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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by Casey,Riley 2020.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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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고 슬퍼하는 모든 영혼을 위한 산문집이다. 가슴이 뻐근하도록 자신을 추락시키는, 뻥 뚫린 마음에 악마의 검은 얼굴을 심어준 그 절벽, 아니면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벽 밑으로 떨어지며 아무에게도 손 내밀지 않고 혼자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모쪼록 이 책이 불 꺼진 마음에 은은한 촛불이 되고, 부서질 듯 건조한 슬픈 어둠에 촉촉한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글을 엮었다.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 Short Summary 
 
이 책의 저자는 누구나 이별의 고통은 일상의 순간에 찾아오지만, 그동안 인기척을 내지 않았던 추억 들은 부재의 그림자로 또다시 덮쳐와 그 이별의 아픔이 단 하루에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는 그 존재들의 이름을, 인생의 마디마디에 함께했던 찬란하고도 아련한 그들을 우리는 언제쯤 잊을 수 있을지 반문하며, 역설적으로 어쩌면 잊지 않고, 잃기 싫어 기억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한 다. 
 
그리하여 믿고 싶지 않고, 믿을 수 없이 무기력해져 결코 직면하기 힘든 순간들. 자신이 생존해있다는 것이 때로 죄스럽고, 때로는 부조리해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되돌리고 싶은 순간들. 그런 후회의 기억 들이 한번씩 우리 안에 슬픔으로 고여 묵직한 상처들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 마음을 뜨겁게 밝혀주었던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들과 함께 나눈 일상의 평범하 고도 결정적인 순간들이 우리를 또 버티게 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다시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한다.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기에……. 
 
▣ 차례 
 
프롤로그 사랑이 당신의 인생을 절벽 앞으로 내몰지라도 1부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그 웃음이 좋았다 / 내 선택은 언제나 ‘후회가 덜 남을 쪽’이었어 / 덜 사랑하는 척, 가면을 썼어 
 
- 2 -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사랑에도 졸업이 있었으면 좋겠다 / 고모의 죽음이 내게 남긴 것그의 심장이 껍질을 벗기고 나와, 말을 걸었다 / 너무 아껴서 산천초목이 질투한대도그 사람이 내 마음에 앉을 때 / 눈물이 다 말라야 여자는 이별을 고한다 처음 그 마음처럼 간절할 수 있다면 / 자격지심 / 율마에게 마음이 가도 고무나무를 고른다 하롱베이를 닮은 기억들 / 선물의 본질 / 힘을 빼고 끝까지 본다 / 옆에 있어도 그리운 것, 사랑 추석, 소원 / 인연의 힘, 여전히 사람이 좋다 / 비서의 마음 / 너는 소중하단다 나를 버티게 하는 것이, 나를 지배한다 / 나의 정의가 타인을 찌르지 않도록 우리 인생의 어떤 페이지 
 
2부 바람 불지 않는 이별이란 없었다 차라리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어 / 술의 유혹을 뿌리친 아침에 무엇을 놓쳤기에, 돌이킬 수 없어졌을까 / 헤어진 다음 날에도 살아야 한다 들리지 않겠지만 생일 축하해 / 이로운 이별이라는 게 있지 / 기억은 한쪽으로만 흐른다 우산을 써도 막지 못하는 빗방울이 있었어 / 강렬한 사랑은 판단하지 않는다 가슴 울리던 음악이 나를 달래주면 / 새벽의 물웅덩이 / 여드름의 존재 이유와 모든 잡념의 귀결 내가 슬픈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는 이유 / 변하지 않을 것을 위한 시(詩) 빈껍데기처럼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 그 말이 그렇게 쓰일 줄 몰랐어 제발 별일 없기를 / 우리를 집어삼킨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 훨훨 날아가, 아프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한다 / 내가 글을 쓰는 이유 
 
