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자신이 그린 그림대로 훌륭하게 아이를 키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틀렸다는 것
을 증명해 보겠다던 한 엄마의 날것 그대로의 자녀교육 스토리다. 그녀의 야심찬 목표는 결실을
맺게 되었을까? 결론은 ‘다행히도’ 실패다. 그간 엄마가 정한 길로 잘 따라와 주었던 아이가 어느
날 자신의 길을 가겠다며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이다.
내 아이는 내 뜻대로 키울 줄 알았습니다
▣ Short Summary
내 아이는 내 마음대로 키울 수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아이는 부모가 낳았지만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속물이 아니다. 부모인 내가 살아오면서 못다 이룬 욕심이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얻게 된
경험들을 무기 삼아 내 아이만큼은 이렇게 키워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다. 부모의 생각과 타인
의 시선을 고려하여 내린 결론을 막무가내로 아이에게 강요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월은 흘렀고 세상의
흐름은 괄목할 만하게 달라졌다. 부모세대가 생각하던 세상이 아니다.
아이와 엄마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던가. 이제 그 아들이 어엿한 기타리스트가
되고, 엄마는 진짜 어른이 되었다. “네가 아니라 엄마 탓인 걸… 엄마가 문제였는데…” ‘어쩌다 엄마’가
되어 아들과 딸을 키우면서 자신도 변할 수밖에 없었던 한 엄마의 성장일기가 감동을 준다.
▣ 차례
1장 잘 하고 있는 줄 알았다
좋은 엄마 콤플렉스 “엄마야, 학습 매니저야?” / 좋은 게 좋은 거지 “도대체 불만이 뭐야?” / 엄마의
자랑거리 “넌 엄마의 1등 제자야!” / 어쩌다 엄마 “내가 보기에 가장 좋은 것” / 내가 못했으니 너만이
라도 “제가 필요한 게 아니잖아요” / 우리 엄마는 팬더 “가족을 동물로 표현해 보세요”
2장 부모라고 다 자식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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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내 뜻대로 키울 줄 알았습니다
내 맘을 몰라주는 엄마 “엄마, 심리학 전공이라면서?”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칭찬의 부작용이
라고요?” / 설마가 현실로, 아들의 가출 “호락호락 넘어가나” / 현명한 대처 “야단친다고 해결되지 않
아” / 답정너 엄마 “내 삶은 내가 선택해!” / 가장 좋은 설득 “설득하지 않는 것”
3장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 비우기
가깝다고 마냥 좋지는 않다 “안전거리를 유지하세요” / 엄마들의 공감대 “오늘 우리 아이가 자퇴해요”
/ 우리 집 전화번호 저장법 “불러주는 대로 된다” / 진달래는 개나리로 필 수 없다 “저, 엄마에게 맞았
어요” / 매일 기도하는 마음 15분 “노력하는데 왜 안 바뀌는 거지?”
4장 지지해 주면 스스로 자란다
행복한 몰입은 성장이다 “게임보다 즐거운 것?” / 무모한 도전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 자소서 쓰
던 날 “엄마가 좀 도와줄까?” / 폭풍 잔소리, 그리고 후회 “현상보다는 관계죠” / 비교로부터 자유로워
지기 “정말 꿈이 없는 걸까?”
5장 아이가 부모를 키우고 있었다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사랑을 느끼는 언어는 무엇일까?” / 아들의 편지 “분노의 편지가 감사의 편지
로” / 특별한 진학 준비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에요” / 집 떠난 후 첫 생일 “효자, 효녀의 기준이 바뀌
었어요” / 설거지는 사랑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 두 번째 중2 “하고픈 거 하고 삽니다!”
6장 네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
아이의 재능에 물주기 “꿈이 우선? 생계가 우선?” / 네 선택이 옳았다 “무조건 서울로 가야해” / 이젠
당신이 꽃 필 무렵 “당신을 응원합니다” / 엄마의 오지랖 “사회적 자본을 쌓는 중이야” / 나를 키우는
일 “아티스트의 엄마가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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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내 뜻대로 키울 줄 알았습니다
내 아이는 내 뜻대로 키울 줄 알았습니다
잘 하고 있는 줄 알았다
내가 못했으니 너만이라도 - “제가 필요한 게 아니잖아요”
넉넉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가르치리라 생각한 한 가지가 있었다. 빠듯
한 살림 탓에 낮밤으로 일하시던 어머니께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나의 소원
바로 피아노였다.
