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키호테
스스로 중세기의 기사가 되어 세상의 부정을 바로잡
고 학대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편력의 길에 나
선 돈 키호테와, 현실주의자이며 충직한 종자 산초
판사가 벌이는 기상 천외한 이야기.
세르반테스 지음
돈 키호테
세르반테스 지음
▣ 저자 세르반테스
1547년 9월 29일,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Miguel de Cervantes Saavedra)가 알갈라 데 에나레
스에서 태어났다. 세르반테스의 유년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고, 다만 그가 코르도바,
세비야에 있었던 예수회파의 학교나 살라망카 대학에서 공부하였으리라는 설이 있을 뿐이지만, 아마
도 정규 교육은 거의 받지 못한 듯하다. 그가 21세 되던 해에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왕비인 이사
벨 데 발로이스가 죽자 로페스 데 오요스가 왕비를 추모하는 작품집을 준비하였고, 이 작품집에 세르
반테스의 시가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이듬해 세르반테스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고전 라틴어와 이탈리
아어를 배우고 르네상스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는데 이 시기는 세르반테스의 작품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1570년 이탈리아의 나폴리에 주둔하고 있던 스페인 보병대에 입대, 레판토 해전에 범선 마르케사 호
를 타고 참전하여 가슴과 팔에 부상을 입어 평생 왼팔을 못 쓰게 되는 불구가 된다. 이 때문에 레판
토의 외팔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귀국길에 터키 해적의 습격으로 포로가 되어 5년 동안의 포로생
활을 거친 후 기적적으로 탈출하여 각지를 떠돌다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다시 군대에 들어간 그는 군
인으로서의 생활이 어려워지자 1583년 마드리드의 톨레도로 돌아와 창작에 몰두하기로 마음먹고 첫
번째 소설인 『라 갈라테아』를 비롯해 몇 편의 희극을 집필한다. 그러나 특별한 반응을 얻지 못하자
다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하여 안달루시아의 세비야로 이주한 후 무적함대에 밀 보급을 위한 담당관으
로 근무한다.
1597년 세르반테스는 체납 세금 징수원으로 일하던 중 세금으로 징수한 돈을 예금해 두었던 세비야의
은행가가 파산해 도망을 치는 바람에 9월부터 12월까지 감옥살이를 하는데 이때 세비야의 감옥에서
불후의 명작인 『돈 키호테』1부를 구상하게 된다. 1605년 마드리드의 후안 데 라 쿠에스타 출판사에
서 『돈 키호테』1부가 출판된다. 이 작품의 원제는 『영민한 신사, 라 만차의 돈 키호테』이다. 당시
로서는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어 그 해에만도 6판까지 재판되었으나 세르반테스는 작품의 판권을 출판
사에 넘겨주었기 때문에 아무런 경제적 이득도 얻지 못한다.
1613년 12편의 중, 단편소설을 모은 『모범 소설집』을 출판한다. 이해 여름에 타라고나에서 알론소
페르난테스 아베야네다라는 사람이 쓴 위작 『돈 키호테』가 나타나게 된다. 이때는 세르반테스가
『돈 키호테』2부를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이 위작이 계기가 되어 완성을 서둘러 1616년 69세가 되던
해에 『돈 키호테』 2부가 출판된다. 그해 4월 27일 병으로 쓰러진 세르반테스는 그의 유작인 『페르
실레스와 시히스문다의 고난』의 헌사의 마지막 부분을 완성한 후 4월 23일 평온하게 세상을 떠난다.
그의 유언에 따라서 우미아델로 가에 있는 삼위일체회의 수도원에 묻힌 후 다시 칸타나라 가의 수도
원으로 이장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의 묘와 뒤섞이는 바람에 불행하게도 오늘날 그 정확
한 소재가 알려져 있지 않다.
▣ S ho rt S umma ry
라 만차의 어느 마을에 사는 알론소 키하노라는 50세 된 노신사가, 밤낮 기사도 이야기에 몰두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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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다가 정신 이상을 일으킨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중세기의 편력(遍歷) 기사가 되어 세상의 부정을 바
로잡고 학대당하는 사람들을 돕고자 돈 키호테 데 라 만차라고 자칭하고, 갑옷을 입고 로시난테라는
앙상한 말을 타고 편력의 길에 오른다.
주위에 사는 산초 판사라는 농부를 종자로 거느린 돈 키호테는 모든 것을 기사도 이야기식으로 해석
하고 그 이상에 따라 살아가려 한다. 그러나 산초는 주인과는 반대로, 어떤 경우에도 현실과의 타협을
잊지 않으며, 게으르지만 주인에게 충실하다. 돈 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으로 생각하고, 양떼를 교전 중
인 군대로 생각하며, 포도주가 든 가죽 주머니를 상대로 격투를 벌인다. 그러다가 돈 키호테는, 그를
고향으로 데려오려고 헌신적으로 노력하던 신부와 이발사에 의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한 달
후 돈 키호테는 다시 편력의 길에 나서는데⋯.
▣ 차례
제1부
제1장~제52장
제2부
제1장~제7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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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돈 키호테
세르반테스 지음
제1부
라만차의 이름 높은 기사 돈 키호테의 사람됨과 일상생활에 관해 이야기하다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라 만차라고 하는 한 마을에 한 귀족이 살고 있었던 일은 그리 오래 된
일은 아니었다. 이 신사는 나이가 쉰 살 정도이고, 단단하고 마른 체격에 얼굴 역시 볼품 없이 야위었
는데, 잠이 없어 아침 일찍 일어났으며, 사냥을 대단히 좋아하였다. 이 신사는 무료할 때면 - 하기야
그는 한 해의 대부분이 할 일이 따로 없는 상태였지만 - 무용담이 쓰여진 책을 탐독하는 것이었다.
무용담에 열렬하게 빠져든 그는 급기야는 그런 책들을 사들이기 위해 그의 많은 땅을 팔아 치웠으며,
입수할 수 있는 한 계속해서 책을 사다 집에다 쌓아 놓았다.
그 중에서도 고명한 실바의 펠리 시아노의 작품들을 가장 좋아했다. 특히 사랑의 속삭임이나 결투를
도전하는 대목에 이르면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가여운 기사는 마침내 그런 류의 책을 탐독하기 위
해 뜬 눈으로 밤을 새우는 바람에 머리가 붕 떠버려 제 정신을 잃게 되었다. 결국 이성이 마비된 그
는 해괴망측한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자신이 편력 기사가 되어 갑옷을 입고 말을 타고
무기를 들고 모험을 찾아 세상을 누비며 책에서 배운 온갖 이야기를 스스로 실천해 보고자 하였다.