3부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사의 찬미’는 ‘생의 찬란함’을 이기지 못해 / 시간을 되돌리는 가장 좋은 방법내 베스트프렌드의 결혼식 / 영원을 기약할 수 없음은 오히려 내가 울 때, 같이 울어줄 사람 / 하루를 살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 소풍 끝나는 날 / 우리가 냉장고에 붙이는 것들 / 거리에서 고단함을 뱉어내는 사람들 쉬워도 어려워도 내 손에 달렸다 / 붕어 밥, 소여물 다 먹이고서 길치의 미시감(未視感) / 살리고 싶은 사람 / 사실은 신이 주신 최고의 사랑이었다 사람이니까, 누군가를 미워할 수도 있지 / 무심한 아버지가 다정하게 느껴질 때약자를 위한 자리 / 떠나고 싶은 날의 유의사항 / 조언 반사 완벽한 존재는 완벽히 부존재 / 당신이 내게 살아서 뭐하냐고 묻거든 눈부신 월요일 / 그대의 커피 같은 하루에 
 
에필로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할 그 순간을 위하여 
 
- 3 -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1부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사랑에도 졸업이 있었으면 좋겠다 돌이켜보면 ‘졸업’과 동시에 많은 사람이 멀어져갔다. 시차는 있었겠지만, 자의적으로 타의적으로 한단계의 졸업이 지나면 꽤 많은 사람을 잊고 살았다. 
 
나는 지금, 학교가 아닌 회사에 다닌다. 퇴사한다면, 졸업과 비슷한 끝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사랑에는 졸업이 없었다. 대상이 달라진다고 해도 같은 과정을 또 겪어야 한다. 팔순에도 아흔에도 새 사랑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신입생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찾는 교정을 거닐듯이 싱그러울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에는 졸업이 없었다. 다만 상대와의 연애가 심심하게 끝나건 요란하게 끝나건, 완결 지어진 실수투성이 작품만이 남아있을 뿐. 
 
“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다가 문득 ‘퇴근이란 참 좋구나.’하고 감사하게 되었다. 퇴근은 퇴사도 아니고 졸업도 아니지만, ‘실수해서는 안 되는 사람의 시간’을 벗어나 ‘원래 실수투성이인 인간 이청안’으로 돌아와도 된다는 자유를 주고 있지 않은가. 
 
사랑에도 졸업이 있었으면 좋겠다. 빛나는 졸업장을 받지 못할 거라면, 퇴근이라도 시켜주었으면 한다.
더는 실수투성이 작품을 찍어내지 않고 이제 그만 감사하며 퇴근하고 싶다. 세기의 걸작으로 졸업작품을 만들지 못할 거라면. 사랑, 졸업하고 싶다. 불가능하니 염원하고 있겠지만. 
 
너무 아껴서 산천초목이 질투한대도 “얘야, 사람이건 물건이건 너무 사랑하고 아껴서는 안 된단다. 산천초목이 질투하기 때문이지. 사랑할 수록 담담해지거라. 사랑할수록 따듯한 거리를 유지하거라. 네 몸처럼 사랑하고 애착을 두다가는 영영 헤어지는 수가 있단다. 사랑하되 너무 사랑하진 말아라. 그리워하되 너무 그리워하진 말아라. 하늘이 질투한단다. 산과 나무, 바다가 질투한단다.” 
 
이만희 원작, 류은종 장편소설 ‘약속’에 나오는 구절이다. 
 
내 어머니와 가장 친한 친구인 원우 이모는 원우가 다섯 살 때 사별하셨다. 그리고 평생 먼저 간 남편을 그리워했다. 이모는 가끔 내게 “너무 사랑하지 말라.”고 충고해주었다. 나는 그 말의 진의를 잘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이모는 어느 날, 길거리에서 사주를 봤다. 점쟁이는 내년에 이별 수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당시 이모부는 해외 발령을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에 이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친구인내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 부부가 매우 불안했다고 한다. 이모와 이모부는 천지가 질투할 정도로 매우 
 
- 4 -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사랑했기 때문이다. 
 
가장 행복할 때 찾아오는 불행은 사람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그런데 결국 우려하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덜 사랑했다면, 덜 아팠을 것이다. 너무 많이 사랑하고 기대었기 때문에, 그 존재가 사라졌을 때 ‘내 존재 또한 공중으로 흩어질 것 같은’ 아픔을 경험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 앞에서, 관계 앞에서 담담해질 수 있을까? 나는 결코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상처받기 싫다면 은둔해라. 그럴 수 없다면 멋지게 나아가야 한다. “너무 사랑하지 말라.”는 충고는 그사랑도 아픔도 뼈에 새길 만큼 체험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연인들이여, 사랑하자.
두려움도 아픔도 없는 둘만의 세상을 향하여. 
 
