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땅을 주었습니다
후안 룰포(Juan Rulf, 1918-1986): 멕시코 소설가. 멕시코 농민과 농촌 문제를 현대적 관점으로 포착한 작가로 현대 라틴아메리카 소설계의 스승이라고 일컬어짐. 멕시코의 할리스코 주에서 출생. 그의 작품으로는 단편집 『불타는 평원』과 소설 『뻬드로 빠라모』가 있다.
오랜 시간을 걸은 후에 비로소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우리는 나무 그늘이나 옥수수 혹은 그 어떤 식물의 뿌리도 보지 못한 채 마냥 걷고 있었다.
우리는 바람 한 점 없는 이런 길 한복판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금이 가고 개울물도 말라 버린 이런 황무지의 끝에서는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오고, 공기 속에서는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내뿜는 이런 냄새를 마치 한 가닥의 희망처럼 음미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을은 아직 먼 곳에 있었다. 마을 냄새를 이곳까지 가져오는 것은 바로 바람이었다.
우리는 동틀 녘부터 걷고 있었다. 이제 시간은 오후 네 시쯤 된 것 같았다. 누군가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태양이 걸쳐 있는 곳으로 눈을 지긋이 떠서 바라보면서 말했다.
"오후 네 시쯤 된 것 같군."
이 말을 한 사람은 멜리톤이었다. 그와 함께 가고 있던 사람들은 파우스티노, 에스테반, 그리고 나였다. 우리는 모두 네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을 세어 보았다. 두 사람은 앞에,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뒤에 가고 있었다. 나는 뒤를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그러자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우리는 네 사람이야》 한참 전만 하더라도, 그러니까 오전 열 한시 경만 하더라도 우리 그룹은 모두 스물 한 명이었다. 그러나 한 뭉큼씩 흩어지더니, 이내 우리 네 사람밖에는 남지 않게 되었다.
파우스티노가 말했다.
"비가 올지도 모르겠어."
우리 모두는 얼굴을 들어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검고 무거운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럴지도 몰라》 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이미 오래 전에 말하고 싶은 욕망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더워서 그럴 생각이 없어졌던 것이다. 다른 곳이라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말을 건넸을지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말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여기에서는 말을 하면, 그 말은 밖의 더위 때문에 입에서 더워지고, 혓바닥에서 말이 말라 버려 마침내는 씩씩거리는 소리밖에는 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그랬다. 그래서 아무도 말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이다.
크고 두툼한 물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그것은 마른땅에 구멍을 내고, 마치 침을 뱉은 것처럼 자국을 남겨 놓았다. 그러나 단지 한 방울만이 떨어졌을 뿐이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더 떨어지기를 바랬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다. 이제 하늘을 쳐다보니 소나기구름이 전속력으로 저 멀리 달아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언덕의 푸른 그림자들 반대쪽으로 구름들을 밀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실수로 떨어진 물방울은 대지가 삼켜 버렸으며, 대지의 갈증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어떤 빌어먹을 놈이 황무지를 이토록 크게 만들었지? 이게 모두 무슨 쓸모가 있나, 안 그래?"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비가 오는지를 바라보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우리는 다시 걷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실제로 걸어온 거리보다 더 많이 걸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만일 비만 내렸더라도 나는 다른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황무지 위에 비가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소위 비온다고 말할 정도로 비가 내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황무지는 쓸모 있는 땅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토끼도 없고 새도 없었다.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황무지에서 자라는 몇몇 선인장과 칭칭 동여 감고 있던 잡초를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는 땅이었다.
우리는 그런 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네 사람 모두 그런 곳을 걷고 있었다. 이 일이 있기 전에 우리는 말을 타고서 장총을 비스듬히 걸고 다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장총조차도 갖고 있지 않았다.
나는 항상 우리가 장총을 갖지 못하게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무장하고 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스런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허리띠에 항상 30구경 장총을 매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죽여 버리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말(馬)은 그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만일 말을 타고 왔다면, 우리는 이미 푸른 강물을 맛보았을지도 모르며, 마을의 거리를 누비며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서 우리의 배를 채웠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 모두가 예전에 갖고 있었던 말만 있었으면, 이런 모든 것을 이미 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장총과 함께 우리의 말도 빼앗았던 것이었다.
나는 사방을 둘러본 후, 다시 황무지를 바라보았다. 그토록 넓은 땅이었지만 아무짝에도 쓸모 없었다. 우리의 눈은 한곳에 고정되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가고 있었다. 바라볼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도마뱀 몇 마리만이 자기들이 사는 구멍 위로 고개를 쳐들기 위해 나올 뿐이었다. 그러나 작렬하는 햇빛을 느끼자마자 이내 바위 그늘로 숨기 위해 뛰어갔다. 하지만 우리들이 여기에서 일해야만 한다면, 무슨 수로 뜨거운 태양을 피해 몸을 식힐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에게는 약간의 풀 포기만 자라는 메마른 땅 껍질을 주었고, 그곳에 씨를 뿌리라고 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했다.
"마을 저쪽 땅은 모두 당신들 것이오."
그러자 우리는 물었다.
"황무지 말입니까?"
"그렇소. 저 황무지 말이오. 광활한 황무지가 모두 당신들 땅이오."
