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의자 *****
- 제 1편 -
요시코는 외무성에 다니는 남편을 10시 조금 지나 출근시키고, 그
때부터 완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과 함
께 쓰고 있는 서재로 가서 K지(誌)의 여름 특집호에 게재할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유려한 필치를 자랑하는 다재다능한
여류작가였다. 요시코의 남편도 이름높은 외교관이었지만 그녀의
작가적 명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매일 그녀의 작품을 칭송하는 독자 편지가 쇄도했다.
실제로 이날 아침만 해도 그녀는 책상에 앉자마자 우편배달부가 아
침에 가져온 여러 통의 편지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예외없이 그
편지들은 모두 똑같은 내용이었으나, 여성다운 섬세한 마음의 소유
자인 그녀는 재미가 있건 없건 자신에게 부쳐져 온 편지들을 하나씩
읽어나갔다.
짧고 간단한 편지들부터 먼저 집어들고서는 재빨리 그 내용을 훑어
보았다. 이윽고 그녀는 원고지 뭉치처럼 보이는 편지봉투를 집어들
었다. 원고를 부쳤다는 사전 통지를 받은 적은 없었지만, 그녀의 조
언을 구하는 아마추어 작가가 원고뭉치를 보내오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대부분 그같은 원고는 장황하고, 주제가 없는데다 하품
나오는 것들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편지봉투를 손에 집어들고 여러
장의 원고뭉치를 꺼냈다.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 그것은 정성들여 묶은 원고뭉치였다. 그러
나 어찌도니 셈인지 제목도 없고 필자 이름도 씌어있지 않았다. 원
고는 느닷없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요시코 부인........"
잠시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어쨌거나 편지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무의식적으로 그녀는 그 다음의 두세 줄을 읽어본 뒤, 서서히 그 이
상하고도 기괴한 얘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호기심은 점점
더 강해져 주체할 수 없게 되었고, 알지 못하는 마력에 이끌려 그녀
는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요시코 부인. 전혀 낯선 사람이 이같이 무례한 편지를 보낸 점, 이
해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부인, 제가 이제 써나갈 얘기는 당신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부인 앞에 제 얘
기를 고백하고 제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낱낱이 털어놓기로 결심
했습니다.
여러 달 동안 저는 문명의 광명으로부터 저 자신을 숨겨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악마처럼 숨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묘한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 더이상 그 비밀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었습
니다. 저는 고백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써온 얘기는 부인에게 적잖은 당혹감을 불러일으켰을 것
입니다. 그러나 죽 참고 제 얘기를 끝까지 읽어주시기를 간청합니
다. 그렇게 해주셔야만 저의 기묘한 심리상태와 왜 제가 꼭 당신에
게만 이같은 고백을 하고자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
입니다.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사실은 보통사람으로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기괴한 것이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난감합니다. 솔직
히 말씀드려 그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기에는 필설(筆舌)로는 부족할
지경입니다. 그렇지만 사건이 발생한 경과를 연대순으로 설명해 나
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저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추남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려 둡니
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인이
저의 마지막 소원을 받아들여 저를 만나게 될 때 너무나 추악한 제
얼굴에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 얼굴은 너무나 오
랬동안 비위생적인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더욱 추악하게 되었습니
다. 그러나 제 얼굴이 아무리 추악하다고 해도 마음속에는 순수한
정열이 불타고 있음을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비천한 장인(匠人)입니다. 부유한 집안에 태어났더라면 집안
의 돈을 가지고 못생긴 얼굴 때문에 받았던 영혼의 고통을 줄일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더라면 짐승같이 생긴
제 용모를 잊어버리고 음악이나 시가에서 위안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재능도 아예 없었고, 재수라고는 전혀 없
는 인간이었기에 저는 비천한 작업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렇게 해서 저는 각종 의자를 만들어내는 특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분야에서 저는 꽤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아무리 까다로운 주문이라고 하더라도 척척 해낼 수 있다는 명성까
지 얻게 되었으니까요. 이 때문에 목재가구업계에서는 특별한 대접
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급의자의 제작만 전문으로 주문을
받았습니다. 고급의자는 독특한 조각장식, 새로운 디자인의 등받이
와 팔걸이, 탄력이 훌륭한 쿠션과 좌석등을 만들어 넣어야 하기 때
문에 오랜 기술과 경험을 가진 숙련된 가구장이가 만들어야 하는 것
입니다. 그러니 신출내기 목공 정도로는 손도 대볼 수 없는 복잡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의 땀에 대한 보답은 돈보다는 창조의 즐거움 그 자체에
이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건방지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
다만, 그같은 즐거움은 진정한 예술가가 대작을 창조하고 나서 느낄
때의 스릴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의자가 다 만들어질 때마다 그 의자에 앉아 촉감을 느껴보는 것이
저의 습관이었습니다. 저의 작업이 비록 비천하여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제가 만든 의자에 앉아보는 순간에는 형언하기 어려
울 정도의 감동을 느꼈습니다. 또 상상력을 최대한도로 발휘하여,
이 의자의 주인이 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했습
니다. 분명 지체 높은 분들일 테지. 왕궁 같은 저택에 살 테고, 그
저택의 벽에는 값지고 귀중한 명화가 걸려 있을 테지. 천장에는 휘
황찬란한 수정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을테고, 바닥에는 아주 비싼 양
탄자가 깔려 있을 테지.
