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영화,리뷰,

Chicken [제임스 A 노우블]

by Casey,Riley 2023. 6. 4.
반응형

                          아마츄어 탐정과 닭튀김 

                                                 by 제임스 A. 노우블

 존 에바아트 경감이 젊은 부장형사에게 호감을 사고 있는 까닭은 그가 5년
동안이나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던 어려운 사건을 깨끗하게 해결해 낸 것뿐
만은 아니다. 그의 논리적 사고방식과 매섭게 파고드는 끈기를 높이 사고 있
었던 것이다. 하지만 존 에바아트 경감은 그런 눈치를 티끌 만큼도 드러낼
생각은 없었고, 오히려 마아크 머피 부장형사가 종이상자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서자 일부러 험악하게 말했다. 
 "마아크, 사건을 해결하기 전에는 나한테 나타나지 말라구."
 "그러시면서도 저를 보기 싫어 하시는 건 아니지요?"
 이러면서 마아크는 옆에 있는 의자에 상자를 얹어 놓고는 문을 닫았다. 그
리고 상자에서 소형 카세트 플레이어를 꺼내더니 그걸 존의 책상 위에 올려놓
았다. 
 "자네, 어디서 그렇게 더럽히고 왔나?"
 존이 물었다. 마아크의 셔츠며 겉옷이 성한 데가 없이 새까맣게 물들고 얼룩
이 져 있었다. 마아크는 고개를 숙여 셔츠의 가슴께는 쳐다보며 말했다. 
 "증거를 수집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눈 언저리에 시퍼렇게 멍이 든 수수께끼를 풀어보겠다는 얘긴가?"
 "예?"
 마아크가 흠칫 놀라며 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눈두덩이에 손을 
대어보았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따끔거렸다. 
 "앗! 따거! 시청 청소차 인부들이 그렇게 사나운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에바아트 경감의 호기심은 점점 더 부풀어올랐다. 
 "그래? 그 이야기만 들어두지 않으면 안 되겠군. 어떤 사건이지, 마아크?"
 "매너리의 살인과 사고사에 관한 것입니다."
 "그건 월요일 밤의 사건이 아닌가? 오늘은 벌써 목요일일세. 이걸 찾으려고
꼬박 사흘이나 소비했단 말인가?"
 "제 딴엔 하루에 해치울 수가 있을 줄로 알았습니다만 보고서가 다 될 때까
지 기다리느라고 늦었어요. 우선 이걸 들어 보십시오."
 마아크는 카세트 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끼우더니 리턴 보턴을 눌렀다. 
 에바아트 경감은 나무 회전의자의 등에 느긋하게 몸을 기대고는, 이제부터
재미있는 '수수께끼 풀이' 여행이 시작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이것이야 말로
마아크 특유의 기발한 재치인 것이다. 
 마아크 머피는 이 고장에서 가장 우수했던 순경 중의 한 사람인 짐 머피의
아들이다. 5년 전, 짐이 직무 수행 중 피살된 이래 마아크는 훌륭한 경찰관이
되려고 정력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그 5년 만에 부장형사까지 승진했고 그가
세운 첫 공로는 자기 아버지를 죽인 범인들을 붙잡는 실마리를 찾아낸 것이었
다. 
 마아크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아일랜드 사람인 아버지의 특징을 그렇게
많이 물려받지는 않았다. 그의 아버지 짐은 반곱슬머리에 차갑게만 보이는 회
색 눈동자의, 허우대가 크고 단단한 사나이였다. 비번 때는 입이 무겁고 태연
자약하게 지내다가도 막상 사건이 생겼다 하면 번갯불처럼 재빠르고 거칠게
움직였다. 한편, 아들 마아크는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키가 장대같이 큰
사람이다. 차분한 구석이라고는 없고 마누라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남
김없이 자기에게로 휘말라 끌어들이는 다혈질이다. 저고리 단추는 언제나 풀
어 헤친 채였고, 넥타이는 노상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러니 마아크가 어쩌다 
일이 생겨 달음박질을 할 때면 저고리와 넥타이는 모두 흐느적거리며 그를 따
라서 날아다니는 것만 같았다. 마아크가 아버지를 닮았다고 여겨지는 점은 그
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라든가 일을 마치고 사뭇 즐겁게 맥주를 목에 들
이 붙듯이 마실 때 뿐이었다. 그럴 때 마아크가 눈을 감고 떠들어대고 있는
것을 엿듣고 있노라면 영락없이 짐 머피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테이프는 얼빈 매너리의 살인에 관한 고백입니다."
 테이프의 리턴 동작이 멎자 마아크가 말했다. 
 "시체와 부숴진 카세트 테이프 레코오더가 거처하던 방에서 발견됐습니다.