이 가련한 남자는 이미 자신의 무술로 적어도 트라피손다 제국의 제왕이 된 기분이었다.
녹이 슨 채 몇 백 년 동안 구석에 처박혀 있던 갑옷을 손질하고 나서 말라빠져 피골이 상접한 자신의
말을 보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알렉산더의 부케페르스나 엘시드 장군의 명마 바비에카 보다도 더 훌
륭해보였다. 그는 유명한 기사의 말에 어울리는 이름을 짓기 위하여 며칠간 고심한 끝에 드디어 로시
난테라는 이름을 생각해내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고 부르기 쉬운 로신
(말라빠진 말이란 뜻)이 되었지만, 전에 일개 평범한 로신이었을 때의 처지까지 포함하는 의미심장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꼬박 여드레 만에 자신의 이름도 돈 키호테 데 라 만차라고 하였다. 이
름을 짓고 나니 남은 것은 열렬한 사랑을 바칠 귀부인을 찾는 일이었다. 연인이 없는 편력 기사는 잎
이나 나무가 없는 나무요, 영혼이 없는 육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사모하는 처녀에게
부인이란 칭호를 붙여도 좋을 것 같아 그녀의 이름을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고 지었다.
이렇게 준비가 완료되자 자신이 기사의 칭호를 받은 적이 없음을 깨닫고 그가 읽은 많은 책에 나오는
기사들이 하던 것을 흉내내어, 길에서 만나는 기사로부터 기사의 칭호를 받으리라 마음먹었다. 길을
떠나 주막에 머물며 이런 생각으로 초조해진 돈 키호테는 주막의 주인을 데리고 마굿간으로 들어가
다짜고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청했다. 교활한 주막집 주인은 이 손님이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짐작하고 실컷 웃어볼 속셈으로 그의 기분을 맞추어 주기로 작정했다. 주인에게 실컷 농락을 당한 후
돈 키호테는 전대미문의 벼락치기 의식을 끝내고 곧 모험을 떠났다. 그는 노자와 속옷을 준비할 하인
을 구하기 위하여 이웃에 사는 가난하고 자식이 많은 농부를 데리고 가고자 고향으로 말을 몰았다.
얼마 후 길이 네 갈래로 갈라진 곳에 이르자 전국을 편력하는 기사들이 네거리에 이르면 대개 어느
길로 갈 것인가를 망설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선배들의 본을 따르려고 잠시 그곳에 서서 로시
난테의 고삐를 놓아주고 자기의 의사를 모두 말에게 맡기기로 했다. 말은 마굿간으로 돌아가려는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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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초의 뜻을 바꾸지 않고 그 길을 따라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2마일쯤 갔을 때, 돈 키호테는 비단을 사
러 가는 톨레도의 상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책에서 읽은 모든 사건들을 그대로 모방
할 기회를 노리던 그는 새로운 모험거리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미 그들을 편력 기사라고
단정짓고 싸움을 걸었다. 상인들은 기이한 몰골과 풍채, 말투가 미친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돈 키호테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자 상인 가운데 젊은이들이 상대하여 그를 흠씬 두들겨준 후 길을
떠났다. 돈 키호테는 다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둥댔지만, 반주검이 되도록 맞아 도저히 일어
날 수가 없었다.
무용담 책이 수난을 당하다
운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여느 때와 같은 방법으로 자신이 읽었던 무용담 가운데서
한 구절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샤를로트가 발도비노스의 아내를 짝사랑하여 산 속에서 싸우다 중상을
입고 쓰러졌을 때 숙부인 만투바 후작이 복수를 맹세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이것이 자기의 현재 상
태와 꼭 일치한다고 생각하고 데굴데굴 구르며 부상당한 그 기사처럼 아주 비통하게 로망스를 불렀
다. 오, 내님은 어디 계시기에 나의 고통을 모르신단 말인가? 모르시는 건가 아니면 마음이 떠나신
건가?
이때 한 동네에 사는 한 농부가 그를 발견했다. 돈 키호테는 그가 자신의 외삼촌 만투바 후작이라고
단정하고 로망스로 응답하였다. 즉, 자기 아내와 엘 엠페란테의 아들과 불륜의 관계에 얽혀 있는 자신
의 기박한 팔자를 소상히 이야기한 것이다. 농부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듣고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가
누군가를 알아보고는 자신이 로드리고 데 나르바에스나 만투바 후작이 아니라 한 동네에 사는 페드로
알론소라고 일러주었다. 알론소는 돈 키호테의 처참한 몰골이 창피하여 어두워지기를 기다린 후 그를
집으로 인도했다.
부상이 회복되고 그럭저럭 마을에서 소동이 가라앉을 무렵 돈 키호테는 좀 모자라는 소작인 산초 판
사를 감언이설로 꾀어내어 종자로 삼았다. 돈 키호테는 산초의 당나귀를 보자 편력기사가 당나귀를
탄 종자를 거느렸다는 기억이 떠오르지 않아 고심하다가 차후 무례한 기사를 만나면 그의 말을 빼앗
아 주리라고 마음먹었다. 산초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양식과 기타 필요한 필수품들을 챙기고 마누라
와 자식에게 작별인사도 없이 당나귀를 타고 길을 나섰다. 산초 판사는 전대와 술 부대를 실은 당나
귀 위에 몸을 싣고 주인이 약속한 섬의 총독이 되려는 열망에 이끌려 마치 족장이나 되는 양 거들먹
거리며 가고 있었다.
돈 키호테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무시무시한 풍차의 모험에서 성공을 거두다
얼마 후 두 사람은 들판에 서 있는 3, 40개의 무시무시한 풍차를 보게 되었다. 돈 키호테는 자신이 팔
길이가 6마일이나 되는 30여 명의 무례한 거인들을 혼내줄 때가 되었다고 호기롭게 외쳤다. 그러자
판사가 그것은 풍차라며 그를 만류하였지만 돈 키호테는 싸움 구경이나 잘 하라고 판사를 나무랐다.
그는 방패로 몸을 가리고 옆구리에 창을 끼고 로시난테의 말굽이 달릴 수 있는 최대의 속력으로 돌격
하여 정면에 있는 첫 풍차를 냅다 질러댔다. 그가 일격을 가하자, 세찬 바람을 받아 무서운 힘으로 돌
아가는 풍차의 날개를 찌른 창은 박살이 나고, 동시에 사람과 말도 휘말려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떨
어지면서 들판을 굴렀다. 판사가 달려가 보니 로시난테와 함께 호된 타격을 받은 주인은 운신도 못할
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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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풍차에 달려든 어리석음을 판사가 일러주자 돈 키호테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닥쳐라, 산초! 모름지기
기사의 일이란 귀신도 예측치 못할 만큼 변화무쌍한 것이 아니냐. 내 짐작컨대, 내 방과 책들을 훔쳐
간 저 현자 프레스톤이 내가 그놈들을 정복하는 명예를 미리 가로채려는 속셈으로 거인들을 풍차로
둔갑시킨 거야. 그놈이 내게 품은 적의는 보통 이 정도야. 그러나 결국 그놈의 사악한 계략도 이 정의
의 칼 앞에서는 맥을 못 추고 말 거다.
