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길들이기
당신의 남편은 당신의 영주요, 생명이요,
보호자요, 머리이며, 군주이십니다.
당신을 아끼고, 당신을 먹여살리기 위해
몸을 바쳐 바다에서나 육지에서나 힘든 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폭풍우가 부는 밤이나
혹한의 낮을 지켜주시니 당신들은 집에서
안심하고 아늑하게 지내잖아요.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지음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 저 자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 16 16)
가장 진부하면서 가장 참신한 작품들 속에 인간성의 모든 것, 영구불변의 진리를 담다,
셰익스피어, 그의 남아 있는 기록과 남아 있지 않은 기록들
누가 뭐라든,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세계 최고의 극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쓴 37편의 드라마는 오늘날에
도 다양한 형태로 각색되어 TV, 영화, 연극 무대에 올려지고 있고, 챨스 램 남매가 각색한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들》을 포함, 독자에 따라 그 내용과 수준을 달리하는 책들이 계속해서 쏟아져나오고 있는 실정이어
서, 그의 드라마 중 몇 편의 내용은 세계각국의 남녀노소에게 진부하리만치 친숙하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
엣의 애틋한 사랑과 비극적인 죽음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정작 셰익스피어가 어떠한 삶을 살았고, 자신을 둘러싼 당대 문제들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졌는지를
말해주는 직접적인 자료는 거의 없다. 단지 그가 남긴 작품들을 통해, 근대의 탄생이라는 엄청난 역사의 격
변기를 살았던 그가, 자신을 휘감고 도도히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를 알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삶에 대한 단서가 될 최초의 기록은 1564년 4월 26일의 세례 기록이다. 영국의 안정적이고 평
화로운 소읍 스트래트포트 온 에이븐에 있는 성삼위일체 교회는, 존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 사이의 3남으
로 태어난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564년 4월 26일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버지가 마
을의 읍장을 지낼 정도의 유지였으므로 셰익스피어는 상당히 풍족한 어린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마을의 문법학교1)를 다녔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다음으로 남아 있는 기록은 결혼에 관한 것. 1582년 11월 27일 당시 18세였던 셰익스피어는 자신보다 8
년 연상이었던 앤 헤서웨이와의 결혼허가서를 발부받았는데, 세 번의 결혼예고 후에야 결혼이 이루어지던
일반적인 관례와는 달리 급하게 허가서를 발부받았다는 사실과 신부와 신랑의 나이차이가 많이 나며 이들
부부의 첫딸 수잔나가 결혼 후 6개월 만에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런던에서 활동한 십수년 간
두 사람이 떨어져 살았다는 사실 등등, 그의 결혼 생활은 후대인들의 온갖 상상의 근원이 되었다. 이들 부
부는 2년 후 햄넷과 주디스라는 쌍둥이 남매를 얻게 된다. 이때부터 셰익스피어가 런던의 배우 겸 극작가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1592년까지,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극장의 시인, 셰익스피어
1592년 9월, 극작가였던 로버트 그린이 사망한 직후, 그가 임종 침상에서 탈고한 자서전격의 유작이 출판되
었다. 그 팜플렛에서 그린은 셰익스피어를 '벼락출세한 까마귀'에 비유하면서2), 대학교육도 받지 못한 풋내
기 배우요 극작가인 셰익스피어가 영국의 연극계를 뒤흔드는 것에 심한 질시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1. 문법학교는 마을 읍민의 자녀들을 무료로 교육하던 7년 과정의 초등교육기관으로, 라틴어 학습을 주목표로 하여 논
리학, 수사학, 고전 문학 등을 가르쳤는데, 셰익스피어는 이곳에서 고전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 로버트 그린은 1558년에 태어나서 1592년에 사망한 영국의 극작가인데, 셰익스피어에 관해 언급한 그의 유작 팜플
렛은 《
많은 후회로 매입한 서푼어치의 기지 Groatsworth of Wit , Bought with a Mi l l ion of Repentan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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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으로 이 글은 1592년에 이미 셰익스피어가 배우로서, 극작가로서 확고부동한 자리에 올랐음을 증명해
준다. 셰익스피어는 극작가로서 확실한 성공을 거둔 후에도 배우활동을 계속했는데, 1608년 기록에도 여전
히 출연배우 명단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1594년 챔벌린 극단에 입단한 그는 일 년에도 여러 편씩, 놀라운 언어구사력과 탄탄한 플롯을 바탕으로 각
양각색의 생동감 넘치는 인물이 등장하는 극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당대 최고의 극작가로서의 명성과 부와
인기를 한몸에 누리게 된다. 1589년 《헨리6세》를 시작으로 1611년 《태풍》에 이르기까지 그는 총 37편의
극을 남겼다. 1613년 플렛처와 공동 집필한 《나의 두 귀족 친척》을 끝으로, 그는 극작가로서의 삶을 마무
리하고 고향인 스트래트포드로 돌아가 편안한 말년을 보냈으며, 1616년 4월 23일 생을 마감하였다.
