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주 아키코 지음 / 이터
나이를 먹는 것은 한층 자유로워지는 것, 하나씩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자꾸만 간섭해오는 사회적 제약 속에서 차라리 ‘나이 따위, 잊어버리자’고 결심한 여든두 살의 저자.
이미 60살 이후부터는 나이를 먹지 않기로 결심한 상태. 취직하고 결혼하고 살아가는 데 나이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 제발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하는 바람과 나이 따위는 잊고 지금 이 순간을 더즐기겠다는 다짐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나이 따위, 잊고 살랍니다
▣ 저자 시모주 아키코
와세다대학교 교육학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NHK에 입사했다. 아나운서로 활약하다 프리랜서로 전향하여 민영방송 캐스터를 거쳐 문필 활동을 시작했다. 에세이, 평론, 논픽션,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왔으며 현재 일본펜클럽 부회장, 일본여행작가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가족이라는 병』, 『가족이 날 아프게 한다』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나이를 먹는 것은 한층 자유로워지는 것, 하나씩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자꾸만 간섭해오는 사회적 제약 속에서 차라리 ‘나이 따위, 잊어버리자’고 결심한 여든두 살의 저자. 이미 60살이후부터는 나이를 먹지 않기로 결심한 상태. 취직하고 결혼하고 살아가는 데 나이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 제발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하는 바람과 나이 따위는 잊고 지금 이 순간을 더 즐기겠다는 다짐이이 책에 담겨 있다.
전쟁이 끝난 직후인 초등학교 3학년, 처음 자신의 나이를 자각하고 스스로 생각해서 선택하고 행동하 기로 결심한 그때를 0살이라고 정하고 싶다는 그녀, 9년간 NHK에서 아나운서로 바쁘게 활동하던 때에는 나이를 안 먹은 느낌이라는 그녀는 호적에 기재된 생년월일을 거부하며 ‘내 인생도, 내 나이도 내가 정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또한 결혼 후 반년간 이집트에 머물며 배운 삶의 지혜, 노인복지시설 에서 관리당하며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등 82년간 살아오며 깨우친 것을 바탕으로 나이라는 요물을 떨쳐버리고 나답게, 자유롭게 살아갈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은 항상 무언가에 쫓기며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 정해진 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자신을 옭아매곤 하는 현대인들에게 나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에 더 집중하며,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더 아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줄 것이다.
▣ 차례
1장 나이라는 요물 사람들은 왜 남의 나이를 궁금해할까? / 나이를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자신의 환갑을 반가워할 사람이 있을까? / 내 나이, 내 마음대로 정해도 되지 않을까?
자립한 순간부터 나이를 세야 하지 않을까? / 왜 나이가 들면 고독한 걸까?
노인이라고 관리하려 들지 마! / 말 많은 늙은이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때론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더 어렵다
2장 살아가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라고?
취직하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 / 나이가 들어도 일은 계속 하고 싶은 마음 나이 들었다고 자포자기할 필요 없잖아? / 남은 인생 중 오늘이 가장 젊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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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매스컴에서는 나이를 밝히는 것일까? / 나이 많다고 임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니!
나이가 들면 생각지 못한 곳에 돈이 나간다 / 죽음 앞에서 나이가 무슨 상관?
결혼하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 / 나이가 들어도 사고방식은 변하지 않는다왜 나이 차이 나는 결혼은 거의 여자가 어릴까? / 만나는 사람은 어릴수록 좋다
3장 나이와 함께 인생을 배우던 시절 남달랐던 어린 시절, 남달랐던 감성 / 처음 경험한 친구의 죽음 때때로 고인을 기억하며 이야기한다는 것 / 충격적인 은사의 자살 소식 오로지 책만 읽던 대학 시절 / 너무 바쁘면 나이도, 시간도 멈추는 듯사랑도 잃고 일도 잃었던 내 인생의 공백기 / 목적만 달성하는 인생은 재미없지 이집트에서 진짜 인생을 배우다 / 60살, 좋아하는 일을 시작할 나이 이제부터 내 나이는 영원히 60살 / 나이 따위,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어?
