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의 지혜와 통찰이 담긴 불멸의 고전 『논어』와 『한비자』의 핵심 내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책이다. 고전(古典)은 시대와 상황을 뛰어넘은 인류 보편의 지혜와 철학의 이치를 담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고전이 그 가치와 효용을 현저히 드러낼 때는 우리의 삶이 고비에 처했을 때다. 단순히 그 상황을 벗어나는 것에만 의미를 둔다면 언젠가는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고, 그때마다 삶은 또다시 위기에 처할 것이다. 같은 위기를 반복하지 않는 힘, 고비를 헤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지혜, 그것은 고전만이 줄 수 있는 힘과 지혜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고전 속에 숨겨져 있는 새로운 지혜,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찾게 될 것이다.
삶의 고비마다 나를 지켜내는 인생공부
▣ Short Summary
고전이란 옛 책들 중에서도 현대에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들을 말한다. 시대와 상황을 뛰어넘은 인류 보편의 지혜와 철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고전이 된 것이다. 고전이 그 가치와 효용을 현저히 드러낼 때는 우리가 삶의 고비에 처했을 때다. 개인의 한평생은 다양한 패턴을 그리며 진행되지만,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철칙은 삶에서 한번쯤은 위기가 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지치거나 힘들 때, 삶의 전망이 불투명해 보일 때, 사람과 사회에 대한 회의가 들 때,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방황할 때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고비를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여행일 수도 있고, 누군가 에게는 사람을 만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벗어나는 것에만 의미를 둔다면 언젠가는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고, 그때마다 삶의 위기에 처할 것이다. 같은 위기를 반복하지 않는 힘, 고비를 헤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지혜, 그것은 고전만이 줄 수 있는 힘과 지혜일 것이다.
이 책은 『논어』와 『한비자』의 정수만을 뽑아 거기에 필자만의 참신한 해석과 해설을 담으려 노력한 책이다. 『논어』와 『한비자』가 고전이기는 하지만, 현대인의 삶의 방식과 사상과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다. 고전연구자가 아닌 이상 그런 부분까지 모두 읽을 필요는 없다. 공자는 “옛것을 익혀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스승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고전 속에 숨겨져 있는 새로운 지혜, 당신만의 새로운 길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
▣ 차례
지은이의 말_ 삶에 위기가 올 때면 고전에서 지혜를 얻어라
1부 논어에서 배우는 인생공부 1장 인간관계 / 2장 처세 / 3장 자기계발 / 4장 마음공부 / 5장 리더십
2부 한비자에서 배우는 인생공부 6장 한비자의 철학 / 7장 리더는 세위를 지녀야 한다 / 8장 법으로 다스려라 / 9장 술치, 리더십의 핵심
- 2 - 삶의 고비마다 나를 지켜내는 인생공부
1부 논어에서 배우는 인생공부
인간관계 남의 마음을 나의 마음처럼 헤아려라: 자공이 물었다. “죽을 때까지 평생 실천할 만한 한마디 말이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서(恕)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 [기 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자공은 공자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인간관계에서의 친화력과 설득력, 외교술이 뛰어났다. 이러한 능력으로 위기에 처한 노나라를 구하기도 했으며, 또 많은 재물을 모으기도 한 인물이다. 그가 쌓은 부가 얼마나 어마어마했는지 “천하의 재물은 모두 자공에게로 흘러들어간다”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자공이 평생 실천할 한마디 말을 묻자 공자는 서(恕)라고 답한다. 서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 (心)’을 합쳐서 만든 글자로 ‘나의 마음을 타인의 마음과 같게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가 타인이 아닌 이상 타인의 마음과 나의 마음을 같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공자는 서의 뜻을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내가 원하지 않는 것, 내가 싫어하는 말과 행동은 남도 그렇게 여길 것이라 생각해 퍼뜨리지도 시키지도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서를 실천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언젠가 자공이 공자에게 “저는 남이 저에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저 역시 남에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라고 말한다. 공자가 말한 서를 평생 실천하겠다는 약속의 말이었다. 이에 공자는 그것은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자공의 다짐을 타이른다. 서의 정신을 실천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자는 왜 어렵다고 생각했을까? 그 이유는 평범한 인간이 욕심과 욕망을 모두 버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를 가슴에 새기고 욕심을 버리고 남을 배려한다면, 인간관계가 지금보다 더나아질 것이다. 자공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음과 부의 축적에 뛰어났던 이유는 공자의 가르침을 죽을 때까지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잘 지켰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긍정과 부정의 총합이다: 공자가 말했다. “오직 인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오직 인한 사람만이 미워할 수 있다.” [유인자능호인 능오인(惟仁者能好人, 能惡人.)]
