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 (인간적인 생명력과 사랑에의 갈망)
유안진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
차례
1 맨발
목차
맨발
저녁눈
물봉숭아
밤의 계절
낙서
입산
겨울 축복
맨발로 걸어왔네
뒷소리
입술자죽
자화상
징소리
가을손짓
소금꽃
입춧날
안동소주
2 구경꾼
아베마리아가 기다리시는 곳
겨울사랑
문맹
진창
사람 그리운 병상
오늘도
구경꾼
가을안부
악수귀천이요 예별존비니라
겨울소식
신록의 딸
미류나무
타인의 계절
확인
혼자서 걸어가면
과일가게에서
가을 사랑
3 발자죽
쉰살 먹은 방황
눈을 맞으며
민들레
나는 사랑한다
꼬리표
오뉴월 혼잣말
목디스크
4월 하순
사투리
편지이불
바바리코트
발자죽
뱀해에
요하네스 브람스
맨드라미
윤회
디스크를 앓으면서
4 어깨춤
눈이 내려 녹습니다
앓으면서 배운다
가을기도
그리운 종소리
송년에 즈음하면
여학생
가을달아
갯버들
단풍
황홀한 거짓말
희망
개꿈
국군묘지에 와서
모과나무 아래 서면
돌팔매
5 구절초
김칫국 마시기
어깨춤
여름 일기
쇠똥
주근깨
바닷바람
막돌맹이
별똥 떨어져 그리운 그곳으로
장독대
낙동강의 이름으로
무릎의자
내 어머님 노래는
임하댐을 찾아와서
모순의 꽃 장미
오 내 사랑 한강아
안녕!
유안진 시인 약력
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 사대 및 동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 전공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대학원에 유학, 박사학위 취득
1965년 현대문학에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
시집 : 달하, 절망시편, 물로 바람으로, 날개옷, 그리스도 옛애인, 달빛에 젖은 가락, 지는 꽃잎을 보며, 영원한 느낌표, 월령가 쑥대머리 등 9권과 시선집 다수
산문집 : 우리를 영원케하는 것은 외 다수
장편소설 :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 다시우는 새
현재 서울대 아동학 교수
열번째 시집을 묶으며
열번째 시집을 묶는다. 무척 망설이고 주저하다가 결국엔 묶었다. 열번째라는 이유 때문일까? 아니면 등단 30년이 다 채워지는 두려움과 자책 탓일까? 모호한 불안과 좌절 두려움과 부끄러움은 이전 어느 때보다 더 깊고 캄캄하다. 그럼에도 묶어내게 되니 나도 모를 일이다.
나는 '꽃'과 '하늘'이라는 우리말을 제일 좋아했다. 세상의 모든 신비와 아름다움이 '꼬오옻'이라는 말 하나로 다 모여드는 어감에 매료되었고, 이렇게 꼬오옻이란 말 하나로 응집되었던 아름답고 신비스런 소리들이 꽃향기를 묻혀주며 '하아느으을'이라는 한없이 넓고 큰 파장으로 퍼져나가는 울림소리, 즉 축소 확대의 어감에 매료되었던 세월도 상당히 지나왔는가?
이제는 우리말 모두가, 특히 사투리가, 울고싶은 우리가락으로 들린다. 호남 사투리는 모두가 진양조로 들려오고, 경상도 사투리는 메나리조로 들려오니, 우리 어감에 대한 몽매의 애정탓인가? 아무튼 내게는 우리말보다 더 정겹고 아름답고 음악적인 말이 없다. 그래서 서정적 가락의 시를 쓰게 되고, 혹독하게 추운 겨울 긴밤 서러운 이야기같이 장엄한 서사시(장편소설)를 쓰고 싶었을까? 아니 무슨 글을 써도 시라고 생각한다. 비록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을지라도 내용에 따라 담는 그릇의 크기만 다를 뿐이라고 믿으며, 이 시집을 묶느라 수고하신 시와시학사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1993년 10월, 찬비 뿌리는 가을밤에
유안진의 시는 독자들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시의 미덕을 지니고 있다.
그의 시에는 우리가 고단한 현대적 삶 속에서 잃고 살아가는 고향의 편안함과 따뜻함이 살아 숨쉬고 있으며 인간적인 생명력과 사랑에의 갈망 그리고 자유에의 지향성이 유려한 가락으로 물결치고 있다. -김 홍(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1 맨발
맨발
무엇을 신었어도
늘 맨발이었다.
맨발처럼 민망스럽고
맨발처럼 당당했다.
등뼈가 휘어지도록 반백년을 걷고 걸어
닳고 닳은 발바닥은 못과 굳은 티눈
발톱은 잦아지고 발가락들 일그러져
그물 힘줄 앙상한 발등뿐인 내 두 발아
무엇을 신겨봐도
아직도 맨발이다.