이 목소리가 매너리라는 것은 친족들이 확인하고 있습니다. 들어보시지요."
 마아크가 플레이어 동작 단추를 누르자 먼저 기침소리부터 나왔다. 이어서
매우 흥분한, 흐트러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얼빈 매너리. 나중에 이것을 듣는 사람에게 내가 왜 이런 행동을 저질
렀는가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녹음하고 있다. 
 나는 오래 전부터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면 무슨 일이 있든지 아내는 지아비
에게, 지아비는 아내에게 성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어왔다. 나는 줄곧
성실하게 살아 왔지만 아내인 오드리는 그렇지가 않았다. 최근 아내에게 딴
남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었는데 오늘 비로소 그 증거를 잡
을 수가 있었다. 나는 노이로제도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조금 섬세한 점 --
그야말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 --에 주의를 기울였을 뿐이고, 아내가 어디
에 있었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과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까지 알게
된 것이다. 
 우선 첫째로, 아내의 자동차에 대해서 말하겠다. 오늘 점심 때가 지나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내가 오후 4시 15분께 집으로 돌아와 차를 차고 안에 집어
넣을 때 아내의 차가 젖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주행 거리계를 살펴 오늘 아
침 집을 나설 때 적어둔 숫자와 비교해 보았다. 앞에 말한 것처럼 나는 망상
에 사로잡힌 것도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아내의 행동을 파헤치는 실마리를 잡고 싶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주행
거리계는 아내가 딱 8마일을 운전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
에게 오늘 어디에 갔었느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간 일이
없다고 대답하지 않는가. 여기에 덧붙여서 현관 벽장에 걸려 있는 코트가 축
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조금도 나무라지 않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
게 속아 넘어가지는 않는다. 
 다음 문제는, 아내의 옷에 대해서이다. 아내는 언제나 옷을 내가 갈아 입을
적에 같이 갈아입는다. 그리고 아랫층으로 내려가서 아침 밥을 준비하고 나의
출근길을 배웅한다. 오늘 아침에는 슬랙스에 스웨터 차림이었는데 내가 집으
로 돌아왔을 때는 푸른 스커어트에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멋을 부리고 있
기 때문에, 오늘 저녁 어디론지 나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나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렇지, 벌써 나갔다
돌아온 것이다. 갈아입은 까닭은 곧 알아챘지만, 나는 입을 벙긋도 하지 않았
다. 
 저녁 식사 때 아내는 또 한 가지 거짓말을 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이것저것 세밀하게 관찰하고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닭튀김을
좋아한다. 어디에든 흔한 퍼스트 포오드의 가게에서 팔고 있는 것과 같은,
바싹 튀긴 놈으로 말이다. 오드리는 약간 손질만 더해서 조미료를 멋지게 친
얇은 껍질에 입혀 튀겨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커다란 쇠냄비에 기름을 듬뿍
붓고 손수 만든 반죽으로 껍질을 입혀 튀겨내면 마치 퍼스트 포오드의 가게에
서 사들인 것과 같이 맛있는 닭튀김이 된다. 게다가 값이 아주 싸게 먹힌다.
어쨌거나 아내의 말로는 며칠전 슈퍼마켓에서 사온 통닭 튀김을 찢어서 새로
튀겨내는데 오늘 오후 내내 시간을 잡아 먹혔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집을 나
올 때 냉장고 안에는 통닭 튀김이 한 마리 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식탁에 앉았을 때 닭튀김이 접시에 하나 가득 있는 것
까지는 좋았으나 날갯죽지 하나가 더 있었고 다리는 두개나 더 있었다. 날개
가 세 개에 다리가 넷 달린 닭이라니, 나는 그런 걸 본 적이 없다. 그것뿐만
아니다. 아내가 언제나 장만하는 닭튀김하고는 맛이 아주 달랐다. 통닭 튀김
가게에서 사들인 것이라는 것을 곧 짐작하게 했다. 이래도 한 발짝도 바깥에
나가지 않았었다니? 나는 냉동고와 냉장고 양쪽을 다 열어보았지만, 안에 있
던 닭은 없었다. 아무래도 어디엔가 숨겨둔 것 같았다. 그 정도는 머리가 돌
아갈 것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가장 내 속을 긁어놓은 일은 아내가 딴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였던 것이 틀림