인(仁)이란 사람을 널리 사랑하는 것이다.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며 나아가 완성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사람됨의 완성은 스스로의 잘못된 행동을 고치고 고난과 시련을 겪고 이겨냄으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랑이 무조건적인 긍정이 될 수는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잘되기를 원하면서 그 사람의 잘못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이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이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을 미워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비판과 그렇지 않은 비판은 확연히 구별된다. 따라서 사랑이란 좋아함과 미워함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 3 - 삶의 고비마다 나를 지켜내는 인생공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정조 대의 선비였던 이덕무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의 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무 엄격하면 사나운 자식은 멀어지게 되고, 너무 사랑하면 영리한 자식은 방자하게 된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방법은 엄격함과 사랑함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마음만큼 사랑이 넘치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 간에도 좋아함과 미워함이 균형을 이뤄야 하니 다른 종류의 사랑에는 말할 것도 없다.
처세 이익만을 좇으면 원망이 많아진다: 공자가 말했다.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 원망을 많이 사게 된다.” [방 어리이행 다원(放於利而行 多怨.)]
주위에 이익만을 좇아서 끝내 성공한 사람들이 있고, 또 죽을 때까지 이익만을 좇다 부귀와 명예를 누리고 죽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존경하고 그리워하는 이름이 되었든, 누구나 욕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름이 되었든, 어쨌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수십억 원의 재산을 쌓은 한 노인이 어느 날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죽었다. 평상시 건강했던 터라 유언 장을 써놓지 않은 상태였다. 자식들은 아버지를 묻자마자 무덤가에서 서로 주먹질을 하며 재산 문제로 다투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본 주위 사람들은 “그러게, 재산을 뭐하러 쌓아두었노, 좋은 일에 쓰고나 가지” 하는 원망을 했고, 자식들 또한 각자에게 유리한 유언장을 써놓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했다.
살아 있을 때의 누군가의 원한보다 죽고 난 후의 원망을 더욱 두려워해야 한다. 부귀와 명예를 쥐고 있다면 살아 있을 때는 누구나 칭찬하고 아부하기에 급급하지만, 죽으면 누구나 드러내놓고 원망을 할수 있기 때문이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넘치지만,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찾지 않는 법이다.
살아서 정승이었더라도 죽어서 자기가 기르던 개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싶은가?
말을 해야 할 타이밍과 자세: 공자가 말했다. “군자를 모실 때 저지르기 쉬운 3가지 잘못이 있다. 아직 말할 때가 아닌데도 말하고자 조급해하고, 말할 때가 되었는데도 말하지 않고 숨기려 하고, 안색을 살피지도 않고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을 장님이라 한다.”
이 글은 굳이 군자를 모실 때의 잘못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타인과 대화할 때 저지르기 쉬운 3가지 잘못 으로 이해하면 된다.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책 『한비자』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저는 알지 못하면서 말하는 것은 무지이며,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은 불충이라 들었습니다.
남의 신하가 되어 불충함은 죽어도 마땅하며, 말이 도리에 맞지 않거나 실제와 맞지 않다면 이 또한 죽어야 마땅합니다.”
이 말은 한비자가 진시황을 처음 만나 올린 글의 서두로 말을 조심스레 꺼내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하겠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한비자의 이 말도 공자의 말처럼 사람이 말을 해야 할 타이밍과 그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이것을 마음속에 새긴다면 살면서 저지를 잘못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의 대부분은 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눈치란 ‘남의 마음을 그때 그때 상황을 미루어 알아내는 것’이다. 그러니 남의 안색을 살피지 않으며 눈치 없이 분위기 못 맞추고 아무 말이나 내뱉는 사람은 장님과 다름없다.