‘옛날 사람’이라니, 설마 내가? / 생년월일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모임에 나오는 사람이 하나둘 줄고 있네
4장 누가 뭐래도 나는 아직 청춘 청춘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 계속 젊어 보이는 건 불가능하지 공상을 즐기는 나는 아직도 청춘 / 젊어 보이려 나이를 속이는 인간의 심리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늙지 않는 법 / 늙으나 젊으나 겉모습이 중요하다 나이 먹을수록 질 좋은 것을 써라 / 젊은 사람들을 위한 방송뿐인 TV 나이가 들어도 목소리는 변하지 않는다 / 노인복지시설에 자유 따윈 없다
5장 나이 따위, 잊고 살면 그만내 삶도, 나이도 내가 결정한다 / 자기 관리를 잘하면 인생이 더 재미있다 내시경은 죽을 때까지 안 할 테다 / 나이에 집착할 필요 없잖아 나이 많다고 무시하지 마 / 나만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 건강의 비결 나이를 잊게 하는 순수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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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따위, 잊고 살랍니다
1장 나이라는 요물
사람들은 왜 남의 나이를 궁금해 할까?
대체 왜 사람들은 남의 나이를 알고 싶어 하는 걸까요? 이렇게 말하는 저 역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반드시 나이를 묻곤 합니다.
“그분은 몇 살이지요?”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감성을 가진 사람인지 아무 것도 모르면서 무의식적으로 나이를 묻게 됩니다. 그리고 질문을 받은 사람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 사람의 나이를 가르쳐주거나, 잘 모르면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답을 해줍니다.
남의 나이를 아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도대체 무엇이 알고 싶은 걸까요? 나이를 알면 어쩐지 안심이 되는 걸까요? 그저 자신이 만들어놓은 카테고리 안에 그 사람을 끼워 넣는 것뿐일 텐데요.
물론 어떤 사람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외적 정보 중 최고는 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선 나이를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나이와 비슷한 사람을 보면 친근감을 느끼거나, 동시대를 살아온 것에 대한 동질감을 갖기도 합니다. 이는 확실히 일리가 있습니다.
저는 1936년 5월 29일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국민 가수 미소라 히바리 씨의 생일은 1937년
5월 29일로 저와 태어난 날이 같습니다. 저는 노래방에 가면 늘 히바리 씨의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또 중학생 시절에는 히바리 씨의 노래를 너무 많이 불러서 일주일간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 적도 있습 니다. 저에게 히바리 씨가 특별한 가수로 여겨지는 것에는 생일이 같다는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생년월일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호적에 기재되어 있는 것일 뿐, 그날 태어난 것을 본인은 전혀 자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의 일을 갓난아이였던 자신이 알 수는 없습니다.
생년월일이 진짜인지 아닌지 스스로 기억해낼 방법은 없고, 그저 부모님이 알려주신 대로 믿을 뿐인 것입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아이가 연말에 태어났을 때 부모가 다음해 1월 1일로 호적 신고를 하거나, 주변 사정 으로 인해 생년월일이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생년월일을 단지 호적에 기재 되어 있는 그대로 믿거나, 혹은 억지로 믿어버리려 하는 것은 아닐까요? 스스로 확인할 수도 없는 자신의 나이라고 하는 정보에 무게를 두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자립한 순간부터 나이를 세야 하지 않을까?
제가 나이를 처음 자각한 것은 1945년, 전쟁이 끝난 직후였습니다. 서류상에 적힌 생년월일은 19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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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이었지만 제 기억에는 없었습니다. 그즈음 저는 이른바 착한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아직 자아에 제대로 눈뜨지 못하고 있다가 패전으로 인해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의 시간을 제나이에 포함시키는 것을 저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서 자신의 의지로 선택해 스스로 행동하게 된 날이 저의 진짜 생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패전할 당시 저는 아홉 살, 초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전쟁 탓에 학교에서 받은 교과서는 모두 까맣게 변해 참혹했고, 읽을 수 있는 부분은 몇 줄 안 되었습니다. 매일 조례시간에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교장선생님을 시작으로, 전선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선생님들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발언을 하셔서 우리 어린이들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왜, 어째서?’라고 물어도 선생님이나 부모님, 주변 사람들은 명확히 대답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들 자신이 혼란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기에 우리 어린이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지고 나서 승전국인 미국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을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귀에 익숙하지 않은 말도 빈번히 등장하였 습니다. 누구도 확실히 그 뜻을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아버지는 군인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전쟁은 실수였다고 말씀하신 적도 있지만, 전쟁 후 일본이 부흥함에 따라 일찍이 군인 시절의 사고방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학교에서는 군인의 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사면초가의 상황 속에서 저는 결의를 다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눈앞에서 돌변한 어른들은 이미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스스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스스로 생각해서 선택하고 행동하자.’
