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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류시화

by Casey,Riley 2023.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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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그네1>  
... 점치는 여인의 눈을 나는 보았다   
(류시화 수필집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 중에서)  
  
  

1  

  다른 행성에도 인간을 닮은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곳에도   
내가 사는 이 행성과 마찬가지로 점치는 여인이 존재할까.   
그래서 외계인들의 인생 과거를 쪽집게 처럼 알아맞추고, 신비한   
눈빛과 어조로 미래를 예언하여 사람들을 섬칫하게 만들까.   
외계인의 존재 여부에 대한 의문만큼이나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커다란 의문이다.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따금씩   
그러한 것들을 궁금해 한다.  
  저마다 일생을 살아오면서 한 번쯤은 계시의 순간을 맞이하듯   
누구나 점치는 여인과 조우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는   
그녀가 하는 말을 믿어야할지 어쩔지 망설인 적이 있으리라.  
  나 또한 그러한 순간이 있었다. 나는 스물다섯 살이었고, 대학   
졸업을 두어 달 앞두고 있었다. 그날 나는 어떤 일이 있어서   
몇사람과 함께 이른 새벽에 학교 앞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저만치 앞에 한 여자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다가가서 보니 얼굴 화장까지 곱게 한 여자가 길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서 앉아 있었다. 나는 어른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녀에게 왜 그곳에 앉아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자기는   
점치는 사람이며, 사람들의 점을 쳐주기 위해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아서, 지금이 새벽   
다섯 시밖에 안 됐는데 누가 점을 본다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여자는 대뜸 나를 노려보며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당신 점을 보려구!"  
  그때 만일 내가 그 여자를 정신이상자 정도로 여겨 그냥   
지나쳤다면 나는 삶의 신비에 대해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으리라. 나는 어떤 야릇한 기분에 이끌려 일행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여자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새벽점을 보기 시작했다.  
  왜 점치는 여인들은 다들 그러한 눈빛을 갖고 있는 걸까.   
그들은 점치는 여인들만 사는 어떤 다른 별에서 이 행성으로   
파견되어 오기라도 한 걸까. 어렸을 때 우리집에 가끔씩 들르던   
마을의 미친 여자도 그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엇다. 한 번은   
소풍을 가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그 미친 여자가 물통을   
어깨에 두른 내 손을 잡고 마구 끌고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또다시 그렇게 소리쳤었다.  
  "넌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느냐? 왜 아직도 안 떠나고 있어?"  
  다른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미친 여자에게 손목이   
잡힌 채 오월의 들길 쪽으로 끌려갔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그녀의 말이 기정사실화되어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2  

