리 집안의 경사로다.
시어머니는 성격이 명랑했다. 또 자기가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며느리의 고생을 되도
록 덜어 주고자 애를 써 주었다.
시어머니가 한없이 고마웠지만 사임당은 늘 강릉에 있는 어머니가 그리웠다. 깊은 밤중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사임당은 시를 지었다.
어머님 그리워
산 첩첩 내 고향 천리언마는
자나 깨나 꿈 속에도 돌아가고파.
한송정 가에는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톱에 헤락 모이락
고깃배들 바다 위로 오고 가리니
언제나 강릉길 다시 밟아 가
색동옷 입고 앉아 바느질할꼬.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친척되는 심 대감집 계집종이 와서 거문고를 탄 일이 있었다.
사임당은 거문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절로 눈물이 나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시어머니 홍씨도 이런 사임당의 심정을 이해해 주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너를 내 손에 꽉 붙들어 두소 싶은 욕심은 없다. 네가 가고 싶을 때 강릉 친정에
얼마든지 보내 주겠다. 아가야, 그러니 나를 시어미라 알지 말고 친어머니처럼 생각해 다
오.
인선은 그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으나, 아무런 말 없이 공손히 절을 올리고 그 방에서
물러나왔다.
중종 19년(1524), 사임당은 스물한 살이었다. 사임당은 이 해 9월 아들 선을 낳아 시어머
니를 기쁘게 해주었다
선은 호가 죽곡인데 그 일생은 불우했었다. 어려서 학문을 닦아 여러 차례 과거를 보았으
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흔한 살에 가서야 진사 급제를 했다.
이 때 아우 율곡은 이미 호조 좌랑으로 있어 오히려 형보다 앞섰던 것이다.
죽곡은 결혼도 아주 늦게, 서른두 살 되던 해에 선산 곽씨에게 장가들었고, 마흔일곱 살
때 서울의 남부 참봉이 되었지만 몇 달 되지 않아 죽었다.
아무튼 사임당은 첫아들을 낳자, 하루는 남편에게 조용히 말했다.
당신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꼭 들어 주셔야 합니다.
남편 이원수는 사임당보다 세 살이 많았으나 학문은 뒤떨어졌다. 그는 자기보다 뛰어난
부인의 말을 어렵게 생각했고 존중했다.
무슨 부탁인지 말해 보구려.
양반으로 3대를 벼슬하지 못하면 상놈이나 같다고 합니다. 또 벼슬은커녕 과거에 급제도
못 한다면 백두 라는 비웃음을 받아 가며 수모가 이만저만 아니지요.
그것은 나도 알고 있소.
그러니 우리가 각각 떨어져 10년 동안 학문을 닦은 뒤 다시 만나도록 해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이원수는 깜짝 놀랐다.
물론 당신도 어렵고 저도 어려운 일인 줄은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번 태어났다가 큰
빛을 남기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뭣이 있겠습니까?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학
문을 닦아야 합니다.
음, 듣고 보니 그 말이 옳은 것 같구려.
정색을 하고 간곡히 말하는 사임당의 말에 남편 이원수는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남편 이원수의 선산은 파주군 율곡리에 있었다. 남편이 공부를 하려면 그 곳에 가서도 할
수 있었다.
사임당은 그것을 염두에 두며 더욱 침착하게 남편을 타이르듯이 말했다.
부디 결심을 하십시오. 사람이 굳게 마음먹어 안 될 일이 있겠습니까? 또 10년은 긴 것
같지만, 잠깐 동안에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 그 10년을 참고 이겨 내면 그보다 더 긴 몇십
년 동안은 틀림없이 사람으로서 살아갈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남편 이원수는 마침내 약속을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만 못한 학문을 늘 부끄러워하
던 참이었다.
이원수는 이튿날 새벽 집을 나섰다. 그런데 그는 집에서 한 20리 되는 곳에 이르자 마음
이 달라졌다.
10년이란 너무 긴 세월이 아닌가? 그 동안에 젊은 시절은 다 가 버리고 말 테지.
그는 거기서 다시 발길을 돌려 집으로 오고 말았다.
사임당은 집으로 돌아온 남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어찌 된 일이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구려.
그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런 약한 마음으로 어찌10년을 채울 수 있겠습니까. 내일 새벽엔
떠나도록 하세요.
