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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 [포리스트 카터]

by Casey,Riley 2023.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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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 

    전3권 중 제1권

포리스트 카터


    @[  작은나무

  아빠가 돌아가신 지 일 년 만에 엄마마저 세상을 뜨셨다. 그래서 나는 다섯 살 적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랑 함께 살게 되었다.
  할머니는, 엄마의 장례식이 끝난 뒤 친척들이 나 땜에 꽤나 시끌벅적하게 언쟁을 벌였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살던 산비탈의 오두막 뒤편에는 개울이 흐르는 빈 터가 있었는데 거기서 친척들은 빙 
둘러선 채 우리가 쓰던 탁자와 의자들, 그리고 곱게 색을 입힌 침대를 분배하면서 나를 어디로 
보내는 게 좋을지를 놓고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할아버지는 그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그 무리들과 좀 떨어진 마당 한 
귀퉁이에 서 계셨고 할머니는 할아버지 뒤편에 계셨다. 할아버지는 체로키의 피가 반쯤 섞인 
분이셨고 할머니는 순수한 테로키 혈통을 타고난 분이셨다.
  할아버지는 키가 백구십 센티가 조금 넘는 정도라 그 무리들 뒤편으로 우뚝 솟아올라 있었고 
교회에 갈 때나 장례식에 참석할 때만 입는 윤나는 검은 양복 차림에 큼직한 검은 모자를 쓰고 
계셨다. 할머니는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계셨지만 할아버지는 그 무리들 너머로 줄곧 나를 응시하고 
계셨다. 그래서 나는 살금살금 마당을 가로질러 할아버지한테로 가서는 냉큼 할아버지의 한쪽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들이 아무리 나를 떼어놓으려고 하더라도 절대로 놓지 않을 
작정이었다.
  할머니는, 친척들이 한동안 나를 끌어당기느라고 난리를 치는 동안 내가 소리치지도 울지도 않고 
그저 결사적으로 할아버지의 다리에만 매달렸었다고 하셨다. 이런 소동이 한참 진행되던 와중에 
갑자기 할아버지가 허리를 굽히고 그 큰 손을 내 머리 위에 얹으셨다. 그리고는 비로소 입을 
여셨다.
  "얠 그냥 내버려둬." 그러자 그들은 내 곁에서 물러났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면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으며 일단 입을 열었다 하면 사람들을 꼼짝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침침한 겨울 오후의 산비탈을 걸어 내려와 읍내로 들어가는 길로 들어섰다. 할아버지는 
내 옷가지들을 넣은 바랑을 어깨에 걸쳐멘 채 길가를 따라 앞장서 걸어가셨다. 할아버지의 뒤를 
따를 때면 종종걸음을 쳐야만 한다는 걸 나는 곧 깨닫게 되었다. 할머니는 내 뒤편에서 연신 
치마를 치켜올리며 열심해 쫓아오셨다.
  읍내의 보도 위에 올라서서도 여전히 할아버지가 앞장서서 걷고 나랑 할머니는 정신없이 그 뒤를 
따라가야 하는 방식에는 변함이 없었으며 그렇게 해서 마침내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거기서 우리는 오랫동안 서 있었으며 그 동안 할머니는 오가는 버스의 앞 유리창에 부착된 노선 
표시판을 열심히 들여다보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누구 못지않게 글을 잘 읽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땅거미가 잦아내릴 무렵 우리가 타야 할 버스를 정확히 골라내셨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다 타고난 다음에 비로소 버스에 놀랐는데 그건 참 잘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버스 안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말썽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맨 
앞에 서고 나는 중간에 서고 그리고 할머니는 아직도 버스 계단의 맨 아래탄에 선 상태에서 여닫을 
때마다 딸각 소리가 나는 조그만 지갑을 바지주머니에서 꺼내 들고는 그걸 열고 돈을 끄집어 
내셨다.
  "표는 없어요?" 버스 운전사가 벽력같이 소리치는 바람에 버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지금 돈을 
내려고 하지 않느냐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내 뒤에서 할머니가 우리의 행선지를 알려주라고 
속삭이자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다.
  버스 운전사는 할아버지에게 우리가 낼 차삯이 얼마인지를 알려 주었다. 버스 안이 침침해서 
할아버지가 힘들게 돈을 세는 동안 버스 운전사는 손님들을 돌아보면서 오른손을 치켜들고는 "별 
수 없잖아요!" 하고는 낄낄댔다. 그러자 모두가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들이 호의적이며 
우리가 표도 사지 않고 버스를 탄 것에 대해 별로 기분나빠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안도했다.
  우리가 버스 뒤편으로 걸어가는데 얼굴이 엉망이 된 한 여자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눈 언저리가 온통 시퍼렇게 멍들었고 입 주변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우리가 그 여자 곁을 
지나갈 때 그 여자는 돌연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떼며 "아이구!" 하고 비명을 질렀다. 헌데 
그녀는 금방 괜찮아졌는지 깔깔거리고 웃었으며, 이에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웃어댔고 그녀 곁에 
앉은 사내 역시 제 무릎을 치며 웃었다. 그의 넥타이에는 빛나는 큰 핀이 꽂혀 있어 나는 그들이 
부자며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의사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 앉았다. 할머니가 한 손을 뻗어 할아버지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여 주셨으며 이에 할아버지는 내 무릎 너머로 팔을 뻗어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셨다. 나는 
흐뭇한 기분과 함께 잠이 들었다. 우리가 버스에서 자갈길로 내려섰을 때는 이미 밤 깊은 
시간이었다. 할아버지는 다시 걷기 시작하셨고 할머니와 나는 뒤따랐다. 날은 몹시 추웠다. 
중천에는 잘 익은 수박을 반으로 갈라놓은 것 같은 모양의 달이 휘영청 떠올라 저 멀리 휘어져 
돌아가는 길을 하얗게 비춰 주었다.
  우리가 자갈길을 버리고서 한복판에 긴 띠처럼 풀이 자라고 그 양 옆으로 차바퀴 자국이 깊게 
패인 길로 들어섰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그 산을 발견했다. 산등성이 바로 위로 솟은 반달을 
등지고서 칙칙한 검은 그늘을 드리운 채 우뚝 솟은 그 산은 어찌나 높은지 그걸 바라 보려면 
고개를 뒤로 젖혀야 할 정도였다. 나는 그 산의 그 짙은 어둠에 몸을 떨었다.
  내 뒤에서 오시던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여보, 애가 지친 거 같아요." 그 말씀에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셨다. 할아버지는 나를 내려다보셨다. 큰 모자가 드리운 그림자 때문에 
표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소중한 걸 잃었을 때는 녹초가 되는 것도 괜찮지"라고 말씀하시고는 몸을 돌려 
다시 걷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이제 할아버지를 따라가기가 좀 수월해졌다. 할아버지의 발걸음이 
느려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할아버지도 역시 지치신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그렇게 걸은 뒤 우리는 그 길을 벗어나 이번에는 차들이 다닐 수 없을 만큼 좁은 
오솔길을 따라 곧바로 산의 어둠 속으로 파고 들어 갔다. 그렇게 계속 가다가는 꼭 그 산과 부딪칠 
것만 같은 기분이었지만 우리가 계속 걸어감에 따라 그 산은 소리없이 열리면서 이내 우리를 제 
품안에 맞아들였다.
  우리의 발걸음 소리들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사방에서 여러 가지 소리들이 
일어났다. 흡사 모든 것이 잠 깨어 일어난 듯 숲속에는 가벼운 속삭임과 수런거림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곳은 포근했다. 우리 곁에서는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시냇물이 바위를 타고 뒹굴다가 
평탄한 곳마다 웅덩이를 만들고는 다시 흐르는 일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온갖 소리들을 다 냈다. 
우리는 이미 그 산의 우묵한 골짜기 안에 들어와 있었다.
  반달은 어느 틈에 산등성이 뒤로 숨어 버린 채 밤 하늘에 밝은 후광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 빛은 
우리를 품에 안은 그 우묵한 골자기 위에 은은한 은빛 궁륭처럼 걸려 있었다. 할머니가 내 뒤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인디언의 노래였다. 나는 그 노래를 잘 알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고 아늑해졌다.
  그때 느닷없이 개 짖는 소리가 들려 나는 기겁을 했다. 밤 하늘을 타고 길게 고리를 끌던 그 
구슬픈 외침 소리는 이내 흐느낌 같은 것으로 변했으며 그것은 다시 산울림을 타고 그 산속으로 
되돌아갔다.
  "우리집 늙은 개 모드일 게다. 몸집이 작은 애완견들만큼 냄새를 잘 맡지는 못하지만 귀는 아주 
밝지." 할아버지는 기분좋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잠시 후 우리는 사냥개들에게 에워싸였다. 그 개들은 할아버지 주위를 돌며 낑낑거리기도 하고 
내게서 낯선 냄새를 맡고는 내 몸에 코를 대고 큼큼대기도 했다. 이때 늙은 모드가 바로 우리 
앞에서 다시 짖어대었다. "그만 둬, 모드!" 할아버지가 호통을 치시자 그 개는 그제서야 
할아버지를 알아보고는 쏜살같이 달려와 우리 위로 펄쩍 뛰어 올랐다.
  실개천 위에 걸린 통나무 다리를 건너자 바로 오두막 한 채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그것은 그 
산을 배경으로 하여 큰 나무들 밑에 자리잡은 통나무집이었으며 그 집 전면에는 산듯한 모양의 
현관이 나 있었다.
  그 오두막은 중앙에 넓은 복도처럼 된 거실이 있고 그 양편으로 방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거실은 
양 끝이 그냥 틔어 있어 어떤 사람들은 그걸 "복도"라도 부르지만 산사람들은 "개 통로"라고 
부르곤 한다. 개들이 늘 그곳을 통해 자유롭게 들락거리곤 하기 때문이다. 한쪽에 자리잡은 큰 
방은 부엌 겸 창고였으며 그 맞은편에는 침실 둘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하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쓰시는 방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 방이었다.
  나는 히코리 나무로 틀을 짜고 그 양 끝에 부드러운 사슴가죽으로 된 바닥 깔개를 연결시킨, 
용수철처럼 탄력 있는 침대 위에 누웠다. 나는 열린 창문을 통해 실개천 건너 요요한 빛 속에 
음산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서 있는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갑자기 엄마 생각이 왈칵 솟구쳤고 
낯선 곳에 와 있다는 설움에 가슴이 시렸다.
  문득 손 하나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 곁 마룻바닥 위에 할머니가 앉아 계셨던 것이다. 
바닥에 앉는 바람에 할머니의 치마는 풍덩하게 부풀어 올랐고 가지런히 땋아내려 은빛 띠처럼 된 
머리는 어깨 위로 해서 앞가슴을 타고 무릎 밑으로까지 흘러내려와 있었다. 할머니도 역시 나처럼 
창밖을 내다보시며 낮고도 부드럽게 노래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그가 온 걸 알았답니다.
  숲과 숲바람,
  아버지이신 산은 자기네의 노래로 그들을 맞아들입니다.
  그들은 작은나무를 무서워하지 않아요.
  그들은 그의 마음이 따뜻하다는 걸 알지요.
  그들은 노래불러요, '작은나무는 외롭지 않다'고.

  쉴새없이 재잘대는
  철없는 레이나까지도
  골짜기를 타고 흐르며 즐겁게 춤을 추어요.
  '오, 내 노래를 들어봐요,
  우리 형제 하나가 우리를 찾아왔어요.
  작은나무는 우리 형제, 그리고 작은나무는 지금 여기 있어요.'

  어린 사슴 아우이 우스디와
  암메추라기 미넬리,
  그리고 까마귀 카구마저 노래불러요.
  '작은 나무의 마음은 굳세고,
  그의 따뜻한 마음은 그의 힘이 되어 주어요.
  그리고 작은나무는 결코 외롭지 않을 거^36^예요.'

  할머니는 천천히 몸을 앞뒤로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나는 바람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실개천 레이나가 내 모든 형제들에게 내 얘기를 알리는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작은나무'라는 걸 알았으며 그들이 나를 사랑하고 나를 환영한다는 걸 깨닫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래서 나는 울지 않고 쉽게 잠이 들 수 있었다. 
  @[  자연의 이치

  할머니는 저녁마다 당신의 가벼운 몸 하나를 싣고도 연신 삐그덕거리는 흔들의자에 앉아 일을 
하며 노래를 흥얼거리시곤 했다. 그럴 때면 벽난로에서는 관솔이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을 보내고서야 비로소 사슴가죽 장화 한 켤레가 마련되었다. 
할머니는 부드럽게 휘어져 돌아간 칼로 사슴가죽을 잘라내 여러 장의 길다란 조각들을 마련한 뒤 
그 끝을 바늘로 서로 엮어 장화 모양을 만들어 내신 것이다. 다 만든 뒤 할머니는 그걸 물에다 
담그셨다. 그리고 나는 물에 젖은 그 가죽신을 신은채 거실을 왔다갔다했다. 마침내 그것이 다 
마르자 그것은 공기처럼 가볍고 부드러웠으며 내 발에 꼭 맞았다.
  이튿날 아침 나는 서둘러 바지를 입고 윗도리의 단추를 채운 뒤 그 가죽 장화를 신었다. 밖은 
어둡고 추웠으며 너무 이른 시각이라 나뭇가지들을 뒤흔드는 새벽바람조차고 일지 않았다.
  간밤에 할아버지는, 만일 내가 일찍 눈을 뜰 수 있다면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따라와도 좋지만, 
일부러 나를 깨워 주시진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었다.
  "사나이라면 아침마다 제 힘으로 일어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할아버지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씀하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내 방 벽에 쿵쿵 
부딪치시는가 하면 할머니에게 큰 소리로 뭐라고 말슴하는 식으로 온갖 시끄러운 소리를 다 
내셨다. 그 바람에 나는 저절로 눈을 뜰 수밖에 없었으며 할아버지보다 먼저 밖으로 나가 개들과 
함께 어둠 속에 서서 할아버지가 나오시기만을 기다렸다.
  "어? 벌써 일어났니?" 할아버지는 놀라는 표정을 하셨다.
  "예, 할아버지." 나는 자랑스러운 마음을 지그시 누르며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우리 주위를 맴돌면서 껑충껑충 뛰는 개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너희들은 여기 
남아 있어"하고 명령하셨다. 개들은 엉덩이 밑으로 꼬리를 사려넣고 제발 좀 데려가 달라는 듯이 
낑낑거렸으며 늙은 모드는 길게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들은 차마 우리를 따라오진 못하고 맥빠진 
몰골로 저희들끼리 한 무리를 이루고 서서 그 빈터를 떠나는 우리를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다.
  나는 실개천의 둑을 따라 올라가는 낮은 길을 과거에 가본 적이 있었다. 골짜기를 따라 구불구불 
휘돌아 올라가는 그 길은 얼마쯤 가다가 툭 터진 풀밭으로 연결괴며 그 풀밭에는 할아버지의 
노새와 소가 자라는 헛간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가 오르는 길은 가파른 산등성이 
길이었으며 이 길은 오른쪽으로 꺾어져서 산허리를 타고 줄곧 올라가기만 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종종걸음을 치면서 그 길의 경가사 얼마나 가파른가를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헌데 나는 할머니가 짐작하신 대로 그 이상의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가죽신을 통해 
어머니이신 대지, 즉 모놀라의 존재를 감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때로 불쑥 솟아오르거나 
탐스럽게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아래로 움푹 꺼지기도 한 그녀의 존재를^5,5,5^ 그리고 
그녀의 몸 전체로 퍼져나간 뿌리와 그녀의 내부 깊숙이 흐르는 체액과도 같은 물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할머니 말씀 마따나 아득하고 탄력에 넘쳤으며 그 싱싱한 가슴 위에서 나를 
뛰놀게 했다.
  공기가 싸늘해 숨을 내쉴 때마다 입과 코로 구름 같은 수증기가 부옇게 피어올랐다. 실개천은 
우리 발 아래 까마득히 낮은 곳에서 흐르고 있었다. 헐벗은 나뭇가지들에 덧씌워진 날카롭고 
투명한 얼음 결정들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으며 우리가 더 놓이 올라감에 따라 길 위에도 
얼음이 깔려 있었다. 희뿌연 새벽 여명이 어둠을 주금씩 쫓아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고는 오솔길 한 곁을 가리키셨다. "저기를 좀 보렴. 칠면조가 
지나간 자국이 보이지?" 나는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땅바닥을 짚은 채, 한 점을 중심으로 해서 
가는 나뭇가지들이 부챗살처럼 뻗어나간 형국의 조그만 발자국들을 여럿 찾아냈다.
  "덫을 놓기로 하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오솔길을 벗어나 얼마쯤 걸어간 끝에 
큼직한 구덩이 하나를 찾아내셨다.
  우리는 우선 그 안에 들어찬 낙엽을 걷어냈다. 그런 다음 할아버지는 긴 칼을 끄집어내 
스폰지처럼 무른 구덩이 속의 흙을 잘라내셨으며 다시 우리 둘이서 그 흙을 밖으로 퍼내 낙엽 
사이에 골고루 흩뿌려 놓았다. 그 구덩이가 꽤 깊어져서 내가 똑바로 선 상태에서도 머리 끝까지 
푹 파묻힐 정도가 되자 할아버지는 나를 구덩이 밖으로 끄집어내 주셨다. 우리는 나뭇가지들을 
끌어와 그 구덩이 위에 덮어 놓고 다시 낙엽을 한아름씩 안아다가 나뭇가지달 위에 골고루 뿌려 
놓았다. 그리고 나서 할아버지는 그 긴 칼로 구덩이 있는 데서부터 아까 칠면조 발자국들이 보이던 
데까지 조그만 길을 내셨다. 길이 완성되자 할아버지는 호주머니에서 불그스름한 인디언 옥수수 
알들을 꺼내 그 길을 따라 점점이 뿌려 놓으셨으며 구덩이 안에도 한줌 던져 넣으셨다.
  "자, 그럼 가보기로 할까?" 할아버지는 이렇게 훌쩍 한마디 던지시고는 다시 아까 그 길을 내쳐 
올라가시기 시작했다. 서릿발처럼 흙을 뚫고 솟아오른 얼음들이 우리의 발 아래서 바삭바삭 부서져 
내렸다. 우리의 눈아래서 계곡이 마치 칼날에 깊게 패인 상처 자국처럼 보이고 그 맨 밑에 흐르는 
실개천이 날선 칼날처럼 가늘게 보일 정도로 우리가 높이 올라오자 어느 틈에 우리 맞은편의 
산봉우리는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우리는 아침의 첫 햇살이 계곡 건너편의 산봉우리 위에서 막 고개를 내밀 무렵 오솔길을 벗어나 
낙엽 위에 앉았다. 할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신맛이 나는 비스킷과 사슴고기를 꺼내 내게 
건내주셨다. 우리는 산을 바라보며 그것들을 먹었다.
  아침 해는 바야흐로 건너편 산봉우리 위에서 폭발하면서 그 찬란하고 눈부신 빛발로 대기를 가득 
채웠다. 얼음으로 덮인 나뭇가지들 위에서 섬광처럼 튀어오르는 그 빛발 때문에 눈이 아릴 
정도였다. 햇살이 밤의 어둠을 산 아래로 밀고 내려감에 따라 숲에 반사되는 빛의띠도 파도처럼 
산허리를 훑고 내려갔다. 정찰차 나온 까마귀 한 마리가 세 번에 걸친 날카로운 경고음을 대기에 
실어 보내 우리가 여기에 있음을 알렸다.
  이제 산은 일시에 깨어 일어나 대기중에 엷은 증기를 내뿜으며 살아 숨쉬고 있었다. 햇살이 
죽음의 얼음 갑옷으로부터 숲을 해방시키자 산은 여기저기서 얼음들이 튀는 소리로 소연해졌다.
  할아버지로 나와 마찬가지로 그 광경을 지켜보셨고 숲사이로 나직하게 휘파람을 부는 아침 
바람소리와 더불어 점점 높아져 가는 산의 숨결에 귀기울이셨다.
  "산이 살아나는구나." 할아버지는 여전히 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부드럽고 낮은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그래요, 할아버지. 산이 살아나고 있어요." 이렇게 할아버지의 말씀을 받는 그 순간, 나는 
할아버지와 내가 사물에 대한 똑같은 이해의 순간을 체험했다는 걸 알았다. 이런 체험은 여느 
사람들로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든 것이었다.
  음산한 밤의 그늘은 자그마한 풀밭을 가로질러 그 아래로 후퇴해 내려갔으며 그 풀밭을 빽빽이 
메운 무성한 마른 풀들은 햇살을 받아 환하게 빛났다. 그 풀밭은 맞은편 산허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자세히 바라보니 그 풀밭에서는 메추라기들이 
분주히 날개짓을 하고 뛰어다니면서 열심히 풀씨들을 골라 먹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다시 싸늘한 
푸른 하늘을 가리키셨다.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었으나 나는 뒤늦게서야 그 한 귀퉁이로 작은 점 하나가 날아오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점점 커져갔다. 그 새는 자기 앞에 그늘을 드리우지 않으러고 해를 
마주 보는 자세로 날아오다가 풀밭이 있는 산허리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높이 솟아오른 
스키 선수처럼 양 날개를 반즘 접은 채^5,5,5^ 갈색 탄환처럼^5,5,5^ 메추라기 떼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할아버지는 껄껄대며 웃으셨다. "저개 늙은 매, 탈콘이다."
  메추라기들은 질겁을 하며 일제히 흩어져 숲속으로 달아났다. 그런데 그 중의 하나가 동작이 좀 
굼떴다. 매는 그놈을 강타했다. 그것의 깃털들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면서 그것은 곧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매는 번개 같은 속도로 그것을 쪼아대었다. 잠시 후 매는 죽은 메추라기를 두 발로 
움켜쥐고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울지는 않았지만 슬픈 표정까지 어찌할 수는 없었다. 이런 나를 보더니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슬퍼하지 마라 작은 나무야. 이것이 자연의 이치란다. 탈콘은 느린 놈을 잡았고 그 
때문에 저처럼 느린 놈들은 저를 닮은 자식들을 세상에 내보내지 못하게 되는 거란다. 또 탈콘은, 
빠른 놈의 알이거나 느린 놈의 알이거나를 상관하지 않고 메추라기 알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대는 
들쥐 수천 마리를 잡아 먹지. 이런 식으로 탈콘은 자연의 이치를 따르고 있다. 그는 메추라기를 
돕고 있는 거야."
  할아버지는 칼로 흙 속에 묻힌 어떤 식물의 달콤한 뿌리를 캐내어 껍질을 벗겨 내셨다. 그러자 
거기서는 겨울에 대비하여 저장해 둔 생명의 즙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할아버지는 그 뿌리를 
반으로 잘라 굵은 쪽을 나한테 주셨다. 할아버지는 부드러운 어조로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필요한 만큼만 갖는 것,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사슴 사냥을 할 때도 제일 훌륭한 놈을 잡아서는 
안 된다. 그 중 작고 느린 놈을 잡아야지. 그러면 사슴들은 훨씬 더 강건해지고 늘 네게 고기를 
마련해 주게 되지. 표범 파코가 알고 있으니 너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
  할아버지는 소리내어 웃으셨다. "벌 티비만이 제가 쓸 수 있는 것 이상을 갈무리하고 
있다^5,5,5^. 그러니까 곰, 너구리^5,5,5^ 그리고 체로키들한테 빼앗기게 되지. 제 몫 이상을 
저장하고 저 혼자서만 잘 먹고 지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빼앗기게 마련이지. 그 때문에 
전쟁도 벌어지고^5,5,5^ 그들은 제 몫 이상을 가지려고 별별 허튼소리를 다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자기가 더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 사내들은 그런 명분과 허튼소리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다고 해서 자연의 이치가 바뀌어지지는 않아."
  우리는 산길을 되짚어 내려갔다. 우리가 칠면조 덫 있는 데 당도 했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와 
있었다. 덫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우리는 칠면조들이 내는 소리로 그들이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놀라서 칠면조 특유의 요란한 울음소리를 내며 푸드득 거렸다.
  나는 "할아버지, 나가지 못하게 하는 문도 없는데 왜 저것들은 머리를 낮추고 기어나오지 
않을까요?" 하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구덩이 안으로 한껏 팔을 뻗어 연신 꽥꽥거리며 난리를 치는 
큼직한 칠면조 한 마리를 끌어내 가죽끈으로 다리를 묶은 다음 나를 쳐다보며 씩 웃으셨다.
  "이 늙은 칠면조, 텔키는 우리 인간들 중의 어떤 사람들과 비슷하다. 제가 만사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고개를 낮추어 제 주위를 살펴보려고 하는 법이 없어요. 목에 빳빳하게 힘을 
주고 대가리를 높이 치켜세우고만 있으니 무얼 알 턱이 없지."
  "그 버스 운전사같이 말이죠?" 나는 괜스레 할아버지에게 딱딱거렸던 그 버스 운전사를 잊을 수 
없었다.
  "버스 운전사라니?" 할아버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시다가 갑자기 폭소를 
터트리셨다. 할아버지는 다시 구덩이 쪽으로 바싹 얼굴을 디밀고 또 다른 칠면조를 꺼내면서도 
연신 쿡쿡거리셨다.
  "그렇구나. 그 버스 운전사랑 비슷하지. 생각해 보니 그 녀석은 지금 이 칠면조들처럼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꽥꽥거렸어. 헌데 그 녀석이 그렇게 하고 다니자면 그 머리가 여간 무거운 짐이 
되지 않을 게다. 우리야 우리 머리가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지만 말이다." 할아버지는 껄껄거리고 
웃으셨다.
  할아버지는 다리를 묶은 칠면조들을 땅바닥에 눕혔다. 모두 여섯마리였다. 할아버지는 그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모두 나이가 비슷하다^5,5,5^. 깃털의 두께로 알 수 있거든. 작은 나무야, 
우리는 세 마리 밖에 필요 없으니 네가 할번 골라 보거라."
  나는 땅바닥에서 퍼덕이는 칠면조들 주위를 돌면서 살펴보기도 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살펴보기도 
하다가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무릎을 꿇고 그놈들 사이를 기어다녔다. 마침내 나는 그 중 작아 
보이는 세 마리를 골라냈다.
  할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없이 그냥 다른 놈들의 다리에서 가죽끈을 끌러 주기만 하셨다. 
풀려난 놈들은 날개를 휘저으며 허겁지겁 산비탈을 굴러내려갔다. 할아버지는 칠면조 두 마리만 
어깨에 걸쳐 메시고는 나한테 물으셨다.
  "저걸 메고 갈 수 있겠니?"
  "네, 할아버지." 나는 제대로 골랐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어 얼떨떨한 상태에서 대꾸했다. 여윈 
편이라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이는 할아버지의 얼굴에 소리없이 미소가 번져갔다. "네 이름이 
작은나무만 아니라면 널 작은매라고 부르고 싶구나."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 산길을 내려갔다. 칠면조는 무거웠지만 어깨에 닿는 그 뿌듯한 감촉에 
마음이 여간 흥겹지 않았다. 해는 저 멀리 떨어진 곳의 산쪽을 향해 기울어져 가고 있었고 그것이 
흩뿌리는 빛발이 우리가 걸어가는 오솔길 가의 나뭇가지들 사이로 흘러내려 길바닥에 진한 
황금빛의 다채로운 문양들들을 그려 내고 있었다. 겨울의 늦은 오후라 바람은 잠잠했다. 앞장서서 
걷고 있던 할아버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셨다. 나는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 되었으면 
싶었다^5,5,5^. 내가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렸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자연의 이치를 
터득했던 것이다.

  겨울 저녁 해를 받으며 산길을 간다.
  통나무집으로 내려가는 길 위의 숲 그림자를 밟으며,
  칠면조들의 발자취를 좇을 때면
  체로키들은 하늘의 이치를 따른다.

  산등성이 위로 아침이 탄생하는 것을 보라.
  숲을 스치는 바람노래에 귀기울이라.
  어머니이신 대지 모놀라가 내뿜는 생명을 호흡하라.
  그러면 그대는 체로키의 모든 이치를 깨닫게 되리.

  나날의 삶 바로 이곳에
  죽음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리.
  다른 것들이 없다면 그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다는
  모놀라의 지혜를 배우라.
  그러면 그대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되리니.
  그리고 모든 체로키의 영혼과 맞닿게 되리니. 
  @[  오두막 벽에 어리는 그림자

  그해 겨울, 우리는 밤만 되면 돌로 된 벽난로 앞에 앉곤 했다. 그럴 때면 벽난로 속에서는 썩은 
나무 그루터기에서 뽑아낸 아벼운 옹이들이 걸쭉한 붉은 나무진을 내면서 지글지글타올랐으며, 그 
널름거리는 불꽃으로 인해 우리들이 앉은 방 벽 위에서는 우리들의 그림자가 펼쩍 솟구쳤다가는 
움츠러드는 일을 반복하면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환상적인 그림을 그려 냈다. 우리들이 그 
불꽃과 춤추는 그림자들을 지켜보는 동안 방 안에는 으레 긴 침묵이 자리잡았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읽은 책들"에 관한 이야기를 끄집어 내셔서 그 침묵을 깨시곤 했다.
  일 주일에 두 번, 그러니까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밤이면 할머니는 석유 등잔을 켜고 우리에게 
책을 읽어 주셨다. 사실 등잔을 켠다는 건 우리에겐 사치스런 일이었음에도 그렇게 한 건 순전히 
나를 교육시키기 위한 목적 때문에서였으리라. 우리는 석유를 아껴 쓰지 않으면 안되었으니까. 한 
달에 한 번씩 할아버지와 나는 석유를 사러 읍내로 가곤 했는데 한 방울이라도 흘러나오지 않도록 
나무뿌리로 주둥이를 단단히 틀어막은 석유 깡통을 들고 오는 일은 나한테 맡겨졌다. 그걸 한 통 
가득 채우는 데는 오 센트가 먹혔다. 할아버지는 이런 일을 나한테 맡김으로써 나에 대한 굳은 
신뢰를 말없이 보여주셨다.
  읍내에 갈 때면 우리는 늘 할머니가 만들어 준 도서목록과 반납할 책도 함께 가지고 갔으며 
도서관에 가서는 할아버지가 그것들을 여자 사서에게 들이밀곤 하셨다. 할머니는 현대 작가들의 
이름은 잘 모르시지 않았나 싶다. 그 도서목록에는 항시 "미스터 세익스피어"라는 이름만 씌어 
있었으니까. 할머니는 저자 이름만 아셨지 제목은 모르셨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 중에서 우리가 
읽지 않은 것이면 뭐든지 좋다고 하셨다. 이 때문에 가끔 할아버지는 사서와 함께 우리가 읽지 
않은 책을 고르느라 한참 고심을 하셔야 했다. 사서는 서가로 가서 미스터 셰익스피어의 책 몇 
권을 골라 와서 제목을 읽어 주곤 했는데, 다행히 안 빌린 책이라는 걸 알면 다행이지만 제목만 
듣고 그걸 알 수 없을 때면 사서가 한 페이지를 읽어주어야 했다.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할아버지는 계속 좀더 읽어봐 달라고 하셨고 그녀는 몇 페이지를 내리 읽어 줬다. 이런 식으로 몇 
권을 읽는 과정에서 가끔 내가 할아버지보다 먼저 줄거리를 알아챌 때도 있었으며 그럴 때면 나는 
할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겨 그건 우리가 읽은 책이라는 신호로 고갯짓을 하곤 했다. 헌데 
그러다 보니 그건 일종의 경쟁 비슷한 것이 되어 할아버지는 나보다 먼저 알아내려고 기를 쓰셨다. 
그래서 괜히 안 읽은 것도 읽었다고 그러셨다가는, 다시 그게 아닌 것 같다고 번복하셔서 사서를 
혼란에 빠트리시곤 했다.
  처음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사서는 약간 짜증을 내면서 글도 '읽을' 줄 모르면서 책은 빌려서 
무얼 할거냐고 할아버지에게 따져 물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우리에게 그 책들을 읽어 
줄 거라고 말씀하셨다. 몇 차례 이런 일을 겪은 뒤 그녀는 아예 우리가 읽은 작품들의 목록을 
준비해 놓았다. 그녀는 친절한 성품을 지닌 여자여서 우리가 도서관 문으로 들어설 때면 늘 밝게 
웃어주곤 했다. 한번은 그녀가 내게 빨간 줄무늬 막대사탕을 주었는데 나는 그걸 금방 먹지 않고 
갖고 있다가 도서관 밖으로 나와서 둘로 쪼개 할아버지와 나누어 먹었다. 나는 그걸 정확히 반으로 
쪼개지 못해 작은 쪽은 할아버지의 뜻대로 할아버지에게 돌아갔다.
  내가 사전의 앞 부분부터 시작하여 매주 다섯 개씩의 낱말을 새로 익혀야 했으므로 우리는 늘 
사전을 뒤적거려야 했다. 헌데 이건 여간 골치아픈 일이 아니었다. 낱마라을 그냥 외우는 것이 
아니라 한 주일 내내 이 다섯 단어를 골고루 응용해 가며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대화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 주일 동안에 익혀야 할 말이 에이A로 시작하는 말뿐이거나 비B로 시작하는 
말뿐이라면 이런 단어들을 응용하여 말을 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러나 우리가 셰익스피어만 읽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읽은 책 중에는 할머니가 잘 알지 
못했던 기본의 "로마제국의 성장과 몰락"이란 책^5,5,5^ 그리고 셸리나 바이런과 같은 저자의 
책들도 끼어 있었는데 이런 책들은 사서가 알아서 골라 보내 주었다.
  할머니는 책에다 얼굴을 바싹 들이대신 채 길게 땋아내린 머리로 바닥을 쓸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셨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는 느린 템포로 흔들의자를 앞뒤로 흔들며 귀를 기울이시곤 했다. 
헌데 나는 어디가 흥미진진한 대목인가를 금방 알아차리곤 했는데 그건 그런 대목에 이를 때마다 
할아버지가 흔들기를 멈추시곤 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맥베드"를 읽으셨을 때 나는 우리집 오두막 벽에서 맥베드의 성과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마녀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으며 그 바람에 나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눈치채시지 못하게 흔들의자에 앉으신 할아버지 곁으로 살그머니 전진해야 했다. 할머니가, 사람을 
찔러 죽이고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장면을 읽으셨을 때 할아버지는 문득 흔들기를 멈추셨다. 
할아버지는 맥베드 부인이 여자가 할 일에나 신경을 쓰고 맥베드 씨가 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말씀하셨으며, 또 그 여자는 도무지 
레이디(귀부인을 이르는 말: 옮긴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여잔데 이 책에서 왜 그여자의 이름 
앞에 그런 호칭을 붙이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불평하셨다. 할아버지의 이런 견해는 모두 
첫번째 낭독을 다 듣고 나신 후의 흥분상태에서 나왔다. 나중에 할아버지는 마음속에서 이런 
생각을 다시 곱씹어 보신 뒤 틀림없이 그 여자(할아버지는 그녀를 레이디라고 부르기를 
거부하셨다)에게 뭔가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옛날에 암사슴 한 
마리가 발정이 났는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수사슴이 보이지 않자 나무들을 들이받으며 미친 듯이 
날뛰다가 결국 강물 속에 빠져 죽고 만 경우를 본 적이 있다며, 셰익스피어 씨도 "맥베드"에서 
이런 식으로 원인을 설명해 줬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지 않았으므로 그 여자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 도리가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문맥에서 암시하는 바에 따르자면 맥베드 씨가 제 
주관대로 행동하지 못한 걸로 봐서 일차적으로 모든 책임을 그 사내 쪽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도 할아버지는 이 문제를 두고 꽤나 골머리를 썩이시다가 마침내 잘못의 가장 큰 
부분은 맥베드 부인 쪽에 있다는 결론을 내리셨다. 왜냐하면 자신의 미친 듯한 피의 열기를 해소할 
만한 적절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최소한 제 머리를 벽에다 짓찧는 방법도 있지 않겠느냐는 
근거에서. 헌데도 그녀는 제 머리를 짓찧지 않고 부자비하게 사람들을 살해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줄리어스 시저의 죽음을 둘러싼 문제에서는 시저의 편을 드셨다. 할아버지는, 시저가 
그 전에 더떤 식으로 행동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가 모든 면에서 다 공명정대한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서만은 브루터스와 그 일당이 그지없이 
비열하게 행동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도둑놈들처럼 살그머니 시저에게 다가가서 일 대 일이 아니라 
떼로 덤벼들어 그를 찔러 죽였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할아버지는, 만일 그들이 시저 
씨와 의견이 달랐다면 자기네의 입장을 솔직히 밝히고 정정당당한 방식으로 해결했어야 했다고 
말씀하셨다. 헌데 할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너무나 흥분을 하시는 바람에 부득불 할머니가 
나서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는 다 시저 편이다, 그러니 여기에는 할아버지의 견해가 
틀리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또 그 사건은 너무나 노래 전에 일어난 일이라 지금 
와서 달리 어찌 해 볼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할아버지를 달래 드려야만 했다.
  헌데 정말로 우리를 난처한 지경으로 몰아 넣은 건 조지 워싱턴에 관한 문제였다. 이 문제가 
할아버지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이 문제의 배경에 대해 어느 정도 알 
필요가 있다.
  산사람들에게 적이 되는 사람들은 당연히 할아버지에게도 적이었으며 이런 의미에서 할아버지는 
적들을 갖고 있었다. 거기다 할아버지는 가난했으며 또 인디언적인 기질을 누구보다 많이 가지고 
있었다. 내가 지금 와서 생각해 볼 태 그 적들이란 "기존체제"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할아버지에게는 보안관이나 세무서원, 정치가들이 바로 적으로 비쳤으며 할아버지는 그들을 
모두 "법"이라 불렀다. 일반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방식에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강력한 
괴물이라는 의미에서의 법.
  할아버지는 당신이 한 사람의 당당한 사내가 되고 나서도, 그리고 세상 모든 이치를 다 깨달은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위스키를 만드는 것이 법에 어긋난다는 걸 
알았다고 하셨다. 할아버지한테는 위스키 만드는 게 불법이란 걸 끝내 알지 못한 채 무덤 속으로 
들어간 사촌 한 사람이 있었다. 헌데 그 사촌은 늘 자신이 "제대로" 투표하는 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법이 자신을 괴롭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로서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어떻게 
투표를 해야 제대로 한 것이 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항시 그 사촌이 이 
문제로 너무나 애간장을 졸인 탓에 죽게 되었다고 믿고 계셨다.
  그는 선거철만 다가오면 자신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올바로 투표하는 법에 대해 알려고 
오만가지 궁리를 다했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로 너무나 신경이 곤두선 나머지 꼭 술에 만취된 
상태가 되곤 했으며 그로 인해 결국 죽음을 맞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그 사촌의 죽음을 정치가들 
탓으로 돌리셨다. 할아버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사적인 인물의 죽음치고 정치가들과 무관한 
죽음은 하나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이건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라고 
하셨다.
  훗날, 내 눈으로 직접 역사책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나는 할머니가 조지 워싱턴이 인디언들과 
싸운 대목들은 읽지 않고 그냥 넘어가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아버지는 높이 평가하고 찬양할 
만한 정치가도 있다는 걸 할아버지께 보여드리기 위해 조지 워싱턴의 좋은 점을 드러내 주는 
대목들만을 읽으셨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앤드류 잭슨(테네시 주 민병대장 출신으로 서부개척에 
공로가 많았으며 이 과정에서 다수의 인디언을 살상했다. 훗날 미국의 칠대 대통령이 되었다: 
옮긴이)은 싹 무시하셨다. 그러나 내 기억이 미치는 한 그 밖의 청치가들이라 해서 할아버지로부터 
앤드류 잭슨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지는 않다.
  할머니의 그런 낭독법에 넘어간 탓으로 어느 때부터인가 할아버지는 걸핏하면 조지 워싱턴의 
이름을 들먹이시기 시작했다^5,5,5^. 정치가들 중에서도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조지 
워싱턴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식으로.
  헌데 할머니가 아차 실수하여 위스키 세에 관한 대목을 읽어 버림으로써 할아버지의 머리에는 
갑자기 혼란이 왔다.
  할머니는 그만 조지 워싱턴이 의스키 제조자들에게 세금을 매기고 또 위스키를 만들 수 있는 
사람과 만들 수 없는 사람을 규정하는 법규를 제정하기로 결정했다는 대목을 읽어 버리셨던 
것이다. 헌테 토머스 제퍼슨(훗날 미국의 삼대 대통령이 된 인물: 옮긴이)은 그건 부당한 처사라고 
반대했다.
  제퍼슨은, 산악지대의 가난한 농민들은 산비탈의 작은 밭뙈기밖에 없어 평원의 대지주들처럼 
많은 옥수수를 생산할 수 없고, 따라서 자기네들이 생산한 옥수수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걸 위스키로 만들어 파는 길뿐이며, 또 위스키 세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도(사실, 스카치 
위스키는 그걸 만드는 사람들이 재료를 볶다 말고 왕이 파견한 사람들에게 번번이 쫓기는 바람에 
그것을 볶던 용기가 지나치게 가열된 것이 원인이 되어 그 특유의 씁쓸한 맛을 띠게 되었다)에서도 
많은 말썽거리들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을 들어 이에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조지 워싱턴은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끝내 위스키 세 법안을 관철시키고 말았다.
  이런 내용을 들은 할아버지는 깊은 충격을 받으셨다. 할아버지는 흔들의자를 까딱거리는 일도 
멈추신 채 초점 잃은 눈길로 벽난로 속의 불꽃을 말없이 응시하기만 하셨다. 그 내용을 다 읽고 
나서야 뒤늦게 당신의 실수를 깨달으신 할머니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다가 이윽고 할아버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시고는 할아버지의 허리를 한팔로 껴안은 채 침실로 인도했다. 나 역시도 
할아버지 못지않게 마음이 울적했다.
  그로부터 한 달 가량 지난 뒤 나는 우연한 사건을 통해 할아버지가 이 일로 얼마나 큰 충격을 
받으셨는가를 새삼실감하게 되었다. 그 사건은 우리가 읍내로 가기 위해 산길을 타고 내려가다 차 
바퀴 자국이 깊이 패인 길로 들어섰을 때 일어났다. 이 길에서는 이따금 차들이 지나가곤 했지만 
할아버지는 차가 오나 해서 두리번거리시는 법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누가 권한다 해도 절대로 
차를 탈 분이 아니셨으니까.
  그런데 그날따라 차 한 대가 갑자기 우리 곁에서 멈춰섰다. 그것은 지붕이 캔버스 천으로 된, 
창문도 없이 훤히 트인 차였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가뜩이나 정치가 같은 차림새로 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할아버지가 절대로 타실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는 덜덜거리는 엔진소리 때문에 차 밖으로 몸을 내밀고는 크게 고함을 질러댔다. "타겠어요?" 
할아버지는 잠시 서서 생각하시는 눈치더니만 불쑥 "고맙소"하는 말씀과 함께 앞좌석에 
올라타셨다. 그리고는 내게 뒷좌석에 타라고 손짓하셨다. 차는 쏜살같이 내달렸으며 나는 그 빠른 
속도에 신바람이 났다.
  할아버지는 원래 앉으나 서나 항시 허리를 꼿곳이 하는 습관이 있으셨는데 모자를 쓴 채 차 안에 
똑바로 앉아 계시자니 머리가 차 지붕에 닿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상체 전체를 차 앞의 바람막이 유리 쪽으로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헌데 그것을 꼭 눈앞의 
길을 살핌과 동시에 그 정치가의 운전솜씨를 살피는 것 같은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그 바람에 그 
정치가는 꽤나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할아버지야 그가 무얼 하건 손톱만큼도 신경 쓰실 분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결국 참다못한 그 정치가가 입을 열었다. "읍내로 가십니까?" 이에 할아버지는 "예"하고 대꾸해 
주셨다. 그러자 약간 사이를 두고 그 정치가는 다시 물었다.
  "농삿일을 하십니까?"
  "좀 하는 편이죠."
  "난 주립사범대 교숩니다."
  나는 그가 정치가가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헌데 나는 
그의 말에 약간의 거드름기가 배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인디언입니까?" 교수의 말에 할아버지는 "예"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교수는 "오,"하고 짤막하게 반응했다. 마치 이로써 나와 할아버지를 완전히 파악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때 갑자기 할아버지가 교수 쪽으로 고개를 돌리시더니 불쑥 질문을 던지셨다. "조지 워싱턴이 
위스키 세를 매긴 사실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교수는 이 느닷없는 질문에 흡사 따귀라도 맞은 
사람처럼 어리벙벙한 표정을 했다. 그러다 그는 아주 큰 소리로 되물었다.
  "위스키 세요?"
  "예, 위스키 세."
  교수가 갑자기 낯을 붉히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처럼 불안한 표정을 짓는 게, 내게는 꼭 
위스키 세와 관련해서 뭔가 할 말이 많은 사람의 그것처럼만 비쳤다.
  "잘 모르겠는데요. 조지 워싱텅 장군에 대해 말하는 거지요?"
  "그럼 조지 워싱턴이란 사람이 여러 명 있단 말인가요?" 할아버지는 깜짝놀라 되물으셨다. 나 
역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니요. 어쨌든 나로서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교수의 말은 좀 수상쩍게 들렸으며 그런 기분은 나뿐 아니라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라는 걸 나는 
할아버지의 표정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이제 교수는 앞만 보고 내달렸다. 차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바람막이 창을 통해 앞의 길바닥만을 응시하셨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할아버지가 왜 이 차에 순순히 올라타셨는가를 깨달았다.
  할아버지는 다시 입을 여셨는데 이제 그 어조에는 기대감 같은 건 거의 담겨 있지 않았다. "혹시 
워싱턴 장군이 머리에 상처를 입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내말은, 그렇게 많은 싸움을 
치렀으니 그 와중에서 머리 한 옆에 총알이 스치고 지나가는 일도 있을 수 있잖냐는 거지요." 
교수는 할아버지를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아까보다 한층 더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저어, 나는^5,5,5^." 그는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라 조지 
워싱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느 틈에 우리는 읍내 변두리 가까이에 와 있었으며 할아버지는 교수에게 내려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목적지는 아직 멀었는데도 말이다. 우리가 길가로 내려선 뒤 할아버지는 
교수에게 사의를 표하기 위해 모자를 벗으셨으나, 그는 우리가 차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자욱한 
먼지 구름 속으로 휑하니 사라져 버렸다. 할아버지는, 저런 사람들은 으레 그렇게 행동하니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그 교수가 의심쩍게 행동했으며 그가 사실 교수 
행세를 하는 정치가일지도 모른다는 내 말에 동의하셨다. 할아버지는, 정치가들 중에는 자기가 
정치가라는 사실을 숨긴 채 정직한 사람들 틈에서 활개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설혹 진짜 교수를 만난다 하더라도 무조건 가볍게 보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교수 중에는 멀쩡한 사람보다 미친 사람들이 더 많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할아버지는 조지 워싱턴이 수많은 전투를 치르는 동안 어떤 식으로든 머리에 총상을 
입었으리라고 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위스키 세를 매기는 것 같은 괴상한 행동을 할 리가 
없지 않느냐고 하셨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의 아저씨의 경우를 예로 드셨다. 그분은 노새에게 한번 
머리를 걷어채인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는 영영 온전하질 못하셨다 한다. 헌데 할아버지는 
아저씨가 때로 자신의 그런 상태를 이용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얘기는 누구한테도 하신 적이 없었다는 말씀을 덧붙이시면서.
  한번은 어떤 사내가 제 집으로 돌아왔다가 할아버지의 아저씨가 그 사내의 아내와 한 침대 속에 
들어가 있는 현장을 붙잡았다. 헌데 그때 할아버지의 아저씨가 갑자기 네 발로 기어 마당으로 
나가더니만 돼지처럼 쭈그리고 앉아 흙을 파먹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그분이 일부러 꾸며대느라 
그러시는 것인지 진짜로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러시는 것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럴싸하게^5,5,5^ 다른 사람들은 어찌 생각하든지 간에 최소한 그 사내로서는 알아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그 아저씨는 제 수명을 다하고 고요히 침대에 누워 세상을 뜨셨다. 할아버지는, 
어쨌든 그건 자신이 이렇다 저렇다 단정지어서 얘기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결론지으셨다. 나로서는 조지 워싱턴이 머리 부분에 총상을 입어 머리가 약간 이상해졌다는 
할아버지의 견해가 꽤나 그럴싸하게 들렸으며 그로써 그의 다른 괴상한 행동들고 어느 정도 납득이 
될 수 있었다. 
  @[  여우와 사냥개들

