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대가리 사랑하기
나는 어렸을 때 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것이 친척집에 쌀 얻으러 가는 것이었다. 집에 먹을 것이 떨어지면 어머니는 조그만 편지를 하나 적으셔서 가까운 곳에 사시는 삼촌 집에 나를 보내곤 하셨다. 나는 그 집 앞까지 가기는 하지만 안에 들어가지 못해서 삼십 분이건 한 시간이건 밖에서 빙빙 돌았다. 그러다가 내가 이것마저 얻어 가지 않으면 온 식구들이 굶겠구나 생각하면 죽기 보다 더 싫은 그 짓(?)을 해야만 했다. 풀이 다 죽어서 삼촌 집에 들어가면 숙모는 어머니의 편지를 읽으시고는 한 숨을 한 번 쉬시고는 말없이 쌀을 조금 퍼 주시곤 하셨다.
나는 때때로 집에서 전당포 출입을 단골로 도맡곤 했다. 집에 먹을 것이 없으면 오버나 코트를 가지고 전당포에 가서 맡기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어느 날 친구 집에 숙제를 하러 갔는데 그 친구의 아버지가 바로 내가 다니던 그 전당포 주인 아저씨였다. 서로 알아보고는 얼마나 당황해 했는지 모른다. 나는 숨이 막힐 정도로 더운 여름날에도 열심히 공부를 했고 저녁에는 시장에서 과일 행상을 하시는 어머니를 도왔다.
내가 서울에 오게 된 것은 중학교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는 중학교 시험 1차에 떨어져 버렸다. 집은 가난하지, 학교 시험에서 떨어졌지, 나는 갈 곳이 없었다. 집에 내려가도 집에서는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 친구가 운영하시는 서울 근교의 양계장에서 눌러 앉게 되었다. 그것도 한 두 달이 아니고 몇 년을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양계장에서 무위도식을 하면서 지내게 되었다.
어느 날 양계장 아저씨는 내가 무위도식을 한다고 나를 놀리셨다. “너, 아주 팔자가 좋구나. 공부도 안해도 되고, 일도 하지 않아도 되니….” 그때 나는 그 아저씨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분노를 느꼈다. 지금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빈둥거리고 있는 현실 때문에 속이 터질 지경인데 그 아저씨가 나를 놀렸다는 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어려운 중에도 계속 교회에 나갔고 신앙 생활을 열심히 했다.
물론 우리 교회는 나같이 학교를 다니지 않는 문제아들이 몇 명 있기는 했다. 나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검정고시를 치르고 서울 공대에 입학을 했다. 그러나 청소년기를 양계장에서 너무 오래 보낸 상처는 치료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닭대가리’만 보면 속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올랐다. ‘만일 우리 집이 그렇게 망하지만 않았더라도 나는 훨씬 더 잘되어 있었을 텐데’ 라는 분노가 마음 속에 늘 있었다.
대학원에서는 전공을 바꾸어 국제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나의 갈급한 마음을 채워 주지는 못했다. 몹시도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죄의식으로 괴로워할 때 주님은 나에게 찾아와 주셨고 만나 주셨다. 그 뒤로 나는 닭고기를 먹게 되었고 닭대가리도 좋아하게 되었다.
아마도 내가 어렸을 때부터 원했던 것은 미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 처럼 되는 것이었던 것 같다. 하버드를 나오고 좋은 대학에서 정치학 교수를 하는 것이 나의 꿈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인생은 양계장 때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지난 후 나는 처음부터 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하버드 출신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양계장을 통하여 닭대가리를 사랑할 수 있게 하셨다.
나는 올해로 십년 넘게 청소년 캠프를 해 오고 있다. 그런데 나는 다른 재주는 없지만 어떤 청소년들도 실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이 언제부터 생기게 되었을까? 아마도 주님을 만난 후 닭을 다시 좋아하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요즘 나는 닭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만일 닭이 없다면 많은 청소년들이 치킨을 어디서 먹을 것인가?