이렇게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어떤 의자의 경
우, 저는 그 의자가 마호가니 테이블 앞에 놓여지리라 상상했는데,
그러자 달콤한 향기를 방안 가득히 뿜어내고 있는 각종 꽃들이 꽂혀
져 있는 꽃병의 환상도 함께 생겨났습니다. 이같이 이상한 환상에
사로잡혀 저 자신도 그같은 실내장식의 한 부분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저 자신이 사회의 저명한 인사가 된 듯한 상산을 하며 끝없
는 즐거움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같이 어리석은 생각들이 끊이지 않고 저의 마음속에서 일어났습
니다. 부인, 저 자신이 만든 고급의자에 편안히 앉아 꿈에도 못잊는
아가씨의 손을 잡는 상상을 할 때의 저 자신의 기묘한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저의 이 아름다운 꿈은, 언제나 늘 그렇습
니다만, 이웃의 무식한 아주머니들의 시끄러운 잡담소리와 그 집 아
이들의 신경질적인 빽빽거림, 울음소리 등으로 깨어져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또다시 비참한 현실이 내 눈앞에서 보기싫은 꼴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다시금 현실로 돌아온 저는 저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고 보잘것없는
벌레같은 존재인가를 느끼게 됩니다. 내 사랑, 천사 같은 여인도 또
한 안개처럼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저의 어리석음을 저주
합니다. 바보 같은 놈, 길거리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들조차도
너를 쳐다보지 않는데, 언감생심 천사 같은 여인이라구!
새로운 의자를 하나 완성할 때마다 저는 끝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혔
습니다. 그리고 여러 달의 시간이 지나자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비
참한 느낌은 나의 목을 죄기 시작했습니다.
***** 제 1편 끝 *****
- 키드 -
- 제 2편 -
어느날 저는 요코하마 소재의 어느 외국인 호텔에 납품할, 지금까
지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대형 가죽안락의자의 제작을 주문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의자는 해외에서 수입할 예정이었으나 저의
의자만드는 기술을 잘 알고 있던 그 호텔 지배인의 주선으로 제가
그 주문을 맡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름난 장인이라는 저의 명성에 손상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저는
이 새로운 일에 전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서서히 저는 그일에 빠져
들어 때로는 침식을 거를 때도 있었습니다. 그 일은 저의 생활 전
부가 되었고, 제가 사용한 목재 하나하나에는 저의 영혼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그 의자가 완성되자 저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커다란
만족감을 맛보았습니다. 저는 그 의자야말로 전에 제가 만든 그 어
떤 의자보다 훨씬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에도 그렇게
했던 것처럼 저는 작업장 한구석의 양지바른 곳에다 그 의자를 끌어
다 놓고 앉아 보았습니다. 얼마나 안락하던지요! 얼마나 멋지던지
요!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너무 부드럽지도 않게 스프링은 아주 적
당한 쿠션을 제공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죽의 부드러운
촉감이란! 그 의자는 앉아있는 사람에게 안락한 기분을 줄 뿐만 아
니라 그 사람을 포옹하고 애무하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등받이
의 굽어진 각도도 알맞았고, 팔걸이 부분도 부드럽게 부풀어올라 좋
은 촉감을 주었스며, 그밖의 부품들도 저마다 멋진 균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안락'이라는 말의 뜻을 그 의자처럼 잘 얘기해
주는 물건은 아무데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앉아손으로 팔걸이 부분을 부
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정말로 만족스럽고 기뻐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
습니다.
