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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버려진 집

by Casey,Riley 2023.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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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려진 집 I +++

                                                     

             지나친 공포심은 사람을 미치게 하지..
             그런데, 때로는 사람의 광기(狂氣)가 
                   공포심을 만들어 낼때도 있어...           
                                         - 재원이의 편지에서


정말 찌는 듯한 날씨였다.
예년에 비해 갑자기 찾아온 무더위에,  사람들은 봄을 만끽하려다 여름 준비
를 해야 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나고 답답히 미칠 지경이었다.
벌써 이 정도면 여름에는 무시무시한 더위가 닥칠 것만 같았다.
더위와 싸우며 졸업논문 준비를 하고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더위에 지쳐 축 늘어진 몸으로 집에 들어왔다.
책상위에는 의대 다니는 재원이로부터 두툼한 편지가 와있었다.
편지를 쓰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은 놈인데, 난데없는  편지라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괴기한 경험으로 의사라는 직업에 많은 회의를 가지게 된 놈이 이번
에는 편지를 부쳐온 것이다. 할 얘기 있으면 전화로 하면 되는데... 
무심코 소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경기도 연천으로 되어 있었다. 
아직 방학도 시작 안했는데, 연천이라니...
더구나 겉봉에 쓰여 있는  글씨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삐뚤어지고 괴상했
다. 우리집까지 배달된 것이 기적 같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재빨리 편지를 뜯어 보았다. 꽤 많은 양이었다.
역시 평상적인 안부 편지는 아니였다.
재원이는 또 기괴한 경험을 한 것이었다. 아니, 하고 있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일한에게..
그 동안 잘 있었니? 
지금 쯤 기말 고사 준비다, 졸업논문이다 정신 없겠구나...
이 편지 받고 놀랐지? 갑자기 왠 편지가 하고 궁금했겠구나..
전화하기는 좀 그런 얘기여서, 정말 오랜만에 팬을 들었다. 이런 편지를 쓰게 
되리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나 지금 경기도 연천에 있는 작은 시골에 있다.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라.. 나도 이렇게 까지 하고 싶진 않았어...
하지만 뭔가 알아봐야 할 것이 있을 것 같아서..
네가 이 편지를 다 쓸때까지, 내가 제정신으로 남아 있을는지 자신이 없겠구
나.. 살아있을 지도... 
그것들은 편지를 쓰는 나를 지금도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겠지...
만약 이 편지를 다 쓰게 된다면, 그리고 제대로 이 편지를 부치게 된다면, 나
를 억압하고 있는 그것들과 마지막으로 얘기해 볼 셈이다.
가능하다면....
너에게 편지를 쓰며 생각해보는데,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한심하기도 하
고, 나에게 그런 괴상한 현상들 - 아니, 귀신이 나에게 쓰였는지도 모르지.. - 
을 경험하게 한 그 무엇들이 저주스럽기까지 하다..
과학과 이성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던 나로써는 그 동안 일련의 심령적 경험은 
너무 큰 충격이었어. 그래서 한때는  심령학이라는 또 다른 과학적 방법으로 
그 괴상한 현상들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의학이라는 과
학에 이미 굳어져 있던 나의 사고는 그  허무맹랑한 사실들을 과학으로 받아
들일 수 없더라. 그래서 다시 의사가 되기로 했지..
하지만 지난번에 전화로 얘기했던 귀머거리가 된 꼬마애를 보고 의사의 길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어..  그러나, 그것은 회의로 그칠  뿐,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쳐 어쩔 수 없이 의사가 되기로 했지..
그러나, 그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나를 가만두지 않는구나...
어디서 부터 시작할까...
모든 괴상할 일이 다 그렇듯이, 나의 경우도 지극히 평범했다.
의대 과정중에 의료조사라는  이름으로 의료시설이 낙후된  시골에 가서, 그 
마을의 질병 상태나 이것저것 조사하고 보고서 작성하는 것이있어.
선배들 얘기로는 우리들이 학생이니,  진단이나 치료도 못하고,  단지 조사만 
하기 때문에 마울 사람들이 탐탐치 않게 생각하고, 협조도 잘 안해준다는 거
야.. 그래서 좀 힘들거라고 하더라.
우리 조는 모두 7명이었는데, 경기도 연천에  있는 작은 마을로 주위에 작인 
공장들이 들어서 있는 농촌도, 도시도 아닌 마을이었어.
거기서 우리는 허름한 여관에 묵으면서 일주일 동안  그 의료조사를 하게 되
있었어. 역시 선배들 말대로 주민들은 비협조적이였어.
더구나 마을이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  아니고, 공장지대에 가까이 위치한 곳
이라 이동하는 인구도 많고, 인심도 보통시골보다는 박한 느낌이었어.
그리고 뭐랄까... 사실 마을의 첫 인상도 날씨 탓인지 너무 황폐했어.
후덥지근하고 축축한 날씨에 여름인데도 이상하게도 황량한  기분이 드는 논
과 밭, 그리고 저편에 음산하게 서 있는 공장들과,  그 굴뚝에서 나오는 시커
먼 연기들... 여하튼 자연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농촌은 아니었
어.. 그때부터 이상했지...
첫날 우리는 '성일여관' 이라는 허름한 여관에 짐을 풀자마자, 마을을 3군데로 
나눠 의료 조사에 들어갔어. 공장이 가까워서 그런지 낮에 집에 있는 사람들
은 애들하고, 노인들 밖에 없었어. 그나마 있는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면
담을 거절하고 비협조적이었어. 
그래서 우리 모두는 밤 시간에 다시 한 번 마을을 돌기로 했어.
나는 명준이라는 동기하고 같이 한 조가 되었어.
한밤에 변변한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을 다니는 것은 으스스했어.
띠엄띠엄 떨어진 인가를 찾아 부탁을 해  보았지만, 그리 큰 협조는 못 얻어
냈어. 그래도 한 서너군데서 얘기를 들었어.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질문에도  경계를 하는 듯 했
어. 뭔가에 겁먹은 사람들처럼..
나와 명준이는 힘든 동네라는 얘기를 하면서 첫날 조사를 마치기로 했어.
여관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
명준이의 영문과 다닌다는 여자친구 자랑을 한참 듣고 있는데, 저기 나무 그
늘 밑에 사람같은 것이 서 있는 것이 보였어. 밤이어서 잘 안 보였지..
가만히 있길래, 나는 속으로 사람 모양  비슷한 나무 가지를 보고 내가 착각
하는 것이겠구나하고 아무 생각 없이 명준이의 자랑을 들으며 발걸음을 재촉
했어. 그 옆을 지나가는데 나는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
나무가지인줄 알았던 것이 갑자기 우리가 옆에 지나갈  때 스르르 하고 고개
를 드는 거야. 
사람이었던 거야..
그것도 머리가 긴 여자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길 옆에 서 있다가, 우리가 
지나가니깐 우리쪽으로 고개를 듣거야..
얼마나 놀랐는지.. 명준이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내가 
움찔하는 것을 보고 주위를 둘러 보다가, 그 여자를 보고는 '어억'하고 비명도
질렀어. 그 여자는 깜짝 놀란 우리를 가만히 쳐다보는 거야..
그것도 빤히.. 너무 무서웠어.
나와 명준이는 놀라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간신히 움직여 그 여자 
곁을 빠져 나왔지. 우리는 거의 뛰다시피 했어.
한참을 달린다음 뒤를 돌아보니, 그 여자는 어느새 사라졌더라...
너무 섬뜩한 경험이어서 나와 명준이는 놀란 기분으로 여관으로 들어갔어.
여관에는 벌써 다른 애들은 다 돌아와서 자기들의  조사에 대해 얘기를 나누
고 있었어. 그 애들은 새파랗게  질려서 달려들어온 우리들을 보더니 무슨일
인가 의아해하더라. 우리들은 그 섬뜩했던 여자에 대해 말했지.
그랬더니 애들의 표정이 좀 이상해지더니,  자기들이 마을을 돌아 다니는 동
안 경험했던 각각의 이상했던 것들을 얘기하더라.
어떤 조는 돌아다니다가, 허름한 민가를 발견하고 조사하러 들어갔는데, 분명
히 멀리서 볼때는 불이 환히  밝혀졌던 집이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버려진 
흉가였다는 거야. 이상해서 좀 둘러보았는데  벽에 검붉은 자국이 사방에 있
고, 너무 음산하고 무시무시해서 그냥 나와 버렸다는 거야.
또 다른 조는 우리가 봤던 그 여자인  줄은 확신할 수 없으나, 어떤 머린 긴 
여자가 길을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거야.
우리는 첫날 보고서 작성보다도 그 여자의 정체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지.
귀신이라는 명준이의 주장은 그때까지는 섬뜩한 농담에 지나지 않았지..
그렇게 첫날을 보냈어..
둘째 날도 마찬가지로 마을 사람들은 비 협조적이었어.
나와 명준이는 여전히 같이 마을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어제 애들이 말했
던, 그 흉가 앞을 지나게 되었어.
그 버려진 집은 낮에 보아도 훙칙스럽고 음산하게 보일 정도였어.
명준이의 들어가 보자는 제의에 그때는 무서워서 엄두가 않났지..
지금 이렇게 될 지도 모르고...
밤이 찾아오자, 우리는 그  여자에 대한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각기 조사에 
나갔어. 나와 명준이는 어제 그 길을 지날갈 때는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뛰
었어. 꽤 겁났었나 봐...
여관에 돌아오자 이번에는 모두들  그 여자나 특별한 일이  없었는지 즐거운 
농담들을 하고 있었어. 그러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애들의 표정을 보고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 것 같았어. 
그 애들 말로는 어떤 할아버지에게 이것  저것 묻고 있다가, 호기심에 그 흉
가에 대해 물어 봤다는 거야. 그랬더니 표정이  바뀌더니, 그때까지의 친절히 
대답하던 것도 안하고 빨리 여기서 나가라고 소리를 쳤다는 거야.
너무 갑작스런 변화라 당황해서 아무말도 못하고 쫓겨났다는 거야.
그 일에 대해서 우리는 또 여러 가지 추측을 해 보았지..
여하튼 결론은 이 마을에는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거였어. 그것이 무엇인
지는 모르나, 주민들의 태도나 표정, 그리고 분위기, 또 그 흉가와 이상한 귀
신 같은 여자등... 뭔가가 있을 만한 요소는 다 갖추고 있는 것이었어.
우리는 그런 시시꺼렁한 얘기를 하면서 사온 맥주를 마셨어.
한참을 재미있게 떠들다가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로 갔어. 우리가 묵었던 여
관은 아주 오래된 여관이라 공동 화장실로 되어 있었거든..
여관 복도는 어두침침했고, 마룻바닥이어서  삐그덕거리니 괜히 무서운 생각
도 들곤 하는 거야. 나는 애써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리고 화장실로 갔지.
볼일을 보고 화장실에서 나와 우리방쪽으로 향하는 데, 저쪽 복도 끝에서 어
떤 사람이 걸어오는 거야. 다른 숙박객이겠구나하고 방으로 향하는데,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을 보고 소름이 쫙 끼쳤어.
길게 늘어뜨린 머리에 괴상한 옷차림하고 스르르 다가오느데 바로 전날에 봤
던 그 여자였어. 
얼마나 놀랐는지... 몸이 움직여지질 않더구나.
정말 귀신인줄 알았어. 그 여자는 멍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면서, 소리없이 내 
옆을 지나가는 가야. 마치 공중에 떠서 가는 것처럼...
나는 꼼짝도 못하고 있다가, 그 여자가 내 옆을  지나가지 마자, 뛰어서 우리
방으로 들어갔지.. 내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오자,  방안에 있던 친구들은 놀라
서 무슨 일이냐라고 물었어.
내가 있었던 일을 얘기하니까, 친구들은 믿기는커녕장난치치 말라는 거야.
내가 자기들 놀리느라고 거짓말하는 걸로 알았던 거야.
나는 한참을 설명하다가, 애들이 너무 안믿는 눈치어서 그 얘기를 그만 두었
어. 
그리고는 맥주를 마시면서, 앞으로 조사해야  할 항목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어. 내 귀에는 아무것도 안 들어오고, 그 여자의 섬뜩한 모습만 머리에 
빙빙 돌았어. 
애들은 그런 나를 무시하고 토의를  계속했어. 둥그렇게 둘러 앉아서 얘기하
고 있는데, 갑자기 문쪽을 바라보고  있던 자인이와 영조가 새파랗게 질리며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거야. 그때방안이 너무 더워, 문을 열어 놨거든.
우리 모두는 무슨 일인가 하고 방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그 순간은 모두들 '윽!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얼어붙어 버렸지.
내가 봤던 바로 그 여자가 문앞에 서서, 빤히 우리들을 쳐다보고 있던 거야.
우리 모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식은 땀을 흘렸어.
실제로는 몇초도 안 되는 짧은  적막이었지만, 우리들에게는 영겁의 시간 같
더라. 나중에 다들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는데, 정말 귀신을 보는 줄 알았데.
그 죽음같은 침묵은 그녀의 엉뚱한 질문으로 깨졌어.
 
  "저... 안 중위님 어디 계셔요?.."

처음에는 너무 엉뚱해서 무슨 말인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어.
내가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지.

  "저... 무슨 말씀이지요?"

그녀는 그 표정없는 눈길로 내쪽을 바라보며,  또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얘
기를 꺼내는 거야.

  "지철이는 아직 안 돌아왔나요? 아빠가 낫 갈아 오라고 했는데.."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어.  명준이는 그 여자가 무슨 말하는 지 
감을 잡았는지, 이렇게 대답했어. 

  "찾으시는 분 여기 안 계시는데요.."

여자는 그 말을 듣고 방을  다시 한 번 둘러보더니,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 
거야. 그 여자가 사라지자마자, 방문 곁에 앉아있던 놈은 문을 쾅하고 닫았고, 
우리 모두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 여자에 대한 얘기를 꺼냈어.
모두들 귀신이 아닌 미친 여자로 생각했어. 
귀신이 아니래도 미친 여자가 돌아 다니는 허름한 여관이라..
너무 무섭지 않니? 우리들도 마찬가지였어. 우리 일곱명 모두는 화장실도 제
대로 못가고, 여자인 자인이와 영조는  무섭다며 자기 방으로 돌아가지도 못
하고 있었어. 
너무 무서워서 다들 어떻하나 하고 있는데, 명준이가 자기는 화장실 가야한
다며, 몇 명이서 같이 가자는 거야. 
이 얘기를 들으면 어쩌면 너는 웃을지 모르지만, 그때는 정말 심각하고 무서
웠어. 너 같아도 아마 혼자 나갈 기분은 아니었을거야.
여하튼 다큰 장정 네명이 모여 화장실로 갔어.  우스은 풍경이었지만, 웃음이 
안 나오더라. 
나는 무서움에 떨고 있는 자인이와 영조와 이것저것 얘기 하며 애써 겁을 쫓
고 있는데, 갑자기 쿵광거리는 소리가 나며 화장실에 갔던 애들이 겁에 질려 
뛰어들어오는 거야.   
방안에 있는 우리들도 놀랐어. 얼굴이 하얗게 해서 돌아온 명준이는 말을 제
대로 못 이었어.

  "...그...그 여자가.... 화장...실..안에...있었어...."

좀 있다가 애들이 정신을 추스리더니 얘기를 했어.
화장실에 네명 모두 일을  보고 떠들고 있는데,  갑자기 조용히 변기가 있는 
문이 열리며그 여자가 나왔다는 거야. 
애들은 이유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앞다투어 화장실에서 나왔다는 거야.
우리는 그날밤 문을 잠근다음, 좁은  데도 불구하고 일곱명이 한방에서 좁게 
잠을 청했어. 나는 그 여자의  모습이 자꾸 눈에 떠올라  잠을 제대로 잘 수 
가 없었어.
다음날 일어나자 마자, 우리는단체로 화장실에 가서 씻고 여관 주인을 찾아
갔어. 그리곤 그 여자에 대해 물어 보았지. 여관 주인은 처음에는 모른척하다
가, 우리가 집요하게 추긍하니까 대충 얘기해주더라.

  "휴.. 맞아요. 그 여자는 좀 정신이 나갔죠.. 하지만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 착한 사람이예요..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어 제가 빈방을 줘, 재워주
 고 있을 뿐이예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만족할 만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그  여자에 대한 이유없는 공포심을 줄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얘기였어. 
우리는 그날도 마을을 돌며 의료조사에 나섰어.
나는 왠지 그 여자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나, 마을 사람들에게 그 여자에 대
해 물어보기 시작했어.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마을 사람들은 그 미친 여자만 
나오면 말을 돌리던지, 아예 그런  여자가 있는지도 몰랐다는 것처럼 대답하
는 거야. 일부러 그 여자 애기를 회피한다는 인상을 받았어.
분명히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거라고 확신했으나, 그것이 무언지는 한참뒤에 
알게 뒤었어. 아주 끔찍한 그 이유를....
어느덧 밤이 되어 여관으로 돌아오는데,  저기서 희미하게 긴 머리를 날리며 
그 여자가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보였어. 옆에 명준이는 그냥 가자고 했지만, 
나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 하고, 명준이를 달래고 그 여자를 따라갔어.
그 여자는 우리가 미행한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지, 천천히 숲 속의 오솔길로 
들어갔어. 한 밤중에 손전등도 없이,  불빛 하나 없는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좀 으시시한 일이었어. 더구나 정신병자를 쫓아간다는 것은..
그러나 거기서 돌아서기엔 내 호기심은  너무 강렬해졌어. 소리를 안내고 간
신히 그 여자를 쫓아갔어. 산길은 너무 어두워 주위에서 갑자기 뭔가가 튀어
나올 것 같아 겁났어. 언덕을 넘고 산길을 한참을 따라가는데, 갑자기 공토가 
나오고, 어느 집의 뒤뜰이 나오는 거야.
그 여자는 순식간에 그 집으로 들어가는 거야.
우리는 길 모퉁이에 숨어서 그 집을  잘 살폈어. 자세히 살펴보고 있던 명준
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한 마디 했어.

  "재원아... 여기가..그그 버려..진 흉가야... "

그 말에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그 흉가의 뒷뜰이었어. 
순간적으로 소름이 쫙 끼쳤어.
그래도 그 여자의 그 괴기함에 대해 뭔가가 알고 싶어 뒤뜰로 내려갔어. 
살금살금 그 여자가 들어간 그 집으로 다가갔어. 들어가서 무슨일을 하나 보
기 위해, 깨어진 창문틈으로 집안을 살펴 보았어. 명준이는 옆에서 겁이 난다
며 연신 뭔가가 나올 것 같은 사방을 둘러 보았어.
나는 깜깜한 집안을 눈을 찡그리며 뭔가가 보이지 않나 하고 보았어.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 오는  것을 보니, 그  여자가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어. 
좀 이상했어. 한 밤중에  미친 여자와 흉가에서  만나서 얘기를 나눌 사람이 
누굴까하는 생각이 들었어. 같은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 말소리는 점점 커지고 무슨 싸우는 소리 처럼 들려왓어.
갑자기 이쪽을 향해 소리를 쳤는지, 그 외침소리와 비병소리가 들렸어.
섬뜩한 소리였어.

 "아악! 아빠, 그러지 마세요!
 안중위님, 제발 말려주세요! 제발! 
 지철아! 안 돼!!!....."

그리고는 집안에서 뭔가 번쩍거리는 거야. 나와 명준이는  너무 놀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거기서 도망쳤어. 뭔가가  계속해서 우리를 쫓는 것  같아, 죽은 
힘을 다해 그 집에서 도망쳤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여관앞까지 달려와 있더라.
우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방으로 들어갔어.
방안에 들어가, 그 흉가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애들은 또 무서워했어.
마침 우리 조사를 감독하러 온 조교 선배가  그 자초지정을 듣더니 무서워하
던 우리를 혼냈어.

 "이 자식들. 의사가 되겠다는 놈들이 정신질환자를 귀신 취급하고 무서워
 하다니.. 그래서 어디 쓰겠어! 다음 번에 그 여자를 만나면 환자로 대하고, 
 의사에 입장에서 면담이나 할 생각해! 도망갈 생각하지 말고.."

그렇지만, 우리모두는 그 여자에 대해 이유없는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고, 특
히 나는 그 흉가에 있었던  일이 도대체 무슨 일었을까하는 생각을  그만둘 
수가 없었어.
나는 다음번에는 꼭 그 여자와 대화를 나누리라 결심했어.
그 기회는 다음날 갑작스레 찾아왔어.
찜찜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밤에 방으로 돌아왔어.
그날은 그 여자를 본 사람도 아무도 없었고, 다들 그 흉가를 피해 다녔기 때
문에 특별한 얘기가 없었어. 모두들  그 여자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생각했
어. 한참을 얘기하다가 나는 갑자기 갈증을  느껴 무언가 마실 것을 사러 나
갔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일부러 혼자 나갔어.
이것저것 사 들고, 여관계단을 올라 오는데, 그 여자가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거야. 나는 치밀어오르는 공포심을 억누르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 여
자에게 말을 건넸어. 

 "저.. 여기서 묵으사나 보죠?"

그 여자는 나의 말에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애원하는 듯이 바뀌더니 황당한 말로 대답했어.

 "안 중위님, 이제야 돌아 오셨군요. 한참 기다렸어요..
 우리 아빠가 요즘 좀 이상해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저 요즘 너무 무서워요..."

나는 그제서야 그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어. 갸날픈 체구에 
하얗고 자그마한 얼굴에 슬픈 눈을 가진 여자였어. 
제대로 꾸미면 참 예뻐보일 것 같았어.
여하튼 나는 숨을 가다듬고, 그 여자와 얘기를 계속했어. 
너도 알잖아? 나 예전에 이상한 정신병자와 면담한 적 있잖아. 그 죽은 엘리
베이터 수리공... 그 때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더라..
나는 그 여자의 쪽에서 생각해서 대답했어.

 "제가 좀 늦었어요.. 그럼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 여자는 나의 대답에  처음에는 기쁜 표정을  짓더니, 점점 어두운 표정을 
지었어. 그리고는 아무말 없이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소리를 치는 거야.

 "거짓말 마! 너는 나의 안 중위님이 아냐!!
 이 나쁜놈! 안 중위님 흉내를 내다니! 저리 꺼져!"

그녀의 갑작스런 반응에 나는 당황해서 그 자리를 뜰 수 밖에 없었어.
뒤돌아 보니, 그 여자는 울고 있었어.
나는 영문도 모른체 방으로 들어왔어. 하지만 그 여자와 있었던 얘기는 애들
에게 하기가 싫었어. 그냥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하고 잠을 청했어.
잠은 안 왔어.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인가..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거든...
의료 조사도 거의 끝나가고, 이제 그 여자의 마주침은 익숙해 졌어.
복도에서 마주쳐도 별로 겁을 안 내고, 눈 인사는 주고 받을 용기는 생겼어.  
그 여자와 계단에서 얘기하고 조사를 마칠 ㄸ 까지 사흘  동안 나는 거의 매
일 밤 화장실이나 복도앞에서  힘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표정으로  서 있는 
그녀를 보았어. 얘기를 걸어 보려 했지만, 솔직이 용기가 나지 않았어.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나머지 친구들은 그 며칠동안 그녀를 한 번도 본적이 없
다는 거야. 나만 항상 그 여자를  보고 들어와 애들에게 얘기해 주는 형편이 
되었어. 애들은 나보고 그 여자하고 연애하는 것 아니냐면서 놀려대기도 
했어. 
여하튼 애들은 이번 조사 리포트에 쫓겨 그 여자에 대한  것은 거의 잊기 시
작했어. 하지만 나는 잊을 수  없었어. 거의 매일 밤 그  여자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어. 
조사가 끝나기 이틀 전인가, 냄새에  예민한 명준이가 무슨 악취가 여관에서 
난다며 투덜거리기 시작했어. 발 냄새 같다며 모두 발좀 깨끗이 씻으라며 성
화였어. 하루가 더 지나자, 그  악취는 누구는 인상을 ㅉ푸릴  정도로 심해졌
어. 여관 주인에게 항의해 보았으나, 자기도 모른다는 거야.
우리는 그 악취가 누가  쓰레기통에 버린 생선이 썩어가는  냄새롤 생각하고 
빨리 여기서 나가자는 생각만 했어.
이윽고 그 마을을 떠날 날이 왔어.
나는 전날 밤에도 그 여자를 복도에서  봤지만, 그 이상한 분위기에 눌려 아
무말도 못했어. 그냥 떠나기가 너무 아쉽더라.
그 여자는 가만히 한숨만 내쉬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어.
뭔가를 알고 싶었는데..
짐을 챙기고 여관 현관에서 계산을 하기위해 주인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이층에서 '아악!'하는 비명 소리가 들렸어.
그러고는 "학생들! 여기 빨리 올라와 봐요! 빨리.." 라는  다급한 여관 주인의 
외침이 들렸어.
우리 모두는 재빨리 소리가 들리는 이층으로 올라갔어.
앞장 섰던 명준이는 소리가 났던 방으로 뛰어들었다가, 무슨 끔찍한 것을 보
았는지 신음소리와 함께 복도에 토하기 시작했어.
우리는 토하고 있는 명준이를 피해, 소리가 난 방으로 들어갔어.
끔찍했다.
거기에는 그 여자의 시체가 천장에 목이 대롱대롱  목이 매달려 있는 것이었
어. 시체는 푸르등등하게 썩어 있었고, 심한 악취와 함께 파리떼들이 몰려 있
는 거야. 시퍼런 혀를 빼물고 있는 그 여자의 얼굴과 쾡한 눈은 정말 끔찍했
어. 모두들 그것을 보더니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어.
여관 주인은 구석에 새파랗게 질려 아무말도 못하고 떨고 있었고.
명준이가 며칠전 부터 투덜거린 것은 이 시체에서 나는 악취였던 거야.
그래도 침착한 것 조교 선배였어. 
겁에 질린 여관 주인에게 구급차와  경찰을 부르라고 지시하고, 시체를 살펴
보는 거야. 나 역시 너무 황당했어.
나는 구역질을 참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어.

 "어제밤만해도 멀쩡히 서 있는 것 복도에서 봤는데..."

모두들 내 말에 구역질을 멈추고 나를 이상하게 보았어.
나도 내 말의 이상한 점을 느끼는 순간, 전율과 함께 등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어. 
시체가 이정도 썩으려면 적어도 며칠전에 죽었다는 얘기인데..  나는 이 여자
를 며칠동안 계속 봐왔던 거야.
조교 선배는 나의 이상한 말을 듣고, 여자의 시체를 살피더니 
싸늘한 어조로 말했어.

 "구체적인 부검을 해봐야 알겠지만, 대충 시체 상태를 봐도 
 이 여자는 죽은지 적어도 나흘은 지났어...." 

조교 선배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큰 충격을 받고 멍해졌지.
명준이가 어깨를 툭 칠때까지 정신을 거의 잃은 셈이었어.
갑자기 이 생각이 떠오르더라.
 '왜 내 주변에 이런 괴상한 일이 자꾸 생길까?..'
내가 얘기했잖아. 엘리베이터 기술자, 귀머거리 꼬마애들이 떠오르더라..
어느새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왔고, 곧 경찰이 도착했어.
우리는 복도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어. 그런데 구경온 사람들의 
반응이 좀 이상했어. 모두들 혀끝을 차면서 올것이 왔군하는 눈치였어.
경찰역시 너무나 이상했어. 그 여자의 참혹한 시체를 보자,  아무런 반응없
이 한 시름 놓았다는 듯이 시체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냥 내리더니 어
디론가 가져가 비리곤 끝이었어. 
적어도 우리 같은 목격자나 발견자, 또는 같은 여관 투수객은 조사해야 하
는 것 같아, 우리는 기다리고  있었거든. 시체가 발견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말 없이 그냥 간거야.
나는 그런 기이한 광경을 보고, 결심을 굳혔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한 번 확실하게 조사해 보겠다고.
아마 뭔가를 알게된다면, 내 주변에 일어났던  일련의 괴상한 일들의 실마
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램도 있었어.
애들은 기분나쁜 일을 경험했다는 소름끼친다는 말들을 하면서, 짐을 챙기
고 여관을 나섰어. 나는 여기 온 김에  근처의 친척집에 잠깐 들리고 가겠
다고 애들에게 둘러대고 먼저 출발하라고 했어.
혼자 그 마을에 남게 된  나는, 우선 그 여자와  관계된 모든 것을 하나씩 
알아 보기로 했어. 
여관부터 시작했어. 
여관에는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다 돌아가고, 여관 주인만이 아직도 상기된 
표정으로 앉아있었어. 다시 돌아온 나를 보고, 놓고간 짐이 있냐고 물었어.
나는 더 알아볼 것이있어 남게 되었으니, 방하나 달라고 했어.
일부러 그 여자가 묶었던 옆 방으로 달라고 했어.
주인은 그런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어.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주인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시작했어.
 "저, 아저씨.. 죽은 그 여자 얘긴데... 좀 자세히 얘기해 주시겠어요?"
여관 주인은 나의 엉뚱한  질문에 좀 당황하는 듯  하더니, 이내 경계하는 
표정으로 대답했어.
 "학생이 무슨 일로 그런 일에 관심있는게요. 나는 아무 것도 몰라요!"
그 주인이 당황하는 표정을 보고, 나는 그  사람이 뭔가를 알고 있다는 확
신이 들었어. 그래서 집요하게 계속 물어 보았어. 그 주인은 계속  잡아 때
다가, 내가 그 여자에 대해 필사적으로  어떡하든 뭔가를 알아내려 한다는 
것을 느꼈는지, 졌다는 듯이 얘기를 시작했어.
  "학생두... 뭐 그리 알고 싶다구... 그 나쁜 얘기를..
  그렇게 알고 싶은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소원이라면 내가 해
  주리다..
  그 아이의 이름은 지희였수. 나와는 친한 친구의 딸애지...
  휴... 가봤는 지는 모르겠지만, 저 산길을 지나 성황당 근처에 버려진 큰 
  집이 바로 얘네 집이였수다. 
  행복한 집안이었지... 내 친구는 과수원 주인이였어..
  그렇게 순등이 같던 사람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나는 아직도 못 믿겠어.
  작년 여름이었어. 참 더웠지..
  내 친구, 지희, 지희의 중학교 다니는 남동생 지철이 이 세식구는 마을에
  서도 부러움받는 행복한 가족이였수다. 엄마를 어렸을 때 잃었어도, 내 
  친구가 워낙 애들에게 정성을 쏟아 키워서, 모두들 똑바로 자라났는데..
  과수원도 잘 돼고, 지희는 인근 군부대에 R.O.T.C 장교인 안 중위와 결
  혼을 약속하고, 그 집은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듯 했어요.
  내 친구도 항상 딸과 장래 사위 자랑하고 다니며, 요즘처럼 행복한 시절
  은 없다며 좋아했수다..
  그렇게 좋아했는데..
  그러던 어느날이었수...
  갑자기 저녁때 쯤에 지희가 나를 찾아왔수다.
  아빠가 이상해졌다는 거야. 며칠전에 과수원에서 돌아온 후로 아무말도 
  안하고 방에 처박혀 낫만 갈고 있다는 거야. 밥먹을 때와 동생 지철이에
  읍내에서 낫 갈아오라는 얘기만 하고는 방안에만 있다는 거야.
  지희는 울면서 무섭다고 했수다. 그래서 결혼할 안 중위보고도 집에 들
  려달라고 부탁했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다음날 들리겠다고 약속했수다.
  그때 갔었어야 하는데...
  지희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고 하면서 집으로 돌아
  갔수다. 
  그리고 좀 있다 이번에는 지희의 동생 지철이가 찾아왔수다. 그 놈은
  나이에 비해 어른스런 놈인데 그 날은 좀 달랐수다.
  누나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요즘 행동이 이상하다는 거요. 그런데 지철
  이는 누나도 요즘 아버지 ㄸ문인지 너무 민감해지고 이상하게 보인다는 
  거요. 무섭다고 나보고 도와달라고 하는 거요.
  나도 참.. 남매가 와서 부탁하면 그날 갔었어야 하는데..
  솔직이 좀 귀찮았소... 십팔!
  그리고 그날밤 그 끔찍한 일이 일어난게야...
  다음날 과수원에 들리려고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옆가게 이씨가 헐레벌
  떡 달려 오더니, 과수원에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났다는 거야.
  지철이, 안중위, 그리고 내 친구에 낫에 갈기갈기 ㅉ겨 죽었다는 거야.
  지희만이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쓰고 얼이 빠져 있고...
  나는 설마하고 과수원으로 갔수다. 거기에는 사람이 벌써 많이 모여있었
  고, 경찰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수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내 친구 놈이 미쳐 날뛰면서 자기 자식인 지철이
  와 지희를 죽이려 했다는 거야. 마침 와 있던 안 중위도 말리다가 봉변
  을 당했고... 그런데 누가 내 미쳐버린 그 친구 놈을 죽었냐면서 많은
  얘기가 돌았는데, 경찰은 지희가 정당방위로 미쳐버린 자기 아빠를 죽였
  다는 것으로 결론 지었어. 지희는 그 충격으로 미쳐버린거고...
  불쌍한 것... 그런 끔찍한 일을 목격했으니, 제 정신이겠수?
  미쳐버렸다고 지희는 경찰서에서 풀려나고 내가 빈방을 주고 돌봐주었던
  거요.. 그러다 결국 자기도 끔찍한 죽음을 택했고...
  그 사건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불신하고 피하기 시작했수다.
  알고 지내던 동네 사람들끼리도 경계하고 지냈으니, 타지 사람들에게는
  오죽 했겠수...
  그런데 그 과수원에 대해 여러 무시무시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수다.
  시체를 매장한 박영감이 그러는데, 내 친구의 시체에는 목이 없었다는
  거야. 경찰이 도착했을 때 부터, 그 사람의 시체는 머리가 짤려져 있
  었는데, 짤려진 머리 부분은 끝끝내 발견 못했다는 거요.
  그리고 그 살인이 일어났던 그 버려진 집에서 가끔씩 끔찍한 비명소리와
  불이 켜진 것이 보인다는 소문도 돌고.. 마을 사람들은 그 소문 때문에
  그 집 근처에는 낮에도 않 지나거려들 했수다.
  그 소문은 작년 겨울 추위를 피해 그 집에 들어갔다 정신이 나가서 나온
  거렁뱅이 이후로 더 심해졌수다. 
  그래서 그런 무서운 소문 때문에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미쳐서 돌아다니
  는 지희의 모습을 싫어했을 거요. 그러니 그 애가 죽자 한 시름 놓을 것
  같을 것이요...
  휴... 내 잘못이 큰 것이요...
  자 이제 알고 싶은 것 다 알았수? 학생양반."
나는 그제서야 뭔가 윤곽이드러나는 느낌을  받았어. 하지만 주인의 얘기
를 들으니 더 많은 의문이 생기기도 했어.
  "한 가지만 더 물어도 되죠? 혹시 그 사건을 맡았던 경찰분이 어떤 분인
  지 알고 계세요?"
  "주순경이라고 늙으수레한 경찰이었는데, 그 일을 조사하고 입을 꽉 다
  물고 아무런 얘기도 안하고 경찰을 그만 두었을게요. 지금은 사람들과
  교률을 끊은채 저 과수원 언덕너머 하얀집에서 혼자 살고 있수다.
  그 사람이 아무 말 안 하는 바람에 이상한 소문이 많이 퍼진게요..
  그 사람이라면 그 사건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것들많이 알고 있을게
  요. 자 이만 하면 되었을수다.
  이번에는 내 차례요.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 알고 싶어하는 거요?"
 나는 대답을 생각하다가, 떠오르는 대로 둘러댔어.
  "소설을 쓰고 있거든요.. 좋은 소재가 되지 않을까 해서요.."
  "작가 양반이셨군... 그렇다고 너무 쑬데없는 얘기 지어내지나 마슈.."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는 여관주인이 그려준 약도를 따라 그 박순경의 집으
로 향했어. 가는 길에 이것 저것 생각해 보았어.
정말 의문 투성이의 사건이었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마치 내가 탐정이 된  기분이었
어. 한 30분을 걸어갔을까.. 한참을 가니 주순경이 산다는 흰집이 보였어.
집에서 주순경을 한참을 불렀는데도 대답이 없길래,  없는 줄 알고 돌아가
려는데 저기서 누가 술에 취한 걸음으로 오는 것이었어.
혹시나 해서 물어봤더니, 자기가 박순경이라는 거야. 
한 마흔쯤 되 보였을까.. 삶에 지쳤는지,  온 몸에 패배감이 넘쳐보이는 느
낌이었어. 
나는 나를 범죄심리를 공부하는 의대생으로 소개하고, 과수원 살인 사건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어  찾아왔다고 했어. 그 사람의  흐릿했던 눈은 나의 
그런 말을 듣자 번뜩였어.
 "과수원 살인이라... 
 휴... 언젠가는 말해야 할 때가 오리라 생각했죠.
 오늘 그 집의 큰 딸이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괴로워서 술 
 한잔 했수다. 
 내가 죄다 얘기해 줄테니, 학생이 그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좀 설명해
 봐요. 나는 그 끔찍한 사건의 충격 때문에 경찰을 그만두었어요....
 아니, 솔직이 말하면 두려웠어요. 계속 그 사건을 조사하고, 관계한다면
 내게도 무슨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았거든요...
 비겁했죠..."
그러더니 그 사람은 의외로 선선히 얘기를 해줬어. 나를 자기네 집 마루에 
앉히고, 소주를 한 번에 비우더니 그 무시무시한 얘기를 시작했어.
 "나도 그 과수원 집안이라면 잘 알았어요.
 엄마 없이도 참 행복했던 가족이였죠. 과수원 주인 박씨도 한 번도 경찰 
 서에 불려온 적이 없는 순한 사람이었는데...
 큰딸의 애인인 안 중위도 개인적으로 아는 군인이었어요. 술자리도 몇번
 같이한 적도 있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도, 워낙 작은 
 마을이니까요..
 그 날 내가 신고를 받은 것은 숙직을 마치고한 숨 자려고 집으로 돌아가
 려고 했던 아침 8시쯤이었을 거요. 지자제 선거가 며칠 앞으로 다가와 
 마을은 선거 열기로 시끌벅쩍되던 어느날 아침 일이요...
 갑자기 어떤 애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뛰어들더니, 숨이 넘어가는 소
 리로 과수원에 여러명이 끔찍하게 죽어있다는 거요.
 그 애 말로는 학교가는 길에 그 집앞을 지나는데, 현관문 밑으로 빨간 피 
 같은 것이 흘러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는 거요. 마침 문도 약간 열려있어
 서 들어가 봤다는 거요. 귀를 기울여 보니 '퍽퍽'하고 뭔가를 내리치는 소
 리가 들렸다는 거요. 그래서 문을 열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잘 열려지 않
 아 뭔가 기대여져 있는 줄 알았다는 거요. 힘껏 밀어보니 쿵하고 뭔가 쓰
 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열려진 문 사이로 사람의 팔이 툭 떨어져 나왔다
 는 거요. 그러더니 그 내려치는 듯한 소리는 그쳤다는 거요. 그래서 너무 
 무섭고 이상해, 안을 들여다 보니, 온갖 피투성이고 사람같은 것들이 여기
 저기 쓰러져 있었다는 거요. 
 나는 아침부터 왠 헛소리인가 무시하고 싶었으나, 그 애의 표정이 너무 
 진지하고 겁에 질려 있었서, 돌아가는 셈치고 가보기로 했소.
 신참인 김순경을 데리고 과수원으로 향했소. 평소에는 전혀 이상하게 보
 이지 않던 과수원이 그날따라 가까이 다가갈수록 알 수 없는 사악함이 느
 껴졌소. 솔직이 거기 가서는 안 될것같은 공포심이 느껴진거요.
 두려운 마음을 억지로 누르고 과수원으로 향했소.
 그 애 말대로 과수원 집 문은 좀 열려져 있었고, 하얗고 작은 사람 팔이 
 문 밖으로 늘어져 있었소. 확실히 뭔가 일어난 것 같은 분위기였소. 
 나와 김순경은 심호흡을 하고, 문을 밀었소. 뭔가 걸린 것처럼 잘 안 열렸
 소. 간신히 문을 열고 들어간 집안은 어두 컴컴했소. 밝은 곳에 있다 들어
 가서 그런지 처음에는 모든 것이 잘  안 보였소. 그러나 확실히 피비린내
 가 집안 가득히 났소. 심장 박동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 느껴졌소.
 눈을 찡그려 전등 스위치를 찾아 보려고 노력하며 한 걸음 방안으로 들어
 가는데, 발에 뭐가 걸리는 것이었소. 나는 몸을 구부려 발에 걸린 것을 만
 져 보았소. 기분 나쁠 정도로 축축하고 끈적거렸소.
 더듬다가 그 기분나쁜 축축한 것이 무엇인가 알아차렸을 때,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소. 얼마나 깜짝 놀랐던지...
 바로 사람의 얼굴이었소.
 놀라 손을 때는데, 갑자기 뒤에서 "선배님 전등 스위치가 여기 있는데요!"
 라는 김 순경의 소리와 함께 안이 밝아졌소.
 휴... 그곳은 정말 지옥이었소.
 집안 전체가 시벌겋게 피칠이 되어있었소. 지금도 내게 가끔씩 떠오른 것
 은 그 빨간 피로 범벅이 되어있는 집안이오...
 내가 만졌던 것은 애띤 얼굴의 지철이가 두려움에 질린 눈을 동그랗게 뜨
 고 죽어있는 시체였소. 온몸에 피투성이가 되어...
 저 구석에는 청년의 시체가 역시 피투성이가 되어 나동그라져 있었소.
 김순경은 끔찍한 그 풍경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집밖으로 달려
 나가 구역질을 해댔소. 나도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지만, 꾹  참고 주
 위를 둘러 보았소. 구석에 있는 청년은 바로 안 중위였소.
 발 밑에는 피가 흥건히 괴여 있었소.
 그 자리에서 있으려니 나도 정신이 이상해지는 느낌이었소.
 반대 쪽 구석에는 또 한구의 시체가 벽에 기대여 있었소. 손에는 피 묻은 
 낫을 들고.. 그런데 그 시체의 머리는 없는 것이오..
 흑! 목없는 시체가 낫을 들고 가지런히 벽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란...
 처음에는 이 방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소.
 무슨 악귀나 살인마가 지나간 것 같은 참혹한 학살 현장이었소.
 나는 얼굴이 새하얗게 된 김순경에게 읍내의 본서에 연락해 더 많은 사람
 과 구급차를 보내달라고 요청하라고 지시한고, 혼자 그 살육의 현장을 둘
 러 보며 단서를 찾아보았소.
 문가에 쓰러진 지철이의 시체의 등에 날카로운 것에 찍한  상처가 무수히 
 많았소. 아마 지철이는 살인자를 피해 도망가다 문에서 당한 것 같았소.
 안 중위는 안면과 어깨, 팔 쪽에 ㄱ힌 자국과 타박상이 많은 것으로 보아 
 살인자와 격투를 벌리다 당한 것으로  보였소. 안소위는 부대에서 급하게 
 여기로 온 모양인지 군복을 입고 있었소. 목에 깊은 상처가  있었는데, 그 
 상처가 치명적이어서 죽은 모양으로 보였소.
 문제는 그 목없는 시체였소. 대충보니  팔 등에 상처가 있었고,  나머지는 
 괜찮게 보였소. 목이 날아간 것을 제외하고는...
 처음에 나 혼자만으로는 신원을 파악할 수  없었소. 육중한 몸집과 옷 차
 림으로 보아 과수원 주인으로 보였지만 확신할 수 없었소.
 갑자기 그 집 큰 딸인 지희에게 생각이 미쳤소. 여기서 변을 안 당했다면, 
 어제 집에 없었다는 얘기인데... 
 뭔가 단서를 찾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소. 
 부엌을 쓰윽 돌아보는데, 심장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소.
 부엌 구석에 지희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로 피범벅이 되어  가만히 서있는 
 것이었소.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며...
 나는 처음에는 시체가 벽에 기대져 서 있는 줄 알았소.
 그런데 지희는 꼿꼿히 서 있는 살아있는  상태였소. 나는 그 섬뜩한 모습
 을 보고 소름이 쫙 끼치고 움직일 수가 없었소. 
 그 무표정한 얼굴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김 순경이 부엌에 들어올때까지 
 전혀 움직일수가 없었소.  
 이윽고 더 많은 경찰과 검사, 의사들이 도착했소. 이 끔찍한 장면을 보고
 모두들 충격을 받는 것 같았소. 우리 모두는 이 지옥에서 어떤 일이 발생
 했는지 알아내야 했소. 
 살아서 발견된 지희는 완전히  정신을 잃어 증언은커녕 말을  하기까지도 
 한 6개월정도 걸렸소. 의사 말로는 끔찍한 살해 현장을 보고 완전히 돌아
 버렸다는 거요. 목이 잘린 시체는 지문  등을 통해 과수원 주인으로 밝혀
 졌소. 그리고 그가 쥐고 있던 낫에  묻어있던 피가 지철이와 안중위의 피
 로 밝혀졌고, 그들의 몸에 났던 상처도 그 낫으로부터 난 것으로 판명 되
 었소. 또, 안 중위의 군복에서  뜯겨진 계급장이 과수원 주인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것으로 발견되었소. 또 안  중위의 손에 잡혀 있던 머리털이 
 과수원 주인 것으로 밝혀졌소. 
 정황 증거로는 안 중위가 부대에서 나올  때, 동료 장교에게 장인 어른이 
 요즘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지희에게 전화가 와서 과수원에  가봐야 한다
 고 했다고 것이 밝혀졌소.  그리고 둘의 결혼에  대해 그즈음 장인어른이 
 이상한 이유를 들어 반대하려 한다고 했다는 거요.
 또, 과수원 주인의 친구인 여관 주인 최씨의 말에 의하면 전날 지희와 지
 철이가 찾아와 아버지가 이상하고 무섭다고 했다는 거요.
 이런 증거를 기초 삼아 검찰은 이렇게 결론지었소.
 정신질환자로 흉폭해진 과수원 주인이 낫으로 지철이를 죽이고  지희마저 
 죽이려 하자, 마침 와 있던 안 중위가 말리다  격투 끝에 역시 죽임을 당
 하고 지희가 그 격투중에 미쳐버린 아버지를 해쳤다는 거요.
 지희는 그 충격에 미치고...
 얼마나 끔찍한 얘기요.. 
 한 사람이 미치는 바람에 행복했던 가정에 일어나게 된...
 그런데 나는 사건의 결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소. 사실 이런 결론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수긍할 수 없을 거요.
 내가 아무리 촌 구석에서  경찰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결론은 기본적인 
 원칙마저 전부 무시한 억지 끝맺음이었어. 아마 지자세 선거에 큰 충격을 
 줄 것 같으니, 보도도 거의 안 되게했고, 사건도 뾰족히 수가 없으니 편한
 데로 결론을 내린 셈이었죠. 하긴 그래요.. 특별한 단서나 증인이 없는 이
 상 가진 증거로 끌어낼 수 있는 최선의 추리일 수 있겠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실일 수 없다는 거요.
 몇가지 사실들을 무시하고 만들어낸 결말이기 때문이죠..
 과수원 주인의 잘려나간 머리.. 아무리 찾아도  집안에선 찾을 수 없었소. 
 그래서 주위를 파헤쳐 볼 생각까지 했는데, 거기서 수사가 종결되었죠.
 머리를 못 찾는 바람에 몸에 있는 털을 이용해 머리카락과 대조하기도 했
 소. 그리고 목이 잘려나간 부위 얘기인데, 의사 말로는 남자라도  한 번에 
 사람의 목을 잘라낼 수 없다는 거요. 더구나 목의 난 상처를 보면 여러번
 에 걸쳐 날카로운 것으로 내리쳤다는 것인데, 흉기도 발견 못해서 낫으로 
 저질러졌다고처리했소. 그리고 만약 정당방위로 대항했다면 머리를 자를
 정도까지 필요했는지...
 또 과수원 주인이 쥐고 있던 낫에 찍혀 있던 지문들도 의문투성이였소.
 피가 흘러내려 지문이 더욱 또렷하게  보였는데, 거기에는 지희와 안중위
 의 지문도 체취되었다는 거요. 물론 격투중에  낫을 서로 빼앗았을 수 있
 는 가능성도 있겠지만, 결론에 의하면 마지막에 죽은 사람이 과수원 주인
 이 되는데, 어떻게 그 사람이 낫을 갖고 있게 되었는지도 의문이요..  
 나는 이런 의문을 그냥 놔두고 비밀에  하고, 사건을 종결시키는 데 불만
 이었소. 그래서 개인적으로 조사를 계속하다가...
 휴... 결국은 그만 두게 되었소...
 견디다 못해 경찰도 그만 두고, 보시다시피 술로 나날을 보내고 있소.
 비겁하게..."
그 얘기를 마치고 주순경은 괴로운 듯이  얼굴을 찌푸렸어. 그런데 이상하
게도 눈빛에는 뭔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은 표정이 보였어. 
 "위에서 개인적인 수사를 그만두라는 압력을 받았나요?"  
 "휴....
 물론 위에서 얘기가 없었던 건 아니었소...
 하지만, 부끄럽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소..
 믿어지지 않을 게요.. 
 바로 공포와 악몽 때문에 수사를 포기하게 된거요.
 그 사건을 개인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무시무시한 악몽
 에 시달렸소. 목없는 시체가 도끼와 낫을 들고 나를 쫓아왔고, 갑자기 문
 도 없는 그 과수원에 집안에 갖힌 적도 있소. 피바다가 된.. 일어나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고..
 그리고 조사 때문에 몇번 그 집에 다시 가 보았을때 느꼈던 것인데 누군
 가가 나를 감시하는 것 같았소. 사악한 시선으로..
 누군가가 아니라 무엇일 수도 있지만...
 처음에는 그냥 단순한 착각이고, 충격적인 광경을 본 후유증인 줄 알았소.
 그러나 그 악몽과 불쾌한 느낌은 계속 나를 괴롭혔고, 급기야는 나를 거
 의 정신병자로 몰고 가는 것 같았소.
 그런 현상은 마치 나를 위협하는 것 같았소.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라는...
 그래서 결국 포기했소. 경찰도 그만두고...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정말 목숨의 위협을 느낀 기분이었소.
 지금도 확신하는 것은 아마 내가 그 수사를 계속 했다면, 미치거나 자살
 하거나 둘 중에 하나가 되었을거요.
 비겁하다고 비난해도 소용없소. 이렇게 숨쉬고 있는 것만으로 나에게는
 다행인거요..."
그 주순경이라는 사람은 술에 취했는지, 자기 변명까지 하더라.  나는 주순
경이 들려준 충격적인 얘기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어. 뭔가 있는 것이 확실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겠었어. 내가 도움 고맙다고 인사하고 떠나려 
하자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어.
 "학생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소.. 내가 이것 저것 조사한 개인 수
 사 기록도 주고 싶소만, 지금 없고 파출소 캐비넷에 보관중인데, 다음 번
 에 찾아오면 내 보여 주리라..
 학생이 단순히 범죄 심리 연구가 아니라, 그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으
 면 좋겠소. 내가 못했던...
 그런데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그 과수원 살인 사건은 평범한 광란이 
 아닌 것 같소. 미친 소리로 들리면 할 수 없겠지만, 나로서는 그렇게밖에 
 생각 되지 않소..
 그러니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요..."
그때는 그 사람의 조심하라는 말을 건성으로  들었어. 지금에 와서야 그것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지만...
나는 그 순경에게 조사기록을 다음날 받기로 약속하고, 거기를 떠났어.
뭔가 알 듯 하면서 모를 듯한 기분이었어.
머리속은 복잡해지고, 무슨 무서운 일의 한가운데 서있는 느낌마저들었어.
날은 슬슬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어.
여관으로 돌아오는 길 동안 많은 생각을 해 보았어.
그 끔찍한 살육의 현장을 생각하니, 소름이 쫙 끼쳐왔어.
논리적으로 풀어보려고 했지만, 몇 가지가 꼭 부족해 보였어.
모든 것이 무슨 관계로 연관되어 있는 것일까?
한참을 생각하면서 정신을 차려보니,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었어.
생각하다가 길을 잘못 든 모양이었어.
어두워진 주위를 둘러보니, 어디선가 눈에 익은 길이었어.
조금 더 가니, 여기가 눈에 익은 이유를 알 수 있었어.
바로 과수원 버려진 집을 지나가는 길이었어.
나도 모르는 새에 그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던 흉가로 오게 된 것이었어.
음산한 분위기의 그 집앞에 서서, 나는 무서움을 느꼈어. 빨리 여기를 도망
치고 싶었어. 그런데 마음 한 구석에는 들어가보자는 생각이 들었어.
한참을 멍하니 그 버려진 집을 바라보고 있었어.
그 집은 입을 딱 벌리고 괴물처럼 보였어. 그러면서도 나를 끊임없이 유혹
했어. 빨리 들어와보라고.. 네가 알고 싶은 것은 여기 다 있다고...
나는 결심을 하고, 그 집의 문앞에 섰어.
지철이의 팔이 삐져나왔다는 그 문앞에...
주위는 이제 거의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워졌어.
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니는 작은 진로용 펜 후레쉬를 꺼냈어. 
작은 후레쉬를 키고, 그 문을 열었어...
문은 '끼이익'하는 기분나쁜 소리를 내며 열렸어.
지옥으로 가는 문이 열린 것 같았어....