초등학생 시절, 교실에 놓여 있는 피아노를 치는 아이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꼭 한번 배워보고 싶었지
만 결국 기회를 갖지 못하고 어른이 되었다. 꼭 피아노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다장조
이외의 음계들을 읽지 못해 음악 선생님께 민망한 질타를 받았을 때도 생각했다. ‘피아노를 배웠더라면
이런 일은 겪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나의 1호 아이였던 지훈이는 7살이 되며 자연스레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엄마의
설움과 염원이 가득 담긴 배움이었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듯, 아들은 눈에 띄는 실력 향상을 보임으
로써 엄마의 어깨를 으쓱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4년 뒤, 체르니 30번 진입을 목전에 둔 어느 날이었다. ‘엄마, 나 피아노 그만하고 싶어. 너무
힘들고 어려워.’ ‘아, 올 것이 왔구나.’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레슨을 받으러 가는 아이
의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걸 눈치 챘던 것이다.
당시에는 사실 ‘피아노를 언제까지 이 정도 가르쳐야겠다’는 목표를 세운 건 없었다. 그저 ‘나는 못한
것을 네게는 가르치겠다.’라는 시작점만 명확했다. 그러나 적어도 체르니 30번은 마쳐야 한다는 주변
의 말을 들었던 탓에 쉽게 그만두라고 허락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는 하고 끝내야 나중에 처음 보는
악보일지라도 문제없이 연주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더 다니고 싶지 않다는 아
이를 어르고 달래며 레슨을 이어가게 만들기로 했다.
“한 달만 더 다녀보자.” “한 주만 더 다녀보자. 지금 그만두면 너 그동안 고생한 거 다 잊어버린대. 너
무 아깝잖아.”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며 아이와 신경전 벌이기를 며칠. 마침내 아들은 엄마에게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엄마께. 아들 유지훈입니다. 제가 피아노를 배운 지 어느덧 4년이 되어가네요. 이제 저는 악보도 잘
읽을 줄 알고 …(중략) … 저는 피아노를 전공할 것도 아니니 이 정도만 배워도 될 것 같습니다. …(중
략) … 무엇보다 피아노는 제가 필요해서 배우는 게 아니고, 엄마가 필요해서 시키는 거잖아요. 그러니
피아노를 그만 배우게 해 주세요. 부탁입니다. - 아들 유지훈 올림
아들은 편지를 통해 피아노를 배우고 싶지 않은 이유를 구구절절 짚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굵은 표시로 강조한 ‘제가 필요해서 배우는 게 아니고 엄마가 필요해서 시키는 거잖아요’를 보니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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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내 뜻대로 키울 줄 알았습니다
할 말이 없었다. ‘뼈 때리는’ 아이의 지적에 더 이상 피아노를 배우라고 할 수 없었다. 결국 6개월간의
실랑이 끝에 체르니 30번을 마치지 못하고 끝이 났다.
2년 만에 열린 피아노 뚜껑: 지훈이는 그 후 2년 동안 한 번도 피아노 뚜껑을 열지 않았고 피아노 위
에는 먼지만 쌓여 갔다. 남편과 나는 이제 피아노 치는 방법을 완전히 잊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6학년이던 지훈이 학교에서는 오케스트라 창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창단 인원
이 부족했던 탓에 엄마가 학교 임원인 아이들은 우선적으로 신청을 해야 했고, 나 또한 임원이었던 터
라 지훈이는 자연스럽게 입단하게 되었다. 저렴한 비용을 내면 가르쳐 주기까지 한다니 엄마 입장에서
는 안 할 이유가 없었다.
피아노는 싫었지만 음악은 좋아했던 아들은 피아노가 아닌 다른 악기를 연주하게 될 거란 이야기에 흥
미를 보였다. 그렇게 아들은 오케스트라에서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했고, 아이들과의 합주도 재미있었
는지 잊고 있던 음악의 즐거움을 되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굳게 닫혀있던 피아
노 뚜껑을 아이가 직접 오픈한 것이다!