맨발처럼 시리다 저리다.
맨발처럼 쥐가 난다.
저녁눈
불이 켜지는 골목길에
굵은 눈발이 내립니다.
자수정 얼음박힌 내 벗은 알발을
따뜻이 어루만져주는 보드라운 눈발이
복숭씨에 피딱지 앉은
내 맨발목까지를
천상의 명주수건이
내려와 덮어줍니다.
물봉숭아
마을앞 개울물에서
노냥 맨발로 놀던 나는
오련 붉은 물봉숭아
단발머리 계집아이였지.
그때는 몰랐어라
자라서도
늙어가면서도
그때 그대로의 맨발될 줄은.
밤의 계절
이 긴긴 겨울을 어디에다 쓰랴
아아 나는 아껴 죽고만 싶네
절망을 탐하여
죽음을 무릎쓰고
눈속을 걸어가는 늙은 짐승
죽을자리 향하여
걸음마다 핏자죽을 찍으며 가는
나이 먹은 짐승이고 싶네 나는
음습한 밀림 속을 동행하는
괴기스런 바람소리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탄주하는
겨울 밀림의 겨울 깊은 밤을
밤의 계절 겨울을
죽기 위해 걸어가며
아껴 아껴 쓰고 싶네.
낙서
바람 부는 거리로 뛰쳐 나가서
흔들리며 헝클리며 때묻히고 싶다
꽃이 지는 가지 아래 붉게 죽어서
떨어진 꽃의 자취가 되고 싶다
고백성사보다 더 성스러운 고백을 편지 쓰며
편지 한 장에다 생애를 맡길 만치
순수해지고 싶다
어리석어지고 싶다
인생이란 그것을 모르면서 울어 온 세월
알게 모르게 누려온 축복과 굴욕에
눈물겹게 고마운 불행에
초라한 보답으로 쓰는 글줄도
나의 시대 모든 걸 통째로 부정하는
천장도 바닥도 없는 오만인 줄 아무도 모른다.
입산
사랑처럼 항상
새로운 목청으로
올가을도 불러내는 바람 찬바람
가을나무 옷 벗듯
세상 벗어버리고
낡은 암자 한 채로 들어 앉고 말자
초라한 내몸 하나 품어 안고도
산은 깊은 산
어둠도 깊은 적막이 될 듯
구린 세상에서 밀려다니던 땡초
홀연 돌아와 앉은 낡은 암자 한 채
부처도 보살도 감히 못 바라고
암자 한 채로 허물어지자
나 혼자서 치열한
수행에 들자.
겨울 축복
아모리 조고마한 아낙이어도
어머니라 부르면 무한 커지듯
눈이 내리면 겨울도 따뜻해라
눈 덮인 동네마을도 대지 같아라
도시 변두리도 고향 같아라
아아 이 축복 더 크게 받고싶어
눈 속에 얼굴 박고 따뜻이 울자
대지의 체온이 느껴지도록
어머니의 젖가슴이 느껴지도록
한 두 끼쯤 굶어 보자.
맨발로 걸어왔네
맨발로 걸어왔네
좁은 두어깨에 검붉은 불안만 무겁게 짐 지고
가시밭이든 돌자갈밭이든
떠밀려도 끌려가도 맨발이었네
애매모호했던 젊은 날의 야망들
그 무수한 집착과 편견의 비단구두들
보란 듯이 우쭐대며 신겨보고 싶어서
지나침과 모자람을 거듭하며
싯누런 낭패와 객쩍은 성취
그 어느 것도 부끄럼뿐인줄을
이제야 제대로 알았다네
아니 아니라
어느 인생인들 맨발이 아니었으랴
그러므로 부끄러운 것도 자랑할 것도 없어라
오오 늙는다는 것이여 자유로와짐이여.
뒷소리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뽈 발레리는 이렇게 말했다지.
프랑스 그 남자의 이 앞소리를
내게 맞는 무슨 뒷소리로 받아낼까.
아아 나는 나는 언제나
앞보다는 뒤가 좋고
낮보다는 밤이 좋다.
그늘이 양지보다 더 편안하고
하늘보다 땅이 좋아
땅에서 살고 싶다.
죽으면 가서 행복하다는 하늘보다는
불행해서 울더라도 땅에서 살고 싶다.
어둔 하늘에 돋아나는 별보다는
날 저무는 들길에 고개 살랑 저어 피는
쬐꼬만 들꽃이고 싶다.
숨가쁜 초록으로 숨차오르는 진초록으로
바람이 분다.
혼자서도 향기롭게 꽃다지로 살아야겠다.