  어느 겨울날 늦은 오후, 할아버지는 늙은 모드와 링거가 다른 사냥개들 면전에서 창피한 꼴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시며 그것들을 오두막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셨다. 나는 이제부터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리라 짐작했다. 할머니는 이미 그걸 알고 계셨다. 오늘 따라 할머니의 검은 
눈동자에는 생기가 돌았다. 할머니는 내게 할아버지의 사슴가죽 상의와 똑같은 모양의 옷을 입혀 
주셨으며 할아버지께 하듯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잡아 주셨다. 그 바람에 나는 어른이 다 된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은 채 집 안을 서성거렸다. 할머니는 내게 비스킷과 고기를 담은 
자루를 건네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오늘 밤엔 문간에 나가 앉아 있어야겠다. 그래야 네가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우리는 마당으로 나갔다. 할아버지는 휘파람을 불어 개들을 불러 모으셨다. 그런 뒤 우리는 
실개천을 따라 계곡을 타고 내려갔다. 사냥개들은 연방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며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할아버지가 개들을 키우시는 건 딱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는데 그 하나는 옥수수밭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었다. 매해 봄 여름마다 할아버지는 늙은 모드와 링거를 옥수수밭으로 보내셔서 사슴, 
너구리, 멧돼지, 까마귀 등을 막게 하셨다.
  할아버지의 말씀마따나 모드는 냄새를 맡는 데는 젬병이어서 여우의 뒤를 쫓는 일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귀와 눈은 아주 밝아서 나름대로 제 몫을 했으며 그 늙은 암캐 자신도 
자신이 쓸모가 있다는 데 대해 은근히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개건 사람이건 간에 
자신이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갖지 못한다면 그건 아주 비참한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링거는 후각이 뛰어난 좋은 몰이개였지만 이제 꽤 나이가 들었다. 이 수캐는 꼬리가 뭉툭하게 
잘려나가 볼품없는 몰골을 하고 있었으며 잘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할아버지는 링거에게 자신이 
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쓸모가 있는 존재라는 기분을 안겨 주기 위해 이 개를 모드에게 
붙여 줬다고 하셨다. 그 덕분에 링거는 어느 정도 위엄을 되찾을 수 있었으며 특히 옥수수밭에서 
일하는 철만 되면 다리에 힘을 주고 의젓한 걸음으로 돌아다닌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옥수수 농사철만 되면 모드와 링거를 골짜기 속에 자리잡고 있는 헛간에 갖다 
두셨으며 그것들은 거기에 머무르면서 충실하게 제 일들을 해냈다. 모드는 링거의 눈과 귀였다. 
모드는 옥수수밭에 뭐가 어른거리기라도 하면 마치 그것이 제 옥수수밭이라도 되는 양 요란하게 
짖으며 달려나갔다. 그러면 링거도 같이 짖어대며 모드의 뒤를 쫓아간다.
  그들이 침입자를 발견하고 옥수수밭으로 돌진해 들어갈 때 모드는 후각이 좋질 않아서 바소 옆에 
너구리가 웅크리고 있더라도 눈에 띄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마련이다^5,5,5^. 그러나 모드의 뒤를 
쫓아가는 링거는 냄새로 너구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연신 코로 땅바닥을 킁킁거리며 
너구리의 뒤를 쫓는다. 그가 냄새로 계속 너구리를 추적하다 보면 결국 견디다 못한 너구리는 나무 
위로 쫓겨올라가게 마련이다. 그러면 링거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어 맥빠진 걸음으로 돌아오곤 
한다. 어쨌든 그들은 자기네 일을 훌륭하게 해낸다.
  할아버지가 개들을 키우시는 또 다른 이유는 순전히 여우몰이를 하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다. 
할아버지는 짐승 사냥을 나갈 때는 결코 개들을 이용하는 법이 없으셨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모든 짐승들의 생각과 성격, 습관과 자취, 그리고 그들이 물마시고 먹이를 
먹는 장소를 그 어떤 사냥개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훤히 꿰뚫고 계셨다.
  그 붉은 여우는 사냥개들에게 쫓길 때면 원을 그리며 달아난다. 그 녀석은 제가 사는 굴을 
중심으로 하여 지름이 일이 킬로미터쯤 되는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한다. 그 녀석은 달리는 동안 
줄곧 속임수를 쓴다. 되짚어 달려가기도 하고 물 속으로 뛰어들기도 하며 가짜 발자국을 남기는 
등등. 하지만 결코 그 원을 크게 벗어나는 법이 없다. 차차 기운이 빠지면 그 녀석이 도는 점점 
안으로 졸아붙으며 결국에 가서는 제 굴 속으로 도망쳐 들어가 버린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제 
굴 속에 들어가 박혀 버리는" 것이다.
  여우가 오래 뛰면 뛸수록 몸은 더워지게 마련이고 그에 따라 그의 입에서는 짙은 체취가 뿜어 
나오며 개들은 그 뒤를 쫓는 과정에서 그 강해져 가는 체취 때문에 점점 더 크게 짖어댄다. 
사람들은 그걸 일러 "강력한 체취"라 한다.
  회색 여우가 달아날 때는 보통 8자를 그리는데 이 8자가 교차하는 지점에 그의 굴이 자리잡고 
있다.
  할아버지는 너구리의 생각도 훤히 꿰뚫고 계셔서 그 녀석이 음훙한 짓을 할 때면 코웃음을 
치셨으며, 아마 그 녀석도 자신을 비웃었을 거라고 단정하곤 하셨다. 할아버지는 칠면조가 어디로 
도망치는지 잘 알고 계셨고 벌떼가 나는 모습을 흘끗 보시기만 하고도 벌이 물에서 제 집으로 가는 
길을 추적하실 수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사슴의 묘한 성질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사슴이 
제 발로 할아버지께 걸어오게 하실 수도 있었고, 메추라기 떼 속으로 걸어 들어가시면서도 
메추라기들을 날아가지 않게 하실 수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필요할 때가 아니면 결코 그들을 
괴롭히지 않으셨으며 나는 그 짐승들도 그걸 알고 있었으리라는 걸 "안다".
  할아버지는 짐승들을 "쫓아야 할" 목표물로써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존재들로 보셨다. 
백인들은 거칠고 무례한 자들이었지만 할아버지는 그들의 존재를 잘 참아내셨다. 하지만 그들은 
개들을 끌고 들어와 시끌벅적하게 온 산을 들쑤시며 다니곤 했다. 그 바람에 산짐승들은 그들만 
나타났다 하면 제 집으로 숨어 들어가기에 바빴다. 그들은 열두 마리의 칠면조를 봤다 하면 그 
열두 마리를 모조리 잡아죽이려고 덤벼든다.
  그러나 백인들은 할아버지를 뛰어난 산사람이라 해서 존경했다. 나는 네거리 가게에서 그들이 
할아버지와 마주칠 때마다 모자챙에 한손을 대는 동작을 통해서나 그들의 눈빛에서 그들의 그런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할아버지가 사는 계곡이나 그 근처의 산에는 접근하는 걸 삼갔다. 
그러면서 자기네가 드나드는 산에 점점 짐승들의 씨가 마른다고 연신 불평을 해댔다. 그들이 그런 
불평을 할 때마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흔드시곤 했다. 하지만 내게만은 말씀해 
주셨다. 그들은 체로키들의 이치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나는 겅중겅중 뛰는 개들을 뒤에 거느린 채 종종걸음으로 할아버지 뒤에 바싹 따라붙어 갔다. 이 
시간은 바로 태양이 막 산등성이 너머로 침몰하고 선홍빛의 놀이 진힌 핏빛으로 변하며 날빛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서서히 죽어가는, 그리하여 모든 순간순간 변화하면서 서서히 어둠 속에 
가라앉는 신비롭고도 으스스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일모의 여린 바람조차도 터놓고 얘기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얘기하기라도 하듯 내 귓전에서 낮고 음험한 속삭임을 발했다.
  낮짐승들은 잠자리로 찾아들고 밤짐승들은 사냥을 하기 위해 슬슬 제 집에서 기어나오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헛간이 있는 풀밭을 지날 즈음 할아버지가 문득 걸음을 멈추시는 바람에 나는 
할아버지의 가랑이 사이에 선 꼴이 되고 말았다.
  부엉이 한 마리가 계곡에 낮게 붙어 우리 쪽으로 날아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아무런 
울음소리도, 날갯소리도,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우리 바로 곁을 스치고 지나 헛간 속에 유령처럼 
사뿐이 내려앉았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부엉이다. 밤에 가끔 여자가 앓는 소리를 들었지? 그게 바로 이 녀석이 
내는 소리다. 지금 쥐를 잡으로 내려온 거야." 나는 그 부엉이가 쥐를 잡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아 
헛간과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지나쳐 갔다.
  어둠은 훨씬 더 빽빽해졌으며 우리가 계곡 안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산들은 점차 우리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두 갈래 길에 이르렀는데 할아버지는 왼편 길로 
들어서셨다. 이제 길이라고 해봐야 실개천 가장자리의 좁은 때 같은 공간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이 길을 "좁은 길"이라 부르셨다. 양쪽의 산이 어찌나 가까이 붙어 있는지 두팔을 뻗으면 꼭 닿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나무들을 깃털처럼 머리에 인 검푸른 산들은 수직의 단애처럼 
가파르게 솟아올라 있었고 그 위의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흩어져 있었다.
  길에서 꽤 떨어진 곳에 문상비둘기(야생 비둘기의 일종: 옮긴이) 한 마리가 청승맞을 정도로 
구슬프게 울어대자 산들이 그 소리를 거듭 반향했다. 헌데 그 울음소리가 길게 꼬리를 끌고 
퍼져가면서 작은 메아리들이 무수히 되돌아오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는 무수히 많은 산봉우리와 
계곡이 있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해주었다. 결국 그 울음소리는 저 먼 곳에서 희미하게 
사그러들었으며 이제 소리가 아니라 하나의 기억으로 남아 내 속에서 메아리쳤다.
  주위가 너무 고요하고 적막하여 나는 할아버지 뒤에 바짝 붙어 쫓아갔다. 나는 개들이 내 뒤에 
붙어 따라와 줬으면 했지만 내 뒤에 남은 개는 하나도 없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할아버지 앞에서 
달려가다 심심하면 할아버지한테로 다시 돌아와서는 어서 여우를 뒤쫓게 해달라는 듯이 낑낑거리곤 
했다.
  그 "좁은 길"은 위쪽으로 자꾸 올라갔고 오래지 않아 나는 수량이 풀부한 냇물이 달려내려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할아버지가 "하늘에 걸린 골짜기"라고 부르는 곳을 가로지르는 
계류였다.
  우리는 산길을 버리고 그 냇물 위쪽으로 솟은 산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여우를 쫓으라고 
개들을 풀어주셨다. 할아버지가 하신 일이라고는 그저 손가락질하며 "갓!"하셨을 뿐이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개들은 컹컹 짖어대며 어둠 속으로 달려나갔다. 할아버지의 표현을 빌자면 그 
모습은 꼭 딸기 따러 흩어지는 애들 같았다.
  우리는 냇물 바로 위쪽의 빽빽한 소나무 숲속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숲속은 따뜻했다. 소나무 
숲이 더운 기운을 내보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소나무는 열을 방사하는 성질이 있으므로 
여름철이라면 참나무 숲이나 히코리 나무 숲 같은 데 앉는 것이 좋다.
  별들이 냇물의 잔물결을 타고 흘러내리다가 더러 제자리서 맴돌기도 하고 산산이 흩어지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조금만 더 있으면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할 거머 그건 곧 개들이 
늙은 반들이의 자취를 찾아냈다는 걸 뜻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여우를 반들이라 
부르셨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늙은 반들이의 영토 안에 들어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놈을 알게 된 
지도 어언 오 년이 다 되어 간다고 하셨다. 대체로 사람들은, 여우 사냥꾼들은 으레 여우를 
죽인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할아버지는 일평생 단 한 마리의 여우도 죽이지 
않으셨다. 할아버지가 여우 사냥을 나서는 이유는 개들이 여우몰이하는 소리에 귀기울이는 재미를 
맛보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할아버지는 여우가 지쳐 제 굴 속으로 들어가 박힐 때쯤 되면 개들을 
도로 불러들이시곤 했다.
  반들이는 아주 심심하고 따분해지면 할아버지와 개들로 하여금 자기 뒤를 쫓게 하기 위해 일부러 
오두막 빈 터 가까이까지 내려오기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때로 그 녀석은 개들을 달고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 버리거나 개들을 시끄럽게 짖게 만들어 할아버지를 신경쓰게 만들곤 했다.
  할아버지는 별로 쫓을 기분도 나지 않고 괜히 심통이 날 때면 반들이의 존재를 모르는 척해 
버리신다고 하셨다. 여우가 자기 굴 속에 털어박히고 싶을 때면 개들을 따돌리기 위해 여러 가지 
교묘한 술수들을 쓴다. 그리고 장난기가 동하면 온 데 사방을 헤매고 돌아다닌다. 제일 재미난 
대목은 늙은 반들이가 할아버지의 오두막 근처를 배회하면서 할아버지를 괴롭히면 그 앙갚음을 
당하게 된다는 걸 제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사 분의 일 가량을 어둠에 파먹힌 달이 어김없이 산등성이 위로 떠올랐다. 그것은 소나무 숲 
사이를 뚫고 들어와 바닥에 다채로운 문양들을 그려 냈으며 냇물 위에도 떨어져 하얗게 부서져 
내렸다. 좁은 협곡에 걸린 쪽배 모양의 안개의 띠는 달빛을 반사하면서 천천히 흘러 가고 있었다.
  나는 소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고서 두 다리를 쭉 펴고 앉으신 할아버지와 똑같은 자세로 앉았다. 
내가 책임져야 할 음식 자루를 내 곁에 바싹 끌어당겨 놓은 채. 문득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개 한 마리가 건조하게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가 낮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리핏이다. 저건 말짱 거짓말이야. 저놈은 어떤 때 짖어야 
하는지 알면서 저래^5,5,5^. 기다릴 수가 없어서지. 그래서 마치 제가 여우 냄새를 맡은 척하는 
거야, 망할 놈의 자식 같으니. 들어봐라. 저 녀석이 짖어대는 소리가 얼마나 가식적으로 들리나. 
저도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 내 귀에도 그 소리는 확실히 "그렇게 들렸다".
  "맞아요, 저놈의 자식은 거짓말을 하는 거^36^예요."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받았다. 할아버지와 
나는 할머니가 곁에 없을 때는 곧잘 욕설을 입에 담곤 했다.
  잠시 후 리핏 주위에 있던 다른 개들이 사납게 으르렁거려 리핏을 윽박질렀다. 산골에서는 그런 
개를 "허풍쟁이 개"라고 부르곤 한다. 이윽고 주위는 다시 침묵 속에 잠겨들었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에 깊고 낮은 울부짖음이 길게 허공을 갈랐다. 그 소리는 아주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나는 이번에는 진짜라는 걸 알았다. 왜냐하면 그 울부짖음 속에는 맥박치는 흥분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냥개들이 그 소리를 받아 함께 울부짖었다.
  "저건 퍼렁이다. 이 산중에서 가장 원기왕성하고 가장 냄새를 잘 맡는 놈이지. 고 다음 짖는 
소리는 꼬마 빨강이^5,5,5^ 그리고 저건 베스야." 할아버지는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갑자기 
자지러지게 짖어대는 또 다른 소리 하나가 그 대열에 끼어들었다. "리핏이다. 제일 나중에 끼어든 
주제에 시끄럽기는."
  이제 모든 개들이 합창하듯 한꺼번에 짖어댔으며 그 소리는 점차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울부짖음이 사방의 산에 부딪쳐 공명하는 바람에 마치 온 산에 개들이 쫙 깔려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윽고 그 소리들은 침묵 속에 파묻혔다.
  할아버지가 설명해 주셨다. "이제 개들은 클린치 산 뒤편으로 넘어 갔다." 나는 그들이 짖어대는 
소리를 들어 보려고 애썼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갑자기 우리 뒤편의 산허리에서 쏙독새 한 마리가 튀어나와 "쉬이익!"하는 날카로운 
휘파람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고 날아갔다. 그러자 냇물 건너편에서 부엉이 한 마리가 "부엉, 
부엉, 부엉!" 하고 이에 화답했다.
  할아버지는 낮게 웃으셨다. "부엉이는 골짜기에서 살고 매는 산등성이 위에서 산단다. 헌데 
이따금씩 매가 골짜기의 냇물에서 먹이를 찾기가 더 수월하다고 보고 골짜기로 내려올 때가 있지. 
그러면 부엉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냇물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물보라를 날리며 튀어올랐다가 다시 물 속으로 잠겼다.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개들이 (길을 잃으면) 어쩌죠?" 나는 할아버지께 속삭였다.
  "그럴 리 없다. 곧 소리가 들릴 게야. 클린치 산의 다른 쪽으로 나와 우리 앞의 저 산등성이를 
넘어 달려올 거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먼 데서 희미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으며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그들은 요란하게 짖어대며 우리 앞의 산등성이를 타고 달리더니 우리 아래쪽 
어딘가에서 냇물을 건넜다. 그리고는 우리 뒤편의 산허리를 따라 달리다가 다시 클린치 산 쪽으로 
방향을 꺾어 이번에는 클린치 산허리를 타고 달려갔다. 우리는 그들이 짖는 소리로 그들이 클린치 
산을 가로지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반들이는 원을 죄어 가고 있는 중이야. 반들이는 이번에 저 냇물을 건넌 뒤에는 개들을 우리 
바로 앞으로 끌고 올 거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맞았다. 우리는 개들이 우리 아래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냇물을 절벅거리며 가로지르는 소리를 들었다^5,5,5^.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며 냇물을 
건너오는 가운데 할아버지는 몸을 일으키시더니 내 팔을 잡으셨다.
  "저 녀석이 왔다." 할아버지의 낮은 속삭임이 끝나자마자 눈앞에 뭔가가 어른거렸다. 냇물 둑 
위에서 자라는 버드나무 줄기 사이로 달려오는 것은 반들이었다. 그 여우는 혀를 빼물고 털복숭이 
꼬리를 덜렁거리며 종종걸음 치고 있었다. 그놈은 두 귀를 추켜세운 채 뻣뻣한 걸음새로 한가롭게 
덤불을 돌았다. 그러다 그놈은 잠시 멈추어 앞발하나를 들어 혀로 핥았다. 그리고는 계속 짖어대는 
개들 쪽을 흘끗 돌아보더니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다.
  우리 바로 아래의 냇물에는 대여섯 개의 바위들이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는데 반들이는 
바위들이 바로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둑까지 가서는 걸음을 멈추고 마치 개들이 어디까지 왔는지 
가늠해 보기라도 하듯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 등을 돌린 자세로 얌전히 
주저앉아서는 물을 내려다봤다. 냇물 표면에는 그의 붉은 모습이 어른거렸다. 개들은 점차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내 팔을 꽉 움켜쥐며 속삭이셨다. "이제부터 잘 봐라!" 반들이는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개울 둑 위에서 몸을 날려 첫번째 바위 위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잠시 그대로 서 
있더니 이윽고 그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음 바위로 건너가 춤을 추고, 또 다음 
바위 위로 건너가 춤을 추고^5,5,5^ 그렇게 해서 그는 냇물 중간쯤에 있는 마지막 바위에까지 
이르렀다.
  그때 그놈은 다시 아까와 정반대 순서로 바위들을 하나하나 건너뛰어 냇물둑에 가장 가까운 
바위에까지 왔다. 그리고는 바위 위에 멈추어 선 채 다시 귀를 기울이다가 이윽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 냇물을 절벅거리며 달려갔으며 결국에는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여우는 
정확히 시간을 가늠한 게 분명했다. 그것이 사라져 버리자마자 바로 개들이 모습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퍼렁이가 땅바닥에 코를 박은 채 맨 앞에서 달려왔다. 그리고 리핏이 퍼렁이 바로 뒤에서 
퍼렁이를 재촉하고 있었으며 그 뒤로 베스와 꼬마 빨강이가 나란히 달려오고 있었다. 이따금씩 그 
중의 한 마리가 코를 허공이 치켜들고는 "우워어어어어어어!"하고 울부짖어 듣는 이의 피를 뛰게 
하곤 했다.
  이윽고 그들은 개울 속에 자리잡은 바위들 있는 데까지 왔다. 퍼렁인는 결코 멈추는 법이 없어 
곧바로 바위 위로 뛰어내려 하나하나 건너뛰기 시작했으며 다른 개들은 곧 그의 뒤를 따랐다.
  개들이 냇물 중간즘에 있는 마지막 바위 위에 이르렀을 때 퍼렁이는 걸음을 멈추었지만 리핏은 
참지 못했다. 그놈은 여우가 냇물을 건넌 게 분명하다는 듯이 주저하지 않고 냇물 속으로 뛰어들어 
반대편 둑을 향해 헤엄쳐가기 시작했다. 베스 역시 리핏의 뒤를 따라 물에 뛰어들어 헤엄쳐갔다.
  퍼렁이는 허공에 코를 치켜들고 연신 코를 큼큼거리기 시작했으며 꼬마 빨강이는 퍼렁이 곁에 
얌전히 머물러 있었다. 잠시 후 퍼렁이와 꼬마 빨강이는 바위들을 되짚어 하나하나 건너뛰어 왔다. 
우리가 있는 쪽의 둑 위에 이른 뒤 퍼렁이가 앞장서서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고 꼬마 빨강이는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퍼렁이는 냄새로 반들이의 자취를 찾아내고는 길고도 우렁찬 울음을 
토해냈으며 꼬마 빨강이도 그에 합세했다.
  한편 퍼렁이가 반들이의 자취를 찾아내기 전, 베스는 건너편 둑으로 헤엄쳐가다가 말고 
되돌아왔고 이미 건너편 둑 위로 오른 리핏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둑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난리를 쳤었다. 그 녀석은 연신 낑낑거리거나 캥캥대면서 코를 땅에 박고 분주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는 퍼렁이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자 냅다 냇물 속으로 뛰어들어 온 사방에 물보라를 
날리며 죽을둥 살둥 헤엄을 쳐 다시 이쪽 둑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물을 털어낼 사이도 없이 
미친 듯이 다른 개들을 쫓아갔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 꼴이 너무나 우스워 대굴대굴 굴렀으며 그 바람에 나는 내 몸을 지탱해 
주는, 발판으로 삼고 있던 어린 소나무 줄기에서 미끄러져 그만 도꼬마리 덤불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그 구덩이 속에서 기어나왔으며 할아버지는 내 머리에 
달라붙은 도깨비 바늘을 하나하나 떼어 주셨다. 헌데 우리는 그 와중에서도 연신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할아버지는 반들이가 그런 장난을 하리라는 걸 이미 "알고" 계셨으며 할아버지가 그곳에 자리를 
잡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반들이는 틀림없이 가까운 곳에 숨어 개들이 하는 
짓을 지켜 보았을 거라고 하셨다.
  반들이가 한참을 기다리면서까지 개들의 접근을 허용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자기 
냄새가 바위 위에 생생하게 배어 있는동안에 개들이 달려와 그 짙은 냄새를 맡음으로써 흥분한 
나머지 학오를 일츠키게 하자는 속셈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헌데 리핏과 베스에게는 그런 계산이 
순순히 먹혀들어갔지만 퍼렁이와 꼬마 빨강이한테는 통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과거에 이와 비슷한 경우들을 무수히 목격했었다고 말씀하셨다. 즉 사람들의 
분별력이 감정에 져, 늙은 리핏과 마찬가지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 같은 것을. 내 
마음에도 사람이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날이 꽤 
밝아온 뒤에야 비로소 나는 아침이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아버지와 나는 냇물 둑 
위의 빈터로 내려가 시큼한 비스킷과 고기를 먹었다. 개들이 짖는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그것들이 우리 앞의 산등성이를 따라 달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해가 산 위로 솟아올라 냇물 건너편의 숲은 환하게 비췄으며 그 바람에 굴뚝새와 홍관조들도 
깨어 일어났다.
  할아버지는, 칼로 삼나무 껍질을 벗겨내고 그 껍질의 한끝을 구부려 국자를 만드셨다. 우리는 
그걸 사용해 차가운 냇물을 떠마셨다. 냇물이 어찌나 맑은지 바닥에 깔린 자갈들이 손에 잡힐 듯이 
선명했다. 삼나무 맛이 섞인 물이 내 허기를 자극했지만 이미 비스킷은 다 먹은 뒤였다.
  할아버지는 늙은 반들이가 이번에는 건너편 개울 둑 위에 나타날 "성싶으니" 그 녀석을 다시 
보려면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개미들이 내 발을 타고 올라와 그걸 털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음에도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도 내 발목 위의 개미 떼를 
발견하시고는 조용히 털어 버리면 반들이도 눈치채지 못할 테니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따랐다.
  잠시 후 개울 아래쪽에서 다시 개 짖는 소리들이 들리더니 이어서 건너편 둑위에서 혀를 쑥 빼문 
채 유유자적하게 달리는 반들이를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나직하게 휘파람을 불자 반들이는 
우뚝 서서 맞은편 둑 위에 앉아 있는 우리를 노려봤다. 그놈은 마치 우리에게 히쭉이 웃어 
주기라도 하듯 눈을 가늘게 뚜고 잠시 그렇게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 흥, 하고 콧방귀를 한번 
뀌더니 잰걸음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할아버지는 그 녀석이 자기한테 온갖 고생을 다 시킨다고 삐져서 저러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제가 자초해 놓고 그러니 우스운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여우가 "서로 교대로 추적을 따돌린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신은 
그걸 직접 목격했다고 하셨다. 여러 해 전 할아버지는 개들에게 여우의 뒤를 쫓게 하고는 탁 트인 
풀밭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 위에 앉아 계셨었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에 붉은 여우 한 
마리가 달려오더니 구멍 뚫린 어떤 나무 앞에서 가볍게 캥 짖었다. 그러자 그 나무 구멍에서 또 
다른 여우가 튀어나왔으며 먼저번 놈은 재빨리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두번째 여우는 
멀찌감치서 달려오는 개들을 유인하듯 슬슬 도망쳤다. 할아버지가 그 나무 가까이에 다가가자니까 
그 여우가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 나무 바로 곁으로 사냥개들이 요란하게 짖으면서 
달려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 여우는 너무나 자신만만하여 개들이 오건말건 아^36^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이윽고 퍼렁이와 다른 개들도 건너편 둑 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은 한층 더 요란하게 
짖어댔다^5,5,5^. 공기 중에 아직 여우의 체취가 생생하게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 잠시 후에 개들 중의 한 목소리가 유난히 돌출하면서 요란하게 짖어대고 
또 길게 허공을 찢는 소리를 냈다.
  할아버지는 투덜거리셨다. "저 빌어먹을 놈의 자식! 리핏이란 놈이 또 반들이의 자취를 찾은 
것처럼 속임수를 쓰려고 하구 있는 거다. 거 혼자 멋대로 뛰어가다 길을 잃고서 말야." 산골에서는 
그런 개를 "사기꾼 개"라고 부른다.
  할아버지는 소리를 질러 리핏을 우리 있는 데로 오게 하자고 하셨다. 이것은 여우몰이를 그만 
끝내자는 뜻이었다. 리핏을 부르면 다른 개들도 우리 있는 데로 되돌아올 테니까.
  할아버지의 길게 외치는 소리는 요들과 아주 비슷했다. 나도 할아버지의 흉내를 내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만하면 괜찮은 편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윽고 개들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리핏은 제가 한 짓 때문에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그 개는 
다른 개들 맨 뒤편에 처져 비실거리며 다가왔다. 제가 한 짓을 눈치채지 못한 채 지나쳐 줬으면 
하고 바라는 꼴이 역력했다. 할아버지는 그 녀석은 기가 죽어도 싸다며, 이번 일을 통해 속임수를 
쓰다가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게 된다는 걸 그 녀석이 깨우치게 되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내 
마음에도 그 정도면 벌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하늘에 걸린 골짜기"를 벗어나 "좁은 길"로 들어섰을 때는 벌서 해가 약간 기울어 
시간이 오후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개들이 발을 질질 끌면서 걷는 걸 보고 나는 그들이 몹시 
지쳤다는 걸 알았다. 그 점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 역시 지쳐서 천천히 걸으셨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할아버지를 쫓아가느라 꽤나 혼났으리라.
  우리가 오두막의 빈 터와 할머니의 모습이 시야에 보이는 곳까지 이른 것은 해거름녘이 다 
되었을 때였다. 할머니는 우리를 마중하러 산길로 올라오셨다. 나는 집에까지 갈 힘이 있는데도 
할머니는 굳이 만류하시며 한 팔로 나를 들쳐업으시고는 다른 한 팔로는 할아버지의 허리를 
감싸안으셨다. 나는 어지간히 기진맥신했던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들쳐업으시자마자 할머니의 등에 
얼굴을 대고 그대로 곯아떨어져 언제, 오두막에 들어갔는지도 모르고 내처 잤으니까. 
  @[  아이 킨 예, 보니비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볼 때 나나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말주변이 없었고 말에 대한 감각이 
둔했었지 않았나 싶다. 할아버지의 경우에 예외가 있다면 산이나 짐승들이나 날씨 등에 관해 
말씀하실 때 정도라고나 할까. 헌데 낱말 뜻이라든가 책에 관해서 논란이 빚어질 때면 나나 
할아버지는 최종적인 판단은 으레 할머니께 맡겼으며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맵시있게 교통정리를 
해주시곤 했다.
  일테면 어떤 부인이 우리에게 방향을 물었던 경우 같은 것이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읍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짐이 꽤 많았었다. 특히 책만 한짐이라 우리는 
그걸 나눠 들었다. 할아버지는 책이 너무 많다고 투덜대셨다. 그리고 달마다 도서관 사서가 너무나 
많은 책들을 안겨주는 바람에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머릿속에서 마구 뒤엉켜 적잖이 혼란을 
안겨 준다고 불평하셨다.
  그 전달 할아버지는, 알렉산더 대왕이 대륙회의(미국이 독립하기 이년 전에 미국 각 주의 
대표들이 모여 영국에 대한 대책을 협의한 회의. 이때 독립선언문도 채택했다: 옮긴이)에서 
금융계의 거물들의 편을 들어 제퍼슨 씨를 찍어 누르려 했다고 주장하셨었다. 이에 할머니는 그 
당시 알렉산더 대왕은 정치활동에 참여하지도 않았거니와 실은 그 당시에 살아 있지도 않았다고 
설명해 주셨다. 그럼에도 할아버지의 그런 생각은 변할 줄을 몰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부득불 알렉산더 대왕에 관한 책을 다시 한번 빌려와야 했다.
  할아버지도 그 책을 가져오면 할머니의 말씀이 옳다는 게 밝혀지리라는 것쯤은 알고 계셨다. 
그리고 나 역시도 책의 내용에 관해 실랑이가 벌어졌을 때 할머니가 틀려 본 적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늘 우리 마음 한구석에는 할머니가 언제나 옳다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러한 혼란은 세상에 책이 너무 많아진 탓에서 온 것이라는 생각을 굽히지 않으셨다. 
내가 보기에도 그건 일리있는 생각 같았다.
  어쨌든, 그날 나는 석유 깡통과 셰익스피어 씨의 책 한 권과 사전 한 권을 들었었고, 할아버지는 
나머지 책 모두와 커피 깡통 하나를 들고 걸으셨다. 할머니는 커피를 좋아했으며, 나와 할아버지는 
우리가 알렉산더 대왕에 얽힌 문제를 푸는 데 그 커피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는 
한 달 내내 집안의 온갖 잡다한 일들에 신경을 쓰시느라 좀처럼 한가롭게 쉴 틈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가 집으로 향하고 있었을 때 커다란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우리 곁으로 다가오더니 
멈추었다. 나는 그렇게 큰 승용차는 생전 처음 봤다. 그 차 안에는 부인 두 사람과 신사 두 사람이 
타고 있었으며 그 차의 유리는 문짝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차 유리창이 문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것은 나나 할아버지나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인 하나가 
손잡이를 돌려 차창을 내리는 광경을 유심히 지켜봤다. 나중에 할아버지는, 차 곁에 붙어서서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문짝에 좁은 홈이 패여 있어서 그 홈을 타고 유리가 미끄러져 내려가게 되어 
있더라고 하셨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걸 못 봤는데 그건 내 키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화사한 옷차림을 한 그 부인은 손가락에 여러 개의 반지를 끼고 있었고 양쪽 귀에는 커다란 
귀걸이를 달고 있었다.
  "채터누가(테네시 주 남부에 위치한 큰 도시: 옮긴이)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하죠?" 그 차의 
엔진소리는 아주 작고 부드러워 그녀의 말소리를 듣는 데 아무런 지장도 주지 않았다.
  남이 말을 걸 때는 정중하게 응대하고 또 상대방의 말에 주의깊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평소 지론이었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대답하시기에 앞서 먼저 커피 깡통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책들을 먼지 묻지 않게 그 깡통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으셨다. 나도 석유깡통을 바닥에 
내려놨다. 그런 다음 할아버지는 모자를 들어올려 부인에게 인사를 했는데 그게 오히려 그 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한 모양인지 그녀는 빽 소리를 질렀다. "채터누가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잖아요! 귀머거린가요?"
  할아버지가 대답하셨다. "아닙니다 부인, 듣는 데 아무 지장 없고 또 오늘 저는 아주 건강합니다. 
부인은 어떠십니까?" 이건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서 기분이나 
건강이 어떠냐고 묻는 건 세상에서 널리 통용되는 관습이었으니까. 헌데도 이렇게 정중하게 예의를 
갖춘 데 대해서 그녀가 신경질을 내는 것에 나나 할아버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헌데 그녀의 
어떤 점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녀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기 때문에 
우리는 저 여자가 좀 괴상한 여자인가 보다 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녀는 다시 더 크게 소리질렀다. "채터누가로 가는 길을 알려달라는데 뭘 그렇게 뜸을 들여요? 
알려줄 거^36^예요 말 거^36^예요?"
  "말씀드려야죠."
  "그럼 빨리 말해요!"
  "에^5,5,5^ 우선, 댁들은 방향을 잘못 잡았어요. 그건 동쪽입니다. 서쪽으로 가야죠. 헌데 곧장 
서쪽으로 가서는 안 되고, 북쪽으로 약간 치우친 방향으로 가야지요. 저기 저 산등성이 
너머거든요^5,5,5^ 내 말대로만 가면 바로 그리로 가게 됩니다." 할아버지는 다시 당신의 모자를 
살짝 들었다 놓은 다음 짐을 들기 위해 허리를 굽히셨다.
  헌데 그녀는 이제 창밖으로 고개를 빼고 소리질렀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도대체 어느 길을 
따라가란 소리죠?"
  할아버지는 놀라서 몸을 일으켜 세우셨다. "어느 길이든 간에 서쪽으로 가는 길이면 다 됩니다, 
부인. 북쪽으로 살짝 치우친 서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만 염두에 두고서."
  "당신들은 뭐하는 사람들이죠? 외국인들인가요?" 그녀가 소리쳤다. 이 말에 할아버지는 멍한 
표정이 되셨고 나 역시 그랬다. 나는 그런 말은 생전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도 역시 
그러셨으리라 짐작된다. 할아버지는 한동안 멀거니 부인의 얼굴만 쳐다보시다가 이윽고 확고한 
어조로 대답하셨다. "그런 것 같소이다."
  그 큰 차는 출발했다. 헌데 그것은 아까 가던 방향으로 계속 달려갔다. 그건 동쪽이라 그 차는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셨다. 그러면서 칠십 평생에 미친 
사람들을 여럿 보았는데 저 여자도 그 사람들 못지않게 미쳤다고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 
여자가 정치가같이 보이지 않느냐고 여쭤 봤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여자 정치가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지만 정치가의 아내일 수 는 있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차바퀴 자국이 패인 길로 들어섰다. 읍내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이 정도 오면 
늘 할아버지께 물어 볼 거리를 찾아내려고 애쓰곤 했다. 누가 말을 걸면 할아버지는 상대방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으레 걸음을 멈추곤 하셨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무렵 내 머리 꼭대기가 겨우 할아버지 무릎보다 약간 높은 정도였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나는 내 또래(대여섯 살)보다도 키가 작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 할아버지를 따라다닐 
때는 항시 종종걸음을 쳐야 할 수밖에.
  이때 나는 다리에 힘이 빠져 한참 뒤처져서 쫓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고함치듯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할아버지, 채터누가에 가보신 적 있어요?"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추셨다. "아아니, 하지만 거의 갈 뻔한 적은 한번 있었지." 나는 얼른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내 석유 깡통을 바닥에 내려놨다.
  "이십 년 전쯤^5,5,5^ 아니 삼십 년은 족히 되었을 게다. 그 무렵 에노크라는 삼촌 한 분이 
계셨지. 우리 아버지 형제들 중 제일 막내. 헌데 이 양반이 나이가 들어서 술만 마셨다 하면 
술기운에 가끔 정신없이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니시는 버릇이 생겼어. 한번은 에노크 삼촌이 
사라졌는데 우리는 으레 혼자서 어디를 쏘다니시다 우리가 사는 산골로 다시 돌아오시려니 했지. 
그런데 이번에는 삼사 주일이 지나도록 종적이 묘연하신 거야. 그래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붙잡고 물어봤지. 그러던 중 삼촌이 채터누가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누가 전해 
주더구나. 그래 내가 가서 삼촌을 빼내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을 떠나려니까 삼촌이 우리 
오두막으로 쑥 들어오시는 거야."
  할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추시고서 그때 일을 회상하다 말고 갑자기 웃기 시작하셨다. "헌데 
삼촌은 맨발인 데다가 몸에 걸치고 있는 거라곤 낡고 흐늘흐늘한 바지 하나뿐이셨어, 그것도 
움켜쥐고 있지 않으면 그냥 흘러내리게 되어 있어서 한 손으로 꽉 붙잡으신 채로 말이야. 꼭 
멧돼지란 놈한테 정신없이 쫓기다 온 사람 같더군^5,5,5^ 몸 여기저기에 마구 긁히고 까진 상처가 
있는 것이. 알고 보니 저 산들을 넘어 오느라 그렇게 되셨던 거야." 할아버지는 웃음을 그치셨다. 
나는 다리가 아파 석유 깡통에 걸터앉았다.
  "에노크 삼촌은 술에 만취한 탓으로 어떻게 해서 채터누가까지 가게 됐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더구나. 그냥 눈을 뜨고 보니까 당신이 어떤 방 안에서 두 여자와 한 침대 안에 
들어가 있더래. 그래 깜짝 놀라서 그 여자들 사이에서 빠져나오려는데 느닷없이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몸집이 거대한 사내 하나가 뛰어들어오더라는 거야. 그 사내는 한 여자는 자기 마누라요, 
또 한여자는 자기 여동생이라고 하면서 미친듯이 흥분하더래. 에노크 삼촌은 자기도 모르게 한 
가족 전체와 한 방 안에서 뒤얽히게 된 거야.
  그 순간 여자들도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삼촌더러 그자에게 돈을 집어 주라고 소리치더래. 그 
녀석도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그래서 삼촌은 바지를 찾으려고 정신없이 여기저기를 
찾아보셨대. 주머니에 돈이 있을지는 의심스러웠지만 칼이 들어 있다는 건 알고 계셨거든. 그 거인 
녀석이 꼭 무슨 일을 벌일 것처럼 설쳐댔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바지는 눈에 띄지 않고 
거기서 달리 무사히 빠져나갈 방도도 떠오르지 않고 그래서 알몸인 상태로 냅다 창문으로 달려가 
뛰어내려 버리셨대. 헌데 일이 꼬이느라고 그랬는지 그 방은 일층이 아니고 이층이어서 자갈과 
굵직한 돌멩이 투성이인 마당에 큰 대자로 나가떨어지셨더란다. 삼촌의 몸에 난 상처자국들은 
그래서 생긴 거야.
  삼촌은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는데 다행히도 뛰어내릴 때 창 가리개를 붙잡은 
상태에서 떨어지셨대. 그래 그걸로 당신의 부끄러운 데를 가리고서 어두워질 때까지 아무데나 숨어 
계시려고 했더란다. 근데 난감하게도 숨을 곳이 전혀 눈에 띄질 않는 거야. 그래서 별수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시다가 우연히 한 무리의 사람들 틈에 끼어들었대요. 근데 삼촌 말씀에 의할 것 
같으면 그 사람들이 도무지 예의라고는 없는 사람들인 것 같아서 다시 다른 곳으로 뛰려고 
하셨더란다. 헌데 결국 거기서 삼촌은 법(경찰 등을 말함: 옮긴이)한테 잡혀 그 길로 감옥으로 
들어가셨대.
  이튿날이 되자 그 사람들은 삼촌에게 옷 한벌과 엄청나게 큰 구두 한 켤레를 주고는 몇 녀석들과 
함께 거리를 쓸라고 내보내더라는 거야. 헌데 열 명도 안 되는 숫자가 죽어라고 쓴다 해도 도무지 
시내가 깨끗해질 것 같지 않더라는구나. 쓸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내버리니까. 그래 삼촌은 가망 없는 일을 하고 있지 말고 튀어 버리자고 결심하고는 기회가 
오자마자 냅다 도망쳐 버리셨대. 근데 도망칠 때 어떤 녀석이 윗도리를 붙잡고 늘어지길래 그걸 
벗어던지고, 또 잘 맞지 않던 신발도 없어던져 버리고 바지자락만 꼭 움켜쥐고 도망치셨대요. 
삼촌은 어느 숲속으로 들어가 어두워질 때까지 숨어 계시다가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잡아 곧바로 
집을 향해 걷기 시작하셨대. 근데 저 산들을 넘는데 꼬박 삼 주일이 걸렸다는구나. 그 동안 삼촌은 
멧돼지처럼 도토리와 히코 열매로만 배를 채우셨대요. 그런 뒤 에노크 삼촌의 고약한 술버릇은 싹 
없어져 버렸어^5,5,5^. 내가 아는 한 그 뒤로 어느 읍내든 간에 읍내라고 하는 데는 전혀 발을 
들여놓지도 않으셨고. 일체 발을 끊어 버리신 거야. 나는 채터누가에 가본 적도 없지만 앞으로 
가볼 생각도 없다."
  나도 결코 채터누가에는 가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그날 밤, 저녁 먹는 자리에서 나는 얼핏 생각이 떠올라 할머니한테 여쭤봤다. "할머니, 
외국인이란 게 뭐^36^예요?"
  할아버지는 문득 수저질을 멈추셨다. 시선은 접시에다만 고정시킨 채. 할머니는 먼저 나를 
쳐다보셨다간 다시 할아버지를 쳐다보셨다. 할머니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음^5,5,5^ 외국인이란 
자기가 태어난 고장이 아닌, 낯선 곳에 와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지."
  "할아버지는 우리를 외국인으로 생각하신다고 그랬어요." 이 말과 함께 나는 큰 차에 탄 부인이 
우리에게 외국인들이냐는 질문을 던지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할머니께 자세히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접시를 뒤로 밀어 놓으셨다. (어쨌든 우리는 그 길 근처에서 태어난 게 아니니가 
그곳에서는 외국인이 되는 거지 뭐. 어쨌든 그 말 역시 없어도 상관없는 망할 놈의 할아버지는 
할머니 앞에서는 항시 '쌍놈의'라는 표현 대신 이 '망할 놈의'라는 표현을 쓰곤 하셨다) 말 중의 
하나라구. 항상 얘기하지만 이 세상에는 말들이 쓸데없이 너무 많은 게 탈이야."
  할머니는 옳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말에 관한 논쟁에 휩쓸려 
들어가기를 원치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때로 문법에 어긋난 어법을 사용하시면서도 끝까지 당신이 
옳다고 주장하시곤 했으니까. 이럴 때는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말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면 골치아픈 일들도 월씬 더 
줄어들었을 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한테만 살짝, 이 세상에는 말썽을 불러 일으키는 것 말고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들을 만들어 내는 똥같은 자식들이 늘 있기 마련이라고 하셨는데, 내 
생각에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옳은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말의 의미보다는 "소리"를 더 높이 
치셨다. 다시 말해 어떤 말이 어떤 의미를 지녔느냐보다는 그 말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었느냐에 
더 관심이 있으셨다. 할아버지는 서로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도 음악 "소리"를 들을 때는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그 말씀이 옳다고 수긍하셨다. 그분들이야말로 
말뜻보다는 말소리에 의해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분들이셨으니까.
  할머니의 이름은 보니비였다. 나는 어느 날 밤 늦게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아이 킨 예, 보니비 
I kin ye, Bonnie Bee. (여기서 kin은 이들 두 사람끼리만 뜻이 통하는 동사며 ye는 '당신'을 
뜻하는 말이다: 옮긴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서 그걸 알았다. 이 말은 그 속에 담겨진 
느낌으로 봐서 "당신을 사랑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말씀하실 때 곧잘 "두 유 킨 미, 웨일즈?"라고 묻곤 하셨으며 이에 
대해 할아버지는 "아이 킨 예"라고 대답하곤 하셨는데 이때의 킨은 '이해한다'는 뜻으로 
할아버지의 말씀을 달리 표현한다면 "무슨 말인지 알겠어"라는 것이 되었다. 그분들에게 있어 
사랑과 이해는 같은 뜻을 담고 있었다. 할머니는 곧잘, 이해할 수 없다면 사랑할 수도 없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를 사랑할 수도 없으며, 또 신을 이해할 수 없다면 
신을 사랑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를 이해하셨고 따라서 서로를 사랑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해가 갈수록 
그 이해의 도가 더욱 깊어져 간다고 하셨으며, 그러한 이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이해의 개념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그분들은 그러한 이해의 상태를 
"킨"이라는 말로 표현하셨다.
  할아버지는, 옛날에는 "킨폭스kinfolks(혈족, 동족, 친척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옮긴이)"라는 
말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으며,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뜻했다고 
말씀하셨다. 헌데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되다 보니 그 뜻이 그저 피를 나눈 사람들이라는 정도의 
뜻으로 격하되었지만 그건 절대로 친척을 의미하는 정도의 하찮은 뜻을 담은 말이 아니라고 
하셨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의 아버지, 즉 나의 증조 할아버지 집에는 증조 할아버지의 친구 
한 분이 하릴없이 찾아와 빈들거리곤 했다고 한다. 그는 쿤 잭이라고 하는 늙은 체로키였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가 쿤 잭의 어느 면을 좋아하여 함께 어울리시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분들은 어느 골짜기 입구에 자리잡은 조그만 교회의 예배식에 심심하면 한번씩 참석하시곤 
했다. 그러던 중 어느 일요일 신앙간증 때에 조그만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이 신앙간증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이 자기에게 찾아왔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자기 죄를 고백하고 자신이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증언하는 것을 뜻했다.
  헌데 바로 이 시간이 되었을 때 쿤 잭이 벌떡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 있는 
어떤 사람들이 내 등뒤에서 내 얘기를 소근거린다는 얘기를 들었소. 난 나도 그걸 알고 있다는 걸 
분명히 얘기하고 싶어서 이렇게 일어났소이다. 난 그 사람들이 뭣 때문에 그러는 가 잘 압니다. 
집사회의에서 나한테 찬송가책을 넣어두는 상자의 열쇠를 맡긴 것 때문에 시기해서 그러는 거요. 
아무튼 여기서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만일 그게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분명히 
이야기하시오. 바로 이 자리에서 해결해 주겠소."
  그러면서 쿤 잭은 사슴가죽 셔츠를 들어올려 권총 손잡이를 보여 주고는 어서 빨리 나오라는 
듯이 마구 발을 굴렀다.
  그때 교회당 안은 증조 할아버지를 바롯하여 거칠고 사나운 사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사람들은 날씨만 좀 이상해도 쉽게 총을 뽑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헌데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바로 이때 증조 할아버지께서 일어나셔서 입을 여셨다. "쿤 잭,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네가 이제까지 찬송가 상자 열쇠를 아주 잘 관리해 왔다고 해서 모두들 자네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보다도 잘해 왔다고 말일세. 헌데 자네가 어떤 사람의 말을 곡해하여 
기분 나빠한다면 여기 계시는 모든 분들이 가슴 아파할 거라는 점을 감히 말하고 싶네."
  증조 할아버지의 이 말씀에 쿤 잭은 마음이 누그러져서 조용히 제자리에 앉았으며 그곳에 있던 
다른 모든 사람들도 쿤 잭 못지않게 흡족한 기분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할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께, 쿤 잭이 그런 말을 하고도 그렇게 무사히 
넘어갈 수가 있었던 것이 이상하다, 그리고 쿤 잭이 찬송가 상자 열쇠 같은 하찮은 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게 좀 우스워 보인다고 말했다 한다. 그러자 증조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얘야, 쿤 잭을 비웃으면 안된다. 너도 알다시피 쿤 잭이 어렸을 때 
우리 체로키들은 정든 고향에서 쫓겨나 각처로 흩어져 버렸다. 그래서 쿤 잭은 이 산악지대에 
숨어지내면서 계속 백인들과 싸움을 했단다. 그러다 남북전쟁이 벌어지자 그는 정부와 싸워 땅과 
집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지. 그래서 그는 열심히 싸웠다. 하지만 그는 두 차례의 싸움에서 
모두 졌다. 그리고 남북전쟁이 끝나자 정치가들이 들어와 그나마 남은 우리 땅마저 빼앗으려고 
했단다. 그러자 그는 싸우다가 달아나서 숨고, 다시 싸우고 하는 일을 거듭했다. 결국 쿤 잭은 
평생을 싸우면서 살아온 사람이라 할 수 있지. 지금 그 사람에게 남은 거라곤 그 찬송가 상자 열쇠 
하나밖에 없다. 쿤 잭이 심술궂고 싸움이나 일삼는 사람처럼 보인다면^5,5,5^. 글쎄 그건 그 
사람에게 달리 싸울 거리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일게다. 그 사람은 싸움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할아버지는 그때 쿤 잭 때문에 거의 울 뻔하셨다고 했다. 그 후로 할아버지는 쿤 잭이 무슨 말을 
하건, 무슨 행동을 하건 개의치 않고^5,5,5^ 그분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분을 이해했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야말로 "킨"이며 사람들 사이에 큰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은 바로 사람들 
서로가 이러한 사이가 되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정치가들이야말로 "킨"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들이요, 이런 말썽거리를 불러일으키는 원흉들이라 말씀하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킨"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으며 나 역시 쿤 잭 때문에 
울고 싶은 심경이 되었다. 
  @[  네 뿌리를 알아야 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네가 과거를 모른다면 네게는 미래도 없으며, 네 조상들이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면 제 종족이 어디로 갈지도 모르게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나에게 우리의 과거를 
알려주고 싶어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에게 그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정부군이 들어온 얘기, 체로키들이 그 비옥한 골짜기들을 경작하던 얘기, 땅에 생명의 씨앗을 
심는 봄철에 짝짓기 춤을 추던 얘기, 수사슴과 암사슴이나 수탉과 암탉이 언제 발정이 나서 서로를 
미친듯이 찾아다니는가 하는 얘기 등등을.
  서리가 호박을 노랗게, 감을 빨갛게 물들이고 옥수수 알을 단단히 영글게 하는 계절이 되면 
체로키 족들이 사는 모든 마을에서는 추수 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들은 겨울 사냥 
채비를 했으며 하늘의 이치를 따르겠다는 맹세를 했다.
  그들이 그렇게 평화롭게 살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정부군이 들어와서는 그들에게 종이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 그것이 새로운 백인 정착민들에게 체로키 족들이 사는 어느어느 지역에는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어디어디에 정착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문서라고 하면서.
  이 서류에 체로키 족들이 서명을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많은 숫자의 정부군들이 길다란 
대검을 꽂은 총들로 무장을 한 채 다시 찾아왔다. 그 군인들은 서류에 적힌 내용이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그 내용인즉슨 이제 체로키 족들은 자기네가 살던 골짜기와 집과 산들을 몽땅 내주고 
해가 지는 쪽으로 멀리멀리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가 체로키 족들을 위해 마련한 다른 땅, 
백인들은 원치 않는 머나먼 땅으로.
  그들은 총칼로 체로키 족들이 사는 커다란 골짜기를 에워싸서 밤만 되면 골짜기를 빙 둘러싼 
그들의 모닥불이 보였다. 그들은 그 골짜기 안에 체로키 사람들을 가둬 두었다. 그리고 다른 
산악지대나 골짜기들에서도 체로키 사람들을 짐승 떼처럼 몰고와 자신들이 포위하고 있는 이 
골짜기 속에 한데 모이게 했다.
  한참 시간이 경과된 끝에 거의 모든 체로키 사람들을 그 골자기 안에 모은 그들은 노새와 
수레들을 가져다 주면서 체로키 사람들에게 해가 지는 땅으로 갈 때 그걸 타고 가도 좋다고 했다. 
이제 체로키 사람들은 빈 껍질뿐인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군인들이 준 수레를 타지 
않음으로써 무언가 소중한 걸 지킬 수 있었다. 그건 볼 수도, 입을 수도, 먹을 수도 없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걸 지켜냈다. 그들은 수레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갔다.
  말을 탄 정부측 군인들 역시 그들과 함께 갔는데 군인들이 그들의 앞뒤, 그리고 양 옆을 
호위하여 체로키 사람들은 마치 군인들에 의해 포위된 형국이었다. 체로키 사내들은 똑바로 앞만 
보고 걸을 뿐 땅바닥을 내려다보지도 군인들은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체로키 여자들과 아이들 역시 
곁눈질 한번 하지 않은 채 앞선 어른 남자들만을 묵묵히 따라갔다.
  그들의 한참 뒤편에서는 하등 쓸모가 없어진 빈 수레들이 요란하게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뒤따라왔다. 체로키 사람들은 그깟 수레 때문에 영혼까지 빼앗기지는 않았다. 비록 땅과 집은 
빼앗겼지만 말이다.
  백인들이 사는 마을을 지나칠 때마다 백인들은 체로키 사람들이 지나가는 광경을 보기 위해 
길가로 나와 섰다. 그들은 체로키 사람들이 수레를 타지 않고 걸어가는 광경을 보고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그러나 체로키 사람들이 그들의 비웃음에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꼿꼿하게 걸어가자 
그들의 웃음소리는 곧 사라져 버렸다.
  체로키 사람들이 자기네가 살던 산악지대로부터 점차 멀어져 가면서 하나둘씩 죽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영혼은 죽지도 약해지지도 않았다. 죽는 것은 아주 어린 아이나 아주 
늙은 이들, 그리고 병자들 뿐이었다.
  처음에 군인들은 시신이 나올 때마다 파묻을 시간을 주기 위해 제자리에 멈추어 줬다. 그러나 
나중에 가서는 하나둘이 죽는 정도가 아니라 몇백, 몇천이 연속해서 죽어 넘어지자 그대로 
행군했다. 나중의 이야기지만 결국 이 수난의 길에서 전체 체로키 족들의 삼 분의 일 이상이 
사망했다. 군인들은 한시바삐 체로키 족들의 일을 매듭짓고 싶어 겨울 사흘에 한 번식만 시신을 
매장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시체를 수레에 싣고 가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체로키 사람들은 자기네의 그 무거운 시신들을 수레에 싣지 않고 그대로 안거나 들쳐멘 채 
걸어갔다.
  어떤 어린 소년은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 죽은 자신의 누이동생을 안고 가다가 밤이 되면 
누이동생을 자기 곁에 눕힌 채 잠을 잤으며 아침이 되면 다시 누이를 두 팔로 안고 행군길에 
나서곤 했다.
  남편이 죽은 아내를, 아들이 죽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어머니가 죽은 아기를 안고 가는 참경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그들은 하나같이 죽은 이들을 안거나 업고 걸어갔다. 그들은 군인들을 
쳐다보는 일도, 그들이 지나가는 광경을 보러 길가로 나온 사람들에게 눈길을 주는 일도 없었다. 
이들의 참경을 목도한 백인들 중에는 간혹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체로키 사람들은 
울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백인들 앞에서 자기네의 영혼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레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이 길을 "눈물의 길"이라 불렀다. 그러나 자기네가 울었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붙인 
건 아니었다. 체로키 사람들은 아무도 울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눈물의 길이라는 이름이 그나마 
낭만적인 느낌을 자아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이들의 행진은 죽음의 행진이었고 
이러한 행진에 낭만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넋잃은 사람처럼 걸어가는 어머니의 품안에 안긴 채 두 눈을 퀭하게 뜨고 영원히 지지 않을 
하늘을 노려보는, 뻗뻗하게 굳은 아기 시체에서 시가 나올 수는 없는 일이다.
  밤 동안 무거운 아내의 시체를 내려놓고 그 곁에서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 다시 들쳐업는 
남편, 큰아들에게 막내의 시신을 들쳐메고 가라고 말하는 아버지에게서 노래가 나올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럴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보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두고 온 
고향산천을 기억하지도 않는 일뿐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노래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길을 눈물의 길이라 불렀다.
  모든 체로키 사람들이 다 이 길을 밟은 건 아니었다. 산생활에 익숙한 일부 사람들은 물줄기를 
따라 산골짜기 깊숙이 달아나 여자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항상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살았다.
  그들은 짐승을 잡기 위해 덫을 놓았지만 때로 군인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덫 있는 데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흙 속에서 단맛이 나는 뿌리를 캐고 도토리를 빻아 
음식으로 만들었으며 나무에서 속껍질을 벗겨내어 식용으로 썼다. 그들은 차가운 계류 둑 밑에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았으며 매사에 그림자처럼 조용히 움직였다. 그들은 존재하기는 하되 
보이지도 않고 (환상처럼 얼핏 스쳐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들리지도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네가 살고 있다는 흔적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저기서 자기네의 친구들을 찾아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 때 사람들은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땅을 탐하지도 이익을 탐하지도 않았고 오직 
체로키의 본성 그대로 산이 부여해 주는 자유만을 사랑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아버지, 즉 나의 증조 할아버지가 나중에 나의 증조 할머니가 된 자신의 
아내와 그 일가를 만난 얘기를 들려주셨다. 어느 날 증조 할아버지는 계곡을 타고 흐르는 냇물 둑 
위에서 인간이 머물다 간 희미한 자취들을 발견하셨다. 증조 할아버지는 집으로가 사슴 뒷다리 
하나를 들고 되돌아오셔서는 그 근처에다 내려놓고 그 곁에 총 한 자루와 칼 하나를 남겨두셨다. 
헌데 이튿날 그 자리로 되돌아와서 보니 사슴고기만 없어지고 총과 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인디언들이 쓰는 전투용 도끼 한 자루와 길다란 칼 하나가 놓여 있었다. 증조 
할아버지는 그것들에 손대시지 않고 다시 집으로 가셔서 옥수수 자루 여러 개를 가져와 그 곁에다 
놓아두셨다. 그리고는 그곳에 서서 오랫동안 기다리셨다.
  그들은 오후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숲 사이를 뚫고 나오다 걸음을 멈추었고, 
그러다간 다시 천천히 앞으로 전진했다. 증조 할아버지는 앞으로 두 손을 뻗으셨다. 그러자 남자, 
여자, 아이들 해서 모두 열두 명 가량 되는 그들도 앞으로 손을 뻗고 증조 할아버지께로 다가왔다. 
그리고 마침내 증조 할아버지와 그들의 손은 맞닿았다. 할머니는, 증조 할아버지와 그들 사이의 
거리가 아주 멀었는데도 그들은 줄곧 그렇게 두 손을 앞으로 뻗은 채 다가왔으며 마침내 서로 
합류했을 때는 말없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고 말씀하셨다.
  얼마 후 키가 훌쩍 자란 증조 할아버지는 그들 일가의 막내딸과 결혼하셨다. 그들은 
결혼서약으로 히코리 나무 줄기로 만든 지팡이를 함께 붙잡았으며 그것을 당신네의 오두막 안에 
두고 죽는 날가지 잘 간수하셨다. 증조 할머니는 이 혼례식 때 머리에 검은 새의 빨간 날개 깃털을 
꽂았기 때문에 나중에 붉은 날개라는 별명이 붙었다. 증조 할머니는 버들가지처럼 날씬했으며 
저녁나절만 되면 노래부르기를 즐겨 하셨다고 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증조 할아버지의 만년의 삶에 관해 말씀해 주셨다. 증조 할아버지는 늙은 
전사로서 전쟁에 참여하셨다고 한다. 증조 할아버지는 존 헌트 모건이 지휘하는 남부군 특공대에 
소속되어 머나먼 곳에 있는 "정부"라고 하는 얼굴 없는 괴물, 그의 종족과 그의 오두막을 위협한 
그 괴물과 싸우셨다.
  전쟁에서 돌아오셨을 때 증조 할아버지의 수염은 새하얘졌고 그분의 수척한 몸 전체에는 나이가 
가져다 주는 위엄있는 분위기가 배어 있었다. 헌데 겨울 바람이 당신 오두막의 갈라진 틈을 뚫고 
새어 들어오기만 하면 당신이 입은 옛상처들이 도졌다. 군도가 그분의 왼편 팔뚝을 베고 
지나갔었는데 그 강철 칼날은 푸줏간의 도끼처럼 그분의 뼈를 내리쳤었다. 다친 팔뚝의 살은 
아물었으나 골수는 통증으로 욱신거렸으며 그때마다 "정부" 사람들을 떠오르게 했다.
  증조 할아버지가 카인턱에서 부상을 입던 날 밤 그분은 젊은 병사들이 쇠꼬챙이를 불에 달구어 
상처를 지지고 피를 멈추게 하는 동안 반 조끼나 되는 독한 술을 마시면서 그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셨다. 그 일이 끝났을 때 그분은 다시 말 안장에 오르셨다고 한다.
  헌데 이보다 더 심했던 건 발목의 부상이었다. 증조 할아버지는 그 발목을 내려다보기조차 
싫어하셨다. 박격포탄의 파편이 지나가면서 짓씹어 놓아 증조 할아버지의 그곳에는 엄청나게 크고 
몰골 사나운 흉터가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전투가 한창일 당시에는 발목을 다쳤다는 것조차도 
모르셨다고 한다. 오하이오에서의 그날 밤 증조 할아버지는 사나운 격정 속에 휩싸인 
상태였으니까. 그분의 혈관 속에 맥박치는 체로키 특유의 전투적인 기질은 미친 듯한 돌격과 
더불어 점점 더 고양되어 갔다. 말이 지면을 박차고 화살처럼 나아갈 때, 바람이 그분의 얼굴을 
폭풍처럼 후려치며 지나갈 때, 그럴 때는 두려움이란 있을 수 없고 오직 터질 듯한 흥분과 
걱정뿐이었다. 폐부와 목구멍에서 날카롭고도 야성적인 인디언의 노호 소리가 터져나오게 만드는 
미칠 듯한 격정.
  무릎 밑이 날아갔는데도 그걸 모르고 말을 달렸다는 사람이 나오는 것도 다 그런 연유 
때문이었다. 그 뒤 증조 할아버지는 어떤 산골짜기의 어둠 속을 정찰하기 위해 삼십 킬로 가까이 
말을 달린 뒤에야 비로소 말안장에서 내리다가 무릎을 푹 꺾으며 주저앉으셨다. 증조 할아버지가 
발목을 내려다보시니 당신의 군화는 마치 물이 가득 들어찬 양동이처럼 피로 흥건했다는 것이다.
  증조 할아버지는 그때 적진으로 돌격하던 그 순간을 두고두고 되씹으며 즐거워하셨다. 그때의 
추억에 젖을 때면 당신의 불편한 다리나 당신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에 대한 불쾌감도 눈 녹듯 
사라지곤 했다.
  허나 가장 무서운 상처는 그분의 뱃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엉덩이 가까운 옆구리 속에. 그곳에 
박힌 납탄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쥐가 곳간을 쏠듯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분의 
배를 갉아먹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처럼 속을 파먹히고 있었으니 무사하실 리가 없었다. 결국 
사람들은 그분을 오두막 바닥에 눕히고 도살장에 눕혀진 소처럼 그분의 배를 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마취제도 쓰지 않은 채 그분에게 그 산골에서 빚은 독주를 드시게 한 연후에 그분의 
배를 가르고 뱃속에서 썩어 문드러진 살덩어리를 끄집어냈다. 증조 할아버지는 피범벅이 된 
마룻바닥 위에 누우신 채 그대로 죽어가셨다. 말씀 한마디 못하신 채. 하지만 그분이 죽음 의 
진통을 겪고 계시는 동안 여러 사람들이 그분의 팔다리를 붙잡고 늘어졌음에도 아직도 강건한 
그분의 몸은 여러 사람들의 압력을 이기고 활처럼 팽팽하게 휘어올랐으며 증오스런 정부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그 사납고 야성적인 노호가 터져나왔다. 그러다가는 서서히 돌아가셨다. 
"정부"가 그분을 죽이는 데는 꼬박 사십 년이 걸린 셈이었다.
  그분의 죽음과 더불어 피와 전투와 살륙으로 얼룩졌던 19세기도 숨을 거둬가고 있었다. 그분이 
온몸으로 부딪쳤고 그분이 열심히 파악해 보려고 하셨던 그 시대가. 이제 새로운 사람들이 
자기네의 시신을 들쳐업고 행군할 새로운 세기가 닥쳐올 것이었다. 하지만 그분은 오로지 과거, 
체로키의 과거밖에는 모르셨다.
  그분의 큰아들은 인디언 거주 지역으로 떠났으며 둘째 아들은 텍사스에거 죽었다. 그리고 이제 
붉은 날개와 막내아들만 남았다.
  그분은 사망하기 직전에도 여전히 말을 타실 수 있었으며 모건 특공대 시절의 말을 타고 다섯 칸 
울타리를 뛰어넘으실 수도 있었다. 그리고 지난날의 습관대로 덤불에 꼬리털을 남겨 추적당하지 
않도록 덤불을 지난 때마다 말고리를 추켜들고 다니게 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분의 통증은 점점 더 악화되었으며 이제 그것은 술로도 다스려지지 않았다. 오두막 
바닥에 큰 댓자로 누워 배를 갈라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으며 그분도 그걸 잘 알고 계셨다.
  그해 가을도 거의 끝나갈 무렵, 곧 그들이 살던 테네시 산속에서 날선 바람이 히코리 나무와 
상수리 나무의 마지막 이파리들을 뒤흔들던 어느 오후, 증조 할아버지는 당신이 더 이상 산을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시지 않은 채 아들과 함게 계곡을 올랐다가 중간쯤에서 걸음을 멈추셨다.
  그들은 하늘을 등지고서 앙상하게 헐벗은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산등성이의 나무들을 
한참 쳐다봤다. 마치 겨울 햇살의 기울기라도 살펴보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서로의 눈이 마주치는 
걸 애써 피했다.
  증조 할아버지는 부드럽게 웃으시며 말문을 여셨다. "네게 남겨줄 게 별로 없구나. 그 
오두막에거 찾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래야 손을 쬐기 위해 불쏘시개를 뒤적거리는 즐거움 
정도일 게야." 그분의 아들은 여전히 산쪽에만 눈길을 주면서 조용히 대답했다. "그렇겠죠."
  "너는 가족을 거느린 당당한 사내야. 네게 많은 부담을 지우진 않겠다^5,5,5^. 다만 우리가 믿는 
바를 지키는 데 필요하다면 그 누구와도 손잡는 일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내 시대는 갔다. 
그리고 앞으로 네가 맞이하게 될 시대가 어떤 시대가 될는지 난 모른다.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고^5,5,5^ 쿤 잭이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너는 빈 손으로 그 시대를 맞게 
되리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5,5,5^. 하지만 산은 변덕을 부리지 않을 게야. 또 너는 산을 잘 
이해하고 있고. 우리는 우리 감정을 속이지 않는 정직한 사람들이니까."
  "잘 알겠습니다." 아들이 말했다. 열기 없는 태양이 어느새 산등성이 뒤로 넘어갔으며 칼날처럼 
매서운 바라밍 그들의 옷깃을 파고들었다. 노인은 한참을 주저하다가 이윽고 다시 입을 떼셨다. 
"흠^5,5,5^ 그리고^5,5,5^ 난^5,5,5^ 너를^5,5,5^ 잘 이해하고 있다. I kin ye (앞장 참고: 옮긴이)."
  아들은 말없이 아버지의 앙상한 몸을 얼싸안았다. 이제 계곡에 드리워진 그늘은 한층 더 
짙어졌고 그들의 양 옆으로 치솟은 산봉우리의 윤곽선도 희미해졌다. 그들은 이렇게 얼싸안은 
자세를 풀지 않은 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인은 지팡이로 조심스럽게 지면을 두드리면서 
오두막으로 이어지는 길을 앞장서 가셨다.
  이것은 할아버지가 당신의 아버지와 나눈 마지막 대화요, 마지막 산책길이 되고 말았다. 나는 
증조 할아버지와 증조 할머니의 무덤가에 여러 번 간 일이 있었다. 그분들의 무덤은 흰 참나무들이 
솟아 있는 높은 산등성이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에는 가을만 되면 나뭇잎들이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수북하게 쌓였지만 뒤이어 닥쳐오는 겨울 바람에 모조리 날려가 버리곤 했다. 봄철이 
되면 그곳에는 가장 강인한 인디언 바이올렛들만이 지면을 뚫고 나와 자기네 시대를 가장 
험난하고도 끈질기게 살다 간 영혼들 앞에 그 작고 푸른 꽃망울을 다소곳이 드리우곤 했다.
  그분들의 무덤 앞에는 결혼 지팡이, 곧 울퉁불퉁하게 생긴 히코리 나무 지팡이가 아직도 꽂혀 
있었는데 그 표면에는 그분들이 슬픈 일이나 행복한 일이 있을 때마다, 또는 싸움 끝에 화해할 
때마다 새겨둔 눈금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그것은 그분들의 머리맡에 자리잡고서 여전히 두 
분의 영혼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었다.
  그 지팡이에는 두 분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글씨가 너무나 잘아 무릎을 꿇고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겨우 읽을 수 있었다. 두 분의 이름은 "에탄"과 "붉은 날개"였다. 
    @[  파인 빌리

  겨울이면 우리는 나뭇잎들을 져다가 옥수수밭에 뿌리곤 했다. 옥수수밭은 골자기를 거슬러 
올라가 헛간을 조금 지난 곳의 실개천 양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개울 양편의 산비탈을 
깎아내어 밭을 일구어 내신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 옥수수밭들을 "비탈밭"이라 부르셨으며 거기서 
나는 옥수수의 양은 보잘것 없었지만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그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시곤 했다. 그 
계곡 안에는 달리 밭을 만들 만한 평탄한 땅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낙엽을 모아 자루 안에 담는 일이 즐거웠다. 그건 다 채워도 그리 무겁지 않았다. 나와 
할머니, 할아버지는 서로서로 자루들을 채우는 일을 거들곤 했다. 할아버지는 대개 자루 두 개를 
메고 가셨지만 때론 세 개를 메로 가실 때도 있었다. 나는 번번이 자루 두 개를 가지고 가보려고 
했지만 얼마 못 가서 포기하곤 했다. 내 무릎 길이로 쌓인 낙엽들은 흡사 지면을 가득 덮은 갈색 
눈 같았으며 그 눈 위에는 단풍 나뭇잎의 노란빛과 가먕 옻나무나 고무나무 이파리의 붉은 빛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우리는 숲을 빠져나와 옥수수밭에다 그 이파리들을 골고루 폈다. 그 낙엽들 속에는 솔잎도 끼어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땅에 산성기를 주기 위해 솔잎을 조금 뿌려주는 건 괜찮지만 너무 많이 
줘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우리는 진력이 날 정도로 오래, 힘들여 일하는 않았다. 할아버지의 말씀마따나 우리는 으레 다른 
일에 "넋을 빼앗기곤" 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낙엽을 끌어모으시다 말고 곧잘 노란 뿌리를 찾아내 캐곤 하셨다. 그리고 그걸 
찾다보면 산삼, 개능쟁이^5,5,5^ 칼룸바^5,5,5^ 사사프라스^5,5,5^ 혹은 개불알꽃 등이 계속 눈에 
띄곤 할머니는 그 모든 식물을 한눈에 알아보셨으며 그것들은 내가 들은 온갖 질병들을 낫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할머니의 약제들은 효험이 있긴 했는데 어떤 것들은 너무나 맛이 고약해 먹기가 
좀 힘들었다.
  나와 할아버지는 흔히 히코리 열매나 밤, 도토리 등을 주웠는데 간혹 호두가 걸려들 때도 
있었다. 우리는 특별히 어떤 것을 줍겠다고 생각하고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들은 그저 
가다가 우연히 걸려드는 셈이었다. 우리는 낙엽을 나르면서 한편으로 열매와 뿌리를 줍거나 캐고, 
캔 것을 먹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구리나 딱따구리를 지켜보기도 하였으므로 자연 낙엽 나르는 
일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 어스름녘에 골짜기를 내려올 때마다 우리는 나무 열매와 식물뿌리 등속을 한아름씩 안고 
내려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안 듣게 쌍소리가 섞인 푸념을 내뱉으시며 
다음번에는 절대로 이런 하찮은 것에 "넋을 빼앗기지" 않고 오로지 낙엽 모으는 데만 
열중하겠다고 선언하시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이런 재미있는 일도 이제 끝이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하곤 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여러날 거듭 일한 덕분으로 우리는 낙엽과 솔잎으로 우리는 낙엽과 솔입으로 옥수수밭을 
골고루 덮을 수 있었다. 한 차례 가벼운 비가 와 낙엽들이 흙에 착 달라붙었을 때 할아버지는 
노새인 늙은 샘에게 쟁기를 지워 밭을 갈아엎음으로써 낙엽이 흙 속에 파묻히게 하셨다.
  할아버지가 내게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나도 쟁기질을 해볼 수 있었다. 나는 내 머리 위로 두 
손을 뻗쳐야 겨우 쟁기 손잡이를 잡을 수 있었으며 쟁기 날이 땅 속에 너무 깊이 박히지 않도록 내 
온 몸의 무게를 실어 손잡이를 당기느라 악전고투했다. 그러다 보면 너무 힘을 주어 당기는 바람에 
쟁기 날이 땅 위로 솟아 흙 위를 그냥 미끄러져 가기도 했다. 이런 난리를 치르는 와중에서도 샘은 
참을성 있게 나를 상대해 주었다. 그것은 내가 쟁기 날을 바로 꽂기 위해 쟁기 손잡이를 당기거나 
밀어부치는 동안에는 잠자코 서 있다가 내가 "이랴!" 해야만 앞으로 나아가곤 했다.
  나는, 쟁기날을 흙 속에 바로 꽂기 위해 손잡이를 밀거나 당기는 동안에는 가급적이면 턱을 쟁기 
손잡이들을 연결해 주는 가로대로부터 멀찌감치 떨어뜨리는 게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안 그러면 
손잡이를 움직이는 과정에서 턱을 사정없이 얻어맞게 되어 있으니까.
  할아버지는 나와 노새의 뒤를 멀찌감치 따라오시기는 했지만 나의 쟁기 다루는 일을 거들어 
주시지는 않았다. 원래 밭 가는 짐승을 왼편으로 돌게 하려면 "워!"하면 되고, 오른편으로 돌게 
하려면 "지!"하면 된다. 헌데 샘은 내가 "지!" 하는데도 왼편으로 돌려고 머뭇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말귀를 못 알아들어 계속 우물쭈물하기만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만 할아버지가 나서서 "지! 
지! 지! 이런 염병할 놈의 자식아! 지!"하고 호통을 치곤 했으며 그때서야 샘은 겨우 오른쪽으로 
돌곤 했다.
  헌데 문제는 샘이 과거에 이런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그냥 "지"해서는 말을 안 듣고 
할아버지가 하듯이 몇번 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거기다 "염병할 놈의 자식아!"라는 욕설까지 
섞어줘야 말을 듣게 되었다는 데 있었다. 샘은 그걸 다 듣기 전까지는 절대로 오른쪽으로 돌지 
않았다. 그 바람에 나도 쟁기질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걸핏하면 "염병할 놈의 자식아!"란 욕설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뭐 아무튼 이렇게 욕설을 하더라도 쟁기질만 잘 되면 상관없는 일이었는데 
어느 날 그만 내가 욕하는 소리를 할머니가 듣고 말았다.
  또 샘은 왼편 눈이 먼 탓으로 밭 가장자리까지 다다랐을 때는 자신이 뭔가를 들이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왼편으로 돌기를 꺼려하고 늘 오른편으로만 돌려고 했다. 따라서 쟁기질을 할 때 
밭 가장자리에서 오른편으로 돌게 하는 일은 수월했지만 왼편으로 돌게 하려면 꽤나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즉 샘을 한 바퀴 돌게 하기 위해 쟁기를 질질 끌고 밭 가장자리 너머의 
잡목 숲이나 가시덤불 속을 빙 돌아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샘은 늙고 한쪽 
눈도 먼 짐승이니 샘한테 참을성 있게 대해야 한다고 하셔서 나는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했다. 헌데 
밭 가장자리까지 가서 왼편으로 돌아야 할 때마다 나는 은근히 겁이 났다. 가시투성이인 나무딸기 
숲이 있는 곳은 돌아야 할 때는 특히 더했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왼편으로 돌기 위해 쟁기를 끌고 밭 가장자리를 타넘어 쐐기풀이 우거진 곳을 
지나시려다 썩은 나무 그루터기 구멍 속에 발을 잘못 디디신 적이 있었다. 헌데 마침 날도 따뜻한 
데다 그 구멍 속에는 말벌집이 하나 있었다. 그리하여 말벌들이 일제히 튀어나와 바지로 감싸인 
할아버지의 다리를 마구 공격했다. 이에 놀란 할아버지는 쟁기고 뭐고 다 내던지고 고함을 
지르시며 냅다 실개천 쪽으로 달아나셨다. 말벌들이 구멍 밖으로 따라나오는 걸 본 나도 후닥닥 
달아났다. 할아버지는 샘개울 속에 반즘 드러누우신 채 바짓단을 찰싹찰싹 때리며 늙은 샘한테 
마구 욕설을 퍼부으셨다. 그때 할아버지는 거의 참을성을 잃을 뻔하셨다.
  그러나 샘은 참을성 있게 묵묵히 제자리에 서서 할아버지가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헌데 골치 아픈 일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말벌들의 대군이 쟁기 근처를 계속 맴돌고 있어서 
우리의 접근을 허용치 않았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할 수 없이 밭 중간쯤에 서서 늙은 샘을 우리 
쪽으로 오게 하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소리치셨다. "어이, 이리 와, 샘. 이리 오라구." 그러나 샘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샘은 쟁기를 모로 눕힌 채 끌고 다녀서는 안 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자 할아버지는 샘에게 별별 욕을 다 퍼부으셨고 그래도 안되자 이번에는 네 
발로 엉금엉금 기면서 연신 나귀 우는 소리를 내셨다. 내가 생각하기에 할아버지의 나귀 
울음소리는 점점 진짜 나귀 울음소리와 비슷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러자 딱 한 번 샘은 두 귀를 
쫑긋 세우고 할아버지를 흘끗 쳐다봤다. 그러나 움직이지는 않았다. 나 역시도 열심히 나귀 
울음소리를 내어 봤으나 할아버지를 따라가려면 어림도 없었다. 이렇게 우리 둘이 열심히 네 발로 
기어다니며 나귀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오셨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나귀 울음소리를 
뚝 그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할아버지는 숲속으로 들어가셔서 관솔 하나를 따낸 뒤 거기다 성냥으로 불을 붙여 벌집이 있는 
구멍 속으로 던져 넣으셨다. 그러자 거기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쟁기 근처에서 맴돌던 말벌들을 
쫓아내 주었다. 그날 저녁 오두막으로 돌아온 뒤 할아버지는 늙은 샘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노새인지 아니면 가장 영리한 노새인지 도통 알 수가 없으며 이 문제는 오랫동안 할아버지를 골치 
아프게 한 수수께끼의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그건 나로서도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문제였다.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름에도 나는 옥수수밭을 가는 일을 좋아했다. 그 일을 하면서 나는 
보이지 않게 자라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할아버지를 따라 골짜기를 내려갈 때마다 내 보폭은 
조금식 넓어지는 것 같았다. 저녁 식탁에 앉을 때면 할아버지는 늘 할머니께 나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으셨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맞짱구를 쳐주셨다.
  어느 날 저녁, 우리는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개들은 서로 엉켜 장난을 치고 있을 때였다. 
그때 문득 집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와 우리 모두는 현관 밖으로 나갔다. 웬 사내 한 사람이 통나무 
다리를 건너오고 있었다. 그는 아주 인상이 좋은 사람이었으며 키는 거의 할아버지만했다. 나는 
그의 구두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건 연노랑 부츠 모양으로 운두가 높았으며 맨 윗부분은 하얀 
속가죽이 드러나게 동그랗게 말아 감쳐져 있었다. 그의 바지 맨 밑단은 구두의 하얀 속가죽 맨 
윗부분과 딱 맞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검은 반코트에 하얀 셔츠를 받쳐 입었으며 머리에는 
둥그런 챙이 달린 모자를 단정하게 쓰고 있었다. 그는 길다란 케이스 하나를 들고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를 잘 알고 계신 듯했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파인 빌리 아저씨란다." 파인 빌리는 손을 흔들었다. "들어와 쉬었다 
가게."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파인 빌리는 현관 층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지나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그가 어디로 가던중인지 궁금해졌다. 우리집 뒤에는 험준한 산밖에 없는데 말이다.
  "들어와 우리랑 같이 식사해요."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파인 빌리를 한 팔로 감사안고 
현관으로 이끌었다. 할아버지는 그의 긴 케이스를 받아 들어셨다. 우리 모두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파인 빌리를 무척이나 좋아하신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코트 주머니 속에서 맛좋게 생긴 감자 네 알을 꺼내 할머니께 건넸다. 할머니는 즉석에서 
그걸 파이로 만들어 넷으로 나눈 뒤 파인 빌리에게는 세 쪽을, 내게는 한 쪽을 주셨다. 나는 그가 
마지막 한 쪽을 남겨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파인 빌리가 식탁 위에 놓인 접시에 아직 파이 한 
쪽을 남긴 상태에서 우리는 모두 벽난로 앞으로 옯겨갔다.
  파인 빌리는 껄껄거리고 웃으며 내가 장차 할아버지보다 크겠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기분이 
흐뭇해졌다. 그는 또 할머니가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더 고와진 것 같다고 말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파인 빌리가 감자 파이를 세 쪽이나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 대해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거야 그 사람이 갖고 온 감자였으니까.
  우리는 불 가에 둘러앉았다. 할머니는 당신의 흔들의자에 앉아 계셨고 할아버지는 불 쪽으로 
몸을 바짝 기울인 자세로 앉아 계셨다. 나는 자연스럽게 무슨 이야기인가가 나올 듯한 분위기가 
우리 사이에 감돌고 있음을 느꼈다. 할아버지가 말문을 트셨다. "어때? 뭐 새로운 소식 같은 것 
없나, 파인 빌리?"
  파인 빌리는 의자 앞다리가 들어올려질 정도로 상체를 깊숙이 뒤로 젖혔다. 그런 다음 조그만 
깡통 하나를 꺼낸 뒤 그걸 거꾸로 기울여 길게 뺀 아랫입술 속에 코담배를 털어 넣었다. 그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도 코담배를 권했으나 두 분 다 도리질을 하셨다. 파인 빌리는 꽤나 뜸을 
들이고 있었다. 그는 벽난로 속에다 침을 뱉었다. 이윽고 그는 입을 열었다. "뭔가가 잘 풀려갈 것 
같습니다. 우연히 좋은 기회를 만났거든요." 그는 다시 벽난로 속에 침을 뱉고는 우리 모두를 
차례차례 돌아보았다.
  나는 그 기회라는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는 잘 몰랐지만 아무튼 그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재촉하듯 물으셨다. "어떤 기회를 만났단 말인가, 파인 빌리?" 
파인 빌리는 다시 의자 앞다리를 들어올려 몸을 뒤로 제끼고는 천장의 서까래를 올려다봤다. 그는 
자신의 배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지난 수요일이었을 겁니다^5,5,5^. 아니, 아니, 화요일이었어요. 왜냐하면 월요일 밤에 춤을 추고 
논 다음날 일이었으니까 화요일이 맞아요. 그날 전 읍내로 들어갔었습니다. 거기 경찰관 
스모크하우스 터너를 아시죠?"
  "그럼, 그럼. 알다마다." 할아버지는 조급하게 대답하셨다.
  "음, 그러니까," 파인 빌리는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그날, 제가 거기 거리 모퉁이에서 
스모크하우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삐까번쩍하게 빛이 나는 큰 차 한 대가 길을 가로질러 
주유소 안으로 들어가더라구요. 스모크하우스는 그걸 못 봤죠^5,5,5^ 하지만 전 봤어요. 그 안에는 
한 녀석이 타고 있었는데 꼭 갱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습디다. 대도시의 갱 같은 냄새를 풍기는 
녀석 말예요. 그자는 차 안에서 나오더니 조 홀콤에게 휘발유를 채워 달라고 그랬어요. 그래 저는 
계속 그자의 거동을 지켜봤죠. 그자는 거기 서서 남의 눈을 꺼리는 사람처럼 괜히 사방을 
흘끔거리데요. 그때 팍, 하고 직감이 오더라구요. 저자는 대도시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하는 
자다! 정신차리고 잘 지켜봐라. 전 스모크하우스에게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그저 네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전 스모크하우스에게는 이렇게만 얘기했어요. 
(스모크하우스, 저자가 좀 수상쩍은 거 같은데요^5,5,5^. 대도시의 범죄자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거든요. 저기 저자한테서는 아주 의심스런 냄새가 풍겨요.)"
  "스모크하우스는 그자를 한참 뜯어보더니 얘기합디다. (자네 말이 옳은 것 같네, 파인 빌리. 가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지.)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길을 건너 그자의 차 쪽으로 
다가갔어요"
  파인 빌리는 이제까지 들어올려졌던 의자 앞다리를 원상태로 돌아오게 하면서 벽난로 속에 침을 
뱉고는 불타고 있는 통나무들을 한참 들여다봤다. 마치 통나무를 연구하는 사람처럼.
  이윽고 파인 빌리는 통나무에 대한 연구를 마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두 분 다 아시겠지만 
스모크하우스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는 글을 제법 쓸 줄 
알거든요. 그래 저는 스모크하우스의 쥐를 따라갔어요. 제가 팔요하다면 도움을 주려구요. 그자는 
우리가 다가오는 걸 보더니 얼른 차 안으로 들어갑디다. 스모크하우스는 그 차의 창문에 몸을 
기대고는 정중하게 물었어요. 여기서 뭘 하고 있냐는 식으로. 그때 제가 보니까 그자의 얼굴이 
여간 불안해 보이지 않았어요. 그자는 플로리다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그럽디다. 헌데 그 말이 
아주 수상쩍게 들리더라구요."
  내 귀에도 그 말은 수상쩍게 들렸다. 할아버지를 쳐다보니 할아버지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계셨다.
  파인 빌리는 말을 계속했다. "그래 스모크하우스가 다시 물었어요. (어디서 온 양반이슈?) 그러자 
그자는 시카고에서 왔다고 그럽디다. 스모크하우스가 나중에 얘기하기를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래요. 어쨌든 그자가 읍내 밖에서 온 건 분명한 사실이고 또 그자 입으로 
그렇다고 그랬으니까^5,5,5^ 그런데^5,5,5^" 파인 빌리는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런데 말입니다^5,5,5^. 암만해도 수상쩍어 제가 차 뒤로 돌아가서 번호판을 
들여다봤지 뭡니까. 그리고 전 스모크하우스를 살짝 끌어당기곤 말했어요. (저자는 시카고에서 
왔다고 그랬잖수? 근데 번호판을 보니까 이게 일리노이 찹디다.) 스모크하우스는 시럽 속에 빠진 
파리에게 덤벼들듯 그자에게 덤벼들어 그자의 멱살을 움켜잡고 차 안에서 끌어냈어요. 그런 다음 
그자를 차 곁에다 세워 놓곤 꼼짝못하게 몰아세웠죠^5,5,5^. (시카고에서 왔다는 사람이 왜 
일리노이 번호판을 달고 있는거지?) 스모크하우스는 자기가 결정적인 단서를 잡았다는 걸 
알았어요. 그 범죄자는 꼼짝없이 몰리고 있었거든요. 그자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쩔쩔매는 
눈칩디다. 뻔뻔스런 거짓말을 하다 잡혔으니까. 그자는 궁지에서 빠져나가려고 뭐라고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난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스모크하우스는 사기꾼에게 
그렇게 쉽게 넘어갈 사람이 아니라구요."
  파인 빌리는 이제 아주 흥분한 상태가 되었다. "스모크하우스는 그자를 경찰서 유치장에 
처넣고는 애게 말했어요. 이 일로 자기가 큰 포상을 받을 거라면서 받으면 내게도 보답을 하겠다고 
그럽디다. 받은 돈의 반을 주겠다고. 그자가 풍기는 냄새로 봐서 나나 스모크하우스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큰 포상을 받게 될지도 몰라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연방 고개를 끄덕이시며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대도시 범죄자들을 좋게 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 점에 있어서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 모두는 이제 파인 빌리가 부자가 된 거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파인 빌리는 그 일로 잘난 체하지는 않았다. 그는 생각만큼 큰 상금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둥우리 안에 자신이 가진 달걀 전부를 넣지도 않았고 달걀에서 병아리가 
깨기도 전에 병아리 수를 세지도 않았다. 그건 현명한 일이었다.
  그는, 이 일이 뜻대로 잘 안 풀려나갈 것에 대비해서 또 다른 일을 하나 벌였다고 말했다. 즉, 
레드 이글 코담배 회사에서 자기네 회사 제품에 대한 소감문을 모집하는데 가장 우수한 글을 쓴 
사람에게는 오백 달러의 상금을 준다, 이 정도의 돈이면 사나이가 자신의 생애를 걸고 덤벼들 만한 
일이지 않느냐고 하면서. 그는 그 회사 담당자에게서 소감문을 적을 용지를 받았는데 거기다가는 
그저 자기가 어떤 연유로 해서 레드 이글 코담배를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만 적으면 된다고 
했다. 그는 그 용지를 채우기 전에 한참을 고심하던 끝에 당선을 맡아놓을 만한 근사한 대답을 
생각해냈다고 했다.
  그의 말인즉, 대부분의 사람들은레드 이글 코담배의 질이 좋아서 그걸 이용하게 되었다고 쓸거라 
했다. 그러나 자기는 그런 말을 적는 것은 물론이요 거기서 한술 더 떴다고 했다. 즉 그는, 레드 
이글 코담배는 자기가 이제까지 맛본 코담배 중에서 "최고의" 코담배이며 자기는 앞으로 평생 
동안 레드 이글 코담배 외에 다른 코담배는 "절대로" 건드리지 않겠다는 말을 적어 넣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머리를 좀 썼다고 했다. 레드 이글 회사의 우두머리들은, 파인 빌리가 쓴 
소감문을 통해 그가 남은 평생 동안 계속 자기네 코담배만 이용할 거라는 걸 알게 될거고, 
그렇다면 결국 자기네가 파인 빌리에게 준 돈이 다시 자기네 수중으로 굴러들어올 거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 만일 그들이, 단순히 레드 이글 코담배가 좋은 코담배라서 이용한다는 식으로 
쓴 사람에게 그 상금을 준다면 그들은 모처럼 굴러들어온 좋은 기회를 놓치는 셈이 된다.
  파인 빌리는 큰 회사의 사장들은 자기네 돈이 걸려 있는 한, 절대로 모험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며 그들이 부자가 된 것도 바로 그처럼 신중하게 행동한 탓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레드 
이글 회사가 내건 상금은 바로 자기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할아버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시며 그가 분명 그 상금을 받을 거라고 하셨다. 파인 빌리는 
문밖으로 나가서 그가 씹고 있던 코담배를 뱉어낸 다음 식탁으로 돌아와 그 맛좋은 감자 파이의 
남은 한 쪽을 마저 먹어 버렸다. 나는 그게 무척이나 먹고 싶었지만 그의 그런 행동을 그리 
섭섭하게 생각지 않았다. 파인 빌리는 부자니 의당 그걸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냐는 
생각에서.
  할아버지가 위스키가 가득 담긴, 돌로 된 커다란 잔을 내오셔서 파인 빌리는 두세 번 벌컥벌컥 
들이켰고 할아버지는 컵을 한 번만 기울이는 것으로 그치셨다. 할머니는 기침이 나와 감기 치료용 
시럽을 한 모금 드셨다. 할아버지는 파인 빌리에게 바이올린을 꺼내 "붉은 날개"를 연주해 보라고 
하셨다. 파인 빌리가 연주를 하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발로 박자를 맞추셨다. 그는 근사하게 
연주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오늘 밤 달은 빛난다, 붉은 날개 위에.
  미풍은 속삭이고 밤새들은 우짖는다.
  희미한 별빛을 받으며 용감한 그녀가 잠들어 있는데,
  붉은 날개의 마음이 중천을 떠돌며 흐느끼고 있는데.