아이구, 나리 마음대로 생각하십쇼. 산초는 그를 부축해 등
뼈가 반쯤 부러진 것처럼 보이는 로시난테 등에 올려주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겪은 모험을 이야기하
며 길을 떠났다.
돈 키호테가 성이라고 단정한 주막에서 소동이 벌어지다
큰 길로 나서자 주막이 한 채 눈에 띄었다. 돈 키호테는 그것이 성이라고 생각하고는 매우 기뻐했다.
인정이 많은 주막집 여주인은 딸과 가정부를 시켜 돈 키호테의 상처를 돌보게 하고 잠자리도 마련해
주었다. 돈 키호테가 머물게 된 다락방에는 이미 말꾼 한사람이 드러누워 있었는데 그는 가정부와 밤
에 만나 서로 즐기기로 언약을 하고 어두워지기만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줄 모르는 돈 키호
테는 갈비뼈가 아파 잠을 이루지 못하고 토끼처럼 눈을 말똥말똥 굴리고 있었다. 이 무덤 같은 적막
과 어둠이 우리 기사에게 그의 정신을 이상하게 만든 책에서 말하는 천 만 가지의 사건들에 대한 공
상을 불러 일으켰다. 그가 묵고 있는 주막이 온통 성으로 보였고 주막집 딸은 성주의 따님으로 자기
의 의젓한 풍모에 반해 그날 밤 부모 몰래 그와 운우지정을 나누기 위해 오기로 했다는 식으로 공상
을 마구 비약시켰다.
이런 망상이 진행되는 동안 가정부가 말꾼을 만나러 속옷 차림으로 다락방으로 들어왔다. 돈 키호테
는 갈빗대가 아픈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잡아당겨 자기의 침상에 앉혔다. 마침내 돈 키호테는
자기가 책에서 읽은 장면을 그대로 생각해 냈으니, 어느 공주님이 사모의 정을 이기지 못해 중상 입
은 기사를 만나기 위해 온 정성을 기울여 몸단장을 하고 나타난 것이라고 상상하였다. 그는 계집을
끌어안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말꾼은 돈 키호테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괘씸한 생각이
들어 한창 열을 내고 있는 기사님의 턱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어찌나 지독하게 내리쳤는지 그만 입
언저리가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한밤중에 때아닌 소동이 벌어지자 주막에 묵고 있던 경비대 보안관이 달려와 얻어터져 침상에 나가떨
어진 돈 키호테를 붙들었다. 그가 오랏줄을 받으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꿈쩍도 하지 않자 이미 죽은
사람으로 단정했다. 보안관은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살인 혐의를 두고 주막집 문을 모두 닫을
것을 명령했다. 그때 정신을 차린 돈 키호테가 산초 판사에게 조금 전 성주님의 따님이 자신을 찾아
와 사랑을 애걸하였던 일과 뒤이어 이 성의 무어인 4백 명이 달려들어 한바탕 격투를 벌인 것을 설명
해주었다. 그러자 산초 판사는 작은 소동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격분한 돈 키호테가 판사에게 소
리를 버럭 지르자 보안관이 달려들었다. 돈 키호테가 달려온 보안관에게 편력 기사에게 예의를 차리
라고 경고하자 보안관은 처참한 몰골의 사나이로부터 조롱당하는 것에 분개하여 돈 키호테의 머리를
있는 힘을 다해 후려갈겼다. 그러자 산초 판사도 보안관을 또 다른 무어인이라고 단정하고 이 성에는
이미 마법이 걸려있다는 돈 키호테의 말을 인정했다. 두 사람의 수작을 지켜보던 보안관은 그들이 이
미 정신이 이상해진 사람이라고 단정했다. 그들이 주막을 떠나자 주인은 황급히 대문을 잠그려고 했
다. 그러자 주변의 사람들이 주인을 말렸다. 돈 키호테가 비록 원탁의 기사라고 하더라도 별 능력이
없는 기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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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강제로 끌려가던 많은 불행한 사람들을 본 돈 키호테가 그들을 모두 풀어주다
돈 키호테가 산초 판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계속 길을 가다가 12명쯤 되는 사람들이 굵은 쇠사슬
로 목이 묶이고 저마다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돈 키호테가 호송병에게 묻자
그들은 왕에게 죄를 지어서 강제 노동형을 받고 왕께 봉사하기 위해 갤리 선으로 가는 길이라고 설명
했다. 돈 키호테는 지금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할 때라고 여겼다. 폭력을 일소하고 불행한 자를 돌보아
주는 일은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자 산초 판사가 그들은 죄수이니 벌을 받는 것이라
고 말렸지만 돈 키호테는 듣지 않았다.
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비록 죄를 지어 벌을 받고 있지만, 여러분이 받으려는 형벌은 기꺼운 것이
아니고 또 타의에 의해서 끌려간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소이다. 따라서 하늘이 내게 내리신 강한 자
에 의해 핍박받는 약한 자들을 도우라는 사명을 기사도의 법도에 따라 준수하고자 나의 피는 이내 끓
고 있소이다. 하느님과 대자연이 인간을 태어나게 할 때 자유롭게 해주었는데도 노예로 만든다는 것
은 가혹한 일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견해입니다. 호송관 여러분! 내가 이처럼 좋은 말로 부탁할 때
들어 주면 혹 고맙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할 시에는 이 창과 칼이 내 팔 힘의 도
움을 받아 강제로라도 단연코 내 뜻을 이루게 해주고야 말 것이오! 돈 키호테의 추상같은 호령이 떨
어지자 호송병 하나가 코웃음을 쳤다. 그 말에 돈 키호테는 화가 치밀어 호송병을 일격에 쓰러트렸다.
호송병들은 뜻밖의 날벼락에 잠시 아연했으나 곧 정신을 가다듬고 돈 키호테에게 달려들었다.