....집안은 죽음과 같은 적막과 한치앞도 볼 수 없을 정도의  어두움이 깔려 
있었어. 나는 작은 후레쉬 불빛을 앞세우고 집안에 한 발자국을 들여 놓았
어.
심장은 쿵쾅거리고 너무 무서워졌어.. 하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계속 들
어가보자는 외침이 들려오는 것 같았어.  
나도 미친 놈이지. 겁도 없이 그런 흉가에 혼자 들어가다니...
후레쉬 불빛이 비추는 곳마다 검붉은 얼룩들이 보였어.
핏자국이었어.
집안의 온 사방이 말라붙은 피로 얼룩져 있었어.
지독한 피비린내도 나는 착각이 들정도 였어.
나동그러져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그날의 끔찍했던 살육을 연상시켰어.
나는 집안 한가운데 가만히 서서 눈을 감고 그 생지옥을 상상해 보았어.
비명소리, 난무하는 낫, 사방으로 튀기는 피, 이리저리 쫓기던 희생자와
악마같은 미소를 짓고 희생자를 살육하던 악귀...
바로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 같았어..
갑자기 이 집에 얽혔던 얘기가 생각났어. 
밤에 불빛이 반짝인다든지, 거랭뱅이 죽었다는지, 귀신이 나온다는지...
그리고 내가 봤던 그 지희라는 여자의 이 집에서의 괴상한  비명소리가 떠
올랐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주위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 같
았고 소름이 쫙 끼쳐왔어..
그제야 호기심, 아니 이상한 이끌림에 의해  잊혀진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
한 거지...
몸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어. 빨리 여기서 빠져 나가지 않으면 그 무언가
가 나타날 것 같았어. 이미 나타나서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런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 거야.
단지 고개만 움직일 수 있을뿐.. 
사방에서 뭔가 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후레쉬를 비쳐보면 검붉은 핏
자국만 보이는 거야. 그런데 후레쉬 불을 비치고 있으면 더 무서워지기 시
작했어. 불빛이 안 비추어 지는 어두운 곳에서 무언가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어. 미칠 지경이었어...
움직이면 뭔가가 내 뒷덜미를 채갈 것 같은 기분이었어.
미친 듯이 후레쉬를 사방으로 비추어 댔어. 
그때만큼 뒤쪽이 서늘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어. 항상 뒤에 뭔가가 있는 느
낌이었고..  뒤를 볼 수 없다는 것이 그렇게 큰 공포일줄은 미쳐 몰랐어..
그 무엇들이 사방에서 점점 내게로 다가오는 것 같았어.
아무리 몸을 움직이려 해도 가위에 눌린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어. 
공포가 심하면 괴롭기까지 하다는 것을 그때처음 알게 되었어.
꼭 조여오는 것만 같은 느낌은 더욱 심해졌어. 이상한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어. 후레쉬 불빛에 비쳐지는  피자국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까지 했어. 
나는 사방에서 내게로 모여드는 기괴한 기운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
부림쳤어. 갑자기 몸이 자유로워지는 것 같았어.
우선 나는 정신없이 몸을 움직여, 벽쪽으로 갔어.
그리고 벽에 등을 대고 전방을 주시했어. 그때 내가 최고로 두려웠던 것은 
나의 시선이 닿을 수 없는 등뒤에서 뭔가가 있는 듯한 기분이었거든..
그래서 무조건 등을 벽에 기대는 것을 제일 먼저 한 거야.
등을 벽에 기대고 나니 문득 나의 그런 나의 행동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더
라. 마치 고양이로 부터  살기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다 갈  곳이 없게 된 
생쥐가 된 기분이었어...
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출입문이 어디있나 후레쉬로 비쳐봤어.
그 순간 나는 심장이 정지하는 느낌이었어.
문 쪽으로 비친 후레쉬에 갑자기 그  지희라는 여자가 온 몸에 피  범벅이 
되어 긴 머리를 풀어해친 채로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것이었어.
너무 놀라서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고, 비틀거리며 반대쪽으로 뒤걸음
질 칠뿐이었어.   
환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어. 그녀는 떨리는 후레쉬 불빛속에서 미동도 안
하고 나만 보고 있는 것이었어.
그 때 떠오르는 생각은 무조건 여기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
반대 쪽에 창문이 있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어. 현관문쪽은 귀신인지 뭔
지하는 것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길을 찾아야 했어.
하지만 그렇게 무서우면서 후레쉬 불빛을 그 지희라는 여자에서 치울 수가 
없었어. 불빛을 치우기만 하면 나를 덮쳐올 것만 같았어.
나는 어쩔 수 없이 불빛에 비쳐 흰동자가 번뜩이는 그 여자의 무서운 모습
을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어.
온 몸에 땀이 흐르고, 이성은 두려움으로  마비되었는지 아무런 생각을 할 
수 가 없었어.  
그런데 나도 모르게 눈을 깜빡 했는데, 그 여자가 거기에서 사라져 있는거
야. 더 놀랐어. 식은 땀이 주르르 흘렀어.
나는 미친 듯이 후레쉬 불빛을 휘두르며 그 여자가 어디 있나 찾았어.
안 보이는 데서 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어.
그러나 그 여자는 어디에서도 안 보였어. 
너무 긴장해서 내가 헛것을 본 것  같았서.. 의학적으로 그럴수도 있거든...
끔찍한 살인 현장에서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상상했고,  또 두려움에 떨어 
헛것을 본 것 같았어.
아직도 쿵쾅거리는 가슴을 추스리고 나는 밖으로 나가려 했어.
그런데 아무래도 자꾸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어.
주위를 후레쉬로 둘러봐도 분명히 핏자국밖에 안 보였거든..
이상한 기분이 자꾸 나를 엄습했어. 
갑자기 위쪽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무의식중에 후레쉬로 천장을 비추어 
보았지.
세상에 그럴수가!
천장에는 그 지희라는 여자와 세 명의 사람이 가지런히 붙어서  나를 쳐다
보고 있는 거야. 모두들 피투성이가 된 채로..
그 쾡한 눈들로...
도저히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었어.
온 몸은 무서움으로 얼어붙었어.
제발 헛것이기를 바랬어.
천장에 붙어있는 사람들은 애 하나에 중년의  사나이와 청년, 그리고 지희
라는 여자였어.
한눈에 그 사람들이 여기 살육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
었어. 또한 다 죽은 사람들이라는 것도...
어지러워 지며 기절할 것 같았어. 하지만 쓰러져서는 안 된다는 것은 본능
적으로 깨달어졌어. 정신을 잃으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거든...
그러나 온 몸의힘을 풀려갔어.
이제는 어떡하든 죽는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어..
그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들을 쳐다보려니까 더욱 겁이 났어.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없어졌어.
나는 그들이 바닥에 내려온 것 같아 또 미친 듯이 불빛을 비추어댔지.
역시 아무것도 안 보였어.
나는 확신했어. 내가 지금 미쳐가고 있어 헛것을 보는 것이 아니던지, 
정말 귀신을 보고 홀려지고 있는 거라도...
다음순간 뒤돌아보지 않고 문쪽으로 뛰었어.
문을 열려는 순간, 뭔가 무거운 것이 반대쪽에 괴여져 있는 것처럼 꿈적도 
안했어.아까만 해도 자물쇠도 떨어져나간 삐걱대는  나무문이었는데, 이번
에는 굳건히 닫힌 철문같았어.
뭔가에 휘말린 느낌이었어. 있는 힘을 다하여  문을 밀쳐보았지만 열릴 생
각도 안했어. 미친 듯이 두들겨보았으나 소용없었어.
그런데 뒤에서 '퍽! 퍽!'하는 소리가 갑자기 들려왔어.
나는 뒤돌아보기가 죽기보다 두려웠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고개를 뒤로 돌리는데 영겁의 시간이 걸린 것 같았어..
뭐라고 해야 할까?
아마 너는 이 편지를 읽으면서 내가 미쳤다고 하겠지.
차라리 미친것이라면 좋았을 것이야...
내가본 것은 그 중년의 사람이 낫을 들고 청년을 향해 무자비하게 내려치
는 장면이었어. 후레시에 비친 그 모습은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어.
사방으로 튀기는 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의 연속이었어.
순간 그들은 사라지고, 이번에는 바로 내 옆에서 지희라는 여자가 낫을 들
고 누군가의 등을 향해 내려치는 것이었어.
나는 그 지옥에서 나가고 싶어 미치는 것 같았어.
그들이 나를 발견하고 나에게 낫을 내려칠 것 같았어.
아니나 다를까, 그 지희라는  여자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낫을 들고 나를 
향해 돌아보고 싸늘한 미소를 짓는거야. 
문을 향해 돌아서는데, 바로 앞에는 그 중년의  사나이가 피 묻은 낫을 축
늘어트리고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거야.. 무표정한 얼굴로...
죽는다라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었어.
나는 문을 부셔저라 두들겨댔어.
그들은 나에게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았어.
뒷덜미에 낫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는 것 같았어.
순간, 문이 열리고 나는 넘어지듯 그 집에서 빠져나와서 달려나갔어.
하지만 밖으로 나가는 순간, 다리의 힘이 쭉 빠지고 움직일 수 없었어.
귀가에 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정신을 추수릴 수 없었어.
무릎이 꿇어지고 앞으로 고꾸라졌어.
그들이 쫓아와서 낫으로 내려칠 것 같았어.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마지막이었어..
그리고는 기억이 안나...

눈부신 햇살에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 지옥같은 집 마당이었어.
전날 밤 거기서 기절 했었나봐. 전날일이 악몽같이 느껴졌어.
지금도 확신할 수 없지만, 정말 악몽일 수도 있었을 거야.
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생각할 것도 없이 그 집을 빠져나왔어.
그리곤 무조건 달렸어.
숨이 차서 달리지 못할때까지 달렸어. 어느새 여관앞이더군..
우선 방에 들어가서 좀 안정을 취해야 될 것 같았어. 생각도 정리하고...
모든 것이 정말 뒤죽 박죽이었어.. 내 자신까지도...
여관 주인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더니,  주순경이 나에게 주라고 맡겨다
는 서류봉투를 건네 주었어.
그 과수원 사건의 개인 조사 기록이었어.
방으로 돌아오다가, 나는 그 지희라는 여자가 자살한 방을 지나게 되었어.
방문은 웬일인지 활짝 열려있었어.
시체는 치워졌지만, 그 죽음의 내음까지는 지울 수 없었어.
무엇인가에 이끌려 나는 그 방으로 들어갔어.
방에는 여자의 세간이 널려 있는 것을 보니, 유품을 치울 친척도  없고, 경
찰도 손도 안 대었는  모양이었나 봐. 나중에 알고  보니 여관주인이 바로 
그 때 그 방을 치우려고 했다는 거야. 그래서 방문도 열려 있었고..
여하튼 나는 호기심에 이것저것을 살펴 보았어.
갑자기 탁자 밑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검은 노트가 눈에 띠었어.
그 노트를 집어들고 겉장을 보니 이름만 써 있었어.
정지철이라고...
대충 ㅎ어보니까 그 죽은  남동생의 일기 같았어. 읽어봐야  할 것 같아서 
그냥 들고 내 방으로 왔어.
방안에 누워, 어제 밤에 있었던 일을 냉철하게 생각해 보았어.
실제로 그런 광경을 본 것도 같지만, 어쩌면 극도의 긴장과 공포심이 빚어
낸 나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았어.  그런 것이라면 내 상태는 정신
질환의 일종이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어.
그래서 우선 수사기록과 지철이라는 동생의 일기를 가방에 집어넣고, 잠을 
청했어. 잠을 자고나면 편해 질 것 같았거든...
그러나 잠을 잘 수가 없었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어제의 그 끔찍했던 일
이 자꾸 떠올라서...
그리고 결심했어. 그래서 너에게 이런 긴 장문의 편지를 쓰는 것이야.
그렇게 무섭고, 가기 싫어야 할 그 과수원의  버려진 집에 다시 찾아가 봐
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상한 힘이 나를 그 집으로 끄는 것  같어. 나방을 태워죽이기 위해 촛불
이 나방을 유혹하는 것처럼...
내가 어제 본 것이 환상인가 진짜 뭔가의  출현인가 밝혀내야 할 것 같어. 
그렇지 않는다면 나는 평생의 그 무엇에 대한 두려움에 쫓길 것 같았어.
네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무모한 짓이고 미친 짓이라며 말려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의 상태는 나도 이해할 수가 없어.
그냥 단지 그 집에 가고 싶고, 가면 뭔가를 알 것 같아서...
벌써 밖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어.
인제 그 버려진 집으로 가봐야 겠다. 
그 무엇의 정체를 알기 위해... 그리고 그 살인사건의 진상을 위해...
아마 아무 일이 없다면, 이 편지보다 내가  먼저 서울에 가서 네게 연락하
겠지... 만약에 이 편지를 네가 받을 때까지 나로부터 연락이 안 가면, 그때
는 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지...
여하튼 이 편지가 네게 도착하기 전까지, 내가 연락을 안한다면 우리 부모
님께 연락좀 해 주렴..
너무 걱정하지 마라. 잘 되겠지...
그리고 나 미쳤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 정상이야..
아니 어쩌면 미친 것일지도 모르지... 아니면 악귀에게 영혼이 홀렸는지도...
여하튼 이번 일의 진실을 아는 것이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아..
고맙다...
이런 때 편지에다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여서..
이 편지를 부치고 그 버려진 집으로 간다... 
거기에는 악마의 모습 아니면 아무것도 없겠지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그럼 잘 있게....
                                          친구가...   >

재원이의 편지를 단숨에 다 읽고나서 나는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을 수가... 그것도 재원이에게...
재원이의 편지는 예전의 윤석이의 편지와 수기들을 읽었을 ㄸ의 기분을 연
상시켰다. 일본에서 있었던 식인(食人)사건의  얘기를 읽었을 때의  충격과 
비슷했다.
그리고 재원이가 걱정되었다. 편지대로 라면 무슨  일이 그에게 일어난 것 
같았다. 재원이네 집에 전화를 걸어보려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내
일 해보기로 했다. 
그날 밤은 찝찝한 기분 때문에 잠을 설쳤다.
다음 날은 수업과 토론등 할 일이 너무 많았지만, 재원이도 걱정되고 전날 
밤 잠을 설쳤기 때문에 하루 종일 멍한 상태였다.
틈만 나면 재원이네로 전화를 걸었지만, 무슨 일인지 아무도 받지 않았다.
집히는 곳이 있어, 저녁에 집으로 들어와  114와 경찰청 민원실등 한 열군
데 넘게 전화해서 겨우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여보세요.. 거기 주형준씨 댁이십니까?
  혹시 경찰 하시던 주형준씨 계십니까?"
  
  "내가 그 주형준인데 무슨 일이요?"
  
  "혹시 며칠전에 댁에 찾아가 과수원 살인사건에 대해 이것 저것 물어보
  았던 의대생 기억나십니까? 그 사람의 친구되는 데요..."

내가 거기까지 얘기하자, 그 주형준이라는 사람은 갑자기 격한 목소리로
물어보기도 전에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 그 재원이라는 아까운 학생말이요..
  너무 안 돼었요.. 내가 말릴 껄... 그래서 그 집은 예사집이 아니라니까..
  그 학생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은 내가 발견했소.
  이상한 예감이 들어 괜히 그 집으로 향했소. 그 학생이 우리집을 찾아간 
  후 아무 연락도 없던 것도 좀 이상하고 해서...
  아니나 다를까, 그 집 마당에 그 학생이 얼이 빠진 모습으로 앉아 있는
  거요. 눈은 뭔가 무서운 경험을 했는지, 겁에 질려 있었고 내가 계속 말
  을 걸고 해도 대답없이 멍하니 있을 뿐이었어. 완전히 돌아버린 것 같았
  소.. 어쩔 수 없이 집에 연락하기 위해 신분증을 확인했소. 그 학생을 일 
  으켜서 데리고 나오는데, 그 학생이 갑자기 뒤돌아서 그 집을 보더니, 
   '으...어..흐...' 라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신음소리를 내더니 두려운 
  듯이 괴로워하는 것이었소.      
  그 집은 그렇게 많은 피와 사람을 마셔버렸는데도 아직 모자란다는 듯이  
  탐욕스럽게 서 있는 것처럼 보였소..
  부모님이 오셔서 그 재원 학생을 데려갔소.. 지금쯤 병원에 있겠지...
  좀 괜찮아졌는지...
  걱정마쇼. 안 그래도 내가 오늘 신나를 사오고 다 준비 해 두었소.
  오늘 밤에 그 빌어먹일 집을 태워버릴 작정이요. 더 이상 그 악귀같은
  집을 그대로 나둘 수가 없겠소. 또 다른 사람이 희생될 지도 모르잖소.
  그래서 그 집을 싸그리 태워버릴 생각이요..
  재원이 학생이 회복되면, 이 얘기 전해주고 연락해달라고 전해주쇼..."

그의 얘기를 듣고 재원이의 노력의 비극적인 결말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 놈이 그 지경까지 되었구나...
제기랄! 도대체 어떤 일이있었던 거야. 편지에 썼던 것이 설마 실제로 일
어났던 것인가... 아니면 그 자식이 그냥 미쳐버린 것인가...
모두들 병원에 있어 집으로 전화가 안 되었나 보다.
나는 수첩을 뒤져, 예전에 재원이 소개로 한  번 인사했던 같은 과 친구라
는 명준이란 사람의 연락처를 찾아냈다.
그 사람 말로는 재원이는  자기내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아무 것도 인식 
못하고 표현 못하는 식물인간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뭔가가 두려운 
듯이 비명을 지르곤 한다는 것이었다. 너무  안되보인다며 축 쳐진 목소리
로 말했다. 그리고 도대체 친척집도 없다는데 무슨 이유로 거기 남아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재원이의 편지를 가지고 병원에 가보기로 결심했다.
재원이가 미친 놈 취급받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편지를 담당의사가 
읽으면 뭔가 치료에 도움을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음날 난 멍하니 누워있을 재원이의 모습을 걱정하면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차 라디오에서 갑자기 귀익은 이름과 충격적인 뉴스가 흘러
나왔다.

 "...일분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제 밤 경기도 연천 XX마을에서 전직 경찰이었던 주형준씨가 
   분신자살을 기도, 사망했습니다. 주위에 따르면 주씨는 작년에 있었던
   과수원 살인사건을 수사도중 경찰을 그만 둔 것에 대해 비관해왔다고 
   했고, 시체가 발견된 장소도 그 과수원이었으므로, 경찰은 비관자살로
   추정하고 조사하고 있습니다.
   다음뉴스는....."

나는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그 사람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자
기 몸을 태워 자살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 집을 불질러 버리겠다고 했는데... 
뭔가가 이상했다. 
그의 그 버려진 집을 태워 버리겠다는 단호한 의지로 보아  분명히 자살은 
아닐 것 같았다.
그러면... 
설마하는 생각과 함께 소름이 쫙 끼쳐왔다. 
그럴 리가...
그 집의 저주가 그에게도 계속된 것 같았다.
찜찜한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병원에 도착했다.
병실앞에는 재원이의 부모님이 허탈하고 참담한 표정을 하고 계셨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재원이의 편지를 그 분들에게 드렸다.
치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드렸지만, 그걸 읽고 부모님들께서 
놀라실 것 생각하니 마음이 어두워졌다.
재원이 어머님이 한 번 들어가 보라고 해서 혼자 재원이가  누워있는 병실
로 들어갔다.
마침 재원이는 평화스런 표정으로 자고 있었다.
전혀 자기 자신을 외부로부터 꽁꽁 가두어버린 애같지는 않았다. 
그 친구를 보고 있으려니, 그의 괴상했던 경험과 고민이 떠올랐다.
죽어버린 엘리베이터 기술자의 기괴했던 얘기,  귀머리가 되어버린 꼬마애 
얘기 등등.. 그때마다 문제를 심각히 받아드리고 고민했던 놈인데...
그 고민이 이렇게까지 만들었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우울하게 재원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자고 
있던 재원이가 눈을 번쩍 떴다.
나는 재원이가 정신이 든 것 같아 무슨 말을 부치려 했는데, 그 눈을 보는 
순간 멈칫했다. 
소름끼칠 정도로 차갑게 빛나는게 마치 딴 사람의 눈 같았다. 
그리고 싸늘한 어조로 뱉어낸 재원이의 말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지철아, 읍내에서 낫 갈아와라...."

                                    <끝> 






                        +++++ 버려진 집 II +++++

                                                    유일한(HI:ilhan)


          죽은 자는 죽은 그대로 놔둬라.....
                                -  페르시아 고대 속담중에서....


비는 벌써 며칠째 지겹게 내리고 있었다.
밤에도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  사람들의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나는 학생으로서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취업이냐 대
학원이냐라는 것에 고민하면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 있는 재원이가 마음에 걸려 책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재원이가 입원한지도 벌써 일주일이 다 되가고 있었다. 그 동안 두 번 정도 
병원에 가보았지만, 재원이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아무도 못 알아
보고, 얘기도 한마디 못하고 있었다. 가끔 딴 사람처럼  이상한 얘기를 짓껄
이긴 했지만, 의사에 말로는 무의식중에 나오는 아무런 의미없는 말이니 신
경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로써는 재원이의 섬뜩한 한마디가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철아, 읍내에서 낫 갈아와라....'

그때의 재원이의 소름끼치는 목소리와 차가운 눈빛은 잊을 수가 없었다. 생
각날 때 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재원이는 그 황폐한 집에서 무언
가 가혹하고 무서운 일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는 정신적으로 
강인한 재원이가 이렇게 될리는  없었다. 그런데 재원이가  그날 밤 경험한 
그 무서운 일이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만약 그것을 알게되면, 지금의 재원이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재원이에게 큰 사건이 발생했다.
이 끔찍한 사건도 그 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날도 도서관에서 시간만 낭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비로, 흠뻑 젖은채  집에 들어섰다. 옷을 갈아입으며, 자
동 응답기에 남겨진 메시지를 확인했다. 
뜻밖의 메시지였다. 재원이 어머니셨는데, 다급한 목소리로 들어오는데로 병
원으로 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메시지였다.
재원이가 갑자기 위독해졌나....
나는 불길한 예감을 억누르며 서둘러 재원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
다. 비 때문에 늦은 시간이었는데 차가 막혔다. 답답함은 더해갔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재원이의 병실로 뛰어갔다. 재원이의 병실앞에는 사람
들이 웅성웅성 모여있었다. 경찰들도 언뜻 보인 것 같았다.
나는 사람을 헤치고 병실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다.
재원이가 누워있어야 할 침대가 덩그러니 비어있는 것이었다.
당황해하고 있는 나를  알아보시고 재원이  어머니께서 다가오셨다. 걱정과 
수심으로 가득찬 얼굴을 하시고 자초지정을 설명해주셨다.

 "일한아, 빨리도 와주었구나....
 큰일났단다... 재원이가 사라졌어....
 아무런 얘기도 없이....
 오늘 아침만 해도 의식없이 이 침대에 조용히 누워있었는데, 점심 먹으러 
 잠깐 병실을 빈 사이에 없어진거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아무도 우리 재원이를 본 사람이 없대...
 어떻게 된 것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몸도 온전치 못한 애가 어디로 갔는지 너무 걱정이 되서...
 미안하구나... 너도 요즘 바쁠텐데...
 그래도 너라면 재원이가 어디로 갔는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우리 재원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겠니?
 좀 생각해 주겠니....."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재원이가  없어진 것은 너무 충격적인 일이었
고 영문을 짐작할 수 없었다. 의식도  없던 애가 갑자기 사라지다니.... 납치 
당했나, 아니면 자기 발로 걸아나갔나... 갑자기 머리속이  복잡해지는 것 같
았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듯한 재원이  어머니의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
할 수 없어 죄송스러웠다.
최선을 다해 알아보겠다고 하고, 병실에서 나왔다.  재원이 어머니는 복도까
지 쫓아나오셔 두 손을  꼭 붙잡고 재원이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은 
없었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어 찾아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며 병원을 떠나는데, 복도 구석에서 낯익은 얼
굴이 보였다. 
재원이 여자친구인 정화씨였다. 몇번 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어 서로 알
고 있는 사이였다.많이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정화씨는 나를 보
자 걱정스런 목소리로 짐작가는  곳이 있냐고 물었다.  없다는 나의 대답에 
정화씨의 힘이 빠지는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정화씨는 삐삐번호를 적
어주며 재원이를 찾으로 갈 때, 꼭 자기도 데려가달라고  당부했다. 너무 강
하게 부탁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약속했다.
병원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답답함을 가슴속에 지니고 재원이의 소재에 대해 생
각해보았다. 도저히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재원이가 보내주었던 그 섬뜩했던 편지  내용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믿기지 않았던 그 일이 점점 혹시나 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그 버
려진 집이 불가사이한 사악함을 가지고 있고,  재원이가 그 힘 때문에 정신
을 잃고 저렇게 실종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머리를 새차게 
흔들었다. 집에 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재원이를 알만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아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친하지는 않지만, 재원이 의대  동기인 명준이란 사람에게 전화를 
하게 되었다.

"재원이가 그렇게 사라졌죠....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어떻게 그 친구가 그렇게 되다니.......
  연천에서 의료봉사할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으셨는지 모르겠네요...
  그 친구 그때부터 이상한 일만 겪었죠. 이상한 소리일지 모르지만, 우리들
  은 귀신을 본 것 같아요. 우습죠...
  하지만 사실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짜 무서움을  
  느꼈고.... 
  아, 모두 들으셨다고요...
  그럼 편하게 말씀드릴 수 있네요..
  재원이가 얼이 빠져서 병원이 실려올 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설마했는데... 재원이가 혼자 남는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 하는데...
  친척집에 들린다고 했는데... 사실 좀 불안했어요.
  하지만 이 지경까지 되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아무일 없어야 하는데...
  사실 며칠전에 재원이 병실에서 이상한 일을 목격하긴 했어요.
  그날밤도 잠깐 짬을 내어 재원이 병실에 들렸어요. 어머니가 잠깐 자리를 
  비우셨는지 아무도 없더군요. 재원이는 평화롭게 누워
  있더군요. 마음이 찹잡해졌어요. 정말 똑똑한 놈이었는데..
  침대로 다가가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을 번쩍 떴어요.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반갑기 보다는 섬뜩했어요.
  괜찮냐라고 말을 걸려는 순간, 재원이가 말하게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목소리는 재원이 목소리 아닌, 완전히 딴 사람의 굵직한 목소
  리였어요. 
    '이제 낫을 갈았으니, 피를 적셔야겠지.......
    지철아, 낫 어디있냐? 
    어제 갈아논 낫 어디있냐말야!
    숨겨봐도 소용없다니까!!!
    모두 이제 죽는거야 알았어!!'
  재원이는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내 멱살까지 잡고 흔들었어
  요. 방금 전까지 죽은 듯이 누워있었던 사람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격렬하게 움직였어요. 간신히 날뛰는 재원이를 떨쳐버렸지만, 너무 놀라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날뛰던 놈이 침대로 쓰러지자 마자, 몸을 부
  르르 떨더니,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혼수상태가 되는 것이었어요.
  나는 혹시나 이 자식에게 큰 일이 났을까하고, 살펴봤지만 혈압이나 심박
  은 모두 정상이었어요. 이상할 정도로...
  너무나 황당하고 놀란 일이어서 재원이 주치의에게 얘기할까 했지만, 믿
  어줄 것 같지도 않고 일이크게 될까 걱정되서 그냥 혼자만 알고 있기로 
  했죠....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내 잘못 인줄도 몰라요...
  무슨 일 없었으면 하는데......"

나도 재원이가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어, 그 사람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재원이는 보통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은 생각이 들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어딘가를 헤매다가 사고라도 당하는  것이 아닌지 걱
정이 되기도 했다. 재원이를 찾기 위해서 뭔가 해야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가 없어서 답답하기까지 했다. 재원이로부터  받았던 편지라도 가지고 있으
면 뭔가 단서같은 것이라도  찾을 것 같았지만,  전에 재원이 부모님들에게 
드려서 어쩔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재원이의 행방에 대해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경찰에 신고
를 해보았지만, 하루에만 경찰에 들어오는  실종신고가 수천건이 넘기 때문
에 그쪽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는 힘들다고  했다. 재원이 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려보았지만, 오히려 내게 재원이 소식을 물으실  뿐이었다. 축쳐진 목소리
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때이른 장마가 시작되었는지 며칠째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비가 계속되자, 재원이가 더욱 걱정되었다.
어느 순간 부터 매일  아침 저녁 신문을 꼼꼼히  살피고, 뉴스를 보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다. 재원이가 관련된 기사가 나올지 몰라, 신문과 뉴스에 관심
을 기울이다 생긴 버릇이 되었다.
재원이가 사라진 지 일주일 지났을 때,  이상하게 눈길을 끄는 기사가 눈에 
띠었다. 언뜻 봤으면 지나쳤을지도 모를 사회면 하단의 작은 기사였다.
경기도 연천군에 **면에 있는  '성일여관'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여관
주인이 상체와 하체가 잘린 상태의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기사였다. 흉기는 
시체 옆에 피묻은 채로 발견되었는데, 평범한  낫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의문점은 사람의 힘으로는 낫으로 사람을 두동강이 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하튼 경찰은 며칠전에 군대에서 소대장을 때리고 탈영한 거구의 탈영병을 
용의자로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그 탈영병은 정신질환을 앓은 병력도 있다
고 했다.
이 기사에서 이상하게 눈길이 가는 것은 연천에  있는 성일여관과 낫이라는 
흉기였다. 재원이가 연천으로 의료조사 갔을 때 묵었던 여관이 바로 성일여
관었고, 재원이는 거기서 여자 귀신을 목격했다고 편지에 썼었다. 그리고 머
리를 떠나지 않았던 낫...... 재원이가 보고 경험했다는 그  버려진 집의 살인
들은 모두 낫으로 자행되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탈영병이 용의자라고 했지만, 재원이가 편지에 썼던 그 괴담과 연관성이 있
어 보였다. 재원이의 실종과 어떤 관계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
다. 담당 경찰에 문의해보면 좀더 자세한  자초지정을 알 수 있을지도 몰랐
지만, 통화한번 해보았던 전직 경찰 주형준씨는  의문과 함께 불에 타 죽었
기 때문에 뭔가를 알아내려면 내가 직접 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을 망설였다. 그동안 재원이가 겪었던  여러 가지 불가사이한 일들이 
떠올랐다. 또한 내 주위에 일어났던 믿기지 않던 일들도 생각이 났다.
과연 그 모든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나를 계속해
서 괴롭혔다. 재원이가 당한 일을 보니, 나도 예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
각도 들었다. 
하룻동안 고민 끝에 단서를 찾으러  연천으로 가보기로 결정했다. 재원이를 
찾아보겠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내  눈으로 뭔가 불가사이한 일들
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듣고,경험한 기괴한 얘기들의 진상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우선 재원이 부모님을 찾아가, 혹시  모르니 연천쪽을 찾아보겠다고 말씀드
리고 재원이의 편지를 찾아왔다.
편지를 읽어보니,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던 많은 의문점이 생겼다. 
누가 그 과수원에서 살인을 저질렀을까?
재원이는 그날밤 그 버려진 집에서 무엇을 봤길래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것인
가...
과수원 주인의 사라진 머리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지희라는 여자가 본 것은 무엇이고 왜 미쳐버렸을까...
행복했던 그 가족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 그런 참사가 빚어졌을까...
그 주형준이란 경찰은 과수원 살인사건을  조사중에 왜 포기했으며, 의문의 
자살은 무엇을 의미할까....
재원이의 이상한 발작과 증상은 무엇이고, 그 자식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의혹에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짐을 싸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재원이 여자친구인 정화씨였다.

 "일한씨,
 저도 연천에 같아 가요...
 재원 오빠 어머님께 들었어요. 연천으로 오빠 찾으러 간다는 것...
 사실을 말하면, 나도 오빠가 연천에서 의료봉사할때 이상한 전화를 받았거
 든요. 끔찍한 살인사건이 있었던 과수원에서 귀신을 봤다는 등, 목매달고 
 자살한 여자의 귀신과 얘기를 해봤다는 등의 끔찍한 얘기를 들었어요.
 그때는 않 믿었지만, 재원이 오빠가 병원에 실려온 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발 부탁이예요. 저 좀 데려가 주세요.
 아무 것도 않하면서, 오빠 소식만 기다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니까, 같이 가요.
 절대로 방해는 않될께요...
 안 데리고 가시면, 나 혼자라도 갈 생각이예요..
 제발... 흐흑..."

너무 절실한 부탁이라 거절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하루에 갔다올수 없을지
도 모르는 여행이라 같이 가기가 쉽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정화씨는 완
강했다. 몇차례 실랑이를 벌이다가, 같이 가기로 했다.
사실 재원이를 제일 많이 걱정하는 것은 정화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었기 때문에 매정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그런 청을 거절할 권
리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만나기로 했다.
정화씨와 약속을 하고나서, 같이 가는 것이 잘한 것인가하는 후회는 했지만, 
나보다 재원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지도 모르니 도움이 될 것도 같았다.
준비를 하면서, 윤석이가 몸담고 있었던 대한 심령학회에 연락을 해볼까 생
각도 해보았지만, 아직 무슨 일인지도 제대로  모른 상태에서 괜히 그 쪽에
데 연락하기기는 이상할 것 같았다.
다음날도 비는 계속 내렸다.
뉴스에서는 전국 각지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졌다고  했고, 많은 지역이 물
난리를 겪고 있다고 했다. 
정화씨는 나보다 먼저 약속장소에 나와있었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터미날에는 많은 사람이 북적거렸다.
연천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자, 부대로 복귀하는 군인들이 많이 보였다.
연천주변에 부대가 많아서인 것 같았다. 군인들을 보자, 살인 용의자라는 탈
영병이 생각났다. 버스에서  나는 정화씨에게  재원이가 마지막으로 보내준 
편지를 주었다. 편지를 읽던 정화씨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무서워했다.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도 정화씨는 재원이 주변에 일어났던 귀머거리 꼬마애 얘기라든가 정신
병동의 엘리베이터 기술자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는지, 이런 얘기를 되도록 
믿어보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편지 내용이 너무 끔찍해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재원오빠가 이렇게 끔찍한 일에 연관되어 있었군요..
 나는 대충 또 무서운 일을 찾아 다니는 것인줄 알았는데..
 그래서 전화왔을 때, 당장 집어치우고 올라오라고 했는데....."

정화씨는 계속해서 후회를 했고,  나는 연천에 도착하자마자  해야 할 일을 
머리속에 그려보였다. 버스는 어느새 연천시내에 도착했다.
재원이가 묵었던 마을로 가려면, 여기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연천 터미널에는 헌병과 경찰이  눈에 많이 띠었다.  머리가 짧은 젊은이나 
군인들은 모두 검문하고 있었다. 역시 살인사건의용의자를 찾는 것 같았다.
마을로 들어가는 버스안에서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황당한 생각을 하고 있
는 것 같았다. 경찰이 그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탈영병으로 지목하고 있는데, 
나 혼자만 그 살인사건에 뭔가 재원이와 연관된 것이 있을  것 같아 여기까
지 온 셈이 되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연천까지 찾아온 내 행동에 문제
가 있지만, 뭔가 알 수 없게 끌리는 것이 느껴졌다. 불길한 예감과 함께...
정화씨는 계속 볼안에 떨고 있었다.
이윽고 버스는 그 마을에 도착했다.
한동안 멈추었던 비는 우리의 도착을 경고하듯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재원이 편지처럼 음산한 분위기가 풍기는 마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제일 처음 느낀 것은 마을 사람들의 경계의 눈빛들이었다. 
며칠전에 있었던, 그  끔찍했던 살인사건  때문인지 불친절하고 낯선사람을 
경계하는 것 같았다.
우선 짐을 풀 곳을 찾으려 하는데,  갑자기 헌병과 경찰들이 긴급하게 우르
르 몰려가는 것이 보였다. 뭔가 다급한 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인가  따라가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린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비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많
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있었다. 정화씨와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거기
로 향했다.
경찰차와 엠블런스가 보였다. 경찰이 흰 천으로  쌓인 들 것을 옮기는 것이 
보였다. 천으로 가려져 있다해도, 그것은 한눈에 사람 시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섬뜩한 것은 머리부분이  벌겋게 피가 배여져 있는 것이
다. 그것을 구경하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겁에 질려 있는 얼글을 하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인가하고 옆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그 아주머니는 나의 물음에 나와 정화씨를 살펴보더니, 강한 적대감과 경계
심을 가지면서, 대답을 회피했다.
갑작스런 반응에 당황했지만, 어짜피 묵을 곳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거
짓말을 보태서 분위기를 바꾸었다.

 "아주머니, 뭔가 오해하신 것 같네요..
 저희들은 대학생인데요, 이 마을 고유의 방언과 전설을 들으러 온 국문과
 학생이예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민박이라도 할 곳을 찾다가,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오게된 거예요...
 그런데 정말 무슨 일이 난 것이죠?"

의심스런 눈초리를 우리를 살펴보던 그  아주머니는, 그래도 수다떨 상대를 
보고 참지는 못했는지 충격적인 얘기를 시작했다.

 "공부하러온 학생들이구만...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되었수?...
 빨리 이 마을을 떠나요. 요즘 얼마나 무서운 일들이 나는데..
 며칠전에도 여관주인 최씨가 토막나서 죽었고, 오늘도 정미소 김씨가 죽어
 서 벌견되었수다. 
 어떤 미친놈이 우리 마을에 와서 사람을 끔찍하게 죽이고 있는거유..
 무서워요....
 오늘 최씨가 정미소를 안 열어, 아픈가하고 집으로 가보왔는데 글세..
 목이 없는채 시체로 발견되었다지 뭐요..
 옆에는 여관주인 최씨가 죽었을 때처럼 피묻은 낫이 발견되었데요.
 김씨 자기 낫이라는 거야.
 그 탈영병인지, 미친 놈이 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갈기갈기 ㅉ어 
 죽이고 있는거요...
 그것도 낫으로......."

그 아주머니의 말을 들은 나는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살인을 자행하고 다니는 미친놈은 탈영병이던 아니던  무시무시한 놈
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몸서리를 떨고 있는  그 아주머니에게 묶을만한 곳
을 물어보았다. 이 마을에는 여관이 두 개 있는데, 그 살인사건이  났던 성
일여관은 어제 의문의 불로 타버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 여관에 가서 살펴볼 것이 있었는데...
재원이 편지에 따르면, 거기에는 과수원 살인사건때 죽은 지철이라는 지희 
남동생의 일기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주형준 순경이 재원이에게 준 수
사기록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이 다 타버렸다니....
나는 다른 하나의 여관을 가르쳐주려는 그  아주머니의 말을 가로막고, 성
일여관 화재에 대해 물어봤다. 그 아주머니는  갑작스런 나의 질문에 의아
해했지만, 그래도 얘기해 주었다.

 "어이구....... 그것도 너무 무서운 얘기지요..
 며칠전에 그 여관에서 사람이 두동강나는 살인사건이 있었는데, 글세 어
 제 거기서 불이 나고요..
 거기는 귀신 나온다고 밤에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곳인데,
 저절로 불이 났다는 거요..
 김순경 말로는 불이 난 이유는 도무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귀신이 불을 붙였다고 해요..
 나도 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데.....
 하여간 목구멍이 원수라니깐....."

점점 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정화씨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 대충 감이 왔는지 긴장된 모습이었다.
아주머니의 안내로 우리는 이제 이  마을에 단 하나뿐인 궁전여관으로  갔
다. 그 여관은 이름만 궁전이지 완전히 다 무너져가는 허름한 옛날 집이었
다. 벽도 나무로 되있어서바람만 세게 불어도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성일여관이 문을 닫는 바람에 손님이 갑자기 많아졌는지 방을 잡기가 힘들
었다. 다행히 저녁늦게 들어가기로 약속하고, 방 두개를 겨우 잡았다.
우선 짐을 여관에 맡기고, 길을 물어 그 문제의 버려진 집으로 향했다.
정화씨도 따라나섰다.
비는 계속 내리고, 길은 진창이 되어 시골길은 걷기 힘들었다.
비때문인지, 아니면 연속되는 살인 사건  때문인지 30여분을 걸어가는데도 
인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끔식 순찰을  도는지 경찰과 헌병들이 눈에 
띠었다. 
가는 길에 정화씨에게 내 계획을 얘기했다. 사실 특별한  계획은 없었지만, 
우선 모든 사건의 중심인 그 버려진 과수원 집을 살펴봐야 할 것 같았다.
정화씨도 같은 생각을 가졌지만, 그 집에 대한 무서움을 느끼는지 그리 내
켜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불편하면 여관에서 쉬라고 했지만, 그래도 따
라 나섰다.
가는 길에 정화씨는 불안을 잊으려는 듯이 재원이와의 재미있었던 일을 얘
기했다. 나도 재원이가 국민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여자애를 쫓아다니던 얘
기를 해주면서 간만에 서로 웃었다.
기분이 좀 밝아질만 하니, 궁전여관주인이 가르쳐주던 큰 성황당이 보였다. 
여관주인 말로는 그 성황당을 지나면 그 버려진 집의 황량한  모습이 보일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긴장이 되는 것을 느꼈다.
길 모퉁이를 돌으니 그 집이 보였다.
처음 받은 느낌은 글자 그대로 흉가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냥 집이 아닌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보였다.
어쩌면 생명체나 다름없을 지도 몰랐다. 벌써  여러명의 피와 생명을 빨아
드리고 재원의 정신도 앗아간 집이니까....
정화씨가 옆에서 떠는 것이 느껴졌다.
오후 4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비때문인지 벌써 어둑어둑해진 것 같았다.
음산한 기분은 아무리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집은 누가 그랬는지 모든 문이 나무 판자에 못이 박혀 패쇄되어 있었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문을 뜻어야 할 판이었다.
집안에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나, 그래도 한 번을 들어가봐야 될 것 같았
다. 하지만 가져온 것은 손전등뿐이서 난감했다.
어떻해든 들어갈 볼생각을 현관에 올라섰다.
정화씨는 간신히 내 뒤를 따라왔다. 현관문 앞에 서보니, 문을 막았던 사람
이 서둘렀던지 박아논 판자가 건들거렸다. 손으로 쉽게 떨어졌다.
마치 이 곳을 통해 누군가가 여러번 드나든 것처럼....
판자를 쉽게 때어내고, 허리를 구부리고 그 안으로 한발을 내밀었다.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안은 창문을 다 막아서인지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깜깜했다.
소름이 쫙 끼쳤다. 누군가가 저 어둠저편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후레쉬를 켜서 집안을 살펴보았다.
살육의 현장을 연상시키는 거무죽죽한 핏자국이 사방에 말라비틀어져 있었
다. 여기서 이 안에서 낫에 찔려 과수원 주인 한병식씨, 아들  한지철 그리
고 사윗감이었던 안 중위가 죽었고,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지희라는 
여자는 미쳤고 결국엔 목 매달아 자살했다.  그리고 그 살인사건의 조사를 
담당하다 포기한 경찰  주형준은 이 저주받은  집을 불사르려다 타죽었고, 
이 사건에 얽혀들어간 재원이는 정신을 잃은채 사라지고....
엄청난 비극과 사건이 배어들어있는 집이였다. 
집안을 둘러보자 재원이가 편지에 썼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서로를 살육하는 장면들과 섬뜩한 귀신들...
정화씨도 재원이의 편지가 생각나는지 '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걸음 옮길때마다 삐그덕 소리가 기분나쁜 적막을 깼다.
이상하게도 이 집에 들어오니 바깥에 내리는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후레쉬를 사방으로 비치면서 집안으로 점점 들어갔다. 
사실 내가 여기 무엇을 찾으러 왔는지는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
도 여기에 오면 무언가 재원이나  불가사이한 사건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안은 사람의 흔적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벽에 바래진 채 남아있는  피자국들이 얼마나 끔찍한 살육이  여기서 
자행되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갑자기 재원이의 편지속에 과수원 주인 한
병식씨의 머리가 없어진채로 발견되지 않았다는 대목이 생각났다.
그 생각이 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여기 어디엔가 그 머리가 썩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후레쉬로 부엌쪽으로  비춰보는데, 지나가는 불빛사이로 
뭔가가 눈에 띠었다. 언뜻 보여서 잘 알아차릴 수 없었다.
자세히 보기위해 후레쉬를 다시 그곳으로 비춰봤다.
나는 그것을 보고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사람의 얼굴이 탁자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었다.
처음엔 너무 놀라 잘 못본것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그 없어졌다는 과수원주인의 머리같았다.
반쯤 감은 눈에 혀를 빼물고 마치 졸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단지 다른 것은 목밑에 피가 튀어 있었고,  얼굴만 덩그러니 탁자 위에 놓
여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움찔거리며 눈을 땔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으윽'하는 소리가 났다.
갑자기 반쯤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나를 섬뜩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이
었다. 내 속까지 꽤뚫는 것 같았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도, 뭔가에 잡힌 것처럼 눈을 땔 수 
없었다. 
다음 순간 눈을 뜬 그 머리는 갑자기 내게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치는데, 누가 내 팔을 잡았다.
화들짝 놀라 정신을 못 차리는데...
 
  "일한씨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정화씨였다. 나는 마법에 걸렸다 깨난 사람처럼 정신을 차렸다.

  "정화씨... 저것 안보여요?
  저기 테이블 위에 있는거요.."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는데....."

정화씨의 얘기를 듣고,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다시 탁자위를 살펴보았다.
제기랄! 어떻게 된 것인지 언제 그랬다는 듯이 탁자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히 내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아니면 나도 너무 긴장해서 헛것을 본 것이지도 모르지만..
걱정해하는 정화씨에게 그냥 잘못 봤다고 둘러대고, 아직도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부엌으로 향했어요. 그 머리의 졸린듯한 표정이 머리속을 떠나
지 않았어요. 아마 재원이도 이런 것을 본 것 아닐까...
내가 본 것이 헛것이었는지 정말 몰랐다.
정화씨는 나의 이상한 행동에 당황했는지 나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왕 여기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뭔가를 발견하고 나가고 싶었
다. 더구나 이상한 것이 눈에 보인 이상, 분명히 무언가가 이 집에 있는 것 
같았다. 점점 재원이가 보았다는 그 끔찍한 장면들이 내게도 보이는 것 같
았다. 바닥에 말라붙은 검붉은 핏자국들은 난무했던 피와 낫, 그리고 그 살
육을 즐겼던 살인귀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나와 정화씨는 혹시 무슨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하고 천천히 부엌쪽
으로 향했다. 한발씩 움직일때마다 무언가가 나타날 것 같았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후레쉬 불빛에 비춰지지 않은  어둠속에서 누군가
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나쁜 느낌이었다. 우리의 일거수 일
투족을 환히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찝찝한 기분과 두려움을 억누르며, 한걸음 한걸음 움직였다.
놀랍게도 정화씨는 생각한 것보다 무서움을 안타는 것 같았다.
무서워하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나보다도 침착했다.
그런데 갑자기, 정화씨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소리를 쳤다.
나는 놀라 정화씨가 가르키는 쪽으로 후레쉬를 비쳤다.
피가 뭍은 마루바닥 사이로 뭔가가 세겨져 있은 것이었다. 
좀더 후레쉬를 가까이 비춰 뭐라고 쓰여져 있나 읽어보려 했다. 
내용을 이해하는 순간 나와 정화씨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나갈 수가 없어...
    저것들이....나를..쳐다보고 있어...
    내게로 온다....
    안돼.......               
                           재원......>

재원이가 남긴 흔적이었다.
정화씨는 그 글자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지, 말을 하지 못했다.
재원이가 마지막으로 이 집에 들어왔을 때, 남긴 것 같았다.
그리고 발견되었을때는 얼이 빠진채로 발견되었지만....
무엇으로 새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자 글자 사이에  피가 묻어있는 것을 
보니, 손톱이나 피를 흘리면서 급하게 새긴 것 같았다.
섬뜩한 내용이었다.
재원이는 여기서 확실히 무언가를 보고, 무슨 일을 당한 것이다.
다른 흔적이 있을까 하고 여기저기 살펴보았지만, 더 이상 눈에 띠는 것은 
없었다. 계속 살피면서 부엌으로 향했다.
재원이의 편지에 따르면, 살인사건이 발생되었을 때 지희라는 여자는 혼자 
얼이 빠진채 부엌에서 멍하니 선 채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부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여자만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 여자는 
그 참혹했단 밤의 모든 것을 목격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죽
었다.
이상하게도 부엌에도 핏자국이 사방에 튀어있었다.  여기서 시체는 발견되
지 않았는데, 더 끔찍한 일이 있었는지 피가 튀어있었다.
나는 정화씨를 데리고, 그 지희라는 여자가 발견당시 서있었다는 구석으로 
가 보았다. 그 여자는 발견당시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뭔가 무서운 것을 
본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나는 여기 오다가 생각해봤는데, 그 여자가 그때  그 날밤에 있었던 일 때
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여기 서있었던 것이 아니라, 발견 직전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보고 충격을 받고 움직이지 못했을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
다. 다시 말해 그 날 집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보고 정
신이 나갔을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지희라는 여자가 서 있던 자리는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서 있을 
때 피가 흘러내렸는지 가지런히 놓여있는 발자국을 남겨놓고  피가 말라붙
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때는 정말 글자그대로 바닥이 피바다였을 것 같았
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하나의 의문도 생겼다. 피자국사이로  발자국이 났
다면 거기 서있는 후에 피가 흘렀다는 것이었다.
이 안에서 일어났던 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뭉개구름처럼 피어나는 의문과 함께 나는 지희라는 여자가 서있던 곳에 섰
다. 지희라는 여자는 이 구석에 서서 무엇을 본 것일까...
잠시 모든 정황증거를 무시하고 내 나름대로 그때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마루에서 누군가에 의해 살인이 시작되었다.
약혼자인 안중위가 죽고, 동생 지철이가 죽고, 아버지가 목이  잘려 죽어나
갈 때, 지희라는 여자는 무서워 이 부엌으로 도망쳐 왔을 것이다.
무서움에 떨며 뭔가를 어떻게 해야하는가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뭔가를 봤을 것이다. 
충격적인 그 무엇인 것을....
천천히 후레쉬와 함께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화씨는 재원이의 흔적을 찾는데 여념이 없었다. 
지희라는 여자의 키를 고려해 잠시 몸을 구부려봤다.
무엇이 보였을까....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꼭 집안의 무엇이라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래서 자세히 반대편을 살펴보았다. 
판자로 가려진 창문이 하나 있었다.
나는 황급히 그 창문으로 가서 판자를 뜯어냈다.
판자를 뜯어내니 작은 창문이 하나 보였다. 창문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창문밖을 살피는 순간 나는 뭔가 머리를 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지만, 자세히 보니 내가 본 
것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창문너머로는 과수원이 보였다. 산등성의 비탈에 있는 과수원이라 작은 창
밖으로는 병풍처럼 펼쳐졌다. 
저멀리 나무들 사이로 언덕위에 작은 둔덕이  하나 보였다. 무슨 성황당같
고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파헤쳐졌는지 그 둔덕은  지저분하게 붉은 흙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본 후, 그 둔덕이 무엇인가 충격과 함께 알게 되었다.
무덤이었다.
무덤이 파헤쳐져 있는 것이다. 
재원이 편지대로라면, 지희라는 여자의 어머니, 즉 이 과수원  주인의 부인
은 몇 년전에 죽었다고 했다. 그럼 그 무덤은 이 근처 어디있을 것이 분명
했다. 아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그 무덤 같았다.
지희라는 여자는 여기서서 자기 엄마의  무덤이 파헤쳐진 것을 봤을  것이
다. 또 의문이 떠올랐다. 
누가, 언제, 무슨 목적으로 무덤을 파헤쳐 것일까?
또 지희라는 여자는 그 파헤쳐진 무덤을 보고 그렇게 큰 충격을 받았을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정화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한씨, 여기 보세요!
  이거 혹시...."

