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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50 나를 인정할 시간

by Casey,Riley 2021.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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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젊은’ 장년이라는 지금의 오십 대. 한때 386이었던 치열한 청춘들은 어느덧 586으로
불리는 중장년이 되어 버렸다. 누구는 경제 성장의 수혜를 입어 성공한 세대라고 하지만, 실상은 직
장에서 잘릴까 전전긍긍, 후배나 젊은 세대에겐 꼰대 소리 들을까 전전긍긍, 가정에서는 외톨이가
될까 전전긍긍하는 이들이 지금의 50대들이다. 앞만 보고 살아왔을 뿐 크게 잘못 산 것 같지도 않
은데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50대는 외롭다. 꼰대 아닌 ‘낀대’가 되어 자녀의 눈치도, 부모님
의 눈치도 봐야 하는 50대는 서럽다. 이십 대 청춘을 위로하는 글은 넘쳐나도 오십 대 가장을 위로
하는 글은 찾아보기 어려운 요즘, 저자가 50대가 되며 정리한 생각들과 감정, 깨달음을 담았다.

50, 나를 인정할 시간

▣ Short Summary
오십 대는 미래의 두려움을 온몸으로 안고 산다. 가장 큰 두려움은 일자리를 잃는 것이다. 그래도 직
장이 있으니 출발점부터 발목이 걸려 넘어진 청년 세대에 비해서 낫다고 할지 모르지만, 언제 직장에
서 밀려날 지 모르는 두려움은 출발점에서 넘어지는 것 이상으로 공포감을 준다. 오늘날 실질적인 퇴
직연령은 56세이며 심리적인 퇴직연령은 48세라는 통계도 있다. 사십 대 중반부터 실직의 두려움이
닥쳐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 때 사십 대면 정년이라는 의미는 ‘사오정’과 오십 대나 육십 대에도 회
사를 다니면 도둑놈이라는 의미의 ‘오륙도’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고령화로 인해 정년 연장에 대
한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지만 청년 세대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파렴치한 짓이라며 중장년층
을 향해 불만을 터뜨린다.
벌어도 벌어도 밑빠진 독처럼 끊임없이 쪼들리며 사는 위킹푸어 세대가 오십 대이다. 한 번 직장을 잃
고 나면 재취업도 쉽지 않고 사업을 하기도 어렵다. 경제적 절벽과 마주치면 당장 주택 대출금이며 자
녀 학자금을 충당할 길이 막막하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자존심 상하고 속 쓰리는
일이 있어도 꾹 참고 견뎌내며 두 손의 지문이 닿도록 아부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인격적 모욕이나
모멸감도 두 눈 질끈 감고 감내한다. 자신의 삶이라고는 없는 노예의 삶을 사는 게 오십 대 중장년층
이다.
오십 대에는 마음의 병도 깊어진다. 위에서는 임원들이 실적을 재촉하고 아래에서는 신세대들이 거침
없이 대든다. 자신들은 군말 없이 했던 일들도 아랫사람들은 사사건건 대들며 어렵게 만든다. 참다못
해 잔소리라도 한 마디 할 것 같으면 꼰대라며 멀리하고 따돌린다. 꼰대와 신세대 사이에서 ‘낀대’가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도 많아진다. 그렇게 위에서 조이고 아래에서 들이받치며 속이 새
까맣게 타들어가지만 그 속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서만 끙끙 앓다 보니 가
슴속에 말 못 할 외로움이 쌓여간다. 중장년층은 한마디로 외로움의 섬에 갇힌 사람들이다.
가정에서도 오십 대는 늘 찬밥이다. 평생 가족의 위해 발버둥 치듯 살았건만 어느 날 갑작스럽게 날아
든 배우자의 이혼 통보는 삶을 허무하게 만든다. 비록 집안일에 소홀하고 살뜩하게 대하지 못한 잘못
은 있을지언정 그게 어디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한 일이던가? 가족이 부족하지 않게 살도록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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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나를 인정할 시간