부인의 가을 서릿발 같은 싸늘한 말에 이원수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튿날 새벽, 남편은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이날은 40리쯤 가다가 돌아왔고, 세 번째 날
은 60리쯤 가다가 돌아왔다.
사임당은 마침내 이런 말을 했다.
대장부가 뜻을 세워 10년을 작정하고 학문을 닦으러 길을 떠난 것인데, 이처럼 사흘을
잇따라 돌아오시니 당신이 장차 무슨 면목으로 자식들을 보겠습니까?
나를 용서하시오. 그러나 내 마음이 당신과 떨어져 10년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으니 어떻
게 하겠소?
사임당은 남편의 약한 성격과 학문에 재미를 못 붙이는 것을 어떻게 해야 바로 잡을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마침내 사임당은 한 가지 결단을 보여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임당은 반짇고리에서 가위를 꺼내 들고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일 당신이 이처럼 마음이 약하고 무능력한 남자로 일생을 마치는데 그친다면, 저는 세
상에 희망이 없는 몸이니 어찌 오래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이 가위로 머리를 자르고 여승이
되어 산으로 가든지 아니면 어버이에게 불효하는 몹쓸 짓이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겠습니
다.
어버이보다 자식이 먼저 죽는다는 것은 불효였다. 어버이를 슬프게 하기 때문이었다.
부인, 내가 잘못했소.
남편은 놀라며 사임당에게서 가위를 뺏더니 맹세했다.
이번에는 꼭 약속을 지키리다.
굳은 결심 아래 남편은 집을 떠났다. 하지만 이원수는 겨우 3년이 지나자 더 견딜 수없어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사임당은 남편에게만 학문을 열심히 닦으라고 권했던 것이 아니다. 남편에게 권하는 이상
으로 자기 스스로에게도 채찍질을 해 가며 열심히 살았다.
사임당은 강원도 봉평(평창군)이란 곳에서 여러 해 살았다. 그런 곳에서 밭곡식도 심어 가
며 고생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5. 빛나는 예술
사임당이 봉평으로 내려가 산 것은 한양에서의 생활이 가난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양반으
로서 남편이 벼슬아치도 아니고 재산도 없던 탓에 그 생활은 말할 수 없이 어려웠다.
사임당은 봉평에 살면서 힘든 농사를 지어 가며 마음이 산란하거나 괴로울 때면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그런 글씨며 그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지금은 흩어져 없어지고 얼마 전하지 않아 진품
을 대하기 어려우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우선 글씨는 지금까지 전하는 것으로 초서(흘림 글씨)여섯 폭과 해서(네모 반듯한 글씨)
한 폭뿐이다.
그러나 이 얼마 안 되는 것이지만, 사임당의 글씨 솜씨를 알기에는 충분하다. 그의 깨끗하
고 드높은 정신과 정성이 깃들여 있는 것이다.
그림으로선 수박과 석죽화 , 꽈리와 잠자리 , 하눌타리와 쥐 , 가지.벌.나비 , 오이와 개구
리 , 바위나리와 도마뱀 , 맨드라미와 개똥벌레 , 범부채와 매미 , 도라지꽃과 여치 , 산차조
기와 검은나비 등이 있다.
사임당의 그림을 종류별로 나누어 보면 풀벌레,포도,꽃과 새,물고기,대나무,매화,난초,산수
등 동양화의 모든 분야를 다 그렸다. 특히 풀벌레 그림에 있어선 누구도 따르지 못할 정도
였다.
그 가운데 실제로 남아 있는 것은 채색그림과 먹그림을 합쳐 40폭 정도이다.
인선은 그림을 그리면서 비로서 사임당 이란 아호를 썼다.
사임당의 뜻을 푼다면 사는 스승 사 자로 본받는다는 뜻이고, 임은 고대 중국 주문왕의
어머니 태임 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당은 집 당 , 다시 말해서 자기가 거쳐 하는 곳을 보통
나타낸다.