입술자죽
따귀 맞아 부르튼
조 귀싸대기에
오오 입맞춤한 입술자죽
요 이쁜 꽃잎
씀바귀 꽃피었다
삶은 쓰거워도
소태맛이어도
사랑은 피어나고
웃음도 고와라
눈물겨워 아름다워라.
자화상
한 오십년 살고보니
나는 나는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라
눈과 서리와 비와 이슬이
강물과 바닷물이 뉘기 아닌 바로 나였음을 알아라
수리부헝이 우는 이 겨울도 한밤중
뒷뜰 언 밭을 말달리는 눈바람에
마음 헹구는 바람의 연인
가슴속 용광로에 불지피는 황홀한 거짓말을
오오 미쳐볼 뿐 대책없는 불쌍한 희망을
내 몫으로 오늘 몫으로 사랑하여 흐르는 일
삭아질수록 새우젓갈 맛나듯이
때얼룩에 쩔을수록 인생다워지듯이
산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때묻히고 더럽혀지고
진실보다 허상에 더 감동하며
정직보다 죄업에 더 집착하며
어디론가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나란히 누웠어도 서로 다른 꿈을 꾸며
끊임없이 떠나고 떠도는 것이다.
멀리 멀리 떠나갈수록
가슴이 그득히 채워지는 것이다.
갈 데까지 갔다가는 돌아오는 것이다.
하늘과 땅만이 살 곳은 아니다.
허공이 오히려 살 만한 곳이며
떠돌고 흐르는 것이 오히려 사랑하는 것이다.
돌아보지 않으리
문득 돌아보니
나는 나는 흐르는 구름의 딸이요
떠도는 바람의 연인이라.
징소리
징소리로 살고 싶다.
끓는 쇳물에 던져진
첫돌아기 봉덕이는
신라쇠북 에밀레종이 되어
신라의 소리로 살아있는데
쉰살박이 청녹 슨 나는
어느 끓는 가슴속에 뛰어들어
바람신의 성대가 될꼬.
구름신의 소리로 우는 북소리도 말고
겁나는 천둥신의 꽹과리소리는 더욱 말고
비의 신의 소리라는 장고소리도 싫다.
못 참아낼 뭇매를 맞을 만치 맞아내고 나서
허공을 흘러사는 바람의 신이 우는 소리
깊고도 머언 목소리의
방짜징이 되고 싶다.
바람신의 소리가 되어서.
가을 손짓
이 카랑카랑한 가을날에는
눈이 시려서 마음이 시려서
허깨비가 보인다
아직도 못지운 바람
기파랑이 손짓한다
소주에 취한 듯 빼주에 타들 듯
아리까리 잡힐 듯한 손짓이여 바람이여
어제 일도 추억처럼 아득히 달아나며
길로 길로만 끌려가는 옷자락
벌레울음 자욱히 안개 피는 외길 머리
작아서 짙은 향기 하얀 구절초로
선지코피 쏟아내며 달려오라 칸다.
달빛 젖은 어깻쭉지 다시 서리 얼려서
치닫이길 내리닫이길 낭떠러지 끝끝까지
달려와서 내친김에 뛰어들라 칸다
육두질 파도 속으로 노을타는 저녁하늘 속으로
쇳물 끓는 일천도 불길 속으로
신라쇠북 에밀레의 비천보살이 되라 칸다
전생에 못다지운 죄인이 되라 칸다.
소금꽃
너무 쉽게들 말하는
반백년을 살고보면
어디서나 민망하다
누구에게나 미안하다
아무때나 죄스럽다
그럼에도 또 한켠은
분하다
억울하다
등허리가 휘여진 주름살 골골이
희끄무레 희뿌옇게
소금꽃만 자욱하다
너무 쉽게들 말하는
반백살쯤 되고보면
서말가옷 남짓한 소금꽃밖엔 없다
쓰다 달다 시다 떫다……도
짠맛 하나로 가늠하라는가.
입춧날
오늘부터 오늘부턴
시간도 세월로
이름이 바뀝니다.
초록도 더 이상 초록이 아닙니다.
눈섶 위의 하늘자락 처음보듯 눈 설어
시린 두 눈 내리깔고 발끝 보며 걷습니다.
나이가 무거워지는 저녁이 왔습니다.
가슴속에 깊이 묻힌 불씨 살려 불피우듯
이름 하나 되살려 불을 켜야 합니다.
안 보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고
안 들리던 목청도 들려올 듯합니다.
눈이 밝아집니다 귀가 밝아집니다.
사랑도 이별로
그 이름이 바뀝니다.
입춧날 오늘부턴 세상이 바뀝니다.