없다는 사실이다. 증거는 있다. 오늘 아침 확실히 머리에 새겨 두려고 커다란
재떨이 곁에 있는 성냥이 한 개비도 사용되지 않은 것을 기억해 두었다. 그런
데 이 집에서 나 말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돌아와 보니까
성냥이 대여섯 개비 없어져 있었고, 재떨이는 아주 깨끗한 데다가 불을 켜다
가 남은 성냥개비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말하자면 사나이가 피우다 남은 담배
꽁초가 들통이 나지 않도록 말짱하게 치워 둔 셈이지만, 그 따위 잔꾀로 넘어
갈 나는 아니다. 성냥이 어김없는 증거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와인 글라스, 그 글라스는 언제나 부엌 싱크대 위에 있는
찬장에 들어 있다. 날마다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맨 안쪽에 정렬해 두도록
돼 있는 것이다. 오늘 오후에는 두개의 와인 글라스가 앞쪽으로 나와 있지 않
은가, 집에서도 포도주 따위를 마신 일이 없는데도 말이다. 사소한 일이지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 이와같은 증거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실마리를 모두 끌어 모아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나는 생각해
보았다. 오늘 아침 나를 배웅한 뒤 오드리는 차로 그 남자네 집에까지 가서
그 녀석을 차에 태운다. 녀석은 포도주를 가지고 온다. 아내의 차를 이용하는
것은 낯선 차가 우리 집 언저리를 서성거리든가 차고로 들어가는 것을 이웃 
사람들한테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집에 닿자 아내와 그 남자는 침실
로 가서 포도주를 마시고, 그리고... 그녀석이 나를 속였어, 그것뿐이다! 그
다음 옷을 입고 아랫층으로 내려와 사나이는 성냥을 켜서 담배를 피운다. 내
개 마련해 둔 덫이라는 것도 모르고... "
 "두 손 바짝 들었어!"
 에바아트 경감이 불쑥 말했다. 
 테이프에서는 계속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럭저럭 재미를 보고 있는 사이에 나의 귀가 시간이 다가오자 두 사람은
허둥대고 차에 뛰어올라 때마침 내리기 시작한 빗속을 뚫고 간 것이다. 여기
에서 또 한 가지, 물에 젖은 차라고 하는 실마리를 남긴 것이다. 알아 들으시
겠소? 그 녀석을 내려준 뒤 아내는 어딘가의 통닭 튀김 가게에서 차를 세워
포장돼 있는 닭을 산다. 여기에서 또 다시 일을 그르친다. 포장 속에는 날개
죽지 세개와 함께 다리 넷이 들어 있었다. 이런 걸 가지고 얼버무리려고 했단
말인가? 집에 돌아오자 차를 차고 안에 밀어 넣고 젖은 코트를 벽장에 치우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오늘의 행동을 감추기 위해서 일을 시작한다. 벌써 장만이
끝난 닭튀김을 기름이 들어 있는 냄비에 넣고 가스에 불을 붙인다. 그래 놓고
냉장고 안의 닭튀김과 닭튀김이 들어 있던 봉투, 큰 재떨이에 버려졌던 담배
꽁초 등을 쓸어서 어디엔가 감춘다. 다음에는 글라스를 씻어 무심히 부엌 찬장
안의 맨 앞줄에 넣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침실을 정돈하고 있는 참에 내 차
소리를 알아듣고는 허둥지둥 아랫층으로 내려와, 여태껏 부엌에서 음식을 장
만하고 있었던 것처럼 꾸민다. 딱 한 가지, 스커트하고 블라우스를 갈아입지
않고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말았다. 
 이곳이 진상의 모든 것이다. 내가 수집해서 분석한, 부정할 수가 없는 증거
인 것이다. 아내의 부정한 관한 증거인 것이다. 당신도 나의 처지가 된다면
똑같은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나는 아내 오드리를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나
도 이 녹음을 마친 뒤 총구를 나에게 겨누고..." 
 여기서 크고 둔한 소리가 들렸고 그 뒤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이것으로 끝이야?"
 에바아트 경감이 물었다. 
 "예."
 마아크는 대답을 하면서 카세트 플레이어의 스위치를 껐다. 
 "말하자면 이런 얘긴가? 집안에 두 세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발견되었
기 때문에... "
 이렇게 운을 떼면서 에바아트 경감은 말을 이었다. 
 "얼빈 매너리는 그 스스로 판사에다 배심원과 사형 집행원 노릇까지 했다.
이 말이지?"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마츄어 탐정 역할도 해 주었어요.
다섯 가지 실마리, 물에 젖은 차와 코트, 여느 때와 다른 맛이 나는, 한 마리
몫으로서는 남아 돌아가는 닭튀김, 없어진 성냥개비, 아내의 갈아입은 옷,
그리고 두개의 와인 글라스, 이런 것을 바탕으로 논리적이지만 그렇게 흔하지
않을 것 같은 줄거리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그러자 에바아트 경감이 말했다.
 "그렇다면 말일세, 마치 그 사람이 정상이 아닌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그
건 그렇다 치고 자살해버린 사람은 이제 와서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그 사람은 자살한 게 아닙니다. 처음에 제가 이 사건을 살인과 사고사라고
말씀드렸지요?"