사임당은, 태임을 본받겠다는 뜻을 아호에 나타낸 것이다. 주문왕은 유교에서 받드는 성군
으로, 그를 낳은 태임은 말할 수 없이 어진 부인이었다. 그런 부인을 본받는다고 했으므로,
사임당의 평소 마음이 어떤 것인지 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임당의 그림은 아들 율곡의 이름과 더불어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났다. 바꾸어 말하
면, 사임당이 훌륭한 어머니였기 때문에 율곡과 같은 훌륭한 대학자가 태어났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사람들은 사임당의 그림을 다투어 구하여 대대로 전하는 가보로 챙겼다. 어떤 이는 그 그
림에 발문을 썼다.
발문이란 간단한 평을 그림이나 책 등에 쓰는 것인데, 훨씬 뒷날의 숙종 임금을 비롯한
소세양. 송시열. 권상하. 홍양호 등이 사임당의 그림에 발문을 썼다.
특히 숙종 때의 송상기는 문집으로 옥오재집 을 남겼는데, 그 속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글을 남기고 있다.
내게 하루는 친척 한 분이 찾아와서 말했다.
우리 집에 율곡 선생 어머님께서 그린 풀벌레 그림 한 폭이 있어요.
그것 참 귀한 그림입니다.
그런데 장마철에 누기가 차서 말리려고 마당 응달에 잠깐 널어 두었지 뭐예요. 그랬더니
닭이 진짜 벌레인줄 알고 쪼아 버려, 아까운 그림에 그만 구멍이 나고 말았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이상히 여기면서도, 정작 그분의 그림을 보지 못하여 안타까웠다. 그런
데 이제 정종지가 가진 화첩을 보니 그것이 거짓말이 아님을 알았다.
이는 사임당의 그림이 얼마나 생생한 느낌을 전해 주는 것이었는지 말해 주는 글이다.
사임당이 스물여섯 살 때인 중종 24년(1529) 두 번째 아기를 낳았다. 이 아이가 맏딸로 뒷
날 매창 이란 아호를 가진 분이다.
매창은 사임당의 재주와 장점을 골고루 타고났다. 학문과 지혜, 높은 인격, 예술로서 시와
글씨와 그림뿐 아니라 바느질과 자수에 이르기까지, 자라면서 어머니를 꼭 닮아 작은 사임
당 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임당이 봉평에 살았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많은 부인네들이 잔치가 있는 한 집에 모
여 일을 거들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사임당도 그 속에 끼여 있었다. 사임당이 문득 보았더니 한 젊은 새댁이 부엌 뒤쪽에서
훌쩍거리며 울고 있었다.
왜 그래요, 새댁?
이걸 어떻게 하면 좋아요? 제가 입고 있는 치마를 이렇게 버려 놓았으니.
이 무렵 비단 치마는 아주 귀했다. 값도 비쌌고 보통 서민으로선 좀처럼 입어 보지 못했
다.
그런 귀한 비단 치마인데 음식 국물이 떨어져 얼룩이 생긴 것이다.
새댁은 시어머니를 비롯한 어른들의 꾸중도 두렵고 값이 비싼 것이라 울고 있었던 것이
다.
인정이 많은 사임당은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어디 봅시다.
사임당은 비단 치마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새댁, 너무 걱정 말아요. 좋은 수가 있으니까.
새댁은 그 말을 듣더니 얼굴이 밝아졌다.
얼룩을 없앨 수 있을까요?
어쨌든 치마를 벗어 봐요. 이 치마 폭에 그림을 그려 줄테니.
어머나!
새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른 여자들이 말참견을 했다.
선이 엄마가 말씀하시는 것이니 어련하겠수. 어서 치마를 벗어 드려요.
아씨께서 오죽 잘 아시고 그런 말을 하시겠어요. 안심하고 맡기도록 해요.
젊은 새댁은 여러 사람이 권하자 마지못해 치마를 벗어 주었다.
사임당은 치마를 받자 평평한 곳에 펴놓고 먹물과 물감을 준비하더니 뭇에 듬뿍 찍었다.
그리고 망설이지도 않고 보기에도 싱그러운 포도 잎사귀를 그리는게 아닌가.
어머!
영락없는 포도 잎사귀야. 마치 싱그러운 향기가 풍겨 오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감탄을 하며 한 마디씩 했으나 사임당은 혼자 신선의 세계에서 노니는 듯 말없
이 붓을 움직여 나갔다.
같은 붓, 같은 먹이라도 사임당의 손에 쥐어져 그려지면 싱싱하게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그림이 된다.