만약 이때 죄수들이 도망칠 기회라 보고 한 줄로 묶여있는 쇠사슬을 풀려고 법석을 떨지 않았던들 돈
키호테는 큰 변을 당했을 것이다. 호송병들은 쇠사슬을 풀려는 죄수들을 감시하랴, 자기들에게 달려드
는 돈 키호테를 물리치랴,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침내 죄수들이 쇠사슬을 풀고 달려들자
호송병들은 달아나지 않을 수 없었다. 달아난 자들이 관청에 알리지 않을까 산초는 몹시 걱정이 되었
다. 그 말을 들은 돈 키호테는 일리가 있다고 인정하고 죄수들을 모아 놓고 장황한 웅변을 늘어놓았
다.
천성이 착한 자는 받은 은혜를 고마워할 줄 아는 법이오. 배은망덕이야말로 하느님께 짓는 가장 큰
죄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미 여러분들도 나로부터 은혜를 받았다는 명백한 사실을 체험으
로 알고 있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은혜를 갚는다는 뜻에서 내가 여러분들의 목에서 풀어 준 그 쇠사
슬을 지고 엘 토보소에 가달라는 것이 나의 소청이오, 둘시네아 델 토보소 아가씨 앞에 나아가 우수
에 찬 얼굴의 기사가 보내서 왔다고 하고, 여러분이 원하던 자유를 얻기까지 이 위대한 모험의 자초
지종을 자세히 이야기해 올리라는 것이오. 이 일만 끝내면 여러분들은 어디로든 가고 싶은 데로 가도
좋소.
그러자 한 죄수가 나섰다. 아무리 우리 구세주의 명령이지만 그것을 지킬 수는 없소. 그러니 귀공께
서 해달라는 일은 아무래도 어렵겠습니다. 지금 당장 쇠사슬을 지고 엘 토보소로 가라는 것은 고기에
게 고기가 끓고 있는 이집트 찌개를 생각하라는 것이나 매한가지죠. 아직 오전 10시가 채 안 되었는
데도 시간을 밤으로 돌리라는 것이고, 느릅나무에서 배를 따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돈 키호테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달려들자, 돈 키호테가 자기들을 엉뚱하게
쇠사슬에서 풀어 준 경위로 보아 정신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아챈 죄수들이 모두들 돈 키호테에게 돌
멩이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돈 키호테는 방패로 막기에도 힘이 드는데, 로시난테 녀석마저 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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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박차를 가해도 구리쇠로 만든 말인지 통 움직이지 않았다. 셀 수 없이 많은 돌멩이를 맞은 돈 키호테
는 더 이상 막을 힘이 없어 땅바닥에서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러자 죄수 한 녀석이 그의 머리에서 대
야를 벗겨내 그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친 뒤 대야를 땅바닥에 몇 번 내려치자 그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갑옷에 걸친 웃옷만 거치적거리지 않았더라면 아랫도리까지 벗겨냈을 것이다. 산초도
웃옷을 뺏기고 거의 알몸이 되다시피 했다.
그들은 이 전투에서 빼앗은 전리품들을 골고루 나누어 갖고는 쇠사슬을 지고 둘시네아 아가씨에게 문
안드리러 가는 것보다 당장 저 무서운 경비병들을 피하는 데 더 신경을 쓰면서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
다. 남아 있는 건 오로지 당나귀와 로시난테, 산초와 돈 키호테뿐이었다. 당나귀는 머리를 숙인 채 생
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 아직도 그의 귀에 돌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가
끔 귀를 흔들어댔다. 로시난테는 자기 주인 곁에 쓰러져 있었다. 이 녀석도 돌멩이에 맞아 땅에 뻗어
버리고 만 것이다. 산초는 벌거숭이가 되어서도 경비병들이 지금 당장 들이닥치지 않을까 그게 더 염
려스러워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돈 키호테는 자기가 구해 준 자들한테서 이런 꼴을 당하고 보니 끓어
오르는 비통함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돈 키호테가 산초에게 사람 같지 않은 놈들을 도와주는 것은
바다에 물 붓기와 같다고 한탄하자, 산초는 경비원들이 기사도를 개 코로 안다고 대꾸했다. 돈 키호테
는 아무 말 없이 말 위에 올랐다. 산초도 당나귀를 타고 앞서 갔다.
유명한 돈 키호테가 시에라 모레나 산악지대에서 신기한 모험을 하다
경비원의 추격을 두려워한 산초는 산 속 중간쯤으로 숨어들어 며칠을 지낼 요량으로 바위틈에 두 사
람의 잠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나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인지, 쇠사슬에서 풀려나온 유명한 사기꾼이
자 도둑놈인 히네스 데 파사몬테도 경비원의 추격을 피해 이 산 속으로 숨어들게 되었다. 은혜도 모
르고 심보도 고약한 히네스가 산초의 당나귀를 훔치기로 한 것은 운명의 인도였다. 물론 히네스가 로
시난테를 거들떠보지 않은 것은 팔거나 저당 잡히기에 마땅치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산초의 당
날이 샜다. 돈 키호테는 당나귀가 없어진 것을 알아챈 산초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산초가 울음을
그친 것은 돈 키호테가 집에 있는 당나귀 다섯 마리 가운데 세 마리를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였다.
돈 키호테는 산초에게 당나귀 세 마리의 양도 증서를 써주고 고향으로 돌아가 둘시네아 아가씨에게
자신의 무용담을 전해줄 것을 명령했다. 산초는 고향으로 가던 중 주막에서 고향의 신부와 이발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돈 키호테가 미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의 해괴망측한 광증을 고치기 위하
여 그를 고향으로 데리고 가기로 작정했다. 그 이튿날, 일행은 산초가 주인과 작별할 때 나중에 길을
잃지 않으려고 나뭇가지로 표시해 놓았던 장소에 이르렀다. 거기에서 친구 페르난도의 배신으로 사랑
하는 애인 루신다를 잃고 슬픔과 비탄에 빠져 숲 속으로 몸을 숨긴 안달루시아의 부잣집 가문의 아들
이었던 카르데니오를 만나 그와 함께 돈 키호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얼마 후 일행은 시냇가에서
아름다운 도로테아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 역시 카르데니오의 친구 페르난도에게 배신을
당하여 절망 끝에 숲 속으로 숨어든 처지였다. 도로테아의 아름다움이 돈 키호테를 고향으로 데리고
가는 데 큰 역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신부는 그녀를 편력 기사의 도움을 구하는 불행한 아가씨로
변장시키고 미코미콘(에티오피아) 대제국의 왕통을 이을 미코미코나 공주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들이 2마일 남짓 갔을 때 돈 키호테를 발견하고 도로테아가 무릎을 꿇고 도움을 구했다. 돈 키호테
는 마지못한 듯 그녀의 청을 듣기로 하고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나의 왕이나 나의 조국이나 내 마
음의 열쇠를 쥐고 있는 아가씨의 체면을 깎지 않는 일이라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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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께서는 소녀가 가자는 대
돈 키호테
로 소녀와 같이 가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약속하실 일은 신과 인간의 법도를 어기고
소녀의 왕국을 빼앗은 침략자의 원수를 갚아 주시기까지는 어떤 다른 모험이나 그 누구의 청에도 일
체 말려들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돈 키호테는 선선히 약속했다. 미코미콘 왕국으로 가려면 자신의 마을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안 돈
키호테는 길을 나서며 공주의 절박한 사정을 물었다. 도로테아가 입을 열려고 하자 카르데니오와 이
발사는 도대체 이 영리한 아가씨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갈지 몹시 궁금했다. 자기 주인과
마찬가지로 도로테아에게 반해 버린 산초 역시 그녀의 곁으로 다가앉았다.
