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영화,리뷰,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by Casey,Riley 2021. 12. 6.
반응형

데이비드 하비 지음 / 선순환
이 책은 민주주의 시스템과 자본주의 경제모델의 실패가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기회라고 말한다. 저
자는 금융위기, 중국의 부상, 우파 포퓰리즘의 득세와 신파시즘의 등장, 지구온난화 등의 현안에 대해
자신의 이론을 적용하여 설명하면서, 불평등과 환경 파괴는 필연적이며 그 이유는 자본주의가 지닌 모
순 때문이라고 밝히고, 그 모순을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데이비드 하비 지음

▣ 저자 데이비드 하비
영국 출신의 지리학자이자 마르크스 이론가이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지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존스
홉킨스대학의 교수, 런던스쿨오브이코노믹스 선임연구원, 옥스퍼드대학의 매킨더 지리학 교수를 역임
했다.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 인류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불평등과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자본주의 모
순에 대해 사회주의적 대안을 찾는 학자이자 실천가이다. 대표 저서로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
의 1, 2』, 『신자유주의-간략한 역사』,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 『모더니티의 수도, 파
리』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2019년, 산티아고를 비롯해 베이루트, 바그다드, 테헤란, 파리, 키토, 홍콩, 인도, 알제리. 수단 등 세
계 곳곳에서 정치적 투쟁이 대폭발했다. 이것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현 세계에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방증인데, 이러한 문제들은 민주주의 시스템의 실패와 민중들이 정체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알려진 또 다른 불만의 목소리는 현 경제모델의 실패이다. 생
활의 질을 합리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도록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주면서, 동시에 적정 수입을 동반한 고
용 보장, 부담 없는 가격으로 식탁 위에 올릴 수 있는 음식, 몸에 걸칠 수 있는 셔츠, 두 발에는 신발,
손에는 휴대폰, 집 차고에는 자동차를 보장해주리라 기대했던 경제모델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민주주의 시스템과 자본주의 경제모델의 실패가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기회라고 말한다. 저
자는 금융위기, 중국의 부상, 우파 포퓰리즘의 득세와 신파시즘의 등장, 지구온난화 등의 현안에 대해
자신의 이론을 적용하여 설명하면서, 불평등과 환경 파괴는 필연적이며 그 이유는 자본주의가 지닌 모
순 때문이라고 밝히고, 그 모순을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과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그럼에도 경제는 우물쭈물하고 정치는 갈팡질팡한
다. 그러는 동안 지구는 달궈지고, 민중은 고통을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를 괴롭
히고 있다. 지리학자이자 마르크스 이론가인 저자는 이런 현황과 원인을 살피고, 공통점은 불평등. 문
제는 오로지 성장만을 추구하는 자본에서 비롯한다고 밝히면서, 우리의 과제는 현 사회에 잠재되어 있
는 문제가 무엇인지 잘 살펴서 그 대안이 될 수 있는, 보다 사회주의적인 시대로 평화롭게 전환할 수
있도록 모색하는 것이며, 이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기나긴 여정이라고 강조한다.

▣ 차례
1 지구촌 곳곳이 불안하다 (Global Unrest)

-2-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2 신자유주의의 간략한 역사 (A Brief History of Neoliberalism)
3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파헤치다 (Contradictions of Neoliberalism)
4 실체 없는 금융이 세상을 지배하다 (The Financialization of Power)
5 독재로 선회하는 신자유주의 (The Authoritarian Turn)
6 사회주의는 진정한 자유를 추구한다 (Socialism and Freedom)
7 세계 경제에서 중국의 중요성 (The Significance of China in the World Economy)
8 자본주의의 지정학 (The Geopolitics of Capitalism)
9 성장 증후군 (The Growth Syndrome)
10 소비자 선택권이 박탈당하다 (The Erosion of Consumer Choices)
11 원시적이며 근원적인 자본축적 (Primitive of Original Accumulation)
12 강탈에 의한 자본축적 (Accumulation by Dispossession)
13 생산과 실현 (Production and Realization)
14 탄소 배출과 기후변화 (Carbon Dioxide Emissions and Climate Change)
15 잉여가치의 변화율 대 총량 (Rate versus Mass of Surplus Value)
16 소외 (Alienation)
17 소외 당하는 노동자: 공장 폐쇄의 정치 (Alienation at Work: The Politics of a Plant Closure)
18 코로나19 시대의 반자본주의 정치 (Anti-Capitalist Politics in the Time of COVID-19)
19 집단적인 딜레마에 대한 집단적인 반응 (The Collective Response to a Collective Dilemma)