피아노 뚜껑을 연 지훈이의 손에는 악보 하나가 들려 있었다. 다름 아닌 마룬5(Maroon5)의 <Pay
phone>이라는 노래 악보였다. 피아노 치는 법을 깡그리 잊어버렸을 거란 엄마의 생각을 산산조각 내
며 아들은 처음에는 다소 헤매는 듯 하더니 금세 능숙하게 연주해 나갔다. ‘체르니 30번을 완수하지 않
으면 헛돈 쓴 거다.’라는 말이 헛소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지훈이는 이 날을 시작으로 매일같이 본인이 즐겨 듣는 팝 가수들의 악보와 유튜브 연주자들을 따라하
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았다. ‘해야만’ 하는 고루한 체르니가 아니라 본인이 ‘하고픈’ 연주곡을 치니 어
떤 강요나 설득도 필요 없었다.
아이는 줄기차게 피아노를 쳐댔다. 정말로 눈뜨고서부터 학교 가기 직전까지, 저녁을 먹고 늦은 밤이
되기까지 피아노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반가우면서도 낯선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내 머리를 강타한 생
각은 하나였다. ‘아 … 이 아이한테는 휴식이 필요했군.’
나는 아이에게 피아노를 즐길 여유는 주지 않고 쉼 없이 밀어붙이기에만 열심이었다. 휴식의 시간이
도태되는 시간이 될 거라는 내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아이에게 휴식은 곧 더 멀리 뛰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시간이었다. 무작정 아이를 달리게 하는 게 답이 아니라는 그 평범한 진실을 당시의 나는 왜
몰랐을까? 힘들 땐 때론 쉬어가도 된다는 그 간단한 진실을, 나는 아이 덕분에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
다.
부모라고 다 자식을 모른다
내 맘을 몰라주는 엄마 - “엄마, 심리학 전공이라면서?”
초등학교 3학년 지훈이는 생일을 맞은 엄마에게 기억에 남는 선물을 했다. 그건 다름 아닌 책이었다.
재밌는 건, 생일이 나와 딱 4일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내 동생(아이들에게 단 하나뿐인 이모다)에게도
같은 책을 선물했다는 것이다. 열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엄마의 생일을 챙기려 한 그 마음도, 다른 무엇
도 아닌 책을 선물로 준비했다는 것도 너무나 기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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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내 뜻대로 키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포장지를 뜯는 순간 나는 헉~ 숨이 멎는 듯했다. 지훈이가 선물한 책의 제목은『엄마가 아들을
아프게 한다』였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직도 이날 받은 책을 읽지 않고 있다. 아니, 읽지 못했다는 것
이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책 제목을 본 순간, 나는 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내게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당시의 내가 어떻게 아들을 아프게 하고 있었는지….
책을 선물하면서 아들이 어떤 말을 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단 한 문장은 아직도 가슴
에 새겨져 있다. “근데 엄마는 심리학 전공이라면서 왜 내 맘을 몰라? 전공한 거 맞아?” 강렬한 어퍼
컷을 날린 아들에 이어 일곱 살짜리 딸내미까지 ‘맞아.’ 하고 잽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못나고 부끄럽
게도 그 순간에도 내 방어기제는 반사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나는 애써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아이
들에게 말했다. “심리학이 무슨 독심술도 아니고, 엄마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다 알아? 그리고 엄마
공부한 지 너무 오래 되어서 거의 다 까먹었지. 한 번 기억을 잘 떠올려 볼게.”
다른 무엇보다 속상하고 괴로웠던 것은 나 자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잘 키
울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자식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으니
어
떤 엄마인들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속상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들이 내게 이런 선
물과 말을 하게 된 원인을 찾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대체 왜 내게 이렇게 말을 한 것일까? 왜 이모에
게까지 같은 책을 선물했던 걸까?