  나는 마룻바닥에 누운 채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잠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할머니가 
나를 안아다 침대에 눕혔다. 이날 밤 나는 파인 빌리가 부자가 되어 어깨에 자루 하나를 둘러멘 채 
우리 오두막으로 찾아온 꿈을 꾸었다. 그가 들고온 자루 속에는 맛좋은 감자가 가득 들어 있었다. 

    @[  비밀 장소

  실개천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만일 당신이 거인이라서 그 실개천의 굽이굽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면, 당신은 그곳이 
생명으로 충만한 곳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거인이다. 육십 센티가 넘는 존재인 나는 거인처럼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그 시리개천 물이 
낮은 데로 흘러들어가 형성된 조그마한 저습지를 연구한다. 그곳에는 개구리들이 알을 까놓았다. 
속에 무수히 많은 검은 점들을 담고 있는, 젤리처럼 투명한 큰 덩어리^5,5,5^ 그 점들 하나하나는 
미래의 올챙이로서 부지런히 먹이를 먹으며 부화되어 나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실개천 속에서는 연준모치들이 수면을 가로지르며 종종걸음 치는 사향벌레들을 사냥하기 위해 
번개처럼 움직인다. 그 사향벌레들을 손에 쥐면 그것은 정말로 짙은 향내를 발산하곤 한다.
  어느 날, 나는 사향벌레들을 잡느라 오후 시간 전부를 고스란히 바쳤다. 그렇게 애썼지만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건 몇 마리 되지 않았다. 그건 잡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가 향기로운 냄새를 좋아하신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벌레들을 할머니께 갖다 
드렸다. 할머니는 잿물비누를 만들 때도 늘 거기다 인동덩굴을 첨가하시곤 했으니까.
  내가 그걸 갖다 드리자 할머니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아하셨다. 할머니는 이렇게 
향기로운 냄새는 생전 처음 맡아 본다며, 이렇게 좋은 냄새를 풍기는 벌레가 있는지를 왜 이제까지 
모르고 지냈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저녁식사 시간에 할머니는 내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할아버지께 사향벌레 얘기를 꺼내셨으며 
그렇게 향내가 짙은 벌레는 생전 처음 본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놀라는 
표정이 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 벌레를 갖다 드리고 냄새를 맡아 보시게 했다. 할아버지는 
칠십 평생을 살았지만 그렇게 희한한 냄새는 처음 맡아 본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좋은 것을 얻게 되면 먼저 자기 이웃과 그것을 나누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 좋은 
것은 말없이 퍼져가게 된다. 그것이 옳은 일이다"라고 하시면서 내가 올바르게 행동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나는 실개천 속을 첨벙거리고 다녔기 때문에 옴팡 젖어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체로키 사람들은 자기네 아이들이 숲속에서 아무리 심한 
장난을 치고 놀아도 절대로 그걸 갖고 나무라는 일이 없었으니까.
  나는 때로 실개천의 맑은 물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흐르는 물 속에 가지 끝이 잠길 정도로 축 
늘어진 수양버들의 무성한 초록색 장막을 허리를 낮게 구부린 채 뚫고 지나가기도 하면서 실개천 
위쪽으로 한참 거슬러올라가 보기도 했다. 이렇게 올라가다 보면 실개천 양편 가장자리에서 
무성하게 곡선을 그리며 늘어져내려 아름다운 초록색 레이스를 펼치는 양치식물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작은 우산거미들은 이러한 식물의 가지를 버팀목으로 삼아 거미줄을 펼치곤 한다.
  이 우산거미들은 양치식물의 가지에 엷은 실 한 끝을 붙인 뒤 공중으로 도약하여 우산의 형태로 
거미줄을 펼치면서 건너편 물가에서 자라는 양치식물의 가지에 다다르려고 시도하곤 한다. 만일 이 
시도가 성공한다면 그 거미는 실의 다른 한 끝을 그 줄기에다 붙이고는 다시 반대편으로 도약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뛰다 보면 결국 그 실개천 위에는 영롱한 진주빛 거미줄 하나가 걸리게 된다.
  이 녀석들은 덩치는 작아도 여간 의지가 굳센 놈들이 아니다. 이것들은 물 위에 떨어지면 급류에 
떠내려가면서도 필사적으로 위로 거슬러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다가 마침내 연준모치가 덤벼들기 
전에 둑 위로 오르고야 만다.
  어느 날 나는 실개천 중간에 쪼그리고 앉아서 작은 거미 한 마리가 자신의 실을 개울 양편으로 
연결하려고 애쓰는 광경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는 그 실개천 전체를 통틀어 가장 넓은 진주빛 
거미줄을 갖기로 결심했는데 그것은 그가 개울이 가장 넓은 곳을 선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엷은 실 한 가닥을 개울 한편에서 자라는 양치식물의 가지에다 붙인 뒤 공중으로 
도약했으나 그만 물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물에 떠내려가면서도 악착같이 헤엄을 쳐 다시 
원래의 양치식물 가지 위로 되돌아왔다. 그는 다시 한번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세번째 시도에도 역시 실패하고는 원래의 가질 되돌아온 뒤 가지 맨 끝으로 내려와 
쪼그리고 앉았다. 그는 턱 밑에 다리를 엇갈리게 받치고는 한참 동안 물을 내려다보며 고심했다. 
나는 그 녀석이 결국 포기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으며 그 실개천에서 찬참을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느라 물에 젖은 내 엉덩이는 거의 감각이 없을 정도로 얼얼해졌다. 그런데도 그 녀석은 
거기 앉아 연구에 연구만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녀석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내고는 그 
가지 위에서 뜀뛰기를 시작했다. 제자리에서의 뜀뛰기. 그에 따라 그 양치식물의 가지는 서서히 
아래위로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 짓을 한동안 계속했다. 그러다 그 가지가 가장 높은 
지점으로 솟구쳐오른 한 순간 그 녀석은 펄쩍 뛰어 자신의 우산을 좍 펼쳤다. 결국 그 녀석은 
해내고야 말았다.
  건너편으로 뛰는 데 성공한 그 녀석으로 자랑스러운 마음에 미친듯이 그 실개천을 뛰어건너는 
일을 반복했다. 거의 지쳐 떨어질 정도로. 그렇게 해서 그 은빛 거미줄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넓은 
것이 되었다.
  나는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실개천을 따라 올라가면서 그것의 전모를 파악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양버들 위에 둥우리를 마련하고 사는 제비들과도 친해지게 되었다. 그것들은 나와 친해지기 
전까지는 나를 여간 안타깝게 하지 않았으나 어느 정도 낯이 익자 둥우리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곧잘 나한테 여러 가지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실개천과 나란히 달리는 개울 둑에서는 
개구리들이 즐겁게 노래를 불렀는데 그것들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노래를 뚝 그치곤 
했다. 그러다 나는 개구리들이 땅이 울리는 느낌으로 사람이 다가오는 걸 쉽게 알아차린다는 
얘기를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다. 할아버지는 그 얘기를 해주시면서 체로키들이 걷는 방법, 즉 
발뒤꿈치를 들고 발끝으로만 지면을 살짝살짝 딛는 방법을 직접 보여 주셨다. 그 다음부터 나는 이 
방법을 써서 개구리들의 노래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의 바로 곁에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실개천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그 비밀 장소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곳은 실개천 너머 산자락 
쪽으로 약간 올라가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울창한 월계수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풀이 가지런히 
자란 아담한 동산인 그곳에는 허리가 굽은, 향내나는 늙은 고무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그곳을 처음 발견한 그 순간 나는 그곳을 내 비밀 장소로 정했으며 그 뒤로는 틈만 나면 그곳으로 
찾아갔다.
  나는 그곳으로 갈 때면 으레 늙은 개 모드를 데리고 가곤 했다. 모드 역시 그곳을 좋아했으며 
우리는 그 향기로운 고무나무 밑에 앉아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기울이고 또 여기저기를 
바라보곤 했다. 모드는 그 비밀 장소에만 가면 절대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 모드 역시 그곳이 비밀 
장소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늦은 오후, 나와 모드가 그 향기로운 고무나무에 기대 앉아 여기저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거기서 좀 떨어진 곳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그리 멀지 않은 곳을 지나가고 계셨던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내가 거기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신 듯했다. 안 그랬다면 무슨 말이고 한 마디 건네셨을 테니까.
  할머니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조용히 숲 사이를 뚫고 지나가실 수 있었다. 
살그머니 할머니의 뒤를 따라가 보니 할머니는 식물 뿌리를 캐시는 중이었다. 나는 할머니 일을 
거들어 드리기 위해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나랑 할머니는 바닥에 쓰러진 통나무 위에 걸터앉아 
뿌리들을 분류했다. 나는 비밀을 지키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라서 그 일을 하는 동안 결국 참지 
못하고 할머니께 내 비밀 장소에 관한 얘기를 털어놓았다. 할머니가 내 얘기를 들으시고도 전혀 
놀라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할머니는 모든 체로키들은 비밀 장소를 하나씩 갖고 있으며 그 점에 있어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께 할아버지의 비밀 장소가 어디냐고 
물어본 적이 없었으며 산등성이 길을 한참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산꼭대기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짐작하고만 있을 따름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본 적이 없어서 
자신할 수는 없지만 체로키 족이 아닌 일반 사람들도 비밀 장소를 하나씩 갖고 있으며 사람은 
누구나 비밀 장소를 하나씩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서 나는 나도 비밀 
장소를 하나 갖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흡족해졌다.
  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모든 사람들은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마음의 하나는 육신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과 관계된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마음을 통해 잠자리나 먹을 것, 그리고 그 
밖에 우리의 육신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얻는 방법을 생각해 낸다. 남녀가 짝을 짓고 아이들을 
갖는 등의 행위를 하는 데도 그러한 마음이 작용한다. 우리가 계속 생존하려면 그러한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일들과 전혀 무관한 또 다른 마음을 갖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영적인 마음, 곧 영혼이다.
  만일 우리가 육신의 삶과 관계된 마음을 통해 탐욕스럽고 비천한 생각에만 몰두해 있다면, 
그리고 만일 우리가 항시 그러한 마음을 통해 남들을 공격하고 남들에게서 이익을 취할 방법을 
생각하는 데만 몰두한다면^5,5,5^ 우리의 영적인 마음은 히코리 열매만하게 졸아붙어 버릴 것이다.
  우리의 육신이 죽으면 우리 육신의 삶을 담당하는 마음도 함께 소멸되어 버린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일평생 만사를 육신의 마음을 통해서만 바라본다면 당신에게 남는 것은 히코리 열매만한 
영혼뿐일 것이다. 당신의 다른 모든 것이 죽을 때 살아남는 것은 영혼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이 다시 태어날 때 - 모든 인간은 다시 태어나게 되어 있다. 당신은 이 세상 만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히코리 열매만한 영혼을 갖고 태어나게 된다.
  만일 다시 태어나서도 육신의 삶과 관계된 마음이 당신의 모든 걸 지배하게 된다면 그것은 
완두콩만하게 졸아붙어 버리거나 아^36^예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당신의 영혼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러한 인간은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인간이 된다. 할머니는 당신(이때의 '당신'은 
할머니를 가리키는 존칭어다: 옮긴이)이 죽은 인간들을 손쉽게 가려 낼 수 있다고 하셨다. 죽은 
인간들은 아름다움에는 눈이 멀어 여자를 볼 때도 추잡한 것밖에 볼 줄 모르고, 타인을 볼 때도 
나쁜 면밖에 볼 줄 모르며, 나무를 볼 때도 목재나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이득밖에 볼 줄 모르게 
된다.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걸어다니지만 사실은 죽은 인간들이다.
  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영혼은 근육과 비슷한 성질을 지녔다고 한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자꾸 
이용한다면 그것은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강해진다. 영혼을 크고 실팍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통해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를 갖는 것뿐이다. 그러나 당신이 육신의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계속하고 탐욕을 버리지 못하는 한, 영혼으로 이르는 문은 열리지 않는다. 
다행히도 당신이 영혼으로 이르는 문을 열었을 경우 이때부터 당신의 이해의 과정은 시작되며 
당신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당신의 영혼은 점점 더 커져간다.
  그리고 당연히, 이해와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함께 따라가는 것들이다. 사람들이 어떤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사랑하는 척하려고 드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는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앞으로 내가 모든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리라는 걸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히코리 열매만한 영혼 정도를 갖고서 살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나의 영혼이 크고 강대해지게 되면 나는 어느 날엔가 내과거의 육신의 삶들이 거쳐온 
과정을 모조리 알게 될 것이며 육신의 죽음에 대해서 초연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내가 내 비밀 장소에서 그러한 과정의 일부를 엿볼 수 있으리라고 하셨다. 봄철이 되어 
만물이 탄생할 때(그리고 상념까지를 포함한 모든 것이 새로 탄생할 때는 항시), 거기에는 으레 
진통과 소동이 따른다. 피와 고통 속에서 아기가 탄생하듯이 봄철에는 봄의 폭풍우가 일게 마련인 
것이다. 할머니는 그러한 폭풍우는 영혼이 다시 물질적인 형태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일으키는 
소동이라고 말씀하셨다.
  봄에 이어 여름이 오면서 우리의 삶은 성숙 단계에 이르게 되고 다시 가을이 그 뒤를 잇는데 
이때 우리는 나이가 들대로 들면서 조만간 우리의 영혼이 제자리로 돌아가리라는 늙은이들 특유의 
느낌을 갖게 된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감정을 향수, 혹은 슬픔이라고 부른다. 겨울이 되면 우리의 
육신이 죽듯 만물은 죽거나 혹은 죽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봄철과 더불어 다시 
소생하게 된다. 할머니는 체로키들은 그러한 이치를 알고 있으며 이미 오래 전에 그러한 이치를 
터득했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때가 되면 내가 내 비밀 장소에 있는 그 향기로운 늙은 고목나무 역시 영혼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고 하셨다.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나무의 영혼을. 그리고 할머니는 
할머니의 아버지가 그 모든 것을 당신에게 가르쳐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아버지, 즉 외증조 할아버지의 이름은 "갈색매"였다. 할머니의 말씀에 의할 것 같으면 
그분은 세상 만물을 깊이 이해하는 경지에 이르러 나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느끼실 수 
있었다고 한다. 헌데 어느날 외증조 할아버지가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 근처의 산에서 자라는 하얀 
참나무들이 몹시 흥분에 있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하시면서 몹시 걱정을 하신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아직 어렸을 때의 일이니 아주 까마득히 오래 전의 일이다. 그분은 평소에 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또 그 참나무 숲을 수시로 지나다니셨다. 그 나무들은 줄기가 쪽 곧고 키도 
컸으며 아주 아름다웠다. 또한 그 나무들은 산에서 사는 뭇짐승들의 먹이를 대주는 거먕 옻나무나 
감나무, 히코리 나무나 밤나무들이 자기네들 틈에서 한데 어울려 살도록 허용해 줄 만큼 관대하고 
아량이 있었다. 이렇게 이기적이지 않은 태도를 지닌 탓으로 그들의 영혼은 크고 강해졌다.
  외증조 할아버지는 그 참나무들이 너무나 걱정이 되어 밤에도 그 나무 주위를 돌아다니시곤 
했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아셨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침 해가 산등성이 위로 막 고개를 내밀 때쯤해서 그분은 벌목꾼들이 그 
하얀 참나무 숲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들은 베어낼 나무들을 조사하고 또 
가장 효과적으로 나무들을 베어낼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그들이 
그곳을 떠나자 하얀 참나무들은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바람에 외증조 할아버지는 밤에도 
주무시지 않고 벌목꾼들이 오지 않나 지켜보셨다. 벌목꾼들은 차가 다닐 수 있게 참나무가 자라는 
산에다 길을 냈다.
  외증조 할아버지는 체로키 사람덜에게 그 얘기를 전했으며 이에 그들은 하얀 참나무들을 구해 
주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어느 날 밤 벌목꾼들이 평소처럼 읍내로 돌아갔을 때 그들은 그 도로를 
마구 파헤치고 또 도로를 가로지르는 깊은 구덩이들을 내어 차가 다닐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이 
일에는 부녀자와 아이들까지도 참여했다.
  이튿날 아침 다시 산으로 돌아온 벌목꾼들은 하루종일 망가진 도로를 고쳤다. 그러나 그날 밤 
체로키 사람들은 다시 도로를 파헤쳐 버렸다. 이런 일이 다시 연이틀 계속되자 견디다 못한 
벌목꾼들은 총을 든 경비들을 데려와 그 도로를 지키게 했다. 그러나 경비들이 모든 도로를 다 
지킬 수는 없었으며 체로키 사람들은 그들의 감시의 눈이 닿지 않는 곳마다 나타나서 할 수 있는 
한껏 도로를 깊이 파헤쳤다.
  이 일은 몹시 힘겨운 일이어서 며칠을 그렇게 하다 보니 체로키 사람들도 기진맥진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벌목꾼들이 도로를 고치고 있는데 갑자기 거대한 하얀 참나무 한 그루가 그들이 
몰고온 차 중의 어느 한 대에 쓰러져 버렸다. 그 바람에 그 차는 완전히 파손되고 노새 두 
마리까지 덤으로 깔려죽었다. 그것은 아직 싱싱하고 건강한 참나무여서 전혀 쓰러질 이유가 
없었는데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벌목꾼들은 도로를 내는 일을 포기했다. 거기다 봄비마저 내리기 시작했고^5,5,5^ 그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달이 꽉 차 환한 보름달이 되었을 때 체로키 사람들은 하얀 참나무들이 가득 들어 찬 드넓은 
숲속에서 잔치를 벌였다. 그들은 보름달의 환한 빛 속에서 춤을 추었다. 그리고 하얀 
참나무들은노래를 부르고 서로서로 가지를 비벼댔으며 체로키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들은 
다른 참나무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그 하얀 참나무를 찬양하는 노래를 볼렀다. 
할머니는 그때 크나큰 감동을 받아 그 산을 떠난 다음에도 그 감동이 오래오래 마음속에서 
메아리쳤다고 했다.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작은나무야, 백인들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하등 
도움이 안 될 테니 이런 얘기는 그저 가슴속에 묻어두거라. 하지만 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너한테 얘기해 주는 거란다."
  그제서야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벽난로를 지필 때 영혼이 떠나간 통나무들만을 사용하시는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숲의 생명에 대해서 눈뜨게 된 것이다^5,5,5^. 그리고 산의 생명에 
대해서도.
  할머니는, 외증조 할아버지가 그렇게 깊은 이해의 경지에 다다랐으므로 그분이 강해졌으리라는 
것을^5,5,5^ 후생의 육신의 삶 속에서도 깊은 이해심을 갖고 계시리라는 것을 알고 계신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당신도 당신의 아버지만큼 강해지기를 소망했다고 하셨다. 그렇게 되면 할머니는 
그분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두 분의 영혼이 서로를 이해하게 될 테니까.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스스로 의식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서서히 그러한 이해의 경지로 접근하고 
있다고 하셨고, 두 분의 영혼은 항시 서로를 이해함으로써 늘 함께 머물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할머니께 여쭤 봤다. 내가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면 나만 뒤에 홀로 남겨진 채 잊혀진 
아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말 그러냐고.
  할머니는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셨다. 우리는 한참 동안 말없이 산길을 걸어내려오기만 했다. 
이윽고 할머니는 입을 열어 나더러 항시 이해하려고 애써 보라고 하셨다. 나 역시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으며 어쩌면 내가 이해하는 면에 있어서 할머니보다 더 앞설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나는 할머니를 앞서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고 그저 할머니를 잃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뒤쫓을 
수만 있어도 좋겠다고 말했다. 뒤에 홀로 남겨져 잊혀진 존재가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쓸쓸한 
일이니까. 
  @[  할아버지의 직업

  할아버지는 칠십 평생에 공식적인 직업을 가져 본 일이 없으셨다. 산사람들에게 있어 "공식적인 
직업"이라고 하는 것은 급료를 받고 고용되어 일하는 "모든" 종류의 직업을 의미했다. 할아버지는 
고용되어 일하는 걸 아주 혐오하셨다. 할아버지는, 그런 일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만족도 느끼지 
못하면서 자신의 온 시간을 다 바쳐 죽도록 일만 해야 하는 걸 의미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건 옳은 
말씀이었다.
  내가 다섯 살이었을 때인 1930 년에 옥수수 일 부셸(36리터, 두 말 가량에 해당된다: 옮긴이)의 
가격은 이십오 센트였다. 옥수수 일 부셸을 살 사람이 있다면 그 가격에 팔 수 있다는 얘기다. 살 
사람을 과연 구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헌데 일 부셸에 십 달러라 한다 하더라도 나와 
할아버지는 그걸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옥수수밭은 너무 작았으니까.
  그리하여 할아버지는 공식적인 직업이 아닌 직업을 갖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모든 사람은 직업을 
가져야 하며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가 실제로 그러셨으니까. 
할아버지의 직업은 할아버지가 스코틀랜드 인의 피를 타고난 데서 유래했다. 그 가문은 몇백 년 
동안 그 직업을 자손들에게 물려줘 왔다. 그 직업이란 곧 위스키 제조업을 뜻했다.
  헌데 위스키를 만드는 일을 한다고 하면 산악지대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금방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선입견은 대도시의 범죄자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대도시의 범죄자들은 사람들을 고용하여 위스키를 제조하며 위스키의 품질이야 어찌되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단시간에 많이만 만들려고 든다. 그런 자들은 술밥을 빨리 "발효"시키고 위스키 빛깔을 
"곱게"하기 위해 양잿물이고 산화칼슘이고를 가리지 않고 집어 넣는다. 그리고 그들은 위스키를 
증류할 때 철판이나 생철로 만든 관, 또는 트럭의 라지에터 따위를 이용하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독성을 가진 것들이며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갈 수도 있다.
  할아버지는 그런 자들은 모두 교수형에 처해야 마땅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가장 고약한 
방법으로 사업을 하는 자들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어떤 직업도 나쁘게 보일 수 있고 충분히 오명을 
뒤집어쓸 수 있는 일이라 하셨다.
  일례로 할아버지가 요즘에도 어쩌다 한번씩 입으시는 양복은 오십년 전에 결혼을 하실 때 맞춰 
입은 양복인데도 아직 제 모양을 잃지 않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양복장이는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지 못한 양복장이들도 많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양복을 짓는 작업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양복장이를 만나느냐에 달린 문제며, 
위스키를 제조하는 직업 역시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이치에 맞는 말씀이시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위스키에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으셨다. 심지어 설탕조차도. 설탕은 위스키를 
걸쭉하게 만들거나 그 양을 늘리는 데 이용되곤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설탕을 넣은 위스키는 
순수한 위스키가 아니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순수한 위스키만을 만드셨다. 순 옥수수만을 사용한 
위스키.
  할아버지는 또 오래 묵은 위스키를 아주 싫어하셨다. 할아버지는 평생 동안 이런 저런 사람들이 
위스키는 오래 묵을수록 좋다고 떠벌이는 소리를 들어왔다고 하셨다. 그래서 한번은 당신이 직접 
실험을 해보셨다. 할아버지는 위스키 약간을 제조하여 일 주일 가량을 묵혀 둔 다음 맛을 보니 
방금 만든 것과 전혀 맛에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위스키를 갖고 수단을 부리는 사람들은 일부러 오랫동안 통 속에 위스키를 저장하여 
위스키에 그 통 냄새와 색깔이 배게 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굳이 통 냄새를 맡아보고 싶어하는 
병신머저리 같은 놈들이 왜 통 속에 자기 머리를 처박고 실컷 그 냄새를 맡은 다음 순수한 위스키 
한 모금을 마시는 방법을 쓰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런 사람들을 "통 중독자"라고 불렀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흙구덩이 속에 괸 물을 
통 속에 담아서 오래 묵혀 둔 후 그런 놈들에게 팔면 그놈들은 그래도 통 냄새가 나서 좋다고 
하면서 희희낙낙 처마실 거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위스키 통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습관에 대해 무척이나 분개하셨다. 그리고 
그러한 습관은 한꺼번에 여러 해 치의 위스키를 저장할 수 있는 거물급들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하셨다. 그런 자들이 통 냄새가 배도록까지 자기네 위스키를 저장할 여력이 없는 
군소 제조업자들을 억누르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냐고 하면서. 그들은 자기네 위스키를 
팔아먹기 위해 자기네 위스키가 다른 어떤 위스키보다 통 냄새가 짙다고 선전을 해대느라 엄청나게 
많은 돈을 쓰며, 그 바람에 수많은 닭대가리 같은 멍청이들이 그선전에 속아 넘어가 그런 술을 
마셔대게 된다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그래도 아직 세상에는 통 냄새에 
중독되지 않은 분별있는 사람들이 일부 남아 있어 그런 사람들 덕분에 군소 위스키 제조업자들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거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기술이 위스키 제조 기술이고 또 나도 어언 여섯 살이 다 
되어가므로 이제 그걸 배울 만한 때가 되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직업을 
바꾸고 싶어 할 수도 있지만 일단 이 기술을 익혀 두면 달리 생계를 유지할 방도가 없을 때마다 이 
기술을 써먹을 수 있으니 좀 좋으냐고 하셨다.
  나는 나와 할아버지가 통 냄새가 나는 위스키를 마실 것을 권하며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거물급 
제조업자들과 맨주먹으로 싸워야 한다느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가 나한테 그 기술을 
전수해 주신다는 데 대해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할아버지의 위스키 증류기는 실개천이 비좁은 골짜기 사이로 흘러나가는 "좁은 길" 부근에 
안치되어 있었다. 그것은 하늘을 나는 새들의 눈에도 띄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월계수들과 
인동덩굴 속에 깊이 파묻혀 있었다. 할아버지는 솥과 빗장쇠가 달린 뚜껑, 그리고 "나선형 관"이라 
부르는 길고 좁은 대롱이 달린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두 순수한 구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증류기치고는 좀 작은 것이었지만 우리는 큰 것이 필요치 않았다. 할아버지는 단지 한 
달에 한 번씩만 증류를 하셨으며 그때마다 그것은 항시 11갤런(1갤런은 3.8리터, 도는 8분의 
1부셸: 옮긴이)의 위스키를 생산해 냈다. 우리는 그 중의 9갤런을 사거리 가게의 젠킨스 씨에게 
갤런당 2 달러씩을 받고 팔았는데 우리가 생산하는 옥수수 양을 생각한다면 이만한 액수의 돈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 돈으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일용품들을 샀으며 할머니는 쓰고 남는 약간의 돈을 
꼬박꼬박 담배 자루 속에 넣어 유리항아리 속에 간직해 두시곤 했다. 할머니는 내가 위스키 만드는 
일을 열심히 도와주고 있고 또 그 기술을 익히고 있기 때문에 그 돈의 일부는 내 몫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따로 떼어놓은 2갤런의 위스키는 우리 식구 몫이었다. 할아버지는 심심하면 그걸 마시곤 
하셨으며 친구들이 찾아올 때도 그걸로 대접을 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것의 상당량을 
감기약으로 쓰셨다. 할아버지는 뱀에게 물렸을 때나 거미에게 물렸을 때, 그리고 발에 상처를 
입었을 때 위스키가 좋은 약이 된다고 하셨다.
  나는 위스키를 증류하는 일이 무척이나 고된 일이라는 걸 알았다. 제대로 과정을 밟아 제조할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얀 옥수수를 써서 위스키를 제조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얀 옥수수는 전혀 
쓰지 않고 순전히 우리가 재배하는 인디언 옥수수만을 썼다. 그것은 진빨강색을 띠고 있어서 
우리가 만드는 위스키도 엷은 붉은 빛을 띠게 마련이었다^5,5,5^.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위스키 
중에 이런 색깔이 나는 것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위스키 색깔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 위스키 색깔만 보고는 그것이 순수한 인디언 옥수수만을 써서 만든 것이라는 걸 
안다.
  옥수수 알을 자루(올수수 알이 달린 대를 말한다: 옮긴이)에서 떼내는 작업에는 집안 식구 
모두가 동원된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자루에서 떨어져 나온 옥수수 알의 일부를 마대 속에 
담는다. 우리는 그 마대 위에다 따뜻한 물을 붓고는 햇빛이 비치는 곳에다 내놓는다. 겨울철에는 
벽난로 곁에다 놓아두고. 그리고 자루 속에 담겨진 옥수수 알들이 잘 섞이도록 하루에 두세번씩 
자루를 뒤집어 놓는다. 그렇게 해서 사오일이 지나면 옥수수 알들은 길다란 싹을 내게 된다.
  마대에 담지 않고 따로 치워둔 옥수수 알은 빻아서 가루로 만든다. 우리는 제분업자에게 그걸 
맡기지 않는다. 비용이 너무 비싸게 먹히니까. 그래서 할아버지는 옛날에 이미 곡식 빻는 기구를 
만들어 두셨다. 그것은 바위 두 짝을 깎아서 만든 것으로 우리는 그것을 손으로 돌려 옥수수를 
빻는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렇게 빻은 옥수수 가루를 들처메고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 "좁은 길" 가에 
안치해 둔 증류기 있는 데까지 운반한다. 우리는 실개천의 물이 자동적으로 증류기의 솥까지 
흘러들어가도록 길다란 나무 수로 시설을 해놓아 위스키를 빚을 때마다 그걸 이용해 물을 댔다. 
솥에 물을 채울 때는 항시 솥 높이의 사분의 삼까지 물이 차도록 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옥수수 
가루를 솥 속에다 들이붓고는 솥 밑에다 불을 때기 시작한다. 불을 땔 때 우리는 연기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꼭 숯만을 사용한다. 할아버지는 생나무를 때도 위스키를 빚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지만 
굳이 모험을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하셨다(허가받지 않고 위스키를 빚는 것은 불법이었으니까 
가급적 연기를 내지 않으려고 숯을 쓰는 것이다: 옮긴이). 이치에 맞는 말씀이다.
  할아버지는 증류기 옆에 박힌 나무 그루터기 위에 나무 상자를 올려놓고 다시 그 위에 나를 
올려놓아 주신 뒤 옥수수 죽을 휘젓게 하시곤 했다. 나는 키가 닿지 않아 솥 속의 내용물을 
들여다보지도 못한 채 무조건 휘젓곤 했는데 할아버지는 내가 죽이 솥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잘 
젓고 있다고 칭찬하시곤 했다. 그러시니 나야 무조건 팔이 떨어져나가라고 저을 수밖에.
  옥수수 죽이 적당히 익으면 우리는 솥바닥에 난 관을 통해 그것을 통 속으로 뽑아내며 그 통 
속에 싹틔운 옥수수를 첨가한다. 그런 다음 우리는 그 통에 뚜껑을 덮어 그대로 놔둔다. 그렇게 
해서 사오 일을 경화하게 되는데 우리는 매일 한번씩 거기로 올라가 통 속의 내용물을 휘저어 
주어야 한다. 할아버지는 그 과정을 "발효"라고 하셨다.
  사오 일이 경과하게 되면 통 속 내용물 위에는 단단한 막이 형성된다. 우리는 그 막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부순다. 그런 다음 우리는 증류작업에 들어갈 채비를 한다.
  할아버지는 큰 양동이를 들으시고 나는 작은 것을 든다. 우리는 통에서 내용물을 떠 양동이에 
담은 뒤 그것에 증류기의 솥 속에다 들어붓는다. 내용물이 솥 속에 다 들이차면 할아버지는 
솥뚜껑을 잘 닫아 고정시킨 뒤 솥 밑에다 숯을 지피신다. 솥의 내용물이 끓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증기는 솥 윗부분에 난 관과 연결된 나선형의 사리 모양으로 된 길다란 구리관을 통해 나오게 되어 
있다. 그 구리관은 통 속으로 들어가며 우리는 나무 수로를 통해 실개천에서 끌어낸 찬물로 계속 
통을 식힌다. 그렇게 하면 그 증기는 액체로 변하여 통 바닥에 괴게 된다. 우리는, 몸에 들어가면 
두통이 일게 하는 기름 성분을 걸러내기 위해 그 액체 위에 히코리 나무 숯을 띄운다.
  이런 작업 끝에 얻어 내는 위스키의 양이 꽤 많을 것으로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얻은 것은 
고작 2갤런 정도의 양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 2갤런의 위스키를 따로 치워두고 증기로 되어 
나오지 않은 "찌꺼기"를 빼낸다.
  그런 다음 우리는 솥과 관 등을 모두 깨끗하게 씻어내야 한다. 우리가 얻은 2갤런의 위스키를 
할아버지는 "싱글즈"라고 부르셨다. 할아버지는 그것이 200 도가 넘을 거라고 하셨다. 우리는 
"찌꺼기"와 싱글즈를 솥 속에 붓고 다시 불을 피우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거기다 약간의 물을 
덧보탠 뒤 먼젓번 증류작업때 밟았던 과정을 그대로 반복한다. 그렇게 하여 이번에는 11갤런의 
위스키를 얻어낸다.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은 고된 작업이었으므로 나는 일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건들건들 놀면서 일확천금을 바라는 게으른 건달들이나 위스키를 만드는 법이라는 견해에는 절대로 
수긍할 수 없다. 힘들이지 않고도 위스키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위스키를 
만들어 낼 수 없다.
  할아버지는 이 분야에서는 단연 최고셨다. 위스키를 만드는 과정에서 하나라도 삐끗하면 절대로 
좋은 위스키가 나오지 않는다. 불을 너무 세게 때도 좋지 않으며 너무 오래 발효시키면 맛이 
시어진다. 그리고 발효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증류작업에 들어가면 싱거운 위스키가 
나온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관에서 떨어져 내리는 위스키 방울만 들여다보고도 농도를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나는 할아버지가 당신의 기술에 대해 왜 그렇게 자부심을 갖고 
계시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술을 전수받으려고 애썼다.
  할아버지와 내가 증류기 곁에 머물러 있을 때면 할머니는 개들을 집 안에 가두어 두셨다.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가 사는 골짜기에 들어오면 할머니는 퍼렁이를 풀어놓아 산길을 달려 올라가게 
하셨다. 퍼렁이는 기막힌 코를 갖고 있어서 우리의 냄새를 쫓아서 마침내 증류기 있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누군가가 산길을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리핏에게 그 일을 맡겼는데 이 녀석이 그만 술 지게미를 먹는 데 맛을 
들였다고 했다. 그 뒤부터 이 녀석은 증류기 근처에만 나타나면 술 지게미를 훔쳐먹고 취해 버리곤 
했다. 그것도 어느 정도 먹고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헤롱헤롱 취하도록 먹엇다. 그리고 한번은 
모드까지 증류기 있는 데로 끌고 와 함께 취해 버렸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할 수 없이 퍼렁이에게 
그 일을 맡기게 되었다고 하셨다.
  산에서 살면서 위스키를 만드는 일을 계속해 나가려면 그 밖에도 알아 두어야 할 일이 많이 
있었다. 증류를 한 뒤에 주변을 깨끗이 치우는 일도 그중의 하나에 속한다. 안 그랬다가 시큼한 술 
지게미 냄새가 사방에 진동하게 될 테니까. 할아버지는 법(여기서는 경찰, 관리 등을 의미한다: 
옮긴이)이 흡사 사냥개 같아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술 지게미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비상한 코를 가졌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법을 맡고 있는 개들"이란 말이 나온 것도 다 
이런 연유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하시면서, 자세히 조사해 볼 수만 있다면 그런 자들은 과거에 
왕이나 귀족들의 명령을 받고 사냥개처럼 사람들의 뒤를 추적하곤 했던 자들의 후손이라는 것이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고 하셨다. 그리고 또 할아버지는, 훗날 만일 내가 그런 자들과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나는 그런 자들도 역시 그들 특유의 냄새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5,5,5^ 바로 이런 냄새 때문에 어떤 산사람들은 그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걸 냄새만으로 알아챌 수 
있다고 하셨다.
  양동이를 솥 가장자리에 부딪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산에서 솥과 양동이가 
부딪치는 소리는 적어도 삼 킬로미터는 산다. 이 때문에 나는 양동이를 들 때마다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나는 통 속에서 술 지게미를 양동이에 떠 담아서 솥 속에 붓는 일을 할 때마다 
나무 그루터기와 그 위에 놓인 상자 위로 올라가서는 그것을 솥 속에 들이붓고 내려오는 일을 
반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 일을 하는 법을 
익혔다.
  이 일을 할 때는 또 노래를 불러서도, 말을 주고받아서도 안 된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나는 자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산에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정도의 말소리가 아주 멀리 날아가는 
데도. 그건 우리 체로키들이 산소리, 즉 숲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나 시냇물 흐르는 소리 
등과 거의 구별이 안 되게끔 교묘하게 말을 할 줄 알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그런 음역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덕분에 할아버지와 나는 얼마든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위스키 증류작업을 하는 동안 우리는 늘 새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새들이 후다닥 날아가고 나무 
위에 사는 귀뚜라미들이 울기를 멈춘다면 사방을 잘 살펴봐야 한다.
  할아버지는 머릿속에 담아두어야 할 것들이 아주 많지만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되어 있으니까 
그걸 한꺼번에 다 담아두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고 하셨는데 결국 그 말씀대로 되었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위스키에 표시를 했다. 그것은 할아버지가 그 위스키를 만들었다는 
표식으로서 위스키가 담겨진 유리항아리 뚜껑에 전투용 도끼 문양을 대충 새겨 넣음으로써 
완성되었다. 그 산악지역에서 위스키를 제조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런 문양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각자 자기 고유의 상표들을 갖고 있었으니까. 할아버지는 당신이 언젠가는 
돌아가시게 될 텐데 그때는 내가 그 표식을 물려받아도 좋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로부터 그 표식을 물려받으셨다. 젠킨스 씨네 가게에 들르는 사람들 중에는 할아버지의 
표식이 새겨진 위스키만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지금 나와 할아버지가 동업자나 마찬가지이므로 현재 그 상표에 대한 권리의 반은 
나한테 있다고 하셨다. 내가 내 것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소유해 보기는 이게 처음미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상표를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음 우리 상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절대로 나쁜 
품질의 위스키는 만들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그런 위스키는 만들지 않았다.
  내 평생에 가장 충격적이고 무서웠던 일은 바로 위스키를 만들 때 일어난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 일이 일어난 건 겨울도 다 지나갈 무렵이었다. 그때 할아버지와 나는 두번째 증류작업을 막 
끝내고 반 갤런짜리 유리항아리들을 밀봉해서 그것들은 자루 속에 담고 있었다. 우리는 
유리항아리를 넣은 자루들을 메고 가는 과정에서 그것들이 서로 부딪쳐 깨지지 않도록 항시 마대 
속의 항아리들 사이사이 마다에 낙엽들을 두둑히 넣어서 들고가곤 했다. 나는 반 갤런짜리 항아리 
세 개가 들어가는 작은 자루를 메곤 했으며 할아버지는 늘 나머지 항아리들을 두 개의 큰 자루 
속에 나누어 넣고는 한꺼번에 자루 두 개를 메고 내려가시곤 했다. 나는 나중에는 항아리 네 
개까지도 졌지만 이날은 자루 속에 세 개만 넣었다. 그 정도도 나한테는 아주 힘에 부쳐서 나는 
산길을 내려가는 동안 그걸 바닥에 내려놓고 한참 동안 쉬었다 가곤 해야 했다. 내가 쉬면 
할아버지도 쉬셨다.
  우리가 막 항아리들을 자루 속에 넣는 일을 끝냈을 때 돌연 할아버지가 소리치셨다. "이런 
염병할! 퍼렁이다!"
  고개들어 보니 정말 퍼렁이가 혀를 빼문 채 증류기 옆에 엎드려 있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 
개가 얼마나 오랫동안 거기서 그러고 있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여간 당혹하지 않았다. 그 개는 
아주 조용히 다가와서 거기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소리질렀다. "망할 놈의 개새끼 
같으니!"(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할아버지와 나는 할머니가 곁에 없을 때면 곧잘 상소리를 입에 
담곤 했다.)
  어느새 할아버지는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 별다른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새들도 
날아가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너는 네 자루를 지고 먼저 내려가거라. 가다가 
인기척이 나거든 얼른 길가로 숨었다 가. 그것들이 지나가걸랑. 나는 여기 남아 뒷정리를 하고 
증류기를 숨겨 놓은 담에 저쪽 산허리를 타고 내려갈 테다. 집에서 보자꾸나."
  나는 내 자루를 번적 들어 횟 어깨 뒤로 돌렸는데 자루가 너무 힘차게 돌아가는 바람에 하마터면 
그대로 뒤로 자빠질 뻔했다. 그러나 나는 용케 중심을 잡은 뒤 번개같이 "좁은 길" 위로 올라섰다. 
혼자서 산길을 내려가자니 오금이 저렸다^5,5,5^. 그러나 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증류기를 먼저 숨겨야 하니까.
  평야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산사람들에게 증류기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라. 그것은 시카고 사람들에게 있어 시카고 전체가 불이 나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일이다. 할아버지의 증류기는 조상 대대로 물려내려온 것으로 할아버지가 지금 이 연세에 그걸 
잃는다면 다시는 증류기를 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걸 잃는다면 할아버지와 내가 직업을 
잃는 건 물론이요, 할머니까지를 포함한 우리 식구 모두가 먹고 살 길이 막연해지게 될 것이다.
  설혹 시장에 내놓을 만큼의 옥수수가 있다 해도, 그리고 그걸 내다 팔 수 있다 해도 부셸당 
이십오 센트 받고 팔아서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내다 팔 만큼의 옥수수도 없고 또 그걸 
살 만한 작자를 만날 수도 없지만 말이다.
  나는 굳이 할아버지의 설명을 듣지 않고도 증류기를 구하는 것이 우리 식구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두말 않고 먼저 떠난 것이다. 세 개의 위스키 항아리를 
지고 서둘러 걷자지 금방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할아버지는 퍼렁이를 나한테 딸려보내셨다. 나는 내 바로 앞에서 걸어가는 퍼렁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퍼렁이는 인기척이 들리기 훨씬 전에 바람을 타고 오는 냄새르 통해 누군가가 접근해 
오는 것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좁은 산길은 양 옆으로 가파른 산봉우리들이 우뚝 솟아 있어 실개천 둑 위로 난 좁은 공간 
외에는 달리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협소했다. 나와 퍼렁이가 그 "좁은 길"을 반 정도 
내려왔을까 싶을 때 산길 아래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집에 잇는 개들을 다 풀어 놓아 그들이 요란하게 짖어대며 산길을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고 퍼렁이도 제자리에 우뚝 
섰다.이윽고 우리 집 개들이 일제히 산모퉁이를 돌아 우리가 있는 좁은 길로 달려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문득 내 앞에 선 퍼렁이가 두 귀와 꼬리를 바짝 세우더니 허공에 대고 코를 
큼큼거렸다. 그는 등 뒤의 털을 곤두세우고 빳빳하게 긴장된 모습으로 걷기 시작했다. 퍼렁이가 
얼마나 뛰어난 후각을 지닌 개인가를 직접 내 두 눈으로 목격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서 잠시 후에 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내가 미처 피할 사이도 주지 않고 산모퉁이에서 
바로 모습을 드러냈으며 나를 발견하고는 우뚝 멈추어 섰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분명 네 명을 
넘지 않았는데 그때 당시의 내 눈에는 엄청나게 많은 숫자가 몰려온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그때까지 내가 본 그 누구보다도 덩치들이 컸으며 하나같이 셔츠 위에 빛나는 견장을 달고 있었다. 
그들은 제자리에 선 채 의외라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나 역시 제자리에 못박힌 채 
그들을 주시했다. 입 속이 바싹 타올랐고 무릎이 힘없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들 중의 하나가 탄식처럼 내뱉었다. "맙소사^5,5,5^ 어린애잖아!"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인디언 꼬마 녀석이야!" 나는 가죽장화를 신은 데다 사슴가죽 바지와 셔츠를 입고 있었고^5,5,5^ 
머리는 길게 늘어뜨린 데다 검은 빛이었으니 인디언 애가 아니라는 식으로 둘러대로 빠져나갈 길은 
없었다. 그들 중의 하나가 말했다. "어이 꼬마야, 그 자루 안에는 뭐가 들었지?" 또 다른 자가 
소리질렀다. "저 개 조심해!"
  퍼렁이가 그들을 향해 살그머니 다가가고 있었다. 그 개는 이빨을 드러내며 낮게 으르렁거리며 
여차하면 바로 덤빌 자세였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한발한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 사이를 뚫고 달아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 실개천으로 뛰어든다면 금방 그들의 손에 잡히고 말 것이다. 
그리고 온 길을 다시 되돌아 달아난다면 그건 그들을 증류기 있는 데로 안내하는 꼴이 된다. 
그렇게 되면 나나 할아버지는 직업을 잃고 만다. 증류기를 구할 책임을 할아버지뿐 아니라 나도 
지고 있다. 나는 바로 내 앞을 가로막고 선 산쪽으로 달아나는 편을 택했다.
  산을 뛰어오르는 데는 요령이 필요하다. 당신이 산을 뛰어올라가야 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나는 당신이 뛰어서 산을 오르지 말기를 바란다. 그건 아주 위험한 일이니까. 할아버지는 
체로키들이 산을 뛰어다니는 방식을 내게 가르쳐 주셨다. 우선 곧바로 산을 오르지 말고 비스듬히 
지그재그로 달려야 한다. 그런데 달릴 때 가급적이면 땅을 밟지 말고 주고 자잘한 나무의 상단, 
나무줄기나 뿌리 등을 디디는 것이 좋다. 이런 것들은 좋은 발판 구실을 하기 때문에 당신은 
헛발을 딛거나 미끄러지지 않고 잘 달릴 수 있다. 나는 바로 이런 방식을 썼다.
  그런데 나는 산허리를 타고 달리되 그 사람들과 반대 방향이 아니라 그 사람들 쪽으로 달려갔다. 
반대 방향으로 갔다간 점차 높아져가는 "좁은 길"과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그 바람에 나는 그들의 바로 머리 위를 달리는 형국이 되었다. 그들은 길을 버리고 마구 덤불을 
헤치며 나를 쫓아왔다. 그리고 그 중의 하나는 내가 그들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내 다리를 
붙잡으려고 했다. 그는 내가 디뎠던 관목을 움켜쥐려 했으며 내 바로 곁까지 다가왔던 탓으로 이제 
그가 주먹 한방만 휘두르면 나는 그대로 박살이 날 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퍼렁이가 그의 
발을 물어뜯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그 뒤편에 있는 사내에게로 벌렁 나자빠졌으며 나는 그대로 
달아났다.
  나는 퍼렁이가 마구 으르렁거리며 그와 격투를 벌이는 소리를 들었다. 마침 바람이 내 쪽으로 
불어왔기 때문에 나는 바람을 타고 들리는 소리를 통해 퍼렁이가 마구 그를 공격하다간 잠시 
주춤하고서 짖어대기만 하다가 또다시 그에게로 돌진해 들어가 싸움을 벌이는 상황을 자세히 
머릿속에 그려 볼 수 있었다. 나는 계속 정신없이 달리기만 했다. 그러나 위스키 항아리의 무게 
때문에 생각만큼 빨리 달리지는 못했다.
  나는 그 사내들이 내 뒤를 따라 산을 기어오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쯤 다른 개들도 그들에게 
덤벼들었다. 나는 그들의 으르렁거림과 울부짖음 속에서 리핏과 모드의 목소리를 분명히 식별해 낼 
수 있었다. 거기다 사내들이 으르렁거리고 고함치고 욕설을 해대는 소리들이 뒤섞여 들려오는 
바람에 나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나중에 할아버지는 내 맞은편 산을 기어 오르시면서 그소리를 
들었는데 세상이 온통 난리가 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 하셨다.
  나는 계속 있는 힘껏 달리다가 얼마쯤 후에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심장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지쳤다 해도 오래 그러고 있을 수는 없어서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 
계속 걸었다. 산꼭대기 부근쯤에 와서 나는 기진맥진한 나머지 내 위스키 항아리들이 든 마대를 
질질 끌면서 올라갔다. 그렇게 해서 결국 나는 그 산 정상에 올랐다.
  나는 개들과 사내들의 아우성을 여전히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들은 "좁은 길" 아래쪽으로 점차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골짜기 길로. 그것은 고함, 욕설, 짖어대는 소리 등이 한데 뒤엉킨 
요란한 아우성으로 흡사 거대한 소리의 공처럼 골짜기를 진동시키며 산길을 굴러내려가면서 점차 
희미해지다가 이윽고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너무나 지쳐 제자리에 서 있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지만 기분은 아주 흐뭇했다. 그 사내들이 
증류기에 접근하지 못했고 또 할아버지가 이 일로 몹시 기뻐하시시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5,5,5^ 
나는 맥없이 낙엽 더미 위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났을 때 사방은 어두웠다. 그러나 거의 만월에 가까운 달이 먼 산 위에 휘영청 걸려 
있어 골짜기와 바로 눈 아래 보이는 "좁은 길"을 환하게 비춰 주었다. 그때 나는 개들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 개들이 여우몰이를 할 때와는 다르게, 곧 나더러 거기 있으면 대답을 하라는 
듯이 낮게 낑낑대는 소리만을 내는 것을 듣고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찾아보라고 그 개들을 
보내셨다는 걸 알았다.
  이윽고 그들은 내 자취를 찾아냈다. 그들이 산길을 지그재그로 뛰어올라오고 있었으니까. 내가 
길게 휘파람을 불어주자 그들은 일제히 환성을 질러댔다. 잠시 후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내게 온 몸으로 덮쳐오고 내 얼굴을 핥고 내 위로 뛰어오르는 식으로 온통 난리를 피웠다. 심지어 
거의 장님이 다 된 늙은 링거까지 올라왔다.
  나와 개들은 천천히 그 산을 내려왔다. 모드는 한시바삐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내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먼저 왕왕 짖으며 뛰어내려갔다. 나는 그 녀석이 냄새도 제대로 맡지 
못하는 주제에 제가 모든 공을 차지하고 싶어 그런다는 걸 알았다.
  그 골짜기를 내려왔을 때 나는 산길까지 마중 나오신 할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할머니는 손에 
등잔을 들고 계셨다. 마치 나를 위해 집으로 가는 길을 환히 비춰주셔야겠다는 듯이. 할아버지도 
거기 서 계셨다.
  그분들은 산길을 올라오시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내가 개들과 함께 내려오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계셨다. 나는 그게 기분이 좋았다. 나는 아직도 내 위스키 항아리들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등잔불을 내려놓고는 무릎을 꿇고 나를 맞았다. 할머니가 어찌나 세게 나를 끌어안는지 
나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위스키 항아리들을 떨어뜨릴 뻔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그걸 들고 
가시겠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칠십 평생을 지내면서 이번처럼 여유만만하게 일을 처리해 본 건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내가 장차 이 근방에서 가장 뛰어난 위스키 제조업자가 될 소질이 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당신보다 더 뛰어난 솜씨를 갖게 될 거라고 하셨다. 나는 그럴 수는 없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여간 마음이 뿌듯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 채 그저 묵묵히 나를 집까지 안고 가셨다. 나는 내 힘으로 
얼마든지 걸을 수 있었지만 잠자코 할머니 품에 안겨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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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 

    전3권 중 제2권

  지은이: 포리스트 카터
  펴낸이: 김훈
  펴낸곳: 고려원미디어

  @[  기독교인과의 거래

  이튿날 아침 모든 개들은 아직도 자랑스런 마음에 겅중겅중 뛰어다니거나 다리에 
힘을 주어 걷곤 했다. 그들은 자기네가 주인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자랑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5,5,5^ 하지만 나는 그걸 
갖고 뻐기지는 않았다. 그런 일은 위스키 만드는 직업의 일부분에 해당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늙은 링거의 행방이 묘연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연신 휘파람을 불어도 보고 
소리쳐 불러 보기도 했지만 그 개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오두막 주변의 공터도 
열심히 찾아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개들을 내보내 찾아보게 하기도 
했다. 우리는 개들과 더불어 골짜기 길과 "좁은 길"을 올라가며 샅샅이 훑어 보았지만 
그의 종적은 여전히 묘연했다. 할아버지가 전날 밤에 내가 산에서 걸어내려 온 길을 
되짚어 올라가 보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우리는 그 길을 다시 밟아 봤다. 우선 
관목들이 마구 뒤엉킨 숲을 지나가면서 찾아보고, 이어서 산꼭대기로 올라가 보고. 
그러다 퍼렁이와 꼬마 빨강이가 링거를 찾아냈다.
  링거는 어떤 나무와 부딪치고 그 곁에 쓰러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링거가 그 나무와 
부딪치기 이전에 벌써 여러 차례 다른 나무들과 부딪쳤거나 아니면 어제 그 사내들 중 
하나에게 머리를 곤봉으로 얻어맞은 듯하다고 말씀하셨다. 링거는 머리 전체가 
피범벅이 된 상태에서 모로 누워 있었으며 그의 혀는 자신의 이빨 사이에 박혀 
있었다. 링거는 아직 살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링거를 안아올린 뒤 천천히 그 산을 
내려가셨고 우리는 뒤따랐다.
  실개울 가에 이르러 링거를 내려놓은 뒤 할아버지와 나는 그의 얼굴에서 피를 씻어 
주고 이빨 사이에 물린 혀를 빼내 주었다. 나는 그의 얼굴에 덮인 회색 털을 보고는 
링거가 아주 늙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를 찾아 산을 헤매는 일이 그에게는 아주 힘에 
겨운 일이었으리라는 걸 알았다. 우리는 링거와 더불어 실개천 가에 앉았다. 이윽고 
링거는 눈을 떴다. 그 눈빛은 초점이 없고 흐리멍덩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허리를 낮춰 링거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이 대고, 산에서 나를 찾아준 일에 
대해 아주 고맙게 생각하며 그 때문에 이렇게 다치게 되어 아주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링거는 그런 소리말라, 다시 또 그런 상황이 닥치면 자기는 지금이라도 
다시 나설 용의가 있다는 듯이 내 얼굴을 핥아 주었다.
  할아버지는 나로 하여금 당신이 링거를 안고 산길을 내려가는 일을 돕게 하셨다. 
할아버지 품에 안긴 링거의 뒷다리를 내가 받치고 가게하는 식으로. 우리가 오두막에 
이르렀을 때 할아버지는 링거를 내려놓으며 말씀하셨다. "링거는 죽었다." 그래 
자세히 들여다보니 링거는 정말 죽어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내려오는 
도중에 죽었던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링거가 우리가 와서 자기를 데려간다는 걸,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걸 알았으므로 그는 행복한 마음으로 죽었으리라고 
하셨다. 그 말씀은 내 마음에 약간의 위안을 가져다 주기는 했지만 슬픈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링거가 산악지방에 사는 모든 개들이 가장 행복한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죽었다고 하셨다. 곧 자기네 식구를 위해서 숲속에서 죽는 것.
  할아버지는 삽을 드셨다. 우리는 링거를 안고 골짜기 길로 올라가 그 개가 그렇게 
자랑스런 마음으로 지켰던 옥수수밭 위의 산자락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할머니뿐 
아니라 우리집의 모든 개들이 다 따라왔다. 그 개들은 모두들 다리 사이에 꼬리를 
사린 채 처량하게 캥캥거렸다. 나도 그 개들과 꼭 같은 기분이었다.
  할아버지는 조그만 떡갈나무 발치께에다 링거의 무덤을 팠다. 그곳은 아주 조그마한 
공터로 지난 가을에 떨어진 붉은 나무의 이파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고 봄철이면 
하얀 꽃을 피우는 산딸나무 한 그루가 그 바로 곁에 서 있었다.
  할머니는 무덤 바닥에 하얀 무명 자루 하나를 깔고 그 위에 링거를 눕힌 다음 
그걸로 링거의 몸을 말았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링거의 몸 위에 커다란 널판을 덮어 
너구리가 링거의 시체를 파내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 다음 우리는 그 무덤을 흙으로 
덮었다. 주위에 둘러선 개들은 그것이 링거의 무덤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며 늙은 
모드는 구슬프게 울었다. 모드와 링거는 함께 옥수수밭을 지켰던 동업자들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모자를 벗고 입을 여셨다. "잘 가거라 링거야." 나도 링거에게 작별의 
인사말을 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링거를 떡갈나무 밑에 남겨둔 채 그의 곁을 
떠났다.
  나는 그 일로 크게 상심했으며 세상이 텅 빈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할아버지는 
당신도 나와 똑같은 심경이시기 때문에 내 마음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사랑하던 것을 잃을 때면 늘 이런 기분이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런 기분을 맛보지 않으려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늘 공허한 느낌 속에서 살게 되므로 그건 더 나쁘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만일 우리가 링거를 충실한 개라고 생각지 않았다면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지도 않았을 텐데 그랬다면 뒷맛이 더 고약했을 거라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나이를 먹어도 링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될 것이며 링거에 대한 
추억을 즐기게 될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묘한 것은 나이 들어서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이나 사물들을 떠올릴 때 나쁜 점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좋은 점만 떠오르곤 
하는데 이것은 나쁜 것이 무가치한 것이라는 점을 입증해 주는 좋은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하셨다.