- 4 - 삶의 고비마다 나를 지켜내는 인생공부
공자의 마지막 가르침: 공자가 말했다. “명(命)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으며, 예(禮)를 알지 못하면 설 수 없으며,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이는 『논어』의 마지막 문장으로 공자의 가르침을 세 글자로 압축해 제시하고 있다. 명(命)은 내가 나아가야 할 길로 사람이 태어남과 삶은 아무 목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게 부여받은 명을 실천하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명을 깨닫는 것, 그것은 나의 꿈과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다. 명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생이 허무하다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는 아무렇게나 살아가고, 인간사 회에 해악을 끼치는 삶을 살기도 한다. 그러므로 명을 알지 못하면 인간이 될 수 없다.
예(禮)는 내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규범으로, 예가 있어야 타인과 화합하며 조화롭게 살 수있다.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말라고 했다.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하는 것인데, 그것이 예의 범위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은 타인의 말을 듣고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어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나의 명을 알고 나를 세우고 나면 삶 속에서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데, 타인은 전부 나와 같지 않으니 그 사람됨을 판단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사람됨의 일차적 판단 기준을 말에 둔 것이다.
자기계발 두루 통달하라: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한 가지 용도로만 쓰이는 그릇이 아니다.” [군자불기(君子不 器.)]
그릇은 애초에 만들 때 그 쓰임새가 정해져 있다. 국그릇, 밥그릇, 찻잔, 술잔처럼 그 쓰임새를 생각해 모양과 재질을 결정해서 만든다. 하지만 인간은 그릇처럼 쓰임새가 정해져 태어나지 않는다. 커가면서 개개인의 자질과 정신, 주위의 환경과 교육 등에 따라 어떤 사람이 되는지 결정된다. 또 한 번 결정되 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고착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스스로의 노력과 의지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할 수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공자가 말하는 것은 인간이 그릇처럼 쓰임새가 정해져서 태어나지 않으므로 다양한 기능과 사상을 습득하고 갈고닦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당시의 교육과목이 육예(六藝)였던 것을 생각하면 쉽게 수긍이 간다. 육예는 예(禮), 음악, 활쏘기, 수레 몰기, 글쓰기, 셈하기다. 인간이 문무를 두루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한 교육과정이었다.
요즘은 한 분야만 파는 전문가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도 보편을 기반으로 해야 확고히 할 수 있으며, 보편도 전문으로 나가야만 깊이를 갖출 수 있다.
반드시 경계해야 할 3가지: 공자가 말했다. “군자가 경계해야 할 3가지가 있다. 어릴 때는 혈기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니 성욕을 경계해야 한다. 커서는 혈기가 한창 강하니 투쟁심을 경계해야 한다. 늙어 서는 혈기가 이미 쇠잔해졌으니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 몸은 혈과 기로 이루어져 있다. 혈은 육체이고 기는 정신이다. 어리다는 것은 아직 육체와 정신이 완전히 자라지 않은 상태다. 그런 상태에서 혈과 기를 소모하는 성욕에 지나치게 몰입하게 되면 성장에 방해가 된다. 그렇다고 인간의 본성인 성욕을 그냥 두었다가는 분별없이 다가가게 된다. 성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 5 - 삶의 고비마다 나를 지켜내는 인생공부
혈기가 조화롭게 안정되고 나면 세상을 향한 투쟁심이 끓어오른다. 도전과 저항의 정신은 젊음의 특성 이다. 그렇다고 해서 방향 없이 이리저리 치받기만 하고 분란만 일으킨다면 그 젊음은 좌절과 나락의 길에 빠져들 것이다. 과유불급이다. 지나친 투쟁심을 경계하되 도전과 저항의 정신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육체는 스물다섯 살이 넘으면 성장을 멈추고 노화의 길에 들어서기 시작하고 마흔이 넘어가면 급격하게 혈기가 쇠잔해지기 시작한다. 힘도 없으면서 지나친 탐욕을 부리는 것은 노망이고 아직 자신이 젊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착각일 뿐이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증자가 말했다. “선비는 마음이 드넓고 의지가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맡은 임무는 중대하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任重道遠). 인의 실천을 임무로 삼으니 어찌 막중 하지 않겠는가? 죽어서야 끝날 길이니 어찌 멀지 않은가?”