포도 잎사귀를 그리고 나자 사임당은 포도송이를 그렸다. 그포도알은 손가락으로 집으면
금방 보랏빛 포도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넋을 잃은 채 숨을 죽이고 지켜 보았다.
그림이 다 되자 사임당은 치마를 내 주며 말했다.
이 치마를 가지고 가서 팔면 새 치마를 장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서 팔도록 해요.
네, 고맙습니다.
젊은 새댁은 치마를 두 손으로 곱게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그림이 얼마나 잘 그려졌던지, 소문이 크게 나서 치마를 탐내는 사람이 많이 나섰다.
그리하여 치마폭에 그린 포도 그림은 비싼 값으로 팔렸다.
그림에 얽힌 이야기는 이 밖에도 또 있다. 남편 이원수는 부인의 재주가 비상한 것을 남
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언젠가 남편이 집에 있었다. 그는 사랑방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놀았다. 술이
거하게 취하자 친구 하나가 말했다.
이공, 당신 부인의 그림 솜씨가 놀랍다면서?
음, 신라의 솔거나 세종 때의 안견이 살아 돌아와도 내 아내 그림만은 못할걸세.
정말인가! 한 번 보고 싶네.
술김이었지만 평소부터 아내의 그림 솜씨를 자랑하고 싶던 이원수였다.
어렵지 않은 일일세.
이원수는 곧 하인을 불러 자못 호기 있게 말했다.
안에 들어가 아씨마님께 말씀드려라. 그림 한 장 그려 사랑방에 내보내라고.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옛날에는 남자와 여자가 내외를 하는 법이었고,
아무리 그림이라도 함부로 그려 남에게 보이지 않았다.
이원수는 친구들이 자꾸 재촉하여 하인을 불러 다시 일렀다.
사임당은 남편의 거듭되는 독촉을 받자 생각했다.
내외하는 법으로 함부로 그림을 그릴 수 없지만 남편의 체면도 생각해 주는 게 지어미의
도리다.
그러나 마침 화선지가 없었다. 곰곰히 생각한 끝에 놋쇠로 된 쟁반을 가져 오라고 하인에
게 일렀다.
사임당은 그 놋쟁반에 간단한 난초를 하나 그려 사랑방에 내보냈다. 그것을 본 사랑방의
손님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임당은 누구에게 자랑을 하기 위해서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
다.
그림 그리는 자체를 즐겼고 마음의 수양을 위해서 그렸던 것이다.
사임당은 봉평에 살았을 때 자녀들에게 직접 글을 가르쳤다.
공자님이 엮은 책으로 시경 이 있다. 시경은 공자시대의 중국 여러 나라 노래를 모은 것
이다.
그럼, 노래가 시인가요?
하고 매창이 말했다.
그렇다고도 말할 수 있지. 그런데 옛날의 시(고시라고 함)는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시
경 을 배우면 알 수 있지만, 글자 넷으로써 한 구를 만들고 다시 네 구를 합쳐 한 편의 시를
만들었다.
그러자 총명한 매창은 말했다.
어머니, 그러면 시는 글자수를 맞추어 지으면 되겠네요?
맞았다. 미리 정해진 틀에 자기가 느낀 감정이나 풍경 따위를 나타내는 게 시란다.
그러나 한시는 다시 발전하여 좀더 까다롭고 어려운 규칙을 가진 시가 나타났다.
기본적으로 한 구가 글자 다섯인 것을 5언시 라고 한다 그런 5언시 네구가 모여 한편의
시가 되며, 이것을 5언 절구라 불렀다. 또 5언시 여덟 구가 모이면 5언율시 , 그리고 5언시
로 시를 짓되 얼마든지 이어나갈 수 있는 게 5언 고시 였다.
7언시도 마찬가지로, 글자 일곱인 시구 넷이 모아진 7언 절구 도 있고, 7언 율시 도 있었
다.
그런데 한자는 글자 하나로 어떤 뜻을 나타내는 뜻글 이지만, 사실은 한 글자가 여러 가
지 뜻을 나타내기도 하고 발음이 같은 것이 많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잘 알아듣지를 못한
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사람들은 그런 혼란을 조금이라도 피하려고 네 가지 각각 다른 발
성법을 써서 비슷한 음을 구별하였다. 이것이 중국말의 네 가지 소리, 바로 4성이란다.