아기였던 시절의 지훈이에게 아빠는 주말에만 만날 수 있는 사람, 엄마는 일이 바빠 밤이 늦어서야 집
에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부재중일 때 아이를 돌봐준 사람은 다름 아닌 이모였
다. 당시 대학을 휴학 중이던 동생이 바쁜 언니 부부를 대신해서 조카를 돌봐주었다. 그때의 지훈이는
진짜 엄마가 누구인지 혼란스러웠으리라. 나조차 내가 아이들의 엄마인지 동생이 엄마인지 헷갈릴 정
도였다. 당시의 지훈이 사진을 보면 아이 곁에는 늘 이모가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쩌다 동생이 본가(친정)로 돌아가게 되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아이를 바라보고는 했다. 마찬가지로 지훈이 역시 ‘엄마가 어디 갔지?’ 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으니
엄마와 아들을 감싸던 그때의 그 어색한 공기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무얼 하지 말아야 할까를 고민해야: 초보 엄마이던 내게 ‘행복한 육아’란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나
는 전쟁 같은 하루하루에 짓눌려 있었던 탓에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기 일쑤였다. 그뿐만 아니
라 어려운 형편에 어울리지 않게 비싼 전집을 덜컥 사서는 아이에게 읽게 하는 등 내 마음의 부채감을
덜고자 끊임없이 아이에게 무언가를 시켜댔다. 이런 나로 인해 동생까지 덩달아 사랑하는 조카에 대한
걱정으로 전전긍긍했으니
아이에게 전해진 부정적인 감정들 역시 두 배였으리라.
부모란 아이에게 무엇을 하게끔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무언가를 시키는 사람
이 아니라 아이가 불안할 때, 그 불안이라는 이름의 비로부터 아이를 지켜주는 우산이 되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건만…. 지금 그 시절을 회상하자니 그때의 내가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시
간 여행이라는 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서른이 되기 전의 미숙한 엄마였던 나를 안아주며 꼭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이 있다.
“아직 너도 어른이 아닌데…. 아이가 아이를 키우려니 참으로 고생이다. 그치? 맞아, 애들이 잘못 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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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내 뜻대로 키울 줄 알았습니다
봐 걱정이 많지? 매일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 고민도 되지? 남들처럼 영어 유치원은 못 보내도 학습지
는 해야 할 것 같고 말이야. 그런데 있지. 생각보다 아이들은 엄마가 뭘 해줬었는지 잘 기억을 못하더
라. 큰맘 먹고 돈을 쓴 건데도 말이지. 그러니 아이에게 무엇을 해 줄까보다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지를 한번 고민해봐. 그래도 사는 데 별 문제 없더라고.”
마찬가지로, 당시의 나와 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다른 엄마들에게도 같은 말을 해주며 토닥여주고
싶다. 부모가 무언가를 해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꼭 이것저것 배우게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잘못 크
지 않는다고,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함께 보내는 즐거운 시간
이면 충분하다고….
시간이 흘러 어느 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동생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언니, 쭈니 논술 뭐 시킬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 마. 안 해도 되니까 그냥 쭈니랑 놀아. 그게 최고야. 나중에 정말 쭈니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때 해줘도 늦지 않아. 그러니까 차라리 나중에 써야 할 돈으로 모아둬. 뭐 많이 해
주려고 하면 지훈이한테 받은 책, 나중에 쭈니한테 또 받는다.” “ㅋㅋㅋㅋㅋㅋㅋ 알았어.”