안동소주
이 풍진 세상을
아모리 아모리
저 세상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해도
때없이 맞닥치는
겨울비같은 좌절과 낭패를
들켜지고 마는 굴욕과 수모……를
불싸질러 흔적없이 사루어주는
45도 화주 안동소주
사나이의 눈물같은
피붙이의 통증같은
첫사랑의 격정같은
내고향의 약술 그 얼로 취하여
이 풍진 시대도
저 시대의 너털웃음 웃어가며
성큼성큼 건너뛰며 나 살으리.
구경꾼 2
아베마리아가 기다리시는 곳
꼴쳐보는 세상 눈길
맨몸으로 받아내어
송곳자죽 바늘자죽
먹자두빛 겨울응달에도
빠꼼이 쳐다보는 꽃다지풀 초록눈
아아 여기도
목숨의 고향
아베마리아가 기다리시는 곳
코고무신 버선발길 바삐 지나다녔으리
혓바늘 따갑듯이 문득 잠 깨이는 바로 그곳.
겨울사랑
나 혼자서 정리하고
나 혼자서 용서하며
얼었다가 풀렸다가
한겨울도 깊어 갑니다
비바람이건 눈보라이건
나 혼자의 미친 짓입니다.
문맹
물음표 하나 가슴에 붙안고
헤매여 온 오십년의
축복과 굴욕에
적막한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
나의 계절 겨울이 왔습니다
그 누구와도 비교되고 싶지 않고
그 무엇으로도 설명되고 싶지 않은
오직 나일 뿐인 문맹
캄캄 밤의 계절 겨울이 왔습니다
따지지 않고 생각지 않고
다만 느낌으로 꿰뚫어지는 문맹
창조 이전의 혼돈과 흑암
마침내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내 영혼의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이로서 충분합니다.
이것조차 내겐 과분합니다
마침내 평화를 얻었습니다.
진창
바다도 아니
육지도 아니
여기도 세상
눈물겨운 황량함을
눈물닦고 다시 보니
위대해라 장엄도 해라
이 기막힌 세상을 놔두고
나는 죽지 않으리
죽어서도 살고싶다
살아서 죽고싶어지고 싶다
죽고싶다고 몸부림쳐가며
살고싶다 살고싶다.
사람 그리운 병상
솜털 핀 이마에다
칼끝으로 새겨달라
그런 사랑을 빌고 빌던 한여름도 지나와서
소리와 글자만의
말과 관념이던
사랑니 앓던 알사탕맛 봄철은 아득한 옛날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열두번 둔갑하여
소태맛의 겨울철
사람 그리운 지금 내 병상에서는
아아 목말라라
얼음 채운 맹물맛의 사랑다운 참사랑아.
오늘도
오늘도 걷는다
꽃도 열매도 억울함도 축복까지도……
끝내는 죄다 썩어지고 마는 여기 이 세상을
썩어져서는 술로 괴는
환장할 세상 여기까지를
그 술도 결국에는 다시 썩어 식초가 되기까지
사랑을 넘어선 사랑아
오늘도 걷는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극락이라는
이 세상 끝까지를 내 발로 내 두발로.
구경꾼
구경꾼일 따름이다
뒷자리의 그늘과 모자람이 편해서 좋고
먼발치의 넉넉한 여유가 자유로와서 나는 좋아
오오 음지식물이 누리는
아무도 모를 겨운 행복이여
키 큰 이들 어깨 너머로
까치발돋움 하면서도
때로는 민망해지고 과분하다 느껴지는
굳이 나눈다면
천성적인 음지식물일 따름
그 밖의 자세한 것은 나 자신도 모른다.
가을 안부
한 장 낙엽에다
피로 써서 묻고 싶네
그대 이 가을은 어떠하신가
얼굴에는 주름살이 늘어만 가도
마음을 구겨접은 골깊은 주름살들
도리어 하나씩 펴지고 있나니
그대 가을도 정녕 이러신가
서리 허연 낙엽에다
피로 써서 묻고 싶네.
악수귀천이요 예별존비니라
약을 먹고 내다보면 문득 목메어 온다
사랑채 툇마루 팔모진 높은 댓돌
할아버님 나막코신에 담겨졸던 금빛 가을볕
내외벽 뒤에서 몰래 엿보던 내엄니는 새댁네
악수귀천이요 예별존비니라
풍류로서 귀인하고 천인이 구별되고
예절을 보면 존귀한 사램 비천한 사램을 알 수 있느니라
선비는 풍류를 예절에 앞세우는가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으셨던
할아버님 음성 들리는 착각
대여섯살적 내가 배운 천자문 250수 시를
나는 지금 대학원에서 가르쳐 밥을 먹지
그날같이 눈부신 것은 가을볕뿐이구나.