그렇게 자각한 것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저는 그때의 저를 0살이라고 정하고 싶습니다. 이때가 저에게는 원점이고, 이때부터 지금의 저에게로 향하는 길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2장 살아가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라고?
나이가 들어도 일은 계속 하고 싶은 마음 중년에 접어든 여성의 재취업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어렵습니다. 여성이 재취업 문제가 사회적으로 부각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출산과 육아 등으로 인해 일을 한번 그만두면 그 후에는 좀처럼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 사람에게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지원하는 시점에 이미 탈락이 결정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고령 인구는 점점 늘고 있고, 100세 시대가 된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지혜와 경험을 살리지 않을 수 없겠지요?
예를 들어 여든두 살의 제가 지금 취직을 하려고 이력서를 낸들 받아주는 곳이 있을까요? 면접 장소에 제가 나타난다면 마치 희귀한 것이라도 본 듯 불쌍히 여기며 “가족은요?”, “남편분이나 같이 사는 사람 은요?” 등의 질문을 끈질기게 하고 우리 집의 수입원이나 제 나이 등을 상세하게 파고들 것이 틀림없 습니다. 여든두 살에 일을 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까요? 저는 이따금 글을 쓰느라 일에 쫓기곤 하지만 가능하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일을 하고 싶고, 어딘가에서 저를 계속 필요로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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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릴 적 앓았던 결핵으로 인해 편두통 등 이런저런 병에 오랜 시간 시달려왔는데 이제는 건강합 니다. 지금이야말로 제일 ‘건강하고 의욕이 넘친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편두통도 나이가 들면서 사라졌고, 일을 하고 있으면 언제나 기운이 납니다. 고령자에게서 일을 빼앗는 것은 빨리 죽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에서 필요로 하고 활기차게 자기실현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행복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설에 들어가거나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불리면서 손자만 돌보는 것이 정말 행복한 삶일까요?
저는 싫습니다.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골절이 되면 고정을 하면 될 것이고, 치료가 안 되면 휠체어를 타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실제로 저는 골절이 되었어도 휠체어로 이동을 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의 귀중한 시간, 절대 한가할 틈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사고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저는 나이에 너무 얽매이는 젊은 여성들이 안쓰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을 한 권 펴내기로 했습니다. 제목은 바로 ‘꺼져버려, 결혼 적령기!’
직접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타이틀이라고 생각했는데 출판 직전에 클레임이 들어왔습니다. 출판사 대표가 품위가 없다며 제지를 했던 것입니다. 저는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이에 얽매이는 당시의 여성 들에게 강한 울림을 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편집자와 상의 끝에 제목을 바꿨지만 어정쩡한 표현에 머무는 바람에 책은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남자들의 양육법’이라는 제목을 정했을 때에도 남자들에게 실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정말이지 원고를 회수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지만 담당 편집자의 노고를 알고 있었고, 그녀가 그 후 어떻게 될지도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이것 역시 타협을 해서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제목으로 정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일을 너그럽게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두 가지는 지금까지도 용납이 안 됩니다.
“품위가 없다”, “남자들에게 실례다”라는 말에서는 남성 우월주의가 느껴집니다. 이렇게 말하는 남자들이 많기 때문에 ‘남자들의 양육법’이 중요하고, 이것은 지금도 통용되는 좋은 타이틀이라고 생각합니 다.
‘꺼져버려, 결혼 적령기!’ 대신 붙여진 제목에는 ‘자발적 적령기 추천’이라는 부제목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적령기라고 하는 것은 나 자신의 것, 적령기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은 곧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손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인생은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정한다. 선택의 연속인 것이다. 그 소중한 선택을 어째서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 하는가. 남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선택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개념이나 상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 말하고 있는 것과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저의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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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식에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최근 제가 쓴 책을 보고 ‘전혀 흔들림 없는 삶의 방식’이라고 말해주신 분도 있습니다.