그녀는 왕국과 인접한 섬나라 군주 찡그린 눈의 판다필란도라는 거인을 쳐부셔야 자신이 멸망과 불
행으로부터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공주의 아버지인 왕은 거인의 목을 벤 기사가 청혼하면 정
식 아내가 되고 자신의 몸과 더불어 통치도 맡기라는 유서를 남겼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그러자 돈
키호테는 자신이 다스릴 왕국과 결혼할 공주가 생겼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곁에 있던 산초도 신이 나
두 번이나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이때 길 저쪽에서 당나귀를 타고 오는 히네스 데 파사몬테를 만났다.
히네스가 놀라 허겁지겁 달아나는 바람에 산초는 자신의 당나귀를 되찾을 수 있어서 무척 기뻤다. 게
다가 돈 키호테가 이것 때문에 당나귀 세 마리에 대한 양도증서가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다짐하
자 기쁨은 더했다.
돈 키호테가 포도주 담은 가죽 부대와 치열한 결투를 벌이다
일행이 산초 판사가 두려워하는 주막집에 닿은 것은 그 이튿날이었다. 주막집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도로테아의 미모와, 더욱이 카르데니오 총각의 늠름한 풍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식사가 끝난
후 주막집 주인 내외와 딸, 마리토르네스, 그 외 손님들이 모여앉아 돈 키호테의 미친 증세와 그를 찾
아내게 된 경위를 경청했다. 그때 산초가 기절초풍한 듯 후다닥 튀어나오면서 큰 소리를 질렀다.
여러분, 빨리 오세요! 우리 나리를 구해주세요! 지금 우리 주인님은 끔찍한 싸움을 하고 계십니다요.
지금 미코미코나 공주님의 원수인 판다필란도 거인을 칼로 치셨어요. 마치 무 베듯 베어 버리셨다니
까요!
돈 키호테는 해괴망측한 옷차림으로 칼을 빼어들고 신나게 사방을 돌아가고 있는 중인데, 말하는 소
리를 들어보면 진짜 거인과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한 가지 다행한 일은 눈을 뜨고 있지 않다는 것
이며, 다시 말하면 자면서, 즉 꿈속에서 거인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돈 키호테는 자기가 해치우려는
모험에 대한 상상이 하도 강렬해서 이미 미코미콘 왕국에 도착하여 그의 적과 접전을 하는 꿈을 꾸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술 부대를 거인으로 생각하고 어떻게나 난도질을 했는지 그만 온 방이 붉은 포
도주로 흥건히 젖게 되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주막집 주인은 돈 키호테를 마구 두들겨 팼다. 만약
카르데니오와 신부가 뜯어말리지 않았다면 거인과의 싸움은 주막집 주인이 끝낼 뻔했다. 그렇지만 이
한심한 돈 키호테는 아직도 꿈속을 헤매고 있어서, 이발사가 물 한 동이를 그의 정수리에 붓지 않았
다면 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서도 자기가 지금 어떤 상황에 놓
여 있는지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주막집에서 사랑하는 연인들이 짝을 만나다
바로 이때, 훌륭한 차림을 한 사람들이 주막에 들어왔다. 그들은 돈 페르난도와 루신다였다. 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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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알아본 카르데니오와 도로테아, 그리고 페르난도와 루신다는 한 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윽고 도로테아가 페르난도에게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애원하며 매달렸고, 카르데니오와 페
르난도가 결투를 벌이려하자 루신다는 카르데니오의 품으로 쓰러졌다. 카르데니오를 향한 루신다의
일편단심과 도로테아가 자신에게 아직도 변치 않는 사랑을 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페르난도는 이것
이 결국 지상의 온갖 불행을 청산하고 천국에 들어온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도로테아에게 변
치 않을 것을 약속했다. 돈 페르난도는 하나님이 자신을 건져 주신 은총에 감사드렸고 주막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함께 기뻐했다. 그러나 산초의 마음은 아팠다. 그토록 믿었던 총독에 대한 꿈이 물거품
이 되었고, 아름다운 미코미코나 공주는 도로테아로 변신했고, 거인도 돈 페르난도로 바뀐 데다가 그
의 주인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태평스럽게 꿈나라를 헤매고 있으니 말이다.
신부는 도로테아 아가씨의 일이 잘 되는 바람에 돈 키호테를 고향으로 데리고 갈 계획을 추진할 수
없게 되어 다른 계책을 마련하고자 부심했다. 그러자 카르데니오가 끝장을 보자고 건의했고, 루신다는
루신다 대로 도로테아 역을 대신 맡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돈 페르난도가 정신 나간 기사님의 병을
고치는 데 팔을 걷고 나서겠다고 하여 도로테아가 그 역을 계속 맡기로 했다.
경비원들이 눈부신 활약을 하고 돈 키호테 기사는 복면의 사나이들에게 묶이다
산초가 두려워하던 일이 닥쳤다. 지방 경비대가 체포 영장을 갖고 주막에 들이닥친 것이다. 신부는 경
비원들에게 돈 키호테의 언동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정신이 올바른 사람이 아니니 체포해보았
자 미친 사람으로 취급되어 즉시 석방될 것이라고 열심히 설득했다. 그러자 경비원들도 신부의 말을
못 알아듣는 숙맥이 아닌 데다가 또 돈 키호테의 광증도 대단했기 때문에 그냥 참기로 했다.
돈 키호테는 경비대가 물러가자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싸움에서 무사히 벗어나게 되었음을 깨닫고
여행을 계속하여 모험을 빨리 완수하고 싶었다. 아름다우신 공주님. 우리가 이 성에 머물러 있는 것
은 백해무익한 일입니다. 거인놈이 의문스럽고 바지런한 염탐꾼을 시켜 제가 그놈을 쳐부수러 간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면 성이나 요새 안에서 방비를 튼튼히 할 게 뻔하니 부지런히 그 계획을 막아야
합니다. 그러니 곧 출발하시는 게 좋을까 하나이다.