한 톨의 틈도 남기지 말고, 살아있을 때 사랑하자. 산천초목이 질투하는 운명의 주인공이 되더라도. 
 
그 사람이 내 마음에 앉을 때 “그 사람이 내 마음에 앉는 건, 어느 뜻밖의 순간”이라고 시작하는 이승환의 노래가 있다. 정말 그렇다.
시작이 그렇다. 
 
누군가에게 빠지고,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나와 닮아서 좋아지기도 하고, 나와 너무 달라서 동경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뜻밖의 인연이 과해지고, 집착 가도를 달리면 한순간에 어그러 지고, 또 죽도록 미워하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헤어진 연인에게 가지는 애증이 이런 경우가 아닐까. 
 
호감을 느끼고 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은 즐거웠다. 상대도 나도 서로를 하나로 느낄 정도로 합일하는 과정은 경이로웠다. 그런데 그 순간은 영원할 수 없다. 언젠가 멈추어야 하고 굴곡도 거쳐야 한다. 
 
폭포수 아래로 떨어지는 거친 물살을 견뎌내야 매끄럽고 단단한 수석이 된다. 수석이 되어도 영원하지 않다. 산들바람 자연도 수련을 거치는데, 하물며 우리는 변화무쌍한 감정을 가진 나약한 사람이다. 수련의 과정을 즐겁게 받아들인다면, 인생은 절대 우울하지 않다. 생각해보면, 오늘 좋아 죽고 못 사는내 옆의 사람은 언젠가 내가 죽도록 미워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절실한 사랑이 뒤틀리면 화(火)가 되어서 나를 괴롭힌다. 이렇게 괴로울 걸 왜 사랑했나, 왜 가까워졌나 싶겠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참 기쁘지 않은가. 고맙지 않은가. 
 
좋아했고 동경했고 사랑했기 때문에 미워졌다. 그 언젠가 행복이 없었다면 이런 상실감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때는 나의 전부였던 그 사람이 떠나가더라도, 지금 내 옆에 없더라도 그 사람 때문에 나를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 미워도 저주하지 않아야 한다. 
 
미움은 애정의 또다른 표현이다. 아직 애정을 가졌다면 멀리서 축복해주자. 선한 마음은 언젠가 나에게 행복으로 다시 돌아온다. 오늘 내가 절실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언젠가 내가 죽도록 미워할 사람이 다. 
 
즐겁게 조금만 멀어지자. 하지만 또 모르겠다. 반대의 상황이 일어날지. 오늘 내가 미워하는 어떤 사람 
 
- 5 -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 열렬히 좋아지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새 바람이 불어오면 마음을 닫았던 우리의 마음에 또 누가 들어올지도. 어느 뜻밖의 순간은 항상 있다. 뜻밖의 순간은 그 사람이 내 마음에 앉는 순간. 그 순간이 내게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우리 인생의 어떤 페이지 책을 읽다 보면 어딘지 모르게 페이지를 넘기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그 페이지는 나를 잡아끌고,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나 넘어가야 하는데, 다음 장으로 넘어가야만 하는데, 왈칵 눈물을 남기거나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런 느낌 주거나 문득 생각나는 사람 있어서, 나는 다음 페이지를 들추지 못한 다. 
 
그런 페이지가 있었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그 페이지를 넘겨버리고 말았다. 책은 이전의 페이지로 다시 돌아갈 수 있지만 내 시간의 페이지는 그리로 되돌릴 수 없어, 지금 나는 조용히 이 자리에 서 있다. 살아있지만, 숨을 쉬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내가 살아 있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우리를 멈추게 하고, 또 달리게 하는 그 페이지를 향하여, 그 페이지를 만나러…. 인생의 페이지를 묵묵히 넘기고 있다. 
 
2부 바람 불지 않는 이별이란 없었다 
 
무엇을 놓쳤기에, 돌이킬 수 없어졌을까 사건에는 전조증상이 있고, 전쟁에도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까지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고 지나간다. 결국은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엄청난 일들이 인간의 삶에 직격탄을 날린다. 
 
