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그리필드 지음 / 아이템하우스
이 책은 미국의 위대한 양대 경제 엔진인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라 할 수있는 나스닥 시장의 격변을 면밀하게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그 변화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조명한다. 저자는 각 장마다 당시 뉴스의 헤드라인을 차지했던 중대한 비즈니스, 사회, 경제 이슈들을 직접 보고 겪으며 분석한 내용을 통해 날카로운 비즈니스 통찰과 값진 레슨을 전수한다.
시장을 움직이는 손 - MARKET MOVER
▣ 저자 로버트 그리필드
뉴욕대학교 MBA를 졸업한 Robert Greifeld는 NASDAQ OMX Group의 전직 CEO이자 회장으로, 전자상 거래와 온라인 증권 거래 방식을 도입하고 자리 잡도록 이끈 IT 분야의 거물이자, 나스닥 회장으로서 여러 벤처 기업들의 서포터이자 벤처 투자자들의 멘토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Virtu Financial의 회장으로 있다. Business Roundtable, the Financial Services Roundtable, the Partnership for New York City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신예/청소년 운동선수들을 서포트하는 USA Track & Field Foundation의 회장도 역임하고 있다.
▣ Short Summary
2003년 로버트 그리필드는 나스닥 CEO 자리를 제안 받는데, 당시 나스닥은 거래 전산화 바람으로 시대에 뒤처질 위기에 놓여 휘청거리고 있는 증권 거래소였다. 그리필드의 임기 중 나스닥의 시장 가치는 - 닷컴 거품 붕괴와 경제 역풍, 기술 파괴, 미국 주택 시장 붕괴, 국제적 주식 폭락이 일어나는 상황에서도 - 2,000퍼센트 이상 상승했고,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스타벅스, 아마존과 같은 고성장 기업들을 상장사로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증권 거래소 중 하나로 성장했다.
이 책은 미국의 위대한 양대 경제 엔진인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라 할 수있는 나스닥 시장의 격변을 면밀하게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그 변화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조명한다. 저자는 각 장마다 당시 뉴스의 헤드라인을 차지했던 중대한 비즈니스, 사회, 경제 이슈들을 직접 보고 겪으며 분석한 내용을 통해 날카로운 비즈니스 통찰과 값진 레슨을 전수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혁신과 전략을 위한 6가지 명제는 다음과 같다. ‘① 기업의 전환기에 어떻게 조직원들을 선별할 것인가 ② 유능한 경영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③ 조직의 유전자에 어떻게 혁신 인자를 심을 것인가 ④ 대외 홍보 관계의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⑤ 인수 기회를 어떻게 면밀하게 평가할 것인가 ⑥ 전환기에 어떻게 시장을 추월할 것인가’
▣ 차례
들어가기
CHAPTER 01 나스닥과의 운명적인 만남 - 미래의 시장 / 나스닥 첫 출근
- 2 ? 시장을 움직이는 손
CHAPTER 02 사람이 우선이다 - 버스에 누구를 태울 것인가? / 문화가 바뀌면 그에 맞는 새로운 인재 들이 필요하다 / 좋은 인재들을 가졌다면 그들의 말을 경청하라 / 채용 실수에 미련을 가지지 마라
CHAPTER 03 선별 작업 - 돈이 새는 구멍 / 경영자의 직감 / 당신의 주력 사업은 얼마나 건전한가? /
변화하는 시장 / 방어에서 공격으로
CHAPTER 04 승자를 인수하라 - 무법 거래자들의 아일랜드 / 감수할 가치가 있는 위험 / 균형 잡기 /
지하실에서 임원실로
CHAPTER 05 애플에서 질로까지 - 비즈니스에서 고려해야 할 인간적인 요소 / 변화하는 경쟁구도 /
커피 한 잔 더 / 차기 대통령 / 과거와 미래의 자본주의자
CHAPTER 06 정치 교육 - 정계 알아가기 / 로비는 곧 교육이다 / 공평한 경쟁의 장 만들기 / 불완전한 발전
CHAPTER 07 글로벌 기업으로의 약진 - 새벽의 기습 / 사업은 개인의 일이 아니다 / 추운 날씨 속의 따뜻한 협상 / 국제 거래 체결의 험난한 모험 / 결승선
CHAPTER 08 성장을 위한 투쟁 - 인수 타당성 평가하기: 네 가지 위험 요소 / 바이킹을 찾아서 / 학습된 지식 vs 산지식 / 글로벌 기업 경영 / 부서 이기주의를 없애라 / 먹구름 낀 하늘
CHAPTER 09 사상 최대의 경제 위기 - 대 신용 경색 시대 / 규제할 것인가 말 것인가 / 레버리지의 위험성 / 메이도프 사기 사건
CHAPTER 10 또다시 살아난 기회 - 주의를 끄는 ‘판매 중’ 표지판 / 법무부와의 줄다리기 / 속 쓰린 뒷이야기 / 하나 시대의 종언
CHAPTER 11 페이스북 기업 공개 소동 - 시스템 오작동 분석 / 고객의 마음을 되돌려라 / 이 주의 패배자 / 행운 부적 / 책임 떠안기 / 장기적 여파 / 거북이를 닮으라
CHAPTER 12 혁신을 제도화하기 - 기술 프랜차이즈 만들기 / 재능 위원회 / 블록체인과 유니콘의 부상 / 플래시 보이스와 속도 추구
CHAPTER 13 뒤돌아보지 마라 - 승계 작업 / 마지막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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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움직이는 손 - MARKET MOVER