이제는 떠날 때도 됐다 싶어 일행이 결정짓기를 미코미나 공주를 구한다는 구실 하에 도로테아와 돈
페르난도가 돈 키호테와 같이 그의 고향으로 가려던 애초의 계획을 취소하기로 하고 신부와 이발사만
돈 키호테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의 광증을 고쳐주기로 했다. 이렇게 합의가 끝나자 마침 그
곳을 지나던 소달구지에 돈 키호테를 싣고 가기로 했다. 쿨쿨 자고 있던 돈 키호테를 꽁꽁 묶어 우리
안에 집어넣었다. 아무리 발광해보아도 요지부동이었다. 돈 키호테는 필시 자신이 마술에 걸렸다고 여
겼다.
제2부
신부와 이발사가 돈 키호테의 병세를 살피다
돈 키호테가 지난 일을 새삼스럽게 떠올리지 않도록 신부와 이발사는 거의 한 달이 되어서야 문병을
했다. 긴 시간 대화를 나눈 후 그들은 돈 키호테가 완쾌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들이 문병을 마치고 돌
아가자 산초 판사가 왔다. 돈 키호테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어떤 평판을 하는가 물었다. 판사가
자신을 나무라지 않는다면 사실대로 말하겠다고 하자 돈 키호테는 나무라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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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리를 완전히 돈 사람으로 여기며 소인에 대해서도 바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귀족님네들은 나리가
귀족 축에도 못 끼면서 스스로 돈이라는 칭호를 붙이고는 언감생심 기사가 될 꿈을 꾸고 있다는 거예
요. 더구나 나리에 대한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는 거예요.
그러자 돈 키호테는 그의 이야기를 쓴 작자가 바로 마법을 쓰는 현자임에 틀림없다고 단정했다. 그는
3, 4일 안에 다시 길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한편 산초는 자신이 돈 키호테님을 모시고 다시 모험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을 아내에게 설명하며, 얼마 안 있어 한 섬의 총독이 될 것이라고 자랑을 늘어놓
았다.
산초는 돈 키호테를 섬기는 동안 보수를 딱 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돈 키호테는 어떤 기사도
책에서 보수를 주었다는 대목이 눈곱만큼이라도 나온 것을 본 적이 없으므로 줄 수 없고, 묵묵히 충
성하면 생각지도 않은 때에 섬이나 비슷한 것을 받게 되거나, 직위나 감투를 받게 된다고 일러주었다.
산초는 마음의 날개가 뚝 부러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산초는 생각 끝에 돈 키호테가 유언장을
다시 정리하여 줄 것을 요구고 돈 키호테는 산초의 요구에 응했다.
돈 키호테가 사랑하는 둘시네아 델 토보소를 만나러 가다
돈 키호테는 모험에 들어서기 전에 엘 토보소에 가서 둘시네아 아가씨의 축복과 허락을 받을 결심을
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 편력 기사들이 가장 용맹스러워질 수 있는 방법은 사랑하는 부인들로부
터 끔찍한 위함을 받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산초가 지나가는 촌부에게 무릎을 꿇고 공주님이라
고 외치자 얼떨결에 산초를 따라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은 돈 키호테는 아무리 보아도 둘시네아가 시
골 촌부에 불과한 여자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돈 키호테가 둘시네아의 얼굴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
고 있는 산초는 막무가내로 공주님 운운하며 떠들어댔다. 돈 키호테는 촌부에게 야단을 맞은 후 둘시
네아 아가씨가 저토록 마법에 걸려 촌부가 된 것은 자신이 철저하게 마법사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
기 때문이라고 산초에게 말했다. 따라서 그는 굳세게 대항할 것을 다짐했다. 신나게 돈 키호테를 속인
산초는 조소를 금치 못했다.
돈 키호테의 용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전대미문의 사자와 모험을 벌이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초록색 외투를 입은 사람이 깍듯이 인사를 한 뒤 그대로 앞질러 가려고 했다. 동
행하자는 돈 키호테의 요구에 그 길손이 고삐를 늦추었다. 그는 돈 키호테의 차림새와 얼굴을 보더니,
매우 놀랐다. 그는 여지껏 비슷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낌새를 알아챈 돈 키호테는
자신은 모험을 찾아 길을 나선 기사라고 소개했다. 사나이는 오늘날에도 편력 기사가 존재한다는 것
을 믿지 못했다. 돈 키호테는 차차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디에고 데 미란다
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사이 돈 키호테가 머리를 들어 보니 수레 한 대가 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새로운 모험거리라고 생각하고 산초에게 투구를 내어놓으라고 명령했다. 마침 산초는 양젖을 얻어 투
구에 담아오던 차였는데 돈 키호테의 명령에 그만 양젖이 담긴 투구를 내밀었다. 돈 키호테가 투구를
머리에 쓰자 양젖이 얼굴이니 수염으로 줄줄 흘러내려 우스운 형상이 되었다. 그러나 돈 키호테는 괘
념치 않고 수레를 향해 달려들어 수레에 무엇이 실려 있는가 큰 소리로 물었다.
수레에 걸터앉은 사람은 폐하께 진상하는 사자 두 마리가 있다고 대답했다. 이 말에 돈 키호테가 싱
긋 웃으면서 큰 소리를 쳤다.
어서 우리를 열어라. 이 들 한 복판에서 라 만차의 돈 키호테가 누구
라는 것을 한번 보여 줄 테다. 그러자 돈 디에고가 다가와 편력 기사들이란 성공할 가망이 있는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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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에만 덤비는 것이라고 충고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호령했다. 그러자 돈 디에고는 박차를
가했고, 노새꾼은 걸음아 날 살려라 수레에서 떨어져 달아났다. 그러나 우리가 열렸는데도 사자는 우
리에서 나오지 않고 길게 하품만 한 후 궁둥이를 보이며 돌아서버렸다. 그러자 승리를 확신한 돈 키
호테는 뽐내며 노새꾼과 사자치기에게 금화 두 닢을 주며 말했다. 만약 사자를 물리친 기사가 누구냐
고 폐하께서 하문하시면, 사자의 기사라고 아뢰어라. 이때까지 쓰던 우수에 찬 얼굴의 기사 대신 지
금부터는 이 이름으로 바꾸겠노라. 또한 돈 키호테는 돈 디에고에게 녹색 외투의 기사라는 칭호도 붙
여 주었다.
마술에 걸렸다는 물방앗간을 찾아가다가 모험을 겪다
돈 키호테와 산초는 유명한 에브로 강가에 닿았을 때 조그만 나룻배 하나를 발견하였다. 돈 키호테는
이 배가 곤경에 빠져있는 기사나 고귀한 분을 구할 때 사용하라는 배라며 서슴없이 배에 올라탔다.