얼마 전, 나는 지훈이가 엄마와 이모에게 똑같은 책을 선물하게 된 진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자매가
선물로 받은 그 책은
그냥 1+1 행사상품이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 비우기
가깝다고 마냥 좋지는 않다 - “안전거리를 유지하세요”
“가깝다고 마냥 좋은 건 아니란다. 지금은 멀어서 외롭겠지만 나중에는 외려 고맙다고 그럴걸. 가지를
벗고 꽃을 피울 때쯤에는 너무 가까우면 서로 다치고 상처를 입게 돼. 햇볕과 바람이 드나들고 통하려
면 사이가 적당하게 벌어져야 해. 그래야 마음껏 가지를 벌려 주렁주렁 매달 수 있거든 . 가을배추 아
주심기는 40센티미터, 토마토 옮겨심기는 50센티미터인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도 적당한 거리가 명료
하게 정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 『관계의 물리학』, 림태주
부모와 자식 사이에 적당한 거리는 얼마일까? 아이들이 훨씬 어렸을 때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생각조
차 해보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아이인지, 아이가 나인지조차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거리가 없었기 때
문이다. 생각해보니 그래야만 내 마음이 편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이의 모든 것을 챙겨줘야만 할
것 같았고, 그런 나와 거리를 두지 않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고 좋았다. 그러나 아무리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것 같던 아이들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엄마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혼자 할 수 있
는 것들이 점차 늘어갔고, 스스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의 거리두기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늘 아이의 생활을 밀착해서 보아야만 안심이 되었
고, 그러다 보니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항상 궁금해했다. 학교에서 뭘 먹었는지부터 어떤 친구를 만
났는지, 또 수업 시간에 배운 건 뭔지 등 아들의 일상을 속속들이 파악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엄마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고 있던 아들과 마찰이 생기는 날이 많아졌다. 괴로운 마음을 안고 살던 나
는 예방주사를 맞는 기분으로 각종 강연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들과 함께 경기도 교육청
학생위기 지원단 안해용 단장님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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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내 뜻대로 키울 줄 알았습니다
그날 강연의 주제는 아이들의 마음속 괴로움이 자살로 이어진다는 무거운 내용이었다. 사실 강연이 시
작될 때만 하더라도 ‘자살이랑 우리 아이들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그
러나 강연을 들으며 내 눈과 귀는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게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겠
구나.’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게 만드는 강연을 듣던 중, 갑자기 단
장님이 앞자리의 한 어머니에게 아주 가까이 얼굴을 대고 질문을 던졌다.
“어머니, 제가 이렇게 가까이 서서 보니 어떠세요?”
“부, 부담스럽네요….”
“지금 어머니들이 아이를 바라보는 거리가 이렇습니다. 너무 가까워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야 아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아이는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단장님은 나
를 비롯하여 한 대씩 얻어맞은 듯한 얼굴이 된 어머니들을 돌아보며 뒷말을 이었다.
“그럼 어머니들, 아이들과 적당한 거리는 얼마일까요? 식탁 테이블의 거리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얼굴
을 마주 보며 대화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가 바로 식탁 테이블만큼의 거리입니다. 자녀와의 거리
도 마찬가집니다. 그렇게 거리를 두시면 돼요.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거죠.”
림태주 작가의 문구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가을 배추 아주심기’가 40센티미터, ‘토마토 옮
겨심기’가 50센티미터라면 부모와 자식의 거리는 ‘식탁을 두고 마주 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거리’인
80센티미터 정도가 아닐까. 부모는 얼마든지 아이가 클 수 있는 공간을 주면서도 관찰 할 수 있다. 극
도로 밀착해서 모든 걸 지켜봐야만 한다는 내 생각은 착각이었던 것이다.
지지해 주면 스스로 자란다
폭풍 잔소리, 그리고 후회 - “현상보다는 관계죠”
“언니, 애들한테 잔소리를 안 하고 싶은데 참 마음대로 안 된다. 한두 번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말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반복하는데 어쩜 이렇게 매번 같은 잔소리를 하고 또 하게 만드는지 모르겠
어. 차라리 안 보는 게 맘 편하겠다 싶어서 못 본 척 해봐도 또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되고…. 그렇다고
그래, 차라리 잔소리 하는 입을 닫아버리자 해도 그것도 쉽지 않고
애들 행동을 대체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겠어.”
언니는 최근 자신도 비슷한 고민을 했는데 교육학을 전공한 친한 교수님께서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지금 눈에 보이며 나를 괴롭게 하는 아이의 성적이나 행동, 그리고 부족해 보이는 학습 같은 것
들은 모두 지나갈 현상에 불과해요.”
이런 눈에 보이는 현상들을 바로잡아 보겠다고 섣불리 시도하다가는 오히려 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다 정말 중요한 아이와의 관계를 해치게 된다는 게 그 이유이다. 엄마 입장에
서 중요하다 여기는 약속이나 규칙이라는 것들을 아이들은 그리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있단다. 원래 아
이와 엄마는 좋은 한 팀이었고, 아이는 엄마에게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여왔다.
그런데 엄마가 일방적으로 기준을 정하고 지킬 것을 강요하다 관계를 해치게 되면, 아이와의 좋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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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내 뜻대로 키울 줄 알았습니다
팀워크를 깨는 격이 된다는 거다. 그러니 아이가 당장은 부족해 보여도 그 관계가 나빠질 것 같은 지
점에선 꼭 입을 닫아야 한다고, 결국 아이들이 필요한 건 나중에 스스로 찾아서 하게 되더라는 게 주
된 내용이었다.