 "그 테이프 마지막에 나오는 굉장한 소리는 매너리가 쏜 권총 소리가 아니었
던가?"
 "그렇습니다."
 마아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그건 매너리네 집에서 가스 폭발로 생긴 소리입니다. 그 직후에 테이프 레
코더가 폭풍으로 부숴진 겁니다. 다행히도 테이프는 충격으로 인해 튕겨나오
는 바람에 고스란히 살아 남았지만 말입니다."
 "가스 폭발이라니? 무슨 말이야?"
 마아크는 들고 들어왔던 종이상자에 손을 찔러넣더니 뭔가 공식 서류 비슷한
것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모든 것이 이 화재 현장 조사 보고에 나와 있습니다. 게다가 얼빈 매너리가
잡은 다섯 가지 실마리에도 각자 납득이 가는 설명이 덧붙여 있습니다."
 에바아트 경감은 책상에서 돋보기 안경을 찾아들더니 콧잔등에 걸었다. 그리
고 마아크한테서 서류를 받아들고는 읽어 내려갔다. 
 
 화재 현장 조사 보고 

 1982년 11월 8일
 가스 폭발 및 화재 발생 - 웨스트 민스터 가 116번지 매너리 씨 집 
 담당 - 제 1 중대 소방부장 겸 조사관 존 로프터

 <화재의 개요>
 오후 7시 01분, 매너리 씨 집에서 가스 폭발 및 화재 발생. 통보자는 매너리
가 이웃 주민 조셉 라이트 씨, 웨스트 민스터 가 118번지.
 오후 7시 18분, 제 1 중대로부터 제 4 호 살수차, 제 1 호 소방차 현장에
도착. 
 오후 7시 35분, 경찰 도착. 현장 검증 개시. 
 오후 7시 40분, 제 1 중대의 화재처리반 귀환

 <조사보고> 
 2층 짜리 목조건물의 주요한 피해는, 가스 폭발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발화
장소는 부엌 안, 이어서 발생한 화재는 작은 규모로서 주방 일부에 그쳤다.
불은 소방대에 의해 신속하게 진화됐다. 
 폭발 원인은 부엌에 있는, 결함이 있는 레인지에서 새어나온 가스의 축적에
의한 것이다. 그 원인에 관해서는 폭발 발생 몇 시간 전에 사고가 난 집에
있었던 이웃집 에밀리 라이트 부인에 의해 유익한 정보가 제공됐다. 진술서를
이 보고서에 첨부하여 화재 조사에 관련되는 진술 부분의 분석을 덧붙여 둔다.

 <에밀리 라이트 부인의 진술서> 
 1982년 11월 8일, 오후 9시 10분
 담당 - 제 1 중대 소방부장 겸 조사관 존 로프터
 "나는 빌어 썼던 와인 글라스를 돌려주는 김에 나의 집에 남은 닭튀김을 
오드리에게 갖다주려고 매너리 씨 집으로 갔습니다. 집안에 들어서자 오드리
는 엎드려서 꺼진 가스 레인지의 분화기에 성냥을 켜서 불을 붙이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두 세 시간 나도 거들어 겨우 불이 켜졌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만든 닭튀김하고 제가 갖다준 닭튀김을 튀기는 데에 꽤나 많은 기름을 쓰는
거였어요. 그러는 도중에 비가 뿌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저도 창문을 닫는 일
을 거들었어요. 
 오드리가 옷을 갈아입으려 2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가스 레인지를 만지작거
리는 바람에 옷이 온통 더러워졌거든요. 저는 매주 거르지 않고 레인지를 닦
고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그녀도 옷을 갈아입으러 2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저는 차를 빌려 써도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물었습니다. 제 차는 금주엔 수리하
러 보냈기 때문에 말씀이에요. 예전에 한번 고장이 났을 때 그녀에게 차를 빌
려준 일이 있었어요. 빌리는 김에 현관 벽장에서 코트도 빌렸습니다. 밖에는
비가 뿌렸기 때문이었어요. 집에서 코트를 입고 오지 않았거든요. 
 30분 뒤에 장을 보고 돌아와 코트를 돌려주려고 그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오드리는 가스 레인지가 아직도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저녁
식사용 닭튀김을 아직 반밖에 튀기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우리 집에 가지고
와서 그 나머지를 제 나름대로 맛있게 요리해서 갖다주었지요. 저는 그렇게
많은 기름을 쓰지 않죠. 닭튀김을 그녀한테 돌려주려고 갔더니 어렴풋이 가스
냄새가 나긴 했습니다만, 그녀가 아직 가스 레인지에 불을 켜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겠지 라고 생각하고 별로 주의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집으로 돌아
온 뒤 그 댁 주인 얼빈이 귀가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어요. 그때가 4시 15분
쯤이었을 거예요. 