또다시 저의 상상력이 발동되어 제 마음속에다 기묘한 환상을 일으
켜놓았습니다. 제가 상상하는 광경이 그때 너무나 생생히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에 저는 잠시 동안 제가 미쳐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같은 심리상태에 빠져들면서 순간 기괴한 아이
디어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부명 그것은 악마의 속삭임이었스
빈다. 그생각은 너무나 기괴한 것이었지만, 거부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힘으로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물론 그같은 생각은 그 의자를 저 자신이 차지하고 싶다는 은밀한
욕망이 그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자를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저는 그 다음 방법으로 의자가 가는 곳이면 어디
든 따라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천히, 그러나 끈덕지게 이같은 상
상을 해나가다 보니 제 마음은 거의 전율과 같은 유혹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부인. 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기
괴한 계획을 실천해내고야 말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재빨리 저는 그 안락의자를 분해하여 저의 그 기괴한 목적에 알맞
게끔 그 의자를 재조립했습니다. 그 의자는 대형 안락으자였기 때
문에 좌석받침대의 커버가 마루에까지 닿게 덮여 있었고, 등받이와
팔걸이는 모두 규격이 큰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점을 이용하여 그 대형의자의 내부에다 충분한 공간을 만들
어 성인남자가 발각될 염려없이 숨을 수 있게끔 만들었습니다. 물
론 이 일은 간단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의자에는 자질구레한 목재
가 많이 쓰였고, 또 내부에는 스프링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놀라운 기술을 발휘하여 그 의자를 목적에 맞게 재조립
했습니다. 우선 무릎은 죄석받침대 바로 밑에 놓일 수 있게 하고
상체와 머리부분은 등받이의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의자 내부의 빈 공간에 이와같이 앉아 있으면 전혀 들킬 염려가 없
었습니다.
이같은 재조립의 일을 해내는 것이 저에게는 별로 큰 힘이 드는 것
은 아니었기 때문에 저는 그 의자에다 몇 가지 부속장치를 더 만들
어 넣었습니다. 외부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치와 의자의
가죽을 조금 찢어놓아 밖을 내다볼수 있는 작은 틈 등의 부속장치를
말입니다. 물론 이런 장치들은 모두 감쪽같이 숨겨져 있어서 아무
도 그것을 눈치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내부에 식품저
장소를 마련하여 건빵 몇 봉지와 물통 등을 놓아둘 수도 있게 했습
니다. 대소변 처리용인 대형 비닐봉지도 아울러 넣어두었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장비와 시설들을 의자의 내부에다 갖추고 나니, 그
곳은 꽤 살 만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2-3일 이상
을 계속해서 묵을 수는 없겠지요.
그 기괴한 일을 다마치고 나서 저는 상의를 벗고 그 의자의 내부로
들어갔습니다. 부인, 그때 제가 느낀 그 기묘한 감정을 상상이나 해
보실 수 있겠습니까? 정말 저는 한적한 묘혈(墓穴)의 내부에 갇혀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의자 속으로 들어가 칠흑의 어둠
속에 갇히는 순간, 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더이상 존재하
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곧 그 호텔의 지배인이 그 의자를 인수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왔습
니다. 그 사람은 큰 손수레를 가지고 왔더군요. 저와 함께 살고 있
던 조수는 제가 해놓은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조
수가 그 심부름 온 사람에게 얘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의자가 손수레에 실려질 때 손수레꾼 중의 한 사람이 이렇게 말
했습니다.
"어휴! 정말 무거운 의자로군. 1톤은 될 것 같애."