정화씨가 가르킨 곳은 부엌  바닥이었다.후레쉬 불빛에는  보이지 않다가 
창문을 뜯어낸 후 빛이 들어와 발견된 것이다.
바로 뼈들이었다.
누가 태웠는지 재들사이에 하얀 뼈들이 보였다.
너무 이상했다. 살인 사건이 난 후 경찰들이  다 조사한 후 폐쇄한 집일텐
데 어떻게 뼈가 발견된 것일까...
그 후에 무엇인가 들어와 사람을 태워 뼈만 남긴 것인가...
정화씨는 혹시 재원이가 그렇게 된것인가 놀라고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했
다. 나도 설마하고 그 뼈를 살펴보았지만, 재원이의 뼈라기엔 너무 작아 보
였다. 의학상식이 없이 이것이 어떤 연령 사람의 뼈인지, 어느 부위 뼈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정화씨를 안심시키기 위해 마치 아는 것처럼 설명했
다.

  "정화씨 걱정마세요..
  이 뼈들은 재원이 것일 리가 없어요.
  너무 작고, 대충 보니 적어도 한달 정도는 되 보이는데요...
  이제 이 기분나쁜 집을 나가죠..
  과수원도 둘러봐야 되고, 여기 더 있단 무슨 일을 당할 것 같아서요.."

나는 정화씨를 진정시키고 뒷문을 뜯어내고 과수원으로 나왔다. 그 버려진 
집의 뒷문을 나서자 마자, 가슴이 답답한 것이 탁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많은 시간을 안에서 보냈는지 어느새 바깥은 어둑어둑해졌다.
그 안에 있는 동안 기라고 ㅃ앗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 집이 아직도 무시무시하게 서 있었다. 
꼭 지옥에서 나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불길하게도  그 집에 다시 돌아가야
할 것같은 예감같은 것이 느껴졌다.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질척이는 길을 밟으며 부엌에서 보이던 그 무덤으로 향했다.
과수원은 그 동안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나무들
이 다 죽어서 음산한 기분까지 느껴졌다.
정화씨는 집안에서 발견된 뼈들이 아직도 마음에 걸리는지  찜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덕까지는 금방이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역시 과수원 주인의 아내 묘였다.
집과 가깝게 무덤을 둔 것을 보니, 과수원  주인의 아내 사랑의 깊음을 느
낄 수 있었다. 시간날때마다 무덤에 와보고, 잘 돌보려고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잘 꾸며논 그 묘가 사정없이 파헤쳐진 것이다.
두려움을 억누르고, 무덤 가까이 다가갔다. 
무덤이 파헤쳐진지는 꽤 오래된 것 같았다. 
파헤쳐진 무덤안을 보는 순간, 머리속이 멍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석관뚜껑이 열려져 있고 무덤안은 텅비어 있던것이었다.
썩은 시체를 생각하고 다가갔는데 비어 있었던 것이었다.
파헤쳐진 흙에 벌써 듬성듬성  풀이 난 것으로 봐,  꽤 오래전에 파헤쳐진 
것 같았다.
그럼 이 안에 시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도무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알아내면 알아낼수록  점점 복잡해지고 있었
다. 경찰이 살인 사건이 났을 때, 이 무덤이 파헤쳐 진 것에 대해서는 조사 
않했을 리가 없는데...
어두워져서 후레쉬 불빛이 필요했다. 후레쉬를 켜고 무덤 주위를 살펴보았
지만 특별한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정화씨도 파헤쳐진 무덤을 보고 몸서리를 치면서,  지금은 빨리 여기를 내
려가고 다음날 밝아지면 다시 오자고 했다.
산촌이어서 그런지, 날이 흐려서 그런지 순식간에 사방은 어두워졌다.
어두워지니 나도 겁이 나기 시작했다.
서둘러 내려가려는데, 후레쉬 불빛에 언덕 저편에 무언가가 언뜻 보였다.
자세히는 못봤지만, 괜히 마음에 걸렸다.
그것만 살펴보고 가자고 정화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쪽으로 향했다.
무덤에서 50여미터 쪽에 있었다.
다가가보니 돌을 쌓아놓은 돌무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을 보니 음침하고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성황당같이 생겼는데, 과수원 한복판에 이런 것이 있는 것이 이상했다.
주위를 살펴보니 나뭇가지에 울굿불굿한  천도 걸려있고 기분나쁘게  생긴 
부적같은 것도 보였다. 사람의 손이 한참 안 갔는지 지저분해 보였다.
고대 종교에서나 볼 수 있는 무슨 의식을 치뤘던 제단처럼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쌓아놓은 돌이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후레쉬를 비춰서 살펴보니, 돌들이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피 같았다.
영문을 몰랐지만, 등골이 오싹해졌다.
정화씨는 사방이 깜깜해지고, 분위기 역시 심상치  않자 빨리 내려가고 싶
은 눈치였다.
내 상식으로는 이것이 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오늘은 이정도로 그만
하고 내려가는 것이 낳을 것 같았다. 
이제 주위는 완전히 어둠에 쌓였다.
어디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 였다.
그 버려진 집도 저편에 우리를 과수원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처
럼 서있었다. 
불길한 기분을 지우며 우리는 과수원을 내려왔다.
서둘러 내려오는데, 갑자기 정화씨가 '아야!' 하면서 넘어졌다.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진 것 같았다.
나는 괜찮냐고 물어보면서 후레쉬를 비춰보았다.
그런데 정화씨가 걸려 넘어진 것은 나뭇가지가 아니었다.
피투성이의 사람의 팔이었다.....

...정화씨는 자기가 걸린 것이 피투성이 사람손인 것을 알고 비명을 질렀다.
날카로운 비명소리는 산을 메아리 쳤고, 나는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흔들리
는 후레쉬 불빛에 비친 그 손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막 도망가려는 정화씨를 진정시키고, 그 손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후레쉬 불빛에 창백해 보이는 것을 보니, 산 사람의 손 같지 않았다.
팔꿈치부터 떨어져 나간 사람 손이었다.
천천히 손 주위를 비쳐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손의 주인은 5미터 떨어진 저편에 엎어진 채로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엎어져  있는 모습이, 한눈에 봐도  시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화씨는 팔이 잘려나간 시체를 보고 거의 기절할 것처럼 놀랐
다. 나는 시체보다 정화씨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더욱 섬뜩했다.
정화씨를 꼭 붙잡고 그 시체쪽으로 다가갔다.
언뜻 봐도 거구의 시체였다.
비가 내려 풀잎에 떨어지는 '후드득'하는 소리는 마치 누군가가  풀잎을 해
치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시체쪽으로 다가가게 되었다. 
그 팔이 잘린 시체를  가까이에서 보니, 머리가 짧고  군복같은 것을 입고 
있는 것을 군인같았다. 다른 손 옆에는 피묻은 낫이 떨어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쳐지나 가는 것이 있었다.
이번 연쇄 낫 살인사건의 용의자라는 그 탈영병....
그 생각이 나자, 역시 이 사람은 범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을 죽인 사람이 진짜 살인귀라는 생각이 뒤따랐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쫙끼치며 무서움이 느껴졌다.
시체가 여기서 발견된 것을 보니 그 살인귀가 이 근처를  배회한다는 것이
었다. 나는 덜덜 떨면서, 뒷걸음질쳤다. 정화씨도 거의 무서워서 울면서 시
체로 부터 멀어지려고 했다. 빗소리는 어둠속에서 무언가가 우리들에게 접
근하는 소리 같았다. 그 순간 사방이 번쩍하면서  귀가 떨어질 것 같은 천
둥소리와 함께 사방이 밝아졌다. 번개였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무서워서 미치는 줄 알았다.
사방이 환해지는 순간 우리 앞에 여러명의 사람들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모두 쾡한 눈으로 우리를 빤히 보고 있었고,  한 손에는 피묻은 낫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피투성이였고, 국민학생 또래의 꼬마애와 군복을 입고 
있는 장교, 그리고 중년의 남자도 있었다. 그 중에는 흰 옷에  머리를 풀어
해친 여자도 보였다. 
그들은 바로 그 과수원에서 죽음을 당했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극도의 공포심을 느껴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짧은 순간동안 나는 모든 것을 봤고, 죽음과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어두워지는 순간 그들이 낫을 들고 우리를 덮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을 보는 순간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온 몸에 비에 젖고 진
흙투성이가 된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정화씨의 손을 잡고, 우산을 팽
개치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뛰기 시작했어요. 정화씨는 나의 돌
연한 행동에 움찔하면서, 열심히 따라왔다. 나는 정화씨의 손을  잡고 미친 
듯이 과수원을 내려왔다. 비가 떨어지는 후드득  소리는 마치 뒤에서 그들
이 낫을 들고 쫓아오는 것 같았다. 몇번을 넘어지고  과수원을 벗어났지만, 
그 버려진 집이 우리 앞에 버티고 있었다.
나는 그 집을 보고, 무서움을 느꼈다. 정화씨가 힘들어하는  것은 신경쓰지 
않고 무조건 뛰기만 했다.
내 머리속을 채우고 있는 생각은 오직 여기서 빨리 벗어나야  된다는 것이
었다. 어느새 우리는 그 과수원 집을 벗어나 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숨이 차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멈췄다. 정화씨는  너무 고통스러운 
것 같았다. 숨이 넘어갈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일한씨, 허헉... 도대체.. 헉
  무슨.. 일인데.. 허헉 갑자기... 도망치듯이.. 달린거예요?
  허헉... 놀라고.. 헉헉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나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정화씨에게  그들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지 
못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정화씨는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하면서 오히
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럼 그들은 내눈에만 비쳤단 말인가?
나도 미쳐가는 것인가?
비를 맞으면서, 만감이 교체했다. 정화씨가 다시 말을 걸때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정화씨에게 괜찮다고  얼버무리며, 우선 
경찰서로 가자고 했다. 우리가 발견한 시체에 대해  신고를 해야 할 것 같
았다. 우산을 거기 내팽기치고 왔기 때문에, 비를 다  맞으면서 파출소까지 
찾아갔다. 시골의 작은 파출소인데도 이번 살인 사건때문인지 경찰과 헌병
들로 붐볐다. 온몸이 젖고 진흙투성이의 우리가 경찰서 문을 여는 순간, 모
두들 하는 일을 멈추고 우리를 돌아보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옆에서 우리
를 보고 있는 경찰에게 시체를 발견했다는 것을 얘기했다.
과수원에서 발견했다는 말에, 모두들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알지 말
아야 할 것을 알게된 것 같은 표정들을 지었다. 그 어색한 적막을 이번 수
사의 책임자같은 사람이 깼다.

  "모두들 뭐하고 있는 거야?
  빨리 움직여! 저 안내 좀 해 주시죠."

그곳으로 돌아가긴 싫었지만,  책임자의 강압적인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나도 경찰과 헌병들과 그곳으로 다시 출발했다.  추위와 두려움에 떨고 있
는 정화씨는 여관으로 돌아가 몸좀 말리라고  했지만, 혼자 돌아가기 무섭
다며 파출소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같은 차에 탄 그  책임자는 자기를 김반장이라고 소개했다.  원래 이 마을 
출신인데, 진급해서 지금은 연천시에서 강력계 반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작달막하고 고생에 찌든 듯한 40대였는데, 경찰이어서 그런지 눈빛만은 날
카롭고 평범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자기 소개를  마친 뒤 대뜸 우리에 대
해서 물었다.
어쩌면 당연한 질문일지도 몰랐지만, 나는 그 질문을 받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여기 온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막막했다. 낮에  동네 
아주머니에게 했던 거짓말은 김반장에게는 통할 것 같지 않았다.

 "저... 얼마전 여기로 의료조사왔던 친구가 사라졌거든요.
 그래서 그 친구를 찾아보려고요..."

내가 생각해도 좀 엉뚱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김반장은 놀라지도 않고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달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대략적인 얘기를 했다.
재원이란 친구가 여기서 과수원에 있었던 살인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뭔가 
조사하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며칠전 병원에서 사라져서 혹
시나 하고 여기로 찾으러 왔다고 했다.  물론 재원이의 편지에 묘사되었던 
귀신이나 내가 목격했던 그 끔찍했던 모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과수원 살인사건에 대해 말을 꺼내자 그 김반장의  표정이 굳
어졌다.

 "그런 일이 또 있었군..... 이상해...."

뭔가 알고 있는 듯한 혼잣말을 지껄인 후, 이내 전형적인 경찰의 모습으로 
돌아와 내게 그 시체의 발견경위에 대해 물어보았다.
막 설명을 하려는데, 어느새 그 버려진 집에 도착했다.  걸어가면서 얘기하
자며, 그 반장은 우산을 피고 앞장섰다. 속속들이 경찰과 군 관계자들이 도
착했다. 헤트라이트 불빛은 받은 그 집은 정말 무시무시하게 보였다.
나는 떨리는 것을 참으며, 김반장을 내가 시체를 본 것으로 안내했다.
시체옆에 우산을 버리고 왔기 때문에 한눈에 그 자리를 찾았다.
시체는 우리가 발견한 그대로 있었다. 잘려진  팔도 비를 맞으며 제자리에 
있었다. 장교하나와 김반장이 비닐장갑을 낀채로 그 시체를 뒤집어봤다.
생각했던대로 그 시체는 탈영병이  맞았다. 후레쉬 불빛에  비쳐진 뒤집힌 
시체는 죽은지 얼마 안되는지 아직도 혈색이 도는 것 같았다.
죽을 때 심한 고통이 있었는지, 얼굴을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졌고 눈은 뭔
가 무서운 것을 본  것처럼 크게 떠져 있었다.  경찰들은 조심스럽게 옆에 
버려진 낫을 수거했다.
그런데 헌병 책임자로 보이는 장교와 김반장이 언쟁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
다. 그 둘은 점점 언성을 높이더니, 급기야는 김반장이 "당신 마음대로 해! 
나는 책임 지지 않겠어!"라고 소리쳤다.
그러더니 김반장은 조사도 끝나지 않았는데도 차로 돌아갔다.
그 장교는 김반장이 자리를 떠나자, 헌병들을 지휘해서 일사분란하게 자리
를 정리했다. 시체와 팔, 그리고 낫을 조심스럽게 운반하여  따라온 엠블란
스로 옮겼다. 김반장을 따라온 경찰들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 뒤를 
따랐다. 멍하니 서있는 나에게 한 경찰이 다가오더니 수고했다며 타고왔던 
차에 타라고 했다. 서로 가서 목격자 진술만 하면 다 끝나니 조금만 더 수
고를 부탁한다고 했다.
김반장이 타고 있던 차로 다가가는데, 그 장교가 차안에 김반장을 향해 느
믈거리는 표정을 하며 말했다.

 "김반장님, 화 푸세요...
 아까 말한 것처럼 시체는 읍내병원에서 부검하지요. 의사는 우리 부대 군
 의관으로 하고, 피묻은 낫을 서울로 보내서 검사하죠..
 그리고 내일중에 보고서를 보낼테니 동의해 주세요.
 언론에는 군 통제하에 알리는 것으로 하시죠.
 그럼.... " 

대충 들어보니, 수사 주도권 다툼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차에 타니 김반장은 씩씩거리며 그 장교에 대해 욕하고 있
었다.
 
 "나쁜 놈들, 아예 소설을 쓰고 있군! 소설을!
 뭐, 미쳐서 사람을 둘이나 베어버리고, 자기 팔을 잘라 자살한 것이라고!
 그리고 수사는 그렇게 종결하고, 언론에도 그렇게 알리자고!
 나는 앉아서 박수만 치라고....
 나쁜 놈들....."

김반장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군대측에서 탈영과 살인의 의미를 축소하
기 위해, 그 탈영병은 정신병자였고 결국엔 자살한 것으로 마감하려 한 것
같았다. 김반장의 불편한 심기때문인지 차안에 탄 사람들은 조용히 있었다.
씩씩거리던 김반장은 돌연히 내게 질문을 던졌다.

 "일한씨라고 했죠?
 그래서, 그 친구의 단서는 찾았나요? 
 이 마을에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낯선 사람들은 모두 확인해봤는
 데, 일한씨 친구같은 사람은 없었는데....
 그건 그렇고 그 친구 힘은 쎄요?"

갑작스런 김반장의 이상한 질문이 마음에 걸렸지만, 솔직이 대답했다.

 "그 친구 의대생이라 힘이 그렇게 쌘 것 같지는 않은데요..
 운동도 별로 안 좋아하고...
 그런데 그건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고...
 그래 차도 끊겼는데, 묵을 곳은 찾았소?"

김반장은 나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말을 딴 쪽으로 돌렸다.
차는 파출소에 도착했다.
정화씨는 오늘 하루가 너무 힘겨웠는지, 소파에 쪼그리고 자고 있었다.
나는 김반장에게 부탁해서 담요를 정화씨에게 덮어주었다.
책상에 앉아, 나는 시체를 목격한 것에 대해간단히 진술했다. 물론  그 버
려진 집안으로 들어간 일은 빼고, 단지 재원이를 찾아 과수원 근처를 헤매
다가 그 시체를 발견했다고 했다. 김반장은 내 얘기를 듣는등 마는등 하더
니, 이제 가보라고 했다. 나는 정화씨를  어렵게 깨워 여관으로 나섰다. 김
반장은 나가는 나를 보고 의미있는 한마디 했다.

 "일한씨, 조심해요...
 이런 시골에서는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요......
 그리고 그 재원이란 친구를 우리가 발견하면 꼭 연락해 주겠소..."

그리고는 파출소안에 사람들을 모아 무슨 회의를 시작하려 했다.
나는 가만히 서서 김반장의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 말에 담
긴 뜻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찝찝함과 함께 파출소문을 나서는 내뒤로 
김반장의 풀죽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들 모두다 수고했어요.
  이제 다 끝난 것 같으니, 짐 챙겨서 떠날 준비하세요.
  나는 여기서 며칠 있다 갈테니, 먼저들 시로 출발해요.
  서장님에겐 이 사건 뒷처리한다고 내가 보고할테니......."

비는 아직 내리고 있었다. 경찰에게 빌린 우산을 쓰고 우리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여관으로 향했다. 정화씨는 도대체 오늘 우리가 보고 겪은 것이 무
엇이냐고 내게 물었다. 솔직이 나도 대답할 수 없었다.
재원이를 찾아 여기에 왔지만, 재원이에 대한  단서라곤 그 집에 새겨놓은 
글밖에 못찾았고,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정화씨가 너무 
지친 것 같아, 내일 첫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라고 했다.
정화씨는 좀 갈등하는 것 같더니, 생각해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여관에 들어가 맡긴 짐을 찾고, 부탁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우리를 대하는 여관 주인의 태도가 좀 이상했다. 낮의 친절함과달
리 우리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마치 우리가  달갑지 않은 불청객처럼 대했
다. 흘끔흘끔 우리를 보는 눈치가 기분나쁠 정도였다.
우리는 애써 개의치 않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정화씨에게 혹시 모
르니 문단속 잘하고 자라고 했다. 푹자고 내일 보자고 하고, 내방으로 들어
왔다. 방에 들어오자 마자, 지저분한 화장실에서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면
서, 오늘 있었던 많은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마치  암흑속에서 조각조각들
을 찾아 맞추는 것 같았다. 뭔가가 연관이 있을 것 같아  보이면서도, 도무
지 알 수 없는 것 같았다.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웠다. 얇은 벽을 통해 들어오는  빗소리가 귀를 
거슬렸다. 몸은 몹시 피곤했다. 하지만 잠이  잘 않았다. 잠을 애써 이루려
는데, 아까 그 집에서 본 졸린 눈의 사람 머리와 과수원에서 본 낫을 들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갑자기 소름이 쫙 끼치면서, 그  사람들이 여관 방안에 나타날 것  같았다. 
부끄럽지만 무서움이 느껴졌다. 
그 두려움을 쫓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쾅쾅'하고 문 두들기는 소리에 잠이 깼다.  밤새도록 그 사람들에 대한 악
몽에 시달렸는지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았다. 
잠시 잠을 깨고 문을 열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정화씨였다. 정화씨는 다급하게 누군가가 우리를 찾아왔
다는 것이다. 아직도 잠결에 있었던 나는 그 얘기에 확 잠이 깼다.
누가 우리를 찾아오다니....
좀 이상했다. 이 마을에 아는 사람이란 어제 만난 김반장뿐인데...
아침부터 우리를 찾아온 사람이 있는 것이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정화씨 말로는 아침에 여관주인이 어떤 사람이 우리를 찾는다고 했다는 것
이다. 나는 잠시 시간을 달라고 하고, 나갈 채비를 했다.
준비를 하면서 생각해봤지만 머리속이 혼란스러워지기만 했다.
방안을 나서니, 정화씨가 안절부절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두려움에 떠는 것 같았다.  얼굴을 보니 피로가 가득해 보였다.  나는 
혹시나 하고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잇었냐고 물었다.

 "...사실 어제 한숨 못잤어요.
 믿으실 줄 모르지만, 어제밤에 재원이 오빠를 봤어요.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재원이 오빠의 모습을 봤어요.
 그런데, 평소의 모습이 아니라 피 투성이가 된 모습이었어요.
 광기어린 눈빛하고 살기어린 표정, 오빠같지가 않고 너무 무서웠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잠을 못 이루었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정화씨는 정말로 무서운 것을 본 사람처럼 얘기했다.
나 역시 섬뜩함을 느끼고 있는데, 여관주인이  밑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
를 들었다. 아침부터 찜찜한 기분을 느끼며  우리를 찾아왔다는 사람을 만
나러 내려갔다.
주인은 우리가 늦게 내려온 것에 대해 짜증스러운 표정과 함께  여전히 불
쾌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인 옆에는 작은 키의 여자아이가 서있었다.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언뜻보기에 이상하게도 여관주인이 어려워하는 것처
럼 보였다.
그 아이는 우리를 보자마자, 귀에 거슬릴정도의 높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친구를 찾아왔죠. 그 의대생.
 우리 엄마가 당신들 보고 싶대요.
 따라와요."

냉랭한 목소리로 말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장섰다.
가까이서 보니 그 아이처럼 보인 여자는 아이가  아닌 것 같았다. 어른 같
기도하고 애같기도 하고 잘 구분이 안가 보였다. 어투도 좀 이상하고, 보통
사람같지는 않아 보였다.
우리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그 여자뒤를 따라갔다.
비는 지겹게도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치는 마울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경계하는 것 같았다. 뭔가 우리에 대한 나쁜 소문이 
벌써 마을 사람들 사이에 퍼진 것 같았다.
그 여자는 우리를 한적한 곳으로 데려갔다. 
한참을 따라가다가 보니,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 집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집장식이 울굿불굿한 것을 보니 무슨 무당집같았다.
 
  "들어가요."

그 여자는 다시한번 냉랭한 목소리로 우리를 방안으로 안내했다.
우리가 들어간 방은 생각보다 컸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붉고 푸른 귀
신의 나무 조각들었다. 보살이나 부처의 상도 보였다.
생각했던 것처럼 무당집이었다.

  "여기와서 앉아."

저 방끝 그늘속에서 굵직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무슨 마법에 홀린 것처럼 그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서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볼 수가 있었다.
나이는 종잡을 수 없지만, 짙은  화장뒤의 숨겨진 주름살로 보아  5,60대로 
보였다. 하지만 그 눈매는 범상치 않았고,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풍겨내고 
있는 무당이었다.

  "어허.. 남자는 귀(鬼)에 쌓여있고, 여자는 살(殺)을 보고있어...
  너희들, 친구를 찾아왔지.
  변해버린 친구.
  그 친구는 과수원에서 변해버렸지...."

그 무당 할머니는 다짜고짜 이해할 수 없는 애기를 시작했다. 나는 조심스
럽게 물어봤다.
 
  "저... 무슨 일로 저희를 부르셨죠?"
  
그 무당 할머니는 휴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좀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
를 시작했다.

  "벌써 마을엔 너희 얘기가 쫙 퍼져있어.
  귀신을 데리고 이 마을에 왔다고..
  사실 모든 일이 내 책임이야..
  그런데 두려워서 아무 것도 못하고 이 지경으로 만들었지.
  내 얘기를 잘 들어. 아마 친구를 찾는데 도움이 될꺼야.
  그때 병식이 부탁을 들어주지 말았어여 하는데.
  과수원 주인 병식이는 어렸을 때 부터, 이 집에 놀러오곤 했어.
  남들은 다 무서워하고 꺼려하던 무당을 스스럼없이 대하고
  내 말상대가 곧잘 되주었지.
  결혼 후에도 부인과 함께 가끔씩 인사하러왔지.
  지희, 지철이가 태어나고 자라고...
  참 행복하고, 보기좋았지.
  그런데,병식이 안사람이 시름시름 앓다고 죽었어.
  그때 병식이 참 슬퍼했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어.
  그래도 자식들 때문에 정상으로 돌아왔어.
  병식이는 제어미 쏙 빼닮은 지희에게 온갖 정성을 다했지.
  항상 자랑하고 다녔지.
  자기 딸이 마을 최고의 신부감이라고.
  그러더니 그 사랑스런 딸이 안중위라는 군인과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지.
  그때 병식이가 나를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놓았지.
  지희가 시집가서 행복해지는 것은 좋은데, 너무 허탈하고 외롭다는 거야.
  그러더니 덜컥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주문을 해달라는 거야.
  나는 무슨소리냐고 화를 냈지.
  그런데 병식이는 용케 기억하고 있었어. 병식이가 중학생일 때, 내어미 
  무당이 죽었지. 죽어가면서 내게 남긴 주문이 있는데 죽은 사람을 살려
  내는거야.
  너희들은 믿지 않겠지.
  과학을 신보다 중요시 하는 놈들이니까.
  그 주문은 너무 위험하고 비밀스러우니 일생에 단 한 번만 쓰고, 죽기 
  직전에 내 딸에게 넘겨주라며 어미가 남겼어.
  어미말로는 이 주문을 걸며, 죽은 사람이 밤마다 무덤에서 나와 주문을
  건 사람앞에 나타난다는 거야. 대신 절대로 다른 사람이 보면 안되고,
  당사자 이외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야 성공하다고 했지.
  그 주문을 받고, 어미가 죽었을 때 나도 처음으로 슬픔을 느꼈지.
  그때 병식이가 옆에 있어주었지. 아마 그때 내가 무의식중에 그 주문
  얘기를 했을꺼야.
  병식이는 그 얘기를 기억하고 있던 것이고, 나를 졸라대기 시작했어.
  나는 완강히 거절했어.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주문은 분명히 마가 낀다며. 그래서 평생 한 번
  밖에 쓸 수 없다는 거라며.
  하지만 병식이는 막무가내였어. 그때부터 매일 나를 찾아와 울고 애워하
  고 부탁했지. 
  그때 딱부러지게 거절했어야 하는데. 
  다 내 업보고, 내 실수지.
  하도 애원하니까 내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어.
  그리고 나도 그 주문을 죽기 전에 한 번 써보고 싶었거든.
  결국 병식이에게 넘어갔지.
  그날부터 병식이에게 그 주문의 절차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었지.
  나는 이제 다리를 못써 내가 직접 주문을 걸수가 없었지.
  병식이는 안사람을 되살릴 수 있다는 것에 빠져들어, 딸애 결혼준비에도
  신경 않쓰고 여기에만 매달렸지.
  이런 큰 주문에 몰두하게 되면, 당사자의 기가 빨려 들어가 위험하게 되
  는데, 병식이가 그런 것 같았어.
  점점 성격도 비밀스러워지고 포악해지는 것 같았어. 
  나도 변해가는 병식이의 모습을 보니 슬슬 겁이나기 시작했어.
  하지만 이미 막기는 너무 늦었었지.
  주문을 건다는 그믐달 밤, 나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병식이의 결과를 
  기다렸지. 
  그런데, 그날밤 악귀의 기가 갑자기 느껴졌어.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그 과수원의 몰살에 대한 얘기를 들었지.
  나는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때 후회해봤자 소용없었어.
  그런데, 그 살육이 평범하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어.
  내 주문이 엉뚱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 후에도 그 집에 얽힌 여러 가지 혼귀얘기를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지.
  그거 알아? 무당은 아무리 신통력이 있어도, 누군가가 부탁해야
  굿이나 주문을 걸어 잡귀를 쫓을 수 있어.
  남의 부탁 없이 자기 뜻대로는 신통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무당의 숙명이야.
  그런데 아무도 그 집의 악귀를 쫓아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없었어.
  다리를 못쓰게 되어, 이 방밖으로 나가보지 못한지가 벌써 10년째니,
  그 집에 가볼 수도 없었지. 아무도 무당을 도와주려 하지 않거든.
  자기가 무당이 필요하기 전까지는...
  여하튼 그래서 그 집에 어떤 악귀가 있고, 
  왜 온가족이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지.
  그 집에 관한 무서운 얘기가 돌고, 미쳐버린 지희가 자살하고,
  서울에서 온 의대생이 그 집에 들어갔다 미쳤다는 얘기도 들었지.
  그리고 주순경이 그 집을 태우려다가 자기가 불타죽었다는 얘기도.
  그 집에 분명히 무시무시한 악귀가 서려있어.
  그런데 알 수가 없지.
  너희들이 믿을 지는 모르지만, 내 얘기는 끝났어.
  내가 너희들은 부른 이유는 그 집에서 미쳐나간 너희 친구를 찾기 위해
  서는 너희들도 너희 이야기를 내게 해줘. 
  너희들이 그 집에서 본 것, 친구가 그 집에서 겪은 일들. 
  나도 그 집에 대해서 책임이 있거든."

나는 그 할머니 무당의 얘기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죽은 사람을 살
려낸다는 등, 악귀가 서려있다는 등, 자기에게 얘기하면 재원이를 찾아준다
는 듯이 얘기나 하고, 그냥 통속적인 무당 사기꾼의 얘기 같았다.
하지만, 옆에 정화씨는 그 무당의 말을 거의 믿는 것처럼 진지하게 무당의 
얘기를 듣더니, 우리 얘기를 들려주었다.
재원의 편지 얘기서부터, 우리가 그 집과  과수원에서 본 것들을 상세하게 
얘기했다. 가만히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속는셈치고 얘기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내가 그 집과 과수원에서 본 귀신의 모습도 얘기해 주었다.
하긴 이런 얘기를 믿을 사람은 그 무당할머니 밖에 없어 보였다.
우리의 얘기가 끝마쳐지자, 그 무당 할머니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처음의 당당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병식이가 건 주문은 확실히 잘못되었어.
 그 무서운 것을 살려내다니.
 너희들, 친구 찾는 것 포기하고 빨리 이 마을 떠나!
 내 죄고 업보이다. 
 저승에 가서 어미 얼굴을 어떻게 볼꼬.
 아아......"

무당 할머니의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떠나라고 하기에 나는 지루
함을 못이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정화씨는 정반대였다.
재원이를 걱정하는 것  때문인지 너무 진지했고,  무당 할머니에게 애원을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 아까 그러셨죠. 
  부탁하는 사람이 없어 그 집의 악귀를 못ㅉ는다고.
  그럼 이러면 어때요?
  내가 할머니께 그 집의 악귀를 쫓아달라고 부탁하는거예요.
  그리고 재원이 오빠도 찾아달라고...
  할머니도 뭔가 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정화씨는 필사적으로 부탁을 계속했다. 재원이를  걱정하는 정화씨의 마음
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쓸데없는데 신경쓰고 부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
었다. 그 무당은 처음에는 거절했다. 이제는 자기힘으로도 어쩔 수 없다며.
하지만 정화씨의 집요한 부탁과 애원으로 결국에는 한 번 해보겠다고 승낙
했다. 대신 자기가 몸이 불편하니까 오늘  하루종일 우리에게 준비를 도와
달라고 했다. 나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고 일어나려 했지만,  정화씨가 선
뜻 승낙해버렸다. 정화씨는 자기는 여기서 일할테니, 나보고는 하기 싫으면
딴데가서 재원이를 찾아보라고 했다.  난처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러기는 
싫고. 울며 겨자먹기로 나도 남아서 의식의 준비를 도와주기로 했다.
한 번 결심을 하자 그 무당 할머니는 전혀 딴 사람을 변했다.
찹쌀과 보통쌀을 물에 깨끗이 씻어 장작불을 피어 밥을 짓으라는 등, 수탉
의 피를 구해오라는 등, 준비를  위해 별의별 일을 다했다. 무당  할머니는 
방에 틀여박혀 주문인지 지방인지 뭔가를 계속해서  쓰고 있었다. 내가 장
작을 패고 있을 때, 정화씨와 여기사는 여자는 밥과 음식을 준비했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어두워지자 그 무당 할머니가 일을 중단시켰다.

  "자들 수고했어.
  거의 준비 다 되었으니, 내일 아침에 와서 마무리를 짓도록.
  의식은 내일 밤이야.
  잘되면 그 악귀도 저승으로 끌려가고, 너희 친구도 찾게 될꺼야.
  잘 못되면, 이승을 떠날 수도 있지."

불길한 말을 들으며, 우리는 그 집을 떠났다. 하루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
다. 분명히 사기같은데, 왠지 모르게 나도 이런 일에 빠져들고 있는 느낌이
었다. 처음에는 분명히 이런 의식에 콧웃음을 쳤는데, 오히려  내가 준비를 
돕다는 이상했다. 정화씨는 이 의식에 뭔가 기대하는 눈치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데..
여관으로 돌아오다가 우연히 김반장을 만났다.

 "아직들 안갔군... 
 비가 많이와서 저수지가 넘치면 다리가 끊겨 이 마을에서 떠날 수 없게된
 다고.... 빨리 떠나는 것이 좋을걸.. 
 이 정도로 비가 오면 내일이면 저수지가 넘칠 것 같은데..
 나는 여기서 그 핑계로 한참 쉴 생각이요.
 자, 나는 동네 친구들과 술한잔 약속있어서...
 내 말 명심해요.."

그 말을 듣고 하늘을 쳐다보니, 정말 구멍이 뚫어진 것처럼 쏟아붓고 있었
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떠날 수가 없었다. 정화씨의 기세로 봐선 홍수아
닌, 불이 나도 재원를 찾기전에는 절대로 떠날 것 같지가 않았다.
하루가 피곤했는지, 방으로 들어오자 마자 쓰러져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역시 정화씨가 나를 깨었다.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어제 기억을 더듬으며,  그 무당집으로 
향했다. 날씨 탓인지 괜히 아침부터 불길한 예감이 느껴졌다.
무당집은 아직도 아무도 안 일어났는지 조용했다.
우리는 마당에서 '할머니! 할머니!'라고 불러보았어요. 몇번을 불러봐도, 아
무런 대답이 없자 갑자기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나는 용기를 내어 방문을 
열었죠.
문을 열자마자 무슨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어요. 그나마 있던 춧불도 꺼지
고, 바깥도 어두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우리는 어둠속에서 '무당님,  저희예요' 부르며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면서 
방안쭉으로 들어갔다. 어둠속에 언뜻 보니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묵상하
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우리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묵상에만 잠겨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어두워 잘  안보여, 나는 벽을 더듬다가 찾아낸  스위치를 
켰다. 환해지는 것과 동시에 정화씨의 날카로운 비명이 내 귓전을 때렸다.
그쪽으로 돌아보는 순간 나는 머리통을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
다. 무당 할머니와 그 여자가 피투성이가 되어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무당 할머니는 앉아 있는채로  정수리에 낫이 손잡이까지  푹 박혀있었다. 
눈은 죽기 전의 공포로 가득차있었고, 무당 시중들던 그 여자는 무당 옆에 
난도질당한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있었다.
둘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우리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다.
정화씨의 비명은 계속되었고, 그 비명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나는 정
화씨의 손을 낚아채고 바깥으로 나왔다.
살인마는 탈영병이 아니었고, 아직도 이 마을에  남아서 살인 자행하고 있
다는 것이 생각났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바들바들 떨며,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정화씨를 달랬다.
구역질을 참으며 경찰서로 향하려는데, 마을 방송에서  또 한 번 충격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아 예, 주민 여러분. 저 이장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우려한던 저수지 범람으로 인해 읍내로 나가는 다리가 
 끊겼고, 전화선도 유실되었습니다.
 외부로 나가는 통로가 완전히 차단되고, 연락 수단도 없어졌습니다.
 아무도 이 마을을 벗어나거나, 들어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민 여러분 걱정하지 마시고 기다리십시오.
 곧 정부에서 도움을 줄 것입니다.
 살인범인 탈영병도 죽었는데, 설마 무슨 일이야 나겠어요?......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방송은 내 몸을 얼어붇게 만들었다.
이 마을에서 살인귀와 함께 갇히다니...
사형선고를 들은 기분이었다.
정화씨도 시체들을 본데다 이런 방송마저 들으니, 충격을  받은 것 같았
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할 일은 우선 파출서를  찾아가는 수 밖에 없
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아침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파출소로 가
는 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시체를 목격한 것과  그 방송때문인지 ㄱ가 
숲에서 무언가가 퍽하고 튀어나와 우리를 갈기갈기 ㅉ어버릴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거의 뛰다 시피해서 어제 그 파출서로 뛰어들어갔다.
그러나 이게 원일인가...
그저깨만해도 헌병과 경찰들로 가득찼던  파출소에 아무도 없는 것이었
다. 나는 당황하고 겁이 나서, 누구 없냐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몇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어 너무 황당하고 절망적이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 경찰 한명없다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하고 있는데, 부시럭 소리가 나면서 책상 뒷
편에서 누군가가 일어나는 것이었다.
자고 있었는지 눈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부시시한 모습으로 일어난 
사람은 바로 그 김반장이라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어제 과음을 했는
지 술 냄새를 확 풍기며 아직도 술이 덜 깬 모습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
었다. 나는 웬지 모를 한심함도  느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급하게 말했다.

  "사람이 죽었어요! 사람이!
  무당집에 두명이 죽어있어요! 무당은 머리에 낫이 꼿혀있었어요!!!"

김반장은 처음에 내 말이 무슨 얘기인지 잘 못  알아듯는 듯 했다. 단지 
과음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운지 의자에 아무렇게나 앉더니 주전
자에 있는 물을 들이키더니 다시 어떤 일이냐고 물었다.
다시 차근 차근우리가 무당집에서  발견한 끔찍했던 시체에 대해 얘기
해주자, 그제서야 김반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세면대에 가서 
물을 머리에 끼언고 옷을 고쳐 입고 아까와는 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
다. 그러더니 어디엔가 전화를  걸려고 노력하다가 전화가  먹통인 것을 
알고 욕지거리와 함께 전화를 내던져버렸다. 술에 취해 골아떨어져 전화
선이 유실되고 다리가 끊겨 고립된 상황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식식거리는 김반장에게 홍수얘기를 해주었다. 역시  모르고 있었더니 김
반장은 매우 놀랐다. 나는  다른 경찰은 다들  어디에들 있냐고 물었다. 
내 질문에 김반장은 히스테릭컬한 웃음과  함께 미쳐 생각하지 못한 얘
기를 들려주었다.

  "..하하.. 다른 경찰이라..
  이봐요 젊은이, 이렇게 작은 마을에는 원래 경찰이 거의 없소.
  사실 이 마을에 경찰은 단 두명뿐이요. 아니, 나까지 합해 셋이 되야
  정상이지만, 서순경은 읍내에 나갔으니 두명뿐이지.
  여기는 파출소가 아니예요. 그저 작은 마을에 지서일뿐이죠.
  그놈의 낫 살인사건 때문에 잠시 북적거렸지만, 지금은 다들 떠났고,
  아무도 나가거나 들어갈 수없는 이 마을에는 150여명의 주민과 두명
  의 별볼일 없는 경찰, 당신 두명, 그리고 피에 굶주린 미치광이 살인
  마가 있는거요. 아, 그놈 때문에 마을 사람 수가 점점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김반장님이 뭔가 어떻게 해야 되지 않나요?"

정화씨는 그 얘기를 듣고도 별로  놀리지 않는 듯 꾸물럭거리는 김반장
을 다그쳤다. 김반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부
정적인 얘기를 계속했다.

 "그래야죠. 아가씨..
 하지만 난들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은 뻔하지 않소.
 전화도 안되니 아무런 수사 협조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하나 남은 이
 순경은 집에서 자고 있을텐데 여기서 걸어서 한 20분 거리라 불러오기
 도 수월하지도 않고.. 차도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살고 있고..
 그리고 이 마을은 사실 내 구역도 아닌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안내하슈. 가 봐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겠지 뭐.."

말은 그렇게 해도 김반장은 처음의 탁하고 쾡한  눈빛이 아닌, 날카롭게 
빛나는 형사의 눈으로 돌아왔다. 말도 시니컬하게 하고, 모습도 작고 꾀
죄죄하게 보여도 어딘지 모르게 믿음이 가는사람이었다. 김반장을 데리
고 그 무당의 집으로  나서려 하는데, 갑자기  문이 부서져라 열리더니, 
겁에 질리고 당황한 얼굴의 경찰이 뛰어들어오는 것이었다.

  "반...장..님!!!
  큰 일..이 났어..요!! 사과골 최씨 부부가...낫에 찔려.. 헉헉..
  죽어있는 것이 발견되었대요 ....헉헉
  살인이예요...."

우리는 처음에 우리 귀를 의심했다. 또 살인이라니....
무당집 살인얘기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닌 다른 살인에 대
한 얘기였다.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이 느꼈졌다.
하지만 김반장은 침착하게 사태를  파악하려고, 겁에 질리고  숨이 차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그 젊은 순경을 다그쳤다.

  "이봐! 이순경!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거야?
  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사건에 대해 말해봐!
  천천히!!"
  "죄송합니다. 김반장님.
  제가 너무 당황했습니다. 
  사실 저도 집에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정미소 김영감이 문을 두들기
  는 거예요. 김영감 말로는 아침에 일이 있어 최씨네 갔는데 인기척은
  없고 방문밖으로 피 같은 것이 흘러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는 거예요.
  피를 보니 너무 무서워 가까이 있는 우리집에 와 나를 깨웠습니다.
  나는 귀찮아서 그냥 무시하고 잠을 계속자려고 하는데, 김영감의 겁에
  질린 모습이 마음에 걸렸고, 김영감역시 너무 보채서 못 이기는 척 하
  고 최씨네로 향했죠. 그때 마을 방송을 통해 우리 동네가 고립되었다
  는 것을 알았고..
  최씨네는 김영감 말대로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어요. 방문앞에는 말그
  대로 시뻘건 핏물같은 것이 흘러있었습니다. 저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
  지만, 그냥 문을 열었어요.
  문을 여는 순간, 나는 지옥에 들어온 기분이었습니다.
  작은 방 사방에 피가튀어 있었고, 최씨와 부인이 처참하게 피투성이
  가 되어 죽어있었어요.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대충 보니 부인
  은 누워있는 상태로 목이 따져 있는 것을 보니 자다가 변을 당한 것 
  같았고, 최씨는 벽에 기대앉은 채로 목과 어깨가 심하게 난도질 당한 
  것을 보니 자다가 부인이 죽은 순간 깨어 범인을 보고 죽은 것 같았
  어요. 최씨의 눈은 마치 무슨 악마를 본 것처럼 공포로 가득차있었어
  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치다가 방바닥에 피투성이가 된 낫이 하나 
  떨어져 있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방안은 마치 악마가 낫을 들고 휩 쓸
  고 간 것 같아 보였어요.
  저는 내가 경찰이라는 것도 잊고 김영감과 함께 그 끔찍한 곳에서 뒤
  도 안돌아보고 도망쳤습니다. 김영감은 자기 집으로 갔고, 저는 여기
  로 왔습니다.
  어떻게 해야하죠? 다리는 끊겼다는데..."

이순경의 말은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다른 살인이라니...
이제 그 살인마는 닥치는대로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것이다.
나와 정화씨는 그 얘기를 듣고 우리가 아침에 목격했던 무당 모녀의 시
체를 떠올렸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 같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고 있는데, 김반장이 그 분위기를 깼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침착한 목소리로  이순경에게 앞으로 할 일을 지시
했다.

 "이순경, 어차피 이번 사건은 우리 몫이야.
 다리가 복구되고, 읍내에서 지원이 들어오려면 넉넉잡아 한 이틀에서 
 사흘은 걸릴꺼야. 그때까지 손 놓고 그 놈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볼수
 만은 없잖아! 그러니 뭔가는 해야지...
 이순경은 당장 이장댁에 가서 오늘 발견된 살인사건에 대해 얘기하고,
 가능한 빨리 마울사람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하라고 해. 전화가 불통되었
 으니, 모여놓고 이번 사건에 대해 경고를 해줘야겠어.
 그리고 장정 두세명정도 비닐 하우스에 쓰는 큰 비닐 가지고 무당집으
 로 보내줘. 그리고 고기간 하는 박씨에게 시체들이 들어갈 수 있는 냉
 동고가 있나 물어봐. 이 날씨에 시체를 그냥 놨두면 얼마 안가 흉칙하
 게 썩어버릴테니... 그 일이 다 끝나면,  최씨 집에 가서 다른 사람들이   
 현장을 훼손하지 않게 지키고 있어. 내가 무당집을 조사해 본 뒤 서둘
 러 최씨집 살인 현장으로 달려갈테니...
 그리고 주의할 건 마을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되 무작정 겁을 집어먹지 
 않게 주의하도록. 괜한 소동 일어나면 통제가 힘들어지니까..
 아, 그리고 마을 사람들 모일 때, 집에 쓰는 낫을 들고 모이라고 해.
 그 살인마는 이상하게 낫에 집착하는 것 같으니...
 없어진 낫을 보면 뭔가 단서가 잡힐지도 모르니까...
 또, 지서에 있는 무기고를 열어 옛날 총이라도 좋으니 있는데로 꺼내
 가져와. 나는 권총 한자루 가지고 있으니, 자네나 무장하고 남은 것이
 있으면, 최씨 집으로 가져와.
 쓸모가 있을테니...
 이순경 명심해!
 이번 사건을 해결하고, 마을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사람은 우리 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럼 수고하게..."

김반장은 마치 미리 생각하고 있던 것처럼 일사천리로 이순경에게 명령
하고 멍해 있는 우리를 독촉해 무당집으로 향했다.
빗줄기는 아침보다는 약해졌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다.
김반장의 고물차에 타 무당집으로 향하면서, 나는 그  무당이 우리를 불
러 해 주었던 괴기한 얘기와 우리가 준비했던 의식에 대해 간략하게 얘
기해 주었다. 솔직이 김반장이 우리의 황당한 얘기를 않믿을까 걱정했는
데, 김반장은 진지한 표정을 하고 몇가지 질문까지  하면서 우리의 얘기
를 들었다. 과수원 얘기를 꺼내자 김반장의 표정은  웬지 모르게 심각해 
졌다. 뭔가 생각이 가는 쪽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걸어서는 한참인 거리지만, 비포장 시골길인데도  불구하고 차로는 금방
이었다. 김반장은 무당집 어귀에 도착하자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우리는 뛰다시피 김반장의 뒤를 따랐다. 잰 걸음으로 무당집으로 향하는 
김반장의 뒷모습은 노련한 사냥개를 연상시켰다. 피냄새를 맡은...
무당집은 우리가 떠날때와 변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는 그 방에는 죽어
도 들어가기 싫었다. 다른 것보다도 겁에 질려 있는 그 눈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김반장은 거침없이 그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순간 김반장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반장 역
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곧 반장은  재빠르게 참혹한 현장을 
조사했다. 나는 정화씨와 함께 그 방으로 들어가지 마당에서 기다렸다.
정화씨는 떨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 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사라진 재원이를 찾으로 왔다가 끔찍한 살인사건에 휘말린 것이다. 더구
나 언제 우리가 그 희생양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재원이에 대한 단서가 하나도 없는 것을 봐서, 이 마을에서 재
원이의 그 무언가를 찾으려 한  것은 헛수고 같았다. 대신  엉뚱한 일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김반장의 목소리가 생각에 잠겨있는 나를 방해했다.

 "일한씨! 여기좀 들어와서 이것좀 봐주겠소!"

나는 그 방에 들어가기는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싫었지만, 김반장의 
강압적인 목소리에 어쩔 수 없이 방에 발을 들여놓았다.
방안은 기분나쁘게 우리가 시체를 발견하던 그대로였다.
김반장은 앉아있는채로 정수리에 낫이 박혀 죽어있는 노파 무당의 시체
앞에 서서 골똘히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시체들의 모습은 이미 본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소름이 끼칠정도로 끔
찍한 모습 그대로 였다. 벌써 썩기 시작하는지  고약한 냄새마저 풍기고 
있었다. 구역질을 참으며 김반장에게로 다가갔다.

 "여기 박힌 낫좀 자세히 봐요. 날이 왼쪽을 향해 박혀 있고, 손잡이가 
 오른쪽을 향한 것을 보면, 상식적으로 범인은 오른손 잡이라는 얘기죠. 
 하긴 범인 자체가 상식적인 놈이 아니긴 하지만... 낫을 이용해 사람의 
 두개골을 뚫고 이정도 박는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해 보인는
 데.. 
 그런데 여기 방바닥에 놓여져 있는 낫을 잘 봐요?
 좀 이상하죠?"

나는 김반장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노파 무당의 
정수리 박힌 낫을 보고 범인이 오른손 잡이라는 것을 추측한 것은 이해
했지만, 피투성이가 된채로 놓여있는 다른 하나의 낫을 보고 이상하다는 
것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손잡이  역시 피가 튀어져있고, 누군가가 다 
쓰고 가지런히 놓은 것처럼  낫 놓여있는 것이었다.  의아해하고 있는데 
김반장이 자기 추리를 얘기해 주었다.

 "이 방바닥에 놓여진 낫을 잘 보세요.
 날 끝이 오른쪽을 향하고 있죠. 
 한 번 생각해보세요. 오른손에 낫을 쥐고 사람을 난도질해 죽인 후 그 
 흉기를 가지런히 놓았다면, 낫의 날 끝이 왼쪽을 향해야 되죠. 그런데 
 이 낫의 날끝은 오른쪽을 향하고 있어요. 다시 한 번 상식적으로 생각
 하면 이번엔 범인은 왼손잡이가 되어 무당의 딸을 난도질해 죽인 것이
 예요. 그 후 자랑이라도 하듯이 낫을 가지런히 놓았어요. 왼손으로...
 무당 딸 시체의 상처를 보더래도, 대부분의 상처가 왼쪽에서 오른쪽으
 로 나있어요. 그것은 범인이 낫을 왼손으로 들고 휘둘렀다는 얘기예요?
 혹시 이 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 너무 놀라 낫의 방향을 건드린 것 아
 니예요?"

나는 그제서야 김반장이 얘기하는  것을 이해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 
시체들을 발견할 때 전혀 건드린 것이 없었다. 김반장은 나의 대답에 고
개를 끄덕이면서 자기의 논리를 계속해서 폈다.