.......
그러나 중국 사람도 번거롭게 생각하는 4성을 우리가 깊이 알 필요는 없다. 다만 시의
운자 는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라고 알면 된다. 말하자면 어떤 시에는 어떤 운자가 꼭 들어
가야 한다고 정해진 것이란다.
알았어요! 한시의 글자 짝을 맞추기 위해 정해진 운자가 만들어졌군요!
하고 매창은 외쳤다.
사임당은 자기가 옛날에 외할아버지나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을 돌이키며 딸에게 가르쳤
다.
어떤 시구의 짝엔 어떤 운자가 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옛사람의 시를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하면 자연히 알게 된다.
그런데 운자는 으레 시구의 끝에 가서 붙기 마련이었다.
5언 절구라면 둘째와 넷째 구의 끝자가 운자이고, 5언 율시는 2. 4. 6. 8.이 운자다. 그리고
7언 절구는 1. 2. 4에 운자가 붙고, 7언 율시는 1. 2. 4. 6. 8자에 운자가 붙게 되어 있었다.
사임당의 설명으로 매창도 한시의 형식과 그 짓는 방법을 알았다.
사임당은 끝으로 강조했다.
얘야, 지금까지 한시의 형식을 배웠다. 그런데 빠뜨릴 수 없는게 또 있구나.
아니, 그것 말고 또 있어요?
그래, 기. 승. 전. 결이라는 것이다.
시의 처음시작을 기 라하고, 그 처음의 뜻을 받아 이어지는게 승 이고, 중간에서 뜻을 한
번 바꾸는 게 전 이며, 전체를 마무리 짓는게 결 이다. 5언시이든 7언시이든 이 기. 승. 전.
결의 격식은 꼭 갖추어야 한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자상한 설명을 듣자 말했다.
알고 보니 한시도 어려운 게 아니네요. 나도 지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러자 사임당은 엄하게 말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시를 짓는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를 짓는 마
음과 정성이다. 얼마나 좋은 시구 찾아 내어 무궁무진한 이 세상의 일을 짧은 시구 속에 나
타낼 수 있느냐에 달린 것이다.
이런 사임당이라 생전에 많은 시를 지었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아깝게도 사임당의 작품
은 겨우 두 편과 짝짝이로 남은 낙구(시의 끝구절)가 한 수 전할 뿐이다.
사임당은 모두 4남 3녀로 7남매를 두었다. 맏아들 선과 맏딸 매창, 그 뒤를 이어 다시 둘
째 아들 번을 낳았다. 번은 호가 정재인데 언제 낳아 언제 죽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
만 시 한 편이 전하는데 그도 상당히 학문을 쌓았다고 여겨진다.
둘째 딸은 생몰 연대는 물론이고 이름조차 전하지 않는다. 사임당이나 매창은 그 예술 작
품 때문에 아호가 전하는 것이고, 본디 이름은 기록되지 않는게 옛날 우리 나라 관습이었다.
막내 아들은 우로 호는 옥산이고, 사임당이 서른아홉살인 중종 37년(1542)에 낳았다. 옥산
역시 재주가 뛰어났고 각지의 현감을 지냈으며 광해군 원년(1609) 경상도 선산에서 죽었다.
옥산은 매창과 더불어 어머니 사임당의 예술적 재질을 물려받아 거문고. 글씨. 시. 그림의
네 가지가 뛰어나 그 이름이 후세까지 남았다.
사임당은 시댁인 한양에서 잠깐, 그리고 봉평에서 몇 년을 살았지만 대부분 강릉 친정에
서 살았었다. 그것은 아들이 없는 어머니에게 아들 노릇을 하며 효도를 하기 위해서였다.
사임당이 서른세 살 때의 일이다. 하루는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사임당은 동해의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동해는 간만의 차가 거의 없어 물이 더욱 푸르다 하여 일명 벽해 라고 불린다. 푸른 바다
란 뜻이다.
아, 물빛도 맑고 푸르구나.
사임당은 꿈 속에서도 그림을 생각하고 있었다.
왜 물이 맑으면 바다가 새파랗게 보일까?
사임당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왜냐하면 푸른 바닷빛의 비밀을 지금은 알 것
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 옛날이 그립구나.