주려다 보니 집안일에 소홀하게 된 것이고, 바깥에서 간이며 쓸개며 다 내어주며 자존심 상하다 보니
집안에서만큼은 대우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족을 생각하고 가정을 생각하며 희생했던
모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다신 건널 수 없는 깊은 골이 되고 만다.
오십 대는 성장의 시대에 태어나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성공과 부를 누린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들
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해마다 중장년층의 고독사가 증가한다는 사실은 그들의 아픈 삶
을 잘 나타낸다.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고, 아파도 아픈 티를 낼 수 없고, 외로워도 외로운 티
를 낼 수 없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골병이 들어가는 것이 이 시대의 중장년층이다.
젊은 층은 기성세대를 이해하고, 기성세대는 젊은 층을 보듬고. 남성들은 여성들을 배려하고, 여성들
은 남성들을 인정하는, 자신의 신발을 벗고 다른 세대의 신발을 신어 봄으로써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
려는 노력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들 모두 우리의 자녀이고, 우리의 아버지이고, 우리의 아내이고
우리의 남편 아니던가. 서로 손가락질하고 내가 더 아프다며 서로를 깎아내리기보다 서로의 아픔을 이
해하고 눈물을 닦아주는 존재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

▣ 차례
머리말 _ 어느덧 오십, 이제 내 마음을 토닥일 나이
제1장 우리,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 - 지나온 삶의 가치를 인정할 시간
어머니가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켜 두신 이유 | 떠나보내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 아버지의 체온 | 이
제 알아요, 당신은 최선을 다하셨다는 것을 | 딱 한 번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 나에게도 품어줄
고향이 있다면 | 옛날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 수정이에게 | 그때 그 친구는 어떻게 지내는지
| 지식이 아닌 문화의 차이 | 이제는 미룰 시간이 많지 않음을 | 붙들고 있을 소중한 기억이 있다는
것 | 아버지, 당신의 마음속 고독을 헤아립니다 | 편안함의 반대말 |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 아니라 망
각의 동물 아닐까 | 우리, 이 정도면 참 잘 살아왔다
제2장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받아들이기 - 현재의 내 모습을 인정할 시간
자연인, 그들은 정말 행복할까 | 업무방해죄로 경찰 부를까요 | 격(格)과 주책 사이 | 나이 든다는 것
은 | 수면내시경을 하면서 떠올린 생각 | 더 나아갈 길이 있다는 것 | 결국 모든 게 내 마음에 달린
일 | 재능을 이길 방법은 노력뿐 | 재능은 나이와 상관없이 발휘될 수 있는 것 | 공짜는 무시해도 되
는 것일까 | 다시, 배려와 존중을 생각하다 | 호떡장사 할머니가 준 교훈 | 변해버린 관계를 인정해야
할 때 | 천국으로 가는 계단 | 내 마음이 지치지 않기를 |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받아들이기
제3장 다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 다가오는 변화를 인정할 시간
인덕(人德)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행복할까 | 편
리와 바꾼 관계 | 마음의 상처와 삶의 자유 | 언어의 온도 | 무관심 사회와 행복의 관계 | 사소한 탐
욕들에 던지는 경고 | 언품이 인품을 보여준다 |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면 행복할까 | 어른이 되어야
만 알 수 있는 말 | 미래에도 부끄럽지 않게 | 나이 든 꼰대와 젊은 꼰대 | 무엇이 진정한 리더를 만
드는가 | 위선과 거짓 | 누군가에게 대접받고 싶다면 | 누군가를 바꾸고 싶다면 | 놓을 때를 알기 위
하여 | 다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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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나를 인정할 시간