  링거를 잃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직업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야 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지름길을 통해 우리 제품들을 젠킨스 씨의 네거리 가게까지 
운반했다. 할아버지는 우리 위스키를 꼭 "제품"이라고 부르시곤 했다.
  나는 그 지름길을 좋아했다. 우리는 골짜기 길을 내려가다가 차가 다니는 길에 
이르기 전에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지름길로 들러섰다. 그 길은 마치 거대한 
손가락들을 펼친 것처럼 평원을 향해 뻗은 몇줄기 산등성이들을 넘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 산등성이들 사이로 난 골짜기들은 별로 깊지 않아 힘들이지 않고 가로지를 수 
있었다. 길이가 수 킬로미터 가량 되는 그 길 양쪽에는 소나무와 삼나무, 감나무와 
인동덩굴들이 빽빽하게 들어 차 있었다.
  가을에 서리가 내려 감들이 빨갛게 익으면 나는 네거리 가게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감들을 따서 내 호주머니를 가득 채운 뒤에 허둥지둥 할아버지를 뒤쫓아가곤 했다. 
그리고 봄이 되어 나무딸기가 익어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모처럼 걸음을 멈추고 내가 나무딸기를 따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마침 그때도 할아버지는 말들로 인해 머리가 복잡하셨고 또 말들이 사람들을 우롱하는 
것에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작은나무야, 너는 
(검붉은) 나무딸기가 (연두색)일 때도 (빨갛다)는 걸(원래 나무딸기의 영어명은 
blackberry며 이것은 (검붉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옮긴이) 아니?"
  이 말씀에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웃음을 터트렸다. "음^5,5,5^ 
거기에 그런 (이름)이 붙게 된 건, 에^5,5,5^ 색깔로 쉽게 그걸 알아보게 하기 위해 
그렇게 된 거다. ^5,5,5^ 그리고 그게 익지 않았을 때의 색깔을 사람들은 
(연두색)이라고 부른다. ^5,5,5^ 근데 거기에 그런 이름이 붙어버려 그게 익지 않았을 
때도 그건 (빨갛다)." 이치에 맞는 말씀이었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말을 지어내는 그 빌어먹을 놈의 새끼들은 그따위 식으로 
우리 같은 백성들을 정신없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니 어떤 자식들이 남을 헐뜯는 
(말들)을 늘어놓을 때는 그 자식들의 말뜻을 새겨들으려고 애쓰지 마라. 몽땅 
개소리니까. 그 대신 그 (말투)에 귀를 기울여라. 그러면 그 자식들이 얼마나 비열한 
거짓말쟁이인가를 단박에 알게 될 테니까." 할아버지는 세상에 너무나 많은 말들이 
넘치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분개하셨다. 이치에 맞는 생각이었다.
  우리가 가는 길가에는 또 히코리 나무 열매, 밤, 호도 등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네거리 가게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것들을 줍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곤 했다.
  사실 네거리 가게까지 우리 제품을 운반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세 개의 위스키 항아리들이 들어 있는 자루를 메고 낑낑대며 할아버지를 뒤쫓아가다 
보면 할아버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할아버지가 한참 앞 어딘가에서 짐을 내려놓고 앉아 계시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간신히 할아버지 앉아 계시는 데까지 가면 할아버지는 나한테 쉴 시간을 
주셨다.
  우리는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 하는 식으로 제품을 운반하기 때문에 짐이 
무거워도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그런데 마지막 산등성이에 이를 때마다 우리는 항상 
숲속에 들어가서 쉬곤 했다. 우리는 네거리 가게 문앞에 피클(서양식의 오이 장아찌: 
옮긴이) 통이 나와 있지 않나 살펴보곤 했다. 피클 통이 문앞에 나와 있지 않으면 
우리는 안심하고 그 가게 안에 들어가도 좋았다. 그리고 그게 밖에 나와 있으면 가게 
안에 법이 들어왔다는 걸 뜻하므로 거기에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이 산악지대 
주민들은 이 가게 부근에 올 대마다 모두들 먼저 피클 통이 있나 없나부터 확인하곤 
했다. 그들도 역시 그 가게에 넘겨줄 제품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게 앞에 피클 통이 나와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항시 거기로 
접근하기 전에 먼저 그게 있나 없나부터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위스키 
제조업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일들이 따르는 법이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잘 명심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할아버지는 모든 직업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다 그 나름의 
복잡한 일들이 따르는 법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 말씀을 하시면서 낮이고 밤이고 사람들의 입 속만 들여다봐야 하는 
치과의사의 경우를 예로 드셨다. 그리고 당신이 그런 직업을 가지셨다면 당신은 
아마도 머리가 횟 돌아 버리셨을 거다, 위스키 제조업은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이 
따르기는 하지만 사나이가 한번 덤벼볼 만한 일이 아니겠느냐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었다.
  나는 젠킨스 씨를 좋아했다. 그분은 체구가 크고 뚱뚱하며 항시 작업복을 입고 
계셨으며 작업복 가슴 위까지 내려오는 하얀 수염을 갖고 계셨다. 하지만 머리는 
잔터럭 하나 없는 말끔한 대머리였다. 그건 소나무 옹이처럼 번쩍번쩍 윤이 났다.
  그분의 가게에는 없는 게 없었다. 벽에 걸린 큰 선반들 위에는 셔츠, 작업복, 신발 
등이 즐비했고 크레커가 담긴 통들도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판매대 위에는 커다란 
치즈덩이, 그리고 판매대 위에 설치된, 나무로 칸을 치고 유리 뚜껑이 달린 여러 개의 
네모난 틀 안에는 사탕이 들어 있었는데 온갖 종류의 사탕이 칸마다 그득그득 들어차 
저걸 언제 다 파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나는 누가 그걸 사먹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난 누군가가 사먹으니까 저렇게 진열해 두는 게 아니겠는가 
쯤으로 짐작하고 넘어갔다.
  우리가 제품을 넘겨줄 때마다 젠킨스 씨는 나더러 가게 안에 설치된 커다란 난로에 
때게 자기네 장작더미들이 쌓여 있는 데로 가서 장작 한 짐을 날라다 줄 수 
있겠느냐고 하시곤 했다. 그러면 나는 늘 말없이 장작을 날라다 드리곤 했다. 처음에 
그분은 수고했다고 얼룩덜룩하게 무늬진 커다란 막대사탕 하나를 주셨다. 하지만 나는 
나뭇단 한번 날라다 줬다고 그걸 냉큼 받을 수가 없었다. 그건 전혀 힘드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분은 그걸 다시 집어넣고 대신 다른 것을 집어 주시면서 이건 너무 
오래된 거라 마침 버리려고 했던 거라고 하셨다. 그러자 할아버지도 젠킨스 씨가 그걸 
버리려고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며 또 그런 건 손님들도 사가려고 하지 않으니 네가 
먹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러면 나는 그걸 받았다.
  매달 그곳에 갈 때마다 그분이 오래된 막대사탕 하나씩을 주시는 바람에 나는 내가 
그분 가게의 오래된 사탕들을 거의 다 처분해 드린 게 아닌가 추측했다. 젠킨스 씨도 
네가 먹어준 덕분에 참 도움이 되었다고 하셨다.
  내가 오십 센트를 사기당한 것도 그 네거리 가게에 갔을 때였다. 내가 그 오십 
센트를 모으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건 매달 우리가 우리 제품들을 
가게에 넘겨줄 때마다 할머니가 내 몫이라고 하시면서 단지 안에다 넣어 주셨던 오 
센트나 십 센트가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건 위스키 제조에 참여한 대가로 받은 내 몫의 돈이었다. 나는 네거리 가게에 갈 
때마다 호주머니 속에 그 동전들을 전부 넣어 가지고 갔다. 하지만 난 한 번도 그걸 
쓴 적이 없었으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원래의 단지 속에 그걸 넣어두곤 했다.
  가게에 갈 때 그 동전들을 주머니에 넣고 가면 그게 내 돈이라는 기분 때문에 여간 
기분이 흐뭇하지 않았다. 가게에 갈 때마다 나는 진열장 속에 들어 있는 빨갛소 파란 
사탕이 든 큼직한 포장상자를 한참동안 들여다보곤 했다. 나는 그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몰랐지만 돌아오는 크리스마스 때는 할머니께 그걸 사다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5,5,5^. 그러면 우리 식구들은 두고두고 그걸 나눠 먹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걸 사기도 전에 내가 가진 돈을 사기당했다.
  그날 우리가 우리 제품들을 넘겨준 직후, 그러니까 점심 먹을 때쯤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 태양은 막 머리 위에 솟아올라 있었으며 할아버지와 나는 가게에 딸린 
곁채 안에서 가게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조금 전에 
젠킨스 씨네 가게에서 할머니 드릴 설탕 약간과 오렌지 세 개를 사셨다. 할머니는 
오렌지를 좋아하셨으며 나 역시 좋아했다. 할아버지가 오렌지 세 개를 갖고 계셨기 
때문에 나는 그 중의 하나는 내 몫이라는 걸 알았다.
  그때 나는 열심히 내 막대사탕을 빨고 있었는데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게 있는 쪽으로 몰려오는 게 보였다. 그들은 정치가 한 사람이 이곳에 와서 연설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정치가가 올 때까지 이곳에 앉아 계시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정치가라면 낯짝도 보기 싫어하셨으니까. 헌데 우리가 
충분히 휴식을 취하기도 전에 그 정치가가 도착했다.
  그는 큰 차에 탄 채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나타났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그가 
그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그가 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그 차를 모는 사람을 
따로 두고 있어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 나왔으며 그와 함께 뒷좌석에 앉아 있던 숙녀 
한 사람은 그대로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피우던 담배곽에서 담배 
개비들을 뽑아내 밖에다 뿌렸다. 할아버지는 그게 미리 말아져서 나오는 담배라고 
하시면서 부자들은 담배 말기도 싫어할 정도로 게으른 작자들이라 늘 저런 담배만 
피운다고 하셨다.
  그 정치가는 두루 돌아다니며 모든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지만, 할아버지와 나한테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인디언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리고 인디언들은 
투표장에 아^36^예 접근할 생각도 하지 않으니 그 정치가한테는 하등 이용가치가 
없어서 그런 거라고 하셨다. 타당한 말씀 같았다.
  그는 검은색 정장에 하얀 셔츠를 받쳐입었으며 밑으로 늘어진 검은 띠를 목에 매고 
있었다. 그는 연신 껄껄거리고 웃었으며 아주 행복해 보였다. 저러다 혹시 미치는 
거나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상자 모양으로 생긴 작은 단 위에 올라가 워싱턴 시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연설하기 시작했다^5,5,5^. 그는 워싱턴 시가 완전히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곳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성서에 나오는, 죄악과 불의 때문에 멸망당한 도시: 
옮긴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연설을 하면서 점점 
더 흥분해 날뛰었는데 그 바람에 그의 목에 맨 띠가 다 풀어졌다.
  그는 그 모든 죄악의 배후에는 가톩릭 교도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했다. "가톨릭 
교도들은 모든 것들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으며 교황 씨를 백악관에 들어가게 
하려고 광분하고 있다, 가톨릭 교도들은 동서 고금을 통틀어 유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한 비열한 인간 말종들이다. 가톨릭 교도들은 신부라고 하는 사람들과 
수녀라고 하는 여자들을 짝짓게 하고는 거기서 생기는 애기들을 개의 먹이로 준다. 
이것은 일찍이 듣도 보도 못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 그의 연설의 
골자였다.
  그는 이런 얘기를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는데 나는 워싱턴 시에 사는 가톨릭 
교도라는 사람들이 그 지경이라면 이건 충분히 소리를 지를 만도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만일 자기가 그들과 맞서 싸우지 않으면 그들은 모든 걸 장악하고 
우리가 사는 이 고장에까지 악의 씨를 퍼뜨리게 될 거라고 했다^5,5,5^.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건 아주 심각한 일이다.
  그는, 만일 그들이 이 고장에까지 세력을 뻗치게 된다면 이 고장 여자들은 몽땅 
수도원 같은 데 들어가게 될 것이고^5,5,5^ 다시는 애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리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 고장 사람들이 일치 단결하여 그를 워싱턴 시에 보내 
가톨릭 교도들과 싸우게 하는 것 외에 달리 가톨릭 교도들을 제압할 방법은 없는 듯 
했다. 그는, 자기가 워싱턴 시로 진출한다 해도 그건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가톨릭 교도들에게 돈으로 매수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는 
돈을 싫어하며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돈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기는 때로 그들과의 싸움을 포기하고 어디론가 떠나 우리들처럼 그저 
편안하게 쉬면서 살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도 있다고 하였다.
  나는 그가 떠난다는 말에 무척이나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연설을 끝낸 그는 
연단에서 내려와 여유만만하게 웃으며 모든 사람들과 악수를 하기 시작했다. 마치 
워싱턴 시에 가서 얼마든지 그러한 상황을 타개할 자신이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래서 나는 그가 가톨릭 교도들을 무찌르기 위해 워싱턴 시로 다시 되돌아갈 
모양이라고 생각하고는 어느 정도 안심을 했다.
  그가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떤 사내 하나가 줄에 매인 갈색 
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군중 뒤편으로 다가갔다.
  그는 사람들 뒤편에 서서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던 중 그 정치가가 두 차례 곁으로 
지나가는 바람에 그와 두 번씩이나 악수를 했다. 그 조그만 송아지는 그 사내 
뒤편에서 머리를 떨군 채 다리를 벌린 자세로 서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송아지 곁으로 살그머니 다가갔다. 나는 송아지를 한번 쓰다듬어 줬다. 그러나 
송아지는 머리를 들지 않았다. 그 사내는 커다란 모자의 챙 밑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그는 길게 찢어진 눈을 갖고 있었는데 미소를 짓는 바람에 두 눈이 거의 다 감길 
정도가 되었다. 나도 웃어 줬다.
  "우리 송아지가 좋으냐, 꼬마야?"
  "예." 나는 대답을 하고서 송아지로부터 몇 발짝 물러섰다. 괜시리 송아지를 
괴롭힌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까이 가봐." 그는 아주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까이 서서 송아지를 
쓰다듬어 주렴. 넌 송아지를 괴롭힐 애 같지가 않구나." 나는 그의 말대로 송아지를 
쓰다듬어 줬다.
  그는 송아지 뒤편으로 씹는 담배의 진을 뱉었다. 그가 말했다. "난 알 수 있다. 우리 
송아지가 널 좋아한다는 걸. 이제까지 만난 그 누구보다도^5,5,5^ 이 녀석은 너랑 살고 
싶어하는 것 같아." 나는 그 송아지가 그가 말한 것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지 어떤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건 그의 송아지니까 당연히 그는 그 송아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으리라. 그는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돈은 좀 갖고 있니, 꼬마야?"
  "예. 오십 센트요." 내 말에 그 사내는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그게 별로 대단한 
액수의 돈이 못 된다는 걸 알 수 있었으며 내가 그것밖에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유감스러웠다.
  잠시 후에 그는 웃음기를 머금고 말했다. "이런 송아지를 사려면 네가 가진 돈의 백 
배쯤은 있어야 할게다." 나도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겠죠. 암만해도 난 
안되겠어요. 돈 생길 데가 없거든요." 그 사내는 다시 얼굴을 찡그리더니 말했다. 
"흠^5,5,5^ 나는 기독교인이다. 내가 꽤 손해를 보기는 하겠지만 네가 이 송아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 송아지는 너랑 함께 살아야 한단 말이다." 
그러더니 그는 잠시 골똘히 생각했다. 나는 그가 송아지랑 헤어질 생각에 가슴이 
아파서 그러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말했다. "전 이 송아지를 가질 생각이 없어요, 선생님."
  그러나 그 사내는 손을 치켜들어 내 말을 가로막았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게 이 송아지를 주겠다. 단돈 오십 센트에. 그래야만 내가 기독교인 된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리고 난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겠다. 절대로. 
그저 내게 너의 오십 센트만 주거라. 그러면 이 송아지는 네거다."
  그가 이런 식으로 나오니 내가 어떻게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있겠는가. 나는 내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오 센트와 십 센트짜리 동전들을 모두 꺼내 그에게 
넘겨주었다. 그는 그 송아지를 묶은 줄을 내게 건네주고는 어느 길로 갔는지도 모르게 
이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내가 비록 그 사람에게 손해를 좀 입히기는 했지만 (그 사람은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다소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송아지가 아주 
자랑스러웠다. 나는 내 송아지를 끌고 가 할아버지께 보여드렸다. 할아버지는 나만큼 
내 송아지가 자랑스럽지 않으신 모양이다. 나는 그게 할아버지 것이 아니고 내 것이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와 내가 동업자니까 그 송아지의 
반은 할아버지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혼자 뭐라고 툴툴대기만 
하셨다.
  그 정치가 주위에 몰려 있던 군중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정치가가 곧바로 워싱턴 시로 진출해서 가톨릭 교도들과 싸워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그 정치가는 종잇장을 하나씩 돌렸는데 내게는 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길바닥에서 한 장을 주웠다. 그 종이에는 그의 사진이 박혀 있었는데 사진 속의 
얼굴은 워싱턴 시에서의 일에 관해서는 자기에게 맡겨 달라는 듯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은 아주 젊어 보였다.
  할아버지가 집으로 가자고 하셔서 나는 그 전단을 주머니에 넣고는 송아지를 끌고 
할아버지 뒤를 따랐다. 헌데 그 송아지를 끌고 가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척거리며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나는 그 
송아지가 쓰러질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있는 힘을 다해 줄을 잡아당겼다.
  나는 그것을 우리 오두막까지 끌고 갈 수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내가 지불한 돈의 백 배의 가치를 가니 것이었지만^5,5,5^ 아마 
어디가 좀 아픈 모양이었다.
  내가 첫번째 산등성이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할아버지는 벌써 저 아래 골짜기 맨 
밑부분에 이르러 이제 곧 오르막으로 오르실 참이었다. 나는 자칫하면 할아버지를 
놓치겠다 싶어 할아버지께 소리쳤다. "할아버지^5,5,5^ 할아버지는 가톨릭 교도들 
중에서 아는 사람이 있으세요?"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추셨다. 그 틈에 나는 송아지를 
더 힘껏 잡아끌면서 부지런히 걸어갔다. 할아버지는 송아지와 내가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 주셨다.
  "옛날에 한번 본 적은 있지. 군청이 있는 읍에서." 송아지와 나는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할아버지 곁으로 가서 쉴 틈을 얻었다. "한 사람을 봤지. 뭐 특별히 비열하게 
생긴 사람 같지는 않았어^5,5,5^. 아주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5,5,5^. 그 사람은 자기 옷깃을 뒤틀고 있었는데 인사불성으로 취한 것 같더라. 
뭐 그렇지만 아주 순한 인상이었어."
  할아버지는 바위 위에 걸터앉으셨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가 그 일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신다는 걸 알았고 그 때문에 내심 아주 기뻐했다. 송아지는 할아버지 앞에서 
앞다리를 벌리고서 심하게 헐떡거렸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만일 네가 말이다, 칼을 들어 반나절 동안 그 정치가의 
뱃속을 가르고 샅샅이 헤쳐 본다면 너는 진실의 핵심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게다. 너는 
그 개쌍놈의 새끼가 위스키 세금을 없애겠다는 소리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될 게야^5,5,5^. 그리고 옥수수 가격에 대해서도." 그건 옳은 말씀이었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 개쌍놈의 새끼가 그런 얘기를 하는 걸 듣지 못했다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개쌍놈의 새끼"란 욕은 요즘 유행하는 욕으로 할머니가 곁에 있을 때는 
절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자가 신부와 수녀들이 과연 
매일매일 짝짓기를 하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갔으며 또 무수히 많은 수사슴과 암사슴들 역시 짝짓기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짝짓기를 하든 안 하든 그건 그들의 
문제다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또 그자가 신부와 수녀들이 자기네 애기들을 개들의 먹이로 준다고 
했는데 몇천 년이 가도 암사슴이 자기 새끼를 개의 먹이로 주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며 이것은 여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그러니 그자의 말은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었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나서 내가 가톨릭 교도들에 대해 갖게 되었던 나쁜 인상은 
약간 가셨다. 할아버지는, 가톨릭 교도들이 지배권을 쥐고 싶어하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5,5,5^. 하지만 네게 돼지 한 마리가 있으며 네가 그걸 도둑맞고 싶지 
않아 열 명 가량의 사람들을 끌어들여 그걸 지키게 했다고 치자, 그러면 이번에는 
바로 그 녀석들이 그 돼지를 훔치고 싶어하게 될 것이다, 돼지는 너 자신의 부엌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워싱턴 시에 사는 자들은 
하나같이 정직하지 못한 자들뿐이라 늘 서로서로를 감시해야만 하는 처지에 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들은 항시 지배권을 장악하려고 들기 때문에 늘 개싸움이 벌어진다며 
워싱턴 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곳에 망할놈의 정치가들이 너무나 많다는 데 있다고 
하셨다ㅣ.
  할아버지는, "우리가 비록 비타협파 침례교회에 나가고는 있지만 그 비타협파들이 
지배권을 장악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네들기리 약간씩 마시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술마시는 습관에 대해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에 있어 그들이 
지배권을 잡았다가는 이 세상에서 술이 싸그리 없어져 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나는 가톨릭 교도들 말고도 위험한 자들이 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만일 그 
비타협파들이 정권을 잡게 된다면 할아버지와 나는 그 당장 위스키 만드는 직업을 
잃고 굶어죽게 될 테니까.
  나는 통 냄새 나는 위스키를 만드는 거물급 제조업자들도 역시 지배권을 차지하려고 
애쓰지는 않느냐, 그리고 그들이 그걸 차지하게 된다면 그들은 우리가 자기네 사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강제로 우리를 위스키 만드는 일에서 손떼게 하려 들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할아버지께 물었다. 할아버지는, 그들은 분명 워싱턴 시에서 매일 
정치가들을 돈으로 매수하면서 그렇게 하려고 미친듯이 광분하고 있으리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으니 그건 인디언들만은 지배권을 차지하려고 
들지 않으리라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인디언들만은 그럴 성싶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시는 동안 송아지는 어느새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그저 모로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줄을 잡아당겨 보았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네 송아지는 죽었다." 할아버지는 송아지의 반에 대한 
권리를 잃으신 셈이다.
  나는 무릎을 꿇고 송아지의 머리를 받쳐주어 그것이 제발로 일어나게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축 늘어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머리를 가로저으셨다. 
"작은나무야, 그건 죽었다. 무엇이든 숨이 넘어가면^5,5,5^ 죽은 것이다." 그건 
사실이었다. 나는 송아지 곁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놈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건 내 
생애에서 최악의 순간 중 하나였다. 내 오십 센트와 빨갛고 파란 사탕 상자들이 
날아간 건 물론이고 이제 내 송아지마저 날아갔다^5,5,5^. 내가 지불한 돈의 백 배나 
가치 있는 송아지가.
  할아버지는 당신의 가죽장화에서 길다란 칼을 뽑아내 그 송아지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뽑아내셨다. 할아버지는 그 내장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건 상하고 
병들었다. 먹을 수 없어."
  이제 내 수중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울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싶은 심경이었다. 할아버지는 한 
무릎을 꿇고 앉아 송아지의 가죽을 벗겨내셨다. "할머니가 네게 가죽 값으로 십 
센트를 주실 게다. 이건 쓸모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개들을 이리로 보내면^5,5,5^ 
그것들이 이 송아지 고기를 먹을 게다." 내가 생각해도 그러는 것밖에 다른 방도는 
없는 듯했다. 나는 송아지 가죽을 짊어진 채 힘없이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할머니가 묻지도 않으셨건만 나는 자진해서 모든 사실을 다 말씀드렸다. 내 오십 
센트를 단지 속에 되돌려 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송아지를 사는 데 쎳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송아지는 죽었다, 등등. 할머니가 나한테 송아지 가죽 값으로 십 센트를 
주셔서 나는 그걸 단지 속에다 넣었다.
  평소 나는 완두콩과 옥수수 빵을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그날 밤에는 먹기 싫은 걸 
억지로 입 속에 쑤셔넣었다.
  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 할아버지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이윽고 입을 
여셨다. "작은나무야, 네가 직접 몸으로 체험해 보기 전에는 아무런 교훈도 없는 
법이다. 만일 내가 그 송아지를 사는 걸 말렸더라면 너는 그 뒤로 틈만 나면 그때 그 
송아지를 사버릴 걸 하고 후회하게 될 게다. 그리고 만일 내가 너더러 그 송아지를 
사라고 권했더라면 너는 그 송아지가 죽은 걸 내 탓으로 돌리고서 두고두고 나를 
원망하게 될거다. 네 스스로 직접 깨닫는 방법밖에 없었어."
  "예, 알아요."
  "그래, 넌 이번 일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지?"
  "음, 기독교인들과는 절대로 거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요."
  할머니가 먼저 웃으시기 시작했다. 나는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가 이윽고 폭소를 터트리셨는데 너무 
웃으시느라 옥수수 빵이 목에 걸려 하마터면 질식할 뻔했다. 나는 내가 뭔가 우스운 
어떤 교훈을 얻었던 모양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어떤 점이 그렇게 우스운지는 알 수 
없었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작은나무야, 네 말인즉슨 다음번에 어떤 사람이 네 
앞에 나타나 자기가 아주 좋은 사람이고 착한 사람이라고 떠벌일 경우에는 조심을 
해야겠다, 그 얘기지?"
  "예, 할머니,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지 확신할 수 없었다^5,5,5^. 내 오십 
센트가 날아갔다는 것 말고는. 나는 이날 하루에 일어난 여러 가지 일로 아주 녹초가 
된 나머지 식탁에 앉은 채 그대로 내 저녁밥 접시에다 코를 박고 잠이 들어 버렸다. 
그 바람에 할머니는 내 얼굴에 달라붙어 으깨진 완두콩들을 닦아 내셔야 했다.
  그날 밤 나는 비타협파 침례교도들과 가톨릭 교도들이 우리 집으로 몰려온 꿈을 
꾸었다. 비타협파들은 우리 증류기를 깨부셨고 가톨릭 교도들은 내 송아지를 
잡아먹었다.
  그때 거대한 기독교인 하나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그곳에 서서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빨갛고 파란 사탕상자 하나를 보여주며 이건 오십 센트의 백 
배나 값이 나가는 것이지만 특별히 오십 센트에 네게 주겠다고 했다. 헌데 내게는 
오십 센트가 없어서 그걸 살 수 없었다. 
  @[  네거리 가게에서

  할머니는 연필과 종이를 사용해서 내가 그 기독교인과의 거래에서 잃은 총액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셨다. 그 결과 나는 내가 단지 사십 센트만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송아지 가죽으로 십 센트를 건졌으니까. 나는 그 십 센트를 내 단지 속에 
넣어둔 채 다시는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지 않았다. 그 단지 속이 더 안전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번에 제품을 운반했을 때 나는 십 센트를 번 데다 할머니가 오 센트를 더 
얹어주셔서 총 이십오 센트를 모은 셈이 되었으며, 이로써 다시 전에 가졌던 만큼의 
돈을 다시 모으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제품을 나르는 것이 아주 힘겨운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제품을 
나를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나는 매주마다 사전에 나오는 단어들을 다섯 개씩 익히곤 했는데 할머니는 우선 그 
뜻을 풀이해 주신 뒤 그 단어들을 갖고 문장을 만들어 보는 연습을 하게 하셨다. 나는 
가게로 오갈 때마다 내가 익힌 문장들을 아주 유용하게 써먹곤 했다. 즉, 내가 배운 
단어들을 이용해서 어떤 문장들을 말하면 할아버지가 그 문장들에 대해서 
생각하시느라 걸음을 멈추시게 되는데 그 틈에 나는 얼른 할아버지 곁으로 가서 짐을 
내려놓고 쉴 수가 있었던 것이다. 때로 할아버지는 내가 익히고 있던 어떤 단어들을 
더 이상 외울 필요가 없는 말이라고 하시면서 아^36^예 사전에서 지워 버리게 하셨다. 
그 바람에 내 진도는 쑥쑥 나갔다.
  내가 "증오하다 abhor"라는 단어를 익힐 때 같은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때 
할아버지는 내 앞에서 쏜살같이 내달으셔서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가느라고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 들으시라고 일부러 크게 소리쳤다. "나는 
찔레꽃 가지와 노란색 윗도리를 (증오)해."
  할아버지는 문득 걸음을 멈추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곁으로 다가와서 위스키 
항아리들을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리셨다. "너 지금 뭐라고 했지?"
  "나는 찔레꽃 가지와 노란색 윗도리를 (증오)한다구요." 이렇게 대답을 하자 
할아버지가 아주 딱딱한 눈길로 나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시는 바람에 나는 뭐가 
잘못됐나 싶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창녀들이 찔레꽃 가지와 노란색 
윗도리를 갖고 무얼 했다는 거지?"(영어로 창녀는 whore이며 이 단어는 증오하다라는 
뜻의 abhor와 비슷하게 들려 할아버지는 엉뚱한 착각을 일으킨 것이다: 옮긴이)
  나는 나도 무얼했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내가 익히고 있는 단어는 
"증오하다"이며 이것은 어떤 것이 아주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럼 넌 왜 찔레꽃 가지와 노란색 윗도리가 아주 마음에 안 
든다고 하지 않고 그것들을 (증오한다)라고 하는 거냐?"라고 반문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느 말을 쓰는 게 좋을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어서 그랬으며 사전에 나와 
있으니까 그냥 연습해 봤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이 일로 아주 흥분하셨다. 할아버지는 
쓸데없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는, 그 사전을 만든 개쌍놈의 새끼는 당장 
잡아서 총으로 쏴 죽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이런 놈들은 어떤 한 물건을 가리키는 말들을 대여섯개씩이나 만들어서 
공연히 그 뜻을 흐리게 만들곤 한다시며, 정치가들이 사람들을 사기 처먹고는 
빠져나올 구멍을 만들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정치가가 이런 저런 말을 해놓고도 안 
했다고 발뺌할 수 있는 것도 다 이런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만일 네가 
자세히 연구할 기회가 있다면 그 망할놈의 사전이 어떤 정치가의 추천을 받은 
것이거나 정치가들이 그 배후에 있다는 것이 밝혀질 거라고 하셨다. 이치에 맞는 
말씀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그대위 단어는 머릿 속에서 당장 지워 버리는 게 좋을 
거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했다.
  겨울철이나 대기철이 되면 네거리 가게 주변에는 자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기철"이란 통상 팔월달을 뜻하는 것으로 농부들이 쟁기질을 끝내고 또 대여섯 번 
김매기를 한 뒤어 일정한 기간을 말했다. 이때가 되면 농작물은 농부가 쟁기질이나 
괭이질을 하지 않고 가만히 두고 보아도 좋을 만큼 자라 있으며 이때 농부가 할 
일이라고는 농작물이 다 자라 수확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제품을 넘겨주고 나서 할아버지가 돈을 받으시고, 또 내가 젠킨스 씨를 위해 
나뭇단을 날라다 드리고 그 댓가로 아주 오래 되어 팔 수 없게 된 막대사탕을 받고 난 
뒤면 할아버지와 나는 항시 그 가게에 딸린 곁채에서 벽에다 등을 기대고 앉아 
느긋하게 쉬곤 했다.
  그럴 때 할아버지의 주머니 속에는 으레 십팔 달러가 들어 있었으며^5,5,5^ 우리가 
집으로 가면 그 가운데 적어도 십 센트는 내 차지가 된다. 그뿐이 아니다. 할머니를 
위해 산 설탕과 커피도 곁에 있고 또 만사가 순조롭다는 생각이 들 때면 종종 거기에 
더해 밀가루도 사서 들었다. 게다가 우리는 위스키를 만드느라고 아주 힘겹게 보낸 한 
주 일을 방금 막 끝낸 참이다.
  나는 항시 우리가 거기 앉아 쉴 때마다 젠킨스 씨에게서 받은 오래 된 막대사탕을 
먹어치우곤 했다. 그것은 아주 기분좋고 느긋한 한순간이었다.
  우리는 거기 앉아 사람들의 이런저런 얘기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그들은 불황에 
대한 얘기며, 뉴욕에서 창밖으로 뛰어내린 사람들에 대한 얘기, 그리고 자기 머리에 
총을 쏜 사람들에 관한 얘기 등등을 했다. 할아버지는 한번도 입을 여신 적이 
없었으며 그 점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한테만은 얘기를 해주셨다. 뉴욕에는 
갈아먹을 땅이 넉넉치 못한 사람들이 몰려들어간 바람에 도시가 온통 사람들로 
북적대며 그 사람들 중의 반은 그 좁은 곳에서 서로 부대끼며 사느라 거의 미쳐 
버렸으니 그중에서 제 머리에 총을 쏘는 사람들이나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나오는 건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일이라는 얘기를.
  그 가게 곁채에서는 머리를 깎는 사람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발사는 그들을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앉히고 머리를 깎아 주었다.
  사람들이 "바네트 노인"이라고 부르는 할아버지는 이빨을 튀어오르게 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이빨을 "튀어오르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빨이 썩어 이것을 뽑아 버려야 하는 처지에 있지 않는 한 말이다.
  바네트 노인이 이빨을 튀어오르게 하는 광경은 누구나 보고 싶어했다. 그는 자기 
고객을 우선 의자에다 앉혔다. 그런 다음 철사를 불에다 빨갛게 달구었다. 그리고 그 
철사로 썩은 이!빨을 감고 그 이빨에다가 못을 댄 뒤 망치로 후려쳤다. 그 노인네만 
아는 비밀스런 방법으로. 그러면 그 이빨은 입 밖으로 튀어나와 마당에 떨어지곤 
했다. 그는 자기 기술을 아주 자랑스러워했으며 자기가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사람들을 물리쳐 멀찌감치 떨어져 있게 했다. 그들이 그걸 보고 배우지 못하게 
말이다.
  한번은 바네트 노인과 비슷한 연배의 노인네 (사람들은 그를 레트 씨라고 불렀다) 
한 분이 썩은 이빨하나를 튀어오르게 하려고 그를 찾아왔다. 바네트 노인은 레트 씨를 
의자에 앉히고 철사를 달구었다. 그런 다음 늘 하듯이 레트 씨의 썩은 이빨에다 그 
철사를 감았다. 헌데 그만 레트 씨가 자신의 혀를 그 철사에 대고 말았다. 그러자 
레트 씨는 황소보다 더 크게 소리지르며 바네트 노인의 배를 발길로 차버려 바네트 
노인은 뒤로 벌렁 나가자빠지고 말았다.
  이에 격분한 바네트 노인은 의자로 레트 씨의 머리를 내리쳤다. 두 사람은 곧바로 
엉겨붙어 흙바닥 위를 뒹굴면서 서로 치고받았으며 이 혈전은 사람들이 까맣게 
몰려들어 두 사람을 떼어 놓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들은 떨어진 다음에도 한동안 
서로 온갖 악다구니를 퍼부어댔다. 헌데 바네트 노인의 욕설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레트 씨가 퍼붓는 욕설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도무지 요령부득이었다. 
혓바닥이 그 지경이 되었으니 당연한 일일 수밖에!
  마침내 그들의 흥분이 가라앉자 한떼의 사람들이 레트 씨를 붙잡고 그의 혀를 
내밀게 한 뒤 거기다 테레빈 유를 부었다. 레트 씨는 그곳을 떠났다. 바네트 노인이 
이빨을 튀어오르게 하는 데 실패하는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이 사건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가질 못했다. 그는 자기 기술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므로 자기가 어째서 레트 씨의 이빨을 튀어오르게 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이사람 
저사람 붙들고 일일이 해명을 하며 돌아다녔다. 그는 그건 순전히 레트 씨의 잘못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앞으로 썩은 이빨 같은 건 절대로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결심했다. 
설혹 생긴다 해도 나는 바네트 노인의 귀에 그 얘기가 들어가도록 하지는 않을 
참이었다.
  그 가게에서 나는 어린 소녀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애는 대기철이나 겨울철이면 
자기 아빠를 따라 가게에 나타나곤 했다. 그애 아빠는 비교적 젊은 사람으로 다 헤진 
작업복 차림에 대체로 맨발로 다녔으며 그 딸도 항시 맨발이었다. 아무리 날이 추울 
때라도.
  할아버지는 그들을 소작인이라 하셨다. 할아버지는 소작인이란 자기 땅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며 그들은 그밖에도 변변한 재산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하셨다. 침대나 의자조차도 없을 정도로. 그들은 남의 땅에서 일하며 가끔 주인의 
수확량의 반 정도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삼분의 일 가량을 받는 게 고작이다. 
그들은 그걸 "반 타작" 또는 "삼분의 일 타작"이라고 부른다.
  할아버지는, 소작인들이 한해 내 먹은 식량, 종자대와 비료대 (이런 데 쓰이는 돈은 
지주가 선불해 준다) 노새 사용료 등을 까고나면 항시 그들은 빈손 털고 일어서게 
된다고 하셨다. 참새 눈물만큼의 곡식 정도나 받고서.
  할아버지는 대가족이 딸린 소작인은 지주들에게서 일감을 얻는 데 그만큼 더 
유리하다고 하셨다. 그 많은 가족들이 몽땅 들에 나가 일을 하게 되니까. 대가족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그래서 소작인들은 늘 애들을 많이 낳으려고 한다. 소작인 
집안에서는 여자들도 들에 나가서 목화를 따고 괭이질 같은 걸 하며 그들이 일하는 
동안 애기들은 저 혼자 여기저기 기어다니며 놀 수 있는 나무 그늘이나 풀밭 같은 데 
놓아둔다고 한다.
  헌데 인디언들은 소작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당신이라면 소작을 
하느니 차라리 숲으로 들어가 토끼나 잡아먹고 살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경로로 소작일에 빠져들게 되며 일단 거기에 발을 들여 놓았다 
하면 다시는 거기서 헤어나오기 힘들게 된다.
  할아버지는 그게 다 자기네가 할 만한 일에 매달려 열심히 일하지는 않고 쓸데없이 
돌아다니며 되지도 않는 말들을 주절거리는 데 모든 시간을 허비하는 망할놈의 
정치가들 탓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모든 인간 사회가 다 그렇듯이 어떤 
지주들은 비열하고 또 어떤 지주들은 그렇지 않은데 그들이 어떤 인간인가 하는 건 
수확이 끝난 뒤에 "정산을 하는"자리에서 결판이 나며 대체로 그 결과는 크나큰 
실망으로 끝나기 마련이라고 하셨다.
  소작인들이 해마다 딴 곳으로 올겨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겨울만 되면 
소작인들은 새로운 지주를 찾아 해맨다. 일단 새로운 주인이 정해지면 그들은 그 
주인의 땅 근처에 있는 새 오두막으로 이사한다. 그들은 저녁말 되면 새 오두막 집 
부엌에 모여 앉아 "올해", "이곳"에서 자기네들이 이루게 될 꿈들을 부지런히 
설계한다.
  그들은 봄철 내내, 그리고 여름철 내내 이 꿈들을 먹고 사느라 고된 노동의 피로를 
잊는다. 그러다가 수확이 끝나고 나면 또다시 참담한 환멸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해마다 소작지를 바꾸게 되는데 그들의 이런 속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지조없는 사람들"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리고 또 사람들은 
그들이 애만 자꾸 낳는다 (소작인들에겐 일손이 많아야 그나마 먹고 살 수 있다)고 
해서 "무책임한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할아버지는 이런 건 정말 다시 없는 몹쓸 
욕들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는 산길에서 이런 얘기들을 들려주셨는데 할아버지가 이 
얘기를 하시면서 너무나 흥분하시는 바람에 나는 근 한 시간 가량이나 길가에 앉아 쉴 
수 있었다.
  나 역시 그 일로 흥분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정치가의 속성해 대해 속속들이 
꿰뚫고 계시다는 걸 알았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 개쌍놈의 새끼들은 모조리 씨를 말려 
버려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얼른 내 말을 끊으시고 그 "개쌍놈의 
새끼"라는 욕은 당신이 최근에 입수한 아주 강력한 욕이라서 듣는 이를 거북하게 만들 
소지가 있으니 사용할 때 몹시 신중을 기해야 하며 특히 할머니가 곁에 있을 때 그 
욕을 입에 담았다가는 우리 둘 다 집에서 쫓겨나게 되니 이 점을 아주 유의하라고 
하셨다. 나는 즉각 그 말씀을 가슴속 깊이 새겨두었다.
  어느 날 내가 가게 곁채에 쭈그리고 앉아 묵은 사탕을 빨아먹고 있는데 작은 소녀가 
우리쪽으로 다가오더니 내 앞에 섰다. 그애 아빠는 가게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애의 
머리는 형편없이 헝클어졌고 이빨은 모조리 썩어 있었다. 나는 그애가 부디 바네트 
노인과 부딪치지 않기를 바랐다. 삼베 자루로 지은 옷을 입은 그애는, 발끝으로 연신 
흙을 긁으며 내 입 근처를 유심히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어쩐지 안된 느낌이 들어 내 
사탕을 잠시 빨아먹어도 좋다, 단 깨문어 먹지 않고 빨기만 하다가 다시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자 그애는 그 사탕을 받아서 아주 열심히 빨아먹었다.
  그애는 자기가 하루에 목화 백 파운드를 딸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오빠는 
이백 파운드를 따고 자기 엄마는 컨디션이 좋을 때는 삼백 파운드를 따며, 자기 
아빠는 밤까지 일할 경우 무려 오백 파운드나 딴다고 했다.
  그애는, 자기네는 무게를 속이기 위해 목화 자루 속에 돌 같은 걸 집어넣지 않으며 
정직하게 일 잘하는 것으로 소문이 났다며, 이 고장사람들치고 그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더러 목화를 얼마나 많이 딸 수 있느냐고 물어 나는 한 번도 목화를 
따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그애는, "그럴 줄 알았어, 인디언들이 게으르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라고 했다. 나는 그애한테 내 사탕을 
돌려받았다. 그런데 그애는 다시, 인디언들이 일을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것이 
아니고 인디언들은 그저 사는 방식이 다르고 아마도 뭔가 인디언들에게 맞는 일을 할 
거라고 했다. 나는 다시 그애에게 내 사탕을 좀더 빨아먹게 했다.
  그때는 아직 겨울철이었다. 그래서 그애는 자기네 가족은 요즘 산비둘기 우는 
소리가 안 들리나 해서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건 이 
고장에서는 잘 알려진 얘긴데, 산비둘기가 어느 쪽에서 우느냐에 따라 이듬해에 
자기네가 옮겨갈 방향이 결정된다고 했다.
  그애는 자기네는 아직 산비둘기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곧 듣게 될 거다, 
왜냐하면 지주가 자기네 식구들을 완전히 속여먹는 바람에 자기네 아버지가 지주와 
대판 싸움을 해서 곧 이사를 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애 아버지는 
오늘, 정직하게 일만 하고 도통 말썽이라고는 부리지 않는 것으로 소문난 자기네 
가족을 원하는 사람이 있나 알아보기 위해 그 가게로 나왔다고 한다. 그애는, 자기네 
식구가 아마도 기대하던 것 이상으로 좋은 곳으로 옮겨가게 될 거다, 자기네 아빠 
말에 의하면 자기네 식구들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로 이 일대에 소문이 짜하게 
났으니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내년에는 그들도 아주 형편이 좋아질 거라고 했다.
  그애의 말에 의하면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 수확이 끝날 때면 그애는 인형을 하나 
갖게 되어 있었다. 그애 엄마가 진짜 사람 머리털이 달리고 눈을 떴다 감았다 할 수 
있는, 가게에서 파는 인형을 사줄 거라고 약속을 했으니까. 그애는 자기네가 부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자기한테는 그 밖에도 별의별 것이 다 생기게 될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애에게 우리는 산골짜기에 있는 조그만 옥수수밭을 빼고는 전혀 땅을 갖고 
있지 않으며 평야지대나 넓은 골짜기에는 익숙치 않은 산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애에게 내가 십 센트를 갖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애는 그걸 보고 싶어했지만, 나는 그게 우리집에 있는 단지 속에 들어 있어 
지금은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얼마 전에 기독교인이 나한테서 오십 
센트를 사기 처먹은 일이 있어서 그걸 갖고 다니지 않으며,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 내 
남은 십 센트마저 사기 처먹게 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애는 자기가 기됵교인이라고 했다. 그애는 전에 한번 숲속으로 갔을 때 성령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구원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네 아빠와 엄마는 그리로 갈 
때마다 성령을 받으며 성령을 받을 때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하곤 한다고 
했다. 그애는 기독교인이 되면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며 그 숲속에 있는 
순간이야말로 자기네 식구들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요, 성령으로 충만한 순간이라고 
했다. 그애는 내가 구원을 받지 못했으므로 지옥으로 떨어질 거라고 했다.
  나는 그애가 기독교인이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애는 그런 얘기를 
하면서 내 막대사탕을 막대가 다 드러나도록 빨아 먹었기 때문이다. 나는 더 늦기 
전에 얼른 남은 걸 돌려받았다.
  나는 할머니께 그애 얘기를 해드렸다. 그러자 할머니는 사슴가죽으로 된 덧신을 한 
켤레 만드셨다. 할머니는 내 송아지 가죽을 조금 잘라 털달린 부분을 밖으로 나오게 
해서 그 가죽 덧신 맨 위에 잇대셨다. 그리고 신발 두짝의 맨 윗부분에다가는 빨간 
구슬을 한 개씩 다셨다.
  그 다음달, 다시 그 가게로 갔을 때 나는 그애에게, 우리 할머니가 널 위해 이걸 
만들어 주셨으며 돈을 낼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애는 가게 앞을 이리저리 뛰어다녀 
보기도 하고 연신 자기 발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그랬다. 그애는 그 가죽신을 여간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그애가 달리다가 자주 멈춰서서 맨 위에 달린 빨간 구슬을 
어루만지곤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나는 그 가죽신의 맨 윗단의 털 달린 
부분은 바로 내가 할머니께 판 내 송아지 가죽의 일부라고 말했다.
  그애 아빠가 가게에서 나오자 그애는 깡총거리며 아빠 뒤를 따라갔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들이 얼마만큼 걸어갔을 때 그애 아빠는 돌연 
걸음을 멈추고 그애를 내려다봤다. 그는 그애에게 뭐라고 얘기했고 그애는 돌아서서 
내쪽을 가리켰다.
  그는 길가로 가더니만 감나무에서 가는 나뭇가지 하나를 꺾었다. 그리고 한 팔로 
그애를 잡더니만 다른 한 손에 쥔 회초리로 그애의 종아리를 호되게 갈기기 시작했다. 
계집에는 소리내여 울기는 했지만 피하거나 도망치지는 않았다. 그는 그 회초리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그애를 때려줬다^5,5,5^. 그 가게 곁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광경을 지켜봤다^5,5,5^. 그러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계집애를 길바닥에 앉히고는 그 신발을 벗게 했다. 그리고 그걸 들고 
우리 있는 쪽으로 되돌아왔다. 할아버지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할아버지는 
본 체도 하지 않고 내 앞으로 똑바로 걸어와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고 두 눈은 번쩍번쩍 빛을 발했다. 그가 그 가죽신을 내밀어 나는 그걸 
받아들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동정 같은 건 바라지 않는다^5,5,5^. 
아무한테도^5,5,5^ 특히 이교도 야만인한테는!"
  나는 무척이나 겁을 먹었다. 그는 획 돌아서서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의 넝마 
같은 작업복이 바람에 펄럭였다. 그가 계집애 있는 데까지 가자 계집애는 냄큼 그를 
따라갔다. 그애는 이제 울지 않았다. 그애는 머리를 꼿꼿이 한 채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갔다. 그애의 다리에 벌건 줄이 죽죽 간 게 누구의 눈에나 잘 
보였다. 할아버지와 나도 그곳을 떠났다.
  산길에서 할아버지는, 그 소작인이 가진 거라고는 자부심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 그게 좀 엉뚱한 방향으로 과시되기는 했지만 - 그에게 전혀 나쁜 
감정이 없다고 하셨다. 그 사람은 그 계집애고 그 밖의 다른 자식이고 간에 자기 
애들에게 예쁜 걸 좋아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런 걸 사줄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자기애들이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회초리를 
들었다^5,5,5^. 그리고 그들이 그걸 깨우칠 때까지 때려줬다. 그러면 이윽고 그애들은 
자기네가 그런 걸 기대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들은 성령이 이듬해에 그들에게 행복한 순간들을 가져다 주리라 믿었다. 그리고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자 내가 그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하셨다. 할아버지 당신도 여러 해 전에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않았더라면 나와 비슷한 입장에 있었으리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몇 해 전에 한 
소작인의 오두막 근처 산길을 걸어가신 적이 있었다. 헌데 그 소작인의 뒷마당에서 
어린 계집애 둘이 큰 나무 밑에 앉아 시어즈 로벅 회사(통신판매조직과 거대한 
소매체인 조직을 갖고 있는 미국의 유명한 판매회사: 옮긴이)의 상품 안내문을 
들여다보는 중에 한 사내가 갑자기 집 안에서 튀어나오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내는 대뜸 회초리를 들고 그 두 계집애들한테 달려가서는 종아리에서 피가 
나도록 때려줬다. 그리고는 그 시어즈 로벅 안내문을 집어들고 헛간 뒤로 돌아갔다. 
그는 마치 그 안내문이 철천지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발기발기 찢어서는 불살라 
버렸다. 그런 뒤 그는 그 헛간에 기대 앉아 아무도 모르게 흐느껴 울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아까 그 소작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나더러 남들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기를 원치 않는다. 이해하는 데는 많은 고투가 따라야 
하므로.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의 게으름을 얼버무리기 위해 쓸데없이 많은 말들을 
혹사하며 공연히 남들을 "지조없는 사람들"이니 어쩌니 해가며 함부로 입을 놀리곤 
한다.
  나는 그 가죽신을 집으로 가져왔다. 가는 그것을 내 작업복과 셔츠를 넣어두는 자루 
밑에다 두었다. 나는 가급적이면 그것을 쳐다보지 않으려 했다. 그것을 보면 그 
계집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애는 다시는 그 네거리 가게 근처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애 아빠도. 그래서 나는 
그들이 이사갔으리라고 추측했다.
  아마도 그들은 멀리서 산비둘기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으리라. 
  @[  위험한 고비

  산에 봄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맨 처음 알려주는 것은 이디언 바이올렛(제비꽃과의 
식물: 옮긴이)이다. 아직 봄이 멀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어느새 피어난다. 삼월 
바람을 닮아 싸늘한 푸른빛을 띠고 있는 그것들은 지면에 낮게 깔린 채 피어나며, 또 
너무 작아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자칫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다.
  우리는 산자락에 피어 있는 그것들을 캐 모으곤 했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그것들을 캐는 일을 도와드렸는데, 한동안 그 일에 열중하다 보면 매운 바람에 
손가락이 얼얼해지곤 했다. 할머니는 그것으로 몸을 보해주는 차를 만드셨다. 
할머니는 내가 그걸 캐는 속도가 아주 빠르다고 칭찬해 주셨다. 실제로 나는 아주 
빨랐다.
  우리는 아직 얼음이 발밑에서 버석버석 부서지곤 하는 높은 산길에서 솔잎을 땄다. 
할머니는 그걸 넣어 우려낸 뜨거운 물을 할아버지와 나한테 주셔서 마시게 했다. 그건 
과일보다도 좋은 것이라 심신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밖에도 우리는 갖가지 식물의 
뿌리와 앉은 부채의 씨를 채취하곤 했다.
  일단 요령을 익힌 뒤부터 나는 도토리 모으는 선수가 됐다. 처음에 나는 도토리 한 
개를 주울 때마다 일일이 할머니 곁으로 가 할머니가 들고 계신 자루에다 넣었는데, 
할머니가 한움큼씩 모인 다음에 넣는 것이 좋다고 하셔서 그대로 했다. 나는 키가 
작아 지면과의 거리가 가까우니 할머니보다 더 빠르게 주울 수 있었으며 그 덕분에 
얼마 안가 할머니보다 더 많이 줍게 되었다.
  할머니는 도토리를 갈아 노란 황금빛을 띤 가루를 내셨으며, 거기다가 히코리 
열매와 밤을 섞어 튀김과자를 만들어 주셨는데 세상에 그렇게 기막히게 맛좋은 음식은 
다시 없었다.
  때로 할머니는 부엌에서 일을 하시다가 도토리 가루에다 설탕을 엎지르는 실수를 
하시곤 했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이런 바보 같으니. 작은나무야, 내가 도토리 
가루에다 설탕을 엎질렀구나 글쎄"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가 그런 실수를 하실 때마다 나는 
늘 특제 튀김과자를 맛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도토리 튀김과자 먹는 
선수들이었다.
  인디언 바이올렛이 핀 뒤인 삼월 말경 우리는 때때로 산에 올라 그걸 캐곤 했는데 
올라갈 때마다 칼날같이 매섭던 바람결의 감촉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안 가 그것은 깃털처럼 부드러운 감촉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바람 
속에는 흙냄새가 떠돈다. 그럴 때 우리는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안다.
  이때부터 우리는 두텁게 감쌌던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의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의 감촉이 하루가 다르게 부드러워진다는 걸 느낀다. 그것은 우리의 뺨에 
좀더 오래 머물고 좀더 포근해지고 한층 더 강한 냄새를 동반한다.
  높은 산등성이 위에서 얼음이 부서져 녹아내리면 지면은 질척해지고 그것은 작은 
물줄기들을 이루면서 실개천으로 흘러들어간다. 이윽고 노란 민들레들이 낮은 
골짜기를 따라 지천으로 피어나면 우리는 그 잎사귀들을 채취하는데 할머니는 
그것들을 분홍 바늘꽃이나 아메리카자리공 이파리, 그리고 쐐기풀 이파리 등과 섞어서 
맛좋은 음식을 만들어 주신다. 우리는 그 중에서도 쐐기풀 이파리를 으뜸으로 쳤는데 
이건 표면에 억센 솜털이 하얗게 돋아나 딸 때마다 손가락이 따끔따끔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좀처럼 쐐기풀밭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할머니는 귀신같이 찾아내시곤 
했다. 할아버지는, 칠십 평생을 살면서 세상에 이것처럼 찾기 힘든 것도 다시 없다고 
투덜거리셨다. 옳은 말씀이시다.
  분홍 바늘꽃 식물은 탐스러원 새빨간 꽃을 피워내며 그것의 길다란 줄기는 껍질을 
벗겨 날로 먹을 수도 있고 익혀서 먹을 수도 있는데 아스파라거스와 비슷한 맛이 
났다.
  겨자는 산허리를 따라 무더기로 돋아나 밭을 이루는데 꽃이 피었을때 그 밭을 
멀리서 보면 노란 담요를 펼친 것처럼 보인다. 크기가 자그마한 그 곷은 밝은 
카나리아 빛(붉은 빛을 띤 노란색: 옮긴이)을 띠고 있으며 그 이파리는 매운 맛이 
난다. 할머니는 그 이파리를 다른 식물들의 이파리와 섞어서 음식을 만드셨으며 때로 
그 씨를 갈아 만든 걸죽한 죽 같은 것을 식탁 위에 올려놓아 음식에 넣거나 발라먹게 
하셨다.
  대체로 야생으로 자라난 식물들은 밭에서 사람이 재배한 것보다 맛이나 냄새가 훨씬 
더 강한 법이다. 우리는 땅 속에서 야생의 양파를 캐내곤 했는데 그것 한 줌에서 
나오는 맛과 향기는 밭에서 재배한 양파 삼사십 킬로그램에서 나오는 그것과 맞먹을 
정도다.
  대기가 따뜻해지고 빗줄기가 한차례 지면들긋고 지나가면 산꽃들이 다투어 피어나 
산허리는 마치 여러 색깔의 물감 양동이들을 엎지른 것처럼 갖가지 현란한 빛깔로 
물든다. 파이어 크래커(폭죽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옮긴이)는 길쭉하고 둥근 모양의 
빨간 꽃을 피워내는데 그 빨간빛이 너찌나 강렬한지 꼭 빨간 색종이를 보는 듯하다. 
바위틈 같은 데서 자라나는 헤어벨(잔대의 일종: 옮긴이)은 종 모양의 파란 꽃을 
피우며, 가지에 대롱거리고 매달려 있는 그 꼿들은 꼭 탐스러운 포도알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땅바닥에 바싹 달라붙어 자라는 쇠비름은 중심부는 노랗고 그 가장자리로 
연보라빛이 감도는 분홍빛을 지닌 커다란 꽃들을 피워내며, 메꽃은 골짜기 깊은 곳에 
숨어서 피는데 그 긴 줄기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유연하고 꽃잎은 붉은색에 가까운 
핑크빛이다.
  수많은 식물들에서 떨어져 나온 씨앗들은 모놀라의 자궁(대지의 여신의 자궁, 곧 
땅을 말한다: 옮긴이) 속에서 열을 받는다. 모놀라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맨 먼저 
가장 작은 꽃들이 피어난다. 그리고 그녀가 좀더 따뜻해지면 보다 큰 꽃들이 피어나고, 
나무들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나무들은 마치 아기를 가진 여자들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마침내 새순들을 터트리게 된다.
  대기가 숨쉬기 곤란할 정도로 무겁고 끈끈해질 때 우리는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가를 
안다. 그럴 때면 새들은 산등성이에서 날아내려와 골짜기의 바위틈이나 소나무 가지 
밑에 숨어버린다. 시커먼 구름이 산을 넘어오면 우리는 우리의 오두막으로 달려가야 
한다.
  우리는 산꼭대기 위에서 거대한 빛줄기가 일이 초 가량 하늘을 가르며 갈래갈래 
찢어지다가 다시 허공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오두막 현관에서 지켜보곤 한다. 그렇게 
번개가 치고 난 후에는 무엇인가 쩍 갈라지는 날카로운 소리에 뒤이어 엄청난 
우뢰소리가 산등성이를 덮치고 골짜기를 뒤흔든다. 나는 지축이 뒤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천둥이 칠 때면 이번에는 틀림없이 산들이 무너졌으리라고 단정하곤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맞았음은 
물론이다.
  번개는 번번이 다시 찾아온다. 그 푸른 빛줄기는 한순간 천지를 환하게 밝히면서 
산꼭대기의 바위를 내리친다. 느닷없는 돌풍에 나무들은 등을 구부리며 미친듯이 제 
머리를 풀어헤친다. 그리고 진한 습기를 머금은 먹구름에서 폭우가 쏙아져 내린다. 
그러면 골짜기에는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물이 밀어닥쳐 개울가에 살던 온갖 것들을 
휩쓸고 내려간다.
  인간이 모르는 자연의 비밀 같은 건 없고, 자연은 영혼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며, 
자연을 비웃는 사람들은 산악지대에서의 봄 폭풍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자연이 
봄을 낳을 때는 아기 낳는 여자들이 침대보를 쥐어뜯듯 온 산들을 뿌리째 뒤흔든다.
  어떤 나무가 모진 겨울바람을 견디며 끈기 있게 버티었는데 자연이 그걸 없애 버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자연은 맹렬한 바람을 통해 그것을 뿌리째 뽑아 산 밑으로 
내동댕이친다. 그리고 자연은 자신의 바람의 손가락으로 모든 나뭇가지들을 면밀히 
훑고 지나가면서 약한 가지들이 걸리면 말끔히 훑어 버린다.
  만이 자연이 어떤 나무를 없애 버려야겠다고 판단했는데 그 나무가 바람으로 
제거되지 않으면 자연은 바로 불벼락을 내린다. 그러면 그 나무는 순식간에 불타는 
횃불이 되어 버린다. 자연은 살아 있으며 끊임없이 진통하고 있다. 당신들도 언젠가는 
그걸 믿게 될 것이다.
  할아버지는, 자연은 늘 지난해에 다 치우지 못하고 남겨둔 태를 말끔히 제거하곤 
함으로써 청신하고도 강력한 새로운 봄을 탄생시킨다고 하셨다.
  폭풍이 지나간 뒤에는 작고 귀여운 연초록 새순들이 모든 나뭇가지에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서 자연은 사월의 비를 내려준다. 그 비는 부드럽고도 
호젓하게, 속삭이듯 내리면서 골짜기와 산길에 뿌연 안개의 장막을 드리운다. 그리하여 
우리가 봄비 내리는 날 그곳을 지날 때면 나뭇가지마다 맺힌 굵은 빗방울들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내리곤 한다.
  사월의 비는 뭔가 감미롭고 설레이는 느낌을, 그리고 알싸한 슬픔같은 것을 가져다 
준다. 할아버지는 사월의 비가 내릴 때면 항시 그런 느낌이 뒤섞인 어떤 감상에 젖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사월의 비는 새로운 어떤 것이 탄생하기 때문에 
짜릿한 설레임을 가져다 주며 그런 탄생의 순간을 오래 맛볼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서글픈 느낌에 젖게 된다고 하셨다. 그런 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린다.
  사월의 바람은 아기 이불처럼 포근하고 따사롭다. 그 바람이 돌능금나무 위에서 
머물면 그것은 연분홍빛이 감도는 하얀 꽃을 피운다. 그 향기는 인동덩굴보다도 
짙어서 벌들이 까맣게 달라붙는다. 꽃의 중심부가 빨간 연분홍 미국 만병초와, 길고 
뾰족한 노란 꽃잎파리들이 달리고 거기에 하얀 이빨(내 눈에는 이것이 항시 
혓바닥처럼 보인다) 하나가 나와 늘어진 도그투스 바이올렛(얼레지 속의 식물. 
도그투스라는 것은 곧 개이빨이라는 뜻: 옮긴이)은 골짜기에서 산등성이에 이르기까지 
지천으로 핀다.
  이윽고 날이 더욱 따뜻해지면 느닷없이 한파가 밀어닥쳐 사오일 간 머문다. 이 
한파는 나무딸기를 꽃피우게 하므로 이른바 "나무딸기 겨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 한파가 없이는 나무딸기들이 꽃을 피우지 못한다. 간혹 가다 나무딸기가 열리지 
않는 경우가 있는 건 바로 그 해에 이 한파가 닥치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 한파가 
지나가면 산딸나무 꽃들이 눈송이처럼 산허리를 하얗게 뒤덮으며 피어난다. 그것을 
미처 예상치 못한 곳, 소나무 숲이나 참나무 숲 같은 데서 느닷없이 소담스런 하얀 
꽃을 피운다.
  백인 농부들은 늦여름에나 수확을 하지만 인디언들은 겨울 지나 처음으로 새싹이 
나는 식물을 거둬들이는 이른 붐에서부터 시작해서 여름 내내, 그리고 도토리나 밤을 
거둬들이는 가을까지 끊임없이 수확을 한다. 할아버지는 만일 우리가 나무들을 
뽑아버리지 않고 나무들과 잘 어울려 살면 나무들은 우리를 먹여 살린다고 하셨다.
  헌데 그런 일을 할 때는 약간씩 머리를 써야 한다. 그게 가장 필요한 대표적인 예는 
산딸기 따는 일을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나는 산딸기를 딸 때 허리를 굽혀 
손을 길게 뻗느라 애쓰지 않고 아예 산딸기밭 속으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산딸기 
따는 일은 아무리 오래 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듀베리(나무딸기의 일종: 옮긴이), 나무딸기, 엘더베리(입딱총나무 열매: 
옮긴이) 같은 걸로는 아주 맛좋은 과일주를 담글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허클베리(월귤나무 비슷한 관목의 열매: 옮긴이)나 월귤나무 열매 같은 건 도무지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할머니는 그것 요리하는 데 이용하셨다. 나는 늘 월귤나무 
열매를 미처 다 먹지 못할 정도로 양동이에 가득가득 담아 날라왔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열매들을 딸 때마다 양동이에 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부지런히 먹어대기도 했다. 
그런 점은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는 지금 먹으나 나중에 먹으나 
마찬가지므로 상관없다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시다. 헌데 아메리카자리공 열매는 독이 
있어서 그걸 먹으면 대번에 죽는다. 새가 먹지 않는 나무 열매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나무 열매를 따먹는 철이 되면 내 이빨, 혀, 입 근처에는 늘 푸른 물이 들어 있었다. 
그맘때 할아버지와 내가 네거리 가게에 제품을 넘겨주러 가면 네거리 근처에서 
어정거리던 평지에 사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서 내가 병들었다고 얘기하곤 했다. 
그리고 처음 우리를 본 사람들은 나를 보고서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둥 
어쨌다는 둥 해가며 공연히 호들갑을 떨곤 했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는, 저것들이 
산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저런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그들이 뭐라고 
그러든 모르는 체 해버렸다.
  새들은 벚나무 주위에서 곧잘 재주를 부리곤 했다. 칠월의 태양이 벚나무 위에서 
작열할 때.
  한여름에 점심을 먹은 뒤 나른해지면 할머니는 낮잠을 주무시고 할아버지와 나는 
뒷문 계단에 나가 앉아 있곤 했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는, "산길로 올라가서 구경이나 
하자"라고 말씀하지곤 했다. 그러면 나는 바로 몸을 일으켜 할아버지의 뒤를 
쫓아간다. 우리는 산길로 올라가 커다란 벚나무 그늘 밑으로 들어가 나무 줄기에 기대 
앉아 새들이 노는 모습을 구경했다.
  한번은 지빠귀 한 마리가 나뭇가지 위를 통통 뛰어 가지끝으로 다가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놈은 나뭇가지가 점차 가늘어지자 마치 줄타기 곡예를 하듯이 이리 
뒤뚱 저리 뒤뚱 하면서 마침내 그 맨끝에까지 이르는 데 성공했다. 또 무슨 일인가로 
아주 기분이 좋아진 로빈(지빠귀과의 유리새류: 옮긴이) 한 마리가 할아버지와 나 있는 
데로 뒤뚱거리며 다가와서는 할아버지의 무릎 위로 펄쩍 뛰어오른 적도 있었다. 그 
녀석은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 서서 한참 동안 찧고 까불며 자기가 이 세상 만사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얘기했다. 마침내 모든 얘기를 다 쏟아낸 그는 
노래를 한 곡조 뽑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려 했는데 그만 
목청이 삑 하고 어긋나고 말았다. 그 녀석은 김이 샜는지 노래부르기를 포기하고는 
뒤뚱거리며 걸어가 덤불 속으로 살지고 말았다. 할아버지와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다 아프다고 하셨다. 나도 그랬다.
  이튿날 아침 일찍이 할아버지와 내가 그 나무 있는 데로 다시 가보니 그 나무 
위에는 새 한 마리가 앉아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할아버지가 그 녀석을 톡톡 
쳐서 깨우자 그 녀석은 깨기는 했는데 어쩐지 안짢은 기색이었다. 그 녀석이 자꾸 
할아버지의 머리 위로 내려 앉으려고 해서 할아버지는 할 수 없이 모자를 벗어 모자로 
그 녀석을 쳐 날아가게 했다. 그 새는 실개천가에 내려앉아 연신 머리를 물 속에 
쳐박았다 뺐다 하고^5,5,5^ 연신 끅끅거리며 먹은 것을 토해냈다. 그리고 마치 뭐든 
눈에 띄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할아버지는 그 홍관조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할아버지와 나 때문에 자기게 
그렇게 되었다고 믿고 있으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전에 그 새를 본 적이 있으며 그 
새는 버찌를 무척이나 밝힌다고 하셨다.
  산사람들은 자기네가 사는 집 근처에 새들이 나타날 때마다 그 새들 하나하나가 다 
무슨 징조인가를 암시한다고 믿곤 했다. 당신이 그것 믿고 안 믿고는 당신 마음이다. 
어쨌든 그건 사실이니까. 나는 그걸 믿었다. 할아버지도 그러셨고.
  할아버지는 어떤 새가 어떤 징조를 암시하는지에 관해 상세히 꿰뚫고 계셨다. 자기 
집에 굴뚝새가 들어와 깃들면 그건 길조다. 우리집 굴뚝새는 할머니가 부엌문 맨 
윗구석에 네모난 조그만 구망을 뜷어 놓으셔서 그리로 들락거리면서 부엌 난로 위 
서까래 밑에다 자기 집을 지어놓고는 거기서 잠을 잤다. 그러면 수놈이 날아다니며 그 
암놈을 먹여 살리곤 했다.
  굴뚝새는 새를 사랑하는 사람들 가까이에서 살기를 좋아한다. 우리집 굴뚝새는 자기 
둥우리 속에 느긋하게 들어앉아 등잔불을 반사해 작은 검은 구슬처럼 빛나는 두 
눈으로 부엌에 앉아 있는 우리 식구들을 내려다보곤 한다. 내가 그 새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려면 의자를 그 새집 바로 밑으로 끌어당겨 그 위에 올라서면 된다. 그럴 
때면 그 새는 나를 향해 요란하게 지저귀기는 하지만 둥우리를 떠나지는 않는다.
  할아버지는 그 새가 나한테 딱딱거리기를 좋아하는데 그것을 그렇게 하면 자기가 이 
집에서 나보다 더 중요한 존재인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소쩍새는 황혼녘이면 노래하기 시작한다. 그 새의 이름은 바로 그것의 울음소리에서 
나왔다(그 새의 영어식 이름은 Whippoorwill인데 그 이름은 그 새가 '맞을래, 잘래 
whip-or-will'라고 말하는 식으로 울어대는 데서 나왔다고 한다: 옮긴이). 사람들이 
등불을 켜면 소쩍새들은 점점 더 인가 가까이로 다가오다가, 마침내 그 특유의 소리로 
울어대면서 사람들더러 어서 잠자라고 채근하기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그 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그날 밤은 잠자리가 편안하고 좋은 꿈을 꾸게 된다고 하셨다.
  부엉이는 밤에만 우는데 그 울음소리는 꼭 뭔가 못마땅한 게 있어서 투덜거리는 
소리 같다. 부엉이의 입을 닥치게 하는 방법은 딱 한가지, 부엌문을 열어 놓고 거기다 
싸리비를 눕혀 놓는 것뿐이다. 할머니는 부엉이가 울 적마다 번번이 이런 방법을 
쓰셨는데 나는 할머니가 실패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조레는 낮에만 운다. 그리고 그 새는 늘, 조^63^레, 조^63^레, 하면서 울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헌데 만일 그 새가 당신 집 가까이에서 울면 당신은 여름 내내 
잔병을 앓지 않는다고 한다.
  블루 제이(어치의 일종: 옮긴이)가 당신 집 근처에서 놀면 당신은 한동안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그 새는 나뭇가지 끝에서 광대처럼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재주넘기도 하며 또 괜시리 다른 새들을 집적거리기도 한다.
  홍관조를 보면 돈이 생긴다. 그리고 소작인들은 산비둘기가 이듬해에 이사갈 곳을 
알려준다고 믿고 있지만, 산사람들은 산비둘기가 울면 누군가가 당신을 사랑하여 그 
새를 보내 당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문상비둘기는 밤 늦은 시간에 울며 인가 가까이에는 오지 않는다. 그 새는 산 뒤편 
먼 곳에서 울며 그 소리는 울림이 길고 서글프게 들려 꼭 초상집 울음소리처럼 
들린다. 할아버지는 그 새가 실제로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세상에서 그를 기억해 주는 사람도 없고 그를 위해 울어줄 
사람도 없으면 그 새가 대신 기억해 주고 슬퍼해 준다. 할아버지는 만일 어떤 
산사람들이 어주 먼 곳, 일테면 큰 바다 건너편 어딘가에서 죽는다 해도 문상비둘기는 
꼭 그를 기억해 주고 슬퍼해 준다. 그 새는 그렇게 하여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안식을 가져다 준다. 나 역시도 그런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할아버지는 만일 네가 사랑하던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네가 그 뒤에도 늘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면 문상 비둘기는 그 사람을 위해 슬피 울어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럴 때 문상비둘기가 운다면 그 새는 다른 어떤 사람을 위해 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울음소리는 그렇게 구슬프게 들리지도 않게 된다. 그 뒤 밤늦은 시간에 
침대에 누워 있는데 그 새가 우는 소리가 들릴 때면 나는 늘 엄마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럴 때 나는 그렇게 외롭지 않았다.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처럼 새들 역시 당신이 그들을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를 
잘 알고 있다. 만일 당신이 그들을 좋아한다면 그들은 당신 주위에 몰려들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들을 좋아한다면 그들은 당신 주위에 몰려들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산과 
골짜기는 새들로 가득했다. 앵무새, 딱따구리, 티티새, 인디언헨, 종달새, 칩--윌즈, 
로빈, 파랑새, 번새, 흰털발제비 등등. 이밖에도 무수히 많아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다.