영원한 셰익스피어, 격변기의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가 살았고 작품 속에 그려낸 시대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도입으로 근대가 태동하던 대변혁기였
다. 그 시대에 두 힘의 충돌과 그 갈등을 축으로 하는 드라마가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성행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몇백 년을 이어오던 질서가 스러지고 전혀 새로운 질서가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에, 위로
는 국왕으로부터 아래로는 하층계급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모든 계층이 함께 극장에 드나들며 무대에서 벌
어지는 역사를 보고 그 역사의 형성에 참여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근대로 이행하는 역사적 흐름의 필연성을 짚어내고 그 질곡과 모순의 단초들을 예리하게 지
적해내고 있다. 그의 작품은 모두 셰익스피어의 사후에 동료 배우들과 인쇄업자들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을 근거로 출간한 것들이다. 박제된 진리로서가 아니라 열린 창작물로서의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갖는 의
미를 새삼 되새기게 하는 부분이다.
▣ Sho rt Summa ry
사냥을 마치고 지나는 길에 만취해 잠이 든 땜장이 크리스토퍼 슬라이를 발견한 영주는 그를 자신의 집으
로 데려와 칙사대접을 하여 영주로 착각하게 만든 다음 그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연극을 보여주는데, 그 연
극이 바로 《말괄량이 길들이기》다. 패두어의 부호 뱁티스터에게는 캐서리나와 비앙카라는 과년한 두 딸이
있어 이들을 나이순으로 결혼시키려 하는데 여의치가 않다. 얌전한 비앙카에게는 구혼자가 줄을 서는 반면
말괄량이로 소문난 캐서리나의 경우에는 어떤 남자도 접근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마침 결혼도 하고 돈도 벌 목적으로 패두어에 나타난 페트루치오가 말괄량이 캐서리나보다 한술 더
뜨는 말괄량이 작전을 펴서 전격적으로 결혼식을 올린 다음, 밥을 굶기고 잠을 재우지 않고 온갖 생트집을
잡는 등 말괄량이 캐서리나의 기를 꺾어 철저하게 순종하는 아내로 길들이고자 한다. 마침내 비앙카와 루첸
티오의 결혼식 피로연에 참가한 페트루치오와 캐서리나 일행은 가장 순종하는 아내에게 돈을 거는 내기에
서 멋드러지게 기적을 연출하여 연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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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크리스토퍼 슬라이 술취한 땜장이. 영주의 장난으로 칙사대접을 받자 자신이 진짜 영주인 줄로 착각하면
서 극중극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관람하게 된다.
뱁티스터
패두어의 부호
빈첸티오
피사의 노신사
루첸티오
빈첸티오의 아들, 첫눈에 비앙카를 사모하여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페트루치오
베로나 출신으로 말괄량이 캐서리나와 결혼하여 순종하는 아내로 길들이려고 한다.
캐서리나
뱁티스터의 말괄량이 맏딸
비앙카
뱁티스터의 얌전한 둘째딸
서극 - 말괄량이 길들이기 시작
술취한 땜장이 크리스토퍼 슬라이가 술값 때문에 술집 여주인과 싸우고 길거리로 쫓겨나 쓰려져 잠든 사이,
마침 사냥을 마치고 그곳을 지나던 영주가 그를 놀잇감삼아 자기 집으로 데려다 하인들을 시켜 화려한 옷
으로 갈아입히고 호사스런 침실에서 자게 한다. 잠에서 깨어난 슬라이는 영주의 지시를 받은 하인들로부터
자신이 실은 지체 높은 귀족이었으나 15년 동안 실성하여 거렁뱅이로 사는 꿈을 꾸다가 마침내 제정신이
든 것이라는 거짓말을 듣게 된다. 꿈인지 생시인지 어리둥절한 슬라이에게 그의 예쁜 부인으로 변장한 시종
이 나타나 오랜 독수공방의 슬픔운운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하인들의 거짓말을 진실로 믿게 만든다. 자신이
영주임을 확신하게 된 슬라이가 만사 제치고 부인(시종)과 잠자리에 들고 싶어 안달하여 성화를 부리자, 시
종은 영주의 장난이 들통날 위기를 모면하려고 마침 영주를 찾아온 순회극단의 배우들이 공연하는 유쾌한
희극을 구경하면 건강회복에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로 그를 속이고 그에게 연극을 관람하게 한다.
나팔소리. 《말괄량이 길들이기》극이 시작된다.
제1막 결혼은 곧 전쟁
피사 명문가 출신의 루첸티오는 영리한 하인 트라니오와 함께 처음으로 패두어에 세상구경을 나온다. 그런
데 이들이 처음 마주치게 되는 광경은 패두어의 부호 뱁티스터와 그의 두 딸 캐서리나와 비앙카, 그리고 비
앙카의 구혼자들인 그레미오와 호텐쇼 일행이 벌이는 실랑이다. 당장이라도 혼사를 치르고 싶어하는 둘째딸
비앙카의 구혼자들에게 뱁티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두 분은 제발 그만 조르시오. 아시다시피 내 결심은 요지부동입니다. 글쎄 맏딸을 시집보내기 전에는 절대
로 둘째딸을 줄 수가 없소. 만약 두 분께서 캐서리나를 좋아하신다면, 사양 마시고 제발 그애와 직접 담판
해보시구려.
그레미오와 호텐쇼가 서로에게 캐서리나를 떠넘기려 하면서 평생 시집도 못갈 여자로 캐서니라를 조롱하자,
그녀는 울분을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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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당신들더러 내 시집걱정 해달라고 했나요? 난 결혼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요. 하지만 만약 결혼을 하
는 날엔 세 발 달린 의자로 당신네 머리털을 빗질해주고, 당신네 얼굴은 생채기를 낸 피로 화장시켜 광대
상판때기로 만들어줄 테야.