나스닥과의 운명적인 만남
한 시대의 시장을 보면 그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잘했는지, 어떤 혁신을 추구하고 사회에 구현하려고 했는지 등 그 시대의 문명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시장은 하나의 문화가 어떻게 변화하며 진화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시장으로는 베니스의 리알토(14세기), 터키의 그랜드바자르(17세기),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증권 거래소(17세기), 뉴욕 증권 거래소(20세기) 등이 꼽힌다. 21세기가 밝았을 때 나스닥은 정보화시대를 이끄는 시장으로 이들 대열에 합류할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3년이 되자 그러한 열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나스닥에 입사하기 전 나는 금융업계에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기업인 선가드 데이터 시스 템즈에 채용되어 만족스럽게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선가드에 매각된 ASC의 공동대표이자 소프트웨어 사업자이기도 했는데, ASC의 주요 상품은 나스닥의 트레이딩 데스크들의 통합을 위해 설계된 거래 주문 관리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스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그들은 늑장을 부렸고 독점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 직원들은 동기 부여가 부족했다.
내가 보기에 그곳은 형편없는 관료주의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2003년 헤드헌팅 업체에서 나스닥에서의 일자리를 제안하는 전화가 처음 왔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하지만 다시 연락이 왔을 때 나는 면접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특별한 기회였고, 나스닥을 21세기의 본질적 의미를 실현하는 시장으로 변모시키는 일에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 이었다. 첫 번째 면접은 매우 순조로웠다. 나는 그들과 면접을 진행하면서 내가 원한다면 그 자리가내 것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강력한 경쟁 상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메릴린치의 당시 국제 주식 거래 최고책임자인 밥 맥캔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내가 그 자리를 얼마나 원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두 번째 면접에서는 좀 더 과감한 선제적인 접근을 시도하기로 했다. 면접 당일 나는 화상 인터뷰에서 나스닥 이사진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선전포고를 했다. “제가 취임 후 처음 100일 동안 할 다섯 가지 과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① 적임 자들을 영입한다. ② 관료주의적 체계를 줄인다. ③ 재정 규율을 실천한다. ④ 기술을 정비한다. ⑤ 2 위 자리에 만족하지 않는다.’ 나는 각 단계의 과제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를 설명하면서 이 5단계 계획에 대해 15분 동안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화상 화면에 비춰진 이사진들의 표정을 살펴보자 내가 그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2주 후 그것은 사실로 밝혀졌다.
사람이 우선이다
‘적임자를 영입하라’ 이는 나스닥 이사회와의 면접에서 내가 제시한 첫 번째 우선 과제였다. 사업에서 적임자의 존재는 모든 영역에서 지렛대 역할을 한다. 흔히 기업의 사장들이 ‘사람이 우선이다’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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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라고 말할 때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말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원칙에는 다른 뜻이 있다. 어떤 기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적임의 인재들이 대단히 중요한 것처럼, 그 조직에 맞지 않거나 어떤 이유로 조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들은 떠나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 재임 기간 중 첫 번째 해고는 출근 첫날 오전 8시 이전에 실행되었다. 나는 출근 전에 이미 이 문제를 고민하면서 임원진을 평가했고 고위 간부들을 어떻게 교체하는 게 바람직할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 한 시간 이내에 두 사람을 더 해고했다. 인사이동은 고통스러운 과정 이다. 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에 실행할 수밖에 없다.