흔들리고 나태해지는 마음을 다잡는 데 맞춤인 문장이다. 한 번 뜻을 세웠으면 굳센 의지로 길을 개척 해나가야 한다. 굳센 의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바다와 같은 넓은 포용력을 지녀야 한다.
넓음 속에서만 날카로운 굳셈이 꺾이지 않기 때문이다. 넓고 굳센 마음을 가져야 비로소 막중한 임무를 단단히 부여잡고 먼 길을 걸어갈 준비가 된 셈이다.
이 문장은 함부로 뜻을 세웠다가 중도에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증자가 내려치는 죽비다. 공부든 성공이든 쉽게 성취하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드넓고 굳센 마음과 의지로 기치를 굳세게 부여잡고 묵묵히 길을 걸어가는 자만이 성취의 환희를 느낄 수 있다. ‘임중도원(任重道遠)’은 2018년 《교수신문》 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이기도 하다.
마음공부 공자가 하지 않은 4가지: 공자께서는 평소 4가지를 전혀 하지 않으셨다. 억측이 없었고, 꼭 그래야만 한다는 자세가 없었고, 고집을 부리며 불통함이 없었고, 나라는 집착이 없었다. [무의 무필 무고 무아
(毋意, 毋必, 毋固, 毋我.)]
의(意)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억측이나 무리한 추측, 개인적인 의견이나 의도 등이다. 여기서는 의견보다 억측으로 해석하는 것이 전체 맥락에 더 적합하다. 필(必)은 반드시 무리하게 나의 주장을 관철 시키려는 것이다. 고(固)는 단단하게 굳어진 생각이나 관념을 뜻하며, 아(我)는 자신을 내세우며 욕망을 채우려는 사심이다.
공자는 왜 이 4가지를 전혀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억측한 것을 바탕으로 일을 추진하다가는 일이 어그러지기 때문이며, 자기의 주장만을 관철시키려다 독단적 인간이 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또한 세상은 끊임없이 흘러가며 변화하는데 혼자만 변화를 거부하고 세상과 소통하지 않음을 경계하기 위함 이요, 나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욕망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의, 무필, 무고, 무아를 가슴에 새겨 경계한다면 적어도 어리석은 인간이 되지는 않을 것이 다.
그릇된 욕망을 버려라: 원헌이 물었다. “남을 이기려고 하고, 자신을 과시하며, 남을 원망하고, 탐욕을 부리는 일, 이 4가지를 하지 않는다면 인(仁)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극벌원욕불행언 가이위인의(克 ㆍ伐ㆍ怨ㆍ欲, 不行焉, 可以爲仁矣.)” 공자가 말했다.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인한 지는 모르겠다.” [가이위난의 인즉오불지야(可以爲難矣, 仁則吾不知也.)]