 7시쯤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굉장한 폭발 소리가 들렸고, 창밖을 내다보니 이
웃집이 날아가고 있었어요. 제가 어떻게든 도와드리려고 달려가는 사이에 제
바깥 양반 조우가 소방서에 통보했어요. 가 보았더니 가스 냄새가 났고 불이
나고 있잖겠어요? 저는 놀라서 집으로 달려 돌아왔죠.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 정돕니다."

 <조사분석>
 가스 레인지 분화구가 잘 꺼진 것으로 미루어 보면, 분화구에 이어지고 있는
가스 호스에서 가스가 새어나오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주방의 창문
을 닫은 채로 있었기 때문에 새어나온 가스가 조금씩 집안에 고인 것으로 보
인다. 
 결함이 있던 가스 레인지를 분석해 본 결과, 매너리 부인이 분화구 가운데
하나의 불꽃을 끄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때 부터 불이 꺼졌
다고 한다면, 더욱 가스가 주방에 꽉 차 있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가 있다.
 얼빈 매너티 씨는 주방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폭발에 의한 희생자
가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지만, 오드리 매너리 부인의 경우는 그 사인이
가스 폭발이나 화제가 아니라고 화재 조사관인 나는 판단 한다. 시체가 폭발
이 일어난 자리에서 꽤 떨어져 있다는 점과 외상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경찰 조사를 요청하는 바이다. 
 
 "가스 폭발 사고였다는 건가?"
 에바이트 경감이 마아크에게 서류를 돌려주면서 물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얼빈은 테이프에 이렇게 녹음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권총으로 자살한다 라고요. 가스가 아닙니다. 일부러 가스 폭발을 일으키려고
계획했다든가, 레인지의 가스로 누군가를 죽이려고 했다면, 모든 분화구와 오
븐의 가스 꼭지까지 틀어 놓았을 겁니다."
 "화재 조사관의 보고서에서 밝혀진 대로 말이지?"
 에바이트 경감이 말했다. 
 "메너리 씨가 증거라고 하는 것들은 몽땅 잘못 해석한 것 같군."
 마아크도 맞장구를 쳤다. 
 "보고서에 따르면 매너리 씨가 말하고 있는 아내의 부정에 관한 증거는 모두
근거가 없는 오판이라는 겁니다. 남아도는 닭튀김과 와인 글라스는 옆집에서
건너온 겁니다. 성냥은 레인지에 불을 켜려고 썼던 것이고, 켜다 남은 성냥
개비는 주방에 버려졌습니다. 옷을 갈아입은 것은 입고 있던 옷에 때가 묻었
기 때문이고요. 자동차하고 코트가 젖었던 것은 그 날 오후 옆집 부인이 부탁
하는 바람에 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옆집 부인은 매너리 부인하고 요리법이
다른 방식으로 닭튀김을 장만해 주었죠. 그러니까 맛이 다를 수밖에요. 이렇
게 되면 모두 납득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매너리 부인은 남편에게 어느 한 가지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거군."
 에바아트 경감은 이렇게 결론을 내리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말이야. 매너리 씨의 병적인 머리는 끌어 모은 사실을 과장해석 한
끝에 기어코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게 했어. 자살 가스가 폭발하면서
대신 끝장을 내준 셈이군."
 "이것으로 매너리 사건은 논리적으로 결말이 맺어진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
 마아크가 말했다. 
 "이 스토리가 아직 몇 페이지 남아 있는 것은 왜일까요?"
 경감은 놀란 얼굴을 했다. 
 "뭐, 뭐라구?"
 마아크는 참다 못해 웃음을 쿡쿡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나와 같이 추리소설을 열중하는 미스터리 팬이라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
니다. 처음부터 쭈욱 읽어 내려가면 어느 한 곳에서 갑자기 이것저것 모두가
납득이 가는 결론에 도달해 버립니다. 의문점은 고스란히 밝혀지고, 선과 악
은 구별이 가고, 수수께끼는 해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뒤에 몇 페이지
나 남아 있는지 들추어 보면 아직 여러 장이 남아 있거든요. 어떻게 해서 페
이지가 남아 있을까? 하고 의문점을 갖게 되지요. 수수께끼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이야기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거지요."
 "그 밖에 도대체 또 뭐가 있다는 건가?"
 에바아트 경감이 다그치듯이 물었다. 
 마아크는 의자에서 종이상자를 들어 올리더니, 에바아트 경감의 책상 위에
쿵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그 상자 안에는 물건이 꽉 차 있는 쇼핑 백이
있었다. 
 "그 속에 뭐가 있지?"