  우리는 봄, 여름에는 덫을 놓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인간이 짝짓기를 하여 아기를 
가지면서 동시에 적과 싸울 수는 없는 일이며 이 점은 짐승도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짐승들이 새끼를 뱄을 때 그걸 자꾸 잡아들이면 짐승들이 새끼들을 번식시킬 수가 
없으므로 인간은 결국 굶어죽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봄, 여름에는 주고 
물고기잡이에만 열중했다.
  인디언들은 재미삼아 물고기를 잡거나 사냥하는 일은 없다. 먹기 위해서만 잡을 뿐. 
할아버지는 세상에 재미삼아 무언가를 죽이러 돌아다니는 짓처럼 분별없는 짓은 다시 
없다고 하시며, 그런식의 짓거리들은 한동안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사람을 죽일 수 
없어 몸이 근지러워 못 견디는 정치가들이 생각해 낸 짓거리들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계속 죽이는 재미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런 천치 
같은 자들은 자기네가 무분별하게 살생을 하고 있다는 죄의식 같은 건 눈꼽만큼도 
없다, 네가 만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면 정치가들이 그런 노름이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으리라고 하셨다. 맞는 말씀 같다.
  우리는 버드나무 가지를 엮어서 길이가 구십 센티미터 가량 되는 물고기 잡는 
바구니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뒷부분으로 갈수록 지름이 좁혀져 뾰족한 모양이 되며 맨 
끝에는 조그만 구멍 하나만 나 있다. 그래서 물고기가 그 바구니 안으로 헤엄쳐 
들어가게 되면 작은 놈들은 바구니 뒤편의 구멍으로 빠져나갈 수가 있지만 큰 놈들은 
빠져나갈 수가 없게 된다. 할머니는 그 바구니 안에 고기들이 꾀게끔 옥수수 가루 
반죽한 걸 동그랗게 뭉쳐 그 안에 넣어두셨다.
  때로 우리는 미끼로 지렁이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놈들을 잡을 때는 흙 속에다 
나무 말뚝을 두드려 박고 말뚝 맨 위를 판자 같은 것으로 비벼댄다. 그러면 그놈들이 
땅 위로 기어나오게 된다.
  우리는 그 바구니들을 '좁은 길' 곁의 냇물로 운반했다. 그리고 그 바구니들을 큰 
나무에다 일렬횡대로 붙잡아 매서는 물 속에 집어넣은 뒤 다음날 가보면 바구니들 
안에는 갖가지 물고기들이 들어가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바구니들 속에는 대체로 커다란 메기나 노어 같은 것들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번은 내 바구니 속에 무지개 송어 한 마리가 들어온 적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 거북이도 잡았다. 그것들은 겨자 잎사귀를 넣고 요리를 하면 아주 맛이 
좋았다. 나는 바구니들을 물 속에서 끌어내는 그 순간을 아주 좋아했다.
  할아버지는 내게 물고기를 손으로 잡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이 방법을 써서 
물고기를 잡다가 나는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내 오년 평생에 두번째로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이다. 첫번째는 물론 위스키를 만들다가 세무 공무원들에게 잡힐 뻔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때 만일 내가 그들의 손에 잡혔더라면 그들은 틀림없이 나를 
읍내로 데려가서 목매달아 죽였으리라고 확신했다. 헌데 할아버지는 그들이 나처럼 
어린애를 잡은 경우는 처음이었을 테니 그렇게 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말씀하셨다. 헌데 
그때의 경우에는 나만 위기를 겪었을 뿐, 할아버지는 그들을 만나지도 않았고 
쫓기지도 않았었던 데 반해 이번에는 나뿐 아니라 할아버지도 거의 돌아가실 뻔했다.
  그때는 한낮이었고 이 시간은 손으로 물고기를 잡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태양이 계곡물 바로 위에 떠서 수면을 내리쏘으로 물고기들은 둑 밑으로 숨어 들어가 
서늘한 물 속에서 낮잠을 즐기는 때인 것이다.
  이럴 때 나는 둑 쪽으로 다가가 살그머니 물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둑 가장자리에 
난 고기구멍들을 찾곤 했다. 구멍을 찾으면 조심스럽게 구멍 속으로 두 손을 집어넣어 
본다. 한참 구멍 속을 더듬거리다 보면 물고기의 옆구리가 손에 만져진다. 내가 
손으로 더듬거려도 물고기들은 대게 꼼짝하지 않는다.
  그때 나는 한 손으로 그의 머리 뒤편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꼬리를 잡아 
그를 물 밖으로 끌어낸다. 이런 요령을 제대로 익히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이날, 할아버지는 벌써 메기 할 마리를 잡아 그걸 들고 둑 위로 올라가셨고 나는 
아직 물고기 구멍을 찾지 못해 둑 가장자리를 헤매로 있을 때였다. 내가 물 속에 손을 
넣고 연신 둑 가장자리를 더듬거리는데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건 메마른 
마찰음으로, 처음에는 느린 템포로 진행되다가 점차 템포가 빨라져 갈갈하는 위협적인 
소리로 변해갔다.
  나는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방울뱀(살무사과에 속하는 독뱀의 
하나. 가장 큰 것은 길이가 2.4 미터에 달한다: 옮긴이)이었다. 그놈은 내 얼굴에서 
불과 십오 센티쯤 쩔어진 곳에서 나를 공격하기 위해 똬리를 튼 채 머리를 바짝 
허공이 치켜들고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놈의 몸집은 내 허벅지보다 굵었다. 나는 그놈의 메마른 피부가 연신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놈은 바짝 독이 올라 있었다. 나와 그놈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놈은 길다란 혀를 날름거렸는데 그 끝이 거의 내 얼굴에 닿을 
정도였으며 그놈의 길게 째진 눈은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고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놈의 꼬리 끝의 흔들림이 점점 더 빨라져 그놈의 방울소리도 점점 더 높아졌다. 
이윽고 커다란 브이V자 모양을 하고 있는 그놈의 대가리가 내 얼굴에서 공격할 만한 
곳을 찾기 위해 앞뒤로 가볍게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놈이 드디어 나를 
공격하려 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뱀과 내가 대치하고 있는 지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할아버지가 다가오셨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를 쳐다볼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마치 날씨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라도 하듯 짐짓 낮고 심상한 어조로 
속삭이셨다. "고개 돌리지 마라. 움직이지 마, 작은나무야. 눈도 깜박이지 마." 
할아버지의 말씀이 없어도 이미 나는 눈도 깜박일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방울뱀은 나를 공격하기 위해 머리를 점점 더 높이 치켜올렸다. 나는 이제 
이놈의 공격을 멈출 방법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갑자기 할아버지의 커다란 손이 내 얼굴과 뱀 대가리 사이의 허공에 
떨어져 정지했다. 그 손은 거기 머문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제 그놈의 방울소리는 
더욱 높아졌으며 슛슛, 하는 소리까지 내기 시작했다. 만일 할아버지가 당신의 손을 
치운다면... 혹은 약간이라도 주춤한다면, 뱀은 바로 내 얼굴을 공격할 것이다. 나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손은 바위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등에서 굵은 
정맥들이 불끈불끈 솟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구리빛 손등에는 진땀이 잔뜩 배어 
있었다. 그 손은 떨리지도 흔들거리지도 않았다.
  방울뱀은 빠르고도 세차게 공격했다. 그놈은 탄환처럼 튀어올라 할아버지의 손을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의 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놈이 
할아버지의 손을 반 정도 덤썩 물었을 때 그놈의 독니들이 할아버지의 살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보았다.
  할아버지는 다른 한 손으로 방울뱀의 머리 뒷부분을 움켜잡고 있는대로 힘을 
주셨다. 그놈의 몸둥아리는 땅바닥에서 솟구쳐올라 할아버지의 팔을 칭칭 감았으며 
방울소리를 내는 그놈의 꼬리는 할아버지의 머리, 얼굴을 마구 때렸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놈을 울켜쥔 손의 힘을 늦추지 않으셨다. 방울뱀은 할아버지의 손아귀 
힘에 눌려 숨이 막혀 죽어갔다. 나는 그놈의 등뼈가 빠지직 하고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할아버지는 그놈을 땅바닥에 내던지셨다.
  할아버지는 바닥에 주저앉아 긴 칼을 꺼내셨다. 그리고는 그걸로 방울뱀이 문 
자리의 살에다 대고 죽 그었다. 칼은 살 속 깊이 파고들었다. 그러자 일시에 피가 
솟구쳐올라 순식간에 그 손을 뒤덮고 팔 있는 데로 흘러내렸다. 나는 할아버지한테로 
기어갔다^5,5,5^. 나는 온몸의 맥이 빠져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의 어깨를 잡고 사력을 다해 일어섰다. 할아버지는 칼로 베어낸 자리에서 
솟아나는 피를 빨아 연신 바닥에 뱉어내셨다. 나는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 정신없이 중얼거렸다. "고마워요, 할아버지, 고마워요." 할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시더니 씩 웃으셨다. 할아버지의 입 가장자리와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망할놈의 뱀 같으니라구! 우리는 그 개쌍놈의 새끼한테 본때를 보여준 거다. 안 
그러냐?"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할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약간 마음이 놓이는 기분을 느끼며 얼른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할아버지. 우린 그 개쌍놈의 새끼한테 본때를 보여준 거예요."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가 본때를 부여주는 장면이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았다.
  할아버지의 손은 점점 더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푸르딩딩한 빛으로 
변해갔다. 할아버지는 긴 칼로 뱀한테 물린 팔쪽의 사슴가죽으로 된 소매를 죽 
갈랐다. 그 팔은 다른쪽 팔의 배나 될 만큼 부어올랐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할아버지는 모자를 벗고 그걸로 당신의 얼굴을 활활 부치셨다. "매년 이맘때만 되면 
염병하게 더워." 이런 말씀을 하시며 할아버지는 익살맞은 표정을 지으셨다. 이젠 
할아버지의 팔까지 청동색으로 변해갔다.
  "할머니한테 가야겠어요." 나는 그 말만 하고는 번떡 일어섰다. 할아버지는 나를 
돌아보셨는데 그 눈빛은 초점이 없이 가물가물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잠시 쉬었다 뒤따라 가마." 할아버지는 낮게 웅얼대듯 말씀하셨다.
  나는 '좁은 길'을 달려내려갔다. 나는 거의 지면에 발이 닿지 않을 정도로 미친듯이 
뛰었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지만 눈물이 가득 차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골자기 길을 들어섰을 무렵 내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나는 자꾸만 바닥에 고꾸라져 길 옆으로 구르기도 했고 실개천 속에도 몇번이나 
처박혔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다시 기어올라가 찔레밭과 관목숲을 뚫고서 달리고 
또 달렸다. 나는 할아버지가 죽어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우리 오두막이 있는 빈 터까지 달려갔을 때 우리 오두막은 내 시야 속에서 
핑글핑글 돌아갔다. 나는 할머니를 소리쳐 부르려고 했지만^5,5,5^ 내 목구멍에서는 
도무지 소리가 튀어나오질 않았다. 나는 단숨에 부엌문을 박차고 뛰어들어가 그대로 
할머니의 품속에 안겼다. 할머니는 나를 안은 채 내 얼굴에다 찬물을 끼얹어 주셨다. 
"무슨 일이냐, 어디서 무슨 일이?" 나는 헐떡이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할아버지가 죽어가요^5,5,5^ 방울뱀이 ^5,5,5^ 계곡물 둑 위에서." 할머니는 그대로 
나를 마룻바닥에 떨어뜨리셨다. 바닥에 부딪치는 타격으로 그나마 남아 있는 약간의 
힘조차 빠져나가 버려 나는 마룻바닥 위에 쭉 뻗고 말았다.
  할머니는 자루 하나를 움켜쥐고는 바로 뛰어나가셨다. 이제 나는 바닥에 누운 채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치마며 머리댕기가 뒤로 날리는 
모습을. 그리고 가죽장화를 신은 할머니의 조그만 발이 지면 위로 날아가고 있는 
모습을. 할머니도 뛰실 수가 있구나! 할머니는 "오, 세상에!" 그 한마디만 남기고 
곧바로 달려가셨다. 할머니는 머뭇거리지도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다. 나는 두 팔로 
바닥을 짚고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나는 할머니의 뒤꼭지에다 
대고 소리쳤아. "할아버지를 꼭 살려내야 돼요!" 할머니는 달리는 속도를 조금도 
늦추시지 않고 빈 터를 벗어나 바로 산길로 달려올라가셨다. 나는 다시 있는 힘껏 
소리쳤다. "할머니, 꼭 할아버지를 할려내야 해요!" 그 소리는 골짜기에 부딪쳐 
되돌아왔다. 나는 할머니가 틀림없이 할아버지를 살려내리라 믿었다.
  내가 개들을 풀어놓아 주자 개들은 요란하게 짖어대며 할머니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나도 죽을 힘을 다해 개들의 뒤를 쫓아갔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는 길게 누워 계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머리를 받쳐주고 계셨고 개들은 그들의 주위를 돌며 낑낑거렸다. 할아버지의 눈은 
감겨 있었고 뱀에게 물린 쪽 팔은 완전히 검은 빛으로 변해 있었다.
  할머니는 다시 할아버지의 손을 칼로 베어 거기서 연신 나오는 피를 빨아 바닥에 
뱉으셨다. 내가 비틀거리며 다가가자 할머니는 자작나무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작은나무야, 저 나무 껍질 좀 벗겨 오렴."
  나는 할아버지의 긴 칼을 움켜쥐고 가서 그 나무의 껍질을 벗겨왔다. 그것은 
종이처럼 불이 잘 붙기 때문에 할머니는 그 나무껍질을 이용해서 불을 일으켜 
보닥불을 피웠다. 할머니는 깡통을 들고 냇물로 내려가 물을 길어오셨다. 그런 다음 
그것을 불 위에 걸어놓고 거기다 식물들의 뿌리와 씨앗을 집어 넣으셨다. 그리고 
자루에서 식물의 이파리들을 꺼내셨다.나는 그것이 뭣에 쓰이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말씀해 주셔서 그것이 로벨리아며 할아버지가 그걸 드시면 숨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그러나 아주 힘겹게 숨을 몰아쉬셨다. 깡통 속의 물이 끓고 있는 
동안 할머니는 몸을 일으켜 주위를 돌아보셨다. 나도 따라서 돌아봤지만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5,5,5^. 그러다 나는 오십 미터쯤 떨어진 산자락 밑에서 
메추라기 한 마리가 둥우리 속에 들어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할머니는 당신이 
입고 계시던 풍덩한 치마끈을 풀었다. 그러자 그것은 땅바닥 위로 흘러내렸다. 
할머니는 속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으셨다. 할머니의 다리는 소녀의 그것처럼 
미끈했으며 구리빛 피부로 덮인 길다란 다리 근육은 탄력으로 넘쳤다. 할머니는 치마 
속에 돌멩이들을 넣고 치마 양 귀를 합쳐서 묶으셨다. 그리고는 거의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날렵하게 메추라기 둥우리 쪽으로 다가갔다. 그 메추라기가 막 
둥우리를 박차고 뛰어오르려고 하는 순간 할머니는 돌들이 담긴 치마를 
메추라기에게로 날렸다.
  할머니는 돌에 얻어맞고 쓰러진 메추라기를 집어들고 되돌아오셨다. 그리고는 
그것이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동안 가슴으로부터 꼬리에 이르기까지 칼로 길게 가른 
뒤에 그것을 할아버지의 뱀에 물린 상처부위 위에 대로 마구 발버둥치게 하셨다. 
할머니는 한동안 메추라기가 난리치도록 내버려두셨다. 이윽고 할머니가 그것을 
상처에서 떼어내자 그 메추라기의 뱃속 전체가 초록색으로 변했다. 방울뱀의 독이 
옮겨갔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날이 어두워지도록까지 할아버지의 치료에 매달리셨다. 개들은 우리 
주위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어둠이 잦아내리자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제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으니 할아버지를 따뜻하게 핻려야 한다고 
하시면서 나더러 불을 피우라고 하셨다. 그리고 치마를 벗어서 할아버지를 
덮어드렸다. 나도 내 사슴가죽 웃도리를 벗어서 할아버지를 덜어드리고 바지까지 
벗으려 했지만 할머니가 그걸로는 할아버지의 다리 하나도 덮을 수 없으니 그만두라고 
하셨다. 그건 사실이었다.
  나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 모닥불에 나무를 집어넣었다. 헌데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머리 곁에도 불을 피우라고 하셔서 나는 두 군데의 모닥불을 관리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곁에 누우셔서 할아버지의 몸에 꼭 
달라붙으셨다. 할머니 몸의 열이 할아버지의 몸을 덮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시면서^5,5,5^ 그래서 나도 할머니 반대 쪽의 할아버지 곁에 누워 바싹 달라붙었다. 
그러나 내 몸이 작아 할아버지의 몸을 덮게 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래도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건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렸다.
  나는 할머니께 방울뱀이 나타난 얘기부터 시작해서 자초지종을 다 말씀드렸다. 
그리고 내가 방울뱀이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탓으로 일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또 심지어 방울뱀의 잘못도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잘잘못을 따질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그 말씀에 나는 마음이 좀 가벼워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죄책감에서 벗어난 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입을 열어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다시 소년이 되어 
산악지대를 뛰어다니시면서 그에 얽힌 온갖 이야기를 하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주무시면서 먼 옛날의 일들을 회상하시기 때문에 이러시는 거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셨다. 중간중간 쉬는 경우를 빼놓고는. 그리고 새벽이 되기 
직전에야 입을 다무셨으며 마침내 보다 더 편하게, 그리고 고르게 숨을 쉬시기 
시작했다. 나는 할머니께 그 사실을 말씀드리면서 이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일 
같은 것을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무사하실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의 겨드랑이 속에 파묻혀 잠이 들었다.
  나는 해뜰 무렵^5,5,5^ 그러니까 아침의 첫 해가 막 산꼭대기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쯤 되어서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잠시 후 할아버지가 느닷없이 벌떡 몸을 
일으키시더니 먼저 나를 내려다보시고는 다시 할머니 쪽으로 시선을 돌리셨다. 
할아버지가 입을 여셨다. "보니비, 나는 요새 당신이 옷을 홀랑벗고 내 곁에서 
새우잠을 자주지 않으면 어디에서고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어."
  그 말씀에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뺨을 찰싹 때리시고는 배를 잡고 웃으셨다. 
할머니도 일어나셔서 치마를 입으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무사하시다는 걸 알았다. 
할아버지는 그 방울뱀의 껍질을 벗겨내신 뒤에야 귀가길에 올랐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그 가죽으로 내 혁대를 만들어 주실 거라고 하셨다.
  우리는 개들을 앞세우고 '좁은 길'을 내려갔다. 할아버지는 아직도 다리가 
떨리시는지 할머니에게 몸을 기댄 채 걸어가셨다. 나는 두 분의 뒤를 따라갔다. 이 
산에 처음 발을 디딘 이래로 이 순간처럼 날아갈 듯한 기분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이후 나랑 뱀 사이에 당신의 손을 들이민 일을 한 번도 입에 올리신 
적이 없었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할머니 말고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 주시는 
분이라 생각했다. 심지어 퍼렁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  개간지 농장

  그날 계곡의 실개천 옆에서 할아버지 곁에 누워 밤을 지내면서 나는 할아버지도 
한때 소년이었던 적이 있으셨다는 걸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헌데 그건 
사실이었다.
  그날 밤 내내 할아버지는 다시 소년이 되어 과거 속에서 헤매셨다. 1867 년에 
할아버지는 아홉 살 난 소년이었다. 그 무렵 할아버지는 매일 산속을 돌아다녔다. 
할아버지의 어머니인 붉은 날개는 순수한 체로키 혈통을 타고난 분이셔서 할아버지를 
다른 체로키 소년들과 똑같이 키우셨으며 이것은 할아버지가 마음대로 산을 헤매고 
다녀도 좋다는 걸 뜻했다.
  당시(남북전쟁이 끝난 지 이 년 쯤 지났다: 옮긴이) 이 나라 전체는 이미 
연방군(남북전쟁 당시의 북군을 말함: 옮긴이)들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으며 또 
정치가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헌데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과거에 패배한 
편(남군: 옮긴이)에 서서 싸우셨으므로 자연히 사방에 적을 갖게 되셨다^5,5,5^. 그래서 
감히 산악지대 밖으로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셨다. 그러니 읍내로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으레 할아버지가 가야만 했다. 인디언 소년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그날도 그 인디언 소년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그 작은 계곡을 
발견했다. 그것은 높은 산들 사이로 깊숙이 자리잡은 계곡이었으며 그곳에는 잡초와 
덤불이 무성했고 여러 가지 덩굴식물이 마구 뒤엉켜 자라고 있었다. 그 골짜기에서는 
근래에 누가 농사를 지은 흔적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무들이 말끔히 
베어진 것으로 보아 한때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던 듯했다.
  산으로 가로막힌 그 골짜기 맨 안쪽에는 낡은 집 한 채가 서 있었다. 헌데 그 집 
현관은 지붕이 거의 아래로 내려앉았고 굴뚝은 반나마 무너져내려 소년은 한동안 그 
집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헌데 어느날 그는 그 집 부근에서 사람을 
발견하고는 그 집에서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산에서 내려와 
살그머니 그 집 가까이로 접근한 뒤 덤불 속에 몸을 감춘 채 그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몇 안 되었다.
  대부분의 백인들은 닭이나 젖소, 밭갈이용 노새 등을 키웠지만 이 집에서는 그런 
것들이 도통 보이지 않았다. 낡은 헛간 곁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망가진 농기구들 
몇 개만 눈에 뜨일 뿐.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도 그 집 분위기와 적잖이 닮아 
있었다.
  소년이 보기에 그 집 여자는 탈진상태에 빠져 기운이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여자에게는 딸이 둘 있었는데 딸의 안색은 엄마보다 더 형편없었고 나이답지 않게 
겉늙어 보였다. 그리고 그 딸들은 옷차림이 꾀죄죄했고 밧줄같이 성긴 머리에 다리는 
꼬챙이처럼 가늘었다.
  그 집 헛간에는 늙은 흑인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머리 가장자리에만 흰 
머리털이 조금 남아 있는 대머리였다. 소년은 그가 발을 질질 끌면서 간신히 
걸어다니고 또 허리가 잔뜩 굽은 걸로 봐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짐작했다.
  소년은 그곳을 막 떠나려고 하다가 또 다른 사람 하나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낡은 회색 군복을 입은 키 큰 사내였으며 다리가 하나밖에 없었다. 그는 잘려나간 
다리 부위 끝에 붙잡아맨 히코리 나무로 된 목발로 땅을 찍으며 집 밖으로 나왔다. 그 
외다리 사내와 여자는 헛간으로 걸어가 가죽으로 된 끌채를 자기네 어깨에다 
잡아맸다. 소년은 그들이 그러고서 집 앞의 들로 나가는 것을 보고서야 겨우 그들이 
무얼 하려는지 어렴풋이나마 집작이 갔다.
  늙은 흑인은 그들의 끌채와 연결된 쟁기 자루를 붙잡고 비틀거리면서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집 앞에 이른 뒤 이윽고 몸을 앞으로 숙이고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늙은 흑인은 그 뒤를 따라가며 쟁기자루를 제대로 조종하려고 애썼다. 
소년은 그들이 노새처럼 쟁기를 끌려고 하는 걸 보고 그들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했다. 한 번에 불과 몇 걸음씩밖에 전진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들은 쟁기를 끌었다. 그들은 멈추었다간 다시 출발하곤 했다.
  그들의 쟁기질 솜씨는 형편없었다. 늙은 흑인이 쟁기 자루를 지나치게 앞으로 숙일 
경우에는 쟁기 날이 땅 속 깊이 박혀 그들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러면 
그들은 할 수 없이 뒤로 후퇴해 주어야 했고 늙은 흑인은 땅 속에 박힌 쟁기 날을 
힘껏 뒤로 잡아 뽑았다. 그렇게 해서 쟁기가 바닥에 쓰러지면 늙은 흑인은 그것을 
바로 세워 다시 쟁기질할 채비를 갖추었다. 그렇게 악전고투하면서 쟁기질을 해도 
갈아엎어지는 땅의 깊이가 너무나 얕아 거기다 뭘 심어 봤자 제대로 자랄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소년은 그날 저녁 이슥한 시간이 되어서야 그곳을 떠났는데 그때까지도 그들은 
여전히 쟁기질을 계속했다. 소년은 다음날 아침에 다시 돌아왔다. 그가 전날 앉아서 
지켜봤던 은신처에 자리잡고 보니 그들은 벌써 들에 나와 일하고 있었다. 무성한 잡초 
사이로 얼핏 보기에도 그들이 갈아엎은 땅의 면적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마침 쟁기날이 
식물의 뿌리에 걸려 늙은 흑인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한동안 두 손으로 땅을 
짚은 채 무릎을 꿇고 앉아서 숨을 몰아쉬다가 겨우 일어섰다. 바로 그때 소년은 
연방군들을 보았다.
  소년은 양치식물로 이루어진 덤불 속으로 들어가 숨은채 그들을 지켜봤다. 소년은 
이제 겨우 아홉 살이었지만, 자신이 인디언답게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얼마든지 그들 
사이를 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순찰 나온 연방 군일들은 열두 명쯤 되었으며 모두 말을 타고 있었다. 양쪽 팔 소매 
윗부분에 몇 개의 노란 줄이 나 있는 군복을 입은 덩치 큰 사내가 그 기마행렬을 
이끌고 있었다. 그들은 소나무 숲 있는데 이르러 뒤돌아선 뒤, 이 기이한 쟁기질 
광경을 지켜봤다. 그들은 한동안 그렇게 지켜보다가는 이윽고 멀리 사라져 버렸다.
  소년은 골짜기 시냇가로 가서 손으로 물고기를 잡다가 저녁 늦게서야 물고기들을 
들고 은신처로 되돌아왔다. 그들은 아직도 일을 하고 있었는데 지쳐서 허덕이며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게 흡사 기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소년의 매처럼 
날카로운 눈은 소나무 숲속에서 노란 빛을 포착했다. 소나무 숲에 있는 사람은 바로 
연방군 순찰대 대장이었다. 그는 혼자 와서 쟁기질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은 살그머니 은신처에서 물러나 집으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그날 밤 소년은 곰곰이 생각을 하던 끝에 그 노란 줄무늬 군복을 입은 연방군인이 
비열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는 그 낡은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연방군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로 결심했다. 이튿날 아침 소년은 
자신의 결심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길을 떠났다.
  그는 다시 은신처에 숨어들었다. 헌데 그는 좀 수줍은 성격이라 사람들과 
접촉하기를 꺼려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일단 차분히 관망하면서 잠시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들은 들에 나와 다시 쟁기질을 시작했다. 이윽고 소년은 그들이 일하는 
들판으로 뛰어나가 그들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리쳐 알리고는 그냥 
달아나자고 결심했다. 헌데 소년의 그런 결심은 한발 늦었다. 노란 줄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이 벌써 와 있었던 것이다.
  말 위에 탄 그는 쟁기질하는 사람들과 멀찌감치 떨어진 소나무 숲속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의 곁에는 아무도 타지 않은 말 한 마리가 더 있었다. 소년이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그건 말이 아니라 노새였다. 헌데 그건 세상에 둘도 없을 정도로 
몰골 사나워 보이는 노새였다. 엉덩이뼈와 갈빗대가 앙상하게 불거져 나왔으며 삐쩍 
마른 얼굴 위로 두 귀가 축 늘어진. 하지만 어쨌든 노새는 노새였다. 이윽고 그 
군인대장은 늙은 노새를 앞으로 몰고 숲 가장자리까지 나와 늙은 노새에게 채찍을 
갈겼다. 그러자 노새는 들판으로 튀어나갔다. 그런 다음 군인대장은 다시 숲속의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노새를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은 그 집 여자였다. 그녀는 끌채를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노새를 멀거니 쳐다봤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소리쳤다. "오 주여, 전능하신 주여! 노새야. 주님이 우리한테 노새를 보내주셨어!" 
그녀는 끌채를 벗어 던지더니 노새를 쫓아 덤불을 뚫고 달려갔다. 그 늙은 흑인 역시 
쟁기자루를 내던지고 달려가다 바닥에 고꾸라졌다.
  노새는 곧바로 소년이 숨어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그것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소년은 벌떡 일어서서 두 팔을 벌려 마구 흔들었다. 그러자 노새는 뒤로 돌아 
들판으로 달려가다가 모로 꺾어져 군인이 있는 숲 쪽으로 내달았다. 그 군인은 
숲속에서 말을 달려 노새가 나아갈 길을 가로막았다. 군인에게 겁을 먹은 노새는 다시 
들판으로 되돌아갔다. 여자와 늙은 흑인은 노새에게만 정신이 팔려 그 군인도, 소년도 
발견하지 못했다.
  외다리 사내도 히코리 나무 목발로 땅을 찍으며 달려보려고 했지만 몇 걸음 가다가 
넘어지고 또 일어서서 달리다 넘어지곤 했다. 그의 두 딸들은 찔레덤불을 헤치고 
달리면서 노새를 가로막으려고 연신 소리를 질러댔다.
  그 늙은 노새는 얼이 빠져 그들의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려고 했다. 헌데 그 집 
여자가 재빨리 노새의 꼬리를 움켜잡았다. 노새는 그녀를 매단 채 냅다 달렸지만 
그녀는 꼬리를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노새가 그녀를 질질 끌고 덤불 속을 뚫고 
달려가는 바람에 그녀의 옷은 사정없이 갈갈이 찢어졌다. 바로 그때 늙은 흑인이 
노새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노새는 그를 떨치기 위해 마구 목을 
흔들어댔지만 그는 사생결단하고 목만 잡고 늘어졌다. 결국 노새는 포기하고 달리기를 
멈추었다.
  외다리 사내와 두 딸도 노새 곁으로 달려왔다. 외다리 사내는 노새의 목에 고삐를 
잡아맸다. 그들 모두는 그 늙은 노새를 빙 둘러싼 채 걸어갔다. 그것이 마치 세상에서 
가장 좋은 노새라도 되는 것처럼 가볍게 두드려 주기도 하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어루만져 주기도 하면서. 소년은 그 늙은 노새도 아주 흡족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그들은 들판 한가운데서 노새를 가운데 두고 일제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머리를 떨군 채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소년은 그들이 노새를 쟁기에 비끄러매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 일이 끝나자 맨 첫 
사람이 노새 뒤를 따라가며 쟁기질을 했고 곧 다음 사람이 그 일을 이어받았다. 그 
집의 두 딸도 한 차례씩 쟁기질을 해봤다. 소년은 숲속에서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 군인을 시종 유심히 살펴봤다.
  그 뒤로도 소년은 매일 한 번씩은 꼭 그 골짜기로 나가서 그들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돌아오곤 했다. 그들의 쟁기질이 얼마나 진척되었나 보고 싶어 가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흘쯤 지났을 때 그들은 그 들판의 사 분의 일 가량을 
갈아엎었다.
  나흘째 되던 날 아침에 소년은 그 군인대장이 들판 한쪽 끝에 하얀 자루 하나를 
떨어뜨리는 걸 목격했다. 외다리 사내도 그를 보았다. 외다리 사내는 손을 반쯤만 
들어올려 자신없이 흔들었다. 마치 그래도 되는지 어떤지 알 수 없어 하는 사람처럼. 
군인대장도 비슷한 동작을 하고는 말을 달려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 자루 안에는 
씨앗용 옥수수가 들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소년이 그 골짜기로 가보니 군인대장이 말에서 내린 채 그 집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외다리 사내와 늙은 흑인하고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었ㄷ. 소년은 그들의 
얘기를 엿듣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잠시 후 그 군인대장이 직접 쟁기질하는 일에 나섰다. 그는 노새의 목에 가죽끈을 
단단히 묶은 다음 거기다 고삐를 연결했다. 그의 그러는 모습만 보고도 소년은 그가 
쟁기질에 능숙한 사람이라는 걸 담박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쟁기질 하다 말고 이따금 
한번씩 노새를 멈추게 하고는 허리를 구부려 막 갈아엎어진 흙 한줌을 집어 그 냄새를 
맡아보곤 했다. 심지어 그는 가끔씩 흙을 입에 집어넣어 맛을 보기까지 했다.
  알고 보니 그는 육군상사로서 군대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일리노이 주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이었다. 그는 통상 해가 진 뒤에야 쟁기질을 하러 이곳으로 나타났다. 
그때에야 겨우 부대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거의 매일 
나타나 쟁기질을 하곤 했다.
  어느날 저녁 그는 비쩍 마른 군인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 병사는 군대에 들어올 
나이도 채 안 되어 보일 정도로 아주 앳된 인상이었다. 그는 그후부터 매일 저녁 
상사와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올 때마다 조그만 나무들을 갖고 왔다. 그건 
사과나무들이었다.
  그는 매일 한 시간씩 들녘 한끝에서부터 사과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구덩이를 판 다음 나무를 심고 물을 주었다. 그리고는 흙을 잘 덮어 가볍게 꾹꾹 
눌러주고 불필요한 가지를 쳐주었으며 그 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주위에 버팀목을 
대주었다. 그런 다음엔 으레 뒤로 물러서서는 그것이 생전 처음보는 사과나무이기라도 
하듯이 요모조모로 뜯어보곤 했다.
  그 집의 두 딸들도 그를 도왔다. 그리하여 한 달 만에 그는 사과나무로 그 들판을 
완전히 한 겹 빙 둘러쌌다. 알고 보니 그는 뉴욕 주 출신으로 과수원 일을 하다 
군대에 징집된 젊은이였다. 그가 자신이 가져온 사과나무를 다 심었을 즈음 나머지 
사람들은 그 골짜기 전체를 옥수수밭으로 만들었다.
  어느날 해진 뒤쯤 해서 소년은 그 집 현관에다가 열 마리 가량의 메기를 놓고 왔다. 
다음날 저녁 그들은 그 메기를 요리에서 마당에 있는 나무 아래에 식탁을 내놓고는 
거기서 그것들을 먹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상사나 그 집 여자는 가끔 한번씩 몸을 
일으켜 산쪽에다 대고 연신 손짓을 하곤 했다. 자기네 집으로 오라는 뜻으로. 그들은 
어떤 인디언이 메기를 놓고 갔다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소년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렇게 무작정 산쪽에다 대고 손을 흔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인디언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위의 나무들 속에서 사람의 모습을 식별해 낼 줄을 몰랐다. 소년은 
그들에게 가지는 않고 몇 마리의 물고기만 남겨두고 가버렸다. 소년은 다시 또 
현관으로 다가갔다가는 그들에게 들킬 것 같아서 두번째부터는 늘 그 집 마당 근처의 
나뭇가지에다 물고기들을 걸어놓고 도망치곤 했다.
  소년이 그들에게 물고기를 남겨 두고 오곤 했던 건 그들이 인디언이 아니어서 
고기잡을 줄을 몰랐으므로 자칫하다가는 옥수수가 익기전에 굶어죽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그 연방군인들에게 뒤지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비록 
옥수수를 재배하는 일에는 참여할 수 없고 쟁기질 같은 것도 잘 할 줄 모르지만 
말이다.
  그 비쩍 마른 병사와 어린 처녀들은 매일 저녁 황혼녘만 되면 양동이를 들고 샘과 
사과밭 사이를 오락가락하곤 했다. 그들은 모든 사과나무에 골고루 물을 주었다. 이런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옥수수를 솎아 주고 괭이로 옥수수밭의 김을 
맸다. 소년은 그 연방군 상사가 쟁기질뿐만 아니라 괭이질도 미친듯이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옥수수는 순조롭게 자라 짙푸른 색깔을 띠었다. 그것은 옥수수 수확철을 
기대해도 좋다는 걸 뜻했다. 사과나무에서도 연초록 이파리들이 돋아났다.
  이윽고 여름이 찾아왔다. 날은 길어지고 어둠은 더디게 찾아왔다. 그 덕에 상사와 
병사는 두세 시간씩이나 일하고는 다시 부대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어스름녘이 되어 기온이 선선해지고 소쩍새들이 울기 시작할 때쯤이면 그들은 모두 
앞마당에 서서 들을 내려다보곤 했다. 그럴 때면 으레 상사는 파이프를 뻐끔거렸고 두 
어린 처녀들은 그 깡마른 병사에게 찰싹 달라붙곤 했다. 병사는 사과나무 주위의 풀을 
긁어내고 흙을 다둑거려 줄 때 괭이 대신 손을 썼으므로 그의 양손은 늘 
흙투성이였다.
  상사는 늘 진한 애정이 배인 끈끈한 눈길로 그 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말 좋은 
땅이야." 외다리 사내도 맞장구를 치곤 했다. "그렇구 말구요. 정말 좋은 땅이지요." 
그러면 늙은 흑인도 한 마디 거들고 나섰다. "내 평생 이렇게 옥수수가 잘 되는 건 
처음 봅니다요."
  헌데 그는 매일 저녁마다 이 소리를 반복하곤 했다. 할아버지는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려고 번번이 그들 가까이 다가가 보지만 그들은 매번 그저 멀거니 서서 이런 
경이로운 장관은 처음 본다는 듯이 입을 헤벌리고 들을 내려다볼 뿐이었고^5,5,5^ 매일 
저녁마다 늘 똑같은 감탄사들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깡마른 병사 역시 늘 하는 말이 
있었으니, "일년만 기다려요^5,5,5^. 그러면 사과나무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할 
겁니다^5,5,5^. 꽅이 피면 그런 장관이 없어요"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가 그런 
말을 하면 처녀들은 괜시리 킬킬거리며 웃었으며, 그럴때면 그녀들의 겉늙은 모습도 
사라지곤 했다.
  상사는 파이프로 가리키며 말했다. "내년에는 저기 산 밑의 조그만 덤불숲을 
개간하면 좋을 겁니다. 그러면 옥수수밭 삼사 에이커(1에이커는 4,046제곱미터: 
옮긴이)는 나올 겁니다"
  소년은 그 작은 골짜기에서는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며 모든 
것이 다 갖춰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이제 점차 그곳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헌데 바로 그때 단속반원들이 그곳에 찾아 왔다.
  그들은 태양이 아직 높이 솟아 있는 저녁 나절에 열두 명이 무리를 이루어 
나타났다. 하나같이 요란한 제복 차림에 총기를 휴대한 그들은 새로 제정된 법을 
통과시키고 세금을 인상시킨 정치가들의 하수인들이었다.
  그 집 마당으로 올라온 그들은 마당에다 붉은 깃발이 달린 깃대 하나를 꽂았다. 
소년은 그 붉은 깃발이 무얼 의미하는가를 알고 있었다. 읍내 근처에서 그걸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떤 정치가가 그 땅을 원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들은 탐나는 
땅이 있으면 그것을 빼앗기에 앞서서 미리 그 땅에 대해 주인이 갚기 어려울 정도로 
호된 세금을 부과한다.그렇게 해놓고는 그 세금을 물지 못하면 그 붉은 깃발을 
꽂았으며 이는 그 땅이 접수되었다는 걸 뜻했다.
  외다리 사내, 여자, 늙은 흑인, 그리고 두 딸들은 들에서 일하다가 단속반원들을 
발견하고는 모두들 손에 괭이를 든 채로 들에서 뛰어나왔다. 그들은 모두 집 
앞마당으로 몰려들었다. 소년은 외다리 사내가 괭이를 집어던지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잠시 후 그는 심하게 절룩거리며 튀어나왔는데 그의 손에는 낡은 구식 
보병총이 들려 있었다. 그는 그걸로 단속반원들을 겨냥했다.
  바로 그때 연방군 상사가 말을 타고 달려왔다. 깡마른 병사도 없이 혼자였다. 
상사는 말에서 내려 단속반원들과 외다리 사내 사이에 뛰어들었다. 헌데 그 순간 
단속반원 하나가 총을 쏘았다. 상사는 놀라움과 고통이 뒤섞인 표정과 함께 
비척거리며 뒤로 몇 발짝 물러섰다. 그리고는 모자가 벗겨지면서 땅바닥에 쓰러졌다.
  외다리 사내도 자신의 구식 보병총을 쏘아서 단속반원 하나를 쓰러트렸다. 그러자 
단속반원들의 총구는 일제히 불을 뿜었다. 무수한 총탄의 표적이 된 외다리 사내는 
맥없이 허물어져 그대로 절명해 버렸다. 여자와 딸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의 몸에 
달려들었다. 그들은 그를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소년은 그가 이미 죽었다는 걸 
알았다. 그의 목이 힘없이 꺾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소년은 늙은 흑인이 괭이를 허공에 치켜들고 단속반원들에게 돌진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에게도 두세 차례 총을 쏘았다. 그는 자신의 괭이 자루 위로 쓰러졌다. 
이윽고 단속반원들은 그곳을 떠났다.
  소년은 그들이 목격자가 없나 확인해 보기 위해 주위를 포위하고 뒤질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소년은 아버지께도 그 일에 관해 
말슴드렸으며 그 일로 큰 말썽이 날거라고 예상했다. 헌데 아무런 말썽도 일지 
않았다.
  나중에 소년은 그 일이 어떻게 해서 유야무야 되었는가를 읍내에 가보고 알게 
되었다. 그곳의 정치가들은 그 사건이 폭동과 비슷했다는 식으로 선전을 해댔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반란으로 발전할지도 모르니 그 문제를 처리하고 더 많은 돈을 
걷기 위해 선거를 다시 해야한다면서 일을 다른 방향으로 확대시켜 나갔다. 사람들은 
정치가들의 말만 믿고 흥분하여 정치가들더러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일을 밀고 
나가라고 했다. 덕분에 정치가들은 자기네 뜻대로 일을 진행시켜 나갈 수 있었다.
  한 부자가 그 골짜기를 인수했다. 그 집 여자와 딸들이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소년도 결코 알지 못했다. 그 부자는 소작인들에게 그 땅의 경작을 맡겼다. 
그리고 그곳의 토질과 기후가 사과농사에 적당치 않아 사과농사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이유로 그들은 그 사과밭들을 갈아엎어 버렸다.
  뉴욕 출신의 한 병사가 부대를 탈영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은 그를 폭동이 
일어난 현장에 파견되자 무서워 달아난 겁쟁이라고들 했다.
  정치가들은 그 상사의 시신과 유품을 관 속에 집어넣어 일리노이로 보내버리게 
했다. 사람들은 상사의 옷을 갈아입히고 몸을 반듯이 펴려고 하다가 상사가 한 손을 
꽉 움켜쥐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들은 그 주먹을 펴보려고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결국 연장의 도움을 얻어 겨우 그 손을 펼치게 하는 데 성공했다. 헌데 거기서는 
그들이 기대하던 귀중품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한 줌의 검은 흙뿐. 
  @[  산 위에서의 하룻밤

  할아버지와 나는 매사를 인디언의 방식으로 생각하였는데, 나중에 사람들은 나의 
이런 면에 대해 고지식하다고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가 "낱말들"에 
관해 말씀하실 때 이 말뜻에 대해서도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 말의 
의미에 대해서 좀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누가 너더러 "고지식하다"고 하면 그건 
좋은 뜻이기 때문에 신경쓸 거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그러한 
고지식함에 힘입어 항시 내가 뜻한 바를 성취하게 될 것이며^5,5,5^ 고지식함은 바로 
그런 장점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대도시 사내들이 우리 산을 방문했을 때처럼.
  할아버지는 반쯤은 스코틀랜드 인이셨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늘 인디언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계셨다. 저 위대한 붉은 독수리, 빌 웨더포드, 엠퍼러 맥길버리, 
매킨토시 같은 인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은 인디언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을 
정복하거나 악용하려들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그런 생각을 소중하게 여겼으며 그런 마음은 점점 더 자라나 자신들을 전혀 
백인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인디언들은 백인과 거래를 하려고 할 때면 우선 자기네가 가져온 
물건을 백인들의 발 밑에다 내려놓는다, 그런데 백인들이 가져온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자기 물건을 집어들고 그냥 가버린다고 하셨다. 헌데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백인들은 그런 행동을 일러 "인디언 식 증요"라고 하곤 하는데 이는 
주었다가 도로 가져가는 행동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인디언들이 정말로 
선물을 줄 때는 요란떨지 않고 조용히 와서 물건을 찾기 쉬운 곳에 놓고는 그냥 말 
없이 가버린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인디언들의 인사법은 자신의 양손을 들어올려 활짝 펼쳐 보여주는 
것인데 이는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알리는 "평화"의 제스처라고 말씀하시면서 
백인들에게는 그게 아주 우스꽝스러운 행동처럼 보일지 몰라도 할아버지가 보시기에는 
아주 이치에 맞는 인사법이라고 하셨다. 헌데 백인들은 아주 사이가 나쁜 경우를 
빼놓고는 대체로 상대편과 인사하기 위해 악수를 나누는데, 이는 친구라고 주장하는 
상대의 옷소매에서 무기를 빠져나오게 하려는 짓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백인들의 
이러한 인사법을 별로 좋게 보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입으로는 서로 친구라고 
주장하면서 인사할 때마다 상대의 소매를 흔들어 무기를 빠져나오게 하려는 행동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이것은 상대의 말을 완전히 
불신하는 데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하셨다. 이치에 맞는 말씀이시다.
  백인들은 인디언을 만나면 "하우 How!"라고 하면서 인사해 놓고는 인디언들을 
비웃곤 하는데 이것은 이백 년 이상이나 계속된 관행이라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인디언이 백인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은 이런저런 인사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일테면 (하우 알 유 필링?- 기분이 어떻소?) (하우 알 유어 피플?- 당신네 부족은 
두루 안녕하시오?) (하우 알 유 게팅 얼롱?- 요즘 어떻게 지내시오?) (하우 이즈 더 
게임 훼어 유 컴 프롬?- 당신네 사는 데는 사냥감이 많소?) 등등. 할아버지는 그 
때문에 인디언들은 백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주어는 (하우)라고 믿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인디언들은 백인과 만나게 되면 으레 그자가 하우, 하우, 하기만 하리라 
짐작하고는 그저 정중한 태도를 갖춘 채 그 빌어먹을 놈이 실컷 하우, 하우, 하우, 
하게 내버려둔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말없이 자기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인디언을 
비웃는 놈들은 예의바르고 신중하게 행동하려고 애쓰는 인디언을 비웃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한번은 우리가 우리 제품들을 넘겨주려고 네거리 가게 안에 들어갔는데 젠킨스 
씨가, 대도시 사람 둘이 이곳에 와 있다며, 그들은 채터누가에서 길다란 검은 자가용을 
타고 왔으며 할아버지와 얘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말을 전했다.
  할아버지는 커다란 모자 챙 밑으로 젠킨스 씨를 내려다보며 말씀하셨다. 
"세무서원들이오?"
  "아뇨, 그 사람들은 법하고는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위스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랍니다. 당신이 만든 위스키 맛이 아주 좋다는 소문을 듣고 왔답디다. 그 
사람들은 당신이 커다란 증류기를 들여놓았으면 해요. 그래야 자기네들이 당신의 
위스키를 갖고 돈을 벌테니까."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갖다드릴 커피와 
설탕을 조금씩 사셨다. 나는 나뭇단을 날라다 드리고 젠킨스 씨한테서 묵은 사탕 
하나를 받았다. 젠킨스 씨는 할아버지의 대답을 듣고 싶어 안절부절 못했지만 
할아버지가 어떤 분인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식의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다.
  "그 사람들은 자기네가 곧 돌아올 거라고 했습니다." 젠킨스 씨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치즈도 좀 사셔따. 그 바람에 나는 아주 기뻤다. 치즈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 가게에서 나온 우리는 그 근처를 돌아다니지도 않고 곧바로 
산길로 향했다. 할아버지가 아주 부지런히 걸음을 놀리시는 바람에 나는 산딸기를 딸 
여유가 없어 묵은 사탕만 빨며 열심히 종종걸음을 쳐야 했다.
  우리 오두막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는 할머니께, 대도시에서 온 사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는 내게 말씀하셨다. "작은나무야, 너는 여기 남아 있거라. 
난 지금 증류기 있는 데로 가서 나뭇가지들을 좁더 얹어놓을 건데 혹시 그자들이 
오걸랑은 나한테 와서 알리거라." 할아버지는 바로 나가셔서 산길로 올라가셨다.
  나는 현관 앞으로 나가서 대도시 사내들이 오나 망을 보았다. 할아버지가 산길로 
자취를 감추시자마자 멀리서 그 사람들이 오는 게 보였다. 나는 할머니한테로 
뛰어가서 그 사실을 알려드렸다. 할머니는 얼른 개 통로 있는 데로 가서 서셨다. 
우리는 그들이 산길을 올라와 통나무 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들은 정치가들처럼 아래위로 쪽 뽑아입었다. 덩치가 크고 뚱뚱한 사내는 연보랏빛 
양복에 하얀 넥타이를 맸으며 깡마른 사내는 하얀 양복에 윤나는 검은 셔츠를 
받쳐입었다. 그리고 그들은 둘 다 대도시 사람들이 즐겨 쓰는, 질좋은 밀짚으로 만든 
커다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들은 계단도 밟지 않고 성큼 뛰어올라 현관 있는 데로 들어왔다. 덩치가 큰 
사내는 땀투성이였다. 그는 할머니를 쳐다봤다. "이 집 영감님을 좀 만나고 싶소." 
나는 그가 어딘가가 좀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숨결이 몹시 거칠고 눈도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두덩이와 뺨의 살이 너무 부풀어올라 그의 두 
눈은 길게 째져 보였다.
  할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나 역시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덩치가 큰 
사내는 고개를 돌려 깡마른 사내를 쳐다봤다. "슬리크, 이 할망구는 영어 할 줄 모르는 
모양이야."
  슬리크 씨는 공연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기에는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는 째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망구를 족쳐 봐. 나는 어쩐지 여기가 마음에 안 들어, 청크. 
산속에 너무 깊이 들어박힌 게. 그만 가지." 슬리크 씨는 콧수염을 좀 기르고 있었다.
  "닥쳐." 청크 씨는 소리질렀다. 청크 씨가 그의 모자를 뒤로 제치자 터럭 하나 없는 
알대머리가 보였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내려다봤다.
  "이놈은 좀 종자가 좋아 보이는데. 어쩌면 영어를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어이 
꼬마야, 너 영어 할 줄 아니?"
  나는 대답했다. "알아요."
  청크 씨는 슬리크 씨를 쳐다봤다. "들었지? ^5,5,5^ 할 줄 안다는구만." 그들은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자기네들끼리 낄낄거리고 웃었다. 나는 할머니가 슬그머니 뒤로 나가 
퍼렁이를 내다보시는 걸 봤다. 퍼렁이는 골짜기를 타고 뛰어올라갔다.
  청크 씨가 말했다. "꼬마야, 네 아빠 어디 갔니?" 나는 그에게, 나는 아빠를 
기억하지도 못하며 할머니 할아버지와 여기서 산다고 이야기해 줬다. 청크 씨가 
할아버지가 어디 계시는지 궁금해 하길래 나는 몸을 돌려 산길 쪽을 가리켰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더니 일 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꼬마야, 우리를 
네 할아버지 있는 데로 안내해 다우. 할아버지만 만나게 해주면 이 돈은 네 거다."
  그는 손가락에 큼직한 반지를 몇 개나 끼고 있었다. 나는 그가 부자라서 일 
달러쯤은 아무 데서나 쉽게 뿌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걸 
받아 내 주머니 속에 넣었다. 나는 재빨리 계산을 했다. 설사 할아버지와 길이 엇갈려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전에 그 기독교인에게 사기당한 오십 
센트를 이 사람들에게서라도 돌려받을 심산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자 나는 아주 기분이 좋아져서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헌데 얼마쯤 걸어가다 생각하니 그들을 증류기 있는데로 인도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산등성이 길로 끌고 갔다.
  산등성이 길로 올라가면서 나는 좋지 않은 짓을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러다 에라, 될대로 되라 하는 기분으로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청크 씨와 글리크 씨는 기분이 좋은 듯했다. 그들은 양복 웃저고리를 벗어들고 
내 뒤를 따라왔다. 두 사람 모두 허리에 권총을 한 자루씩 차고 있었다. 슬리크 씨가 
물었다. "꼬마야, 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도통 없냐?" 나는 걸음을 멈추고는 전혀 
기억나는 게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슬리크 씨가 말했다. "그래서 네가 후레자식이 
된 거로구나, 안 그러냐 꼬마야?" 나는 요즘 사전에 나오는 순서대로 낱말공부를 하고 
있는데 아직 후레자식이란 말이 나오는 부분까지 나가지 못해서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들은 둘 다 배꼽을 잡고 
웃었는데 너무 웃는 바람에 나중에는 재채기까지 해댔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들은 
아주 유쾌해 보였다.
  청크 씨가 말했다. "아무튼 이것들은 다 짐승이나 매한가지라구." 나는 그의 말을 
받아 우리 산에는 짐승들이 아주 많다고 했다^5,5,5^ 살쾡이며 멧돼지 등등. 그리고 
할아버지와 나는 흑곰도 한번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슬리크 씨는, 그럼 근래에 곰을 본 적은 없냐고 물었다. 나는, 요즘에는 본 적이 
없지만 곰이 지나간 흔적은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길가의 포플러 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나무에 곰이 발톱으로 할퀸 자국이 있어요." 그 
말에 청크 씨는 마치 뱀이 덤벼들기라도 하듯 기겁을 하며 길가로 비켜났다. 헌데 
그는 옆으로 몸을 피한다고 하다가 그만 슬리크 씨랑 충돌을 했고 그의 육중한 몸과 
부딪친 슬리크 씨는 보기좋게 길바닥에 나동그라져 버렸다. 슬리크 씨는 몹시 화를 
냈다. "이런 염병할, 하마터면 저 밑으로 굴러떨어질 뻔했잖아... 그렇게 됐다면 
나는..." 슬리크 씨는 골짜기 밑을 가리켰다. 그와 청크 씨는 목을 쭉 빼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까마득한 벼랑 저 밑을 흘러내리는 실개천이 정말 실처럼 가늘게 
보였다.
  청크 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맙소사! 높이가 얼마나 되지? 여기서 
굴러떨어졌다간 뼈도 못 추리겠는걸." 나는,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꽤 높다고 대꾸해 줬다.
  계속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청크 씨와 슬리크 씨의 헐떡임도 심해졌으며 나중에는 
기침까지 해댔다. 그들은 자꾸만 내 뒤로 처졌다. 한참 가다 보니 그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아 다시 내려가 보니까 그들은 하얀 참나무 밑에서 큰 대자로 누워 있었다. 
그 참나무 뿌리 주위에는 독담쟁이가 넓게 퍼져 자라고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그 
한가운데 누워 있었다.
  독담쟁이는 초록빛에 산뜻한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그 위에 앉거나 눕지 않는 것이 
좋다. 만일 그랬다간 전신이 벌겋게 부풀어 오르면서 몹시 쓰라리고 아프며 그 통증은 
여러 달 계속된다. 헌데 그들은 이미 거기 누워 버렸으니 어쩌랴. 얘기해 줘 봤자 
기분만 더 고약해져 버리리라. 가뜩이나 기분이 저조해 보이는데.
  슬리크 씨가 머리를 쳐들고 소리질렀다. "야, 이 빌어먹을 녀석아, 도대체 우리를 
어디까지 끌고 갈 심산이야.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해?" 청크 씨는 아무 말도 하기 
싫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독담쟁이 속에 푹 파묻혀 있었다. 나는 이제 거의 다 
왔다고 말했다.
  나도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가 할아버지께 말씀을 해주셔서 
할아버지가 곧 내 뒤를 쫓아오실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니까 일단 산능선 있는 데까지 
가서는 슬리크 씨와 청크 씨에게 여기 앉아 기다리고 있으면 곧 할아버지가 나타나실 
거라는 얘기를 할 심산이었다. 그러다 보면 정말로 할아버지가 나타나실 거고 그러면 
나는 어쨌든 그들을 할아버지와 만나게 해드린 셈이 되니 그 일 달러를 내것으로 해도 
되는 것이다.
  나는 다시 출발했다. 슬리크 씨는 청크 씨를 부축해서 그 독담쟁이 밭에서 일어나게 
했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내 뒤를 따라왔다. 그들은 독담쟁이 밭에다 그들의 
웃저고리들을 놔두고 왔다. 청크 씨는 돌아가는 길에 그걸 집어들고 갈 거라고 했다.
  나는 그들보다 먼저 산 능선에 올라가 그들을 기다렸다. 우리가 올라온 산등성이 
길은 수많은 길들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곧 옛 체로키 부족들이 누비고 다녔던, 이 
산능선을 따라 난 수많은 길들 중의 하나. 이 길을 산곡대기에서 반대편으로 
내려가다가 두 갈래로 갈라지고 다시 한참을 내려가다간 또 갈라지곤 한다. 
할아버지는 그 길들을 따라 그 산악지대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아마 백오십 킬로미터 
이상 걷게 될 거라고 하셨다.
  나는 덤불숲 속에 들어가 앉았는데 그곳에서는 길이 둘로 갈라져 있었다. 하나는 
능선을 따라 계속 달리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산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나는 
청크 씨와 글리크 씨에게, 여기 앉아 할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기다리자고 얘기할 
생각이었다.
  그들은 한참 뒤에야 나타났다. 청크 씨는 한 팔로 슬리크 씨의 어깨를 감싸안은 채 
걸러오고 있었다. 심하게 다리를 절룩거리며 오는 걸로 보아 그는 다리를 다친 
모양이었다.
  청크 씨는 슬리크 씨에게 개자식이라고 욕했다. 헌데 나는 슬리크 씨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잠자코 듣고 있는 것에 놀랐다. 청크씨는 산에 사는 것들을 자기네 
사업에 끌어들이자는 아이디어를 맨 처음 낸 사람이 바로 슬리크 씨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슬리크 씨는 이 쌍놈의 인디언을 골라낸 사람은 바로 청크 씨라면서 청크 
씨야말로 개쌍놈의 새끼라고 욕을 했다.
  내가 앉아 쉬고 있는 덤불 곁을 지나칠 때 그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말사움을 
했다. 그 바람에 나는 그들더러 여기 앉아서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건넬 기회를 잃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내게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는 중간에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던 것이다. 그들은 산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나는 그들이 
험준한 산봉우리들 사이로 난 깊은 골짜기를 향해 계속 걸어가다가 마침내 숲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줄곧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거기 그대로 앉아 
할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퍼렁이가 산길을 올라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퍼렁이는 
연신 코를 큼큼거리며 내 자취를 따라 올라오다가 이윽고 나를 발견하고는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달려왔다. 잠시 후 나는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건 꼭 진짜 
소쩍새 울음소리 같았다^5,5,5^ 하지만 아직 날이 어두워질 때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게 할아버지가 내는 소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도 소쩍새 울음소리를 냈다. 
거의 진짜 비슷하게.
  나는, 저녁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는 숲을 헤치면서 소리없이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았다. 할아버지는 산등성이 길로 오시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거기 
앉아 있었다면, 여간 주의해서 귀기울이지 않고서는 할아버지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으리라. 잠시 후에 할아버지는 내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셨다. 나는 몹시 
반가웠다.
  나는 할아버지께 슬리크 씨와 청크 씨가 산 반대편으로 내려갔다는 것과 아울러 
산을 올라오는 동안 그들이 한 얘기를 기억나는 대로 전부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연신 혀를 차기만 하셨다. 할아버지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할머니가 자루 속에 음식을 넣어 보내셔서 할아버지와 나는 삼나무 미티에 앉아 
요기를 했다. 높은 산 위에서 먹는 옥수수 빵과, 옥수수 가루를 넣고 요리한 메기는 
맛이 기가 막혔다. 우리는 음식을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 일 달러짜리 지폐를 보여드리면서, 만일 청크 씨가 내가 내 할 
일을 완수했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그 돈은 내 것이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나는 
그걸 잔돈으로 바꿔서 할아버지와 반씩 나누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청크 
씨를 보러 이곳까지 왔으므로 나는 내 할 일을 완수한 셈이라고 하셨고, 또 그 돈을 
나눌 생각 말고 다 가지라고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젠킨스 씨네 가게에서 본 그 파랗고 빨간 사탕상자에 관해 
말씀드렸다. 나는 그게 아마 일 달러를 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할아버지도 그럴 것 
같다고 하셨다. 그때 우리는 그 산의 골짜기 저 아래편에서 누군가가 고함치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청크 씨와 슬리크 씨를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소쩍새들과 칩윌즈(산새의 일종: 옮긴이)들이 
산중턱에서 울어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일어나셔서 두 손을 입가로 가져가 산 
아래쪽을 향해 우렁차게 포효했다. "우워어^5,5,5^!" 그 소리는 맞은편 산봉우리에 
부닺쳐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마치 할아버지가 그곳에 계신 것처럼. 그리고 그 
소리는 계속 무수한 골짜기들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다가 이윽고 희미하게 사라졌다. 
수많은 골짜기들이 공명관 같은 작용을 하여 밑에 있는 사람들은 그 소리가 
어디쯤에서 나왔는지 알 방법이 없을 듯했다. 할아버지의 외침이 막 사라질 즈음 저 
아래 계곡 어딘가에서 세 방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들 역시 이곳저곳의 
산봉우리에 부딪치며 수많은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권총소리다. 권총소리로 응답하고 있는거야."
  할아버지의 외침이 다시 허공을 갈랐다. "우워어^5,5,5^!" 나도 할아버지가 하시는 
대로 따라서 했다. 우리 두 사람의 외침이 한데 섞여 메아리치는 바람에 잠시 온 산이 
시끌벅적해졌다. 또다시 권총소리가 세 번 울렸다.
  할아버지와 나는 계속 계곡을 향해 외쳐댔다. 우리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게 아주 재미있었다. 우리가 한번씩 소리칠 때마다 권총소리도 계속 응답을 
보내왔다. 그러다 권총소리가 그쳤다. 우리가 계속 소리치는데도.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총알이 다 떨어진 모양이다." 이제 사방은 캄캄해졌다. 
할아버지는 크게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셨다. "저 사람들을 찾으려고 밤새 내내 저 
아래에서 헤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저 사람들은 괜찮을 거다. 내일 찾으면 되니까." 
내 생각에도 그게 좋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나는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스프링바우(야생풀의 일종: 옮긴이)를 
뜯어다 삼나무 밑에 폈다. 만일 당신이 봄 여름에 산에서 잘 경우에는 스프링바우 
위에서 자는 게 좋다. 안 그러면 레드벅(사면발이류의 기생충: 옮긴이)들에게 흠씬 
뜯길 테니까. 레드벅은 너무 작아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풀잎이나 
나무 이파리에 붙어 있다가 당신이 잠자리에 누울라치면 수천수백만 마리가 일제히 
기어나와 당신의 피부 속으로 파고들어 당신의 온 전신에 발진을 일으킬 것이다. 어느 
해에는 거것들이 유난히 더 극성을 떨곤 하는데 올해가 바로 그런 해였다. 거기다 또 
진드기도 덤벼든다.
  할아버지와 나는 스프링바우 위에 누웠다. 퍼렁이가 내 곁에 몸을 바싹 붙인 채 
엎드려 있어 대기의 쌀쌀함을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었다. 스프링바우는 보드랍고 
푹신푹신했다. 나는 연신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머리 뒤에 깍지를 끼고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것은 
누런 보름달이었으며 먼 산 위로 두둥실 떠돌랐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달이 밝은 
날이면 백오십 킬로미터 사방으로 들쑥날쑥하게 솟은 산과 진자줏빛 그늘이 드리운 
계곡들을 훤히 내다볼 수 있다고 하셨다. 저 멀리 눈 아래로 안개의 띠들이 
떠다녔다^5,5,5^. 느릿느릿 골짜기 사이를 헤엄치고 산허리를 뱀처럼 휘감으면서. 
조그만 안개의 띠 하나가 마치 은빛 쪽배처럼 어느 산 모퉁이를 돌아나오더니 또 다른 
안개의 띠와 부딪치면서 서로 뒤섞여 골짜기 하나를 소리없이 집어삼켰다. 할아버지는 
그 안개가 꼭 생명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셨다. 정말 그랬다.
  앵무새 한 마리가 우리 바로 곁에 있는 느릅나무 꼭대기 위에 올라앉아 노래하기 
시작했다. 먼 곳에서 암수 두 마리의 살쾡이들이 서로를 외쳐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마치 날카로운 비명소리처럼 들렸다. 헌데도 할아버지는 
짐승들이 짝을 지을 때는 환희에 차서 저절로 그런 식의 비명이 나오는 거라고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매일 밤마다 산에서 잤으면 좋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당신 
심정도 그렇다고 하셨다. 올빼미 한 마리가 우리 바로 밑에서 그 특유의 찢어지는 
소리르 내며 울었다. 바로 그때 사람의 고함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는 
청크 씨와 슬리크 씨가 내는 소리라고 하시면서 그들이 잠자코 있지 않으면 온 산의 
새들과 짐승들이 불안에 떨 거라고 하셨다. 나는 달을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새벽에 일어났다. 높은 산에서 새벽을 맞는 건 여간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할아버지와 나, 그리고 퍼렁이는 산속의 새벽풍경을 한참 동안이나 
감상했다. 하늘은 엷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으며 새로운 날을 맞은 새들은 나무 위에서 
요란하게 지저귀었다.
  백오십 킬로미터 사방의 무수한 산봉우리들이 우리 발 밑을 바다처럼 채운 안개 
위에 섬처럼 떠 있었다. 할아버지는 동쪽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봐라."
  세상 끝, 가장 머나먼 곳의 산등성이 위의 하늘에 거대한 붓으로 쭉 그은 듯한 
핑크색 빛의 띠가 길게 가로걸려 있었다. 서서히 일기 시작하는 아침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때렸다. 할아버지와 나는 아침이 탄생할 때마다 보이는 그 빛들을 알고 
있었다. 그 빛의 띠들은 여러 겹으로 하늘을 가로지른다. 빨강, 노랑, 그리고 파랑색의 
겹으로. 세상 맨 끝으로 솟은 그 산능선에는 찬란한 불길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이윽고 태양이 숲을 밝게 비추기 시작한다. 그 빛은 우리 발 미티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파도치는 안개바다를 핑크 빛으로 물들인다.
  마침내 아침 햇살이 할아버지와 내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세상은 다시 한번 새롭게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새 날이 밝아왔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당신의 모자를 
벗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묵묵히 서서 아침 풍경을 응시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한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앞으로도 다시 그 산 정상으로 올라와 이처럼 
아침이 탄생하는 것을 지켜보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햇살은 아침의 대기 속을 분방하게 떠돌면서 온 산을 환히 밝혔다. 할아버지는 
부지중 탄식을 발하시고는 크게 기지개를 켜셨다. "흠, 너랑 나랑은 해야 할 일이 
있다. 너한테 말해 주마." 할아버지는 당신의 머리를 긁으셨다. "너한테 얘기할 게 
뭔고 하니, 에, 오두막으로 가서 할머니한테 우리가 여기서 조금 더 있다 내려간다고 
말씀드려라. 그리고 너랑 나랑 먹을 걸 좀 만들어 달라고 해서 가져오는데, 그걸 
종이봉지에다 담아 달라고 하고 그 대도시 녀석들이 먹을 건 마대자루 안에 담아 
달라고 하거라. 기억할 수 있겠지? 종이봉지와 마대자루?" 나는 기억할 수 있다고 
하고는 바로 출발했다.
  헌데 할아버지가 나를 불러 세우셨다. "그리고 작은나무야," 할아버지는 말씀하시다 
말고 히쭉히쭉 웃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그 두 녀석들이 먹을 걸 만드는 동안 그 두 
녀석이 너한테 얘기한 걸 죄다 말씀드려라."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하고는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퍼렁이가 내 곁에 붙어서 따라왔다. 나는 할아버지가 청크 씨와 
슬리크 씨를 부르시는 소리를 들었다. 할아버지는 "우워어^5,5,5^" 하고 고함을 
치셨다. 나도 할아버지 곁에 서서 같이 소리치지 못해 아쉬웠지만 산길을 
뛰어내려가는 것도 그리 싫지는 않았다. 특히 이른 아침에 뛰어내려가는 것은.
  이 시간은 모든 산짐승들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자기 집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었다. 나는 두 마리의 너구리들이 호두나무의 높은 가지 위에 올라앉은 것을 
보았다. 그들은 연신 나를 흘끔거리다가 내가 그들 밑을 지나가자 뭐라고 소리쳤다. 
다람쥐들이 찍찍거리며 산길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그들은 내가 달려가는데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당황하게 하곤 했다. 우리가 가는 길가에는 어디에나 새들이 보였고 
우리가 다가가면 그들은 일제히 날아오르곤 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앵무새 
한마리가 나와 퍼렁이를 줄곧 따라오면서 자꾸만 내 머리 위에 내려 앉으려고 했다. 
앵무새들은 누군가 자기네들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면 흔히 이런 짓을 하곤 한다. 
나도 그 새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 새가 그런 장난을 하는 것이다.
  내가 우리 오두막이 보이는 빈 터로 들어섰을 때 할머니는 뒷현관에 나와 계셨다. 
할머니는 내가 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가 새들의 행동을 보고 내가 
오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시는 게 아닌가 짐작했다. 혹시 냄새로 그걸 알아차리실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고. 어쨌든 할머니는 내가 나타날 때마다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으신 걸로 보아 항시 내가 오고 있다는 걸 미리 알고 계신 게 분명했다.
  나는 할머니께 할아버지의 말씀을 전했다. 나랑 할아버지 음식은 종이봉지에 싸고, 
도시 사람들 건 마대자루에 담아 달라는 말씀을. 할머니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내가 먹을 것을 만드신 다음 청크 씨와 슬리크 씨가 먹을 
물고기를 기름에 튀기기 시작하셨을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내게 이야기 한 걸 
할머니께 말씀드려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내가 그 얘기를 해드리자 할머니는 
물고기를 튀기시다 말고 갑자기 프라이팬을 불 위에서 들어올리시더니 냄비를 꺼내 
거기다 물을 부으셨다. 그리고는 그 냄비 속에 청크 씨와 슬리크 씨의 물고기를 
집어넣으셨다. 나는 할머니가 물고기를 튀기는 대신에 끓이기로 결정하셨다는 
것까지는 알 수 있었다. 헌데 나는 할머니가 요리를 하시는데 실물뿌리를 가루로 낸 
것을 집어넣는 광경은 생전 처음 봤다. 그들이 먹을 물고기는 식물뿌리 가루와 더불어 
냄비 속에서 보글보글 끓었다.
  나는 할머니께 청크 씨와 슬리크 씨가 아주 유쾌한 사람들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난 처음에는 내가 후레자식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한바탕 즐겁게 
웃어댔다고 생각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들은 슬리크 씨의 말 때문에도 웃어댄 것 
같다. 청크 씨가 한참 웃다 말고 우리 인디언들은 죄다 짐승이나 매한가지라고 슬리크 
씨에게 대꾸한거로 미루어 보면 그렇게 생각된다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내 말을 들으시더니 냄비 속에 식물뿌리의 가루를 다시 또 듬뿍 
집어넣으셨다. 나는 할머니께 일 달러가 생기게 된 과정을 말씀드리고 나서 
할아버지는 내가 내 할 일을 다 했으므로 그걸 가져도 된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할머니도 그 말씀이 옳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그 일 달러짜리 지폐를 내 항아리 
속에다 넣어주셨다. 하지만 나는 파랗고 빨간 사탕상자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우리집 
근처에는 기독교인들이 없었지만 혹시 또 아는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데.
  할머니는 김이 폭폭 솟아날 때까지 그 물고기들을 끓이셨다. 할머니의 두 눈에서는 
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할머니는 연신 코를 훌쩍이셨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려니까 할머니는 김이 얼굴에 서려 그렇게 된 모양이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대도시 사내들에게 줄 물고기를 마대자루 속에 집어 넣으셨다. 나는 그 짐을 들고 
다시 산등성이 길로 올라갔다. 할머니가 개들을 죄다 풀어 놓으셔서 나는 개들과 함께 
산을 탔다.
  산능선으로 올라가자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휘파람을 불자 산 
반대편 골짜기 쪽에서 할아버지의 응답이 날아왔다. 나는 그리로 내려갔다. 그 길은 
비좁았고 숲이 하늘을 가렸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청크 씨와 슬리크 씨를 그 골짜기 
밖으로 거진 다 유도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계속 할아버지께 응답하는 걸로 보아 
이제 곧 모습을 드러내게 될 거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들에게 줄 물고기 자루를 눈에 잘 띄는 길가 나뭇가지에다 
걸어놓으셨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나는 식사를 하기 위해 그 기리에서 얼마쯤 떨어진 
곳에 있는 감나무 숲 밑에 자리잡았다. 태양은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있었다.
  할아버지는 개들을 조용히 엎드려 쉬게 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옥수수 빵과 
물고기를 먹었다.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청크 씨와 슬리크 씨가 할아버지의 고함소리가 
어느 방향에서 들려오는지 파악 할 수 없어 한동안 우왕좌왕했으나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결국 제대로 방향을 잡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이윽고 그들은 우리의 시야에 
나타났다.
  내가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나는 그들을 
빤히 쳐다보면서도 그들이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으리라. 그들의 셔츠는 갈갈이 찢어져 
걸레가 다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과 팔뚝에는 온통 긁히고 패인 자국들 
투성이었다. 할아버지는 그들이 찔레덤불을 헤치고 나온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헌데 
왜 그들의 얼굴에 커다란 붉은 반점들이 잔뜩 돋아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도통 
짐작이 가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들이 독담쟁이 덩굴위에 드러누운 탓으로 그렇게 
되었으리라 짐작했다. 청크 씨는 구두 한 짝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고개를 푹 떨군 채 
산길을 느릿느릿 걸어올라왔다.
  길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마대자루를 발견한 그들은 얼른 그것을 벗겨내리고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들은 할머니가 요리해 주신 물고기를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그들은 그걸 먹는 동안에도 어느 쪽이 더 많이 먹었는가를 따지며 계속 
툭탁거렸다. 그들이 다투는 소리는 우리가 있는 데까지 또렷이 들려왔다.
  음식을 다 먹은 그들은 나무그늘로 덮인 길바닥 위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나는 
할아버지가 내려가셔서 그들을 데리고 올라오시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잠자코 앉아서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잠시 후 
할아버지는 그들을 얼마 동안 그렇게 쉬게 내버려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별로 오래 쉬지 못했다. 갑자기 청크 씨가 벌떡 일어섰던 
것이다. 그는 허리를 구부린 채 배를 잔뜩 움켜쥐고 길가의 덤불 속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리고 바지를 까내리고는 바닥에 쭈그려 안장ㅆ다. 그는 소리소리 
질렀다. "오, 이런 염병할! 창자가 다 빠져나오려나 봐!" 그에 이어 슬리크 씨도 
똑같은 행동을 했고 비슷한 소리를 질러댔다. 그들은 끙끙 신음을 하고 고함을 
질러대고 바닥을 대굴대굴 굴렀다. 잠시 후 그들은 덤불 속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와 
길바닥 위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 후에 다시 벌떡 일어서서는 방금 전에 
밟았던 과정을 그대로 반복했다. 그들이 너무나 요란법석을 떨어대는 바람에 우리 
개들이 흥분하기 시작했지만 할아버지가 개들을 달래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게 했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들이 지금 독담쟁이 밭에 웅크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도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또 그들이 독담쟁이 이파리로 밑을 씻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당신이 보기에도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한번은 슬리크 씨가 길에서 독담쟁이 밭으로 달려가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바지까내리는 동작이 조금 늦고 말았다. 그 뒤부터 그는 계속 자기 몸으로 
달려드는 파리 떼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길과 독담쟁이밭 사이를 
거듭 왕복하는 일은 근 한 시간 가량이나 계속 되었다. 그 뒤 그들은 녹초가 되어 
길바닥 위에서 완전히 뻗어 버리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그들이 자기 몸에서 받지 않는 
무엇인가를 먹은 듯하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길 있는 데로 나가셔서 그들을 향해 휙, 휘파람을 부셨다. 그들은 두 
손으로 땅을 짚고서 간신히 무릎을 꿇고 앉아 나랑 할아버지를 올려다봤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퉁퉁 
부어올라 거의 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청크 씨가 소리쳤다. "잠깐 기다려요!" 슬리크 씨의 외침은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거기 서요! 제발 거기 좀!" 그들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거의 기다시피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대로 능선을 향해 올라갔다. 우리가 돌아보니 그들은 
쩔뚝쩔뚝하면서도 열심히 우리 뒤를 쫓아왔다.
  능선에 올라온 뒤 할아버지는, 이제부터는 그들도 대충 내려가는 길을 알고 있을 
테니 우리는 바로 우리 오두막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했다.
  할아버지와 내가 우리 오두막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해도 꽤 기둘어 있었다. 우리는 
할머니와 함께 뒷현관 쪽에 자리잡고 앉아 청크 씨와 슬리크 씨를 기다렸다. 그로부터 
두 시간쯤 지나 날이 어둑어둑해졌을 무렵에야 비로소 두 사람은 공터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크 씨는 나머지 구두 한 짝마저 잃어버렸으며 발끝으로만 지면을 살살 
딛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 오두막 주위를 크게 한바퀴 돌았다. 나는 그들이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왜 바로 올라오지 않고 저러고 있나 의아해했다. 
그들은 그렇게 돌더니만 집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가버렸다. 나는 할아버지께 내 일 
달러를 어떻게 해야 하나 여쭤봤다. 할아버지는 내가 내 할 일을 했으므로 그건 
가져도 된다고 하셨다. 그들이 마음을 바꾼 건 내탓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옳은 
말씀이시다.
  나는 우리 오두막을 빙 돌아 그들 뒤를 쫓아갔다. 그들은 막 통나무 다리를 건너는 
중이었다. 나는 그들 뒤에다 대고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안녕히 가세요, 청크 씨. 
안녕히 가세요, 슬리크 씨. 일 달러 주신거 고마워요, 청크 씨."
  청크 씨는 뒤를 돌아보더니 내게 주먹을 흔들어댔다. 그 바람에 그는 그만 발을 
헛디뎌 실개천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헌데 그가 떨어지면서 슬리크 씨를 붙잡았기 
때문에 슬리크 씨도 하마터면 같이 떨어질 뻔했는데 그는 용케 균형을 잡아서 간신히 
통나무 다리를 건너갈 수 있었다. 슬리크 씨는 또다시 청크 씨에게 개쌍놈의 새끼라고 
욕했으며, 이에 청크 씨는 실개천에서 허위적거리고 기어나오면서 채터누가로 
돌아가면, 돌아갈 수만 있다면 슬리크 씨를 때려 죽이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어째서 
그들 사이가 그렇게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그들은 계곡 길로 사라져 버렸다. 할머니는 개들을 풀어놓아 그들을 
감시하게 하고 싶어하셨지만 할아버지가 반대하셨다. 할아버지는 그들이 완전히 
기진맥진해서 별일 없을 것 같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청크 씨와 슬리크 씨가 할아버지와 나를 자기네 멋대로 판단하고서 
자기네 사업에 끌어들이려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내 생각에도 그 말씀이 
옳은 것 같았다.
  어쨌든 그들 때문에 할아버지와 나는 꼬박 이틀 간이라는 시간을 그냥 보내버린 
셈이 되었다. 나는 그 일 달러 지폐를 항아리에서 꺼내와서는 하아버지께, 우리가 
동업자이므로 아직도 나는 기꺼이 할아버지와 그 돈을 나눌 용의가 있으며 또 그럴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내가 그 돈을 위스키 사업과 
관련된 일로 번 게 아니기 때문에 싫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모든 점을 고려해 볼 때 
그만한 정도의 일로 일 달러를 받았다면 그리 박하게 받은 건 아니라고 하셨다.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았다. 
    @[  윌로우 존