우리는 고개를 쳐들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황무지가 아니며, 강가에 있는 땅을 원한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니까 그곳은 울창한 나무들과 푸른 초원과 비옥한 땅이 있는 강 저쪽의 평야였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말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정부의 농지개혁 사절단 단장은 우리와 대화를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 손에 서류를 쥐어 주고는 말했다.
"당신들이 너무 많은 땅이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지는 마시오."
"단장님, 황무지는......"
"그건 수천, 아니 수만 평의 땅이오."
"하지만 물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입에 적실 물도 없어요."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소리요? 아무도 당신들에게 관개용수가 있는 땅을 줄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소. 그곳에 비만 내리면, 옥수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날 것이오."
"하지만 단장님, 그 땅은 메마르고 황폐합니다. 그 땅은 돌과 같아서 쟁기로 파고 들어갈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황무지는 바로 그런 땅입니다. 씨앗을 뿌리려면 커다란 쟁기로 구멍을 뚫어야 하고, 그런 식으로 하더라도 씨에서 무언가가 싹트리라는 보장이 하나도 없습니다. 옥수수나 그 어떤 것도 싹을 틔우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의견은 서면으로 제출하시오. 그리고 지금은 그만 돌아가시오. 당신들이 공격해야 할 대상은 대지주들이지, 당신들에게 땅을 준 정부가 아니오."
"단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우리는 정부 기관에 항의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황무지가...... 도저히 일굴 수 없는 땅을 일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사실을...... 설명을 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우리는 우리가 예전부터 일해 왔던 곳에서 시작하고자......."
하지만 그는 우리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땅을 준 것이었다. 이 뜨거운 가마니 속에서 그들은 우리가 씨앗을 뿌려 무언가가 싹을 틔우고 자라는지 보고 싶어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아무 것도 자라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심지어는 검은 까마귀도 살지 않을 땅이었다. 까마귀들이 시시각각 저 위로 아주 빨리 날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딱딱하고 희멀건 땅에서 가능한 한 빨리 도망치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그런 땅은 바로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고, 사람들만이 힘없이 축 쳐진 채 걸어가는 곳이었다.
멜리톤이 말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준 땅이야."
그러자 파우스티노가 말했다.
"뭐라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멜리톤은 제 정신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것은 바로 더위 때문일 거야. 더위가 그의 모자를 뚫고 들어와 머리를 뜨겁게 해서 그렇게 돌아 버린 거야. 만일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런 말을 하겠어? 멜리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땅을 주었다는 거야? 그런 곳은 잔잔한 바람이 오다가도, 이내 회오리바람으로 변하는 곳이야.》
멜리톤은 다시 말을 했다.
"무언가에 쓸모가 있을 거야. 당나귀들이 뛰어 노는 데라도 사용될 수 있을 거야."
그러자 에스테반이 물었다.
"무슨 당나귀?"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에스테반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말하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는 외투를 입고 있었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배꼽까지밖에는 닿지 않았다. 그런데 외투 아래에서 암탉 같은 것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랬다. 에스테반이 외투 아래에 숨겨서 갖고 오던 것은 울긋불긋한 암탉이었다. 눈은 졸린 듯이 감겨 있었고, 주둥이는 하품을 하듯이 벌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이봐, 에스테반. 그 닭은 어디서 훔친 거야?"
에스테반이 대답했다.
"내 거야"
"아침나절만 해도 없었잖아. 도대체 어디서 훔친 거야?"
"훔친 게 아니야. 내 닭장에 있던 닭이야."
"그럼 잡아먹으려고 가져온 거야?"
"아니야. 보살펴 주려고 갖고 온 거야. 집이 텅 비어 있어서 먹을 것을 줄 사람이 없어. 그래서 가져온 거야. 내가 멀리 갈 때면 항상 이 암탉을 데리고 다녀."
"그곳에 숨겨 두면 질식해 죽을지도 몰라. 그러니 꺼내 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는 자기 팔 밑으로 닭을 편안하게 안은 다음, 자기 입에서 나오는 뜨거운 공기를 불어 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제 벼랑에 다다르고 있어."
나는 에스테반이 계속해서 말하는 것을 듣지 않았다. 우리는 줄을 지어 벼랑을 내려갔다. 그는 제일 선두에 섰다. 그리고 암탉 다리를 쥐어 잡고는 머리가 다리에 부딪히지 않도록 때때로 이리 저리 흔들어 주고 있었다.
내려갈수록 땅은 좋아지고 있었다. 마치 노새가 성급히 뛰어 내려가듯이, 우리 위로 먼지가 일었다. 하지만 우리는 먼지로 뒤덮여도 좋았다. 우리는 그런 것을 좋아했다. 11시간 동안이나 딱딱한 황무지만을 밟고 온 이후에, 우리는 우리 위로 치솟으면서 땅 냄새 풍기는 먼지를 즐거운 마음으로 뒤집어쓰고 있었다.
강 건너 저쪽으로 울창한 푸른 나뭇잎 위로 초록색의 들새 무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것 역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 옆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마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벼랑에 부딪치면서 벼랑을 온통 개 짖는 소리로 뒤덮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집들로 다가가자, 에스테반은 자기 닭을 꽉 껴안았다. 그리고는 움켜쥐었던 다리를 놓아서 저린 다리를 풀어 주었다. 그런 후 그와 그의 암탉은 선인장 숲 뒤로 사라졌다.
"난 여기에서 살 거야!"
에스테반이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면서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제 우리에게 준 땅은 저 뒤쪽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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