겨울 소식
잔치마당
굿판같던
봄 여름 가을 차례대로 다녀가고
떼까치 떨군 울음
치마폭에 주워담고
죄진 듯 고개 속여 웃도 울도 못할 참에
반가운 인기척 문득 들린 듯이
빈 하늘에서 내려오는 휘파람소리
담장밖을 지나가는 바리톤 솔로같은
눈이 내립니다
가장 겨울다운 겨울 소식 맞이합니다.
신록의 딸
아아 살고 싶다
새 이파리 기뻐 우는
오뉴월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죄악일랑 만들지 말자
부자가 되고싶은
탐욕으로 더렵혀지지 말자
몸사랑의 때마저도
묻히지 말자
눈멀도록 새파아란
어린 나무가 되어
상큼한 아랫도리
눈부신 수풀 빛깔
운명 이전의 모습대로
소녀로 처녀로
신록의 딸이 되어
흰구름의 딸이 되어
나는 나는 크고 싶다.
미류나무
미류나무 사이로 보면
고향마을이 보인다
박자 틀린 동요와
말매미소리가 들린다.
가늘어 질기게 이어지는
역사보다 호사스런 그 숱한 전설에
해마다 보태지는
채송화빛 슬픈 얘기
햇살과 바람이 손잡고 모여들어
잎자루가 길어서 목이 긴 아이들과
풍금치는 여선생의 산 아래 국민학교
자전거 타고 달려가는 미류나무길 청년
이삭 줍다 먼눈으로 짚어보던 풍경화
미류나무가 없어졌다
내 고향이 없어졌다
나의 재산이 없어졌다.
타인의 계절
흥보
매품 팔아 살던 그 시절처럼
여름은 늘 내 몫이 아니었다
뜨겁게 달구어진 번철 땅바닥을
죽기 위해 기어가는 버러지 같아지는
올 여름도 마찬가지 타인의 계절
녹음도 파도도 소낙비도 뙤약볕도……
훔쳐 가질 수도 없는 열정
남의 몫의 축복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는가
내 인생엔 여름철이.
확인
겨울같이 추운 봄날씨도 있듯이
혹 가다가 엉뚱하게
엉뚱해지고 싶다
웃는 듯 우는 듯 그저 그런 굳은 얼굴
냅다 팽개치고 내동댕이쳐 버리고
혹 가다간 맘 놓고
천둥 울음 울고 싶다
젖을까 우산 쓰고
또 애써 말린 일상
장대빗발 놋날로 맞아
너부러지고 싶다
혹 가다간 폭음해서
술잔처럼 나뒹굴며
술상처럼 엎질러지고 허물어지고 싶다
아직도 나는 나다
여전히 나는 나다
혹 가다간 그렇게 확인해 가며 살고 싶다.
혼자서 걸어가면
혼자서 걸어가면
가을길이 보입니다
여위어 한갓지고 비어있는 외진 길이
편안한 누님같은 과꽃이 피는 길이
아리아리 아픈 손짓 불러줍니다
혼자서 걸어가면
가을길이 열립니다
한번쯤 혼자서 울어봐야 하는 가을
울어서 제 가슴의 크기도 제대로 느껴지는
텅빈 가을길이 휘어지며 열립니다
너를 사랑하는 바로 그이가
너를 울릴 그 사람이 되나니
이별있는 사랑만이 정녕 사랑이라는
바람의 목소리를 누님의 목소리를
가을귀는 스스로 알아듣습니다
'빛나는 날과 기쁜 때를 지나서
마침내 그대 눈물과 우수에 싸이리라'
27세 요절시인 러시아 레르몬토프가
가을황야에서 이런 노래 불렀듯이
가을길은 어디서나 눈물과 우수의 길입니다
혼자서 걸어가면
모든 길이 가을길입니다
아무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비교되고 싶지 않아
외롭고 쓸모없어 호사스런 이름으로
인생을 노래하는 눈물의 시인이 됩니다.
과일가게에서
사과 배 김 대추 그리고 알밤
저요 저요 저요 저요오
손을 들고 무릎걸음질 치던
국민학교 아이들
나도 그러던 빠알간 사과볼의 소년이었습니다
고향이란 결국 떠난 자의 마음속 세상이듯
사랑도 그렇게 이별 뒤의 혼자 마음이었습니다
쓰고 떫고 시고 맵던 세월의 고개고개를 넘으면
모든 맛은 달디 단맛으로 곰삭아지는지
이제는 단감같은 중년도 넘친 나이
가을 과일 가게 앞에 절로 걸음 멈춰지는
반백의 소년으로 알밤 한 되를 삽니다.