반면 뱁티스터의 편애를 받는 비앙카는 아버님, 저는 아버님 분부대로 하겠어요. 이제부터는 책과 악기를
벗삼아 홀로 공부에만 전념하겠어요 라고 말함으로써 말괄량이 캐서리나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에 그레미오는 뱁티스터씨, 저런 지옥의 마녀 때문에 작은 따님을 가두어두고, 언니의 독설의 대가를 동생
이 치르게 할 작정이십니까? 라고 말하며 뱁티스터의 마음을 돌려보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대신 뱁티
스터는 두 구혼자에게 음악과 시를 좋아하는 비앙카에게 적당한 가정교사를 추천해달라고 말하고 비앙카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가버린다. 뒤에 남은 그레미오와 호텐쇼는 비앙카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무슨 수를 쓰든
적당한 가정교사를 찾아 추천하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경쟁자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비앙
카와 결혼하려면 언니 캐서리나의 신랑감을 찾아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급선무이니 이점에 서로 협력하자는
호텐쇼의 제안에 그레미오도 동의한다.
지금까지의 광경을 지켜본 루첸티오는 한눈에 얌전하고 온순한 비앙카에게 반해 열렬한 사랑의 포로가 되
고 말았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비앙카에게 접근할 방도를 찾아내겠다고 골똘히 생각하더니, 자신이 비앙카
의 가정교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루첸티오는 영리한 하인 트라니오를 자기 대신에 루첸티오 역을 맡도록 시
키고 자신은 트라니오 역을 자청하여 주인과 하인 역을 뒤바꾸는 시도를 한 다음, 루첸티오 역의 트라니오
에게도 비앙카의 구혼자의 한 사람이 되도록 지시한다.
베로나 출신의 페트루치오가 패두어에 사는 친구 호텐쇼를 찾아온다. 호텐쇼가 패두어에 온 동기를 묻자,
페트루치오는 아버지 안토니오가 돌아가시고 난 뒤 아내도 얻고 돈도 벌 속셈으로 패두어에 왔노라고 대답
한다. 이에 호텐쇼는 페트루치오를 은근히 떠본다.
페트루치오, 그렇다면 까놓고 할 얘기가 있네. 자네 못 생긴 말괄량이를 아내로 맞아보지 않겠나? 달갑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 여자가 돈이 많다는 건 보증하네. 아주 큰 부잘세. 그야 물론 소중한 친구인 자네에
게 그런 여자를 권하고 싶지는 않네만.
여보게, 우리 친구 사이에 빈말은 그만두세. 아무튼 충분한 재산만 있다면 됐네. 그녀가 저 플로렌티어스의
애인처럼 박색이라 해도, 예언녀 시빌 같은 할망구라 해도,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처럼 고약한 바가지
쟁이라 해도 상관없네. 부자 마누라를 얻으려고 패두어에 온 내가 아닌가. 돈만 생긴다면야, 패두어는 천당
이지 뭔가.
이제 확신을 얻은 호텐쇼는 본격적으로 뱁티스터의 말괄량이 맏딸 캐서리나와 그녀의 치명적인 결점을 페
트루치오에게 소개하고, 쇠뿔도 단 김에 빼랬다고 성질 급한 페트루치오는 호텐쇼에게 지금 당장 뱁티스터
집으로 안내해줄 것을 부탁한다. 이때 호텐쇼도 페트루치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즉 마음놓고 비앙카
에게 접근하여 구애할 수 있도록 자신을 비앙카의 부친에게 음악에 정통한 가정교사로 추천해달라는 것이
다.
한편, 그레미오는 자기를 대신하여 비앙카에게 구애를 해줄 가정교사를 물색해놓는데, 그 인물이 바로 학문
에 능통한 가정교사로 변장한 루첸티오다. 그레미오와 마주친 호텐쇼는 캐서리나에게 구혼할 페트루치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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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소개한 후, 페트루치오가 캐서리나에게 청혼할 때 필요한 비용 일체를 두 사람이 같이 부담할 것을
제안하고 승낙을 받는다. 이때 루첸티오로 변장한 트라니오가 하인 비온델로를 대동하고 등장하여 뱁티스터
미놀라씨 댁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 그리고 자신도 비앙카의 구혼자임을 밝힌다. 호텐쇼는 비앙카의 구혼자
인 이상 그녀의 결혼에 걸림돌이 되는 언니 캐서리나 문제를 해결해줄 페트루치오에게 루첸티오(트라니오)
도 보답을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 말에는 루첸티오(트라니오) 역시 흔쾌히 동의한 다음, 경쟁자로서 싸울
땐 싸우더라도 지금은 친구로서 먹고 마시자며 일행을 잔치에 초대한다.
제2막 말괄량이를 위한 맞불작전
회초리를 들고 등장한 캐서리나가 비앙카를 때리며 구혼자들 가운데 누가 마음에 드는지 말하라고 으름장
을 놓는 소동이 벌어진다. 그러자 뱁티스터가 나타나 왜 가만히 있는 비앙카를 괴롭히느냐고 캐서리나를 나
무라는데, 그렇게 동생을 두둔하는 아버지에게 캐서리나는 이렇게 분통을 터뜨리며 뛰어나간다.