 "하긴 여기 놓여진 낫에 튀긴 피자국을 보아도, 누가 움직여놓은 것은 
 아닌 것 같군요. 또한 범인이 살인 직후 낫을 던진 것이 아니고 가만히 
 바닥에 놓았다는 것은 주변에 고여있는 핏물을 보면 알 수가 있어요.
 그럼 생각해보죠.
 결과적으로 그 놈은 무당노파는 오른손을 이용해 낫을 정수리에 꼿았
 고, 무당의 딸은 왼손을 이용해 난도질 했다는 거요.
 놈이 양손잡이일 수도 있고, 아니면....
 범인 두 명일 가능성도 있는거죠...
 그렇게 된다면 문제가 커지는데...
 그리고 그 놈이 이방으로 칩입하고 나간 흔적이 전혀없다는 거예요.
 정밀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육안으로 보면 안에서 잠긴 창문이나, 
 문에는 특별한 흔적이 없다는 거요 그리고 더욱 이상한 것은 방바닥에 
 이렇게 많은 피가 튀었는데 놈의 발자국이 하나도 안 찍혔다는 거요.
 여기서 이렇게 낫으로 내리찍었다면, 피가 사방에 튀고 움직일 때 발작
 국이 나야 정상인데, 여기난 발자국은 우리 발작국밖에 없다는 거요. 
 그 놈은 마치 허공에 뜬 상태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귀신처럼 사라진
 것 같소. 참 이상하죠....
 또 하나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무당은 앉아서 아무런 반항없이 
 당했다는 거요. 그 얘기는 즉 그 살인범은 무당을 알고 있었던 놈 같아
 요. 그러니까 그 놈은 이 방에 들어와 아무런 저항없이 이 무당 노파를 
 오른손으로 죽이고, 겁에 질려 반항하는 무당의 딸을 왼손으로 난도질
 했다는 거요.
 좀 이상하죠?
 두 사람을 죽인다고 가정할 때, 아무리 침착하다고 해도 첫 번째 희생
 자의 머리에다 낫을 박아놓고, 반항하는 두 번째 희생자에게는 낫을 바
 꿔들고 죽였다는 것이...
 그 놈이 양손잡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죠...
 하지만 만약 살인마가 둘이라면....."

김반장의 추리에 나는 한기까지 느껴졌다. 
무자비하고, 치밀하고, 힘도 보통 인간정도를 뛰어넘고,  또 살인을 즐기
는 듯한 살인마가 둘이라는 것이...
김반장은 손에 장갑을 끼고 머리에 박힌 낫을 빼보려고 했으나, 워낙 깊
이 박혀 혼자 힘으로는 꼼짝도 안했다. 시체의  상태가 상할까봐 김반장
은 낫을 뽑는 것을 포기하고,  바닥에 놓여진 두 번째  낫을 조심스럽게 
가져온 비닐봉지에 넣었다. 
그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어가 보라는 정화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순경이 보낸 마을들의 젊은이 네명이 커다란  검은 비닐을 들
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방안의 참혹한 광경을  보고 움직일 줄을
몰랐다. 김반장은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그들에게  소리를 치면서 빨리 
비닐에 싸서 시체를 운반하라고 했다.
그들은 신음소리를 내면서 겨우  시체를 비닐에 싸  운반하기 시작했다. 
김반장은 장소를 훼손하지 말라고 주의 주면서 시체 운반을 지휘했다. 
마을 청년들은 언뜻 보기에도 겁에 질린 모습들이  역력했다. 그들의 표
정엔 죽음의 공포가 보였다.
김반장은 그들을 트럭에 실어 보내고, 잠시 집 주위를 돌면서 뭔가를 찾
았다. 그러더니 마당 한 구석에서 뭔가를 발견했는지 잠시 멈추었다.
어깨 너머로 보니, 거므스름한 흙이 빗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마당은 원래 황토흙으로  덮여 있어, 검은 흙은  눈에 띠었다. 
많지 않은 양이었는지 빗물에  섞여 그리 뚜렷하진  않았지만, 김반장은 
웬지 그 흙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아무 얘기도 않 해주고, 시체가 발견된 최씨네로 향했다. 
최씨네로 가는 차에서 김반장은 우리에게  무당이 했던 얘기에 대해 자
세히 물어봤다. 과수원에서 하려고 했던 의식에 대해 물어봤다. 나는 대
답하기 뭐했지만, 김반장의 진지한 모습에 있는대로 얘기해 주었다.
과수원 주인이 부인을살려내려고하다가  뭔가 무시무시한 것을 살려낸 
것 같다는 황당한 얘기를 했다.  김반장은 그 얘기를 듣고  전혀 놀라는 
기색없이 뭔가 골똘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비오는 시골길을 덜컹거리며 달려 최씨네에 도착했다.
어느새 소문이 퍼졌는지,  많은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김반장을 보고 구세주를 만났다는 듯이 모여들었지만, 뒤 
따라 내리는 나와 정화씨를 보더니  경계와 분노의 눈길을 주는 것이었
다. 김반장은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오늘 저녁 전체  모임에게 자세히 설
명하겠으니, 꼭들 모이라고 하고 사람들을 헤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에는 이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이순경이 구식 칼빈총을 세자루들고 서 
있었다. 김반장은 이장에게 다가가 몇가지  얘기하고, 생각지도 않게 우
리를 마을 이장에게 소개시켰다.

 "이장님, 이 젊은 분들은 학술조사차 이 동네 왔다가
 제 수사를 돕게 된 분입니다. 결정적인 단서도 많이 찾고 능력있는 분
 들입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마을 이장은 김반장의 소개에 미심쩍인 표정을 지었지만, 우리를 경계하
는 태도는 처음에 비하면 거의 없어졌다. 나와정화씨는 엉겹결에 인사
하고 김반장을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김반장은 우리들의 의문스러운 표정을 무시하고 이장과 저녁에 있을 모
임과 사건에 대한 대책에 대해 논의했다. 그리고 읍내와 연락할 길을 반
드시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이장은 모여든  마을사람들에게 다가가 오늘 
저녁 모임에 대해 설명해주고, 각자 맡은 이웃에게  연락을 하라며 해산
을 종용했다. 
김반장은 이장이 자리를 뜨자 우리를  거짓으로 소개한 것에 대해 해명
했다.
 
 "마을에는 당신들이 오고서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당신들이 악귀를 이 마을에 데리고 와,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다
 는.. 겁에 질린 마을 사람들이 혹시 희생양으로 무슨 짓을 저질를까
 이렇게 소개한거요. 오해말고, 혹시 모르니까 좀 주의하세요.
 사람들이 공포에 휩싸이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

김반장의 뜻밖에 경고에 나와 정화씨는 겁이 났다.
그럼 마을 사람들이 이번 연쇄 살인 사건을 우리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것인가... 갑자기 우리를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의  경계의 눈빛이 무서워
지기 시작했다. 김반장은 이순경을  데리고 시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
다. 한참을 방안에서 조사하고 나와서는 김반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며 얘기했다.

 "정말 지독한 놈인 것 같아...
 낫을 이용해서, 사람을 완전히 회를 쳐놨군..
 아무런 주저없이 무시무시한 힘으로 부부를 피떡으로 만들었소.
 그런데 이번에는 왼손만 쓴 것 같아.
 아니면, 왼손잡이만 여기에 왔을지도 모르지...."

그러더니 이순경과 나를 바라보고 지시를 내렸다.

 "이순경은 이 시체들을 가지고 냉동고로 가고, 보건소로 가서 보건의를 
 데려와 시체를 살펴보게 하도록. 뭐 자세한 것은모르겠지만 혹시 새로
 운 것이 나올지도 모르니.
 그것을 다 마치면 지서에서 나를 기다리도록.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지난번 그 탈영병 사건 기록이 있나 찾아봐.
 몇 년전에 있었던 과수원 살인사건의 기록도..
 그리고 일한씨와 정화씨는 나와 함께 갈때가 있소.
 내키지 않으면 그냥 여관에서 쉬어도 좋지만, 친구를 찾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나를 따라다는 것
 이 좋겠소. 뭔가 수사에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친구 문제는 저녁 마을 전체 모임때 얘기해 보면 뭔가 찾을 수 있을지
 도 모르고..."

김반장은 우리의 의향을  물었다. 나는  정화씨를 쳐다보았다. 정화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김반장을 따라나서자고 했다.  여관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기 보다는 차라리 김반장을 따라다니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 같았
다. 
김반장은 여기서도 마당을 조사하다가 아까 무당집에서 본 검은 흙물을 
발견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그 흙물을 살폈다.
그러더니 우리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어디로 가냐는 우리 질문에 단지  어르신을 만나러 간다고 짧게 대답했
다. 한참을 산길을 걷다 보니, 커다란 집이 하나 나왔다.
김반장은 그 집 주인과 잘 아는 사이인지,  어르신이라고 불리는 노인의 
상태를 묻더니 좀 뵈야겠다고  말했다. 집주인 좀  망설이다가 김반장의 
간곡한 요청에 허락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집주인의 얘기에 우리는 대청에서 기다렸다.
김반장은 우리를 보고 어르신이라는 사람에게 대해 설명해 주었다.

 "지금 우리가 만나 뵐 분은 이 마을에 최고 연장자고 이 마을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분입니다. 아마 거의 백세가 다 되셨을테지...
 이 마을에서만 백년을 사신 샘이죠.
 나는 이 분에게 그 과수원에 둘러싼 전해내려오는 얘길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요. 혹시 당신들이 무당에세 들었던 얘기와 재원이란 친구에게 
 들었던 얘기와 뭔가 관련되는 얘기가 나올지 모르니 잘 들어보세요.
 한가지 걱정은 어르신이 너무 나이가 많고 지금 풍에 걸려 몸도 
 불편하셔서 말씀을 제대로 해 주실까 하는거요..."

때마침 집주인이 우리를 그 어르신이라는 분이 계시는 방안으로 안내했
다. 그 어르신이라는 할아버지는 첫눈에 봐도 나이가  엄청 많이 들어보
였다. 몸도 불편한지  누워있는 상태에서  고개만 끄덕거렸다. 김반장은 
자리에 앉아마자 큰 소리로 자기를 포함한 우리를 소개했다.

 "어르신!
 저 방앗간집 둘째아들 종수입니다. 읍내에서 순사질하고 있는..
 이 젊은이들은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구요!
 어르신 몸은 좀 어떠세요?"

그 말에 그 할아버지는 힘겹게 눈을 뜨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거
의 듣기 힘든 작은 소리를 얘기를 했다.

 "아.... 종수....
 나야.... 이제.... 죽을.... 몸이지...뭐... 콜록 콜록!
 그런데...무슨....일이지......"

김반장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큰 소리로 물어보았다.

 "어른신! 
 저 성황당 너머 과수원 아시죠?
 거기서 사람이 죽은 적 있죠?
 그것에 대해 얘기 좀 해 주세요?"

김반장의 질문에 나는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몇  년전에 있었던 그 살
인사건을 굳이 이 노인에게 물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거의 죽어가는 노인 그 사건에 대해서 알 리가 없을텐데 무엇을 묻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나의 의심은 그 노인의 대답을 듣자 충격과 함께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

 "아....그 일....
 오래전 일이지....오래전 콜록콜록...
 내가 어렸을적.... 일이니까........."

..아주 무서운 일이었지. 그 과수원에서 있었던... 콜록 콜록!
아마 내가 10살정도 되었을 때 일이었을거야.
그러니까 왜놈들에게 우리나라를 빼았끼고 몇 년이 지난 후였으니까..
그때 우리 마을은 참 못사는 산골이었어.
보리고개때는 나무껍질을 벗겨먹어야 할 정도로 힘들었지..
농사라고 해도 조그만 텃밭에 지었고, 약초나 나물을 캐어 생계를 연명했
어. 참 배고픈 시절이었지..
그런데, 그때 과수원자리에 누군가가 이사왔지.
이상한 일이었지.
이런 산골에 누군가가 이사온다는 것은.
그때는 주민이 50명정도 밖에 안되는 촌구석 작은 마을이었거든.
그 젊은 사람은 젊은 부인과 내 또래의 딸년을 데리고 왔어.
읍내 지서장이 이사올 때 따라온 것을 사람들이 보고 높은 사람이 왔다고 
수군거리던 것이 기억나구나...콜록.
그 사람은 돈이 많았는지, 그 과수원 땅을 사고 사람들을 사서 그 버려진 
땅을 과수원으로 만들었지...
그러더니 일본에서 들여온 새로운 종자의 과일들을 키우기 시작했어.
마을 사람들은 그 새로운 사람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했어. 그리고 동시에 
미워하기 시작했어.
왜 미워한 줄 알아?
특별한 이유없이 새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이유하나로..
그때 우리동네는 거의 한가족이었지. 모두가 친척인 셈이었지.
그런 동네에 이물질이 들어온 거야. 
그 사람은 동네 사람들과 어울릴라고 했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를 미워하
고 배척했어. 마치 그 사람이 역병 환자라도 되는 것처럼 증오했어.
그 이유없는 증오심과 미움은 눈덩이가 불어나듯 커졌지...
아마 낯선 이방인에 대한 맹목적인 미움이었을 거야...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그 사람은 묵묵히 과수원을 
일구어 나갔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은 참 부지런하고 착실했는데..
하지만 나도 어른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 집 식구가 지나가면 돌을 던
지거나 침을 뱉는등 못살게 굴었지..
그 젊은 부인은 참 괴로웠을거야...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 집밖에 제대로 나오지도 못하고...
아마 집안에서 서너살된 딸아이만 키우고 있었겠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을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그 과수원 집은 귀신의 소굴이라는 거야..
그 젊은 부부는 귀신을 섬기는 사람들이고...
그런 무시무시한 소문은 겉잡을 수 없이 커졌지..
이제 마을 사람들은 그 과수원집 사람을 공포와 증오가 뒤섞인 눈으로 바
라보게 되었지.. 콜록콜록!
나도 어렸지만, 마을 사람들의 그 감정을 그대로 여과없이 가지게 되었어.
밤마다 그 과수원 집 헛간에서 사람이 비명소리가  들려온다는 등, 그 집 
사람들은 피에다 밥을 말아 먹는다등 별의별 소문이 있었지.
낮에도 그 집을 지나기가 무서울 정도였지...
그러던 여름이었을거야... 콜록콜록!
그 여름도 올해처럼 비가 많이왔지...
그때는 아무런 시설이 없었으니 물난리는 쉽게 일어났지..
그래도 우리 마을은 높은 곳에  있어 왠만한 홍수에는 별로 피해를 보지 
않았어.. 그런데 그 해는 좀 달랐어...
살고 있는 집들은 그래도 괜찮았지만, 논과 밭은 물에 잠겨버렸어.
그해 농사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지... 
콜록 콜록!
지금도 그 해 겨울의 배고픔만 생각하면 괴롭지...
농사에 전적으로 의지하던 우리 마을은 그 홍수로 대 흉년을 맞이했지..
가을이라고 해봤자 거두어 드린 수확이란 보잘 것 없었고...
사람들은 정말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나무껍질을  벚겨먹고, 몇몇은 아예 
이 마을을 떠나버렸지..
약초를 캐러 산으로 들어간 사람도 있었고,  사냥한답시고 산으로 들어갔
다 멧돼지에 박혀 죽은 사람도 있었지...
휴...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과수원 집만 홍수 피해를 보지 않은 거야..
그 과수원이 워낙 높은 지역에 있어서 그 큰 물난리에도 말짱했지..
더욱이 일본에서 들여온 신종자 탓인지 아니면 운이 좋았던지 과수원  농
사도 평년에 비해 잘되었지...콜록콜록!
마을 사람들이 굶주림에 미쳐갈 때 그 집만 풍족하게 지냈어.
그 사람은 착했지...
마을 사람이 어려운 것을 알고 처음에는 나름대로 도우려 했어.
쌀 두가마니를 마을 사람들에게 놔누주었지...
하지만 사람들은 재수없는 쌀이라고 받기는커녕 그 사람에게 욕설을  퍼
붇고 그 쌀을 태워버렸어.. 
모두들 미쳤지.. 미쳤어...
그 사람은 그 사건 이후 더 이상 마을 사람들을 도우려 하지 않았지...
그래도 남 몰래 그 사람 집에 찾아가 먹을 것을 얻어먹은 마을 사람들도 
꽤 있었어...
나도 그때 배고픔에 못이겨 친구들과 함께 그 집에 먹을 것을 훔치러 들
어간 적이 있었어. 귀신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을 참으며 담을 넘어 
그 집에 들어갔지..
부엌에 들어가 가마솥에 남아있던 찬밥을 미친 듯이 입안으로 우겨넣다가 
그 집 주인에게 들켰지... 콜록콜록!
그때가 그 집 주인하고 처음으로 말을 해본 것이지...
지금 기억에도 그 사람은 이상할 정도로 우리에게 잘 해주었어.
배고품에 찌들린 우리를 불쌍하게 봤는지, 도둑질하러  들어온 우리를 나
무라기는커녕, 싫어하는 부인을 달래서 반찬까지 차려주었지..
우리는 무서움과 체면은 다 잊고 먹기에만 정신을 팔았지..
그때 우리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는 그 사람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
아있어...
그 사건 이후로 우리는 그 사람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어. 하지만 어른들
에게 혼날까봐 그 집에서 밥을 얻어먹었다는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어..
괜히 그 사람이 칭찬했다가 날벼락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거든...
가을은 지나고 그 혹독한 겨울이 다가왔지...콜록콜록...
그 끔찍한 겨울이...
모든 마을 사람은 굶주림에 거의 미칠 지경이었지...
마을에 식량이란 식량과 가축은 모든 먹어치웠지만,  그 대기근을 해결할 
수는 없었어... 정말 지독히도 괴로운 겨울이었어..
아직까지도 그 겨울의 고통은 생생할 지경이니....
그러던 어느날 밤, 동구밖에 살던 최씨가 그  과수원집 헛간에 들어간 음
식을 훔치다 과수원집 주인에게  들킨 일이 발생했어. 과수원  집 주인은 
망설이다가 최씨를 놔 주었데.. 콜록콜록..
그런데... 그 최씨는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  날 이후 마을 사람
들에게 과수원집 헛간에는 먹을 것이 넘쳐나고 있고,  그 집 주인은 탐욕
스럽게 그 음식들을 왜놈들에게  바친다고 소문냈어. 그 집  주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증오는 더욱 심해졌지...
굶주림이 심하다보면 이성이 마비 되는지.... 며칠 후 눈이 심하게 오던 날 
누구의 주동도 없었는데도 저절로 마을 사람들이 모였어..
아직도 기억나... 그 살벌했던 분위기를...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광기가 가득했고, 모두들  낫이나 곡괭이들을 들고 
누군가를 죽일기세로 모여들었지...
바로 그 과수원집에 쳐들어가려고 모인 것이야...
나는 어른들 몰래 거기에 따라갔어..  어쩌면 나를 따뜻하게 대접했던  그 
집 주인이 걱정되었을 지도 몰랐어...
마을 사람들은 한손에 횃불을 들고 살기 등등해서 과수원집으로 향했어.
그리곤 그 집 문앞을 애워샀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문을 부시고  그 
과수원 집으로 쳐 들어갔지... 콜록콜록..
한 무리의 마을 사람들은 곳간을 부시고 들어가 닥치는 대로 그 집 식량
을 들고 나왔고, 다른 한무리는 곤히 자고 있던  그 집 일가를 붙잡아 나
왔어. 과수원 집 주인 필사적으로 겁에 질려 있는 아내와 목이 터져라 울
고 있던 딸을 달래려 애썼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 참 대단한 사람이야..
자다가 그렇게 험악한 분위기에 휩싸였는데도 그렇게 당황하는 모습이 아
니었어. 차가운 눈 바닥에 가족과 함께 내팽겨쳐지고 주위에는 광기에 사
로잡힌 마을사람들이 살기를 띠고 있고, 자기의  재산이 눈앞에서 약탈당
하는데도 그렇게 겁에 질린 모습이 아니었지...
그리고 당당하게 마을 사람들에게 따졌지...

  '여러분, 배가 고프면 저희 집 곡식을 가져가시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강탈하지는 마시오! 부탁하면 드릴 생각이었소.
  뭐하는 짓들이요!
  한밤중에 아녀자를 놀라게 하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잖소!
  다들 집으로 돌아가시오. 헛간에 있는 것도 이제 다들 가져 가지
  않았소!
  없었던 일로 할테니, 다들 돌아가시오!
   우리를 그만 괴롭히고...'

어린마음에 보기엔 정말 용감하고 위풍당당해보였지...
그런데도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던 그 사람의 모습에는 이상하게도 슬픔이 
보였어.. 뭔가 안타까워하고, 허탈하고 희망을 잃은듯한...
살기 등등하던 마을 사람들도 그 사람의 꾸짓음에 정신을 차렸는지  고개
를 숙이고 슬금슬금 뒷걸음질치기 시작했어. 여기 저기서 제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손에 들고 있던 낫과 몽둥이들을 힘없이 떨구기 시작했어.
마을 사람들도 자기들의 강도질에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서로의 시선을 피
했지.... 나는 안도했지.. 어느새 그 과수원 주인의 편이 되었거든.
그냥 그렇게 그날 밤일은 끝나는 것 같았지...
그때였어.... 콜록콜록... 
휴....
어디선가 날카로운 외침소리가 들려왔어
 
  '저 놈을 이대로 놨두면 순사에게 신고할지도 몰라!'

그 외침소리 하나로 가라앉던 마을 사람들의 분위기는 갑자기 험악해지기 
시작했어. 모두들 다시 이유모를 살기에 사로잡였지..
아마 그 과수원 주인이 순사들과 친한 관계로  보여진데다, 이 사실이 마
을 지서까지 신고되면 마을 사람들 모두 서슬퍼런 왜놈 경찰에 끌려고 고
초를 겪어야한다는 것이 겁이 나서 더 그랬을지도 몰라...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터져나오기 시작했어.

  '맞어! 저 놈은 분명히 신고할꺼야!'
  '저 놈은 왜놈 지서장과 한통속이니 이대로 가만있지 않을거야!'
  '저 놈말은 믿을 수 없어!'

이런 저런 험악한 말이 터져 나오더니, 어디선가  끔찍한 말이 나오기 시
작했어
  
  '저 놈을 죽이자! 죽여서 입을 막자!'
  '그래 죽이자!'
  '저놈은 죽어도 싼 놈이야!'
  '죽여!'

삽시간의 분위기는 무시무시해졌어. 마을 사람들의 얼굴은 악귀같았어.
피에 굶주린 도깨비 같았지. 
그 과수원 주인도 심각함을 느끼고 필사적으로 점점 다가오는 마을  사람
들을 말리려 애썼지... 콜록콜록..
하지만 소용없었어.
이미 미쳐버린 마을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절규하던 과수원 주
인을 덮쳤어. 마치 늑대떼가 먹이를 발견하고 게걸스럽게 덮치듯이..
비명소리와 낫과 몽둥이가 난무하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어..
콜록콜록..
어렸던 나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지.
하지만 알 수 없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눈을 돌릴 수 없었어..
달려들었던 마을 사람들이 한두발 떨어지자 그 사람의 처참한 모습이  보
였지.. 휴...
정말 순식간에 멀쩡하던 사람이 피투성이 고깃덩이가 되어버렸어..
평소에 그렇게 양순하던 마을 사람들이 그때는 그렇게 다르게 보였지...
자기 남편이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게 된  그 
부인은 실성한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지.
목이 터져라 울고 있는 어린 딸을 품에 꼭 안고, 애 만은 살려 달라고 처
절하게 외쳤지.. 콜록콜록..
이미 한 번의 살인을 저지를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여자와 어린아이도 전
혀 불쌍하게 보이지 않는 것 같았지.
몇몇은 차마 여자와 어린아이는 그냥 두자며, 물러섰어...
하지만 이미 칫솟은 광기는 아무도 막지 못했어.. 
자기들이 살인한 모습을 본 그 가련한 모녀를 살려둘 생각은 들지도 않았
을 거야.. ㅉ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애엄마는 필사적으로 딸을  품안에 
안고 보호하려고 했지.
마을 사람들은 최면에 걸린 사람들 처럼 피묻은 낫과 몽둥이를 들고 천천
히 다가갔어.. 
휴... 콜록콜록..
그때는 이미 마을 사람들이 아니었지.. 완전히 악귀였지, 악귀...
무서웠어.. 지금 생각해도 몸이 떨리곤 해..
뒤에서 본 마을 사람들은 허겁지겁 먹을 것을 먹어치우는 들개처럼  보였
어. '퍽퍽'하는 소리와 피가 튀기는 것은 그 모녀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등뒤로 보였어. 
기계적으로 낫과 몽둥이로 희생자를 내려치는  모습은 정말 지옥을 보는 
것 같았어..
곧 아이와 엄마의 비명소리도 없어지고 '퍽퍽'하는 내려찍는 소리만  들렸
어. 마을 사람들은 살육을 마치고 천천히 물러났지..
마을 사람들 사이로 보인 아이와 엄마는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
하게 보였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ㅉ겼으니...
하얀 눈은 사방이 빨간 피로 물들었어..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일을 감상이라고 하는 듯이 가만히 서 있
었어. 기분나쁜 적막이었어..
그때였지.. 콜록콜록..
분노로 피를 토해내는 듯한 처절한 절규가 들렸어..
  
 '이 놈들! 이 놈들...'

죽었다고만 생각했던 그 과수원 주인이 살아서 자기 가족이 처첨하게  죽
는 것을 본 것이야..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낫과 몽둥이에 맞아 죽는 모습을...
그 사람은 피투성이가 되고, 살점이 너덜거리는데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
키려고 애섰지...
마을 사람들은 범죄현장을 들킨 사람들처럼  그 모습을 충격을 받았는지 
아니면 겁이 났는지 움직이지 못했어..
그 사람은 몸을 일으켰어..
그 모습이야말로 정말 처참했지..
한쪽팔은 팔꿈치 밑으로 거의 잘려나가 대롱거렸고,  핏물을 뒤집어쓴 것 
처럼 머리위부터 발끝까지 피투성이였어..
하지만 그 빨간 피 사이로 분노와 증오를 불타는 눈은 보기만 해도 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무서워 보였지...
그 사람은 비틀거리며 천천히 자기 가족의 시체더미로 다가갔지..
아무도 막지 못했어.. 그 사람이 지나가니까,  주위에 마을 사람들은 겁에 
질린 듯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쳤어..
그 사람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아내와 딸의 시체를 안고 주위의 마을 
사람들을 무시무시한 눈으로 보고, 잊을 수 없는 한마디를 했지...

  '이 놈들, 내가 반드시 복수한다..
  너희들 모두, 내가 받은 만큼 돌려준다...'

지옥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였지...
마을 사람들은 겁에 질려 아무 짓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지...
그 사람은 중상을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딸과 아내를 안고 눈물을 흘리며, 
중오의 눈으로 마을 사람들을 쏘와보고 있었어..
그때 어디선가 '끝장내자!' '죽여!' 라는 말이 들려오고,  마을 사람들은 그 
말에 최면에 깨것처럼 불안한 적막을 깨고 그 사람에게 달려 들었어.
가느다라게 숨이 붙어있던 그 사람은 순식간에 무지막지한 몽둥이질과 낫
질로 죽임을 당했지...콜록콜록..
마을 사람들은 한동안 가만히 있었지..
그때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지..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아니면 그 과수원 주인의 마지막 말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하지만 이내 모두들 제정신을 차렸는지, 자기들이 저지른 엄청난 일에 놀
라기 시작했어..
모두들 차마 자기들이 이 사람들을  이렇게 죽였는지 인정하기 싫어하는 
눈치였어.. 서로 아무말 없이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어..
몇몇 어른들이 남아 처참한 세식구의 시체를 헛간으로 날라 그 바닥에 묻
기 시작했어. 땅이 얼지 않아서  파기가 쉬었을테고, 들키지 않기  위해서 
였나봐... 그리고는 마당에 핏자국을 없애려고 짚더미를 모아 불을 부쳤어.
검은 잿더미가 핏자국을 덮을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지...
불을 활활타올랐지..
나는 몸이 꽁꽁 언것도 못느끼고, 그 참혹한 살육을 목격했지..
모든 마을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때까지 있다가 나도 집으로 돌아왔지..
그 이후에 마을 사람들은 그날 밤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고된 생활로 
돌아갔지... 콜록콜록...
모두들 그 날 밤일은 기억에서 없어진 듯이 행동했어..
그 과수원 집에서 가져온 곡식으로 우리 마을은 겨울을 났지..
그런데 어느날 읍내 지서장이 나타나 없어진 과수원 주인에 대해 찾기 시
작했어.. 그 지서장을 통해 충격적인 사실을 알 수 있었지...
우리가 왜놈의 앞잡이며 쪽발이 지서장과 한통속이라고 생각했던 그 과수
원 주인이 유명한 독립운동가였다는 거야..
독립운동하다가 왜놈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중국으로 쫓겨나가게  되
었댔지... 그렇지만 그 과수원  주인은 조국을 떠날 수  없다고 이 시골에 
내려와 농사를 짓기로 약속했대...그래서 지서장이 감시를 하고 있었고..
그 사람은 농사를 지으면서 새로운 종자를 실험해서 가난한 민족을  풍족
하게 먹여살릴 방도를 연구하고, 여러방면으로 독립운동을 몰래 지원하고 
앴었대지.... 휴...
내가 그 집에 밥을 훔치러 들어갔을때나, 마을 사람들이 헛간을 강탈했을 
때 왜 그 사람이 화를 내기보다는 허탈해 했는지 알 수 있었지..
동포의 헐벚은 모습이 슬펐던 것이지... 
그런 사람을 그렇게 처참히 죽여버리다니...
마을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지... 
그때만 해도 독립운동가는 우리 촌구석에서도 추앙받는 존재였지..
너무 크나큰 죄악을 저지를 셈이었지.....
그 이후로 누구도 그  과수원집에는 근처에도 가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 
과수원 주인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금기로 여겼지...
그 과수원은 수십년동안 버려진 집이었지...콜록콜록...
그 후에 전쟁이 나고, 또 데모다 혁명이다 시끄러웠지...
공장이 들어서고, 그 당시 사람을 죽였던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죽거나 
떠났지...
이제 누가 남았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가물가물해...
나도 평생을 괴로워했지... 
아무리 잊어버리려 해도, 가끔식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지..
휴......콜록콜록.. 
이게 자네가 듣고 싶어했던 살인얘기인가...
너무 무서운 얘기지...."

나는 그 노인의 얘기에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한 마을이 이방인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로 가족을 몰살시키는 일을 저지르다니...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다니....
내가 멍해있는 가운데도, 김반장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많은 
얘기를 해서 지친 듯이 눈을 감고 있는 노인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마치 용의지라를 심문하는 것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어르신,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몇가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있는데...
 좀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솔직히 말해 주세요... 그날밤 주동했던 사람과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사람들 기억하세죠?
 방앗간 김영감님하고, 사과골 최영감님이 그 일에 가담했죠?
 어르신 기억하시고 있는 것 모두 말씀 해주세요...
 다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일이예요..
 그리고 그 이후에 그 집에 일어났던 괴상한 일들하고..
 제 어렸을때도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알아요..
 어른들이 쉬쉬해서 잘 몰랐지만...
 부탁입니다. 꼭 얘기해주세요...."

무례하다면 무례할 수 있는 김반장에 질문에 노인은 움칠거렸다. 나는 그 
노인인 화를 낼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노인은 한참을 눈을 감은채로 있다
가 결심을 했다는 듯이 그 충격적인 얘기를 계속했다.

 "휴...자네도 뭔가를 알고 있군... 콜록콜록...
 죽어가는 마당에 숨겨야 뭘 하노....
 숨기는 것도 이제 그만이야.... 
 하지만 사실을 알게되면 김반장 자네도 그 멍에에서
 벗어나기 힘들겔세....
 괴롭고 두려울거야...
 하지만 원한다니 다 말해주지...."

...콜록콜록 
언제던가...김 반장 자네가 전쟁끝난 이듬해에 태어났지..
그러면 그 사람들 얘기를 알겠군....
모두 사실이야...
감추고 싶지만, 죽을 때 까지 따라다닐...
자네 할아버지. 내 아버지, 사과골 최씨, 밤골  김씨 모두들 그 사람을 죽
이는데 있었지..
아니 앞장섰어..
특히 내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끌고 그 집에 갔지.. 또 죽었는 줄  알았
던 그 사람을 멈칫거리던 마을  사람들을 선동해 죽인 것도 내  아버지였
지... 콜록 콜록..
휴.... 천벌 받을 짓이야! 천벌.... 
자네 할아버지... 최씨... 김씨 모두 앞장섰지...
그 일가족을 몰살하는데....
그리곤 모두들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그일을 잊었지...
요즘 얘기로 하면 은폐인가...
하지만 모두들 잊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악몽같았을거야...
그것때문인지, 몇몇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지..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그렇게 죽어 버렸지...
그 사건 이후로 그 집은 버려졌지...
아무도 그 집에서 살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 넓은 과수원은 버려진 채 수
십년이 지났지.... 공짜나 다름없는데도 아무도 거기 살려고 하지 않았어...
언제 부터인가, 마을 사람들은 낮에도 그 집 앞길을 지나기를 꺼려했어..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일이 있어도, 저 언덕배기 길로 한참 돌아갔지...
더구나 무서운 일도 가끔씩 일어나곤 했지....
콜록..콜록...콜록...
그 집에서....콜록...콜록.. 일어났던 일들은...콜록...콜록..
나 말고도 아는...콜록 사람이 있을테니...콜록....
그 사람들에게...들어보게...
콜록...
너무 말을 많이 했는지..콜록...더 이상 얘기 못하겠네...
콜록...
무서운 일이야... 
진작 죽었어야 했었는데...
콜록..."

그 노인은 갑자기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얘기를 멈추었다. 
더 많은 충격적인 일들이 있는 것 같았지만, 안색까지 새파래지며 기침을 
해대는 노인을 보니 더 이상 얘기를 재촉할 수 없었다. 
김반장도 그 노인이 나이에 비해 너무 시간동안 얘기를 시킨 것 같아 불
만스러운 표정을 하면서도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노인은 지친 듯이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 누웠다. 
그래도 정중히 인사를 하고 나가는 우리들에게 마지막으로 힘겹게 한마디 
던졌다. 

 "콜록, 콜록...
 김반장, 자네... 할아버지 죽음이 기억나나? 콜록...콜록...
 그것 한 번 잘 생각해 보게....콜록....
 다들 이상하게 생각들했지....콜록....
 이게 다 업보지...업보야..."

그 노인의 마지막 말에 김반장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순간적이지만,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빛났다.
밖에는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대문을 나서며 나는 머리속에 맴돌고 있던 수십가지 의문을 참지  못하고 
김반장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 영감님이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그 무당의 얘기와 뭔가 통하는 
 것이 있지 않겠어요? 이번 살인은 그 옛날 원한과 관련이 있겠죠?
 그리고, 그 이후에그 집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죠?
 김반장님도 이 마을 출신이시니까 아는 얘기 있으시죠?
 그리고 할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어떤 일이 있던것이죠?"

김반장은 쉴새없는 나의 질문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시종일관 뭔가 골
똘이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김반장의 무반응에 머쓱해진  나는 천천히 걸
어갔다. 같이 말이 없던 정화씨는 내게 한마디 했다.

 "일한씨.. 정말 무슨 일이지요?
 뭔가 뒤죽박죽인 것 같지만 결국 여러사람이 참혹하게 죽고 있잖아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죠?
 그리고 재원씨는 어디에 있는 것이에요?"

체념과 공포가 뒤섞인듯한 정화씨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바람에 우리가 여기에 온 진짜 목적인 재원이를 찾는 일을 잊어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재원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살인 사건들과 재원이가 관련되 있지는 않을까?
갑자기 머리속이 재원이 생각으로 가득찼다. 
그때 갑자기 말없이 빗속을 걸어가던 김반장은 한숨을 쉬며 나를  돌아보
았다.

 "일한씨...
친구 걱정이 되지요?
하지만 지금이 이 사건을 해결해야 해요.. 그래야 친구분의 안위를 알  수
가 있고... 그리고 솔직이 고립된 지금, 누가 언제 그 미친 살이마에게  죽
음을 당할지 모르니, 살기 위해서라도 해결을 해야되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듣고 느낀 바로는 이번 사건
은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아니 많이 이상하지...
모든 것이 그 버려진 집과 연관되어 있고,  그 연관성은 불가사이할 뿐이
고...
그 영감님에게 들은 얘기는 나도 처음들은 얘기예요..
어렸을 때 어른들이 그 집 근처에 가는 것도 꺼려한 것은 기억이 나지만, 
그런 일이 있었는 지는 정말 몰랐어요..
내가 이 영감님을 찾아와 본 것은 어렸을 때 이유도 모른채로 그 집을 무
서워하고, 어른들이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한 것이 생각나서예요...
이 영감님이 그 집 근처에도 못가게 야단치던 생각이 났거든요..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았죠...
하지만 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그 영감님이 말해주신 살인 정말 일어났
던 사실인가라는 점이예요... 사실이라면 얼만큼  영감님의 기억이 정확한
가도 문제이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면, 정말 큰 사건이죠..
누군지 모르지만, 충분한 살해동기도 될 수 있고....
다리만 안끊겼다면, 군청이나 읍내에 연락해 무언가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제기랄...
지금으로썬 그래도 그 영감님의 얘기를 가장 중요하게 참고할 수 밖에 없
는 상황이죠...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래 좀 이상하긴 했어...
내가 한 10살때쯤 돌아가셨을 것이예요..
그때도 지금처럼 여름이었어요.. 더웠던 것이 생각나요...
할아버지는 아마 읍내에 무슨 잔치에 갔었을 거예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이 되도록 돌아오시지 않았던 것이었고...
걱정이 된 아버지는 내손을 잡고, 할아버지가  가셨던 읍내집까지 가셨어
요. 하지만, 그 집 말로는 전날 밤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우리집으로 향했
다는 것이예요..
작은 마을이었으니, 할아버지가 없어진 사실은 삽시간에  온 마을에 퍼졌
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서 할아버지를 찾아다녔어요..
술에 취했다니, 집으로 돌아오다가 길가에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하루 종일 마을 곳곳을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예요..
읍내에서 마을로 오는 길은 아까 영감님이 말한  것처럼, 그 집을 지나는 
가까운 길을 놨두고 먼길로 돌아다녔거든요...
결국 할아버지를 못찾게 되고 밤이 ㄷ지요..
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요.. 
한 곳만 빼놓고...
이상할 정도로 망설이던 마을 사람들은 노인  몇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횃불을 들고 그 버려진 흉가로 향했어요..
그 집앞을 지나는 길을 찾아보지 않았거든요..
나는 엄마 몰래 아버지를 따라 그 곳을 향했어요..
그런데 아직도 이상하게 생각되었던 것은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마치 무슨 싸움을 하러 가는 사람처럼 낫이나 몽둥이 등을 들고 가는 것
이였죠.. 겁에 질린 표정들을 하고 내키지 않는 모습들이 역력했어요..
제일 앞에 선 것은 역시 아버지였죠..
철없던 나였지만, 어른들마저 겁을 내는 것 같으니 무서웠어요..
그 집으로 향하는 길도 음산했어요..  인적이 닿지 않아 무성해진  잡초와 
길가의 나무들이 섬뜩하게 느껴졌죠..
횃불을 들고 그 집앞에 도착했어요...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그때 그 집의 모습은 정말 무서웠어요... 하도 어른들이 가지 못하게 해서 
그때가 나는 그 집을 처음 보는 것이였어요...
수십년동안 아무런 손이 가지 않았던 그 집은 허름하면서도 횃불에  비친 
그 모습은 무슨 살아있는 악귀를 보는 듯 했어요..
마을사람들은 뭔가를 경계하는 모습을 하면서도 무리무리 흩어져 할아버
지를 찾아다녔어요.
나도 '할아버지!'라고 몇번 소리쳤던것도 같고...
여하튼 얼마 안가서 '찾았다!'라는 소리가 저 길가 구석에서 들려왔죠...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모여들었죠..
그리곤 모두들 고개를 돌렸어요. 마치 지옥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
으며...
아버지는 사람들을 헤치고 할아버지를 보더니 신음소리와 함께 나의 눈을 
가렸죠..
하지만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평생을 잊지 못할 처참한 모습을 보았지
요... 내가 20여년동안 경찰에 있으면서 보았던  어떤 시체보다 그때 할아
버지의 시체는 끔찍했죠...
길가에 버려진 할아버지의 시체는 어떤 무지막지한 살인마에 당했는지 수
십군데 난도질 당해져 있었어요..  언뜻봐서 누워있는 것  같았는데, 순간 
뭔가 이상해 보였죠...
이상한 점을 깨닫자마자, 나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거기서 도망쳤죠.
할아버지의 얼굴만 하늘을 보고 있고, 몸은 뒤집어져 있었죠..
누군가가 할아버지의 목을 잘라 머리만 뒤집어놓은 것이죠...
휴...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할아버지 시체 옆에 녹슨 낫이 발견되었고, 살인범
은 못잡았다더군요.. 그 당시 허술한 경찰들은 출몰하던 도둑때로  범인을 
지목했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할아버지의 그 끔찍한 죽음이후, 우리집은 뭔가에 쫓
기듯이 이 마을을 떠났죠.. 그렇게 해서 나는 이 마을을 떠났고...
그 때 이사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마을 떠났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유모를 큰  공포
를 느끼게 한 것 같아요...
그 이후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가 어떻해 해서 경찰이 되고, 여기 연천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죠..
작년인가 갑자기 생각이 나, 할아버지 죽음에 대한 경찰 자료를 찾아봤지
만, 벌써 수십년 전의 일이라 흔적도 없이 사라졌더군요...
지금까지 특별한 의심을 안 했는데, 영감님 말을 듣고 보니 뭔가 좀 이상
해요... 그 때도 낫이었고, 그 사건에 할아버지도 연류되었다니...
그리고....." 

얘기를 계속하던 김반장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곤 뭔가를 깨
달았다는 표정과 함께 다급하게 외쳤다.

 "그래 맞아!
할아버지 시체를 찾아나섰을 때, 그 버려진 집을  찾아보라고 한 것은 영
감님이었어! 이제 기억나는데 아버지에게  거기 한 번 가보라고  한 것도 
이 영감님이었어!!! 그리고 우리가 이사갈 때 끝까지 따라나와 다시는  돌
아오지 말라고 한 것도 그 영감님이었고..
영감님이 말해주지 않은 뭔가 있는 것 같아.
피곤함을 핑계로 그때의 일을 몇가지 숨긴 것 같아!
일한씨, 우리 다시 돌아갑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숨겨진 얘기를 다들어야 겠어!"

김반장은 뭔가 결정적인 단서를 찾은 것처럼 정말 발걸음을 돌렸다. 나도 
그 영감의 얘기가 뭔가 미흡했던 생각이 들어 두말않고 따라 나섰다. 
김반장은 비 맞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어. 
영감님 집에서 얼마 안 갔기 때문인지, 발을 돌린지 얼마안가 그 집이 보
였다.
그때였다. 
여자의 ㅉ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그 집에서 들려왔다.
그 순간 김반장은 우산을 내던지고 그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그 뒤를 쫓았다. 
나는 뛰면서 정화씨를 돌아보며 외쳤다.
 "정화씨는 천천히 따라와요!" 
그리고 비에 흠뻑 젖으며 그 집으로 뛰어갔다. 
김반장은 풍기는 이미지와는 달리 이외로 빨리 달려, 젊은 나보다도 한참
을 앞섰다. 
숨을 할딱이며 그 집 마당에 들어섰을 때,  이미 김반장은 신발을 신은채
로 마루로 뛰어올라 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 영감님 방에서 또 한 차례의 비명소리와 '퍽'하고 기분나
쁜 소리가 들려왔다. 김반장은 민첩하게 권총을 빼어들고 그 영감님 방문
을 차고 뛰어들었다. 
동시에 쨍그렁하고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다음 순간 나도 김반장
을 따라 그 방에 들어갔다. 
실제 시간으로 따진다면 5초도 안걸리는 순간이었지만, 너무 큰 충격때문
인지 내 눈앞에는 모든 것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펼쳐졌다.
방에 들어가자 마자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글자 그대로 피바다였다.
방안 전체가 시뻘건 피로 뒤덮혀 있었다. 
불과 5분전만 해도 우리에게  얘기를 들려주었던, 그  영감님은 누운채로 
목이 잘려있었고, 우리를 안내해 주었던 중년의  사내도 갈기갈기 ㅉ겨진 
채로 방구석에 널부러져 있었다. 창가에는 비명을 질렀던 것 같은 중년의 
부인 피투성이가 된채로 '그륵그륵'하는  숨너머가는 소리를 내며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김반장이 들어갈 때 깨어진 것 같은 창문너머로 뭔가가  멀어지는 
것이 보였다. 김반장은 "서라!"라는 소리와 함께 이미 권총을 움직이는 그
것을 겨누고 발사했다. 
그것은 총에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비 속에서 숲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가
고 있었다.
창졸간이어서 자세히는 못보았지만, 내눈에는 사람의 뒷모습으로 보였다. 
한 손에는 낫을 든..
하지만 그 모습에는 왠지 모르게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섬뜩함이 느껴졌다. 
몸을 부르르떨고 있을 때,  김반장은 나를 돌아보고 짧고  빠르게 한마디 
했다. 

 "그 놈이야! 그 놈.. 
 따라가야해!" 

그리곤 창문을 훌쩍 뛰어넘고 그것이 사라진 쪽으로 뛰어갔다.
등뒤로 이제야 도착해 방안의 지옥을  발견한 모양인 정화씨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충격으로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던 나는,  정화씨에게 마당에 나가 잠깐
만 기다리라는 한마디만 남긴채, 무엇에 홀린 듯  김반장의 뒤를 따라 창
문을 넘었다.
그리고 숲으로 사라진 그것의 뒤를 쫓았다....

....뭔가에 홀린 듯이 그 놈을 쫓아 창밖으로 뛰어나갔다.
나서자 마자 갑자기 이상할 정도로 굵어진 빗줄기가 얼굴에 떨어져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대충 눈위를 흘러내리는 빛물을 손으로 훔치며, 김 
반장과 그 놈이 사라진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김반장이 먼저 뛰어나간지 불과 10초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저 멀리 나
무를 헤치고 달려가고 있었다. 나도 필사적으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며칠동안 계속내린 비 때문에 땅은 질퍽거리고, 무성한 나뭇가지에 온 몸
을 할퀴고, 얼굴 정면으로 떨어지는 빗방울로 앞은 잘 보이지 않고,  정말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한 5분쯤 따라갔을까, 어느새  깊은 숲속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김반장은 
벌써 울창한 숲속으로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 놈도 시야
에서 사라졌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들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몇번을 소리쳐 김반장을 불러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 뿐이었다. 
생각해보더라도, 그 놈을 쫓고 있는 김반장이 내  소리에 대답할 처지 같
지는 않았다. 
잠시 숨을 가다듬으면서, 어떻할까 생각해보았다. 
무턱대고 김반장이 사라진 숲속으로  들어갈까도 생각했지만, 따라가봤자 
찾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솔직이 혼자서 따라가는 것이 겁도 났
다. 비는 점점 심하게 내리고, 슬슬 비로 흠뻑적은 몸도 추워지기  시작했
다. 김반장 뒤를 따라가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움도 느껴졌다.  하지만 
김반장이 혼자서라도 잘 처리할 것이라며 위안했다. 또한 그 살육의 현장
에 혼자 남겨두고 온 정화씨도 걱정이 되었다.
되돌아 가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난감해질 수 밖에 없었다.
어디로 가야할 지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비도 내리고 있었고, 길이 없
는 숲을 헤치고 들어온 바람에 어디로 가야할지 종 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움직이긴 움직어야 했기에, 대충 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도가도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나무들이 모습은 다 똑같
이 보였고, 그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을 알 수 없었다.
질퍽이는 땅에 발은 자꾸 빠져 걷기마저도 힘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등뒤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
는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이었다. 
뒤를 돌아보았으나, 무성한 나무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나무들 뒤에 뭔가 기분나쁜 것이 있어 보였다.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었지만, 떨어지는 빗방울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의 
움직임만이 보일 뿐이었다. 귀를 기울여 봐도, 후들거리며 나뭇가지에  떨
어지는 빗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마치 뭔가가 내게로 다가오는 발소리처럼 들렸다.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가 점점 나를 행해 압박
해 들어오는 느낌을 더욱 강해졌다.
겁이 났다.
비 때문에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나를 보고 있고, 점점 다가온다는  섬뜩한 느낌은 더욱 강
해지는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봐서, 야구 방망이 크기의 나무 토막을 집어들었다. 
나무의 묵직한 촉감을 느끼니 좀 든든해졌다.
천천히 주변을 경계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뭇가지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디선가 
나를 덮칠 것 같은 느낌은 점점 강해졌다. 
불안한 느낌이 강해지면서,  비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모두 살아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나무를 잡은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후드득 소리가 나서 돌아보았지만, 빗방울이 한꺼번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비로 젖은 온몸에 땀까지 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포위당한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덜덜 떨려오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탕!'하는 소리가 온 숲속을 메아리쳤다.
총소리 같았다.
뒤어어 '타탕!'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메아리 소리 때문에 어디서 난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김반장이 총을 쏜 것 같았다. 
그리곤 죽음같은 적막이 흘렀다. 단지 빗소리만 들려왔다.
그 총소리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을 휘감고 있는 사악한 기운은 수그러들
지 않고 점점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닥치는 대로 뛰기 시작했다. 앞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가지에 
온 몸이 ㄱ혔고,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진흙이 묻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뭔가가 내 뒷덜미를 챌 것 같았다.
그런 느낌만 들면 지체없이  들고 있는 나무 몽둥이를  뒤로 후려쳤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점점 더 다급해졌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며 얼마나 달렸을까..
온 몸은 진흙투성이가 되고 엉망이 되었다.
순간 누군가 내 등을 확 잡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 놀라가 두려워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있는 힘을 다해 들고 있던 나무몽동이를 휘둘려는  순간, 귀에 익은 목소
리가 들려왔다.

 "나야 나 일한씨.. 김반장.."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려 등뒤를 보았다.
김반장이었다.
그런데 김반장 역시 호된 일을 겪었는지, 한  쪽 어깨가 피버범이 되어있
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간신히 권총을 쥐고 있었다. 

 "반장님! 무슨 일이죠? 어떻게 된거예요?
 괜찮은 것예요?"

김반장은 고통스러운지, 신음소리를 내며 간신히 대답했다 
 
 "나는 견딜만하니.... 걱정마....
 그 놈이 저기 그 집으로.... 돌아갔으니.....
 정화씨가...... 혼자 있는....
 빨리 가봐..... 나는... 따라갈테니....
 자, 이 총을 가져가게......."

그러면서 내게 피묻은 총을 쥐어졌다. 김반장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 
눈만은 공포와 그것을 이기려는 강한 의지가 섞여서 삼뜩할 정돌로  빛나
고 있었다. 
나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김반장의 어깨 상처를  살펴보았다. 뭔가 날카로
운 것에 왼쪽 어깨부분이 ㅉ겨나갔다. 언뜻 보기에 깊은 상처같이 보였지
만, 김반장은 계속해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나는 걱정말라니까.. 좀 쉬었다 금방 따라간다니까...
 빨리 가... 그 놈은 벌써 그 집에 갔을가야..
 정화씨가 위험하니 빨리....
 으윽... 괜찮아 괜찮아...
 그 놈을 꼭 잡아...  
 아니 죽어버려...."

김반장은 헉헉대면서, 나를 재촉했다. 
다친 김반장을 이렇게 놔두고 간다는 것 때문에 잠시 망설였지만, 괜찮을 
것 같았다. 그의 그런 처절한 모습을 보니, 이유모를 분노가 치솟는 것 같
았다. 
김반장의 피가 묻은 총을 꽉 쥐고, 고개를 드니 저기 나무사이로 그 끔찍
한 살인이 있었던 노인 집이 보였다. 길을 잃은줄 알았지만, 그래도  제대
로 온 것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김반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하게...
 놈은...사람이..아닐지도 모르니....
 제기랄! 으윽..."