‘관계?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관계라고? 관계가 나빠지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언니와 이런저런 대화
를 더 나누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현상보다 관계’라는 말에 꽂혀 다른 소리는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
았다. 반복해서 물음표를 찍던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야 “아…!” 하는 깨달음과 함께 느낌표가
되었다.
아이가 스스로 뭐든 하고 싶고, 필요하다는 마음이 들면 엄마가 닦달하지 않아도 스스로 하게 되는 날
이 온다. 지금 아이가 하지 않는 건 아이의 입장에서 중요하지도, 하고 싶은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아
이가 잘못되거나 정말 인성이 나쁜 쓰레기가 되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과 아이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채근하면 결국 아이는 엄마 말에 귀를 닫는다는 얘기였던 거다!
이런 사소한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다 보면 결국 정말 중요한 시기에 나는 아이들과 아무것도 할 수 없
게 된다니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볼 문제인 거다.
그럼 엄마인 내가 할 것은 너무나 명확했다. 당장 보이는 것에 가려 지나치는 것들을 보기 위해서, 또
우선해야 할 관계 형성을 위해서라면 가끔은 눈을 감을 필요가 있다. 잔소리하고 싶은 입을 꾹 닫아야
만 한다. 당장 내 눈에 거슬리는 것들에 신경 쓰느라 그 뒤에 숨겨진 아이의 마음과 틀어져 관계를 형
성하지 못하는 상황이 연속되는 것에 잠시 쉼표를 찍어야 한다. 아이가 스스로 필요하면 언제든 할 거
라 믿으며 기다려 줘야 한다.
눈을 감아야만 볼 수 있는 세상: 눈을 감 그날 이후 나는 아이들의 방이 더러워도 눈을 감기로 했다.
방이 좀 더러우면 어떤가? 준비물도 좀 못 챙기면 어떤가? 스스로가 불편하면 알아서 챙기겠지! 성적
도 조금 부진하면 어떤가? 올백이 인생 백점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끼면 죽기
살기로 공부하겠지! 나는 지금 아이들의 현재가 아이들 나름에서는 최선이라 생각하며 잔소리 대신 격
려해주기로 다짐했다. ‘그래, 네가 과학을 열심히 하지 않는 이유가 있겠지.’ 하며 믿어주는 방식을 택
하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과의 관계가 깨지면 그때는 아무리 아이를 위하는 교육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도 조언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황금 같은 말이라도 이미 깨져버린 관계에서는 잔소리 그 이상으로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아이의 행동 때문에, 그런 아이에게 늘어놓게 되는 잔소리
때문에 마음이 괴로운가? 그렇다면 꼭 주문처럼 마음과 입에 이 말을 되뇌어 보자. 장담컨대, 잔소리
억제에는 제법 효과가 있는 주문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관계가 우선이다. 어떤 현상도 아이
와의 관계를 망치면서까지 개선할 건 없다.”
아이가 부모를 키우고 있었다
특별한 진학 준비 -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에요”“엄마, 나 지금 홍대 브이홀 가야 하는데, 아침에 주
기로 한 용돈 지금 받으러 가도 돼?” “갑자기 브이홀은 왜?” “보고 싶은 공연이 있어서.” “아침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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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내 뜻대로 키울 줄 알았습니다
별 얘기 없더니, 갑자기 스케줄이 생겼나 보네?” “아, 안 그래도 홍대를 너무 자주 가는 것 같아서 이
번 공연은 안 가려고 했지. 그런데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 가보려고. 예대 형들 공연은 꼭 보고 싶기
도 하고.” “그래, 그럼 가는 길에 엄마 사무실에 들렀다 가렴.”