‘인생은 한 방’이라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한 방에 눈 녹듯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다. 사실은 이별에도 전조증상이 있었는데, 남의 이별이 아니라 내 것이어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 을까 곱씹어 보았지만 쉽사리 이유를 가늠하기 어려웠으므로 진단명도 내려받지 못한 불치병 환자처럼 바닥 깊이 고통스러웠다. 
 
확인하고 싶었다. 누군가,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99가지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싫어하는 일 1가지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눈치를 살피던 나의 불안한 눈빛들이 쌓여가며 이별의 석탑을 완성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게 얼마나 공을 들인 탑이건 나는 컨트롤 Z(컴퓨터에서 실행 취소를 의미하는 단축 키)를 눌러버리고 싶었다. 차라리 처음 부터 시작할 수 있다면, 석탑을 다시 만드느라 허리가 휘어도 좋았고 지문이 다 닳아도 좋았다. 
 
돌이켜진다면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 남의 이별처럼 분석하고,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게, 그 중심 부에서 심장을 향해 이별을 저격할 것이다. 환자복을 입게 되더라도, 집요하게 진단명을 받아낼 것이다. 그리고 끝끝내 완치 판정을 받고 다른 이름의 석탑을 완성할 것이다. 단 한 번 돌이킬 수 있다면. 
 
- 6 -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들리지 않겠지만 생일 축하해 이별을 실감하는 날은 매일 매 순간이기도 하지만, 그 타격감이 큰 날은 ‘생일’같은 특별한 날이다. 내생일에는 그래도 괜찮다. 제법 괜찮은 세상에 사는 덕분에 제법 많은 사람이 반강제적으로 내 생일을 알게 되고 반쯤은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기프티콘’으로 성의의 축하 인사를 나눠주곤 하지 않던가. 
 
그가 없어도 나는 제법 괜찮은 생일을 보낼 수 있노라 위안 삼을 수 있다. 그런데 상대방의 생일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 사실이 번개처럼 뇌관을 관통한다면 기분이 참 이상하다. 내가 사라진 그의 삶에 그가 특별한 날을 맞이했다. 태어나줘서 감사한 그의 삶인데, 그의 생일을 나는 축하할 수 없다. 직접 축하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영원히. 
 
그래서 그날은 아침에 일기를 썼다. “항상 기억될 것만 같아, 슬픈 오늘을 혼자서 축하하고 기념해봐.
여기 이 아침에, 다짐 같은 일기를 적고 하루 동안 당신 생일이라는 걸 잊어보려 해. 내 마음도, 지나간 우리의 시간도 바람결에 흔들리는 엉성하게 세워진 촛불 같다. 당신이 오늘 저녁 선물 받은 케이크 위에 놓일 연약한 촛불처럼 말이야. 부질없는 나만의 축하, 위태롭고 보잘것없어서 당신에게 닿지 않겠지만. 절대로 들리지 않겠지만. 사랑해. 생일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마웠었어.” 
 
기억은 한쪽으로만 흐른다 어린 시절 주말 늦은 밤이면,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던 외화가 있다. ‘판관 포청천’이라는 대만 드라 마인데, 송나라의 실제 정치가였다는 ‘포청천’의 엄중한 판결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악인이 ‘개 작두형’에 처할 때였다. 
 
똑같이 사형선고가 떨어져도 ‘용 작두’에 처형당할 때와 ‘개 작두’에 목이 날아가는 것을 다르게 그린이 드라마는, 진정한 악인이 악인으로 ‘제대로’ 평가받을 때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포청천이 “개 작두를 대령하라!”라고 명할 때, 우리는 알 수 있었다. 형에 처할 때 그 사람의 인생과 죄를 명백히 단정할 수 있었다. 
 
인생이라는 무수한 길을 걸어가는 우리는 여러 관계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이어질 듯 끊길 듯 관계의 매듭이 지어지고, 인연이 끊기면 한 번쯤은 상대방에 대해 단정짓게 된다. 어떤 스승이었는지, 어떤 부모였는지, 어떤 동료이며 상사였는지. 서로에게 감정의 크기가 어떠했었는지까지도. 
 