가을 사랑
세상의 모든 것을
어머니의 눈으로 보며 사는
가을 여자가
세상의 모든 것을
연인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봄 여자적 그때를
문득 추억하는
가을 저녁 머언 불빛
바르비종화가 프랑소와 밀레의 그림 한 폭
써늘한 들녘에도 그윽한 종소리같던
그리운 목청 그 목소리여
제일 머언 사람을
제일 가깝게 느끼는가
가을 사랑은
창밖마다 울음 내놓고 소리높여 울줄 아는
버러지여 풀벌레여 사랑의 용사들이여.
발자죽 3
쉰살 먹은 방황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낯선 길을 헤매이는 배반 하나 키워왔다
참으로 헤매여보지 못했음으로써
결단코 포기될 수 없는 방황의 소망이여
가을이 왔다
아무렇게나 쌓인 가랑잎같이 흐느끼는 찬 비소리
허이연 들풀이 함부로 나자빠진 벌판이 부르는 서릿바람소리
굵은 눈발이 떼지어 쫓겨가는 겨울 산하의 말발굽소리
북만대륙 밀림 속에서 삭풍에 언손 뜨겁게 녹이는 겨울밤이 우는 소리
아아 목놓아 울어보고 싶은 대서사시의 세상이 날 부르고 있다
겨울이 왔다
오십년을 별러온 나의 방황아.
눈을 맞으며
거꾸로 살고 싶다
잿가루 날리는 이 가슴으로서도
눈발 속에서는 아이가 되고 싶다
시골 국민학교 운동횟날같이
만국기가 나부끼는 소리로
웃어쌌는 아이들
나는 그애들이 만든 대견스런 눈사람
기우뚱 서서 무엇을 꿈꿀까?
연분홍 복사꽃빛 아득한 사랑얘기
진자주 모란꽃의 피톨 튀던 그 사연들
어디를 헤매이다 하얗게 늙어서 돌아오는 눈발 속에
백 원짜리 동전같이 별사탕같이
은하를 따라가다 길 잃은 별이 되어
두 눈 글썽이는 아이가 되고 싶다
비탈길도 평지같이 타달타달 걷는 아이
훌쩍이며 혼자서 돌뿌리를 차고 싶다.
민들레
아닌 때
아닌 길에서
안 잊힌 얼굴이 스쳐갑니다
단 하나 남아있는
소꼽짱동무를 반깁니다
밟혀서
더 잘 크던
촌계집애 이름입니다.
나는 사랑한다
넘어오는 언덕길로 옷자락이 보인다
아릿아릿 아지랑이떼
건너오는 다릿목께서 목소리가 들린다
귀에 익은 냇물소리
접어드는 골목마다 담장짚고 내다보는
개나리 진달래 덜 핀 목련꽃
바쁜 혼담이 오가기 전에 벌써
곱고 미운 사랑이 뿌린 눈물을
알면서도 시침떼는 민들레 피는 마을
나는 사랑한다
겨울 다음에 봄이 오는
어머니와 나의 나라
우리 마을을 사랑한다.
꼬리표
달밤에 우는 까마귀처럼
밤보다 깜깜한 밤이 되고 싶어 울며
뙤약볕에 동상 입고
눈서리에 화상 입고
그래도 모자라서
다시 벼락맞는 대추나무처럼
물음표 하나 앞장세우고
나는 걸어왔네 쉰몇 해 동안을
사랑이니 야망이니 그 황홀턴 거짓말들
제 갈길 제대로 찾아서들 떠나가서
술이 깨듯 꿈이 깨듯 나도 깨어 나는가
물음표는 어느새 내 꼬리표가 되어있네.
오뉴월 혼잣말
없는 것을 꿈꾸며
없는 이를 사랑하며
꽃이 된다
잎이 된다
신록이 된다마는
묻노니 거듭 묻노니
꿈이여 사랑이여
열매가 될 것인가
생애를 걸어 볼
보람이 될 것인가.
목디스크
벌 받는다 벌 받는다
내 누구를 그리도 미워해서
복뼈가 어긋나도록 어금니 앙다물어
처음 들어보는 귀설은 서양병 이름
되로 주고 말로 받아 아파서 갚으란다.
4월 하순
까닭없이 마음도 바람부는 4월 하순
저녁답같이 어둑어둑 젖어들어
꽃 지는 가지 아래 그냥 털썩 주저앉아
술잔에 꽃잎 띄워 막소주나 마셨으면
쓰디 쓴맛 인생이 새삼스레 억울해져
소주잔에 뛰어들어 그냥 빠져 죽었으면
죽어서 밤에 우는 눈먼 새가 되어
울음소리 그 하나로 이름을 얻어내는
오오 붉은 울음 계절없이 울었으면……
사투리
가끔씩은 사투리로
귀도 씻어줄 일이다
기적도 애잔하게 메나리조로 우는
중앙선도 타 볼 일이다
태백 소백 첩첩산중 고개고개를 넘어가며
바람도 산바람뿐인 메니리조의 고개바람소리
심심산골 얼음 썩는 산여울도 메나리조로 울어
경상도는 사투리도 메나리조 아리랑
진양조로 휘늘어진 호남선을 타고가면
산등성이도 강줄기도
밀쳐낼 듯 끼고도는 진양조 느린 가락
호남들녘 논두렁길 밭두렁길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하는 바람소리도
한이 삭아 흥이 된 진양조의 호남사투리
가끔씩 가끔씩은
우리가락 사투리로
귀를 후벼줄 일이다.