좋아요, 알았어요. 저앤 아버지의 보물이니까. 어서 신랑을 얻어주시죠. 저애 결혼식 날 난 맨발로 춤을 춰
야겠죠. 아버지가 저애만 귀여워하시니까. 난 처녀귀신 팔자대로 원숭이들이나 끌구 지옥으로 가는 거죠 뭐.
이제 말도 하기 싫어요. 혼자 외롭게 앉아 울기밖에 더 하겠어요. 이 분이 풀릴 때까지.
이때 그레미오와 가정교사 캠비오로 변장한 루첸티오, 페트루치오와 음악교사로 변장한 호텐쇼, 루첸티오로
변장한 트라니오, 류트(일종의 현악기)와 책을 든 비온델로가 등장한다. 가정교사들을 안으로 안내하라고 시
킨 후, 뱁티스터는 페트루치오와 이야기를 나눈다. 뱁티스터가 페트루치오에게 캐서리나와 결혼하면 자기가
죽은 뒤 땅의 절반과 2만 크라운의 재산을 지참금으로 주겠다고 제안하자, 페트루치오는 캐서리나가 과부가
될 경우 자신의 토지 전부와 임대권의 전부를 양도할 것을 약속하며 당장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재촉한다.
마음 같아서야 결혼계약서를 작성하고 한시라도 빨리 시집보내버렸으면 싶은 뱁티스터지만 딸의 불같은 성
질을 잘 아는 그는 우선 페트루치오에게 말괄량이 캐서리나의 사랑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페트루치오는 그녀를 직접 대면하기 전에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를 계획하는데, 이를테면 이는 맞불
작전이라 부름 직하다.
마침내 페트루치오와 캐서리나의 첫 대면. 예상대로 팽팽한 재치의 공방전이 벌어지고 어느 한쪽도 쉽사리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그렇지만 결국 페트루치오는 캐서리나를 주춤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 모든 한담일랑 집어치우고 내 분명히 말하리다. 당신 아버지가 벌써 내게 당신을 준다고 승낙을 하셨
소. 당신 지참금도 합의하고 말이오. 그러니 당신이 좋든 싫든 난 당신과 결혼할 것이오...... 나는 당신을 길
들이기 위해 태어난 사내, 들고양이를 온순한 집고양이로 바꾸듯 당신을 얌전한 케이트로 만들어놓고 말겠
소.
이때 뱁티스터와 그레미오, 트라니오 일행이 나타나자 캐서리나는 이따위 미치광이한테 시집보낼 셈이냐며
다시 거칠게 저항하고, 이를 두고 페트루치오는 태연히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을 둘러댄다. 즉 자기들 둘만
있을 때 캐서리나가 자기에게 입맞추고 사랑을 고백했지만 남들에게는 계속 말괄량이처럼 굴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캐서리나의 저항을 무력화시킨 페트루치오에게 뱁티스터는 약혼이 성립되었음을 알리
고 그레미오와 트라니오는 이 벼락약혼의 증인이 된다. 결혼식은 바로 일요일에 올리겠다는 말을 남긴 채
페트루치오는 황급히 떠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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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리나의 혼사가 정해지고 나자, 이제 뱁티스터는 아주 노골적으로 장삿군의 속셈을 드러내며 비앙카의
구혼자들 가운데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많은 재산을 내놓는 사람에게 딸을 주겠노라고 말한다. 그레미오가
상당한 재산을 내놓겠다고 먼저 제안을 하고, 이에 맞서 트라니오가 훨씬 더 많은 재산을 약속하자, 뱁티스
터는 트라니오가 부친의 승낙을 받아오는 조건으로 캐서리나의 결혼식이 있을 일요일 다음 주 일요일에 결
혼시켜주겠다고 말한다. 경쟁에서 진 그레미오가 그래, 자네 부친이 호락호락 아들에게 유산을 물려줄까보
냐 고 악담을 하며 퇴장하자, 무대에 혼자 남은 트라니오는 주인 루첸티오를 위해서 가짜 루첸티오라는 아
들이 가짜 빈첸티오라는 아버지를 만들어내야 할 해괴할 상황이 생겼다고 얘기하며 퇴장한다.
제3막 미치광이 결혼식
리치오로 변장하고 류트를 든 호텐쇼와 캠비오로 변장한 루첸티오가 비앙카를 서로 먼저 가르치겠다고 실
랑이를 벌인다. 이에 두 가정교사 사이에 끼여들며 비앙카는 단호하게 말한다.
아니, 신사분들, 제게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것을 가지고 다투시다니 이중으로 잘못하시는 거예요. 저는 학교
에 다니며 매를 맞는 어린애가 아니라구요. 정해진 시간표에 얽매여 꼬박꼬박 시간을 지키는 건 싫어요. 뭘
배우든 제 마음대로 하겠단 말예요.
비앙카가 호텐쇼에게 류트의 조율을 해놓으라고 부탁한 사이, 루첸티오는 라틴어 번역을 해주는 척하면서
자신의 신분과 가정교사로 변장한 목적을 비앙카에게 알린다. 호텐쇼 역시 비앙카에게 음계를 가르쳐주는
척하면서 자신의 열렬한 사랑을 고백한다. 비앙카와 루첸티오가 먼저 퇴장하자, 호텐쇼는 루첸티오의 눈치
가 수상하니 잘 지켜봐야겠다고 말하면서 만일 비앙카가 엉터리 사기꾼에게 마음을 뺏길 정도의 여자라면
자신은 다른 여자를 찾을 거라고 말하며 퇴장한다.