50, 나를 인정할 시간
양은우 지음

제1장 우리,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 - 지나온 삶의 가치를 인정할 시간
이제 알아요, 당신은 최선을 다하셨다는 것을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실과’라는 과목이 있었다. 바느질이나 요리, 책꽂이 만들기 등 생활
에 필요한 소소한 일들을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하루는 선생님께서 복숭아를 사 오라는 숙제를 내주셨
다. 실과 시간에 사용할 재료인 듯했다. 등교 시간,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마을 어귀에 있는 구멍가게
로 가셨다. 그리곤 당시 내 주먹보다 작은 풋복숭아를 몇 개 사 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풋복숭아도
아닌 개복숭아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버지가 사 주신 풋복숭아를 들고 가면서도 이걸 가져가도 되나
속으로 은근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실과시간이 되자 선생님은 준비해 복숭아를 꺼내라고 했다. 그
날 실습의 주제는 과일을 깎아 접시에 담아내는 것이었다.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과일 깎는 실습에
가져온 것이 초등학생의 손바닥 반 크기도 안 되는 조그만 풋복숭아였으니 깎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자기 머리통만 한 복숭아를 들고 왔다. 난 당황하여 얼굴이 새빨
개졌다. 내가 꺼내 놓은 풋복숭아를 본 선생님은 크게 야단을 치셨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내가 느
낀 창피함은 심장에 통증을 느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정말로 쥐구멍이 있다면 그 구멍 속으로 숨
어버리고 싶었다. 그날 수업이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40년도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
때의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웠던 느낌만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날 난 아버지를 원망했을까? 그리 효심 깊은 아들이 아니었으므로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집
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화풀이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탓인지 내 기억 속
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대신 아버지를 이해하는 마음이 더욱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만약 그때 아버지가 그 자리에 계셨다면 나보다 더 당황하셨을 지도 모른다. 풋복숭아 앞에서
당황하여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아들을 본다면 아버지는 틀림없이 속상해서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고 자상하게 대했던 아버지였기에 자신의 실수로 인해 아들이 곤혹스러운 상황
에 빠진 모습을 봤다면 날카로운 칼에 심장이 베이듯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아직도 한 번씩은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곤 하지만 난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결코 아버지
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기에. 어느 부모인들 자식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다만 당시의 형편이 그 정도밖에 안 되었을 뿐. 사는 게 넉넉하고 여유로웠다면 아버지도 분명 크고
좋은 복숭아를 사줬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건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당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므로.
나중에 내가 하늘로 돌아가 아버지를 만나 지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날의 일이 화제로 등장할지
모른다. 어쩌면 아버지는 그때 일을 기억하지 못하실 테고 그래서 내 이야기를 들으면 당황하실 지도
모른다. 그러면 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버지, 괜찮아요. 다 지난 일인걸요. 아
버지가 그때 최선을 다하셨다는 것을 잘 알아요. 고맙습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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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나를 인정할 시간

우리, 이 정도면 참 잘 살아왔다
가끔, 자신의 지나온 삶이 후회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사람들이 지난 삶을 되돌아보
며 후회하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나는 인생을 살면서 마주쳤던 수많은 갈래길에서 자신
이 선택한 길이 아닌 또 다른 길을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요. 다른 하나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오는 동안 보다 열심히 살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했던 것에 대한 자책일 것이다.
나 역시 가끔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지을 때가 있다. 살면서 마주쳤던 수많은 갈림
길에서 ‘그때 그 길이 아니고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때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봤다
면 어땠을까? 헛되이 흘려버린 시간들을 조금 더 아껴 썼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떠올릴 때가 많
다. 인내심이 없어, 용기가 없어, 두려움과 결단력 부족으로, 현실과 타협하느라 하지 못했던 수많은
일들, 머뭇거리다 도전조차 못해본 나의 꿈, 바람이 불 듯 순식간에 지나버리고 말았던 과거의 나나들
을 되돌아보며, 그때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한다. 그때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행동했다면 지금의 내 삶은 달라져 있을까? 지금의 내 나이만큼 들어서 되돌아봤을 때 그 삶은 후회
없을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어서 조금 더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 이미 대학을 다닐 때 모 대기
업의 산학장학생으로 입사한 상태였고, 회사에서 지원을 약속했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박사 과정까지
진학할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공부가 힘들기도 했고 어려운 형편에 하루라도 빨리 사
회로 나가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이 들어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박사 학위 하나 없다고 해서 크게 불편
할 일도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후회스러울 때가 있다. 만일 그때 박사 과정에 진학을 했다면 지금의
내 삶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지만, 가지 않은 길은 어디까지나 미련
일 뿐이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한들 또다시 같은 선택을 할지 모른다. 그때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
했던 일, 두려워서 하지 못했던 일, 소심해서 머뭇거리다 기회를 놓친 일들이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서
바뀔 수 있을까? 과연 나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지 않은 길은 내 길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한 자책 또한 마찬가지다. 인생을 다시 산다고 해서 지금보다 충실히, 만족스럽게
산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인생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금보다는 후회 없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착각
이거나 현재의 내 삶에 대한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심판대 앞에 선 남자처럼 말이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후회하는 것은 내 손 안에 든 귀한 생명수가 손 틈으로 빠져나가는 걸 보지
못하면서 땅바닥에 떨어진 생명수가 아까워 바닥만 바라보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 열심히 살
지 못하면서 지난 시간을 후회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단 말인가? 과거는 미래에 투사된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고 우리 앞엔 미래가 남아 있다.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거나 자책할수록 미래의
삶은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후회해도 달라질 건 없다.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다가올 미래를 후회 없이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어쩌면 더 현명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부터라도 그
동안 용기가 없어서, 두려워서, 소심해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못했던 일을 해보는 것이 차라
리 더 낫지 않겠는가?
한편으로 우리는, 어쩌면 색안경을 쓴 채로 스스로의 삶을 바라보는지도 모른다. 자기 삶의 긍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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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나를 인정할 시간

