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종은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다. 우연한 변이가 생겨
서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면 자연은 그 변이
를 선택하여 후손에게 전달한다. 변이와 자연선택, 곧
우연과 필연의 누적이 진화의 파노라마를 연출한
원동력이다.
다윈의 연구 노트
찰스 다윈 지음
종의 기원 On the Orig in of S pec ies
골칫덩이 아들이 위대한 과학자로
너는 총사냥, 개 경주, 쥐잡기 외에는 좋아하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구나. 너는 장차 네 자신과 가족
의 명예를 손상시킬 것이다.
아버지는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들을 심하게 나무랐다. 그러나 그 아들은 가문을 가장 빛낸 위대한
과학자가 됐다. 그의 이름은 찰스 다윈이었다.
찰스 다윈은 1809년 2월 12일 영국 슈루즈버리에서 6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였고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은 박식한 의사, 박물학자, 철학자였으며 우생학의 창시자 프랜시스 골튼의
할아버지이기도 했다. 다윈 집안은 성공한 중산 계급이었다. 종교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생각하는 편이
었으며 현상 유지를 위해 그리스도교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으므로 다윈은 누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소년 다윈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장이 느렸다. 공상을 즐겼고 실, 우표, 조약돌, 광물 따위의 수집을 즐겼다. 다윈은 우수하지
못한 학생이었다. 아버지는 의학 공부를 시키기 위해 에딘버러 대학에 보냈지만 실패했다. 강의를 들
으면 과학이 싫어지고 수술하는 것을 보면 싫증을 느꼈다. 그는 바다나 물웅덩이에서 수생 동물을 채
집하고 굴잡이 어부를 따라다니며 박물학자를 따라 남미에 갔던 흑인한테서 새 박제하는 방법을 배우
는 것만 좋아했다.
실망한 아버지는 다윈을 목사로 만들기 위해 1827년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보냈다. 여기서도 다윈은
정식 교육 과정에는 관심이 없었고 사격, 승마, 사냥, 운동에만 열중했다. 하지만 이때 몇 사람의 유명
한 과학자를 알게 되었다. 특히 식물학을 가르치던 헨슬로 교수는 다윈이 박물학에 흥미를 갖도록 자
극하고 격려해주었다.
운명적인 비글호 항해
1831년 영국 해군은 비글호 항해 때 로버트 피츠로이 함장과 동행할 박물학자를 구하고 있었다. 다윈
은 아버지를 간신히 설득해 헨슬로 교수의 추천으로 비글호에 탑승한다. 브라질에서는 처음으로 열대
림을 보았고 아르헨티나에서는 나무늘보, 마스토톤, 말 등의 화석을 발견했다. 칠레에서는 지진을 목
격하고 육지의 융기에 대한 지진의 영향, 화산 폭발과 지진의 관계 등을 관찰했다. 항해 중에도 그는
상륙만 하면 말을 타고 길고 위험한 탐험에 나서 채집에 열중했다.
항해를 떠날 당시만 하더라도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종의 불변성을 의심하지 않았으나 항해
가 계속되면서 의문에 빠져들었다.
왜 지리적으로 떨어진 곳에 비슷한 동물이 많이 살고 있을까? 가령 남미의 레아는 왜 아프리카의 타
조와 흡사할까? 왜 이웃 지역에는 비슷한 종이 살고 있을까? 갈라파고스 제도의 섬들은 자연 조건이
같아 보이는데 왜 새와 거북은 섬마다 차이가 나는 것일까?
1836년 5년간의 항해를 마치고 귀국한 다윈은 이런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비교해부학, 발생학, 지질
학, 고생물학, 육종학 연구에 몰두했다. 집안이 유복했던 다윈은 경제적 부담 없이 과학 연구에 전념
할 수 있었다. 당시는 목사가 박물학자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아버지도 다윈을 말리지 않
았다. 항해중에 보냈던 다양한 종류의 화석으로 다윈은 이미 영국 박물학계에서 실력 있는 학자로 인
정받고 있었다. 다윈은 종은 고정불변이 아니며 다른 종으로 진화한다는 신념을 굳히게 되었지만 다
른 사람들도 납득할 수 있는 논리로 설명할 만한 단계는 아직 아니었다.
- 2 -
종의 기원 On the Orig in of S pe c ie s
이때 그의 관심을 끈 것이 육종학이었다. 다윈은 사람들이 재배식물과 가축에서 새로운 품종을 만드
는 것은 원하는 형질을 가진 후손을 주의깊게 선택하기 때문이라는 데 착안했다. 이런 선택이 자연계
에서도 종을 만드는 데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선택을 하
는지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맬더스 《인구론》에서 자연선택설 도출
1938년 심심풀이로 읽던 맬더스의 《인구론》은 암중모색하던 다윈에게 광명의 빛을 던져주었다. 맬
더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만일 인구를 억제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가 초래되리라고 예견했다. 다윈은 이 논리가 인위적으로 먹이의 공급을 늘릴 수
없는 식물과 동물의 세계에도 적용되리라고 여겼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서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
지면 유리한 형질을 가진 개체가 살아남아 후손에게 이 형질이 전달되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을 다윈
은 자연선택이라고 불렀다. 이로써 종의 진화에 관한 새로운 이론이 완성되었다.
다윈은 1842년부터 44년까지 자기 이론의 개요를 작성했다. 그러나 다윈은 이 이론을 곧바로 발표하
지 않았다. 자기가 이룩한 학문적 성취의 중요성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병약했던 다윈은 만약 자기가
저서를 완성하기 전에 세상을 뜬다 하더라도 이 원고만은 출판하라고 아내에게 당부했을 정도였다.
다윈은 자신의 혁명적 이론이 불러일으킬 파문을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표를 미루고 있었다.