페트루치오와 캐서리나의 결혼식. 뱁티스터, 그레미오, 루첸티오로 변장한 트라니오, 캠비오로 변장한 루첸
티오, 신부 옷차림의 캐서리나, 비앵커, 하인들, 그 밖의 군중들이 신랑 페트루치오를 기다리고 있다. 예식
시간에 맞춰 신랑이 나타나지 않아 애간장이 타는 신부 캐서리나는 망신살이 뻗쳤다며 울상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때 뒤늦게 등장한 페트루치오는 도대체가 혼례를 올릴 신랑으로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괴상망
측한 복장을 하고 나타나서는 뭐 의복이 그리 중요하냐, 결혼하는 것은 자기지 의복이 아니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서둘러 교회로 향한다. 그리고 그레미오의 목격담에 의하면 예식 도중 신랑답지 못한 여러 가지 무
례한 언행을 일삼아 경건해야 할 예식을 엉망으로 만들어 신부 캐서리나에게 씻을 수 없는 수치심을 심어
준다. 게다가 이렇게 미치광이 결혼식을 올린 직후 신부가 주인공인 결혼피로연에도 참석하지 않고 곧장 길
을 떠나려고 한다.
캐서리나가 피로연이 끝날 때까지만 머물자고 간청해도 페트루치오는 조금도 그 말에 듣는 척도 안한다. 마
침내 캐서리나는 화가 났다.
흥,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난 오늘 안가요. 아니 내일도 안가요, 마음이 내킬 때까진.
이봐, 오만하게 굴지마. 노려보지도 발을 동동 구르지도 안달하지도 마. 내 소유물에 대해서는 내가 주인이
아니냐 말야. 이 여자는 내 재산이요, 동산이요, 집이요, 내 살림도구요, 전답이요, 곳간이요, 내 말이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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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당나귀요, 아무튼 내 물건. 여기 내 여자가 이렇게 있소. 누구든지 감히 손만 대봐라. 내 길을 막는 오만
한 자에 대해서는 행동으로 내가 맛을 보여줄 테다.
이렇게 대꾸한 페트루치오는 캐서리나를 안고 퇴장해버린다. 남은 사람들은 미치광이 결혼식에 어리둥절해
하면서 결혼피로연으로 향한다.
제4막 당신이 달이라고 말하신다면⋯
페트루치오의 시골별장에 먼저 도착한 그루미오가 하인들을 다그쳐 주인 부부가 당도하기 전에 만반의 준
비가 필요함을 알린다. 이때 난폭하게 문이 열리며 페트루치오와 캐서리나가 들어온다. 두 사람은 모두 진
흙탕에 빠져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진흙투성이다. 집안에 들어오자 마자 페트루치오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하인들을 나무라고 때리고, 말괄량이 캐서리나보다도 한술 더 뜬 말괄량이 짓거리를 거침없이 해댄
다. 오히려 캐서리나가 하인들 편을 들면서 페트루치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야 할 지경이다. 저녁으로 가
져온 음식들을 고기가 너무 탔네 어쩌구 하면서 내동댕이친 뒤 페트루치오는 캐서리나를 신방으로 안내한
다. 그리고는 다시 무대에 나타나 자신의 말괄량이 아내 길들이기 방법을 설명하는 긴 독백을 늘어놓는다.
난 이처럼 교묘하게 남편으로서의 지배권을 확립했지. 내 매는 지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일 게다. 그러나
못참고 애걸복걸할 때까지 아무것도 먹이지 말아야지. 배가 부르면 길들이기가 힘들거든. 또 한가지 야생매
를 길들이는 방법이 있지. 그건 잠을 못자게 하는 거야. 사납게 날개를 퍼덕이는 암팡지고 말 안듣는 매에
겐 이 수가 최고지. 그리고 아까 양고기를 갖고 트집잡았던 것처럼 잠자리에 대해서 생트집을 잡는 거야.
베개는 저리, 이불은 이리, 시트는 저리, 닥치는 대로 내던질 테다. 그런데 이런 소동도 죄다 아내를 끔찍하
게 위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처럼 해야 된단 말씀야. 바로 이것이 친절로써 마누라를 잡는 방법이라구. 이렇
게 해서 그 미치광이같은 고집불통 기질을 꺾는 거라구.
캠비오로 변장한 루첸티오와 비앙카가 나무 그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이, 루첸티오로 변장한 트라니오
와 호텐쇼가 대화를 나누며 등장한다. 호텐쇼는 트라니오에게 비앙카가 캠비오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는 점
을 지적하는 중이었는데 마침 두 사람이 다정하게 입을 맞추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당장 비앙카를 경망
스럽고 천한 여자로 매도하는 호텐쇼는 자신이 리치오가 아님을 알리고 비앙카를 포기한다는 확실한 증거
로 사흘 안에 돈많은 과부와 결혼을 할 것이라고 말하며 퇴장한다.