▶저는 오래전 부터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김서택 목사님과 만나고 있습니다. 만날수록 늘 감동과 도전을 받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강해설교로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목사님의 설교집을 통해 제 자신이 매일 영적으로 얼마나 감격스러워 하고 힘을 얻고 있는 지 모릅니다. 지면을 통해 감사드립니다. 두 달전 목사님의 호주 집회 중 초대받고 대화하면서 우리 청소년들에게 소개하고 싶어 글을 부탁드렸는데 거절하지 않으시고 써 주셨습니다. (발행인 주)
그리움의 뒤 안길....
그리움을 찾아가는 길....겹겹이 싸여 있는 파편들에 숨어 있는 향기를
찾아내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다. 자신을 찾아가는 길, 자신의 내면의 깊이
속으로 빠져들어 살며시 고개를 쳐드는 영혼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자의
삶은 아름답다. 그리움의 빛깔을 싸고 있는 서울의 향기가 내겐 소중하다.
일상성에 젖어서 사는 이들에겐...너무도 느껴야 할 사물의 독특한 향기를 찾지
못한다. 너무도 빨리 지나가는 시간의 축 속에서 자연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향기를 찾지 못한다. 사물 각 각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요한 향기를 뿜어낸다.
늘 같지 않은 향기가 하나의 사물 속에서 풍겨난다. 주위의 배경에 어울어져,
또는 사람들 각자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자신만의 독특한 느낌들 속에서 하나의
사물은 독특한 향기로서 다가온다. 자신의 독특한 느낌에 귀를 귀울일 때, 우린
삶의 그윽함을 읽어낼 수 있다.
서울이 검은 구름 투성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우린 찾을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한다. 서울의 아름다움을...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그리움... 우주를 향해
부르짖는 지구의 목소리... 그리움이 퍼져가는 목소리가 스며들어온다...
우주의p;
어느 작은 마을 지구촌의 향기를 물신 풍기는 그리움의 산 기슭 아래,
서울은 고즈넉히 자신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그리움의 파도는 구름을 타고
뚜꺼운 검은 두껑을 열고서 여기 저기 내려앉는다. 가슴이 따뜻한 자는 들을
지어다... 신비롭기 조차한 향기들을...
파도는 밀려서 밀려서 어느 듯 나의 가슴에 드리워졌다... 포근하고 감미롭게
알랑거린다. 내 가슴속에 그리움이 깊숙이 내려앉았다. 서울이 내게 심어준
따뜻한 그리움의 향기들... 내가 사는 이 땅에는 사랑의 노래, 그리움의 노래가
여기 이곳 서울의 한 정겨운 곳에서 자라났다. 글썽이는 미소와 방긋 웃는 눈물
방울이 이리 저리 살며시 숨겨있는 이곳에 내려앉았다. 내가 사는 보금자리 그
자리에서... 평생토록 잊지 못하는 그 곳이 이 서울의 아래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면 믿지 못할지도 모른다. 가슴이 뜨겁도록 흐느껴지고.., 나의 고뇌와 아픔이
스며들어 있는 곳이 서울의 지붕아래 이 곳이다. 스쳐 지나가는 그리움이
살며시
미소 짖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사는 광장동 장신대 엘림 기숙사 앞에는 나의 정원이 심겨져 있다. 그
정원은 때론 나의 창가에서 너무도 깊이 드려지는 그 노란색 오렌지등이 내
영혼을 간지름 타게 한다. 살포시 얼굴에 다가와서 잡힐 듯, 하지만 살짝 웃는
순간... 놀라서 달아나곤 하는 귀여운 오렌지 빛 햇살이 아름아름 창가에
속삭인다...가슴속에 깊어 파고들어 노란 연기 피워 놓고 살며시 춤추다가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쉴새없이 난 그 연기에 취해서 창으로부터 흘러서 또
다른 그리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노란색이 비춰주는 연기 향기를 따라서...