- 6 - 삶의 고비마다 나를 지켜내는 인생공부
남을 이기려는 마음과 자신을 과시하려는 마음은 한 가지다.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기 위해 남을 이기 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을 원망하고 탐욕을 부리는 일도 그 마음은 한 가지다. 탐욕이 있는 사람은 내가 원하는 일이 뜻대로 안 될 때 남을 원망하기 때문이다. 또한 극(克)ㆍ벌(伐)ㆍ원(怨)ㆍ욕(欲)도 결국에는 인간의 그릇된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욕망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논어』를 읽고 사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욕망 같은 것은 좋은 욕망에 속한다. 그러므로 욕망도 등급이 있다. 남을 이겨 자신을 뽐내려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남을 원망하는 욕망은 최하등급의 욕망이다. 그러한 욕망을 버리는 사람만이 진정 인간답게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리더십 5가지 다스림의 원칙: 공자가 말했다. “천승의 나라를 다스릴 때는 매사를 공경스럽게 해 믿음을 쌓으며, 씀씀이를 알맞게 하며 사람을 사랑하고, 백성을 부리는 데는 때에 맞추어 해야 한다.” [도천승지국 경사이신 절용이애인 사민이시(道天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
승(乘)은 말 네 마리가 끄는 전차로, 당시 병력을 셀 때 주로 사용하던 단위였다. 천승의 나라란 천 대의 전차를 지닐 수 있는 국력을 가진 나라를 뜻하는 것으로, 이는 당시의 경제력으로 보았을 때 대단한 군사적 규모였다. 그렇지만 공자의 말이 꼭 천승의 나라와 같은 큰 나라에 한정된다기보다는 다스 림의 원칙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공자가 말한 다스림의 원칙은 경(敬)ㆍ신(信)ㆍ절(節)ㆍ애(愛)ㆍ시(時)다. 경(敬)은 주일무적(主一無適), 즉 한 가지에 일관되게 집중해 흐트러짐이 없는 상태다. 경사이신은 일을 할 때 집중해 완벽하게 처리 함으로써 타인에게 믿음을 얻는 것이다. 절(節)은 절약의 뜻이다. 절용이애인은 윗사람이 재화를 흥청 망청 쓰면 백성이 곤궁해지므로 씀씀이를 아껴 백성이 곤궁해지지 않게 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절용은 애인(愛人)의 조건이 된다. 사민이시에서 시는 농한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나라의 각종 사역에 백성 들을 동원할 때는 농한기에 하라는 뜻이다. 농번기에 백성을 동원하면 한 해의 농사를 망치게 되며 이는 곤궁함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리더가 갖추어야 할 3가지 자세: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려우니, 도로써 기쁘게 하지 않으면 기뻐하지 않는다. 군자는 사람을 부릴 때 그 사람의 그릇에 맞게 쓴다. 소인은 섬기기는 어려워도 기쁘게 하기는 쉬우니, 도가 아닌 것으로 기쁘게 하더라도 기뻐한다. 소인이 사람을 부릴 때는 그 사람에게 완벽을 요구한다.” [군자이사이난열야 열지불이도 불열야 급기사인야 기지 소인난사이이열야 열지수불이도 열야 급기사인야 구비언(君子易事而難說也. 說之不以道, 不說也. 及其 使人也, 器之. 小人難事而易說也. 說之雖不以道, 說也. 及其使人也, 求備焉)]
공자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3가지 자세로 이사(易事), 난열(難說), 기지(器之)를 꼽았다. 첫째, ‘이사’는 ‘섬기기 쉽다’는 뜻으로, 구성원들과의 친밀감, 유대감을 돈독히 하면서도 일을 처리할 때는 엄격함을 지닌 것이다. 리더가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일을 처리할 때의 기준이 뚜렷해 구성원들에게 신망을 받고 있으며, 함부로 군림하려 하거나 오만방자해지지 않는 것이다. ‘난열’은 ‘기쁘게 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기뻐할 만한 일이라도 그 일의 전후과정을 충분히 살펴 올바르지 않은 것이 있는지 알아본 후에야 기뻐하는 것이다. 리더가 아무 일에나 기뻐하면 아랫사람들이 그 기분에 맞추기 위해 기뻐할 만한 일만을 추구하게 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내팽개치기 마련이다. 따라서 리더가 기뻐해야 할 일은 개인의 이익과 기분에 맞는 일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에 부합되는 일이어야 한다.
- 7 - 삶의 고비마다 나를 지켜내는 인생공부
마지막 ‘기지’는 ‘인물의 그릇에 맞춘다’는 뜻으로 업무를 배분하거나 일을 시킬 때는 그 사람의 기질과 성정에 맞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며, 설령 일이 실패하더라도 누구도 그 사람을 탓하지 않게 된다.