면, 성공적이었던 부분, 보람 있는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 실패하는 일, 마음대로 안 되었던 일,
아쉬웠던 부분만 끄집어내어 후회의 감정을 덧칠하고 있는 건 아닐지…. 내 삶이 후회스럽다는 것은
지극히 나만의 주관적인 판단일 뿐, 어쩌면 내 삶이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모습일 수 있다.
당신은,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더 잘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후회하지 말자.
혹시라도 지나간 삶에 후회가 들거든 자신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나지막하게 속삭여보는 건 어떨까?
“괜찮아. 지금까지 잘 살아왔어”라고.

제2장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받아들이기 - 현재의 내 모습을 인정할 시간
격(格)과 주책 사이
치과에 갔더니 간호사들이 나를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아버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아버님, 입 크게
벌려 보세요.” 아직 오십 대 중반밖에 안 된 나를 너무 나이 많은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 인상이 찌푸
려진다. ‘아버님이라니?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나? 뭐라고 한마디 할까?’ 생각했지만 말이 되어 입 밖
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물론 치과 간호사들이 내게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지
는 않다. 이름을 부르기엔 다소 건방져 보이고, 어르신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쓸
수 있는 ‘적당한’ 호칭이‘아버님’인 듯싶다. 그렇다 해도 아버님이라는 호칭은 지나치게 나이 든 것 같
아 싫다. 그런데 어깨가 아파 침을 맞으러 간 한의원에서도 ‘아버님’ 하고 날 부른다. ‘응? 아버님?’ 그
순간 고민이 깨끗이 사라졌다. ‘그래, 난 아버님이다. 이젠 그렇게 불려야 할 나이인가 보다.’ 섭섭하지
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무리 거부해도 소용이 없기에.
살면서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것,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는 흐름을 읽는다는 것은 꽤나 중요한 일이다.
흐름을 읽지 못하고 나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와 맞지 않는 엉뚱한 행동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 혹은 그런 행동들을 우리는 ‘주책’이라고 부른다. 주책이란 자신의 ‘격’
에 맞지 않게 행동하다는 것을 말한다. 나이 들어서도 젊었을 때처럼 좌충우돌하며 다혈질적으로 행동
하거나, 거친 말을 서슴없이 입에 담고, 자신의 능력이나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내가 누군지 알
아?’라며 큰소리 떵떵 치고, 치기 어린 행동을 일삼는, 이런 것들이 모두 주책이다.
물론 변화를 거부하고 하던 대로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따라서 흐름을 읽고 변화를 받아들
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변화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 행동해
야 품격을 지키며 나이 들 수 있다. ‘격’을 지키려면 흐름을 읽어야 한다. 주위의 변화, 그리고 자신의
변화. 주변의 변화와 자신의 변화에 맞추어 끊임없이 자신이 설 자리를 조율해 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그 흐름이 자신에게 바꾸어 놓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나이 든다는 것은
한 때는 나이 드는 것이 즐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까칠하던 성격도 한풀 꺾이고 모나던 성격이 너
그럽고 온화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젊을 때는 낯선 사람들과 말 한마디 섞지 못했건만 이제는 누구와
도 어렵지 않게 대화를 나눌 정도로 능글맞게 변하기도 했다. 그런 변화를 보며 ‘이게 나이에서 오는
관록이라는 것이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다. 그래서 나이 드는 것이 서럽지도 않고 딱히 안타깝지도 않
았다. 오히려 나이 듦이 진심으로 반가웠다. 비록 눈은 침침해지고 흰머리가 늘어가고 있었지만 그래
도 나름 즐거웠다. 그런데 조금 더 나이가 들자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반가움이 슬픔으로 바뀐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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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나를 인정할 시간