1858년 소장 박물학자 앨프레드 월리스로부터 〈변종이 원종으로부터 멀어지는 경향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받은 다윈은 월리스가 자신을 앞지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월리스와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
한 다음 집필에 박차를 가해 이듬해인 1859년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처음 이론을 구상한 지 20
년 만의 일이었다. 초판 1250부는 당일로 매진됐고 1872년까지 6판을 거듭했다.
격론 불러일으킨 《종의 기원》
《종의 기원》은 격렬한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켰다. 종의 불변성을 철석같이 믿던 종교인과 보수적
과학자들은 다윈을 비난했다. 그러나 다윈을 지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달
로 나날이 변모하던 당시 세계에서 진화론은 기존 질서를 허물어뜨리고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던 진보
주의자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 대표적 인물이 헉슬리였다. 헉슬리는 오히려 다윈보다도 적
극적으로 진화론을 옹호하면서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시간은 다윈의 편이었다. 보수 종교인을 제외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마 안 가서 다윈의 이론을 받아들이게 됐다.
《종의 기원》에는 인류의 기원에 관한 내용은 들어 있지 않다. 이것은 다윈이 자신이 이론을 인류에
게까지 확대 적용했을 경우에 예상되는 반발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종의 기원》을 발표한
뒤 다윈은 《인류의 기원》,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같은 책을 잇따라 발표하여 인간은 자연계
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일생 동안 정식 직업을 갖지 않았던 다윈은 모두 10명의 자식을 두었지만 세 아이를 잃었으며 두 아
들은 그의 뒤를 이어 과학자가 되었다. 다윈은 만년에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연구 활동은 게을리하지
않아 식충식물과 지렁이 등을 심도 있게 연구했다. 1882년 집에서 세상을 뜬 다윈은 웨스트민스터 사
원에 영국의 수상들과 왕들 옆에 묻혔다.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이 만물의 주인이라고 믿었던 서양의 전통 사상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이론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을 인간 사회에까지 적용시켜 인종과 문화의 우열을 강조
하는 이른바 사회다윈주의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고 사회다윈주의는 제국주의와 파시즘을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었다. 그러나 다윈 자신은 사회다윈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노예 제도에 반대했으며 인간은
하나의 종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던 양심적 과학자였다.
- 3 -
종의 기원 On the Orig in of S pe c ie s
▣ 《종의 기원》 내용 구성
1장 사육에서 생기는 변이
인간은 가축이나 농작물의 품종을 개량할 수 있다. 인간에게 유리한 형질 변이가 일어난 가축이나 농
작물만을 골라 키우면 그 형질이 후손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 과정이 거듭되면 자연 상태에서는 볼
수 없는 인간에게 유익한 품종이 나타난다. 인간의 인위적 선택이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낸다.
2장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이
그런 변이는 자연에서도 일어난다. 종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개체의 변이는 항상 일어난다. 그
개체 변이는 변종으로 발전하고 변종은 새로운 종으로 이어진다.
3장 생존경쟁
모든 생명은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 따라서 한정된 자원을 놓고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진다. 생존경
쟁은 같은 종에 속한 개체들과 변종들 사이에서 가장 치열하다.
4장 자연선택
생존에 유리한 변이는 살아남고 생존에 불리한 변이는 도태된다. 이를 자연선택이라고 한다. 자연선택
이 누적되면 새로운 종이 출현한다. 이것은 반드시 진보라고 볼 수는 없다. 국지적 환경에 잘 적응했
느냐 못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5장 변이의 법칙
변이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상관 변이가 있다. 겉보기에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형질들이 같
이 변하는 현상이다. 또 종의 형질은 속의 형질보다 변하기 쉽다. 어떤 종에서 근친종의 같은 부분보
다 극도로 발달한 부분은 변이하기 쉽다.
6장 이론의 난점들
종들이 미세한 점진적 단계의 변이에 의해서 다른 종들로부터 생겼다면 우리는 왜 도처에서 수많은
중간 형태들을 보지 못하는가? 지질학적 기록이 불완전할 뿐 아니라 새로운 종은 자신의 원종이나 근
친종과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그들을 없애기 때문에 중간 형태는 상대적으로 적다. 어설픈 중
간 형태가 어떻게 그 종의 생존에 기여했을까? 날다람쥐에서 볼 수 있듯이 날개와 다리의 중간에 해
당하는 형질은 얼마든지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7장 기타 반론들
산토끼와 생쥐의 귀나 꼬리의 길이처럼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형질이 자연선택의 영향을 받았을 리
없다고 일각에서는 주장하지만 중요한 부분이 변화하면 다른 사소한 부분도 바뀔 수 있다는 상관변이
앞에서는 무색해진다. 종은 점진적으로 변하지 않았고 급격히 변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발생학은 그
강력한 반증이다. 새와 박쥐의 날개, 네 발 달린 짐승의 다리는 배(胚)의 단계에서는 구별되지 않는다.
8장 본능
생리구조뿐 아니라 본능도 유전된다.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의 행동이 좋은 예다. 생식
능력을 갖지 못한 일개미가 군집 전체를 위해서 헌신하는 본능도 그런 개미의 존재가 군집 전체의 이
- 4 -
종의 기원 On the Orig in of S pe c ie s
익에 도움이 될 때는 생식 능력을 가진 암개미와 수캐미에 의해 후손에게 전달될 수 있다.
9장 잡종성
어떤 종들은 쉽게 교잡하면서 불임성인 잡종을 낳고 어떤 종들은 지극히 어렵게 교잡하면서 상당한
출산력을 갖는 잡종을 낳는다. 여기서 우리는 종과 종, 종과 변종의 구분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10장 지질학적 기록의 미흡성
지층에 과거에 살았던 생물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으리란 법이 없다. 지층은 변변찮은 자료가 단
편적으로 박혀 있는 대단히 부실한 박물관이다.
11장 생물의 지질학적 연속성
그러나 어떤 지층에서는 종의 변이 과정을 암시하는 중간종이 발견되기도 한다. 파충류와 조류의 중
간에 해당하는 시조새가 좋은 예다.