리더의 4가지 도: 공자가 자산에 대해 평가했다. “군자는 4가지 도를 가진 사람이다. 스스로의 행실이 공손하며, 윗사람을 섬김이 공경스러우며, 백성을 기름이 은혜로우며, 백성을 부림이 올바르다.” [유군 자지도사언 기행기야공 기사상야경 기양민야혜 기사민야의(有君子之道四焉. 其行己也恭, 其事上也敬, 其養民也惠, 其使民也義.)]
자산은 정나라 왕족 출신의 재상으로 흔히 정자산으로 불린다. 정자산은 중국 역사상 최초로 청동솥에 성문법을 새겨 넣어 전국에 공포한 사람으로, 이로 인해 후대 법가 사상가들이 법가의 선구자로 여긴다. 법가 사상가들이 줄기차게 주장한 법의 공개성과 법의 성문화를 최초로 실현한 재상이다.
하지만 정자산의 통치가 후대 법가의 그것과 똑같다고 할 수는 없다. 법의 공포를 통해 자신의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을 다스리고 나아가 개혁을 완성하고자 했지만 그 다스림의 근본에는 공자가 평가한 것과 같은 유가의 사상이 있다. 정자산은 법가와 유가 사상을 조화롭게 실현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공(恭)과 경(敬)은 리더가 자신과 윗사람을 대할 때의 태도이고, 혜(惠)와 의(義)는 리더십의 요체다.
구성원들에게 은혜로워야 하며 일을 시킬 때는 의로움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올바른 명분이 있어야 함을 뜻한다. 명분이 옳아야 구성원에게서 흔쾌히 동의를 얻을 수 있으며, 이는 일의 성공에 큰 영향을 끼친다.
2부 한비자에서 배우는 인생공부
리더는 세위를 지녀야 한다 세위는 권력의 원천이다: 여러 법가 사상가 중 한비자는 세(勢), 법(法), 술(術)이라 일컬어지는 권력의 기술을 집대성해 발전시킨 사상가였다. 이 3가지 중 법을 세우고, 술책을 부리기 위해 먼저 군주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 세(勢)다. 세는 재주가 좋고 힘이 세어 남을 부리는 것이며, 무리를 이루어 힘이 우위에 있는 것이다. 세는 홀로 쓰이지 않고 권세, 형세, 기세 등 다른 글자와 함께 사용한다.
법가의 세는 세위(勢位)에 가깝다. 일정한 지위에 따라오는 무형의 권력이다. 세위가 있어야 법을 세우고 술책을 부려 신하들을 군주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다. 즉 세위는 권력의 원천인 것이다.
만물 중에서 군주의 몸보다 지극히 귀한 것은 없고, 그 지위보다 지극히 존엄스러운 것은 없으며, 그위엄보다 귀중한 것은 없고, 그 세보다 높은 것은 없다. 이 4가지 미덕은 밖에서 구하거나 남에게 부탁하지 않고, 꼼꼼히 두루 살펴 생각만 잘 해도 갖출 수 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군주가 스스로 지니고 있는 자산을 활용하지 못하면 궁궐에서 쫓겨나 낯선 외지에서 그 인생을 마치게 된다”고 했다. 이는 군주가 반드시 기억해 두어야 한다.
『논어』가 인간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한비자』는 조직관리론, 경영학, 통치론, 제왕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철저하게 군주, 즉 리더를 위한 사상이다. 한비자가 말한 세란 신하나 백성의 것이 아닌 군주의 세다. 세는 군주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군주에게 속해 있는 것이다. 말이 무거운 짐을 지고 수레를 끌 수 있는 것은 근육의 힘이 강해서인 것처럼, 한 나라의 군주가 천하를 제압할 수 있는 것은 세가 있기 때문이다. 힘이 다한 말은 푸줏간에 끌려가듯이 세를 잃은 군주는 나라를 빼앗긴다.
군주가 세를 잃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신하들이 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개인의 이익만을
- 8 - 삶의 고비마다 나를 지켜내는 인생공부
꾀하는 등 그 위세를 함부로 부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는 군주 혼자만의 것이어야 한다. 세는 군주가 신하를 승복시키고 백성을 다스리는 원천이다.