사임당은 이렇게도 생각했다. 옛날의 그립던 얼굴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그리
고 할아범도 지금은 없었지만 눈앞에 선하기만 했다.
이 때 사임당 앞에 한 선녀가 나타났다.
부인, 놀라지 마세요. 저는 용궁의 선녀로 용왕님의 명을 받고 왔답니다.
어머나! 무슨 일로 그 깊은 바닷속에서 이 세상에 나오셨나요?
부인께 선물을 드리기 위해서이지요.
선녀는 예쁘게 웃고 있었다. 사임당도 미소짓고 말을 주고 받았다.
무슨 선물인데요?
그러자 선녀는 언제 어디서 가져왔는지 고운 비단보에 싸인 아기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자 받으세요. 이 아기가 바로 선물이랍니다
사임당이 아기를 받자 잠이 깨었다. 꿈이었다. 이런 것을 태몽 이라 하여 어머니의 평소
마음가짐이 꿈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 때부터 사임당은 아기를 가졌고 어느덧 산달이 되었다. 아기를 낳을 때 사임당은 또
꿈을 꾸었다.
동해에서 검은 용이 날아와 문 머리에 도사리고 있는 꿈이었다.
이윽고 사임당은 셋째 아들 율곡을 낳았다. 새벽 4시(인시)로, 중종 31년(1536) 12월 26일
이었다.
꿈에 용이 나타났다 하여 율곡을 낳은 방을 몽룡실 , 그리고 어렸을 때의 이름도 용을 보
았다 하여 현룡이라 불렀다.
어머님, 그럼.......
사임당은 말끝을 차마 맺지 못한다. 중종 36년(1541), 사임당의 나이 서른여덟 살 때의 일
이다.
그 동안 강릉집에서 어머니 이씨 부인을 모시고 살다가 한양으로 아주 올라가게 되었다.
사임당은 목이 메이고 눈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내 걱정은 말아라. 어서 가마에 올라가야지. 모두들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어머니는 오히려 딸을 위로하듯 꿋꿋하게 말했다. 이씨 부인은 이 때 예순두 살이었으나
아직도 정정하고 허리도 꼿꼿했다.
하지만 사임당은 어머니 이씨부인의 주름살 하나하나에, 은빛 머리카락 하나하나에, 다섯
딸을 키워 준 높은 은혜가 서려 있음이 느껴져 차마 발길이 떼어지지 않았다.
어머니, 부디 몸 건강히 계십시오.
다시 사임당은 목멤 목소리로 말했다.
오냐, 내 걱정은 말고 너야말로 몸조리 잘 하거라.
사임당은 바로 전 해에 큰 병을 앓았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몸이 튼튼하지 못하여 이씨
부인은 오히려 딸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자, 어서 가마를 타거라. 모두들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네.
사임당은 다시 어머니에게 깊숙이 머리를 숙이고 난 뒤 가마에 올랐다. 어머니 앞에서 너
무 슬퍼하는 것도 어머니를 슬프게 하는 불효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임당은 일부러 가마를 천천히 메고 나가게 했다. 그동안이나마 동구 밖까지 쫓아나와
배웅을 해 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뒤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어머니의 모습은 길이 꼬부라지자 보이지 않게 되었다.
강릉에서 서울까지는 254.3km로 600리가 넘는다. 사임당은 대관령에 올라 멀리 친정을 바
라보며 시를 지었다.
대관령을 넘으며 친정을 바라보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한양길을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내리네.
사임당은 한양으로 올라오자 수진방(지금의 청진동)에서 살았다. 수진방에 잇는 집은 아버
지 신명화가 살던 서울 본집으로, 사랑하는 딸 사임당에게 물려준 것이었다.
이 집은 훗날 또 율곡이 물려받았으나 가난한 형제들을 위해 팔아 나누어 갖게 된다.
동해의 용꿈을 꾸고 태어난 현룡은 세 살 때 글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석류 문답 이라는
옛시를 읊어 사람들을 놀라가게 했다. 이어 일곱 살 때는 진복창전 을 지어 글재주가 비상
함을 드러냈다.