12장 지리적 분포
동식물의 지리적 분포는 생물종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왜 다른 대륙에서 비슷한 생물이 발
견되고 왜 어떤 대륙에서는 이렇다 할 포유동물이 발견되지 않는가? 종들이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면
이런 일이 생길 리 만무하다.
13장 지리적 분포 2
대양의 섬에 사는 종은 대륙의 같은 면적에 사는 종보다 가짓수가 적다. 섬에 사는 종들과 가까운 본
토에 사는 종들 사이에서는 유연성이 발견된다. 이 역시 종들은 독립적으로 창조되지 않았음을 시사
한다.
14장 생물의 유연 관계
분류학자는 생물들의 유연 관계를 추적한다. 그 관계는 상동 기관, 배, 흔적 기관 등에서 나타난다.
15장 결론
종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우연한 변이가 생겨서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면 자연은 그 변
이를 선택하여 후손에게 전달하다. 변이와 자연선택, 곧 우연과 필연의 누적이 진화의 파노라마를 연
출한 원동력이다.
- 5 -
종의 기원 On the Orig in of S pe c ie s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에게 유리한 형질 변이가 일어난 가축이나 농작물만을 골라 키우면 그 형질이 후손에서 다시 나
타난다. 이 과정이 거듭되면 가축이나 농작물의 품종을 개량할 수 있다. 그런 현상은 자연에서도 일어
난다. 종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같은 종에 속한 개체들과 변종들 사이에 치
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생존에 유리한 변이는 살아남고 생존에 불리한 변이는 도태되는 자연선택이 일어난다.
모든 종들은 미세하고 점진적 변이에 의해 다른 종들로부터 생겼다. 생리 구조뿐 아니라 본능도 유전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종은 세분된다. 종의 변이 과정을 암시하는 중간종이 간혹 지층 속에서 발견
되기도 한다. 동식물의 지리적 분포 역시 종의 기원을 입증해 준다.
종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우연한 변이가 생겨서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면 자연은 그 변
이를 선택해 후손에게 전달한다. 변이와 자연선택, 곧 우연과 필연의 누적이 진화의 파노라마를 연출
한 원동력이다.
▣《종의 기원》 읽기
1. 변이들
인간이 오랫동안 키워온 동식물의 변종들은 자연 상태의 변종들보다 훨씬 차이가 크다. 가령 비둘기
를 보자. 부리, 깃, 날개, 모이주머니, 골격 등에서 다양한 차이를 보이는 수십 가지의 비둘기 품종이
있는데 만일 조류학자에게 이것을 들새라고 말하고 분류를 요구하면 아마 그는 적어도 20가지의 명확
한 종으로 이들을 구분할 것이다. 아니 이 중 몇몇은 같은 속에도 집어넣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품종
사이의 차이가 크지만 인간이 사육한 비둘기들은 모두 들비둘기라는 공통의 조상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이 사육한 동식물에서는 왜 이처럼 변이성이 커질까? 상대적으로 변화가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자연 상태의 종들과는 달리 인간이 기르는 종들은 인간의 다양한 기호에 맞게 적응되어 있다. 종이
적응했다기보다는 인간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종의 특정한 형질을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리라.
그 형질이 어느 한 순간에 지금과 같은 온전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리는 만무하다. 그것은 서서히 이
루어졌다. 자연은 계속해서 변이를 일으키며 인간은 자신에게 유용한 방향으로 선택을 누적해왔다.
스페인에서 온 포인터의 변이
포인터는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들어왔지만 몇 세기 동안 크게 변해서 이제는 영국산 포인터와 스페인
토종 포인터는 확연히 구별이 된다. 영국산 경주마는 덩치와 빠르기에서 조상인 아랍말을 능가하게
되었다. 인간은 교잡을 막아서 새로운 종의 형성을 용이하게 만든다. 비둘기와 고양이를 비교해보자.
비둘기는 많은 수를 빠르게 번식시킬 수 있고 죽여서 식용으로 쓸 수 있으므로 열등한 것을 쉽게 제
거할 수 있고 일평생 배우자끼리 해로하는 습성이 있어서 유전적 순수성이 유지되고 그만큼 품종 개
량이 쉽다. 반면 야행성인 고양이는 쉽게 교배시키기 어려우며 따라서 뚜렷한 품종이 오래 존속하기
어렵다.
이런 변이는 자연에서도 나타난다. 같은 종이라도 개체의 차이가 있다. 그런 차이가 심하게 나타날 경
우 분류학자들은 이것을 변종으로 보아야 할지 별개의 종으로 보아야 할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런 혼동은 당연하다. 종이란 것은 일부 생물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확고부동한 것이
아니다. 마데이라 군도의 작은 섬들에는 저명한 분류학자의 저서에 변종들로 기술된 많은 곤충들이
- 6 -
종의 기원 On the Orig in of S pe c ie s
있지만 상당수의 곤충학자들은 이것들을 별개의 종으로 분류하고 싶어할 것이다. 노련한 일부 조류학
자들은 영국산 붉은멧닭을 노르웨이종의 뚜렷이 식별되는 한 품종으로 여기는 반면 더 많은 조류학자
들은 이것을 의심할 나위없는 영국 특유의 종으로 분류한다.