그러다가 갑자기 비가 마구 쏟아진다. 한 줄기 빗줄기 속에서 나는 나의 존재를
보았다. 세상을 요란하게 뒤바꾸기라도 하듯 번개가 와르르 무너진 틈을 타서
내리는 한 줄기 빗방울의 그리움을 보았다... 마치 춤을 추듯이 흘러내린다... 저
다른 외로움이 살며시 일어났다... 홀로서 있는 저 높은음자리표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다시 다섯개의 줄기를 수평으로 펼쳐 놓았다. 그리곤 내게 스며든
그리움의 빗방울을 찍어서 빗줄기 오선에다 찍어 넣었다. 나의 혼을 새겼다...
빗줄기의 리듬은 어느 새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가보지
못하는 그리움의 벽을 뚫고서 사라졌다. 나 홀로인 것 같은 외로움에 젖어서
흘러내린 빗줄기가 그리움 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저 멀리 어느 대지 속에 흘러
들어가서 신의 여과기 속에서 꿈틀거리다가, 넓고도 넓은 바다의 수평선 위에서
춤을 추다가 영원한 그리움으로 사라져 버리겠지.... 나의 아픔과 그리움이
그려져 접혀있는 편지를 품고서 우주의 어느 저 편 누군가에게로 갔겠지...
비속에 풍겨나는 그리움의 편지는 이곳 서울의 장신대 엘림 기숙사 앞에 정말로
아름답게 펼쳐진 나의 정원에서 쓰게 되었다...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게만 한 나의 정원... 창문 앞에 늘 오렌지등은 빛났지만..
똑같지 않는 속삭임이었죠... 나의 내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향기와 오렌지등이
시간에 따라 이리 저리 변하는 그 마술은 소야(小夜) 때, 파스텔톤의 안개 처럼
살며시 스며 있다가 심야나 새벽 녁에는, 어두움의 심연 속으로 깊이 스며들어
더욱 화려하다. 그러다가 빗줄기라도 내리면 그 빗줄기가 그 오렌지 등에
맞부딪혀 흩어지는 숨결들이 저절로 들려온다... 가슴이 떨리고 설레임이 절로
일어난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이리 저리 떨며 춤을 추는 가냘픈 나뭇잎들... 때론
미소짓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하고 때론 처량하게 보이기도 한다. 나뭇잎이 그런
향기를 뿜어 내는지... 아니면...사람이 그런 향기를 나뭇잎엣 심는 건지... 하지만
둘 다 이리라.. 사물은 사물마다 독특한 향취가 있다. 자신만의 향취를 뿜어낸다.
하지만 우린 그것들을 알지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지나친다... 너무도 일상성에
찌달려 자신들 각자가 느끼는 고유한 느낌들을 찾지를 못한다. 이러한 사물들의
몸짓이나 속삭임을 만나는 것이 어쩌면 시(poem)이리라... 어떤 특별한 사물과의
만남이 시이리라. 따뜻한 사람과의 만남 또한 시이리라. 그리고 이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는 서울의 한 구석 언저리에 내 영혼이 있었고... 내가 거기서
느끼고... 그것을 글로 펼치는 것... 그것은 아주 특별한 서울과의 만남이다. 서울
속에 피어나는 그리움의 향기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정겨운 만남이 서울 아래에 펼쳐져 있다. 난 그곳을 이렇게 부르고
싶다. 워커힐 가는 길... 이 길과의 만남은 나를 더욱 자연에 푹 젖어들게 했다.
양쪽으로 널씬하게 서 있는 가로수 나무사이에서 나는 인생의 그리움의 정점을
느꼈다. 양쪽으로 서 있는 나무사이에서, 아니 이 인생의 여로에서 불을 밝히는
오렌지빛, 하얀 백색의 나트륨등은 신호등과 같은 존재이다. 때로 난 이 길의
주인이 되기도 하다. 밤이 되면 이 정감 있는 길은 나의 길이 된다. 이 밤의
소리를 홀로 소유한 채, 나의 길을 홀로서 잘 걷곤 한다. 밤잠을 설치며... 새벽,
이 길 위를 걸으며 보내기도 한다. 나의 발은 검은 발을 가진 문명의 안내를
받으며... 워커힐 굽이 길을 벗어나 워커힐호텔 근처로 가면 거긴엔 정말로
놀라운 정경이 다가온다... 저 멀리 한강이 굽이치는 것이 한 눈에 보여진다.