 에바아트 경감이 다시 물었다. 
 "닭튀김이 한 마리, 포도주 빈 병, 재떨이의 쓰레기, 게다가 애니즈인스터
치킨의 종이그릇까지 들어 있습니다."
 마아크의 얼굴에는 웃음이 서려 있었다. 
 "그래서"
 에바아트 경감의 표정을 곁눈질하면서 마아크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조
그만 종이봉지를 꺼내놓았다. 그리고 약간 놀라서 어리둥절한 경감에게 그것
을 건네주었다. 
 "이게 나의 주의를 끌게 된 사건의 열쇠입니다."
 에바아트 경감은 종이봉지를 풀어헤치고 알맹이를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맥
빠진 소리로 중얼거렸다. 
 "뻐다귀 아닌가?"
 "바로 그겁니다."
 마아크는 이렇게 외치면서 말을 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닭뼈죠."
 "자네가 말하려고 하는 건, 결국 그 얼빈 매너리의 아마츄어 수사가 정곡을
찔렀다는 건가? 그렇다면 라이트 부인의 진술은 어떻게 되는 거지?"
 경감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벌써 근무시간이 지났군요."
 마아크는 손목 시계를 들여다보곤 능청을 떨며 말을 이었다. 
 "켈리네 가게에서 맥주라도 한 잔 사 주신다면 몽땅 털어 놓겠습니다."
 "그러지. 여섯 병 들이 한 박스를 사지."
 경감은 선뜻 사겠다고 했다. 
 "하지만 도대체..." 
 "가십시다."
 마아크는 증거품을 끌어 모으더니 종이상자 속에 주워 담았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먼저 이 닭을 냉장고 안에 넣어둡시다. 그렇게 하면 상하지 않으니깐요. 
그러고 나서 켈리네 가게로 가서 건배를 하기로 할까요?"
 에바아트 경감은 얼룩투성이 옷을 걸친, 눈에 시퍼런 멍이 든 젊은 부장형사
를 한참 동안이나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꺽다리 저승차사 같은 허우대를 한 
사나이하고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는 것은 질색이었지만, 함께 가느냐 아니면
매너리 사건의 진상을 모르는 채로 두느냐 둘중의 하나를 택해야 했다. 결국
그는 같이 가는 쪽을 택했다. 
 켈리네 술집은 걸어서 반 블럭 정도 쯤에 있었다. 가게는 퇴근길의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에바아트 경감이 주문을 하고 있는 사이에 마아크가 안쪽 구석
빈 자리를 용하게 확보해 놓았다. 
 "이거면 되겠지?"
 맥주를 테이블에 날라 온 에바아트 경감은 마아크를 재촉했다. 
 "자아, 털어내 보라구."
 "잠깐만요."
 마아크는 맥주잔을 손에 들고 술을 숨도 쉬지 않고 반이나 마셨다. 에바아트
경감이 지겹기도 하고 조금은 괘씸하기도 하다는 투로 한숨인지 심호흡인지 
알 수가 없는 깊은 숨을 뱉었다. 
 마아크가 술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방부장에게 했던 라이트 부인의 진술은 모든 의문에 대하여 대답을 해주었
고 부인의 부정을 속속들이 파헤친 얼빈 매너리의 주장을 송두리째 뒤집어 엎
어 버렸습니다. 그거 묘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듣고 보니...딴은 그렇구먼."
 경감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수한 형사라면 다 그렇겠지만요. 저는 모든 가능성을 확인하지 않고는 
적성이 풀리지가 않습니다. 가령 누군가의 증언 가운데 일부가 그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어도 말입니다. 우선은 예전에 남편이 사들인 닭튀김은 찢어가지
고 다시 요리하는 대신, 부인이 닭튀김 포장을 어디에서 사 가지고 왔는지 의
문점부터 파고 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 뼈다귀가 등장한 거죠."
 "문제의 닭 뼈다귀 말이군."
 에바아트 경감이 말허리를 꺾으며 말했다. 
 "그렇죠. 실은 우리 마누라도 곧잘 피서트 포오드 상점에서 튀겨진 통닭을 
사들고 옵니다. 마누라는 제가 도무지 먹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거 왜 등쪽이나 모가지쪽 살이 있잖습니까? 슈퍼마켓에서 통채로 
닭 한마리를 사 가지고 와서 자기 집에서 요리해 보면 아무래도 그런 게 나오
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요리된 닭튀김을 파는 애니즈 인스터 치킨이라든가 포
장을 해서 파는 가게에서는 그런 부분은 거의 넣지 않습니다. 매너리 부인이
닭은 통째로 사다 찢어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마땅히 그런 부분이
매너리네 집 주방에서 어딘가에 있어야 할 겁니다."