파주군 율곡리는 덕수 이씨의 선산이 있는 곳이다. 사임당이 마흔한 살 되던해 온 가족이
율곡리로 시제(가을철에 햇곡식으로 제물을 만들어 조상께 올리는 제사)를 지내러 갔다.
이 곳에 화석정이란 정자가 있는데 현룡의 5대조 할아버지가 세운 것으로 임진강을 굽어
보는 언덕에 있었다. 현룡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화석정에 올라 시 한 수를 지었다.
숲 속 정자에 가을이 늦으니
시인의 회포가 절로 끝이 없구나.
물과 하늘이 이어져서 푸른데
서릿바람 단풍이 햇빛처럼 붉다.
산도 둥근 달을 토해내듯 하건만
강은 만 리나 부는 바람을 머금었구나.
저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 건지
울음소리가 저녁 구름 속에 끊긴다.
시를 읊고 난 현룡은 자랑스러 어머니를 쳐다봤다. 이 시를 들은 사임당도 마음 속으로
크게 감탄했다. 그러나 입 밖에 내어 칭찬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자녀가 여럿 있었고 그 중에 율곡만을 치우치게 칭찬하거나 사랑해서는 안된다
고 여겼기 때문이다.
중종 39년 사임당은 마흔한 살이었다. 이 해 중종 임금이 돌아갔고 세자가 그 뒤를 이었
다. 조선조 제12대 인종이다.
세자는 본디 매우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장경 왕후 윤씨인데 아직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났다. 이어 계모로 문정 왕후 윤씨가 들어왔지만, 어린 세자를 구박하고 밥을 굶기
는 일마저 있었다. 더욱이 문정왕후는 왕자(뒷날의 명종)을 낳자 세자를 눈엣 가시처럼 여겼
다.
한편 인종이 왕위에 오르자 외삼촌 윤임은 자기 세상이 돌아왔다고 기뻐했다.
이른바 대윤파 로, 문정왕후의 친정 동생 윤원형의 소윤파 와 권력 싸움을 벌였다.
그런데 인종은 왕위에 오른 지 겨우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문정왕후가 낳은 명종이
왕위를 잇게 되었다. 명종은 이 때 겨우 열두 살의 소년이라 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
다. 문정왕후는 인종이 죽은 지 한달도 못되어 대윤파의 윤임.유관.유인숙 등 많은 선비를
죽였다. 이것이 을사사화 이다.
이리하여 소윤파의 세상이 되었다. 이 때 이기라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원수의 5촌 아
저씨로 윤원형의 일파였고 벼슬도 높았다. 사임당은 남편이 그 집에 다니는 것을 싫어했다.
사람이란 잠깐 눈에 띄는 세력을 쫓아다녀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악한 짓을 하여 영의
정이 되었으니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그 댁 출입을 삼가도록
하세요.
그러나 마음 좋은 이원수는 말했다.
영의정은 우리와 같은 문중이고, 더욱이 5촌 당숙이 아니오. 내가 그 어른의 덕을 보자고
그 댁에 드나드는 것도 아닌데 뭐가 나쁘겠소.
그분이 아무리 같은 문중이라 하도라도 옳지 못한 사람인 것을 알면 그 집에 발을 들여
놓지 말아야 합니다.
사임당이 거듭 말했으므로 이원수는 그 후로 그 집에 드나들지 않았다.
사임당이 마흔일곱 살 때 남편 이원수가 처음으로 벼슬을 했다. 수운 판관 이란 직책인데,
이것은 각 지방에서 나라에 바치는 쌀을 한양에 실어올리는 선박 운수를 감독하는 종5품 벼
슬이다.
이원수는 험한 물길을 배로 왕래하며 수운 판관으로 있으면서 생활이 좀 나아진 듯싶다.
사임당이 마흔여덟 살 되던 명종 6년(1551) 봄의 일이다. 이원수의 가족은 수진방의 집에
서 삼청동으로 이사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사임당이 이런 말을 남편에게 하였다.
이번에도 또 구실(세금)을 거두러 가시옵니까?
그것이 내가 맡은 일이 아니오. 초여름이면 떠날 것이오.
어디로 가시게 되는지요?
평안도 지방에 갈 것이오.
사임당은 잠시 말이 없었다. 등잔불은 바람도 없는데 깜빡거린다. 사임당과 이원수의 그림
자가 깜빡이는 불빛으로 벽에서 너울너울 춤을 춘다.