다. 요즘은 나이 든다는 것이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듦이란 하나씩 익숙한
것과 이별하고 이 아픔을 삭여야 하는 것인가 보다.
늘 어린애 같기만 하던 첫 아이 현준이가 군에 입대했다. 하필이면 제일 추운 시기에. 서 있는 것조차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칼바람 속에 민둥머리 아들을 연병장에 남기고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서럽고 안
타깝던지 눈물이 핑 돌았다. 의경이기에 군사 훈련이 끝나고 자대 배치를 받으면 자주 볼 수 있을 테
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한 군 생활을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진 바람 때문인지
마음이 아리기만 했다. 제대를 하고 나오니 이제 독립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로는 어서 독립
해서 나가라고 하지만 막상 그 시간이 다가오니 왜 이렇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자식을 품
안에서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다 그러지 않겠는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0여 년의 세월. 알
콩달콩 같이 했던 그 시간이 이젠 끝나간다는 생각이 들어 슬프다.
어머니도 꽤 나이가 드셨다. 벌써 팔순이 다 되셨다. 얼마나 더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익숙한 것들, 정들었던 것들, 사랑하는 존재들로부터 이별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이미 앞서 세상을 등진 친구들도 있다. 그렇게 하나둘씩 주위에서 떠나가거나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
다. 내가 아끼는 것들, 내가 아끼던 사람들, 내 젊은 시절을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들을 떠나보내야 하
는 것이 나이 드는 것인가 보다. 그래서 나이 든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견딜
수 없는 슬픔이기도 하다. 이젠 나이 드는 것이 서럽다. 예상하지 못했던 이별이 언제 옆구리를 헤집
고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다시, 배려와 존중을 생각하다
언젠가 아파트 입구에 이런 공고문이 붙었다.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붙인 것으로, 날씨가 너무 더워
경비원들이 힘들어하니 모든 경비초소에 에어컨을 설치하겠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찌는 듯한 무더위에 손바닥만 한 작은 공간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경비원들을 볼 때마다 안
타까운 생각이 들었는데 에어컨을 설치한다니 마침 잘됐다 싶었다. 누가 낸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경
비원들의 힘든 상황을 배려한 고운 마음씨에 절로 박수가 나왔다. 며칠 후 그 공고문 옆에 다른 공고
문 하나가 붙었다. 이번에는 경비원들이 붙인 것이었다. 에어컨을 설치해준 주민들의 성의에 감사하며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절제하고 아껴 쓰겠다는 것이었다. 그 밑에 볼펜으로 감사하다
는 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관리사무소의 배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주민들에게 불편을 끼
치지 않겠다는 경비원들의 고운 마음씨에 감동이 밀려왔다.
관리사무소와 경비원들의 공고문을 보면서 내내 흐뭇한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비록 부자동네도 아니
고 힘 있는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도 아니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인건비로 나가는 돈을 줄이기 위해서 아파트 경비원을 해고하고 경비원들에게 택배를 날라 달라며 갑
질을 한다는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요즈음 이 일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 더불어 사는 것이 세상이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하기도 하고, 때로는 누
군가 기댈 수 있는 기둥이 되어야 한다. 지극히 관념적인지는 몰라도 귀한 것도 없고 천한 것도 없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이다. 돈 있다고 없는 사람을 깔보지 않고, 힘 있다고 힘 없는 사람을 무
시하지 않으며, 배웠다고 못 배운 사람을 천하게 보지 않아야 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
려하면 그것은 언젠가는 내게 돌아온다. 모든 사람들이 존중과 배려를 몸소 실천하면 세상은 더욱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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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나를 인정할 시간

뜻하고 살기 좋아질 것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받아들이기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않게 회사를 그만둔 후 경제적으로 꽤나 큰 손실을 입었다. 임원으로서 받을
수 있었을 적지 않은 연봉과 꽤 두둑한 퇴직금, 경제활동을 못하면서 가만히 앉아서 까먹게 된 저축,
아이들의 학자금과 각종 기회비용 등 손실은 생각보다 컸다. 회사의 후배들이 속속 임원으로 진급했다
는 소식들이 들려왔다. 힘들고 어려워도 꾹 참고 회사를 다녔다면 나 역시 몇 년 전에 이미 임원이 되
었을 텐데, 쓸 데 없이 서둘러 회사를 옮기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니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
이 들었다.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난 지금 먼 길을 돌아가고 있다. 장애물을 이겨내고 꾸준히 인내심을 발
휘했다면 지금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나 안정적으로 경제적 수입을 창출할 수 있으련만 섣부른
조바심이 먼 길을 돌아가게 만들고 만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길이 후회스럽지 않다. 비록 지름
길을 놔두고 에둘러 먼 길을 빙 둘러가는 어리석음을 자책할 때도 있긴 하지만 가급적이면 후회하지
않으려고 한다. 후회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기에, 후회한다고 해서 그때로 돌아갈 수도 없을뿐더러,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후회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기에.
대신에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한다. 지금 난 꿈을 향해 도전하는 중이라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꿈,
스테디셀러 작가가 되는 꿈, 누군가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책을 내는 꿈, 그 꿈을 이
루기 위해 한 걸음씩 꾸준히 걷는 중이라고. 만일 내가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과연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만일 내가 직장생활을 계속했다면 열 권이나 되는 책을 쓸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못했
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런 면에서 난 나의 꿈을 향해 걸어가는 이 길이 즐겁다. 비록 멀리 돌아가더라
도 말이다.
회사를 다닐 때 나보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회사를 다닐 때 내 뒤에 있었지만 지금은 나를 앞
질러간 사람들. 그들은 과연 자신의 꿈을 향해 가는 것일까? 자신의 꿈 따위는 없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대가로 높은 연봉과 지위를
보상받는 것은 아닐까?
비록 경제적으로 조금 못하고, 비록 임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내게 새로운 꿈을 심어주고 그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같아 나는 지난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어차피 직장생
활은 할 만큼 했고 누군가를 위해 나의 삶을 희생하는 일도 충분히 했기에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
을 하며 살고 있다. 가끔 후배들의 진급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살짝 움츠러들곤 하지만, 난 꿈을 향해
돌아가는 이 길이 즐겁다.