제가 결혼을 한 것은 서른여섯 살 때였습니다. 따라서 서른여섯 살이 저의 결혼 적령기였던 것입니다.
결혼하는 나이는 사람마다 달라도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결혼할 나이를 강요하는 것은 그 사람을 어떤 틀 안에 가두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3장 나이와 함께 인생을 배우던 시절
이제부터 내 나이는 영원히 60살 60살부터 저는 새롭게 다시 태어나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해나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때 생각 했습니다. ‘차라리 여기서 나이 먹는 것을 그만두자. 그러기 위해 일단락을 짓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을 때 주저 없이 떠오른 것이 노래였습니다. 스스로 기획도 하고 연출도 하고, 피아노 반주 외에는 전부 제가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중고생 시절에 도쿄예술대학교 출신 선생님에게서 노래를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전쟁 후 겨우 안정이 되어 연주회도 열게 되었을 즈음 저는 프리마돈나를 꿈꾸었습니다. 거울 앞에 서서 몸에 침대 시트를 휘감거나 입에 장미꽃을 물고 <춘희>나 <카르멘> 등 아리아의 흉내를 내곤 하였습니다.
‘나도 저렇게 화려한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다.’
동경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 방과 후에 선생님을 찾아가보았습니다. 대학을 선택하기 전에 선생님에게 상담을 하니 다른 노래라면 괜찮겠지만 오페라는 수천만 명 앞에서 마이크 없이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 작고 마른 내 몸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것을 그만두고 그냥 듣기만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는데 그 꿈이 되살아난 것이었습니다.
‘그래, 노래 리사이틀을 해보는 거야!’ 취미 삼아 오페라 가수이면서 예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분에게 레슨을 받아 발성 연습을 한 결과 오페라 아리아를 그럭저럭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도 제 분수는 알고 있었기에 샹송을 일곱 곡 하고, 오페라 아리아를 앙코르로 <나비 부인>과 다른한 곡 정도만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앙코르를 외치든 말든 부르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 뒤로 그날을 맞이할 때까지 정말 즐거웠습니다.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행복하였습니다.
60살인 만큼 60명을 초대하기로 하고, 이제까지 저를 지지해준 친구들과 지인들만 엄선해 지방에서도 올라오도록 하였습니다. 장소는 어느 프렌치 레스토랑.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지인이 프로 성악가나 연주가를 초대해 디너쇼를 열곤 하던 가게를 하룻밤만 빌리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딱 60인분의 풀코스를 이제까지의 감사한 마음을 담아 모두에게 대접하고, 식사가 다 끝난 후 잠깐 쉬면서 제 노래를 듣는 시간을 마련하기로 하였습니다. 우선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시작으로 친한 사람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 제 18번 등 샹송을 일곱 곡 부를 계획을 세웠습니다.
제가 60살이 되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기에 각지에서 친한 사람들이 달려와주었습니다. 사회자는 물론 저였습니다. 모임의 취지를 설명하고 서로 환담을 나누면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와인도 제가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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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를 해보고 직접 골랐습니다. 저는 각 테이블을 돌면서 한 명, 한 명 모두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디저트가 나오기 전 잠깐 쉰 다음 드디어 리사이틀이 시작되었습니다. 뭔가 순서가 바뀌지 않았냐고요? 보통 디너쇼에서는 노래를 들려준 다음 식사를 하는데, 그 순서를 바꿔서 식사를 먼저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 맛있는 것을 먹고 나면 나가도 싶어도 가만히 참고 노래를 들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공연의 구성도 제가 했기에 적당히 애드리브를 넣으면서 무사히 일곱 곡을 마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앙코르 시간, 물론 사람들의 앙코르는 있었습니다. 만약에 대비해 바람잡이도 심어놓았었으니까요.