이렇게 해서 호텐쇼를 따돌린 트라니오는 다음 계획에 착수하게 된다. 즉 가짜 빈첸티오 역을 해줄 사람을
찾아내어 뱁티스터에게 재산을 보증하게 하는 일을 꾸며야 되는데, 마침 빈첸티오와 용모가 비슷한 맨투어
출신의 교사가 트라니오의 덫에 걸린다. 맨투어 사람이 패두어에 오는 건 죽으러 오는 거나 다름없다는 등
의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트라니오는 이 교사를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물론 속셈은 그가 패두어에 머무는 동
안 빈첸티오 행세를 하게 하면서 자신을 도와주도록 주문하기 위함이다.
배가 고파 미칠 지경인 캐서리나가 하인 그루미오에게 음식을 갖다줄 것을 사정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직접
음식접시를 들고 등장한 페트루치오는 캐서리나에게 음식을 줄 것처럼 하다가 페르루치오의 말괄량이 길들
이기 학교에서 한수 배우려고 방문한 호텐쇼에게 그 음식을 대신 먹도록 만들어 캐서리나를 더욱 고통스럽
게 한다. 이때 마침 재단사가 등장한다. 음식과 마찬가지로 모자와 옷을 권했다 뺏었다 하며 페트루치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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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리나를 꼭두각시처럼 취급하고 놀리자 마침내 그녀는 분통을 터뜨린다.
내 혀는 마음속의 울분을 말할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참다 못한 내 가슴이 터져버릴 테니. 그렇게 되기
전에 속 시원하게 실컷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말겠어요.
하지만 페트루치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재단사에게 호통을 치면서 기세를 잡은 다음, 캐서리나
에게 친정집에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하인들에게 준비를 시킨다.
트라니오의 주문대로 빈첸티오로 변장한 교사가 뱁티스터와 대면한다. 두 사람이 모두 자녀의 결혼을 승낙
한 만큼 정식으로 약혼하고 양측의 합의에 의한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트라니오는 자신의 숙소로 이들을
안내한다. 이 상황을 나무 뒤에서 지켜본 루첸티오에게 비온델로는 부모들이 가짜 계약 때문에 분주한 동안
에 성 누가교회로 가서 빨리 비앙카와 결혼식을 올려버리라는 트라니오의 전갈을 전하고, 루첸티오는 기뻐
하며 비밀결혼식을 치르러 떠난다.
페트루치오와 캐서리나 일행이 패두어로 가는 길이다. 페트루치오는 중천에 뜬 해를 보고 달이라고 우긴다.
캐서리나가 달이 아니라 해라고 하자, 페트루치오는 하인들에게 말머리를 돌리라고 하더니 캐서리나에게 왜
사사건건 자기 말에 반대하느냐고 호통을 친다. 캐서리나는 마침내 페트루치오가 시키는 대로 남편이 달이
라고 하면 자기에게도 달이고, 해라고 하면 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된다. 페트루치오가 마침 반대쪽에서
산길을 오르고 있던 빈첸티오 노인을 보고 캐서리나에게 처녀라고 부르며 인사하게 하자, 캐서리나는 순순
히 그렇게 한다.
만족한 페르투치오는 빈첸티오에게 용서를 구하고, 패두어로 아들 루첸티오를 만나러 가는 빈첸티오와 동행
하여 같이 길을 떠난다.
제5막 기적을 칭송하라
페트루치오와 캐서리나 일행이 패두어로 빈첸티오를 안내하여 루첸티오의 집까지 모셔다준다. 빈첸티오가
문을 두드리자 가짜 빈첸티오가 자신이 진짜 빈첸티오라고 우기며 으름장을 놓는다. 비온델로가 빈첸티오를
보고도 모르는 척 내빼고, 루첸티오로 변장한 트라니오가 뱁티스터와 같이 나타나 빈첸티오를 미친 사람 취
급하며 계속 자신이 루첸티오임을 주장하여 경찰을 부르는 등 큰 소동이 벌어진다.
이때 비온델로가 루첸티오와 비앙카와 함께 돌아온다. 루첸티오와 비앙카는 각각 무릎을 꿇고 자신의 아버
지에게 용서를 빌면서 두 사람이 이미 결혼식을 마쳤음을 알린 다음, 그간의 자초지종을 말한다. 이 소동을
옆에서 지켜보던 캐서리나는 페트루치오에게 소동의 결말을 보고 싶으니 이들을 따라가자고 한다. 이에 페
트루치오는 길거리 한복판에서 캐서리나에게 키스를 해달라고 말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돌아가겠다고 협
박한다. 캐서리나가 키스를 해주고, 두 사람은 뱁티스터의 집으로 들어간다.
루첸티오와 비앙카의 결혼식 피로연장에 하객들 모두가 모이자 루첸티오가 축하연설을 한다. 곧 이어 페트
루치오, 루첸티오, 호텐쇼는 캐서리나, 비앙카, 과부, 이 세 아내 중에 누가 가장 순종하는 아내인가를 가리
는 돈내기가 벌어진다. 비앙카와 과부는 하인이 부르러 가도 나타나지 않는데, 놀랍게도 말괄량이라고 내내
놀림감이 됐던 캐서리나만이 남편의 명령에 따라줌으로써 페트루치오가 이기게 된다. 뱁티스타는 큰딸이 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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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되었으니 지참금도 새로 2만 크라운을 더해주겠노라고 한다.
캐서리나의 변모는 그뿐이 아니다. 그녀는 남편이 시키는 대로 비앙카와 과부를 데리고 돌아와서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를 가르치는 일장연설로써 좌중을 압도한다. 캐서리나는 설교한다.