지훈이는 그달에만 5번째로 홍대 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
며 움직여야 하는, 장장 4시간이나 소요되는 이동 거리였다. 엄마인 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헉! 소리
가 절로 나는 이동 시간이었지만 아들은 해야 할 일, 만날 사람이 있어서 가는 길이었기에 그리 대수
롭지 않은 듯 했다.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3들이 겨울방학을 보내는 곳은 윈터스쿨이나 기숙학원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중3의 겨울방학이 길다 보니 아이를 공부에 집중시켜 성적을 올릴 절호의 기회로 삼기 때
문이다. 우리 지훈이는 이런 동갑내기들과 전혀 다른 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아마 지훈이가 일반고를
택했다면, 역시 동갑내기 친구들과 같은 과정을 밟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반적인 틀을 깨고
스스로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지훈이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지훈이에게는 남들과 다른, 자
신만의 조금 특별한 고등학교 진학 준비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용돈을 받은 아들은 곧장 5번째 홍대행에 올랐고, 저녁 공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귀가 시간도 늦어졌
다. 아이를 기다리다 깜박 잠이 들었던 나는 아침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 얼른 휴대폰을 확인했다.
새벽 1시에 아이로부터 카톡 하나가 도착해 있는 것이 아닌가? 저녁 9시쯤 엄마가 보낸 카톡을 뒤늦
게 돌아오는 길에 보고 답한 메시지였다. “아들, 재밌나?” “미치도록 재밌어. 내 인생 최고의 경험!”
아들은 평소 잘 쓰지 않던 ‘미치도록’ 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지난 밤 공연에서 받은 감동과 흥분, 설
렘을 전하고 있었다. 아이의 감동 충만한 카톡을 보자 내 가슴까지 덩달아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아
들의 방문을 열어 보니 지난밤 공연의 여운을 안고 잠든 듯, 미소가 걸린 채 잠들어 있는 아들의 얼굴
이 보였다.
레슨을 그만두고 한 달 정도의 시간 동안, 아이는 혼자 연습하며 좋은 공연을 찾아 관람했던 것이 아
주 큰 공부가 되었다고 했다. 아이는 직접 공연장에 가봄으로써 영상과 달리 실황이 주는 감동을 느꼈
고, 그런 현장감을 느끼는 엄청난 경험을 하며,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시간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뿐
만 아니라 이러한 시간을 통해 ‘내 아들이 남의 아들보다 얼마나 나은가’로 비교 당하기만 했던 조바심
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비교 대상이 없어짐으로써 ‘독보적인 존재’가 된 아들은 스스로 다른 방향에서
자존감을 찾은 것이다.
‘그래, 남들과 다른 인생 시간표로 가면 어때? 그 안에서 내 아이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면, 그걸로 충분한 게 아닐까?’
네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
엄마의 오지랖 - “사회적 자본을 쌓는 중이야”
‘본캐’와 ‘부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단어들은 게임용어로, 본캐는 ‘본래 캐릭터’의 줄임말이
고, 부캐는 ‘본래 사용하는 캐릭터 외 부가적으로 사용하는 캐릭터’를 뜻한다. 사람은 소속되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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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이 달라지면 역할 역시 바뀐다. 아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몇 개의
부캐를 가지고 생활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종종 나의 부캐들이야말로 내
삶의 흔적들을 잘 보여주는 모습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런 내가 가진 여러 부캐들 중 하나는 바로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임원’이다. 사실 옛날의 나는 ‘내
아이만 잘 키우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는 소심한 엄마였다. 그러나 작은 깨달음을 시작으로 나는 지난
10년 동안 내 아이와 이웃, 그리고 이웃의 아이, 아이들의 학교, 더 나아가 학교를 포함한 큰 사회를
관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내 아이만 잘 키우려는 마음만 가지고는 내 아이가 안전할 수 없겠구나.
이웃의 아이들이 함께 잘 커야 내 아이도 안전하겠구나.’라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큰아이가 6학년 때의 일이다. 아이의 옆 반에는 학생들에게 언어폭력을 일삼는 교사가 있었다. 당시는
내 아이의 반을 맡은 교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 일을 외면했다. 나뿐만 아니라 해당 교사의 반 엄마
들 역시 ‘혹시라도 내 아이가 그 교사한테 찍히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때문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하
지 못했다. 분개하는 엄마들은 많았지만 그저 단톡방에서 불만을 나누는 수준으로 그쳤다.