  "당신은 바람이야. 바람으로 이 세상에 와서 바람처럼   
떠돌다가기 때문에 발 붙일 데가 아무 곳에도 없어."  
  그날 새벽 다섯 시에 길거리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있던   
점치는 여인이 바닥에 엽전 다섯 개를 휙 내던지며 내게 한   
첫마디 말이었다.  
  "그러니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해. 집, 가정,   
부, 친구, 명예, 평판,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이 허무에 지나지   
않음을 보게 될 거야."  
  그 무렵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이제 세상 속에서 내   
삶이 나아가야 할 바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었다. 나는 돈을   
벌어야 했고 남들처럼 직장을 가질 생각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내앞에 나타난 한 점쟁이가 허무하기 짝이 없는 말들을 읊조리고   
있었다.  
  그녀는 우선 내 지나온 과거의 일들을, 내 자신이 기억 못하던   
것까지 밝혀냈다. 그리고 나선 앞으로의 내 인생행로를 세세히   
말하기 시작했다. 결혼은 누구와 하게 될 것이고 아들은 언제   
낳을 것이며, 내가 인도라는 나라에 가고 싶어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며 서른 살이 되어야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했다.  
  그 당시 나는 점술(占術)이나 예언 따위에 대해 별다른   
믿음이나 이해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여인이 하는 말을   
대부분 건성으로 흘려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어리석게도   
왜 그렇게 했을까. 훗날 인새을 살아오면서 어떤 중요한 사건과   
직면할 때마다 나는 여인의 예언이 적중했을을 알아차리고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나는 그녀가 예언한 대로 결혼을 했고,   
그녀가 예언한대로 미국을 갔으며, 그녀가 예언한 대로 첫 번째   
시집(詩集)을 냈다. 그녀가 예언한대로 사람들을 만났고, 그녀가   
예언한 대로 겨울나그네처럼 정처없이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그 무렵 나는 아직 세상의 신비에 눈뜨지 못했을뿐더러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생의 초월을 꿈꾸고   
있긴 했지만 동시에 생을 어떻게 살아나가리라는 설계 또한   
굉장한 것이었다. 그러니 이제와서 그녀가 예언한 내용을 세세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후회해야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의 어떤 구절들은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다. 마치 그녀가 콩알만한 난쟁이가 되어 내 귓전에   
달라붙어 따라다니면서 계속해서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당신은 내 말을 우습게 들으면 안돼. 당신이 어느 것에   
집착해서 안주하게 되면 당신은 죽게 돼. 그것도 아주 외로운   
섬에서 살다가 죽게 될지도 몰라. 아무도 당신이 죽은 걸 모를   
테구. 당신이 무엇에 집착하는 것은 자기의 입술에 입맞추려는   
것과 같고 자기의 다리로부터 달아나려는 것과 같아. 하지만   
당신은 이 세상에서 많은 걸 배우려고 왔어. 먼 훗날 당신은   
인생의 큰 것을 깨닫게 돼. 그걸 사람들과 나누어야 해."  
  여인은 다섯 개의 엽전을 다시 땅바닥에 휙 내던지며 나를   
노려보았다.  
  "당신의 머리를 믿지마. 당신은 가슴으로 살아가야할 사람이야   
가슴을 잃으면 당신은 문학도 못하고 늙은 호박처럼 외롭게   
쪼그라들어."  
  그 말이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마치 알 수 없는 어떤 세계으   
빛에 세례를 받은 사람처럼 할 말을 잃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쭈그리고 앉아 있었던 탓에 발이 저려왔다. 아침이 왔고   
행인들이 부지런히 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일어서자 점치는 여인도 보따리를 싸들고 함께   
일어서는 것이었다. 가려는 것이냐고 묻자 여인은 다시금 나를   
노려 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 점을 봤고, 이제 내 할 일을 했으니 돌아가야지."  
  그러더니 그녀는 나를 제치고 서둘러 행인들 속으로   
떠나가버렸다. 나는 한참동안 그녀의 뒷모습을 쫓다가 일행과   
함께 내 갈 길로 걸어갔다. 그것이 그녀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으며, 그 만남은 내 생에 일어난 신비한 일 중의 하나로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삶이   
새롭게 시작되었음을 나는 훗날에야 알았다.  
  다시금 나는 진정한 겨울 나그네였던 나의 외할아버지가   
떠나면서 내게 해준 말로 돌아온다.  
  "제 가슴을 잃지 말아라. 네가 가슴을 잃으면 잃는 것은   
가슴이 아니다."  
  그 말은 어느 사이에 점치는 여인의 말과 더불어 내 삶의   
변치않는 지침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몇 년 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점치는 여인의 예언에 따라 최초로 인도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겨울 나그네2>  
... 점치는 여인의 눈을 나는 보았다   
(류시화 수필집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 중에서)  
  