판단 짓고자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마치 판관 포청천이 ‘용 작두’와 ‘개 작두’를 구분하는 것처럼. 어쩌면 연애도 그러하다. 상대에 대한 내 사랑이 얼마만큼이었는지, 우리가 사랑한 것인지 그저 연애 상대로 만나는 사이였던 것인지. 아니면 그 중간 어디쯤 위치해, 감정의 고귀함도 함께 그렸던 미래도 딱 그 중간쯤이었는지. 
 
내 경우는 연애가 끝나면 후련했고, 사랑이 끝나면 아팠다. 그리고 헤어지고 나서 시작되는 사랑도 있었다. 그래서 끝나봐야만 알 수 있다. 기억이 어떻게 단정 지어질지도 관계가 매듭지어져야 알 수 있다. 연인 사이가 아닌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호감과 사랑이 달랐다는 것은 기억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기억은 늘 한쪽으로만 흐른다. 기억은 애정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 7 -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뇌리에 남지 않은 순간을 행복했노라 고백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하여 모든 사랑은 흔적을 남기고, 기억의 극대화를 누린다. 기억이야말로 따지고 보면 불공평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 기도한다. 나와 맞닿아있던 많은 사람의 기억이 나를 미화하고 왜곡하여 여기 숨 쉬는 나보다 더 나은 사람 으로 담아두기를. 
 
우리의 마지막이 매듭지어졌을 때, 나에 대한 기억이 그들의 삶 어딘가 남아있다면 조금이라도 따스했 기를. 혹여 나보다 내 글을 기억해준다면, 추운 겨울 시장 모퉁이에서 파는 달콤한 팥죽처럼 뜨겁고도 애잔한 알맹이가 있던 존재로 마음 한구석에 담기기를. 
 
그 말이 그렇게 쓰일 줄 몰랐어한 사람이 좋아지고 있었다. 그는 이미 ‘나’라는 사람을 모두 여행하고서 책을 써 내려가는 작가처럼, 이미 극장에서 엔딩 장면을 보고 나온 평론가처럼 나에 대해 잘 알았다. 내가 어떤 말을 어떤 뉘앙스로 표현하는지 모두 아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나의 ‘언어’가 중요한 사람이고, 그래서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는 쉽사리 친해지질 못한다.
반대로 나와 상대방의 언어가 통한다고 생각되면, 내 마음은 몇 계단을 뛰어넘어서 몇 계절을 앞서 나가서 상대에게 가 열려버린다. 남자인 사람에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와 함께할 수 없음이 이다지도 아픈지 모르겠다. 
 
존중. 그가 처음 그 단어를 사용한 것은, 내가 밥을 먹기 싫다고 했을 때였다. 그는 나의 뜻을 ‘존중’한 다고 했다. 그때 나는 속으로 감탄을 연발하면서 “존중은, 내가 굉장히 아끼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정말로 그랬다. 존중한다는 말 자체를 듣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느낌을 받으니까. 그 또한 존중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했다. 
 
“너의 뜻을 존중할게.”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해주면, 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그런 마음을 저절로 느끼게 되지 않던가. 마치 유아기에 엄마가, 잘 익은 사과를 반 잘라서 쇠숟가락으로 살살 긁어 떠먹여 주는 맛이라고 해야 하나? 적당히 달콤하면서도 포시락거리는 사과 한 스푼을 입에 넣으면, 씹지 않아도 이미 입을 벌리면서 부터 엄마의 사랑을 느끼게 되니까. 
 
그런데 나는, 좋아하던 그 말이 그렇게 쓰일 줄 미처 몰랐다. 당신의 입으로 그 말을 그렇게 들을 줄알지 못했다. ‘존중’의 표현이 내 마음에 비수가 되어 꽂힐 줄 몰랐다. 
 
“그만두자. 나를 존중해줘.” 
 
내가 많은 가치를 두었던 그 말이 당신과 나의 단절이 될 줄 알았다면 진작 어디 던져버렸을 텐데. 파묻어버리고 다 찢어서 흔적도 남기지 않았을 텐데. 살면서 처음으로 언어를 전공하고 언어에 의미를 부여하는 내가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그가 내뱉은 ‘존중’이 어떤 뜻인지 너무나 잘 알겠기에, 너무나 적확하게 와 닿아서.
그를 존중하고, 나는 돌아섰다. 함께 있을 때 나를 웃게 하고 돌아서서 눈물짓게 하는 그 사람을 떠나 
 
- 8 -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서야 이런 생각을 한다. ‘존중’이라는 말을 그렇게 쓸 수 있었다는 것을. 내 입에 달콤하고 포시락거리는 사과 한 스푼을 넣어주기 위해 쇠숟가락에 짓이겨진 엄마의 붉은 손바닥을 떠올렸다. ‘존중’이라는 표현의 모든 이면을. 아픔을. 
 