  씨뿌리는 철이 되면 아주 바빠진다. 씨뿌릴 시기를 결정하는 분은 할아버지시다. 
그걸 결정할 때 할아버지는 먼저 흙 속에 손가락을 찔러넣어 그 온기를 측정해 
보신다. 이때 할아버지가 고개를 가로저으면 그건 아직 씨뿌릴 대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면 우리는 위스키를 제조하는 주간이 아닐 때는 고기잡이를 하러 나가거나 
딸기를 따러 나가거나, 숲을 헤매다니곤 한다.
  일단 씨뿌리기를 시작할 때면 여러 가지로 주의해야 할 점이 많다. 씨앗을 심기에 
가장 적당한 때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흙 속에서 자라는 것, 일테면 순무나 감자 같은 
것들은 달 없는 밤에만 심어야 하며 만일 그렇게 하지 않을 때면 순무나 감자가 
쥐알만큼씩밖에 크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옥수수나 강낭콩, 완두콩 등과 같이 지상에서 자라는 것들은 달빛 속에서 심어야 
한다. 안 그러면 수확량이 형편없이 적어진다.
  씨앗을 심을 때 고려해야 할 게 이런 것만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달력에 의지해 어떤 씨앗을 심을 때인가를 결정하곤 한다. 이리테면 사람들은 달력에 
콩을 심기에 가장 적당한 때라고 표시된 시기에 붉은꽃 강낭콩을 심는다. 그걸 따르지 
않으면 꽃은 잔뜩 피지만 콩은 열리지 않는다.
  달력에 어느 때 어떤 씨앗을 심어야 하는가가 자세히 나온다. 그러나 
할아버지에게는 달력이 필요없다. 할아버지는 별자리를 통해 그걸 아신다. 봄밤이면 
우리는 현관으로 나와앉곤 하는데 그럴 때 할아버지는 별들을 자세히 살펴보신다. 
할아버지가 살펴보시는 것은 산등성이 위에서 별들이 어떤 모양을 이루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 연구하시다가 할아버지는 문득 말씀하시곤 한다. "붉은꽃 
강낭콩을 심기에 가장 좋은 때다. 내일 동풍이 불지 않으면 그걸 심도록 하자." 
그러나 별들이 붉은꽃 강낭콩을 심기에 가장 적합한 때를 알려주었다 해도, 이튿날 
동풍이 불어오면 할아버지는 콩을 심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동풍이 불어오는 걸 
무시하고 심으면 콩이 열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 다음에는 의당 공기중의 습도가 고려되어야 한다. 너무 습하거나 너무 건조해도 
안 된다. 그리고 새들이 도통 움직이지 않거나 우짖지 않을 때도 안 된다. 씨앗을 
심는 일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아침에 잠개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이미 간밤에 어떤 식물의 씨앗을 심을 
것인가를 미리 결정해 놓은 상태기 때문에 충분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바람이 괜찮은가, 새들의 움직임은 어떠한가, 습도는 어떠한가만 살펴보면 
된ㄷ. 만일 이 중의 어느 한 가지만 맞지 않아도 우리는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야 
한다.
  할머니는 간혹, 할아버지가 뭐가 안 좋고 또 뭐가 안 맞아서 오늘은 물고기나 
잡으러 가야겠다고 하시면 그게 순전히 물고기 잡으러 가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핑계가 아닌가 의심하곤 하셨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여자들은 복잡미묘한 걸 이해할 
줄 모르며 세상사를 그저 단순명쾌하게만 이해하려 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세상사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데도. 그리고 할아버지는 여자들은 원래 날 때부터 그렇게 
의심을 잘 하게끔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으며 딸꾹질만 해도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보는 할망구들도 있으니 뭐 더 이상 얘기 할 거 없다고 하셨다.
  모든 조건이 다 잘 들어맞는 날이면 우리는 주로 옥수수를 심는 데 주력했다. 
옥수수야말로 우리의 주식이요. 우리집 나귀인 샘의 먹이가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또 
그것은 우리의 주 수입원인 위스키를 만드는 원료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샘을 앞세우고 쟁기질을 해서 옥수수밭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긴 골을 
파나가신다. 나는 이렇게 골을 파는 일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나는 
당분간은 땅을 갈아엎을 때만 쟁기질을 해보는 게 좋다고 하셨다. 할머니와 나는 
그렇게 파인 골에다 옥수수 씨앗을 뿌리고 그 위에 흙을 덮어주는 일을 했다. 
할머니는 또 씨앗 심는 체로키 식 지팡이를 이용해서 산허리에도 옥수수를 심으셨다. 
그 작업은 아주 간단해서 그 지팡이로 땅을 한번 꾹 찌르고 그 속에다 씨앗을 떨궈 
주면 된다.
  우리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를 심었다. 강낭콩, 오크라(아욱과 닥풀의 일종. 
꼬투리는 수프 같은 데 씀: 옮긴이), 감자, 순무, 완두콩 등등. 우리는 산짐승들이 
접근하기 쉬운 밭 가장자리에다 완두콩을 심곤했다. 가을이 되어 완두콩이 익으면 
사슴이 그걸 먹으려고 접근해 온다. 사슴은 완두콩이라면 사죽을 못 써서 삼십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완두콩이 자라고 있어도 용케 냄새를 맡고 찾아온다. 
덕분에 우리는 늘 쉽게 사슴을 잡아 겨울철에 두고두고 그 고기를 먹곤했다.
  우리는 또 수박도 심었다. 우리는 밭 가장자리의 그늘진 곳을 골라 거기다 수박씨를 
잔득 심곤 했다. 할머니가 수박밭이 너무 자리를 넓게 차지하고 있다고 불평하시면 
할아버지는 우리는 한 알도 먹지 않고 모두 네거리 가게에다 내놓을 거며, 그렇게 
되면 꽤 쏠쏠한 몫돈을 만질 수 있게 될 거라고 하셨다.
  헌데 나중에 수박이 익을 철만 되면 할아버지와 나는 번번이 수박값이 현편없이 
떨어지는 상황을 맞곤 했다. 수박을 내놔 봐야 팔리지도 않을 뿐더러 설혹 팔힌다 
해도 가장 큰 게 고작 오 센트밖에 안 되었다.
  어느날 저녁 할아버지와 나는 부엌 식탁에 마주 않아 셈을 따져봤다. 할아버지는, 
위스키 1갤런이면 대략 3.4 킬로그램쯤 되는데 그걸로 우리는 2 달러를 받는다고 
하셨다. 헌데 오 킬로그램 짜리 수박을 네거리 가게까지 낑낑대며 운반해 봤자 
기껏해야 오 센트 받는게 고작이라시며, 우리의 위스키 사업이 망해서 달리 길이 없는 
한 그건 정말 할 짓이 못 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내 생각에도 그건 정말 
억울한 일인 것 같으니 그 수박을 우리가 다 먹어치우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겠다고 말씀드렸다.
  세상에 수박처럼 더디게 자라는 것도 없다. 강낭콩이 익고 오크라가 다 자라고, 
완두콩이 여물어 땅바닥에 떨어져도 수박이란 놈만은 더무지 익을 줄을 모른다. 
그놈은 그저 계속 퍼렇기만 하고 그저 끝없이 커지기만 한다. 수박이 익을 철이 
가까워져 오면 나는 뻔질나게 수박밭으로 들어가 수박이 익었나 조사해 보는 게 
일이다. 헌데 수박은 익을 듯 익을 듯 하면서도 익지 않는다. 다 익은 수박을 
골라내고 그게 정말로 익었나 시험해 보려면 씨앗을 심을 때만큼이나 복잡한 과정을 
저쳐야 한다.
  나는 저녁식사 시간만 되면 번번이 할아버지께 익은 수박 하나를 발견했다고 
보고하곤 했다. 나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그리고 저녁밥을 먹으로 오기 위해 수박밭을 
지나칠 때마다 수박밭을 유심히 살피곤 했으니까. 내가 그런 말을 하면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나를 끌고 수박밭으로 가서 내가 말씀드린 그 수박을 조사하시곤 했다. 
그런데 내가 고른 수박은 늘 익지 않은 것으로 판명이 나곤 했다.
  어느 날 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나는 할아버지께 이번만큼은 진짜로 익은 수박을 
찾아낸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내일 아침에 
조사해 보자고 하셨다.
  다음날 나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앉아 할아버지가 일어나시기만ㅇ들 기다렸다. 
이윽고 할아버지와 나는 해가 뜨기도 전에 수박밭으로 나갔다. 나는 할아버지께 
문제의 그 수박을 부여드렸다. 그것은 검푸른 색깔이 감돌았고 아주 컸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 수박 곁에 쭈그리고 앉아 조사해 보았다. 나는 전날 저녁에 이미 마르고 
닳도록 조사를 해봤음에도 다시 또 그것을 세밀히 살펴봤다. 잠시 수박을 조사해 보신 
할아버지는 거의 다 익은 것같아 보이시는지 손가락 테스트를 해보자고 하셨다.
  손가락 테스트는 손가락을 둥글게 모아 손가락 등으로 수박을 치는 걸 말하며 
그렇게 해보면 그것이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를 대충 알 수 있다. 만일 수박을 
손가락으로 쳐보아 (팅)하는 소리가 나면 그건 그 수박이 전혀 익지 않았다는 걸 
뜻한다. 그리고 (탱)하는 소리가 나면 그 수박은 익어가는 중이기는 하지만 아직 덜 
익은 것이며, (텅)하는 소리가 나면 완전히 여문 수박이다. 할아버지는 한번 쳐보고 
미심쩍으면 다시 한번 더 쳐봐야 한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항시 맞는 말씀만 하시는 
분이므로 수박을 고를 때는 누구든지 꼭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 수박을 세게 쳐보셨다. 그리고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만 열심히 쳐다봤는데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젓지 않으셨다. 그건 
희망이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다고 그 수박이 있었다는 게 판명되었다는 뜻은 아니고 
고개를 가로젓지 않으셨으니 할아버지가 아직 그 수박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할아버지는 다시 때려보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내 귀에는 거의 (텅)소리처럼 들린다고 말슴드렸다. 할아버지는 
몸을 뒤로 제끼고 다시 또 살펴보셨다. 나도 할아버지가 하시는 대로 따라서 했다.
  해는 이미 떠올랐다. 나비 한 마리가 그 수박 위를 맴돌다가 그 위에 내려앉아 
날개를 폈다 접었다 했다. 나는 할아버지께 나비가 수박위에 내려앉으면 그 수박은 
익은 것이라는 소리를 어디서 들은 것 같다, 그러니 나비가 내려앉은 건 좋은 징조가 
아니겠느냐고 여쭤봤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런 얘기는 금시초문이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 수박이 아주 가려내기 어려울 정도로 아리송하게 익었으며 그것이 
내리는 소리는 (탱)도 아니고 (텅)도 아닌, 그 중간 소리 비슷하다고 하셨다. 나는 내 
귀에도 그렇게 들리는데 그것이 (텅)에 훨씬 더 가까운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또 다른 방법을 써서 조사해 보자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사초줄기 하나를 
따오셨다. 이 방법은 사초줄기가 어떤 방향으로 놓이느냐를 두고 수박이 익었는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즉, 수박 위에 사초줄기를 가로 방향으로 올려놓았을 때 
그것이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그 수박은 익지 않은 것이며, 사초 줄기가 빙 
돌아서 세로 방향으로 바뀌면 그 수박은 익은 것이다. 할아버지는 사초줄기를 그 수박 
위에다 올려놓으셨다. 그러자 그것은 잠시 정지해 있는 듯하더니 이윽고 조금 
돌아가다간 멈추었다. 우리는 꼼짝않고 그걸 지켜봤다. 그것은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것이 너무 길어서 수박 속의 익은 기운이 그걸 돌리기에 
힘이 드는 것 같다고 말씀드려싿.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 한 끝을 잘라내 조금 더 짧게 
만드셨다. 우리는 다시 시도해 봤다. 이번에는 조금 더 돌아가 거의 세로 방향에 
가까이 접근하다 멈주쳤다.
  할아버지는 그만 포기하고 싶으신 모양이었지만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엎드려서 얼굴을 사초줄기 가까이에 대고 지켜보다가 할아버지께 그것이 움직이는 것 
같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이나마, 계속, 세로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내 숨결이 닿아 그것이 움직일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그렇게 돌아가는 건 
무효라고 하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결국 그걸 따기로 결심하셨다. 지금이 아니고, 
이따가 해가 바로 우리 머리 위로 올 때, 점심 먹을 때쯤해서.
  그때부터 나는 틈만 나면 해가 어디만큼 왔나 살펴봤다. 헌데 오늘따라 그놈의 해는 
산 능선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리한데 하주 기나긴 아침시간을 선사하기로 
작심을 한 모양이었다. 할아버지는 해가 가끔 그런 식으로 행동할 때가 있다고 
하셨다. 일테면 우리가 쟁기질을 하면서 저녁이 되면 개울가로 가서 온 몸에 묻은 
흙과 땀을 깨끗이 씻어내야지, 하고 마음먹었을 경우 같은 때.
  할아버지는 우리가 그깟놈의 해야 느리게 가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마음먹고 
부지런히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으면, 해도 우리를 괴롭히기를 단념하고 얼른 제 
갈길을 가기 마련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했다.
  나는 할아버지 앞에 서서 오크라 줄기의 아랫부분에 달린 이파리들을 따면서 
나아갔고 할아버지는 내 뒤를 따라오시면서 윗부분에 달린 이파리를 따내셨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허리를 굽히지도 않고 또 줄기를 아래로 잡아당기지도 않으면서 
산뜻하게 오크라를 따는 방법을 개발한 세계 최초의 팀이 아닌가 싶다고 하셨다. 
우리는 아침 내내 오크라 이파리를 땄다.
  우리가 그렇게 골을 따라 오크라 밭을 끝에서 끝까지 왕복하는 일을 계속하다가 
어떤 골의 끝에 다다랐을 때 눈을 들어보니 밭둑에 할머니가 서 계셨다. 할머니는 
활짝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점심시간이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할아버지와 
나는 수박밭으로 달려갔다. 내가 먼저 도착하여 그 수박을 줄기에서 떼냈다. 헌데 
그걸 들어보려고 했지만 그건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걸 들고 실개천 가로 
가신 뒤 나더러 그걸 굴려넣으라고 하셨다. 그것은 텀벙, 하고 물 속에 떨어졌는데 
너무나 무거워 차가운 물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우리는 오후 늦게서야 그것을 끄집어냈다. 할아버지가 실개천 둑위에 엎드리신 채 
팔을 길게 뻗어 물 속에서 그것을 건져내신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걸 들고 커다란 
느릅나무 밑으로 가셨으며 할머니와 나는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갔다. 우리는 수박을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앉아 수박의 진초록 껍질 위로 차가운 물방울들이 굴러내리는 
걸 지켜봤다. 그것은 일종의 엄숙한 의식과도 같았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긴 칼을 끄집어내어 칼자루를 단단히 움켜 쥐셨다. 할아버지는 
먼저 할머니를 흘끗 쳐다보시고는 다시 나를 쳐다보셨다. 할아버지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입을 헤 벌린 내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셨다. 이윽고 할아버지는 수박에 칼을 
대셨다. 그것은 칼이 지나가기도 전에 쩍, 하고 갈라졌다. 잘 익은 수박은 으레 그런 
법이다. 반으로 갈라진 수박의 속살에서는 이내 벌건 물방울들이 뚝뚝 흘러내렸다.
  할아버지는 그걸 먹기 좋게 여러 조각으로 잘라내셨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수박물이 내 입가를 타고 흘러내려 내 웃저고리를 벌겋게 적시는 것을 보고 연신 
웃음을 터트리셨다. 나로서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수박이었다.
  여름은 한가롭게 흘러갔다. 그것은 나의 계절이었다. 내 생일이 여름철에 들어 있는 
탓으로 여름이 내 계절이 된 것이다. 그것은 체로키의 관습이었다. 그리하여 내 
생일은 하루가 아니라 여름 내내 계속되었다.
  자신의 계절이 계속되는 동안에 자기의 탄생지, 자기 아버지의 행적, 어머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해 주셨는가 등에 관해 듣는 것 또한 체로키의 관습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백만명 중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행운아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내가 
자연, 즉 모놀라로부터 태어났으며 그 덕분에 내가 이 산중에 처음 들어왔을 때 
할머니가 노래불러 주신 모든 형제 자매들을 갖게 되었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나무들과 새들, 물, 비, 바람의 지극한 사랑을 받도록 선택된 사람은 
극소수라며,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늘 그들 곁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면 외로운 처지가 되지만 나는 언제든 외롭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우리는 여름 저녁 어스름녘이면 으레 뒤현관으로 나와 앉곤 했다. 어둠이 소리없이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할머니는 조근조근 얘기를 들려주셨다. 때로 할머니는 
이야기를 멈추시고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시다간 이윽고 손으로 얼굴을 쓸면서 다시 
입을 열곤 하셨다.
  나는 할머니께 그 모든 것에 대해 내가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으며 골짜기 어둠 
따위는 이제 두렵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내가 특별난 환경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할아버지보다 행운아라고 하시며 
당신도 그렇게 태어나지 못한 게 유감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늘 어둠에 
대해 두려운 마음을 갖고 있었던 탓으로 밤에는 잘 나다니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는 
어둠 속에서 나다닐 때 나를 의지해서 다녀야겠다고 하셨다. 나는 어두워질 때면 
할아버지를 잘 모시고 다닐거라고 말씀드렸다.
  이제 나는 여섯 살이 되었다. 할머니는 내 생일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세월이 
흐른다는 걸 의식하신 듯했다. 할머니는 거의 매일 저녁마다 등잔을 켜고 책을 읽어 
주셨으며 사전 순서대로 낱말 공부를 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이제 나는 사전의 A 
항목을 다 끝내고 B 항목으로 들어갔다. 헌데 그 부분에서는 페이지 하나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할머니는 그 페이지에는 중요한 낱말들이 별로 들어있지 않으니 
상관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다음번에 할아버지와 내가 읍내로 갔을 때 할아버지는 
도서관에서 다른 사전 하나를 사주셨는데 그건 값이 자그만치 칠십오 센트나 되었다.
  할아버지는 그 돈을 별로 아까워하지 않으셨다. 당신은 늘 그런 사전을 하나 갖고 
싶었다고 하시면서.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생전 사전을 뒤적여 보시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뭔가 다른 목적을 갖고 계신 게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하지만 나는 그 뒤로도 할아버지가 그걸 건드리시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파인 빌리는 그 뒤로도 가끔 한번식 우리 집에 들르곤 했는데 수박이 익은 다음에는 
더 자주 들렀다. 파인 빌리는 수박을 아주 좋아했다. 그는 그 대도시의 범죄자 덕분에 
보상금을 받았다는 얘기도, 레드이글 코담배 회사로부터 상금을 받았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일로 전혀 잘난 척을 하지 않았다. 그가 전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그 일에 관해서는 캐묻지 않았다.
  파인 빌리는 세상에 종말이 오고 있는 것 같다며, 여러 가지 징조가 그걸 증명해 
주고 있다고 했다. 그 징조들이란 전쟁이 난다는 소문, 이 나라 전역에 기근이 닥친 
일, 은행이 대부분 물을 닫았고 그나마 문을 닫지 않은 은행들은 자주 강도질 
당한다는 사실 등이었다. 그는 시중에는 돈이 씨가 말랐고 대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충동적으로 창밖으로 뛰어내리며 오클라호마에서는 바람이 지면의 흙을 모조리 걷어가 
버려 사람들이 그곳을 떠나고 있다고 했다.
  파인 빌리는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졌으므로 구원을 받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헌데 
그가 구원받는 데 늘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건 간음이었다. 그는 춤추고 놀 때마다 
간음을 했다. 하지만 그 책임은 대부분 여자들 쪽에 있었다. 그는 구원받기 위해 늘 
숲속에서 행해지는 기도모임에 참석하려 애쓰지만 그런 장소 근처에도 항시 여자들이 
있어서 간음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그는 한 늙은 전도사를 만났다. 파인 
빌리가 보기에 그는 전혀 간음할 사람같이 보이질 않았다. 너무 늙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또 그는 숲속의 기도모임을 주재하면서 간음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는 
설교를 하곤 했기 때문이다.
  파인 빌리는 그 늙은 전도사를 만나고 나면 그 순간부터 완전히 간음하는 짓을 
그만둘 수 있으리라는 기분이 들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순간 그런 기분이 드는 
것, 바로 그런 기분 상태가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해준다고 했다. 그는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졌으므로 다시 그 전도사에게로 돌아가 이번에는 기필코 구원을 받을 거라고 
했다. 파인 빌리는, 그 전도사가 속한 근본주의 침례교파에서는 일단 한번 구원을 받은 
사람은 늘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만일 구원받은 어떤 사람이 다시 또 
(몇 차례쯤) 간음을 한다 해도 그는 여전히 구원받은 상태 속에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파인 빌리는 자기가 그 근본주의 침례교에 무척이나 마음이 끌리며 그걸 자기 
종교로 삼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내 생각에도 그게 좋을 것 같았다.
  파인 빌리는 그 여름,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저녁 어스름녘만 되면 바이올린을 켰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졌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그 소리는 너무나 서글프게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 여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과 더불어, 
이미 여름이 다 지나갔지만 그걸 다시 되돌릴 수 있었으면,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가 바이올린을 켜지 말기를 바랐다. 그걸 
듣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울적하고 슬퍼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단 듣고 있다 보면 
그가 언제까지나 그렇게 연주를 해줬으면 싶은 마음이 깃들곤 했다. 그건 정말 가슴 
저리도록 외로운 기분을 안겨주는 연주였다.
  우리는 일요일만 되면 교회에 나갔다. 우리는 할아버지와 내가 우리 제품을 념겨줄 
때마다 지나가곤 했던 길을 따라 교회롤 갔는데 그건 그 교회가 바로 네거리 가게에서 
1.6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다.
  길이 멀기 때문에 우리는 새벽에 출발해야 했다. 교회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는 아래 
위 검은 양복에 할머니가 밀가루 포대를 하얗게 표백해서 지여주신 셔츠를 
받쳐입으셨다. 나도 밀가루 포대 셔츠에 깨끗한 작업복을 입곤 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교회에 가는 사람답게 늘 우리 셔츠의 단추를 맨 위에까지 단정하게 채우곤 했다.
  할아버지는 또 소기름을 발라 광을 낸 검은 구두를 신으셨다. 그 구두는 걸을 
때마다 쿵쿵, 하는 무거운 소리를 냈다. 나는 할아버지가 늘 사슴가죽신을 신고 
다니시는 데 익숙한 분이시라 몹시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말씀은 입밖에도 내지 않고 그저 쿵쿵 소리를 내며 걷기만 하셨다.
  할머니가 나는 사슴가죽신을 신고 갔기 때문에 다른 때와 똑같이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옷차림만 보면 자랑스런 마음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할머니는 
일요일만 되면 주황색, 황금색, 푸른색, 빨강색이 골고루 뒤섞인 화사한 드레스를 
입으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할머니의 발목가지 내려왔으며 버섯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아래가 동그랗게 부풀어올랐다. 그렇게 차려입고 걸어가실 때 부면 꼭 봄꽃 한 송이가 
허공을 둥둥 떠가는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가 그 드레스를 입고 외출하는 걸 무척이나 즐겨하시는 걸로 보아 만일 그 
드레스만 없었다면 할머니는 교회에도 나가지 않으셨을 가능성이 컸다. 할아버지 역시 
그 구두만 없었다면 교회에 나가는 걸 그리 달갑지 않게 생각하셨으리라.
  할아버지는, 그 교회 목사와 집사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에 대해 질리게 
만든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들은 지옥에 갈 사람들과 가지 않을 사람을 결정하는 
권한을 마치 자기네가 쥔 것처럼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방심했다간 하느님을 
경배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경배하게 되기가 쉽다고 하셨다. 그래서 당신은 그들의 
말을 싹 무시해 버린다고 하셨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남들에게는 그런 얘기를 입밖에 
내지 않으셨다.
  나는 교회에 가는 걸 좋아했는데 그건 무거운 짐을 지고 가지 않아도 좋아도 좋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지름길을 걸어가노라면 날이 훤하게 밝아오곤 했다. 햇빛은 
골짜기 저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기어올라오면서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들을 영롱하게 
빛나게 했으며 우리가 가는 길 위에 다채로운 나무문양들을 그리곤 했다.
  그 교회는 길에서 좀 들어간 곳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숲으로 빙 둘러싸여 있었다. 
그 건물은 비록 자그마하고 페인트칠도 되어 있지 않았지만 아주 산뜻하고 아담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매주 그 교회 앞마당에 들어설 때마다 할머니는 걸음을 멈추고 
부인네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나는 곧바로 윌로우 존 
할아버지께로 가곤 했다.
  그분은 늘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숲 그늘 속에 서 있곤 했다. 그분은 
할아버지보다도 연세가 위였으며 키는 할아버지와 비슷했다. 그분은 순수한 체로키의 
피를 타고나신 분으로 하얗게 센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양 어깨 밑으로 늘어뜨리셨고 
챙달린 모자를 눈 있는 데까지 푹 눌러쓰셨다^5,5,5^ 마치 눈을 보여주기 싫다는 듯이. 
허나 그분이 당신을 쳐다볼 때 당신은 그분이 왜 그렇게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계시는가를 깨닫게 되리라.
  그분의 어두운 두 눈 속에는 깊은 상흔이 담겨 있었다. 생명의 기운에 거세된 
공허한, 그리고 이미 아픔마저 사라져 버린 무감각한 상처가. 그 눈은 마치 초점이 
맞지 않는 눈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눈앞에 있는 우리들 뒤편의 깊디깊은 어둠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훗날 아파치족 사람 하나가 나한테 한 노인네의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고클라예, 즉 제로니모(아파치족 추장. 
오랜동안 백인들에게 격렬하게 저항하였으나 결국 백인들에게 투항한 뒤 네덜란드 
개혁파 교회의 신자가 되었다: 옮긴이)였으며 그의 눈빛 역시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눈빛과 아주 흡사했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여든이 넘은 분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가 오래 전에 인디언의 나라(Nations, 인디언 거주지역: 옮긴이)에 계셨던 
적이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차도, 기차도 타지 않고 산을 넘고넘어 그리로 
가셨다. 그리고 거기서 삼 년을 사시다가 되돌아오셨다. 그러나 그분은 그 일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무셨다. 그저 이 세상에 인디언의 나라 같은 건 없다는 말씀 한 
마디뿐.
  할아버지와 그분은 만날 때마다 서로의 팔을 굳게 움켜잡고는 한동안 그런 자세를 
풀지 않은 채 묵묵히 서 계시곤 했다. 똑같이 키가 크고 거다란 모자를 쓰신 모자를 
쓰신 두 노인네들이. 이윽고 할머니가 그리로 오시면 그분은 몸을 굽혀 할머니를 
끌어안으시곤 했다.
  그분은 교회를 지나 산악지대 깊숙이 들어간 데서 살고 계셨다. 그분이 사시는 데와 
우리가 사는 데의 한 중간에 교회가 자리잡고 있어 교회는 일종의 만남의 장소 역할을 
했다.
  나는 그분게 우리같은 애들이 크게 되면 체로키들의 숫자가 아주 많아질 거며 나 
역시 체로키의 한 사람이 될 거라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내가 숲의 정기를 
타고났으며 타고난 산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분은 내 양 어깨를 붙잡고는 내 눈을 
들여다보셨다. 나는 그분의 두 눈 깊은 곳에서 번쩍이는 빛 같은 것을 보았다. 
할머니는 그분과 오래도록 만나곤 했지만 그분이 누구를 이처럼 쳐다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다 들어간 뒤에야 교회당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항시 
뒤쪽에 자리잡곤 했는데 맨 안쪽부터 그분, 할머니, 나의 순으로 앉고 통로에 면한 맨 
바깥자리에 할아버지가 앉으셨다. 거기 앉을 때면 할머니는 늘 왼손으로 그분의 손을 
잡아드렸고 할아버지는 내 등 뒤로 팔을 뻗어 할머니의 어깨에 손을 얹어 놓으셨다. 
나는 내 왼손으로는 할머니의 오른손을 잡고 오른손은 할아버지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자세로 한참 앉아 있다 보면 다리가 의자 모서리에 밀착된 탓으로 
피가 잘 통하지 않아 다리가 저려오곤 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렇게 하고 앉아 있는 게 
좋았다.
  한번은 막 교회당 안의 우리 자리로 가서 자리잡고 앉았는데 내 발치께 길다란 칼 
하나가 놓여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것은 할아버지의 칼만큼이나 길었고 가두리 
장식이 되어 있는 사슴가죽 칼집 속에 얌전히 들어가 있었다. 할머니는 그분이 그걸 
내게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인디언들이 선물을 주는 방식은 늘 이랬다. 그들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선물 같은 걸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저 줄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준다. 그리고 그들은 직접 주기보다 받는 이가 스스로 발견하게끔 그의 눈에 
띄는 곳에 살그머니 놓아둔다. 만일 받는 이가 그걸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그걸 갖지 않으며, 따라서 자기가 받을 만한 어떤 것을 받았다고 해서 주는 
이에게 고맙다고 한다거나 그걸 갖고 남들에게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된다. 
그들의 이런 관행은 이치에 맞는다.
  나는 그분께 오 센트 동전 하나와 황소개구리(미국산 식용개구리: 옮긴이)를 드렸다. 
개구리를 갖고 온 날, 그분이 나뭇가지에 당신의 웃저고리를 벗어서 걸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셔서 나는 그분이 안보는 틈에 살짝 그분의 웃저고리 주머니 속에 오센트 
동전과 황소개구리를 집어넣을 수 있었다. 그 개구리는 내가 실개천에서 잡은 것으로, 
나는 그것의 몸집이 아주 커질 때까지 여러 가지 곤충들을 잡아다 먹이며 키웠었다.
  그분은 내가 그런 것들을 집어넣은 걸눈치채지 못한 채 웃저고리를 입으시고는 바로 
교회안으로 들어가셨다. 목사가 다 같이 기도하자고 하여 사람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였을 때였다. 옆 사람의 숨소리마저 똑똑히 들릴 정도로 교회당 안이 조용해지고, 
이윽고 목사가 "주여^5,5,5^"하고 서두를 떼었을 때, 느닷없이 그 개구리가 낮고도 
우렁차게 "가르르르륵!" 하고 울어댔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펄쩍 뛰었고 
심지어 어던 사람은 교회당 밖으로 내빼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어떤 남자는 "오 
주여!"라고 소리쳤고, 한 여자는 "주여 믿사옵나이다!"하고 날카로운 소리로 외쳤다.
  그분도 여간 놀라시지 않았다. 그분은 당신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으셨다. 그러나 
개구리를 꺼내진 않으셨다. 그분은 나를 넘겨다 보셨는데 나는 다시 그분의 두 눈 
속에서 번쩍이는 빛을 보았다. 먼젓번처럼 저 깊은 어둠 속에서가 아니라 아주 
가까이에서 섬광처럼 번쩍이는 빛을. 이윽고 그분은 빙그레 웃으셨다! 그 미소는 얼굴 
전체를 타고 점차로 넓게 번져갔다. 그리고는 폭소를 터트리셨다! 깊은 울림이 담긴 
폭소를. 사람들은 놀라서 일제히 그분을 쳐다봤다. 그분은 사람들이 보든 말든 계속 
웃으셨다. 나는 은근히 겁을 집어먹었으면서도 그분을 따라 웃었다. 이윽고 그분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눈물은 그분의 얼굴의 주름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분은 울고 계셨다.
  교회당 안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목사는 입을 헤 벌리고 일어서서 그분을 
주시했다. 그분은 사람들이 보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우셨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러나 그분의 가슴은 심하게 물결쳤고 어깨는 흔들렸다. 그분은 오랫동안 
그렇게 우셨다. 사람들은 고개 돌려 외면해 버렸다. 하지만 그분과 할아버지, 
할머니만은 똑바로 정면을 응시하고 계셨다.
  목사는 여러 번 시도한 끝에 겨우 다시 설교를 시작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그 
개구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전에 한번 윌로우 존 할아버지에게 뭐라고 
설교를 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목사가 뭐라고 떠들든 말든 본 척도 
하시지 않았다. 원래부터 그분은 목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늘 정면만 똑바로 
쳐다보실 뿐이었으니까. 그때 목사의 설교 내용은 주님의 성전 안에서는 적절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기도할 때 고개를 
숙이지도 않으셨으며 모자를 벗지도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그 일에 관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여러 해 동안 
혼자서 그 이리에 관해 두고두고 심사숙고했었다. 그런 끝에 나는 그때의 그런 행동은 
그분이 꼭 말씀하시고 싶었던 것을 그분 나름의 방식으로 말씀하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분의 부족은 자기네 고향이었던 이곳 산악지대에서 백인들의 침략을 받고 
쫓겨나거나 학살당했으며 결국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소리없이 소멸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고향땅은 그 목사나 교회당 안에 앉아 있었던 백인신도들의 
차지가 되었다. 그분은 그들과 싸울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다. 그래서 그분은 늘 
모자를 벗지 않고 계셨던 것이다.
  목사가 "주여^5,5,5^"하고 운을 뗐을 때 개구리가 "가르르르륵!"하고 소리친 것은 
바로 목사의 말에 대한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대답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분은 우셨던 
것이다. 그 소리는 그분의 내면에서 들끓고 있었던 비통한 심경을 대변해 준 것이다. 
그 뒤부터 그분의 눈에서는 늘 생기가 넘쳤으며 그분이 나를 쳐다보실 때 음울한 
빛같은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당시 나는 공연한 짓을 한 것 같아 후회가 되었었지만 나중에 가서는 그분께 
개구리 드리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예배가 끝나고 난 다음이면 우리는 교회 주변의 느릅나무숲 그늘 
밑으로 가 우리가 가져온 점심을 펼쳐놓곤 했다. 그분은 늘 자루 속에 메추라기나 
사슴 고기, 물고기 등을 가져오셨으며 할머니는 옥수수 빵과, 고기에 곁들여 먹을 
야채들을 갖고 오셨다. 우리는 거기 앉아 그걸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사슴들이 산악지대의 높은 곳으로 이동했다는 얘기를 하시고, 할아버지는 
물고기 바구니를 건졌더니 이런 저런 물고기가 잡혔다는 얘기를 하시고, 할머니는 
그분께 꿰멜 옷이 있으면 가져오라는 말씀을 하시는 등등.
  해가 꽤 기울고 엷은 이내가 끼기 시작하면 우리는 떠날 채비를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번갈아가며 그분을 한번씩 껴안았으며 그분은 내 어깨를 잡아주시곤 했다. 
수줍은 태도로.
  우리가 교회 앞마당을 가로질러 우리의 지름길을 향해 걸어갈 때면 나는 으레 
고개를 돌려 그분을 쳐다보곤 했다. 그분은 결코 뒤를 돌아보는 법이 없었다. 그분은 
양 손을 양 허리에 반듯하게 붙인 채, 그리고 정면만 응시하면서 긴 다리로 휘청휘청 
걸어가시곤 했다. 그분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몸담을 곳이 아닌 곳인데 어쩌다 발을 
잘못 내디딘 곳이라고밖에 본 수 없는 이 백인문명의 변두리 땅을 뚜벅뚜벅 
밟으시면서. 이윽고 그분은 길도 없는 숲 사이로 사라지셨고 그러면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뒤쫓아가려고 서둘러 달려가곤 했다. 일요일 저녁 어스름녘에 지름길을 따라 
집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쓸쓸했다. 우리는 굳게 입을 다문 채 그저 걷기만 했다.

  저와 함께 가지 않으실래요, 윌로우 존? 그리 멀지 않아요.
  그래서 일 년이고 이 년이고
  당신의 생애가 다할 때까지 함께 살아요.
  우리는 말하지 않을 거^36^예요.
  당신이 겪었던 그 비통한 나날들에 대해서도.
  아마 우린 때로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겠지요.
  우리 둘이서 잃어버렸던 어떤 것들을
  찾아낼 수도 있을 거구요.

  저와 함께 머물지 않으시겠어요, 윌로우 존? 잠시만이라도.
  당신의 몸이 지상에 뉘어질 때까지만이라도.
  우리는 가끔씩 서로를 쳐다보겠지요.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알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거^36^예요.
  우리가 함께 걸어갈 때 우리는 서로를 소중히 여김으로써
  서로 깊은 위안을 얻게 될 거^36^예요.

  조금만 더 계시다 가지 않으시겠어요, 윌로우 존?
  그저 저를 위해서.
  좀더 오래 머무르시면서 당신과 헤어져야 하는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위로해 주세요.
  그런 기억들은 먼 훗날 당신을 기억할 때마다
  쏟아지려는 눈물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거^36^예요.
  내 마음의 슬픔도 어루만져 줄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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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 

    전3권 중 제3권

  지은이: 포리스트 카터
  펴낸이: 김훈
  펴낸곳: 고려원미디어

    @[  교회에서

  할아버지는 목사라는 이들이 대단히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이어서 자기네들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고리를 잡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따라서 자기네 명령이 떨어지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리로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심지어 목사들이 자기네의 그런 권한에 대해서는 하느님도 간섭할 수 
없다고 맏고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목사도 직접 노동을 해서 일 달러를 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체험해 봐야 하며 일단 한번이라도 그런 체험을 겪고 나면, 마치 내일 아침에 세상의 
종말이 오기라도 할 것처럼 함부로 돈을 쓰는 일 같은 짓은 하지 않게 욀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위스키를 만드는 일이든 뭐든 간에 힘겨운 노동에 종사해 보게 되면 
목사들이 더 이상 터무니없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게 될 거라고 하셨다. 이치에 맞는 
말씀이시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고 있는 탓으로 세상에는 수많은 교회들이 생기게 
마련이며 이로 인해 믿음을 달리하는 종파도 많아져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수많은 불화의 원인이 된다.
  일례로 비타협파 침례교도들은 현재 세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상은 이미 기정 
사실화된 현상이므로 우리 인간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믿고 있는 반면에 
스코틀랜드 장로교파 사람들은 그러한 믿음을 맹렬히 반박하고 있다. 이처럼 각 
무리들마다 믿는 바가 다 다르면서도 다들 이구동성으로 자기네의 믿음이 성경에 
입각한 것이며 성경이 자기네 믿음을 확고하게 뒷받침해 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나로서는 성경이 진실로 주장하는 바가 뭔지 도무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근본주의파고 비타협파고 간에 모든 침례교도들은 침례, 곧 시냇물 속에 온 몸을 
완전히 담그는 행위를 아주 중요시했다. 그들은 그런 행위 없이는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반면에 감리교파 사람들은 그런 견해는 잘못된 것이며 그저 
세례받는 이의 머리에 물만 뿌려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제작기 
자기네의 견해를 증명하기 위해 교회당 안에서 성경 구절들을 인용하곤 했다.
  헌데 성경에는 침례교파적인 견해가 나오는 부분도 있고, 감리교파적 견해가 나오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그런 견해가 나올 때마다 다른 식으로 세례를 받으면 지옥에 
간다는 식의 표현이 따라나온다. 사정이 이러니 그들이 같은 성경을 놓고 제각기 다른 
주장을 펴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구세주교파 사람 하나가 있었다. 헌데 그는 목사를 
"목사님(원어로는 Revernd, 곧 거룩한 이라는 뜻으로 성직자를 높여 부르는 말: 
옮긴이)"이라고 불렀다가는 곧바로 지옥으로 떨어지니 목사를 부를 때는 
"^456,356,356,356,123^씨"라든가 "^456,356,356,356,123^형제"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 주장의 근거로 성경구절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또 다른 한 
무리의 사람들도 역시 성경 구절을 근거로 하여 목사를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안 그랬다간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 구세주교파 사람은 불행히도 반대파의 숫자에 눌려 억압을 받았지만 아주 
고집불통이라 절대로 자기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매주 일요일 
마침만 되면 교회로 나가 꼬박꼬박 목사를 "^456,356,356,356,123^씨"라고 부르곤 
했다. 그 바람에 그와 목사의 사이는 극도로 악화되었다.
  한번은 두 사람이 주먹다짐까지 벌일 뻔했으나 사람들이 말리는 바람에 그치고 만 
적도 있었다.
  이런 여러 가지 경우들을 보고 나는 종교와 관련하여 물에 대한 얘기가 화제로 오를 
때면 절대로 입도 뻥긋하지 않을 거며, 또 목사를 어떤 식의 호칭으로도 부르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고 할아버지께 말씀드렸다. 공연히 물세례에 관한 얘기를 입에 
올리거나 목사를 잘못 불렀다가는 그 즉시 성경 구절에 입각하여 지옥으로 떨어질 
테니 잠자코 입다물고 있는 편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할아버지는, 만일 하느님이 지극히 하찮은 문제들을 두고 네가 옳네, 내가 옳네 하며 
언쟁을 벌이는 그 바보 천지들만큼 편협하시다면 천국이라고 하는 데는 전혀 사람 살 
만한 곳이 못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옳은 말씀이시다.
  우리가 다니는 교회에는 성공회파에 속한 한 가족도 매주 나오곤 했다. 그들은 
부자여서 자동차를 타고 교회에 나왔다. 그 교회에서 자동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은 
그들밖에 없었다. 남자는 뚱뚱했고 매주마다 다른 양복을 입고 나왔으며 여자 역시 
뚱뚱했고 나올 때마다 모자의 모양이 달라졌다. 그들에게는 조그만 딸 하나가 
있었는데 그애는 늘 하얀 드레스 차림에 조그만 모자를 쓰고 다녔다. 그 드레스와 
모자 역시 자주 바뀌었음은 물론이다. 그애는 늘 콧대를 세우고 허공 어딘가를 
쳐다보고 다녔는데 나는 그애가 뭘 쳐다보고 있는지 도통 짐작이 가질 않았다. 그들은 
늘 헌금 쟁반에 일 달러짜리 지폐를 떨구곤 했다. 그 교회에서 일 달러를 내는 
사람들은 그들밖에 없었다. 목사는 그들의 자동차가 교회 앞마당에 도착할 때마다 그 
차 곁으로 다가가 차문을 열어주며 영접했다. 그들은 늘 교회당 맨 앞쪽 열에 앉았다.
  목사는 설교하면서 어떤 주장을 펼칠 때마다 꼭 맨 앞쪽 열을 쳐다 보며 "그렇지 
않습니까, 존슨 씨?"하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존슨 씨는 그 말이 옳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곤 했다. 목사가 이렇게 물을 때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자동적으로 존슨 씨에게로 돌아갔으며 존슨 씨의 고개짓을 보고서야 목사의 주장이 
옳은 것 같다는 확신을 갖곤 했다.
  할아버지는 성공회파 사람들은 세상 만사를 두루 통달하여 물세례 문제 같은 사소한 
문제 때문에 공연히 주위 사람들에게 담을 쌓고 지낼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인 
모양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을 그 길에 동참시키는 데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인 
모양이라고 하셨다.
  그 교회 목사는 아주 깡마른 사람이었다. 그는 매주 일요일마다 늘 똑같은 검은 
양복을 입었다. 그는 늘 머리를 머리통에 찰싹 달라붙게 빗고 다녔으며 얼굴에는 항시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기색이 떠돌곤 했다, 그는 얼굴뿐 아니라 실제 행동도 그랬다.
  그는 늘 교회 신도들에게 상냥하게 대했다. 나는 한번도 그의 곁에 서본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가 설교단상에 서서 좌중을 내려다볼 때는 표정이 
심술궂게 변했다. 이것은 그가 설교하는 동안에는 그 누구도 자리에 일어서서 그에게 
공개적으로 반박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하는 건 교회법상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걸 그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는 물세례 문제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나는 은근히 
실망했다. 나는 물세례 문제에 대해서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게 좋다는 한 예를 그의 
실수를 통해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바리새 인들(성경에 나오는 
형식주의자 내지는 위선자들: 옮긴이)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했다. 일단 설교가 바리새 
인들에 대한 얘기로 흘러가면 그는 흥분해서 설교단상을 박차고 내려와 예배당 통로 
있는 데까지 육박하곤 했다. 바리새 인들에게 너무나 분개한 나머지 숨이 막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한번은 그가 바리새 인들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통로를 한참 거슬러 올라온 
적이 있었다. 그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 바리새 인들을 향해 마구 짖어댔으며 그 
때문에 그의 울대는 아래위로 미친듯이 요동을 쳤다. 이윽고 그는 우리가 앉은 자리 
근처까지 와서는 손가락으로 할아버지와 나를 가리키면서,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대들은 (아나뇨)^5,5,5^"라고 소리쳤다. 그 바람에 할아버지와 나는 꼭 바리새 
인들과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사람들처럼 되고 말았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셔서 목사를 무섭게 노려봤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 역시 사납게 눈을 
치떴으며 그 때문에 할머니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팔을 꼭 붙잡고 계셔야 했다. 
이에 목사는 얼른 손가락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나중에 할아버지는, 당신은 일찍이 그 어떤 바리새 인과도 친분관계를 맺은 적이 
없으며 바리새 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고 있다고 해서 어떤 개쌍놈의 새끼가 
당신을 나무라기만 했다간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목사가 
앞으로 손가락질을 할 때는 다른 사람들 쪽을 가리키는 것이 제 신상에 이로울 거라고 
하셨다. 그 후 목사는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그때 목사는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그런 뜻을 읽지 않았을까 싶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목사가 
살짝 돌아 큰일을 낼 뻔했다고 하셨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늘 긴 칼을 갖고 
다니셨으니까.
  그 목사는 또 불레셋 인들(구약시대에 팔레스타인 땅에 살던 종족으로 유대인들과 
적대관계에 있었다: 옮긴이)도 아주 싫어했다. 그는 늘 틈만 나면 그들의 욕을 해댔다. 
그는 불레셋 인들도 바리새 인들 못지 않게 천하고 야비한 자들이라고 했다. 목사가 
이렇게 욕을 해대면 존슨 씨는 연방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할아버지는 목사가 "늘" 누군가를 헐뜯고 비난하는 것이 아주 싫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도대체 바리새 인들과 불레셋 인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렇게 
비난하는지 모르겠다며, 그러지 않아도 세상에는 여러 가지 싸움과 분쟁들로 넘치는데 
굳이 그들을 화나게 해서 말썽을 불러일으킬 건 없지 않느냐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목사에게 봉급을 주는 것에는 찬동하지 않으셨지만 늘 헌금 쟁반에 
약간의 돈을 얹어놓으시곤 했다. 당신은 우리가 예배당의 의자에 앉은 값을 치르는 
셈치고 그 돈을 낸다고 하셨다. 때로 할아버지가 내게 오 센트를 주셔서 나도 헌금 
쟁반에 돈을 얹어놓곤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한 번도 돈을 내신 적이 없었으며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아예 헌금 쟁반을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만일 그들이 그냥 지나가지 않고 계속 헌금 쟁반을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코밑에다 들이대고 있을 경우에 그분은 그들이 그 돈을 좀 집어가지시라고 
권하는 걸로 알고 거기서 돈을 "집으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 교회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신앙간증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에 교인들은 한 
사람씩 일어나 자기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가 저지른 
모든 악행을 털어놓곤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한번도 간증을 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그것이 말썽만 야기시키는 짓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아는 몇 
사람이 자기가 누군가에게 좋지 않은 어떤 짓을 저질렀다고 고백한 뒤에 그 상대에게 
총을 맞은 사실을 알고 계시며 총을 쏜 그 사람들은 교회에서 그런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전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런 일들은 그저 
자기 가슴속에나 묻어 둘 성질의 것이라고 하셨다. 할머니와 윌로우 존 할아버지도 
간증을 하기 위해 일어나신 적이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께 할아버지의 말씀이 옳은 것 같으며 나 역시도 일어서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한번은 어떤 사내가 일어나 자기는 구원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여러 해 동안 
술독에 빠져서 지내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을 결심이라고 선언했다. 
그가 개과천선하려고 노력한다는 소리를 들은 신도들은 다 같이 기뻐하며 
이구동성으로, "할레루야!" "아멘!"하고 외쳤다.
  누군가가 일어서서 자기가 저지른 악행을 고백하기 시작할 때마다 예배당 어느 
한구석에서는 늘 어떤 사내 하나가 "다 고백하라! 숨김없이 얘기하라!"고 외치곤 
했다. 그는 고백하는 사람들이 조저하는 기미를 보이거나 자기가 저지른 또 다른 
악행이 있나 생각하는 순간마다 이렇게 외쳐댔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그 사내가 
그렇게 소리치지만 않았더라면 털어놓지 않았을 아주 고약한 잘못까지도 솔직히 
털어놓곤 했다. 그러나 그 사내는 결코 간증을 하는 일이 없었다.
  한번은 어떤 여자 하나가 일어서서 주님이 자기를 음란한 악행으로부터 구원해 
주셨다고 말했다. 그러자 구석에 앉아 있던 그 사내는 소리쳤다. "다 고백하라!"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 자기는 간음을 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자기가 이제 그런 
짓을 그만둘 것이며 그런 짓은 옳지 않다고 했다. 그 사내는 다시 소리쳤다 "숨김없이 
얘기하라!" 그녀는 자기가 스미스 씨와 몇 차례 간음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자 
스미스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문쪽을 향해 걸어나갔으며 교인들은 웅성댔다. 
그는 정말 번개같이 교회 문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뒷자리 부근에 앉아 있던 
또 다른 두 명의 사내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이 미처 눈치채기도 전에 이내 문 
밖으로 자취를 감춰 버렸다.
  그녀는 자기와 간음을 저지른 또 다른 두 사람의 이름을 댔다. 교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할렐루야, 아멘을 외침으로써 그녀가 옳은 일을 했다고 찬양해 주었다.
  예배가 파하고 나서 모두가 교회당 밖으로 나왔을 때 남자들은 하나같이 마치 무슨 
위험물이나 되는 듯이 그녀와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걸었으며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남자들이 남들이 보는 앞에서 그 여자와 얘기하는 모습을 
보이는 걸 꺼려해서 그러는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나 몇몇 여자들은 그녀를 
둘러싸고 걸으며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고 그녀의 손을 어루만져 주면서 정말 장한 
일을 했다고 칭찬해댔다.
  할아버지는, 그녀 주위를 둘러싼 여자들은 모두 자기 남편도 간음을 했는지 알고 
싶어하는 여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속셈을 이렇게 고백을 하면 아주 
마음이 편안해지고 또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다는 걸 다른 간음한 여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녀들도 간음한 사실을 솔직히 고백하도록 유도하자는 데 있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만일 다른 여자들이 이에 넘어가 그 여자처럼 고백을 했다가는 온통 
난리가 날 거라고 하셨다. 내 생각에도 정말로 그렇게 될 성싶었다.
  할아버지는 그 여자는 아마도 마음을 바꾸지 않고 곧 다시 간음을 하려고 들 거다, 
헌데 쓰디쓴 실망을 맛보게 될 거다, 왜냐하면 남자들이 술에 만취되었거나 넋이 
나가지 않은 이상 절대로 그 여자와 간음을 하려고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다.
  매주 일요일 설교가 시작되기 바로 전 시간은 교일들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아무나 일어나 교일들에게 이에 관해 알려주는 시간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 대상은 옮겨갈 지주가 결정되지 않아 가족들을 먹여살릴 길이 막연해진 
소작인들이 될 수도 있었고 또 집에 불이 나서 가재도구가 모조리 타버린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
  이 얘기를 들은 교인들은 다음 주에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물건들을 가져오곤 
했다. 우리는 여름이면 우리가 직접 기른 채소들을 잔뜩 가져왔으며 겨울이면 고기를 
가져오곤 했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화재를 당한 사람을 위해 히코리 나무로 틀을 짜고, 
앉는 부분에 사슴가죽을 덮어씌운 의자를 만들어 주신 일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사람을 교회 마당 한구석으로 끌고 가서는 그에게 그 의자를 주면서 그걸 만드는 법을 
한참 동안 가르쳐 주셨다.
  할아버지는, 남에게 어떤 물건을 그냥 주기보다는 그걸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는 
편이 그 사람에게 훨씬 더 도움이 된다며, 만일 그가 스스로 만드는 법을 익힌다면 
이후 그는 제 힘으로 그걸 만들어 쓰게 될 테지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고 그냥 
어떤 물건을 주기만 한다면 주는 이는 남은 평생 동안 그에게 계속 그 물건을 
대주어야만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럴 경우 주는 이는 받는 이의 인격을 박탈하고 
그의 인간됨을 도둑질하는 셈이 되니 오히려 받는 이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들은 그저 계속 주기만 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는 그들이 
자기네가 받는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기분을 맛보고 잘난 척을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며, 그럴 때 그들이 한 행위라는 것은 고작 받는 이를 의존적으로 만든 것이 
불과하다고 하셨다.
  할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을 때 우리는 마침 개울가에서 세수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할아버지는 말씀하시면서 너무나 흥분하시는 바람에 하마터면 물 속에 
빠지실 뻔했지만 어떻게 간신히 균형을 잡고 둑 위로 기어올라오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모세가 어떤 사람이냐고 여쭤봤다.
  할아버지는 모세에 관해서는 목사가 핏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떠든 
얘기로밖에 들은 게 없다고 하셨다. 그 목사는 모세가 예수님의 제자였다고 말했다 
한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확실한 걸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저 모세에 관해 남에게서 "전해 들은"것밖에 아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한 젊은 여자가 갈대숲이 우거진 강둑에서 무세를 발견했으며 그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당신은 모세가 원래 그 강둑 부근출신이 아닌가 추측된다고 
하시면서 이것은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라고 하셨다. 헌데 그 젊은 여자는 
파로라고 하는, 아주 부자며, 또 아주 비열한 개자식의 여자였다. 파로는 늘 사람 
죽이기를 좋아했다. 파로는 모세도 죽이려고 했는데 이것은 아마도 그 젊은 여자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오늘날에도 여자 때문에 살인이 벌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니까.
  모세는 파로가 죽이려고 하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몸을 피했다. 모세는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어떤 지방으로 도망갔다. 헌데 모세가 자기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바위를 내리치니까 거기서 물이 좀 흘러 나왔다. 할아버지는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한지 어쩐지에 대해서는 당신도 알지 못하며^5,5,5^ 그저 그렇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이라고 하셨다.
  모세는 그후 노랜 세월 동안 정처없이 방황했다. 사실상 그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그 황야로 데려온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정처없이 걷고 또 걸었다. 모세는 이렇게 방황하던 중에 죽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삼손이란 사람이 그 무렵에 태어나서 늘 말썽만 일으키던 불레셋 
사람들을 무지무지하게 많이 죽였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들이 왜 싸움을 벌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불레셋 사람들이 파로의 졸개들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적과 내통한 한 여자가 삼손을 취하게 만들고는 그의 머리털을 
잘랐는데, 그 여자가 삼손을 밧줄로 묶어 버려 적들은 쉽게 그를 생포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 여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이 면에서 성경은 
대단히 유익한 교훈을 주고 있다고 말씀하셨고, 너는 항시 적과 내통한 여자가 너를 
취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나 주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 점을 
잊지 않고 명심하겠다고 다짐했다.
  할아버지는 성경의 그러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에 
대단히 만족해 하셨다. 할아버지가 성경의 교훈을 누군가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과거를 돌이켜볼 때 할아버지와 나는 성경에 대해 지독히 무지했던 것 같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천당에 갈 수 있는가를 알지 못해 우왕좌왕했던 것도 따지고 부면 성경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할아버지와 나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천당에 
갈 수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따져서 해답을 얻어 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천당 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만사를 포기하게 될 때는 초연한 방관자가 되는 법이다. 할아버지와 나는 천당 가는 
문제로 사람들이 여러 가지 주장을 내세우며 논쟁을 벌일 때 바로 이 초연한 방관자의 
입장에 섰으며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골머리를 썩이지 않았다^5,5,5^. 천당 
가기를 포기한 사람들이니까.
  할아버지는 내가 물세례 문제에 관해 아예 잊기로 한 건 참 잘한 일이라고 하셨다. 
당신은 이미 오래 전에 그 문제에 관해 따지기를 포기했으며 그 이후로는 여간 신간이 
편치 않다고 하시면서.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도대체 지옥하고 물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모르겠다고 솔직히 고백하셨다.
  그 점에서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그 때문에 물에 관해서는 아예 생각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  와인 씨