강물이 굽이치는 틈을 따라서 서울을 떠났던 차들의 불빛이 굽이쳐 내린다.
떠나는 차들과 들어오는 차들의 불빛이 도로 위로 피어올라 우뚝서서 근엄하게
비추는 오렌지 가로등 빛과 악수를 하면서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미소는 그
바로 아래 강물을 따라서 흘러내려서 물속에 오렌지 나라를 품어 안는다.
하늘하늘 거리며 일렁이는 불빛이 그려져 있는 그 물결속에 살며시 녹아드는
그리움을 아무도 몰래 심어놓는다. 그리곤 혼자서 방긋 웃는다. 또 다시 꺼집어
낼 수 있는 설레임을 생각하면서...
워커힐 호텔을 지나서 강변도로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나를 색다른 그리움에
빠지게 하는 것이 있다. 어느 곳과도 비교될 수 없는 워커힐 돌담길이 있다. 돌담
위엔 가지런히 옛 우리 선조의 자취를 발견할 수 있는 기왓장이 놓여 있다.
이곳을 지날 때면, 난 기왓장 담벼락에 기대어 나를 되새겨 본다. 기왓 담벼락
바로 뒤에 길게 늘어진 나무들이 몇 그루 있다.
그 일렁이는 나무 사이로 물결이 스쳐지나간다. 나무 사이로 보여지는 강물에
비추어진 오렌지 빛 물 그림자는 참 그윽하고 애틋하다. 한 7시 정도면...하늘에
걸려있던 해도 산(山) 사이에서 고개를 쑥 내밀고선 구름의 어깨를 짚고서
빨갛게 녹아든다... 빨간 향기가 이리 저리 흩어져 하얀 구름에 번져서
불그스름하게 스며들면서 한 폭의 수채화를 새겨 놓는다. 빨간 물감도
필요없고,
흰 색 물감도 필요없고, 혼자 가만히 왔다가 가만히 사라지는 물방울과 빨간
햇살의 정물화이리라. 화가도 없이 혼자서 잘도 그려낸다. 그냥 둘이 만나서
그림이 되어 버린다. 우리들의 만남도 이러한 자연의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왔으면 한다. 하지만 이 그림은 영원히 미완성 작품이 되고 말리라...
어쩌면 구름과 햇살이 만나고 헤어지는 다리가 이 저녁 노을 속에 스며들어
있으리라... 마치 견우와 직녀가 칠월 칠석에 눈물을 흘리며 까마귀의 다리를
밟으며 만나듯이 말이다. 만남의 시간과 이별의 시간이 스쳐 지나가는 흔적이
이 노을 속에 숨어 있으리라. 시간 속에 나타났다가 다시 시간 속으로
숨어버리는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입체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시간을
쫓아가서 그 시간을 잡고서 물을 수 있었으면 한다. 오늘은 좀 더 오래 볼 수
있도록 좀 더 머물 수 없냐고 말이다. 우리내 인생도 이와 같이 아름다운 한 폭의
노을 입체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름다움이 빛나는 계절있고, 검은 구름이
드려져 검게 뿌연 빛깔이 비쳐지는 계절이 있으리라. 자연의 법칙에도 4계절의
변화가 있듯이, 인생에도 아름다움과 추함이 교차하는 계절이 있다. 고상함이
지나가는 가 하면 추함이 성큼 다가오는 때도 있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 속에
더욱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녁 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반드시 흑암의 여로를 지났을 때이다. 진리의 우뚝섬과 숭고함은 인생의 역경
속에서 더욱 빛난다. 그 고통의 색깔이 자주빛이던 고동색이던,,, 아니면
검은색이던...