이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그
의자 자체는 누가 봐도 대단히 무거운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아무도
의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곧 저는 손수레가 덜컹거리며 거리를 지나가는 흔들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그날 오후 제가 숨어있던 그 안락의자는 그 호텔의 객실 마룻바닥에
쿵 하며 놓여졌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것이 객실이 아니고 로비였
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짐작하셨겠지만, 이같은 미친 짓을 저지른 주된 목
적은, 주위가 비교적 안전할 때 의자의 내부에서 나와 호텔 주변을
돌아다니며 도둑질을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의자 속에 사람이 들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빠르게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마음대로 호텔 객실을 뒤져볼 수 있고, 혹 경
보라도 울리게 되면 비밀 은신처로 돌아와 안전하게 숨었습니다.
그러면 바깥의 사람들이 저를 잡으려고 분주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
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부인은 해변가 바위틈에 사는 바닷게 얘기를 들으셨을 겁니다. 큰
거미같이 생긴 이 게는 주변을 살금살금 돌아다니다가 인기척이 들
리는 즉시 빈 조개껍데기 속으로 냉큼 숨어버립니다. 그리고는 그
은신처에서 털달린 보기 흉한 앞발을 조금 내어놓고 엉큼하게 주변
을 살펴봅니다. 저의 경우에는 조개껍데기보다 훨씬 더 좋은 은신
처, 즉 감쪽같이 숨을 수 있는 의자가 있는 것이지요.
부인도 아시다시피 저의 계획은 너무나 독창적이고 예측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 계획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의 모험은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호텔에 도착한 지 사흘
뒤에 저는 이내 상당한 소득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비록 훔친 것이
긴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훔칠 수 있다는 사실이 자져다주는 스릴과 흥분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제가 있는 곳에서 불과 몇 미터 거리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도둑은 이리로 갔다" 또
는 "도둑은 저리로 갔다"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 때의 그 즐거움이
란 정말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짜릿한 것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제가 겪은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할 시간이 없군요. 그
대신 저의 얘기를 계속해 나가면서, 엄청나게 큰 즐거움을 주었던
한가지 사건에 대해 부인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이제부터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이 편지의 요점입니다.
***** 제 2편 끝 *****
- 키드 -
- 제 3편 -
먼저 제 의자가 호텔의 로비에 놓여진 순간으로 부인의 생각을 되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 의자가 로비의 바닥에 놓여지자마자 호텔
의 여러 종업원들이 번갈아가며 그 의자에 앉아보았습니다.
호기심이 사라지자 그들은 모두 방에서 나갔고, 곧이어 쥐죽은 듯
조용한 정적이 찾아들었습니다. 그러나 온갖 위험이 예상되었기 때
문에 저는 의자 내부에서 밖으로 나올 배짱이 없었습니다. 저는
밖에서 나는 조그마한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일각이 여
삼추같이 지루했습니다. 잠시뒤 저는 둔중한 발걸을 소리가 가까이
오는 것을 들었는데, 복도쪽에서 제가 숨어있는 의자쪽으로 걸어오
는 소리가 틀림없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발걸음 소리가 갑자기 나
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사람은 두꺼운 양탄자를 밟으며 걸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뒤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 소리가 제 귀에 들려왔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지 예측할 겨를도 없이, 유럽인같이 느껴지는 비
대한 몸집이 내 무릎위로 털썩 내려앉더니 자세를 고치며 두세 번
몸을 뒤척거렸습니다. 그의 바지와 내 무릎 사이에는 얗밑은 가죽
하나 밖에 놓여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 사람의 체온을 느
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넓은 어깨는 제 가슴에 착 달라붙었고 그
의 두툼한 두팔은 내 팔위에 놓여졌습니다. 시가의 강한 향기가 내
코로 스며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그 사람이 시가를 피우고 있다는
것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부인이 제 입장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이 기괴한 상태를 잠시나마
상상해 보십시오. 저 자신은 너무나 심한 공포감을 느낀 나머지, 져
드랑이 사이로 식은땀을 흘리며 석고가 된듯 온몸이 뻣뻣해진 상태
로 웅크리고 앉아있었습니다.
그 유럽인을 시작으로 하여 그날 여러 사람들이 내 무릎에 앉았는
데, 마치 자신의 차례를 끈질기게 기다린 사람들처럼 여러 명이었습
니다. 그러나 그 의자에 앉았던 사람들은 그 부드러운 쿠션이 어둠
의 세계에 갇혀 있는, 혈관 속에 피가 도는 사람의 살이라고 생각하
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같이 신비한 은신처의 어느 구석이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
던 것일까요? 저는 전혀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는 동물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외부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힘들게 숨을 쉬고, 얘기를 하고, 옷자락으로 살랑거리는 소리
를 내고, 그리고 부드럽고 둥근 육체를 가진 사람들로만 여겨졌습니
다.