   
3  

  1993년 8월, 나는 네 번째 미국 여행에서 돌아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정신세계를 담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만들었다. 그 책에서 체로키 족 인디언   
작은나무(리틀 트리)는 마음과 영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마음의 하나는 육신의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것들과 관계된 것이다. 우리는 그 마음을 사용해 먹을 곳이나   
잠잘 곳, 그리고 그밖에 우리의 육신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얻는 방법을 생가해낸다. 남녀가 짝을 짓고 아이를 갖는 등의   
행위를 하는데도 그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생존해나가려면 당연히 그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일들과 전혀 무관한 또다른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마음, 곧   
영혼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작은나무의 하며니 인디언은, 만일 우리가 육신의   
삶을 담당하는 마음을 발달시켜 탐욕스럽고 천박스런 생각에만   
몰두한다면, 또 만일 우리가 항시 그 마음을 통해 남을 공격하고   
남에게서 물질적인 이익을 취할 방법을 계산하는 데만   
몰두한다면... 그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우리의 영적인 마음은   
히코리 열매의 크기로 쪼그라들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육신이 죽으면 우리 육신의 삶과 관계된 마음도   
함께 소멸되어버린다. 그리하여 만일 당신이 평생동안 육신의   
마음으로 삶을 이끌었다면 당신에게 남는 것은 히코리   
열매만한 영혼뿐일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모든 것이 죽을   
때 결국 살아남는 것은 영혼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이   
그 다음에 또다른 육체로 태어날 때 --- 모든 인간은 다시   
태어나게끔 되어 있다 --- 당신은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히코리 열매만한 영혼을 갖고   
태어나게 된다.  
  만일 다시 태어나서도 육신의 삶과 관계된 마음이 여전히   
당신의 인생을 지배하게 된다면 영혼은 다시 완두콩   
크기만큼 쪼그라들어버리거나 아예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럴 경우 당신은 당신의 영혼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만다. 그 결과 당신은 살아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죽은   
인간이 된다.  
  할머니는 우리가 죽은 인간들을 손쉽게 가려낼 수 있다고   
하셨다. 죽은 인간들은 눈이 멀었기 때문에 여자를 볼 때도   
추한 것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으며, 타인을 볼 때도 나쁜   
면밖에 볼 줄 모르고, 나무를 볼 때도 아름다움은 잊은 채   
목재로 여겨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이득밖에 볼 줄 모르게   
된다.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세상을 걸어다니지만   
사실은 죽은 인간이다.  

  작은나무의 할머니인 이 늙은 인디언의 말을 빌리면 영혼과   
관계된 마음은 근육과 똑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자주 사용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이다. 영혼을 크고 강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를 갖는   
것뿐이라고 작은 나무의 할머니는 말한다. 그러나 당신이   
언제까지나 육신의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계속하는 한 영혼으로   
이르는 문은 열리지 않는다고.  

  다행히 영혼으로 이르는 문을 열었을 경우 이때부터   
당신은 이해의 길에 들어서게 되며, 당신이 이해의 길을   
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당신의 영혼과 관계된 마음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 나는 앞으로 내가 눈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리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히코리 열매의 크기만한 영혼을 갖고서 삶을 살아가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할며니는   
나의 영혼이 더욱 크고 깊어지게 되면 어느 날엔가 내   
과거의 육신들이 거쳐온 삶의 과정을 남김없이 알게 될   
것이며 차츰 육신의 죽음에 대해서 초연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를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가슴을 잃어버리고 영혼이 히코리 열매만한 크기로   
줄어들려고 할 때마다, 또한 내가 어떤 것에 집착하거나   
안주하여 내 자신의 본성을 잊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다시금   
이들의 말에 귀기울이며 이들의 세계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나의 외할아버지와 길에서 만난 점치는 여인, 그리고 늙은   
체로키 족 인디언 할머니의 세계로.
 

  
    
  
  
<어느 문명인의 실종> 
(류시화 수필집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중에서) 
  
  