워커힐 돌담길은 짧고 높이도 높지 않기 때문에 그 담 너머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좋고... 그 담위에서 하늘거리는 나뭇잎사이에 그려지는
불그스름한 하늘 빛, 그 아래 드리워진 오렌지 빛 물결속에 그리움이 푹 익어서
그 강물 속의 한 보금자리에 박혀있다. 늘 이 길을 산책하며 거닐라면 저기
아무도 모른 곳에 숨겨둔 그리움울 한 줌씩 퍼내어 담으리라.
-----박동근 시와 문학의 만남
유년시절
어린 시절 손톱사이에 까맣게 때가 끼고 바지는 통바지를 입고 아렛주머니에는 구슬과 딱지가 끊히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유년시절을 시골의 산골짜기에서 자라 사계절을 모두 만끽하며 온통 산과 호수와 밤나무 사이를 망아지 마냥 뛰놀며 다녔었다. 아! 그때는 너무 천진난만하고 개구쟁이여서 고적한 날이면 그때 그 어린 시절이 생각나곤 한다. 논두렁을 지나 신작로로 들어서면 간간이 지나가는 버스가 덜컹 거 리며 멀어질 때 나와 형은 산신령처럼 매연과 뽀얀 먼지 속에서 헤 어 나오곤 했다.
길가에는 높게 자란 포플러 나무가 끝없이 이어지고... 그 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보면 길옆에 제방뚝이 나온다.
간간이 제방뚝 사이로 쥐새끼들이 우리를 희롱하고 어떤 날은 산에 서 내려온 다람쥐도 보았었지.
뚝을 지나 갯벌에 이르면 이름 모를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고...
나와 형은 칡넝쿨로 수수처럼 길게 자란 갈대를 꺾어 하나씩 엮어서 허리까지 차는 물 속에서 뗏목처럼 만들어 갈대 숲을 지나며 새 알을 훔쳐먹곤 했다.
갈대궁으로 엮은 배를 타고 노을 저어 가다보면 갈대와 파란 하늘만 보였다.
그때는... 머나먼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 동경하던 세계에 닿을 것만 같았다...
해가 서산에 기울어지고 황혼이 물들 때 우리는 주머니에 새알을 가 득 담고 손발을 써서 부리나케 갈대 숲을 헤쳐 나왔다.
놀란 새들이 푸드득... 날아오르는 것을 뒤로하고 갯벌 가에 갈대
배를 숨겨두고 헉헉대며 뛰다보면, 얼굴은 온통 갯벌흙으로 양아치마 냥 지저분했다.
집에 돌아오니 호롱불이 반짝이고 마당 한가운데는 쑥향이 진동했 다.
누렁이가 처음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그 뒤로 할머니가 맞이해 주고
나면 어머니의 눈초리와 함께 부엌에 붙들려가 사정없이 맞았다.
내 머리보다 큰 놋쇠그릇에 밥을 두그릇 이상 먹고 날 즈음엔 하늘 에 달이 오르고 주위에 땅거미가 내려앉는다.
내게는 넓게만 느껴지던 마루에 누어 할머니의 옛날 얘기에 빠져들
다가 뒷산 소쩍새 의 구슬픈 소리를 들으면 어느새 꿈속으로 향하곤 했었다.
그때. 그 시절이 너무 그리워 고향에 내려가면 이제는 그 흙먼지 나
던 신작로는 아스팔트로 길게 뻣어있고 하늘을 찌를 듯 크게만 보이
던 포플러 나무는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엔 은행나무들이 노랗게 물들 어 있었다.
선산에 가서 할머니를 찾아뵈러 제방 둑을 지나다 보니 갈 대숲은 보이질 않고 양어장이 들어서 있었다.
그 푸르던 물은 검게 퇴색 되여 아름다운 유년시절을 송두리째 망가 뜨려 마음이 아팠다.
이제는 차도 많이 다니고 관광지가 되여 길옆에는 작은 문방구가 있 던자리에 닭들이 통째로 삶아져 나오는 집이 되고...