저, 부탁이 있습니다.
갑자기 사임당이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가 웬지 마음에 덜컹 하고 와 닿았기 때문에 이
원수는 섬뜩한 마음으로 사임당을 쳐다보았다.
꼭 지켜 주셔야 할 부탁입니다.
허허, 부인답지 않구려. 무슨 말인지 어서 말해 보시오.
저는 몸이 약하니 아마 당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거예요. 부탁이란 제가 죽은 뒤에 다
시 장가드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들딸 7남매를 두었으니 더 바랄게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무쪼록 제 부탁을 들어 주세요.
사임당은 이 말만 하고 남편이 대답할 사이도 없이 방문을 닫고 나갔다.
남편 이원수는 초여름인 음력 4월 집을 떠났다. 큰아들 선과 열여섯 살이던 율곡도 함께
갔다.
그들은 평안도에서 무사히 일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배를 탔다. 장산곶도 무사히 지
나고 강화 북쪽이 건너다보이는 풍덕 승천포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벌써 음력 5월이었다.
오늘이 며칠인가?
이원수는 이번 뱃길에선 웬지 빨리 서둘러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사공이 대답했다.
오월 열나흘입지요.
그럼, 내일이 보름인가?
사공은 빤한 질문을 하는 이원수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는 사공을 나무라듯 거
듭 말했다.
그렇다면 이 곳 승천포에서 한양 서강까지는 얼마 되지 않잖은가?
그야 이틀이나 사흘쯤 걸리지요.
그것은 나도 알고 있네. 그러니까 이런 데서 어물거리지 말고 곧 떠나자는 것일세.
그러자 사공은 자못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은 아무리 판관님의 분부라도 아니 됩지요. 뱃길에는 물때라는 것이 있어 만조때가
아니면 손돌목 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요.
한강은 하구에 이르러 두 갈래로 갈라져 서남쪽에서 굽어져 갑곶 나루가 되고 또 한 줄기
는 남쪽 마니산 뒤 움푹 꺼진 곳으로 흐른다. 즉 하구에 이르러 강화섬에 부딪친 한강이 두
갈래롬 갈라지는 셈이다.
이 강 어귀를 손돌목이라 하였고, 강바닥에 못줄기가 뻗쳐 있어 마치 문턱과 같았다.
만일 이 물때를 놓치면 강물 속의 암초에 부딪쳐 배가 파선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 마음이 왜 이리 조급할꼬?
이원수는 유난히 밝은달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바로 이무렵, 아무래도 몸살이 난 것 같다며 자리에 누운 사임당은 사흘 만에 병세가 갑
자기 무거워졌다.
집안 식구들은 모두 깊은 시름에 잠겼다. 집에 있던 자녀들은 어머니 병석에서 떠나지 않
고 간호했다.
사임당은 세상을 떠나기 몇 시간 전 갑자기 감았던 눈을 뜨더니 주위를 둘러봤다.
어머니.
매창은 얼른 어머니의 귀에 대고 불렀다. 사임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버지는 아직 오시지 않았느냐?
네, 혹시 오셨나 하고 사람을 서강에 보냈습니다.
그러냐. 나는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임당은 마지막으로 그 한 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명종 6년(1551) 5월 17일 새벽
이었다.
이 때 큰아들 선은 스물여덟 살, 맏딸 매창은 스물세살, 율곡은 열여섯 살이었다.
서강에 닿은 이원수는 아내의 죽음을 그제야 알았다.
아아, 부인.......
그는 말을 맺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너희 어머니가 나에게 놋그릇을 싸 주었는데 오다 보니 그것이 시뻘겋게 녹슬었지 뭐냐.
그래서 사공을 독촉했던 것인데......
덕행으로, 학문으로, 예술로, 뛰어난 재능과 고귀한 인격을 지녔던 사임당은 너무나도 아
쉬운 마흔여덟 살이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임당은 길지 않은 삶을 살다 갔으나 그 누
구보다도 오래도록 길이 빛날 이름을 남겼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사임당의 뛰어난 글솜씨, 그림, 글씨, 자수 등을 대할 때 조선 여인
의 향기 높은 예술혼을 느낄 수 있으며, 어진 아내, 현명한 어머니로서 모든 여성의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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