다음 해, 나는 우연히 지인의 아이가 담임교사의 폭언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지
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바로 같은 교사였다. 그는 더 어린 학생들의 반을 맡고서도 변함없이 폭언을
이어가고 있었다. 담임교사의 언어폭력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는 꼬마 친구를 보며 든 생각이 있었
다. 내가 직접 나서기가 애매했더라도 ‘그때 적극적으로 그 선생님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적절하게
대응해야 했었구나….’
그리고 1년이 지나서야 문제제기를 하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결심했다. ‘잘못된 일이라고 생
각된다면 눈 감거나 물러서지 말고 그 일을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보아야겠다.’라고 말이다. 만약
내 아이가 그 꼬마 친구였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모든 사고는 ‘설마 나한테 일어나겠
어?’로부터 시작된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주변 일에 관심을 가지며 주위를 살피는 사람이 되어갔고, 오지랖의
크기도 그만큼 더 넓어져 갔다. 지나친 오지랖인지 곤란한 상황에 처한 한 학생의 일을 마치 내 아이
의 일처럼 적극적으로 도운 적이 있었다. 적지 않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했던 일이었기에 그런 나를
보던 아들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엄마, 좋은데
그 마음은 알겠는데…. 나는 좀 엄마가 과한 것 같기도 해. 내가 직접 연관된 일도 아
니고, 엄마가 직접 연관된 일도 아닌데 말이야.”
“아, 그렇게 보였구나.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아들아. 엄마가 지금 이렇게 여력이 될 때 누군
가를 돕는 건 멀리 보면 너와 지민이를 위한 일이 된다고 생각해. 엄마가 오지랖을 좀 부리면 엄마로
부터 도움 받은 사람은 마찬가지로 다른 누군가를 도울 테고, 그러다 보면 돌고 돌아서 너희가 어려움
에 처했을 때 그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너희를 키우려면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았거든. 바로 부모인 우리가 잘 살아야겠다는 거였어. 엄마가 어디선가 봤는데,
‘사회적 자본’이라는 말이 참 와닿더라. 살면서 그걸 계속 쌓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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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돈이 다는 아니긴 하지. 근데 ‘사회적 자본’은 뭐야?”
“아, 사회적 자본이 뭐냐면, 사람들 사이에 신뢰나 유대감 같은 눈에 안 보이는 자산을 말하는 거야.
좁게 말하면 인맥 같은 건데….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 사람을 인정해주고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마음
이라고 하더라. 이 사회적 자본은 하루아침에 쌓이는 게 아니라 남을 도와주거나 약속을 잘 지키는 것
처럼 차근차근 시간을 들이면 차곡차곡 쌓이는 거래. 그렇게 사회적 자본이 쌓이고 넘칠 정도가 되면
너희에게도 좋은 영향이 가지 않을까 생각한 거야. 부모가 노력하는 만큼 너희를 보호해줄 사람이 늘
어난다는 뜻이 되니까.
때로는 엄마가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좀 오지랖 넓어 보이는 게 너희 눈에는 부담스러워 보일 수 있
어. 인정해.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그러는 게 아니라 나름의 뜻이 있어서 하는 일이란 얘기지. 앞으로
엄마는 오지랖이 좀 넓을 편일 텐데 그것 또한 엄마의 일부니까 인정해주길 바라.”
나 또한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 하나 추스르며 살기에도 벅차다고 생
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엄마로 살아가게 되면서 아이로 인해 여러 경험이 쌓이고, 그 안에서 치열
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주변을 관찰하다 보니 차츰 변하게 된 것이다.
현재 내 마음 속에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자리잡고 있다. 그 단어는 바로 ‘공동체, 재미, 의미, 연결, 원
칙’이다.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야 하기에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믿는다. 또 나를 움
직이는 일에는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야 하고, 또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는 열쇠는 서로가 합의된 ‘원칙’이다.
시간이 지나며 또 어떤 새로운 키워드가 추가될지 모르지만 지금 부모로서,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서 나를 움직이게 하는 핵심 키워드들은 바로 위 다섯 가지 단어들이다. 부모가 자신만의 원칙과 소신
을 가지고 아이를 믿어주면 아이들은 그저 잘 자라게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묻고 싶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을, 누군가의 부모인 당신에게. 당신을 움직이는 키워드는 무엇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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