이제 버스에 누구를 태울 것인가? 당시 아데나 프리드만은 많은 가능성을 지닌 젊고 유능한 임원이었 는데, 그녀는 나스닥에서 10년 동안 일하고 있었고, 열정과 헌신, 능숙함의 기운을 풍겼다. 그래서 곧아데나는 나의 측근 핵심 인물이 되었으며, 여러 건의 전략적 인수합병을 지휘했다. 아데나 외에도 나스닥의 변혁을 이끌어갈 또 다른 핵심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전략 부문의 새 부사장으로 온 크리스 콘캐논이다. 그는 기술이 주식 거래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나스닥 글로벌 인덱스 그룹의 부사장 존 제이콥스나 법률 고문인 에드 나이트와 같은 인물들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그들과 함께 나스닥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었다.
한편 나는 내부 승진과 외부 인사 영입의 비율을 80:20으로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조직이 변화하는 시기에는 누구와 함께 일할 것인지, 누구를 승진시킬 것인지, 누구를 내보낼 것인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위대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창의성과 자율성, 집중력, 훈련을 북돋 우는 매우 생산적인 방식으로 팀 구성원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별 작업
‘나스닥, 생존을 건 싸움’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가 2003년 8월호 《비즈니스위크》지에 실렸다.
기사는 매우 직설적이었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나스닥의 상황은 대단히 심각했다. 즉각 조치를 취해야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최적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스닥의 신임 CEO로서 최적의 적합한 조치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내게 달려 있었다.
나는 나스닥의 기존 지도부에 손익일계보고서를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나스닥은 하루에 25만 달러를 잃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특정 사업 부문 또는 프로젝트가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지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의 비용체계가 불명확하다는 증거였고, 조직 내에서 적확한 부분에 비용이 명확하게 할당되지 않은 지출로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레버리지를 추구하는 리더에게 구멍을 찾는 일은 필수적이다. 돈이 어디로 흘러들어가고 있는지 확실히 알 때 비로소 시간과 관심을 어디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스닥의 당시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데이비드 워렌이 경영진에게 보고서를 제출하기 시작했을 때나는 그에게 문제가 있는 부분으로 바로 넘어가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보고 자료의 중간 부분으로 넘어갔다. 비용을 할당해도 모호했던 부분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우리의 재정 상황은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보고 내용 중에는 내가 예상했던 정보도 있었고 새롭게 알게 된 정보도 있었다. 회의는 빨리 진행되었고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최종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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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진은 일이 너무 빨리 해결되어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명백했다. “우리는 알력 다툼으로 시간 낭비를 하지 않을 것이다. 세부 사항을 놓고 언쟁을 벌여 우리의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집중력을 저하시키는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앞에는 커다란 도전이 놓여 있다. 우리는 결단력을 가지고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한편 재정 금고를 정상화시키는 데에는 직원 수를 줄이거나 수익성이 낮은 사업 분야를 폐지하는 것이외에도 훨씬 더 많은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어느 시점이 되면 수입을 증대하고 더많은 고객을 끌어올 방법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리더는 기업의 다양한 재원을 재빨리 파악하고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의 주력 사업은 얼마나 건전한가?”
2003년 나스닥의 매출은 3가지 수입원에서 나왔다. 첫 번째는 데이터 및 인덱싱 사업이다. 이를테면, CNBC, 블룸버그 등의 경제 뉴스 채널의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주가 데이터도 이에 포함된다. 그리고 전체 시장에서 상장지수펀드(ETF)와 인덱스펀드의 인기가 날로 상승함에 따라 이 사업은 탄탄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나는 이 사업의 재무 상태가 건전하며 그렇게 많은 시간과 공력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재빨리 파악했다. 따라서 더 시급한 문제들에 집중해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두 번째 수입원은 상장 사업이었다. 기업들은 나스닥에 상장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데, 연간 수수 료뿐만 아니라 최초 기업 공개를 위해 지불하는 일회성 수수료도 있었다. 이는 가장 큰 수입원은 아니 었지만 연간 수수료들은 고정적이고 예측 가능해서 투자자들은 그런 일관성을 아주 좋아했는데, 불행 히도 닷컴 거품 붕괴가 일어나면서 상장 사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나는 시간을 두고 지켜본다면이 사업은 예전의 상태로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레버리지가 높은 활동을 해야만 하는 아주 중요한 전환기에 이 사업에 매달린다는 것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상장 사업은 투입되는 공력에 비해 산출되는 수익의 비율이 높지 않았다.