-3-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데이비드 하비 지음

지구촌 곳곳이 불안하다 (Global Unrest)
2019년 가을, 산티아고를 비롯해 베이루트, 바그다드, 테헤란, 파리, 키토, 홍콩, 인도, 알제리, 수단
등 세계 곳곳에서 정치적 투쟁이 대폭발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현 세계에 고질적인 문제
가 있다는 방증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은 민주주의 시스템의 실패와 민중들이 정치에서 소외되
고 있다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또 다른 불만의 목소리
는 현 경제모델의 실패입니다. 생활의 질을 합리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도록 공공서비스(건강관리, 교
육, 주택 및 대중교통 등)를 제공해주면서, 동시에 적정 수입을 동반한 고용 보장, 부담 없는 가격으로
식탁 위에 올릴 수 있는 음식, 몸에 걸칠 수 있는 셔츠, 두 발에는 신발, 손에는 휴대폰, 집 차고에는
자동차를 보장해주리라 기대했던 경제모델이 실패했다는 것이죠.
희망 없는 미래
칠레에서 벌어졌던 최근의 사건들은 문제의 본질뿐만 아니라, 이런 문제들을 정치적으로 다루는 전형
적인 방법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칠레는 신자유주의를 선도했던 국가들 중 하나였습니다. 1973
년, 피노체트 장군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적으로 선출된 사회주의자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를
제거하고, 일명 ‘시카고학파’라고 불리는 시카고대 출신 경제학자들을 영입해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을
도입했습니다. 이후 2019년 10월 초, 보수적인 기업인 출신의 피네라 대통령은 《파이낸셜 타임스》와
의 인터뷰에서 칠레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칠레는 ‘건전한 성장을 이루고 있는 오아시스이며, 탄탄한
경제가 뒷받침하고 있고, 경제 지표가 우수한 나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3주 후 칠레에 심
각한 민중 소요가 들끓고 있다는 속보가 나옵니다. 애초의 문제는 지하철요금 인상이었습니다.
거리로 나온 학생들의 수는 2006년도 학생 시위에 맞먹었습니다. 당시 고급 레스토랑에서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있던 피네라 대통령은 이 사태를 일으킨 무법자들을 반드시 막겠다고 장담했습니다. 이것
은 곧 경찰에게 불만분자들을 강경 진압하라는 암묵적인 지시였습니다. 경찰은 그대로 따랐습니다. 이
런 경찰에 맞서 시위에 합류하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고, 성당 세 곳과 지하철역이 불에 타고, 슈퍼
마켓이 공격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후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군대가 동원되었습니다. 그러자 수
백만의 분노한 시민들이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에 대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반기를 들었습니다.
피네라 대통령은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이후
기초연금 지급액과 사회복지 수당을 증액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했습니다. 그리고 또 국가비상사태를
철회하고 군대를 철수시켰습니다. 이후 낡은 헌법에 대한 개헌 요구가 일었습니다. 기존의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을 보장해주는 헌법은 군부독재 시절에 채택된 것이었는데, 이 모델에 따라 연금, 건강, 교육
등의 부문이 민영화되었던 거죠. 결국 개헌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2020년 4월에 국민투표를 하기로 결
정했습니다. 칠레에는 이렇게 불안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일찌감치 에콰도르에서도 있었습니다. IMF(국제통화기금)가 조세 개혁과 유가 보조금
의 폐지 등을 요구하는 구조조정을 명령했고, 이로 인해 대규모 시위가 촉발되었습니다. 시위대의 규