제3장 다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 다가오는 변화를 인정할 시간
마음의 상처와 삶의 자유
어쩌면 인생은 최정상과 최저점 사이를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터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최정
상을 오를 때는 삶이 최고로 즐겁지만 최저점에 이르면 삶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살다 보면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 기쁨은 삶에 흔적을 남기지 않지만 슬픔은 상처를 남기고, 상처가 난 자리에는
멍이 들게 마련이다. 한 평생을 살면서 가슴에 멍 한 번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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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나를 인정할 시간

행스럽게도 모든 상처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아물게 마련이다. 그리고 모든 상처는
그만큼 삶을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몇 년 전, 잘 나가던 회사를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꽤 오랜 기간 경제적 문제로 인해 힘이 들었다. 자존
심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받기도 했고 무기력한 나 자신을 바라보며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다시
경제활동을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 1년 반 동안 내 가슴에는 무수히 많은 상처와 멍이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상처가 아물고 나니 그 상처의 크기만큼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넓어지고 깊어진 느낌이
든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그동안 떨쳐
버리지 못했던 모든 집착과 조바심, 욕심도 모두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상처 입기 전의 나에 비
해 상처를 이겨내고 난 후의 나의 모습은 자신을 옭아매던 온갖 구속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워진 듯했다.
한층 더 성숙되고 깊어진 느낌이랄까?
이 글을 쓰는 동안 난 몹시 힘든 상태에 있다. 13년을 넘게 키워온 딸아이 이슬이를 떠나보내고 심각
한 우울증과 무기력, 죄책감 등으로 인해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이슬이의 병간호 때문에 자주
강의를 취소하면서 지금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도 더 이상 강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그나마 있던 강의들도 줄줄이 취소되면서 경제활동도 거의 멈추다시피 했다. 가정에서도 힘든 일들이
많다. 인생에 최저점이 있다면 바로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아닐까 싶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가
장 아픈 사람이 나 자신인 것 같다. 살아 있다는 것이, 살아 숨 쉰다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이고, 삶
의 의욕도, 살아야 할 의미도 찾기 힘들다. 하지만 이겨내려고 한다. 비록 지금은 아프더라도, 그래서
마음에 상처를 입고 크나큰 멍이 들지라도, 그것을 이겨내고 나면 나의 삶이 한층 성숙하고 자유로워
질 수 있으리라 믿기에.
무관심 사회와 행복의 관계
2017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길을 걸을 때면 걷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정도로 그렇게 지독한 추위가
몰려오던 어느 겨울날의 일이었다. 전철역을 나서는 데 나이 든 할머니 한 분이 전단지를 나누어 주고
계셨다. 조금만 서 있어도 온몸이 동태처럼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를 무릅쓰고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할머니의 모습이 멀리서도 안쓰러워 보였다. 모르긴 해도 전단지 한 장 나누어 주고 받는 수입은 땅에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을 정도로 작은 푼돈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제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꿋꿋하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누구처럼 한 장에 서
너 장씩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요령도 없이 정직하게 한 장 한 장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모습이 안타
까울 정도였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누구도 손을 내밀어 전단지를 받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손에 든
전단지를 모두 받고 싶었지만 한 장밖에 받을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그날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꽤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전단지를 내미는 손을 무시하고 종
종걸음을 걷는 사람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 날 날씨는 말 그대로 살인적이었으니까. 그런데 만약,
그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사람이 내 어머니라면 어땠을까? 혹은 나의 이웃이나 내가 아는 주위 사람이
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춥다는 핑계로 내민 손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 있을까? 걷기도 힘든 추위에
그 할머니는 춥지 않았을까? 오히려 움직이지도 못하고 한 자리에 선 채 전단지를 나누어 주자면 뼈
속 깊이 스며드는 한기를 느낄 텐데 말이다. 견딜 수 없이 춥고, 그래서 손을 꺼내는 것조차 귀찮아도
모두가 한 마음으로 손을 내밀어 전단지를 받아 주었다면 그 할머니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따뜻한 온
기가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무심하게 전단지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
가 지나치게 무관심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무관심 사회가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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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나를 인정할 시간