당신의 남편은 당신의 영주요, 생명이요, 보호자요, 당신의 머리이며, 당신의 군주이십니다. 당신을 아끼고,
당신을 먹여살리기 위해 몸을 바쳐 바다에서나 육지에서나 힘든 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폭풍우가 치는 밤이
나 혹한의 낮을 지켜주시니 당신들은 집에서 안심하고 아늑하게 지내잖아요. 그러고도 다른 선물은 원하지
도 않고, 다만 사랑과 고운 낮과 진실한 순종밖에 바라지 않지요. 그렇게 큰 빚에 비하면 지불하는 대가는
너무 하찮죠. 신하가 군주에게 진 의무, 바로 그것이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라고 하겠어요.
이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들 놀라운 기적이라 칭송하고, 의기양양한 페트루치오와 캐서리나가 잠자리에
들기 위해 퇴장하며 극은 끝이 난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셰익스피어의 초기 습작기에 해당하는 1592년에서 1594년 사이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 씌어진 본격적인 낭만희극들에 비해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무대공연 시 낭만희극이나 4대 비극 못지않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려온 작품이고 우리 무대에서도
심심찮게 공연되어왔기 때문에 우리 관객들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작품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흔히 이 작품의 원문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는 아주 특별한 주제를 다룬 극중
극이 이 극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말괄량이 길들
이기》는 서극에 등장하는 술취한 땜장이 크리스토퍼 슬라이가 관람하게 되는 극중극에 해당하는데, 말하자
면 액자 속의 그림처럼 극 속에 극이 들어 있는 (비록 완전한 구조는 아닐지라도) 아주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는 작품이 바로 《말괄량이 길들이기》인 것이다. 따라서 말괄량이 길들이기 이야기를 다루는 극중극이
이 극의 본극이 되는 셈인데, 이런 극구조는 셰익스피어의 전체 극작품 가운데 유일하다.
또한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는 다분히 남성지배의 전통을 강하게 드러내는 주제가
시사하는 바, 작품 전체가 지극히 반여성적인 성격을 띤 것으로 이해되기 쉬운 데다가 현재의 독자나 관객
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구석이 적지 않다. 가령, 페트루치오가 캐서리나를 길들이기 위해 동원하는
온갖 가학적인 방법들, 즉, 야생매를 길들일 때 사용하는 방법 그대로 밥을 굶기고 잠을 재우지 않는 식의
방법이 과연 지금의 관객과 독자들에게 희극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일찍이 버나드
쇼는 이 극이 현대적 감수성으로 보면 너무도 역겨운 극이라고 평하면서 상호존중하는 모든 여성과 남성은
이 극의 공연을 보이콧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최근에는 이 극을 여성에
대한 남성의 편협한 태도를 풍자한 작품으로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도 눈에 띈다. 그렇다면 과연 《말
괄량이 길들이기》라는 희극은 남녀관계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 작품인가?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는 주제가 셰익스피어의 극에 유일하
게 나타나는, 순전히 문학상으로만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실제로 말괄량이 길
들이기라는 주제는 르네상스 시대 문학의 여러 장르에 걸쳐 아주 흔하게 나타났으며, 《말괄량이 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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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씌어진 이 시기는 엘리자베스조 말기로서 여러가지 정치적, 사회경제적 갈등이 누적된 상태였고 특
히 남녀간의 위계질서의 혼란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반응이 나타난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말괄량이로 낙인찍힌 여성들은 징벌의자에 묶인 채 수레에 실려 온 동네를 돈 다음 더러운
강물에 머리끝까지 몇 번씩 빠졌다 건져지는 수치스런 처벌을 받거나, 고문도구나 다름없는 재갈 혹은 입
마개라고 불렀던 철제 마스크를 쓰고 온 동네를 끌려다니다가 형틀에 세워지는 고통스러운 처벌을 공공연
하게 받았던 것이다. 말괄량이를 길들이는 일은 이를테면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 강화하는 중요한 상징적
장치로서 기능했다고 할 수 있으니,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왜 말괄량이를 길들이려 하는가
그런데 도대체 말괄량이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며, 말괄량이는 여성에게 그렇게 큰 결함인가? 흥미롭게
도, 영국에서 말괄량이는 결혼의 불화를 일으키는 장본인으로 비난받는 상대를 낮추어 일컫는 말로 남편이
나 아내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단어였으나, 중세 말을 거쳐 르네상스 시기에 오면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
는 잔소리 심한 기혼여성을 가리키게 된다. 이때 주목할 점은, 말괄량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꾸짖고 떠들
어대는 언어적 행위로 나타난다는 것이며, 'shrew'가 scold 와 혼용되었던 점을 보아도 그러하다. 남성의 언
어가 합법적인 권위를 대변한다면 여성의 언어는 그것에 반항하는 시도로 간주된다. 결혼의 평화와 질서가
남편의 권위를 바탕으로 생성, 유지된다고 보는 한, 마땅히 남편은 언어로써 남편의 권위에 도전하는 말괄
량이 아내를 말없이 순종하는 아내로 길들여야 할 것인데, 페트루치오가 이루고자 하는 바가 곧 이것이다.