-4-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모가 엄청나게 커질 듯하자 정부는 수도인 키토를 민중들에 넘기고 과야킬로 피신을 합니다. 결국 레
닌 모레노 대통령은 IMF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키토로 돌아가 협상을 합니다. 한편 지구 반대편에서는
레바논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희망이 없는 미래에 좌절한 젊은 세대들이 계속해서 거리로 나와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했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일이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도 벌어졌는데, 이 시위대는 바그
다드에서 빈곤에 허덕이는 저소득층이면서도 수년간 정치적으로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
었죠. 한편 프랑스에서는 ‘노란 조끼 시위’가 1년 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그렇다면 이러한 시위들은 모두 무엇 때문에 발생한 것일까요? 각각의 사례들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들 시위의 공통된 맥락을 보자면, 현 경제 시스템이 대중들에게 보장했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 또 정치 시스템이 비정상적으로 초부유층의 편에
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시위는 기본적인 경제 문제(대중교통비나 식비, 도시 공공서비스나 적정가의 주택 공급 부실과 같은)
에서 촉발됩니다. 하지만 그 선에만 머무는 경우는 드뭅니다. 시위는 급속도로 증가하며 광범위한 문
제들을 다루게 되죠.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관점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이러한 문제
들은 신자유주의와 같은 특정한 자본축적 형태에서 비롯됩니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서 구현되는 신자유주의라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에 편승해 우리는 여기까지 왔습니다만 이제
이 시점에서 멈춰 자본축적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보다 더 사
회적인 책임을 지고, 보다 더 공정한 형태인 이른바 ‘양심적인 자본주의’가 요구됩니다.
시위의 확산
지난 30년에 걸쳐 우리는 다양한 저항운동을 목격했습니다. 이런 저항은 도심 지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도심 지역의 삶의 질이 저하되는 문제에 집중됐죠. 노동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규
모 시위는 대부분 도심을 중심으로 벌어졌고, 그렇게 시작된 시위가 다양한 논리에 편승해 점차 확산
되고,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힘을 받으며 발전해가는 양상을 띠고 있습
니다. 반자본주의 투쟁이나 예전의 무산계급 및 노동계급에만 국한된 투쟁과는 비교가 되죠.
불평등과 기후변화
대중들의 이러한 결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는 끊임없이 생각해봤습니다. 오늘날 자본이 굴러가는
시스템에 결정적인 모순이 발생하는가? 그렇다면 그 결정적인 모순은 무엇일까? 한 가지 중대한 문제
는 사회적 불평등입니다. 지난 30년에 걸쳐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훨씬 평
등한 사회를 쟁취하기 위해서 뭔가 움직여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중에게 더 나은 공
공재, 더 나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기후변화입니다.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환경 파괴입니다. 기후변화는 전 세계가 공동
대응을 해야만 하는 지경에 와 있습니다. 공동 대응의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많아지고 있죠. 사회적 불평등과 환경 파괴는 해결하기 힘들어 보이는 문제입니다. 한편 자본주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자본이 불합리와 불평등을 양산할 뿐 아니라 야만적이며 심지어는 자멸의 길로 가
고 있다고 보는 데에는 여러 가지 다른 이유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이와 같다면 자본은 또 다
른 경제체제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5-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자본의 속성
마르크스는 다루지 않았지만, 이제는 중대한 문제가 되어버린 요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자본은 항상
성장을 추구한다는 점이죠. 이윤 추구를 통해서 활기를 띠는 것이 자본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건강
한 자본주의 경제는 모두가 초과이윤을 얻는 것입니다. 초과이윤이란 하루의 시작점에 갖고 있는 가치
보다 하루의 마무리 시점에 쌓인 가치가 더 늘었다는 얘기이죠. 그리고 이렇게 하루의 마무리 시점에
생긴 잉여가치는 ‘경쟁의 강제법칙’에 따라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데 사용됩니다. 자본주의에서 성
장이란 복리로 불어나는 성장입니다. 그런데 세계 경제의 규모가 약 25년마다 두 배로 커지고 있는 현
실을 감안할 때 이런 식의 복리성장은 이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리처드 프라이스가 1772년에 쓴 복리 이자에 관한 글을 인용했습니다. 프라이스는 예수가
태어난 날에 3% 복리 이자로 1페니를 투자할 경우 1772년이면 투자가치가 순금으로 지구 부피의
150배에 달하게 될 것이라고 계산했습니다. 반면 1페니를 단리로 투자할 경우에는 1772년이 되면 불
과 7실링과 잔돈 몇 푼의 가치 밖에 안 될 것이라고 했고요. 여기서 마르크스는 장기간의 복리는 불가
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자본의 관성에 따르면 아무런 제약 없이 무한정 자본축
적이 이루어집니다. 마르크스가 세상을 읽어내던 시대에는 넘을 수 없는 한계는 없는 것처럼 무한한
자본축적을 향해 달려드는 복리성장이란 것이 가시적인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1970년 이
후로 국제통화 공급 및 국제 신용통화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세계경제가 복리성
장의 궤적을 밟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자본의 지배하에 돌아가는 세계시장에서 생산,
분배, 소비 및 가치의 현금화 등에 치명적인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모순
자본주의 시스템에는 여러 모순들이 있습니다. 그중 몇 가지는 다른 모순들보다 훨씬 두드러지죠. 믿
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계층적, 사회적 불평등과 환경의 붕괴는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모순들입니
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너무 커서 붕괴시킬 수 없고, 너무 괴물 같아서 생존할 수 없는’ 자본의 모순
이 나타납니다. 사회적 불평등도 환경 파괴 문제도 이런 근본적인 모순을 다루지 않고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자본은 거대한 괴물이 되어 점점 폭주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남으려면 크고 작은 내전이나
갈등과 같은 지정학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맞서 사회주의 및 반자본
주의 운동은 자본의 어떤 면이 세계인들에게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본의 어떤
면이 너무 크고 근원적이어서 붕괴시킬 수 없는지, 칼날 같은 타협의 길을 가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에는 자본주의가 하루아침에 붕괴되더라도 전 세계
인구 대부분이 스스로 먹거리를 구하고 번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역사회에서 생계 및 번식에 필
요한 것들을 조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급자족이 가능한 시대였죠.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그렇게 생존할 수 있는 지역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현 사회에 잠재되어있
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서 그 대안이 될 수 있는, 보다 사회주의적인 시대로 평화롭게 전환할
수 있도록 모색하는 것입니다. 혁명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기나긴 여정입니다.