세 번째 수입원이자 우리의 진정한 주력 사업은 전자 거래 사업이다. 나스닥은 자사의 시스템에서 주식 한 주가 거래될 때마다 전자 거래 수수료를 징수한다. 소득 차원에서 보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소득원이며 당시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업이 문제가 생겼다. 2003년 전자 거래 매출이 20% 하락한 것이다.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나는 어떤 약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 나는 전자 거래 업체를 잘 알고 있었고, 전자 거래는 내가 최대의 레버리지를 구할 수 있는 분아였다.
승자를 인수하라
선가드의 CEO를 지낸 짐 만이 1999년 내게 선가드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한 또 다른 큰 회사를 인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 회사를 인수하는 데 드는 비용 일부를 제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우리 회사에 맞게 그것을 개발해 보겠습니다.”라고 제안했다. 그는 내 발언에 관대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영리한 생각이군. 그런데 우리는 승자들을 사들이는 거라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수많은 기업들이 실패하는 반면, 성공한 기업은 이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시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기업이다. 물론 매입하려면 더 많은 돈이 든다. 하지만 자사 제품을 개발하고 고객층을 구축하고 경쟁사들을 이기기 위해 들이는 모든 시간과 자원을 절약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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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리고 입증된 사업에 승부를 걸어 실패의 위험성을 확연히 줄일 수 있다.
“승자를 인수하라.” 짐 만의 조언은 2003년에서 2004년 사이에 나스닥의 기술 상태를 평가했을 당시내 마음속에서 되살아났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내부에서 개발할 것인가, 아니면 인수를 고민할 것인가? 매입하는 것이다. 아무거나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를 매입하는 것이다. 승자를 인수하는 것이다. 내가 봤을 때 전자 주식 거래 시장에서의 승자는 자명했다. 과거 아일랜드 ECN(Island ECN)이었던 아이넷(INET)이었다. 특히 기술적 관점에서 봤을 때 아이넷은 내가 탐내고 있었던 회사였다.
2005년 4월, 나스닥은 아이넷을 보유하고 있는 인스티넷을 인수했다. 내가 CEO로 재임하는 동안 체결된 45개의 인수 건들은 이 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선택에 따른 결정이었다. 반면 인스티넷을 인수한 것은 필요에 의한 결정이었다. 인스티넷은 우리가 인수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조직의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어쨌든 아이넷은 짧은 생애 동안 큰 발전을 이뤄냈다. 한때 기득권을 쥔 기업들에게 반대 입장이었던 아일랜드 ECN은 이제 기득권을 쥔 거래소들 중 하나인 우리 거래소에서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고, 우리의 거래 플랫폼은 그들의 기술에 동화되고 있었다.
애플에서 질로까지
2003년 내가 나스닥 CEO로 취임했을 당시,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이 뉴욕 증권 거래소로 이동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반대로 뉴욕 증권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이 나스닥으로 옮기는 경우는 없었다. 나는 그걸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브루스 아우스트와 나는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세우고 접근 대상 기업들의 명단을 뽑았는데, 가장 먼저 접근할 대상은 찰스 슈왑이었다.
이 기업은 샌프란시스코 소재의 혁신적인 자산관리 기업으로, 아직까지도 유명한 창업자, 척 슈왑이 경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로 날아가 브루스와 함께 척을 만나 나스닥 상장에 대해 논의했다. 보통 우리는 고객 맞춤 제안과 쟁점들을 기반으로 영업을 했다. 여기에는 각각의 고객들을 위해 맞춤 기획한 공동 광고 및 프로모션과 같은 ‘안겨주기’식 마케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실리콘밸리의 증권 시장’으로서 우리 브랜드를 지렛대로 활용했다.
