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오이디푸스의 주요 개념
들뢰즈와 가타리는 -종합 철학-을 추구한다.
멀리로는 에피쿠로스, 스토아에, 가까이로는 니체와 베르크손에 닿아 있는 유물론 철학자들이다.
_안티오이디푸스_는 욕구 개념을 통해 우주와 역사를 규명한 종합적 철학서이다.
1. 욕구하는 기계, 생산의 합언적 종합
기계(machine)
기계는 일성적 의미에서의 기계(들뢰즈와 가타리의 용어로는 _기술적 기계-)가 아니다.
기계는 스토아 학파나 에피쿠로스 학파가 말하는 _물질/물체적인 것들(somata/les corporels)을 말한다.
우주의 모든 것은 기계이다.
물질적인 것이 아닌 것들(asomata/les incorporels)은 물질적인 것들의 파생물이다.
우주의 물체들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들이며 그 안에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 생명력이 정신분석학적 맥락에서는 <이드>로 이해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드라는 말에서 주체성의 뉘앙스를 벗겨내기 위해 '기계'라는 말을 사용한다.
욕구(desire)
욕구는 차이를 생성하는 근원적인 힘이다.
욕구는 우주에 잠재해 있는 가능성들을 현실화하는, 복수화하는 _생산하는 힘_이다.
욕구는 일종의 콜라주 작업이며 브리콜라주 작업이다.
플라톤에서 프로이트, 라캉에 이르기까지 욕구의 개념은 결핍의 개념과 쌍을 이루어 왔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구는 자체 긍정적이고, 차이 생성적인 힘으로 본다.
이 점에서 이들의 욕구는 니체의 _능력에의 의지_, 베르크손의 _생명의 약동_을 이어받고 있다.
욕구하는 기계(la machine desirante)
기계 안에 들어 있는 힘(이드, 의지, 생명력)을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구라고 부른다
그래서 욕구하는 기계란 일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실체를 의미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기계>라는 말로 철저한 유물론적 입장을 천명하고 있으며, 욕구하는이라는 말로
넓은 의미의 생기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분열(schizophrenie)
분열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현재를 부정하고 차이를 생성한다.
욕구는 본성상 분열적이다
자본주의는 욕구를 긍정하고 끊임없이 차이를 생성한다는 점에서 분열적이다.
욕구적 생산(la production desirante)
우주와 역사는 생산의 과정이다.
1)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생산이다. 사물들이 서로 작용해 생기는 '생산들의 생산', 분배와 배치의
'등록들의 생산', 향락들, 불안들, 고통들의 생산인 '소비들의 생산'.
등록과 소비를 생산 자체 속에 집어 넣고 동일한 진행 속의 생산들로 삼아야 한다.
2) 인간과 자연의 연속성. 이 관점에서 인간도 생산 과정 안에 들어간다. 과정으로서의
생산은 내재적 원리인 한에서의 욕구에 관련한 하나의 원환을 형성한다.
3) 분열(증)은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욕구하는 기계들의 우주요, '인간과 자연의 본질적
현실'로서의 근원적인 보편적 생산이다.
생산적 종합(la synthese productrice)
생산적 종합은 생산의 생산이다. 생산 구조가 끊없이 연결되는 종합이다.
기계들은 늘 연합(association)을 통해 작동한다.
유체와 고체의 복합적 관계, 욕구는 흐르고 기계를 그 흐름을 흐르게 하고 끊는다.
작은 기계들(예컨대 눈)은 자기 나름으로 작동한다.
기계들은 브리콜라주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칸트의 공동 감각에 대한 비판)
생산의 연결적 종합(la synthese connetive)
생산은 늘 생산들의 생산이다.
때문에 생산에는 늘 무엇인가가 연결된다.
생산은 연합(connexion)을 통해 이루어진다.
2. 기관들 없는 신체/無器官體(corps sans organes)와 분배/등기의 선언적 종합
생산의 생산은 욕구하는 기계들을 통해 이루어지며 연합을 통해 이루어진다.
등록의 생산은 기관들 없는 신체들에 의해 이루어지며 분배적이다.
기관들 없는 신체는 일종의 표면, 격자, 터이다.
자본은 자본가가 그 위에서 돈을 자본을 만들어내는 기관들 없는 신체이다.
기관들 없는 신체와 그것의 强度는 물질 자체이다.
기관들 없는 신체는 힘들, 욕구들, 강도들을 분배하는 표면이다.
욕망하는 생산은 일정한 유기체를 지향한다.
각각의 유기체는 일정한 强度를 지닌다.
기관들 없는 신체는 '강도 = 0'의 상태를 띤다.
이것은 죽음의 상태이다. 기관들 없는 신체는 Thanatos에 의해 지배된다.
기관들 없는 신체의 죽음에의 충동은 저 멀리에서 사물들을 유혹한다.
비교: 베르크손
기계-기관들(machines-organes)과 기관들 없는 신체는 대립한다.
근원적인 억제(refoulement)는 역투자(contre-investissement)가 아니라 기관들 없는 신 체가 욕망하는 기계들을 되끄는 것(r pulsion)이다.