산초는 주인의 발작이 시작된 것을 알아채고 이를 어이없어했지만 하는 수 없이 배에 따라 올랐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렀을 때 커다란 물레방아를 발견한 돈 키호테는 물레방아를 성으로 단정 짓고 저
성에 갇힌 여왕과 공주를 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산초가 그것은 물레방아라고 말하자 돈 키호테는
버럭 성을 내며 마법에 걸려있다는 것을 왜 모르냐고 야단을 쳤다. 배가 물레방앗간으로 빠르게 흘러
가자 방안갓에서 일하던 일꾼들이 나와 재빨리 배를 멈추려고 했다. 일꾼들은 하나같이 밀가루 범벅
을 하고 있었다. 돈 키호테는 그 하얀 괴물들을 향하여 칼을 휘둘러댔다. 이들은 우선 장대를 뻗어 급
류에 휩쓸리는 배를 구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쏟았다. 다행히 배는 구출되어 물에 빠진 돈 키호테와
산초의 목숨도 구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목이 말라 죽은 사람이 부끄러울 정도로 물에 흠뻑 젖어 육지에 눕혀졌을 때, 산초는 무릎
을 꿇고 두 손을 합장하고는 앞으로는 주인이 엉뚱한 일에 다시 말려들지 않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빌
었다. 이때 나룻배 임자가 나타나 부서진 배를 변상하라고 다그치기에 돈 키호테는 50냥을 치르고 위
기를 모면했다. 어쨌든 산초는 투덜거렸지만 돈 키호테와 산초가 로시난테가 있는 데로 되돌아감으로
써 마술에 걸린 나룻배의 모험은 이제 종지부를 찍었다.
돈 키호테가 아름다운 여자 사냥꾼인 공작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돈 키호테와 산초는 기진맥진하여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숲을 빠져나오는데 일단의 사냥꾼과 그들의
주인인 우아한 용모의 귀부인을 만났다. 산초가 귀부인에게 다가가 자신의 주인이 사자의 기사이며
이전에는 우수에 찬 얼굴의 기사라고 칭했던 돈 키호테라고 설명하자 그 귀부인은 요즈음 출판된 책
『영민한 신사, 라 만차의 돈 키호테』의 주인공이냐고 되물었다. 그렇다고 산초가 대답하자 귀부인은
자신의 영지에 온 것을 환영하며 그녀와 그녀의 주인인 공작을 섬기는 것을 허락한다고 말했다. 이리
하여 일행은 근처에 있는 성으로 향했다.
돈 키호테가 도착하자 남녀 하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향수를 뿌려대며 일제히 모든 편력 기사들의
정화이며 정수이신 기사님의 방문을 대환영한다고 크게 외쳤다. 돈 키호테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자기
가 진짜 편력 기사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믿게 되었다. 공작과 공작부인이 그를 문까지 나와서 맞아
들였다. 그 옆에는 대갓집이면 으레 있기 마련인 근엄한 표정의 신부도 함께 있었다. 공작이 권하는
대로 상석에 앉은 돈 키호테는 둘시네아 아가씨에 대하여 묻는 공작에게 마법에 걸려 촌부의 모습이
되어 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신부는 거인이니 마법이니 하는 이야기를 듣자 그가 미친 기사 돈 키
호테라는 것을 알고, 미친 짓을 그만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꾸짖었다. 돈 키호테가 자신을 변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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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자 신부는 그만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긴 여로 끝에 마침내 돈 키호테와 산초가 고향으로 돌아가다
두 사람은 햇빛을 받으며 여행을 계속했다. 돈 키호테는 마법에서 풀린 둘시네아를 길에서 만나길 은
근히 바랐다. 그래서 길을 가면서 여자를 만나게 되면 혹시 그 여자가 둘시네아 델 토보소가 아닌가
하고 면구스러울 정도로 얼굴을 들여다보곤 했다. 희망과 기대가 가득 차서 어떤 고갯길을 올라서니,
자기네 고향 마을이 보이는지라 산초는 무릎을 꿇고 외쳤다.
오, 내 사랑하는 고향! 눈을 똑바로 뜨고 여기를 보아라! 그대의 아들 산초 판사가 돈을 많이 못 벌어
갖고 왔다마는 매는 잔뜩 벌어 가지고 네게 돌아왔노라. 그리고 팔을 벌려 그대의 아들 돈 키호테도
맞아 들여라. 그는 패했지만 자기 자신을 이기고 왔노라. 이 양반 말씀을 들어 보면 자기를 이기는 것
이 가장 크게 이기는 것이라고 하는구나.
그러자 돈 키호테는 양 미간을 찌푸리며 산초를 나무랐다. 야, 이 녀석아, 무슨 잠꼬대 같은 수작을
하고 있는 거냐? 자, 마을에 들어가서 우리들이 꿈꾸었던 대로 전원생활의 계획을 세워 보자꾸나. 어
서 가자!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고개를 넘어 고향 마을로 향했다.
돈 키호테가 고향에 돌아와 자신의 결심을 다짐하다
드디어 마을 입구에 다다른 돈 키호테는 두 소년이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 페리키요, 더 이상 귀찮게
굴지 말란 말이야. 네가 죽을 때까지 보여 주나 봐라! 라고 한 소년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돈 키호
테는 그 말이 다시는 둘시네아를 못 본다는 흉조라고 산초에게 말했다. 산초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
어 소년을 불러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소년은 다른 아이에게 여치집을 빼앗았는데, 그것을 죽을 때까
지 돌려주지 않겠다고 말해서 결국 싸움이 되었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산초는 자루에서 네 푼을
꺼내 여치집 값으로 그 애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여치집을 돈 키호테의 손에 갖다 놓으며 말했다.
자, 이거 받으십쇼, 이렇게 되면 흉조라는 것이 다 산산이 깨어지고 우리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됩니다. 결국 작년에 보았던 뜬 구름처럼 되고 말았다는 말씀입니다. 아, 나리께서도 언젠가 소인보고
길조니 흉조니 하는 것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다 하나같이 천치 바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동네 입구에 들어서자 산초의 아내가 달려왔다. 그런데 남편의 모습을 보니 자기가 상상한 것
처럼 총독과 같은 차림을 하고 있지 않아서 아주 놀란 소리로 따지듯이 물었다. 산초는 손을 휘휘 저
으며 대답했다.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하잖아. 내가 돈을 벌어 갖고 왔단 말이야. 여하간 테레사는 남
편의 손을 끌고 집으로 갔다.