‘지금 당신의 삶은 행복하십니까?’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라고 한
다. 당장 끼니를 때울 것이 없어서 먹고사는 것이 최우선 순위였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적어도 그런
걱정에서는 자유로워졌음에도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수준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오
히려 과거에 비해 삶이 더 팍팍해졌다는 느낌마저 든다. 왜 그럴까? 아마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 무관
심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가 변하고 도시가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향상되었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개인의 삶
을 안정적으로 꾸려 나가기에도 벅찬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내 코가 석자’라는 속담처럼 내 앞가
림이 어려워지면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진학에 대한 걱정, 취업 걱정,
경제적 걱정, 고용의 불안, 노후 걱정 등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걱정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이
지 않고 찾아온다. 끊이지 않는 자신에 대한 걱정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잃게 만들었고 그것
이 무관심 사회를 불러오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는 필연적으로 삶에 대한 만족감, 행복에
대한 체감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무관심은 타인에 대한 배려를 앗아간다. 배려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을 때만 나타나게 돼 있다. 온
갖 근심거리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곱은 손을 비벼가며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할머니는 관심 밖이다.
그러니 손을 내미는 배려가 따라올 수 없다. 번거롭고 수고스럽더라도, 비록 받자마자 쓰레기 통으로
직행할지라도,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을 이겨내며 힘들게 내미는 전단지를 한 장 받아주는 것이 누군
가의 소중한 어머니 혹은 누군가의 이웃일 수 있는 그 할머니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누
구도 하지 않는다. 삶은 갈수록 편리해지고 있지만 그에 비례하여 삶의 질은 더욱 팍팍해지는 것도 알
고 보면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결과물인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꿈꾼다. 사는 동안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우
리는 행복을 꿈꾸면서도 정작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에 대한 관심보다는 돈이나 성공과 같은 물질
적 수단만 쫓는다. 행운이라는 이름의 네 잎 클로버를 찾느라 행복이라는 이름의 세 잎 클로버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어리석은 꼴이다. 무관심 사회에서 벗어나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아끼는 사회가 되었
으면 좋겠다.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힘겨워할 때, 그들에게 건네는 따뜻
한 눈길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은 힘을 낼 수 있다. 내가 힘들 때 누군가가 따뜻한 손길을 건넨다면 그
것이 또한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힘이 될 수 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서로 따뜻한 온기를 나눈다면 적어도 물질을 쫓는 것보다는 삶이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미래에도 부끄럽지 않게
4년 전 이야기다. 고등학교 졸업 30주년 기념 홈커밍을 준비하기 위해 30년 만에 고등학교 3학년 시
절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식사를 하면서 서로 어떻게 살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선생
님은 선생이라는 소명을 가지고 열심히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의 만남이
끝나고 그날 모임은 끝이 났다. 하지만 선생님과 헤어지고 난 후, 내 가슴속에는 괜히 만났다는 후회
와 가슴 한 구석을 짓누르는 듯한 답답함이 사라지질 않았다. 다시는 그분을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
다.
그 선생님은 나와 인연을 기억할까? 고등학교 시절, 난 그리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상위권에 있
긴 했지만 특출 나게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성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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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나를 인정할 시간