  그분은 겨울철이나 봄철에는 한 달에 한 번씩, 꼭 해질 무렵에 우리 오두막으로 
찾아와 하룻밤씩 묵어 가시곤 했다. 간혹 그분은 이틀밤을 묵었다 가실 때도 있었다. 
와인 씨는 등짐장수였다.
  그분은 읍내에 살고 계셨으나 그렇게 등짐을 지고 산길을 걸어다니며 장사를 
하셨다. 우리는 늘 그분이 오는 날을 알고 있어 우리집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면 
할아버지와 나는 으레 산길을 내려가 그분을 마중하곤 했으며 그분의 짐을 받아 
오두막까지 날라다 드리곤 했다.
  할아버지는 그분의 등짐을 나르셨으며 와인 씨는 대개 나에게 시계 하나를 주어 
나르게 하셨다. 그분은 우리집에서 시계를 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한테는 
시계가 없었지만 우리는 그분이 부엌 식탁 위에서 시계 수리하는 걸 돕곤 했다.
  할머니가 등잔불을 켜시면 와인 씨는 시계 하나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그 내부를 
열어 젖히셨다. 나는 키가 작아 의자에 앉으면 시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항시 
와인 씨 곁에 놓인 의자 위에 올라서서 그분이 조그만 스프링들과 황금색 나사들을 
빼내는 걸 지켜보았다. 그분이 시계 수리를 하시는 동안 할아버지와 그분은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셨다.
  와인 씨는 백 살 가량 되셨을 것이다. 그분은 허연 수염을 길게 기르고 항시 검은 
옷을 입고 다니셨으며 동그란 모양의 조그만 검은색 모자를 머리 뒷부분에 얹고 
계셨다. 와인이란 이름은 그분의 진짜 이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이 
와인으로 시작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름이 발음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너무 길고 
복잡해서 우리는 그분을 와인 씨라고 불렀다. 와인 씨는 그래도 괜찮다고 하셨다. 
그분은 이름이란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시다. 와인 씨는 당신도 어떤 인디언들의 이름은 발음하기가 아주 
힘들어 당신이 발음하기 편리하게 지어 부른다고 하셨다.
  그분은 늘 겉옷 주머니에 무언가를 넣어 갖고 오셨다. 대개 사과인 경우가 많았지만 
한번은 오렌지를 갖고 오신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분은 기억력이 아주 젬병이었다.
  우리는 대개 저녁 어스름녘에 저녁밥을 먹었는데 저녁밥을 다 먹고 난 뒤 할머니가 
식탁을 치우실 때면 할아버지와 와인 씨는 흔들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시곤 했다. 
그럴 때면 나도 내 의자를 두 분 사이에다 끌어다 놓고 앉았다. 와인 씨는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시다 말고 불쑥 "내가 뭔가를 잊어버린 것 같애. 근데 뭘 잊어버렸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구먼"하고 말씀하시곤 했다. 항시 같은 일이 반복되므로 나는 
그분이 뭘 잊어버렸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럴 때면 와인 
씨는 당신의 머리를 긁으시거나 손가락들로 당신의 허연 수염을 빗질하곤 하신다. 
할아버지 역시 그분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와인 씨는 
나를 내려다보며 도움을 청하신다. "작은나무야, 너 혹시 그게 뭔지 알 수 있겠니?"
  그러면 나는 말씀드린다. "예. 알 것 같아요. 호주머니에 뭔가 넣어갖고 오셨는데 
그걸 잊어버리신 게 아닌가요?"
  그러면 와인 씨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당신의 호주머니를 찰싹 치며 말씀하신다. 
"나 이거야 원! 기억을 살려줘서 고맙구나, 작은나무야. 도통 기억력이 없어놔서 늘 이 
모양이다." 그분은 정말 기억력이 젬병이다.
  그분은 이 산악지대에서 나는 그 어떤 열매보다도 큰 빨간 사과 한 알을 꺼내신다. 
그분은 당신이 길을 가다 우연히 그걸 주웠는데 당신이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그냥 버릴까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나는 늘, 버리실 거라면 나한테 
달라고 말씀드린다. 나는 그 사과를 받아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나눠먹으려고 하지만 
두 분도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신다. 그 바람에 사과를 좋아하는 나 
혼자 그걸 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씨는 따로 남겨두었다가 실개천 주위에다 
심곤 했다. 그것이 나무로 자라나 그렇게 큼직하고 맛있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으면 
하고 바라면서.
  와인 씨는 또 당신의 안경도 잘 잃어버리시곤 했다. 시계 수리를 할 때 그분은 
조그만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일하셨다. 그것은 철사로 엮어 귀에 걸치게 되어 있는 
다리에 천이 감긴 안경이었다.
  그분은 할아버지와 말씀을 나누시려고 할 때면 작업을 중단하고 당신의 안경을 머리 
위로 치켜올리셨다.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할 때면 으레 그걸 어디다 두었는지 
찾아내지 못하셨다. 나는 그분의 안경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분은 식탁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쳐다보시며 말씀하시곤 한다. 
"이눔의 안경이 또 어디로 가서 사람 속을 써이누 그래?" 그분과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런 것 하나도 찾지 못하니 자기네들도 참 한심하다는 듯이 멋적게 웃으신다. 내가 
잠자코 그분의 머리를 가리키면 그분은, 바로 머리 위에 치켜올려 두고도 못 찾으니 
이런 바보가 다 있느냐시며 당신의 머리를 찰싹 때리신다.
  와인 씨는 내가 당신 곁에 붙어서서 당신이 안경 찾는 걸 도와주지 않는다면 시계 
수리도 할 수 없을 거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건 정말 사실이었다.
  그분은 내게 시간 보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분은 연신 시계 바늘을 돌려가면서 
내게 지금이 몇 시냐고 물어보셨고 내가 틀리게 대답하면 껄껄 웃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시간을 척척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와인 씨는 내가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내 나이 또래 
중에서 맥베드 씨나 나폴레옹 씨에 과나해 알고 있는 아이도, 사전을 연구하는 아이도 
다시 찾아보기 어려울 거라고 하셨다. 그분은 내게 셈하는 법도 가르쳐 주셨다.
  나는 위스키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돈 계산하는 법은 약간 익혔었다. 그러나 와인 
씨는 종이 몇 장과 몽당연필 한 자루를 꺼내 종이에다 숫자들을 적으셨다. 그리고는 
그 숫자들을 이용해 더하는 법과 빼는 법, 곱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할아버지는 
나보다 더 셈을 잘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와인 씨는 내게 연필 한 자루를 주셨다. 그건 노란색의 길다란 연필이었다. 그분은 
연필을 깎을 때 심을 너무 길고 뾰족하게 갈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게 심이 길게 
나오게 했다간 심이 금방 부러져서 다시 깎아야 하며 그렇게 되면 쓸데없이 연필을 
낭비하는 셈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와인 씨는 연필을 알뜰하게 깎아 쓰는 방법을 직접 시범해 보여 주셨다. 그러면서 
그분은, 알뜰하다는 것은 구두쇠 짓을 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며, 
인색하다는 것은 떼부자들이 돈을 숭배하는 것만큼이나 나쁜 것이며 마땅히 돈을 써야 
할 때도 돈을 쓰지 않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산다면 
그건 돈을 하느님처럼 숭배하는 태도며 그러한 삶에서는 아무런 유익한 결과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헌데 알뜰하다는 건 돈을 써야 할 때는 아낌없이 쓰되 절대로 낭비하지 않는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와인 씨는, 한 가지 습관은 자동적으로 또 다른 습관들을 낳게 되며 
만일 우리가 나쁜 습관들을 갖고 있을 경우에는 우리의 성격마저 나빠지게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만일 우리가 돈을 낭비하는 습성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시간도 낭비하게 되고, 우리의 생각도 낭비하게 되며 나아가서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낭비하게 된다고 하셨다. 그분은,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적제 없이 살 경우에는 
정치가들에게 득세할 기회를 주게 되는 것이며, 정치가들은 절제 없는 사람들을 
지배하며 이내 독재자가 되어 버린다고 하셨다. 하지만 알뜰한 사람들은 결코 
독재자들에게 지배당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옳은 말씀이시다.
  그분이 정치가들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할아버지나 내 생각과 비슷했다.
  할머니는 와인 씨에게 실을 사시곤 했다. 작은 시패는 두 개에 오 센트이고 큰 것은 
한 개에 오 센트였다. 때로 할머니는 단추도 사셨으며 한번은 꽃무늬가 그려진 빨간 
천을 사신 적도 있었다.
  와인 씨의 등짐 속에는 벼라별 게 다 들어 있었다. 갖가지 색깔의 리본, 예쁜 천과 
양말, 골무와 바늘, 반짝이는 연장들 등등. 그분이 마룻바닥에 짐꾸러미들을 
펼쳐놓으실 때면 나는 그 곁에 쭈그리고 앉아 구경했으며 그분은 내게 그 물건들의 
이름을 일일이 가르쳐 주시곤 했다. 그분은 내게 셈본 책 하나를 주셨다.
  그 책은 온통 숫자들로 가득한, 셈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었다. 덕분에 나는 
그달 내내 열심히 셈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내 진도는 쑥쑥 나아갔으며 그 바람에 
와인 씨는 우리집에 들를 때마다 내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와인 씨는 계산법이란 중요한 것이라고 하셨다. 그분은 교육이란 두 가지 측면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셨다. 그 하나는 기술적인 측면으로 이것은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남에게 뒤처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 이러한 
측면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늘 보다 새로워지는 것이다. 허나 또 다른 측면은 
세월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 그분은 그것을 가치라고 부르셨다.
  만일 우리가 정직하고 근검 절약하는 태도를 갖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타인들을 
사랑하는 것 등이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이라 배웠다면 이러한 가르침은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헌데 만일 우리가 이러한 소중한 가치들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가 기술적인 면에서 아무리 뛰어나고 참신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어떤 목표에도 이를 수 없을 것이다.
  와인 시는 우리가 이러한 참된 가치들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는, 자꾸 새로워지고 
현대적이 되면 될수록 우리는 그 현대적인 것들을 더욱더 파괴적이고 파멸적인 
방향으로만 악용하게 된다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의 
말씀이 올다는 것이 증명되었다(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사실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옮긴이).
  간혹 가다 시계 수리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와인 씨는 이틀 밤을 묵어 
가시기도 했다. 한번은 와인 씨가 이상한 검은 상자 하나를 갖고 오신 적이 있었다. 
그분은 그걸 코닥 카메라라고 하셨다. 그분은 그걸로 그림들을 찍어내실 수가 있었다. 
헌데 당신은 그림들을 찍어내는 솜씨가 신통치 않다고 하시면서 어떤 사람들이 그걸 
사다달라고 해서 그들에게 갖다주는 길이라고 하셨다. 그분은 그걸로 우리의 그림을 
찍어내도 우리의 몸에는 아무런 자국도 남지 않고 아무런 상처도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분은 할아버지와 내 그림을 찍으셨다. 그 상자는 찍으려는 대상이 햇빛을 
정면으로 받는 위치에 있지 않으면 그림을 찍어낼 수 없으며, 와인 씨는 당신도 아직 
그 새로운 기계장치의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고 하셨다. 그 점은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셨다. 할아버지는 그 상자를 수상쩍게 생각하셔서 그 상자 앞에 
딱 한번 서시고는 더 이상 서려고 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정체불명의 새로운 
것들과 맞닥뜨릴 때는 세월이 흘러 그것의 정체가 확연히 밝혀지기 전까지는 가급적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하셨다.
  와인 씨는 할아버지더러 나와 그분의 그림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헌데 그 
그림 한 장을 찍는데 저녁 시간이 꼬박 다 갔다. 우선 와인 씨와 나는 그 상자 앞에 
나란히 섰다. 와인 씨가 내 머리 위에 당신의 손을 올려놓으신 상태에서 우리 둥 다 
함박 미소를 머금은 그런 자세로. 할아버지는 잠시 상자에다 눈을 대시더니 그 상자의 
작은 구멍을 암만 들여다봐도 우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와인 씨는 
할아버지곁으로 가셔서 그 상자의 높이를 조금 높이시고는 다시 돌아오셨다. 우리는 
다시 아까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팔 하나밖에는 보이는 게 없으니 
조금 옆으로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슴하셨다.
  할아버지는 여간 불안해 하지 않으셨다. 내 생각에는 할아버지가 그 구멍 속으로 
뵈는 것들이 불쑥 튀어나오지 않을까 겁을 내신 게 아닌가 싶었다. 와인 씨와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햇빛을 정면으로 본 나머지 할아버지가 겨우 그림을 한장 찍고 난 
후에는 한동안 아무것도 눈에 뵈지 않았다. 헌데 그 그림마저 제대로 찍히질 않았다. 
다음 달에 와인 씨가 그 그림들을 갖고 오셔서 들여다보니까 할아버지와 내가 나란히 
선 그림은 잘 나왔는데 할아버지가 찍으신 그림 속에는 와인 씨와 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볼 수 있는 건 그저 어떤 나무들의 맨 꼭대기 부분과 그 
나무들 위의 허공에 박힌 까만 점 몇 개뿐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그림을 한참 동안 
연구하신 끝에 마침내 그 점들의 정체를 밝혀내셨다. 그건 새들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새 그림을 자랑스렇게 여기셨으며 그 점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는 그 그림을 네거리 가게로 들고 가서 젠킨스 씨에게 보여주시면서 당신이 
손수 그 새 그림을 찍었다고 자랑하셨다.
  헌데 젠킨스 씨는 시력이 좋지 않아 할아버지와 내가 수십 차례 그 새들이 있는 
곳을 짚어 주어서야 겨우 그 새들을 발견했다. 나는 와인 씨와 내가 그 새들 밑으로 
한참 내려간 곳 어디쯤에서 서 있었으리라 짐작했다.
  할머니는 당신의 그림을 찍게 하지 않으셨다. 이유는 말슴하시지 않으면서. 하지만 
할머니가 굳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나는 할머니가 그 상자를 건드리기 싫어하시는 걸로 
봐서 그 상자를 의심하고 계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와인 씨에게서 그 그림들을 받은 뒤 할머니는 그 그림들에 아주 매혹되셔서 
홀린듯이 들여다보셨다. 그리고는 그걸 벽난로 위의 통나무 위에다 붙여놓고 틈만 
나면 올려다보시곤 했다. 나는 앞으로 할머니가 틀림없이 당신의 그림을 찍게 
하시리라 믿었는데 와인 씨가 그 코닥 카메라를 주문한 사람에게 넘겨주는 바람에 
그만 그걸 확인해 볼 기회를 잃고 말았다.
  와인 씨는 당신이 다시 또 코닥 카메라 주문을 받게 될 날이 올 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영영 오지 않았다. 그것이 그분의 마지막 여름이었기 때문이다.
  여름은 계적의 막바지에서 나른한 나날을 보내며 서서히 기울어가고 있었다. 
작열하던 태양빛은 오후만 되면 안개처럼 뿌연 기운에 휩싸여 누르스름한 빛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그 뜨거운 기운을 조금식 잃어갔다. 이에 대해 할머니는, 여름이 긴 
잠에 들어갈 채비를 하는 거라고 하셨다.
  와인 씨는 당신의 마지막 여행길에 오르셨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는 그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분이 통나무 다리를 제대로 건너시지 못해 우리가 그분의 손을 
잡아드렸고, 또 현관 앞의 계단을 오르시는 것도 힘겨워하셔 그분을 부축해드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아마도 알고 계셨으리라.
  그분은 오두막 바닥에 등짐을 내려놓으시더니 거기서 노란 외투 한 벌을 꺼내셨다. 
그분이 그 옷을 쳐들자 등잔불을 받아 황금빛을 발했다. 할머니는 그걸 보니 야생의 
카나리아 떼가 연상된다고 하셨다. 그건 우리가 본 외투 중에 가장 예쁜 외투였다. 
와인 씨는 등잔불 밑에서 그걸 이리저리 돌렸고 우리 모두는 그걸 쳐다봤다. 할머니는 
그걸 만져 보셨으나 나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와인 씨는 당신이 도통 정신이 없어 항시 뭘 잘 잊어버리곤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분은 큰 바다 건너에 사는 당신의 증손자 중에서 가장 어린애를 
위해 그걸 짓게 하셨는데 그만 그애가 훨씬 더 어렸을 때의 몸크기만 생각하고 그 
옷의 크기를 정해 주셨다고 한다. 그분은 그 옷이 다 완성된 뒤에야 비로소 그애의 
나이에 생각이 미쳤고 그 옷이 그애에게는 너무 작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 그분의 
증손자들 중에서 그 옷을 입을 만한 애는 아무도 없었다.
  와인 씨는 아직 쓸모가 있는 어떤 것을 내버리는 것은 큰 죄라고 하셨다. 그 때문에 
그분은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연세가 많은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그 죄를 
어떻게 다 감당하나 하는 생각에 도통 잠이 오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분은 
그 코트를 입어주는 은혜를 베풀 만한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면 당신은 이대로 쓰러질 
것만 같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는 그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느라고 한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와인 씨는 고개를 푹 떨구고 계셔 마치 그분이 금방이라도 쓰러지시는 거나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나는 그분께 내가 그 옷을 입으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렸다.
  와인 씨는 고개를 번적 쳐드시고는 환하게 웃으셨다. 와인 씨는 당신이 너무나 
건망증이 심해 나한테 그 옷을 입는 은혜를 베풀어 주지 않겠느냐고 물어볼 것을 깜박 
잊고 말았다고 하셨다. 그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그리고는 
내가 그분의 무거운 짐을 벗겨줬고 덕분에 당신이 완전히 죄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그분의 무거운 짐을 벗겨드린 건 사실이었다.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달려들어 나한테 그 외투를 입혀주셨다. 할머니는 소매 속에 
손을 집어넣는 걸 도와주셨고 와인 씨는 등판을 고르게 펴주셨으며 할아버지는 맨 
밑단을 잡아당겨 주셨다. 그것은 마치 맞춘 것처럼 나한테 꼭 들어맞았다. 내가, 와인 
씨가 기억하고 계셨던 그분의 증손자의 어린 시절의 몸크기와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가 시키시는 대로 불빛 속에서 몇 바퀴나 돌았다. 할아버지가 
소매길이가 어떤가 보고 싶어하셔서 나는 두 팔을 쳐들어 보기도 했다. 손으로 
만져보니 그것은 포근하고 보드라운 감촉을 지녔으며 무척이나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와인 씨는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그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옷에 뭐가 튀지 않도록 가급적이면 접시에다 코를 박고 밥을 먹었다. 나는 잘 때도 그 
옷을 입고 자려고 했으나, 할머니가 그러면 구겨진다고 말리셨다. 할머니가 내 침대 
기둥에다 그 옷을 걸어주셔서 나는 자리에 누워서도 그걸 볼 수 있었다. 내 방 창문을 
통해 새들어 오는 달빛 속에서 그것은 한층 더 빛을 발했다.
  침대에 누워 그 외투를 바라보면서 나는 교회에 갈 때나 읍내에 갈 때 그 옷을 입고 
가리라고 마음먹었다. 우리가 제품을 넘겨주기 위해 네거리 가게에 갈 때도. 내 
생각에 내가 그 외투를 입으면 입을수록 와인 씨의 죄는 자꾸만 더 가벼워질 것 
같았다.
  와인 씨는 할아버지 할머니 방과 내 방 밖으로 복도처럼 길게 난 "개 통로" 
건너편의 부엌 겸 거실 방 안에서 짚을 넣어 만든 이부자리를 받ㄱ에 펴고 주무셨다. 
나는 그 이부자리 위에서 자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와인 씨께 내 침대 위에서 
주무셔도 좋다고 말씀드렸지만 와인 씨는 굳이 사양하고 거기서 주무셨다.
  그날 밤 침대에 눕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비록 와인 씨께 은혜를 베풀기는 했지만 
그 노란 외투를 주신 것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꿈치를 들고 "개 통로"를 가로질러 가 살그머니 
거실 문을 열었다. 와인 씨는 이부자리 위에 무릎을 굻고 앉아 고개를 떨구고 계셨다. 
그분은 기도를 드리시는 것 같았다.
  그분은 당신에게 무한한 행복을 안겨 준 한 작은 소년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하느님께 전하고 계셨다. 나는 아마도 큰 바다 건너에 사는 그 증손자를 생각하면서 
그런 기도를 드리는 거라고 짐작했다. 그분은 부엌 식탁 위에 촛불을 켜놓고 계셨다. 
할머니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릴 때는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고 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저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잠시 후 고개를 쳐든 와인 씨는 문 앞에 선 나를 발견하셨다. 그분은 들어오라고 
하셨다. 나는 우리집에 등잔도 있는데 왜 촛불을 켜셨냐고 여쭤봤다.
  와인 씨는, 당신의 가족 친척들이 모두 큰 바다 건너편에 살고 있지만 그들과 함게 
이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긴 있다, 그건 특정한 어떤 시간에 당신이 촛불을 켜시고 
또 바로 그 시간에 바다 건너에 사는 사람들도 촛불을 켜면 그 순간에 그들의 생각이 
하나로 모아지기 때문에 그분들이 한자리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이치에 맞는 말씀 같았다.
  나는 그분께 우리 종족들도 여러 나라(인디언 거주지역: 옮긴이)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이제까지 그런 방법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에 관해 말씀드렸다.
  나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께 그 촛불에 관해 말씀드려야겠다고 했다. 와인 씨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가 그 말을 들으시면 단박에 이해하실거라고 하셨다. 나는 그런 
얘기를 하느라 와인 씨께 노란 외투를 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걸 깜박 잊고 
말았다.
  그분은 이튿날 아침 떠나셨다. 우리는 그분이 통나무 다리를 건너시는 걸 
도돠드렸다. 할아버지는 히코리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와인 씨께 지팡이로 쓰시라고 
드렸다.
  그분은 지팡이로 땅을 짚으시며 불편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산길을 걸어내려가셨다. 
그분의 짐의 무게 때문에 허리를 잔뜩 굽히고 걸으셨다. 그분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나는 내가 뭔가를 깜박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산길을 달려내려갔다. 
그러나 그분은 벌써 저 아래 까마득히 먼 곳에서 걸어가고 계셨다. 나는 소리쳤다. 
"노란 외투를 주셔서 고마워요, 와인 씨!" 그분이 고개를 돌리시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내 말을 듣지 못하신 게 분명했다. 와인 씨는 기억력만 좋지 않으신 게 아니라 
귀도 좋지 않으셨다. 산길을 다시 걸어올라오면서 나는, 그분이 늘 뭘 잘 잊어버리시는 
분이니 다음번에 오실 때, 나 역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는 걸 깜박했다는 말씀을 
드리면 충분히 이해해 주실 거리고 생각했다. 비록 내가 그분께 그 노란 외투를 입는 
은혜를 베푼 입장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  정든 산을 떠나다.

  그해에는 가을이 일찍 찾아왔다. 맨 먼저 산등성이 부근의 나뭇잎들이 빨닿게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 나뭇잎들에 서리가 내렸다. 태양은 누렇게 
변해 갔으며 나뭇잎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햇살은 날이 갈수록 기울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마다 서리는 조금씩 산 밑으로 기어내려왔다. 소심한 서리는 단번에 
닥쳐오는 것이 아니라, 여름은 이제 끝났으며 한번 간 시간은 다시 되돌아 오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숨죽이고 있던 겨울이 곧 오리라는 걸 예고하면서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가을은 자연이 베푸는 은총의 계절이었다. 죽음에 대비하여 모든 것들을 정리할 
기회를 제공해 주는 계절. 그리하여 모든 것을 정리할 때 우리는 가려낼 건 가려내야 
하고^5,5,5^ 아직 실천하지 못한 것은 실천에 옮겨야 한다. 가을은 또 기억의 
계절^5,5,5^ 후회의 계절이었다. 우리가 이루지 못한 걸 아쉬워하는 후회의 계절. 
그리고 가을은 우리가 미처 말하지 못했던 걸 말하는 계절이기도 했다.
  나는 노란 외투를 주신 데 대해 와인 씨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 달에는 와인 씨가 오시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저녁 늦게까지 
현관 밖에서 서성이며 산길을 내려다봤고 또 그분의 기척이 들리지 않나 해서 주의 
깊게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분은 끝내 오지 않으셨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분을 
뵈러 읍내에 다녀오기로 했다.
  서리는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살그머니 우리가 사는 계곡에까지 밀려내려왔다. 
그것은 감을 빨갛게 물들였도 포플러와 단풍나무 이파리들을 가장자리부터 노랗게 
먹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겨울을 나야 하는 생물들은 모두들 죽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 날랐다.
  블루 제이(어치의 일종: 옮긴이)들은 이제 장난치거나 노래하는 일은 집어치우고 
종일 상수리나무 주위를 날아다니며 부지런히 도토리를 둥우리로 날라들었다.
  골짜기에서는 더 이상 나비가 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옥수수 
자루를 줄기에서 떼어내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나비들이 옥수수 줄기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그들은 날개짓도 하지 않고 그저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었따. 그들은 먹이를 저장할 필요가 없었다. 머지 않아 죽을 것이니까. 그들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나비들이 어리석은 인간들보다 훨씬 더 지혜롭다고 
하셨다. 그들은 죽기 싫어 안달을 하거나 난리치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게 기다리기만 
했다. 그들은 자기네가 할 일을 다 했으며 이제 죽는 일만 남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태양의 마지막 온기를 즐기며 거기 그렇게 앉아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와 나는 난로와 벽난로에 집어 넣을 나무를 날라들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여름 내내 베짱이처럼 잘 놀았으니 이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나무를 하러 다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산허리에서 죽은 나무 줄기들을 쓰러뜨려 우리집 마당으로 끌고 오곤 했다. 
할아버지는 저녁 무렵이면 마당에서 우리가 끌고 온 나무들을 도끼로 패셨는데 
석양녘에 도끼날이 한번씩 번쩍일 때마다 둔중한 소리가 온 골짜기를 타고 메아리치곤 
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그렇게 모양좋게 잘라내신 장작들을 우리집 오두막 한켠으로 
운반하여 그 벽에다 차곡차곡 쌓는 일을 했다.
  우리가 바로 이런 일에 열중하고 있었을 때 그 남녀 정치가가 찾아 왔다. 그들은 
자기네가 정치가가 아니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정치가가 틀림없었다.
  그들은 우리가 권한 흔들의자들을 마다하고 굳이 딱딱한 보통 의자에, 그것도 
꼿꼿한 자세로 앉았다. 남자는 회색 양복을, 여자는 회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 
드레스는 그녀의 목을 단단히 죄어 보는 사람에게마저 갑갑한 느낌을 주었으며 나는 
그녀가 딱딱한 사람처럼 보이는 게 바로 그 옷차림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남자는 마치 여자처럼 두 무릎을 딱 붙이고 앉아 있었다. 그는 무릎 위에 모자를 
올려놓았는데 그 모자를 가만두지 않고 계속 손가락들을 꼼지락거리며 빙글빙글 돌려,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했다. 그러나 여자는 아주 침착했다.
  여자는 나를 밖에 나가 있게 해달라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우리 집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건 간에 나는 늘 참여하게 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내 작은 
흔들의자를 까딱거리며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남자는 목철을 몇 번 가다듬더니, 사람들이 내 교육문제를 걱정하고 있다면 나는 
제대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제대로 교육받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있다고 와인 씨가 얘기를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들려주셨다.
  그 여자는 와인 씨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와인 씨가 건망증이 
심하다는 점만 살짝 빼고는 와인 씨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주셨다. 그녀는 연신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스커트 자락만 쓸어내렸다. 마치 와인 씨가 어디 사는 
말뼉다구인지는 모르겠으되 그래 봤자 자기 발 밑이 아니겠느냐는 듯이.
  나는 그녀가 와인 씨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우리를 완전히 
무시하듯이 말이다 그녀는 할아버지께 서류 한 장을 건넸고 할아버지는 그걸 할머니깨 
넘겨드렸다.
  할머니는 그걸 읽어보시려고 등잔불을 켜고는 부엌 식탁 앞에 자리잡고 앉으셨다. 
할머니는 그걸 소리내어 읽으시다간 이윽고 입을 다무셨다. 할머니는 그 나머지 
내용은 속으로만 읽으셨다. 그걸 다 읽으신 뒤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셔서 몸을 앞으로 
기울여 등잔불을 훅 불어 끄셨다.
  그 정치가들은 이러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았다. 그 점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침침한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켜 더듬거리며 문 쪽으로 갔다. 
그들은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도 없이 훌쩍 나가 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그들이 가버린 뒤에도 한동안 어둠 속에서 묵묵히 제자리만 지켰다. 이윽고 
할머니는 다시 등잔불을 켜셨으며 우리는 부엌 식탁 앞에 모여 앉았다. 나는 키가 
작아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서류에 어떤 내용이 씌어 있는지를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두 분이 나누시는 얘기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 서류는 법률에 따라 작성된 것이라 했다. 그 서류에 의할 것 같으면 나는 제대로 
양육되지 못하고 있으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너무 늙고 또 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 나를 양육할 권리가 없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인디언이고, 할아버지는 반은 
백인 반은 인디언으로서 평판이 좋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 서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이기적인 사람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기네의 
이익을 위해 내 장래를 망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했다. 그들은 이기적이라서 그저 
자기네만 편하자고 나를 밖으로 내보내 이일 저일로 혹사시키고 있었다.
  그 서류는 그밖에도 나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그걸 
속으로만 읽으셨다. 그 서류에 의할 것 같으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법정에 나가서 
이의를 제기하실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이의가 없으면 나는 자동적으로 
고아원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완전히 넋이 나가셨다. 할아버지는 모자를 벗어 식탁 위에 
올려놓으셨는데 그 모자를 잡으신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정신없이 
모자만 문지르셨다.
  나는 벽난로 가에 있는 내 흔들의자로 가서 앉은 뒤, 그것을 빠르게 앞뒤로 
흔들었다.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깨 내가 앞으로 사전에 나오는 단어를 일 주일에 열 
단어 정도씩 익힐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래놓고 나는 다시 그 정도보다 더 
많이, 어쩌면 백 단어 정도도 익힐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읽는 법을 
배울 것이며 그걸 익힌 다음에는 읽는 데 능숙해지기 위해 한층 더 열심히 공부할 
거라고 했다. 나는 또 두 분께 와인 씨가 내 계산 실력을 높이 평가해 주신 적이 
있었으며 두 분도 그 말씀을 들으신 적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 정치가들은 비록 
와인 씨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지라도 어쨌든 그분 말씀에 의하면 나는 분명히 
빠른 진보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이야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만 입을 다물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질 않았다. 
내 흔들의자는 점점 더 심하게 흔들렸으며 내 말은 점점 더 빨라지기만 했다.
  나는 할아버지께 내 장래가 망쳐지는 일 같은 것은 절대로 없을 거며 나는 모든 
면에서 계속 향상되어 나갈 거라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내 말에 침묵만 지키셨다. 
할머니는 그 서류를 집어들고 그걸 한참 동안 응시하셨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서류에서 얘기하는 내용을 인정하시는 게 아닌가 싶어 
할머니 할아버지는 절대로 그 서류에서 얘기하는 그런 분들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그 
서류는 사실을 오히려 거꾸로 보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를 편하게 해주셨으며 
나는 두 분이 늘 신경을 써줘야 하는 골칫덩어리였다, 내가 두 분께 큰 부담이 
되었으면 되었지 두 분이 내게 부담을 주고 나를 괴롭히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나는 법에게 이런 사실들을 분명하게 말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두 분은 여전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내가 공부 외의 다른 방면, 곧 위스키 제조 사업을 익히는 
면에서도 큰 발전을 하고 있는 중이며, 내 나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 중에서 나처럼 
직업 교육을 받는 아이는 아마 하나도 없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처음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그 눈빛은 흐릿하고 어두웠다. 그 눈빛은 
법이 어떤 존재인 줄 잘 알지 않느냐, 법에게 위스키 사업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나는 식탁 쪽으로 가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았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법을 
따라가지 않을 작정이라고 말씀드렸다. 나는 산악지대 더 깊숙이 들어가 법이 나와 
관계된 일을 완전히 잊어버릴 때가지 윌로우 존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께 고아원이 뭐하는 데냐고 여쭤봤다.
  할머니는 식탁 건너편에서 나를 쳐다보셨다. 할머니의 눈빛 역시 어두웠다. 
할머니는 고아원이란, 엄마 아빠가 없는 애들을 법이 맡아서 기르고 있는 곳이며 
그곳에는 그런 애들이 아주 많이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만일 내가 법을 따라가지 
않고 윌로우 존 할아버지 계시는 곳으로 가서 지내게 되면 법이 나를 찾으러 올 
거라고 하셨다.
  그 순간 나는 법이 나를 찾으로 오게 되면 증류기 있는 곳을 발각당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 얘기를 입에 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내일 아침 읍내로 가서 와인 씨를 만나보자고 하셨다.
  이튿날 새벽 우리는 집을 떠나 산길을 내려갔다. 할아버지는 그 서류를 와인 씨에게 
보여줄 작정이셨다. 할아버지는 와인 씨 사는 곳을 잘 알고 계셔 읍내로 들어간 뒤 
곧바로 큰 길을 벗어나 샛길로 들어서셨다. 와인 씨는 사료 가게 위층에 살고 계셨다. 
우리는 그 사료 가게 옆으로 난 길다란 나무 계단을 올라갔는데 그것은 우리가 한발을 
디딜 때마다 심하게 요동을 했다. 문은 잠겨 있었다. 할아버지는 문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흔들어 보기도 하셨으나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우리창에 먼지가 잔뜩 
끼어 있어 할아버지는 먼지를 닦아내고 안을 들여다보셨다. 할아버지는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다시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봤다. 우리는 그 건물 모퉁이를 돌아 사료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정오의 밝은 태양빛을 받다가 들어운 탓으로 가게 안은 몹시 어두워 보였다. 우리는 
우리의 눈이 가게 안의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잠시 제자리에 서 있었다. 이윽고 한 
사내가 계산대 곁에 기대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쇼, 뭘 찾습니까?" 사내가 말을 건넸다. 아랫배가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사내였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와인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이 가게 위층에 사시는 분 
말입니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 양반 이름이 와인이 아닐 텐데요." 그는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말했다. 그는 
이쑤시개를 몇번 빨다 뽑아내더니 인상을 찡그리며 그걸 들여다보았다. 마치 뒷맛이 
고약하다는 듯이.
  "하긴 그 양반은 이제 이름도 없는 셈이죠. 죽었으니깐." 그가 말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넋을 잃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머릿속에 휑하게 비는 느낌과 아울러 무릎이 휘청거리는 걸 
느꼈다. 나는 현재 우리가 처한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사람은 와인 씨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오 할 말을 잃은 채 
망연자실하게 서 계신 것으로 미루어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오셨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댁의 이름이 혹시 웨일즈 씨 아닌가요?" 그 뚱뚱한 사내가 물었다.
  "맞습니다." 할아버지는 간신히 대꾸하셨다. 사내는 계산대 뒤로 돌아가더니 그 
안에서 마대자루 하나를 끄집어내 계산대 위에 올려놨다. 그것은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는 몰라도 배가 잔뜩 불러 있었다.
  "그 노인네가 댁한테 주라고 이걸 여기다 맡겨놨어요. 그 꼬리표를 보세요. 거기에 
영감님 이름이 적혀 있을 겁니다." 할아버지는 그걸 들여다보셨다. 글도 읽을 줄 
모르시는 분이.
  "그 양반은 모든 물건에 일일이 표딱지를 붙여놨어요. 자기가 죽을 줄 알고 있었던 
모양입디다. 심지어 자기 시체를 배편으로 어디어디로 보내주면 된다는 얘기를 
적어놓은 꼬리표까지 자기 허리에다 붙잡아 매놓았으니 말 다했지요. 그리고 자기 
시체를 실어나르는 삯을 정확히 계산해서 그걸 봉투 안에 넣어놨더라구요. 동전 한닢 
틀리지 않게. 쌩노랭이 같으니. 그리고는 한푼도 남아 있는 게 없습디다. 유대인 놈들 
지독한 거 다시 알아봤어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쳐드시더니 모자챙 밑으로 사내를 무섭게 쏘아보셨다.
  "그분이 당신한테 줘야 할 돈을 주지 않았소?"
  사내는 얼른 표정을 바꾸었다. "아뇨, 아뇨^5,5,5^ 다 받았습니다. 나는 그 
노인네한테 아무 감정도 없어요. 잘 알지도 못하구요. 어기서 그 노인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늘 저 산악지대만 헤매고 다녔으니까."
  할아버지는 그 마대자루를 어깨에다 짊어지시고는 사내에게 물으셨다. "변호사 
사무실이 어디 있는지 압니까?" 그 뚱보 사내는 길 건너편을 가리켰다.
  "요 앞 오른쪽 건물 이층에 있습니다. 저기 저 건물들 사이에 있는 건물 이층."
  "고맙소." 할아버지는 그 말과 함께 문쪽으로 가셨다.
  뚱보사내는 우리 뒤를 따라나오면서 말했다. "우리가 그 유대 늙은이의 시체를 
발견하고서 집 안을 살펴보자니까 그 영감이 표딱지를 붙이지 않은 게 딱 하나 
있습디다. 초 한 자루. 근데 그 망할 영감탱이는 자기 곁에다 그걸 세워놓고 불을 
붙여놓았더라구요."
  나는 그 촛불이 무얼 의미하는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분이 돈을 왜 그렇게 정확히 계산해서 남겨놓으셨는가 하는 것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와인 씨는 절대로 노랭이가 아니었다. 알뜰한 분이셨지. 그분은 
당신이 갚아야 할 돈은 철저히 지불하셨으며 또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게 
뒷정리를 깔끔하게 해놓으신 것이다.
  우리는 거리를 가로질러 그 건물의 계단을 올라갔다. 할아버지는 윗부분에 유리창이 
달리고 그 위에 명패가 붙은 문을 노크하셨다.
  "들어와요^5,5,5^ 들어오시라니까요!" 그것은 마치 뭘 새삼 노크는 하고 그러느냐는 
소리처럼 들렸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한 사내가 책상 뒤의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머리가 
허옇게 세어 꽤 늙어 보였다. 그는 할아버지와 나를 쳐다보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할아버지는 모자를 벗으시고 걸머지고 있던 자루를 바닥에 내려놓으셨다. 
그 늙은 사내는 책상 앞으로 몸을 기울여 한 손을 내밀었다. "저는 테일러라고 합니다, 
조 테일러."
  "웨일즈라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그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나 흔들지는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그의 손을 놓고 우리의 서류를 테일러 씨에게 건네셨다.
  테일러 씨는 자리에 앉아 조끼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냈다. 그는 책상 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그 서류를 읽어내려갔다. 나는 그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는 낯을 찡그렸다. 
그는 한동안 그 서류를 들여다봤다.
  마침내 읽기를 마친 그는 그 서류를 접어서 할아버지한테 넘겨줬다. 그는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감옥에 가신 적이 있으시죠? 위스키를 제조한 것 때문에?"
  "한 번 간 적이 있소이다."
  테일러 씨는 몸을 일으켜 커다란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한동안 그 창을 통해 
거리를 내려다봤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할아버지는 쳐다보지 않은 채 
말했다. "저는 댁의 돈을 먹을 수는 있습니다만 그래 봤자 댁한테는 아무 도움이 안 
될 겁니다. 이런 일을 맡고 있는 정부관리들은 도무지 산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아ㅖ 이해하려고 들질 않는 거죠. 그 개자식들은 도무지 뭘 이해할 능력이 
없는 놈들입니다." 그의 시선은 창밖의 어느 먼 곳에 붙박혀 있었다. "그놈들의 그런 
태도는 인디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싸워봤자 질 게 뻔합니다. 
그자들이 저 소년을 데려가고 말 겁니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모자를 쓰셨다. 할아버지는 바지 앞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셔서 
그걸 열고는 손으로 안을 더듬으셨다. 할아버지는 일 달러를 꺼내 테일러 씨의 책상 
위에 올려놓으셨다. 우리가 그 방을 나갈 때까지 테일러 씨는 여전히 창밖만 
내다봤다.
  우리는 읍내를 빠져나왔다. 할아버지는 그 마대자루를 걸머지신 채 앞장서서 
걸으셨다. 와인 씨마저 돌아가셨으니 이제 우리한테는 아무 희망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전혀 힘들이지 않고 할아버지 뒤를 쫓아갈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가죽신을 질질 끌듯이 하며 느릿느릿하게 걸으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피곤하시다는 걸 알았다. 우리가 골짜기 길로 들어섰을 때 나는 할아버지께 여쭤봤다. 
"유대인 놈들이란 어떤 사람들이에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추셨다. 그러나 나를 쳐다보지는 않으셨다. 할아버지의 
목소리에도 역시 진한 피로가 베어 있었다. "나도 잘 모른다. 성경 어딘가에 그 
사람들에 관한 얘기가 씌어 있다는 것밖에는. 그 사람들은 먼 길을 헤매고 다녀야 
하는가 보더라."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리셨다. "우리 인디언들처럼^5,5,5^ 그 사람들도 
역시 나라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내려다보셨다. 할아버지의 
눈빛은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그 어둡고 퀭한 눈빛과 닮아 있었다.
  할머니는 등잔을 켜셨다. 우리는 마대자루에 담긴 것들을 부엌 식탁 위에 
쏟아놓았다. 식탁 위에는 할머니를 위한 빨갛고, 파랗고 노란 천들, 바늘과 골무, 실패 
등이 가득 쌓였다. 나는 할머니께 와인 씨가 당신이 들고 다니시던 등짐 속의 
물건들을 그 마대자루 속에 고스란히 쏟아부으신 모양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당신이 
보시기에도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거기에는 할아버지가 쓰실 만한 온갖 종류의 연장들도 있었고 또 책들도 있었다. 
셈본 책 한 권과, 조그만 검은 책 한 권 (할머니는 그 책 속에는 나한테 도움이 될 
만한 여러 가지 소중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소년, 소녀들과 
개들의 그림과 함께 글이 쓰여 있는 책 한 권이 그것으로, 특히 그림이 들어 있는 
책은 표지가 아주 매끄럽고 윤이 나는 것으로 보아 새로 사들인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와인 씨가 다음번 장삿길에 오르실 때 그걸 갖고 다니실 예정이었으리라 
추측했다. 와인 씨가 깜박 잊어버리시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자루 속에 들어 있는 
물건들은 그게 전부였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빈 자루를 들어 마루에다 던지자 쿵 하고 뭔가가 마룻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가 다시 자루를 들어올려 헤쳐보니까 거기서는 빨간 사과 한 
알이 굴러나왔다. 와인 씨가 사과를 잊지 않고 기억하시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할아버지는 거기서 또 다른 것 하나를 끄집어내셨다. 그것은 초였으며 거기에는 
표딱지 하나가 붙어 있었다. 할머니는 거기에 적힌 글자를 읽으셨다. "윌로우 
존"이라고 씌어진 글자를.
  우리는 제대로 먹지도 않고 대충 식사를 끝내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한테 
읍내에 다녀온 이야기, 곧 와인 씨에 대한 뒷얘기며 테일러 씨가 한 얘기 등등을 
해주셨다.
  할머니는 등잔을 불어 끄셨다. 우리는 창문을 통해 새들어오는 당빛에 잠긴 채 
말없이 벽난로 주위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벽난로 불도 피우지 않았다. 나는 연신 
흔들의자를 까딱거렸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나 때문에 상심하실 필요가 조금도 없다, 나는 기분이 
괜찮다, 나는 곧 그 고아원을 좋아하게 될 거며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는 생활도 
좋아하게 될 거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법을 만족시키게 
될 거고 그러면 나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될 거라고 했다.
  할머니는 사을 뒤에는 나를 법에게 넘겨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지만 할 말이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 셋은 그저 흔들의자만 느릿느릿 움직였으며 그 삐걱이는 소리는 
밤공기를 타고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울었다. 그러나 입 속에 
담요를 틀어박고 울었기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는 내가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셨다.
  우리는 그 사흘 동안을 될 수 있는 대로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보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오셨다. "좁은 길"에도 오르시고, "하늘에 
걸린 골짜기"에도 오르시고. 우리는 퍼렁이와 다른 개들도 함께 데리고 다녔다. 어느 
날 새벽에는 아직 깜깜한 상태에서 산등성이 길을 타고 올라가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거기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지켜봤다.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내 
비밀 장소를 보여드렸다.
  할머니는 음식을 만드실 때마다 매번 설탕을 엎지르는 실수를 저지르시곤 하셨다. 
덕분에 할아버지와 나는 옥수수 가루로 만든 쿠키를 원 없이 먹었다.
  떠나기 전날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모르게 지름길로 해서 네거리 가게로 갔다. 
젠킨스 씨는 빨갛고 파란 사탕상자가 묵은 것이기 때문에 육십오 센트만 받고 
팔겠다고 하셨다. 나는 그분께 돈을 치렀다. 나는 또 할아버지 몫으로 이십오 
센트짜리 빨간 막대사탕도 한 상자 샀다. 덕분에 청크 씨로부터 받은 일 달러는 십 
센트만 남고 다 나갔다.
  그날 밤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잘라주셨다. 할아버지는 인디언처럼 보이면 백인들 
틈에서 지내기 힘들 테니까 머리를 자르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아무래도 좋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내가 곧 윌로우 존 할아버지를 닮은 인상을 갖게 
될 거라고 말씀드렸다.
  이제까지 내가 신고 다녔던 가죽신은 따로 치워두어야 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옛날에 신고 온 구두 속에 쇳덩어리를 집어 넣으시고 그 위의 가죽을 망치로 두드려 
전체적으로 구두를 늘여 펴셨다. 그 동안 내 발이 자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할머니께 내가 이내 돌아올 거니까 돌아와서 바로 찾을 수 있도록 내 가죽신을 
내 침대 밑에 두겠다고 말씀드렸다. 내 사슴 가죽셔츠는 침대 위에 놔두었다. 내가 
없는 동안 내 침대를 사용할 사람이 없을 테니까 거기다 놔둬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나는 할머니 몫인 그 빨갛고 파란 사탕 상자는 옥수수 가루를 넣어두는 통 속에 
몰래 집어넣어 뒀으며 막대사탕 상자는 할아버지의 양복 윗주머니에 넣어 뒀다. 
할머니는 하루나 이틀 내에 그걸 발견하시게 될 거고 할아버지는 일요일이나 되야 
그걸 발견하시게 될 것이다. 나는 맛이 어떤가 알아보기 위해 할아버지의 상자에서 딱 
한 개만 꺼내서 먹어봤다. 맛이 기가 막혔다.
  내가 읍내로 가던 날 할머니는 그냥 집에 계시기로 했다. 할아버지는 먼저 집 앞 
빈터로 나가셔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셨다. 할머니는 현관에서 무릎을 꿇으시고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를 껴안으실 때처럼 나를 껴안아 주셨다. 나도 할머니를 
끌어안았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만 눈물이 조금 새나오고 말았다. 
나는 내 옛날 구두를 신었다. 헌데 그것은 할아버지가 늘여 펴주신 덕분에 발가락을 
펴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나는 가장 좋은 작업복과 하얀 셔츠를 입었으며 그 위에 
다시 와인 씨가 주신 노란 외투를 걸쳤다. 내가 짊어진 자루 속에는 할머니가 넣어 
주신 두 벌의 셔츠와 아래위 작업복 한 벌, 그리고 양말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내가 
곧 돌아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루 속에 든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께 곧 돌아올 거라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현관에서 무릎을 꿇고 나를 껴안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작은나무야, 
늑대별(시리우스 별을 말한다. 큰개자리의 으뜸가는 별로 붙박이별 중에서 가장 
밝으며 지구에서 7.8광년 떨어져 있다: 옮긴이)을 기억하니? 초저녁이면 제일 먼저 
보이는 별." 나는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네가 어디 있든 
간에 초저녁만 되면 늑대별을 쳐다보거라. 할아버지와 나도 쳐다볼 거니까. 우리는 늘 
그걸 잊지 않고 있을 거다." 나는 할머니께 나도 잊지 않을 거라고 말씀 드렸다. 그 
별은 와인 씨의 촛불과 비슷한 존재였다. 나는 할머니께 윌로우 존 할아버지한테도 
늑대별을 봐달라는 얘기를 전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할머니는 그러겠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내 두 어깨를 붙잡고 나를 쳐다보시며 말씀하셨다. "첼고키 사람들이 네 
엄마와 아빠를 결혼시켰다. 작은나무야 그걸 기억할 수 있겠지? 누가 무슨 말을 
하든^5,5,5^ 그걸 꼭 명심하고 있거라."
  나는 잊지 않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나를 돌려세우셨다. 나는 내 자루를 들고 
할아버지 뒤를 따라 빈 터를 떠났다. 통나무 다리를 건너면서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할머니는 현관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셨다. 할머니는 당신의 두 손을 들어 
가슴에다 대시고는 다시 그 두 손으로 나를 미는 시늉을 하셨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검은 양복 차림에 검은 구두를 신고 계셨다. 그래서 우리 둘은 무거운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산길을 내려갔다. 골짜기 길을 내려가려니 낮게 퍼진 소나무 
가지들이 내 팔을 잡았다. 그리고 참나무 가지 하나가 손가락들을 길게 뻗쳐 내 
어깨에 짊어진 자루를 잡아당겼으며 감나무 가지 하나는 내 다리를 붙잡았다. 
실개천은 한층 더 소란스러운 소리와 더불어 거세게 치달리기 시작했다. 까마귀 한 
마리가 까옥까옥 하고 울며 우리 앞에서 급강하하여^5,5,5^ 높은 가지 위에 
내려앉아서는 계속 울어대었다. 그들 모두는, "가지 마, 작은나무야^5,5,5^ 가지 마, 
작은나무야^5,5,5^"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바람에 눈물이 앞을 가려 나는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바람이 괴로운 신음소리와 
함께 거세게 일면서 내 노란 외투자락을 잡아당겼다. 길바닥을 온통 뒤덮은 시든 
찔레덩굴들이 내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어디선가 문상비둘기 한 마리가 처량한 
목소리로 길게 울어댔는데 메아리가 들려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는 그 새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 산길을 내려오느라 여간 고생하지 않았다.
  읍내의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는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 나는 내 자루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우리는 법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께 내가 도와드리지 못하게 됐으니 혼자서 어떻게 위스키를 만드실지 
모르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이제 좀 힘들게 됐다며 혼자서 두 사람 몫을 할 수밖에 
더 있느냐고 하셨다. 나는 내가 금방 돌아오게 될 거라고, 잠시만 두 사람 몫을 하시면 
될 거라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도 내가 곧 돌아오게 될 거라고 하셨다. 그런 다음 
우리는 침묵을 지켰다.
  대합실 안, 벽에 걸린 시계가 똑딱거리며 부지런히 가고 있었다. 나는 시계를 볼 줄 
알아 할아버지께 시간을 알려드렸다. 대합실 안에는 남자 한 사람과 여자 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불황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돈 쓰기를 무서워해서 
여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는 우리가 사는 산악지대의 산줄기들이 내가 가는 고아원 있는데까지 뻗어 
있느냐고 할아버지께 여쭤봤다. 할아버지는 당신도 그 고아원에는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좀더 기다렸다.
  이윽고 그 여자가 나타났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회색 드레스를 
입고 우리 오두막에 나타났었던 그 여자. 그녀가 우리쪽으로 다가오자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녀는 할아버지께 몇 장의 서류를 건넸다. 할아버지는 
그것들을 주머니에다 구겨 넣으셨다. 그녀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말썽이 일어나는 걸 원치 않아요. 그러니 순순히 따르도록 하세요. 따라야 할 건 
따라야죠. 그게 모두를 위해서 좋은 겁니다." 나는 그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 여자는 아주 사무적이었다. 그녀는 자기 지갑에서 줄 하나를 
꺼내 내 목에다 붙잡아맸다. 그 끝에는 와인 씨의 표딱지를 닮은 표찰이 달려 있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녀를 따라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대합실 뒤편으로 갔다.
  나는 내 자루를 어깨에다 짊어졌다. 할아버지는 버스 문 곁에서 무릎을 꿇으시고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를 끌어안으실 때처럼 나를 끌어안으셨다. 할아버지는 오래오래 
나를 안고 계셨다. 나는 할아버지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바로 돌아오게 될 
거^36^예요." 할아버지는 알아들으셨다는 듯이 나를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여자가 말했다. "이제 갈 시간이에요." 나는 그게 할아버지더러 하는 소린지 나한테 
하는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일어나셨다. 할아버지는 돌아서서 
걸어가셨다. 할아버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으셨다.
  나 혼자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음에도 여자는 굳이 나를 들어 버스 발판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버스 운전사더러 내 목에 걸린 표찰을 읽어봐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그걸 읽을 수 있게끔 그의 앞에 똑바로 섰다.
  나는 버스 운전사에게 나한테는 표가 없고 또 버스값도 갖고 있지 않으니 이걸 타야 
할지 어떨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소리내어 웃으며 그 여자가 자기한테 내 
버스표를 줬다고 했다. 버스를 탄 사람은 셋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혹시나 
할아버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버스 뒤편의 창가 쪽에 자리잡았다.
  이윽고 시동을 건 버스는 서서히 정류장을 빠져나갔다. 그 회색옷을 입은 여자가 
정류장에 서서 우리 쪽을 지켜보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버스는 거리를 
달려갔다. 어디에서도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할아버지는 버스 정류장 부근의 모퉁이에서 계셨다. 할아버지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계셨고 당신의 두 팔은 허리깨에서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버스는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나는 창문을 들어올리려고 애썼지만 들어올리는 
방법을 몰라 아무리 해도 안 되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나를 
보지 못하셨다.
  버스가 할아버지 곁을 지나치자 나는 버스 맨 뒤로 달려가 뒤창으로 내다봤다. 
할아버지는 아직도 거기 서서 우리 버스 쪽을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나는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안녕히 계세요, 할아버지. 곧 돌아올게요!" 할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나는 더 크게 소리쳤다. "금방 돌아올게요. 할아버지!"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냥 서계시기만 했다. 석양빛 속에서 점점 작아지면서. 할아버지의 어깨는 
구부정했으며 아주 늙어보였다. 
    @[  늑대별