  처음으로 북인도 대륙을 여행할 무렵,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며칠 동안  
식사다운 식사를 하지 못했다. 음식마다 뿌려진 강렬한 향료는 식욕을 달아나게  
했고, 싸구려 식당의 불결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배가 고파 식당으로  
들어갔다가도 몇 숟가락 쑤석거리다 마는게 고작이었다. 
  게다가 식당 주인은 바닥을 닦던 걸레로 테이블도 닦고 그릇까지 닦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매번 그걸 나무랄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또 무슨 훈계를  
들을지 모를 일이었다. 인도에서 불교를 전공하던 어떤 한국인 교수가 하인에게  
행주와 걸레를 구분해서 쓰라고 충고했더니, 그 인도인 하인은 "더러움과  
깨끗함을 차별하는 마음도 버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불교를 전공한다고 할 수  
있느냐?"고 교수에게 되레 큰소릴 쳤다고 한다. 
  또 인도인들은 대부분 손으로 밥을 먹는다. 왜 스푼을 사용하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먹느냐고 했다가 나는 된통 설교를 들어야만 했다. 누구의 입에  
들어갔었는지도 모르는 스푼으로 먹는 것보다 자기 손으로 먹는 게 훨씬  
위생적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들은 손가락으로 음식의 맛을 아는  
능력을 지녔다고 주장했다. 
  입맛이 떨어진 나는 물로만 배를 채웠다. 하지만 열흘쯤 지나자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허기에 지쳐 쓰러질 판이었다. 뭐든지 먹어야만  
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선 나는 비교적 깨끗한 식당으로 들어가 맛을  
따지지 않고 이것저것 시켜 먹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여행을 계속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상황이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장거리 시외버스에 올라탔는데, 당장  
배탈이 나고 만 것이다. 
  버스는 온갖 종류의 인도인들을 빼곡이 싣고 열여덟 시간 거리에 있는 비하르  
지방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드넓은 들판지대를 두 시간쯤 달렸을 때, 아랫배가  
쌀쌀 아프더니 급기야 장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자극적인 인도 음식을 내  
소화기관이 견디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도중에 버스를 내릴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 동안 배운 지식을 동원해 손가락과 손바닥을 마구 지압했다. 그리고 재빨리  
정로환 몇 알을 삼켰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태는 더  
나빠져 아랫배가 부글거리고, 금방이라도 바지에 설사를 할 것만 같았다. 나는  
그야말로 얼굴이 사색이 되어 몸을 뒤틀었다. 
  그렇게 반 시간쯤 참았을 때 나는 마침내 인내의 한계에 이르렀다. 더 이상  
참다가는 더 걷접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나는 손을 번쩍 들고  
운전사를 향해 소리쳤다. 
  "잠깐 차를 세워주세요. 배탈이 나서 견딜 수가 없어요. 얼른요." 
  그 순간, 평화롭게 오전 햇살을 받으며 북인도 들판지대를 달리던 낡은  
시외버스는 그 안에 탄 유일한 외국인 여행자 때문에 잠시 소동이 일었다. 내가  
쥐어짜는 목소리로 버스를 세우라고 요구하자 차 안에 탄 인도인들 시선이 전부  
내게로 쏠렸다. 사리 입은 여인, 흰 두건 쓴 시크교 노인, 이마에 점을 찍은 처녀  
할 것없이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다. 남의 자리에 끼여앉아 옆사람의 호주머니를  
훔쳐보던 소매치기까지도 나한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창피한게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애원하듯이 소리쳤다. 
  "빨리 차를 세워요! 잠깐만 내렸다 탑시다!" 
  운전사는 영어를 못 알아듣는지 조금 더 달리다가 한 인도인 남자의 통역을  
받고는 끼익 하고 버스를 세웠다. 하도 급작스럽게 차를 세워서 승객들 모두가  
와락 앞으로 쏠렸다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 
  나는 황금히 문으로 달려갔다. 그때 일말의 불안감이 밀려왔다. 내가 내린  
사이에 버스가 떠나버리기라도 하면 큰 낭패였다. 마을 조차 없는 허허벌판의  
무인지대에 혼자 남겨질 순 없는 일이었다. 나는 운전사에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  
떠나지 말고 기다릴 것을 강력히 지시했다. 그래도 미심쩍어서 나는 버스를  
내리다 말고 도로 올라가 배낭을 들고 내렸다. 
  버스에서 뛰어내린 나는 배낭을 들쳐안고 무의식적으로 도로옆 들판을 향해  
10미터 달려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북인도의 들판지대는 수평에 가까운  
황무지가 대부분이다. 언덕 하나 없는 평지에다 나무들조차 구경하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내가 버스에서 내린 지점이 바로 그런 지대였다. 
  나는 달려가다 말고 주위를 살폈다. 몸을 가릴 만한 장소가 한 군데도 눈에  
띄지 않았다. 바위나 언덕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그 뒤로 돌아가 일을 볼 텐데  
사방은 그저 툭 트인 황무지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문명국가에서 온 내가  