세는 반드시 독단을 바탕으로 한다. 독단은 최고와 최후의 결정권을 군주 홀로 장악하고 행사하는 것이다. 군주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공을 세운 자에게 독단으로 상을 주지 못해 신하들의 칭찬을 기다린 뒤에 상을 내리고, 군주의 마음에 밉보인 자를 독단으로 벌주지 못해 신하들의 비난을 기다린 뒤에야 벌을 내리면, 군주의 위엄이 없어지고 세가 신하들에게 있게 된다. 그러니 독단적이라 비난을 받아도 권력을 남에게 배분해서는 안 되며, 홀로 결단을 내리는 데 오는 외로움이나 고통을 호소해서는 안된다. 흔들리는 순간 타인의 촉수가 빈틈을 헤집고 들어와 군주의 세를 무너뜨리게 된다.
호랑이와 표범이 사람을 잡아먹으며 다른 짐승들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호랑이와 표범이 발톱과 송곳니를 잃으면 사람이 호랑이와 표범을 제어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강한 세는 군주의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다. 군주가 발톱과 송곳니를 잃으면 사로잡힌 호랑이와 표범과 같게 된다. 송나라 군주가 그 발톱과 송곳니를 자한에게 잃고, 간공이 그 발톱과 송곳 니를 선장에게 잃고서도 그것을 빨리 되찾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자신이 죽고 나라가 망했다.
자한은 송나라의 재상이 되자 군주에게 아뢰었다. “상을 받는 것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이므로 군주께서 직접 내리시고, 벌을 받는 것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이므로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이 말이 옳다고 여긴 군주는 형벌권을 넘겨주었다. 1년 뒤, 자한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게 되었다. 결국 자한은 송나라 군주를 내쫓았다. 이 고사에서 유념할 점은 자한이 먼저 군주의 지위를 빼앗은 것이 아니라 권력을 나눠 가진 후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즉 권력을 빼앗긴 군주는 마침내 세위까지 잃게 된다.
법으로 다스려라 법치의 원칙: 법은 누구나 지켜야 하는 것이므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법의 공개는 법치에서 필수적이다. 또한 법령이 모호하다면 무엇을 따라야 할지 알 수 없으므로 오히려 없는 것만 못하다. 법이 구체적이어야 하는 까닭이다. 따라서 한비자는 법을 문서로 편찬해 관부에 설치해두고 백성들에게 공표해야 하며, 매일 궁문 밖으로 법을 전하며 국경 안에 퍼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법을 명시하는 자는 강하고, 법을 소홀히 하는 자는 약하다”며 법을 분명히 밝혀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신하란 자들은 명예를 얻지 아니하면 앞장서 일하지 않으며, 법을 어기며 제멋대로 하지 않고서는 위세를 부릴 수 없으며, 성실과 신의를 거짓으로 꾸며내지 않고서는 법의 금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3가지는 군주를 미혹시키고 법을 무너뜨리는 근본이다. 군주는 신하가 비록 지혜와 능력을 갖추었더라도 법을 어겨가며 마음대로 일을 처리할 수 없게 하며, 비록 뛰어난 행동을 했더라도 실제 공적을 뛰어넘는 포상을 내리지 않으며, 비록 성실하고 신의가 있더라도 법을 버리고 금제를 어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법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법가에서 법의 공개는 법치의 핵심적 절차로, 관료들을 다스리고 일을 잘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관료를 비롯한 귀족계급의 특권을 약화시키고 통제하기 위한 개혁의 출발점은 법의 공개였다. 법의 공개는 법의 평등한 적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때문에 법의 공포로 인해 자신들의 권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귀족들은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기원전 536년 정나라 재상 정자산이 최초로 법을 청동 솥에 새겨 넣은 주형정(鑄刑鼎)을 만들자 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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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대부 숙향이 반대했으며, 513년에는 진나라의 상앙이 다시 만들자 공자가 반대했다.