3부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사의 찬미’는 ‘생의 찬란함’을 이기지 못해 
 
‘사의 찬미(SBS, 2018)’는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과 그의 애인이자 천재 극작가인 김우진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이다. 실존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호기심이 일어서 보게 되었는데 배우들의 열연과 가슴 아픈 스토리, 영상미가 뛰어난 연출 때문에 오랜 여운이 남았던 드라마였다. 
 
‘사의 찬미’는 말 그대로 ‘죽음을 찬미한다’라는 뜻이다. 그들은 왜 죽음을 염원하게 되었을까? 그들의 처지에서 생각해보고 싶었다. 지금의 관점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물론 불륜이다. 어떻게 보아도 불륜은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가 비난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우리는 본인의 뜻과 의지대로 그 시기까지 조절해가며 결혼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고 그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현실 에서 본인들이 원하는 그 어떤 것도 구현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목숨을 끊는 것이, 삶에서 ‘쉼’이 되는 것이었기에. 고통의 시대였다. 아픔이다. 
 
‘사의 찬미’는 힘들고 버거울 때 죽음만이 희망이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었다. 둘의 죽음은 아름다웠다. 사랑하는 사람과 생의 마지막 순간에 추는 블루스와 눈물 젖은 키스, 그리고 차가운 밤바람이 가여운 영혼을 감싸는 선상에서의 엔딩 장면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내 생이 더 찬란하다고 느낀다.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기에. 버텨내고 있기에, 아직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아름다움보다 내 생의 찬란함이 더욱 크다.
삶은 채워가는 날만으로 아름답다. 설령 그 채움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 허무함만 가득 찬다고 해도 우리의 생은 아름다울 것이다. 
 
남이 보는 내가 ‘내가 아니’듯, 남이 내 아픔을 알아주지 않는다. 내 아픔은 오로지 나만 알 수 있다.
가끔은 나조차도 모른다. 그러니 어딘가 아프면 쉬어가라. 조금씩은 쉬어도 되지 않을까. 당신이 제발 죽지 않고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완전한 죽음보다는 불완전한 삶이 흘러가도록 두었으면 좋겠다. 
 
우리, 아들의 아들이, 딸의 딸들이 먼 훗날 당신을 보고 싶어 할 수 있도록. 그대는 그대의 존재만으로 빛난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 그러니까 ‘사의 찬미’는 ‘생의 찬란함’을 이기지 못한다. 
 
영원을 기약할 수 없음은 오히려 칠십 대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몸담은 회사의 한 임원을 통해서, 나는 먼 미래를 상상해 보곤 했다. 그분은 내게 어머니 같기도 
 
- 9 -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고, 할머니 같기도 한 그런 분이다. 그분의 젊은 패션 감각과 낭랑한 목소리, 철저한 업무 능력은 늘나를 각성상태에 놓이도록 하기에 존경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그분에게 단 한 가지 슬픔이 보인다면, 십여 년 전 부군께서 회갑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는 것.
여전히 부군을 매우 많이 사랑하고 그리워하시는 게 내 눈에 절절히 보여서 그 아련함이 눈빛에 반짝일 때마다 나 또한 고개를 떨구게 된다. 그리고 부부간의 사랑이란 그토록 숭고한 것이구나 다시금 깨닫게 된다. 
 
임원께서는 여고 동창생들을 만날 때마다, 부러움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신다고 한다. 칠십 대의 나이에 아직 현역 임원으로 일하면서 아픈 곳 없이 건강하니 얼마나 좋으냐고. 그런데 그 말씀을 내게 전달할 때의 그분 눈빛을 보고 나는 먹먹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엇다. 눈빛에는 그리움과 사랑, 잊히지 않는 보고 싶음으로 가득 찬 별이 박힌 것 같았다. 
 