아무데서나 바지를 내리고 일을 치를 순 없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고개를 돌려 버스를 쳐다보았다. 차 안에 탄 인도인들  
모두가 일제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 무료하던 판에 이게 웬 구경거린가  
하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다시 10여 미터를 달려갔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전방에 가냘픈 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있는 것 말고는 내 한 몸  
가릴 만한 은폐물이 천지간에 없었다. 인도인들은 저 친구가 왜 저렇게  
허둥대는지 이해가 안간다는 듯 저마다 차창에 얼굴을 대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갑자기 광야에 홀로 선 외로운 문명인이 되고 말았다. 인도인들은  
아침마다 들판이나 철둑길 같은 곳으로 몰려가 일을 보지만, 나마저 멀건 대낮에  
아무데서나 엉덩이를 내보일 순 없었다. 
  그렇다고 아주 멀리 지평선 너머로 거위처럼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는 사이 배탈은 더욱 심해져 조금만 더 지체하다간 영락없이 바지를 적실  
판이었다. 나는 너무도 당황스럽고 황당해서 영혼이 몸부림칠 것만 같았다. 
  마침내 나는 배낭을 끌어안고 스무 걸음 정도를 더 뛰어가 전방에 외롭게 서  
있는 나무 뒤로 돌아갔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나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굵기가  
팔뚝 정도에 불과해서 내 몸을 전혀 가려 주지도 못했다. 그러자니 더욱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덩치가 크고 머리는 장발을 한 사람이 지팡이만한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셈이 되었다. 바지를 내리고 그 나무 뒤에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보기  
시작했지만, 버스에 탄 인도인들은 볼 것을 다 보고 있었다. 
  비록 지팡이만한 나무일지라도 무언가에 의지할 수 있어서 그나마 안심이었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완전히 정신적 공황에 빠질 뻔했다. 인도인들은 나를 낱낱이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애써 나무둥치에 눈을 갖다대고 그들이 보이지 않는  
척했다. 
  어쨌든 위기는 면했다. 바지에 실례를 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볼일을  
마친 나는 잃어버린 권위를 되찾기라도 하려는 듯 어깨에 힘을 주고 천천히  
버스로 돌아갔다. 그리고 도중에 괜히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어 멀리 던지는  
여유까지 부려 보였다. 인도인들은 내 마음속을 다 간파하고 있다는 듯, 저  
친구가 정말 왜 저러나 하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북인도의 초가을 아침 햇살은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부드러운 힘을 갖고 있다.  
먹을 것이 별로 없는 인도인들은 저 아열대의 태양광선을 먹고 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내가 올라타자 버스는 서둘러 먼지르 날리며 출발했다.  
목적지 고락푸르까지는 먼 여정이었다. 
  또다시 배탈이 날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한결 속이 편안해 졌다. 좌석으로  
돌아온 나는 느긋하게 기대앉아 옆자리 승객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인도인들은 왜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들판이나 철둑길이나  
강변에 마구 볼일을 보니 더럽기 짝이 없잖아요. 전염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구요. 화장실을 더 많이 지으면 한결 깨끗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요?" 
  그러자 건너편에 앉은 50대 남자가 내 말을 받았다. 
  "자연 속에서 자연적인 일을 처리하는데 뭐가 나쁘다는 겁니까? 왜 당신들  
외국인들은 성냥갑만한 공간 속에 숨어 냄새를 맡아가며 똥 위에 똥을 누고  
있지요? 우린 아침마다 대자연 속에 앉아 바람과 구름을 바라보며 볼일을  
봅니다. 그것이 우리에겐 최고의 명상이지요." 
  다른 남자가 말을 받았다. 
  "그래요. 자연스러움을 혐오하고 인위적인 것들을 추종하는 세상이 됐어요.  
우리처럼 물로 닦지 않고 화장지를 사용해야 문명생활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어디 정말로 그런가요. 강은 더 더러워졌고, 나무들은 더 없어졌지요." 
  그 옆의 남자도 한탄을 했다. 
  "그 결과 세상은 점점 위선적이 되어버렸어요. 명상적인 생활이 무엇인지도  
모그구요. 무엇으로든 자신을 가려야만 문명인이라고 생각하게 됐지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고 있는  
도리밖에 없었다. 자연스런 볼일을 보는데도 지팡이만한 어린 나무에 몸을  
가리려고 허둥대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배낭을  
잃어버릴까봐 잔뜩 끌어안고서. 
  버스는 창피함으로 얼굴이 붉어진 한 외국인 여행자와 묵묵히 창밖을 응시하는  
사리 입은 여인, 흰 두건 쓴 시크교 노인, 이마에 점을 찍은 처녀, 그리고 또다시  
옆사람의 호주머니를 훔쳐보는 손이 시커먼 소매치기 등을 싣고 광활한 북인도  
대륙을 달려갔다. 나를 숨겨줄 아무런 은폐물도 없는 들판지대가 야속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저 따사로운 평원의 햇살과 툭 트인 바람 속에서 내 온 존재를  
마음껏 드러낸 채로 평생을 살아가고 싶었다.
 