사회주의는 진정한 자유를 추구한다 (Socialism and Freedom)
최근 페루에서 강연을 했을 때 자유가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그곳의 학생들은 ‘사회주의는 개인의 자
유를 구속하는가?’ 같은 질문에 큰 관심을 보였죠. 미국을 위시한 세계 곳곳에서 우파는 자유라는 개

-6-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념을 자신들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을 ‘자유를 부정’하는 자들로 매도하는 데 자유
라는 개념을 무기로 사용했습니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서는 국가 통제가 우선하기 때문에 어떤 경
우에도 개인의 자유는 배제된다고 떠들었죠. 저는 학생들에게 사회주의 해방운동은 개인의 자유도 운
동의 한 부분으로 붙들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사회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주변부가 아닌 핵심
과제로 두고 싶어 한다고 봐도 좋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성취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주의 해방운동의 핵
심 목표라고 저는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 각자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한 충분한 기회와 가
능성이 제공되는 사회를 더 함께 힘을 모아 만들어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자유의 양면성
마르크스는 이 주제에 대해 몇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자유의 영역은 필요의
영역이 충족될 때 시작된다’는 것이죠. 애당초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건강관리를 비롯한 주택,
대중교통, 교육 등이 적절히 제공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자유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러한 기본
적인 필요를 제공하는 것, 이러한 기본적인 인간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 그리하여 비로소 민중이 자유
롭게 원하는 바를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사회주의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우파가 자유의 개념
을 독점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사회주의 스스로 자유의 개념을 되살려야 합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유가 양날의 검이라는 점도 지적했는데, 노동자의 입장에서 흥미로운 방법으로
자유를 바라보고 있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란 이중적인 의미에서 자유롭다고 말합니
다. 노동자는 노동시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이에게 노동력을 자유롭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
시에 이들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생산수단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노동자는 살
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넘겨야만 하죠.
노동자의 자유란 이렇게 양면성을 띠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이 점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자
유의 핵심적인 모순이라고 봤죠. 마르크스는 『자본론』 중 노동시간을 다루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
니다. 자본가는 자유롭게 노동자에게 “최소의 임금으로 맡은 일을 정확히 해내는 데 최대한 많은 시간
을 할애해주시는 분을 채용하고자 합니다. 이게 제가 요구하는 채용 조건입니다.”라고 말하고, 자본가
는 시장사회에서 자유롭게 그렇게 합니다. 시장사회는 가격 경쟁 속에서 돌아가니까요.
한편 노동자도 자유롭게 말합니다. “나에게 하루에 14시간 일을 시킬 권리가 당신에게 있는 것은 아닙
니다. 당신이 바라는 일을 뭐든 다 시킬 권리는 없습니다. 그것이 특히 내 생명을 단축시키거나 건강
과 행복을 해치는 일이라면 말이죠. 나는 정당한 임금에 정당한 시간만큼만 일을 하겠습니다.”
시장사회의 본질을 감안하면 자본가와 노동자가 각기 요구하는 조건은 모두 옳습니다. 그래서 마르크
스는 시장을 지배하는 교환의 법칙에 따라 둘 다 동등하게 옳다고 말하죠. 그러면서 동등한 권리 사이
의 결정은 힘에 지배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힘의 관계에 따라 결과가 좌우됩니
다. 이는 어느 정도 위압적이고 폭력적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일일 노동시간 및 임금,
노동환경 등이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투쟁을 통해 결정됩니다. 자본가가 교환의 법칙에 따라 노동력을
최대한 착취하려고 하는 것도 자유인 반면, 노동자가 이에 저항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자본주의 체제
에서는 이렇게 두 자유 간의 충돌 구도가 매일같이 형성됩니다.
이 주제에 대해 상세히 다룬 역작들 중에는 경제역사학자 칼 폴라니가 쓴 논문도 있습니다. 칼 폴라니