순간, 노후를 함께 보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애틋함이 그녀의 가녀린 온몸을 감싸 아지렁이 온기 처럼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 우리 삶에 영원을 기약할 수 없음은 오히려 찰나의 순간을 더욱 절실히 여기라는 신의 선물이 아닐까. 그분 눈의 별에서 인간 생의 선물을 본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좋아한다. 시대와 사람을 어루만지는 특유의 정서가 좋다. 그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내레이션이 있다. “지금보다 절실한 나중이란 없다. 나중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기에.
눈앞에 와 있는 지금이 아닌, 행여 안 올지 모를 다음 기회를 얘기하기에 삶은 그리 길지 않다. (tvN ' 응답하라 1997‘)” 
 
어쩌면 오늘 이 삶이 우리 삶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 지금도 짧은 작별의 인사 없이 수많은 생명이 저 너머의 세상으로 향해 가고 있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이 얼마나 먹먹한 것인지 아는 나이가 되면 사람을 기억 속에만 간직한다는게 얼마나 아픈 것인지도 알게 된다. 단 한 번 얼굴을 만지고, 눈을 맞추고, 숨소리를 듣고, 그동안 잘지냈는지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는 그 목소리만이라도 들으면 좋으련만. 
 
오늘 밤에는 우리가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 꿈에 나와 원없이 안아보고, 회포를 풀고 다정한 목소리에 취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신의 선물, 그 유효함의 시계는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아 생각보다도 턱없이 짧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울 때, 같이 울어줄 사람 한때 ‘연민’이라는 단어를 혐오했었다. 대체 누가 누굴 가엽게 여길 수 있단 말인가. 
 
“사람 위에 사람 없다”라는 말을 최고의 정의로 여겼던 나에게 ‘연민’이라는 단어는 ‘악의’로까지 다가 왔다. 하지만 요즘 연민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가엽게 여기는 것만으로 우리는 많은 분쟁을 호전시킬 수 있다. 서로에게 연민의 감정을 품는다는 것은 곧 그 사람 자체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정하고 
 
- 10 -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사랑하는 것이 곧 연민이다. 
 
까놓고 솔직해지면 나는 내가 제일 안쓰럽다. 그래서 타인도 모두 안쓰럽다. 또, 그러하기에 같이 울어줄 마음 한 자락을 남겨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울 때, 같이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사람. 서로 연민의 마음을 품어줄 사람. 지구 멸망이 곧확정이라면 그 첫날을 끌어안으며, 함께 보내줄 사람. 그 사람을 기다린다. 
 
당신이 내게 살아서 뭐하냐고 묻거든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 아픔을 이끌고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도. 아니, 내가 이렇게 당신을 안다고 주접을 떠는 것이, 당신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지도 알 것 같아. 
 
그런데 말이야. 모두가 당신의 삶을 응원할 순 없겠지만 모두가 당신이 죽기를 바라지도 않아. 어떤 사람들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평생토록 살아. 
 
나도 언젠가 죽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살아갈 거야. 그러니까 매일 밤죽음의 문턱이 당신의 눈앞에 열리더라도, 누군가 당신을 부르는 것 같은 환청이 들리더라도, 혼자의 시간이 비참하게 느껴지더라도 내게 다시 물어봐 줄래. 살아서 뭐하느냐고. 이 아픔은 언제 끝나는 것이냐고. 
 
그럼 나는 처음부터 다시 대답할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당신이 내게 살아서 뭐하 냐고 묻거든 계속해서 다시 대답해줄게. 우리의 삶이 그렇잖아. 어쩌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흘러가는 것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고, 의미가 없었대도 어때. 
 
누군가 좋은 시절이 오기를 기다리며 살아. 마냥 좋아 사는 삶이 어디 있겠어. 그래도 삶이 꼭 죽음과 어둠으로만 뒤덮여있지는 않아. 혹시 알아? 당신이 웃을지. 웃으며 내일을 살아갈지. 
 
기다리면 반드시 오는 것들이 있었어. 그러니 일단은 이 밤이 지나가기를 같이 기다려보면 안 될까.
부탁할게. 우리 삶에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직 오지 않았다면, 그 순간을 함께 살고 싶어. 당신을 사랑 해.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 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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