서서히 저는 그 의자에 앉는 사람들을 시각보다는 촉각으로 식별하
게 되었습니다. 비만한 사람들은 대형 해파리같이 느껴졌고, 바싹
마른 사람들은 해골을 떠받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또다른
식별조건으로는 척추의 굴곡, 견갑골의 넓이, 팔의 길이, 넓적다리의
굴긱와 엉덩이의 윤곽 등이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이상하게 들
리겠지만, 사실만을 말씀드리는 것이니 그렇게 알아주십시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보이지만, 실은 사람들 사이에는 무수한
특징들이 있습니다. 그 특징은 사람들의 신체를 촉감으로 느낌으로
써 훨씬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문이나 얼굴윤곽도 그렇지만, 신
체구조는 사람마다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물론 이 이론은 여자
의 육체에도 적용됩니다.
일반적으로 여자는 두 개의 커다란 범주, 즉 미녀와 추녀로 구분됩
니다. 그러나 의자 속의 어둡고 좁은 세계에서는 얼굴의 생김새는
별 의미가 없고 살의 촉감, 목소리, 체취 등이 더 중요한 평가기준이
됩니다. 부인, 이같이 대담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불쾌하게 생각
하지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제 얘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제 마음속에 열렬한 사랑을 불
러일으킨 한 소녀가 있었는데, 맨 처음 제 의자에 앉았던 여자였습
니다. 목소리로 살펴볼 때, 그녀는 유럽인이었습니다. 그 순간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녀는 마음속에 행복이 넘쳐흐르는 듯 했
습니다. 왜냐하면 방안으로 들어오면서 그녀는 달콤한 목소리로 노
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 그녀는 제 의자 앞에까지 와서 서있었는데, 느닷없이 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다음에 그녀는 그물 안에서 펄떡이는 생선처럼
자신의 팔을 톡톡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제 무릎 위
에 앉았습니다. 약 30분 동안 그녀는 노래를 부르면서 박자에 맞춰
상체와 다리를 흔들어댔습니다.
그것은 나로서는 전혀 예기치 못한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얼굴이
못생겼기 때문에 늘 여성과는 멀리 떨어져 생활해왔었으니까요. 저
는 그때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한 유럽 소녀와 같은 방에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얇은 가죽 한 장을 사이에 두고 그녀의
피부와 저의 피부를 맞대고 말입니다.
저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녀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자의 내부에서 저는 그녀를 포옹
했고 그녀의 백설같이 흰 목에다 키스하는 장명을 상상했습니다.
'의자의 가죽 껍데기를 벗겨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같이 떳떳하지 못하지만 짜릿한 경험을 하고 난 뒤에 저는 도둑
질을 하겠다는 당초의 목적을 송두리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대신 저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짜릿한 쾌락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마도 나는 이같은 생활을 영위하도록 운명지워졌나 보다.'
그러자 서서히 하나의 진실이 저의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저 자
신처럼 추악하여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의자 속에서 인생을
즐기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 기괴하
고 어두운 세계에서 저는 모든 탐스러운 여성들을 만질 수 있고, 또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의자 속의 사랑!
너무 황당한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것을 경험한 사람만이 그 사랑의 스릴과 즐거움을 알 수 있는 것입
니다. 물론 그것도 기괴한 사랑으로서 촉감, 청각, 후각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것이고, 또 어둠의 세계에서 불타오르는 사랑이기도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의자 속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건들은 완전
히 이해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처음에는 몇 차례 도둑질을 하고 나
서 도망칠 작정이었지만, 저의 '숙소'에 강한 애착을 느끼게 되어 점
점 더 그곳을 영원한 거주지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밤에 호텔 주변을 배회할 때, 저는 언제나 대단히 조심하면서 발걸
음도 살금살금 떼어놓아 전혀 소리가 나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러
나 단 한번도 들키지 않고 여러달 동안 의자 속에서 생활했다는 점
을 생각하면, 저 자신도 놀랄 때가 있었습니다.