개체의 차이는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변종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다. 이 과정이 계속되면 항구적 변
종이 나타나고 이것은 다시 아종으로,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종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개체의 변이가
모든 종에서 똑같은 정도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널리 분포된 종에서 변이를 가장 많이 관찰
할 수 있다. 널리 분포되었다는 것은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고 그만큼 다른 생물체와의
치열한 경쟁을 이겨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더 큰 속에 속한 종은 작은 속에 속한 종보
다 평균적으로 더 많은 변종을 만들어낸다. 한 지역에 비슷한 종이 많다는 것은 그 종들이 속한 속에
유리한 환경이 그 지역에 있다는 뜻이므로 당연히 지금도 활발한 변이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세한 생명체는 그렇지 못한 생명체보다 더 다양한 자손을 남김으로써 더욱 우세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 생명체의 속은 점점 커지는 것이다. 이 과정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 진행되면 큰 속은
서서히 작은 속으로 갈라진다. 결국 자연에서도 종이란 것은 한 번 만들어진 다음 고정불변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2 . 생존경쟁과 자연선택
모든 생명은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 번식 속도가 느리다는 인간도 25년 만에 두 배가 되었으며 이런
속도라면 1000년 안에 지구는 인간으로 덮이고 말 것이다. 남미와 호주는 유럽에서 들어간 말과 소로
순식간에 뒤덮이고 말았다. 이들의 번식력이 갑자기 증가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생활 조건이 매우
유리하여 어린 것과 늙은 것이 죽지 않고 거의 모든 개체가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존경쟁
의 압력이 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 상태에서 이런 유리한 조건은 아주 드물다. 한정된 먹이를
놓고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진다. 특히 어린 시절은 취약하다. 씨와 알을 많이 낳는 것은 그래서다.
만일 새끼를 보호할 수 있다면 한두 마리만 낳아도 그 종은 멸종하지 않는다.
특정한 종의 개체수를 결정하는 것은 먹이의 양이다. 멧닭이나 산토끼를 지금처럼 사냥하지 않는다고
해서 장기적으로 이 짐승들이 불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멧닭이나 산토끼는 해충을 먹고 살기 때문에
이 짐승들의 수가 불어나면 자연히 먹이가 줄어들게 마련이고 오히려 사냥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숫
자가 줄어들 것이다. 생존경쟁을 벌이는 동식물의 관계는 이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오묘하다. 붉은토끼
풀이 잘 번식하려면 꽃가루를 실어나르는 뒤영벌이 많아야 한다. 뒤영벌의 수는 벌집을 파괴하는 들
쥐의 수에 달려 있고 들쥐의 수는 고양이의 수에 달려 있다. 따라서 고양이가 많아지면 붉은토끼풀도
많아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는 황무지에 울타리를 치고 유럽전나무를 심은 적이 있다. 25년이 지나
자 원래 황무지에서는 보이지 않던 12종의 식물과 6종의 새가 조림지에서 번성했다. 한 종의 나무 하
나가 이렇게 큰 변화를 낳는 것이다.
모든 종은 서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가장 극심한 생존경쟁은 같은 종의 개체들과
변종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습성, 체질, 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한정된 자원을 놓고 다른 속에 속한
종들 사이에서 보다 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다. 밀의 여러 변종을 함께 심고 여기서 얻은 혼합된 씨를
뿌리면 토양이나 기후에 가장 적합한 변종이 다른 것을 물리치고 가장 씨를 많이 낼 것이며 몇 년 안
에 다른 변종들을 모두 밀어낼 것이다. 호주에서는 외래종 꿀벌이 작고 침이 없는 토착벌을 급속히
절멸시키고 있다.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같은 먹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생존경쟁은 변이에 어떻게 작용할까? 생존에 유리한 변이는 살아남을 것이고 생존에 불리한 변이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을 자연선택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람이 동식물을 사육할 때와 기
본적으로 같은 선택의 원리가 자연에서도 작용하는 것이다. 인간이 선택을 통해 위대한 결과를 낳을
- 7 -
종의 기원 On the Orig in of S pe c ie s
수 있다면 자연인들 그런 선택을 못하겠는가? 인간의 선택은 단지 눈에 보이는 외부적 형질들에만 영
향을 미치지만 자연은 비단 겉모습뿐 아니라 내부 기관, 체질적 차이, 생명의 모든 장치에 힘을 미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선택하지만 자연은 생물의 이익만을 위해서 선택한다. 아주
사소한 차이가 생존경쟁에서 균형이 잘 잡힌 거울을 한쪽으로 기울이며 그래서 그 차이는 보존된다.
인간의 업적은 장구한 지질 시대를 통해 자연이 누적한 업적과 비교하면 빈약하기 그지없다.
생존경쟁이 변이에 미치는 영향
자연선택은 다른 종들과의 관계에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종 안에서도 성적 선택이 일어난
다. 쉽게 말해서 암컷이나 수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다. 그래서 사슴은 뿔을 키우고 닭은 발톱을
날카롭게 만든다. 성공하지 못한 경쟁자는 자손을 낳지 못하지만 죽지는 않는다. 성적 선택은 자연선
택만큼 가혹하지는 않은 셈이다. 어떤 동물의 암컷과 수컷이 생활 습성은 같아도 구조, 빛깔 등에서
차이가 난다면 그것은 이런 성적 선택이 낳은 결과다.
자연선택에 유리한 환경은 무엇일까? 먼저 어느 정도의 지리적 격리는 중요하다. 격리는 기후나 지형
의 물리적 변화가 일어난 다음 밖에서 더 잘 적응된 생물이 이주해오는 것을 막는다. 따라서 새로운
환경 변화로 인한 틈새는 이미 살고 있던 생물의 변화에 의해서 채워질 것이다. 즉 새로운 변종이 멸
종당하지 않고 느긋하게 변이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다. 그래서 섬처럼 완전히 고립된 지역에서
는 인접한 섬과 확연히 구별되는 뚜렷한 변종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격리된 지역이 너무 좁으면
생물의 총수가 작아서 그만큼 유익한 변이가 생길 수 있는 기회가 감소되고 새로운 종의 출현도 늦어
질 것이다.