그런데 말괄량이로 낙인찍힌 캐서리나의 결함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남달리 뛰어난 그녀의 언어적 재치
내지는 남성들의 부당한 간섭에 저항하는 그녀 나름의 개성이라고 평가할 만한 것이다. 그리고 말괄량이 캐
서리나와는 대조적으로 결혼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비앙카는 실상 아버지나 여러 구혼자들이 생
각하는 대로 순종적이기만 한 여성이 결코 아니며, 5막의 내기 장면에서 드러난 말괄량이적인 비앙카의 모
습은 그녀에게 없었던 새로운 면모가 아니라 오히려 남성들의 눈에 드러나지 않았던 진면목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말없이 얌전하다고 해서 이상적인 처녀로 간주되는 비앙카나 말이 많아서 흠많은 처녀로 간
주되는 캐서리나는 다같이 여성을 이런 식으로 양분하여 한쪽은 이상화하고 다른 한쪽은 폄하하는 왜곡된
남성중심적 사고의 희생자다. 이런 왜곡된 이분법적 도식으로서는 여성의 참모습에 접근할 가능성이 희박할
수밖에 없다.
다시 생각해보는 결말
마지막으로, 얼핏 보기에 페트루치오가 길들이기에 멋지게 성공해서 말괄량이 캐서리나를 누구보다도 순종
하는 아내로 만드는 식의 희극적 결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5막에서의 캐서리나의 변화는 너무도
극적인 것이라서 그녀가 과장된 연기를 통해 순종하는 아내의 모습을 패러디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
구심을 낳기에 충분하다. 우선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를 가르치는 긴 설교는 무대를 압도하는 캐서리나의
당당한 연설형식과 서로 아귀가 맞지 않는다.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의 실제 생각과는 다르지만 남편이 주문
한 내용을 듣기 좋은 말로 멋드러지게 읊어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지 않겠는가. 물질주의적이고 강압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서 캐서리나는 남편에게 길든 아내의 모
습을 보여주는 대신 복종을 통한 지배를 꿈꾸었을 수도 있다. 페트루치오가 말괄량이 그녀를 한술 더 뜨
기 말괄량이 길들이기 작전으로 길들였다면, 이번에는 그녀 편에서 한술 더 뜨기 순종작전으로 남편을 길
들이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렇다면 캐서리나는 남편에게 길들어줌으로써 가부장제적 질서를 완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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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화하거나 혹은 가부장제적 질서의 참담한 희생자로 전락하기를 거부하고, 순종적인 아내의 역할을 통해
남편을 길들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는 지혜로운 여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극적 결말이 제시하는 희극적 타협이 현대의 관객과 독자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이상적인 결혼
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극에 제시된 가부장제적 세계 속에는 캐서리나가 취한 선택 외에
더 나은 대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극중의 희극적 화해가 지닌 근본적인 불균형과 불평등에 안
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으며, 상호간의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진정으로 평등하고 호혜적인 관계로서 맺
어지는 남편과 아내의 모습을 꿈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셰익스피어의 생애와 작품
1564
4월 26일, 영국 스트래트포드 온 에이븐에 있는 성삼위일체 교회에서 존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
의 아들로 세례를 받다.
1571
스트래트포드 문법학교 입학(?)
1578
스트래트포드 문법학교 졸업(?)
1582
11월 27일, 앤 헤서웨이와의 결혼허가서를 발부받는다.
1583
5월 26일, 첫딸 수잔나 세례
1585
2월 2일, 쌍둥이 남매 햄넷과 주디스 세례
1590
《헨리 6세》 삼부작 집필(?)
1592
《리차드 3세》, 《착오 희극》, 장시 〈비너스와 아도니스〉집필
1593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말괄량이 길들이기》집필
1594
챔벌린의 극단의 단원이 된다.
1594
《베로나의 두 신사》, 《사랑의 헛수고》, 《로미오와 줄리엣》집필
1595
《리차드 2세》, 《한여름 밤의 꿈》집필
1596
장남 헴네트 사망하다.
1596
《베니스의 상인》집필
1597
스트래트포드에서 가장 아름답고 둘째로 큰 저택 뉴 플레이스를 구입한다.
1597
《헨리 4세》1, 2부 집필
1598
《헛소동》, 《헨리 5세》집필
1599
챔벌린 극단의 주무대가 된 글로브 극장이 개장한다.
1599
《뜻대로 하세요》, 《십이야》집필
1600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집필
1601
《햄릿》,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더》집필
1602
《끝이 좋으면 다 좋다》집필
1604
《오셀로》, 《자에는 자로》집필
1605
《리어왕》집필
1606
《맥베드》집필
1606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집필
1607
장녀 수잔나가 의사 존 홀과 결혼한다. 《코리올레이너스》, 《아테네의 타이먼》집필
1608
《페리클리즈》집필
1609
《심벨린》집필
- 12 -
1610
《겨울 이야기》집필
1611
《태풍》집필
1612
《헨리 8세》집필
1613
《헨리 8세》공연 도중 글로브 극장이 화재로 소실된다.
1614
제2의 글로브 극장 준공
1616
1월에 유언장을 작성한다. 2월 10일, 차녀 주디스가 토머스 퀴니와 결혼한다.
3월 25일, 유언장을 수정하고 서명한다. 4월 25일에 사망
1623
셰익스피어의 동료배우였던 존 헤밍그와 헨리 콘델이 최초의 셰익스피어 전집인 《제일 2절판 전
집 The First Folio》 출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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