거의 온종일 저는 곡예사처럼 의자 속에 앉아서 보냈습니다. 그러
다보니 팔은 뻣뻣하고 무릎은 늘 구부러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결과 전신이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게다가 똑바로 서있
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근육은 팽팽하게 당겨져 뭉치게 되었고, 저는
화장실에 갈 때도 걸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기어서 가게 되었습니
다.
저는 얼마나 정신나간 사람입니까! 이같은 온갖 고통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바보짓을 그만둔다거나 기괴한 육욕(肉慾)의 세계를 벗어나
자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호텔 내부에는 한두달의 장기투숙을 하는 손님도 있었지만 늘 새로
운 손님이 들어왔고 그만큼 오래 된 손님이 나갔습니다. 그 결과
저는 영원한 사랑을 즐길 수는 결코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나의
모든 '정사'를 회상해 볼 때, 따뜻한 육체의 부드러운 촉각밖에 기억
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여자들은 당나귀같이 단단한 몸매를, 또 다른 여자들은 뱀처
럼 미끈거리는 몸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어떤 여자들은 비계
덩어리처럼 뚱뚱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의
예술적 조각처럼 아주 멋진 몸매를 가진 여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몸매의 유형은 다르다 할지라도 모든 여자들은 각자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욕의 대상을 끊임없이 바꾸어나
갔습니다.
한번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여류 무용가가 일본을 방문하여, 그 호
텔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녀는 제 의자에 딱 한번밖에 앉지
않았지만, 그녀의 부드럽고 탄력 있는 피부가 제 피부에 맞대졌을
때의 스릴은 그때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최고의 즐거움을 주었습니
다. 그녀의 육체는 촉감이 너무나 좋아서 저는 병적일 정도의 기쁨
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때에는 육욕적 본능이 솟구쳐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저 자신이 동화속의 마법 지팡이에 의해 애무를 받고
있는 훌륭한 예술가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괴한 사건들은 계속하여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지면이 제약되어
있으므로 그 모든 사건들을 일일이 묘사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하겠
습니다. 그 대신 사건의 개요만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제 3편 끝 *****
- 키드 -
- 제 4편 -
그 호텔에 도착한 지 여러 달이 지난 뒤, 저 자신의 운명을 확 뒤
바꾸어놓는 예기치 못한 사태가 느닷없이 발생했습니다. 무슨 이유
인지는 몰라도 그 호텔의 외국인 주인은 본국으로 귀국조치를 당했
고, 그 결과 일본인이 호텔의 경영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호텔의 경영진이 바뀌면서 새로운 경영정책이 수립되었고, 비용절
감, 호화장식의 철거, 내핍을 통한 이익제고 등의 조치가 취해졌습니
다. 이같은 새로운 경영정책의 첫번째 조치로서 호텔 경영진은 호
텔의 값비싼 장식설비들을 경매에 부치기로 하였습니다. 경매대상
품목에 저의 의자도 들어있었습니다.
이같은 새로운 사태의 발전을 알고 나서 저는 커다란 실망감을 느
꼈습니다. 내 마음속의 한 목소리는 바깥의 자연 세계로 돌아가 도
둑직을 해 모은 상당한 돈을 멋지게 쓰면서 살아야 한다고 충고했습
니다. 사실 저는 상당한 돈을 모아두고 있었으니까요.
사회로 다시 나가면 새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 호텔을 떠
나야 된다는 실망감을 다소 완화시켜 주었습니다. 또 제가 그곳에
서 느낀 모든 쾌락을 곰곰이 생각해 볼 때 '정사'는 많았지만 모두가
외국 여인과의 덧없는 것이었고 어쩐지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언
제나 있었다는 것을 시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일본인 애인을 갈망하고 있음을 절절히 인식하게 되었습
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동안 제 의자(제가 들어있는 상
태의)는 경매에 내놓기 위해 가구점으로 보내졌습니다. 이번에는
일본인이 사가지고 가 일본인의 가정에 놓여지지 않을까 하고 저는
나직이 되뇌어보았습니다. 행운이 있기를 빌면서 저는 인내심을 가
지고 의자 속의 생활을 잠시 더 계속해나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제 의자가 가구점 앞에 놓여있었던 2-3일 동안에는 고통을 받았지
만 의자는 드디어 경매에 부쳐져 곧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그 의자를 제작하면서 들어간 꼼꼼한 수공탓이었습니다. 비록
새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품위 있는 분위기를 갖춘 의자였으니까
요.