그래서 면적은 중요하다. 넓고 개방된 지역일수록 생활 조건도 복잡하고 그곳에서 유지되는 같은 종
들의 많은 개체수로부터 유익한 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면적이 넓은 유라시아 대륙에
서 호주보다 더 생물종이 다양하다. 화석처럼 거의 형태가 변하지 않은 오리너구리와 폐어류가 강과
호수에서 발견되는 것도 드넓은 육지나 대양보다는 상대적으로 좁은 강과 호수에서 경쟁이 그만큼 덜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연선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반드시 기후의 극심한 변화나 지리적 격리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지역에서 사는 생물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지극히 사소
한 이점이라도 그 종을 결정적으로 우세하게 만들 수 있다. 모든 토착 생물이 완벽하게 적응되어 있
어서 더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경우란 없다. 외래종이 토종을 몰아내는 숱한 예가 그것을 반증한다.
자연선택은 구체적으로 종의 출현에 어떻게 기여하는 것일까? 어떤 지역에서 이미 완전한 평균수에
도달한 네 발 가진 육식동물이 있다고 하자. 만약 변이로 인해 어떤 자손은 새로운 종류의 먹이를 먹
고 어떤 자손은 나무에 오르거나 물에 들어간다면 다른 동물이 차지하던 자리를 빼앗을 수 있으니까
그 수가 불어날 것이다. 자손이 다양할수록 자연의 다양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농부들이
수확을 늘리기 위해 윤작을 하는 이치와 같다.
그러나 개량된 자손들은 원형을 밀어내고 멸망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경쟁은 비슷한 변종들 사이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조상종뿐 아니라 모든 중간적 형태들은 절멸될 가능성이 높다. 현
재 살아 있는 종 중에서 극히 적은 수가 먼 미래까지 자손을 남기겠지만 어떤 무리가 궁극적으로 번
성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무에 비유하자면 어릴 때 번창한 수많은 잔가지 중에서 지금의 큰
가지로 된 것은 불과 두세 개뿐이며 이들이 아직도 살아남아 다른 가지들을 지탱하고 있다.
생물은 진보하는 것일까? 라마르크는 모든 생물에는 완성을 향한 선천적 경향이 있다고 믿었다. 만일
모든 생물이 등급의 상승을 지향한다면 왜 하등 생물이 아직도 무수히 남아 있는 것일까? 라마르크는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단순한 생물이 자연 발생적으로 꾸준히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가정했다.
- 8 -
종의 기원 On the Orig in of S pe c ie s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자연선택은 반드시 진보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국지적 상황에서 무엇이
더 생존에 유리한가만을 따진다. 내장 속의 벌레나 지렁이한테 고도의 조직화가 무슨 득이 되겠는가?
아무 이점이 없다면 굳이 달라질 이유가 없다. 포유류가 아무리 진화해도 어류의 자리를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다.
3 . 네 가지 반론들
첫째, 종들이 미세한 점진적 단계의 변이에 의해서 다른 종들로부터 생겼다면 우리는 왜 도처에서 수
많은 중간 형태들을 보지 못하는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여행하다 보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혈통이 가
까운 근연종들을 보게 된다. 이 종들은 흔히 서로 맞물리며 한쪽이 줄어들수록 다른 쪽의 수가 늘어
나 결국 완전히 대체된다. 그런데 이 중간 지역은 비교적 좁다. 당연히 생존에는 불리하며 양쪽의 다
수 변종에 밀려 멸종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도 그랬을 것이며 따라서 화석에서도 중간종의 기록을
찾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또 하나 화석 자체의 기록이란 것도 나중에 논하겠지만 대단히 불확실한
것이다.
둘째, 특수한 습성이나 구조를 지닌 종의 기원에 관한 문제다. 가령 중간 형태는 걷기에도 날기에도
모두 불리했을 텐데 날지 못하는 포유류가 어떻게 박쥐로 진화했느냐는 것이다. 나무 사이를 활강하
는 날다람쥐를 보라. 이것은 다리와 날개 사이의 중간 상태도 생존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옆구리의
막이 점점 얇아지는 것이 쓸모가 있어서 점점 날개처럼 바뀌어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구조는 그
대로지만 습성만 달라지기도 한다. 물과는 거리가 먼 고지에 사는 거위에도 물갈퀴는 그래도 남아 있
고 어떤 바다제비는 농병아리 뺨치게 잠수를 잘 한다. 살아남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변이는
구조든 습성이든 보존이 된다. 사람의 눈처럼 고도로 복잡한 기관도 이런 식으로 점진적으로 변이했
다고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다. 수정체도 시신경도 없는 단순한 색소 세포의 집합에서 시작하여 얼마
든지 다양한 중간 단계를 상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뻐꾸기가 다른 새둥지에 알을 낳는다든가 어떤 개미가 다른 개미의 번데기를 약탈하여 거기서
태어난 개미를 노예로 삼는다든가 하는 본능적 행위가 어떻게 자연선택을 통해 출현할 수 있을지 의
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런 본능 역시 그 종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후손
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뻐꾸기는 이삼일 간격으로 알을 낳기 때문에 만일 자기 둥지에서 알을 모두
품으려다간 부화하지 않은 알과 부화한 새끼가 공존하는 등 여러 가지로 번거로울 수 있다. 또 뻐꾸
기는 철에 맞추어 이주를 해야 하므로 새끼 기르기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면 생존이 위협받을 수
도 있다. 다른 새의 둥지에서 건강하게 자란 새끼는 자기도 나중에 커서 알을 다른 새의 둥지에 낳을
것이다.
가장 큰 난관은 생식 능력은 갖지 못하고 죽도록 일만 하는 일개미나 일벌이 어떻게 자연선택으로 형
성되었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사회성이 강한 종에서 이런 식의 명확한 계급적 특성을 볼 수 있다.
어미를 닮지 않고 생식 능력을 갖지 못한 후손이 면면히 이어져내려왔다는 것은 확실히 놀랍다. 하지
만 자연선택이 개체뿐 아니라 군집의 차원에서도 일어난다고 가정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군집
가운데 일부 구성원이 불임인 것이 유익한 것으로 드러나면 생식 능력을 가진 암컷과 수컷은 자손에
게 그런 불임 구성원을 낳는 능력을 전달할 것이다. 생물은 다른 생물의 본능을 이용하지만 다른 생
물의 본능을 위해 만들어지는 본능은 없다.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는 원리는 신체 구조만이 아니라
본능에도 적용된다.