마을사람들은 나를 알아보질 못했다. 어쩌다 마주친 친척이 얼싸안고 반겨 줄때 등뒤로 보이는 마을뒷동 산에는... 아! 내 어린 시절 뛰놀던 옛 동산엔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황량함이 나의 시아에 가득하게 밀려옴을 느낄 때쯤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목이 메여왔다...
94.12.22
---박동근의 시와문학의 만남.
詩의 무덤
강가 미루나무 옆 움막이 어느 날 생겨나더니 그곳에 어떤 이가 기거 하였다. 가끔 마가린과 고춧가루로 풀어헤친 멀건 국을 만들어 끼니를 때우곤 하였었다. 우리는 그가 우리의 선배의 선배라는 것을 마을 사람을 통해 희미하게 알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 한낮 멱을 감으며 종일을 강가에서 놀다 미루나무 응달에 누어 잠이라도 잘라치면 여름 오후 뜨거운 땡볕에 악몽을 꾸곤 하여 잠을 깨면 해는 저만치 올라가 있고 미루나무 그림자는 더 길게 강으로 뻗어 나갔다.
나를 주시하다 놀란 해골 마냥 퀭한 눈이 무서워 그 자리를 피하려 하면 그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우리를 범하려는 눈빛이 너무나 몸서리쳤다. 그의 움막에는 수북한 백색 알약이 뒹굴고 어디서 잡아왔는지 누렁이가 검게 그을려 강가를 노린내로 진동을 시키더니, 그해 겨울 검둥이처럼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눈 내리는 강가에는 가끔 천둥 오리가 날아오르고 한동안 그는 며칠을 얼어 있었다. 죽은 체로 해가 뜨고 바람이 잠잠해질 즈음 오삽을 어깨에 이고 군청에서 보조되는 관 값을 들고 관을 맞추었다.
그의 뼈만 남은 검게 탄 껍질을 모두 벗겨 내고, 새로운 옷으로 칭칭 감았지. 그의 움직이지 않는 손을 부러트려서 다소곳이 사타구니에 맞추고 염을 하고 솜을 귀와 코에 쑤셔 넣었다. 숨은 내가 쉬는데 검게 타 들어간 송장이 숨을 쉬는지 역겨운 냄새가 결핵균과 함께 솔솔 피어오르는데 그건 정말 내 폐가 썩는 느낌 같았다. 간신히 싸구려 관에 동태 넣듯이 넣고 경운기에 싣고 산으로 향하였다. 공동묘지에 다다를 즈음 누군가 발을 헛디뎌 그만 베니어판 보다 얇은 관 짝은 깨지고 말아 검은 시체가 눈에 띠였지. 산 속의 공동묘지는 낮게 드리워진 나무들이 옆으로 옆으로 흐느끼며 윙윙거리는데 이미 태양은 기울고 있었다. 일행은 삭풍이 몰아치는 언덕에서 어딘가 묻을 곳을 찾다가 끝내는 땅파기를 포기했다. 지난여름 방공호로 이용하던 작은 구덩이에 곡괭이 질을 하는데 자꾸만 팅겨 나가기를 수십 차래 하더니 언 땅을 풀어헤쳐 관 짝을 구겨넣고 솔잎으로 봉을 만들고 눈가루로 잔디를 대신하였다. 이마에는 땀방울과 알 수 없는 불안이 엄습해 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묘지사이를 헤치고 내려왔다. 이듬해 봄 떨쳐 버리려던 그 무덤가에 꽃이 피고 봉은 사라져 평평하게 되어 있었다 이름 모를 꽃들 위에 황토흙을 날라 다시 봉을 만들고 주위를 돌며 혼을 위로했건만 또 다른 이의 유골이 삽에 찍혀 나와 자세히 보니 해골이더군 그것을 언덕 아래 병참 부대 너머로 던져 버리고 또 다시 우리는 매듭을 못 지고 내려 와야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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