슈왑은 수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아직 뉴욕 증권 거래소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두 군데에 다 상장하는 건 어떤가요?” 그는 우리에게 물었다. 이중 상장? 브루스와 나는 그것이 가능 할까 하는 혼란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끼며 서로를 바라봤다. 이중 상장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논의가 계속 이어지자 내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결국 거래소를 바꾸게 하는 일은 경제적 승리에 못지않은 마케팅적 승리이다. 이중 상장은 거래소를 옮기는 즉각적인 헌신을 요구하지 않고도 마케팅적 승리를 달성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우리는 그에게 “한번 고민해보고 곧 연락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중 상장은 혁신의 범주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진정한 발전이었고, 아무도 그것을 시도해 본적이 없었다. 찰스 슈왑이 기꺼이 나스닥의 생태계에 한쪽 발을 들여놓는다면, 분명 다른 기업들도 그뒤를 따를 것이었다. 그래서 나스닥은 이중 상장을 할 용의가 있는 기업들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는 적어도 5~6개 사가 동시에 이중 상장을 발표하기를 원했다. 이내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중 하나인 휴렛 패커드에서 큰 힘을 실어 주었다. 칼리 피오리나의 의중에는 나스닥에 상장을 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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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나스닥의 백엔드 거래 시스템에 휴렛 패커드 기술을 판매하기에 더 좋은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매우 흥분했다.
결국 2004년 1월까지 6개 기업이 이중 상장을 하기로 결정했다. 참여 기업은 휴렛 패커드, 월그린,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즈, 찰스 슈왑, 컨트리와이드 파이낸셜, 아파치였다. 모두 시가 총액이 높은 기업 들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기업들이 이에 동참할 것이다. 이것은 대단한 첫걸음이었고 뉴욕 증권 거래소에 대한 위협적인 경고가 되었다.
한편 2006년 나스닥은 시장에서 신규 상장의 3분의 2 가량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경쟁자와의 끝없는 경쟁에서 우리는 점점 약간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나의 다섯 번째 우선 과제인 ‘2위 자리에 만족하지 않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경쟁 우위를 점유하려는 노력은 국내로 제한되지 않았다. 이후 바이두, 웨이보, JD닷컴 등이 나스닥에 상장되 었고, 이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브랜드가 되었다.
성장을 위한 투쟁
나는 볼링을 통해 배운 한 가지 교훈이 있었다. 가장 중앙에 있는 핀을 목표물로 삼거나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정중앙에서 한 칸 오른쪽이나 왼쪽에 있는 핀을 겨냥하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내가 경영진들에게도 똑같은 지시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볼링장이 인수합병이라는 훨씬 더 큰지분을 두고 다투는 장으로 대체된 것일 뿐이었다.
나는 우리 팀에게 잠재적 인수 대상을 평가할 때 매매 거래 처리, 효율적인 거래소 운영, 거래 기술을 포함해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강점에서 너무 멀리 나가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인수를 통해 확장해 나가는 것은 괜찮았다. 하지만 나는 나스닥이 연관성이 거의 없는 이질적인 기업들의 집합체가 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나는 우리가 성장하기를 바랐지만 무차별적 성장은 싫었다.
참고로 당시 금융 시장에서 주식 거래업은 가장 매력 있는 사업이 아니었다. 반면 파생상품 판매는 마진이 높은 사업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콩 선물거래가 파생상품 거래의 한 예이며, 옵션도 기초 주식의 가치 변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파생상품의 일종이다. 그 당시에는 시카고 상품 거래소와 인터컨티넨탈 익스체인지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파생상품 거래소였고, 그들의 성공이 우리도 사업을 확장해 그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다가왔는데, 나는 파생상품 거래에 대해 전혀 반대 입장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핵심 역량과 너무 거리가 먼 사업에서 수익을 쫓고 싶지는 않았다.
한편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을 건설하기 위해 인수 거래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는 ‘인 수’를 주의를 돌리기 위한 수단이자 의지할 대상, 혹은 ‘핵심 문제를 피해서 다변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한 실제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발전하고 있는 기업들은 이미 활용되어 확립된 성공적인 전략을 강화하는 용도로 인수를 활용할 줄 아는 기업들이라고 말했는데, 나스닥에서도 이것이 우리가 선택한 접근법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핵심 사업과 기초 역량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인수는 우리의 전문 영역을 벗어나 전혀 모르는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문 영역에서 가속도를 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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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략을 실천한 가장 좋은 예는 2007년에 우리가 필라델피아 증권 거래소(일명 필엑스)를 매입한 사례였다. 필라델피아 증권 거래소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거래소로 1790년에 설립되었고, 미국에서 세번째로 큰 주식 옵션 거래소였다. 이것이 우리의 최적 지점이자 정중앙에 놓여 있는 볼링 핀 바로 옆의 핀이었다. 필라델피아 증권 거래소의 주주들이 기업 공개를 하거나 거래소를 매각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나스닥과 뉴욕 증권 거래소, 그리고 두어 곳의 거래소 컨소시엄 사이에서 입찰 경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우리의 최종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매입가로 6억 달러가 넘는 비용을 지불하고 경쟁자들을 물리쳤지만 우리가 얻게 될 가치는 매우 클 것이라 나는 확신했다.