4 . 종분화의 증거들
일반적으로 다른 종들 사이에서는 후손이 생기지 않으며 후손이 생기더라도 그 후손은 불임성을 갖는
- 9 -
종의 기원 On the Orig in of S pe c ie s
다. 많은 박물학자들은 서로 다른 종들의 교잡으로 인한 혼돈을 피하기 위해 불임성이 생겼다는 견해
를 품고 있다. 불임성의 양상은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려우며 대단히 복잡하고 다양하다. 종들에 따라
서 약간 줄어든 출산력으로부터 완전한 불임성까지 무수히 많은 점진적 단계들이 존재한다.
왜 서로 섞이지 않는 것이 꼭같이 중요할 텐데도 여러 종들이 교잡할 때 불임성의 정도가 이렇게도
심한 다양성을 보이는 것일까? 왜 어떤 종들은 쉽게 교잡하면서 불임성인 잡종을 낳고 어떤 종들은
지극히 어렵게 교잡하면서 상당한 출산력을 갖는 잡종을 낳는 것일까? 우리는 이런 복잡한 현상을 낳
는 생식 계통의 구조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다. 하지만 종과 종의 구분은 영구불변하지 않으며 종
은 늘 형성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종은 원래 변종에서 나온 것
종들은 교배하면 불임이 되거나 불임성의 자손을 낳는 반면 변종들은 교배를 해도 출산력에 큰 변화
가 없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변종과 종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유연 관계
가 먼 종 사이에서도 잡종 자손이 태어나는 수가 간혹 있다. 따라서 종과 변종의 구분은 절대적일 수
없다. 또 지금까지 변종으로 확인된 두 형태 사이의 불임성이 확인되면 학자들은 이들을 별개의 종으
로 분류한다는 데서도 이것이 얼마나 가변적인지를 알 수 있다. 종은 원래 변종에서 나온 것이라는
우리의 결론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지질학적 기록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다. 많은 화석종이 겨우 하나의, 그것도 부서진
표본으로 알려져 있다. 조개 껍질과 뼈는 바다 밑에서 썩어 없어진다. 모래나 자갈에 파묻힌 유물은
바닥이 솟아오를 때 빗물에 녹아버린다. 바닥이 솟아오를 때 그 속에 보존되어 있던 화석이 파도와
바람에 마모되지 않으려면 퇴적층이 두꺼워야 한다. 퇴적층이 두꺼우려면 수압이 강한 깊은 바다에서
형성되어야 하는데 심해는 생물상이 다양하지 않으므로 거기에 보존된 화석은 부분적이고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층이 마모되어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고 볼 수밖에 없는 지역이 세계 도처
에서 발견된다. 뿐만 아니라 지층들이 겹쳐 있는 곳에서 지층과 지층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시간적 단
절이 존재한다. 암석의 성분이 다르다는 것은 그동안 엄청난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
다.
그럼 한 지층 안에서 왜 점진적인 변종들을 발견하기 어려운가 하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지층이 형성되는 기간은 한 종을 다른 종으로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기간보다 상대적으로 짧
을 것이다. 어떤 종이 지층의 중간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해서 그 종이 이전에 다른 곳에서는 존재하
지 않았다고 추론하는 것은 성급하다. 그 종은 다만 그 지역에 처음 이주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지역의 최근 퇴적물을 조사해보면 다른 지역들에서 아직 생존해 있는 종들이 그 퇴적물에서 다
수 나타나지만 정작 그 지역을 둘러싼 바다에서는 절멸되었거나, 거꾸로 주위의 바다에 풍부하게 서
식하는 종이 그 퇴적물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지층이 생물상을 반드시 정확히 반영
한다는 보장은 없다. 20여 가지의 종으로 구성된 속 중에서 5분의 4가 파괴되었다면 남은 종들은 굉
장히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중간 고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여겨질 것이다.
지질학적 기록이 어느 정도 완전하다고 믿는 사람은 분명히 자연선택 이론을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지질학적 기록이라는 것은 비유하자면 자꾸 변하는 사투리로 불완전하게 적힌 세계사다. 이 역사 중
에서 우리는 두세 나라에 대한 마지막 책만 가지고 있고 이 책 중에서도 짤막짤막한 단편적 장만 보
존되어 있으며 그나마도 각 페이지에서 몇 줄씩만 남아 있다. 서서히 변하는 단어의 대부분은 유실되
어 산발적으로 남아 있는 단어들은 급격한 단절감을 줄 것이다.
- 10 -
종의 기원 On the Orig in of S pe c ie s
지질학적 증거들
그러나 화석 기록은 진화의 중간 고리를 적잖이 규명해주기도 한다. 돼지와 낙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분류되었지만 화석 기록은 그 사이의 점진적 단계를 채워준다. 화석으로만 남아 있는 히패리언은 현
존하는 말과 어떤 더 오래 된 발굽 달린 동물 사이의 중간 형태임을 의심하기는 어렵다. 조류와 파충
류라는 넒은 간격도 절멸된 시조새 화석의 발견으로 다리가 놓여졌다.
다양한 지역에서 나타나는 동식물상의 차이는 기후 같은 물리적 조건만으로는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
는다. 남위 25도에서 35도 사이에 있는 호주, 남아프리카, 남미 서부 지역을 비교하면 기후 조건이 너
무나 비슷한데도 동식물상은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왜 우리는 유럽과 호주, 남미에서 공통적인 단
한 종의 포유동물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일까? 반면 이 세 지역에서 공히 발견되는 토착 식물이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포유동물은 대륙 사이를 이동할 수 없었지만 어떤 식물은 바람이
냐 해류를 통해 드넓은 공간을 가로지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이 지구의 한 지점에서 탄생
하여 여러 곳으로 퍼져나갔음을 반증한다.