  버스는 얼마나 먼 거리를 달렸는지 도통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오래오래 
달렸다. 나한테 우리가 얼마만큼 왔는지 얘기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같이 타셨다 해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으리라.
  나는 키가 작아 좌석 등받이 너머로는 볼 수가 없어 옆 차창을 통해서만 내다봤다. 
집과 숲들이 무슴히 차창 곁을 흘러갔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서 이윽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통로 쪽으로 자리를 옮겨 고개를 옆으로 빼고 버스 불빛에 비치는 도로를 
지켜봤다. 그렇게 한동안 지켜봐도 매양 보이는 건 도로뿐이었다.
  우리는 어떤 읍내의 버스 정류장에 서서 한동안 머물렀다. 하지만 나는 버스에서 
내리지도 내 좌석에서 벗어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는 편이 안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읍내를 떠난 뒤론 별로 볼 만한 게 없었다. 나는 내 무릎 위에 얹어 놓은 자루를 
꼭 끌어안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안고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퍼렁이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나는 꾸벅꾸벅 졸았다.
  버스 운전사가 나를 깨웠다. 벌써 아침이었으며 밖에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버스는 고아원 정문 앞에 멈춰 서 있었으며 내가 버스에서 내리자 머리가 
허옇게 센 부인 하나가 우산을 받고 서서 나를 맞았다.
  그녀는 땅바닥에 끌릴 정도로 검은색 긴 드레스를 입고 있었으며 얼핏 보기에는 
회색 옷을 입은 여자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별로 닮은 데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허리를 굽히고서 내 표찰을 붙잡고 
들여다봤다. 그녀가 버스 운전사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자 그는 버스 문을 닫고 
떠나갔다. 그녀는 허리를 펴고 잠시 얼굴을 찌푸리더니 한숨처럼 말을 뱉어냈다. "날 
따라오너라." 그녀는 철문으로 해서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내 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철문 양켠에는 커다란 느릅나무들이 서서 이파리를 살랑거리며 뭐라고 소곤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앞만 똑바로 보고 걸었으나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녀가 내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 걸로 미루어 나에 관해 자세히 알고 있지 않나 싶었다.
  우리는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어떤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를 쫓아가는 일은 
누워서 떡먹기였다. 그 건물 안의 어떤 방문 앞에 이르자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너는 이제 목사님을 뵙게 된다. 목사님 앞에서는 입을 열어서도 울어서도 안 되고 
항상 공손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넌 목사님이 너한테 물어보실 때(만) 말을 할 수 
있다. 알겠니?" 나는 알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따라 넓고 어둠침침한 홀을 가로질러 어떤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부인은 나를 그의 책상 앞에 있는 
밋밋한 의자에 앉혔다. 그녀는 발꿈치를 들고 소리나지 않게 그 방을 나갔다. 나는 내 
마대자루를 무릎 위에 얹어 놓았다.
  그는 서류를 읽느라 분주했다. 그의 얼굴에는 붉으레한 빛이 감돌았는데 
반짝반짝하게 윤이 나는 것으로 미루어 틈만 나면 세수를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는 귀 근처에만 터럭이 몇 오리 보일 뿐 거의 완전한 알대머리였다.
  방 벽에는 시계 하나가 걸려 있었으며 나는 지금 시간이 몇 시인 줄 알았지만 그걸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목사 뒤편에 있는 창문으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윽고 목사는 고개를 쳐들었다. "다리 흔들지 마라." 그의 말투는 아주 
딱딱했다. 나는 즉각 다리 흔드는 걸 멈추었다.
  그는 서류에 대해 좀더 연구했다. 이윽고 그는 서류를 내려놓고 연필 한 자루를 
쥐더니 양손으로 그걸 빙빙 돌렸다. 그가 책상 위에 그의 양 팔꿈치를 올려놓고 몸을 
앞으로 숙이는 바람에 나는 그를 쳐다보기 위해 얼굴을 바짝 치켜들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입을 열었다. "요즘은 아주 어려운 때다." 그는 마치 이 어려운 시절과 그가 
개인적으로 깊은 상관이 있는 듯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지금 정부는 이런 
사업에까지 돈을 대줄 만한 여유가 없다. 우리의 건전한 상식으로 판단해 본다면 
도저히 너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우리 교단은 너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교단이 건전한 상식을 벗어나 나를 받아들이는 잘못을 저지른 것을 아주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내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으므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연필을 빙빙 돌렸다. 그 연필심이 너무 길게 나와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는 알뜰한 사람이 아닌 듯했다. 나는 그가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고 있지만 절약할 
줄 모르는 사람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앞으로 너는 우리 
교단에서 부설한 학교에 다니게 된다. 그리고 너한테는 자잘한 일들이 몇 가지 주어질 
거다. 여기 있는 아동은 모두 다 자기 할 일을 갖고 있으니까. 아마 네가 이제까지 
해보지 않은 일일 거다. 또한 너는 규칙들을 지켜야 한다. 그걸 어길 때에는 벌을 
받게 된다." 그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우리는 한번도 인디언이나 혼혈아 등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사생아도. 헌데 네 엄마와 아빠가 혼인을 하질 않았으니 
우리로서는 생전 처음으로 사생아를 받게 된 셈이다."
  나는 그에게 할머니의 말씀을 들려줬다. 체로키 사람들이 우리 엄마와 아빠를 
결혼시켰다는 사실을. 그는, 체로키 사람들이 뭘 했건 간에 자기네는 그런 건 도통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왜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말을 하느냐고 했다.
  그는 이런 저런 일로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네 교단은 만인에게 친절히 
대하고 있으며 심지어 동물에게까지도 자비를 베푸는 걸 신조로 삼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성경에 사생아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 나와 있으므로 나는 교회의 
낮예배나 저녁 예배에 참석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교회 맨 뒤편에 죽은 
듯이 앉아 있기만 한다면 설교를 들으러 와도 좋다고 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이미 자잘한 교리 논쟁 따위는 무시하고 지내기로 했었으므로 나는 
그의 그런 말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책상 위의 서류를 들여다보면서 할아버지는 아이를 양육하기에 적당치 않은 
사람이며 또 나는 거의 교육다운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라고 규정했다. 나는 
그의 말에 전혀 찬동할 수 없었지만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감옥에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나도 과거에 하마터면 교수형을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내 
말에 그는 연필 돌리기를 멈추었다. 그의 입이 딱 벌어졌다. "네가 뭘 어쨌다구?" 
그는 소리쳤다.
  나는 과거에 법이 나를 목매달을 뻔한 적이 있었다, 허나 나는 날쌔게 도망쳐 
버렸다, 만일 개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목매달려 죽었을 거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증류기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할아버지와 내가 
위스키 사업에서 손을 떼야 할 테니까.
  그는 의자에 털석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마치 울고 있는 사람처럼. 
그는 머리를 앞뒤로 흔들며 말했다. "이게 잘못된 일이라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어)." 
그는 같은 소리를 두세 번 반복했다. 나는 뭐가 잘못된 일이라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계속 머리를 흔들어서 나는 그가 울고 있으리라고 
단정했다. 나는 이 모든 일에 대해 그만큼이나 유감스럽게 느끼기 시작했으며 공연히 
교수형 당할 뻔한 얘기를 꺼냈다고 후회했다, 우리의 이런 상태는 한동안 계속됐다.
  나는 그에게 울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일로 인해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았으며 그들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링거가 죽었는데 그건 
순전히 내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머리를 치켜들더니 벼락같이 소리질렀다. "입 닥치지 못 해! 난 너한테 
물어보지 않았어!" 그건 사실이었다. 그는 서류를 집어들고 말했다. "우린 
지켜보겠다^5,5,5^. 주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애써 볼 거야. 그래 봤자 넌 감화원(불량 
소녀 소년을 선도하는 기관: 옮긴이)으로 가게 될 테지만 말야."
  그는 책상 위에 있는 조그만 초인종을 눌렀다. 아까 그 부인이 총알같이 나타났다. 
그 부인은 계속 문 밖에 서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내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나는 내 자루를 들어 어깨에 짊어 지고는 그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목사님이라는 말은 붙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아닌데 굳이 모험을 하는 건 어리석다는 할아버지의 말씀마따나 비롯 내가 
사생아라서 지옥에 간다 할지라도 공연히 "목사님"이니 
"^456,356,356,356,123^씨"라거니 하는 식으로 불러서 지옥에 가는 길을 앞당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방을 떠날 때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와 창문을 뒤흔들었다. 그 바람에 
부인은 걸음을 멈추고 창문 쪽을 쳐다봤고 목사도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나는 
산이 바람을 통해 내 안부를 묻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 침대는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침대들과 뚝 떨어져 있었다. 내 
침대와 바싹 붙어 있는 한 침대만 빼고는. 그 방은 스무 명 내지 서른 명쯤되는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켰다. 그들 대부분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내가 할 일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그 방을 청소하는 것이었다. 나는 별 어려움 없이 
그 일을 해냈다. 그러나 부인이 보기에 침대 밑이 깨끗하지 않을 때는 다시 한번 
청소를 해야 했다. 이렇게 두 번 청소하는 일은 거의 일상사가 되다시피했다.
  윌번은 내 바로 곁에 놓여 있는 침대의 임자였다. 그애는 나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았다. 열한 살쯤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는 자기가 열두 살이라고 했다. 그는 키가 
크고 깡말랐으며 얼굴이 주근깨 투성이였다. 그는 이제까지 그 누구도 자기를 양자로 
데려가려 한 적이 없었으며 아마도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거기서 살아야 할 것 
같다며 자기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말해싿.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그 고아원을 
나가게 되면 다시 돌아와 거기다 불을 확 싸질러 버릴 거라고 말했다.
  윌번의 오른쪽 다리는 안짱다리였다. 그것은 안쪽으로 아주 심하게 휘어 그가 글을 
때면 그 발긑이 왼쪽 다리를 스치곤 했으며 오른쪽 상체가 늘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곤 
했다.
  나와 윌번은 아이들이 마당에서 어떤 놀이를 하고 놀든 간에 절대로 그대들 틈에 
끼어들지 않았다. 윌번은 달릴 수가 없어서 그랬고 나는 또 내가 너무 어려 노는 법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다. 윌번은, 자기가 그런 일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며 놀이 같은 건 애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했다. 옳은 말이었다.
  나느 그 참나무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내가 속으로만 이야기했기 때문에 윌번은 
그걸 알지 못했다. 겨울이 오면서 나한테 이야기를 해주던 이파리들이 모조리 떨어져 
버리자 이번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대신 말을 걸어왔다.
  참나무는 자기가 무척이나 졸립지만 산에 있는 나무들에게 내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늘 깨어 있겠다고 했다. 참나무는 자기가 바람을 통해 내 소식을 전한다고 했다. 
나는 참나무에게 윌로우 존 할아버지께도 내 소식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참나무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참나무 밑에서 파란 구슬 한 개를 주웠다. 그걸 한쪽 눈에다 대고 다른 
한족 눈을 감으면 세상 모든 것이 푸르게 보인다. 나는 그때까지 구슬을 본 적이 
없었으므로 구슬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는데 윌번이 그걸 
가르쳐 줬다.
  윌번은, 원래 구슬이라는 건 들여다보기 위하 것이 아니라 땅바닥에서 굴리며 노는 
것이다, 헌데 내가 그 구슬을 굴리며 놀다간 누군가가 와서 빼앗아 갈거다, 그건 
누군가가 잃어버린 것이니까 굴리지 말고 그저 들여다보기만 하는 게 좋을 거다, 라고 
했다.
  윌번은, 주운 사람이 임자며 잃어버리는 놈이 병신이다, 그러니 네가 가져도 
상관없다, 라고 했다. 나는 그걸 내 자루 속에 넣어뒀다.
  이따금 한번씩 고아원에 있는 모든 소년들이 사무실 곁에 딸린 넓은 방 안에 
집합하여 일렬횡대로 서 있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점잖은 신사나 부인들이 
그 앞을 지나가면서 소년들을 요모조모로 살펴본다. 그들은 바로 양자로 들일 아이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들을 맡고 있는, 그 머리가 허옇게 센 부인은 나더러 그 
대열에 끼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거기서 빠졌다.
  나는 문 밖에서 그들을 지켜보곤 했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도 나는 누가 양자로 
뽑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네가 원하는 소년이 발견되면 
그애 앞에 서서 이런저런 말을 시켜보고는 바로 사무실로 직행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전 가야 윌번에게는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
  윌번은, 자기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여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줄 서는 날만 오면 그는 늘 깨끗한 셔츠와 
작업복으로 갈아입곤 했으니까. 소년들이 줄을 서면 나는 윌번을 주시하곤 했다.
  그는 줄을 선 상태에서 사람들이 자기 앞으로 지나갈 때마다 쌩긋 웃어 주곤 했으며 
자기의 안짱다리를 성한 다리 뒤편으로 살짝 감추곤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줄을 선 날 밤에면 윌번은 늘 침대 위에다 오줌을 쌌다. 그는 
자기가 일부러 그러는 거다, 그 쌍놈의 양자들이기 행사에 대해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고아원 사람들에게 분명히 알려주기 위해 그러는 거다, 라고 했다.
  윌번이 침대에다 오줌을 쌀 때마다 머리 허연 부인은 윌번에게 매트리스와 담요를 
들고 나가 햇볕에 말리라고 지시했다. 그는 만일 고아원 사람들이 자기를 정 귀찮게 
굴면 매일 밤마다 오줌을 쌀 거라고 말했다.
  윌번은 나더러 어른이 되면 뭘 할거냐고 물었다. 나는 우리 할아버지나 윌로우 존 
할아버지 같은 인디언이 되어 산에서 살 거라고 대답했다. 윌번은 자기는 은행이나 
고아원 같은 곳을 털 거며 돈 넣어두는 곳만 알 수 있다면 교회도 털 작정이라고 
해싿. 그리고 그는 은행에 있는 놈들이고 고아원에 있는 놈들이고 간에 자기 눈에 
걸리는 놈들은 싸그리 다 죽여 버릴 작정인데 나만은 죽이지 않겠다고 했다.
  윌번은 밤이면 늘 울었다. 그러나 나는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가 자기 입을 
담요로 틀어막고 우는 것으로 미루어 남들이 아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확실했기 
때문이다. 나는 윌번에게 그가 그 고아원만 나가게 되면 그의 다리를 똑바로 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내 파란 구슬을 줬다.
  그 고아원에서는 황혼 무렵, 곧 저녁밥 먹기 직전 시간에 저녁 예배를 드리곤 
했는데 나는 그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저녁식사도 덩달아 거르곤 했다. 그 덕분에 
나는 매일 저녁마다 늑대별을 아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어스름녘만 되면 그것은 
희미하게 반짝이기 시작하다가 어둠이 짙어질수록 점점 더 밝아져 갔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윌로우 존 할아버지도 그걸 지켜보시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윌번에게 그가 어느 하루 저녁식사를 거를 용의만 있다면 나와 함께 
늑대별을 볼 수 있으리라고 얘기해 줬지만 고아원 선생들이 번번이 그를 교회로 끌고 
가곤 했으며 또 그가 저녁식사를 한 번도 포기하지 않는 바람에 그는 끝내 그 별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처음 그 별을 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낮 동안에 저녁에 별을 보면서 생각할 
내용들을 미리 궁리해 두려고 했다. 그러나 곧 그것이 불필요한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다른 생각할 필요없이 그저 그 별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다. 할아버지는 그 
별을 통해 당신과 내가 산꼭대기로 올라갔을 때의 추억을 내게 봬 주셨다. 아침이 
탄생하는 광경, 아침의 첫 태양빛이 얼음에 부딪치면서 찬연한 광채를 발하던 그 
광경에 관한 추억을. 나는 할아버지가 "아침이 태어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그곳 창가에 붙어앉아 말하곤 했다. "그래요 
할아버지, 아침이 태어나고 있어요!"
  할아버지와 나는 늑대별을 지켜보면서 여우사냥하던 시절로 되돌아 가기도 했다. 
퍼렁이와 작은 빨강이, 리핏, 그리고 모드와 더불어. 할아버지와 나는 리핏 때문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할머니는 식물뿌리를 캐러 다니던 시절의 추억, 도토리 가루에 설탕을 엎지르시던 
때의 추억 등을 보내 주셨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내가 옥수수밭에 엎드려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우리집 나귀 샘처럼 우는 시늉을 내는데 불쑥 나타나셨던 때의 추억도.
  할머니는 내 비밀 장소 주변의 선연한 영상, 곧 갈색, 빨강, 노랑 이파리들이 모두 
떨어져 내려 현란한 빛깔로 지면을 덮은, 그리고 붉은 거먕 옻나무들이 나 이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이글이글 타오르는 횃불의 고리처럼 그곳을 빙 둘러싼 영상도 
보내 주셨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고산지대로 몰려든 사슴들의 영상을 보내 주셨다. 그분과 
나는 내가 그분의 윗저고리 주머니에 개구리를 넣어 두었던 때를 생가가하고 즐겁게 
웃었다 .그러나 이윽고 그분의 영상은 격렬한 소용돌이에 감싸이곤 했다. 그분이 무슨 
일로 흥분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미친듯한 분노에 휩싸이셨다.
  나는 낮시간이면 늘 구름과 태양의 움직임을 지켜보곤 했다. 구름이 끼면 늑대별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깔리는 저녁이면 나는 창가에 서서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그곳에 있는 학교의 일학년 반에 들어갔다. 우리 일학년은 내가 이미 와인 
씨에게 배워서 알고 있는 정도의 계산법을 익히고 있었다. 뚱뚱한 거구의 여자가 우리 
반을 맡고 있었는데 그녀는 아주 엄숙하고 진지했으며 바보 같은 짓을 하거나 
장난치는 짓 따위는 추호도 용납치 않았다.
  한번은 그녀가 한 무리의 사슴들이 냇물에서 나오는 광경을 담은 그림 한 장을 
우리한테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 그림 속의 사슴들은 껑충껑충 뛰고 있었으며 마치 
서둘러 물 밖으로 나오려고 서로를 재촉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 그림을 
쳐들고는우리에게 "이 사슴들이 뭘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하고 물었다.
  한 아이가 그 사슴들은 뭔가를 피해, 일테면 사냥꾼 같은 사람을 피해 도망치는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또 다른 아이가 사슴은 물을 싫어하기 때문에 어서 빨리 
건너려고 서두르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애 말이 옳다고 했다. 그때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녀가 손짓하자 나는 그 사슴들은 짝짓기를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건 수사슴이 암사슴 위로 뛰어오르는 걸 보면 알 수 있으며 또 그 사슴들을 
둘러싸고 있는 덤불과 나무의 모양을 보면 그때가 바로 사슴들이 짝짓기를 하는 
철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고 했다.
  내 말에 그 뚱뚱한 여자는 벼락맞은 사람 같은 표정을 했다. 그녀는 입을 딱 벌리고 
서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반 아이들은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녀는 
손으로 자기 이마를 찰싹 갈기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았으며 그 바람에 그림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그녀가 어디가 아픈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한두발짝 뒤로 비슬비슬 물러서다가 겨우 중심을 잡고 정신을 수습했다. 
이윽고 그녀는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일순 교실 안은 침묵으로 얼어붙었다. 그녀는 
내 멱살을 움켜잡고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미친듯이 
소리쳤다. "나는 (알았어야) 했었어! 우리 (모두)가 알고 있어야 했어! ^5,5,5^ 
너한테서 그 추잡하고^5,5,5^ 음탕하고^5,5,5^ 더러운 수작들이 나오리라는 걸^5,5,5^ 
알고 있어야 했어^5,5,5^ 이 더러운 사생아 같은 놈아!"
  나는 그녀가 왜 그렇게 난리를 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녀에게 뭐라고 
해명을 하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더욱 거세게 흔들다가는 내 목 뒤를 
움켜쥐고 나를 방 밖으로 끌고 나갔다.
  우리는 목사 방 곁에 딸린 넓은 홀로 내려갔다. 그녀는 나를 문 밖에 세워 두고 
목사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들이 뭐라고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정확히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목사 방을 나온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휭하니 홀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리고 목사가 문 앞에 나타났다. 그는 착 깔린 음성으로 말했다. "들어와." 
나는 들어갔다.
  그의 입술은 마치 히죽 웃기라도 하려는 듯이 벌어져 있었으나 그의 얼굴 어디에도 
웃음기 같은 건 없었다. 그는 혀로 연방 입술을 핥았다. 그의 얼굴은 땀으로 젖어 
있어싿. 그는 내게 셔츠를 벗으라고 했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가 말했다. "너는 악의 종자다. 그래서 나는 너한테 회개하는 마음 같은 건 
없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주님의 은총으로 너는, 이후 다시는 기독교인들한테 악한 
짓을 하지 못하게끔 따끔한 가르침을 받게 될 것이다. 회개하는 마음 같은 걸 가지게 
할 수는 없어도^5,5,5^ 울게 할 수는 있지!"
  그는 길다란 막대기로 내 등짝을 후려쳤다. 처음에 그건 되게 아팠다.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전에 내 발톱 하나가 빠졌을 때^5,5,5^ 할머니는 인디언들이 고통을 참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인디언은 자기의 욱신을 벗어나서 그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지켜본다).
  육신의 마음은 육신의 고통만을 느끼며 영적인 마음은 영적인 고통만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육신의 마음을 잠재웠다.
  그 막대기는 사정없이 내 등짝을 치고 또 쳤다. 잠시후 그것은 부러져 나갔다. 
목사는 또 다른 막대기를 가져왔다. 그는 헐떡이면서 말했다. "악은 쉽게 굴복하는 
법이 없지." 그는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주님의 은총으로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고야 만다."
  그가 새로운 막대기로 미친듯이 내 등짝을 후려갈기는 바람에 마침내 나는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섰다. 할아버지는, 사람이 두 
다리로 버티어 설 수 있는 한 별일은 없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말씀하셨었다.
  마루바닥이 조금 기우뚱하게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견디어 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목사는 심하게 헐떡였다. 그는 나더러 셔츠를 입으라고 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셔츠가 등에서 흘러나온 피를 어느 정도 빨아들이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다리를 타고 
흘러내려 내 신발 속에 흥건하게 괴었다. 바지 속에 속옷을 입지 않은 탓으로 
중간에서 그걸 흡수해 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신발 속이 질척해졌다.
  목사는 나에게 일 주일 간 저녁을 먹을 수 없다고 했다. 어차피 저녁은 굶고 있었던 
터라 나한테는 별 상관없는 얘기였다. 그는 또 일주일 간 수업을 받을 수 없으며 그 
동안 내가 있는 방을 떠나서도 안 된다고 선언하고는 나를 돌려보냈다.
  나는 바지 멜빵을 어깨에다 거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녁 어스름녘이면 내 
작업복 바지 자락을 움켜쥐고 창가에 서서 늑대별을 쳐다보곤 했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윌로우 존 할아버지께 이번 일에 관해 말씀드렸다. 나는 
내가 뭘 잘못해서 그 뚱뚱한 부인을 그토록 성나게 했는지, 그리고 목사를 그토록 
격분하게 만들었는지 도통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고칠 마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목사는 내가 악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잘못을 고치는 방법을 
모르므로 고칠래야 고칠 길이 없다는 소리를 했다고 그분들께 말씀드렸다.
  나는 할아버지께, 나로서는 현재의 이런 상황을 달리 어째해 볼 길이 없을 걸 
같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내가 늑대별을 보다가 잠이 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녁을 먹고 돌아온 윌번이 
창 밑에 쓰러져 잠이 든 나를 깨웠다. 그는 나를 보러오기 위해 서둘러 저녁을 먹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엎드려서 잠이 들었었다.
  윌번은 자기가 커서 고아원을 떠난 뒤에는 고아원과 은행 등을 닥치는 대로 털 건데 
그때 우리 고아원의 목사도 죽여 버릴 거라고 했다. 그는 자기도 나처럼 지옥에 가는 
것 따위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뒤로 저녁나절 늑대별이 나올 때만 되면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윌로우 존 
할아버지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이제는 그분들이 보내 주는 영상도 
보이지 않았고 그분들의 말씀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분들께 집으로 가고 싶다는 
말만 했다. 늑대별은 불그스름해졌다가 하얘졌으며, 이윽고 다시 불그스름해졌다.
  사흘밤이 지난 뒤 늑대별은 짙은 구름 속으로 숨어들었다. 바람이 가느다란 장대를 
쓰러뜨리면서 고아원은 일시에 어둠 속에 잠겨 들었다. 나는 그분들이 내 말을 전해 
들으셨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분들이 오시리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겨울은 계속 흘러갔다. 바람은 
더욱더 날을 세웠으며 밤이면 고아원 건물을 온통 뒤흔들며 울었다. 어떤 애들은 그 
소리를 싫어했지만 나는 좋아했다.
  이제 밖에 나가면 나는 종일 참나무 밑에 서서 시간을 보냈다. 참나무는 잠든 
듯했다. 하지만 참나무는 나 때문에 잠자지 않는다고 했다. 참나무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느릿느릿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어느 날 늦은 저녁, 우리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나는 얼핏 할아버지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커다란 검은 모자를 쓴 키 큰 사람이었다. 그는 고아원 
밖의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점점 나한테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나는 철책 있는 
데로 달려가서 소리쳤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러나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철책을 따라 달려갔지만 그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나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할아버지! 나예요, 작은나무예요!" 그러나 그는 들리지 않는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머리가 허연 부인은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온다고 했다. 그녀는 그 날이 오면 
모두가 행복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게 될 거라고 했다. 윌번은, 자기네가 교회당 
안에서 온갖 노래들을 다 부른다, 자기네는 여러 가지 노래들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하얀 악보들을 들고 병아리 새끼들처럼 목사 주위에 빙 둘러선 채 노래부르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나는 교회당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머리 허연 부인은 샌디 클로즈(연갈색 발톱이란 뜻. 주인공은 산타클로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잘못 알아들었다: 옮긴이)가 올거라고 했다. 그러자 윌번은 다 
똥 같은 수작이라고 했다.
  사내 둘이 나무 한 그루를 들고 왔다. 그들은 정치가처럼 차려입고 있었다. 그들은 
연신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얘들아 여길 봐라. 너희들을 위해 갖고 온 거다, 멋있지 
않니? 어때 멋있지? 너희들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갖게 된 거다!"
  머리 허연 부인은 아주 멋있다고 말하고는 우리더러도 그 정치가들에게 "아주 
멋있어요, 고마워요"라고 말하라고 시켰다. 그래서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멀쩡하게 잘 자라는 그 나무를 벨 하등의 이유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숫소나무였으며 홀에 우두커니 서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 정치가들은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바빠서 이만 가봐야겠다며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빈다고 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자기네가 들고 온 빨간 종이를 
나눠주면서 그걸 나무에다 걸라고 했다. 윌번과 나를 빼고는 모두 그렇게 했다.
  정치가들은 고아원 정문을 떠나면서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소리쳤다. 우리 모두는 
한동안 그 나무 주위에 둘러서서 그 나무를 쳐다보았다.
  머리 허연 부인은 내일은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내일 낮쯤에 샌디클로즈가 선물을 
갖고 올 거라고 했다. 윌번은 "샌디 컬로즈가 크리스마스 이브 낮에 오는 건 웃기는 
일 아녜요?" 라고 했다. 그러자 머리 허연 부인은 낯을 찌푸렸다. "윌번, 너는 해마다 
그런 소리를 하는구나. 샌디 클로즈가 여러 곳을 다녀야 한다는 것쯤은 너도 잘 알고 
있잖니. 그분과 그분을 돕는 분들도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는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보낼 권리를 갖고 있는 거야. 너는 그분들이 밤시간이든 낮시간이든 간에 아무튼 
시간을 내서 우리를 찾아와 선물을 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해야 해."
  윌번은 중얼거렸다. "웃기구 있네."
  과연 다음날 낮이 되니까 네다섯 대의 차들이 몰려왔다. 차문이 열리면서 
선물꾸러미를 한아름씩 안은 신사와 부인네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머리에 
우스꽝스럽게 생긴 조그만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그들 중의 몇몇은 조그만 종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그 종을 울리며 소리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들은 이 소리를 거듭 
외쳤다. 그들은 자기네가 샌디 클로즈 조수들이라고 했다. 드디어 샌디 클로즈도 
차밖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붉은 상의에 벙벙하게 부풀어오른 붉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의 허연 수염은 
와인 씨의 수염과는 달리 진짜가 아니었다. 그것을 그의 입언저리 밑으로 축 늘어져 
있었으며 그가 말을 해도 그것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어흠! 어흠!"했다. 그는 자꾸 
이 소리를 반복했다.
  머리 허연 부인은 우리 모두가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말했으며 그들의 "메리 
크리스마스!"에 역시 "메리 크리스마스!"로 답했다. 우리 모두도 그녀가 한 말을 
따라서 했다.
  한 부인이 나한테 오렌지 한 개를 줘서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녀는 가지 
않고 내 앞에 서서 말했다. "오렌지를 싫어하니? 맛있는데."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그걸 까서 먹었으며 그녀는 내가 먹는 모습을 내내 지켜봤다. 그것은 맛있었다. 나는 
다시 그녕게 고맙다고 하면서 아주 맛있는 오렌지라고 말해줬다. 그녀는 또 먹고 
싶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먹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윌번은 사과 한 개를 받았다. 그건 와인 씨가 늘 호주머니에 
넣어 두고는 깜박 잊어버리시곤 했던 사과보다 훨씬 작았다.
  나는 내 오렌지를 다 먹지 말고 조금 남겨둘걸 하고 후회했다. 그 부인이 어서 
먹으라고 재촉하지만 않았더라면 나는 그걸 먹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가 윌번이 사과를 
먹을 때 서로 조금씩 쪼개서 바꿔 먹었을 것이다. 나는 사과를 아주 좋아했으니까.
  부인네들은 일제히 종을 흔들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샌디 클로즈가 선물을 
주신답니다! 모두 둥그렇게 모여 서요! 샌디 클로즈가 여러분들한테 주실 것이 
있답니다!" 우리는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섰다.
  샌디 클로즈가 한 사람씩 순서대로 이름을 부르면 당사자는 샌디 클로즈 앞으로 
가서 선물을 받았다. 샌디 클로즈는 선물을 주고 난 다음에는 으레 아이들의 머리를 
두드려 주거나 쓰다듬어 주었으며 그럴 때 우리는 잠자코 서 있다가 그런 동작이 
끝나면, "감사합니다"하는 인사말을 하고 제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선물을 받고 나면 부인네들 중에서 한 사람씩 꼭꼭 나서서 "선물을 펴보렴! 그 멋진 
선물을 펴보지 않을 거니?"하고 소리치곤 했다. 그런데 선물 받은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그러한 행위는 큰 혼잡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부인네들이 선물 받은 
아이들을 각각 하나씩 맡아서는 아이 뒤를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그런 소리들을 
외쳐댔기 때문이다.
  나도 선물을 받고 샌디 클로즈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는 "어흠! 어흠!"하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 부인이 튀어나와 나더러 그 선물을 펴보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서둘러 그걸 벗겨내려고 애썼으나 잘 되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포장지를 벗겨내는 데 성공했다.
  포장지 않에는 짐승 그림이 그려진 마분지 상자가 들어 있었다. 윌번은 거기 그려진 
게 사자라고 했다. 그 상자에는 구멍이 하나 나 있었고 그 구멍 밖으로 나와 있는 
줄을 잡아당기면 무슨 소리가 났다. 윌번은 그게 사자 울음소리라고 했다.
  그런데 그만 그 줄이 끊어져 버려 나는 그걸 다시 묶어쌌다. 그러자 그 줄에 매듭이 
생겨서 그게 구멍에 자꾸 걸리는 바람에 사자 울음 소리가 신통치 않게 울려나왔다. 
나는 윌번에게 그 소리가 꼭 개구리 우는 소리 같다고 말했다.
  윌번의 선물은 물청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새는 곳이 있어 손아귀에 힘을 주고 쏘아 
봐도 별로 멀리 나가지 못했다. 윌번은 자기 오줌줄기보다도 안 나간다고 투덜댔다. 
나는 윌번에게 향내나는 고무나무 수액만 있으면 그걸 때울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헌데 이 근처에서 향내나는 고무나무를 과연 찾을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나는 이 
근처에서는 그 나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한 부인이 일일이 돌아다니며 우리들에게 막대사탕 하나씩을 나눠주었다. 나도 한 
개 받았다. 헌데 그녀는 그렇게 돌아다니다 다시 나와 부딪치자 다시 또 사탕을 주고 
갔다. 나는 그 두번째 사탕을 쪼개 윌번과 나눠 먹었다.
  샌디 클로즈는 "안녕, 여러분! 내년에 봐요!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소리치기 
시작했다.다른 남자들과 부인네들도 종을 울리면서 똑같은 내용의 말을 외쳐댔다.
  그들은 문 밖으로 나가 차에 올라탄 뒤 그곳을 떠났다. 그들이 떠나고 나자 사방은 
아주 조용해졌다. 윌번과 나는 우리 침대 곁의 마루 바닥 위에 앉아 있었다.
  윌번은 그들이 읍내의 컨트리 클럽 회원들이며 그들은 매년 그렇게 몰려와서 한껏 
즐거운 기분을 맛본 다음 돌아가 실컷 술을 퍼마신다고 했다. 윌번은 그런 짓거리들을 
보는 것도 이제 신물이 난다고 했다. 그는 자기가 고아원을 나가게 되면 크리스마스 
따위는 완전히 무시해 버릴 거라고 했다.
  어둠이 잦아들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모두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를 보기 위해 
교회당으로 몰려갔다. 방 안에는 나 혼자뿐이었으며 밖의 어둠이 더욱 짙어졌을 때쯤 
해서 나는 그들의 노래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창가에 서 있었다. 공기는 
청량했으며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다. 아이들이 별에 관한 노래를 불러 자세히 
귀기울여 보니 늑대별에 관한 노래는 아니었다. 나는 늑대별이 서서히 밝아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이들이 계속 노래를 부르면서 교회에 오래 머물러 준 덕분에 나는 늑대별의 
밝기가 최고조에 달할 때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윌로우 존 
할아버지께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날 저녁 우리는 푸짐한 저녁상을 받았다. 우리는 각자 닭다리 한 개씩을 
받았고 거기에 더해 닭 모가지에 내지는 모래주머니 한 개씩을 받았다. 윌번은 이것도 
매년 똑같다고 하면서 그들은 아마도 다리와 모가지와 모래주머니만 달린 특수한 
닭들을 키우는 모양이라고 했다. 어쨌든 나는 내 몫의 닭고기를 아주 맛있게, 하나도 
남감없이 다 먹었다.
  저녁식사 후에 우리는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다. 밖은 추웠기 때문에 
모두들 실내에서 놀았으며 나만 밖으로 나왔다. 나는 내 마분지 상자를 들고 마당을 
가로질러 참나무 밑으로 갔다. 나는 거기서 오랬동안 앉아 있었다.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해져서 나는 이제 그만 들어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건물 쪽을 
흘끗 쳐다봤다. 그런데 거기서 할아버지가 나오시는게 아닌가! 할아버지는 막 
건물에서 나와서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나는 내 마분지 상자도 내던지고 
정신없이 달려갔다. 할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벌리셨다. 우리는 꼭 끌어 
안았다.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날이 아주 어두워진 데다 할아버지가 큰 모자를 쓰고 계셔서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나를 보러 오셨는데 곧 가봐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사정이 있어 오실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미치도록. 하지만 내가 그 말을 했다간 할아버지가 
몹시 괴로워하실 것 같아 차마 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정문 
있는 데까지 걸어갔다. 우리는 다시 서로를 껴안았다. 이윽고 할아버지는 몸을 돌려 
걸어가셨다. 할아버지는 아주 천천히 걸으셨다.
  나는 잠시 거기 서서 할아버지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시는 걸 지켜봤다. 헌데 
할아버지가 버스 정류장을 찾지 못하셔서 애를 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 역시도 버스 정류장이 어디 있는지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할아버지를 도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할아버지의 뒤를 밟았다.
  할아버지는 줄곧 앞만 보고 걸어가시고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할아버지 모르게 계속 
뒤따라갔다. 이윽고 할아버지는 넓은 길을 건너서 버스 정류장 뒤편으로 다가가셨다. 
할아버지가 서 계시는 곳은 아주 밝아서 나는 더 이상 가지 못하고 거리 한 
모퉁이에서 서성거렸다.
  크리스마스 날이라 정류장 근처는 아주 조용했으며 오고가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나는 잠시 기다리다가 이윽고 소리를 질렀다. "할아버지, 난 버스 표지판 글씨도 읽을 
수 있어요. 할아버지한테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할아버지는 내 느닷없는 외침에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으였다. 할아버지는 나더러 오라고 손짓하셨다. 나는 
할아버지한테 달려갔다. 우리는 정류장 뒤에서 서성거렸다. 하지만 나는 버스 
표지판을 보고도 그게 어디서 어디로 간다는 소린지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스피커에서 할아버지가 타셔야 할 버스가 어느 것이라는 걸 알려줬다.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그 버스 있는데로 갔다. 버스 문이 열렸고 우리는 그 곁에서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할아버지는 먼산바라기만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엄마의 장례식 때처럼 결사적으로 붙잡고 늘어진 건 아니었지만 마음은 
그에 못지않았다. 할아버지는 나를 내려다보셨다. 나는 말했다. "할아버지, 집에 가고 
싶어요."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 나를 내려다보셨다. 이윽고 할아버지는 두 팔을 뻗어서 나를 
번쩍 들어올리셨다. 할아버지는 버스 계단 맨 꼭대기에다 나를 내려놓으셨다. 
할아버지는 계단을 밟고 올라오셔서 지갑을 꺼내셨다. "나하고 우리 애 요금을 
내겠소이다." 할아버지는 약간 긴장된 어조로 말씀하셨다. 버스 운전수는 할아버지를 
흘끗 쳐다보기는 했지만 비웃지는 않았다.
  할아버지와 나는 버스 뒤편으로 가서 앉았다. 나는 버스 운전수가 어서 문을 닫고 
떠나 주기만 바랐다. 마침내 그는 문을 닫았고 버스는 버스 정류장을 뒤로 하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나를 들어올려 당신의 무릎 위에 앉히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가슴에다 
머리를 기댔다. 하지만 잠을 자진 않았다. 나는 창문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성에가 
하얗게 끼어 있었다. 버스 뒤편에는 온기라곤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으니까.

  산들이 솟아오른 모습을 보아라.
  등성이를 따라 불타오르는 태양과 함께 아침을 탄생시키고
  자신의 무릎 주위로 안개자락들을 걸치고
  자신의 손가락인 나무들로 바람을 켜고
  하늘에 등을 비벼대는, 저 높이 높이 치솟은 산들을 보아라.

  두터운 잿빛 구름 이 소용돌이치면서
  혹은 탄식처럼 혹은 속삭임처럼
  나뭇가지에서 물방울을 떨구며
  산허리를 어루만지는 것을 보아라.
  산의 자궁인 골짜기들이 생명의 웅얼거림과 함께
  나직하게 뒤척이는 소리를 들으라.
  산의 몸의 온기를, 산의 향긋한 숨결을 느껴 보라.
  그리고 번개와 천둥의 리듬을 느껴 보라.

  산의 복부 깊숙이 핏줄처럼 맥박치는 가는 물줄기들.
  산의 생명의 젖줄이 되는 나무뿌리들,
  그리고 산의 가슴을 타고 흘러내리는 계류들은
  산이 사랑으로 어르는 산의 아이들에게 생명을 가져다 준다.
  산의 요람 속에서 산의 영혼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흥겨운 노래와
  물이 흥얼거리는 가락을 들으며
  평화롭게 숨쉬는 그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와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  집으로 돌아오다.

  우리는 여러 시간 달렸다. 할아버지와 나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잠을 
자지도 않았다. 버스는 가는 도중에 두세 군데 버스 정류장에서 멈춰섰지만 우리는 
제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무엇인가가 우리 뒷덜미를 잡아챌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아직 날이 밝기 전인 이른 새벽이 할아버지와 나는 버스에서 내렸다. 날은 추웠고 
길바닥에는 얼음이 얼어 있었다.
  우리는 그 길을 걸아가다 이윽고 차바퀴 자국이 난 길로 들어섰다. 그때 나는 
산들을 보았다. 그 거대한 산들은 우리 주위의 어둠보다 더 짙은 어둠을 거느린 채 내 
시야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나는 그 산들을 향해 마구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우리가 차바퀴 자국이 난 길을 버리고 산길로 들어섰을 때 어둠은 어느새 엷어져 
가고 있었다. 나는 불쑥, 뭔가가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추시고 물으셨다. "뭐가 잘못됐다는 거냐, 작은나무야?"
  나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내 구두를 벗겨냈다. 그러면서 나는 말했다. "이 산길의 
감촉을 느낄 수가 없어서 그런 기분이 드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 땅바닥은 따뜻한 
감촉을 주었고 그 온기는 내 발을 통해 몸 전체를 타고 흘렀다. 할아버지는 기분좋게 
웃으셨다. 그리고는 할아버지도 땅바닥에 앉으셔서 당신의 구두를 벗으셨고 양말고 
벗어서 그 속에 구겨 넣으셨다. 그런 다음 할아버지는 벌떡 일어서서 그 구두 한 
켤레를 있는 힘껏 멀리, 우리가 버스를 타고 달려온 도로 쪽을 향해 던지셨다.
  "이 따위 것들은 너희들이나 가져라!"라고 소리치시며. 나도 내 구두를 그쪽으로 
던지면서 할아버지와 똑같이 외쳤다. 할아버지와 나는 웃기 시작했다. 한번 웃음이 
터져나오자 웃음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했다. 나는 허리를 잡고 주저앉았고 
할아버지는 거의 길바닥에서 대굴대굴 구르다시피하셨다. 할아버지의 뺨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는 우리가 왜 웃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그 어느때보다도 
모든 게 다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할아버지께, 사람들이 우리를 봤다면 
위스키를 먹고 취해서 저러는가 보다고 말할 거라고 했다. 할아버지도, 아마 그럴 
거라고 말씀하셨다^5,5,5^. 하지만 어느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는 진짜 "취한" 사람들일 
수도 있었다.
  우리가 산길을 오르자 동쪽 산능선 위에서는 아침의 첫 신호라 할 수 있는 엷은 
핑크 빛이 나타났다. 산속은 훈훈했다. 우리 머리 위를 덮은 무성한 소나무 가지들이 
우리 머리를 쓸기도 하고 얼굴을 어루만져 주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그들이 이게 진짜 
(작은나무)인가 알아보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하셨다.
  나는 실개천이 기분좋게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리로 달려내려갔다. 
나는 물 속에 두 발을 담그고 서서 가만히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 동안 할아버지는 
잠자코 기다려 주셨다. 실개천은 내 발목을 가볍게 때리면서, 그리고 물 위에 비치는 
내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흘러내려갔으며 그의 노래는 점점 더 커져갔다.
  우리가 통나무 다리가 보이는 데까지 이르렀을 때 날은 이미 훤해졌으며 바람이 
일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바람이 신음하거나 탄식하는게 아니라 소나무 숲속에서 
노래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산속의 모든 식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모드가 크게 짖어댔다.
  할아버지는, "닥쳐, 모드!"하고 소리치셨다. 개들은 통나무 다리를 건너 우리한테로 
달려왔다.
  헌데 개들이 일제히 나한테로 돌진해 오는 바람에 나는 그들에게 부딪쳐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개들은 내 온 얼굴을 핥아댔으며 내가 일어서려 할 때마다 그들 중의 
하나가 내 등 위로 뛰어올라 나는 번번이 다시 엎어지곤 했다.
  작은 빨강이는 네 다리로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허공에서 몸을 뒤흔드는 묘기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모드도 같은 묘기를 부리기 시작했으며 리핏도 그걸 흉내내려고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발을 삐끗하여 실개천 속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할아버지와 나는 소리치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개들의 등을 두드려 주기도 하면서 
통나무 다리 있는 데까지 왔다. 나는 현관을 바라봤는데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통나무 다리를 건너는데 문득 불길한 생각이 깃들면서 가슴이 덜컥 내려낮았다. 
혹시 할머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나 아닐가. 그때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를 보았다.
  날이 싸늘한데 할머니는 헐렁한 사슴가죽 옷 한 장만 걸치고 계셨다. 아침 햇살에 
할머니의 머리가 하얗게 빛났다. 할머니는 산허리에 솟은 하얀 참나무의 헐벗은 
나뭇가지 아래 서 계셨다. 할머니는 마치 거기 숨어서 누가 오나 살펴보고 있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우리를 주시하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하고 있는 힘껏 소리질렀으며 그 반동으로 통나무 다리에서 발을 
헛디뎌 그대로 물 속에 거꾸로 떨어졌다. 아침 공기의 싸늘함에 비하면 물 속은 
오히려 따뜻했다.
  할아버지는 두 다리를 벌린 채 공중으로 펄쩍 뛰어오르시며 소리치셨다. 
"우워어어어어어어!" 그리고는 그대로 물 속으로 낙하하셨다. 할머니는 번개같이 
산에서 달려 내려오셨다. 단숨에 실개천으로 달려오신 할머니는 내가 있는 쪽을 향해 
곧바로 다이빙하셨다. 우리는 물 속에서 뒹굴고 첨벙거리고 소리지르고, 그리고 
울었다.
  할아버지는 실개천 바닥에 주저앉으신 채 마구 허공에다 물을 뿌리셨다. 개들은 
통나무 다리 위에 서서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멍청한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봤다. 할아버지는 저 녀석들은 우리가 좀 돌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윽고 개들도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까마귀 한 마리가 소나무 맨 꼭대기 위에 올라앉은 채 까악까악 하고 울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는 급강하하여 바로 우리 머리 위를 지나 골짜기 위쪽으로 
날아갔다. 할머니는 그 까마귀가, 내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모든 산식구들에게 
알리러 가는 거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내 노란 외투를 말리기 위해 벽난로 곁에다 걸어 놓으셨다. 할아버지가 
고아원으로 오셨을 때 마침 나는 그걸 입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내 
사슴가죽 셔츠와 바지를 입었고^5,5,5^ 사슴가죽 장화를 신었다.
  나는 곧바로 밖으로 튀어나가 골짜기 길을 달려 올라갔다. 개들이 나를 따라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뒷현관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아직도 맨발이셨고 한 팔로 할머니의 어깨를 끌어안고 
계셨다. 나는 달렸다.
  내가 헛간 곁을 지나가자 늙은 샘은 히히힝 하고 울어대며 마구 발을 굴렀다. 나는 
(좁은 길)을 지나 (하늘에 걸린 골짜기)에까지 이르는 동안 줄곧 달리고 또 달렸다.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바람은 내 귓전에서 노래불렀고 다람쥐와 너구리와 새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나뭇가지 위로 올라가서 내려다보다 내가 지나가자 환성을 
질러댔다. 아주 맑은 겨울 아침이었다.
  이윽고 나는 천천히 그 골짜기 길을 걸어 내려오다 내 비밀 장소 있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곳의 풍경은 할머니가 보내주신 영상과 똑같았다. 벌거벗은 나무줄기 
밑의 지면에는 적갈색 이파리들이 수북하게 쌓였고 붉은 거먕 옻나무들이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그곳을 빽빽이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푹신한 낙엽 위에 드러누워 
한가롭게 졸고 있는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나무가 소런거렸고 바람은 속삭였다. 그리고 그들은 일제히 노래부르기 시작했다. 
"작은나무가 돌아왔다^5,5,5^ 작은나무가 돌아왔다! 우리 노래를 들어 봐! 작은나무가 
우리와 함께 있어! 작은나무가 돌아왔어!"그들의 낮은 흥얼거림와 청아한 노래에 
실개천의 흥겨운 노랫가락도 끼어들었다. 개들이 연신 땅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던 
짓을 멈추고 귀를 바짝 세우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개들도 그들의 노래소리를 들은 
것이 분명했다. 개들은 내 곁으로 바싹 다가와 얌전히 앉은 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그 짧은 겨울 한낮을 나는 고스란히 내 비밀 장소에 보냈다. 내 영혼은 이제 
고통받지 않았다. 나는 내 영혼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바람과 나무와 실개천과 
새들의 영적인 노래에 의해 새롭게 정화되었다.
  그들은 육신의 마음을 가진 인간들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는 것처럼 육신의 마음 따위는 돌아보지도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내게 지옥에 대해서도 얘기하지도 않았고, 내가 어떤 출신인가 묻지도 
않았으며, 악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러한 말 뜻 따위는 
알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이윽고 나 역시도 그러한 말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태양이 서쪽의 산등성이로 넘어가면서 (하늘에 걸린 골짜기)에 마지막 빛을 뿌릴 
때쯤해서 나는 개들과 함께 그 골짜기 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골짜기가 어슴푸레한 빛에 감싸일 무렵 나는 우리집 뒷현관이 보이는 지점에 
이르렀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거기 나와 앉아서 내가 오나 보시려고 골짜기 쪽만 
열심히 바라보고 계셨다. 내가 뒷현관으로 가자 두 분은 허리를 굽히시고 한번씩 나를 
껴안아 주셨다. 우리에게 말 따위는 필요 없었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내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걸.
  그날 밤 내가 셔츠를 벗었을 때 할머니는 내 등에서 상처자국을 발견하시고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그 얘기를 해드렸다. 하지만 
나는 별로 아프지는 않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보안관 대장한테 찾아가서 이 얘기를 하고 이후 다시는 누가 날 
데릴러 오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당신의 마음을 정하셨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난 아마도 그들은 날 데릴러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윌로우 존 할아버지한테는 매맞았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날 밤 우리가 벽난로 가에 앉았을 때 할아버지는 말씀을 해주셨다. 어느 날 저녁 
할머니 할아버지가 늑대별을 지켜보시면서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끼기 시작한 
순간부터의 얘기를. 두 분이 나한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 같은 기분에 
울적한 나날을 보내던 중 하루는 저녁 무렵이 되었는데 느닷없이 윌로우 존 
할아버지가 우리집 문 앞에 서 계셨다고 한다.
  그분은 산악지대를 가로질러 우리집 오두막으로 걸어오신 것이다. 그분은 시종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벽난로 불빛을 받으며 할머니 할아버지와 묵묵히 저녁 진지를 
드셨다. 그분들은 등잔도 켜지 않고 앉아 계셨으며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모자도 벗지 
않으셨다. 그날 밤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내 침대에 누워 주무셨으며 할아버지가 
아침에 일어나서 들여다보니 그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오두막을 
떠나셨던 것이다.
  그 주의 일요일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교회에 가셨지만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항상 만나곤 했던 커다란 느릅나무 가지에서 
소식을 알리는 띠 하나를 발견하셨다. 그 띠는 그분이 무사하시며 곧 돌아오실 거라는 
것을 뜻했다. 그 다음 일요일에도 그 나뭇가지에는 먼젓번과 똑같은 띠가 걸려 
있었다. 세번째 일요일이 되어서야 그분은 그 나무 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분은 당신이 어디를 다녀오셨는지 도통 말씀을 하지 않으셔서 
할머니 할아버지도 물어보지 않으셨다.
  헌데 어느 날 보안관 대장이 할아버지께 고아원에서 할아버지를 뵙자고 한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고아원을 찾아가셨다. 고아원 원장인 목사는 
어디가 아픈 사람처럼 보였으며 나를 내보내 준다는 포기각서에 서명을 하겠다고 
할아버지한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틀 동안 어떤 야만인이 한시도 쉬지 않고 자기 
뒤를 미행하더니 어느 날에는 마침내 자기 사무실에까지 침입해 들어왔으며, 
들어와서는 작은나무를 산악지대에 있는 제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라는 단 한마디만 던지고 훌쩍 나가 버리더라고 했다. 그래서 목사는 그런 
야만스럽고 미개한 이교도들하고 공연히 분쟁을 일으키기 싫어 그런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고아원의 참나무 밑에 서 있다가 고아원 옆길로 걸어가던 사람을 
할아버지라고 착각하고 뒤쫓아 갔던 그 사람이 바로 윌로우 존 할아버지라는 걸 
깨달았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고아원 사무실에서 나와서 나를 만났을 때 이미 원장이 나를 
넘겨 주기로 결정했다는 걸 알고 계셨다. 헌데 당신은 내가 아이들하고 어울려 지내는 
걸 더 좋아하는지^5,5,5^ 아니면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5,5,5^ 그 결정권을 나한테 맡기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 고아원에 가자마자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윌번에 관한 얘기를 해드렸다. 내가 떠나올 때 사자 그림이 
그려진 마분지 상자를 그 참나무 밑에다 놓고 왔는데 아마 윌번이 그걸 발견했을 
거라는 얘기도. 할머니는 윌번에게 사슴가죽 셔츠를 한 벌 보내겠다고 하셨으며 며칠 
후 그 말씀대로 하셨다.
  할아버지가 윌번에게 긴 칼 한 자루를 보내겠다고 하신 데 대해 나는 윌번이 그걸 
받으면 아마 그걸로 목사를 찔러 죽일 거라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긴 칼을 보내지 
않으셨다. 우리는 그 후로 다시는 윌번에 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 주 일요일에 우리가 교회로 갔을 때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보다도 앞서서 교회 
앞의 빈 터를 가로질러 달려갔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낡고 검은 모자를 반듯이 
눌러 쓰신 채 숲속에 홀로 서 계셨다. 나는 있는 힘껏 달려가 그분의 다리를 
껴안았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고마워요, 윌로우 존 할아버지." 그분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그저 두 손을 뻗어 내 어깨만 어루만져 주셨다. 내가 고개 들어보니 
그분의 두 눈 저 깊은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  죽음의 노래

  우리는 순조롭게 겨울을 났다. 할아버지와 나는 겨울 내내 나무를 해대느라 꽤나 
고생을 했지만 말이다. 우리는 경쟁적으로 일했으며 할아버지는 당신이 나한테 
뒤처지자 내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 겨울을 벌벌 떨면서 보낼 
뻔했다고 하셨다. 아마도 그랬으리라.
  그해 겨울은 꽤 추운 겨울이었다. 날이 너무 추워 위스키를 증류할 때 증류기에서 
밖으로 연결된 관들이 얼지 않도록 늘 불을 피워 주어야 할 정도였으니까.
  할아버지는 가끔가다 한번씩 추운 겨울이 닥쳐올 필요도 있다고 하셨다. 그것은 
자연이 자신의 세계를 정리하고 보다 더 진화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한 
방법이었다. 얼음은 나무의 약한 가지들을 부러뜨리며 그렇게 함으로써 강한 가지들만 
남게ㅡ된다. 그리고 그것은 연약한 상수리나무나 밤나무, 호두나무들을 정리해 버리고 
튼튼한 나무들만을 남겨둠으로써 보다 크고 풍성한 열매들을 맺게끔 도와준다.
  그해 겨울은 어려운 계절이었다. 젠킨스 씨는 다른 사업은 하나같이 경기가 좋질 
않은데 유독 위스키 사업만은 번창 일로에 있다고 하셨다. 그분은 사람들이 자신의 
괴로운 처지를 잊기 위해 위스키만 마셔대서 그런 모양이라고 하셨다.
  이듬해 여름에 나는 일곱 살이 되었다. 할머니는 우리 엄마 아빠의 결혼 지팡이를 
내게 주셨다. 엄마 아빠가 함께 사신 기간이 짧아 거기에 새겨진 눈금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그걸 내 방 침대 머리판 있는 데다 반듯하게 눕혀뒀다.
  여름이 가을로 접어들 무렵인 어느 일요일,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교회 옆 숲에 
나오지 않으셨다. 나는 그분이 서 계시던 느릅나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그 숲을 
뚫고 달려가며 "윌로우 존 할아버지!"하고 소리쳐 불러봤다. 그러나 그분은 어디에도 
계시지 않았다. 우리는 교회 예배에도 참석하지 않은 채 그길로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 일로 몹시 걱정을 하셨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그 
느릅나무 주변을 열심히 찾아봤었지만 그분은 아무런 표적도 남겨 놓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뭔가 문제가 생긴 거라고 하셨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분을 찾아뵙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월요일 새벽 날이 채 밝기도 전에 길을 떠났다. 아침의 첫 햇살이 비칠 무렵 
우리는 네거리 가게와 교회 곁을 지나쳤다. 이윽고 우리는 산으로 난 곧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그렇게 높은 산을 오르긴 처음이었다. 할아버지가 걸음을 늦춰 주셔서 
나는 쉽게 따라갈 수 있었다. 그 기리에는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거의 없어 얼핏 보면 
길처럼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우리는 산능선을 타고 계속 올라가다가 다시 또 다른 
산능선을 타고 걸었다. 간신히 한 봉우리를 타넘었다 싶으면 다시 높은 봉우리가 
눈앞을 가로막곤 했다.
  갈수록 나무들의 키가 낮아졌고 바람도 더욱 거세게 불어왔다. 마침내 그 산 
꼭대기에 이르자 그 산 한 옆에 움푹 패인 곳이 보였다. 골짜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얕은 우묵한 지형이었다. 그 낮은 지형 양옆으로는 숲이 빽빽이 들어찼으며 
한가운데는 솔밭이 부드러운 카페트처럼 깔려 있었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오두막은 
바로 그곳에 있었다.
  그 오두막은 우리집처럼 굵은 통나무가 아니라 훨씬 더 가는 나무로 지어졌으며 그 
우묵한 골짜기 한쪽 벽과 그 부근에 울창하게 자란 숲을 바람막이 삼아 기댄 형상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는 퍼렁이와 작은 빨강이도 데리고 왔다. 헌데 오두막을 발견하자 그 개들은 
코를 치켜들고 처량한 목소리로 캥캥거렸다. 그건 좋지 않은 징조였다. 할아버지가 
먼저 오두막으로 다가가셨다.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할아버지는 허리를 잔뜩 
굽히셔야 했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그 오두막에는 방이 딱 한 개뿐이었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스프링바우(야생풀의 
일종: 옮긴이) 위에 사슴가죽을 덮어서 만든 침대에 알몸으로 누워 계셨다. 그분의 
누르스름한 몸체는 늙은 나무줄기처럼 바짝 시들었으며 한 손은 침대 밑으로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할아버지가 소리치셨다. "윌로우 존!"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눈을 뜨셨다. 그 눈빛은 가물가물했다. 그럼에도 그분은 
싱긋이 웃으시며 입을 여셨다. "자네가 올 줄 알았지. 그래서 기다렸어." 할아버지는 
쇠냄비를 찾아내셔서 나더러 물을 떠오라고 하셨다. 나는 오두막 뒤꼍에서 바위 
틈으로 쫄쫄쫄 새나오는 물줄기를 찾아냈다.
  문 바로 곁에 아궁이가 있어 할아버지는 거기다 불을 피우시고 그 위에 냄비를 걸어 
놓으셨다. 할아버지는 냄비 속의 물에다 사슴고기를 잘라넣으셨다. 어느 정도 
고기국물이 우러나자 할아버지는 한 팔로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머리를 받치시고는 
수저로 그 국물을 떠먹이셨다.
  나는 방 한구석에서 담요 몇 장을 찾아냈으며 할아버지와 둘이서 그것들을 그분의 
몸에 덮어 드렸다. 그분은 통 눈을 뜨지 않으셨다. 어느덧 밤이 찾아왔다. 할아버지와 
나는 아궁이에 계속 불을 지폈다. 산곡대기에서는 바람이 맹렬하게 포효했으며 그 한 
자락이 우리 잇는 오두막에까지 스며들어와 구석구석 헤집고 다녔다.
  할아버지는 아궁이 불 앞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계셨다. 아궁이 속에서 
일렁이는 불길이 할아버지의 얼굴에 반사되면서 할아버지의 얼굴을 점점 더 늙어 
보이게 만들었다^5,5,5^. 두 개의 거대한 광대뼈의 그늘 속에 가린 울퉁불퉁한 바위 
덩어리와 무수히 갈라진 틈으로 이루어진 바위절벽과 같은 모습으로. 그 그늘은 더욱 
짙어지면서 마침내 거기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불을 바라보는 두 눈밖에 없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라 시꺼멓게 타들어가면서 서서히 시들어가는 등걸불을 반사하는 
두 눈. 나는 그 불 곁에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눈을 뜨고 보니 벌써 아침이었다. 아궁이에서 일렁이는 불길이 실내를 떠도는 
안개를 몰아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어젯밤 자세 그대로 앉아 계셨다. 마치 
한밤 내 꼼짝도 하지 않으신 분처럼.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밤새도록 계속 불을 
때면서 지새우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뒤척이셨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분 곁으로 갔다. 
그분은 눈을 뜨셨다. 그분은 한 손을 들어 가리키시며 말씀하셨다.
  "나를 밖으로 데려다 주게."
  "밖은 추운데요."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알고 있네." 그분은 나직하게 속삭이셨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몸이 축축 늘어지는 바람에 할아버지는 그분의 몸을 
들어올리시느라 여간 애를 먹지 않으셨다. 나도 곁에서 도왔다.
  할아버지는 그분을 안고 문 밖으로 나가셨으며 나는 침대 자리에 쌓인 스프링바우를 
한아름 안고 따라나갔다. 할아버지는 그 오두막 뒤편으로 솟은 산꼭대기로 
올라가셨다. 우리는 스프링바우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윌로우 존 할아버지를 눕혔다. 
우리는 그분의 몸을 담요로 덮어 드렸고 그분의 두 발에는 가죽 신을 신겨 드렸다. 
할아버지는 사슴가죽을 차곡차곡 접어 그분의 머리 밑에 괴어 드렸다.
  우리 뒤편에는 바야흐로 태양이 찬란하게 솟구쳐오르면서 안개를 쫓아 골짜기 
구석구석의 그늘을 훑고 있었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시선은 서쪽 멀리, 무수한 
산봉우리와 깊은 골짜기를 넘고넘어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인디언의 
나라 쪽을 향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오두막으로 가셔서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긴 칼을 들고 되돌아오셨다. 
할아버지는 그걸 그분 손에 쥐어 드렸다. 그분은 그 칼을 들어올려 구부러지고 뒤틀린 
늙은 전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셨다. "내가 가거들랑 내 몸을 저 나무 곁에다 묻어 
주게. 저 나무는 무수히 새끼를 쳐서 그 숲으로 나를 따뜻하게 해주고 보호해 
줬으니까. 그게 좋을 게야. 내 한 몸이면 저 나무의 이 년치 양식은 될걸세."
  "그러겠습니다." 할아버지가 대답하셨다.
  "비(할머니의 이름: 옮긴이)에게 얘기해 주게. 이다음 더 좋은 세상에서 만나게 될 
거라고." 그분은 나직하게 속삭이듯 말씀하셨다.
  "그러겠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분 곁에 앉으셔서 그분의 손을 잡으셨다. 나는 할아버지 반대편에 
앉아 그분의 다른 손을 잡았다.
  "먼저 가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겠네."
  "우리도 곧 뒤따라 갈겁니다."
  나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께, 당신이 독감에 걸리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독감은 누구나 흔히 잘 걸리는 병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이렇게 잘 간호하기만 하면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틀림없이 
자리에서 잇어나실 거로 확신하며 그 다음엔 이 산을 내려가 우리와 함께 지내실 수 
있다, 그러니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리에서 일어나시는 거며 그러면 만사가 다 좋아질 
거라고 말했다.
  그분은 나를 향해 싱긋이 웃으시며 내 손을 꼭 쥐어 주셨다. "너는 착한 마음을 
가졌구나 작은나무야. 하지만 나는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만 떠나고 싶다. 너를 
기다리고 있으마."
  나는 울었다. 나는, 오래 머무실 생각이 없으면 내년 봄, 날이 좀더 따뜻해진 
다음에나 가시는 게 어떻겠느냐, 올 겨울에는 히코리 열매가 무진장 열려서 조금 
있으면 사슴이 통통하게 살이 오른 걸 보실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분은 싱긋이 웃으셨다. 그러나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산너머 멀리 서쪽을 응시하셨다. 마치 산상에 홀로 계시는 분처럼. 그분은 
영혼에게 당신이 가고 있다는 소식을 알리는 임종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그것은 죽음의 노래였다.
  그것은 낮게 깔리듯이 시작되다가 점점 높아져 갔으며 마지막에는 설날처럼 가늘게 
허공을 휘어돌았다. 그게 바람 소리인지 그분의 목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하게. 목젖의 움직임이 약해지면서 그분의 눈빛도 점차 희미해져 갔다.
  할아버니와 나는 그분의 영혼이 그분의 두 눈 저 깊숙한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걸 지켜봤다. 우리는 그분의 영혼이 그분이 육신을 떠나가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이윽고 그분은 숨을 거두셨다.
  우리 사이에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그 늙은 전나무의 허리를 휘게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그게 윌로우 존 할아버지라고 하시며 그분은 저토록 강한 영혼을 가진 
분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그 바람이 산등성이의 숲을 휩쓸고 지나가 산허리를 타고 
파도처럼 밀려 내려가며 까마귀 한 떼를 허공으로 날리는 광경을 지켜봤다. 
까마귀들은 까옥까옥 울면서 윌로우 존 할아버지와 더불어 산 밑으로 날아 내려갔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 바람이 눈 아래 보이는 산등성이와 봉우리들을 무수히 타고 
넘으며 이윽고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거기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가 되돌아오실 것이며 우리는 바람 속에서 그분 
존재를 느끼게 될 것이며 나무가지의 속삭임을 통해 그분의 말씀을 듣게 될 거라고 
하셨다.
  할아버지와 나는 각자 자신의 긴 칼을 꺼내 그 늙은 전나무의 뿌리를 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것과 가장 가까운 땅에 구덩이를 팠다. 우리는 깊이깊이 팠다. 
할아버지는 그분의 몸에 다시 담요 한 장을 더 두르신 뒤 나와 함께 그분의 몸을 
구덩이 속에 눕혔다. 할아버지는 그분의 보자도 구덩이 속에 넣으셨다. 그분은 
돌아가시기 전에 쥐고 계시던 칼을 무덤 속에서도 그대로 굳게 쥐고 계셨다.
  우리는 그분의 육신 위에 돌들을 쌓아 올렸다. 할아버지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가 
당신의 육신을 그 전나무의 먹이로 주기로 결정하셨으니 너구리들이 시신을 훔쳐가지 
못하게 돌을 아주 높이, 그리고 단단히 쌓아 올려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에야 산꼭대기에서 오두막으로 내려왔으며 그기서 
다시 올 때와 똑같은 길로 해서 산으로 내려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께 드리기 위해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사슴가죽 셔츠 하나를 들고 오셨다.
  우리가 집 앞의 산골짜기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자정이 지나 있었다. 나는 
문상비둘기가 멀리서 울어대는 소리를 들었다. 메아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나는 그 새가 윌로우 존 할아버지를 부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할머니는 등잔불을 켜셨다. 할아버지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셔츠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시고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할머니가 
사태를 짐작하시는 데는 그걸로도 충분했다. 그후 우리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가 나오시지 않는데 가든 안 가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후 우리는 이 년 동안 함께 지냈다. 할아버지, 할머니, 나, 이렇게 셋이서. 아마도 
우리 모두는 때가 임박해 오고 있음을 알았으리라. 하지만 그걸 입에 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오셨다. 우리 
셋은 똘똘 뭉쳐 살았다. 우리는 가을이면 가장 빨갛게 보이는 나뭇잎들을, 그리고 
봄이면 가장 파랑 바이올렛을 가리킴으로써 다른 두 사람들도 그걸 꼭 보게 만들려고 
애썼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 느낌을 함께 맛보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발걸음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할아버지가 걸으실 때 그분의 가죽신은 
가끔씩 땅에 질질 끌리곤 했다. 나는 내 마대자루 속에 더 많은 위스키 항아리를 넣어 
운반했으며 힘겨운 일들을 더 많이 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도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내게 도끼를 아래로 내리치는 요령을 가르쳐 주셔서 나는 통나무를 
빠르고 쉽게 팰 수 있었다. 나는 다 익은 옥수수 이삭을 옥수수 대에서 딸 때도 
할아버지가 따기 가장 편한 곳에 달려 있는 옥수수 자루들을 남기면서 따는데도 
할아버지보다 훨씬 많이 딸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얘기는 일체 입에 담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가 늙어서 노쇠해진 링거에게 자신이 아직도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집 노새 샘은 그 마지막 가을에 죽었다.
  나는 할아버지께 또 다른 노새를 알아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봄까지는 아직 멀었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하셨다.
  우리 세 사람은 전보다 훨씬 더 빈번히 산등성이 길을 올라가 보곤 했다. 두 분이 
올라가는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지만 그럼에도 두 분은 그 산꼭대기에 올라 
산능선들을 지켜보는 걸 좋아하셨다.
  할아버지가 미끄러져 넘어지신 건 바로 그 산등성이 길을 타고 오를 때여싿. 한번 
넘어지신 할아버지는 다시는 일어서질 못하셨다. 할머니와 나는 할아버지를 부축해서 
간신히 산을 내려왔다. 내려올 때 할아버지는 "곧 좋아질 거야"라는 말씀을 
거듭하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좋아지지 않으셨다. 우리는 할아버지를 침대에 눕혔다.
  때마침 파인 빌리가 우리집에 들렀다. 그는 우리와 머물면서 할아버지의 기운을 
돋궈 드렸다. 할아버지가 그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싶어하셔서 그는 연주를 했다. 
머리칼이 귀를 덮을 정도로 더부룩한 모습 (그 머리는 그가 손수 깍은 것이다) 의 
그는 희미한 등잔불빛 속에서 자신의 긴 목을 바이올린 쪽으로 기울인 채 연주를 
했다.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다 바이올린으로 떨어지고 그것은 다시 그의 
작업복 위로 떨어져 내렸다.
  할아버지가 말슴하셨다. "울음을 그치게, 파인 빌리. 음악을 망치고 있지 않은가. 난 
자네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싶단 말일세."
  파인 빌리는 목메인 소리로 말했다. "우는 게 아닙니다. 가, 감기에 걸려서." 
그러더니 그는 바이올린을 떨어뜨리고 할아버지 침대 발치께에 주저앉아 자신의 
머리를 침대보에다 박았다. 그는 어깨를 들먹이며 울었다. 파인 빌리는 무슨 일에서고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머리를 들고 힘없이 소리치셨다. "이런 바보 멍청이같으니라구. 이 사람, 
내 침대 시트를 레드 이글 코담배로 뒤발을 해놓고 있구만!" 그건 사실이었다.
  나 역시도 울었다.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눈치채시지 못하게 울었다.
  할아버지의 육신의 마음은 어지럽게 뒤척이다가 잠들었으며 할아버지의 영적인 
마음이 대신 앞으로 나섰다. 할아버지의 영적인 마음은 오랫동안 윌로우 존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하셨다. 할머니는 당신의 두 팔로 할아버지의 머리를 껴안고서 
할아버지의 귀에다 뭐라고 속삭이시곤 했다.
  할아버지는 다시 당신의 육신의 마음으로 되돌아오셨다. 할아버지가 당신의 모자를 
갖다 달라고 하셔서 나는 그걸 갖다드렸다. 할아버지는 그 모자를 쓰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드렸다. 할아버지는 싱긋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작은나무야, 
이제까지 난 잘 지내왔다. 이제 난 더 좋은 세상으로 간다. 거기서 만나자꾸나." 
그리고 할아버지의 두 눈에서는 정기가 사라졌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았다. 그러나 그걸 믿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곁의 침대 위에 누우셔서 할아버지를 꼭 끌어안으셨다. 파인 빌리는 침대 
발치께에서 마구 몸부림치며 울었다.
  나는 오두막 밖으로 나왔다. 개들도 캥캥거리며 구슬프게 울어댔다. 개들도 알았던 
것이다. 나는 골짜기 길을 따라 내려가다 지름길로 접어들었다. 할아버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서. 그때 나는 세상에 종말이 왔다는 걸 알았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아 넘어졌다가는 일어나서 걷고 그러다 다시 넘어지곤 했다. 
그러면서 결국 나는 네거리 가게 있는 데까지 왔다. 나는 젠킨스씨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씀드렸다.
  젠킨스씨는 너무 연로하셔서 먼 길을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대신 장성한 아들 한 
사람을 보내셨다. 그와 나는 서둘러 길을 떠났다. 그는 마치 어린애를 데리고 가듯이 
내 손을 잡고 갔다. 나는 길을 볼 수도 없었고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젠킨스 씨의 아들과 파인 빌리는 관을 짰다. 나도 거들려고 나섰다. 할아버지가, 
남들이 너를 도울 때는 너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별로 도움이 되질 않았다. 파인 빌리도 역시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 그는 망치로 자기 엄지손가락을 내리쳤다.
  그들은 관을 들고 산등성이 길을 올라갔다. 할머니가 앞에 서시고 그들은 관을 들고 
따라갔다. 나와 개들은 맨 뒤에서 쫓아갔다. 파인 빌리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를 생각해서 눈물을 억제하려고 애썼지만 그가 우는 바람에 덩달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개들도 연신 킹킹대며 울었다.
  나는 할머니가 할아버지는 어디로 모시려는지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비밀 장소. 
할아버지가 아침이 탄생하는 걸 지켜보시던 곳, 가고 또 가도 싫증을 내시지 않던 곳, 
아침의 첫 태양이 솟아오를 때마다 해뜨는 걸 생전 처음 보신 분처럼 번번이 "아침이 
태어나고 있다!"는 외침을 터트리시던 곳. 산꼭대기 능선길. 아마도 아침이 태어나는 
매순간은 할아버지께는 항시 생애 최초의 순간들이었으리라. 그 순간은 매번 모양을 
달리해서 나타났을 것이고 할아버지는 아침이 한번도 똑같은 모양으로 태어난 적이 
없다는 걸 잘 알고 계셨을 것이며, 또 당신의 두 눈으로 그걸 똑똑히 목격하셨으리라.
  그곳은 할아버지와 내가 처음으로 영적인 교감을 느꼈던 곳이었고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신다는 걸 알게 된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할아버지의 관을 땅 속에 안치했을 때 할머니는 고개를 돌리고 계셨다. 
할머니는 저 먼 곳의 산들을 바라보셨다.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다.
  그곳 산꼭대기에는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으며 그 때문에 두 갈래로 땋아내린 
할머니의 댕기머리는 사정없이 바람에 날렸다. 파인 빌리와 젠킨스 씨의 아들은 
서둘러 온 길을 되짚어 내려갔다. 나와 개들은 한동안 할머니를 쳐다보고 있다가 
이윽고 능선에서 내려왔다.
  우리는 산등성이 길 중간쯤에 있는 어떤 나무 아래 앉아서 할머니가 오시기를 
기다렸다. 할머니는 어둠이 잦아내리기 시작할 무렵 내려오셨다.

  나는 내 일에 더해 할아버지가 하시던 일까지 맡아서 해보려고 애쎳다. 나는 혼자서 
위스키 증류하는 일을 했는데 내가 만든 제품의 질이 그다지 신통치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와인 씨가 주신 셈본책들을 모두 꺼내 와서 내게 주시고는 틈나는 대로 
그것들을 부지런히 익히게 하셨다. 나는 혼자 읍내로 나가서 책들을 빌려 왔다. 이제 
나는 그 책들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벽난로 가에 앉아 그 책들을 소리내어 읽으면 
할머니는 거기에 귀기울이시면서 물끄러미 타오르는 불길을 응시하시곤 했다. 
할머니는 번번이 내가 잘 읽는다고 칭찬해 주시곤 했다.
  리핏이 죽었다. 그리고 그 겨울이 끝나갈 무렵엔 모드도 죽었다.
  그해, 봄이 오기 직전의 어느 날 나는 산에 올랐다가 (좁은 길)로 해서 골짜기 길을 
타고 내려왔다. 나는 할머니가 뒷현관에 나와 앉아 계셨다.
  할머니는 내가 골짜기를 내려오는데도 나를 쳐다보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내 머리 
위 저 높은 산능선 길쪽을 올려다보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았다.
  할머니는 당신이 아끼시던 주황, 초록, 자주, 황금빛이 골고루 뒤섞인 드레스를 입고 
계셨다. 할머니는 종이에다 또박또박 글을 써서 그걸 당신의 가슴에다 핀으로 찔러 
놓으셨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작은나무야, 나는 가야만 한다. 네가 나무들과 교감할 때처럼 주의 깊게 귀기울이면 
우리의 영혼과도 만날 수 있게 될 게다. 우리는 너를 기다리고 있으마. 우리는 더 
좋은 세상에서 만나게 될 게다. 평화롭고 행복한 곳에서.
  할머니가.

  나는 할머니의 자그마한 몸을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가 할머니를 침대 위에다 
눕혀놨다. 그리고는 날이 저물도록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퍼렁이 작은 
빨강이와도 함께.
  그날 저녁 나는 읍내로 가서 파인 빌리를 찾아냈다. 그는 그날 밤을 할머니하고 
나와 더불어 보냈다. 그는 울면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그는 바람을^5,5,5^ 
늑대별을^5,5,5^ 산능선을^5,5,5^ 아침의 탄생을^5,5,5^ 그리고 죽음을 연주했다. 파인 
빌리와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귀기울이고 계신다는 걸 알았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관을 짜서 할머니의 시신을 그 안에 안치한 뒤 둘이서 그걸 
들고 산등성이 길을 올라갔다. 우리는 할머니의 시신을 할아버지 무덤 곁에서 묻었다. 
나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두 분의 결혼 지팡이를 파인 빌리와 내가 두 분의 무덤 앞에 
각기 하나씩 세워 놓은 돌비석 사이에다 잘 꽂아 놓았다.
  나는 두 분이 나를 위해 파놓으신 눈금들을 들여다보았다. 지팡이 맨 끝부분에 난 
그 눈금들은 두 분이 느꼈던 깊은 행복감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고 있었다.
  나는 퍼렁이와 작은 빨강이만을 데리고 묵묵히 그 겨울을 견뎌냈다. 이윽고 봄이 
왔을 때 나는 (하늘에 걸린 골짜기)로 올라가 증류기의 구리솥과 구리관을 그곳의 땅 
속에 파묻었다. 나는 데대로 증류 기술을 배우지 못한 탓으로 그걸 쓸 만한 적격자가 
되지 못했으니까. 나는 할아버지가 우리 이외의 딴 사람들이 그걸 이용해서 엉터리 
제품들을 만드는 걸 원치 않으시리라는 걸 알고있었다.
  나는 할머니가 나에게 남겨주신 돈을 갖고 산맥을 넘고넘어 서쪽에 있는 인디언의 
나라로 가기로 결심했다. 퍼렁이와 작은 빨강이도 함께 데리고. 우리는 어느날 아침 
우리 오두막 문을 잠가둔 채 길을 떠났다.
  나는 서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농장들을 찾아들어가 일거리가 있나 묻곤 했다. 
그들이 퍼렁이와 작은 빨강이 때문에 안 된다고 하면 나는 그 농장을 떠났다. 
할아버지는, 사람은 늘 개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옳은 
말씀이시다.
  작은 빨강이는 아칸소 주의 오재르크스에 있는 어느 계곡의 얼음구덩이 속에 떨어져 
죽었다. 그 개는 사냥개가 마땅히 죽어야 할 장소, 곧 산에서 죽었다. 퍼렁이와 나는 
다시 인디언의 나라로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인디언의 나라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서쪽으로 가면서 평원의 농장에서 일하기도 했고 목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어느 날 저녁 늦은 시간에 퍼렁이는 내가 탄 말 곁을 따라오다가 푹 주저앉더니 
일어서질 못했다. 그 개는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퍼렁이를 들어올려 내 
안장 위에 얹어 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시메런의 붉게 타오르는 일몰을 등에 지고 
돌아섰다. 우리는 동쪽을 향해 나아갔다.
  나는 일하던 농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동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내가 탄 말과 안장은 내가 이미 십고 달리를 주고 산 것이었으니까.
  퍼렁이와 나는 산을 찾아 헤맸다. 동트기 전에 우리는 산을 하나 찾아냈다. 그것은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에 가까웠다. 그러나 퍼렁이는 그곳을 보자 반갑다는 듯이 
낑낑댔다. 해가 떠오를 무렵 나는 그 산곡대기에 오를 수 있었다. 나는 퍼렁이의 
무덤을 팠으며 퍼렁이는 내 곁에 앉아 내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퍼렁이는 고개를 쳐들 힘도 없었지만 내가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며 또 자신이 그걸 알고 있다는 걸 내게 알려주었다. 한쪽 귀를 바짝 치켜들고 
두 눈으로 줄곧 나를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땅바닥에 앉아 퍼렁이의 머리를 잡아 
주었다. 그는 내 손으 핥았다.
  이윽고 그는 별다른 고통 없이 죽었다. 내 팔에 자신의 머리를 떨군 채. 나는 그를 
깊이 파묻은 뒤 다른 짐승들이 시체를 훔쳐가지 못하게 그 위에 돌을 잔뜩 
쌓아올렸다.
  나는 그가 자신이 지닌 뛰어난 후각을 이용해서 이미 우리가 살던 테네시의 
산악지대로 가고 있으리라 짐작했다.
  그는 쉽사리 할아버지의 뒤를 쫓아갈 수 있으리라. 
  @[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을 함께 나누며

  뉴 멕시코 대학 출판부는 포리스트 카터Forrest Carter가 지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을 다시 펴내기로 했다. 할머니가 어린시절의 작은나무에게 "귀하고 소중한 
것이 있으면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고 충고했던 말을 그대로 실천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 출판부는 한 권의 소중한 책을 함께 나누려 한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세대가 
나올 때마다 어느 시기에 가서는 반드시 찾아내어 읽고 또 읽어야 할 보기 드문 
책으로 손꼽힌다. 이 책은 결코 시들지 않을 훌륭한 책이며, 놀랍도록 재미있고 가슴속 
깊이 파고들 책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을 지은 포리스트 카터는 인기를 모았던 "무법자 조시 
웨일즈"를 비롯하여 귀중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그 가운데서도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은 위대한 책이다. 당초에 이 책의 제목은 "나와 할아버지"였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은 카터가 이스턴 체로키 힐에서 조부모와 함께 살던 시절의 추억을 
자서전처럼 엮어 놓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은 1930 년대, 
대공황기의 생활을 감동적으로 그려 놓은 작품 이상의 무엇, 그보다 훨씬 큰 뜻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보편적인 의미를 담은 인간 기록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인간 영혼의 깊은 곳에 접근하는 책이다.
  어느 땐가 한번이라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 책을 
알게 되었던가를 기억하고 있다. 어느 서점의 "자서전부"에서 보았을 수도 있다. 
텔리비전의 신간소개에서 "이주일의 책"으로 비평^5,23^소개되는 장면을 보았음직도 
하다. 또는 인디언 보호구역을 지나가다 어느 기념품 가게의 선물 탁자 위에서 
찾아냈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의 독자들은 그 첫 
만남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한번만이라도 읽은 사람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을 마음속에서 영원히 떨쳐 버릴 수 없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뒤에는 이 
세상을 두번 다시 똑같은 시각으로 볼 수 없다.
  1977 년에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이 이 세상에 나왔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비평의 글과 말을 남겼고, 한결같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에서 지방의 
산악 주간지에 이르는 실로 다양한 평론가들이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 이 작품은 어느 인디언 소년의 자서전적인 추억을 담고 있으며, 
기계적이고 물질주의적인 현대 세계에 전혀 새로운 눈길로 다가가싿. 그러므로 
젊은이들과 "자라남", 인디언과 이 땅, 그리고 사람과 땅과의 관계에 뜨거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을 읽었고, 
이들이야말로 가장 충실한 독자들이었다.
  오래지 않아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은 다른 집단에서도 열렬한 독자를 찾을 수 
있었다. 10 대들이 이 책에 매혹되었다. 여느 때에는 책을 읽지 않던 수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의 빼어난 글과 거기에 배어 있는 가치관에 감동했다. 
어린아이들은 스스로 이 책을 찾아나섰다. 도서관의 사서들은 이 책이 서가에 돌아올 
짬이 없다는 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생활을 연구하는 
학도들은 이 책이 신비롭고도 낭만적인 것에 못지않게 내용이 정확하다는 데 
감탄했다. 국민학교 교사들은 얼핏 보기에 세상에 찌든 아이들이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에 빠져드는 것을 반가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에 대한 
사랑은 이 독자에서 저 독자로 옮아갔고, 그에 따라 이 책을 빌려보기란 점차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뉴 멕시코 대학 출판부에서 이번에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을 다시 펴냄으로써 
이 책은 다시 목마른 독자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의 가슴에 젖어들고 우리 
영혼을 적시는 지극히 감동적이고 심오한 이야기가 여기 있다. 과거의 독자와 새로운 
독자들이 다시 한번 이 지혜의 잔치에 자리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레나드 스트리클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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