귀족들이 법의 공표를 반대하는 것은 “예(禮)는 서인(庶人)에게까지 내려가지 않고, 형벌은 대부에게까지 올라가지 않는다”는 유가의 통치원칙 때문이었다. 예치의 대상은 특권계급에 한정되는 것으로 백성 들은 예가 아닌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유가의 주장이었다. 이러한 주장은 법의 공개성, 평등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법가의 입장에서 크나큰 장애물이었다. 한비자는 “법은 귀한 사람이라고 해서 아첨하지 않고, 먹줄은 나무가 휘었다고 해서 굽혀가며 잴 수 없다”며 형무등급(刑無等級, 형벌의 적용에는 신분과 귀천의 차별이 없다)의 원칙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하지만 특권계층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 다.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룰 수 있도록 기초를 닦은 법가의 사상가 중 한 명인 상앙은 진나라 효공이 그를 등용하자 옛법을 고치는 변법을 실시했다. 새로운 법령을 시행한 지 1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백성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와중에 태자가 법을 어기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자 상앙은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것은 위에서부터 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법에 따라 태자를 처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왕위를 계승할 태자를 처벌한다는 것은 어려우므로, 대신 태자의 태부를 사형에 처하고 태사의 이마에 글자를 새기는 형벌을 내렸다. 그러자 이내 법을 어기는 사람들이 사라져갔다.
상앙의 변법으로 인해 특권을 잃고, 형벌의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귀족들은 조용히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마침내 상앙을 등용했던 효공이 죽고 태자가 왕위로 오르자 귀족들은 상앙을 체포해 사지를 찢어 죽이는 거열형에 처하고 집안 식구를 모두 죽여 버렸다.
이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평등한 법의 적용이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한비자의 다음 말은 첨단문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상고시대부터 내려오는 말이나『 춘추』의 기록을 보면 법을 어기고 반역을 꾀하는 큰 죄를 짓는 자는 언제나 지위가 높고 귀한 신하였다.
그런데도 법령이 감시하고 처벌을 내리는 대상은 항상 비천한 자들뿐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하소연할 데가 없다.”
10여 년 전에 국무총리로 임명된 인사의 청문회에서 위장전입 등의 위법사항이 있었다는 사실이 논란이 되자 결국 자진사퇴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고위 공직자 및 정치인들이 법을 무시하는 행위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는데, 이는 전형적인 형불상대부(刑不上大夫, 형벌은 위로는 대부와 같은 특권층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의 현상이다. 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에 따르면 3년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되어 있는데, 한 해에 약 5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특권 계층인 고위 공직자들이 처벌받는 것이 드물어 전형적인 형불상대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권력의 영역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 어쩌면 영원히 근절할 수 없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러한 면책특권이 한 사회, 한 조직의 근본을 흔든다는 데 있다. 인간 조직은 구성원들 간의 믿음을 기반으로 성립하는데, 그 믿음 중 하나가 원칙과 기준이 누구에게나 적용된다는 것이다.
법가들도 법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법치를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비자는 “법에 믿음이 없으면 군주가 행하는 시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군주는 백성들에게서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밝혔다.
상앙 역시 법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변법을 통한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법을 마련해놓고 공표하기 전에 백성의 믿음을 얻기 위한 이벤트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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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 길이나 되는 나무를 도성 저잣거리의 남쪽 문에 세우고 백성에게 말했다. “이 나무를 북쪽 문으로 옮겨놓는 자에게 십 금을 주겠다.” 하지만 이상히 여기며 아무도 옮기지 않았다. 상앙은 다시 말했다. “이곳을 옮기는 자에게 오십 금을 주어 나라에서 백성을 속이지 않음을 분명히 하고 새 법령을 공표했다.
이목지신(移木之信)의 일화다. 나라에 대한 백성의 믿음, 리더에 대한 구성원의 믿음은 모든 다스림의 근본이다. 하지만 특권층의 존재로 인해 이러한 믿음은 깨지기 마련이다. 법의 공평성과 공개성을 핵심으로 하는 법가 사상의 위대함은 이럴 때 더욱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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