 "불이 나고 가스 폭발이 있었다고 해도 말인가?"
 "화재 조사의 보고에 나와 있는 그대로 화재는 소규모였고, 불 기운도 그렇
게 세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벽지나 페인트를 그을리게 했을 정도니까 닭뼈까
지 재가 되어버리는 건 아니잖습니까? 매너리 부인은 모가지와 등쪽 부분을
냉장고 안에 도로 간수해 두었다든가, 우리 마누라처럼 내다버렸든지 했겠지
요. 얼빈 매너리는 저녁 식탁 닭튀김 접시에 그런 부분이 있었다고 확인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아마도 저처럼 먹지 않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냉장고에 있던 것은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모가지나 등
쪽은 그 안에 없었다는 사실은, 달리 생각할 수가 있는 장소로선 주방의 쓰레
기통밖에 없죠. 문제는 폭발로 인해 쓰레기통 속의 것들이 주방 안에 온통 흩
어져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저는 닭뼈를 찾아 헤매야 했던 겁니다."
 에바아트 경감이 이 꺽다리 부장형사가 주방 바닥을 기어다니다시피 하며 나
무 조각이나 쓰레기 속을 뒤지는 모습을 떠올렸다.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가까스로 참아내곤 물었다. 
 "무엇을 발견했나?"
 "아무 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고 말해야 되겠죠."
 마아크는 말꼬리를 살짝 들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등뼈도 턱뼈도 행방이 묘연해요. 그러니까 퍼스트 포오드 상점에서 산 것이
틀림없다는 거죠. 그래서 전화 번화를 뒤져 보았더니 가장 가까운 그 가게는
꼭 4마일 거리에 있는 애니즈 인스터 치킨이더군요. 매너리가 테이프 속에서
말한 것을 되새겨 보십시오. 부인의 차는 그 날 8마일을 달렸다고 했지요? 그
러니까 4마일 거리를 왕복한 게 아닙니까?"
 "그렇다면 부인이 바람피우는 상대를 마중나갔다는 매너리의 추리는 어떻게
되지?"
 "만일 상대가 애니즈 인스터 치킨으로 가는 길목에 살고 있다면 거리 수는
그대로군요."
 마아크가 이렇게 대답하곤 말을 이어 나갔다. 
 "그것 보다도 말입니다. 바람을 피우는 상대가 매너리네 집에서 걸어다닐 
수가 있는 곳에 살고 있을 가능성 쪽이 짙다 그 말입니다. 만일 매너리네 집
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들켰더라도 이웃에서 이상한 소문이 나지 않는 인물
임에 틀림없다 이겁니다. 이건 핵심에서 벗어난 이야기입니다만."
 "그렇다면?"
 "오드리 매너리는 냉장고 안의 치킨을 찢어 튀겼다고 남편에게 거짓말을 했
다기 보다도 그건... "
 여기에서 마아크는 손가락을 가볍게 떨면서 말을 이었다. 
 "에밀리 라이트가 자기 집 부엌에서 닭튀김을 요리했다고 조사관한테 진술한
것이 거짓말이 되는 셈이지요."
 "왜 그런 거짓말을 했지?"
 에바아트 경감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여인은 같은 이유에서 매너리 씨가 수집한 증거를 전부 반증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매너리 부인에게 딴 남자가 있었다는 가능
성을 누군가가 파헤치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겁니다."
 "뭘 어떻게 뒤집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가, 어떻게 알아냈다는 건가?"
 "아주 초보적인 일입니다, 경감님."
 마아크가 내뱉듯이 말을 하더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테이프 내용을 들었던 겁니다. 남편이 소방서로 전화를 걸고 있는 동안에
라이트 부인은 구조자가 있겠지 생각하고 매너리네 집으로 달려 갔습니다.
그런데 구조자가 있기는 커녕, 오드리 매너리의 총에 맞아 죽은 시체와 거실
마루 바닥에 굴러 있는 매너리 씨의 송장을 발견한 거죠. 옆에는 권총과 부숴
진 테이프 레코더, 그리고 카세트 테이프가 있었다 이겁니다. 매너리 부인을
사살한 원인을 조사하는 데에 뭔가 도움이 되는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
각한 그 여인은 경찰에 넘길 양으로 테이프를 챙겼다 이 말입니다. 다만 문제
는 집에 돌아온 뒤 자기 카세트 플레이어로 테이프 내용을 들어버렸던 겁니다.
그 여인도 이미 미심쩍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에, 테이프를 틀어보곤 짐작이 
닿는 줄거리로 꿰어 맞추었죠. 오드리 매너리의 밀회 상대가 누군가를 알아차
렸던 겁니다."
 "하지만 테이프는 매너리의 시체와 함께 거실에서 발견됐잖아?"