동식물의 이주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기후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지금은 다닐 수
없는 길도 기후가 달랐던 과거에는 예사롭게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지질 구조의 변화도 당연히 영
향을 미쳤을 것이다. 지금은 바다인 곳이 예전엔 육지였을 수 있고 지금은 육지인 곳이 예전엔 바다
였을 수 있다. 빙하기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가령 고산종이 살아남을 수 없는 광대한 저지대에
의해 분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북미의 고산 지대에 사는 식물이 거의 똑같은 것은 빙하기
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빙하기가 서서히 시작되면 고지대에 살던 생물은 저지대로 내려올 것이다.
추위가 절정에 이르면 북반구는 거의 균일한 동식물로 채워질 것이다. 그러다가 빙하기가 끝나면서
기온이 올라가면 사방에 퍼져 있던 동식물은 다시 고산 지대로 올라갈 것이다.
대양의 섬에 사는 종은 대륙의 같은 면적에 사는 종보다 가짓수가 적다. 각각의 종이 개별적으로 창
조되었다면 이런 일이 생길 리 만무하다. 대양의 섬에 사는 종은 가짓수는 적을지 모르지만 다른 곳
에 없는 특산종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왜 그럴까? 고립된 지역에 도달하여 낯선 환경에서 경쟁
해야 하는 종들은 당연히 변화의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무리마다 다르다. 갈라파고스 군도의 경우 26종의 뭍새 가운데 21종이 특산종이었고
11종의 바닷새 가운데 2종만이 특산종이었다. 바닷새는 뭍새보다 대륙과 섬 사이를 쉽게 오갈 수 있
었기 때문에 변화의 압력을 덜 받았을 것이다. 변화를 일으키려는 경향은 대륙에서 자주 날아오는 바
뀌지 않은 이주자들과의 교배로 인하여 억제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섬에 사는 종들과 가까운 본토에 사는 종들에서 발견되는 유연 관계다. 갈라
파고스 군도는 1000킬로 떨어진 남미 해안과 환경 조건이 상당히 다르지만 동식물상에서 뚜렷한 유연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 갈라파고스 군도와 케이프버드 군도는 화산 토양, 섬의 크기와 기후에서
상당히 비슷하지만 서식 생물은 아주 많이 다르다. 이것은 각각의 종이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는 논
리로는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될 법하다. 갈라파고스 군도에 있는 많은 섬들의 환경 조건은 크게 다르
지 않은데도 생물은 왜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식물의
씨앗은 이 섬으로 다른 식물의 씨앗은 저 섬으로 바람이나 해류에 실려 전파되었다고 하자. 그럼 나
중에 도착한 동물은 이미 달라진 환경 조건 속에서 생존 경쟁을 벌여야 했을 것이다. 따라서 자연선
택은 다른 섬들에서 다른 변종들을 선호했을 것이다.
흔적기관 - 종의 기원에 대한 단서
박물학자들은 생물계를 계, 문, 강, 목, 과, 속, 종으로 분류한다. 어떻게, 왜 분류하는 것일까? 어떤 이
- 11 -
종의 기원 On the Orig in of S pe c ie s
들은 비슷한 생물을 모으고 닮지 않은 생물을 나누는 것이 분류학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옳
지 않다. 고래는 누가 보아도 물고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어류가 아니라 엄연히 포유류다. 또 흔적 기
관이나 퇴화 기관은 생리학적으로는 중요하지 않지만 분류상으로는 커다란 가치를 갖는다. 그런가 하
면 어떤 이들은 조물주의 신성한 계획을 읽어내기 위해 분류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굳이 자연 속의 연관성에 대하여 아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
적으로든 분류학자는 생물의 계통, 다시 말해서 숨은 유대를 찾을 수밖에 없다.
고래와 어류는 몸통과 지느러미가 비슷하다. 이런 형질은 해당 생물이 살아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
겠지만 분류학자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아주 다른 계통의 종들이 비슷한 조건에 적응하다가 비슷
한 외형을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사적 유사성은 그들의 혈연 관계를 드러내기보다는 숨기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어떤 나비는 전혀 계통이 틀린 다른 나비를 모방한다. 기본 구조가 다른데도 겉
보기에는 너무 흡사하여 전문가들마저도 속아넘어가기 일쑤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모방하는 종
은 대체로 희귀하며 모방당하는 종은 흔하다. 모방당하는 종은 어떤 형질로 인해 새와 곤충이 기피했
을 것이고 모방하는 종은 끊임없는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에 유리한 다른 종의 외형을 닮게 되
었을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자연선택의 훌륭한 예를 본다.
생활 습성은 전혀 다르지만 기본적 설계 구조가 동일한 형질도 있다. 이것을 상동적 유사성이라고 한
다. 물체를 잡는 사람의 손, 땅을 파게 만들어진 두더지의 앞발, 말의 다리, 돌고래의 지느러미, 박쥐
의 날개는 모두 비슷한 골격 구조로 되어 있다. 포유류, 조류, 파충류의 어떤 공통 조상을 가정하지
않는 한 이런 식의 유사성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기본 구조는 다양한 목적에 적응할 수 있는 바탕
을 제공하지만 유전을 통해 기본적 유사성을 간직해나갈 것이다.
생물의 유연 관계가 가장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배(胚)다. 대부분의 갑각류는 성체는 판이하게 다르지
만 애벌레는 거의 비슷하다. 포유동물들의 경우도 어린 배는 거의 비슷하다. 성체가 아무리 다르더라
도 배가 비슷하면 그 종들은 공통의 조상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생물의 유연 관계는 흔적 기관에서도 드러난다. 고래는 다 크면 이가 없지만 태아 때는 이가 있다. 포
유류의 수컷은 흔적 유방을 가지고 있다. 특히 배의 단계에서는 흔적 기관이 어른보다 크게 나타난다.