사간 사람은 도쿄에 살고 있는 고위관료였습니다. 가구점에서 궁
궐 같은 저택으로 운방되는 동안 트럭의 덜컹거림 때문에 저는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꾹 참는 가운데 드디어 일본인
의 가정으로 가게 되었다는 생각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집에 와서 제 의자는 서양풍의 큰 서재에 놓여지게 되었
습니다. 저에게 커다란 만족을 준 것은 그 고위관료보다는 젊고 매
력적인 그 부인이 더 많이 제 의자를 사용할 계획이라는 사실이었습
니다.
한 달도 못되어 저는 그 부인과 늘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말하자
면 그녀와 하나가 된 것입니다. 식사시간과 수면시간을 빼고, 그녀
의 부드러운 육체는 그녀가 깊은 사색에 잠길 때면 나의 무릎 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부인은 제가 이 여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실 겁니다. 그녀는
제가 긴밀한 접촉을 가진 첫번째의 일본인 여인이었고, 게다가 아주
멋진 몸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제 기도에 대한 신으로부
터의 대답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녀와의 교제와 비교해 볼 때, 호
텔의 여러 여인과의 관계는 어린아이의 불장난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지적인 여인을 미친 듯이 사랑한다는 뚜렷한 증거는 제가
언제나 그녀와 함께 있기를 바란다는 그것입니다. 그녀가 잠시라
도 어디 딴데로 가버리면 저는 사랑에 매혹된 로미오가 줄리엣을 그
리워하듯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이런한 느낌은 지금까지
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서서히 저는 저의 감정을 그녀에게 전달하고 싶어졌습니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저는 이 목적을 이루려고 노력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별 뾰족한 수가 없는 저는 응답이 없는 담벼락을 대
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아, 얼마나 그녀로부터 저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었는지! 그렇습니
다. 부인은 이것을 미친 사람의 고백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
렇습니다. 저는 미쳤습니다. 미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녀에게 저의 사랑을 알릴 수 있을까요? 제 정체
를 드러내면 그녀는 곧 충격을 받아 남편과 하인들을 부를 것입니
다. 그렇게 되면 저로서는 치명적인 결과가 될 것입니다. 저의 정
체가 폭로되면 치욕을 다하게 될 뿐만 아니라, 제가 저지른 범죄 때
문에 중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즉 그녀가 편안함을 느
낄 수 있게 함으로써 그녀에게 의자에 대한 자연스런 사랑이 우러나
오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진정한 예술가이기 때문에, 저는
그녀의 미의식이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녀를 인도하리라 확신했습
니다. 저는 그녀가 제 의자에 사랑을 품는 것만으로도 순순한 만족
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의자를 사랑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녀
의 자상한 사랑은 강력한 것이어서, 그 의자 안에 들어있는 저 자신
도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녀가 제 의자에 앉을 때마다 저는 그녀가 좀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습니다. 그녀가 내 무릎위에서 같은
자세로만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 피곤함을 느낄 때면 저는 무릎을 천
천히 움직여 그녀를 따뜻하게 포옹하여 그녀가 편안함을 느끼게 했
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졸다가 잠에 떨어지면 저는 무릎을 부드럽
게 움직여 그녀의 몸을 흔들어대어 더 깊은 잠에 빠지게 했습니다.
어쟀든 기적적으로(아니면 저의 상상에 지나지 않을까요?) 이 부인
은 제 의자를 정말 사랑하는 듯 했습니다. 왜냐하면 의자에 앉을
때마다 그녀는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아기같이, 또는 애인의 품을
파고 드는 소녀같은 태도를 취했으니까요. 그리고 의자에 앉아 몸
을 움직일 때면 그녀가 거의 성적인 즐거움을 느낀다고 저는 생각했
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제 사랑과 정열의 불꽃은 활활 불타올라
결코 꺼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침내 기괴하고도 과
감한 청원을 할 수밖에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마침내 저는 그녀가 잠시만이라도 나를 보아준다면 최상의 만족을
느끼며 죽을 수도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부인! 지금쯤, 당신은 저의 광적인 정열의 대상이 누구인지 틀림
없이 짐작하셨을 겁니다. 아주 분명하게 말하자면, 그녀는 다른 사
람이 아닌 바로 부인, 당신입니다. 당신의 남편이 그 의자를 가구점
에서 사온 이래 저는 당신에 대한 광적인 사랑과 동경 때문에 죽음
과도 같은 고통을 견디어내야 했습니다. 저는 버러지 같은......혐오
스런 사람입니다.