  
  
  
  
<빈자의 행복>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중에서) 
  
  

  차루는 허풍쟁이였다. 걸핏하면 허풍을 떨었다. 그리고 말끝마다 "노 프라블럼!"을  
외쳤다. 
  차루는 키가 작고 못생겼다. 그는 내가 묵고 있는 남인도 마드라스의 호텔 앞에서  
아침마다 릭샤(바퀴 셋 달린 택시)를 받쳐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내가 호텔 문을  
나서면 차루는 운전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도 다른 릭샤꾼들을 제치고  
재빨리 달려왔다. 그리고는 날 모시고 다니려고 이른 새벽부터 대기하고 있었다고  
허풍을 떨었다. 
  처음 차루의 릭샤를 탔을 때 연신 기침을 해대는 것이 안돼 보여 약 사먹으라고  
차비를 더 얹어준 적이 있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날부터 차루는 아예 나를 자기  
주인으로 모시기로 작정한 듯 어딜 가나 따라다녔다. 
  나는 약간 창피했다. 오리 궁둥이를 한 못생긴 차루가 아무데서나 "주인님.  
주인님!"하며 아는 체를 하는 데는 문제가 있었다. 나를 보기만 하면 차루는 목에  
걸었던 지저분한 수건으로 릭샤 뒷좌석의 먼지를 털면서 어서 타라는 시늉을 했다.  
근처 우체국에 가는 길이며, 걸어가도 충분한 거리라고 설명해도 차루는  
막무가내였다. 그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노 프라블럼. 써(아무 문제없어요. 선생님)!" 
  날마다 비싼 릭샤를 타고 다닐 만큼 돈이 많지 않다고 말하면, 그는 또  
엉덩이까지 흔들며 외쳤다. 
  "노 프라블럼. 써!" 
  돈 같은 건 문제가 아니니 어서 타라는 것이었다. 차루는 정말로 인생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가진 거라곤 홑바지밖에  없으면서도 언제나 밝고  
익살맞았다. 또 인도인 특유의 그 끈질김이란! 
  마침내 하는 수 없이 내가 릭샤에 올라타면 차루는 차창에 매단 고무나팔을  
푸웅푸웅 울려대며 인파 가득한 거리로 내달렸다. 앞에서 거치적거리는 사람이  
나타나면, 노인이든 예쁜 처녀든 차루에게 된통 욕을 얻어먹어야 했다. 
  한 번은 시내에 있는 나라다 사바 음악회관에 가던 중에 서류가방을 든 관리가  
길을 비키지 않자, 차루는 또다시 푸웅푸웅 경적을 울리며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다.  
천한 릭샤 운전사에게 욕을 먹은 고급관리는 잔뜩 화가 났다. 그는 막을 새도 없이  
차루의 왼쪽 뺨을 후려쳤다. 바라보고있던 나까지도 눈에서 불꽃이 튈 만큼 험악한  
손찌검이었다. 
  차루는 천민이었다. 신분 차별 관습이 뿌리 박힌 인도 사회에서 차루는 아무 힘이  
없었다. 그래서 관리의 뺨을 맞받아 칠 수도 없었다. 차루는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기만 했다. 관리는 그것도 모자라 또 한 대 후려칠 기세였다. 
  마냥 구경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얼른 릭샤에서 뛰어내려 관리를  
가로막고 힘껏 떠다밀었다. 외국인이 떠다밀자 뚱뚱한 관리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엉겁결에 소똥 위로 자빠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인도인들이 몰려들었다. 
  그대로 있다간 사태가 불리했다. 나는 릭샤에 올라타며 차루에게 소리쳤다. 
  "찰로, 찰로!" 
  '찰로'는 빨리 내빼자는 뜻이다. 차루는 푸웅푸웅 고무나팔을 울리면서 바람처럼  
릭샤를 내몰았다. 음악회관에 도착해서 보니 차루는 뺨에 벌겋게 손자국인 나  
있었다. 걱정이 된 내가 괜찮으냐고 묻자 차루는 목소리도 낭랑하게 외쳤다. 
  "노 프라블럼, 써!" 
  음악회관에 앉아서 인도의 대표적인 현악기 시타르 연주를 듣고 있는데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는 차루가 마음에 걸렸다. 욕을 한 건 잘못이지만 뺨을 때리다니. 차루는  
몇 살이나 됐을까? 결혼은 했을까? 가족은 있을까? 차루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안 그래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욱  
친근하게 굴 게 틀림없었다. 아마 이젠 친동생처럼 따라다니려고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연주회가 끝나서 나가보니 차루는 운전섯에 앉아서 모든 걸 잊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차루에게, 저녁에 공항에 함께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차루는 깜짝 놀라며 오늘 떠나는냐고 했다. 그런게 아니라 내 친구들이 오늘 밤  