내가 재직하는 동안 40건 이상의 인수 작업을 실행했다. 일부는(인스티넷의 변형적 매입과 같이) 기술을 위해, 일부는(OMX 합병과 같이) 국제 시장 진출을 위해, 일부는(필라델피아 증권 거래소 매입과 같이) 관련 시장으로의 이동을 위해, 일부는(BRUT와 같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실행되었다. 나는 우리가 하는 인수 작업은 첫해 말까지 주당 순익을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시행된 모든 인수합병은 나스닥이 국내 최고의 거래소이자 중요한 세계적 거래소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인수 작업을 잘해낸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내가 나스닥의 CEO직을 수락하기 훨씬 이전에 시작한 교육의 연장선에 놓여 있었다. 선가드 시절 나의 전 고용주는 인수 거래를 통해 선가드를 크게 성장시켰는데, 이 경험은 내가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뜨도록 해주었다. 나는 그때 배운 지식을 나스닥에 가지고와 다듬어 더 규모가 큰인수 작업에 적용해 볼 수 있었다. 경험이 쌓이면서 우리 팀은 인수합병에 대해서는, 특히 그 대상이 주식 거래소일 경우 그야말로 전문가가 다 되었다. 인수 작업을 시작한 초창기에는 비대하고 수동 작업을 고수하고 노동력이 남아도는 거래소를 빠르고 효율적이고 적응력이 높고 기술 중심적인 거래 기업으로 변신시키는 데 능숙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주로 기술 기반의 인수에 집중하게 되었다.
인수는 나스닥 성장 전략의 중요한 한 축이었다. 우리의 효율성의 일부는 기술 전문성에서 기인한 것이었고, 또 다른 일부는 숙련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성공의 일부는 기회를 알아보고, 인수와 관련된 리스크를 줄이는 능력 덕분이었다고 믿는다.
또다시 달아난 기회
2000년대 중반 나스닥과 뉴욕 증권 거래소 모두 다 유럽에서 협력 사업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나스 닥은 북유럽의 OMX를 인수하고, 뉴욕 증권 거래소는 유럽에 기반을 둔 거래소 그룹인 유로넥스트를 인수했다. 하지만 나스닥과 뉴욕 증권 거래소 모두 독립성을 중시했다.
그런데 CNN은 2011년 2월 15일 “뉴욕 증권 거래소와 도이체 뵈르제 합병 합의”라는 제목으로 뉴욕 증권 거래소와 프랑크푸르트 소재의 유럽 최대 거래소 사이의 합병을 발표했다. 뉴욕 증권 거래소의 CEO인 니에데라우어는 합병 후에도 그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지만, 본사는 유럽에 있을 것이고 도이체 뵈르제의 이사진들로 이사회의 대다수가 꾸려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좋은 제안이 들어온다면 그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신탁 책임을 지고 있었다. 나스닥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시사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우리의 경쟁자인 뉴욕 증권 거래소가 시장에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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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중대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머리를 맞대고 이 두 합병 당사자 사이에 끼어들어 더나은 제안을 제시할 방도를 협의했다. 우리 팀과 고민한 끝에 나는 드디어 ‘한계점까지 용기를 쥐어짜 내어’ 도전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파트너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대형 파생금융상품 거래소인 시카고 상품 거래소의 CEO 크레이그 도노휴에게 공동 입찰을 협의할 것을 요청했다. 숙고 끝에 그는 입찰 참여를 고사했다. 나는 인터컨티넨탈 익스체인지의 CEO 제프리 스프레처에게도 접근했다. 스프레 처는 즉각 관심을 보였다. 그와 나는 다양한 자산들을 어떻게 배분할 수 있을 것인지를 논의했고, 결국 인터컨티넨탈 익스체인지가 런던 국제 금융 선물 및 옵션 거래소로 대표되는 유로넥스트의 파생금 융상품 사업을 인수하는 데 합의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런던 국제 금융 선물 및 옵션 거래소는 성장 하는 시장에 높은 수익을 안겨주는 사업으로서 유로넥스트의 보물이었다.