-7-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는 『거대한 전환』을 집필한 분이죠. 『거대한 전환』에서 폴라니는 좋은 의미의 자유와 나쁜 의미의 자
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나쁜 의미의 자유로는 무제한으로 동료를 착취하려 하는 자유, 공동체에 상응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지도 않은 채 과도한 수익을 올리려 하는 자유, 과학기술 발명을 공익에 이용하
지 못하도록 막으려 하는 자유, 인적 재해 및 자연재해를 비롯해 사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몰래 설계
된 일을 돈벌이에 이용하려 하는 자유 등을 꼽았죠. 폴라니는 이러한 자유가 횡행하는 시장경제에서
아주 고귀한 자유들도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직
업 선택의 자유 같은 것들 말이죠. 우리는 이러한 자유들만이라도 소중히 여겨야겠지만(물론 많은 이
들이 소중히 여기고 있고, 심지어 저를 비롯한 마르크스 진영의 사람들조차도 그러고 있습니다만), 상
당 부분 이러한 자유들은 악한 자유들에도 책임이 있는 동일한 경제체제의 부산물입니다.
현재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사고의 헤게모니와 기존 정치권력에 의해 나타나는 자유의 양
상을 감안하면, 이런 이중성에 대한 폴라니의 답변은 이상한 해석들을 낳습니다. 폴라니는 이에 대해
‘시장경제를 지나면, 즉 시장경제를 넘어서게 되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자유의 시대가 시작될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장경제를 버린 뒤에야 진정한 자유가 시작된다는 말로, 시장경제를
선봉하는 현시대에 상당히 충격적인 발언이죠. 폴라니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법적 자유 및 실제 자유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광범위해지고 보편화될 수 있다. 규제와 관리를 통해
소수뿐 아닌 모든 이들이 자유를 성취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썩어빠진 특권의 종속물로서가 아닌, 정
치 영역의 협소한 경계를 뛰어넘어 스스로 친숙한 사회 조직 속으로 확장해가는 관례적인 권리로서의
자유를 모든 이들이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산업사회가 만인에게 제공하는 여유와 안전
을 통해 새로운 자유들이 창출될 것이며, 이는 해묵은 자유와 시민권 위에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이러한 사회야말로 정의와 자유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인 것이다.’
자유와 시간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문제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회주의 세상을 만들려면 우리는 개인주의를 내놓아
야 하고,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일 수도 있
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개인화된 잔인한 시장의 자유를 넘어서면, 폴라니가 주장한 대로 더욱 큰 자유
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개인의 자유 영역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을 저
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필요의 영역이 제대로 관리될 때만 자유의 영역이 극대화된다고요. 사회주의의
임무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
주의의 임무는 기본적인 생필품들이 제대로 관리되어, 즉 무료로 공급되어 사람들이 모두 자신들이 원
하는 시기에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각 개인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원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만 의미하는 게 아닙
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간, 진정한 자유 시간, 이것이 사회주의
이상에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뭐든 각 개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시간, 이것이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지금 당장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당신은
자유로운 시간을 얼마나 갖고 있습니까?” 아마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입니다. “자유 시간이 거의 없습
니다.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 때문에 시간이 없어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 진정한 자
유의 핵심이라면, 사회주의 해방운동은 이것을 사회주의 정치 업무의 중심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이
것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할 수 있고, 또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8-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성장 증후군 (The Growth Syndrome)
변화율 대 총량
흔히 경제의 건강과 건전성을 평가하는 주요한 측정치로 성장률을 자주 거론합니다. 경제정책의 주요
목표는 성장률을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흔히 말하죠. 하지만 성장에는 아주 중요한 측면이 또 하나 있
습니다. 그런데 그 중요성을 대부분 무시하죠. 그것은 바로 성장의 총량입니다. 절대적인 총량이 얼마
나 되며, 우리는 생산된 그 총량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이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경제지 《파이
낸셜 타임스》에는 양적완화가 불평등을 조장했는지에 관한 잉글랜드은행의 보고서를 요약한 기사가 있
었습니다. 그 기사에는 평균적으로 영국의 최하위 소득 10%가 2006-08년부터 2012-14년까지 약 3
천 파운드를 더 번 데 비해서, 최상위 10%는 32만 5천 파운드를 더 벌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수
치를 보면 양적완화가 가난한 사람보다는 부자에게 더욱 많은 혜택을 주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
니다. 이는 널리 알려진 의견입니다. 그러나 잉글랜드은행의 보고서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최
하위 10%가 받았던 3천 파운드는 비율로 따지면, 상위 10%가 받았던 32만 5천 파운드보다 더 많다
는 것입니다. 비율상 양적 완화가 부자보다 가난한 자에게 혜택을 더 많이 줬다는 거죠. 해당 보고서
의 저자들은 사람들이 경제 정보를 정확하게 읽을 줄 모르는 게 문제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라 변화율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제일 가난한 사람들이 6년에 걸쳐 받은 3천 파운드는 1주일에
10파운드가 안 되는 돈이라는 점입니다. 이 정도의 돈으로는 누구라도 정치경제적 입지가 나아지지 않
습니다. 정말로 푼돈에 불과합니다. 그 돈으로는 인생에 별로 도움이 안 되죠. 반면에 상위 10%에게
돌아간 32만 5천 파운드는 인생에 꽤 도움이 됩니다. 이미 쌓아놓은 돈이 상당해서 그 정도의 돈은 무
시할지도 모르겠지만, 부의 총량에 그 정도의 돈이 더해진다는 것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경제적 힘을 그만큼 더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상위 10%에게 있어서 부의 증가 비
율이 낮을지는 모르겠지만, 절대적인 총량의 변화는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이렇게 물어보겠습니다. 백 달러에 대한 10% 이익을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천만 달러에 대한 5%
이익을 받으시겠습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5% 이익의 총량이 훨씬 큽니다. 엄청난 불평등은 바로
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6년 동안 최하위 10%는 일주일에 겨우 커피 세 잔을 더 마실 수 있었
던 데 반해, 상위 10%는 맨해튼에다 원룸아파트를 한 채 살 수 있었습니다. 데이터를 정확하게 읽어
야 한다는 그 보고서 저자들의 말이 맞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확하면서도 비판적으로 읽어야 합
니다. 그 보고서는 총량보다 변화율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부의 증가 비율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작았다고 강변했습니다. 따라서 그 정도의 변화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했죠. 보고서
의 저자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평등의 증가를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위장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어떤 맥락에서는 치명적인 중요성을 띠게 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지구온난화 문제를 얘
기할 때 탄소 배출량의 증가율을 조정하는 것은 분명 중요합니다. 여러 가지 정치적인 문제가 걸려 있
죠. 그러나 이미 대기 중에 존재하는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메탄 등)의 총량도 분명 중요한 정치적 현
안입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가 즉각적으로 심각하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는 바로 온실가스의 총량입니
다. 증가율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온실가스의 총량이 훨씬 더 중요한