나는 공포와 이상야릇한 흥분감도 느끼면서, 그 집을 향해 달렸다.
그때였다.
ㅉ어지는 듯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정화씨가 걱정되었다.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렸다. 
땅이 질퍽거리는 것이나 미끄러지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고, 느낄 수 없
었다.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아까 그 놈을 쫓아 김반장과 함께 뛰어넘은 창문이 보였다.
그 창문 사이로 언뜻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피빛의...
나는 죽음힘을 향해 뛰었다. 
마당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화씨를 목이 터져라 불렀지만, 아무론 대답도 없었다.
총을 꽉쥐고, 시체들이 나동그라져 있을 방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바닥에 피묻은 발자국이 보였다. 심장이 콩쾅거리는  것을 느끼며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방바닥은 피바다 그대로였다.
시체들은 그대로 널부러져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  노인의 시체가 감쪽같
이 사라졌다. 겁나고 놀랐다. 
그 놈이 여기를 다녀간 것이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정화씨를 찾아보았다.
그 놈이 어디선가 낫을 들어 덮칠 것만 같았지만, 상관할 수 없었다.
정화씨가 걱정되었다. 어디선가 낫에 난도질당해 있을 것만 같았다.
한 구석에서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나는 쪽을 확 돌아보았다.
정화씨였다.
방 한구석에서 피투성이가 된채로 눈만 내놓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다급히 정화씨에게 다가갔다. 어디라도 다친 줄 알았다. 하지만 정화
씨는 몸을 부르르 떨고있었다. 
다행히 살아있었다.
무릎을 앉고 있는 정화씨를 살펴보았지만, 피투성이만 되어있을뿐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어깨를 잡아  흔들며 정화씨를 불러보았지만,  대답은커녕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며 계속 떨고 있었다.
피 범벅이 된 얼굴은 지옥이라도 들여다 본  사람처럼 겁에 질려 있었고, 
눈은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빼앗긴 사람의 눈처럼 아무런 초점도 없었다.
정화씨는 부들부들 떨면서 입으로는 뭔가를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흔들어보아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무슨 소리를 중얼거리는 것인가 주의깊게 들어보았지만, 
단지 이 두마디의 연속이었다.  

 "..그가 왔어..낫을 들고.. 
   그가 왔어..낫을 들고.. 
   그가 왔어..낫을 들고......"

...정화씨의 어깨를 부여잡고 흔들었지만, 계속해서 그 말만 대뇌이고 있었
다. 김반장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다가와 넋이 나간 정화씨를 살펴보더니 
한숨을 내쉬고 한마디 했다.

 "휴... 정화씨는 지금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 같네요...
 뭔가 끔찍한 것을 본 듯한 눈빛이야..
 하지만, 잠시 시간이 지나면 제정신을 찾을 것 같아요..
 안정이 필요하고..."

김반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화씨는 고개를 떨구더니 기절했다.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살펴보니 다행히 정신을 잃었을 뿐이었다. 
김반장을 잠시 멍해있는 나를 보챘다.

 "일한씨, 이제 서두르지...
 빨리 정화씨를 데리고 지서로 돌아갑시다..
 거기 가서 좀 차분히 생각 좀 하고, 그 놈에 대해 대비도 해야할 것
 같아..."
 "김반장님은 다친 곳은 어떠세요?
 제가 정화씨를 업고 갈테니, 빨리 출발하죠.."

나는 말을 하면서, 김반장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흘러나오던 피는 좀 멈춘 
것 같지만, 그렇게 가벼운 상처같지는 않았다. 기절한 정화씨를  들쳐업고 
우리는 그 피비린내 나는 지옥에서 출발했다. 빗줄기는 좀 가늘어져 있었
지만, 쉽게 그칠 것 같지는 않았다. 
이미 젖을대로 젖어있어서, 우산 쓸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등에 
업힌 정화씨에게는 김반장이 웃옷을 벗어 덮어 주었다. 

 "피는 묻었지만, 그래도 그냥 비 맞는 것보다 나을거야..
 제정신이라면 죽어도 피 묻은 옷은 덮지 않겠다고 했겠지...
 하하..
 그건 그렇고 일한씨 무겁지 않아요?
 원래 기절한 사람은 제정신의 사람보다 3배는 무겁다는데..."

김반장은 심각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이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긴장된 얼굴을 하고 연신 사방을  살피면서 앞장섰다. 그 놈
이라도 갑자기 튀어나올  것처럼 경계했다. 어깨의  상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손에는 안전장치를 푼 권총을 쥐고 있었다.
나도 긴장이 되었는지, 등에 업힌 정화씨의 무게를 느낄 수 없었다.
앞서가는 김반장의 어깨의 상처가 눈에 띠었다.  날카로운 것에 ㅉ겨나간 
상처가 길게 보였다. 꽤 아플 것 같은데도  김반장은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갑자기 잊고 있던 의문이 생각났다.

 "저.. 김반장님,
 그 어깨 상처 말인데요...
 그렇게 다칠 때 그 살인마 보셨나요?
 어떻게 다치신거죠?
 저는 김반장님을 따라가다가 놓쳐버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볼 수 없었
 거든요?"

김반장은 내 질문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뒤도  안돌아보고 계속해서 걸어
갔다. 내가 다시 한 번 물어보려는 순간, 김반장의 어두운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놈말이지요...
 그 놈...
 말하기 부끄럽지만 그 때 솔직이 나도 무서웠어요.. 
 무서웠지...
 죽는 줄 알았어.. 어깨가 낫에 찍혔을 때는...
 나도 창문을 뛰어넘어 숲으로 그 놈의 뒤를 필사적으로 쫓아갔어요..
 평소에 나쁜 놈들 잡으러 다니는 것 때문에, 달리기만은 자신이 
 있었는데 그 놈은 도저히 잡을 수 없었어요..
 그 놈은 달리는 것이 아니고, 마치 땅위를 떠 가는처럼 순식간에 
 숲속으로 사라졌지.. 숨은 차왔고, 허탈했죠..
 도망가는 범인을 따라가 잡는 것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였는데도,
 어떻게 된 것인지 그 놈은 따라가면 따라갈수록 점점 멀어지더니 순식간
 에 사라져 버린 거예요...
 잠시 숨을 돌리며, 사방을 둘러 보고 있었는데..
 그때였어요..
 갑자기 등뒤에서 섬뜩한 살기가 느껴졌어요.
 뒤를 돌아보았죠.
 그놈이었어요.
 정말 아무 인기척도 못 느꼈는데, 어느새 내 등뒤에서 낫을 높이 쳐들고
 나를 치려고 하는 것이었어요. 분명히 내가 사방을 한바퀴 돌면서 둘러
 보았는데.... 글짜 그대로 갑자기 나타난 것이었어요.
 실제로 그 놈이 나를 낫으로 내려치려고 하는 순간은 1초도 안되는 ㅈ은 
 순간이었을 거야.. 하지만 나에게는 죽음같은 시간이었어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어요. 어깨위로 떨어지던 빗방울마저도...
 단지 느낄 수 있던 것은 공포뿐이었어요..
 그 놈의 낫이 내 머리를 향해 내리치는 모습이 보였어요.
 이상하게도 움직일 수 없었어요. 마치 입체 영화관에서 낫이 나를 향해 
 날아오는 장면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것도 슬로우 비디오로...
 천천히 그 낫이 내 머리로 점점 다가왔죠..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순간적으로 어디서가 튀었는지 빗방을이 내 눈에 튀었어요.
 정신이 들었지. 짧은 순간이었지만 괴기한 최면에 들려있었던 갓 같아요.
 전혀 반항을 할 수 없었으니까..
 다행히 그 빗방울 때문에 나는 움직일 수 있었던 것같아요.
 생각할 새도 없이 몸을 틀었어요.
 머리를 향해 내리쳐지던 낫은 내 어깨를 내려쳤어요.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뒤로 넘어졌어요.
 그리고는 쓰러진 나를 향해 다시 한 번 낫을 힘껏 치켜든 그놈에게 들고 
 있는 권총을 겨냥하고 아무런 거림낏없이 방아쇠를 당겼죠. 
 2미터거리도 안되는 가까운 거리였는데, 아무리 권총이라도 빗나갈 거리
 가 아니었는데, 그 놈은 총에 안맞았었는지 전혀 개의치 않았어요.
 어쩌면 그 놈은 내총에 맞았는 지도 몰라...
 나는 분명히 그 놈의 심장을 정확히 겨냥했거든... 순식간의 일이었지만,
 가까운 거리여서 확신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놈은 분명히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다가왔어요.
 나는 공포에 떨며 2번째, 3번째 방아쇠를 당겼어요.
 그런데 운 좋게 3번째 총알이 그 놈이 낫을 들고 있던 손을 명중시켰죠.
 낫이 저쪽으로 날아갔어요.
 그러니 총알 세레에도 꿈쩍않던 그 놈이 잠시 멈추더니, 낫을 떨어뜨린 
 곳으로 가더니,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순식간에 그 노인이 죽
 어있던 집쪽으로 사라졌어요.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워 멀어져가는 그 놈의 등뒤를 향해 총
 을 발사했지만.. 
 하지만, 그 놈은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그때서야 나는 어깨의 통증을 처음 느꼈어요..
 휴...
 그런데 일한씨가 궁금했던 것에 대한 답은....
 그 놈이 누구였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정말 부끄러운 얘기지만, 솔직이 나는 그 놈에 대해서는 하나도 기억나
 는 것이 없어요..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너무 무서웠던지..
 단지 기억나는 것은 그 놈이 입었던 붉은 색 체크무늬 상의 뿐이고.
 그것도 내가 그 놈의 심장을 겨누고 총알 쐈기 때문에 기억나는 것 뿐이
 예요. 그리곤 아무것도 생각해낼 수 없어요.
 단지 그 놈에게 풍겨나오던 사악함과 무시무시함만 기억날 뿐이지...
 부끄럽네요..
 경찰이라는 작자가 범인을 잡기는커녕 겁에 질려, 인상착의도 제대로
 기억못하고 있으니...."

얘기를 마친 김반장의 어깨는 축늘어졌다.
부끄러움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기 힘든 얘기었는지 얘기
하는 동안 한 번도 뒤돌아 보지 않았다.
사실 나는 이전부터 마음에 제일 걸려오던 것을 김반장의 얘기를 통해 확
인하고 싶었었다. 그런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놈이 혹시 사라진 재원이 
가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김반장이 기억을 못하는 것으로 봐서 재원이가 아닐 수도 있었다.

 "김반장은 정말 큰일날 뻔 했네요...
 그래도 다행이네요..
 그런데 그 놈을 다시 보면 아실 수 있겠어요?"

 "그건 걱정 말아요..
 그놈의 얼굴은 기억못해도, 그 놈이 뿜어내는 그 숨막히는 살기와
 공포감은 죽을때까지 잊을 수 없을테니까...
 그건 그렇고, 일한씨 안 힘들어요?
 정화씨가 아무리 여자고 가볍고 하더라도, 이렇게 비맞으면서 
 걸으려면 힘들텐데..."

김반장은 그러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잠시 가늘어졌던 빗줄기는 다시 굵어지는 것 같았다.
머리속에는 수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이렇게 계속해서 비가 오면 고립된 이 마을은 언제 외부와 연결될 수 있
을까? 
그 때까지 우리 모두는 이 미치광이 살인마를 잡을 수 있을까?
아니, 그 놈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도대체 재원이는 어떻게 된 것일까?
버려진 집에 얽힌 괴기한 이야기들, 재원이의 정신착란과 실종,
정체 모를 살인마의 잇따른 연쇄 살인, 이 모든 것이 도대체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도저히 감
을 잡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생각이 떠올랐다.
그 살인마는 도대체 왜 계속해서 살인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닥치는대로...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이유로....
이제까지 그 놈의 계속되는  살인을 뒤쫓다보니, 너무 그  놈에 이끌려온 
것 같았다. 제대로 그 놈의 동기를 파악할 틈도 없이...

 "김반장님,
 지금 떠오른 사실인데요?
 그 살인마는 왜 마을 사람들을 계속해서 죽이고 있을까요?
 그리고 희생자들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 그 놈에게 죽음을 당한 걸
 까요? 아니면 무차별적으로 살육을 감행하고 있는 것일까요?"
 
김반장은 나의 질문에 다시한번 발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뭔가 생각하는 
것 같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며 얘기를 시작했다.

 "그래요...
 일한씨 말이 맞아요.
 이제까지 우리는 너무 그 놈의 살인 하나하나를 쫓고만 있었어.
 하긴 순식간에 너무 많은 살인사건이 발생했으니...
 연쇄 살인 사건에서 가장 중요하고 제일 먼저 조사해야 하는 것은 살인
 범의 살해 패턴을 찾는 것이죠..
 희생자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나 등을 밝혀내서 범인의 살해동기를 
 알아내고 다음 살인을 예방하거나 그 놈에 대한 단서를 발견해야 하는 
 것인데...
 우리도 한번 생각해 봐요...
 이 사건의 제일 첫 번째 희생자는 누구였지.....
 우리가 수사에 나선 것은 탈영병이 이곳 근처에 숨어들었다는 신고와 동
 시에 성일여관 주인인 최씨가 상체와 하체가 잘린 채 발견되었다는 신고
 를 받고나서였지.. 그리고 며칠있다가 정미소 김씨가 시체로 발견되고..
 두 사건의 용의자는 알다시피 그 거구의 탈영병었지..
 하지만 일한씨가 그 탈영병의 시체와 낫을 발견하고 나서 일단은 사건이 
 종결되었지.. 
 그 바보같은 군 수사관놈들...
 그저 자기들 책임인 탈영병이 시체로 발견되자 얼씨구나 좋구나 하고 사
 건을 종결시켜 버리고... 
 그리고 홍수로 마을이 고립되고, 무당과 그 조수가 시체로 발견되었지..
 그 살인도 일한씨와 정화씨가 발견하고...
 같은 시간 사과골 최씨 부부가 난도질당한 끔찍한 시체로 발견되고...
 그리고 지금 어르신과 어르신을 모시던 부부가 당했어요..
 모든 피해자는 낫으로 당했고...
 탈영병을 제외하고는 이 마을에 산지 오래되는 사람이고...
 뭔가 연관성이 있을텐데...
 그것이 뭘까...."

 "김반장님,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버려진 집에 몇 년전에 발생했다는 살인 사건이요...
 과수원 주인이 자기 딸과 사윗감었던 장교, 그리고 아들을 낫으로 죽이
 고 자신은 자살한 사건, 그 어르신이 얘기했던 일제 시대에 있었던 끔찍
 한 사건들과 이번 사건과의 무슨 연관성을 없을까요?
 괜히 꺼림직하네요...
 모든 사건들이 다 그 버려진 집과 낫이라는 매개체로 얽히고 ㅅ힌 실타
 레같아요... 원한과 중오, 복수, 뭐 이런 것이 동기 아닐까요?"

 "글쎄요...
 일한씨 말도 일리가 있지만, 너무 모호해요...
 뭔가 더욱 명확한 살해 동기나 패턴이 숨겨져 있을 것 같아요..
 어짜피 읍내의 지원이 앞으로 얼마간은 불가능하니 우리끼리 그것을 찾
 아내야 해요...
 앗! 그런데 저건 뭐지....."

김반장은 갑자기 말을 멈추고, 뭔가를 발견한 것처럼 앞으로 뛰어갔다.
나는 정화씨를 업고 있어 뛰어 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빠른 걸음으로 김
반장의 뒤를 따라갔다. 김반장이 발견한 것은 길 한폭판에 뭔가가 널부러
져 있는 것이었다.
먼저 달려간 김반장은 그것을 보더니 허리를 굽혀 두손을 무릎에  올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제기랄!! 이럴수가!!
 똑같잖아! 똑같아...."

김반장의 소리를 듣고 나는 정화씨를 업고 더욱 빨리 뛰어 뭔가가 널부러
져 있는 곳으로 달려 갔다.
그것을 보는 순간은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시체였다.
시체가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몸은  엎허져 있고, 머리만 잘라 
하늘을 향하게 돌려놓은 것이었다.
끔찍한 모습에 정신이 멍해져 있는데, 김반장의 목이 쉰듯한 목소리를 듣
고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때와 똑같아..
 내가 어릴적 할아버지 시체를 그 과수원 근처에서 발견했을 때와...
 그때도 할아버지 시체는 이렇게 놓여있었어..
 머리만 하늘을 향한 채로....
 제기랄! 똑같단 말야....."

...길복판에 가지런히 놓여진 그 끔찍한 시체  주위에는 피와 빗물이 섞인
붉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 시체로 다가갔다. 
바로 아까 그 집에서 사라진 노인의 시체였다.  우리에게 과수원 집의 숨
겨진 비밀을 얘기해 주었던... 하지만 뭔가를  숨기고 있다가 이렇게 처참
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그 놈이 어르신의 시체를 이렇게 여기다 이런 모양으로 가져다 놓은 것
 은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의미하는 것 같네요..
 우리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죠...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무슨 의도가 있다면 이 시체 배열을 봐서는 일한
 씨에게 보다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어쩌면 그 놈이 아무생각없이 여기다 시체를 버리고 간 것일지도 있잖
 아요.. 단지 정말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모르겠어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어떤 것이 진실인지를...
 휴....
 그건 그렇고, 어르신의 이 끔찍한 시체를 여기다 버리고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떻게 옮길 수도 없고....
 어떻게 하지...."

김반장은 난감한 표정을 한참 짓다가,주위를 둘러 보았다.
다행히 길가에 쓰다버린 듯한 가마니가 몇 개  보였다. 김반장은 그 가마
니 몇 개를 가져와 시체를 덮었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이렇게라도 수습을 하죠..
 빨리 지서에 돌아가 사람들을 보내 시체를 처리해야 겠어요...
 이런 식으로 가다간 온 마을이 시체로 넘쳐나가겠어요...
 큰일났군.. 큰일났어..."

대충 시체가 안보일정도로 가려놓고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슬슬 팔과 허리가 아파왔다. 처음에는 그렇게 가볍던 정화씨의 몸이 천근
만근으로 느껴졌다. 어느새 땀까지 나는 것 같았다.
아마 그 시체를 봐서, 더욱 힘이 빠진 것 같았다. 
김반장은 찹찹한 듯 걸음걸이가 느려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긴장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일한씨...
 조심하죠... 우리...
 그 놈이 시체를 여기다 놓고 갔다는 것은 우리 주위에서 맴돈다는 얘기
 일 수도 있으니까... 혹시 다음 목표가 우리일 수도 있으니까...
 여하튼 그 놈은 이 근처에 있는 것이 확실해요....
 모르죠.. 어디선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지도..."

그러고는 사방을 경계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더욱 난감해졌다. 정화씨를 업은 것은 점점 힘들어지는데,  어디선가 
그 놈이 낫을 들고 튀어나올지도 모르고...
김반장의 얘기를 듣고 보니, 사방의 인적은 전혀  없고 비만 내리고 있는 
것이 으시시했다. 이미 마을 사람들에게는 살인에 대한 소문이 쫙 퍼졌을
테고, 아무도 이 음침한 길을 돌아다니지 않을 것 같았다. 단지 저녁 모임
시간이 되면 모여들 것이었다. 
더구나 우리들을 보니, 영락없는 상처입은 채로  천천히 도망가는 먹이같
았다. 지금 이 상태에서 그 놈이 덮친다면 그 놈을 잡기는, 제대로 저항하
기도 힘들 것 같았다. 올때는 한 20분도 안걸린 것 같은 짧은 거리였지만,  
긴장한데다 정화씨까지 업고 있으니 정말 한참 걸리는 것 같았다.
정화씨를 업고 있는 상태에서도 자꾸 뒤에서 뭔가가 쫓아오는 것 같아 돌
아보게 되었다. 체력 소모는 더욱 심해지고...
김반장 역시 신경이 날카로웠는지 쉬지 않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우리를 내려다보는 뜨거운 시선을 느껴진 것 같은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
다. 긴장은 더욱 심해지고, 발걸음  하나하나 떼놓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
다. 
간신히 고개를 들어보니 저 앞으로 지서가 보였다. 
왔다갔다 하는 사람도 보였다. 이제는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반장이 외쳤다.

 "이봐! 빨리 나와봐!
 여기와서 일한씨 좀 도와줘!"

그 말을 들었는지, 지서 앞에서 있던 마을  장정 서넛이 달려와 정화씨를 
들쳐업고 나를 부축해줬다. 김반장을 부축을 거절한  채로 성큼성큼 지서
로 들어갔다. 나는 정화씨를 지서의 숙직실에 눕혔다. 김반장은 지서로 들
어가자마자 수많은 질문과 보고를 무시하고, 우선 지서에 있던 어떤 아주
머니에게 정화씨의 간호를 부탁했다. 그 아주머니는 피묻은 채로 쫄딱 젖
어버린정화씨를 보더니 '에구머니'하면서, 나를  포함한 남자들을 숙직실
밖으로 쫓아냈다. 우선 젓은 옷부터 갈아입힐 생각이었나 보다.
나는 그 아주머니의 걱정말라는 말을 듣고 등이 밀려서, 숙직실에서 나왔
다. 김반장은 의자에 앉아 상의를 벗고, 어깨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정화씨는 걱정말라고 했다.  그 아주머니가 잘 해주고,  지금 
자기 어깨를 치료하고 있는 보건의가 정화씨를 진찰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무너지듯 빈 의자에 주저앉았다.
젖은 몸이 추워졌지만, 지금 그것을 신경 쓸 수가 없었다.시계를 보니 어
느새 오후 3시를 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먹은 것도  없어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했다.
김반장은 어깨를 치료하면서 이순경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고 받고 있
었다.

 "..아직 읍내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장님이 오늘 오후 5시에 모든 마을 사람들을 분교 교실로 모이
 라고 전달하셨습니다. 시체들은 모두 냉동고로 옮겼고, 의사 선생님이 검
 사하셨습니다. 반장님께 직접 몇가지 말씀 드린답니다.
 그리고 마을에 있는 총기류를 모아 보니, 지서용 칼빈총 3정과 보관중인
 사냥용 공기총 2정이 전부입니다. 실탄은 칼빈용 100발과 권총용 20발입
 니다. 모두 지서에 모아두었습니다.     
 말씀하신 탈영병 사건 기록은 그때 군 수사본부에서 전부 가져가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있었던 그 과수원집 살인사건에 대한 
 기록들은 본서에 보관되어있고, 그 사건을 담당했던 주형중 순경은 얼마
 전에 아시다시피 분신자살했고,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던 사건 기록도
 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이순경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지서의 문을 쾅 열고누
군가가 뛰어들어왔다.
머리를 산발한 어느 아주머니였다.

 "우리 애가 ... 
 큰일 났어요!!! 큰 일!!
 제발.... 
 제발.....  안돼!!!"

미친 사람처럼 알 수 없는 소리를 외치더니 이내 자리에서 쓰러저 혼절해
버렸다. 지서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아주머니에게 웅성거리며 다가갔다.

  "서산댁, 정신차려요! 정신차려..."

이순경이 쓰러진 아주머니를 흔들어 깨우려고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
었다. 김반장의 어깨에  붕대를 감아주던 보건의는  재빠르게 아주머니의 
상태를 살펴보고 단순한 충격에 의한기절이라고  말했다. 정화씨와 비슷
한 경우처럼 보였다.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무슨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멍하고 쓰러진 그 아주머니를 보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지서로 뛰어들어
왔다. 가슴에는 피투성이가 된 뭔가를 들고 들어왔다.
처음에는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무슨 동물의  시체를 가져온 줄 알았
다.
하지만 그 피투성이의 것을 알아보는 순간 너무 큰 충격에 멍해졌다.
속이 매쓰꺼워지며 구토가 나오는 것 같았다. 
바로 아이의 시체였다.
더욱 끔직한 것은 그 애의 양팔이 붙어있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애가 죽었어요!!!
 흐흑... 흐흑....
 누가 우리 애의 팔을 잘랐어요...
 제발 살려줘요....
 흐흑...."

모두들 그 참혹한 모습에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보건의는 그 사람이 책상위에 내려놓은 거의 고깃덩이나  다
름없는 피투성이의 아이를 살펴보았다. 내가 보기에도 그 애는 이미 이세
상 사람이 아니었다. 의사역시 고개를  가로져으며, 자기 가운을 벗어  그 
참혹한 시체를 덮어주었다. 
아이를 안고온 그 사람 제정신을 잃은 것처럼 계속해서 흐느끼기만 했다.
또 다른 살인이일어난 것이었다.
김반장은 상처치료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떡 일어나  제정신을 잃고 흐
느끼고만 있는 그 사람을 부여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이봐! 박씨!
 무슨 얘기 하고 있는가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안사람은 저렇게 기절해있고!!!
 도대체 어떤 일이야?
 정신차리고 말좀 해봐!! 
 이봐 정신 차리란 말야!!!!"

김반장의 과격한 행동에 그 사람은 흐느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
고는 춧점없는 눈빛을 하고 마치 딴사람 얘기하듯이 또하나의 끔찍한  사
건을 얘기했다.

 "..아, 김반장님....
 오랜만이네요...
 언제 마을에 오셨나요...
 우리 애를 살리려 오셨나요?
 우리 애가 죽었어요....
 머리가 잘려나갔어요....
 이장님이 마을에 끔찍한 일이 발생하니, 조심하고 오늘 5시에 분교로 온 
 가족을 데리고 모이라는 말씀을 전해주시고 우리집을 다녀가셨죠....
 안사람은 겁에 질려, 물난리 난 것 구경하러 나건 애를 찾아 나서자고 
 했죠.
 우리 애 아시죠.... 우리 부부의 하나뿐이 자랑...
 개 공부도 지학교에서 일등 해요...
 읍내 중학교에서 서울대학감이라고 다들 칭찬하는데...
 방학이라 집에서 농사일 돕고 공부도 하고 있었는데....
 강가로 갔죠...
 거기는 우리애가 어렸을부터 자주 놀러가던 곳이었어요..
 처음에는 여편네가 걱정도 팔자라고 생각하며 투덜거리며 애를 찾으러 
 간 것인데...
 강가로 갔지요...
 그런데 누군가가 저 옆을 휙하고 지나가는 것이 언뜻 보였지요..
 너무 순식간에 일이었기에, 그냥 잘못 본 것인줄 알았는데....
 그 놈이야!
 그 놈이 우리 애를 저렇게 만든거야!
 흑흑...
 아무 생각없이 애 이름을 부르며 강가를 헤맸죠...
 그런데......
 그런데 말이예요....
 저쪽에 뭔가가 보이는 거예요....
 그쪽으로 다가갈수록 이상하게도 불안해졌죠......
 바로 우리 애였어요....
 피투성이가 된채.... 두팔이 잘려나간 채.....
 아냐! 이건 아냐!!!!!
 아냐!!!!!!!!"

갑자기 그 사람은 발작이라도 한 듯이 악을 쓰고 책상을 쾅쾅 쳐댔다.
이순경은 그 사람을 부여잡고, 진정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아들을 잃은 슬픔에 실성한 사람처럼 악을 쓰고 보이는 
것은 모두 부셔버릴 기세였다. 
금새 지서안은 아수라장이 될  판이었다. 나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이 그 
사람을 향해 달려 들었지만, 그 사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보건의가 진정제를 놓을때까지 처절한  발악을 계속했다. 하지
만 그 진정제가 약효를 보았는지, 발작을 멈추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순간 죽음과 같은 적막이 흘렀다.
모두 참담함과 무력감, 또는 절망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은 의자에 앉아 계속해서 아들의 이름을 뇌까리며 흐느꼈다.
그 끔찍한 적막을 깬 것 역시 김반장이었다.

 "나쁜 새끼....
 이제 아이까지....
 어디 보자. 잔인한 놈......
 모두들, 이제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자, 빨리 움직이자!
 이장님, 박씨하고 안사람을 집으로 데리고 가서 좀 안정시켜 주시겠어
 요? 댁에 사람들 좀 불러서 같이 계셔 주시죠... 워낙 큰 충격을 받으셨
 을테니...
 그리고 의사 선생님 수고 스럽겠지만 여기서 이 애가 어떻게 살해되었는
 지 좀 봐주시겠어요.. 물론 생소한 일이겠지만, 최선을 다해주세요...
 뭔가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김군은 의사 선생님의 검시가 끝나면 몇 명과 같이 이 애를 그 냉동고에 
 날라주게... 냉동고에 이제 자리가 없겠군...
 제기랄...."

모두들 김반장의 얘기를 듣고, 최면에서 깨어난  사람들처럼 움직이기 시
작했다. 아무도 김반장의 반명령조의 말에 이의를 두지 않았다. 명령에 복
종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지옥같은 자리에서  한시바삐 빠져나가고 싶은 
것인지 민첩하게 움직였다.
김반장은 보건의가 감다만 붕대를 자기  손으로 대충 감아버리고 웃옷을 
입었다. 누기 봐도 김반장의 눈에는 분노와 굳은 결의가 서려있었다. 이제 
그 놈을 용서할 수 없다는 강렬한 의지를 풍겨냈다. 
하지만 내눈에는 그런 김반장의 모습에서 웬지 모르게, 김반장 자신의 두
려움이 느껴졌다. 자기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공포를 억지로 억
누르고 있는 자의 모습이 느껴졌다.
김반장이 몸을 일으키며 움직이려 할때, 이순경이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 
듯이 허름한 수첩을 내밀며 말을 했다.
처음에는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의아해했는데, 그  얘기의 의미를 알아차
렸을때는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저.. 김반장님, 아까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저런 일이 발생하는 바람에..
 주순경의 과수원 살인 사건에 대한 수사 기록 있잖습니까... 
 전부 없었졌는 줄 알았는데... 지서 캐비넷을 뒤지다 보니 이걸 발견했습
 니다. 앞에 보니 주순경 이름하고, 그 과수원 살인 사건에 대한 요약이
 있는걸 보니, 아마 없어지지 않은 그 사건의 개인적인 기록 같습니다.
 저는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반장님이 찾던 것입니까?......"

...나와 김반장은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허겁지겁 이순경이 내민 그 
그 주형사의 수첩을 받았다. 이순경은 우리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면서 
말했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단서가 될까요...
 정신병으로 자기몸에 불을 지른 사람이 끄적거려 놓은 것 같은데...
 제가 신참시절에 듣기에는 주형사는 그 사건을 맡은 이후로 점점 이상해
 져서 결국은 사표를 냈다고 하는데요... 
 더구나 점점 자폐증상까지 보이며 남과의 접촉을 끊더니 그렇게 
 죽었는데... 
 그것이 쓸모있을까요?"

김반장은 그 수첩을 뒤적이니라 고개도 들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이순
경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소문에 가려 진실을 보지 못한다면 좋은 경찰이 될 수없네.
 나는 이 주형사를 알고 있어... 내 밑에서 일한적도 있고...
 그렇게 능력은 뛰어나지 않았어도, 사건 하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지.. 그것 때문에 오히려 출세도 못했고 비극적인 최
 후를 맞이했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몇가지 의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추적하는 경찰은  
 점점 사라지네...
 이 주순경은 요즘은 거의 보기 힘든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사건을 포기하고 사표를 썼다면 반드시 그런 이유가 있었을
 꺼야.. 혹시 그의 자살도 뭔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고..."

나는 김반장에게 내가 들었던 주형사의 얘기를  해주었다. 재원이 편지에 
나왔던 얘기며, 그 사람이 자살전에 나와 통화했던 내용을 얘기해 주었다.
김반장은 그 얘기를 듣고 수첩을 읽는 것을 잠깐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혼잣말인지 모르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정말 그 집에 뭔가가 있는 것일까....."

그러더니 그 낡은 수첩에 다시 몰두했다. 
나는 치밀어오르는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었다. 
갑자기 그 주형사와의 마지막 통화가 생각났다.

 '...걱정마쇼. 안 그래도 내가 오늘 신나를 사오고 다 준비 해 두었소.
  오늘 밤에 그 빌어먹일 집을 태워버릴 작정이요. 더 이상 그 악귀같은
  집을 그대로 나둘 수가 없겠소. 또 다른 사람이 희생될 지도 모르잖소.
  그래서 그 집을 싸그리 태워버릴 생각이요..
  재원이 학생이 회복되면, 이 얘기 전해주고 연락해달라고 전해주쇼...'

그러더니 그는 자기 몸에 불을 질러 자살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이었다. 그 과수원 살인 사건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을 그 사람이 비
밀을 품고 영원히 가버린 것이다. 또한 주형사가 작성한 수사기록과 동생 
지철이의 일기는 재원이가 그 버려진 집으로  가져갔다가 사라졌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 수첩만이 지금의 피비린내나는 연쇄살인 사건과 그  과
수원 사건의 단서를 줄 것만  같았다. 이 두 사건은  버려진 집을 가운데 
두고 뭔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설사  아니더라도 지금 상황은 지푸라
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나는 이것저것 생각을 하면서 지서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김반장은 집중해서 그 수첩을 읽고 있었고, 보건의는 책상을 수술대 삼아 
그 아이의 끔찍한 시체를 검사하고 있었다. 이장은 정신을 제대로 추스르
지도 못한 그 아이의  부모를 어디론가 데리고 나가고  있었다. 이순경은 
어쩌정한 자세로 김반장이 수첩을 다 읽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몇 명의 청
년들은 혹시나 총이라도 나누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으며 이것  저
것을 돕고 있었다. 하지만 이 지서안에는 숨길  수 없는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 내가 너무 민감하게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모두에게서  공포 
내음이 진하게 풍겨나오고 있었다. 뭔가에 쫓기는  듯한 초조함과 두려움
들이 느껴졌다.
숙직실에 누워있을 정화씨가 생각났다. 
문을 노크했더니. 정화씨를 돌보고 있던 아주머니가 들어오라고 했다. 
정화씨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기절 상태에서도 몸서리를 치는 것을 보니 뭔가 무서운 것을  무의식중에
서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안쓰러웠고, 한편으로는 연민의  정
이 느껴졌다. 사라진 남자친구를 찾으러 왔다가 온갓 험하고 끔찍한 일을 
경험하고 정신까지 잃다니... 나의 책임도 느껴졌다.
착잡했다.
아주머니 말로는 좀 시간이 지나면, 정신을 차릴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의사도 아닌 그 아주머니의 말은 쉽게 믿겨지지 않았다.
그때 마침 그 아이의  시체에 대한 검시를 끝냈는지,  보건의가 김반장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재빠르게 숙직실을 나왔다.
김반장은 읽던 것을 멈추고 시체가 놓여있는  책상위로 다가갔다. 보건의
는 진저리치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휴....
 정말 끔찍하군요... 제가 검시관이 아닌 이상 정확한 사인이나 기타 사항
 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네요. 더구나 아무런 장비도 없고부검도 하
 지 않은 상태에서 뭔가를 밝히기란 불가능하죠.. 특히 저같은 보건의로써
 는 더욱더 힘든 일이죠...
 그래도 대략적인 사인은 잘려나간 두 손을 제외하곤 특별한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출혈과다로 사망한 것 같습니다. 두 손이 잘려나간 부분은 
 뭔가 매우 날카로운 것에 잘린 것 처럼 매끔하게 잘렸습니다. 뼈까지 깔
 끔하게 잘려나간 것을 보면, 사람이 아닌 기계에 의해 잘린 것 같습니다.
 이런 상처는 제가 인턴시절 응급실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절단기에 손
 을 잘려서 병원에 실려온 기술자때와 똑같은 형태입니다. 날카로운 것에 
 엄청난 힘을 실었을 때 나타나는 상처죠.. 아마 사람 힘으로는 힘들걸
 요... 큰 도끼로 내려친다면 자르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이런 상처를 
 남길 순 없어요...
 그리고 여기 이상한 흔적이 보입니다.
 누군가가 팔뚝근처에 지혈해준 흔적입니다. 자국이 보이죠?
 강한 힘으로 밧줄 같은 것으로 동여맨 자국입니다.
 양쪽 팔에 모두 자국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두 팔을 피가 안통
 할 정도로 강하게 조여 놓았다는 얘기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손을 잘라내고 지혈을 하다니...
 만약 살인이라면, 정말 끔찍한 살인 방법입니다.
 이 아이는 자기 손이 잘려나가는 고통을 맛본후에 거기서 피가 흘러나오
 는 것을 보면서 죽어간 것이죠.. 더구나 팔뚝을 지혈했기 때문에 피는 천
 천히 흘러나왔겠죠.. 물론 주체도 못할 정도로 많이 흘러나왔겠지만, 사
 망시간은 좀 늦츨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이는 천천히 죽어갔습니다. 온갖 공포와 고통을 느끼며...
 휴...."

지서안은 죽음과 같은 적막이 흘렀다.
이순경이 "제기랄! 어떤 새끼가 그런거야!!!"  라고 목쉰 목소리로 욕지거
리를 할 때까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제서야 모두들 큰 충격에서 
깨어난 것처럼 행동했다. 기다리던 마을 청년은 그 가련한 아이의 시체를 
푸대에 싸서 옮겨갔다. 그래도 지서안은 바닥이며  책상이며 피범벅이 되
어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닦아낼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김반장은 보건의에게 몇가지 질문하고,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한참을 김반장의 생각이 끝나길 기다리고만 있었다. 
이윽고 고개를 든 김반장은 먼저 이순경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
렸다.  

 "이순경, 지금 당장 무기고에 있는 칼빈 총과 실탄을 챙겨가지고 나오게.
 그리고 좀 쓸만한 마을 청년들을 무장시키게. 총이 없는 사람들은 몽둥
 이라도 들려서 무장시켜.
 그들을 데리고 마을 한바퀴 돌면서 마을 사람들 전부를 분교로 데려오
 게. 마을에 남아 있는 모든 사람들 데리고 오는 것이야! 반항하거나 지
 시에 따르지 않는 마을 사람들이 있으면 강제로라도 데리고 오게.
 단단히 각오해야 할걸세!
 자네도 알고 있듯이 그 미치광이 살인마는 어디서 누구를 살해할지 몰
 라. 어쩌면 지금도 누군가를 갈기갈기 ㅉ고 있을 지도 모르지... 
 어두어지기 까지는 앞으로 2, 3시간 남았으니 서두르게.
 어두어지면 그 놈의 살인행각에서 피하기가 더욱더 힘들어 지니까.
 그리고 마을을 돌 때, 읍내 본서와 연락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게.
 휴대폰이나 무전기나 아무 것이라도 좋아.
 읍내와 연락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 가져오게!
 이렇게 비오는 날, 한집 한집 들르며 마을 사람들 전부를 데리고 다닌다
 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알아!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죽어나갈 것 같아.
 수고스럽고 위험하겠지만 부탁하네...
 명심하게!
 그 놈은 미친놈이지만, 멍청한 놈은 아니라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버려진 집 근처는 지나지 말게!
 이유는 묻지 말게, 나도 잘 모르니까...
 마을을 돌다가 그 놈 같으면 생포할 생각말고, 가차없이 발포하게.
 ㅅ불리 덤벼들다간 자네들만 다칠테니까!
 그런 놈은 잡을 생각하지말고 죽일 생각을 해!
 그것이 그 놈의 살인 행각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먀...
 그럼 부탁하네!"

이순경은 김반장의 단호하면서 진지한 얘기에 아무런 불만도 표시 못하고 
무기고로 갔다. 이순경의 굳은 얼굴에는 두려움과  강한 책임감이 느껴졌
다. 이순경은 칼빈총을 꺼내와서 실탄을 장전하고  자기가 하나들고 나머
지는 마침 지서에 있던 청년들에게 나누어줬다.  간단히 사용법을 설명해
주었다.
마을 청년들은 처음 총을 받아들때는 약간 들뜬 모습마저 보였지만, 심각
한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차츰 긴장된 모습으로 이순경의 설명을 들었다.
이순경은 마을 지도를 펼치고 마을 사람들을 안전하고 최대로 짧은  시간
에 데리고 올 루트를 정했다.
그리곤 우비를 입고, 굳은 표정과 함께 지서를 나섰다.
김반장은 나가고 있는 이순경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제발 조심하게... 
 그 놈은 정말 위험한 놈이야!
 어쩌면 인간이 아닐지도 몰라..
 단지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일지도 모르니까...."

이순경은 잠시 발길을 멈추었지만,  '괜찮습니다!'라고 자신감넘치는 대답
을 남기고 청년들을 이끌고 나섰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불안감을 느
꼈지만, 이순경의 힘찬 대답에 그 불안감을 애써 떨쳐버렸다.
이제 지서에는 나와 김반장밖에 남지 않았다.
김반장은 한숨을 내쉬며 그 문제의 수첩을 내밀었다.

 "일한씨..
 이거 한 번 읽어 보세요...
 여기 쓰여진 내용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만약 모두 사실이라면, 이번 사건과 어떻게 연관지어야 하는지..
 뭔가 알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안개 속에서 더듬는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일한씨도 읽어보세요.. 
 혹시 일한씨가 재원씨에게 받았다는 편지와 관련되어 뭔가 새로운 사실
 이 밝혀질 수도 있으니까요..."

나도 모르게 그 수첩을 받아든 손이 긴장으로 떨렸다.
이 수첩에는 분명히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이 끔찍하고 계속되는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혀낼 수 있는 그 무엇이...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 수첩을 펼쳐보았다.
그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사건의 기록을.....

....주형사의 수첩에 적혀져 있던  것은, 수사에 관한  일정한 형식이 없는 
메모들이었다. 한 번에 쓰여지지 않고, 몇 달에 걸쳐 쓰여진 것이었다.
 

[ 과수원 살인 사건
 - 3명의 희생자와 1명의 목격자가 발견
 - 살인 도구는 낫으로 추정
 - 살인 도구로 추정되는 낫에는 4명의 지문이 모두 채취됨..
 - 1명의 목격자는 사건 당시의 일을 기억못함..

모든 가능성을 감안해 최대한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자....
1. 희생자중 살인범이 있다면....
 (즉, 범인도 자살또는 정당방위에 의한 타살로 죽었다는 가정)
 
 가) 한병식(과수원 주인)이 살인범이라면....
  - 살인 동기: 정신질환?
  - 타당성 있는 결론. 그러나, 안중위와 아들인 지철을 죽인다음에 자기 
    목을 스스로 잘라 자살하는 것은 불가능. 또한 그렇다면 사라진 그 
    머리는 어디에..
  - 안중위나 지철이 정당방위로 한병식을 죽이고, 자신들도 죽었다고 하
    는 것도 이해가 안감. 정당방위로 상대방의 머리를 잘라버리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함. 더구나 마지막에 낫을 쥐고 있던 사람은 한병식....
  

 나) 안 현(인근 모부대 ROTC 중위)이 살인범이라면....  
  - 살인 동기: 한병식의 딸 한지희와의 결혼 문제로 빚어진 갈등?
               너무 모호하고, 일가족 몰살의 동기로는 약함.
  - 먼저 지철의 등을 낫으로 찍어 죽이고, 격투 끝에 한병식의 머리를 
    자른후에 자기도 깊은 상처를 입고 죽었다? 그렇다면 없어진 한병식
    의 머리또한 안 현이 처리했다는 것인데, 죽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 왜 이미 자기가 죽인 사람의 머리를 잘라 숨켰을까?
    또한 마지막에 낫을 쥐고 있던 사람은 한병식이었다.
  
 다) 한지철(과수원 집 아들, 중학생)이 살인범이라면..
  - 살인 동기: 정신질환?
  - 안중위와 아버지를 죽이고 그때 입은 상처로 죽음? 또는 살인을 말
    리던 누나인 지희에게 피살됨? 중학생의 힘으로 사람의 머리를 잘라
    낼 수 없음. 또한 안중위와 한병식의 시체에는 서로 격투한 흔적이 
    발견되었지만, 지철과 격투한 흔적은 없음.

 라) 한지희(과수원 집 딸, 안중위와 결혼 예정)이 살인범이라면...
  - 살인 동기: 정신질환? 또는 결혼 문제로 일어난 갈등?
  - 유일한 생존자이기 때문에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될 수 있음.
    과연 혼자서 세명을 남자들을 죽일 수 있었을까?
    또한 여자 힘으로 사람의 머리를 잘라 낼 수 있을까?

 마) 살인자가 두 명이상이라며...(가능성 있는 조합을 보면)
  - 한지희와 안 현이 공범: 타당성 높음
    살인 동기는 결혼에 방해가 되는 가족의 처치?(우발적) - 일리 있음. 
    안 현과 한지희 한병식과 한지철을 죽이고 그 과정에서 안중위도 죽
    임을 당함? - 일리 있음 
    사라진 한병식의 머리와 마지막에 한병식에게 쥐어진 낫은 수사의 초
    점을 흐리게 하기 위한 한지희의 속임수? - 일리 있음
    한지희의 실성은 속임수? -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으로는 절대로 속
    일 수 없다고 함. 결국 한지희는 진짜로 정신병 환자로 밝혀짐.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 충격으로 한지희가 진짜로 실성? - 타당성 높
    음. 하지만 왜 한병식의 머리는 숨기고 낫을 쥐어줬을까? 또 하나의 
    의문... 한병식이 낫을 쥐고 있던 향태로 봐서 남이 죽은 후에 쥐어준 
    것은 절대 아님.

2. 제3자가 범인이라면...
  - 살인동기: 과수원 가족과의 원한?
  - 과수원 집에 제 3자가 침입한 흔적을 발견 못함. 피바다가 된 과수원 
집 바닥에서 제3자의 발자국을 발견 못함. 흔적없이 들어왔다 살인을 
    저지르고 사라지는 것을 불가능. 
    제 3자가 살인을 했다면 안중위와 한병식이 쥐고 있던 서로의 머리카
    락과 계급장은?    
    결정적인 목격자가 될 수도 있는 한지희를 살려둔 이유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제대로 된 결론은 하나도 없다. 글자 그대로  미
궁이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한지희가 제정신을  차려 그때 사건을 말해
주지 않는 한 진상을 영원히 알 수 없을까?
 
분명히 이 사건은 가정 불화로 인한 자살  따위가아니다. 누군가가 무지
막지한 원한또는 악의를 가지고 저지른 끔찍한 범죄가 확실하다..하지만..

원한이다. 이런 잔학한 살인을 저지린다는 것은  물건이 목적이었던 것이 
아니다. 또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이런 잔학한 살상극을 벌이진 않
았을 것이다. 놈의 목적은 살람을 갈기 갈기  ㅉ어서 최대한 잔인하게 죽
이는 것이었다! 최대한의 고통과 공포를 느끼게 하면서.....]

적혀있는 볼펜 색깔이 다른 것을 보니 며칠 후에 적힌 내용같다.

[ 3. 원한관계
 가) 과수원 주인 한병식과의 원한
   - 5년전에 이곳으로 이주. 이사를 주선한 사람은 친구라는 성일 여관
     주인(최성일)이 했다. 이사 후 1년만에 부인 사망.
     원인 불명. 단지 치료 할 수 없는 병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짐.
     부인이 죽기 전까지 마을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
     그러나 부인이 죽은 후에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처럼 행동.
     항상 술에 취해 살고, 폭력적이 됨. 그 때문에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
     도 나빠짐. 특히 정미소를 운영하는 김은철과 술자리에서 싸움을 벌
     여 전치 4주 정도의 상처를 입힘. 김은철의 고소로 치료비와 합의금
     조로 500만원 지급하는 등,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과 악화.
     가장 가까운 친구는 역시 여관주인인 최성일.


나) 안중위와의 원한
   - 서울에서 여유있는 집안 출신으로 제대를 앞둔 ROTC 군인.
     재대후 대기업에 입사하기로 되어있는등 안정되고 전망있는 상태였
     음. 소속 대대장등 상급자의 증언에 따르면 밝은 성격으로 원만한 
     복무 생활을 했음. 하지만 안중위가 지휘하던 소대원들의 증언에 의
     하면, 소대원 중 상병 한명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자세히는 말해주지 않았으나, 하극상과 관계 있는 것 같다. 
     도시 출신이며 대졸 학력의 연약한 소대장을 각계 각층의 거친 병사
     들이 복종하고 따를 수 있었을까...

다) 첫째딸 한지희와의 원한 
   - 마을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함.
     마을에서 가장 훌륭한 부인감이며 며느리감으로 간주됨.
     뛰어난 외모와 착한 성격으로 모든 사람이 좋아함.
     원한 관계는 전혀 없다고 주변에서 증언.
     하지만.... 가뜩이나 여자가 부족한  마을에서 어디 내어놔도  손색이   
     없는 일등 신부감을 놓고 아무런 잡음이 없다?
     더구나 외부 사람과 결혼하는데...
     표면적으로는 없다고 했으나, 이 결혼에 대한 치정 살인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누군가 한지희를 짝사랑했다?
     조사가 필요...]

   시간이 얼마 지난 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메모가 한지희에 관한 
   내용에 덧붙여져 있다.
     
     [마을에 한지희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 
     정신이 나가있는 지금, 한병식의 친구인 여관주인 최성일이 돌봐주
     고 있으나, 누군가의 애를 임신하고 있다는등 지저분한 소문이 있다.
     불쌍한것... 마을 누군가가 실성한 지희를 농락하는 것 같다..
     죽일 놈.....

  라) 한지철와의 원한
    - 중학생이라 특별한 원한관계가 없다.
      전학 와서도 친구를 잘 사귀는등 원만한 관계를 유지.
      단지, 같은 반 반장(박윤환)과 성적이나 인기 같은 것에서 
      경쟁관계여서 껄끄러운 사이였다고 함. 친구들의 얘기로는 반장이 
      지철을 엄마가 없어 버릇없는 애라는 등 심한 욕도 하고 
      사이가 나뻤다고 함.
      직접 반장에게 물어보니 자신은 지철과 사이가 좋았다고 주장.]

또다시 시간이 지난 후에 적힌 내용 같다.

   [무섭다...
   이 사건에 대해 집착할수록 뭔가가 나를 압박하고 뒤쫓는 것 같다.
   나를 감시하고 나를 위협한다.
   무엇일까....
   
   제기랄..
   박형사가 오늘 죽었다. 교통사고로..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하지만 믿울 수 없다. 본서에서 파견나와서 이 
   사건에 대해 정열적으로 조사하던 젊은이였는데...
   그도 사건에 파고들수록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사건을 상부의 지시로 말도 안되는 시나리오로 마무리하고 나서
   본서로 복귀했지만, 그는 끝까지 석연치 않음을 떨칠 수 없었나 보다.
   사고 당하기 전날 밤에 술취한 목소리로 전화해 그가 내게 말한 것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주형사님, 포기하실 것입니까?
    저는 무섭습니다. 부끄럽지만 무서워요...
    밤마다 끔찍한 악몽에 시달려요... 죽음이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이 사건에는 뭔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이한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무서운....
    아직 주형사님께 말씀드릴 단계는 아니지만, 살인 사건이 일어난 그 
    집에 대해 뭔가를 알아냈아요...
    얘기해도 믿지는 않을 거예요...
    제가 살아있다면 곧 말씀드릴꼐요...
    무서워요......'
   박형사가 정말 사고였는지. 자살했는지. 아니면 뭔가에 의해 죽었는지..
   나도 무섭다. 
   그 집에 뭔가가 있다. 
   알수 없지만, 이 공포의 근원인 그 무언가가....

4. 과수원 - 살인사건이 일어난 후 버려진 집.
 - 1920년대 지어졌다고 추측됨.
   이 집을 지은 주인에 대한 기록은 없음. 해방까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
   고 버려진 체로 남겨졌다고 함...
   그 후 여러 가지 괴기한 얘기가 전해짐
그 중에 신빙성있는 얘기만 몇가지 살펴보면, 
   6.25 당시 국군 소대가 그 집에 주둔한 적이 있는데, 하룻밤사이에 한 
   소대가 사지가 잘린 상태로 모두 죽었다는 것이다. 전쟁때라 아무 조
   사 없이 끝났으나 전해진 이야기로는 그때 발견된 한명의 생존자였던 
   소대장이 낫을 들고 부대원 전원을 죽였다고 한다. 그 소대장은 물론 
   미친 상태에서 혼란 중에 사라지고....
   그 외에도 수사기록 및 사망사건의 자료들을 조사해 보면, 그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어 나온 사망자 수가 이번 사건을 제외하고, 30년간 20
   명이 넘으니 뭔가 이상하다. 더구나 그 기간 동안에 특별히 거주자도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것에는 이상한 일이다.
   희생자의 대부분이 부랑자나 떠돌이 그리고 술주정뱅이가 하룻밤정도 
   빈집에서 쉬려고 들어갔다가 다음날 시체로 발견된 경우다. 모든 경우
   가 사인은 충격에 의한 심장마비 또는 원인불명으로 기록되었다.
   한병식은 왜 그런 집을 사서 이사하게 되었을까?
   누가 그 집을 소유하게 되고 한병식에게 팔았을까?
   한병식의 그 집으로의 이주는 친구이며 여관주인인 최성일이 주선했
   다. 그런데 한병식에게 집을 팔았다는 것도 바로 최성일이였다.
   서류상에 보면 소유주가 불분명한 상태였던 6년전에 최성일이 자기 소
   유로 신고하고, 그 뒤 바로 한병식에게 판 것이다.
   최성일은 그 집이 흉가라는 것을 알고 판 것인가?
   한병식은 그 집이 그런 저주 받은 집이라는 것을 알고 그 집으로 이사
   한 것일까?
   그 집을 처음 짓고 실종된 사람은 누구일까?
   마을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어르신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무 것도 기억
   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확실히 뭔가 숨겨진 얘기가 있다.