인도에 도착할 예정이어서 마중을 나가야 한다고 설명하자 차루는 명랑하게  
소리쳤다. 
  "당신의 친구라면 곧 내 친구인데 당연히 나가야죠. 노 프라블럼!"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차루는 공항 주차장에 릭샤를  
세워둘 수 없었다. 그곳은 다른 릭샤꾼들의 세력권이었던 것이다. 잘못하다간 또  
얻어맞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차루는 그런 설명도 없이, 공항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길가 숲에다 릭샤를 숨겨  
놓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유를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차루는 나를 공항에  
내려준 뒤 곧장 사라지더니 그 먼 거리에 릭샤를 감춰두고 맨발로 뛰어왔다. 
  비행기가 도착했으나 친구들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카레냄세 풍기는 구름떼  
같은 인도인들 틈에서 목을 빼고 서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루는 그 동안  
다른 릭샤꾼들의 눈을 피해 대합실 밖 기둥 옆에 숨어 있었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빼꼼히 눈만 내놓고서 유리창 너머로 나를 바라보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바깥이 소란스러워 고개를 빼고 쳐다보니 차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에 나는 서둘러 대합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차루는 바닥에 넘어져 있고 입술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 
  차루의 주위로 웅성거리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또 누구한테 얻어ㅁ은 걸까. 나는  
황급히 차루를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알고 보니 차루는 기둥에 기대서 졸다가  
앞으로 자빠지는 바람에 입술을 깬 것이었다. 어처구니없어 하는 나에게, 차루는  
얼굴을 가렸던 수건으로 상처를 닦으며 소리쳤다. 
  "노 프라블럼, 써!" 
  마침내 내 친구들이 나타났다. 번개처럼 뛰어가 릭샤를 가져온 차루는 내  
친구들을 얼싸안으며, 나의 둘도 없는 인도인 친구 행세를 하는 것이었다. 입술이  
쿤타킨테처럼 부르튼 채로. 친구들은 내가 어쩌다가 이런 괴상한 인도 친구를  
사귀게 됐나 하는 표정들이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차루에게 내 일행과 함께 남쪽 도시로 여행을 떠나려 하니  
버스표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인도는 버스표나 기차표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예약을 해두는 것이 안전했다. 차루는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쳤다. 버스표 살 돈을 주겠다고 해도 그만한 돈쯤은 자기가 갖고 있으니, 표를  
사온 다음에 달라고 했다. 나중에 심부름 값까지 쳐서 두둑이 받을 심산인 것  
같았다. 
  그러나 저녁때까지 호텔로 버스표를 갖고 오기로 한 차루는 밤 열두시가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할 수 없이 이른 아침에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웃돈을  
얹어주고서야 겨우 버스에 올라 탈 수 있었다. 
  근처 도시에 있는 스리 오로빈도 명상센터에 다녀온 이튿날, 나는 거리에서  
차루와 마주쳤다. 차루는 릭샤에서 뛰어내리며 반갑게 아는 체를 했다. 나는 화가  
나서 버스표에 대해 따져 물었다. 차루는 놀라는 시늉을 하며 또 허풍을 떨었다. 
  "아아, 맞아요. 버스표가 있었지요! 그런데 그만 길이 막혀서 늦고 말았지 뭡니까!"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다. 무슨 길이 막혔느냐고 따지자 차루는 얼른 고백했다. 
  "아아, 맞아요. 사실은 깜빡 잊고 말았어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런 친구를 믿고 버스표 예약을 맡긴 내 자신이 한심했다.  