-9-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상황이죠. 이처럼 비율보다 총량이 훨씬 중요해지는 상황들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결론짓겠습
니다. 변화율과 총량 사이의 관계는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입니다.

집단적인 딜레마에 대한 집단적인 반응(The Collective Response to a Collective Dilemma)
노동과 시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은 점을 자세하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기술이 사업
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혁신이 신기술에 대한 기존의 특정 시장 수요에 대응하는 역할을 하기
보다 혁신 자체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신기술은 자본주의 사회 역동성의
최첨단에서 있게 됐습니다. 그 영향은 광범위하게 나타났습니다. 기술은 절대 정적이지 않으며 한곳에
안주해 있지 않고 금세 구식이 된다는 사실이 뚜렷해졌습니다. 기존의 기술이 구식이 되는 속도가 빨
라진다는 것은 기존의 회사에게는 악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 제약, 생명공학 등 사회의 전반적인 분야가 혁신을 위한 혁신 창출에 경도되
어 있죠.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혁신적인 제품(휴대폰이나 태블릿 등)을 만들어 내거나 가장 응
용 범위가 넓은 것(컴퓨터 칩 등)을 만들어내는 자가 결국 시장에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기
술 자체가 사업이 된다는 것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입
니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다른 생산양식과 차별화되는 지점이죠.
마르크스는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런 현상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이루어지는 생산과정과 어떤
관계가 있으며, 노동(그리고 노동자)이 생산과정에 통합되는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자본주
의 이전 시기, 즉 15-16세기에 노동자는 일반적으로 생산수단(도구)을 제어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도
구를 활용하는 기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기능공은 일정한 지식을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 지식에 대한 이해도 독점하고 있었죠. 그래서 이러한 것들이 항상 일종의 예술로 인식되었다고 마
르크스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장 시스템이 들어선 후부터는, 더구나 현대에 와서는 더 이상 그
렇지 않습니다. 노동자의 전통적인 기능은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과학기술이 그 자리를 대체해
과학기술과 새로운 형태의 지식이 기계에 통합되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의 예술은 사라졌습니다.
마르크스는『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어떻게 기계에 통합되었는지 놀라울 정
도로 상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기술과 지식은 이미 노동자의 두뇌에서 빠져나갔습니다. 노동자는 기
계의 부속품이거나 기계를 지키는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한때 자본가에 대항하는 일종의 독점적 힘이
었던 노동자들만의 기술과 지식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한때 노동자들의 기능이 필요했던 자본가들은
이제 이런 속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런 기능은 이제 기계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을 통
해 생산된 지식은 기계로 흘러 들어가며, 기계는 자본주의 역동성의 ‘영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서술하고 있는 당시의 상황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의 역동성은 결정적으로 영속적인 혁신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영속적인 혁신
이란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죠. 마르크스는 자신이 살던 시대에 이미 이것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1858년에 이 모든 것에 대한 글을 썼으니까요! 현재 우리는 이 문제가 결정적으
로 중요해진 상황 속에 처해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문제가 마르크스가 말했던 문제의 현대 버전이죠.
과학기술을 통해 인공지능이 어느 수준까지 개발될 것이며, 현재 어느 선까지 생산 과정에 적용되고