편지 이불
찌뿌드드 오대삭신을
마른 가랑잎 속에 누이고 싶다
탈색된 잉크자죽
누리팅팅한 좌절의 낡은 편지 뒤집어쓰고
받고 싶었던 일만통의 편지
쓰고 싶었던 일만통의 고백편지로
청춘의 가난을 채우고 싶었던 꿈
가랑잎 속에 누워 몇 밤쯤 자고 싶다
떠오르는 아침햇살에 눈이 부시어
두어 점 눈물방울 속눈썹에 매달은 채
행복하게 죽고싶은 올겨울 나의 사치.
바바리코트
뛰는 생선같은 청년의 때에는
간편한 잠바를 입어야 한다
거르침없는 로맨틱무드와 신명이 실리는 휘파람과도
웬지 어울리는 듯
그러나 날씨를 점쳐주는 관절염이나 신경통을
소실댁처럼 숨겨두고 동거하는 중년부터는
면역이 된 굴욕과 회복이 힘든 좌절을
얼마쯤은 가려주는 바바리코트가 제격이다
승진도 좌천도 상처로만 도져오고
까닭모를 비굴과 후줄그레한 자멸감이
아랫도리 정갱이에 찬바람으로 파고드는 나이부터는
바람막이 내리닫이 바바리코트를 입어야 한다
꿈과 야망과는 주소가 다른 생업의 코뚜레에
길들 만치 이미 길든 가을나이부터는
별뜻 없이 되고만 개살구빛 가장감투가
버리기엔 아까운 축복인가 족쇄인가를
깃 세워 입으며 자문하게 되는 출퇴근복 겉옷
어느 날 갑자기 몰라보게 자라준 대견스런 자식들은
멈춰설 수 없이 앞으로만 걸어가야 하는
천근 다리의 헛디디는 비틀걸음도
고맙게 중심잡아주는 상식인의 체면치레
어쩌면 겉옷같은 바바리코트가 아닐까 하며
요염한 까페불빛 군침삼켜 곁눈질하고
주머니형편에 져줄 줄 아는 이 시대의 생활인들
포장마차 단골손님으로 환영받는 호사에 힘이 올라
무거운 이마 주억대며 손수 따른 막소주잔에다
인생 쓴맛도 중화시켜 마실 줄도 아는 한물간 직장인옷
알맞은 구김살과 흘린 술얼룩이 편안하게 남아도 좋은 옷
유행 지난 나이와 동병상련 내통되는 겉옷
속 쓰려 잠이 깨면 제일 먼저 마주치는 멀건 눈길과
눈꼽을 밀어내는 자신도 모를 새벽 눈물을
피차 서로 알 만치 아는 중년의 자화상 바바리코트는
황태자가 입어도 쓸쓸해 보이는 옷
머리 아닌 가슴으로 바라보이는
뒷모습이 더 외로운 늦가을 출타복 바바리코트.
발자죽
다시금 용서하마
한번 더 지워주마 하시며
간밤에 새로 지어주신
오오 백설의 신세계
어쩌나요 하나님
쩔은 땟국 얼어터져
핏물 번지는 이 맨발로
또다시 걸어갈 수밖에 없는
모자란 인간 저야요.
뱀해에
홀려다오 나를
꽃보다 향기로운
붉은 능금의 죄를 짓고
두 눈이 밝아지게
이마에 구슬땀을 흘릴
어수룩한 사내 하나 꾀어차고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해산하는 고통을 달게 누려 살도록.
요하네스 브람스
봄날 소리개
하늘 높이 떠서
이잡듯 내려다 살펴보던
내 야망시대의 2.0시력에도
요하네스 브람스!
당신같은 남자는
찾아내지 못했다
아니 당신같은 눈 좋은 남자가
없는 세상을 탄식하며
여름도 멀리 지나와
늦가을밤 호롱불빛같은 돋보기 쓰고서야
비로소 보았어라
원고지 네모난 칸에서
내가 클라라 슈만이 못된 탓인 줄을.
맨드라미
끌려나와 돌팔매질로 단죄받아 마땅한 짐승의 계절 한여름날에도
가장 짐승스런 대낮 정오
왜애애앵---!