저는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당신은 딱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저
를 만나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 저는 당신의 동정을 받을 만한 자
격도 없는 놈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 한가지 소원만, 측은한 마음
에서, 들어주신다면 저는 영원한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겠습니다.
지난밤 저는 당신의 저택에서 몰래 빠져나와 이 고백편지를 썼습니
다. 당신의 집을 빠져나온 것은 위험도 위험이려니와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당신과 느닷없이 얼굴을 맞닥뜨릴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
니다.
당신이 이 편지를 일고 있는 동안 저는 숨을 죽이고 당신의 저택
주위를 배회할 것입니다. 저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당신의 창밖에
놓여있는 화분에다 손수건을 놓아주십시오. 이 신호를 보는 순간
저는 당신 집의 정문을 열고 비천한 방문객으로 들어설 것이니........
***** 제 4편 끝 *****
- 키드 -
- 제 5편 -
그렇게 편지는 끝나 있었다.
요시코는 그 원고뭉치를 다 읽기도 전에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그녀가 앉아
있었던 그 의자로부터 도망쳐 일본풍의 다른 방으로 가서 숨었버렸
다.
잠시 동안 그녀는 읽는 것을 중단하고 기괴한 그 원고뭉치를 찢어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그녀는 그 빽빽하게 쓴 원고지
를 책상위에 놓고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원고를 다 읽고 나서 그녀는 자신의 예감이 옳았음을 알았다. 그
녀가 매일 앉아있었던 그 의자, 그 의자에는 정말 사람이 들어있었
을까? 사실이라면 그녀는 얼마나 끔찍한 경험을 자신도 모르는 사
이 에 겪어낸 것인가! 얼음물을 등줄기에 퍼부은 것 같은 한기가
그녀에게 엄습해왔고 그녀의 온몸은 전율 때문에 사시나무처럼 떨렸
다.
몽환에 빠진 사람처럼 그녀는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 의자
를 샅샅이 뒤져볼까? 그러나 그같은 끔찍한 시련을 그녀가 배짱좋
게 견디어낼 수 있을까? 비록 그 의자 속이 비어있다고 해도 그가
남긴 음식찌꺼기나 일용품 같은 더러운 물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부인, 편지 왔습니다."
그녀는 깜짝 놀라면서 편지를 가져온 하녀를 쳐다보았다.
멍한 상태로 요시코는 그 봉투를 받아들고 비명소리가 나오려는 것
을 억지로 참아냈다. 이 끔찍스러운 일을 어떻게 할까? 그자가 또
다른 편지를 보내오다니. 편지 겉봉에는 동일한 필치로 그녀의 이
름이 씌어있었다.
오랫동안 그녀는 편지를 뜯어보아야 할지 망설였다. 마침내 그녀
는 용기를 내어 봉인을 뜯고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꺼냈다. 두번째
편지는 짤고 간단했으며, 또 다른 놀라운 소식을 담고 있었다.
이렇게 두번째 편지를 보내게 됨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먼
저, 저는 당신의 열렬한 독자임을 밝힘니다. 지난번 편지로 당신에
게 제출한 원고는 순전히 저의 상상과, 당신이 최근 그 의자를 구입
했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쓴 작품입니다. 그 원고는 제가 소설
창작을 해본 습작입니다. 당신이 그 원고에 대해 친절히 논평해주
신다면 그 이상의 즐거움이 없겠습니다.
개인적인 이유로 이 해명의 편지에 앞서 제 원고를 먼저 보내드렸
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다 읽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읽
으셨습니까? 부인, 그 원고가 어느 정도 재미있거나 즐거움을 주
는 것이라면, 저의 습작행위가 헛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원고에서는 의도적으로 말씀을 드리지 않았지만 제 소설의 제목을
[인간의자] 라고 할 작정입니다.
최대한의 존경을 보내며,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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