내가 화를 내며 앞으로 걸어가자 차루는 뒤에 따라오며 여행은 잘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그렇다고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차루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왜 화를 내시는 거죠? 잘 다녀왔으면 그걸로 노 프라블럼 아닌가요?  
이미 지나간 일인데 그런 것 때문에 화를 낸다면 어리석은 일 아닌가요?" 
  이제는 그 놈의 '노 프라블럼' 소리도 지겨웠다. 나는 냉정하게 차루를 밀쳐냈다.  
그 순간 차루가 또 말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당신 자신의 업이에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정해져 있는 일인 걸  
내가 어쩌란 말인가요. 어쨌든 현실의 결과를 받아들여야지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차루는 한낱 릭샤 운전사가 아니었다. 인생의 문제를 초월한  
성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인도 사회의 가장 밑바닥 계층에서 어느덧 깨달음을  
얻은 힌두 명상가로 변신해 있었다. 
  희랍의 철학자 제논이 상인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그의 집에는 특별한 노예가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제논이 화가 나서 노예의 뺨을 때리자 노예는 평온한 목소리로  
제논에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아득히 먼 옛날부터 이 순간 주인님에게 뺨을 맞도록 되어 있었고,  
주인님은 또 제 뺨을 때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두 사람은 정해진  
운명에 따라 충실히 제 역할을 수행했을 뿐입니다." 
  제논은 훗날 스토아 학파의 대철학자가 되었는데, 인도인으로 짐작되는 이  
노예에게 영햐을 받은 듯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에 흔들림 없는 현실 수용'이 그의  
주된 사상이었다. 
  한편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갖고 있는 것이 당신에게 불만스럽게 생각된다면, 세계를 소유하더라도  
당신은 불행할 것이다." 
  세네카든, 제논의 노예든, 또는 차루든, 이들이한결같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너의 소원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삶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여라. 그러면 넌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차루는 어디서 그런 현실 수용의 지혜를 배웠을까. 여러 명상센터를 수시로  
드나들면서도 내가 얻어 갖지 못한 그것을 그는 어떻게 체득했을까. 나로선  
불가해한 일이었다. 
  마드라스를 떠나는 날 아침, 마지막으로 차루를 만났다. 작별 인사도 할 겸, 그  
동안 타고 다닌 릭샤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차루는 또 손을 흔들며  
허풍을 떨었다. 
  "돈은 주고 싶은 대로 주세요. 전 아무 문제없습니다." 
  내가 일부러 정색을 하면서, 그럼 1루피(30원)만 줘도 되겠느냐고 묻자 차루는  
외쳤다. 
  "노 프라블럼!" 
  그러면서 차루는 당당하게 덧붙였다. 1루피만 줘서 내가 행복하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자기의 친구이니까, 자기한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내 행복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만의 행복이 아니라 돈을 준 내 자신이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달라고 했다. 
  영리한 차루. 얄미운 차루. 못난 차루······. 마드라스를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차루의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생을 살면서도  
"노프라블럼!"을 외치며, 푸웅푸웅 고무나팔을 울리며 세상 속으로 달려가는 차루!  
많은 걸 갖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집착과 소유를 벗어 던지지 못하는 내게 그는 잊지  
못할 훌륭한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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