   그 집이 풍기는 그 기괴하고 무시무시한 것은 과연 무었을까?
   그게 무엇이든 나를 압박하고 나를 죽음으로 몰아 넣고 있다.
   너무 무섭다..
   어디로 가도 나를 쫓아오는 괴물이 있다. 
   그 집에서 뭔가 나오고 있다.  
   사악한 기운이......]
 
그리고 재원이가 그 집에 들어갔다  정신이 나간 후에 쓰여진 듯한  글이 
보였다. 바로 주형사가 몸에 불이 붙여 죽기 전에 쓴 글이었다. 

 [...멀쩡한 의대생이 그 집에 들어갔다가 미쳐서나왔다.
 내게도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그 때 얘기해준 내 잘못이다. 말렸어여 하는데....
 도망가고 숨어사는 것도 이제 끝이다.
 그 집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이제는 정말 끝을 봐야겠다.
 불을 지를 것이다.
 내가 죽던 그 집이 타 없어지던, 이제 죽음의 공포는 끝이다.
 수십명의 피를 먹고도 아직도 사람의 목숨에 굶주려있는 그 집을 이 세
 상에서 없앨 생각이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다....]

나는 메모를 다 읽고 더욱 혼란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을 쓴 날 밤 주형준 형사는 몸에 불을 붙여 자살했다.
자살이 아니고 그 집에 의해 죽음을 당했는지도 모르지만......

..주형사의 기록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뭔가 단서를 제공해주는 것 같기도 했지만, 확답을  내 주지는 않고 있었
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번 살인이든, 지난번 살인이든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그 버려진 집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김반장은 내게 그 기록에 대해 물어보았다.

 "일한씨, 어때요?
 무슨 감이 잡혀요? 그 끔찍한 놈에 대해..."
 "아뇨. 전혀...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버려진 과수원과의 관계는 분명히 있다는 것입
 니다. 형태가 어떠하든, 그 집이 이번 사건의 중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비 이성적인 생각인 것 같지만, 제가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네
 요...
 반장님은 뭐 좀 아시겠나요?"
 "나도 비슷하죠...
 그래도 선명하지는 않지만 그림하나가 눈에 보이는 것 같네요.
 일한씨 말대로 그 버려진 집이 중심에 있는...."

김반장은 뭔가를 알아차린 것 같지만, 아직 밝힐때가 아닌지 전부 얘기해 
주지 않고 있었다. 좀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때가 되면 알게 될  것 
같아 참았다.
그때 숙직실 방문이 열리며, 정화씨를 봐주고 있던 아주머니가 나왔다.
정화씨가 정신을차렸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나는 황급히 방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정화씨는 파리한 얼굴을 하며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첫눈에 봐도 대
단하게 고생하고 험한 경험을 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정화씨.. 괜찮아요?
 안심하세요.. 여기는 지서 안이니까..
 일어나서 다행이네요. 모두 걱정했어요..."
 
정화씨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안해요..  일한씨..
 저 때문에 고생하고... 
 저는 여기 괜히 따라왔나 봐요.. 방해만 되고...
 그때 일한씨말듣고 오지 말 것 그랬어요..."
 
안 되어보이는 정화씨에 뭔가 위로의 말이라도 해 줘야겠다고 하는데, 갑
자기 김반장이 끼어들었다. 

 "정화씨, 일어나자마자 이런 질문해서 미안한데...
 지금 상황이 워낙 급하니까 좀 이해해줘요..
 정화씨 기절하기 전에 상황에 대해 기억해요..
 기억나는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얘기해 주시겠어요.
 무리라는 것을 알지만 부탁입니다.."

나는 정화씨가 안쓰러웠지만, 김반장의 다급한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어떻해 보면, 지금 현재 그 놈을 보고  살아있는 것은 김반장과 정화씨밖
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반장의 경우는 제대로 목격한 것이 아니니까, 정화
씨가 유일한 증인이자 단서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정화씨는 김반장의 
질문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놈을 목격한 순간을 회상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너무 무서웠어요..
 사실 그 때 상황에 대한 정확한 기억은 없는 것 같아요..
 일한씨가 반장님을 따라 창을 뛰어넘어 간 후, 저는 혼자서 그 끔찍한 
 살인 현장에 혼자 남아있게 되었어요. 
 방안에 흐틀어져 있는 시체들을 보니 구역질이 나고 무서워서 방에 있을 
 수 없었어요. 밖에 나와서도 그 방안 피바다의 전경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아 괴로웠어요. 자꾸 무서워져 딴 생각을 하면서 비 내리는 것을 보고 
 있었어요.
 갑자기 총소리 같은 것이 메아리쳐서 들렸어요. 깜짝 놀랐어요.
 그 소리 후에 사방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 졌어요. 단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어요. 그러니까 더욱 무서워지는 것이였어요.
 일한씨나 김반장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났을까 걱정되기 까지 했어요.
 한참을 마음 졸이며 떨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발자국이 들리는 것이
 였어요. 너무 무서워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머리에 큰 충격을 느꼈어요.
 순간 주변이 깜깜해지고, 의식을 잃었어요..
 그리곤 아무 것도 기억이 안나내요..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방에 낯선 아주머니가 저를 보살피고 있었어요...
 이것이 제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정화씨의 대답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의
문에 대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정화씨..
 정말 전혀 기억이 안나나요?
 제가 정화씨를 발견했을때는 정신을 잃고 있지 않았을 때 였거든요..."

내 질문에 정화씨는 이상할정도로 깜짝 놀라면서 반문했다.

 "정신을 잃고 있지 않았다고요...
 그럼, 그때 제가 무얼 하고 있었죠?"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반장이 담담
하게 말해 주었다.
 
 "그때 정화씨는 '그가 왔어. 낫을 들고..'라는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렸어요... 그것은 전혀 기억이 안나나 보죠?
 그러다가 기절했어요. 우리는 그 말을 듣고 정화씨가 최소한 그 놈을 봤
 으리라 생각했지요..
 하긴 그 놈과 마주쳤으면, 정화씨도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르죠...
 다행입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물어보는데요....
 정화씨가 무의식중에 중얼거리는 '그'가 누구인지 기억나세요?"

정화씨는 김반장의 질문을 듣고 이상할정도로 당황하는  것 같았다. 평소
의 정화씨와 달리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납득이 갔다. 정화씨는 더듬거리면서 김반장의 질문에 
간신히 대답했다.

 "그건... 음...
 모르겠어요.... 제가 왜 그런 얘기를 중얼거렸는지....
 아무것도 기억 안나요...
 단지 머리에 얻어맞고 정신을 잃었다는 것 밖에요...
 전혀 모르겠어요..."

좀 이상한 대답이었지만, 김반장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솔직이 정화씨의 대답을 듣고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말이 안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기억이 안난다는  데는 특별히 할말이 없
었다. 김반장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달리 김반장은  더 
이상 묻지않고, 오히려 정화씨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듯이 행동했다. 
힘들더라도 몸을 일으켜 모두들 분교로 옮기자는 얘기를 했을 뿐이다. 
정화씨는 자기는 괜찮다는 듯이 옮길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방에서 나와서 나는 나지막히 김반장에게 물었다.
 
 "반장님, 좀 이상하지 않으세요?
 정화씨의 대답이 약간 말이 안되는 것 같기도 한데..."
 "글쎄요...
 약간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것이 아니라, 좀 많이 틀리는 것 같은데...
 좀 더 기다리죠.. 정화씨가 직접 얘기해 주겠죠.. 뭐....
 우선 분교로 옮기고 봅시다.
 이순경도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곧 분교로 돌아올 것 같으니까..."

김반장은 정화씨의 대답에 대해 의문점만 동의했을뿐이고,  더 이상 얘기
하지 않고 분교로 옮기는 데에 신경을 ㅆ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김
반장은 나름대로 정화씨의 대답에 대해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김반장은 지서안에 있던 사람들을 재촉해서 분교로의 이동을 지시했다. 
밖에는 약간은 가늘어졌지만,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나는 몸이 불편한 정화씨를 부축했다. 
자그마한 몸짓의 정화씨는 뭐가 그렇게 겁나는지 연신 바르르 떨고  있었
다. 나는 그런 정화씨에게 우산을 바쳐주고 묵묵히 분교로 향했다.
가녀린 정화씨를 보니,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실종된 남자친구를 찾으러 왔다가 온갓  끔직한 일들을 목격하고 경험한 
것이다. 그때 갑자기 재원이에 대해 생각이 났다.
한동안 그 살인에 쫓기다 보니, 우리가 여기에  온 직접적인 목적인 재원
이를 찾아보겠다는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재원이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혹시 미친채로 비를 맞으며,  이 무시무시한 마을을 배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따 모든 마을 사람들이 모이며, 재원이에 대해서 물어봐야  겠
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교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교실의 책걸상을 치우는등 준비를 하고  있었
다. 이장님도 사람들에게 지시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인 지도자는 김반장으
로 보였다. 전시에는 행정가보다 군인이  강한 권한을 갖게 되듯이,  이런 
위급상황에는 이장보다는 김반장의 말이 더욱  신뢰가 가는 것처럼 보였
다. 그래서 인지 마을 사람들은 김반장의 지시에  한마디 불평없이 잘 따
랐다.
분교는 분교라는 이름에 걸맞듯 아주 작았다. 작은 방 만한 교실 두 개에 
양호실과 창고도 겸하고 있는 듯한 자그마한 교무실 하나가 전부였다.
김반장은 몇몇의 마을 사람들을 지도해서, 먹을 것이나 식수 등을 분교로 
옮겼다. 책상과 걸상들을 복도로 몰아내었는데도 여전히 교실들은 여전히 
비좁아 보였다.
정화씨는 여전히 몸이 불편해 보였다. 김반장은  일을 도우려는 나보고는 
정화씨나 보살피고 있으라고 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수해에 익숙한지, 그리 당황하지 않고 분교를 자신들
의 보금자리겸 대피처로 만들어 나갔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이
런 시련을 잘 몰랐던 내가 얼마나 행운이었는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창백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는 정화씨에게 담요를 덮어주면서 나는 조심
스럽게 재원이 얘기를 꺼냈다.

 "정화씨, 미안해요...
 제가 괜히 이런 곳까지 끌고 와서...
 재원이 그 자식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
 비가 그치고 고립이 끝나면, 여기를 빨리 떠나죠...
 재원이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화씨도 집에 돌아가서 좀 쉬어야 할 것 
 같네요.. 이왕 시작한 일이니, 재원이는 제가 끝까지 찾아볼께요..
 방학이라 특별히 할 일도 없는데요..."

정화씨는 내 말에 아무말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떨구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정화씨가 당한 끔직한 일들을 생각하자 이해가  되었다. 정화씨는 울먹이
면서 말했다.

 "흐흑... 너무 무섭고... 힘들어요...
 이제... 제원씨를 포기할래요.... 내 힘으론 흐흑...
 어떻게 할 수가 없을거예요.... 흐흑....
 용서해요....흐흑....
 일한씨... 빨리 나를 여기서 내보내줘요...
 이제 제원씨는 만나기도 싫어요...."

너무 힘들고 지쳐서 한 말같지만, 재원이를 포기한고 만나기 싫다는 말이 
좀 이상하게 들렸다. 찾기를 포기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왔다.  오죽
하면 재원이를 만나기까지 싫어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화씨를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재원이를 만나기 싫으니, 여기서 빨리 내보내달라니?
혹시 정화씨는 이 마을에서 재원이의 흔적이나 뭔가를 발견한 것은  아닐
까? 혹시 우리에게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정화씨에게 뭔가를 물어보려는 순간,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 난 것 같았다.
나는 정화씨에게 잠깐만 기다리라고 얘기하고 분교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이 순경이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분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들어오
고있었다. 100여명 남짓한 마을  사람들이 보따히 하나씩  들고 다가오는 
모습은, 마치 6.25전쟁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피난민의 모습 그대로 였다.
지치고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표정은 뭔가 쫓기는듯한 두려움으로 가득차있었다. 걸어오다가, 분
교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뛰어오다시피 분교를  향
하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들 엄청난 것을 목격한 사람들 같았다. 사람들이 
서두르는 바람에 애들은 울고, 넘어지는 사람도 있고, 삽시간에 분교 운동
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제 다 왔으니까, 마지막까지 질서 지켜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이러다가 모두들 큰일 납니다!!!"

이들을 이끌고 있던 이 순경은 목청터져라 외쳐되었지만, 겁에 질린 마을 
사람들은 막무가내였다. 총을 들고 있던 마을 청년들은 최선을 다해 마을 
사람들을 통제하려 했지만, 이미 마을 사람들의 두려움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까지 이른 것처럼 보였다.
분교에 있던 사람들까지 가세했지만, 해일처럼 밀려  들어오는 마을 사람
들에게는 어쩔 수 없었다. 분교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창문은 깨지고  난
리가 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분교안으로 들
어오려고 몸부림쳤다. 분교 앞에 서있던 나와  김반장은 사람들에 옆으로 
밀려났다. 
마을 사람들의 겁에 질려 분교 안으로 도망쳐오는 모습은 마치 굶주린 늑
대에 쫓겨 우리로 들어오려고 난리치는 양떼들을 연상시켰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그 늑대에게 갈기갈기 ㅉ겨나갈까봐...
너무 이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두려움에 떨며 분교안으로 
들어오는지....
사람들은 그 난리를 치고 분교안으로 들어갔다. 워낙 좁은 분교에 한꺼번
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글자 그대로 생난리였다. 떠밀려나간 나는 마
침 옆에 있던 김반장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김반장 역시 아직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며, 이 순경을 찾
았다. 이 순경은 마을 사람들을 분교안으로 다  들여보낸 후 지친 표정으
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 순경과 같이 총을  들고 마을 사람들을 데리러 
갔던 청년들도 두려운 표정을한 채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찌된 일인지 이 순경은 칼빈 총을 하나 더 들고 있었다. 나머지 청년들
은 지저분한 푸대하나를 들고  있다 우리앞에 내려놓았다. 언뜻  보니 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 젊은이들은 지옥에 갔다온 사람들처럼 무시무
시했다. 김반장은 이 순경을 보고 물어보았다.

 "수고했네..
 그런데, 도대체 마을 사람들 왜 이런거야?
 무슨 일 있었나?
 그리고 정식이 그 친구 어디갔나? 화장실 갔나보지? 
 그 친구 총을 왜 자네가 들고있지?"  

김반장의 질문에 이 순경은 목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겁에 질렸는지 아니
면 분노했는지 떨리는 목소리였다. 나는 이 순경의 대답을 들으면서, 청년
들이 가져온 푸대를 열어보았다.  처음에는 이 순경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정식이 그 친구는 저 푸대 안에 들어있습니다.
 그 안에 든 것이 전부입니다....."

나는 푸대안을 열어보고, 온 몸이 얼어붓는 듯한 큰 충격을 받았다.  푸대
안에는 너덜너덜하게 찢겨나간 사람의 다리 한쪽이 들어있었다.... 
 
...그 끔찍하게 잘려나간 다리를 보는 순간, 나는 구역질을 느끼며 그 푸대
를 덮어버렸다. 이 순경의 말은 내가 놀라는  것에 게의치 않고 김반장에
게 보고를 계속했다.

 "정식이 그 친구는 그 놈에게 당했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우리 모두는 눈을 빤히 뜨고 당했습니다.
 그 놈을 끝까지 쫓아 가서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겁에 질린 마을 사람들
 로 이리로 데리고 오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이 순경의 목소리를 분노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청년들은 겁에 질
림 모습이 역력했다. 김반장은 급박한 목소리로 이 순경에게 보고를 재촉
했다.

 "반장님 말씀대로 우리는 마을을 돌면서, 마을 사람들을 차례로 합류시
 켰습니다. 대부분 소문을 들었던지 무서워하던 차에 잘 되었다는 듯이  
 자발적으로 분교로 가는 것에 따라왔습니다. 사람들은 분교에서 먹고 잘 
 생각을 했는지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나왔습니다.
 마을 어귀까지 다 돌고,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분교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는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비까지 와서 제각기 우산 쓰고 짐
 도 들고 해서 여간 통제하기가 힘들었어요. 김반장님도 당부도 있고, 정
 말 언제 그 놈이 나타날지 몰라 앞뒤로 사람들을 배치했어요. 제가 앞장
 서고, 칼빈 총을 든 정식이가 뒤에 섰어요. 나머지 친구들은 몽둥이와 총
 을 들고 마을 사람들 행렬에 양 옆에 섰습니다. 
 마치 전쟁때 포로를 후송하는 것처럼 마을 사람들을 호위하며 분교로 향
 했죠. 
 제기랄! 반장님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
 정식이가 이렇게 된 것은 제 잘못입니다.
 반장님이 그러셨죠.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과수원 집은 피해서 오라고.. 
 저도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죠. 하지만 그 과수원을 지나지 않고 오려면 
 한 20분은 돌아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그 살인마가 그 근처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 많은 사람앞에 나타
 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버려진 집을 지나는 지름길을 택했
 죠. 약간은 긴장되었습니다만, 우리는 총과 곤봉으로 무장도 했고 사람도 
 많아 아무 일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수원을 지나려니 겁이 났습니다.
 비오고 어둑어둑해지는 가운데, 보이는 그 집은 정말 섬뜩했습니다.
 무슨 지옥의 문처럼 보였고, 그 집에서 있었던 살인사건을 생각하니 솔
 직이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앞장서서 더욱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것이 실수였습니다.
 선두에서 빨리 가니, 당연히 뒤에 따라오던 사람들은 더욱 처지게 되었
 습니다. 더구나 노인분들은 더욱 쫓아오기가 힘들어졌고....
 책임감이 강한 정식이는 맨 뒤에서 쳐져서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휴....
 드디어 그 집을 앞을 다 지나게 되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아 안
 도감까지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때 뒤쪽에서 '아악!'하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소리에 놀라 우왕좌왕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재치고 있는 힘을 다해 뒤로 뛰었습니다.
 맨 뒤가 얼마나 쳐져있었던지, 뒷 사람들은 그제서야 과수원 집을 지나
 가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달려왔습니다.
 비명이 난 곳에는 석중이 할머니가 땅바닥에 주저 앉은채로 있었습니다.
 석중이 할머니는 깜짝 놀랐던지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정식이는 보이지
 도 않았고, 총만 근처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석중이 할머니는 떨리는 목
 소리로 우리에게 자초지정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이 순..순경.. 정식...이이..느는...
  어떤...사람....이.. 숲..속...에에..서.. 나...타...나...서
  끌....고고....가갔아....'
 
 석중이 할머니가 가르치는 쪽을 보니 숲으로 핏자국이 나있었습니다.
 저와 중달이는 총을 들고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머지한테는 마을 사람
 들을 지키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숲으로 뛰어들어갔지만, 빗물에 흘러가
 는 핏자국만 보일뿐이지 정식이나 그 놈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한참을 정식이를 찾았지만, 결국 찾아낸 것은 이 다리 한쪽 뿐이었습니
 다. 그 때 그 살인마를 지옥끝까지라도 쫓아가고 싶었지만, 나머지 사람
 들이라도 안전하게 분교로 데려와야 했습니다.
 간신히 마을 사람들을 진정시켜 여기 앞까지는 왔지만, 결국 겁에 질린 
 마을 사람들은 분교를 보더니 앞다투어 뛰어들어 온 것입니다.
 반장님, 정식이가 이렇게 된 것은 제 잘못입니다.
 하지만, 그 처벌은 제 손으로 그 놈을 잡아 죽일때까지 밀어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이 순경의 얘기를 듣고 우리 모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또 한사
람의 희생자가 생긴 것이다. 김반장의 눈에는 이제  분노의 불이 타는 것 
같았다. 그래도 김반장은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면서 얘기를 했다.

 "이 순경,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잘잘못은 나중에 따지고, 지금 당장은 이 끔찍한 살인마로 부터 마을 사
 람들을 보호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이야.
 휴.... 이장님께는 내가 말씀드리지... 애지중지하던 외 아들이 그런식으로 
 죽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얼마나 충격이 클까... 
 이 순경은 이 친구들을 데리고, 마을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모두들 한 교
 실로 모이게 해. 
 그리고, 휴대폰이나 외부로 연락할 만한 것 구해왔나?"

이 순경은 주머니에서휴대폰 하나를 꺼냈다. 하지만 전기가 끊어진지 벌
써 하루가 지나서인지, 휴대폰 밧데리는 거의 다 닳은 것 같았다. 
그래도 그것이 이 고립된 마을과 외부를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통신수단
인 셈이다. 김반장은 그 자리에서 즉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몇번을 시도한 후에야 간신히 통화가 된 것 같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 김종수 반장이요! 잘 안들리니까 크게 말해요!
 지금 우리 내분리에 고립되어 있는데, 언제 구하러 올 거요!
 뭐라고!!! 우리도 급하단 말야!!
 사람들이 막 죽어간단 말야!!
 헬기라도 보내줘!!!
 지금 당장!!!
 여보세요!! 여보세요!!!
 제기랄!! 밧데리가 다 닳았잖아!!"

김반장은 휴대폰을 집어던질 기세로 욕설을 퍼부었다.  읍내로 부터의 구
조는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이 지역 전부가 침수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지대인 이 마을에는 구조가 더욱 늦어지는 것 같았다.그 통
화내용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절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미치광이 살인마가 날뛰는 여기서 고립된 채 며칠을 더 버터야 된다니....
김반장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교실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에 이장을 구석으로 데리고 가 정식이란 젊은이의 죽음에  대
해 말해주었다. 정식이는 이장의 외아들었던 것 같았다.
아들의 끔찍한 죽음에 대해서 들은 이장은 자리에서 무너지듯 쓰러졌다.
김반장은 사람들을 불러 이장을 교무실로 데려가 보살펴달라고 했다.
가뜩이나 겁에 질린 마을 사람들 앞에서 이장마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
면 큰일날 것 같았던지, 김반장은 이장을 다른 방으로 옮긴 것이었다.
이 순경은 김반장의 말대로 마을 사람들 전부를 한 교실로 모이게 했다.
밖은 어느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전기가 안 들어오기 때문에, 분교 안에는 여기 저기 초를 켜 놓았다.
하지만, 어둠을 좇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촛불에 비친 그림자들
이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교실안에는 충격을 받아 교무실로  자리를 옮긴 이장과 부인,  그리고 그 
사람들과 같이 있어주는 친구부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모여있었다. 이 순
경과 젊은이 하나는 칼빈을 들고 복도에 서서 경계하면서, 교실안을 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겁에  질려 있었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김반장은 얘기하기전에 아이들은 옆교실
로 보내라고 했다. 갑작스런 부탁에 사람들은 웅성거렸지만, 김반장  말대
로 따랐다.
김반장은 복도를 지키고 있던 이 순경에게 마을 사람들 인원을 파악해 보
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야  호기심에 가득찬 마을 사람들  앞에서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정화씨 옆에 서서 그 얘기를 들었다.

 "여러분들 중 대부분은 지금 우리 마을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
 실 것입니다. 한마디로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방금전 읍내 본청과 통화를 했는데, 이번 비로 워낙 많은 지역이 침수되
 는 바람에 우리 마을이 구조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답니다.
 결국 우리는 비로 인해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일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마을에 고립된 것은 우리뿐만이 아닙니다.
 무자비하고 잔인한 미치광이 살인마가 우리 마을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아직 그 놈이 누구이며, 왜 우리마을 사람들을 차례로 죽이는 지는 모릅
 니다. 확실한 것은 그 놈은 매우 위험한 놈이며, 아직도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인을 멈추지 않고 더할 놈입니다.
 더구나 그 놈은 사람을 곱게 죽이지 않습니다. 온갖 잔인한 방법을 사람
 을 죽입니다. 쉽게 말해 미친 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치긴 했지만, 바보는 아닙니다. 이제까지 제대로 된 흔적조차 안 남기
 고 그 많은 사람을 죽일때까지 잡히지 않은 것을 봐도 그렇고, 가장 중
 요한 것은 갑자기 나타나 희생자를 도살하고 깜쪽같이 사라진다는 것입
 니다.  
 저와 저기 일한씨가 그래도 그 놈에 대해 수사해서 어느 정도 밝혀내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에 모인 것은 그 놈의 정체와 동기에 대해 알아보자는 
 것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는 그 놈의 위협으로 피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따로 지내시게 되면, 그 놈은 활개치고 다니며 살인을 계속
 해서 저지를 것입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외부와의 고립이 끝날때까지 여기모여 안
 전을 도모함과 동시에, 가능하면 그 놈의 정체를 밝혀내고 더 이상의 살
 인을 막는 것입니다.."

김반장의 말에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죽음같은 침묵이흘렀다. 모두들 겁
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김반장은 담담하게 얘기를 계속
했다.

 "그래서, 제가 그 놈을 잡기위해 여러분에게 몇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중요한 얘기니까, 솔직이 대답하여 주십시오. 우리 모두의 목숨이 달렸다
 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제가 알아낸 것에 의하면, 이번 살인은 일제 시대에 이 마을에 
 있었던 어떤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 생긴 원한에 대한 
 복수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유가 있어서, 그 사건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할아버지 때 이상부터 이 마을에서 쭉 살고 계신 분들은 
 손 들어주시겠습니까? 좀 자세하게 말씀드리면, 1910년대에 선대분들이 
 이 마을에서 살셨던 분들은 손 들어 주십시오?"

나는 김반장이 무엇을 알고 싶은지를 알 수  있었다. 김반장은 그 노인이 
들려준, 그 버려진 집  주인에게 마을 사람들이 저지른  끔직한 범죄와의 
관련성을 알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어
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웅성거리더니 한 두명씩 손을 들었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고, 이주해왔기 때문에 해당하는 사람은 생
각보다 작았다. 10명도 못되는 것 같았다.
김반장은 한명, 한명 살펴보았다.
김반장은 자신이 생각했던 추리와는 다른 결과가 나와서인지  불만족스런 
얼굴로 더 이상 없냐고 계속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더 이상 손을 드는 사람이 없자, 김반장은 실망스런 모습을 짓었다.
그때 복도쪽에서 의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고조 할아버지때부터 여기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소리나는 쪽을 보았다. 
이장님이었다. 아들의 죽음으로 정신을 추스리기가 어려웠을텐데,  어느새 
자기 자리로 돌아온 것이었다. 큰 충격을 받아  자기 몸도 가누기 힘들었
을 텐데, 이장이라는 책임때문인지 회의에 참석한 것이다. 이장은 모든 것
을 달관한 사람처럼 담담하게 말을 계속했다.

 "반장님이 결과적으로 원하시는 답이 이것이라면 제가 알고 있습니다.
 사과골 최씨네도 오래전부터 여기서 살아온 일가고, 무당네도 그렇고, 
 저기 동구밖에 사시던 어르신네도 그렇습니다. 말했듯이 저의 집도 그렇
 습니다.
 이 답이 맞습니까?
 제가 말한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또 있습니다.
 모두들 이번에 살해당한 것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김반장도 그렇겠지만, 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설마했는데, 우연치고는 너
무 기묘했다. 그 옛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사람이 그 후손들에게 피의 
복수를 한다는 것인가....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좀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나머지 희생자들은 무슨 관계인가?
김반장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그 질문을 했다.

 "이장님께서 지적하신 점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군요..
 그런데, 나머지 희생자들, 그러니까 여관주인최성일씨, 정미소 김씨, 박
 씨네 아이, 그리고 탈영병, 이 사람들도 여기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
 입니까?"
 "아닙니다. 모두들 이 마을 이주한지 10년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다들 외부에서 이 마을로 와서 정착해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시체로 발견된 탈영병은 어디서 사는 지도 모릅니다."

이장의 그 대답에 나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이 살인범의 동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도 가장 타당성있던 동기라고 생각되던, 그 버려진 집에 얽혔던 원한
관계도 일부만 해당될 뿐이지 절대적인 진실같지는 않아 보였다.
김반장도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대화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마을 사람들의 인원을 파악하고 있던 이 순경이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김반장님! 
 큰일났습니다!
 제 실수같은데, 정채석씨 가족들을 여기로 대피시키지 못했습니다.
 마을 사람들 명단을 가지고 한명 한명 체크해가며 데려왔는데, 실수로  
 빠트린 것 같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지금 당장 가서 모셔오겠습니다...."

이 순경의 충격적인 얘기에 모든 사람들이 얼어붙은 듯이 조용해졌다.
정채석씨 가족이라는 얘기가 나오자, 모두들 술렁대었다.
살인마가 설치고 다니는 이 상황에 한가족만이 저 어둠속에 아무것도  모
르고 있다니...
나도 모르게 몸이 무르르 떨렸다.
김반장 역시 긴장된 목소리로 얘기했다.

 "이 순경 확실한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리고 이장님, 정씨네는...."

이장은 김반장이 얘기를 끝마치지도 않았는데, 무엇을 물어보는지 눈치를 
챘는지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정씨네도 여기에 조상대대로 살고 있어요..."

그 말은 어쩌면 정씨라는 사람 가족도 그 살인마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더욱더 그 사람을 구하러 가야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저 어
둠 어디선가 살인마가 희생자에 굶주린 상태에서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 순경 혼자가는 것은 말이  안 되어 보였다. 나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이 순경 자네 혼자 보낼 수는 없네.
 여러분, 이 순경과 같이 가서 정씨네를 여기로 모셔올 분 계십니까?
 한 두분정도 자발적으로 나오셨으면 하는데...
 물론 총과 손전등은 드립니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김반장이 얘타게 마을 사람들에게 외쳤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행여 눈이라도 맞주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죽음과 같은 침묵이 흘렀다.
김반장은 다시 한 번 재촉했다.
 
 "이런 때 정씨네 가는 것이 꺼려지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같은 마을 사람끼리 이럴 때 모른척 할 순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꿈쩍도 안하고, 오히려 고개만 더욱 숙여질 뿐이었
다. 아무리 살인마가 무섭다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이런 반응은  너무 
이상했다. 이 마을 인심이 이정도 였나...
자신을 위해, 같은 마을 사람이 죽음에 위기에 놓여도 모른 척하다니...
어색하고 지리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옆에서 보기에도 민망한 분위기였다. 
나는 속에서 뭔가 울컥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을 사람들의  이런 행위가 
경멸스럽고, 불쌍해 보였다. 화가 났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며 자원했다.

 "제가 이 순경을 도와서 갔다 오겠습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그들의 눈에는  자원한 나를 보고 안도
의 표정이 보였다. 자기들 짐을 덜어주었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
한 점은 그 눈빛에는 동정과 비웃음도 섞여 있는 것이었다. 
정화씨는 나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애절한 눈으로 하지 말라는 것 같았다.
김반장은 복잡한 표정을 띠고, 나를 보았다. 
그러고는 내게 충격적인 말을 해주었다.

 "우선 일한씨, 자원해 주어서 고마워요...
 그런데, 일한씨는 모르고 자원한 것 같으니, 내가 해줘야 할 말이 있어
 요. 우리가 왜 정씨네 가는 것을 그렇게 꺼려하는 줄 알아요?
 정씨네가 고깃간을 하고 있거든요..
 이렇게들 무서워하는 것이 고깃간과 무슨 관계냐고요?
 다른 게 아니예요..
이번에 그 살인마에 의해 죽어나간 시체들이 전부 
 정씨네 냉동고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죠..."

...김반장의 그 말을 듣고, 소름이 쫙 끼치며 가슴이 덜컹 했다.
그렇게 처참하게 살해된 시체들을 보관하는 곳으로 가야한다니...
자신도 없으면서, 객기를 부린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놀란 표정으로 멈칫하고 있는 나를 봤는지,  김반장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말만이라도 고마워요..
 이런 것은 경찰이 할 일이니까, 나와 이 순경이 갔다오도록 하지요..
 여러분들은 이장님의 지시를 따라 주십시오.."

김반장이 다녀 오겠다는 말에 마을 사람들의 더욱 동요했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 가장 믿음직한 사람이 자리를  비운다는 말에 겁들이 난 것  같았
다. 마을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점점 커지고, 이윽고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
했다.

 "김반장님은 여기 계시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요..."
 "김반장님은 가지 마시고, 이 순경만 가도록 하지요..."

마을 사람들의 그런 반응은 이해할 수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더욱 싫어
졌다. 이장도 나서서 김반장을 만류했다. 자연히 시선은 다시 내게로 돌아
왔다. 솔직이 겁나고 무서웠지만, 여기서 발을 뺄 수는 없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제가 김반장님 대신 가기로 하죠.
 반장님, 제가 그래도 그 놈에 대해 약간은 알고 있으니, 이 순경 혼자가
 는 것 보다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내 말에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다시 떨구어졌다. 스스로도 부끄러움을 느
끼는 것 같아 보였다. 정화씨는 나의 소매를  붙잡고 나지막히 그러나 단
호하게 말했다.

 "일한씨, 거기 왜 가는 거예요?
 그 일은 이 마을 사람들 일이잖아요? 이 사람들 일인데 왜 일한씨가 나
 서는 거지요..
 일한씨도 지금 밖에 어떤 것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잖아요.
 이 일은 장난이 아닌 것 같아요.
 혹시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게 되면 어떡할라고요.
 그건 정말 쓸모없는 죽음이예요.
 그런 잔혹한 살인마는 피해야 해요...."

정화씨가 나를 걱정해주는 것에 고마왔지만, 이왕 뱉은 말을 여기서 줏어
담을 수는 없었다. 약간 후회는 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김반장은 내가 가겠다는 말에 너무 미안해 했다.  자기 마을 일인데 아무 
관계 없는 외지인이 위험한 일에 나서는 것이 부끄럽고 고마운  모양이었
다. 그래서 인지 마을 사람들을 재촉해 한명만 더 나오라고 했다.
결국 아까 이 순경을 따라 마을을 돌았던 젊은이 중에 한 명이나섰다.
그렇게 해서, 이 순경, 박경규라는 젊은이, 그리고 내가 고깃간 정씨네 가
족을 데려 오기로 했다. 정씨네 가족이 아직 살아있다는 가정하에서...
김반장의 주도로 우리는 가져갈 것을 준비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빨
리 여기를 떠나기를 바라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우선 우비와 손전등, 그리고 총들이었다.
세자루 있는 칼빈 총을 다 들고 갈 수는 없어, 한 자루는 남기고 두 자루
만 들고 가기로 했다. 한자루는 당연히 이 순경이, 나머지 한자루는  내가 
박경규씨에게 양보했다. 대신 나는 학교안에 있던 나무로 된 야구 방망이
를 들었다. 총에 대한 혐오증이 있는 나는 오히려 야구 방망이가 좋았다.
야구 방망이를 집어드니, 몇 년전 준수와 함께 겪었던 사이비 광신자들과
의 사투가 생각났다. 그때도 야구 방망이가 내 생명을 구해주었다.
등 떠밀리듯이 신속하게 준비한 우리들은  한손에 손전등과 다른 한손에 
무기를 들고 분교를 나가게 되었다.
김반장은 우리 셋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모두들 조심하세요.
 여러분들이 가는 것은 그 놈을 처치하거나 잡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세요. 정씨네 가족을 안전하게 여기로 데려오는 것이 여러분
 들의 임무입니다. 
 이 순경, 자네 너무 흥분하지 말고 침착하게 행동하게...
 실수에 대해 너무 자책하거나, 그것을 만회하기 위한 무모한 행동같은 
 것은 삼가고..
 지금 비가 오고 어두운 것을 감안하더라도 1시간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을 거요... 
 그리고 만약에 여러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아닙니다.
 부디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나는 김반장에 마지막에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를  대충 눈치채었다. 지금 
상황에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겨 돌아오지못한다해도, 다른 사람을 보
내 우리를 찾아나설 수는 없을 것이며, 찾아나설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적
어도 동이 트기 전까지는.... 김반장은 솔직이 그 얘기를 해주려다가, 말을 
돌린 것 같았다. 정화씨는 문까지 쫓아나와 이상할 정도로 나를 만류했다.

 "일한씨, 가지 마세요!
 제 옆에 있어서 저를 보호해 주셔야죠.. 
 무슨 일로 남의 일에 자기 목숨을 거는 거예요...
 제발 부탁이예요.."
 "정화씨 아무 걱정 마세요. 금방 다녀올테니까...
 정화씨는 여기 김반장이 잘 돌봐주실께예요. 
 아무일 없이 돌아와, 속썩이는 재원이를 찾아내야줘...
 김반장님, 가능하면 돌아와서 라면이라도 하나 먹게 준비좀 
 해주시겠어요. 한시간 후면 배고파 질 것 같네요..."

나는 가볍게 정화씨를 달래고, 우비를 뒤집어 쓰고  이 순경의 뒤를 따라 
나갔다. 김반장은 정화씨는 걱정말라며 여전히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우리
를 배웅했다. 등뒤로 정화씨가 말했다.

 "일한씨, 조심하세요..
 설사 그 살인마와 마주치더라도 다른 생각하지 마시고 도망치세요...
 아무리 놀라더라도 다른 생각마시고 도망치기만 하세요...
 부탁이예요... 제발 부탁이예요..."

정화씨는 듣기 힘들정도로 나를 걱정해주었다. 너무  도망가라는 것을 강
조해서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때는 정화씨가  왜 그런 말을 했는
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여하튼 정화씨의 애절한  부탁에 가슴이 좀 아련
해졌다.
밖에는 많이 누그러졌다 하더라도, 아직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분교 운동장을 가로 질러 나갔다. 분교 운동장을 나
와서 뒤를 돌아보니, 아직도 문앞에는 정화씨와 김반장이 서 있었다.
나는 손을 흔들어주고 길을 나섰다.
분교 운동장을 벗어나자 마자, 우리 모두는 칠흙같은 어둠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시골이라 밤이면 가뜩이나 어두울 텐데, 마을 전체가 정전이어 빛
이라곤 분교에서 세어나오는  촛불밖에 없었고, 별빛이나  달빛은 구름에 
가여 보이지도 않고, 글자 그대로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둠이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공간은 단지 세명의 손전등이 비추는 범위가 
전부였다. 한치 앞이 안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손전 등을 비춰볼ㄸ마다 가슴이 덜컹  내려 앉는 것 같았
다. 어둠 속에서 불빛안으로 뭔가 무시무시한 것이  갑자기 나타날 것 같
아서 였다. 
앞장서 가던 이 순경도  두려움을 느꼈던지 발걸음을 천천히  하며, 내게 
말을 걸었다.

 "일한씨라고 했죠.. 
 학생이시라며, 왠 일로 여기에 오셨어요?
 참 재수가 없으신 것 같아요.. 하필 이럴ㄸ 이 마을에 오시다니..."
 "제 친구를 찾으러 왔어요.
 이 마을에 왔다가 사라진 것 같아서요... 그러다가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된 것이죠...."
 "아, 그래요... 그래서 김반장님이 도와주셨군요...
 근데 일한씨는 아실 것 같아서 물어보는 것인데, 반장님이 말씀하시던 
 그 버려진 집에 얽힌 얘기가 도대체 뭐예요?
 일가족 살인 사건 말고 다른 사건얘기 같던데, 이번 살인마 놈과 어떤 
 관계라는 것인지, 도무지 말씀을 해주셔야 알죠..."

이 순경이 그 사건에 대해 묻는 것이 좀 이상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그 
사건에 들은 사람은 김반장, 정화씨, 그리고  나 이 세사람뿐이었다. 그러
니 이 순경이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김반장이  마을 사람들에게 
밝히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이 순경에게 얘기해  주는 것에 대해 
좀 망설였다. 하지만 다  같이 위험을 직면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을 수는 없었다. 대충 그 집에 있었던 사건을 얘기
해 주었다. 한 독립투사의 가족이 마을 사람들의 이방인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와 배척으로 끔찍하게 된  사건을... 그리고 그때  가담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얘기도 해 주었다.
심각하게 듣고 있던 이 순경과 경규씨는 그 얘기를 듣고 당황하는 것 같
았다. 서로 눈을 맞추치고 잠시 멈칫했다. 그러더니 이 순경이 한숨을  내
쉬며 한마디 말했다.

 "일한씨가 말해준 얘기대로라면... 휴...
 저와 경규 이 친구도 그 살인마의 살생부에 올라 있겠군요...
 저도 그렇고 경규도 그렇고 이 마을에서 대대로 살고 있었으니까요...
 아마 그 살육에 가담했다면, 우리 증조 할아버지쯤 되었겠죠...
 그런데 어떻게 그때 원한을 이제와서 복수하는 것일까...
 좀 이해가 안되네요..."

이 순경에 질문에는 나도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이런 얘기를 하는 사이에 꽤 많이 걸은 것 같았다. 수그러지던 빗발은 다
시 거세졌다. 비가 많이 내리니 시야는 더욱 짧아지고, 앞이 제대로  보이
지 않았다. 비소리를 인해 주변에 아무 소리도 잘 들리지 않게 되자 더욱 
무서움이 느껴졌다. 정말 바로  옆에서 그 놈이 튀어나와  낫을 휘둘러도 
맥없이 당할 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뭔가가 우리를 저 어둠너머에서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끼마저 들었다. 그런 느낌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
었는지, 이 순경과 경규씨도 자주 옆을 보거나 뒤를 돌아다 보고 손전 등
을 비춰대는 것이었다. 
이 순경은 칼빈 총이 비에 젖는 것이  신경쓰이는지, 가능한 총을 우비속
에 집어넣고 걸으려 했다. 나는 야구 방망이의  묵직한 촉감에 위안을 하
며 이 순경과 경규씨의 뒤를 따랐다. 
빗발은 더욱 굵어졌다. 가뜩이나 질퍽거리는 길은 완전히 작은 개울이 되
어서 걷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나는 빗물이 안경을 가려, 자꾸 안경랜즈를 
부벼야 했다. 우리는 가다가 진흙에 미끌어져 넘어지기도 했다.
그런식으로 비를 맞으면서 걷다 보니, 모두 금방 지쳤다.
숨이 헉헉하고 차오를 때였다.

 "저 언덕위로 올라가면, 바로 옆이 정씨네입니다.
 이제 좀 긴장해야 할 것 같네요..."

이 순경이 나지막하지만 긴장된 목소리로 얘기하며, 우비 안에서 칼빈 총
을 꺼내 두 손에 들었다. 마치 군인이 수색정찰하는 자세로 총을 들고 손
전등은 허리에 찼다.  그러고는 경규씨보고 불빛을  비추면서 앞장서라고 
했다. 이 순경이 이제 부터 긴장해야 할 것이라고 한 말은 솔직이 필요없
는 말이었다. 밖으로 얘기는 안했지만, 우리 모두는 분교를 나서면서 계속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도, 우리는 천천히 사방을  경계하는 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50미터도 안되는 언덕이었지만, 한참을 걸어올라간 것 같다.
이윽고 언덕위에 올라서는 순간, 사방이 순간적으로 밝아졌다.
번개가 친 것이다.
그 짧은 순간 정씨네 집이 보였다. 
중앙에 고깃간 겸 집이  있었고, 별채로 냉동고롤 생각되는  작은 건물이 
있었다. 몇십분의 일초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가 받은 정씨네 집의 모습
은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 강렬한 인상에  뭔가 이상한 것이 느
껴졌다. 잠시 생각해보니 그 이상한 점을 알 수 있었다.
바로 그 냉동고로 쓰이는 창고문이 활짝 열려져 있던 것 같았다.
우르르 쾅쾅하고 천둥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떨리는 가슴속까지 울렸
다. 우리는 정씨네 집으로 다가가며 소리높여 정씨를 불렀다.
하지만 천둥소리와 빗소리에 묻혀 재대로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온 신경이 팽팽하게 긴장되기 시작했다.
이 집 역시 정전이 된 상태니 불은 켜져 있지 않았다.
손전등 불빛이 비춰질 정도로 다가간 우리는 정씨네 집을 향해 불을 비추
어 봤다. 불빛을 비추다 나는 발밑으로 흐르는 빗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빗물 색깔이 붉게 보인 것이었다.
섬ㅉ했다. 나는 천천히 그 빗물이 흐르는 쪽으로 불빛을 비추어 봤다.
그 불빛에 끝에 보이는 것은 문이 활짝 열린 창고가 보였고, 문틀 사이로 
피투성이가 된 사람의 팔이 보였다.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이 순경도 그것을 보았지만, 그걸 애써 무시하고 정씨네 집을 향했다.  이 
순경 생각은 우선 정씨네 가족의 생사부터 알아내고 구해야 한다는 것 같
았다. 나는 자꾸 사람의 팔이 걸쳐 놓여진 창고가 마음에 걸렸지만, 이 순
경 뒤를 따라갔다. 
우리는 신발을 신을 채로 거의 뛰다시피하면서 정씨네 마루에 올라섰다. 
그리고 이 순경이 안방같이 보이는 방을 향해 계속 불러댔지만 아무 소리
도 안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이 순경은 한숨을 들어마시더니, 문옆에 바짝 붙어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나도 모르게 방망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는 천천히 손전 등의 불빛을 방안으로 비추었다.
그 불빛에 비친 모습은 처음에는 무엇인 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몇초 후에 그 모습이 무엇 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충격
으로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경규씨와 이  순경도 '아악'하는 짧은 비명소
리를 내었다.
그것은 피 범벅이 되고 형체를 알 수 없게 ㅉ겨나간 시체, 아니 고깃덩이
라고 하는 편이 더 적당한 묘사일 것이다, 들의 모습이었다. 방안은  온통 
피칠이 되있고, 정씨 일가로 생각되는 사람들이  새빨간 핏덩이로 변해있
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정씨로 보이는 사람이 두 팔을 쫙 벌린채로 천장
에 매달려 있는데, 상체만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하체는 방 한 구석에 던져져 있고... 
후레쉬 불빛에 비친 정씨의 얼굴은 공포로 심하게 일그러진 채였다.
정씨네 방안 모습은 한마디로 지옥이었다.
나는 너무 끔찍한 모습에 충격을 받아 덜덜 떨었다.
그래도 우리 중에 가장 먼저 충격에서 벗어난 것은 이 순경이었다.
역시 경찰은 다른지,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나와 경규씨를 정신차
리게 했다.

 "휴... 지독한 놈인군... 놈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일거야....
 경규야, 일한씨, 충격 받은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생존자가 있나 방에 
 들어가 살펴봐야줘... 자 자... 빨리..."

그러면서 얼이 빠져 있는 우리를 재촉해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방에 들어가는 것조차 무서웠다. 하지만, 이 순경과 경규씨가 들어가
는데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방안은 피비린내가 가득차있었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다.
이 순경은 그 상황에서도 총으로 시체인지 고깃덩어린인지 분간이 안가는 
부위들을 치워가며 생존자를 찾았다. 문옆에는 경규씨가  더 이상 들어오
지 못하고 서있었다. 
나는 구역질을 억지로 참으며, 방안을 살펴보았다.
최대한 객관적인 눈으로 그 지옥을 보려고 애썼다. 사람의 상체와 하체를 
자를 정도라면 과연 범인이 보통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단서 될만한 것을 찾아보려고 방안을 둘러보았지만, 피 때문에 보이
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갑자기 손전등 불빛에 뭔가가 보였다. 
저쪽 구석벽에 피로 뭔가가 써있는 것 같았다.  언뜻 보기에는 피가 튀긴 
것 같이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글씨 같은 것이었다.
피로 쓰여진 글씨를 읽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나를....죽여줘.....제발.....끝이....없어....'

누군가 피로 쓴 것이었다. 그 놈이  쓴 것인지, 고통에 못이긴 정씨가  쓴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이 순경도 그 글씨를 보았지만, 그 의미를 알아
차리지 못했다. 
시체를 조사하던 이 순경은 무릎을 꾸부려 피를 만져보더니 얘기했다.

 "정씨네 가족 모두가 당했어요.
 제기랄!
 피를 만져보니 따뜻한 걸 보니 살인은 바로 전에 자행된 것 같아요.
 조심해야 겠어요.
 어쩌면 범인은 바로 이 근처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이 순경이 그 말을 끝마치자 동시에, 나는 뒤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밖에는 번개가 쳤는지 번쩍했다.
그 짧은 순간 방 밖에 시커먼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그것을 보고 견딜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그 시커먼 그림자는 한 손에 낫을 들고 있었다.
그 낫으로 방옆에 힘겹게 기대어 있는 경규씨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나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경규씨! 위험해요!!!!!!!"

하지만 늦었다. 
경규씨가 내 말을 듣고 돌아보는 순간, 
순식간에 내려쳐진 낫은 경규씨의 머리와 몸통을 분리했다.
경규씨의 머리는 피를 튀기며 떨어져 나갔다.....

....통통거리며 떨어진 경규씨의 머리가 내 발밑으로 굴러왔다.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움직일 수 없었다. 손이  떨리는 바람에 손전 
등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 순경도 많이 놀랐는지 손전등으로 그 시커먼 
것에게 비추려 했지만, 손이 떨리는지 불빛도 막 떨렸다.
그 놈의 얼굴은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보였
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이 순경은 칼빈 총을 들어 그 놈을 겨누려고  했지만, 한 손에 든 손전등
때문인지, 당황해서 그런지 총을 제대로 겨누지 못하고 있었다. 이 순경이 
필사적으로 총을 장전하려고 해서 그런지, 다른 한손에 들린 손전등이 심
하게 흔들렸다. 그래서 온 방안은 흔들리는  불빛으로 가득차고 어지러웠
다. 방안은 지옥같은 아수라장이었다.
언뜻 언뜻 비치는 것은 피범벅이 된 시체들이고,  파리하게 질린 이 순경
의 얼굴, 그리고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였다.
이 순경은 총을 제대로 잡으려고 있는 힘을 다했다.
다음 순간 이 순경도 결국 손전 등을  떨어뜨렸는지, 방안은 갑자기 두줄
기 손전등 불빛만이 밝히고 있게 되었다.
나는 벽에 등을 붙이고 문쪽을 뚫어지게 보았다.
하지만, 그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옆에서 이 순경이 거친 숨소리를  내
면서 노리쇠를 잡아 당기며  총으로 앞을 겨누었지만, 역시  그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 놈은 확실히 방안으로 들어왔지만, 손전등이  비치는 범위안에는 보이
지 않는 것이었다.
방안은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귀를 기울였지만, 밖에서 떨어지는  빗소
리에 가려 아무 인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1미터 전방앞에 뒹굴고 있는 손전등을 보고 집으려 했다. 야구 방망
이를 꽉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앞을 쳐다보며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최대한 빨리 손전등을 잡았다.
다행히 내게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손전등을 잡아채자 마자  주위를 재빠르게 비추어봤지만,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하고 옆에 있던 이 순경쪽을 비춰보았다.
무시무시한 것이 보였다.
이 순경 앞에는 그 놈이 낫을 들고 이  순경을 겨누고 있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던 이 순경도  내가 빛을 비추는 바람에  알아차린 것 같았다. 
너무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라 이 순경은 들고 있는 총의 방아쇠도 당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할 겨룰도 없이 들고 있는 야구 방망이로 낫을 들고 있는 그 놈
의 손을 쳤다. 한손으로 휘둘렀기  때문에 힘이 충분히 실리지  않았지만, 
그 놈이 들고있던 낫을 정통으로 맞추었다.
그 낫을 그 놈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나는 몸을 제대로 일으키고 방망이
를 제대로 쥐고 그 놈을 향해 휘두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 놈이 
한손으로 나를 쳤다.
무시무시한 충격이 느껴지며, 내 몸은 붕하고 공중으로 떴다.
다음 순간 다시 한 번 등에 큰 충격을 느끼며 벽에 부딛치고 떨어졌다.
아찔하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질어질한 내 눈에는 비친 것은 이 순경이 총을 쏘려고 하다가 그 놈에
게 들려 저쪽으로 던져지는 것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던져진  충격이 남았는지 몸이 
말을 안 들었다.  
나는 양손을 휘저으며 떨어진 손전등을 들어 비추어보았다.
그 놈은 저쪽에 쓰러져있는 이 순경에게 휘적거리며 다가갔다.
이 순경도 던져진 충격에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지 앉은 채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이 순경에게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이 순경은 처절할 정도로 정신을 추스르려고 했지만, 그 놈이 더 빨랐다.
그 놈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이 순경의 발목을 잡아서 들어올렸다. 
순식간에 이 순경은 뒷다리를 잡힌 개구리처럼 거꾸로 들어 올려졌다. 그 
놈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그러고는 몸부림치는 이 순경을 끌고 방밖으로 나갔다. 
내가 겨우 몸을 일으켰을때는, 이미 그 놈이 이 순경을 끌고 방밖으로 나
갔을때였다.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다.
나는 그 놈의 얼굴은 커녕 입고 있던 옷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정신을 차린 나는 손전등을 들고 이 순경이 떨어뜨린 총을 집어 들었다.
최대한 빨리 방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그 놈은 멀리 못 갔다.
이 순경은 방밖으로 끌려나가다 경규씨가 떨어뜨린 총을 집어들었는지 한 
손에 총을 들고 있었다.
진흙투성이 마당에 질질 끌려가면서도,  이 순경은 총으로 그  놈의 등을 
쏘려고 했다. 나는 생각할 새도 없이 들고 있던  이 순경 총으로 그 놈을 
겨누었다. 손이 덜덜떨려 제대로 겨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었다.
탕하는 소리와 함께 강한 반동이 느껴졌다.
이 순경을 끌고 가던 그 놈이 멈칫거린 것을 봐서는 명중한 것 같았으나, 
아무렇지도 않게 이 순경을 끌고 갔다.
나는 비맞는 것도 개의치 않고 그 놈의 뒤를 따라갔다.
이 순경은 겁에 질렸지만, 온갖 욕설을 그 놈에게 퍼부으면서 필사적으로 
바둥거렸지만 그 놈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놈은 무슨 이유인지 이 순경은 끌고 시체들을 보관해 놓은 창고로 
들어갔다.
나는 그 놈의 뒤를 따라 그 창고까지 따라갔으나,  문앞에 설 수 밖에 없
었다. 그 어두운 곳에 따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솔직이 무서웠다.
창고안에서는 이 순경의 처절한 소리가 들려왔다. 