흔적 기관은 과거의 중요한 기록이다. 비유하자면 철자상으로는 아직 남아 있지만 발음상으로는 쓸모
없게 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단어의 어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문자라 할 수 있겠다.
▣ 더 깊이있게 읽기 위하여
진화론을 처음 창안한 것은 다윈이 아니다. 다윈 이전에도 뷔퐁, 라마르크, 스펜서 같은 사람들은 생
물과 인류의 역사를 진화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었다. 그들은 생물의 진화가 인간에서 정점에 이르
렀으며 인간의 역사 또한 원시 시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직선적 발전의 경로를 걸어왔다고 믿었다. 진
보와 발전은 시대 정신이었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보자. 라마르크는 개체가 살아가면서 터득한 획
득 형질이 유전되면서 종의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발전은 필연적이었다. 다윈 이전의
진화론은 목적론이었다. 생물이 어떤 완전성을 향해 나아간다는 믿음이었다.
목적론에 찬물 끼얹은 다윈의 우연론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다윈이었다. 다윈은 우연이 가지는 역할에 처음으로 눈뜬 생물학자였다.
종은 물론 변화한다. 하지만 그 변화는 우연히 일어난다. 거기에는 어떤 목적성도 없다. 개체는 국지
적 환경에서 살아남는 데 유리한 변이를 일으켰을 때 후손에게 자신의 형질을 전달할 기회를 얻게 될
뿐이다. 우주에는 거창한 프로그램이 없다. 다윈의 진화론이 라마르크의 진화론과는 달리 지금까지도
- 12 -
종의 기원 On the Orig in of S pe c ie s
살아남은 것은 이런 냉철한 인식 덕분이었다. 조물주의 의도나 생명체 내부의 상승 의지를 전제로 깔
면서 인간을 자꾸만 특별한 존재로 격상시키려던 당시 대부분의 철학자나 과학자들과는 달리 다윈은
절대로 비약하지 않았다. 영국의 경험론 전통에 충실하게 눈에 보이는 현상을 초월적 전제 없이 합리
적으로 설명하는 데 목적을 뒀다.
그러나 후세인들은 다윈의 이론을 기존 체제나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는 장치로 울궈먹곤 했
다. 대표적인 예가 식민지 착취를 개명된 문명의 전파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 유럽의 제국주의자들이
다. 그들은 동양인, 흑인보다 백인이 유전적으로 우월하다고 믿었다. 그런가 하면 히틀러는 백인종 안
에서도 게르만 민족이 가장 우수하며 열등한 종족은 멸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 강제수용
소에서 인종 말살 정책을 실천에 옮겼다. 철저한 종족보존과 약육강식의 논리였다.
생물의 진화와 역사의 진보
그러나 인간은 본능에 따라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십만년 전의 인간과 현대인은 생물학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유전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그 동안 인간은 엄청난 문명을 축적해왔다. 우리가
교육을 받는 것은 이 어마어마한 정보를 후천적으로 습득하기 위한 노력에 다름아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이 모르는 자유라는 관념, 평등이라는 관념, 정의라는 관념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인간의 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진화와 진보를 구분할 필요성을 느낀다. 생물의
역사는 진화의 역사지만 적어도 과거의 어느 순간부터 인간의 역사는 진보의 역사다.
진화 시스템에서 약자는 도태된다. 그러나 진보 시스템에서 약자는 보호된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인간의 행동을 유전자의 철저한 자기 확산 욕구로 환원하여 설명하는 리처드 도킨스라는 생물
학자도 지구상에서 이기적 유전자의 폭정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인간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진보는 진화에 유리할까? 유리할지도 모르고 불리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 진
화는 끝없이 열려 있는 미래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이 진보를 포기할 수 없는 단
계에 이미 들어섰다는 사실이다.
진화는 무목적적이기에 완전한 진화는 있을 수 없다. 인간이 거미보다 진화상으로 더 완전성에 가깝
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진보는 목적지향적이기에 완전한 진보는 적어도 인간의 상상 속
에서는 가능하다. 불구자로, 동성애자로, 여자로, 가난한 나라의 국민으로 <우연>히 태어났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불이익과 고통을 진보의 역사는 외면하지 않는다. 약자가 <필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
는 시스템을 완성해가려고 노력한다.
▣ 다윈의 생애와 작품
1809
영국 슈루즈벨리에서 의사의 아들로 출생
1817
8세 때 어머니 타계. 누나들 밑에서 성장
1825
16세 때 에딘버러 의대 진학
1827
목사가 되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전학
1831
헨슬로 교수의 추천으로 비글호에 탑승. 이후 5년간 남미 일대를 조사 관측
1836
귀국
1838
사촌 엠마 웨지우드와 결혼. 이듬해 장남 탄생. 맬더스의 《인구론》 읽다.
1842
교외의 한적한 다운으로 이주, 연구에 몰두
1844
자연선택 이론을 정리한 230쪽의 논문 완성. 발표는 보류
1848
아버지 타계.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 13 -
종의 기원 On the Orig in of S pe c ie s
1854
저서 《만각류 아강의 분류 체계》발표
1858
앨프레드 월리스와 자연선택에 관한 공동 논문 발표
1859
《종의 기원》 발표. 초판 당일 매진
1860
토머스 헉슬리, 다윈을 대신하여 윌버포스 주교와 격렬한 논쟁 전개.
1864
왕립협회로부터 커풀리 훈장 수상.
1871
《인간의 유래》발표
1872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발표
1876
《식물에서 타가수정과 자가수정의 영향》발표
1881
《지렁이의 활동에 의한 부식토의 형성》발표
1882
자택에서 심장병으로 타계. 웨스트민스터에 안장
- 14 -
종의 기원 On the Orig in of S pe c ie s
책,영화,리뷰,
종의 기원
반응형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