2011년 4월 1일, 나스닥과 인터컨티넨탈 익스체인지는 NYSE 유로넥스트에 대해 대안 입찰을 했다.
우리가 제시한 안은 주 당 42.5달러로 110억3천만 달러의 거래였고 이는 도이체 뵈르제가 제시한 것보다 19% 높은 수준이었다. 우리는 이것이 뉴욕 증권 거래소 이사회에서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할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단, 계약이 성사되는 데에는 한 가지 장애물이 있었다. 바로 법무부였다. 나스닥-뉴욕 증권 거래소 합병은 업계 경쟁 구도를 크게 변화시키며 국가 전체의 거래 환경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므로, 이 인수 계약에 대해서는 독점 금지법 위반 조사가 철저히 이루어질 것으로 보였다.
나는 독점 금지에 관한 분쟁에서는 시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편 당시 부실 자산 구제 프로그램 의회 감독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테드 카우프만은 뉴욕 증권 거래소와 도이체 뵈르제의 합병을 ‘미국이 쇠퇴의 길로 접어드는 이정 표’라고 선언하면서 뉴욕 증권 거래소를 독일 기업에게 빼앗기게 될 우려가 있음을 재차 강조했다. 굳이 지나친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나스닥-뉴욕 증권 거래소의 합병은 그 우려에 대한 강력한 답변이었고, 우리는 워싱턴과 뉴욕에서 그 논리를 펼치는 데 시간을 쏟았다.
이후 우리가 반독점국에 2차 요구 자료를 제출했을 때 우리는 그들이 방대한 자료를 검토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나는 5월 10일 필요했던 휴가를 내어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으로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에드 나이트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는 법무부가 합병을 막기 위해 재판을 청구할 것이며, 그 내용을 다음 주 발표할 예정이라고 알려주었다. 2011년 5월 16일, 법무부는 기자회견을 가졌고, 우리는 정말 마지못해 뉴욕 증권 거래소와의 합병 시도를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나스닥과 인터컨티넨탈 익스체인지가 물러나고 뉴욕 증권 거래소는 도이체 뵈르제와 자유롭게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예상보다 더 어려웠다. 유럽 규제당국이 특히 유럽에서 합병 기업의 규모에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스닥을 포함한 많은 시장 참여자들은 그 계약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유럽 규제당국에 전달했다. 검토 절차는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들 때까지 길게 이어졌고 2012년 초반까지 합병 가능성은 점차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2월이 되자 합병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인수 합병의 시각에서 보면 1년 동안 다툼만 많았고 결국은 아무것도 건진 게 없었다.
글쎄, 건진 게 아무것도 없진 않았다. 2012년 12월 20일 우리의 이전 파트너인 인터컨티넨탈 익스체 인지는 NYSE 유로넥스트를 인수하는 계획을 발표했고, 입찰은 성공적이었다. 인터컨티넨탈 익스체인 지는 주식 거래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스닥에게 해당되었던 독점 규제에 대한 문제가 그들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았던 것이다. 합병을 발표하는 보도자료에서 스프레처는 ‘2년 동안 우리는 합병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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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게 될 어마어마한 시너지 효과를 깨달았다’라고 언급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누가 그 시너지를 그에게 깨닫도록 했단 말인가?’라고 혼자 속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컨티넨탈 익스체인지의 인수가 승인된 이후 스프레처는 칼과 메스를 들고 운영에 나서서 NYSE 유로넥스트를 말끔히 청소했다. 그는 줄이고 간소화하여 마침내는 10억 달러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비용을 운영비에서 절감하기에 이르렀다. 내 경영자로서의 역정에서 가장 아쉬운 일 중 하나가 바로 뉴욕 증권 거래소와의 합병을 내 손으로 이루어 그곳을 개혁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한편 이 모든 긴박한 일들을 겪는 와중에 나스닥과 나는 또 하나의 힘든 상실로 고통 받았다. 그 기간 중에 나는 우연히 아데나가 공식적으로 근무하면서 거주했던 메릴랜드 주의 록빌 사무소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나를 사무실 안으로 안내했고 내가 문을 닫자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나스닥을 떠날 때가 된 것 같아요. 가족들과 함께 워싱턴에서 시간을 더보내고 싶어요. 그리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적당한 시기인 것 같기도 하구요. 워싱턴 DC에 있는 칼라일 그룹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칼라일은 곧 기업 공개를 할 예정이고 그 과정을 제가 이끌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그날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나는 자네가 떠나는 걸 원치 않네. 하지만 이해는 해.” 아데나를 잃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CEO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했다. 그리고 스스로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야 했다.