 "개새끼, 죽어라! 죽어!
 이 개새끼, 죽여버릴꺼야! 죽어! 
 죽어! 죽어!!!!!"

욕과 비명 소리와 함께 몇발의 총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시체들의 창고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총소리가 한 번 들리더니, 창고안에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긴장된 채로 총을 창고안으로 겨누며, 그  안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
다. 칠흙같은 암흑속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나 소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냉동고여서 그런지 서늘한 기운이 안으로부터 느껴졌다.
발밑에는 아까 본 시체의 팔이 어둠속에서 기분나쁘게 나와있었다.
뭔가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 같아 비를 맞는 것에도 개의치 않고, 총을 겨
누고 있었다.
한참을 긴장한 채로 경계하고 있었으나  어둠속에는 아무런 기척이 나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들어 가기로  결심했다. 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냥 여기서 분교로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치밀었다. 공포로 인한 강렬한 
유혹이었다. 하지만 차가운 빗물이 얼굴에 떨어지는  것이 느껴지자 부끄
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이 순경을 저 안에 버려둔 채로 여기서 도망갈 수
는 없었다.
심호흡을 하고 암흑속으로 발을 들여났다.
방아쇠에 손을 건채로 뭔가 움직이기만 하면 쏠 생각이었다.
창고안에 들어서자 마자, 쾌쾌한 냄새와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뼈속까
지 그 싸늘함이 스며들었다. 
손전등으로 창고안을 비추어보았다.
문턱에 놓여있는 팔의 주인을 보기 위해 밑으로 비춰보았다. 
그것을 보자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다. 그 팔은 잘려진 채로 거기에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나는 얼른 눈을 들어, 창고안을 살펴 보았다. 
한구석에는 냉동고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어름덩어리들
이 반쯤 녹은채로 놓여있었다. 그리고 사방에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로 보
이는 커다란 고깃덩어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걸려있는 고기 때문
에 작은 창고인데도 불구하고 사방을 살펴보기가 힘들었다.
왼쪽 구석에는 쌀푸대로 싸인 덩어리가 몇 개  쌓여 있었다. 시체들을 거
기다 쌓아 놓은 것 같았다. 잔인하게 살해되었던 시체들을 생각하니 등골
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이 순경의 시체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갈고리에 매달려 있는  고
깃 덩어리를 하나씩 밀치며 창고안으로 더욱 들어가 보았다. 자꾸 어디선
가 무엇인가가 나를 쳐다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덮칠 것 같기도 했다. 
바닥은 핏물이 여기저기에서 흐르고 있었다.
온 몸이 긴장감으로 팽팽해졌다.
총을 쥔 손이 나도 모르게 덜덜 떨려왔다.
갑자기 뭔가가 걸렸다. 손전등으로 비춰보고 놀랐다.
또 하나의 팔이 잘려나간 채로 떨어져있는 것 같았다.
누구의 팔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 팔 근처에  칼빈 총이 피묻은 채로 떨
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순경이 들고들어간 그 총같았다.
이 순경에 대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고깃 덩어리를 하나씩 밀쳐나가다가 나는 움찔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순경이 피투성이가 되어, 고기 매다는 갈고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역시 팔은 한 쪽 떨어져 나가 있었다.
쾡하게 떠있는 눈은 겁에 질려 있었고, 명치  부근에는 등에서 박힌 갈고
리의 끝이 삐져나와 있었다.  그런 끔찍한 모습을 보고  나는 두려움으로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머리속에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이 순경이 여기 이렇게 죽어있다면, 그 미치광이  살인마는 아직도 이 창
고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때였다.
뭔가가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와 나를 덮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전 등을 든 손으로 그것을 막았다.
하지만, 나는 큰 충격을 받으며 뒤로 나가 떨어지고, 손전등은 땅에  떨어
지면서 불빛이 꺼졌다.
사방은 순식간에 암흑천지가 되었다.
나는 자세도 바로 잡지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향해 무턱대
고 방아쇠를 당겼다.
귀가 떨어져나갈 것 같은 총소리와 함께, 총구에서 불이 번뜩였다.
총구에서 불이 번쩍일때마다, 짧은 순간이나마 창고안이 보였다.
낫을 든 그림자가 나를 향해  달려들다가 총을 맞는 것이 순간순간  보였
다. 하지만 총을 맞은 그것은 쓰러지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향해 더욱  가
까이 오는 것이었다. 
겁에 질린 나는 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순간  순간 번쩍이는 빛에 보
이는 그 놈은 총이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총알을 다 떨어지고, 방아쇠를 당겨도 총은 찰칵하는 소리만 냈
다. 그 놈은 계속해서 내게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총을 뒤집어 들었다. 달구어진 총열을 집어서,  손바닥이 
타는 것 같았으나 개의치 않았다.
앞에 그 놈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있는 힘을 다하여 개머리판을 휘
둘렀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를 정확히 가격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있는 힘을 다해 그 것을 향해 총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뭔가가 으스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유모를 쾌감과 승리
감을 느꼈다. 다시 한 번 총을 머리위롤  들어올려 도끼를 찍듯이 내려쳤
다. 하지만 이번에는 총이 허공을 갈랐다. 게머리판은 시멘트 바닥을 내려
쳤다. 손에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다시한번 총을 들고 사방을 경계했다.
주위는 완전한 암흑이었고, 내 가쁜 숨소리를 제외하고는 어떤 소리도 들
리지 않았다. 사방 어디서 그 놈이 덮칠지 몰라, 계속해서 총을  사방으로 
휘둘러 되었다.
몇번은 허공을 갈랐고, 몇번은 뭔가를 후려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수십번을 휘두르고 나니, 금새 힘이 빠졌
다. 더 이상 휘두를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나는 헉헉거리며 뒷걸음질 쳐서 
벽에 기대었다.
힘이 빠져 벽에 기대어 서있기도 힘들었다.
그때였다.
끼이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쿵하는 소리가 문쪽에서 들려왔다.
그리고는 문고리를 거는 것 같은 날카로운 금속음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어떤 일이 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문을 잠그는 것 같았다. 그것이 떠올려지자 나는 필사적
으로 문으로 뛰어갔다. 
아무것도 안보였기 때문에, 메달려 있는 고깃덩어리에 계속해서 부딪혔다. 
더듬어 더듬어 간신히 문에  도착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가  들어올 때 
활짝 열려있던 문이 잠겨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창고문을 걸어잠근 것이
다. 누가 그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정씨 식구들과 경규씨는  죽어
있었는데...
아무리 열라고 했지만, 문고리 자체가 밖에 있는 문이어서 안에는 손잡이 
밖에 없어 열 수가 없었다. 
몇번을 문을 차고 소리쳤지만, 문은 열릴 생각을 안했다.
문을 두드리고 있으려니, 뒤에서 그 놈이 나와 나를 덮칠 것 같았다.
이런 끔찍한 창고안에 그  살인광과 같이 갖혀있다는 생각이  들자, 너무 
무서워졌다.
아무리 어둠에 눈이 익었다고 하지만, 사방이 밀폐되고  한 점의 빛이 없
는 창고안은 암흑 그 자체였다.
나는 가만히 벽을 더듬으면서 자리를 이동했다.
가만히 있다간 어디서 그 놈이 나를 난도질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 놈역시 이런 어둠에서는 나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를 바랬다.
그 놈이 사람이라면 나처럼 안 보일 것이지만, 만약 아니라면....
생각마저 무서웠다.
최대한 아무 소리도 안 내고 벽을 타고 천천히 움직였다.
그 놈도 온갖 신경을 곤두선채로 나를 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죽고 
싶을 정도로 두려웠다. 더구나 이 창고안에는  끔찍하게 살해된 시체들이 
보관되어 있다는 것 마저 생각나자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잠시나마 가만히 있다가는 공포에 미쳐버릴 것만 같
았다. 이런 암흑 지옥에서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아까 떨어뜨리면서 꺼
진 손전등이었다. 
천천히 벽을 더듬아 아까 내가 있던 장소로  가보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서 어디가 어디인지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어 바닥에 없드려 조심스러게 바닥을 더듬어 갔다.
피인지 물인지 모를 액체들이 바닥에서 만져졌다.  피라고 생각하니 구역
질까지 났다. 하지만 참아야했다. 
몇번을 더듬다 보니, 뭔가 차가운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것이 뭔가인가 깨달았을때는 소름이 쫙 끼쳤다.
바로 아까 본 이 순경의 떨어져나간 팔을 더듬은 것이었다.
무서움으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하지만, 손전등이 이 근처에 떨어져있을 것 같아 앞으로 나갔다.
잠시 후 손전등같은 것이 손에 잡혔다.
나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허겁지겁 손전등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면서, 손전등을 켰다.
한손에는 무겁고 총알도 떨어졌지만 칼빈을, 다른 한손에는 방금 찾은 손
전등을 들었다.
갑작스럽게 빛이 비추어지자, 눈이 부시면서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빛에 비친 창고 안이 보였다.
나는 긴장과 두려움을 가지고 창고안을 두루두루  비쳐보았다. 하지만 이
상하게도 나를 덮친 그 놈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혹시 어디서 튀어나
올지 몰라, 총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온 신경이 팽팽하게 긴장되었다.
매달린 고기덩어리들을 헤치며 그 놈을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 놈을 찾아봤자 내가 가진 무기는 빈 칼빈 총밖에 없어서 별로 대
적을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손전등으로 여기저기 비추어 보았지만, 그 놈은 보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안심이,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 놈이 보이지 않자,  
구석에 쌓여있는 시체들의 푸대에 눈이 갔다.
핏물이 흘러나와 시뻘겋게 물들어 있는 푸대들을 보니,  다시 한 번 두려
움이 느껴졌다.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들과 함께  갇히다니 괜히 무서워졌
다. 머리속이 두려움과 혼란함으로 가득찼다.
아직도 창고 구석 어디선가 그 살인마가 나를 노리고 있을 것 같았다.
냉동고의 서늘함 때문인지, 뼈속까지 싸늘한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순간, 뭔가가 천정에서 나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천장으로 손전등을 비추어보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푸대 속에 들어있어야 할 시체들이, 마치 박쥐처럼 천정에 거꾸로 매달려 
나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재원이가 편지에 썼던  그 버려진 집에서 봤다
던 그 장면과 똑같았다. 그 시체들은 쾡한 눈으로 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언제든지 밑으로 내려올 것 같았다. 그 시체들은 살아있는 것 같았다.
정수리에 낫이 박혀 죽은 무당하며, 목에 상처가 있는 시체, 팔이  잘려나
간 소년의 시체등등.. 여기에 놓은 시체들이 다 보였다.
소름이 쫙 끼쳤다.
그런데 내가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그 매달려 있는 시체가운데 재원이
의 모습이 보인 것이다. 떨면서 그쪽으로 비춰보았는데, 분명히  재원이였
다. 기괴한 눈빛을 하고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재원이의 눈을 보니, 온 몸이 공포로 마비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그 시체들의 눈길은 계속해서 나를 쫓아오는 것 같았다.
뒷걸음치다가 무엇인가에 걸려 넘어져 손전 등을 놓쳤다.
나는 필사적으로 손전등을 잡은 다음, 일어나려고 했다.
그 순간 손전등에 내가 걸려 넘어진 것이 비춰졌다.
비춰진 것을 본 순간, 나는 머리속이 강한 충격으로 멍해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반쯤 썩어있는 재원이의 시체였다....

...내가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불빛에 비친 것은 분명히 재원이의 반쯤 썩어있는 시체였다.
흉칙하게 상해 있어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틀림없는 재원이의 얼굴이었
다. 나는 신음소리를 내며 앉은채로 뒤로 물러났다.
친구가 죽어있다는 것에 슬픔이 느껴지기는커녕, 공포와 구역질이 느껴졌
다. 그 썩은 재원이의 시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나를 덮칠 것만 같았
다. 필사적으로 뒤로 물러가며 손전등으로 천장을 비추어 봤다.
그런데 아까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보이던 거꾸러 매달린 시체들이 온데간
데 없었다. 눈을 깜빡거리며 내가 잘 못봤나하고 다시 한 번 뚫어지게 보
았지만, 그 시체들은 감쪽같이 사라져있었다.
미친 듯이 창고 안에 손전등으로 비춰보았지만, 그 시체들은 보이지 않았
다. 시체를 쌓아둔 푸대더미도 아까 그 모양 그대로 였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재원의 시체로 다시 눈을 돌렸다.
재원의 시체는 다행스럽게(?)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어둠 속에서 그  놈이 튀어나올 것을 경계하며 
천천히 재원이 시체쪽으로 다가갔다.
불빛에 비친 재원의 얼굴은 흉칙하게 부패되어 있었다.
의학지식이 없는 나로써도, 재원이 죽은지는 적어도 며칠 된 것처럼 보였
다. 가슴 부위에 길게 상처가 나 있는 것을 보니, 그 놈이 낫을 이용해 가
슴을 내리친 것 같았다. 그 시체를 보니  이제까지 품아왔던 재원에 대한 
의심은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말도 안되는 얘기여서 입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사실  내 마음 깊은 곳에
서는 재원이가 이번 사건의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
만 재원이가 알지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일리는  없
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까지 알게 된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 분명히 이성적으로는 
생각되지 않는 추리지만 - 재원이 미쳐서 이런  살인을 저지르던가, 아니
면 재원이 원한을 가진 뭔가에 의해 조정을 받아 이런 일들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왔다. 얘기는 안했지만, 김반장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
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재원도 희생자중 하나가 되어 발견된 것이었다.
머리속이 온통 복잡해졌다. 무엇을 어떻해 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없었다.
심호흡을 여러번 한 다음에 최대한 생각에 집중하려고 했다.
하지만, 눈앞에 널부러져있는 끔찍한 재원이의 시체와, 어디서  튀어나올
지 모르는 그 놈에 대한 공포, 저쪽 구석에 놓여있는 시체 더미와 천장에 
보였던 귀신들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두려움으로 미칠 것 같았다. 
자꾸 괴물의 울부짓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사람이 극도의 공포심으로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남의 얘기 같지가  않게 
되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벽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뜨고 있던 감
고 있던 그 놈이 나를 죽이려고 하면, 당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어디서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아 극도로 긴장되고 불안해졌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미쳐버
릴 것 같았다. 심호흡을 여러번 하면서 마음속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공
포를 없애려 했다. 마음을 비우려고 했다.
차츰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약간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우선 여기서 빠져나갈 생각을 했다. 
문은 밖에서 잠겨 있고, 냉동고라 그런지 창문은 아예 없는 것 같았다.
결국 출입구는 굳게 닫힌 문밖에 없었다.
그 문을 열어야지만, 이 창고안에는 도구라곤 얼음찝게와 고기 매다는 갈
고리 뿐인 것 같았다.그것을  이용헤서 문을 내려쳐봤자, 철문은  꿈쩍도 
안할 것 같았다.
그때였다. 
재원의 썩은 시체가 갑자기 빨개지는 것이었다.
손전등 불빛 때문에 잘못  본 것 아닌가했지만, 분명히  재원이의 시체가 
붉게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재원의 몸이 확하면서 타오르는 것이었다.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재원의 시체가 아무런 이유없이 자연발화를 한 것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 불은 마치 살아있는 불처럼 순식간에 창고안으로 옮겨 붙고 있었다.
잘 탈 것 같지도 않은 고기덩어리에도 불이 붙었다. 
불붙는 소리였는지 모르지만, 문 밖에서 기분나쁜 괴성이 들려오는 것 같
았다.
불이 난지 몇초도 않 지난 것 같은데, 순식간에 창고안으로 번졌다.
불길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표효하며 내 쪽을 향해 맹렬히 타올랐다.
열기에 머리가 그을리고, 살이 타는 것 같았다.
사람고기인지 동물고기인지 고기타는 냄새가 창고안을 가득 매웠다. 독한 
연기로 눈이 따갑고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불길은 점점 거세져서 발디딜틈없이 창고안을 태우고 있었다.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여기서 잠시 지체하다간 꼼짝없이 타 죽을 것 같았다.
온 몸이 불에 대었는지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너무  뜨겁고 독한 연기 때
문에 얼굴을 들 수도 없었다.
그 순간 저기 불길사이로 피묻은 칼빈 총이 보였다.
그 총은 경규씨가 가지고 있던 총으로 이 순경이 이 창고로 끌려올 때 들
고 왔던 총이었다. 이 순경이 몇발을 쐈겠지만, 어쩌면 그 총에 몇발의 총
알이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생각으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그 총을 잡았다.
달구어질대로 달구어진 총을 잡으니, 손바닥이 지지직하고 타버렸다.
고통스러웠지만, 살기 위해선 참아야 했다.
불길은 내 옷가지에 옮겨붙으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뜨거운 총을 들고 미친 듯이 문쪽으로 달렸다.
바지에 불이 붙은 것은 개의치 않았다.
굳게 잠겨 있는 문앞에 서서, 문고리가 있을만한  곳을 향해 방아쇠를 당
겼다.
 "철컥! 철컥!"
총알이 없는 지 빈 방아쇠만 당겨졌다. 
죽음과 같은 절망감이 느껴졌다. 바지에 붙은 불은 더욱 거세졌다.
온 몸이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이제는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서을 정도로 맹렬한 불길너머로 뭔가가 보였다.
나는 바지가 타는 것도 모른채, 그 뭔가를 무엇에 홀린것처럼 바라보았다.
불길너머에는 아까 천장에서 본 시체들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이었다.
문 밖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치는 나를 비웃듯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소름이 쫙 끼쳤다. 
불도 불이지만, 정말 여기서 나가고 싶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경괘한 소리와 함께 총알이 발사되었다. 나는 연속으로 문고리를 향해 총
을 쐈다. 몇발이 나간 후 온몸을 문으로 던졌다.
어깨에 큰 충격이 느껴지며, 나는 문과 함께 밖으로넘어졌다.
처음 느낀 기분은 시원함이었다. 억수같이 퍼붓던 비로 몸에 붙었던 불은 
삽시간에 꺼졌다. 갑자기 산소가 페로 몰려들어와서  그런지 기침이 계속 
나왔다. 땅바닥에 나동그라지는 바람에  온 몸이 진흙투성이가  되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단지 빗물의 차가움과 숨을 마음껏 내쉴수 있다는데 무한
한 쾌감마저 느껴지는 것이었다. 생명이라는 것이 이렇게 값진 것인지 
창고의 불은 활활 타오르며, 나를 집어삼킬 기세로 문밖으로 번지려 했지
만, 퍼붓는 비때문인지 창고안만 태우고 있었다. 
한동안 엎드려서가쁜 숨을 내 쉬었다.
잠시 후 정신을 추수릴 수 있었다. 
창고안은 여전히 시체와 고기들을  태우고 있었고, 그 불에  비쳐 보이는 
마당 바닥에는 정씨네 집에서 흘러내려오는 핏물이 보였다.
그것을 보자 내가 처해진 현실이 생각났다. 
한시바삐 분교로 돌아가야 했다. 그 살인마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도 
모르고, 무엇이 나를 덮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하니 온몸에 통증이 느껴졌다. 온 몸을 살펴보니 만신창
이가 되어 있었다. 바지는 무릎까지 타 버렸고, 손바닥을 비롯해 온  몸에 
크고 작은 화상을 입었다. 차가운 빗물이 닿자 상처들은 더욱 쓰라렸다.
하지만 그 쓰라린 고통이 머리를 더욱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나는 우선 정씨 가족이 몰살되어 있는 방으로 향했다 
. 그 방에 들어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지만, 쓸만한 손전등은 그  방에서 
이 순경과 경규씨가 떨어트린 것 밖에 없었다.
움직일 때마다의 고통으로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신음소리가 났다.
간신히 그 방에 도달한 나는  아직도 주인을 잃은채 켜져있는 손전  등을 
하나 집어들었다. 방안에는 이 순경이 떨어트린  것으로보이는 손전등이 
벽을 비치고 있었다. 그 벽에는 아까 본 글씨가 써 있는 것이었다.

  '....나를....죽여줘.....제발.....끝이....없어....'

그런데 아까 발견 못한 이상한 점이 그  글에서 보였다. 자세히 손전등으
로 비춰보니 글씨체가 다르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나를 죽여줘'와 '제발'의 필체는 같아 보였고,  '끝이 없어'의 필체는 달라 
보였다. 피로 쓴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두 사람이 쓴 것 같이  보
였다. 나는 더욱 자세히 보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다시한번 살육의  장소
로 들어갔다. 이 순경이  떨어뜨린 손전등마저 줏어들어 두  개를 비추어 
가며 글씨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피가 흘러내려 지워진 글씨가 몇 개가 보였다. 피가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바람에 글씨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한참을 뚫어지게  보니 대충 무슨 글짜인지  알 수 
있었다.
'...안...돼...'  '원...한...'  
이 두 단어 였다. 그런데 이 두 단어의 필체는 같아 보였다. 혹시나  하고 
먼저 발견된 문장의 필체와 비교를 해보니, 일치하는 것이 보였다.
바로 '나를 죽여줘'와 '제발'은 같은 사람이 쓴 것이고,  '안돼' '원한' '끝이
없어'는 다른 한사람이 쓴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이 다른 필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생각하다 그 문장의 의미를 알아차렸을 때 충격을 느낄 수 밖에 없
었다.
필체가 다른 것을 사이사이 배열해 보았다. 마치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
는 것처럼.. 그랫더닌 이런 말이 되었다.

 '나를 죽여줘...'
 '안돼...'
 '제발...'
 '원한.. 끝이 없어...'

필체뿐만 아니라 내용도 완전히 두 인격체의 대화  같았다. 하지만 그 대
화속에 담긴 의미는 알 수 없었다. 한참을 보고 있다보니, 무엇인가가  뒤
에서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잊고 있던 두려움이 느껴졌다. 얼른 그 피바다의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한손에 총을, 다른 한손에는 손전등을 들고 분교로 뛰기 시작했
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 집을 피범벅으로 만들어  놓고, 이 순경과 경규씨를  난도질한 
그 놈이 갈 곳은 한 곳밖에 없을 것 같았다.
바로 모두가 모여있는 분교를  덮칠 것 같았다. 분교에는  김반장과 많은 
사람이 있어 안전할 수도 있지만, 아까 창고에서 불이 난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큰 일이었다.
빗가 오는 밤길을 양손에  뭔가를 들고 뛰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엉망이 된 몸을 가지고는 더욱 힘들었다. 
뛰어가면서 이번 사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우선 이성과 과학이라는 선입견을 배제하고, 인과관계  하나만 가지고 생
각해 보면 오히려 간단해 보일 수도 있었다. 
일제 시대때 마을사람들에 의해 잔인하게 몰살당한 가족이 있었다.
그 원한을 가진채로 죽은 사람이 원귀가 되어, 사람속으로 들어와 살인을 
저질렀다. 그 살인의 매개체가 된 것이 바로 재원이었고...
아주 간단한 가정이었다.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하지만, 이 에는 악귀가  사람에 빙의된다는 말도 안되는  가정은 차제로 
한다고 하더라도, 원한에 의한 살인이라면 틀린 점이 발견되었다.
희생자들만 보더라도 이상했다. 자기를 죽인 사람들의 후손을 응징한다고 
한다면, 그 사건과 전혀 관계없이 살해당한 사람은 누가 죽인것일까?
거기에는 중학생도 끼어 있었다. 심지어는 겨우 몇  년전에 이 마을로 이
사온 사람들도 희생자에 끼여있었던 것이었다.
그 희생자들의 공통점은 단지 이  마을에 현재 고립되어 있다는 것  밖에 
없었다. 결국 그 살인마는 그 버려진 집과 아무런 관련 없이 닥치는 대로 
죽있다는 것인가?
하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무당도 그렇고, 우리에게 버려진 집에  얽
힌 얘기를 해준 그 어르신도  그렇고 뭔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살해당했
다. 그런데 심증적 용의자였던 재원이는 시체로 발견되었다 타 버리고...
그러면 정화씨가 본 그 놈은 도대체 누구였고....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머리 속을 어지럽게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밤길을 달리다 보니, 여러번 미끄러져 흙탕물에 쳐박혔
다. 점점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아까 올때는 그 놈이 어둠속에서 우리를 덮칠까봐 겁이 났었지만, 지금은 
그 놈에 대한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욱 강하게 느껴져서 별로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웬일인지 그 놈은 이미 그 분교로 향했고, 나 자신
은 그 놈을 쫓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올때는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  길이, 혼자서 뭔가에 홀린  듯이 뛰어오니 
분교까지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저 멀리 분교의 희미한 빛이 보이자, 갑자기 긴장이 풀리며 온 몸에 피로
감이 느껴졌다. 허파가 터질듯해서 더 이상 뛸수도 없었다. 
거세게 내리던 비는 어느새 좀 약해졌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희미하지만 분교의 불빛을 보자, 이유모를 안도감마저 느껴졌다. 
이제는 살았다는 생각과 함께, 바로 얼마전에  있었던 정씨집에서의 지옥
은 먼 옛날 얘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정씨네 집의 일을 생각해보니,  갈
때는 세명이었는데, 혼자 살아온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느껴졌
다. 긴장이 풀어지자 온 몸에 난 상처들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천천히 분교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그때였다.
분교에서 처절하고 ㅉ어질듯한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총소리가 메아리쳤다.
불길한 얘감이 들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그 비명소리  때문인지 분교안에서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나오자 마자 분교 
뒤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분교 뒤쪽에서 난 비명 같았다.
나는 죽어라 하고 뛰어 갔다. 천천히 걷다가 뛰니까 더욱 힘이 들었다.
간신히 분교에 도착해서, 건물뒤로 헉헉거리며 뛰어갔다.
분교 뒷 뜰에는 스무명이 넘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나는 심할 정도로 불길한 예감을 억제할 수 없어 모여있는 사람들을 거칠
게 밀치고, 중앙으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무슨 이유인지 겁에 질려  있었다. 거기다 나의 처참
한 모습을 보고는 마을 사람들의 얼굴은 참담해졌다.
중앙에 가니, 김반장이 보였다.
나는 김반장을 보고 무슨 일인가 물어보려고 했다.
김반장은 나를 보자, 재빠르게 나의 앞을 가로막고  더 이상 접근하지 못
하게 했다. 내가 그를 안 이래로 그렇게, 냉정하던 김반장이 그렇게  처참
한 표정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을 보니 무슨 일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반장님, 도대체 무슨 일이죠?
 왜 제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죠?"
 "일한씨, 우선 내 얘기부터 들어봐!
 좀 진정하고 얘기하세...
 그건 그렇고, 이 몰골은 어떻게 된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정씨네 가족들은?"

나는 그 질문을 받으니 정신이 퍼뜩 났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정씨네에
서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말해주었다. 같이 갔던  이 순경과 경규씨 그
리고 정씨네 가족들은 그 놈 손에 처참하게 죽어갔다는 것과 그 집 고깃
간에서 내 친구 재원의  시체를 발견했으나, 모두 타  없어졌다는 것까지 
얘기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깊은 절망이 느끼는 것  같았다. 자기들도 곧 살해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얘기를 듣고 김반장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게 다시한번 물어보았다.

 "일한씨, 그 창고에서 발견된 그 시체가 분명히 친구 재원씨가 
 확실한가요? 어둡거나 무서워서 잘 못 본 것은 아닐까요?"
 "아니요.. 확실합니다. 아무리 무서워도 제가 본 것은 
 바로 재원이 그 친구의 반쯤 썩은 시체 맞습니다..
 왜 그것을 자꾸 물어보는 것이지요?"

내 질문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들 나를 외면했다. 김반장마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리 바보라도 이 상황이면,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불안함을 느끼며 김반장을 다그쳤다.

 "반장님!
 분명히 무슨 일이 있는 것이죠?
 얘기해 주세요... 무슨 일이예요?"

김반장은 나의 질문에 어렵게 입을 땠다. 평소의  침착한 김반장 답지 않
게 더듬거리며 얘기를 했다. 그 얘기를 들은  나는 충격으로 무너지듯 바
닥에 쓰러졌다.
 
 "저... 일한씨... 모든 것이 제 잘못이예요....
 죄송합니다.....
 좀더 빨리 알아차렸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인데....
 휴...  
 조금 전에 여기서 정화씨가 살해당했습니다.
 그 놈에게요...
 저는 여기 왔을때는 이미 그 놈의 낫이 정화씨를 난도질하고 있었어요.
 제기랄!
 그 놈은 저를 보고, 정화씨를 팽개치고 순식간에 저 어둠속으로 사라졌
 어요. 총을 쐈지만, 그 놈은 다시 한번 유유히 사라졌어요..
 미안해요.. 정화씨가 이렇게 된 것....
 그런데 정화씨가 죽기 전에 그 놈보고 하던 외침을 제가 들었어요..
 간절한 애원이었죠..
 정화씨는 자기를 낫으로 내려치려는 그 놈을 보고 이렇게 소리쳤어요.

  '재원씨! 
  제발! 이제 제발 그만해요!!
  재원씨!!!!!'

 내 두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재원씨라고 처철하게 외치던 정화씨의 목소리를...."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땅바닥에 주저 앉은 채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정화씨가 죽다니...
재원이를 걱정해서, 고생고생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죽다니...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만류하는 김반장을  뿌리치고 비틀거리며 정화
씨 시체를 보러 갔다. 피투성이가 된 정화씨의 얼굴을 보니, 더 이상 쳐다 
볼 수 없었다.
모두 내 책임 같았다. 
이제 까지는 이 마을  사람들이 희생자였다. 엄격히 따지면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던 사람들이 죽어나간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경우였다.바로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죽은 것이다.
그것도 친구의 여자 친구가....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분노, 슬픔, 절망, 공포, 증오...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뭘 어떻해 해야 하는 걸까...
나는 간신히 정신을 추스리고, 김반장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냐고 힘
겹게 물어보았다.

 "휴... 다 내 잘못이라네...
 내 잘못...
 일한씨 일행이 출발하고 나서, 우리는 분교 안에다가 남자 5명씩 한조가 
 되어 1시간씩 불침번을 서기로 했어요. 혹시 미친 살인마가 여기를 덮칠
 지도 몰랐으니까... 그렇게 대비를 해놓고, 나머지 사람들과 아녀자들을 
 안심시켜 놓고 잠을 자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 정화씨의 행동이 좀 이상했어요.
 그때 눈치 챘어야 했는데... 바보같이...
 정화씨는 이상하게 잠을 잘 생각을 하지 않고, 안절부절 하는 것이였어
 요..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 같았아요..
 저는 일한씨를 걱정해 주고 있는 줄 알았아요.
 아무일 없을 거라며 위로했지만, 정화씨는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창밖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어요.. 일한씨를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정화씨가 나를 올려다 보며 이상한 질문을 했어요..
 
  '반장님, 만약 살인범을 잡으면 어떡하실거죠?
  혹시 그 자리에서 죽이시지 않겠죠?'
 
 그 질문이 좀 이상했지만, 나는 솔직이 대답해줬어요..

  '나는 겅찰의 입장으로써, 그 놈을 잡아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
 의무죠... 하지만, 이렇게 고립된 상태에서 그 놈을 잡게되면, 희생자의 
 가족들이 가만히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경찰은 나와 이 순경 둘밖에 없으니 분노한 마을 사람들을 막을 수 있
 을지... 자신 없네요..
 하지만, 경찰로써 저는 그 살인범을 잡을 수 있으면 잡아서 법대로
 처리할 것입니다. 보나마나 이 정도면 사형이 뻔하지만...
 잡을 수 없다면, 죽이기라도 해야줘... 그 위험한 놈은...'

 내 대답에 정화씨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어요.
 뭔가 굳은 결심을 한 사람처럼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것을 보았지만, 나
 는 대소롭지 않게 생각했죠. 그리곤 정화씨 곁을 떠나 불침번 서는 마을
 사람들을 살피려 교실을 나갔어요. 교실을 나갈 때 정화씨를 돌아보니
 그때까지도 무엇에 홀린 듯이 창문을 뚫어지게 보는 것이였어요..
 좀 이상한 예감이 들었지만, 무시했어요..
 그리고는 정화씨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서는 잊고, 불침번 서는 마을 청 
 년들을 점검하며 담베를 피우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죠....
 10분정도 되었나...
 나는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교실쪽으로 돌아왔어요.
 교실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바닥에 누워 뒤척이며 잠을 청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창가에 있던 정화씨가 보이지 않는 것이였어요..
 나는 문앞을 지키던 청년에게 정화씨에 대해 물어보았어요.
 화장실 갔다는 거예요.. 한 5분쯤 전에.. 
 내가 바로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요.
 다급하게 분교밖으로 뛰어 나왔어요.
 그런데 뒷 뜰에서 비명소리가 났고, 그 쪽으로 뛰어갔지만 아까 말한 것
 처럼 너무 늦었던 거예요..."

김반장의 말을 듣고보니, 정화씨의 행동에는 이해하기에  석연치 않은 구
석이 너무 많았다. 분명히 정화씨는 자발적으로 그 살인마를 만나러 갔다
가 살해당한 것이다.
그런데... 김반장의 말로는 정화씨가 죽어가며  말한 이름은 재원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까 내가 본 시체도 분명히 재원이었다.
알 수 없었다. 
내가 전해준 소식을 듣고 경규씨의 가족들이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무거운 분위기와 함께 두려움이 전염병처럼 번져갔다. 
몇몇 마을 사람들이 정화씨 시체를 부대로 싸서 치워버렸다.
그 모습을 보니, 두려움과 슬픔보다는 그 살인마에 대한 증오심이 불타오
르기 시작했다. 김반장도 정화씨와 자기 아랫사람인 이 순경을 잃은 것을 
용남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침착하던 사람이 비를 맞으면서도 담배를 물고 연신 성냥불을  부
치려 하고 있다. 
다행히 이장님이 나서서 마을 사람들을 모두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어느새 뒤 뜰에는 나와 김반장만이 비를 맞고 서 있게 되었다.
우리 둘은 아무말 없이 떨어지는 비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안에서 정화씨를 간호해 주었던 아주머니가  나오더니 내게 쪽지
하나를 건네 주었다.

 "아까 그 불쌍한 처녀가 학생 돌아오면 주라고 남긴 것 같아요.
 잠이 들어 몰랐는데, 내 머리맡에 남겨 두었더라고요..."

그 얘기에 나도, 김반장도 최면에 깨어난 사람들처럼 눈이 빛났다.
접힌 종이에는 내 이름이 써있었다. 정화씨의 유서인 셈이었다.
나는 그 쪽지를 들고 분교안으로 들어왔다. 
촛불 밑에서 정화씨가 남긴 글을 읽기시작했다.

<일한씨에게..
 일한씨가 만약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저는 죽어있겠네요..
 혹시 일한씨도 이 글을 못 읽게 된다면, 김반장님이 이 쪽지를 읽고있겠
 죠.. 제발 일한씨가 무사히 돌아와 이 글을 읽기를 바랍니다.
 일한씨...
 그 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철없이 따라온 저에게 신경쓰느라고 힘드셨죠.. 
 제게는 이 모든 일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섭고 괴로운 일들의 연속이
 었어요.. 처음에는 재원씨를 찾으러 왔을 뿐인데...
 우선 일한씨와 김반장님께 사죄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거짓말 하게 된 것에 대해서요..
 사실 오늘 저는 그 집에서 살인범을 봤습니다.
 피 묻은 낫을 든 재원씨였어요..
 처음 봤을 때, 그 광기어린 눈빛과 무시무시한 표정 때문에 재원씨가 아
 닌 줄 알았어요. 하지만 재원씨가 맞았어요.
 재원씨는 정신 이상이 있는지, 처음에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낫으로 
 내려치려고 했어요. 그런데 내가 비명을 지르자, 가만히 나를 보더니
 치켜든 낫을 내려놓았어요. 나는 계속해서 정신차리라고 절규했죠..
 재원씨는 혼란스러운 듯 머리를 잡고 괴로워했어요.
 그러더니 땅바닦에 무릎을 꿇고 괴로워하면서, 간신히 한마디 던졌어요.
 목소리가 너무 음산해 딴 사람이 말하는 것 같았어요.
 
  '오늘.. 밤에... 보자.... 어디까지도....찾아간...다......'

그러더니 괴성을 질러대는 것이였어요. 나는 무릎을  꿇고 있는 재원씨를 
흔들면서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애원했어요.
그러나 방안으로 나를 무시무시한 힘으로 확 던져 버렸어요..
그리고는 기절한 것 같았아요.
정신차린 다음에 일한씨와 반장님이 내가 본 것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재원씨를 봤다고 솔직이 대답할 수 없었어요. 솔직이 말하면 재원씨를 살
려둘 것 같지 않았아요..
그리고 내가 아는 재원씨는 그런 살인을 저지르고 다닐 사람이 절대 아니
예요... 분명히 무슨 피치 못할 이유가 있을 거예요..
제가 재원씨를 만난다면, 설득해 볼 생각이예요...
예전에도 재원씨는 내 말은 잘 들어줬거든요...
무서워요...
하지만, 이 일은 제가 해야 할 일 같아요...
저기 재원씨가 온 것 같네요...
모든 일이 잘 되어 이 메모가 필요 없어지길 바랍니다.
일한씨,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제게 무슨 일이 나더라도, 재원씨를 끝까지 믿어주세요.....
그럼...>

결국 이 모든 살인을 저지른 것은재원이였단 것인가...
내가 본 재원의 시체는 무엇이고...
머리속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솔직이 생각하기도 싫어졌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그 놈이 재원이라면, 반드시 내가  만
나야 할 것 같았다. 진실이 얼마나 두려운 것이라고 해도, 나는 그 진실을 
받아 들여야 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김반장에게 그 쪽지를 건넸다.
김반장은 그것을 읽어보더니, 한 숨을 내쉬며 한마디 했다.

 "결국 재원이라는 친구가 범인이구뇨...
 그런데 왜 이 마을과 관계도 없는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것일까....
 휴.... 이제 선택하는 것 밖에 안 남았군...."
 "선택이라뇨? 무슨 선택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김반장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담담한 어조로 그 선택에 대해 
말해 주었다.

 "우리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죠.
 하나는 이 분교에서 구조가 올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빗줄기도 약해진 걸 보니, 내일 날이 밝으면 본격적인 구조활동이 시작
 될 것 같네요.. 헬기라도 올 것 같으니.. 그러니, 이 사건에 대해서는
 일단 접고 있다고, 홍수가 끝난 다음에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는 것이죠.
 그때까지 그 살인마가 여기를 습격하지 않길 바라고, 또한 이 마을에서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것 뿐이죠...
 다른 하나의 선택은....
 그 놈을 찾아 잡던지, 죽이는 것입니다.
 불가능해 보이고, 위험해 보이고, 아마 아무도 지원자가 없을 것 같네요..
 그렇지만, 앉아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좀더 적극적인 방법이지요...
 그리고 사건을 우리 손으로 마무리 지울 수 있다는 것이죠...
 필요없는 것은 덮을 수 있고...."

나는 김반장의 얘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유력한 범인은 내 친구인  재원이였다. 그런데 이 상
황에서 고립이 풀리고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펼쳐지면, 
마을에 얽힌 얘기는 모두  밝혀지고, 이 마을은 글자  그대로 유령마을이 
될 판이었다. 누가 이렇게 끔직한 살인이 일어난 곳에서 살것이며 이사올 
것인가... 그 이후에 벌어질 엄청난 일들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김반장
은 자기 마을이 그런 식으로 몰락하는 것을 막고 싶은 것이었다. 또한 살
인마에 대한 김반장의 증오는 이제 한계에 다달은  것 같다. 경찰의 의무
라기 보다는 살인범에 대한 심판을 내리고 싶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이 마을의 장래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
았다. 또한 살인범에 대한 심판도 재원이라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한 다
음에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직 살인마로 돌변해 자기 여자친구마저  죽여버린 재원이를 꼭 만나야 
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 놈이 진짜 재원인지.. 재원이라면 왜 그 
지경까지 갔는지...
끝 마무리는 내가 하고 싶었다.
결심을 굳힌 나는 김반장에게 내 결심을 말했다.

 "저라면 두 번째 선택을 택하겠습니다.
 저 혼자라도 그 놈을 쫓아 지옥 끝까지 가서라도 그 놈의 얼굴을 내 눈
 으로 똑똑히 봐야 겠습니다."

김반장은 흥분한 나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고 한 마디 했다.

 "목적은 다르지만, 나도 일한씨와 같은 선택을 하겠소..
 나는 이제까지 그 놈을 범인으로 생각했소.. 
 그러나 이제부터는 악마로 규정할 생각이오.
 세상에서 없애버려야 하는...."

나는 김반장의 그런 반응이  이외였다. 단지 마을의 장래를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김반장은 자기 부하를  자식 보다 더 아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명령을 받아 수행한 이  순경이 그렇게 끔찍하게 살
해당한 것에 대한 비이성적인 복수심이 발동한 것이다.
김반장은 냉정하게 나보고 간단히라도 상처 좀 치료하라고 했다.
거절했으나, 김반장은 단호한 목소리로 자기도 준비할 것이 있으니 그 동
안 치료하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해주던  보건의는 내 상처들을 보고 
좀 심한 편인지 한숨을 내쉬었다.
치료가 끝나갈 쯤에, 김반장이 들어왔다.

 "일한씨, 치료가 끝나면 그 놈을 잡으러 출발하죠...
 대충 필요한 것은 다 준비되었으니까...."

김반장은 이장을 설득해, 이장이 이 분교에 있는 마을 사람들을 책임지기
로 했다. 김반장은 분교 주변의 불침번을 8명으로 늘리고, 무슨 일이 있어
도 오늘 밤만은 아무도 분교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공언했다.
마을 사람들은 김반장이 밖으로 나간다고 해서 불안해 왔지만, 김반장 대
신 그 놈을 잡으러 나가기 보다는 분교안에 남아 있는 것이 휠씬 좋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김반장은 묵직한 배낭 두 개를 준비했다.
하나는 내게 내밀었다.
나는 뭐가 들었냐고 물었다. 김반장은 짧게 대답했다.

 "기름"

기름이 뭐에 필요한지 알 수 없었다. 하긴 그 놈을 잡으러 간다고 했지만
어디로 가야하는 아직 결정 못 한 상태였다.
우리가 가진 무기는 김반장의 권총, 내가 가져온 망가질대로 망가진 칼빈 
한 자루, 그리고 분교를 지키고 있던 칼빈 한자루 이게 다였다.
김반장은 한참 고민하더니, 결국 우리는 김반장  권총 한자루만 가져가기
로 했다. 남아 있는 사람의 안전이 우리 둘보다는 휠씬 중요해 보였다.
솔직이 총없이 간다는 것에 불안했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그럭저럭 준비가 다 되었다.
나는 아무말 없이 김반장이 건네준 배낭을 매고, 다시한 번 한손에는 손
전 등을, 다른 한손에는 이 분교 창고에서  찾아낸 마지막 야구 방망이를 
들었다. 기름이 가득찼는지 배낭은 꽤 무거웠다. 김반장도 권총과  손전등
을 들고 배낭을 맸다.
김반장은 이장님에게 신신 당부했다.

 "이장님, 절대로 경계를 늦추지 마세요..
 작은 빈틈만 보여도 그 놈은 여지 없이 살인을 해 대니까요..
 내일쯤이면 구조대가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버티시면 됩니다...."

우리는 분교를 나섰다.
한동안 흩뿌리던 비는 다시 거세지고 있었다.
묵묵히 분교 운동장을 가로 질렀다.
김반장은 분교에서 벗어나자 말문을 열었다.

 "일한씨는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따라오는 것인가요?
 짐작은 했을 거요...
 그래요, 그 버려진 집으로 가고 있는 것이예요...
 아마 우리는 그 놈을 거기서 만날 수 있을 거요..."
 "그렇습니까....
 대충 짐작은 했읍니다만은....
 그런데 그 과수원 집에 그 놈이 온다는 확신은 어떻게..."

김반장은 씁쓸한 미소룰 짓고,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르키며 내 질문에 대
답을 해주었다.

 "내가 가니까요...
 어르신이 해주신 말 기억나요?
 그렇게 말씀하셨죠.. 제 할아버지가 그 비극의 주모자 중에 한 사람이었
 다고요..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에 관련되어 
 죽었죠.. 
 그리고 또 하나의 증거가 있어요..
 무당집에서도 발견되었고, 사과골 최씨네 집에서도 발견된 흔적이 있어
 요.. 바로 검은 흙이죠...
 이 지역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토질이예요.. 이 마을은 거의 전부 
 황토흙으로 되어있어요.. 바로 한군데만 빼고...
 맞아요... 그 검은 흙은 과수원 집 근처에서만 볼 수 있어요...
 아까 이장님에게 물어봐서 확인했어요..
 그 놈은 그 집을 거점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요.
 또한 기묘할 정도롤 희생자들을 잘 찾아내니까, 나를 찾을 수 있을 거예
 요..
 내가 그 놈을 유인할 미끼가 되는 것이죠...
 그 놈의 보금자리로 들어가서...."

김반장의 얘기를 들으니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의 추리가 틀리고 맞고를 
떠나서 자기 목숨을 걸고 살인마를 유인하다니....
걸어가면서 김반장에게 물었다.

 "그런 논리라면.... 
 가족과 함께 살해된 그 이름모를 독립운동가의 원혼이 살아나 재원이의 
 몸을 이용해, 자기를 죽인 사람들의 후손들을 죽이고 있다는 얘기잖아 
 요.. 그것이 가장 논리적인 추리같긴 하지만...
 이럴 가능성도 있잖아요?
 재원이가 완전히 돌아버려 닥치는 대로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거요.. 
 그리고 제일 큰 의문점은...
 아까 분교안에서 알아차린 것인데, 희생자들 중에 그 집의 사건과 전혀 
 무관한 사람들도 많았잖아요.. 
 그건 어떻게 된 일이죠..."
 "글쎄요... 
 그게 문제예요... 살인의 동기를 찾아낼 수가 없어요..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 놈은 무작위로 희생자를 고르는 타입은 아닌 것 같아요..
 주형사가 남긴 메모에서 뭔가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아직은 특별한 답을 못 찾아냈어요...
 하지만 뭔가 이유가 있을 거예요.
 분명히...."

사실 김반장의 추측은 비이성적인 면도 많았다. 하지만  내 스스로도  이
번에 그런 비이성적인 것을  많이 보와았기 때문에, 김반장의  그런 말을 
믿을 수도 있었다. 이유도 없이 그 놈은 그 버려진 집에 꼭 나타날 것 같
았다. 그런데 기름을 가져가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반장님, 그럼 이 기름을 가지고 그 집을 태울 생각이신가요?"
 "집을 태운다..
 정확한 내 의도는 집을 태운다기 보다는 그 놈을 태운다는 것입니다.
 그 악마같은 집과 함께...."

김반장이 그렇게 말하니까 섬뜩했다.
김반장은 이미 재원이일지도 모르는 살인범을 살려둘 생각을 안하고 있는 
것 같았다. 또한 모든 살인과 관련있는 그 과수원집을 태울 생각인 것 같
았다. 만약 범인이 진짜 재원이라면 나는 어떻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어느새 우리는 버려진 과수원 근처에 다왔다.
여기를 올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주변의 황폐한 모습만 봐도 그 버려진 
집에는 뭔가 사악한 기운이 흐르는 것 같았다. 여름이고 장마인데도 불구
하고 과수원 주변의 나무들은  말라비틀어져 있고, 길 주변에  난 풀들도 
모두 시들어 있었다.
낮에 봐도 으시시한 집인데, 밤에 와보니 비교가 안 되었다.
이윽고 김반장과 나는 버려진 집 앞에 섰다.
김반장은 손전등으로 그 집을 비추어봤다. 
이 집은 이제까지 수 많은 사람의 생명을  먹어치웠다. 그 살생은 아직도 
계속되고....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그 집의 정문이 지옥으로 가는  문같았
다. 긴장되기 시작했다.
뭔가가 버려진 집 안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그 살인마가 그 집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
다. 김반장도 긴장이 되었는지, 권총을 다 잡고 장전을 했다.
그리고 나를 돌아다보고 한마디 했다.

 "가죠.. 이 악몽을 종지부 찍으러..."

...우리는 천천히 그 집안으로 들어갔다.
김반장이 총을 겨누며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문은 천천히 열렸다.  나는 김반장 뒤에서 손
전등 불빛으로 집안을 비췄다. 하지만 그 집은 빛을 빨아들이기라도 하듯
이, 여전히 깜깜했다.
우리는 심호흡을 하고 그 집안에 발을 디뎠다.
이번이 내게는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이런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더구나 지난번에 왔을 때, 내눈에는 이 집에서 죽어
나간 사람들의 유령이 보였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쾌쾌한 냄새가 났다. 
나와 김반장은 신중하게 불빛을 비춰가며 집안을  살폈다. 그때도 그랬지
만, 사방에 검은 핏자국이 보였다. 그 핏자국이 튀겨나갈때의 정경을 생각
해 보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최
대한 소리를 죽여 집안을 살펴보았다.
온 몸의 신경이 팽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김반장과 나는 천천히 부엌까지 살펴보았지만, 살인의 흔적만 보일 뿐 살
인범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김반장은 배낭을 내려 놓으면서 나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일한씨, 이제 준비하죠... 그 놈을 환영해줄...."