 에바아트 경감이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마아크가 시인하면서 말을 이었다. 
 "라이트 부인은 권총과 곁에 부숴진 레코더가 있으면 경찰이 당연히 테이프
도 찾아내겠지 하고 생각한 겁니다. 그리고 경찰이 자살 미수라든가 고백 테
이프 내용의 진짜 여부를 철저하게 조사하면, 오드리 매너리의 연인이 누군가
를 캐어내고 말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불쑥 제 속편
한 대로 테이프를 이용할 것을 생각해 낸 겁니다. 테이프 내용은 이미 얼빈
매너리가 착란을 일으킨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그 뒤는 모조리 때려
없애는 줄거리를 조작해 내면 그만인 거죠. 그렇게 하면 경찰은 매너리의 실
마리는 과대망상의 산물이라고 믿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는 겁니다. 그 결과
숨은 연인이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고 일은 끝난다 이겁니다. 하긴 부숴진
레코더와 함께 테이프도 거실로 도로 갖다놓는 것도 잊지 않고 있었고, 그런
일쯤이야 식은 죽먹기였죠. 테이프를 들은 것은 아마도 오후 7시 10분께였을
테니까, 그걸 거실로 갖다놓는 시간은 20분이나 25분 쯤이었을 겁니다. 유리
가 박살이 난 창문으로 테이프를 집어 던져넣으면 그것으로 그만인 거죠. 그
런 다음에야 현장 검증 일행이 당도했다. 이런 이야깁니다."
 "알겠네. 하지만 그 여인이 왜 그런 짓을 했느냐 말일세."
 에바이트 경감은 아직도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고 있었다. 
 "그거야 밀회 상대가 자기 남편인 조셉 라이트라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죠.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었지만 그 여인은 남편을 감싸려고 했다
이 말씀입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얼빈 매너리의 추리를 뒷받침하는 증거품
이 들어 있는 종이봉지를 제가 발견했고, 그 여인의 음모가 드러나버리고 말
았다. 이렇게 된 겁니다."
 "그런데 말일세, 그 종이봉지를 어디에서 발견했는지 나에게 들려주지 않겠
나?"
 에바아트 경감이 궁금해 하자 마아크가 말했다. 
 "라이트네 집 바깥에 마련돼 있는 쓰레기통 속에서였죠. 조셉 라이트가 매너
리 부인과의 데이트 뒤에 자기집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살짝 돌아왔을 적에 쳐
박아 두었던 겁니다. 에밀리 라이트는 그 장면을 발견했던 거겠지요. 그 여인
은 나중에 테이프에서 매너리가 아마 남겼을 것이라고 말한 물건과 속알맹이
를 대조해 보았겠죠. 그걸 다시 제가, 쓰레기 수거차가 그 쓰레기통을 쏟아내
려는 순간에 나꿔챘다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눈에 시퍼런 멍이 들었구먼, 하하하.... "
 에바아트 경감은 마아크를 놀리는 듯 익살스런 표정으로 웃음을 머금었다.
 "청소부들이 그렇게나 쓰레기에 집착하고 있다고는 생각조차 못했었지요..."
 마아크는 다시 눈 언저리에 손을 갖다댔다. 
 "아마 라이트 부인은 전에 매너리 부인 집에 놀러다니면서 그 집 가스 레인
지 상태가 나쁘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지?"
 "그랬겠지요."
 마아크는 남은 맥주를 한 입에 털어마셨다. 그리고 말했다. 
 "에밀리 라이트의 지문이 빈 포도주병 여기저기에 묻어 있는 것 같더군요.
그렇군요, 감식에서 지문을 채취하느라고 사용한 가루때문에 그 닭튀김은 먹
을 수가 없게 되었겠죠? 참으로 아까운데요. 그렇게 맛 있을 것 같은 음식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말입니다. 안 그래요?"
 마아크의 말을 듣고 에바아트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온몸을 흔
들며 낄낄거렸다. 그리고 마아크에게 쏘아붙였다. 
 "이보게, 닭고기에서는 지문이 나올 수가 없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그 작자들의 손톱은 워낙 날카로와서 제대로 남아 있을 수가
없겠죠."
 그제서야 에바아트 경감은 어김없이 가시 돋힌 농담의 표본이라고 할 서양
문명의 산물인 치킨 조우크(Chicken Joke - 바보 같은 익살에 놀아난 바보)
의 놀림감이 됐다는 것을 알고 벌렸던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반응형

'책,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악마의 아내  (0) 2023.06.04
아주 특별한 재주  (0) 2023.06.04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 [포리스트 카터]  (0) 2023.06.03
아마추어 무선  (0) 2023.06.03
아름다운 여름 고은주  (0) 2023.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