학력고사가 끝나고 대학 입학 원서를 쓰기 위해 선생님을 찾아갔다. 나는 공과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내게 서울대 농대로 가라고 설득했다. 난 농대를 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금이야
농대도 특화된 커리큘럼으로 인해 선호하는 학과 중 하나이지만 당시만 해도 대학 중에 가장 서열이
낮은, 대학의 브랜드가 탐나서 가는 단과대학에 불과했다. 내가 생각했던 미래 중에 농업과 관련된 것
은 없었기에 난 선생님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줄기차게 농대를 권했고, 급기야 “네가 알아서 해”라고 화내며 일어섰다.
당시만 해도 담임 선생님이 원서를 써주지 않으면 대학에 지원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으니 나의 대학 지원 원서는 방향을 잃고 말았다. 옆 반 선생님의 도움을 받
아 내가 지원하고 싶은 대학의 원서를 겨우 받아들 수 있었다. 그때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떠나던
선생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내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선생님은 무어라 변명하
실까?
사람들은 종종 어린 사람들이나 후배들에게 현재의 지위나 힘만 믿고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
지만 지금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시간이 지난 후에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아무도 모
른다. 현재 나의 모습이 그들보다 낫다고 해서 그들을 함부로 대하다가, 막상 그들이 미래에 나보다
뛰어난 위치에 올라서면 어쩔 것인가? 그들이 그때의 일을 들춰내기라도 한다면 그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할 것인가?
지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갈수록 지위와 힘을 잃게 마련이지만 지금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높은 위치로 올라가고 힘을 가지게 마련이다. 비록 지금은 나보다 힘이 없고 나보다
낮은 지위에 있을지라도 그 사람을 진정으로 대한다면, 먼 훗날 입장이 역전되어 만나게 된다 해도 절
대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 고참 병사, 운이 좋아 선배가 된 학생들, 그리고 세상에 조금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로 회사의 선배가 된 직장인들. 모두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티끌만큼
도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한다면 사람 사이의 관계가 조금 더 매끄러워지지 않을까 싶다.
다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각양각색이다. 어떤 사람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
은 돈을 벌고, 어떤 사람은 똥구멍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하다. 어떤 사람은 못된 짓을 밥 먹듯이 하면
서도 국회의원이 되어 자신보다 훨씬 청렴결백하게 산 사람을 죄인처럼 꾸짖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깃털 같은 잘못 하나로 범죄자의 낙인이 찍힌다. 어떤 사람은 젊은 시절을 펑펑 놀다가도 운이 좋아
성공 가도를 달리며 돈과 명예를 끌어 모으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죽어라 공부해도 평생 쥐꼬리만
한 월급에 만족해야 하는 직장인의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내는 걸까? 운
명일까? 그렇다면 사람의 운명은 정해져 있을까?
종종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꽤 많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젊은 여자 직원이 결혼을 앞두고 예
물을 찾으러 가던 길에 공사장의 담벼락이 무너지는 바람에 매몰되어 세상을 떠났다. 고등학교 친구
중 하나는 오랜 해외 생활 중 잠깐 가족을 보기 위해 들어왔다가 다시 해외로 나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가던 길에 버스가 전복되어 죽었다. 그 여직원은 왜 하필 그 수많은 시간 중에 딱 그
시간에 거기 있었을까? 왜 그 친구는 그때 그 버스를 탔을까? 조금만 일찍 집을 나섰거나 조금 늦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그 버스에 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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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나를 인정할 시간

그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였을 뿐일까?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버스를 놓쳐 씩씩대며 울분을 토해내지만 그로 인해 목숨을 구하게 되고, 어떤 사람은 운 좋게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도착하여 기분 좋게 승차했다가 목숨을 잃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과
연 우연으로만 벌어지는 일일까?
그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사람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운
명론자는 아니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이
기도 하다. 노력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면 굳이 노력할 필요가 없다. 어떻게 살든 정해진 운명은 달라
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부자가 될 사람은 노력하지 않아도 부자가 될 수 있고 가난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그것이 운명론자의 한계다.
내가 믿는 운명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미 운명은 정해져 있으니 인생이 어찌 전개될까 궁금해
하거나 혹시나 잘못될까 전전긍긍하며 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벼락맞아 죽을까 봐 아무리 걱정하며
조심한다 해도, 운명이 그렇다면 벼락을 피할 수 없다. 벼락 맞아 죽을까 봐 아무리 걱정해도, 운명이
그렇지 않다면 그 걱정은 끝내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세상
을 살면서 조바심 내거나 전전긍긍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비록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한들 누구도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볼 수 없는 미래
를 내다보고 싶어 안달을 내지만 그런다고 해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운명을 바꿀 수 없
다면 현재를 충실히 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라면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열심히, 후회 없이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
고, 인생에서 마주치는 모든 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내게 주어진 상황들을 아낌없이 즐기며
사는 게 정해진 운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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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나를 인정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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