그러면서 김반장은 배낭안에서 기름통을 꺼내  집안 구석 구석에 뿌리기 
시작했다. 나도 김반장을 따라 기름통을 꺼내 집안에 뿌렸다. 
집안은 휘발유 냄새로 가득차게 되었다. 휘발유가  뿌려지자 나도 모르게 
이곳을 불질러버리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이렇게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곳을 불태워버리고 싶어졌다. 
김반장은 현관문과 우리가 있을 곳까지의 길만 확보한 채 나머지  집안에
는 기름을 뿌렸다. 성냥개비 하나면, 이 버려진 집은 순식간에 불타는  집
으로 변하게 될 것 같았다. 
기름을 다 뿌리고 나자, 김반장은 등을 현관이  마주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벽에 등을 기대고 손전등을 껐다. 나도 김반장옆에 걸터 
앉아 손전등을 끄고 방망이를 꽉 쥐었다.
그때부터 나는 죽음과 같은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김반장은 권총을 꽉 쥐고, 라이터를 꺼내놓고 현관에 그 놈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김반장이 잡은 자리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부엌을 제외한 집안 전체가 한
눈에 보이고, 아무리 깜깜하다  하더라도 벽에 등을 대고  있으니 적어도 
뒤에서로부터의 공격은 안심해도 될 것같았다.
나는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궁금해졌다.

 "반장님, 그 놈이 나타나면 어떡하실 작정이시죠?"
 "글쎄요...
 우선 그 놈이 기름 뿌린 곳을 밟고 서 있게 만들어 꼼짝못하게 해야죠..
 그 다음에 한 번 얘기해 보죠.. 그 놈이 도대체 어떤 놈이고 왜 이런 짓
 을 했는지...
 그리고는....."

김반장은 거기서 얘기를 멈추었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그는 범인인 것을 
확인한 다음에 성냥에 불을 붙여 범인을 태워 죽일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
렸다. 나도 그 범인이 재원이만 아니라면 그  즉시 태워죽이고 싶었을 것
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화씨를 죽인 것이 재원인지, 그리고 재원이라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아야 했다. 만약 재원이라면, 김반장의 생각대로는 따
라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빗줄기는 좀처럼 가늘어질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그 순가 번개가 쳤는지, 갑자기 주위가 순간적으로 환해졌다.
그 짧은 순간에 문 너머로 보이는 마당에 뭔가가 보였다. 
낫을 들고 있는 검은 그림자였다.
김반장도 그 모습을 봤는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다음 순간 다시 주위는 깜깜해지고, 천둥소리만 들려왔다.
방망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김반장도 천천히 총을  들어 현관쪽을 
겨낭했다.
긴장감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이 느껴졌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니,  귀에 모든 신경이 쏠렸다. 그  놈이 
집에 들어오는 것에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쥐죽은 듯한 적막을 빗소리가 
깨고 있었다. 하지만 그 놈의 인기척은 전혀  안들리고 빗소리만 들릴 뿐
이었다. 
언제 나타날 것인가 불안에 떨면서, 암흑속에서  문ㅉ을 뚫어지게 보았지
만 아무런 것도 보이지 않았다. 긴장된 상태라서  그런지시간 감각이 전
혀 없었다. 우리가 그 놈을 보고 집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린지 1분이 지났
는지 10분이 지났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한참동안 그 놈이 집안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옆에 있는 손전등을 켜서 비춰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불안감이 고조되어 참을성의 한계까지 다달았다. 
어쩌면 우리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 지도 몰랐다. 그렇
지 않고서는 오는데 30초정도도 안되는 거리를 이렇게 오래 걸릴 리가 없
었다. 하지만, 밖에서 이렇게 어두운집안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휘발유 냄새를 맡을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비오는 날 집안에 들어
오기 전에는 그 냄새를 알기가 힘들었을 것이었다.
그 놈이 안들어오니, 김반장도 나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김반장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손전등을 집어들더니 켰다. 
그런데 불빛에 비친 모습을 보는 순간 우리 모두는 충격을 받았다.
그 놈은 흔적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불빛에 비친 것은 텅빈 현관문과 비가 내리는 마당이 전부였다. 
분명히 집쪽으로 들어오던 그 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나도 손전등을 켜고 둘러보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김반장도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얘기했다.

 "일한씨, 우리가 뭔가 잘못봤나 봐요...
 바보같이 너무 긴장해서 헛 것을 봤나....."

그때였다.
김반장이 말을 제대로 맺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벽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
리더니, 손이 벽에서 튀어나와 김반장의 목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김반장이 등을 대고 있던 그 벽을 뚫고 두 손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갑작스런 공격으로 김반장은 두 손에 들고 있던 권총과 손전등을 모두 떨
어뜨렸다.  
 "어억! 어억!"
김반장은 발버둥치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그 두손은 강철 갈고리처럼 
김반장의 목을 무지막지하게 조르고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할 겨를 없이 있는 힘을  다하여, 벽에서 튀어나온 팔뚝을 
방망이로 내려쳤다. 왠만한 사람이라면 뼈가 뿌러졌을 만한 충격이었을텐
데고 그 손은 아무 충격도 안 받았는지 계속해서 김반장의 목을 졸랐다.
발버둥과 저항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조금만 지체하면 김반장의 생명이 
위태로울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가진 방망이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마침 김반장이 흘린 권총이  눈에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그  권총을 집어 
들어 그 무지막지한 팔을 향해 쐈다. 
제대로 맞았는지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하지만 그 팔은 김반장의 목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었다. 총구를 아예 그 팔에다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피가 사방으로 튀어 김반장과 나는 피범벅이 되었다.
그제서야 그 팔은 김반장의 목을 놓고 벽너머로 사라졌다.
쿵하고 떨어진 김반장은 헉헉거리며 몸을 제대로 추스리지 못했다.
그 팔이 사라지자 나는 더욱 공포를 느꼈다. 언제 어디서 그 놈이 덮칠줄 
모르기 때문이다.
김반장은 몸을 가누기도 힘든 것처럼 주저앉아 계속되서 헉헉댔다.
나는 김반장옆에 서서 권총을 든 채로 손전등으로 사방을 비춰가며 그 놈
을 찾았다. 
여기저기서 그 놈이 왔다갔다하는지 나무로 된 마룻바닥을 밟는듯한 삐걱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권총을 든 손이 나도 모르게 덜덜 떨려왔다.
어디서 그 놈이 나타날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는 마치 사냥을 앞둔 인디언들이 사냥감이 겁에  질리
게 하기 위해 지르는 위협적인 소리처럼 들렸다.
원래는 우리가 그 놈을 잡으러 왔는데, 이제는 상황이 거꾸로 된 것이다.
발자국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 뒷걸음질쳤다. 김반장은 그제서야  기침을 하면서 간신
히 몸을 일으켰다.

 "반장님! 괜찮으세요?"
 "콜록!콜록!!.. 나는 괜찮아요... 그런데 그 놈은?"

나도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이 집안에  그 놈이 있는 것은 확실하
지만, 어디서 우리를 노리고 있는 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김반장에게 권총을 건네주었다.
아무리 손전 등을 사방으로 휘둘러 봐도,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벽에 얼룩진 핏자국만이 보일 뿐이었다. 
김반장은 천천히 뒷걸음질 치면서 내게 나지막히 얘기했다.

 "빨리 여기에서 나가 불을 질러요..."

나는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여기에 있다간 언제 그 놈에게 
당할 지 몰랐다. 우리는 사방을 경계하며 뒷걸음질로 현관으로 향했다.
갑자기 그 삐그덕 거리는 발소리가 멈추었다.
집안에는 우리둘의 발자국만이 울렸다. 그 놈이  움직이는 소리가 멈추자 
두려움이 더욱 느껴졌다. 그 놈이 저 어둠  속 어디선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것 같다. 빈틈만 보이면 어디선가 나타나 우리를 덮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자 다리마저 후들후들 떨렸다.
마음만 같아서는 뒤돌아서 후다닥 뛰어서 나가고 싶었다. 뛰어가면 5초도 
안걸려서 이 집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뭔가가 뒷덜미를 
낚아챌 것 같아, 돌아서 뛰아나 갈 수 없었다.
사방을 경계하며 한발씩 천천히 뒷 걸음질 쳤다.
불빛에 비추어 지는 곳에는 움직이는 것이라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문까지 3미터 남짓 남았을 때였다.
이제 다 왔다고 약간 안도감이 느껴질 때,  어둠속에서 뭔가가 나를 향해 
확 덥쳐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재꼈다. 하지만 왼쪽 어깨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피가 튀겼고 들고 있던 손전등을 놓쳤다. 
몸을 피하면서, 들고 있던 야구 방망이로 나를 공격한 것을 휘둘러 쳤다.
한손으로 쳤는데다가, 자세도 흐틀어져서 강한 충격을 주지 못한 것 같았
다. 하지만, 나를 공격한 그 놈은 나의 반격에 움찔하더니 옆에 있는 김반
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우선 옆으로 몸을 피하고, 상처가 난 왼쪽 어깨를 만져봤다.
길게 ㅉ어져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떨어진 손전등을 급하게 줏어 그 놈 쪽으로 손전등을 비춰보았다. 
그 놈은 나를 공격한 후,  쉬지않고 김반장을 공격했다. 하지만  김반장이 
날쎄게 옆으로 피하고 권총으로 한 방 쐈다.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놈은 현관앞에서 우리의 길을 막아
섰다. 한 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낫을 들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어깨 
상처도 그 낫으로 찍은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벽쪽으로 뒷걸음질쳤다.
김반장은 그 놈의 머리를 향해 권총을 겨누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손끝 하나라도 움직이면 머리통을 날려 버릴거야!
 빨리 낫을 내려놔!!!"

그 놈은 김반장의 말대로 하는 것인지, 아닌  것이지 그냥 우리의 퇴로만 
막고 가만히 서 있었다. 현관 앞에 버티고  서서 우리들을 내보내지 않겠
다는 듯이 서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미치광이 살인마가  우리앞에 나타난 것이다.  수십명을 잔인하게 
난도질한 미친놈이 이제 우리를 죽이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나와 김반장 역시 이제는 살기 위해서 그 놈과 사투를 벌어야만 되는 상
황으로 몰렸다.
도대체 어떤 놈인가 궁금해졌다. 정화씨가 본 것처럼  이 놈이 바로 재원
인지, 아니면 내가 본 것이 진짜 재원이 시체고 이 놈은 재원이마저 죽여
버린 다른 놈인지...
나는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손전등을 그 놈의 얼굴로 향했다.
그 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큰 충격으로 머리속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지고 미치광이의 얼굴이었지만, 
그 놈은 확실히 재원이였다. 
무시무시한 빛이 나는 광기어린 눈빛과 살기를 풍기는 표정을 하고  있었
지만, 재원이가 맞았다.
그럼 아까 내가 본 썩어가는 시체는 어떻게 된 일인가...
설마설마 했는데, 살인마는 재원이였던 것이었다.
나는 더듬 더듬 말을 했다.

 "재원아....네가..네가... 왜... 여기....여기 있는거야.....
 왜...이런..이런...지짓을 하고....."

재원이는 나의 질문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우리를 노
려볼 뿐이었다. 그런데 김반장은  내 손을 움켜쥐며 이해하기  힘든 말을 
했다.

 "일한씨... 재원이라뇨...
 어디 재원씨가 보여요? 자세히 봐요 저 놈은 재원씨가 아니예요.."

김반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봐도 재원이가 맞았
다. 하지만 김반장도 재원이의 사진을 봤기 때문에 재원이를 알아볼 텐데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김반장은 권총을 재원이에게 계속해서 겨누며,  낫을 버리라고 명
령했다. 하지만 재원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우리를 노려보기만 
했다. 재원이의 무반응은 오히려 우리를겁나게 했다.
김반장은 두려운지 아니면 불안한지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당장 낫을 내려놓지 않으면 머리통에 구멍을 내 주겠어!!"

재원이는 그 말을 따르기는커녕 아무말  없이 한발을 우리쪽으로 내딛혔
다. 재원이가 우리쪽으로 움직이자,  우리는 무시무시한 위압감과  공포를 
느꼈다. 특히 재원이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 공포심은 극도에 다달은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재원이를 설득해보려 했다.

 "재원아! 정신차려! 제발!
 이 새끼야! 뭐하는 짓이야!!!"

재원이는 아무 반응이 없고, 오히려 반응을 보인  것은 옆에 있던 김반장
이었다. 

 "일한씨!
 저 놈은 재원인가 뭔가하는 친구가 아니라니까요!
 재원인가 그 친구가 서른 살이 넘고 흰 한복을 입고다니냔 말이예요!!!"
 
김반장의 신경질적이고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니 나는 혼란에 빠질 수  밖
에 없었다. 내가 보고 있는 재원이는 청바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런
데 흰 한복이라니...
나와 김반장 둘중 하나는 엉뚱한 것을 보고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 놈이 낫을 천천히 치켜들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지금, 그런걸 
따질 새가 없었다.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우리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공포
를 느꼈다.
김반장은 도저히 못 견디겠는지, 두 손으로 권총을  잡아 그 놈의 다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하는 소리와 함께 그 놈의 왼쪽무릎에서 피가 터졌다.
그 놈은 앞으로 넘어져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김반장은 조심스럽게 총을 
겨누며 한 번 더 경고했다.

 "이번엔 진짜 머리야!
 그러니 낫을 빨리 버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재원이는 김반장의 경고에도 꼼짝을  않
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을 보다가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재원이의 얼굴이 아니었다.
이럴수가! 극도의 공포에 의한 환상인가...
옆에 있던 김반장도 신음소리와 함께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당...신....은... 이 집 주인...이었던.... 한병...식...
 이럴수가...."

김반장의 말에 나는 더욱 놀라  수 밖에 없었다. 불과  몇초전에 내 눈에 
재원이었던 놈이 한순간에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다니... 
그것도 과수원 살인 사건때 머리가  발견되지 않은 시체였던 한병식씨의 
모습으로 나타나다니...... 
모든 논리와 이성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어깨에 난 상처에서 나는 통증도 까맣게 잊게 되었다.
그렇게 큰 충격을 받으니, 오히려 생각은 단순하게 한군데로 모였다.
이 지옥에서 살아나가는 것으로....
한병식의 얼굴을 한 그 놈은  무릎에 맞은 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낫을 쳐들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김반장은 이번에는 총을 놈의 머리로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가까운 거리에서 쏴서 그런지 김반장의 총알은 정확히 그 놈의 머리를 관
통했다. 피가 사방으로 터지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엄격히 말하면 지금 김반장은 살인을 저지른  샘이었다. 김반장은 정당방
위를 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그 놈을 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놈이 그렇게 떨어져나가는 것을  보니, 이유모를 승리감까지 
느껴졌다.
우리는 손전 등을 비추면서 천천히 쓰러진 그 놈에게로 다가갔다.
김반장이 한병식이라고 한 그 놈은 뒤로 쓰러진  채로, 시체처럼 뻗어 있
었다. 나는 몽둥이를 들고, 김반장은 권총을 겨눈채로 발로 그 놈을  툭툭
찼다. 하지만 그 놈은 진짜로 죽었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손전등으로 그 놈 얼굴을 비췄다.
아까는 분명히 재원이었는데, 피투성이가 되어 잘 알아볼 수 없지만, 지금
은 난생처음 본 중년의 사내 얼굴이었다. 너무 이상했다.
김반장도 이 살인마의 생사가  궁금한지 권총을 겨눈채, 무릎을  꿇고 그 
놈의 맥박을 잡기 위해 목에 손을 대었다.
나는 옆에서 손전등으로 그 놈을 비추고 있었다. 피 때문에 미끌어서인지 
김반장은 한 번에 맥박을 못 잡고 여러번 집ㅎ다.
결국 김반장은 나를 돌아보며, 모든 것이 끝났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휴.... 이제 다 끝났군요...
 이 놈 여기서 죽었네요... 모든 비밀을 간직한채...."

그 순간 나는 무슨 일이 발생했느지 잘 알 수 없었다.
단지 보였던 것은 피투성이가 되어 죽은 듯이 쓰러져 있던 그 놈이 눈을 
갑자기 뜬 것이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김반장은 뒤돌아 나를 보고 있어, 그 놈이 눈을 뜬 것을 알아차리지 못해
다. 소리를 질러 김반장에게 경고하고 싶었지만, 너무 놀라서 그런지 목소
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 놈은 누운채로 오른손에 쥔 낫을 들어 김반장을 향해 휘둘렀다.
내 심상치 않은 표정을 보고, 그제서야 그  놈쪽을 돌아보던 김반장은 작
기를 향해 휘들러지는 낫을 보고 총을 든 손으로 막았다.
김반장의 오른 손은 총을 쥔채로 떨어져 나갔다.
사방에 피가 튀기고, 김반장은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그 놈은 상체를 일으켜 쓰러진 김반장을 향해 다시 한 번 낫을 처들었다.
나는 타자가 야구공을 때리듯이 상체를 일으킨 그 놈의 머리를 힘껏 내려
쳤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그 놈은 다시 한 번 뒤로 자빠졌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고통스러워 하는  김반장을 부축해서 부엌ㅉ으로  달려갔다. 예전에 
여기 왔을 때 부엌에서 과수원으로 나가는 뒷문이 있었던 것이 생각이 난 
것이다.
김반장을 어깨에 매고, 손전 등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야구방망이는 들고 
갈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방망이를 버리고 부엌쪽으로 향했다.
김반장은 심한 출혈과 고통으로,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는 것 같았
다.  나 역시 어깨에서 피가 계속흘러나왔지만,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언뜻 뒤를 돌아다 보니, 그 놈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았다.
다급해졌다.
나는 김반장을 부축해서, 부엌쪽으로 갔다. 
필사적으로 이동했다.
부엌으로 들어간 나는, 과수원 쪽으로 난 뒷문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분명히 내가 뜯어낸 그 뒷문이 없어진 것이다.
손전 등을 사방으로 비춰봤지만, 나갈 곳이라곤 한군데도 안 보였다. 하다
못해 창문도 없어졌다. 지난 번에는 분명히 있었는데...
당황하고 겁이 났다. 
이 집은 마치 우리들가 나가길 원하지 않는 듯이 모든 출구를 없앤 것 같
았다. 살아있는 생물처럼...
나는 김반장을 부축한채로 헉헉 거리며 출구를 찾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피로 얼룩진 벽 뿐이었다.
마루쪽에서 부엌으로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너무 무서워져서 어떻해 해야 할지 몰랐다. 
지옥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삐그덕 거리는 소리는 점점 다가왔다.
나가는 문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무기 될 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쓸만한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우선 김반장을 벽에  기대어 놓고 무기로 쓸 
만한 것일 찾았다. 
부엌이라는 것이 생각이 나자, 찬장을 뒤졌다.
녹슨 식칼이 하나 나왔다. 급한 김에 그 식칼을 들어 마루 쪽을 노려봤다.
식칼을 든 손이 덜덜 떨려왔다.
이윽고, 삐그덕 소리가 바로 눈앞에서 들려왔다.
나는 손전등으로 소리가 멈춘 쪽을 비춰보았다.
이번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은 재원이도, 이집 주인도 아니었다.
중학생 정도의 아이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낫을 들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의 광기어린 눈빛을 보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언제 정신을 차렸는지, 벽에 기대고 있던 김반장이 힘겹게 말을 했다.

 "너...는....지.철...이..잖아....
 너...는....죽었는...데........."

나는 김반장의 말에 다시한번 충격을 받았다.
지철이라면, 이 집에서 살해당한 과수원집 아들이였다. 그런데 그 애가 내
눈앞에 낫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그 애는 스르르 미끄러지듯 우리에게 다가왔다.
겁에 질린 나는 본능적으로 들고 있던 식칼을 있는 힘껏 지철을 향해 던
졌다. 운이 좋았는지 그 식칼은 정확히,  그 놈이 들고 있던 낫을  정확히 
맞추었다.

 "쨍그렁!"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놈이 들고 있던 낫을  떨어뜨렸다. 나는 이 틈을 놓
치지 않고, 몸으로 그 놈을 들이 받았다. 어깨의 심한 충격을 느끼고 나가
떨어졌다. 재빨리 몸을 일으켜서 보니 그 놈도  저쪽 구석에 넘어져서 바
둥거리고 있었다. 벽에 기대어 있는 김반장을 부축해 다시 마루쪽으로 도
망쳤다. 이 때를 틈타 현관으로 이 집을 벗어나면 될 것 같았다.
김반장도 조금 정신을 차렸는지,  내 부축을 받아 자기  힘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엌에서 현관까지는 길어봤자 10미터도 안되는 거리였지만, 엄
청나게 멀게 느껴졌다. 내  손에 든거란 것은 건전지가  다해 희미해지는 
손전등밖에 없었다. 
문앞에 다 왔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무시무시한 힘으 느
껴지며, 우리 둘은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온몸이 우리기 뿌려놓은 기름에 범벅이 되었다. 
미끄러운 상태에서도 최선을 다해 몸을 가누어 우리를 잡아당긴 것이  무
엇인가 봐야했다. 손전등은 저기 떨어져 있고, 김반장도 옆에서  기름투성
이가 되어 바둥거리고 있었다. 
나는 손전등을 들어 사방을 비추어 보았다.
내눈을 믿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흰 소복을 입은 처녀가 피묻은 낫을 들고 서 있는 것이었다.
김반장의 얘기가 없어도, 나는  직감적으로 그 여자가 재원이도  본 적이 
있는 지희라는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김반장 역시 지희라고 중얼 거렸다.
피 투성이가 된 채로 낫을 들고 우리를 바라보는 그 여자를 보니 소름이
끼쳤다. 아무런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지옥같은 공포에서 벚어나지 않으면 나도 곧 미칠 것만 같았다.
뒷걸음질 치다가 뭔가 발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뭔가가 보다, 구역질이 날뻔 했다.
권총을 쥔채 잘려나간 김반장의 손이었다. 끔찍한 광경이었으나, 지금  내
게는 권총이라도 필요했다.
이를 악물고, 손을 뻗쳐 김반장의 잘려진 손에서 권총을 빼려고 했다.  워
낙 세게 쥐고 있었는지 총이 잘 안빠졌다.  총구를 잡고 몇번을 흔들다보
니, 김반장의 손이 휙하고 저기로 날아가 버렸다.
나는 피묻은 권총을 떨리는 손으로 잡고, 아무 말없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여자를 향해 겨누었다. 
그 여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 하는데, 김반장의 힘겨운 목소리가 들렸
다. 

 "일한씨.... 총쏘지 마세요....
 이제 한발 밖에 안남았어요.....
 그 총알은 이 집에 불을 붙일 때 써요......
 내가 저 놈을 잡고 있을테니...."

총알이 한발 남았다는 말에 절망감마저 느껴졌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총알이 백발이 있어도 모자를 상황인데...
김반장은 이제 왠만큼 움직일 수 있는지, 자기  웃옷을 벋어 잘려나간 팔
목을 둘둘 감았다. 그리고는 비장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여기서 우리 둘다 살아나가기는 힘들겠소...
 내가 저 놈을 잡고 있을테니, 일한씨는 이 집에서 나가 총으로 마루를
 쏴요! 그러면 이 저주받은 집은 저 악귀와 함께 불타 없어져 버릴 테니,
 어쩌피 우리 마을 일이고.... 나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살기도
 힘들 것 같으니.... 살게 되면, 우리 가족에게 안부나 전해 주쇼..
 특히 내딸 현지에게..."

김반장은 유언 같은 말을 끝마치고,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무시무시한 기
세로 그 여자에게 달려갔다. 그 여자는 싸늘한  표정하나 안 바뀌고 낫으
로 달려오는 김반장의 왼쪽어ㄲ를 찍었다. 피가  튀기고 김반장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김반장은 어깨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오
는데도 불구하고 그 여자를 붙잡고 있었다.

 "일한씨!!!!!! 빨리!!!  빨리!!!!!
 제발!!!! 나가줘!!! 제발!!"

김반장의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가 내 귓청을 때렸다. 
그 짧은 시간에 많은 갈등이 생겼다. 나는 어떻헤 해야 하는 것일까..
김반장은 그 여자에 의해 낫으로 난도질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반장은 
끈질기게 그 여자를 잡고 있는 것이었다. 김반장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계
속되었다.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었다. 
이를 악물고 한 손에 총을 든 채로, 현관으로 뛰기 시작했다.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난도질 당한 김반장은 결국 목숨이  다했는
지 고개를 떨구었다. 그 여자는 김반장이 잡고  있는 손을 뿌리치다가 안 
되니까 낫으로 김반장의 손을 잘랐다. 
그러고는 뛰어나가는 나를 향했다. 다음은 내 차례라는 생각이 드니 다리
에 힘이 빠지고 잘 달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기름에 미끄러져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는데, 내 눈앞에는 낫이 보였다.
어느새 그 놈이 쫓아온 것이었다. 저기 떨어져 있는 손전 등에 비춰진 그 
놈의 모습은 더 이상 지희라는 여자가 아니었다. 
장교 계급장의 군복차림의 사내 모습이었다. 역시 피투성이가 되어 나를 
내려치려고 했다. 나는 상체만 일으킨 채로 바둥거리며 뒷걸음질쳤다.
현관까지는 1미터도 안 남은 거리였다.
그 놈은 천천히 낫을 치켜 들었다.
이제는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눈을 꼭 감고  다움 순간 닥쳐올 무시무시한 고통에  대비했
다. 하지만 '퍽'하는 소리와 들러더니, 낫이 내려쳐지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죽은 줄만 알았던 김반장이 몸을 날려 그 놈을 덮친 것이었
다. 그 놈은 갑작스런 충격에 기우뚱했다. 
하지만,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이제 정말로  죽어가는 김반장에게 다가
갔다. 그러더니 낫으로 김반장의 머리를 내려쳤다.
나는 끔찍해서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머리속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몸을 날려 현관밖으로 뛰쳐나왔다.
지옥과 같은 집안에서는 아직도 그 놈이 불과 1분전만해도 사람이었던 김
반장으로 고깃덩이로 만들어 난도질하고 있었다.
나는 분노와 공포로 눈에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쥐고 있던 총으로 집안 마루를 대고 쐈다.
다음 순간 불이 확 났다.
불은 삽시간에 집안 전체로 붙었다.
낫을 들고 있던 그 놈도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거세지는 불꽃으로 더 이
상 집안이 보이지 않았다.
비가 내리고는 있었지만, 기름에 붙은 불은 그 저주받은 집을 활활태우고 
있었다.
나는 기어서 마당으로 나와서, 그 불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환청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집이 타는 소리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사람의 비명소리 같은 것이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게의치 않았다. 지금 그런 소리를 신경 쓸 정신적, 육체적 힘
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을 아무 생각없이 그 불타는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머리속이 텅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겪은 모든 일은 지독한 악몽같이 느껴졌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아
무것도 없었다. 불은 더 거세게 붙어, 그 집은 비명소리를 내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통쾌함과 승리감이 느껴졌다.
그 집이 무너지는 것을 보니, 내 몸에 난 상처가 아파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상처들을 보니, 내가 겪은것은 꿈이 아닌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그때였다. 
불에 타고, 무너져서 거의 폐허가 된 그  과수원집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
가 들렸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었으니 했으나, 한 번 더 들리는 것이었
다. 자세히 보니 불꽃속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보니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절망감과 두려움이 느껴졌다.
무너진 집 사이로 불꽃 속에서 사람 형태를 한 것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었다. 설마.... 그 놈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더 이상 도망칠 힘도 의욕도 남아있지 않았다.
멍하니 딴 사람일을 쳐다 보듯이 그 놈이 불길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두려움이 극도에 다다르면 오히려 담담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주저앉은 채로 가만히 그 놈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 놈은 온 몸에 불이 붙은채로 불길속에서 나왔다.
비 때문인지 불길속에서 나오자 마자, 그 놈 몸에 붙었던 불은 모두 꺼졌
다. 그리고 내게 다가왔다.
나는 저항할 생각도 못했다.
불길에 비친 그 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화상으로 끔찍할 정도로 일그러지고 상한 얼굴이었지만, 확실히 재원이었
다. 다시 재원이의 모습이 보인 것이다.
재원이는 여전히 한 손에는 낫을 들고 있었다.
천천히 내 앞에 서서 낫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끝까지 알 수 없었던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너는 누구냐.........."

재원이, 아니 그 놈은 낫을 치켜든  채로 내 질문을 듣고, 동작을  멈추었
다. 그리고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우리고... 우리는....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놈이 마지막으로 던진 대답에 대해 생각했다. 
과연 무슨 의미일까....
뭔가 수수께끼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그 놈의 낫은 내 머리를 향해 내리쳐 졌다.
마지막으로 그 놈의 끔찍한 얼굴에서 기분나쁜 미소가 보였다.
그리고 암흑이었다..... 

...사방이 모두 흰색이었다.
흰색... 분명히 검은 암흑이었는데...
여긴 어디지....
나는 어떻게 된 것이지..
아무런 기억이 안 났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모두 하얗고 흐릿했다. 
내가 눈을 뜨고 있는 것인가....
눈을 뜨고 초점을 맞춰보려고 애썼다. 사방에 보이던 흰색이 점점 형태를
갖추어 갔다.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부모님, 동생, 지영이.... 그리고 흰 옷을 입은 의사와 간호원들...
여기는 병원이었다.
내가 눈을 뜨자, 모두들 놀라고 웅성되었다. 어머니와 지영이는 눈물을 글
썽거렸고, 의사와 간호원은 바빠 움직였다.
내가 왜 병원에 있게 되었는지 생각을 해 보았다.
갑자기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 버려진 집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분명히 그때 그 놈이 나를 향해 
낫으로 내려쳤는데... 나는 간신히  힘을 내어 물어보았다. 그러나  대답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그 마을에는 홍수로 인해 많은 사람이 물에 떠내려가 죽었고 또 어떤 사
람들은 창고에 난 불을 끄다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 정신이 이상
하게 되어 그 마을로 돌아간  재원이와, 재원이를 찾아간 정화씨,  그리고 
파견나온 두명의 경찰 이 순경과 김 반장도 희생자에 껴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을 사람들을 도와 창고에  난 불을 끄다가 머리를 다쳐  사흘동안 
혼수상태였다는 것이었다. 그런 나를 이장님이 구해 준 것이고...
말도 안되는 얘기였다.
살인이라든지, 버려진 집이라든지 내가 경험했던 모든  일들은 깡그리 사
라졌다. 흥분한채로 내가 경험했던 것을 다 얘기하려고 했지만, 아무도 믿
어주지 않았다. 단지 머리를 다친 충격으로 내가  좀 이상해진 것으로 보
았다. 내가 강하게 주장하면  주장할수록 주변 사람이 나를  보는 시선이 
더욱 이상해졌다. 부모님은 재원이의 죽음이 나에게 충격을 준 것으로 믿
고 있었다. 지영이 만은 나를 믿을 것 같았지만, 그렇게 잔인하고  끔찍했
던 일들을 지영이에게 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이 닥치자, 내 자신도 나를 믿을 수 없어
졌다. 내가 경험한 일들이 진짜였는지, 아니면 혼수상태때 꾼 악몽인지 혼
동이 갈 정도였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그 모든 일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그렇지만 그 마을로 돌아가기 전에는, 내 얘기가 진실이라고 증언해줄 사
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몸도 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곳으로 가겠
다면 부모님이 병원에서 나를 내보내 줄리 없었다.
답답하다 못해, 내 정신상태가 진짜로 붕괴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점점  
그 일들을 진짜로 내가 경험한 것이가에 대한 자신감도 사라지기  시작했
다. 내가 경험한 일들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새로운 일들이 내 경험인  척
하고 들어온 것이다. 아무도 내 말을 안 믿게 되니, 점점 성격이 광폭해지
고 쉽게 흥분되었다. 그리고 밤마다  제대로 자는 법이 없었다.  끔찍했던 
시체들, 지옥 같은 과수원  집, 재원이가 낫을 들고  있던 모습, 김반장의 
최후...
온갖 끔찍했던 기억들이 꿈속에서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 나도 모르게 점
점 신경도 날카로워졌다.
보다 못한 부모님께서 나를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게 했다.
필요없다고 거부했지만, 반강제로 정신과 진단을 받게 되었다. 
나는 매우 신경질적인 상태에서 정신과 담당 최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최선생님은 적대적인 환자인 나를 처음부터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부드러
운 목소리로 내가 경험한 모든 일을 차근차근 얘기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적대적인 감정으로 아무 얘기도 안  하려고 했지만, 최선생님은 
내 얘기를 정말 믿는 사람같아서, 나도 모르게  모든 일을 얘기하게 되었
다. 최선생님은 내 얘기를 다 믿는 것  같았다. 아니, 믿기지 않아도 믿으
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런식으로 한 사람이라도 내  얘기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니, 
내 스스로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내 
얘기를 안 믿어주는 것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최선생님의 상담을  받고 나니,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온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몸에 난 화상과 어깨 상처도 거의 다 치료되었
다. 최선생님의 완치라는 싸인과 함께 병원에서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
퇴원하자마자, 나는 우선 알아봐야 될 일을 생각했다.
바로 그 마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진상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직접 가고 싶었지만,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생각난 곳이 있었다.
바로 대한 심령학회였다. 그곳은 친구인 윤석이가 활동하던 곳이었다.
나도 준석이의 형의 고귀한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라든지 은희의 괴기한 
경험때문이라던지 해서 몇번 찾아가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별로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곳을 운영하고  계시는 박변호사는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는 분이었다. 그 분은 자기  가족을 불가사이한 일로 여
인다음에 사재를 털어 이 학회를 만들어,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이도 자기 형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가 고시 공부도 포기하고 이 학회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일본으로 
식인사건으로 해결하러 간 윤석이가 몇 개월째  실종된 상태여서, 윤석이 
소식이라도 물어볼 생각으로 그 곳을 찾아갔다.
마침 계시던 박변호사는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다. 윤석이에 대한 특별한 
소식은 없었다. 박변호사도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는 심호흡을 한 후, 그 마을에서 내가 경험했던 모든 일들을 모두 얘기
했다. 듣는 사람이 지루할 정도로 자세하게 얘기했다. 하지만, 박변호사는 
내 얘기끝까지 진지한 표정으로 다 들어주었다.
그러더니 오히려 더 자세한 사실을 알기 위해 자기가 직접 그 마을에 갔
다 오겠다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그 정도까지는 할 필요없다고 만류했
지만, 박변호사는 자기가 연구하는 일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며 그 마을
을 갔다 오겠다고 했다. 사흘 뒤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안절부절하며 사흘을 기다렸다.
이윽고 약속시간이 되어, 대한 심령학회로 찾아갔다. 
박변호사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찾아해매던 것에 대한 해
답아닌 해답을 들려 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진실을 숨기고 있더군요...
 일한씨가 경험했던 일들을 없었던 일로 만들었고, 피해자의 가족들은
 전부 다른 곳으로 이주할 준비를 하고 있고...."
 "도대체 왜 그 모든 일을 숨기고 있는 것이죠?
 이해가 안 되요.... 그렇게 커다란 사건을 어떻게 숨기는 것이죠?"
 "휴... 그러니까 인간이 무서운 것이죠...
 작년 쯤인가 그 마을에 온천이 발견되었데요..
 대기업이 투자해 대단위 위락시설을 조성할까 검토중이었고..
 그런 소문만으로 땅값이 10배는 넘게 뛰었데요... 
 잦은 홍수 때문인지 투자하기로 한 대기업이 미지근한 반응을 보여 다시 
 땅값은 떨어졌데요.. 그런데 정부에서 홍수방지 댐을 짓기로 해서 다시 
 한 번 개발붐이 불고 땅값이 치솟았대요...
 그리고 대기업이 결정을 내리고 발표하는 것이 이번 달말로 예정되었다
 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수십명이 끔찍하게 죽어나갔다는 살인 사건의 
 장소로 알려줘봐요. 대기업의 투자는 없는 일로 되고, 그 마을 글자그대
 로 유령마을이 되겟지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 스스로 그 무서운 진실을
 숨기기로 했대요... 나도 지나가는 얘기만 들어서 확실한 것 모르겠지만,
 그 마을 이장이 주도를 했데요.. 자기 자신도 희생자의 아버지인데도 그 
 일에 앞장섰다는 군요...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죠..."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박변호사 말이 사실이라면  너무 황당한 일이었
다. 그런 식으로 진상을 은폐하다니...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박변호사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그 마을에서는... 진짜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이죠?
 제가 경험했던 일들을 도대체 어떤 일들이었고..."
 "Multiple Personality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예? Multiple Personality라... 잘은 모르지만, 다중 인격자라는 얘기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심리학적 용어로 한 사람안에 여러 종류의 인격이 내제되
 어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주로 연쇄 살인범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증상
 이죠.. 평상시에는 온순하던 사람이 특정한 자극만 받으면 흉폭한 살인자
 가 되는 경우인 셈이죠.. 아마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다중 인격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묘사를 한 소설책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제가 그 마을에서 경험한 것과 무슨 관련이 있죠?"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이 진실이라고는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하지
 만 최대한 논리적으로 조사해보았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저 자신은 일한씨가 경험한 모든 일을 믿습니다.
 그런 증거도 있고요...
 우선 우리는 일한씨가 이야기 해준 것들을 시간 순으로 쫓아갔습니다.
 제일 먼저 있었던 비극, 즉 그 독립 운동가의 가족의 비극적인 죽음부터 
 조사해 봤습니다. 여기저기 뒤져 그 독립운동가의 이름은 천기홍이며 실
 제로 일제의 감시를 받으며 경기도 작은 마을에서 연금생활을 했다는 기
 록을 찾아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기록은 그 이후에는 없습니다. 그 이
 후에는 아무도 그 사람과 가족에 대한 생사에 대해서 모른다고 했다는 
 군요. 결론적으로 그 독립 운동가는 실존 인물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상식과 과학의 벽을 허물고 논리라는 단 하나의 잣대를 가지고 
 제 추리를 전개해 보겠습니다. 때로는 상식과 과학이 이런 사건을 이해
 하는데 걸림돌이 되곤 하니까요.. 
 1910년대 어느날 독립운동가 일가족이 몰살당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과 증오에서 일어난 비극이었습니다. 아
 마 씨족사회의 전통이 강한 마을이었나 봅니다. 모든 일은 거기서 시작
 되었습니다. 자기 일생을 바쳐 민족과 독립을 위해 투쟁했는데, 그 민족
 의 무지에 의해 살해된 천기홍이라는 독립운동가는 그 깊은 원한으로
 영적인 존재로 그 과수원 집에 남게 되었습니다. 복수의 악귀가 되어..
 너무 깊은 원한으로 기회만 되면, 복수를 실행했죠. 그 집앞을 지나거나  
 그 집에서 기거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많은 사람이 그 집에서 죽어나갔
 죠.. 
 그 때문인지 80여년동안이나 그 집은 버려져 있었습니다.
 90년대 초에 성일여관 주인이 그 집을 가지고 자기 친구인 한병식씨에게 
 사기극을 준비합니다. 훌륭한 과수원이라고 속여서 임자 없는 집과 과수
 원을 한병식씨에게 팔았습니다. 
 한병식씨 가족은 그 집이 그렇게 무시무시한 내력을 가진 것도 모르고 
 행복한 생활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악귀는 한병식씨 가족을 가만두지 
 않죠.. 한병식씨의 부인이 이유도 모르는 병으로 죽게 됩니다. 그 악귀의
 저주일 수도 있겠죠... 더욱 불행한 것은 한병식의 끔찍했던 부인 사랑이
 었습니다. 맏딸 지희마저 시집가게 되자, 큰 상실감과 허전함을 느낀 한
 병식씨는 어떤 대가도 치를 각오로 마을 무당에게 부탁해 죽은사람을 되
 살리는 의식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그 의식은 죽은 부인을 살려내지 못하고, 바로 복수를 노리는
 독립운동가의 악귀를 살려내죠...
 그 살아난 악귀가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르죠.. 한병식씨 가족을 그 희생자
 가됩니다. 우선 자기 복수를 행해줄 매개체를 찾은 것입니다. 자기가 들
 어가서 복수를 할 수 있는 살아있는 사람의 몸이었죠... 그 악귀는 처음
 에 한병식씨의 몸에 들어가 아들인 지철과 사윗감인 안중위를 죽입니다. 
 그러나 한병식씨는 끝까지 악귀에게 조종되지 않고 자살을 기도합니다. 
 그래서 악귀는 딸인 지희에게 들어가고, 악귀의 힘으로 지희는 자기 아
 빠인 한병식씨의 머리를 자릅니다. 하지만 지희는 여자였고 연약했
 기 때문에 강력한 원한과 증오심을 가진 악귀가 더 이상 머물 수 없었습
 니다. 악귀의 뜻대로 움직이기에는 너무 연약한 여자였습니다. 그 여파로 
 지희라는 미치게 되었죠..
 그 악귀는 다시 버려진 집에 머물면서 자기가 들어갈 수 있는 희생자를 
 노립니다. 운이 나쁘게 그 희생자가 바로 일한씨 친구였던 재원씨가 됩
 니다. 악귀는 재원씨의 몸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재원씨 몸에 들어간 것은 그 독립운동가의 악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악귀에게 죽음을 당한 한병식씨, 지희, 지철, 그리고 안중위까지 그 악귀
 와 함께 재원이의 몸으로 빙의하죠..
 악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머지 희생자들도 원한이라는 극단적인 감
 정만 가진채 재원씨의 몸에 들어가죠...
 거기서 부터 살인이 다시 시작됩니다.
 첫 번째 희생자는 여관주인, 바로 한병식씨를 속인 사람입니다. 또한 정
 신이 나간 지희를 겁탈하고 농락한 사람입니다. 지희의 시체를 부검한 
 의사를 만나봐 얘기를 들어봤는데, 임신중이었다고 합니다. 그 여관주인
 의 만행이었죠.. 이 사람은 한병식씨와 지희의 복수로 살해당합니다. 
 독립 운동가의 악귀가 저지른 일이 아닙니다.  단지 원한을 증폭시키는 
 매개체 역할을했을 뿐이고, 한병식씨와 지희의 원혼이 저지른 살인이 
 됩니다. 다음 희생자는 정미소 김씨였습니다. 김씨는 생전에 한병식씨와 
 사이가 나뻤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한병식씨의 복수였습니다.
 다음 희생자는 탈영병, 우연으로 보이기 쉬운 살인이었습니다만 나름대
 로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 그 탈영병의 부대를 조사해 본 결과 공교롭게
 도 안중위와 같은 부대였습니다. 안중위의 주변을 조사해보니, 중위로 복
 무할 당시 그 탈영병은 안중위와 아주 나쁜 관계였다고 했습니다. 지나
 친 비약일 줄 모르지만, 이번에는안 중위의 살인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재원씨가 꼭두각시였을 것입니다.
 그 즈음 재원씨 역시 살해되었을 것입니다.
 왜냐고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으니까요...
 악귀는 살해를 계속함에 따라 더 이상 몸이 필요 없어 졌습니다. 희생자 
 들의 기를 이용해 자기 나름대의 물리력을 가진 하나의 매개체를 만들었
 으니까요.. 그것은 무당집에서 발견되었다는 그 검은 흙에서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비에 씻겨 찾기 힘들었지만, 일한씨 말대로 
 그 무당집 근처에 검은 흙이 약간 발견되었습니다. 그 흙의 기를 분석해 
 보았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 방식인데... 그 결과를 보니 그 흙에는 인간
 의 기가 느껴졌습니다. 이런 경우는 아주 드믄 일인데... 서양에서는
 골램이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과수원 집에서 발견된 검은 흙이 모여 사람의 형상을 하고 살인을 하고
 다닌 것입니다. 원귀들이 모여 복수의 살인을 위한 물리적 개체가 만들
 어진 것입니다. 
 그때 부터 본격적인 살인을 하기 시작합니다.
 자기 정체를 알만한 무당을 죽이고... 그 자리에서 낫을 사용한 방법을 
 보면 두 사람 이상이 낫을 쓴 것처럼 보였다는 것은 바로 여러명의 원혼
 이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자기 가족을 몰살한 사
 람들의 후손을 찾아 죽입니다. 그 마을 어르신이라는 사람까지....
 그때 재원씨 친구라는 정화씨가 범인을 목격하죠.. 그때 아마 재원씨는 
 이미 죽어있었을 것 입니다. 그 상황에서 정화씨가 어떻해 살아ㄴ나고
 요?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해요.. 정화씨는 어느 누구의 살생부에도
 포함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정화씨는 그 악귀에게 커다란 위협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재원씨의 혼에 영향을 미치니까
 요.. 그래서 정화씨 눈에 보인 것은 재원씨의 형상이었고, 또 정화씨를 
 죽일 때 나타난 것도 재원씨의 형상이었다는 것이죠..
 복잡하죠... 쉽게 이야기해 보면, 그 악귀는 정화씨를 봅니다. 하지만 
 그냥 지나치려고 합니다. 원한관계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자기의 일부분을 이루는 희생자, 즉 재원씨의 혼이 정화씨를 보
 더니 괴로워하며 자기를 분열시키려고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위험
 인물인 정화씨를 죽여야 했죠. 정화씨를 죽이기 위해서는 재원이의 모습
 으로 접근 하는 것이 쉬었고...
그러다가 중학생 아이가 살해당하죠.. 그것은 지철이의 원한에 대한 앙갚
 음이었습니다. 작은 원한이라도 억제할 수 있는 이성이 없는 상태에서 
 더욱 증폭시키는 상황이 되어 살인은 심해집니다.
 이 순경도, 고깃간 정씨도, 이장의 아들도, 경규라는 청년도 모두 그 독
 립 운동가 원귀의 복수였습니다.
 결국 김반장도 그 복수의 희생자가 된 것이고....."

나는 박변호사의 설명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런 복수극이 있다
니... 하나의 매개체를 통해 여러 가지의 원한에 대한 복수를 하다니...
머리가 아플 정도로 복잡해졌다.

 "변호사님, 그 논리가 맞다고 해도 몇가지 이해가 안되는 점이 있는데...
 재원이가 죽은 다음에도 그 악귀라는 놈은 계속해서 낫으로 살인을 하고 
 다녔어요... 제가 직접 보기도 하고 습격도 당했어요..
 그런데 사람이라는 매개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귀신 스스로가 물리적인 
 힘이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말이죠...
 우리는 귀신이나 영혼에 대한 근거없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령은 반투명하고 공중에 둥둥떠서 다닌다는가, 아니면 귀신
 은 만질 수도 없고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빌린다고..
 그것이 유령이나 귀신에 대한 고정 관념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록을 찾아보면, 물리력을 행사한 유령에 대해 많이 나와있습니
 다. 그러한 유령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인간을 괴롭힙니다. 인간을 죽
 이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지요.... 다시 말해 원한이라든가 복수의 의지가 
 강한 원귀일수록 더욱 큰 물리력과 실체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번 경우가 그렇죠..."
 "그렇다면, 그렇게 모습을 자주 바꾼것도..."
 "예, 그렇습니다.
 만일 사람의 몸에 여러 귀신이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모습이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번 경우에는 아예 자기들이 만들어낸 매개체
 이기 때문에 모습이 여러번 바뀐 것입니다. 희생자와 가장 관련있는 모
 습으로..."
 "그런데 말이죠... 저는 왜 안 죽었지요?"
 "글쎄요...
 아마 일한씨 역시 그 악귀들과 원한관계가 없어서 아닌가요..
 아니면, 그 집을 불태움으로써 그 악귀들이 정말 없어진 것일지도 
 모르고...."
 "그럼, 그 악귀는 이제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진 것인가요?"
 "그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제가 그 버려진 집의 폐허에 가보았을때는 더 이상 사악한 기운은 느껴
 지지 않았지만... 없어졌길 바랄 뿐입니다...."
 
박변호사의 말을 들었지만, 모든 것이 이해되지는 않았다. 
수 많은 의문과 불가사이한 일들의 정답을 모두  얻을 수는 없었다. 하지
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것은 환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변호사는 아직도 석연치 않는 듯이 의문에 찬 모습으로 나가는 나를 보
고 한마디 충고를 해주었다.

 "일한씨,
 너무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 마세요..
 이 세상에는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그것을 전부 이해하려 하면, 저 같이 평생을 바쳐도 이룰 수 없는 일입
 니다. 제 생각에는 그 정도로 이해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더 많이 알기 위해서는, 어쩌면 더 많은 희생이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 정도로 모든 것을 접는 것이 나을지 모릅니다."

많은 의문도 남았지만, 너무 큰 상처를 남긴 일이었다.
재원이와 정화씨가 이번 일로 죽었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한참을 그 상처에서 헤어나오니 못했다.
그래도 그 마을 가람들이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모든 것을 감추려고 하는
지는 알아야 했다.
그 마을 이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소개를 하니, 전화 받기를 좀 꺼려하는 것 같았다. 우선 나는 혼수상태
였던 나를 구해주셔서 고맙다고 했다.

 "뭘요.. 일한씨...
 그때 참 위험했어요...
 다음날 날이 밝아 구조대가 도착했어요. 소식이 끊긴 김반장과 일한씨를 
 찾아봤죠.. 그랫더니 그 집은 잿더미가 되어 있고, 일한씨는 마당에 쓰러
 져 있는 것이었어요.. 어깨에선 피를 흘리면서....
 의사 말이 조그만 늦었으면, 출혈과다로 죽었을 거라는 하더군요...
 다행이예요..."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이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왜 모든 사실이 바뀌어 있는지.. 한참을 머뭇거리던 이장은 한숨을 내쉬더
니 얘기를 시작했다.

 "일한씨...
 일한씨 모르게 모든 것이 변해서 미안하게 되었소...
 하지만, 알다시피 나 역시 아들을 이 사건으로 잃었소.. 그런 나도 
 이렇게 사건이 정리되는 것에 동의했소.. 
 생각해 봐요.. 우리가 보고 경험한 그대로를 얘기한다고 누가 믿겠소..
 80년도 넘은 귀신이 살아나와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고...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아무도 믿지 않고, 오히려 이 마을만 버려질 거
 요.. 온천 개발은 커녕 마을 자체가 없어진다고...
 그래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하기로 동의했소.
 그날밤 김반장과 일한씨가 떠난 다음에 분교에서 결정한 것이요..
 우리는 단지 홍수와 화재로 희생자가 생긴 것으로..."

그 말을 듣고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뭐하는 짓거리들인가..
잘 생각해보면, 마을을 위해서하긴 보다는 돈을 위해서 결정한 일 같았다.

 "그러면, 이장님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은 그런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그 마을에서 계속 살 생각이십니까?"

내 질문에 이장은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러더니 궁색한 대답을 했다.

 "어짜피 온천이 개발되면, 우리는 이 마을에서 떠날 수 밖에 
 없게 되잖소... 우리가 여기서 장사를 할 것도 아닌데...."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을 사람들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살인사건을 
숨김으로써, 온천 개발로 하늘높이 치솟은 땅값을  받고 땅을 팔아버리고 
그 저주받을 마을을 떠날 생각을 한 것이다.  나는 이유모를 분노를 느꼈
다. 당장 진실을 폭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하,하,하..
 일한씨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요?
 그런데 하나 좀 물어봅시다. 그 모든 것이 도대체 뭐요?
 귀신 얘기... 사람들이 그것을 믿을까요..
 우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 홍수와 화재ㄸ문에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한는데.. 이 세상에서 일한씨의 말을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있어봤자 다 죽었잖소..
 김반장도, 이순경도, 친구도, 정화라는 여자도...
 이제 모든 것을 잊고, 공부나 하슈...
 학생으로 돌아가란 말이요.. 
 이제 그 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니까...."

화가 났지만, 이장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 일을  정리해 언론사에도 보내고, 경찰에
도 보냈다. 그러나 내가 그들에서 받은 것은 미친놈 취급이 전부였다.
방법이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내 생활로 돌아왔다.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기란 쉽지는 
않았지만, 최고의 치료약은 역시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나 역시 거기서 있었던 일이  잘 생각나지도 않고 어쩔 
때는 그 살인사건이 이장이 말한 것처럼 홍수와 화재로 발생한 것으로 생
각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모든 것이 기억 저편으로 잊혀져 갔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생각없이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뉴스는 내 몸을 얼어붇게 만들었다.

 "...시체는 XX마을의 이장인 고성주씨로 밝혀졌습니다.
온천 개발관계로 관계자들과 함께 술을 마신 뒤 집으로 돌아오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습니다. 살인에 쓰인 도구는 낫으로 
밝혀졌고, 시체옆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고성주씨는 온천개발로 인한 
땅값 상승으로 막대한 이익을 봤다고 합니다. 또한 내일 이사하기로
되어있어, 온천 개발 관계자들과 송별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지난 20일 낫에 찔린 시체로 발견된 같은 마을 최지
석씨의 살인과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온천 개발에 관련된  이권 다툼이 
있었는지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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