기관들 없는 신체가 욕망하는 기계를 잡아당길 때 기계는 편집증(paranoia)에 걸린다.
비교: 포커에서의 딜러
사회적 생산에서의 CsO = socius(社會體), 대지, 군주, 자본
사회체는 등록의 표면이다.
3. 노마드적 주체와 소비의 연언적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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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 기계(machine celibataire)
생산은 기계들의 합언적 종합을 통해 작동하고, 등록은 기관들 없는 신체의 선언적
종합을 통해 작동한다. 소비는 독신 기계들의 연언적 종합을 통해 작동한다.
독신 기계는 일종의 주체이다. 기관들 없는 신체 위를 헤매며 연언적 종합을 행하는
소비의 주체이다. 주체는 등록의 표면에서 등장한다. 그것은 욕망하는 기계들 곁에 늘 존재하며
생산된 것에서 그것이 취하는 부분에 의하며 규정되며 어디서나 생성이나 형태 변이에서 이익을 보며 소비의 상태에서 탄생하며, 각 상태에서 재탄생한다
생산의 에네르기로서의 리비도가 등록의 에네르기로 분배되어 '누멘'이 되듯이, 누멘의 한 부분은 소비의 에네르기(voluptas)로 화한다.
독신 기계는 혈연과 결연에 매이지 않기 때문에, 보다 자유로이 주체를 형성한다.
연언적 종합과 소비의 생산(synth se conjonctive)
독신 기계는 편집증 기계(기관들 없는 신체)와기적을 행하는 기계(욕구하는 기계들) 다음으로 나타난다.
독신 기계는 욕망하는 기계들과 기관들 없는 신체 사이에 새로운 결합을 만들어 새로운 인간 또는 영광스러운 유기체를 탄생시킨다.
주체는 욕망하는 기계들 곁에 여분으로 생산된다.
주체의 생산은 소비의 연언적 종합에 의해 발생한다. C' tait donc a.
독신 기계들은 얼핏 편집증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 뭔가 새로운 것, 태양의 힘같은 것을 드러낸다.
독신 기계들을 통해 새로운 결연이 형성된다. 가, 나, 다, 라..., 그러므로 이것은 X이다.
물질, 알, 강도들(mati re, oeuf, intensit )
독신 기계들은 강도 높은 量들을 생산한다.
잠재성이 현실화되는 과정을 지배하는 것은 强度이다.
강도들의 작용은 "삶과 죽음 사이에 매달린 아우성, 강도 높은 이행의 감정, 모양이나 구조가 증발해 버리는 순수 강도의 상태들"이다.
환각은 단지 거짓된 존재인 것은 아니다.
환각이 환각인 것은 칸트가 말한 '능력들의 일치'가 그 환각을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아래에는 환각을 그 자체로서 포착하는 "나는 느낀다"의 층위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강도들, 생성들, 이행들을 체험하는 진정 일차적인 情動이 존재한다. 이는 곧 'Stimmung'의 차원이다.
순수한 강도들은 기관들 없는 신체의 반발과 욕구하는 기계들의 끌어당김 사이에서 발생한다. 기관들 없는 신체는 '강도 = 0'의 상태이다.
끌어당기는 힘과 반발하는 힘은 강도 높은 영역들의 열린 게열을 생기게 한다.
이 영역들은 최종적인 균형 상태가 아니라 한 주체가 거치는 무수한 준안정적 정지 상태를 나타낸다.
유전형과 표현형이 그렇듯이, 강도와 그것이 현실화된 상태는 닮지 않는다.
요컨대 강도는 표상의 논리에 지배되지 않는다. 정신 분열자는 정신이 물질과 접촉하는 견딜 수 없는 점에 자리잡고 물질의 강도 하나하나를 살아나가고 물질을 소비한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이것은 그것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나다!"를 인정하지 않으며, 오이디푸스의 원환 속에 가두어 버린다.
기관들 없는 신체는 하나의 알이다. 그 알 위에는 수많은 욕구하는 기계들의 계열들이 가로지른다. 주체[노마드적 주체]는 그 계열들을 이러저리 가로지르면서 형성된다. 40쪽 8열 - 25열.
......은 바로 나다(......, c'est moi)
끌어당기는 힘과 반발하는 힘, 비약적 발전과 쇠퇴의 힘은 기관들 없는 신체의 성격을 이루는 강도 = 0에서 출발하는 일련의 강도 높은 상태들을 산출한다.
문헌학 교수인 니체의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일련의 상태들을 통과하는 그리고 이 상태들에다가 역사상의 이름들을 그대로 붙이는 니체의 주체가 있을 따름이다.
역사상의 모든 이름들, 그것은 나다.
이는 자기를 역사상의 인물들과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상의 이름들을 기관들 없는 신체 위의 강도의 여러 지대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주체는 "이것은 나다, 그러므로 이것은 나다!"라고 외친다. 정신분열자는 단순에 세계사를 소비한다.
그이것은 나다!"라고 외친다.
정신분열자는 단순에 세계사를 소비한다. 그는 자연인인 것 못지 않게 역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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