- 10 -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있고 앞으로 적용될 것인지 우리는 이제 알아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노동자를 밀어낼 것은 뻔히 보입
니다. 실제로, 생산과정에서 발휘되는 노동자의 상상력과 기능, 전문성은 박탈될 것이며 노동자의 가
치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다음과 같
이 말하고 있습니다. ‘생산과정이 단순한 노동과정에서, 자연의 힘을 복속시키고 그 힘이 인간의 욕구
를 충족시키도록 강요하는 과학적 과정으로 변환된 것은 산 노동에 대조되는 고정자본의 위상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중략) 따라서 노동이 갖고 있는 모든 힘은 자본의 힘으로 치환되고 있다.’ 지식과 과학
적 전문성은 이제 기계 속에 내재되어 자본가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노동의 생산적인 힘은 고정자본
안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 고정자본은 노동의 외부에 있습니다. 노동자는 한쪽으로 밀려났고, 생
산과 소비에 관한 우리의 집단적 지식과 지성을 전달하는 역할은 고정자본이 맡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는 붕괴하는 유산계급 체제가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잉태하고 있다고 했습
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자본은 자신도 모르게 인간의 노동과 에너지 소비를
감소시킨다. 이런 현상은 해방된 노동에 이익이 될 것이며, 노동 해방의 조건이다.’ 다시 말해, 마르크
스는 자동화나 인공지능 같은 것들이 노동 해방의 조건이며 동시에 가능성을 만들어주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파리코뮌 팸플릿에서 말했던 구절은 노동과 노동자의 자기해방 문제가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조건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을 해방할 잠재력이 있는 그
조건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이러한 과학기술은 모두 노동의 사회적 생산성을 높이
고 있습니다. 그 모든 기계를 관리하는 노동자 한 명이 단시간 내에 어마어마한 양의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다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합니다.
‘대규모 산업이 등장함에 따라 실질적인 부의 창출은 노동시간이나 고용한 노동의 양보다는 노동시간
중에 돌아가는 동력의 힘에 좌우된다. 그 동력의 ‘강력한 효율성’ 그 자체는 전반적인 과학 수준과 기
술의 진보, 즉 그러한 과학이 생산에 적용되는 바에 따라 좌우된다. 생산에 소요된 직접적인 노동시간
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중략) 생산에 들인 노동시간과 생산품 사이의 현격한 불균형으로 실질적인
부가 쌓이는데, 이는 대규모 산업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여기서 마르크스는 리카도파 사회주
의자가 당시에 한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진정 부유한 나라는 노동시간이 하루에 12시간인 나라가
아니라, 하루에 6시간인 곳이다. 부란 잉여노동시간을 좌지우지하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과 사회 전체가 직접적인 생산에 필요한 시간 외에 이용할 수 있는 시간에서 생기는 것이다.”
자유 그리고 해방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개인의 개체성을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바
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는 항상 이것을 강조했습니다. 집단적 행동이 추구하는 종착점은
개인의 자유로운 개발이라고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필요노동의 전반적인 감소’에 달려 있습니다. 즉
사회의 일상생활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량의 감소에 달려 있다는 의미죠. 노동의 생산성이 증가
하면 사회의 기본적인 욕구는 아주 쉽게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각 개인의 예술적ㆍ과학
적 잠재력을 자유롭게 개발할 시간이 충분히 생깁니다. 처음에는 소수 특권층에게만 이런 시간이 생기
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길 것입니다. 문제는, 마르크스
의 말을 빌리자면, 자본 자체가 ‘움직이는 모순 덩어리’라는 점입니다. “자본은 노동시간을 최소한도로
줄이려고 압박을 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로지 노동시간을 부의 척도와 원천으로 본다.”
따라서 자본은 노동시간을 필요한 방식으로 실제 필요한 만큼 줄이고서는 잉여노동시간을 불필요하게