관객 중에는 편집자나 방송국 관계자 등 일과 관련된 사람도 있고,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나 지인도 있었습니다. 제 일을 뒤에서 지지해주는 사람들도 물론 있었습니다. 성대한(?) 앙코르에 응해 드디어 < 나비 부인>을 불렀습니다.
본격적으로 부르면 꽤 긴데, 높은 음역부터 대사 부분까지 그럴듯하게 해서 저 자신은 정말 만족하였 습니다. 손님들이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 기분이 좋았으면 그만인 것입 니다. 틀림없이 프랑스 요리는 맛있었을 테니까요. 그러한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무사히 끝맺음을 하였습니다.
그날을 위한 예산은 미리 모아둔 상태였습니다. 그저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제가 조금 흥분한 것이 었습니다. 저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거나 낭독을 할 때 침착함을 잃은 적이 거의 없었는데 노래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노래방에서도 여러 장르의 노래를 부르곤 했지만 역시 무대는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은 듣기 싫다며 제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밖에 나가버렸는데 그것이 정답이었 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리사이틀을 끝내고 나니 기분이 후련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저의 60년 세월과는 작별을 하였습 니다. 이로써 저에게는 더 이상 나이가 없어졌습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인생, 다시 한 번 0살부터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0살이라고 하면 이제까지의 인생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제 나이는 60살에서 끝내기로 하였습니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나도 제 나이는 60살. 누군가 제 실제 나이를 언급한다고 해도 그것은 남들이 보는 나이에 지나지 않는 것, 제 나이는 저 스스로 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생년월일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우리는 생년월일에 의해 실제 나이가 정해집니다. 만 나이로는 그해 생일이 되어야 나이를 한 살 더먹지만 일반적으로는 해가 바뀌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합니다.
구청이나 은행 등에서 본인 확인을 할 때에는 반드시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어봅니다. 출생신고서를 내면 그해, 그달, 그날이 생년월일이 되지만 예전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일부러 다른 날로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생년월일이 맞는지 아닌지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라에 따라 생년월일이나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곳도 많습니다. 계절이 확실히 구분되지 않는 나라, 예를 들어 열대기후의 나라 같은 데서는 생년월일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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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근동의 여러 나라나 개발도상국 등 호적 제도가 확실하지 않은 곳에서는 주민등록증 같은 것에 생년 월일을 임의로 기재하기도 합니다. 유목민족은 원래부터 달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몇 월 며칠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지내기 때문에 생일이나 기념일을 축하하는 관습이 없다고 합니다.
제가 이집트에서 반년 동안 생활하면서 만난 현지인 가운데에는 나이를 물어도 확실히 답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간을 항상 짧게 구분하며 살아가던 저는 부러움마저 느꼈습니다.
이집트에는 거대한 유적이 여러 개 있습니다. 피라미드같이 큰 것은 몇 달, 며칠에 걸쳐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대 이집트의 왕 파라오가 몇 대에 걸쳐 노력해 완성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단식월을 정할 때, 막판까지 모르다가 매일 밤 달의 참과 이지러짐을 바라보면서 ‘이날부터’라고 정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달력이라고 하는 인공적인 것에 지배당하는 것보다 자연을 이용해 자연 속에서 나이를 마음에 새기느 식으로 여유롭게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4장 누가 뭐래도 나는 아직 청춘
늙으나 젊으나 겉모습이 중요하다한 20년 전쯤에 어느 광고 중에 “겉모습만 보고 선택하는 게 왜 나빠?”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또 2007년에는 연출가 다케우치 이치소 씨의 『사람은 겉모습이 90%』라는 책이 밀리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도 ‘겉모습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찬성입니다.
겉모습은 바꿔 말하면 외관입니다. 나이가 들면 안 꾸미게 되고, 외관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당연하 다는 듯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면만 갈고 닦으면 외관은 어떻든 상관없다는 자세는 너무 태만한 것 아닐까요? 젊을 때에는 아무것도 안 해도 피부에서 광이 나고 젊음이라고 하는 무기가 있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내면에 있는 것을 바깥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겉모습은 다른 말로 ‘표현력’이라고도 할 수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중년은 중년풍의 옷가게에서, 고령자는 고령자풍의 옷가게에서 모두가 비슷한 것을 사는 것일까요? 저는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많이 가는 가게에서 가능한 심플한 옷을 골라 맵시 있게 입는 것을 더 즐기고 있습니다.