뒤돌아보지 마라
나스닥에서 나는 우리가 이룬 성과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경영자로서 안주하지 않고 나스닥이 경쟁력 있고 혁신적인 기업으로서의 우위를 잃지 않는 방법을 생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나는 우리 팀에게 자기만족에 빠지지 말 것을 강조했고 나 자신에게도 그랬다. 2003년 나스닥을 침체에서 구해낸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10년도 더 된 이야기 이다. 나스닥은 이제 다른 기업이 되어 있었고 나도 더 나이가 들었다. 금융 업계도 변화했다. 2003년의 로버트 그리필드가 2014년의 어려움에도 잘 대처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매일 새롭게 획득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과거에 행한 일의 탄력으로 현재까지 뭔가를 지속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갑자기 멈춰 서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가 자칫 뒤처질 수도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을 분간하기란 불가능하다. 나는 항상 성공과 실패는 얇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치 과거의 성과가 항상 성공적인 미래의 전주곡인 것처럼 여기고 싶지 않았다. 성공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매일 우리는 그것을 반복 해야만 했다. 만약 내가 그 감각을 잃어버린다면 자리에서 물러날 때가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과거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하지 않는 반면, 나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고 특히나 내가 퇴임하고 난 이후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좋은 승계 계획은 책임 있는 CEO에게는 필수적인 부분이고, 나는 나스닥에서의 내 자리를 물려줄 인물을 찾기 위해 더 믿을 만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 이 자리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아데나 프리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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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그녀를 처음 승진시킨 이후, 나는 아데나가 재능 있는 젊은 임원에서 역량 있고 경험 많은 업계의 리더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녀가 칼라일로 가고 난 뒤부터 내 마음속 한편에는 언젠가 그녀가 이상적인 나스닥의 차기 CEO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줄곧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2014 년 초에 나는 그녀를 불러냈다. 나는 2~3년쯤 더 나스닥에 있을 계획이며 그 후에 내 뒤를 이을 인물로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는 그녀에게 회사로 돌아오는 것을 고민해보라고 말하고 그녀가 돌아온다면 이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아데나는 내 제안에 관심이 있어 보였다. 그 후 몇 주 그리고 몇 달 동안 우리는 세부 계획을 짰고 그녀는 칼라일의 업무를 정리한 후 공식적으로 사임했다. 나는 칼라일의 CEO인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에게 개인적으로 전화해 아데 나가 나스닥으로 돌아오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기뻐하지는 않았지만 너그럽게 이해해 주었다.
마침내 2014년 5월 12일, 아데나가 나스닥으로 돌아오는 것이 공식화되었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녀가 유력한 차기 CEO 후보자임이 분명해 보였다. 한 신문은 “나스닥에 재합류한 아데나 프리드만 차기 CEO 유력 후보로 급부상”이라는 헤드라인으로 그녀의 행보를 보도했다. 그녀의 공식적인 새 직함은 글로벌 기업 및 정보기술 솔루션 부문 사장이었다. 그리고 2015년 초 아데나는 나스닥의 모든 사업 부문을 총괄 운영하는 최고운영책임자가 되었다.
나는 마침내 2016년 후반 나스닥 CEO 자리에서 내려올 준비를 모두 마쳤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귀에 이렇게 속삭였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어.” 이유가 뭐지? 사실 이유라고 할 것은 없었다. 2016년을 떠나야 할 적합한 시기로 만들어 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었다. 나는 나스닥에서 거의 14년 동안 근무했고 그 시간은 국제시장에서는 대단히 긴 시간이었다. CEO가 그렇게 오래 자리를 지키는 경우는 드물다. 나는 이사회의 지지와 우리 팀의 지원, 그리고 일찍이 다른 CEO들이 달성하지 못한 실적을 올렸기 때문에 오랜 근무가 가능했다. 나는 너무 많은 CEO들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데 어려움을 겪고그 자리의 함정, 즉 권력, 지위, 인정, 특전, 세상의 관심, 지원 조직, 자신이 우주의 중심인 것 같은 느낌 등에 빠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런 함정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2016년 11월 14일 인사 발표를 했고, 아데나는 2017년 1월 1일부로 내 후임자로 공식 지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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