도시 사람 간떨어지게 사이렌이 부는 바로 그 시각에
여름은 운다
살비린내 퀘퀘한 진초록 녹음의 어둑한 숲그늘
땅버러지 스물거리는 눅눅하고 쉬쉬하고 후끈거리는
거름터미 잡풀을 단번에 쓰러뜨리며
꼭끼오오---!
난데없는 장닭이 홰쳐 우는 그 찰나에
솟아 올랐다 닭벼슬꽃 맨드라미가
목을 뽑아 홰쳐 울고 싶은 촌닭마을 모퉁이 집
이마박에 마른 피딱지 붙은 담벼락과 마주서서
생간댕이 날비린내 풍겨나는 까물침의 꽃
맨드라미가 핀다
여름 고독이 오열한다.
윤회
내손 몇번 닿으면
죽은 화초들 살아난다
살아 깨쳐서 방시레
꽃도 피워 웃는다
자자 손손 고마워하자고
까만 씨앗도 영글린다
문득 나는 무엇이었을까?
의문나는 나의 정체
흙이었을지도 모른 전생과
초목이었을지도 모를 전전생
길섶까지 놀러나왔다가
밟혀 찢긴 풀잎도
내살같이 아파온다
내 당한 듯 화나 죽겠다.
디스크를 앓으면서
살아온 자세가 글러먹었어
오른쪽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야
그저 남들 사는 모양새 대로
왜 못 따라 살아왔어
쥐뿔도 없으면서
잘나지도 못한 주제에
얼음밭의 보리싹같이
새파랗게 질린 성깔머리로
세상만사 다 못마땅해하며
빼딱하게 외돌아 앉아
아니꼽다 꼬나봤지
그것조차 성에 안차서
누에고치속 번데기같이
세상도 시대도 통째로 무시했지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이리 술렁 저리 번뜩
앞뒤 좌우 고루 살펴가며
허리운동 목고개운동 부지런히 해가면서
남 사는 식으로 사는 거야
정신 차렸! 이 고집불통아
자업자득 네 탓이야.
4 어깨춤
눈이 내려 녹습니다
눈이 내립니다
아잇적 찬란했던 동화마을과
첫사랑의 고백같던 도시의 거리거리와
격렬한 투쟁의 비극 세상에서
죽음도 무릅 쓴 야망의 젊은 날을
한참이나 지나와서
마침내 머리 누인 바람맞이 언덕
추위와 시장끼로 허리꺾인 갈대꼴같은
부러진 정갱이에 마지막 손길처럼
따뜻한 눈발이 따뜻하게 내립니다
뼈마디가 소리치는 그리움에는
절반 넘는 미움의 빨간 독버섯이 돋아나서
새까맣게 자즈러지고 나서야
사랑다운 사랑이 되어지는 법
정답 없는 인생을
정장만 입고 살지말라
가다간 강 건너 불구경하는 구경꾼같이
멀찍이 물러서서 구경스럽게도 봐야한다고
진종일 타이르고 훈계해주듯이
바람도 섞어가며 잔눈발이 내립니다
이 모두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보여주며 증명하는 세월의 비늘가루가
세상 아닌 하늘에서
녹아버리기 위해 내립니다.
앓으면서 배운다
사랑은 모름지기 이별로서 완성되듯이
삻이란 것도 죽음으로 구원되는가
죽음앞에 불려가 보고 나서야
진정 인간적이 될 수 있는가
나는 배운다 이 엄숙함을
까무르칠 듯 앓으면서 비로소 알아진다.
가을 기도
불러주세요
서리치면 쓰러질
들풀같이여린 내 이름을
찬비 내리는 가을밤에는
불빛처럼 불러주세요
나그네도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가듯이
고향집 따순 아랫목에
지친 머리 뉘이듯이
먼지 쌓인 복음책으로
저를 불러주세요
손때 묻고 어룽진 어느 행간에서
낙옆처럼 엎드려
붉게 붉게 울도록
오오 하나님
가을에는 가을에는
제 고향 말씀책으로
저를 오라 불러주세요.
그리운 종소리
예배당마을 십리 밖에 나는 살았다
잠결인지 꿈결인지 새벽이면 들려오는
댕그랑앙앙아아 댕그랑앙앙아아
문풍지소리만큼 여린 숨소리를
잠귀가 밝았을까 나는 들었다
일어나아아아 일어나아아아
귀에 익은 어린 음성 소년예수가
내 귓볼에다 그렇게 소근거렸다
일어나도 잠에 취해 베개에 얼굴 묻고
무어라 기도했나 생각나지 않지만
아직도 생생한 40년전 그 종소리
창호문에 배어드는 새벽물빛같은
파르스름 떨리는 소년의 숨결이여
십리길 멀다 않고 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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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 (인간적인 생명력과 사랑에의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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