- 11 -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늘립니다. 불필요하게 늘린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말하는 잉여가치입니다. 누가 이 잉여가치를 갖는
지가 문제입니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문제는 이 잉여가치 자체가 아니라 노동자에게 이 가치가 돌아가
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창출하려 하고, 또 한편에서는 이
시간을 잉여노동으로 전환시켜 자본가계급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죠. 노동시간
이 단축되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도 이는 실제 노동자의 해방에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데도 말이죠. 실제로는 부르주아의 배를 불려 부르주아 계급 내의 전통적인 수단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모순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으로, 우리는 국가의 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돈의 총량과 누군
가가 좌지우지하는 나머지 것들을 기준으로 국가의 부를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진정으로 부유한
국가는 노동시간이 하루에 12시간이 아니라 6시간인 곳이다. 부란 잉여노동시간을 좌지우지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각 개인이 직접적인 생산에 필요한 시간 외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즉 한 사회의 부는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어 어떤 제약도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의 양으로 측정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
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합니다. 하지만 사회를 지배하
는 계급 관계와 자본가계급의 위력 행사 탓에 이런 움직임은 방해를 받는 실정입니다.
팬데믹 이후의 새로운 사회
코로나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친 결과 폐쇄와 경제 붕괴라는 상황에 처해 있는 현재, 흥미롭게도 앞에서
말한 모든 것들이 메아리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현재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집에 처박혀 있죠. 일하러 나갈 수 없고, 평소 하던 것들을 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또 하나, 우리는 현재 대량 실업 사태를 겪
고 있습니다. 최신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는 2천6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일자리를 잃으면 돈
이 없어 마트에 갈 수 없습니다. 즉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죠. 의료보험을
상실한 사람들도 많고,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주택 임대료나 주
택담보대출금을 내지 못해 주거권을 박탈당하게 된 사람들도 많죠. 이런 민중들은 곧 거리로 내몰려
굶어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상황을 좀 더 깊이 들여다봅시다.
급증하는 환자를 돌보고, 민중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도록 최소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은 성
별, 인종별, 민족별로 편향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현대 자본주의의 전면에 서 있는 ‘새로운 노동계급’
입니다. 이들은 일하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는 위험이 가장 높은 노동을 감당하거나, 바이러스
로 인한 경제적 불황으로 대책도 없이 해고당할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노동자들은 신자
유주의의 얌전한 신민으로 살아가도록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길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리 얌
전한 신자유주의 신민이라도 이전 세계적 유행병에 대처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
다. 또, 현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이 짊어진 짐이 부당하다고도 느낄 것입니다.
이토록 심각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형태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
기 위해서는 폐쇄 조치, 사회적 거리 두기 등 온갖 종류의 집단적인 행동이 필요하죠. 그런데 궁극적
으로는 각자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도록 자신을 해방하기 위해서도 이런 집단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에는 자본의 속성이 상징적으로 잘 드러나
있습니다. 즉 자본가계급의 부를 창출하는 데 매여 있느라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유

- 12 -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롭게 하지 못하는 사회를 건설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대안 사회의 모습을 곰곰
이 생각해봐야 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지금이 바로 대안 사회를 실현할 가능성이 보이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런 세상에, 실업자 2천 6백만 명을 즉시 일터로 돌려보내야 해.”라고 할 게 아닙니
다. 대신, 집단적인 공급 지원을 담당하는 집단 조직 같은, 이미 시행되고 있는 일들을 확장할 방법을
찾아봐야 합니다. 의료 분야에서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일입니다. 또 식품, 심지어 조리 식품까지 사회
주의적인 방식을 통해 공급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현재 뉴욕의 일부 식당들은 실직자,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기부로 무료 급식 시스템을 돌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 비상시국에는 이렇게 합시다.’라고 할 게 아니라, ‘자, 여러분의 임무는 사람들을 먹이
는 일입니다. 모두가 적어도 하루에 한두 끼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게 합시다.’라고 하는 게 좋
습니다. 지금이 바로 모든 식당에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이미 우리 사회에는 이런
부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급식을 제공하는 학교가 많죠. 그러니 이런 일들이 지속되도록
합시다. 아니면 적어도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면 어떤 일이 가능한지라도 배웁시다. 지금이 바로 대안
사회 건설을 위해 이런 사회주의적 상상력을 발휘할 순간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어퍼웨스트사이드에는 문을 닫고 휴업을 한 식당들이 많습니다. 그곳에 사람들을 다시 들여보내는 겁
니다. 음식을 만들어 거리에서 가정에서 사람들을 먹이고 노인들에게도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죠. 우리
는 이런 집단적 행동을 통해 모든 개인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현재 일자리를 잃은 2천
6백만 명이 다시 일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면, 하루에 12시간 노동이 아니라 6시간 노동이 되어야 합
니다.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며, 부유한 나라에 대한 다른 정의가
실현된 것을 축하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야말로 미국을 진정으로 위대하게 만드는 일일지 모릅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한다는 말에서 ‘다시’는 역사의 쓰레기통 속에서 잠들게 내버려 둡시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되풀이해서 말하는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진정한 개인주의의 뿌리는 유산계급 이
데올로기에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설파하는 가짜 개인주의와는 다릅니다. 개인의 자유와 해방의 진정
한 뿌리는 하루에 6시간 노동을 통한 집단적인 행동으로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되고 나머지 시
간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상황 속에 있습니다. 지금이 대안적인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동력과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순간입니다. 이런 해방의 도정에
오르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를 해방하여 새로운 현실과 상상이 가능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13 -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반응형

'책,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이브 팩터  (0) 2021.12.06
조화로운 부  (0) 2021.12.06
인플루언서의 말센스  (0) 2021.12.06
인생은 왜 50부터 반등하는가  (0) 2021.12.06
인류와 공존하는 미래 - 인공지능  (0) 2021.12.06