나이 든 사람은 무늬 있는 옷, 특히 꽃무늬 옷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민무늬가 허전한 것 같다면 스카프를 하나 두르는 것도 좋습니다. 품위 있게 스트라이프나 체크, 혹은 아무 무늬 없는 옷을 입으면서 색에 신경을 쓰면 세련된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깔끔한 인상을 주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멋을 내는 것은 최고의 자기표현입니다. 깨끗하고 깔끔한 인상을 주기 위해 언제까지나 노력하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9 - 나이 따위, 잊고 살랍니다
노인복지시설에 자유 따윈 없다 얼마 전 노인복지시설을 알선해주는 어느 민간시설에 다녀왔습니다. 건물의 한 층 전체에 책상이 빽빽 하게 늘어서 있고, 직원이나 자원봉사자 등 젊은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쪽에 난 창문으로는 누런색 하늘에 먹그림 같은 후지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하나요?”라고 묻자 여성 관계자 말이, 노인복지시설의 안내와 소개를 바라는 분들의 전화에 응대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공간에만 100명 이상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끊임 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응대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노인복지시설을 찾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수 있었습니다.
병이 심각하지 않다면 자택에서 간호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간호하는 쪽과 간호받는 쪽 둘다 고생만 하게 되어서 역시 노인복지시설에 의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게 하더 라도 즐겁고 자유로워야 할 노후에 너무 구속받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노인복지시설은 누군가에게 관리를 받는 장소입니다. 돈이나 직원 수를 얼마나 효율성 있게 운영할지를 생각하면 고령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일이 대응할 여유 따위는 없습니다. 따라서 모두 한데 묶어 관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인복지시설에서는 일제히 동요 같은 것을 부르게 하고, 체조를 시키고, 색칠공부나 글씨쓰기 연습을 하게 하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것을 하기 좋아한다면 상관없겠지만 단체생활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남편의 어머니는 100세까지 사셨는데, 식사 시간 이외에는 노인복지시설의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때때로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가면 마치 어부바 귀신이 있는 것처럼 등에 무언가가 압력을 불어넣는 것이 느껴져 이상하게 피곤하였습니다. 압력을 불어넣는 것, 그것은 관리당하고 있는 노인들의 ‘자유롭지 못한 현실’입니다.
고령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각자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제껏 쌓아올린 것을 소중히 지켜나가면 좋을 텐데 실제로는 시설의 상황에 따라 관리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20대나 30대 직원들이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정중하게 말을 걸어옵니다. 왜 평소처럼 이야기하지 않는 걸까요? 그들은 마음을더 쓰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모욕을 당하는 기분만 들 뿐입니다.
최소한의 케어만 해주고 개개인의 독립을 존중해주는 시설, 자립성을 지켜주며 필요 이상으로 도와주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다른 인격을 존중해주는 노인복지시설이 있다면 많은 노인들이 마음속의 청춘을 잃지 않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5장 나이 따위, 잊고 살면 그만
내 삶도, 나이도 내가 결정한다 세상에는 실로 다양한 형태의 노인복지시설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베르디가 음악가들을 위해 지은 집을 주제로 한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에는 오래전 스타들이 다시 모여 음악회를 여는 등 굉장히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노후에 그런 삶을 산다면 얼마나 보람될까요?
- 10 - 나이 따위, 잊고 살랍니다
미의 도시라 할 수 있는 프랑스에는 미용 관계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시설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왕년의 레전드들이 지금도 실력을 겨루며 미용계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거나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직업이나 능력별로 사회가 이어진 시설이 보편화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표현입니다. 자기표현의 수단을 갖고 있기에 비로소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나이를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자기 관리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관리하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자신의 일은 자기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저를 관리하려 드는 것이 제일 싫습니다. 누군가 명령을 하거나 단체로 똑같은 것을 강요하면 어디론가 도망을 치고 싶어집니다. ‘결정은 반드시 나 스스로 한다. 그에 관한 책임은 모두 나에게 있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관리해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모든 일들이 잘 풀려나갈 것입니다.
- 11 - 나이 따위, 잊고 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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