돈 키호테는 곧장 학사와 신부를 따로 불러 자기가 패배하여 1년간 마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된 사
정을 간단히 이야기하고 난 뒤 편력 기사도의 정확성과 신의를 지켜 약속한 것을 조금도 어길 생각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1년 동안 양치기가 되어서 들판의 고적을 즐기며 목가적인 생활을
통해 심신의 수양을 도모하면서 둘시네아에 대한 그리운 정념을 마음껏 풀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목축하기에 충분한 수의 양을 사놓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이미 이름도 다
지어 놓았는데, 자기는 양치기 키호티스, 학사는 양치기 카르라스콘, 신부는 양치기 쿠리암브로, 산초
판사는 양치기 판시노라고 부를 예정임을 밝혔다. 두 사람은 돈 키호테의 광증을 보고 가슴이 뜨끔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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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으나 기사도를 한답시고 마을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그 안에 어떻게든지 병을 고쳐 보려고 그의 계
획에 무조건 찬성했다.
마침내 병든 돈 키호테는 유서를 남긴 뒤 세상을 떠나고 작가는 그의 명복을 빌다
패배로 인한 우울증인지 또는 천명이 다한 때문인지는 모르나 그는 엿새 동안 고열에 들떠 병상에서
꼼짝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자 모두들 돈 키호테가 패배하고 난 뒤인데다 둘시네아도 마법
에서 놓여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상심이 되어 병이 난 줄 알고 백방으로 그를 위로했다. 그러나 돈
키호테의 우울증은 점점 더해갈 뿐이었다. 돈 키호테는 6시간 이상이나 늘어지게 자고 난 후 잠에서
깨어나 큰 소리로 외쳤다.
신부님. 삼손 학사, 니콜라스 선생. 나는 고해성사를 하고 유서를 작성해야겠소. 여러분, 기뻐해 주오.
나는 이미 돈 키호테 데 라만차가 아니오. 알론소 키하노요. 내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들 나를 착한 알론소 키하노라고 부르지 않았소? 이제 나는 무수한 후손들의 원수요. 이제는 그 편력
기사도의 엉터리 같은 수작들은 듣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오. 나의 어리석었던 점과 그런 책들을 읽
었던 위험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구려. 그러나 뒤늦게나마 천주님의 자비 덕분으로 올바른 정신으로
내 잘못을 깨닫고 그런 것을 증오하는 바이오.
돈 키호테의 고해성사가 끝나자 신부가 나오면서 말했다. 정말 죽음이 가까웠어. 그리고 착한 알론소
키하노가 제정신이 들었다는 것도 사실이야. 자, 그럼 다들 유서를 어떻게 작성하나 들어가 보자.
돈 키호테는 자신의 작은 유산을 산초와 질녀에게 나누어주는 등 모두 여섯 개의 유언을 남겼다. 그
러자 산초가 울먹이며 말했다. 나리, 돌아가지 마시고 소인의 말대로 오래오래 사세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미친 짓은 아무도 죽이려고 안 하는데 주인님처럼 괜히 혼자 슬퍼서 죽으려는 거예요. 그러
니 그렇게 게으름 피우지 마시고 벌떡 일어나셔서 양치기들로 가득 찬 들판으로 나갑시다요. 우린 벌
써 약속이 되어 있잖아요? 혹시 나무 숲 덤불 뒤에서 마법에서 풀린 둘시네아를 뵙게 될지 누가 알아
요? 그나저나 싸움에 지신 게 원통해서 돌아가신다면 그건 소인의 잘못으로 돌리세요. 소인이 로시난
테의 뱃대기 끈을 잘못 매서 떨어졌다고 하시면 되잖아요? 아, 기사도 책에도 있다시피 지고 이기는
것은 병가지상사가 아닙니까요? 그러나 돈 키호테는 조용히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마침내 돈 키호테
의 최후가 다가왔다. 모든 종부성사를 받은 후에도 그는 기사도 책에 관해 악담을 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하고 있는 가운데 영혼을 버렸다.
이것이 라 만차의 재치 있는 양반의 최후이다. 그럼 삼손 카르라스코가 그의 묘비에 새긴 것을 여기
옮겨 본다. 이곳에 굳센 기사 양반이 잠들어 있도다. 용사의 고명을 얻었으니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죽음이 죽음 자체로써도 그의 생명을 꺾지 못하였네. 세상을 우습게 알았도다. 속은 허수아비였지만
겉은 무서운 도깨비였다네. 행운을 믿었던 사나이, 미쳐서 세상을 살았고 죽어서야 비로소 올바른 정
신을 가졌네.
▣ 작품 세계
세르반테스는 스페인과 스페인 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이며 문인이다. 세르반테
스는 스페인의 문학, 예술이 최고의 절정기에 이르렀던 황금시대에 출현하여, 그 시대를 더욱 밝게 해
주었다. 세르반테스가 탄생시킨 불후의 명작 『돈 키호테』와 더불어 스페인의 산문문학은 그 절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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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이르렀다. 이상 세계에 대한 진정한 가치와 현실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으로, 당시의 스페인 상황
을 해학적으로 묘사했던 『돈 키호테』의 주제 및 사상은 시대와 감정을 초월하여 영원성을 지니고
있는 세계문학의 걸작이다.
『돈 키호테』는 당시 출판되자마자 스페인 문학사상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그 진가가 제대
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세르반테스가 죽은 이후부터였다. 출간 당시에는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로만 여겨졌을 뿐 정당한 문학적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예술적 가치
와 의미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19세기의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돈 키호테』는 어둠
의 무덤에서 되살아나 찬란한 문학적 조명에 휩싸이게 되었다. 낭만주의의 시인과 작가들은 이 스페
인의 근대소설을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끊임없는 대립의 상징으로 해석했으며, 그 주인공 돈 키호테
를 자유를 실천하는 영웅의 원형으로 추앙했다. 이렇게 부활한 『돈 키호테』는 이후 여러 위대한 소
설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문학뿐만 아니라 사회사상과 정신철학적인 면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
다.
세르반테스는 살아 있을 때에는 그 문학적 재능에 어울리는 대우를 받지 못했으며, 그가 죽은 지 100
년도 더 지난 18세기에 들어서서야 처음으로 그의 전기가 씌어지고 문학적 생애에 대한 연구가 시작
되었다. 따라서 그의 생애에 대한 많은 중요한 사실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활발한 오늘날에도 그의 생애는 많은 의문에 싸여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돈 키호테』
라는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킨 위대한 스페인의 작가 세르반테스의 명성은 근대소설 창시자로서의 지
위와 함께 오늘날 세계문학사에 찬란한 빛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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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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